< 눈 내리던 날의 Jazz - (상) > 시끄러운 자명종 소리에 눈을 떴다. 창밖이 밝다. 해가 뜨지는 않은 것 같은데. 창문을 여니 차가운 바람과 함께 눈 발이 나의 얼굴을 덮는다. 눈 내리는 날이 다. 기분이 좋아진다.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 아침부터 눈이 오면 기분이 좋고 뭔가 뜻하지 않은 좋은 일이 생기는 것은 나만의 일인가? 언제나 처럼 욕 실에서 씼고 밥을 먹었다. "얘야. 창수다. 전화 받아라." "네." "여보세요." "나다. 창수." "그래." "너 빨랑 나와." 창수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서 나오라고. 무슨 일인지는 나와보면 안다는 것이 다. 잘 차려입고 나오라고 한다. 무슨일일까? 창수녀석은 하도 엉뚱한 일을 잘 하는 녀석이라. 왠지 불안하기도 하지만 일요일이고 회사에 나가지도 않아 집에 만 있을려고 했는데 오히려 잘된 것 같다. 며칠 전에 구입한 가죽 재킷을 꺼냈 다. 눈은 오지만 그리 춥지는 않은 날씨였다. 아니 포근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일요일은 항상 일찍 일어나지 않고 잠을 더 청하는 버릇이 있는 나는 어김없이 오늘도 늦잠을 잤었다. 그래서 일어난 시간이 10시다. 창수가 나오라고 한 시간 은 11시. 시간에 대려면 좀 걸릴 것 같은 생각에 택시를 잡아탔다. 장소는 동인 천 '대한서림' 앞이다. 무슨 일이길래 이리 눈오는 날에 실내가 아닌 실외에서 보자고 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나야 눈이 오는 것을 좋아하지만 창수는 구 질하다고 싫어한다. 그런 녀석이 밖에서 만나자니 무슨 일이 있기는 있는가 보 다. 워낙에 알 수 없는 짓을 많이 하는 놈이라 나도 왠지 기분이 들뜬다. "야! 무슨 일이야?" "음. 올 때가 되었는데..." "무슨 일이냐니까?" "아. 너 왔냐?. 이제 두 사람만 더 오면 된다." "도대체..." "잔말말고 가만 있어봐. 이 형님이 너를 위해서 특별히 준비한 것이 있으니. 오 늘 한번 신나게 놀아 보자고..." "나 돈 없어." "괞찮아. 상대방이 내기로 했으니까." "정말?" "그래." 도대체 누구를 기다리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왠지 여자라는 생각이 든다. "몇 시에 만나기로 했는데?" "11시." "이제 5분 남았네..." "그러게. 얘는 약속 잘지키기로 소문나 있는 아이인데..." "도대체 누군데?" "회사 동료야." "그래서 니가 꼬셨냐? 오늘 보자고?" "아니." "그럼?' "걔가 오늘 같은 눈오는 날 놀고 싶다고 해서... 기분이 그렇대나 어쨌다나.. 혹 시 걔 한달에 한번 걸리는 마술에 걸린 것은 아닐까 싶다." "퍽~" "왜?" "미친 놈." "경험도 없는 놈이." "그래 니 많아서 좋겠다!" "그래. 좋다." 性이야기를 하면 나는 찔리는 구석이 많다. 난 그리 잘 생긴 것은 아니지만 여 자들을 많이 만나고 다닌 터라 술 마시고 술 기운에 여관에 들어가는 것은 흔 히 있는 일처럼 되어 버린지 오래다. 물론 여자들도 그냥 즐기기 위해서 가는 것이다. 나중에 나랑 결혼할 여자는 무척이나 기분이 나쁠 것이다. 나의 과거를 알아낸다면. 나는 그렇다. 자유 연애주의. 하지만 내가 사랑했던 사람과는 그런 기억이 없다. 사랑하던 이와 헤어지고 그 후로부터 그렇게 지냈던 것 같다. 아 무래도 너무 큰 상처를 받은 탓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너무나 사랑했던 여자와 의 헤어짐으로 죽으려고도 했었으니까. 여자들은 5분인가 늦게 나왔다. 창수의 말대로 그 여자는 무척이나 이뻤다. 주 위의 사람들이 다 그 여자 쳐다보느라 바빴으니까. 그리고 그 여자 옆으로 보이 는 또 한 명의 여자가 있었다. 그 여자 역시 창수와 원래 약속이 있던 여자에게 조금도 뒤지지 않는 얼굴과 몸매의 소유자였다. 정말 둘 다 탤런트 같다. 나도 창수 회사로 자리를 옮겨야 겠다. "창수야. 늦어서 미안해. 얘를 데리고 나오느라. 싫다고 하는 것을 억지로 끌고 나왔다. 어머. 안녕하세요. 듣던 대로 미남이시네요. 저는 이지희라고 해요. 병헌 씨 맞죠?" "네. 처음 뵙겠습니다." "네. 저두요" "지희야. 옆의 분 성함은?" "어마. 내 정신 좀 봐. 얘는 강초연이라고 하고 대학 동기에요. 제일 친한 친구 죠." "네. 안녕하세요." "네." 창수와 나는 초연이라는 여자에게 인사를 했다. 처음 만나는 자리지만 그리 어 색하지는 않았다. 창수와 지희라는 여자가 알고 있는 사이인 것 같았기 때문이 다. 그리고 길을 걸었다. 그런데 왠지 지희라는 여자와 창수가 너무 다정해 보 였다. "초연씨. 물어볼 게 있는데요." "네?" "아. 저 두 사람 너무 다정해 보이는데..." "네?" "저 두 사람이 너무 다정해 보인다구요..." "저 두 사람 사귀는 중이에요. 같은 회사의 직장 동료에요. 아래층 위층 쓰는. 서로 같은 직장 동료라는 것을 모르는 상태에서 채팅 했죠, 저 두 사람 이야기 를 써도 조금은 글이 될걸요." 아. 이런 바보가 되어 버렸다. 저 녀석이 나를 속인 것이다. 언제 저렇게 이쁜 여자를 애인으로 삼았는지는 모르지만 나에게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던 것이 다. 두고보자는 다짐을 하고 앞에서 다정하게 걸어가는. 