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소사숙 - 백상 서장 어느 날, 한 장의 편지가 인편에 의해 전달되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 ...일전에 도장과의 인연을 맺게 되었던 것은 그야말로 하늘의 뜻이라고 할 수가 있겠소이다. 도장께서 하필이면 그곳에서 중상을 입으셨고, 또한 하필이면 노부가 그러한 장소를 지나면서 그러한 물건을 지니고 있엇겠소이까... 물론 그것은 전적으로 도장의 홍복이요 나의 덕이 미치는 바는 아니었지만, 노부는 막상 오늘처럼 곤란한 때를 당하니 감히 도장에게 일전의 인연을 빌미로 악간의 어려운 부탁의 드리지 않을수가 없소이다. 이 점, 심심한 사의를 표하면서... 부탁의 말씀은 다름이 아니라, 노부에게는 원래 일가친척은 거의 없으나 데리고 있는 한명의 어린 녀석이 있사온데, 이번에 노부는 특별히 대사를 당하여 머리 혼자 떠나게 되었소이다. 해서, 달리 그녀석을 맡길만한 곳이 없기에 비록 얼마간이나마 도장께서 그녀석을 맡아서 데리고 계셔주셨으면 하는 것이외다... 그렇다고, 감히 도장의 문하에 거두어 달라는 뜻은 아니옵고, 그저 머슴이나 종처럼 부리시되 바라옵기는 끼니만 걸르지 않도록 해주시고 방황하지 않도록 해주신다면 감지덕지하겠소이다. 자세한 내용은 도장께서 오시면 알려드리기로 하고, 노부가 지금 살고있는 거처의 주소와 약도는 아래와 같... (빌어먹을!) 편지를 읽으면서 그는 내심 투덜거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 현진자, 그는 원래 성품이 아주 괴팍하고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싫어하여 평생 문하에 제자 한명 두지 않았으며 홀로 외딴곳에 떨어져 살거나 쓸쓸히 천하를 방황하는 것을 낙으로 삼고 살아온 노도장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가 느닷없이 이런 귀찮은 짐을 떠맡게 될 줄이야? 편지의 내용대로 그가 그 별볼일없는 촌로에게 우연치않게 한번 구명지은을 입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편지의 내용대로라면 노인의 부탁은 그때의 그 구명지은에 비해 결코 무리한 것이 아니었다. 설사 그보다 더한, 설령 그의 제자로 삼아달라는 무리한 부탁이었다고 해도 결코 분에 넘치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원래 현진자는 남에게 얽매이거나 누구로부터의 은혜를 입는일을 아주 싫어했다. 그것은 바로 지금과 같은 지겨운 상황이 생겨날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때의 그 일은 아주 우연히, 그리고 매우 급박한 상황속에서 어쩔수 없이 도움을 받게 되었고 그러니 자연, 지금은 비록 그의 심정이 불유쾌하고 지겨운 마음이 들더라도 어찌 노인의 그 부탁을 들어주지 않을수가 있겠는가? 제 1 장 무당의 노도장 초겨울의 하늘은 아주 맑고 쾌청했다. 단지 유난히 쌀쌀하고 매서운 삭풍이 불어와 메마른 낙엽들과 누런 황사를 자욱하게 사방으로 흩날리게 했고, 바로 그 때문인지, 이곳 강서성의 초입에 해당되는 작은 읍성의 부근에는 오가는 행인들의 발길이 매우 드물었다. 오직 차가운 한풍이 휘몰아치는 맑은 하늘에는 간간히 떠드는 아이들의 웃음 소리만이 가득 울려퍼질 뿐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작은 읍성을 찾는 행인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어서, 그날 오후무렵에 이곳으로 불쑥 찾아든 한명의 노도장이 있었다. -- 노도장, 그는 일견하기로도 일반 여타의 도사들과는 달리 다소 괴상하게 생긴 사람이었다. 원래, 이곳 작은 읍성에도 간혹 무림의 고인들이나 도사들이 찾아오기도 하는 것이어서 사람들은 처음에는 누가 왔어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일단 그 노도장의 괴상하기 짝이없는 용모를 본 이후에는 절로 주목을 하고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수가 없었다. 그만큼 이 노인의 용모는 괴상하기 짝이 없었다. 우선 그는 체격이 마치 어린아이처럼 왜소한데도 불구하고 그 위의 머리통은 그와는 반대로 지나치게 크고 둥글둥글하여 실로 우스꽝스런 느낌을 주었는데, 그는 일신에 흑색도포를 걸치고 손에는 괴상한 지팡이 하나를 들었는데, 그 나이만큼이나 쭈글쭈글한 안면의 중앙에 박혀있는 두 눈은 그 커다란 머리통에 비해 오히려 아주 작아서 마치 단추구멍과도 같은 느낌을 주었는데, 그 작은 두눈에서는 연신 싸늘한 한광이 전광처럼 일어나서 사람들로 하여금 절로 섬뜩한 느낌이 들게 만들었던 것이다. 물론 이 하나하나의 모습이 매우 괴상했지만 그 모든것들이 어울려서 아주 특이한 괴이함을 연출하고 있었다. 대체적으로, 이러한 괴이한 사람이 나타나면 자연 즐거워지고 강한 호기심을 갖게되는 것은 어른들 보다는 철없는 어린아이들일 것이다. 어린아이들은 음성의 넓은 공지에서 마구 뜀박질을 하며 놀고 있다가 일순 이 괴상한 용모의 노도장이 읍성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즉각 놀기를 중단하고 우르르 몰려들었다. 허나, 아이들은 그 노도장의 무서운 눈빛을 보고는 감히 가까이 달려들어 놀리거나 장난을 걸 생각을 하지 못했다. 단지 그들은 멀찍하니 원을 그리고 서서 서로를 돌아보며 은근히 킥킥거리고 수근댈 뿐이었다. 물론 그러한 광경은 기분좋을것도 없지만 그다지 상관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노도장은 그 얼굴 가득히 주름이 지게한 나이나 도사라는 신분에 어울리지 않게 전혀 마음의 수양이 되어있지 않은것 같았다. 그는 대번에 얼굴을 시뻘 게 물들이며 아이들을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던 것이다. "이 빌어먹을 놈들아! 노도가 무슨 희안한 구경거리라도 되느냐?" 그 어조는 비록 악독하지는 않았지만 워낙 천둥벽력같은 커다란 음성이었기 때문에 순간 아이들은 저마다 크게 놀라서 뿔뿔이 달아나 버리고 말았다. 그러자, 그 흑의노도장은 일순 주위를 둘러보며 쓰디쓴 웃음을 만면에 떠올렸다. (노도가 또다시 산을 내려와서 이런 꼴을 당하다니 정말 현진자라는 도호가 어이없을 지경이로구나!) 그렇다, 이 노도장은 바로 현 무림에서 강력한 힘을 발하고 있는 구파일방 가운데 하나인 무당파의 최고명숙인 무당삼자 중에서도 바로 현진자였던 것이다. 본래 무당파는 천여년의 세월동안 무림에 지대한 명성을 이루어 왔고, 또한 그러한 명성만큼이나 당금무림에서의 무당삼자의 위명은 드높았다. 그러자, 이 현진자는 무당삼자 가운데에서도 가장 막내이고 또한 성격이 아주 괴팍하여 그의 존재가 무림에 알려진 적은 거의 없었다. 이 현진자는 대부분의 세월을 깊은 산속이나 자신의 거처에 은둔하여 보내왔고 무림에 나선 경우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허나, 그는 이번에 어쩔수 없이 강호에 나타나지 않을수가 없게 되었으니, 그것은 바로 전날에 그가 받았던 한통의 서찰 때문이었다. 이 현진자는 비록 성격은 다소 괴팍하지만 역시 명문 정파의 최고명숙으로서 강호의 공도와 신의를 저버리는 사람은 아니었다. 때문에, 그는 호북성의 무당산에서 무려 수천리의 길을 걸어서 이곳에 이르게 되었던 것이다. 원래 그는 자신의 모습을 남에게 보이기를 매우 꺼려하는 일종의 결벽증과 같은 소심함이 있어서 여태 무당산에서 이곳 구령산의 부근에 이르는 수천리의 길을 남의 눈에 띄지 않도록 신법에 의존하여 은밀히 날아왔었다. 하지만, 이제 그는 거의 목적지에 이르렀고, 또한 이곳의 지리는 잘 알수가 없었기 대문에 부득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수가 없었던 것이다. 강호에서의 그의 지위는 상당히 높은 것이어서 만일 강호의 인물들을 만났다면 그는 매우 존귀하고 공손한 대접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결코 무림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의 정체를 알 리가 없었다. 현진자는 자신의 못생긴 용모 때문에 이미 한평생을 남에게 놀림을 받아왔고, 이제 무림의 한 거두가 되었는데도 또다시 이런 경우를 당하자 실로 마음의 어이가 없어졌던 것이다. 허나, 현진자는 비록 마음이 다소 편협하고 화급하기는 해도 근본이 나쁜 사람은 결코 아니었다. 아이들을 쫓아버리고 두어번 호흡을 고르는 사이에 그는 벌써 마음의 평정을 되찾고 있었다.. 이어,' 그는 걸음을 옮기면서 생각했다. (편지에 의하면 구령산의 부근에 와서 오매촌을 찾으라고 했다. 오매촌, 오매촌이라?... 그 이름을 어디에 가서 묻는다지?) 이미 대로의 사방에서 많은 사람들이 은근히 자신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는 마음이 매우 불편해졌다. 그러자, 누구에게 길을 물을 생각도 곧 잊어버리고 다시 생각했다. (빌어먹을! 내가 이런 꼴을 당하고 있는것은 모두가 그 한번의 구명지은을 입었기 때문이다. 노도는 원래 남에게 한평생 어떠한 도움도 받지않고 살아왔고 또한 그렇게 하려고 했었는데, 빌어먹을...) 현진자는 내심 욕을 퍼부으며 문득 과거의 일을 떠올렸다. 당시, 그가 그 노인에게서 어쩔 수 없이 구명지은을 입게 되었던 원인은 바로 무림칠패의 하나인 현현보의 보주 현현노조 모용일박의 무서운 음모를 은연중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현현노조 모용일박은 무림각대문파에 자신의 첩자를 두어서 어느날 같은 시각에 그 들의 수뇌를 암살하므로써 무림에 일대 파란을 일으키고 급기야는 무림정복을 꾀하려고 했다. 그때에도 물론 현진자는 무림의 일에 거의 관여하지 않고 홀로 천하를 떠돌고 있었던 상황이었지만, 그는 일단 우연히 그 음모를 알게되자 결코 무심코 모른척만 할수가 없었다. 무림전역기 일대의 혈겁으로 뒤덮인다는 사실은 둘째치더라도, 그의 사형인 무당삼자의 맏이인 옥진자가 무당파의 장문인으로 있는 판국이었으니 결코 그가 죽는것을 관망할 수가 없었다. 아니, 그는 보기보다 의리가 매우 강하여 그 음모와 첩자들의 명단을 입수하게 되자 자신의 죽음을 불사하고서라고 이 일을 옥진자에게 알리려고 했었다. 하지만, 어떻게 알았는지 그를 뒤쫓는 현현보의 무리들의 무공과 추적술은 실로 놀라왔다. 그들은 무림제패까지 꿈꾸었던 세력이니만큼 그 세력의 놀라움은 가히 상상이 가고도 남을만한 일이었다. 허나, 현진자의 무공도 녹녹한 것은 아니어서 간신히 그들의 추적을 따돌렸을때 그는 문득 현현보주인 현현노조와 마주치게 되었다. 아니, 현현노조는 아예 그 수하들과는 차원이 달라서 그를 놓치지 않고 처음부터 뒤쫓고 있엇던 것이다. 미리 예상하지 않은것은 아니었지만, 실로 현현노조의 무공은 정말 놀라왔다. 당시 그와 현현노조가 마주친 곳은 하나의 깎아지른듯한 절벽의 꼭대기였는데, 현진자는 거의 어찌된 영문인지 알지도 못하는 순간 이미 자신의 몸이 천야만야한 낭떠러지 아래로 굴러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했다. 그 계곡은 실로 깊고도 깊은 곳이어서 만약 누구라도 일단 그렇게 떨어지고 나면 뼈도 추리지 못할 것이요 살 생각을 버려야 했다. 그러나, 그때 현진자에게는 일종의 기적적인 행운이 뒤따랐다. 그는 아득한 절벽위에서 떨어져 내리면서 무수한 등나무줄기에 몸이 부딪쳐 기세가 매우 약화되었고, 그리고 결정적인 것은 그가 계곡의 물속에 떨어져 내렸다는 사실이었다. 그 계곡의 물은 제법 깊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가 비록 상승의 무공을 연성하고 있었고 수천개의 등나무줄기를 끊어버렸다고 할지라도 금강불괴의 몸이 아닌한은 아마 바위에 부딪쳐서 몸이 흔적도 찾아볼 수 없을만큼 박살이 났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현진자는 당시 현현노조의 공격을 받고 절벽위에서 떨어지는 찰나 이미 거의 치명적인 중상으로 혼절한 상태였엇기 때문이었다. 이후 현진자가 의식을 회복한 것은 그 계곡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한 아주 은밀한 동굴속에서였다. 그때, 그는 한명의 촌로의 복장을 한 노인이 자신을 간호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물론 자신이 어떻게 해서 계곡에 떨어져서 살게 되었는가는 그 노인에게 들어서 알게된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는 나중에 스스로 그곳으로 가서 확인을 했다. 원래 그가 마악 계곡의 물속에 떨어져 내렸을때, 마침 그곳에는 약초를 캐기 위해 이 촌로가 우연히 지나치고 있었던 것이다. 촌로는 비록 미련스럽게 생겼지만 상황판단만큼은 제법 민첩했다. 그는 현진자가 절벽위에서 떨어져 내렸고 또한 전신에 심한 중상을 입은 것을 보자 즉각 그가 남에게 쫓기는 몸이라는 생각을 하고는 근처에 보아둔 아주 은밀한 동굴로 옮겼던 것이다. 그 동굴은 비록 계곡과는 가깝지만 워낙에 기이한 형세로 되어 있어서 현진자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현현노조가 만일 즉시 뒤따라 그를 추적했다고 할지라도 그 동굴만큼은 발견할수가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십중팔구는 그러했을 것이다. 현현노조는 그후로 부근을 샅샅이 뒤지다가 결국 그를 찾지 못하고 마침내 그를 찾는것을 포기하고 물러가버리고 말았다. 이때, 잠시 생각을 계속하던 현진자의 두눈이 번쩍 뜨이면서 즉시 생각을 중단했다. 문득 대로를 걸어가던 그의 두눈에 매화주루라고 쓰여있는 간판이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오매촌... 매화주루... 혹시 무슨 연관이 있는것이 아닐까?) 현진자는 즉시 그 매화주루의 앞으로 걸어갔다. "어서 오십시오 손님..." 그가 안으로 들어가자, 일순 안쪽에서 점원의 음성같은 것이 짧게 울러 퍼지다가 말끝이 웬지 흐려졌다. 그리고는 즉시 그의 앞을 제법 체격이 건장한 점원 하나가 막아섰다. 점원의 얼굴은 험상궂었다. 그는 일순 현진자의 얼굴을 이리저리 바라보더니 싸늘한 기색으로 말하는 것이었다. "손님, 집을 잘못 찾아든 것이 아닙니까? 여기는 차와 음식은 팔지 않습니다." 그 음성은 상당히 고압적이었다. 현진자의 눈빛이 제법 매섭기는 해도 그는 키가 작았기 때문에 형편없이 그를 올려다 보게 되었다. 따라서, 이 건장한 점원은 현진자의 괴상한 몰골을 보고는 대뜸 크게 무시하는 것이다. 아니, 기실 이 점원이 이런 태도를 취하는 이유는 있었다. 강호에는 단지 술만을 팔고 차나 음식을 팔지않는 주루가 얼마든지 있었다. 이 점원은 현진자가 도사의 차림을 하고 있어서 술을 마시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여기는 술도 팔지 않는가?" 말하면서 그는 점원의 표정을 은근히 살폈다. 그러자, 점원의 표정이 일순 묘하게 돌변하기 시작했다. 그는 지금 현진자의 얼굴을 보고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발이 있는 아래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현진자의 발이 갑자기 바닥으로 움푹 파고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원래 이 매화주루는 겉에는 불품이 없어도 내부는 상당히 호화로운 장식이 되어 있었다. 따라서, 바닥도 보통의 마루가 아닌 단단하고 깨끗한 청석으로 깔아놓았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것이 마치 두부처럼 현진자의 가벼운 발길아래 깊이 패여들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을 보는 점원의 두눈이 일순 경악으로 크게 부릅떠졌다. 그 청석은 그가 알기로도 매우 단단하기로 이름난 돌이었다. 헌데 그게 어찌 아무런 소리도 없이 저렇게 두부처럼 패여들어갈수가 있다는 말일까? 점웜의 시선에는 일순 심한 경악과 함께 불신의 기색을 낙인처럼 강렬하게 떠올랐다. 그러나. 점원은 곧 이 현실을 수긍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원래 강호에는 기인이사들이 무수하며, 그들의 재간은 그야말로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기도 한다는 것을 이미 점원도 듣고 있었던 것이다. 점원은 순간 자신이 다소 멸시하던 이 왜소한 늙은 도장이 바로 사람들이 누차 떠들곤 하던 무림의 기인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하여, 갑자기 그의 거만하던 태도는 순시간에 돌변하게 되었다. "예 예, 물론 술은... 팔고 있습니다. 안으로 드시겠습니까?" 점원은 즉시 자세를 낮추어서 몸을 옆으로 비켜서며 공손하게 말했다. 현진자는 어차피 몇가지를 물어보려면 안으로 일단은 들어가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지." 이어, 그는 먼저 휘적휘적 제법 호화롭게 꾸며진 실내로 걸어들어가기 시작했다. 점원은 그것을 보고 얼른 달려오더니 즉각 그를 실내의 한 으슥하고 조용한 곳으로 안내했다. 그리고는, 그가 자리에 앉기를 기다려 그는 마치 미리 외웠던 내용을 암송하기라도 하듯 중얼거리며 현진자를 향해 말했다. "손님께서 술을 드시기 위해 저희 매화주루를 찾아주신 것은 매우 고맙게 생각합니다. 저의 주루에서 취급하는 술은 바로 매화주라는 것으로... 이것은 바로 매화의 열매로 술을 담그고 십년간이나 숙성시킨 천하의 명주입니다. 앞서의 분들도 모두 마셔보시고 감탄을 금하지 못하셨죠. 손님께서는 그 매화주를 드실 생각이십니까?" 과연 이곳은 특이한 한가지의 술을 파는 술집이었다. 현진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 그것을 한근만 갖다주게!" 그말에, 점원은 마치 그럴줄 알았다는 듯이 웃으며 다시 물었다. "안주는...? 그리고 계집은 필요하지 않으십니까?" 이곳에서는 차나 음식을 팔지않아도 안주가 있고 또한 계집이 있는 모양이었다. 현진자는 비록 도인이면서도 술을 좋아하고 육식을 꺼리지 않기는 하지만 계집질은 해오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안주는 보통으로 하고, 계집은 필요없네." 이에, 점원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대금은 선불입니다." 현진자는 다소 짜증이 나서 눈살을 다소 찌푸리며 물었다. "얼마인가?" 점원은 이미 현진자의 무서운 무공을 견식한터라 일순 안색이 변하면서 공손히 대답했다. "은자 두냥 입니다." 술값으로 은자 두냥이라면 제법 많은 액수다. 허나, 현진자는 즉시 품속에서 닷냥짜리 은자 한덩이를 꺼내서 탁자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여기있네. 허나 자네가 만일 나의 묻는말에 대답을 해준다면 그 나머지 은자는 모두 자네의 몫일세." 이 점원은 아까부터 이 늙은도사가 그저 술을 마시러 온것 같지는 않다고 생각하고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즉시 고개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손님께서 물으신다면 대답해 드려야지요. 무슨 질문이십니까?" 현진자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물었다. "이 마을의 이름은 뭔가?" 점원은 그가 매우 거창한 것을 물으리라고 생각하고 있다가 그런 질문을 듣게되자 일순 가볍게 실소가 나오는듯 했다. "이 마을의 이름은 바로 감방이라고 합니다. 손님께서는 바로 그 질문을 하시려는 것이었습니까?" 현진자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나의 질문은 따로있네, 자네 혹시 오매촌이라는 곳을 알고 있나?" 점원은 다소 긴장하는 표정을 짓고 있다가 그 말을 듣고 다시 안색을 활짝 폈다. "오매촌을 찾으시는군요? 손님께서는 마침 저에게 잘 물으셨습니다." 현진자는 그말을 듣고 눈빛을 가볍게 빛냈다. "자네가 그곳을 알고 있나?" 점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물론입니다. 허나 만일 다른 사람에게 물으셨다면 잘 알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현진자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건 왜인가?" 점원은 고개를 굽신거리며 웃으며 대답했다. "그것은 그 오매촌은 아주 깊은 산중에 있는 마을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저희 주루에서 매화주를 담그기 위한 매화열매는 거의 그ㅉ고에서 가져오기 때문에 소인이야 물론 잘 알고 있습죠." "그래...?" 현진자는 그말을 듣고 자신이 마침 이집을 찾아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점원이 다시 입을 열어 말했다. "오매촌은 여기에서 서쪽으로 한 백여리만 가면 있습죠, 하지만 워낙 갚은 산중이라 찾기가 어려우실 겁니다. 길을 잘 아는 사람을 붙여드릴깝쇼?" 현진자는 그정도만 알면 찾을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는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아니 됐네, 그보다..." 현진자는 문득 점원의 얼굴을 바라보며 기이한 눈빛으로 그에게 다시 물었다. "자네 혹시 그 마을에 사는 백노인이란 사람을 알고 있나?" -- 백노인, 원래 전날 현진자를 구해준 그 촌로는 자신의 성이 바로 백씨라고 했다. 그래서 현진자는 내친김에 점원에게 그렇게 물은 것이다. 헌데, 점원은 그 질문을 받자 일순 곤혹한 표정을 띠며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 아닌가? "백노인이라뇨? 그 마을에는 모두 장씨성을 가진 사람만이 살기 때문에 백씨성을 가진 노인은 있을수가 없습죠. 혹시 잘못알고 오신것이 아닙니까?" 현진자는 그말에 다소 미간을 찌푸렸다. 그곳이 바로 장가촌이라면 이 점원은 모르고 하는 말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그 노인이 그에게 일부러 거짓말을 한 것이란 말인가? 하지만 편지의 내용으로 보더라도 그런것 같지는 않았다. 그럼 대체 누구의 말이 옳은 것일까? 아마도 그것은 직접 가보면 알게될 것이다. 현진자는 실로 대수롭지 않고 귀찮은 이 일이 처음부터 꼬이기 시작한다고 생각하고는 내심 불쾌감이 가득 일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일을 도중에 그만둘수는 없는 일이었다. 현진자는 점원이 탁자위에서 은자덩어리를 가지고 주방쪽으로 걸어가는 것을 보면서 문득 아까 중단했던 과거의 기억을 다시 떠올렸다. 자칭 백씨라고 말했던 그 촌로가 그에게 구명지은을 베풀었다는 것은 단순히 계곡 아래에서 다 죽어가는 그를 동굴속으로 피신시켰다는 점 때문만은 아니었다. 원래 현진자는 이미 현현노조에게 절벽위에서 당하고 떨어져내릴 당시, 이미 전신에는 거의 치명적인 심각한 중상을 입고 있었던 상태였다. 그러니까, 그가 비록 안전하게 몰속에 떨어져 내렸다고 하더라도 즉시 목숨이 끊어지지 않은 것은 실로 천만다행한 일이 아닐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런 그가 단순히 현현노조의 마수를 벗어나서 안전하게 동굴속으로 피할수가 있었다고 해서 삶이 완전히 보장된 것은 아니었다. 아니, 현진자는 당시 아무리 기적적으로 물속에 떨어졌다고 하더라도 이미 다 죽어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현진자는 그당시 여러가지 상황을 고려해본 결과 그러한 사태를 짐작할수가 있었다. 그런데, 이게 대체 웬일인가? 그의 몸은 다 죽어가기는 커녕, 그가 깨어났을 때에는 이미 전신의 내상이 말끔히 치료되고 오히려 전보다도 더욱 활력이 넘치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단전부위에 은은하게 기이한 힘이 느껴지는 것이 바로 그가 천고 에 드문 뛰어난 영약을 복용했다는 증거였다. 그리하여 현진자는 당시 물었다. "대체 당신은 내개 뭘 먹였소?" 그말에, 그 백노인은 대답을 하지 않고 그저 빙글빙글 웃기만 했다. 현진자는 그가 그 사실을 대답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수가 있었다. 게다가, 그는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생명의 은인이니 말하라고 강요할수는 없는일이 아닌가? 하지만, 현진자는 동굴 구석에 버려진 쭉정이 같은 껍질과 잎사귀등을 보고는 즉시 자신이 복용한 것이 희귀하기 짝이없는 전설의 성형하수오였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었다. 즉, 백노인은 마침 그 성형하수오를 계곡의 부근에서 입수하게 되었는데 공교롭게도 현진자를 만났던 것이었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현진자의 행운이라고 볼수도 있고, 또한 백노인이라는 일개 촌로가 천고의 영약에 그렇게 욕심을 내지 않는다는 점이 매우 기이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단 그런 모든 사실을 알아낸 순간 현진자는 내심 마음이 매우 복잡하고 괴롭기 그지없었다. 그는 이미 말했다 시피 남에게 도움을 받는 것을 지극히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만일 보통의 상황이었다면, 그는 아마 자신의 목숨을 돌려주고라도 백노인의 도움을 받지 않으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단순한게 행동하기에는 당시의 상황이 너무나도 다급하고 중대한 것이었다. 따라서, 현진자는 항상 그일이 마음에 걸렸었는데 이제 이러한 부탁을 받게될 줄이야, 당시 그와 백노인과의 인연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백노인은 그가 깨어나서 전후의 사정을 파악하는 동안 온다간다는 말도없이 그냥 사라져 버렸던 것이다. 현진자는 당시 찾을 마음만 있으면 그 노인을 다시 찾을수도 있었겠지만 마음이 매우 불편하고 당시의 상황이 다급하다는 점을 생각해서 일부러 노인을 찾지 않았다. 그 이후, 현진자는 즉시 무당파로 돌아가서 사형인 무당장문인 옥진자에게 현현보의 거대한 음모에 대해서 말하게 되었고, 그로인해 현현보의 음모는 백일하에 드러나게 되었다. 즉시 각대문파의 수뇌를 암살하려던 첩자들이 색출되었고 처벌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현현보의 행사는 실로 치밀하게 짝이 없었다. 각대문파의 수뇌들이 그 첩자들을 색출하여 심문을 하려고 했는데, 그 첩자들은 이미 입속에 물고있던 독약을 깨물어 자결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아무로 현현보의 음모에 대한 증거를 찾을수가 없었다. 다만 현진자만이 증인이라고 할 수가 있었으나, 그 혼자의 말만으로는 완전한 증거가 될수가 없었기에 그당시 현현보의 음모사건은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다. 하지만, 만일 그일이 현진자에 의해 공개되지 않았었다면 무림에 일어났을 파문은 엄청난 것이었을 것이다. 물론 그의 사형인 무당장문인 옥진자역시 피살을 당했을 것은 두말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이러한 모든 점들을 들어 현진자는 결코 자신을 구해준 백노인의 구명지은에 소홀하게 대해줄 수가 없는 입장이었다. 현진자는 그일이 있은 다음에 은근히 마음속으로 불안하게 생각을 해왔었다. 백노인이 자신의 은혜를 빌미로 어떠한 요구를 해올지 알수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헌데, 그로부터 삼년의 세월이 지나 그때의 일을 거의 잊어버릴 즈음이 되자, 돌연 그 노인의 편지는 날아들었던 것이다. (삼년...) 그로부터 삼년의 세월이 지났는데 그 백노인은 어떻게 변했을까? 원래 노인의 용모라는 것은 거의 변하지 않는 것이어서 현진자는 그의 얼굴이 전보다도 더욱 쭈글쭈글해졌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진자는 문득 그당시 보았던 백노인의 얼굴을 뇌리에 떠올려 보았다. 당시 그의 마음이 매우 복잡했던 탓인지 그 노인의 얼굴은 기억에서 안개처럼 희미하기만 할 뿐 또렸하지가 않았다. 그때, 점원이 매화주와 안주를 가지고 와서 탁자위에 늘어놓았기 때문에 현진자는 무의식적으로 술병을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그는 원래 술을 매우 좋아하고 또한 그것이 거의 유일한 취미라고 할수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 이 매화주의 맛은 분명 특이하고 훌륭한 것이었지만 그는 왠지 게속해서 술을 마실 의욕을 잃고 말았다. 한시라도 빨리 그 백노인을 만나서 과거의 은원, 아니 은혜를 매듭지어야만 비로소 제대로 술맛을 느낄수가 있을것 같았다. 그리하여, 그는 벌컥벌컥 몇모금의 술을 들이키다가 곧장 자리에서 일어섰다. 제 2 장 멍청한 소년 점원의 말은 과연 맞았다. 현진자는 즉시 주루를 나서서 서쪽으로 신법을 펼쳤는데, 대략 백여리의 험준한 산길을 나아가자 하나의 작은 분지 가운데에 이루어져 있는 마을을 볼수가 있었다. 마을의 사방으로는 천험의 절벽들이 둘러싸고 있고, 분지부근의 산들은 비교적 낮은 야산들인데, 분지의 중앙으로는 맑은 계류가 소리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바로 그 계류의 좌우로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는데, 그 가옥의 숫자는 대략 오십여호는 될듯해서 제법 많았다. 가옥의 주변에는 사람의 힘으로 개간에 놓은듯한 제법 넓은 전답들이 보였고, 그밖의 공간이나 야산에는 무수히 많은 매화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아마 오매촌이라는 마을의 이름이 거기에서 유래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진자가 이 마을에 도착했을 때에는 마악 황혼이 내리깔리는 저녁무렵이엇다. 그리고, 마침 구불구불하게 만들어진 논두렁 위에는 한명의 중년농부가 쟁기를 가지고 무너진 곳을 열심히 손보고 있었다. 현진자는 즉시 그 농부에게 다가갔다. "말씀좀 묻겠소, 혹시 이 마을의 이름이 바로 오매촌이 아니오?" 중년농부가 갑자기 나타난 현진자의 모습을 잠시 눈을 휘둥그래 뜨고 바라보다가 이내 태도를 정하고는 손가락으로 북쪽의 한 절봉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저기 보이는 산이 바로 오매산이오. 그 이름을 본따서 우리마을을 오매촌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사실 우리 마을은 장가촌이오. 헌데 무슨 일로 그건 물으시오?" 현진자는 오매산의 이름이 산의 이름을 본딴 것이라는 말을 듣고는 자신의 추측이 빗나갔음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결코 그가 마을을 잘못찾은 것은 아니었다. 점원은 바로 이 오매촌이 바로 장가촌이라고 말을 했었기 때문이었다. "무량수불..." 현진자는 문득 엄숙하게 도호를 한번 외었다. 그는 평소에는 거의 도호를 외우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이런 일을 하는데에는 상대의 신임을 얻을 필요가 있다는 것을 느끼고는 일부러 도호를 소리내어 외운 것이다. 과연, 그 소리를 듣자 상대방의 태도는 다소 정중해지는듯 했다. 현진자는 그를 향해 다시 말했다. "사실, 빈도가 이곳을 찾은 이유는 바로 한 사람을 찾기 위함이오. 혹시... 당신은 백노인이란 사람을 알고 있소?" 현진자는 말을 하면서 은근히 마음이 긴장되어 농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혹시 이 농부가 그런 사람은 이곳에 살지 않는다고 하면 어쩌나 하는 심정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예상외로 농부의 표정은 가볍게 펴지는 것이었다. 그는 가벼운 웃음을 떠올리며 되묻는 것이었다. "알고보니 도장께서는 원래 그 백가노인을 찾아오셨군요?" 이 농부는 상대방이 도장이라는 사실에 태도가 다소 정중해졌다. 그러나, 그가 백가노인을 말할때에는 결코 공손하거나 정중한 것이 아니었다. 마치 싱겁다는 투인 것이다. 이에, 현진자는 다소 의아한 심정이 되어서 그에게 다시 물었다. "빈도는 사실 감방이란 마을에서 이곳에는 백가노인이 없다는 말을 들었었는데, 사실은 그사람이 정말로 이곳에 있다는 말이오?" 농부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것은 당연합니다. 이곳에는 원래 장가촌이라는 이름처럼 장씨성을 가진 사람만이 살고 있지요. 허나, 십여년전에 백가성을 가진 노인이 하나 찾아와서는 함께 살기 시작했는데... 모두가 모르고 있는것은 당연하지요." 농부는 잠시 생각하는듯 하더니 그렇게 말을 했었다. 현진자는 다시 의아해져서 물었다. "그것은 어째서 그렇소?" 농부는 가볍게 실소를 터뜨리더니 말했다. "그 백가노인은 한마디로 무위도식하는 쓸모없는 늙은이에 불과합니다. 일은 전혀 하지 않고 무슨 약초를 캐니 하면서 일년중에 거의 일곱 여덟달은 밖으로 나돌아 다니지요. 허나 그 노인은 캐어오는 약초는 장작 하나도 없을 뿐만 아니라 벌어오는 돈도 역시 없지요. 만일 그 백룡생 이 없었다면 그 노인은 벌써 굶어죽었을 것입니다." 현진자는 문득 눈빛을 빛내며 다시 물었다. "그 백룡생은 바로 그 노인이 데리고 있는 아이입니까?" "도장께서는 원래 잘 알고 계시는군요?" 이에, 현진자는 고개를 내두르며 말했다. "빈도는 다만 그정도 밖에는 모릅니다. 당신이 좀더 상세히 말해주시면 고맙겠소." 농부는 잠시 현진자의 얼굴을 바라보며 주저하는듯 했다. 그는 귀찮게 이 얘기를 해야하나 말아야 하나를 생각해보고 있는것 같았다. 허나, 그는 외부에서 오는 사람에게 다소 친절한 성품인지 곧 안색을 펴고 입을 열어 대답했다. "그 백룡생이란 녀석은 비록 이름은 그럴듯하지만 역시 쓸모없는 녀석에 불과합니다. 녀석은 원래 백가노인이 이 마을에 들어올때 데리고 온 녀석인데 비단 배운것이 없을뿐만 아니라 아주 멍청하지요. 백가의 일은 혼자서 도맡아서 하고 노인에게 꼭꼭 노잦돈과 의복을 바치면서도 전혀 싫은 내색이 없습니다." 말을 하면서 답답한지 고개를 휘휘 내저었다. 그리고 말을 덧붙였다. "그녀석 때문에 노인이 멀쩡하게 살고는 있지만... 그렇게 세상물정에 어두운 녀석을 어디에다 쓰겠소? 그녀석의 나이는 이제 스물이고 허우대도 멀쩡하지만 그래서 아직 녀석에게 시집을 가려는 계집하나 없다우." 중원에는 스무살이 넘어서 혼인을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때로는 남자는 십육세만 넘어서면 곧바로 장가를 드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곳 장가촌의 규칙또한 그런 모양이었다. "..." 농부의 말을 들은 현진자는 잠시 눈살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겼다. 그는 그래도 과거의 인연으로 한때나마 그 백노인에게 어떠한 작은 환상이나마 가지고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지금 이 농부의 말을 들어본 결과 그는 내심 실망을 금할길이 없었다. 사람의 성품이라는 것은 마치 냄새나는 물건과도 같아서 결코 오래도록 감출수가 없는 법이다. 따라서, 단시일이라면 모르되, 무려 십여년의 세월동안 함께 살아왔다면 이 농부들은 이미 그 노인에 대해 훤하게 알고 있을텐데 그 노인의 정체가 그렇게 별볼일이 없다는 것은 그를 정말로 실망시키는 것이었다. 현진자는 이제서야 그 노인이 결코 신비롭거나 특이한 사람이 아니며, 그저 무위도식하며 환상에 젖어서 약초를 캐러 다니다가 우연히 자신을 만나 도움을 주게 되었음을 알아차렸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되자, 현진자는 문득 자신이 구명지은을 입은 노인이 그토록 형편없다는 사실에 은근한 불쾌감을 느끼게 되었다. 게다가, 그 노인이 데리고 있다는 아이의 나이가 무려 스물이나 된다니 이미 아이가 아니고 성인이 아닌가? 그렇다면 무슨 일을 당하더라고 스스로 살아갈만도 할텐데 어째서 구태여 자신에게 그런 귀찮은 부탁을 하는 것일까? 허나 어쨌든, 그는 부탁을 받았으니 그 부탁대로 해주면 될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심 쓰게 웃으며 농부에게서 그 노인의 집을 물어서 그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 * * 백노인의 집은 오매촌에서도 가장 북쪽의 외진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곳의 풍경은 마을에서도 가장 황량하고 거칠기 짝이 없었는데, 좌우에 거친 절벽이 치솟아 있고 물도 없는 장소에 모옥은 지어져 있었다. 단지, 그 앞쪽에는 얼마간의 개간한 경작지가 보였는데, 그것은 바로 백노인이 데리고 온 아이라는 백룡생이 일을 하는 곳인것 같았다. 현진자가 그 모옥으로 다가가자 모옥의 굴뚝에서는 연기가 치솟고 있었다. 저녁밥을 짓고 있는 모양이었다. 현진자는 그것을 보고 문득 이 백노인이 이미 다른곳으로 떠나버렸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까 농부의 말중에 백노인이 일년이 절반이상을 밖으로 나돈다는 말을 상기했기 때문이었다. 부엌으로 다가가자, 마침 거기에서 나오는 한명의 건장해보이는 소년과 마주치게 되었다. 그 소년은 다소 골격이 튼튼하고 체격이 우람해 보였다. 그러나, 그의 눈빛을 본순간 현진자는 일순 한숨을 내쉴수밖에 없었다. 그 눈빛은 멍청하고 촛점이 잡혀있지 않아서 마치 넋을 잃은 듯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허나, 보아하니 백치는 아닌것 같았다. 그는 즉시 현진자에게 다가와서 공손히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했기 때문이었다. "누구신데, 무슨일로 오셨습니까!" (바로 이녀석이 그 백룡생이란 녀석이군!) 현진자는 앞으로 이런 멍청한 녀석과 함께 생활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정말 자신이 한심스러워서 음성이 다소 냉랭해졌다. "나는 편지를 받고 온 사람인데, 자네의 할아버지는 안에 있는가!" 소년은 잠시 멍하니 생각에 잠기다가 문득 생각난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아, 예... 어르신께서는 지금 안에 계십니다." 현진자는 이 소년이 백노인의 손자가 아닌가 하고 생각하여 일부러 할아버지가 안에 있느냐고 물어본 것이었는데. 이 소년의 대답으로 미루어 보아 조손관계는 아닌것 같았다. 그럼 비록 성은 같을 지라도 그냥 데리고 있는 아이란 말인가! 하긴, 중원에는 가끔 극심한 가뭄과 장마등으로 흉년이 들때면 고아들이 많이 생겨나서 이렇게 고아하나를 데리고 사는 사람은 비교적 흔한 편이었다. 현진자는 소년의 멍청한 대답을 듣고는 눈살을 찌푸리며 다시 말했다. "그럼 나를 어서 자네의 어르신에게 안내하게!" 그말에, 소년은 잠시 주저하는 듯 하다가 공손히 허리를 숙여서 다시 대답했다. "예, 알겠습니다." 이어 그는 안채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 모옥은 구조가 비교적 간단했다. 부엌이 하나에 방이 두개였다. 아마 그중 하나는 노인이 사는곳이고 다른 하나는 소년이 살고있는 방인것 같았다. 소년은 앞장서서 그중 하나의 방앞으로 가서 방문을 열었다. 그러자 순간, 현진자는 짙은 약냄새가 코를 찌르는 것을 느꼈다. 노인, 이 노인의 용모는 매우 평범했다. 아마 가장 평번한 노인의 용모를 찾으라고 한다면 단연코 이러한 용모의 노인을 말해야 할 것이다. 다만, 이 노인은 얼굴이 지나치게 늙어서 쭈글쭈글해 있었고 또한 깡말라서 피골이 상접했다. 그리고 눈빛이 다소 멍한 것이 이는 바로 그가 지금 중환자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현진자는 안으로 들어서서 한참동안 노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에, 그는 비록 그간 많이 늙기는 했지만 이 노인이 그때의 그 백노인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순간, 현진자는 반가운 마음이 들기보다는 역겹고 불쾌한 느낌이 앞서는 것을 느꼈다. 허나 그는 내색을 할 수가 없어서 예리한 눈길로 노인의 얼굴을 주시했다. 이때, 노인은 방안에 사람이 들어왔는데도 전혀 알아채지 못하는것 같았다. 그러다가 소년이 가까이 다가가서 말을 해서야 비로소 그는 시선을 현진자에게 돌리고 다소 웃으며 아는체를 했다. "도장께서... 오셨구려. 으음..." 현진자는 절로 한숨을 내쉬며 대꾸했다. "나는 당신의 서찰을 받고 왔지만, 대체 당신은 이런 몸으로 떠나겠다는 것이오?" 노인은 그말에 다시 만면에 웃음을 떠올렸다. 현진자는 그 웃음을 보고서야 다시 그가 백노인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당시, 현진자는 비교적 많은것들을 물었다고 할수가 있었는데 이 노인은 거의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노인은 지금처럼 만면에 부드러운 미소를 떠올리며 빙글빙글 웃었던 것이다. 이 웃음은 이상한 느낌을 주기도 하고 신비로운 느낌을 주는것도 같아서 현진자는 비록 노인의 용모는 잊었을 지라도 이 미소만은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중병에 걸린 상황에서도 이렇게 웃을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이 노인뿐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허나, 과거에는 비록 웃을뿐 대답을 거의 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노인은 웃으며 다소 힘없는 어조로 입을 열었다. "내가... 이러한 몸으로 떠나야 할 곳은 어디이겠소?" 노인은 그렇게 물었다. 그러자, 현진자는 일순 당혹해졌다. 그는 문득 이 노인의 의도를 알수 없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이 노인은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그를 부른 것이란 말인가? 현진자는 잠시 생각하다가 그 생각을 확인하기 위해 다소 당혹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럼 황천으로 떠나기 위해...?" 노인은 그말에 일순 가볍게 웃었다. "허허, 인간은 누구나 가야하는 곳, 나중에 그곳을 가게되지 않을자 누구이겠소? 허허..." 그말을 듣자, 현진자는 문득 표정이 이상해졌다. 그는 갑자기 노인의 태도와 말에 감동이 되었던 것이다. 비록 그는 여태 방안으로 들어와서 노인에 대한 인상이 좋지 않았지만 노인의 말이 이렇듯 죽음에 대해 달관해 있음을 보고 일순 존경하는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실로 이것만큼은 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렇지요. 무량수불..." 현진자는 거의 외우지 않던 도호까지 외우게 되었다. 그러자, 노인은 문득 한옆에 앉아있는 소년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이때 노인은 마치 시체처럼 방안에 누워있었는데, 전신은 거의 움직일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전에 저 아이를 도장에게 맡기려는 것이오." 그말에, 현진자는 내심 이해가 갔다. 누구나 죽기전에는 신변을 정리하고 싶어질 것이다. 따라서, 이 노인은 죽기전에 저 멍청한 아이를 누구에게든 맡기려는 것이다. 하지만 현진자는 그말을 듣자 내심 마음이 무거워졌다. 편지에는 다만 당분간만 맡아달라는 말이 적혀있었지만, 저 멍청한 모습으로 보아 한평생 그의 속을 썩힐것이 분명하다고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기왕에 노인을 공경하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에 그는 귀찮은 내색을 하지 않고 물었다. "그럼 이 아이가 바로 편지에 적혀있던...?"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이어, 그는 소년을 향해 말했다. "얘야, 어서 이 도장께 인사를 드려라!" 그러자, 소년은 즉시 아주 공손하게 현진자를 향해 넙죽이 대례를 올리는 것이었다. "저는 백룡생이라고 합니다. 도장께서는 모쪼록 저를 귀여워해 주십시오." 과연, 이 소년이 바로 아까 농부가 말했던 백룡생이란 소년이었다. 현진자는 이미 그에 대한 인상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소년이 그렇게 공손하게 절을 하는데도 마음에 들지않아서 내심 코웃음을 쳤다. (귀여워해달라고? 빌어먹을! 너를 귀여워하느니 차라리 강아지를 귀여워할 것이다!) 허나, 그는 겉으로는 냉랭한 표정을 다소 누그러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백룡생이라? 이름은 아주 좋구나." 그것은 이름은 좋으나 사람은 그에반해 쓸모가 없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소년 백룡생은 아주 순진한듯 그말을 곧이듣고 만면에 기쁜 기색을 드러내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예, 그건 저희 어르신이 지어주신 이름인데, 남들도 모두 좋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말에, 현진자는 더욱 어이가 없어서 내심 코웃음을 치고 있었다. (빌어먹을 녀석! 멍청하기 짝이 없군?) 그는 순간적으로 이미 이 소년이 체격이 당당해서 힘은 좋으나 전혀 무공을 배우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게다가 이렇게 머리가 멍청하니 장차 그의 밑에 있더라고 무공을 배우기는 틀렸을 것이다. 원래 상승이 무공을 익히기 위해서는 사람의 골격이 굳어지는 시기, 즉 십오세 이전부터 내공을 수련하고 골격을 바로잡아야 하는데, 비단 상승은 제외하고 하류의 무공이라도 이 소년은 머리가 이렇게 아둔하니 아예 가르칠 생각을 버려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무당파는 명문의 정파로서 무림고수들이 항상 드나드는 곳인데 이렇게 전혀 무공을 배우지 못한 녀석이 함께 있는다면 얼마나 불편할 것인가? 현진자는 문득 생각했다. (편지에는 분명히 당분간만 이라고 했으니, 나는 그저 나의 거처에 이녀석을 숨겨두고 몇년만 데리고 있다가 내보내면 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자 현진자는 마음이 다소 누그러졌다. 그리하여 그는 다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의 이름은 아주 좋다. 그것에는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 그때, 노인이 백룡생을 향해 말했다. "내 이미 말했듯이, 너는 만일...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 이 도장을 따라가서 살아야 한다. 알겠느냐?" 백룡생은 처음에는 현진자의 말에 기쁜 표정을 짓다가 문득 노인의 말을 듣고는 마치 금방이라도 울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는 겨우 고개를 숙이며 대답하는 것이었다. "예..." 그것을 보고 현진자는 다시 코웃음을 치며 생각했다. (사람이란 한번은 반드시 죽게되는 것이다. 강호무림에는 하루에도 무려 수백명이 죽어가곤 하는데 너는 이 노인이 아직 죽지도 않았는데 울려고 하는구나!) 하지만, 현진자는 노인을 봐서 노골적인 조소하는 표정은 짓지 않았다. 노인은 백룡생의 얼굴을 보며 다시 말했다. "자, 이제 때가 되었으니 너는 도장에게 밥을 갖다드리도록 해라." "예, 어르신..." 백룡생은 그제서야 다시 고개를 조아리고는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 * * 백룡생이 갖다준 저녁상은 비교적 간단하지만 제법 정갈했다. 현진자는 다소 사양을 할까 하다가 마지못해 그 저녁을 들었다. 헌데, 모두가 저녁식사를 마치고 났을 무렵에 모옥으로 한명의 사람이 찾아들었다. 보아하니 그는 의원인것 같았다. 그가 방안으로 들어오자, 백룡생은 노인을 행해 공손히 말했다. "어르신, 이분은 촌장댁에 오신 의원님인데 제가 부탁을 해서 오시라고 했어요." 옆에서 앉아있던 현진자는 그말을 듣자 이내 어찌된 영문인지 알수가 있었다. 원래, 이런 작은 산촌에는 따로 의원이 있을리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촌장이 의원을 읍성에서 불렀을 것이고, 그틈을 타서 이 소년이 의원을 잠시 이곳으로 오게한 것이리라, 그말을 듣고 노인은 잠시 가벼운 웃음을 터뜨렸다. "허허, 내가 약초를 캐는 사람인데 의원이라니, 허허..." 그러나 그는 의원을 보는것이 그리 싫지않은 표정이었다. 이 의원은 오십대의 초로의 인물로서 눈빛이 다소 간사하고 염소수염을 기른것이 돈꽤나 밝히게 생겼고, 아마 백룡생은 이 의원을 모시기 위해 많은 돈을 들였을 것 같았다. 그 의원은 잠시 노인의 안색을 살피더니 곧장 다가들어 맥문을 잡고 진맥을 했다. 그리고, 이어 손을 들어 노인의 이곳저곳을 만져보더니 문득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젓는 것이었다. 이것을 보고 백룡생이 급히 의원에게 물었다. "어떻습니까? 저희 어르신께서는 나으실수가 있겠습니까?" 그말에, 의원은 다소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 노인의 병명은 바로 노환이다. 즉, 이미 사실만큼 사셨으니 돌아가실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따로 고치는 방도가 없으니 포기하는 것이 좋다. 다만..." 의원의 말이 진행됨에 따라 소년은 매우 고통스런 안색을 했다. 그는 매우 괴로운 빛을 띠다가 의원의 마지막 말을 듣고 급히 다시 물었다. "저희 어르신을 고칠 방도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군요? 그게 대체 뭐죠?" "...!" 의원은 잠시 대답을 하지 않고 백룡생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자신이 말을 꺼낸것이 부질없는 것이었고 또한 소년이 이렇게 기대를 갖게한것을 내심 어이없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다시 말했다. "너는 그다지 기대를 하지 않는것이 좋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러니까, 만일 전설의 영약인 천년삼왕이나 성형하수오가 있다면 저 노인의 명을 한 십년쯤 더 늘일수도 있다는 게지. 하지만 그런것이 말뿐이지 어디에 있겠느냐!" * * * 말을 끝내자 의원은 더이상 볼일이 없다는 듯 즉시 자리를 털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이때, 소년 백룡생은 잠시 멍한 표정을 짓다가 두눈에 눈물을 주르르 흘리기 시작했다. 그 역시 천년삼왕이나 성형하수오가 희귀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나 하는 것일까? 현진자는 딱한 기분이 들어서 옆에서 상관하지 않았다. * * * 그런데 그것은 느닷없는 일이었다. 현진자는 전혀 그 노인이 그러한 말을 할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었다. 노인은 의원이 나가고 나서 잠시후에 울고있는 백룡생을 향해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용아야... 그렇게 울 것이 없다. 그런데 사실, 지금에 와서 이러한 말을 한다는 것이 우습기는 하지만... 사실 나는 그 천년삼왕이 있는곳을 알고 있단다." 그말에, 비단 백룡생 뿐만 아니라 현진자 역시 눈이 크게 떠질 정도로 놀랐다. 그는 전날 성형하수오를 그가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에 이 노인의 운수가 매우 좋았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말로 이 노인은 천년삼왕이 있는 곳마저 알고 있다는 말인가? 현진자는 문득 고개를 내저었다. 그럴리가 없다. 만일 그렇게 천고의 영약들이 흔하다면 결코 그것을 천고의 영약이라고 부르지도 않았을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한 것들은 일반적으로 백년에 한번 나올까말까 하며, 혹은 수백년에 한번씩 전설처럼 나타나곤 하는 것일 뿐이다. 분명 이 노인의 말을 거짓말일 것이다. 그렇다면, 무었때문에 이 노인은 그러한 거짓말을 할까? 현진자는 잠시 알수없는 미궁속을 더듬는듯한 기분속에서 생각에 잠겼다. 그동안 아미 백룡생은 기절할듯이 놀라서 얼른 노인에게 달려가서 그 천년삼왕이 있는 장소를 가르침받고 있었다. 그 순진하고 공손한 태도로 보아 그는 전혀 노인의 말을 의심하지 않는것 같았다. 그리고, 모든 설명을 듣고나자 소년은 이미 어두운 밤인데도 즉시 천년삼왕을 찾으러 가겠다고 몸을 일으켰다. 현진자는 노인이 그를 만류하지 않는것을 보고 내심 더욱 이상하게 생각했다. 이 노인은 소년의 장래를 위해 직접 그에게 부탁가지 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만일 지금 무공도 모르는 일개 소년이 길을 떠난다면 얼마나 위험할 것이며, 도중에 길을 잃거나 실족하여 벼랑에서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짐승의 습격이 없다고 할수가 있을까? 하지만, 현진자는 비록 괴이하게 생각을 하긴 했지만 직접 자신이 나서서 간섭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아직은 귀찮은 일에 말려들고 싶지 않아서 그는 방의 한쪽에 앉아서 생각에 잠기며 백룡생이 길을 떠나는 광경을 묵묵히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는 이 노인이 겉으로 보기에는 허술해도 행사가 다소 치밀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이미 소년의 안전에 대해서는 대비를 해놓지 않았을까? 제 3 장 천년삼왕과 대망 백룡생, 그는 자신의 어르신이 이미 심한 중병에 걸려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잠시도 더지체하지 못하고 한밤중에 서둘러서 길을 떠났다. 현진자, 이 도가의 무림명숙이 그에 대해 평가한 것은 비교적 정확했다. 백룡생은 전혀 무공을 익히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아예 아직 무공초식이란 말을 들어보지도 못한 상태였다. 그러니, 자연 그가 지금 한밤중에 험준한 산길을 향해 떠나는 것은 정말로 매우 위험한 일이라고 할수가 있었다. 허나, 백룡생은 지금 노인의 중병을 고치기 위해 반드시 천년삼왕을 구해야 겠다는 감정이 크게 격발해 있던 참이라 전혀 두려움을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게다가, 그는 원래 체격이 다소 우람하고 몸이 아주 건강하여 비록 무공은 익히지 않았지만 설사 호랑이 하나쯤은 당할수가 있다고 여겨오던 터였다. 그러나, 으례 모든 것이 그러하듯이 생각과 현실은 차이가 나기 마련이다. 그가 비록 건장하여 호랑이가 두렵지 않다고 해도 그가 이미 호랑이를 만나던 것도 아니며, 그런만큼 그가 정말로 호랑이를 만난다면 크게 당할수도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지금은 훤한 대낮이 아닌 한밤중이며, 그런만큼 자연 맹수들에게는 유리할테니 그는 혹시 사나운 이리 한마리만 만나도 목숨을 잃게되는 것은 아닐까? 허나 다행히, 하늘에는 희미하나마 달이 떠있어서 사방을 비춰주고 있었고, 지금 그가 가고자 하는 곳은 평소 그가 약초를 캐거나 나무를 하기 위해 많이 다녔었기 때문에 훤하게 알고 있는 길이었다. 헌데 그렇다면 이상한 일이었다. 자고로 천년삼왕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천고에 드문 희귀영초인데, 그것이 심산유곡의 깊은 곳에 있다면 또 몰라도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에 자라고 있었다면 가능한 일일까? 하지만, 백룡생이란 이 위인의 사고방식은 다소 특이했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결코 이 일을 믿지 않을 것이고, 또한 조금이라도 의심하는 마음이 들어서 노인의 말을 헛소리쯤으로 여기거나, 아니면 잠시 더 기다리다가 날이 환해지면 길을 떠났을 것이지만 백룡생은 전혀 그렇지 않고 그야말로 맹목적으로 노인의 말을 신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반드시 노인이 일러주었던 곳에 천년삼왕이 있다고 믿었고, 눈꼽만큼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의 생각은 오로지 한시라도 빨리 천년삼왕을 찾아야 겠다는 마음 뿐이었다. 이러한 마음은 보통의 사람들과는 다른 것이고 매우 우둔하다고 해야할 것이다. 허나, 혹시 그러한 마음이 씨가 되어서 그는 천년삼왕을 정말로 얻게되는 것이 아닐까? 백룡생은 어두운 산길을 더듬으며 거의 네발로 기다시피 해서 바삐 앞으로 나아갔다. 따라서, 비록 금새 전신에는 땀이 솟아나고 더운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지만, 그가 나아가는 속도는 대낮에 길을 가는 속도에 비해 못할것이 없었다. 허나, 그가 제아무리 지리에 훤하다고 해도 한밤중에 눈에 보이지 않는 나무등걸이나 가시등을 피할 수 없어서 얼마가지 않아서 그의 전신은 심한 피멍과 상처가 생기기 시작했다. 허나 백룡생은 그런것을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가 지금 가고있는 산길은 비록 평소에 많이 다녔던 곳이라고는 하나 역시 험준한 계곡과 낭떠러지들이 있기 때문에 우선 그는 실족을 하지 않으려는 생각에 마음이 바빴다. 그렇게 대략 반시진 정도를 나아갔을까? 백룡생은 드디어 하나의 거대한 계곡에 이르게 되었다. 이 계곡이 거대하다는 것은 바로 계곡의 중간부분이 마치 뚝 잘려나간 것처럼 기다란 낭떠리지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낭떠러지는 그 깊이가 헤아릴수조차 없을 지경이었는데, 대낮에 보아도 그 아래에는 희뿌연 안개구름만이 가득차서 계곡전체를 은근히 안개로 뒤덮어놓은 듯했다. 하지만, 이 절곡의 갈라진 부분은 길이가 그리 길지 않아서 겨우 일장정도였다. 이 일장정도의 틈을 굵은 통나무로 만들어진 견고한 다리가 놓여져 메우고 있었고, 백룡생은 평소에 그 다리의 건너편에 약초가 많이 서식함으로 자주 가곤 했었다. 그것은 비단 그뿐만이 아니라 오매촌의 마을사람들이 거의다 그러했을 것이다. 그 증거로는, 이 갈라진 절곡의 부분을 연결한 통나무다리가 아직 오래되지 않은 단단한 것으로 손질이 잘 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누구도 이 갈라진 절곡의 아래에는 내려가 보려고 하지 않았다. 그것은 워낙 절곡의 낭떠러지가 깊고 험할 뿐만 아니라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있어서 도무지 한치앞을 분간할 수 없게되기 때문이었다. 다만, 언젠가 유명한 약초를 캐는 무리들이 멀리서 계곡을 돌아서 이 절곡아래로 가본적이 있다고 했다. 그것은 이 안개의 정체가 다소 이상하다고 여겨져서 그 아래에는 혹시 어떤 놀라운 희귀영초가 있는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오매촌의 사람들도 한떼는 그일로 촉각을 곤두세웠었다. 그들 역시 약간의 농사를 짓는것 외에는 매화나무의 열매를 따서 팔거나 약초를 캐서 파는 것이 주된 생계의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단지 워낙 위험한 일이었기 때문에 감히 아래로 내려가 보지는 못했지만 그들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리는 없었다. 헌데, 그 결과는 모두의 실망으로 불러일으켰다. 모두가 기대를 모았던 절곡의 아래에는 다만 오래된 산삼 몇뿌리나, 수십년 묵은 하수오, 그리고 황정 몇 뿌리가 발견되었을 뿐 기대했던 희귀영초는 발견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역시 희귀영초는 찾기가 쉽지 않은 것이라고 다시금 탄식을 하곤 했었다. 개중 몇몇사람은 그래도 미련을 가지고 한동안 절곡의 아래를 헤메고 다녔었으나, 마침내는 포기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 이후, 오매촌의 사람들이나 약초를 캐러 근방에 들어오는 사람들중 이 아래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이 부근에 다른곳보다는 약초가 많이 서식하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이곳이 영약이 가장 잘 자랄 수 있는 전설의 삼대복지중의 하나인 음양상조지지가 아닌가 하는 얘기만이 떠돌고 있을 뿐이었다. 이 자욱한 안개는 그렇게 해서 생겨난다는 것이다. 그것이 정말인지는 물론 백룡생으로는 알 도리가 없었다. 그는 이미 전신이 피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추위를 느끼지는 않았지만, 이 근방에 오면 항상 은은한 온기를 느낄수 있는것이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노인이 알려준 장소는 이곳과 어떤 연관이라도 잇는 것일까? 그렇다. 백룡생은 땀을 뻘뻘 흘리고 가쁜숨을 몰아쉬면서 바로 이 절곡의 앞에 이르러 신형을 멈추었다. 노인이 그에게 말했던 장소는 바로 이 절곡이 아래였던 것이다. 아니, 아예 절곡의 밑바닥이었으면 그는 멀리 돌아서 아래로 내려갔겠지만, 노인이 말한 곳은 공교롭게도 이 위에서 아래로 불과 사오장 정도 내려간 곳이었다. 원래, 앞에서 말했다시피 이 절곡 전체는 짙은 안개로 뒤덮여 있어서 사오장은 커녕 불과 일장아래도 내려다 볼수 없는 형편이었다. 그러나, 전날 누군가가 궁금한 나머지 한번 무리를 해서 내려가본 적이 있었는데, 그는 일장이장 삼장정도 내려감에 따라 이 절곡의 모양이 기이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가장 윗부분은 다만 일장 정도의 갈라진 부분만을 보일 뿐이지만, 실상 이 절곡 전체는 미치 거대한 호로병의 윗부분처럼 양쪽의 절벽이 내려갈수록 안쪽으로 휘어져 들어가서 절곡의 밑부분은 아주 거대한 분지가 형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 사람은 겨우 삼장 하고도 절반을 내려가다가 마침내 더이상 발을 딛을 수가 없고 공포감을 이기지 못해 다시 위로 되돌아 올라오고 말았다. 그것이 이 절곡을 가장 많이 내려갔던 경우였다. 헌데, 노인은 공교롭게도 사오장 정도 내려가면 있다고 했으니, 그것은 정녕 사실일까? 아마 머리가 다소 이상한 사람이 아니고는 이런 밤중에 그 아래로 내려가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백룡생은 이미 노인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고 있었기 때문에 주저없이 아래로 내려갈 준비를 했다. 절곡의 안개는 한밤중에도 역시 자욱했다. 게다가 지금은 이렇게 어두우니 아래로 내려가면 사방을 전혀 분간할수가 없을것이다. 백룡생은 아래를 내려다보자 일순 머리끝이 쭈삣하니 일어서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당연하게도 공포심이었다. 문득 절곡의 아래에서 가벼운 미풍이 산들거리며 불어올라와 그의 머릿결을 흐트러 뜨리자 일순 그의 심장은 공포심에 얼어붙는것 같았다. 그러나, 백룡생은 노인의 중병을 생각하자 곧 마음을 모질게 먹었다. 이어 그는 미리 준비해온 밧줄을 허리춤에서 풀어내렸다. 말이 사오장이지, 사람의 키가 대략 육척데 달한다고 하고 십척이 일장이라면 사오장은 무려 육척장부의 일곱 여덟사람의 키에 해당되는 것이다. 그 길이는 매우 길었다. 백룡생은 그 기다란 밧줄의 한쪽끝을 통나무다리에 묶고 다른 한쪽끝을 자신의 허리에 단단하게 매었다. 이를테면 그것은 그가 실족했을 때를 대비한 구명용인 것이다. 그렇게 하고 나자, 백룡생은 이어 허리를 구부려 천천히 튀어나온 부분을 밟고 잡으며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자연 극심한 공포감에 두팔과 다리, 전신이 덜덜 떨려왔다. 