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장 엇갈리는 利害 전체적으로 딱딱한 느낌이 드는 집무실. 이곳은 황궁의 특수기관 인 동창본부였다. 동창의 대영반으로 황족이나 고관들에게 두려 움의 대상이 되고 있는 인물. 그러나 이 세상에서 오직 한 사람 만을 두려워 하는 인물. 위원화는 탁자에 산더미같이 쌓여 있는 서류를 검토하고 있었다. 그의 안색은 신중했다. 그는 요즘 들어 전신경을 하나로 모으고 있었다. 자칫 실수라도 하는 날이면 황 제의 노여움을 사게 되고.... 그렇게 되면 결과는 뻔한 것이다. 문득 밖에서 보고가 들린다. "어영특위대 부대장께서 오셨습니다." 위원화를 고개를 든다. 그리고 여인과 같이 가는 음성으로 말했다. "들라 하라." 문이 열리며 한 사나이가 들어섰다. 그는 이십대의 영준한 인물 이었다. 금의를 착용했다. 그것은 금위대의 표식으로, 즉 황궁의 경비를 담당하는 특수직분을 표시하는 것이다. 어영특위대의 부 대장이 이렇게 나이가 어리다는 것은 그가 꽤 빠른 출세를 했다 는 것을 뜻한다. 그는 한쪽 무릎을 꺾으며 예를 표한다. 그러나 보기에 그다지 비굴한 모습이 아니다. "이 특위대 부대장 장성민, 부르심을 받고 왔습니다." 장성민... 기억하는가? 그는 변방에서 국경수비대를 맡고 있지 않았던가? 그는 과거 낙성혼의 목숨을 임의로 구해준 바 있는 젊은 무관이 었다. 그는 황궁으로 영전한 것이다. 위원화는 눈을 들어 장성민 의 아래 위를 훑어 보았다. 언뜻 그의 얼굴에 한가닥 부러움의 기운이 스쳤다. 그것은 장성민의 젊음이 부러웠으며, 또한 그가 온전한 사나이라는 것을 부러워 하는 것이다. 허나 위원화의 안 색은 다시 예전으로 돌아온다. "앉게." 의자를 가르킨다. "고맙습니다." 장성민은 의자에 착석했다. 그의 자세는 한결같다. 젊은 무장의 패기와 발랄함이 보는 이로 하여금 신선감을 던져준다. 위원화는 내심 감탄하며 말했다. "자네를 부른 것은 황제폐하의 명이 있어서야." 순간, 장성민은 벌떡 몸을 일으키더니 부동자세를 취한다. 그의 얼굴에는 엄숙함과 경건함이 떠올라 있었다. 황제의 명이라면... 그의 눈에서는 충성을 읽을 수 있었다. 위원화는 그런 모습을 보 면서 문득 한 사나이를 떠올렸다. 그의 입가에는 씁쓸한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쯧쯧... 아까운 놈이었는데....' 장성민을 보는 순간 다시 까맣게 잊었던 그 사나이가 떠오르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위원화가 그 사나이를 죽이도록 명 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불현듯 떠오른 일을 갇난히 머릿 속에서 지워 버렸다. 왜냐면 그는 동창의 영반이기 때문이다. 한번 지 난 일은 아주 쉽게 잊어야 하는 것이 그의 직무 중 하나이기도 했다. "너무 긴장할 것은 없다." 그는 담담히 입을 열었다. "이 일은 무척 중요한 일이다. 어쩌면 국가를 위태롭게도 할 수 있는 일이야." "......!" 장성민은 흠칫하는 표정을 짓는다. 그는 영전하여 어영특위대에 배속되었다. 헌데, 지금까지 뚜렷이 하는 일이 없었다. 어영특위 대는 극소수의 인원이었고, 외부에는 알려지지 않은 조직이었다. 헌데... 결국 그에게 첫번째 임무가 떨어진 것이다. 장성민의 피 는 뜨겁게 끓기 시작했다. '드디어.....!' 이때 위원화는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목숨을 황제폐하께 바칠 각오가 되어 있는가?" 장성민은 충심으로 우러 나오는 말을 한다. "물론입니다!" 황제... 그분을 위해서는 목숨을 바치라면 언제든지 그는 나설 수 있다고 생각해 오지 않았던가? 그것은 군인의 사명이었고, 또한 자신의 인생을 관류하는 신조가 아니었던가. 지금의 그 말은 장성민의 가식없는 말이었다. "좋아, 그럼 떠날 준비를 해라." 위원화의 말에 또다시 장성민은 흠칫했다. ".....?" "자세한 것은 부영반이 설명해 줄 것이다. 너는 이 길로 너의 처 소로 가서 주변정리해라. 다시 연락이 갈 것이다." "....." 장성민은 잠시 의아해 하더니 경건한 어조로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는 다시 예를 표하고 밖으로 나갔다. 깨끗하고 절도 있는 동작 이었다. 그가 사라지자, 위원화는 의자에 몸을 깊숙이 묻으며 중 얼거리고 있었다. "솔개가 병아리를 노리는데 그 뒤에 독수리라... 음... 그거 재 미있군." x x x 마차는 새벽이 되어서야 멈춘다. 종착지는 금릉에서 오십여리 떨 어진 단양호였다. 단양호는 풍광이 수려하여 유흥과 환란의 명소 가 된 곳이다. 마차가 당도한 곳은 이곳에서 유명한 하나의 기루 였다. 마차의 문이 열렸다. 안에서 내린 인물은 청수하게 생긴 중년 선 비였다. 그는 수중에 한 자루의 공작선을 들고 있었다. 공작선을 흔들며 기루 안으로 들어서자 종업원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이며 인사한다. 그같은 풍경은 부호나 명망있는 풍류객이 기루어 놀러 온 것으로 비쳐졌다. 허나... 그것은 거틍로 보이는 중년인의 모 습에 불과한 것이다. 중년인이 들어간 곳은 기루의 안쪽 깊숙한 한 채의 별원을 가지고 있는 대전이었다. "부교주님....!" 방안에 있던 4인은 원탁을 사이에 두고 회의를 하다가 급히 일어 섰다. 그들은 중년인에게 공손히 인사했다. 중년인은 공작선을 흔들며 담담히 말했다. "모두 자리에 앉으시오. 번거로운 인사는 필요없소." 중년인이 자리에 앉자 비로소 사인은 자리에 착석했다. 그들은 각자 다른 복장을 하고 있었다. 어떤 자는 농부의 복장을 하고 있으며, 어떤 자는 상인, 어떤 자는 장인의 복장을 하고 있었다. "교주님께서는?" 상인 차림의 중년인이 공손히 답한다. "별일 없으십니다. 다만 부교주님을 걱정하셨습니다." 중년선비의 얼굴에 감읍의 기운이 떠오른다. "이곳 일은 예상대로 진행 중이오. 그렇지 않아도 보고를 드리려 던 참이었소." 그는 잠시 침음하더니 물었다. "연합맹 일은 어찌되었소?" "예정대로입니다. 참... 무당의 하진자를 처치했다는 보고가 들 어와 있습니다." 부교주는 안색이 변했다. "하진자를...." 그는 정말 놀랐다. 무당의 하진자라면 소림 다음으로 명망이 높 은 대문파의 지존이 아닌가? 더욱이 그는 무공이 높을 뿐더러 오 만하고 제멋대로인 경향이 있어 무림맹의 중추적인 인물로 백련 회에서는 가장 큰 벽중의 한 명이었다. 이전부터 그를 제거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었으나 마땅히 그를 제거할 만한 위인이 없어 지연되고 있던 바다. 헌데, 하진자가 처치되었다니.... "대체 어떤 분의 공로이오?" 허나 상인차림의 인물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건 모릅니다. 교주님께서 직접 추진하신 일인지라...." "음 어쨌든 잘된 일이오. 그런데..." 그는 문득 안색이 어두워진다. "교주님께서 추진하시는 일은... 어딘가 불안한 감이 드는군." ".....?" "왼쪽의 인물들을 믿을 수 있을까 하는 뜻이오. 그들은 어차피 이민족인지라...." "....." 그 말에는 장내의 사인들 중 대답하는 자가 아무도 없었다. 그러 다 이번에는 농부 차림의 인물이 나섰다. "하지만 어쩔 수 없으니... 교주님께서도 고심하다가 내린 결론 으로 알고 있습니다." 부교주는 가볍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하긴... 이미 활을 떠난 화살이거늘 걱정해야 무슨 소용이 있겠 소? 우리는 그저 교주님과 함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 본교의 안위 를 도모하는 길일 것이오." "그렇습니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헌데, 이때였다. "누구냐?" 휘익! 문득 부교주의 신형이 화살처럼 밖으로 날아갔다. 와장창! 그는 창문을 부수며 밖으로 쏘아 나갔다. ".....!" 장내의 인물들은 안색이 모두 변했다. 그들도 결코 가만히 있지 는 않았다. 저마다 무기를 뽑아들고 밖으로 신형을 뽑아 올렸 다. 그들의 신법도 비쾌무비했다. 백련교의 중추인물들은 모두 무공을 지니고 있었다. 백련교에는 고유의 무공이 전해져 내려오 고 있었다. 사인은 지붕 위에 멍하니 서있는 부교주를 발견할 수 있었다. 허나 부교주는 고개를 젓고 있었다. "부교주님....?" 부교주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내가 신경과민인 것 같소이다. 아무도 없소이다." 중인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곳에 첩자가 들어올 리 없었다. "자, 돌아가 회의를 게속합시다." 중인들은 다시 방안으로 돌아왔다. 그들은 머리 숙여 숙의를 진행했다. "일단 원과 조정의 움직임이 결정되었으니 남은 것은 무림쪽이 오." 부교주의 말에 중인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부교주의 말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쪽도 신중을 기해야 하오. 비록 종리무연이 우리 쪽으 로 붙었다지만 그만 믿을 수는 없는 일이오. 그러니 우리는 우리 대로 일을 진행시켜야 하오." "......" "현 무림이 적으로 삼는 것은 황궁이오. 그것은 주원장이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 하기 위해 본교와 마찬가지로 무림을 말살할 생각 을 갖고 있기 때문이오. 그러나 무림 쪽에서도 만만치 않아 그들 은 나름대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오. 그들 역시 바보가 아 니니... 그 밖에도 원의 동태와 우리쪽까지 의식하고 있소." "....." "그러나 우리는 하나의 도화선이 되어야 하오." 도화선... 그것은 심지를 말하는 것이다. 폭약을 터뜨리기 위해서는 도화선 이 필요한 것이다. 일단 불을 붙이면 언젠가는 화약은 터지게 마 련인 것이다. "첫째, 우리는 그들의 수뇌부를 흔들어 놓아야 하오. 현재 무림 맹은 소림과 무당 양파를 중심으로 결성되어가고 있소. 남은 문 파들은 과거 원과의 항쟁으로 원기를 많이 소모하여 유명무실하 게 되어 버린 처지요. 그래서 소림,무당 양파에 의해 끌려가는 형편이오." "......" "하지만 그들도 명문의 향수가 남아있어 자존심이 무척 상해있을 것이오. 더군다나 소림과 무당이 은근히 반목하는 사이라 그들의 분열을 조장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오. 우리는 그런 약점을 최대한 이용해야 하오." 중인들의 눈이 빛났다. 그들은 부교주의 지략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교내의 웬만한 일들은 부교주의 선에서 처리되는 것만 보아도 충분히 부교주의 영향력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자, 이리 가까이 오시오." 부교주의 말에 중인들은 귀를 기울렸다 x x x 소림사. 소림사 방장실의 뒤쪽에 있는 밀실에는 각파의 지존들이 회의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오랫동안 소림에 머물고 있었다. 무림의 존 망이 달린 일이기 때문이었다. 지금, 장내의 분위기는 별로 좋지 않았다. 그들은 한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들의 얼굴 에는 초조감이 어리고 있었다. 문득, 화산 장문인 종리무연이 짜 증스러운 듯 입을 열었다. "대체 하진자께서는 오시는 것이오? 아니 오시는 것이오?" 소림 장문인 천장선사가 불호를 외쳤다. "아미타불... 벌서 오실 날짜가 오일이나 지나고 있는데... 혹 시..." 아미의 복호상인이 나섰다. "혹시 장문인께서 짐작되는 것이라도 있으신지...?" "아미타불... 저라고 알수는 없지만... 요즘 황궁과 백련회의 동 태가 심사잋 않으니..." 그 말에 종리무연은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나섰다. "아니..? 그럼 도장께서는 변고라는 당하셨단 말이오?" 천장선사는 눈살을 찌푸렸다. "꼭 그렇다는 말은 아니외다. 그러나 어쩌면..." 종리무연은 고개를 흔들었다. "도장의 무공이야 천하가 다 아는 것인데 그럴 수가 있겠습니까? 무당의 무공이 허명만 얻은 것이라면 또 몰라도 설사 황궁과 백 련회가 몽땅 나선다 해도 당하실 리가 있소이까?" 그의 말은 다소 지나친 것이었다. 겉으로는 무당을 떠올리는 것 같았지만 은근히 비꼬움이 담겨있는 것이었다. "아미타불..." 천장선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종리무연은 다시 나섰다. "그러나 회의는 진행해야 하지 않소이까?" 천장선사는 고개를 저었다. "하진도장께서 오시지 않았으니 어찌 진행하겠소?" 그 말에 종리무연은 화를 내며 말했다. "아니, 화진도장이 없으면 무림맹이 이루어지지 않는단 말씀이 오? 지금은 한시가 급한데 어찌 대사의 능력으로 이끌어 나갈 수 가 없다는 말씀이오?" 그의 이런 표현은 지나친 것이었다. 그러나 장내의 분위기는 묘 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천장선사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화진도장께서는 고집이 강하시고.. 또 무림맹에서는 없어서는 아니될 분이 아니오? 그러니 우리 좀 더 기다렸다가..." 허나 종리무연은 물러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허허...참! 대사께서도 답답하십니다. 소림의 위명으로나 대사 의 명망으로 보아도 어찌 무당 하나 때문에 이 중대한 회의가 지 연되어야 합니까? 대사께서 주관하시면 모두가 따르지 않겠소이 까? 화진도장께는 나중에 설명해도 되지 않겠소이까?" "아미타불.... 어쨌든 좀더 기다려 봅시다."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이곳은 소림사고, 무림맹의 결성은 소 림을 위주로 해야하지 않겠소이까? 무당에서는 지나치게 일을 지 연시키는 경향이 있소이다." 종리무연은 계속 말을 이었다. "물론 우리같은 군소문파들이야 대문파에서 하라는 대로 따르는 실정이 아니오? 하지만 이렇게 시간을 끌고 매사가 지지부진이라 면 정말 의미가 없는 일이오!" 그의 언성은 높아지고 있었다. 장내의 중인들은 은연중 불만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종리무연의 말에는 그들의 심금을 긁어주는 무엇인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화산파와 같이 과거에는 명망을 날리다가 이제는 전락한 문파의 장문인들은 사실 소외감을 느끼 고 있었다. 장내의 분위기가 묘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소림의 천 장선사는 내심 한숨을 쉬고 있었다. '휴우.... 왜 이다지도 일이 꼬이는가...?' x x x 종리무연은 처소로 돌아와 있었다. 그의 입가에는 회심의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그는 얼마전 밀실에서 자신이 한 발언을 만족스 럽게 생각하고 있었따. 그의 발언이 꽤나 큰 파무을 던졌기 때문 이다. 그것은 무림맹에서 그의 위치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간 다는 뜻이고, 그것은 그 자신에게 확신과 자부심을 인식하게 하 는 일이었다. 문득, 천정 쪽으로부터 인기척이 들렸다. "왔느냐?" "네, 사부님. 제자 장항입니다." "음, 어찌되었느냐?" "연락이 왔습니다. 잠룡원을 움직이라는 소식입니다." 순간 종리무연의 안색이 달라졌다. 그의 눈빛이 음침하게 변했다. "으음... 드디어....!" 12장 뜨거운 審問 개봉부의 관제묘. 언제부터 서 있었을까. 6인의 인물들은 마치 나무처럼 관제묘 앞 에 서 있다. 만일 모르는 자가 들어오다가 보았다면 필시 나무로 깎아 만든 목상이라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그들은 한결같은 모습 이었다. 얼굴에는 표정이 없었으며, 옷차림은 흑의를 입고 있었 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휘류류류륭....! 문득 회오리가 일어났다. 그 회오리는 바람도 없는 가운데 갑작 스럽게 일어난 것이었다. 문득 6인의 몸이 보이지 않게 떨렸다. "소주!" 6인의 입에서 일제히 그런 말이 터져 나옴과 동시에 부복한다. 회오리가 가라앉고 한 청년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는 바로 뇌강 륜이었다. 그가 시전한 신법은 소뢰음사 비전의 천리폭풍영이라 는 것이었다. 하룻밤에 능히 천리를 달린다는 전설의 경공이었 다. 뇌강륜은 번갯불이 이는 듯한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는 6인에게 혈루대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것은 부의 원한을 갚 기까지 피눈물을 뿌려왔다는 뜻. "놈의 행방은?" 6인의 혈루대는 똑같이 입을 연다. "용...용서를....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뇌강륜은 일순 분광을 발했으나 고개를 흔들었다. "관두어라. 너희들의 잘못 만은 아니지... 이곳은 중원이고 우리 가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다." 뇌강륜의 눈에 허탈감이 어린다. 그는 허공을 노려보며 내심 중얼거리고 있었다. '대체 놈은 어디에 숨어 있단 말인가?' 뇌강륜. 그는 중원에 오자마자 혈루대에게 낙성혼의 행방을 찾으 라는 명을 내렸다. 그런데 이미 수개월이 지났는데도 아무런 결 과를 얻지 못한 것이었다. '음. 이렇게 되면 백련회에 기대할 수 밖에 없겠군.' "일어나라." 혈루대는 일제히 몸을 일으켰다. "녹상." "예, 소주." 한 명의 인물이 한 발 앞으로 나선다. 그들이 뇌강륜을 소주라고 부르는 것은 뇌륭대를 대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뇌강륜은 자신 의 부친을 아직도 살아있는 신으로 섬기고 있었다. "너는 즉시 원수께 돌아가 전하라. 거사일이 전해 졌다고 중원장 을 암살할 계획을 세워졌으니 때를 맞추어 군사를 움직여 달라고 전하라." 녹상이라 불리운 인물은 잠시 망설였다. "저... 소주께서는?" "난 아직 할 일이 남았다. 어서 먼저 출발하라. 거사일은 시월 육일이다. 알았느냐?" "존명." 녹상은 지체없이 떠났다. 날짜는 아직도 많이 남았으나 그가 초 원으로 돌아가고 군사를 움직일 준비를 마치기까지는 그렇게 많 은 시간이 남아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뇌강륜은 남아 있는 인물들을 둘러보았다. 그들은 오인이었다. 허나 그에게는 천군만 마보다도 믿음직스러운 수하들이었다. "너희들은 소림으로 가라. 소림 근처에 잠룡원이 있다. 그곳의 원주인 종리무연이 너희들을 기다릴 것이다. 그의 지시를 잠시 따르도록..." 오인의 혈루대는 이유를 달지 않는다. "존명!" 혈루대는 즉시 떠났다. 혼자 남게 된 뇌강륜의 눈에는 무서운 빛 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는 한 인물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는 한번도 그자의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허나 그를 생각하기만 하 면 언제나 가슴이 타오르고 두 눈이 경련한다. "낙성혼... 그 찢어죽일 놈 때문에 대원의 장수가 목 매인 개꼴 이 되다니...." 휘리리리링....! 그는 나타날 때와 마찬가지로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며 어디론가 사라졌다. x x x ------ 단양제일루. 금릉 교외의 명승지 단양호변에 있는 기루. 이곳은 겉으로 보기 에는 기원이나 실제로는 수백년의 전통을 지니고 있는 백련회의 비밀분타이다. "....." 한사람. 백련회의 부교주라는 막중한 위치를 지니고 있는 인물. 그의 이 름은 백리담. 그는 어려서부터 백련회에 투신하였으며 숱한 고초 와 환난을 겪으며 백련회의 부교주라는 지위에까지 올랐다. 그의 나이 49세. 이제 얼마 안 있으면 50을 바라보는 나이다. 그는 요즘처럼 초조한 심경에 빠져있는 적이 없었다. 대원과 싸 울 때만 하여도 이런 기분이 들지 않았다. 그때는 목숨을 버릴지 언정 민족을 위한다는 자부심이 있었기에 마음만은 평안했지 않 은가? 헌데 지금은 입장이 다르다. 같은 민족, 그것도 한때 전우 였던 주원장과의 생존싸움을 하기 위해 도리어 오랑캐들과 손을 잡아야 할 처지에 빠져 있는 것이다. 그는 하루하루가 불안하고 초조한 기분이었다. '잘 되어야 할텐데...' 요즘 같으면 천국과 지옥의 교차로에 서있는 기분이다. 그는 잠 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문득, 문이 열리더니 한가닥 향풍이 들어온다. 그는 돌아보지 않아도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은... 그 향기를 너무 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몸을 돌렸다. 이십대 후반의 요염한 미부가 들어온 것이다. 진보 랏빛의 침의를 입고 있었고, 침의는 아주 얇은 망사의로 된 것이 어서 풍만한 육체의 전이 그대로 느껴지는 차림이었다. 