아니 이제는 팔짱을 끼 고 걸어가는 두 사람의 뒤를 쫓아 '마로니에'라는 커피 숖에 들어갔다. "여기 분위기 어떠냐?" "괜찮은데." 실내에 들어서니 불그스름한 빛이 감돌고 은은한 재즈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거 피숖이라고 하기에는 분위기만으로도 너무나 고급스러운 곳이다. 게다가 주인인 듯한 여자의 옷 차림새나 생김새는 너무나 세련되었다. 창수가 그 여주인을 보 고 목례를 한다. 아는 사이인가? 아니면 너무 자주 와서 단골이 되어서 그런가? "니가 언제 이런 곳을 물색해 놓았냐?" "내가 이래뵈도 분위기 좋은 곳만 골라서 다니잖아." "사실은요. 창수씨 이종사촌누님이 하시는 곳이에요." "네?" 지희의 설명을 듣고 창수의 얼굴을 쳐다보고 여주인의 얼굴을 다시쳐다보았지 만 닮은 구석은 없다. 이종사촌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정말이야?" "그래. 저 누님이 지금 나이가 어떻게 되는지 알면 너 아마 까무러칠거다." "어찌 되시는데?" "38이시다. 아직 미혼이시구." "정말?" 여주인의 얼굴로 보아서는 아직 30도 안되어 보이는 얼굴이다. 그런데 고운 얼 굴이다. 화장을 그리 진하게 하지도 않았고 또 온갖 장식을 요란하게 하지도 않 았지만 여주인에게서 풍겨져 나오는 그 뭐랄까? 분위기라고 밖에는 달리 표현 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어보인다. 여하튼 30정도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참. 그런데 너 나에게 잘도 속였다." "뭘? 지희씨랑 애인사이라며?" "아. 그래. 내가 이야기 안했었지?" "그래. 임마." "초연씨 혹시 얘기 하셨어요?" "네..." "호호. 초연이는 거짓말을 못해요. 창수씨가 병헌씨의 솔로인게 불쌍하다고 누 구 소개시켜줄 사람 없냐고 저에게 이야기를 해서 초연이를 데리고 나온 거에 요." "진작에 그렇게 이야기를 하죠..." 맞선이다. 소개가 아니라 맞선이나 다름없다. 나는 맞선같은 것은 서로의 상품 가치에 대해서 논하는 자리라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이런 자리를 무척이나 싫 어한다. 그것을 아는 창수이기에 오늘 나에게 그냥 나오라고 한 것이고 아무 말 이 없었던 것이다. 이 녀석은 내가 눈오는 날은 아주 기분이 좋다는 것을 역이 용한 것이다. 눈은 나에게 이상한 마력을 행사한다. 눈오는 날은 어떤 것을 하 더라도 모든 것이 잘되는 그런 날이다. 창수도 그런 것을 잘 아는터라 그런 날 은 나에게 많은 것을 시키려고 한다. 그래서 난 겨울을 사랑하고 겨울이 오래 지속되고 눈이 오는 날이 많았으면 한다. "그렇다고 밖에서 약속을 잡으면 어떻게 해?" "니한테 여기를 가르쳐줘도 모를 것 아냐?" "창수야. 뭐 시킬래?" "아. 음. 우리 뭐 마실까?" "이제 점심이고 하니까 간단하게 음료수 아무거나 언니가 갖다 주세요." "그럴까?" 여주인은 아주 다정하게 우리에게 주문을 했다. 주문이라고 해봤자 여주인 맘대 로 갖다가 달라고 했지만... 모두들 눈 내리는 밖을 쳐다보았다. 온 세상이 하얀 날이다. 그리고 나의 마음도 어느새 하얗게 백색의 도화지처럼 하얗게 변해있어 어떤 색깔의 물감으로도 그림을 그려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떤 그림이 그려 질까? 눈을 돌렸다. 초연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았다. "아. 왜요? 제 얼굴에 뭐라도 묻었습니까?" "아니요. 눈이 슬퍼 보여서요." 슬프다? 내 눈이 슬퍼보인다? 글세. 나에게도 슬픔이 있었던가? 있기는 했다. 그 렇지만 이미 잊은 기억이다. 그래야 그리워하기도 편하니까. 그래. 잊었다. "그래요?" "네." 창수와 지희는 서로 이야기 하느라 우리의 대화를 듣지를 못했다. 나에게 있었 던 슬픔이란 누구에게나 있는 첫 사랑의 아픔이다. 눈 내리던 날이었다. 그것도 오늘처럼 아주 포근한 눈이 내리던 날이었다. 그녀는 나의 곁을 떠나 다른 사람 과 결혼을 했다. 대학 선배지만 나이는 나와 같았다. 그리고 우리는 너무나 다 정해 애인 사이라고 불리웠다. 서로도 애인사이라고 아무 말없어도 인정을 하고 었다. 그러다가 그녀가 남자가 생겼다고 나에게 말을 한지 일주일이 지나지 않아 훌쩍, 정말 갑작스럽게 결혼을 해버린 것이다. 그녀의 결혼식은 거의 비밀 리에 치뤄졌다. 그것을 알게 된 그 날밤에 창수를 불러 같이 술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후로 그녀의 소식은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는 것 이외에는 들은 기 억이 없다. 그녀의 절친한 친구 예인이에게도 그녀의 소식을 들은 기억이 없다. 단지 아무런 연락도 없다는 것밖에는... "재즈 좋아하세요?" "네? 아. 재즈요. 네 좋아해요. 하지만 전문가적인 그런 것은 아니고 그저 듣는 것만 좋아해요." "저도 재즈를 좋아합니다. 재즈를 들으면 뭔가 모를 흥분이 일어나죠. 가만 앉 아 재즈를 들을 때면 뭔가가 내 안에서 꿈틀대는 것만 갔죠. 묘한 감흥이 일어 난다고 해야 하나?" "정말 재즈를 좋아하시나 보죠?" "네. 재즈는 흑인 음악 중 가장 보편적으로 전세계인이 좋아하는 가장 성공한 장르죠. 