절곡에서 불어올라오는 바람은 온기가 담겨있는 미풍인데도 그는 그 바람을 의식하자 마치 등골까지 서늘해 지는 것 같았다. 그리하여 그는 몇번 숨을 내쉬고 겨우 한번 손과 발을 아래로 내딛곤 했다. 허나, 사실 백룡생의 성격은 다소 대담한 편이었다. 얼마정도 내려가서 다시 등허리에 땀이 괴이게 되고, 이어 이미 자신의 허리에는 구명용의 든든한 밧줄이 매어져 있다는 것을 상기하자 두려움은 자연스럽게 감소 되었다. 그로부터 그의 손발이 자연스럽게 움직이게 되고 아래로 내려가는 속도가 빨라지게 되었다. 원래, 일반인이라면 이렇게 감히 바위를 타고 내려가지도 못할 것이지만, 백룡생이 바위를 타는 것은 이미 어렸을 때부터 밥먹듯이 해오던 일이었다. 어느때인가 백룡생은 한뿌리의 약초를 캐기위해 이보다도 더욱 험준한 절벽위로 올라가서 다시 내려온 적도 있었다. 게다가, 그의 건장한 체력과 잘 다져진 근육이 힘을 뒷받침하니, 이렇게 아래로 내려가는 것은 문제가 없을것 같았다. 다만, 지금 주위는 지니차게 어둡고 짙은 안개로 가득차서 한치앞을 분간할수가 없었고, 또한 소문대로 이 절벽은 점차 안쪽으로 휘어져 들어가고 있었다. 간혹 전혀 발을 딛을 곳이 없는 장소도 있었지만, 백룡생은 머리 허리춤에 찔러든 칼을 들어서 바위에 흠집을 내거나 그렇지 않으면 옆으로 이동하여 잡을 것을 찾기도 했다. 하지만 백룡생은 항상 자신이 어느정도 움직이고 있는가를 염두에 두지 않을수가 없었다. 노인은 다리위에서 곧바로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고 했고, 만일 그렇지 않는다면 이곳은 한치앞을 바라볼수가 없기 때문에 바로 옆에 있어도 천년삼왕을 찾을수가 없게 되기 때문이었다. 어느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백룡생은 자신의 주위에 둘러있는 밧줄이 다해가는 것을 보고 거의 목적지에 도달해 간다는 것을 느낄수가 있었다. 이에, 백룡생은 혹시 자신이 가져온 밧줄이 너무나도 작아서 그 장소에 미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을 했다. 허나, 어쨌든 지금 그는 전신이 땀으로 뒤범벅이 되어 있었고 그야말로 혼신의 힘을 다하는 중이었다. 지금 우선은 최선을 다하는 도리밖에는 없는 것이다. 헌데 아니나 다를까? 백룡생은 얼마동안 더 내려가다가 문득 흠칫하고 신형을 멈추었다. 드디어 그가 가지고온 밧줄이 모두다 풀린 것이다. 윗부분이 통나무다리에 매어져 있는 밧줄은 이미 그의 허리에 연결되어서 팽팽하게 당겨져 있었다. 순간, 백룡생은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가지고온 이 밧줄은 오장이 조금 넘는 것이었다. 그러나, 원래 통나무에 든든하게 묶고 다시 그의 허리에 매느라고 그 길이는 사실 실질적으로 오장이 채 되지 못했던 것이다. 백룡생은 실로 이럴줄은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밧줄을 조금 더 가져오지 못한것을 내심 후회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허나, 지금은 어쨌든 후회해도 늦었다고 할수가 있었다. 그는 밧줄을 맨 상태로는 더이상 아래로 내려갈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여기에 밧줄을 매놓고 다시 내려갈 것인가? 아니면 다시 위로 올라가서 집에가서 밧줄을 더 가져온 다음에 재차 내려올 것인가? 백룡생은 그 문제로 심하게 고심했으나 결국은 일단 여기서 밧줄을 묶어놓고 아래로 내려가기로 마음을 정했다. 그리하여 그는 입술을 깨물고 허리에 단단하게 묶어 놓았던 밧줄에 한쪽손을 가져갔다. 지금 이곳은 한치앞을 볼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는 다만 손의 감각으로 자신이 묶었던 매듭을 풀어야 했다. 따라서, 그는 그 매듭에 손을 가져가는 동안 시선을 돌려 자연스럽게 옆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런데, 바로 이런 우연한 그의 행동이 행운을 가져왔다. 백룡생은 마악 매듭을 풀려고 하다가 일순 멈칫하고 손을 멈추었다. 그가 있는 곳에서 대략 일장정도 옆부분, 지금 그곳에는 푸르고 기이한 빛이 그의 두눈에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아! 바로 이것은...?) 백룡생은 일순 눈을 휘둥그레 떴다. 문득 노인의 말이 뇌리에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 ...그 아래로 내려가는 것은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어렵겠지만 제대로만 내려간다면 천년삼왕을 찾는것은 어렵지가 않다. 그것은... 바로 천년삼왕은 그 잎사귀 부분이 영성을 띠고 있기 때문에 그런 짙은 안개속에서도 은은한 푸른빛을 내쏘기 대문이다. 네가 만일 푸른빛을 발견한다면 그것은 바로... 천년삼왕을 발견한 것이다! 그렇다! 노인의 말에 의하면 백검운은 지금 자신이 목적하던 천년삼왕을 발견한 것이었다. 순간 백룡생은 극심한 흥분과 감격으로 전신이 덜덜 떨려옴을 느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비록 계속 염두에 두고 빠르게 내려오려고 했지만 이미 옆으로 일장이나 차이가 생겼었음을 알아차렸다. 이것은 실로 아슬아슬한 상황이라고 아니할수가 없었다. 그가 만일 옆으로 조금이라도 더 비켜갔거나, 혹은 매듭을 풀기위해 시선을 우연히 옆으로 던지지 않았었다면 그는 어땠을까? 아마 아래쪽에 내려가서 헤매다가 무슨 변을 당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백룡생은 이 모든 경우를 생각하며 감정을 정리하다가 이윽고 천천히 힘주어서 그쪽으로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곳에 도착하자 백룡생은 일순 눈앞이 훤하게 밝아옴을 느꼈다. 생각돼로 천년삼왕이 그곳이 있는것은 아니었다. 다만 거기에는 하나의 작은 동굴이 절벽안쪽으로 뚫려 있었고 강한 푸른빛은 그곳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푸른빛에 의해 이 부근은 그런대로 사물을 판별하기가 용이했다. 백룡생이 바라보니, 이 푸른광채는 비록 사람의 눈을 찌를듯이 강렬했으나 본질적으로는 은은한 것이어서 동굴내부를 푸르게 비취주고 있었다. 그런데 거기에는 웬지 비릿하고 사이한 기운이 동시에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이미 천년삼왕을 찾게 되었다는 기쁨에 들떠있는 백룡생은 그러한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급히 그는 두손과 두발을 움직여 동굴의 안쪽으로 기어들어가기 시작했다. 이 동굴은 비교적 크기가 작았지만 그가 안으로 기어들어가는데는 별 문제가 업었다. 그리고, 동굴의 안쪽에는 좁아지는 것이 아니라 점차 넓어지는 추세인것 같았다. 대략 안으로 삼장정도 기어들어갔을까? 백룡생은 드디어 신형을 멈춰세우고 두눈을 기쁨과 흥분에 들떠서 휘둥그레 떴다. -- 산삼, 하나의 산삼이 그의 눈앞에 뚜렷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바로 노인이 말하던 천년삼왕이 분명했다. 천년삼왕, 그것은 겉으로 보기에는 여타의 다른 산삼들과 별로 다른것이 없는것 같았다. 그 잎사귀는 크기가 대략 수십년 정도 묵은 산삼들의 것과 비슷했고 근처에는 다른 산삼들이 몇뿌리 정도 있을법도 하건만 오직 그것 하나밖에는 없었다. 백룡생은 과거 실로 잎사귀가 이것보다 훨씬 크게 자라난 산삼을 구경한 적이 있었다. 그것을 가리켜 사람들은 백년정도 묵은 것이라며 놀라와했었다. 그렇다면 대체 이게 어찌된 영문일까? 이 천년삼왕은 비록 잎사귀는 백년묵었다는 것보다는 작았지만 그 잎사귀 전체에서 실로 화려하다고 할만한 찬연한 푸른 광채를 내뿜고 있었다. 그 영기어린 광채를 보자 백룡생은 일순 자신의 정신이 다 맑아지는 것 같았다. 이것은 실로 천년삼왕이 분명했다. 비록 그 잎사귀는 작을 지라도 오직 천년삼왕만이 이런 신비한 광채를 발할수가 있을 것이다. 백룡생은 이미 오랫동안 약초를 팔며 살아온 터라 이 천년삼왕의 가치가 어느정도인가 하는 것쯤은 대강 짐작하고 있었다. 무가지보, 워낙 희귀하고 훌륭하여 값으로 매길수가 없는것을 무가지보라고 말한다. 이 천년삼왕이야말로 무가지보인 것이다. 즉, 이것을 내다팔 경우에는 부르는게 값인 것이다. 그 값이 어느정도에 매겨질지는 백룡생으로서는 상상할수가 없었다. 아직 이와같은 천년삼왕이 나타나서 값이 매겨진 예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백룡생은 지금 노인의 중병을 고쳐야 하겠다는 생각외에는 다른 욕심은 없었다. 단지 너무도 희귀한 천고의 보물을 눈앞에 보게되자 일시 두눈이 어찔어찔해지고 정신이 다 혼몽해질 지경이 될 뿐이었다. 그러나, 다시 노인의 중병을 생각하자 백룡생은 마음이 서늘하게 가라앉는것을 느끼며 얼른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리고는 아주 조심스럽게 그것을 두손으로 파기 시작했다. 천년삼왕이 자라고 있는 토양은 의외로 아주 부드러웠다. 그리하여 그는 얼마후에 금세 천년삼왕을 잔뿌리하나 손상시키지 않고 뽑아서 손에 들수가 있었다. 이 천년삼왕의 뿌리 역시 신비했다. 그것에는 역시 은은한 푸른 기운이 감돌고 있었던 것이다. 백룡생은 긴장하여 애써서 그것을 파내다가 그것을 보고는 일시 넋을 잃고 멍하니 바라보며 내심 중얼거렸다. (이, 이제는 어르신네의 중병은 고칠수가 있다...!) 백룡생의 뇌리에는 이제 이 천년삼왕을 복용하고 기운차게 벌떡 일어나게될 노인의 모습이 일순 아른거리는듯 했다. 헌데 그때였다. 갑자기 전면의 어두운 동굴속에서 한줄기 짙은 비린내가 확 끼쳐들더니 돌연 무엇인가 굵고 부드러운 물체가 그의 전신을 칭칭 조여왔다. 백룡생은 그일을 당하는 순간 거의 본능적으로 우수에 든 천년삼왕을 놓치지 않으려고 꽉 움켜쥐었으나 일시 머리가 핑 돌며 구토가 심하게 이는 것을 느꼈다. 그리하여 자신의 몸을 살핀결과 그는 일시 대경실색하고 말았다. 구렁이, 백룡생을 갑자기 휘어감은 굵고 부드러운 물체는 구렁이였다. 그런데 대체 이렇게 커다란 구렁이도 있을까? 이 구렁이의 몸통굵기는 어른의 허벅지의 굵기보다도 더욱 굵었으며, 그 길이는 무려 삼장도 넘는것 같았다. 이놈은 이미 백룡생의 몸을 빈틈없이 휘어감고는 아직도 그 긴 꼬리를 건너편의 동굴속에 집어넣은 상태였다. 그러니 대체 얼마나 커다란 놈인지 상상할수도 없었다. 전설에 의하면 구렁이가 오래도록 살아서 영성을 갖게되면 이무기가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놈이 바로 이무기가 아닐까? 그러나, 백룡생은 지금 그런 것을 따질 겨를이 없었다. 그의 안색은 극도로 창백해져 있었고 전신은 그야말로 사시나무 떨리듯이 벌벌 떨고 있었다. 사실, 그는 오랫동안 약초를 캐고 산을 오르내리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약초를 캐는 전문가는 되지 못했다. 전설에 의하면 천년삼왕과 같은 희귀한 영초의 부근에는 그것을 지키는 다른 영물이 존재하고 있다고 했으니, 설령 이를 믿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일단은 전문가였다면 마땅히 그에대한 대비를 하고 조심했었을 것이다. 아니, 최소한 건너편에 아직 동굴이 끝나지 않고 계속되고 있으며, 그곳에서 비릿한 냄새가 나고 있다는 것쯤은 파악했었을 것이다. 하지만, 백룡생은 비단 전문가가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그리 세심한 성격도 아니었고, 무엇보다도 천년삼왕을 찾았다는데 대해 극히 흥분하고 있었기 때문에 미처 그런 일들을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그가 천년삼왕을 뽑아들고 좋아하고 있을때 구렁이는 건너편의 동굴속에서 기습적으로 덮쳐와서 그를 완전히 휘어감아버렸으니 그로서는 이미 때늦은 것이었다. 백룡생은 이제서야 아까 동굴에 들어올때 느꼈던 사이한 기운이 바로 이 구렁이의 기운이었다는 것을 알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완전히 구렁이에게 휘감겨져 손발도 움직일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으니 대체 어쩌란 말인가? 백룡새은 전신을 덜덜 떨며 눈을 들어 기다란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구렁이의 대가리를 바라보았다. 일순 그것을 본 순간 백룡생의 두눈은 커다란 공포감을 느끼며 휘둥그래지고 말았다. 이 구렁이는 색깔이 칠흑같이 검은 색이었는데, 안쪽에는 부드러운 비늘로 되어 있었지만 등쪽에는 딱딱한 껍질같은 것이 붙어 있었는데, 특히 이 구렁이의 대가리의 중앙에는 흉악스럽게도 검은 뿔이 하나 치솟아 있었던 것이다. 그 뿔에서는 지독한 사악한 기운에 뭉게뭉게 피어나고 있는것 같았기 때문에 백룡생은 일단 그것을 본 순간 공포감에 의해 마치 몸이 얼어붙는것 같았다. 게다가, 무섭기 그지없는 구렁이의 가늘게 찢어진 두눈을 보는순간, 백룡생은 자신이 일순 차가운 빙굴속에 빠진듯한 착각을 느껴야 했다. 그리하여 그는 엉겁결에 크게 소리쳤다. "노, 노형! 우... 우리는 아... 아직 서로 일면식도 업는데 이... 이게... 이게 무슨... 무슨 짓이오? 어서 나를 풀어주시오! 나는 빨리 이 천년삼왕을 가져가야 하기 때문에..." 그러나, 이 구렁이는 그의 말을 알아듣는것 같지는 않았다. 아니, 설사 구렁이가 그의 말을 알아듣는다고 하더라도 그를 순순히 놓아주겠는가? 그가 커다랗게 소리치자 일순 가볍게 흠칫하는 듯 하더니, 구렁이는 대뜸 아가리를 커다랗게 벌리고 백룡생의 몸을 머리위로부터 그대로 삼키려고 들었다. 일순 지독한 독기운과 함께 커다란 아가리가 마치 함지박처럼 덮쳐오자 백룡생은 소리를 지르다말고 아연해졌다. 허나, 이미 주저할 겨를이 없었다. 이 백룡생은 비록 생각하는 것은 다소 우둔한 점이 있어도 몸은 건장하게 타고나서 몸놀림만은 비교적 빨랐다. 구렁이의 커다란 입이 그의 머리를 쾌속하게 덮쳐드는 순간 그의 머리는 거의 본능적으로 옆으로 뒤틀어지고 있었다. 바로 그때문에 구렁이는 비록 그의 머리는 삼키지 못했어도 그의 어깨를 한번 커다랗게 물게 되었다. 순간, 백룡생은 어깨와 목어림을 파고드는 무서운 통증과 함께 하늘이 갑자기 노랗게 보이고 정신이 크게 혼미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이미 순간적으로 구렁이의 맹독이 그의 체내로 침습했기 때문이었다. 백룡생은 이에 그만 죽었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때였다. 구렁이가 그의 어깨에 날카로운 이빨을 푹 박은 순간 돌연 그의 두눈에는 구렁이의 목어림에 있는 하얀 부분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원래 이 구렁이는 전신이 칠흑같이 검은 색깔이었기 때문에 그 부분은 유난히 뚜렷하게 돋보여 이미 혼미해진 백룡생의 시선을 자극했다. 본시 이 구렁이는 지극히 몸놀림이 영활하고 빨라서 누구도 그 기척을 느끼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목 부위의 하얀점도 평소에는 남에게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이렇게 일단 백룡생의 어깨를 물게되자 그것이 고스란히 드러나게 된 것이다. 이에 문득 백룡생은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이런 커다란 이무기일수록 아주 연약한 급소가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나는 이미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인데 이놈의 저곳을 한번 물고 피를 빨아먹어도 결코 손해는 아닐 것이다!) 이것은 그가 오랫동안 약초를 캐거나 하면서 주위의 사람들에게 얻어들은 상식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지독한 독사를 만났을 겅우, 그 독사를 잡아서 피를 빨아먹으면 독사에 물린 맹독이 치유된다고 말하기도 했던 것이다. 이러한 생각이 문득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자, 백룡생은 순간 더이상 생각하고 자시고 할것이 없었다. 본래 그는 이미 맹독에 당해서 전신을 거의 움직일수가 없는 상태였다. 그러나, 다행히 아직 목부분은 움직일수가 있었고, 그는 있는힘을 다해서 목을 비틀어서 그 구렁이의 하얀부분을 힘껏 깨물어 버렸던 것이다. 그것은 사람의 이빨이야말로 정신을 모으면 아주 강한 힘을 발휘할수가 있기 때문에 그가 극독에 당한 상황하에서도 가능한 일이었다. 제 4 장 기연 과연 백룡생의 예측대로 그 하얀 부분은 구렁이의 최대급소였다. 구렁이는 전신을 검은 비닐과 껍데기로 둘러쌌지만 아직 그 한부분은 가장 연약한 상태로 남아있었던 것이다. 백룡생이 그 하얀부분을 힘껏 깨물자, 일순 입가에 비릿한 핏물이 왈칵 스며들어오면서 그 커다란 구렁이가 심하게 꿈틀거렸다. 그리고는 대가리는 여전히 백룡생의 어깨위에 박은채 남은 꼬리를 이용하여 이리저리 몸을 마구 뒹굴리기 시작했다. 백룡생은 순간 그 무섭게 죄는 힘을 감당하지 못하여 마치 뼈마디가 다 으스러지는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그럴수록 더욱 죽어라하고 온힘을 다해 구렁이의 급소를 물고 놓아주지 않았다. 동시에 그는 구렁이의 급소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계속해서 꿀꺽꿀꺽 목구멍으로 받아마시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 와중에도 자신의 우수에 들려있는 천년삼왕이 상하지 않게 하려고 무진 애를 썼다. 허나, 이미 이 구렁이는 미친듯이 날뛰고 있었다. 워낙에 심한 급소에 물렸기 때문에 이놈은 정신이 하나도 없는것 같았다. 천년삼왕이 상할것을 걱정하던 백룡생은 우연히 그 빛에 비추어서 지금 자신과 구렁이가 한덩어리가 되어서 동굴밖으로 나가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순간 그는 매우 흠칫했다. 사실 그는 이안에 들어오기 전에 할수없이 밧줄이 모자라서 허리에 감았던 것을 풀어서 동굴근처에 매어놓고 왔었던 것이다. 그런데 만일 이대로 나간다면 구렁이와 함께 절곡아래로 고스란히 떨어져 버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하여, 그는 촉망중에도 있는 힘을 다해서 몸을 움직이며 동굴입구에 이르러서 급히 자신이 매어놓은 밧줄을 잡으려고 했다. 이러한 순간은 그야말로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아찔한 순간이 아닐수가 없었다. 다행히, 백룡생은 노력한 보람이 있어서 그들의 몸뚱이가 밖으로 나가기 전에 자신이 매어놓은 밧줄을 손에 잡을수가 있었다. 게다가, 그는 이미 독에 당해서 정신이 아득한 것이 도저히 손에 힘을 줄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때 공교롭게도 구렁이의 거대한 꼬리가 미친듯이 움직이며 그의 밧줄을 잡은 왼손을 그대로 빠르게 후려쳐 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비록 이 구렁이가 극심한 고통으로 제정신이 아니어도 역시 영민하여 백룡생의 움직임을 알고 본능적으로 그것을 저지하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실로 어처구니가 없는 결과를 가져왔다. 동굴에서 빠져나와 단지 백룡생의 왼손에 의해 대롱대룡 매달려 있는 구렁이와 백룡생은 그 순간 그의 왼손에서 밧줄이 떨어져나감에 따라 즉시 아득한 절곡아래로 떨어져내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에, 백룡생은 일시 아연하여 탄식했다. (너는 비록 나를 미워하여 이런 것을 저질렀겠지만 그로인해 너와 나는 함께 몸이 박살이 나서 죽게 되었구나...!)_ 이어 다음순간, 백룡생은 아득히 떨어져 내리는 가운데 엄청난 압력을 느끼고 즉시 혼절하고 말았다. * * * 그럼 백룡생은 역시 절곡아래로 떨어져서 구렁이와 함께 몸이 박살이 나서 죽고 말았을까? 원래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백룡생은 아득히 떨어져 내리다가 일순 전신에 엄청난 충격과 고통을 느끼고 눈을 떴다. 그러고 보니 그는 아직도 아래로 떨어져내래고 있는것이 아닌가? 그럼 혹시, 그는 떨어져내리다가 어떤 나무등걸에라도 부딪친 것이 아닐까? 백룡생은 지금 자신이 떨어져 내리고 있는 속도가 매우 둔화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알고보니 그는 지금 하나의 거대한 그물에 의해 위로 떠올랐다가 다시 아래로 떨어져 내리고 있는 중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게 대체 어찌된 일일까? 설마하니 그가 이렇게 떨어져 내릴줄을 알고 누군가가 미리 아래쪽에 그물을 마련해 놓기라도 했단 말인가? 허나 그럴리는 없는 것이었다. 헌데 그때, 백룡생의 몸이 다시한번 그 거대한 그물에 부딪쳐서 되튕겨져서 다시 위로 솟구쳐 올라갔다. 순간 그는 엄청난 극통을 온몸에 느꼈지만 두눈으로 똑똑하게 그 그물의 정체를 알아볼수가 있었다. 하지만, 허공에 떠올라서 엄청난 극통을 느끼면서도 그는 일시 이 믿을수 없는 현실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 그물의 정체는 사람이 일부러 만들어 놓은것이 아니라, 바로 놀랍게도 거미줄이었던 것이다. -- 거미줄, 이 거미줄은 실로 놀랍기 그지없었다. 그것은 굵기가 무려 사람의 팔뚝만 했을뿐만 아니라 그것은 허공에 아주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었다. 하지만 이것을 어찌 거미줄이라고 믿을수가 있으랴, 허나, 사실이었다. 원래 그의 전신을 칭칭감고 있던 구렁이는 이미 거미줄에 떨어져 내리는 순간 그 어마어마한 충격에 의해 몸이 토막토막 끊어진체 거미줄에 그대로 붙어 있었다. 백룡생이 아직 죽지않은 것은 오직 이 구렁이의 부드러운 몸이 그 무서운 충격을 흡수해 주었기 때문이며, 그가 거미줄에 달라붙지 않은 것은 그의 몸이 재차 구렁이의 몸위에 떨어져 내렸기 때문이었다. 백룡생은 촉망중에서도 그 거미줄은 아주 은은하고 붉은 색을 띠고 있었는데 구렁이의 몸이 일단 거기에 달라붙자 거죽부터 녹아들어가기 시작하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바로 이 거미줄에 무시무시한 극독이 함유되어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일이었다. 백룡생은 이미 자신과 한바탕 혈투를 벌인 구렁이의 체내에 무서운 맹독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까 구렁이에게 한번 깨물린 이후 그는 아직도 전신이 마비되어 전혀 움직일 수가 없는 상태인 것이다. 그런데, 그 구렁이의 몸을 단숨에 녹여버리는 극독이란 것은, 실로 상상도 할수없는 것이 아닌가? 백룡생은 허공에서 그 거미줄을 생각하자 즉시 전신에 소름이 오싹 끼쳐졌다. 그가 천행으로 구렁이의 몸위에 떨어졌었기에 망정이지, 만일 거미줄에 떨어졌었다면 그는 아마 지금쯤 한줌의 핏물로 녹아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이번에는 제발 그 거미줄에 떨어지지 않게 되기를 빌었다. 그는 최소한 거미줄에 떨어져서 죽는 신세는 되고싶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의 시야에는 거의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어둠뿐이라서 대체 그가 어디로 떨어지고 있는지를 알 도리가 없었다. 헌데 다행스럽게도, 그는 이번에는 그의 소원대로 거미줄이 아닌 다른 곳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원래 그가 구렁이와 함께 떨어졌을 때에는 위로 곧장 똑바로 솟구쳐 올랐지만, 일단 다시 솟구쳐서 구렁이의 아직 녹지않은 물컹한 부분에 부딪쳤을 때에는 그가 위로 떠오르는 방향이 다소 바뀌었다. 그래서 그는 공교롭게도 하나의 작은 동굴안으로 굴러들어가게 되었는데, 일순 백룡생은 눈앞이 돌연 환해지는 것을 느꼈다. 순간, 철썩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몸은 하나의 작은 웅덩이와 같은곳에 떨어져 내렸다. 백룡생은 일순 엄청난 고통을 다시 느꼈지만 갑자기 사방이 훤해졌다는 사실에 대해 무한한 마음의 위안을 받을수가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극심한 전신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눈을 떴다. 헌데 그때였다. 백룡생은 일시 눈앞을 바라보다가 두눈을 휘둥그래 떴다. 느닷없이 한명의 발가벗은 어린아이 하나가 그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백룡생은 놀라서 소리쳐 물으려고 했다. 그러나, 그때 그에게는 전혀 그럴힘이 남아있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는 거의 눈동자를 움직일 힘마저 없는 상태였다. 바로 그때, 백룡생은 느닷없이 입안으로 실로 달콤하기 그지없는 향긋한 액체가 흘러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실로 그가 이전에 한번도 맛보지 못한 극상승의 감미로운 맛이었다. 그러자, 백룡생은 더 생각할 것도 없이 아까 구렁이의 목을 빨던 식으로 열심히 입으로 무엇인가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전혀 의식적인 것이 아니고 그저 무의식적인 본능이었다. 그가 일단 그렇게 계속 빨아들이자 입안으로 들어오는 액체의 양은 점차 많아졌고, 그럴수록 백룡생은 쉬임없이 그 액체를 빨아마셨다. 이때 백룡생은 눈을 감고 있었고 마치 방금전에 보았던 그 기이하게 생긴 어린아이에 대해서도 까맣게 잊고 있는것 같았다. 아니, 최소한 그는 무서운 삶의 본능에 얽매여 그러한 사실에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는 마침내 더이상 그 액체가 입안으로 들어오지 않게되자 잠시동안 더 입맛을 다시다가 스르르 눈을 떴다. 헌데 그때였다. 그는 일시 놀란 눈을 뜨고 크게 의아해졌다. 불과 방금전까지만 해도 그의 눈앞에 단정하게 앉아있던 발가벗은 어린아이가 갑자기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버린 것이 아닌가? 다만 거기에는 희뿌연 껍질같은 것만이 자그마하게 남아있을 뿐이었다. 이게 대체 어찌된 영문일까? 백룡생은 내심 크게 의아해하다가 돌연 다시 눈을 크게 떴다. 시이익...! 한줄기 괴이한 소리와 함께, 어느새 그의 눈앞에는 한 마리의 아주 작은 백색의 뱀 한마리가 나타나 있는것이 아닌가? 헌데 기이한 것은 이 백사가 비록 그 굵기는 아주 가늘어서 마치 실뱀같지만 그 길이는 아주 길어서 무려 일장여에 달한다는 사실이었다. 이 놈은 언제 그의 눈앞에 나타났는지 그 가늘고 기다란 몸뚱이를 둥글게 또아리를 틀고 있었는데 기이하게도 한줌밖에 되어보이지 않는 그 몸뚱이 전체가 아주 투명하기 이를데 없었다. 게다가, 가만보니 이놈의 그 작은 대가리 위에는 지극이 아름답고 투명한 금관이 씌어져 있는것이 아닌가? 그 금관의 생김새는 아주 정교하고 아름답기 그지없어서 사방에 투명한 광채를 뿌리고 있어서 이는 마치 아주 잘 만들어진 장난감 같기도 했다. 허나, 명백한 사실은 하나 있었다. 이 백사가 불과 코앞에 나타나자 백룡생은 갑자기 전신이 무서운 얼음동굴속에 들어간 것처럼 극도의 한기가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그리하여, 백룡생은 이 금관백사를 보고 일시 놀라 입을 딱 벌리게 되었다. 헌데 그때였다. 느닷없이 이 금관백사가 거의 믿어지지 않는 속도로 번쩍 날아서 그의 목구멍 속으로 들어가 버리는 것이 아닌가? (악!) 백룡생은 순간 그만 비명을 내질렀다. (놈이, 놈이 내 뱃속으로 들어가다니 아아...!) 그러나, 백룡생은 이미 입을 움직일 수도 없게 되었다. 그 금관백사가 그의 입속으로 날아 들어간 순간 그의 입은 이미 허옇게 얼어붙어서 전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 금관백사가 그의 뱃속으로 들어가서 무시무시한 극한의 기운이 그의 몸에 느껴졌기 때문에 그는 거의 기절할 지경이었으며 미칠듯한 심정이 되었다. (나는 이제 곧 죽을지도 모르는데 왜 내 뱃속으로 들어가느냐! 아이고!...) 백룡생은 내심 미칠듯이 그 금관백사에게 나오라고 소리를 질러댔지만 그것은 말이 되어 나오지가 않았고 전혀 소용없는 일이었다. 헌데 바로 그때였다. 백룡생은 갑자기 이번에는 지독한 열기가 얼굴에 느껴지는 것을 느끼고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는 그 괴로운 상황하에서도 놀란눈을 휘둥그레 떴다. 지금 그의 눈앞에는 다시 하나의 이상한 물체가 나타나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거미였다. -- 거미, 백룡생은 이미 여태 살아오면서 많은 거미들을 보아왔다고 할수가 있었다. 그러나 실로 이렇게 커다란 거미는 처음이었다. 이 거미는 그 크기가 무려 주먹만했다. 게다가 전신에는 아주 투명한 붉은 기운이 번지고 있는것이 아닌가? 어찌보자면 이것은 마치 홍옥으로 만들어진 커다란 인조거미를 보는것과도 같았다. 그때, 문득 거미를 바라보던 백룡생의 뇌리에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혹시 그 거미줄은 이 거미가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닐까?) 허나, 그는 곧 다시 내심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굵은 거미줄을 입에서 뽑아내려면 아마도 그 거미는 적어도 크기가 황소만 해야할 것이 아니겠는가? 백룡생은 아직 그렇게 커다란 거미를 본적이 없었지만 내심 그렇게 생각되었다. 이 눈앞의 거미는 비록 겉은 붉고 투명한 색깔이지만 그 크기가 겨우 주먹만하기 때문에 도저히 팔뚝만큼 굵은 거미줄을 뽑아내지 못하리라는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혹시 이 거미는 그 있을지도 모르는 황소만한 거미의 새끼가 아닐까...! 헌데 백룡생의 그러한 생각은 아주 잠깐이었을 뿐 더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괴이하게도 이 붉은 거미 역시 잠시 그를 바라보더니 곧장 스르르 열려진 그의 입속으로 해서 목구멍으로 들어가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으악!) 백룡생은 그만 생각에서 깨어나 벼락치듯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소리는 여전히 말이되어 나오지 않았다. 다만 그의 목구멍을 비롯하여 입안과 뱃속이 미칠듯이 뜨거운 열기에 의해 극심한 고통을 당했으며 게다가 그 주먹만한 물체가 목구멍을 넘어가는 감각은 이루 형용하기 어려운 비참한 것이었다. (내, 내가 결국 이렇게 죽고 마는구나!) 백룡생은 일순 자신이 혼절하지 않는것이 기이하게 생각되었다. 아니, 그것은 조금도 기이할 것이 없었다. 곧이어 그의 뱃속에서 지극히 뜨겁고 차가운 기운이 마구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엄청난 고통을 유발시키기 시작했고, 드디어 그는 즉시 그 엄청난 고통에 혼절하고 말았던 것이다. * * *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백룡생은 혼절에서 서서히 깨어났다. 처음에 그는 자신이 이미 죽은줄로 알았는데 다시 살아나자 아주 기이하게 생각했다. 게다가, 그토록 무섭게 소용돌이를 일으키던 뱃속의 뜨거운 열기나 차가운 기운도 이미 깨끗이 가셔버리고 난 뒤였다. (혹시 그 두마리의 괴물들이 도로 밖으로 나간것이 아닐까?) 백룡생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실로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어째서 자신의 뱃속이 이렇게 편안하며 뜨겁고 찬기운이 하나도 없을수가 있단 말인가? 아니, 뜨겁고 찬 기운은 그의 뱃속에 조금 여운으로 남아 있는것 같았지만 그다지 고통을 주는 정도가 아니었다. 다만 한쪽은 따뜻하고 한쪽은 시원한 느낌을 주니 다소 기이할 뿐이었다. 뿐만 아니라, 전에 그토록 고통스럽던 전신이 아주 쾌적하고 가뿐해져 있었다. 아무런 고통도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이에, 백룡생은 실로 이해할수가 없어서 고개를 다시 갸웃거렸다. 그러다가, 그는 문득 자신이 고개를 움직였다는 생각을 하다가는 일시 놀라 부르짖었다. "앗! 내가, 내가 움직였잖아...!" 동시에, 그는 자신의 말소리가 입에서 정확하게 발음이 되어 튀어나왔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즉시 몸을 벌떡 일으키고 말았다. 순간 그는 아연 눈이 휘둥그래지고 말았다. 하나의 작은 웅덩이안에 쓰러져 있던 그는 어느새 벌떡 일어서서 전신에 아무런 상처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활력이 가득찬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그는 일시 전혀 움직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잠시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이것은 대체 어찌된 영문일까?) 그러다가, 그는 문득 한가지 이유를 생각해 내고는 입가에 곧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알고보니, 알고보니 나는 그 구렁이의 피를 마셨기 때문에 이렇게 살아나게 된 것이로구나!) 백룡생은 이미 구렁이의 피가 보약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구렁이의 피를 마시고 나서 몸이 이렇게 되살아나고 좋아지게 되자 그는 일단 그 구렁이의 피가 아주 귀한 영약이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어, 그는 전에 자신이 구렁이에게 물렸던 어깨부위를 만져보았다. 헌데 그곳은 어느틈엔가 아주 감쪽같이 아물고 나아져 있었다. 전혀 뱀의 이빨자국도 하나도 없을 지경이었다. 백룡생은 이에 대해 더욱 감탄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이, 이건 정말로 대단하구나! 하지만 그 구렁이가 거미줄에 걸려서 벌써 녹아버렸을 텐데 그게 정말 아깝구나!) 그러면서 그는 새삼 구렁이를 잃게되었던 것을 아쉬워 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그의 생각이 치밀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긴 오산이었다. 과연 그가 지금이러한 상태가 된 것은 오직 그 구렁이의 보혈 때문이었을까? 그것은 단연코 아니었다. 백룡생은 전혀 알지 못했지만 여기에는 실로 아주 공교로운 엄청난 기사 가 깃들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처음에 백룡생이 구렁이에게 물렸다가 그 중독이 풀리게 되고 거미줄위에 떨어져서도 죽지않은 것은 역시 그 구렁이의 보혈을 마셨기 때문이었다. 실상 그 구렁이는 천년삼왕을 보호하며 살던 것으로 이름이 바로 묵린독각철가대망이란 전설적인 괴물이었다. 놈은 단숨에 호랑이도 삼킬수가 있으며, 그 맹독을 입으면 그 무엇이라도 죽지 않을수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그 대망은 워낙 움직임이 빨랐기 때문에 이 미련해 보이는 백룡생을 내심 우습게 여기고 있었다. 허나, 그러다가 그놈은 백룡생에게 느닷없이 급소를 물리게 되었고 다시 피를 많이 빨리게 되자 전신의 힘을 잃게 되어서 그 높은곳에서 떨어지게되자 그 충격으로 전신이 토막나게 되었다. 그러나, 백룡생은 몸이 거의 멀쩡했던 것은 그가 비록 아직 전신은 마비되었지만 그 구렁이의 보혈로 인해 몸의 기운이 넘치게 되었고, 또한 구렁이의 몸이 그 충격을 대부분 흡수에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이후에 벌어진 일들은 전혀 구렁이의 보혈과는 상관이 없는 것이었다. 대망의 피가 아무리 보혈이라고는 하나 이렇게 금방 백룡생의 전신을 깨끗하게 낫도록 할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것은 다음의 네가지 천고에 정말로 드문 희귀한 영약들이 작용하여 은연중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그 첫째가 바로 백룡생이 우연히 날아서 떨어져내린 작은 웅덩이의 물이었다. 백룡생은 비록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전혀 몰랐지만, 그가 엉겁결에 꿀꺽꿀꺽 들이켰던 이 웅덩이의 물은 바로 도가에서 지보로 여기는 만년옥장이라는 것이었다. 만년옥장은 역시 희귀한 영약으로 꼽히는 공청석유등이 음양상조지지 등의 특이한 외부의 힘을 받아서 기이하게 변질되는 것으로, 도가에서 말하기를 그 한방울만 마셔도 능히 환골탈태에 이를수가 있다고 하고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 희귀한 만년옥장이 이곳에는 믿을수 없을만큼 많이 고여 있었고 백룡생은 비단 그것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셨을 뿐만 아니라 온몸으로 목욕하고 흡수하기까지 했던 것이다. 그것이 첫번째의 것이고 두번째는 역시 백룡생이 처음에 보았던 그 은은한 황금빛이 빛나는 발가벗은 어린아이였다. 백룡생은 몰론 그것을보고 이상하게 생각을 했지만, 사실 그것은 놀랍게도 만년동자삼이란 것이었다. -- 만년동자삼, 그것은 이른바 산삼이 일만년을 묵어서 영성을 얻어서는 그 모양이 마치 발가벗은 어린아이의 모양을 띤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전설에나 나오는 것으로 이런것이 있기는 거의 불가능한 것이다. 일반에서 말하는 산삼은 천년산삼이 최고이며, 그 이후에는 산삼이 녹아서 없어진다고 했기 때문에 그것을 일컬어 삼왕이라고 말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만일 이 삼왕이 특수한 요건하에 있게되면 그것은 스러지지 않고 무려 일만년을 묵으며 영성을 갖추게 된다. 그 요건이란 것이 바로 만년옥장이었다. 사실, 이 절곡의 내부는 바로 전설의 삼대복지의 하나인 음양상조지지로 각종의 영약이 자라기에 가장 적합한 곳이다. 그런데 그 영기의 힘으로 많은 영약이 생겨나지 않은 까닭은 바로 그 영기가 이곳 만년옥장이 있는곳에 집중이 되어서 외부로 퍼져나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만년동자삼은 이미 완전함 몸을 갖추어서 만년옥장속에 몸을 담그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느닷없이 백룡생이 날아들어서 공교롭게도 깨물었던 곳이 바로 만년동자삼의 발가락 부분이었다. 만년동자삼은 전신에 하나의 상처도 없었는데 백룡생이 그것을 본능적으로 물고 빨게 되자 그 체액이 전부 그의 체내로 빨려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 체력이 전부 그의 체내로 빨려들어가자 오직 남은것은 그 얇은 껍질 뿐이었다. 백룡생이 다시 눈을 떴을때 그 동자는 사라지고 단지 희뿌연 껍질만 남았던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였던 것이다. 이것은 그야말로 백룡생에게는 다시없는 복운이라고 아니할 수가 없었다. 예로부터 천년삼왕은 성형하수오들과 함께 최고의 영약으로 치고 있었지만, 이 만년동자삼은 비록 여태 세상에 나타나지도 않았지만 천년삼왕과는 아예 비교할수도 없는 기이한 것이 틀림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두번째이고 세번째는 바로 그 금관백사였다. -- 금관백사, 그것은 대체 무엇일까? 사실 그것은 고서에도 전혀 나와있지 않은 희귀한 영물이었다. 그것은 일명 천년백사라는 것이 변해서 이루어진 것으로, 이곳의 음양상조지지의 음한기류속에서 살아온 만수의 제왕이었다. 그것은 이미 오랫동안 스스로 수도를 하여 체내에 내단을 함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극한기류와 무시무시한 극독을 가지고 있어서 일단 그것에 닿는 물체는 무엇이든 녹아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백룡생의 몸이 녹아버리거나 상하지 않은 이유는 그보다 먼저 그가 만년옥장을 들이키고 만년동자삼을 복용했기 때문이었다. 바로 그것 때문에 백룡생은 은연중 금관백사의 극한기류와 극독을 이겨낼수가 있었던 것이다. 헌데 대체 이 금관백사는 무엇때문에 느닷없이 백룡생의 뱃속으로 뛰어들었을까? 그 이유는 바로 그놈이 네번째의 기우라고 할수있는 붉은 거미와 함께 천적으로 만년동자삼을 노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붉은 거미, 그것 역시 천하만물이 다 적혀 있다는 사물지에도 나와있지 않은 희귀하기 짝이없을 대괴물이었다. 기실 백룡생은 아니라고 생각을 했었지만, 밖의 거대한 거미줄도 그놈이 쳐놓은 것이었던 것이다. 그러한 것은 가히 믿을수도 상상할수도 없는 일이겠지만 세상에는 불가사의한 일도 많은 법이면 그것은 또한 사실이었다. 이 붉은 거미는 음양상조지지의 극열기류속에서 살아왔으며 역시 극독을 함유하고 있는 그 수명은 얼마나 되는지 짐작할 수도 없다. 전설의 괴물이라는 묵린독각철갑대망이 대번에 그 거미줄에 걸려서 녹아드는 것을 보면 그 극독의 위력을 알만할 것이다. 이놈은 이미 오랫동안 금관백사와 천적이 되어서 이곳에서 살아왔는데, 금관백사는 그 움직임이 빨라서 먹이를 구하는데 용이한 반면 이놈은 그렇지가 않았기 때문에 여태까지 그렇게 거미줄을 쳐놓고 위에서 떨어져 내리는 먹이를 먹으며 살아왔었다. 하지만, 여태 그런일이 전혀 없었지만, 대체 백룡생과 같은 존재가 구렁이에게 빈틈없이 몸이 칭칭 보호되어 떨어져내리고 그 거미줄의 극독에 침습을 당하기는 커녕 오히려 그 도움을 입어서 이안으로 떨어져 내릴줄은 정말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일이었다. 이미 말했듯이, 금관백사와 붉은 거미는 똑같이 이곳에서 만수의 제왕, 만독의 제왕으로 군림하면서 서로가 지극한 천적이 되어 살아왔었다. 그러면서 그들이 노리는 것은 단 하나였다. 그것은 바로 만년동자삼--, 그들은 서로 자신이 먼저 그것을 복용하여 더욱 훌륭하게 되기를 바랬지만 상대를 의식하여 감히 그럴수가 없었다. 만일 한놈이 동자삼을 먹고 그 약효에 취해있는 동안 다른놈이 습격을 가한다면 오히려 목숨만 잃게되기 때문에 그둘은 경계만 취할뿐 감히 그들중 누구도 섣불리 모험을 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제 5 장 노인의 죽음 그런데, 두놈의 사이에는 실로 의외의 느닷없는 사건이 일어났다. 갑자기 백룡생이 나타나 이어없게도 그들이 노리고 있던 만년동자삼을 먹어치운 것이다. 그러자, 여기에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인 것은 역시 금관백사였다. 농은 행동도 빠르기는 하지만 성질도 다소 급했다. 놈은 원래 그 만년동자삼을 먹고 용이 되려는 꿈을 꾸고 있었는데, 허망하게도 그 꿈이 일시에 깨어지려는 찰나에 있자 더이상 참지를 못했다. 그리하여 놈은 즉시 백룡생의 뱃속에 들어가서 그 안에 들어있는 만년동자삼을 복용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자연 놈의 이러한 행동은 붉은 거미의 움직임을 불러일으켰다. 그도 그럴것이, 만일 금관백사가 만년동자삼을 복용한다면 자연 붉은 거미는 놈의 적수가 되지 못해서 죽을것이 뻔하기 때문에 놈으로서는 뒤따라 백룡생의 뱃속으로 뛰어들지 않을수가 없었다. 따라서, 자연 이렇게 되자 백룡생의 뱃속에서는 경천동지할 두마리 괴물이 싸움이 벌어지게 되었다. 만일 백룡생의 몸이 이미 두가지의 지극한 영약을 복용한 상태가 아니고, 두 괴물이 그로인해 기세가 약화된 상태가 아니었다면 아마 백룡생은 그 즉시 육신이 산산이 폭발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 두마리의 괴물은 서로의 극독이 천적이 되어 서로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고, 이어 만년동자삼의 체액과 만년옥장속에서 거의 힘을 쓸수가 없게되자 잠시후에 곧장 백룡생의 뱃속에서 죽어서 녹아버렸고 소화되고 말았다. 이것은 역시 백룡생의 커다란 복연이라고 아니할수가 없었다. 금관백사와 붉은거미의 극독의 기운과 내단은 만일 백룡생이 나중에 무공을 익히게 된다면 상상불허의 공력을 만들어줄 것이고, 설령 그렇지 않더라고 최소한 만독불침의 몸을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백룡생의 뱃속에 은은하게 느껴지는 서늘하고 따뜻한 기운의 정체는 바로 두괴물의 내단이 그의 체내에 응고되어 숨어있는 증거인 것이다. 게다가, 이때 체내에서 치밀한 열기와 한기가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있을 무렵 웅덩이에 고여있던 만년옥장은 하나도 남김없이 그의 피부를 통해 체내로 스며들게 되었으니, 백룡생이 이 한동안에 받은 복연이란 실로 상상도 할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인 백룡생은 이러한 사실을 전혀 모르고 다만 자신의 몸이 이렇게 원래보다 더욱 기운이 왕성해진 것은 오직 대망의 보혈 때문이라고 추정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것은 또한 천하의 기사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백룡생은 일단 그렇게 결론을 내리자 문득 생각이 다른 쪽으로 움직였다. (앗! 그 천년삼왕은 어떻게 됐지?) 그렇다. 백룡생은 자신의 생명의 위협때문에 잠시 천년삼왕의 일을 잊고 있었으나 다시 그 일을 생각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급히 자신의 우수를 펼쳐보았다. 허나 순간, 그는 일순 안색이 대변하고 말았다. 꽉 쥐어진 그의 손안, 거기에는 단지 만년삼왕의 극히 일부분만이 완전히 으스러진채 쥐어져 있는것이 아닌가? 백룡생은 이것을 보고 일순 경악하여 부르짖었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내가 거미줄에 떨어질때 이것은 구렁이와 함께 산산이 부서져 버렸단 말인가?" 사실, 그러했다. 백룡생은 무의식중에 그 높은 절곡의 위에서 떨어져 내리면서도 우수에 쥔 천년삼왕은 놓치지 않으려고 했으나 그가 거미줄에 떨어져 내릴때의 강한 충격으로 인해 그것은 산산이 부서져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할수가 있었다. 백룡생은 이렇게 목숨을 부지한 것만도 실로 기적적인 일인 것이다. 하지만, 백룡생으로서는 이러한 현실을 쉽게 받아들일수가 있을까? 천년삼왕이 없다는 것은 곧 그의 어르신이 죽게된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그리하여, 그는 곧 전신을 덜덜 떨면서 미친듯이 주위를 헤매며 천년삼왕의 여분의 조각을 찾기 시작했다. 이곳은 하나의 작은 광장과도 같은 동굴이었다. 이 동굴의 사방으로는 작은 동굴들이 이어져 있었는데, 이곳의 동굴의 벽돌은 모두가 은은한 금빛을 발하고 있어서 내부는 환하게 밝았던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이곳이 음양상조지지의 핵심부이기 때문이라는 사실에 무관하지 않았다. 그러나, 배룡생은 지금 전혀 그러한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는 급히 자신이 떨어져 내렸던 구멍으로 올라가서 거미줄쪽을 내려다 보았다. -- 거미줄, 거기에는 이미 구렁이의 잔해를 찾아볼수가 없었고 천년삼왕의 부스러기 역시 한점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역시 짙은 안개가 계속되고 있을 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백룡생은 이것을 보고 넋을 놓고 있다가 일순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허나, 결코 눈물만 흘리고 있을 단계는 아니었다. 그는 잠시 그대로 서 있다가 즉시 정신을 번쩍 차리고는 다시 광장안으로 들어와서 샅샅이 뒤져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찾을수가 없자 이번에는 아까의 그 구멍으로 나와서 절벽아래로 기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아직 아래쪽과는 얼마의 거리가 남아있을지 그것은 알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이때 백룡생은 감정이 심한 울분과 번뇌로 가득차 있어서 자신의 안위를 생각할 겨를이 아니었다. 그는 오직 쳔년삼왕을 되찾아야 겠다는 생각으로만 정신이 가득차 있어서 죽음도 아예 도외시한 채, 계속해서 빠르게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를 내려갔을까? 백룡생은 문득 두발에 딱딱한 지면이 닿는것을 느꼈다. 그는 드디어 절곡의 맨 아래에 당도한 것이다. 즉, 거미줄은 기실 맨 아래쪽에서 왼쪽으로 그리 높지 않은곳에 설치되어 있었던 것이다. 단지 이 주위에는 너무도 짙은 안개가 가득 끼어 있어서 그것이 전혀 보이지 않았을 따름이었다. 백룡생은 이어 주위를 돌아다니며 천년삼왕의 부스러기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무려 두시진 남짓이나 이 계곡의 아래를 샅샅이 뒤지고 돌아다니며 찾았으나 아무것도 찾을수가 없었다. 아마 천년삼왕은 심한 충격을 받아서 공중분해 되어버리고 만 모양이었다. 아니면 그 부스러기가 바닥에 떨어져서 완전히 박살이 나 버렸거나, 결국, 백룡생은 천년삼왕을 찾는것을 포기하고 내심 생각하게 되었다. (천년삼왕은 이제 세상에서 없어져 버렸다. 더이상 이곳에서 찾는것은 무용할 것이다. 게다가 어르신께서는 이미 어떻게 되셨는지도 모르고...) 백룡생은 자신의 우수에 들려있는 천년삼왕의 부스러기를 내려다보았다. 이때 주위는 전보다는 상당히 밝아져 있었다. 그것은 지금이 이미 대낮이라는 증거였다. 백룡생이 동굴속에서 혼절하여 보낸 시간이 거의 대여섯시진에 이르렀었기 때문이었다. 백룡생은 자신의 우수에 들려있는 천년삼왕의 부스러기를 내려다보다가 다시 생각했다. (혹시 지금 바르게 달려가면, 이것이라도... 혹시 어르신의 병환을 되돌릴 수 있게 하지 않을까?) 그리하여, 백룡생은 드디어 발길을 돌려 오매촌을 향해 줄달음을 치기 시작했다. * * * 백룡생이 오매촌의 자신의 집에 도착한 것은 그날 오후 무렵이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집에 미쳐 들어서기 전에 문득 기이한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주위가 너무도 조용한것 같다는 것이었다. 물론 전에도 그의 집에는 사람 떠드는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아서 매우 조용했지만 지금처럼 이런 적막한 느낌은 들지 않았었다. 이 조용한 느낌은 아주 기이하여 마치 그의 심장을 옥죄고 불길한 예감을 불러일으켰다. 따라서, 백룡생은 미처 안으로 들어서기도 전에 심장이 마치 터질듯이 두근두근 거센 박동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백룡생이 마악 방문의 앞에 이르렀을 때였다. 돌연 방문이 저절로 열리며 안에서 한 사람이 느릿하게 걸어나았다. 그는 다름아닌 바로 어제저녁에 왔었던 무당파의 도장 현진자였다. "...!" 현진자는 백룡생이 마악 도착하여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것을 보며 묵묵히 두눈가득 기이한 빛을 떠올렸다. 그런데, 백룡생이 보기에 그 눈빛은 실로 기이했다. 마치 동정이 어린듯도 하고, 게다가 심한 멸시와 심지어 짜증까지 겹쳐서 복잡한 감정이 뒤엉켜 있는것 같았다. 백룡생은 그 시선을 본 순간 극심한 불길한 감정에서 헤어날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도 모르게 급히 물었다. "저, 저희 어르신은 어떻게 되셨죠?" 현진자는 잠시 더 백룡생의 얼굴과 차림새를 살핀 다음에 다소 귀찮다는듯이 고개를 돌렸다. 이어 그는 내뱉는듯한 음성으로 차갑게 말했다. "안으로 들어가 봐라!" "...?" 백룡생은 그의 그러한 태도에 어떤 결정적인 예감이라도 받은듯이 일순 전신을 부르르 경련을 일으키다가 빠르게 방문을 밀치고 안으로 들어갔다. 순간, 백룡생의 신형은 갑자기 급살이라도 맞은 사람처럼 그자리에 급작스럽게 멈춰서고, 이어 그의 두눈은 찢어질듯이 부릅떠졌다. 동시에, 그의 두눈에서는 언제부턴가 강물같은 눈물이 좔좔 쏟아져내리기 시작했다. 그렇다! -- 백노인! 그는 이미 죽어 있었다. 노인은 원래의 그 자리에 역시 반듯하게 누워 있었는데 그가 이미 죽은 몸이라는 것은 누구라도 쉽게 알수가 있는 일이었다. 우선 그의 육신은 똑바로 누운채 뻣뻣하게 굳어져 있었고, 빛깔은 회백색으로 변해 있어서 이미 차디차게 변한지 오래인것 같았다. 몰론 가슴의 기복이나 심장의 박동등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백룡생은 그제서야 자신이 이곳 가까이에 이르렀을때 느꼈던 그 괴이한 적막감과 불길한 예감의 정체를 확실하게 알수가 있었다. 인간의 이 육감이라는 것은 가히 불가사의하다고 말할수가 있었다. 노인은 과거 많은 나날을 밖으로 둘아다니며 집에 머물러 있었던 시간은 절반도 되지 않았었다. 백룡생은 항상 혼자서 지내게 되었고 그러한 것은 이미 습관화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과연 그는 혼자서 살아온 것일까? 아니었다. 비록 그가 혼자서 살아온 날이 더 많았을 지라도, 이 노인은 기이하게도 그에게 깊은 의지가 되고 안식처가 되었으며 항상 그의 곁에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기 때문에 그는 여태 외로움이니 적막한 감정을 전혀 느껴보지 못했었다. 그러나, 백룡생은 지금은 심한 외로움과 적막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노인은 정말로 세상을 떠나고 그의 곁을 영원히 떠나가 버린 것이란 말인가? 백룡생은 계속해서 멍청하게 선체 하염없는 눈물을 흘러내렸다. 그러다가 그는 문득 흠칫하고는 중얼거리며 노인의 몸 위에 천천히 무너져 내렸다. "제가, 제가 너무 늦게 왔기 때문에... 그래서... 그래서 어르신은 이렇게 돌아가시고 말았군요...?" 과연, 노인의 육신은 매우 차가왔다. 평소에 따뜻하고 온화하던 노인의 육신은 이미 냉정하고 얼음처럼 차갑게 변모해 있었다. 그리고 딱딱하게 굳어져 있었다. 백룡생은 노인의 차디찬 얼굴을 어루만지며 다시 탄식어린 음성을 흘러내려고 했다. 헌데 문득 그의 뒤에서 한줄기 싸늘한 음성이 들려왔다. 그것은 바로 현진자의 음성이었다. "그는 얼마전에 죽은것이 아니라 바로 네가 어젯밤에 여기를 떠난후에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서 죽었다. 그러니 그가 죽은 것은 너와는 상관이 없는 일이다!" "..." 백룡생은 문득 고개를 돌려 현진자를 돌아보았다. 현진자는 이미 방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그가 이미 오랫동안 시신을 지키고 있었던 것은 매우 고마운 일이라도 할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의 표정은 싸늘했다. 한마디로 그가 백룡생을 위로하기 위해 한 말이 아니라는 것을 느낄수가 있었다. 현진자는 여기에서 백룡생이 자기자신을 지나치게 자학하고 비관한다면 자신이 나중에 그를 데리고 다니는데 불편함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한 것이다. 그리고 그 말은 옳았다. 노인의 시신은 이미 죽은지가 오래된 것이었다. 백룡생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가 다시 노인에게로 고개를 돌리려고 할 때, 문득 현진자의 싸늘한 음성이 다시 들려왔다. "그는 죽을때까지도 네걱정을 많이 했다. 죽는 모습을 네게 보이고 싶지 않아서 너를 보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너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 "사람이라는 것은 원래 왔던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네가 깊이 생각해보라고 했다. 그리고 네게 울지 말라고 했다!" (울지 말라고?) 백룡생은 문득 그말을 듣자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여태 노인의 말을 무조건적으로 옳다고 인정해 왔지만 다만 그가 죽은 지금만은 좀더 다른 생각이 들었다. 그는 여태 많은 사람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았고 또한 장례식도 보아온 처지였다. 그럴때마다 그가 보기로는 울지 않는 경우가 없었다 자신의 가장 친한 사람이 죽었는데 어찌 눈물이 나오지 않을수가 있으랴. 그러다가 그는 문득 다시 생각했다. (혹시... 그것은 어르신이 아직 죽지 않았다는 말이 아닐까?) 백룡생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서 다시 노인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나, 노인의 육신은 이미 완전한 시신이었다. 거기에 더이상 두고볼 여지는 없었다. 백룡생이 다소간의 희망을 가지고 가져온 쳔년삼왕의 부스러기는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임에 분명했다. 하지만, 그런것을 볼수록 웬지 백룡생은 더더욱 반대로 노인이 아직 죽지 않았다는 생각이 머리속을 완전히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그는 문득 안색이 평온하게 변했고, 이어 고개를 뒤로 돌려 현진자에게 말했다. "저는 울지 않습니다. 저의 어르신은 아직 죽지 않았으니까요." 그말에, 현진자는 일순 심하게 안면을 찌푸렸다. (뭐라고, 이 자식이...!) 현진자는 일시 백룡생이 너무도 극도의 슬픔에 젖은 나머지 잠시 머리가 이상해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만일 이대로 둔다면 백룡생은 저 시신을 묻지말고 그대로 두자고 할지도 모르는 일이 아닌가? 이에 흠칫해진 현진자는 버럭 소리를 지르며 말했다. "그는 이미 죽었어 이놈아! 노도가 그런것 하나 분간하지 못할줄 아느냐?" 그렇다. 현진자는 무림의 고수로서 인체의 움직임에 대해 거의 환하게 일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노인이 죽었는지 죽지 않았는지 모를리는 없는 것이다. 허나, 백룡생은 다만 웃을뿐 대꾸하지 않았다. 이에, 현진자는 더욱 큰일났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는 즉시 노인의 시신을 들고는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땅속에 묻힌 모습을 보여주어야 백룡생이 실감을 할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백룡생은 묵묵히 그 뒤를 따랐다. 펑! 뒷산의 양지바른 곳에 이르자 현진자는 일순 땅바닥을 향해 일장을 휘둘렀다. 그러자, 사방으로 먼지가 자욱하게 날리며 그곳에 깊이 두자 정도의 웅덩이가 길쭉하게 패이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백룡생으로 볼때는 놀라운 장력이었다. 이어, 현진자는 미리 준비한 관속에 노인의 시신을 넣고 그 관을 웅덩이 속에 묻기 시작했다. 이어 그는 옆에서 멍하니 서있는 백룡생을 향해 말했다. "내가 흙을 먼저 뿌려라!" 그말에, 백룡생은 단지 주춤거릴뿐 전혀 흙을 뿌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것을 보고 현진자는 일순 차갑게 냉소를 흘리더니 우수를 가볍게 휘저었다. 그러자, 주변의 흩어졌던 흙들이 일시에 모이더니 금세 그 관위를 덮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이것을 보고 백룡생은 일순 으악 하고 비명을 내질렀다. 그것은 현진자의 놀라운 절기에 경악한 것이 아니라, 바로 노인의 관이 흙에 완전히 뒤덮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이어, 그는 잠시 멍하니 반쯤 만들어진 봉분을 바라보더니 별안간 눈물을 주르르 흘렀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간절한 표정으로 현진자에게 이렇게 묻는 것이었다. "정말로, 정말로 저의 어르신은 죽은 것일까요?" 현진자는 일순 그 질문에 분통이 터질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는 한편으로는 이 어리석은 소년이 매우 불쌍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하여 그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그것은 사실이다!" 이때, 백룡생은 다시금 눈물을 주룩주룩 흘렸다. 그러다니 돌연 품속에서 뭔가를 꺼내서 얼른 봉분을 파헤치고 그속에 집어넣는 것이었다. 이것을 보고 현진자는 다소 의아해져서 물었다. "그건 뭐냐?" 백룡생은 파헤쳤던 봉분을 다시 쌓아올리고는 소매로 눈물을 닦으며 대답했다. "천년삼왕이예요." "뭐라고?' 현진자는 일시 놀라 눈을 부릅떴다가 일시 곧 눈살을 심하게 찌푸렸다. 그는 비단 천년삼왕이 있을리가 없을뿐만 아니라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것일리는 없을 것이기에 생각했다. (이녀석은 비단 어리석을 뿐만 아니라 거짓말도 밥먹듯이 하는 녀식이로구나! 허나, 그렇다고 내가 녀석을 굳이 상대해줄 필요는 없지.) 현진자는 백룡생이 노인의 말이 착오가 없었다는 것을 일부러 증명하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더이상 말하기 않았다. 그것을 보고 백룡생은 고개를 돌리며 다시 말했다. "이건 절곡에서 가져온 건데 이래야 할것 같았어요. 그리고..." :..." "저는 이제 울지 않겠어요." 그말에, 눈살을 찌푸리고만 있던 현진자는 다시 흠칫하여 물었다. "그건 왜냐?" 그는 혹시 백룡생이 다시 노인이 아직 죽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다행히 그의 생각은 오산이었다. 백룡생은 잠시 몽롱한 생각에 잠기듯이 이렇게 대답했던 것이다. "저의 어르신의 말은 옳았어요. 사람은 한번은 죽는 것이니 그것이 원래 왔던 곳으로 되돌아 간다면 울 필요가 어디에 있겠어요?" 이어, 그는 애써 얼굴에 명랑한 표정을 짓는 것이었다. 이 백룡생의 얼굴은 본디 준수했다. 그런데 그가 이런 표정을 짓자 매우 어리석고 바보처럼 느껴졌다. 그리하여 현진자는 내심 생각했다. (너는 어리석으니 그런 단순한 말에도 쉽게 위안이 되는가 보구나!) 이어 그는 말없이 주위에서 흙을 떼어다가 봉분의 뒤에 입히기 시작했다. 백룡생도 그것을 도왔고 어느새 하나의 완전한 봉분은 완성되었다. 그러자, 백룡생은 한참동안이나 그앞에 꿇어앉아 있었다. 그 노을빛은 금방 만들어진 봉분과 그앞에 꿇어앉은 백룡생의 몸을 휘감고 일시 장엄한 기운을 뿌리는 것 같았다. 허나 그것도 잠시, 그 아름답던 노을빛도 일시 스러지고 주위에는 점차 땅거미가 몰려들기 시작했다. 사방이 어두워오자 백룡생은 그제서야 신형을 일으켰다. 그것을 보고 현진자가 얼른 입을 열었다. "이제 다 됐으면 그만 가자!" 백룡생은 고개를 돌리다가 일시 눈이 휘둥그래졌다. "벌써 길을 떠나자는 말입니까?" 현진자는 싸늘하게 대꾸했다. "그렇다! 너는 다른 용무라도 있단 말이냐?" 백룡생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런것은 없지만, 이미 날이 저물었으니 일단은 오늘밤에 집에 들어가서 묵고 내일 떠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현진자는 그말에 즉시 눈살을 심하게 찌푸렸다. 그는 사실 어젯밤에 혼자서 시신을 지키느라 기분이 과히 좋지가 않았는데 더이상 그방에 들어가서 머물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을 보고 백룡생은 잠시 생각하더니 다시 말했다. "그럼 그렇게 하세요. 제가 빨리가서 짐을 꾸며가지고 나올께요!" 이어, 그는 빠르게 집으로 달려갔다. 