여인의 눈가는 물결치고 있었고, 입술가에는 아주 작은 홍점이 나 있었 다. "아직 잠이 드시지 않으셨군요." 백리담은 미소 짓는다. "요즘 너무 긴장하고 게신 것 같아요." 백리담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태가 사태니만큼 내가 신경을 안쓸 수가 없지 않소?" 여인은 단양제일루의 루주였다. 또한 동시에 백련교의 교도이면 서, 부교주 백리담의 정부이기도 했다. 백리담은 이제까지 성혼 을 하지 않고 있어 이 여인과의 밀회만이 유일한 인생의 낙이라 면 낙인 것이다. 만일 그녀의 위로 없었다면 아마도 그의 인생은 아무런 재미도 없었을 지도 모른다. "희선. 야심한 밤인데 웬일로 나왔소?" 그는 부교주라는 신분으로 인해 짐짓 무게를 잡으며 정색했다. "아이... 웬일이라니요? 당신 걱정이 되어서 잠을 이룰 수가 있 어야죠." 채희선. 그녀는 교태롭게 웃으며 다가와 두팔을 뻗어 백리담의 목을 끌어 안았다. 여인의 향기는 체취와 뭉클한 여체의 감각에 백리담은 단전이 후끈 다는 것을 느꼈다. 이 여인은 언제나 그를 자극시켰 다. "허허... 쓸데없는 걱정을." 백리담은 생각이 달라졌다. 본래 그는 오늘밤 혼자서 여러가지 일들을 정리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채희선이 들어오자 불현듯 남 성의 욕망이 치밀어 올라 생각이 바뀐 것이다. "자, 이제 그만 가서 잡시다." 그는 채희선의 나긋한 허리를 끌어안고 밖으로 나갔다. 채희선은 그의 목에 두 손을 걸고는 콧소리를 낸다. "흐응....안아서 데리고 가 줘요." "허... 누가 보면 어쩌려고?" "흥... 보면 어때요? 당신과 나의 관계를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 다고....?" 두 사람은 집무실을 빠져 나가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문득, 그 들이 사라진 직후, 천장 한곳이 예리한 칼로 갈라졌다. 스슷! 그리고 한 인영이 떨어져 내렸다. 낙성혼이었다. 그는 이미 오래 전부터 천정 속에 잠입해 있었던 것이다. 그는 주위를 둘러 맘 다. 그의 눈에 띄는 것을 별로 없었다. 이곳은 부교주의 임시 집무실이기는 했으나 별반 눈에 띄는 중요한 서류가 보이지 않고 있었다. '어딘가에 비밀문서함 같은 것이 있을텐데...' 그는 사방의 벽을 면밀히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한폭 의 산수화 앞으로 다가갔다. 산수화의 그림 한 부분에 손때가 묻 어 반질거리는 것을 발견한 것이었다. 그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 가 어렸다. '이것이다.' 그는 망설이지 않았다. 산수화를 옮기자 과연 벽장이 나타났다. 그는 벽장을 열기 위해 고리를 잡아당겼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뗑... 뗑뗑뗑.... 그는 깜짝 놀랐다. 벽장의 문고리에 장치되어 있는 비상종을 건 드린 것이었다. 종조리는 요란하게 울리고 있었다. 뗑뗑뗑뗑.... 급촉하게 울리고 있는 비상종 소리는 막 채희선의 몸 속으로 오 래간만에 들어가려던 백리담의 남성을 급격히 움츠려 들게 했다. "아니....?" 백리담은 대경하여 벌떡 일어났다. "아이..." 채희선은 아쉬운 듯 눈을 치떴다. 그녀의 육체는 이제 막 달아오 르려던 참이었다. 허나 백리담은 그녀의 배 위에서 떨어지며 급 히 옷을 걸쳐 입었다. 그리고 밖으로 뛰쳐 나갔다. 채희선은 자 신의 손으로 풍만한 유방을 쓸면서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x x x 펑펑...! 집무실을 막 빠져 나오던 낙성혼은 대뜸 앞을 가로막는 두 명의 인물을 소림의 선인장(仙人掌)으로 날려 버리고 밖으로 신형을 솟구쳤다. 허나, 이미 비상종으로 인해 사방에는 백련교의 고수 들이 포위하고 있었다. 그는 놀라움을 금할 길이 없었다. 백련교 가 이렇게 빠른 행동을 보여줄 줄은 몰랐다. 그는 밖으로 나가지 않고 회랑으로 신형을 날렸다. 막 모퉁이를 돌았다 싶은 순간, 위이이잉! 한 가닥 장력이 날아들었다. 낙성혼은 너무나 급작스러운 일격이 어서 얼떨결에 피하지 못하고 어깨로 장력을 받았다. 펑! "으윽!" 어깨가 떨어져 나가는 듯한 통증이 일면서 그는 뒤로 세 걸음 물 러났다. 앞을 보니 눈에 익은 사나이가 서 있었다. 방금 전에 채 희선과 정사를 끝내지 못하고 달려나온 부교주 백리담이었다. 백 리담도 충격을 받은 듯 비틀거리고 있었다. 그는 낙성혼의 체내 에 잠재되어 있는 소림 수호신문의 달마오상공(澾磨五相功)이란 호신강기에 부상을 입은 것이다. 낙성혼은 그와 싸우고 싶지 않 았다. 그는 상대가 주춤하는 사이에 그의 머리를 뛰어넘었다. 그 의 신법은 절묘하기 그지없이 백리담의 머리칼을 스치면서 쾌속 하게 날아갔다. "서라!" 백리담은 깜짝 놀라 그의 뒤를 추적해 갔다. "놈은 혼자다! 놓치지 마라!" 그의 고함이 들리고 사방으로부터 옷자락 날리는 소리가 들려왔 다. 이미 주위에는 자신이 수백명의 고수들이 에워싸고 있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비록 무공에는 자신이 있었으나 문제는 그가 백련교도들을 살상하고 싶지 않다는 데 있었다. 그러나 살상을 하지 않고는 밖으로 나갈 수 없음을 느끼게 된 것 이었다.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신형을 솟구쳤다. 순간, 쐐애액.... 쏴아아! 사방으로부터 암기와 화살이 날라왔다. 그는 장력을 날려 암기를 모두 퉁겨버린 후 지붕으로 올라갔다. 지붕 위에도 이미 수십 명 의 고수들이 포진하고 있었다. 그는 가장 약한 곳을 가늠하고 신 형을 날렸다. "투항하라!" 누군가가 외쳤으나 그런 말이 귀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그는 앞 으로 달려나갔고, 앞을 가로막는 다섯 명의 중년인을 향해 쌍장 을 흔들었다. 파파파라팍.....! 그의 장력은 연화 수십 송이가 휘날리듯 변화무쌍했다. 상대방 들은 어느것이 진짜 장세인지 어리둥절 하다가 가슴에 통증을 느 끼며 날아갔다. 낙성혼은 그 틈을 타고 신형을 날렸다. 또 다른 지붕이었다. 헌데 맞은 편 지붕으로부터 이삼십 명의 인영이 쏘 아오는 것을 보고 그는 마음을 돌렸다. 발밑에 천근추의 힘을 주 었다. 우두둑....! 하는 순간 그의 몸은 지붕을 뚫고 아래로 떨어졌다. 바로 그때였 다. 그의 발이 바닥에 막 닿을 찰나 한가닥 전음이 귓전을 울리 는 것이 아닌가? "여기에요!" 그는 놀라 고개를 돌렸다. 그가 떨어진 곳은 전각의 복도였다. 헌데 왼쪽의 한 방에서 어떤 여인이 급하게 하얀 손을 흔드는 것 이 아닌가? '.....?' 그는 어리둥절할 수 밖에 없었다. 이곳에서 그를 아는 여인이 있 을 리가 없었다. 그러나 여인의 전음이 다시 다급하게 울렸다. "죽고 싶어요?" 낙성혼은 더이상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이미 수십 개의 인영이 복도를 향해 달려오고 있는 소리를 들어기 때문이었다. 그는 신 형을 날렸다. "어서 이리로...." 여인이 가르키는 곳. 그곳은 화려한 침실이었고, 한쪽에 비단 금 침이 있었다. 그는 침상 아래의 공간으로 스며 들어갔다. 달아날 곳이라곤 그곳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가 숨은 직후, 두두두둑! 요란한 발소리와 함게 이십여 명의 인영이 나타났다. "저쪽이예요!" 여인은 그들에게 복도 반대편을 가르키고 있었다. 사나이들은 그 쪽으로 우르르 달려갔다. 그들이 사라지자 여인은 방문을 닫고 침상 쪽으로 걸어왔다. 그녀는 못마땅한 듯 종알거린다. "어째 하는 일이 그 모양이에요. 영반께서 어떻게 당신같은 사람 을 보냈는지 이해 할 수가 없군요. 어쨌든 그곳에 잠시 숨어 있 어요. 절대 움직이면 안되요." 낙성혼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때였다. 또다시 방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여인은 재빨리 침상으로 와 걸터앉았 다. 여인은 거의 나체나 다름없는 몸이었다. 다만 간신히 걸치고 있는 것이라곤 속이 환히 비쳐보이는 망사의였고, 그나마 다리 아래쪽으로는 맨 살이 그대로 드러나는 차림이었다. 낙성혼은 침 상 아래 쪽으로 꼬고 앉아있는 그녀의 희멀건 허벅지를 볼 수 있 었다. 방문이 거칠게 열렸다. 대여섯 명의 사나이들이 나타났다. 낙성 혼은 여인의 다리 사이로 그들을 볼 수 있었다. 사나이 가운데에 는 부교주 백리담도 있었다. 부교주가 방안을 둘러보며 뭐라고 말을 하려는데 여인이 쪼르르 달려가더니 그의 가슴에 안겼다. "무... 무슨 일이에요? 대체 .... 무서워요." 그녀가 바들바들 떠는 바람에 어깨에 간신히 걸치고 있던 망사의 가 그만 떨어졌다. 그리고 눈부신 전라의 육체가 드러나고 말았 다. 수하인듯한 사나이들은 그녀의 놀랄 만큼 풍만한 육체를 보 고 흠칫하더니 그만 얼굴을 돌렸다. 부교주 백리담은 어색한 듯 헛기침을 했다. "험... 너희들은 다른 곳을 뒤져라." 사나이들이 밖으로 사라지자 그는 얼른 떨어진 옷을 집어 여인에 게 걸쳐 주었다. "아무 일도 아니니 걱정마시오." 그는 아직도 문밖에 서있는 수하들에게 지시했다. "무얼 하고 있느냐? 어서 다른 곳을 뒤져라!" 수하들은 그제야 재빨리 다른 곳으로 달려갔다. 그들이 모두 사 라지자 백리담은 여인의 어깨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떨고 있구려. 희선. 허허... 내가 있는데 무슨 걱정이오? 안심 하고 있으시오. 내 잠시 나갔다 올테니...." 그러자 여인, 즉 채희선은 입술을 꼬옥 깨물며 말했다. "제발 빨리 돌아오세요. 무서워요..." "허허... 염려 말래두..." 백리담은 여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주고는 밖으로 나갔다. 여인은 잠시 밖의 동정을 살피더니 문을 닫고 돌아섰다. 그녀는 침상에 걸터 앉으며 말했다.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당신은 함부로 움직일 수 없게 되었어요. 그러니 오늘밤은 그냥 그곳에 계세요. 새벽이 되면 빠져나갈 수 있게 도와줄테니..." 여인 채희선은 침상에 드러누웠다. 간신히 백리담이 걸쳐 주었던 망사의는 그 바람에 다시 젖혀져 사발을 얹은 듯한 유방과 배꼽 아래 부분까지 그대로 드러났으나 그녀는 개의치 않고 있었다. 물론 침상 아래쪽에 있는 낙성혼은 그 광경을 볼 수 없었다. 여 인의 종알거리는 음성이 들렸다. 그녀는 손으로 자신의 유방을 어루만지며 말하고 있었다. "참 한심해요. 알고 싶은 정보가 있으면 나에게 연락하면 될 일 이지 겁도 없이 이곳으로 뛰어들다니.... 다행히 당신이 이곳으 로 뛰어들었기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나로서도 어쩔 수 없을 뻔 했어요. 그래 대체 알고 싶은 것이 무엇이었나요?" 낙성혼은 그제야 여인이 착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권 1장 血淚隊의 殺手 그녀는 바로 첩자였던 것이다. 바로 동창에서 백련교로 잠입시킨 첩자였다. 백련교의 부교주를 사로잡고 있는 미모의 여인이 동창 의 첩자였다니, 낙성혼은 자신에게 가장 좋은 기회가 왔음을 알 았다. 그는 침상 밑에서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백련교의 움직임에 대해 알고자 잠입했소." 그 말에 여인은 몸을 일으켰다. 여인의 매끈한 두 다리가 침상 아래로 내려왔다. 그러나 일어서지는 않고 걸터 앉는듯 했다. "무슨 움직임이요? 제가 계속 보고 드렸잖아요?" 낙성혼은 당황했다. 자신이 잘못 질문한 것이다. 질문 치고는 너 무나 유치한 것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곧 침 착하게 말했다. "알고 있소. 그러나 그보다 직접적인 것을 알아야 겠기에... 특 히 백련교가 구파일방을 이용한다는 정보가 있어서..." 여인의 매끄러운 두 다리가 묘하게 꼬여지는 것이 보였다. "아아... 그거요? 그거라면 내가 막 보고를 드리려던 참이었는 데... 참, 동창소속이죠? 아아, 영반님의 성질은 급하기도 하시 군요. 하긴... 잠자리에서도 옷도 벗기기전에 손가락부터 들어오 니... 으음... 영반님의 손가락 기술은 일품이예요. 비록 환관이 긴 해도 절 아주 반쯤 죽여 주시거든요. 으음..." 낙성혼은 여인이 왜 신음을 지르는지 알 수 없었다. 이때... 채 희선은 자신의 손가락으로 이미 성이 날대로 나 곤두서있는 자신 의 유두를 비틀고 있었던 것이다. 그뿐이 아니었다. 그녀는 선천 적으로 몸이 뜨거운 여인이었다. 벌써 침상 아래 한명의 사나이 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녀는 흥분하고 있었다. 이런 특수한 상황이 그녀로 하여금 미묘한 상상을 불러 일으키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의 손은 처음 아래로 내려오고 있었다. 여인의 깊숙 한 삼림. 그녀는 스스로의 손으로 그 부분을 쓰다듬고 있었다. 낙성혼은 차갑게 말했다. "쓸데 없는 소리 말고 어서 말이나 하시오." "흐흥... 딱딱하시기는... 그게 모두 당신 때문이라구요. 그러니 손해 배상을 해주시기 전에는 말 안할래요." 낙성혼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여인관계에 익숙한 사람이 아니 었다. 허나 이 정도가 되면 어느 정도 눈치를 챌 수 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는 마음 속으로 중얼거렸다. '정말 더러운 계집이군.' 지금의 상황과, 또한 우연히 잡은 기회로 볼 때 그녀의 비위를 맞추는 것은 필요한 일이었다. 그는 침상 아래 엎드린 채 입을 열었따. "손해 배상이라니.... 그건 무슨 뜻이오?" "흐응... 목석같으니라구... 당신도 설마 환관은 아니겠죠?" 낙성혼은 비위가 틀어졌다. "내가 무슨 환관..." 그는 아차 싶었따. 차라리 환관이라고 말을 할 걸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허나 이미 말은 쏟아진 후다. 아니나 다를까? 채희선 은 콧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흐응... 마침 적격이군요. 당신으로 인해 내가 신세처량하게 되 었으니 오늘 밤은 날 즐겁게 해주어야 해요." 다리가 더욱 비비 꼬여지는 것이 보인다. 낙성혼은 혀를 찼다. '정말 기막한 신세가 되었군.' 그러나 보통사람이라면 기막힌 신세가 아니라 기막힌 행운일 것 이다. 낙성혼은 마음의 결정을 내려야 했다. 그는 오래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다리를... 만져 주겠어요...?" 코 먹은 여인의 음성이 흘러나왔던 것이다. 낙성혼은 더 생각하 지 않기로 했다. 가는 데 까지 가보기로 한 것이다. 그는 여인의 다리를 잡았다. "흐응... 발가락부터..." 낙성혼은 시키는대로 했다. 여인의 발가락을 하나하나 만졌다. 여인은 그의 손길이 닿는 순간 부르르 떨며 쓰러지고 있었다. 낙 성혼은 그녀의 발가락을 아래로 만지면서 위로 더듬어 올랐다. "어서 보고를 하시오... 이러다가 시간이 흐르면...." "흐응... 무릎으로... 응... 뭐가 그리 급해요? 다아 내가 알아 서 할텐데..." 여인은 다리를 비비 꼰다. 낙성혼은 이제 침상 밑에 더이상 엎드 려 있기가 힘들었다. 그는 밖으로 나왔다. 채희선은 뜻밖에도 이 미 홀랑 벗고 드러누워 있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손으로 자신의 가슴과 아랫배를 애무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광경은 그야말로 처음보는 것이엇다. 낙성혼은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가 멍한 가운데 여인이 발로 그를 툭 찬다. "어서요... 설마 당신 그 부분이 고장난 것은... 아니겠죠?" 낙성혼은 여인의 발을 잡았다. 여인의 발을 잡아 올리며 손으로 그녀의 허벅지를 깊숙히 쓰다듬어 들어갔다. "아... 학... 제법... 이군...요.... 더... 더...." 채희선은 고개를 젓고 있었다. 이미 오를 대로 오른 모습이었다. 낙성혼은 문득 기지가 떠올랐다. 이렇게 음탕한 여인이라면 도리 어 잔뜩 달게 한 뒤 정보를 캐는 것이 나으리라는 생각이 든 것 이다. 그는 여인의 허벅지 깊숙이론 손을 밀어 넣었다. 채희선의 몸이 튀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이미 고도로 흥분한 상태였다. 온몸을 비틀고 허리를 들었다 내렸다하며 난리를 부리고 있는 것 이다. 낙성혼은 침착하게 그녀를 더듬어 나갔다. 그의 손가락이 그녀의 치모 우거진 숲으로 접근하여 가자 여인은 아예 목을 꼬 며 온몸을 들먹이고 있었다. 그러나 낙성혼은 그 이상은 가지 않 았다. 그는 여인의 성감대를 금방 느낄 수 있었다. 성감대를 건 드리면서 가라앉은 음성으로 묻는다. "구파일방의 동태를 어떻게 이용한다는 거지?" "흐응... 그건 나중에..." "구파일방은..." 낙성혼의 손이 떨어져 나가자 그녀는 얼른 입을 열었다. "흐응.. 화산의 장문인 종리무연이 이미 백련회와 손을 잡았다는 사실은 제가 보고드렸잖아요... 그리고 그자가... 그자가..." 이번에는 채희선이 일부러 말을 흐린다. 할 수 없이 낙성혼의 손 은 그녀의 깊숙한 곳으로 스며들 밖에. 그녀의 동굴이 이미 축축 히 젖어 있었다. 그의 손가락이 움직이자 그녀의 입에서 단내가 났다. "종리무연은... 음... 잠룡원의 원주이고.. 응... 그자는 곧 황 궁을 기습하는데 잠룡원의 후기지수들을 사용하게 될 거예요. 하 아... 그리고..." 낙성혼은 그녀의 다리가 좌우로 비틀거리는 걸 보고 더욱 마음을 냉정히 가라앉혔다. 그는 침상에 올랐다. 그녀의 두 다리를 자신 의 어깨에 걸쳤다. 본격적으로 심문을 시작할 셈인 것이다. 그는 방향을 느꼈다. 그것은 그녀의 여체 가장 신비한 곳으로부터 흘 러나오는 어떤 애액과 무관하지 않았다. "백련회는... 그 정보를 슬쩍... 황궁에 흘리게 될 거예요. 하 아.. 그러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들은 공격을 받을 것이고... 그때 종리무연을 통해 백련회가 접근하여 그들에게 도움을 주 고... 헉... 그들은 감격한다는 거예요..." 낙성혼은 의문을 느꼈다. 그는 다른 손으로 그녀의 유방을 문지 르며 묻는다. "그들을 어디에 쓰려고?" "흐음... 당신... 형편없는 바보로군요? 백련회는 그들을 이용하 여 황궁을 견제하는 데 쓰고.. 다시 원과의 평등을 유지하는데 힘으로 사용하는 거죠..." 낙성혼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백련회의 음모가 너무나 치밀하 다는 느낌이 든 것이다. 만일 그대로 되기만 한다면 백련회와 종 리무연의 합작으로 구파일방이 그들의 허수아비가 될 것이 틀림 없는 일이다. 그는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황궁에서는 어떤 대책을 세워두었소?" 그의 질문은 요지를 약간 벗어난 것이다. 그가 동창의 인물이라 면 그것을 모를 리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 그의 자극이 강하게 들어갔고, "흐으윽... 그건... 황궁에서는 그 잠룡원의 아이들을... 어찌 가만히 두겠어요.... 그들이 힘이 돌리기 전에... 하아.. 대부분 전멸될테니까요.... 백련회의 책략이나 종리무연의 음모도 결국 은 황궁의 특공대에 의해 완전히 부서질 것을..." 낙성혼은 간담히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된다면 무림의 대는 완전히 끊기는 것이 아닌가? 그는 잠룡원을 알고 있었다. 잠룡원에 입문한 젊은이들은 각파의 정예인물이다. 만일 그들이 모두 죽는다면 각대문파는 후대를 잃음으로써 장차 힘이 소실되 게 된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그야말로 무서운 책략이 아닐 수 없는 일이었다. 낙성혼은 마음에 불틍ㄹ 붙인듯 다급해졌다. '무서운 일이다. 아아.. 황제시여, 당신의 마음은 어찌 그리도 독하십니까? 무림을 말살시키기 위해 아무것도 모르는 젊은 고수 들을 함정으로 끌어들여 몰살할 게획을 하고 있다니... 천하의 주인이신 당신이 무엇때문에 무림을 말살하려고 하는 것이오?' 낙성혼. 그는 이제 무림인이었다. 소림 수호신문의 이십칠대 문 주인 것이다. 그가 무림인인 이상 무림의 말살을 방관할 수는 없 는 일이었다. 이때 채희선의 몸이 부르르 떨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아... 헉헉... 어서... 빨리...." 낙성혼은 이제 더이상 알아볼 것이 없다고 느꼈다. 그렇다면 그 녀같은 탕부에게 봉사를 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의 손가락이 엉뚱한 곳을 찍었다. ".....!" 채희선은 막 절정의 기대감으로 온몸을 떨다가 급격히 굳어지고 말았다. 혈도를 찔린 것이었다. 그녀는 꼼짝도 할 수 없게 되었 다. 그것도 이 세상에서 가장 희안한 자세로 굳어진 것이다. 그 녀의 두 다리는 좌우로 활짝 벌려진 채 허공으로 번쩍 치켜 들어 있었고, 두 손은 자신의 유방을 잔뜩 움켜쥔 채로였다. 스스스! 낙성혼은 사라지고 있었다. '부교주, 당신의 애인이 이런 자세로 있는 것을 본다면 당신도 자신이 어리석었다는 것을 알게될 것이오.' 