하지만 '재즈란 바로 이런 것'이라고 단정을 지어서 정의를 내릴 수 없 죠. 마치 '사람의 일생'을 이거다하고 말하기 힘든 것처럼 말이에요. 어느 날 갑 자기 재즈가 생겨난 것이었다면 그렇게 성공할리는 없었겠죠. 재즈가 태어나기 위해서 가장 필요했던 것은 흑인 노예들의 절망과 고통이었죠. 분명하게도 이것 이 출발점이고 흑인들이 가지고 있는 선천적 음악적 유산이 풍부하였던 것이 밑바탕이 되었던 것이에요. 하지만 그들의 음악을 지배한 것은 유럽 음악이었죠. 아이러니하게 이 둘의 만남은 현재 전세계인이 즐기는 재즈로 태어나게 되었죠. 그 둘은 불가피하게 만날 운명이었고 이 만남을 통해서 흑인들의 한과 절망 속 에서 재즈가 피어올라 들판에 붙어 타오르고 번져 나가는 불길처럼 번져나가 세계 공통어가 된 것이죠. 흑인들의 고통. 삶의 고통이죠. 저 자신도 삶의 고통 을 느끼니까요. 아니 저는 다른 말로 삶의 무게라고 하죠. 어떤 누구도 삶의 무 게를 느끼고 살지 않는 사람은 없을 거에요. 그냥 일상이다 보니 그것이 익숙해 져서 그냥 그러려니 하는 것일 뿐. 이렇게 이야기하는 저도 딱 집어서 '재즈음 악가중에서 어떤 사람의 곡이 가장 좋아서 그것을 듣는다'라고 이야기 할 수 없 지만 어느 정도 재즈에 대한 사랑은 있죠." 조용했다. 어느 샌가 창수와 지희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주인이 옆에서 듣 고 있었다는 것도 몰랐다. "어머. 창수 친구 중에 재즈를 이해하는 사람이 있었네. 아이 반가워라." "그러게요. 저도 몰랐던 사실인데요. 너한테 재즈에 대한 조예가 있었다니." "아니야." 내가 재즈를 좋아하게 된 것은 그녀 때문이었다. 재즈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그 녀 때문에. 과거의 일들은 망각해 버린지 오래라 잠깐 생각이 나면 그저 쓴 웃 음을 지을 뿐이다. "나중에 우리 재즈에 대해서 한번 토론을 벌여야겠는데..." "아니에요. 누님." "누님이라. 듣기 좋은데. 창수는 나만 보면 아줌마라고 하는데..." "제가 언제요?"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분위기에 젖어서 그런 것인가? 이게 창수 쪽에 서 말하는 소개의 자리인가? 그저 분위기와 느낌에 젖어 서로 같은 시간 속에 서 같은 공간을 소유했지만 또 다른 시간과 공간 속에서 서로의 모습을 잊은 채 앉아있었다. "우리 너무 분위기에 젖어있다. 안 그래 창수씨?" "그러게 말이야." "그러게요. 하지만 아무 말 없어도 편한 느낌은 지울 수가 없네요." 나는 그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무 말도 필요 없었다. 가만 초연의 눈을 들여 다보았다. 보통의 여성들이 하는 콘택트 렌즈의 빛은 나지 않았다. 맑은 눈이었 다. 초연도 가만 나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초연씨는 눈 내리는 이런 날 어떤 생각을 하시나요?' '저는 푸근한 엄마의 품 같아 모든 것이 즐겁죠. 병헌씨는요?'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포근하죠. 그리고 가만 아무것도 안하고 이렇게 창 밖을 바라보고 있을 적이 많죠. 추억이라도 있으세요?' '눈 오던 어느 날 밤의 일이었죠. 저를 위해 1000개의 꼬마 전구들을 제 앞에서 켜주었던 사람이 있어요. 그 사람은 이미 다른 여자의 남자가 되었지만 그리 행 복하지 못하다는 소식을 듣곤 하죠. 그러나 이제는 아무런 상관없어요. 영화같 지 않아요? 때로는 어떤 이들은 영화 같은 삶을 살아가곤 하죠.' '네에...' 우리는 미소를 지었다. 창수와 지희도 우리의 그런 모습에 흐뭇한 표정이다. 말 은 하지 않았지만 창수는 내게 묻고 있었고 나의 답변에 흐뭇해 한 것이다. 둘 다 아픔이 있는 사람들이라 서로의 아픔을 위로해 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고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창수에게 들을 수 있었다. "우리 이제 나가죠. 소래포구 어때요? 바람이 불면 차기야 하겠지만. 이런 날 따 뜻한 실내에서 회를 먹어보는 것도 일품일텐데." "그래요. 우리!" 갑자기 초연이 아주 신나 했다. 어린아이처럼. 다음에 들러 재즈에 대한 이야기 를 나누기로 하고 우리는 거리로 나섰다. 거리에는 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휴일을 즐기고 있는 것이리라. 눈이 잠시 멈추고 해가 나고 있다. 거리를 지나 가는 사람들의 표정이 모두 밝아 보였다. 어쩌면 눈에 비친 햇살 때문인지도 모 르겠다. < 눈 내리던 날의 Jazz - (중) > 창수의 차를 타고 소래로 향했다. 소래로 향하는 길에 차창을 반쯤 열어두고 음 악을 잔잔하게 한다음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고 그 분위기에 젖어 들어 있엇다. 오늘따라 너무 분위기에 심취하는 것 같다. 그러나 어쩌랴. 무엇을 하든 기분이 좋아지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눈 내리는 날 때문인 것을. 소래 까지는 한 40 분정도를 가야 했다. 평소보다 좀 더 걸린것은 휴일이라 그런지 차들이 많이 늘 어서 있었기 때문이다. "바람이 차네요..." "그러게요." 