그것을 보고 현진자는 천천히 아랫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가 거의 모옥의 부근에 이르렀을때 이미 백룡생은 간단한 옷보따리를 해서 짊어지고는 나와 있었다. 그리고는 앞으로 걸으면서 자꾸만 자신이 십여년간 살았던 정든 모옥을 바라보곤 했다. 현진자는 그것을 보고 즉시 걸음을 빨리했다. 그러자, 백룡생도 하는수 없이 앞만 보고 빠르게 그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 * * 그날 밤, 두사람은 오매촌을 떠나서 밤새도록 길을 걸었다. 오매촌과 읍성 사이의 거리는 비록 백여리에 불과했지만 일반 사람이 다니기에는 길이 매우 거칠고 험했다. 다행히, 백룡생의 두 다리는 튼튼했고 거의 피로를 몰랐다. 그는 거의 달음박질을 하듯이 현진자의 뒤를 따랐고, 마침내 그들은 새벽녁에 감방 읍성에 도달하게 되었다. 이때 그들은 이미 이틀밤을 잠을 자지 못한 상태였다. 현진자는 읍성으로 들어가자 작은 객점을 하나 찾아서 방을 하나 구해가지고는 두 사람이서 잠을 자면서 그간의 피로를 풀기 시작했다. 그러는 가운데 두 사람 사이에는 거의 대화가 없었다. 현진자는 본래 말이 적은 사람이었고 백룡생 또한 거의 말은 없었으나 행동만은 눈치가 빨라서 굳이 현진자가 말할 필요를 느끼지 않게 했다. 백룡생은 과거 그가 노인에게 시중을 들어드리듯이, 현진자의 옷을 받아서 벽에 걸었고 점원에게 말해서 발씻을 물을 대령하였으며, 그가 식사를 끝내고 잠자리에 들자, 자신도 이어 서둘러 식사를 대충 마치고 옆에 있는 다른 침대위에 몸을 눕혔다. 그리고는 곧장 깊은 잠에 빠져들어갔다. 헌데, 백룡생은 비록 금방 잠이 들었지만 정작 먼저 침상위에 오른 현진자는 단지 눈을 감고 있었을 뿐 쉽게 잠들지 못했다. 그는 이번에 백노인의 죽음을 보고온 뒤로 갑자기 마음속에 번뇌가 많아진 느낌이었다. 그리고, 비록 말을 하지 않고 내색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무림의 고수답게 이 백룡생의 몸이 전날 처음에 보던것과는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곰곰히 속으로 생각했다. (이녀석의 몸은 갑자기 활력으로 가득차게 된것 같다. 무공을 모르는 일반인으로서 백여리의 산길을 걸어왔는데도 지치지 않는 녀석은 이녀석밖에는 없을 것이다. 대체 이녀석은 그날 저녁에 천년삼왕을 캐러가서 무슨 변고를 겪은 것이 아닐까?) 현진자는 문득 눈을 떠서 옆에서 평온한 기색으로 잠을 자고 있는 백룡생의 준수한 얼굴과 이미 잘 다져진 균형잡힌 골격을 바라보았다. 겉보기에는 백룡생은 무공을 익히기에는 가히 상승의 재목이라고 말할수가 있을 것이다. 허나, 현진자는 다시 고개를 내저었다. (저녀석은 이미 나이가 차서 지금부터 무공을 배우기는 어렵다. 게다가 머리가 저렇게 멍청하니 어떻게 무공을 가르칠수가 있단 말인가? 만일 그러자면 나는 자연 피로에 피로를 더하게 되고 번뇌를 더하게 될 뿐일 것이다.) 현진자는 이어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 (저녀석은 마침 제법 부려먹기가 좋으니, 나는 애초의 약속대로 다만 몇년간 그를 데리고 있다가 내보내면 될 것이다. 그를 무당파의 제자로 삼아서는 안된다!) 이어, 그는 마음을 정하고 잠을 청하기 시작했다. 제 6 장 강상풍운 백룡생이 잠에서 깨어났을 때에는 이미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저녁무렵이었다. 백룡생은 내심 아차하고 벌떡 일으켰다. 아니다 다를까, 현진자는 이미 자리에서 일어나서 침상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눈을 감고 있었다. 백룡생은 그가 만일 점심떼에 깨어났었다면 지금까지 기다리느나 매우 시장할 것이라도 생각을 하면서 심한 죄송스러움을 느끼고 얼른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점원을 불러서 세숫물을 가져오게 하고는 식사를 방안으로 들고오게 했다. 이어, 그가 세숫물을 들고 방안으로 돌아갔을 때였다. 현진자는 이미 가부좌를 풀고 눈을 뜬채 침상위에 편안 자세로 앉아 있다가 그를 향해 입을 열었다. "너는 이전에 전혀 무공을 배운적이 없느냐?" 이것은 현진자가 다시한번 확인해본 말이었다. 백룡생은 즉시 고개를 거였다. "예, 저는... 무공이라는 말은 가끔 들었지만 아직 전혀 그런것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도장께서는 달리 무슨 분부라도 계십니까?" 현진자는 그말을 듣고 내심 역시 그렇군 하고 생각하고는 싸늘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그런것은 없다!" 이어, 그는 침상위에서 내려와서 세숫물에 손을 담그고 씻기 시작했다. 이 세숫물의 온도는 적당히 따뜻했고 그 양도 알맞았다. 기실 백룡생은 비단 모옥에서 뿐만 아니라 가끔 죽은 노인의 뒤를 따라서 강호를 떠돌기도 했었기 때문에 이렇게 시중을 드는 일이 훤했다. 그때에는 백룡생이 노인을 매우 존경하여 시중에 정성을 다했기 때문에 자연 이러한 세심한 배려가 습관처럼 몸에 붙게 되었다. 아마 이렇게 시중을 잘 들어주는 사람은 천하에서 그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이에, 현진자는 내심 생각했다. (어리석은 녀석이 이런 천박한 일을 하니 과연 잘 어울리는군!) 이어 그는 내심 가벼운 코웃음을 날렸다. * * * 저녁식사를 마치고 나자, 현진자는 다시 길을 재촉하자고 했다. 사실 원래는 기왕에 날이 저물었으니 이 객점에서 하룻밤을 더 머무르고 다음날 길을 떠날수도 있었으나, 현진자는 공연히 그렇게 하기가 싫었다. 그는 이상하게도 백룡생만 보면 짜증이 일어서 백룡생이 다시 하룻밤을 편하게 하는것을 두고볼수가 없다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그는 자신의 행적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발길을 떠나는 것은 적당하다고 할 수가 있었다. "다시 객점에 들릴일이 없을 테니 될 수 있는 한 건량을 많이 준비하도록 해라!" 현진자는 말과 함께 품속에서 은자 닷냥을 꺼내서 백룡생에게 건네주었다. 백룡생은 그것으로 객점의 계산을 치른뒤 가능한한 육포나 어포등의 마른 고기를 많이 사서는 등뒤에 잔뜩 짊어매었다. 그렇게 준비를 하고나자, 현진자는 기다리고 있다가 이윽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번에 그의 발걸음은 더욱 빨랐다. 때문에 백룡생은 등에 많운것을 짊어매고서도 거의 뛰듯이 그뒤를 따라야 했다. 하지만 그는 피로한 것을 몰랐고, 마음속으로도 전혀 불평하는 기색이 없었다. * * * 그 후, 두 사람은 현진자의 말 그대로 거의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계속해서 북쪽으로 나아갔다. 구령산맥에서 무당산이 있는 호북성까지는 무려 수천리의 길이었다. 비록 사람이 하루에 백여리를 가더라도 족히 한달은 걸리는 여정이었다. 그러나, 현진자는 자신이 신법을 펼쳐서 인적이 드문 지름길을 택해서 길을 재촉했기 대문에 더욱 빨랐고, 또한 앉아서 음식을 먹거나 동굴등지를 찾아서 잠시 수면을 취하는 경우 외에는 쉬지않고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기 때문에 두사람은 무려 하루에 이백여리를 갈 수가 있었다. 이것은 현진자로 말하자면 당연하다고 할수가 있겠지만, 전혀 무공을 모르는 백룡생의 입장으로 본다면 가히 놀라운 속도라고 할수가 있었다. 게다가 그는 그렇게 뛰듯이 걸으면서도 거의 피로한 기색을 드러내지 않으니 함께 길을 재촉하는 현진자 조차도 은근히 기이하게 생각할 정도였다. 몰론 그것은 백룡생이 천생으로 몸의 근골이 튼튼하고 건강할 뿐만 아니라 그 절곡에서의 기연을 얻었기 때문에 자연히 나타나는 현싱이었다. 단지 아직 그는 물공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체내에 무한한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사용하지 못했고, 그가 지금 덕을 보는 것은 무한한 능력에 비해 세발의 피정도 밖에는 되지 않는 형편이었다. 물론 백룡생 자신은 자신이 대망의 보혈을 마셨기 때문에 몸이 좋아진 것이라고 오해하며 은근히 좋아하고 있었다. 어쨌든 그렇게 해서 두사람은 대략 십여일을 계속해서 바삐 나아갔다. 현진자는 기왕에 이 귀찮을 일을 마무리짓기 위해서 하루빨리 자신의 거처로 되돌아갈 욕심으로 전혀 강호이 일에 끼어들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본래 일단 강호에 나서면 사마외도를 다소 응징하고는 했었는데, 지금은 다소 그러한 무리들을 만나더라도 오히려 그가 피했고, 일부러 그러한 무리들이 없는 곳으로 더군다나 밤중을 택해서 길을 가는 경우가 많았으니 자연 거의 사건에 부닥치지 않게 되었고 그들의 행로가 빨라졌다. 그리하여 그들은 십여일을 나가간 끝에 드디어 중원의 대륙을 가로지르는 장강의 어귀에 도달하게 되었다. -- 장강, 그것은 일명 양자강이라고 불리운다. 본래 중원에는 두개의 거대한 강이 있는데 그중 하나인 황하강은 북쪽에 위치하고 있고 물살이 급하기 때문에 그 물이 항상 누렇고 혼탁했다. 그러나, 이 장강은 물살이 비교적 완만하고 강의 폭도 넓으며 물빛이 맑아서 일명 대륙의 젖줄이라고 불리우는 것이다. 실제적으로 이 장강이 있으므로 해서 중원의 모든 농사가 이루어지고, 모든 사람이 먹고 살아갈수가 있으니 장강은 중원의 보배라고 할수가 있을 것이다. 이 장강은 앞에서 말했듯이 그 강폭이 넓은곳은 얼마나 넓은지 마치 망망대해를 연상시킬 정도였다. 그리고, 그 폭이 작은 곳도 대략 십여리에 달할 정도였다. 물론 사람을 싣고 나르는 나룻터가 있는 곳은 강폭이 다소 좁은 곳이었다. 요 십여일 동안 거칠게 산속을 걸어온 두사람의 행색은 다소 초라한 모습이었다. 그들은 하나의 나룻터에 도착하자 사공을 불렀다. "강을 건너갈 배가 있소?" 현진자가 그렇게 묻자, 사공은 그와 옆의 건장한 체격의 백룡생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곧 고개를 거이며 대답했다. "예, 허나 손님이 아직 덜 찼으니 잠시 기다려야 겠는뎁쇼?" 그는 말을 하면서 한쪽의 물가를 가리켰다. 거기에는 지금 비교적 작은 배 하나가 물위에 떠서 정박되어 있었다. 현진자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스스로 사공에게 게산을 치룬뒤 백룡생과 함께 배 위로 올랐다. 그리고는 아무말 없이 배의 한족 구석에 가서는 주저앉았다. 백룡생 역시 묵묵히 그의 뒤에 가서 시립하듯이 섰다. 그러나, 사실 백룡생은 강남에 살면서도 장적 배를 타본적은 아직 한번도 없었는지라 속으로는 마음이 매우 두근거리고 있었다. 장강의 바람은 산들거리고 그에따라 물길이 일어 그들이 타고 있는 배는 가볍게 일렁거렸다. 그러자, 그에 따라서 백룡생의 마음도 이리저리 일렁이는 꼴이었다. 백룡생은 아직 배를 타보지 않아서 배가 물위에 떠서 이러저리 일렁이자 매우 신기한 표정이 되었다. 그러나, 현진자의 태도가 워낙 싸늘했으므로 그는 감히 감정을 드러낼수가 없어서 다만 가만히 서서 천천히 주위를 둘러볼 뿐이었다. 이때 이 배의 위에는 이미 그들 외에도 몇몇사람이 더 타고 있었다. 그 무리는 대략 대여섯개로 구분되었다. 그중 서너개의 무리는 장삿군이나 서생들로 보였고, 나머지 두개의 무리가 돋보였다. 나머지 두개의 무리중의 하나는 등과 허리에 각각 칼과 기형병기를 비켜맨 비교적 흉흉한 인상의 장정들이었다. 그들은 대여섯명이 한곳에 모여 있었는데 그들에게서 풍겨나오는 음험한 기운이 주위를 짓눌러서 사람들은 그들이 있는 주위에는 가까이 가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무리가 아니라 단 한명의 검객이었다. -- 청포검객, 그는 나이가 대략 스물다섯정도 되어 보였고 등뒤에는 한자루의 검을 우측에서 좌측으로 비켜매고 있었다. 지금 강바람이 그의 청포를 가볍게 휘날리고 있었는데, 뱃머리에 우둑 서있는 그의 모습은 아주 싸늘한 검기가 어려 있는것 같았다. 그 모습은 아주 인상깊은 것이었기 때문에 백룡생은 비교적 자세히 그를 바라보게 되었다. 헌데 그는 비록 용모는 준수했지만 왼쪽팔이 없는 외팔이 검객이 아닌가? 그것은 그의 왼쪽 옷소매가 헐렁하다는 것으로 능히 짐작할수가 있었다. 이것을 보고 백룡생은 내심 탄식하여 생각했다. (그가 만일 외팔이가 아니었다면 더욱 멋있었을 텐데 실로 안타까운 일이로구나!) 이렇게 이미 이 배에는 수십명의 사람이 타고 있어서 배는 거의 다 찬 셈이었다. 그러나, 사공은 보다 많은 사람이 타기를 바라는지 아직 출발하지 않고 있었다. 하긴 그로서는 한사람이라도 많이 태우는 것이 유리할 것이다. 허나 그때, 갑자기 흉흉한 사내의 음성이 고막을 찢었다. "이봐 사공! 그만 출발하는게 어때? 계속 이렇게 시간을 끌거야--!" 그는 이렇게 소리친 다음에 주먹으로 배위를 세차게 두들겼기 때문에 즉시 모든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자는 바로 흉악한 인상의 여러명의 장정들중 하나였다. 이때, 그말에 사공이 할 수 없다는듯 천천히 걸어서 배위로 올라왔다. 그리고 마악 정박시킨 밧줄을 풀고 노를 저으려고 할 때였다. 돌연 언덕위에서 누군가의 크게 소리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배를 잠깐 멈춰요!" 그것은 의외에도 맑고 고운 여자의 음성이었다. 때문에 사공은 물론 배위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의아해하여 시선을 그쪽으로 돌렸다. 바로 그 순간, 그들의 눈앞에는 마치 세개의 인영이 기다란 선을 긋듯이 달려오더니 마악 떠나려는 배의 앞에 이르렀다. 사람들은 일시 가볍게 놀랐다. 이 세사람의 신법이 실로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보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들중 한명은 중년인이었지만 다른 두명은 이제 겨우 십팔세나 되었을까한 아름다운 용모의 소녀와, 그보다도 나이가 어린 십오세 가량의 소년이 아닌가? 아마도 방금전의 크게 소리친 사람은 이 십팔세 가량의 미모의 소녀인것 같았다. 그녀는 마악 배앞에 이르렀을때 다소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 이 배는 이미 밧줄을 풀어놓고 노를 젓기 시작했기 때문에 배앞이라고는 하나 이 배는 지금 뭍에서 벌써 삼사장이나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사공이 다시 배를 정지시키기가 귀찮아서 태우지 않으려고 하는 것 때문인것 같았다. 그것을 보자, 이 일신에 자의를 걸친 소녀는 고운 아미를 살포시 찌푸리며 다소 난색을 지었다. 그리고 소리쳤다. "배를 세우라고 했는데 내말이 안들리나요!" 동시에, 그녀의 몸이 돌연 허공으로 제비처럼 날렵하게 날아올랐다. 이어 그녀의 몸이 허공에서 우아한 곡선을 그리는가 싶더니 몇차례 공중돌기를 하다가 어느새 사뿐하게 배위에 내려서는것이 아닌가? 이때 배는 벌써 사오장이나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 일시에 크게 감탄하여 박수갈채를 아끼지 안항ㅅ다. 그리고는 그들은 이어 나머지 한명의 소년과 중년인이 행동이 궁금해졌다. 허나 이때, 그 중녀인은 벌써 소년을 품속에 안고 이쪽을 향해 신법을 날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대체 어떠한 신법을 펼쳤는지 미처 알아보지도 못했는데 어느새 그의 신형은 가볍게 뱃전에 내려서고 있는것이 아닌가? 게다가, 더더욱 놀라운 것은 그 자의소녀가 뱃전에 내려설 때는 다소의 지농이 일어서 배가 조금 기우뚱해졌었지만 그 중년인은 소년을 안고 내려섰는데도 거의 기척이 일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 일시 감탄을 할 생각도 잊어버렸다. 이 중년인의 신법은 마치 일직선을 그은 것처럼 깨끗하여 그는 필시 강호의 무림고수가 분명하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그들이 내려서자 비로소 그들의 용모를 자세히 살폈다. -- 중년인, 그는 일신에 매화무늬가 수놓아져 있는 장삼을 걸치고 있었고 허리춤에는 한자루의 장검을 차고 있었는데 그 용모가 매우 청수하고 위엄이 다소 서려 있었으며, 게다가 그의 두눈에서는 가끔씩 번갯불같은 신광이 폭출되곤 했다. 이는 그가 무림에서 보기드문 절정고수라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 옆의 어린 소년은 역시 총명해 보이고 영준하였는데, 그 용모가 중년인의 것과 닮아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 부자지간이나 되는것 같았다. 또한 먼저 신법을 날렸던 자의소녀 역시 그 중년인의 딸인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런데, 백룡생은 한쪽에서 잠자코 서서 이를 관전하다가 문득 한가지 기이한 점을 발견했다. 현진자가 문득 그들을 보더니 다소 신형을 멈칫하는 기색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백룡생은 이것을 보고, 이 현진자는 그들과 안면이 있는데 나서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다소 망설이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사실 그의 추측은 옳았다. 이때, 자의소녀는 곧장 신법을 날려가서 사공을 향해 항의를 하는 중이었다. 그녀는 날렵한 경장차림으로 자의를 걸치고 허리춤에는 한자루의 장검을 걸치고 있었는데 그 능파선자처럼 아름다운 그녀의 얼굴에는 한가닥 차가운 노기가 서려 있었다. "이봐요! 나는 배를 세우라고 했는데 당신은 왜 그냥 출발했죠? 우리와 시비를 걸 생각이라도 있나요?" 그녀는 아주 사나운 기색으로 따져 물었다. 사실 그녀가 방금전에 펼친 신법은 그녀로서는 다소 모험을 한 것으로, 만일 그녀가 성공하지 못했다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당할뻔한 일이었던 것이다. 이에 사공이 알굴색은 매우 무안하게 변모했다. 더욱이 방금전에 이들 삼인의 무공을 보았던 터라 그는 아주 절쩔매며 변명했다. "죄, 죄송합니다. 워낙에 배안의 손님들이 빨리빨리 가라고 재촉을 하는 터라 소인은 세분은 다음에 오시라고 말씀을 드리려다가..." 사공이 얼굴을 붉히며 변명을 하는 것을 보고 이때 중년인이 은은한 음성으로 소리쳐서 자의소녀를 말렸다. "불이야! 그만 되었으니 어서 가기나 하자!" 백룡생은 그말을 듣고 이 자의소녀의 이름이 바로 불이라는 것을 알수가 있었다. 사실 여인의 이름은 은밀한 내용에 해당되어 거의 부르지 않는것이 통례이나, 일부러 부르기 위해 지은 이름이라면 조금 달라질 것이다. 바로 이 불이라는 이름 역시 그런 의미로 지어진것 같았다. 그러니까 붙이는 첫번째 여아를 낳았을때 다음에는 남자아이를 낳게되라고 그렇게 여야의 이름을 짓고 부르는 것이다. 그런 경우는 제법 많았으므로 백룡생은 즉시 알수가 있었다. 자의소녀는 중년인의 말을 듣자 잠시 더 사공을 싸늘하게 노려본 다음에 곧장 몸을 돌려 중년인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그러자, 나이어린 소년이 그녀를 반기며 다소 장난스런 음성으로 이렇게 말했다. "누나, 이제보니 아주 대단한데? 게다가 경공술도 아주 늘고..." 거기에는 감탄의 기색보다는 다소 비웃는 기색이 더욱 짙게 들어 있었다. 사실 강호의 여인으로써 사납게 변하는 것은 어쩔수가 없지만 함부로 무리를 해서 무공을 펼치는 것은 자칫하면 주화입마를 초래하기 때문에 삼가야 하는것이다. 때문에, 자의소녀의 말에 안색이 금방 새빨갛게 변하면서 소리치며 그에게 달려들었다. "운비, 너 또 이럴래?" 소리침과 동시에 그녀의 몸이 소년의 앞으로 다가들어 우수를 기이하게 흔들었다. 그러자, 일순 허공에 그녀의 아름다운 손그림자가 어지럽게 난무하더니 대번에 소녀의 옷자락을 휘어잡아가는 것이 아닌가? 이로써 사람들은 이들이 아버지와 아들 딸의 관계라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소년은 자의소녀의 공격이 빠르게 닥쳐오자 당할수가 없는듯 급히 머리를 숙이고 중년인은 뒤로 숨었다. 그리고는 다소 엄살어린 음성으로 말하는 것이었다. "아버지, 누나좀 말려줘요! 이 운비는 그녀에게 맞아죽겠어요!" 그 태도에는 어리광이 가득했다. 아마도 이 중년인은 소년을 매우 귀여워하는것 같았다. 중년인은 그말을 듣자 즉시 자의소녀를 향해 나직하게 꾸짖었다. "불이, 또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썽을 피우려고 하는구나! 나이가 들어서 이제 처녀가 되었으니 시집갈 생각을 해야지. 그렇게 말괄량이짓을 하면 대체 누가 너를 데려가려고 하겠느냐?" 그말에, 자의소녀는 다소 풀이 죽었고 시무룩하니 입이 길쭉하게 튀어나왔다. 그녀는 감히 대꾸를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여 흘러가는 강물위를 바라볼 뿐이었다. 이때, 이것을 보고 고소한듯 소년이 다시 중년인의 뒤에서 말했다. "누나는 아버지가 없으면 나를 아주 못살게 굴거예요. 그러니 아버지가 그녀를 한번 혼내주세요!" 그말에, 중년인은 다소 눈살을 찌푸리고는 소년에게 고개를 돌려 말했다. "운비, 너도 마찬가지야! 불이는 너의 누나인데 그렇게 함부로 모함을 하면 되겠느냐?" 그러나, 그는 워낙에 소년을 귀여워하는듯 말하는 어조가 아까의 자의소녀를 대할때처럼 엄하지가 않았다. 이것은 그가 첫딸을 낳고 두번째는 아들을 낳기를 매우 기다렸었기 때문에 생겨난 일종의 심리적인 병폐라고 할수가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어쩔수가 없는 것이었다. 자의소녀는 표정이 시무룩해졌으나 곧 다시 명랑하게 변해갔다. 보아하니 그녀의 성격은 다소 말괄량이 처럼 사납다가도 어두운 구석은 없는것 같았다. 이때, 자의소녀는 천천히 시선을 들어서 배위에 타고있는 사람들을 둘러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그녀의 시선이 자신의 일행을 바라보고 있는 백룡생의 눈길과 정면으로 마주치고 말았다. 그러자, 순간 백룡생은 왠지 당황한 마음이 들어서 얼른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것은 그가 워낙에 순진한 총각이기 때문이었다. 자의소녀는 이것을 보자 문득 아름다운 두눈에 가벼운 이채를 떠올리더니 은근한 미소를 지었다. 백룡생의 모습은 그 옷차림이 매우 초라하고 해서 다소 바보같기도 해보였다. 그러나, 자의소녀는 그에게 친근감이 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이때 현진자는 등을 돌린 자세로 강물을 바라보며 앉아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랬다면 그녀는 즉시 그족으로 다가갔었겠지만, 처녀가 아무리 친근감이 가는 남자가 있다고 해서 함부로 가까이 다가갈수도 없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다시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그러면서 그녀는 슬쩍슬쩍 다시 고개를 돌려 백룡생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허나, 백룡생은 한번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린뒤에는 다시 그녀를 바라보지 않아서 그녀의 마음을 다소 서운하게 했다. 이때 그녀의 아버지인 중년인은 소년과 함께 고개를 돌려 묵묵히 강물을 바라보고 있었고, 사위에는 그저 뱃전에 와닿는 철썩이는 강물소리만 들릴 뿐 조용했다. 자의 소녀는 계속해서 백룡생의 얼굴을 훔쳐보다가 여전히 그가 고개를 돌릴 생각을 하지 않자 마침내 할수없이 아예 고개를 강물쪽으로 돌려버리고 말았다. 헌데 그때였다. 무심코 멀리 시선을 던지던 그녀의 두눈에 돌연 한줄기 이채가 떠올랐다. 갑자기, 전면의 아득한 강물위에서 서너척의 쾌속선이 마치 나는듯이 물살을 헤치고 다가오더니 순식간에 이 배를 에워싸는 것이 아닌가? 그것을 본 배위의 사람들이 일순 놀라 소리쳤다. "앗! 저것은 바로 장강수로채의 배다!" 그것은 그들이 쾌속선의 배위에 그려진 독특한 붉은 문양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 장강수로채, 그것은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장강칠십이수로채인 것으로, 그것은 바로 현 무림의 칠패라고 알려진 일곱개의 세력 가운데 녹림맹의 소속이었다. 그러니까, 이들은 바로 녹림맹 소속의 수적들인 것이다. 대체 이들 수적들은 무엇때문에 이 나룻배를 막아서는 것일까? 지금 이 나룻배에는 비교적 두툼한 전대를 차고있는 상인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들의 안색은 즉시 흙빛으로 변해서 혹시 이들이 자신들의 전대를 노리는 것이 아닌가 하고 걱정했다 뿐만 아니라, 그 부근의 서생들 역시 수적들의 흉맹함을 아는지라 안색이 창백하게 굳어버렸다. 그도 그럴것이, 지금 이 네척의 쾌속선은 비단 지극히 빠른 속도를 낼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 크기도 나룻배의 두배는 될듯해서 각기 하나씩의 배에는 수십명의 장한들이 살기등등한 모습으로 탄채 병기를 들고 있었다. 보아하니 그들은 이제 나룻배를 완전히 에워싸자 곧장 이 나룻배의 위로 덮쳐들 생각인것 같았다. 헌데 그때였다. 갑자기 의외의 일이 일어났다. "모두들 꼼짝하지 마랏--! 우리가 원하는 것은 한사람의 목숨이지 결코 그대들의 주머니속의 돈이 아니다!" 일순 크게 소리치며 갑작스럽게 사공의 주위로 몰려드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을 보자 일순 사람들은 안색이 대변했다. 바로 그들은 아까부터 흉흉한 기세로 한쪽에 모여서 은근히 주위를 살피고 있던 그대여섯명의 장정들이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그들의 기세가 두려워서 은근히 피하고 있었는데, 설마하니 그들이 이렇게 직접 일을 벌일줄은 몰랐다. 허나, 반면에 다소 안심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 녹림의 수적들은 비록 흉악했으나 자기가 한 말은 반드시 책임을 지는 면이 있었다. 그리하여 상인들은 오늘 자신들의 전대는 무사하리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만약 심한 싸움이 벌어지게 되면 장강의 가운데이기 때문에 혹시 그 불똥이 자신들에게 튀게 될까봐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때 문득 서생 가운데에서 하나가 용기를 내어 장정들에게 소리쳐 물었다. "대체 당신들이 노리는 사람은 누구요?" 그러자, 방금전에 말했던 그 장정이 다시 소리치며 손가락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바로 저자의 모가지다!" 순간, 무심코 그쪽으로 시신을 돌리던 백룡생은 가볍게 안색이 변했다. 그 장정이 가리킨 사람은 바로 다름이 아니라 그가 한번 보고는 내심 감탄하는 마음이 들었던 청포외팔이 검객이었던 것이다. 그는 장정의 말을 들었음에도 마치 전혀 그말을 듣지 못한듯 여전히 뱃전에 서서 묵묵히 옷자락을 바람에 날리며 강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 이때 사람들은 그가 지목되자 저마다 크게 놀라며 대체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를 가슴졸이며 주목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시선은 모두 그 외팔이 검객에게 집중되었다. 그런데도 그가 전혀 들은척만척 하며 고개조차 돌리지 않자, 문득 아까 소리친 장정은 다소 초조하듯 재차 소리쳤다. "좌검상! 설마 모른척 하기냐? 네가 만일 셋을 세는 동안에 고개를 돌리지 않으면 이 사공의 목을 잘라버리겠다!" 그말에, 일순 사공은 안색이 대변했다. 이미, 이때 그 장정들은 사공을 둘러싸고 그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있었다. 그런 상황이니 제아무리 간담이 호랑이와 비슷할 지라도 어찌 두렵지 않겠는가? 사공은 일순 안색이 안스러울 정도로 창백하게 변해서 전신을 덜덜 떨고 있었다. 이때 사방에서 에워싸고 있는 네척의 쾌속선 위에 타고있는 장한들은 이들 다섯명의 장정들과 서로 호응하고 있는듯 보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들 역시 장강수로채의 사람들임을 알수가 있었다. 그리고, 좌검상은 바로 저 외팔이 검객의 이름인것 같았다. 따라서 사람들은 대부분 생각했다. (장강수로채는 녹림맹의 소속이고 또한 이곳 장강에서는 그들을 당할자가 없는데 대체 저 검객은 그들을 건드렸으니 설마 호랑이의 간담이라도 삶아먹었단 말인가?) 사람들은 이 사건이 서로간의 은원이 얽힌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아무도 나서려고 하지 않았다. 단지 모두가 좌검상이라는 청년의 동태를 주시할 뿐이었다. 대체 그는 어던 반응을 보일 것인가? 예의 그 장정은 벌서 숫자를 세기 시작하고 있었다. "하나!" 일순 장내의 분위기는 팽팽히 긴장되었고 점차 그 긴장이 고조되어 갔다. 마치 그러한 분위기를 타듯 장정은 빠르게 두번째의 숫자를 불렀다. "둘!" 그러자, 사람들은 일순 확하니 퍼져나가는 사공의 떨어져나간 목줄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핏물이 환상처럼 눈앞에 어른거리느듯 해다. 실로 이들 흉한들은 한다면 하는 작자들이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그 장정이 미처 셋을 부르기 전에 사람들은 마치 그 칼날이 자신의 목을 위협하고 있는 듯한 섬뜩한 공포감으로 인해 안색이 하얗게 질려버렸고, 압박된 긴장감으로 인해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듯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헌데 바로 그때였다. 사람들은 문득 그 외팔이청년의 길게 늘어뜨린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돌아가는 것을 느꼈다. 아니, 돌아간 것은 청년의 머리였고 몸이었다. 그 청년의 몸이 부드럽게 움직이기 시작하자 그의 머리칼이 일순 춤을 추었던 것이다. 그러나, 부드럽다고 느낀 그청년의 움직임은 실상 믿을수 없을만큼 빨랐다. 그는 부드럽게 몸을 돌린다고 느껴진 순간 이미 신형을 장정들의 앞에 이르게하고 있었다. (아...!) 순간, 이를 관전하는 사람들의 입이 함지박만하게 벌어졌다. 그들은 이 외팔이 청년이 실로 이러한 절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일줄은 몰랐다. 청년이 그들의 앞으로 다가들자, 이때 그 장정은 마지막 숫자를 세려다 말고 경악하여 들고있던 감산도를 비쾌하게 휘둘러 청년의 목을 향해 후려쳐갔다. 그 속도는 지극히 빠른 것이어서 실로 이 장정의 무예가 녹녹치 않음을 보여주었다. 일순 환상처럼 다가들던 청년의 목이 장정의 두터운 감산도에 의해 여지없이 잘려나가는 듯한 착각이 일어났다. 헌데 그 순간이었다. 아래로 자연스럽게 늘어뜨려져 잇던 청년의 우수가 미미하게 움직임을 시작한다고 느낀것은 바로 그때였다. 순간, 청년의 등뒤에서 한줄기 백광이 환상처럼 피어오르며 그대로 그 장정의 목이 달아났다. 그것은 실로 믿을수 없는 장면이었다. 정정의 감산도는 이제 불과 몇치를 남겨두었을 분인데 뒤늦게 뽑혀져 나온 백광에 의해 그의 목이 먼저 달아나다니! 그것이 바로 시작이었다. 장정의 목이 달아나자 나머지 다른 장정들은 안색이 급변하여 저마다 들고 있던 병기를 휘둘러서 각기 삼면에서 청년의 몸을 후려쳐왔다. 헌데 그때, 사공의 목을 칼로 겨누고 있던 장정 하나가 만면에 악독한 표정을 떠올리며 그대로 사공의 목을 칼로 후러쳐 가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아마 청년을 당할수가 없자 이 사공이라도 죽여서 분풀이를 하려는 심보인 모양이었다. 이것을 본 사람들의 안색이 크게 굳어졌다. 청년의 무예가 아무리 고강하다고 해도 이미 세명의 다른 정정들이 무서운 기세로 빠르게 덮쳐드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만일 그들을 제거하고 나면 그 사이에 벌써 사공은 흉한에 의해 목숨을 잃고 난 후가 아니겠는가? 이것은 그야말로 아찔한 순간이라 사람들은 저마다 ㄱ크게 놀라서 입이 벌어졌다. 헌데 그 순간, 마악 사공의 목을 향해 칼날을 휘두럴가던 그 장정의 몸이 일시 크게 주춤했다. 동시에 그의 두눈이 경악으로 인해 부릅떠지는 것이 아닌가? 순간, 사람들은 보았다. 흉한의 이마가 베어지며 그곳에서 일순 분수같은 피가 솟구치는 것을! 이미 그 외팔이 청년은 그의 앞에 이르러 서서히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그리고, 믿을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청년을 일시에 협공하던 세명의 장정이 일시 하나같이 수븍이 떨어져 나간채 눈앞에서 피분수를 흘리며 쓰러져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사람들은 이 사실을 믿을수가 없어서 눈을 부릅떴다. 원래 이 청년은 극도로 빠르게 신법을 펼쳐서 먼저 세 장한의 목을 베고는 뒤이어 사공의 목을 베려는 장정의 이마를 후려쳤던 것이다. 다만 그 속도가 워낙 빨랐기 때문에 사람들의 눈에는 거의 보이지가 않았고 다만 희미한 잔영만이 어른거렸을 분이었다. 사람들은 세상에 이렇게 무서운 무공을 소유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을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일제히 넋을 잃다시피하여 외팔이청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원래 그들은 그가 외팔이란 점을 생각하여 다소 멸시하는 면이 없지 않았으나 지금은 그 찬란한 무예로 인해 오히려 그가 외팔이인 점이 더더욱 빛나는것 같았다. 허나 청년은 사람들의 이러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그 싸늘하고 무심한 시선을 들어 이제는 주위에 포위를 하고 있는 네척의 쾌속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헌데 그때였다. 갑자기 실로 괴이한 일이 벌어졌다. 이때 청년은 네명의 장정들을 마저 죽이고 몸을 돌린채 다소 여유를 갖고 사방의 쾌속선을 둘러보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 갑자기 그의 뒤에서 예리한 비수를 가지고 사공이 그의 등심을 향해 찔러가는 것이 아닌가? 이것을 우연히 바라본 사람들은 일순 경악하여 입아 딱 벌어졌다. 대체 이게 가능이나 한 것일까? 누구도 그저 순박하게만 보이는 사공이 이런짓을 할줄은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손놀림은 오히려 아까의 다른 장정들 보다도 바르고 흉폭한 거이, 원래 그 모든 것이 하나의 연극이었다 것을 시사해 주었다. 그것은 실로 기가막힌 연극이었다. 누가 여기에 속지 않을수가 있을까? 사람들은 경악하여 감히 입을 열수가 없었고, 이미 그 사공의 비수는 소리없이 흉폭한 기세로 청년의 등줄기를 향해 거의 다 파고들고 있었다. 이제 청년의 몸에 비수가 박히는 것은 시간문제인것 같았다. 헌데 그때, 누군가가 크게 소리쳤다. "등뒤를 조심하시오!" 그말에, 일순 상황이 돌변하고 역전되었다. 사공의 비수는 거의 청년의 등줄기를 파고들었으나 그순간 신형을 돌린 극쾌한 청년의 신법때문에 그저 살거죽을 약간 찢어 놓았을 뿐이었다. 그러자, 청년의 등에서는 일순 붉은 선혈이 확 뿌려졌다. 그것은 마치 그도 하나의 피와 살로 이루어진 사람임을 증명하는 것 같았다. 허나, 청년은 비록 약간 피를 흘렸을 뿐이지만 대신 사공은 목이 달아났다. 청년은 순간 극쾌한 신법으로 몸을 돌렸을 뿐인데, 대체 그가 언제 검을 뽑았느니 모르게 사공의 목은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실로 믿을 수 없이 빠른 쾌검이 아닐수가 없었다. 순간, 청년은 사공의 목을 떨구자마자 문득 고개를 돌려 배위의 사람들중 한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는 방금전에 소리를 쳐서 자신의 위기를 알린 사람을 찾는 것이다. 과연 그는 누구일까? 다름아닌 그는 바로 백룡생이었다. 아까 많은 사람들이 놀라고 수적들을 두려워하여 미처 소리를 치지 못할때, 백룡생은 이것을 보고 가만히 있을수가 없어서 소리쳐서 위기를 알려준 것이다. 비록 그것이 아니었으면 청년이 목숨을 잃었다고는 말할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청년은 급박한 순간에 도움을 주었던 이 다소 바보스러운 소년의 얼굴을 기억했다. 그리고는 그의 알굴에 가벼운 미소가 떠오르는가 싶은 순간 이미 번쩍 그의 신형은 주위의 쾌속선을 향해 신형을 날리고 있었다. 그 이후의 광경은 마치 꿈결 같았다. 청년의 몸놀림은 그야말로 믿을수 없이 빨라서 그가 움직이는 것은 단지 희뿌연 그림자가 쾌속선 안으로 헤집는것 같았고, 그순간 그 주위로는 백색의 무지개같은 검기가 환상처럼 가득 뒤덮었다. "으아악!" 그러자, 쾌속선의 수십명의 장한들은 일제히 피를 뿌리며 나동그라지기 시작했다. 그들이 대항할 시간이 있었다고 한다면 그건 거짓말이었다. 외팔이 청년은 마치 쥐새끼들 속으로 파고든 한마리의 호랑이와도 같았다. 중과부적이란 말도 있지만, 그러한 말은 지금의 상황에서는 전혀 통하지 않는 것이었다. 외팔이 청년이 하나의 쾌속선안으로 뛰어들자 그안의 장한들은 일순 눈깜짝할 사이에 하나같이 목없는 시체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러자, 청년은 아무말없이 뒤이어 다른 쾌속선으로 신형을 옮겼다. 그의 신법은 빨랐고, 그에 못지않게 그가 펼치는 검법 또한 가공스러워서 수십명의 장한들을 죽이는데 불과 얼마의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장강수로채의 사람들이 타고있는 것은 말 그대로 쾌속선이어서 빠르게 움직이면 청년이 쫓아갈 수 없을 것 같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청년은 그야말로 믿을수 없는 무예를 발휘하여 두개의 쾌속선안의 장한들을 깡그리 도살하고 이어 세번째의 쾌속선안으로 날아드는 것이다. 그때, 다른 나머지 하나의 쾌속선은 가까스로 멀찍이 달아나고 있는 중이었다. 동시에 그 안에서 한명의 우람하게 생긴 장한 하나가 소리쳤다. "좌검상! 네놈의 무예가 놀랍다만, 용기가 있다면 우리를 쫓아와 보아라!" 그러자, 청년은 일순 자신이 타고 있던 쾌속선의 장한들을 향해 검을 뽑으려다가 생각이 바뀌었는지 차갑게 입을 열었다. "너희들이 만일 노를 저어서 저 배를 쫓아가지 못한다면 나는 이제부터 한놈씩 죽일 것이다!" 말이 끝나자, 일순 거의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는데 그의 앞에 서있던 장한 하나의 수급이 하늘로 날아갔다. 그 피가 선연하게 내뿜어지자 장한들은 일시에 안색이 대변했다. 그들은 이미 두개의 쾌속선의 상황을 보았는지라 자신들이 도저히 그의 상대가 될수없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각기 노앞으로 달려가서 빠르게 노를 젓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쾌속선은 즉시 먼저의 쾌속선을 추격하여 빠르게 강물 아득한 곳으로 멀어졌다. 아마 그 쾌속선은 장강수로채의 본채로 도주하는 것일 것이다. 그렇다면 저들 사이에서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그들을 추격하는 저 청년의 정체는 대체 무엇일가? 두개의 쾌속선이 사라질때까지 사람들은 내심 구름같은 의문이 치밀었으나 일단 그것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자 일순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든 강상에서 벌어진 이 일단의 피비린내나는 사건의 이로써 마무리된 것이다. 장강수로채에서 제이 제삼의 격전이 벌어지건 말건, 그때 문득 백룡생의 귓가에 이런 말이 들려왔다. "검문의 전광무영삼절검법은 정말 대단하군!" 백룡생은 그 음성을 듣는순간 가볍게 놀랐다. 그것은 바로 현진자의 음성이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그가 말하는 것은 바로 청년의 그 가공스런 검법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알고보니 현진자는 가만히 앉아 있으면서도 눈앞의 격전을 자세히 지켜본 모양이었다. 이에, 백룡생은 내심 참을수 없는 심정이 되어 급히 그에게 물었다. "그사람은 그들을 이길수가 있을까요?" 백룡생은 좌검상아린 외팔이청년의 안위가 내심 크게 걱정되었던 것이다. 순간 현진자의 싸늘한 시선이 그에게 돌려지는 것을 보고는 급히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그는 내심 이런 생각을 했다. (그는 반드시 살아날수가 있을 것이다!) 그가 그런 생각을 한 것은 청년이 이곳을 떠날때 보여주었던 그 여유있는 냉정한 미소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대체로 그러한 사람은 무모한 짓은 하지 않는다. 이때, 갑자기 그들의 앞으로 예의 그 중년인과 소년소녀가 걸어오고 있었다. 아마 그들은 청년의 격전을 지켜보다가 우연히 현진자의 존재를 알아버린 모양이었다. 현진자도 이에 얼른 일으켜서 그들을 맞았다. "도장께서 여기에 계실줄은 몰랐소이다!" 중년인의 말에, 현진자는 마주 포권하며 나직하게 불호를 외웠다. "무량수불, 악대협이시군요?" 현진자의 말하는 태도는 매우 정중했다. 그로 미루어 이 중년인의 신분은 상상외로 대단한 모양이었다. 대체 그는 어떤 인물일까? 이때, 자의소녀가 다소 놀란듯 되물었다. "이제 사공이 없으니 우린 어쩌죠?" 그렇다. 기실 많은 사람들은 바로 그점을 염려하고 있었다. 상인들과 서생들은 아직 한번도 노를 잡아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도저히 이 배를 뭍으로 끌고갈 자신이 없었다. 그러던 차에 자의소녀가 소리치자 일순 사람들은 서로를 돌아보았다. 사실 현진자나 중년인등은 무공이 고강하여 장력을 이용하면 쉽게 배를 몰수가 있으나, 굳이 무공을 드러내고 싶지가 않아서 서로의 얼굴만을 바라보았다. 그때, 문득 백룡생이 앞으로 나서서 말했다. "제가 한번 해보겠습니다!" 그리고는 즉시 사공의 시체 옆으로 가서 노를 집어들고는 힘차게 젓기 시작했다. 제 7 장 소녀 악불이 원래 그는 처음 배를 타보는 마당에 사공의 노를 젓는 모양이 아주 신기하게 느껴져서 아까부터 유심히 그 방법을 관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지금은 용기를 내서 한번 해보려는 것이다. 과연 노젖는 것은 생각처럼 그리 쉽게 잘되지가 않았다. 하지만 백룡생은 체력이 강했고 본래부터 몸놀림이 유연하여 처음에는 힘으로 배를 움직여가다가 점차 그 요령을 터득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나중에는 아까의 사공과 거의 비슷하게 배를 몰고 나아갈수가 있게 되었다. 사람들은 이에 환성을 지르며 백룡생을 칭찬했다. 그리고, 현진자 역시 이 광경을 다소 특이한 시선으로 보았다. 그러나 그는 백룡생이 강남에 살기 때문에 배를 많이 접해봤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그저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뿐 전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만일 그가 백룡생이 이제 처음 노를 잡는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어떠한 표정을 지을까? 이윽고, 백룡생은 노를 저어서 배를 건너편의 나룻터에 안전하게 댈 수가 있었다. 그리고 밧줄로 배를 묶어서 정박시키자, 사람들은 한결같이 백룡생을 향해 가사의 뜻을 표하며 곧 뿔뿔히 사라져 버렸다. 현진자와 백룡생 역시 배에서 그 중년인등과 함께 내렸다. 그러자, 그 중년인이 말했다. "기왕에 이렇게 만났으니 함께 식사라도 같이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말에, 현진자는 잠시 생각하다가 곧 고개를 끄덕여 대답했다. "좋습니다." 하긴, 이미 그간에 준비했던 건량들도 거의 바닥이 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이 나룻터에서 가까운 곳에 중원에서도 유명한 무창성이 있었다. 중년인과 현진자는 곧 앞장서서 그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고, 백룡생등은 빠르게 그들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 무창성, 그곳은 장강에 인접해 있으며 거대한 나룻터를 끼고 장강의 남과 북에 각각 거대한 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일행이 간 곳은 자연 장강의 북쪽에 이루어진 성시였다. 이 북쪽에는 성밖에 구산이나 월호, 양호, 마가호등이 있고 그 유명한 한수로 이어지는 입구가 있다. 그러한 일련의 경치는 수려한 것이어서 여유가 있다면 얼마간 머물며 구경을 할 수도 있겠으나 이미 말했다 시피 백룡생등은 여유가 없었다. 그들은 저녁무렵에 무창성의 번화한 길목에 자리하고 있는 하나의 화려한 주루위로 올랐다. 그 주루의 이름은 바로 한구주루 였다. 아마 한수의 입구를 상징하는 말인것 같았다. 이 주루는 매우 화려하여 주루의 입구에 서있는 점원들의 옷차림도 어느 주루의 점원들과는 달리 매우 깨끗하고 단정해 보였다. 한지만 정작 그안에 들어가는 현진자와 백룡생의 옷차림은 아주 지저분하고 다 낡은 것이어서 그 점원의 눈살을 다소 찌푸리게 했다. 만일 그 중년인등이 이들과 동행이 아니었다면 그 점원은 당장에 그들을 쫓아내고 말았을런지도 모른다. "어서 오십시오--!" 점원 하나가 유창하게 소리치며 이들을 주루의 이층에 있는 비교적 전망이 좋은 탁자하나로 안내를 해주었다. 그리고 일행이 자리에 앉기 시작하자 공손히 주문을 받았다. "뭘 드시겠습니까?" 이에, 중년인은 현진자를 향해 정중히 물었다. "도장께서는 무엇을 드시겠습니까?" 현진자는 즉시 담담하게 미소하며 대답했다. "산속에 사는 도인이 음식을 가릴수가 있겠소이까? 빈도는 아무것이나 먹겠소이다." 그말에, 중년인은 역시 웃으며 말을 받았다. "겸손의 말씀이시군요." 이어, 그는 점원에게 몇가지의 음식을 주문했다. 헌데 보아하니 이 중년인과 현진자는 그리 친밀한 사이도 아닌것 같은데 서로의 체면을 많이 생각하고 있는것 같았다. 그리하여 그들은 실상 여기가지 오면서 서로간에 별로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지도 않았다. 백룡생은 이 점이 다소 궁금했다. 현진자는 그가 알기로는 무당파의 장문인과 같은 배분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그는 자신보다도 나이가 어린 중년인을 더욱 존중하는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대체 이 중년인의 신분은 무엇일까? 혹시 같은 구파일방중의 한 수뇌가 아닐까? 백룡생은 비록 무공초식에 대해서는 전혀 몰라도 일단 강호에 전해지는 무림의 대체적인 소식은 자연 듣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이때, 중년인과 현진자는 서로 마주 앉아서 얼굴에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지만 대화를 하지 않고 묵묵했다. 그러자 오히려 신이 나는 것은 그 꼬마소년과 자의소녀였다. 이때 그들은 중년인의 좌우에 각각 자리를 잡고 앉았었는데 이상하게도 백룡생은 여전히 현진자의 뒤에 시립한채 자리를 앉을 생각을 하지 않는것을 보고 일순 자의소녀가 의아한 표정으로 백룡생에게 말을 건넸다. "이봐요! 당신은 어째서 자리에 앉지 앉지요?" 그 말은 마치 은쟁반에 옥구슬이 굴러가는듯해서 그야말로 듣기에 좋았다. 자의소녀는 이미 백룡생에게 깊은 호의를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의 어조와 눈빛은 다소 은근한 데가 있었다. 그말에, 백룡생은 다시 심하게 안색을 붉혔다. 그리고는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저는... 저는 상관없습니다. 저는 아무래도 좋습니다." 백룡생은 그야말로 순진하기 짝이없는 총각이었다. 그는 성격이 우둔하여 그 오매촌이란 산골의 처녀들도 그에게 눈길한번 던지지 않았었다. 물론 백룡생은 자연 그녀들에게 눈길한번 던지지 않은것은 아니었지만, 그 산골에는 정말 이토록 기막힌 몸매에 아름다운 옷차림을 하고 있는 미인은 없었다. 백룡생이 바라보자니, 이 자의소녀의 투명한 살결은 마치 백옥과도 같고 오똑한 콧날은 수려하니 맑은 정기가 어려있었으며 두눈엔 샛별같은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이러한 기막힌 미녀를 보게되자 자연 그의 마음은 크게 두근거리게 되었고 안색이 붉어지며 말을 더듬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모양을 보고 옆에 앉은 꼬마소년은 무엇이 그리 우스운지 깔깔거리며 웃어버렸다. "난 알아, 난 알아! 저 아저씨는 우리 누나를 좋아하고 있는것 같은데!" 그말에, 자의소녀의 안색도 일순 진한 홍조로 물들었다. "운비, 너..." 그녀는 즉시 나무래듯이 꼬마소년을 향해 눈을 흘겼지만 말이 떨려나와서 더이상 말을 잇지는 못했다. 이때, 이 어색한 분위기를 해소하려는듯 그 중년인이 현진자를 향해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귀파에서는 역시 사제간의 법도가 엄격하군요? 그 사람은 도장께서 새로 거두어 들이신 고제자입니까?" 중년인이 말한 그사람이란 바로 현진자의 뒤에 서있는 백룡생을 말하는 것이었다. 중년인은 이미 이 백룡생의 골격이 비범하다는 것을 알아보았고, 현진자가 아직 제자를 거두어 들인 일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 그렇게 물은 것이었다. 그런데, 현진자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닙니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이에 중년인은 일순 의아해하며 다시 물었다. "아니 그렇다면 친척이 되시는 모양이로군요?" 그말에, 현진자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이 일은 나중에 오해를 살 여지가 있으니 알단은 확실히 해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는 다소 엄숙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는 빈도의 친척이 아니라 잠시 빈도가 어떤 사람의 부탁을 받고 데리고 있는 아이업니다. 본파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이지요." 무당파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면 그것은 현진자의 제자도 아니라는 말이다. 중년인은 그말에 잠시 기이한 눈초리로 백룡생의 얼굴과 전신골격을 주시했다. 그리고는 내심 암암리에 고개를 끄덕였다. (보아하니 이자는 비록 골격은 좋으나 아직 기초적인 무예도 닦지 않은듯 하구나. 그리고 눈빛이 어리석은듯 하여 무공을 연성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것 같으니, 아마 그래서 현진도장은 그를 제자로 거두지 않은 것이로군!) 일단 그가 그렇게 결정을 내리자, 잠시 호감이 일었던 백룡생에 대한 선입감도 지워져 버리고 말았다. 그리하여 그는 고개를 돌리고 화제를 돌리기 위해 담담한 미소만을 떠올렸다. 헌데 이때 점원들이 주문한 음식들을 들고왔기 때문에 다행해 그가 일부러 화제를 꺼낼 필요는 없었다. 이윽고, 모두가 함께 식사를 하기 시작하자, 자의소녀는 백룡생이 아직도 그자리에 서서 식사를 하지 않는것을 보고 이상하게 여겨서 물었다. "이봐요, 당신은 어째서 식사를 하지 않지요? 배가 부른가요?" 그 질문에 백룡생은 다시 말을 더듬거렸다. "나는... 배가 부른것이 아니라, 아무튼 상관없습니다. 소저께서는 그냥 드십시오." 그말에, 자의소녀는 일순 우스운지 손으로 입을 가리며 피식 웃었다. 그리고는 그가 현진자를 어려워하여 그러는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즉시 음식그릇 몇가지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이봐요, 그럼 내가 저쪽에 따로 자리를 마련해 줄테니 거기에서 먹도록 해요!" 이어, 그녀는 음식 그릇들을 들고 옆의 비어있는 탁자로 옮기려고 했다. 헌데 그때 문득 중년인이 다소 냉랭한 어조로 그녀의 행동을 저지하는 것이었다. "불이! 이게 무슨 짓이냐? 식사도중 그릇을 옮기는 것은 모양이 좋지 않으니 어서 앉도록 해라!" 그말은 겉으로는 그녀의 행동을 나무래는것 같았으나 실은 그녀가 백룡생과 같은 젊은이와 어울리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는 엄격한 표현이었다. 이에, 그만 자의소녀는 매우 불만스러운듯 안면이 다소 붉어졌다. 허나 그녀는 다소 망설이다가 할수없이 음식그릇을 내려놓고 다시 자리에 앉고 말았다. 그리고 묵묵히 식사를 했다. 이러한 일 때문에 장내의 분위기는 다소 어색하게 변해버렸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백룡생의 표정은 전혀 어색하지 않을뿐만 아니라 오히려 담담하고 밝기만 했다. 그는 자의소녀가 자신에게 호의를 보내려다가 이렇게 구중을 당한것을 생각하고는 다소 미안한 생각이 들어서 그녀를 향해 포권하며 입을 열었다. "소저, 소인은 사실 이분 도장의 일개 하인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어찌 감히 함께 식사를 할수가 있겠습니까? 소인은 나중에 만두 몇개를 사서 길을 가면서 먹으면 되니 소저께서는 가히 염려하지 마십시오." 그는 이번에는 말을 더듬지도 않았고 얼굴을 붉히지도 않았다. 말하자면 그는 이미 어느정도 여인에게 적응이 된 것이다. 그말을 듣자, 자의소녀는 문득 음식을 먹다말고,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에 백룡생은 담담한 표정으로 이번에는 고개를 피하지 않고 그녀의 시선을 마주 바라보았다. 그러자, 곧 그녀의 입술이 가볍게 달싹거리는 것을 볼수가 있었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소리는 나지 않았다. 아니, 그녀의 맑고 또랑또랑한 음성은 신기하게도 그의 귓전에 마치 모기소리만큼 작게 울려오는 것이었다. "바보...! 나의 이름은 악불이에요. 우리는... 우리는 나중에 기회있을때 다시 만나기로 해요." 그것은 사실 전음입밀이라는 고도의 무공이었다. 허나 백룡생이 그러한 것을 알리가 없었다. 게다가 백룡생은 그녀가 자신을 바보라고 말하는 것에 대헤 크게 의아해하며 이렇게 내심 생각했다. (그녀는 실로 신비한 능력을 가졌구나! 허나 그녀가 나를 바보라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 어르신은 돌아가시기 전에 내가 천하에 둘도없는 총명한 인재라고 했는데. 그건... 그건 대체 누구의 말이 옳은 것일까? 아니 구태여 그런것을 따질 필요는 없겠지.) 내심 그렇게 생각하고는그는 자의소녀를 향해 은은한 미소를 보냈다. 그러자, 자의소녀는 그 미소를 보고는 문득 안색이 홍당무처럼 붉어져서는 급히 고개를 숙이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는 계속 음식을 먹는척 했다. 허나 그녀는 별로 음식을 먹는것 같지는 않았다. 마치 배부른 사람이 억지로 음식을 먹듯이 여러가지 그릇들중에서 아주 조금씩만 깨작거리며 열심히 먹는척할 뿐이었다. 백룡생은 그녀의 이러한 행동을 보고 일시 그 이유를 알수가 없었다. 그는 사실 여자를 거의 처음 대하다시피 하는데 어떻게 복잡한 여심을 짐작이나 할수가 있겠는가? 사실, 아무리 강호의 여인이라고 해도 웬만해서는 자신의 이름을 상대에게 직접 밝히는 법이 아니었다. 고작해야 그저 자신의 성을 밝힐 뿐이었는데, 이 자의소녀가 이렇게 자신의 이름을 직접 말해준 데에는 상당히 은밀한 의미가 있었다. 그것은 자신의 부친이 허락하지 않더라도 자신은 백룡생과 사귀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었다. 그런데, 백룡생이 그말을 듣고 얼굴에 미소를 떠올리자 그녀는 그만 가슴이 화끈하게 달아오르고 심장이 마구 두방망이질을 해서 감히 더이상 그를 바라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여버리고만 것이다. 이어, 애꿎은 음식만 먹는척했을 뿐이었다. 제 8 장 옥검봉 그러는 가운데 식사는 끝이 났다. 중년인은 식사를 마치자 몸을 일으켜서 정중히 포권하며 현진자에게 말했다. "오늘 이렇게 뵙게되어 반가왔습니다. 그럼 이만 다음에 뵙기로 하지요." 그말에, 현진자는 마주 일어서며 포권했다. "무량수불, 그럽시다." 이어, 중년인은 백룡생을 쳐다보지도 않고 그대로 몸을 돌려 아래로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물론 그뒤를 자의소녀 악불이와 꼬마소년이 뒤따랐는데, 다만 악불이만이 잠시 고개를 돌려 백룡생을 돌아보았을 뿐이었다. 그들이 모두 떠나자, 백룡생은 드디어 의자에 앉아서 식사를 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의 그런 의도는 쉽게 무산되고 말았다. "어서 떠날준비를 하도록 해라!" 현진자가 싸늘한 어조로 말하며 그를 바라보았기 때문이었다. 백룡생은 감히 그 지시를 어길 수가 없어서 얼른 대답하며 공손히 머리를 조아렸다. "예, 도장어른." 그러자, 현진자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품속에서 다시 다섯냥의 은자를 건네주었다. 그리고는 먼저 천천히 밖으로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이때, 백룡생은 얼른 그보다 먼저 종종걸음을 하여 밖으로 나가서는 먼저 계산대에 들러서 음식값을 물었다. 허나 이미 그 중년인등이 값을 지불하고 떠난 후였다. 백룡생은 이에 얼른 주루의 밖으로 나가서 전처럼 마른 육포와 어포따위를 많이 샀고 또한 길거리에 파는 커다란 만두를 두어개 사서 걸어가면서 먹었다. 실로 오랜만에 먹어보는 따뜻한 음식인 만두맛은 기막히다고 할 수 있었다. 비록 아까 그 훌륭한 요리들을 그냥 눈앞에 둔채 나와야 했지만, 백룡생은 천성이 소탈하여 그런 것을 마음에 두지 않고 그저 만두의 맛을 음미할 뿐이었다. 그러다가 다시 현진자를 만나서 그 두사람은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미 밤거리를 걷는것은 습관이 되어 있는터라 그들은 객점에 들릴 생각도 하지 않고 다시 무당산쪽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제 무단산은 거의 절반이상이나 온 셈이었다. 백룡생은 무창성밖을 나가 길을 걸으면서 문득 아까 그에게 다소 은밀한 눈빛을 보냈던 그 자의소녀 악불이의 얼굴을 아련하게 떠올렸다. 아마 그들은 지금쯤 무창성내의 하나의 객점에 들어서 쉬고갈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백룡생이 그녀에게 느끼는 감정은 사실 풋풋하고 순진한 것이었다. 그는 아직 남녀간의 애정관계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었고 단지 그 자의소녀를 보면 은근히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을 느낄수가 있을 뿐이었다. 이어 그는 문득 생각했다. (그녀의 그러한 태도는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보니 현진자는 벌써 저만큼 앞서서 가고 있었다. 때문에 백룡생은 일순 흠칫하여 뇌리에 떠오른 생각을 지워버리고 얼른 그의 뒤를 달음박질해서 쫓아가기 시작했다. 사실, 요 십여일간의 여정을 거치는 동안 백룡생은 지치기는 커녕 더욱 몸이 강건해지고 그로인해 걸음을 옮기는 속도가 매우 빨라졌다. 이제는 전날의 그가 걷는 속도의 거의 두배에 달할 정도로 빠르게 걸을수가 있었다. 다만, 현진자는 이제는 역시 그보다 두배의 빠르기로 나아기기 때문에 백룡생은 여전히 심히 허둥대며 쫓아가야 하는 것이다. * * * 그 후, 무창성을 떠나서 무당산으로 향하는 여정은 역시 전날의 그것처럼 평이했다. 무림의 인물이 강호를 떠돌자면 자연 귀찮은 사건에 휘말리게 되고 시일이 지연되게 되지만 이 현진자는 그런점을 매우 싫어햐여 일부러 피하고 있는 편이었다. 게다가, 이제 무당산과는 얼마 남지도 않았으니 그는 결코 여기에 와서 사간을 일으키고 싶지가 않았다. 아니, 설령 그가 사건을 일으키고 싶어도 일단 무당파의 부근에 들어선 이상은 누구도 감히 그에게 시비를 걸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무창성을 떠나서 십여일 후, 그날은 날씨가 매우 쾌청하고 다소 차가운 북서풍이 갈대잎을 스산하게 움직이는 가운데 하늘에서는 예의 그 태양이 맑은 빛을 뿌리고 있었다. 백룡생은 그 가운데 신선하고도 맑은 가슴의 열기를 느꼈다. 드디어, 그들은 목적하던 무당산에 이르고만 것이다. 백룡생은 무당산에 도달하자 문득 천하에 위명을 날리는 이 무당파는 대체 어떻게 생겼을까? 하고 궁금한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그의 기대는 곧 무산되고 말았다. 무당파의 입구에는 모든 무림인은 병기를 일단 맡기고 들어가야 한다는 이름높은 해검지가 있다. 허나, 현진자는 백룡생을 그 해검지가 있는 곳으로 데려가지 않고 옆으로 멀찍하니 돌아서 무당산의 가장 험준한 뒷산쪽으로 대려갔던 것이다. 백룡생은 물론 다소 서운한 감이 일었으나 그렇게 섭섭한 표정은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뒤로 갈수록 우아한 정경보다는 깎아지른듯한 칼날같은 암봉이 하늘높이 치솟아 있고 아래는 아득한 절곡이 흰구름속에 가려져 있는것을 보고 즐거워했다. 이 무당산은 에로부터 무학의 본산지였던 만큼 그 산의 정기가 뛰어나고 형상이 수려하기 이를데가 없었다. 비록 천하에서 가장 높은 고봉은 없을 지라도, 칼날같이 솟구친 뒷산의 암봉들은 가히 신선이 학을 더불어 수도를 닦는 곳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현진자는 백룡생이 주위를 돌아보며 마치 어린아이처럼 좋아함을 보고 다소 어이가 없는듯한 표정을 지으며 냉엄한 태도를 보였다. 그리고는 말했다. "이제 우리는 이 부근에서만 살아야지, 결코 무당파에 가거나 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내가 무당파의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알겠느냐?" 백룡생은 그말을 듣고 그것은 아무래도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다. 절곡에서 기연을 얻은 이후 그는 마음속에 기개가 넘쳐흘러서 비교적 산세가 완만한 전면의 무당파가 있는 곳보다는 이렇게 거칠은 곳이 보다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예, 염려마세요. 도장어른." 백룡생은 현진자를 언제부터인가 도장어른이라고 불렀다. 그것은 실상 옳은 호칭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틀리다고 할수가 없어서 현진자는 그냥 내버려두었다. 이어, 현진자는 내심 생각했다. (나는 사실 이곳에 많은 거처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내가 자주 거처를 옮겨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체 이녀석을 어디로 데려가야 할까?) 그러다가 그는 문득 다시 생각했다. (그렇다! 무당산의 제일고봉인 옥검봉이 좋을 것이다. 그런 곳에 있어야만 이 녀석이 함부로 나돌아다니지 못할것이 아니겠는가?) 이로써 백룡생이 장차 거주하게될 장소는 간단하게 결정되었다. -- 옥검봉, 그곳은 무당산에서도 가장 높은 봉우리일 뿐만 아니라 또한 가장 험준했다. 이 봉우리의 형상은 마치 하나의 검을 거꾸로 세워놓은 형상과 같다고 해서 옥검봉이라도 불리우게된 것이다. 그런만큼 봉우리 전체는 거의 빈틈없이 단단한 암벽으로 이루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생김생김이 마치 막대기처럼 깎아지른 절벽이어서 일반인은 위로 올라간다는 것은 감히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하지만, 현진자와 같은 무림고수는 능히 이런곳에 머무를 수가 있다. 