낙성혼이 사라져 간 곳, 그곳은 소림이었다. 종리무연. 그는 불시의 방문객을 맞이했다. 그러나 그 방문객들 이 누구인지는 미리 알고 있었다. 지금 그는 5인의 사나이들을 대하고 내심 중얼거리고 있었다. '으음... 괜찮은데' 그도 일문의 지존이었다. 그는 직감으로 이 사나이들의 능력이 초절정이라는 것을 느꼈다. "......" 5인의 흑포 사나이들은 무심한 눈빛으로 종리무연을 바라보고 있 었다. 그들은 혈루대였다. 바로 뇌강륜의 명을 받고 이곳 잠룡원 으로 온 것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종리무연이 맘에 들지 않았 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있어 신 이나 다름없는 뇌강륜의 명을 받지 않았던가? 뇌강륜이 죽으라면 죽고, 팔 다리를 끊으라면 끊을 각오가 되어있는 혈루대인 것이 다. 이때 종리무연은 짐짓 차가운 음성으로 물었다. "자네들 중 누가 대장인가?" "우리 모두요." 5인은 동시에 입을 열어 대답했다. 껄끄럽기 그지없는 음성이었 다. 종리무연은 그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도 일 문의 지존이었다. 그는 침음성을 흘리며 말했다. "으음, 아무래도 좋네. 하지만 이곳에 온 이상 나의 명령에 따라 야 하네. 그것은 자네들의 주인과의 약속이니 말일세." "......" 혈루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별다른 반발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종리무연의 그들의 안색을 살핀 후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자네들이 할 일이 있네. 그것은 처치해야 할 대상이 있다는 뜻일세." ".....!" 그 말에 혈루대의 눈빛이 일제히 이채를 번뜩였다. 그들은 차라 리 그 편이 났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이곳에서 할 일이 살인이 라면 자신들의 답답함과 짜증을 더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판 단을 한 것이었다. "우선 첫번째 대상은 무당의 서문로(西門路)라는 놈일세. 놈은 비록 어리지만 무당파의 속가제자 중 가장 뛰어난 놈이니 조심해 야 할 것이네. 무당의 비전지비뿐 아니라 최근에는 잠룡원에서 각파의 절기마저 익혀...." 그의 말은 도중에서 끊기고 말았다. "한놈뿐이오?" 혈루대의 그런 질문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더있지. 하지만 그 놈부터 처치하게." "귀찮으니 한꺼번에 이야기 하시오." 종리무연은 잔 기침을 했다. "흐흠.... 물론 그러면 나도 편하겠지. 하지만 자네들이 나를 못 믿듯이 나 역시 자네들의 능력을 믿지 못해."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바쁘게 혈루대는 움직였다. "다녀 오겠소." 스스스슥! 그들은 다섯 사람이 마치 한 사람이 움직이듯이 일제히 연기처럼 밖으로 날아갔다. 그들이 사라지자 종리무연의 눈살이 잔뜩 찌푸 려졌다. "건방진 녀석들. 그나저나 저만한 놈들이 어디서 한꺼번에...?" 그는 아쉬운 기분이었다. 만일 화산파에 그런 인물들이 반만 있 어도 화산을 일으키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 었다. 그러나 세상 일이란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x x x 서문로. 그는 무당의 속가제자로 입문했다. 그는 잠룡원에 발탁되어 입문 한 이후 불철주야로 무공을 익혔다. 그것은 그의 젊은 가슴에 야 망이 자라고 있기 때문이었따. 이곳에서 발군의 실력을 나타내는 것은 장차 무림의 주역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리 하여 그는 남들이 잠을 잘 때나 쉴때도 결코 놀지 않았다. 그는 무당의 검법을 익히는 외에도 각파의 비전지기를 익히는 데 땀을 흘렸다. 그 결과, 그는 잠룡원의 白虎閣에서는 가장 뛰어난 인물 로 평가받기에 이르렀다. 지금 그는 산책을 하고 있었다. 그의 마음은 요즘 다소 우울했 다. 그것은 마음 속으로 사모하던 어떤 여인으로부터 무시를 당 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가 이곳에서 그렇게 열심 히 무공을 연마한 것은 그 여인의 눈에 띄려는 의도도 포함되어 있었다. 헌데, 사천 당가 출신의 미녀, 당수린은 그에게 일별도 하지 않을 뿐더러 굳게 마음의 문을 닫고 자신에게 열어주지 않 는 것이다. 오늘만 해도 그렇다. 그는 모처럼 시간을 내어 그녀 에게 함께 산책을 하자고 청했으나 망신만 당하고 만 것이다. '아직도 그 놈 생각을....' 그가 마음 속으로 원망하는 것은 한때 비룡각에서 괴물로 통하던 한 사나이었다. '이름이 환무영이라고 하였던가...?' 듣기로 그는 종남파의 여제자를 간살한 혐의로 뇌옥에 잡혔다가 탈출했다고 들었다. 헌데 그런 놈을 당수린이 아직까지 잊지 못 해하고 있다는 것이 더욱 그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고 있는 것이 다. 그는 기분이 나빠졌다. 그의 발걸음은 연무장으로 향하고 있 었다. 이럴 때는 그저 검법 연마를 하는 것이 가장 좋다. 마음을 후련하게 해주기 때문이었다. 헌데, 막 화원의 인공가산을 도는 순간이었다. '......!' 그는 자신의 등 뒤로 날아오는 강한 살기를 느꼈다. 꿈에도 생각 지 않은 일이었다. "흐흑!" 허나 쉽게 당할 그가 아니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몸을 회전시키 며 허리춤에서 철검을 뽑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엉뚱하게도 옆구리쪽으로 화끈하는 통증이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그는 입을 딱 벌렸다. 막 그의 입에서 비명이 터지려 하는 순간이었다. 그 러나 입 속으로 처박히는 것이 있었다. 검! 한 자루의 검이 그의 비명을 지르듯이 입속에 쑤셔 박힌 것 이다. 그의 눈동자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돌아갔다. 이러려고 무공을 피땀 흘려 익힌 것은 아닌데... 이렇게 허무하게 쓰러지 다니... 이때 그의 귓전으로 희미한 음성이 들려왔다. "하나." 서문로의 몸이 기우뚱하고 기울어 졌다. 바닥으로 세차게 충돌하 는 순간 서문로의 희미한 의식 속에서는 당수린의 비웃는 모습이 떠오르고 있었다. 그리고는... 끝이었다. x x x 종리무연은 그이 앞에 놓여있는 하나의 상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은 방금 나타난 혈루대 5인이 막 그에게 던진 것이었다. "......" 그는 상자의 뚜겅을 열어보지 않아도 그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고 있었다. 종리무연은 상자를 어루만지며 중얼거렸다. "다음은 소림출신의 백도(白道)....." x x x 백도. 그의 나이 이십팔 세. 잠룡원의 청년들 가운데 나이가 약간은 많 은 편이었고, 소림출신이며, 출가인이라는 점으로 인해 은연중 영도자의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 그는 지금 잠룡원에 마련된 불 당에서 불공을 드리는 중이었다. 그의 마음은 심히 불편했다. 그 것은 오늘따라 유난히 잡념이 많이 떠오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정신을 비우기 위해 노력해 보아도 잘 되지 않고 있었다. '아미타불... 대자대비하신 부처님.... 이 못난 제자를 용서하소 서...' 그는 자신의 마음이 안정되지 않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그것은 요즘 들어 잠룡원의 청년들 간에 반목이 심해지고 있기 때문이었 다. 그는 사견을 버리고 그 반목을 종식시키기 위해 노력을 기울 렸으나 역부족이었다. 잠룡원의 사대각 소속의 젊은이들은 파벌 을 형성하고 있으며, 서로간에 이견충돌이 잦고, 또한 상대방을 질시하는 경향이 요즘들어 더욱 뚜렷해지고 있었다. '아미타불.. 그것은 아니될 일... 무림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할 이때 반목이라니.... 아미타불....' 그는 합장불호를 외웠다. 헌데, ".......!" 그는 갑자기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가 앉아있던 바닥으로부터 한자루의 날카로운 물건이 솟았고, 그는 앉은 채로 그것에 찔린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가 한 자루의 검에 관통된 상황에서도 허공으로 몸을 솟구친 순간... "뒈져!" 한소리 음침한 외침과 함께 사방으로부터 검이 쏟아져 나온 것이 다. 그는 쌍장을 합쳤다가 펼쳤다. 허나 그것은 채 펼쳐지지도 못했다. 정수리가 화끈해진 것이다. 천정에서 한 인영이 검과 몸 이 하나가 되어 그의 정수리에 떨어진 것이다. 백도는 이렇게 하 여 이십팔 년간을 살아오면서 익힌 무공을 하나도 펼쳐보지 못한 채 죽고 말았다. 천정으로부터 희미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둘." x x x 잠룡원은 흔들리고 있었다. 죽음의 손... 죽음의 그림자... 죽음 의 예감... 벌써 여섯 명째 죽었다. 단 삼일 사이에 벌어진 일이 었다. 여섯 명의 영재들의 시체가 매일 두구씩 발견된 것이다. 잠룡원은 발칵 뒤집혀졌다. 사대각의 젊은 영재들은 불안과 공포 심을 느꼈다. 그것은 죽은 자들이 하나같이 각내에서 명망이 높 은 인물들이었으며, 출신문파 또한 명문의 제자들이었기 때문이 었다. 헌데... 어찌된 셈인지 흉수의 정체는 조금도 밝혀지지 않 고 있었다. 이 사건은 청년들을 들끓게 만들었으며 그들은 급기 야 잠룡원의 원주인 종리무연의 집무실까지 모여들게 하고 있었 다. ..... 종리무연은 일어섰다. 밖에서 청년들의 떠드는 소리가 그의 귓전 에 들리고 있었으나 그는 웃고 있었다. 이 사태는 그가 조작한 것이니만큼, 그는 당황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청년들은 대전에 모여 있었다. 이백여 명에 달하는 청년들의 얼굴은 잔뜩 흥분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 종리무연이 나서며 입을 열었다. 허나 청년들은 여전히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떠들어 대고 있었다. 실상 이곳에서 종리무연은 자신이 그다지 큰 권위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마음 속으로 분노가 치솟았다. "허어! 이 발칙한 것들...! 감히 누구 앞에서 이런 소란이냐? 할 말이 있으며 존장 앞에서 대표자가 나서서 공손히 여쭈어야 하거 늘 이 무슨 시정잡배 같은 예의없는 행동들이냐? 너희들이 과연 명문의 제자란 말이냐?" 그의 말은 효과가 있었다. 청년들은 그제야 떠들기를 멈추고 일 제히 입을 다물었다. 허나 선뜻 나서는 작자는 없었다. 그것은 어젯밤에 죽은 육인의 청년들이 이제까지 사대각의 실질적인 영 도자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모두 죽은 지금, 대표적으로 나설만한 인물이 선뜻 없는 것이었다. 이때 누군가가 입을 열었 다. "원주님! 더이상 견딜 수가 없습니다! 이 사흘간에 벌어진 살인 사건 때문입니다." 그 말에 종리무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일이라면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무슨 조치를 내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중인의 시선은 모두 종리무연에게 향했다. 그들의 눈에는 강한 불만이 어려 있었다. 무능한 종리무연에게 불만이 많다는 것을 뜻하는 표현이었다. 종리무연은 수염을 쓰다듬었다. "으음! 나도 이미 소림에 연락을 취했다. 각파의 영수들께서도 이 문제를 심각히 여기고 대책을 세우시는 중이다. 물론 흉수에 대하여도 은밀히 조사를 하고 있거늘 너희들은 잠시 기다려 보면 알게 될 일이다." 허나 청년은 그런 미흡한 말에 만족할 수가 없었다. "원주님. 하지만 이대로 계속 기다리다간 더 많은 희생자가 나지 않겠습니까? 우리 쪽에서도 무슨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생각합 니다." 청년들이 일제히 외쳤다. "그렇소!" "우리도 앉아서 당할 수 만은 없소!" "흉수가 누군지 몰라도 우리도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하오!" 청년들은 시끌버쩍 소란을 일으켰따. 잠룡원주 종리무연은 내심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후후... 너희들이 그럴수록 내게는 더욱 좋은 일이다.' 그는 손을 들었다. "아아! 그만 떠들게. 이제 잠시후면 연락이 올 것이네. 그리고 나에게도 생각이 있으니 하루만 더 기다려 보세!" 그 말에 청년들은 다시 불만을 터뜨렸다. 허나 결국은 하나하나 헤어질 수 밖에 없는 일이었다. 하루 정도를 기다리는 것이야 어 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러나.... 그 하루의 기다림 후에 어떤 결과가 올지 그들은 아무도 상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2장 血殺舞의 始作 다시 이틀... 종리무연으로부터 기다리라는 말을 들은 지 이틀이 지났다. 그러 나... 이 이틀의 기다림은 잠룡원의 청년들에게는 일년 이상으로 길기만 했다. 그것은 그 이틀 사이에 다시 다섯 명의 영재들이 암살당했기 때문이었다. 청년들은 공포에 전율할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무공 과 능력을 자부하고 있었다. 헌데 어찌된 셈인지 죽은 자들은 한 결같이 개중 가장 무공이 뛰어난 인물이었고, 도한 죽은 모습을 보면 그드르이 대부분이 미처 반항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당 했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같은 사실은 너무나도 회의적인 것이었다. 청년들은 다시 잠룡 원주에게 달려갔다. 만일 뚜렷한 해결책이 없다면 더이상 잠룡원 에 앉아서 죽음을 기다릴 수 없다는 확고한 결심을 굳히고 있었 다. 그들은 잠룡원을 뛰쳐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적은 어둠 속에 있고, 아군은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굳이 이곳에 갇혀 있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더욱이, 종리무연은 이틀 전에 명을 내렸다. 그것은 흉수가 어쩌 면 내부에 있을지도 모르며, 그 흉수를 잡기 위해서는 밖으로 나 가는 것을 금한다는 것이었다. 그 포고는 얼핏 듣기에는 그럴듯 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청년들은 그런 조치가 도리어 더 많은 희생자들을 낼 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젖어있었다. "더이상 참을 수 없소!" "옳소! 오늘은 무슨 수든 내야 하오!" 청년들은 무리지어 대전으로 나갔다. x x x "......!" "......!" 대전에 모인 청년들은 모두 한 사람에게 이목을 집중시켰다. 종 리무연. 그가 나와있었다. 그는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지극히 엄숙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는 청년들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 다. "무림맹의 결성이 아직은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소림사에 모여 있는 각파의 지존들께서는 이미 합의를 보았다." ".......!" 장내의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본좌는 이미 잠룡원에서 일어나고 있는 마수에 관한 건을 소림 의 천장선사에게 통보했으며, 그에 대한 각파지존들의 합의사항 이 나에게 전달되었다." 중인들의 시선은 일제히 그의 입으로 쏠렸다. 과연 어떤 발언이 나올 것인가? 그들은 긴장하고 있었따. 종리무연은 차분한 음성 으로 말을 이었다. "흉수의 정체가 밝혀졌다." 순간, ".......!"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 듯이 조용해졌다. "흉수는..... 황궁에서 밀파된 자객이라는 것이다." "아니...!" "그럴 수가....!" 청년들의 입에서는 경악에 찬 외침이 터져 나왔다. 그것은 너무 나도 뜻밖의 말이었다. 종리무연은 말을 이었다. "너희들도 알다시피 무림은 그동안 원을 이땅에서 몰아내기 위하 여 많은 희생을 치뤘다. 그러나 당금의 황제가 된 주원장은 우리 무림의 공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얼굴에는 언뜻 어두운 그늘이 어린다. "그는 실로 놀랍게도 무림을 아예 말살하려는 정책을 펴고있다." ".....!" 청년들의 얼굴에는 경악과 분노가 어리고 있었다. 그들은 젊다. 젊다는 것은 끓는 피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 그들이 분노 를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종리무연의 음성은 처음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이어졌다. "무림맹은 이에 대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각대문파가 소림 에 모여 무림연합맹을 결성하게 된 것이다." "......." "그런데 황궁에서 먼저 손을 쓰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 잠룡원에 서 마수를 펼치는 자들도 황궁에서 밀파된 자객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때, "사부님!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사실이 그렇다면 우리도 가만 있을 수는 없는 일이 아닙니까? 어찌 앉아서 당할 수가 있 단 말입니까?" 그는 화산파의 대제자인 장항이었다. 그의 말은 젊은이들 사이에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옳소! 우리라도 당할 수는 없소!" "황궁이 뭐 별거요? 우리도 일어납시다!" 와글와글.... 분위기는 삽시에 험악해지고 있었다. "조용히 하라...!" 종리무연의 입에서 침음성이 떨어졌다. "너희들은 왜 잠룡원이 생겼고 각 파에서 뛰어난 영재들이 이곳 에 입문하게 되었는지 아느냐?" "......?" 청년들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은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 었다. 그것은 장차의 무림을 위하여 인재를 양성한다는 취지가 아니었던가? "물론 무림 정기를 고무시킨다는 뜻도 있었으나 기실 그것은 후 일을 위한 일일 뿐이다." "......?" "사실은 너희들을 바로 무림맹의 전위특공대로 활용하기 위한 뜻 이 있었다." 청년들의 눈이 빛났다. 그들은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각파에는 자파의 비전무학을 아끼지 않고 잠룡원에 내놓 은 것이다. 너희들은 무림을 위하여 목숨을 바칠 수 있느냐?" 후반부의 종리무연의 음성은 자못 비장하게 들렸다. 청년들은 혈기가 끓어오름을 느꼈다. "물론이오!" "당연한 일이오! 우리는 무림의 아들! 황궁이 아니라 그보다 더 한 적일지라도 목숨을 바쳐 무림을 수호하겠소!" 우우.....! 와아아아아! 함성이 일제히 터진다. 장내는 이제 걷잡을 수 없는 흥분의 물결 이 번지기 시작한 것이다. 종리무연은 때를 놓치지 않았다. "이제 때는 왔다." 그는 두 눈에 안광을 빛내며 말을 이었다. "소림사의 각파 영수들께서 결정을 내리셨다! 따라서 자네들에게 첫번째 명이 떨어졌다!" ".......!" 장내는 완전히 흥분의 도가니였다. "황궁으로 간다! 앉아서 기다릴 것이 아니라 황궁으로 가 주원장 에게 담판을 요구하는 것이다! 물론 길목에는 무서운 위험이 따 를 것이다. 그러나 너희들은 무림의 아들... 난관을 극복하고 무 림대계를 위하여 초석이 되어야 한다! 알겠느냐?" 와아아아.....! 청년들은 피가 끓는 것을 느꼈다. "내 다시 한번 묻노니, 너희들은 무림을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 가 되어 있느냐? 겁이 나는 자는 빠져도 좋다." 잠룡원의 젊은 영재들 가운데 겁이 나 빠질 인물이 있겠는가? 종 리무연은 이미 그런 자가 한명도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 다도 잘 알고 있었다. 장내는 완전히 달아올라 있었다. 