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 小說 淸香妃 수십 년 동안 중국 문단의 기인(奇 人)이자 거장으로 각광받아 온 김용(金 庸)은 스케일이 웅대하고 기개가 힘찬 작품들을 발표, 신필(神筆)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평을 받고 있다. 청향비는 한실을 재건하기 위해 활약하는 영웅들의 이야기가 위구르족 여인들과의 사랑과 어우러져 재미있게 그려지고 있다. 작품 해설 의(義)와 사랑의 테마 -소설 청향비- 신필(神筆)의 경지와 소설 청향비 成 宜 濟(檀國大 中文科 敎授) Ⅰ 원저자 김용(金庸)은 원명이 사량용(査良鏞)으로 중국 절강성(浙江省) 해령(海寧) 사람으로 1924년에 태어났다. 상해(上海) 동오 법과대학에서 국제법을 전공하였으며 현재 홍콩에서 발행되고 있는 일간, 주간, 월간 명보(明報)의 주필이며 사장이다. 그는 역사학자요, 수집가요, 논설가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소설가로서의 명성이 더 높다는 점이다. 수십 년 동안 그는 중국 문단의 기인(寄人)으로 각광을 받아 왔다. 해박한 지식과 풍부한 학문 연구로 중국 통사에 정통할 뿐만 아니라, 방대한 유가(儒家)의 군경(群經)에 통달하고 노자(老子)와 장자(莊子)의 철학은 물론 불경(佛經)에까지 심취하여 자신의 학문의 영역을 넓히고 깊게 했다. 김용은 이와 같은 해박한 학식을 바탕으로 해서, 독특하면서도 흡인력이 강한 문장과 소설의 체계에 대한 깊은 연구 및 비할 수 없이 풍부한 상상력으로 그의 작품을 써 나갔다. 그의 작품에 심취한 독자, 그래서 그를 신앙의 대상처럼 존경하는 독자가 천만 명이 넘는다는 사계(斯界)의 통계인데, 이는 저자가 독자로부터 받은 편지의 통수만도 그렇다는 것이다. 김용의 작품에 매료된 사람은 홍콩을 비롯한 동남아, 대만은 물론 중국 대륙, 심지어는 구미까지 널리 그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어서 중국인이 있는 곳에 김용의 작품이 있고 중국인이 모인 곳의 화제는 김용의 작품에 대한 것이라는 말까지 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읽은 사람들의 화제가 일단 그의 작품에 미치면 그들은 금방 가장 가까운 친구 사이가 된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김용의 이야기만 나오면 신바람이 난다고 한다. 입에 거품을 무는 사람도 있고 우울했던 표정이 활짝 밝아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손발을 휘저으며 흥분하는 사람도 있다. 심지어는 학교의 수업에 빠지거나, 잠을 자지 않으며, 여자 친구와의 약속을 어길 수는 있지만 김용의 소설을 읽지 않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김용의 소설은 어째서 이렇게 사람을 매료시킬 수 있는가? 첫째,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나름대로의 개성이 있다. 문학 작품에서 묘사되는 것은 보편적인 인성(人性)이다. 김용은 이 인성에 대한 이해가 깊다. 그의 붓 끝에서 창조되는 수많은 사람들은 모두 살아 움직이고 있다. 중국 문학을 하는 모든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수호전(水滸傳>)의 인물 묘사가 가장 성공적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수호전에 등장하는 인물과 김용의 작품 가운데 나오는 인물을 비교한다면 후자가 더 나은 편이다. 현실 생활 가운데 억압되고 노출되지 않은 인성을 김용은 소설 가운데서 생생하고 치밀하게 묘사함으로써 독자를 통쾌하게 만드는 비상한 재주를 가지고 있다. 둘째, 정절(情節)이 다채롭다. 김용의 작품은 스케일이 크고 기세가 힘차며 세련되고 원숙하다. 구조·순서·배치·전절(轉折)등이 큰 강에 바람이 일지 않는데도 물결이 출렁이듯 하고, 파란 하늘에 무심한 흰 구름이 생겼다가는 어느덧 사라지듯 신출귀몰하여 다른 사람이 미칠 바가 아니다. 셋째, 문장이 아름답다. 김용의 문필은 사람을 끌어 잡아당기는 자력이 풍부하다. 부드럽고 우아한 가운데 행운 유수와 같은 재미가 넘쳐흐른다. 한번 그의 작품을 손에 잡기만 하면 놓을 줄을 모른다. 요컨대 김용의 소설은 서사나 사경(寫景)은 물론 인물의 묘사에도 정감이 넘쳐 표현할 수 없는 마력으로 독자를 작품 속의 분위기로 끌어들여 몰아의 경지에 이르게 한다. 그가 쓴 작품의 재미는 영원히 무궁 무진할 뿐만 아니라. 영원 불멸의 문화적 가치를 구비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중국 문학사상 찬란한 한 페이지를 장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중국 소설사의 금자탑인 홍루몽(紅樓夢)을 연구하는 학문을 홍학(紅學)이라 하듯이, 김용의 작품을 연구하는 것을 김학(金學)이라고까지 부르게끔 만들었다. 지금 대만에서 발간 되 김학 연구 총서만도 18권에 이르고 있다. 김용의 작품은 모두 14부(部) 36권으로 되어 있다. 이 14부의 소설(그 중 단편 소설이 2편 있다)은 각 부마다 나름대로의 품격과 특색을 가지고 있다. 권륜 황제와 청향비 (소설 영웅문-에 이어 이번에 번역 소개되는 (소설 청향비(小說 情香妃)는 원명이 서검은구록이라고도 한다. (소설 청향비)를 읽은 독자들은 늘 한 가지 의문에 사로잡힌다. 고종인 권륜 황제는 도대체 한인이냐 아니면 만주족이냐 하는 문제이다. 문제의 해답은 부정적이다. 1937년 역사학자인 맹삼(孟象)은 이에 대한 장문의 고증을 발표하고 권륜이 한인이란 사실은 믿기 어렵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소일산 씨도 청대통사를 쓰면서 이른바 (권륜이 해령 진씨 가문의 후예)라는 학설을 포기한다고 했다. 그러므로 전설은 믿을 수 없는 것이요, 사실과 부합되지 않는 것이라 치고, 소설은 또한 소설로 간주해야 하는 것이다. (소설 청향비)의 전반부에서는 권륜이 한인이란 사실을 전제로 전개되고 있다. 이야기의 줄거리 외에도 만청 정부가 위구르 족을 정복하기 위한 전쟁이나, 위구르 족의 추장인 목탁륜의 두 딸이 진가락을 사랑하는 이야기 및 향향 공주의 자결 등은 독자의 흥미를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또 청사(情史)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소설 청향비)와 비교해 가며 읽는다면 더욱 재미있을 것이다. 권륜이 해령 진씨 가문의 후예라는 설은 청나라 중엽 이전에 퍼져 모르는 사람이 없다. 일반 야사가들이나 연의 소설 작가들은 이에 관한 의견이 지금도 분분하다. 전문적으로 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그 설을 믿으려 하지 않으면서도 다소 의심을 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로 남아 있다. 많은 독자들은 (소설 청향비)에 나오는 향향 공주가 바로 청의 궁궐에서 권륜의 총애를 받던 향비라고 여기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 작가인 김용 씨는 후기에서 (향향 공주는 전설이나 역사상의 향비가 아니며, 향향 공주는 향비보다 몇 배나 더 아름답다)라고 긍정적으로 말하고 있다. 작자 본인이 아니라니 물론 아닐 것이다. 그러나 (소설 청향비)를 자세히 읽어 나가면 향향 공주에 관한 부분에는 항상 향비의 그림자가 존재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향향 공주와 향비의 문제가 제기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서로 관계가 있느냐 없느냐, 동일 인물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는 흥미 있는 화제로 남지 않을 수 없다. (김용의 소설을 읽는 것은 인생의 커다란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라는 말은 이제 김용 팬들의 공통된 마음의 소리이기도 하다. 일독을 권하는 바이다. 小說 淸香妃 - -작품 해설 스승의 정체 대상(隊商)의 무리들 경전(經典)을 찾아서 빨간 보따리 철담장에 이르는 길 지하에 숨은 사람 편지 오해 두 영웅 대의(大義)를 위하여 부부지정 코란 경 구출 작전 묘연한 행방 끝없는 환난 스승의 정체 청나라 권륜(乾隆) 18년 6월, 섬서 부풍연수진 총병아문의 안마당이다. 14세의 한 소녀가 깡충깡충 글방 선생님의 서재로 뛰어들었다. 오전에 선생은 자치통감(資治通 鑑)에 있는 적벽지전에 대해 설명하면서 거기에 나오는 제갈량과 주유의 고사를 들려 주었다. 오후에는 본래 수업이 없다. 그러나 소녀는 흥미진진한 삼국의 얘기가 더 듣고 싶었다. 이날따라 날씨가 몹시 더워 사방은 쥐 죽은 듯 고요하고 서늘한 바람 한 점 불지 않았다. 서재 문 앞에 도착한 소녀는 혹시 선생이 낮잠에서 깨어나지 않았으면 어쩌나 싶어 함부로 들어갈 수도 없어 망설였다. 살금살금 창 밖으로 돌아나와 머리에 꽃힌 비녀를 뽑아 창호지에 구멍을 뚫고 방 안을 들여다보았다. 선생은 책상다리를 하고 의자에 앉은 채 만면에 미소를 먹음고 있었다. 오른손을 허공을 향해 살짝 들자 퍽 하는 가벼운 소리가 들리는데 무슨 물건인가가 벽에 부딪치는 소리다. 소녀는 소리가 난 쪽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맞은편 벽 위에 수십마리의 파리가 앉은 채 롬짝달싹하지 않았다. 소녀는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며 응시해 보았다. 파리의 등 위에는 머리털처럼 가는 금침이 박혀 있었는데, 금침이 어찌나 가는지 이렇게 먼 거리에서는 식별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밝은 광선이 창호지를 뚫고 들어와 비치는 바람에 금침은 반짝이는 반사 광선을 발하고 있었다. 서재 안의 파리는 여전히 윙윙거리며 날아다녔다. 선생이 손을 들자 퍽 하는 소리와 함쩨 또 한 마리의 파리가 벽에 꽃혔다. 이것을 보고 소녀는 그 어떤 장난보다 재미있다는 생각을 했다. 문 어귀로 돌아와 안으로 성큼 들어섰다. 「선생님, 제게도 좀 가르쳐 주세요.」 이 소녀의 이름은 이원지. 총병 이가수(李可秀)의 외동딸이다. 그가 상서에서 참장으로 있을 때 낳았기 때문에 그 고장의 이름을 그냥 붙여 준 것이다. 글방 선생인 육고지(陸高止)는 학식이 풍부한 선비로서 나이는 54, 5세. 매일 이원지와 더불어 고금동서의 학문을 논하며 재미있게 지내고 있었다. 이날 육고지는 파리의 시달림에 견디다 못해 부용금침으로 수십 마리의 파리를 잡고 있다가 뜻밖에 이원지에게 발견된 것이었다. 그는 이원지의 해맑고 고운 얼굴이 호기심으로 약간 상기된 것을 보면서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아니, 친구들과 놀지 않고 웬일이냐? 제갈량과 주유의 옛 얘기가 더 듣고싶은게로구나. 「선생님, 그게 아니구,재미 있는 그 장난이나 가르쳐 주세요. 「재미있는 장난이라니? 「금침으로 파리를 쏘아 잡는 방법 말이에요.」 이원지는 이런 말을 하면서 의자를 옮겨다 놓고는 그 위에 뛰어 올라가 자세히 들여다본 후 파리의 몸에 박힌 금침을 하나하나 뽑아 깨끗이 닦아 선생님에게 되돌려주었다. 「선생님, 저 이제 알겠어요. 이건 장난이 아니라 대단히 고명한 무공이죠? 제게 가르쳐 주시지 않으면 안 돼요.」 그녀는 때때로 아버지를 따라 연무장(練武場)에 나가 승마도 타고 활도 쏘면서 약간의 무예를 익히고 있었다. 「네가 무공을 배우려 한다면 부풍성 주위 몇백 리 안에서는 당할 사람이 없는 네 아버지께 직접 배워야지.」 「우리 아버지야 활 쏘아 매나 잡을 줄 아시지, 금침을 쏘아 파리를 잡을 줄은 모르세요. 선생님이 믿지 않으시면 제가 아버지께 여쭈어 보겠어요.」 육고지는 잠시 동안 침묵에 잠겼다. 이 제자가 워낙 영리한데다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라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은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두어야만 직성이 풀린다. 그녀는 나이가 들었다 할 수도 없지만 어리다고 볼 수도 없는데, 응석이나 부리고 때를 자주 쓰기 때문에 상대하기가 만만치 않았다. 육고지는 할 수 없이 머리를 끄덕였다. 「좋아, 가르쳐 주지. 내일 아침 일찌감치 내게 오너라. 지금 나가서 놀되 내가 파리를 잡았다는 얘기는 아무에게도 하지 말아야 한다. 만약 누구에게든지 말을 꺼내기만 하면 절대로 가르쳐 주지 않겠다. 알겠니? 이원지는 선생님의 말대로 아무에게도 발설하지 않고 밤새 일만 곰곰이 생각했다. 이튿날 아침 선생의 서재로 와서 방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가 보니 선생은 보이지 않고 다만 책상 위에 문진에 눌려 있는 종이 한 장이 보였다. 급히 들고 읽어 보니 이런 말이 씌어 있었다. 이원지 제자 보아라. 네가 총명한데다 학문을 좋아하나 내게 얻은 것이 별로 없음을 미안하게 여기노라. 네 비록 스승을 하늘처럼 � 섬기려 하나 나는 별로 아는 것이 없어 공연히 3년을 허송세월하면서 이렇다 할 도움을 주지 못해 부끄럽기 짝이 없노라. 우리의 인연은 여기서 끝나나 다시 만날 날이 있을 것으로 믿는다. 일후 안신입명의 길은 오직 마음을 가다듬어 덕을 쌓는 데 있을 것이다. 육고지 이원지는 편지를 읽고 망연하여 말이 나오지 않았다. 눈물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두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선생님이 나를 속이시다니. 이럴 수가 있을까? 바로 이때에 돌연 방문이 열리며 쓰러질 듯 쓰러질 듯 한 사람 이 걸어 들어오는데 바로 편지로 작별을 고했던 육 선생이었다. 얼굴이 창백하며 상반신이 온통 피투성이었다. 안으로 들어와 비틀거렸다 의자에 털석 주저앉았다. 「선생님 ! 이원지가 놀라서 외쳤다. 「문을 닫아 걸고 조용히 해 다오.」 육고지는 겨우 이 말을 마치고는 눈을 감아 버렸다. 이원지는 역시 무관의 딸이라 평소 칼과 창을 휘두르는 데 익숙해 있어, 놀라기는 했지만 그가 시키는 대로 재빨리 문을 닫았다. 육고지가 한숨을 길게 내쉬고 입을 열었다. 「원지야, 네가 나와 더불어 삼 년간 그래도 잘 지냈지? 인연이 다한 줄 알았더니 이렇게 또 만나게 되었구나. 얘야, 이번 일은 내 생명과 관계가 있으니 너는 입을 다물고 비밀을 지킬 수 있겠느냐? 육고지는 이글거리는 두 눈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선생님, 선생님의 분부에 따르겠습니다.」 '아버지께 내가 병이 들어 보름만 쉬겠다고 말씀드려다오.'」 이원지가 고개를 끄덕여 대답하자 육고지가 다시 말문을 열었다. '아버지께 의사를 청해 올 것도 없다고 하렴. 내가 치료할 것이다.' 하며 나가 보라고 했다. 육고지는 이원지가 밖으로 나가기를 기다렸다가 진통을 참아 가면서 금찬약을 꺼내 어깨에 바르고 상처를 싸맸다. 그러니 너무나 탈진한 탓으로 눈앞이 캄캄해지더니 마침내 우악 하고 입으로 피를 토했다. 원래 이 글방 선생 육고지의 본명은 육비청이다. 무당5협으로 장년에는 대강 남북에서 의협심을 발휘해 강호에 큰 명성을 떨쳤으며, 원래는 도룡방의 쟁쟁한 인물이었다. 도룡방은 청정에 반대하던 비밀 결사대로, 연간에 그 기세가 대단했지만 옹정 -권륜 양조에 엄중한 탄압을 받다가 권륜 7, 8년 사이에 마침내 산산조각이 나 뿔뿔이 헤어지게 되었고, 육비청은 멀리 변방으로 피했다. 당시 청에서는 네 차례나 사람을 파견, 그를 체포하려고 했는데 위인이 워낙 꾀가 많은데다가 무공 또한 대단해서 좀처럼 잡을 수가 없었다. 육비청은 재난을 피하기는 했지만 청정에서 계속 그의 행적을 추적하자 이렇게 생각했다. (가장 안전한 곳은 조정이요, 그 다음이 큰 시장이며, 가장 불안한 곳이 시골이나 산중이다.) 그래서 마침내 이가수 부중의 글방 선생이 된 것이다. 청정이」 그를 체포하기 위해 파견한 사람들은 각처의 녹림(綠林)과 사훤 - 표행(應分:總局이라고도 함. 옛날 객상이 위탁한 화물이나 은전을 안전하게 운송해 주고 비용을 받던 기관임) 무장(武場) 등을 샅샅 이 뒤질 뿐 감히 관아에 있는 문질빈빈한 글방 선생이 무공이 탁월한 국사범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날 밤 육비청은 행장이 탄로난 이상 이곳에 더 머물러 있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후 편지만 남겨 놓고 흔적 없이 떠날 준비를 서둘렀다. 보따리라야 간단하기 짝이 없어 입던 옷가지 몇 벌과 한 자루의 백룡검뿐이다. 짐을 챙겨 놓은 채 이경이 되면 다른 곳으로 떠날 예정으로 침대 위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눈을 감은 채 정신을 가다듬고 있을 때 멀리서 순경을 치는 소리가 들렸다. 바로 이때 누군가가 담을 뛰어넘어 안으로 들어서는 소리가 들리자 육비청은 침대 아래로 뛰어내리며 두루마기 자락을 걷어올려 허리춤에 꽃고는 다른 손으로 백룡검을 가볍게 쁩아 들었다. 창 밖에서 누군가가 안을 향해 말을 꺼냈다. '육 영감, 평생 여기 숨어 서당 선생으로 있으면 그래 우리가 당신을 찾지 못할 줄 알았소? 얌전하게 이 나리를 따라 서울로 가서 고생 좀 합시다.」 육비청은 나타난 사람이 보통 인물이 아님을 직감했다. 게다가 한 사람도 아니다. 적이 밖에서 포위하고 있으니 나가지 않을 수도 없는 노룻이다. 창을 통해 나가다가는 즉각 공격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벽호유장공을 펴며 슬그머니 벽을 타고 위로 올라가 천정 밑의 창틀을 잡았다. 창틀을 잡아 우지직 분지름과 동시에 일격을 가해 기왓장이 부서지고 먼지가 이는 틈을 타 지붕 위로 뛰어 올랐다. 아래서 지키고 있던 사람이 (아!)하는 소리와 함께 수전을 발사했다. 「어딜 달아나려구! 육비청이 몸을 옆으로 비켜 피하며, 「나를 따라오시오.」 하고 낮은 소리로 말하고 경공의 제종술을 이용 교외를 향해 달렸다. 고개를 돌려 살펴보니 세 사람의 그림자가 뒤로 자기를 쫓고 있었다. 그는 단숨에 6, 7리를 달렸다. 뒤의 사람도 욕설을 퍼부으며 계속 쫓아왔다. 「여보, 육 영감, 당신도 명성이 있는 인물이라 할 수 있소? 그렇게 뻔뻔스럽게 그냥 달아날 참이오? 육비청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그들 세 사람을 부풍성 서쪽에 있는 산 위로 유인했다. 그가 적을 벽지로 유인한 까닭은 주인 집을 놀라게 하지 않겠다는 의도와 함께, 나타난 사람들을 모조리 끌고 남은 수나 무공의 강약을 미리 탐지해야겠다는 속셈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발걸음을 더 빨리 재촉해 눈 깜짝할 사이에 10여 장이나 달렸다. 쫓아오는 적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그중 한 사람은 대단한 사람이고 나머지 두 사람은 평범한 무리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알았다. 육비청은 산마루턱에 올라서자 백룡검을 칼집에 꽂았다. 세 사람이 쫓아 올라오다가 그가 발걸음을 멈추자 그 자리에 우뚝 서는 것이었다. 한 사람은 앞에 두 사람은 약간 뒤에 위치했다. 육비청은 달빛 아래서 앞에 선 사람을 주시했다. 나이는 50세 전후에 키가 작고 몸집이 말랐으며, 검은 얼굴, 제비 꼬리 같은 수염이 양쪽으로 갈라진 것이 희미하나마 낯익은 얼굴이다. 그의 뒤에 서 있는 사람 가운데 하나는 키가 크고 다른 하나는 뚱뚱보다. 앞장 선 몸집이 마른 사람이 입을 열었다. 「육 영감, 눈 깜짝할 사이에 벌써 18년이 흘렀소 어디 이 초문의 얼굴을 알아보실 수 있겠소. (과연 그자로구나. 육비청은 마음속으로 외쳤다. 원래 초문기는 관동육마 가운데 제3마로 18년 전 예에서 무고함 사람을 함부로 죽이다 육비청에게 걸린 일이 있었는데, 육비청이 말리면서도 그를 죽일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그냥 몇 번 때리고 말았다. 그런데 초문기는 이 치욕을 씻어야겠다고 이를 갈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에 강남에 있는 돈 많은 관료의 청탁을 받고 천산북로에 있는 중요한 인물을 찾아가기 위해 서쪽으로 오는 도중 우연히 육비청의 행방을 알게 되자 산서 성 순무부중에 있는 2명의 고수를 데리고 당지의 관부나 이가수에게도 알리지 않고 직접 찾아온 것이었다. 육비청이 두 손을 마주 잡고 인사를 했다. 「원래 초문기 형이었군요. 10여 년이 넘도록 만나지 못했기에 금방 알아보지 못했소 이 두 분은 누구신지 초 형께서 소개해 주셔야 하겠습니다. 초문기는 코웃음을 치며 뚱뚱보를 가리켰다. 이 사람은 내 아우인데 나신이라 하오. 사람들이 철비나한이라 부르오.」 그런 다음 키 큰 사나이를 가리켰다. 「이분은 양호 호걸인 옥판관 패인룡이오. 친하게 지내시구려. 육 영감, 18년 전 내가 영감에게 맞은 일 잊지않고 계시겠지요? 내 그때는 배운 것이 없어 그냥 맞기만 했기에 그동안 몇 가지 재주를 익혀 다시 나타났소. 유치하다 말고 좀 지도해 주시오. 이것은 어디까지나 사적인 일이고, 또 하나 공적인 일은 조정에서 육 영감을 찾아 해결해야 할 공무가 있다고 해서 우리 세 사람이 찾아온 것이오 함께 갑시다.」 초문기의 차디찬 답변이었다. 육비청은 오늘밤 무력을 쓰지 않고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단정했다. 그러나 위인이 워낙 침착한데다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이라 처사가 몹시 신중했다. 「초 형, 이제 우리 모두 오륙십이 넘은 사람이 아니겠소. 당년 내가 초 형께 득죄를 했으니 여기서 사과를 드리겠소.」 말을 마치자 허리 숙여 공손히 절을 했다. 「뻔뻔한 사람 같으니라고. 패인룡이 코방귀를 뀌면서 욕을 했다. 육비청이 차디찬 눈초리로 그를 쏘아보며, 「나 육비청이 강호에 떠돈 지 수십 년, 그나마 약간의 명성을 얻으며 살아왔소. 평생 무림의 친구들에게 업신여김을 당할 일은 한번도 한 일이 없다고 자부하오.」 다시 고개를 돌려 초문기를 바라다보았다. 「초 형께서 나를 찾으신 것은 사적 -공적인 일이 다 있다고 하셨소. 당년 우리가 젊은 나이라 승부에 집착을 했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우스운 일에 불과하오. 초 형께서 당년의 과실을 탓하신다면 제가 여기서 이미 정중하게 사과를 드렸고, 공사를 가지고 말씀하신다면 이 육비청 그렇게 뻔뻔하게 만청 오랑캐의 앞잡이 노릇을 한 바도 없소. 당신들이 이 늙은이의 뼈를 가지고 부귀영화를 누리고 싶은가 본데, 그건 어림도 없는 수작이오. 잡아가고 싶거든 잡아가구려.」 그는 세 사람의 얼굴을 뚫어질 듯 훑어봤다. 「세 사람이 함께 대들겠소? 아니면 누가 먼저 덤벼 보겠소? 「웬 말이 이렇게 많을까. 뚱뚱보 나신이 소리를 지르며 육비청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육비청은 피할 생각도 하지 않고 있다가 그의 주먹이 가까이 오자 돌연 좌장을 들어 적의 우권에 있는 맥문을 후려쳤다. 나신은 상대방의 반격이 이렇게 날카로우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뒤로 세 발짝 물러섰지만 육비청은 쫓아오지 않았다. 나신은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오행권을 펴며 맹공을 가했다. 초문기와 패인룡은 옆에서 감시하며 각기 다른 속셈을 가지고 있었다. 초문기는 복수를 해야겠다는 일념으로 이 몇 해 동안 철비파에 상당한 심혈을 기울여 그 재주가 왕년과는 크게 달랐다. 그러나 당년 육비청의 무극현공권에 놀라 우선 나신이나 패인룡이 먼저 싸워 상대의 기력이 어느 정도 감퇴된 뒤에 자기가 나서면 필승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패인룡은 이 국사범을 자기가 잡기만 하면 총독이 자기에게 높은 자리 하나쯤 천거해 주지 않겠느냐는 기대를 했다. 나신의 오행권은 계속 공세를 취했다. 금,목,수,화-토 오행이 상생상극하면서 연속되는데 좀처럼 육비청이 맞아 주지를 않는다. 이에 대항하는 육비청의 초술은 느린 듯하면서도 빨랐다. 눈 깜짝할 사이에 둘은 벌써 10여 초를 겨뤘으나 나신의 무공을 가지고 그와 어찌 10여 초를 대결할 수 있었을까? 다만 육비청은 근년에 근신하고 지내면서 나신과 같이 공명과 이익에 눈이 어두운 사람들이 너무나 많음을 알았다. 이들을 다 죽여 없앨 방법은 없었다. 반격을 하면서도 어느 정도 사정을 보아 준 것이었다. 그런 줄도 모르는 나신은 계속 맹공을 가했다. 그런데 갑자기 상대방이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아 황급히 몸을 돌리고 보니 육비청이 어느 틈에 자기 뒤에 있었다. 그는 당황한 나머지 육비청의 팔을 잡아채려고 덤볐다. 자기의 뚝심만 믿은 것이었다. 그런데 육비청이 긴 소매를 가볍게 나부끼며 오락가락하자 팔목을 잡기는커녕 옷자락조차 건드릴 수가 없었다. 나신은 약이 올라 권세를 비산하며 금나수의 쌍수로 육비청을 움켜잡으려고 했다. 육비청은 반격할 태세도 취하지 않고 그의 곁을 계속해서 오락가락했다. 몇 초가 지나는 동안 나신은 절호의 기회를 포착하고 우권을 휘둘렀다. 이렇게 되면 육비청이 왼쪽으로 피할 것으로 생각하고 손을 뻗어 그의 왼쪽 어깨를 잡았다. 마음 속으로 쾌재를 외치고 있는데, 웬걸 자기의 뚱뚱한 몸이 하게 허공을 날다 황 하는 소리와 함께 두어 장 밖에 나가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눈앞에 별이 오락가락하여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두 손으 짚으며� 일어나 앉기는 했지만 어지러워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어떻게 됐기에 이꼴이란 말인가. 「빌어먹을-이런 망신이 있나? 혼자 중얼거렸다. 원래 육비청이 사용한 방법은 내가의 권술 가운데 상승의 무공으로서 이름은 첨의십팔질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무공이 심오한 사람은 적이 자기의 옷깃만 잡아도 즉시 거꾸러뜨릴 수 � 있는 � 재주로서, 당년 천질장이 전수한 비술이지만 기실 상대방의 힘을 역이용하려는 데 불과했다. 육비청의 공력도 - 옷깃만 잡아도 집어던질 수 있는 경지에 이르지는 못했다. 워낙 미련하게 자기의 뚝심만 믿고 대들다 골탕을 먹었을 뿐이었다. 초문기의 두 눈이 못마땅하다는 듯 위로 치켜 올라갔다. 「나 현제, 일어나 보게. 낮은 소리로 책망을 하는데 패인룡이 아무 말 없이 쌍룡칠의 � 재주를 부려 쌍권으로 육비청을 후려쳤다. 육비청이 흔들대더니 종적이 없고 패인룡의 등뒤가 퍽 하는 소리가 나더니 등이 � 아파왔다. 「십 년만 더 수련을 하지. 육비청이 조롱하는 말이었다. 패인룡이 고개를 돌렸지만 육비청이 보이지 않자 다시 몸을 돌이켜 세우는데 철석철석�� 양 볼에 튀겼다. 어찌나 매운지 금방 두 볼이 퉁퉁 부어 올랐다. 「철없는 것들이 지나치게 무례하구나. 오늘 버룻을 단단히 고쳐주겠다. 육비청이 꾸짖는 말이었다. 패인룡의 경솔한 행동에 화가 난 육비청이 기를 꺾기 위해 재빠른 솜씨를 과시한 것이었다. 만약 등을 치고 두 뺨을 때리는 데 육비청이 약간의 힘만 더 가했다면 패인룡은 즉시 골격이 부러져 그 자리에서 죽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무림의 대선배라 이 정도로 그친 것이었다. 초문기는 패인룡이 낭패를 당하자 쏜살같이 장풍을 날렸다. 육비청은 관동육마 가운데 제3마인 초문기가 다른 두 사람과는 비교가 되지 않음을 알고 즉시 본문의 무극현공권으로 조심스럽게 상대했다. 초문기의 철비파수는 낙양 한가(洛陽韓家)로부터 직접 배운 것이었다. 육비청이 수휘오현으로 힘차게 후려치는 솜씨가 바람에 나부끼듯 무력해 보이지만 허허실실, 실로 철사장(鐵沙掌) 이나 응조공(應爪功) 양가의 무공보다 그 위력이 강하다. 육비청은 초문기의 공력이 왕년에 비해 크게 진보한 것을 알았다. 「잘하는군- 낮게 외치며 호종보(虎縱步)로 살짝 비킴과 동시에 한 발을 앞으 로 내밀어 벌써 초문기의 오른쪽 어깨 옆에 와 있었다. 우장을 들 어 노를 젓듯 그의 오른쪽 겨드랑이에 일격을 가하자 초문기는 급 히 옆으로 피하면서 좌장으로 방어를 하고 오른손의 식지와 중지 로 육비청을 찔렀다. 7, 8초를 대결하는 동안 육비청은 몸을 웅크 리고 장풍을 날려 상대방의 옷깃을 무섭게 건드렸다. 그는 워낙 후덕한 사람이라 초문기가 수십 년 닦아 온 공력을 일거에 실망시키 고 싶지 않아 이 일 장에 자기의 힘을 반만 쓴 것이다. 이렇게 되 면 스스로 부끄러워 물러서려니 했던 것이다. 육비청이 어느 정도 사정을 보아 가며 상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초문기도 눈치챘다. 바로 이러한 순간을 포착한 초문기가 껄껄 웃 고 있는 육비청의 가슴을 좌장의 다섯 손가락으로 찔렀다. 육비청은 뜻밖의 기습에 미처 피하지 못하고 철비파수의 독수에 맞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무당파의 명가로서 손색이 없었다. 비록 패하기는 했지만 흐트러짐이 없이 쌍장을 교차시킨 채 철통 같은 방어로 비 오듯 퍼붓는 초문기의 공격을 막아 가면서 뒤로 서서히 물러섰고 정신을 가다듬으면서 분노를 터뜨리지 않았다. 중상을 입은 몸에는 분노하면 할수록 목숨이 위태로워지는 것이다. 초문기는 여세를 몰고 계속 공격하면서 숨 돌릴 틈을 주지 않았 다. 은병사파 , 철기돌출(鐵騎突出) 등 철비파수 가운데의 무서운 초술로 계속 돌격하자 육비청은 가볍게 코방귀를 뀌면서 백룡검을 손에 들고 반격을 했다. 초문기가 이리저리 피해 다니며 큰소리로 외친다. 「다같이 덤벼 요절을 내고 말자- 패인룡이 한 쌍의 오구검을 상하로 휘두르며 육비청의 좌우를 노리고 달려들었다. 오구검은 이름은 검이라 하지만 사실은 2개의 갈고리로, 갈고리 끝에 뾰족한 칼이 달렸을 뿐이었다. 그래서 갈고리의 기능도 하고 쌍검의 기능도 쓸 수 있게 만들어졌다. 쌍갈고리는 십팔반 무기 가운데 해당되지도 않는데 배우기가 몹 시 까다로워 처음 배울 때 자칫 잘못하면 배우는 사람이 다치게 되고 또 공격시에는 불편하기 짝이 없는 병기다. 그러나 일단 배워 숙련이 되면 그 초술이 대단히 무섭다. 육비청은 쌍갈고리가 나오 자 무척 조심을 하면서 유운검술(柔雪劍術) 가운데의 행화춘우 와 삼환투월의 재주로 진격했다. 나신도 칠절강 편을 휘두르며 합세하는데 워낙 뚝심이 대단한 사람이라 그 기세가 맹렬했다. 육비청은 백룡검이 강편에 부딪칠까 봐 조심 하면서 그의 손가락을 노렸다. 나신이 (앗!)소리를 지르며 전단에 서 빠져나가자 초문기는 철패를 쩔렁거리며 육비청의 뒤통수를 노렸다. 초문기는 낙양 한가에서 무예를 배운 사람이다. 한가 철비파수는 -오랑에 이르러 크게 대성한 것으로, 장법 외에도 병기로 小옹할 수 있는 강철로 만든 비파다. 이 비파의 양쪽은 날카롭게 다듬어서 공격할 때는 도끼의 역할을 하고 방어할 때는 방패가 된다. . 비파의 중앙이 뚫렸고 거기 12개의 비파정을 숨겨 한 가지 물건을 가지고 세 가지로 쓸 수 있게 되어 있다. 초문기는 비파가 원래 여자들이 다루는 악기라 강호에서 쓰다가 혹시 다른 사람의 조롱거리나 되지 않을까 해서 그것을 완전한 철패로 고쳐 만들었다. 모양이 괴상했지만 사용하는 방법은 사문에서 전수받은 철 비파와 완전히 같았다. 육비청은 머리 뒤에서 나는 바람소리를 듣고 고개를 왼쪽으로 돌렸다. 철패가 허공을 치자 백룡검으로 반격했다. 그의 유운검술 은 잇달아 끊임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초문기가 철패를 비스듬히 들고 억지 방어에 급급하나, 백룡검은 철패가 움직이는 대로 뒤쫓 아가며 공격했다. 어떠한 권각이나 병기를 막론하고 일단 한번 공 격을 하면 다시 원래의 자세로 되돌아온 후에야 비로소 재차의 공 격이 가능한 것인데, 유운검술의 묘미는 일단 공격을 한 뒤에 상대 가 어떤 방법으로 방어하거나 회피하거나간에 재차의 공격이 그냥 그 자리에서 계속되는 데에 그 특징이 있다. 패인룡과 나신은 초문기가 열세에 몰려 쩔쩔매는 모양을 보고 육비청의 뒤로 돌아가 좌우에서 그를 공격했다. 세 사람의 철패와 강천, 쌍갈고리가 그를 중앙에 놓고 포위했다. 육비청은 이때 가슴 의 통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내상이 심각했던 것이다. 유운검술이 무섭다고는 하나 이제 겨우 한 사람을 궁지에 몰아넣었을 뿐인데 다른 두 사람이 측면에서 공격을 해 오니 손발이 바쁘지 않을 수 가 없다. (일세의 영웅이란 말을 듣고 있는 내가 오늘 쥐새끼 같은 무리 의 손에 죽는 것이 아닌가?) 육비청은 암담한 생각과 함께 분노의 불길이 마음속에서 이글거 려 당장 세 놈의 적을 일격에 요절내고 싶은 충동이 간절했지만 상황이 그렇지 못했다. 오늘은 아무래도 불리하니 우선 피하고 난 후에 부상을 치료하고 나서 관동육마를 찾아 복수해야겠다는 마음 이 들었다. 이렇게 결정을 내리자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 내가의 무공에서는 마음의 안정을 첫째로 쳤다. 정신을 가다듬자 백룡검이 사면팔방으로 자신의 몸을 철통처럼 감싸 주어 세 사람이 제 아무리 맹렬한 공격을 가해도 뚫고 들어올 여지가 없었다. '우리 포위망을 풀지 말아. 당장 이길 수 없다면 지쳐 죽게라 도 만들어 놓아야지요.」 나신의 말에 초문기도 맞장구를 쳤다. '옳은 말이오. 좀 있다 나 형이 가서 상금을 청구하시오- '저 영감의 백콩검이 근사한 것 같은데 제가 가져도 될까요? 패인룡의 욕심스런 말이었다. 세 사람이 이렇게 찧고 까불며 육비청을 시체 취급하듯 하는데 어디까지나 그의 분통을 자극하기 위해 하는 말들이다. '오래 전부터 이름을 듣고 있었습니다.」 나신이 비웃듯 이렇게 말을 꺼내자 패인룡은 고개를 번적 들고 냉소를 흘렸다. 육비청이 입을 열었다. '야심한 삼경에 세 분께서 이렇게 찾아 주시니 너무나 뜻밖의 일이-오 그러나 무슨 일로 나를 찾으셨는지 알 수가 없군. 육비청이 나신을 향해 두 번 칼을 휘두르자 옆으로 급히 피했다. 그 틈을 뚫고 만천화우(滿天花雨)로 사방을 향해 원형으로 휘두르 며 쏜살같이 빠져나갔다. 「큰일났다. 영감이 달아나려고 한다.」 나신이 미친 듯 소리쳤다. 육비청은 경공의 제종술을 이용해 산 아래를 향해 뛰었다. 이미 포위망을 뚫고 나온 이상 이젠 안심해도 되었다. 그들 세 사람의 경공을 가지고는 도저히 자기 뒤를 쫓아올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초문기는 철패를 눌러 3개의 비파정을 육비청의 등을 향해 발사했다. 육비청은 칼을 휘둘러 상반신을 향해 날아오는 2개의 비파정을 쳐서 떨어뜨리고 두 발로 번쩍 뛰어 하반신을 노리는 비파정을 피했다. 그는 비파정 위에 구부러진 가 시가 있어 일단 살에 박히기만 하면 뿌리가 생긴 것처럼 되어 힘 껏 뽑으려고 하다가는 살까지 묻어 나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것을 손으로 그냥 받았다가는 큰 골탕을 먹는 것이다. 그는 암기를 피하고 즉시 산 아래로 뛰어내려가려고 했다. 그런데 몸을 가눌 수 없고 또 숨이 막히는 동시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초문기 등 세 사람은 그의 발길이 어지러워지는 것을 보고 내상 이 발작하기 시작했음을 알았다. 기쁜 마음으로 대들어 그를 다시 포위했다. 육비청은 칼을 휘두르며 그들과 어울려 10여 초를 싸웠 으나 오른쪽 어깨에 힘을 쓰면 그에 따라 가슴이 아프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칼을 왼손에 바꾸어 쥐고 초문기에게 접근했다. 그 가 왼손으로 칼을 쓰는 방법은 완전히 반수(反手)의 초술이었다. 보통의 검술과는 그 이치가 상반되는 것이다. 초문기는 뜻밖의 공 격에 주춤주춤 뒤로 피했다. 육비청은 이 절호의 기회를 이용해 왼손의 칼로 백홍관일의 재주를 부려 패인룡을 향해 찔렀다. 패인룡은 이 초술을 알기 때문에 급히 오른쪽으로 피했다. 그런데 왼손에 든 칼의 방향 은 상반된 것으로 그가 오른쪽으로 피하자 칼이 그대로 그가 피하 는 방향으로 나아간 것이다. 패인룡은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미처 피할 겨를이 없어 급한 가운데 꾀를 내어 땅바닥에 엎드린 채 데굴데굴 굴러 피했다. 육비청이 쫓아가려고 하는데 머리 뒤에 서 바람소리가 났다. 나신의 강편이 날아오는 것이다. 육비청은 두 발을 움직이지 않고 상반신을 돌려 피하면서 손을 뻗어 나신의 유문혈(幽門穴)을 찔렀다. 나신의 강편이 날아오다가 혈도가 눌리는 바람에 맥이 풀려 그만 놓치고 말았다. 강편은 여세 를 타고 바위에 부딪치며 사방으로 불꽃을 튀겼다. 바로 이때 초문기가 발사한 3개의 비파정이 그의 등을 노리고 날아왔다. 육비청은 암기가 공기를 가르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피할 방법이 없자 땅바닥에 누워 퍼져 있는 나신을 번쩍 들어 막았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3개의 비파정 가운데 2개는 가슴에, 1개는 배 에 맞고 나신은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초문기는 자기가 쏜 암기에 자기 아우인 나신이 맞아 죽자 철패를 흔들며 육비청을 향해 미친 듯 달려들었다. 패인룡도 쌍갈고리를 들고 합세했다. 육비청이 장검을 들고 찌르 자 패인룡이 놀라 왼쪽으로 뛰어 피한다. 초문기의 철패가 쫓아왔 다. 육비청은 몸을 돌려 대항하면 패인룡이 다시 덤빌 것을 알았다. 적 하나가 없어졌지만 자기의 상처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고통 스러웠다. 고개를 돌리지 않고 몸을 앞으로 숙여 피했으나 철패의 날카로운 날에 맞아 왼쪽 어깨가 ◎찢어졌다. 초문기가 쾌재를 부르는데 백광이 번쩍 하더니 백룡검이 자기의 면전을 스치고 지나가 패인룡을 향해 날아갔다. 패인룡은 깜짝 놀 라 오구검을 들어 막았다, 겨우 막기는 했지만 육비청의 대솔비수 의 막강한 힘을 당해 낼 재간이 그에게는 없어 백룡검이 그의 앞가슴을 찌르고 등뒤까지 뚫고 나갔다. 바로 이 순간 육비청은 번개처럼 몸을 홱 돌렸다. 초문기는 미처 철패를 거두어들일 겨를도 없이 얼굴이 화끈거리며 눈앞이 캄캄해 졌다. 원래 육비청은 철패에 어깨를 맞자 장검을 패인룡에게 집어 던지고 몸을 돌려 세우며 한주먹의 부용금침을 그의 얼굴을 향해 발사했던 것이다. 워낙 거리가 가깥고 솜씨가 빠른데다가 금침이 많아서 피할 도리도 없이 초문기는 두 눈에 금침을 맞아 앞이 보 이지 않게 되었다 육비청은 그가 두 손을 얼굴에 대고 비비는 틈 을 이용해 쌍권을 휘둘렀다 초문기는 그 자리에서 절명했다. 육비청은 평생의 절기인 점혈수(點穴手) , 대솔비수 , 부용금침을 사용해 눈 깜짝할 사이에 3명의 적을 제거해 버렸다. 거친 산바람이 한기를 느끼게 하고, 새벽달이 구름 가운데 나타 나 어지럽게 흩어진 세 구의 시체를 비췄다. 숲속에서 우는 롤빼미 소리도 처량했다, 무공이 높고 담대하기로 유명한 육비청으로서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광경이었다. 옷을 찢어 왼쪽 어깨의 상처를 싸매 고 거친 호흡이 가라앉자 보검을 뽑아 깨끗이 씻은 후 칼집에 꽃 았다. 흔적이 남으면 곤란하다. 초문기의 얼굴에 박힌 금침을 뽑아 챙긴 뒤 시체를 버려둔 채 산을 내려왔다. 기진맥진한 육비청의 전신은 피로 얼룩져 있어, 마을로 내려가 객점에 들었다가는 아무래도 다른 사람의 의심을 살 것 같았다. 우 선 이가수의 집으로 돌아가 옷을 빨아 입은 후에 떠나려고 했는데 이른 아침부터 이원지가 서재에 와 있었던 것이었다. 이원지를 밖으 로 내보내고 침대에 눕자 가슴의 통증이 몰려와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는지 혼미한 정신 가운데 누군가 가 자기를 흔들어 깨웠다. 「선생님 ! 선생님! 그가 서서히 눈을 떴을 때 이원지의 옆에 의원 한 사람이 서 있 는 것이 보였다. 두어 달 치료를 하는 동안 육비청의 상처는 그 자신의 내공의 힘과 이원지의 극진한 간호의 덕으로 마침내 완쾌되었다. 「무공을 전수해 주마.」 어느 날 육비청은 이원지를 향해 이런 말을 꺼냈다. 「원지야, 내가 어떤 사람인지 네 비록 확실히는 모른다 하더라도 대강 짐작은 하겠지. 이번 부상을 치료하는 동안 네 극진한 간호에 정말 고마움을 느꼈다. 대장부는 은혜와 원한을 분명히 해야 되므 로 내 이대로 그냥 훌쩍 떠날 수는 없을 것 같구나. 그 금침의 쿵 후를 네게 전수해 주마.」 이원지는 너무나 반가워 스승의 말에 머리를 여덟 번이나 조아 렸다. 물론 글을 배우기 시작했을 때 스승 뵙는 예를 올린 적은 있 었다. 육비청이 미소를 머금고 제자의 절을 받으며, 「너는 사물을 깨닫는 능력이 탁월해 내 무공을 배우는 데 그보 다 더 훌륭한 인물은 없다고 할 수 있지만,,,, 여기까지 말을 하다가 잠시 침묵에 잠긴다. 「선생님, 저는 선생님의 분부를 어기지 않겠습니다.」 「네 아버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에 대해 내 솔직히 말을 한다면 별로 탐탁하게 생각지 않는다. 장래 네가 어른이 되어 시비를 분명 히 가릴 수 있게 되면 확실히 알게 될 것으로 믿는다. 네가 나를 스승으로 모시겠다고 나선 이상 너는 사문의 계율을 엄격히 지켜 야겠는데 그럴 수 있겠느냐? 「제자는 절대로 선생님의 말씀에 거역하지 않겠습니다- 「네가 장래 내게서 배운 무공으로 못된 짓을 한다면 내 결코 용 서하지 않으리라. 내가 너 같은 사람쯤 죽이자면 그건 여반장이야.」 이 말을 할 때 육비청의 표정은 서릿발처럼 근엄했다. 이원지는 기가 죽어 한참 동안이나 말이 나오지 않았다. 「사부님, 제가 얌전하게 구는데도 사부님은 저를 죽이시겠어요- 겨우 이 말을 해 놓고 빙그레 웃었다. 그날부터 육비청은 무당파 입문의 무공을 전수하기 시작했다. 정좌하여 숨을 고르게 하는 방법과 연기를 가르치고 십단 금(+設錦)을 비롯한 32세장권으로 연권을 했다. 무극현공권에 어느 정도 숙달된 뒤에는 다시 연안-際限) , 연이 (練耳) 등 이목의 훈련에 치중하고 다시 타탄자(打彈子)와 수전 등 암기에 대한 기 본적인 무공을 익혔다. 세월이 흘러 2년여, 이원지가 워낙 열심인데다가 총명해서 놀랍 도록 진보가 빨랐다. 그때 이가수는 이미 감숙(甘肅) 안서진 총병으로 전임이 되었 다. 안서는 북쪽으로 합밀(哈密)과 연결되었고 서쪽은 대막(大漫)과 접경을 이루어 관외(國外)의 중진(重鎭)이다. 다시 또 2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육비청은 유운검술과 부용금침 까지도 이원지에게 전수해 주었다, 이 5년 동안 이원지는 금침과 검술,경공,권기 등을 완전히 다 익혔는데 다만 경험이 풍 부하지 못한 점이 아쉬을 뿐이다. 그녀는 사부의 분부에 따라, 무공 을 배운다는 사실을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고 매일 집 뒤에 있는 화원에 들어가 연습을 했다. 그녀가 어려서부터 무예를 좋아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전혀 의심을 하지 않았다. 주인댁 아가씨가 무공을 익히는데 하녀들은 보고도 몰랐고 남자 하인들은 함부로 쳐다볼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가수는 사람이 똑똑하고 능력이 탁월해 관운이 형통했다. 권륜 23년 이려를 평정하는 데 큰 공을 세워 조정의 뜻에 따라 절 강 수륙제독(水陸提督)으로 승진되었다. 정해 온주(溫 州) 등 다섯 진과 오영(五營)을 통할하는 항주 등, 성의 수협 (本務) 태호(太湖) 해령(海寧) 등의 수사영을 겸직케 되었 다, 이원지는 어려서부터 서북의 변방에서만 자랐다. 이제 산자수 명한 강남으로 가게 되어 말할 수 없는 흥분에 들떠 육비청을 보 고 동행하자고 떼를 썼다. 육비청은 내지를 떠난 지 오래 되었는데 이제 옛날 정들었던 고장에 같이 가자고 하니 거절할 이유가 없어 흔쾌히 응낙했다. 이가수는 홀가분한 행장으로 먼저 떠나고 친병 20명과 참장 한 명을 뽑아 가족들을 호송해 뒤에 따라오라고 했다. 참장의 이름은 증도남 나이는 40여 세, 짧은 수염을 길렀고 건장 한 체구에 육합창(六合槍)을 잘 썼다. 그는 자신의 진짜 실력에 의 해 승진한 사람으로서 이가수의 신임을 톡톡히 받고 있었다. 일행은 모두 10여 마리의 노새를 가지고 있었다. 이가수의 부인만 마차를 타고 갔다. 이원지는 산을 넘고 물을 건너는 긴 여행에서 하루 종일 마차 안에 앉아 있는 것이 따분하다는 생각을 했으 나 관가의 어엿한 아가씨가 말을 타고 얼굴을 내놓는다는 것도 체 면 문제라 차라리 남장을 하기로 했다. 남장을 하고 보니 간편하고 그럴 듯해 보여 아무리 누가 뭐라해도 여장으로 바꾸어 입으려 하지 않았다. 이 부인도 혀를 차면서 웃고 만다. 이날은 유난히 가을빛이 짙었다. 육비청은 말에 탄 채 일행과 멀 찍이 떨어져 뒤에 처져 있었다. 사방을 휘둘러보니 저녁노을이 곱 기만 한데 길고 긴 변방의 도로 위에는 오직 그들 일행의 노새만 이 보인다. 황사와 시든 풀잎, 소슬한 가을 풍경에 등지로 돌아가는 까마귀 떼가 하늘에 수를 놓는지 일진의 서풍에 옷깃이 나부긴다. 육비청은 감회가 일어 나직이 읖조렸다. 수많은 싸움에 몸과 이름이 찢긴 장군 다리 위에서 만리 밖을 돌아보며 친구와 작별을 고했지. 역수(易水)에는 스산한 서풍도 차가웠는데 만좌한 사람들의 의관만 눈빛처럼 희었지. 마침 장사의 구슬픈 노래 그치지 않았겠지. (신가헌의 이 시가 그대로 내 마음을 비추는구나. 당 년 그의 신세 나와 같았던 모양이로구나.) 그도 이제 60에 가까운 나이다. 내공이 심오하고 정신 또한 왕성 했지만 백발이 성성했다. 내 머리도 이제 눈처럼 희기만 하구나. 구사일생 살아남기는 했지만 무슨 떳떳한일을또 할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떨구고 말채찍을 들어 치며 앞선 일행을 쫓았다. 노새때가 고개 하나를 막 넘어가는데 날이 어둑어둑해졌다. 마부는 이제 10리만 가면 쌍탑보에 도착할 수 있다고 했다. 쌍탑보는 북방의 큰 고을로, 이날 밤은 그곳에서 묵을 예정이었다. 바로 이때 육비청은 앞에서 달려오는 급한 말발굽 소리를 들었다. 먼 곳에서 먼지가 일어나며 두 필의 대추빛 절따말(붉은색의 말이 8次의 발굽을 모으고 눈 깡짝할 사이에 눈앞으로 다가왔다. 위의 두 사람이 허리를 굽힌 채 고삐를 잡고 노새 떼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육비청은 슬쩍 보고도 두 사람 중 하나는 키가 크고 다른 하나는 작다는 것을 알았다. 대상(隊商)의 무리들 키가 큰 사람은 눈썹이 길고 코가 우뚝하며 얼굴이 희다. 작은 사람의 얼굴에는 용감한 기상이 역력했다. 육비청은 말을 몰아 이 원지의 옆으로 접근해 낮은 소리로 물었다. 「저 두 사람을 똑똑히 보았느냐? 「왜요? 도둑들인가요? 만약 도둑이었다면 5년 동안 고생해서 배운 재주를 한번 멋지게 시험할 것을 그랬다는 표정이었다. 「아직 확실히는 모르지. 그러나 두 사람의 무공으로 보아 도둑의 염탐꾼이나 졸개는 아닌 듯싶구나.」 「그 두 사람의 무공이 대단해 보였나요? 「말 타는 재주로 보아 보통은 넘는 것 같구나.」 일행이 쌍탑보에 거의 당도할 무렵 맞은편에서 말발굽 소리 요란하게 또 두 필의 말이 달려와 그들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것 참 이상하다.」 육비청이 혼자 중얼거렸다. 이때는 저녁 안개가 짙어 노상은 적막하기 그지없었다. 눈앞이 바로 쌍탑보인데 지금 이 시간에 고을을 빠져나오다니, 중요한 일 이 있어 밤길을 재촉하는 사람들이 분명했다. 얼마 가지 않아 노새 떼는 고을에 들어섰다. 증 참장이 노새 례 와 수레를 큰 객점으로 인도했다. 이원지와 그의 모친이 안방에 들고, 육비청에게는 작은 방 하나 가 배당되었다. 식사가 끝나자 심부름꾼이 등불을 밝혔다. 이제 모 두들 쉬려는 참으로 사방이 고요한데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그 가운데 먼 곳에서 은은히 말발굽 소리가 다시 들린다. 육비청은 혼자 생각에 잠겼다. (지금 이 시간에 길을 재촉하다니 도대체 무슨 급한 일이 있어 서 저럴까?) 길에서 만난 네 사람을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이상했다. 말발굽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더니 객점 앞에 이르러 멈춘다. 이윽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고 심부름꾼이 나왔다. 「수고들 많으시군요. 식사와 술, 차 등 모두 준비되었습니다. 어 서 안으로 드세. 「말 먹이 좀 마련해 주게나, 식사를 끝내고 또 가야 해.」 한 사람의 거친 말씨에 심부름꾼이 연신 대답을 한다. 발걸음 소 리로 보아 역시 두 사람이다. 육비청은 곰곰이 생각했다. 한 테의 사람들이 나뉘어 안서(安西) 로 가는 것이 아무래도 이상했다. 말 위에서의 몸놀림으로 보아 모두들 무공이 탁월한 사람들이었다. 북방에서 몇 년 있는 동안 좀처럼 보기 드문 일이어서 그는 가만히 문을 열고 나와 안마당을 통해 객점의 뒤로 돌아가 보았다. 방금 말했던 거친 목소리의 사나이가 입을 열었다. 「셋째형, 그 젊은 타주(船主)가 그래. 이 형제들을 통솔할 수 있 을까? 육비청은 말소리를 따라 창문 밑으로 다가섰다. 다른 사람들이 주고받는 말을 엿듣고 싶어서가 아니다. 워낙 그들의 행색이 이상한데다 자신은 중책을 지고 있는 몸이다. 어디서나 조심을 해야 할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방 안에 있는 다른 사람의 말소리가 들렸다. 「통솔할 수 없다 하더라도 통솔해야지 그건 노당가님의 유명일세. 젊은 타주께서 하실 수 있든 없든 우리는 지성으 로 받들고 모셔야 해.」 그의 목소리가 우렁찬 것으로 보아서도 내공이 대단한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감히 창호지를 찢고 들을 수 없어 숨을 죽인 채 귀 를 기울였다. 거친 목소리의 사나이가 말을 받는다. 「그야 물론 말할 필요도 없지요. 다만 타주께서 나서실는지 그걸 모르겠단 말씀입니다.」 「그건 염려할 것 없네. 노당가의 유명이니 젊은 타주께서 받아들 여야지.」 (받아들여야)라는 그의 말이 남방 사람의 독특한 사투리다. 육비청은 마음속으로 놀랐다. (아니, 말소리가 굉장히 귀에 익은데?) 곰곰이 생각하다가 마침내 목소리의 주인공을 알아냈다. 옛날 도 룡방에 있을 때 친하게 지내던 조반산 바로 그 사 람이었다. 그 사람은 자기보다 열 살이나 아래인 온주-州) 태극 문 장문의 제자로 두 사람은 늘 무예를 절차탁마하 면서 피차 존경하고 지냈다. 헤어진 지 근 20년이니 그도 50이 가 까운 나이다. 도룡방이 깨져 헤어진 후 어디로 갔는지 전연 모르고 지냈는데 뜻밖에도 오늘 변방에서 이렇게 만나게 되다니 반갑지 않을 수가 없다. 반가운 마음에 그의 이름을 부르려고 하는데 방 안의 불빛이 갑자기 꺼지면서 수전이 날아왔다. 이 수전은 육비청을 향해 발사한 것이 아니다. 사람의 그림자가 번쩍 하더니 누군가가 손을 뻗어 수전을 받는데 그 사람이 몸을 일으켜 세우며 뭐라고 말을 하려고 했다. 육비청이 달려가 낮은 소 리로 말했다. 「조용히 하고 나를 따라오너라.」 그 사람은 바로 이원지였다. 방 안에서는 아무 동정이 없고 뒤를 추적하는 사람도 없었다. 육비청은 이원지의 손을 잡고 살금살금 자기 방으로 돌아왔다. 등불 밑에서 보니 그녀는 야행복(夜行服)을 입고 있었다. 어느 틈 에 마련해 놓았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장난기 섞인 얼굴을 바 라보니 우습기도 하거니와 화도 났다. 「원지야,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기나 하고 그러느냐? 그들과 싸움을 벌이려고 하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구나.」 스승의 근엄한 표정에 이원지는 말문이 막혔다. 「그럼 왜 그들이 제게 수전을 쏘나요? 한참 만에야 이원지는 겸연쩍은 듯 궁색하게 말했다. 자기의 잘 못은 전연 생각지도 않고 상대방을 탓하는 투다, 다른 사람들이 주 고받는 얘기를 몰래 엿들었다는 것은 강호의 금기를 범한 것이다. 「그 두 사람이 만약 도둑이 아니라면 방회의 인물임에 틀 림없어. 그중 한 사람을 내가 아는데 무공이 결코 네 사부인 나에 게 뒤지지 않는다. 그들이 급한 일이 있어 밤길을 재촉하는 것 같 다. 네게 쏜 수전도 결코 너를 해치려고 쏜 것이 아니라 남의 일에 간섭하지 말라는 뜻이지. 정말 너를 쏘려고 했다면 아마 네가 손으 로 받지도 못했을 것이다. 빨리 돌아가 잠이나 자도록 해라.」 이렇게 말을 주고받는 사이에 문이 열리고 말 달리는 소리가 들 렸다. 그 두 사람이 벌써 이곳을 떠난 것이다. 이원지가 이런 소란 을 부린 마당에 옛 친구를 만난다는 것도 어색하여 육비청은 그들 을 찾아가 아는 체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이튿날, 노새 떼는 그곳을 떠났다. 한 시간쯤 가다 보니 쌍탑보외 는 30리 정도 떨어진 거리에 와 있었다. 이원지가 입을 열었다. 「사부님, 맞은편에서 또 사람들이 와요.」 두 필의 대추빛 흥마가 달려오고 있었다. 어젯밤의 일도 있고 해 서 두 사람은 유심히 그들을 관찰했다. 두 필의 말이 똑같았고, 더 욱 이상한 것은 말 위에 타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도 똑같은 것이 다. 40세 전후의 나이에 키는 크지만 말랐고, 얼굴은 납황색이며 쑥 들어간 눈, 눈섭이 비스듬히 굽어 내려온 험상궂은 모습이 영락없이 쌍등이다. 이 두 사람이 노새 떼 옆을 지날 때 그 괴상한 눈을 들어 이원지 를 바라보자 이원지도 그들을 노려보면서 덤빌 테면 덤벼 보라는 표정을 지었다. 두 사람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말을 달려 서쪽으로 가 버렸다. 「어디서 저런 한 쌍의 마른 귀신이 나타났을까? 이원지가 하는 말이었다. 육비청은 이 두 사람의 뒷모습이 2개의 대나무를 말 위에 꽂아 놓은 것 같자 갑자기 짚이는 바가 있어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질 렀다. 「아, 원래 그들이었구나! 「사부님, 그들을 아세요? '틀림없는 서천쌍협(西川雙俠)이다. 강호에서 흑무상(黑無常) . 백 무상(白無常)이라고 하는 형제들이다.」 이원지가 낄낄거 린다. 「그들의 별명이 그럴 듯하군요. 그럼 한 쌍의 무상귀(無常鬼)가 아녜요- '여자가 그런 경박한 말을 하면 못쓴다. 못생기기는 했지만 무공은 보통이 아니란 말이다. 내 그들과 직접 만난 일은 없지만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으면 그들 형제는 어려서부터 그림자처럼 붙어다녔지 떨어진 일이 없다더구나. 형제가 장가도 들지 않고 이 곳저곳 다니며 좋은 일만 많이 한다더구나. 그들을 존경하는 사람 들은 그들을 서천쌍협이라 부르고, 그들을 무서워하는 사람들은 흑 무상 , 백무상이라고 부른다더라.」 「그들 두 사람은 똑같이 생겼는데 어째서 흑백의 구분이 있지 요?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에 의하면 형제가 똑같이 생기기는 했지만 형은 눈언저리에 검은 사마귀가 있어서 상혁지라고 이름을 붙였고, 동생은 사마귀가 없기 때문에 상백지라고 붙였다더라. 그들은 청성파 혜려도인(畵法道人)의 제자지. 혜 려도인이 죽은 뒤 강호에서 흑사장(黑砂掌)의 무공으로 그들 형제 를 따를 사람은 없단다. 이들 형제는 천강(川江)상의 유명한 의적 들이야. 의롭지 못한 사람의 재물을 훔쳐다가 빈한한 사람을 도와 주고는 있지만 워낙 잔인한 데가 있어서 그런 고약한 별명을 듣게 되었다더라.」 「그들이 무엇 때문에 이런 변방에 나타났을까요? 「글쎄 말이다. 나도 통 짐작이 가지 않는구나. 여태까지 그들 형제가 이 변방에서 무슨 일을 저질렀다는 얘기를 들어 본 적이 없구나. 」 「만약 이들 무상귀가 우리에게 시비를 걸면 사부님의 백룡검을 한번 시험해 볼 수 있을 텐데요.」 방금 그들 형제가 자기를 노려보았기 때문에 이원지는 그들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 아가씨의 보검 맛을 보여 주는 것인데,,,,.>차마 이런 말이 나오지 않아서 사부님을 끌고 들어간 것이다. 「그들은 이때까지 1대 1로 대결한 일이 없다더라. 한 명을 상대해도 둘이 덤비고 열 명을 상대해도 둘이 덤빈다는 게야.」 육비청은 껄껄 웃으며 이런 말을 했다. 「이 사부의 늙은 뼈가 그들의 주먹을 감당해 내지 못할 게야.」 이렇게 사제가 말을 주고받는 사이 앞에서 또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말 위에 탄 사람은 도인(道人)과 속인이다. 도인은 장 검을 등에 지고 있는데 얼굴이 창백하여 병색이 짙어 보이며, 오른 팔뿐이요 왼팔은 없어 도포의 소매자락을 묶어 허리에 꽂았다. 다른 한 명의 속인은 곱사등이인데 의복이 화려했다. 이원지는 꼽추 가 생긴 것은 험상궂은 데 반해 의복이 지나치게 화려한 것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사부님, 저 꼽추 좀 보세요.」 육비청이 말리려고 했지만 이미 시간이 늦었다. 꼽추가 화난 눈으로 노려보다가 양쪽 말이 서로 스치고 지날 때 갑자기 손을 뻗어 이원지를 나까채려고 했다. 도인은 벌써부터 꼽추의 눈치를 챘는지 이원지가 미처 피하기도 전에 말채찍을 들어 위기를 모면케 했다. 「십제! 일을 저지르면 안 돼. 찰나의 순간이었는데 두 필의 말이 벌써 스치고 지나쳤다. 육비청과 이원지가 고개를 돌리고 보니 꼽추는 채찍으로 자기와 도인이 타고 있는 말등을 한번 후려쳤다. 두 필의 말이 질풍처럼 앞을 향해 달리고 있는데 꼽추가 갑자기 말등에서 물구나무 자세 로 뛰어내린다. 그러고는 두 발이 땅에 떨어지는 힘을 이용해 번잭처럼 몸을 솟구쳐 이원지를 향해 덮쳐 들었다. 이원지는 장검을 든 채 사부가 가르쳐 준 (적이 움직이기 전에는 자신도 움직이지 않는 다)는 교훈 그대로 칼끝을 흔들기는 하면서도 공격은 하지 않고 있었다. 꼽추의 행동도 이상했다. 이원지를 향해 공격을 하는 것이 아니라 왼손을 뺀어 그녀가 타고 있는 말 꼬리를 덥석 잡았다. 말 은 힘차게 달리고 있다가 자리에 못 박힌 듯 서서 비명을 지르며 앞발을 번쩍 들었다. 꼽추의 힘이 어찌나 세던지 말이 끄는 힘에도 딸려 오지 않는다. 우장을 뻗어 당겨 말 꼬리 위에 대고 한번 그으니 꼬리가 그만 잘라지고 말았다. 칼로 얌전하게 잘라놓은 것이나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말이 놀라 앞으로 달리는 바람에 이원지는 하마터면 땅 위 로 떨어질 뻔했다. 손을 돌려 꼽추를 칼로 찌르려고 했지만 거리가 워낙 멀어 소용이 없었다, 꼽추는 고개를 돌린 채 달아났다. 다리도 짧았지만 굉장히 빨랐다. 모래 위로 공 하나가 데굴데굴 구 르는 듯하더니 눈 깝짝할 사이에 서쪽을 향해 달리고 있는 말등에 타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원지는 꼽추의 행동에 놀라 금방 울음을 터뜨릴 표정이었다. 「사부님 ! 육비청은 처음부터 끝까지 놓치지 않고 꼽추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이마를 찡그린 채 뭐라고 책망을 하려다가 눈물을 글썽거리는 이원지를 보고 그냥 참고 만다. 바로 이때 등뒤에서 괴상한 소리가 들렸다. 워우- 위이양-, 워 우- 위이양- 하고 지르는 함성이었다. 이원지는 이상해서 물었다. 「사부님, 저건 뭐예요? 「그건 표국 사람들이 서로 부르는 소리야. 도둑이나 녹림 도(綠林道)나 동도(同道) 친구들에게 통지하는 신호지. 표국에서 일을 하려면 칠분은 교분에 의지하고, 삼분은 자기들 재주에 의지 해야 해. 어떤 사람이란 걸 알면 뺏으려고 했다가도 체면을 보아 그냥 놓아 보내거든. 이걸 (주먹이 센 것보다는 낯익은 것이 낫다) 고 하는 게야. 말약 네가 그 일을 한다면 어림도 없지. 반나절도 안 돼 벌써 여러 사람에게 실례를 했으니 네 재주가 지금보다 열 배 강하다 해도 소용이 없어, 그래 가지고는 한 발짝도 더 걸을 수가 없다.」 이원지가 들어 보니 은근히 자기를 훈계하는 말이었다. (내가 뭣 때문에 그 일을 해?) 속으로는 이렇게 투덜거렸지만 감히 사부님을 향해 정면으로 대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사부님, 제가 잘못했나 보군요. 그래 그들이 외치는 소리로 보아 어느 표국의 사람들 같아요? 이원지가 웃으면서 물었다. 「그들은 북경의 진원표국 사람들이야. 북방에서는 제일 큰 셈이지 봉천,제남,개봉,태원에도 모두 분국이 있으니까. 총표두는 본래 위진하삭 왕유양인데 아마 70세가 넘었을걸. 그런데 저들이 외치는 소리가 (워우위이양)이 라고 하는 것을 들어 보면 아직도 그 일을 계속하고 있는 모양이 구나. 이제 그만둘 때도 됐는데. 진원표국이 40여 년 동안이나 돈 을 벌었을 텐데 아직도 부족한가? 「사부님께서는 그들의 총표두를 아시나요? 「만난 적이 있지. 그분은 팔괘도와 팔괘장을 쓰는데, 당년 강북에서 도둑 떼를 섬멸할 때 그 명성이 황하 이북에 떨쳤단다.」 「그들의 표차가 몹시 빠르군요. 금방 쫓아을 텐데 제게 그 영웅을 소개시켜 주세요. 한번 만나 보고 싶군요. 이원지는 신이 나서 떠들었다. 「그분이 이런 일에 직접 나서겠느냐? 바보 같으니라구.」 이원지는 사부가 늘 자기에게 핀잔만 주는 것이 불만이었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강호상의 일에 대해서는 너무나 아는 것이 없었다. (모르면 가르쳐 주실 일이지 공연히 내게 야단만 하신단 말야.)라고 중얼거리며 말을 몰아 노새떼를 쫓아간다. 어머니와 얘기를 나눔으로써 심심함을 풀려고 한 것인데 달리다 고개를 돌려 보니 꼬리 잘린 말이 보기 흥하다. 일장을 날려 창을 부러뜨린다는 것은 별로 희한할 것도 없지만, 말 꼬리란 부드러운 것인데 그걸 어떻게 손으로 쳐 자를 수 있단 말인가? 말을 멈추고 사부가 오시면 여쭈어 보아야겠다고 생각하다가 마음을 돌렸다. 섭섭한 마음이 아직 가시지 않은 것이었다. 즉시 증도남 곁으로 가서, 「증 참장님, 제가 탄 말 꼬리가 웬일인지 잘려 버렸어요. 이거 보기 흉해서 되겠나요? 말을 마치고 입을 삐죽 내민다. 증도남은 그녀의 눈치를 벌써 알았다. 「이 말이 웬일인지 오늘 따라 성질만 부리며 말을 듣지 않는군 요 아가씨 말 타는 솜씨가 대단하니 이놈 버룻 좀 고쳐 주세요.」 「저도 별 도움이 안 될 거예요.」 이원지는 사양하는 체하다가 그의 말과 바꾸어 탄다. 증 참장의 말은 순하기만 할 뿐 나쁜 성미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아가씨 재주는 정말 알아줘야 해요. 말조차 금방 순종하는군요.」 증 참장은 칭찬까지 아끼지 않았다. 이 부인은 마차가 흔들릴까 봐 계속 천천히 몰게 했다. 표국 사 람들이 외치는 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리더니 이윽고 20여 필의 말 이 쫓아왔다. 육비청은 혹시 아는 사람을 만날까 봐 등을 돌린 채 커다란 밀 짚 모자로 얼굴 반쪽을 가리고 말 위에 탄 표사들을 살펴보았다. 7, 8명의 표사가 말을 달려 지나다 그중 한 사람이 이런 말을 꺼냈다. 「한(韓) 대형이 하시는 말을 들으니 초문기의 종적이 드러났다 고 하더군요.」 육비청은 깜짝 놀랐다. 고개를 돌리니 수염이 가득한 그 표사의 얼굴만 보였다. 까무잡잡한 긴 얼굴이었다. 그가 자기 옆을 스쳐 지날 때 등에 진 빨간 보따리와 괴상하게 생긴 병기가 보였는데 외문(外門) 가운데 이기로 알려진 오행륜(五行輪)이었다. (혹시 관동육마가 표사가 된 것이 아닌가?) 육비청은 이런 추측도 했다. 관동육마 가운데 초문기 말고 나머 지 5명은 본 적이 없다. 다만 6명의 무예가 모두 대단하다는 사실만 알았다. 오마 염세괴 육마 염세장은 모두 오행륜을 쓰는데, 외가경공(外家經功)이 유명했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번에 모처럼 밖으로 나와 적잖은 무림의 고수들을 만나게 되었다. 또 진원표국의 상황으로 보아, 그들에게도 중요한 일거리가 있는 것 같다. 그들에게 일이 있는 것이야 아무 상관이 없지만 관동육마가 만약 자기를 찾으러 나왔다면 이건 보통 일이 아니다. 달아나기도 어려운 형편인데 이 여제자라는 것이 가는 곳마다 자꾸 말썽만 피우고 있으니 큰일이다. 그런데 상황으로 보아 어쩌면 자기를 찾아 나선 것 같지는 않았다. 조반산이 자기와 친한 사이인데 설마 옛 정을 잊지는 않았으리라 믿고 싶었다. 그렇다면 그들이 떼를 지어 서쪽으로 가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원지는 증 참장과 말을 바꾸어 타고도 꼬리 없는 말이 마냥 우습게 보였다. 고삐를 잡고 서서 사부가 오기를 기다렸다. 「사부님, 웬일로 맞은편에서 사람들이 나타나지 않을까요? 어제부터 따져 보면 벌써 다섯 쌍이나 서쪽으로 가지 않았습니까? 몇명의 영웅을 더 보고 싶은데요.」 이원지가 웃으며 하는 말을 듣자 육비청은 깨닫는 바가 있어 자기의 무릎을 탁 쳤다. 「아, 내가 바보로군. 왜 천리접룡두(千理接龍頭)의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을까? 마음속으로 자기 일만 걱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기와 관계 있는 쪽으로만 생각한 것이 잘못이었다. 「그건 강호상에 있는 받회의 가장 응숭한 때절이야. 통상 방회 가운데 우두머리격인 여섯 사람이 하나씩 하나씩 앞으로 나가 한 사람을 영접하는 거야. 가장 극진하게 하려면 열두 사람이 한 쌍씩 나가는 것이지. 지금까지 다섯 쌍이 나갔으니 잠시 후 또 한 쌍이 나타날 것이다.」 「그들이 무슨 방회인데요? 「그야 나로서도 알 수 없지. 서천쌍협과 그 꼽추가 이 방회에 소 속되어 있다면 그 세력이 대단할 것이다. 절대로 그들의 신경을 건드려선 안 된다. 알갰느냐? 이원지는 입으로는 대답을 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그렇지 않았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 나타날 것인지 마냥 궁금했다. 점심때가 되어 식사를 마쳤는데도 맞은편에서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다. 육비청은 자기 추측이 틀린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런데 맞은편에서 사람이 나타난 것이 아니라 뜻밖에도 뒤에서 나타났다. 한바탕 요란한 낙타의 방울소리와 함께 먼지를 일으키며, 한때의 대상이 뒤에서 쫓아왔다. 점점 가까워지면서 수십 필의 낙타 틈에 2, 30필의 말이 섞여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위에 타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위구르 사람들이었다. 오똑한 코, 깊은 눈, 머리 위의 흰 두건, 허리에는 만도를 차고 있었다. 이들 위구르 상인들이 관내에 들어와 장사를 하는 일은 항용 있는 일이라 육비청도 별로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이 때 갑자기 눈앞이 반짝하며 노란 옷을 입은 소녀가 청마를 타고 스쳐 지나갔다. 소녀의 아름다운 모습 가운데 뛰어난 재기가 엿보 이며, 눈부신 광채가 눈 속에 피어난 매화 같았다. 그지없이 온화한 두 볼에 반짝반짝 빛나는 두 눈이 맑은 달빛 아래 차디찬 겨을 강에 비치는 듯했다. 육비청은 그 위구르 소녀의 모습이 출중한 것을 보고 다시 한 번 시선을 옮겼고, 이원지도 완전히 넋을 잃고 바라다보았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서북의 변방에서만 자라서 그동안 제대로 생겼다는 여자도 보기가 힘들었는데 이렇게 아름다운 미인은 생전 처음이었다. 그 소녀의 나이는 자기와 비슷한 18, 9세 정도로 허리에 비수를 꽃고, 길게 땋아 내린 머리가 어깨까지 치렁치렁했다. 노란 윗도리에, 머리에는 금실로 수놓은 예쁜 모자를 쓰고 있었다. 모자 위에 비취색 깃털을 길게 꽃고 가죽신을 신은 채 청마 위에 올라탄 모습이, 부드럽게 펄럭이는 한 폭의 그림이었다. 노란 옷의 소녀가 스치고 지나가자 이원지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말을 달려 뒤쫓아가며 눈도 깜박이지 않고 뚫어지게 바라다보았다. 노란 옷의 소녀는 미모의 한인(漢人) 소년이 넋을 잃고 바라다보 자 그만 얼굴을 붉히며 외쳤다. 「아빠! 키 크고 수염 가득한 위구르 사람이 말을 달려 이원지의 옆으로 와서 가볍게 어깨를 툭툭 쳤다. 「젊은 친구, 그만 가 보지 않겠나? 이원지는 어물어물 대답했다. 자기가 남장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다른 집의 규수를 바라다본다는 것은 경박하고 무례하기 짝이 없는 행동임에 틀림없었다. 노란 옷의 소녀는 이원지가 경박한 건달이란 생각과 함께 손에 든 채찍을 날려 이원지가 타고 있는 말의 꼬리에 걸어 힘껏 당겼다. 말의 털이 듬뿍 뽑혔다. 말은 아프다고 펄떡펄떡 뛰었다. 이원지는 하마터면 말에서 떨어질 뻔했다. 노란 옷의 소녀가 긴 채찍을 허공 에 뿌리자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뽑힌 말꼬리가 어지럽게 사방으로 흩어졌다. 화가 난 이원지는 강표를 찾아 노란 옷 입은 소녀의 등을 향해 던졌다 그러나 결코 그녀를 해칠 생각은 없었으므로 강표를 던지며 이렇게 소리 질렀다. 「아가씨, 강표가 날아가요.」 소녀가 몸을 왼쪽으로 숙이자 강표는 오른쪽 어깨를 스치고 앞으로 날아갔다. 어느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자 소녀는 또 한 번 채찍을 날렸다. 채찍 끝이 강표를 말아 쥐었다. 이번에는 채찍을 다시 뒤로 날렸다. '여봐요, 강표나 받아 가요.」 한 줄기 강한 바람과 함께 강표가 이원지의 가슴을 노리고 날아 오자 그녀는 손을 뻗어 받았다. 사막의 대상들은 채찍의 묘기를 보면서 모두 갈채를 보냈다. 그러나 아버지라 불린 사람은 얼굴에 걱정스런 표정을 지으면서 낮은 소리로 그녀에게 뭐라고 말을 했다. 料1,아빠- 노란 옷의 소녀가 자기 아버지를 향해 대답하고는 다시는 이원지를 거들떠보지 않았다. 오히려 말을 달려 앞서 간 수십 필의 낙타와 함께 먼지를 뚫고 전진했다. 그들은 이 호송하는 병졸들을 추월하고 계속 달렸다. 말발굽 소리가 점점 더 멀어져갔다. 육비청이 어이없다는 듯 웃는다. '재주 많은 사람은 어디에나 있다더니, 너 이제 그 말의 뜻을 알겠지? 노란 옷을 입은 소녀의 나이가 너와 비슷한데 그녀의 솜씨에 놀라지 않았느냐? '저들 위구르 사람들은 낮이나 밤이나 말 위에서 사니까 말채찍을 잘 휘두르는데 그게 뭐 그리 대견해요? 그렇다고 해서 점말 무슨 무공을 지니고 있을라구요? 「정말 그럴까? 육비청은 껄껄 웃기만 했다. 그들은 저녁때 포릉길에 도착했다. 그 고장에는 여관이 통달객잔이라는 큰 여관 하나 밖에 없었다. 객점 앞에는 진원표국의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원래 노상에서 만났던 그들이 먼저 이곳에 와서 쉬는 것이었다. 이 객점에서는 앙쪽의 많은 손님을 맞아 심부름꾼이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육비청은 세수를 끝내자 손에 찻잔을 받쳐 들고 마당 안을 거닐었다. 대청에는 2개의 탁자에 손님들이 앉아 식사와 술을 들고 있었다. 빨간 보자기를 메고 있던 표사는 괴상하게 생긴 병기는 풀어 놓았지만 보따리는 짊어진 채 큰소리로 떠들었다. 육비청은 찻잔을 든 채 하늘을 바라다보는 체했다. 한 표사의 운음 소리가 들린다. 「염 오야! 당신이 이걸 얌전하게 경성(京城)에 갖다만 줘 보시오. 설마하니 조혜 장군께서 상금으로 천 냥쯤 안 내놓으실리 있겠나? 그럼 당신의 소희보를 찾아가 실컷 재미도 볼 수 있을 게요.」 육비청은 생각했다. (과연 예측한 그대로 관동육마 가운데 오마인 염세괴로구나.) 더욱 조심을 하면서 신경을 그쪽으로 모았다. 「상금 말이오? 누가 가져가든 그보다 적게 내놓지는 못하겠지.」 염세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괴상한 목소리가 말참견을 하고 나섰다. 「소희보가 벌써 다른 사람에게 시집가지 않았을까? 그게 걱정이란 말일세. 육비청이 곁눈질로 살펴보니 방금 말을 꺼낸 사람의 용모가 상스럽고 야비해 보이는데 몸집은 가냘프다. 그도 표사의 복장을 하고 있었다. 염세괴가 듣고 불쾌한 듯 흥! 코방귀를 꼈다. 맨 먼저 말을 꺼냈던 표사가 다시 입을 열었다. 당신은 늘 싸움질만 하니 언제나 그 버릇 좀 고치겠소? 동조화라 불린 그자는 계속 이죽거렸다. 「왜 다른 사람에게 시집갔단 말이 귀에 거슬리나? 그럼 좋아, 내 이렇게 말을 바꾸지. 소희보 시집가지 말고 평생 기생질이나 해 처먹으라구.」 염세괴가 이 말을 듣고 욕을 퍼부었다. 「네 에미나 평생 기생질 해 처먹으라구 해라.」 「그것 좋지. 그럼 내 수양 아버지라고 불러 주마.」 동조화는 계속 시시덕거렸다. 육비청은 저속한 그들의 말을 더 들을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막 그 자리를 떠나려고 하는데 동조화의 말소리가 들렸다. 「염 오야, 농담은 농담이고 진담은 진담이요, 괜히 소희보인가 대 희보인가 러무 생각하다가 등에 진 보따리 잃어버릴까 걱정일세. 모가지 떨어져 없어지는 거야 괜찮지만 우리 진원표국의 사십 년 쌓아 온 명성이 하루아침에 떨어져 박살날까 봐 걱정이라네.」 「아니, 이놈이 죽지 못해 안달인가? 그들 회회교인가 뭔가를 믿는 자들이 이 염오야 손에 들어온 물건을 뺏으려고 들어? 어림없 는 수작이니 일찌감치 찬물 마시고 속 차리라고 하게나. 나 염세괴, 관등육마 가운데 얻은 명성은 어디까지나 실력에 의해서 얻은 것 이지 어느 놈처럼 표행(德行)에 억지로 끼어들지는 않았어. 그 같 은 놈은 밥이나 처먹고 방귀나 뀔 줄 알지 도대체 뭘 안다고 까불 어! 육비청은 그가 등에 짊어진 빨간 보따리를 주시했다. 보따리가 크지도 않거니와 그 안에 든 물건이 몹시 가뿐해 보인다. ,과?육마의 명성이 대단한 것은 사실일세. 그러나 애석하게도 삼마가 죽었는데도 그를 죽인 원수가 누군지 알지도 못하고 있는 주제가 말인가.」 동조화의 말에 염세괴는 식탁을 황 치며 약이 올랐다. 누가 모른다고 하던가? 그건 홍화회의 소행이 분명해. 육비청은 생각했다. (그것 참 이상하다. 초문기는 분명 내가 죽였는데 어째서 그 죄를 홍화회에 뒤집어 씌울까? 홍화회에서 도대체 무슨 일을 했기에? 그는 천천히 마당에 있는 꽃나무를 어루만지며 그들 옆으로 더 욱 가까이 접근했다. 동조화는 계속 빈정거린다. 나야 원래 맥없는 인간이라 할 수 없이 밥이나 먹고 방귀나 뀔 수밖에 없지만 왜들 홍화회를 찾아가 원수도 못 갚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염세괴는 화가 나서 부들부들 떨기까지 했다. 