창수와 지희는 더욱 바싹 자신들의 몸을 밀착시키고는 시장안으로 들어갔다. 초 연과 나는 그들의 모습에 흐뭇한 감정을 동시에 가졌던 듯 하다. 그녀도 나도 둘이 동시에 쳐다보고 미소를 머금었으니까. "이야. 이 놈 참 잘 생겼다." 펄떡이는 광어를 보고 창수가 말을 꺼냈다. 초연이나 지희는 다라안에서 건져 올려지는 광어가 몸을 세차게 흔들자 놀라서 뒤로 한발자욱 주춤했다. 그 모습 이 재밌는지 창수는 더욱 장난을 친다. "얌마. 숙녀분들이 놀라잖아. 자꾸 그러면 되냐?" 우리는 시장을 이리 저리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이 소리지르고 또 흥정하고 하는 모습을 보며 즐거워했다. 초연은 마치 물을 맞난 물개처럼 즐거워하며 따라나녔 다. 얼마간 시장 구경을 하고 우리는 근처의 횟집에 들어갔다. 초연은 내 옆 자 리에 앉았다. 그녀의 옆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무척이나 아름다운 옆 모습이다. 나의 그녀도 옆 모습이 아름다웠다. 물론 앞 모습은 더욱 아름다웠고 초연 역시 그렇다. --- 그녀를 만난것은 신입셍 환영회였다. 그 날은 3월 초였다. 그러고 보니 그 날도 눈이 내렸다. 보슬 보슬 내리는 눈. 비에 대해서 이런 표현을 쓰겠지만 나는 눈 에 대해서도 이렇게 이야기를 한다. 200여명의 사람들 가운데서 유독 눈에 띄는 것은 그녀였다. 그녀의 이름은 한희수. 희수. 그녀는 한 화면 가득이 클로즈 업 된 것 마냥 나의 시야에 들어왔고 나는 그녀를 나의 여자로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녀를 다시 보기까지는 2년이라는 시간이 흘러야만 했다. 나의 군대 문제 때문이었다. 재수를 한 나는 더 이상은 군대를 미룰수가 없어 한 학기도 채 마치기 전에 학교를 떠나 군대에 가야 했고 그 기간동안에 나는 그녀를 잊고 살았었다. 복학을 하니 나의 동기는 많지가 않았다. 여자 동기들은 꽤나 있었지만 그리 친하게 지내지 못했다. 2학기로 복학을 한 나는 중간고사를 치루면서 희수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녀를 다시 만난 장소는 도서관이었다. 중앙도서관에서 커피를 마시며 후배 아이들과 시험에 대해서 말을 하고 있을때 그녀가 내 곁을 지나갔다. 그리고 아이들이 인사를 했다. 나도 덩달이 인사를 했지만 누군인지는 알 지 못했다. 그저 선배구나 하고. --- "창수야. 우리가 소래에 온지 꽤 되지 않았냐?" "그러게... 너랑 뻑하면 여기 와서 횟감에다가 소주를 마시면서 되지도 않는 인 생이야기를 한다고 참 많이도 고뇌를 했지... 벌써 몇 년 전의 이야기다." "그래... 우리에게 그 때는 왜 그리 많은 말들이 하고 싶었을까? 젊을 때의 객끼 였다고 해야 하나?" "모르죠. 젊음이란 모든 것을 바꾸고 싶어하고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나이니까." 초연이 말을 이었다. "학교 앞에 '단지 바람이 나는 곳에 눈을 돌려...'라는 음악 카페가 있었어요. 분 위기는 아까의 '마로니에'같은 곳이었죠. 지희와 저는 그 곳에서 많은 이야기를 했죠. 그리고 많이 울고 웃고... 그곳이 그립네요. 아니 그 시절이 그리워요. 이 제는 그런 추억은 다시 오지는 않을거에요.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나 슬픈 일이에요." "그렇지많은 않아요. 우리 나이가 30이 넘은 것도 아니고 그 시절의 추억이 있 는 만큼 더 나은 것들로 우리 인생을 색칠해 갈 수 있으니..." 우리의 이야기는 무르익어갔다. 횟감은 이미 우리 탁자위에서 하얀 살점을 내보 이고 있었고 우리는 그것에는 아랑 곳 하지 않고 이야기 꽃을 피웠다. --- "병헌선배. 저 선배 몰라요? 한희수 선배... 우리 학교 퀸카인데..." 희수... 그래... 그 이름... 내 현실의 시계는 과거로 여행을 떠나는 모래시계처럼 거꾸로 돌려져 신입생 환영회를 생각해 냈다. 그리고 그녀. 희수. 실로 2년 만 의 만남이었다. 그녀는 그 때보다는 약간은 수척한 모습이었지만 아름다움은 사 그러들지 않았었다. 순간 나는 이 순간을 기다리기라도 한 모양 희수를 불렀다. "선배! 저..." "네?" "희수선배. 병헌선배에요. 선배하고는 나이는 같죠 아마. 그런데 학번은 한 학번 아래에요... 요번에 군대에서 복학했고..." "아. 그래요... 반가워요... 그런데..." "저. 복학한지 얼마 안되어서 그런지 공부가 잘 안되어서 그러는데 좀 도와 주 실래요?" "제가요?" "네..." 그때에 알았다. 그녀는 2년동안 휴학을 했었다는 사실을. 나와 같은 기간동안 휴학을 한 것이다. 몸이 너무 안좋아서 미국의 한 병원으로 치료를 받으러 갔었 다고 한다. --- "자. 이제 우리 밖으로 나가는 것이 어때... 어쿠 벌써 5시네... 이제 다시 시내 에 가서 술 판을 한번 벌여 보자구. 오늘은 나이트에 가서 신나게 흔드는 거 야..." "그러자!" "어머. 오늘은 넘 기분이 좋은 날이에여... 오랜만에 소래도 오구. 바다 바람도 맞고... 나이트에다가... 우와 좋아라..." "지지배. 그러니까 내가 빨랑 나오자고 했었잖아..." "하하하...". "호호호..." 그렇게 즐거워하는 여자의 모습을 본 지 꽤 오래되었다. 보통의 만남에서 만나 는 여자들은 자신의 이해관계를 너무나 따지고 딱딱한 업무용 멘트와 즐기기위 한 밤을 보내려고 하니까... 