한편, 잠 룡원의 극소수이긴 하였으나... 몇명의 인물들은 안색이 굳어지 고 있었다. "무언가 이상해요." 이렇게 나직이 말한 것은 당수린이었다. 그녀의 옆에는 화산의 칠대제자중 막내인 선우제인이 있었다. 선우제인은 어두운 안색 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당수린은 자신의 생각을 확신하는 듯 다시 말했다. "아무래도 소림사로 천장선사님을 찾아가 직접 확인해 보아야 겠 어요. 무언가... 일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것 같아요." ".....!" 그녀를 들러싼 칠,팔인의 젊은이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이때 누군가 나섰다. "내가 가보겠소." 이렇게 나선 자는 청성의 유문도였다. 당수린은 그를 바라보며 나직하게 말했다. "하지만 조심해야 해요. 어쩌면 감시가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예 요." 유문도는 신중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알겠소." x x x 그날 밤... 유문도는 몰래 잠룡원의 담장을 뛰어넘고 있었다. 그 는 당수린의 신신당부를 받고 잔뜩 긴장한 채 담장을 뛰어넘은 것이다. 그러나... 이미 그의 행동을 예의 주시하는 자들이 있었 다. 그것은 혈루대 5인이었다. 유문도의 무공이 아무로 높다고 해도 그들을 당할 수는 없었다. 더욱이 상대는 다섯 명이나 되었 따. 그는 채 한 마장도 빠져 나가지 못하고 그들에게 죽음을 당 하고 말았다. 그 사실은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목 이 빠지게 그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는 당수린 등에게 만은 더욱 더 불길한 그낌을 던져주고 있을 뿐이었다. x x x 천하에서 가장 은밀한 곳... 한채의 전각으로 날아드는 비둘기가 있었다. 손. 일평생을 수십 만 교도들을 위해 사생활을 버리고 매진해 온 한 노인의 손이 비 둘기의 다리에서 전서를 풀어 읽고 있었다. 혁련노숙. 그의 눈에 서 은은한 광채가 솟아나고 있었다. "드디어 시작인가....?" x x x 오백 마리의 비둘기가 날아내렸다. 황궁의 깊숙한 곳, 지붕이 열 리며 오백 마리의 비둘기가 사라졌다. 진짜 전서구는 그중 하나 뿐이라는 것을 아는 자는 별로 없었다. 전서구는 살아있는 그대 로 한 인물에게 전달되고 있었다. 동창 대영반, 대명의 생살여탈 권을 황제 다음으로 직접적으로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따. 위원화 는 전서구를 펼치고 있었다. ....... 잠룡원이 움직였습니다. 계속 보고하겠습니다. 자령 3호 (紫令三號) 위원화의 가는 눈이 춤추고 있었다. 그는 나직하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제 시작이군." 3장 死影은 내리고.... 달빛이 밝다. 휘이익....! 달빛을 받고 장엄하게 보이는 숭산을 향해 쏘아가는 인영이 있었 다. 이곳은 숭산현. 아직도 숭산의 주봉까지 가기에는 빤히 보이 는 거리였으나 꽤 먼 거리였다. 휙! 인영은 땅에 떨어졌다. "늦지 않아야 할텐데..." 그는 완전히 지쳐 있었다. 전신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으며, 얼굴과 의복 등에는 먼지가 뒤덮여 있었다. 달빛은 그의 얼굴을 비춘다. 낙성혼이었따. 그는 금릉에서 이곳까지 줄곧 쉬지 않고 달려온 것이었다. 그의 마음은 타는 듯이 뜨거웠다. 그것은 채희 선으로부터 백련교와 종리무연이 꾸민 모계를 들었기 때문이었 다. 한발이라도 늦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리라는 것을 아고 다급 히 이곳까지 온 것이었다. 그는 달빛에 신비하게 보이는 숭산을 다시 한번 바라본 후 땅을 박찼다. x x x "아니.... 무... 무엇이라고 했느냐?" 소림 방장 천장선사는 하마터면 들고 있는 찻잔을 떨어뜨릴 뻔했 다. 그는 너무나 놀라 몸을 부르르 떨기까지 했다. 그의 앞에는 이대제자인 지객원의 부원주가 보고하고 있었다. "사실입니다. 잠룡원이 텅 비어 있었습니다." "그럴 수가...." "제자도 의아했으나 원인은 알 수 없습니다. 헌데 더욱 놀라운 것은..." "또... 무엇이냐?" 천장선사는 그의 다음 말을 듣기가 더욱 두려운 느낌이었따. 왠 진 듣기도 전에 불길한 감이 온 것이었다. "잠룡원의 대전에... 열 한개의 위패가 놓여있었습니다." "위패라니...?" "놀랍게도... 본문의 백도를 위시하여... 각파의 뛰어난 영재들 의 이름이 쓰여있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그는 더 말을 잇지 못했다. 허나 더 말을 하지 않아도 천장선사 는 알 수 있었다. 위패가 새겨져 있다는 말은 곧 그들이 죽었다 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랴?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그는 지난 며칠 간 잠룡원에서 아무런 연락이 없이 제자를 보낸 것이 다. 헌데 제자의 보고는 너무나도 심상치 않은 것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추측을 해보아도 조금도 직감이 가는 바가 없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단 말인가.....?" 어쨌든 결정을 내려야 했다. "너는 지금 즉시 각파의 장문인들에게 연락해라. 즉각 비상회의 를 소집한다고 말이다." "알겠습니다!" 지객원의 부원주도 사태의 위급함을 느끼고 급히 밖으로 뛰어나 갔다. 그가 나간후 천장선사는 선방을 오락가락했다. 도무지 마 음이 잡히지 않는 것이다. "대체 어떻게 그런 일이...." 천장선사는 그렇지 않아도 이 며칠간 심기가 편치 않았다. 특히 무당의 하진자가 아직도 아무런 소식이 없다는 것이 그를 불안테 하고 있었다. 화진자는 그와 반목이 있는 편이긴 하여도 소림과 함께 대문파인 무당이 손을 잡아야만 무림맹을 이끌어 나갈 수 있는 것이었다. "아미타불...." 바로 그때였다. 펑! 퍼펑.....! 문득 폭음과 함께 창문이 박사란고 무엇인가 시커먼 물체가 쏘아 왔다. "누구냐? 감히..." 천장선사는 입을 다물었다. 날아든 물체에 무엇인가를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어디 그뿐이랴? 천정도 불시에 갈라지며 시커먼 물 체자 떨어진 것이었다. "이... 이럴 수가...?" 천장선사의 눈이 크게 부릅떠졌다. 선방 안으로 날아와 뒹구는 물체! 그것은 바로 방금 나간 지객원의 부원주와 자신을 호위하 는 나한승들의 목이 아닌가! 아홉 명의 나한승의 목이 깨끗이 잘 려 날아온 것이었다. 천장선사는 믿을 수 없는 현실을 보고 있었 다. 그가 넋을 잃을 때, 슈파앗! 파아아앗! 사방, 아니 오방이었다. 다섯 방향으로부터 거의 동시에 그를 향 해 검기가 쇄도해 오고 있는 것이 아니가? 그것은 천장선사같은 내가의 절정고수로서도 난생 처음 경험하는 괴이한 검기였다. 그 는 소림사의 장문이었다. 따라서 그가 소유하고있는 무공 또한 소림의 최상승절기라고 할 수 있었다. 비록 창졸간에 기습을 당하긴 하였으나, 그는 당황하지 않고 빙 그르르! 신형을 회전시키고 있었다. 소림의 절기 달마삼장이 펼 쳐지고, 손가락이 일제히 뻗어나가며 탄지신통이 발사되고.... 발길로는 열여섯 번의 원앙각을 걷어차면서 그는 위기를 넘기고 있었다. 허나, 슈파아앗! 츄리릿! 상대방들의 검법은 살상전용의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음....!" 천장선사는 옆구리와 등에 두 가닥의 상흔을 남기며 피를 뿌렸 다. 신형이 비틀거렸다. 그러나 상대방도 두 명이 휘청거리고 있 었다. 비로서 그는 상대방이 다섯 명의 흑포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미타불...! 그대들은 누구인가?" 허나 흑포인들은 아무 말없이 다시 공격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괴이한 검진이 전개되었다. 휘리리리링! 오인의 검수들은 두 인영이 하나로 겹쳐지면서 그를 중심으로 무 섭게 빨리 맴도는 것이었다. 천장선사는 그들이 이인이 하나가 되어 펼치는 검식에 당황을 금치 못했다. 하나를 공격하면 뒤쪽 의 인영이 그를 향해 날카로운 검법을 날렸다. 더욱이 그들의 신 법은 너무나 빨라 육안으로는 거의 확인하지도 못할 지경이었다. 위이이잉! 퍼펑! 펑! 천장선사는 여섯 군데의 검상을 입었다. 전신에 피분수가 뿜어지 고 있었다. 흑포인들의 검세가 워낙 잔랄무비하여 중원의 무학의 상리를 벗어난 것이었다. 천장선사는 위기에 몰렸다. 그는 내심 불호를 외우고 있었다. '아미타불.... 이제 끝인가?' 바로 그때였다. "멈춰라!" 문득 어디선가 낭랑한 음성이 들리더니 장내에 한 사람이 뛰어들 었다. 그는 뛰어들자 마자 손을 움직였는데 그것은 실로 가공할 위력을 발휘했다. 우우우웅....! 괴이한 음향과 함께 연꽃이 송이송이 떠오르는 듯한 환영과 함 께, "으아아악!" "크아악.....!" 처절한 비명과 함께 네 명의 흑포인들이 피를 뿜으며 날아갔다. "연... 연대구품좌(連臺九品座)!" 놀란 것은 천장선사였다. 그는 장내에 뛰어든 인물이 펼친 장법 이 소림에서 이미 오래 전에 실전된 것으로 알려진 연대구품좌라 는 것을 한 눈에 알아보았기 때문이었다. 눈 깜빡할 사이에 대세 가 역전되었다. "으으....!" 하나 남은 흑포인은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이때, 한 가운데 우 뚝 서있는 자는 한 명의 청년이었다. 바로 낙성혼이었다. 낙성혼 은 뒤늦게 소림에 도착했다가 천장선사가 위기에 몰리는 것을 보 고 나타난 것이다. 헌데 이때였다. "낙.... 성.... 혼....!" 문득 마지막 살아남은 흑포인, 즉 혈루대의 한 명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낙성혼을 놀라게 했다. 그는 안색이 미미 하게 변했다. "나를 아느냐?" 혈루대는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그는 낙성혼을 뚫어져라 노려보 면서 이를 갈았다. "안다. 썩어 문드러져 흙이 된다 해도 나는 너를 알아 볼 수 있 다!" 낙성혼은 의혹스러웠다. 허나 문득... 그의 기억이 되살아 났다. 언젠가.... 사막에서 원의 대원수 뇌륭대를 쫓다가 그들에게 잡 힌 적이 있었다. 그는 그때 보았던 원의 군사 중 한명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것은 그자가 사로잡혔던 그를 감시했었기 때문이었 다. 낙성혼의 가슴에 묘한 감회가 어렸다. 그는 왠지 뇌륭대의 모습이 떠오르고 있었다. 뇌륭대는 비록 적장이었으나 그의 기억 에 남아있는 훌륭한 인물이었다. 낙성혼의 손에는 상대의 검이 들려 있었다. 그는 검을 던졌다. "가라. 그러나 다시 한번 나와 마주치면 그때는 목을 베겠다." 상대방은 자신의 검을 돌려 받지 않고 땅에 버렸다. 그는 한스런 눈으로 낙성혼을 노려보며 갑자기 침을 탁 뱉고는 신형을 날렸 다. "두고보자... 널... 기어이 죽이고 말겠다....!" "....." 낙성혼은 가만히 서 있었다. 이때 천장선사가 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 그대는...." 낙성혼은 고개를 돌렸다. 그는 담담히 입을 열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해야 겠소이다. 우선은 급한 불부터 꺼 야 하오." 그가 말을 하고 막 신형을 날리려는데 천장선사는 다급히 그를 불렀다. "잠깐...! 방금 그대가 쓴 것은 소림의 무공이 아니오?" 낙성혼은 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잠시 천장선사를 바라보다가 말 했다. "그렇소. 그러나 언젠가는 소림에 돌려 주겠소." 그뿐이었다. 낙성혼은 더이상 말을 나눌 시간이 없었다. 그는 한 가닥 희미한 연기가 되어 날아갔다. ".......!" 혼자 남게된 천장선사는 멍한 표정이었다. 문득 그는 아주 오래 전에 사부가 자신에게 들려주었던 말을 기억해 냈다. 전설... 그 것은 소림에 흘러내려 오는 하나의 전설같은 말이었다. 천장선사 는 한참후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소림 수호신문....!" x x x 단양제일루. 단양호 호변에 위치한 운치있는 기루. 단양제일루는 한 면을 호 수에 대하고, 한면은 낮은 산을 끼고 있었다. 헌데.... 석양이 호수의 물을 핏빛으로 물들이는 시각. 단양제일루를 내려 다 보는 수많은 눈길들이 있었다. 그들은 일신에 붉은 갑주를 입 고 있었다. 홍색의 갑주는 특후한 인물들만이 입는다. 황궁에서 도 금의나 자의를 입는 자들은 있어도 홍의를 입는 자들은 드물 다. 헌데, 지금 언덕 위에서 단양제일루를 바라보고 있는 자들은 하나같이 홍색의 갑주를 입고 있는 것이 아닌가? "준비되었습니다." "그럼 쳐라!" 땡땡땡땡....! 요란한 비상종 소리에 부교주 백리담은 가슴이 철렁 내려 앉고 있었다. 그는 채희선의 몸 위에서 마지막 열기를 토하는 중이었 다. "......!" 너무나 공교로운 일이었다. 그동안 교내의 일이 다망하여 그녀를 찾지 않다가 간만에 안았다. 헌데 그 순간에 비상종이 울린 것이 다. 이번의 비상종은 사태의 심각성을 말하고 있었다. 몇번이라 는 횟수조차 없이 계속 울려대는 것이다. 그는 퉁겨 일어나고 있 었다. 벽에 걸린 검을 찾았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자신의 가슴에 삐죽이 튀어 나와 있는 비수를 본 것이었다. "끄으....!" 그는 뒤를 돌아다 보았다. 거기에 채희선이 겁먹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네... 네가 날...." "아아... 난...." 채희선은 잔뜩 공포에 질린 채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그러나 얼 마 가지 못해 벽에 부딪쳤따. 그녀의 눈에는 공포가 역력히 일어 나고 있었다. 부교주가 검에 찔린 채 아직도 죽지 않는 것을 믿 을 수가 없었다. 분명 명문혈을 정확하게 겨냥하고 찔렀는데. 부 교주는 그녀의 목을 움켜 잡았다. 그리고... 힘껏 졸랐다. 허 나... 여인의 눈알이 튀어나오려는 순간 그는 손의 힘을 빼었다. "아서라. 어찌 너의 잘못이겠는가? 시대가 나를 버린 것...." 그는 허탈하게 중얼거리더니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이미 밖은 화광이 충천하고 있었다. 사방에서 비명이 들리고, 아수라 장이 된지 오래였다. "......" 중년인, 부교주 백리담은 그 사이로 걸아나갔다. 이 순간 그는 죽음의 공포란 없었다. 다만 가슴에 떠오른 것은 자신이 한평생 모셔온 백련교의 교주 혁련노숙이었다. 그는 앞으로 걸어 나갔 다. 얼마쯤 가자 그는 일단의 홍의를 입은 군사들로부터 포위되 고 말았다. 홍의군사들은 그를 발견하자 일제히 포위망을 좁혀오 고 있었다. 헌데, 놀랍게도 백리담은 저항할 생각을 않고 가슴을 앞으로 내밀며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닌가? "나이 십세에 나를 알고... 이십에 뜻을 세워 외길 삼십년... 비 록 하늘이 외면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고 사라지나... 남아 한 평 생을 한 길에 바쳤으니 어찌 후회가 있을소냐? 죽음이 원통한 것 은 졸부의 심성일진데...." 허나... 그의 노래는 끝을 맺을 수 없었다. 그를 향해 날아온 수 많은 검과 창이... 화살과 궁노가... 한순간에 그의 몸을 고슴도 치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 단양제일루. 백련교의 비밀분타의 하나였던 단양제일루는 이렇게 종말을 고하 고 있었다. 석양보다 더 붉은 화마가 단양제일루를 한순간에 잿 더미로 만들고 있었다. 4장 죽음의 幽門峽 유문협. 복우산 깊은 오지. 이름 그대로 유문협은 험준하기 짝이 없었다. 그것은 구불구불 이어진 계곡의 협로는 끝이 없었으며, 일단 안 으로 들어서면 끝까지 가지 않고는 달리 나올 길이 없기 때문이 다. 계곡의 양안은 바위로 이어져 있어 그야말로 천험의 요새였 다. 만일 이런 곳으로 병사들이 들어선다면 다만 일, 이백인의 군사만을 양 절벽에 매복시켜도 능히 만명의 병사를 매몰시킬 수 있는 것이었다. 유문협의 절벽 위.... 홍포를 입은 준수한 청년이 우뚝 서있다. 그의 주위에도 홍색의 전포를 입은 인물들이 서있었다. "......." 청년은 상념에 빠져 있었다. 그는 장성민이었다. 황궁으로 영전 되어 황궁의 어영특위대 부대장이 된지 어언 육 개월. 그동안 그 는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었다. 어영특위대가 무엇을 하는 곳인 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그는 확실히 그 실체를 알게 되었다. 어영특위대는 황제의 직속기관으로 오직 동창만 이 명령권과 작전권을 가지고 있으며, 그동안 수많은 극비명령을 수 행해 왔다는 것을. 어영특위대에 소속된 군사들은 보통 군사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달리 특수한 훈련을 쌓은 자들이었다. 그들은 병법 따위를 배우 지 않고 무림의 무공을 배웠다. 그런 자들이 모여 있는 곳이 어 영특위대인 것이다. 장성민은 첫번째 명을 받았다. 그것은 얼마 후 이곳으로 들어설 인물들을 척살하라는 황제의 지령인 것이다. 그는 유문협으로 어떤 자들이 들어설지 아직은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어영특위대에서도 가장 강한 혈전특위 오백 명을 총출동시킨 것 으로 미루어 그들은 지극히 무서운 자들일 것이다.' 그렇다. 혈전특위라면 어영특위 가운데서도 가장 무서운 능력을 소유한 부대였다. 그는 동창 대영반 위원화로부터 혈전특위의 작 전권을 이양받았다. ....... 유문협으로 가라. 그곳에 들어서는 자들을 무조건 척살 하라. 한 명도 남겨서는 안된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문득 귓가에 보고가 들어왔다. "그들이 계곡 입구에 나타났다고 합니다!" 장성민은 정신을 차렸다. "알았다. 준비는?" "완벽합니다." 장성민은 차갑게 말했다. "준비를 기다려라. 신호가 떨어지면 즉각 모든 공세를 가동한 다." "존명!" 사라지는 수하를 바라보며 장성민은 문득 한 사람의 영상을 떠올 렸다. 장성민은 고뇌하고 있었다. 그는 이곳으로 오는 동안 어렴 풋이 어영특위의 하는 일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황제의 밀명으 로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비정의 척살을 담당하는 특수기관인 것 이다. 그들에게 옳고 그른 개념이 있어서는 안된다. 오직 명에 따라 죽고 살고 해야 하는 것이다. 아무리 황제의 명이 그르다 해도... 설사 죽이고자 하는 대상이 충신일지라도 어영특위는 어 김없이 죽여야 하는 것이다. 이 사실을 안 장성민은 고뇌하지 않 을 수 없었다. 이번의 명은 아주 무거운 것이었다. 혈전특위가 동원된 것만 하여도 그렇고, 이렇게 많은 인원이 발동된 것만 해 도 그렇다. '만일 계곡 안으로 들어오는 자들이 꼭 죽여야 할 자들이 아니라 면... 아아! 그대의 입장이라면 어찌하겠소?' 장성민의 홍포가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아무것도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입신을 위해 관에 투신하였으며, 무장 으로서 일세의 영명을 드날리는 건 남아의 뜻이다. 그러나... 혈 전특위 개개인이 인간 이하의 잔혹한 성격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과연 자신이 올바른 길을 가고 있는지 회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바람이 미친듯이 불어 그의 머리칼까지 날리고 있었 다. x x x 잠룡원을 출발한 무림의 젊은 영재들... 그들은 하나의 음침한 곡구에 당도했다. 이백여 명에 가까운 인원이었으나 그들은 어쩐 지 으스스한 기분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계곡의 안쪽은 대낮 임에도 어두워 보이는 것이다. 문득, "이상해요. 어쩐지...." 당수린은 초조한 음성으로 말했다. 옆에는 선우제인이 있었다. 이 길은 떠날 때 잠룡원주 종리무연이 정한 행선의 여정에 속해 있다. 황궁까지 가는 동안 관의 눈을 끌지 않기 위해 무림맹에서 사전에 작성한 지리대로라고 그들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 복 우산의 오지에 당도한 젊은이들은 이상한 예감을 느끼고 있었다. 당수린의 말에 선우제인은 우울한 표정이었다. 그는 잠룡원을 떠 날 때부터 계속 음울한 안색을 피지 못하고 있었다. "제 말 듣고 계신 거에요?" 당수린이 약간 음성을 높이자 선우제인은 깜짝 놀라며 중얼거렸 다. "무슨 말을 말이오?" 이번에는 당수린이 눈살을 곱게 찌푸렸다. "아니... 선우사형은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시길래 제 말을 못들은 거예요?" "아... 음, 아무것도 아니오." "저쪽을 보라구요. 