다른 표사 한 명이 험악해진 분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말참견을 했다. 「홍화회 총타주 「홍화회 총타주 우만정이 지난달 무석(無線)에서 세상을 떠난 사실은 이 강호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지 않은가? 주인을 잃은 형편인데 자넨 누굴 보고 찾아가라는 말이지? 또 초 삼야를 홍화회에서 죽였다고 하나 증거도 없거니와 본 사람도 없는 실정일세. 만약 찾아갔다가 그들이 아니라고 하면 어떻게 한단 말인가? 동조화로서도 할 말이 없었다. 우리야 감히 홍화회를 건드릴 수 없다지만 위구르 사람이야 무서울 것이 없지. 그들이 생명처럼 아끼는 보물도 우리가 뺏어 온 마당에 앞으로 조 장군께서 돈 내놔라 소 내놔라 양 내놔라 하면 감히 제깟것들이 어쨀 테야? 두 손으로 갖다 바치지 않을 재간이 있나. 내 말은 염 오야가 쓸데없이 소희보만 좋아할 것이 아니라 차라리 서울로 돌아가거든 조 장군께 위구르 여자나 하나 달래서 마누라를 삼는 게 더욱 좋겠다는 뜻이지.」 신이 나서 떠들고 있는데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어디서 날아왔는지 진흙 덩어리가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동조화는 입이 막혀 말은 못하고 괴상한 신음 소리를 냈다. 2명의 표사가 병기를 들고 쫓아 나갔다. 염세괴도 벌떡 일어나 옆에 놓아 둔 오행륜을 손에 잡았다. 그의 동생인 염세장도 소리를 듣고 달려왔다. 두 형제는 함께 일어섰지만 적의 뒤를 쫓지는 않았다. 적의 흉계에 빠지지 않을까 걱정했기 때문이다. 동조화는 입에 틀어박힌 진흙을 뱉고는 갖은 욕설을 다 퍼부었다. '개가 똥을 먹는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진흙 먹는 꼴은 처음 보겠네. 염세장이 차디찬 말로 비꼰다. 표사 대영명과 전정륜이 하나는 부드러운 채찍을 들고 다른 하나는 단도를 들고 문 밖에서 뛰어들어왔다. 「어디로 달아났는지 보이지 않아.」 이 사실들을 육비청은 똑바로 지켜보았다. 말씨가 경박하기 짝이 없는 동조화의 낭패한 몰골을 보자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이때 동쪽 울타리 모퉁이에 사람의 그림자가 번쩍 스쳤다. 그는 아무 일 없는 사람처럼 어슬렁거리며 밖으로 나왔다. 이때는 날씨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그는 객점의 서쪽 울타리 밑에 숨었다. 누군가가 지붕 위에서 소리없이 뛰어내려 동쪽을 향해 달린다. 육비청은 동조화에게 진흙을 던져 골탕을 먹인 사람이 누군지 궁금해서 경공을 펴 소리없이 그의 뒤를 밟았다. 여전히 두 손에 찻잔을 받쳐 든 채 장삼자락도 걷어올리지 않았 다. 그가 수십 년 동안 고련을 한 경공은 과연 보통이 아니라 재빨 리 뒤를 쫓는데도 상대는 전연 이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순식간에 두 사람은 5리 이상을 걸었다. 앞에 가는 사람의 몸집이 날씬하고 아리따운 것이 여자 같은데도 경공은 훌릉했다. 언덕을 하나 넘자 어두컴컴한 숲이 나왔다. 그 사람이 숲속으로 들어가자 육비청도 따라 들어갔다. 숲속에 들어서자 낙엽과 마른 나뭇가지가 즐비해 밟기만 하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육비청은 발각될까 봐 조심하면서 속도를 늦췄다. 순간 그 사람 의 그림자가 사라져 보이지 않는다. 이때 홀연 구름을 뚫고 달이 나타나 밝은 달빛이 나뭇가지 사이로 비친다. 나무 그림자가 어수 선하게 깔렸는데 먼 곳에서 노란 옷이 반짝 비치며 숲을 빠져나간 다. 육비청도 뒤쫓아가 큰나무 뒤에 몸을 숨기고 사방을 두리번거렸 다. 숲이 끝난 그곳은 풀밭으로 거기 10여 개의 천막이 쳐져 있었 다. 호기심이 발동한 그는 그 안을 살펴보고 싶었다. 2명의 보초가 몸을 저쪽으로 돌리는 순간 연자삼초수의 재주를 부려 천막 밖에 있는 낙타의 뒤에 몸을 숨겼다. 그는 몸을 웅크리고 중앙에 있는 제일 큰 천막 뒤로 살금살금 기어가 땅에 납작하게 엎드렸다. 천막 안에서 격앙된 말소리가 들 리는데 위구르 말인데다가 무척 빨랐다. 그가 변방에서 다년간 살 기는 했지만 거의 알아들을 수 없어 슬그머니 천막 아랫자락을 들 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천막 안에는 2개의 등불이 켜져 있고 많은 사람들이 바닥에 깔 아 놓은 담요 위에 앉아 있었다. 낮에 만났던 위구르 대상 일행이 다. 이때 뭐라고 중얼거리는 해맑은 목소리가 들려 육비청은 시선 을 그쪽으로 옮겼다. 바로 노란 옷의 소녀가 거기에 있었는데 소녀 는 말을 멈추고 허리춤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비수를 뽑아 들었다. 그녀가 비수로 자기 왼쪽 손의 식지를 찌르자 빨간 핏방울이 뚝 뚝 마유주(馬乳酒) 속으로 떨어진다. 천막 안에 있는 나머지 사람 들도 패도를 뽑아 피를 내어 술 위에 떨군다. 소녀로부터 (아마)라 불린 키 큰 위구르 사람이 술잔을 높이 들 고 뭐라고 큰소리를 질렀다. 육비청은 (코란 경)이 어떠니 (고향) 이 어떠니 하는 간단한 단어만 알아들을 수가 있었다. 소녀의 목소 리가 낭랑하게 울렸다. (신성한 코란 경을 뺏어 오기 전에는 죽어도 고향에 돌아가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뭇 사람들이 떠들석하게 선서를 하는 데 희미한 등불 아래 비장한 각오와 결의의 표정이 역력히 드러나 보였다. 선서가 끝나자 모두들 잔을 비우고 소곤소곤 무슨 대책을 상의하는 것 같았다. 육비청은 이들 위구르 사람들이 생명보다 소 중히 여기는 신성한 성경을 누구에게 뺏겨 이것을 다시 찾아오려 고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했다. 육비청의 추측은 과연 옳았다. 원래 이들 위구르 사람들은 천산 북로-에 속한 유목 부족이었다. 이 부족은 사람도 많고 세력 또한 강대해 거의 2만 명에 달하는 인구였다. 키 큰 사람의 이름은 목탁륜으로 이 부족의 수령이다. 무공이 강한데다 위인 또한 인자하고 공정하여 부족의 존경과 추앙을 한몸에 받고 있었다. 노란 옷을 입은 소녀는 그의 딸로서 이름은 곽청동 이며, 노란 옷만 즐겨 입었고 작은 모자 위에는 비취색 깃털을 길게 꽃고 다녔다. 그래서 예쁜 별명이 하나 생겼다. 천산북로 무림 의 인물들은 (비취색 깃털 노란 옷의 곽청동)이라면 누구든지 다 잘 알고 있었다. 이 부족은 유목을 생업 수단으로 삼고 있었기 때문에 늘 사막의 이곳저곳을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며 즐겁게 살았다. 그러나 청정의 세력이 점차 확대되면서 가렴주구가 더욱 심해졌다. 목탁륜은 처음에는 그들의 무리한 요구를 될 수 있는 대 로 다 들어 주었다. 그러나 만관의 탐욕은 끝이 없어 부족의 생활이 편할 날이 없었다. 목탁륜은 할 수 없이 족인들을 불러 상 의했다. 모두들 이렇게 계속되다가는 살길이 막막하다고 했다. 몇 차례나 사람을 보내 사정을 하였으나 사정을 보아 주기는커녕 청정에서는 오히려 그들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정황기 만주 부도통(滿洲副都統) 겸 양홍기호군통령 정변장군 (法邊將軍) 조혜긴도惠)는 그때 조정의 명을 받고 천산북로의 독판 으로 군무를 장악하고 있었다. 그는 이 부족이 조상 전 래로 내려온 수사본 코란 경을 성지인 메카에서 입수, 수십 대에 거쳐 수령들이 보물처럼 보존해 내려오고 있다는 사실을 탐지했다. 정말 이 코란 경은 이들 부족의 보물이었다. 그래서 목탁륜이 멀 리 출타한 기회를 이용하여 고수를 파견, 마침내 이 경서를 뺏어 오고 말았다. 조혜는 이것을 끼고 있는 이상 설마 그들이 반항하지 못하리라고 믿었던 것이다. 목탁륜은 사막에서 대회을 소집했다 그 결과 뭇 사람들을 인솔하여 동으로 성경을 찾으러 왔으며 뼈를 관내에 묻는 한이 있더라도 성서만은 찾아야겠다고 맹세했 다. 이 시간은 저녁 기도를 올리기 전에 다시 한 번 새로운 각오를 다짐하는 순간이었다. 육비청은 이들 위구르 사람들이 도모하는 일이 자기와는 아무 상관이 없음을 알자 더 들을 필요를 느끼지 않아 몸을 돌려 돌아 가려고 하는데 천막 안의 사람들이 모두 땅에 엎드려 기도를 드린 다. 그가 몸을 일으켜 세우는 순간 곽청동이 벌써 천막 밖에서 누 군가가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음을 눈치챘다. 「밖에 누가 있어요. 아버지의 귀에 속삭이고 벌떡 일어나 천막 밖으로 나왔다. 한 사람이 때마침 숲속으로 뛰어가고 있는데 꾀나 빠른 속도다. 손을 번 쩍 들어 철련자를 그의 등에 대고 쏘았다. 육비청은 등뒤의 질풍 소리를 듣자 암기의 습격을 직감하고 살 짝 옆으로 피했다. 이때에도 그는 두 손으로 찻잔을 받치고 있었다. 오른팔 식지를 뻗어 철련자를 밑으로 누르자 평행으로 날아 오던 철련자가 수직으로 떨어진다. 그는 왼손에 찻잔을 들고 있다가 식 지와 중지로 그 뚜껑을 벗겨 철련자를 찻잔 속에 떨어뜨렸다. 고개 도 돌리지 않고 경공의 재주를 부려 나는 듯 객점으로 돌아왔다. 그가 객점에 돌아왔을 때 일행은 모두 잠을 자고 있었다. 「노선생님, 이제 돌아오십니까? 야경을 구경하신 모양이군요? 심부름꾼의 인사에 어물어물 대답하고 자기 방으로 들어왔다. 찻잔 속의 철련자를 꺼내 보니 정강을 두드려 만든 것으로 그 위에 깃털이 하나 새겨져 있다. 되는 대로 주머니 속에 쑤셔 넣었다. 이튿날 아침 표행 일행이 먼저 떠났다. 워우-위이양, 함성을 지 르며 진원표국의 팔괘 표기가 선두에 섰다. 육비청은 이 표 행이 거느린 노새의 짐이 결코 무겁지도 않거니와 몇 명의 표사가 전적으로 염세괴만을 호위하고 있음을 보아 그가 짊어진 빨간 보 따리가 대단한 귀중품인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안에 무 엇이 들었길래 그러는지는 알 수도 없었거니와 알 필요도 느끼지 않았다. 표행 일행이 떠난 후 증 참장도 병정들을 인솔하고 부인을 호위 하며 길을 떠났다. 낮에는 황암자에서 식사를 했다. 계속 산으로 오르는 비탈길이다. 당일 예정은 3개의 긴 고개를 넘고 고 개 아래에 있는 삼도구에서 묵는 것이었다. 경전(經典)을 찾아서 산길이 험준해서 갈수록 가파르다. 이원지와 증 참장은 부인이 탄 수레에 바짝 붙어 가고 있었다. 노새가 실족이라도 하면 수레가 산골짜기로 떨어져 가루가 되는 것이다. 신패시까지 가니 오 금협구(烏金峽口)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앞서 떠났던 표행 일행이 땅바닥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증 참장도 수종들에게 잠시 쉬 도록 했다. 오금협의 양쪽은 높은 산이고 가운데로 길이 하나 있을 뿐인데 워낙 깎아지른 듯 가랄라 도중 멈출 곳이 없었다. 단숨에 올라가지 않으면 고개를 넘을 수가 없었다. 육비청은 뒤에 떨어져서도 등을 돌린 채 표행을 마주 보지 않았다. 휴식이 끝나자 산골짜기로 진입했다. 표행과 증 참장 수하의 병 정들이 긴 행렬을 이루었다. 사람이고 짐승이고를 가릴 것 없이 모 두 숨을 할딱거리며 올라가고 노새를 모는 마부들의 (이랴, 이랴: 소리만 크게 울렸다. 육비청은 왼쪽 산봉우리 위에서 사람의 그림자가 반짝 하는 것을 보았다. 누군가가 이쪽을 엿보는 것이 틀림없었다. 이때 갑자기 앞에 낙타의 요란한 방울소리가 들리며 한 떼의 위구르 사람들이 낙타 에 탄 채 질풍처럼 고개 위에서 내려오는데 발굽 소리가 마치 산 사태라도 난 것처럼 요란하다. 표행 사람들이 천천히 내려오라고 소리를 지른다. 동조화도 마찬가지 였다. '여보, 에미가 죽어 장사지내러 가느라 서두르는 게요? 그들이 거의 이쪽으로 접근할 무렵 앞서 오던 7, 8기의 낙타에 탄 사람들이 높은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길고 긴 메아리가 산골짝 에 울려 퍼진다. 양쪽 산 위에서 사람들이 일어나 노래로써 대답을 하니 표행 사람들이 몹시 놀란다. 위구르 사람들 틈에서 호각소리 가 나더니 두 필의 말이 달려와 염세괴를 돌아 그의 뒤를 바짝 따 르고 있던 염세장에게 덤벼들었다. 동시에 네 필의 낙타가 염세괴 의 전후좌우로 달려들었다. 염씨 형제는 강적을 만나 싸운 경험이 풍부한 사람들이다. 사태 가 이상함을 느끼고 즉시 병기를 빼들어 대항했다. 네 필의 낙타 등에 타고 있던 네 사람이 동시에 두 손으로 대철추를 높 이 들어 염세괴의 머리를 노리고 후려친다. 산길이 협소하여 도대 체 피할 여지가 없는데다가 사람이 워낙 많고 게다가 네 사람의 힘이 굉장히 강했다. 낙타등 위에 올라앉아 있는데 1백여 근이 넘 는 4개의 대철추가 허공에서 떨어진 것이었다. 염세괴의 무예가 제아 무리 훌륭하다 하더라도 피할 도리가 없었다. 사람이고 말이고 그 자리에서 맞아 피투성이가 된 채 즉사했다. 위구르 사람들 가운데서 노란 옷의 곽천동이 달려나오며 말에서 뛰어내렸다. 장검을 휘둘러 염세괴의 등에 붙들어 맨 보따리 끈을 잘라 버렸다. 두번째 칼을 쓰기도 전인데 등뒤에서 질풍이 일었다. 병기의 습격이었다. 곽청동은 몸을 옆으로 피했다. 나타난 적이 누군지 살필 틈도 없 었다. 칼을 들어 다른 한쪽의 끈을 또 잘랐다. 그런데 적의 검법이 신속하기 짝이 없어 보따리를 주워 올릴 여유조차 주지 않는다. 다시 칼이 자기 허리를 노리고 나타나자 곽청동은 피할 길이 없 음을 알고 자신도 칼을 들어 막는다. 2개의 칼이 부딪치는 순간 불 꽃이 사방으로 튄다. 적의 무공이 만만치 않음을 알 수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그러한 것들을 헤아릴 여유가 없었다. 다시 왼손을 뻗 어 보따리를 주우려고 했다. 적의 장검이 그림자처럼 쫓아오며 방 해한다. 이번에는 자기의 왼팔을 노린다, 곽청동은 왼팔을 오므림 과 동시에 식지와 장지로 그 칼을 누르고 오른손의 자기 칼을 뻗 으며 고개를 들었다. 세 번이나 보따리를 주우려는 것을 방해한 사 람은 미모의 소년이다. 어제 노상에서 무례하게도 자기를 뚫어지게 쳐다본 바로 그 사람이었다. 마음속에 불길이 일어나 쉭쉭쉭 세 번 이나 칼을 휘둘렀다. 그래서 두 사람은 서로 어우러져 싸웠다. 그는 바로 남장 여인 이원지였다. 그녀는 위구르 대상들이 표행 을 급습하자 그저 강 건너 불 구경을 하듯 수수방관하려고 했다. 그런데 노란 옷의 소녀가 나는 듯 달려들어 빨간 보따리를 뺏으려 고 하는데 이 소녀는 어제 자기가 탄 말꼬리를 잡아 뽑은 사람이 다. 그런데도 사부는 오히려 그녀의 무공을 칭찬했다. 아직까지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지금 표사와 위구르 사람들이 치열 하게 싸우는 것이다. 누가 옳고 그르고를 따질 것도 없이 경공으로 달려나와 노란 옷의 소녀와 승부로 겨루기로 했다. 곽청동이 세 번이나 칼을 들어 찔렀지만 이원지는 가볍게 그것 을 물리친다. 소녀는 몹시 초조했다. 원래 그들은 자기들의 코란 경 을 조혜가 진원표국에 부탁, 북경으로 호송하고 있다는 사실을 탐지했던 것이다. 여러 표두들이 철통같이 보호하는 빨간 보따리라면 거기 틀림없 이 성경이 들어 있을 것이나, 표행에 있는 사람들의 무공이 만만치 않으니 정면으로 대들어 뺐는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곽청동은 오금협구에 매복하고 있다가 불의의 일격에 성 공, 성경을 뺏어 가지고 돌아갈 계략을 꾸몄던 것이다. 그런데 도중 에 난데없이 소년이 나타나 훼방을 놓는 것이다. 곽청동은 천재일 우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돌연 검범을 일변, 천산파 절기인 삼분검술(三分劍術)을 쓰기 시작했다. 수초 사이에 이원지가 점점 몰려 뒤로 물러났다. (삼분검술)은 천산파 검술의 절기다. 소위 (삼분)이라 하는 것은 이 검술 가운데 매번 손을 쓸 때마다 3분의 1의 힘만 쓰고 만다는 데 있다. 적이 방어를 할 때는 벌써 검법이 바귄 뒤가 된다. 1초 가 운데 3초가 숨어 있어 매우 복잡하고 매서우며 방어가 없고 오직 공격의 살수만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원지는 노란 옷의 소녀가 빙하도사로 찌르자 칼등을 위로 들어 조천일주향으로 막았다. 그런데 상대는 힘 을 쓰다가 도중에서 갑자기 천리유사(千里流沙)로 바꾸어 비스듬히 옆을 쪼개고 들어온다. 깜짝 놀란 이원지는 칼끝을 돌리며 몸의 중 앙을 보호했다. 그런데 이상스럽게도 상대방의 칼이 무섭게 접근하 다가 금방 또 풍권장초로 바뀌며 왼쪽 다리를 노리고 대 든다. 이원지는 급히 한 발짝 물러나 가까스로 피했다. 곽청동의 일 초가 거화요천으로 변해 위에서 아래로 자기 왼쪽 어깨 를 찌르려 했다. 이원지가 막으려고 하는데 상대의 검법은 또 설중 기연(雪中奇蓮)으로 바뀌었다. 그의 일초 일초가 활에 먹인 화살과 같았다. 강한 힘이 폭발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속에는 늘 위험이 숨어 있었다. 두 사람은 10여 초를 대결했다. 그러나 양쪽의 칼이 서로 부딪치 지는 않았다. 곽청동이 3분의 1의 힘만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상 대방이 방어 태세를 취했을 때는 이미 그의 검법은 바뀌어 있었다. 곽청동은 그의 몸 근처에서 빈 칼질만 했다.그의 몸 한자 이내의 거리를 뚫고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이원지는 손발이 흐트러져 계속 뒤로 물러섰다. 만약 그가 막지 않았다면 상대방의 허초가 아마 실초로 변했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막는다면 상대는 일 초 동안에 겨우 3분의 1만 힘을 쓴다. 바로 3분의 1의 시간밖 에 쓰지 않는 결과가 된다. 이쪽에서 일 초를 쓰는 사이에 상대는 벌써 삼초의 공격을 쓰는 셈이다. 아무리 재빠른 동작이라도 도저 히 따라갈 수 없는 묘기다. 그렇게 계속 뒤로 후퇴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원지의 유운검술도 상당한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정신을 통일하고 이정제동만 한다면 결 코 이렇게까지 뒤로 물러설 필요는 없었다. 이원지는 처음 무림에 나타나 경험이라고는 전혀 없는 애송이였다. 상대방의 검법이 자기 에 비해 3배나 빠른 것을 보고 당황했으니 뒤로 달아날 수밖에 없 었다. 곽청동은 쫓아가지 않고 몸을 돌이켰다. 몸집이 가냘픈 사람 하 나가 손에 그 빨간 보따리를 든 채 염세괴 옆에서 일어나 서는 것 이 보인다. 곽청동이 칼을 들어 찌르려고 했다. 「아이쿠, 이 동 나리 죽는다! 말씨가 경박한 동조화였다. 그는 대항할 생각도 못하고 뒤로 세 발짝 뛰어 피했다. 곽청동이 쫓아가 칼을 내려치려고 하는데 옆에 서 한 자루의 오행륜이 가슴을 향해 달려들었다. 염세장이 나타나 막아 준 것이다. 곽청동은 이번 일의 계획을 치밀하게 짰었다, 앞뒤는 몸집이 큰 낙타로 표행 사람들을 가로막아 상호 호응이 불가능하게 했다. 목 탁륜은 장도를 휘둘러 대영명과 전정륜 2명의 표사를 1대 2로 상 대하면서 계속 공격만 폈다. 그러나 다른 한쪽은 염세장의 맹렬한 공격을 받았다. 형이 위구르 사람의 대철추에 맞아 즉사한 것을 보 자 그만 눈이 뒤집힌 것이다. 말에서 뛰어내리며 몸을 날려 낙타를 타고 넘어 왼손에 오행륜을 비껴 들고 철추를 들고 있는 위구르 사람의 옆구리를 후려쳤다. 맞은 그자가 낙타 등에서 떨어졌다. 다 른 한 위구르 사람이 달려와 막으려고 철추를 휘두르자 염세장은 철추가 자기 가까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몸을 살짝 옆으로 기 울였다. 그리고 쌍륜을 왼손에 바꾸어 쥠과 동시에 오른손으로 그 의 맥문을 잡아끌었다. 대철추의 무게는 1백 근이 럼는다 그것을 휘두르자면 맹렬한 힘이 필요했다. 그 위구르 사람은 염세장이 끄는 바람에 낙타에서 떨어져 내렸 고, 그가 휘두른 철추는 오히려 자기 가슴에 와 맞았다. 큰 비명 소 리와 함께 그 자리에서 피를 흘리며 죽었다. 이런 혼란 가운데 동 조화는 재빨리 빨간 보따리를 챙겨 손에 넣었다. 염세장은 곽청동 이 동조화를 쫓아가는 것을 보고 무공이 약한 그를 도우려고 달려 든 것이다. 곽청동이 염세장과 수초를 대결했으나 상대의 힘이 막강해 만만 한 상대가 아님을 알았다. 또 그 미모의 소년이 합세하지나 않을까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이때 갑자기 앙쪽 산 위에서 호각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그것은 퇴각을 알리는 신호다. 표행에 접응할 사람 들이 나타난 것이다. 고개를 들어 보니 동조화가 황급히 고개 위로 뛰어올라가는 모습이 보였다. 급히 삼분검술의 재주를 펴 염세장을 2보 후퇴시켜 놓고 고개 위로 쫓아갔다. 호각 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렸다. 「청동아, 빨리 퇴각해라. 목탁륜이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청동은 발길을 멈춘 채 동료들 을 통솔, 사상자를 낙타 위에 태우고 고개 아래를 향해 달렸다. 앞에 수십 명의 청병이 길을 막고 서 있다. 증도남이 말에서 뛰 어내리며 창을 비껴 들고 소리를 지른다. 「무모한 것들, 감히 대들겠느냐? 곽청동이 2개의 철련자로 증 참장의 두 손을 치자 잴그렁 소리 와 함께 철창이 땅에 떨어진다. 목탁륜이 긴 칼을 높이 들고 앞에서 길을 뚫는다. 일대의 위구르 사람들이 청병을 향해 돌격해 들어갔다. 청병이 분분히 길을 비킨 다. 염세장과 대영명이 쫓아와 곽청동과 다시 붙어 싸웠다. 위구르 인마 가운데 한 필이 나는 듯 달려나오며 소리를 지른다. 이 사람은 곽청동의 오빠인 곽아이(響阿伊)다. 긴 창을 들어 2명 의 표사를 막았다. 곽청동이 말에 오르자 남매는 싸우면서 후되하 기 시작했다. 이때 양쪽 산 위에서 급한 호각 土리가 다시 울렸다. 곽아이 -곽청동이 말을 재촉하여 달리고 염세장이 그 뒤를 바짝 쫓는다. 곽청동이 2개의 철련자를 그의 상반신을 노리고 날렸다. 염세장 이 발길을 멈춘 채 또 행륜을 휘둘러 철련자를 떨어뜨릴 때 양쪽 산 위에서 큰 돌이 어지럽게 굴러 내려와 10여 명의 청병이 돌에 맞아 피투성이가 되었다. 혼란 가운데 위구르 대상들은 벌써 멀리 달아나 버렸다. 염세장은 비참하게 세상을 떠난 형의 피투성이가 된 시체를 끌 어안고 눈물을 줄줄 흘린다. 전정륜과 대영명이 달래자 겨우 눈물 을 거두고 말에 올랐다. 표행의 심부름꾼들이 죽은 시체를 수레에 실었다. 동조화는 득의 양양했다. 「동 나리의 손발이 빠르지 않았더라면 그가 죽어도 헛 죽을 뻔 했군.」 쌍방이 격돌하는 동안 육비청은 계속 수수방관했다. 이원지는 곽 청동을 당해 내지 못하고 밀리기는 했지만 표행을 도와 물건을 뺐기지 않게 했다고 혼자 흐뭇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염세장은 형의 죽음에 괴로워하고 있었고, 나머지 표사들은 부상자와 사상자를 수 습하기에 바빠 누구도 와서 고맙다는 인사 한마디 없는 것이 불쾌 했다. 그런데 육비청까지 자기를 호되게 책망하는 것이 아닌가? 무 엇 때문에 남의 일에 나서서 일을 그르치고 원망을 사느냐는 것이 었다. '표행 가운데 좋은 사람은 적고 나쁜 사람만 많단 말이다. 그- 왜, 그들을 도와 나쁜 일을 저지르고 야단이냐? 이원지는 무안해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고개를 넘자 황혼 무렵에 삼도구에 도착했다. 그곳은 크지도 작 지도 않은 고을이다. 「삼도구에는 객점이 하나밖에 없습니다.」 나귀를 끄는 마부의 말이다. 고을에 들어서자 표행과 증도남 일 행은 모두 안통객잔(安通客理)에 투숙했다. 변방의 황량한 곳이라 객점도 보잘것이 없었다. 동조화는 객점의 심부름꾼이 나와 맞지 않는다고 욕부터 했다. 「아니, 이놈들이 모조리 뒈졌나? 내 네놈들 십팔대 조상까지 들 먹여야 나오겠느냐?J 민망해진 이원지는 눈살을 찌푸렸다. 평생 이렇게 듣기 고약한 욕은 처음 들어 보는 것이다. 일행이 막 문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안에서 병기가 서로 부 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이거 또 구경거리가 생겼군.」 이원지는 좋다고 먼저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내당 안은 죽은 듯 고요할 뿐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마당으 로 들어서니 젊은 부인이 머리를 풀어 헤친 채 4명의 남자와 악전 고투를 벌이고 있었다. 젊은 부인이 괴로운 표정으로 왼손에는 긴 칼을, 오른손에는 짧은 칼을 든 채 칼날을 번잭이며 결사적으로 상 대하고 있었다. 이원지는 그들이 싸우는 광경을 바라보며, 남자들 은 방으로 뛰어들어가려 하고 젊은 부인은 들어가지 못하게 막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4명의 남자의 무공도 만만치가 않았다. 각 기 연편(軟經)과 회장(懷枚-검(劍)과 귀두도(處理刀)를 쓰고 있었 다. 이때 육비청도 이미 마당 안에 들어와 있었다. (어째서 이번 긴엔 매일 이런 사람들만 만나게 될까?) 회장을 쓰는 사람이 쌍장을 들어 내려치자 젊은 부인은 직접 막 아내지 못하고 몸을 왼쪽으로 돌려 피했다. 연편이 허리를 후려치 자 젊은 부인은 왼손에 든 칼을 바람처럼 휘두르며 적의 오른팔을 노린다. 연편 끝이 살짝 밀리자 부인은 또 긴 칼을 거두어들인다. 귀두도가 쪼개며 나타나자 한 자루의 검이 또 그녀의 등을 찌르려 고 대든다. 젊은 부인이 오른손의 칼로 검을 막아낸다. 그러나 적은 양쪽에서 협공을 하는 것이다. 귀두도를 피할 방법이 없다. 그냥 왼 쪽 어깨에 맞고 말았다, 젊은 부인은 칼에 맞고도 물러나려 하지 않는다, 쌍도를 휘두를 때 선혈이 사방으로 뿌려졌다. 「산 채로 잡으라구. 그녀의 생명을 없애면 안 돼.」 연편을 쓰는 사람이 외쳤다. 육비청은 사내 넷이 여자 하나를 상 대하는 것을 보자 의협심이 발동했으나 자신이 지금 중대한 일을 맡고 있는 처지라 직접 나설 입장이 아님을 안타깔게 여겼다. 회장을 쓰는 사람이 쌍장으로 비스듬히 들어 치자 젊은 부인이 회장을 피한다. 그리고 그 바쁜 중에서도 오른손의 단도로 반격까 지 했다. 왼쪽에서 검이 찌르려고 나타나자 젊은 부인은 긴 칼을 들어 막았지만 상대방의 체력이 워낙 강한데다가 부인은 왼쪽 어 깨에 부상을 입어 기력이 감퇴해 있었다. 칼과 칼이 부딪치는 순간 손이 떨려 쩔그렁, 그만 장도를 놓치고 말았다. 젊은 부인이 비키지 않을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장검이 여세를 몰고 직진해 들어가자 젊은 부인이 오른쪽으로 급히 피한다. 귀두도를 쓰는 사내가 이 틈 을 노려 방으로 뛰어들었다. 젊은 부인은 몸 뒤에서 공격해 오는 병기는 아랑곳하지 않고 왼손을 품속에 넣었다 뽑으며 두 자루의 비도(飛刀)를 적의 등을 향 해 날렸다. 그자는 동료 셋이 부인을 공격하고 있었기 때문에 뒷일 은 걱정조차 하지 않았다. 머리 뒤에서 이는 바람소리를 듣기는 했 지만 미처 피할 겨를이 없어, 고개를 밑으로 숙이자 비도 하나가 문설주 위에 꽃히고 다른 한 자루는 등을 찔렀다. 다행히 젊은 부 인이 왼쪽 어깨에 부상을 입고 맥이 빠져 있었기 때문에 치명상은 아니다. 그러나 아파서 비명을 지르며 물러나 등에 꽃힌 비도를 뽐 았다. 젊은 부인은 이때 또 한 번 회장에 맞고 비틀거리면서도눈 앞의 적이 물러난 것을 보고 방문을 막아 섰다. 육비청이 이원지를 바라본다. 「네가 대신 포위를 풀어 주어라. 형세 불리하면 이 사부가 도와 주마.」 이원지는 그렇지 않아도 몸이 근질근질하던 참이라 사부의 이 말이 떨어지자마자 달려나가 칼을 들어 막았다. 「사내 넷이 부인 하나를 상대로 싸우다니 이게 말이 돼요? 네 남자는 귀찮은 인물이 하나 나타난데다 또 자기 편 사람 가 운데 부상을 입은 자도 있고 해서 서로 눈치를 보내며 객점 밖으 로 나가 버렸다. 젊은 부인은 얼굴이 백지장이 되어 문에 기댄 채 가쁜 숨을 몰 아쉬고 있었다. 이원지는 그 부인에게 다가섰다. 「그자들이 무엇 때문에 그랬어요? 이원지가 물었지만 대답할 기력도 없는 모양이다. 증도남이 이원 지 곁으로 걸어왔다. 「부인께서 아가씨 보고 들어오시랍니다.」 「부인께서 아가씨가 또 누구와 싸우신단 말씀을 들으시고 놀라 셨습니다. 빨리 가 보세요. 젊은 부인은 증도남이 입은 무장의 관복을 보자 얼굴색이 질려 이원지가 묻는 말에 대답을 하기는커녕 문설주에 꽃혀 있는 비도 를 뽑고 방문을 열고 들어가 잠가 버렸다. 이원지는 어이가 없었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증도남 쪽으로 돌렸다. 「그래요, 가요.」 육비청을 지나며 묻는다. 「사부님, 그들이 무엇 때문에 사생 결단을 하자고 싸웠을까요? 「아마 강호상에 흔히 있는 복수겠지. 일이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그들 네 사람이 다시 나타날 게다.」 이원지가 다시 물으려고 하는데 밖에서 떠들썩한 소리가 들렸다. 「제기랄, 그래 좋은 방이 없다구? 이 나리가 돈을 못 내놓을 줄 아나 보구나? 말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표사 동조화다. 심부름꾼이 쩔쩔매며 사과를 한다. 「별 말씀을 다 하십니다. 나리, 화내지 마세요. 저희가 나리께 감히 득죄를 할수 있겠습니까? 정말 몇개 되지 않는 방에 손님이 꽉 차서 그럽지요.」 「누가 좋은 방에 들었는지 어디 구경 좀 하자.」 동조화는 이렇게 말하며 마당으로 들어왔다. 바로 이때 윗채에 있는 방문이 열리며 젊은 부인이 고개를 내밀었다. 「수고스럽지만 더운 물 좀 갖다 주세요」 함께 있던 심부름꾼이 그러마고 대답했다. 동조화는 젊은 부인의 살결이 눈처럼 희고 또 얼굴이 잘생긴데 다가, 또 팔에 옥으로 만든 팔찌를 끼고 있어서 횐 팔이 더욱 하얗게 보이자 자기도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꿀꺽 마른 침을 삼키 고 눈알을 굴린다. 젊은 부인의 말씨는 강남 말씨에 북방 말이 섞여 더욱 부드럽고 맑게 들려 매력적이었다. 「동 나리께서는 이 길을 수십 번 다녀도 여태까지 좋지 않은 방 엔 묵어 본 일이 없다. 좋은 방이 없다니 말이 되느냐? 빨리 방을 마련해 내놓아라.」 이렇게 거드름을 피우며 젊은 부인이 미처 방문을 닫지 않고 있 는 틈을 타 그대로 방 안으로 뛰어들었다. 표행의 심부름꾼인 손노 삼이 말리려고 했지만 그럴 겨를이 없었다. 젊은 부인은 동조화가 뛰어들어 오자, (아이쿠) 소리를 지르며 막으려고 했다. 그러나 다리가 아파 그대로 주저앉고 만다. 방금 회장에 맞은 데가 중상이었던 모양이다. 동조화가 방 안에 들어와 보니 구들 위에 한 남자가 누워 있는 데 방 안이 컴컴해 얼굴은 볼 수 없었지만 머리를 횐 천으로 감았 고, 또 오른손을 천으로 묶어 머리 위에 걸었다. 다리 하나를 이불 밖으로 내놓고 있는데 그것도 붕대로 감싼 것이, 전신에 부상을 입 은 것 같았다. 그 사람은 동조화가 방 안으로 들어오자 무거운 목소리로 물었 다, 「누구요? 「이 동 나리는 진원표국의 표사요 삼도구를 경유하게 되었는데 이 집에 좋은 방이 없다고 하는구려. 수고스럽지만 방 좀 비워 주 시오. 그런데 이 여자는 누구요? 당신의 부인이요, 아니면 서로 좋 아하는 사이요? 「빨리 나가시오. 그 사람의 목소리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상처가 워낙 심해 말도 크게 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동조화는 방금 이 젊은 부인이 다른 사람과 필사적으로 싸우는 장면을 목격하지 못했기 때문에 평범한 부인이겠거니 했다. 함께 있는 남자는 부상을 입어 꼼짝달싹할 수도 없는 처지다. 이런 때를 놓치면 언제 또 재미를 보랴 생각하며 뻔뻔스럽게 웃으며 대들었다. 「방을 비을 수 없다면 할 수 없지. 우리 세 사람이 여기서 묵어 봅시다. 안심하시ㅗ. 내 당신이 있는 이쪽으로 대들지는 않을테니까 그리고 상처도 악화되지 않도록 조심 하리다.」 그 사람은 화가 나서 몸을 부들부들 떨기까지 했다. 젊은 부인이 낮은 소리로 말린다. 「여보, 참아요. 이런 사람과 다퉈 뭘하겠어요. 공연히 다른 사람의 감정을 건드려 봐야 이로을 게 없어요.」 그러고는 다시 동조화를 바라본다. 「여기서 시끄럽게 굴지 말고 빨리 나가요.」 「뭣하러 밖으로 나가겠소? 여기서 당신과 함께 있으면 아주 좋을 텐데.」 구들 위에 누워 있던 남자가 입을 열었다. 「이쪽으로 오시오. 동조화가 한 발짝 가까이 접근했다. 「왜? 잘생겼나 못생겼나 보려구? 「잘 보이지 않아서 그러오.」 동조화가 껄껄 웃으며 다시 한 발짝 접근했다. 「똑똑히 보구려, 혹시 매부를 잘못 고를 수도 있을 테니까.」 그의 경박한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남자가 벌떡 일어나며 왼손을 전광석화처럼 놀려 동조화의 기유혈을 찍고 다시 일장으로 그의 어깨를 후려쳤다. 즉시 동조화의 몸이 구름을 타고 앉은 듯 평행으로 날아 방문을 뚫고 나가 마당에 떨어진다. 그는 혈도에 눌려 으악 비명을 지르기는 했지만 몸은 꼼짝달싹할 수 가 없었다. 손노삼이 황급히 달려와 그를 부축해 일으켰다. 동 나리, 저들을 건드리지 마세요. 아무래도 홍화회 사람들 같아 요.」 ,아이구! 아이구! 내 이 발을 움직일 수가 없구나. 홍화회라구? 네가 어떻게 아느냐? 자기도 모르게 식은땀이 흘렀다. ,객점의 장궤가 그러는데요, 방금 아문에서 네 사람의 공인이 이 을 잡으러 나왔다가 싸우기만 하고 그냥 돌아갔다고 하는군요. 객점에 있는 사람들은 또 싸움이 벌어졌다는 말을 듣고 모두 구경하려고 몰려들었다. 염세장도 형의 시체를 모셔 놓고 건너와 물었다. 「무슨 일인가? 「염 형, 내가 홍화회 사람들에게 혈도를 눌렸다오. 그래 당하고도 그냥 물러나야 옳은가요. 염세장은 이맛살을 찌푸리며 동조화의 어깨를 잡아 번쩍 들어올렸다. 「자 그냥 방으로 돌아가자구.」 그는 표국의 명성을 생각한 것이었다. 당당한 진원표국의 표사가 다른 사람에게 맞아 땅바닥에 주저앉아 일어나지 않고 있으니 체 면이 말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가 손을 놓자 동조화의 믐 이 솜이불처럼 부드럽게 다시 주저앉는다. ,난 전신을 움직일 수가 없군요 손노삼, 제기랄 나 좀 부축해 주면 안 되겠나? 염세장이 보니 동조화가 정말 누군가에 의해 혈도를 눌렸다. 「그래 누구와 싸웠소? 동조화는 울상이 되어 윗채에 있는 방을 바라다볼 뿐 손가락으 로 가리키지도 못했다. 「저 방 안에 고약한 녀석이 하나 있군요.」 그는 염세장을 자극해 복수를 하고 싶었다. 「홍화회인지 뭔지 빌어먹을 토비들이 초문기 초 삼야를 살해했는데도 시간이 없어 복수를 못하고 있는 처지인데, 또 이 동 나리를 이꼴로 만들다니 기가 막혀 못 살겠다.」 손노삼이 낮은 소리로 말린다. 「동 나리, 제발 좀 조용히 하세요. 저들을 욕하면 안 돼요. 우리가 괜히 홍화회의 감정을 건드렸다가는 앞으로 일을 할 때 귀찮게 된단 말이에요. 염세장은 동조화가 이렇게까지 욕을 하고 나오자 건너가 도대체 어찌 된 일인지 알아보고 싶었다. 그러나 마음을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상대방이 점혈을 할 수 있다면 무공이 막강할 것인데 공연히 자기가 나섰다가 낭패를 당하면 곤란했다. 형이 세상을 떠난 당이라 도와 줄 사람도 없다. 내딪던 발을 거두어 들였을 때 전정룬이 이쪽으로 와 손노삼을 향해 물었다. 「홍화회가 분명하냐? 손노삼이 그의 귀에다 소곤거린다. 「방금 네 명의 공인이 왔다갈 때 장궤에게 이렇게 당부했습니다. (저들 부부가 홍화회 사람인데 국사범이라 황상(皇上)께서 특별히 잡아올리라고 했다. 감시를 철저히 해야 한다. 만약 저들이 가려고 하거든 즉시 관아에 알려야 한다.) 제가 옆에서 이런 말을 똑똑히 들었습니다.」 전정륜은 나이가 50여 세, 표행에 있으면서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으로 무예는 대단할 것 없었지만 경험만은 풍부했다. 그래서 자중할 줄 알았다. 즉시 염세장을 향해 눈치를 보내고 동조화를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 「뭐하는 사람들이래요? 염세장이 낮은 소리로 물었다. '홍화회 사람들이오 우리 잠시 피했다가 동조화나 치료해 놓고 봅시다.」 「방금 저들을 잡으러 왔던 사람들을 직접 보았더냐? 다시 손노삼에게 물었다. 손노삼이 손발을 허우적거리며 이렇게 설명했다. '굉장히 치열하게 싸웠습니다. 부인 하나가 쌍칼을 쓰는데 왼손 에는 장도를, 오른손에는 단도를 들었습니다. 사내 넷이 당해 내지 못하더군요」 사실 네 남자가 이겼는데도 그는 고의로 허풍을 떨었다. 전정륜 이 입을 딱 벌렸다. 「그렇다면 신도 낙가 사람이야. 비도를 날릴 줄 알던가?」 「그럼은요.솜씨가 아주 기막히더군요. 정말 놀랐습니다.」 「홍화회의 문 사당가가 여기 있습니다.」 전정륜이 염세장을 향해 이런 말을 한 뒤 입을 다물고 세 사람이 동조화를 둘러멘 채 방으로 돌아갔다. 이 모든 광경을 육비청은 하나도 놓치지 않고 똑똑히 보았다. 표사들이 서로 낮은 소리로 상의하는 말은 듣지 못했지만 전정륜의 마지막 두 마디는 분명히 들었다. 이때 이원지가 곁으로 왔다. '사부님, 제겐 언제 점혈법을 가르쳐 주시겠어요? 배우기만 하면 멋지게 쓸 수 있을 텐데. 육비청은 그녀의 말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혼자 중얼거린다. 「신도 낙가의 후인이라! 내 모른다 할 수는 없지.」 「신도 낙가가 누군데요- 이원지가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신도 낙원통은 내 절친한 친구다. 세상을 떠났다 는 소문을 들었는데 방금 다른 사람과 싸우던 젊은 부인의 초술이 그 일파란 말이다. 만약 낙원통의 딸이 아니라면 그의 제자가 틀림 없을 텐데 어찌하여 내가 그녀를 알아볼 수 없을까? 말을 하면서도 원망스런 표정이 역력했다. (변방에서 오랫동안 지내며 관아에 은거하느라 무림과는 왕래가 없었으니 당연히 강호의 일들을 까맣게 잊고 살았지. 이제 늙어서 소용없는 인간이 되어 버렸나?) 말을 하는 사이에 전정륜과 대영명 두 표사가 동조화를 부축하 고 나타났다. 손노삼이 윗채 방문 앞에 대고 기침을 한 뒤 큰소리 로 외친다. 「진원표국의 전표두 , 대표두 . 동표두가 홍화회의 문사당가께 인 사드리 러 왔습니다.」 윗채의 방문이 열리고 젊은 부인이 나타나 표국의 네 사람을 훌 어본다. 손노삼이 석 장의 빨간 종이를 넘겨 주었지만 그 부인은 받지 않고 묻는다. 「무슨 일이오? 전정륜이 앞장서 말을 꺼낸다. 「저희 이 형제가 눈이 멀어 문 사당가께서 여기 계신 줄 모르고 득죄를 했습니다. 저희가 함께 사죄를 하러 왔으니 나리께서는 바다같은 아량으로 용서해 주십시오.」 말을 마치고 절을 하자, 대영명과 손노삼도 그 뒤를 따라 절을 했다. 「제가 아주머니를 뵈온 일은 없숨니다만, 두 분의 존함을 그전부 터 듣고 흠모했습니다. 저희 총표두 왕(王) 나리는 귀회의 우 노당 가가 가친 되시는 곽 나리와는 교분이 두터운 사이였습 니다. 저희 이 형제가 허튼 소리를 잘하는 못된 버룻이 있어서 그 만,,,,,,.」 젊은 부인이 그의 말을 막는다. 「저의 주인은 부상을 입고 이제 막 잠이 드셨습니다. 잠에서 깨 시면 제가 여러분의 뜻을 전해 드리지요. 우리가 예의를 모르는 게 아니라, 심한 중상인데다가 이틀 동안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말을 하면서도 근심에 가득 찬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래, 어디를 다치셨는데 그러십니까? 여기 금창약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그들의 환심을 사야만 동조화의 부상을 치료받 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젊은 부인도 그들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고맙습니다. 우리도 약은 가지고 있어요. 이분의 눌린 혈도는 대 단한 곳이 아니에요. 이따가 제 주인이 깨어나시면 심부름꾼을 보 내 알려드릴게요.」 전경륜은 상대가 이미 동조화를 치료해 줄 의사를 비추자 그만 물러났다. 「여보세요! 어떻게 우리의 이름을 아셨지요? 젊은 부인이 그들을 불러 세우고 있었다. 「아주머니의 원앙도와 그 비도를 보면 강호에서는 누구 든지 다 알게 되지요. 또 문 사당가가 아니면 그 누가 이런 점혈무 공을 지니고 계시겠습니까? 두 분이 함께 계시니 분뢰수(奔雷手) 문태래와 그 부인인 원앙도 낙빙이시지 또 누가 있겠습니꺄ㅏ? 전정륜의 말에 젊은 부인은 미소를 머금는다. 전정륜이 자기와 자기 남편을 떠받들자 자연 기분이 좋아진 것이다. 이원지는 전정륜 등이 동조화를 부축하고 나왔다가 다시 자기들 방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며 점혈 무공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보기 싫고 밉기만 했던 표사가 혈도를 눌린 뒤 꼼짝 못하고 있는 꼴을 보니 고소했다. 사부는 분명 알고 계시면서도 가르쳐 주 시지 않으니 무슨 수를 강구해서라도 꼭 배우고야 말겠다고 다짐했다. 그녀는 자기 방으로 돌아와 손으로 턱을 고인 채 한참 동안 넋을 잃고 앉아 있었다. 식사가 끝나자 어머니 이 부인과 함께 한담을 주고받았다. 어머 니는 그녀가 노상에서 공연히 남의 일에 나서서 소란만 피우니 다 시는 남장을 하지 말라고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어머니는 늘 아들이 없다고 섭섭해하시더니 이제 아들이 하나 생겼는데도 반갑지 않으세요? 이원지가 웃으며 하는 말에 어머니는 할 수 없다는 듯 잠자리에 누워 버린다. 이원지가 옷을 벗고 막 잠자리에 들려 하는데 갑자기 마당에서 무슨 소리가 나더니 이윽고 누군가가 창문을 가볍게 두드렸다. 「꼬마, 좀 나오지그래. 물어 볼 말이 있다구.」 목소리가 맑기 그지없다. 이원지는 가볍게 놀라 칼을 들고 문을 열며 마당으로 달려나가니 한 사람이 거기에 서 있었다. 「바보 같으니라구. 자신 있거든 나를 따라오라구.」 말을 마치자 담을 뛰어넘는다, 하룻 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 고, 이원지는 밖에 매복을 한 사람이 있고 없고를 가릴 것도 없이 그를 따라 담을 뛰어넘었다. 두 발이 막 땅에 떨어지는 순간 칼이 얼굴을 향해 달려들자, 이원지도 칼을 들어 막으며 (누구냐?)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 사람은 2보 뒤로 물러섰다. 「나는 위구르의 곽청동이오. 여보세요. 한마디 물어 보겠어요. 우 리 피차간 아무 원한을 산 일도 없는 처지인데 무엇 때문에 표국 을 도와 우리의 일을 망쳐 놓는단 말이오? 이원지는 그녀가 꼿꼿이 선 채 칼끝을 땅에 대고 왼손으로 삿대 질을 하며 묻는 모습을 보니 바로 낮에 자기와 싸운 일이 있는 노 란 옷의 소녀다. 이렇게 추궁을 받고 보니 할 말이 없었다. 까닭 없 이 남의 일에 관여할 이유가 없었지만 그렇다고 이 자리에서 물러 설 수도 없는 일이라 계속 억어지를 부리기로 했다. 「천하의 일, 천하 사람이 다 관여할 수 있는 것 아니에요? 게다 가 난 남의 일에 나서기 좋아하는 성미요. 왜? 억울한가요? 그렇다 면 다시 한 번 검술의 맛을 보여 줘야겠는데--"".~ 말을 미처 끝내기도 전에 쉭 칼을 뽐아 날렸다. 곽청동은 더욱 화가 나 자기도 칼을 들어 막았다. 이원지는 검술로 대결해 보아야 이길 승산이 없다는 사실을 알 았다 그래서 대결은 하면서도 슬슬 뒤로 후퇴, 그를 육비청이 묵고 있는 방 뒤까지 유인했다. 「사부님, 사부님 누가 저를 죽이려고 해요.」 갑자기 소리를 지르자 곽청동이 킥 하고 웃는다. '흥, 쓸모도 없는 못난 사람을 누가 죽이겠다고 했나? 난 버룻을 고쳐 주려고 왔으니 자신 없거든 남의 일에 이제 그만 나서라구.」 말을 마치자 몸을 돌려 가 버린다. 그런데 이원지가 막는 것이 아닌가! 춘운사전칼 을 쑥 뺀어 그녀의 등을 찌르자 곽 청동은 고개를 돌리고 삼분검술로 나온다. 이원지가 몰려 손발이 바빠졌다. 이원지는 등뒤의 인기척을 듣고 사부가 벌써 나온 줄을 알아 곽청동이 장검으로 가슴을 찌르려고 하자 재빨리 뛰어 육비 청의 등뒤에 몸을 숨겼다. 육비청이 백룡검을 들어 곽청동의 장검을 막았다. 곽청동은 이원 지에게 협조자가 나타났음을 보자 말도 걸지 않고 장검을 바람처 럼 날리며 10여 초의 공세를 했다. 수 합을 대결하는 동안 상대방 의 검법이 이원지와 완전히 같다는 사실을 알았고, 이상하게도 자 기 쪽이 불리해 갔다. 그녀의 검법이 빨라질수록 상대방의 검법은 상대적으로 더욱 느려지고 다시 몇 합을 싸우는 사이에 그녀의 공 세는 전부 봉쇄되고 완전히 열세에 몰렸다. 이원지는 온 신경을 집중하고 옆에서 관전했다. 사부님을 끌어 내, 평소 자기에게 가르쳐 주려고 하지 않던 오묘한 초술을 차제에 배우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부가 쓰고 있는 유운검술 은 자기에게 전수해 준 것과 똑같고, 다만 일 초 일 식 가운데 지극히 강한 내력이 숨어 있을 뿐이었다. 곽청동이 쓰는 삼분검술의 요지는, 빠른 속도로서 느린 속도를 치고, 변화하는 가운데 적을 교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육비청은 결코 그녀의 신속한 검법에 따라 변화해 주지 않았다. 수 합이 지나는 동안 완전히 주객이 전도되었다. 곽청동은 몇 차례나 위험한 고비를 넘기면서 상대방이 선배 고수임을 알자 겁부터 먹고 대막고연 , 평사락안의 두 초를 펴 무섭게 공격해 들어갔다. 상대방이 칼을 들어 막는 순간을 포착 해 달아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상대방의 검법이 끈끈이처럼 계속 붙어다녀 몸을 뺄 겨를이 없었다. 조바심이 일었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정신을 가다듬고 결사적으로 대항했다. 형세가 유리해진 것을 본 이원지가 칼을 집에 꽃고, 무극현공권 을 쓰면서 합세했다. 곽청동이 육비청 하나도 감당해 내지 못하고 있는 판인데 이원지까지 나섰으니 당해 낼 재간이 있겠는가? 이원 지는 교활하게도 동에 번잭 서에 번쩍 하며 건드릴 뿐 상대방의 급소도 공격하지 않고 고양이 쥐 놀리듯 곽청동의 약만 올리는 것 이었다. 일전 말꼬리 뽑힌 것에 대한 복수를 하는 것이었다. 회교에서의 남녀 유별은 대단히 엄격했다. 아녀자가 외출을 할 때면 언제나 천으로 얼굴을 가렸으나 곽청동은 워낙 중대한 일을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싸을 때 불편할까 봐 얼굴을 가리지 않고 나왔다. 그녀는 평소에도 단정하고 근엄했다. 이원지의 경박한 행 동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그녀는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육비청의 칼이 얼굴을 노리고 뻗어 오자 곽청동도 칼을 들어 막았다. 이원지 는 이 틈을 노려 그녀의 뒤로 돌아가 소리를 질렀다. 「주먹을 받으라구.」 맹계탈속-認鷄奪粟)의 재주로 그녀의 왼쪽 어깨를 쳤다. 곽청동 이 왼팔을 돌려 금나수법으로 물리친다. 이원지는 그녀가 오른손으 로 칼을 막고 왼손으로 주먹을 막자 일장으로 그녀의 가슴을 눌렀 다. 만약 이 일장에 힘을 썼다면 곽청동은 중상을 입었을 것이다. 곽청동은 깜짝 놀랐다. 두 손을 뽑을 수가 없어 몸을 뒤로 젖히 며 상대방의 장력을 약화시키려고 했다. 그런데 이원지는 전연 힘을 쓰지 않았다. 다만 곽청동의 가슴을 거칠게 한 번 더듬은 뒤에 히히거리며 뒤로 물러서는 것이었다. 화 가 난 곽청동이 칼을 들어 젤렀다. 이원지가 피하자 다시 한 번 힘 차게 찌른다. 그녀는 육비청의 칼은 막지도 피하지도 않고 이원지를 향해 결 사적으로 진격해 들어갔다. 육비청은 낮에 곽청동의 검법이 오묘한 것을 유심히 보았다. 그는 다만 그녀를 한번 시험해 보고 싶었을 뿐 해칠 의사는 추 호도 없었다. 그녀가 자기의 공격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있으니 공 격은 하면서도 찌를 수가 없었다. 이때 곽청동의 이원지에 대한 공 격은 무섭도록 매서웠다. 이원지는 칼을 뽑아 들 사이도 없이 계속 뒤로 물러서면서도 입만은 여전히 놀려 댔다. 「내 이미 만져 본 것을 죽인다고 무슨 소용이 있나? 곽청동은 신타준족의 재주로 칼끝을 뻗어 찔렀다. 이제 칼끝이 거의 살갗에 닿을 무렵 갑자기 돌리며 천산파(天山 派) 검법 가운데 독특한 비법인 해시신루를 썼다. 허허 실실 검광이 번쩍거려 이원지는 눈이 어지러웠다. 손발을 허위적거 리며 이제 여기서 죽는 것이 아닌가 하고 그만 눈을 감았다, 빨간 보따리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육비청이 모른다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칼을 들고 곽청동의 공세를 육비청이 받았다. 이훤지가 안 도의 한숨을 내쉬며 이죽거린다. 「됐어요. 화내지 마시고 차라리 내게 시집와 버리면 될 것 아니 오? 곽청동은 육비청을 이겨 낼 자신이 없었다. 크나픈 모욕을 당하 고도 복수를 할 방법이 없었다. 육비청의 칼이 자기를 공격하는데 도 막을 생각을 하지 않고 손에 든 장검을 이원지를 향해 힘껏 던 졌다. 이원지도 죽이고 자신도 육비청의 칼에 죽겠다는 비장한 각 오다. 육비청이 깜짝 놀라 자기의 장검을 그쪽으로 던졌다. 두 자루의 장검이 반공에서 부딪치자 쨍그렁 소리를 내며 땅에 떨어진다. 육 비청이 왼손의 일장으로 발운견일의 재주를 펴 곽청동의 뒤로 밀었다. 「아가씨, 너무 허물 마시오.」 곽청동은 기가 막히고 화가 나서 두 줄기 눈물을 줄줄 흘리다가 흐느껴 울며 그대로 달아난다. 육비청이 달려가 그녀의 앞을 막았 다. 「아가씨, 잠깐만. 내 할 말이 있소.」 「그래 어쩌겠단 말이십니까? 곽청동이 쏘아붙였다. 육비청이 고개를 돌려 이원지를 바라다본 다. 「아니, 그래도 이 언니에게 사과를 하지 않느냐? 이원지가 시시덕거리며 앞으로 나와 읍을 하자 곽청동이 주먹을 들어 그의 얼굴을 때린다. 「아이쿠, 그래도 맞지는 말아야지.」 이원지가 웃으며 한쪽으로 피한 뒤에 모자를 벗고 아리따운 머 리칼을 내보였다. 「어디 제가 남잔지, 여잔지 알아맞혀 보세요.」 곽청동은 달빛 아래 드러난 이원지의 진면목을 보고 깜짝 놀랐 다. 창피한 생각은 가셨지만 그래도 아직 화는 풀리지 않아 대꾸를 하지 않았다. 「이 아이는 내 여제자요. 늘 까불기만 해서 나로서도 어찌할 도 리가 없군요. 방금 나도 크게 잘못했으니 과히 허물하지 마시기 바라오.」 육비청이 이런 말을 하면서 다시 한 번 정중하게 읍을 했다. 곽 청동이 몸을 옆으로 피해 그의 인사를 거절하고 말 한마디 없이 그냥 가쁜 숨만 쉬며 서 있었다. 「천산쌍응과는 어떤 관계가 있으신가요? 육비청이 묻는 말에 곽청동은 예쁜 이마를 살짝 쳐들 뿐 무슨 말을 하려다가 꿀꺽 삼켜 버린다. 「나는 천산쌍응 독취 진형 설조 진부인과 아주 친한 사이요. 어쩌면 우리가 결코 외인이 아닐 것 같군요.」 「설조는 제 사부님이세요. 제가 사부님과 사공(師大)님을 빨리 찾아뵈어야겠군.선배가 후배를 모욕하고, 또 자기 제자를 시켜 나를 때리게 했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녀는 뚫어질 듯 두 사람을 쏘아보다가 몸을 꽥 돌려 가 버린 다. 육비청은 그녀가 몇 발짝 걸어 나가자 큰소리로 외친다. 「여봐요. 누가 아가씨를 모욕했다고 사부님께 말씀드릴 거요? 곽청동이 듣고 보니 그럴 듯한 말이다. 도대체 이름도 모르고서 야 다음에라도 화를 풀 길이 없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발걸음을 멈추고 물었다. 「그럼 당신은 누구세요? 육비청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웃는다. 「둘 다 애들 같은 성미라서 몹시 어렵군. 이쪽은 내 제자인 이원 지요. 사부 사공께 말씀드릴 때 면리침(綿裏針).~ 그는 여기까지 말을 하다가 뚝 끊었다. 이원지까지도 아직 자기 의 진짜 이름을 모른다는 사실을 그제야 생각한 것이다. 음, 그냥 무당파 (면리침) 육가 성을 가진 사람이라고만 하면 알 거요. 두 분께 훌륭한 제자를 두셔서 축하하더라는 인사 말씀도 전해 주구려.」 「무슨 면목이 있어 훌륭한 제자를 두었다고 하겠어.이렇게 다른 사람으로부터 모욕을 당해 사부님 사공님의 체면을 손상시켜 드렸는데요.」 곽청동의 말에 육비청이 정색을 했다. 「아가씨, 그건 천만의 말씀이오. 내게 졌다고 해서 체면이 손상되 다니? 아가씨처럼 나와 더불어 몇십 초를 대결할 만한 사람도 무림 가운데 그리 많지 않습니다. 나는 천산쌍웅이 여태까지 제자를 거둔 일이 없음을 잘 알고 있는데, 낮에 아가씨의 검법을 보고 천 산쌍응에게서 직접 배웠다는 사실을 알았소. 그래도 미심적어 다시 시험해 본 것뿐이오. 방금 아가씨가 해시신루의 절초를 쓰는 것을 보고 단정을 내렸지. 아가씨의 사공이 아직도 질투때문에 말다툼을 가끔 하던가? 이 말을 하면서 육비청이 껄껄 웃었다. 원래 독취 진정덕은 질투심이 강했다. 부부가 다 환갑을 넘었는데도 아직 부인 설조 관명매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 고 있다고 의심하여 수십 년 동안 말다툼으로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곽청동은 그가 사부와 사공의 사사로운 일까지도 모두 알 고 있는 것을 보고 틀림없는 선배라고 확신했지만 여전히 불쾌했 다. 「당신이 제 사부님의 친구라면 무엇 때문에 제자를 시켜 나를 적대시하도록 내버려두십니까? 또 왜 우리를 괴롭혀 성경도 찾지 못하게 방해했어요? 그래서 저는 당신을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없어요. 말을 마치자 몸을 돌렸다. 분이 풀리기 전에는 절대로 후배로서 의 예의를 갖추지 않을 결심이었다. 「아가씨의 검법이 벌써 내 제자를 능가하고도 남았소. 게다가 칼 을 가지고 대결했다는 것이 무슨 체면 손상이 될 일도 아니오. 성 경을 찾아오지 못해 체면이 손상되었다면 그건 말이 되지. 한 사람 의 승부나 영욕은 별로 대수로을 것이 없지 않겠소? 전 부족이 다 른 사람에게 모욕을 당했을 때라면 그건 사생 결단을 내야지요.」 곽청동은 이 말을 듣고야 깜짝 놀랐다. 과연 일리 있는 지당한 말이 아닌가. 오기가 사라져 고개를 돌리고 육비청을 향해 공손히 절을 했다. 「제가 철이 없어서 그랬습니다. 선배님께서 어떻게 성경을 찾아 야 좋을지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만약 선배님께서 도와 주신다 면 저희 전 부족이 영원토록 그 은혜를 잊지 않고 감사드리겠습니다. 말을 마치자 두 무릎을 꿇었다. 육비청이 황급히 그녀를 부축해 일으켜 세운다. 「제가 아무것도 모르고 그만 큰 일을 망쳐 놓았군요. 그 일 때문 에 사부님으로부터 크게 걱정을 들었답니다. 언니! 조급하게 생각 지 마세요. 제가 어떻게 해서든지 도와 성경을 뺏어 오겠어요. 그 빨간 보따리 속에 성경이 들어 있나요? 이원지의 말에 곽청동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우리 지금 찾으러 가요.」 「우선 알아봐야지.」 이원지의 말에 육비청이 나섰다. 세 사람은 낮은 소리로 몇 마디 상의했다. 육비청은 밖에서 바람을 잡기로 하고 곽청동과 이원지 두 사람이 담을 뛰어넘었다. 표사들의 동정을 살피기 위해서다. 이원지는 방금 동조화가 걸어 들어갈 때 아직도 그 빨간 보따리 를 들고 있음을 보았었다. 그녀는 곽청동을 향해 손짓을 했다. 몸을 웅크리고 표사들이 묵고 있는 방 밖에까지 왔다. 방 안에는 아직도 불이 밝혀져 있어 감히 허리를 펴고 들여다볼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은 벽에 기대어 웅크리고 앉았다. 방 안에서 동조화의 비 명 소리가 들리다 뚝 멈추자 다른 표사의 말소리가 밖에까지 들렸 다. 「장 대인의 수단이 정말 고명하십니다. 대번에 우리 동 형을 치 료해 주시다니 정말 놀랐습니다.」 이어서 동조화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 차라리 평생 움직이지 못하면 못했지 홍화회 그것들 손에 치료받고 싶지는 않았어요.」 「장 대인께서 오실 줄 미리 알았다면 방금 그것들에게 사과하러 가지도 않았을 텐데 생각할수록 억울해 못 살겠군.」 또다른 표사의 말소리였다. 「자네들은 그들 남녀를 잘 지키고나 있게. 내 오 서방 일행이 오 거든 그때 손을 쓰자구. 그러나 자네들 몇 명도 정말 쓸모없는 고 름주머니들이야. 그래, 네 사람이 여자 하나를 당해 내지 못하다니 말이 되나? 이 일은 그들이 오거든 처리하도록 내버려두게. 내가 나서기도 거북하구만」 기운찬 목소리의 주인공이 이렇게 말했다. 「아, 장 대인께서 오셨으니 식은 죽 먹기로 쉽게 잡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나리께서 잡아만 오시면 제가 한번 실컷 두들겨 패겠 는데요.」 역시 동조화의 말이다. 이원지는 서서히 몸을 펴 창 구멍을 찾아 눈을 대고 안을 들여 다보았다. 방 안에는 5, 6명이 앉아 있는데 40여 세 정도 들어 보 이는 당당한 낯선 얼굴이 상좌에 자리를 잡았다. 표사들의 입에 오 르내리던 장 대인이 바로 그 사람 같았다. 두 눈이 반짝이고 태양 혈(太陽穴)이 유난히 오똑하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저렇게 생긴 사람들이 대부분 내공이 심오하다고 하시던데, 과연 대단하겠구나. 그런데 어째서 관가 사 람들 가운데 저런 인물이 끼어 있을까?) 이원지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염세장의 말소리가 들렸다. 「여보게 동 서방. 그 보따리를 내게 주게나. 위구르 사람들이 포 기하지 않고 있으니, 노상에서 귀찮은 일이 또 생길 거야.」 동조화가 느릿느릿 보자기를 풀어 놓고도 금방 건네 주지 않고 머뭇거린다. 염세장이 재촉을 했다. 「안심하라고. 내 자네와 공을 다툴 생각은 없네, 누가 잘하고 잘 못하고 그걸 모를 사람이 있을까? 이 보따리를 얌전하게 경성으로 가지고 가야만 그래도 우리가 모두 좋은 꼴을 볼 수 있지 않겠나. 이원지는 생각했다. 보따리가 염세장에게 넘어가면 그의 무공이 강해 뺏어 오기가 여간 어려워지는 게 아니다. 꾀가 하나 떠을라 곽청동의 귀에 입을 대고 뭐라고 소곤거리고 모자를 벗어 긴 머리 카락을 산발, 얼굴을 가린 뒤에 다시 수건으로 반쪽의 얼굴을 가렸 다. 바닥에서 벽돌 두 장을 주워 힘껏 창에 집어던졌다. 창살이 부러지며 벽돌이 방 안으로 날아갔다. 방 안의 등불이 꺼지고 문이 열리며 5, 6명이 우르르 몰려 나온 다. 앞장 선 사람이 소리를 질렀다. 「누구냐? 대담하기 짝이 없구나.」 곽청동이 휘파람을 불며 담을 뛰어넘자 표사들이 그 뒤를 쫓는 다. 이원지는 표사와 장 대인이라 불린 그자가 담을 뛰어넘자 곧장 방 안으로 뛰어들었다. 동조화는 오랫동안 혈도에 눌려 있다가 방 금 치료를 받아 아직도 손발이 불편해서 그냥 누워 있던 참이다. 그런데 귀신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사람 같기도 한 괴물이 뛰어 든 것이다. 두 발을 버등거리며 뭐라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말 이 나오지 않고 사지의 맥이 탁 풀렸다. 귀신 같은 사람이 달려와 손에 든 빨간 보따리를 뺏어 가지고 다시 뛰어나갔다. 표사들이 계속 곽청동의 뒤를 쫓아 달리는데 장 대인이란 자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췄다. '큰일났구나, 꾀임에 빠졌다. 빨리 돌아가자.」 염세장 등도 즉시 장 대인의 말뜻을 알아차리고 즉시 객점으로 돌아왔다. 동조화는 방 안에 누운 채 정신이 나가 있었는데 한참 만에야 귀신에게 보따리를 빼앗긴 전말을 말했다. 「무슨 놈의 귀신이 어쨌단 말이야? 돼먹지도 않은 소리 작작하 라구.」 장 대인이 벌컥 화를 낸다. 이원지는 보따리를 놓고 벽에 붙어 숨어 있다가 표사들이 모두 방으로 들어가자 그제야 담을 뛰어나왔다. 그녀가 가볍게 휘파람으 불자 맞은편 숲속에서 응답하는 소리가 들리고 2개의 그림자가 달려 나왔다. 육비청과 곽청동이다. 이원지는 득의만면하게 웃었다. '보따리를 뺏어 왔으니 이제 날 미워하지 말라구요........ 미처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육비청의 외치는 소리가 들렸 다. 「뒤를 조심해.」 이원지가 그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리는데 누군가가 어깨를 탁 쳤다, 그녀가 손을 뻗어 적의 팔을 낚아채려고 했지만 잡히지 않았다. 강적이 나타났음을 알고 깜짝 놀랐다. 계속 자기 뒤를쫓아온 모양인데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한 것이다. 급히 몸을 돌리고 보니 달빛 아래 몸집이 큰 사나이가 자기 면전에 서 있었다. 적이 이렇게까지 접근해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깜짝 놀라 뒤 로 두 발짝 물러서면서 보따리를 들어 육청동을 향해 던졌다. 「이걸 받아요.」 그러고는 두 손을 교차시켜 방어 태세를 취했다. 그러나 적의 몸놀림도 민첩했다. 이원지가 보따리를 집어던지자마자 그도 몸을 날려 쫓아가 날아가는 보따리를 도중에서 가로채 버렸다. 이원지는 놀랍고도 원망스러워 주먹을 들어 치자 곽청동도 뒤로부터 공격을 했다. 그 사람은 왼손에 보따리를 잡고 두 손을 양쪽으로 뻗었다. 그 자세가 바로 무당파 장권 가운데의 고사평(高四平)으로 힘이 막강해 이원지와 곽청동이 동시에 몇 발짝 뒤로 밀렸다. 이원지가 이때 적을 살펴보니 장 대인이라 불린 바로 그 사람이다. 무당장권 은 무당파 입문의 무공이다. 그가 육비청으로부터 무예를 배울 때 연기(練氣)의 십단금(+設競)을 배우고 나서 맨 처음 익힌 것이 바로 이 권술이다. 평범하기 짝이 없는 고사평을 적이 쓰자 그토록 큰 위력을 발휘 할 줄은 몰랐다. 고개를 돌리니 사부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 다. 곽청동은 겨우 찾은 보따리를 또 뺏기자 칼을 뽑아 들고 대들었 다. 이원지는 오른발을 앞으로 내디디며 칠성권을 도기룡 으로 바꿔 공격했다. 무당파 장권으로 반격을 한 것이다. 장 대인은 그녀의 권초를 보고 의외라는 듯 (아!)소리를 지른 다. 그녀가 도기룡으로 바러 반격하자 피하지도 않고 몸을 옆으로 돌리며 같은 도기룡으로 치고 나왔다. 똑같은 권법이지만 공력의 높낮이가 달랐다. 이원지는 적의 주먹과 마주치자 팔이 뻣뻣해지며 고통스러워 견디지 못해 흔들거리며 왼쪽으로 피하다가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곽청동은 그녀가 위기에 몰리자 공격을 멈추고 이원지 옆으로 달려왔다. 팔을 뻗어 이원지를 부축하며 칼을 들어 장 대인을 노려 보았다. 장 대인이 큰소리로 말했다. '여봐요, 내 한마디 물어 보겠는데, 아가씨 사부의 성이 마(馬)씨 인가 아니면 육씨인가? (사부님 성이 육씨이지만 어디 한번 속여나 보자.) '내 사부님 성은 마씨인데 그걸 어떻게 아셨지요? 「아니, 사숙을 뵙고도 절을 할 줄도 모르나? 장 대인은 이 말을 하면서 껄껄 웃는다. 곽청동은 그들이 동문의 이야기를 꺼내자 크게 실망했다. 따지고 보면 자기와 이원지가 무 슨 교분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녀는 성경을 찾을 희망이 없다고 판단을 내리자 즉시 그 자리를 떠났다. 이원지가 급히 그녀의 뒤를 쫓는데 구름이 달을 가리며 공중에 마른 천등소리가 크게 울린다. 겁이 나서 더 쫓아갈 마음이 없어 되돌아오니 장 대인도 보이지 않는다. 담을 뛰어넘어 안으로 들어오는데 빗방울이 떨어진다. 막 방 안 에 들어서자 억수 같은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는 밤새도록 퍼부어 날이 밝았는데도 멈출 기색이 없다, 이원 지가 머리를 빚고 창 밖을 내다보니 비는 더욱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부인의 시중을 드는 하인이 들어와 아뢴다. 「증 참장이 비가 너무 많이 오니 오늘은 떠날 수 없겠다고 하는 군요.」 이원지는 사부의 방으로 와 어젯밤의 일을 보고하고 어찌된 일 이냐고 물었다. 육비청은 이마를 찡그린 채 무슨 고민이 있는지 무겁게 입을 열 었다. 「네가 내 제자가 아니라고 했다니, 그건 잘한 일이다.」 그는 사부의 침통한 표정을 보고 무엇을 더 물어 볼 수가 없었 다. 할 수 없이 자기 방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가을 바람과 비는 제멋대로 불고 내린다. 차디찬 한기가 문 틈을 통해 방 안으로 스며 들어왔다. 이원지는 객점의 방에 갇혀 답답해 견딜 수가 없었다. 홍화회 사당가(四當家)의 방 앞을 오락가락하며 동정을 살폈지만 쥐 죽은 듯 고요적적하다. 진원표국의 표사도 떠 나지 못해 몇 명의 표사가 방 안에 앉아 한담을 주고받는다. 어젯밤 사숙이라고 자처하고 나섰던 장 대인은 그 자리에 없었 다. 서풍이 한 차례 불어오자 더욱 한기를 느긴 그녀가 막 자기 방 으로 돌아가려 하는데 문 밖에서 방울소리가 울리며 한 필의 말이 빗속을 뚫고 달려왔다. 말이 객점 앞에 이르러 멈추자 소년 서생이 말에서 내려 안으로 들어온다. 심부름꾼이 말을 마굿간으로 끌고 들어가 먹이를 주고 나와 서생을 보고 여기서 묵겠느냐고 물었다. 서생은 비에 젖은 비 옷을 벗으며 말했다. 「식사나 하고 그냥 떠나겠네.」 심부름꾼이 그를 앉으라 하고는 잠시 후에 따끈한 차를 내왔다. 서생은 키가 크고 미목이 수려했다. 변방에서는 보기 드물게 잘 생긴 미남이다. 이원지가 자기도 모르게 몇 번 더 바라다보자 서생 도 그를 발견하고 빙그레 미소를 보냈다. 이원지는 얼굴이 화끈 달 아올라 급히 고개를 숙였다. 이때 객점 밖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리더니 또 몇 명이 안으로 들어왔다. 이원지는 어제 젊은 부인을 포위하고 공격하던 네 사람 임을 알아보았다. 즉시 육비청의 방으로 달려가 알렸다. 「우선 구경이나 하고 보자.」 하고 사제 두 사람은 문 틈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네 사람 가운데 검을 쓰던 사람이 심부름꾼을 불러 몇 마디 낮은 소리로 뭔가 물어 본다. 「밥과 술을 내오도록 하게. 신부름꾼이 대답하고 물러났다. 「홍화회의 그것들이 떠나지 않았다니 배불리 먹고 보세.」 그자의 말이었다. 서생이 이상한 표정을 지으면서 그들 네 사람 을 곁눈질로 훌어본다. 「다시 그 부인을 도와 줄까요? 이원지가 육비청에게 물었다. 「소란을 피우지 말고 내 이야기나 잘 들어라.」 그는 4명의 공인은 거들떠보지 않고 젊은 서생만 주시했다. 서생은 식사를 끝내자 긴 의자 하나를 마당으로 통하는 길목에 내다놓고 앉아 등뒤에 짊어진 보따리 속에서 피리를 꺼내 여유 있 게 불기 시작했다. 이원지는 음률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지만 천정사(天淨沙) 가락을 불고 있는 것 같았다. 피리를 부는 것이야 이상할 게 없지만 피리 자체가 이상했다. 금 資 찬란한 것이 순금을 부어 만든 것임에 틀림이 없다. 문약해 보 이는 서생이 그것도 홀몸으로 금피리를 불고 다니다니 고약한 사 람들의 눈길을 끌면 아무래도 위험한 일을 당할 것이 아닌가? 이 따가 기회가 있으면 뭐라고 한마디 해 줘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4명의 공인도 서생의 거동을 보면서 몹시 궁금한 표정들이다. 식사가 끝나자 검을 쓰던 사람이 상 위로 뛰어올라가 큰소리로 외친다. 「우리는 서을 화란주부(和蘭州府)에서 온 공인들이다. 여기 홍화 회 국사범을 잡으러 왔으니 선량한 양민은 놀라지 말고 잠시 후 싸움이 벌어지면, 칼과 창에는 눈이 없으니 모두들 멀찍이 피하기 바란다.」 말을 마치자 상에서 뛰어내리며 세 사람을 데리고 안으로 뛰어 들 태세를 취했다. 서생은 전연 듣지 못했는지 그냥 길목에 앉은 채 계속 피리만 불고 있었다. 검을 쓰는 사람이 그의 옆으로 접근했다. 「여보시오, 좀 비켜 주시오. 공연히 우리 공무를 그르치지 마시 고」 서생이 선비 차림이라 어쩌면 과거에 급제한 수재나 거인일지도 모르기 때문에 점잖게 나온 것이지, 여느 백성 같으면 벌써 호통을 쳐 쫓았거나 밀쳐냈을 것이다. 서생은 여유만만하게 피리를 내려놓 고 묻는다. 「여러분이 국사범을 잡겠다고 하는데 그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그러오? 남 좋은 일은 자기에게도 좋다고 하지 않습니까? 공자님 께서도 (자기가 원하지 않는 일을 남에게 하지 말라)고 하셨으니, 그냥 적당히 넘기고 말 것이지 뭐때문에 꼭 잡으려고 야단들이시 오? 회장을 쓰는 공인이 그의 앞으로 한 발 다가섰다. '공연한 잔소리 그만 집어치우고 저만큼 물러서시오.」 이 말을 들은 서생이 껄껄 웃는다. '선생들은 서두르지 마시고 잠시 조용히 하시오. 제가 술 한잔 낼 것이니 마시며 친구로 사귑시다.」 공인들이 어찌 이렇게 귀찮게 구는 사람을 그냥 내버려두겠는 가? 손을 뻗어 밀어붙이며 욕을 했다. 「제기랄, 별놈이 다 시끄럽게 구는군.」 서생의 몸이 비틀비틀 흔들린다. '아이구, 이렇게 거칠게 굴지 말아요. 군자는 말로 하는 것이지 손을 쓰는 게 아니라오. 갑자기 앞으로 넘어지는 체하면서 금피리를 내밀자 공교롭게도 그 공인의 왼발 혈도를 쳤다. 공인은 다리의 맥이 풀려 그 자리에 그냥 쭈그려 앉는다. '아이구, 이거 큰 실수를 했군.」 서생은 사과를 하면서 연방 절까지 했다. 이렇게 되자 몇 명의 고수들은 벌써 그가 몸에 절기(絶技)를 숨 기고 있으며 고의로 이들 공인을 괴롭히고 있음을 알았다. 이원지 는 서생이 혹시 공인들에게 수모나 당하지 않을까 은근히 걱정했 는데, 그 서생은 점혈까지 할 줄 알면서 능청을 떤 것이다. 연편을 쓰는 공인이 놀라 소리를 질렀다. '사숙님, 이 녀석도 혹시 홍화회 사람이 아닐까요? 검과 귀두도를 쓰는 두 사람이 뒤로 몇 발짝씩 피했다. 회장을 쓰던 공인이 바닥에 엎어져 꼼짝 못하자 연편을 쓰는 사람이 그를 한쪽으로 끌어다 놓았다. 검을 쓰는 공인이 서생을 향해 입을 열었다. '당신도 홍화회 사람인가요? 말을 하는 가운데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서생이 껄껄 웃는다. '공인 노룻을 하니까 쫴 눈치가 빠르군. 그만 하면 밥 얻어 먹을 만해. 홍화회에 나 같은 인물이 끼어 있는 줄 다 알고 있으니까 쓸 만하군. 그렇소 내 이름은 여어동이오. 홍화회의 열네번째 교의에 앉아 있지.」 그는 피리를 흔들어 보였다. 「그만 하면 이 피리를 알아볼 수 있을 텐데.」 '아, 당신이 바로 금적수재시군.」 겅을 쓰는 사람의 말이었다. '보잘것 없는 존재.9당신이 손에 든 보검에 파란 빛이 번쩍이 고 노루머리에 쥐눈이라, 인상을 보니 북경에서 명성을 날리던 포 두 오국동 같아 보이는데. 벌써 그만두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어째 또 이런 일을 하러 나왔소? 서생의 말에 검을 쓰는 사람이 코웃음을 친다. '흥, 눈 밝아 좋구나! 당신이 홍화회라니 어디 한번 대결해 보 자.」 말을 마치자 검을 들어 찔렀다. 오국동은 북경의 명포두로서 큰 사건을 많이 해결했다. 그의 손 에 죽은 도둑의 무리가 헤아릴 수 없이 많아 스스로도 원수를 진 사람이 패나 많다고 했으며, 몇 년 전 이제 나이가 많다고 자리를 물러났었다. 연편을 쓰는 사람은 그의 사질인 풍휘로서 이번 홍화회 국사범을 잡으라는 명령을 받은 대내시위다. 그는 자기 재주가 미미함을 알고 그들에게 간청, 겨우 도움을 받기도 했다. 귀도두를 쓰는 사람의 이름은 장천수(商天壽)요, 회장을 쓰는 사람은 한춘림인데 모두 난주의 포쾌이다. 포쾌의 무공이 별로 대단할 것은 없었지만 범인을 쫓는 재주 하나만은 어전시위(御前侍衛)를 능가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여어동은 즉시 금괴리를 휘두르며 3명의 공인과 어우러져 싸우기 시작했다. 그의 금피리는 어떤 때는 철편으로 쓰이고, 또 어떤 때는 판관필(判官筆)로도 쓰이다가 가끔 검으로 바뀌기도 했다 오국동 등 세 사람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손발을 바쁘게 놀렸다. 육 비청과 이원지는 몇 초를 구경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서로 바라보 았다. 「사부님, 유운겅술을 쓰는데, 육비청이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에 잠긴다. (유운검은 본문의 독특한 비결인데, 저자가 홍화회 인물이라면 대사형의 제자가 되겠구나.) 육비청의 사형제는 모두 세 사람인데 육비청이 가운데고 대사형 은 마진(馬眞)이며 사제인 장소중(張召重)은 바로 어제 이원지와 싸운 일이 있는 장 대인(張大人)이다. 이 장소중은 타고난 재질이 훌륭한데다 열심히 공부하고 또 부지런했다. 그래서 사형제들 가운 데 무공이 제일 출중했으나 공명과 이익에 열중한 나머지 조정에 투신했다 그후 열심히 로력하면서 충성을 보인 결과 이 몇 년 동 안 청운직상하여 이미 어림군 효기영 좌령의 직책에 올라가 있었다. 육비청은 당년 그와 이미 절 교하기로 선언했는데 어젯밤 그의 초식을 보고, 헤어진 지 10여 년 동안에 그가 백척간두 진일보하여 실로 보통이 아님을 알았다. 이날 밤 왕년 사문에서 무예를 익히던 갖가지 일을 회상하며 감 개가 무량했다. 그런데 오늘 뜻밖에도 또 하나의 동문 후배를 만나게 된 것이다. 그가 여어동을 사형인 마진의 제자라고 추측한 것은 과연 을았다. 여어동은 강남의 명망이 있는 집안의 자제로서 과거에 급제, 수재 가 되었으나 그의 부친이 어느 세력 있는 집안과 묘터를 가지고 송사를 하는 바람에 가산을 탕진했다. 일이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 라 이 일로 말미암아 그쪽의 함해를 입고 마침내 옥중에서 병사하 고 말았다. 이에 여어동은 한을 품고 출가했으며 우연한 기연을 얻 어 마진을 사부로 삼게 되자 학문을 버리고 무예를 수련했다. 고향으로 돌아와 호족을 찔러 죽이고 강호에 망명, 떠돌아다니다 가 뒤에 홍화회에 가입했다. 위인이 총명한데다 꾀가 많고 각지의 사투리에 통달, 회중에서 사방의 연락 책임과 염탐의 직책을 맡고 있었다. 이번 명령을 받고 일을 처리하기 위해 낙양(洛陽)에 갔기 때문에 문태래 부부가 도중에서 적을 만나 이 객점에서 부상을 치 료하고 있는 줄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원래의 계획은 요기나 하 고 우중이지만 그냥 동쪽으로 가려고 했었다. 그런데 오국동 등이 말끝마다 홍화회 사람들을 잡아야겠다고 떠드는 말을 듣고서 나선 것이다. 낙빙은 창 너머에서 피리소리를 듣고 14제(+-四弟)가 도착 했음을 알았다. 여어동은 1대 3으로 치열하게 싸웠다. 표행 사람들은 싸우는 소 리가 들리자 일제히 밖으로 나와 관전을 했다. 동조화가 큰소리로 떠든다. 「나 같으면 두 사람이 젊은 서생을 상대하고 다른 한 사람은 탄 자(彈子)로 쓰겠다.」 