下卷 9장 血 路 병사와 무사는 다르다. 따라서 전쟁과 비무 또한 다른 법. 애당 초부터 이 싸움은 무림인의 편에 있지 않은 것이었다. 새벽부터 일제히 시작된 황궁 금의위와 어영특위대의 대공세는 소림사의 무림인들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으로 몰아가는 것 이었다. 콰앙! 콰아아앙....! 화포(火砲). 그것은 달리 진천뢰(震天雷)라고도 불리운다. 본래 색목국,또는 포국으로부터 수입된 화포를 사용한 것은 원 때부터이다. 금의위 는 소림을 공격하기에 앞서 진천뢰를 동원한 것이다. 소림백팔나한대진. 무림인이라면 누구나 그 위력이 엄청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 밤 하늘을 찢어발길 듯이 쏘아대는 진천 뢰의 불덩이 앞에서는 속수무책일 수 밖에 없었다. 꽈르르릉... 꽈꽈쾅! 소림의 나한승들은 진법을 제대로 펼치기도 전에 반수 이상이 불 덩이가 되어 육편으로 날아갈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뒤이어 금의위와 어영특위의 공격대들이 창검을 흔들며 산문 안으로 몰 려 들었다. 혈전... 아수라... 죽고 죽이는... 가공할 대혈전은 막이 오른 것이다. 일대 일의 싸움에서 병사들 은 결코 무림인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그러나 십대 일.. 아니 백대 일이라면... 그것도 넘어 천대 일의 싸움이라면 양상은 또 다른 법이다. 결국 소림사의 방어벽은 차례차례 무너지고 만다. 피눈물을 뿌리는 무림인들의 심정도 아랑곳없이.. 태양이 떠오르고 대지가 밝아왔을 때 이미 소림사 경내는 수많은 시체들로 산을 이루게 되었다. 그러나 무림인들의 저력 또한 무 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소림의 금강승들이 펼치는 금강대진(金 剛大陣)은 특히 위력을 발휘하여 대웅전을 중심으로 철벽의 저지 선을 유지하고 있었다. 또다시 밤이 왔다. 밤이 되자, 거짓말처럼 황궁의 공격은 멈추었 다. 일단 퇴각한 것이다. x x x 대웅전. 대전 안은 온통 신음과 비명으로 비감한 분위기를 보이고 있었 다. 살아남은 사람들... 그들 중 성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지옥 과 같은 싸움에서 거의 모든 무림인들이 부상을 입은 것이었다. 이제... 살아남은 사람은 고작 이백 여인에 불과하다. 삼분지 이 이상이 죽음을 당한 것이었다. 대웅전 앞 광장은 온통 시신이 널 려 있었다. 그 앞에는 금강승들이 금강대진을 펼치고 있었다. 그 러나 그들은 지칠대로 지쳐 한결같이 곧 주정낮을 듯이 보였다. 대전 안에는 여러 사람들이 서로의 상처를 치료해 주고 있었다. "......" 아무도 입을 여는 자가 없었다. 그들의 마음은 고통과 비분으로 가득차고, 이미 죽어간 동료들이나 사문의 형제들을 떠올리며 마 음으로 피눈물을 뿌리는 것이었다. ..... 종남파 장문인. 연청우는 한쪽에 모여있는 청년들을 바라보고 있 었다. 그들은 잠룡원 출신의 후기지수들이었다. 그는 싸움의 와 중에서도 결코 그들이 나서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청년들은 수십 차례나 비분을 터뜨리며 뛰쳐나가려고 하였으나 그가 호통 을 쳐 말린 것이었다. 그는 청년들을 싸움에 내세울 수는 없었 다. 그들은 무림의 마지막 등불인 것이다. 청년들은 온통 비감한 표정으로 대전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부상 자들을 치료하는 자를 제외하고는 한결같이 비통한 표정으로 앉 았다 일어났다하며 마음을 안정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스산한 달 빛이 처연하게 대전 안을 비춘다. 연청우는 한숨을 쉬었다. '아아... 이 일을 대체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결국... 시간을 끌다가는 모두 전멸하고 말 것이다.' 그는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결정은 빠를 수록 좋은 것이다. 한편, 청년들 사이에 섞여 있는 당수린은 한숨을 쉬며 달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아... 당신을 다시는 보지 못할 것 같군요. 성혼...' 그녀는 살아날 가망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달빛 속에서 낙 성혼의 얼굴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그녀는 세상에 태어난 이래 오직 한 사람, 낙성혼을 사랑했다. 그러나 그 사랑은 한번도 꽃 을 피우지 못했다. 그 점이 아직도 처녀인 그녀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것이었따. 이때였다. "모두 듣거라!" 문득 대전을 울리는 소리가 있었다. 바로 연청우의 엄숙한 음성 이었다. 청년들은 그를 향해 눈길을 돌렸다. "비록 지금의 상황은 절망적이라고 하지만 끝까지 희망을 버려서 는 안된다." 연청우는 눈동자들을 본다. 아직도 꿈이 많은 눈동자들이었다. 그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안타까운 것은 지금 자신을 바라 보고 있는 눈동자들이 한번도 꿈을 펼쳐보지 못하고 산화해 버릴 지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너희들만은 어떻게 해서든지 살아남아야 한다. 그것이 무림의 마지막 희망이기 때문이다." 그의 말에 종남 출신의 한 제자가 울먹이는 음성으로 말한다. "하지만 사부님... 어떻게...?" 또 다른 사람이 나선다. "그렇습니다! 어찌 우리들만 살자고 할 수 있겠습니굵恝李黴윱求!" 그의 말이 떨어지자 청년들은 모두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이제 저희들도 싸우겠습니다!" 허나, 연청우의 엄숙하고 분노에 찬 음성이 그들을 질리게 하였 다. "갈! 이 어리석은 것들...! 너희들은 천장선사께서 어찌하여 스 스로 적진에 가신지 모른단 말이냐?" "........!" 잠룡원 출신의 젊은이들은 모두 입을 다물었다. "아아....! 너희들의 마음은 안다. 하지만 너희들은 명심해야 한 다. 오늘의 이 일을... 똑똑히 기억해 두었다가... 장차 무림의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을." 청년들은 의아했다. 뿐만 아니라 장내의 무림고수들도 의아해했 다. 장래를 기약하는 것도 좋지만 우선 이곳을 빠져 나가야 그것 도 가능한 것이 아닌가? 연청우는 잠시 침묵했다가 입을 열었다. "자아, 모두 듣거라. 내일 새벽이 되면 저들의 공격이 다시 시작 될 것이다. 그때 너희들은 뒤쪽의 벼랑을 통해 탈출해라. 뒤는 소림이 막고... 앞 길은 우리들이 막을 것이다. 너희들은 중간에 있다가 기회를 보아 탈출해야 한다. 명심을 할 것은 절대로 직접 나서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노부의 말을 어기는 자가 있 다면... 내가 직접 그 자를 처단하겠다!" "......." 청년들의 안색이 변했다. 그들은 마음 속으로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아아! 어찌하여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까? 우리더러 비겁자 가 되란 말씀입니까?' 허나... 그들은 연청우의 뜻을 알고 있었다. 그는 모든 희망을 젊은이들에게 걸고 있는 것이었다. 장내는 비장하고 숙연한 분 위기에 휩싸였다. 그리고... 시간은 눈깜짝할 사이에 흘러갔다. 새벽... 새벽을 알리 듯이 또다시 산문 밖으로부터 함성이 들려오기 시작 했다. ........ x x x "비켜라! 막는 자는 죽는다!" "아미타불...! 빈승은 오늘 살계를 크게 어겨야 겠다!" 위이이이잉! 퍼펑...! 펑! 쐐애애애액.....! 차차차차창! "크아아악!" "으아악!" "막아라!" "황명을 어기는 자들... 모두 죽여라!" 아수라.... 소림사 뒤쪽의 유일한 탈출로인 벼랑 쪽에서는 혈전이 벌어졌다. 선두에는 각파의 장문인들이 직접 선봉에 서서 길을 열고 있었 다. 뒤쪽에는 소림사의 승려들이 방편사과 계도를 흔들며 추적자 들을 베고 있었따. 중간에는 잠룡원 출신의 청년들이 따르고 있 었다. 허나... 길을 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뒤쪽을 막고 있는 자들은 금의위가 아닌 어영특위대였다. 그들은 황궁의 무사 들과는 달리 어느 정도 개인적인 무공을 익힌 데다가 그들 특유 의 갖가지 병기들을 가지고 있어 조직적이고 효과적인 공격을 펴 는 것이었다. 특히 험악한 벼랑의 지세를 이요하여 중인들의 탈 출을 저지하고 있어 길을 뚫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연청 우는 거의 절망적인 심정에 싸여 있었다. '아아... 