헌데 대체 백룡생은 이런곳에서 어떻게 살수가 있을 것인가? 허나, 정작 백룡생은 그 앞에 이르자, 주위의 절곡들이 마치 흰구름이 뒤덮인듯 하고 사뭇 신선들이 사는곳과 비슷한지라 그는 오히려 매우 즐거워했다. 현진자는 그 앞에 이르자 이번에는 백룡생은 안아들고 신법을 펼쳐 위로 오르기 시작했다. 이때 백룡생은 현진자의 신법을 처음 보았다. 그는 백룡생을 안고도 무려 깍아지른 절벽위를 십여장 씩이나 위로 솟구치며 오르고 있었는데 그 광경이 마치 하늘을 나는것 같았다. 백룡생은 그의 손에 허리를 휘김간채 눈을 크게 뜨고 있었는데, 자신의 몸이 위로 휙휙 솟구치며 싸늘한 기운이 얼굴을 스치는 것이 실로 신기하기 짝이 없었다. 그는 일단 자신이 이 위로 올라가게 되면 어떻게 내려와야 하는지에 대한 걱정은 아예 생각하지도 않고 있었다. 이렇게 하여 얼마나 흘렀을까? 백룡생은 서늘한 기운이 느껴지면 어느새 자신의 몸이 절봉의 꼭대기에 이르렀다는 것을 알수가 있었다. 이 절봉의 위는 기이하게도 평평한 공지였는데, 그 직영이 대략 백여장에 달했으므로 가히 사람이 살만한 곳이라고 할수가 없었다. 이 절봉의 위는 날씨가 매우 차갑고 스산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러나, 백룡생은 이미 절곡의 기연을 얻은이후로 전혀 추위를 타지 않는 몸이 되었고, 게다가 공지의 중앙에는 모옥도 한채 있었고 그 부근에는 제법 갈잎이 무성했다. 그것은 이 절봉의 윗쪽은 바위가 아니라 흙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증거이며, 또한 다른 무엇이 재배가 가능하다는 말이었다. 백룡생은 현진자의 눈치로 보아 이곳이 자신이 거처하게될 곳임을 알아 차렸다. 다만 그는 이곳에서 물은 어떻게 구할수가 있을까 하고 의아해했을 뿐이었다. 허나, 별로 복잡한 생각을 하지 않는 성격인 그는 곧 그런 의문들을 지워버렸다. 과연 그의 생각은 옳았다. 현진자는 그의 몸을 바닥에 내던지면서 전면의 모옥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저곳이 바로 네가 살아갈 집이다. 너는 일단 안으로 들어가서 살펴보고 청소를 하도록 해라!" 백룡생은 그말에 얼른 몸을 일으켜서 세심하게 모옥의 구조를 살폈다. 그러다가 문득 뒤가 허전한 느낌이 들어서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현진자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벌서 신법을 펼쳐서 아래로 내려가버린 것이다. 일반의 소년이었으면 이러한 것을 보고 내심 당황한 마음과 의문이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백룡생은 성격이 매우 태평했다. 그는 조금도 걱정하기 않고 오히려 빙긋 웃으며 너털너털 모옥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모옥의 안으로 들어가서 살피기 시작했다. 이 모옥은 대부분이 굵은 통나무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것은 비교적 오랜 풍우에 시달려서 일부분이 퇴색되기도 했으나 무너질 정도는 아니었다. 구조는 방이 하나와 부엌이 하나였는데, 아마 현진자가 직접 이곳에서 밥을 지어먹으며 살았었는듯 갖가지의 낡은 도구들이 모두 모옥안에 널려져 있었다. 백룡생은 우선 그것들을 치우고 정리한뒤 모옥의 이곳저곳을 깨끗하게 청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갈잎을 뜯어서 모옥의 구멍이 뚫린 곳이나 허술한 곳을 새롭게 고쳐놓자 이제 모옥은 살만한 집이 되었다. 다만 식량과 몇가지의 도구가 더 필요하고 물이 필요할 뿐이었다. 허나, 백룡생은 이제 곧 현진자가 그러한 것들을 가져다줄 것으로 생각하고 걱정하지 않았다. 그는 모옥을 전부 정리하자 이어 모옥의 앞 마당을 청소했고 사방에 널려있는 바위들을 보아서 모옥으로 들어오는 바람을 막게 했다. 그러자, 모옥의 안은 제법 아늑해졌고 사람이 살만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어 백룡생은 모옥의 마당에 나와서 잠시 쉬었다. 아니나 다를까, 한참후에 현진자가 등에 커다란 짐보따리를 둘러메고 절봉위로 올라왔다. 거기에 있는 것들은 백룡생이 내심 필요하다고 생각하던 것들이었다. 다만, 모든것은 있는데 물은 없었다. 이에 백룡생이 그의 얼굴을 쳐다보니, 현진자는 그의 내심을 눈치챈듯 차갑게 잘라 말했다. "물까지 내가 떠다주길 바라느냐? 물은 앞으로 네가 떠오도록 해라!" 말과 함께, 현진자는 절봉의 낭떠러지 위에 매어져 있는 하나의 기다란 밧줄을 가리켰다. 원래 그는 먼저 짐을 가져오기 전에 밧줄을 가져와서 매어놓고 사라진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 절봉의 높이는 아래까지 줄잡아도 대략 수백장은 된다. 그런데 어떻게 여우 하나의 밧줄에 몸을 의지하여 아래에서 물을 떠오라는 말일까? 허나, 이것은 시실 현진자의 고심에찬 결론이었다. 그는 일단 백룡생을 절봉위에 데려다주기는 했으나 그 뒤에 그의 소일거리를 만들어 줘야 한다는 생각이 미쳤다. 그가 만일 학문이 뛰어나다면 그에게 학문을 가르쳤을 것이요, 무당파의 제자로 두려고 했다면 무공을 가르쳤을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는 학문에 뛰어나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무공을 가르칠 마음도 없었다. 물론 그가 이번에 가져온 물건들 가운데에는 서적이 어느정도는 끼어 있기는 하지만 결코 그것으로 백룡생을 묶어둘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는 결국 백룡생이 일을 하도록 만들 수밖에 없었는데 이 절봉에서의 일이란 오직 아래에서 물을 떠다가 나르는 일 뿐이었던 것이다. 현진자는 처음 이 일을 결정할때 다소 주저했으나, 우선 백룡생의 체력이 뛰어나게 좋고 산에서 자라난 점을 생각하여 그리 위험하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과연, 현진자의 말에 백룡생은 잠시 생각하더니 선뜻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알겠습니다. 도장 어른." 이에, 막상 그렇게 시켜야 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현진자도 내심 기이한 생각이 들었다. (아니 요놈봐라? 그렇게 하겠다고...?) 그는 대체 이 백룡생이 무엇을 믿고 이렇게 태연한지 알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사실 백룡생이 이곳보다도 더욱 험하고 깊은 구령산의 절곡에서 아래로 내려갔었던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가 없었다. 물론 그때는 기연의 힘을 입었고, 또한 지금은 일단 내려가기는 쉬울 지라도 올라 오려면 물 때문에 어렵겠지만 웬지 백룡생은 기연을 얻은 이후에 매사에 자신감이 일었다. 그래서 그는 주저없이 대답을 했던 것이다. 이에대해 현진자는 다소 의아한 느낌이 일었으나 다소 두고봐야 겠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이어, 그는 모옥으로 들어가 백룡생이 생각외로 매우 깨끗하게 내부를 수리하고 정돈한 것을 보고는 내심 감탄하는 마음까지 일 정도였다. 허나, 그의 생각은 여전히 백룡생이 천박하다는 데에서 떠날줄을 몰랐다. 그런 점은 대체 그의 불행이 될지 백룡생의 불행이 될지 알수가 없는 일이었다. 현진자가 안으로 들어가자 백룡생은 그가 가지고온 물품 중에서 쌀과 곡식들을 꺼내서 밥을 짓고 음식을 장만하기 시작했다. 사실 이러한 일은 그가 이미 십여년이나 해온 일이라서 손에 익을대로 익숙해져 있었다. 그리고 다행히 현진자는 비록 많은 물은 가지고 오지 않았지만 몇끼의 밥을 지을 정도의 물은 가지고 온것이 드러났다. 백룡생은 얼른 밥을 지어서 현진자에게 올리고 자신은 부엌에서 대충 먹어치웠다. 그리고, 자신은 감히 현진자와 한 방에서 살수는 없다고 생각하여 부엌의 한쪽에 자신이 잘자리를 갈잎을 이용하여 대충 만들기 시작했다. 일단 그렇게 하는동안 어느새 날이 저물어 저녁이 되었다. 현진자가 가져온 것중에는 유등도 있었고, 또한 장작을 이용하면 불을 밝힐수도 있겠으나 백룡생은 거의 밤중에는 불을 밝히는 것을 생활화하지 않아서 그러고 싶지가 않았다. 방으로 들어가서 현진자에게 문안을 올리니, 그는 이렇게 말했다. "너는 내일부터는 아래로 내려가서 물과 나무등을 해오도록 해라. 그리고, 저 책들은 시간이 날때 가져다가 보도록 해라!" 이어, 그는 다소 미심쩍은듯이 물었다. "너는 글자를 배웠느냐!" 그말에, 백룡생은 미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글자를 배우지 않을수가 있겠습니까?" 그말에 현진자는 다소 놀라며 되물었다. "아니 그럼 천자문을 배웠단 말이냐?" 백룡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의 대답은 비록 짤막했으나 다소 의미심장한 듯도 했다. 그리하여 현진자는 다소 의심이 들었다. 그가 전날 만났던 오매촌의 그 농부도 이 소년이 아직 글공부를 하지 않았다는 말을 했었고 그 모옥에도 책자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렇게 이자가 천자문을 떼었다는 말일까? 현진자는 내심 의문이 들었으나 곧 상관하지 않기로 했다. 기왕에 그는 자신의 제자가 아닌데 그가 글을 배웠든 배우지 못했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허나, 그는 이렇게 무심한 생각때문에 한가지의 사실을 간과했다. 그것은 백룡생이 비단 천자문을 배웠을 뿐만 아니라 일찍이 사서삼경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글공부를 마쳤다는 사실이었다. 대체 이러한 사실을 누가 믿을수가 있을까? 일게 촌부지랭이로만 알았던 그가 글공부를 착실히 한 서생이라면 누구도 믿지 않을 것이다. 같은 마을에 사는 사람들도 전혀 그러한 사실을 몰랐을 정도였다. 그러나, 첫째는 백룡생이 사는 모윽은 마을과는 다소 떨어져 있었고,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서 책을 읽었었기에 너무도 그러한 사실을 몰랐다. 아니, 감히 그처럼 멍청하게 보이는 사람이 글을 읽으리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물론 그에게 그렇게 글을 가르친 사람은 그 백노인이었다. 그는 자신이 그에게 글을 가르쳤고 마을이 학당에는 보내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오직 그가 힘들게 일만 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각성하고, 백룡생은 현진자에게 인사를 드리고 물러나 자신의 잠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곧장 깊은 잠에 빠져들어갔다. 그의 몇가지 좋은점의 하나가 바로 마음만 먹으면 그는 언제든지 잠을 편하게 잘수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다음 날, 미처 동쪽하늘에 붉은 여명이 터오기 전에 백룡생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비록 이 절봉위의 날씨가 극도로 차갑고 잠자리가 허술하다고는 하나 그의 육신은 이미 피로를 풀고 활력으로 가득치 있었고, 그의 정신 역시 맑았다. 비록 지금 해가 아직 뜨지는 않았지만 이 절봉위에는 다소 환한 느낌이 들었다. 이에, 백룡생은 빠르게 몸을 움직여서 우선 아침밥을 정갈하게 지어서 상을 차려놓고는 자신은 대강 부엌에서 먹었다. 그리고 허리에 커다란 가죽부대를 짊어졌다. 그것은 빨리 아래로 내려가서 물을 길러오기 위함이었다. 이렇게 그는 스스로 알아서 바르게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이 거의 습관화 되어 있었다. 낭떠러지의 앞에 이르자 전날 보아두었던 그 밧줄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우선 그 밧줄을 잡아당겨서 그 중간쯤을 자신의 허리에 단단하게 묶고 천천히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비록 겨울이기는 하나 아직 이 옥검봉위에는 눈이 내리지 않아서 빙벽이 없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내려가기가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현진자가 이 밧줄을 늘어뜨려놓은 것은 바로 이 밧줄을 잡고 내려가라는 말이었다. 허나 백룡생은 단지 구명용으로 이용했다. 그리고 자신이 스스로 두손과 두발을 이용하여 아래로 천천히 내려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는 원래 구령산의 안쪽으로 휘어져 들어가 거의 손에 잡을 곳도 없는 절벽을 내려갔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곳 옥검봉은 비록 생긴것은 칼날같이 보여도 막상 내려가자니 손으로 잡을곳과 발을 딛을곳이 도처에 즐비했다. 게다가 안쪽으로 휘어져들어간 형상도 아니니 백룡생은 한결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내려가다가 마음껏 쉴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허나, 이것은 기실 그가 그 절곡아래로 내려가서 기연을 얻지 않았었다면 감히 그런 생각을 할수가 없을 것이다. 그는 거기에서 절벽을 타는 기술을 터득했다고 할수가 있었고, 또한 도저히 지치지 않는 체력을 이루었던 것이다. 만일 그전이었다면 그는 감히 이런 절벽아래로 내려갈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백룡생은 계속해서 쉬지않고 아래로 내려갔다. 사위는 금방이라도 얼음이 얼듯이 싸늘한 공기가 귓가를 연신 후려쳤으나, 그의 전신은 바위에 들러붙은듯 끄덕하지 않았고 전신에서도 점차 땀이 솟고 김이 피워올랐다. 원래 그는 아래로 한 이삼십장 정도 내려가면 한바탕 쉬어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는 막상 그곳에 이르자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 기연을 얻고나서 그는 그 복연에 의해 생긴 힘을 거의 사용할줄을 몰랐으나 그간 한달가량을 거의 뛰다시피 걸어오면서 그것의 극히 일부분이 그의 체력으로 융화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은연중 천생의 신력을 가진 사람처럼 오히려 지치지 않는 체력을 소유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몸에 점차 열이 나고 땀이 흐르는 것은 어쩔수가 없는 일이었다. 힘은 쇠퇴하지 않았지만 그의 전신은 땀과 김이 솟아올라서 점차 부연 안개가 서려 있는듯한 모습으로 변해갔다. 그리하여 대략 삼백장 정도 내려갔을까? 백룡생은 자신의 허리를 감았던 밧줄이 다했음을 느꼈다. 그렇다면 이 옥검봉의 높이는 아마 오륙백장에 달하는 모양이었다. 그 길이는 거이 사오리에 해당되는 거리여서 실로 이 옥검봉은 높은 곳이라는 것을 실감할수가 있게 했다. 백룡생은 일단 여기에서 한숨을 돌리고 쉬지 않을수가 없었다. 그는 일단 호흡을 고르고 허리에 팽팽히 당겨진 밧줄을 풀고 이어 남은 밧줄의 중간쯤을 다시 허리에 맸다. 그리고, 잠시 후 그는 천천히 아래로 힘을 주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그는 대략 백 오십 장 정도 내려가서 휴식을 취해야 했다. 그리고 바라보니 아래로는 이제 고작 오십여장 정도밖에 남아있지 않은 것이 아닌가? 물론 오십여장이 낮은 것은 아니었지만 이미 사백오십여장을 내려온 그에게는 아주 편하게 느껴졌다. 그리하여 그는 이번에는 줄을 그냥 아래로 늘어뜨리고 단지 손과 발에 의지하여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다시 말하자면 이 옥검봉의 높이는 대략 오백여장인 셈이다. 그러한 높이는 위에서 아래쪽이 전혀 보이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도 백룡생이 단지 손발에 의해 아래로 내려왔다는 것은 실로 기막히고도 놀라운 사실이 아닐수가 없었다. 일단 구명용 밧줄을 풀어버리자 백룡생의 움직임은 눈에 뜨일 정도로 느려졌고 신중하였다. 비록 오십여장이라고 할지라도 여기에서 자칫 실족이라도 하면 아래로 떨어져서 벼도 추리지 못할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허나, 그는 얼마가지 않아서 곧 드디어 아래에 도착할수가 있었다. 그곳은 바로 그가 현진자와 함께 처음 도착했던 그 장소였다. 그리고, 이때는 이미 하늘에는 해가 둥실 떠올라 사방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하지만 비록 해가 떠올라 있어도 따뜻한 것은 아니었다. 백룡생의 입속에서는 흰김이 마구 토해져 나오고 사방에는 서리가 잔뜩 깔려 있었다. 그는 우선 사방을 둘러보며 물을 찾았다. 계곡의 물은 그곳에서도 좀더 아래쪽에 맑은 벽수가 되어 흘러가고 있었다. 그 맑은물은 이어 좀더 나아가다보면 다시 까마득한 절곡아래로 떨어져 내리며 파파파 하는 거대한 음향을 토하는 폭포수가 되기도 했다. 그러니까 이 부근은 암벽의 굴곡이 극심해서 마치 도가에서 말하는 세외도원경 같았다. 만일 이렇게 이곳이 춥지 않고 또한 삭막하지 않았더라면 누구라도 이곳에서 집을 짓고 사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을 것이다. 백룡생은 간단하게 세수를 하고 몇모금의 차디찬 벽수를 들이마신 후에 허리에 매었던 커다란 가죽부대에 물을 잔뜩 담았다. 원래 그 가죽부대는 현진자가 절봉위에 마련해둘 물통 대신으로 가져온 것이었는데, 그는 미련스럽게도 이것을 들고내려왔던 것이다. 그 가죽부대에 물을 가득 담자 그 양은 커다란 물통의 양보다도 오히려 많았다. 허나, 백룡생은 그 커다란 가죽부대를 밧줄을 이용하여 자신의 등뒤에 칭칭 묶었고 그위에 다시 몇개의 굵은 마른나무들을 주워다가 묶어 놓았다. 그러자 그의 모습은 마치 자신보다도 훨씬 커다란 바위를 짊어맨 듯한 괴이한 모습이 되었다. 대체 저러한 상태로 몸을 움직일수가 있을 지가 의심스러운데, 백룡생은 전혀 어렵지 않게 걸음을 옮겨서는 다시 밧줄이 있는 곳으로 되돌아왔다. 그리고는 한 걸음 두걸믐 위로 오르기 시작했다. 가죽부대를 짊어지고 위로 오르는 것은 과연 힘들기 그지없었다. 보통 절벽이라는 것은 위로 오르기보다는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 더욱 어려운 법이다. 허나, 내려올때는 거의 쉬지 않았던 백룡생은 올라가면서 불과 오십장을 더 가지 못하고 헉헉거리면서 호흡을 가다듬지 않을수가 없었다. 사실 그가 제아무리 천생의 신력이 있다고 하더라고 이것은 실로 당연한 결과라고 할수가 있었다. 가죽부대에 물을 잔득 담아서는 이렇게 올라가는 것은 확실히 무리였다. 그러나, 요즘 백룡생은 점차 자신의 힘의 한계를 알지 못했고, 그리하여 이런 모험을 하여 한계를 극복하고 싶은 욕망이 들었던 것이다. 백룡생은 일단 오십여장의 높이에 이르자 다시 밧줄을 잡아서는 허리에 단단하게 묶었다. 그가 만약 실족을 하더라도 이 밧줄은 그의 몸이 아래까지는 떨어지지 않도록 해줄 것이다. 그렇게 잠시 휴식을 취하자 백룡생은 다시 위로 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정신을 배가시켰고 가능한한 전신의 모든 근육을 활용하여 빠르게 위로 오르기를 힘썼다. 실상, 이렇게 절벽을 오르내리는 것은 전신의 골격을 튼튼히 하고 근육을 강인하고 부드럽게 하는데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할수가 있었다. 백룡생은 비록 어려서부터 많은 일을 해왔지만 그의 골격이 훌륭해진 것은 산의 절벽을 많이 탔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어려운 행위를 강행하자 그의 전신은 근육과 골격이 그 역할을 최대한 담당하게 되었고 그야말로 젖먹던 힘까지 다 나오게 되었다. 게다가, 그의 정신력은 강해졌고 호연지기가 길러졌다. 그야말로 가장 사내답게 된다고 할 수가 있었다. 강호의 무공 가운데에는 벽호유장이라는 것이 있다. 말 그대로 호랑이가 절벽을 미끄러지듯이 올라간다는 뜻인 것이다. 마치 그것처럼 비록 백룡생은 무공은 모르지만 전신의 모든 골격과 근육을 최대한 활용하여 빠르게 위로 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야말로 승부였고 모험이었으며 목숨을 건 사투였다. 그렇다면 그는 대체 무엇때문에 이러한 고생을 사서하는 것일까? 아마 그 이유는 그가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은 바로 도전을 뜻한다. 그렇게 도전함으로써 비로소 삶을 확인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가는 것이다. 제 9 장 불가사의한 진전 그러나, 백룡생이 제아무리 그러한 노력을 한다고 해도 역시 사람의 체력에는 한계가 있다고 할 수가 있었다. 비록 얼마간 더 나아가기는 했지만 백룡생은 백장정도 올라가자 더이상 힘이 딸리는 것을 느꼈다. 그리하여 그는 할 수 없이 제자리에 멈춰서 쉬는 한편 허리에 묶었던 밧줄을 풀어서 짧게 다시 묶었다. 그리고, 얼마간 땀을 식히다가 그는 다시 위로 오르기 시작했다. 허나, 이번에는 그는 불과 칠십여장을 가지 못하고 기진맥진해졌다. 그리고 다음에는 오십여장, 그리고 점차 그가 휴식을 취하는 횟수가 많아졌고 올라가는 시간은 줄어들었다. 그리하여, 그가 마지막으로 옥검봉의 정상을 눈앞에 두었을 때에는 거의 삼사장을 올라갈때마다 한번씩 쉬어야 했다. 아니, 그는 겨우겨우 옥검봉의 위에 올라갔을때 더이상 움직일수가 없을 정도로 완전한 녹초가 되고 말았다. 헌데 바로 그때, 그의 머리위에서 돌연 한줄기 차가운 음성이 들려왔다. "이게 무슨 짓이냐?" "...?" 그것은 현진자의 음성이었다. 백룡생은 고개를 들어 그를 올려다보았다. 현진자는 다소 초조한 표정이 되어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누가 이런 위험한 짓을 하라고 했느냐? 설마하니... 그게 다 아래에서 가져온 물이란 말이냐?" 현진자는 백룡생의 등뒤에 묶여있는 가죽부대의 안을 가리키며 그렇게 물었다. 이에, 백룡생은 힘없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렇습니다." 그말에, 내심 설마하고 있던 현진자는 순간 안면이 경악으로 가볍게 일그러졌다. 이건 도대체 믿을수가 없는 일이었다. 제아무리 천생의 신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고 무공을 전혀 익히지 않은 사람의 몸으로 이러한 일을 해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허나, 지금 그 불가능은 가 이 되어 현실앞에 누위있는 것이 아닌가? 그는 원래 백룡생이 아래로 물을 가지러 내려간것을 알았고 은근히 주변에서 감시를 했었다. 비록 그가 백룡생을 무당 파에 입문시킬수는 없어도 그를 죽게할수는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그는 백룡생이 무리하게 위로 오르는 것을 보았고, 그것을 나서서 도와줄수도 없었으며 그가 자칫 잘못될까봐 마음이 매우 초조하게 변해 있었다. 바로 그때문인지, 그는 일단 백룡생을 다시 대하게 되자 강한 거부반응이 이는 것이다. 사실 정말로 상승의 무공을 연성하게 되면 이렇게 물자루를 메고 위로 오르는 것쯤은 거의 일도 아니었다. 그리고 백룡생이 지금 하고 있는 것은 무공면에서는 외공에 속한다고 할수가 있었고, 상승의 무공인 내공은 거의 외공과 무관하다고 볼수가 있었다. 그렇다면 백룡생의 이런 행동과 모험은 전혀 쓸모가 없는 것이며 그의 괴력 역시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런 생각이 들자 현진자는 내심 놀라움 보다는 반감이 크게 일어서 차갑게 소리쳤다. "나는 네가 죽건말건 상관이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렇게 쓸데없이 힘을 소모하여 정작 할일을 하지 않는다면 어찌 감히 밥먹을 생각을 할수가 있겠느냐?" 그말에, 백룡생은 고개를 깊이 수그렸다. "알겠습니다. 도장어른." 이어, 그는 힘겹게 몸을 일으켜서 가죽부대를 안으로 옮기고 땔나무를 가져다가 쌓았다. 그리고 나서 빠르게 움직여 불을 지피고 물을 끓여서 현진자의 세숫물을 마련하면 한편 점심식사를 준비했다. 그리하여 점심식사를 올리고 그 역시 밥을 먹고났을 때, 그는 거의 녹초가 되어서는 자신의 거처로 가서 골아떨어지고 말았다. 헌데 거의 저녁때쯤 그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였다. 과거 같았으면 최소한 며칠간은 끙끙 앓아 누었어야 했을텐데 그는 오히려 몸이 전보다도 더욱 활력이 넘치고 있는것 같지 않은가? 이것은 물론 이유가 있었다. 백룡생의 체내에 지금 잠재되어 있는 힘이라고 하는 것은 거의 무한대에 달해서 그가 쓰면 쓸수록 빛을 발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차후 그가 내공을 본격적으로 연마할 때에 비로소 진가를 발휘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비록 이러한 연마, 체력적인 단련은 내공과는 상이하며 전혀 궤도를 달리하는 것이지만 그 체력의 소모가 극한에 이르러서 다른 기운의 도움이 극히 요구될 때에는 그 무한한 힘의 지극히 일부가 체력으로 전환되어지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그힘의 본체에 비하면 지극히 보잘것 없는 것에 불과하지만, 일단 백룡생의 단단하고 부드러운 골격과 근육에 작용하여 거의 신력에 가까운 힘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백룡생의 전신피로는 금세 풀렸을 뿐만 아니라, 그의 전신에 새롭고 강인한 힘이 보충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백룡생 본인으로 불때는 지극히 마음 기쁜 일이었다. 비록 기분상의 일인지는 몰라도, 이제는 아까의 그런 가죽부대 정도는 너끈히 그렇게 녹초가 되지 않고서도 위로 올라올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백룡생은 문득 참을수 없다는 심정이 되었다. 때문에 그는 얼른 저녁식사를 마련하여 현진자에게 올리고 방안과 내외를 깨끗하게 청소한 다음에는 자신의 잠자리로 돌아와서 그가 잠들기를 기다렸다. 현진자가 이 일을 안다면 그가 다시 가죽부대를 들고 한밤중에 내려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의 바램대로 현진자는 쉽게 잠들지 않았다. 현진자가 거의 하루종일 하는 일이란 그간의 자신의 무공을 되돌아보고 점검하며 연마하고 운기조식을 하여 내공을 보충하며 도가의 경전을 읽는 일이었다. 지금 현진자는 운기조식에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는 꼼짝없이 앉아서 무려 두시진재 저렇게 가만히 있었다. 대체 그는 언제나 운기조식을 끝내고 잠이들 것인가? 백룡생은 잠자리에 누워서 잠은 오지않고 조바심이 들어서 계속 뒤척였다. 그러다가, 대략 삼경무렵이 되어서야 비로소 현진자는 방안에 길게 누워서 잠을 청하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이윽고 가벼운 코고는 소리가 들려오자, 백룡생은 드디어 몸을 일으켜 행동개시했다. 그는 미리 준비해 놓은 다른 가죽부대를 허리에 젊어지고 빠르게 소리없이 그 밧줄이 있는 곳으로 나는듯이 걸어갔다. 그리고 이미, 밧줄을 허리에 감으며 두손과 두발을 이용하여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는 사실 밧줄을 이용하여 아래로 내려갈수도 있었지만 그가 이렇게 내려가는 것은 이미 습관화 되어 있어서 오히려 편했고, 그것은 그의 근육과 골격을 강인하고 부드러우며 탄력있게 만들어 주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되었다. 그리고, 확실히 처음 내려가는 것 보다는 두번째로 내려가는 것이 보다 빠르고 편한 느낌이 들었다. 전에 너무도 힘겹게 올라왔기 때문에 백룡생은 내려갈때는 거의 힘든줄을 모르고 무사히 내려갈수가 있었다. 이미 사방은 캄캄한 어둠이 깔려 있었으나 거의 감각으로 움직이는 그에게는 별로 지장을 주지 못했다. 단지 다소 두려운 것은 강하게 불어오는 계곡의 바람이었는데, 한번은 자칫했으면 그대로 날려가 버릴뻔도 했다. 허나 그의 운동신경은 극히 발달되어서 즉시 바위의 튀어나온 부분을 강하게 움켜잡았고 그뒤로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드디어 다시 아래로 내려오자 백룡생은 전처럼 맑은 물을 가죽부대에 가득히 담은 다음에 이번에는 마르고 굵은 통나무들을 전보다도 더욱 많이 등뒤에 묶었다. 대체 그것은 단순히 느낌뿐이었을까? 아니었다. 드디어, 백룡생은 다시 밧줄앞에 이르러 전신의 기력을 모은채 한차례 깊게 심호흡을 하고 천천히, 그러나 전신의 모든 근육을 빠르게 움직여서 위로 오르기 시작했다. 헌데 놀랍게도, 그는 무려 백여장이 넘도록 올라갔는데도 지치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는 백오십장이 되는 곳에 이르렀을때 한번 쉬게 되었다. 허나, 이번에도 그는 전처럼 그렇게 녹초가 되다시피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너무나도 지치게 되면 다음이 어려울것 같아서 일부러 다소 휴식시간을 가진 것이다. 그리고, 그간에 잊었던 밧줄을 허리에 감아 유사시를 대비했다. 이어 잠시 휴식을 취한 후에 그는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이번에도 다시 백오십장을 오르게 되었다. 그가 이런 거리를 어떻게 잴수가 있는가 하면 그것은 오로지 거의 다년간에 걸쳐 터득하게된 육감이라고 할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거의 맞았다. 다시 백오십장을 올라간후에 정지한 그는 전보다는 다소 힘겨웠으나 역시 완전히 녹초가 된것은 아니었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는 그는 내심 매우 기뻤다. 그것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얻은 승리의 기쁨과 더높은 곳으로 향하는 강한 도전에의 의욕이 넘치는 감격이었다. 그는 이미 자신이 해뜨기전에 절봉위로 돌아갈수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허나 좀더 시간을 단축시키고 이번에는 자신의 힘의 한계를 느끼기 위해 단숨에 끝까지 올라가기로 했다. 그리하여 그는 정신력을 배가하였고 드디어 다시 위로 오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위로 오르는 그의 몸놀림은 이미 숙달될대로 숙달되어 있었다. 사실, 이렇게 암벽을 탄다는 것은 단순히 힘만으로는 되는것이 아니었다. 오로지 그사람의 골격과 근육이 가장 이상적으로 움직여야 하고 또한 능숙하게 길이 들고 감각을 익혀야 하는 것이다. 허나 백룡생은 이미 그러한 거의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고 있으므로 자연 성과가 빨라질수 밖에 없었다. 그는 거의 날듯이 빠르게 위로 올라갔다. 그러나 결국 힘의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고, 다시 백오십장을 올라가자 그는 매우 크게 허덕거렸다. 이제 남은것은 오십여장, 그는 멈추지 않았다. 입에서는 거품이 흘러나올 지경이고 정신이 노랗게 변하는 것을 느끼면서도 그는 손발을 멈추지 않고 위로 위로만 올라갔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아까 그가 쉬면서 올라갔던 것보다도 더욱더 고통스럽고 어려운 도전이라고 할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가 더이상 기백을 짜낼수가 없다고 내심 강하게 부르짖을 순간에, 어느세 그는 앞으로 몸이 천천히 기울어지고 있었다. 드디어 정상위에 도달한 것이다. 백룡생은 죽을힘을 다해 마지막으로 힘을 내서 완전히 위로 올라가서는 거의 혼절하듯이 앞으로 쓰러져 버렸다. 그의 숨은 크게 가빠왔고 심장은 금세라도 터질듯이 압박되었다. 게다가 전신의 기백은 하나도 없어서 마치 물먹은 솜뭉치 같았다. 그러나, 이순간 그의 영혼은 거대한 승리의 희열에 끝없이 들뜨고 있었고, 거대한 고통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그의 마음은 크게 부풀었다. 그러나, 바로 그때였다. 일순간의 희열에 마음이 크게 들떠있는 그의 마음에 차가운 된서리를 내리듯 돌연 싸늘한 음성이 들려온 것은, "네놈은 나의 말을 듣지 않겠다는 것이냐? 도대체 이런짓을 해서 대체 무엇을 얻겠다는 것이냐?" 그것은 바로 백룡생의 귀에 너무도 익순한, 즉 현진자의 냉랭한 음성이었다. 즉시 흠칫하여 고개를 들어보니, 현진자는 어느새 그의 머리맡에 차가운 기세로 서있었다. 그의 태도는 그리 노한것 같지는 않으나 다소 비정해 보였다. 그는 백룡생의 이런 덧없는 도전과 노력에 조소를 던지는듯 했다. 백룡생은 그 얼굴을 바라보다가 문득 자신도 모르게 말대꾸를 하고 말았다. "무엇을 얻기 위해서 이러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 무엇을 얻기 위해서라면 그는 이렇듯 무모한 모험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다만 도전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을 얻기위한 욕심을 가진 행동과 도전을 위한 도전이라는 것은 그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기에, 도전을 하는 사람은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얻게 되겠지만 그러나 그 무엇을 얻게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다만 그는 도전의 매력에 이끌려 끊임없이 도전을 하고 결과보다는 그러한 도전속에서 강렬한 행복을 얻게되는 것이다. 이것이 도전을 하는 사람과 욕망을 가진 사람과의 차이이다. 욕망을 가진 사람은 불순하지만, 도전을 하는 사람을 그래서 가장 순수한 영혼에 도달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진자는 이러한 이치를 알리가 없었다. 그것은 오직 경험으로 인해 터득되는 이치이기 때문이었다. "얻기위해 그러는 것이 아니라고?" 그의 얼굴에는 불신과 격노의 빛이 다소 어려 있었다. 그는 백룡생이 자신의 말에 감히 반박을 하자 일순 노화가 치솟은 것이다. 사실, 그는 지금 이 백룡생이 겉으로는 아무말도 하지 않지만 은근히 자신을 무당파의 제자로 삼아주기를 바래서 이런짓을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원래, 자정무렵 백룡생이 몰래 거처를 빠져나갔지만, 설사 현진자가 깊이 잠이 들었다고 해도 그의 행동은 현진자의 이목을 속일수는 없었다. 현진자는 즉시 은밀하고 신형을 움직여 그의 뒤를 밟았고 여태까지 놀라운 상황을 목격했다. 그는 대체 인간이 저렇게 빠른 진전을 보이며, 이렇게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게 된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인간의 외공이 이러한 진전을 보일수가 있다면 그는 무림의 외공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야할 정도였다. 그러나, 결국 인간의 외공이 제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하늘을 날을수는 없다. 하지만 상승의 내공을 연성한 사람은 가히 하늘을 날을수도 있다고 할수가 있으니, 그 차이는 실로 엄청나며 비교할만한 가치조차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이 놀라운 능력과 괴력을 보이는 백룡생은 무엇 때문에 이런 고생을 사서하는 것일까? 현진자는 거기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선 그는 생각했다. 그는 사실 너무도 바보여서 이런 식으로 무림의 공력을 터득하려는 것일까? 이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 봤지만 현진자는 즉시 고개를 저을수밖에 없었다. 그가 제아무리 바보라고 할지라도 강호에 들리는 소문을 듣지 않았을리가 없는데 이런것들이 도움이 안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대체 무엇때문에 이런 짓을 하는 것일까? 현진자는 한참동언 생각해 보았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그것은 백룡생은 이런 짓을 해서 우선 현진자의 눈에 들어서 그의 제자가 되거나 무당파의 제자로 입문하려는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따라서, 현진자는 순간 다시 생각했다. -- 나는 아마 잘못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이녀석은 비록 바보를 가장하고 있지만 정말로 바보가 아니라 실로 교활한 녀석이 아닐까? 그것은 이러한 사람이 심리를 이용하는 행동이라는 것은 결코 바보로서는 할수가 없는 고등수법이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그는 이런 생각이 다시 떠올랐다. -- 그렇다면, 그가 사실은 바보가 아니라면 그는 대체 무슨 목적으로 내게 접근 하여 무당파에 잠입하려는 것일까? 그는 혹시 적의 첩자가 아닐까? 현진자는 살아오면서 오만가지 세파를 다 겪었다고 할수가 있기에 그런 어처구니없는 생각까지 일순 떠올랐다. 그러나, 순간 그는 백룡생을 그에게 보낸 노인의 얼굴을 뇌리에 떠올렸고 그럴리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가 보기에도 노인은 분명히 죽었다. 그리고 그 모든것이 첩자를 보내기 위해서였다면 전날 성형하수오를 소모하거나 현현노조의 일을 방해하고 또한 스스로 죽는등의 희생을 치를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것은 마치 한마리의 빈대를 잡기위해 집한채를 모조리 헐어버리는 것과 다름이 없이 무의미하다. 아니, 설사 무당파의 무공을 배우기 위해서였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결론은 그와 노인과의 인연, 그리고 다시 그와 백룡생과의 이러한 인연은 단순히 공교로운 인연에 불과할 뿐인 것이다. 하지만 대체 백룡생은 무엇때문에 이런 고생을 자초하는 것일까? -- 과연 그는 너무 바보여서 이런짓을 아무렇게나 하고 있는 것이란 말인가? 여기에서 현진자는 일순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도대체 뭐가뭔지 갑자기 알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그는 일단 자신이 생각을 멈추게 되었고 우선 백룡생에게 직접 물어보기 위해 이렇게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현진자는 다시 사납게 물었다. "그럼 너는 나의 제자가 되기 위해 이러는 것이 아니란 말이냐?" 현진자는 문득 그렇게 묻고서도 그가 그렇다고 말하면 못이기는척 하고 제자로 삼아줄까 하고 생각했다. 사실, 그가 여태 제자를 하나도 두지 않은것은 대인관계에서 그가 꺼리는 점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백룡생은 잠시 데리고 있어보니 편리한 점이 많았을 뿐만 아니라 그의 마음을 아주 편안하게 해주었다. 게다가, 아무리 생각을 거듭해도 그가 무슨 목적을 가지고 그에게 나타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자신에게 잘보여서 무공을 배우고 싶은 아주 순수한 동기였다고 한다면 비록 다소 머리가 둔하다고는 하나 그 성의를 생각해서 제자로 받아줄 마음이 생겼던 것이다. 그리고, 순간 그는 자신이 아까 복잡하게 생각한 데에는 한가지 오산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비록 교활한 첩자나 총명한 자가 아니더라도 일단 누구에게 잘보이려고 생각한다면 바보라도 이런짓을 할 수가 잇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은 바로 개의 경우를 보면 알수가 있다. 개는 결코 총명하거나 교활하다고 말할수가 없다. 그러나, 그들은 사람에게 충성심을 보이기 위해 때로는 목숨을 버리기도 하는 것이 아닌가? 물론 사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현진자는 백룡생이 어리석다는 관념은 변하지 않았고, 일순간에 마음의 혼란이 사라졌으며 다만 그가 한순간 반박을 했다는 점에 있어서만 노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런데, 다음순간 백룡생의 대답은 더욱 그의 예상을 벗어나는 엉뚱한 것이었다. 백룡생은 즉시 그에게 이렇게 대답했던 것이다. "물론입니다. 제가 어떻게 도장어른의 제자가 되려고 하겠습니까?" 그 말에, 현진자는 그만 두눈에 불을 켰다. "너는 감히 그럴수가 없다는 말이냐, 아니면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는 말이냐? 어서 가부간의 확실한 대답을 해라!" 현진자는 일시 놀랐으나 혹시 백룡생이 일부러 말을 돌려서 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여 다시 물어본 것이다. 감히 못한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제자로 받아들어지기를 소망하는 말보다 더욱 강력한 청원이 되는 것이다. 헌데, 백룡생의 다음 말도 역시 그의 예상을 빗나갔다. 백룡생은 잠시 생각한 후에 대답했다. "저는 사실... 도장어른의 무공을 배우고 싶은 마음은 별로 없습니다." 그가 이 말을 할 때는 무도 정색을 하고 미안해하는 표정이어서 결코 가식이나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알수가 있었다. 허나, 그럴수록 현진자는 일순 머리끝에서 연기가 풀풀 날리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그는 내심 이 어리석은 녀석이 자신의 위대한 무공을 무시하는 것을 보자 노화가 극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렇다고 노화를 그를 상대로 풀수가 없다고 생각하여 다소 억눌린듯한 음성으로 음산하게 다시 물었다. "그건 어째서냐? 무공을 배우면 너처럼 힘들게 이곳을 올라오지 않아도 되고 좋지 않느냐?" 그것은 일견 동의를 구하는 질문 같았으나 현진자의 어조가 매우 차가왔기 때문에 실은 아주 강압적인 질문이었다. 백룡생은 이를보고 현진자의 노화가 대단하다는 것을 알고는 마음이 매우 무거워졌다. 허나, 그는 그의 화를 풀어주기 위해 거짓말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백룡생이 다시 정색을 하며 어색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저는 사실 그런점을 알고 있지만, 지금 이렇게 어렵게 올라오는 것이 더욱 좋다고 생각합니다." 현진자는 점점더 백룡생의 말을 알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다시 물었다. "그건 왜냐?" 백룡생은 다시 대답했다. "그런 욕심을 갖게되면 욕심은 한도끝도 없게되고... 보다 높은 것을 구하며 만족이라고는 없을 것입니다. 항상 구하며 마음이 괴로울 뿐이죠. 게다가 설령 그런 능력을 갖는다고 해도 결국에는 싸움을 하며 좋지않은 결과를 낳을수도 있기 때문에 저는 구태여 바라지 않습니다." 그말은 뭔가 이해가 갈듯 하면서도 아리송한 말이었다. 현진자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다소 조소하듯이 다시 물었다. "너의 말은 제법 그럴싸하구나. 하지만 너는 지금 분명히 보다 더 빨리 오르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지 않았느냐? 그것은 욕심이 나리나 말이냐? 일단 그런 욕심을 갖게 되었거늘, 당연히 그보다 훨씬 높은 경지를 성취하게 되는 것을 바라는 것은 인지상정인데 너는 대체 무슨 괴변을 하려고 하느냐?" 그말에, 백룡생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다시 엄숙한 어조로 대답했다. "어른께서는 잘못 생각하고 계십니다. 제가 지금 하고있는 일은 결과를 위해 목적을 바라고 하는일이 아니니 욕심이 아닙니다. 다만 자신을 수련하고 자신의 정신을 일깨우는 것일 뿐입니다. 저는 지금 몸이 아주 건강하고 부러울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대체 무슨 욕심을 갖겠습니까?" 현진자는 다시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네게 지금 욕심이 없다면 너는 어째서 나에게 덕을 보며 얹혀 있느냐? 너는 마땅히 스스로 나가서 남에게 피해를 입히지 말아야 할것이 아니냐?" 백룡생은 그말에 거의 울상을 지었다. 이 현진자는 성격이 편협하여 지금 거의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말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이제야 말씀드리지만, 제가 어른의 시중을 들어드리는 것은 돌아가신 저희 어르신의 유명을 지키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분은 항상 저를 위해주셨고, 또한 돌아가시면서도 걱정하시어 그런 유명을 내리셨던 것입니다. 그러니 제가 어찌 따르지 않을수가 있겠습니까?" "...!" 현진자는 그말에 일순 할말을 잃고 넋을 잃은듯한 표정이 되었다. 그는 원래 이녀석이 ㅝ낙에 어리석기 때문에 그 노인이 자신으로 하여금 얼마동안 데리고 있으면서 가르쳐서 사람구실을 하도록 만들어 주기를 바라는줄 알았었다. 아니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그가 그런 고생을 하고 그를 이곳 무당산에까지 데려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백룡생의 말을 들어보니 자신은 이미 충분히 혼자 살아갈 능력이 있는데 단지 노인이 유명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시중을 들어주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아니, 가만히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그럴것도 같았다. 현진자는 처음에는 이 백룡생을 아주 어리석은 녀석으로 생각했었지만 갈수록 좋은 점이 드러나고 어떤점은 누구도 따르지 못할 정도로 잘하는 것도 있었다. 게다가, 사람을 시중드는 것만 해도 아주 신기하게 마음을 맞춰주는 것이, 만일 그가 그런 방법으로 나서더라도 강호에서 밥을 굶지는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재삼 생각해 보더라도 지금의 경우보다는 나을 것이 틀림없었다. 과연 그의 말대로 다른 욕심이 없다면, 아니, 그가 지금 이렇게까지 말하고 있다면 그건 틀림없이 전혀 욕심이 없다고 봐야한다. 그가 조금이라도 무공을 배우기를 소망했다면 결코 이렇게까지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대체 지금 누가 누구에게 신세를 지고 도움을 주고 있다는 말일까? 그것은 자신일까 아니면 백룡생일까? 그런점을 일순간에 생각하며 현진자는 내심 어이가 없었다. 그는 그래도 과거의 노인의 은혜를 생각해서 일부러 이런 수고를 하고 있건만, 사실은 그 결과는 엉뚱한 것이란 말인가? (빌어먹을! 그렇다면 그 노인은 내게 도무지 쓸데없는 부탁을 한것이 아니겠는가?) 현진자는 내심 넋을 잃고 그렇게 중얼거렸다. 제 10 장 외공의 완성 그때 백룡생이 다시 말했다. "전날 어르신이 말씀하신 것은 어른을 따라가서 살라고 했지만 그것은 어떤 기한을 둔것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이미 어른과 함께 살았다고 불수가 있고... 그래서." 백룡생은 이어 다소 어렵게 말을 이었다. "만일, 만일 어른께서 제가 시중드는 것이 불편하시다면 저는... 저는 이만 이곳을 떠나도록 하겠습니다." 그것은 현진자의 입장으로 볼때는 가히 폭탄선언이라고 말할수가 있었다. 이에, 현진자는 즉시 오만상이 심하게 일그러졌지만 그래도 잠시 내심 생각했다. (확실히 이녀석은 무공을 익히기를 바라지 않으니 나는 이녀석을 데리고 있을 필요가 없는것 같아.ㄷ 그러나, 그렇다고 이녀석을 이대로 가게해야 한단 말인가? 아니다. 그럴수는 없다?) 그는 왜 안된다고 생각이 드는지는 알수가 없지만 어쨌든 우선 그렇게 못박았다. 그리고는 다시 생각했다. (나는 원래 그 노인에게 커다란 빚을 짊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녀석이 그대로 그냥 가버리면 나는 그 노인의 부탁을 저버린 꼴이되고 그의 은혜를 망각하는 행동이 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다시 그 죽은 노인을 만나서 은혜를 갚을수가 있단 말인가? 빌어먹을 이건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노릇이군!) 현진자는 내심 커다랗게 부르짖으며 다시 생각했다. (문제는 그 노인이 바보였다는 것이다. 그는 도무지 쓸데없는 부탁을 했기 때문에 두 사람이 고통을 겪게 되었다... 이 녀석을 데리고 있는것은 비단 나에게도 별로 도움이 안되고 이녀석에게도 전혀 도움이 안된다. 하지만 나는 쓸데없는 일을 노인의 은혜를 갚기 위해서는 해야하지 않을까?) 현진자는 내심 자꾸만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것은 확실한 판단이 잘 서지 않았다. 은혜를 위해서는 어리석은 짓을 해야하고, 똑바로 하자니 그는 은혜를 저버리게 되고 나중에 혹시 마음에 걸리게 될지도 모르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하여 그는 내심 결정했다. (좋다! 나는 그때 빌어먹을 도움을 받은것 때문에 한번 어리석은 짓을 한다고 생각하면 되지. 빌어먹을 은혜를 지워버리는 것이 더욱 중요하지 않겠는가?) 현진자는 평생 은혜를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따라서 그는 다소 어리석은 행동을 하더라도 은혜를 지워버리는 일을 선택했다. 하지만 그는 이 일이 극히 못마땅하여 연신 도사의 신분을 잊고 욕을 해대고 있었다. 그는 이어 생각했다. (좋아! 나는 게다가 솔직히 말해서 이런 녀석이 나의 무예를 감히 업수히 여기고 배우지 않고 그냥 가버리겠다고 말한데 대해서 매우 불만을 느끼고 있었어! 나는 다른짓은 젖혀두고라도 이녀셕이 그런말을 하고 가버리는 것을 용납할수가 없었을거야! 그래, 맞아!) 현진자는 일순 작은 두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그것은 그가 뭔가 새로운 계책을 생각해냈을때의 독특한 표정이었다. (나는 우선 이녀석이 무공에 욕심을 내도록 열심히 유도하는 것이다. 그랬다가 나중에 이녀석이 정말로 욕심을 일으켜서 무공을 가르쳐달라 하면 그때는 내쫓으면 될일이 아닌가? 흐흐... 네놈이 감히 나에게 무공을 업수히 여겨 그냥 가려고 했지만 그건 마음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렇다고 해서 네게 무공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너를 데리고 있다가 유혹을 하고는 무공은 가르치지 않겠다는 것이다. 흐흐, 이것은 그노인의 부탁을 저버리는 것이 아니니 못할것도 없지!) -- 현진자, 그는 원래 편집광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는 성격이 악한 사람은 아니었는데 자신의 용모가 다소 괴이함으로 인해 성격이 모나고 괴이하게 변모해 버렸다. 그랬기 때문에 그는 지금 도가의 인물로는 도무지 생각해서는 안되는 모략을 서슴치않고 꾸며 내기에 이르렀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을 모욕하고 멸시하는 것을 한평생 가장 미워하였는데, 지금 분명히 백룡생에 의해 그의 노력이 멸시를 당했다고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만일 앞으로 그의 계략되로 된다면 이것은 기실 노인의 은혜를 갚는다는 본질과도 위배되는 것이면 아주 비열한 방법이 아닐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지금 그런 것을 깨닫지 못했다. 그는 지금 복수에 미쳐있기 때문이었다. 이때, 백룡생은 현진자가 깊은 생각에 잠겨서 그 표정이 자주 변하는 것을 바라보며 가만히 누운채 있었다. 그는 현진자가 생각을 다 끝내고 말하면 그에 따르리라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그 현진자는 이윽고 모든 결정을 다했는지 눈빛을 기이하게 빛내더니 백룡생을 향해 말했다. "사실, 나는 너의 그 어르신의 부탁을 받고 너를 보살피는 것이 틀림이 없다. 그리고 너의 ... 너의 그 시중은 사실 괜찮았다. 내 내말은..." 현진자는 갑자기 말을 더듬었다. 그것은 그의 심사가 편안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이 마음은 지금 매우 커다랗게 격동되어 있었다. 그는 입술을 혀로 축이고 말을 이었다. "내말은 너는 지금 이대로 가면 안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왜냐하면... 왜냐하면 나는 너를 보살펴야 하고 내게 해줄것이 있기 때문이다." 현진자는 이때 말을 하다말고 만면에 득의한 빛을 떠올렸다. (흐흐, 내가 네개ㅔ 해줄 것이란 바로 네가 무공을 탐내게 해주는 것이다. 그뒤엔 흐흐... 네가 통사정을 하더라도 결국 쫓아내고 말 것이다!) 현진자는 내심 다짐을 한 후에 문득 눈빛을 부드럽게 고치며 백룡생에게 물었다ㅣ. "너, 너는 설마하니 나를 무시하고 가버리는 것은 아니겠지? 약속을 해라! 약속을 해야만 나는 믿을수가 있겠다! 그렇다고 너는 계속 나를 시중들 필요는 없다. 다만 나와 함께 지내기만 하면 돼! 너는 약속을 해주겠느냐? 혹시 나몰래 훌쩍 떠나는 것은 아니겠지? 무량수불...!" 현진자는 마음이 다급해졌다. 어찌나 다급해졌는지 평소에 별로 외우지 않던 도호가 절로 튀어나왔다. 왜냐하면, 백룡생이 만일 그냥 떠나버린다면 그는 그야말로 닭쫓던 개가 지붕쳐다보는 격이 되어버리고 말며, 은혜를 갚는것은 커녕 복수역시 할 도리가 없겠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지금의 그의 태도는 매우 강렬하고 화급해 보였지만 어조는 다소 유혹하듯 간드러지고 부드럽게 그지 없었다. 이것은 마치 못생긴 남자가 떠나려는 애인을 향해 애원하는 것이나 다를바가 없다고 해야할 것이다. 그말에, 백룡생은 문득 미미하게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말했다. "그렇다면 떠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역시 시중도 들어드리겠습니다. 만일 그렇지 않는다면 제가 어찌 이곳에 머무를수가 있겠습니까?" 이어, 그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등에 짐을 부엌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현진자는 그것을 보고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잠시후 그는 생각했다. (네가 떠나지만 않겠다면야 굳이 시중을 들겠다는데 내가 마다할 필요는 없지.) 이어 그는 입가에 싸늘한 웃음을 날리며 곧장 방안으로 들어가버리고 말았다. 그러자, 벡룡생은 부엌의 문을 닫고 가죽부대와 등나무등을 정리한 다음에 자리에 누웠다. 아직 오경도 채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사방은 어두웠으나, 그리고 심신이 매우 피곤한 느낌이 있었으나 그는 웬지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이것은 그의 뇌리에 번뇌가 이는것을 나타내는 것일까? 그는 사실 정말로 아까 말한대로 어르신의 유명에 의해 이곳에 와서 그를 시중들고 있는 것이었다. 허나 알고보니 이 일은 뭔가 문제점이 있는것 같았다. 그리고 현진도장의 의도는 대체 무엇일까? 백룡생은 이러한 의문이 한꺼번에 치밀이 올랐으나 문득 생각했다. (내가 바르면 그만이다. 더이상 무슨 걱정을 한단 말인가?) 이어, 그는 입가에 담담하 웃음을 머금었고 곧장 깊은 잠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 * * 다음날 아침, 백룡생은 다소 늦게 잠에서 깨였다. 그것은 어젯밤에 있었던 피로가 너무도 극심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아침에 일어난 그의 몸은 놀랍게도 어제보다도 더욱 활력에 가득차 있었다. 그러한 활력은 도무지 끝이없는 힘을 그에게 안겨줄듯 했다. 백룡생은 마치 이러한 힘을 느껴보고 싶었으나 그때, 문득 부엌의 문이 열리며 현진 자가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전에는 전혀 들어오지 않던 사람인데 불과 하룻밤 사이에 많이 변모했다. 뿐만 아니라, 그의 태도는 많이 변화해 있었다. 그는 안으로 들어오더니 웃으며 말하는 것이었다. "아아, 피곤하면 일어나지 말라고 그대로 계속 누워있어도 괜찮다. 나는 지금 아래로 내려갈 생각이니 밥은 너혼자 먹도록 해, 그리고 이건 부탁인데..." 현진자는 백룡생을 향해 물었다. "그 부대를 짊어지고 위로 올라오는 것은 이제 그만두면 어떨까?" 그는 자신의 계획이 성공되기전에 백룡생이 죽을까봐 걱정하는 것이었다. 그말에, 백룡생은 웃으며 대답했다. "그건 사실 그리 위험하지는 않습니다." 그 말에, 현진자는 눈살을 찌푸리며 생각하더니 곧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좋아, 좋아! 그럼 그건 마음대로 하도록 해, 나는 아래를 내려갔다가 올테니, 혹시 그새에 가버리는 것은 아니겠지?" 말이 끝나자 현진자는 작은 눈을 들어서 곁눈질로 백룡생의 얼굴을 주시했다. 사실 그는 이말을 다시 하기 위해 안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백룡생은 그말에 웃으며 대답했다. "어제 말씀드렸듯이, 저는 어른께서 저를 마다하지 않는다면 가지 않습니다." 현진자는 그렇게 말하는 그의 태도가 정색을 하고 매우 엄숙한 것을 보고는 즉시 그말을 믿는 모양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일순 해벌쭉 웃더니 말했다. "흐흐 고마워! 네 이미 그럴줄 알았지. 그럼 나는 이만 갔다올테니 그동안 폭 쉬고 있으라구?" 이어, 현진자는 백룡생을 향해 다시 한번 능글능글한 웃음을 보이더니 곧장 신형을 번쩍 날려 문밖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서! 그 신법의 빠르기는 실로 경악스런 것이었다. 원래 현진자는 자신의 무에를 사람들에게 거의 드러내지 않는 편이었으나, 이제는 그는 자신의 무예를 적극적으로 드러내기로 작정한 모양이었다. 그는 백룡생애게 무예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게 하려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의 의도와는 달리, 실상 백룡생은 그가 놀라운 신법을 펼쳐서 사라진 후에도 역시 태도를 변화시키지 않고 담담한 표정으로 서있었다. 그러다가 그는 이어 천천히 신형을 움직이기 가했다. 백룡생은 자신의 일과대로 빠르고 부지런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의 일과는 다소 간단한듯 하면서도 제법 할일이 많은 것이었다. 그는 우선 밥과 반찬을 만들고 물을 많이 끓여 놓았으며, 게다가 모옥의 안팎을 깨끗하게 청소를 했다. 그리고 자신의 의복과 현진자의 의복을 깨끗하게 세탁을 하는 것이다. 그러노라니, 어느새 그는 아침식사를 할 겨를도 없이 시각이 점심때에 이르고 말았다. 이때 하늘에는 맑은 천공위에 눈부신 하얀 태양이 백색의 광망을 사위에 뿌려대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 절봉위의 날씨는 쌀쌀한 편이었다. 단지 현진 자는 무공을 연성했기 때문에 추위를 모르고, 백룡생은 특이한 기연을 만났었기 때문에 괴이한 체력으로 인해 오히려 체내에는 강한 열기가 들끓고 있을 뿐이었다. 백룡생은 시원하고 신선한 기분을 느꼈다. 그는 이어 점심상을 준비한 뒤 자신은 역시 간단하게 식사를 마쳤다. 그리고는 더이상 현진자를 기다릴수가 없다고 생각하여 다시 절벽 아래로 내려갈 생각을 했다. 지금 비록 많은 물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 날씨가 추워질테니 많은 땔감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그가 여태 가지고 왔던 많은 물도 이곳저곳을 청소하고 빨래를 하는동안 이미 거의 다 써버렸다. 이런저러한 핑계로 백룡생은 다시 아래로 내려가서 물과 나무를 가져오기로 했다. 다만 그는 어젯밤에 현진자와의 말다툼이후 이 절벽을 타는 흥미가 다소 식어버린듯 했다. 하지만 그는 감각을 새롭게 불러일으켰고 투혼을 다시 불태웠다,. 그러기 위해 그는 이번에는 전혀 밧줄의 도움을 받지 않고 그냥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겉으로는 수월한 것 같고, 또한 그게 그것인것 같아도 실상 밧줄을 묶지않고 아래로 내려가게 되자 일시 손발이 다 떨려오고 공포심이 생겨나 호흡이 다 막히는 것 같았다. 그리하여 그는 무려 서너번이나 실족을 할뻔 했다. 만일 그의 운동신경이 그렇게 예민하지 않고, 또한 이미 고도의 절벽을 타는 기술이 붙어있지 않았었다면 그는 아래로 떨어져서 전신이 형체도 찾아보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백룡생은 그러한 경험을 하자 전신에서 일순 식은땀이 흐르며 모골이 송연한 것을 느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다소 수그러들었던 절벽에 대한 도전의욕이 새롭게 활활 불타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렇게 위험을 극복하는 것이야말로 진정 인간으로서이 투혼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백룡생은 정신을 새롭게 가다듬고 천천히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전신에 긴장이 되었기 때문인가, 그는 거의 중간쯤 내려가다가 숨이 막히고 전신이 떨려오는 것을 느끼고 한번 다소 오랫동안 쉬었다. 그리고 이어, 겨우겨우 마음을 진정하여 아래에까지 무사히 내려갈수가 있었다. 그는 아래에 도착하자 일순 전신의 긴장이 풀리며 맥이 다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거의 보이지도 않는 윗쪽을 올려다보며 자신이 그곳에서 아무런 도움도 받지않고 오로지 손발에 의지하여 내려온 것이 가히 꿈만 같았다. 이렇게 밧줄을 사용하고 않고는 차이가 거대한 것이다. 백룡생은 잠시 쉰 다음에 전처럼 가죽 부대에 물을 채우고 나무와 함께 등에 단단하게 묶고는 다시 절벽위로 오르기 시작했다. 내려올때 밧줄을 의지하지 않았으니 올라갈때도 밧줄을 의지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라나, 막상 올라갈때는 아래쪽을 내려다보지 않기 때문이지 밧줄을 묶지 않았어도 공포심이 덜했다. 아니, 전신에 열이 솟구치고 땀이 솟아나자 그는 점차 공포감을 잊고 위로 오르는 일에 몰두할 수가 있었다. 그는 처음에는 다소 긴장한 때문인지 백오십장 정도 올라가서 한번 쉬었다. 그러나, 두번째는 그는 이미 이백여장을 넘게 올라갔는데도 거의 피로를 느끼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이제 남은 거리는 고작 백오십장 정도였다. 한번 쉬어갈까 하고 망설이다가 그는 이어 윗쪽까지 그대로 강행하기로 결정했다. 일단 그렇게 결정하자 그의 투지도 새롭게 불타올라서 그는 거의 자신이 밧줄을 사용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마저 망각하고는 전심전력을 다해 위로 오르기 시작했다. 