그는 풍휘가 등에 탄궁(彈弓)을 짊어진 것을 보고 한마디 거든 것이다. 풍휘가 듣고 보니 그럴 듯한 말이다. 전단에서 빠져나와 탁 자 위에 올라섰다. 탄궁을 잡아당겨 퍽퍽 여어동을 향해 한바탕 탄 자를 쏘자 여어동은 이리저리 피하기에 바빴다. 귀두도와 장검도 동시에 막아야 하기 때문에 금방 열세에 몰렸고, 수 합이 지나는 동안 오국동의 장검과 장천수의 귀두도가 동시에 그를 공격했다. 여어동이 금피리를 휘둘러 막았지만 오국동의 검이 그의 장삼에 구멍을 뚫었다. 여어동이 순간적으로 당황하는데 탄자 하나가 얼굴 을 때렸다. 통증을 견디느라 손발이 더욱 둔해졌다. 오국동과 장천 수는 여세를 몰고 더욱 세차게 그를 공격했다. 장천수의 무공은 평 범하지만 오국동의 검법은 노련하다. 여어동은 손에 든 금피리로 방어에만 급급할 뿐 공세를 취하지 못했다. 동조화는 앞에서 관전 하며 득의양양해 까불어 댄다. 「동 나리 시키는 대로 하니까 틀림없지 않은가? 여보 젊은이, 그 만 싸우지. 피리를 집어던지고 무릎을 꿇으라구. 이제 바지 벗고 볼 기나 맞아야지.」 여어동의 기예는 명문으로부터 직접 전수받은 것이라 위급한 가 운데서도 흩어짐이 없었다. 격투를 벌이는 가운데 왼손의 두 손가 락을 나란히 펴고 오국동의 젖가슴 밑 혈도를 찔렀다. 오국동이 급 히 뒤로 두 발짝 물러서자 여어동의 두 손가락이 수장으로 변해 장천수의 면상을 한 번 허초로 친다. 상대방이 귀두도를 들어 막는 순간 그는 수장을 고의적으로 천 천히 거두어들인다. 장천수는 공격의 여지가 있음을 간파하고 귀두 도를 들어 방어 태세를 공격 태세로 바꾸어 대든다. 여어동은 좌장 으로 적의 병기를 유인한 뒤에 금피리를 비스듬히 들어 그의 허리 를 정통으로 찔렀다. 장천수가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 쭈그려 앉자 여어동이 쫓아 가 치려고 하는데 오국동의 검이 가로막는다. 풍휘도 한바탕 탄자 를 쏘아 그의 행동을 방해했다. 장천수는 숨을 돌린 뒤 아픔을 참고 이를 악문 채 일어나 슬그머니 여어동의 등뒤로 돌아갔다. 그가 앞에서 공격해 들어오는 장 검과 측면에서 쏘아 대는 탄자를 막느라 여념이 없는 틈을 이용해 평생의 기력을 다해 귀두도의 독벽화산으로 그의 뒤통수 를 내리찍었다. 귀두도가 그의 정수리에 찍히려는 찰나 웬일인지 갑자기 팔이 아파 그만 병기를 놓치고 말았다. 까닭을 몰라 어리등 절해 있는데 가슴에 또 한 자루의 비도(飛刀)를 맞고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았다. 여어동이 고개를 돌리니 낙빙이 왼손을 탁자에 버틴 채 자기 뒤 에 서 있었다. 오른손에 한 자루의 비도를 들고 가는 손가락으로 꽃가지를 어루만지듯 칼날을 어루만지며 슬기가 가득 찬 눈초리를 돌리며 앵두같은 입술에 미소를 머금고 서 있었다. 방금 손을 들어 적을 죽 이고도 아무 일 없다는 듯 태연한 모습이 말할 수 없이 아리땁기만 한 자태다. 여어동은 그녀를 보자 가슴에 뜨거운 피가 끓어오름 을 느꼈다. 정신을 가다듬고 금피리를 휘두르자 일단의 황금빛이 그를 에워쌌다. 「넷째형수, 탄궁을 쏘는 녀석부터 처치해 주세요.」 낙빙은 미소를 머금고 비도를 날린다. 풍휘는 여어동이 외치는 소리를 듣고 즉시 몸을 돌려 적을 맞이할 태세를 취했다. 반짝반짝 빛나는 한 자루의 유엽첨도가 가슴을 노리고 날아오는데 바람을 찢는 소리가 매섭다, 급히 탄궁을 들어 막았으나 퍽 하는 소리와 함께 탄궁이 부러져 나가고 비도의 여세가 다시 손등을 찍 었다. 풍휘는 놀라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다. 「사숙님, 큰일났어요.」 오국동이 쉭쉭 검을 휘둘러 여어동을 뒤로 물러나게 한 뒤에 땅 바닥에 쓰러진 한춘림을 들쳐업고 객점 문 밖을 뚫고 나갔다. 여어동은 공인들이 달아난 것을 보고도 쫓아갈 생각은 하지 않 고 금피리를 입에 가져다 댄다. 이원지는 그가 어지간히 여유만만 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피리를 불려고 하다니 뱃심이 대단한 사나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피리를 비스듬히 들고 부는 것이 아니라 퉁소를 불 듯한다. 그가 입에 힘을 주자 작은 화 살이 금피리 안에서 튀어나와 풍휘에게 날아간다. 풍휘가 고개를 숙이자 화살이 한춘림의 궁등이에 꽃히고 한춘림은 죽는다고 아우 성이다. 「넷째형님은 어디 계시오? 여어동이 고개를 돌리고 묻자 낙빙이 자기를 따라오라고 한다. 그녀는 다리에 부상을 입었기 때문에 문뎃장을 지팡이 삼아 짚 고 그를 방 안으로 인도했다. 여어동이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비도 를 주워 낙빙에게 되돌려 주며 묻는다. 「형수님, 어쩌다 부상을 입으셨습니까? 괜찮으세요? 오국동은 한춘림을 업고 나가면서 혹시 적이 뒤따라오지나 않을 까 해서 죽을 힘을 다해 달아났다. 막 대문을 빠져나가려 하는데 밖에서 누군가가 뛰어들어오다가 둘이 딱 마주쳤다. 오국동은 수십 년 동안 무공을 닦은 사람이라 하체가 단단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 데 밖에서 뛰어들어오던 사람이 가볍게 건드렸는데도 발을 헛딛고 뒤로 주춤거 렸다. 업고 있던 한춘림을 떨구고야 겨우 쓰러지지 않았다. 그러나 한 춘림은 비참하기 짝이 없었다.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는 바람에 궁 등이에 꽃힌 화살이 깃털까지 모두 살 속 깊숙이 박히고 말았다. 오국동이 고개를 드니 들어온 사람은 효기영 좌령 장소중이다. 머리끝까지 치밀었던 화가 반가움으로 변해 막 뱉어 버리려던 거짓 욕을 꿀꺽 삼켜 버리고 인사를 했다. 「장 대인 지금 또 오십니까! 전 정말 쓸모없는 놈이에요. 형제 하나 는 죽었고 또 이녀석은 혈도를 눌렸어요.」 장소중이 (끙) 소리를 내며 왼손으로 한춘림을 추켜들었다. 오른 손으로그의 허리를 누른 다음 다시 다리를 한 번 탁 치자 막혔던 혈맥이 그제야 풀렸다. 「그래, 그놈들은 달아났느냐? 「아직 객점에 그냥 있습니다.」 오국동의 대답에 장소중이 코웃음을 친다. 「대담한 놈들이로구나. 공인을 살해하고도 달아날 생각을 하지 않고 그냥 버티고 있다니 굉장한 놈들이군그래.」 이렇게 말하며 마당으로 들어섰다. 풍휘는 문태래가 묵고 있는 방을 손으로 가리켰다. '장 대인, 그것들이 저 방에 있습니다.」 손에 연편을 들고 앞장을 섰다. 일행이 불쑥 안으로 들어가려 하는데 갑자기 왼쪽 채에 있는 방 에서 소년 하나가 뛰어나왔다. 손에 빨간 보따리를 들고 장소중을 향해 번쩍 들어 혼들어 보인다. 「이것 보세요. 제가 다시 뺏어 왔지요.」 말을 마치자 문 밖으로 달려나간다. 장소중은 어이가 없었다. (표행 녀석들은 정말 고름주머니들이란 말이야. 기껏 찾아다 주 었더니 또 뺏겨. 내가 알 게 뭐냐? 내 일이 더 중요하다.) 이런 생각을 하며 소년의 뒤는 쫓지 않고 그냥 방으로 들어가려 했다. 소년은 그가 뒤를 쫓지 않자 발걸음을 멈추고 그를 놀린다. '어디서 배웠는지 별 볼 일 없는 재주를 가지고 다른 사람사숙 행세를 하려 드니 그래 창피하지도 않으신가요? 장소중의 명성은 강호에 떨치고 있으며 그의 별명은 화수판관 (火手判宮)이다. 녹림(綠林) 가운데 이런 말이 있었다. (차라리 염 라대왕을 만날지언정 노왕(老王)은 만나지 말라. 창에 한번 찔리는 한이 있어도 장씨(張氏)는 만나지 말라.) 노왕이란 진원표국의 총 표두 위진하삭 왕유양이-S장씨란 바로 화수판관 장소중이다. 이 몇 년 동안 그가 비록 관가에 몸을 담고는 있지만 무림의 인 물들은 여전히 그를 삼가고 두려워했다. 그래서 이런 조롱은 받아 본 일이 없었다. 그는 화가 치밀어 쏜살같이 대들며 손을 돌려 이 원지를 나꿔채려고 했다. 낚우어채기만 하면 한바탕 단단히 혼을 내준 다음 사형인 마진에 게 넘겨 버릇을 고쳐 주라고 충고할 판이었다. 그는 정말 이원지가 마진의 제자라고 믿었던 것이다. 이원지는 그가 쫓아오자 힘차게 달아났다. 장소중이 소리를 지른 다. 「이 어린 것이 그래 어디로 달아나려고? 몇 발짝 쫓다 보니 그녀가 무척 빨리 달아난다. 포기하고 자기 일이나 보려고 몸을 돌렸다. 그런데 이원지는 그가 자기 뒤를 쫓지 않자 다시 발길을 멈추고, 장소중이 허명뿐이라 무당파의 체면을 깎고 다닌다고 놀려 대는 것이다. 입으로는 놀려 대면서도 계속 뒷 걸음질을 친다. 장소중은 정말 화가 나서 2, 3리나 쫓아 갔다. 이때 는 큰 비가 멈추지 않고 계속 내렸기 때문에 두 사람 모두 흠뻑 젖 었다. 장소중은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흔자 중얼거린다. 「내 저녀석을 우선 잡아 놓고 보자. 경공을 펴 있는 힘을 다해 뒤를 쫓았다. 그가 정말 쫓기로 결심 을 한 이상 이원지로서는 달아날 도리가 없다. 상대방이 점점 가까워지자 이원지는 당황했다. 할 수 없이 산비 탈을 향해 치달리자 장소중도 아무 말 없이 그의 뒤를 쫓아 이원 지의 등뒤에 접근하여 손을 뻗어 그녀의 옷을 잡았다. 이원지가 깜 짝 놀라 뿌리치는 바람에 옷이 북 찢어졌다. 놀라고 당황한 이원지 는 빨간 보따리를 얼른 산골에 흐르는 물속으로 집어던졌다. 「자, 도로 가져가세요.」 장소중은 보따리 속에 들어 있는 경서가 보통 물건이 아님을 안 다. 조혜 장군이 신주 모시듯 하는 것으로, 만약 물에 떠내려가기라 도 한다면 이건 보통 일이 아니다. 설령 되찾아온다 하더라도 물에 젖어 망가지면 큰일이다. 즉시 이원지를 놓아 둔 채 흐르는 물속으로 뛰어들어 보따리를 건져을 렸다. 이원지가 호호거리며 달아난다. 장소중이 보따리를 주워 보니 벌써 다 젖었다. 급히 끌러 경서가 젖었나 어쪘나 살펴보다가 그만 욕이 터져나왔다. 보따리 속의 코 란 경은 꺼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고 객점 장궤가 쓰던 장부책 두 권뿐이다. 안을 펼쳐 보니 어느 손님에게서 방값 밥값 얼마를 받았 다는 기록과 함께 심부름꾼 누구누구에게 월급을 얼마 주었다는 내용뿐이다. 장소중은 기가 막혔다. 강호상의 큰 싸움 작은 싸움 겪을 대로 겪은 고수다. 그런데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녀석에게 걸려 두 번씩이나 골탕을 먹다니 한심한 일이다. 손에 든 장부를 다시 물속 에 집어던졌다. 공연히 이걸 들고 객점으로 돌아갔다가 누가 웬일 이냐고 묻기라도 한다면 이건 여간 큰 망신이 아니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화를 억눌러 가며 객점으로 되돌아와 막 문을 들어서려다가 표행의 염세장과 만났다. 염세장은 그 빨간 보 따리를 얌전하게 등에 지고 있었다 생각할수록 얼굴이 화끈거렸 다. 「그 보따리를 누가 건드린 일이 없었나? 「그런 일 없었습니다.」 염세장은 신중한 사람이라 장소중이 묻는 말을 듣고 무슨 곡절 이 숨어 있다는 생각을 했다. 함께 방으로 들어와 보따리를 펼쳐 보니 경서는 얌전하게 그대로 있었다. 「오동국 등은 어디로 갔소? 「방금 여기 있는 걸 보았는데요.」 장소중의 질문에 염세장의 답변이다. '황상께서 이같이 쓸모없는 사람들을 키워 무엇에 쓰시겠다는 건지. 내가 잠깐만 자리를 비워도 금방 멀리 달아나서 보이지를 않으니. 염 노제 나를 따라오라구 내가 단창필마로 그것들 잡는 구경 이나 하게.」 장소중이 화가 나서 이렇게 말하고 곧 문태래가 묵고 있는 방을 향해 걸어갔다. 염세장은 입장이 매우 난처했다. 홍화회의 명성이 대단하고 또 고수들이 많아 자기로서는 그들을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장소중의 말을 어길 수도 없는 처지다. 그는 수수방관 하며 절대로 참여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다행한 것은 장소중의 무공이 탁월한데다 세 사람 가운데 두 사람은 이미 부상을 입었으니 어쩌면 쉽게 잡을 수 있을는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철담장에 이르는 길 게다가 그가 단창필마로 나서겠다고 장담까지 했으니 단창필마 로 나서게 그냥 내버려둘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장소중은 문 앞에 가자 큰소리를 질렀다. 「홍화회 비도들아, 썩 나오지 못하겠느냐? 한참 시간이 흘러도 방 안에서는 아무 반응이 없다. 「빌어먹을 것들이 귀가 먹었나! 큰소리로 욕설을 퍼부으며 발을 들어 문을 찼다. 방문을 닫아 놓 은 채 빗장을 지르지 않아 문은 쉽게 열렸다. 그러나 방 안에는 아 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아니, 이것들이 모두 달아났구나! 안으로 뛰어들어가 보니 텅 빈 채인데 이불이 불쑥 올라와 있는 것이 그 안에 사람이 있는 것 같았다. 칼을 뽑아 이불깃을 들추니 과연 두 사람이 엎드려 있었다. 그는 벽을 향해 누워 있는 사람의 등을 칼끝으로 가볍게 찔러 보았다. 그런데 그 사람이 죽은 듯 꼼 짝하지 않고 있어 얼굴을 들추고 보니 혈색은 찾아볼 수가 없고 두 눈이 불쑥 튀어나와 있는 것이, 난주부 포쾌 한춘림이다. 얼굴을 바깥 쪽으로 향하고 있는 사람은 북경 포두 풍휘였다. 손을 뻗고 숨을 쉬고 있나 살펴보니 둘 다 숨이 끊어져 있었다. 두 사람의 몸에는 피 흘린 자국도 없고 칼에 찔린 흔적도 보이지 않아 다시 한 번 자세히 살펴보니 두 사람의 뇌골이 모두 부서져 있다. 내가 고수의 장력에 얻어맞았음이 틀림없다. 문태래의 솜씨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도리가 없다. 중상을 입었는데 이렇게 무서운 내력을 쓸 수 있다면 (분뢰수(奔雷手)라는 별명 석 자가 과연 헛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오국동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또 문태래 부부는 어디로 달아났단 말인가? 객점의 심부름꾼을 들 러 물어 보았지만 단서를 잡을 길이 없다. 장소중의 이와 같은 추측은 완전히 틀렸다. 한춘림과 풍휘는 결코 문태래의 손에 죽은 것이 아니다. 원래 그 당시 육비청과 이원지는 창 너머로 관전하고 있었다. 여어동이 위험한 고비를 당하자 육비청은 부용금침을 발사하여 장천수의 팔을 명중시키고 귀두도를 땅에 떨어뜨리게 했고, 낙빙도 쫓아와 비도를 날려 그의 목숨을 뺏었다. 오국동이 한춘림을 업고 달아나자 육비청은 안심했다. 여어동고 낙빙이 위험한 고비를 넘겼다고 안도의 숨을 내쉬고 있을 때 뜻밖에도 장소중이 뛰어들어온 것이다. 이원지가 입을 열었다. 「어젯밤 제 보따리를 뺏어간 사람이 바로 저이예요. 사부님도 그가 누군지 아시나요? 육비청은 (응!)하고 대답을 하면서 이미 결심을 내렸다. 「저 사람을 유인해 멀리 달아나도록 해라. 돌아와 내가 보이지 않거든 내일 그냥 길을 떠나라. 내가 곧 뒤쫓아가겠다.」 낮은 소리로 이원지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이원지가 무엇을 물 어 보려 하자 육비청이 말문을 막는다. '빨리 나가라, 늦으면 큰일이다. 절대 조심해야 한다.」 그는 제자의 꾀를 믿었다. 사제인 장소중의 무예가 강하다고는 하지만 총명과 임기응변만은 이원지를 따를 재간이 없음을 너무나 잘 알았다. 그래서 제자인 이원지가 골탕을 먹지는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녀의 부친은 현임 제독이므로 만일 장소중에게 잡힌다 하더라도 절대 괴롭힐 수 없는 신분이다. 또 장소중이 워낙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라 부녀자와 함부로 싸 울 위인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위험한 고비에 이원지가 여자임이 드러난다면 그냥 웃고 넘어가 버릴 것이라고 믿었다. 그 의 예상은 옳았다. 예측했던 그대로 장소중은 이원지의 속임수에 걸려들고야 말았다. 그러나 그때 장소중이 만약 암기나 살수를 썼다면 이원지는 부 상을 면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를 대사형 마진의 제자라고 여긴 그가 어느 정도 사정을 보아 주었던 것이다. 여기까지는 육비청이 미처 생각지 못했던 점이다. 육비청은 장소중이 객점 문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보고 잠시 사색 에 잠겼다가 편지 한 통을 써 품에 챙겨 넣은 뒤에 문태래의 방 앞에 이르러 문을 가볍게 두어 번 두드렸다. 「누구세요? 방 안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낙원통 낙오야의 친한 친구요. 긴히 할 이야기가 있어서 왔소.」 안에서는 대답 소리도 들리지 않고 문도 열리지 않았다. 어떻게 맞이할까 서로 상의를 하는 것 같았다. 이때 오국동 등 세 사람이 천천히 접근하며 멀리서 감시하다가 육비청이 문 밖에 서 있는 것을 발견하고 의아하게 생각했다. 이때 갑자기 방문이 열리며 여어동이 문어귀에 선 채 점잖게 말 을 꺼냈다. 「어느 선배님이신지? 「나는 자네의 사숙이 되는 금리침 육비청일세.」 육비청이 낮은 소리로 이렇게 대답하자 여어동은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사숙이 한 분 계신데 위인이 의협심이 강하다는 말만 들었 지, 여태까지 만나 본 일은 없다. 눈앞에 나타난 노인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 길이 없다. 지금 문태래가 중상을 입고 안에 누워 있 는데 낯선 사람을 방 안에 들인다는 것이 좋을지 나쁠지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여어동은 더욱 의심이 생겨 길을 막고 서 서 아래위로 그를 훑어보았다. 「아무 말 하지 말게, 내 믿도록 해 줄 것이니 비켜나게나.」 육비청이 낮은 소리로 이렇게 말하며 갑자기 왼손을 뻗어 그의 어깨를 쳤다. 여어동이 살짝 피하자 육비청이 우장을 뒤집어 벌써 그의 겨드랑이 밑을 붙잡아 나찰의의 재주를 펴 그를 가볍 게 한쪽으로 밀었다. 나찰의는 무당장권 가운데 기수(起手)의 제일 식으로, 왼손으로 자기의 장삼을 들어올리고 오른손을 채찍으로 삼 아 적을 공격하는 것이다. 손놀림이 매섭고 사뿐하기 그지없는 동 작이며, 원래는 장삼을 벗을 필요도 없이 손이 나가는 대로 자연스 럽게 적을 치는 것이다. 본문에 입문하는 모든 사람들이 배운 바 있는 입문 제1과에 해당하는 동작이다. 여어동은 한 줄기 강한 힘 이 자기를 밀고 있다고 느끼며 자기도 모르게 몇 발짝 뒤로 물러 섰다. 반갑기도 하거니와 놀라웠다. 「정 말 사숙께서 오셨군요.」 여어동이 이렇게 뒤로 밀리자 이를 본 낙빙이 쌍도를 들고 앞으 로 나섰다. 여어동이 그녀를 향해 손짓했다. 육비청은 그들을 향해 두 손을 휘저으며 물러서라는 시능을 하 고 방문 밖으로 달려가 오국동 등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여보시오, 방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달아나 버렸소. 어서 들어와 보시오.」 오국동이 깜짝 놀라 방으로 뛰어들자 한춘림과 풍휘가 그 뒤를 바짝 따랐다. 육비청이 마지막으로 들어와 그들의 출로를 막고 문 을 잠갔다. 오국동은 여어동 등이 얌전하게 방 안에 있는 것을 보 자 눈이 휘등그레지며 소리를 질렀다. 「빨리 물러가자! 한춘림과 풍휘가 막 몸을 돌려 세우는데 육비청의 쌍장이 두 사 람의 뒤통수를 갈겼다. 두 사람은 뇌골이 파열되어 그 자리에서 즉 사했다. 오국동은 기민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다. 방문이 잠기는 것을 보 자 즉시 발을 구르고 몸을 날려 구들 위에 올라선 뒤 두 손으로 머 리를 보호하며 창문을 받았다. 문태래는 구들 위에 누워 있다가 그 가 자기 머리 위로 달아나는 것을 보고 벌떡 일어나 앉으며 좌장 을 휘둘렀다. 뚝 하는 소리와 함께 오국동의 오른팔 뼈가 부러졌으 나 오국동은 몸을 움츠리며 왼발을 벽에 버틴 채 창문을 뚫고 밖 으로 달아났다. 머리 뒤로 바람소리가 일어나며 낙빙의 비도가 날 아왔다. 오국동은 뛰어나을 때 벌써 적의 암기가 추격할 것을 알고 미리 방비를 하고 있었다. 두 발로 살짝 땅을 찍으며 즉시 왼편으로 뛰 는 용의주도한 행동을 취하기는 했지만 비도가 그의 오른쪽 어깨 에 꽃혔다. 아픈 것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결사적으로 뛰어 객점을 빠져나왔다. 이렇게 되자 낙빙과 여어동은 더 의심할 여지도 없이 육비청을 향해 무릎을 꿇고 절을 했다. 문태래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노선배님, 제가 엎드려 절하지 못함을 용서해 주십시오」 「괜찮소, 괜찮아. 그래 낙원통 낙 오야와 어떤 관계가 있으신가? 육비청은 낙빙을 바라보며 물었다. 「제 아버님 이세요.」 「원통 아우는 나와 아주 절친한 친구였소. 그런데 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날 줄은 미처 몰랐군.」 말이 처연하게 떨려 나왔다. 낙빙의 눈 언저리가 붉어지며 억지로 눈물을 삼킨다. 육비청은 여어동을 향해 눈길을 돌렸다. 「자네는 마 사형의 제자인가? 그래, 사형은 요즈음 잘 지내시는 가? 「사숙께서 염려해 주시는 덕택으로 사부님은 건강하게 지내고 계십니다. 늘 사숙님 걱정을 하시면서 십여 년이나 뵙지 못했다는 말씀을 하시더군요. 사숙께서 어디서 뭘하고 계신지 궁금하다시며 늘 염려하셨어요.」 육비청은 힘없이 그의 말을 받는다. 「나도 자네 사부님을 그리워하고 있네. 자네는 다른 사숙 한 분 이 자네를 찾아온 것을 알고 있나? 여어동이 눈을 휘등그렇게 뜨고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장소중 장 사숙 말씀이십니까? 육비청이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문태래는 장소중의 이름을 듣자 몸을 가볍게 떨며 신음했다. 낙빙이 달려가 그를 부축했다. 측은하 고 눈물겨운 표정이 역력하다. 여어동은 그러한 그들을 넋을 잃고 바라보며 멍청히 생각에 잠 겼다. (내게도 저런 아내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가 중상을 입었 다고는 하지만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는 것보다도 낫지 않겠 는가? 육비청이 입을 열었다. '내 사제는 자기 좋다고 비천하게 되었으니� 정말 우리 사문의 수치야. 하지만 워낙 무공이 출중한데다 또 먼 천릿길을 달려 북경에서 왔으니 틀림없이 후원자가 있을 것이야. 이제 문 노제가 중상 을 입고 있으니 잠시 피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뒤에 우리도 그 사람과 미리 약속을 한 후에 그와 자웅을 겨루기로 하세. 이 늙은 이, 사문의 명예를 위하여 그런 망나니를 제거할 수 없다면 살아 있을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네.」 말소리는 나지막했지만 마음속에 끓어오르는 분노는 감추지 못 했다. '우린 모든 일을 육 선배님의 분부에 따르겠습니다.」 낙빙이 이렇게 말하고 남편의 기색을 살피자 문태래도 머리를 끄덕거린다. 육비청은 품속에서 한 통의 편지를 꺼내 낙빙에게 넘겨 주었다. 낙빙이 받아 보니 겉봉에 이런 글씨가 씌어 있다. 진철담장 주중영 노영응 귀하 '육 선배님, 주 노영웅과 교분이 있으신가요? 낙빙이 반기며 물었다. 육비청의 대답이 미처 나오기도 전에 문 태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주 노영웅이 누군가? 「주중영 씨요.」 낙빙의 대답이었다. 「철담장 주 노영웅이 여기 계신가? 「그분이야 철담장에 살고 계시지 않은가? 여기서 불과 이삼십리 밖에 되지 않는다네. 내 주 노영웅과 만나 본 일은 없지만 오래전부터 잘 알고 있지. 평소부터 다른 사람 잘 돌봐 주기로 명성이 자자한 호남아가 아닌가. 내 생각 같아서는 문 노제가 그의 장상4에 가서 잠시 피해 있으면 우리는 각기 나뉘어 한 사람은 귀회에 소식을 전하고 뒤에 문 노제를 모셔다가 치료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듯싶어서 하는 말이오.」 육비청의 말에 문태래가 머뭇거리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묻는다. 「문 노제의 뜻은 어떤가? 「선배님의 배려는 더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씀 을 드리자면 제게는 너무 무거운 짐이 지워져 있습니다. 권륜 영감은 제가 죽은 것 을 직접 보지 않으면 밥도 맛있게 먹을 수 없고 잠자리도 편안치를 못할 것입니다. 철담장 주 노영웅은 저희도 오래 전부터 흠모해 왔습니다. 서북 무림의 지도적인 인물이시 고, 또 친구를 사귀는 데 열정적인 것으로 말한다면 그 명성이 대단한 분이지요. 그분이 저희와는 친척도 아니요, 또 과거에 만나 뵈 온 일도 없는 처지인데 저희가 그분을 찾아가면 노선배님의 체면 을 보아서라도 거두어 주시기는 하겠지요. 그러나 이렇게 한번 저 를 거두어 주시면 그 후환이 끝이 없을 것입니다. 그분이 이곳에 안주하고 계신데 만일 관가에서라도 알게 된다면 그 화가 보통이 아닐 것입니다. 사정이 이런데 제 어찌 편안히 그곳으로 가겠다고 선뜻 나설 수 있겠습니까? 「문 노제는 그런 말 다시 꺼내지 말게. 우리 강호에서는 의기(義 氣)라는 두 글자가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닌가. 친구를 위한 일이라 면 견마지로도 감수하고 자기의 목숨도 아까을 것이 없거늘, 하물 며 그 하찮은 가옥이나 재산이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인가? 우리 가 여기서 곤경에 빠져 있는데 그를 찾아가지 않아 보게. 주 노영 웅이 장래 알게 될 것 같으면 자기를 업신여겼다고 오히려 우리를 크게 책망하실 것이네.」 「제 이까짓 목숨이야 별로 대수로을 것이 없숱니다. 놈들이 저를 찾아온다면 결사적으로 대항해 해치을 작정입니다. 선배님께서는 잘 모르시겠지만 제가 저지른 일이 너무나 엄청나기 때문에 친하 면 친할수록 피해를 줄 수밖에 없습니다.」 '내 한 사람의 이름을 꺼내 보겠네, 아마 문 노제도 틀림없이 알 것일세. 태극문의 조반산과는 어떤 관계가 있나? 「조 삼형 말씀이십니까? 우리 회의 세번째 자리에 계십니다.」 「그것 보게나! 자네들 홍화회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나는 전혀 모르네. 그러나 조반산 조 현제는 나와 생사를 같이하기로 한 절친 한 친구야. 당년 우리가 도룡방에 있을 때 생사고락을 함께 나누어 친형제보다도 더 친했지. 그가 귀회의 인물이라면 자네들이 하는 일은 틀림없이 정정당당할 것임을 나는 믿네. 문 노제가 큰 죄를 지었다고 하는데 그게 무슨 상관이 있나? 기껏해 봐야 관가 사람 을 살해했거나 아니면 조반(造反)을 했겠지. 흥! 흥! 그렇다면 나 도 방금 관가의 주구를 두 놈이나 죽이지 않았나.」 말을 하면서 풍휘의 시체를 발로 툭툭 건드렸다. 「제 이야기를 꺼내자면 너무 길지요 다음 기회에 소상하게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번 권륜 영감이 여덟 명의 대내 시위를 파견해 우 리 부부를 잡으려고 했습니다. 주천의 일전에서 제가 중상을 입기는 했지만 제 아내가 비도를 날려 그중 두 놈을 처치하고 가 까스로 여기까지 도망왔지요. 그런데 또 어림군의 장소중이 여기까 지 쫓아오지 않았겠습니까? 저야 언제고 죽을 목숨이기는 하지만 권륜 영감은 꼭 저를 죽여 없애야만 속이 후련할 모양입니다.」 육비청은 그의 이런 말을 들으며 뭔가 짐작이 가는 듯싶었다. 그가 황제의 모종의 비밀을 알고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사람을 보내 그를 죽여 없앰으로써 그의 입을 봉하려는 것이라고 판단했 다. 그가 이러한 역경에 놓여 있으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누를 끼치 려 하지 않는 것은 정말 대장부다운 일이며 영웅이 마땅히 취해야 할 바람직한 행동이라고 흡족해했다. 그러나 어떻게 해서라도 그를 자극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절대로 철담장에 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문 노제, 자네가 다른 사람에게 누를 끼치려 하지 않는 것은 원 래 정정당당한 대장부의 행동일세. 그러나 나로서는 어딘가 애석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구먼.」 「무엇이 애석하단 말씀이십니까? 「자네가 가지 않으려고 한다면 우리 세 사람이 자네 곁을 떠날 수 있겠나 말일세, 자네는 부상을 입었으니 손을 쓸 수 없는 처지 가 아닌가? 잠시 후에 그들이 나타난다면 어쩔 텐가? 내 그들이 무 서워서 하는 말은 아닐세. 내 사제가 만약 그들 가운데 끼여 있다 면 우리 가운데 그 누가 그를 상대한단 말인가? 여기 한 사람은 자 네의 아내요, 또 한 사람은 자네의 아우일세. 이 늙은이 재주는 없 지만 친구간의 의리만은 내 목숨보다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데 우 리가 패하게 되면 그래 자네를 놓아 두고 달아날 수 있겠나 생각 해 보게. 나야 육십이나 살았으니 죽어도 한이 없을 테고 또 자네 의 아우가 그들과 사생결단을 벌이다가 죽는다 해도 별로 애석할 것 없네. 불쌍한 것은 오직 자네 부인 한 사람뿐일세. 젊디젊은 나 이에 남편의 고집 하나 때문에 모조리 여기서 죽어 없어지는 것이 아니겠나? 문태래는 여기까지 듣자 그만 이마에 땀이 솟았다. 육비청이 하 는 말이 다소 지나친 감은 있지만 모두 일리가 있었다. 「여보! 낙빙이 그를 부르며 손수건을 꺼내 이마의 땀을 닦아 주고 부상 을 입지 않은 한쪽 손을 꼭 잡았다. 문태래의 별명이 분뢰수(奔雷 手)다. 15세의 나이로 강호에 뛰어들어 그동안 얼마나 많은 악당이 그의 수장에 맞아 죽었는지 헤아릴 수가 없었다. 그토록 많은 악당의 목숨을 앗은 손이 낙빙의 부드럽고도 따뜻한 손에 잡히자 그만 더 버틸 재간이 없었다. 정말 옳습니다. 방금 제가 생각을 잘못하 고 있었군요. 선배님께서 하라시는 대로 분부에 따르겠습니다.」 육비청은 주중영에게 보내는 편지를 꺼냈다. 문태래가 내용을 Q1 어 보니 우선 흠모한다는 인사말을 쓴 뒤에 다시 홍화회의 몇 친구가 곤경에 봉착해 있으니 잘 보살펴 달라고 간곡히 부탁했을 뿐 문 모니 여 모니 하는 성명은 쓰지도 않았다, 문태래가 다 읽고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우리가 이렇게 철담장에 도착하면 홍화회에는 또 한 분의 은인 이 생기는구나.」 홍화회는 은혜를 입으면 반드시 갚았고 원수를 지면 반드시 복수를 하고야 말았다. 어떠한 사람이건간에 그들의 은혜를 입기만 하면 천방백계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갚고야 말았다. 동시에 원수 를 크게 지면 크게 갚았고, 작게 지면 작게 갚았지 그냥 어물어물 지나간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진원표국의 사람들이 홍화회의 이 름을 듣고 두려워하는 것은 이 점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다. 은혜와 원한이 분명하기 때문에 함부로 그들에게 득죄를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육비청은 여어동을 향해 어디로 가야 소식을 알려 지원을 요청 할 수 있으며 홍화회의 지원이 언제쯤 도착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여어동은 이렇게 대답했다. '홍화회에는 열두 명의 향주가 있습니다. 여기 계신 문 사 당가와 낙 십일당가를 제외하고는 모두 안 서에 모여 있습니다. 모두들 소타주를 보고 회의 일 을 총관해 달라고 간청하지만 소타주가 한사코 거절하고 있습니다. 소타주는 나이가 어려 식견이 천박하고 자질이나 능력이 모자라 할 수 없다고 말하며, 이당가인 무진도장께서 총 타주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고집을 부리고 계십니다. 그러나 무진도장께서 응하려 하시나요. 현재 이런 상태로 있으면서 사당가와 십일당가가 오시는 대로 향당(香當)을 열어 총타주를 추 대하려고 기다리고 있는 형편이에요. 그런데 두 분께서 여기 이렇 게 곤경에 빠져 계실 줄 누가 알기나 했습니까? 눈만 멀뚱멀뚱 뜬 채 두 분이 오시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을 뿐이지요.」 육비청은 반갑다는 듯 이렇게 말을 꺼냈다. 「안서라면 여기서 별로 먼 곳이 아닌데 귀회의 고수들이 다 거 기 계시군. 장소중이 제아무리 막강하다 하더라도 겁낼 필요가 없 겠군그래.」 여어동이 문태래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 이렇게 말했다. 「소타주께서는 저를 보고 낙양(洛陽)으로 가서 한(韓)씨댁 주관 (主管)을 만나 한 가지 오해를 풀고 오라는 분부를 내리셨는데 그 일도 대단히 급합니다. 그러나 소제의 생각 같아서는 먼저 안서로 돌아가 소식을 전하고 싶은데 넷째형님의 의향은 어떠신지요? 그의 회중의 위치는 문태래에 비해 낮았다. 어려운 일을 당하게 되면 회의 규율에 따라 웃사람의 분부를 들어야 한다. 문태래가 듣 고 침묵을 지킬 뿐 미처 대답을 못하고 있는데 육비청이 먼저 입 을 열었다. 「내가 보기에는 이렇게 하는 것이 좋겠군. 우선 자네들 세 사람 이 즉시 출발해 철담장으로 가게. 거기서 일단 안정이 되면 여어동 자네는 그냥 낙양으로 떠나게, 안서로 가서 소식을 전하는 일은 내 가 가서 처리하겠네.」 문태래는 더 말이 없었다. 피차간 영웅이라고 하는 사람들이다. 이와 같은 일을 가지고 고맙다는 말을 할 필요가 없었고 한마디 고맙다는 인사말로 보답이 되는 것도 아니다. 품속에서 빨간 응단 으로 만든 꽃 한 송이를 꺼내 육비청에게 건네 주었다. 「선배님께서 안서에 도착하시거든 이 꽃을 옷깃에 꽂으십시오. 그럼 우리 회의 누군가가 선배님을 안내할 것입니다.」 낙빙은 문태래를 부축해 일으켰다. 여어동은 바닥에 있는 두 구 의 시체를 구들 위에 옮겨놓고 솜이불을 덮었다. 육비청이 문을 열고 당당하게 나와 말을 타고 서쪽을 향해 달렸다. 잠시 뒤에 여어동이 손에 금피리를 들고 앞장서고 낙빙은 문빗장을 지팡이삼아 짚은 채 다른 한 손으로 문태래를 부축하고 방에 서 걸어 나왔다. 장궤와 심부름꾼들은 연일 그들이 악전고투하면서 사람을 죽이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멀리서 부들부들 떨기만 할 뿐 감히 접근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여어동이 은자 3냥을 탁자 위에 집어던졌다. 「이건 방값과 밥값일세. 우리가 방에 귀중한 물건을 보관해 두었 네. 누구든지 방 안에 들어갔다가 물건을 가져가기만 하면 돌아와 서 그냥 놔두지 않을 테야.」 장궤는 (네, 네.) 대답만 할 뿐 감히 숨도 크게 내쉬지 못했다. 심부름꾼이 세 사람의 말을 끌고 나오며 두 손을 바들바들 떨었 다. 문태래는 두 발로 동자를 밟고 올라설 수는 없었다. 왼손으로 말안장을 짚고 그 힘을 이용해 가볍게 올라탔다. 여어동이 찬사를 보낸다. 「넷째형님의 솜씨는 정말 알아드려야 해요.」 낙빙이 상긋 웃으며 말 위에 올라 고삐를 잡자 세 사람은 말머 리를 가지런히 하고 동쪽을 향해 출발했다. 여어동은 고을 입구에서 철담장으로 가는 길을 물어, 세 사람은 동남방으로 달렸다. 단숨에 15리쯤 달려 행인에게 물어 보니 얼마 가지 않아 곧 도착될 것이라고 했다. 낙빙은 마음속으로 기뻤다. 일 단 철담장에 도착하면 남편을 구할 수 있는 것이다. 철담장 주중영 의 명성은 강호에 떨쳐 서북의 흑백양도(黑白兩道)에 있는 사람치 고 그를 존경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제아무리 큰 일이라도 그는 능히 감당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느긋하게 기다리기만 하면 홍화회 의 지원이 금방 도착할 것이니 천군만마가 들이닥친다 하더라도 이제 겁날 것이 없다고 안심했다. 길은 돌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잡초가 무성해 황량하기 그지 없었다. 이때 갑자기 말발굽 소리가 요란히 울리며 세 필의 말이 앞에서 달려왔다. 말 위의 두 사람은 건장한 장정이요, 다른 한 사 람은 몸집이 크고 우람하며 백발이 은처럼 회끗회끗하고 얼굴은 불그레하면서도 윤기가 흘렀다. 잴그렁 잴그렁, 2개의 철담을 왼손 에 쥐고 만지작거린다. 쌍방이 엇갈려 지나갈 때 세 사람은 문태래 일행을 유심히 살펴보면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여섯 필의 말이 워낙 빨리 달리는 바람에 눈 깜짝할 사이에 벌써 10여 장이나 멀 어졌다. 여어동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넷째형, 형수님. 저분이 혹시 철담 주중영 씨가 아닐까요? 「나도 막 그 말을 꺼내려던 참인데, 저런 인상이라면 보통 인물 이 아닐 거예요 게다가 또 손에 2개의 철담까지 들고 있지 않아 요? 낙빙의 말에 문태래도 긍정적이다. 「그분이 틀림없을 게요 저렇게 빨리 달려가는 것을 보면 분명 급한 일일 텐데 노상에서 막아서서 성명을 묻는다는 것도 어색한 일이 아닐까? 어쨌든 철담장에 가서 또 보자구.」 다시 몇 리를 달려 철담장 앞에 당도했다. 해는 뉘엿뉘엿 기울고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멀리 바라다보니 넓은 평원에 시든 풀만 바 람에 나부끼고 외로운 장원이 하나 보일 뿐이다. 세 사람은 해진 저녁에 다른 사람의 장원에 투숙하며 도움을 청해야 하는 신세를 생각하고 어딘가 서글픈 마음을 금할 수 없어 천천히 말을 장원으 로 몰았다. 장원 밖으로 작은 시내가 끼고 도는 언덕에는 버드나무가 심어져 있는데 엉성한 가지만 있을 뿐 잎은 하나도 달려 있지 않았다. 심한 바람에 버드나무 가지가 모두 동쪽을 향해 흔들리고 있었다. 장원 밖에는 망루와 조교(弔橋)가 설치되어 있어 기세가 대단해 보인다. 머슴이 나와 그들 세 사람을 안으로 인도하고 대청에 앉아 차를 내왔다. 집안 일을 보살피는 사람이 나와 그들을 접대하며 자기는 송선명 (宋善明)이라면서 문태래 등에게 성명을 물었다. 세 사람은 사실대로 알려 주었다. 송선명은 그들이 홍화회의 인물이라고 하자 놀라는 듯했다. '오래 전부터 명성을 들었습니다. 귀회가 강남에서 창설되었다고 들었는데 이런 변방에는 별로 오신 적이 없지요? 세 분께서 무슨 일로 우리 장주님을 찾아오셨는지 모르겠군요. 정말 실례가 많습니다. 우리 장주님은 방금 출타하시고 계시지 않습니다.」 그는 이런 말을 하면서 유심히 그들 세 사람을 아래위로 훑어 보았다. 홍화회에 관한 이야기는 가끔 듣기는 했지만 장주와는 평소 왕래가 없었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찾아왔으니 무엇 때문에 왔는지 영문을 알 수가 없어 말을 하면서도 약간 냉담하고 또 의심하는 기색을 숨길 수가 없었다. 문태래는 주중영이 집에 없다는 말을 듣고 육비청이 써 준 편지 를 꺼내려고도 하지 않았다. 송선명이 깍듯이 예의를 차리기는 하 면서도 은근히 꺼려하는 눈치를 보이자 이렇게 말했다 「주 노영웅께서 댁에 계시지 않다니 그냥 가겠소. 우리가 이렇게 찾아온 것은 무슨 중요한 일이 있어서가 아니오. 다만 오래 전부터 명성을 듣고 흠모해 왔기 때문에 지나는 길이라 인사나 드리려고 했는데 일이 공교롭게 됐군요.」 말을 하면서 치자를 짚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아니, 이렇게 서두르실 필요가 없습니다. 식사나 하시고 천천히 떠나셔도 무방합니다.」 고개를 돌려 옆에 있는 머슴에게 뭐라고 소근거리자 머슴이 고개를 끄덕이며 나간다. 그래도 문태래는 가겠다고 했다. 「그러시다면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냥 가시면 장주님께 돌아오신 뒤에 소인을 보고 손님 대접을 잘못해 드렸다고 책망하실 것입니다.」 말을 하는 동안 머슴이 쟁반을 받쳐 들고 나왔다. 쟁반에는 2 의 원보(先賣:화폐의 이름)와 30냥짜리 은전이 들어 있었다. 모두 60냥에 달하는 은전이다. 송선명이 쟁반을 받아 들고 문태래를 바라다 본다. '나리, 이건 성의가 아닙니다. 세 분께서 먼 길을 마다하시지 않고 저희 장원을 찾아 주셨는데, 대접도 잘해 드리지 못했으니 웃으며 노자(路資)로나 이걸 받아 주십시오.」 문태래가 듣고 별안간 성이 났다. 위급해서 찾아왔는데 노자나 뜯으려고 온 사람으로 대접하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번 담장에 오기로 한 것도 코 자기 의사가 아니다. 그런데 이런 ! 욕을 당하다니 참고 있을 수가 없었다. 낙빙은 남편의 표정이 달라진 것을 보자 가볍게 그의 손을 어루만지며 화내지 말라는 신호를 보냈다. 문태래는 화를 꿀꺽 삼키고 왼손으로 쟁반 위에 있는 원보를 들었다. '우리가 여기 온 것은 노자를 얻으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 너무 사람을 깔보시는군요.」 송선명은 입으로는 아니라고 하면서도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노자를 얻으러 오지 않았다면 왜 돈은 집나?) 그는 홍화회의 명성이 대단함을 알기 때문에 노자도 특별히 많 이 내온 것이다. 문태래가 냉소를 머금고 다시 은전을 쟁반 위에 내려놓았다. 「자, 이만 떠나야겠소. 송선명은 내려놓은 은전을 보고 土스라치게 놀랐다. 멀정하던 2개의 원보가 그의 장력에 눌려 엉망진창으로 찌그러져 있었다. 창피하기도 하거니와 불안해 견딜 수가 없었다. (이 사람 재주가 보통이 아니구나. 복수를 하러 오지 않았으면 분명 분풀이를 하기 위해 찾아왔을 것이다.) 급히 머슴을 향해 몇 마디 분부를 내렸다. 뒤채로 들어가 큰마나님께 이 소식을 알리라고 한 것이었다. 자기가 직접 문 밖까지 나와 전송을 하면서 계속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그러나 문태래는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3명의 머슴이 손님들의 말을 끌고 나왔다. 문태래와 여어등이 송선명을 향해 폐를 끼쳤다고 인사하고 함께 말 위에 올라탔다. 낙빙은 품속에서 1정의 금을 꺼냈다. 무게가 열량은 나가는 금이었다. 그것을 말을 끌고 나온 머슴들에게 주었다. 「수고들 했어요. 얼마 되지는 않지만 세 분이 술이나 받아 마시세요. 하면서 나머지 두 사람의 머슴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이 10냥의 금은 송선명이 방금 내왔던 2개의 원보에 비해 몇 배가 넘는 가치가 있었다. 그들이 평생을 벌어 봐도 만지기 어려운 거액이다. 어이가 없어 입만 헤 벌린 채 고맙다는 인사말도 잊고 있었다. 낙빙은 빙그레 웃으며 말 위에 올랐다. 원래 낙빙은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어머니를 잃었고, 신도 낙원통은 천하의 대도-大盜)로서 혼자 말을 타고 다니며 전문적으 로 부잣집만 털었다. 언잰가는 하룻밤 사이에 금룽팔가 의 부호를 털기도 했다. 장도와 단도, 비도에 여덟 집의 부호를 지키던 무사들이 맞아 죽어 강호에 명성을 떨친 일도 있다. 그는 물건을 겁탈하기 전에 반드시 주인이 어떤 사람인가를 확인했다. 악명이 지독히 높거나 불의한 사람만 골라서 털었다. 매번 사람의 재물을 싹 쓸어 내와 인심을 더욱 통쾌하게 만들었다. 낙원통은 이 무남독녀 외딸을 끔찍이도 사랑해서 무엇이든지 구하면 다 들어 주었다. 그는 성격이 거칠고 호탕한 사람이라 여자의 일은 하나도 몰랐다. 만약 그에게 엄부와 자모의 역할을 동시에 하라고 했다면 그는 말라 죽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돈을 쉽게 벌어들이기 때문에 쉽게 쓰기도 했다. 손만 뻗으면 잡히는 것이 자기 재산이 되었다. 그래서 천하부호의 집은 그가 금은을 맡겨놓은 창고나 다름이 없었다. 사랑하는 딸이 백 냥을 요구하면 백량을 주었고, 천 냥을 요구하면 2천 냥을 주기도 했다. 그래서 딸은 어려서부터 씀씀이가 혜퍼 돈을 쓰는 것으로 따진다면 이 대도의 따닝만큼 시원시원할 수가 없을 것이다. 낙빙은 어려서부터 웃기를 잘했다. 조그만 일을 가지고도 종일 낄낄거렸다. 늘 이렇게 웃는 그녀를 좋아하지 않을 사람이 었다. 문태래에게 시집온 뒤에도 이 성질만은 고치지 못했다. 문태래는 그녀보다 10여 세가 위로, 홍화회의 노타주 우만정을 제외하고는 평생 사랑하는 이 아내의 말만을 들었다. 문태래 등이 막 길을 떠나려고 하는데 한바탕 방울소리가 울리며 한 필의 말이 달려왔다. 말에 탄 사람이 뛰어내리며 문태래의 두 손을 잡고 공손히 인사를 했다. 「세 분께서 과연 저희 장원을 찾아 주셨군요 노장주께서도 우리 장원을 찾아오시는 손님이라 생각하시고 그냥 돌아오시려고 했읍니다만, 워낙 요긴한 일이 있어 그냥 가시고 저보고 돌아가 귀빈을 영접하라는 분부를 내리셨습니다. 노장주님은 친구 사귀기를 좋아하십니다. 세 분을 보자 영웅 호걸이 틀림없다고 반가워하시며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밤 안으로 꼭 돌아오시겠다고 하며 여기에 머무시도록 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불공한 점은 노장 주께서 돌아오셔서 직접 사과를 하시겠다고 그랬습니다.」 문태래가 그 사람을 바라보니 알맞은 키에다 허리는 날씬하고 어깨가 넓은, 방금 노상에서 만났던 사람이다. 그의 간곡한 인사말에 슬그머니 화가 풀렸다. 그 사람의 이름은 맹건웅(孟健維)으로 철담 주중영의 제자였다. 세 사람을 안으로 모시고 들어오는데 말씨가 공손 하고 은근했다. 송선명은 옆에서 안절부절못한다. 손님이 좌정하자 다시 차를 내놓았다. 머슴이 나와 맹건웅의 귀에다 대고 뭐라고 소근거린다. 맹건웅이 일어서며 이런 말을 했다. 「저희 사모님께서 여자 손님을 안으로 모셔 쉬도록 하시라는 전 갈입니다.」 낙빙이 머슴을 따라 들어가자 안에서 하녀가 나와 그녀를 인도 해 들였다. 멀리서 한 여자의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어이구, 귀한 손님 오셨는데 그만 실례를 했군요.」 40세 정도로 보이는 부인이 달려나와 낙빙의 손을 덥석 잡고 반긴다. 「방금 홍화회의 영웅들이 여기 오셨다 가셨다고 하길래 섭섭하게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다시 뵙게 되었군요. 우리 바깥양반이 오시면 얼마나 좋아하실까. 빨리 떠나실 생각 아예 마시고 느긋하게 며칠 묵으세요. 여봐라! 고개를 돌려 하녀들을 바라보며 말한다. 「이 젊은 부인 얼마나 예쁘게 생기셨느냐? 원, 우리 딸은 어림토 없구나.」 낙빙은 이 안주인의 말이 계속해서 나을 것만 같아 이런 말을 했다. 「뭐라구 인사를 드려야 할는지. 제 주인의 성은 문씨예요. '아이구, 내 정신 좀 보게나. 이렇게 예쁜 분을 보자 그만 넋이 빠져버렸네.」 그녀는 그래도 자기가 누구라고 말을 꺼내지 않았다. 「우리집 주인 마나님이세요.」 보다 못해 하녀 하나가 이렇게 일러주었다. 원래 이 여자는 주중영의 후처다. 주중영의 전처는 두 아들을 낳았는데 모두 강호에서 다른 사람 과 싸우다 차례로 목숨을 잃었다. 지금 부인은 이 집으로 들어온 뒤에 딸을 하나 낳았다. 그 딸의 이름은 주기 현재 나이는 18세, 성격이 거칠어 늘 밖에서 일만 저질렀다. 주중영이 방금 총 총 출타한 것도 이 딸이 사람을 때려 부상을 입혔기 때문에 사죄 를 하러 나간 것이다. 이 부인은 딸을 낳은 뒤 여러 해 동안 임신 소식이 없고, 주중영도 자기 나이를 따져 보고 아들 없을 팔자라고 체념을 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55세 나던 해에 아들 하나를 낳아 노부모의 기쁨은 이루 형언할 수가 없었다. 친구들이 달려와, 적선을 많이 한 덕택이라고 함께 축하해 주었 다. 좌정을 한 후에 마나님은 이렇게 말했다. '빨리 도련님을 불러와 이 아주머니를 뵙게 해라.」 한 어린애가 내실에서 나오는데 미목이 수려하고 몸놀림이 가볍 다. 낙빙은 그가 몇 년 동안 무예를 익혔음을 알았다. 아이는 낙빙 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아주머니 안녕하세요. 낙빙은 그의 손을 잡고 이름과 나이를 물었다. 「열 살이에요. 이름은 주영걸(周英傑)이구요」 낙빙은 왼팔에 끼고 있던 한 꾸러미의 구슬을 풀어 그에게 주었 다. 「먼 길을 오느라 좋은 물건이 없구나. 이 구슬이나 줄 테니 모자 옆에 달렴.」 주중영의 아내는 구슬이 굵고 또 영롱해 귀중한 물건임을 금방 알아보았다. 그녀는 초면에 이런 귀중한 물건을 받는 것이 실례라 고 사양했다. 한참 동안 받으라니 못 받겠다니 떠들썩하다가 할 수 없이 받고 고맙다는 절이나 하라고 아들에게 시켰다. 이 말 저 말 주고받는데 하녀 하나가 당황해하며 들어왔다. 「문씨 아주머니, 나리께서 졸도하셨습니다.」 주중영의 부인이 빨리 의원을 불러오라고 재촉했다. 낙빙은 바깥 채로 나와 남편을 살펴보았다. 문태래는 원래 중상을 입은데다가 방금 화를 내며 은전을 찌그러뜨리느라 또 한 번 힘을 썼었다. 그러다가 긴장이 풀리자 견디지 못하고 쓰러진 것이다. 낙빙은 혈색 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남편이 불쌍해 견딜 수 없었다. 「여보! 여보!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야 문태래가 서서히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맹건웅은 머슴을 시켜 쾌마를 타고 고을로 나가 의원을 청해 오고 또 노장주님을 찾아가 손님이 머무르기로 했으니 알려드리라고 했다. 그는 나가는 머슴을 쫓아가며 당부를 했다. 머슴이 말을 타고 큰길로 달려나가자 그는 안으로 들어오려고 몸을 돌렸다. 그런데 장원 밖에 있는 버드나무 뒤에서 한 사람의 그림자가 스치는 것이, 자기를 보고 몸을 숨기는 것 같았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안으로 들어와 나는 듯 망루로 뛰어올라가 구멍을 통해 바깥 동정을 살폈다. 버드나무 뒤에서 누군가가 머리를 내밀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다가 몸을 숨긴다 이윽고 키가 작달막한 사나이가 나와 장원 앞을 왔다갔다하다가 다시 버드나무로 몸을 숨긴다. 맹건웅은 그의 수상한 거동을 보고 이마를 찡그린 체 망루에서 내려와 주영걸을 불러다 뭐라고 당부를 했다. 주영걸은 크게 반기며 참 재미있다고 했다. 맹건웅이 대문 밖으로 뛰어 달아나며 웃고 떠든다. '뭐 내가 무서워할 줄 알구. 주영걸이 그 뒤를 바짝 쫓는다. '어디까지 도망치나 봐야지. 빨리 제게 머리 숙여 절이나 하세요.서 맹건웅이 그를 향해 꾸벅 절하며 용서를 빈다. 그러나 주영걸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작은 두 손을 뻗어 잡으려 하자 맹건웅은 키 작은 그 사나이가 숨어 있는 버드나무 뒤로 뛰어들었다. 사나이가 깜짝 놀라 일어섰다. '여보세요. 말씀 좀 여쭙겠습니다. 삼도구(三道構)로 가려면 머느 길로 가야 합니까? 사나이가 엉뚱한 수작을 부렸지만 맹건웅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시시덕거리며 그를 받아 버렸다. 사나이가 벌렁 뒤로 넘어졌다. 원래 이 사나이는 진원표국의 동조화였다. 그는 볼우물이 꽃처럼 아름다운 낙빙의 모습이 보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문태래로부터 골탕을 먹기는 했지만 이런 생각을 했다. 지하에 숨은 사람 (멀리서나마 몇 번 바라보면 그래도 다소 마음이 풀리겠지. 그냥 바라만 본다는데 설마 죽일 리야 있겠나.) 그래서 잠시 뒤에 방에서 나와 낙빙이 묵고 있는 방문 앞을 기웃거리다가 낙빙과 문태래, 여어동이 방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달아나는 줄 알고 급히 말에 올라 귀신도 모르게 그들의 뒤를 밟아 여기까지 온 것이다. 감히 그 뒤를 바짝 따를 수가 없기 때문에 멀 리서 그들 일행이 철담장으로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잠시 후에 그들이 나오는 것을 보았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다시 들어가더니 아무리 기다려도 영 나오지 않는다. 궁금해 견딜 수가 없었다. 확실한 것을 알아야 돌아가 소식을 전 할 수 있는 것이요, 그래야만 큰 공로를 세우게 되는 것이다. 공밥 만 축낸다는 말을 이제는 듣기가 싫고 일 잘한다는 인정도 받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래서 안의 동정을 살피려고 기웃거리다가 맹건웅에게 들킨 것이다. 그는 다른 재주라고는 하나도 없고 남달리 꾀만 많았다. 자기의 거동이 발각된 마당에 이렇게 받는 것은 어디까지나 자기에게 무공이 있는지 없는지 시험해 보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전신의 힘을 뺀 채 받는 대로 나가 넘어져 사지를 바등거리며 일어나지 않았다. 다행스러운 것은 평소 그의 무공이 시원치 않았기 때문에 쉽게 상대방을 기만할 수 있었던 점이다. 맹건웅은 연방 미안하게 되었다고 사과했다. '제가 이 아이와 장난을 하다가 그만 실례를 했습니다. 어디 다친 곳이나 없으신지요? '이 옆구리가 아파 견딜 수가 없군.아이구! 동조화가 엄살을 부리자 맹건웅이 팔을 뻗어 그를 부축해 일으켰다. '어디 안으로 들어가 보십시다. 우리 집에 좋은 고약이 있습니다. 동조화로서는 거절할 방법이 없어 꿍꿍이속을 품은 채 신음 소리를 내며 그를 따라 들어왔다. 맹건웅은 그를 동쪽 사랑채로 안내했다. '손님은 삼도구에 가시는 길입니까? 그런데 어째서 이쪽으로 오시게 되었지요? '글쎄 말입니다. 방금 양 치는 소년을 하나 만났는데 이 길을 가르쳐 주지 않겠어요. 제기랄, 이따 가다가 혼을 내줘야지. '누가 누굴 혼내겠다는 건지 알 수가 없군 손님, 옷이나 벗으세요? 상처나 보아 드리겠습니다.」 동조화로서는 옷을 벗지 않겠다고 할 수가 없이 되어 버렸다. 맹건웅은 상처를 보아 주겠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한번 그의 몸을 수색해 보려는 것이었다. 그는 비수 한 자루를 가죽신 속에 숨겼는데 끝끝내 들키지 않았다. 맹건웅은 그의 몸을 샅샅이 어루만져 보았다. 무공을 할 줄 아는 사람은 적의 손가락이 자기의 급소를 만지면 피하거나 막거나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 목숨을 다른 사람에게 내준 것이나 다름이 없다. 동조화는 생각했다. (이 동 나리, 어디 한번 철두철미하게 속여 보자꾸나.) 맹건웅은 그의 머리 양쪽에 있는 태양혈(太陽穴)을 눌러 보고 앞 가슴에 있는 전중혈도 툭 쳐 보았다. 「여긴 아무것도 없는데요.」 동조화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능청을 떨었다. 맹건웅은 다시 그의 겨드랑이를 눌렀다. 동조화가 낄낄거린다. 「아이구, 간지럼 태우지 말아요. 나는 몹시 간지럼을 탄답니다.」 맹건웅이 건드린 곳은 모두 치명적인 급소였다. 그가 전연 느끼 지 못하는 모양을 보고 정말 무공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믿었다. 그 러나 그의 정체가 불분명한데다 아무래도 수상한 점이 많았다. (말씨가 이 고장 사람이 아니야. 그렇다면 좀도둑이란 말인가. 그 러나 철담장에 나타나 감히 기웃거리다니 보통놈은 아닐 텐데.) 그러나 철담장은 여태까지 공명정대하게 살아왔지 아무나 함부 로 억울하게 대해 본 일은 없다. 그냥 놓아 보낼 수밖에 없었다. 동조화는 나가면서도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낙빙 일행이 어디 있 는지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맹건웅은 그가 혹시 도둑의 앞잡이 가 아닐까 의심했다. 「여보 손님, 여기가 어디라는 것쯤은 알고 계시겠지? 위협적으로 이렇게 말을 꺼내 보았다. 「글쎄요, 이렇게 큰 것을 보면 동악묘(東嶽廟)가 아닌지? 왜 어째 서 보살이 보이지 않을까? 동조화는 어리숙하게 능청만 떨었다. 맹건웅이 조교까지 건네주 고는 냉소를 머금었다. 「틈 나거든 한번 놀러오구려.」 동조화는 더 참을 수가 없었다. 「안 돼요. 내 이모부에게 축하 인사를 하러 가야해. 새로 막 의사가 되셨는데 온종일 다른 사람 옷 벗겨 놓고 상처만 어루만지 고 있는 걸요.」 맹건웅이 그의 말을 들으니 알꽁달쏭하다. 한참 뒤에야 자기 욕을 한다는 것을 비로소 알아차렸다. 손을 뻗어 그의 어깨를 후려치 고는 허허거리며 발길을 돌려 안으로 들어갔다. 동조화는 뼈가 부 서지는 듯 아팠다. 손자놈 같으니, 왕비단이니,,,,,, 갖은 욕을 다 씹으며 겨우 자기 말을 찾아 타고 삼도구 안통객잔을 향해 달렸다. 방으로 돌아오니 장소중이 오국동 등 표행 사람들과 둘러앉아 뭔가 상의하고 있었다. 그 밖에도 낯선 사람 7, 8명이 보이는데 의견이 분분했다. 문태래는 어디로 달아났으며 한춘림과 풍휘를 때려 죽인 영감은 또 누구냐고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아무도 시원히 대답을 하지 못하고 이맛살을 찡그린 채 국사범을 놓쳐 한숨만 슨 고 있었다. 동조화는 득의양양하게 문태래의 종적을 설명했다. 자신이 맹건웅에게 당한 망신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비치지 않았음은 말할 나위도 없는 일이다. 장소중이 듣고 희색이 만면하다. 「우리 함께 당장 가 보세, 동 노제가 수고스럽지만 길 안내를 해주어야겠네.」 그 평소 동조화를 (동 서방)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지금은 동노제라고까지 불러 그를 대접해 주는 것이었다. 동조화는 신이 나서 대답을 했다. 몸이 날아갈 듯 가뿐해 표행의 뭇 표두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설치고 야단이다. 어떻게 경공을 펴 위험을 무릅쓰고 二 들의 뒤를 추적했다느니, 제 자랑이 가관이었다. 「황상께서 시키신 일이요, 또 장 대인의 일이니 이 동가 목숨을 내놓고라도 최선을 다해야지요.」 오국동은 팔 뼈가 부러져 접골 의원을 청해다 뼈를 맞추었다. 조화의 수다를 듣다 못해 새로 온 몇 사람을 그에게 소개했다. 조화가 듣고 깜짝 놀란다. 모두들 관가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는 막 강한 고수들이었기 때문이다. 대내에서 황상이 하사한 노란 마고자를 입고 있는 사람은 4품 시위 서대림이요, 정친왕부 무술총교 두인 만경란(萬慶欄) , 구문제독부 기명총 병 성황, 호남진주 理南原州 언가권 장문 인 언백건(言白乾) 및 천진과 보정(保正)의 쟁쟁한 포두(捕頭)들이다. 문태래 하나를 잡기 위해 이렇게 많은 남북 만한의 무술 명가들이 삼도구 이 작디작은 고을에 운집한 것이다. 일행은 즉" 만반의 준비를 끝내고 철담장을 향해 출발했다. 육비청은 모진 바람을 정면으로 안고 서쪽을 향해 말을 몰았다. 오금협(鳥金峽) 긴 고개를 넘을 때는 지난번 악전고투에서 흘렸던 핏자국이 빗물에 깨끗이 씻긴 뒤였다. 단숨에 4, 50리를 달려 작은 저자가 있는 고을에 당도했다. 한바탕 신나게 달리고 나니 정신이 새롭다. 날이 저물기에는 아직도 시간이 많이 남아 있어 계속 길을 재촉하고 싶었지만 말이 피곤해 보였다. 입에 횐 거품을 물고 숨을 할딱거린다. 문태래의 일이 급한 것을 생각하면 일각이라도 빨리 달려가 그들에게 알려야 했다. 어떻게 할까 망설이고 있는데 저자 저쪽 끄트머리에서 위구르 사람 하나가 손에 두 필의 말을 끌고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는 모습으로 보아 분명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두 필의 말은 몸집이 크고 굳세 보이는데 털에 유난히 기름기가 돌았다. 그는 그쪽으로 다가서며 말을 팔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위구르 사람은 팔지 않겠다고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육비청은 주머니 속에서 1정의 대은을 꺼내 그에게 보였다. 20次이 넘는 - 수였지만 그자는 여전히 머리를 흔든다. 육비청은 초조해 주머니를 털었다. 주머니 속에는 6, 7정의 소은이 들어 있어 그것들을 모두 꺼내 대은과 함께 그에게 주었으나 위구르 사람은 손을 내저으며 비키라는 시능을 했다. 말은 절대로 팔 수 없으니 공연히 귀찮게 굴지 말라는 표정이다. 육비청이 할 수 없이 은자를 다시 주머니 속에 넣으려고 할 때 위구르 사람은 그의 손바닥 가운데 있는 몇 정의 은자 가운데 철련자가 끼여 있는 것을 보고 그것을 달라고 해서 새겨져 있는 우모의 무의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원래 그날 저녁 육비청이 장막 밖에서 안을 기웃거리고 있을 때 곽청동 이 이 철련자를 쏘았고 그 철련자는 육비청이 들고 있던 찻잔으로 받았던 것이다. 그 뒤 되는 대로 주머니 속에 집어넣고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 었다. 위구르 사람은 이 철련자를 어디서 구했느냐고 물었다. 육비청이 모자에 깃털을 꽃고, 장검을 쓰는 위구르 소녀가 자기 의 친구인데 그녀가 자기에게 선물로 준 것이라고 거짓말을 하자 그 사람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다시 한 번 자세히 살펴본 뒤에 육비청의 손바닥에 올려놓고 한 필의 준마 고삐를 그에게 쥐어 주는 것이었다. 육비청이 크게 반기며 다시 은자를 꺼냈다. 위구르 사람은 손을 흔들어 거절하고 육비청이 타고 있던 말을 끌고 가 버린다. 육비청은 혼자 이렇게 중얼거렸다. (꽃 같은 어린 소녀 하나가 그들 위구르 사람들 가운데서 이토록 명성이 대단할 줄은 몰랐다. 철련자 하나가 화살보다 빠르구나.) 원래 이 위구르 사람은 곽청동과 같은 부족인데 그들이 이번 대 iJ동쪽으로 성경을 찾으러 오면서 여기저기 연락할 장소를 설치해 놓고 이런 편의를 제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이 한족의 노인이 곽청동의 철련자를 가지고 총총 서쪽으로 가는 것을 보고 부족을 돕는 후원자라고 생각하여 아무 의심도 하지 않고 좋은 말을 바꾸어 주었다. 육비청은 계속 달렸다. 앞에 있는 고을에서도 위구르 사람을 만 났다. 철련자를 꺼내 보이고 다시 힘찬 말로 바꿔 탔다. 이번엔 일 이 더욱 쉽게 해결되었다. 위구르 사람들의 말 엉덩이에는 부족의 소유를 나타내는 낙인이 찍혀 있었다. 그 바꾼 말이 자기 부족의 표시가 있는 말이라 전연 의심을 받지 않았다. 육비청은 계속 말을 바꾸어 타고 달리며 비상 식량을 꺼내 먹었다. 하루 낮 하룻밤에 6백여 리를 달려 다음날 저녁 무렵 안서에 도착했다. 그는 무공이 심오한 사람이다. 무당파에서는 내력의 수련을 으뜸으로 친다. 그러나 나이가 워낙 많은데다 잠도 자지 않고 휴식도 취하지 않은 채 달렸으니 피곤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성안에 들어서자 문태래가 준 빨간 꽃을 옷깃에 꽂았다. 몇 발짝 걷지 않았는데 키 작은 두 남자가 나타나 인사를 하고 주점에 들어가 식사나 하자고 권했다. 육비청도 사양하지 않겠다고 했다. 주점에 도착하자 한 사람은 술을 권하고 다른 편 사람은 실 례하겠다며 그 자리를 떠났다. 술을 권하는 남자는 공손한 말씨로 많이 들라고 할 뿐 다른 말은 한마디도 묻지 않았다. 술 석 잔을 마시자 문 밖으로부터 한 사람이 총총 들어서며 그 를 향해 인사를 했다. 육비청도 급히 일어나 답례를 하며 털니 파 란 두루마기를 입었는데 나이는 30세 전후, 두 눈이 이글이글 재기 가 넘쳐 흐르는 인상이다. 그 사람이 성명을 물어 육비청은 사실 대로 알려주었다. 「원래 무당파의 육 선배님이시군요. 조반산 셋째형님으로부터 존 함을 듣고 있었습니다. 오늘 이렇게 뵙게 되니 정말 영광입니다.」 「그래, 선생은 뉘시오? 육비청이 물었다. 「저는 위춘화라고 합니다.」 원래부터 육비청에게 음식을 권하던 사람이 일어섰다. 「그럼 두 분께서 말씀 나누세요.」 그는 육비청과 위춘화를 향해 인사를 하고 나가 버렸다. 위춘화 가 입을 열었다. '저희 회의 젊은 타주와 많은 형제들이 모두 본지에 모여 있읍니다. 만약 노선배님께서 왕림하신 것을 알았다면 벌써 나와 영접했을 것입니다. 노선배님께서 저희들 있는 곳에 가실 수 있으시다면 고맙겠습니다.」 '그것 좋지요. 내가 여기까지 온 것도 바로 여러분을 만나 알려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위춘화가 다시 술을 권하자 육비청이 그만 들겠다고 사양했다. 일이 급하니 그만두겠소. 먼저 귀회의 영웅들을 만나 본 뒤에 마셔도 늦지 않을 것이오.」 즉시 위춘화가 앞장을 선 채 주점을 나섰다. 장궤가 술값을 따지 지 않는 것을 보고 육비청은 이 주점이 홍화회의 연락 장소라는 생각을 했다. 두 사람은 말에 올라 성 밖으로 나왔다. '선배님, 우리의 문태래 형과 형수님을 만나 보셨습니까? '만나 보았는데 어떻게 그걸 아셨지요? '선배님께서 꽃고 계신 빨간 꽃이 바로 문태래 형의 것입니다. 네 개의 파란 잎새가 받치고 있지 않습니까? 육비청은 생각했다. (이게 그들 회중의 암호로구나. 내게 솔직히 말하는 것을 보니 꾀 믿는 모양이로군. 잠시 후에 한 도관(道觀)에 도착했는데 도관 앞뒤로 고목이 하늘 을 찌를 듯 빽빽하게 들어차 그 기상이 웅장하다. 그 앞에 편액이 하나 걸렸는데 옥허도원이란 네 글자가 있었다. 도관 앞에 서 있던 2項의 도인이 위춘화를 보고 공손하게 대한다. 위춘화와 육비청이 안으로 들어와 앉자 나이 어린 도동이 차를 올렸다. 위춘화가 도동의 귀에 뭐라고 소곤거리니 도동이 머리를 끄덕이 고 안으로 들어갔다. 육비청이 막 잔을 들어 차를 마시려고 하는데 내당이 떠들썩하더니 한 사람이 뛰쳐나오며 소리를 질렀다. 「육 형, 육 형이 그리워 죽을 뻔했어요,,,,,,.」 당년 생사고락을 같이 하며 지내던 조반산이었다. 옛 친구를 만나는 그들의 기쁨은 대단한 것이었다. 조반산은 계속해서 물었다. 「그래 그동안 어디 계셨소? 어떻게 여길 다 오시게 되었소? 육비청은 그 말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 「조 현제, 우리 중요한 일부터 이야기합시다. 귀회의 문 사당가가 지금 고난을 당하고 있는 중이오.」 즉시 문태래와 낙빙의 일을 대강 설명했다. 조-위 두 사람이 듣고 몹시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위춘화 는 육비청의 말을 듣는 도중에 안으로 들어가 이 소식을 알렸다. 조반산은 문-낙 두 사람의 상처가 어느 정도냐고 상세하게 물었 다. 육비청이 이야기를 끝내지도 않았는데 위춘화가 마당 가운데서 누군가와 말다툼을 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왜 나를 막아요? 나는 지금 당장 넷째형님 계신 데로 가 야겠어. 위춘화가 그를 말린다. 「왜 그리 급히 날뛰기만 하나? 우선 모두가 이 일을 상의해 봐야지. 그리고 또 소타주께서 누굴 파견하실는지 그 분부에 따라야 하지 않겠나? 그러나 그 사람은 계속 떠들기만 했다. 조반산이 육비청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갔다. 큰소리로 떠들고 있는 사람은 꼽추였다. 육비청은 그가 바로 그날 이원지가 타고 가 던 말꼬리를 손으로 쳐 싹둑 자른 사람임을 기억해 냈다. 위춘화가 꼽추를 밀며 이렇게 말했다. 「육 선배님께 인사나 올리게.」 꼽추는 이쪽으로 와서도 아무 말 없이 두 눈만 부릅뜨고 육비청 을 바라다보았다. 육비청은 그가 자기의 인상을 기억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날 이원지의 조롱에 대해 아직도 불쾌하게 생각하고 있 었던 것이다. 사과를 하려고 하는데 꼽추가 먼저 이런 말을 꺼냈다. 「육백여 리를 달려와 넷째형과 형수의 소식을 알려주시니 먼저 고맙다는 인사부터 드려야겠습니다.」 말을 마치자 무릎을 꿇고 돌계단에 머리를 조아렸다. 육비청은 만류하고 싶었지만 겨를이 없었다. 할 수 없이 자기도 꿇어앉아 답례를 했다. 꼽추는 벌써 인사를 끝내고 벌떡 일어섰다. 「조 삼형, 위 구형, 저 먼저 가겠습니다.」 조반산이 잠시 기다려 달라고 하려는데 꼽추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나가 버린다. 그가 막 윌동문을 빠져나가려고 할 때 밖에서 한 사람이 들어오다가 꼽추를 덥석 잡았다. 「어딜 가니? 「넷째형과 형수를 보러 가는 길이니 나하고 동행합시다.」 그 사람의 대답도 기다릴 것 없이 그의 말을 끌고 그냥 밖으로 나갔다. 「칠제, 자네가 그와 함께 가 보게.」 조반산이 소리를 지르자 그 사람이 멀리서 대답을 했다. 원래 그 꼽추의 성명은 장진(章進)성격이 제일 급한 편이다. 그 는 태어나면서부터 불구였지만 뚝심만은 놀라웠다. 그래서 외가(外 家)의 무공을 익혔지만 그의 몸에 결함이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 이 자기의 곱사등을 가지고 놀려 대는 것을 가장 질색으로 알았다. 그가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할 때에는 스스로 장타자라 고 자신을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먼저 자기 면전에서 곱사등이라는 (곱) 자를 꺼내거나 자기의 곱사등을 보고 웃기라도 하면 이건 벌집을 건드려 놓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자기를 보고 놀리거나 웃는 사람이 평범한 사람 같으면 그건 그래도 나았다. 약간 무예를 할 줄 아는 사람 같으면 거의 반주검을 만들어 놓아야 속이 풀렸다. 그는 홍화회에서도 낙빙의 말을 제일 잘 들었다. 그의 성질이 괴팍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은근히 그를 기피했으나 낙빙만은 그를 동정해 음식이며 의복에 세심한 신경을 써서 친동 생을 돌봐 주듯 했다. 그는 문태래 부부가 곤경에 빠졌다는 소식을 듣자 뜨거운 피가 용솟음쳐 그냥 달려나간 것이다. 장진은 홍화회 가운데서 열번째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방금 그에게 끌려 나간 사 람은 일곱번째 자리에 앉아 있는 서천굉이다. 그는 몸이 왜소했지만 슬기와 꾀가 많았다. 홍화회의 군사요, 무공도 만만치 않은 그를 강호에서는 무제갈(武諸葛)이라고 불렀다. 조반산은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육비청에게 대강 들려 주었다. 홍화회의 뭇 당가들이 계속해서 나와 그와 만났다. 모두들 무림 가운데 이름을 날리는 영웅 호한들로, 육비청이 노상에서 대부분 본 사람들이었다. 조반산이 일일히 소개했지만 각자 마음이 조급해 수인사조차 생략했다. 육비청이 문태래에 관한 일을 대강 설명해 주자 팔이 하나밖에 없는 이당가 무진도인이 이렇게 말을 꺼냈다. 「우리, 소타주님을 뵈러 갑시다.」 모두들 후원을 통해 큰 방으로 들어갔다. 벽에 커다란 바둑판이 그려져 있고 3장 밖에서 두 사람이 구들 위에 앉아 바둑알을 만지고 있다가 벽에 그려 놓은 바둑판에 던지니 알 하나하나가 그대로 그 위에 박힌다. 견문이 넓은 육비청이라 하지만 이렇게 두는 바둑은 생전 처음 구경을 한다. 흰 돌을 쥐고 있는 사람은 청년 공자다. 흰 장삼을 입고 있었고 얼굴이 관옥 같아 귀한 집 자제처럼 보였다. 검은 돌을 쥐고 있는 사람은 농사꾼 차림의 노인이다. 노인 이 바둑알을 던지면 힘차게 바람을 찢고 날아가 꽃혔다. 육비청은 내심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사람은 어떤 영웅인지 모르겠다. 암기를 쏘는 솜씨가 여간 무섭지 않겠구나.) 혹의 관세가 위태로을 때 흰 돌이 날았다. 그러나 젊은 공자가 던진 그 바둑알이 판의 교차 지점에 맞지 않고 살짝 옆으로 기울어져 박혔다. 노인이 껄껄 웃는다. 「자네 안 되겠는걸. 아주 졌다고 손들게나.」 바둑을 한쪽으로 밀며 일어선다. 분명 지고도 한번 떼를 써 보는 것이다. 공자가 미소를 머금는다. 「후에 다시 사부님과 두겠습니다.」 노인은 많은 사람들이 들어서는 것을 보자 인사도 없이 그냥 밖으로 나가 버린다(중국 고래의 관례는 바둑을 둘 때 윗사람이 혹을 쥐었는데 근래에 이르러 변했다.註). 조반산이 육비청을 공자에게 소개했다. 「소타주님, 이분이 무당파의 선배이신 육비청 육 대형입니다. 그리고 또 이분은 저의 소타주이십니다. 두 분이 앞으로 가까이 지내 시기 바랍니다.」 젊은 타주가 두 손을 공손히 마주 잡았다. 「제 성명은 진가락입니다. 선배님께 많은 지도 부탁드립니다. 조 삼형으로부터 말씀은 많이 들었숨니다만 그동안 인연이 없어 뵙지 못했습니다. 방금 사부님을 모시고 바둑을 두다가 선배님이 왕림하신 것도 몰랐으니 이런 실례가 또 어디 있겠숱니까. 정말 죄송합니다.」 육비청은 연방 겸양을 하면서도 마음속으로 의아한 생각을 금할 수 없었다. 젊은 타주의 인상은 어디까지나 부귀한 가문의 자제 같아 보이고 말씨 또한 우아해 이런 거친 무림의 고수들과 어울릴 것 같지 않았다. 조반산은 문태래가 철담장으로 피난 가 있다는 말을 진가락에게 하고 대책을 지시해 줄 것을 요청했다. 진가락이 무진도인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도장께서 분부해 주십시오.」 무진의 뒤에 앉아 있던 장한이 벌떡 일어서며 소리를 지른다. 「넷째형님이 중상을 입고 있는 마당에 평소 잘 알지 못하는 사람까지도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달려와 소식을 전해 주는데 그래 우리는 앉아서 서로 미루고만 있으니 도대체 어떻게 하자는 것이요? 넷째형이 세상을 떠나도 계속 미루다 그만두실 참이오? 노당가의 유명을 누가 감히 어긴단 말입니까? 소타주님께서 의부의 유언을 듣지 않으신다면 그건 크나큰 불효요. 게다가 만약 우리 형제들을 업수이 보시고 총타주가 되시지 않겠다면 홍화회 7, 8만 명을 당장 해산시키고 맙시다.」 육비청이 그를 보니 키도 크고 뚱뚱한데 얼굴은 가무잡잡하고 위풍당당해 보였다. 방금 조반산이, 여덟번째 자리에 앉아 있는 양성협이라고 소개했던 사람이다. 그의 말에 따라 군웅들이 분분히 의견을 제시하고 나섰다. 「우리도 총타주 없이는 움직일 수 없습니다. 소타주께서 만약 재삼 사양만 하신다면 모두의 사기가 저하됩니다. 넷째형이 지금 곤경에 라져 있는데 모두 소타주님의 명령이 떨어지기만 고대하고 있습니다.」 무진이 나섰다. 「홍화회 상하 7, 8만 명 회중 가운데 어느 누가 감히 소타주님의 명령을 거역하겠습니까?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이 무진이 한칼에 목을 베겠습니다.」 진가락은 뭇 사람들의 중의가 이런 것을 보자 몹시 난처한 모양이다. 두 눈섭을 찡그린 채 아무 말 없이 침묵에 잠겼다. 