바다 바람이 세차다. 우리는 몸을 웅크리고 창수의 차에 올랐다. 히터를 틀고 잠시 앉아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것을 보았다. 모두들 즐거운 표정이다. 그들의 모습속에서 삶의 진지함이 무엇인가를 느껴보았다. 아직 모른다. 더욱 나이가 들어야만 알 수 있을 것인가? 동인천으로 향했다. 가로등이 하나 둘 씩 불을 밝히려고 하고 있었다. 겨울이어 서 인지는 몰라도 벌써 저녁놀이 불그스름하게 온 세상을 덮고 있었다. 다른 때 의 저녁 놀 보다 더욱 붉은 빛을 내는 그 저녁놀이 보기 참 좋았다. 초연은 가 만 내 어깨에 기대어 잠이 들어있었다. 참 편한 여자다. 차를 세워두고 거리를 누비기 시작했다. 팔짱을 끼고 다니는 연인들의 모습이 정겨워보였다. 앞에서 걷는 창수와 지희도 역시 팔짱을 끼고 있었다. 순간 나의 왼쪽 팔이 따스해짐을 느꼈다. 옆을 쳐다보니 초연이 나에게 팔짱을 끼고 환하 게 웃고 있었다. 너무 빠른가? 그러나 너무나 자연스럽다. 우리는 그렇게 길을 걸었다. 앞의 두 사람도 우리를 보고 웃었다. 더 이상의 말은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이 시간만큼은 어떤 누구에게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 그저 그랬다. --- "사람마다 각자의 처지에서 변명할 수 있는 말은 얼마든지 있어. 그 사람의 상 황을 겪어보지 않고는 뭐라고 할 수 없는 거야. 안그러니? 난 그렇게 생각해. 하지만 나 자신도 그렇게 살지는 못하지. 항상 나의 생각과 행동이 옳은 것이라 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래 너의 말이 옳을지도 모르지..." 희수와 친해진것은 앞에서 말했듯 도서관에서 그녀에게 내가 먼저 말을 붙이면 서였다. 그녀는 나에게 친절히 공부를 도와주었고 매일 도서관자리를 챙겨주었 다. 그렇게 우리는 매일 도서관에서 만났고 도서관에서 헤어졌다. 어떤 소설이 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소설속의 주인공에 대한 토론을 벌인적이 있다. 그 때에 이런 이야기가 오갔던 걸로 기억한다. 왜 그런 이야기를 하게 되었을 까? 복선이라도 깔려있던 것인가? 그녀에게 물어볼 수 없는 지난 몇 년전의 돌 발적인 결혼과 미국행... 그녀는 2학년 2학기. 나는 1학년 2학기. 그녀의 영향을 받아서 나는 '시'모임에 들어갔다. 10월이 지나고 11월이 되면서 우리는 시화전을 갖게 되었다. 그녀는 시화전에서 단연 돋보였다. 그녀의 시화앞에 수없이 많은 꽃들과 초콜릿 그리고 사탕... 후... 나의 시화앞에도 꽤 있기는 했다. 그러고 보면 나도 인기는 있었나 보다. 시화앞에 서있는 그녀를 보고 웃음을 보냈다. 그녀도 활짝 웃어보여 주었 다. 이미 그때는 그녀와 나의 관계를 애인사이라고 인정을 모두 인정을 하고 있 던 상태다... [ 제목 - 사랑하게 하소서. 이렇게... 변함없는 충실과 헌신 그리고 우정이 있는 그런 사랑을 원한다. 영혼끼리 이해와 사모의 정으로 이해관계도 아닌 의심할 여지없이 믿을 수 있는. 시끄럽고, 싸우고, 술 취한 모습이지만 진실과 가식없는 마음넓이로 나를 바라보며 미소지어주는... 인간다움을 웃음으로 남길 수 있는 사랑의 소유자를 만나고 싶다. 어설프다. 어설프다. 주위에서 말하더라도 한 송이의 꽃을 피우기 위해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에게 격려와 용기를 복돋어주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이 세상에 아름다운 사랑은 존재하지 앟는다. 다만 서로의 입장에서 서로 다른 사랑이 있을 뿐이다. 보통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아름다운 사랑보다는 소박하고 진실된 사랑의 소유자이길 원한다. 사람의 덧없는 인생은 그 길을 끝까지 걸어봐야 무엇이 자신을 기다리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빗겨갈수만 있다면 사랑의 길에서는 내리 행복함으로 울고 웃고 그 행복을 위해서 싸우고 사랑하고 싶다. 삶의 어느 길에서건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나의 목적지를 향할때에 마음이 닫혀져서 사랑을 잊어버리고 줄달음치지는 않기를 바란다. 누군가를... 아니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모든 것들이 이루어지는 것에 기뻐하며 내 곁에 있을 사람도 기쁨으로 맞이하기를 바란다.] 나의 시였다. 방명록에도 이름이 많이 거론 되었다. 글 잘썼다고... 후... 잘 쓰기 나 한 것인가? 그녀의 시는 무언가를 갈망하는 듯 했다. [ 제목 - 대지 그대... 삶의 끝에 선 자... 행복이란 단어를 잊은 자... 눈을 감으라... 그리고... 숨을...고르라... 그대 숨결이....의식을 잠재울 때.. 나와함께 그녀를 찾아가자... 일사가 내리쬐는 사막, 빽빽한 열대우림의 한가운데, 지평선이 훤히 보이는 대륙의 벌판.... 그곳에서... 그녀의 품에 안기자... 태고의 입자가 되어... 그녀의 품에 안겨... 그대를 짖누르는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을지니... 그녀는 사실.. 그대의 의식속에도 살아있음을... 