만약 계곡 절벽에서 공격을 해 온다면 우리는 꼭 독안에 든 쥐꼴이 되지 않겠어요?" "......" 선우제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당수린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잠룡원을 떠날 때부터 예감이 좋지 않았었다. 더 욱이 소림사로 천장선사를 만나러 간다고 잠룡원을 떠난 유문도 마저 소식이 없이 더욱 불안한 마음이었다. 잠룡원의 젊은이들은 잠시 멈추었다가 에정대로 앞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헌데, 그들 의 선두가 막 곡구 안으로 발을 들여 놓았을 때, "잠깐만....!" 누군가 뒤쪽에서 달려왔다. 그쪽을 바라보던 선우제인의 안색이 변했다. 그자는 화산파의 칠대제자중의 세번째 사형이었던 것이 다. "아니 사형.... 무슨 일로....?" 장각위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사형은 평소 선우제인과 친한 사 이였다. 장각위는 달려오더니 선우제인에게 말했다. "사제. 사부께서 후미의 경비를 맡으라고 명을 내리셨다. 어서 준비해라." 대열은 선두진영과 후미진영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장각위는 후 미에 있었고, 선우제인은 선두에 있었다. 헌데, 선우제인은 문득 입술을 깨물더니 고개를 젓는 것이 아닌가? "저는 가지 않겠습니다." "......!" 장각위의 안색이 변했다. "사제...?" 두 사형사제의 눈이 허공에 부딪쳤다. 한동안 시선을 주고받던 두 사람의 표정이 각각 변하고 있었다. 이윽고, "으음... 할 수 없지." 장각위는 한숨을 쉬며 뒤로 다시 신형을 날렸다. "무슨 일인가요?" 당수린은 의아해 물었다. 허나 선우제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 다. 당수린은 아까부터 선우제인의 안색에서 이상을 느끼고 있었 다. 그녀는 바짝 다가오더니 물었다. "무슨 일이 있는 거죠? 그렇죠? 사형은 무언가 알고있는 거죠?" "......" 선우제인은 더욱더 입을 다물었따. 이때도 대열은 곡안으로 점점 더 들어가고 있었다. 사방의 절벽이 곧 와르르 허물어질 것만 같 은 위태로운 구조였다. "....." 중인들은 하나같이 안색이 변하고 있었다. 이렇게 험중한 계곡인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들의 얼굴에는 한결같이 불안한 표정이 감돌고 있었다. 이윽고, 젊은이들은 누가 시키지 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사방으로 대열을 나누어 절벽 위쪽을 경 계하며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음침해지고 있었다. 심지어 는 구불구불한 길이 좁아지고 가파른 길이 나오고 있었다. 이제 는 하늘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인 것이다. 이때였다. "멈추시오! 피해야 하오!" 문득 쥐어짜는 듯한 외침이 젊은이들의 귀를 울렸다. 당수린은 깜짝 놀랐다. 옆에서 고개를 푹 숙이며 걷고 있던 선우제인이 갑 자기 소리를 질렀기 때문이었다. "아니... 사형...?" "피하란 말이오! 내 말을 믿지 못하겠소? 이곳은 함정이오...." 선우제인은 두 팔을 흔들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의 눈에는 고 통과 가책의 빛이 넘치고 있었다. "아니...?" "무슨 소리요? 함정이라니...?" 중인들이 어리둥절할 때였다. 문득 양쪽 절벽 위에서 일제히 함 성이 들리는 것이 아닌가? 그와 동시에 빗발치듯 암기와 화살, 그 밖의 강전 따위가 쏟아져 나오는 것이 아닌가? "아앗!" "으아악....!" "적이다... 소...속았다!" 중인들은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화살과 암기를 맞 고 쓰러지는 자들이 속출했다. 하늘도 잘 보이지 않는 계곡에서 절벽 위쪽에서부터 쏘아오는 암기를 피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 니었다. 중인들은 눈깜빡할 사이에 수십명이 나뒹굴었다. 실로 처참무비한 광경이었다. 대책이라곤 있을 수가 없었다. 어디 한 군데 피할 곳이 없었던 것이다. 젊은이들은 분노와 단말마의 비 명을 지르며 이리 뛰고 저리 뛰었으나 희생자만 늘어날 뿐이었 다. 혹자는 뒤쪽으로 신형을 날렸다. 오던 길로 돌아가자는 생각 이었다. 허나 그것 또한 오산이었다. 우르르르르... 콰콰쾅! 돌연 엄청난 폭음과 함께 폭발이 일어나며 계곡의 퇴로가 완전히 차단되어 버린 것이 아닌가? 그로인해 뒤로 신형을 날리던 자들 은 절벽의 함몰과 함께 매장되고 말았다. "아아... 이럴 수가...!" 중인들은 절망했다. 당수린도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녀는 빗발 치듯 쏟아지는 암기, 그리고 때때로 거대한 바윗덩어리가 떨어지 는 절벽 아래 쪽으로 바짝 붙기 위해 신형을 날리며 선우제인을 바라보았다. 선우제인의 얼굴에는 고통의 빛이 떠올라 있었다. "사형....!" 그녀는 선우제인의 곁으로 다가갔다. 선우제인은 그녀를 의식하 지 못하고 있었다. "사부시여... 대체 어찌하시렵니까?" 그소리를 당수린은 들었다. 순간 그녀의 가슴이 부르르 경련했 다. '그.... 그럼 이 모든 것이 화산 장문인의 함정이었단 말인가?' 이때였다. 선우제인은 문득 중인들을 향해 소리쳤다. "앞으로 나가야 하오! 퇴로는 없소... 침착하게 앞을 뚫고 나가 야 하오....!" 그는 비장한 표정으로 앞장 섰다. 그의 눈에는 한가닥 장엄한 기 운이 흐르고 있었다. 그가 나서서 소리치자 경황이 없던 젊은이 들은 자신도 모르게 용기를 얻고 그를 따라 신형을 날리기 시작 했다. 그렇다. 퇴로는 없었다. 있다면 오직 앞을 뚫는 길뿐이다. x x x "느... 늦었군!" 유문협의 곡구에 당도한 인물의 입에서 신음에 가까운 음성이 흘 러나왔다. 그는 바로 낙성혼이었다. 낙성혼은 무너져 내린 곡구 를 바라보며 눈썹을 경련하고 있었다. 그는 잠룡원이 텅 비어 있 는 것을 보고 최선을 다해 그들이 온 흔적을 쫓아 이곳까지 온 것이었다. 허나 무너져 버린 유문협의 입구를 보는 순간 이미 늦 었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희망 을 버리지는 않았다. 휙! 그는 절정의 신법을 발휘하여 바위 더 미를 뛰어 날아 올랐다. 얼마쯤 달렸을까? 문득 멀리 계곡 안쪽 으로부터 함성이 울리고 있었다. '아직 늦지는 않았구나....' 낙성혼은 더욱 신법을 빨리 하여 날아갔다. 유문협의 험악하고 음산한 분위기에 놀라면서. 낙성혼은 분노를 금할 길이 없었다. 이미 시신들이 눈에 뜨이고 있었다. 그들은 전신에 고슴도치처럼 수많은 화살과 암기를 맞아 죽어 있었다. 때로는 거대한 바위에 짓눌려 사람의 형태를 잃은 시신도 있었다. 어떤 시신은 기다란 창에 복부와 등이 꿰인 채 죽어있기도 했다. 너무나 비참한 모습이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 만 해도 발랄하고 꿈이 많던 젊은이들이 이제는 한 구의 끔찍한 시신으로 화하고 만 것이었다. 그들의 눈은 누구인가를 원망하고 있었다. "........!" 낙성혼은 잊고 싶었던 과거의 어떤 장면이 그 시신을 보는 순간 에 주마등처럼 떠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눈동자들이었따. 자신만 을 바라보며 무엇인가를 갈구하던 눈동자들.... 그러나 그 눈동 자들은 꺼져갔다. 좌절과 실의, 고통과 체념으로 얼룩지면서. 낙성혼은 다시 걸어갔다. 이번에는 한 그루의 나무에 찔려 있는 시신을 보았다. 그가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는 공동파의 제자 라고 했다. 이름이 백현상이라고 하던가? 계곡은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낙성혼은 그동안 발견한 시신이 최소한 백여명은 넘는다 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다급해지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무림의 후예들이 거의 전멸한다.' 그는 신형을 날렸다. 가다가다 더욱 참혹한 정경이 비쳤으나 그 는 더이상 걸음을 멈추지 않고 신형을 날렸다. 계곡은 이제 완전 히 끝났다고도 할 수 있었다. 그는 젊은이들이 여러 갈래 나뉘어 탈출을 시도한 흔적을 보았다. 그러나 내심 절망하여 중얼거렸 다. '뭉치든 흩어지든 치밀한 계획이 세워졌다면 달아날 수 없을 것 이다.' 문득, 그는 가파른 산길의 숲 쪽에서 여인의 날카로운 비명을 들 었다. "아악....!" 낙성혼은 단숨에 날아올랐다. 그는 공중에서 이가 떨리는 장면을 보았다. 일신에 혈포의 전의를 입은 두 명의 병사들이 한 여인의 가슴을 도려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들은 능력을 상실한 무림 의 여도를 사로잡아 실컷 유린한 후 이제 여흥으로 여인의 젖가 슴을 도려내고 있는 것이었다. "죽일놈들... 여전하구나..." 여전하다니. 낙성혼은 그 핏빛 전포의 병사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따. 그의 마음 속에는 무서운 분노가 솟구쳤다. "죽어라!" 위이잉! 허공에서 장력이 떨어졌다. 그들은 낙성혼의 가공할 나한혈공(羅 漢血功)을 당할 수 없었다. 낙성혼은 두 혈전특위의 병사가 날아 가는 것을 거들떠 보지도 않고 바닥에 쓰러져 있는 여인을 살폈 다. 그녀는 아미파의 여제자였다. 그녀는 눈을 떴다. 그리고 그 눈에는 언뜻 반가움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녀는 과거 비룡각의 괴물로 통하던 낙성혼을 알아본 것이다. 낙성혼은 그녀의 명문혈 을 어루만졌다. 허나 진기를 주입하기도 전에 그녀가 한 말은 이 런 것이었다. "죽여줘요..." 그렇다. 그녀는 자신이 살아날 가망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조금이라도 빨리 죽는 것만이 고통을 줄이는 것이라는 것을 그에 게 일깨워준 것이다. 낙성혼은 이를 갈았다. 그는 말없이 옆에 떨어져 있는 그녀의 검을 들어 심장을 찔렀다. 몸을 일으키는 낙 성혼의 눈에는 무서운 살기가 솟구치고 있었다. x x x 길이 막혔다. 일행의 눈앞에는 깎아지른 낭떠러지가 가로 막고 있는 것이다. 무작정 허술한 곳을 뚫고 나온 것이 잘못이었다. 일행은 또다시 적들의 간교한 계교에 빠진 것이다. "와아아....!" 적들의 함성이 또다시 가까와지고 있었다. 적은 무림의 인물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핏빛 전포를 입은 황궁의 병사들이었다. 허나 일반 병사들과는 달리 그들도 무공을 익히고 있었다. 거기에다 그들은 각종의 암기를 사용하고 있었고, 폭약이나 도구들을 이용 하여 조직적인 공세를 펼쳤다. 아무런 준비도 되어있지 않은 잠 룡원의 젊은이들은 그저 속수무책으로 당할 뿐이었다. 일대 일로 싸운다면 그들을 물리치는 것은 문제도 아니었다. 그러나 상대방 은 결코 그런 기회를 허용하지 않았다. 그들은 별술과 지형, 그 리고 다수로써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싸 움은 전문적인 병술을 익히지 않은 무림인에게는 불리한 것이었 다. 쐐애애애액....! 슈슈슈슈슉....! 빗발치듯 날아오는 화살은 쉴 틈도 주지 않는다. 젊은이들은 사 오십명이었으나 그나마 거의 모두가 부상을 입고 있었다. 그들은 한데 모여 화살을 막고 있었다. 당수린은 이미 옆구리와 오른쪽 팔에 화살을 맞은 선우제인에게 다가갔다. 이때였다. 거짓말처럼 화살공세가 중단되었다. 당수린은 선우제인의 상처를 치료해주려 고 가다가 공세가 멈춘것을 보고 의아했다. "어쩐 일일까요?" 선우제인은 어두운 표정이었다. "그들의 본격적인 공세가 시작됨을 의미하는 것일게요." 이때였다. 누군가가 소리쳤다. "앞을 봐.....!" 중인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가 가리키는 곳으로 향했다. 헌데, 그 중 몇명은 창 끝에 무엇인가 누런 물체를 꽂고 오는 것이 아닌 가? 중인들은 처음에는 그것인 무엇인지 몰랐다. 헌데 가까이 다 가온 순간, 그들은 피가 거꾸로 도는 것을 느꼈다. 누런 물체란 다름이 아니라 자신들의 동료들 시신을 발가벗겨 창에 꽂은 것이 아닌가? "으으으....!" "찢어죽일 놈들....!" 중인들은 치를 떨었다. 이때였다. "나영!" 누군가가 비명에 가까운 고함을 치며 앞으로 달려나갔다. 그것은 창에 꽂혀있는 한 여인... 그녀의 이름이 나영이었고, 달려나간 청년은 바로 그녀의 정혼자였던 것이다. "안돼!" 선우제인이 소리쳤으나 청년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모두가 경 악하는 사이... "으아아악!" 청년은 처절한 비명을 질렀다. 방패를 앞세우고 다가오던 자들이 무엇인가 긴 철통같은 것을 겨누었다 싶은 순간, 청년의 몸은 금 시에 화살로 고슴도치가 되어 쓰러진 것이다. 그것은 무서운 힘 을 가진 기관장치의 병기였던 것이다. 아무리 무공이 높은 고수 라고 해도 순간적으로 용수철의 힘으로 발사하는 그런 종류의 병 기에서는 재주가 없는 것이다. 혈의 전포인들은 땅에 쓰러진 청 년조차 발가벗겨 창끝에 꽂았다. 그같은 광경은 청년들의 분노를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아니, 이제는 이성이고 뭐고 존재하지 않 았다. 더이상 젊은 혈기는 상황판단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것은 어영특위대의 특징이었다. 그들은 무공의 기본을 익힌 자 들이었을 뿐더러 전술심리를 익힌 지휘관에 의해 움직이고 있었 다. 언제나 철저한 조직과 명령, 그리고 신병기를 사용하여 치밀 한 공세를 펴므로 그들은 개개인이 몇배나 뛰어난 살상능력을 발 휘하게 되는 것이다. "죽여라!" "크으으으....! 이놈들! 우리들도 죽여라!" 청년들은 피눈물을 흘리며 그들을 향해 쏘아 나갔다. 퓨퓨퓨퓨퓨....! 쐐쐐쐐.... 애애액....! 각종의 듣도 보도 못한 병기들이 청년들을 향해 날아갔다. 또다 시 사오명의 청년들이 고슴도치가 되어 쓰러진다. 이윽고, 청년 들은 혈전특위의 수백 명 군사들에게 포위되고 말았다. 이제는 절망만이 남아있는 것이다. 앞으로 달아날 곳도, 뒤로 물러날 곳 도 없다. 사오십 명의 잠룡원 소속 청년들은 죽음에 임박했다는 것을 느끼며 서로서로 등을 맞대고 비장한 눈짓을 주고받는다. 헌데, 이때였다. "으아아악!" "크아악!" 돌연 뒤쪽으로부터 비명이 연달아 들리며 포위망의 한쪽이 무너 지는 것이 아닌가? ".......?" 청년들은 어리둥절하여 그 쪽을 바라보았다. 혈전특위의 군사들 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지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한 명의 청년이 장검을 휘두르며 길을 열고 있었다. 그에게는 혈전특위의 신무기 들도 통하지 않았다. 각종 암기들은 그의 몸에 닿기도 전에 기이 한 힘에 의해 사방으로 퉁겨나가 오히려 혈전특위를 상하게 하는 것이다. "저... 저자는....?" 청년들 중 몇 사람이 그를 알아보았따. 당수린도 크게 놀라며 반 가움에 떨리는 음성으로 부르짖었다. "그사람이예요..." 한편, 언덕 위에 우뚝 서 있는 혈전특위의 총지휘자는 상황이 일 변하는 것을 보며 안색이 변하고 있었다. 그는 장성민이었다. 그 는 처음에는 한 명의 절세고수가 나타났으려니 했다. 헌데 그를 자세히 본 순간 누구임을 깨달았다. "아니... 그가...!" 장성민은 처음에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꿈에도 그 일리는 없 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나 점점 더 확실해지자 그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멈추어라....!" 마침내 그는 큰 소리로 명을 내리고 있었다. 5장 흘러가는 英雄들 아수라를 방불케했던 싸움이 중지되었다. 그러나 짧은 시간동안 이었나 혈전특위의 희생자는 의외로 많았다. 단 한명에 의해 사 오 십명이나 쓰러진 것이었다.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언덕 위에 서 장성민은 달려내려 왔다. 그는 전신이 피로 목욕을 한듯한 그 사나이 앞으로 다가가며 입을 열었다. "세상에... 설마 했더니....!" ".....!" 그 사나이의 눈도 그를 보고 떨림을 보이고 있었다. "그대는...?" 사나이도 놀란듯했다. 잠시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장성 민은 먼저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어찌된 것이오?" 사나이, 낙성혼은 말없이 장성민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은 표정 이 없었으나 왠지 장성민은 그의 눈을 정면으로 직시할 수가 없 었다. 그는 눈을 피했다. 낙성혼은 한참후에야 입을 열었다. "혈전특위를 물려주시오." 간단한 한 마디였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아니, 말 이나 될 법한 일인가? 혈전특위는 동창의 명을 받고 출동한 것이 다. 아니, 황제의 명을 받은 것이다. 장성민은 부르르 떨었다. 허나 낙성혼의 눈을 본 순간 그는 왠지 그의 말을 거역할 수없다 는 느낌이 들었다. 장성민은 무엇에 홀린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는 수하들에게 명했다. "모두 물러나라." 혈절특위는 어리둥절했다. 아니,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들은 경악 의 표정을 지었다. 지금 이 자리에는 사백명이 넘는 혈전특위가 포위하고 있었다.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사 백인의 혈전특위가 공격을 시작한다면 장내의 사람들을 얼마 가 지 않아도 전멸할 것이다. 헌데 이제 와서 물러나라니? "아니... 대장님...?" 부관이 옆에 다가와 입을 열었다. 허나 장성민은 차갑게 말했다. "명령이다. 어서 철수시켜라." "하지만 어찌...?" 장성민의 안명이 무섭게 변했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어서 철수하라!" 부관은 부르르 떨었다. 그는 장성민을 바라보며 다시시번 말한다. "그 결과가 어떨지를.... 생각해 보셨소?" 장성민은 여전히 변함없는 태도였다. "책임은 내가 진다고 했다." 부관은 돌아서면서 손을 흔들었다. "들었느냐? 모두 철수한다!" 혈전특위는 명령에 죽고, 명령에 사는 위인들이다. 그들의 머리 위에는 동창대영반이 있고, 그 위에는 황제가 있으나 그들의 철 칙은 언제나 전장에서의 지휘관을 우선적으로 따를 규율이다. 실 로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처럼 절망적이던 상황이 한 순간에 전도되었다. 오백 명의 혈전특위는 눈 깜짝할 사이에 능선 너머 로 사라졌다.낙성혼은 아직도 우두커니 서있는 장성민에게 말했다. "고맙소." 장성민은 흠칫했다. 그는 마치 긴 꿈이라도 꾼 듯한 표정이었다. 그는 장내를 둘러 보더니 그에게 말했다. "나는 가겠소. 허나 오늘밤... 여기서 당신을 기다리겠소." 낙성혼은 고개를 끄덕였다. 장성민은 씁쓸하게 언덕을 향해 사라 졌다. 구사일생의 위기에서 거짓말처럼 환생하게 된 잠룡원의 청년들은 우르르, 낙성혼을 둘러샀다. 그들의 뇌리에는 지난날 비룡각의 괴물이었던 낙성혼의 인상이 아직도 강하게 남아 있었다. 헌 데... 색한으로 낙인찍혀 사라졌던 그가 다시 나타나 그들을 구 한 것이다. 청년들의 얼굴에는 감탄과 흠모의 빛이 가득 떠오르 고 있었다. 또한 낙성혼의 정체에 대해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낙성혼은 중인들을 하나하나 둘러보기 시작했다. 청년들의 얼굴 에는 구사일생한 희열이 어려 있고, 아직도 강한 희망과 열기가 있었다. 그는 내심 한숨을 쉬었다. '그대들은 아직 젊군.' 그의 눈길이 선우제인에게 향했다. 선우제인의 그와 눈길이 마주 치자 고개를 떨구었다. "형장...." 그는 더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낙성혼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상대방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때 그 의 펴으로 한 미녀가 다가왔다. "살아 계셨군요." 낙성혼은 그녀를 바라보며 고개만 끄덕였다. 당수린은 두 눈에 기이한 빛을 내며 말했다. "믿고 있었어요." 그녀의 말은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그것은 오직 낙성혼 만이 알고 있는 뜻이었다. 그녀는 할 말이 많았으나 중인환시라 그 말을 다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입술을 꼬옥 씹기만 했다. 낙성혼은 고개를 돌렸다. 그를 바라보고 있는 청년들... 