결국 이곳에서 무림은 끝나려는가...?' 헌데, 기적이 일어났다. "아아악....!" 돌연 상대쪽, 그들의 후미 쪽으로부터 처절한 비명과 함께 전열 이 흐트러지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그것은 삽시간에 일어난 일 이었다. 군웅들을 향해 빗발치는 궁노를 날리고 있던 어영특위대 의 공격이 멈칫하더니 왼편의 벼랑으로부터 특위대의 시신이 떨 어졌다. 연청우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누군가 우리를 구하러 온 자가 있단 말인가?' 그것은 실날같은 희망이었다. 그리고... 그 희망은 절대 사지에 빠져 있던 그드에게 결정적인 생로를 열어주고 있었다. 뒤쪽으로 부터 일어난 소란으로 어영특위대의 공격이 멈칫거리는 사이, "무엇을 하느냐? 어서 탈출하라!" 연청우의 고함이 뒤를 따르던 잠룡원의 청년들의 정신을 번쩍 들 게 했다. 그들은 지체없이 신형을 날렸다. "막아라... 으... 켁!" 절벽으로부터 무더기로 인영이 떨어져 내린다. 이때, 연청우는 볼 수 있었다. 절벽 위쪽에서 하나의 인영이 실로 신비한 신법을 구사하며 매복자들을 처단하는 것을. 절벽 사이를 유유히 허공을 밟듯이 오가며 손을 뻗었고, 그때마다 추풍낙엽처럼 어영특위의 인물들이 비명과 함께 떨어지고 있었다. 그 바람에 청년들은 벼 랑 아래 쪽으로 뛰어 내릴 수 있었다. 실로 극적인 순간이었다. 때는 바야흐로 새벽 여명이 터오르는 시각.... 환상처럼 허공을 밟으며 손을 뻗고, 그때마다 무더기로 병사들을 떨어뜨리는 청년 의 신법이나 무공은 가히 신적인 위용이었다. '아아... 강호에 저런 신비고수가 있었다니...' 연청우는 새삼 눈을 뜨는 기분이었다. 그는 여명을 받은 청년을 바라보았다. 그가 알지 못하는 청년이었다. 일신에는 백의를 입 었고, 준수한 얼굴이었는데 어딘가 모르게 그에게서는 고독한 냄 새가 나고 있었다. 이때였다. "아아...! 낙사형..! 와주셨군요!" 문득 희열에 떠는 듯한 여인의 음성에 연청우는 정신이 번쩍 들 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한 명의 미소녀가 두 눈에 감격의 빛을 담고 절벽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연청우는 그 소녀가 당가의 당 수린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급히 물었다. "저 자가 누구라?" 당수린은 기쁨에 떨면서 대답했다. "아아... 저 분은 잠룡원에서 잠시 계셨던 낙성혼이란 분이에 요!" "낙... 성... 혼...?" 이때, 절벽 위의 청년, 즉 낙성혼은 아직도 벼랑을 내려가지 않 고 있는 각파의 장문인들과 소림사의 승려들을 향해 외쳤다. "여러분들은 어서 내려가시오! 이곳은 내가 맡겠소!" 그의 음성은 중인들의 귀에 쟁쟁하게 울렸다. 그것은 진기가 충 만한 음성이었다. 또한 불문의 사자후선공이 깃들어 있는 음성이 기도 했다. 우웅... 웅.... 웅... 그 사자후선공에 고막이 터진 어영특위대가 또 다시 수십 명 떨 어졌다. "아미타불...! 저것은 본 소림의 신공인데...?" 소림사의 승려들은 감동하여 부르짖었다. 허나, 그들은 시간이 없다는 것을 느끼고 급히 벼랑 아래로 신형을 날렸다. 뒤쪽으로 부터 수많은 병사들이 몰려오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 싸움. 동창 대영반 위원화는 도무지 믿을 수 없는 느낌이었다. 지금 그 는 완전히 그물에 잡아올린 고기 떼들이 망을 찢고 달아나 버리 는 것을 경험하고 있었다. 지금 그의 눈에는 자신의 수하 수백명 을 상대로 눈부신 무공을 펼치며 싸우고 있는 자를 볼 수 있었 다. 그 싸움은 실로 전대미문의 것이었따. 단 한사람.... 단 일 인이 수백 명을 상대하면서도 저토록 여유있게 싸운다는 것은 무 림인이 아닌 위원화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기도 했다. 그 는 분노했다. "고이얀... 그래, 저 한놈을 죽이지 못한단 말인가?" 문득, 그는 고개를 홱 돌렸다. "장문인! 그대가 나서 주어야겠소." ".....!" 세상에서 가장 비참하게 되어버린 인간. 화산파 장문인 종리무연 은 부르르 떨었다. 그는 가장 두려워하고 있던 일이 자신에게 닥 친 것을 느꼈다. "당신은 구파중 일파의 장문인이니 저자를 무공으로 제압할 수 있을 것이오. 장문인을 믿겠소. 당신이 저자를 물리친다면 폐하 께 아뢰어 장차 화산을 성지로 만들어 주겠소." "나... 나는...." 종리무연은 뒷걸음치고 있었다. 그는 상대방의 무공을 보았다. 자신의 무공으로는 그를 이긴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때였다. 종리무연은 더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는 것을 느꼈다. 이미 등 뒤에 어영특위대가 검을 뽑고 있다는 것을 본 것이다. 그는 내심 중얼거렸다. '허허... 결국... 내가 갈 곳이 이곳이었던가?' 그는 걸어나갔다. 수백 명을 상대로 싸우고 있는 청년을 이길 자 신은 눈꼽만큼도 없었다. 그러나 종리무연은 그를 향해 날아갔 다. "난(爛)... 강(江)... 절(絶)... 호(戶)....!" 그의 입에서는 화산의 최후의 검식 이름이 터져 나왔다. 그는 자 신의 애검 비상(飛霜)과 한몸이 되어 청년, 즉 낙성혼을 향해 검 신합일이 되어 쏘아나갔다. 낙성혼은 그를 보았다. 그가 누군지 도 알았다. 그는 마음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대는 이제 가야할 곳으로 온 것이다. 무림을 배신한 대가는 오직 죽음으로 사죄해야 하는 것이다.' 그는 날카로운 검광을 뿌리며 쏘아오는 종리무연을 향해 손을 뻗 었다. "관음항마공(觀音抗魔功)!" 그의 입에서는 아득한 한마디가 떨어졌다. 그것은 소림의 달마비 예 가운데 마공을 상대하거나 마인을 상대할 때 사용하는 실전비 학이었다. 소림수호신문으로 비밀리에 내려오는 선공이었다. 우우웅.... 종리무연은 일순 자신의 눈이 눈부신 빛에 갇혔다는 것을 느껴 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검... 분명 그는 검과 몸이 하나가 되어 쏘아나갔다. 헌데 눈부신 빛 가운데 들어선 순간 일시에 온 몸이 힘이 무력화되는 것을 느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온몸이 산산조각으로.... 분해되는 듯한 느낌과 함께... 그는 자연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낙성혼의 관음항마공은 허공 중에 떠있는 종리무연을 한 바퀴 휘 감은 다음 그를 허공으로 날렸다. 종리무연은 온 몸의 혈맥이 가 루가 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그것으로 그의 생은 종지부를 찍고 말았다. 화산을 부흥하겠다는 그의 뜻은 애당초 방향을 잘 못 잡은 것이었고, 그만큼의 대가를 안고 그는 무(無)로 돌아가 고 만 것이었다. "저... 저 놈은...!" 자세히 바라보던 위원화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비로소 그는 낙 성혼을 알아본 것이었다. '저... 저럴 수가.... 그가... 살아있었다니...!' 다음 순간 그는 불호령을 내리고 있었다. "쳐라! 놈을 죽여라! 모두 덤벼라!" 그의 명이 떨어지자 다시 수백 명의 어영특위대가 싸움으로 뛰어 들었다. 한편, 낙성혼도 인간이었다. 그도 피와 살을 가진 인간 이었다. 수백 명을 상대한 싸움은 끝도 한도 없는 싸움이었다. 죽이고... 죽이고... 또 죽여도 끝이 없었다. 게다가 그는 이미 여러군데에 상처를 입고 있었다. 헌데... 이번에는 다시 수백명 이 그를 향해 쇄도하고 있었다. 그도 이제는 거의 탈진상태가 되 었다. 마침내 그는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었다. 헌데 바로 그때였다. 문득 어디에선가 인영이 날아들더니 그의 곁에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그는 회색경장을 입은 사나이였다. 그는 장내에 뛰어들자마자 가공할 도법(刀法)으로 어영특위대를 베기 시작했다. 파츠츠츠츳...! "으아아악!" "캐애애액...." 번쩍! 버언쩍....! 그의 도법은 실로 가공한 것이엇다. 낙성혼은 놀라움을 금치 못 했다. '이 자가 누구길래...?' 헌데 이때, "이곳에서 죽고 싶나? 이제 이곳을 떠나도 되지 않느냐?" 그의 곁으로 다가온 회색경장의 사나이는 차가운 음성으로 말하 는 것이었다. 그 말에 낙성혼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렇다. 이제 군웅들도 멀리 달아났을 것이다.' 그는 한숨을 쉬었다. 만일 회의청년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는 이곳에서 뼈를 묻었을 것이다. "고맙소. 