고단한 삶의 한가운데에서도... 그녀를 만날 수 있음을.. 그대...부디...깨달아... 평안해 지기를... 그저... 그대... 평안해지기를...] 그랬다. 평안하기를 바라는 그녀의 마음은 이런 시를 낳게 했다. 그녀의 병은 완전히 나아진것은 아니었다. 좀 호전된 것이었다. 죽을 병인지 아닌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악성빈혈같았다는 것은 기억한다. --- 소주집에 들어섰다. 예전에 창수와 자주 오던 곳이다. 그런데 분위기가 많이 바 뀌었다. 창수나 나나 서로 일에 치여서 바쁘고 또한 만나면 대부분을 부평이나 주안에서 보냈기 때문에 실로 동인천은 오랜만에 오는 것이다. 오늘로써 두번째 방문이다. "주인도 바뀐 모양인데?" "그러게..." "여기 자주 오셨나요?" "네..." "창수랑 자주 오던 곳이죠... 예전에는 파전도 공짜로 얻어먹을 수 있었는데. 주 인도 바뀌고... 벌써 6개월 전이다..." "이제 6시니까 여기서 한 9시 까지 버티고 있다가 나이트를 가는거야... 그런데 그 시간에 문 연데가 있을려나?" "있겠지... 후... 생각만 해도 몸이 근지러운데..." "병헌씨는 춤 잘 춰요?" "얘? 얘는 부르스의 황제 아니냐... 얘랑 못 춰서 안달이었던 여자가 한 둘이 아 니야..." "뭔 소리야?" "호호호..." "초연씨는 춤 추는 것 좋아해요?" "네... 잘은 못 추지만 그저 흔들면서 몸안의 찌꺼기들을 배설한다는 생각을 하 죠... 이상한가?" 이상할리가... 나 역시 그런 것을... < 눈 내리던 날의 Jazz - (하) > "오늘은 눈이 내리는 날이었죠? 저는 눈이 내리면 항상 즐거운 일이 생기죠. 오 늘도 그랬어요. 초연씨 같은 여자분을 알게되어서." "호호... 정말요?" "그럼요." 시끌 시끌한 분위기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지글거리는 소리들에 사람들의 말소 리에 섞여 우리 둘의 대화는 묻혀지는 것 같지만 우리 둘의 눈은 서로를 쳐다 보고 무언가를 갈망하는 듯하였다. 바로 그거였다. 서로의 그리움에 대한 토로 와 잊음. 그리고 새로운 시작... --- 시화전이 끝나고 뒷풀이에서 희수와 나는 서로에 대한 감정을 이야기 했다. 물 론 내가 먼저 이야기를 했다. "나. 선배 좋아하는 것 같다. 그래도 되나?" "후후... 내가 뭐가 좋다구?" "좋은 데에 이유를 달아야 하니?" "그래. 그럼. 맘껏 좋아해줘... 고마워... 그런데 이미 다들 우리가 애인사이라고 알던데 아니었나?" 그래.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우리는 서로를 좋아하기 시작했다. 아니 많이 좋 아하고 있었고 누군가가 확인을 하기위한 말을 꺼내기를 바라고 있었던 듯하다. 그 후로 영화를 보고 밥을 먹고 여행을 다니면서 서로에 대해 조금씩 아주 조 금씩 알아갔으나 그녀의 어딘가 모를 슬픔의 그림자는 지워줄 수 없었다. 아니 알아야 지울 수 있지...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지워준단 말인가! 다만 그녀의 병 때문이리라 생각했다. --- 분위기는 무르 익었다. 지난 살아온 이야기를 했다. 나와 창수의 이야기를 거쳐 서 지희씨의 이야기 차례가 되었다. "저는 어릴 적에는 부산에서 살았어요. 부산 아시죠? 바닷가와 접한... 인천도 그 렇기는 하지만 바다라고 생각은 거의 안하잖아요... 부산에서 지내던 그 때는 정 말 행복했어요. 집이 좀 부유하다면 부유했으니까. 아버지는 선박회사를 하셨는 데. 어느 날인가 폭풍우가 몹시 불 던 날에 그만 배를 세척이나 잃으셨어요. 그 래서 저희는 인천으로 오게 되었고 저는 친구들을 많이 만들지 않았어요. 그리 고 대학을 가지 않으려고 했지만... 아버지의 노력 때문인지 조금씩 형편이 나아 지기 시작해서 이제는 그전보다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여유를 부릴수는 있게 되었죠. 물론 저는 아버지에게 손을 내밀지는 않아요... 이제는 그런 이야기도 할 수 있고 또 친구들도 많아요. 어쩌면 어릴 적의 부유함을 잃은 데서 온 손실 감이라고 할까... 뭐 그런 것이 있었겠죠. 아니면 나는 너희와는 다른 생활을 했 던 사람이야라는 생각도 있었을지도 모르죠... 참 어렸죠..." "저는 참 많이 앓았어요. 그저 병치레를 너무 많이 했죠. 그리고 미국에도 가서 요양을 해야 했어요. 그리 잘 살지는 못했지만 미국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을 정도는 되었죠. 그렇게 돈에 대한 집착은 없어요. 단지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고 지내고 사고 싶은 게 있을때에 살수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이에요. 여행도 많이 하고 싶고... 후... 첫사랑요? 내. 있죠. 이 나이가 되도록 사랑 한번 안 했 다고 하면 거짓말이라면서요? 대학 후배였어요. 그는 저를 끔직이 아껴 주었죠. 그리고 저는 그에게 저의 모든 것. 그러니까 여자로서는 바칠 수 있는 모든 것 을 주었지만 그는 다른 여자의 품으로 갔어요. 왜 갔는지 아직도 이해 할 수 없 어요. 후. 술이 들어가니 별 이야기를 다 하는군요... " 어색한 미소의 초연의 눈에서 밝은 빛이 한 순간 일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아 름답다.