그의 움직임은 점차 빨라졌고 가장 이상적으로 전신의 골격과 근육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이미 완전히 절벽을 타는 기술에 능숙하게 적응되어 있었다. 게다가, 그의 체력이 증가하는 속도는 정녕 믿을수 없을 지경이었다. 백룡생은 거이 녹초가 되다시피 했지만 마침내 정상에 다시 도달할수가 있었다. 이것은 거의 기적같은 일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오히려 어젯밤보다도 심하게 지치지 않은 자신을 발견하고는 스스로 의아해 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허나, 당연하겠지만 이것은 실로 이유가 있는 일이었다. 그의 체내에 깃들어 잇는 잠재력은 일단 체력으로 융화되기 시작하자 점차 그 속도가 빨라져서 체력이 불어나는 것이 가속화된 것이다. 그러니 그의 체력이 하룻밤 사이에도 전혀 달라지는 것은 당연했다. 게다가 그의 근육과 골격의 움직임도 경직되었던 것이 완전히 풀려버렸으니 더욱더 빠르게 위로 오를수가 있는 것은 당연했다. 정상의 땅바닥에 누워서 백룡생은 이제는 한번에 오르는 도전만이 남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직 시간은 저녁때가 되지 않았고 현진자도 이상하게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백룡생은 현진자의 밥상을 자신이 먹어치운 다음에 빠르게 저녁밥을 마련했다. 그리고 잠시 한잠 자고 싶은 피로감을 느꼈으나, 그는 곧 새로운 도전을 향하는 토지가 불타올라서 다시 가죽부대를 짊어지고 절벽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확실히, 아래로 내려가는 것은 위로 오르는 것보다도 공포감이 심했고 그로인헤 거북하다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도 어느정도 내려가자 강한 자신감으로 인해 점차로 약화되어 나중에는 거의 공포감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가 아래로 내려가는데 걸린 시간은 이제까지 중에서도 가장 빠르게 되었다. 배룡생은 잠시 휴식을 취하고 물을 담고 마른나무를 묶은 다음에 다시 위로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전과는 달리 이번에는 단 한번에 오르려는 생각이었다. 그에따라 그이 각오도 대단해졌다. 그는 처음에는 지나친 긴장으로 인해 몸이 다소 굳어지는 것을 느꼈으나 이어 십여장 정도 올라가자 습관처럼 몸이 부드럽게 풀리는 것을 느꼈다. 그때부터 그는 거의 평지를 걷는듯한 속도로 빠르게 위로 오르기 시작했다. 허나 확실히, 그가 지금 단번에 위로 오르는 것은 무리였다. 그는 삼백여장 가까이에 이르자 드디어 전신의 기력이 다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호흡이 점차로 가빠오기 시작했다. 사실 그가 단숨에 삼백여장을 오른것은 최초의 기록이라고 말할수가 있었다. 이제 남은 거리는 이백여장, 여기에서 한번 쉰다면 쉽게 오를수가 있는 거리이겠지만 백룡생은 일단 마음을 정한 이상에는 고집스럽게 쉬지않고 헉헉 거리며 강행군을 했다. 그는 백여장을 더 올라가자 점차 자신의 감각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만일 여기에서 자칫 손발을 잘못 놀려서 실족이라도 한다면 그는 거의 뼈도 추리지 못하게될 거이 분명했다. 일단 그런 생각이 떠오르자 그는 일시 극도의 공포감이 전신을 휩싸고 도는 것을 느꼈다. 그는 당장이라도 밧줄에 의지하거나 쉬어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앞으로 백여장의 거리는 너무나도 머나먼 거리처럼 여겨졌다. 그는 이미 녹초가 다 되어 있었다. 전신의 힘은 이미 남아있지 않았고 단지 정신력에 의존하여 위로 조금씩 느릿하게 오르고 있을 뿐이었다. 이런 행동은 사실 극도로 위험한 것이었다. 그의 정신력도 이미 거의 한계에 도달하고 있었다. 비록 정신력이야 무한하다고 할지라도 그 정신력에 의해 없는 기력을 쥐어짜는 것이란 보잘것 없는 것이고 곧 바닥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단지 그가 일순간에 느끼기 시작한 공포감과, 그 무한한 공포감에 대항해서 싸우려는 불굴의 강렬한 투지가 발휘되지 않았다면 그는 아마도 실족이라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역시 끝니자 않는 잔치가 없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고통의 순간 역시 다할때가 있는 법이다. 백룡생은 뿌옇게 흐려져 오는 의식속에서 일순 드디어 정상이 임박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순간 그는 갑자기 전신이 극도로 무기력해지고 순발이 힘이 빠져나가며 그의 몸이 주를 아래로 미끄러지기 가하는 것이 아닌가? (으악!) 백룡생은 일순 내심 극도의 공포감을 의식하고 경악의 비명을 질렀다. 그는 이제 곧 자신의 몸이 아래로 가마득하게 떨어져셔 뼈도 추리지 못하게 산산조각나는 것이 눈에 보이는듯 했다. 순가, 어디에서 그런 힘이 생겨났을까? 백룡생은 갑자기 두팔을 극쾌하게 움직이며 잡을 만한 물건을 찾았고 전신의 기력은 어디에선가 솟구쳐나와 두손아귀에 집중되었다. 헌데 다행히, 아직 아래로 떨어지는 속도가 빠르지 않았기 때문인지 그를 일순 하나의 불룩 튀어나온 바위의 모서리를 움켜잡을수가 있었다. 바로 조금전만 해도 그는 두손으로 잡았다고 해도 거의 몸을 지탱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순간적으로 얼마나 강렬한 힘이 발출되었는지 그는 자신의 손아귀의 힘에 의해 그 불룩 튀어나온 바위에 은은한 손자국이 생겨난것을 알아볼수가 있었다. 어쨌든, 그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위를 올려다본 그는 무려 사오장이나 떨어져내려온 것이었다. 실로 아찔하고도 소름끼치는 순간이 아닐수가 없었다. 그는 여태 공포를 상상하기는 했지만 이렇게나 가깝게 공포를 실감하고 음미해본 작은 일찍이 없었다. 전날 그가 절곡에서 구렁이와 함께 떨어질때만 해도 그는 이미 거의 목숨을 포기하고 있는 상황이었기 대문에 그다지 극심한 공포는 느끼지 않았던 것이다. 일순 산밑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이 몸을 스치자 그는 절로 등줄기가 오싹하고 머리끝이 곤두서는 것을 의식했다. 바로 그러한 것은 그에게 새로운 활력을 제공했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그는 이어 빠르게 마지막 정상까지 오를수가 있었다. 이윽고, 정상에 도달하자 그는 일순 하늘이 노래지는 것은 느끼고 정신없이 쓰러져서 혼절한듯 한참동안이나 누워 있었다. 그는 정신이 가물거리고 의식이 땅으로 거져들어가는것만 같았다. 이것은 그가 나무도 과도한 진력을 소모하여 원기가 거의 소모되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그가 방금전에 위기의 순간에 바위를 잡아낸 그 알수없는 힘이야말로 그의 체내에 잠재되어 있던 원기였던 것으로, 일단 그때의 위기는 넘겼었으나 지금 그는 지나치게 피로해 있었다. 기실 원기를 손상시키면 그대로 힘없이 죽어가는 수도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원기는 사람의 생명력을 지속시키는 원동력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체내에 잠재되어 있는 무한한 기운으로 인해 피로가 회복되는 기능역시 남달랐다. 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는 점차 맑은 정신이 돌아오고 점아 체내에 열기가 생겨나며 기운이 불길처럼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이 뜨거운 현상은 바로 잠재된 기운이 체력으로 융화되는 증거였다. 원래 그는 전에는 이러한 현상을 느끼지 못했었다. 그것은 잠재력이 융화되는 양이 거의 없을 정도로 미미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방금전에 그는 거의 원기를 다 소모한 후였기 때문에 몸이 혼미한 상태에 이르게 되자 반사적으로 돌연 그 잠재된 기운이 한꺼번에 물밀듯이 융해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러한 기운은 백룡생이 처음 느껴보는 것이어서 실로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의 전신은 금세 피부가 시뻘겋게 변해갔고 금새 터질듯이 부풀게 되었다. 백룡생은 일순 전신에서 강렬한 기운이 마구 발작을 일으켜서 엄청난 고통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 발작하기 시작한 기운도 잠재되어있는 것에 비하면 역시 지극히 미미한 일부에 불과했다. 게다가 그 성질은 외공에는 거의 걸맞지 않는 것이어서 다만 부족한 원기를 보충하기 위해 일시지간 크게 격발되었을 뿐이었다. 따라서, 백룡생의 마음이 여전히 평온하고 그러는 가운데 잠시의 시간이 흐르자 그 넘칠것 같던 기운은 순조롭고도 맑은 기운으로 변해갔고 그의 전신을 유유히 흐르기 시작했다. 그에따라 백룡생은 고통이 사라지고 전신에 더할수 없는 쾌적한 감각이 느껴지고 이제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엄청난 기운과 함께 몸이 마치 날아갈것 같은 강한 활력을 느꼈다. 동시에 그의 외부의 모공은 모두가 시원스럽게 열리게 되었다. 이것은 기실 그의 외공이 원하지도 않았는데 이미 최고조에 이르렀다는 증거였다. 허나, 백룡생은 애초에 외공따위는 바라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지금의 마음은 지극히 평온했다. 그는 잠시 누어서 자신이 아까전에 느꼈던 그 강렬한 공포감과 그리고 비로소 정상을 정복한 기쁨을 천천히 음미하듯 바라보고 있었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바라보는 것을 이른바 조견이라고 한다. 백룡생은 일직이 이런 습관이 붙어있어서 스스로를 차분하게 관찰하거나 진단할수가 있었고 쉽사리 욕심에 흔들리지 않는 강한 마음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정상을 정복한 기쁨은 커다란 것이었고, 또한 그때의 그 공포감도 매우 끔찍스러운 것이었지만 모두가 하나같이 그의 심상에는 별다른 파문을 일으키지 못했다. 그 고요한 마음속에 기쁨과 공포따위가 그대로 적나라하게 드러나보이고 있었다. 백룡생은 그러는 가운데 지극히 맑은 심경이 되어서 깊은 명상에 잠겼다. 허나, 이러한 자세로 오래도록 명상에 들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백룡생은 얼마후 느릿하게 땅바닥에서 몸을 일으켰다. 비록 느릿하게라고는 하나, 이미 그의 전신은 날아갈듯한 강렬한 활력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리고, 이때는 저멀리 서쪽하늘에는 짙은 붉은 노을이 물들기 시작하고 있었다. 제 11 장 독계 현진자는 아직 오지 않은 상태였다. 백룡생은 먼저 저녁식사를 하고 기다렸지만 날이 어두워지고 밤이 깊어가도록 그는 좀처럼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에, 백룡생은 대략 삼경무렵쯤 되어서 잠자리에 들기위해 자신의 거처로 가서 누웠다. 비록 이미 전신의 피로가 완전하게 회복되었다고는 하나 그는 자리에 눕자마자 거대한 수마가 엄습하는 것을 느꼈다. 그리하여 그는 곧장 잠이 들었다. 헌데 그가 대략 한시진 정도나 잠이 들었었을까? 돌연 그의 귓전에 미미한 기척이 일었다. 그가 잠을 자면서도 이러한 미미한 기척을 들을수가 있게된 것은 바로 얼마전에 전신의 모공이 깨끗이 열리고 외공이 최고조에 이르렀기 때문이었다. 이 외공은 비록 내공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그것이 최정상에 도달하면 이러한 감각역시 크게 밝아지는 거이다. 순간 백룡생은 몸을 일으키지는 않았으나 정신이 번쩍 들었었는데. 이어, 그의 귓전에 낮익은 음성이 들려왔다. "흐흐, 자는가?" 그것은 바로 현진자의 음성이었다. 현진자는 대체 무엇을 했는지 이제야 돌아온 것이다. 백룡생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면 그를 맞았다. "아, 이제야 돌아오셨군요?" 백룡생이 몸을 일으키고 바라보니, 현진자는 어둠속에서 지극히 음침한 기색으로 서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백룡생은 이제 비단 청각뿐만 아니라 시각역시 어둠을 꿰뚫을수 있는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헌데, 현진자는 기이하게도 등뒤에 커다란 한보따리의 짐을 짊어지고 있었다. 그는 백룡생이 일어나자 그 짐을 풀어서 그의 앞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자네는 이미 글을 읽을줄 안다고 그랬지? 자, 보게나!" "...?" 백룡생은 일시 의아한 생각이 들었으나 현진자를 생각하여 근처의 장작에 불을 지피고는 얼른 그 겉보따리를 풀어보았다. 이 짐보따리는 생각보다도 매우 무거웠다. 그런데, 막상 펼쳐보니 그것은 모두가 서적들이 아닌가? 그 서적들은 비록 수천권은 못될지라도 가히 수백권은 될 것 같았다. 백룡생은 일시 그것을 바라보고는 잠시 아연해졌다. 일견하기로도 그가 보기에는 이 서적들은 무림에 관한 정보와 지식을 다룬 책들과 아주 기초적인 무공비급들이었다. 대체 현진자는 어디에서 무슨 목적으로 이많은 책들을 구해온 것일까? 아마 그가 하루종일 밖에 서 돌아오지 않은 까닭은 바로 이러한 것들을 구하기 위해 서였던것 같았다. 대체 현진자는 무슨 꿍꿍이속을 가지고 있는 거일까? 백룡생은 다소 의아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현진자는 기이한 표정으로 그의 기색을 살피더니 능글맞게 웃으며 말하는 것이었다. "바로 이것이 내가 네게 해주겠다고 하던 것들이다. 사람은 뭐니뭐니해도 배워야 하는 것이니 이러한 서책들을 공부한다면 나중에 커다란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이어, 그는 백룡생의 눈치를 살피며 내심 득의하게 생각했다. (흐흐, 네가 무림을 싫어하면 할수록 나는 네가 무림에 흥미를 가지게 만들고, 네가 무공을 싫어하면 할수록 나는 네게 무공을 좋아하도록 만들어줄 것이다!) 현진자는 내심 중얼거리면서 다시 생각해도 자신의 이 계획이 더할나위없이 절묘하다는 것을 생각하고는 연신 즐거워져서 부르짖었다. (네놈은 이제 나의 그물에 걸려들고 말 것이다!) 그렇다. 백룡생의 생각되로 현진자는 오늘 하루종일 이 모든 서책들을 구하기 위해 그야말로 바삐 동분서주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이 아는 한 모든 지식을 총동원하여 모든 무공의 기초가 되는 무공비급들을 수집해 모았고, 게다가 어느것은 무당파로 들어가서 몰래 가져오기도 했다. 다만 거기에는 무당파의 절예는 결코 포함시키지 않았으며, 이 모든 무공비급을 설사 연성하더라고 전혀 무림고수가 되는데에 결정적인 부족함이 있도록 만들었다. 그러니까 그는 즉, 전혀 사탕의 맛을 모르는 사 에게 꿀사탕을 아주 조금 주어서 그 맛을 보여주자는 수작인 것이다. 게다가, 현진자는 백룡생이 전혀 무림의 일을 모르고 또한 흥미를 갖지 않는것을 보고 그러한 마음을 제거하기 위해 일부러 야밤삼경에 무당파의 깊숙한 심처로 숨어들었다. 원래, 무림의 거의 모든 거대문파가 그러하듯이, 무당파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명문정파로서 오랫동안 부림의 역사와 정보를 수집해 놓은 책자들이 많았다. 거기에는 심지어 아주 최근의 일을 적어놓은 문서도 포함되어 있었다. 무당파가 이러한 기록을 남김것은 물론 나중에 강호의 대사에 대처하기 위해서 였다. 그러나 그것은 무공과는 연관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도 말할수가 있을 이다. 때문에, 무림에 흥미를 갖게하자면 우선 무림의 역사와 그 정보를 일러줘야만 한다고 생각한 현진자는 마당파의 서고 깊숙이에 숨겨져 있는 이러한 책자들을 야밤삼경에 몰래 들어가서 모조리 가지고 나온 것이다. 따라서, 어떻게 보면 여기에 있는 수백여권의 책자들중에는 무공비급보다는 강호사를 기록한 무당파의 두툼한 책자가 더욱 많은 부피를 차지한다고 할수가 있었다. 허나, 현진자는 자신의 복수를 성공시키겠다는 욕망에 들떠서 이 안에는 무당파만의 아주 비밀스런 기록들도 함께 섞여있다는 사실을 잠시 망각했다. 현진자가 비록 감정이 극히 들떠있지 않았다면 그런짓을 하진 않았을 테지만 아무튼, 그는 자신이 하룻동안에 이루어놓은 걸작에 대해 지극히 만족을 하고 있었다. 여기에 있는 수백권의 무공비급들은 대부분이 십팔반의 병기나 그밖의 외문병기들이 아주 기초적인 공부를 다루고 있어서 정작 무림고수를 꿈꾸는 사람에게는 거의 도움이 안된다는 점이 그를 가장 흥분하게 만들었다. 이것은 마치, 그는 아주 훌륭한 조련사이며 지금 한마리의 흉폭한 이리를 길들이고 있는것과 같다고 그는 생각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아마 이 계책은 십중팔구는 적중하리라고 생각했다. 헌데 이때, 일시 그의 안색은 가볍게 변모했다. 배 생이 가 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이것은 쓸데없는 짓입니다. 반드시 많은 지식을 알고있다고 좋은것은 아니니... 저는 이 책자들을 보지 않겠습니다." 그말에, 현진자는 일순 가슴이 크게 흠칫했다. 자칫하며 하룻동안의 노력과 고심이 한낱 물거품으로 변해서 날아갈 상황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급히 두눈을 굴리다가 얼른 말했다. "아니 아니, 그 그게 무슨 말인가? 내가 이렇게 일부러 가져온 책을 읽지 않겠다니. 자네는 나의 이 성의를 무시하는 것인가?" 백룡생은 다소 난처한 기색이 되어서 대답했다. "저는 어른의 성의를 무시하고자 하는것은 아닙니다. 단지 이 일은 전혀 쓸모가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말에, 현진자는 내심 두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 (쓸데없는 짓은 나와네가 지금 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그는 눈빛을 교활하게 굴리며 겉으로는 은근한 표정으로 이렇게 물었다. "나의 성의를 무시하지 않는다면 어쨌든 나의 뜻을 따라야 할 이 아닌가? 자네는 비록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나는 나대로 반드시 필요하기 대문에 이러한 서책을 일부러 힘들게 구입해온 것이네." 이어 그는 생각했다. (흐흐, 그 필요란 바로 네놈을 함정으로 집어넣게 위해서다!) 속으로는 흉악한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겉으로는 그는 더욱 미소지으며 말을 이었다. "나는 진정으로 자네에게 뭔가를 해주려고 하는 것일세. 자네가 나의 성의를 무시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나를 정말로 시중들어 주겠다면, 아니 그까짓 시중은 들어줄 필요가 없네. 오직 비록 쓸모가 없다고 생각할 지라도 이 책들을 부디 읽어주게! 알겠나?" 현진자는 말하고 나서 뚫어지게 백룡생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백룡생의 체구는 장대하고 헌칠하여 그 키는 거의 칠척에 가까왔다. 그래서 그는 한참이나 올려다봐야 했다. 허나, 그의 두눈에서 이는 번갯불같은 무서운 기세는 만약 백룡생이 말을 제대로 듣지 않으면 무슨 수단이라도 불사할 기세였다. 이에, 백룡생의 내심 가볍게 탄식했다. (이것은 어쩔수가 없군!) 그리하여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순순히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말에, 현진자는 일순 눈빛을 번쩍이며 다시 물었다. "정말인가? 자네는 이 책자들을 단 한자도 빼놓지 않고 모조리 읽고 배우고 익히겠지?" 백룡생은 그의 이러한 주문이 매우 괴이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책보따리를 한쪽으로 치우고는 즉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어서 식사나 하는것이 어떻겠습니까?" 현진자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냐 아냐, 지금 밥먹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닐세. 자네는, 자네는 지금 바로 그자리에 앉아서 책을 읽도록 하게!" 그러다가 그는 백룡생이 지금 잠을 자다가 일어난 것을 보고는 자신의 요구가 다소 무리하다고 여겼는지 즉시 말을 수정했다. "아, 아니지... 자네는 지금 푹 자고 내일부터 책을 읽도록 하게! 내일 아침부터, 자네는 설마하니 팩을 읽는데 게으름을 피우지는 않겠지?" 백룡생은 그가 이 일에 매우 집착하는 것을 보고는 내심 우스운 생각이 들어서 미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거였다. 사실 그의 독서능력은 상당하여 이런 수백권의 책자를 읽는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는 이미 나이가 스물이 채 되기 전에 거의 만권에 달하는 책자를 읽고 통달했던 사람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더이상 책을 읽을 필요를 느끼지 않게되자 그의 모옥에는 책자를 하나도 볼수없게 되었던 것이다. "알겠습니다." 백룡생이 비교적 성실하게 대답하자. 현진자는 그제서야 마음이 놓이는지 자신의 방으로 자러갔다. 이에, 백룡생은 얼른 저녁상을 방으로 들어가고 따뜻하게 데운 물과 께끗하게 빨아서 말린 옷가지등을 안으로 들여보냈다. 현진자는 확실히 하룻동안 굶었기 때문에 배가 고픈 모양이었다. 그가 저녁밥을 깨끗하게 먹어치우자 백룡생은 그제서야 모든것을 정리하고 편안하게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새벽무렵, 백룡생은 전신에 일찍이 느끼지 못했던 맑고 활기찬 기운을 느끼고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움직였다. 어젯밤 현진자가 책자를 읽는것을 그토록 신신당부했기 때문에 아마 그가 아침부터 재촉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그는 빨리 준비를 하려는 거이다. 그는 우선 물을 끓이고 아침식사를 준비해 놓은 다음에 다시 가죽부대를 허리에 찼다. 보통사람 같으면 어제의 그 공포심으로 인해 다시 내려가기가 겁이 낫겠지만 이미 그의 마음에는 공포심이 남아있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이제는 한없이 근육이 부드럽고 한없이 기운이 넘치는것 같아서 마치 전혀 힘을 들이지 않고도 금방 내려갔다 올라올수가 있다고 생각되었다. 과연, 그의 예상은 적중되었다. 아래로 내려가는 도중 그는 자신의 전신근육의 움직임이 거의 두배이상이 빨리진 것을 느꼈다. 게다가, 공포심이 남아있지 않았으므로 그는 거의 뜀박질하는 속도로 아래로 미끄러지듯 빠르게 내려갔으며, 전혀 힘을 들이지 않았다. 이어, 나무와 물을 가지고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을 때 처음에는 다소 긴장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은 실로 기이한 일이었다. 그는 어제 삼백장 정도에 이르러 기역이 다했지만 이번에는 오백장이란 높이를 거의 다 올라오도록 거의 힘이 들지 않는것이 아닌가? 백룡생은 이러한 사리에 자신 스스로가 매우 놀랐다. 그것은 물론 그의 체내에 이미 엄청난 체력이 축적되었기 대문이었다. 그는 이미 비단 오백장의 거리뿐만 아니라 일천장에 달하는 높이를 오르고도 어제처럼 그렇게 지치지는 않을 것이다. 그의 외공은 이제 더이상 오를수 없는 최상승의 경지에 이르렀기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천생의 신력을 타고난 천하장사라고 할지라도 이제 그에게는 당할수가 없다는 결론이었다. 백룡생은 비록 단순히 도전의식으로 이러한 절벽오르기를 했지만, 그는 그러므로 인해 그이 몸이 얼마만한 기운과 능력이 붙었는가를 아직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그는 기실 그러한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비록 몸이 쾌적한 것은 편안해서 조기는 했으나 이렇게 절벽오르기가 싱거워지자 다소 풀이 죽은듯한 모습이었다. 그가 정상위에 다시 올라왔을때, 놀랍게도 아직 동쪽하늘의 태양은 떠오르지 않고 있었다. 그것은 그가 절벽을 오르내린 속도가 그야말로 믿을수가 없는 것이었다는 말이었다. 헌데, 그가 정상에 도달한 순간 이미 한 사람이 그를 기다리고 있음을 벌견했다. 그는 바로 현진자였다. 현진자는 어젯밤 늦게와서 언제 일어났는지 뒷짐을 지고 한참동안 서성거리다가 그가 전혀 피로하지 않은 기색으로 나타나자 일순 경악의 표정과 함께 문득 멸시의 표정을 떠올리기도 했다. 그것은 비록 백룡생이 이렇게 외공에 불가사의한 진전을 보였어도 내공의 상승경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이었다. 사실 그것은 그의 생각이 옳았다. 현진자는 잠시동안 그의 얼굴을 주시하다가 얼른 말하며 재촉했다. "자자, 우리는 어서 빨리 시작하도록 하자!" 백룡생은 그의 말이 의미하는 것이 바로 독서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현진자는 실로 마음이 조급해진 모양이었다. 배 생은 웃으며 대답했다. "예, 그러나 우선은 아침밥을 먹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현진자는 이에 잠시 그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군..." * * * 한 사람이 어떤일에 미친다는 것은 과연 좋다고 말할수가 있을까? 아마 그것은 쉽게 단정지을수가 없을 것이다. 지금 여기에 거의 미치다시피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바로 현진자였다. 원래 그는 전에는 안색이 활기가 없고 편집광작인 성격에다 비뚤어지고 가끔 화를 잘내는 다소 우울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요 며칠사이에 그의 안색은 확연히 달라졌다. 그것은 어딘가에 크게 들뜬 듯한 표정이었다. 그것은 그가 이미 복수에 미쳐있고, 자신의 또다른 능력을 시험하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그의 얼굴에는 활기가 가득차게 되었다. 그는 심지어 밥먹는 것이나 잠자는 것까지 귀찮게 생각을 하여 쉴새없이 백룡생에게 책을 읽을것을 강요했다. 심지어는 그는 백룡생이 책읽는데 방해가 될까봐 전에 그가 시중들던 모든일을 스스로 도맡아서 하기도 했다. 그의 요구는 오직 백룡생에게 마음놓고 책을 읽으라는 것이었다. 현진자는 그러면서 스스로 두사람분의 밥을 지었고 청소를 했으며 빨래까지 했다. 백룡생이 할수있는 것이라곤 고작 하루에 두번, 아침과 저녁으로 아래에 내려가서 물과 땔감을 가져오는 일이었다. 현진자는 그것만은 다소 귀찮게 생각을 했는지 말리지 않았지만 그외에는 모든일을 일절 못하게 해놓고 오직 독서할 것만 강요근다. 실상, 그는 마음이 급해져서 하루빨리 승부를 보려는 심산이었다. 헌데 그런 그의 초조한 마음에 감동이 되었기 때문일까? 백룡생이 책을 읽는 속도는 그야말로 현진자 자신이 믿을수가 없을 정도로 빨랐다. 그는 보통사람은 겨우 하루에 한권이나 델까말까한 책자를 무려 삼십여권씩 빠르게 넘겨가고 있었던 것이다. 현진자는 이것을 보고 일시에 믿을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결국 그가 읽었다는 책자 하나를 들고 직접 물어본 결과, 놀랍게도 백룡생은 이미 자신이 읽은 책자를 술술ㄹ 외우고 있는것이 아닌가? 이렇게 빠르게 책자를 읽는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거늘 그것을 동시에 외우고 있다는 것은 현진자로서도 아직 들어보지 못한 일이었다. 여기에 이르러서 현진자는 내심 스스로 자신의 관점을 수정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이 백룡생은 비록 겉으로는 멍청해 보이지만 실상은 오히려 누구보다도 총명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허나, 이미 마음이 차갑게 굳어진 그는 그렇다고 해서 그를 다시 제자로 삼으려는 생각은 추호도 일지 낳았다. 단지 그는 백룡생을 은근히 노려보는 시선이 더욱더 악랄하고 표독해졌을 뿐이었다. 그러나, 현진자의 그러한 악랄한 태도가 백룡생에게 전혀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한다는 것은 명백했다. 원래, 백룡생은 먼저 강호의 이야기를 담은 무당파의 서적을 탐독하고 있었다. 그러한 것은 그저 단순한 이야기가 많은지라 읽고 기악하기가 비교적 쉽고 간단했다. 백룡생은 그것을 대략 십여일에 걸쳐서 모조리 통독했다. 그러므로써 그는 지식상으로는 강호에서 수십년을 살아온 노강호 보다도 더욱 해박한 지식을 소유할수가 있었다. 그가 이러한 경로로 이러한 엄청난 지식을 갖게 되었다는 것은 실로 기문이라고 말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강호의 역사는 도도한 장강의 흐름과도 같으며 바로 인간의 삶의 역사였다. 그 적나라한 역사의 기록앞에는 소름끼치는 감정이 들곤 하고 면면히 이어지는 거대한 감동을 느낄수도 있는 것이다. 게다가, 강호에서 일어나는 온갖 권모술수와 재간들, 음모와 비리, 영웅담과 이미 이슬처럼 사라져간 모든 강호인들의 삶의 모습들이 세밀하게 조사되어서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에 백룡생은 불가사의하게도 정녕 해박한 강호경험을 간접적으로 갖게 되었다고 할수가 있었다. 이것은 실로 당연한 결과라고 할수가 있겠지만, 사실 그가 아니라면 이것은 거의 있을수가 없는 일이었다. 누가 바보스럽게 그 수많은 전적을 통독할 것이며, 또한 그것을 읽는 즉시 기억하고 이해하며 하나의 지혜로 꿰뚫을수가 있겠는가? 다만, 누군가가 강요에 의해 이러한 책자를 읽는다면 암기하거나 이해하지는 못할지라도 그많은 강호사에 대해서 호기심을 느끼고 흥미를 느끼게 될것이다. 기실 현진자가 바라고 있는 점은 오직 그러한 것 뿐이었다. 허나 기대이상으로 백룡생이 놀라운 독서능력을 보이자, 그렇다면 더더욱 백룡생이 강호사에 흥미를 갖게 되리라고 낙관하고 있는것이다. 그의 예측대로 과연 처음에는 백룡생은 다소의 깊은 관심을 보이는듯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눈빛은 점차 무심하고 고요해지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흡사 득도한 고승같은 눈빛이었다. 현진자는 내심 이러한 현상을 이해할수가 없었다. 허나, 물론 거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는 백룡생이 일단 강호사에 흥미를 갖게 되기를 바랬지만, 백룡생은 그의 바램대로 깊이 파고들어갔지만 그 정도가 지나쳐서 나중에는 아예 통달해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는 나중에는 아예 달관해 버리고 말았다. 그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다시 흥미와 호기심이 일겠는가? 현진자는 물론 그러한 상황조차도 알아차릴수가 없었다. 그는 단지 백룡생의 눈빛이 더욱 깊어지고 안장된듯이 보이자, 이는 실로 알수없는 괴이한 일이며 괴상한 녀석이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그러나 상태에서, 백룡생은 이번에는 무공비급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이 책자들은 비교적 그 두께가 얇았지만 비단 이해하고 암기하기가 어려웠을뿐 아니라 도한 그것을 몸에 익혀야 했기 때문에 다소 진전이 느렸다. 백룡생은 강호사를 적어놓은 책자에 비해 매우 따분하고 귀찮은 느낌이 들었지만 일단 현진자에게 약속을 한 처지이니 가능한한 열심히 성실하게 배우려고 노력했다. 허나 무예를 연성하는 것은 결코 쉬운 노릇이 아니다. 게다가, 백룡생은 아직 무예를 접해본 경험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이는 정말로 막막한 일이라고 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다행히, 현진자는 하루빨리 그가 무예에 친숙해질수가 있도록 갖가지의 모든 장비와기구, 그리고 병기들을 모조리 준비해 주었다. 따라서, 백룡생은 주로 낮에는 비급을 통해 내용을 이해하고 암기했으며, 밤에는 달빛아래 직접 무예수련을 했다. 이렇게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수련을 했지만 그 진전은 다소느렸다. 백룡생은 너무나도 지루한 느낌에 거의 하품이 다 나올 지경이었다. 그는 모든것들을 익히고 배우는데에 무려 한달이나 걸렸던 것이다. 이에 대해, 백룡생은 비록 자신이 처음 무공을 대하는 것이지만 자신의 무예자질이 실로 뒤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여기 한 사람, 현진자는 옆에서 은근히 놀라고 있었다. 아니, 그저 놀라는 정도가 아니었다. 그는 날마다 백룡생이 무예를 익히는 것을 옆에서 혹은 몰래 숨어서 관전을 했고, 경악에 경악을 거듭하고 있었다. 그는 본래 백룡생이 어느정도의 무예를 익히다보면 그중에서 한두가지 정도의 흥미있는 점을 찾아내어 무예에 대한 열의를 일으킬 것으로 알았었다. 왜냐하면, 이른바 십팔반의 병기들중 단 한가지라도 그것의 기초를 이루는 데에는 최소한 몇달 이상은 걸리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백룡생은 비단 그 십팔반의 무예분만 아니라 모든 비급상의 무예를 모조리 터득했는데, 거기에 소요된 기간은 겨우 한달이었다. 이러한 사실을 믿을수가 있을까? 현진자는 직접 자신의 두눈으로 보면서도 믿을수가 없었다. 그러나, 또한 그는 믿지 않을 도리도 없었다. 백룡생이 원래 전혀 무예를 알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현진자는 이미 상승무예를 연성한 절정의 무림고수이기 때문에 그저 한눈에 봐도 그것을 꿰뚫어볼수가 있었다. 그런데, 백룡생은 한달동안에 비급에 적혀있는 무학의 거의 모든 분야의 기초를 사부도 없이 자신의 능력과 이해력만으로도 완벽하게, 아니 그 이상으로 원숙하게 소화를 해내였던 것이다. 아니, 백룡생의 무에는 이미 비급상의 무예보다도 한단계를 넘어선것 같았다. 이러한 것을 어찌 믿을수가 있을까? 그는 원래 백룡생의 무예의 자질이 형편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그를 제자로 두지 않았던 것이 아니었던가? 비록 지금은 그렇더라고 제자로 둘 마음은 업 만 그에게는 실로 경악할 사건이었다. 사실, 그는 백룡생이 이미 절벽오르기를 하는동안 전신의 골격과 근육의 조화가 전신의 운동신경이 가장 완전하고도 적절한 조화를 이루어 그러한 성과를 이루어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아니, 설사 알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는 정녕 이해할수가 없었을 것이다. 어찌 그러한 이론이 이렇게 실제적으로 나타날수가 있겠는가 하고, 어쨌든, 백룡생은 이제 모든 비급마저 통달하고나자 무예에 대한 폭넓은 상식마저 갖추게 되어서 비록 내공은 없지만 일류의 무림인이라고 말할수가 있었다. 현진자는 아예 처음부터 내공심법이 적혀있는 지급은 주지 않았던 것이다. 원래, 내공심법을 연성하지 못한다면 누구도 상승의 무예를 연성할수는 없다. 그리고 그러한 내공구결은 결코 흔한것이 아니며, 각각의 문파마다 이를 비전으로 여겨서 서적으로 남겨두지 않고 구결로 전수하는 것이 허다했다. 일반적으로 그러한 내공심법은 사람의 골격이 완전히 굳어지기 전인 십오세 이전부터 연성을 해야만 비로소 상승경지에 오를수가 있다고 했다. 그렇게 본다면 백룡생은 이미 그런 시기를 놓친 셈이었다. 따라서, 비록 그가 외공의 최고봉에 이르렀고 그리하여 신력에 가까운 힘을 소유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절정고수는 될 수가 없다는 것은 명백했다. 그가 절정고수의 대열에 오르기 위해서는 외공을 버리고 최소한 내공을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하는데, 그러한 내공을 기르는것은 비단 시일이 많이 필요로할 뿐만 아니라 많은 인내력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리고 비록 외공의 자질이 훌륭한 사람이 내공의 자질은 형편없는 경우도 있으니 일반적으로 강호에서 몇갑자의 내공이나 하는것은 그런것을 평준해서 말하는 것이었다. 즉, 일갑자의 내공도 어려서부턴 최소한 육십년의 세월동안 꾸준히 내공을 연마해야만 얻을수가 있는 것이니 그것이 어찌 마음대로 쉽겠는가? 게다가, 현진자의 마음은 이때 점차로 굳어지고 있었다. 백룡생의 진전에 연신 크게 놀란 그는 어떠한 일이 있더라고 내공심법만은 알려주지 않으리라고 결심했다. 사실 내공이 없는 초식이란 무림에서는 거의 껍데기나 다름이 없는 것이다. 말하자면, 백룡생은 이 껍질을 가히 최상으로 연마했다고 할수가 있다. 그러나, 대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현진자는 내심 경악속에서도 조소를 보내며 다만 자신의 계획대로 되어가기만을 바랬다. 그러나, 이번에도 그의 계략은 성공하지 못했다. 백룡생이 이미 강호사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무공에도 관심이 없었다. 그가 그렇게 무공연마에 정신을 쏟은것은 현진자의 요구때문이었으며, 그의 요구에 따르다보니 자연 그거 열중하게 되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일단 하나의 무공비급을 통달하고나면 그저 헛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아서 갈수록 씁쓸한 마음만 들곤 했다. 그러니 자연 그의 마음에 무예에 대한 흥미가 생겨날 리가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모든 수련을 마치게 되자 현진자에게 다소 질린듯한 표정을 하고 이렇게 물었다. "이제 더 이상 읽을 책자는 없겠죠? 이렇게 하는 것은 벼로 어렵지 않지만 도무지 쓸모없는 일인것 같아서..." 내심 커다랗게 기대를 하고있던 현진자는 이말을 듣자 금세 안색이 새파랗게 변하고 말았다. 그는 백룡생이 무예에 대한 욕심에 눈빛을 빛내며 뭔가 자문을 구하거나 보다 높은 차원의 무예를 요구하기를 바랬지 이렇게 질리도록 만들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강호와 무예에 대해 흥미를 갖도록 만들려는 그의 오랜 집념의 노력은 일순 실패로 돌아간 것이다. 이때, 현진자는 내심 말할수 없이 분개했다. 그는 할수만 있다면 더욱 많은 책자를 구해서 그를 골려주고도 싶었다. 그러나 이제는 정말이지 그런 책자를 구하려고 해도 더이상은 구할 도리가 없었다. 그리고, 정말로 내공심법을 전수할 수는 더더욱 없는 일이었다. 만일 내공심법을 전수하게 되면 그것은 그를 무당파의 제자로 인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현진자는 안색이 극도로 무안해진체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서 쳐박히고 말았다. 그런 상태로, 그는 무려 사흘의 낮과 밤을 두문불출하여 꼼짝하지 않았다. 대체 그는 무슨 계획을 하고있는 것일까? * * * 백룡생은 이날 아침, 여늬때와 마찬가지로 물과 나무를 가지러 절벽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제 그가 아래로 내려가는 것은 이미 숙달되어 있어서 거의 실수하는 법이 없었다. 게다가, 한달간 무예를 수련한 것은 그의 몸에 커다란 활력을 주어서 더한층 깨어나게 만들었다. 백룡생은 따라서 그 비급의 내용을 떠올리면서 만약 집착하지만 않는다면 그리 쓸모없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가끔씩 들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담담했고, 물처럼 고요했기 때문에 전혀 그러한 문제로 파문이 일지 않았다. 오늘도 그는 그저 맑고 새로운 기분으로 아래로 내려가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무심코 아래로 내려가고 있던 백룡생은 대략 일벽여장 정도 내려갔을까 했을 때, 돌연 괴이한 상황을 만나게 되었다. 그가 다음에 밟고 내려가야할 암벽, 그것이 그야말로 거울처럼 매끄럽게 깎아져 있는것이 아닌가? 제 12 장 최상의 내공심법 암벽이 깍여진 부분의 폭은 무려 십여장이나 되었다. 백룡생이 제아무리 절벽을 잘 타는 재주를 가지고 있더라도 전혀 잡을곳 딛을곳이 없는 바에야 십장은 커녕 일장이라도 제대로 내려갈수가 없는 것이다. 백룡생은 이 일을 보고 내심 놀라서 생각했다. (불과 어젯저녁때만 해도 이곳은 이렇지 않았는데 언제 이러게 되었다는 말일까?) 보아하니 이것은 결코 자연의 힘이 아닌 인공으로 누군가가 깎아놓은 것이었다. 그렇다면 대체 누가 이런짓을 했다는 말일까? 백룡생은 이 옥검봉에서 이런일을 할 수가 있는 사람은 오직 한사람 밖에는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말할것도 없이 그사람은 현진자이다. 현진자는 지난 사흘동안 두문불출하더니 방새도록 이런 짓을 했단 말인가? 그의 능력이 놀랍기도 했지만 대체 그의 의도가 의심스러웠다. 그는 대체 무엇때문에 이런 짓을 자행하는 것일까? 백룡생은 도저히 아래로 내려갈수가 없다는 판단이 서자 부근에 늘어져 있을 밧줄을 찾았다. 과거 그는 이렇게 매끈하지는 않았지만 안쪽으로 휘어져들어간 절벽을 구명밧줄에 의지하여 내려간 적이 있었다. 그리하여 지금 역시 그것에 의지하여 이 십장의 거리를 내려가려는 것이다. 그러나, 역시 예상대로 밧줄역시 보이지 않았다. 원래 요즘 사용하지 않으므로 그는 별로 유의하지는 않았었지만 분명 아까의 일을 상기해보면 분명 밧줄은 매달려 있지 않았던 것이 분명했다. 이것을 바로 현진자가 이 모든일을 꾸몄다는 점을 보다 확실하게 해주었다. 백룡생은 그러한 점을 알고 있었지만 우선 마음이 다급해졌다. 절봉의 위에는 결코 그렇게 기다란 밧줄을 만들수 있는 재료가 없었다. 아니, 지금 이 십여장의 거리를 떼울만한 밧줄을 만들 재료도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이제 아래로 전혀 내려가지 못하고 꼼짝없이 발이 묶인 것이란 말인가? 백룡은 이런 생각을 하며 다소 눈살을 찌푸리다가 문득 한가지 생각을 떠올렸다. (그렇다! 그가 비록 이렇게 길을 깎았더라도 산 전체를 다 깎아놓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것을 그의 추측이었다. 현진자는 비록 이렇게 십장의 폭을 암벽의 중간을 매끈하게 깎아놓았지만 그것이 암봉의 전면에만 그럴뿐 좌우에는 그러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왜냐하면, 현진자의 능력으로는 하룻밤새에 그런일을 할수 없으리라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백룡생은 아래로 무사히 내려가면 밧줄을 좀 구입해서는 그것을 가지고 다녀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그는 낙관했다. 헌데, 그가 암봉의 좌측가 우측을 돌아보았을 때였다. 그는 일시 눈이 휘둥그래졌다. 이 삽장폭의 매끈한 절벽면은 비단 앞에뿐만 아니라 좌우에도 이미 그렇게 되어있는 것이 아닌가? 백룡생은 일시 놀랐다. 그렇다면 현진자는 지난 사흘동안 두문불질하는척 하면서도 실은 밤중에 나와서 미리 이 좌우의 절벽면을 깎아놓았었단 말인가? 백룡생은 일시 그의 저의가 의심스러웠고 그의 심술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다시 방책을 강구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그는 생각했다. (이 절봉의 후면은 그 형상이 지극히 험준하다. 하지만 나는 기왕에 이렇게 되었으니 그 쪽으로 가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옥검봉의 후면, 그곳은 과거 그가 구령산의 절곡에서 보았었던 것처럼 안쪽으로 휘어져 들어가는 절벽면이 있었을 분만 아니라 여기저기 불룩 튀어나온 부분이 많아서 내려가기가 지극히 곤란했다. 오히려 구령산의 그 절벽이 훨씬 나았다고 할수 있을 정도였다. 백욧애도 아마 처음이었으면 감히 그곳으로 갈 엄두를 내지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현지자가 살마 그쪽만은 깎아놓지 않았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는 이때까지 해왔던 방법으로 옆으로 몸을 옮겨서 후면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는 그곳에 이르러서 다시 경악을 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현진자는 구 후면에도 역시 똑같은 짓을 해놓았던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그는 사흘동안 방안에 틀어박혀 있는척 하면서 밤중에 나와서 이런짓을 했음이 분명했다. 비록 이렇게 해놓아도 그의 신법에는 걸릴것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백룡생의 눈에는 문득 자신의 몸을 안고서도 거의 십여장이나 훌쩍훌쩍 계속해서 날아올랐던 전날의 광경이 선하게 떠올랐다. 이렇게 본다면 현진자와 같은 그러한 신법이 없는한은 이 절봉을 오르내리기는 불가능했다. 이에, 백룡생은 몹시 난감한 생각이 들었다. 그는 비록 성심것 시중들고 있으나, 요즘들어 지극히 차갑고 무서운 현진자의 눈빛을 의식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비록 내색을 하지는 않고 있었지만, 그라고 해서 그러한 눈치를 모를리가 없었다. 현진자의 눈빛은 가까운 사람으로서의 눈빛이 아니라 바로 적대시하는 삭막한 눈빛이었다. 그런 그가 이러한 짓을 해놓았을 때에는 분명 무슨 꿍꿍이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힘을 들인 바에야 그는 틀림없이 자신을 녹녹하게 내려보내지 않으리라는 판단이 들었다. 그렇다면 그는 이 일로 인해 아마 절봉위에서 다시는 아래로 내려오지 못하고 어떠한 곤란을 겪을지 알수가 없다고 생각햇다. 비록 현진자의 심술에 대해서는 아랑곳하지 않을수도 있지만 그의 농간에 말려들수는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백룡생은 내심 결심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좋아! 이 가운데에는 반드시 내가 내려갈수가 있는 빈틈이 있을 것이다 나는 다소 모험을 하더라도 아래로 내려가도록 하자!) 내심 그렇게 생각을 굳히고는 백룡생은 즉시 그것을 행동에 옮기기 시작했다. 그는 우선 다시 암봉을 한바퀴 돌아보면서 가장 허술한 부분을 찾았다. 그러나, 놀랍게도 현진자의 이번일은 거의 완벽하여 실수가 없었다. 전면과 좌우를 아무리 세심하게 둘러봐도 전혀 발딛을 곳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백룡생은 이에 다시 후면으로 되돌아왔다. 역시 약간의 틈이 있다면 이곳 후면밖에 없었다. 이곳은 그래도 절벽의 전체가 워낙 크게 돌출해 있기 대문에 다소 울통불퉁한 면이 있었던 것이다. 한참동안 세밀하게 관찰하던 백룡생은 이윽고 그중에서도 아주 절묘하게 허술한 부분을 하나 찾아냈다 그것은 현진자가 만든 인위적인 허술함이 아니라 바로 자연적인 허술함이었다. 즉, 후면의 한쪽으로 돌아가보니, 그 매끄럽게 깎여있는 부분의 윗쪽에는 다행스럽게도 하나의 거대한 등나무가 얼키설키 자라 있었는데 그 줄기를 펴면 족히 십여장은 될것 같았던 것이다. 백룡생은 잠시 세밀하게 그 둥나무의 단단한 정도를 살피다가 이윽고 그쪽으로 내려갈 결심을 했다. 아마 현진자는 한밤중에 이런일을 하느라고 미처 윗쪽의 등나무를 보지 못한것 같았다. 이 등나무가 튼튼하게 암벽에 박혀있는 이상은 백룡생으로서는 이제 걱정이 없다고 할수가 있었다. 백룡생은 즉시 그 등나무의 줄기를 잡고 천천히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과연 그의 생각대로 깎여진 부분은 지극히 미끄럽기 짝이 없었다. 대체 어떻게 이렇게 매끄럽게 깎을수가 있었는지 신기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백룡생인 가까스로 그 등나무줄기를 잡고 그 아래로 내려갈 수가 있었다. 그안으로 내려가자 백룡생은 드디어 손발을 둘곳을 찾을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잡고있는 등나무줄기를 놓아버리고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그는 문득 생각했다. (이쪽은 매우 험준하다. 그러니 나는 다시 앞쪽으로 돌아가서 내려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백룡생은 그런 생각과 함께 이번에는 천천히 옆으로 몸을 뭄직이기 시작했다. 이때의 그는 그렇게 지친것은 아니었지만 다소 의기소침해지고 체력이 떨어져 있었다. 그것은 그가 이미 이 암봉전체를 두어번이나 빙글빙글 돌아보았고, 그만큼 많은 심력을 소모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 암봉을 내려가는 데 지장이 있는것은 아니었다. 헌데, 그가 옆으로 대략 십여장 정도 나아갔을 때였다. 백룡생은 이순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아니, 이게 대체 어찌된 일이지?) 놀랍게도 그의 옆에는 역시 십장의 폭으로 매끄러운 면이 만들어져 있었던 것이다. 헌데 그것은 옆으로 이어진 것이 아니라 괴이하게도 아래쪽으로 둥글게 이어져 있었다. 마치 그것은 백룡생이 지금 서있는 곳을 중심으로 둥글게 원을 그리고 있는것 같았다. 백룡생은 그러한 것을 보면서 일시 믿을수가 없었다. (우연의 일치도 아닌 바에에 어찌 이럴수가 있단 말인가?) 유독 이곳만 이러헥 둥글게 아놓았다면 현진자는 이미 백룡생이 이리로 내려올것을 예측했었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백요생은 이러한 사실이 믿을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자연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그 매끄러운 면을 따라 움직여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그는 결국에는 다시 아까 그가 등나무를 타고 내려온 곳으로 되돌아온 것이 아닌가? 백룡생은 그 등나무를 보고 그제서야 현진자가 그것을 보지 못한것이 아니라 아예 그것을 이용하여 함정을 만들어 놓았음을 알아차렸다. 이것은 실로 어이없는 결과였다. 백룡생은 아직 세상의 때가 묻어있지 않아서 비록 강호사에 관한 서적을 많이 읽었다고는 하나 설마하니 이런 상황이 기다리고 있을줄은 전혀 예상지 못했었다. 이제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 전에는 그래도 위로 올라갈수는 있었지만 이제는 가야말로 매끄러운 면에 둘러싸여 오도가도 못하게된 처지가 되었다. 왜냐햐면, 원래 그가 타고 내려왔던 등나무줄기는 그 자체의 탄력으로 인해 원상태로 위로 올라가서 이제 도저히 잡을수가 없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백룡생은 내심 매우 고심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기왕에 이렇게 한 바에 현진자가 다시 그에게 나타날 것이라는 점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리고, 만일 그가 그의 어떤 요구를 충족시켜주다면 그는 그를 이곳에서 벗어나게 해줄런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나, 백룡생은 내심 크게 오기가 이는것을 느꼈다. (나는 그에게 진정으로 대했건만 그는 이렇게 심술을 부리고 있구나! 그가 이런짓을 하는 것은 결코 장난이 아닌듯 하다. 그렇다면 나는 이러한 상황에서도 그에게 굴복을 해야만 할까?) 백룡생은 내심 결코 그럴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는 다시 생각했다. (나는 아직 이런 매끄러운 면을 한번도 내려가본 적이 없다. 그렇다면 내가 해내지 못하리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그리하여, 그는 마음을 강하게 먹고 아래로 내려갈 결심을 했다. 그러자 즉시 두려운 것이나 번뇌가 없어지고 마음속은 다시 강한 투지가 불타올랐다. 그는 우선 매끄러운 면을 옆으로 가는 것ㅂ다는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 더욱 나으리라고 생각하고는 깎여진 가장 아래쪽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손발을 극도로 조심스럽게 놀려서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자연석은 아무레도 다소의 틈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 깎여진 부분은 아주 매끄러워서 전혀 그러한 틈이 없었다. 이것은 기실 현진자가 자신의 검에 내력을 주입해서 강렬한 검기로써 이렇게 편편하게 면을 깎아놓은 것이었다. 매끄러운 면에 이르자 백룡생은 두려움도 앞섰지만 그에 앞서서 오기도 생겨났다. 그는 실상 등나무의 도움을 받았다고는 하나 한번 이 매끄러운 부분을 지나온 경험이 있는 것이다. 백룡생은 가능한한 두손가락을 암벽위에 강하게 박으려고 애쓰며 조금씩 아래로 내려갔다. 정말 이 부분은 발을 딛을 곳이 하나도 없었다. 백룡생의 손가락은 강하게 단련된 손가락이 아니었다. 따라서, 그가 전력을 다해 힘을 주자 얼마간 바위를 파고들어가기는 했지만 역시 찢어져서 피가 낭자하게 흘러나왔다. 그 고통은 심했지만 백룡생은 지금 그런 것을 생각할 단계가 아니었다. 그가 만일 아래로 떨어진다면 지금의 상처는 실로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할수가 있을 것이다. 그의 손가락에서 흘러나오는 피의 양은 점점더 많아졌지만 백룡생은 자신이 점차 아래로 내려가고 있다는 확신에 마음이 기쁨으로 물들었다. 확실히, 이렇게 진력을 사용하며 내려가는 방법은 그르 한층 지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는 실제로 이보다도 훨씬 심하게 지쳤던 적도 있었으므로 그런점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일 장, 이 장, 삼 장... 암벽위에 점점이 혈흔이 짙어질수록 그는 점차로 아래로 바르게 내려갔고 드디아 그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백룡생은 내심 기쁨에 마음이 들뜨기 시작했다. 이제 그의 진력도 거의 다했지만 그 역시 거의 구장을 지나 일장여만 내려가면 발딛을 곳이 있을 것이다. 아니, 그의 키가 칠척에 달하니 실상은 그는 이제 삼척정도만 내려가면 되는 것이다. 사람의 키가 거의 일장의 구실을 하는 것이니,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이러한 이득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가 마악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는 손가락을 암벽에 힘차게 박았을 때였다. 느닷없는, 전혀 의외의 일이 벌어졌다. 우르릉-- 요란한 음향과 함께 그가 손을 박고있는 암벽이 돌연 쩍하고 갈라지며 아래로 구르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백룡생은 이에 경악했다. 아니, 경악할 새도 없었다. 그는 이내 정신없이 갈라진 바윗돌과 함께 아래로 굴러떨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아래쪽은 아직 이백장도 훨씬 넘게 남아 있는 상황이었다. 즉, 까마득하여 거의 보이지 않았고, 그가 떨어지게되면 박살이 나서 즉시 형체도 보이지 않게될 것이 분명했다. 이미 백룡생의 몸이 그렇게 처참하게 변하는 광경이 눈에 보이는듯 했다. 대체 이러한 것은 현진자가 염두에 두었을가? 그것을 사실 아니었다. 현진자는 자신의 계략이 통하지 않자 강압적으로라도 그를 억압할 수 있기를 바랬다. 그리하여 그런 매끈한 면을 만들어 놓았을 뿐이고, 구태여 백룡생을 죽이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아니, 오히려 그는 그 노인의 은혜를 중시하여 만약 지금 이를 발견했었다면 그를 구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현진자는 내심 백룡생이 포기하고 아까 그 매끈한 면의 중앙에 기대어 고생하면 그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지금 자신의 방에 들어가 밤새도록 쌓인 피로를 풀기위에 깊은 잠에 바져들어가 있었다. 그러니까 그는 백룡생의 마음을 잘못 파악한 것이고, 일단 백룡생이 불복하여 그것이 거의 성공리에 끝날 순간에 벌어진 이 사고는 그야말로 우연이였다. 말하자면, 백룡생에게는 지독한 불운인 셈이었다 비록 그가 바위에 손가락을 박는힘이 극강하다고는 하지만 하필이면 그시각에 그곳이 떨어져 나갈것이 뭐란 말인가? 그러나, 과거는 생각할 것이 없고 현실이 중요한 법이다. 백룡생은 어지러이 떨어져내리는 순간 결코 이대로 박살이 나서 죽을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는 곧 무서운 압력이 느껴지고 칼날같음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있음에도 이룻 두눈을 크게 부릅떴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속담이 있다. 그러한 속담이 이런경우에도 통할지는 알수가 없지만 백룡생으로서는 일단 최선을 다해볼 수밖에 없었다. 그가 떨어져내래느 속도가 점차 빨라지고 있었다. 마치 그 이후의 절벽은 다소 안으로 들어가 있는 형세여서 그이 몸이 부딪치지는 않았지만 바라보니 저아레에 있는 불룩 튀어나온 바위가 금방 옆으로 스쳐지나갔다. 백룡생은 그것을 보자 문득 자신이 지금 가지고 있는 가죽부대를 이용하여 그것을 거기에 휘감으르면 혹시 살수있지 않을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촉박했으므로 더이상 머뭇거릴 틈이 없었다. 그는 급히 허리춤에 매어두었던 커다란 가죽부대를 뽑아 들어서는 그 작은 주둥이 부분을 이어 다가오는 바위를 향해 휘둘렀다. 그러나, 멀리서 보기에는 가까운것 같아도 막상 옆으로 지나치게 되면 상당히 멀었다. 게다가 이미 그가 떨어져 내리는 속도가 지극히 빨라서 마음대로 가죽부대가 움직여 주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 그에게 느껴지는 압력은 실로 막대하여 그가 체력을 단련하지 않은 전이었다면 벌서 혼절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백룡생은 자신의 생각이 맞아 떨어지지 않자 내심 절망감을 느꼈다. 차라리 그는 지금 이순간 아예 혼절하여 고통을 당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까지 일었다. 헌데 그때였다. 백룡생은 문득 뭔가 묵직한 것이 가죽부대를 잡아당기는 듯한 감각을 받고는 촉망중에 고개를 윗쪽으로 들면서 가죽부대를 잃지 않으려고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왜냐하면, 지금 이 가죽부대는 그의 마지막 희망이나 다름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무심코 위를 향해 시선을 던지던 백룡생은 일순 절로 눈이 휘둥그래졌다. 지금 분명 가죽부대를 잡아당기는 목직한 그 무엇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이 가죽부대는 지금 아주 커다랗고 팽팽하게 부풀어서 그이 팔에 막강한 힘을 전해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백룡생은 이것을 보자 문득 번개처럼 한가지 일이 떠올랐다. -- 바람, 강호의 무예들 가운데에는 무려 수십 수백가지가 있지만 그가 며칠전에 읽은 서적들 가운데에는 분명 바람을 이용한 비행술이 있다는 얘기가 적혀 있었다. 다만 거기에는 간단한 원리가 적혀있었을 뿐이었지만 지금 백룡생에게는 마치 구세주와 같은 강렬한 희망을 주었다. 그렇다! 지금 이 가죽부대는 알고보니 공기와 바람의 영향을 받아서 아래로 빠르게 떨어져 내리려는 그의 몸을 제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을 최대한 이용하면 혹시 횡액을 면할수가 있지 않을까? 더이상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가죽부대를 하나의 손에 잡고잇던 그는 즉시 나머지 하나의 손을 부대입구의 다른쪽에 잡고는 두팔에 힘차게 힘을 주었다. 일반의 사람이었다면 이 거대한 압력을 이기지 못해서 팔이 빠져버렸거나 가죽부대를 놓쳐버렸갰지만 이미 단련될대로 단련된 그의 몸은 능히 그 거대한 압력을 견딜수가 있었다. 즉시, 아래로 향한채 떨어져 내래던 그의 머리가 위로 올라가며 커다란 가죽부대가 마치 작은 집채만하게 부풀었다. 이 가죽부대는 원래 물을 담기위해 만든 것으로 거의 공기가 새어나가지 않아서 그 압력이 작용하자 백룡생이 떨어져내리는 속도는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래를 내려다 보니, 웬걸 그는 이미 지상에 거의다 떨어져 내려와서 불과 얼마를 남겨두지 않은 상태가 아닌가? 바라보니 이대로 떨어지다가는 아무리 가죽부대의 도움을 받더라도 역시 바로 아래쪽의 뽀족뽀족한 바위에 부딪쳐 횡액을 면키 어려울것 같았다. 그리하여 그는 생각했다. (이 가죽부대로 내가 떨어지는 방향을 바꿀수는 없을까>?) 생각즉시 그는 바로 그옆에 거대한 폭포수가 떨어져내래고 있는 깊은 못이 하나 있음을 알아차리고 가죽부대를 반대쪽으로 밀었다. 반대쪽으로 민다면 자연 그쪽이 압력이 가중되어 이쪽으로 날아갈 소지가 있기 때문이었다. 이때 그의 몸은 원래 워낙 속도가 붙어있던 참이라 거의 지면 가까이에 이르러 있었다. 그의 이 한번의 생각이 잘못된다면 그는 곧장 황천으로 가게되는 셈이었다. 헌데 과연, 그의 생각은 옳았다. 그가 가죽부대를 반대쪽으로 밀자 순간 그의 몸은 가가스로 옆으로 밀려나서 뽀족한 바위를 스쳐지나가게 되었고 폭포수 아래로 급격하게 떨어지게 되었다. 그 순간은 바로 찰나에 지나지 않았다. 백룡생은 순간 거대한 폭포소리와 함께 엄청난 압력의 차가운 기운이 자신의 몸을 거세게 때리는 것을 느끼며 그만 혼절하고 말았다. 아니, 그전에 이미 엄청난 고통이 닥쳐오자 그는 내심 이렇게 생각했다. (아아 나는 결국 이렇게 해서 죽는구나! 이렇게 결국 죽게될 것이라면 나는 무엇때문에 이 육신에 연연하여 마음을 애태웠던가? 정말 어리석었구나...!) * * * 백룡생은 죽었을까? 그렇지 않았다. 그는 혼절한 다음순간 다시 전신에 엄청난 압력과 고통을 느끼면서 번쩍 정신을 차렸다. 순간, 자신은 이미 가죽부대를 놓쳐버리고 폭포수아래의 깊은 물속에 들어와 있으며, 위에서 빠르게 떨어지던 기세 그대로 물속 깊은 곳으로 내려가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일반사람이었다면 이순간 혼절하여 정신이 없겠지만 백룡생은 그 엄청난 고통중에서도 내심 생각했다. (나는 이대로 빠르게 이 물속의 바닥에 부딪쳐서 박살이 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실로 그만큼 그가 물속에서도 아래로 내리떨어지는 속도는 거의 줄어들지 않았던 것이다. 허나, 다행이도 이 연못을 깊이가 헤아릴수가 없었다. 그가 만일 그 높은 곳에서 떨어져서 놀라운 속도를 입지 않았다면 일부러 헤엄쳐서 안으로 내려가려고 해도 워낙에 깊었기 때문에 불가능했을 것이다. 