형장." 그 말에 청년은 음산한 음성으로 말했다. "고마워 할 것 없소. 곧 내가 이러는 이유를 알게 될테니..." "......?" 낙성혼은 의아했다. 허나 더이상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는 청 년이 벼랑 아래로 뛰어내리는 것을 보았고, 자신도 즉시 경공을 발휘하여 뛰어내렸다. ......... 벼랑은 천길 깍아지른 낭떠러지였다. 어영특위대는 멍청히 그들 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그들에게 그럴만한 경공이 없었던 것 이다. 그들은 그저 닭 쫓던 개처럼 멍청히 서있을 뿐이었다. "저... 저런... 어서 쫓지 못하겠느냐?" 위원화의 다급하고 분노에 찬 음성이 들렸으나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다. 10장 두 사나이 눈(眼). 두 개의 눈이 마주치고 있었다. 본래 마주치는 눈은 대화를 하기 마련이다. 사랑한다던지... 증오한다던지... 하다못해 무엇을 원 한다는 따위라도.... 그러나 지금 허공에서 부딪치는 두 눈은 아 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고 있다. 그저 자신이 소유한 동공으로 서 로를 바라볼 뿐이었다. "......." "......." 개울. 두개의 눈이 마주치고 있는 곳은 깍아지른 계곡 사이에 위치한 개울가였다. 자연의 푸르름이 가득찬 곳에 시냇물은 달려드는 햇 살이 간지러워 몸을 떠는데... 마주 앉은 두 사나이는 무심의 흐 름 속에 시간조차 정지시키고 있었다. 피, 사나이들의 붉게 물든 옷에서는 핏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뚝뚝 떨어져 바닥으로 스며 드는 핏물이 처음으로 사나이의 입을 열게 했다. "상처를 치료하시오." "......." 회색경장을 입고 있는 사나이의 말은 별다른 동작을 연출시키지 못했다. 다시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당신은 누구요?" 묵묵히 앉아있던 백의의 사나이가 입을 뗀 것은 한참이 지난 후 였다. 회색 경장은 말없이 고개를 흔든다. "우선 상처를 치료하시오." 말을 마친 사나이는 자신의 옷을 벗는다. 상처를 치료하기 시작 한 것이다. 백의의 사나이느느 대답을 듣기를 포기했다. 그리고 자신의 옷을 벗기 시작했다. 상처는 의외로 심했다. 온몸을 나병 환자처럼 붕대로 칭칭 감고 난 다음에야 간신히 피가 멈춘다. 낙성혼이 막 자신의 옷을 걸쳐 입었을 때, 회색경장의 사나이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 리고 억양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준비 되었으면 시작합시다." "........?" 회색경장의 사나이는 낙성혼이 던지는 의문의 시선을 뒤로 하고 개울 저편에 있는 공지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사나이는 공 지 한가운데 우뚝 서 멈추었다. "......." 낙성혼은 그를 바라보았다. 사나이는 서서히 몸을 돌리고 있었 다. 그의 시선이 낙성혼에게 향해졌다. 낙성혼은 여전히 앉아있 는 것을 본 그는 가볍게 눈살을 찌푸렸다. 낙성혼은 그가 어떤 기다림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어쩔 수 없이 몸을 일으켰다. 그는 계속 의문스러웠다. "형장은 누구요?" 결국 그는 다시 한번 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상대방의 입에 서 나온 말은 그를 놀라게 한다. "그대의 목을 원하는 사람이오." ".........!" 그때였다. 낙성혼은 문득 그가 언젠가 많이 본듯한 느낌을 받았 다. '누굴까?' 허나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보아도 떠오르지 않았다. 가물거리는 듯하면서도 그 실체가 떠오르지 않는 것이었다. "혹시 형장은 나와 만난 적이 있었소?" 그 말에 사나이는 고개를 흔들었다. "없소. 그러나 나는 매일 꿈속에서 그대를 보오." 사나이의 말에 낙성혼은 문득 느끼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그가 결코 자신에게 선의를 가지고 있는 인물은 아니라는 사실이었따. 그는 담담히 말했다. "내가 알기로는 형장같은 사람과 원한을 맺은 적이 없는데..?" 그 말에 사나이는 분노를 삭이는 듯한 음성으로 잘라말했다. "있소. 그것도 한 하늘을 같이 이고 살아갈 수 없는 원한이!" 그때였다. 낙성혼은 비로소 사나이가 누군가를 닮아있다는 사실 을 깨달았다. 그의 아득한 기억 저편에서 한 인물의 얼굴이 떠오 른 것이다. 그는 신음하듯이 중얼거리고 있었다. "뇌... 륭.... 대....?" 사나이는 두 눈을 무섭게 빛내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낙성 혼은 멍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 을 쉬며 말했다. "형장은 복수를 하러 왔소?" "........." 사나이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말을 시인하는 것이었다. 낙성혼은 그가 뇌륭대의 아들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 었다. 그렇다. 실제 회색경장의 청년은 바로 뇌강륜이었던 것이 다. 낙성혼은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아니, 어 떤 말을 해야할는지도 알 수 없는 막막한 기분이었다. 어찌되었 던... 그는 지난날 뇌륭대로부터 목숨을 구함 받은 적이 있었다. 당시 그는 뇌륭대의 목을 칠 수 있었으나 그것은 자력으로 한 일 이 아니라 뇌륭대는 스스로 목을 그에게 준 것이었다. 그리고 그 는 살아날 수 있었다. 그것도 뇌륭대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 이었따. 그런데... 오늘도 그는 그의 아들에게 구함을 받았다. 물론 뇌강 륜이 그를 구한 것은 자신의 손으로 부친을 죽인 원수를 갚기 위 해서였다. 허나 어쨌든 낙성혼으로 볼때 그들 부자는 두 번씩이 나 자신을 구한 것이다. 이때, 뇌강륜은 서서히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는 혈전도(血- 電刀)를 곧추 세우고 있었다. 혈전도는 그의 애도(愛刀)였다. 그 의 전신에서는 가공할 살기가 폭사되고 있었다. 그러나 낙성혼은 여전히 무방비상태일 뿐이었다. 그는 조금도 살기를 일으킬 수 없었던 것이다. 시간이 흘렀다. 뇌강륜은 문득 차가운 음성으로 말했다. "어서 준비하시오. 나는 지금껏 지나치게 기다려 왔소." 낙성혼은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상대방의 눈빛을 보고는 이 상황은 결코 피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 는 탄식하며 물었다. "꼭... 이래야 하오?" "......." 뇌강륜의 눈빛에서는 여전히 살기와 분노만이 떠올라 있을 뿐이 었다. 낙성혼은 짧은 순간에 결심을 굳혔다. "좋소. 피하지는 않겠소. 하지만 내게 약간의 시간을 주시오. 나 에게는 할 일이 남아 있소." 그러나 뇌강륜은 거칠게 말하고 있었다. "안되오! 나에겐 이미 그만한 아량이 남아있지 않소!" "........!" 낙성혼은 흠칫했다. 그의 눈에서는 이미 더할 수 없는 사나운 빛이 흐르고 있었다. '결국... 이럴 수 밖에 없다면....' 그는 결정을 내렸다. 할 수 없는 일이라면 그의 말마따나 시간을 끄는 일은 무의미한 짓이다. 그렇다고 그는 상대방에게 죽어줄 수는 없었다. 낙성혼에게는 할 일이 너무도 많이 남았기 때문이 었다. 그는 서서히 검을 들었다. 애당초 검집이 없는 검으로, 금 의위로부터 탈취한 검이었다. "......!" 두 사람의 눈길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두 사람은 검과 도를 들고 대치했다. 뇌강륜은 자세를 낮추고 있었다. 그것은 발도함에 있 어서 가장 빠른 쾌도술을 펴기 위한 자세였다. 낙성혼은 자신도 모르게 칭찬했다. "좋은 자세요." 뇌강륜은 움찔 하더니 중얼거렸다. "그대 역시..."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몸이 퉁기듯이 날아올랐다. 낙성혼은 그보다 늦게 솟구쳤다. 그러나... 두사람의 몸은 거의 중간지점 에서 만났다. 육안으로 그들의 신법이나 검도술을 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한 순간... 번개를 다시 백분지 일로 쪼갠 그 순간에 두 사람의 몸이 부딪쳤으며 검과 도가 각기필생의 힘 으로 교차되고 있었다. "........!" 두 사람은 각각 자리를 바꾸어 땅에 내려섰다. 