서천쌍협 가운데 상혁지(常赫志)가 나섰다. 「소타주께서 우리를 업신여기시는 이상 우선 우리끼리 넷째형을 구출해 내고 서천으로 돌아가겠숱니다.」 「형님 말씀이 옳아요. 우리 그렇게 합시다.」 상백지도 자기 형의 말에 동조했다. 진가락은 여기서 대답을 하지 않았다가는 오히려 뭇 형제들의 의리만 손상시킬 것 같았다. 「제가 여러분의 진정을 몰라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워낙 나이 어린데다가 천학비재하여 대임을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아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여러분께서 이토록 저를 사랑해 주시고 또 강남 먼 곳 에서부터 이곳 변방까지 와 주신데다가 또 의부의 유명까지 있으 니 정말 난처하군요. 본래는 문 사형이 오시기를 기다렸다가 여러 분과 더불어 진지하게 상의하고 싶었습니다만 이제 문 사형이 곤경에 빠져 계시다니 기다리고 있을 수도 없는 형편이지요. 여러분 께서 저보고 꼭 대답을 하라고 하시니 여러 선배님의 분부에 따르 도록 하겠습니다.」 홍화회 군웅들은 그가 총타주가 되겠다고 웅낙하자 모두들 환성을 터뜨렸다. 무진도인이 말문을 열었다. 「그럼 총타주님께서는 조사(祖師)를 뵙도록 하시지요.」 육비청은 각 방, 각 회마다 자기들 나름대로의 독특한 의식이 있음을 잘 알았다. 총타주라면 홍화회의 주인이다. 그가 그 위치를 승계 취임하는 의식이라면 이건 보통 일이 아닌데 자신은 뙤인이라 참여하기 거북한 것이다. 즉시 진가락을 향해 축하 인사를 하고 그 자리를 물러나왔다. 조반산이 자기 방으로 그를 안내하여 목욕하고 쉬도록 마련해 주었다. 먼 길을 달려온 후라 몹시 피곤했다. 잠에서 깨어 일어나니 깊은 밤이다. 조반산이 옆에 있다가 이렇게 말을 했다. 「총타주님은 벌써 뭇 형제들을 인솔하고 철담장으로 떠나셨소. 형이 하룻밤도 주무시지 못한 사실을 아시고 나를 남겨 모시도록 했습니다. 우리는 내일 떠납시다.」 10여 년간 헤어졌던 옛 친구와의 말문이 터졌으니 막을 재간이 있겠는가? 이 몇 해 동안에 있었던 무림의 은은원원과 생생사사(生生死死)를 날이 밝도록 이야기했지만 그것도 주마간산 격에 불과했다. 육비청은 화를 피해 은거하고 있었기 때문에 강호에서 있었던 여러 가지 풍파를 전연 알지 못하고 지냈다. 이제 조반산의 말을 듣고 보니 격세지감이었다. 비분한 이야기가 나오면 눈초리가 째질 지경으로 성을 냈고 장렬한 이야기가 나오면 호기충천했다. 「그 총타주 된 분 나이도 어리고 생김새도 부잣집 자제분 같은 데 어째서 모두들 그렇게 순종하는 것이오? 육비청의 질문에 조반산은 이렇게 말했다. 「말을 꺼내자면 굉장히 길지요. 형님께서 좀더 쉬신 후 우리 가면서 천천히 이야기하십시다.」 진원표국의 표두 동조화가 신이 나서 장소중 등 관부의 고수 몇 명과 7, 8명의 포쾌를 안내하고 철담장으로 왔다. 이번은 혼자가 아니라서 기세 당당했다. 장정을 향해 큰소리부터 쳤다. 「여봐라, 네 집 주인더러 빨리 나와 칙명을 띠고 오신 사신을 영접하라 일러라.」 장정은 험상궂게 나타난 그들이 누군지 몰라 어리둥절한 채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러나 장소중은 주중영의 명성이 워낙 대단할뿐더러 서북 무림의 지도적 인물이라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았다. 「여보시오, 잠깐만. 우린 북경에서 온 사람들인데 공무가 있어 주 노영웅을찾아뵈러 왔노라고 말씀전해 주시오」 . 그는 이런 말을 하면서 오국동을 향해 눈짓해 보였다. 오국동이 고개를 끄덕이고 포쾌들을 데리고 장원 뒤로 돌아갔다. 국사범들이 뒷문으로 달아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맹건웅은 장정의 전갈을 듣고 그들이 문태래 때문에 온 사람이 란 생각이 들어 송선명을 불러 그들을 맞이하라 하고 자기는 즉시 문태래의 방으로 왔다. 「밖에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세 분이 잠시 동안만 피하시지요. 즉시 문태래를 부축하고 뒤에 있는 화원의 정자로 왔다. 여어동과 두 사람이 힘을 모아 정자 안에 있는 돌 탁자를 옮기자 그 밑에 철판이 깔려 있고 철판 위에 달린 쇠고리를 힘껏 잡아당기자 아래에 지하실이 나타났다. 이를 본 문태래가 화부터 낸다. 「이 문 모 어찌 죽음을 무서워한단 말이오? 이런 곳에 숨어 있다가 살아 나온다 하더라도 천하 영웅의 웃음거리가 될 게 아니오? 「그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대장부도 굽힐 때는 굽혀야 합니다. 지금 중상을 입고 계신데, 그래 누가 감히 웃는다는 말씀이 십니까? 「맹 형의 성의는 대단히 고맙소. 그러나 우리는 그냥 여기서 떠나겠습니다. 공연히 잘못하다가 귀 장원에까지 누를 끼치면 곤란할 테니까요.」 문태래는 철담장을 떠나겠다고 하고, 맹건웅은 간곡한 말로 그를 만류했다. 뒷문 밖이 떠들썩하고 앞문 밖도 소란스럽다. 관아 사람들이 안 으로 뛰어들려 하는 것이었다. 송선명이 결사적으로 막으려고 했지 만 막을 재간이 없었다. 장소중은 주중영의 명성 때문에 감히 집안을 수색하겠다고까지는 말하지 못했다. 「정말 훌륭하게 지은 장원이오. 변방에서 보기 드문 건물인데 노선생이 우리에게 구경 좀 시켜 주시구려.」 문태래는 철담장이 포위되고 앞뒤로 적이 나타났다는 사실을 알자 낙빙과 여어동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깨를 나란히 하여 밖으로 뚫고 나가자. 낙빙이 대답하고 손을 뻗어 그의 오른팔을 잡았다. 문태래가 왼손으로 단도를 뽑아 들고 막 뛰쳐나가려고 하는데 낙빙의 몸이 가볍게 떨리고 있음을 느꼈다. 두 눈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처량하게 보이는 표정이 그의 마음을 누그러뜨렸다. 「우리 그럼 잠시 숨읍시다.」 맹건웅이 제일 반가워하면서 세 사람이 지하실로 들어가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급히 철판을 덮었다. 그리고 다시 몇명의 장정과 힘을 모아 돌탁자를 철판 위에 옮겨놓는데 주영걸도 끙끙거리며 옆에서 도왔다. 맹건웅은 아무 흔적도 없음을 확인하고 장정에게 뒷문을 열어 주라고 했다. 오국동 등은 문 밖을 지킨 채 들어오지 않고 강소중 등 일행이 벌써 화원으로 들어왔다. 맹건웅은 동조화가 그 안에 섞여 있는 것을 보고 냉랭하게 말을 꺼냈다. 「원래 관가에 계신 나리시군요. 아까는 실례가 많았습니다.」 「나는 진원표국의 표두요. 그것도 몰랐소? 고개를 돌려 장소중을 바라다보았다. 「국사범 세 명이 이곳으로 들어가는 것을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장 대인께서 수색하라고 명령을 내리시지요.」 이 말을 듣고 송선명이 나섰다. 「우리는 모두 선량한 양민입니다. 주 노장주님은 하서(河西)의 유지요, 가풍 있는 집안이란 것은 오백 리 이내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 모르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 처지에 어찌 국사범을 숨길 리 있겠습니까? 이 동 나리께서 방금 여기 오셨을 때 노자를 드리지 못한 것은 어디까지나 제 불찰이었습니다. 그런데 엉뚱한 누명을 씌우려고 하시다니 이런 억울한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그는 문태래 등이 벌써 지하실에 숨은 것을 알기 때문에 당당하게 나왔다. 맹건웅은 아무것토 모르는 채 장소중 등을 향해 무슨 일로 왔느냐고 묻고 껄껄 웃었다. 「홍화회라면 강남에 있는 방회인데 그들이 어째서 이 서북의 변방에까지 왔을까요? 이 표두께서 이상한 말씀을 하시는데 여러분은 그걸 그냥 믿으십니까? 장소중 등은 모두 강호에서 오랜 경험을 쌓은 사람들이라 문태래가 틀림없이 이곳에 숨어 있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샅샅이 수색을 해서 찾아내면 다행이지만 만약 찾아내지 못할 것 같으면 주중 영이 그냥 놔둘 리가 없는 것이다. 그들이 모두 공명을 누리고 있 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강호상의 인사들과는 오랜 교분을 가지고 왕래하고 있었다. 그러니 주중영에게 득죄를 한다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라 망설일 수 밖에 없었다. 동조화는 생각해 보았다. 오늘 이들 세 사람을 잡지 못하고 그냥 돌아가면 반드시 일행의 조롱과 원망을 살 것이다. 어쩌면 아이의 입을 통해 사실을 알 수 있을 것도 같아 만면에 웃음을 머금고 주영걸의 손을 덥석 잡았다. 주영걸은 방금 이 동조화를 본 적이 있다. 살금살금 어슬렁거리는 그가 음흥한 것 같아 별로 호감이 가지 않았다. 그런데 그가 자기 손을 잡는 것이다. 힘껏 뿌리치며 소리를 질렀다. 「쓸데없이 왜 남의 손을 잡고 야단이에요? 「아이구, 착하구나. 오늘 너희 집에 오신 세 분 손님이 어디 계시지? 내게 말만 하 면 이 돈으로 사탕 사 줄게.」 말을 하면서 원보 하나를 꺼내 그의 앞에 내밀었다. 주영걸은 입을 삐죽 내밀며 얼굴을 찡그린다. 「날 어떻게 보구 이래요? 철담장의 내가 그래 그런 더러운 돈을 대단하게 알 것 같아 그러나요? 동조화는 어이 없고 창피해서 벌컥 화를 냈다. 「모두들 그냥 이 집을 샅샅이 뒤져요. 만약 그들 세 사람을 찾아 내기만 하면 이 아이까지 함께 잡아다 옥에 가둬 버려요. 「당신이 내 머리카락 하나만 건드려도 내 호한이라고 부르겠소. 우리 아버지의 주먹에 한 번 맞으면 죽을 텐데 큰소리를 쳐요? 장소중은 주영걸의 표정을 보고 그가 문태래가 숨은 곳을 알고 있음을 눈치챘다. 맹건웅이나 송선명은 능글맞아 아무리 말을 해 봐야 소용없을 것이다. 아무래도 주영걸의 입을 벌리게 할 수밖에 없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오늘 오신 손님이 세 사람이 아니고 네 사람 같더라. 그렇지? 내 말이 맞지? 그러나 주영걸은 걸려들지 않았다. 「난 몰라요.」 「우리가 그들 세 사람을 찾아내기만 하면 네 아버지, 그리고 너, 네 어머니까지 모두 죽일 테다.」 그러나 주영걸은 오히려 코방귀를 뀐다. '나도 무섭지 않은데, 그래 우리 아버지가 무서워할 것 같아서 그래요? 이때 동조화는 주영걸의 왼팔에 걸린 팔찌를 보았다. 번쩍번쩍 料나는 모양이, 틀림없는 낙빙의 물건이다. 그는 표두라 평생 적지 않은 보물을 보아왔다. 그래서 물건을 식별할 줄 알았다. 요 며칠 낙빙을 발견하고부터 그녀가 몸에 지니고 있는 모든 장신구에 대해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던 것이다. 여자 손님의 것을 네가 알고 있는데 네 팔에 낀 팔찌, 그 여자 손님의 것인데. 그래 오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하느냐? 그러면 그것을 훔쳤지? 주영걸은 화가 났다. '내 어찌 남의 물건을 훔친단 말이오? 분명히 그 아주머니가 내게 준 것이에요.」 동조화의 입에서 웃음이 나왔다. '그래, 그 아주머니가 네게 준 게야. 그렇지? 그럼 지금 어디 계시냐? '내가 그것을 무엇 때문에 당신에게 말해요? 장소중은 생각했다. (이 아이가 당당하게 나오는 것을 보더라도 평소 그의 아버지를 얼마나 떠받들었는지 가히 짐작할 수가 있다. 자만심이 강하니 내가 한번 건드려 보자.) '여보게 동조화, 아이를 데리고 잔난半 늘어놓을 것 없네. 그이가 뭘 알겠나? 철담장 어른들이 일을 하면서 그래 어린 아이에게 보이기나 하겠나? 그들이 그 세 사람을 아무도 모르는 곳에 숨길때는 저 아이부터 어디 나가 놀라고 했을 게야.」 장소중이 예측한 대로 주영걸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맹건웅은 주영걸이 그들의 계략에 말려들자 크게 당황했다. 「사제, 우리 이제 화원에서 그만 놀고 안으로 들어가자구.」 이 기회를 놓칠 장소중이 아니다. 「어린 아이가 알긴 뭘 알아? 공연히 여기서 성가시게 굴지 말고 빨리 비켜나라구. 만약 그 세 사람이 어디 숨었는지 큰소리를 치고 싶으면 한번 쳐 봐. 그럼 내 어린 영웅이라고 하겠지만 그렇게도 못할 것 같으면 바보나 멍청이라고 놀려 주어야겠다.」 주영걸은 화가 났다. 「나야 물론 알구말구요. 그것도 모르는 당신이 멍청이요.」 「어린 아이가 알긴 뭘 알아? 주영걸은 더 참고 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알아요. 그분들은 이 화원 안에 있어요. 바로 이 정자 안에 요. 그것도 모르면서 날 보구 바보래.」 맹건웅이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사제, 그 무슨 쓸데없는 소리를 하고 있는 게야? 빨리 안으로 들어가라니까.」 주영걸은 말을 해 놓고도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실수를 했음을 알고 울상이 되어 그만 안을 향해 뛰어들어갔다. 장소중이 정자 사방을 휘둘러보아도 붉은 칠을 한 난간만 있을 뿐 사람 숨을 만한 장소는 없었다. 그는 난간 위로 뛰어올라가 정자 지붕을 바라다보았다. 역시 사람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는다. 다시 뛰어내려와 곰곰이 생각하다가 꾀가 하나 떠을라 맹건웅을 향해 이런 말을 했다. 「맹 선생, 내 무예가 거칠어 보잘것 없지만 뚝심만은 제법 강한 편입니다. 어디 한번 맹 선생과 대결하면서 지도나 받을까요? 맹건웅은 그가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고 내려오는 것을 보자 안도의 숨을 내쉬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사람이 숨은 곳을 찾아내 지 못했다고 해서 자기에게 화풀이를 하려고 대들겠다는 것이다. 상대가 많다고 해서 미리 약하게 보일 필요는 없었다. 「분에 넘치는 말씀을 다 하십니다. 병기로 할 것인지 아니면 권 각으로 할 것인지 결정을 하십시오. 저는 목숨을 내놓고 군자를 모 시겠습니다.」 장소중이 껄껄 웃는다. 「모두들 친구나 다름없는 처지에 어찌 병기나 권각을 써서 우의 를 깨치겠습니까? 제가 먼저 이 돌탁자를 들어올릴 테니 다음에는 맹 선생이 한번 시험해 보시지요. 제가 들어올리지 못하더라도 웃지는 마십시오.」 맹건웅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거절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아니,,,,,, 그건,,,,,, 좋지 않습니다""".~ 서대림이나 성황 등 일행은 장소중이 갑자기 맹건웅과 함께 힘 겨루기를 하겠다고 나서자 모두 답답하게 생각했다. 그가 옷소매를 걷어붙이고 오른손으로 돌탁자의 다리를 잡은 뒤에 기합을 넣자 4백여 근이 넘는 돌탁자가 허공에 번쩍 뜬다. 모두들 환호성을 지르며 갈채를 보냈다. 「장 대인의 힘은 과연 훌륭하오.」 그러나 환호성이 끝나기도 전에 다시 한 번 놀라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탁자가 들리자 바닥에 철판이 나타난 것이다. 문태래는 지하에 숨은 채 머리 위에서 나는 여러 사람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있었다. 왔다갔다하는 소리만 들릴 뿐 그들이 주고받는 말소리가 들리지 않아 답답했다. 그런데 갑자기 철판이 들리며 밝은 빛이 지하실로 쏟아져 들어왔다. 펀지 황궁에서 나온 사람들은 문태래가 거기 숨어 있는 것을 보고도 즉시 내려가 잡으려고 하지 않았다. 산 채로 잡아야 하기 때문에 암기를쓸수 없는 처지였다.그래서 지하실 어귀를 막아선 채 병기를 들고 큰소리만 질렀다. 문태래가 낙빙을 향해 소근거린다. 「우리를 철담장에서 팔아먹었군그래. 당신 내게 한 가지 대답을 해 주어야겠소. 「말씀하세요.」 「이따가 내가 무슨 일을 시키든지 하라는 대로 해야 하오.」 낙빙은 눈물이 글썽글썽한 채 머리를 끄덕거렸다. 「문태래가 여기 있는데 왜들 떠들고 야단이오? 문태래가 밖을 향해 소리를 질렀지만 밖에서는 조용할 뿐 아무 반응이 없었다. 「나, 다리에 부상을 입어 올라갈 수 없으니 밧줄을 하나 내려 주오. 그래야만 올라가겠소.」 장소중이 고개를 돌려 맹건웅을 찾았지만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부근에 있는 장정에게 밧줄을 가져오라고 했다. 밧줄을 가져오자 성황이 한쪽을 잡고 다른 한쪽을 집어 보냈다. 문태래가 잡으면 끌어올릴 셈이다. 문태래는 땅에 닿자마자 왼손에 힘을 주어 밧줄을 낚아챘다. 성황이 잡았던 밧줄을 그만 놓쳤다. 문태래의 대갈일성은 우레소리와 같았다. 팔을 한번 떨자 밧줄이 뻣뻣 선다. 즉시 연편 가운데 반탈가사의 자세다. 사람은 왼쪽을 향해 돌고 밧줄은 왼쪽에서부터 오른쪽으로 돌렸다. 획획 무서운 바람이 일었다. 무림 가운데 이런 말이 있다. (연장불연단 연. 또 이런 말도 있다. (일도-이창 사차 오구육 편( 칠조 劍-. 병기를 배워 익히는 단계를 설명한 말로써 칼은 - 야 하고, 편은 6년이 걸려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 (편)이란 것도 사실은 단편 , 쌍편의 단단한 할 뿐 연편을 익히려면 더 고된 훈련을 쌓아야 한다. 문태래는 한 가지 기예뿐만 아니라 백 가지 기예에 통달했다. 그러한 그가 이제 있는 힘을 다하여 밧줄을 연편으로 삼으니 그 위력이 막강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뭇 사람들! 얼굴을 사정없이 쉽쓸자 사람들은 예기치 않았던 일이라 막아내지 못하고 급히 머리를 숙인 채 피했다. 동조화는 문태래에게 골탕을 먹었기 때문에 그가 올라 오자마자 멀찍이 다른 사람의 등뒤로 피해 있었다. 결사적으로 기를 찾아 화풀이를 하지 않을까 걱정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떨어져 있을수록 불리했다. 앞의 사람이 고개를 숙이는 줄이 자기 얼굴을 향해 날아왔다. 급히 몸을 돌렸으나 빳빳한 쇠방망이가 되어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등을 치자 그만 쓰러졌다. 편지 시위 서대림과 언가권 장문인 언백건이 하나는 칼을 들고 또 하 나는 쌍철환(雙鐵環)을 든 채 좌우에서 달려들었다. 여어동은 돌계 단에 두 발을 찍고 몸을 솟구쳐 올라와 금피리를 휘두르며 총병인 성황과 어우러져 싸웠다. 성황은 제미곤법을 썼다. 몽등 이는 길고 피리는 짧은데도 성황은 계속 밀렸다. 낙빙이 장도로 돌 계단을 짚으며 한 발 한 발 올라오고 있었다. 거의 끝까지 올라왔을 때 지하실 어귀에 체격이 건장한 사나이 가 허리에 양 손을 대고 서 있는 모습이 보인다. 낙빙이 비도를 날 렸다. 그 사람은 피하려고도 하지 않고 있다가 비도가 자기 면전을 향해 비스듬히 날아오자 3개의 손가락을 펴 비도의 자루를 잡았다. 칼끝과 코끝 사이의 거리가 겨우 한 치 정도에 불과했다. 낙빙은 그의 여유만만한 태도를 보고 오히려 기가 죽었다. 쌍도를 휘두르며 남편 문태래 옆으로 접근하려고 했다. 그 사람은 바로 장소중이었다. 눈섭을 찡그린 채 칼을 계속해 뽑아 한 여자를 상대할 것도 없다는 듯 낙빙의 비도를 비수삼아서 세 번이나 공격을 했다. 낙빙은 걸음걸이가 불편했지만 손에 든 쌍 도만은 집안 대대로 내려오던 절기라 능히 방어할 수있었다. 4, 5 합을 대결하는 동안 장소중이 왼팔을 펴 낙빙의 오른쪽 밖을 공격 하다가 왼쪽으로 후려쳤다. 쌍도를 한쪽으로 막으며 힘껏 미는 바람에 낙빙은 자세가 흐트 러지며 다시 지하실 속에 빠졌다. 저쪽의 문태래는 2명의 고수와 대결하면서 상처의 통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정신조차 흐릿해지는 듯했지만 혼신의 힘을 다해 싸웠다. 여어동은 금피리들 휘두르며 우세를 보였다. 장소중은 그가 금피리를 가지고 유운검법을 쓰고 있음을 보고 피리로 점혈을 하는 수법은 바로 본문의 비방이라 의아하게 생각하며 물어 보려고 했다. 그런데 여어동이 백운창구 의 재주를 펴 성황이 뒤로 주춤 물러서는 순간을 이용해 다 시 지하실 속으로 뛰어들었다. 원래 그는 낙빙이 다시 마져들어가 는 것을 보고 부상을 입었을까 봐 걱정하면서 구출하려고 뛰어든 것이다. 낙빙이 일어서는 것을 보며 물었다. 「어디 다치시지 않았어요? 「괜찮아요, 빨리 나가 넷째형이나 도와 주세요.」 「제가 부축할 테니 함께 올라갑시다.」 성황은 구리로 만든 몽등이를 들고 지하실 속을 향해 휘둘렀다. 높은 곳에서 그들 두 사람을 막아 올라오지 못하게 하려는 수작이 었다. 문태래는 사랑하는 아내가 미처 탈출하지 못했음을 알았다. 자기도 이제는 더 버틸 기운이 없어 비틀거리며 성황의 뒤로 돌아 가 손을 뻗어 그의 허리를 찔렀다. 성황의 몸이 금방 나른하게 처 진다. 문태래가 그의 허리를 껴안은 채 지하실 속으로 떨어졌다. 성황이 혈도를 눌려 옴짝달싹 못하고 떨어져 내려온 후에 또 문 태래에게 깔렸다. 두 사람 모두 일어나지 못하자 낙빙이 손을 뻗어 남편을 부축해 일으켰다. 그의 얼굴에는 혈색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고 이마에 땀방울만 송글송글 솟았다. 그런 얼굴을 하고도 낙빙 을 향해 힘겹게 미소를 보낸다 그만 웩! 하고 선혈을 토했다. 낙빙의 옷깃이 금방 빨갛게 물들었다. 여어동은 문태래의 의도를 알고 소리를 지른다. 「길을 비키시오. 길을 비키시오.」 장소중은 여어동의 무공이 바로 무당파 본문의 진전임을 알았다. 게다가 또 문태래가 중상을 입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자기 신분을 의식하고 직접 공격에 나서지 않았던 것이다. 낙빙이 지하실에 떨어진 이상 다시 금방 올라오지 못하려니 했다. 그런데 상황이 급변하여 성황까지 상대방의 수중에 떨어지고 만 것이다. 어찌할 도리가 없어 망설이고 있을 때 여어동의 외치는 소리가 들린 것이다. 뭇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길을 비켜 주도록 할 수밖에 없었다. 맨 먼저 지하실에서 올라온 사람은 성황이다. 낙빙이 그의 덜미 를 잡은 채 그의 등에 단도를 대고 그 뒤를 따랐다. 세번째는 여어 동이다. 한손으로는 낙빙을 부축하고 다른 손으로는 문태래를 껴안았다. 네 사람이 서로 안에서 끌고 뒤에서 밀며 올라왔다. 「누구든지 대들기만 하면 이 사람을 죽여 버리겠어요. 낙빙이 이렇게 외치며 네 사람은 칼과 창이 즐비한 가운데를 지나 후원의 문어귀에까지 왔다. 낙빙은 세 필의 말이 버드나무에 묶 여 있는 것을 보고 하늘에 감사했다. 이 세 필의 말은 바로 오국동 등이 뒷문을 봉쇄하기 위하여 타고 와 매어 놓은 것이다. 장소중은 국사범이 달아나려는 것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성황 저놈이 죽건 말건 내게 무슨 상관이 있나? 문태래를 잡아 북경으로 송환해야만 큰 공을 세우는 것이다.) 그는 문태래가 땅에 버린 밧줄을 주워 들고 내력을 다해 밖으로 던졌다. 밧줄이 숴 소리를 내며 날아가 문태래를 감아 팔을 뒤로 젖히자 여어동의 손을 놓친 문태래가 그쪽으로 끌려갔다. 낙빙은 남편이 외치는 소리를 듣고 당황한 나머지 그만 성황을 죽여야 할 일을 깜빡 잊었다. 몸을 돌려 세우고 남편을 구출하기 위해 그쪽으로 가려고 했다. 그녀는 다리에 부상을 입었기 때문에 두 발짝도 걷지 못하고 그냥 바닥에 쓰러졌다. 「빨리 달아나요. 빨리 달아나. 문태래가 다급해서 소리를 질렀다. 「당신과 함께 죽겠어요. 내 말을 듣겠다고 약속하지 않았어.」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서대림 등이 낙빙을 향해 덮쳐들었다. 여어동이 먼저 몸을 날려 낙빙을 껴안고 문 밖을 향해 달렸다. 포쾌 하나가 철척(鐵尺)을 비껴 들고 그들의 앞을 막았으나 여어어동이 발길로 차자 멀찌감치 나가 떨어지고 만다. 낙빙은 남편이 체포되자 정신을 잃었다. 여어동이 버드나무 밑으로 달려가 그녀를 말 위에 태우며 소리를 질렀다. 「빨리 비도를 날려요. 이때 언백건과 2명의 포쾌가 그들을 추적하고 있었다. 낙빙이 수개의 비도를 계속해서 날렸다. 한 포쾌가 어깨에 비도를 맞고 비명을 질렀다. 언백건이 주춤하는 사이에 여어동은 벌써 세 필의 말고삐를 풀었다. 그중 한 필은 자기가 타고, 다른 말은 고개를 문 쪽으 로 돌리게 한 뒤에 금피리로 말 엉덩이를 힘껏 때렸다. 통중에 놀란 말이 언백건 등을 향하여 질주해, 추격하는 무리들을 모두 화원의 문안으로 몰았다. 혼란 가운데 여어동과 낙빙은 두 필의 말을 타고 멀리멀리 달렸다. 장소중 등은 문태래를 잡은 기쁨에 취해 그들을 추격할 생각을 포기했다. 낙빙은 정신없이 말 위에 엎드려서도 몇 차례나 말머리를 돌려 철담장으로 다시 돌아가려고 했다. 그때마다 여어동이 채찍을 휘둘러 탄 말을 때려 그냥 앞만 보고 달리게 했다. 7, 8리 정도 달려 뒤를 보니 뒤에 추적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그제야 여어동은 말을 서서히 몰기 시작했다. 다시 또 4, 5리를 가자 네 필의 말이 전면에서 나타났다. 앞선 시 람의 흰 수염이 나풀거리는 것이 철담 주중영이다. 그는 여어동과 낙빙을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손님들은 가지 마세요. 저희가 의원을 청해 왔습니다.」 낙빙은 그가 미워 한 자루의 비도를 날렸다. 주중영은 그녀가 자기에게 비도를 던지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전연 예기치 않은 일이라 막을 방법이 없어 급히 몸을 돌리고 말 위에 납작 엎드렸다. 비도가 등 위를 스치고 날아가자 배후에 있던 2次자 안건강이 칼을 휘둘러 쳤다. 비도가 비스듬히 방 향을 바꾸고 날아가 퍽 하는 소리를 내며 길엮에 있는 큰 버드나무에 꽃혔다. 석양이 핏資보다 붉어 칼날에 반사되니 반짝반짝 빛을 발했다. 주중영이 무슨 짓이냐고 물으려고 하는데 낙빙이 먼저 욕을 했다. 「명예나 탐내는 못된 늙은이가 내 남편을 해쳤으니 어디 너 죽고 나 죽자. 울며불며 쌍도를 휘두르면서 그를 향해 덤벼들었다. 주중영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했다 안건강은 이 여인이 자기 사부를 욕하자 그냥 참고 있을 수가 없었다. 이에 단도를 휘두르며 대결하려고 나 서자 주중영이 손을 뻗어 막는다. 「무슨 일인지 말씀을 해 보시지요.」 여어동도 옆에서 낙빙을 말렸다. '우리, 사람 구할 생각부터 먼저 해야 해요 넷째형님을 먼저 구출한 후에 철담장을 태워 없애기로 하지요.」 낙빙이 듣고 보니 일리 있는 말이다. 말머리를 돌리며 땅바닥에 침을 뱉고 그 자리를 떠났다. 주중영은 강호에 종횡하면서 언제 어디서나, 그 누구에게나 늘 인의를 앞장세웠다. 원망은 될 수 있는 대로 사지 않고 친구를 보다 많이 사귀려고 노력해 온 사람이다. 흑백 양도를 막론하고 철담장의 주중영의 말이 나을 때마다 모두들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그를 칭창했다. 그런데 오늘 아무 까닭도 없이 이 젊은 여자가 자기를 향 해 욕을 퍼붓고 비도까지 던진 것이다. 평생 당해 본 일 없는 망신 이었다. 그는 낙빙의 골수에 사무친 증오의 눈초리와 사생결단을 하겠다는 태도에서 무언가 곡절이 있으리라는 생각을 했다. 고을로 의원을 청하러 갔던 장정에게 물어 봤지만 주인 마나님과 맹건. 이 집에서 잘 대접했을 뿐 말다툼을 한 일도 없다는 것이다. 주중영은 답답해 견딜 수가 없어 말을 재촉해 철담장 앞에 이르렀다. 장정은 장주가 돌아오는 것을 보고 급히 나와 맞이하는데 중영은 그들의 표정이 이상한 것을 보고 분명 무슨 일이 일어났음에 틀림없다고 판단했다 나는 듯 안으로 들어가며 맹건웅을 찾았다. 「건웅이를 불러 오너라. '맹 나리는 마나님과 도련님을 모시고 뒷산으로 피신하셨습니다. 장정의 대답을 듣고 주중영은 더욱 의아하게 생각했다. 몇 명! 장정이 서로 이러쿵저러쿵 경과를 보고했다. 공인들이 문태래를 잡아가지고 떠난 지 얼마 되지 않는데 그들이 큰길로 가지 않았기 때문에 장주께서 돌아오시는 길에 만나지 못했을 것이라는 의견이었다. '공인들이 떠난 뒤 이미 맹 나리께 사람을 보냈으니 곧 도착하실 것입니다.」 '세 분 손님이 지하실에 숨었는데, 그래 어느 놈이 그들에게 고자질을 했단 말이냐? 추상 같은 추궁에 장정들은 서로 얼굴만 바라다볼 뿐 감히 대답을 하지 못했다. 주중영은 화를 참지 못하고 말채찍을 들어 닥치는 대로 장정의 머리며 얼굴을 후려쳤다. 안건강은 사부가 정말 화가 나서 그러는 줄 알고 있기에 감히 나서서 만류할 수가 없었다. 주중영은 한 차례 후려치고 나서 의자에 앉아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사람들은 숨도 크게 쉬지 못하고 쥐 죽은 듯 옆에 모여 」 있을 뿐이다. '아니, 여기 멀거니 서서 뭣들 하겠다는 거냐? 빨리들 나가거라. 빨리 건웅이를 불러 오란 말이다.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맹건웅이 밖에서 달려들어왔다. 「사부님 돌아오셨군요.」주중영이 의자에서 벌떡 일어서며 소리를 질렀다. 「그래 어느 놈이 고자질했는지 빨리 말을 해라------.」 맹건웅은 사부가 너무 화가 나서 말조차 더듬거리고 있는 것이 평소 그토록 태연자약하고 호방하던 기백과는 완전히 다름을 보았다. 사실 그대로 말했다가는 큰일이 벌어질 것을 알았다. 잠시 머뭇 거리다 겨우 이렇게 말했다. 「그들 스스로 발견했습니다.」 주중영은 왼손으로 그의 덜미를 잡은 채 오른손에 든 채찍으로 때리려다가 가까스로 참는다. 「쓸데없는 소리 집어치워라! 내, 지하실을 어떻게 만들어 놓은 것인데, 그래 그놈들이 스스로 발견하다니 말이 되느냐? 맹건웅은 대답은커녕 감히 사부를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주중영의 부인은 남편이 화를 내는 소리를 듣고 아들의 손을 잡 고 나와 참으라고 말했다. 주중영은 시선을 송선명에게 돌렸다. 「네놈이 공인들을 보자 겁부터 먹고 고자질한 것이 아니냐? 그는 평소 맹건웅의 위인이 협기가 있어 목을 잃는 한이 있어도 친구를 팔아먹지 않을 것을 알았다. 그러나 송선명은 무예도 모르 거니와 겁이 많아 공인들의 협박을 이기지 못하고 사실대로 말하 지 않았나 의심했다. 송선명은 장주의 위세에 그만 질리고 말았다. 당장이라도 때려 죽일 것 같은 험악한 기세에 그만 혼비백산했다. 「아닙니다. 소인이..-, 아니라,,-, 어린 도련님이 그만"""~ 주중영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너 이리 오너라.」 아들을 향해 말했다. 주영걸은 두려워 몸을 움츠리고 아버지 앞으로 걸어왔다. 「그 세 손님이 화원의 지하실에 숨은 걸 네가 공인들에게 알려 주었느냐? 주영걸은 평소 아버지 앞에서 거짓말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지금 사실대로 말할 계제도 아니었다. 주중영이 채찍을 흔들며 호통을 친다. 「그래 말 안 할테냐. 주영걸은 무서워 울고 싶었지만 울 수도 없어 어머니를 바라다 보았다. 「여보, 화내지 마세요. 딸 때문에 화가 났다고 해서 그런 무서운 얼굴로 집에만 있는 얌전한 아들을 야단치실 게 뭐 있어요. 그러나 주중영은 아내의 말에는 아랑곳하지도 않고 손에 쥔 채찍을 허공을 향해 한 번 힘껏 휘둘렀다. 「너 말하지 않을 테냐? 네놈을 때려 죽이겠다.」 「아니, 당신 점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군요. 자기가 낳은 아들을 때려 죽이겠다니 무슨 말을 그렇게 하세요? 맹건웅 등 옆에 있는 사람들은 입장이 매우 난처했다. 주중영이 아내를 한쪽으로 밀어붙인다. 「잔소리 그만 집어치우지 못할까. 맹건웅은 일이 더 크게 벌어지기 전에 솔직히 말을 해야겠다고 자기가 나섰다. 「사부님, 장소중 그놈이 어찌나 교활한지 도련님에게 계속 약을 올리지 않았겠습니까. 도련님이 만약 말할 것 같으면 영웅이지만 말을 안 하면 겁 많은 바보니-, 멍청이니,,,-라구요.」 주중영은 아들의 성미를 너무나 잘 알았다. 어린 나이에 영웅이 니 호한이니 하는 말은 당연히 듣고 싶을 것이다. 「바보 같으니라구! 네놈이 영웅이 되고 싶어서 말을 했구나. 그렇지 ? 주영걸의 어린 얼굴에 핏기가 사라졌다. 아빠! 모기 같은 가는 소리가 들릴 듯 말 듯 나왔다. 주중영은 노기를 억제할 도리가 없었다. 「영웅 호한은 그렇게 해서 되는 줄로 알았더냐? 이 천하의 바보 같은 자식아. 오른손을 번쩍 들어 2개의 철담을 맞은편 벽을 향해 던졌다. 바로 이때 공교롭게도 영걸이 뛰어든 것이다. 그는 아버지의 품 속으로 안기며 용서를 구하려 했다. 그런데 아버지가 던진 철담 가운데 하나가 불행하게도 그의 머리에 맞았다. 주중영이 철담을 던질 때 만강의 분노를 이 한 번의 투척으로 풀려고 했으니 그 힘이 막강했던 것이다. 퍽퍽 하는 소리 와 함께 2개의 철담 가운데 하나는 맞은편 벽에 깊숙이 박히고, 다른 한 개가 영걸의 머리를 정통으로 맞힌 것이다. 피가 금방 사방 으로 내뿜어졌다. 주중영이 놀라 달려가 아들을 껴안았다. 「아빠, 나,,,,,, 다시는 안 그럴게요,,-,,-때리지 마------.」 말을 다 끝맺지도 못하고 숨을 거두었다. 옆에 있던 사람들이 놀라 넋을 잃었다. 주중영의 아내가 아들을 안고 울부짖는다. 「얘 아가야, 내 아가야! 숨이 끊어진 것을 보자 넋을 잃고 있다가 미친 사람처럼 남편에 게 대들었다. 「왜 그랬어요,,,,,,. 왜 아이를 죽였어요? 주중영이 머리를 흔들며 뒤로 두 발짝 물러섰다. 「내,,,,,, 내가 잘못------.」 그의 아내는 안았던 아이의 시체를 내려놓고 안건강의 허리춤의 단도를 뽑아 들고 남편을 향해 대들었다. 주중영은 마음이 천만 갈래 찢어지는 듯 아팠다. 모든 것을 포기한 듯 피하려고도 하지 않고 두 눈을 꼭 감았다. 「모두 죽어 없어지는 것이 차라리 깨끗하겠다.」 그의 아내는 이런 모양을 보자 오히려 맥이 풀렸다. 단도를 버리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울며 밖으로 달려나갔다. 낙빙과 여어동은 혹시라도 관가 사람들을 만날까 조심하면서 으슥한 지름길만 골라 말을 몰았다. 몇 리 가지 못해 그만 날이 저물었다. 변방은 어느 곳이나 황량해 묵을 만한 곳이 없었다. 농가라도 하나 찾았으면 했지만 그것도 허사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강호에서 성장한 사람들이라 별로 개의하지 않았다. 큰 나무옆에서 쉬기로 했다. 여어동은 말고삐를 풀어 풀을 뜯어먹게 하고는 낙빙의 장도를 가지고 풀을 베어다가 땅바닥에 깔았다. 「잠자리는 마련이 되었지만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없구나. 날이나 밝거든 무슨 방법을 강구해야지.」 그러나 낙빙은 오로지 남편의 일만 걱정스러웠다. 눈앞에 산해진미가 있다 하더라도 그게 입으로 들어가겠는가?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여어동이 계속 위로하며 육 사숙이 모레쯤 도착하면 홍화회 군웅들이 대거 출동, 그들의 뒤를 쫓아가 넷째 형님을 구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낙빙은 온종일 악전고투를 했고 또 말을 달려 심신이 고달팠으나 어동의 위로하는 말을 듣자 다소 안심이 되었는지 잠시 후에는 잠이 들었는데 비몽사몽간에 남편을 만났다. 남편이 자기를 껴안고 입을 맞추자 낙빙도 못 이기는 체 손을 뻗어 남편을 끌어 안았다. 「여보, 얼마나 그리워했다구요. 그래 상처는 다 나았나요? 문태래가 모호한 대답을 하면서 더욱 힘차게 끌어안는데 입술이 뜨겁다. 혼미한 정신 가운데 놀라 정신을 차리며 두 눈을 떴다. 별이 희미한데 자기를 껴안은 사람은 남편 문태래가 아니라 여어 동이다. 소스라치게 놀라 힘껏 뿌리치고 빠져 나오려고 했다. 그러나 여어동은 껴안고 있는 팔을 풀지 않았다. 「제가 얼다나 그리워했다구요. 낙빙은 수치심과 분노가 교차하여 그의 따귀를 힘껏 때렸다. 여 어동은 어이가 없었다. 낙빙은 다시 주먹으로 그의 가슴을 치고 품에서 빠져 나와 옆으로 뒬굴며 쌍도를 잡아 뽑으려고 했다. 그러나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쌍도가 없었다. 원래 여어동이 그것을 풀어 치워 놓았던 것이다. 또 한 번 놀라 주머니 속의 비도를 찾아보니 다행히 두 자루가 남아 있었다. 칼날을 보이며 매섭게 소리쳤다. 「그래, 어떻게 할 테냐? 「형수님, 제 이야기 좀 들어 주세요.」 「누가 네 형수라더냐? 우리 홍화회의 사대 계율이 무엇이냐? 어디 말해 보아라.」 여어동은 고개를 떨군 채 잠자코 있었다. 낙빙은 평소 말을 할 때 상긋상긋 잘도 웃었다. 그러나 규범만은 철저히 지켰다. 이러한 그녀가 여어동의 경박한 행동을 용납할 리 없었다. 「홍화회 노조(老祖)의 성이 무언가? 날카롭게 물었다. 여어동으로서는 대답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홍화 노조의 본성은 주씨입니다. 창생을 구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뭇 형제가 받드는 것은 무엇이냐? 「첫째로 도원결의를 한 유비 , 관운장 장비 세 분을 받들고, 둘 째 와강채의 뭇 호한을 받들고, 셋째 수박(水泊) 양산(꼿 山)의 108명 호걸들을 받들어 모십니다.」 원래 두 사람이 주고받는 일문일답은 홍화회 사람들만이 아는 은어다. 새로운 사람이 입회를 하거나 싸움터로 나갈 때, 혹은 형을 집행할 때 현지에서 제일 서열이 높은 사람이 이런 질문을 하면 하급자들은 공손하게 응답을 해야 한다. 낙빙의 서열은 여어동에 비해 높은 편이다. 그녀가 회중의 은어로 질문을 하자 여어동은 식은땀이 흐름을 느꼈다. 그렇다고 이 자리에서 대답을 회피할 수도 없었다. 낙빙은 위풍당당하게 또 질문을 했다. '홍화회에서는 어떠한 사람을 구출해 주느냐? '첫째 어질고 착한 사람을 구출하고, 둘째 효자와 현손을 구출하 구 셋째 절개가 있는 아녀자를 구출하고, 넷째 고생에 허덕이는 백성을 구출합니다.」 '홍화회에서는 어떠한 사람을 죽이느냐? '첫째 만주 오랑캐를 죽이고, 둘째 탐관오리를 죽이고, 셋째 악질적인 토호를 죽이고, 넷째 흉악한 악당을 죽입니다.」 낙빙은 예쁜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홍화회 사대 계율은 무엇인가? '청정에 투항하는 자는 죽입니다. 하극상을 하거나 회를 배반하는 자는 죽입니다. ------친구를 팔아먹는 자는 죽입니다. ...- 유부녀를 간음하는 자는 죽입니다.」 여어동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했다. 「그렇다면 네 스스로 네 몸을 칼로 세 번 찔러 여섯 개의 구멍을 내어라. 내 너를 데리고 소타주님께로 가 용서를 빌마. 만약 이것이 싫거든 달아나거라. 다시는 누가 찾으러 나서도 찾을 수 없는 곳으 로 가 버리란 말이다.」 원래 홍화회 규칙에 따를 것 같으면 이렇다. 회중의 형제가 큰 죄를 지었는데 그것이 만약 일시의 과실이요, 그뒤 진심으로 후회 할 것 같으면 회에서 형을 집행하기 전에 스스로 첨도를 가지고 자기의 넓적다리를 세 번 찔러야 한다. 이 세 번의 칼질로 반드시 맞창에 구멍을 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른바 삼도육동이란 말이 나왔다. 그런 뒤 에에에에에 타주나 집행 향주에게 용서를 빈다. 가벼운 처벌을 받을 수도 있지만 죄질이 중하면 용서를 받지 못한다. 귀견수 석쌍영이 회중의 열두번째 서열에 앉아 있으면서 이 일을 전담하고 있었다. 인정사정 보지도 않거니와 손이 무섭기 짝이 없다. 규칙을 어긴 사람이 제아무리 먼 곳으로 달아난다 하더라도 그는 반드시 사람을 파견해 잡아다가 처형을 해야만 직성이 풀리니 홍화회의 수많은 형제들은 귀견수란 이름만 들어도 두려워 벌벌 떤다. 「차라리 저를 죽여 주세요. 형수님 손에 죽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여어동의 말을 듣자 낙빙은 더욱 분노의 불길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비도를 쥔 손에 힘을 주어 찌르려고 했다. 「형수님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십니다. 이 오륙 년 동안 저 혼자 얼마나 애를 태웠다구요. 제가 태호(太湖)의 총향당에서 처음 만나 뵈었을 때부터 제 마음은,,,,,, 바로 제 것이 아니었습니다.」 여어동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했다. 「그때 나는 벌써 네 넷째형의 아내였다. 설마 그것도 모르고 있었단 말이냐? 「저,,,,,, 알았지만 제,,,,,, 자신을 억제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감히 더 바라다보고 싶어도 바라다보질 못했습니다. 회중에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저는 늘 타주님께 저를 파견해 주십사고 요청했 습니다. 형수님을 곁에서 보는 것이 더할 나위 없이 괴로워서입니 다. 다른 사람들은 제 속도 모르고 궂은 일만 도맡아 한다고 저를 좋아했습니다. 그들이 어찌 제가 형수님을 피하려고 하는 그 마음 을 알겠습니까. 전 언제 어디서나 늘 혼자 형수님을 그리워하며 지 냈습니다.」 이런 말을 하면서 소매를 걷고 왼쪽 팔을 내보였다. 「이걸 보세요! 저는 제 자신이 미워 금수만도 못하다고 스스로를 욕했습니다. 미움이 사무칠 때마다 비수로 여길 한 번씩 찌르고는 했지요.」 희미한 별빛 아래서 낙빙의 눈에는 그의 살에 있는 얼룩진 흉터가 드러나 보였다. 마음이 뭉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어동이 다시 말을 이었다. 「저는 늘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하늘은 어찌하여 형수님이 출가 하시기 전에 저로 하여금 형수님을 만나게 해 주시지 않았느냐구 요 저와 형수님은 나이가 비슷한데 넷째형님의 나이는 우리보다 두 배가 더 많지 않습니까? 낙빙은 그의 철없는 마음을 가련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마지막 말이 다시 그녀를 화나게 만들었다. 「그래, 나이가 두 배 많아 어떻단 말이냐? 넷째형님은 대인대의 한 영웅호한인데 너 같은,,,,,,.」 그녀는 나오는 욕을 여기서 굴꺽 삼키고 (흥!)코방귀를 뀐 뒤에 절뚝절뚝 걸어 말 옆으로 가 힘들게 말 위에 올라타려고 했다. 여어동이 쫓아가 도우려 하자 날카롭게 쏘아붙인다. 「비키지 못할까? 혼자 힘을 쓰며 말 위에 올랐다. 「형수님, 어딜 가려고 이러세요? 「네가 알 바 아니다. 넷째형님이 잡힌 이 마당에 나 혼자 살아 무얼하겠는가 내 칼이나 되돌려 다오.」 여어동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원앙도를 그녀에게 되돌려주었다. 낙빙은 칼을 받고 거기에 멍청하게 서 있는 그를 보자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홍화회를 위해 보다 많은 일을 하도록 해요. 그리고 내게 다시는 무례한 행동을 하지 않겠다면 오늘밤 있었던 일은 누구에게도 말을 꺼내지 않을께요. 그러면 내가 예쁘고 얌전한 색시를 꼭 구해 주겠어요.」 말을 하면서 킥 웃고는 그 자리를 떠났다. 웃기 잘 하는 버룻은 여전히 고치기 어려운 모양이다. 이런 그녀의 행동이 또 한번 여어동을괴롭게 만들었다.떠날때의 웃는 그 모습이 너무나도 부드럽고 아리따워 사람의 넋을 송두리째 빼앗고 뼈를 깎아 내는 고통의 짐만 남긴 채 떠난 것이다. 어둠 속으로 멀어져 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다보는 여어동의 가슴은 찢어지는 듯 아프기만 했다. 혼자 자신을 생각해 보아도 불쌍하고 하늘이 원망스럽기 그지없었다. 괴로워서 견딜 수 없는 고통으로 여어동은 자기 머리를 황꽝 나무에 짓찧으며 미친 듯 울음을 터뜨 렸다. 낙빙은 하늘의 북두칠성을 바라다보며 방향을 잡았다. 서쪽으로 가면 홍화회 군웅들을 만나 협력을 구할 수 있는 것이요, 동쪽으로 가면 잡혀 가는 남편의 뒤를 쫓아가는 길이다. 어쩌면 기회를 보아 남편을 구출할 수도 있다는 막연한 기대도 걸었다. 부상을 입은 몸에 혼자의 힘으로 사람을 구한다는 것이 천부당 만부당했지만, 그래도 한 발짝 한 발짝 동쪽을 향해 걸어갈 남편을 버리고 자기만이 어떻게 서쪽으로 간단 말인가? 애를 태우면서 말이 가는 대로 그대로 맡기고 7, 8리를 왔다. 여기쯤이면 여어동이 있는 장소와도 상당히 떨어진 거리다. 다시는 쫓아오지 않을 것 같아 말에서 내려 나지막한 나무 숲속으로 들어가 자기로 했다. 그녀는 어려서는 부친의 뒤를, 뒤에는 남편의 뒤를 따라다녔다. 두 사람 모두 무공이 막강했으나 끔찍이도 자기를 사랑해 주어 어려서 강호에 뛰어들었으면서도 여태까지 고생을 해 본 일이 없었다. 뒤에 홍화회에 입회를 했고 사람들이 대단히 많았지만 인연이 좋았던지 20여 년 동안 강호의 교녀로 떠받듦만 받아 왔는데 지금은 남편은 체포되었고 자신은 부상을 당했다. 설상가상으로 여어동으로부터 정신적인 시달림을 받았다. 이 일 저 일 생각하며 울다지쳐 스르르 깊은잠에 취했다. 밤중에 그녀의 몸에 숯덩이 같은 열이 올라 정신이 혼미한 가운데 물을 찾았다. 「물, 목이 말라요.」 그러나 누가 있어 그녀에게 물을 주리오? 이튿날 병세는 더욱 험악해졌다. 몸부림치며 일어나 앉으면 머리가 터질 듯 아파 다시 쓰러졌다. 해가 중천에 솟아을랐다 다시 서쪽으로 기울었다. 목도 타고 배도 고팠다. 그러나 말에 오를 힘이 없었다. (여기서 죽는 것이야 대수로을 것 없지만 금생에는 다시 남편을 만나지 못하겠구나.) 눈앞이 캄캄하다가 그만 또 정신을 잃고 말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누군가가 깨우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됐어. 이제 정신을 좀 차리시지. 천천히 눈을 뜨자 눈이 시원스럽게 큰 소녀가 앞에 서 있었다. 소녀의 얼굴은 약간 검은 편이고 짙은 눈썹에 나이는 18, 9세 정 도다. 그녀가 정신을 차리자 패나 반가운 듯 옆에 있는 하녀를 부른다. 「흰 죽을 가져다 이 아주머니에게 마시게 하자.」 낙빙이 정신을 가다듬고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자신이 구들 위 이불 속에 누워 있음을 발견했다. 방 안이 깨끗하고 아담한 것이, 부잣집임에 틀림이 없었다. 정신을 잃기 이전의 정경을 회상해 보았다. 누군가가 자기를 구해 주었음에 틀림없는 것이다. 「아가씨 성이 뭐예요? 감격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저는 성이 주(周)예요. 좀더 주무시고 나거든 천천히 말씀드리세요. 그녀가 한 사발의 죽을 다 마시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다가 살며시 밖으로 나갔다. 낙빙은 또 눈을 감고 잠이 들었다. 다시 깨어났을 때는 방 안에 등불이 켜져 있었다. 문 밖에서 여자의 말소리가 들렸다. 「제까짓 것들이 이렇게까지 사람을 모욕하다니,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철담장에 와서 방자하게 굴어. 나리는 참고 계신다지만 나는 못 참겠다. 단단히 버룻을 고쳐 놔야지.」 낙빙은 철담장이란 말을 듣고 가슴이 철렁했다. 아니 또 철담장에 오다니 이럴 수가. 두 사람이 방 안으로 들어선다. 바로 그 소녀와 하녀다. 소녀는 구들 앞에 이르러 휘장을 들친다. 낙빙은 두 눈을 감고 자는 체했다. 소녀는 벽에 걸린 칼을 내렸다. 낙빙은 자기의 원앙도가 탁자 위에 있음을 알고 마음속으로 이런 준비를 했다. 소녀가 몸을 돌려 세우고 칼을 번쩍 들기만 하면 이불을 그녀에게 씌워 놓고 난 뒤에 원앙도를 뽑아 들고 대들기로 했다. 하녀가 말리는 소리가 다시 들렸다. 「아가씨, 다시는 일을 저지르지 마세요. 지금 나리께서 괴로워하고 계신데 화를 내시게 할 수는 없지 않아요? 낙빙은 이 소녀가 주중영의 딸일 것이라는 추측을 했다. 그녀가 추측한 대로 소녀는 철담의 딸 주기였다. 그녀는 성격이 호매한 자기 아버지를 많이 닮아 남의 일에 나서기를 좋아 했고 억울한 일을 보면 가만히 있지 못했다. 그래서 서북의 무림 사람들이 그녀에게 초이규라는 별명을 지어 주었다. 그날 사람을 때려 부상을 입히고는 아버지의 꾸중이 두려워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밖에서 하룻밤을 묵고 이제쯤은 부친의 화가 어느 정도 풀렸겠다 싶어 돌아오다가 도중에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낙빙을 구하게 된 것이다. 집으로 돌아온 뒤에야 그녀는 동생은 아버지의 칼에 맞아 죽고 어머니는 집을 나갔다는 사실을 알았다. 주기는 강도를 잡아 떼며 큰소리를 쳤다. 「흥, 내가 알 게 뭐람.」 칼을 들고 밖으로 나가자 하녀도 그 뒤를 쫓아나갔다. 낙빙은 이틀 동안 자고 난 뒤라 정신이 말짱했고, 펄펄 끓던 열도 많이 가라 앉았다. 옷을 챙겨 입고, 신을 찾아 신고, 쌍도를 든 채 살며시 방에서 나왔다. (남편을 관가에 팔아먹은 그들이 무엇 때문에 나를 구해 주나? 틀림없이 다른 흉계가 숨어 있을 거야.) 몸이 호랑이 굴에 들어와 있는데도 다리의 상처가 완쾌되지 않은 것이 원망스럽기만했다.그녀는 여기에 한번 와본 일이 있기 때문에 희미하게나마 나가는 길을 기억하고 있었다. 슬그머니 화원을 끼고 뒷문으로 나갈 생각을 했다. 마당을 하나 지나자 밖에서 두 사람이 주고받는 말소리가 들렸다. 아무리 기다려도 좀처럼 자리를 뜰 눈치가 보이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다시 되돌아와 살금살금 두 채의 건물을 지나왔다. 캄캄한 밤이라 누구의 눈에도 들키지 않았다. 회랑을 돌아 나오니 대청에 등불이 휘황하다. 누군가가 큰소리로 말을 하고 있었는데 어딘가 귀 익은 목소리다. 문 틈으로 들여다보 니 주중영이 두 사람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이다. 하나는 본 듯한 인상인데 생각이 잘 나지 않았고, 다른 하나는 바로 자기를 희롱하려고 대들었고, 뒤에는 또 공인들을 데리고 나 타나 자기 남편을 체포해 간 동조화다. 원수를 눈앞에 두고 남편의 참경을 생각해 보니 자기의 사활을 돌볼 계제가 아니다. 손바닥으 로 문을 밀어붙이며 비도 한 자루를 동조화를 향해 던졌다. 주중영은 실수로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죽였고 상심한 아내는 집을 뛰쳐 나갔다. 주중영의 아내는 본래 권사의 딸로 무공도 평범한데다 친정에는 사람도 없는데 어디로 갔는지 알 길이 없었다. 주중영은 아들이 죽고 아내가 집을 나갔으니 번뇌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우울한 심사로 집에서 이틀을 보냈다. 이날 날이 저물었는데 장정이 손님 두 분이 찾아왔다고 알렸다. 주중영은 맹건 웅을 보고 나가 만나 보라고 했다. 맹건응이 나가 보니 죄인의 괴 수요 재앙의 우두머리인 동조화와, 다른 한 사람은 정왕부의 무술 총교두 만경란이다. 그저께 철담장으로 와서 사람을 잡아갈 때에도 이 사람이 섞여 있었다. 맹건웅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두 사람은 꼭 주중영을 직접 만나야겠다고 떼를 썼다. 「장주님은 지금 몸이 불편하셔서 그럽니다. 무슨 일인지 제가 전달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동조화가 냉소를 날린다. '우리가 이번에는 호의를 가지고 온 것이오. 주 장주께서 우리를 만나건 말건 그의 마음대로요., 그러나 지금 철담장이 멸문지환을 당할 판인데 그러도도 거드름을 부리다니? 맹건웅도 문태래가 잡혀간 후 철담장에도 무슨 연루(連累)의 재난이 미치지 않을까 혼자 걱정하면서 요 며칠 전전긍긍하고 지냈다. 그런 마당에 동조화의 말을 들었으니 안으로 들어가 아뢸 수밖에 없었다. 주중영은 손에 있는 철담을 만지작거리며 노기등등해서 밖으로 나왔다. 「철담장이 어째서 멸문지환을 당한단 말이오? 어디 한번 이야기 나 들어 봅시다.」 만경란이 품속에서 한 장의 종이를 꺼내 탁자 위에 펴 놓았다. 「주 노영웅 이걸 보십시오.」 두 손으로 그 종이의 위아래를 꽉 누르며 이렇게 말했다. 혹시 주중영이 뺐지나 않을까 � 두려워하는 눈치가 분명했다. 주중영이 가까이 가 보니 무당파 금리침 육비청이 자기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홍화회의 친구들을 잘 보살펴 달라고 부탁한 그 편지였다. 이 편지는 문태래가 간직하고 있었지만 주중영에게 전달할 기회가 없었다. 체포된 후 몸을 뒤져 찾아낸 것이다. 육비청도 큰 죄를 지은 사람으로, 잡으려고 애를 썼지만 오랫동안 잡히지 않던 죄수이다. 이러한 자가 결국은 철담장과 내통하고 있었던 것이다. 서대림 등이 모여 이 일을 상의했는데 모두들 상사에게 보고를 해 봐야 잡으라고만 할 테니 육비청을 잡을 자신도 없고 공연히 부담만 하나 더 짊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었다. 차라리 주중영으로부터 돈이나 두둑히 뺏어다가 나누어 먹는 것이 실속 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게다가 철담장에서 국사범을 숨겨 준 마당에 돈을 내놓지 않을 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장소중과 육비청은 동문 출신이다. 다소의 옛 정이 남아 있기도 하거니와 그가 대단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어 그로서는 무모하게 나설 일이 아니었다. 서대림 등이 주중영을 건드려 돈이나 우려내자고 상의하는데 이르러서는 어딘가 인품이 비열하고 영웅호한으 떳떳한 행위가 아니라고 느꼈다. 그러나 관가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라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두기로 했다. 만약 돈을 뜯어 오더라도 자기는 그 몫을 사양하고 화수판관의 명성에 오점을 남기지 않기로 결심했다. 성황 , 서대림 등은 모두 공명이 있는 사람들이라 직접 얼굴을 내놓기가 거북했다. 그래서 만경련과 동조화, 두 사람을 파견한 것이다. 주중영은 이 편지를 읽고 마음속으로 놀랐다. 오해 「그래, 두 분의 의도는 무엇이오? 만경란이 대답했다. 우리는 오래 전부터 주 노영웅을 흠모했습니다. 주 노영웅께서 의를 중히 여기고 재물은 천하게 여기면서 친구 사귀기를 제일 중시하신다는 것도 모두들 잘 알고 있습니다. 친구를 사귀기 위하여 10만양의 돈은 내놓으면서도 눈살 하나 찌푸리지 않는 분이란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이 편지가 만약 관가에 발각된다면 그 후환이 무궁할 것임은 주 노영웅께서도 물론 잘 아시겠지요? 뭇 형제들이 이 편지를 보고는 모두들 머리를 흔들었습니다. 주 노영웅과 같은 훌륭한 친구를 사귀기 위하여 차라리 이 편지를 없애 버리자고 했습니다. 모두들 절대로 철담장에서 국사범 문태래를 숨겼다는 이야기는 입 밖에도 내지 말 것은 물론 이보다 더 큰 일이 있더라도 상관에게 보고하지 말자고 했습니다.」 「고마운 호의요.」 주중영은 짤막하게 대꾸했다. 만경란은 한참 동안 핵심을 놔 둔 채 한담을 늘어놓다가 마침내 본색을 드러냈다. '다만, 이번 여러 형제들이 북경을 떠나 여기까지 오는 동안 빚을 좀 진 것이 있습니다. 주 노영웅께서 무림의 일파를 생각하시고 도움을 주신다면 우리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하겠습니다.」 주중영이 이마를 찡그리며 (흥!)하는 소리를 냈다. 「빚이라 해 봐야 액수가 그리 많지도 않습니다. 몇십 명의 것을 합쳐야 겨우 7, 8만 냥에 불과합니다. 주 노영웅으로 말씀드린다면 가재가 백만이요, 금은이 집안에 가득하고 또 전답이 헤아릴 수도 없이 많고, 우마가 수두룩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모두들 하서의 갑부라 일컫는데 이 얼마 되지 않는 액수에 눈이나 깜짝 하시겠습니까? 재산을 써 재앙을 막는다는 말도 있고, 또 작은 재산이 나가지 않으면 큰 재산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주중영은 공인들이 철담장으로 들어와 사람을 잡아간 것만도 자기를 업수히 여긴 것이라고 불쾌하게 여기고 있었다. 또 강호 동도가 위급한 경우를 당해 자기 집에 왔는데도 감싸 보호하지 못한 것이 못내 부끄러웠다. 친구를 대하기 민망해 죽을 지경인데 아들조차 이 일 때문에 세상을 떠났다. 따지고 보면 이 모든 일이 다 이 따위 공인들이 끌어들인 것이다. 이 이틀 동안 어떻게 문태래를 구출해 낼까 곰곰히 생각하다가 공인들을 찾아가 분풀이나 할까 했지만, 아내는 집을 나갔고 아들은 죽어, 심신이 어지러워 아직까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들이「나타나 돈을 우려내려고 하다니 기가 막히다 못해 한심 하기 귿이 없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내 비록 약간의 재산을 가지고는 있다지만 평생 의기 지키는 훌륭한 친구를 사귀기 위해서만 써 왔소.」 냉랭하게 쏘아붙이며 한마디로 거절할 뿐만 아니라 심하게 욕을 해 버렸다. 동조화는 능글능글하게 웃었다. 「우리가 소인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소인이 무슨 대단한 일을 이룩할 수 있겠습니까? 하는 일마다 실패뿐이지요. 이 점에 대해서는 노영웅께서 우리들보다 더 잘 아시겠지요. 우리들 보고 이렇게 큰 장원을 하나 만들어 보라고 하신다면 그야 어림없는 일이니 능력이 없다고 물러서겠지만 부수어 없애는 재주로 말한다면야 우리도 과히 ,,,,,,.」 그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누군가가 뛰어들며 날카롭게 외쳤다. 「이 아가씨, 네가 어떻게 철담장을 부숴 없애나 똑똑히 보아야겠다. 바로 주중영의 딸 주기였다. 주중영이 딸을 향해 눈짓을 하고 밖 으로 나가자 주기가 따라나선다. 「너 가서 건웅과 건강을 보고 저놈들 절대로 나가지 못하게 하라고 일러라.」 「그것 참 좋군요. 아버지, 밖에서 듣자 하니 참고 있을 수가 있어야지요. 주중영이 다시 방으로 돌아오자 만경란이 일어섰다. 「주 노영웅께서 저희들 입장을 몰라 주시니 그냥 말을 하면서 육비청이 보낸 그 편지를 북북 찢었다. 주중영은 만경란의의 뜻밖의 행동에 어리둥절했다 「이 편지는 복사품입니다. 이걸 찢어 없애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지 않도록 해야지요. 진본은 화수판관 장 대인께서 가지고 있읍니다.」 만경란이 이런 말을 한 뜻은, 우리 두 사람을 죽인다 해서 증거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였다. 주중영은 화가 나서 그들을 노려보았다. 「나 주중영이 돈으로 목숨을 살 것으로 알았다면 그건 너무나 나를 깔본 것이다.」 바로 이 순간 낙빙이 동조화를 향해 비도를 날렸다. 주중영은 누가 나타났는지 똑똑히 보지도 못했고 동조화를 골수에 사무치도록 증오했지만 여기서 지금 당장 죽게 놔둘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우선 사람을 구해야겠다는 일념으로 손에 들고 어루만지던 철담을 비도를 향해 던지자 쨍그렁 하는 소리와 함께 비도와 철담이 동시에에 바닥에 떨어 졌다. 낙빙은 주중영이 자기의 원수를 구해 주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좋아, 모두들 한패였구나. 네놈이 내 남편을 해쳤으니 나까지 함께 죽여라.」 절뚝절뚝 안으로 들어와 원앙도를 높이 들고 주중영의 머리를 내리쳤다. 주중영은 병기를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의자를 들어 막았다. 「자세히 말씀을 드릴 테니 잠깐만 손을 멈추시오.」 낙빙은 사생결단을 내야 할 판이라 그의 말이 들리지도 않았다. 쌍도가 모두 공격 일색이라 주중영은 낙빙이 홍화회에서 자기가 문태래를 팔아먹는 것이라 오해하고 있음을 알았다. 오해를 풀어야 할 마당에 사람을 다치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피하기만 할 뿐 반격을 하지 않았다. 낙빙의 장도와 단도가 주중영의 급소를 정신없이 공격했다. 벽 구석으로 몰아붙여 이제는 더 피할 장소가 없겠지 했는데 등뒤에서 병기가 바람을 찢는 소리가 들렸다. 낙빙은 누군가가 자기를 향해 습격하고 있음을 알고 몸을 움츠려 피하면서 단도를 머리 뒤로 휘둘렀다. 그리고 다시 왼손의 장도로 적의 허리를 치며 몸을 돌이켜 세우고 보니 주기가 노기충천한 표정으로 칼을 든 채 거기에 서 있었다. 주기가 낙빙을 향해 삿대질을 했다. 아니, 이 여자가 남의 호의도 모르는군. 기껏 살려 주니까 그래 아버지를 죽이려 들다니? 너희 철담장은 어진 체 의로운 체하면서 내 남편을 해쳤다. 너 어리니 비켜나거라. 내 너까지 괴롭힐 의사는 없다.」 낙빙은 다시 몸을 돌려 세우고 주중영을 향해 칼을 내리쳤다. 주중영이 의자를 들어 막자 낙빙이 칼을 움츠렸다가 동시에 추 늰환(抽微逢環)의 재주로 세 번이나 맹격을 가했다. 주중영이 좌로 피해가며 소리를 질렀다. 잠깐만 손을 멈추시오. 주기는 화가 나서 자기 아버지의 앞을 막아 섰다. 칼을 머리 위로 치켜 들고 낙빙과 어우러져 싸우기 시작했다. 무예나 경력을 가지고 말한다면 주기는 낙빙의 상대가 아니다. 다만 그녀가 어깨와 다리에 부상을 입은데다가 폭발할 것 같은 분노에 이성을 잃고 있어 무가의 금기를 크게 범하고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이 7, 8초를 대결하는 사이에 낙빙이 열세에 몰렸다. 「손을 멈추라니까. 주중영이 소리를 질러 말렸지만 두 사람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만경란과 동조화는 옆에서 흥미진진한 눈초리로 수수방관하고 있었다. 주중영은 딸이 자기 말을 듣지 않자 화가 났다. 의자를 번쩍 들어 침으로써 두 사람 사이를 갈라 놓으려고 했다. 바로 이때에 등 에서 괴상한 소리가 나며 시커먼 그림자 하나가 뛰어들었다. 그 사람은 작은 몸집에, 손에 든 짧은 낭아봉을 상하로 휘두르며 주기를 향해 달려들었다. 날카로운 낭아에서 밝은 빛이 반짝반짝했다. 그 기세가 미친 호랑이같이 맹렬하기 짝이 없었다. 주기는 깜짝 놀라 단도의 신룡두갑(新龍料甲)으로 상대방의 어깨를 쪼개자 그 사람도 만만치 않은 힘으로 막았다. (땅!)하는 소리와 함께 불꽃이 사방으로 튀고 진동이 심한 가운데 주기의 팔이 마비 되어 하마터면 단도를 놓칠 뻔했다. 뒤로 피하면서 촛불 아래로 살 펴보니 용모가 괴상하게 생긴 꼽추였다. 꼽추는 추격하지 않고 낙빙을 향해 몸을 돌렸다. 낙빙은 갑자기 친한 사람이 나타나자 말이 나오지 않았다. 반갑 기도 하거니와 속이 상했다. 「십가! 하고 한마디 부르고는 양 볼에 뜨거운 눈물만 줄줄 흘렸다. 「사가는 어디 있어요? 장진이 묻자 낙빙은 손가락으로 주중영 ,만경란,동조화 세 사람을 가리켰다. '저 사람들이 그이를 해쳤어요. 제 대신 원수를 갚아 주세요. 장진은 문태래가 그들에 의해 해침을 당했다는 말을 듣고 어떻게 당했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사가, 사가. 내 형을 위해 복수를 하고 말리다.」 낭아봉을 휘두르며 주중영의 하체를 공격했다. 주중영이 펄쩍 탁 자 위로 뛰어올라갔다. 「잠깐만 손을 멈추시오. 장진은 슬프고 분해 그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도 않아 낭아봉으로 그의 다리를 후려치자 주중영이 두 팔을 떨며 몸을 허공에 솟구쳤다가 비스듬히 땅 위로 내려왔다. 장진의 낭아봉이 박달나무의 탁자를 때렸다. 낭아봉의 뾰족한 가시가 탁자에 박혀 잘 뽑히지 않 았다. 이때 맹건웅과 안건강이 막 소식을 듣고 이곳으로 달려왔다. 안건강은 주중영의 금배대도를 사부의 손에 쥐어 주었 다. 주기는 낙빙과 이 꼽추가 까닭도 없이 자기 집에 들어와 소란을 피우고, 또 자기 아버지를 향해 맹격을 가하자 그냥 참고 있을 수가 없었다. 「맹 대가와 안 삼가가 함께 덤비세요. 어디서 이런 것들이 굴러와 철담장에서 소란을 피울까? 맹 . 안 두 사람은 장진이 어떻게 들어왔는지 알지도 못했다. 안으로 들어올 때 그가 낭아봉으로 사부를 공격하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그렇다면 의심할 것도 없는 적이다. 세 사람이 세 자루 칼로 장진을 향해 일시에 공격했다. 장진이 낭아봉을 들어 막으며 소리를 질렀다. 「칠가, 빨리 나와 형수를 보호해 주시오. 만약 나오지 않으면 내 욕을 퍼부으리다. 원래 장진과 무제갈 서천굉은 문태래 부부가 위기에 봉착해 있다는 소식을 듣자 우선 먼저 출발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달려왔으며 그들이 철담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날이 어두워 있었다. 서천굉은 우선 명함을 준비해 가지고 후배의 예로서 주중영을 뵈알하자고 말했지만 장진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그냥 담을 뛰어 넘었다. 서천굉은 그가 느닷없이 들어가 일을 저지르는 것이 아닌가 걱정하면서 그의 뒤를 따라 들어왔다. 그가 한 발 늦는 동안에 장진은 벌써 주중영 .주기 .맹건웅,안건강 네 사람과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서천굉은 장진이 부르는 소리를 듣고 안으로 들어와 낙빙 옆으로 달려갔다. 이때 낙빙은 숨을 가라앉히고 다시 쌍도를 휘두르며 주중영에게 대들었는데 서천굉이 들어오는 것을 보자 여간 반갑지 않았다. 워낙 꾀가 많은 사람이라 그 혼자 왔다 하더라도 결코 손해는 보지 않는다. 동조화와 만경란 두 사람을 손으로 가리켰다. 저들이 우리 그이를 해쳤어요.」 서천굉은 신중하고 침착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생사고락을 함께 하던 넷째형이 피해를 입었다는 말을 듣자 정신없이 강도(鋼刀)와 단괴를 들고 동조화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때 동조화와 만경 란은 강 건너 불 구경을 하듯 수수방관하고 있었다. 홍화회와 철담 장이 치열하게 싸울수록 그들은 유리한 것이다. 홍화회 사람들이 적으니 패할 것은 명약관화했다. 그때 가서 몇 사람을 잡아가면 또 하나의 공로를 세우는 셈이라, 동조화는 얄궂은 눈초리로 낙빙만 바라다보고 있다가 서천굉이 달려들며 강도로 자기를 향해 쪼개자 급히 칼을 들어 막았다. 만경란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진원표국의 명성이 대단하니 어디 한번 표두의 무예가 어떤가 구경 좀 하자.) 서천굉은 몸집이 작아 외형은 동조화와 비슷했다. 그러나 무예의 능숙함만은 비교가 되지 않았다. 동조화가 열세에 몰려 계속 뒤로 피했다. 서천굉은 철괴를 밖으로 걸쳐 반주자찰의 자세를 취하고 오른손의 칼로 동조화를 찔렀다. 동조화가 급히 왼 쪽으로 피했으나 상체를 막기에 바빠 미처 하체에 신경을 쓸 겨를 이 없었다. 이때 서천굉이 다리를 걸자 벌렁 넘어지고 말았다. 서천 굉은 철괴를 들어 치려고 하는 순간 배후에서 강한 바람이 엄습함 을 느꼈다. 미처 몸을 돌릴 겨를이 없었다. 왼발로 동조화의 가슴을 밟아 누르며 몸을 돌리고 만경란의 빈철점강천 한 쌍과 어우러져 싸웠다. 동조화는 비명만 지를 뿐 일어나지도 못했다. 만경란은 이 한 쌍의 빈철천을 20년 동안이나 수련했다. 손에만 의지한 진짜 무공으로 북경에서 무술로 쟁쟁하다는 10여 명의 고 수를 패퇴시키고야 건우 정왕부의 총교두가 된 것이다. 정친왕은 그를 발탁하기 위하여 장소중과 함께 나가 공로를 세우도록 기회 를 만들어 주었다. 그래야만 그를 관직에 추천할 수 있었다. 이때 그는 서천굉과 어울려 10여 초를 대결하고 있었지만 좀처럼 승부를 가릴 수가 없었다. 만경란은 초조했다. 별로 대단해 보이지도 않는 인물 하나 이길 수 없다면 동조화도 웃을 것이 아닌가? 철천을 들어 갑자기 서천굉의 가슴을 향해 찔렀다. 서천굉은 철 를 들어 막으며 오른손의 칼로 반격했다. 만경란이 빈철천을 거두어 들이며 공작개병의 재주로 비스듬히 막으며 찔렀다. 서천굉이 단괴를 밖으로 치며 철천을 치워 버렸다. 만경란의 오른쪽에 있는 철천이 패왕사갑으로 진격을 했다. 서천굉이 급히 머리를 움츠리자 철천이 얼굴을 살짝 스치고 지나갔다. 하마 터면 큰일날 뻔했다. 서천굉은 상대방의 무공이 대단함을 알자 적개심이 일어났다. 몸집이 작기 때문에 전적으로 적의 하체만 공격해 단도와 철괴를 좌우에서 번갈아 쓰며 적의 두 다리를 치고 찍었다. 만경란이 천(雙資)을 두 다리 밖에 세웠다. 그러나 서천굉의 이 일 초는 허초여서 단도로 계속 치면서 철괴는 변초를 해 위로 올라가며 적의 면상을 노렸다. 만경란은 피할 도리가 없어 급히 철판교 로 몸을 뒤로 젖혔다. 가까스로 서천굉의 철괴를 피하기는 했지만, 놀라 식은땀이 솟았다. 다시 수 초를 겨루어 보았지만 자신을 잃고 당황했다. 저쪽의 장진도 1대 3으로 맹렬하게 싸우고 있었다. '건강, 빨리 나가 다른 사람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장원문을 지키게. 맹건웅이 소리를 질렀다. 장진의 낭아봉은 매우 무겁다. 그걸 흔들때의 기세는 마치 질풍을 몰고 다니는 것과 같아 안건강의 손과 다리가 기민하게 움직이질못했다. 「안 삼가, 빨리 나가요. 이 꼽추는 내가 상대할께요.」 장진은 주기가 자기를 보고 (꼽추)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 평생 제일 듣기 싫어하는 말이라 분노의 불길이 이글거려 미친 사람처 럼 소리를 지르며 대들었다. 주기와 맹건웅이 힘을 합쳐 대항하고 안건강은 밖으로 달려나갔다. 「모두 손을 멈추고 이 늙은이의 말 한마디만 들으시오.」 주중영이 외치자 맹건웅과 주기가 즉시 뒤로 물러섰다. 서천굉도 뒤로 한 발짝 물러섰다. 「십제, 손을 멈추고 저분의 말을 들어 봐요.」 그러나 장진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계속 대들었다. 서천굉이 앞으로 나가 말리려고 하는데 만경란이 갑자기 뒤에서 철천으로 내려 쳤다. 서천굉은 방비를 하지 않고 있었다. 몸을 움츠렸지만 어깨를 맞았다. 아파 견딜 수 없었다. 통증이 분노로 바뀌었다. 비칠비칠하 면서 소리를 질렀다. 「잘한다. 철담장은 정말 못된 꾀도 많구나.」 그는 만경란이 철담장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는 본래 냉정하고 침착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갑자기 습격을 받고 보니 그 분노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왼쪽 어깨에 부상을 입어 철괴를 쓰기가 불편하자 단도만 들고 만경란과 어울려 결사적으로 싸웠다. 오호단문토의 도법을 펴 착실하게 진공해 들 어갔지만 철괴의 힘을 빌려 쓸 수가 없고 단도가 약간 가볍다는 느낌이 들어 손이 불편해 우위를 차지하기가 어려웠다. 동조화는 멀찍이 비켜 선 채 손으로 낙빙을 가리키면서 들리지 도 않는 말로 혼자 뭐라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낙빙의 수중에는 한 자루의 비도만 남아 있었다. 함부로 쓰기에는 아까운 것이라 칼을 들고 그쪽으로 쫓아갔다. 발이 빠른 동조화는 그걸 알고 대청 가운 데 놓인 탁자와 의자 사이를 요리조리 돌아가며 약을 올렸다. '너무 그렇게 사납게 굴지 말아요 남편이 벌써 죽었으니 얌전하 게 이 동 나리께 개가하고 말지.」 낙빙은 정신이 어지러워졌다. 동조화의 이 말을 듣고 정말 문태 래가 죽었나 싶었다.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정신을 잃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 동조화는 그녀가 쓰러지자 재빨리 달려왔다. 주중영은 이를 보자 화가 치밀어올랐다. 금배대도를 들고 낙빙을 향해 달려왔다 동조화의 무례한 행동을 저지하려고 달려왔는데, 이 게 또 오해의 오해를 낳았다. 문 밖에서 누군가가 큰소리를 지른 것이다. 「네 감히 우리 형수를 해치려고 하느냐? 어디 한번 나와 사생결 단을 내 보자! 한 사람이 손에 쌍구를 들고 주중영을 향해 대들었다. 주 중영이 보니 얼굴이 훤하게 잘생겼고 손발이 날렴해 호감이 가는 인상이다. 칼을 들어 가볍게 막고 뒤로 한 발 물러섰다. 「누구신지? 우선 통성명이나 합시다.」 그 사람은 대답도 하지 않고 몸을 숙여 낙빙을 살펴보았다. 얼굴 이 백지장처럼 희고 숨결이 실낱 같다. 급히 부축해 일으켜 의자에 앉히고 바닥에서 원앙쌍도를 주워 그녀의 옆에 놓아 주었다. 주중영은 뭇 사람들이 치열하게 싸울수록 말릴 방법이 없어 답 답했다. 이때 밖에서 누군가가 벼락치듯 떠드는 소리가 들리고 다 시 쇠가 부딪치는 소리가 무겁게 들리며 이어 안건강이 패해 안으 로 들어오더니 한 사람이 그 뒤를 바짝 쫓아왔다. 키도 크고 뚱뚱한 사람이 손에 강편을 들었다. 강편이 어찌나 무 거워 보이는지 30근이 넘을 것 같았다. 안건강이 감히 단도로 막지 를 못한다. 서천굉이 소리를 질렀다. 「팔제 구제(九弟)오늘 우리가 철담장 사람들을 하나도 남기지 말고 깨끗이 죽여 없애야만 일이 끝나는 것이오.」 그 뚱뚱보는 홍화회에서 여덟번째 자리에 있는 철탑(鐵塔) 양성 협이며, 얼굴이 훤하게 잘생긴 사나이는 아홉번째인 구명 금표자 위춘화였다. 강호상에 치열한 싸움이 벌어져 관병과 대항할 때에는 항상 위춘화가 목숨을 내놓은 채 용 감하게 선봉에 섰고, 일생 동안 위험한 고비를 헤아릴 수 없이 많 이 넘겼지만 중상 한 번 입은 일이 없었다. 이름 그대로 아홉째의 생명을 가진 사나이였다. 그들 두 사람은 홍화회에서 두번째로 지원하기 위해서 출발했다. 그들이 철담장에 도착했을 때는 한밤중이었다. 장문 앞에 횃불이 대낮처럼 밝은데다가 장정들은 모두 병기를 들고 있어 마치 대적 을 상대할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위춘화가 그들 앞에 나섰다. 「홍화회의 양성협과 위춘화가 철담장 주 노영웅을 배알하러 왔 습니다. 형제들은 수고를 사양치 마시고 통보해 주십시오.」 안건강은 홍화회 인마란 말을 듣자 그들을 들여보낼 수가 없었 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안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데 이들을 들 여보내면 일이 더 크게 벌어질 것은 너무나도 당연했다. 「화살을 쏘아라. 20여 명의 장정이 일제히 시위를 당겼다. 위춘화와 양성협은 크 게 화를 내며 병기를 휘둘러 날아오는 화살을 막았다. 위춘화는 비 오듯 하는 화살쯤은 우습게 알아 한바탕 바람을 몰고 달려들었다. 뭇 장정들은 그의 기세에 눌려 손발만 허위적거릴 뿐 미처 장문을 잠그지도 못했다. 이 틈을 타고 그대로 안으로 뚫고 들어왔다. 양성협이 따라 들어오자 안건강이 칼을 휘둘러 막았다. 양성협은 몸집이 크고 기품이 당당해 위엄이 있으며, 강편을 쓸 때는 무서운 바람이 일어났다. 