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의 모습 속에서 희수의 모습이 오버 랩되었다. 너무나 비슷한 경험의 소유자인 초연과 희수... 희수의 모습을 닮았다 는 생각을 했다. --- "우리 이 다음에 다시 만나면 이제는 영원히 사랑하겠노라 맹세할 수 있을까? 우리가 헤어졌다가 만나게 되어 어떤 일을 겪었든 말이야..." "그런 소리는 왜 하는거야? 헤어지기는..." "그럴거야... 아마 우리 둘 중의 하나가 먼저 떠났다가 다시 만나면 영원히 사랑 해야 할 거야..." 그녀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워낙에 이해 할 수 없는 말만 하는 그녀였기에... 4학년 2학기의 그녀는 취직을 위해 열심으로 공부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일주 일인가를 내 앞에서 사라졌었다. 그리고 나에게 나타나 내던지 한마디. '나 남자 생겼어. 이제는 만나지 못할거야. 미안해.' 그녀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웃음을 지었다. 어떻게 웃을 수 있었겠는가. 소리없는 눈물이 그녀의 가슴에 흘러내리 는 것을 뒤로 하고 나는 그녀와의 작별을 고했다. 그리고 일주일 후 그녀는 결 혼을 했다. 3년여의 만남이 그렇게 끝이 난 것이다. --- "누구에게나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은 간직하지 않죠. 감당할 수 있으니까 슬픔이 나 아픔이 찾아드는 것이죠.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저요? 저도 첫사랑이라는 것이 있기는 했지만. 그래요. 초연씨와 비슷하네요... 단지 여자가 선배였다는 것... 그리고 결혼을 하고 미국으로 향했다는 것... 그녀도 초연씨와 마찬가지로 2년동안은 미국에서 요양을 했었는데... 하... 비슷한 점이 많군요..." 언제 왔는지 창수의 이모가 와있었다. 언제 연락을 한 것인지... "누님. 저희 나이트에 갈건데 누님의 화려한 춤 실력을 보여 주실래요?" "그럴까? 오늘은 나도 기분이 좋다. 아예 마로니에의 셔터를 내리고 우리 Jazz 에 몸을 실어보는 것은 어떨까?" "그것도 좋죠!" 우리는 마로니에로 들어갔다. 그리고 붉은 조명을 켜고 "The Closed" 간판을 내 걸었다. 조용한 Jazz음에 맞추어 창수의 이모는 몸을 흔들었다. 가히 환상적이 었다. 남자라면 저 품에 안겨 하룻밤을 지새고 싶은 욕망이 들만하다는 생각을 했다. 일하던 종업원 아가씨들도 자리를 같이 했다. 음악속에서 저마다 무슨 생 각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한 시간 정도 마로니에에 있다가 우리는 결국에는 나이트에 갔다. 삐끼들이 이 끄는 대로... 뭐 워낙에 상당한 미모와 몸매를 자랑하는 여성들이 함께였는지 삐 끼들부터 시작해서 나이트에 들어서면서 부터 모두 우리를 응시했다. 우리가 무 슨 일을 꼭 벌여주기를 바라는 듯한 모습으로... 스테이지를 휩쓴 것은 창수였다. 그리고 나. 차례로 열광의 도가니로 스테이지 를 달구었다. 우리가 스테이지에 있는 동안에 우리의 일행인 초연과 지희 그리 고 이모님. 종업원 아가씨들은 쉴 새없이 같이 춤 추자는 제안을 받았으나 우리 를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모두들 '쩝!~'하는 모습이 보였다. 드디어 부르스 타임 이 왔다. 자연스럽게 초연이 나에게 왔고 지희는 창수에게 갔다. "초연씨 부르스 출 줄 알아요?" "그럼요... 잘 이끌어 주세요..." 그녀의 목소리는 너무나 애교있고 그리고 술이 들어간 탓인지 어눌했다. 하지만 좋았다. 맘에드는 여자다. 그녀를 품에 안았다. 실로 오랜만의 일이다. 초연은 파묻히다시피 나에게 기대었고 나도 그녀를 꼬옥 안아주었다. 음악이 흐르고 우 리는 몸을 음악에 맡겨 움직이기 시작했다. ...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나와 초연은 근처의 모텔에서 서로를 탐닉하고 있었 다. 탐닉? 아니 탐닉이 아니라 너무나 원했던 그리움이라는 것을 서로의 性을 통해서 방출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다. 그녀의 하얀 피부. 그리고 신이 조각한 몸매... 그 모든 것이 나에게 들어왔다. 그녀는 이제 내것인 것이다. 그녀의 몸안에 내가 들어갔고 나의 몸안에 그녀가 들어왔다. 그렇게 하나가 된 우리는 서로의 性을 통해 그리움이라는 것을 방출 하는 것이다. 그녀의 혀는 달았고 그녀의 음부는 자욱한 안개의 숲을 지나 만나 오아시스와 같았다. 그녀의 젓 가슴은 너무나 탄탄하고 보드라왔다. 그녀는 이제 내 것인 것이다. 어디선가 Jazz 음악이 들려온다. 그녀의 눈이 나를 바라보고 웃고 있다. ... 무언가를 소유하려는 욕망. 그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소유하고 있는 것일게다. 내가 소유하고자 했던 것은 진정으로 무엇인가? 알 수 없다. 하지만 지금 이 순 간 내가 소유한 것은 그리움을 떨쳐버린 초연이라는 한 여자다. 여성을 지배하 려는 것은 고대로부터 남자의 본능이나 마찬가지지만 이번은 다르다. 