백룡생은 점차 아래로 내려갈수록 물의 온도가 급격히 차가와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백룡생은 거의 추위를 타지 않기 대문에 단지 전신이 부서지는듯한 고통만을 느끼고 있었고 이렇게 생각했다. (아니, 나는 설령 바닥에 부딪쳐서 박살이 나지 않더라도 곧 숨막혀 죽겠구나, 이렇게 오래도록 떨어져내리고 있는데 다시 올라가려면 족히 반시진은 걸릴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 비록 그의 생각대로 반시진이야 걸리지 않겟지만 이 연못이 기이하게 깊은 것은 분명했다. 원래 이 폭포가 높은곳에서 떨어져내리고 있어서 그렇다고도 말할수가 있겠지만, 이 연못의, 형태는 마치 하나의 깊은 우물과도 같았다. 도무지 그 끝이 보이지 않는것은 괴이할 지경이었다. 마침내 백룡생은 숨이 가빠서 정신이 혼미하고 곧 터져버릴듯한 극렬한 고통을 받았다. 순간 그는 엄청난 고통때문에 미칠듯한 번뇌에 시달렸다. 허나, 다음순간 그는 생각했다. (나는 아까 죽는다고 생각하고 무슨 생각을 했던가? 아아 나는 어리석군! 기왕에 죽을 것이라면 미련을 버리도록 하자! 육신의 고통을 당하더라도 마음의 고통이야 당할 필요가 엇는 것이 아니겠는가?) 원래 그는 아까도 한번 이러한 경험을 강렬하게 했었다. 그런만큼 이제 다시 그러한 생각을 떠올리게 되자 그는 곧 정신을 하나로 모을수가 있게 되었고 곧 거대한 정신력을 발휘하여 마음의 번뇌를 끊었다. 그리고, 죽기위해 마음을 정리했다. 그 숨막히던 고통이 일순 가벼워지고 전신이 편안한 느낌이 드는 것이 아닌가? 백룡생은 그것이 처음에는 그가 죽어가는 징조인줄로만 알았다가 다음순간 그것이 아님을 알고 다소 의아해했다. 알고보니 그의 내부에서 일순 기이한 열류가 일아나서 숨을 쉬지 않았는데도 몸을 편안하게 해주었던 것이다. 기실 이 열류는 다름아닌 그의 체내에 잠재되어 있던 그 무한한 힘의 일부였다. 그럼 대체 이게 어찌된 영문일까? 사실, 이 무한한 힘의 결정체들은 백룡생의 전신에 응고되어 있으면서 시종일관 그의 내공이 운용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백룡생은 아직 내공심법을 전혀 배우지 않아서 그것들을 활동을 하지 않았던 것이나, 지금 이순간 백룡생이 알단 마음을 강하게 바로잡고 육신의 고통을 바로보게 되자 그야말로 원하지 않았는데 최상의 내공심법 이 발휘된 셈이 되었다. 원래 내공의 요결이라고 하는 것은 처음에는 호흡이요. 두번째는 기의 운용이라고는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그상승의 경지는 마음의 운용에 있는 것이다. 즉, 마음과 체내의 기운이 하나로 일치될대 그는 가히 극상승의 내공을 성취했다고 불수가 있는 것이다. 바로 그것처럼, 백룡생은 은연중 마음을 강하게 통솔하고, 육신의 고통을 바라보자 외공에 의해 다소나마 생겨 있던 기운을 그의 마음의 지배하게 들게 되었다. 그런데 이때, 백룡생의 마음상태는 지극히 맑고도 강인한 것이어서 그 고요함은 그야말로 마음의 공부 가운데에서도 가장 훌륭한 것이았다. 그러자, 비록 그가 내 을 아직 배우지는 않았지만 최상의 내공심법에 의해 체내에 응고되어있던 기운은 즉각 일부가 융해되어 그의 몸을 편안하게 만들어준 것이다. 백룡생은 미처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럴 시간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비록 그럴 시간이 있었다고 하더라고 의구심보다는 마음의 평정이 앞서서 이미 그런 것을 생각하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 제 13 장 수중동굴 헌데 바로 그때였다. 마음은 고요히 하고 가만히 죽음만을 기다리던 백룡생의 눈앞에 문득 뭔가 아른거리느 것이 나타났다. 알고보니 그것은 소용돌이였다. 어느새 그가 떨어져 내리는 속도도 거의 줄어들었고 보아하니 이 도무지 끝이 없을것같던 연못은 바닥이 눈에 확 들어왔다. 소용돌이는 아마 여못물이 바닥에 기운을 전하여 저절로 일어나는것 같앗다. 헌데 이때, 백룡생의 몸이 그 거센 소용돌이에 닿자 일순 위로 떠오르지 않고 빨려들어가듯 빠르게 옆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가? (...?) 백룡생은 이미 몸의 고통의 태반이 사라져서 마음이 더욱더 평온해져 있었다. 이런 상태라면 즉시 죽어도 마음이 편할것 같았다. 그런 상태에서 그는 자신의 몸이 기이하게도 연못바닥의 한족에 뚫려있는 마치 동굴같이 생긴 구멍으로 빨려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구멍이라고 생각했던 그곳은 생각외로 어둡지 않고 훤한 빛이 내비치고 있었다. 그리하여 백룡생은 촉망중에도 이런 생각을 했다. (설마하니 저 구멍밖이 지상이란 말인가?) 허나, 그럴리는 없었다. 원해 이 연못은 지상에서 아득히 내려온 절곡아래에 위치하고 있는것이고, 게다가 그는 다시 한없는 거리를 내려왔던 것이다. 그러나 저안이 지상의 햇살이 내리쬐는 것일리가 있겠는가? 그렇다면, 대체 저 맑은 빛은 무엇이며 이곳은 어떤 곳일가? 백룡생은 내심 가벼운 궁금증이 일었지만, 이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는 이미 자신이 죽는다고 생각을 했고, 그러므로써 얻어진 이 고귀한 마음의 평정을 어떻나 일이 있더라도 께고 싶지가 않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눈을 반쯤 감았다. 그것은 이제 앞으로의 일에 신경을 쓰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이 동굴은 역시 다소 길어서 대략 십여장이나 되는것 같았다. 그러다, 문득 눈앞에 밝은 빛이 강렬해진다고 느껴진 순간, 갑자기 그의 몸은 소용돌이의 물결에 의해 빠르게 위로 솟구쳐올랐다. 아니, 일순 백룡생은 돌연 눈이 부셔서 절로 두눈을 모두 감아버려야 했다. 그리고 일순 페부가 시원하게 탁 트이며 전신이 한없이 편안해지는 것이 아닌가? 이것은 그가 물에서 이미 벗어 났다는 증거였다. 하지만 대체 어찌된 영문인지 알수가 없었다. 백룡생은 일순 눈을 떠보려고 했지만 갑자기 크게 망설여졌다. 그가 만일 눈을 떠서 상황이 좋다면 아마도 지금 애써서 어렵게 이룩한 마음의 그러한 평정이 깨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외물에 시달리게 될 테니까, 허나 그렇지 않고 상황이 나쁘거나 그저 그렇다고 해도 역시 마음의 평정은 깨어지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눈을 뜨는 순간부터 그의 마음의 눈은 깨어지는 것이므로, 백룡생은 이미 오랜 수련의 결과로서 이러한 이치를 통달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내심 생각했다. (나는 이미 이 육신은 죽어도 좋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이 마음의 평정을 이루었으며 이것은 가히 무엇을 주고라도 바꿀수가 없을만큼 고귀한 것이다. 이것만 있다면 실로 육신이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다. 무엇때문에 이런 고귀한 것을 버려가면서까지 눈앞의 상황을 봐야한단 말인가?) 백룡생은 이어 내심 부르짖었다. (나는 이미 죽음을 초월하고 있었으니 역시 그대로 육신을 상관하지 않고 죽음을 초월하고 있는편이 낫겠다. 육신을 상관하지 않고 죽음을 초월하고 있는데 공연히 눈을 떠서 평정을 깨뜨릴 것이 무엇인가? 나는 그보다는 마음의 눈을 떠서 오직 유일하게 고귀한 이 마음의 평정속에 잠기도록 하자! 그리하여 그 영상속에 젖어들도록 하자!) 백룡생의 이러한 마음의 결정은 순간의 심한 갈등속에서 나온 강렬한 마음의 외침이었다. 그로인해 그의 마음음 아가 극심한 마음의 고통을 받았을 때처럼 다시한번 강렬하게 집중되었고 모든 호기심 따위를 아랑곳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는 그 상태로 전혀 움직이지 않은채 곧장 깊고 깊은 명상속으로 빠져들어갔다. 이 , 그의 몸은 지극히 편안하여 아까 극심한 고통이 시달릴때와는 그야말로 전지차이였다. 그런 상태에서 지극히 강렬하게 육신과 죽음자체도 초월하여 무한히 맑은 명상의 경지로 접어들자 그의 마음은 지극히 맑고 고요해져서 마치 유리처럼 투명해졌다. 그리고 세상의 그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게 되었다. 다만 그는 그 속에서 명경지수처럼 맑고 투명한 마음속에 비치는 깊고 심오한 마음의 세계를 고요히 바라볼 뿐이었다. 거기에는 그 어떠한 장애도 없는듯 했다. 백룡생은 그러한 마음속에서 무한한 기쁨과 무한한 감동을 맛보았다. 그러자, 백룡생은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이러한 고요한 마음속에서 헤어나지 말아야 겠다고 새삼 다짐하는 것이었다. 헌데 이때, 돌연 그의 체내에 돌연 괴이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일순 극렬하고도 뜨거운 기운이 거대하게 일어나더니 흡사 어떻나 절대적인 규칙을 따르듯이 그의 체내의 혈도를 따라 빠르게 혹은 느리게 자유자재로 휘돌아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한 기운의 움직임은 처음에는 다소 미약한듯 했으나 나중에는 강물이 벌람하듯 엄청난 기세로 늘어나서 그의 전신을 누비기 시작했다. 백요생의 체내의 혈도는 아직 내공을 연성하지 않아서 대부분 막혀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엄청난 기운의 도도한 흐름앞에 그러한 작은 장애정도는 그야말로 무기력할수밖에 없었다. 기이한 것은, 그렇게 엄청난 힘이 마차 터져나갈듯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움직이고 있는데도 그것들은 전혀 흩어져서 다른길로 가지 않을뿐만 아니라 오히려 아주 순하게 움직인다는 사실이었다. 백룡생은 비록 내공심법은 배우지 않았어도 전신의 경맥에 대해서는 서책에서 읽어서 알아둔 바가 있었다. 그 거대한 기운은 처음에는 임독양맥을 따라서 그 교차점의 가늘게 이어지는 부분의 통로를 가볍과 관통하고는 무서운 기세로 그저 빙글빙글 돌기만 했다. 그러다가 그것은 이어 자연스럽게 충맥과 대맥, 양교맥, 음교맥등의 기경팔맥중의 나머지 여섯개의 경맥을 따라서 차례로 돌기 시작했고, 이어, 인체의 아주 조그마한 기의 횡의 노선인 무수한 낙맥으로 뻗어나가면서 십이정경과 연결되었고, 뒤이어 십오락맥과 실로 헤아릴수 없는 미세한 손락에 이르기까지 아주 자연스럽게 뻗어나가면서 거침없이 유통되기 시작했다. 그 모양은 하나의 거대한 줄기가 여러갈래로 , 그 여러갈래가 무수하고 미세한 갈래 갈라지다가 다시 어느 사이엔가 하나의 강물처럼 모이는등 변화가 막측했고 도무지 끊임이 없었다. 그리고, 그러한 운행이 계속되면서 그의 체내의 진기의 양도 엄청나게 갈수록 배가하여 실로 상상도 못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백룡생은 그 기운이 너무도 강하여 자신의 전신이 다 받아들이고도 넘쳐서 자신의 육신이 일시에 터져나가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의 마음의 평정이 깨지지는 않았다. 그는 몸이 고통스러우면 고통스러운대로, 뜨거우면 뜨거운대로 그저 조용히 관조하며 바라만볼 뿐이었고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바로 그의 그러한 마음의 맑고 거대한 평정이 실로 커다란 행운을 불러 일으켰다. 기실, 지금 그의 체내에 이러한 변화가 나타나는 것은 거의 모두가 그의 마음자세 때문이었다. 원래 그는 아까 무한한 고통속에서 고도의 평정심을 이룩함으로써 채내의 진기르 유발하게 되었다. 그것은 일단 자연스럽게 움직여서 그의 고통을 감소시켜 주었다. 허나, 그때는 그의 마음이 고통때문에 완전한 평정에 들지 못해고, 뒤이어 밝은 빛을 보게되자 그의 이목이 대부분 그쪽으로 움직여서 진기의 흐름이 거의 중단되었었다. 그러나, 나중에 그가 다시 지극히 편안한 가운데 진정으로 거대한 마음의 고요한 평정에 들어서 그 깊은 맛을 음미하게 되자, 그러한 지고한 마음이 힘은 일종의 질서를 부여하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의 채내에 잠재되어있던 무한한 힘을 불러을으키게 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말하자면 대우주는 누가 간섭하지 않아도 스스로 잘 돌아가는 이치와 비슷한 것이었다. 백룡생의 마음이 지극한 평정을 찾아서 투명한 경지에 이르자, 그가 원하지 않아도 그 잠재되어 있던 가공할 힘이 움직여야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고, 일단 그렇게 알고나자 그가 하고자하지 않았는데도 어떤 거대한 절대적인 힘이 작동하여 스스로 그 엄청난 힘들을 통제하기 시작한 것이다. 백룡생은 물론 이러한 것을 마치 눈앞에 보듯 훤하게 알고 있으면서도 마음의 평정을 잃지 않기 위해 여전히 상관하지 않았다. 그러자, 바로 그러한 점 때문에 그의 체내의 질서는 더욱 확고하게 자리를 잡게 되었고 스스로 가장 최상의 진기운행을 하기에 이르렀다. 허나 만일 그렇지 않고 백룡생이 이러한 진기운행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신경을 쓰거나 욕심을 부렸다면 그는 아마도 반대로 횡액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기실, 원래 그의 체내에 잠재되어 있던 힘이라고 하는 것은 거의 무한한 것으로, 그것은 내공심법으로 천천히 조금씩 소화되어야지, 결코 한꺼번에 움직여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백룡생이 무심결에 운행한 최상의 내공심법은 일시에 그 잠재력을 모두 격발시키기에 이르렀고 그것은 사실 위험했다. 백룡생이 만일 마음이 평정을 잃었었다면 아마도 그의 전신은 정말로 그 거대한 힘의 혼란을 막지 못하고 터져나갔을 것이다. 그러나, 백룡생이 시종일관 마음의 평정을 잃지 않았기 때문에 그 마음속의 거대한 질서는 점점 더 뚜렷하게 강력한 영도력을 발휘하게된 것이다. 그 힘은 가히 절대적인 것이었다. 백룡생은 마음의 평정에서 그 힘을 알게 되었고, 그것을 관조함으로써 자연 그러한 질서를 통달하게 되었다. 거기에 따라서 그러한 질서의 힘은 가히 완전해지자 일시에 전신의 기운이 크게 움직여서 터져나갈것만 같던 몸이 갑자기 편안해졌다. 그리고, 그 거대한 진기의 운행이 문득 끈끈한 액체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는 바로 진기가 가장 이상적으로 농축되고 있다는 증거인 것이었다. 그러한 현상은 비교적 오랫동안 계속되었는데, 어느 한 순간 그러한 현상이 그의 체내에 완전하게 이루어지자 순간 백룡생은 전신에서 화끈한 감각과 함께 뭐라고 말할수 없는 짜릿짜릿한 황홀감을 맛보았다. 아니, 그는 이순간에도 그저 관조한 것이다. 그러한 황홀감 때문인지 그의 체내는 그 그물같이 미새하게 도라다니던 엄청난 양의 진기가 돌여 동시에 찮란한 백생의 광채로 빛나더니 그의 전신을 휘감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의 체내의 진기는 모두가 일시에 그 찬란한 백광으로 변해서 사라벼버렸다는 말일까? 백룡생은 이를 보고 있었지만 신경쓰지 않고 있엇기 때문에 그저 고요히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는 가운데 그의 체내에는 기이한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두두두...! 갑자기 그의 골격이 크게 수축과 신장을 거듭하더니 가장 이상적이 육신으로 전신이 탈바꿈하기 시작한 것이다. ...환골탈태, 바로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환골탈태인 것이다. 간혹 무림인들중에 영약을 복용하거니 신공을 성취해서 환골탈태를 경험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나 그것은 단지 일부에 그칠분 완전한것은 아니었다. 이른바 완전한 환골탈태를 한다는 것은 그것이 끝나고나면 자동적으로 역시 완전한 금강불괴지신으로 돌변해야 하는 것이다. 백룡생은 비록 이러한 이치를 배우지는 낳았으나 이순간 모두 알수가 있었다. 그의 전신의 외부와 머리털등이 모조리 빠져버리고 전혀 새로운 것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아니, 그의 내부의 변화는 그보다도 더했다. 일단 환골탈태를 경험할때는 체내의 진기가 거의 모조리 사라진듯 하더니, 일단 화골탈태를 거쳐서 그이 몸이 완전한 금강불괴지신에 이르자 일순 갑자기 금광이 눈부시게 피어났다. 그것은 그의 내분의 금광이었고 그것은 그의 전신에서 똑같이 동시에 피어났다. 그러더니, 그것은 마치 빛이 모여들듯 일제히 그의 단전으로 모여드는 것이 아닌가? 동시에, 그의 단전에는 황금빛 찬란한 둥그런 것이 흡사 태양처럼 빛나기 시작했다. 기실 이것이야말로 지정한 진기의 정화였다. 그리고, 일단 그것이 빛나기 시작하자, 그의 전시은 마치 그빛을 받아서 세상이 환해지듯 황금빛으로 투명하게 빛나는 것이었다. 이것은 이미 그의 전신의 진기가 황금빛 정화로 탈바꿈하여 진기의 통로인 혈도가 따로 필요없게되고 이른바 치명적인 급소가 하나도 없는 무혈지체 가 되어 버렸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 무혈지체라는 것은 완전한 금강불괴의 여러가지 요건 가운데의 하나에 불과했다. 완전한 금강불괴한 그야말로 신의 몸을 이룬 것이며, 부드러우면서도 강하여 가히 불사에 가꺼운 몸을 이루었음을 말하는 것이었다. 기실 이러한 것들은 상상속에나 잇을법한 존재인데, 이것을 백룡생의 우연한 최상의 내공심법과 그가 전에 복용했던 복연속의 힘으로 인해 이루어진 것이다. 백룡생은 물론 이제서야 자신이 알지 못했던 전날의 구령산의 모든 기연을 스스로 헤아리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의 마음은 매우 기뻤다. 아니, 오히려 전혀 그러한 기쁨이 없다고도 볼수가 있었다. 왜냐하면 백룡생의 마음은 이미 굳건해져서 전혀 이러한 자신의 변화를 보고서도 전혀 마음이 흔들리지가 않았다. 그는 진실로 고귀한 것은 마음이며, 이러한 변화는 기실 마음에 비하면 그리 대수롭지 않은 것임을 잘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육신은 아무리 불사에 가까와도 결국은 죽고만다. 어찌 여기에 욕심과 미련을 두고, 집착할 것인가...?) 이제, 백룡생의 체내의 변화는 끝이났다. 그의 육신은 끝없이 평온해졌다. 그리고, 그의 마음의 평정도 역시 더이상 늘거나 줄지 않았다. 그는 그러한 상태로 오랫동안 그대로 있었다. 그러다가, 이제는 눈을 떠서 그 어떠한 것을 보더라도 마음의 평정이 깨어지지 않을 것임을 알게되자 그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뜨게 되었다. 그것은 집착과 욕심으로 빛어진 자의가 아니라 마음의 평정이 그렇게 시킨듯 자연스러운 동작이었다. 순간, 먼저 그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석실의 천정에 있는 한알의 거대한 야명주였다. -- 석실, 이곳은 의외에도 하나의 다소 은 석실이었다. 이 석실은 천연의 동굴에 인공을 가미한 흔적이 엿보이는 곳으로, 천정중앙의 주먹만한 야명주의 옆에는 푸른빛을 발하는 보석, 전설의 벽수주가 있어서 석실 안쪽에 있는 깊은 웅덩이에서 물이 올라오는 것을 막고 있었다. 지금, 백룡생은 놀랍게도 그 웅덩이의 공중에 둥실 떠올라서 아무렇게나 드러누워 있었다. 백룡생은 전에 내공심법은 배우지 않았으니 자연 신법이나 경공술에 대해서도 역시 배웠을리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진기의 운요엥 대해서 가장 확실하고 정확하게 통달하고 있었기 때문에 비록 그러한 것을 배우지 않았더라도 능히 허공에서 몸을 움직일수가 있었다. 백요생은 허공에서 천천히 몸을 바로잡은 다음에 석실의 내부를 좀더 자세히 살폈다. 지금 그이 내공은 이미 더이상 오를수가 없는 최상승의 경지에 올라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 석실은 다소 기이했다. 뭔가 크게 있을법 하건만 실상은 별로 특이할만한 것이 없었다. 오직 있는 것이라곤 웅덩이가 있는 반대쪽의 석실바닥에 한자루의 장검이 거의 녹슬은 채로 놓여져 있었다. 그리고 그뒤에는 거의 삭아서 그 형체를 알아볼수가 없는 해골이 하나 있었다. 그외에, 잇는 것이라고는 사방의 매끈한 석벽에 가득하게 새겨져 잇는 무수한 글자였다. 이 석벽들은 벽수주가 잇는 관계로 전혀 이기기 기지 않았고, 비록 오래되었으나 글자는 아직 선명했다. 백룡생은 잠시 이러한 것들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신형을 옮겨 그 석벽의 앞으로 다가가서 거기에 새겨져 있는 글귀를 읽기 시작했다. 그 글귀에는 일견하기로도 강한 기운이 물신 풍겨나왔다. -- ...나는 무당파 제 오십이 대 장문인을 지냈던 무애자라고 한다. 나는 한편생을 무당산에서 살다가 지금은 역시 이곳에서 죽는다. 이렇게 죽는 마당에 무슨 미련이 있겠느냐만은 그래도 내심 크게 후회하는 바가 있어서 이렇게 적는다... 백룡생은 그 글귀를 잃다말고 문득 기억에 떠오르는 것이 있어서 내심 가볍게 흠칫하여 중얼거렸다. (무애자? 무애자라면 바로 무애상인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 백룡생은 이미 무당파의 역사를 기술한 책자를 통독했기 때문에 무당파의 일에 관해서는 거의 훤하다고 말할수가 있었다. 그가 읽었던 책자에 기록된 바에 의하면, 무당파의 제 오십 이대 장문인데 분명 무애자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그가 죽은 이후에는 상인이라는 존호를 붙여서 그를 무애상인이라고 호칭하고 있는 것이다. 이 무애상인 대략 오십년전에 장문인직을 제자인 자허자, 자허산인 이라고 불리우는 사람에게 인계해 주었으며, 오십삼대 장문인 자처산인은 다시 이십오년이 세월이 지나자 장문인의 직위를 지금의 장문인인 옥진자에게 물러주고 죽었던 것이다. 이 옥진자는 바로 무당삼자의 하나이고, 또한 무당삼자는 자허산인의 가장 걸출한 세명의 제자중이 하나였다. 그러니까 지금의 장문인인 옥진자는 오십사대요. 무애상인에 비해 두대가 아래라고 말할수가 있었다. 그러나, 무당파에는 그간 무수한 도인이 배출되었었는데 단지 무애상인이 이러한 점만 있었을뿐 특이한 행적이 없었다면 백룡생으로서는 기이하게 생각할 리가 없었다. 사람이란 반드시 죽는 것이니, 그의 시신이 이런 곳에 있다고 해서 결코 이상할 것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기실 백룡생이 다소 기이하게 여기는 거은 이 무애상인이라는 사람은 근간의 무당파의 흥망성쇠에 있어서 지극히 중요한 인물로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원래 이 무애상인은 무당파의 역사에 있어서 거의 몇손가락을 꼽을 수 있을 정도로 무에의 자질이 뛰어나서 한때 무당파의 위명을 천하에 날리기도 했었다. 그런데 반면 그의 제자였던 자허산인의 무에자질은 그보다도 못해다고 말할수가 있었다. 바로 그러한 점 때문인지는 몰라도, 서적에 기록된 바에 의하면 이 무애상인은 실은 장문인의 직위를 물려주고 죽은것이 아니라 장문인의 직위를 수행하다가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고 했다. 그리하여, 그 뒤를 그의 수제자인 자허산인의 잇게 되었지만 장문인만이 연성할수 있는 이른바 호법무공은 실전되게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관한 기록은 비록 자세하지는 않으나 그간의 상황을 능히 짐작할수가 있게 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랄도 장문인이 무애자가 갑자기 사라져 버리자 쳔년의 명성을 지나고 있는 대무당파에서는 얼마나 경황이 없었을까? 가까스로 그 수제자에게 장문인의 직을 잇게 했지만 그 가장 중요한 장문인의 신공은 실전되고 사라져 버렸다. 그리하여 무당파에서는 비록 이것이 강호에 알려지면 좋지않을 사건이기는 하지만 차후의 무당파의 앞날을 위해 이를 기록하여 다시 그 호법무공을 찾을수가 있도록 했던 것이다. 무애상인의 뒤를 이은 오십삼대 장문인인 자허산인은 비단 그 무공이 뒤떨어질 분만 아니라 위인됨이 걸출되지 못하여 무당파는 다소 쇠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그러다가 만일 무당삼자와 같은 걸출한 인제가 나타나 무당파를 다시 떨치게 하지 않앗다면, 아마 무당파는 무림의 태산북두가 아니라 이름없는 방파로 전락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제아무린 뛰어난 인재인 무당삼자도 이 잃어버런 호법무공만은 되찾을수가 없어서 항상 아쉬워하던 참이었다. 그럼, 대체 그 무당파의 호법무공이란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태극혜검법의 운검구결이었다. 이 태극혜검법의 무당파의 최고의 무예로 이름이 높았는데, 무애자가 자허산인에게 전수를 하지 않아서 지금은 그저 초식만을 겨우 전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허나, 상승의 검도에 통한 사람이라면 알고 있는 것처럼, 이 태극혜검법의 정수는 초식이 아니라 그것에 스며잇는 무리를 꿰뚫는 검결인 것이다. 그 상승검학은 무당파의 조사 장삼봉진인인 참오하여 전수한 것이었는데 지금에 이르러 실전되게 되었으니 무당파로서는 자연 그 의기기 쇠락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신비하게 사라졌다는 무애자의 유골이 이곳에 있을 줄이야! 백ㄹ요새은 잠시 무심한듯한 눈길을 구석에 놓여있는 거의 삭아빠진 유골에 보내다가 다시 시선을 돌려서 석벽에 새겨진 글귀를 읽기 시작했다. 글의 내용은 계속 이어졌다. -- ...사람들은 말할 것이다. 나 무애자는 대체 무엇때문에 의문의 실종 을 했을까 하고? 하지만 내 먼저 말하거니와 그것은 실종이 아니라 나의 고집이었다. 나는 어느날 이러한 생각을 했다. 태극혜검법은 그야말로 거의 모든 검도의 정수가 스며있는 최고의 검학이다. 나는 이미 그것을 트득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실상은 겨우 삼성정도를 흖그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이미 무당파는 오랜 타성에 젖어있고 나의 제자들은 크게 노력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 대체 어떻게 대무당파의 심오한 절학을 이을수가 있을 것인가? 나는 잠이 오지 않았다. 그리하여 나는 결심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백룡생은 글의 내요을 읽으면서 점차 가볍게 눈살을 찌푸렸다. 그것은 실로 놀랍고도 경이로운 내용이어서 실로 그이 마음의 평정에 파문이 일게 하는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백룡생은 다시 마음의 평정을 되찾게 되자 재차 글을 읽어내려갔다. -- ...그간 무당파는 나라고 하는 대들보가 있었기 때문에 태만했다. 그리하여 나는 그들에게 경각심을 주기위해 일단 실종된 것처럼 꾸미려고 했다. 즉, 나는 처음에는 실종된 것이 아니라 실종된 척을 했을 뿐이었다. 나는 암중에서 나의 수제자 자허가 장문인의 직위를 승계하는 것을 보았고 이미 그러리라고 예측하고 있었다... (실종된 척을 했을 뿐이라고?) 백룡생은 다소 어이없다는 생각을 했다. 이 실종이 실은 자신의 고집이었다는 말의 의미가 파악되는 순간이었다. 이러한 무애자의 행동은 그야말로 진실로 무예를 위하여 무당파를 위해 했던 것임에 틀림이 없었겟지만 대체 그것은 얼마의 커다란 파문을 안겨주었던가? 그리고, 무당파는 지금고 그 여파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 ...나의 생각은 일단 어느정도의 세월이 흘러서 자허가 다소 정신을 차리고 무당파의 제자들의 분위기가 달라지다면 슬그머니 나타나서 비전 을 전수해 주려고 했다. 그리고 그러한 나의 생각은 어느정도 적중했다. 무당파의 제자들은 과연 심기일전하여 정진하기 시작했고 나는 이를 숨어서 바라보며 심히 고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일단 실종이 되어버렸던 만큼 쉽게 다시 그들에게 돌아갈 명분이 생각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바로 그때 나는 우연히 이곳 무당산에서 숨어살곳을 찾던 중에 천년전에 조사께서 참오하시던 이곳 석실을 찾게 되었던 것이 . 헌데 아아 그것이야말로 나의 불운이었다... (그럼 이곳이 바로 천년전의 장삼봉진인이 무예참오를 위해 수련했던 장소라는 말이군?) 무려 천 년의 세월, 그러한 오랜 세월을 자나도록 이곳 석실의 형상이 변형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가히 믿기 어려운 노릇이나 어쨌든 그렇다니 믿을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조사의 동굴을 발견했으면 행운이겠거늘 그것이 불운이라니 실로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 아니겠는가? 백룡생은 여전히 고요한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며 계속해서 그 아래의 글을 읽어내려갔다. -- ... 나는 처음에 이곳 수중동굴을 발견하자 내심은 매우 기뻐했다. 그거은 우선 아직 삼성의 수준박에 이르지 못한 나의 태극혜검법의 화후를 어쩌면 조사꼐서 남기신 비급을 통해 높이 끌어올릴수가 있다는 것이고, 두번째는 이로 말미암아 나는 제자들에게 내가 실종되었던 명분을 말할수가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럼 이곳에 장삼봉이 남겼다는 그 비급이 원래 있었던 모양이군?) 백룡생은 내심 생각하며 다시 석실의 내부를 둘러보았다. 지금 그의 이목은 지극히 영민하여 설사 칠흑같은 어둠속이라도 꿰뚫어볼수가 있을 정도였다. 그런만큼 그가 그런 비급하나를 찾지 못할리가 없는데, 분명히 그런 비급은 지금 이곳에 있지 않았다. 아마도 그때 당시 무애상인이 보고는 없애버린 모양이었다. 백룡생은 원래 조금의 욕심도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설혹 그렇다고 하더라도 섭섭한 마음이 조금도 일지 않았다. 다만 그는 무애상인의 그때의 심정을 비추어보며 내심 이해하고 있었다. 무애상인은 아마 그의 문하제자들에게 자신은 이곳에서 그간 조사의 유학을 연구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타날수가 없었노라고 말할 작정이었음이 분명했다. 그들에게 직접적으로 심기일전시키기 위해서였다고 말할수는 없었을 테니까 그런데, 대체 뭐가 잘못되었다는 말일까? 제 14 장 전대의 장문인 글귀의 내용은 다시 이어지고 있었다. -- ...헌데 내 어찌 그렇게 되어버릴줄을 알았으랴! 모든 것은 아의 욕심때문이었다. 나는 당시 그저 비급을 찾아서는 무당파로 돌아갔으면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나는 그야말로 바보가 분명하다! 무예를 연성하는데에 있어서 우선은 마음을 맑게 하고 욕심을 없애야 하거늘 태극혜검법을 더욱 빨리 배우기 위해서 그렇게 날뛰었다니! 빌어먹을! 난, 나는... 기실 무예는 출중했지만 기본적인 마음의 수양은 나의 제자인 자허만도 못했다...! 거기부터는 글의 내용이 횡설수설이고 격한 감정에 얽매여 있었다. 그것으로 미루어 무애자는 일단 여기까지는 차분하게 썼으나 곧 감정이 격해져서 마구 글을 휘갈겼음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글의 내용을 못알아볼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무당파에서 걸출하다고 인정한 그가 이런 글에 빌어먹을이란 욕을 써놓고 또한 자신의 제자만도 못하다고 인정을 했으니 우스운 노릇이었다. 보아하니, 무애자가 비록 불만스러워 하기는 했지만 자허산인이라는 사람은 다소 무예의 자질은 떨어져도 그 심성은 수양이 괜찮았던 인물인듯 했다. 하긴, 명사에 고제자가 나온다고, 그가 졸렬한 인물이었다면 오늘날과 같은 무당삼자는 생겨날수가 없었을 것이다. 백룡생은 이 글을 읽고 내심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수가 없었다. 마음이 욕심을 없애고 명경지수를 이루어야함은 그가 불과 조금전에 절실하게 터득한 사항이 아니었던가? 다만 무애상인도 그것을 모르지는 않았을 테지만, 오랜만에 제자들 앞에 나설수가 있다는 흥분과 게다가 그들에게 보다 나은 무예를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겹쳤기 때문에 자칫 잘못된 길로 빠져들어간것 같았다. 그뒤의 글귀는 대부분 자기자신을 학대하는 갖은 욕설과 횡설수설하는 내용으로 이어져 있었다. 그 내용을 간추려보면 무애상인은 이곳에서 조사의 유물인 완전한 진무검보를 찾았지만 그것을 보고 자신의 화후를 능히 두세단계는 올릴수가 있었는데도 그는 심마에 빠져서 주화입마, 그만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여기에서 죽게 되었다는 말이었다. 그이 이러한 말은 그야말로 상승의 무예를 수련하려는 사람에게는 정신이 번쩍들게 할 정도로 귀감이 되는 말이었다. 무학의 상승공부는 역시 마음의 수련이 앞서는 것이다. 나중의 글귀는 그래도 비교적 무애자의 마음이 가라앉았는지 차분하게 변해 있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 ...나는 이 글을 보는 사람이 무당파의 사람이기를 바라지만 그렇지 않을수도 있을 것이다. 세상의 일이란 바라는 쪽보다는 바라지 않는 쪽으로 되어가는 편이 많으니까, 그러나, 나는 여기에서 이 많은 절학들과 진무검보상의 모든 무학구결을 적어놓지 않을수가 없었다. 나는 이 많은 절학이 무당파에 전해지기를 바란다. 그래야만 나의 이 커다란 죄와 한을 어느정도 씻을수가 있을 테니까... 연자여! 그대가 만일 나의 이러한 고심을 이해해준다면 지금 여기에 새겨놓은 많은 절학과 구결들을 모조리 무당파에 전해주기를 바란다. 여기에는 나의 평생의 무당파의 모든 절예는 물론이오. 진무검보상의 검결이 하나도 빠지지 않고 그대로 실려있는 것이다. 그리고 만일, 무당파의 장문인이 이 글을 보게 된다면 이곳의 모든 무학을 전한 사람에게는 그를 나의 제자인 자허에 준하는 대접을 해주기를 바란다... 무애상인은 아마 자신의 절학과 무당파의 최고절예가 무당파가 아닌 다른 곳으로 흘러들어가서 무당파가 멸문되는 것을 심히 우려하여 간곡한 부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만일 그런 사람에게는 자허산인과 같은 배분으로 대우해 주라는 일종의 편법마저도 생각해놓고 있었다. 이것은 오로지 무당파의 최고절학이 사라지거나 다른곳으로 넘어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그의 고심에찬 안간힘이라고 말할수가 있었다. 하지만, 과연 그의 이러한 글귀를 읽는 사람은 그의 뜻대로 해줄 것인가? 무애상인의 글귀는 그뒤에도 조금 더 이어지고 있었으나 그것은 역시 간곡한 부탁의 말이 이어지고 한탄이 이어지고 있을뿐 더이상 말할 거리가 되지 못했다. 백룡생이 그것을 모두 읽고나자 이렇게 생각했다. (무애상인, 당신은 그 강한 집착으로 인해 심마에 들었으면서도 끝가지 강한 집착을 버리지를 못하고 말았군, 비록 그의 이러한 노력이 없더라고 무당파는 아직 존재하며, 설혹 무당파가 사라진들 또한 어떻다는 말인가? 이것은 부질없는 집착이 아닐수가 없다!) 아마, 무애상인이 저승에서 백룡생의 이러한 생각을 알았더라면 땅을치고 울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찍이 현진자도 그에게 무공에 대한 집착과 강호에 대한 집착을 일으키게 하지 못했는데 어찌 이런 한낱 글귀로서 그의 마음이 움직이겠는가? 그는 이어 생각했다. (당신은 무당파의 조사인 장삼봉진인이 왜 자신의 비급을 문하에 전하지 않고 이곳에 그냥 두었었는가를 알았어야 했다. 그는 비록 스스로의 열정때문에 무학을 연구하기는 했지만 비단 무당파에 대한 집착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비급에 대한 집착도 없었던 것이다!) 백룡생은 따라서 지금까지 읽은 무애상인의 글귀는 모두 그냥 흘려 버리기로 했다. 그러나, 그는 이미 기왕에 현진자에 의해 강제로 하다시피 하여 기초무학을 연성한 몸이고, 또한 지금 최상의 내공을 연성한 상태인지라 비록 욕심이니 집착은 없지만 자연 이어 사방의 석벽을 가득 메운 무애상인의 무학구결에 시선을 보내게 되었다. 거거에 가장 먼저 적혀있는 것은 아무래도 그가 제일 중시한 진무검보상의 검결이었다. -- 태극혜검보, 그 내용은 그리 길지 않았으나 거의 모든 검도의 요채를 담고있는 상승의 검도이론이었다. 비록 초식은 하나도 적혀있지 않았으나, 원래 태극혜검법의 정수는 초식이 따로 필요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이것은 보시 검도의 공부가 상승경지에 이른 사람만이 터득할 수 있는 심오막측한 무학의 구결이었다. 실로 장삼봉진인도 말년에 이르러서야 태극혜검법의 진정한 요체를 깨닫고 여기에 이렇게 남겨놓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단지 일반인에 해당될뿐 이 백룡생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백룡생은 비록 상승의 검도를 배우지는 않았지만, 이미 내공의 요체를 완전하게 꿰뚫고 있었고 무예의 모든 기초를 터득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가장 중요한 것은 그의 심경이 마치 명경지수와 같다는 사실이었다. 바로 이 명경지수와 같은 마음은 모든 무학의 어머니라고 할수가 있는 것이었다. 백룡생이 자신도 모르게 터득한 최상의 내공심법도 실은 거기에서 절로 우러나온 것이 아니었던가? 게다가, 검도의 요체라는 것도 실상은 내공의 운용과 궁극적으로 통하는 것이기 때문에 백룡생에게는 결코 막힐것이 없었다. 이것은 마치 뛰어다닐줄 아는 사람에게 다시 걸음마를 가르치는 것처럼 그야말로 간단하고 쉽게 배울수가 있는 것이다. 복잡한 무학의 초식이나 동작을 배우고 암기하라면 다소 까다로왔겠지만 그 구결을 배우라는 것은 백룡생에게는 그야말로 쉽고도 쉬운 일이었다. 백룡생은 전혀 잡념이 일지 않는 마음으로 태극혜검결을 보았기 때문에 그는 그것을 본 즉시 이해했을 뿐만 아니라 아예 터득하게 되었다. 그리고는 내심 생각했다. (이것을 연성하기 위해서는 필히 마음을 맑게 가져야 한다. 그런데 무애상인은 마음이 내심으로 혼탁해졌었으니 주화입마를 당하는 것은 당연하겠군!) 실로 상승의 무예에 들어갈수록 주화입마에 들 가능성은 점점 더 높아진다. 그것은 하류의 무예는 다소 틀려도 크게 상관이 없으나, 상승의 무예는 불과 실한오라기만큼만 틀려도 나중에는 커다란 부작용을 낳게 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백룡생은 이미 마음의 수련을 먼저한 사람이었다. 그런만큼 그는 비단 주화입마를 당할 소지가 없을 뿐만 아니라 아예 일시에 모든 검도의 이치를 통달하고 그것을 보다 나은 경지로도 꿰뚫을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백룡생은 이미 그토록 어렵다는 태극혜검법을 한순간에 십이성으로 깨우친 셈이었다. 이것은 가히 기문이라고 말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백룡생은 짐무검보상의 검결을 두어번 보고나자 이번엔 다시 시선을 옮겨 무애자가 남겼다는 무학으로 향했다. 거기에는 백룡생이 아직 전혀 보지 못한, 무당파의 중요한 그의 모든 무학이 고스란히 구결과 도해로서 남겨져 있었다. 비록 하나의 무예라고 하더라도 그 사람의 심득의 정도에 따라서 위력의 차이가 있겠기 때문에 무애상인은 이미 모든 무당파의 제자들이 알고있는 무공에 대해서도 일일이 새롭게 자신의 의견을 가미하여 적어놓았던 것이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역시 태극혜검법의 초식과 자신이 터득한 그것의 운검구결이었다. 그것은 물론 진무검보에 비해 보잘것이 없었다. 백룡생은 그 내용과 초식들을 차례로 주시해본 다음에 그뒤에 적혀있는 무당파의 절학인 현허도법이나 제운종의 경공술, 그리고 무당면장과 진산장, 양의검법 따위의 모든 절학들을 바라보며 그것의 옳고 그름을 비교분석했다. 그 분량은 아주 방대한 것이었지만 백룡생의 마음은 지극히 맑아서 어떠한 어려운 무학구결이라도 즉시 꿰뚫을수가 있었기 때문에 기실 그가 소모한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게다가, 그는 이러한 무공을 배우려는 욕심을 전혀 일으키지 않고 그저 자신이 알고있는 무학의 요체와 비교분석하는 식으로 읽었기 때문에 오히려 그는 자연히 그러한 절학들을 연성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보다도 더욱 높은 경지의 무공으로 바꿀수도 있었다. 예를 들어, 무당파의 최고내공심법인 태극공과 진무칠절진 등에는 결함이 많이 있다고 생각했고, 마음을 둘로 나눌수가 있다고 하여 무림의 기공이라고 까지 불리우는 양심신공에 대해서는 정말 부질없는 절학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가지의 말을 덧붙인다면, 무당파에서 태극혜검법과 이름이 비슷한 태극권이라는 것은 원래 초식을 지나치게 강조했지만, 그러한 동작보다는 그 내공의 운용요결을 터득한다면 가히 태극혜검법에 버금가는 극상승의 무학이 될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하곤 했다. 그러나, 석벽에 적혀진 모든 글귀를 모두 정복하고난 그의 내심은 다소 씁쓸하였고, 사람들이 그토록 귀중하게 여기는 이 모든 내용들이 실은 매우 하찮은 것이며 부질없다고 재삼 생각하고 있었다. 만일 다른 일반사람이 이 무학구결들을 보았다면 기뻐서 미칠 지경이 되었겠지만, 오히려, 그는 반대였다. 그는 지나치게 오랜 시간을 구경을 보는데에 마음을 빼앗겼었기 때문에 오히려 마음이 어지러워진 느낌이 들어서 잠시 눈을 감고 다시 마음의 평정을 위해 명상에 들기도 했다. 허나, 일단 커다란 깨달음이 있었기 때문에 다소 마음이 흐트러지더라도 그가 마음만 먹으면 다시 평정이 이루어지곤 했다. 그리고 나서 그가 생각한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무학이란 다른것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내공의 터득과 그것의 가장 효율적이고 완전한 운용인 것이다. 천하의 그 어떠한 상승의 무학도 그것을 벗어나지는 못한다. 그렇거늘 무슨 신공이고 무슨 검법이고 하는 것을 따지는 것은 그얼마나 무의미한 일인가?) 이어 그는 다시 생각했다. (아니, 인간의 육신이라는 것은 결국에는 죽게되기 마련이다. 그렇거늘 이 무학이라는 것 자체도 결코 집착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것을 얻게 되어서 생활이 다소 편리해지더라도, 결코 그것을 구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나는 오히려 모든것을 버리고 마음이 평정을 구하는것이 좋을 것이다!) 백룡생은 내심 그런 생각을 하고는 자신이 이미 기억하고 있는 모든 무학에 대한 생각을 뇌리에서 지우기 위해 마음을 다시 맑게 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정 반대로 나타났다. 비록 그의 마음은 다시 맑아지고 겉은 평정을 되찾았지만, 그가 잊으려고 노력한 모든 무학의 깨우침이나 초식등은 오히려 그럴수록 그의 뇌리에 생생하게 남게 되었다. 이것은 다른것이 아니라 바로 그가 모든것의 본체인 마음을 중시했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비록 그는 무학을 바르게 새로 만들지는 않았지만 지금 이 석벽에서 본 모은 내용과 자신이 터득한 내공구결 등은 낙인처럼 그의 뇌리에 남게 되었다. 이렇게 일단의 상황을 정리하고 나자, 백룡생은 비로소 자신의 현 상황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이제 그의 몸은 상처에서 완전히 회복되었을 뿐만 아니라 최고조에 이르렀고, 위험도 사라졌다. 또한 그는 자신의 능력으로 연못물을 통과하여 위로 올라가는 것을 어렵지 않은 일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대체 이제 어디로 가느냐는 것이었다. 백룡생은 문득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나는 역시 옥검봉위로 올라가야 하지 않을까?" 백룡생이 생각하는 이유에는 꽤 여러가지가 있었다. 우선 그는 마땅히 갈곳이 없었다. 몰론 가고자 한면 갈곳이 없을수는 없겠지만, 굳이 다른곳으로 갈 필요를 느끼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두번째는 자신이 이미 현진자에게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을 했으며, 마지막으로 그의 어르신게서 그에게 그와 함께 살라고 유명을 남겼었다는 사실이었다. 다른 것은 상관이 없겠으나 그는 문득 마지막의 이유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했다. (어르신게서 나를 그에게 보낸것은 아무래도 어떤 깊은 듯이 계섰던것 같다. 나는 지금 이순간 그렇게 여겨진다!) 그렇다. 그것은 일종의 육감이라고 말할수가 있었다. 아니면 그나름대로의 추리라고나 할까? 백룡생은 일단 그런 느낌이 들자 다시 옥검봉위로 올라가는 것으로 마음을 굳혀버렸다. 그는 원래 현진자의 그 심술에 대해 다소 꺼리는 마음이 있었으나, 이제는 그가 전혀 그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지 않겠는가? 그렇게 마음을 정하고 나자 백룡생은 다시 마음이 편해져서 천천히 석실내부를 둘러보았다. 그는 이미 모든 것이 부질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한쪽에 놓여있는 유골이나 녹슬은 장검등도 그리고 천정에 박혀서 휘황한 빛을 발하는 두개의 절세기보도 건드릴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는 여기에서 자신의 볼일이 났음을 알고는 즉시 몸을 돌렸다. 자신이 솟아나온 그 웅덩이 속으로 되돌아가는 것이었다. * * * 천년의 전통을 가지고 있는 무당파의 절학은 실로 방대하기 이를데가 없었고 심오하면서도 미치지 않은 구석이 없었다. 백룡생은 비록 그런것들을 별볼일이 없다고 평가했지만 그것들은 은연중 그의 몸을 통해 그대로 혹은 더욱 훌륭한 다른 형태의 무예로 변형되어 나타나기도 했다. 이 무당파의 절학들 중에는 물론 경공절예나 신법등도 있었다. 그 대표적인 것들이 바로 경공술로는 제운종이요, 보법으로는 칠성둔형이었다. 이 칠성둔형이라는 것은 십이성의 경지에 도달하면 가히 눈앞에서도 모습을 감출수가 있다는 것으로 진무칠절진의 운용원리에 보법을 가미한 것이다. 물론 그외에도 잡다한 무공, 즉 수공따위도 있었겠지만 무애자는 그것을 방외로 취급하고 석벽에 기록하지 않았다. 그러나, 백룡생은 이미 물속에서도 호흡을 하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견딜수가 있다는 것을 알았고, 제운종과 칠성둔형등을 본순간 경공과 보법의 원리에 대해서 이미 꿰뚫어 버렸다. 그리하여, 일반의 사람이었다면 소용돌이치는 웅덩이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다소 곤혹스러웠겠지만 그의 움직임은 아주 자연스럽게 그지 없었다. 원래 금강불괴의 몸을 가진 사람은 당연히 물에 빠져도 죽지 않는다. 그렇지 않았다면 어찌 불괴라는 말을 썼겠는가? 이 금강불괴지신은 일단 물속에 들어가면 스스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알아서 피부호흡을 시작하는 것이다. 따라서, 백룡생은 비록 물속이라도 물밖처럼 자유롭게 행동할 수가 있었다. 게다가, 그가 자연스럽게 경공의 원리와 보법의 원리를 운용하게되자 그의 몸은 그야말로 거센 소용돌이속에서도 부드럽게 미끄러지듯이 아래로 내려가서 다시 연못을 바닥에 도달하게 되었다. 이 연못의 바닥은 그가 전에는 워낙 심한 고통속에 있었기 때문에 미쳐 느끼지 못했었지만 실로 거대한 압력과 차가운 기운이 주위를 짓누르고 있었다. 그러나, 외부의 압력이 거셀수록 백룡생은 그것을 이용할줄을 알기 때문에 오히려 가볍게 위로 숫구쳤다. 만일, 그가 지금 마음만 먹는다면 진기를 운용하여 전신에 물한방울 묻히지 않을수도 있을것이지만 그는 일부러 그렇게 하지 않았다. 차가운 물이 피부에 와닿자 전신에 스며드는 서늘한 감초기 그의 마음을 가볍게 만들었다. 그렇게 얼마나 위로 솟아올랐을까... 백룡생은 문득 전면에 눈부신 광망이 가득 비춰드는 것을 느끼고 이어 자신의 몸이 연못물을 벗어나서 허공으로 솟아오르는 것을 알았다. 콰콰콰...! 전에 보았던 그 거대한 폭포수는 여전히 무섭게 아래로 내리꽂히며 거품을 사방에 흩뿌리고 있었다. 산들바람은 그의 주위에 이르러 가볍게 그의 젖은 옷자락을 흔들었다. 그러나, 잠시 후 백룡생이 체내의 스스로의 조화에 의해 그 젖은 옷자락도 금새 께끗하게 말라버리고 말았다. 백룡생은 잠시 허공에 둥둥 떠오른 상태에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때의 하늘을 황혼무렵이었다. 밝은 광채가 점점 황금빛으로 물들더니, 점차로 짙붉은 색으로 변했다가 검은 구름을 사방으로 흡뿌리고 있었다. 이 저녁노을은 얼핏 보기에 장엄했다. 아니, 백룡생이 느끼기에는 아주 아름다운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한순간의 위기에서 벗어나 지극히 높은 마음의 경지를 이룩했기 때문이었다. 원래 그가 절벽아래로 내려오기 시작한 것은 이른아침 무렵이엇다. 그러나 지금은 황혼무렵이니, 그가 연못속에 들어갔다 나온것은 대략 한나절의 시간이 걸린 셈이었다. 그러나, 그의 이 한나절의 시간은 그 어떠한 사람의 백년의 시간보다도 값지고 고귀한 것임에 틀림이 없었다. 이때의 백룡생의 모습은 겉으로 보기에는 역시 남루한 의복을 걸치고 있어서 별로 달라진데가 없었다. 허나, 그의 피부색은 은연중 투명한 황금빛을 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신에는 알수없는 무형의 기운이 한꺼풀정도 씌워져 있는듯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의 두눈에서는 단 한점의 기운도 밖으로 표출되지 않았고 무형의 기운도 사람의 눈으로는 알아볼수가 없는 것인지라, 그의 외모는 그저 헌칠한 체구의 서생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물론, 다소 멍창한듯한 그 눈빛도 변하지 않았다. 백룡생은 잠시 하늘을 바라보며 허공에 떠있다가 만일 어떠한 다른 사람이라도 이런 장면을 보게되면 크게 놀랄것을 생각하고는 즉시 신형을 미끄러지듯이 움직여서 지상으로 내려섰다. 그의 이러한 모습은 그저 허공을 미끄러지듯이 움직이는 것이어서 세상에 전해진 그 어떠한 신법의 종류로도 설명할수가 없는 것이었다. 이어, 그는 자신이 자칫했으면 떨어져 부딪쳐서 박살이 났을뻔한 뽀족한 기암괴석군의 옆을 지나서 한참을 걸어서 원래 그가 오르내리던 절벽의 앞에 이르렀다. 그리고는 잠시 생각하다가 천천히 과거의 습관대로 옥검봉의 위로 빠르게 오르기 가했다. 이때 위로 오르는 그의 모습은 마치 평평한 땅을 달려가는듯한 속도가 붙어서 실로 빠르기 짝이 없었다. 그리고, 겉으로 그냥 보기에는 과거와 비슷한것 같으나, 기실 그가 지금 절벽을 올라가는 방법은 전과는 판이한 것이었다. 전에는 여기저기 불룩 튀어나온 부분이나 들어간 부분에 손을 넣고 발을딛으며 올라갔었지만 지금은 그저 매끄러운 부분만을 딛고 있었다. 그는 비록 매끄러운 부분을 자연스럽게 딛고 있었지만 그즉시 그의 발바닥에서 흡인력이 알맞게 생겨나와 그의 몸을 지탱해주고, 그가 양쪽손을 번갈아 놀리는 것은 그저 형식적인 것이고 습관에 불과했다. 그는 비록 전혀 절벽에 발을 딛지 않고도 오를수가 있었지만 굳이 과거의 습관을 바꾸려고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아주 빠르게 옥검봉의 정상에 오를수가 있었다. 비록 같은 옥검봉이요. 불과 한나절의 차이밖에는 되지 않지만 그가 옥검봉에 다시 오르자 그 느낌은 과거와는 다소 달랐다. 과거에도 물론 어지러운 느낌과 공포심은 느끼지 않았지만 자칫하여 떨어질지 모른다는 경각심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는 설혹 아무렇게나 떨어져도 무방한 것이니 그 편안한 마음의 차이는 다소 큰 것이었다. 그런데, 정상에 도달하여 모옥에 이르는 순간 백룡생은 다소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이 모옥에는 전혀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은 곧 현진자가 이미 이곳에 있지 않다는 말이었다. 왜냐하면, 백룡생의 이목이라고 하는 것은 이미 극도로 발달되어서 능히 천하에서 그 짝을 찾기가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천하의 그 어떠한 무림고수라도 그의 이목을 속일수가 없게 되었다. 백룡생은 현진자의 행방에 대해서 잠시 생각하다가 자신이 거처하던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 부엌에는 자신이 아침에 지어놓은 밥상이 하나도 건드려지지 않은채 놓여 있었다. 아마도, 현진자는 나중에 잠에서 께어서 절벽아래로 내려가보고는 백룡생이 떨어져서 형체도 없어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는 다른 곳으로 가버린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다소 난감한 느낌이 들었다. 현진자는 대체 어디로 갔을까? 이제 어디로 가서 그를 찾을수가 있을 것인가? 그러나, 백룡생은 굳이 그일로 번뇌하지 않았다. 그는 인연의 논리를 많이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만일 인연이 있다면 다시 만날것이요. 그렇지 않다면 할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우선 아침에 해놓은 밥상을 앞에 두고 배를 채우기 시작했다. 아무리 천하제일의 내공을 가진 사람이라도 밥을 먹지 않으면 결국에는 굶어죽게 될테니까, 백룡생은 식사를 마친 후에 다시 아래로 빠르게 내려가서는 물과 나무등을 구입해온 다음에 모옥의 안팎과 절봉주위를 깨끗하게 치우기 시작했다. 이어, 밥을 짓고 물을 데우고, 빨래를 했으며 그간의 모든 물건들을 모두다 새롭게 정리 했다. 그러노라니 시간이 흘러서 어느새 한밤중이 되었다. 허나, 현진자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백룡생은 전혀 초조하게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거처로 돌아와서 이윽고 정좌하고 깊은 명상속에 잠기기 시작했다. 이제 그의 육신은 피로를 스스로 제거해 주기 때문에 구태여 잠을 잘 필요가 없는 몸이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잠을 자지 말라는 법도 없다. 단지 그는 잠을 자기에 앞서서 마음을 평안하게 갖기위해 명상에 들어간 것이다. 일반의 무림인들은 운기조식으로 체내의 기를 보충하거나 북돋울 테지만, 백룡생으로서는 명상을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할수가 있었다. 잠시의 명상을 끝내자 그의 마음은 아주 맑아졌다. 그리하여 그는 대략 삼경무렵에 조용히 누어서 잠들기 시작했다. * * * 현진자는 그날밤에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는 혹시 영영 이 옥검봉을 떠나버린 것이 아닐까? 백룡생은 다음날 아침 일어나서 이 일을 잠시 생각하다가 밥을 먹고 이어 다시 지어놓고 모든 것을 청소하고 준비해 놓고는 천천히 현진자의 행방을 찾을 궁리를 했다. 백룡생은 이미 두어번 아래를 내려갔다왔기 때문에 시간이 상당히 흘러서 해가 벌서 한뻠이나 떠올라 있었다. 헌데 그대, 백룡생이 잠시 정좌하고 앉아서 아래쪽을 향해 귀를 기울이고 있으려니 돌연 낮익은 음성들이 들려오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이에, 백룡생의 몸은 그 자세 그대로 그쪽을 향해 무의식적으로 거의 믿어지지 않는 속도로 빠르게 움직였다. 그러나 가운데 한점의 기척도 일지 않았다. 제 15 장 소녀의 짝사랑 옥검봉의 아래, 문득 저 멀리 모퉁이에서 두 사람이 빠르게 신법을 펼쳐서 이쪽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그들은 기실 빠르게 달리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애기를 나누고 있었다. 계속해서 말을 거는 사람은 그들중의 일개 소녀였다. 나이는 대략 십팔세 정도 될까말까 한데 그 용모가 매우 수려하고 일신에 자의를 산뜻하게 걸친 것이 아주 보기에 좋았다. 게다가, 그녀가 허리에 매달은 한자루의 장검은 그녀에게서 또다른 아름다움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것이었다. 헌데 그녀는 언젠가 백룡생이 본적이 있었던 사람이었다. 바로 그녀는 언젠가 장강을 건너는 나룻배에서 만났으며 이어 무창성의 한 주루에서 그에게 말을 걸기도 했던 소녀 악불이가 아닌가? 뿐만 아니라 더욱 놀라운 것은 그녀의 말상대가 되고 있으며, 그녀가 지금 끊임없이 뒤따르며 말을 걸고 있는 사람은 바로 다름아닌 현진자라는 사실이었다. 지금 그의 얼굴표정은 다소 수심에 차있었고 기분이 과히 좋지 않은 것 같았다. 그는 그렇다고 빠르게 내달리지는 않았으나 뒤에 따라오고 있는 악불이를 전혀 무시하고 단지 앞만 보고 천천히 신법을 펼치고 있었다. 악불이는 그를 향해 계속 중얼거리며 물어댔다. "노선배님, 어째서 그는 만날수가 없다는 거죠?" "..." "그에게 무슨 사고라도 났나요?" "..." "혹시...그가 지금 이곳에 없는 것은 아닌가요.?" "..." "노선배님, 노선배님! 노선배님 제발 부탁이니 말좀 해주세요! 대체 어떻게 해야만이 그를 만날수가 있죠? 제발좀 도와 주세요!" 악불이는 그야말로 끊임없이 애원하며 물어댔다. 그리고 보니 그녀의 얼굴은 다소 수척하니 여윈 듯 하기도 했다. 현진자는 한참동안 말없이 걸음을 옮기다가 더 이상 그녀의 말을 듣기가 귀찮은지 문득 고개를 돌리며 다소 짜증난 음성으로 소리쳤다. "만날 수 없다면 그럴줄이나 알아! 대체 그런 녀석을 뭣하러 만나려고 하는 거야?" 현진자는 내심 부아가 치미는 모양이었으나 상대의 부친의 신분을 생각해서 많이 참고도 참는 모양이었다. 기실, 백룡생이 알지 못했던 그 매화무늬의 장삼을 걸쳤던 악불이의 부친은 바로 무당파와 함께 무림에서 찬란한 위명을 날리고 있는 구파일방중의 하나인 화산파의 장문인이었다. 백룡생은 지금 강호의 상정에도 거의 정통한 편이었다. 무당파가 알고 있는 사항이라면 그도 알고있는 셈이 될테니까, 그리고 그날의 그 꼬마소년은 물론 화산파장문인 매화일검 악군산의 아들인 악운비 였다. 그런데 지금 느닷없이 이 악불이가 이곳에 나타날 줄이야. 대체 그녀는 어떻게 하여, 그리고 무엇 때문에 현진자를 따라 이곳에 나타난 것일까? 악불이는 현진자의 물음에 다소 안색을 붉히며 그의 뒤를 따라오느라 거칠어진 호흡을 가다듬으며 대답했다. "노선배님은 몰라요! 저는... 저는 그가 매우 보고 싶어졌단 말이예요. 그는 비록 바보멍청이지만 밤마다 꿈만 꾸면 나타나는걸 어떻해요!" 악불이의 이 말은 아주 야릇한 것이 아닐수가 없었다. 그것은 이미 그녀가 백룡생을 깊이 생각하다가 사모하게 되었다는 것을 거의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현진자는 한평생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않고 홀로 살아온 사람이기 때문에 일순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다만 그는 악불이의 말 가운데 밤마다 꿈에 나타난다는 말을 듣고는 일순 흠칫하여 생각했다. (뭐라고? 그,그는 불과 어제 아침에 죽었을 뿐인데 어떻게 그녀는 밤마다 나타났다고 말하는 것일까? 아무리 귀신이라도 일단은 죽어야...) 현진자는 이러한 생각을 하다가 문득 어딘가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알고는 생각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일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나도 실은 그를 찾고있는 중이다. 그런데 그를 찾을수가 없으니 날더러 어쩌라는 말이냐?" 현진자는 말을 하면서도 내심 다시 생각했다. (과연 그 녀석은 살아있는 것일까? 아냐 놈은 죽었어! 그 놓은 곳에서 무방비로 떨어졌다면... 아마 나라도 살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그렇다. 현진자는 이미 백룡생이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원래 나흘간에 걸쳐서 백룡생에게 협박을 가하기 위해 절벽을 한밤중에 매끈하게 깎아놓고 거기에다 다시 생각을 더하여 하나의 치밀한 함정까지 만들었다. 그리고 그는 필시 백룡생이 그 함정에 걸려 들었으며 그곳에 갇혀서 오도가도 못할것이라고 생각을 하고는 마음 푹 놓고 깊은 잠에 빠져 들었었다. 그런데 일단은 깊은 잠에 빠져 들은 것 같았는데 그는 그날 아침에 유난히 일찍 깨어나서 도무지 쉽게 잠을 잘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한동안 방안에서 서성거리다가 원래 대략 점심때 쯤에 느긋하게 그곳으로 가서 백룡생을 골려줄 생각이었지만 마음이 급해진 바람에 곧장 그곳에로 향하게 되었다. 헌데 확실히 그곳에 있을줄 알았던 백룡생이 막상 그곳에 가보니 않는 것이 아닌가? 현진자는 이러한 것을 보고 급히 함정으로 내려가서 살펴볼 결과 절벽위에 점점 피묻은 손가락자국이 깊이 들어가 있는 것을 보고는, 그리고 이어 그 아래의 바위가 떨어져 나갔으며 핏자국이 그곳에서 끊긴것을 보고는 순간 모든 상황을 예측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내심 크게 놀란 그는 백룡생의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 빠르게 심법을 펼쳐서 아래로 내려갔으나 그가 발견한 것은 오직 그가 가지고 내려갔던 가죽부대 뿐이었다. 그것은 폭포수 아래에 떨어져 있었다. 현진자는 이것을 보고 내심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 백룡생은 아마도 이곳의 바위에 떨어져서 박살이 났을 것이고 그 잔해는 이미 물에 씻겨서 사라졌을 것이라고. 현진자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밖에는 다른 경우가 있을수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그는 일순 심한 고통에 빠져 들었다. 원래 그가 근래에 획책한 것은 복수이지만 그보다도 앞서야 하는 것은 물론 노인의 은혜를 갚는 일이었다. 그런데 노인의 은혜를 갚기는 커녕 그는 노인의 부탁으로 데려온 백룡생을 오히려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이 아니겠는까? 그렇다면 그는 이제 더 이상 그들에게 은혜를 갚을수도 속죄할 수도 없는 입장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현진자가 비록 여태 살아오면서 양심에 거리끼는 행동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이번 일은 그가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터라 그는 매우 마음이 괴로왔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이 일련의 복수의 계획을 꾸몄던 것을 깊이 후회하기 시작했다. 허나 후회를 한들 그는 이미 때가 늦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그는 매우 우울한 심정으로 이제 백룡생의 자취가 담긴 이 옥검봉을 떠나려고 결심을 했다. 헌데 바로 그때, 실로 우연히 한사람이 그를 찾아왔다. 그는 바로 무당삼자중 둘째로서, 지금 장문인으로 있는 옥진자와 그 현진자를 제외한 한사람, 바로 청진자였다. 청진자는 현진자에게는 사형이 되는 사람으로, 그는 평소에는 무공연마에 늘 정진하며 제자들을 키우는데 주력해 왔으며 거의 밖으로 나돌아다니지 않았는데 갑자기 이렇게 그를 찾아 왔다는 것은 다소 기이한 일이었다. "아니 무슨 일이라도 생겼습니까?" 놀라서 묻는 현진자의 말에 청진자는 그저 갑자기 무림에 커다란 변괴 가 생겼으며, 장문인인 옥진자가 모두를 소집하고 있다는 사실만을 말해 주었다. 그리고는 빨리 무당파의 중심건물인 자소궁으로 가자고 했다. 현진자는 마침 마음이 괴로운 이곳에 더 이상 머물고 싶지 않았던 터라 짐을 정리하는 것은 나중에 와서 하기로 하고 우선은 청진자를 따라 나서기로 했다. 일단 그렇게 마음의 결정을 하자 현진자는 즉시 청진자를 따라가게 되었다. 