누가, 언제, 어떤 수법으로 공격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낙성혼은 오른쪽 어깨를 만지고 있었다. 그의 어깨에서 붉은 선혈이 버닞고 있었다. 새로 운 상처가 생긴 것이었다. 헌데 이때, 뇌강륜의 분노에 찬 음성 이 들렸다. "왜...? 날 비웃는 것이냐?" 그의 음성에는 분노와 비탄이 담겨져 있었다. 그는 자신의 가슴 을 손으로 만지고 있었다. 보라! 그의 앞가슴 옷자락이 바람에 펄럭이는 것이 아닌가? 낙성혼의 검은 분명 그의 심장을 가를 수 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를 베지 않고 옷자락만 자른 것이었 다. 그 사실이 뇌강륜을 격분케 한 것이었다. 그는 설사 죽는 한 이 있더라도 부친을 해한 원수에게 목숨을 구걸하는 그런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분명 뇌강륜은 이번 싸움에서 패했다. 그러 나 패하더라도 떳떳하게 패하고 싶었다. 헌데 그는 적에게 동정 을 받은 것이었다. 낙성혼은 탄식했다. "아아! 은원을 따진다면 나는 이미 그대에게 목숨을 빚진 셈이 오. 마땅히 그대가 나에게 나의 목을 원한다면 내주어야 옳소. 그러나 나는 아직 할 일이 남아있어 죽지 못할 뿐이오. 또... 설 사 아무런 은원이 없다 할지라도 그대는 진정한 사니이요. 나는 아무 이유없이 그대같은 사나이를 죽이고 싶지 않소." 낙성혼은 말을 마치고 돌아섰다. 그는 아무런 미련도 없이 앞으 로 걸아가기 시작했다. "잠깐!" 뇌강륜의 분노에 찬 외침이 터졌다. 허나 낙성혼은 걸음만 멈추 었을 뿐 돌아서지는 않았다. "나는 너를 용서할 수 없다!" 뇌강륜의 말에 낙성혼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하오. 나역시 당신입자이었다면 그랬을 테니까." 뇌강륜의 눈에서는 피눈물이 비치고 있었다. 그는 이를 갈며 말 했다. "지금 내가 너를 해치지 못하는 것은 나의 무공이 약하기 때문이 다. 그러나... 언젠가는 다시 너를 찾을 것이다!" 낙성혼은 여전히 등을 돌린채 말했다. "기다리겠소." 낙성혼은 말을 다한듯 걷기 시작했다. 뇌강륜은 다리가 힘없이 꺽일 듯했다. 허나 그는 애도 혈전도로 땅을 짚어 간신히 중심을 유지했다. 그는 마음 속으로 피눈물을 뿌리며 이렇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돌아가자. 더욱 강해져야 한다.. 흐으... 그래서 저자를 다시 찾으리라!' 가을 햇살이 그의 눈을 찌르고 있었다. 더욱더 타오르는 눈이었 다. x x x 숭산에서 백여리 떨어진 곳. 군웅들은 서서히 안도의 숨을 내쉬 고 있었다. 이제는 위기에서 일단 완전히 빠져 나왔다고 할 수 있는 거리였다. 이곳은 관목이 우거진 곳. 외부에서는 안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나무가 밀집한 곳이었다. 설사 추적이 있다 고 해도 은닉하기에는 쉬운 곳이었다. "........!" 군웅들은 서로의 모습을 살피고는 우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살아남은 사람은 고작 백사오십여 명에 불과했다. 너무나도 큰 희생이었다. 무림이 개사한 이래 각파에 이렇게 비참했던 경우가 또 있었던가? 군웅들은 한결같이 비참한 기분이었다. "아미타불....! 이제는 어찌해야 하오?" 복호상인의 말에 중인들의 시선은 일제히 연청우에게 향해졌다. 지금까지 그가 실제적인 영도자였으므로 지극히 자연스러운 행동 이었다. 연청우는 문득 비감한 마음이 들었다. '어떻게 해야 하냐고?' 허나 그는 쓴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허허.. 우리가 할 일이 무엇이겠소? 우리는 각자 문파로 돌아가 더욱 험한 사태에 대비해야 하지 않겠소?" 말을 해놓고 그는 아차 싶었다. 문득 그는 상대가 누구인지를 잊 은 것이었다. '상대는 대명제국의 황제... 아아! 우리가 돌아가 전열을 가다듬 는다 해도 어찌 황제를 상대를 싸울 수 있단 말인가? 설혹... 그 를 죽인다해도 무엇을 얻는단 말인가? 우리 손으로 되찾은 산하 를 다시 또 오랑캐의 손으로 넘겨줄 수는 없지 않은가?' 이때... 각 파의 장문인들도 그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들 역시 이번 사태가 지극히 난감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 다. 연청우는 장문인들을 둘러보았다. "......!" 무언의 일치랄까? 그는 장문인들의 시선에서 어떤 공감대가 흐르 는 것을 느꼈다. 저들도 알고 있는 것이다. 연청우는 문득 장문 인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자신에게 어떤 결 정을 하도록 직권을 준다는 의미였다. 연청우는 입을 열었다. "들어라. 너희들은 이 길로 각자의 문파로 돌아가라." 잠룡원 출신의 청년들은 깜짝 놀랐다. "아니....? 사부님께서는....?" "허허... 우리들은 따로 할 일이 있다. 이 길로 우리들은 무림대 계를 위해 상의할 것이다. 너희들은 먼저 떠나라. 잊지 마라. 소 림에서 있었던 일을.... 너희들은 죽을 때까지 잊지 않고 기억해 야 하고... 전하거라. 무림의 동도들에게. 하지만 절대로 경거망 동해서는 아니된다." ".....!" 청년들은 언뜻 불길한 예감을 받았다. 그들은 연청우가 어떤 비 장한 결심을 했다는 것을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다. 그러나 그 것을 물어볼 수는 없었다. 물어보아야 대답이 나올 리가 없는 일 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사부를 바라보았다. 사부들도 마찬가지 였다. 그들은 입을 굳게 다물고 있지 않은가? '아아.... 사부시여. 대체 어쩌시려는 것입니까?'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아무리 청년들의 마음이 의문과 답답함으 로 엉킨다해도... 시간은 무정하게 흘러만 가고 있었다.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갈 길을 갑시다." 연청우의 말에 장문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아무런 대화 도 나누지 않았다. 그러나 말을 하지 않아도 그들의 마음은 통하 고 있었다. 과연... 그들의 무언의 합의는? x x x 중원대륙을 관장하는 곳. 금릉은 대륙의 주인인 황제가 기거하는 황도이다. 석양이 기울어 갈 무렵, 권력의 해가 지지않는 곳 황궁의 거대한 문루를 지키는 금의위 소속의 병사들은 두 명의 대조적인 인물들이 다가오고 있 는 것을 보았다. 이인. 한 사람은 수염을 길게 기른 노인이었고, 한 사람은 이십대 후반 의 청년이었다. 그들은 무엇인가 재미있게 이야기를 나누는 듯 환담을 하며 다가오고 있었다. 지금은 황성의 문을 닫을 시간이 다. 헌데 그들은 아랑곳 없이 궁문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 아닌 가? "멈춰라!" 다섯 명의 병사들은 일노일소를 가로막았다. 창과 칼로 무장한 금의위는 일반인들은 보기만 하여도 오줌을 쌀 지경으로 무시무 시한 위용을 지니고 있었다. 헌데... "허허....!" 노인은 조금도 위축되지 않는 모습으로 너털웃음을 웃는 것이 아 닌가? 청년 또한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마치 친한 친구의 집 을 방문한 사람처럼 여유있는 모습이었다. "무슨 일이냐? 이곳은 황제폐하께서 계신 곳이다!" 한 명의 수금장의 금의위가 묻자, 노인은 여전히 빙그레 웃으며 용건을 말하고 있었다. "가서 주원장에게 전하게. 옛 친구 혁련노숙이 찾아왔다고 말일 세." ".......!" 금의위 소속의 사나이는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한편, 노인---혁 련노숙은 비로소 자신의 이름을 알고 경악한 표정을 짓고 있는 청년에게 담담한 음성으로 말한다. "자네도 용건을 말해야 하지 않겠나?" 그제야 얼떨떨해 하던 청년은 정신을 차렸다. 그는 힘주어 이렇 게 말하고 있었다. "황제께 전하여라. 전 어영특위대 부대장 장성민이 뵙기를 청한 다고 말이다." 금의위 사니이는 하마터면 너무나 놀라 뒤로 벌렁 넘어갈 뻔했 다. 허나 그때 노인과 청년, 즉 혁련노숙과 장성민은 서로의 얼 굴을 마주 보며 박장대소를 터뜨리고 있었다. "으허허허헛....!" "하하하핫....!" 석양은 붉은 핏빛을 화려한 황궁에 뿌리고 있었다. 11장 皇城의 訪問客들 홍무제(洪武帝). 대명제국의 황제인 그는 이 며칠간 심기가 지극히 불편했다. 그 이유는... 며칠 전 자신을 만나기를 청하여 찾아온 두사람때문이 었따. 그는 그 두 사람을 만날 수 없었다. 그것은 두 사람을 만 나게 될 경우 자신의 마음이 어떻게 변하게 될 지 스스로도 자신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며칠간 그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오늘도 잠을 자지 못해 눈이 약간 부은 상태였다. 