안건강이 정면으로 나서서 막지 못하고 살짝 피 하다 허점을 발견하고 칼을 들어 치자 양성협의 강편이 賣上천군 으로 나와 힘껏 칼을 받았다. 따-앙 하는 소리와 함 께 칼과 강편이 부딪쳤다. 안건강은 호구가 찢어지는 듯 아팠다. 단 도가 손에서 빠져나가 허공으로 날았다. 양성협은 그의 목숨을 뺏을 생각은 없어 그가 뒤로 물러서자 강편을 들어 둘째 문을 부수고 안으로 들어왔다. 장원 안의 길을 모르기 때문에 캄캄한 가운데 떠들썩한 소리만 듣고 방향을 찾을 때 건강이 다른 칼 한 자루를 찾아 들고 다시 쫓아와 막았다. 이번에는 더욱 조심을 했건만 몇 초를 대결하는 동안에 다시 양성협의 강편에 칼등이 맞았다. 단도가 구부러져 기역자 모양의 곱자로 변하자 안건강은 구부러진 칼을 들고 몸을 보호하며 대청으로 피해 들어왔다. 양성협이 강편을 들어 그의 머리를 후려치자 안건강은 몸을 움츠리며 손에 잡히는 대로 탁자를 들어 막았다. 탁자의 다리가 떨어져 나가며 나무 부스러기가 사방으로 흩어진다. 주중영은 마음속으로 찬사를 보냈다. (어쩐지 홍화회의 명성이 대단하더라니, 회중에 과연 무예가 출 중한 사람이 많구나.) 안건강의 이마에 땀이 비오듯 흐른다. 그냥 놔 두었다가는 아마 도 목숨을 잃을 것만 같다. 「홍화회 영웅 여러분! 잠시 손을 멈추시고 이 늙은이 말 좀 들어 보십시오.」 주중영이 크게 소리를 질렀다. 이때 위춘화는 서천굉을 대신해 만경란과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그와 양성협은 주중영이 소리치는 소리를 듣고 잠깐 동안 손발을 멈추었다. 「조심해요. 잘못하다간 속는다구요.」 서천굉이 소리를 질렀다. 그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만경란이 과연 철천을 들고 위춘화를 찔렀다. 그는 혹시라도 철담장과 홍화회가 한패가 되지 않을까 걱정했기 때문에 그들이 말할 기회를 주지 않으려고 그렇게 한 것이다. 위춘화는 서천굉이 외치는 소리 를 듣고 미리 방비하고 있었다. 그의 병기가 눈앞에 나타났는데도 꿋꿋이 선 채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손을 갈고리처럼 뒤집어 이공대공의 태세를 취 했다. 만경란은 그가 목숨도 돌보지 않고 용감하게 반격을 하자 깜 짝 놀라며 철천을 거두어들이며 막았다. 서천굉이 삿대질을 하며 욕을 했다. 「강호상에서는 철담장 주중영이 대인대의한 훌륭한 친구라고들 말하지만 알고 보니 허명뿐이다. 원래 이렇게까지 악랄하고 음흥할 줄은 몰랐다. 못된 속임수만 쓰고 있는데 무슨 놈의 영웅호한이란 말인가. 주중영은 분명 그가 오해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줄은 알았지만 그렇다고 화를 내지 않을 수도 없었다. 「너희 홍화회에서도 너무나 사람을 업신여기는구나.」 긴 두루마기를 걷어올리며 나섰다. 「건강은 물러서거라. 내가 나서서 이들 이름난 영웅호걸과 대결 하리라.」 안건강이 뒤로 물러서자 주중영이 앞으로 나섰다. 「그래, 여러분 손님의 존함은 어떻게 되시오? 양성협은 흰 수염을 나부끼는 그를 보자 무례하게 굴 수 없어 두 손을 마주 잡고 자기의 이름을 밝혔다. 「저는 철탑 양성협이라 합니다. 이때는 낙빙이 벌써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팔가, 겸양은 해서 뭘해요? 저 늙은이가 그이를 해쳤어요.」 이 말이 떨어지자 서,양,위,장네 사람이 깜짝놀랐다. 위춘 화는 만경란을 버려둔 채 주중영의 면전으로 달려들었다. 쌍구 를 바람처럼 흔들며 그의 가슴에 파고들었다. 주중영이 큰 칼을 세로로 든 채 내력을 쓰자 쌍구가 반대로 튕겨나왔다. 위춘화가 순간 멈칫했다. 상대방의 무공이 대단함을 안 것이다. 그러나 그는 무서운 것이 없기로 유명한 사람이다. 위축됨이 없이 다시 공격을 감행했다. 저쪽의 장진은 맹건웅과 주기를 2대 1로 상대하고 있었지만 좀처럼 우열이 가려지지 않았다. 안건강이 숨을 헐떡이며 소매를 들어 이마의 땀을 씻고 대들며 도와 주었다. 양성협은 강편을 휘두르며 만경란을 상대했다. 서천굉은 장내의 악전고투 광경을 살펴보았다. 장진은 1대 3,힘들어 보이지만 결코 패색은 보이지 않았다. 저쪽의 위춘화가 오히려 방어에 급급했다. 주중영이 벌써 여러 차례나 사정을 보아 주었지만 상대방은 추호도 위축됨이 없이 악착같이 대들었다. 젊은 사람이 어지간히 겁이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왼손에 끼고 흔드는 쌍구를 멀리 밀어붙였다. 서천굉은 주중영의 도법이 오묘하고 공력이 심오함을 지켜 보았다. 수 초가 지나는 동안 위춘화가 거의 상대할 수 없을 정도로 밀렸다. 단도를 들고가 위춘화를 도왔으나 2대 1이지만 역시 방어가 어렵다. 주중영이 이제 늙었다고는 하지만 금배대도를 쓸 때는 한덩어리 백광(白光)이나 다름이 없었다. 일초 일도에 더욱 큰 힘이 샘솟 것 같고 싸우면 싸울수록 용기백배하는 것 같았다. 서천굉은 승산이 없음을 알았다. '오가와 육가는 이리로 오시오. 빨리 철담장에 불을 질러 태워버리시오. 그의 이러한 외침은 어디까지나 허장성세였다. 홍화회에서 다섯 여섯째 서열에 있는 상혁지 , 상백지 형제는 아직 도착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총타주의 명령을 받고 삼도구에 가 북경에서 내려온 공인들의 행방을 알아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가 이렇게 외치고 오자 철담장 사람들은 그가 예측한 대로 대경실색했다. 주중영이 순간적으로 당황하는 바람에 하마터면 위춘화의 쌍구에 맞을 뻔하 자 긴 눈썹을 치켜세우고 금배대도의 삼양개태(三羊開泰)의 재주로 무섭게 공격했다. 서천굉과 위춘화가 뒤로 밀리자 그 기회를 이용 해 문 밖으로 달려나간다. 불 지르는 적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위춘화가 그림자처럼 쫓아다녀 사람이 이르기 전에 먼저 쌍구가 도착해 그의 등을 찌르려고 했다. 주중영은 금배대도로 원 을 그렸다. 땅땅 하는 소리와 함께 쌍구와 맞부딪쳤다. 손을 뻗어 옆으로 치며 오른발을 땅에 대고 쉽쓰는 동시에 왼손바닥으로 눌렀다. 위춘화가 황급히 몸을 날려 옆으로 뛰었다. 주중영은 왼손의 다섯 손가락을 함께 모아 손이 수리의 손으로 변하자 그 힘을 이용해 그의 어깨를 때렸다. 주중영의 일구(一句) . 일날 . 일발 을 삼합(三合)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바로 소림권 가운데의 이랑담삼의 절기였다. 위춘화는 마음을 오로지 그의 대 도에만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갑자기 소림권으로 나을 줄 은 몰랐다. 도 권 족 세 가지를 병용하고 있으니 두 가지 초술은 피했지만 마지막 일 초는 종내 피하지 못하고 오른쪽 어깨를 강하게 맞았다. 다행인 것은 그래도 주중영이 사정을 보아 주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벌써 중상을 입었을 것이다. 위춘화는 패할수록 더욱 사납게 변했다. 주중영의 일장에 맞아 뒤로 세 발짝 밀리자 미처 자세를 바로잡기도 전에 또 네 발짝 전진해 쌍구의 채봉선와로 맹렬하게 대들었다. 주중영이 크게 화를 내며 소리를 질렀다. '이 젊은 사람아, 내 자네의 아버지를 살해한 바도 없고 또 아내 를 뺏어온 일도 없는데 왜 이렇게 결사적으로 덤비나? 내 그만큼 사정을 보아 주었으면 이젠 알 만하지 않은가? '당신은 내 문 사가를 죽였소,,,-. 내 당신을 이길 재간은 없지 만 나는 때려도 맞아죽지 않는다는 구명금표자요. 아시겠소? 말을 하면서도 손은 여전히 멈추지 않았다. 주중영은 그가 죽자사자하고 귀찮게 늘어붙자 화는 나면서도 그의 용맹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늙은이 육십 평생을 살았지만 여태까지 당신처럼 죽자 하고 덤비는 자는 본 일이 없소.」 오늘 어디 한번 단단히 구경 좀 하시오.」 하고 쌍구로 찌르자 서천굉이 단도를 옆으로 휘둘렀다. 주중영이 갑자기 뛰어오르며 대도로 세 번이나 쪼갰다. 위춘화가 힘을 다해 저항했다. 도광과 검영 가운데 주중영의 만도 가 안으로 들어오며 팔꿈치는 밖으로 그의 갈빗대 위를 쳤다. 초는 소림권 가운데 늑하주로서 만약 좀더 힘을 썼더라면 위춘화의 갈뎃대가 몇 개는 부러졌을 것이다. 위춘화는 맞고도 상대방이 전력을 다 기울이지 않았음을 알았다. 그러나 통증이 골수에 사무쳐 끙 소리를 지르며 주저앉았다. '구제, 저쪽으로 비켜요.」 서천굉이 소리를 질렀지만 위춘화는 응하지 않았다. 비틀거리며 일어나 곁눈질로 주중영을 응시하다가 다시 쌍구를 들고 덤볐다. '원, 이 사람 치료해 줄 약이 없겠군. 주중영은 어이가 없어 이렇게 말했다. 「빨리 불을 지르라니까! 십이랑은 뒷문으로 가서 한 놈도 달아나지 못하게 막아요.」 서천굉은 계속 소리를 질렀다. 주기는 그의 외치는 음이 산란해 장진과 더 싸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내 저놈의 화근 덩어리부터 없애고 봐야겠다.) 이러한 생각과 함께 낙빙을 향해 달려들었다. 낙빙은 남편이 이미 죽었다는 동조화의 말을 듣고 정신없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대청 안에서 뭇 사람들이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광경도, 사람의 그림자가 눈앞에서 오락가락하고 있다고 느낄 뿐 텅 빈 머리로서는 왜들 싸우고 있는지조차몰랐다. 주기는 그녀의 면전에 나타나 칼을 번쩍 들었다. 그러나 낙빙은 그녀를 향해 쓸쓸하게 웃으며 울먹울먹했다. 주기 의 강도가 그녀의 면전에서 멎었다. 애처로우면서도 부드러운 그 모습을 보자 차마 칼을 내려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잠시 동안 응시하고 있다가 의자 위에 놓여 있는 그녀의 원앙쌍도를 들어 낙빙 의 손에 쥐어 주었다. 「싸우자구요.」 낙빙이 무심히 그것을 받아 들었다. 주기는 칼끝으로 가볍게 그녀의 머리를 건드려 보았다. 막나 안 막나 보기 위해서였다. 낙빙이 빙그레 웃으며 되는 대로 오른손의 난도로 막으며 왼손의 장도로 반격했다. 주기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래야 해요. 어서 일어나 싸워요.」 낙빙이 그녀의 말에 따라 일어나기는 했지만 다리의 상처로 다리가 후들거려 다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래서 하나는 선 채 다른 하나는 앉은 채 쌍도와 단도를 맥얼이 흔들며 주고받았다. 그런 대로 수 초를 겨루어 보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다. 「아니, 누가 지금 장난을 하겠대요. 주기가 신경질적으로 한마디 뱉었다. 어찌 보면 얼이 빠진 것도 같고, 또 어떻게 보면 괜찮은 것 같기도 했다. 죽일 수도 없거니와 싸울 흥미조차 잃었다. 「불을 질러요. 또다시 서천굉의 외치는 소리가 들리자 주기는 뜨끔해서 낙빙을 놓아 둔 채 밖으로 뛰어나갔다. 막 문을 빠져나가려고 하는데 문 밖에서 누군가의 음침한 말소리가 들렸다. 「달아나려구? 주기가 깜짝 놀라 뒤로 뛰어 피했다. 흔들거리는 촛불 밑에서 보니 두 사람이 문을 가로막고 서 있었다. 방금 말을 한 사람의 얼굴은 서리를 덮어 놓은 듯 차디차 보인다. 두 줄기 눈빛이 다른 사람 혼이라도 뺏어 갈 듯 무섭게 빛났다. 주기는 다시 그 옆에 있는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이상스럽게도 그의 눈동자와 마주치자 얼굴을 다른 곳으로 돌릴 수가 없었다. 귀신을 보았나?주기가 이상해서 혼자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렇소. 나는 귀견수(會見愁)요.」 그 사람이 차디차게 주기의 말을 받았다. 말소리 가운데에도 부드러운 맛이라고는 전연 찾아볼 수가 없었다. 주기는 여태까지 하늘도 땅도 무서워해 본 일이 없었다. 그런데 음산하고 침침한 이 사람을 대하자 자기도 모르게 소름이 끼쳤다. 이 아가씨가 당신을 무서워할까 봐? 그러나 그의 이 말은 어디까지나 자신을 위해서 한 말에 불과했다. 앞에 나타난 상대가 웬일인지 무섭기만 했다. 그러나 정신을 가다듬고 그 사람의 머리를 향해 칼을 내려쳤다. 그 사람은 좌괘금령으로 단도를 밖을 향해 걸치고 좌 으로 가볍게 칼자루를 어루만지며 두 눈을 똑바로 뜬 채 그녀를 노려보았다. 주기는 그의 이러한 자세가 무서운 내가의 무공임을 알자 놀랍고 두려웠다. 어머니도 집을 나가시고 동생도 세상을 떠났으니 겁낼 게 뭐 있겠어. 최선을 다해 싸우다 아버지를 따라 죽으면 그만이지.) 용기를 가다듬고 칼을 소경 몽등이 휘두르듯 하며 그를 향해 덤볐다. 그 사람은 바로 홍화회에서 형(刑)을 관장하고 있는 귀견수 이랑 석쌍영(石雙英)이었다. 그는 본래 무극권 문하의 제자로 홍화회에 들어온 이후에는 삼당가(三當家) 조반산으로부터 무예를 배웠다. 조반산은 태극문 가운데의 현현도법(玄玄 刀法)을 가르쳐 주어 그들 두 사람의 관계는 결의형제라 했지만 사실은 사도였다. 석쌍영은 이정제동 , 이유극강 으로 주기의 공세를 제압했다. 저쪽의 맹건웅과 안건강은 2대 1로 장진과 상대하면서도 계속 열세를 만회하지 못했다. 만경란의 왼쪽 손에 들린 강천도 양성협 의 채찍에 맞아 부러져 감히 다시 대들지 못하고 탁자를 맴돌고 있었다. 상대가 뚱뚱하기 때문에 잘 쫓아오지 못하는 것만 천만다행으로 생각했다. 동조화는 어디로 달아났는지 보이지 않고 주중영 혼자만 서천굉과 위춘화를 상대하며 우세를 지켰다. 우선 이 두 사람의 기부터 꺾어 놓은 다음 변명을 할 참이었다. 그냥 혼전을 방치해 놓은 채로는 일을 수습하기 어려을 것 같기 때문이었다. 도법을 바꾸고 상대하자 서천굉과 위춘화가 계속 뒤로 밀려 이제 득승을 거둘 순간인데 갑자기 또 한 사람이 나타났다. 「내 이 늙은이를 상대하겠다. 한 자루의 철장을 치켜 들고 그의 머리를 내리쳤다. 병기는 철장이었지만 노지심의 풍마장 초술을 썼다. 그는 철장을 선장(禪杖)으로 대용해 쓰는 것이다. 이번의 초 술은 진왕편석으로 철장이 자신의 등과 오른쪽 어깨를 스치고 나타나 주중영을 치는 것이다. 쉭 하는 소리가 맹렬하기 짝 이 없었다. 이 사람은 석쌍영과 함께 왔는데 홍화회에서 열세번째 서열에 앉아 있는 동두악어 장사근이었다. 주중영은 그의 힘이 막강함을 보고 왼쪽으로 살짝 피하며 손을 뒤로 돌려 반격했다. 장사근은 빗맞자 철장을 가로로 해서 치는데 두 손 으로 꽉 잡은 채 철장의 꼬리를 오른쪽으로 향해 막고, 철장의 머리는 왼쪽을 향해 치는 것이었다. 이것은 풍마장 가운데 금교전월 로서 손이 민첩하기 짝이 없었다. 주중영은 소립정종이 라 이 초술을 알고 있었다. 몸을 옆으로 퍼해 스쳐 지나가게 한 후 눈썹을 찡그리며 뭔가 결정을 내렸다. 슬슬 상대하면서도 계속 발길을 옮겼다. 만경란이 양성협의 추적을 피해 자기 옆으로 접근했을 때 대도를 휘둘러 그를 내리쳤다. 원래 주중영은 홍화회의 자기에 대한 오해가 대단히 심각함을 알았다. 두서너 마디 말로 해명될 성격의 것이 아니었고, 몇 차례 소리를 질러 손을 멈추라고 했지만 그때마다 만경란이 중간에서 훼방을 놓았다. 이 사람은 철담장에 돈을 뜯으러 왔기에 원래부터 언짢게 생각하고 있던 인물이다. 그러나 관가와 정면으로 적대하고 나온다면 그것은 조반이다. 자기는 여기서 수십 년 동안 살 아오면서 집도 세우고 재산도 상당히 모았는데 이런 형편에 관가를 건드려 놓으면 그 화가 이만저만 큰 것이 아니다. 그가 서북의 호걸이라고는 하지만 근 20년 동안 이곳에 많은 토지를 소유하게 되었고 날마다 늘어만 가는 재산을 버리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만경란을 내심으로 싫어했지만 그것을 표면으로는 나타내지 않았다. 게다가 또 자기의 아들이 홍화회의 친구 때문에 죽었는데도 그들은 사정을 알아보려고도 하지 않고 자기 집으로 마음대로 뛰어 들어와 닥치는 대로 치고 부수는 것이 아닌가? 불까지 질러 태워 없애겠다고 날뛰고 있으니 세상에 어느 누가 가만히 참고 있겠는 가? 자기 나이가 이렇게 많은 것을 보았다면 최소한 존경까지는 못해도 늙은이 대접은 마땅히 해 주어야 옳았다. 그는 우선 무예로 써 뭇 사람들을 승복하게 만들어 놓고 까닭을 설명할 심산이었다. 그런데 홍화회 사람들이 더 불어날수록 더욱 싸움이 치열해지는 것이었다. 시간을 소래 끌다 보면 누가 죽거나 부상할 것은 너무나 자명했다. 만약 사태가 이렇게 변한다면 단순한 오해가 원수로 악화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되면 수습은 더욱 어려워진다. 저울질 을 해 본 결과 철담장을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만경란을 제거함 으로써 경직된 사태를 수습하고 싶었다. 만경란은 주중영의 대도가 자기를 향해 내리치는 것을 보고 놀라 급히 피하고 뒤를 보니 양성협이 또 쫓아오고 있었다. 즉시 탁자 위로 뛰어올랐다. 그는 주중영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우리가 힘을 합쳐 문태래를 잡지 않았土? 그 문태래를 당신이 죽였다고는 하지만 조정에서 내놓은 현상금 이만 냥 때문에 그래 나까지 죽여 없애고 혼자 꿀꺽 삼킬 셍이오? 어이없게로 그는 끝까지 모험할 결심을 했다. 철담장과 홍화회를 충동하여 양쪽이 서로 싸우다 양쪽 다 패망해야만 자기가 살 수 있는 것이었다. 홍화회의 군웅들은 주중영이 만경란을 치자 어리둥절하여 각자 손을 멉추고 있었다. 그런데 만경란이 외치는 소리를 듣자 다시 눈 이 뒤집혔다. 의형이 참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상심이 되어 싸우고 있는 판에 시비곡직을 조용히 생각해 볼 여유가 있겠는가? 장진은 와와 큰소리를 외치며 낭아봉을 들어 주중영의 허리를 후려쳤다. 주중영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입이 있어도 소용이 없다. 칼을 들어 장진의 낭아봉을 막았다. 두 영웅 서천굉은 세심한 사람이다. 방금 주중영이 사생결단은 하면서도 몇 차례나 사정을 보아 주고 있음을 알았다. 그렇지 않아도 의아하 게 여기고 있었는데 만경란의 말이 아무래도 수상했다. 「십제, 너무 무모하게 굴찌 말아요.」 소리를 질렀지만 날뛰고 있는 장진의 귀에 들릴 리 만무다. 장사 근이 철장의 허리로 다시 주중영을 때렸다. 주중영이 몸을 옆으로 피했는데 배후에서는 양성협의 강편이 비스듬히 그를 노렸다. 주중 영이 귀 뒤에서 나는 바람소리를 듣고 칼을 들어 막았다. 두 사람 의 팔이 모두 뻣뻣하게 마비되었다. 양성협 ,장진,장사근은 홍화회의 3대 역사다. 모두들 완력이 사람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주중영은 혼자 그들 셋을 상대하는 것이었다. 점점 더 버 티기가 힘들었다. 고함 소리 가운데 대도와 장진의 낭아봉이 또 한 번 부딪치며 불꽃이 사방으로 퍼지고 팔이 또 한 번 뻣뻣하게 마 비되었다. 장사근의 철장이 번신상권수로 변해 위에서 아래로 대도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주중영이 버티지 못하고 대도 를 놓치자 허공으로 날아가 대청의 대들보에 꽃히고 말았다. 주중영은 대도를 놓치자 오히려 몸을 날려 양성협의 품을 파고 들었다. 궁전충권왼손으로 강편의 끝을 잡아 제치고 오른손의 주먹으로 그의 가슴을 쳤다. 양성협은 상대의 무공이 이토록 대단할 줄은 미처 몰랐다 위급한 가운데 공수탈백인(空手奪白 刃)의 재주를 펴 자기의 강편을 나꿔챘다. 그러나 상대가 워낙 자 기 가까이 접근해 있었기 때문에 피할 도리가 없었다. 가슴을 앞으로 쑥 내밀고 (흥!)코방귀를 뀌며 주먹을 받았다. 그 바람에 강편은 놓치지 않았다. 원래 그는 철포삼의 횡 련 무공에 많은 심혈을 기울였다. 칼이나 창이 뚫을 수 없다 고 장담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평범한 병기에는 다치지 않을 자신 이 있었다. 그의 별명이 철탑(鐵塔)이다. 몸집이 크고 단단해 쇠를 부어 만든 탑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주중영의 주먹도 돌 을 때려 가루로 만들고 소를 때리면 죽을 만큼 단단했다. 그런데 상대가 정통으로 맞았는데도 끄떡하지 않는다. 과연 놀랄만한 인물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그러나 사실 양성협으로서도 말 못할 고통이 있었다. 어찌나 세게 맞았는지 통증이 골수에 파고드 는 것 같았다. 몇 번이나 피를 토하고 싶었지만 억지로 숨을 들이 마시고 참는 중이었다. 이대로 강편을 잡아당기다가는 자기 쪽에서 놓칠 것만 같았다. 바로 이때 주중영이 또 강편을 잡아당겼다. 양성 협의 힘이 세다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주중영의 막강함에는 비할 처지가 아니었다. 이대로 버티다가는 끝끝내 뺏기고 말 위험한 고 비에 이르렀다. 주중영이 강편을 미처 峽어 오지도 않았는데 장진과 장사근의 병기가 벌써 자기를 향해 엄습했다. 주중영이 강편을 놓고 탁자를 번쩍 들어 두 사람을 향해 밀었다. 맹건웅이 한쪽으로 뛰어가 탄궁(彈弓)을 빼어 들고 연주탄 을 장사근을 향해 계속 쏘아 사부를 곤경에서 구해 주었다. 그 러나 이쪽의 형세가 너무나 위급했다. 사부가 탁자로 밀자 탁자 위 의 촛대가 바닥으로 떨어지며 촛불이 꺼지자 생각나는 꾀가 있어 한바탕 연주탄을 쏘아 방안에 있는 촛불을 모두 꺼 버렸다. 대청 안이 캄캄해지면서 손을 뻗어도 다섯 손가락이 보이지 않게 되었 다. 사람들은 너무나 뜻밖에 벌어진 일이라 약속이나 한 듯 모두 뒤 로 물러섰다. 이렇게 되자 잠시 동안 악전고투가 중단되었다. 각자 숨을 죽이고 있을 뿐 아무도 움직이지 못했다. 캄캄한 가운 데 누구든지 뚬직이기만 하면 위치가 발각되어 적의 병기나 암기 를 불러들이는 결과가 된다. 그러니 자연 피할 방법도 없다 하물며 이렇게 싸을 때 마음대로 손을 쓰다가는 자칫 잘못하여 자기편 사람을 다칠 수도 있 것이다. 삽시간에 대청 안은 무덤 같은 정적 이 감돌았다. 방금 치열하게 싸을 때보다 더 무서운 공기가 사람들 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숨 막히는 정적 가운데 갑자기 밖에서 발자국 소리가 울리다가 문이 벌컥 열렸다. 눈앞이 환해 바라다보니 누군가가 횃불을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 선비 차림인데 왼손에는 금피리를 들고 있었다. 그는 안으로 들 어와 옆으로 비켜 서며 횃불을 높이 들었다. 이어 횃불이 비치는 가운데 또 세 사람이 들어왔다. 한 사람은 외팔의 도인으로 등에 장검을 지고 있고, 또 한 사람은 가벼운 도포 차림에 허리띠를 느 슨하게 맸다. 얼굴은 관옥 같고 복장은 근엄한 부잣집 귀공자다. 뒤 에 여남은 살 먹어 보이는 소년이 보따리를 받쳐 들고 따랐다. 이 네 사람은 금적수재인 여어동 추혼탈명검(追魂 奪命劍) 무진도인 및 신임 홍화회 총타주 진가락 그 밖의 소년은 진가락의 서동인 심연이었다. 홍화회 군웅들은 총타주와 이당가가 도착한 것을 보고 크게 반 기며 그들 앞으로 나가 인사를 했다. 서천굉은 양성협과 위춘화를 향해 이렇게 소근거렸다. '철담장 사람들을 유심히 지켜 보세요. 그들이 달아나면 곤란합 니다.」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고 주중영의 뒤로 돌아갔다. 안건강이 그들의 의도를 눈치채고 뭐라고 항의를 하려고 하는데 주중영이 그를 잡아당겼다. '잠간 참고 있으라구 뭐라고 하는지 어디 한번 들어 봐야겠네. 여어동이 두 장의 명함을 꺼내 들고 주중영의 면전으로 걸어가 허리를 숙였다. '홍화회 총타주 진가락과 이당가 무진도인에서 철담장 주 노영 웅께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맹건웅이 나가 명함을 받아 들고 주중영에게 바쳤다. 주중영은 명함의 글이 대단히 예의바른 것을 보았다. 진가락과 무진이 모두 후배를 자칭하고 나섰다. 앞으로 걸어가 두 손을 공손하게 마주 잡 았다. '귀한 손님께서 찾아오셨는데 멀리 나가 영접하지 못했습니다. 다들 앉으시지요.」 이때 대청 안은 방금의 치열한 대결 때문에 엉망진창으로 지저분했다. 「여봐라, 누구 없느냐? 주중영이 외치자 송선명이 몇 명의 장정을 데리고 들어와 걸상 과 탁자를 정돈하고 다시 촛불을 밝혔다. 그제야 손님과 주인이 각 기 자리에 앉았다. 동쪽 상좌에는 진가락을 비롯하여 무진 . 서천 굉 양성협,위춘화,장진,낙빙,석쌍영.장사근.여어동이 차례대로 앉았다. 심연은 진가락의 뒤에 섰다. 서쪽의 상좌에는 주중 영 맹건웅,안건강,주기가 앉았다. 여어동은 낙빙의 표정을 몰래 훔쳐 보았다. 아리따운 얼굴이 참담하여 가련하고도 미안해 견딜 수가 없다. 자기의 엉뚱한 행동을 혹시 석쌍영에게 말하지 않았나 불안했다. 귀견수 십이랑을 바라다 보니 침침한 얼굴이라 눈치를 읽을 재간이 없었다. 원래 여어동은 낙빙이 떠난 후 스스로 원망하고 한탄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될 지 암담하기 짝이 없었다. 그때부터 이틀 동안 이 근처의 10리 이 내의 주위만 할 일 없이 돌아다녔다. 낙빙이 다리에 부상을 입었는 데 혹시라도 공인들과 만나면 어떻게 될까 걱정스러웠던 것이다. 남몰래 그녀의 뒤를 쫓아다니다가 그녀를 보호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시종 그녀의 종적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그러한 그 녀가 다시 철담장에 들어와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사흘째 되는 날 저녁에 우연히 진가락과 무진을 만났다. 두 사람은 문태래가 철담장에 의해 팔렸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무진은 즉시 쫓아가 문태래를 구출하자고 주장했다. 「뭇 형제들이 모두 철담장으로 갔는데 그들은 주중영이 강호의 의리를 버린 사실을 모르고 있지 않습니까? 그 영감의 흉계에 혹시 걸려들었는지 모르는 일이니 우리 먼저 철담장으로 가 형제들을 만나고 나서 문 사가를 구하러 갑시다.」 진가락의 말을 듣고 보니 일리가 있었다. 그래서 여어동을 앞장 세우고 철담장으로 온 것이다. 그때는 바로 맹건웅이 탄자를 쏘아 촛불을 껐을 때라 대청 안이 칠흑처럼 캄캄했다. 만경란은 쌍방이 서로 인사를 교환하자 일이 크게 잘못되고 있 음을 직감했다. 슬그머니 문 옆으로 다가갔다. 막 빠져 달아나려고 하는데 서천굉이 따라와 소리를 질렀다. 「잠깐만 그냥 서 계시오. 모두들 분명히 말을 나누어 봅시다.」 만경란은 상대방의 인원이 많아 함부로 대들 수도 없는 일이라 할 수 없이 돌아와 주기 옆의 의자에 앉았다. 주기가 두 눈을 부릅 뜨고 소리를 질렀다. '비키지 못해요? 남의 집 아가씨 옆에 무었 때문에 앉는 거예요? 머쓱해진 만경란이 의자를 들고 멀리 비켜 앉았다. 주중영과 진가락은 쌍방의 인물을 소개하며 각자의 이름을 알렸다. 주중영이 들어 보니 상대방은 모두 무림에서 명성이 쟁쟁한 영웅들이다. 어딘지 무예가 출중하더니 과연 그럴 만하다는 수긍이 갔으나 총타주 진가락만은 아무리 보아도 존귀한 가문의 귀공자 같았다. 이런 사람이 어떻게 해서 강호의 호걸들을 통솔하게 되었으며 사람들은 어째서 그렇게 공손하게 굴까 궁금했다. 진가락은 주중영이 의아한 표정으로 자기를 훑어보고 있음을 알았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가까스로 참아 가며 점잖게 이런 말을 꺼냈다. '우리 회의 사당가 분뢰수 문태래가 악당들에게 포위되어 중상 을 입고 귀 철담장으로 피난을 왔습니다. 그동안 주 노선배님의 보 살펴 주심에 대하여 우리 회의 전체 형제들은 실로 감사하게 생각 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을 대표하여 고마운 인사를 드리는 바입니 다.」 말을 마치고 일어나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를 했다. 주중영이 친히 일어나서 답례를 했지만 몹시 괴롭고 거북했다. (보기에는 귀공자 같은데 만만치 않은 인물이구나. 점잖은 말로 따지고 들 줄도 알다니.) 진가락이 이런 말을 하자 무진,서천굉 ,위춘화 여어동이 마음 속으로 탄복을 했다. 장진만은 진가락의 말뜻을 알아듣지 못하고 떠들었다. '아닙니다. 총타주님은 모르십니다. 이 늙은이가 우리들의 넷째 형을 해쳤습니다.」 위춘화가 옆에 앉아 있다가 그를 끌어당기며 떠들지 말라고 했다. 진가락은 그의 말을 못 들은 체 여전히 겸손한 말투로 주중영을 향해 말했다. 「뭇 형제들이 심야에 이렇게 찾아뵈온 것은 예의에 벗어나는 줄 알고 있습니다. 이 점 선배님께서 널리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문 사가께서 곤경에 빠졌다는 소식을 듣고 조바심이 일어나 약간 거친 행동을 저질렀나 봅니다. 문 사가의 상처가 어떠한지, 주 선배님 께서 이미 의원을 청해다 치료해 주셨을 것으로 믿습니다. 좀 만나 게 해 주십시오.」 말을 마치고 일어서자 홍화회 군웅들도 따라 일어났다. 주중영은 뭐라고 대답을 해야 좋을지 몰라 망설였다. 「그들이 그이를 살해했어요. 총타주님, 저 늙은이를 죽여 그이의 원수를 갚아 주세요.」 낙빙이 흐느끼며 말했다. 진가락 등이 듣고 놀라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장진 -양성협 -위 춘화 등 몇 명이 병기를 들고 앞으로 나섰다. 이를 본 맹건웅이 몸을 꼿꼿이 세우고 나왔다. 「문 나리께서 여기 오셨던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만나게 해 주시오.」 서천굉이 그의 말을 끊고 나왔다. '문 나리와 부인, 그리고 이 여 나리께서 여기 오셨을 때 우리 장주님은 댁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제가 사람을 조가보로 보내 의원을 청해 오게 했습니다. 이것은 문 나리의 부인과 여 나 리께서도 직접 보셨습니다. 뒤에 그들이 나타난 것입니다. 우리가 문 나리를 잘 보호해 드리지 못하고 잡혀 가게 한 점은 매우 부끄 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진가락 총타주님께서 대접이 소흘하고 친구 하나 보살펴 주지 못했다고 책망하신다면 그건 우리로서도 달게 받겠습니다. 죽이건 살리건 마음대로 하십시오. 이 맹가 눈 하나 깔박이지 않고 감수하겠습니다. 그러나 여러분께서 우리 노장주님을 가리켜 친구를 팔아먹었다고 하시니 그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낙빙이 한 발짝 앞으로 나서며 삿대질을 했다. '이 맹가야, 뭘 잘했다고 뻔뻔하게 나서느냐? 내 한 가지 묻겠는 데 당신이 우리를 보고 지하실에 숨으라고 하지 않았소? 그렇거 은밀한 장소를 당신들이 그들에게 알려주지 않았다면 그들이 어떻게 알아냈단 말이에요? 맹건웅은 말이 막혔다. 주영걸이 그들의 술수에 말려들어 비밀을 누설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아무리 철없는 어린 아이가 했다 하더라도 그건 분명 철담장의 과실이다. '일이 벌어졌을 때 노장주께서는 정말 집에 계시지 않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용도 머리가 있고 사람에게도 주인이 b 는 법입니다. 철담장에서 벌어진 일이니 자연 장주님께 여쭈어 보 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디 한번 말씀 좀 해 보시지요.. 무진이 주중영을 향해 말하자 한쪽 옆에 웅크리고 있던 만경린 이 나섰다. '아들이 한 일인데 인정을 할 리가 있나요? 진가락이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주 노선배님, 지금 한 이야기가 사실입니까? 주중영은 이 자리에서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고개를 끄덕였다. 홍화회 군웅들이 와글거리며 포위망을 더욱 좁혔다. 어떤 사람은 주중영을 노려보았고, 또 어떤 사람은 진가락을 바라다보며 명령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진가락은 곁눈질로 만경린 을 바라다보며 물었다. 「이분은 누구십니까? 아직 존함을 듣지 못했습니다.」 낙빙이 먼저 대꾸했다. 「그는 악한이에요. 그이를 잡아갈 때 이 사람도 끼여 있었어요.」 진가락은 아무 말도 없이 천천히 만경란의 앞으로 다가서더니 갑자기 손을 뻗어 그가 수중에 들고 있던 강철을 뺏어 바닥에 집어던졌다. 그러고 나서 그의 두 손을 뒤로 비틀어 왼손으로 틀어 잡았다. 만경란이 (아이쿠!)비명을 지르며 잡힌 손을 빼려고 했지 만 빠지지 않았다. 진가락이 어찌나 손을 잽싸게 놀렸는지 사람들 은 똑똑히 보지도 못했다. 만경란의 무공이 결코 그렇게 만만치는 않다는 것을 방금 여기 있는 사람들이 모두 보았다. 그런데도 진가 락에게 잡히자마자 꼼짝달싹 못하자 비단 철담장 사람들만 놀란 것이 아니라 홍화회 군웅들까지도 속으로 감탄해 마지않았다. 그들 은 진가락이 천지괴협(天池怪俠)의 제자라는 사실만 알았지 도대체 무공이 어느 정도인지는 아무도 자세히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 다. 「네놈들, 문 사야를 어디로 잡아갔느냐? 진가락이 무섭게 추궁했지만 만경란은 입을 다문 채 오기만 보였다. 진가락이 손가락을 가지런히 해 가지고 그의 늑골 아래 중부 혈을 누르며 소리를 질렀다. 「말을 할 테냐, 안 할 테냐? 만경란이 날카롭게 비명을 질렀다. 「비겁하게 이 무슨 행동이람? 죽이고 싶거든 당신들 마음대로 죽이시오.」 미처 그 말을 다 하기도 전에 이마에서는 콩알만한 땀방울이 솟아났다. 진가락은 다시 그의 근축혈(筋縮穴)을 눌렀다. 만경란은 이 제 더 버틸 기운이 없었다. 「말할께요. 말할,,-,--.」 진가락은 손가락을 펴 그의 기유혈을 몇 번 건드렸다. 만경란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북경으로 압송했습니다.」 「그를------아직 죽이지 않았는가? 진가락이 물었다. '물론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국사범인데 함부로 죽일 수가 있겠습리까? 홍화회 군웅들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모두들 기뻐했다. 문태래가 죽지 않았다는 말을 듣자 철담장에 대한 증오가 상대적으로 반감 되었다. '당신------당신의 그 말이 사실입니까? 낙빙이 떨리는 소리로 물었다. '내가 무엇 때문에 속이겠어요? 만경란의 대답을 듣고 낙빙은 너무나 기뻐 또 한 번 정신을 잃고 뒤로 넘어졌다. 여어동이 부축해 주려다가 두려운 생각이 들O 자기도 모르게 그만 뻗었던 손을 움츠리고 말았다. 낙빙이 뒤로 넘어진 뒤에 장진이 달려와 그를 부축해 일으켰다. '형수님, 왜 그러세요? 하얗게 눈을 뜨고 여어동을 노려보았다. 옆에 서 있으면서 왜 부축해 주지 않았느냐는 책망이었다. 진가락은 만경란을 잡았던 손을 풀며 서동 심연을 바라다보았다 '이자를 묶어라.」 심연이 봇짐 속에서 오랏줄을 꺼내 만경란의 손을 등뒤로 돌려 결박을 지었다. 만경란은 눌렸던 혈도가 풀리기는 했지만 일시 손 발이 마비되어 반항할 기력이 없었다. '형제 여러분, 문 사가를 구출하는 일이 가장 급합니다. 여기 일은 다음에 와서 따지기로 합시다.」 진가락이 높은 소리로 외치자 홍화회 군웅들이 이구동성으로 응 답했다. 낙빙은 정신을 차리고 의자에 앉아 기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근가 진가락의 말이 떨어지자 자기도 일어섰다. 장진이 그를 부축했다. 대청 문으로 나오자 맹건웅이 배웅을 했다. 진가락은 문을 나오 자 주중영을 향해 손을 들었다. 「소란을 많이 피웠습니다. 대은대덕은 잊지 않고 지내겠습니다. 다음 기회에 뵙지요. 주중영이 듣고 보니 홍화회가 분명 다시 찾아을 것만 같았다. (양심에 물어도 부끄러을 바 없다. 너희들이 이해를 해 주지 않 고 있을 뿐인데 그렇다고 내가 그대들을 무서워하란 말인가?) (흥!)하고 코방귀만 뀔 뿐 한마디 대답도 하지 않았다. 「문 사가를 구출한 후에 이 장 꼽추 맨 먼저 찾아와 철담장 영웅 호한과 사생결단을 내겠소.」 장진이 나서서 말하자 양성협이 받는다. 「개 돼지만토 못한데 무슨 놈의 영웅호한이란 말이야. 주기가 듣고 대로하여 소리를 질렀다. 「아니, 누굴 욕하는 거예요. 「의리를 모르는 사람과 가정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을 욕하오.」 그는 주중영의 주먹으로 가슴을 맞았으나, 철포삼의 무공을 지니 고 있기에 중상을 입지는 않았지만 크게 골탕을 먹었다. 지금도 가 슴이 뜨끔거리는데 문태래를 주중영이 팔아먹었다니 그냥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주기가 앞으로 나서며 소리를 질렀다. 「당신이 뭔데 감히 우리 아버지를 욕해요. 「아니, 이 계집애가! 양성협이 말은 이렇게 했지만 남의 집 처녀와 다투고 싶지는 않 아 그냥 발길을 돌렸다. 초이규 주기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여자라고 깔보고 거들떠보지 않는 것이 더욱 미웠다. 평소에 그녀 는 늘 이렇게 생각했다. (남자나 여자나 다 같은 사람이다. 남자는 할 수 있는데 여자라 고 할 수 없다니 그게 말이 되느냐?) 양성협이 자기를 (계집애)라고 욕하고 또 경멸하는 표정까지 역 력하게 떠올렸으니 더는 참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 계집애가 어쨌단 말이에요? '들어가 오빠나 나오라고 해라. 양가 성을 가진 이 사람이 좀 봐 주어야겠다.」 「아가씨! 내 오빠라니. 주기는 이상해서 반문했다. 위춘화가 다시 나섰다. '친구를 팔아먹는 종자니 그 종자 좀 봐야겠다. 네 오라비가 우 리 문 사가를 팔아먹고 그래 지금 어디에 숨어 있느냐? 주기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니, 내게 무슨 오빠가 있다고 야단일까?) 맹건웅은 주기가 곤경에 처하자 홍화회가 만경란의 그 말을 오 해하고 있는 것으로 알았다. 일이 이렇게까지 경직된 마당에 사부 가 아들을 죽인 사실을 말해 보아야 이쪽만 허약해 보일 것 같았 다. 비굴하게 용서를 비는 것 같은 행동은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 래서 사매를 뒤로 밀고 자기가 나섰다. '여러분, 무슨 분부가 있으시거든 지금 말씀을 하세요. 공연히 다 음에 또 오실 것 없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지금 이 아가씨의 오라비를 만나 보겠다고 하는 것 아 니오?」 '아니, 이 꼽추가----. 내게 무슨 놈의 오빠가 있다고 쓸데없는 소리를 지껄일까? 주기가 나섰다. 장진은 또 한 번 (꼽추)라는 욕을 먹자 호랑이처럼 으르렁거리며 두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할퀴었다. 주기가 칼을 들어 막자 장진은 금나공을 펴 빈 손으로 그와 대결하기 시작했다. 위춘화가 쌍구를 펴며 맹건웅을 바라다보았다. 「맹 나리, 나와 대결해 봅시다.」 「그래 봅시다! 맹건웅으로서는 거절할 도리가 없었다. 이쪽에서는 장사근과 안건강이 각기 병기를 들고 맞붙었다. 「친구를 팔아먹은 비겁한 자는 나오라. 만약 나오지 않을 것 같 으면 이 철담장에 불읖 질러 태워 없애고 말겠다.」 주증영은 화가 나서 수염이 부들부들 떨리며 진가락을 향해 이 렇게 말했다. 「좋구나! 홍화회가 숫자가 많다고 마구 사람을 치는구나.」 진가락이 휘파람을 불고 손뼉을 두 번 치자 군웅들이 즉시 병기 를 거두고 물러나 그와 뒤에 섰다. 주중영은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이들 군웅들은 명령이 떨어지기만 하면 금방 복종하는구나. 방 금 내가 손을 멈추라고 소리를 질렀을 때는 내 딸조차 듣지 않았 었다.) 「주 노영웅, 우리를 보고 숫자가 많다고 책망하시니 제가 단신으 로 주 노영웅과 한번 대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진가락의 말에 주중영도 좋다고 찬성했다. 「아주 좋은 제안이오. 방금 진 당가의 솜씨를 보고 우리 모두 탄 복해 마지않았습니다. 영웅은 젊어서부터 알 수 있다고 하더니, 정 말 그 재주를 한번 보고 싶습니다. 그런데 병기를 가지고 하시겠소, 아니면 그냥 권각으로 하시겠土? 이 말에 석쌍영이 나섰다. 「대도가 대들보 위로 날아갔는데 무슨 놈의 병기를 가지고 대결 한단 말이오? 이 말이 떨어지자 주중영의 얼굴이 귀까지 빨개졌다. 각자 고개 를 들어 대들보 위에 꽃힌 금배대도를 바라다보았다. 갑자기 한 사람이 가볍게 날아올라가 오른손으로 대들보를 잡고 왼손으로 금배대도를 뽑은 뒤에 사뿐히 날아 내려왔다. 주중영의 면전으로 걸어가 한쪽 무릎을 꿇고 대도를 머리 위로 번쩍 들었다. 「주 노영웅님의 대도가 여기 있습니다.」 이 사람은 진가락의 서동인 심연이었다. 어린 나이에 이런 경공 을 지니고 있다니 보통 놀랄 일이 아니다. 심연의 묘기를 본 주중영의 얼굴이 더욱 난처해졌다. (흥) 콧소 리만 낼 뿐 심연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진가락을 주시했다. 「진 당가께서는 병기를 가지고 하시오, 나는 맨손으로 대결하리 다.」 맹건웅이 심연의 손에서 금배대도를 받았다. 「사부님, 화내지 마시고 칼을 가지고 대결하도록 하세요. 낮은 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사부가 상대방의 자극적인 말 을 듣고 오기를 부리는 것이 아닌가 걱정스러웠다. 병기를 가진 사람과 맨손으로 대결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불리했 다. 심연이 되돌아와 봇짐 속에서 진가락이 쓰는 독특한 병기를 꺼 내 두 손으로 공손히 전해 주었다. 서천굉이 낮은 소리로 진가락을 향해 속삭인다. 「총타주님, 저쪽에서 맨손으로 나오겠다고 하니 타주님께서도 권 각으로 나가세요. 승산이 있습니다.」 원래 서천굉은 문태래가 아직 살아 있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편 안해졌다. 주중영의 심정과 행동을 유심히 관찰해 보니 홍화회에 대해 참고 양보하는 것이 많아 별로 적의가 없는 듯한데 쌍방간에 병기를 가지고 대결한다면 살상을 모면하기가 어렵다. 맨손으로 대 결해야만 그래도 무슨 여지가 남게 되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는 또 주중영의 금배대도의 맛을 본 바 있다. 실로 그 공력이 막강했다. 자기와 위춘화가 2대 1로 상대를 했고 또 상대방이 전력을 경주하 지 않았는데도 당해 내기가 어려웠는데 진가락의 병기에 대한 조 예의 심천(深業)도 아직 확실히 몰랐다. 방금 만경란을 다루던 수 법이 빠르고도 날카로웠기에 그가 진가락을 향해 맨손으로 대결하 라고 한 것은 적의 강점을 피하고 이쪽의 장점을 살리자는 데 있 었다. 「그렇게 하리다.」 진가락도 찬성했다. 주중영을 향해 두 손을 공손히 마주 잡았다. 「주 노영웅으로부터 몇 가지 권법을 배우고 싶습니다. 사정을 보 아 가며 지도해 주십시오.」 「진 당가는 너무 겸양하지 마시오.」 주기가 아버지 옆으로 와서 그의 긴 옷을 벗겨 주었다. 「아버지, 저 녀석 점혈을 할 줄 알아요. 조심하셔야 해요.」 낮은 소리로 당부하면서 두 눈을 붉힌다. 성질이 날 때는 불같이 날뛰기도 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상대의 숫자가 많은데다가 하나하나 무공이 심오해 오늘의 사태가 험악함을 그녀라고 모를 리 없었다. 「내게 만약 불행한 일이 생기면 너는 안서(安西) 오숙숙(員叔叔) 을 찾아가야 한다. 거기 가서도 일을 저지르면 안 돼, 알겠느냐? 주기는 코끝이 시큰해 머리를 끄덕였다. 송선명이 장정들을 데리고 들어와 대청 안의 탁자와 의자를 옮겨 넓은 공간을 마련 해 놓았다. 사방에 대형 촛불도 켜 낮과 같이 밝혀 놓았다. 주중영이 중앙으로 걸어 나와 두 주먹을 포개어 인사 를 했다. 「자, 공격해 보시오.」 진가락은 긴 두루마기를 펄럭이며 서서히 앞으로 나갔다. 「제가 만약 지면 반드시 서북 무당파 동료들을 데리고 와서 선 배님께 사죄하겠습니다. 그리고 또 우리 홍화회 형제들은 오늘부터 병기를 가지고는 이 감숙 땅을 한 발짝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겠습니다.」 「장부일언은 중천금이오.」 진가락은 눈썹을 치켜세웠다. 「만약 선배님께서 지시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주중영은 거들먹거리듯 고개를 뒤로 젖히고 껄껄 웃으며 긴 수염을 한 번 쓰다듬었다. 「그때는 철담장 수십 명 식구의 생명을 홍화회의 손에 넘기리 다.」 「홍화회의 규모가 비록 작다고는 하지만 은혜와 원수는 분명히 가릴 줄 압니다. 어찌 무고한 사람들의 목숨까지 앗아가겠습니까? 만약 요행히 제가 이긴다면 문 사가의 행장을 폭로한 아드님만 우리가 데리고 가겠습니다. 문 사가를 무사히 구출하면 아드님은 머리터럭 하나 건드리지 않고 철담장으로 안전하게 되돌려 보내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만약 문 사가에게 불행한 일이라도 있다면 그땐 아드님의 생환은 불가능하게 되겠지요」 그의 이 말 한마디가 다시 주중영의 아픈 가슴을 찔렀다. 호랑이 같은 두 눈에 눈물이 괴었다. 「긴 말 그만두고 공격이나 하시오. 이렇게 말하며 오른손을 한 번 휘둘렀다. 진가락도 두 손을 공손히 마주 잡았다. 「선배님께서 먼저 공격을 하시지요.」 뭇 사람들은 그의 우아한 품위와 온화한 용모. 읍을 하면서 깍듯 이 예의를 갖추는 태도를 보고 탄복하는 사람도 있었고, 또 걱정하 는 사람도 있었다. 이러한 태도는 결사적인 용쟁호투를 치러야 하 는 입장에서는 갖추기 어려운 예절이었다. 주중영은 소림의 예의에 따라 왼손으로 주먹을 쥐고 들어오라는 시능을 했다. 그는 상대방이 나이도 어린데다가 스스로 후배를 자 처하고 나왔기 때문에 먼저 공격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거절할 수도 없는 입장이라 좌천화수오른 손의 주먹으로 허리를 보호하며 진가락의 얼굴을 향해 좌장을 날 렸다. 이 일 장의 위력은 대단해 미처 수 장이 이르기 전에 바람이 먼저 이르러 상대를 위협했다. 진가락은 한계보(寒鷄步)의 자세를 취해 오른손을 위로 치켜들어 수 장을 막아 치고 왼손으로 큰 원 을 그리며 상대방의 옆구리를 비스듬히 공격했다. 소림권 가운데 단봉조양(丹鳳朝陽)이었다. 이 일 초를 보고 홍화회와 철담장의 쌍 방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주중영이 소림권 고수라는 사실은 천하 가 다 알지만 진가락이 소림파 인물이리라고는 전연 생각지 못했 던 것이다. 주중영이 (어) 소리를 지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손을 늦추지 않고 황앵락가 , 회중포월(懷中抱月 )로 잇 대어 진격하자 진가락의 진퇴도 소림권의 수법에 따라 능숙하게 대항하는데 두 사람의 권법이 너무나 비슷해 서로 쟁투를 하는 것 이 아니라 동문끼리 대련을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두 사람의 나 이가 너무 차이가 있었다. 공력의 심천이 현격해 승부는 묻지 않아도 알 만했다. 홍화회 군 웅들은 은근히 걱정을 했고 철담장 사람들은 안도의 숨을 내쉬고 있었다. 엎치락뒤치락 10여 초를 싸웠다. 주중영은 소림권에 수십 년 동 안 심혈을 기울였다. 그래서 그 공력이 지고의 경지에 도달해 있어 주먹을 뻗을 때와 다리를 쓸 때 무서운 바람을 몰고 다녔다. 소림권에서는 심쾌 , 안쾌 , 수쾌(手快) 신쾌 보쾌(步快)를 제일 중시했다. 싸우면 싸울수록 그 속도가 빨라지는 것이 특징이오, 자유자재로 회전이 가능했다. 제일로 츰소 림 37세를 절반도 쓰지 않았는데 진가락이 벌써 열세로 몰렸다. 주중영이 돌연 대갈일성하며 몸을 왼쪽으로 돌리면서 번신벽격 으로 나오자 어찌나 빠른지 꼭 유성이 흐르는 듯했다. 진가락이 급히 몸을 뒤로 젖혔다. 하마터면 큰 일이 벌어질 뻔했다. 홍화회 군웅들이 대경실색했다. 진가락이 뒤로 몇 발짝 물러서더니 원숭이처럼 몸을 숙이고 다 시 대든다. 권법이 바뀌어 소림파 오행연환권으로 나 왔다. 주중영도 소림권으로 반격을 했다. 몇 초 지나지 않았는데 진 가락은 돌연 팔괘유신장으로 또 바뀌었다. 몸이 수 장을 따라다니며 온 대청 안을 헤엄쳤다. 촛불 아래 수십 명의 그림자가 오락가락하는 듯했다. 주중영은 이정어동의 침착한 태도 로 응전했다. 진가락의 몸이 빠르기는 했지만 결코 유리한 것은 아 니었다. 다시 수 초를 대결하는 동안 주중영이 좌장을 뻗었다. 그런데 상 대방의 내력에 의해 몸이 바깥문 쪽에 들어붙었다. 이 초는 바로 태극권 가운데 있는 여봉사폐였다. 그의 권세가 갑자기 느려지는 것이 보였다. 정신을 안으로 모으고 태극권 가운 데 이유극강(以柔克剛)의 법에 따라 상대방의 초술이 나오는 대로 움직이며 깼다. 사람들은 구경을 할수록 더욱 이상하게 생각했다. 원래 소림과 태극은 그 문호가 완전히 달랐다. 그래서 권법도 완전 히 달랐다. 이 두 가지를 겸비하고 있으니 실로 무림의 기이한 일 이 아닐 수 없다. 주중영이 정신을 가다듬고 조심스럽게 대항하자 쌍방의 공격이나 방어가 엇비슷했다. 그러나 전문가의 눈으로 볼 때는 방금 있었던 치열한 대결보다 더욱 험악한 것이다. 두 사람은 이렇게 20여 초 이상을 대결했다. 진가락이 갑자기 도련 권법을 또 바꿔 잠깐 동안에 무당장권 , 삼십육로수路)의 대금나수 분근착골수(分筋錯骨手) 악가산수사문권법 을고루고루 썼다. 사람들은 그의 권법이 무궁무진함을 보고 놀랐다. 동시에 그가 또 어떤 권술로 나올지 궁금히 여기게 되었다. 주중영은 변하지 않 는 것으로써 만 가지로 변하는 것에 대응한다는 원칙을 고수했다. 육로의 소림권을 두루두루 꿰뚫고 있었기 때문에 철통 같은 방어 와 더불어 가끔 날카로운 공격을 펴기도 했다. 그는 강호를 수십 년 동안 종횡한 무학의 고수이다. 크고 작은 쟁투를 수백 번씩 치렀으면서도 진가락처럼 각가지 권술에 능통한 상대는 아직 만나 본 일이 없었다. 그러나 수십 년 동안 한 가지 소림권을 차례대로 쓰면서 각가의 고수들과 대결하면서도 여태까 지 손해를 보지 않았다는 자신감에 넘쳐 있었다. 그는 평소 권술에 는 귀하고 천한 차이가 있을 수 없다고 믿었다. 한 가지에만 전념 하여 능통하는 것이 이것저것 배우는 것보다 월등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이제 진가락의 여러 가지 초술을 보니 그냥 입문만 하다 만 것이 아니다. 주중영은 마음속으로 혀를 내두르지 않을 도 리가 없었다. 격돌하는 가운데 주중영이 돌연 왼발을 번쩍 들고 쫓아가 진가 락의 긴 옷자락을 밟고 당당절장으로 좌장을 뻗어 그의 하체를 후려쳤다. 진가락은 몸을 뺄래야 뺄 방법이 없었다. 급한 가운데 이어타정으로 나왔다. 북 하는 소리와 함 께 옷 앞섶이 찢겨 나갔다. 주중영이 미안하다고 하자 진가락이 얼 굴을 붉히며 손가락을 모아 그의 허리를 찔렀다. 두 사람이 다시 어우러져 싸우기 시작했다. 옆에서 구경하는 사람들은 서로 얼굴을 바라다보았다. 진가락의 금나수 가운데 응조공이 또 섞여 나왔다. 공격할 때른 팔 괘장으로 나갔다가 거두어들일 때는 또 태극권이다. 제가의 무공이 이리저리 뒤섞여 눈이 어지러을 지경이다. 이제는 그의 권세와 수 법이 도대체 어느 파의 초술인지 분별하기가 어려웠다. 원래 이것은 천지괴협 원사土(賣土資)가 독창적으로 만들어 낸 독문(獨門)의 권술인 백화착권(百花轉學)이었던 것이다. 원사소는 어렸을 때 무학을 깊이 연구하다가 상당한 성취를 이룩했다. 뒤에 뜻을 잃을 만한 한 가지 어려운 일에 봉착하고 성격이 변 했다. 그래서 그는 옛 사람이 이룩하지 못한 일을 성사시킬 결심을 했다. 옛 사람이 써 본 일이 없는 권법을 창안하기로 한 것이다. 해내의 명가와 학사를 두루 찾아다니기도 했고 싸움판이 란 싸움판은 모조리 쫓아다니며 구경을 했다. 그래서 각가의 권술 을 완전히 통달했다. 중년에 이르러 천지(天池)에 은거하면서 백가 (百家)를 소상히 연구 창출해 낸 것이 바로 이 백화착권이다. 이 권법은 이것저것 포함되지 않은 것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 묘미는 실로 하나의 착(錯) 자애 숨어 있었다. 매 일 초마다 각 파의 조상 전래로 내려오던 수법과 완전히 같으면서도 틀렸다. 손을 쓰면 상 대는 이것이 어느 파의 초술임을 알았다. 그러나 맞을 지경에 이르러서는 그 방위나 수법이 다르다는 것 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 오묘한 요지는 (같으면서도 아니.,아니면 서도 같은) 데 있었던 컷이다. 옆애 있는 사람들은 권각이 모두 틀 린 것임을 분명히 안다. 틀린 것임을 분명히 알기 때문에 방어할 방법이 없었다. 무학의 고수들은 견문이 풍부하기 때문에 제파의 무공에 대하여 자기 나름대로의 정견을 가지고 있었다. 백화는 문 제가 아니지만 착(錯) 자만은 여간 곤란하지 않았다. 원사소가 이 권술을 창안해 냈을 때는 자기의 연적을 한번 시원 하게 이겨 다시는 얼굴을 들 수 없게 만들어 놓겠다고 했는데 지 금까지 그럴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여태까지 한 번토 써 본 일이 없었고 그의 제자도 오직 진가락 한 사람뿐이었다. 진가락은 먼저 내외 각대 문파의 주요 권술 , 병기를 배우고, 그 다음에 금나-암기 -점혈 ,경공의 기초가 단단해진 뒤에야 비로소 이 백화착권을 익혔다. 오늘 주중영과 더불어 백여 초를 대결하면 서 하마터면 패할 뻔하기까지 했다. 철없이 큰소리만 친 것이 후회스럽기도 하거니와 천하의 영웅을 지나치게 업신여겼다는 자책감도 들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이 괴상한 권법을 써 본 것인데 과연 그 위력이 대단했다. 주중영이 크게 놀라 쌍권을 휘둘러 얼굴을 가린 채 계속 뒤로 밀렸다. 상대방의 권법이 너무나 괴상해 주먹으로 치고 손가락으로 찌르며 거기에 도검(刀劍)의 초술까지 숨어 있어 평생 보지도 듣지 도 못한 괴술이었다. 주기는 부친이 패퇴하자 놀라 크게 소리를 질 렀다. 「도대체 무슨 놈의 권법이 그 모양이에요. 말도 되지 않는군 잘못 배운 재주를 가지고 덤벼들다니 정말 뻔뻔해요.」 그녀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밖에서 두 사람이 뛰어들어오 며 소리를 질렀다. 「손을 멈추시오! 육비청과 조반산이 도착한 것이었다. 이때 대청 밖에서 또 누군 가가 소리를 질렀다. 「불이야, 불! 빨리 물을 길어다 불을 꺼요.」 떠들썩한 소리 가운데 화광이 벌써 대청 안을 비췄다. 주중영은 급작스런 공격을 받고 권법이 크게 산만해 있었다. 그 런데 (불이야!)하고 외치는 소리를 들은 것이다. 자기 집에서 일 어난 불이니 무관심할 수는 없어 잠깐 신경을 그쪽으로 쓰는 순간 갑자기 왼팔이 뻣뻣해지며 마비 현상이 일어났다. 무릎 위의 양관 혈을 찔린 것이다. 비실비실하다가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주기 가 달려들어 부축했다. 「아버지 ! 단도를 들어 부친을 방어했다. 적이 이 순간을 노리고 대들까 봐 무서웠기 때문이다. 진가락은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뒤로 세 발짝 물러섰다. 「주 노영웅,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주중영은 화가 났다. 「그래 내가 졌소. 내 아들을 넘겨 줄 테니 나를 따라오시오! 주기를 붙잡고 기우뚱기우뚱 밖을 향해 걸어나갔다. 진가락과 육비청 및 홍화회 군웅들은 주중영의 뒤를 따라 2개의 마당을 건넜다. 이때 불길은 더욱 치솟아 뜨거운 열기가 사람을 향 해 가깝게 다가왔다. 캄캄한 밤에 화광이 하늘을 찌르고 검은 연기가 사방에 가득했 다. 맹건웅과 안건강 송선명 등은 장정을 이끌고 나가 불길을 잡 기에 정신이 없었다. 대의(大義)를 위하여 이 광경을 본 서천굉이 이런 제안을 했다. 「우리 일단 힘을 합해 불길을 잡은 뒤에 다시 말을 하지요.」 「아니, 사람을 시켜 불을 지르게 하고 이제 와서 호인 행세를 하 려고 들다니 너무 뻔뻔해요.」 주기가 욕을 했다. 그녀는 방금 서천굉이 (불을 지르라)고 외치 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에 그가 사람을 시켜 철담장에 불을 지르게 했다고 믿었다. 분하고 슬픈 심사인데 상대방의 숫자가 많고 적고 를 돌볼 계제가 아니라 칼을 들어 서천굉을 내리쳤다. 서천굉이 피 해 달아나자 다시 쫓아가려고 하는 것을 조반산이 막았다. 주기는 단도를 들고 펄쩍펄잭 뛰었다. 조반산이 가볍게 손을 뻗 어 칼등을 누르자 한 자루 칼의 무게가 천 근이 넘는 것 같았다. 붙들고 있기에도 힘이 벅차 반 발짝도 옮길 수가 없었다. 주중영은 이 모든 것을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는 듯이 그냥 뒷채 로 들어갔다. 사람들이 따라 들어가 보니 중앙에 제단이 차려져 있 고 영전 앞에 크개의 촛불이 가물거리고 흰 휘장이 드리워져 있어 음산하고 쓸쓸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주중영이 흰 휘장을 걷자 검 은색 작은 관 하나가 나타났다. 뚜껑을 닫지 않은 관이다. 원래 콕 중영은 아들이 철담에 맞아 죽은 후 누이인 주기가 밖에서 돌아오지 않아 염을 하지 않고 있었다. 주기가 돌아오면 마지막으로 동생으의 얼굴이라도 한 번 보게 한 뒤에 염을 할 생각이었다. '내 아들이 문 나리의 현장을 발설했던 것은 사실이오. 내 아들 여기 있으니 당신들 마음대로 데려가구려.」 심사가 어지러워 말도 부들부들 떨려 나왔다. 사람들은 희미한 촛불 밑에 한 어린애의 시체가 관 속에 누워 있음을 보았다. 모두들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내 동생은 나이가 열 살밖에 되지 않아 철이 없어요. 그래서 문 나리가 숨은 장소를 말했지요. 아버지께서 집으로 돌아오신 후에 이 사실을 아시고 죽였어요. 어머니는 화가 나서 집을 나가 버리슷 구요. 이만 하면 여러분 앞에 떳떳할 것으로 아는데, 그래도 부족해서 우리 부녀를 죽여 버리려고 해요? 주기의 말을 들은 홍화회 사람들은 부끄러움에 얼굴을 들지 못 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주중영을 원망했으니 이건 보통 잘못된 일 이 아니다. 장진은 곧은 사람이라 제일 먼저 나서서 주중영을 향해 이마를 조아리며 사죄했다. '나리, 정말 득죄를 했습니다. 이 장 꼽추 먼저 사죄드립니다.」 일어서며 주기를 향해서도 읍을 했다. '아가씨, 나를 꼽추라고 놀려도 다시는 화내지 않겠숱니다.」 주기는 그의 말이 우스웠지만 웃음이 나오지는 않았다. 이때 진가락을 위시하여 주중영을 욕했던 낙빙 서천굉 . 양성 협 위춘화 등도 몰려와 분분히 사죄를 했다. 진가락은 허리를 숙 여 인사를 하면서 주중영의 눌러 놓았던 무릎의 혈도를 슬그머니 풀어 주었다. 그러나 아무도 이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주중영은 답례를 하면서도 마음이 괴로워 말을 꺼내지 못했다. 「주 노영웅께서 이토록 홍화회를 위해 애써 주신 것, 우리가 죽 는 날까지 잊지 않겠습니다. 형제 여러분, 불 끄는 일이 급하니 우 선 불부터 끕시다.」 여러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하고 우르르 밖으로 뛰어나갔다. 불꽃이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기왓장이 무너져 내려왔다. 대들보 무너지는 소리와 장정들의 고함소리가 뒤섞여 문자 그대로 아비규 환이었다. 안서는 중국에서도 바람이 많이 불기로 유명한 곳 이다. 1년 365일 어느 하루 바람 불지 않는 날이 없었다. 게다가 또 바 람이 몹시 강했다. 이때도 바람이 세차게 불어 걷잡을 수 없이 맹렬히 타올랐다. 크나큰 철담장이 이제 완전히 쑥밭이 될 판이다. 실내는 몹시 뜨거웠고 흰 휘장에도 불이 붙었지만 주중영은 넋을 잃은 채 관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잠시 후 화염이 혀를 날름거 리며 실내로 옮겨 들어왔다. 위춘화, 석쌀영 -장사근 등도 모두 불 을 끄기 위해 밖으로 뛰어나갔다. 「아버지, 우리도 밖으로 나가요.」 딸이 말했지만 주중영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관 속의 아들만 물 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아들의 시체를 타게 내버려둔 채 차마 떠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장진이 허리를 구부렸다. 「팔가, 관을 제 등 위에 올려놓으세요.」 양성협이 관 양쪽을 번쩍 들어 장진의 곱사등 위에 올려놓았다. 장진은 허리를 숙일 것도 없이 그냥 밖을 향해 달려나왔다. 주기가 아버지를 부축하고 다른 사람들이 앞뒤를 호위하여 밖에 있는 빈 터로 나왔다. 그들이 나오자마자 뒷채의 지붕이 내려앉았 다. 「큰일날 뻔했구나. " ---, 모두들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심연이 갑자지 소리를 질렀다. 「아이쿠, 그 만가 녀석이 그냥 안에 있는데. 「그런 나쁜 놈 타 죽게 그냥 내버려두는 게 좋아.」 석쌍영의 말이었다. 「표행의 그 녀석만 재수가 좋군요.」 낙빙의 말에 진가락이 누구냐고 물었다. 낙빙이 동조화의 모습을 말해 주었다. 맹건웅도 그가 어떻게 해서 세 번이나 철담장에 들어왔었나를 설명하면서 그가 눈치를 채고 소식을 알려 문태래를 잡아갔으며 마지막으로 돈을 우려내려고 했었다는 이야기까지 했다. 「맞아요 틀림없이 그놈이 불을 질렀습니다.」 서천굉이 외치는 소리를 듣고 모두들 의심할 것도 없이 바로 그자라고 단정했다. 서천굉은 곁눈질로 주기를 살펴보았다. 주기도 그를 곁눈질하고 있었는데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치자 속이나 한 것처럼 고개를 돌렸다. 주기가 중얼거리듯 혼자 말했다. (난쟁이가 뱃속에 꿍꿍이속은 많아 불 지를 생각을 먼저 했던 모양이지.) 「자, 우리 그놈을 잡아 옵시다. 서 칠가-양 팔가-위 구가 십가 네 분은 지금 동서남북으로 흩어져 그놈을 수색하시오. 못 잡든 한 시간 이내로 돌아와 소식을 알려 주오.」 진가락의 지시를 받은 네 사람이 즉시 사방으로 흩어졌다. 이때 육비청과 주중영은 정식으로 인사를 나누면서 그동안 간에 흠모해 왔던 정을 나누었다. 진가락도 주중영을 향해 다시 한번 정중한 사과의 인사를 했다. 「주 노선배님께서 저희 홍화회를 위해 주시려다 이 지경으로 해를 입으셨으니 그 대인대의를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저희가 어 떤 방법을 강구해서라도 주 노영웅의 부인을 찾아 모셔오고 철담 장이 불타 버렸으니 이것도 홍화회가 책임을 지고 다시 지어 놓겠 습니다. 여러 장정들이 입은 손해에 대해서도 홍화회가 배상을 하 며, 그들의 수고에 대해서도 달리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주중영은 수십 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이룩해 놓은 철담장이 하 루 만에 타 재가 되는 광경을 바라다보며 마음 아파했다. 그러나 진가락이 이런 말을 하고 나오자 완강하게 사양을 했다. 「원 별 말씀을 다 하십니다. 돈이나 재산이란 것은 원래 자기의 소유로 영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다시 또 그런 말씀을 하신다면 저를 친구로 생각해 주시지 않는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는 평소 친구를 가장 소중하게 여겼다. 이제 오해도 눈 녹듯 풀린데다가 그들의 불 끄는 행동이라든가 부상당한 사람들을 구출 해 내는 동작이 모두 자기 자신을 돌보지 않는 열성에서 우러나오고 있음을 목도했다. 새삼스럽게 그들에 대한 존경심이 생기며 한 꺼번에 이렇게 많은 영웅들을 사귀게 된 것이 마냥 통쾌했다. 그러 나 시선이 다시 어린 아들의 관에 미쳤을 때는 또다시 마음이 침울해 졌다. 한참 동안 바쁘게 돌아가고 있는데 위춘화와 장진이 먼저 돌아 와 진가락을 향해 보고했다. 10여 리를 달려가 보았지만 동조화이 종적을 찾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잠시 후에는 서천굉과 양성협도 속속 되돌아왔다. 동남방 몇 리 이내에 사람의 그림자라고는 없었 다는 것이다. 불길이 會員 타오르기 시작하자 동조화가 그 혼란을 이용해 멀리 달아난 모양이었다. 진가락이 이렇게 말했다. 「그자가 진원표국 사람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다행히 알고 있으 니 제놈이 도망을 치면 도대체 어디로 달아나겠습니까? 일후에 꼭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주중영을 향해 물었다. '주 노선배님, 여기 있던 식구들을 당분간 어디에 가 있으라고 하시렵니까? '날이 새면 우선 적금위로 보낼까 합니다.」 '제게 생각이 하나 있는데 선배님 의향이 어떠실지 모르겠습니 다.」 서천굉의 말을 진가락이 받았다. '우리 이 칠가의 별명이 무제갈입니다. 꾀가 많기로 유명하지요.」 주기가 서천굉을 향해 눈을 하얗게 흘기고 코웃음을 친 뒤에 맹건웅을 항해 이렇게 말했다. '맹 대가, 제갈량보다 더 위대한 사람이 있다는군요. 무예까지 알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겠네요.」 맹건웅은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어디 한번 말씀을 해 보시지요.」 주중영이 재촉을 했다. 「그 동가 성을 가진 작자가 도망을 쳤으니 분명 거짓말을 보태 수다를 떨 것입니다. 게다가 만가 성을 가진 녀석이 돌아오지 않았 으니 분명 관가에 알릴 뿐만 아니라 많은 죄를 선배님께 뒤집어씌 울 것입니다. 제 생각 같아서는 철담장 식구들이 모두 서쪽으로 가 서 잠시 피해 있는 것이 상책일 듯싶습니다. 거기 가서 일이 돌아가 는 사정을 살펴 행동해야겠지요. 지금 동쪽에 있는 적금위로 간다 는 것은 아무래도 타당치 못합니다.」 주중영도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라 서천굉의 말을 듣자 그럴 듯 하다고 고개를 끄덕 였다. '정말 옳은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무제갈이란 별명에 어울리는 생각이십니다. 그럼 내일 안서로 가야 하겠습니다. 안서에 제 친구 가 있는데 보름이나 한 달쯤 거기 묵는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주기는 부친이 서천굉을 칭찬하는 것이 못마땅했다. 서천굉이 철 담장에 불을 지르라고 조종하지 않았다는 것은 더 의심할 여지가 없었지만 처음부터 인상을 흐려 놓았기에 시간이 갈수록 꼴 보기 가 싫었다. 주중영이 송선명을 향해 다음과 같이 분부했다. 「자네가 여기 식구들을 데리고 안서로 가오. 대관인 집에 묵도록 하게. 모든 경비는 거기에 있는 우리 분점에서 찾아서 쓰도록 하게나. 내 일이 끝나면 다시 자네를 부를 테니까.」 「아버지, 우리는 안서에 안 가나요? 「물론이다. 문 사야가 우리 집에서 잡혀 갔는데, 그냥 수수방관할 수 있겠느냐? 함께 찾아봐야지.」 주기 ,맹건웅,안건강 세 사람은 문태래를 구출해 내기 위해 함께 가야겠다는 주중영의 말을 듣고 기뻐했다. 「주 노선배님의 호의는 대단히 감사합니다. 그러나 문 사가로 말 할 것 같으면 공인을 살해한 국사범이요, 여러분은 분수를 지키는 양민이시라 저희와는 입장이 다릅니다. 직접 나서시는 것은 여러 가지로 불편하실 것입니다. 주 노영웅께서는 좋은 계략이나 저희들 에게 알려 주십시오. 그놈들을 죽이고 문 사가를 구출해 내는 일은 우리가 직접 나서서 처리하겠습니다.」 진가락의 말에 주중영은 긴 수염을 한 번 어루만졌다. 「진 당가께서는 우리가 연루되는 것을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내가 친구를 위해 나서려는 것을 막으시려 한다면 저를 친구로 생 각해 주시지 않는 걸로 알겠습니다.」 육비청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한마디 거들고 나왔다. 「주 노영웅이 의를 태산보다 더 중히 여기고 계심은 강호에서 다들 알고 존경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만약 그런 분이 아니라면 제가 평소 알지도 못하는 처지에 어찌 문 사야를 철담장에 추천할 수 있었겠습니까? 진가락이 잠시 동안 침묵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주 노영웅께서 그토록 의리를 중히 여기시니 홍화회는 영원토 록 그 큰 덕에 감사할 것입니다.」 낙빙이 앞으로 걸어나와 공손하게 절을 했다. 「도와 주시겠다고 하시니 우선 그이를 대신해 고마운 인사를 드 립니다.」 주중영이 황급히 그녀를 부축해 일으켰다. 「부인은 너무 심려하지 마십시오. 문 사야를 구해 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사람 노릇을 못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고개를 돌려 진가락을 바라다보았다. 「일을 서둘러야 하겠습니다. 속히 분부를 내리십시오.」 「원 별 말씀을 다 하십니다. 주 노영웅과 육비청 선배님께서 상의하시는 대로 그 뜻을 쫓겠습니다.」 「진 당가는 너무 겸양하지 마십시오. 홍화회는 주인이요, 우리는 객이 아닙니까? 그런 법은 없는 겁니다.」 육비청도 한마디 거들었다. 진가락이 몇 번이나 사양을 했지만 주중영과 육비청이 고집을 부렸다. 「두 분의 뜻이 그러시면 제가 외람되게 나서겠숱니다.」 홍화회 형제들을 향해 각각 임무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이때 철 담장은 아직도 불타고 있어 매캐한 냄새가 공기 속에 가득했다. 그 러나 뭇 형제들은 조용히 명령에 귀를 기울였다. 첫째, 금적수재 여어동은 먼저 출발하여 서천쌍협 상혁지 , 상백 지 형제와 긴밀한 연락을 취하며, 문태래의 행방을 찾는 대로 즉시 돌아와 보고할 것. 둘째, 천비여래 조반산은 석감당 장진과 귀견수 석쌍영 을 인솔할 것. 셋째, 추흔탈명검 무진도인은 철탑 양성협과 동두악어 장사근을 인솔할 것. 넷째, 홍화회 총타주 진가락은 구명표자 위춘화와 서동 심연을 인솔할 것. 다섯째, 금리침 육비청은 신탄자 맹건웅과 독각호(獨角 虎) 안건웅을 인솔할 것. 여섯째, 철담 주중영은 초이규 주기와 무제갈 서천굉, 원앙도 낙빙을 인솔할 것. 진가락이 각자에게 임무를 부과하여 또 이렇게 말했다. 「십사제는 지금 즉시 출발하시오. 그 밖에 다른 분들은 여기서 취침을 한 뒤에 날이 밝는 대로 출발하여 가욕관을 지난 뒤에나 만나도록 합시다. 노상에서 관가의 검문이 심할 것이니 각별히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뭇 사람들이 일제히 대답을 했다. 여어동이 남아 있는 사람들을 향해 인사를 한 뒤 말에 올라 달리며 머리를 돌려 낙빙을 훔쳐보았다. 낙빙은 고개를 숙인 채 그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는 한숨을 쉬며 말에 채찍을 가했다. 사람들은 각자 깨끗한 장소를 골라 잠자리를 마련했다. 진가락은 서천굉을 향해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 「칠가, 주 노영웅이 우리 때문에 집을 망쳤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도와 사가를 구해 주겠다고 나섰으니 노상에서 각별히 조심을 해야 하오. 관가놈들이 그가 누군지 알아보지 못하도록 신경을 쓰 시오. 넷째형수도 부상을 입었으나 사가를 생각하는 마음 간절하 오. 그래서 일단 싸움이 벌어지면 자기 몸을 돌보지 않을 것이니 그 점도 특별히 유념하오. 될 수 있는 대로 천천히 길을 가도록 하 시오. 제일 좋은 방법은 싸움이 일어나지 않도록 미리 조심하는 거 요.」 서천굉이 그러마고 대답했다. 두 시간쯤 잤을까, 벌써 날이 밝았다. 천비여래 조반산이 장진과 석쌍영을 데리고 먼저 출발했다. 낙빙은 밤새 눈을 붙일 수가 없었다. 장진을 불러 특별히 당부의 말을 했다. 「십가, 노상에서 일을 저지르면 안 돼요. 「형수님, 안심하십시오. 사가를 구출하는 일이 크니 조심해야지 요.」 맹건웅과 송선명 등은 주영걸의 시신을 염하고 부근에 안장했다. 주기는 땅바닥에 엎드려 통곡을 했고, 주중영 또한 노안에 눈물을 글썽거렸다. 진가락 등도 무덤을 향해 예의를 갖추었다. 얼마 후 무 진,진가락,육비청 등이 차례로 출발하고 맨 마지막으로 주중영 및 송선명 등이 그곳을 떠났다. 조가보에 도착하자 그곳 사람들이 철담장이 불에 탔다는 소식을 듣고 몰려나와 위로했다. 주중영은 그들을 향해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잘 아는 은포에 가 천 냥의 노자를 가져왔다. 식사가 끝나자 송선명 등 일행과 작별하고 동쪽을 향해 말을 달렸다. 노상에서 주기는 서천굉을 상대로 계속 시비를 걸었다. 그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눈에 거슬리는 것뿐이다. 주중영이 노한 얼굴로 꾸짖어도 소용이 없었고 낙빙이 웃으며 말리는 말도 듣지 않았다. 서천굉은 그녀가 무슨 말을 하든지 참고 양보했지만 주기 는 그를 놔 두지 않았다. 기회 있을 때마다 조롱하고 냉소하면서 체면을 보아 주지 않았다. 견디다 못해 서천굉도 화가 났다. (내 네 아버지 체면을 보아 참을 뿐이지, 정말 무서워서 그러는 줄 아느냐? 이 무제갈 강호에 종횡하면서 유명하다는 영웅호걸이 모두 나를 존경하는 처지인데, 네까짓 계집애한테 수모를 당하고 있다니 이건 정말 체면이 말이 아니로구나.) 그는 말에 올라서도 일부러 맨 마지막으로 처졌다. 한마디 말도 없이 객점에 들어 식사가 끝나면 금방 자리에 누워 잠만 자고 날 이 밝으면 즉시 길을 재촉하고 하여 사흘 만에 가욕관에 도착했다. 주중영은 딸이 너무나 말을 듣지 않자 슬그머니 불러다 몇 차례나 책망하고 타일렀다. 주기는 아버지 앞에서는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지만 서천굉을 보기만 하면 참지 못하고 또 시비를 걸었다. 주중영은 이럴 때 만약 제 어미라도 있으면 어떻게 타이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자 화가 나 집을 뛰쳐나간 아내가 지금쯤 어디를 헤매고 있을지 궁금하고 괴로웠다. 또한 번민하고 있 는 서천굉을 볼 때마다 민망하기 짝이 없었다. 그날 밤 그들은 숙주(肅州)에 도착했다. 네 사람은 동문 근처에 있는 객점에 들었다. 서천굉이 잠시 밖으로 나갔다 돌아와 이렇게 말했다. 「십사제가 아직 사가를 쫓아가지 못했고 또 서천쌍협과 만나지 도 못했답니다.」 「그걸 어떻게 알아요? 왜 맨날 거짓말만 해요? 주기가 그냥 있지 못하고 쐐기를 박자 서천굉이 그녀를 향해 하 하얗게 눈을 흘겼다. 주중영은 딸이 또 무례한 말을 꺼내지 않을까 걱정스러워 이런 말을 했다. 「여기는 옛날 주천군(酒泉郡)이라고 불렀는데 술이 가장 유명하다. 