서로의 그 리움을 해소시켜준 의미가 큰 것이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를 소유하고 서로의 아픔을 없애준 것. 어쩌면 변명일 수도 있다. 만난지 하루만에 서로의 性을 소 유했다는 것에 대한. 그 어떤 누구에게도 이런 감정을 갖은 적이 없다. 하지만 ' 초연은 다르다'라는 말로 나의 변명을 삼고 있는 것이다. 오늘 초연의 눈물을 보았다. 희수도 그랬을까? 나랑 헤어지고 눈물을 흘렸을까? ... "이야! 너 멎진데..." "그래. 내가 원래 한 옷걸이 하잖아..." "짜아식... 결혼식날에 안 멋있는 신랑 신부 봤냐?" "그런가?" "초연씨 너무 아름답습니다. 오늘 이 푸르른 꽃들이며 잔디들이 모두 초연씨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은 것 같네요." "어머. 창수씨도 농담은..." 오늘은 5월의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는 날이다. 그리고 초연과 나의 결혼식이 기도 하다. 그녀와의 만남 후에 우리는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임을 알고 함께 할 것을 약속했다. 어느 때 보다도 나는 나의 삶이 즐거웠고 초연 역시 그녀의 삶 이 풍요롭고 즐겁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이곳은 나의 모교이다. 나의 젊음의 추억들이 있는 학교. 그 캠퍼스에서 초연과 나는 많은 이들의 축복속에 결혼을 올리고 있다. 초연과의 첫 만남이 있던 때의 Jazz 음악이 들려오기 시작 했다. 도대체 어디서 들려오는 것일까? 바람결에 들려오는 소리는 나의 신부 초 연의 모습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고 있다. --- 3월이었다. 드디어 희수의 소식을 들었다.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죽어가고 있 었다. 나를 알아보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허공을 응시하는지 모를 정도로 두 눈 만을 뜬 채였다. 나의 옆에 있는 초연을 바라보는것인가? 아니 바라보고 있는것 도 알 길이 없었다. 그 때도 그 Jazz 음은 나의 귀에 들렸다. 그 음이 끝나면서 희수는 눈물 한방울을 이 생에 마지막으로 남기고 저 세상으로 갔다. 그녀는 미 국에 가지 않았다고 한다. 결혼한지 한 달만에 헤어지고 아무런 연고도 없는 목 포에서 지냈다고 한다. 지난 해 여름에 교통사고로 오늘 내일하다가 급속으로 악화되자 예인이 나를 찾은 것이다. 그녀가 갑작스레 결혼한 이유... 그리고 헤 어진 이유... 모두 '나'라는 것이다. 나에게 짐을 지우기 싫어서 다른 이에게 갔 고 나를 잊지 못해 먼저 결별을 선언하고. 도대체 왜? 나 때문인지. 사랑하는 이에게 죽어가는 자신을 짐지우기 싫었단다. 그게 말이나 될 법한 소리인가... 사랑으로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한 나와는 다른 희수였으니 그럴수 도. 하지만 용서니 뭐니 하는 것은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녀는 그렇게 떠났다. 처음 만났을때의 아름다움은 이미 소유하지 않은 모습으로... < 눈 내리던 날의 Jazz - (에필로그) > 긴 시간의 결혼식이 끝나고 우리는 10박 11일의 유럽 배낭여행을 떠났다. 독일 이 첫 도착지였다. 독일에 도착하여서 초연이 맨 처음 나에게 한말이다. "병헌씨. 이상한게 있는데. 말을 하지는 못했었는데. 자꾸만 Jazz 음악이 들리는 것 같아요. 당신을 처음 만난 순간 부터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항상 귓가에 들 리는 음악이 Jazz가 있어요. 그 속에 들리는 목소리... 사랑하라고... 그리고 행복 하라고... 그 소리에 심취되어 당신을 사랑하게 되었는지도... 또 들리네요... 언제 쯤이면 들리지 않을까요?" 초연을 바라보고 웃어보였다. 독일의 날씨는 너무나 따사로왔다. ...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희수가 병원에 있으면서 들었던 Jazz 음악이 초연과 내가 가끔 바람결에 듣는 그 Jazz 음악이었다. ... 지금 초연과 나 그리고 우리를 닮은 아주 작은 두 공주님을 모시고 희수의 무 덤가에 와있다. 초연과 나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어디선가 또 다시 그 Jazz가 들려왔다. 바람결의 소리도 환청도 아닌 우리 두 아이들의 입에 서 흥얼거리는 소리였다. 초연과 나는 그저 웃었다. 희수가 우리 아이들 곁에 서... --------- Jazz 에 대한 이야기는 어떤 사이트에서 좀 퍼왔습니다. 어딘지는 기억이 안난 다... 으... 거기에 저의 느낌을 쓴 것이죠... 위에 '대지'라는 글은 '이정은'이라는 동생의 시입니다. 말도 안하고 가져왔는데... 그리움이 가득한 사람은 그리움이 가득한 사람을 만나야 그 그리움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글을 한번 써 보았네요... 그런데 이거 쓰다보니 '하룻밤의 사랑이 평생의 사랑이 된다.'로 바뀐 것 같아. 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