천하의 주인인 그가 어떤 번민으로 인하여 잠을 이루지 못했다는 사실은 일반인이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그는 침전에서 걸어나왔다. 그 리고 막 대전으로 햇살이 흘러드는 것을 본 순간 깨달았다. '그렇다. 허어..... 어제는 어제의 해... 오늘은 오늘의 태양이 뜨는 법. 나 또한 대명의 황제... 어찌하여 그 점을 생각지 못했 던가?' 그는 환관을 불렀다. 그리고 명을 내렸다. "그 두사람을 처단하라 이르라." 환관은 명을 받고 즉시 밖으로 나갔다. 주원장은 용상으로 걸어 가고 있었다. 그는 용상에 걸터앉으며 내심 중얼거리고 있었다. '잘가게... 친구. 이럴 수밖에 없는 날 이해하게.' 이것은 황제가 평생 처음으로 한 사과의 말이었다. 허나 그 사과 의 말은 황제 자신 외에는 아무도 들을 수 없는 것이다. x x x 황궁 뒤편, 아무도 모르게 은밀한 형장이 마련되었다. 그것은 황 궁을 경비하는 어영대가 급히 마련한 것이었다. 형장의 바닥에는 흰 천이 깔려 있었고, 그 천 위에는 두 사람이 가부좌를 틀고 앉 아 있었다. 혁련노숙. 장성민. 바로 그들이었다. 그들은 황제를 만나기 위해 황궁으로 왔다. 이 곳으로 오는 수천리의 길을 그들은 동행했다. 그리고 목적지에 온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원하는 바를 이룰 수는 없었다. 황제 를 만나기는 커녕 그들은 곧장 뇌옥으로 안내되었던 것이다. "........" 두 사람은 혈포의 사나이들이 주위를 에워싸고 있고, 두 명의 망 나니들이 자신들의 수급을 베기 위해 준비하는 광경을 마치 남의 일보듯 바라보고 있었다. "두렵지 않은가?" 입을 연 것은 혁련노숙이었다. "두렵지 않습니다." 장성민은 희미하게 웃었다. 정말 그의 얼굴에는 아무런 공포의 빛도 떠오르지 않는 아주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허허허... 죽는 마당에 좋은 친구를 둔 것 같군." 장성민은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야말로 영광입니다." "저런... 허허헛...! 일개 빈부가 대명황실의 대신에게 이런 칭 찬을 받다니... 역시 늙은 것이 좋구먼. 이런 대접을 받고 말이 야." "......." 장성민은 그저 다시 한번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혁력노숙은 다시 그를 바라보았다. "젊은이, 이름이 장성민이라고 했던가?" "그렇습니다." "허허.. 이거 외람된 말이지만 자네가 마치 나의 아들같은 기분 이 드는구먼." 장성민은 부드러운 눈으로 혁련노숙을 바라보며 말했다. "다시 태어난다면 교주님의 아들이 되고 싶습니다." 혁련노숙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나도 다시 태어난다면 자네의 아버지가 되겠네." 두 사람의 어깨에 만추의 햇살이 내리고 있었다. 이때 혁련노숙 은 망나니들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허심탄회한 어조로 말했다. "허어.. 벌써 이승을 떠날 시간이 된 모양이군. 자, 이제 떠날 준비를 하세." 망나니들은 그들의 앞에 와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장성민은 눈 을 감으며 말했다. "안녕히 가십시오." "허어... 꼭 헤어질 사람처럼 얘기하는구먼. 어차피 다시 만날 텐데..." 장성민의 입가에 평화로운 미소가 어린다. "후후.. 정말 그렇군요." "자아... 그럼 잠시 후에 다시 만나세." "예, 교주님." 바로 그 순간이었다. 망나니의 귀두도가 허공을 갈랐다. 번뜩....! x x x 황성에 해가 떨어진다. 권력의 해는 영원히 지지 않는다. 허나 하루의 해는 어김없이 같은 시각이면 떨어진다. 만일 현명한 군 왕이라면 언젠가 자신의 권력도 그처럼 질 날이 있으리라고 생각 하리라. 금의위의 병사들은 궁문을 닫으려 하고 있었다. 고관대작들도 거 의 다 퇴청을 하고 이제는 문을 닫을 시각인 것이다. 헌데... 그 들은 궁문을 향하여 걸어오고 있는 일단의 인물들을 보았다. 그 들은 모두 일곱 명이었다. ".......?" 병사들은 흠칫했다. 그리고 다가움에 따라 그들이 다양한 인물이 이라는 것을 알고 더욱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승(僧), 도(道), 속(俗)등의 다양한 복장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더욱이 더더욱 괴이한 것은 그들이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면모를 지니고 있다는 것과 나이가 고희에 이른자에서부터 가장 적은 자만해도 오십이 넘은 인물들이라는 사실이었다. 이윽고 그들이 궁문 앞에 당도했다. 병사들은 왠지 그들이 보통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고 앞으로 나섰다. 그때 앞장 선 한 명의 오순 가량의 문사차림의 인물이 가라앉은 기품있는 음성으 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황제폐하께 전하시오. 중원무림을 대표하여 일곱명의 장문인들 이 면담을 요구하러 왔다고...." x x x 동창 대영반 탁청비. 그는 전임의 대영반 위원화가 문책으로 숙청된 이후 새로이 영반 으로 부임한 인물이었다. 그도 역시 환관출신으로 주원장의 신임 을 받는 인물이었다. 그는 수하들의 부고를 받고 대경실색하고 있었다. "뭐... 뭐라고! 일곱명의 중원무림 장문인들이 폐하께 면담을 요 청....?" 그는 하마터면 들고 있던 섭선을 떨어뜨릴 뻔했다. 그의 등골을 한순간에 스치는 것은 찬바람이었다. 불길한 예감이었다. 어쩌면 어렵게 잡은 권력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방정맞게 지나가고 있었다. 사태는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니었다. "저... 어떻게 처리할까요?" 탁청비는 버럭 소리 지르고 있었다. "어떻게 하기는 뭘 어떻게 해! 당장 체포해!" 전갈을 기다리던 종남 장문인 연청우를 비롯한 7인의 장문인들은 초조한 기분이었다. 그들은 소림사의 혈전 이후 많은 것을 생각 해야 했다. 무림은 그 잠재력이 엄청나다. 그들이 소림사에서 황 궁의 인물들에게 당한 것은 미리 대비가 없었기 때문이지 무림의 능력이 모자라서가 아니었다. 만일 그들이 마음만 먹는다면 장차 전무림의 힘을 모아 황궁과 일전을 결할 능력이 충분했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어렵게 얻은 중토의 수복 이다. 만일 그로 인하여 호시탐탐 재기를 노리는 원에게 기회를 준다면 그것은 한족으로써의 씻을 수 없는 죄를 범하는 것이 아 닌가? 장문인들은 합의를 보았다. 그것은 마지막으로 주원장을 만나 담판을 짓자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이렇게 황궁으로 달려온 것이다. 헌데.... 그들은 안색이 굳어지고 있었다. 궁안으로부터 달려나 오는 금의위의 군사들... 그들은 대뜸 자신들을 포위하는 것이 아닌가? "황명이시다! 그대들은 포박을 받으라!" 장무인들의 시선이 교차되고 있었다. 연청우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었다. .......뚫고 갑시다! 장문인들의 눈에서 그런 의지를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7인의 장문인들은 금의위를 향해 신형을 날렸다. x x x 탁청비는 계속 되는 보고를 받고는 얼이 다 빠질 지경이었다. ----- 그들이 궁문을 뚫고 궁성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 그 자들이 금의위를 물리치고 내성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 그 자들을 막을 수 없습니다! 워낙 신비한 능력을 가진 자들이기에.....! 탁청비는 아찔한 기분이었다. 자신의 직책이 무엇인가? 황제를 보필하여 황제의 권위를 수호하고 더욱이 황제의 신변에 이상유 무를 언제나 진단, 사전에 방비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헌데... 그가 동창의 영반에 오른지 겨우 한달. 그 한 달만에 이런 엄청 난 일이 벌어지다니... 그는 쥐어짜는 듯한 음성으로 명을 내리 고 있었다. "가라! 어영특위대 전원과 자삼위대, 황궁대내위사 전원을 출동 시켜라! 어떤 일이 있어도 놈들을 내전으로 오게 해서는 안된 다!" 같은 시각. 주원장은 밖으로부터 들리는 요란한 호통과 비명, 그리고 금속음 을 들었다. 그는 상념에 잠겨 있다가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일이냐?" 