칠야, 나와 함께 동대가에 있는 행화루에 가서 술 한잔 나누고 옵시다.」 서천굉이 좋다고 하자 주기도 나섰다. 아버지, 저도 가요, 네. 서천굉이 픽 웃었다. 「왜 웃는 거예요? 내가 가면 안 되나요? 주기가 시비를 걸자 서천굉은 머리를 돌린 채 못 들은 체했다. 이를 본 낙빙이 웃었다. 「동생,우리 함께 가요. 여자가 술집에 간다고 뭐 안 될 게 있겠 어요? 주중영은 호방한 사람이라 말리지 않았다. 네 사람이 행화루에 도착하여 술과 안주를 시켰다. 숙주의 샘물은 차고 시원하기로 유명하고, 그 물로 빚은 술은 향기가 그윽해 서북 제성 가운데 제일로 친다. 심부름꾼이 숙주에서도 제일 유명 하다는 구운 떡을 내다 놓았다. 연하고도 감칠맛이 있어 주기는 먹 으면서도 계속 칭찬을 했다. 주루에는 이목이 많아 문태래의 일을 상의하기에 곤란했다 그래서 네 사람은 오는 도중에 보았던 경치 이야기만 나누었다. 주중영이 갑자기 서천굉을 향해 이런 질문을 했다. 「귀회의 진 당가는 젊은데다가 꼭 부잣집 귀공자처럼 생기셨는 데도 각가 각파의 권술에 능통하시더군요. 정말 보기 드문 일이 아 닐수없습니다. 제가 그와 대결을 할 때 맨 마지막에 쓴 그 권법 은 이상하기 짝이 없었는데 칠야께서는 그 이름이 무엇인지 알고 있나요? 주기도 마음속으로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던 일이라 아버지가 묻 는 것을 보고 자기도 귀를 기울였다. 「저도 이번에 진 당가와 처음 만났습니다. 그분이 열다섯 살 때 바로 우리의 우 노당가께서 천산으로 보내 천지괴협 을 사부로 모시게 했다더군요. 그동안 계속해서 강남에 온 일이 없습니다. 무진도장과 조 삼가 등 나이 많은 몇 분만 그가 어렸을 때 만났었답니다. 그 권법은 내가 보기에 아마 천지괴협이 독창적 으로 만들어 내신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홍화회의 명성이 대강남북에 떨치고 있는 총타주라는 사람이 너무 젊은 귀공자라 처음 만났을 때 무척 궁금했었습니다. 나중에 그와 말을 하게 되고 또 대결을 하면서야 비로소 무공이 대단 한 분임을 알게 되었지요. 뽄만 아니라 견식도 대단히 넓으시더군 요. 확실히 위대한 인물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정말 인상과는 딴판 이시더군요.」 서천굉과 낙빙은 주중영이 그들의 수령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자 마냥 흐뭇했다. 그러나 낙빙은 남편의 안위가 근심스러워 시종 이마의 근심을 지우지 못했다. 「이 몇 년 동안 무림에 적지않은 인물이 나타났지요. 양자강 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내듯 새로운 인물이 속출했습니다. 우선 아우님같이 지용을 겸비한다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요. 그 재주가 헛되지 않도록 좋은 사없 한번 하세요.」 주중영의 말에 서천굉이 옳은 말씀이라고 연방 고개를 끄덕거렸 다. 그는 주중영이 (좋은 사업을 한번 하세요)라고 격려한 말에 대해 수긍을 한 것인데 주기는 여전히 코웃음을 쳤다. (아버지가 칭찬해 주니까 창피한 것도 모르고 맞장구를 치네.) 주중영이 술잔을 들이마셨다. 「귀회의 우 노당가는 소림파 고수라고 늘 듣고 있었는데, 그렇다 면 우리의 문호와 대단히 가깝습니다. 나는 오래 전부터 그분을 뵙고 가르침을 받고 싶었지만, 한 분은 강남에 계시고 또 나는 서북 에 있어서 그 소원을 성취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그분이 세상을 뜨시고 말았군요. 나는 그분이 어디서 어떤 스승을 모시고 배우셨 나 물어 보았지만 사람들의 말이 각기 달라 시종 확실한 소식을 듣지 못했습니다.」 「우 노당가 본인 스스로도 말씀을 하신 적이 없다가 임종하실 때 비로소 복건(福建) 소림사에서 무예를 익혔다고 하시더군요.」 「나는 하람(河南) 소실산(小室山) 소림사 본사에서 배웠읍니다. 북소림과 남소림이 원래 일가니 저와 우 노당가가 비록 같은 절에 서 공부한 것은 아니지만 결국 동문이나 다름이 없군요.」 주중영은 또 이런 말도 했다. 「사람들이 늘 홍화회 총타주의 무공이 소림파와 몹시 흡사하다 는 말들을 많이 하더군요 내가 그분을 존경하기 때문에 소림파 가운데의 서열이 어떻게 되는가 알아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아는 사람이 없어요. 그래서 이상하다고 생각했지요. 그토록 유명한 인물이 만약 소림의 문인이라면 모를 리 있겠습니까? 그래서 몇 번 편지를 올리기까지 했지요. 회답은 겸허하기 짝이 없으면서도 소림 동문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말씀이 없었답니다.」 「우 노당가가 자기 무공의 문파에 대해 말을 꺼내시지 않은 것 은 그만한 곡절이 숨어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그분도 역시 친 구 사귀기를 제일 좋아하셨습니다. 선배님 같은 인정 많으시고 의 리를 중히 여기시는 분을 만났더라면 아주 친하게 지내셨을 텐데 요.」 「홍화회 사람들은 사람을 깔보기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낙빙 언니, 제가 언니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에요.」 주기가 냉랭하게 말참견을 하고 나섰지만 서천굉은 거들떠보지 도 않았다. 주중영이 또 물었다. 「그래 우 노당가께서는 무슨 병으로 세상을 떠나셨나요? 그분의 연세가 나보다 별로 많지도 않으셨을 텐데요.」 「그분이 세상을 떠나셨을 때의 연세가 예순다섯 살이었습니다. 그분이 병든 이유를 말하자면 이야기가 꾀 깁니다. 여기는 이목이 많으니 우리 오늘 저녁 몇십 리 더 나아가 조용한 장소에 도착하 거든 자세히 말씀드리지요.」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군요.」 주중영이 일어나 술값이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다. 여기 잠시 동안만 기다려 주세요. 제가 내려갔다 금방 오겠습니다. 「내가 낼 테니 공연히 그러지 마시오.」 「네, 알겠습니다.」 서천굉이 재빠른 걸음으로 내려갔다. 「맨날 무슨 놈의 꿍꿍이속이 저리도 많을까! 주기가 입을 삐죽 내밀자 주중영이 그러면 못쓴다고 나무랐다. 「여자 아이가 좀 얌전하게 굴지 못하겠느냐? 동생, 우리 칠가는 꾀가 많기로 아주 유명한 사람이에요. 공연히 건드렸다가는 큰코 다쳐요.」 낙빙이 웃으며 말하자 주기는 또 (흥!)코웃음을 친다. '남자가 키는 왜 그리 작아요? 서 있어도 나만 못한데 뭐때문에 그를 무서워하겠어요! 주중영이 뭐라고 책망하려 하는데 2쪽으로 올라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려 입을 다물었다. 「우리 이제 떠나지요.」 서천굉의 말에 따라 주중영은 셈을 치르고 객점으로 복짐을 챙긴 뒤에 말을 타고 성 밖으로 나왔다. 다행히 날이 어둡지 않았기 때문에 그때까지 성문을 닫지 않고 있었다. 4필의 말이 단숨에 30여 리를 달리자 왼쪽에 10여 그루의 큰 나 무가 있고 그 뒤로는 바위가 병풍처럼 에워싼 은밀한 장소가 나타 났다. 「여기서 쉽시다! 주중영의 말에 서천굉도 좋다고 했다. 네 사람은 말 고삐를 나무 에 매놓고 나무에 기대어 앉았다. 달은 밝고 별은 아득한데 밤공기는 신선한 기운이 마치 맑은 물과 같았다. 바람이 긴 풀을 스치고 지나며 낮은 피리소리를 냈다. 서천굉이 입을 벌리려고 하는데 멀리서 은은히 말발굽 소리가 울렸다. 그는 재빨리 엎드려 귀를 땅에 대고 있다가 일어났다. 叫-세필의 말이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습니다.」 주중영이 손짓을 하자 네 사람은 곧 말고삐를 풀어 끌고 큰 비 뒤에 가 숨었다. 잠시 후에는 말발굽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세 필의 말이 큰 길을 따라 동쪽으로 달린다, 달資 아래 살펴보 니 마상의 세 사람은 모두 흰 천으로 몸을 감싼 것이, 위구르 사람 의 복장이요, 안장에 마도도 걸렸다. 그들이 멀리 사라지자 네 사람은 다시 원위치로 돌아왔다. 연일 길 재촉만 하느라 얘기를 주고받을 기회가 없었는데, 주중영은 이때야 비로소 청정에서 문태 래를 잡아간 까닭을 물었다. 낙빙이 대답을 하고 나섰다. 「관부에서는 계속해서 홍화회를 눈의 가시로 생각했었죠. 그러나 이번, 허다한 고수들을 파견해 제 남편을 잡고야 말겠다고 나선 까 닭은 또 다른 데 있답니다. 지난달 우 노당가께서 태호의 총타를 떠나 북경으로 가실 때 저희 부부를 보고 동행하자고 했습니다. 북경에 도착하자 우 노당가는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밤에 청궁으로 들어가 권륜 황제를 만나시겠다구. 저희들은 깜짝 놀라 무슨 일로 황제를 만나려고 하시느냐고 여쭈어 보았지만 대답을 하시지 않더군요. 제 남편이 만류했어요. 황제가 음험하고 악랄하니 무진도장 조 삼가 , 서청쌍협 등을 북경으로 오라 해서 함께 들어가 만나 보자구요. 그리고 또 여기 있는 칠가를 청해다 만반의 계획을 세우는 것이 보다 타당하지 않겠느냐구 건의했어요.」 주기는 서천쌍협을 힐끔 쳐다보았다. (난쟁이가 재주는 많아 여러 사람들이 필요로하는지는 모르지 만 난 믿지 못하겠는걸. 「문 사야의 의견이 그럴 듯하군요.」 주중영의 말을 다시 낙빙이 이었다. 「우 노당가께서는 황제를 만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일이라 사람이 많으면 더 곤란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일을 그르치기 쉽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제 남편은 그 말을 듣고 분부에 순종하겠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날 밤 두 사람은 청궁의 담을 넘어 들어갔고 저는 밖에서 망을 보며 기다렸지요. 정말 무서웠습니다. 한 시간쯤 지나 서야 그들이 다시 담을 넘어 왔습니다. 이튿날 새벽에 우리 세 사람은 북경을 떠나 강남으로 되돌아왔습니다. 저는 제 남편에게 물어 보았어요. 황제를 만났느냐, 도대체 무슨 일로 그랬느냐구요. 남편이 말하기를, 황제는 만났지만 일이 몽고족을 몰아내고 한실- 皇)을 광복하는 대업에 연관되는 일이라고만 대답했습니다. 그는 저를 못 믿어서가 아니라 한 사람이라도 더 알게 되면 그만큼 비밀이 누설될 위험도 많아지는 것이니 그 정도로만 알고 있으라는 거예요 그래서 더 자세히 묻지도 않았답니다.」 「우 노당가의 포부가 정말 위대했군요. 황궁에 뛰어들어가 황제 를 만났다니 천하에 몇 사람이나 그런 용기를 지닐 수 있겠습니 까? 주중영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우 노당가는 강남에 도착하자 저희 부부와 헤어졌지요. 우리는 태호의 총타로 돌아왔고 그분은 항주부 해령주로 가셨어요 그분이 해령에서 돌아오시자 정신이 이상하게 변하셨어요. 갑자기 십여 년은 더 늙으신 것 같더군요. 온종일 웃는 모습을 볼 수가 없더니 마침내 병이 들어 다시는 일어나시지 못하셨답니 다. 남편이 제게 이런 말을 해 주었어요. 노당가께서 평생 제일 사랑하던 사람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상심이 되어 그만 돌아가시게 된 것이라구요,,,,,,.」 여기까지 말하다가 낙빙과 서천굉이 눈물을 흘렸다. 주중영도 함께 한숨을 쉬었다. 낙빙이 흐르는 눈물을 훔치고 계속 말을 이었다. 「노당가께서 임종하실 때 내삼당(內三當) 외삼당(外三當)의 정 향주를 소집해 놓고 소타주로 하여금 총타주가 되도록 하라는 유명을 남기셨어요. 그분은 결코 사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이 일이 한실의 광복에 큰 관계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그때는 그 까닭을 분명히 말씀해 주시지 않았지만, 뒤에 모두들 알게 되었습니다. 노당가의 말씀을 우리는 계속 믿고 복종했습니다. 그분의 그런 말씀이 없었다 하더라도 우리 형제들은 그분의 은혜에 보답하는 뜻으로라도 소타주를 총타주에 추대했을 것입니다.」 '소타주는 우 노당가를 어떻게 불렀습니까?' 주중영이 물었다. 「그분은 노당가의 수양 아들입니다. 소타주님은 원래 해령 진즈 로의 아드님이셨는데 열다섯 살에 과거에 급제했습니다. 과거에 급제한 뒤 얼마 되지 않아 노당가께서 데려다 천산북로어 있는 천지괴협 원 노영웅께 보내 무예를 배우게 했지요. 상국부 의 귀한 자제가 어떻게 해서 무림 호걸을 의붓아버지로 모시게 되었는지 우리로서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 까닭을 문 사야께서는 알고 계시겠지요? '제 남편도 잘 모르는 눈치였어요. 노당가께서는 세상을 떠날 때 까지 한 가지 소망을 이룩하시지 못했습니다. 죽기 전에 소타주를 꼭 만나야겠다고 그렇게 갈망하셨지만 허사였습니다. 본래는 그분 이 북경에서 돌아오자마자 사람을 급히 회강으로 보냈지요. 소타주를 보고 안서 옥허도관에 와서 기다리고 있 으라구요. 천지괴협 원 노선배님은 마음이 놓이지 않아 소타주님과 함께 동쪽으로 왔지요. 그런데 노당가께서 그렇게 빨리 세상을 떠 나실 줄 누가 알기나 했겠습니까 안서에서 태호의 총타까지는 만 리가 넘는데 소타주께서 소식을 들었는데도 올 방법이 없었겠지요. 노당가께서는 의붓아들을 만나 볼 가망이 없자 육당의 정부 향주 를 보고 서북으로 가서 소타주를 만나 함께 대사를 도모하라고 유명을 남기셨어요. 모든 기밀은 제 남편이 돌아오면 소타주께 직접 만나 말씀드릴 것이라구요. 그런데 제 남편이 이 지경이 되리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여기까지 말하고 그만 흐느끼기 시작했다. 「만약 제 남편이 잘못된다면,,,,,, 노당가의 유지를 알 사람이 없지요.」 「낙빙 언니, 너무 괴로워하지 마세요. 우리가 꼭 그분을 구해 낼 것이니까요.」 주기가 위로하자 낙빙이 그의 손을 어루만지고 고개를 끄덕이며 쓸쓸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래, 문 사야는 어떻게 하다가 부상을 당했나요? 주중영이 또 물었다. 「뭇 형제들이 나뉘어 소타주를 영접하러 갈 때 우리 부부는 맨 마지막에 가기로 되었습니다. 숙주에 도착했을 때 갑자기 여덟 명 의 대내 시위가 객점으로 그이를 찾아왔어요. 황제의 어명이니 함 께 북경으로 가자고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제 남편은 소타주를 만나 본 후에야 가겠다고 대답했습니다. 여덟 명의 시위는 말은 겸 손하게 했지만 제 남편을 보고 당장 가지 않으면 큰일이 일어난다 고 협박하더군요. 그래서 쌍방간에 말이 거칠어지다가 마침내 싸움 이 벌어졌죠.여덟 명의 시위는 모두 특선된 고수들이었습니다. 2 대 8로 싸우다 보니 우리가 점점 더 불리했고 남편은 화가 나 죽는 한이 있어도 네놈들 손에 잡혀가지 못하겠다고 소리를 질렀어요. 한바탕 악전고투가 벌어졌지요. 그분은 단도로 두 명, 장력으로 세 명을 죽였고 또 다른 두 명은 저의 비도에 맞았습니다. 한 명만이 사정이 불리함을 보고 달아나 버렸지요. 그러나 제 남편도 여기저기 예닐곱 군데 부상을 입었답니다. 싸울 때 그분이 시종 제 앞에 있었기 때문에 저는 부상을 모면할 수 있었습니다.」 낙빙은 자기 남편이 어떻게 8명의 대내시위를 통쾌하게 처치했는가를 말할 때는 손발을 놀려 가며 신이 나서 설명했다. 주기는 넋을 잃고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분뢰수의 용감무쌍한 모습이 눈앞에 떠오르는 듯했다. 낙빙의 말이 끝났는데도 그녀는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다 한숨을 길게 쉬며 고개를 돌려 서천굉을 흘낏 보았다. 네까짓 것은 어림도 없을 것이라는 모멸의 눈초리였다. 눈치 빠른 서천굉이 그것을 모를 리 만무다. (사가의 영웅 호걸은 당세에 비할 사람이 없다. 너는 내가 사가에게 미치지 못할 것이라 업신여기는데 그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계집애가 나설 게 뭐람.) '우리는 숙주에 그냥 있다가는 큰일날 것을 알았읍니다. 그래, 가욕관을 벗어났지요. 하지만 남편이 중상을 입어 더는 걸을 수가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객점에 머물러 부상을 치료하면서 소타주와 여러 형제들의 연락만 기다렸지요. 그런데 북경과 난주의 그 녀석들이 쫓아왔어요. 그 뒤의 일은 여러분도 잘 아시기에 그만두겠읍니다. '황제가 사가를 무서워하고 미워할수록 그의 생명을 해칠 위험은 적어지는 것입니다. 관부에서도 이미 그가 국사범임을 안 이상 함부로 처치하지는 못할 거예요.」 서천굉의 말에 주중영도 그럴 것이라고 머리를 끄덕였다. 주기가 서천굉을 향해 말문을 열었다. ,당신들이 좀 일찍이 나타나 문 사야를 모셔갔더라면 아무 일 없었을 것 아녜요. 철담장에 나타나 난리를 피우지 않았어도 될 ~~--.」 「아니, 계집애가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는 게야. 주중영이 딸을 책망했다. ,소타주께서 어찌나 겸양해하시던지 아무리 말씀을 드려도 총타 주의 직책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거예요 한쪽은 권하고 또 한쪽은 사양하다가 그만 지연되었지요. 게다가 또 사가나 형수님이 그토록 훌륭한 무예를 지니고 있는데 누가 감히 그들을 해칠 수 있으랴 하는 자신도 있었으니까요.」 아니, 별명이 제갈량인데 그래 그것도 모르고 있었단 말이에 요? 주기가 또 한 번 그에게 빈정거렸다. 서천굉으로서도 말문이 막 혀 대답할 방법이 없었다. 만약 칠야가 미리 아셨더라면 우리가 어떻게 해서 홍화회의 이 훌륭한 친구들을 알 수 있었겠느냐? 진 당가 한 분만 예로 들어도 잘생긴데다가 인품까지 훌륭한 그런 분을 만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지.」 고개를 돌려 낙빙에게 물었다. 「진 당가의 부인은 누구십니까? 명문의 규수인지 협녀인지 로르겠군요.」 「진 당가는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습니다.」 낙빙의 대답을 듣고 주중영은 입을 다물었다. 「우리 언제쯤 주기 동생의 국수를 먹게 될까요? 낙빙의 농담에 주중영도 따라 웃었다. 아니면 강호의 「계집애가 워낙 덜렁덜렁해서 누가 데려갈지나 모르겠군요. 늙은 처녀로 제 아비 옆에 있도록 내버려둘 수밖에 없겠지요.」 「제 남편이 돌아오기만 하면 그이와 제가 중매를 서지요. 참 신랑감을 꼭 소개하겠습니다.」 「계속 내 이야기만 하면 나 먼저 가버리겠어요. 당황하여 나서려는 주기의 말을 듣고 모두들 빙그레 웃었다. 한참 있다가 서천굉이 밑도끝도없이 (허) 하고 웃었다. 「아니, 무엇 때문에 또 웃는 거예요? 화가 난 주기가 쏘아붙였다. 「내가 웃고 싶어서 웃는데 그게 무슨 상관이람. 주기는 하고 싶은 말은 해야만 속이 풀리는 성미다. 「흥! 무엇 때문에 웃었는지 그것도 모를 줄 알아요? 나를 진 당가에게 시집 보냈으면 해서 그러지요? 그 사람은 재상의 아들인데 제가 감히 쳐다나 볼 수 있겠어요? 어림없는 이야기지! 여러분은 그 사람을 신주처럼 모시지만 내겐 대수로을 것 하나도 없어요. 우리 아버지와 싸울 때 보니 겉으로는 점잖은 체했지만 속은 구렁이가 가득 들어 있더군요. 내 평생 처녀로 늙어 죽을망정 웃는 얼굴에 독기 서린 그런 작자에게는 시집가지 않겠어요.」 부부지정 주중영이 들으니 화도 나지만 우습기도 했다. 그만두라고 말렸지만 주기는 아랑곳하지 않고 총을 쏘듯 시원하게 할 말을 다 해야 풀리고 만다. 「됐어요, 됐어. 주기 동생은 이 다음에 마음이 바르고 거짓말도 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 시집가도록 하면 그만 아녜요. 낙빙이 웃으며 하는 말에 주중영도 거들고 나섰다. 「철없는 계집애가 말도 술술 잘하는구나. 칠야나 이 아주머니가 놀리는 것도 모르고,,,,,, 이제 그만큼 떠들었으니 그만 자자 날이 밝으면 또 떠나야 하느니라.」 네 사람은 말등에서 담요를 내려 몸에 덮고 큰 나무 밑에 드- 누웠다. 「아버지, 뭐 먹을 것 가지고 오시지 않았어요? 배고파 죽겠어요ㅛ. 「가진 것이 없구나.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해 쌍정에 도착하거든 먹기로 하자.」 주중영은 이렇게 말하고 가볍게 코를 골며 잠이 들었다. 주기는 배가 고파 엎치락뒤치락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옆에 누운 낙빙도 잠이 든 듯한데 서천굉이 살며시 일어나 말 옆으로 가는 것이 보였다. 주기는 호기심이 생겨 그의 행동을 살펴보았다. 캄캄한 가운데 보따리 속에서 무슨 물건인지 찾아 가지고 돌아와 앉아 담요를 뒤집어 쓰고 뭔가를 먹는다. 주기는 몸을 뒤척여 반대편을 향해 누워 그를 쳐다보지도 않기로 했다. 그런데 그가 어찌나 악랄한지 쩍쩍 소리를 내며 먹더니 크게 입맛까지 다시는 게 아닌가? 주기는 곁눈질로 그를 살펴보았다. 차라리 보지 않았더라면 좋았으련만 보니까 입 안에 침이 괸다.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인데 그는 손에 흰 덩어리를 들고 베어 먹는다. 그것말고도 옆에 한 무더기가 또 쌓여 있었다. 분명 숙주의 명산인 구운 떡이었다. 원래 그가 행화루에서 잠시 내려갔다 오겠다고 했을 때 미리 사 두었던 것이다. 주기는 여기까지 오는 동안 계속 그를 향해 시비를 걸었으니 지금 와서 좀 달라고 할 염치가 없었다. 참고 빨리 잠이나 청하자. 그러나 소용이 없었다. 자려고 할수록 더욱 잠이 오지 않았다. 그런데 또 술 향기가 코를 찌른다. 서천굉이 고개를 뒤로 젖히고 호로병에 있는 술을 마시고 있었다. 주기는 더 참을 수가 없었다. 「아닌 밤중에 일어나 무슨 술을 퍼마시고 있는 거예요? 소리를 꽥 지르자 서천굉도 디죽거렸다. 「못 마실 것 없지. 호로병을 놓아 둔 채 벌렁 누워 버린다. 정말 지독한 인물이다. 일부러 병마개를 막지 않아 술 향기가 바람을 타고 와 그녀를 더욱 괴롭혔다. 원래 그는 숙주의 행화루에서 주기가 술을 잘 마시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이렇게 되자 주기는 눈썹을 찡그린 채 눈을 부릅떴다. 화를 내자니 할 말이 없었고 그냥 참자니 참을 도리가 없었다. 몸을 뒤척이고 눈이며 코, 입을 담요 속에 묻었다. 그러나 또 답답해서 어쩔 수가 없었다. 다시 몸을 뒤척이는데 달빛 아래 아버지 머리맡에 있는 2개의 철담이 반짝반짝 資을 발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옳지! 슬그머니 손을 뻗어 그중 하나를 잡아 호로병을 향해 던지자 정통으으로 맞고 깨졌다. 술이 서천굉이 덮고 누운 담요를 적셨다. 그러나 서천굉은 벌써 깊은 잠이 들어 그것을 알지 못했다. 주기가 아버지를 살펴보니 깊은 잠에 빠져 있었고, 낙빙 또한 아무 이상한 정이 없다. 살금살금 일어나 철담을 찾아다 놓으려고 했다. 그런데 손을 뻗자마자 서천굉이 이쪽으로 돌아 누우며 철담을 담요로 깔고 다시 코고는 소리를 냈다. 주기는 소스라치게 놀라 뻗었던 손을 움츠렸다. 제아무리 호방한 성격의 소유자라 하더라도 역시 나이 어린 소녀다. 어찌 손을 뻗어 남자의 몸을 건드린단 말인가? 그냥 놔 두자니 내일 아침 이 난쟁이가 철담을 발견하면 꼬리가 잡힐 뿐만 아니라, 아버지에게 이르기라도 한다면 또 한바탕 책망을 들을 판이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었다. 난처해진 그녀는 다시 자리로 돌아와 누웠다. 바로 그때 낙빙이 킥 하고 웃는 소리를 냈다. 주기는 부끄러움에 목까지 붉어졌다. 방금 서천굉의 옆으로 간 것까지 낙빙이 모두 본 모양이라는 생각을 하자 가슴이 두근거려 온밤 눈을 붙일 수가 없었다. 다음날 이른 아침에 주기는 눈을 떴다. 그러나 아무 말도 없이 담요 속에 몸을 웅크린 채 영원히 날이 밝지 말았으면 했다. 주중영과 낙빙이 먼저 일어나고 이어 서천굉도 깨어났다. 이어 (아0) 쿠!>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이 딱딱한 물건이 도대체 뭐람? 주기는 더욱 몸을 움츠렸다. 「아, 선배님, 선배님의 철담이 여기까지 굴러와 있네요. 아니, 이건 또 뭐야? 호로병이 박살나지 않았나? 옳거니! 산속의 원숭이들이 술 냄새를 맡고 와서 마시려고 했나 보군. 그러다가 선배님의 철담을 가지고 놀다가 그만 호로병을 깨뜨린 것이 아닐까요? 원숭이들이 장난을 꾀 좋아하는군요.」 주중영이 껄껄 웃는다. 「원 농담도 잘하시는군. 이 지방에 무슨 원숭이가 있다고 그러시오. 「원숭이가 아니면 틀림없이 하늘 위에 있는 선녀가 내려와 그랬을 거예요. 낙빙이 웃으며 하는 말이었다. 주기는 그들이 어젯밤에 있었던 일을 꺼내지 않자 다소 마음이 놓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서천굉이 은근히 자기를 원숭이에 비유한 것이 못마땅했다. 서천굉이 구운 떡을 내놓아 나누어 먹었지만 화가난 주기는 건드리지도 않았다. 쌍정에 도착하자 네 사람은 국수를 사서 삶아 먹었다. 고을을 벗어나자 서천굉과 낙빙은 갑자기 허리를 숙이고 어느 한 집의 담 밑을 살펴보았다. 주기가 이상해서 가까이 가 보니 담 밑에 알아보기 힘든 부호가 어지럽게 숯으로 씌어 있었다. 장난꾸러기들의 낙서나 다름이 없어 주기의 눈으로 보아서는 전연 이상할 게 없었다. 「서천쌍협이 그이의 행방을 찾아내 쫓아갔어요.」 낙빙이 갑자기 반가운 소리를 질렀다. 언니는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이 그림에 무슨 뜻이 있나요? 주기가 물었다. 「이건 우리 회 사람들이 서로 연락하는 기호예요. 서천쌍협이 써 놓았군요.」 말을 하면서 거기에 그려진 기호를 발끝으로 지워 버렸다. 「우리도 빨리 가요. 네 사람은 문태래의 행방을 확인하자 새롭게 기운이 솟았다. 낙빙은 계속 싱글벙글 웃기만 했다. 네 사람은 단숨에 4, 50리를 달렸다. 식사를 하고 말을 쉬게 한 후 다시 출발해 다음날 점심때쯤 칠도구에서 여어동이 남긴 기호를 발견했다. 벌써 서천쌍협을 쫓아갔다는 것이다. 낙빙은 며칠 동안 휴양을 한 탓으로 다리의 부상이 크게 호전되어, 아직 걷기에는 다소 불편을 느꼈지만 지팡이를 짚을 필요까지는 없었다. 얼마 있으면 남편을 만날 수 있다는 일념에 지칠 줄 모르고 앞장서서 달렸다. 저녁때 유천자(柳泉子)에 도착했다. 낙빙이 더 가자고 우겼지만 서천굉은 진가락의 당부가 있었기 때문에 만류했다. 「우리 피곤한 것이야 관계없지만 말이 견디지 못해요.」 낙빙은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그들이 하자는 대로 객점에 투숙해 묵기로 했다. 그러나 엎치락뒤치락 잠을 이를 수 없었다. 한밤중에 창 밖에 후드득후드득 비 내리는 소리가 들리자 갑자기 남편과 결혼한 뒤 사흘 만에 있었던 옛일이 생각났다. 노당가의 분부를 받고 어떤 토호에 의해 괴로움을 당하고 있는 과부를 구출하기 위해 가흥으로 갔었다. 일이 성사되자 둘이서 밤에 남호 연운루에 올라가 술을 마시며 비내리는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문태래는 신부의 손을 잡고 칼등으로 토호의 수급을 두드 리며 노래를 불렀는데 그날의 정경이 객창의 빗소리 속에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낙빙은 마음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칠가는 주씨 부녀가 손님이기 때문에 길 재촉을 하지 못하지많, 나야 먼저 떠나면 무슨 상관이 있겠나?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참고 견딜 수가 없어 슬그머니 일어나 쌍도와 보따리를 들고 일어서서 숯으로 탁자 위에 기호를 남겼다. 철굉을 보고 주씨 부녀에게 미안하다는 인사말을 대신 전해 달라 는 뜻이었다. 주기의 달콤하게 자고 있는 모습이 귀엽기만 하다. 문소리에 혹시 깨어 일어나지 않을까 염려하면서 창문을 가볍게 열고 뛰어나왔다. 마굿간에서 말을 끌어내고 기름종이로 만든 비옷을 걸치고 동쪽을 향해 달리는데 빗방울이 뜨거운 볼을 때릴 때마다 hi원했다. 밝을녘에 작은 고을에 도착해 아침 요기를 하고 말이 너무 피곤해 보여 어쩔 수 없이 반 시간을 쉬었다. 다시 3, 40리를 가자 말이 갑자기 앞발을 꿇었다. 낙빙이 깜짝 놀라 고삐를 채는 바람에 말이 넘어지지는 않았지만 더 이상 가려고 하다가는 정말 말을 죽일 것만 같았다. 낙빙은 하는 수 없이 터벅터벅 말이 가는 대로 따라 걸었다. 얼마 가지 않았을 때 갑자기 뒤쪽에서 급한 말발굽 소리가 울리 며 한 필의 말이 나는 듯 달려왔다. 방금 발굽 소리를 들었는데 어느덧 가까이 접근했다. 낙빙이 고삐를 당겨 왼쪽으로 피해 주자 눈앞에 구름 덩어리가 지나듯 한 필의 백마가 스치고 지나가는데 말이 어찌나 신속한지 그 위에 타고 있는 사람이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지 전연 보지도 못했다. 「어쩌면 저렇게 빠른 말이 있을까? 낙빙은 깜짝 놀라 다시 한 번 바라다보았다. 달릴 때 굽이 땅에 닿지도 않는지 몸은 하나인데 그림자는 열이요, 정말 바람보다 번갯불 보다 빨라 보였다. 눈 깜짝할 사이에 백마와 그 위에 타고 있 는 사람이 회색의 연기처럼 희미하게 보이다가 사라져 버렸다. 낙빙은 오랫동안 찬사를 보냈다. 말이 다시 기운을 차린 것 같아 또 한바탕 달렸다. 작은 마을에 도착하자 어느 집 처마 밑에 한 필 의 말이 서 있는데, 온몸이 눈처럼 희고 서리같은 깃털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몸집도 크고 다리도 길어 과연 훌륭해 보였다. 갑 자기 투레질을 하자 낙빙이 타고 있던 말이 놀라 뒤로 물러났다. 낙빙이 살펴보니 방금 보았던 백마로, 옆에서 한 남자가 때마침 등을 문질러 주고 있었다. 낙빙의 머릿속에 꾀가 하나 떠올랐다. (내 저 준마를 탄다면 금방 그이를 쫓아갈 수 있겠지만 ) 좋은 말을 주인이 팔려고 할까? 어림없겠지? 억지 수단을 쓸수 밖에 없겠다. 그가 보통 사람은 아닐 게야. 무공이 대단한 사람 도 있으니 각별히 조심해야겠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부친인 신도 낙원통을 따라 강호에 뛰어들어 여러가지 소매치기라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잘했다. 결심을 내리자 보퉁이 속에서 부싯돌을 꺼냈다. 불시와 부싯돌을 꺼내 부싯깃에 불을 붙이고 고삐를 당겨 백마를 향해 달려들었다. 비수를 날렸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비도가 기둥에 꽃히고 그로 인해 백마를 묶어 맨 고삐가 끊어졌다. 이때 자기가 타고 있던 말도 백마 가까이 접근했다. 낙빙은 왼손 에 들고 있던 불붙은 부싯깃을 자기가 타고 있던 말의 귓속에 쑤 셔넣었다. 보퉁이를 챙겨들고 오른손으로 말 안장을 누르며 잠- 승천의 묘기를 부려 백마의 등 위로 옮겨 뛰었다. ", 말이 놀라 투레질을 하면서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앞을 향해 달려갔다. 비도를 던지고, 말을 갈아 타고, 보퉁이를 챙기고, 적을 방어하는 이 모든 동작이 단숨에 진행된 것이다. 말 주인은 뜻밖에 벌어진 일에 정신이 얼떨떨해 속수무책이었다. 낙빙이 타고 있던 말은 귓속에 불붙은 부싯깃이 들어가자 뜨거워 미친 듯 이리 쮜고 저리 뛰며 말 주인의 앞을 가로막았다. 예측했던 그대로 그 말 주인은 대단한 고수였다. 미쳐 날뛰는 낙빙의 말에 몸을 날려 올라타고 쫓아왔다. 이때 낙빙은 상당히 먼 거리에까지 달려와 있다가 말 주인이 뒤에서 쫓아오는 것을 보자 말머리를 돌리고 보퉁이 속에서 금화를 꺼내 그를 향해 던졌다. 「우리 서로 말 좀 바꾸어 타요. 당신의 말이 내 말보다 좋으니 이 금화나 가져가세요.」 그 사람은 금화는 받으려고도 하지 않고 욕을 퍼부으며 계속 쫓아왔다. 낙빙이 상긋 웃고 두 다리에 힘을 주었다. 백마가 한 번 뒬 때마다 10여 장이나 앞으로 나가는데 귀에 바람소리가 일어나며 앞쪽에 서 있는 나무들이 열을 지어 뒤로 밀렸다. 한참 동안 달렸지만, 말은 지친 기색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잠시 후에는 길 옆에 밭이 많이 보이고 여기저기 백양나무가 눈에 띄더니 이윽고 큰 고을에 도착했다. 낙빙은 말에서 내려 식사를 하고 지명을 물어 보니 사정이란 곳이라 했다. 방금 말을 뺏어 탄 곳과는 40여 리가 떨어진 곳이다. 낙빙은 백마를 볼수록 더욱 귀여운 생각이 들었다. 직접 먹이를 날라다 주며 어루만지고 토닥거렸다. 말 안장 옆에 주머니가 대롱 거리고 있는데 방금 길을 재촉하는 바람에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다. 손을 뻗어 들어 보니 묵직하다. 열어보니 그 안에는 쇠로 만든 비파가 있었다. 낙빙은 생각했다. (원래 이 말은 낙양 철비파도폰) 한가문(韓家門)의 소유였구나! 일후에 귀찮은 일이 생기겠는걸.) 다시 손을 주머니 속에 넣어 보니 2, 30냥의 동전과 편지 한 통이 나왔다. 편지 끝의 서명을 보니 유양돈수란 네 글자가 씌어 있다. 가볍게 놀랐지만 생각해 보니 오히려 잘되었다 싶었다. (원래 이 사람이 왕유양과 인척관계가 있구나. 그렇지 않아도 진원표국을 찾아가 분풀이를 하려고 하던 참인데 우선 말 한 필부터 렛었으니 시원하게 되었는걸. 그런 줄 미리 알았더라면 금화도 주지 말 것을 그랬구나.) 다시 편지의 내용을 읽어 보니 한문충을 빨리 돌아오라 고 재촉하는 글이었다. 사람을 시켜 쾌마 한 필을 보내니 잠시 그것을 타고 가 염씨 형제와 회합, 함께 그 중요한 물건을 보호하여 북경으로 가라는 것이다. 그 밖에 또 다른 돈벌이가 있으니 그를 강남으로 호송하라고도 했다. 초문기(焦文期)가 홍화회에 의해 살 해되었는지의 여부는 잠시 보류했다가 다음 기회에 조사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겠느냐는 내용 등이 적혀 있었다. 낙빙은 생각했다. (초문기는 낙양 철비파 한가문의 제자다. 강호의 뜬소문은 그를 홍화회에서 살해했다고 하지만 그런 일은 전연 없었다. 총타주는 본래 십사제를 낙양으로 파견해 이 일에 대한 해명을 하려고 했다, 진원표국이 또 어떤 귀중한 물건을 강남으로 호송하려고 그러나? 그이가 돌아오시면 알 수 있겠지. 원수를 갚지 않는 것은 군자의 도리가 아니다. 그 비열한 표두 녀석이 사람들을 데리고 나타나 내 남편을 잡아갔는데 어찌 그냥 모른 체할 수 있겠는가?) 생각할수록 마냥 기분이 좋았다. 국수를 먹고 다시 말에 올라 길을 재촉했다. 빗방울이 굵어졌다 가늘어졌다 하며 비는 종일 멈추 지 않았다. 백마는 바람처럼 빨리 달렸다. 얼마나 많은 말과 수레를 뒤로 제 쳤는지 모른다. 낙빙은 생각했다. (말이 이렇게 빨리 달리니 앞서 떠난 사람들이 어디서 식사를 해도 모르고 그냥 지나가겠구나.) 천천히 가야겠다고 생각하는데 옆에서 누가 불쑥 뛰어나와 손을 들어 길을 막았다. 말이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낙빙이 웬일로 그 러느냐고 하는데 넙죽 인사를 했다. 「문사 아주머니, 도련님 여기 계십니다.」 원래 진가락의 서동인 심연이었다. 낙빙은 너무 반가와 말에서 얼른 뛰어내렸다. 심연이 말고삐를 받아 쥐며 칭찬을 했다. '어디서 이렇게 좋은 말을 사셨어요? 멀리서 오시는 아주머니를 뵈었는데 금방 눈앞으로 달려들지 않겠어요. 하마터면 그냥 가시게 할 뻔했습니다.」 낙빙은 웃기만 할 뿐 대답은 하지 않았다. '제 남편 소식은 들었나요? '상 오야와 상 육야가 그러시는데 이미 문 사야를 한 번 만나셨답니다. 모두들 안에 계셔요.」 그는 이렇게 말하며 낙빙을 길 옆에 있는 낡은 절로 안내했다. 낙빙이 심연을 제치고 먼저 안으로 들어가다가 고개를 돌렸다. '말 먹이 좀 보살펴 주세요. 그러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내전 위에 진가락. 무진 . 조반산. 상씨 형제가 모여 있었다. 사람들이 낙빙을 보고 일어나 반겼다. 낙빙이 진가락을 향해 인사를 하고 마음이 조급해 먼저 달려왔으니 용서해 달라고 했다. '형수께서 사가를 못 잊어 달려오신 심정은 충분히 이해하나 명령을 어긴 죄만은 사가를 구출한 후에 다시 논의하겠습니다. 십이가께서 기록해 놓으세요.」 석쌍영이 대답을 했다. 낙빙의 보조개가 꽃처럼 활짝 퍼졌다. (남편만 구출해 낸다면 어떤 처벌이라도 달게 받겠다.) '오가, 육가께서는 사가를 만나셨나요? 그래 어때요? 고생하지 않던가요? 상씨쌍협을 향해 급히 물어 보았다. '어젯밤 우리 형제가 쌍정에서 사가를 압송하는 놈들을 보았지 요 사람이 워낙 많아서 손을 쓰지 못했습니다. 밤에 창 밖에서 들여다보니 사가가 구들 위에 누워 계시더군요. 우리만 보았지 사가는 우리를 보시지 못했습니다. 집 안에는 그놈들이 어찌나 철통같이 수비를 하는지 들어가지 못하고 그만 물러나고야 말았지요.」 상혁지의 대답을 상백지가 보충했다. 「진원표국의 그놈들이 관아 녀석들과 함께 있었어요. 대충 헤아려 보았지만 고수가 십여 명은 되더군요.」 상씨 형제는 사천(四川) 사람들이라 그곳 사투리로 욕을 섞어 이렇게 말했다. 말을 하는 동안에 여어동이 밖에서 들어오다가 낙빙을 보자 당황한 눈치를 감추지 못했다. 「형수님 ! 한마디 부르고 진가락을 향해 이렇게 보고했다. 「그 위구르 사람들은 개울가에 천막을 치고 있었습니다. 파수꾼이 칼과 창을 들고 지키더군요. 낮에는 접근하기 어려을 것 같으니 날이 어둡거든 다시 들어가 알아보지요.」 이때 갑자기 절 밖으로 수레가 지나가는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나귀의 투레질 소리도 섞여 들렸다. 심연이 들어와 보고했다. 「한 떼의 나귀와 큰 수레가 지나가는데 군관 한 명이 이십여 명의 관병과 함께 호위하고 있군요.」 보고를 끝내고 다시 망을 보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진가락이 다른 사람들과 계략을 상의했다. 「여기서 동쪽으로 가면 인가가 드물어 일하기 좋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 관병과 또 다른 한 떼의 위구르 사람들의 정체를 모르겠어요. 우리가 사가를 구출할 때 혹시 방해라도 하지 않을는 지 모르겠습니다. 미리 경계하고 있어야겠어요.」 진가락의 말에 모두 수긍했다. 「육비청 노선배의 말에 따르면 그의 사제인 장소중의 무공이 막강하다고 그러더군요. 우리도 강호에서 화수판관의 명성을 오래 전 부터 듣지 않았습니까. 이번 사제를 잡아갈 때도 그가 두목이었으 니까요. 아주 잘된 일인지도 몰라요. 제가 한번 그자와 결판을 내도록 하겠습니다.」 무진도인의 말이었다. 「도장의 칠십이로 추혼탈명검(追魂奪命劍)은 천하무쌍이 아닙니까? 절대로 그 괴수를 놓치시면 아니 되옵니다.」 진가락의 말에 조반산이 나섰다. '육 대가가 비록 그의 사제인 장소중과 절교를 했다고는 하지만, 그분은 인정과 의리를 가장 중시하고 계십니다. 그분이 아직 도킷 하시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그의 면전에서 그 사제를 살해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곤란하지 않겠숨니까? 「그럼 우리가 좀 일찍 출발하지요 내일 묘시쯤에는 문사가가 계신 곳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상혁지의 말에 진가락이 좋다고 했다. '좋습니다. 오가와 육가께서 그 지방 사람들과 표두들의 인상을 한번 자세히 설명해 주시지요. 그래야만 내일 싸움이 벌어 지더라도 편리할 게 아닙니까? 상씨 형제들은 계속해서 그들의 뒤를 따라다녔기 때문에 관가의 사람들과 표행의 인상을 거의 다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 주었다. '사가는 저녁때 그들 관방 녀석들과 한방에서 잠을 잡니다. 낮에는 수레에 타고 있는데 손발을 모두 꽁꽁 묶어 매었고, 수레는 포장을 덮어 말을 탄 녀석들이 좌우에서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그들의 설명이 끝나자 무진이 물었다. 「그래, 그 장소중이란 자는 어떻게 생겼습디까? 상백지가 대답을 했다. '나이는 사십 세 가량인데 몸집이 크고 건장합니다. 짧은 수염을 기르고 있는데, 꾀 단단해 보이더군요.」 「도장님, 우선 분명히 말씀을 드려야겠군요. 우리 형제가 만약에 그놈을 먼저 만나면 우선 싸움을 걸겠습니다. 뒤에 오셔서 왜 내게 양보하지 않았느냐는 말씀은 하지 마세요. 상혁지의 말에 무진이 웃었다. 「오랫동안 적수를 만나지 못해 손발이 근질근질한 모양이로군. 삼제, 그래 그 태극수(太極手) 한번 과시해 보겠소? 「그 장소중이란 작자는 여러분께 넘겨 주겠소. 그걸 가지고 다툴 필요가 없겠지.」 조반산의 말이었다. 각자 주먹을 휘두르며 기회가 오면 한바탕 통쾌하게 싸을 각오를 했다. 간단히 요기를 끝내고 총타주의 명령이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진가락이 단안을 내렸다. 「그들 위구르 사람들이 혹시 공인들과 무슨 약속을 하고 있는지도 몰라요. 그러나 우리가 앞으로 나가 사가를 구출하기만 하면 그들에 대해서는 관심을 표명할 필요가 없어요. 십사제, 다시 그들의 정체를 조사하러 갈 것도 없소. 십사제와 십삼가는 내일 방금 이곳을 지나간 군관과 이십여 명의 관병만 차단하도록 하시오. 공연히 그들까지 나타나 우리 일을 방해하면 인명 손실만 커질 뿐이니까요. 장사근과 여어동이 동시에 대답했다. 「구가와 십이가는 지금 당장 출발하시오 관방 놈들을 앞질러 내 일 이른 아침에 협구(峽口)를 지키고 있다가 그놈들이 거기를 빠져 나가지 못하도록 해 주시오」 위 . 석 두 사람이 대답하고 절에서 나가 말을 타고 출발했다. 「도장님과 오가 . 육가는 관방 녀석들을 상대하시고 삼가와 팔가 두 분은 표행 사람들만 담당해 주시오. 넷째형수님과 심연이 수레 를 뺏는 일을 책임지시오 저는 중간에 있다가 사태를 보아 가며 협조하겠습니다. 십가는 여기 머물러 계시다가 관병이나 공인들이 동쪽으로 가려고 하거든 어떻게 해서든지 그들을 저지해 주시오.」 각자 임무를 부여받고 밖으로 나와 말에 올랐다. 장진이 손을 들며 전송을 했다. 사람들이 낙빙의 백마를 보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낙빙은 생각했다. (이 말은 원래 총타주께 드려야 옳다. 그러나 지금 그이가 고생을」 하고 있으니 우선 내가 타고 있다가 그이를 구해 내면 그때 드려도 무방하겠지.) 진가락이 여어동을 향해 물었다. 「그들 위구르 사람들이 어디에 천막을 치고 있던가요? 우리 뒤로 돌아가며 한번 살펴봅시다.」 여어동이 앞장을 서서 시냇가로 갔다. 널따란 공지만 보일 뿐 천막은 구경조차 할 수가 없고 낙타 똥만 여기저기 어지럽게 흩어져 있을 뿐이다. 모두 이들 위구르 사람들의 행동이 이상하다고 느꼈다. 그러나 그들의 정체를 파악할 수가 없어 답답했다. 「자, 우리 그냥 갑시다. 진가락의 말에 따라 모두 말을 급히 몰았다. 어두운 밤의 가운데 말발굽 소리가 어지럽게 들렸다. 낙빙이 탄 말이 워낙 빨리 달리다 보면 한참 동안 기다리고 있어야만 비로소 그들이 쫓아 왔다. 날이 밝을 무렵 작은 시냇가에 도착했다. '형제 여러분, 잠시 여기 쉬면서 말에게 물을 먹입시다. 한 시진 정도만 가면 사가를 쫓아갈 수 있을 것이오.」 진가락의 명령이었다. 낙빙은 가슴이 펄떡펄떡 뛰며 피가 끓어올라 두 볼까지 빨개졌다. 여어동이 그녀의 옆모습을 훔쳐 보았다. 착잡한 감정을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녀의 옆으로 다가서며 조용히 불렀다. 「형수님 ! 「제 목숨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사가만은 구출해 내고 말겠습니 다.」 낙빙이 미소를 머금다 가벼운 한숨만 내쉬었다. 「그래야만 훌륭한 형제가 아니겠어요. 여어동은 코끝이 시큰해 하마터면 눈물이 나을 뻔했다. 그래서 급히 얼굴을 돌렸다. 진가락이 말을 꺼냈다. 「형수님, 타시던 말을 심연에게 빌려 주세요. 그 말을 타고 가 그 놈들의 행방을 알아 오도록 해야겠어요.」 심연은 낙빙의 말을 빌려 탈 수 있다는 말을 듣자 희색이 만면했다. 「아주머니, 그 말 제가 타도 되겠어요? 「물론이구말구요.」 낙빙이 웃으며 말하자 심연이 백마에 올라타고 나는 듯 달려갔다. 사람들은 말이 충분히 휴식을 취하자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에 날이 활짝 개었다. 심연이 백마를 탄 채 이쪽을 향해 달려 왔다. 「그놈들이 이 앞에 있으니 쫓아가요.」 사람들이 그 말을 듣자 용기 백배하여 채찍을 휘둘렀다. 심연과 낙빙이 다시 말을 바꾸어 탔다. 「그이가 탄 수레를 보았어요? 심연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보았어요. 좀더 자세히 살펴보려고 접근했더니 놈들이 어찌나 험하게 대들던지 더 가까이 가지 못하고 그냥 돌아왔습니다.」 「수고 많이 했어요.」 말발굽 소리가 요란히 울리며 추적하자 한 떼의 인마가 앞에 나타났다. 점점 거리가 가까워지자 한 떼의 관병들이 수레를 압송하고 가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심연이 진가락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이제 6, 7字 정도만 쫓아가면 바로 문 사야가 타고 가는 수레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앞에 있는 수레들을 추월했다. 진가락이 눈짓을 하자 장사근과 여어동이 말머리를 돌려 길을 차단하고 나머지 다른 사람들은 계속해서 달려나갔다. 여어동은 관병의 행렬이 눈앞에 이르자 공손하게 두 손을 마주 잡고 점잖게 말을 꺼냈다. '여러분, 수고가 많으십니다. 이곳 경치가 묘하게 생겼고 날씨도 좋아 춥지도 덥지도 않으니 잠시 앉아 쉬면서 이야기나 나눕시다.」 앞장 선 청병이 소리를 질렀다. 「썩 물러나지 못할까? 여기는 이 군문(李軍門)의 가족들이 계시다. 「아, 가족들이라구요? 그럼 더 잘되었군요. 마땅히 이런 곳에서 쉬어 가셔야지요. 앞에 흑무상 , 백무상이 한 쌍- 있는데 공연히 아가씨나 부인들이 놀라면 큰일 아닙니까? 다른 한 명의 청병이 채찍을 휘둘러 치며 소리를 질렀다. 「아니, 이놈이 어디서 야료를 부리나. 여어동이 웃으며 피했다. 「군자는 말을 하는 것이지 손발을 쓰는 것이 아니오. 말채찍을 휘두르는 것을 보니 군자가 아닌 모양이로군.」 수레를 인솔하는 군관이 말을 달려 쫓아와 물었다. 여어동이 금피리를 꺼내 들었다. '제가 성률(聲律)을 좀 아는데 들어줄 만한 사람이 없어 늘 한탄을 했습니다. 군관께서는 용모가 당당하시니 속인은 아니시겠지요. 잠시 말에서 내려 한 곡 들어 주시지요. 적적한 여행 길에 다소 위안이 될 것입니다.」 그 군관은 바로 이가수(李可秀)의 가솔을 호송하는 증도남이었 다. 그는 금피리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날 객점에서 여어동과 공인 들이 싸을 때 그가 직접 그 광경을 보지는 못했지만 사후에 병정 과 객점의 심부름꾼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었다. 공인을 살해한 도적이 손에 금피리를 든 선비 차림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렇게 좁은 길에서 만났으니 도대체 그의 의도를 알 수가 없어 답답했다. 그러나 상대방이 겨우 두 명뿐이니 별로 두려을 것 도 없었다. 「우리 피차간에 아무 상관도 없지 않소? 빨리 길을 비키시오! 「제게 십여 개의 훌륭한 곡조가 있으니, 일왈 용음이요, 61 왈 봉명(鳳鳴)이요, 삼왈 자운이요, 사왈 홍하요, 오왈 요파(搖波)라. 육왈 열석이요, 칠왈 금곡(金谷)이요, 팔왈 옥 관(조關)이요, 구왈 정일(時日)이요, 십왈 양소(良書)입니다. 혹은 의분에 복받치어 슬피 한탄하는 것도 있고, 은은히 구르는 가락도 있으니 모두 나름대로의 특색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동안 반가운 손님을 만나지 못해 오랫동안 불어 보지 못했는데 오늘 덕망이 높고 어진 분을 우연히 만나 재주를 한번 자랑해 보고 싶은 마음 간 절합니다. 길을 비켜 드리는 일이야 어려을 것 없지요. 열 곡을 다 끝내면 자연 보내 드리오리다.」 여어동은 이런 말을 끝내자 즉시 금피리를 입에 댔다. 묘한 가락이 손끝을 움직이는 데 따라 흘러나왔다. 그의 말 그대로 맑고 고운 가락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증도남은 좋은 말로 해결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긴 창을 비껴 들고 오룡출동의 재주를 펴 여어동의 가슴을 노리고 찔렀다. 여어동은 피리를 부는 데만 정신을 쏟고 있다가 창끝이 가슴에 이르자 갑자기 왼손을 뻗어 창자루를 잡고 오른손에 있던 피리로 창을 힘껏 내리치니 뚝 하는 소리와 함께 부러지고 만다. 증도남이 깜짝 놀라 고삐를 쥔 채 뒤로 물러섰다. 수중에서 칼 한 자루를 빼어 들고 다시 덤볐다. 7, 8합을 대결하는 동안 여어동은 헛점을 발견하고 피리로 그의 오른팔을 내리쳤다. 증도남이 손에 들었던 칼을 놓치고 말았다. 「이 열 곡을 당신은 무슨 일이 있어도 다 들어야 하오. 흥을 깨는 사람을 나는 제일 질색으로 압니다. 내 피리소리를 듣지 않으려는 것은 바로 나를 깔보는 것이오. 옛 시조에 이르기를 달리는 말에 채찍이 필요 없어 버들가지 꺾노라. 말에서 내려보니 길가의 수심만 멀리멀리 퍼지노라)고 했으니 옛분들이 선견지명이 있었소.」 말을 마치고 피리를 입에 댄 채 불기 시작했다. 「함께 달려들어 이자를 잡아라. 증도남이 팔을 휘두르며 소리를 지르자 병사들이 우르흐 몰려들었다. 장사근이 말에서 뛰어내리며 철장을 휘둘렀다. 발초심- 蛇)의 재주를 펴 앞장 선 청병의 다리를 가볍게 건드리자 아이쿠 하는 비명 소리를 지르며 벌렁 철장 위에 넘어졌다. 이 철장을 번신상권수로 위를 향해 휘두르자 줄 끊어진 연처럼 허공에 떠 (사람 살려라!)는 비명을 지르며 내 사람들 틈 사이로 떨어졌다. 장사근은 앞으로 나서며 그들 몇 명의 청병을 허공에 집어던졌다. 뒤에 있는 청병들은 사방으로 달아난다. 증도남이 채찍으로 후려치며 막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장사근이 신나게 청병을 집어던지고 있는데 갑자기 맞은 편 큰 수레의 휘장이 열리며 번쩍번잭 資나는 칼끝이 자기를 노리고 달려들었다. 장사근은 철장 끝을 도발수양(倒拔垂楊)으로 해서 칼을 향해 휘둘렀다. 철장이 미처 도착하기도 전에 칼이 변초 를 하면서 그의 다리를 날카롭게 노렸다, 장사근이 철장을 옆으로 휘둘러 막으려고 했다. 상대방은 철장의 무게가 육중함을 알고 직접 막으려 하지 않고 뒤로 물러섰다. 장사근이 정신을 가다듬고 살펴보니 상대는 빨간 옷을 입은 나이 어린 소녀다. 그는 월동-尊東) 사람이라 몹시 사투리가 심했다. 북쪽으로 온 뒤에 자기 말을 알아듣는 사람이 적기 때문에 별로 말을 하지 않았다. 아무 말도 없이 철장을 휘두르며 그녀와 어우러져 싸우기만 했다. 수 초를 대결하는 동안 그녀의 검술이 오묘함을 보고 마음속으로 슬그머니 놀랐다. 장사근은 답답해 견딜 수가 없었다. 여어동은 옆에서 넋을 잃고 구경만 한다. 이때 그는 피리 부는 일도 까맣게 잊은 듯 그 소녀의 검술만 주시하고 있었다. 검을 쓰는 솜씨가 가는 버들가지가 바람을 타고 물결 위에 노러는 듯 유연한 것이, 바로 본문의 정전인 유 운검술이다. 하나는 숙달된 기술이요, 다른 하나는 워낙 힘이 강해 좀처럼 승부가 날 것 같지 않았다. 여어동이 뛰쳐나가며 금피리로 두 사람의 병기 사이를 막고 소리를 질렀다. 「손들을 멈추시오! 그 소녀와 장사근이 각기 뒤로 한 발 물러섰다. 이때 증도남이 한 자루의 창을 비껴 들고 말을 달려 도우려고 나타났다. 청병들은 멀찌감치 선 채 소리를 지르며 사기를 돋우었다. 소녀가 손을 휘둘 러 증도남을 물러서게 하자 여어동이 말문을 열었다. 「소저의 존함을 듣고 싶습니다. 그리고 사부님은 어느 분이신지 요? 「내게 물어 보시지만, 나는 말하기를 좋아하지 않아요. 당신이 금 7수재 여어동이란 사실은 잘 알고 있지요. 홍화회에서는 열네버째 교의에 앉아 계시구요.」 여어동과 장사근이 그녀의 말을 듣고 깜짝 놀라 의아한 표정으로 서로 바라다보았다. 증도남은 그녀가 강호의 도적과 같은 작자 들을 상대로 시시덕거리며 말을 나누자 영문을 몰라 눈알만 굴렸다. 3명의 남자가 시시덕거리고 있는 계집아이를 상대로 무슨 말을해야 좋을지 몰라 망설이고 있는데 갑자기 말발굽 소리가 요란히 울리며 청병들이 비켜 선 틈으로 여섯 필의 말이 서쪽으로부터 달려왔다. 앞장 선 사람의 표정이 파리해 보이고 백발이 성성한 것이 바로 무당파의 육비청이었다. 여어동과 그 소녀는 약속이나 한 것 처럼 앞으로 달려나가며 반갑게 소리를 질렀다. 「사숙님 ! 「사부님 ! 하나는 사숙이라 불렀꼭 다른 하나는 사부라 불렀다. 이원지는 너무 반가와 큰 소리로 외치며 말에서 뛰어내려 절을 했다. 그 土녀는 육비청의 여제자인 이원지였던 것이었다. 육비청의 뒤에 있는 사람들은 주중영,주기,서천굉,맹건응,안건강 등 다섯 사람이었다. 그날 낙빙이 밤에 나가버린 뒤 주기는 이튿날 새벽에 일어나 이 사실을 알고 못내 못마땅했다. '당신들 홍화회, 어지간히 사람을 깔보기 좋아하는군요 왜 넷째 형수님과 함께 떠나지 않았나요? 서천굉을 항해 비꼬자 그는 주씨 부녀에게 해명을 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젊은 부부 사이라 한시라도 빨리 만나 보고 싶어 일찍 떠났는데 , 그야 당연한 정리가 아니겠소? 주증영이 이렇게 말했지만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는 서천굉을 그냥 놔 둘 주기가 아리었다. 「왜 무슨 걱정이 있어서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거예요? 「넷째형수님이 혼자 떠나셨는데 노상에서 무슨 일이나 없는지 걱정스러워 그럽니다.」 「그 말이 일리가 있군요. 우리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오. 빨리 쫓 아가 봅시다. 정말 무슨 일이 있기라도 한다면 내 무슨 면목으로 진 당가를 만난단 말이오.」 주중영의 말에 그들은 즉시 일어나 말을 달렸고 그날 오후 육비청과 맹건웅 , 안건강 등을 만날 수 있었다. 여섯 사람이 낙빙의 일을 염려하며 계속 길을 재촉했다. 진가락 등 일행이 지난 뒤 얼마 되지 않아 그곳을 지키고 있던 장진을 만나 문태래가 앞에 있다는 말을 듣고 여섯 필의 말이 바람처럼 쫓아온 것이다. 육비청이 이원지를 발견하고 물었다. 「원지야, 어떻게 해서 여 사형 장 대가와 함께 있게 되었느냐? 「여 사가께서 피리소리를 듣지 않으면 안 된다고 야료를 부리는 군요. 뭐 열 곡이 있는데 용음이니 봉명이니 하는 것들이라나料 저는 듣고 싶지도 않은데 길을 막고 못 가게 하고 있어요. 사부님 께서 한번 따져 주세요.」 여어동은 이원지가 육비청을 향해 하소연하는 소리를 듣고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내가 길을 막고 피리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한 것은 사실이지만, 언제 아가씨를 막고 야료를 부렸단 말인가?) 주기는 이원지의 말을 듣고 무섭게 서천굉을 노려보았다. (너희들 홍화회에 호인이 몇 명이나 있느냐?) 이런 표정이 역력챘다. 육비청이 이원지를 바라다보았다. 「앞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니 여기서 움직이지 말고 그냥 있거라. 공연히 부인 놀라시게 하면 어떻게 하느냐? 일이 끝나면 이곳으로 다시 오마.」 이원지는 앞에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있는데도 자기들을 보고 오지 말라고 하자 화가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입을 뽀로통하게 내밀고 대답도 하지 않았다. 육비청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다른 사람을 향해 손짓을 하고 말 위에 올라 동쪽을 향해 달려나갔다. 진가락은 군응들을 인솔하고 질풍처럼 공인들을 추격해 1리쯤 달려나가자 아득한 평원 저쪽에 은은히 인마가 한 줄로 행진하고 있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무진이 칼을 뽑아 들고 외쳤다. 「추격하자! 다시 1리쯤 달려나가자 아득했던 그들의 모습이 점점 더 확실히 보이기 시작했다. 지름길을 이용해 낙빙의 백마가 먼저 달려나가 눈 깜짝할 사이에 벌써 적 가까이 접근했다. 이때 갑자기 전면에서 함성이 크게 일어나며 수십 필의 낙타가 동쪽에서부터 서쪽을 향 해 달려왔다. 너무나 뜻밖에 일어난 일이라 낙빙은 말을 멈추고 그들의 정체 를 알아보기 위해 자세히 살펴보았다. 이때 공인들의 행렬도 가던 길을 멈춘 채 그들을 향해 누구냐고 큰소리로 물었다. 맞은편의 마 대는 점점 더 빨리 달려왔다. 말에 탄 사람들의 장도가 반짝반짝 빛을 발하며 공인들의 행렬 속을 뚫고 들어가 쌍방간에 혼전이 벌어졌다 낙빙은 어디서 나타난 원군인가 의아하게 생각했다. 잠시 후 진가락 등 일행도 당도하여 마상에 앉은 채 관전을 했다. 갑자기 한 필의 말이 맞은편에서 달려오다가 혼전을 벌이고 있 는 쌍방의 옆을 돌아 홍화회 군웅들을 향해 달려왔다. 거리가 가까 워지자 말 위에 탄 사람이 위춘화임을 알아볼 수가 있었다. 그는 진가락의 면전으로 오더니 큰소리로 이렇게 보고하는 것이 었다. 「총타주님, 제가 십이랑과 협구(峽口)를 지키고 있는데 이들 위 구르 사람들이 달려들었습니다. 막으려고 했지만 막을 재간이 있어 야지요, 그래 보고를 드리려고 달려왔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관노 들과 싸우고 있으니 정말 이상한 일이로군요」 「무진 도장,조 삼가,상씨쌍협 네 분은 앞으로 나가 우선 사가 가 타고 있는 수레를 뺏도록 하시오. 나머지 사람들은 여기서 사태를 관망하다가 다시 행동을 취합시다.」 진가락의 명령에 무진 등 네 사람이 대답을 하고 말을 달려나갔다. 2명의 포쾌가 그들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어디서 오는 사람들이오? 조반산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2개의 강표를 날렸다. 하나는 목에 다른 하나는 배에 강표를 맞고 말 위에서 떨어졌다. 조반산의 별명은 천비여래다. 늘 웃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 부드럽고 인자해 점잖은 군자나 서생 같았지만, 일신에 지닌 암기는 그 종류가 많거니와 빠르고 정확하기 비길 데 없었다. 옆에 있는 사람들은 그가 한 손으로 도대체 어떻게 했기에 2명을 쓰러뜨렸는지 똑똑히 볼 수도 없었다. 이번 홍화회가 사람을 구출하기 위해 대거 출동하여 그 첫번째 공을 평소에 겸손하고 부드럽기 그지없는 천비여래가 세운 셈이 되었다. 네 사람이 큰 수레로 접근하고 있을 때 머리에 흰 천을 감은 위구르 사람 하나가 창을 들어 그들을 찔렀다. 무진이 몸을 옆으로 돌려 피하면서도 반격은 하지 않고 직접 수레를 향해 달려들었다. 표사 한 명이 칼을 들어 찍는데 무진 역시 칼을 들어 막았다. 검봉 이 번갯불처럼 스치고 지나자 우선 표사의 네 손가락이 잘려 나가 고 이어 순수추주(順手推會)로 가슴을 뚫고 들어갔다. 이때 그의 등뒤에서 병기가 바람을 쪼개는 소리가 들렸다. 적이 나타난 것이 다. 고개도 돌리지 않고 왼손에 들고 있던 칼을 아래서 위로 빠르게 휘둘렀다. 칼날이 적의 왼쪽 겨드랑이를 뚫고 들어가 오른쪽 어깨로 빠져나 왔다. 뒤에서 어떻게 그를 요리해 보려고 대들었던 표두의 머리가 비스듬히 잘려 두 토막이 되면서 선혈이 사방으로 튀었다. 조반산과 상씨쌍협이 뒤에서 이 광경을 보고 박수 갈채를 보냈다. 표행의 무리들은 무진의 검법이 대단함을 보고 혼비백산하여 우왕좌왕했다. 상씨쌍협이 수레로 접근하는데 옆에서 7, 8명의 위구르 사람들이 긴 칼로 춤추는 듯하며 나타나 막았다. 상씨쌍협은 날렴한 솜씨로 그들과 대결하기 시작했다. 몸이 가냘픈 표사장이 수레 앞에 있는 노새의 머리를 노린 뒤 채찍으로 후려쳤다. 놀란 노새가 달려나가자 그도 말을 탄 채 수레의 뒤를 바짝 따르는데 바로 동조화였다. 조반산과 무진이 말을 달려 추격을 했다. 조반산이 비황석을 꺼내 들어 동조화의 뒤통수를 향해 날렸다. 코란 경 뒤통수를 맞은 동조화는 선혈을 흘리며 비명을 질렀다. 그는 즉시 가죽신 틈에서 비수를 뽑아 들고 노새의 엉덩이를 깊숙이 찔렀 다. 통증에 놀란 노새가 미쳐 날뛰며 앞을 향해 달렸다. 조반산이 동조화의 말을 향해 몸을 솟구쳐 미처 말 안장에 앉기도 전에 오른손으로 그의 오른팔을 낚워채 공중에서 휘두르다가 수레 앞의 노새를 향해 집어던졌다. 동조화가 노새의 머리 위로 떨어지며 죽자하고 매달렸다. 놀란 노새는 눈까지 보이지 않자 이리저리 뛰다가 오히려 머리를 이쪽 방향으로 돌렸다. 무진과 조반산의 쌍마가 달려오며 노새를 잡았다. 조반산이 동조화의 덜미를 잡아 길가에 태질을 했다. 「삼제, 사람을 잡는 데 암기를 쓰는 재주가 정말 훌륭하오.」 무진이 칭찬의 말을 했다. 그들 두 사람은 동조화가 누군지 몰랐 고 또 마음속으로 문태래의 일만 염려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동조화는 몇 번 데굴데굴 구르다 풀더미 속으로 들어갔다. 혼비백산한 그는 긴 풀 사이를 슬금슬금 기어 멀리 멀리 달아났다. 조반산이 수레의 휘장을 제치고 안을 들여다보니 어둡고 침침해서 잘 보이지 않는데 누군가가 비스듬히 앉아 있고 그 위에 솜이불을 뒤집어씌웠다. 「사제 아니오? 우리가 이렇게 구하러 왔소.」 조반산이 반가워 외치자 (끙) 하는 신음소리가 들렸다. 「사제를 데리고 먼저 돌아가시오. 나는 장소중을 찾아 결판을 내리다. 무진이 이렇게 말을 하고 말을 달려 사람들 틈을 헤집고 앞으로 나아갔다. 표사와 공인들은 원래 동쪽을 향해 달아나고 있다가 갑자기 무진이 말을 달려 이쪽으로 달려오자 함성을 지르며 서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장소중, 장소중, 이놈 썩 나오지 못할까? 무진이 큰소리로 장소중을 찾아보았지만 아무도 대답을 하는 사람이 없자 다시 적의 무리를 뚫고 들어갔다. 표사와 공인들은 그가 쫓아오자 혼비백산하여 사방으로 흩어졌다. 홍화회 군웅들은 조반산이 수레를 몰고 나타나자 모두들 반기며 몰려들었다. 낙빙이 맨 먼저 수레 앞에 도착하여 말에서 뛰어내렸 다. 여보! 떨리는 소리로 남편을 불러 보았지만 수레 안에서는 반응이 언 다, 낙빙은 떨리는 가슴을 할딱이며 수레 안으로 들어가 휘장을 제 쳤다. 이때 홍화회 군웅들도 달려와 말에서 내려 살펴보았다. 상씨쌍협은 수레를 이미 뺏은 것을 발견하자 정체 불명의 위구르 사람들과 공연한 싸움을 벌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형제 둘이 휘파람을 불며 위구르 사람들을 헤치고 말머리를 돌려 빠져 나왔다. 그들 위구르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접근만 저지하려는지 두 사람이 물러나는 것을 보고도 추격할 생각은 하지 않고 오히려 혼전을 벌이고 있는 중앙으로 달려들어갔다. 무진 도인은 여전히 사람들 틈에서 좌충우돌하고 있었다. 한 명의 졸개가 뒤늦게 달아나다가 그의 칼에 어깨를 맞고 쓰러졌다. 무진은 그의 생명을 해치고 싶지 않았다. 그의 옆으로 달려가며 큰소리를 질렀다. 「화수판관, 썩 나서지 못하겠느냐? 이때 갑자기 한 필의 말이 그의 면전으로 달려들었다, 말 위에 타고 있는 위구르 사람은 체격이 우람하고 꼬불꼬불한 수염이 덥수룩한데 무진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어디서 온 도사가 여기서 소란을 부리고 있는 거요? 무진이 칼을 들어 치자 그 위구르 사람도 마도를 들어 막았다. 무진은 좌우로 칼질을 하는데 신속하기가 전광석화 같은 솜씨였다. 위구르 사람의 오른팔이 들리고 마도는 아직도 머리 위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당황한 그는 즉시 등자에 힘을 주며 몸을 숙이고 오른발을 등자에 버틴 채 몸을 말의 배 밑으로 숨겨 겨우 칼을 피할 수 있었다. 놀란 그자는 식은땀을 흘리며 숙달된 기마술에 의지하고 달아났다. 이를 본 무진이 껄껄 웃는다. 「내 칼 세 번만피하면 그래도 호한이라할수 있으니 목숨은살려줘야지. 그러고는 다시 사람들 틈을 뚫고 들어갔다. 상씨쌍협이 동쪽에서부터 되돌아오는데 서쪽에서 여덟 필의 말 이 또 달려왔다. 바로 주중영과 육비청 일행이 도착한 것이다. 앙쪽의 사람이 미처 수레에 접근하기도 전에 낙빙이 수레 안에 서 사람을 끌고 나와 땅바닥에 동댕이치며 소리를 질렀다. 「문 나리는 어디 계시냐? 말을 미처 끝내기도 전에 두 줄기 눈물부터 흘렸다. 뭇 사람들이 그자를 보니 늙은 얼굴이 창백한데 공인 차림에 오른팔을 목에 걸고 있었다. 낙빙은 그가 북경의 포두인 오국동임을 알았다. 객점에서 문태래에게 맞아 오른팔이 부러진 그자다. 오른 발을 들어 걷어차며 다시 물으려고 하는데 숨이 차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위춘화가 그의 오른눈을 찍으며 土리를 질렀다. '문 나리는 어디 계시냐? 바른 대로 말하지 않으면 네놈부터 죽여 없애겠다.」 오극동은 이를 갈며 이렇게 대답했다. '장소중 그녀석이 문,,,,,, 문 나리를 모시고 멀리 가 버렸오. 그놈이 나보고 수레에 타라고 해서 타고 있었을 뿐이에요. 호? 그러는 줄 알고 고맙다 했더니 흉계였군요. 나를 이꼴로 만들어 고 제놈은 북경으로 상을 타겠다고 먼저 가 버리다니...... 제기랄 그따위 양심을 가지고 언제까지 사나 두고 봐야겠군요.」 그는 계속 장소중을 욕했다. 이때 동-서쪽 사람들이 모두 도착했다. 진가락이 말문을 슬쩍 열었다. '관노들과 표행놈들을 모조리 묶으시오. 한 놈도 달아나지 못하게 단단히 지키고 우리 양쪽으로 나뉘어 쫓아갑시다.」 즉시 진가락과 조반산-상씨쌍협 ,양성협 .위춘화 장사근. 연은 남쪽에서부터 쫓아가고, 주중영 ,육비청 서천굉 .낙빙 . 61동-주71-맹건웅-안건강은 북로로 쫓아가 보기로 했다. 7 고는 공인과 표행 사람들 및 뭇 위구르 사람들은 중앙에 몰아 놓고 포위를 했다. 위구르 사람들은 때마침 공인과 표행 사람들을 상대로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조반산이 쌍수를 가볍게 들어 3개 암기를 날리자 포쾌 2명과 표사 한 명이 맞고 말 위에서 떨어졌다. 위구르 사람들은 그제야 피아를 식별하고 환호성을 질렀다. 꼬불한 수염의 주인공이 이쪽으로 달려와 인사를 했다. '어디서 오신 호한" 맙습니 다.」 말을 마치자 칼을 들어 경의를 표했다. 진가락은 두 손을 마주잡아 답례를 하고 소리를 질렀다. 누구신지는 몰라도 이렇게 도와 주시니 정말 고 「형제 여러분, 함께 달려들어 관노를 잡읍시다.」 뭇 영웅들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하고 병기를 들고 나섰다. 이때 공인들과 표행 가운데 무공이 출중하다는 사람들은 거의 다 죽고 없었으니 나머지 평범한 무리들이 감히 반항할 재간이 없었다. 모두 땅바닥에 꿇어 엎드려 살려 달라고 애걸을 했다. 「나리, 나리, 목숨만 살려 주십시오.」 심년은 기분이 좋아 낙빙을 바라다보았다. ,아주머니, 정말 뜻밖이지요. 저들이 날 보고 나리라고 하는군요. 낙빙은 심란하여 심연의 말이 귀에 들릴 리 만무였다. 갑자기 무진 도인이 사람 틈을 헤집고 말을 달려나오며 소리를 질렀다. 「모두들 여기 와 구경들 하구려. 사람들은 무진의 추혼탈명검이 해내의 독보임을 알고 있었다. 강호상에서 그의 삼초양식을 당해낼 만한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조용하시오. 이 소녀의 검법이 아주 그럴듯 하군요. 그런 그가 다른 사람의 검법을 칭찬하다니 여간 드문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 대상이 여자란 말을 듣자 모두 호기심이 생겨 가까이 접근해 살펴보았다. 꼬불꼬불한 수염의 위구르 사람이 자기들의 말로 몇 마디 외치자 그의 부족들이 길을 양보해 주었다. 무진이 진가락을 향해 이런 말을 했다. 「총타주님. 오행륜(行輪)을 쓰는 저녀석의 솜씨 좀 보세요. 결코 약한 편도 아니군요.」 진가락이 사람들 틈으로 바라다보니 검기가 종횡하고. 윤영이 난무하는 가운데 노란 옷을 입은 소녀가 용감하게고 강건한 사나이와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육비청이 진가락 옆으로 접근해 이렇게 알려주었다. 「노란 옷을 입은 소녀의 이름은 곽청동, 천산쌍웅의 제자입니다. 저 오행륜을 쓰고 있는 사람은 관동육마 가운데의 염세장이구요.」 진가락은 마음이 흠칫했다. 천산쌍응 독취 진정덕 설조 관명매는 회강 무림의 선배임을 잘 안다 그의 사부인 천지괴협(天池怪俠)과는 평소부터 서로 꺼리는 사이였 다. 무슨 원한을 산 일은 없지만 될 수 있는 대로 서로 만나지 않 으려고 노력했다. 오래 전부터 천산파의 삼분검술 (三分劍 術)이 일가를 이루고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유심히 살펴보았 다. 노란 옷의 소녀의 검광이 번쩍번쩍하며 공세가 날카로운 데 반해 염세장은 쌍륜을 휘두르면서도 겨우 방어에만 급급할 뿐이었다. 위구르 사람들은 함성을 질러 사기를 돋우면서 전단에 가세할 태세를 취하고 있었다. 염세장의 쌍륜이 지천획지(指天劃地)의 자세로 방어와 공격을 취 하며 뒤로 한 발 물러선 뒤 이렇게 말했다. 「잠깐만, 할 말이 있소.」 위구르 사람들이 그의 앞으로 다가섰다. 병기가 눈부시게 빛나고 있어 당장이라도 그를 죽여 없앨 것처럼 살기등등했다. 염세장이 돌연 쌍륜을 왼손에 바꾸어 쥐면서 오른손으로 등에 메고 있던 빨간 보따리를 채어 손에 들고 쌍륜을 높이 치켜들었다. '숫자가 많다고 나를 해치울 모양인데, 그렇다면 난 보따릴 먼저 없애 버리고 말겠소.」 오행륜의 바퀴에서 백광이 반짝이는 것이 예리하기 짝이 없다 쌍륜으로 내려 찍기만 하면 보따리는 세 토막으로 쪼개지고 말 것 이다. 위구르 사람들이 모두 놀라서 뒤로 몇 발짝씩 물러섰다. 염세장은 겹겹으로 포위당한 것을 보고 일신의 무공에 의지한 수 없고 요행을 바랄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당신들의 숫자가 많으터 내 생명을 뺏는 것이야 여반장이겠지 요. 그러나 내가 죽어도 승복할 수는 없는 일이오. 1대 1로 대결을 해 내 수중의 쌍륜을 이기는 사람이 있다면, 내 그를 영웅호한으로 존경하고 보따리를 바칠 것이로되, 그렇지 않다면 나는 차라리 이 보따리와 함께 끝장을 내고야 말겠소. 공연한 망상은 일찌감치 집 어치우시오.」 「그렇다면 어디 나하고 대결해 봅시다.」 주기가 안령도를 흔들며 달려들려고 했다. 주중영이 그를 잡아 끌었다. 「아니, 여기 쟁쟁한 영웅들이 많이 계신데 네까짓 계집애가 나설 필요가 뭐 있느냐? 곽청동이 주기를 향해 왼손을 번쩍 들며 말했다. 「언니의 호의가 너무나 감사해요.」 「뭐, 아무것도 아닌데 그런 인사를 해요? 「제가 먼저 저자와 대결을 할 테니 당해 내지 못하거든 그때 좀 도와 주세요.」 「걱정 마세요, 꼭 도와 드리구말구요.」 「바보 같은 계집애야. 저 사람의 무공이 너보다 몇 배 훌륭한데 그래 보고도 그걸 몰라? 주중영이 낮은 소리로 책망을 했다. 「그랬기로 설마 날 원망할 리야 있겠어요? 이때 육비청이 말참견을 하고 나섰다. 「저 빨간 보따리 속에는 틀림없이 그들 위구르 사람들의 보물이 들어 있을 것이오. 그래서 직접 자기들 손으로 뺏어 오고 싶을 것이오.」 「아, 그렇다면 제가 양보를 해야지요.」 주기는 그제야 머리를 끄덕이며 물러섰다. 주중영도 할 수 없다는 듯 머리를 흔들며 웃기만 했다. 그의 무예가 출중하여 무림 가운데 일급의 인물이라고는 하지만 성격이 대범하고 호방한 사람이다. 그는 성격이 치밀한 편은 아니었다. 그래서 배출한 제자나 딸의 무공이 비교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 딸이라고 생긴 것이 귀엽기는 하지만, 적극적인 것이 사내 아이를 닮아 일만 당하면 자기와 삼관이 없건말건 제일 먼저 나섰다. 염세장이 보따리를 다시 등에 짊어지며 이렇게 말했다. 「누가 먼저 나와 상대할 것인지 아직까지 상의가 끝나지 않았소. 「내가 오행륜의 고고한 초수를 받기로 하겠어요.」 곽청동이 나섰다. 「승부가 가려지면 어찌하겠소? 「승부에 관계없이 그 경서만은 내놓아야 해요. 당신이 이기면 그냥 보내 주지만, 지면 여기 잡아 두겠어요.」 말을 마치자 칼을 비스듬히 해서 그의 왼쪽 어깨를 찔렀다. 염세장의 쌍륜은 오행팔괘에 의한 팔팔이 64다. 전적으로 적의 무기를 뺏으며 철통 같은 봉쇄를 하는 초술이다. 두 사람은 눈 사이에 7, 8초를 대결했다. 진가락이 여어동을 향해 손짓을 하자 여어동이 그쪽으로 다가갔다. 「십사제는 먼저 출발하여 사가의 행방을 알아보시오. 우리는 뒤를 따라가리다.」 여어동이 대답하고 물러나오며 고개를 돌려 낙빙을 바라다보았 다. 고개를 숙인 채 넋을 잃고 있는 그녀를 향해 몇 마디 위로의 말을 해 주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생각을 바꾸고 그는 말을 몰았다. 곽청동이 다시 공격을 개시했다. 검초가 더욱 빨라져 칼이 상대 방의 몸에 접근하기도 전에 벌써 변초를 했다. 염세장의 쌍륜이 그 의 보검을 봉쇄하려고 했지만 좀처럼 봉쇄되지 않았다. 무진 -육비 청.조반산 등 몇 명은 검술의 고수라옆에 비켜 선 채 구경을 하면서 평가를 했다. 「그의 오른쪽 겨드랑이를 찌르는 솜씨가 빠르기는 한데 약간 매섭지 못하군요. 무진의 말에 조반산이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녀의 솜씨가 몇십 년 동안 공력을 닦은 사람과 비교가 되겠 습니까? 아마 저 아가씨 나이만 했을 때 저는 저 정도에도 미치지 못했을 것이오.」 '저 아가씨 아주 귀엽게 보이는데 우리 그녀를 도와 줍시다.」 무진이 웃으며 하는 말을 들으며 진가락은 곽청동의 검법이 오묘함에 마음속으로 찬사를 보내고 있었다. 다시 20여 초를 대결하는 동안에 곽청동의 양볼이 살짝 상기되고 이마에도 땀방울이 송알송알 돋기는 했지만 투지는 왕성했다. 사뿐사뿐 옮기는 발걸음도 흩어짐이 없다가 갑자기 검법을 바꾸었 다. 천산파 절기인 해시신루였다. 칼끝이 용출하고 검초 는 허허실실 사진실환(似眞實幻) 사환실진(似幻賓眞)의 묘기를 발 휘했다. 군웅들은 숨을 죽인 채 넋을 잃고 바라다보았다. 윤광과 검 영이 난무하는 가운데 염세장의 오른팔이 칼에 맞았다. 놀란 비명 소리와 함께 오른쪽의 오륜이 반공에 날고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 일시에 환호성을 질렀다. 염세장이 몸을 날려 10여 자 뒤로 물러섰다. '내가 졌소. 경서를 가져가시오.」 손을 뒤로 돌려 등에 진 빨간 보따리를 풀려고 했다. 곽청동이 희색이 만면하여 몇 발짝 앞으로 나서며 칼을 칼집에 꽃고 두 손을 뻗어 그들 부족이 성물로 받들어 모시는 코란 경을 받으려 했다. 염세장의 얼굴 표정이 순간적으로 어두워지다가 벌컥 소리를 질렀다. 「가져가거라! 오른손이 번쩍 들리더니 돌연 3자루의 비추가 곽청동의 앞가슴을 노리고 날아왔다. 