그들은 그의 입에서 무슨 말이든 나오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것은 은연 중 낙성혼이 청년들의 중심인물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청년들은 자신들이 앞으로 무엇을 해야할 지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낙성 혼이 그 길을 열어주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낙성혼의 입이 떨어 졌다. 그는 담담한 음성으로 말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것은 만용이오. 그것은 차라리 겁장 이만도 못한 것이오. 왜냐하면 만용으로 인하여 가치있는 모든 것들이 소멸되기 때문이오." "........" 청년들은 그의 말뜻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그들 도 이번 싸움으로 절감하고 있었다. 아무리 무림의 힘이 크다한 들 황제와 싸운다는 것은 어딘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무림에는 그대들 밖에 없소. 그대들이 일시적인 감정으로 몸을 해친다면 무림은 그날로 끝장인 것이오. 여러분이 바로 무림의 미래이기 때문이오." 몇 명의 청년들이 나섰다. 그들은 정중히 포권하며 말했다. "길을 일러주시오." 낙성혼은 눈길을 그들로부터 먼 허공으로 돌렸다. "돌아가시오. 그리고 힘을 기르시오. 모든 어려움을 그대들 스스 로가 정립되는 순간 해결될 것이오." ".......!" 청년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일로 그들은 느낀 바가 많았다. 단순한 힘만으로, 또는 용기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일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그리고 젊은 혈기는 어디까지나 혈기일 뿐. 그것으 로 모든 것을 밀고 나갈 수는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 것이었 다. 이때 낙성혼의 눈길은 한쪽에 서서 멍하니 땅을 내려다 보고 있는 선우제인에게 멈추었다. 그는 선우제인에게 다가갔다. 선우 제인은 그가 다가오자 흠칫했다. 그의 얼굴은 붉게 물들고 있었 따. 낙성혼의 눈빛에서 그가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낙성혼은 그의 어깨를 잡았다. "동료들을 통솔하여 소림으로 돌아가시오." 허나 선우제인은 고개를 젓고 있었다. "난... 나는.... 자격이 없소." 낙성혼은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그렇지 않소. 나는 당신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알고있소." 선우제인의 눈에 언뜻 눈물이 맺혔다. 청년들은 의아하여 생각했 다. 그러나 어렴풋이 이번의 사태가 화산파와 관련이 있다는 것 만은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낙성혼은 선우제인의 손을 잡으 며 말했다. "하지만 눈을 크게 뜨시오. 당신은 화산의 유일한 후계자요. 화 산을 진정으로 일으킬 사람은 바로 당신뿐이오. 그리고 무림의 빚을 갚아야 할 의무가 있는 사람이오." 눈물. 선우제인의 눈에서는 눈물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의 어깨 가 떨리고 있었다. 그는 이번의 사태가 사부에 의해 주도되었다 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사부를 거역할 수가 없었다. 그는 양심의 가책으로 이 자리에서 자결을 하고 싶을 정도였다. 헌데 상대방은 그런 자신을 일깨워주고 있었다. 낙성혼은 부드럽게 말 했다. "내가 느끼는 당신은 분명 의인이오. 나는 당신을 믿소." 낙성혼은 더이상 말하지 않고 돌아섰다. 그는 미련을 가지지 않 고 성큼성큼 걸어갔다. 청년들은 멍하니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를 붙잡고 싶었으나 낙성혼에게서 은연중 풍기는 알 수 없는 고독감과 위엄이 그들로 하여금 아무도 입을 열수 없게 하고 있 었다. 이때였다. "저도 따라가면 안되나요....?" 문득 떨리는 여인의 음성이 낙성혼의 발길을 붙들었다. 낙성혼은 돌아서서 당수린의 아름다운 눈을 바라보았다. 허나 그는 말없이 돌아서서 걸었다. 당수린은 입술을 꼬옥 깨물더니 그를 향해 뛰 어갔다. 뒤쪽에서 청년들이 그녀의 그런 행동을 보고 있었으나 개의치 않기로 했다. 이제 그녀는 결심을 굳히고 있었다. 망설이지 않을테야.... 다시는 바보같이 마음만 태우고 있지는 않을테야... 멀어져 가고 있는 낙성혼을 향해 달려가는 당수린의 가슴은 어떤 뜨거운 열정으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x x x "돌아가시오." "가지 않겠어요." "......" "당신이 뭐라고 해도 난... 안가요." 낙성혼은 바위에 꿈쩍도 않고 앉아 있었다. 벌써 한시진째. 그는 바위 그 자체가 되어버린 듯 앉아 있었다. 그 옆에는 당수린인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난... 정말 바보였어요. 그때 당신에게 내 마음을 알리지 못한 것을 그동안 얼마나 후회했는지 몰라요. 이제는... 결코 떨어지 지 않겠어요." 낙성혼은 담담히 말했다. "나는 그럴 여유가 없는 사람이오." "상관없어오. 난 그저 혼자 좋아서 이러는 거니까요. 당신이 뭐 라 해도 참고... 아무리 위험한 곳이라도 따라가겠어요." 낙성혼은 눈살을 찌푸렸다. 정말로 그렇게 된다면 그야말로 골치 아플 것이다. 그는 차갑게 말했다. "나는 당신을 좋아하지 않소..." 당수린은 부르르 떨었으나 곧 한숨을 쉬며 말한다. "그래도 할수 없지요.어차피 모든 것은 일방적인 것이었으니까요." 낙성혼은 문득 한 여인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것은 만병보주의 딸이었다. "생각해 보았죠. 잠룡원에서 당신을 알게된 이후로는... 아무도 좋아할 수 없는 몸이 되고 말았어요. 그 이유를 모르다가.... 이 제야 알게 되었어요. 그것은 저의 마음 속에 이미 당신이 차지해 버린 비중이 너무나도 크다는 것이었어요." 고백. 그것은 명백한 여인의 사랑의 고백이다. 여인의 입에서 그 런 고백이 나온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당수린은 조금도 부끄러워 하지 않고 있었다. "이런 절... 부끄럼도 없는 계집이라고 욕하셔도 좋아요. 하지만 전... 이미 결심했어요." 낙성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내심 자신에게 중얼거리 고 있었다. '낙성혼... 너에게는 그만한 복이 없다. 너는 그럴 자격도 가지 고 있지 않은 놈이다.' 그렇다. 그는 자신이 당수린과 같은 여인을 결코 행복하게 해줄 수 없는 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하늘을 본다. 어두워 지고 있었다. 이제 잠시후면 장성민을 만나야 할 시각이다. "가시오." 그는 무뚝뚝하게 말했다. 그 대답은 역시 간단한 것이었다. "가지 않겠어요." "그럼 내가 가겠소." 낙성혼은 몸을 일으켰다. 순간 그는 싸늘하게 말했다. "당신은 정말 수치를 모르는 계집이군!" "......." 당수린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 마치 한순간 심장에 화살을 맞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녀의 안색이 파랗게 변하고 있었다. "나는 당신같은 여자를 좋아하지 않아. 부끄러움도 모르고 싫다 는 사내에게 매달리는 그런 여자말이야." 낙성혼은 냉정하게 말하고 걸음을 옮겼다. "잠깐!" 뒤에서 날카로운 음성이 들렸다. 그러나 그는 돌아보지 않았다. "난... 당신이 뭐라 해도 그것이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요. 난.... 떼어놓으려고 그런다는 것을... 당신은 결코 야비하거나 나쁜 인간이 아니라는 걸 알아요." "........" 낙성혼은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호호호호... 당신이 왜 날 받아들이지 않는지는 몰라도... 그건 이 당수린을 모르는 처사에요. 당수린은 한번 마음 먹었다 하면 목에 칼을 꽂는다 해도 관철시키는 여자에요. 당신이 날 받아들 이지 않겠다면...." ".......!" 낙성혼은 부르르 떨었다. 어떤 불길한 예감을 느꼈기 때문이었 다. 그는 홱 몸을 돌렸다. 순간 그는 눈을 크게 뜨고 신형을 날 렸다. 막 모로 쓰러지는 당수린을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당수린 은 자신의 심장에 비수를 꽂았다. 낙성혼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 다. 그는 쓰러지는 여인을 안았다. 그녀의 가슴이 피로 물들어 있었다. 급히 가슴에 박힌 비수를 뽑았다. 피가 펑펑 쏟아져 나 오고 있었다. 그는 혈도를 찔러 지혈을 시킨 다음 그녀를 바닥에 눕혔다. 일단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옷을 벗겨야 했다. 그는 그녀의 상의를 벗겼다. 하얀 속살이 드러났으나 그런 것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상처는 다행히도 그다지 깊지 않았다. 더욱 이 심장을 한 치 가량 비꺼나가 있었다. 그는 당수린의 아름다운 유방 사이에 난 상흔을 보고 한숨을 쉰 다음 자신을 옷을 찢어 가슴을 동여매 주었다. 그녀가 잠시 후 눈을 떴다. "정말 날... 싫어하나요...?" 낙성혼은 부르르 떨었다. 그는 한숨 쉬며 말했다. "그렇진 않소." "그럼 왜....?" "나에겐 너무나 많은 할 일이 있기 때문이오." 당수린은 눈을 감았다. "그렇군요. 나같은 것은 도움이 되기는 커녕 당신에게 방해가 되 겠군요." "......" "한가지만 약속해 줘요. 그럼... 모든 일이 끝난 후... 날... 찾 아와 주시겠어요?" 낙성혼은 담담히 말했다. "그때까지 내가 살아 있다면." 당수린의 감은 눈썹 사이로 눈물이 스며 나왔다. "기다릴 거예요." 낙성혼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눈물 젖은 그녀 의 눈두덩이에 입을 맞추었다. "나같은 놈을 사랑하는 것은 당신의 불행이오." 당수린은 그의 입맞춤을 상상도 하지 못하다가 참새처럼 떨면서 손으로 그의 목을 감았다. "저같은 계집을 만난 것은 당신이 재수가 없기 때문이에요..." 입맞춤, 두 남녀의 입맞춤은 길었다. 아무런 말도 필요없었다. 그들은 오래도록 입을 맞추었다.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x x x 밤이다. 달빛조차 먹구름 속으로 모습을 감춘 탓인지 산중의 밤 은 음산하기만 하다. 벼랑. 깊이를 알 수 없는 벼랑 가에 우뚝 서 있는 장성민은 몇 번이나 그 아래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고 있었다. 그의 내부에서는 끝없는 의문과 회의가 피어나고 있었다. 그는 일생을 황제께 바치겠노라고 맹세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소원대로 황제를 위한 관에 올랐다. 그런데... 한 사나이 로 인해 그는 일생의 모든 것을 일시에 버리게 된 것이다. 장성 민은 한숨을 내쉬었다. 왜? 무엇때문에? 잘 알지도 못하는 사나 이로 인해 자신의 인생을 포기해 버렸나? 이때였다. 등뒤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는 서서히 돌아섰다. 그 가 서 있었다. 언제 왔는지 그는 뒤에서 그를 묵묵히 바라보고 있었다. 낙성혼이었다. "오... 오랜만이오." 장성민은 더듬거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낙성혼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두 사람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낙성혼 은 그의 옷차림을 보더니 문득 물었다. "어영특위를 맡고 있소?" 장성민은 의아했다. 어영특위라는 이름을 알고 있다니.... 그것 은 황궁에서도 극소수의 인물만이 알고 있는 직함이었다. "그렇소. 하지만 어떻게...?" 낙성혼은 음울하게 말한다. "그 자리는 많은 것을 요구하는 자리요. 너무나 많은 것을...." 장성민은 부르르 떨었다. "당신이 그것을 어떻게?" "...." 낙서혼은 대답하지 않았다. 문득 장성민은 느껴지는 것이 있었 다. 그는 부지중에 부르짖었다. "그... 그렇구려! 당신 역시... 그 자리에..." 낙성혼은 대답없이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기이한 일이었다. 시대는 비록 달랐으나, 한때 똑같은 일을 하던 두 사람이 서로 마주보고 있는 것이다. 장성민은 한숨 쉬며 입을 열었다. "휴우... 내가 어떻게 하면 좋겠소?" 그렇다. 그는 아직도 자신이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고 있었다. 그는 황명을 거역했다. 그것은 대역죄를 범한 것이나 다름없닌 일이다. 낙성혼은 고개를 저었다. "당신이나 나나 이런 세상 이런 시류에 무슨 할 일이 있겠소? 흐 르는 대로 각자의 의지에 따라 최선을 다하면 그만인 것을..." "하... 하지만 나는...." 낙성혼은 담담히 말했다. "내가 아리골 그대는 뜻을 가진 장수요. 나는 그대를 믿겠소. 당 신은 결국 그 뜻대로 따라갈 것이오." 낙성혼은 몸을 돌렸다. "그대는 그대의 길이 있고 나는 나의 길이 있소. 다만 바라는 것 이 있다면... 우리가 서로 부딪치지 않기를 원할 뿐이오." 장성민은 뭐라고 말을 하려는 듯 입을 열었따. 허나 아무런 소리 도 그의 입에서는 나오지 않았다. 그는 한숨을 쉴 뿐이었다. 어 둠 속으로 사라지는 사나이의 등이 유난히 고독하게 느껴진다. 그는 자신의 등도 바로 그런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혼자 남 게 된 그는 다시 유곡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마음 속으로 숱한 상념이 일어나고 있었다. x x x 손. 떨리는 손 끝에서 전서가 떨어진다. 그 전서에 적혀있는 내 용은 일평생 몸을 담았던 백련회의 멸망을 알리고 있었다. 손의 임자는 수염을 떨었따. 그의 앞, 중년인이 부복한 채 흐느끼고 있었다. "크흐흐...." 백련교주 혁련노숙은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는 한숨 을 쉬며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아.... 하늘이 우리를 버리심인가?" 부교주의 죽음. 백련회 각 분타의 궤멸 소식. 모든 것은 한결가 다. 이제 백련회는 기울어가는 석양처럼 마지막 잔광 밖에 남아 있지 않은 것이다. 사방으로부터 날아드는 전서구의 내용은 이대 로 가다가는 백련회의 교도들이 모두 죽음을 당하리라는 예감을 불러 일으키게 하고 있었따. 대명의 황제 주원장은 처음부터 치 밀하고 완벽한 병책을 세웠다. 그것은 백련교를 말살하는 것이었 다. 결국 모든 것은 그의 뜻대로 되어가고 있었다. 혁련노숙은 창가로 다가갔다. 창밖에는 화원이 있었다. 그는 화원을 내려다 보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울지마라. 시들어 가는 꽃도 언젠가는 계절을 맞으면 다시 피어 난다." 그 말은 중년인에게 하는 것이었다. "허허... 우리도 언젠가는 우리의 계절을 맞이할 날이 있을 것이 니라." "크흐흐흑... 교주님...!" 사나이는 평생을 혁련노숙을 모신 사람이다. 그의 눈에서는 피눈 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담적. 그는 주먹을 으스러져라 움켜쥐 어 손아귀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담적." "예, 교주님." "교도들에게 명한다. 즉각 분타에서 철수하고 이 길로 몸을 은닉 하라고. 달리 명이 있기 전까지는 일체의 활동을 금한다." "교... 교주님!" "시키는 대로 하라. 때를 기다려야 한다. 그들마저 개죽음시킬 수는 없다." "알... 알겠습니다, 교주님." 혁련노숙은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담적, 얼마전 득남하였다는 말을 들었다." "......." 담적의 눈에는 눈물이 어린다. "훌륭하게 키워라. 장차... 기둥이 되도록...." 문득 담적인 이상한 예감에 몸을 떨었다. "아니... 교주님께선..." 혁련노숙은 껄껄 웃었다. "허허허... 일을 벌인 사람은 되든 안되든 마무리를 해야지." "교주님....!" 담적은 무릎을 꿇고 대성통곡을 한다. 허나 어찌하랴. 시대는 한 영웅위 퇴장을 요구하는 것을... 석양이 지고 있었다. 6장 旅路의 만남 사당. 소림사에서 약 이십 리 가량 떨어진 낡은 사당이다. "몇 번을 말해야 알아 듣겠느냐?" 찌르릉... 울리는 음성에는 분노가 섞여 있었다. 사당안에는 한 사나이가 부복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끄럽다! 내 그토록 알아듣도록 설명했건만 네놈은 귀머거리란 말이냐?" 청년. 그는 부복한 사나이에게 등을 돌리고 있었다. 뇌강륜이다. 부복 해 있는 사나이는 전신이 피투성이였다. 그는 바로 중원으로 함 께 왔던 혈루대의 마지막 생존자였다. 그는 낙성혼이 나타났다는 보고를 드린 것이다. 헌데 느닷없이 뇌강륜이 그로 하여금 본국 으로 돌아가라는 명을 내리는 것이 아닌가? 그들이 중원에 온 일은 본래 권토중래의 의향을 가지고 온 것이 다. 그러나 그 게획은 무산되고 말았다. 백련교의 침몰로 인하여 좌절되고 만 것이다. 그렇다면 뇌강륜은 당연히 본국으로 돌아가 야 한다. 그런데 그는 돌아가지 않고 오직 그의 수하에게 홀로 돌아가라는 명을 내린 것이다. 사나이는 계속 부복한 채 움직이 지 않고 있었다. "한륭(漢隆)." 뇌강륜은 약간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했다. "예." "다시 말하지만 나는 돌아가지 않는다. 아직 할 일이 남이있단 말이다. 그러니 너 혼자 돌아가라." "소주....." 그는 얼굴을 들었다. 그의 얼굴에는 눈물이 얼룩져 있었다. 그는 혈루대를 모두 잃고 결코 혼자 살아서 돌아갈 수 없었다. "저도 소주 곁에서 죽겠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허나 뇌강륜의 얼굴에는 분노의 빛이 짙어질 뿐이었다. "이 멍청한 놈아! 지금 본국에서는 한 사람의 병사도 필요한 때 다. 그런데 네놈이 이곳에서 개죽음을 당한다면 나라에 대한 불 충이요, 군인의 도리가 아니다. 더욱이 지금 중원의 상태를 알릴 사람이 필요하다. 그러니 어서 떠나라.: "소주...." 뇌강륜은 싸늘하게 말했다. "명령이다! 만약 네가 당장 떠나지 않겠다면 네놈을 죽이는 대신 불충한 장수를 둔 상관으로서 내가 차라리 자결하겠다!" "흐흐흑.... 소주..." 마침내 한륭은 흐느끼면서 몸을 일으켰다. 그는 뇌강륜의 마음이 이미 굳어져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는 다시 한번 대례를 올린 후 밖으로 사라졌다. "...." 뇌강륜은 멀어져 가는 수하를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이곳에 올 때는 모두 육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오직 하나만 남은 것이 다. 그러나... 뇌강륜의 얼굴에 비감이 빛은 잠깐이었다. 그는 몸을 날렸다. 사당 밖으로 웅장한 산봉우리가 비치고 있었다. 그 곳은 소림사가 있는 쪽이었다. "놈...! 낙성혼... 네놈이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천지신명께 감 사드린다. 흐흐흐... 기다려라. 내 눈에 흙이 들어간다 해도 네 놈을 죽여 줄테니...!" 뇌강륜. 그는 수하에게 낙성혼이 살아있다는 말을 들은 순간 가 슴 벅찬 희열을 맛보았다. 무엇때문에 중원에 왔던가? 무엇때문 에 무공을 익혔던가? 무엇때문에 끓는 피를 안고 살아왔던가? 이 제 그 상대가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한 이상 그는 자신의 인고가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x x x 태사의. 이 의자는 천하에서 오직 한 사람만이 앉을 수 있다. 곤 룡포의. 이 옷도 역시 천하에서 한 사람만이 입을 수 있는 것이 다. "......." 한 사람. 천하가 황제라고 부르는 인물. 주원장은 태사의에 앉은 채 위원화의 보고를 받고 있었다. "일단 백련교는 지리멸렬한 상태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각 분타 가 스스로 해체되어 지하로 숨어든 상태입니다. 그러나 계속 각 성의 성도군사들을 동원하고 있으니 조만간에 뿌리가 뽑히리라 사료됩니다." "혁련노숙은?" 주원장의 음성은 언제나 가라앉아 있었다. "예... 예... 지금 전군 비상경계령을 내려 추적중이오니 조만간 에..." 황제의 눈에는 일말의 안도와 불안감이 교차하여 흐르고 있었다. 그가 가장 염려한 것은 백련교의 준동이었다. 그러나 동창 대영 반의 보고로 미루어 볼 때 백련교는 더이상 위협이 되지 않을 것 이다. 그러나 백련교주만은 아직 잡지 못했다는 것이다. 