곧 보고가 들어왔다. "예, 중원무림의 7대장문인들이란 자들이 궁안으로 들어와 소란 을 부리고 있습니다." "......." 주원장은 놀랐다. 비록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았으나 그는 가슴이 섬뜩함을 금치못했다. 그는 내심 이렇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으음. 역시 무림은 가볍게 볼 상대가 아니구나. 역시... 나의 판단이 옳았다. 이번 기회에 아예 뿌리를 뽑아야 한다. 그것이 대명을 천년 반석 위에 올려 놓는 길이야.' 그는 곧 차가운 음성으로 명했다. "가서 동창영반을 오라고 하라." "죄... 죄송합니다. 폐하..." 탁청비는 벌벌 떨고 있었다. 그는 머리를 바닥에 부딪치고 있었 다. 자신의 소임을 다하지 못하는 자는 가차없이 숙청하거나 목 을 베어 버리는 주원장의 성격을 잘 아는 탁청비였다. 그는 구파 일방의 7인 장문인의 난입을 막지 못한 자신의 목숨도 위태롭다 는 것을 느끼고 이렇게 떠는 것이었다. 주원장은 눈살을 찌푸렸 다. "어쩔 셈이냐?" "신... 곧 수습하겠습니다." "자신은 있느냐?" 탁청비는 비장한 어조로 말했다. "신... 목숨을 걸고 그자들을 저지하겠습니다." "알았다. 그럼 알아서 해라." 주원장은 알고 있었다. 수하들을 다루는 법. 그것은 황제로서 자 질구레한 명은 내리지 않는 것이다. 수하들로 하여금 모든 이을 스스로 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도리어 명을 백번 내리는 것 보다 더한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전을 물러 나오는 탁청비의 눈에서는 비장한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x x x 궁문을 지키는 금의위대는 실로 조마조마한 마음이었다. 그들은 얼마전 7인의 장문인의 궁성 진입을 막지 못한 것이다. 이제... 얼마 후면 문책이 떨어질 것이다. 그들의 가슴 속에 공포심이 바 짝바짝 타오르고 있었다. 석양은 완전히 떨어지고 있었다. 다만 서녁 하늘에 짙은 피구름만이 낮게 떠있을 뿐이었다. 헌데... 전 면을 바라보던 병사 한 명이 문득 부르짖었다. "저... 저기...!" 금의위의 병사들은 가슴이 덜컥했다. 그리고 앞을 바라본다. 과 연... 누군가 궁문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자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허나 분명한 것은 그가 이곳을 향해 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병사들의 가슴은 쿵 소리를 내며 땅에 떨 어지고 있었다. '맙소사! 또... 또야?' 12장 無淚의 終 "........!" 7인의 장문인들. 그들은 절망을 맛보고 있었다. 물론 처음 이곳 으로 오고자 합의를 보았을 때 이미 각오는 하고 있었다. 대명제 국의 황제가 기거하는 곳을 그렇게 쉽사리 들어갈 수 없다는 것 쯤은. 그러나... 설마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 그들은 궁문을 들 어선 이후 지금까지 겨우 세 개의 대전을 지났을 뿐이었다. 그러 나 갈수록 저지의 벽은 두텁게만 느껴지고 있었다. 사방 어디를 둘러보아도 그들은 철저히 포위되어 있었다. 마치 거대한 철통 속에 갇힌듯한 기분이었다. 맞은 편 지붕위에도, 담장 위에도, 멀리 솟아오른 전각에도, 그리고 지금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혈 포를 입은 사나이들에 이르기까지! 장문인들은 목숨을 버릴 각오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애초에 뜻 한 바를 이루지도 못하고 죽을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종남 장 문인 연청우는 앞을 가로막고 있는 혈포인들을 바라보았다. 그들 은 어딘가 이제까지의 병사들과는 달라보이는 인물들이었다. 그 들의 눈에는 일종의 광기에 가까운 빛이 일렁이고 있었던 것이었 다. 그들이 입고 있는 것은 핏빛의 전포였다. 허나 자세히 보면 그것은 도검이 뚫지 못하는 특수한 철사의라는 것을 알 수 있었 다. 혈포인들은 기다란 창을 앞지르고 있었다. 그 뒤엔 도를 쥔 자들,륜을 든 자들,곤을 든 자들이 겹겹이 벽을 이루고 있었다. 연청우는 눈짓했다. 말을 할 필요는 없었다. 장문인들의 시선에 서 오가는 것은 똑같은 뜻이었던 것이다. '설사 이곳에서 뼈를 묻을 지라도 무림인의 의기를 보여주어야 하오! 우리의 뜻을 알게하는 것은 우리들이 얼마나 끝까지 버티 면서 꿋꿋한 모습을 보여주느냐에 달려있소.' 그러나... 이런 말없는 대화를 주고받는 그들의 눈 속에서는 황 제의 얼굴조차 보지 못하고 멈추어야 하는 자신들의 무능함에 대 한 한탄이 어리고 있었다. "쳐라!" 어디선가 명령이 떨어졌다. 그리고... 광기어린 눈을 번뜩이는 혈포인들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x x x "머... 멈추시오!" 궁문을 지키던 위사는 더이상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는 거짓말처 럼 의식을 잃은 것이다. 사나이는 그를 향해 다만 가볍게 손을 뻗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위사는 온 몸이 붕 뜨는 듯한 기분과 함께 날아가 버린 것이다. 사나이는 규칙적인 걸음걸이로 궁문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막아라!" 위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또 한 명의 침입자... 도대체 황궁으로 들어오려고 하는 작자들이 몇이나 된단 말인가? 사나이는 위사들 이 앞을 가로막는 것을 보지 못한듯 계속 황제가 기거하는 대전 을 향해 걸아가고 있었다. "죽어라!" "감히 이곳이 어디라고..." 슈슉! 쐐애액! 위사들의 창이 그를 찔렀다. 위사들의 화살이 그에게 퍼부어졌 다. 허나 사나이는 가볍게 손을 저었다. 그 순간 그를 향해 쇄도 하던 창은 부러졌고, 화살은 퉁겨져 나갔다. "저... 저럴 수가...!" "으으... 저 자는 사람도 아니다!" 위사들은 대경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끝까지 사나이는 걸음을 멈 춤이 없이 대전을 향해 걸어갈 뿐이었따. 그는 낙성혼이었다. 그 는 황제를 만나기 위해 온 것이었다. 애당초 그는 황제를 만날 예정이었으나 도중에서 소림사로 방향을 바꾸었었다. 그러나 또 다시 황제가 사는 곳으로 온 것이다. 그의 눈에는 강한 집념의 불꽃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그것은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겠다 는 신념의 상징이었다. ........ "영반님! 크... 큰일났습니다!" "또... 무엇이냐?" 탁청비는 발칵 짜증을 냈다. 그는 한 채의 전각에서 7인의 장문 인들과 특별위사대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는 중이었다. "또.... 또... 입니다!" "또... 또라니?" 사색이 되어 달려와 부복한 자는 금의위의 소대장이었다. "누군가 다짜고짜로 폐하가 계시는 어전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뭣... 뭣이아고? 그래 가만히 두었단 말이냐?" 탁청비는 아찔한 기분이었다. 세상에... 그 자는 또 어떤 도깨비 란 말인가? "막... 막고는 있으나 워낙 신비한 무공을 쓰는 자라... 그만 벌 써... 일곱 개의 대전을 넘었습니다." "헉! 그럴 수가....! 가자!" 7인의 장문인은 문제가 아니었다. 그들은 고작 세 번째의 대전에 서 멈추고 있었다. 그런데 또 다른 도깨비같은 작자는 벌써 일곱 개의 대전을 넘었다는 것이 아닌가? 황제가 기거하는 어전까지는 아홉 개의 대전을 지나야 한다. 이대로라면 큰 일이 벌어지고 말 것이다. 탁청비는 등줄기가 후끈 달아 달려가기 시작했다. ........ 낙성혼의 앞에는 수많은 위사들이 가로막고 있었다. "........!" 그러나 그의 발걸음은 조금도 멈추어지지 않고 있었다. 그는 전 면에 겹겹이 저지선을 치고 있는 위사들이 보이지 않는 듯 태연 스럽게 처음의 걸음걸이 그대로 걸어가고 있었다. 쉬쉬! 쐐애애액! 창과 검이 수없이 날아든다. 그러나 그는 그때마다 손을 가볍게 젓기만 했다. 그러나 그의 간단한 동작이 반복될 때마다 눈부신 기류가 뿜어져 나왔다. 때로는 광채의 덩어리가 폭사하여 수십 자루의 무기를 가루로 만들었고.... 때로는 연화모양의 수강이 송이송이 펼쳐져 위사들은 그 현란함에 아찔하다가 우수수 쓰러 졌다. 그러나 낙성혼은 결정적인 살수만은 뻗지 않았다. 그는 길을 여는 데만 주력할 뿐이었다. 