그런데 그가 자소궁에 가서 옥진자를 만나보고 모두의 말을 들어본 결과 실로 의외의 대변괴가 벌어졌음을 알수가 있었다. ---소림사, 그곳은 바로 무림의 태산북두라고 불리우는 곳으로, 사실 무당파만 해도 그 웅대한 위명앞에서는 한수 양보하지 않을수가 없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바로 이삼일 전에 그 소림사가 돌연 거의 멸문지화를 당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청천벽력이라고 말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해 왔듯이 소림사는 중원무학의 본산지요, 무림정파의 기둥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소림사가 하루 아침에 거의 멸문지화를 당해 버렸다니, 이것은 믿을수가 있는 이야기일까? 현진자는 일시 자신의 두눈과 귀를 의심할 지경이었다. 만일 많은 사람들이 무당파에 오지 않았다면, 그리고 그 사람들이 바로 무림의 명숙들이요 그 속에는 화산파의 장문인인 매화일검 악군산등도 끼어있지 않았다면 그는 결코 그 말을 믿지 않으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소식을 가지고 무당파에 나타난 사람은 비단 화산파의 장문인 뿐만 아니라 역시 구파일방 중의 하나인 종남파의 종남검객 신연도 있었다. 현진자로선 자연 믿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원래 구파일방에서는 그 구심점을 소림사로 생각해 왔는데 일단 소림사가 그렇게 어이없이 참화를 당하고 나자 일견, 그 다음이라고 여겨졌던 무당파에 모이게 되었는데, 우선은 무당산에서 가까운 화산과 종남파의 인물들이 모이게 된 것이다. 그들은 자소궁에서 그 일을 가지고 밤새도록 토론을 하고 대책을 논의했다. 물론 거기에는 현진자도 빠질수가 없었다. 그는 백룡생이 마침 참화를 당한터라 더욱 정신이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정신을 모아서 토의에 참가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대체 무림의 태산북두라고까지 불리우던 대소림사를 그렇게 일거에 멸문지화로 만들어버린 그러한 흉수는 대체 어느 곳일까? 놀랍게도 그곳은 바로 당금의 무림칠패 가운데의 하나인 녹림맹이었다. -- 녹림맹, 원래 이곳은 일명 흑도무림이라고 불리우는 도적들의 집단으로,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하나로 통합된 집단이 아니라 천하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그것은 이 녹림흑도의 무리라는 속성이 서로를 용납하지 못하고 흉악악랄하여 하나로 모을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대략 오십년 전의 일이었을까? 느닷없이 무림에 자칭 녹림사신이라고 불이우는 작자가 나타났다. 그의 이름은 성이 복성인 독고씨요, 이름은 홍기였는데, 이 독고홍기는 무림에 나타나자마자 불과 얼마되지 않아서 정말로 녹림을 통합해 버렸던 것이다. 이에 무림인들은 하나같이 경악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그것은 녹림을 일거에 통합해 버린 이 독고홍기라는 작자의 두뇌가 비상함은 물론 그 무공이 필시 대단하리라는 것은 불문가지의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그야말로 무림에 일대거성이 나타났다는 신호였다. 아니나 다를까, 원래 무림에는 육패라고 불리는 초거대 집단이 존재하고 있었는데, 녹림맹은 얼마가지 않아서 곧 그 대열에 끼이게 되었고 무림육패는 무림칠패가 되었다. 그런데 바로 그 녹림맹이 소림사를 멸문지화에 거의 이르게 한 장본인일 줄이야. 이것은 비단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일뿐만 아니라 아무도 믿을 수가 없는 결과였다. 또한, 중원무림의 태두인 소림사가 그렇게 맥없이 무너졌다는 것은 상상외로 무림칠패의 힘이 막강하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대체 이 녹림맹은 무슨 목적으로 소림사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그것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수수께끼였다. 바로 그런점이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그날밤 자소궁에서의 토의는 사실상 공전으로 끝날 수 밖에 없었다. 어떤 사람은 구파일방, 아니 이제는 팔파이방의 공동체를 즉시 조직해서 녹림맹에 맞서서 싸우자는 의견을 내놓았지만 그것은 역시 시기상조였다. 이러한 대변괴는 그동안 평온하던 무림에서 느닷없이 너무도 갑자기 벌어진 일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일단은 서로간의 긴밀한 연락을 취하면서 사태를 관망해볼 필요가 있다고 결론을 내리기에 이르렀다. 아니. 역시 팔파일방의 공동체를 만들어야 하겠지만 그것은 아무래도 다른 문파의 태도를 봐야 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관망하면서 팔파일방의 수뇌간에 긴급회동의 자리를 마련하자는 것이 최종안으로 확정되었다. 그리하여, 무당파에 나타났던 사람들중에 더러는 자파로 돌아가고 더러는 다른 문파를 향해 연락을 취하기 위해 길을 떠났다. 물론 화산장문인인 악군산도 일단은 자신의 문파로 돌아갔다. 그런데, 원래는 악군산과 함께 무당파에 나타난 그의 딸 악불이는 그를 따라가지 않고 몰래 달아나서는 이렇게 느닷없이 현진자의 뒤를 따라온 것이었다. 현진자는 비단 어젯밤의 회의결과도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다시금 백룡생의 일을 생각하자 마음이 몹시 우울했다. 그리하여 그는 하루빨리 그 옥검봉을 떠날 생각을 하고 가고 있었다. 헌데 악불이가 이렇게 귀찮게 나오니 그로서는 다소 난감한 기분이 들었다. 현진자의 말에, 악불이는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더니 다소 울먹이는 어조로 물었다. "노선배님 그게 대체 무슨 말이죠? 그렇다면... 그는 ... 그는 이미..." 악불이는 현진자의 말투 가운데에 문가 심상치 않은 부분이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울먹이며 차마 말을 못하고 더듬었다. 현진자와 같은 무림고수가 일개 평범한 일반인을 찾을수가 없다는 것은 뭔가 불길한 예감이 느껴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설마하니 현진자가 그 범인이라고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단지 백룡생이 스스로 운수사납게 목숨을 잃게 되지 않았나 생각할 뿐이었다. 그러나, 현진자는 악불이의 말을 듣자 그녀가 자신의 일을 눈치챈 듯 하다고 느껴져서 도둑이 제발 저린 것처럼 다소 신경질 적으로 대꾸했다. "그렇다면 어쩔테냐? 그러니 너는 더 이상 나를 쫓아올 것 없다!" 현진자는 비록 정파의 인물이기는 하나 평생에 항상 옳은 일만 해온 것이 아니고, 게다가 그가 죽인 사람의 숫자는 가히 헤아릴 수 없을만큼 많았다고 할 수가 있었다. 비록 다소 마음에 걸리기는 하나 그가 이제 다시 한사람의 목숨을 취했다고 해서 남에게 죄긴 것처럼 대할 필요는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원래는 백룡생은 이 어린 계집애와 아무런 사이도 아니었지 않은가? 이 계집애는 저혼자 생각하고 난리를 치고 있는 것이다. 현진자는 내심 그런 모진 마음을 먹고 소리친 다음 냉랭하게 고개를 돌리면 신법을 펼쳤다. 이어, 그가 옥검봉의 아래에 이르러서 마악 신법을 바꾸어서 위로 올라가려고 했을 때였다. 문득 그의 뒤에서 다소 떨리는 듯한 울먹이는 어조의 음성이 들려왔다. "노선배님..." 현진자는 순간 부아가 와락 치밀어서 고개를 홱 돌리며 소리쳤다. "너는 아직도 가지 않았다는 말이냐?" 그를 쫓아와서 말을 건 사람은 물론 악불이였다. 현진자의 노기찬 일갈에 악불이는 일순 눈물을 뚝뚝 떨구며 대답했다. "저는 ... 저는 일단 그의 시신을 확인한 다음에 그를 묻어줘야 겠어요." "...?" 현진자는 그것을 보고 이제서야 이 엉뚱한 계집아이가 백룡생을 내심 매우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수가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단지 한번 보았을 뿐인데 시신까지 매장해 주려고 하겠는가? 악불이는 현진자의 시선이 와닿자, 일순 더욱 서럽게 흐느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저는, 저는 앞으로...흑흑, 그를 위해 수절하며 살겠어요. 왜냐하면, 그는 이미 제마음 속의 낭군이었으니까요, 흑흑..." 현진자는 이 말을 듣자 내심 크게 어이가 없었다. 그는 도대체 이 어린 계집이 이런 말을 할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그는 대체 자신이 이 계집에게 어떠한 말을 해주어야 할지, 아니면 그냥 모른척하고 봉우리위로 올라갈까하고 생각하다가 결국 후자를 선택하기로 결심했다. 그리하여 그는 먼저 악불이를 노려보며 네가 나를 쫓아올테면 쫓아와 보라는 식으로 눈을 부릅떠 보이고는 즉각 몸을 돌려서 신형을 위로 솟구치려고 했다. 헌데 그때였다. 갑자기 그의 귓전에 한줄기 낯익은 음성이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이제 오십니까, 도장어른?" 현진자는 처음에는 그저 무심코 이 음성을 듣다가 일순 다시 생각해 보고는 안색이 갑자기 크게 돌변했다. 그것은 다름아닌 이미 죽은줄로 알았던 백룡생의 음성이 아닌가? 그리하여 급히 그쪽으로 시선을 옮기던 현진자는 일순 작은 두눈을 있는데로 크게 부릅뜨며 전신을 한차례 부르르 떨고 말았다. ---백룡생, 분명히 그가 그의 앞쪽에 나타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실로 그로서는 믿기 어려운 사실이었다. 백룡생의 모습을 본 현진자는 일순 마치 귀신이라도 본듯한 괴이한 표정을 지었다. (...!) 그는 자신이 너무도 심하게 그를 생각한 나머지 지금 헛것을 보고 있는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이 드는 것이다. 하지만, 백룡생은 분명히 그의 앞에 서있었고 이것은 생시였다. 결코 꿈이 아니었다. 현진자는 일순간에 몇번이나 이를 확인해야 했다. 지금 백룡생은 평소와 같이 등에 커다란 가죽부대를 짊어지고 한쪽 손에는 역시 마른 나뭇가지를 들고 있었다. 아마 그는 그것마저 등에 묶으려는 중인 것 같았다. 그런 상태에서 그는 현진자를 향해 조용히 웃고 있는 것이 아닌가? 허나, 만일 현진자의 정신이 이토록 혼란스럽지 않았더라면 그는 처음에는 아무런 기척도 없다가 그가 이토록 갑자기 나타났던 것을 의심스럽게 생각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현진자의 이목은 실로 대단하여 백룡생같은 무공을 익히지 않은 사람은 기척을 결코 속일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현진자는 이때 자신의 감정을 진정시키느라 안간힘을 쓰다가 비로소 이 백룡생이 아직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신하고는 겨우 한숨을 불어내며 대꾸했다. "내가 이제 오건말건 네가 무슨 상관이냐?" 그는 이 말을 매우 차갑게 하려고 했으나 실제는 매우 말이 떨려 나와서 그렇게 되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서 차가운 어조로 이렇게 ㅡ꾸짖었다. "그러는 너는 대체 어디 갔다가 이제야 오는 것이냐?" 그 말에, 백룡생은 미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저는 이미 어제부터 와있었습니다. 저를 알아보지 못한 것은 어른께서 밖으로 나가서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죠." 현진자는 그 말에 다소 양심이 찔려서 안색이 은근히 붉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는 역시 싸늘하게 대꾸했다. "어쨌든 돌아왔으니 됐다. 어서 나를 따라오너라!" 이어, 그는 먼저 신법을 펼쳐서 암봉위로 올라가려고 했다. 그러다가 문득 그는 한가지 일이 생각나서 멈칫하여 신형을 멈추었다. 그것은 바로 그가 만들어 놓은 매끄러운 절벽면이 아직 그대로 있다는 사실이었다. 보아하니 백룡생이 저런 상태로 위로 올라가지는 못할것이 아니겠는가? 아니, 그는 이게 대체 어찌된 영문인지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가 미처 행동을 취하기 전에 벌써 악불이가 백룡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원래 악불이는 처음에 자신이 너무도 적나라한 말을 해놓고서 그를 직접 만나게 되자 일시 너무나 부끄러워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곧이어 백룡생의 웃는 모습을 보았을 때 그립고 반가운 감정을 참을 길이 없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마침내 소리치며 그에게 달려간 것이다. "백...백랑! 당신은 과연 살아 있었군요? 몸은 괜찮은가요?" 악불이는 이미 백룡생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백룡생은 현진자를 바라보다가 그녀의 얼굴을 보자 일순 안색이 은근하게 붉어졌다. 그는 아직 순진한 총각이어서 비록 수양이 깊다고는 하나 이렇게 아리따운 여인을 만나게 되면 자연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수가 없었다. 그런 그를 향해 악불이는 마치 얼싸안을 것처럼 달려오다가 일시 멈칫하고는 안색이 홍당무처럼 붉어져서는 그 자리에 멈춰섰다. 그리고는 매우 떨리는 음성으로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당신은... 당신은 혹시 내가 방금전에 한 말을 들은 것이 아닌가요?" 이 악불이의 태도는 전에 백룡생과 처음 만났을 때 보다는 더욱 적극적이고 더욱 친숙해 보였다. 왜냐하면 이상하게도 악불이는 그날 이후에 백룡생과 처음 만났을 때보다는 더욱 적극적이고 더욱 친숙해 보였다. 왜냐하면, 이상하게도 악불이는 그날 이후에 백룡생만 생각하면 가슴이 떨려오고 밤마다 꿈속에서 그를 만나곤 해서 이미 수십번 만난 사이나 다름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방금전에도 그런 말을 했던 것이며, 기실 그녀가 그를 사모하는 마음은 가히 골수에 맺히고 절절하게 우러나서 보통의 건전한 남녀사이를 넘어섰다고 볼수가 있었다. 허나, 그녀는 그저 자신의 감정만을 생각했지 백룡생의 마음을 미처 생각해 보지 않았던 터라, 이제 막상 이렇게 백룡생을 직접 대하고 나자 갑자기 두려운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녀는 자신이 그를 백랑이라고 노골적으로 애칭을 부른 것마저 후회하게 되었고 그가 자신을 싫어할까봐 가슴이 두근두근 마구 들뜨게 되었다. 자연 그녀의 감정이 이러한데 얼굴색이 빨개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것은 보자 백룡생은 문득 입가에 담담한 미소를 떠올리며 대답했다. "나는 지금 막 나무를 해가지고 내려왔기 때문에 미처 그말을 듣지 못했소. 낭자는 혹시 몰래 나를 놀린 것이 아니오?" 그 말은 부드러우면서도 담담하여 상대에게 부담을 주지 않았다. 내심 크게 긴장을 하고 있던 악불이는 반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반은 어느정도 실망감을 느끼며 일순 피식 웃고 말았다. 허나 그녀는 새로 용기가 되살아난 것은 사실이었다. 그녀는 웃으며 새침하게 대꾸했다. "그래요! 나는 방금전에 당신을 놀렸어요. 그렇다고 당신은 감히 나를 때릴수가 있겠나요?" 그 말하는 표정은 너무도 새침하고 귀여워 보여서 백룡생은 그만 가볍게 웃고 말았다. 사실 그가 악불이의 말을 듣지 못했을리는 없었다. 다만 그는 그녀가 무안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렇게 둘러댄 것이다. 헌데 막상 그녀가 이렇게 나오자 그는 금방 마음이 평해졌다. (역시 강호의 여자는 마음 씀씀이가 화끈하고 대범하구나!) 백룡생은 이미 책에서 그러한 것에 관해 읽은 적이 있었던 터라 이를보고 새삼 악불이가 강호의 여인이라는 점을 인식했다. 따라서 그는 문득 장난기가 발동하여 짐짓 포권하며 대꾸했다. "그럴 리가 있겠소? 낭자. 낭자... 그건... 불가한 일이외다!" 백룡생은 이 말을 할 때 그만 득도한 고승같은 태도를 취했기 때문에 악불이는 이것을 보고 일순 우스워서 까르륵 교소를 터뜨렸다. 헌데 백룡생은 그녀의 그러한 짤랑거리는 웃음소리를 듣자 일순 마음이 크게 격탕되는 것을 느꼈다. 그리하여 그는 급히 경각하여 생각했다. (여마라고 하는 것은 수행에 대단한 장애가 된다더니 정말로 그렇군! 나는 ... 나는 정말로 조심하지 않으면 안되겠다!) 그가 내심 중얼거린 여마라는 것은 여자로 인해 마음이 혼란되는 마장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백룡생은 일단 그렇게 생각한 다음에 얼른 강하게 마음을 잡아서 다시 마음의 평정을 유지할 수가 있었다. 그때 악불이가 까르르 교소를 터뜨리고 나더니 다시 말했다. "호호 당신은 정말 바보예요. 하지만 나는 당신을 좋아해요. 당신은 설마하니... 설마하니 나를 내쫓지는 않겠지요." 그 말은 이제 백룡생의 아내가 되려는데 내쫓지 않겠냐고 묻는 말이었다. 악불이는 비록 조금전에 크게 웃어서 긴장이 해소되었다고는 하나 그말을 물을 때는 어쩔수 없이 다시 말을 다소 더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백룡생은 악불이가 그렇게 어렵게 말을 하자 깊이 생각해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그럴 리가 있겠소? 어서 올라갑시다. 소생이 부족하지만 한끼의 식사를 대접해 올리리다." 이어 그는 고개를 돌려 아직 위로 올라가지 않고 있는 현진자를 바라보았다. 이때 현진자는 그들의 말하는 광경을 보면서 마음이 다소 냉정해져서 다소 수상쩍은 듯한 시선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에, 백룡생은 원래 그에게 자신의 무예를 드러내고 싶지가 않았으나 이렇게 된 이상은 어쩔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백룡생은 원래 그런 일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쉽게 마음을 바꿀수가 있는 것이다. 백룡생은 그렇게 마음을 먹고 현진자를 바라보며 물었다. "먼저 올라가지 않겠습니다.?" 그 말에 현진자는 고개를 내저으며 대꾸했다. "아니다. 도중에 위험한 곳도 있고 하니, 나는 너와 함께 올라가야겠다. 더구나... 너는 혼자가 아니지 않느냐?" 현진자는 옆의 악불이를 가리키며 은근히 핑계를 댔다. 그러나, 기실 그의 마음은 싸늘하고 표독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는 이때 마음이 냉정해져서 전의 일을 되돌려 생가해보게 되었고, 따 라서 대체 백룡생이 어떻게 해서 그 절벽에서 떨어져서도 살아나게 되었는지 그게 궁금해졌다. 백룡생의 손가락을 보니 다친 흔적이 전혀 없었다. 그렇다면 그 함정의 바위에 찍혀있던 손자국은 다른 사람의 것이었단 말인가? 게다가 현진자는 대체 백룡생이 어떻게 해서 밧줄도 없는 그 십여장의 매끄러운 부분을 내려왔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서 한 번 직접보려는 것이다. 제 16 장 사랑의 맹세 백룡생은 현진자의 말에 다소 웃더니 손에 들고 있던 나뭇가지를 등뒤에 매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먼저 올라가지요." 이어, 백룡생은 두손이 자유로와지자 악불이를 향해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손으로 옥검봉의 꼭대기를 가리키며 물었다. "혼자 올라갈 수가 있겠습니까?" 악불이는 그 말에 다소 아미를 찌푸렸다. "굳이 저위로 올라가야 하나요?" 백룡생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짐을 갔다놔야 하고 또한 시중을 들어야 하기 때문에 올라가야 합니다. 만일 낭자께서 올라가기 싫으시다면 그러지 않아도 됩니다." 그 말에, 악불이는 급히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나는 함께 올라가겠어요. 다만... 다만, 나는 혼자서는 올라갈 수 없을 것 같으니 그게 제일 걱정이군요." 악불이는 말과 함께 다소 신기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백룡생이 무동도 모르면서 저렇게 커다란 짐을 짊어지고 어떻게 위로 올라갈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한 것이다. 허나 사실 그녀는 가죽 부대안에 든 것이 무슨 솜뭉치와 같이 가벼운 것인줄 알았지 그것이 설마하니 무겁기가 한이 없는 물일줄은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기실, 그녀는 비록 내공을 배웠다고는 하나 아직 상승의 경지에 이르지 못해서 오래도록 위로 신법을 펼칠수가 없고, 게다가 여자이기 때문에 공포감을 느끼기 마련이었다. 사실 이 옥검봉은 아주 높고 험한 곳이어서 무림 일류의 고수들도 올라가기가 어려우며, 다만 백룡생이 전에 외공만을 익히고 올라갈수 있었던 것은 잠재된 거대한 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즉, 아주 특별한 경우였다는 것이다. 악불이는 이미 자신이 그 고봉위로 올라갈수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굳이 백룡생과 함께 위로 올라가겠다고 한 것은 기왕에 그의 여자가 되기로 작정했으니 어쨌든 끝까지 따라가겠다는 생각에서였다. 백룡생은 이미 올라가야 한다는 말을 했기 ㄸ문이었다. 이에, 이미 그런 대답을 예측하고 있었던 백룡생은 문득 송에서 단단한 끈하나를 그녀에게 내밀었다. 그리고는 그 끈의 한쪽 끝을 자신의 손목에 감으며 말했다. "이 줄을 손목에 묶고 잡으며 나를 따라 올라오면 됩니다." 그 끈은 바로 그가 가죽부대와 나무 등을 묶었던 끈들중의 하나였다. 악불이는 그의 말을 듣고 내심 그가 어떻게 할지를 몰라서 크게 의아해 했다. 그러나, 그녀는 일단 그의 여자가 되기로 결심한 이상은 그에게 순종해야 한다고 생각하고는 두말없이 그 끈의 한쪽 끝을 자신의 손목에 묶고 다른 손으로 그 끈을 잡았다. 그러자, "자, 그럼 올라가겠습니다." 백룡생은 말과 함께 암벽의 바로 앞까지 이르러서 거침없이 위로 오르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이에, 그에게 한쪽 손목을 묶인 악불이는 무심경에 그 뒤를 따라 올라가려다가 일순 경악하여 입을 크게 벌렸다. 백룡생의 두 발바닥이 마치 암벽에 들러 붙은 듯이 아주 자유롭고도 거침없이 위로 올라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백룡생이 아까부터 해오던 방법이었는데 자연 이것을 보고 악불이가 놀라지 않을수가 없었다. 백룡생은 평평한 암벽을 마치 그냥 평지처럼 걸어서 올라가고 있건만 그녀를 당기는 힘은 실로 강하기 그지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악불이는 경악을 하는 한편 그 힘에 의지하여 두발의 놀림을 보법의 원리에 입각하여 아주 부드럽게 움직였다. 그러자, 그녀 역시 아주 자연스럽게 위로 올라가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이것은 악불이 그녀를 더욱 놀랍고 신기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녀의 경악이 제아무리 놀랍고 괴이하더라도 그것은 이 한사람보다는 못할 것이다. -- 현진자, 그는 지금 일생 최대의 경악을 하고 있었다. 아예 그는 너무나도 크게 놀란 나머지 거의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고 있었다. 다만 그의 입술만이 가늘게 떨리며 이렇게 내심 중얼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저놈이 이미 무공을 ... 저놈이 이미 무공을...!) 현진자와 같은 무림고수가 잘못 알아볼 리는 없었다. 백룡생은 지금 분명히 내가의 공부에서 비롯된 무공을 펼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도 현진자마저도 거의 믿어지지 않는 놀라운 경지였다. 현진자는 비록 자신도 저렇나 움직임을 보일수가 있겠지만 등에 커다란 짐을 짊어지고 또한 한명의 여자를 뒤에 딸리고 정상까지 올라가라면 자신이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지금 백룡생은 이 일을 아주 태연하게 해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백룡생이 지금 하고 있는 동작은 매우 신기해 보이기만 할 뿐 평범해 보여서 악불이와 같은 안목으로는 잘 알수가 없겠지만 현진자가 보기에는 보기보다 놀랍고 어려운 것이었다. 현진자는 불과 얼마전에 백룡생에 대해서 많은 경악을 해온바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때에는 백룡생의 모든 능력이 다만 하찮은 것이라고 생각하여 일부러 멸시하고 무시를 해왔었다. 그러나, 그는 이와 같은 무공을 보게되자 이제 더 이상은 무시할 수가 없었다. 그는 경악을 어쩔 수 없이 고스란히 받아 들이고 있었다. 그 증거로, 그의 내심은 다시 이렇게 중얼거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믿을 수 없어! 믿을 수 없다...! 정말 믿을 수가...!) 그도 그럴것이, 정말로 어떠한 사람이라도 그러한 상황에 처하면 믿을수가 있겠는가? 현진자의 경악은 백룡생과 악불이가 거의 백여장의 높이까지 올라갈때 까지 계속되었다. 넋을 잃은 그의 표정은 마치 혼이 빠져 나간 듯 보였다. * * * 악불이는 처음에는 매우 당혹스럽고 경악하여 미처 입을 열 시간이 없었다. 게다가 그녀는 그를 따라 발길을 옮기는데 신경을 써야했기 때문에 정작 놀랍고 의문이 많은면서도 입을 열지 못했다. 그러나, 일단 그녀는 자신의 발걸음이 원활해지고 백룡생이 매우 든든하다고 여겨서 두려움이 없어지자 마침내 하고 싶었던 말을 꺼내기에 이르렀다. "다, 당신은 아주 놀라운 무예를 지니고 있군요? 언제 무예를 배웠나요?" 백룡생은 그녀의 질문에 고개를 돌리며 대답했다. "불과 얼마되지 않소." 그러면서, 그의 발길은 태연히 앞쪽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이것은 악불이가 자신의 상식을 동원하더라도 거의 믿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눈이 동그래져서 그러한 광경을 다시 주시하다가 말했다. "대체, 이러한 수법은 뭐라는 거지요?" 백룡생은 앞으로 시선을 옮겼다가 다시 그녀를 향해 돌리며 대답했다. "아직 이름을 짓지 않았으니 뭐라고 말할수도 없소." 그 말에, 악불이는 다소 넋나간 표정을 했다. 그녀는 비록 부공이 얕다고는 해도 안목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지금 백룡생이 이렇게 위로 올라가는 수법에 대해서는 몰라도 상관이 없겠으나 내심 깊이 생각하는 바가 있었다. (이... 바보는 원래 무공이 전혀 없는 것 같았는데 믿을 수 없게도 벌써 이러한 놀라운 무얘를 성취했구나! 나는 본래 그가 바보이고 멍청하다고 생각하여 그를 좋아하였는데, 그가 사실은 이렇게 훌륭해졌으니... 혹시 그는 나를 버리지는 않을까?) 악불이는 그런 생각이 떠오르자 문득 두눈에 눈물이 핑 돌면서 울음이 막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동시에, 그녀는 백룡생이 이렇게 변한 것이 하나도 반갑지 않고 오히려 무공을 몰랐던 때가 좋았던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맞아! 우리 아버지는 이 바보가 정말 바보인 줄로 알고 나를 그에게 시집 보내려고 하지 않았을거야. 하지만 만일 그가 바보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되면 그에게 시집보내려고 하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이 왔다갔다 하자, 그녀는 일시 갈피를 잡을수가 없어서 마음이 크게 어지러워진 나머지 금나 발길을 옮기는 것을 잊고 말았다. 그러자 순간, 그녀의 몸은 암벽에서 떨어져서 다만 손목이 끝에 매달린채 허공에 둥실 떠버리는 것이 아닌가? 악불이는 일순 손목에 느껴지는 강한 통증도 문제였지만 갑자기 아래쪽을 내려다보다가 심한 공포감이 들어서 경악하여 크게 소리쳤다. "악! 백랑! 백랑...! " 헌데 그때였다. 어찌된 영문인지 그녀는 자신의 몸이 부드러운 기운에 의해 들리는 것을 느끼는 순간 어느새 그녀는 백룡생의 품속에 안겨있는 것이 아닌가? 이때 백룡생의 안색은 붉게 변화되어 있었다. 그리고는, 다소 떨리는 어조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조, 조심해야 하오, 괜찮소?" 백룡생은 이렇게 여자를 품에 않은 것은 실로 처음있는 일이었는지라 일순 가슴이 확확 달아오르고 정신이 어찔어찔한 상태였다. 그는 지금 자신이 암벽의 중간에 겨우 한발을 대고 서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다. 만일 그의 무예가 그토록 훌륭하자 않았었다면 그는 이미 아래로 떨어져 내리고도 남음이 있었을 것이다. 악불이는 얼굴색이 홍당무 처럼 변하고 가슴이 일시에 심하게 뛰었지만 백룡생의 이러한 행동을 보자 문득 웃음이 터져 나와서 싸늘하게 물었다. "당신은 왜 나를 이렇게 안고 있죠? 어서 내려놓지 못해요?" 백룡생은 그녀의 갑자기 변한 태도를 보자 더욱 정신이 혼몽해져서 대답했다. "아, 알겠소, 하지만... 당신은 그렇게 되면 아래로 떨어지게 될텐데 그래도 괜찮겠소?" 악불이는 이 말을 듣자 문득 다시 웃음이 나왔다. 이 백룡생은 비록 무공을 빠르게 익히기는 했어도 역시 바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면서도 어느 한편으로는 섭섭한 마음도 들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얼굴색을 붉히며 차갑게 대꾸했다. "물론 괜찮아요. 나는 죽고 싶으니까요." 백룡생은 일시 그말에 더욱 의아해졌다. 그리하여 그는 얼른 물었다. "왜, 왜 죽고 싶다는 것이오? 그 생각을 돌리면 안되겠소?" 악불이는 그 말에 실소가 터져 나왔다. 세상에 죽고 싶다는 사람은 아마 극히 드물 것이다. 악불이는 지금 결코 그럴 리가 없으며, 그녀는 단지 장난으로 그렇게 말했을 뿐인데 백룡생은 그것을 진짜인줄 아고 저렇게 쩔쩔매고 있는 것이다. 악불이는 문득 이것이 재미있다고 생각되어서 아미를 짐짓 가볍게 찌푸리며 고개를 내저었다. "안되겠는데요? 왜 내가 생각을 돌려야 한다는 거죠?" 백룡생은 그녀가 자꾸 이상한 생각만을 하자 그만 마음이 다급해져서 얼른 생각해 보고는 대답했다. "육신은 비록 집착할만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함부로 버려서는 안되는 것이오. 이것은 인연의 산물이기 때문에 인연의 흐름에 따라야지 함부로 목숨을 끊는다는 것은... 목숨을 끊는다는 것은..." 백룡생은 문득 자신의 말이 이런 여자에게 쉽게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 너무나도 심오한 애기라는 것을 감지하자 말을 끊고 다소 더듬었다. 그러다가 그는 말을 겨우 다시 이었다. "어쨌든 함부로 목숨을 끊는 다는 것은 좋지 않으니 생각을 돌리는 것이 어떻겠소?" 백룡생은 비록 생각하는 깊은 점이 있어도 말주변이 없었기 때문에 교묘한 말재간에 걸리면 곤욕을 당하기가 일쑤였다. 악불이는 그의 말을 듣고 새침하게 흘겨보며 대꾸했다. "흥, 무슨 인연이구 집착이구 그래요? 나는 단지 장난으로 한 번 그래본 것 뿐이었는데 세상에 스스로 목숨을 끊을 사람이 어디에 있겠어요?" 악불이는 백룡생이 너무나도 바보 같아서 우습다가도 이제 그가 곧 자신의 남편이 될 사람이라고 생각하고는 내심 충고해줄 마음이 생긴 것이다. 헌데 백룡생은 이것을 보고 내심 생각했다. (알고보니 이낭자는 장난을 한것이지 진짜 죽을 생각은 아니었구나!) 그리하여, 그는 내심 안심이 되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옳소, 낭자의 말은 매우 옳소." 악불이는 자신이 충고를 했는데도 그가 반성하고 고치려는 기미가 없이 그저 희희낙락하는 모습을 보이자 문득 다시 눈빛이 차가와져서 말했다. "옳긴 뭐가 옳아요? 허나 만일 당신이 나를 책임지지 않고 다른 여자를 건드린다면, 그때는 나는 죽고 말 거예요. 당신은 지금 맹세를 할 수가 있나요?" 백룡생은 그말에 일시 눈을 휘둥그래뜨며 되물었다. "책임지다니, 그게 무슨 말이오?" 이때, 백룡생은 아직도 한발을 깎아지른 암벽에 딛은채 그녀를 두팔로 받쳐들고 있었다. 그리하여 자연 악불이는 백룡생의 얼굴을 가까이에서 바라보게 되었는데 그녀는 그의 피부색이 의외로 맑고 투명한 빛이 흐르고 있는 것을 보고는 문득 생각했다. (이...바보는 알고보니 매우 잘생겼구나!) 그리하여 그녀는 더욱 백룡생을 자신의 남편으로 삼아야 겠다는 생각이 강렬해졌다. 헌데, 백룡생이 느닷없이 그렇게 되묻자 눈살을 찌푸리며 대꾸했다. "아직 그것도 몰랐나요? 남자가 여자를 책임진다면 그건 시집가고 장가를 가는 것 밖에 또 뭐가 있겠어요?" 백룡생은 그 말에 일시 어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내심 생각했다. (그녀는 그야말로 일편단심으로 나에게 시집을 오려고 하는구나! 이것은 전날 오매촌의 모든 여자들이 나에게 눈살을 찌푸리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그리고 그녀들중 아무도 이 악낭자의 아름다움을 따라갈수는 없다. 그렇다면 그녀가 이제 나에게 시집을 오려고 하는 것은 이것이야말로 행운이 아닌가?) 허나 백룡생은 내심 고개를 저으며 이어 생각했다. (아냐 그렇지 않다. 책에 적혀 있는 바에 의하면 여자는 바로 깊은 마장이며 그 얼굴이 교묘하고 아름다울수록 더욱더 그 마장은 커진다고 했다. 그러나 역시 그렇다고 해서 일부러 그 마장을 피하기만 한다는 것은 잘못이라고 했다. 그녀가 만일 나와 인연이 있다면 나는 항상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면서 그녀를 책임지면 될 것이다. 허나...) 백룡생은 문득 고개를 내저었다. (그녀가 지금 나에게 이러는 것은 아마도 일시적인 감정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는 옛날 오매촌의 사람들도 말했듯이 아주 멍청한 편인데 그녀는 아마도 그일 때문에 다시 내게서 멀어지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때는 나는 그녀를 그냥 보내면 될 것이 아니겠는가?) 백룡생은 그렇게 생각하자 문득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리하여 그는 만면에 웃음을 띄며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내가 책임지겠소!" 악불이는 이 백룡생이 잠시 깊은 생각을 하는 듯 하면서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갑자기 표정이 밝아져서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일시 뭔가 미심쩍은 생각이 들었다. (이 봐보는 대체 뭘 그렇게 생각한 것일까?) 그리하여 그녀는 그의 마음을 확인하기 위해서 물었다. "그 말은 정말인가요?" 백룡생은 웃으며 고개를 다시 끄덕였다. "그렇소." 악불이는 그래도 믿을 수가 없는지 다시 물었다. "그럼 맹세할 수가 있나요?" 백룡생은 주저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오." 그러자 악불이는 눈빛을 반짝 빗내더니 말했다. "자 그럼 나를 따라하세요! 나는 앞으로 이 악불이를 맞아 한평생을 부부로서 해로하며 아끼고 사랑할 것이고, 결코 다른 여자를 건드리거나 아내를 배신하는 일을 하지 않겠다. 만약 이 일을 어긴다면 나는 죽어서 끊는 기름속에 튀겨질 것이고. 영원히 십팔층 지옥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이다!" 악불이의 맹세의 내용은 그야말로 악독하기 이를데가 없는것이었다. 사람이란 인연에 따라서 사는 것이기 때문에 누가 차후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감히 장담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맹세에 따르면 백룡생은 이제 그녀를 맞아 한평생 해로하지 않거나 아끼고 사랑하지 아니하고 그렇지 않으면 설혹 다른 여자를 건드리기만 해도 죽어서 그와같은 악독한 일을 당하게 될 것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이 백룡생이란 인간의 사고방식은 다소 특이했다. 그는 악불이의 요구를 듣자 내심 이렇게 생각했다. (내가 그녀를 사랑하고 부부로써 맺어지는 것은 인연에 의하는 것이지 내가 그렇게 하고자 한다고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내가 만 일 이 맹세를 해서 그것이 깨어지게 되고 지옥에 떨어진다고 해도 그게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백룡생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심 다시 생각했다. (책자에 의하면 내가 지옥에 가지 않으면 누구를 지옥에 보내랴, 그리고 이런말도 있다. 지옥도 역시 마음에 있는 것이니, 만일 지옥속에서 있더라도 마음만 평안하면 그곳이 바로 극락이라고 그예로 지옥에는 함께 그러한 고통을 받으면서 중생을 구제하는 성인도 있다지 않는가?) 백룡생은 이러한 생각을 하게되자 일순 자신이 죽어서 지옥에 가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게 여겨졌고 즉시 악불이의 말을 따라하게 되었다. 이때, 악불이는 내심 자신이 다소 심한 맹세를 시켰던데에 대해 어느정도 불안해 하면서 이는 백룡생의 마음을 잡아두기 위해 어쩔수 없는 일이라고 위안을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내심 백룡생이 맹세를 하지 않을 까봐 전전긍긍하고 있었는데, 그는 잠시 깊은 생각에 잠긴 듯 하더니 곧 태연히 맹세를 따라하는 것이 아닌가? "이 백룡생은 앞으로 악불이를 맞아 한평생을 부부로서 해로할 것이며 아끼고 사랑하고, 결코 다른 여자를 건들이거나 아내를 배신하지 않겠다. 만일 이 일을 어긴다면 죽어서 끊는 기름속에 튀겨질 것이요 영원히 십팔층 지옥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이다!" 이에, 악불이는 순간 너무도 기쁜 마음이 들어서 백룡생의 목을 두팔로 껴안고 그의 입술에 입맞춤을 하고 말았다. 그리고는 안색이 새빨개진채 말하는 것이었다. "백랑, 당신은 이제 저를 불이라고 부르세요! 저는...이미 당신의 것이나 마찬가지예요." 이 순간, 백룡생은 기실 악불이보다도 더욱 정신이 없었다. 그는 설마하니 그녀가 갑자기 자신에게 입맞춤을 해올줄은 몰랐었다. 그리하여, 악불이가 입맞춤을 하고 얼굴을 그의 품속에 파묻은 채 뜨거워진 몸으로 쌕쌕거리는 숨결을 토하자 그는 일시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크게 몽롱한 것이 마치 자신의 몸이 아래로 급격히 추락하는 듯한 착각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것은 다만 착각일 뿐 실제상황은 아니었다. 백룡생은 지금 암벽에 한쪽 발을 대고 있었지만, 설혹 그가 허공에 그냥 떠있는다고 해도 그의 의지가 아니라면 그의 몸이 아래로 내려갈리는 없었다. 따라서, 백룡생은 급히 자신의 마음을 평정시키려고 애쓰며 소리쳤다. "그렇게... 그렇게 하지 마시오! 나는... 나는 견딜수가 없으니, 우리는 빨리 위로 올라갑시다!" 그 말을 들은 악불이는 그가 이미 자신에게 욕정을 품고 있으며 그러한 욕정을 참기가 어렵다고 말하는 것으로 생각하고는 붉어진 얼굴로 새침하게 그를 흘겼다. "흥! 당신은 마치 늑대 같군요? 하지만 나는 상관없어요." 기실, 백룡생이 말한 뜻은 그녀가 생각한 욕정과는 전혀 거리가 먼 것으로 다만 그녀가 그의 입술에 입맞춤을 함으로써 마음을 평정시키기가 어려워졌다는 말이었다. 백룡생은 그녀가 상광없다고 말하며 사르르 두 눈을 감자, 그것이 위로 올라가도 좋다는 뜻이라고 생각하고는 즉시 그녀를 두 팔에 안은채 단지 두발만을 사용하여 위로 빠르게 오르기 시작했다. 악불이는 그가 다시 자신에게 입맞춤을 할 줄 알고 눈을 감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얼굴위에 싸늘한 기운이 좌우로 스쳐가는 것이 아닌가? 급히 눈을 떠보니, 백룡생은 시선을 윗쪽에 두고 있었고 그는 지금 자신을 안은채 단지 두발만을 사용하여 빠르게 위로 올라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악불이는 이것을 보고 내심 생각했다. (이 바보... 아니 백랑은 무공이 생각보다는 더욱 고강하구나!) 악불이는 이미 자신이 그의 아내가 된 셈이나 마찬가지이니 더 이상 그를 바보라고 부를수가 없다고 여겨져서 백랑이라고 다시 중얼거린 것이다. 이어, 그녀는 백룡생이 자신을 위해 억지로 자제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는 내심 기분이 매우 좋았다. 따라서 그녀는 사르르 두 눈을 감은채 점차로 다가오는 높은 하늘의 흰구름을 응시하며 마냥 즐거운 행복감에 젖었다. 사실 그녀는 화산파라는 일개 거대문파의 장문인의 딸이었고 많은 젊은 이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지만 그녀의 아버지 악군산은 다소 제자들에게 엄한 편이었다. 그리하여 화산파의 수많은 제자들은 그녀를 선망하면서도 다만 멀찍이서 몰래 바라보기만 할 뿐 감히 나서서 그녀에게 감정을 호소하는 사람은 없었다. 게다가, 악군산은 두 번째에 겨우 아들을 얻었기 때문에 아들인 악운비를 편애하여 은근히 악불이를 외로움의 그늘에 살게끔 만들었다. 단지, 악불이가 성격이 본래 어둡지 않고 활발했기 때문에 평소에는 감정을 거의 내색하지 않고 쾌활하게 지내왔으나 일단 전날 백룡생이라는 청년을 본 순간 갑자기 그녀의 심경은 커다란 변화를 일으켰다. 그때는 그저 다만 백룡생이 매우 호감이 간다고 여겼을 뿐이었는데 일단 화산파로 돌아와서 외로운 생활에 젖다보니 문득 문득 백룡생의 얼굴을 자주 떠올리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마치 환상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듯 그의 모습은 그녀의 꿈속에서까지 나타나 아예 그녀는 자신이 그를 열열하게 사모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녀가 백룡생 만나자마자 그렇게 적극적인 태도를 보인 것은 결코 무리가 아니었다. 그녀는 지금 이렇게 백룡생의 품속에 있자 그가 이제는 확실한 자기의 남자라는 생각이 들어서 가슴은 터질 듯이 충만감으로 부풀었고 마음은 행복감으로 넘쳐 흘렀다. 그녀는 이 행복한 순간이 끝나지 않고 영원히 계속 되었으면 하고 바랬다. 그러나, 끝나지 않는 잔치가 없는 것처럼 그녀의 그러한 기대는 헛된것이었다. 전신에 문득 가벼운 기척이 느껴지더니 백룡생이 돌연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하는 것이었다. "이제 다 올라왔소." 그 말에, 악불이는 그를 새침하게 흘겨 보고는 그의 품속에 바닥으로 내려섰다. 과연 그녀가 지금 서 있는 곳은 백여장 정도의 옥검봉의 정상이었다. 악불이는 중앙에 있는 모옥과 그 부근을 둘러 보다가 손목에 감겨있는 끈을 풀어내며 문득 백룡생을 향해 물었다. "그간 당신은 이곳에서 살아왔단 말인가요?" 백룡생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그 말에, 악불이는 문득 눈빛을 반짝거리더니 물었다. "당신은 왜 제 이름을 부르지 않죠?" 백룡생은 그녀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서 눈을 휘둥그래떴다. "그게 무슨 말이오?" 악불이는 그에게 다소 못마땅한 표정으로 설명했다. "왜 말 끝에 제 이름을 부르지 않느냐고요. 당신은 아까 대답할 때에 그냥 그렇소, 하지 말고 그렇소 불이! 이렇게 말했어야 했다구요." 백룡생은 그제서야 그녀의 말뜻을 알아 차렸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이 불러주지 않은 것을 나무래는 것이었다. 백룡생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불이!" 그러자, 악불이는 다소 만족하는 표정이었다. 백룡생은 이것을 보고 등에 짊어지고 있는 가죽 부대를 내려서는 나무와 함께 그것을 부엌으로 가져가기 시작했다. 이때, 악불이는 처음으로 그 가죽부대에 관심을 가지고 그를 따라오며 물었다. "백랑, 그 안에 든 것은 뭐죠?" 그녀는 이번에는 일부러 백랑이라는 애칭을 사용했다. 그러면서 스스로 부끄러운지 안면을 다소 붉혔다. 백룡생은 그러한 그녀의 마음을 모르고는 무심결에 대답했다. "이것은 물이오." 그말에, 악불이는 즉시 놀라 되물었다. "그게 전부 물이라고요?" 제 17 장 놀라운 무예 악불이는 내심 크게 놀라지 않을수가 없었다. 백룡생이 지금 안으로 들고가고 있는 가죽부대의 안에 들어있는 것이 모두 물이라면 그 무게는 적어도 사오백근은 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백룡생은 원래 그러한 엄청난 무게를 가진 부대를 등에 맨 상태로 다시 그녀를 안고 올라왔단 말인가? 이것은 정말로 그녀로서도 믿을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직접 부엌의 안가지 따라 들어가서 바라보니, 정말로 그 가죽부대안에 들어있던 것은 모두 맑은 물이 아닌가? 콸콸... 백룡생이 가죽부대안의 물을 보다 커다란 통에 담아 넣는 것을 보고는 악불이는 일순 마치 넋을 잃은듯 멍해졌다. 그러다가 다시 생각했다. (백랑의 무예는 정말로 높구나, 그러나 그는 머리가 멍청하여 바보이니, 내가 만약 그의 옆에서 충고를 해주면 함께 강호를 주유한다면... 주유한다면 정말 멋있을 거야!) 악불이는 일순 그러한 장면을 연상하고는 너무나도 기쁨에 부풀어서 얼굴색이 짙게 상기 되었다. 그녀는 원래 강호의 여인으로서 사랑하는 사람과 강호를 주유하게 될 판인데 어찌 마음이 설레고 기쁘지 않겠는가? 아마도 그러한 것은 거의 모든 강호 여인들의 꿈이 될 것이다. 그리하여 강호의 모든 악을 제거하고 천하인들로부터 대협, 여협의 호칭을 듣게 된다면 이는 정말로 일생의 보람이 아니겠는가? 악불이는 문득 백룡생이 그런 것을 좋아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하여 그녀는 내심 중얼거렸다. (나는, 그렇다면 반드시 그를 졸라서 그렇게 하고야 말거야!) 약불이는 만약 백룡생이 강호에서 이름을 날리게 되면 그녀의 아버지인 악군산도 혼인에 찬성을 할 것이라고 생각되어 한없이 기쁘고 또한 강하게 결심하게 되었다. (반드시 그에게 무림에 함께 나가자고 해야지!) 마침 강호는 근래에 지극히 평온하다가 갑자기 거대한 풍파에 휩쓸린 형국이었다. 평화시에는 영웅이 필요하지가 않다. 영웅은 난세에만 필요하며, 난세의 영향으로 인해 영웅은 태어나는 것이다. 악불이는 이제 자신의 남편이 난세의 영웅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는 감격에 들떠서 작은 주먹을 꽉 쥐었다. 헌데 이때, 그녀의 그러한 내심을 알리가 없는 백룡생은 물과 나무등을 정리해 놓고 그녀에게 와서 묻는 것이었다. "불이! 식사를 좀 하지 않겠소?" 사실, 악불이는 아까 현진자를 따라오기기 바빠서 아직 아침식사조차 하지 않은 상태였다. 따라서, 그가 그렇게 묻자 배가 고파왔다. 허나 그녀는 내색하지 않고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나는 배고프지 않아요. 그러니 어서 당신은 준비하도록 해요!" 백룡생은 그 말에 다소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배가 고프지 않다고 말하곤선 무엇을 준비하라는 것일까? 그가 의아한 기색으로 그녀는 쳐다보자 악불이는 문득 자신이 말이 두서가 없었음을 깨닫고 웃으며 다시 말했다. "우리는 이제 이곳을 떠나야 하니 어서 준비를 하라는 말이예요. 당신은 설마 아내를 버리고 혼자 이곳에서 살려고 하지는 않겠죠?" 그 말에, 백룡생은 다소 난색을 지었다. 그가 그녀의 청혼을 수락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는 지금은 결코 이곳을 내려갈수가 없는 입장이었다. 그는 얼마간은 현진자와 함께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과연 얼마동안이 될지는 알수가 없지만, 일단은 다른 계획은 할수가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런데 어찌 그녀의 요구를 들어줄수가 있다는 말인가? 백룡생은 다소 난색을 표하다가 그녀를 향해 말했다. "불이! 나는 사실 이미 이곳에서 얼마동안 살아야 하는 언약이 되어있기 때문에 다른 곳으로는 갈 수가 없소. 이건 사실이오." 그 말에, 악불이는 다소 안색이 변해다. 그녀는 다소 어느정도의 예상은 했진만 백룡생이 이곳에 지금 묶여 있는 줄은 몰랐다. 그녀는 지금 그러지 말고 빨리 가자고 투정을 부릴수도 있을 것이다. 허나, 잠시 안색을 여러차례 변화시키던 그녀는 문득 무슨 생각을 했는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좋아요! 그럼 부부는 서로 떨어져서 살수가 없는 셈이니, 당신이 떠나지 못한다면 나도 당신과 함께 여기에서 살겠어요." 말과 함께, 악불이는 환한 미소를 떠올렸다. 사실 그녀는 이순간 자신은 이미 어린아이가 아니니 좀 더 어른스러워져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하여 다소 자신이 손해를 보더라도 남편의 뜻에 거역하지 않기로 했다. 이것은 과거의 말괄량이 같던 그녀의 기질에 비하면 많이 달라진 것이었다. 백룡생은 그녀가 자신에게 어서 내려가자고 조르지 않은것만도 고마운데 이곳에 함게 있자고 하는것만은 거절할수가 없다고 생각되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소. 불이." 이어, 그는 얼른 현진자에게 올리기 위에 서둘러 아침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밥과 반찬은 이미 해놓은 뒤였으므로 그는 곧장 그것을 상에 차리기만 하면 됐다. 악불이는 이것을 보고 내심 생각했다. (백랑은 이런일을 매우 잘하는구나. 비록 음식은 가짓수가 얼마되지 않아도 아주 정갈하고 맛있어 보이니, 누구라도 자연 입맛이 당길거야, 허나, 나는 아직 이런 일을 하나도 해보지 못했으니 어쩐담?) 허나, 그녀는 다시 생각했다. (아냐, 나는 비록 한번도 해보지 않았지만 일단 몇번 연습을 하면 잘 할수 있을 것이 틀림없어! 그러니 나는 이제부터라도 직접 해보는 것이 좋을거야.) 악불이는 이런 부엌에서의 일이야말로 여자인 자신이 할 일이라고 생각하여 내심 빠르게 생각을 굳혔다. 그리하여, 그녀는 마악 상을 들고 방안으로 들어가려는 백룡생의 손에서 상을 빼앗으며 말했다. "잠깐, 당신은 이런일은 여자가 하는 일이라는 것을 모르나요? 나는 당신의 아내이니까 물론 앞으로는 이 일을 내가 하겠어요." 그 말에, 백룡생은 다소 웃으며 되물었다. "이런 일을 할 수가 잇겠소?" 그는 오매촌에 있을 때 이렇게 아름다운 처녀일수록 오히려 주방일에 서툴다는 것을 경험한 바가 있었다. 그리하여 다소 의미심장한 어투로 그렇게 물은 것이다. 그 말에 악불이는 다소 안색을 빨갛게 물들이며 대꾸했다. "물론이예요. 내가 왜 할 수 없다고 생각하죠?" 말과 함께, 그녀는 흡사 백룡생이 자신이 들고있는 상을 빼앗을까봐 두렵기라도 하듯 얼른 걸음을 옮겨 방안으로 들어갔다. 백룡생은 묵묵히 그 광경을 바라보다가 이어 자신도 그녀의 뒤를 따라서 방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갑자기 인기척이 일더니, 현진자가 부엌으로 빠르게 날아 들어와서 그이 옷소매를 잡아당기는 것이 아닌가? "...?" 백룡생이 바라보자, 현진자는 일순 방안으로 들어간 악불이의 눈치를 살피더니 나직하게 말하는 것이엇다. "나는 너에게 할 말이 있으니 잠깐 저쪽으로 가자!" 백룡생은 물론 그것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으므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현진자는 그의 소매를 잡고는 빠르게 신법을 펼쳐서 모옥의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그는 이미 백룡생이 무공을 터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신법을 펼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과연, 그가 아주 빠르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데도 백룡생은 조금도 힘들어하는 기색이 없이 자연스럽게 그의 뒤를 따르는 것이 아닌가? 이것을 보고 현진자는 순간 생각했다. (이 녀석을 불과 그저께 밤만 해도 전혀 무공이 없었다.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대체 불과 하루사이에 어디에서 저런 놀라운 무예를 터득하고 왔다는 말인가?) 현진자는 백룡생의 전신을 은근히 살폈지만 역시 전처럼 그가 무공을 터득한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속으로 은근히 놀라워 했다. 실로, 무공이 최고 경지에 이르면 반박귀진이라고 해서 전혀 그것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허나 그것도 어느정도는 알 수가 있는 법인데 이 백룡생은 전혀 그것이 드러나지 않으니 이는 실로 이상한 노릇이 아닌가? 그리하여, 그는 문득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혹시 이 녀석은 원래부터 무공을 소유하고 있었는데 여태까지 나를 속였던 것이 아니었을까?) 현진자는 그럴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대체 그럴만한 이유를 찾을수가 없어서 내심 곤혹한 기분에 휩싸였다. 그러는 가운데, 그는 비로소 백룡생을 자신이 의도하던 곳으로 데리고 갔다. 그곳은 바로 암봉의 정상에서 조금 내려와서 깎아지른 절벽의 위였다. 현진자는 일단 그곳에 몸을 세우자, 뒤이어 두발을 절벽의 바닥에 붙이는 백룡생을 향해 다소 차가운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내가 너를 왜 이곳으로 데리고 왔는지 너도 대충은 알고 있을 것이다. 너는... 너는 혹시 내게 할 말은 없느냐?" 그 말에, 백룡생은 다소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자, 그의 안색을 살피던 현진자는 다소 기다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내가 너에게 몇가지의 불리한 일을 했다는 것을 인정하겠다. 그러나 그것은 너를 해치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너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 백룡생은 묵묵히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현진자는 말을 이었다. "나는 사실 네가 죽은줄로 알고 있었지만 마음은 네가 살아있기를 바랬다. 너는 나의 이러한 마음을 이해할수가 있느냐?" 백룡생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몰론입니다." 그 말에, 현진자는 다소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끄덕 하더니 다시 말했다. "고맙다. 원래 너는 전혀 무공이 없었다고 말했고, 그리고 나의 무공과 성의를 무시했기 때문에 나는 너에게 나의 무예가 어떻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던 것이다. 헌데 너는 그날 나의 예상을 뒤엎고 아래로 내려갔더구나? 그리고 나서 불과 하루만에 이렇게 무공을 터득하고서 내 앞에 나타났다. 너는 그전의 상황을 내게 일러줄수가 잇겠느냐?" 현진자는 기왕에 백룡생에게 모든것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다소의 진실을 밝힐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모든 사정을 알게되면 다시 새로운 계획을 꾸밀수도 잇는 것이다. 현진자가 지금 그러한 모든것을 알고자 하는 것은 만약 그렇지 않으면 자신은 이제 전혀 백룡생에게 손을 쓸 자신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대문이었다. 백룡생은 원래 현진자가 자신을 이곳으로 데리고 온 이유가 바로 지금처럼 그간의 결과를 묻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D었다. 그러나, 그는 웃으며 되물었다. "지금에 와서 굳이 그런것을 알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 말에, 현진자는 순간 마음이 초조해져서 다소 언성을 높혔다. "알 필요가 없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 너는 나를 시중들고, 나는 너를 보호해야만이 마땅하거늘 내가 너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 못한다면 어떻게 너를 보호할수가 잇다는 말이냐 만일... 만일..." 현진자는 다소 주저하다가 말을 이었다. "네가 나를 진심으로 시중들고자 한다면 나에게 그간의 상황을 얘기해야 할 것이다." 현진자는 그러한 말을 하면서 내심 낯 뜨거운 것을 느꼈다. 그러나, 방금전에 그가 한 말은 그야말로 백룡생이 어려워하는 결정적인 약점이었기 때문에 다소 염치에도 불구하고 말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백룡생은 그 말을 듣자 문득 생각했다. (사실 나의 그러한 그때의 상황은 구태여 누구에게도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아니 말해봐야 이해할수도 없을 것이다. 어떻게 이런 사람이 마음의 법칙을 알 수가 있다는 말인가? 그러나 그는 내가 시중드는 문제를 들고 나오니 말하지 않을수도 없구나!) 그리하여, 백룡생은 원래는 말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결국 말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그는 잠시 현진자를 바라본 다음에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는 그때 원래는 거의 떨어져서 죽을뻔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백룡생은 천천히 그때의 상황을 소상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는 기왕에 설명을 하는 판이니 될 수 있으면 현진자가 이해하기 쉽도록 여러가지 이유를 덧붙혀서 설명을 하기도 했다. 원래, 백룡생은 욕심이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말하지 않았을때는 모르지만, 일단 말을 하기 시작하자 전혀 속이는 것이나 감추는 것이 없었다., 그는 연못 아래에서의 마음의 수련과, 그것에 이어지는 내공의 터득 등을 이야기하려니 자연 전날을 거슬러 올라가서 구령산에서의 일도 말하게 되었다. 백룡생은 설명은 비단 자세했을 뿐만 아니라 그때의 상황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했기 때문에 알아듣기가 쉬웠다. 그러나, 실상은 현진자는 직접 듣고 있으면서도 실로 어떠한 부분에 이르러서는 알아듣기가 심히 난해함을 느꼈다. 그는 우선 모든 기연을 만날때의 백룡생이 심리적인 상태를 믿을수가 없었다. 어떻게 사람이 그러한 상황에서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게다가, 전이 노인이 쳔년삼왕이 얘기를 했고 다시 백룡생이 그것을 구했었다는 말을 들었을때 믿지 않았는데 다시 그 보다도 더한 기연의 얘기를 어떻게 믿으라는 말일까? 아니, 설령 그러한 것을 믿는다고 치더라고 백룡생이 말한 마음의 평정에서 오는 최고의 내공심법에 대한 얘기는 실로 터무니 없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백번 양보를 한다고 하자, 그것으로 어떠한 최고의 신공을 이루었다고 한다면 그간 실종이 되어서 무당파의 전제자가 찾지 못하고 있던 무애상인의 행적이 그런곳에 있었다니 쉽게 믿을수가 잇겠는가? 하지만, 일순 현진자의 내심에는 다음과 같은 울림이 전해오고 있었다. (믿어라! 믿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마음의 소리였다. 그렇다! 현진자는 비록 그 어느것도 믿을수가 없었지만 만약 백룡생이 말을 액면 그대로 믿게 된다면 비단 이제까지의 모든 의문이 풀릴뿐만 아니라 그는 일순 횡재를 할수도 잇는 것이다. 무애상인의 석실,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장삼봉진인의 동굴을 찾아낼수만 있다면 그는 아마도 백룡생의 말을 믿지 않을수가 없을 것이고, 다음으로는 무당파에는 커다란 복운이 주어지게 되는 것이다. ... 백룡생이 모든 말을 끝내자, 현진자는 다소 허망한 듯한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그의 말을 듣는동안 현진자의 내심의 갈등이 얼마나 치열했는가를 단적으로 나타내어 주는 일이었다. 그를 향해, 백룡생은 다시 입을 열어 물었다. "이제 모든 일이 이해가 가십니까?" 현진자는 고개를 흔들었다. 마치 복잡한 마음속의 번뇌를 털어버리듯이 그렇게 고개를 흔들고 난 현진자는 그를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 "나는 당연 이해할수가 없네. 자네는 혹시 나를 그곳으로 데려갈 수가 있겠는가?" 현진자가 말한 그곳이란 바로 무애상인의 유골이 있는 석실이었다. 현진자는 일단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그곳으로 직접 가보려는 것이다. 그 말에, 백룡생은 곧장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기왕에 모든 말을 한 바에야 다시 그곳으로 가보는 것은 실로 일도 아니었다. 다만, 악불이가 절봉의 위에 있는것이 다소 마음에 걸리기는 하나, 그녀는 이제 잠시후 갔다와서 다시 찾아보면 될 것이다. 그리하여, 백룡생은 먼저 아래쪽으로 신형을 움직였다. "그럼 저를 따라 오십시오!" 백룡생의 신형은 금세 거의 쏜살같이 아래로 내리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한 신법이라는 것은 실로 괴이하여 여태 들어보지도 못한 것이었다. (...?) 현진자는 일시 눈을 휘둥그래 떴으나 지금은 그런것을 생각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을 하고는 즉시 그 뒤를 따라 아래로 신법을 날리기 가했다. 그들의 신형은 곧장 암벽의 아래로 까마득하게 내려갔다. * * * 백룡생은 곧장 그 폭포수가 거세게 떨어지는 연못의 앞에 이르렀다. 그리고, 현진자를 향해 말했다. "함께 내려가시겠습니까?" 현진자는 우선 아까 백룡생이 말했던 그가 절벽에서 떨어지던 당시를 생각하며 그 얘기의 진위를 판가름해 본 이후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다." 이어, 백룡생이 놀랍게도 신형을 날려 천천히 연못 속으로 떨어져 들어가는 것을 보고는 그도 즉시 신형을 날려서 그 뒤를 따라갔다. 청범! 일단 물 속에 들어가자 현진자는 자신의 내력을 이용하여 귀식대법 을 펼쳐서 호흡을 폐쇄하고 이어 천근추의 신법을 전개했다. 그러자, 그의 신형은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물속에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가 눈을 떠서 백룡생을 찾았을 때였다. 