너무나 창졸간에 벌어진 일이라 곽청동으로서는 피할 방법이 었었다. 얼굴을 철판교로 쳐들고 전신을 뒤로 꺾었다. 3개의 비추가 아슬아슬하게 그의 얼굴을 스치며 지나갔다. 악랄하기 귿이 없는 일이었다. 염세장은 3개의 비추가 손에서 떠나자마자 계속해서 3개의 비추를 또 던졌다. 이때 곽청동의 두 눈은 하늘을 향해 있었기 때문에 이 위험을 알지 못했다. 옆에서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이 달려나갔다. 곽청동이 허리를 펴니 정그렁 소리가 세 번이나 들렸다. 3개의 비추가 누군가가 던진 암기에 맞고 땅바닥에 떨어진 것이었다. 누군가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뒤에 던진 3개의 비추가 벌써 자기의 급소에 명중되었을 것이다. 놀라 식은땀을 흘리며 급히 칼을 들었다. 염세장이 온힘을 다하여 곽청동을 향해 덮쳐드는데 그 기세가 마치 미친 호랑이처럼 무서웠다 그는 오행륜을 번쩍 들어 곽청동의 머리를 내려쳤다. 곽청동은 변초할 건를도 없이 칼을 막았다. 오행륜은 위에서 아래로 내리누르고 본검은 위로 뻗혀 좀처럼 떨어질 줄을 몰랐다. 염세장의 뚝심이 강해 오행륜이 더 밑으로 내려오며 그녀의 머리를 눌러 톱니의 끝이 모자의 깃털을 건드리고 있었다. 군웅들이 구원의 손을 뻗치려는 순간 갑자기 파란빛이 반짝하더니 곽청동이 벌써 왼손으로 허리춤에서 한 자루의 단검을 뽑아 푹 하는 소리와 함께 염세장의 배를 찔렀다. 염세장이 비명을 지르며 뒤로 벌렁 넘어지자 뭇 사람들이 다시 한번 우레와 같은 박수 갈채를 보냈다. 곽청동이 염세장의 등뒤에 짊어진 빨간 보따리를 풀었다. 꼬불꼬불한 수염의 위구르 사람이 그녀의 면전으로 다가서며 칭찬을 했다. 「정말 훌릉해, 참으로 잘했다.」 곽청동은 두 손으로 보따리를 받쳐 들고 미소를 머금었다. 「아버지 ! 그 위구르 사람은 바로 그의 아버지인 목탁륜(水卓倫)이었다. 그 도 두 손으로 보따리를 받았다, 뭇 위구르 사람들이 몰려들며 환호성을 질렀다. 곽청동이 단검을 뽑으며 염세장을 보니 벌써 숨이 끊겼다. 이때 15, 6세 정도로 보이는 소년이 말에서 뛰어내려 땅 위에서 동글동글하게 생긴 횐색의 물건 세 개를 주워 가지고 한 청년 앞으로 걸어가 두 손으로 바쳤다. 청년이 손을 빼어 받아 가지고 주머니 속에 챙겨 넣었다. 곽청동은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방금 간적의 암기를 떨어뜨려 내 생명을 구해 준 사람이 바로 저이였구나.) 그를 유심히 살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옥 같은 용모에 별처럼 반짝이는 두 눈, 가벼운 도포에 느긋한 허리며, 손에는 한 자루- 부채를 든 기품이 우아해 보이는 인물이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치자 그 사람은 가벼운 미소를 보냈다. 곽청동은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 급히 고개를 떨군 채 아버지 앞으로 달려가 그의 귀에다 몇 마디 소근거렸다 목탁륜이 고개를 끄덕거리고 청년의 말 앞으로 걸어와 허리 숙여 인사를 했다. 청년도 급히 말에서 내리며 답례를 했다. 「내 딸의 목숨을 구해 주셔서 뭐라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공자의 존함을 듣고 싶숩니다.」 그 청년은 바로 진가락이었다. 겸양을 하면서 이렇게 자기의 이름을 밝혔다. '소제 성은 진이요, 이름은 가락이라 합니다, 저와 결의형제를 맺고 있는 사람이 이들 관노와 표행의 무리들에게 잡혀 구하러 가 그만 허행을 하고 말았습니다. 귀 부족의 성물을 이제 찾았으니 진심으로 축하를 드립니다.」 목탁륜은 아들 곽아이와 딸을 불러 함께 진가락을 향해 인사를 드리도록 했다. 진가락은 곽아이가 네모 반듯한 얼굴에 큰 귀, 온 얼굴에 수염이 덥수룩한 데 반해 곽청동은 몸이 날씬하고 아리따우며 아름다운 꽃이나 아침 노을 같음을 새삼스럽게 발견하고 놀랐다. 아- 그녀의 검법에만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전연 그녀의 얼굴을 볼 기회가 없었다. 이제 가까이에서 보니 세상에 이토록 아리따운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자기도 모르게 가슴이 뛰고 있음을 느꼈다. 「공자께서 구해 주시지 않았다면 저는 벌써 저자의 독수에 죽었을 거예요. 대은대덕은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곽청동의 낮은 말소리였다. 「오래 전부터 천산쌍응 두 선배님의 삼분검술(三分劍術)이 뛰어나 당세에 비견할 만한 사람이 없다는 말을 들어 왔습니다. 오늘 소저의 신기를 대하고 보니 과연 그 명성이 헛되지 않음을 느낄수 있겠군요. 방금 제 무딘 재주가 부끄럽기 짝이 없는데 이- 고맙다고 하시니 당치 않은 말씀이십니다.」 주기는 그들의 겸양이 답답해 견딜 수 없어 곽청동을 향해 참견을 하고 나섰다. '검법이 내 검법보다 훌륭하기는 하나 한 가지 가르쳐 드려야 할 일이 있더군요.」 「어디 언니의 지도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방금 싸우던 저녀석이 교활하기 짝이 없던데 지나치게 신중을 기하다 하마터면 그의 독수에 걸릴 뻔하지 않았어요? 많은 남자들 은 모두 음흥한 데가 있으니 앞으로는 조심을 해야겠어요.」 「옳은 말씀이세요 방금 진 공자께서 구해 주시지 않았더라면 무 슨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지 아나요 ? 「진 공자라니 누구예요? 아 저분 말이에요? 저분은 홍화회 총타주예요. 여보세요 진 대가, 방금 비추를 때려 떨어뜨린 것은 무슨 암기예요? 제게 좀 보여 주시겠어요? 진가락은 주머니 속에서 몇 개의 바둑돌을 꺼냈다. 「이건 바둑돌이오. 솜씨가 별로 신통하지도 못하니 주 소저는 웃지 마시기 바라오.」 「솜씨가 아주 훌륭하시더군요. 오는 도중 아버지께서 계속 칭찬 의 말씀을 하셨다니까. 곽청동은 주기로부터 진가락이 무슨 방회의 총타주라는 말을 듣고 약간 의아해하면서 낮은 소리로 아버지와 상의를 했다. 목탁륜은 연방 머리를 끄덕거렸다. 「좋아, 좋아. 암 그렇게 해야지.」 그는 몸을 돌려 몇 발짝 걸어가 진가락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여러 영웅들의 도움으로 우리의 일은 이제 끝이 났습니다. 그런데 방금 공자님의 말씀 가운데 영웅 한 분을 아직 구출하지 못했다고 하셨는데, 제 생각으로는 제 아들과 딸이 몇 명의 동료를 데리고 공자와 함께 그 영웅을 구출하러 갔으면 합니다. 그들의 무예가 보잘것 없어 크게 쓰실 수는 없다 하더라도 혹 도움을 드릴 경우가 있지 않을는지요.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진가락은 매우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해 주신다면 그보다 더 고마을 데가 있겠습니까? 즉시 군웅들을 일일이 소개해 주었다. 목탁륜이 무진을 향해 입을 열었다. 「도장의 검법이 재빠르기 이를 데 없더군요 평생 보지도 못했던 솜씨였습니다. 다행히 도장께서 사정을 보아 주셨기에 망정이지 하 마터면 큰일날 뻔했습니다,,,,,, 하하,,,,,,.」 「큰 실례를 범했습니다. 과히 허물치 마시기 바랍니다.」 무진도 따라 웃으며 사과를 했다. 위구르 사람들은 영웅을 숭배하고 존경했다. 방금 무진,조반산 진가락,상씨쌍협 등의 솜씨 를 보면서 마음속으로 탄복하고 있다가 그제야 분분히 다가와 인사를 했다. 수인사를 나누고 있을 때 홀연 서쪽에서 말발굽 소리가 크게 들리며 한 사람이 달려와 말에서 뛰어내렸다. 미모의 소년이었다. 그는 육비청을 향해 인사를 했다. 「사부님 ! 이 사람은 이원지였다. 어느새 또 남장으로 갈아입었다. 그녀는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여어동은 보이지 않고 곽청동이 보였다. 달려가 그녀의 손을 친절하게 잡았다. 「그날 저녁 어디로 가셨나요? 보고싶어 죽을 뻔했어요. 그래 경서는 찾았나요? 곽청동도 그녀를 반겼다. 「방금 찾았어요. 저걸 보세요. 곽아이가 등에 짊어진 빨간 보따리를 손으로 가리켰다. 이원지가 잠시 침묵에 잠겼다가 입을 떼었다. 「끌러 보셨나요? 경서가 틀림없이 그 안에 있던가요? 「우리는 우선 알라 신에게 기도를 하고 신의 전지전능하심에 감사한 다음 끌러 보기로 했어요. 「그래도 먼저 끌러 보는 것이 좋지 않올까요? 목탁륜이 그 말을 듣고 미심쩍은 마음으로 급히 보따리를 끌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경은 보이지 않고 휴지만 잔뜩 나왔다. 사람들은 기가 막혀 입을 딱 벌렸다. 곽아이는 땅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표행의 심부름꾼을 잡아 일으키며 불이 나도록 따귀를 올려쳤다. 「그래, 경서는 어디로 갔느냐? 심부름꾼은 울상을 한 채 부어오른 볼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그들 표두들이,,,,,, 하는 일을 소인은 모릅니다.」 말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앉아 있는 전 정륜을 가리켰다. 그는 혼전 가운데 몇 군데에 경상을 입었고 대영 명 등이 죽자 투항하고 말았다. 곽아이가 그를 잡아 일으키며 소리를 질렀다. 「자네는 죽고 싶은가, 아니면 살고 싶은가? 전정륜은 눈을 감은 채 대답을 하지 않았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곽아이는 손을 뻗어 때리려고 했다. 곽청동이 가볍게 그의 옷깃 을 잡아당기자 번쩍 들렸던 그의 한 팔이 서서히 내려왔다. 곽아이의 성격이 원래 거칠기는 하지만 그의 두 누이에 대해서는 따르고 또 사랑하는 편이었다. 큰누이가 바로 곽청동으로 그녀의 무공은 오라비보다 강할 뿐 아니라 꾀까지 많았다. 이번 동쪽으로 오면서도 제반사 모두를 그녀가 계획 했다. 작은누이의 이름은 객사려로 나이가 어린데다가 무공도 몰라 이번에 동행하지 않았다. 「보따리 속에 경서가 없다는 사실을 어떻게 아셨지요? 곽청동이 이원지에게 물었다. 「제가 그들에게 한 번 속은 일이 있거든요.」 목탁륜이 전정륜을 향해 호통을 치며 묻자 경서는 벌써 다른 표사가 가지고 갔다는 대답이었다. 목탁륜은 반신반의하면서 부하들 에게 여기저기 잘 수색해 보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아무 단서 도 잡히지 않았다. 그들은 성물이 훼손되지나 않았나 걱정을 하면서 안절부절 못했다. 사람들은 그제야 염세장이 어째서 패하고도 즉시 보따리를 내 놓지 않았나 그 이유를 알았다. 보따리 속에 경서가 없었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다. 이쪽의 이원지는 육비청에게 헤어진 뒤의 소식을 묻고 있었다. 지난 일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자세히 들려 주마. 빨리 돌아가 봐라. 어머니께서 걱정하고 계시겠다. 이곳에서 벌어진 일은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발설하지 말거라. 알겠느냐? 「그럼요, 물론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지 않겠어요. 사부님은 아직도 저를 철부지 어린애 취급만 하시네요. 여기 있는 사람들은 뭐 하는 사람들이에요? 제게 소개해 주시지 않으시겠어요. 육비청은 순간 가볍게 이마를 찡그렸다. 「그럴 필요 없다. 빨리 돌아가 보거라.」 이원지가 제독의 딸이라 이들 강호의 거친 영웅들과는 신분이 다름으로 굳이 알고 지낼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이원지는 입을 삐죽 내밀었다. 「그래요 사부님이 제자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 저도 잘 알고 있어요. 무슨 금적수재라나 하는 사질은 끔찍이 위해 주시면서 말예요. 사부님, 그럼 그냥 가요.」 말을 마치자 육비청을 향해 절을 한 뒤에 말 위에 올랐다. 곽청동의 옆으로 가더니 허리를 숙여 그녀의 어깨를 어루만지며 뭐라고 귀엣말을 했다. 곽청동이 킥 하고 웃었다. 이원지는 말에 채찍을 가하며 서쪽을 향해 달려갔다. 이 모든 광경을 진가락은 하나도 빼놓지 않고 지켜보았다. 곽청동과 그 미모의 소년이 여간 친한 사이가 아니라 뭐라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묘한 감정의 파문이 마음속에 일었다. 자기도 모르게 넋이 나가 한참 동안이나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서천굉이 그의 옆으로 다가섰다. 「총타주님! 우리 어떻게 사가를 구출해야 할지 상의해 봐야지요.」 진가락은 그제야 자기 정신으로 돌아어왔다. 「참 그렇군. 심연, 문 형수님의 말을 타고 가서 장 십야를 모셔 오너라.」 심연이 분부를 듣고 그 자리를 떠났다. 진가락은 다시 위춘화를 바라다보았다. 「구가, 빨리 협구로 가서 십이랑을 만나시오. 관노와 표행의 행방 을 알아보고 오늘밤 안으로 기별을 하세요. 위춘화도 즉시 그 자리를 떠났다. 「우리들은 모두 여기서 하룻밤 노숙을 하면서 소식이 들리는 대로 내일 새벽에 떠나도록 합시다.」 진가락이 남아 있는 사람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반나절은 말을 달렸고 또 반나절은 전투를 하느라 모두들 허기가 지고 피곤해 있었다. 목탁륜은 자기 부족들을 지휘해 길 옆에 천막을 치게 했다. 그 가운데 몇 개의 천막을 홍화회 군웅 들에게 주어 묵게 하고 소와 양을 삶아 대접했다. 식사가 끝나자 진가락은 오국동을 불러다 놓고 심문을 했다. 오국동은 계속 장소중을 향해 욕을 퍼부으면서 문태래가 줄곧 수레에 타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뒤에 장소중은 적이 추적하고 있음을 눈치채고 문태래를 뺏길까 봐 자기를 수레에 태운 것이 틀림 없다고 했다. 진가락은 다시 전정륜 등을 조사해 보았지만 아무 결과도 얻지 못했다. 서천굉은 포로들이 천막 밖으로 나가자 진가락 을 향해 이런 제안을 했다. 「총타주님, 저 전가 성을 가진 녀석 눈資이가 반짝이고 교활해 보이니 우리 한번 시험해 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진가락이 좋다고 하며 둘이 낮은 소리로 상의했다. 날이 저물었는데도 위춘화와 석쌍영의 소식이 없자 모두들 걱정을 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들이 벌써 사가의 종적을 발견하고 쫓아갔는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좋은 소식을 가지고 오겠지요.」 서천굉의 의견에 군웅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한담을 나누다가 천막안에서 잠이 들었다. 표행의 무리와 관노들은 오랏줄로 손발을 묶어 천막 밖에 놓아 두고 장사근과 서천굉이 번갈아 가며 파수를 보았다. 달이 중천에 떠 오르자 서천굉은 천막 밖으로 나와 장사근을 불러 안에 들어가 자라고 했다. 그리고 혼자 사방을 한 바퀴 돌아본 뒤에 앉아 담요로 몸을 감쌌다. 전정륜이 바로 그의 옆에서 자고 있었다. 서천굉은 앉을 때 고의로 그의 다리를 밟았다. 전정륜이 통증을 느끼며 잠에서 깨어났다가 다시 자려고 하는데 갑자기 서천굉의 코고는 소리가 가볍게 들렸다. 잠이 든 것을 확인한 그는 마음속으로 기뻐하면서 두 손에 힘을 주며 비틀었다. 팔이 감긴 끈이 느슨해 몇 번 비틀자 손이 빠져나왔다. 숨을 죽인 채 기다리니 서천굉의 코고는 소리가 더욱 크게 들렸다. 발을 묶은 끈도 슬그머니 풀어 어느 정도 혈액이 유통하기를 기다렸다가 서서히 일어나 살금살금 밖으로 나왔다. 그는 천막 뒤로 돌아가 말뚝에 매어 놓은 말 한 필을 끌러 한 발짝 한 발짝 길가로 걸어 나오며 귀를 기울이니 쥐 죽은 듯 조용하다. 천막이 멀어질수록 걸음도 따라 빨라져 오국동이 타고 있던 수레 옆에까지 왔다. 수레를 끌던 노새도 풀어 놓은 지 오래요, 수레도 뒤집혀 있었다. 이때 앙쪽 천막 사이에서 갑자기 한 사람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주기였다. 그는 곽청동 , 낙빙과 같은 천막에서 자고 있었다. 그들 두 사람은 마음속에 근심하는 게 있어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잠을 이루지 못했으나 주기는 눕자마자 꿈속으로 빠져들었다. 꿈속에서 갑자기 깊은 구덩이에 빠져 몸부림을 치며 올라오려고 했지만 土용이 없었다. 구덩이 위에서 누군가가 아래를 향해 크게 웃는 소리가 들려 올려다보니 서천굉이다. 화가 나서 막 욕을 퍼부으려고 하는데 서천굉이 뛰어 내려와 자기를 꼭 껴안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입을 벌려 자기의 볼을 왁 무는데 어찌나 아픈지 그만 잠을 깨었다. 온몸에 식은땀이 흠뻑 배었다. 바로 그때 천막 밖에서 무슨 土리가 들린 것이다. 정신을 가다듬고 천막 자락을 들치고 레다보니 멀리서 누군가가 슬금슬금 큰 길을 향해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단도를 찾아 들고 천막 밖으로 나왔다. 몇 발짝 쫓아가며 소리를 지르려고 하는데 갑자기 누군가 등뒤에서 대들며 그의 입을 확 막았다. 깜짝 놀란 주기는 칼을 뒤로 빼서 찔렀다. 손발이 민첩한 그 사람이 주기의 팔을 잡아 비틀며 속삭였다. 「조용히 하세요. 주 소저 나요.」 주기가 바라다보니 서천굉이다. 칼로 찌를 수는 없고 해서 왼팔 의 주먹을 내리쳤다. 서천굉의 오른쪽 가슴이 얼얼하게 아팠다. 서천굉은 정말 아프기도 했지만 혼을 내줄 생각으로 벌렁 뒤로 넘어졌다. 주기는 깜짝 놀라 허리를 숙이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 「그럼 왜 내 볼을 물어-, 아니,,-, 아니,,,,,, 누가 내 입을 틀 어막으라고 했어요? 누군가 도망을 치는데 보지 못했나요? 「쉿! 아무 소리 하지 말아요.」 서천굉도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 두 사람은 땅바닥에 엎드린 체 그쪽을 향해 포복했다. 저젓룬이 수레의 방석을 들추었다. 삐거덕 삐거덕 나무판자를 뜯더니 거기서 나무로 만든 상자를 꺼내 몸속에 쑤셔 넣고 말에 오르려고 했다. 서천굉이 주기의 등을 밀었다. 도망가지 못하게 막아요. 주기가 몸을 날렸다. 전정륜은 인기척 소리를 듣자 한 발만 등자를 밟은 채 아직 말 등에 오르지도 못했는데 오른발을 들어 말 엉덩이를 걷어찼다. 말이 아파서 수 장이나 펄쩍 뛰었다. 주기도 결사적으로 그 뒤를 추적했다. 전정륜이 몸을 뒤집어 말에 오르며 오른손을 번쩍 들었다. 「표창 받아라. 주기는 급히 발걸음을 멈춘 채 몸을 옆으로 피했다. 그런데 이것은 어디까지나 전정륜의 공갈이었다. 잡혀 묶일 때 몸에 지닌 병기와 암기는 벌써 빼앗겼다. 주기가 당황해 있는 동안 말은 벌써 멀찍이 도망가고 있었다. 상당히 먼 거리였다 주기는 마음이 조급했지만, 쫓아가 봐야 소용이 없을 것 같았다. 전정륜이 껄껄 웃었다. 그러나 그의 웃음소리가 미처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말 위에서 곤두박질쳐 떨어져 내려왔다. 주기는 놀랍고도 반가웠다. 달려가 그의 등을 밟아 누르며 날카로운 칼끝을 등에 댔다. 이어서 서천굉이 달려왔다. '품속의 상자 안에 무엇이 들었나 꺼내 보세요.」 서천굉의 말에 주기가 나무 상자를 뺏어 열어 보았다. 상자 안에는 두꺼운 양피가 책처럼 묶여 있었다. 달빛에 비추어 보니 괴상한 문자라 한 자도 알아볼 수가 없었다. '또 홍화회의 괴상한 문자인가 보군요. 원, 알 수가 있어야지. 서천굉을 향해 되는 대로 그냥 집어던졌다. 서천굉이 받아 보고 반가워 외친다. 「주 소저의 공로가 대단하군요. 이건 아마 위구르 사람들의 경서가 분명할 거예요. 우리 빨리 총타주님께 갑시다.」 「그게 정말이에요? 그런데 진가락이 벌써 이쪽을 향해 오고 있었다. '아니! 진 대가, 어째 나오셨지요? 이게 뭔지 좀 보세요.」 주기는 의아해하며 이렇게 말했다. 서천굉이 나무상자를 그에게 넘겨 주었다. 진가락이 보고 이렇게 말했다. '이건 경서가 분명해요. 다행히 주 소저가 그 녀석을 막아 주었기에 망정이지, 우리 수십 명의 남자들의 재주로써도 당해 내지 못했 겠군요.」 주기는 그들 두 사람이 자기를 칭찬해 주자 한없이 흐뭇했다. 몇 마디 겸양의 말을 하고 싶었지만 도대체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어 망설이다가 한참 만에야 서천굉을 향해 겨우 이렇게 물었다. 「방금 내가 때린 데는 아프지 않으세요? 「기운이 대단하시더군요.」 서천굉이 웃으며 말했다. 「자기가 잘못해 놓으시고 그러세요. 주기는 이렇게 말하고 몸을 전정륜을 향해 돌렸다. 「빨리 일어나 가자. 발걸음을 옮기며 칼을 거두어들였지만 전정륜은 일어나지 않았 다. '아니, 다치지도 않았는데 왜 죽은 체하고 있는 게야? 가볍게 발로 차 보았지만 전정륜은 여전히 꼼짝하지 않았다. 진가락이 그의 겨드랑이 밑을 꼬집어 누르면서 소리를 질렀다. 「빨리 일어나.」 전정륜은 부스스 기어 일어났다. 주기는 어리둥절해 있다가 그제야 모든 것을 깨달았다. 사방을 두리번거리다 흰 바둑돌 하나를 집어 진가락에게 건네 주었다. '진 대가의 바둑돌이에요. 둘이 짜고 또 나를 속였군요. 흥, 벌써부터 홍화회 사람들이 별로 좋은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요.」 진가락이 미소를 지었다. 「둘이 짜고 주 소저를 속이다니, 무슨 말씀이십니까? 주 소저는 이자의 소리를 듣고 쫓아나오시지 않았습니까? 게다가 또 소저가 막지 않았더라면 이자가 당황하지 않았을 테니 자연 내 바둑돌들 피할 수 있었겠지요. 그가 말을 타고 있는데 어떻게 쫓아갈 수 있겠습니까? 안 그래요? 주기가 듣고 보니 이치에 맞는 말이라 다시 흐뭇한 기분이 들었다. 「그럼 우리 세 사람의 공로로군요.」 「주 소저의 공로가 제일 크지요.」 서천굉의 말이었다. 「제 아버지께 말씀드리지 마세요. 말씀드리면 내 또 주먹으로 떼리겠어요.」 「말씀드려도 괜찮지 않을까요? 「만약 말씀드리면 영원히 거들떠보지도 않겠어요.」 서천굉은 웃기만 할 뿐 대꾸하지 않았다. 그가 사전에 진가락과 계책을 상의할 때 미리 군웅들에게 통고를 해 놓았다. 밤에 무슨 소리가 들리더라도 나을 필요가 없다고 다짐을 받았다. 그렇지 않다면 무진 조반산 등의 공력으로 어찌 말발굽 소리를 듣고도 깨어 일어나지 않을 리가 있겠는가? 세 사람은 전정륜을 압송한 채 경서를 가지고 목탁륜의 천막 앞으로 왔 다. 파수를 보던 네 사람의 통보를 받고 목탁륜이 황급히 일어나 옷을 걸치고 나와 그들을 천막 안으로 안내했다. 진가락이 경위를 설명하고 경서를 전달해 주자 목탁륜은 희색이 만면하여 두 손으로 공손히 받았다. 과연 그들 부족이 성물로 받드는 수사본 코란경이었다. 천막 안에 있던 위구르 사람의 기쁜 土식을 전해 듣고 잠시 뒤에는 곽아이 ,곽청동 등이 모두 몰려와 서천굉 .진가락. 주기 세 사람을 향해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목탁륜은 경서를 펼치고 큰소리로 읽었다. 구출 작전 '지극히 인자하신 알라 신의 이름을 받들어 모든 영광과 찬송을 드리나이다. 세계의 주요, 태양의 군주이십니다. 우리는 오직 당신만을 숭배하고 당신만의 보우를 빕니다. 우리를 바른 길, 복된 길로 인도해 주소서.」 뭇 위구르 사람들은 땅바닥에 엎드려 경건하게 기도를 드리며 알라신에게 감사를 했다. 기도가 끝나자 목탁륜은 진가락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총타주님께서 우리 부족의 성물을 간사한 무리들의 손에서 뺏어 주셨으니 말로만 고맙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앞으로 총타주님께서 우리가 필요해 소식을 전해만 주신다면 비록 천산만수 라 하더라도 반드시 달려와 불구덩이 속에 뛰어들라 하셔도 사양함이 없겠숩니다.」 진가락은 두 손을 마주 잡고 공손하게 겸양을 했다. '내일 저는 성경을 받들고 돌아가겠습니다. 그러나 제 아들과 딸만은 여기 머물러 있으면서 총타주님의 분부에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문 나리를 구출한 연후에 되돌려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그땐 진 총타주님과 여러 영웅께서 함께 동행하여 저희 부족을 찾아 주신다면 그보다 더 큰 영광이 없겠습니다. 부디 시간을 내어 저희로 하여금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릴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해 주십시오.」 진가락은 잠시 침묵에 잠겨 있다가 이렇게 말을 꺼냈다. 「성경이 원래의 주인 손으로 돌아간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 생각됩니다. 이제 귀부족을 신이 보호해 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이 모든 일이 노영웅의 홍복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주 소저나 저는 요행으로 찾았을 뿐인데 이 어찌 공덕을 논할 수 있겠습니까? 아드님과 따님은 노영웅께서 함께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가심이 좋을 듯합니다. 노영웅의 호의는 감사하기 이를 데 없사오나 저희들로서는 지나친 호의를 염치없이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진가락의 이 말이 떨어지자 목탁륜 부자 세 사람은 너무나 뜻밖의 말에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미 이야기가 잘 되어 갔었는데 왜 갑자기 다른 말을 할까,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목탁륜이 몇 번이나 말을 해 보았지만 진가락은 계속 사양을 했다. 「아버지 ! 곽청동이 아버지를 부르며 머리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더 말할 필요가 없다는 눈치를 보낸 것이다. 이때 홍화회 군웅들도 천막 안으로 들어와 목탁륜을 향해 축하 인사를 했다. 천막 안에 사람이 너무나 많아 복잡했기 때문에 위구르 사람들이 물러났다. 서천굉은 주중영이 들어서는 것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이번 성경을 뺏어 오는 데 주 소저의 공로가 제일 컸습니다.」 주중영은 득의만면하여 딸을 바라다보며 만족해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서천굉이 갑자기 오른쪽 가슴을 누르며 비명을 질렀다. 「아이쿠, 여기가 아파 견딜 수 없네.」 사람들이 시선을 서천굉에게 돌렸다. 주기는 당황했다. (내가 한 번 때렸다고 여러 사람 앞에서 엄살을 부리니 도대체 이 일을 어쩐담?) 「아니, 왜 그러시오? 주중영이 물었지만 서천굉은 이마를 찡그린 채 대답을 하지 않고 있다가 한참 만에야 숨을 몰아쉬었다. 「아무것도 아니예요. 그러나 주기는 벌써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아니, 요녀석이 어떻게 해서든지 나를 골탕먹이려고 드니 어디 두고 보자.) 사람들이 모두 쉬어야겠다고 돌아갔다. 다음날 이른 아침 목탁륜은 뭇 위구르 사람들을 인솔하고 와서 군웅들에게 하직 인사를 했다. 쌍방이 서로 반나절을 함께 보낸 데 불과했지만 이심전심 의기 투합했기 때문에 섭섭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주기가 곽청동의 손을 잡고 와서 진가락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이 언니, 사람도 훌륭하고 무공 또한 막강한데 왜 우리를 도와 문 사야를 구출해 주겠다고 하는데도 사양하시지요? 진가락은 말이 막혔다, 곽청동이 말문을 열었다. '진 공자께서 우리를 모험에 끼어들지 못하게 하시는 것도 저는 호의라고 생각해요. 제가 집을 떠난 지 너무나 오래 되었기 때문에 어머니와 동생이 보고 싶군요. 그래서 일찍 돌아가 보겠습니다. 주 언니, 우리 이 다음에 또 만나기로 해요.」 말을 마치자 말머리를 돌려 가버린다. 주기가 진가락을 바라다 보았다. '왜 우리와 함께 있게 내버려두지 않으세요? 얼마나 섭섭하면 눈물까지 흘리려고 하겠어요. 다른 사람의 호의를 무시해 실례를 범해도 제가 알 바 아니지만 너무 하시는군요.」 진가락은 곽청동의 뒷모습을 지켜보면서 아무 말이 없었다. 곽청동은 한참 가다가 말머리를 돌려 이쪽을 바라다보았다. 진가락이 넋을 잃고 바라보자 그녀는 입술을 깨물고 그를 향해 손을 두 번 흔들어 보였다. 진가락은 그녀가 손을 흔들자 자기도 모르게 그쪽을 향해 끌려가듯 걸어갔다. 곽청동이 말에서 뛰어내렸다. 두 사람은 서로 마주 바라다볼 뿐 말이 없었다. 곽청동이 정신을 가다듬고 말을 꺼냈다. 「제 목숨을 공자께서 구해 주셨고 부족의 성물인 성경도 공자께서 찾아 주셨습니다. 공자께서 저를 어떻게 대해 주시든 저는 결코 원망하지 않으렵니다.」 여기까지 말을 하고 허리춤에서 단검을 풀었다. 「이 단검은 우리 아버지께서 주신 것이에요. 전하는 바에 의하면 이 단검 가운데 크나큰 비밀이 숨어 있다고 하는데 몇백 년 동안 그런 말만 전해 내려을 뿐 아무도 그 비밀을 캐내지 못했답니다. 오늘 이렇게 헤어지면 또 언제 뵙게 될는지 기약할 수나 있겠어요? 이 단검을 공자님께서 거두어 주세요. 공자님은 지해가 많으시니 어쩌면 그 비밀을 밝히실 수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말을 마치자 두 손으로 단검을 받쳐 들었다. 진가락도 두 손으로 받았다. 이렇게 진귀한 보검을 어찌 받을 수 있겠습니까마는, 소저께서 주시니 염치불구하고 받겠습니다.」 곽청동은 그의 섭섭해하는 표정을 바라다보며 가슴이 아파 견딜수 없었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기어이 말을 꺼내고야 말았다. 「제가 함께 모시고 문 사야를 구출하겠다고 했는데 왜 거절하셨는지 저는 너무나 잘 알고 있어요. 어제 만났던 그 소년이 제게 대하는 모양을 보시고 그러셨지요. 그 사람은 육비청 육 노선배님의 제자랍니다. 그가 어떤 인물인지 육 노선배님께 여쭈어 보면 곧 아시게 됩니다. 저도 자중할 줄 아는 여자랍니다.」 말을 마치자 몸을 날려 말 위에 타고 먼지를 날리며 그 자리를 떠났다. 진가락은 두 손으로 단검을 받쳐 든 채 넋을 잃고 위구르 대대의 뒤를 쫓아가고 있는 곽청동의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가물 가물하던 모습이 아쉽게도 지평선 뒤로 사라져 보이지 않게 되었다. 마음에 느끼는 바가 있어 육비청을 찾아가 물어 보려고 하는데 갑자기 전면에서 한 필의 말이 연기처럼 달려왔다. 점점 가까워질 수록 달리는 속도가 빨라졌다. 마침내 심연이 돌아온 것이다. 심연은 진가락을 보자 멀찌감치에서부터 말에서 내려 고삐를 끌고 와 신이 나서 이렇게 보고했다. 「도련님, 장 심야께서도 뒤따라오고 계십니다. 저희들이 사람 하나를 잡아왔어요.」 「아니, 누굴 잡아왔다는 말이냐? 「제가 백마를 타고 허물어져 가는 집 근처에 갔을 때 장 십야가 누군가와 말다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이쪽으로 오겠다고 하고 장 십야는 좀 기다리라는 것이었습니다. 둘이 한참 다투고 있다가 그 사람은 제가 탄 백마를 보고 말을 훔친 사람과 한패거리 라고 욕을 퍼부으며 칼을 들어 저를 치려고 했어요. 저와 장 십야 가 함께 대들었지요. 그자의 무공도 막강하기는 했지만 병기가 없 었어요. 어디서 주워 온 것인지 부겨에서 나무를 패는 칼 한 자루 를 가지고 있기는 했지만, 손에 익지 못해 20여 합을 싸우는 동안 십야가 낭아봉으로 그자의 칼을 쳐 떨어뜨렸지요. 빈 손으로 우리 둘을 상대하는데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뒤에 제가 땅바닥에서 돌을 주워 마구 집어던저서 돌을 피하려고 한눈을 팔다가 그만 낭아 봉에 다리를 맞아 겨우 잡을 수 있었답니다.」 「그 사람 이름이 뭐며 뭘하는 사람이라고 하던가? 진가락이 껄껄 웃으며 물었다. 「물어 보았지만 대답을 하지 않더군요. 그러나 십야의 말씀에 의 하면 낙양(洛陽) 한가(韓家)의 문인이래요. 철비파수를 쓰더군요. 잠시 후에 장진이 도착하여 말에서 내려 진가락을 향해 절을 한 뒤에 말 안장 위에서 한 사람을 끌어내렸다. 손발이 묶인 채 뻣뻣 하게 서 있으면서도 꾀 거만한 태도를 취했다. 진가락이 그를 향해 물었다. 「귀하는 낙양 한가 문인의 사람이십니까? 그래 존함은 어떻게 되시는지요? 그자는 고개를 더욱 뒤로 제치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심연, 이분의 묶인 끈을 풀어 드리게.」 심연이 그의 손발을 묶은 끈을 칼로 잘라 풀어 주고 뒤로 돌아가 칼을 그의 등에 댄 채 이상한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감시했다. 「저 두 사람이 선생께 큰 실례를 범했군요. 너무 허물치 마시고 천막 안으로 들어가 앉으십시다.」 네 사람이 천막 안으로 들어와 좌정을 하자 군웅들이 속속 들어 서며 진가락의 뒤에 섰다. 그 사람은 낙빙이 들어서는 것을 보자 별안간 성을 내며 벌떡 일어나 삿대질을 했다. 「이 요망스런 계집이 여기 있었구나. 내 말을 훔쳐갔으니 당장 반환하지 않으면 그냥 두지 않을 테다.」 「당신이 한문충 한 대야(韓大業)시지요? 내가 말 한 필을 바꾸어 타면서 1정의 금을 주었으니 돈을 많이 벌었을 텐데 왜 지금에 와서 화를 내시나요? 낙빙이 웃으며 하는 말이었다. 진가락이 까닭을 묻자 낙빙이 웃으며 백마를 뺏어 타게 된 경위를 설명했다. 사람들이 듣고 한바탕 웃음판이 크게 벌어졌다. 원래 홍화회에서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치는 것을 금지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낙빙은 총타주가 재상집 출신의 자제이기 때문에 이런 천한 일을 업신여기지 않을까 해서 백마의 내력을 말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일이 그렇게 되었다면 넷째형수님은 말을 한 나리께 되돌려 주십시오. 먼저 드린 금은 반환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아무래도 빌려 탄 대가는 드려야 하니까요 그래 한 나리, 다리의 부상은 괜찮으신 지 모르겠네요? 심연, 자네가 한 나리께 금창약을 발라 드리도록 하게.」 한문충은 진가락의 정중한 말을 듣자 다소 화가 가라앉는 듯했다. 몇 마디 인사말을 하겠다고 입을 벌리려고 하는데 낙빙이 먼저 말을 꺼냈다. 「총타주님, 그건 안 돼요. 저 사람이 누군지 알고나 계세요? 진원 표국의 사람이랍니다.」 「그게 정말이오? 진가락의 반문에 낙빙은 왕유양의 편지를 꺼냈다. 「이걸 읽어 보세요.」 진가락이 편지를 받아 앞에 쓰인 칭호만을 읽고 편지를 접어 한문충에게 되돌려 주었다. 「이건 한 나리의 편지이니 제가 보기에 거북합니다.」 한문충은 생각했다. (한패거리가 이미 내용을 읽어 보았는데 그렇게 한다고 내가 좋아할 줄 아나?) 「나는 진원표국 사람이 틀림없소. 그런데 무슨 실수를 했는지 모르겠으니 어디 말씀을 해 보세요. 이 한모 정정당당해서 결코 남부끄러운 일은 해 보지 않았소. 읽고 싶거든 읽어 보시구려.」 말을 하면서 편지를 진가락의 면전에 펼쳐 놓았다. 진가락은 한 눈에 열 줄씩 단숨에 읽었다. 「왕유양 왕 노표두의 명성은 오래 전부터 익히 들었으면서도 인연이 없어 만나 뵙지 못했습니다. 선생은 낙양 한가문이시라는데 한 오랑(韓五娘)과는 어떤 관계신지 모르겠군요? 「그분은 제 숙모님입니다. 그래 선생의 존함은 어떻게 되시는지 요? 제 숙모님을 아시나요? 진가락이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다만 존함을 듣고 존경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제 성은 진이요, 이름은 가락이라 합니다.」 한문충이 듣고 벌떡 일어났다. 「아니 ...... 그럼 ....., 진각로의 자제분이 아니십니까? 「이분은 우리 홍화회의 총타주님이십니다. 당신과 한참 동안이나 말을 주고받았는데도 몰라 보셨나요? 상혁지의 말을 듣고 한문충은 서서히 자리에 앉아 이 젊은 총타주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강호에 누가 유언비어를 날조해 퍼뜨렸는지는 모르나 귀 동문의 죽음이 우리 회와 관련이 있다고 하는데 사실 이 일은 우리로 서는 전연 모르고 있습니다. 제 원래의 생각은 형제 하나를 낙양에 파견하여 이 일에 대한 해명을 하려고 했으나 갑자기 다른 요긴한 일이 생겨 그만 보내지 못했습니다. 오늘 한 나리께서 여기까지 오셨으니 정말 다행한 일이로군요. 어떻게 해서 이런 풍문이 퍼졌는지 한 나리께서는 아시는 바가 있으십니까? 진가락의 말이었다. 「정말..-, 당신이-, 해령 (海寧) 진각로의 자제분이십니까? 「한 나리께서 제 출신을 이미 알고 계시니 속이지 않겠습니다. 그건 사실입니다.」 「공자님께서 집을 나가시자 댁에서는 중상(重賞)을 걸고 행방을 찾았습니다. 몇 년 동안 소식이 없다가 뒤에 누군가가 홍화회에 계시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고 또 회강에 가 계신다는 풍문도 들었습니다. 제 사형인 초문기(焦文期)가 댁의 부탁을 받고 회강으로 공자를 찾아갔는데 갑자기 실종되고 말았숱니다. 벌써 오 년 전 의 일이지요. 최근에 이르러 누군가가 섬서(險西)의 산골짜기에서 초 사형이 쓰시던 철패와 비파정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래 서 그분이 불행히도 세상을 떠나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요. 그 분이 세상을 떠나 증언을 들을 수도 없게 되었거니와 또 직접 목격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공자님, 어디 한번 생각해 보세요. 홍화회에서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또 누가 그랬겠습니까,,,,,,? 그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장진이 벌컥 소리를 질렀다. 「당신의 사형이 재물을 탐내다가 죽었으니 뭐 애석하게 여길 것 도 없지 않소? 우리 홍화회에서 그를 살해했다면 무엇이 무서워 그 사실을 은폐하겠소? 솔직히 말하거니와, 그 사람 우리가 죽이지 않았소. 그러나 당신이 복수할 상대를 찾을 수 없거든 내가 죽였다고 생각하구려. 내 평생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는데 한 명 더 죽였 다고 해서 손해 볼 일은 없겠지? 그까짓 초문기 하나 더 죽였다고 한다면 그래 어떻게 하시겠소? 한문충은 그를 노려보면서도 반신반의했다. 무진이 냉소를 머금고 말했다. 「우리 홍화회 사람들은 하나라 하면 하나요, 둘이라면 둘이오 언제 우리가 거짓말로 사람을 속인 일이 있는 줄 아오? 당신이 그의 말을 믿지 않는다면 그건 바로 우리를 깔보는 것이나 다름이 없소. 흥! 우리를 깔본다 해도 그렇게 대답할 수는 없겠지. 소란스러운 가운데 육비청이 갑자기 큰소리를 질렀다. 「초문기는 내가 죽였소. 내 홍화회 사람이 아니니까 그 일과 홍화회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오.」 사람들은 무슨 말인지 몰라 모두들 어리둥절했다. 육비청은 일어 나서 당년 초문기가 어떻게 밤에 복수를 하러 나타났는가, 또 어떻 게 3대 1로 싸우게 되었는가, 어떻게 그가 자기를 향해 독수를 썼 는가, 어떻게 해서 황산에서 목숨을 잃게 되었는가, 자초지종을 상세히 설명했다. 사람들이 듣고 초문기가 염치없는 사람이라고 욕하며 잘 죽여 없앴다고 했다. 한문충은 얼굴이 파랗게 질려 한마디 말도 꺼내지 못했다. 육비청이 계속해서 말을 했다. 「한 나리께서 사형을 위해 복수를 하려거든 지금 싸워도 무방하오. 이 일이 홍화회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데 홍화회에서 나를 돕고 나선다면 이건 정말 나를 업신여기는 것이나 다름이 없소.」 고개를 돌려 낙빙을 바라다보며 말했다. 「한 나리의 병기를 그에게 되돌려 주시오.」 낙빙이 철비파를 꺼내 육비청에게 건네 주었다. 육비청이 그것을 받으며 이렇게 말했다. 「한 오랑께서 당년 철비파문을 창안하여 강호에 명성을 떨쳤으니 그래도 여중호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애석한 것은.......」 말을 다 끝맺지도 않았는데 감개무량한 표정이 역력했다. 그는 이렇게 말을 하면서도 슬그머니 두 손에 힘을 주었다 철비파의 중 간이 원래 비어 있었는데 그가 누르자 금방 편평하고 얇은 철판으로 펴졌다. 「초문기가 진씨댁의 부탁을 받고 공자님을 찾아나선 것으로 보아서는 자기 일에 충실하겠다는 뜻이겠는데, 어찌해서 다른 사람의 재물을 받고 이 늙은이를 해치려 나타났는지 모르겠군요. 우리 무림의 인물들은 자기 목숨을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나라의 은혜를 갚음은 물론, 만청의 오랑캐를 상대로 사생결단을 내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오. 또 백성을 위해 해를 제거하는 것이라 생각하오.」 무당파의 내공은 정말 보통이 아니었다. 입으로는 말을 하면서도 두 손으로는 철판을 구부려 철관(鐵管) 을 만들었고 다시 또 몇 번 주무르자 쇠몽등이로 변했다. 「그런 일도 할 수 없다면 자기 몸이나 깨끗이 하고 초야에 은거하여 분수를 지키는 양민 노룻이나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육 모 평생 골수에 사무치도록 증오하는 대상은 조정의 탐관오리요, 보표의 주구들입니다. 변변치도 못한 무예를 믿고 나쁜 무리와 한동아리가 되어 나쁜 일을 도와 주는 무리가 많습니다. 이러한 작자를 내가 만났을 때 흥! 육 모 결코 그냥 내버려 둘 수가 없소.」 말을 하는 동안 목소리와 안색이 서릿발처럼 차갑게 변해 있었고 손에 든 쇠몽등이는 다시 쇠고리로 변해 있었다. 이런 말을 듣고 있는 한문충의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그는 스스로 자기의 무공이 상당한 경지에 도달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나와서야 비로소 자기의 무공이 형편없음을 알게 되었다. 낙빙이나 장진 -심연 등의 재주에도 좌절을 당해야만 했다. 처음에는 상대방이 어떤 속임수를 쓰기 때문에 그랬거니 생각도 해 보았다. 그런데 이제 육비청이 말을 하는 가운데 자기가 유명하게 된 독특한 병기를 떡이나 진흙 주무르듯 하고 있으니 놀랍고 두렵지 않을 수가 없었다. 초문기의 무공은 자기와 서로 비슷해 우열을 가리기가 어려웠다. 이제 이 영감과 상대를 한다면 자기는 틀림없이 목숨을 잃을 것만 같았다. 장사근은 육비청의 손재주가 대단히 재미있어 보였다. 동심이 일어나 쇠고리를 받아다가 두 손으로 잡아당겼다. 쇠고리가 다시 몽둥이로 변했다. 자기가 한쪽을 잡고 다른 한쪽을 양성협의 면전을 향해 뻗었다. 양성협이 손을 뻗어 잡으며 웃었다. 「힘을 겨루어 보자구요. 장사근이 고개를 끄덕이자 두 사람은 힘껏 잡아당겼다. 둘의 힘이 비슷하여 몽등이가 엿가락처럼 길게길게 늘어났다. 사람들이 껄껄 웃었다. 진가락은 두 사람이 힘을 겨루다 승부가 끝나면 우애에 손상이 오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원, 두 사람의 힘이 어쩌면 그렇게 똑같습니까? 그 철비파는 이제 제게 주시오」 사람들은 그가 엿가락처럼 늘어진 이 쇠를 보고 아직도 철비파 라고 하자 모두들 웃음을 터뜨렸다. 「도장님과 주 노선배님, 상 오가 세 분은 저쪽을 잡으세요 조 삼 가와 상 육가, 나 세 사람은 이쪽을 잡고 어디 한번 수련미나 해 보십시다.」 주중영 등이 웃으며 다가와 셋이 한쪽에 섰다. 양쪽에서 모두 세 사람씩 나와 각기 쇠몽등이의 한쪽을 한 손으로 잡은 것이다. 「저 두 사람이 이걸 길게 늘여 놓았으니 우리는 이것을 다시 옴겨 놓읍시다. 하나, 둘, 셋 진가락이 웃으며 하는 제안을 듣고 여섯 사람은 동시에 힘을 쓰 기 시작했다. 쇠몽등이가 점점 굵어지며 짧아지기 시작하자 옆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은 이 희한한 광경에 박수 갈채를 보냈다. 한문충은 얼굴이 파랗게 질려 떨고 있었다. (하늘 밖에 하늘이 있고, 사람 위에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니 이 한 모 오늘 목숨을 건질 수 있다면 내일 고향으로 돌아가 농사나 짓고 살아야겠구나.) '자, 이제 그만 하십시다.」 진가락이 웃으며 하는 말에 주중영 등 다섯 사람이 손을 뗐다. 「한 형의 병기를 망쳐 놓았으니 정말 미안하게 되었군요. 너무 허물치 마시기 바랍니다.」 진가락이 사과를 하는 말을 들으면서도 한문충은 식은땀만 흘릴 뿐 감히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제가 한 형께 한 말씀 드려도 괜찮을는지 몰라 망설여지는군 요.」 「어디 말씀을 해 보시지요.」 「자고로 이르기를, 원한은 풀어야지 맺으면 못 쓴다고 했습니다. 사형이 황산에서 목숭을 잃은 것도 따지고 보면 자업자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니 너무 육 노선배님만 원망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닐까요? 한 형께서는 제 체면을 보아 주시는 의미로 육 노선배 님과의 감정을 푸시고 서로 친구로 사귀심이 어떠하올는지요.」 한문충은 벌써부터 잔뜩 겁을 집어먹고 있었기 때문에 감히 육비청과 대결할 의사는 전연 없었다. 그러나 상대방의 위협에 금방 고개를 숙인다는 것도 체면 문제라 침묵을 지킨 채 얼굴만 붉으락푸르락하고 있었다. 「초 삼야의 일은 사실 저로부터 말미암은 것입니다. 제가 여기서 가형께 편지 한 통을 써서 초 삼야가 나를 찾기는 했지만 제가 집에 돌아가고 싶다는 쯧을 밝혔다고 하지요. 초 삼야가 도중에 뜻밖 의 일을 당해 세상을 떠났으니 가형께 부탁하여 그의 가족에게나마 중상(重賞)을 내려 주도록 하겠습니다.」 진가락의 말에 한문충은 주저할 뿐 대답을 하지 못했다. 진가락은 두 눈썹을 치켜올렸다. 「한 나리께서 만약 반드시 복수를 해야겠다고 고집을 부리신다면 제가 한 가문의 철비파수를 받겠습니다.」 손을 들어 던지자 쇠몽등이가 모래 속에 깊숙이 박혀 보이지 않게 되었다. 한문충은 가슴이 뜨끔하여 더 할 말이 없었다. 「모든 일, 공자님의 분부에 따르겠습니다.」 「그렇게 하셔야만 떳떳한 대장부요, 호한이 아니겠습니까? 심연을 시켜 문방사우를 내오라 하고는 즉석에서 편지 한 통을 썼다. 한문충이 편지를 받고 이렇게 말했다. 「왕 총표두께서 본래 제게 분부하시기를, 물건을 가지고 북경으로 갔다가 거기서 다시 황제가 하사하시는 보물을 강남의 댁으로 호송하라고 했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신기를 대하고 보니 제 보잘 것 없는 재주는 정말 공자 앞의 문자나 다름이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공자님 댁으로 보내는 보물을 감히 누가 건드릴 사람이 있겠습 니까? 저는 여기서 그만 하직하겠습니다.」 '한 형께서 호송하려는 물건이 바로 저희 집의 것이라구요? 「표국에서 제게 편지를 보내 온 심부름꾼의 말에 의하면 황상께서 공자님댁에 대한 천은이 막중하시답니다. 그래서 댁으로 보낼 금은보화를 많이 쌓아 놓으셨다는군요. 그것을 강남의 댁으로 보내 려고 하는데 댁에서는 우리 표국에 호송을 의뢰했습니다. 다시 무슨 면목으로 무림에 돌아다니며 밥을 먹을 염치가 있겠습니까? 초사형의 가족이나 안돈시키고 고향으로 돌아가 농사 짓고 사냥이나 하며 지내겠숩니다. 다시는 강호에 나타나지 않을 작정입니다.」 「한 형께서 육 노선배님의 충고를 받아들이시겠다고 하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이제 저도 친구로 모시겠습 니다. 심연, 나가서 진원표국의 여러분을 모시고 들어오게.」 심연이 대답을 하고 나가 전정륜 등 일행을 데리고 들어왔다. 한문충이 그들을 보고도 얼굴만 바라다볼 뿐 말을 꺼내지 못했다. 진가락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한 형의 체면을 보아 석방하니 모두 데리고 가십시오. 그러나 이후에 다시 저들이 못된 짓을 하고 다니는 것을 보면 그냥 놔두지 않겠습니다. 그때 가서 우리보고 무정하다고 탓하지는 마십시오. 한문충은 병도 주고 약도 주는 진가락을 상대하기가 정말 어려웠다. 얼굴만 새파맣게 질린 채 꿀먹은 벙어리로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진가락이 자기가 타던 말을 되돌려 주라는 말을 꺼내지 않는 마당에 이쪽에서 달라고 입을 벌릴 수가 없었다. '우리가 먼저 떠날 것이니 여러분께서는 여기서 하루 쉬시다가 내일 떠나시기 바랍니다.」 진가락의 인사말에 이어 홍화회 군웅들은 말에 올라 출발했다. 표사나 관노들은 눈을 멀뚱멀뚱 뜬 채 아무 말도 꺼내지 못했다. 군웅들이 한참 가고 있는데 육비청이 진가락을 향해 이렇게 말을 꺼냈다. 진 당가, 표행 녀석들이 뒤에 남아 있는데 제 제자가 머지않아 그들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분풀이할 곳이 없는데 아무래도 걱정이 되는군요. 제가 여기 머물러 있다가 보살펴 주고 곧 뒤 따라가겠습니다.」 「그건 육 노선배님 편리한 대로 하십시오. 가급적이면 제자 되는 분과 함께 오시기 바랍니다. 혹시 저희들에게 도움이 될는지 모르는 일이 아닙니까.」 이 말에 육비청이 웃었다. '워낙 까불기 좋아하는 아이라 무슨 도움이 될 수 있을라구요.」 두 주먹을 공손히 마주 잡아 인사를 한 뒤에 말머리를 돌려 오던 길로 다시 되돌아갔다. 진가락은 육비청을 향해 제자의 일을 자세히 물어 보지 못해 마음속으로 답답하게 여겼다. 여어동은 문태래의 종적을 찾아보라는 명령을 받고 여기저기 수소문을 해 보았다. 그러나 아무 단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길을 가다가 어느날 양주에 도착했다. 양주는 백성도 적거 니와 물산도 풍부해 감숙성의 큰 고을이다. 그는 객점에 머물며 남가의 적취루에 올라가 자작으로 술을 따라 마시며 혼자 신세 한탄을 하고 있었다. 낙빙의 목소리와 웃는 모습 상상하면 그리움이 사무쳤으나 혼자 그리워해 보아야 희망도 없을뿐더러 그렇게 하는 것이 천부당만부당한 줄도 알았다. 그러나 아무리 단념을 하려고 노력해 보아도 소용이 없었다. 낙빙에 대한 그리움에 속만 상하고 문태래에 대하여 면목만 없을 뿐이었다. 술이 뱃속으로 들어가자 번민으로 가슴만 더욱 답답했다. 술값을 주려고 아래층으로 내려갈까 하는데 갑자기 계단을 울리며 두 사람이 위층으로 올라왔다. 여어동은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 앞장 선 사람을 어디선가 본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급히 고개를 돌리다 생각이 떠올랐다. 철담장에서 상대한 바 있는 관노가 틀림 없었다. 다행히 그 사람은 동행하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기에 바빠 이쪽을 알아보지 못했다. 두 사람은 창가에 놓인 탁자를 골라 앉았다. 바로 여어동의 옆이었다. 여어동은 술에 취한 척 탁자 위에 엎드려 있었다. 그들은 별로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를 한참 주고받다가 그중 한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 「서 대형(瑞大兄)이번에 그자를 잡아가시니 그 공로 여간 대단 한 것이 아닙니다. 황상께서 어떤 중상을 내리실는지 모르겠군요.」 서 대형이라 불린 그자가 이렇게 말했다. 「상 같은 것은 바라지도 않소. 그자 무사히 그자를 항주까지 보내기나 했으면 다행이겠소. 우리 시위 여덟 명이 나왔다가 이제 나 혼자만 남아 돌아가게 되었구려. 숙주(肅州)의 일전에서는 참패만 당해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모골이 송연해져요.」 「뭐 지금은 장 대인과 함께 계시니까 별 실수도 없을 겝니다.」 「말이야 틀림이 없지만 이번 공로는 모두 어림군에 돌아가지요. 우리 어전시위야 무슨 면목이나 있습니까? 그런데 그자를 북경으로 보내라 하지 않고 항주로 보내라니 그게 왼 일인가요? 주가라 불린 그자가 낮은 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제 누이가 사대학사(史大學士) 부중의 사람임은 알고 계시지요? 그녀가 제게 슬그머니 말하기를, 황상께서 강남에 가시려는거 같아요. 그자를 항주로 보내라는 점으로 보아 황상께서 직접 그자를 신문하신다는 모양이예요. 서가 성을 가진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며 술 한 모금을 마셨다. '당신들 여섯 사람이 서울에서 온 것은 바로 이 성지를 전하기 위해서 인가요? 「도와 드리려고도 했지요, 강남 홍화회의 세력이 강대하니 우리 각별히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될 겁니다.」 여어동은 여기까지 듣자 부끄러운 생각도 들었지만 한편 다행스럽기도 했다. 만약 그들의 말을 엿듣지 못했다면 행선지를 강남으로 바꾼 것도 모르고 모두들 북경으로 달려갈 뻔했으니 큰일을 그르칠 뻔하지 않았는가? 다시 주가 성을 가진 시위의 말이 들렸다. '서 대형, 그자가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기에 황상께서 직접 신문을 하려고 하실까요? 「그걸 우리가 어떻게 알겠소? 위에서 말하기를, 만약 그자를 잡지 못하고 돌아가면 파직을 당함은 물론 목숨도 보전하기 어렵다고 했으니 그냥 결과를 기다릴 수밖에 무슨 뾰족한 수가 있겠소? 그러니 어전시위 노룻 하며 밥 얻어먹기도 쉬운 일이 아니라오.」 주가 성을 가진 자의 웃는 소리가 또 들렸다. '이제 서 대형이 큰 공로를 세우셨으니 제 술이나 받으십시오.」 그들은 즐겁게 대작을 하면서 한담을 나누다가 여자의 얘기로 까지 발전했다. 북방의 여인은 발이 작아 귀엽다느니 강남의 여인은 피부색이 희고 부드럽다느니 하는 시시껄렁한 얘기들이었다. 거나하게 술 마시며 질펀하게 먹은 뒤에 서 대형이라 불린 자가 셈을 치르러 아래층으로 내려가다가 여어동이 취해 탁자에 엎드려 있는 것을 보고 뇌까렸다. 「선비라는 것들이 무슨 소용이 있소? 술 석 잔만 마셔도 송장이 되어 기어 일어나지도 못하고 저꼴이니 한심하오.」 여어동은 그들이 아래충으로 내려가자 탁자에 5전의 은을 던져 놓고 주점을 나와 그들의 뒤를 밟았다. 두 사람이 양주 관아로 들어갔는데 아무리 기다려 보아도 나오는 기색이 없어 관아에서 그냥 쉬나 보다고 생각했다. 객점으로 돌아온 그는 눈을 감고 쉬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날이 어두워지자 가벼운 옷으로 바꾸어 입고 허리에 금피리를 꽂은 채 창문을 뛰어넘어 관아로 달렸다. 후원의 담을 넘어 들어갔지만 사방이 캄캄했다. 동쪽 채에서 불이이 새어나오는 것을 보고 살금살금 그쪽으로 접근했다. 안에서 말소리가 들려 손끝에 침을 발라 창호지에 구멍을 뚫고 들여다보다가 그만 소스라치게 놀랐다. 원래 방 안에는 사람이 가득 앉아 있었다. 중앙에 장소중이 자리를 잡았고 양쪽은 모두 시위와 공인들이 앉아 있었다. 한 사람이 등을 이쪽으로 돌린 채 서 있다가 갑자기 큰소리로 욕을 퍼붓는데 목소리가 바로 문태래였다. 여어동은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고수라 감히 더 바라다볼 수가 없었다. 납작 엎드린 채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였다. 「네 이놈들! 만주 오랑캐의 주구 노릇이나 하는 놈들 꼴도 보기 싫다. 이 문 나리, 네놈들의 수중에 떨어지기는 했지만 분명 나를 위해 복수할 사람은 있을 것이다. 이리나 다름없는 네놈들의 장래 는 보나마나 뻔하다.」 '좋다. 통쾌하게 욕도 잘 하는구나! 네놈의 별명이 분뢰수, 내 수장이 네놈의 수장처럼 맵지는 않겠지만 오늘 어디 한번 맛 좀 보아라.」 누군가의 음험한 말소리가 울렸다. 여어동이 듣고 깜짝 놀랐다. (사가께서 꼼짝없이 욕을 당하게 되었구나. 우리 넷째형수님이 제일 경애하는 분인데 어찌 소인배들에게 수모를 당하게 내버려둘 수 있겠나?) 문 구멍으로 안을 들여다보니 몸집이 호리호리하고 키가 큰 사람이 청포 두루마기를 입고 손을 번쩍 든 채 문태래를 향해 징그러운 미소를 머금고 걸어가고 있었다. 문태래는 두 손이 묶여 꼼짝 못하면서도 분노로 이를 부드득 부드득 갈았다. 그자가 쳐든 손을 막 내려치려고 하는 순간 여어동은 금피리를 뚫어 놓은 구멍에 댄 채 불었다. 금피리 속에 있던 짧은 화살이 날아가 그자의 왼쪽 눈을 정통으로 맞혔다. 그자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진주 언가권 장문인 언백건(言白乾)이었다. 그는 눈동자에 화살을 맞고 그 자리에 쓰러진 채 통증으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여어동은 또다시 화살을 날려 한 시위의 왼뺨을 명중시킨 뒤에 발로 문을 박차고 안으로 뛰어들었다. '관노들은 꼼짝하지 말라, 홍화회에서 사람을 구출하러 여기에 왔다. 금피리를 들어 문태래 옆에 서 있던 한 관노의 혈도를 찔러 꼼짝 못하게 해 놓고 비수를 뽑아 문태래의 손발에 묶인 오랏줄을 끊었다. 장소중은 적이 대거 침입해 들어온 줄 알고 문태래와 여어동을 그냥 놔 둔 채 벌떡 일어나 칼을뽑아들고 문을 막아섰다. 안에서 달아나지 못하게 막고 밖에서 들어오는 사람을 차단하기 위해서 취한 행동이다. 문태래는 손발이 자유스러워지자 새로운 힘이 솟았다. 옆에 어전 시위가 서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대로 덮쳐들며 왼손을 날렸다. 뚝 하는 소리와 함께 그자는 오른쪽 겨드랑이를 맞고 갈비뼈 2대가 부러졌다. 나머지 사람들은 그의 위세에 눌려 감히 대들지 못했다. 「사가, 우리 뚫고 나갑시다.」 「모두 왔는가. 「그들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저 혼자예요.」 문태래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오른팔과 다리에 입은 중상으로 아직도 불편했다. 오른팔을 여어동의 몸에 기댄 채 어깨를 나란히 하고 문 앞으로 걸어나왔다. 5, 6명의 시위가 한꺼번에 대들자 여어동이 피리를 휘둘러 막았다. 두 사람이 문 어귀에 접근하자 장소중이 다가서며 소리를 질렀다. 「어디로 가려고 하느냐? 장검을 들어 문태래의 배를 향해 찔렀다. 문태래는 다리가 불편해 피할 수가 없었다. 이공위수 왼손의 식지와 중지로 적의 두 눈을 노렸다. 장소중이 장검을 거두어들이며 막고 찬사를 보냈다. 「잘하는군! 두 사람의 몸과 손이 무섭도록 빨랐다. 눈 깜짝할 사이에 7, 8초를 대결했다. 문태래는 겨우 왼손 하나만을 쓸 수 있을 뿐이었다. 게다가 또 하체를 기민하게 움직일 수도 없었다. 그래서 장소중 에게 어깨를 밀려 비틀거리다 그만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여어동은 싸우면서 생각했다. (내 못된 짓을 하여 사가에게 미안하게 되었다. 구차하게 살망정 홍화회 영웅이란 명성만은 더럽히지 말아야겠다고 노력했다. 오늘 내 목숨을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사가만은 구출해 내야 한다. 관노들의 손에 죽었다면 형수님께서도 나를 보고 의리 없는 소인이라고 하시지는 않겠지. 목숨을 잃어 보답할 수만 있다면 죽어도 헛죽는 것은 아니리라.) 이렇게 결심을 내리는데 문태래가 밀려 넘어지는 것이 보였다. 금피리를 휘두르며 장소중을 향해 무섭게 대들었다. 문태래가 이 틈을 타 억지로 일어나며 벽력같이 소리를 질렀다. 관인과 시위들이 놀라 자기들도 모르게 뒤로 물러섰다. 「사가, 빨리 이곳을 빠져나갑시다.」 금피리를 휘두르며 방어는 하지도 않고 상대방의 급소만 로렸다. 그와 장소중의 무공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많았다. 그러나 한 사람이 결사적으로 나오면 만 사람이 당해 내지 못하는 것이 이치다. 금피리는 공격 일색으로 어디까지나 너도 죽이고 나도 함께 죽겠다는 결의다. 장소중의 검법이 상당한 경지에 도달되어 있기는 했지만 여어동의 맹공에 견디지 못하고 뒤로 밀렸다. 문태래가 이 틈을 노려 문 밖으로 빠져나가자 시위들이 놀라 큰소리를 질렀다. 여어동은 문을 막아 선 채 벌써 두 번이나 칼에 맞았지만 아예 방어를 포기한 채 무서운 공격만 폈다. 「네놈이 살고 싶지 않은 모양이로구나. 타법은 도대체 누구에게서 배웠느냐? 장소중이 큰소리를 질렀다. 그의 무공은 아무리 보아도 무당파의 것이었다. 분명 무슨 곡절이 숨어 있을 것 같아 살수를 쓰지 않았 던 장소중이다. 「내 오늘 네놈의 손에 죽고 말겠다.」 여어동은 처절하게 웃고 있었다. 수 초를 대결하는 사이에 오른 팔을또 한 번 칼에 맞았다. 그는 피리를 왼손에 바꾸어 쥐고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뭇 시위들이 벌떼처럼 몰려들었다. 여어동은 미친 듯이 피리를 휘둘렀다. 시위 하나가 칼로 찍어 내렸지만 여어동은 못 본 체하고 피리를 들어 그의 가슴을 무섭게 찔렀다. 그자가 정신을 잃고 쓰러 졌지만 여어동은 왼팔이 칼에 찔렸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고전을 하는 가운데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또 시위 한 명의 턱뼈가 부러졌다. 시위들이 칼과 검, 창과 몽등이를 들고 일시에 대들었다. 혼전 가운데 여어동이 다리에 몽등이를 맞고 땅바닥에 쓰러진 채 맥없이 피리를 몇 번 흔들다 정신을 잃고 말았다. 「손을 멈춰라! 문 어귀에서 벽력 같은 고함소리가 울렸다. 고개를 돌리니 밖으로 나갔던 문태래가 다시 안으로 걸어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는 다른 사람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여어동을 향해 걸어갔다. 온몸이 피투성이라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며 몸을 숙여 그의 코에 귀를 댔다.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았음을 확인하자 다소 안심이 된다는 표정을 지으며 왼손을 뻗어 여어동을 부축해 일으켰다. 묘연한 행방 「지혈을 시키고 약을 발라 주지 않겠느냐? 그의 호통에 시위들은 겁을 집어먹었고, 누군가가 금창약을 내놓았다. 문태래는 시위들이 여어동의 상처에 약을 발라 준 뒤 그를 메고 안으로 들어가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가 두 손을 뒤로 돌리며 이렇게 말했다. 「다시 묶어라. 시위 한 명이 장소중의 눈치를 살펴보더니 천천히 그를 향해 다가섰다. 「뭐가 무서워 쩔잴매느냐? 내 네놈을 해치려 든다면 벌써 손을 썼겠다.」 문태래가 다시 한 번 소리를 질렀다. 그 시위는 정말 문태래가 손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다시 묶어 옥으로 보내 감금했다. 2명의 시위가 직접 옥 안에 들어가 그를 감시 하기로 했다. 이튿날 아침 장소중은 여어동을 보러 갔다. 여어동은 정신을 잃 은 채 자고 있었다. 군사들에게 물어 보니 의원이 약을 처방해 주어 달여 먹였다는 것이다. 오후에 다시 가 보니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네 사부의 성이 육씨냐, 아니면 마씨냐? 「내 은사님은 천리독행협 마진이오.」 「나는 네 사숙이 되는 장소중이다.」 여어동은 가볍게 머리를 끄덕였다. 「너는 홍화회 사람이냐? 여어동이 또 고개를 끄덕이자 장소중은 한숨을 내쉬었다. 「젊은 사람이 어쩌다 그런 길로 빠졌단 말인가? 문태래가 너와 어떻게 되는 관계이기에 그래 목숨을 내놓으면서까지 구하려 들었느냐? 여어동은 눈을 감은 채 잠자코 있다가 입을 열었다. 「내 어떻게 해서든지 그를 구출해야만 죽어도 눈을 감을 수 있었습니다. 「흥, 네가 감히 내 수중에서 그를 구출해 낼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아니, 그분이 달아나지 못했나요? 여어동이 깜짝 놀라 물었다. 「그가 어떻게 도망을 치겠느냐? 쓸데없는 망상은 집어치우도록 해라.」 장소중이 계속해서 이런 말 저런 말 물어 보았지만 여어동은 눈을 감은 채 한마디 대꾸도 하지 않고 있다가 잠시 후에는 코고는 소리까지 냈다. 장소중이 가볍게 미소를 머금고 혼자 이렇게 중얼 거렸다. 「어지간히 고집이 센 녀석이로구나.」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방으로 돌아온 그는 서대림 ,언백건,성황과 새로 서울에서 내려온 6명의 어전시위 주조음 등을 청해 비밀리에 회의를 열었다 회의가 끝나자 각자 자기 방으로 돌아가 휴식을 취했다. 저녁을 먹은 뒤에 문태래를 옥에서 끌어내어 심문을 하는 체 했다. 장소중은 어제 진짜 심문을 하다가 뜻밖에도 여어동이 끼어드는 바람에 한바탕 큰 소동을 치렀다. 이날 밤은 사방에 복병을 배치해 놓고 홍화회의 구원병이 나타나기만 하면 일망타진할 결심이었다. 그러나 밤새 기다려 보아도 개미 새끼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황하의 물이 불어나 나루를 건너기 어렵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장소중은 즉시 출발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양주지부와 수현(首縣)에게 하직을 하고 문태래 , 여어동을 큰 수레에 태워 대문을 나서려고 하는데 갑자기 오국동,전정륜,한문충 등 일행이 달려들어왔다. 장소중은 그들의 낭패한 꼴을 보며 어찌 된 일이냐고 까닭을 물었다. 오국동은 화가 나 씩씩거리며 경과를 설명했다. 「염 육야는 무공이 막강한 사람인데 어떻게 해서 한 소녀의 손에 죽었단 말이냐? 별 희한한 얘기도 다 듣겠구나.」 장소중은 지나가는 말을 하듯이 이렇게 말하고 손을 번쩍 들었다. 「그럼 우리 서울에서 만나세. 오국동은 화가 났지만 그렇다고 화를 낼 수도 없어 꾹 참았다. 장소중은 오국동을 통해 홍화회 군웅들의 무공이 막강하고 또 많은 위구르 사람들의 도움을 받고 있다는 소식도 들었다. 자기 무공에 꾀 자신이 있었지만 아무래도 중과부적이다. 그래서 양주에 주둔하고 있는 총병을 찾아가 상의하고 정병(精兵)4백 명만 내어 국사범을 호송하는 데 협조하라고 했다. 총병은 일이 워낙 중대하다고 느껴 거절할 수가 없었다. 즉시 군마를 수습하고 부장 조능과 참장 평왕선 두 사람을 파견, 병사들을 인솔케 했다. 고란성성에 도착하게 되면 그곳의 병사와 인계인수하기로 했다. 일행은 당당하게 양주성을 떠나 닭과 개, 양 등을 잡아먹어 가며 행군을 했다. 그로 인해 백성들의 원한이 사무 쳤음은 말할 필요가 없다. 이틀을 가자 쌍정자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식사를 하고 다시 30여 리를 가니 대로 옆 나무 밑에서 두 사나이가 가슴을 풀어 헤친 채 쉬고 있었다. 나무에 두 필의 준마도 매어 있었다. 청병 둘이 서로 눈짓을 하고 그들 앞으로 다가섰다. 「여보, 이 두 필의 말이 관마(官員) 같아 보이는데 어디서 훔쳤소? 얼굴이 뛰어나게 잘생긴 사나이 하나가 웃으며 대답했다. 「우리는 분수를 지키는 양민입니다. 어찌 감히 관가의 말을 훔칠수 있겠습니까? 「이 나리 길을 많이 걸었더니 여간 피곤한 게 아니오. 좀 빌려 탑시다.」 청병 하나가 이렇게 수작을 걸자 다른 하나가 맞장구를 쳤다. 「타면 타는 게지. 뭐 무서을 게 있겠소.」 「좋습니다. 나리들께서 타시겠다고 하시니 그냥 타세요.」 잘생긴 사나이가 시원스럽게 대답하자 청병이 웃는다. 「그래도 눈치 하나는 빨라 좋구나. 두 사나이가 일어나 말 옆으로 가더니 고삐를 풀었다. 「나리들 조심하세요. 넘어지면 큰일납니다.」 「웬 잔소리가 그리 많은가? 이 나리가 말 타다 넘어지다고 그게 말이나 되느냐? 청병이 웃고 거들먹거리며 다가와 고삐를 잡으려고 하는데 벌써 엉덩이를 채였다. 다른 하나는 따귀를 맞고 길 가운데 저만큼 나가 떨어졌다. 대대의 병졸들이 이꼴을 보고 낄낄거렸다. 두 사나이는 몸을 날려 말 위에 타고 수레를 향해 달렸다. 얼을 이 온통 상처투성이인 사나이가 수레의 휘장을 걷어올리며 단도를 휘둘렀다. 휘장이 찢어지자 안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사가, 안에 계십니까? 「아, 십이 랑. 수레 안에 있던 문태래가 반갑게 대답했다. 「사가, 우리는 가지만 안심하고 계셔요. 모두들 금방 구하러 올 것입니다.」 수레를 지키고 있던 성황과 조능이 달려들었다. 얼굴이 희고 잘생긴 사나이가 쌍구를 휘둘러 막자 청병들이 분분히 몰려들었다. 두 사나이는 휘파람소리와 함께 광야를 향해 말을 달렸다. 몇 명으 시위가 그들의 뒤를 쫓다가 멀리 사라지자 포기하고 말았다. 이날 밤은 청수포에서 묵었다. 다음날 이른 아침에 병졸들이 놀라 외치는 소리와 함께 혼란이 일어났다. 조능과 평왕선이 나가 보니 10여 명의 청병이 가슴에 병기를 맞고 죽어 있는데 도대체 어떻게 해서 죽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병정들이 서로 귓속말로 귀신의 소행이 아니냐고 수군거렸다. 이날 밤은 횡석에서 묵었다. 이곳은 큰 고을이라 대대의 인원이 세 곳의 객점에 나뉘어 묵으면서도 나머지 사람들은 또 민가를 찾았다. 캄캄한 밤중에 갑자기 객점에 불이 일어나 사방에서 고함 소리가 크게 일어났다. 장소중은 시위들에게 다른 일은 일절 관여하지 말고 문태래 하나만을 지키라고 명령했다. 혹시 적의 계략에 빠지지 않을까 염려했기 때문이다. 불길이 점점 더 사나워지는데 조능이 달려들어왔다. 「토비가 나타났숩니다. 제가 벌써 그들과 대결을 한 걸요.」 「조 장군께서 혼자 지휘를 하시오. 나는 여기를 떠날 수가 없읍니다. 장소중의 말에 조능이 대답하고 밖으로 나갔다. 객점 밖에서는 처절한 비명 소리, 말 달리는 소리, 불길 타는 소리 기왓장이 내려앉는 소리가 오랫동안 들렸다. 장소중은 서대림과 주조음에게 지붕 위로 올라가 망을 보라고 했다. 적이 객점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 한 손을 쓸 필요가 없다고 했다. 불길은 크게 번지지 않고 얼마 있다가 꺼졌다. 한참 동안이나 떠들썩하다가 점점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말발굽 소리와 함께 어지럽게 한 떼의 사람들이 동쪽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조능이 만면에 그으름과 핏자국으로 얼룩진 채 들어와 보고했다. 「토비들을 물리쳤습니다.」 「그래 이쪽 사람이 몇 명이나 다치고 죽었소?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마는,,,,,, 아마,,,,,, 수십 명은 될 것 같습니다. 「토비는 몇 명이나 체포했고 또 몇 명이나 죽였소? 조능은 어물어물 말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다 한참 만에야 겨우 입을 열었다. 「한 명도 잡지 못했습니다.」 장소중은 코웃음만 칠 뿐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다. 「토비들이 모두 복면을 했는데 어찌나 무공이 대단한지 모르겠 더군요 그런데 이상스럽게도 재물은 탐내지 않고 우리만 죽이려고 대들어요. 떠날 때 객점 주인에게 2백 냥을 던져 주고 갔어요. 집을 태웠으니 보상금으로 준다는 것이라나요.」 「그래 그들이 토비라고 생각하시오? 조 장군, 모두들 쉬라고 하시오. 내일 일찌감치 출발해야겠소.」 조능은 물러나와 객점의 주인을 찾았다. 토비와 결탁해 가지고 관병을 살해했다고 공갈을 했다, 겁먹은 주인은 계속 머리를 조아리며 용서해 달라고 하고 받은 돈 2백 냥을 고스란히 조능에게 받쳤다. 그 밖에도 죽은 자를 장사지내 줌은 물론 부상자를 치료해 줄 조건을 내걸고서야 그를 겨우 용서해 준 것이다. 이튿날 아침 오패시까지 부산을 떨고야 겨우 출발할 수 있었다. 날로 산자수명하고 초목이 무성했다. 두 시간쯤 가자 길이 점점 가파라지며 양쪽에 높은 산이 나타났다. 얼마 가지 않았을 때 맞은편 산 위에서 한 필의 말이 달려내려와 대대 앞 10여 보 떨어진 장소에 멈췄다. 그리고 말 위에 타고 있던 사람이 큰소리를 질렀다. 「여보시오, 모두들 내 말을 들으시오. 당신들이 악귀를 건드려 놓았으니 빨리 오던 길로 되돌아가야 살 수가 있소. 공연히 동쪽으로 가다가는 모두 떼죽음을 당할 것이오.」 관병들이 그 사람을 보니 거친 베옷을 입고 허리에는 질끈 새끼를 동여맸다. 영락없이 절에 만들어 놓은 추명무상귀(즈命無常鬼) 의 모양이라 모두들 부들부들 떨었다. 그 사람은 말을 마치자 대대의 인마 곁을 스쳐 산 아래를 향해 말을 달려 내려갔다. 갑자기 후미에 있던 청병 하나가 비명을 크게 지르며 그 자리에 쓰러져 죽었다. 사람들이 놀라 달려와 보았지만 아무 상처도 보이지 않아 더욱 이상하기만 했다. 조능은 2명의 청병에게 남아서 죽은 사람을 매장하라고 하고 대대는 계속 산 위를 향해 행군했다. 잠시 후에 또 한 필의 말이 달려왔다. 말 위에 타고 있는 사람은 방금 지나갔던 바로 그 사람이다. 「여보시오. 모두들 내 말을 들으시오. 당신들이 악귀를 건드려 놓았으니 빨리 오던 길로 되돌아가야 살 수가 있소. 공연히 동쪽으로 가다가는 모두 떼죽음을 당할 것이오.」 사람들이 모두 다시 한 번 깜짝 놀랐다. 어떻게 해서 산 아래로 달려갔던 그 사람이 자기들 면전에 나타났을까? 그는 분명 하산했었다. 여기서 바라다보아도 산을 돌아 다시 올라갈 수 있는 지름길은 보이지 않았다. 몸을 되돌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하더라도 그렇게 빠를 수는 없는 노룻이다. 그렇다면 공중으로 날아왔거나 아니면 땅 속을 뚫고 나왔단 말인가? 그 사람은 말을 마치자 금방 산 아래로 달려 내려갔다. 병사들은 정말 악귀를 만난 것 같아 멀직이 피했다. 주조음은 그가 자기 옆을 지날 때 단도를 들어 가로막았다. 「여보시오. 잠깐만! 그러나 그 사람은 듣도 보도 못 했다는 듯 우장을 들어 그의 어깨를 눌렀다. 주조음이 들고 있던 단도가 쨀그렁 땅바닥에 떨어졌다. 그 사람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그냥 산 아래를 향해 달려 내려갔다. 