한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단단 하기 그지없는 청석 바닥에는 그의 족인이 찍히고 있었다. 위이이이잉....! 우우우웅! 낙성혼의 손에서 펼쳐지는 불문의 선공은 갈수록 신비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의 손이 뻗을 때마다 손끝에서 유백색의 기 류가 마치 신룡처럼 움직이며 위사들을 쓰러뜨리고 있었다. 결 국... 위사들은 낙성혼이 한 걸음을 나갈 때마다 그 보폭만큼씩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무... 무엇을 하느냐? 어서 그 자를 막아라!" 방금 막 도착한 탁청비는 고래고래 악을 쓰고 있었다. 허나 어찌 하랴. 그의 고함은 별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을. 사실 이이 상 위사들이 어떤 공세를 취해야 한단 말인가? x x x 대명천자. 천하의 주인은 태사의에 앉아 깜빡 잠이 들었다. 그러 나 그의 잠을 일깨운 소리가 있었다. 그것은 함성이었다. 와아아... 막아라.... 죽여... 그는 문득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원을 몰아 내기 위한 전쟁을 치룰 때 중원전역에서 참전했던 환영이 나타나 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는 이런 소리가 들릴 리가 없 었다. 이곳은 그가 굳건한 기반을 다진 대명황실의 중심부가 아 닌가? 헌데.... 그는 잠이 완전히 깨고 말았다. 도무지 시끄러운 소리가 바로 지척까지 쇄도했기 때문이었다. '설마...' 그는 안색이 미미하게 변하고 있었다. 주원장은 청력을 기울렸 다. 요란한 쇳소리와 함성은 아주 가까운 곳에서 들려오고 있었 다. 그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아니... 대체 어떻게 했길래 그들 일곱 명을 못 막아서 이곳까 지 오게 했단 말인가?' 주원장의 눈썹이 분노로 인해 위로 솟구쳤다. 그는 대전의 문을 열었다. 순간, 그는 자신의 눈을 의심해야만 했다. "아... 아니...!" 보라. 황제가 집뭏는 어전의 앞 광장. 그 광장에는 수많은 군사 들이 무장한 채 전투를 벌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헌데... 그보 다도 더욱 놀라운 사실은 군사들을 상대로 싸우는 상대가 단 일 인이라는 사실이었다. 아니... 아니었다. 자세히 보니 그의 군사들은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소리만 지르고 허장성세를 보일 뿐이었다. 정작 철저히 뒤로 밀리고 있는 것은 수백 명에 달하는 대명의 정예부 대인 자신의 수하들이 아닌가? 단 한명... 믿을 수 없게도 단 한 명에의해 군사들은 밀려나고 있는 것이었다. 사나이. 그는 마치 아무도 없는 평지를 걷는듯 한발 한발 걸어오고 있었다. "........!" 주원장은 난생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꼈다. 사나이는 일신에 백의 를 입고 있었다. 허나 그것은 온통 선혈로 물들어 있어 이미 백 의가 아닌 혈의로 화해 있었다. 사나이는 한발한반 약간 비틀거 리는 걸음으로 군사들 사이로 걸어오고 있다. 주원장은 비로소 그를 알아 볼 수 있었다. '아... 아니... 저 자는...?' 그 순간이었다. 황제의 입에서 일갈이 터져나오고 있었다. "멈추어라!" 김인 (embzia ) 루(淚)... 下卷 12장,하 (대단원) 01/31 19:58 325 line ============================================================ 淚 ============================================================ 저자: 검궁인 타자: 김 준 下卷 12章之下 無淚의 終 "......." 사나이는 황제에게서 불과 오장여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서있 다. 그의 주위에는 위사들이 어쩔 줄 모르고 서성이고 있었다. 허나 일단 대명의 천자, 황제의 명이 떨어진 이상 그들은 달리 행동하지 못하고 그저 초조한 표정으로 주변을 포위할 뿐이었다. 황제의 눈.... 사나이의 눈.... 각기 다른 두 쌍의 눈동자가 부딪치고 있었다. 순간 사나이의 눈 속에는 어떤 노인의 모습이 떠오르고 있었다. 그는 양자강변의 나룻터에서 혁련노숙이 한 말을 떠올리고 있었다. .....바다를 보고 다시 강을 대하였더니 그토록 넓고 두려워 보 이던 강이 오히려 왜소해 보이더군. 허허허... 황제의 심정은 착잡한 것이었다. 그는 사나이를 알고 있었다. 그 러기에 더욱더 심정이 착잡한 것이었다. 예전에 목숨으로써 자신 을 따르고 충성하던 수하가 지금 자신을 향해 검을 든 것이다. 그는 내심 부르짖고 있었다. '아아... 그토록 짐이 잘못했단 말인가?' 그는 자신에게 그런 의문을 던지고 있었다. 허나, 주원장은 자신 의 이런 회의의 마음에 놀랐다. 그는 결코 그래서는 아니되는 사 람인 것이다. 그는 상대를 향하여 물었다. "성혼. 짐을 해하려 왔는가?" 그렇다. 사나이, 낙성혼은 과거 주원장의 수하였다. 그것도 주원 장이 가장 믿고 신뢰하던 수하였다. 낙성혼은 그 말에 한쪽 무릎 을 꿇고 대답하고 있었다. "미천한 백성이 어찌 감히 폐하를 해아려 들겠습니까?" "그렇다면?" 언뜻 주원장의 미간에는 한가닥 안도의 기운이 스치고 있었다. 낙성혼은 처음이나 변함없는 음성으로 말했다. "다만 목숨을 걸고 간언을 드리러 왔을 뿐입니다." "으음... 간언이라..." 주원장은 잠시 낙성혼을 지그시 응시했다. 이어 그는 고개를 끄 덕였다. "좋다. 일단 안으로 들라." 이때였다. "아니되옵니다. 폐하....!" 화급하게 만류하며 나서는 자가 있었다. 그는 바로 동창의 영반 인 탁청비였다. 허나 황제 주원장은 무심한 눈길을 슬쩍 던지며 말했다. "네가 나를 보호했느냐?" 그 말에 탁청비는 부르르 떨더니 머리를 땅에 박았다. "폐하..." 허나 주원장은 거들떠 보지도 않고 낙성혼에게 말했다. "들라." ........... 주원장은 태사의에 앉았다. 그는 다시 황제의 자리에 앉은 것이 다. 그 자리는 천하에서 오직 한 사람만이 앉을 수 있었다. 주원 장은 똑 바로 사나이를 바라보며 물었다. "너는 아직도 짐의 백성이냐?" 사나이, 낙성혼은 무릎 꿇고 대답했다. "예, 천년 만년이 지나도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흐음... 그렇다면 말해보라. 짐에게 무슨 간언을 하러 왔는가?" 낙성혼은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에는 한가닥 정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는 간단히 말했다. "폐하...! 친구를 버리지 마시옵소서!" 그 말에 주원장은 침묵했다. "그것 뿐이냐?" "그렇습니다." 주원장은 몸을 일으켰다. 그는 맞은편 벽쪽으로 걸아갔다. 벽에 는 휘장이 처져 있었다. 주원장은 휘장을 저히는 줄을 잡아 당겼 다. 쫘아아악! 경쾌한 소리와 함께 휘장이 걷혔다. 벽. 그곳에는 거대한 중원전 도가 그려져 있었다. 주원장은 손으로 중원전도를 쓰다듬으며 무 겁게 입을 열었다. "여기를 보아라. 이것이 중원이다. 평생을 돌아 보아도 끝내 다 볼 수 없는 광활한 대지, 이것이 바로 짐의 나라인 대명제국인 것이다." "......" "땅이 넓으면 사람이 많고, 사람이 많으면 그만큼 군림을 원하는 자 또한 많은 법이다." 주원장은 잠시 말을 중단했다가 낙성혼을 바라보았다. 왠지 낙성 혼은 황제의 눈빛이 몹시 쓸쓸해 보인다고 느꼈다. "대명이 세워진지 아직 십년도 되지 않았다. 나라의 기반은 약하 다. 이제 시작에 불과한 것... 이럴 때 또다시 전란이 일어난다 면 희생되는 것은 백성이고 우리의 강토는 다시 피에 젖는다." "......" 주원장의 말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래서 짐은 강해져야 했다. 튼튼한 나라가 세워져야 백성이 편 한 법, 짐이 대명의 천년 기반을 닦아 놓아야 백성도 평화로울 수 있는 것이다." 주원장은 낙성혼을 바라보며 묻는다. "이제 짐의 뜻을 알겠는냐?" 낙성혼은 그 말에 고개를 들어 황제를 바라본다. 그의 입에서 한 마디가 흘러 나오고 있었다. "폐하, 지금도 폐하께서는 강하십니다." 그 말에 주원장은 순간적으로 비틀거렸다. "내가 강하다..." "그렇습니다. 더이상 강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십니다. 그리고 폐하를 바라보는 자들은 폐하의 강함을 모두 인정하고 있습니다. 헌데... 폐하께서는 자신을 약하다 생각하시고 남또한 강하다 생 각하시니 신이 보기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낙성혼의 말은 그가 이제까지 한 것 중에서 가장 길었다. 아마 도... 