위원화 는 황제가 입을 열지 않자 재빨리 보고를 계속했다. 그는 황제의 입에서 어떤 말이든 나오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구파일방의 후예들에 관한 건은... 의외의 사태로 인하여 완전 멸살에는 미치지 못했으나 큰 타격을 입히는 데는 성공했습니 다." "의외의 사태라면?" 간단한 말이었다. 그러나 위원화는 부르르 떨며 급히 대답했다. 그는 전신이 얼어붙는 듯 했다. "예... 공격의 지휘권을 갖고 있던 특위대의 부대장이 갑자기 배 신을 했고... 전 어영특위의 장이었던 낙성혼이 갑자기 나타나 방해를 하는 바람에 그만...." 순간, 주원장의 곤룡포가 바람도 없는데 부르르 떨린다. 황제의 눈이 부릅떠지고 있었다. 그 모양에 위원화의 가슴은 덜컥 내려 앉았다. 그는 이마를 땅에 박고 있었다. "죽... 죽을 죄를... 허나 곧 그를... 잡아들이도록 하겠습니 다." 주원장은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위원화의 피가 마르기 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이윽고 그의 입에서 차가운 말이 떨어졌 다. "짐은 불안한 것을 싫어한다. 네가 알아서 하라." "예... 예.... 명심하겠습니다!" "나가보라." 대영반 위원화는 전신이 식은 땀으로 푹 젖었다. 그는 무릎 걸음 으로 밖으로 나갔다. 그가 사라지자 주원장은 눈을 감았다. 그의 얼굴에는 한가닥 고뇌의 빛이 가득 차고 있었다. 그는 기억하고 있었다. 낙성혼이란 한 청년의 모습을 그는 잊어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대원과의 수많은 전투에서 여러차례나 자신의 목숨을 구 해주었던 사나이. 그는 자신의 명이라면 죽음을 불사하는 청년이 었다. '아까운 놈이었는데...' 주원장은 까맣게 잊고 있었던 낙성혼이란 존재를 떠올리자 문득 가슴이 아파온다. 만약 조정이 대신들이 자신의 비정한 공신척살 건을 들고 일어나지만 않았어도 그는 그 사건을 영원히 미궁에 두기 위해 낙성혼을 죽이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그의 마음은 괴 로움으로 가득차고 있었다. '아아... 내가 황제가 아니었더라면... 황제인 죄로써 친구를 배 신하고, 아들과 같은 충신을 죽여야 하다니...' 주원장의 이마에 그늘이 지고 있었다. 허나, 주원장의 고뇌는 오 래 가지 않았다. '허허... 하지만 약한 감정에 빠져서는 안된다. 이 몸은 대명의 뿌리인 것을.. 천년제국의 기반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지 않은 가?' 이런 생각으로 자신의 마음을 달래는 황제. 황제의 마음은 이 날 따라 번민스럽다. x x x "부영반!" 위원화의 위엄있는(?) 음성에 즉각 부영반이 달려왔다. "명을 내린다. 서둘러라. 전 금의위와 어영특위대 전원을 출동시 켜라!" "옛....?" 부영반의 다리가 후들후들 떨린다. 너무나 엄청난 명이었기 때문 이다. "소림사를 친다." "....!" 부영반은 경악으로 얼굴이 창백해졌다. 위원화는 중얼거리듯 말 하고 있었다. "그렇다. 폐하께서는 무엇이든지 완벽하신 것을 좋아하신다." "하... 하지만..." "황명이다!" "복... 복명!" 엄청난 일이었다. 드디어 대명의 국운을 다지기 위해... 무림을 말살하려는 주원장의 정략은 구체적으로 피를 부르게 된 것이다. 과연....? x x x 장강. 대룩의 남쪽을 관류하는 대하는 수만 년을 두고 그 흐름을 그치 지 않았다. 사천에서 발원하여 강남을 옥답으로 만들며 흘러내리 는 양자강은 중원대륙의 젖줄인 것이다. 고대로부터 장강 유역을 차지하는 자가 진정한 제왕이 된다고 했다. 그것은 양자강을 낀 지역을 차지해야만 식량을 자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양자강의 나룻터에 한 사나이가 앉아있었다. 그는 새벽부터 강을 건널 생각인 듯 벌써부터 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각이 일러서 인지 오는 배도 없고 사람도 없었다. 사나이는 강을 바라보고 있 었다. 그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묵묵히 흘러내리는 강물을 바라보는 눈에는 고독이 어려 있었다. 끊없이 넓은 장 강...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강물을 바라보는 사나이의 눈에는 회 한이 어리고 있었다. 문득, 사나이는 인기척을 느끼며 뒤돌아본다. 오십 대 후반으로 보이는 한 명의 검박한 마의를 입은 노인이 서 있었다. 그는 수 염을 길렀으며 청수한 용모의 노인이었다. 헌데... 왠지 노인을 보는 순간 사나이는 그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따. 노 인에거스는 말할 수 없는 기품과 만인을 부드럽게 감싸는 듯한 기상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허나 사나이는 다시 고개를 돌려 강 물을 바라본다. 그때 뒤에서 정갈한 음성이 들렸다. "배를 기다리나?" 사나이는 잠시 멈칫했다. 그러나 곧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왠만 해서는 입을 열지 않는 그런 사람이었다. 노인은 사나이가 앉아 있는 바위에 다가가 나란히 앉았다. 노인도 강물을 본다. "....." 두 사람은 똑같이 강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전혀 다른 두 인물. 그러나 똑같은 강물이라고 똑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은 아니었다. 문득 노인의 중얼거리는 음성이 사나이의 귓전에 울렸다. "내가 어렸을 때 강물을 본 적이 있었다네. 나는 그때 세상에 강 보다 넓은 것이 없다고 생각하였다네. 후후... 그 생각은 몇 년 쯤 지나서 우연히 바다를 본 다음에야 깨어졌다네." "....." 노인의 감상에 젖은 음성이 계속되고 있었다. "바다.... 그 한없고 끝없는 바다를 보고서야 나는 비로소 깨달 을 수 있었네. 진리란 끝이 없다. 보려하면 할수록, 깨달으려 하 면 할수록 더욱 넓은 세계가 날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 사나이는 묵묵히 듣는지 안듣는지 강물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 실, 그가 듣던, 안 듣던 그런 것은 노인에게는 상관이 없었다. 그는 자신을 향해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뒤... 나의 삶과 목적이 바뀌었다네. 한없는 진리를 쫓기 로... 비록 뜻을 이루지 못하고 다시 강가에 와 이렇게 섰지만 한가지 얻은 점이 있다네." "......." "그것은 그토록 넓고 두려워 보이던 강이 내 앞에서 이제는 왜소 하게 웅크리고 있다는 것일세." "......!" 사나이는 그 말에 흠칫하며 몸을 떨었다. 그는 돌아보지 않고 물 었다. "어째서 내게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까?" 노인은 너털웃음을 웃었다. "허허허허... 다른 뜻은 없다네. 다만 강물을 보고 있는 자네의 눈빛에서 어떤 동질성을 느꼈다고나 할까..? 하하.. 불쾌했다면 용서하게나. 그저 늙은이의 노망이라고 생각하고 말일세." 문득 사나이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닙니다.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어르신의 말씀에서 느낀 바 가 많았으니까요." 이때, 두 사람은 강 저편으로부터 한 척의 배가 다가오는 것을 보게 되었다. 노인은 문득 그를 보고 물었다. "자네는 어디로 가는 길인가?" "금릉입니다." "허허... 묘한 인연이군. 나도 마침 금릉으로 가는 길인데.. 피 차 갈 길이 머니 말동무나 하는 것이 어떻겠나?" 사나이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노인은 흡족 한 듯이 웃었다. "허허허... 잘된 일이군. 그럼 피차 통성명이나 해야겠구먼. 나 는 무명노(無名老)라 하네." 사나이는 짤막하게 대답했다. "환무영이라고 합니다." 7장 바뀌는 同行 고도(古都) 악양(岳陽)으로 뻗은 관도. 행인들은 종종걸음을 치 고 있었다. 상인, 여행자, 또는 임지에 발령을 받아가는 관인의 행렬... 이 속에 두 사람은 함께 섞여 있었다. 무명노와 환무영, 즉 낙성혼이었다. 우연히 만난 두사람이었으나 그들은 아주 오래 전부터 의지기인 양 서로를 친숙하게 느끼고 있었다. 그렇다고 말을 많이 하는 것 은 아니었다.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간에 편안한 느낌을 받는 것 이다. 그것은 오랜 지인이 아니고서는 드문 일이었다. 낙성혼은 무명노가 필시 보통 인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느끼고 있 었으나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다. 무명노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 는 낙성혼의 출신이나 내력을 묻지 않았다. 그저 행선지인 금릉 까지 동무하여 가는 것으로 두 사람은 만족하고 있었다. 무명노 는 주위의 경관을 하나하나 빼놓지 않고 바라본다. 마치... 사형 대를 향해 가는 죄수처럼. 그는 마지막으로 이승의 경관을 두 눈 에 박아 넣으려는 사람처럼 보였다. 문득, 낙성혼은 전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노인이 앞을 보니 관도 의 끝에서 병사들이 행인을 검색하고 있는 것이 들어왔다. 낙성 혼은 긴장하고 있었다. 그는 병사들을 본 순간 마음 속으로 꺼려 지는 것이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허나 그는 낙성혼의 어깨를 툭 치며 말한다. "가세. 어차피 형식적인 것일테니..." 노인은 조금도 저어하지 않고 앞으로 걸어갔다. 낙성혼은 약간 눈살을 찌푸렸으나 노인을 따라 걸었다. 행인들이 줄을 지어 서 있었다. 그들은 행렬에 서서 차례를 기다렸다. 지리한 일이었다. 그러나 행인들 중 불령을 하는 자는 아무도 없다. 그것은 병사들 에게 잘못하여 험이라도 잡히면 골치아픈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이때, 낙성혼은 눈썹을 꿈틀했다. 좋지 않은 광경을 보았기 때문 이었다. 검문 광경을 본 것이다. 허나 그것은 말이 검문이지, 제 대로 된 검문이 아니었다. 검문이라는 것이, 남자나 노파 따위는 그냥 보내고 여인들만 골라서 희롱을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한 여인이 희롱당하고 있었다. 검문을 핑계로 젊은 여인 만 나서면 손을 여인의 속옷까지 집어넣어 마음대로 주무르는 것 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 광경을 보고만 있었다. 아니, 어느 한 사람 나서서 항의할 용기가 있는 자가 없었다. 이때 한 명의 노파와 젊은 여인의 차례가 되었다. 여인은 묘령의 나이로, 갸름한 얼굴의 미인형이었다. 그녀가 나서자 서너 명의 병사들의 눈이 번짝였다. 그들은 여인을 검색한답시고 한데 모여 여인의 옷자락 속으로 손을 쑤셔넣고 있었다. 여인은 당황하여 비명을 질렀으나 어쩔수 없는 일이었다. 관원들이나 병사들은 사 정없이 여인을 희롱하고 있었다. 어떤 자는 아예 젖가슴을 손을 움켜쥐기도 했고, 어떤 자는 치마를 걷어 올리고 여인의 아랫도 리로 손을 쑥 집어넣기도 하고 있었다. 여인은 겁에 질려 울고 있었으나 도와주는 자가 없었다. 행인들은 이 민망한 광경에 아 예 고개를 돌릴 뿐이었다. 이때 노파는 관원들을 붙잡고 사정했 다. "나리들.. 그 아이는 이 늙은이의 며느리라오. 제발...." 허나 관원들은 노파의 사정을 본 척 만 척 했다. "나리... 제발..." 노파가 관원의 팔에 매달리자 젊은 관원 하나가 발길로 노파를 걷어찼다. "아이쿠..." 노파는 비명을 지르며 나가 떨어졌다. 이때 관원들은 저희들끼리 수군거리며 여인을 다른 곳으로 끌고 갔다. "아무래도 수상해... 저쪽으로 가서 자헤시 검색해 보아야 겠 다!" 그들은 몸부림 치는 여인을 끌고 깊 옆의 숲이 있는 쪽으로 강제 로 끌었다. "아악... 제발... 나리들... 살려주세요..." 낙성혼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는 도저히 그 광경을 보고 있을 수 없었다. 헌데, 문득 무명노가 그의 어깨를 잡았다. "놔두게. 어차피 잘못된 시대가 만들어낸 부산물인 것을..." 낙성혼의 얼굴에는 분노가 치솟았다. 그는 불만스러운 눈으로 노 인을 노려보았다. 노인의 말에 그는 납득할 수가 없었다. 잘못된 것을 바로 잡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러 나 노인은 그의 마음을 이해한 듯 조용히 말했다. "가지를 쳐 무엇하겠나? 정 뜻이 있다면 뿌리를 잘라야지.... 그 것이 자네같은 젊은이가 해야 할 일일세." 그 말에 낙성혼은 느껴지는 바가 있었다. 그는 억지로 참았다. 행렬은 점점 더 앞으로 나가고 있었다. 노인은 자신의 차례가 되 자 품속에서 은자 한 덩이를 꺼내 관인의 손에 쥐어 주었다. "헤헤... 뭘 좀 아는 늙은이로군." 관원의 말을 낙성혼은 등 뒤로 들었다. 그의 마음은 혼란으로 뒤 엉켜 있었다. 이때였다. 몇걸음 걷지 않았을 때 숲이 있는 쪽으 로부터 여인의 비명이 들린다. 그 비명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낙성혼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의 눈썹은 푸르르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숲속으로부터 관인들의 음탕한 웃음소리가 들 리고 있었다. 이때 노인은 낙성혼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마음껏 듣게. 그리고 절대 잊어버리지 말게..." x x x 노인과의 여행은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강남의 각 지역마 다 병사들이 깔려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명령을 수행하는 관인 들이 아니라 약탈을 하기로 작정한 자들 같았다. 선량한 양민이 나 부녀자들이 곳곳에서 치욕스러운 일을 당하고 있었다. 대명이 건국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였다. 군사들은 아직도 전 시의 기분이 남아 있는 상태였다. 전장에서의 인성은 무시된다. 그런 그들이 할 일은 지금에 와서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래서 군사들이 풀리면서 곳곳에선 약탈과 탐관오리의 횡포가 극성을 이루고 있었다. 아무리 황제가 근엄하고 제대로 된 위인이라 해 도.. 이렇게 중원전역의 말단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어찌 알겠는 가? 낙성혼은 노인과 함께 여행을 하는 동안 화려한 권좌의 아래 깔 린 양민들의 신음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희생을 밟 고 권력이 일어섰는가를 똑똑히 알게 되었다. 그의 마음은 점점 바뀌어 가고 있었다. 주점. 강남 도상에는 주점이 많이 있다. 물이 좋은 지역이라 곳곳마다 명주가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무명노와 낙성혼은 잠시 쉬일 겸 주점에 들어갔다. 이름없는 주점이었으나 술맛만 좋으면 그만 인 것이다. 두 사람은 나란히 자리에 앉았다. 헌데, 옆자리에 누 군가 엉망으로 취한 채 엎드려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입고 있 는 의복으로 보아서는 상민이 아닌 것 같은 인물이었다. 그는 어 찌나 많은 술을 퍼마셨는지 전신에서 술냄새가 베어 있었다. ".......!" 낙성혼은 그를 본 순간 흠칫했다. 그가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이 었다. 무명노는 그의 눈치를 알아차렸다. "아는 사람인가?" 낙성혼은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쯧쯧... 쓸만한 젊은이로 보이는데..." 이때 낙성혼은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일어 나서 탁자에 엎어져 있는 청년에게 다가갔다. 그는 취청년의 어 깨를 흔들었다. ".....!" 취청년은 그가 흔드는 바람에 깨어났다. 그는 눈앞에 잘 보이지 않는 듯 손으로 눈을 부볐다. 그리고 낙성혼을 발견하게 되자 눈 을 부릅떴다. 잠시 그는 믿을 수 없는 것을 본듯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허나 그는 아무 말 없이 탁자위의 술병을 들어 다시 마 시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낙성혼의 손이 뻗어가 그의 손에서 술병을 빼앗았다. 취청년이 소리질렀다. "가시오! 꺼지란 말이오... 이 똑똑한 사람아... 내 눈앞에서 사 라져... 혼자서 잘난척 하란 말이다...!" "......." 낙성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취청년은 문득 흐느꼈다. "흐흑... 나는 당신처럼 잘나지 못해 견딜 수가 없단 말이다..." 취청년의 음성은 거의 절규에 가까운 것이었다. 낙성혼은 취청년 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보았다. 그는 그의 어깨를 잡 으며 말했다. "장형...." 장성민이었다. 놀랍게도 취청년은 바로 장성민이었던 것이다. 우 연치고는 매우 공교로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어영특위대의 부 대장인 장성민. 그가 이렇게 연도에서 취객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은 실로 뜻밖의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놓으시오! 그리고 어서... 가시오...! 소림으로... 흐흐... 당 신이 몸담고 있는 그 무림의 종주인가 뭔가하는 소림으로 말이 오... 그곳에서 중놈들이 당신을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단 말 이오...." "........!" 낙성혼은 장성민의 말에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소림....?" 장성민은 술주정이라도 하는 양 주절거렸다. "흐으으... 지금 황궁의 금의위와 그 악마같은 어영특위 놈들이 소림을 멸살하기 위해 가고 있단 말이오.... 흐흐... 그런데 당 신은 왜 이런 곳에서 얼쩡거리고 있는 것이오?" "......!" 낙성혼이 경악하는 사이에 그는 술병을 빼앗아 다시 들이키기 시 작했다. 낙성혼은 멍한 표정이었다.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는 표 정이었다. 문득 느느 한 차례 몸을 부르르 떨다가 고개를 돌려 노인을 바라보았다. "소생은...." 무명노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나 일이 있으면 어서 가보게. 허허...무엇인 든 최선을 다하게... 회피하는 것은 죄악이니까..." 왠지 노인의 얼굴에는 씁쓸한 미소가 감돌았다. "어서 가게.. 자네의 친구는 내가 돌볼 테니...." 낙성혼은 몸을 돌렸다. 그는 더이상 이곳에서 지체할 수가 없었 다. 소림으로. 소림으로 한시라도 빨리 가야했다. 그가 밖으로 사라지자 노인은 아직도 술을 벌컥벌컥 들이키고 있는 장성민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마지막 여정이라고 천지신명께서 자주 길동무를 만들어 주시는 군..." x x x 소림사. 혹자는 천년소림이라고 부른다. 소림의 기반은 반석이다. 그것은 중원의 무학이 소림에서 파생되었고, 아무리 환란이 닥쳐도 소림 만은 영원불멸로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소림사는 중원무 림인들의 정신적인 지주였다. 헌데... 당금의 소림사는 암운에 뒤덮여 있었다. 소림 방장실에 는 각파의 장문인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침 통하기만 했다. 바로 얼마전의 일이었다. 실종되었던 잠룡원의 청년들이 소림으 로 돌아왔다. 그들은 떠날 때보다 숫자가 현저히 줄어들어 있었 다. 청년들로부터 사태를 듣고 이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하 마터면 중원무림의 맥이 끊길 뻔했다. 정녕 소름 끼칠 일이었다. 잠룡원은 무림의 마지막 희망이었다. 헌데 그 잠룡원이 통째로 희생당할 뻔 한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욱 이가 갈리는 것 은 그 음모의 주역이 바로 구파일방에 속한 화산파에서 일으킨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아아! 이 사태를 어떻게 수습해야 한단 말이오?" 중인들의 고민은 한결같은 것이었다. 