후미에 있던 청병 하나가 또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 쓰러져 죽었다. 병사들은 놀라 부들부들 떨며 식은땀을 흘렸다. 장소중은 시위를 보고 수레를 잘 지키고 있으라 하고는 직접 후미로 가 보았다. 「장 대인, 그자가 사람인지 아니면 귀신인지 정말 모르겠군요. 주조음이 장소중을 향해 말하며 다친 오른쪽 이마를 만졌다. 얼굴이 백지장처럼 파리하다. 장소중이 옷을 벗어 보라고 했다. 오른쪽 어깨가 푸르딩딩하게 부어올랐다. 장소중은 이마를 찡그린 채 품속에서 약을 한 봉지 꺼내 먹으라고 했다. 또 병사에게 명령하여 죽은 자의 옷을 벗기게 하고 뒤집어 가며 살펴보았다. 등뒤에 시커먼 자국이 있고 다섯 손가락의 흔적이 희미하게나마 보였다. 「귀신, 귀신이다. 뭇 병사들이 떠들었다. 장소중은 2명의 병사를 남게 해 그를 매장하라고 했다. 평왕선이 병사 2명을 선발했지만 그들은 무서워서 한사코 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장소중으로서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라 대대를 일단 정지시켜 죽은 자를 매장한 뒤에 함께 떠나자고 했다. '장 대인, 그자가 정말 괴상하군요. 지나갔던 사람이 어떻게 다시 우리 면전에 나타났을까요? 서대림의 말에 장소중도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가 한참 만에야 입을 열었다. '주 장군이나 이 두 사병은 분명 흑사장(黑沙掌)에 맞았어요. 강호상에서 흑사장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손가락으로 셀 수 있는데, 도대체 누군지 알 수가 없군요.」 '흑사장으로 말할 것 같으면 사천(沙川) 청성파의 혜려 도인이 해내의 독보적 존재인데, 그 혜려가 죽은 지도 벌써 여러 해가 지났습니다. 설마 죽은 귀신이 다시 나타났을 리는 없겠지요? 이 말을 들은 장소중이 무릎을 탁 친다. 「옳지, 그렇군! 이는 혜려 도인의 제자야. 사람들이 흑무상 . 백무삼 이라고 부르는 상씨 형제요. 내 줄곧 한 사람만 생각했으니 생각이 떠오를 리 있나? 원래 이들 쌍등이 형제가 귀신 노룻을 해 사람을 놀라게 했으니까요. 정말 일이 공교롭게 되는군. .이들 쌍등이 까지도 우리에게 대들다니,,,,, .」 그는 상씨 형제가 홍화회 인물이란 사실을 전연 모르고 있었다. 서대림이나 성황 등은 오래 전부터 서천쌍협의 명성을 들어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 시간 서북의 도로상에서 만나게 되다니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기에 나타나 살수를 쓰는지 알 수가 없었다. 마음속으로는 겁을 잔뜩 집어먹으면서도 약한 체하기 싫어 잠자코 있었다. 이날 밤은 흑송보에서 묵게 되었다. 조능은 병사들에게 명령하여 고을 사방에서 보초를 서면서 철통 같은 파수를 보도록 했다. 이튿날 아침, 보초를 보러 나갔던 병사들 중 나타나 보고를 하는 자가 한 명도 없다. 사람을 파견해 조사해 보니 보초병들이 모두 그 자궈에서 죽어 있었다. 두려움에 떨던 병사들 가운데 10여명은 슬그머니 달아나 버리고 말았다. 이날은 오초령을 넘어야 했다. 그곳은 감량(甘凉) 노상 에서도 험준하기로 제일 유명했다. 조능은 병사들을 배불리 먹여 기운을 차리게 하고 오르도록 했다. 반나절 동안 행군을 하니 날씨는 갈수록 추워지고 길은 갈수록 험했다. 9월인데도 눈발이 날렸다. 어느 지점에 당도하니 한쪽은 높은 산이요, 다른 한쪽은 깎아지른 절벽이다. 산골이 깊어 아래가 보이지도 않아 병사들은 손을 잡고 걸었다. 미끄러워서 만약 실족해 떨어지기라도 한다면 뼈도 추리기가 어려을 것 같았다. 몇 명의 시위가 말에서 내려 문태래가 탄 수레를 부축했다. 모두들 조심조심 정신을 집중하고 고개를 오르기에 여념이 없는데 갑자기 앞에 있는 산 뒤에서 한바탕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에는 귀신의 울부짖음 같은 처절한 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울려 퍼졌다. 사람들은 모골이 송연해 자기들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췄다. 앞에서 높은 고함 소리가 울렸다. 이곳으로 오는 자는 염라대왕을 만날 것이다.,-,,-, 되돌아가는 자는 살 길이 있을 것이로다,,,,,,. 이곳으로 오는 자는 염라대왕을 만날 것이요.,,,.,, 되돌아가는 자는 살 길이 있을 것이로다.」 병사들이 무서워 감히 전진할 용기를 잃었다. 평왕선은 10여 명의 사병을 데리고 말에서 내려 앞장서 올라갔다. 막 산허리를 돌아가는데 맞은편에서 화살이 날아왔다. 사병 하나가 가슴에 맞고 비명을 지르며 골짜기로 떨어졌다. 평왕선은 계속 전진하라고 호통을 쳤다. 또 다시 3명의 병사가 화살을 맞고 골짜기로 떨어졌다. 뭇 청병들은 몸을 납작 엎드린 채 화살을 피하기에 급급했다. 이때 산허리에서 한 사람이 나타나며 음산한 소리를 질렀다. 「이곳으로 오는 자는 염라대왕을 만날 것이요, 되돌아가는 자는 살 길이 있을 것이로다.」 병사들이 바라다보니 바로 꺼제 신출귀몰하며 손만 들면 사람을 죽이던 무상귀였다. 겁 많은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다. 조능이 고함을 질러 저지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평왕선이 칼을 들어 병사 하나를 쳐 죽이고서야 군심이 겨우 가라앉았다. 먼저 달아난 6, 70명의 병졸들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장소중이 서대림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은 수레를 지키고 계시오. 내 가서 상씨 형제를 좀 만나야겠소. 말을 마치자 사람들을 제치고 앞으로 나섰다. 「앞에 계신 분은 상씨쌍협이 아니시오? 나는 장소중이라 하는 사람이오 평소 서로 알지도 못하는 사이라 아무 원한도 산 일이 없는데 왜 몇 차례나 이러시오? 무상귀는 차디차게 웃었다. 「하하, 오늘 쌍귀신이 판관을 만났구려.」 큰 걸음으로 다가서며 획 하는 소리와 함께 우장을 그의 면상을 향해 쪼갰다. 그곳은 장소가 너무나 협소하여 장소중으로서는 좌우로 피할 법이 없었다. 왼손에 내력을 집중하여 이 일장을 받고 우장으로 눌렀다. 무상귀의 좌장이 획 하는 소리와 함께 뻗어 나왔다. 쌍장이 부딪치는 순간 두 사람은 피차의 내력을 시험해 보았다. 장소중의 변초는 괴상할 정도로 빨랐다. 왼쪽 다리를 횡운단봉 의 자세로 해서 땅바닥을 쓸었다. 무상귀는 미처 피할 겨를이 없자 쌍장을 포개 가지고 상대의 좌우 태양혈을 후려쳤다. 장소중이 몸을 비스듬히 하며 갑자기 왼쪽 다리를 거둬들이고 앞으로 두 발짝 다가서자 그도 몸을 옆으로 돌리며 앞으로 나섰다. 사방이 깎아지른 절벽 옆으로 스쳐 교차하면서 각기 쌍장을 휘둘러 맹격을 가했다. 4개의 수장이 공중에서 부딪치며 둘이 동시에 뒤로 후퇴했다. 이때의 위치는 서로가 바끽어 장소중은 동에, 무상귀는 서쪽 끝에 섰다. 두 사람은 서로 응시하고 있다가 다시 싸우기 시작했다. 평왕선은 활에 살을 먹여 무상귀를 향해 쏘았다. 그는 좌장으로 장소중의 장을 피한 뒤에 오른손으로 화살 끝머리를 잡고 몸을 돌리며 평왕선을 향해 다시 던졌다. 평왕선이 고개를 숙여 피하자 뒤에 서 있는 청병 하나가 어깨에 화살을 맞고 비명을 질렀다. 장소중이 찬사를 보냈다. 「상씨쌍협, 과연 그 이름이 헛되지 않으오! 말은 하면서도 권세를 전연 늦추지 않고 계속 맹공을 하는데 갑자기 등뒤에서 무서운 장풍 소리가 들렸다. 장소중이 몸을 날려 피하고 보니 역시 노란 얼굴에 깡마른 체구 앞에 있는 사람과 똑같이 생겼다. 쌍장을 바람처럼 날리며 신속하기 짝이 없는 기세로 공격, 자기를 중간에 몰아넣었다. 성황. 주조음 등이 달려왔다. 세 사람이 넓이가 몇 자 되지도 않는 좁은 산길 가운데서 악전고투를 벌이고 있었다. 옆은 깊이를 알수 없는 계곡이라 피차간에 바싹 몸을 댄 채 움직이기도 곤란했다. 환 등 일행은 200여명에 달했지만 장소가 워낙 협소해 도을 방법이 없어 고함을 질러 사기를 돋을 뿐이었다. 세 사람은 갈수록 치열하게 싸웠다. 장소중은 적이 뻗는 4개의 수장에서 무서운 바람이 일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침착하게 방어를 했다. 서로 뒤섞여 한창 싸우고 있는데 적의 좌장이 허공을 치고 바위를 때렸다. 석벽에 붙어 있던 모래가 우수수 쏟아지고 이어서 바위 한쪽이 떨어져 깊은 골짜기로 굴러 내렸다. 쿵 하고 땅에 떨어지는 소리가 한참 후에야 들렸다. 악전고투가 한참 동안 계속되는데 적 가운데 한 사람이 갑자기 어깨를 비스듬히 해 장소중을 향해 접근했다. 장소중이 옆으로 살짝 피하는 순간을 이용해 다른 한 사람이 등을 석벽에 대고 대가리일성, 우장을 휘둘렀다. 이와 동시에 왼쪽에 있던 사람이 왼쪽 발을 들어 그를 찼다. 두 사람이 권각을 동시에 씀으로 해서 그를 골짜기에 빠뜨리고 말겠다는 의도였다. 장소중은 적이 발로 자기를 차자 반보 물러섰다. 한쪽 발은 절벽 끝을 아슬아슬하게 밟고 있었지만 다른 한쪽 발은 허공에 떴다. 뭇 관병들이 놀라 이구동성으로 비명을 질렀다. 그때 다른 한 사람의 장풍이 벌써 얼굴을 향해 날아왔다. 장소중으로서는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는 처지였다. 쌍방의 장력이 엇비슷하게 강하고 보니 일단 부딪치면 둘 다 뒤로 물러서지 않을 수가 없었다. 상대방은 석벽에 한번 부딪치면 그만이지만 자기는 깊은 계곡으로 떨어질 것이 뻔했다. 사람이 급해지면 꾀가 생기기 마련이라더니, 장소중은 금나수법을 썼다 왼손을 구부려 상대방의 팔을 잡고 기합과 함께 그를 번쩍 들었다. 그 사람도 손을 뒤집어 장소중의 팔을 잡았다. 그러나 두 발이 허공에 떠 힘을 쓸 수가 없었다. 장소중은 있는 힘을 다해 그를 골짜기에 집어던졌다. 그 사람은 바로 상씨쌍협 가운데 상혁지였다. 뭇 관병들이 다시 한 번 놀라 비명을 질렀다. 상혁지는 몸이 허공에 떠 있는데도 정신을 잃지 않았다. 공중에서 두 발을 오므리며 물구나무 재주를 넘었다. 떨어지는 속도를 늦추며 반원을 그리는 사이에 벌써 허리춤에서 비조를 꺼냈다. 손을 한 번 뻗자 비조가 뻣뻣하게 선 채 위로 올라왔다. 이때 상백지의 비조도 벌써 그의 손을 떠났다. 두 사람의 비조가 서로 엉켰다. 마치 악수를 하는 것과 흡사했다. 상백지가 두 손을 밖으로 휘두르자 그의 몸이 허공을 날아 10여 장 밖에 있는 산길 위에 사뿐히 내려섰다. 상백지는 몸을 돌려 세우며 두 손을 마주 잡고 이렇게 말했다. 「화수판관의 무예가 대단하십니다. 정말 탄복했습니다.」 그가 허리를 숙이는 순간 힘을 쓰는 것도 보지 못했는데 갑자기 몸이 허공에 떴다. 뒤로 수 장이나 물러나 상혁지의 손을 잡은 채 형제가 가 버리는 것이었다. 뭇 관병들이 분분히 몰려들었다. 어떤 사람은 장소중의 무공을 칭찬했고 또 어떤 사람은 상혁지를 벼랑 밑으로 떨어뜨려 죽이지 못했음을 애석해했다. 장소중은 한마디 말도 없이 서 있다가 석벽에 기댄 채 천천히 앉았다. 서대림이 다가서서 이렇게 물었다. 「장 대인, 무공이 정말 훌륭하십니다. 어디 부상을 입지는 않으셨는지요? 장소중은 대답도 없이 숨을 몰아쉬다가 한참 만에야 겨우 이렇게 대답했다. 「아무 일도 없소. 자기 팔을 들여다보니 5개의 검은 손가락 자국이 살 속에 박혀 있었다. 마치 불로 지진 것 같은 상처였다. 대대의 인마는 오초령을 넘었다. 그날 밤 또 3, 40명의 병사들이 달아났다. 장소중과 서대림 등은 이렇게 상의했다. 「큰 길은 난주성성(蘭州省城)으로 가는 길이지만 그놈들이 기다리고 있다가 귀찮게 굴 것이요. 차라리 지름길로 돌아 홍성에 도착하거든 적투도에서 강을 건너기로 합시다. 그러면 놈들이 허탕을 칠 것이 아니오.」 원래의 계획에 의한다면 조능은 난주에 도착하는 대로 임무 교대를 하기로 되어 있었다. 장소중의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달갑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반박할 수도 없었다. 「노상에서 많은 병졸들을 잃었는데, 조 대인 돌아가시거든 비적을 토벌하다가 용감하게 순국했다고 보고를 하시오. 나도 그렇게 보고하리다.」 장소중의 말을 들은 조능은 기뻐 어쩔 줄 몰랐다. 원래 병부의 관례에 따르면 관병이 전쟁터에서 죽었을 때 위로금을 받게 되어 있다. 그렇게 된다면 이 돈은 자연 통병관(統兵官)인 자기의 주머니에 굴러 들어올 것이 뻔했다. 황하 근처에 이르자 멀리서도 그 거대한 물결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꼬박 반나절을 걸어 겨우 적투도에 도착했다. 황하의 물이 여기서 구부러지면서 연안에 있는 바위들이 핏빛으로 물들기 때문에 적투도란 지명을 얻게 되었다. 이때는 날이 저물어 노을이 곱게 물든 가운데 황하의 물이 세차게 동쪽으로 흐르며 파도가 언덕을 치고 있었다. 혼탁하기 짝이 없는 물이 죽 끓듯이 부글거리며 흘렀다. '오늘밤 안으로 이 강을 건너자. 공연히 머뭇거리다가 놈들이 나타나면 귀찮아질 테니까.」 장소중의 말이었다. 황하의 물결이 세차 배는 건널 수가 없고 도하를 하자면 양(羊) 가죽으로 만든 팃목에 의지해야만 했다. 병사들에게 양가죽으로 만든 땐목을 구해 오라고 했지만 아무리 돌아다녀도 찾을수 없다는 보고를 들었을 때는 날이 이미 어두어졌다. 초조해진 장소중이 발을 구르고 있는데 갑자기 상류에서 쏜살같이 두 척의 양가죽 땐목이 흘러왔다. 병사들이 고함을 지르자 두 척의 땐목이 근처의 언덕에 접근했다. '여보 사공, 강을 건너게 해 주면 은전을 두둑히 드리리다.」 평왕선이 먼저 이렇게 말했다. 한 척의 뗏목 위에서 장정이 일어나 손을 흔드는 것이 보였다. 「당신, 벙어리인가? 평왕선이 또 물었다. 「타겠으면 타는 게지 뭐 말이 많소? 뭐라고 떠들기는 하는데 지독한 광동 사투리라 전연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평왕선은 더 거들떠보지 않고 장소중과 시위들을 향해 문태래를 압송한 채 먼저 뗏목에 오르라고 했다. 장소중은 사공을 훑어보았다. 번들번들한 대머리라 머리카락이 몇 개 없었다. 삿갓을 눌러 썼기 때문에 얼굴을 똑똑히 볼 수가 없었다. 팔의 근육이 울퉁불퉁해 힘깨나 쓰게 생겼는데 손에 노를 들었다. 거무튀튀한 노가 결코 나무로 만든 것이 아니다. 장소중은 자기가 헤엄을 칠 줄 모른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공연히 먼저 탔다가 무슨 일을 당할지 몰라 걱정스러웠다. '평 참장! 당신이 먼저 병사 몇 명을 데리고 건너시오.」 평왕선이 대답하고 먼저 뗏목에 올랐다. 다른 한 척의 뗏목에도 7, 8명의 병사가 올라탔다. 물살이 세차게 흘렀다. 두 척의 뗏목은 상류를 거슬러 올라갔다. 사공이 방향을 강심으로 돌렸다. 사공 둘은 물에 익숙해서 무사히 관병 들을 맞은편 언덕에 내려놓고 다시 이쪽으로 사람을 태우러 왔다. 이번에는 조능이 병사들을 인솔했다. 뗏목이 막 언덕을 떠났는데 갑자기 뒤에서 휘파람소리가 크게 들렸다. 장소중은 급히 병사들을 산개시키고 수레를 에워싼 채 철통 같은 은 방어 태세를 취했다 이때 초승달이 막 떠올라 온누리를 비쳐 주었다.동.서 .북 세 곳에 드문드문 10여 기의 말이 나타났다. 장소중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뭐하는 놈들이냐? 상대방은 일렬로 늘어선 채 점점 더 가까이 이쪽으로 접근했다. 중간에 있던 한 사람이 말의 고삐를 당겨 앞으로 나서는데 손에 병기는 없고 백접선(白情扇)을 여유 있게 흔들며 낭랑한 소리로 물었다. '앞에 계신 분, 혹시 화수판관 장소중이 아니시오? 「바로 나요. 그런데 그대는 누구시오? '우리 사가를 귀하께서 여기까지 잘 호송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이제 그만 폐를 끼치고 모셔가려고 왔습니다.」 「당신들은 홍화회 사람들이오? '강호상에서 화수판관의 무예가 출중하다고 하더니 눈치까지 빠르실 줄은 미처 몰랐군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홍화회 사람들이오. 그 사람은 여기까지 웃으며 말을 하더니 갑자기 목청을 가다듬고 길게 휘파람을 불었다. 장소중은 뜻밖에 일어난 일이라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땐목 위에 타고 있던 사공도 휘파람으로 응수했다. 조능은 땐목 위에 타고 앉아 언덕 위에 적이 나타났음을 보았다. 어떻게 할까 망설이고 있는데 사공의 휘파람소리를 듣고 그만 파랗게 질렸다. 사공이 노를 뒤집어 땐목을 멈추고 호통을 쳤다. 「제기랄, 물 속에 뒤집어 넣어야 알겠나? 그러나 조능이 그가 하는 광동말을 알아들을 리가 없다. 눈을 멀뚱멀뚱 뜬 채 눈치를 살피고 있는데 저쪽 뗏목 위에서 분명히 알아들을 수 있는 말소리가 들렸다. 「십삼제, 손을 씁시다. 이쪽 뗏목의 사공이 알아들었다는 신호를 보냈다. 조능이 창을 비껴 들고 사공을 향해 찔렀다. 사공이 노를 휘둘러 막은 뒤에 다시 조능을 쳐 황하 속에 빠뜨려 버렸다. 두 척의 뗏목 위에 있던 사공 둘이 동시에 병기를 휘둘러 관병들을 모조리 물 속에 빠뜨리고 나서 뗏목을 언덕에 대려고 가까이 접근했다. 청병들이 어지럽게 화살을 쏘았지만 거리가 먼데다가 날까지 어두워 맞히지 못했다. 이쪽에 있던 장소중은 무척 당황했지만 워낙 조심성이 많고 침착한 사람이라 물에 빠지지는 않았다. 정신을 가다듬고 그들을 향해 큰소리를 질렀다. 「너희놈들, 우리가 오는 도중 계속 관병을 살해해 용서할 수가 없다고 벼르던 참인데 마침 잘 나타났다. 그래, 너는 홍화회에서 뭣하는 놈이냐? 맞은편의 그 사람은 바로 홍화회 총타주인 진가락이었다. 「당신이 내 성명을 물을 것도 없소. 이 병기를 보면 누군지 금방 알 수 있을 것이오.」 진가락은 웃으며 이렇게 대꾸하고 심연을 바라다보았다. 「심연, 이리 가져오게.」 심연은 보따리를 풀어 2개의 병기를 꺼내 진가락에게 바쳤다. 이번 홍화회 군웅들이 관병을 추적할 때 관례대로 한다면 장진 위춘화 등이 선붕을 서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장소중의 명성이 높고 보니 진가락으로서는 자기가 직접 나서고 싶은 충동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주장(主將)이 출마하겠다는 마당에 무진 등이 나서기도 거북했다. 장소중이 나는 듯 말에서 내려 칼을 뽑아 들고 다가서는데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가 앞으로 나섰다. 「장 대인, 제가 저자를 물리쳐 보내지요.」 장소중이 보니 어전시위인 주조음이다. 먼저 그로 하여금 대결토록 해 허실을 알아본 뒤에 나서기로 하고 뒤로 물러섰다. 「주 형, 조심하오.」 '대담한 것들 같으니라구. 감히 국사범을 뺏으려 들다니 이 칼이나 받아라. 칼을 들어 진가락의 다리를 노리고 찍었다. 진가락은 사뿐히 말 위에서 뛰어내리며 왼손에 든 방패를 들어 막았다. 달빛 아래 주조음은 적이 사용하는 병기가 너무나 이상하게 생겼음을 보았다. 방패 위에는 9개의 날카로운 낚시 같은 물체가 돋아나 있었다. 자기의 단도가 방패와 부닥치기만 하면 그 낚시같은 물체에 걸려들 것 같아 내밀었던 칼을 급히 거두었다. 진가락의 방패는 자유자재로 공격과 방어가 가능했다. 그런 방패로 주조음을 그냥 눌렀다. 주조음의 단도가 비스듬히 상대의 왼쪽 어깨를 갈랐다. 진가락의 방패가 뒤집어지며 낚시가 나타나자 주조음이 뒤로 2보 후퇴했다. 진가락의 오른손이 들리며 다섯 가닥의 밧줄이 주조음을 향해 날아왔다. 밧줄 한 가닥의 끝머리에는 쇠로 만든 공이 각기 달려 있어서 전적으로 사람의 몸에 있는 36개의 대혈을 찌르게 되어 있었다. 깜짝 놀란 주조음이 겁을 먹고 몸을 솟구치는데 뒤에서 날아온 다른 밧줄이 몸을 감으며 등뒤의 지당혈(志堂穴)이 뻣뻣하게 마비되었다. 앞이 캄캄해지는데 두 발이 벌써 밧줄에 얽혔다. 진가락이 잡아 당기자 그의 몸이 허공에 번쩍 떴다. 그리고 다시 손을 놓자 주조음의 몸이 허공을 향해 수평으로 날아갔다. 맞은편은 큰 바위라 부닥치기만 하면 그대로 머리가 깨질 판이다. 장소중은 적이 말에서 내리는 모습을 보고도 벌써 주조음의 적수가 아님을 알았다. 대결이 시작되자마자 일방적인 참패를 당하자 몸을 날려 바위 앞을 막아섬과 동시에 왼손을 급히 뻗어 주조음의 몸을 잡아 치켜세웠다. 그리고 가슴과 단전을 쳐 막힌 혈도를 풀어 주며 말했다. 「자, 주 형은 내려가 쉬라구.」 주조음은 놀란 가슴이 두근거려 대답도 못했다. 장소중은 응벽검을 치켜 들고 진가락을 향해 이렇게 물었다. 「젊디젊은 나이에 상당한 무공을 지녔군. 도대체 사부가 누구요? 「그래도 나이 대접은 받고 싶은 모양인데 당신의 사부는 누구요? 옆에 있던 심연의 반문에 장소중은 화가 나서 호통을 쳤다. 「어 린것이 공연히 나서서 쓸데없는 잔소리를 늘어놓는구나.」 「아니, 당신이 우리 공자님의 병기도 몰라 보다니 한심하오. 내게 절 세 번만 하면 가르쳐 주리다.」 장소중은 심연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쉭 하는 소리와 함께 진가락의 오른쪽 어깨를 찔렀다. 진가락은 오른손에 든 밧줄을 뒤집어 검신을 싸 안으며 왼손의 방패를 뻗어 그의 얼굴을 후려쳤다. 장소중의 응벽검 이 유운검술(柔雲劍術)로 나왔다. 검초가 끊이지 않고 이어지며, 짧은 병기로 긴 병기를 상대하면서도 착실한 공격과 방어를 하면서 상대방의 괴상한 병기와 치열하게 싸웠다. 이때 2명의 사공도 언덕으로 올라와 청병을 향해 달려들었다. 관병들의 화살이 메뚜기때처럼 그들을 향해 날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무인지경으로 대들며 앞장을 선 사람은 동두악어 장사근이요, 뒤에 선 사람은 벌써 삿갓과 도롱이를 벗어 버리고 손에 쌍도를 든 원앙도 낙빙이었다. 장사근은 쇠로 만든 노를 휘두르며 관병 중앙을 뚫고 들어가고 있었다. 앞에 섰던 두 사람이 노에 맞아 머리가 터지자 나머지 사람들이 분분히 비켜 선다. 낙빙은 그 뒤를 바짝 쫓아 수레 옆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성황이 제미곤을 들고 대들어 막는 바람에 장사근과 어우러져 싸우게 되었다. 낙빙이 수레에 접근, 휘장을 걷어올리며 안을 향해 남편을 불렀다. 「여보, 안에 계시나요? 그런데 수레 속에 있는 사람은 문태래가 아니라 중상을 입은 여어어동이었다. 그는 혼미한 정신 가운데서도 낙빙의 목소리를 분명히 듣고 꿈속이거나 아니면 자기가 이미 죽어 지하에서 그녀를 만났다고 착각하고 반갑게 맞이했다. 「드디어 저를 찾아 주셨군요. 낙빙은 매우 급하고 바쁜 가운데 남편의 목소리가 아님을 알았다. 목소리가 몹시 귀에 익기는 했지만 자세히 생각할 여유가 없어 두번째 수레로 달려가 휘장을 걷으려고 하는데 오른쪽에서 한 지 루의 거치도가 불쑥 비어져 나왔다. 그녀는 오른손의 칼로 막고 왼손의 칼로 적의 오른쪽 어깨와 왼쪽 다리를 노렸다. 그녀으 이 도법은 송나라 때 한세충(韓世忠)으로부터 전해 내려온 솜씨다. 한세충이 전투에 나간 금나라 병사를 대파할 때 오른손에 든 칼은 길어 대청이라 했고, 왼손에 든 칼은 짧아 소청 라 했는데 그의 칼에 맞아 죽은 금나라 병사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낙빙의 왼손은 오른손보다 기민했다. 그녀의 부친인 신도 낙원통이 이 도법을 그녀에게 전수해 주었는데, 왼손에 든 칼은 무거우면서도 매서워 일반적으로 쓰는 단도의 도법과 같았다. 오른손의 칼은 변화가 무궁해 상대방의 예측을 불허하는 것으로 확실히 강남 무림의 절기였다. 낙빙은 달빛 아래서 자기를 습격한 적의 얼굴을 똑똑히 보았다. 바로 숙주에서 남편을 포위하고 잡아간 8명의 시위 가운데 한 사람이 분명했다. 증오심이 불타올라 공격은 더욱 맹렬했다. 서대림은 그녀의 비도의 절기를 본 일이 있어 거치도를 휘둘러 그녀가 비도를 쓸 겨를이 없도록 맹공을 가했다. 이렇게 싸우고 있을 때 또 2명의 시위가 달려와 가세했다. 관병이 사방에서 나타나 그들을 에워싸는 바람에 장사근과 낙빙은 완전히 포위망에 빠졌다. 이때 휘파람소리가 나며 동북방에서 말 네 필이 이쪽으로 달려왔다. 앞장을 선 사람은 구명금표자 위춘화요, 그 뒤로 장진 , 양성협, 주기 세 사람이 나타났다. 위춘화는 그의 쌍구를 휘둘러 얼굴을 가린 채 말을 타고 달려들었다. 달빛이 질펀하게 깔린 가운데 검은 말 한 필이 연기처럼 나타나 청병의 진을 쉽쓸었다. 관병들이 비오듯 쏘아대는 화살 하나가 검은 말의 목에 맞자 말은 통증으로 더욱 사납게 뛰었다. 앞 발에 가슴을 채인 청병 하나가 허공에 떴다 내려앉았다. 위춘화는 나는 듯 말등에서 뛰어내리며 쌍구를 들었다. (아"1 쿠!>하는 비명 소리와 함께 청병들의 가슴에서 피가 뿜어 나오는데 위춘화의 쌍구는 벌써 서대림의 등을 공격했다. 서대림은 낙빙을 포기한 채 칼을 돌려 적을 맞이했다. 이어 장진 등이 속속 당도 했으니 관병들이 어찌 당해 낼 도리가 있겠는가. 그들 세 사람의 기세에 눌려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났다. 혼전이 벌어진 가운데 빈철로 만든 제미곤 하나가 반공으로 날아 올랐다. 원래 장사근과 성황이 한창 어울려 싸우다가 승부가 나지 않자 초조해진 나머지 성황이 자기 머리를 내려치는 것을 보고 있는 힘을 다해 노를 들어 반격을 했던 것이다 쇠로 만든 노와 제미곤이 부딪치는 순간 성황은 호구가 찢어지는 듯 아파 손에 들었던 철곤을 그만 놓치고 몸을 돌려 달아났다. 이때 낙빙과 대결하고 있던 시위는 단도에 벌써 두 곳이나 찔려 피를 줄줄 흘리면서도 결사적인 항거를 하고 있었다. 낙빙이 갑자기 뒤에서 이는 바람소리를 듣고 몸을 돌렸을 때는 벌써 강편이 머리 위에 떨어지고 있었다. 급히 칼을 들어 막기는 했지만 워낙 상대방의 힘이 막강해 강편과 자기의 칼이 동시에 머리를 위협했다. 땅 위를 데굴데굴 굴러 겨우 위기를 모면했지만 결국 적의 발길에 등을 무겁게 채이고 말았다. 낙빙은 또다시 두번째 수레로 접근해 휘장을 걷어올렸지만, 계속된 실망에 그녀는 남편을 부르지도 못하고 있는데 안에서 묻는 소리가 들렸다. 끝없는 환난 「누구요? 오매불망 잊지 못하던 다정한 남편의 목소리였다. 그대로 달려들며 남편을 얼싸안았지만 목이 메어 말이 나오지 않았다. 문태래는 사랑하는 아내를 보자 너무나 반가웠으나 두 손이 꽁꽁 묶여 있어 그녀를 어루만지며 위로할 수도 없었다. 두 사람은 수레 안에서 모든 것을 잊고 다만 천지며 우주가 만세토록 불변하기만을 바랐다. 수레 밖에서는 고함 소리와 병기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지만 그들 두 사람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잠시 후에 수레가 이동하기 시작했다. 장진이 수레 안으로 고개를 디밀었다. 「사가, 우리가 모시고 돌아가겠습니다.」 마부의 자리에 앉아 수레를 몰고 북쪽으로 향했다. 시위 몇 명이 결사적으로 수레를 뺏기 위해 달려들었지만 양성협 -위춘화-장사근 - 주기 등 네 사람에 의해 쫓겨났다. 「화살을 쏘아라. 누군가의 명령에 따라 수십 명의 청병이 일제히 활을 쏘았다. 캄캄한 가운데 양성협이 (아이쿠!)하고 비명을 질렀다. 왼쪽 팔을 화살에 맞은 것이다. 위춘화가 보고 깜짝 놀라 물었다. 「팔가, 왜 그래요? 양성협이 깃털을 이로 물고 왼팔을 밖으로 뻗쳐 화살을 뽑고 화가 나 소리쳤다. '저놈들을 모조리 죽여 없애겠다. 상처에서 피가 뿜어 나오는데도 불구하고 강편을 치켜든 채 청병의 진을 뚫고 들어갔다. 「좋다, 깨끗이 없애야지 ! 위춘화가 동조하여 그들 두 사람이 청병의 진을 무인지경으로 휩쓸었다. 순식간에 7, 8명의 청병이 강편과 쌍구에 맞아 죽자 사람들은 사방으로 어지럽게 흩어졌다. 두 사람이 동서로 나뉘어 추격하자 맹건웅과 안건강이 달려가 합세했다. 맹건웅이 계속 발사한 탄자에 10여 명의 청병이 맞아 눈이 부어올랐거나 코가 뚤어져 비명을 질렀다. 장사근과 주기가 수레를 호위하고 장진이 몰고 해서 나지막힌 언덕 옆에 대놓은 채 진가락과 장소중의 대결을 바라다보았다. '여보, 밖에서는 어떻게들 싸우고 있소? 「총타주님이 장소중과 대결하고 있어요.」 문태래의 질문에 낙빙이 대답했다. 「총타주라니? 문태래가 의아해서 물었다. 小타주가 우리의 총타주님이 되셨어요.」 「그거 아주 잘된 일이군. 장소중 저녀석의 손이 아주 매서운데 총타주님이 불리하지 않을까? 낙빙은 머리를 수레 밖으로 내밀었다. 달資 아래 두 사람이 엎치락 뒤치락 악전고투를 벌이고 있는데 좀처럼 우열을 가릴 수가 없었다. 「총타주께서 여유 있게 상대하고 있소? 「총타주님의 병기가 아주 대단해요. 왼손에 방패를 들었는데, 그 위에는 날카로운 낚시가 달려 있고, 오른손에는 다섯 가닥의 밧줄 끝에 쇠로 만든 공이 달려 있어요. 저 밧줄에서 나는 소리 좀 들어 보세요. 「밧줄 끝에 쇠로 만든 공이 달려 있다구? 그렇다면 그분이 밧줄을 이용해 상대방의 혈을 때릴 수 있다는 뜻인데.」 「그래요, 장소중이 그분의 밧줄에 포위되어 있어요.」 「총타주님의 힘은 충분한지 모르겠군? 소리를 들어 보니 밧줄의 속도가 약화되는 것 같은데.」 낙빙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있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잘됐다. 장소중의 칼이 방패에 눌려 꼼짝 못하는구나. 그러면 그렇지. 이번에야 영락없겠지,,,,,, 아이구, 아이구, 큰일났네 ! 「아니, 왜 그래요? 문태래가 다급하게 물었다. 「아니, 저녀석이 구보검으로 나와 방패 위에 있는 낚시를 두 개나 분질러 버렸어요. 아이구, 밧줄도 보검에 맞아 끊어졌네요. 옳지, 옳지, 이번에는 방패가 허공을 쳤지만,,,,,, 아이구, 낙시가 또 부러졌네. 총타주님이 맨손으로 대결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위험한데! 상대가 정말 사납군요 옳지, 무진 도장께서 나타나시고 총타주님이 물러나셨어요.」 문태래는 평소부터 무진의 검법이 천하 독보임을 알고 있었다. 그런 무진이 나섰다면 이제 안심해도 좋다. 그러나 불끈 쥔 두 손바닥에는 식은땀이 괴어 있었다. 여러 사람들의 함성 소리가 들려 문태래가 웬일이냐고 물었다. 「무진 도장께서 추혼탈명검 가운데에 있는 오귀검법(五鬼劍)을 쓰고 계신데 어찌나 빠른지 잘 보이지도 않는군요. 장소중이 밀리고 있어요.」 「여보, 그 사람 걸음을 떼어 놓을 때 혹시 팔괘(八卦) 방향으로 이동하는지 잘 살펴보구려.」 「그래요. 이궁에서 건위(乾位) 방향으로 옮겼어요 아, 반금 감궁에서 진위(震位) 방향으로 옮기는군요. 그런데 어떻게 그걸 아셨지요? 「저자의 무공이 막강하니 그가 뒤로 밀릴 리 없다는 생각이요. 무당파의 유운검술(柔雪劍術) 가운데 한 가지 검법이 있는데 그건 전적으로 방어하는 데만 쓰인다는 말을 들은 일이 있소. 상대가 공격하게 내버려두었다가 뒤에 반격을 하는 것인데, 검법은 걸음을 옮길 때 반드시 팔괘 방향을 정확하게 밟아야 한데요. 애석하구나.」 「뭐가 애석하다고 하시는 거예요? 「볼 수가 없어서 애석하단 말이오. 이 검법을 쓸 줄 아는 사람은 무공은 대단하다오. 정말 강적을 만났을 때에만 사용한다던데 」 대결하는광경은 평생을통해서도 몇 번 볼수 없다고들하던데 낙빙은 섭섭해하는 남편을 이렇게 위로했다. 「이 다음에 제가 육 노선배님과 무진 도장께 청을 드려 대결을 하시도록 할 테니 그때 똑똑히 보시면 될 것 아니겠어요? 이 말에 문태래가 껄껄 웃었다. 「그분들이 뭐 어린앤 줄 아시오? 낙빙이 손을 뻗어 그의 목을 껴안고 있다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도장께서 다리를 쓰기 시작했어요. 이 연환미종퇴는 정말 묘하기 짝이 없어요.」 「도장님이 왼팔이 없으시니까 다리에 대해 많은 수련을 쌓아 상당한 경지에 도달하셨다오. 그래야만 자신의 취약점을 보완할 수 있으니까 말이오. 당년 청기방을 위력으로 굴복시킬 매에도 이 퇴법에 의지해 승리를 거두셨다오.」 원래 무진 도인은 소시에 녹림에 소속되어 있었다. 부잣집의 재물을 털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며 크나큰 사건을 여러번이나 저질렀다. 무공이 막강한데다 수하에 형제들이 많아 관가에서도 손을 댈 수가 없는데 관가의 소저를 보고서 반해 죽자 하고 그 여자를 사랑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소저는 무진에 대해 전연 관심이 없었다. 부친의 사주를 받고 몰래 그녀를 만나기 위해 찾아온 무진을 향해 소저는 이런 말을 꺼냈다. 「저를 진심으로 사랑하지도 않거니와 전연 성의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어요. 무진은 아니라며 순정을 하늘과 땅에 맹세할 수 있다고 장담했다. 「남자들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어요? 누구나 그런 말은 다 할 줄 알아요, 이렇게 오랜만에야 저를 찾아 주셨는데 저는 기다리기도 지겨워요. 정말 저를 진정으로 사랑하신다면 한쪽 팔을 베어 제게 주세요. 그 팔이라도 곁에 로셔 놓고 있어야 외롭지 않겠어요.」 무진은 아무 말 없이 정말 칼을 뽑아 자기의 왼팔을 잘라 그녀에게 주려고 했다. 소저가 있던 방의 위층에 관노들이 매복하고 있다가 이 광경을 보고 일제히 달려들었다. 무진은 통증으로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었기 때문에 저항할 힘이 없었다. 이때 무진 수하의 형제들이 군웅들을 소집해 성을 깨고 들어가 그를 구출해 내고 또 그 소저의 가족을 모조리 잡아다 놓았다. 사람들은 무진이 그들 가족을 몰살하거나 아니면 그 소저를 아내로 맞이할 것으로 알았다. 그런데 소저를 보자마자 마음이 약해진 그는 소저와 그 가족을 로두 석방해 주고 자신은 그날 밤 슬그머니 성온 떠나 출가하여 도인이 되었다. 그 1록 출가는 했지만 본디의 성질은 고치기가 어려웠다. 지용을 겸비하고 도량이 넓은 사람이라 강호에 드나들며 의로운 일을 많이 하다가 홍화회 노당가 우만정의 청을 받아 그의 조수가 되었다. 한번은 홍화회와 청기방이 어떤 일로 의견 대립이 되어 쌍방간에 고집을 부리다 결국 무력으로 대결하지 않을 수 없는 일料까지 발전이 되었다. 청기방의 어떤 사람이 무진이 한쪽 팔 밖에 없다고 넌지시 비꼬는 말을 했다. 「내 양쪽 팔이 없다 해도 너 같은 놈 열 명쯤은 안중에도 없느니라. 화가 난 무진은 이렇게 응수하고 오른팔을 새끼로 묶어 맨 뒤에 연환미종퇴로 청기방의 고수 몇 명을 발로 차 쓰러뜨렸다. 청기방 식구들이 진심으로 승복하고, 후에 홍화회에 가입해 들어왔다. 양성협은 본래 청기방의 방주였는데 홍화회에 가입한 후 여덟 번째 교의에 앉았다. 「잘 됐어요. 장소중의 걸음걸이가 도장의 발에 채여 흩어져 팔괘 料를 정확히 밟을 수 없게 되었어요」 낙빙의 말에 문태래도 반가워했다. 注장이 명성을 얻은 후 여태까지 적수를 만난 일이 없었는데 e늘 아주 잘된 일이오. 이번에 장소중으로 하여금 홍화회가 무섭다는 사실을 똑똑히 인식시 켜야지 ,,,,,,.」 그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낙빙이 놀라 소리를 질렀다. 「아니, 무슨 일이오? 문태래가 다급하게 물었다. 注장께서 이리저리 피해 다니고 계셔요. 저녀석이 무슨 암기를 쓰는 모양인데 어두워 잘 보이지도 않는군요. 아주 가느다란 암기인가 봐요.」 문태래가 귀를 기울였다. 가벼운 금속성이 들린다. 「옳지, 이것은 무당파에서 쓰는 무서운 암기인데 부용금침이라고 하는 것이오.」 이때 수레가 이동하면서 뒤로 수 장이나 물러났다. 「도장이 칼 한 자루를 휘둘러 물샐틈 없이 전신을 보호하고 있어요. 금침이 맞지 않으니까 사방으로 흩어지고 있군요. 그래서 모두들 뒤로 물러섰어요. 아, 이제 금침을 쓰지 않고 둘이 다시 어우러졌어요. 도장이 유리해 보이지만 장소중의 수비가 워낙 철통 같아 공격해 들어갈 수가 없군요.」 「내 손을 묶은 끈이나 풀어 주시오.」 「어머, 내 정신 좀 봐. 반가운 생각에 그만 깜박 잊고 있었군요. 미안해요.」 묶은 끈을 단도로 끊고 가볍게 주물러 주었다. 이때 갑자기 밖에서 잴그렁 하는 소리에 이어 부르짖는 소리가 들렸다. 낙빙이 머리를 밖으로 내밀고 말했다. '아이구, 도장님 칼이 부러졌어요. 저 장가의 칼이 대단한가 봐요. 여보, 나 좋은 말 한필 뺏은 게 있는데 이따가 태워 드릴께요. 그게 뭐 그리 바쁠게 있소. 어서 도장님 사정이나 보도록 하오. 문태래가 웃으며 말했다. 「지금은 괜찮아요. 장소중이 도장님의 발에 채여 뒤로 물러섰어요. 그리고 조 삼가가 가세를 했어요.」 문태래는 무진 도인이 뭐라고 중얼중얼하면서 거친 소리로 욕을 하는 소리를 듣고 웃었다. 「도장은 출가한 사람인데도 성질이 불 같군요. 여보, 나좀 부축해 주어요. 삼가가 암기로 상대하는 광경을 보고 싶구려.」 낙빙이 그를 부축해 일으키려고 했지만 그는 다리와 엉덩이에 입은 상처가 너무 아파 자기도 모르게 (아이구!)비명 소리를 질렀다. 「편안하게 누워 계셔요. 제가 말씀드릴게요.」 이때 찍찍 하는 이상한 소리가 계속해서 들렸다. 「이건 수전인데, 아 비황석까지 모두 뿌리고 있군. 웬일일까? 장소중이 수전과 비황석을 다 쓰다니 참 이상한 일이이군. 문태래의 말이었다. 「저녀석이 조삼가의 암기를 모두 손으로 받아 다시 이쪽으로 되던지고 있군요. 비오듯 하는 광경이 정말 보기 좋군요. 천비여래의 수단이 정말 대단해요. 강표, 철련자, 금전표 너무나 많아 똑똑히 볼 수도 없어요. 저녀석 미처 받을 틈도 없어요. 아이구,,,,,-아까워라. 그녀석이 숨어 버렸어요.」 그런데 갑자기 펑 하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사염전의 광채가 장소중을 향해 날아가면서 화광이 수레 안에까지 비쳐 들어왔다. 순간 문태래는 귀여운 아내의 상기된 얼굴을 볼 수가 있었다. 사랑스러운 생각이 들어 가볍게 그녀를 불렀다. 「여보! 낙빙이 상긋 웃었다. 웃는 모습이 지워지지도 않았는데 벌써 화광이 꺼졌다. 조반산은 장소중이 화광에 놀라 어리둥절해 있는 틈을 이용 두 가지 독물 암기를 발사했다. 하나는 회룡벽이요, 다른 하나는 비연은사였다. 조반산은 절강 온주 사람으로 소년 시절 선배를 따라 남양 각지를 돌아다니며 장사를 했는데, 그곳 주민들이 사냥할 때 사용하는 도구가 너무나 교묘하게 생겼음을 발견했다. 일단 발사를 하면 자동적으로 날아왔다. 뒤에 그가 온주 왕씨의 태극문에 들어가 무예를 익힐 때 암기에 대해 특별한 장기를 가지고 있었다. 하루는 소년 시절에 본 적이 있는 비거래기 생각이 났다. 기이하고도 묘한 암기로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아 몇 차례나 실패를 거듭한 결과 마침내 곡척(曲尺) 형의 정강만표를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 그것을 회룡벽이라 부르기로 했다. 비연은사에 이르러서는 더욱 독창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일반 무술 명가들은 암기의 발사에 대해 상당한 연구를 했기 때문에 평범한 암기를 가지고 상대에게 피해를 준다는 것이 실제로는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이 비엮싹 는 교묘하기 짝이 없었다. 장소중은 칼을 왼손에 바꾸어 들고 철련자-보리자-금전표 등 비교적 가늘고 작은 암기를 오는 대로 쳐 떨어뜨렸다. 오른손은 계속해서 강표 수전 비황석 등 보다 큰 편에 속하는 암기를 받아 반대로 쏘아 가며 몸을 숙였다 높였다 해 가며 좌우로 피하고 있었다. (아무리 쳐 떨어뜨리고 받아 쏘아도 끝이 없으니 큰일이다. 장소중이 속으로 당황해하고 있는데 갑자기 얼굴을 향해 비스듬히 날아오는 괴상한 물체가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이 암기에 혹시 독이 묻어 있지나 않을까 해서 정면으로 받을 수가 없었다. 손을 뻗어 그 꼬리를 잡으려고 하는데 이 회룡벽은 살아 있는 물체처럼 손에서 빠져나가 다시 원위치로 날아가는 것이었다. 조반산은 날아온 회룡벽을 받아 다시 날려 보냈다. 깜짝 놀란 장소중은 감히 다시 받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응벽검을 뻗어 내리치니 갑자기 쉭쉭 하는 소리와 함께 2개의 은으로 만든 북이 두개로 나뉘어 자기를 습격했다. 그는 방향을 포착하고 몸을 허공에 구쳤다. 2개의 북이 그의 발 아래를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二 때 뜻밖에도 쨍그렁 하는 소리와 함께 연미(燕尾)가 떨어져 나7 북 가운데 있는 탄황기가 연두에 작동, 은으로 만든 북이 공중에서 방향을 바꾸어 위로 솟아올랐다. 큰일났다고 생각했다. 그는 급히 손을 뻗어 배를 가렸다. 북 하나가 손에 들어오자 나무를 이용해 살짝 쥐었다 놓으니 속도가 늦어져 피부에 손상을 입지는 않았다. 그러나 다른 하나의 북은 도저히 피할 길이 없어 마침내 그것이 종아리에 박히고 말았다. 자기도 모르게 절망적인 소리를 냈다. 조반산은 그가 부상을 당하자 칼을 들고 재차 공격을 했다. 장소중도 칼을 들어 막았다. 조반산은 그의 응벽검이 날카롭기 짝이 없는 보검임을 알았다. 2개의 칼이 부딪치면 이쪽 칼이 불리했다. 그래서 검신을 비스듬히 기울여 응벽검의 검신과 나란히 붙게 해서 태극검 가운데 점 자의 비결을 썼다. 응벽검이 이쪽으로 오자 장소중은 다시 한 번 놀랐다. (이 사람, 암기의 재주만 비상한 것이 아니라 검법 또한 대단하구나.) 자기도 모르게 겁이 덜컥 났다. 장소중은 스스로 생각하기를, 일신의 놀랄 만한 무예에 의지해 1을 있는 대로 섬멸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지금은 만나는 사람마다 모두 강적뿐이다. 수중에 응벽검만 없었어도 방금 대결했던 도사도 당해 내기가 어려웠을 것이고, 이제 종아리까지 부상 당하고 보니 더 싸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사방을 휘둘러 보니 표사와 관병들이 동서남북으로 달아나고 또 국사범인 문태래를 태운 수레도 벌써 적의 수중에 빼앗겼다. 초조해진 그는 조반산을 향해 쉭쉭 맹렬하게 칼을 휘둘렀다. 조반산이 뒤로 물러서자 그 틈을 이용해 종아리에 박힌 은으로 만든 북을 뽑아 그를 향해 던졌다. 조반산이 머리를 숙여 피하자 그는 수레를 향해 달려들었다. 낙빙은 장소중이 조반산의 여러 가지 암기에 걸려 손발을 허위적 거리는 광경을 보면서 기뻐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여보, 십사제는 어때요? 상처가 대단하지나 않은가? 「십사제 라니요? 그가 부상을 당했, , ,,, ,.」 문태래의 말에 미처 대답도 하지 않았는데 장소중이 뛰어들었다. 낙빙은 아이쿠 소리를 지르며 원앙도를 빼어 수레 앞을 막았다. 군웅들은 장소중의 모습을 보고 분분히 몰려들었다. 주중영이 옆에서 나타나 앞을 막으며 금배대도를 세우고 소리를 질렀다. 「네 이놈, 감히 철담장에 나타나 사람을 잡아가더니 그래 아무것도 눈에 보이는 것이 없느냐? 어디 한번 결판을 내 보자. 장소중이 보니 흰 수염을 나부끼며 사기충천한 서북 무림의 지도적인 인물 철담 주중영이다. 경솔하게 나을 수 없어 칼을 들어 급히 찔렀다. 주중영은 대도를 뒤집어 칼등으로 대항했다. 장소중의 검술은 기민하기 짝이 없었다. 칼날로 대도의 등을 긋자 칼등의 1촌쯤 되는 홈이 깊게 패였다. 이때 주기 ,장진,서천굉 ,상씨쌍협이 각기 병기를 들고 사방에서 포위한 채 공격을 했다. 장소중은 상대방의 숫자가 많은 것을 보자 응벽검의 운횡진령의 초술을 이용해 원을 그렸다. 사람들은 그의 보검이 날카로움을 두려워하며 각자 병기를 거두어 들였다. 장소중은 약한 주기를 제치고 빠져나가려고 했다. 주기가 칼을 들어 그의 머리를 내리치려고 했다. 장소중이 왼손을 뻗어 벌써 그녀의 팔을 잡고 비틀며 안령도를 빼앗아 갔다. 주중영이 깜짝 놀라 2개의 철담을 장소중의 등을 노리고 날렸다. 바로 이때 진가락의 바둑돌 세 개가 그의 신봉(神封) , 관원 곡지(曲池) 세 혈을 노리고 날았다. 장소중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캄캄한 가운데 상대방의 혈을 이토록 정확히 겨냥할 수 있다면 이는 보통의 솜씨가 아니다. 급히 보검을 휘둘러 바둑돌을 쳐 떨어뜨리는데 바람을 찢으며 철담이 가까이 날아왔다. 장소중이 小리를 듣고 암기의 방향을 확인했다. 몸을 돌리며 손을 뻗어 우선 먼저 날아오는 철담을 받았다. 그런데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뒤에 날아온 철담이 그의 가슴에 맞았다. 원래 주중영은 철담으로 유명해진 사람으로 별도의 독보적인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먼저 쏜 철담은 그 속도가 느렸지만 나중에 쏜 철담은 빨랐다. 처음 보기에는 선후가 있었지만 실은 나중에 쏜 것이 먼저 도착했다. 적이 먼저 발사된 철담을 피하는 순간 나중에 나타난 철담이 추월하기 때문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기 마련이다. 장소중으로서도 쯧밖에 당한 일이다. 가슴이 아파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잡았던 주기의 팔을 놓고 두 팔을 휘둘러 앞을 막고 있는 장진과 서천굉을 뿌리친 뒤에 수레를 향해 달려 들었다. 낙빙은 그가 나타나자 장도를 들어 막으려고 했으나 장소중의 초가 어찌나 빠른지 잴그렁 소리를 내며 낙빙의 장도가 부러졌다. 그 여세를 틈타 장소중이 수레 위로 뛰어오르며 낙빙의 오른손을 잡았다. 낙빙은 오른팔을 잡혀 단도를 쓰기가 불편했다. 그래서 왼손 주먹으로 그의 면상을 향해 닥치는 대로 두들겼다. 군웅들은 놀라 일제히 달려들었다. 장소중은 낙빙의 등을 움켜잡고 상씨쌍협과 주중영 등을 향해 밀어붙였다. 상씨쌍협은 낙빙이 다칠까 염려해 자기 손을 뻗어 붙들었다. 장소중이 갑자기 이상한 비명 소리를 질렀다. 등을 문태래에게 얻어맞은 것이다. 그의 무공이 막강한데다 문태래가 자상을 입은 몸이라 공력이 크게 감퇴해 있었기에 그나마 다행한 편이었다. 그런데도 눈앞이 캄캄하고 가슴이 아파 견딜 수가 없었다. 미처 몸을 돌릴 겨를도 없었다. 왼손을 뒤집어 문태래가 덮고 있던 이불을 들어 분뢰수의 제2장을 겨우 막을 수 있었다. 동시에 오른손으로 그의 신장혈을 눌렀다. 그리고 그를 끌고 수레 앞으로 나타나 큰소리를 질렀다. 「문태래는 여기 있다. 누구든지 달려들기만 하면 그냥 요절을 내고 말겠다. 차디찬 응벽검의 광채가 문태래의 목에서 번득인다. 「여보! 낙빙이 울면서 대들었지만 육비청이 뒤에서 그를 잡았다. 장소중은 이렇게 큰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그만 목에서 왈칵 선혈을 토했다. 육비청이 한 발 앞으로 다가섰다. 「장소중, 내가 누군지 보게.」 장소중은 그와 절교를 한 지 이미 오래 된데다 달빛 아래라 똑똑히 볼 수가 없었다. 육비청은 백룡검을 뽑았다. 칼끝을 구부려 자루 쪽에 갖다 대 원을 만든 뒤 다시 손을 놓았다. 검신이 튕겨 뻣뻣해지면서 끝이 바르르 떨렸다. 장소중이 코웃음을 쳤다. '아, 육 사형이군! 나와는 절교를 했으니 아무 상관도 없을 텐데. 무슨 일로 다시 찾으시오? 「자네는 이미 부상을 당한 몸이야. 여기 홍화회 군웅들이 다들 모여 계신데다가 철담 주 노영웅께서도 돕고 계셔. 자네가 오늘 달아나 목숨을 건지기란 하늘의 별을 따기보다 어려운 일일세. 자네야 원래 무정한 사람이지만 나는 의를 찾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당년 은사님의 은혜를 생각해서라도 내 자네에게 살 길을 일러 줘야지. 장소중은 코웃음만 칠 뿐 아무 말이 없었다. 이때 갑자기 동쪽에서 은은히 사람의 함성과 말의 투레질 소리가 들려왔다. 천군만마가 달려오고 있는 듯했다. 홍화회 군웅들이 의아해하는데 장소중은 더욱 놀라 당황했다. (홍화회의 세력이 정말 막강하구나. 서북에서도 이렇게 많은 인마를 동원할 수 있다니.) 육비청이 다시 입을 열었다. 「얌전하게 문 사야를 놓아 드리게. 군웅들에게 내 체면을 보아 자네를 살려 보내도록 간청하지. 그러나 한 가지 내게 맹세를 해야 되네. 장소중은 강적에게 포위된 이 마당에 살 가망이 없음을 직감했다. 육비청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끌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무슨 맹세를 하란 말이오? '관가와의 관계를 끊을 것은 물론이려니와 다시는 놈들의 주구 노릇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을 하게.」 장소중은 공명과 재물에 눈이 어두워 있었다. 근년 관운이 좋아 계속 승진을 하고 있는 마당에 갑자기 모든 것을 포기하다니 이건 죽으라는 말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 보았다. (오늘 가짜로 맹세를 한다면 생명은 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사범을 놓쳤으니 황상이나 부통령이 분명 문책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내 인생도 끝장이다. 다행히 문태래가 내 수중에 있으니 감히 대들지는 못하겠지. 어디 끝까지 한번 버터 보자.) 「당신들의 숫자가 많으니 내 패한다 하더라도 체면이 손상되는 것은 아니오 오늘 문태래와 함께 이 자리에서 죽어 후세에 이름이나 남기겠소. 장래 천하 영웅이 이 사실을 안다면 당신들 홍화회 체면을 어디 가서 건진단 말이오? 「아니, 오랑캐의 주구 노릇을 하는 주제에 무슨 체면이 어떻다고 야단이냐?」 듣다 못해 양성협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장소중으로서는 할 말이 없어 문태래를 무릎 위에 내려놓은 채 노새의 고삐를 채자 수레가 앞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군웅들은 달려가 수레를 다시 뺏으려고 했지만, 쥐도 급하면 고양이를 문다고, 혹시라도 그가 정말 문태래를 해치면 어쩌나 해서 망설였다. 낙빙은 장소중이 자기 남편을 낀 채 아무 말 없이 수레가 점점 멀어지는 것을 바라다보며 가슴이 미어지는 듯 아파 견딜 수 없었다. 「여보세요! 우리 남편을 놓아 주세요. 맹세고 뭐고 다 그만두고 그냥 남편만 놓아 주세요. 그러나 장소중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수레를 몰아 청병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갔다. 시위와 청병들은 달아났다가 적이 추격을 하지 않자 서서히 다시 몰려들었다. 서대림은 장소중이 수레를 끌고 이쪽으로 오자 병정들에게 활을 쏘아 대항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내 명령이 떨어지거든 화살을 쏘아라.」 이때 먼 곳에서 나던 인마의 소리가 점점 더 가까이 들렸다. 홍화회와 청병 쌍방에서는 각기 상대방의 원병이 오는가 보다고 나름대로 걱정을 하고 있었다. 진가락이 큰소리를 질렀다. 「구가와 십삼가, 맹 대가와 안 대가는 저 청병놈들을 쫓아 버리시오. 위춘화 등이 병기를 들고 청병의 무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육비청의 등뒤에서 한 소년이 나타났다. 「나도 가겠어요. 소년은 말을 마치자 그들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진가락이 이마를 찡그렸다. 원래 남장 여인인 이원지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육비청이 뒤로 처졌던 그날 저녁 바로 이원지와 만나게 되었다. 이 아가씨는 연일 벌어지고 있는 싸움이 재미있어 그냥 가만 구경만 하고 있을 수 없어 사부를 만나자 제발 자기를 좀 데려가 달라고 떼를 썼다. 사부를 모시고 가다가 문태래를 구출하는 데 자신도 일조도 끼지 않겠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그녀의 고집을 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함부로 까불거나 일을 저지르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야 겨우 허락을 내렸다. 이원지는 사부의 말투가 시원치 않은 것을 눈치채자 살짝 웃으며 갖은 맹세를 다 늘어놓았다. 「사부님의 말씀을 듣지 않을 것 같으면 염병을 앓아 곰보도 좋고, 문등병을 앓아 추한 대머리가 되어도 좋아요.」 이렇게까지 나오니 육비청으로서는 완강히 거절만 할 수도 없었던 것이다. (여자란 외모에 대해 상당히 신경을 쓰기 마련인데 이렇 맹세를 하니 무슨 칼 아래 죽어도 한이 없겠다고 나서는 것보다 나은 것이 아닌가?) 그래서 웃고 대답을 했던 것이다. 이원지는 즉석에서 편지를 써 어머니에게 남겼다. 답답해 견딜 수 없기로 단신 먼저 항주에 도착하는 대로 아버지를 뵙겠다는 내용이었다. 일후 어머니로부터 몇 달 동안 잔소리 들을 것이 뻔했지만 당장 눈앞에 있는 구경거리가 깔린 마당에 이것저것 돌볼 여지가 없었던 것이었다. 사부와 제자 두 사람이 홍화회 군웅들의 뒤를 쫓아왔을 때는 장소중이 막 적투도를 건너려고 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였다. 하룻밤 야전이 벌어졌지만 육비청은 끝내 이원지의 참가를 막았다. 이원지는 군웅들과 장소중이 악전고투를 벌이는 광경을 바라다보며 갈채를 보냈다. 그들의 무공이 자기보다 몇 수 높은지 알 바 없어 혀를 내두르고 있다가 위춘화 등이 뛰어나가 청병을 살해하기 시작하자 자기 아버지가 무슨 관직에 있건 말건 그냥 띨쳐나간 것이다. (이번엔 내가 사부에게 여쭈어 보지도 않았거니와 그도 나를 말릴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사부님의 아무 말씀도 듣지 못했으니 나보고 말 듣지 않았다고 책망할 수도 없겠지.) 진가락이 여러 사람을 향해 낮은 소리로 당부를 하자 모두들 고개를 끄덕여 응답했다. 조반산이 먼저 뛰쳐나가며 손을 들어 2개의 수전을 날렸다. 수전이 수레를 끌던 노새의 두 눈에 꽃히자 노새가 길게 울부짖으며 앞 발을 번쩍 들었다. 장진이 수레 뒤로 달려가 있는 힘을 다해 끌채를 당기자 수레는 그 자리에 못이라도 박힌 듯 움직이지 못했다. 상혁지,상백지 형제가 좌우로 달려들며 2개의 비조를 날려 장소중을 끌어당겼다. 장소중이 칼을 휘둘러 물리치자 양성협이 대갈일성 수레 위에 뛰어오르며 문태래를 뺏었다. 장소중이 양성협의 얼굴을 주먹으로 치자 양성협은 몸을 옆으로 돌려 피하기는 했지만 왼쪽 어깨를 맞고 말았다. 그러나 두 손으로 문태래를 껴안았다. 이와 동시에 무진과 서천굉이 수레 뒤에서 나타나 장소중의 뒤를 습격했다. 「올라가자. 진가락이 심연을 향해 말했다. 두 사람은 연자천운의 자세로 몸을 날려 수레 지붕으로 올라가 몸을 숙이고 아래를 향해 공격했다. 장소중은 양성협이 자기의 주먹에 어깨를 맞았는데도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태연하자 은근히 놀랐다. 그러나 바쁜 가운데 여유가 있어 이것저것 세심하게 생각하겠는가? 문태래를 빼앗으려는 것을 보고 왼손을 뻗어 그의 덜미를 나꿔챘다. 이때 두 비조가 그를 좌우에서 끌어당겼다. 장소중은 단검을 들어 도제금종의 묘기를 부렸다. 양성협의 뚱뚱한 체구가 수레 밑으로 밀려 떨어졌다. 화수판관은 눈으로 육로를 볼 수 있었고, 귀로는 팔 方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앞에 있는 적을 이제 막 물리쳤 머리 위와 등뒤에서 적이 습격하는 소리가 들린 것이다. 몸을 숙이며 왼손은 벌써 한 움큼의 부용침을 잡고 있었다. 팔을 돌리며 수레의 지붕과 뒤에 있는 적을 향해 뿌렸다. 진가락은 그가 손을 흔드는 것을 보자 벌써 암기를 쓰는 것임을 알고 방패를 들어 막았다. 쩔그렁 하는 소리와 함께 금침이 떨어졌다. 이와 동시에 오른 손바닥으로 심연의 어깨를 밀어 지붕에서 떨어지게 했다. 재빠른 솜씨였지만 심연의 (아이쿠! 하는 비명소리가 들렸다. 벌써 암기에 맞은 것이다. 진가락은 그를 구출하기 위해 황급히 뛰어내렸다. 저쪽의 무진과 서천굉은 수레 뒤에서 공격을 하다가 금침이 날아오는 것을 보았다. 무진은 무공이 심오한 사람이라 몸을 뒤로 제쳤다. 사람의 몸이 화살처럼 수레쪽을 향해 직선으로 날아갔다. 그의 나는 속도나 거리가 빠르고 멀었다. 서천굉으로서는 이런 재주가 있을 리 만무다. 안에 있던 이불을 들어 막기는 했지만 왼쪽 어깨가 노출되었다. 뻣뻣하게 마비됨을 느낌과 동시에 수레 밖으로 떨어졌다. 장진이 달려와 그를 부축했다. 「칠가, 왜 그래요?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등뒤에 심한 통증이 왔다. 화살에 맞은 것이다. 비틀비틀하고 있는데 진가락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형제 여러분, 다 같이 모입시다.」 이때 배후에서는 화살이 메뚜기 날 듯 날아오고 있었다. 장진은 왼손을 무진의 어깨에 올려놓은 채 오른손의 낭아봉을 휘둘러 날아오는 화살을 계속 떨어뜨렸다. 「십제! 움직이지 마오. 숨을 가라앉혀야 하오.」 무진은 이렇게 말하면서 그의 혈맥을 누르고 가볍게 화살을 뽑은 후에 도포자락을 찢어 상처를 싸매 주었다. 동쪽에서 오던 병력은 대대의 청병이었다. 개미 떼처럼 새까맣게 몰려오는 천군만마의 기세가 대단했다. 군웅들이 점차적으로 집합 하고 위춘화 등도 이미 되돌아와 있었다. 「어느 분 두 분이 나서서 저들을 土탕해 주시기 바랍니다.」 진가락의 말에 무진과 위춘화가 대답하고 나갔다. 「여러분, 각기 분산하여 저 언덕 위로 퇴각하시오.」 진가락의 말에 모두들 따랐다. 「삼가, 오가, 육가! 우리 다시 수레로 갑시다.」 진가락의 분부에 네 사람이 각기 수레를 향해 공격을 감행했다. 위춘화가 쌍구를 들고 비오듯 쏟아지는 화살을 무릅쓰고 청병의 진을 향해 돌격했다. 무진은 적수공권이라 공중으로 날아가는 화살을 말아 쥐고 그 화살로 날아오는 화살을 막아 가며 위춘화의 뒤를 바짝 쫓았다. 두 사람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진중 속에 빨려들어가 보이지 않았다. 무진은 칼 한 자루를 뺏어 들고 사방으로 휘둘렀으나 청병의 숫자가 워낙 많다 보니 두 사람의 힘으로는 막기가 어려웠다. 잠시 후 선두에 섰던 마군들이 군웅들의 면전에 나타났다. 장소중은 원병이 도착하자 크게 반기기는 했지만 호흡이 가빠진 것을 보고 자기의 상처가 심상치 않음을 알았다. 이때 갑자기 진가락 등이 다시 수레 위로 뛰어올라 저항할 방법이 없자 문태래의 몸을 번쩍 들어 휘두르며 원을 그렸다. 몇 번 원을 그리는 사이에」 수십 기의 마군이 벌써 진가락 등을 향해 마도를 휘둘렀다. 진가락은 무리를 하면서 문태래를 뺏어 오려고 하다가는 오히려 그의 명을 해칠 것 같다는 판단을 내렸다. 즉시 휘파람을 불며 조, 상씨쌍협과 더불어 언덕을 향해 뛰었다. 네 사람이 오니 모두들 모여 있었다. 숫자를 헤아려 보니 위춘화가 적진에 뛰어든 채 아직 되돌아오지 알았고, 그밖에 서천굉-주기-이원지-주중영,맹건웅 등 다섯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칠가와 주 노영웅 등을 뵙지 못했나요? 진가락이 황급히 물었다. 장진이 땅바닥에 누운 채 고개를 흔들었다. '칠가가 부상을 입었는데 아직 돌아오지 않았나요? 내가 찾아보지요.」 벌떡 일어나 낭아봉을 들고 달려나가려고 했지만 등뒤의 상처가 아파 비틀비틀 쓰러지려고 했다. 이를 본 석쌍영이 나섰다. 십가, 움직이지 말아요. 내가 가겠소. 「나도 가겠어요.」 장사근도 나섰다. 십삼제는 넷째형수님과 강가로 달려가 뗏목을 준비하시오. 진가락의 분부에 장사근과 낙빙이 대답했다. 낙빙은 공허한 마음으로 장사근의 뒤를 맥없이 따라갔다. 석쌍영은 손에 단도를 들고 몸을 날려 말 위에 올라탄 뒤 수레를 끼고 돌았다. 이때 청병의 대대는 산과 들에 확 깔려 오고 있었다. 그는 말등에 높이 올라 여기저기 멀리까지 살펴보았지만 서천굉 등은 보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적진을 뚫고 들어가 뒤지기로 했다. 얼마 후에 주중영과 맹건웅 두 사람이 달려왔다. 「주 소저를 보셨습니까? 진가락이 다급하게 물었다. 초조하고 불안해진 주중영은 좌우로 머리만 흔들었다. 「내 그 어린 제자도 잃어버렸으니 내가 나서서 찾아보아야겠군.」 육비청의 말에 안건강도 따라나섰다. 「저도 가겠어요.」 「여기 떨어진 화살이 많으니 모두들 주웁시다. 내가 나가 활을 몇 개 뺏어 오지요.」 진가락이 말을 마치고 말 위에 올라 청병의 궁전대를 뚫고 들어가 밧줄을 휘둘렀다. 벌써 2명의 궁전수가 밧줄에 맞아 쓰러지자 밧줄이 땅바닥에 떨어진 2개의 활을 말아올렸다. 청병들이 함성을 지르며 5, 6개의 창날이 그를 찔렀다. 진가락이 계속 밧줄을 휘두르자 청병들이 손에 쥔 칼과 창을 놓쳤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써 8개의 활을 뺏어 들고 말머리를 돌렸다. 막 물러나려고 할 때 갑자기 청병들이 안쪽으로 밀리며 사람 틈에서 몇 기의 말이 뛰쳐나왔다. 앞장 선 사람은 바로 무진 도인이요, 뒤에 선 사람은 안건강인데 그는 위춘화의 두 손을 끌고 나타났다. 진가락은 위춘화가 피투성이인 것을 보고 깜짝 놀라 달려가 후로를 차단했다. 청병들은 이 몇 사람의 기세에 눌려 감히 대들지 못했다. 그 틈을 이용해 모두들 안전하게 언덕 뒤로 돌아올 수가 있었다. 진가락은 뺏어온 활을 조반산에게 넘겨 주고 급히 위춘화를 보러 왔다. 「구제가 워낙 많은 사람을 살해하다가 맥이 빠져 정신을 잃은 모양이지만 괜찮을 겁니다.」 무진의 말이었다. 그러나 위춘화는 정신없이 큰소리로 떠들었다. 「개 같은 관병놈들을 모조리 죽여 없애야 한다.」 「칠가와 십이랑을 보셨습니까? 진가락의 질문에 무진이 대답했다. 「제가 가서 찾아보지요.」 「그 밖에 주 소저와 육 노선배님의 제자도 보이지 않습니다. 무진이 알았다며 말에 을라 칼을 들고 청병의 대열을 뚫고 갔다. 천총(千,總) 한 명이 창을 들고 달려나오며 무진을 향해 다. 무진은 살짝 비키며 칼을 그의 가슴에 찔렀다. 천총이 말 위에서 무너져 떨어지자 수하의 병졸들이 함성을 지르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무진은 사람들이 많은 곳만 골라 칼지르을 했다. 칼이 번쩍일 때마다 청병들이 분분히 말 위에서 떨어졌다. 일단의 길을 뚫고 나가는데 갑자기 한 떼의 관병들이 고함을 지르는 광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사람들 틈에서 병기 부딪치는 금속성 소리도 들렸다. 두 발을 모아 말을 달려 적진에 들어갔다. 석쌍영이 3명의 무장과 싸우고 있었다. 사방에 있는 청병들이 기회를 보아 가며 창과 칼로 그를 찌르려고 했다. 힘겨운 저항을 하고 있을때 무진이 나타난 것이다 석쌍영은 그를 몹시 반겼다. 「칠가를 찾으셨나요? 「자네는 앞만 뚫고 나가게. 내가 뒤를 담당하지.」 석쌍영은 그가 시키는 대로 앞을 향해 단도로 찌르며 뚫고 나갔다. 뒤에서는 계속해서 처참한 비명 소리가 들렸다. 이어 청군들이 놀라 외치는 소리와 함께 약속이나 한 듯 뒤로 물러섰다. 석쌍영이 고개를 돌려 바라다보니 무장 셋이 벌써 죽어 땅에 나뒹굴고 있었다. 그는 이들 셋과 반나절이나 싸웠다. 그들 무공이 막강해 비범한 무리가 아님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눈 깜짝할 사이에 처치해 버렸으니 이가의 솜씨에 대해 다시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두 사람은 다시 언덕 위로 돌아왔다. 그러나 서천굉 등의 소식은 전연 알 도리가 없었다. 이때 청병의 총령(總領) 하나가 수십 명의 병졸을 데리고 돌격해 왔다. 조반산,상씨쌍협 ,맹건웅 등이 화살 하나에 한 명씩 쏘아 앞장선10 여 명의 청병을 쓰러뜨리자 나머지 사람들은 멀찍이 퇴각하여 함성만 지를 뿐 감히 다시 접근하지 못했다. 진가락은 타고 있던 말을 끌고 언덕 위로 올라와 안건강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안 대형, 제 말 좀 보살펴 주세요. 화살에 맞지 않도록요.」 안건강이 대답하고 일어나 말 옆에 와 섰다. 진가락은 몸을 날려 말 위에 탄 다음 안장에 앉은 채 멀리 바라다보았다. 청병의 대대가 기세등등하게 서쪽을 향해 가고 있었다. 갑자기 호각 소리가 크게 나더니 불을 등에 진 한 마리의 용이 꿈틀거리며 오고 있었다. 한 떼의 청병들이 손에 손에 횃불을 들고 나타난 것이다. 화광 가운데 큰 깃발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진가락이 정신을 가다듬고 살펴보니 깃발 위에는 정변장군조 라는 글자가 씌어 있었다. 이들 청병들은 대단히 큰 말을 타고 있었는데 손에는 긴 창과 갈라진 창들을 들었다. 행진할 때 그렁 쩔그렁 쇠붙이 소리가 나는 것으로 보아 병사들이 모두 철갑을 입은 듯했다. 무진은 마음속으로 초조해 견딜 수가 없었다. 「내 다시 가서 칠제 등을 찾아보아야겠소.」 「도장님은 좀 쉬고 계셔요. 우리 형제가 가보겠습니다.,,,.」 상혁지의 말이 미처 끝나지도 않았는데 무진이 벌써 달려나갔다. 그는 두 다리를 타고 앉은 말의 흥골에 댄 채 상반신을 앞으로 쑥 내밀고 칼을 휘둘러 말이 달릴 수 있도록 길을 뚫었다. 청병들의 계속된 비명 소리 가운데 무진의 말이 멈추지도 않고 대대의 가운데를 돌았다. 그 사이에 벌써 10여 명이 칼에 맞아 죽었다. 다시 한 바퀴 돌면서 사방을 찾아보았지만 서천굉 등의 그림자도 발견한 수가 없었다. 군웅들은 서천굉 등이 혹시 난군 가운데서 벌써 죽지나 않았나 속으로 걱정은 하면서도 감히 입을 열어 말을 꺼내지는 못했다. 이때 갑자기 먼 곳에서 먼지가 크게 일어나며 말 한 필이 나는 듯 달려왔다. 가까이 접근했을 때 보니 바로 장사근이다. 빨리 퇴각하시오. 빨리요. 철갑군이 돌격해 오고 있어요.」 장사근이 다급히 외치는 소리였다. 「모두 말에 올라 강가로 뚫고 나가시오.」 진가락의 명령에 군웅들이 일제히 대답을 했다. 주중영은 사랑하는 딸 때문에 안절부절못했다. 그러나 천군 가운데 어디 가서 딸을 찾는단 말인가? 맹건웅 , 안건강, 석상연 등은 각기 부상당한 위춘화와 장진 등을 부축하고 한 필의 말에 한명씩 탔다. 각자 이제 막 말 위에 올랐는데 불料 가운데 철갑군이 몰려들었다. 상씨쌍협은 청병들의 기세가 험악한 것을 보고 사람들을 인솔하여 오른쪽으로 돌았다. 「철갑군은 신비궁을 쓰니까 힘이 대단해. 우리 저놈들 중간을 뚫어 보자구.」 「그래. 상혁지의 말에 상백지가 찬동을 했다. 두 사람이 청병의 대대를 뚫고 달리고 군웅들은 그 뒤를 쫓았다. 상씨쌍협은 비조를 쓰기가 불편할까 봐 품속에 챙겼다. 하나는 큰 칼을, 다른 하나는 긴 창을 뺏어 들고 찌르면서 혈로를 뚫고 황하를 향해 직진했다. 철갑군은 그들이 자기 대래를 뚫고 들어오자 캄캄한 밤이라 경노를 쓸 수가 없었다. 함부로 쓰다가는 자기 쪽 사람을 해칠 형편이라 군웅들의 뒤를 추격할 뿐이었다. 이때 황하 강가에는 인마의 어지러운 발자국으로 혼란이 벌어졌다. 군웅들은 서로 멀리 떨어지지 못하고 바짝 붙은 채 강가로 달려 왔다. 장사근은 쇠로 만든 노를 등에 짊어진 채 풍덩 물속으로 뛰어들어가 뗏목을 밀었다. 낙빙은 양가죽으로 만든 뗏목이 언덕에 닿자 우선 장진 등 부상당한 사람들을 먼저 태웠다. 「모두들 빨리 뗏목 위에 오르시오. 그리고 도장님과 삼가 , 주 노영웅 우리 네 사람은 후미를,,,,,,.」 진가락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신비궁의 강노가 벌써 날아왔다. 「우리 돌격합시다. 무진의 외침과 동시에 네 사람이 몸을 돌려 살상하기 시작했다. 무진은 칼을 들어 앞장 선 철갑군 하나의 목을 찔렀다. 그런데 칼이 들어가지 않는다. 원래 이 칼로 너무나 많은 사람을 죽였기 때문에 칼날이 무뎌진 것이다. 그 철갑군은 장창을 들어 무진을 찔렀다. 무진은 장검을 집어던지고 팔을 들어 막았다. 창이 떨리며 하늘 위로 솟아올랐다. 주중영의 금도가 번쩍이는 곳에 벌써 여러 명의 청병이 맞고 말에서 떨어졌다. 조반산은 동전을 들고 말 위의 청병 가슴에 있는 전중혈만 노렸다. 쩔그렁 소리와 함께 청병이 맞았는데도 아무 일 없다는 듯 눈앞으로 대든다. 원래 철갑군은 전신에 철갑을 입었기 때문에 암기를 써 봐야 아무 소용도 없었다. 이때 무진은 벌써 철창 하나를 렛어 들고 청군의 얼굴을 찔렀다. 조반산은 전표를 계속 발사하며 적군의 눈만 쏘았다. 캄캄한 밤이라 어둡기는 했지만 그래도 5, 6명이 맞아 눈이 멀었다. 눈을 맞은 청병들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안절부절못하고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이때 진가락 등 4명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땐목에 타고 있었다. 철갑군은 평소 철저한 훈련을 받은 사람들로 편성되어 있어 상대방이 무서운 기세로 나오는데도 여전히 용기를 가다듬고 대했다. 진가락은 장령 하나가 말 위에 앉은 채 마도를 들고 지휘하는 것을 보고 연자삼초수의 재주를 부려 그의 앞으로 달려갔다. 그 장령이 급히 칼을 들어 대항했다. 칼이 허공에 떠 있는 상황인데 갑자기 말이 이상하게 아프더니 벌써 그 칼이 적의 수중에 들어가 있었다. 동시에 몸이 뻣뻣해지면서 진가락에게 끌려 말에서 떨어져 내렸다. 진가락은 그를 재빨리 옆에 낀 채 강가로 달렸갔다. 청병들은 주장이 체포된 것을 보고 뺏으려고 달려왔지만 이제 화살을 쏠 수 없는 형편이 되었다. 진가락은 장령의 머리채를 틀어쥐고 청병의 고함 소리를 들으면서 물가로뛰었다. 무진,조반산,주중영 등도 동시에 뛰어 뗏목 위에 올랐다. 장사근과 낙빙은 노를 저어 뗏목을 강심으로 몰았다. 황하의 물은 때마침 불 대로 불어나 물살이 셌다. 두 척의 양가죽으로 만든 뗏목은 아래를 향해 쏜살같이 떠내려갔다. 철갑군의 인마가 점점 작아지다가 마침내는 먼 곳의 횃불만 아득히 흔들렸다. 물소리가 세차 대군의 인마가 떠드는 소리도 점점 들리지 않게 되었다. 군웅들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부상자들을 보살폈다. 위춘화는 점차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는데 별로 다친 곳이 없어 다행이었다. 조반산은 암기의 명수라 의술에도 능했다. 그래서 양성협과 장진의 상처를 치료하고 싸매 주었다. 장진은 상처가 대단했지만 별로 대수로운 것은 아니다. 심연은 여러 개의 금침에 맞고 계속 아프다는 소리를 질렀다. 장소중의 힘이 워낙 강해 금침이 살을 뚫고 들어가 뼈에 박힌 것이다. 조반산은 약주머니 속에서 흡철석을 꺼내 금침을 하나하나 빼 주었다. 그리고 다시 약을 발라 준 후에 상처를 싸맸다. 낙빙은 키를 잡은 채 아무 말이 없었다. 이번 싸움으로 남편 문태래를 구출해 내기는커녕 오히려 서천굉 ,주기 ,육비청과 그의 제자 네 사람을 잃어버렸고 또 여어동도 어디로 갔는지 행방을 알 수 없었다. 「우리는 장소중이 독 안에 든 쥐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시 놓쳤을 뿐만 아니라 공교롭게도 청병 대대가 하필이면 이곳을 통과할 줄 누가 알기나 했습니까? 진작 그럴 줄 알았다면 우리가 힘을 합쳐 그 간교한 작자를 처치했더라면 문 사가를 뺏어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렇게 되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진가락이 원통하다고 푸념하는 말이었다. 사람들은 의기소침하여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다. 진가락은 잡아 온 청병 장령의 눌린 혈도를 풀어 주며 물었다. 「너희들 군대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행군을 하는데 무슨 곡절이냐? 그 장령은 어리둥절해 있는 상태라 즉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양성협이 주먹으로 그의 얼굴을 후려치며 호통을 쳤다. 「말을 할 거야, 안 할 거야? 장령은 얼굴을 감쌌다. 「제가,,,,,, 말을,,,,,, 하지요.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너희 군대가 무엇 때문에 밤낮을 가리지 않고 행군을 하느냔 말이다.」 진가락이 다시 한 번 물었다. 「정변 장군인 조혜씬 장군이 성지를 받들고 기한 내에 위구르 부족을 토벌하려 하고 있습니다. 기한을 넘기게 되거나 아니면 그들이 이 사실을 미리 알고 방비를 할까 봐 연일 연야 행군을 하고 있었습니다.」 「얌전하게 있는 위구르 사람들을 무엇 때문에 공략하려고 한단 말이냐? 「그건,,,,,, 그건 저도 잘 모릅니다.」 「회강으로 가려고 하는 녀석들이 왜 우리의 일에 관여긍 나섰느냐? 진가락은 무섭게 추궁했다. 「조 장군께서는 토비들이 소요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파견했을 뿐 대군은 지금도 행군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전에 양성협이 또 한번 그자를주먹으로 후려 쳤다. 「빌어먹을 놈들 같으니라구. 네놈들이 토비인데 누굴 보고 토비라 하느냐?」 네, 제가 말을 잘못 했습니다.」 진가락은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이윽고 조혜 대군의 숫자와 행군 노선 및 군량 등의 사정을 자세히 물었다. 장령은 어떤 것은 모른다 대답하고, 자기가 아는 것은 숨김없이 솔직히 털어놓았다. 「뗏목을,,,,,, 언덕에 대시요. 진가락이 큰소리로 외치자 낙빙과 장사근은 땐목을 황하가에 댔다. 사람들이 모두 언덕 위로 올랐다. 이때 물살은 더욱 세차 요란한 물결소리가 말소리까지 가렸다. 진가락은 양성협에게 그 장령을 지키고 있으라 하고는 상씨 형제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오가와 육가는 우리가 온 장소로 다시 돌아가 사가와 칠가, 소저와 육 노선배님 및 그의 제자의 행방을 찾아보시오. 그분들 아무 일 없이 무사하면 다행이지만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 만약 관노들의 수중에 잡혔다면 반드시 북경으로 가는 노상에 있을 것이오. 우리는 앞에 가 있다가 호응하면서 구출할 방법을 강구하겠소.」 상씨쌍협이 대답하고 서쪽을 향해 출발했다. 「십 이가, 한 가지 부탁을 드려야겠소.」 진가락은 석쌍영을 바라다보았다. 「총타주님, 분부만 내려 주십시오.」 진가락은 심연이 등에 짊어진 보따리 속에서 지필묵을 꺼내 달빛 아래서 편지 한 통을 썼다. 「이 편지를 위구르 목탁륜 노영웅께 전해 주시오. 우리가 그들을 겨우 한 번밖에 만나 보지 못했지만 서로 의기투합했으니 친구나 다름없는 처지가 아니오? 친구가 곤란한 입장에 빠졌는데 우리가 수수방관할 수는 없는 일이지요. 넷째형수님은 그 백마를 십이랑이 타도록 빌려 주십시오.」 원래 군웅들은 혼란 가운데 말을 모두 잃어버렸다. 오직 낙빙은 백마를 남편에게 주어야겠다는 일념으로 뗏목 위에까지 끌고 왔던 것이다. 석쌍영은 백마를 타고 먼지를 가르며 출발했다. 말이 워낙 빠르다 보니 하루만 달리면 능히 목탁륜을 쫓아갈 수 있을 것이다. 소식만 들을 수 있다면 목탁륜으로서는 미리 준비를 취할 것이다. 모든 일의 배려가 끝나자 진가락은 장사근에게 명령하여 잡아온 장령의 손을 뒤로 묶게 하고 그를 뗏목 위에 버린 채 그냥 떠내려 가게 놓아 두었다. 사느냐 죽느냐 하는 문제는 어디까지나 그자의 운수에 달렸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