향후로도 황제의 앞에서 이렇게 긴 말을 할 사람은 영원히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주원장은 한동안 침묵했다. 그의 안색 이 수시로 여러차례 변하고 있었다. 좀체로 황제의 표정이 변하 는 것을 본 사람은 없다. 그러나 지금은 그의 안색이 아주 많이 변하고 있었다. 이윽고, 주원장은 힘없이 말하고 있었다. "알았다. 그만 물러가라." 낙성혼은 눈빛을 빛냈다. 그는 지금 이순간의 황제야말로 더욱 외롭고 고독해 보인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이제껏 본 적이 없는 황제의 모습이었다. 낙성혼은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그럼... 옥체보중하시길..." 그는 더이상 말하지 않았다. 아니, 말을 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 다.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은 오직 한 사람. 천하의 주인인 황제 의 생각과 말에 달려 있는 것이었다. 그는 잔잔한 걸음으로 문을 향해 걸었다. 이때였다. 그가 막 문을 밀려할 때 뒤에서 황제의 물음이 들렸다. "성혼! 다시 짐에게 돌아오겠는가?" ".......!" 낙성혼은 부르르 떨었다. 과거... 이 말을 얼마나 고대하고 고대 해 왔던가? 삶과 죽음의 교차로에 서서... 그가 기다리고 또 기 다렸던 것은 바로 이와 같은 황제의 말 한마디였다. 그러나 지금 은... 그는 여전히 등을 돌린 채 말했다. "신은 폐하의 백성, 언제든 폐하께서 신을 반드시 필요로 하실 때에는 신은 이미 폐하의 곁에 있을 것입니다." 낙성혼은 말을 마치고 밖으로 나갔다. 주원장은 눈을 뜨고 사라 져 가는 낙성혼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문이 닫치는 순간 그 는 태사의에 털썩 주저 앉으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나라는 얻었으되 사람을 잃었구나..." x x x 7인의 장문인들은 갑자기 혈포인들의 공세가 멈추는 것을 보고 어리둥절했다. 혈포인들은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는 죽음의 전사 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몸을 방패삼아 장문인들에게 덤벼들 었다. 아무리 죽이고 죽여도 장문인들은 그들의 인의 장벽을 넘 을 수 없었다. 헌데, "멈추어라....!" 갑자기 울려온 그 우렁찬 한 마디에 혈포인들이 일제히 물러난 것이었다. "......?" 연청우를 비롯한 7인 장문인들은 의아한 시선으로 소리가 들린 곳을 바라보았다. 혈포인들의 물결처럼 가라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로 붉은 관복을 입은 검은 수염의 고관이 무엇인가를 받 쳐들고 걸어오고 있었다. 그가 두 손을 받쳐든 것은 황금쟁반 위 에 놓여 있는 금박의 두루마기였다. "황명이다....!" 관인의 입에서 그런 말이 떨어진 순간, 일제히 사방을 포위하고 있던 병사들은 땅에 엎드렸다. ".......!" 장문인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연청우를 비롯한 7인은 어리 둥절하여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판국에 황명이라 니....? 헌데 그들은 잠시 후 관이 읽어내려가는 황제의 칙령을 들으며 자신들의 귀를 의심해야만 했다. 그것은 너무도 파격적 인...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던 것이다. ........황명을 내리노라. 오늘 이후로 무림과 관부와는 별개의 세계로 분리하노라. 따라서 이제까지의 모든 은원은 오늘부로 종 식하고... 이후로는 관과 무림은 상호불간섭의 원칙을 선포하노 라.... "오오....! 이것이 사실이오?" "아... 결국... 황제가 깨달음이 있었나 보오!" 장문인들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며 희색이 만면해 있었다. 바로 이것이었다. 이것을 위해 그들이 문파로 돌아가지 않고 목숨을 걸고 황성으로 오지 않았던가? 헌데 결국 그들이 원하는 바가 이 루어진 것이다. 이때 갑자기 누군가가 외쳤다. "갑시다! 우리의 뜻이 이루어진 이상 이곳에 더이상 머물러 있을 필요가 없지 않소?" "아미타불... 옳은 말씀이오. 어서 돌아갑시다." 장문인들은 한시라도 빨리 황궁을 벗어나고 있었다. 그들은 고개 를 끄덕이며 돌아섰다. 종남 장문인 연청우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럽시다. 여러분." 그들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오던 길을 다시 걸어나오기 시작했다. 헌데, 이들이 한 넓은 광장으로 나왔을 때였다. "저... 저자를 보시오." 문득 연청우가 소리쳤다. "......!" "......!" 그들은 볼 수 있었다. 한 명의 전신이 피로 목욕을 한듯한 사나 이가 광장을 유유히 가로질러 나오는 것을! 그는 바로 낙성혼이 었다. 광장에는 천명을 훨씬 넘는 수많은 위사들이 둘러싸고 있 었다. 허나 위사들은 감히 그의 길을 막지 못했다. 낙성혼이 그 들의 한 가운데로 걸어가자 위사들의 인의 벽은 마치 썰물이 갈 라지듯 트여지고 있었다. 그와 같은 광경은 실로 너무나 인상적인 것이었다. 한 명의 사나 이가 천 명이 넘는, 그것도 황궁의 위사들 사이로 난 길을 유유 히 걸어나가고 있는 장면은 영원히 장문인들의 뇌리에서 잊혀질 것 같지 않았다. 문득 연청우는 중얼거렸다. "이제 알았소.... 왜 황제의 마음이 변했는지를 말이오...." 장문인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도 연청우와 거의 같은 순간에 그런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사나이, 낙성혼은 군사들 이 만든 길을 빠져나가 황성의 문밖으로 사라져 가고 있었다. 하 나의 신화를 남긴 채... 그가 궁문을 빠져 나간후 7인의 장문인 들도 황궁을 무사히 빠져 나올 수 있었다. 모든 것은 한 순간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x x x ".........!" 새벽여명이 밝아오는 만병보를 바라보는 사나이가 있었다. 그의 눈에는 마치 수십년 만에 다시 찾아온 고향을 보는듯한 따뜻한 안도감이 어리고 있었다. 사나이는 아직 열리지 않은 만병보의 보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러나 그는 생각을 바꾼다. 곤히 잠들어 있는 보중의 사람들을 깨우기가 싫었던 것이다. 사나이는 가볍게 신형을 날려 만병보의 담장을 뛰어넘고 있었다. 사나이의 신법은 안개와 같았다. 아닌게 아니라 만병보에는 자욱한 안개가 깔려 있었다. 사나이는 안개 속을 걸어 하나의 아름다운 별각으로 향했다. 별 각의 창은 월창이다. 월창은 열려 있었고, 그 안에는 두 명의 아 름다운 여인들이 마주보고 앉아 정담을 나누고 있는 광경이 사나 이의 눈에 비쳐졌다. 사나이는 잠시 흠칫하더니 입가에 미소를 띄웠다. 그리고 다시 안개 속을 걸어 보의 구석진 곳으로 가고 있었다. 사나이가 들어선 곳은 한 채의 움막과 같은 집이었는데 그 안에는 농기구를 제작하는 철기물이 널려있었다. 사나이는 정 감어린 눈빛으로 농방안을 한차례 둘러보더니 망치를 들었다. 땅...땅... 땅... 문득 새벽 안개 사이로 쇠망치 두드리는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 다. 별각의 방 안에 마주 앉아 정담을 나누고 있던 두명의 아름 다운 미인들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더니 방긋 웃고 있었다. 누 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녀들은 손을 마주 잡고 일어서고 있었다. "그분이 오셨어요!" 자주빛 능라의를 입은 여인의 이름은 사마자연. 연보랏빛 교의를 입은 여인의 이름은 당수린이라던가? 두 여인의 공통점은 세가지나 된다. 하나는 아름답기가 천하일색 이라는 것이요, 둘은 동시에 한 사나이를 사랑한다는 것이요, 셋 은 그러면서도 서로 질투를 하지 않을 정도로 고운 마음씨를 가 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언니, 어서 가요." "호호호... 그래 하지만 가지 전에 음식을 마련해야돼. 그분은 먼길을 오셨으니 시장하실거야." 두 여인은 안개가 서서히 걷혀가는 만병보의 화원을 나란히 손을 잡고 가로질러갔다. 그 순간에도 계속 들려오는 쇠망치 소리는 여인들의 가스을 한껏 달콤한 기분으로 들뜨게 하고 있었다. 땅....땅....땅....땅.... < 大尾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