이제까지 무림연합맹을 결 성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들였으나... 각파의 이해가 상충하여 아직도 확실한 결명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헌데 잠 룡원의 사건으로 인해 이미 황궁과 무림은 등을 지게된 것이었 다. 아미파의 복호상인이 침울하게 말했다. "그러게 말이오. 이제 우리 무림과 황궁은 양립할 수 없는 사이 가 되었소이다." "아미타불... 그들이 일단은 물러갔다고 하지만 결국 언젠가는 다시 몰려올 것이오." 소림의 천장선사도 난감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중인들은 가슴 이 답답했다. 너무 늦었다. 만일 무림연합맹의 결성이 벌써 전에 이루어 졌다면 무림맹의 힘으로 연합을 이루고, 그렇게 된다면 황궁과의 어떤 협상이라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나 후회해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다만 한가지 바라는 것이 있다면 지금이라 도 황궁 쪽에서 더이상의 행동이 없기를 바라는 것과, 연합맹의 발족을 서두르는 것 뿐이었당. 이때 종남파의 장문인이 분통을 터뜨렸다. "그 찢어죽일 종리무연은 어디 있소?" 천장선사는 탄식했다. "지금 와서 그를 찾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소? 그는 자신의 실수 를 깨닫고 어딘가로 숨어버렸을 것이오. 아미타불.. 정도의 대문 파인 화산이 이렇게 타락하다니..." 문득 그는 한 사람을 떠올렸다. "아미타불... 이럴 때 그 사람이라도 있었으면...." "......?" 중인들은 그가 누구를 말하는지 알지 못했다. 천장선사의 뇌리에 는 한 청년의 얼굴이 떠오르고 있었다. '소림 수호신문... 그가 그 인물이라면 아직도 희망은 있으나. ..' 이때였다. 문득 다급히 한 명의 나한승이 뛰어들고 있었다. "방장님...! 큰일났습니다..." 천장선사는 눈살을 찌푸렸다. 이같은 중요한 자리에 허락도 없이 뛰어든 제자의 경박함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슨 일이냐?" 나한승의 이마에는 구슬땀이 흐르고 있었다. "큰일... 큰일입니다." 그가 더듬기만 하고 말을 하지 못하자 천장선사는 호통쳤다. "무엄하구나! 이 자리는 존장님들이 계신데 웬 소란이냐? 네눈에 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단 말이냐?" 그제야 나한승의 말문이 트였다. "황궁의 군사들이...! 황궁의 병사들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무... 무엇이라고!" 천장선사는 부르르 떨었다. 그의 눈은 크게 떠졌고, 장내의 중인 들의 눈썹도 일제히 흔들렸다. 8장 少林危機 "이... 이럴 수가...!" "아아....!" 소림사에서 가장 높은 곳. 범종의 종각위에 올라선 각파의 장문 인들은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도시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 고 있는 것이다. 수천....? 아니 수만 명을 헤아리는 수없는 군 사들이 소림사를 까맣게 포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지금은 분 명 전시가 아니다. 헌데 이렇게 많은 병사들이 포진하고 있다 니... 그것은 명백한 일이었다. 황궁에서 급파된 군사들이 무림 을 말살하기 위해 소림을 목표로 삼아 출동한 것이다. 곳곳에서 나부끼는 깃발이 그 군사들이 황궁의 특수군사들이라는 것을 말 해주고 있다. "오오... 이럴 수가..." "아미타불...!" 중인들의 안색은 검게 변하고 있었다. 아무리 무림의 지존이요, 백전의 노장들이라고 하여도 이같은 상황 하에서는 실색하지 않 을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전쟁인 것이다. 무림인들의 세력 다 툼이나 명예를 건 비무따위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일단 싸움이 시작되면 천군만병은 노도처럼 소림을 한 순간에 잿더미 로 만들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었다. "이 일을 어쩌지요?" 누군가가 그런 말을 했다. 허나 그 말에 답하는 자는 아무도 없 다. 누가 있어 이 사태의 명확한 해결책을 말하겠는가? 중인들 사이에는 그저 암담하고 무거운 침묵만이 나돌 뿐이었다. 이때, 소림 방장 천장선사가 무거운 입을 열었다. "피해야 하오. 지금 저들과 부딪친다는 것은 이란격석(以卵擊石) 에 불과한 것이오." 종남파의 장문인이 나섰다. "어디로 피한단 말이오?" 천장선사는 눈썹을 떨면서 말했다. "뒷길이 험지이니 아직은 통로가 남아있을 것이오." 그의 말에 중인들은 마지막 희망을 품었다. "자아! 모두 피신을 하라고 이르시오!" 천장선사의 진두지휘 아래 중인들을 비롯하여 소림사의 오백 여 승려들이 일제히 열을 지어 후원쪽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들 이 막 소림사의 후면 쪽에 다달았을 때 한 명의 늙은 승려가 달 려오고 있었다. "틀... 틀렸습니다! 이미 퇴로도 봉쇄되었습니다. 이리로 가야 소용없습니다." "......!" 천장선사를 비롯한 사람들은 절망적인 표정을 지었다. 천장선사 는 여러 명의 사람들에게 둘러 싸였다. 그들의 눈은 오직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천장선사는 한 명의 장로에게 물었다. "잠룡원은....?" 장로가 말한다. "아아.. 장문인. 그 아이들이 뛰쳐나가는 것을 간신히 막고 있습 니다. 워낙 젊은 혈기가 끓는 아이들인지라..." 천장선사는 버럭 소리쳤다. "안되네! 사제... 어떤 일이 있어도 그 아이들만은... 그 아이들 은 장차 무림을 떠맡을 마지막 희망이네..." "......" "어서 그 아이들을 소림의 달마원으로 모으게." 장로를 고개를 끄덕이고 달려갔다. 소림사에는 긴장감이 팽배해 지기 시작했다. 퇴로가 막혔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오직 하나 뿐인 것이다. 아무도 그 말은 하지 않았으나 각자의 얼굴에는 비 장한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달마원. 드넓은 대전에는 육십여 명의 젊은이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잔뜩 흥분한 기색이 어려있었다. "......!" 문득 그들의 시선이 일제히 한 곳으로 향했다. 소림의 천장선사 가 나타난 것이다. 천장선사가 나타나자 일단의 젊은이들이 부르 짖었다. "저희들을 보내주십시오! 길을 열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저희가 피로 길을 열겠습니다!" 젊은이들의 부르짖음은 비장했다. 천장선사는 서서히 고개를 끄 덕였다. 그는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흘렸다. 허나 그의 입에서 나온 것은 엄중하고도 준엄한 음성이었다. "아미타불...! 어리석은 것들..! 또다시 우를 범할 셈이냐?" 그의 말에 청년들은 움찔했따. 그가 무엇을 나무라는 것인지 알 기 때문이었다. 천장선사는 얼마전 그들이 젊은 혈기로 종리무연 의 계책에 넘어갔던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 장내가 조용해지자 천장선사는 한숨을 쉬었다. 그는 인자한 음성 으로 말했다. "너희들의 뜻은 안다. 하지만 시야를 넓게 가져야 한다. 장차... 너희가 없다면 무림이 어찌 존속될 수 있겠느냐? 그 점을 생각한 다면 너희들은 결코 경거망동해서는 안된다." "........" "아서라. 젊은 혈기만 가지고 해결함이 아니다. 너희들은 어떤 일이 있어도 이 난관을 뚷고 살아남아 무림의 내일을 만들어야 한다." "......" 천장선사는 조용한 시선으로 하나하나 창년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잘 듣거라. 너희들은 명이 있을 때까지 이곳에 남아 있어야 한 다. 한 명이라도 독자적으로 행동하는 자가 있다면... 그를.. 벌 하리라!" 천장선사는 그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청년들은 그가 무엇때문에 이런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그것은 청년들을 살리기 위 한 몸부림인 것이다. 청년들의 눈에는 굵은 눈물이 흘러 내리고 있었다. "크흐흐흐흑....!" 어느 청년인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더니 통곡을 터뜨리는 자가 있 었다. 그러자 일제히 감염이라도 된 듯 청년들은 비명과 같은 고 함을 질러댔다. x x x 방장실로 돌아온 천장선사는 자리에 앉았다. 처음과는 달리 중인 들은 다소 침착을 되찾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그들의 얼 굴에는 그늘이 어려 있었다.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얼마나 시간 이 흘렀을까? 먼저 입을 연 것은 종남파의 장문인이었다. 철담수 사(鐵膽秀士) 연청우(延靑雨). 그는 종남파의 이십삼대 장문인으 로 평소 인품이 두텁고 의리가 강한 인물로 많은 사람들의 존경 을 받고 있는 인물이었다. "언제끔 그들이 공격하겠소?" 천장선사는 담담히 말했다. "아마도 내일 새벽 쯤이 될 것이오." 중인들은 의아했다. ".......?" 천장선사는 쓴웃음을 지었다. "나도 자세히는 모르오. 다만 그런 기분이 드는구려." 중인들의 입가에 허탈한 미소가 흘렀따. 소림의 장문인이라면 무 림의 수장인 것이다. 그런 그가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은 상황이 너무나도 절망적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허나 좌중에서 그런 것을 탓하거나 비웃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천장선사는 좌 중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아마도 저들은 뜸을 들일 것이오. 그것은 허장성세를 보여 우리 쪽의 진을 뺀 다음 공격한다는 병술을 응용하는 것이 될게요." "......." "허허.. 우리들은 무림인이지 군사들이 아니오. 병법에 대해서만 은 저들에게 뒤지는 것이 당연한 일이오." 연청우가 말했다. "그럼 어떻게 대응하실 작정이오?" "......." 천장선사는 물론이려니와 장내의 아무도 그의 말에 대답하는 자 가 없었다. 연청우는 눈쌀을 찌푸렸다. 그는 이곳의 인물들이 너 무나 나약하다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비록 원과의 항쟁으로 인 해 무림의 정기가 많이 상하기는 했으나 이곳에 있는 자들은 무 림의 최고배분의 지존들이었다. 그런데 지나치게 무력함을 보이 고 있었다. 문득 천장선사가 입을 열었다. "아미타불... 노승이 그들을 만나 보아야겠소이다." "......?" 뜻밖의 말에 중인들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천장선사는 담 담히 말을 이었다. "일단 그들과 타협이라도 해 보아야지요. 이렇게 꼭 유혈사태를 만들 필요는 없지 않소?" 그 말에 강력하게 반대하고 나선 사람은 복호상인이었다. "아미타불... 그것은 아니될 말이오. 그들이 협상에 응할리가 없 소이다. 애당초 협상할 의향이 있었다면 이렇게 대군을 동원하고 올 리가 없지 않소?" 그는 흥부한 듯 언성을 높였다. "그것은 자살행위일 뿐이외다." 복호상인 합장한 후 말했다. "더욱이 선사는 이곳에서 우리의 영도자가 되어야 할 분이오." 그것은 사실이었다. 비록 무림맹이 결성되지는 못했다 하나 이 자리에서 군웅들을 영도할 사람은 천장선사 밖에 없었다. "아미타불.. 그럼 어떻게 하란 말이오?" 이때였다. "그럼 이 사람이 나서 보겠습니다." 장내의 중인들의 시선이 일제히 말을 한 자에게 향했다. 종남파 의 장문인 연청우였다. 그는 가슴을 펴며 당당히 말했다. "천장선사의 말씀에도 일리는 있소이다. 어쨌든 생존을 위하여 그들과 대담을 나누기는 해야 하오. 내가 가겠소." 중인들의 얼굴에는 언듯 부끄러운 빛이 떠올랐다. 그들은 자신들 이 나서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 하는 것이었따. 이때 천장선사가 고개를 흔들었다. "아미타불... 뜻은 고맙지만 그것은 불제자인 노납이 나서야 할 것이오. 그래야 부처님께 가도 할 말이 있을 것이 아니오?" 천장선사의 말에는 농담이 섞여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농담이라 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허허허... 밤이 길면 꿈도 많은 법이오. 이 일은 노납에게 맡겨 주시오. 노납이 가야 저들도 어느 정도 성의를 표시할 것이오." "......." 그것은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황궁 쪽에서도 무림의 영도자격인 소림 방장이 나선다면 어느 정도 마음을 돌릴지도 모르는 일이었 다. "아미타불... 그럼 후사는 여러 장문인들께 맡기겠소이다." "장문인...." 중인들은 동요하고 있었다. 허나 어찌하랴. 별다른 방법이 떠오 르지 않은 이상 일단 이번일에 기대해 보는 수 밖에 없는 일이었 다. x x x 군막. 5만에 달하는 정병을 영도하는 지휘소였다. 군막 안에는 여러 명 의 지휘관들이 모여 있었다. 가운데 태사의에는 수염이 없는 한 명의 자의인이 앉아 있었다. 대명의 일인지하 만인지상인 동창 대영반 위원화였다. 그의 옆, 놀랍게도 화산 장문인 종리무연이 서 있었다. 그는 자리조차 배정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 는 초조함이 어려 있었다. "이것이 소림사 경내의 지도입니다." 탁자에 펼쳐져 있는 전도는 바로 그가 제시한 소림경내도였다. 상세하게 각 대전이나 전각의 위치가 그려져 있었다. "........" 위원화는 실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장문인. 그들의 반응이 어떻게 나올 것 같소?" 종리무연은 황급히 대답한다. "아마도 처음에는 협상을 하려들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안되 면 탈출할 생각을 갖게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종리무연. 그는 화산을 부흥시키기 위해 자신의 양심을 판 인물 이었다. 허나 그는 운이 없었다. 그가 손을 잡은 백련교는 의외 로 빨리 무너진 것이었당. 그가 갈 곳은 단 하나 밖에 없었다. 황궁. 그는 황궁 쪽에 붙은 것이다. 그런 그의 처지는 실로 딱하 여 그 기색이 얼굴에 드러나고 있었다. "흠... 탈출이라... 그럼 어느 쪽으로 탈출할 것 같소?" "아마도 소림사 뒷편의 벼량을 이용하여 탈출을 시도할 것입니 다." 그 말에 위원화의 가는 눈이 한차례 춤을 춘다. "흐흐흠... 그 쪽이라면 죽음을 향해 뛰어드는 꼴이 되고 말지." 종리무연은 문득 입가에 아부의 미소를 흘린다. "저어... 대영반. 이번 일이 끝난다면 약속대로 우리 화산을..." 허나,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밖으로부터 보고가 들어왔다. "소림사에서 한 중이 협상을 하자고 왔습니다." "협상? 누구라더냐?" 위원화의 말에 밖에서 잠시 시간이 지체되더니 다시 보고가 들어 왔다. "소림 장문인 천장대사라고 합니다." 종리무연은 흠칫 놀랐다. 그는 그래도 일파의 영수였다. 자신의 배신과 비열성을 천장선사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헌데 이때 위원화는 그를 향해 묻는다. "어떻게 하면 좋겠소? 장문인?" 종리무연은 잠시 우물거리다가 대답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심리전을 쓰는 것입니다." "심리전?" "저 쪽을 분노케 하여 이성을 잃게 만드는 것입니다. 저들이 이 성을 잃는다면 모든 일에 서두르게 되고 그렇게 되면 결과는 뻔 하지 않겠습니까?" "흐흠... 구체적으로 말하시오. 그대의 뜻은 천장이란 중을..." "죽이라는 것입니다." 종리무연은 자신이 뱉아 놓고도 안색이 하애졌다. 위원화는 고개 를 끄덕이고 있었다. "좋소, 그대의 말을 받아들이겠소. 이것은 어디까지나 당신의 충 고를 받은 것이오." ".......!" 그 말에 종리무연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다. 위원 화는 밖을 향해 말했다. "그를 죽여서 시신을 돌려 보내라!" 천장선사는 하나의 막사에 안내되어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막사 안에는 오직 그 혼자 밖에 없었다. 그는 막사 안을 서성이 며 마음 속으로 빌고 있었다. '부처님이시여... 제발 중생을....' 바로 이때였다. 갑자기 사방으로부터 날카로운 경풍소리가 쇄도 하는 것을 느꼈다. ".....!" 경계를 하려 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파파파팟....! 아아... 막사의 천막에 수 없이 수많은 구멍이 뚫림과 동시에... 그는 전신에 수백개의 화살을 맞고 쓰러졌다. 막사 밖에는 오백 명의 궁수가 철궁을 겨누고 있다가 위원화의 명을 받은 순간 일 제히 시위를 놓은 것이었다. 그것은 강전으로, 바위라도 뚫을 정 도로 무서운 위력이 있는 것이었다. 한꺼번에 오백자루의 강전을 모두 퉁겨낼 수는 없었다. 천장선사는 이렇게 죽었다. 그리고... 그의 시신은 그날 새벼깅 되기 전에 한대의 마차에 실려 소림사 정문으로 보내어졌다. x x x 소림사에서 초조하게 천장선사의 귀사를 기다리고 있던 군웅들은 마차에 실려 들어온 시신을 보고 분개를 금치 못했다. 소림 장문 인 천장선사. 그의 온 몸에는 수백 대의 강전이 꽂혀 있었다. 그 것을 보고 분노하지 않는 자는 없었다. "으으... 이럴 수가...! 전장에서도 사신은 죽이지 않는 법이거 늘...!" "우우... 도저히 못참겠소! 나갑시다! 나가서 싸웁시다!" "맞소! 저런 자들과는 더이상의 협상은 불가능하오! 나갑시다!" 중인들은 잔득 흥분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때 한사람이 나섰다. "잠깐! 우리가 이렇게 흥분하는 것은 선사의 유명을 잘못 해석하 는 것이오. 모두들 마음을 가라앉히시오. 싸우다 죽는 것이 어찌 무림을 위하는 길이란 말이오? 우리는 좀더 냉정해져야 하오." 이렇게 중인들을 설득하고 나선 자는 바로 종남의 장문인 연청우 였다. "........" 중인들은 흥분을 가라앉히고 모두 그를 바라본다. 연청우는 좌중 을 돌아보면서 침착하게 말했다. "이제 곧 저들의 공세가 시작될 것이오. 저들은 대사의 시신을 보낸 후 우리가 흥분할 것을 짐작하고 때를 노려 필시 대공세를 취할 것이기 때문이오. 우리는 그에 대비해야 하오." "......" 중인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이 구구절절히 옳았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겠소? 연장문인?" 연청우는 담담한 시선으로 중인들을 돌아보았다. 중인들의 얼굴 에는 하나같이 절박한 빛이 어려 있었다. 그는 중얼거렸다. '기왕에 배의 방향타를 잡았으니 끝까지 최선을 다할뿐...' 그렇다. 은연중 연청우는 중인들의 영도자가 된 것이었따. 그것 은 누가 시켜서 된 일이 아니었다. 진정한 영웅이란 위기 상황에 서 나타나는 법. 그는 중인들의 우두머리가 되고 있었다. "일단 이곳은 소림이니 이곳의 사정을 잘 알고, 또한 가장 많은 인원을 가지고 있는 소림에서 대책을 강구하여야 할 것이오." 그 말에 한 명의 승인이 나섰다. 그는 천장선사의 사제인 천원선 사로서 달마원의 수좌원주였다. "아미타불.... 빈승이 연 장문인의 명을 쫓겠소이다." 이렇게 되면 이야기는 완벽해지고 있었다. 다른 장문인들도 모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연 장문인께서 우리들을 이끌어 주시오. 우리 ." 연청우는 두루 포권례를 취했다. "그럼 상황이 상황이니 이 사람은 사양하지 않겠소이다." 모든 것이 연청우의 지시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산문. 소림의 웅장한 산문 앞 광장에는 백팔나한대진이 펼쳐졌다. 나한 대진은 천년 소림의 수호진법이었다. 백팔명의 소림고수들이 나 한대진을 펼친 것은 제 일선의 방어벽을 이루기 위한 것이었따. 그것은 연청우의 지시로 이루어졌다. 연청우는 일단 적들의 공세 가 시작되며 체계적으로 방어를 해야 하고, 시간을 벌기 위해서 는 나한대진이 가장 유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제 이, 제 삼의 방어선도 지시했다. 그리고... 적들의 공세를 기다 렸다. 아니나 다를까? 어둠이 점점 짙어지고.. 새벽... 그 가운데서도 가장 어두움이 짙은 시각에 갑자기 정면으로부터 무시무시한 함성이 들리기 시 작했다. "와아아아아.....!" 드디어 황궁의 금의위와 어영특위대의 대공세가 시작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