어찌된 영문인지 백룡생은 이미 저만큼 아득한 아래로 내려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현진자는 이를보고 놓칠까봐 황급히 자신의 전신 내공을 끌어올려서 천근추의 신법을 배가시켰다. 그리하여, 잠시후에야 그는 백룡생의 뒤를 따라가서 그의 옆에서 나란히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연못의 깊이는 실로 상상할수도 없이 깊었다. 현진자는 실로 이렇게 깊은 연못이 무당산에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 절로 놀라움과 경악을 금치 못하면서 역시 의혹을 느꼈다. 과연 이러한 곳에 있었기 때문에 누구도 전혀 무애상인의 유골을 찾지 못했던 것이리라, 그러나, 과연 이 아래에 백룡생이 말한대로 그런곳이 있을 것인가? 현진자는 절로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옆을 바라보니, 백룡생은 대체 무슨 신법을 쓰는지 알수없게 그저 조용히 서서 아래로 빠르고도 끊임없이 하강하고 있었다. 원래, 지금 현진자가 펼치고 있는 귀식대법이라는 것은 내공이 상승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이 호흡을 폐쇄하고 내력을 이용하여 얼마간 죽은듯이 신체기능을 거의 정지시키고 있는것을 말하는 것이엇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 이 대법을 펼치면 물속에서도 숨을 쉬지않고 견딜수가 있지만, 내공의 소모가 극도에 달하는 등이 제약이 많았다. 특히 그러는 중에는 전혀 말을 하지 못하고 몸을 거의 움직일수가 없다는 것이 커다란 단점이었으며, 그렇게 할 수 있는 시간도 겨우 몇시진이나 하루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물론 그것은 각자의 능력에 따라서 다르기도 하겠지만, 지금 백룡생이 귀식대법을 펼치고 있는것 같지도 않은데도 멀쩡한 것을 보면 정녕 이해하기기 어려웠다. 이때, 현진자는 점차 물의 온도가 급격히 차가와지고 있다는 것을 의식했다. 그것은 그들이 이미 수심이 아주 깊은 곳까지 내려왔기 때문에 자연 그러한 현상을 보이는 것이었다. 그와 동시에 무겁기 짝이없는 압력이 느껴졌다. 그들은 이미 거의 일각여를 아주 빠르게 내려가고 있었는데 기이하게도 아직 바닥은 보이지 않았다. 현진자는 문득 아까 백룡생이 말했던 그가 몸이 절벽위에서 떨어져서 그 속도가 완전히 떨어질때까지 내려갔었다는 말이 이해가 갔다. 아직 아래쪽의 바닥은 보이지도 않고 있었다. 현진자는 이러한 일이 원가 기이하게 여겨졌기 때문에 혹시 이 연못은 아예 그 끝이 없는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만일 그가 평소에 우연히 이러한 곳을 발견했어도 이렇게 깊이가 깊은 것을 보고는 아마 십중팔구는 다시 포기하고 돌아갔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체 이 연못의 바닥은 언제쯤이나 나타날까? 현진자는 천근추의 신법을 최고조로 발휘하여 아래로 내려가는 속도를 백룡생과 맞추면서 마음이 점점 더 조급해져서 자꾸만 아래쪽을 내려다보곤 했다. 그러다가, 현진자의 마음이 초조감에 지쳐서 심한 불안감이 느껴질때, 그때에서야 비로소 연못의 바닥이 눈에 들어왔다. 그 바닥은 과연 백룡생이 말대로 강한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있었다. 현진자는 바닥에 이르자 절로 안도의 심정이 되었으나 백룡생이 이어 역시 빠르게 옆으로 움직이는 것을 보고 황급히 귀식대법을 풀었다. 그것을 귀식대법을 펼치면 일반적인 신법을 전혀 펼칠수가 업식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귀식대법은 비록 펼치는 것는 짧은 시간에 이루어질 수가 있다손 치더라도 푸는 것은 그보다 훨씬 시간이 걸렸다. 현진자는 바닥에 이르러서 잠시 호흡을 멈추고 귀식대법이 풀릴때까지 잠시 멈추어야 했다. 헌데 그때, 강렬하기 짝이없이 소용돌이가 그의 몸을 휘감더니 동굴속으로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현진자는 미쳐 저항한번 해보지 못하고 어이없게도 그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그는 비록 소용돌이에 형편없는 모습으로 휘말렸지만 그래도 무림의 절정고수인지라 호흡조절을 이미 하고 있어서 물을 들이키거나 하지는 않았다. 귀식대법이 그러는 동안에 완전히 풀리자 현진자는 일순 뼈를 깎는듯한 차가운 냉기와 무시무시한 수압을 느꼈다. 하지만, 그는 바라보니 전면에 백룡생이 아까와 똑같은 자세로 빠르게 나아가고 있음을 보고는 몸을 바로잡을 생각을 하지 않고 그대로 몸을 소용돌이 속에 두었다. 그렇게 대략 십여장을 나아갔을까? 그는 백룡생의 몸이 별안간 위로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와함께, 그의 몸도 일순 강렬한 빛살을 두눈 가득 느끼며 위로 빠르게 솟아올랐다. * * * 현진자는 웅덩이의 위에 오르게 되자 신법을 발휘하여 훌쩍 몸을 날려서 근처의 지면에 이르렀다. 그는 백룡생을 찾았으나 백룡생은 이미 한쪽에 기색으로 서 있었다. 그의 모습은 지극히 태연하여 금방 그 길고 긴 물길속을 헤쳐온 사람 같지가 않았고, 다소 무심한 듯 하여 현진자에게 거의 관심을 두지 않고 있는 듯 했다. 기실, 백룡생은 아까 연못속을 내려오면서 전에 느꼈던 그러한 경험이 다시 눈앞에 떠올라서 같은 마음의 평정과 상념속에 있었던 것이다. 현진자는 그의 그런 모습을 바라보다가 자연스럽게 주위를 향해 시선을 돌리게 되었다. 순간, 그는 일시 너무도 경악하여 눈을 있는대로 부릅떴다. 다소 넓은듯한 석실, 그리고 석벽의 사방에 가득 적혀있는 무수한 글자들! 또한 한쪽에 놓여있는 거의 다 삭아버린 유골과 한자루의 녹슬은 장검... 그러한 것들은 아까 백룡생이 말했던 내용과 조금도 틀리지 않는것이 아닌가? 현진자는 일시 너무도 벅차오르는 감정에 못이겨 어찌할바를 모르다가 먼저 빠르게 유골과 장검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유골은 이미 너무도 오랫동안 삭아서 그 형상을 분간할수는 없었다. 그러나, 장검은 비록 녹슬었을 망정 아직 형상이 남아 있었다. 현진자는 그 장검의 중간 부분에 전자체로 새겨져 잇는 하나의 이름을 보고는 일순 경악하여 흡사 못박힌듯 두 눈을 부릅떴다. 장검의 이름, 장검의 중간에 새겨져 잇는 이름은 분명 조운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 조운검, 그것은 실로 분명히 무애상인의 생전에 사용하던 검이었다. 무애상인이 실종되었을 때에는 벌서 현진자 등도 한참 청년시절이었고 무공연마에 주력하고 있었던 참이라 이러한 사실을 잘 알 수가 있었다. 이것은 분명히 무애상인의 검이요. 그렇다면 그 옆의 유골은 틀림없이 무애상인의 유골인 것이다. 현진자는 이러한 사실을 확인한 순간 절로 벅찬 감격에 마음을 가누지 못하여 순간 버럭 소리치며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사조 어르신--!" 그렇다, 무애상인은 현진자의 선사인 자허산인의 사부이니 정확하게 사조가 되는 셈이었다. 현진자는 그렇게 꿇어 엎드려 한참을 감격과 흥분에 못이겨 오열하다가 문득 백룡생이 말했던 석벽의 글씨를 생각하고는 몸을 일으켰다. 이어, 얼른 둘러보니, 백룡생은 한쪽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마치 입정에 든 고승처럼 앉아 있었다. 현진자는 그를 상관하지 않고 얼른 석벽으로 다가갔다. 동시에, 석벽의 글을 읽어가는 그의 표정은 시시각각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는데, 어떤때는 웃기도 하고 또한 어떤때는 인상을 심하게 찌푸리기도 했는데, 그러한 표정들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심하게 격정에 들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현진자는 매우 흥분했다. 그는 비록 무애상인의 글귀에서 그에 대한 존경심이 반감되기는 했어도, 무애상인이 남긴 무수한 무공보록에 대한 열망은 반감될리가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빨리 글을 읽어 버리고 다음에 적혀 있는 무예구결을 읽어보려고 했다. 그러나, 마악 글귀를 끝까지 읽어갔을 때, 현진자는 문득 그중 한귀절을 읽어보고는 일순 경악을 금치 못했다. 거기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 ...만일, 무당파의 장문인이 이 글을 보게 된다면, 이곳의 모든 무학을 전한 사람에게는 그를 나의 제자인 자허에 준하는 대접을 해주기를 바란다... 제 18 장 암습(I) 원래, 백룡생은 아까 현진자에게 이야기를 해 줄때에 구태여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런 얘기는 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막상 현지자가 그러한 글귀를 보게되자 그의 경악감은 컸다. (만일, 만일 그렇게 된다면 저 백룡생이란 녀석은 바로 우리 무당삼자의 사숙이 된다는 말인가? 이건... 이건 도저히 안된다!) 그렇다! 지금 이 석벽에 적혀있는 무애상인의 글귀는 그저 무당파의 절학을 완전하게 보호하기 위한 하나의 고육책에 불과했다. 무당파의 이러한 절학은 실로 너무나도 중요한 것이었기에 그는 설사 그런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반드시 전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게다가, 어느정도 타당성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처음 이 글을 본 사람은 아무래도 무애자의 절학을 어느정도는 보았을 테니. 그것은 즉 무애상인의 제자라고도 말할수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현진자는 일순 그러한 글귀를 보자 눈이 뒤집히는 것을 느꼈다. 저런 멍청한 녀석이 무당삼자의 사숙이 된다는 것은 그야말로 있을수도 없는 일이었다. 우선 그것은 무당파의 앞날에 먹칠을 하는 것일뿐만 아니라, 현진자의 장래에 이두운 암운을 드리우게 되는 일인 것이다. 왜냐하면, 현진자는 여태까지 거의 일십으로 그를 해치려고 하고 있었는데, 이제 그가 그의 사숙이 되어 버린다면 오히려 그의 존장이 되어버리게 되는 것이 아닌가? 무당파의 규율은 엄격하여 현진자는 도저히 존장을 해하려는 음모를 꾸밀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는 이제 앞으로 백룡생에게 말끝마다 존대를 붙여야 하고 오히려 그를 시중 들어야 할 테니 이 어찌 감당할수가 있다는 말인가? 현진자는 일순 몸과 마음이 크게 경직된채 한참 동안이니 깊은 번뇌 속에서 갈등과 분노의 격정을 거듭했다. 그러다가, 그는 문득 어느 한 순간 생각했다. (그렇다! 그를 죽이면 된다!) 현진자의 이 생각--, 그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라고도 말할수가 있을 것이다. 원래 현진자는 다소의 양심에 꺼려서 백룡생을 차마 죽이지는 못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그의 처지가 거의 막바지에 몰려서 더 이상 양심을 따질 겨를이 아니었다. (그가 있으므로 해서 무당파와 나는 엄청난 출혈을 감수해야만 한다. 그러나 내가 그를 죽여버리기만 하면... 그리하여 이곳은 내가 우연히 발견한 것으로 한다면, 나와 무당파는 비단 아무일도 없을뿐만 아니라 점차 번창해갈 것이다!) 현진자는 일순 그러한 생각이 머리속을 헤집어 놓자 두눈에서 점차로 강렬한 독기가 뿜어졌다. 그는 여태 이렇게 비양심적인 일을 노골적으로 해본 경험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이미 그러한 알을 할 것을 스스로 결정했다. 일단 그렇게 감정이 끝나고 나자, 일순 그의 두눈에서 번갯불같은 무서운 살기가 폭출되더니 다사 감쪽같아 사라졌다. 살기가 나타난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요. 살기가 다시 사라진 것은 그가 일부러 그것을 감추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비록 감추어졌다고는 해도 더욱 무서운 살기가 그의 의식속에 흐르고 있는 것이다. 현진자는 그렇게 전신의 공력을 최고조로 끌어올린 후, 은밀히 뒷쪽의 백룡생의 동태를 살폈다. 기왕에 결심이 끝났다면, 그러한 실행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은 것이다. 현진자는 강호에 이름을 날린 이후에 거의 암습을 해본 경험이 없었다. 그것은 이미 그 자신의 무예를 자신하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는 이 일이 워낙 중대하고, 또한 백룡생의 무예가 워낙 알 수 없다고 생각되어 다소 비열하지만 암습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기왕에 그렇게 할 바에야 단 일격에 끝내야 한다. 이때, 백룡생은 여전히 아까와 같은 자세로 앉아서 깊은 명상에 잠겨 있었다. 그의 등을 은근히 주시하며 현진자는 자신이 곧 써야할 수법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가 가장 자랑하는 것은 본래 무당파의 제이대신공이라고 할 수 잇는 순양무극공이라는 동자공과 그것을 운용한 현허도법이었다. 그러나, 현진자는 일단 도를 뽑을것 같으면 백룡생이 이를 눈치챌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도법을 펼치는 것은 다소 무리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는 현허도법 대신에 무당파에서 가장 부드럽고 음유하기 짝이없는 칠성수라는 수법을 쓰기로 했다. 이 칠성수는 비록 그 이름에 보면 북두칠성의 운행의 묘가 깃들어 있는것 같지만 실은 그 내용은 이기종인 후발제인의 원리가 깃들어 있는 것으로, 말 그대로 나로서 다른 사람을 따르며 뒤에 공격하여 다른 사람을 제압하는 심오하기 짝이없는 상승무학의 이치가 깃들어 있는 것이었다. 원래 이 무학은 상대방의 강한 힘이 봉착했을 때 그 힘을 그대로 되돌려주는 수법으로 사용되던 것이었다. 그러나, 현진자는 이미 이 칠성수에 거의 능통하여 이것을 암격해 사용할시에는 무서운 효과를 발휘할 수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가 만약 칠성수의 수법으로 상대의 등심을 가격한다면, 아마도 그자는 마지막 순간에 어떠한 반응을 보일 것이고, 상대가 강하면 강할수록 본능적이고 호신강기를 내뿜게 된다. 그러나, 실은 그것이 바로 치명적인 점이었다. 비록 현진자가 칠성수를 사용하여 적을 암습하는 공력은 다소 작을수가 있어도, 그 순간에 상대의 몸에서 발산된 호신강기의 기운은 순간 칠성수의 기운을 받자마자 오히려 되돌아서 상대의 등뒤로 함께 후려치게 되는 것이다. 그때는 물론 무방비의 상태가 되며 그런 상황에서 살아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현진자는 일단 그렇게 결정하자 가볍게 몸을 일으켰다. 가볍게라고는 하나, 그의 몸놀림은 지극히 빨랐다. 게다가 거기에는 전혀 아무런 기척도 일지 않아서 그가 실로 허명만 얻은 사람이 아님을 입증하게 했다. 기실, 현진자는 평생 여인을 가까이 하지 않아서 동자공을 연마한 사람으로, 내공분야에서 가히 뛰어나다고 할 수가 있었다. 그런 그가 빠르고 소리없이 움직이자 그 모양은 마치 표홀하는 한줄기 바람과도 같았다. 문득 가볍게 그의 신형이 위로 떠오른 순간 마치 거짓말처럼 그 자라에서 사라졌고, 뒤이어 그의 신형은 마치 허깨비처럼 빠르고 흔적없이 백룡생의 뒷등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이때 그의 전신은 이미 내공을 최고조로 끌어올린 상황이었다. 그리하여, 그의 칠성수 일격이라면 능히 태산이라도 쪼갤수가 있을것 같았다. 그런데 하물며 사람인 백룡생의 몸이야 견딜수가 있겠는가? 백룡생의 등뒤에 한순간 빠르게 접근하자, 현진자는 더이상 지체하지 않고 자신의 모든 내력을 총동원하여 백룡생의 등줄기를 우수로 후려쳐갔다. 이 칠성수는 워낙 음유한 초식이기 때문에 비록 그의 전 내력이 담겨져 있었어도 전혀 파공음이나 기척이 일지 않았다. 그야말로 암습에 가장 적합한 초식이라고 말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헌데 그 순간이었다. 현진자의 우수가 마악 기척도 없이 백룡생의 등줄기를 마악 격중시키려는데, 갑자기 백룡생은 벌렁 뒤로 상체를 누워 버리는 것이 아닌가? 이대, 원래는 시기적으로 거의 현진자의 칠성수가 가까이 접근해 있었기 때문에 백룡생이 제 아무리 빠르게 움직인다고 하더라도 등줄기가 아닌 머리 뒤통수라도 맞게끔 되어 있었다. 그런데, 괴이한 일이었다. 현진자는 여전히 암습의 속도를 늦추지 않았는데도 어느새 백룡생은 벌렁 땅바닥에 누워있고 자신은 그저 그 위의 허공만을 후려친 결과가 되어버린 것이 아닌가? 현진자는 이것을 보고 경악했다. 그는 비단 백룡생이 언제 바닥에 누워 버렸는지 그 동작을 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일순 자신의 암습이 탄로가 났다는 사실을 깨닫고 크게 흠칫했다. 그러나, 이때는 그가 이미 전력을 다해 칠성수를 후려친 상황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일시 대경한 나머지 급히 그 일장을 회수하려고 했으나, 그것은 실로 무리한 일이었고, 그로인해 전신의 기혈이 힌꺼번에 끓어 올랐다. 비록 그는 겨우 그 일장의 기세를 모조리 회수할 수가 있었으나 미처 치미는 기혈을 어쩔수가 없어서 그만 욱! 하고 한모금의 피를 토하고 말았다. 그러나, 실상 그것은 오히려 다행한 일이라고 말할수가 있었다. 만일 그가 순간 피를 토하지 않고 전신의 기*}이 한꺼번에 뒤엉키기 시작했다면 그것은 바로 주화입마라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었다. 다만 그는 선혈을 토하고 나서 아랫배가 끊어지도옥 아픈것을 느꼈다. 그는 이순간 자신의 공세를 자신이 받은 것처럼 되어서 심한 내상을 입고만 것이다. 현진자의 안색은 그 때문에 즉시 새파랗게 변해 버렸다. 허나 순간, 그의 두눈에는 고통의 빛 보다는 의아함이 짙게 떠올랐다. 그는 원래 순간적으로 자신의 암격이 실패했으니 이제 자신의 백룡생의 공격을 여지없이 받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 순간, 백룡생은 그렇게 별안간 누운 자세로 비단 가만히 있는것 뿐만 아니라 아예 눈까지 감고 있는 것이 아닌가? (...?) 이게 대체 무슨 일일까? 현진자가 다소 곤혹해 하고 있는 순간, 갑자기 백룡생의 신형이 마치 꼿꼿한 마름나무처럼 느닷없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러더니 어이없게도 사방을 향해 손과 발을 마구 휘두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현진자는 처음에는 이게 무슨 짓일까 하고 생각하며 기이하게 여겼다. 그러나, 백룡생의 동작을 유심히 살펴본 결과 그는 일순 경악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얼핏 보면 괴이하고 야릇한 것 같았지만, 그것은 바로 실전되었다는 태극혜검법의 초식이 그 운검구결에 배합되어 펼쳐지고 있는 모습이었던 것이다. 다만 그는 손에 검을 들지 않고 전신으로 그 검초를 시전하고 있었고, 내력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으며 신형을 움직이지 않고 제자리에서만 펼쳤기 때문에 괴이하게 변모하여 현진자로서도 일시에 알아보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게다가, 이렇게 내력을 운용하지 않고 전신으로 검을 삼으며 전혀 움직이지도 않은 상태에서 태극헤검법을 펼칠수가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아서 현진자는 일순 두어번 눈을 비벼보기도 했다. 그렇다면 백룡생은 이미 이 태극혜검법을 터득한 상태라는 말인가? 그리고, 지금 그는 다름아닌 무공을 연마하고 있는 도중이었단 말인가? 이러한 광경을 바라보는 현진자의 두눈에는 의혹의 그림자가 짙게 내리 깔렸다. 그러나 그는 지금 심한 내상을 입었고 한번의 암격이 실패한 상태여서 쉽사리 백룡생을 향해 재공격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유심히 그의 몸놀림을 관찰했다. 그러는 동안, 문득 그의 눈빛이 여러차례 변하기 시작했다. 그는 백룡생의 몸놀림을 보는 순간 그가 전에 의문을 느꼈던 많은 부분에 대해서 커다란 깨우침을 느낄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바로 상승무도는 하나로 통한다는 근본의 이치와 통하는 것이었다. 현진자는 원래 자신의 현허도법이 완전하다고 생각했었으나 왠지 백룡생의 이러한 시전을 보는 순간 자신의 성취가 결코 완전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동시에 그 이유를 깨달았으며, 그는 이제는 자신의 현허도법을 진정으로 완성할 수가 있다는 사실을 깨우쳤다. 그러한 최고의 도법은 자신이 지금 연성하고 있는 거의 수배에 달하는 위력이 잇는 것이었다. 현진자는 이러한 것들을 일시에 깨닫게 되자 마음이 지극히 기쁜 만면에 경항이 없어졌다. 이것은 그야말로 절세의 기연이라고 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일반적으로, 무공이 낮은 사람은 그 진척의 속도가 빠르기 마련이나, 일단 어느 정도의 경지에 오르면 불과 한단계의 경지도 넘어서기가 매우 어려웠다. 그것은 무예의 원리나 워낙 심오하기 때문이며, 불과 한단계를 넘어서더라도 그는 엄청난 성취를 이룬것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절정고수들 중에는 평생에 바라던 그 하나의 단계를 초월하지 못하고 그대로 죽어가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것은 물론 현진자의 경우도 다르다고 말할수가 없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지금 현진자는 자신이 바라던 그 단계는 물론, 그 다음의 두어단계까지 돌파해버린 것이 아닌가? 그러한 기연은 그에게 있어서는 무슨 절세의 영약이나 절세의 비급을 구입한 것보다도 오히려 더욱 이익이 되는 것이라고 말할수가 있었다. 절세의 영약이나 절세의 비급은 비록 좋은 것이기는 해도 그의 무도의 경지를 몇단계나 높여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절정의 무예를 돌파하는데는 오로지 심득만이 필요하다. 현진자는 백룡생이 펼치는 태극혜검법의 모습을 보고있는 동안 그것의 흐름이 자신이 연성한 현허도법과 연결되고 있다고 느꼈으며, 잇달아 몇가지의 문제를 해결하고 몇단계의 경지를 추월하게 되자 그의 마음은 너무나도 기뻐서 내상마저 잊고 가슴이 심하게 쿵쾅거리며 뛰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백룡생이 태극혜검법의 모든 초식을 펼치고 나자 다시 그의 마음은 싸늘하게 식어 버렸다. 그것은 바로 그의 마음이 극도의 기쁨속에 있었으면서도 경황이 없었던 이유였다. 백룡생은 이순간 그의 적인 것이다. 그런데 그때였다. 태극혜검법을 모조리 펼쳐내고 몸을 바로 세운 후 전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조용한 태도 그대로 눈을 뜬 백룡생이 문득 현진자를 향해 이렇게 묻는것이 아닌가? "이제 모든것을 확인하셨습니까?" 그 말에, 현진자의 안색은 일순 괴이하게 변했다. 그는 일순 믿을수가 없었지만 내심 생각했다. (그럼 이녀석은 아직 내가 자신을 암습했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단 말인가?) 현진자는 실로 믿기가 어려웠지만 백룡생의 아주 태연한 기색으로 보아 정말로 그런것 같았다. 그렇다면, 백룡생은 무예를 펼쳐보이는 와중에서 우연히도 현진자의 암습을 피했었단 말인가? 하지만 그러한 공교로운 일이 어디에 있을까? 현진자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이때 또 한가지 사실을 보고 놀랐다. 태극혜검법은 그가 비록 익히지는 않았지만 실로 고심막측한 무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비록 그것을 펼친것이 다소 변칙적인 방법이긴 해도 어렵고 심오하기 짝이 없는 무도의 이치가 담겨 있었는데 자연 그것을 펼치고 나면 진기의 소모가 막심할 것이다. 그런데, 정작 이 백룡생의 안색에는 땀방울은 커녕 홍조마저 깃들지 않았고 게다가 다운 느낌마저 일지 않아서 평상시의 그대로의 모습이 아닌가? 그는 절세의 태극혜검법을 모조리 펼쳐내고도 그 신태가 그전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현진자는 내심 생각했다. (이녀석은 자신의 입으로 그렇게 많은 천고의 영약을 복용했다고 했다. 그렇다면 바로 그 때문에 녀석의 공력이 불가사의한 경지에 올랐단 말인가?) 현진자는 백룡생의 지금 성취가 단순히 그런 기연 때문에 얻어진 것이 아니라 대부분이 위대한 마음의 공부에서 이룩된 것임을 모르고 있었다. 기실, 그것이 없었다면 백룡생의 내력은 그렇게 갑작스럽게 불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설령 그렇게 불어났을 지라도 제대로 수습을 하지 못하고 전신이 터져 버리고 말았을 것이었다. 이러한 진정한 원인을 모르는 현진자는 다만 그렇게 생각하며 내심 다시 생각했다. (나는 지금 심한 내상을 입고 있다. 그리고 이 녀석은 정말로 무공연마에 몰두하여 나의 암습을 몰랐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나는 저 녀석의 말을 쫓아서 이 위기의 상황을 벗어나고 다음의 기회를 노리는 것이 적당하지 않을까?) 생각은 길었으나 그 시간은 짧았다. 이미 수십년간을 강호에서 굴러먹은 노강호인 현진자는 즉시 만면에 웃음을 띄우며 즉시 백룡생의 말에 대꾸했다. "물론 확인했네, 자네의 말이 전부 옳더군?" 백룡생은 그의 말에 덤덤하게 웃었다.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 이어, 백룡생은 잠시 어색한 표정으로 침묵을 지키고 있는 현진자를 향해 다시 물었다. "그럼 이제 그만 돌아갈까요?" 기실, 현진자는 기왕에 이 동굴속에 어렵게 내려온 만큼 아직 보지 못한 무애상인의 절학을, 아니 장삼봉진인이 손수 남겼다는 진무검보상의 검결을 한번이라도 보고 싶었다. 그는 아까 백룡생을 암습하는 일에 정신이 팔려서 미처 그런것들을 볼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것들이 아무리 강하게 유혹을 하더라도 그는 도둑이 제발 저리는 식으로 자신의 과오가 있기 때문에 감히 백룡생의 앞에서 그쪽으로 시선을 돌릴 용기는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할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렇게 하지, 자네가 그럼 앞장을 서겠는가?" 현진자는 마음이 매우 켕기는 상태였기 때문에 감히 백룡생의 앞에서 갈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그는 그저 지나가는 말처럼 백룡생에게 그렇게 물은 것이다. 헌데, 백룡생은 다행스럽게도 고개를 끄덕이며 먼저 앞장을 서서 웅덩이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현진자는 매우 아쉬운 마음으로 석실의 내부를 한차례 둘러보고는 그 뒤를 따랐다. * * * 현진자가 웅덩이 속으로 갖은 마음의 방비를 다하여 들어가자, 백룡생은 이미 예의 그동굴속으로 사라진 뒤였다. 현진자는 그것을 보고 얼른 그 뒤를 따르기 위해 신법을 펼치려고 했으나 순간 가슴 부위가 심하게 아파오는 것을 느끼고 인상을 크게 찌푸렸다. 그러나, 그는 역시 강호의 절정고수였다. 비록 내상은 입었을 지라도, 아까 백룡생이 펼쳤던 태극혜검법을 봄으로써 터득한 심득은 그의 무예를 몇단계의 뒤로 올려 놓았기 때문에 다소 어렵지만 신법을 펼쳐 소용돌이 속을 역류해 갈수가 있었다. 그러면서, 그는 잠시 자신이 백룡생을 처치해야 한다는 사실마저 잊은채 내심 중얼거렸다. (나는 사실 전에는 무당삼자의 대열에 들어 있었으며서도 기실은 나의 두 사형들보다 무예가 약하여 항상 불만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가히 그 두사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는 한평생을 거의 무예연마에 바쳤기 때문에 이러한 성취는 그의 마음을 마치 어린 아이처럼 들뜨게 만들었다. 그러다가, 동굴을 나서서 연못의 밑바닥에 이르게 되자 현진자는 다시 백룡생을 생각하고는 경각심이 들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백룡생은 이미 아득한 뒷쪽으로 올라가고 있는 중이었다. (빌어먹을! 빠르기도 하군!) 현진자는 백룡생의 불가사의한 성취에 강렬한 독살스런 시기심을 느끼며 내심 중얼거리다가 극심한 한기와 압력을 견딜수가 없다고 느껴서 급히 위로 오르기 시작했다. 그가 아마 아래로 내려올때는 귀식대법을 펼쳤기 때문에 호흡이 가쁘지 않았었다. 그러나, 지금 그는 심한 내상을 입은 관계로 도저히 귀식대법을 펼칠수가 없었다. 귀식대법을 펼치기 위해서는 많은 공력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내력으로 한것 호흡을 늦추고 가능한한 빠르게 위로 오르기를 힘썼는데, 그렇게 하자니 자연 엄청난 고통이 수반되지 않을수가 없었다. 이 연못의 깊이는 깊고도 깊은 것이었는데 그는 불과 일각도 되지 않아서 숨이 막혀서 거의 실신할 단계에 이르렀다. 헌데 바로 그때, 문득 눈을 크게 뜨니 눈앞에 돌연 백룡생이 나타나 있는것이 아닌가? 아마 백룡생은 앞서서 나가다가 이곳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백룡생은 그를 보더니 그가 거의 죽을상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는 슬쩍 손을 잡아왔다. 그 손속은 별로 뛰어난 금나수라고 말할수가 없는것 같았는데, 현진자는 이미 거의 지쳐 있어서 전혀 반항을 할 수가 없었다. 그는 내심 백룡생이 지금 자신을 해치려고 하고 있으며, 그렇다면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내심 마구 욕을 해대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백룡생이 손을 잡자마자 그가잡은 손목 부위에서 일순 따뜻하고 부드러운 기운이 강물처럼 흘러 들어오더니 그의 전신 대혈을 휘돌며 내상을 깨끗하게 치유해 주는 것이 아닌가? 순간, 현진자는 갑자기 미칠듯하던 숨가쁜 것이 멈춰졌다. 그것은 이미 그의 내상이 치유되어 그런것을 견디기가 쉬워진 때문이 아니라, 바로 백룡생이 그의 손목을 통해 보내는 기이한 기운 때문인것 같았다. 대체 그것은 무엇일까? 현진자는 순간 경악과 괴이함을 느끼면서도 내심 크게 흠칫했다. (그럼 그는 정말로 아까 내가 암습한 것을 모르고 있었단 말인가?) 현진자는 이미 전신의 내상이 회복되고 숨통이 트이게 되자 한결 몸놀리기가 편해졌고 이제는 혼자서도 위로 올라갈 자신이 만만했다. 그런데, 이때 우연히도 현진자는 물결 때문에 흔들려서 좌수가 백룡생의 등뒤에 가 있었다. 그러니까 백룡생은 현진자의 우수를 잡고 오르면서 진기를 주입하고 있었는데, 그 순간 소용돌이와 흐름때문에 현진자의 몸이 백룡생의 뒤로 돌아간 것이다. 현진자는 처음에는 몰랐다가 곧 이러한 사실을 깨닫고 일순 두 눈을 번적 빛냈다. (아니, 이것은?) 현진자는 무심결에 좌수의 끝에 백룡생의 등줄기가 만져지자 내심 크게 흥분하며 소리쳤다. (이거야말로 이 녀석이 죽음을 자초하는 것이로군? 나는 이미 내상을 회복했고, 이제 그저 좌수에 칠성수의 진력만을 보내기만 하면 이 녀석은 끝장이 아닌가?) 현진자의 두눈에서는 일순 무서운 독기가 일었다. 그는 이순간 자신의 한쪽 손목을 백룡생이 잡고 있기 때문에 다소 주저함이 들기도 해다. 그러나, 현진자는 이미 결심한 바가 있었으며, 설사 죽는한이 잇더라고 이 기회를 결코 놓치지 않으려고 다짐했다. 그리하여 그는 결정을 내림과 동시에 좌수를 백룡생의 등줄기에 가져가며 칠성수의 짐력을 그쪽으로 쏟아 부었다. 아니, 그는 마악 쏟아부으려고 했다. 헌데 그때였다. 갑자기 백룡생의 손에 잡혀있던 손목이 시원하게 풀려지면서 백룡생의 음성이 그의 귓전에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참, 그 악낭자는 아직 그곳에 잘 있을런지 모르겠습니다." 현진자는 순간 다시 커다란 경악감을 느끼며 기혈이 뒤엉키는 것을 느꼈다. 허나, 다행히 그는 이번에는 아직 진력을 내쏟지 않아서 심한 내상을 입는것은 면할수가 있었다. 다만 그의 안색은 극도의 경악으로 인해 하얗게 변했다. 그가 놀란 것은, 백룡생이 하필이면 그 순간에 손을 놓고 말을 했다는 것이요, 그리고 그 음성이 마치 물밖에서 처럼 아주 뚜렷하게 들렸다는 사실이었다. (이, 이 녀석은 물속에서도 말을 할 수가 있단 말인가?) 현진자는 내심 크게 질려서 소리쳤다. 헌데, 강호에는 전음입밀하는 수법이 있어서 지상에서는 허공을 격하고 상대에게 진기를 이용하여 음파를 전달할수가 있었다. 만이 그러한 절기를 물속에서도 적용한다면 굳이 안될것도 없겠지만, 이 물속이라는 곳은 지상의 공기속과는 또 달랐다. 여기서는 비단 입을 벌려서 말을 할 수가 없을뿐만 아니라, 음파를 진기를 실어 서 보내고 깊어도 물결의 흐름 때문에 도저히 그렇게 하기가 여려운 것이다. 하긴, 간혹 수중공부에 뛰어난 무림인중에 그러한 말을 전하는 사람이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그 음성은 겨우 의사를 전달할 수 있을 뿐이었던 것이지 이렇게 지상에서 말하는 것과 조금도 다름이 없는 뚜렷한 음성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니, 현진자가 내심 크게 놀라지 않을수가 있겠는가? 이때, 백룡생은 정말로 악불이가 걱정이 되는지 곧장 윗쪽으로 빠르게 신형을 뽑아 올리고 있었다. 현진자는 대체 이 일이 어찌된 영문인지 곤혹해하고 경황이 없어하다가 곧장 백룡생의 뒤를 이어서 물 위로 빠르게 솟아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는 넋을 잃은듯 내심 가늘게 중얼거렸다. (서, 설마 그는 이번의 암습도 눈치채기 못했단 말인가...?) 제 19 장 암습(II) 이 연못은 실로 지루하고 질리도록 깊었다. 푸앗...! 입속으로 겨우 기다란 숨을 들이쉬며 현진자가 물밖으로 나왔을 때에는 백룡생은 이미 있었다. 그러다가 그를보자 웃으며 말했다. "저는 이만 바빠서 먼저 가야하겠습니다." 그리고는 암봉으로 빠르게 신형을 날리는 것이었다. 백룡생은 신법은 빠르면서도 아주 날렵하고 군더더기 없이 깨끗했다. 그는 마치 미끄러지듯이 옥검봉의 아래에 이르러서 전혀 멈춰서지도 않고 그러한 미끄러지는 신법 그대로 다시 빠르게 위로 오르기 시작했다. 현진자는 그러한 광경을 보자 다시 경악했다. 그는 아무리 뛰어난 무림의 고수라고 해도 일단은 평지를 달리다가 위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최소한 신법을 바꾸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다소의 여유를 가져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백룡생은 마치 그러한 상식을 우습다는 듯이 전혀 그렇게 하지 않고 평지를 달리는 신법 그대로 계속해서 뒤로 오르는 것이 아닌가? 이를 바라본 현진자는 일순 다시 믿을수가 없었다. 이러한 것을 일반인이 보기에는 그저 그런것 같지만 일단 절정의 무림고수가 보기에는 가히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평지를 달리는 신법을 가지고 호흡한번 바꾸지 않고 게속해서 깎아지른 절벽위로 나는 듯이 같은 속도로 올라갈수가 있단 말인가? 그러한 생각을 한 현진자는 순간 백룡생은 이미 괴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그는 두어차례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내젓다가 다시 그 뒤를 쫓아 옥검봉을 오르기 시작했다. 백룡생을 처치해야 한다는 것은 이미 그의 뇌리에 지상의 과제처럼 박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 * * 백룡생이 잠깐 옥검봉을 떠나 있었던 시간은 대략 어느 정도였을까... 그것은 아마도 한시진은 조금 넘을 것이고 두시진은 다소 안될 것이다. 그러니까, 대략 한시진 반 정도가 된다는 말이었다. 하루가 열두시진인 것을 생각한다면, 이 고작 한시진 반이라는 시간은 그리 길지도 않고 별로 의미가 없을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기 한 사람, 한명의 여자를 울리는 데는 실로 충분하고도 남음이 있는 시간이었다. 백룡생과 악불이가 옥검봉위에 올랐을 때에는 아직 아침무렵이었지만, 이제는 이미 점심때가 다소 지난 상태였다. 백룡생은 다소 미안하고도 불안한 마음으로 옥검봉의 정상에 올랐다. 그동안 위로 오르면서 그의 뇌리에 박혀있는 생각은 오직 이 악불이라는 성질이 남자와도 같이 강렬한 여인이 혹시 그새를 참지 못해서 절봉아래로 몸을 던진 것이 아닌가 하는 불길한 예감과 걱정이었다. 백룡생은 비록 그녀에게 깊은 애정을 느낀것은 아니었지만 일단 그녀가 무사하기를 바라는 것은 인지상정이 아닐수가 없었다. 그런데, 실로 의외의 일이었다. 백룡생이 절봉위에 오르자, 모옥의 전면에는 부엌에 있어야할 솥이 걸려있고 거기에는 지금 무엇인가가 구수한 냄새를 풍기며 부글부글 끓고 있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모옥의 안팎은 그야말로 너무도 지나칠 정도로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다. 백룡생은 이러한 변화에 의아함을 금치 못했다. -- 악불이, 그가 그렇게도 걱정을 하던 그녀는 지금 밖에 내걸린 솥의 아래에 불을 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문득 그녀는 절봉위에 올라선 백룡생의 모습을 보게 되자 일순 전신에 벼락이라도 맞은 사람처럼 크게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잠시 넋을 잃은듯 멍한 표정을 짓더니 이윽고 발작적으로 몸을 일으켜서 번쩍 나비처럼 날아서 그의 몸에 파고들었다. "..." 백룡생은 잠시 더욱 의아해졌다. 이 악불이는 자신의 품속에 얼굴을 묻은채로 여전히 아무런 말도 없었던 것이다. 백룡생은 아마도 자신이 이제 크게 혼이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가 이러한 일을 당하게 되자 매우 어리둥절해졌다. 헌데 그때, 백룡생은 문득 자신의 가슴부위의 옷이 축축하게 젖어드는 것을 느꼈다. (...!) 악불이, 그녀는 울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알자 백룡생은 웬지 자신의 가슴마저 축축하게 젖어드는 것 같은 느낌을 느꼈다. 그리고 이어, 잠시동안 그렇게 소리죽여 울던 악불이는 고개를 들더니 눈물이 맺혀서 흡사 배꽃같은 눈으로 그를 쳐다보며 말하는 것이었다. "저는... 저는 당신이 돌아올 것을 알고 있었어요. 백랑!" 말과 동시에 그녀는 일시 얼굴가득 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러자, 일시 말괄량이 같기만 하던 그녀의 모습이 갑자기 매우 성숙한 느낌이 드는 것이* 이러한 일련의 변화는 불과 한시진 반이라는 시간이 그녀에게는 얼마나 고통스럽고 불안한 시간이었나를 입증해 주는 것이었다. 백룡생은 이러한 것을 보자 내심 매우 미안한 생각이 들어서 웃으며 말해삳. "미안하오, 실은 도장어른께서 궁금한 것이 있다길래 그분께 한가지 사실을 보여드리기 위해 갔다온 것이었소." 그말에, 악불이는 금세 새초롬하게 웃더니 백옥같은 가느다란 교수를 들어서 그의 입술을 막았다. "더이상 말하지 마세요." 이어, 그녀는 다시 웃으며 백룡생에게 물었다. "백랑! 저는 그간 당신이 나를 버리고 떠났을가 하고 의심했으니 바보죠?" 백룡생은 그말에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오, 당신은 바보가 아니오." 그렇다. 누구라도 악불이와 같은 경우였다면 거의 그러한 의심을 하지 않을수가 없었을 것이다. 의심이 아니라 불안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불안은 사랑하는 마음이 깊을수록 더하기 마련이다. 악불이는 빙그레 웃더니 이어 손가락으로 자신이 방금전까지만 해도 불을 때고 있던 솥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는 당신이 돌아오리라고 생각하고는 밥을 지으려고 했죠. 그러나, 이상하게도 전부 생쌀이 되어버렸어요. 그래서 다시 물을 붓고 이번에는 죽을 만들고 있는 거예요. 호호... 우습죠?" 백룡생은 그말을 듣자 일순 가슴이 뭉클했다. 그는 비단 하나도 그일이 우습지 않을뿐만 아니라 일순 감격했다. 실로 이러한 경험은 처음 밥을 짓는 사람이면 누구나가 하는 일인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녀가 자신을 기다리며 고통속에서도 그렇게 애를 썼다는 사실이었다. 백룡생은 웃으며 말했다. "나는 이제 앞으로는 당신도 밥을 잘할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소." 그말에, 악불이는 배시시 웃었다. "그래요. 저는 정말 다음에는 좀더 잘할수가 있을 거예요. 하지만, 이미 점심때가 되었으니 이리와서 제가 만든 죽을 한번 드셔보시겠어요?" 악불이는 말과 함께 백룡생을 솥앞으로 이끌었다. 그리고는 솥뚜껑을 열더니 그속에서 김이 펄펄 나는 괴상한 죽을 한그릇 그에게 떠서 건네주는 것이었다. 그 죽에는 여러가지 채소나 생선따위가 들어가 있어서 실로 괴상하기 이를데가 없었다. 그러나, 제법 겉으로는 짙은 구수한 냄새가 풍겨나왔다. 이에 백룡생은 숟가락으로 그 죽을 떠서는 맛을 보았다. 헌데, 일순 그의 얼굴은 다소 괴이하게 일그러지지 않을수가 없었다. 그 죽의 원료인 쌀은 원래가 새카맣게 탔던것을 끓인 것인데다가, 지나치게 양념을 많이한 때문에 몹시 짜고 쓰디썼다. 아마 이런 음식을 설사 거지라고 해도 먹을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백룡생은 단지 처음에 조금 얼굴을 일그렀을 뿐 이어 아주 태연하게 한그릇을 깨끗이 비우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가 여태 음식을 가리지 않는 습성이 붙어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것을 보고 악불이가 다소 놀란듯이 물었다. "어떤가요? 맛이 좋은가요?" 그녀는 자신이 맛을 보기에도 이상하던 것을 백룡생이 아주 맛있게 먹어치우는 것을 보고는 의아하게 생각하며 다시 물었다. "한 그릇을 더 드릴까요?" 백룡생은 비록 음식을 가리지 않는다고해도 이렇게 입안을 괴롭게 하는 음식은 자연 먹고싶은 마음이 일지 않았다. 그러나, 악불이를 무안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 그는 담담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겠소" 이어, 악불이가 빠르게 다시 한그릇을 더주는 죽을 그는 그자리에서 재차 깨끗이 비우고 말았다. 그리고는 악불이를 향해 말했다. "이 죽의 맛은 괜찮지만 그 도장어른은 이런것을 좋아하지 않으니 내가 밥을 다시 해야겠소." 그 말에, 악불이는 그제서야 이 죽의 맛은 그녀가 맛본 그대로 아주 괴이한 것이며, 백룡생은 단지 그녀를 위해 맛있게 먹어주 것이라는 사실을 알수가 있었다. 그런데도 자신은 한그릇 더 먹으라고 했으니 어찌 얼굴이 붉어지지 않을수가 있겠는가? 하지만. 조금전에는 심한 정신적인 불안감으로 의기가 소침해 있기는 하지만 그녀의 성격은 원래가 매우 활달했다. 그녀는 즉시 쾌할하게 웃으며 일어나서 말하는 것이었다. "그분의 취미가 그렇게 다르다면 할수가 없죠. 그럼 이건 제가 갖다 버리겠어요!" 이어, 그녀는 모옥의 마당앞에 하나의 작은 구덩이를 파서는 그 죽을 전부 쏟아버리고 빠르게 흙을 엎어서 묻어버렸다. 그것을 보고 백룡생은 몸을 움직여서 솥을 다시 깨끗하게 씻어내고 새로 밥을 하고 반찬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가 그러한 일을 하는 것은 이미 십여년이 넘은 것이었기 때문에 매우 능숙하고도 빠르게 움직였다. 금방 쌀을 씻어서 밥을 해 앉히고 몇가지의 반찬을 만드는것 같은데 벌써 밥은 다 익어 맛있는 구수한 냄새를 풍겨내고 있었다. 악불이는 자연 그 재주에 감탄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백룡생은 이때 악불이를 위해서 평소보다 몇가지의 반찬을 더 만들었다. 그 깨끗하고 정갈한 솜씨를 보고 악불이는 옆에서 구경을 하다가 참다못해 입을 열어 물었다. "당신은 대체 언제 이런것을 배웠는데 이렇게 잘하죠?" 백룡생은 그말에 잠시 손을 멈추고 기억을 더듬는듯 하더니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이렇게 혼자서 밥을 해 먹고 살았소. 그때가 아마 다섯살 정도였던것 같은데... 그후, 한분 어르신의 도움을 받아서 함께 살게 되었지만 역시 나는 그분을 이렇게 시중드는 것이 일이었소." 그 말에, 악불이는 일순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럼 당신의 부모는 일찍 돌아가셨나요?" 백룡생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소 우수에 찬 표정을 보였다. "그렇소. 나의 아버지는 평소 몸이 좋지 않으셨는데 어느날 갑자기 사고를 당하시어 돌아가시고 말았소. 그러자 나의 어머니는 병을 얻게 되셨는데, 아마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일년이 채 되지 않아서 돌아가셨을 것이오. 그때에는 내 나이가 어려서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오." 이에, 악불이는 문득 눈물을 글썽거리며 애처로와하는 눈빛을 했다. "당신은... 당신은 원래 그러한 과거가 있었군요? 그런데도 당신은 이렇게 훌륭하게 성장했으니 정말 대단해요!" 이어, 그녀는 웬지 다소 어두운 표정을 하더니 말했다. "실은... 나도 어렸을때 어머니를 여의었어요. 저의 어머니는 내 남자동생을 낳고는 산후조리가 좋지 않아서 돌아가시고 말았어요. 저는 그래서.. 그래서 늘 마음속으로는 어머니가 그리웠어요."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두눈에는 일순 짙은 외로움이 떠올라 있었다. 백룡생인 내심 그렇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다소 고개를 끄덕이고는 웃으며 물었다. "하지만 불이는 아버님이 계시니 마음이 든든하지 않겠소?" 그말에, 악불이는 고개를 묵묵히 끄덕였다. 그러다가 문득 가벼운 한숨을 토하며 입을 열었다. "저의 아버지는.. 휴우, 아주 좋은 분이시죠! 인품도 그렇고 무공도... 원래는 그분은 화산파의 일개 제자였다고 해요. 그런데 전대장문인의 눈에 들어서 나중에 장문인이 되시고 혼인도 하신거죠." 백룡생은 무득 생각나서 물었다. "그럼 불이의 어머니는 역시 전대장문인의 딸이었단 밀이오.?" 원래 백룡생은 현진자가 가져다준 서책을 읽고 거의 이러한 강호인들의 사연에 대해 정통해 있었다. 그는 다만 확인하기 위해 물은것 분이었다. 과연, 악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분은 바로 선우씨였어요. 그런데 저의 아버님은 자신이 그러한 길을 겪으셨으면서도 만일 자신이 아들을 낳지 못하게 되면 다시 사위에게 화산파를 물려주어야 한다고 생각을 하시고는... 아들을 낳기를 학수고대하셨어요. 그러다가 무리하여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말았지요." 악불이가 그렇게 말하는 가운데에는 왠지 심상치 않은 아련한 슬픔이 배어 있었다. 그녀는 원래 매우 쾌활하여 전혀 슬픔잉라고는 모르는 맑은 여자인줄로만 알았는데, 인간의 생에 구석구석에는 이렇게 항상 고통이 잠재하고 잇는 모양이었다. 백룡생은 굳이 그녀의 심사를 건드리고 싶지 않아서 말머리를 조금 돌렸다. "하지만 불이의 아버님은 지금 불이를 매우 잘대해주고 있지 않소?" 악불이는 그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아주 잘대해주고 계시죠. 다만 그분은 아들인 운비를 지나치게 편애하는 나머지 장차 그아이가 바르게 자라날지가 걱정스러워요." 그렇게 말하고 나자, 문득 악불이는 그런 일체의 생각을 떨쳐버리려는 듯이 활짝 웃었다. 이어, 그녀는 백룡생이 이미 반찬을 다 만들었음을 보고는 명랑하게 말했다. "그럼 이제 우리 어서 밥을 먹도록 해요!" 그러다가, 문득 백룡생의 안색이 의아하게 변하는것을 보고 그녀는 웃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사실... 사실 저는 그 죽을 먹지 않았거든요? 당신은... 당신은 혹시 속이 좋지 않은것은 아닌가요?" 악불이는 안색이 빨갛게 물들어서 그에게 물었다. 백룡생은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나는 뱃속이 워낙 튼튼하여 무쇠라도 녹일수가 있으니 안전하오. 사실 나는 당신을 위해 반찬 몇가지 더 만들었으니, 어서 이리와서 함께 식사를 들도록 합시다. 그리고는, 그는 얼른 방안으로 들어가서 악불이가 안에 들여다 놓은 그 아침상을 치워버리고 우선 현진자의 상을 차려서 다신안에 들여놓은 다음에, 두 사람은 다시 함께 바닥에 음식을 펼쳐놓고 마주앉았다. 악불이는 이미 자신의 밥을 떠놓았는데도 백룡생이 다시 커다랗게 밥한그릇을 다시 뜨는 것을 보고는 일시 놀라서 물었다. "당신은 그렇게 많이 먹어도 괜찮나요?" 그말에, 백룡생은 짐짓 자신의 아랫배를 툭툭치면서 웃으며 말했다. "나는 평소에 이것을 두그릇을 먹어야 힘이 난다오. 그리고 가끔은 밥을 못먹을 대가 있었기 때문에 든든히 먹어두는 버릇이 생겼소." 악불이는 그말에 이해한다는듯 고개를 끄덕였다. 당시는 일반 사람들이 매우 가난하여 어떤 사람들은 흉년이 한번들면 심하게 굶주려서 풀뿌리를 캐어먹기도 하고 때로는 굶어죽기도 했다. 그래서, 강호에는 도적들이 늘어나게 되었고, 그 도적들의 대표적인 중심체가 바로 며칠전에 소림사를 거의 궤멸시켰다는 녹림맹이었다. 악불이는 비록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서 그러한 고통을 겪어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주위에서 겪는것을 보지 않을수는 없는 것이어서 가난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능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아마도 백룡생은 어렸을때에 매우 심한 고생을 했을 것으로 짐작되었다. 그리고, 으례 그러한 사람은 항상 밥을 든든히 먹어두는 습관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악불이는 백룡생에게 환히 웃어 보이면서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녀가 밥을 먹는 모습은 백룡생과 매우 달랐다. 백룡생은 숟가락에 흰밥을 가득 떠서는 입에 먹고 그저 아무 반찬이나 다시 입에 넣고는 우걱우걱 삼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악불이는 매우 배가 고프다고 하면서도 겨우 조금씩 밥을 때어서 입에 넣고는 반찬도 겨우 맛만 보는 시늉을 할 뿐이었다. 그러면서 가끔 명랑하게 웃곤 했다. 이러한 식사습관은 그녀가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났기 때문이며, 먹는것에 그다지 구애를 받지않고 살아왔기 때문이었다. 그녀느 백룡생이 가득담은 밥한그릇을 거뜬하게 비우는 동안 겨우 한그릇의 절반도 먹지 않고서 숟가락을 놓았다. 그리고는 말했다. "당신의 음식솜씨는 정말 훌륭해요. 나는 정말 맛있게 먹었어요." 백룡생은 전날 무창성에서 그녀가 아주 훌륭한 요리앞에서도 그처럼 깨작거리고 있었던 것을 보았는지라 이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웃어넘겼다. 그리고는 물었다. "그렇게 조금 먹어서 혹시 나중에 몸이 허약해지지 않겠소?" 그말에, 악불이는 새침하게 그를 향해 웃더니 말했다. "흥, 그렇다고 나더러 돼지가 되라 이건가요?" 이어, 그녀는 명랑하게 웃더니 빠르게 움직여서 식사한 그릇들을 한쪽으로 가져가서 씻기 시작했다. 비록 그녀는 자신이 음식을 만들지 않았어도 이런 그릇씻는 것쯤은 자신이 해야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면서 그녀는 문득 생각했다. (그의 음식 솜씨는 매우 대단한 편이다.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결코 그를 따라갈수가 없을것 같아! 그렇다면 앞으로는 그가 음식을 만들고 이렇게 나는 그릇만을 씻는것으로 할까?) 악불이는 그릇을 씻고있던 손을 멈추고 잠시 곰곰히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가 그녀는 이내 고개를 내젓고는 내심 중얼거렸다. (아니야, 아니야! 그는 훌륭하여 나중에 강호의 대협이 될지도 모르는데 내가 주방일까지 시킨다면 남들이 웃을지도 몰라. 나는 비록 솜씨가 없다고 하더라고 결코 그에게 이런 일을 시키지는 말아야 하겠다!) 일단 그런 생각을 하고나자 그녀의 마음은 더욱 흥겨워졌다. 이것은 바로 얼마전에 백룡생이 갑자기 사라졌음을 알고 매우 불안과 초조감에 떨고있었던 때와 비교하면 천지차이였다. 이때, 백룡생은 한쪽에 걸터앉아서 악불이가 그릇을 씻고 청소를 하는 것을 미소띤 얼굴로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가벼운 인기척이 들려와서 고개를 돌려보니 현진자가 절봉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이에, 백룡생은 즉시 자리에서 일어서서 그에게 인사를 했다. "이제 오시누군요? 방안에 이미 상을 차려놨으니 어서 식사를 드시지요?" "..." 그말에, 현진자는 잠시 괴이한 시선으로 뚫어질듯 백룡생의 얼굴만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그는 일시 가벼운 한숨을 내쉬며 말없이 자신의 방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에, 백룡생은 다소 어색한 표정으로 서있더니 곧장 다시 아무렇지 않은 태도로 자리에 앉아서 흥겨운 모습으로 설겆이를 하고 있는 악불이의 등을 바라보았다. 악불이는 명실공히 강호의 여인이라고 말할수가 있었다. 그녀의 피부는 백옥같이 투명하고 허리는 잘록하여 전신에 탄력이 넘쳤으며, 풍만하게 근육으로 솟아오른 펑퍼짐한 엉덩이의 옆에는 허리에서부터 걸려있는 한자루의 장검이 매달려 흔들거리고 있었다. 게다가, 전체적으로 순결하고 깨끗한 분위기는 그녀를 혹시 선녀가 아닌가 하는 착각이 일도록 만들* 그러는데, 그런 그녀가 저렇게 설겆이를 하고 있자 문득 또다른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백룡생은 물론 그녀의 전신굴곡을 보며 음탕한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다소 마음이 울렁거리는 것을 느끼고 즉시 고개를 돌려 먼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에는 몇개의 흰구름들이 두둥실 떠가고 있을뿐 아주 쾌청하고 거의 바람도 없었다. 하지만, 이 하늘은 이제 언제 다시 먹장구름이 몰려와 비바람을 뿌리고 눈보라를 휘날릴지 알수가 없는 것이다. 마치 그와 같이, 인간의 삶도 그러하다. 백룡생은 내심 자신의 마음의 수양을 자신하고 있었지만 언제 그것이 깨어지고 위험하게 될지는 알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그것은 현진자의 생각만 해도 수긍이 가는 일이었다. 현지나, 그느 이미 그에게 두번이나 완전한 살의를 가지고 암습을 했었다. 처음에 백룡생은 깊은 명상에 잠겨있다가 자연 마음이 맑아져서 현진자가 아주 빠르고도 은밀하게 뒤로 다가오고 잇는것을 알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뒤에 벌어진 그의 행동은 순전히 임기응변적인 것이었다. 백룡생의 무의식중에 그의 무서운 일수를 피했으며, 그로인해 그가 매우 무안해질 것을 생각하여 본의아니게 다른 짓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바로 태극혜검법의 시전이었다. 백룡생은 이미 무예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었는데 그가 구태여 그순간에 그러한 것을 연마하고 있었을리는 없는 일이었다. 현진자가 만일 그러한 사실을 알았더라면 그는 능히 백룡생이 딴청을 떨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한순간 긴가민가 했고, 그러다가 백룡생의 동작을 보고는 뭔가 무예일반에 적용할수가 있는 거대한 깨달음을 얻었다. 백룡생은 이것을 보자 자연 몸놀림을 더욱 자세하게 만들어서 그로하여금 얻는것이 많도록 했고 그의 의도는 적중되었다. 현진자는 그 한순간에 많은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끝가지 자신이 깨우침을 얻은것이 백룡생이 도와준 덕분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그는 그것에 감사하기는 커녕 이어 두번째의 암습을 시도했었다. 만일 그때에도 백룡생이 그의 몸에 진기를 불어넣고 있어서 그의 진기의 흐름이 기이하다는 것을 유의하지 않았다면 자칫 무슨 일이 생겼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물론, 백룡생은 현진자가 비록 칠성수의 수법으로 암습을 가하더라고 얼마든지 견딜수가 있었고, 그것은 그의 금강불괴의 몸에 전혀 상처를 입힐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일단 그렇게 암습이 드러나게 되면 그와 현진자와의 사이는 매우 어색하게 변할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래서, 백룡생은 매번 번번히 우연한듯 피해버렸던 것이다. 허나, 아마도 현진자는 그 살의를 아직 버리지 않은것 같고, 모르긴 몰라도 더욱 무섭고 음독한 방법으로 그에게 손을 써올 것이다. 그리하여 자칫 그가 현진자에게 목숨을 잃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백룡생은 이미 마음의 평정이 이루어 져 있기 때문에 그러한 것은 걱정하지 않았으나 다소 마음이 씁쓸한 것은 어쩔수가 없었다. 현진자가 그를 헤치려는 것은 분명 이유가 있을 테지만, 백룡생은 그 이유를 알지 못할뿐 아니라 알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단지, 그가 자신을 오해하여 그러는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 따름이었다. 그렇다면 그가 다소의 인내를 보여주기만 하면 그는 마음을 돌리지 않을까? 허나, 백룡생은 지금 마음은 그가 마음을 돌리는 것에도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의 마음은 평온했다. 그는 이미 현진자가 아까 자신을 따라오다가 한참 동안이나 암벽의 중간에 머물면서 뭔가 고심을 했던것을 알고 있었으나 단지 자신의 마음의 평정만을 생각하며 신경을 쓰려고 하지 않았다. 그것이야말로 진정으로 바른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때, 문득 하늘을 바라보며 잠시 상념에 젖어있는 백룡생의 뒤에 가벼운 기척과 함게 악불이가 다가오며 입을 열었다. "백랑! 우리는 먼저 한가지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녀는 전에는 다소 백룡생이 멍청하다고 해서 깔보는 경향이 있었으나 이제는 순순히 그의 말을 들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의견을 묻고 있었다. 백룡생이 고개를 돌려보니, 악불이는 이미 설겆이와 청소를 깨끗하게 끝내놓고 화사하게 밝은 모습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백룡생은 웃으며 물었다. "무슨 일을 해야할것 같소?" 악불이는 짐짓 가볍게 눈을 흘기더니 대답했다. "여기서 방이 겨우 하나분인데 나도 당신처럼 부엌에서 자라는 말인가요?' 그말에, 백룡생은 일순 아하 하는 흠칫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여태 여자를 시중들어보지 않아서 남녀가 함께 잠자릴를 같이하기가 매우 까다롭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백룡생은 악불이의 말을 알아듣자마자 즉시 지라에서 일어났다. "그럽시다! 우선 방을 만들자면 내가 아래로 내려가서 나무를 해와야 하겠군?" 악불이는 그말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그렇게 하도록 하세요!" 그말에, 백룡생은 문득 고개를 돌리며 그녀에게 물었다. "당신은 혹시... 내가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 불안하지 않소?" 이것은 그가 웃으며 물어본 것이었다. 이에, 악불이는 문득 가볍게 흠칫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지 않아요. 만일 당신이 나를 버린다면 나는 즉시 이곳에서 떨어져서 죽어버릴것이고 당신은 죽어서 지옥에 떨어지게 될테니까요." 그녀는 아마 전에 백룡생이 했던 맹세의 내용에 대해서 깊이 믿고 있는 모양이었다. 백룡생은 담담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이 죽을일도 없고 내가 지옥에 떨어질 일도 없을테니 안심하시오!" 그렇게 말하고는 그는 순간 번쩍 신형을 날려서 빠르게 옥검봉을 내려갔다. 그리고는, 근처에 있는 굵고 곧은 나무 몇그루를 베어서 들고 위로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한 일은 만일 보통사람이 한다면 어렵고도 여려운 일이 되었겠지만, 백룡생이 한번 움직이기 시작하자 빠르기 그지없었다. 악불이는 불과 방금전에 아래로 내려간듯 했는데 어느새 그가 다시 나타나서 거대한 통나무를 내려놓는 것을 보고는 일순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녀는 설사 자신의 아버지인 악군산이라고 할지라도 이러한 놀라운 공력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문득 이런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는 혹시 근처에 미리 이러한 것들을 준비해 놓고 그것들을 가지고 오는것이 아닐까?) 그리하여 그녀는 그에게 다시 말했다. "백랑! 우리는 거의 집을 하나 새로 지어야 하는데 아무래도 이렇게 몇개의 통나무만으로는 모자랄것 같아요. 어서 가서 더 많은 나무들을 가져오도록 하세요!" 헌데, 그말이 떨어지고 부터였다. 불과 반시진이 되기도 전에 이 절봉의 앞마당에는 그야말로 굵은 나무들이 가득 쌓이는 것이 아닌가? 이것을 보고 악불이는 내심 경악하여 생각했다. (역시 백랑의 무공은 우리 아버지보다도 월등하구나! 게다가, 그는 그는... 얼굴도 매우 준수하니 일단 강호에 나가면 많은 여자들이 달려들 것이 틀림없어! 나는 그에게 미리 그러한 맹세를 시킨것은 매우 잘한 일이라고 할수가 있겠구나!) 그녀가 그러한 생각을 하게된 것은, 우선 이 통나무들이 어디서 그냥 가져오는 것이라면 이렇게 그 잘려진 면이 생생할리가 없으며 또한 그것이 이렇게 많을리가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백룡생이 혹시 다른 여자의 꼬임에 넘어가게 될까봐 잠시도 주위를 게을리 하지말아야 하겠다고 새삼 다짐하는 것이어었다. 이어, 통나무가 모두 준비되자 백룡생은 악불이와 함께 의논하여 부엌의 옆에 따로 방 하나를 만들기 시작했다. 모옥은 원래 통나무로 만들어진 것이었기 때문에 문을 만드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악불이는 자신의 장검을 뽑아들어서 통나무들의 잔가지를 잘랐고, 거기에 백룡생이 낫을 들어서 한번씩 가볍게 내리칠때마다 굵은 통나무가 아주 매끈하게 잘려져 나갔다. 백룡생은 우선 그것들을 아랫부분이 뽀족하게 깎아가지고 부엌의 옆으로 와서는 일정한 네모진 모양으로 땅바닥에 박기 시작했다. 그가 그것을 땅바닥에 박는것은 실로 간단했다. 단지 그가 통나무의 중간을 쥐고 아래로 가볍게 힘을 주기만 하면 그것은 여지없이 아래로 튼튼하고도 깊숙이 박히는 것이었다. 백룡생은 그 통나무들을 네모진 형상으로 빈틈없이 매끈하게 부엌에 이어지도록 삼면에 박아서 하나의 방의 형상을 만들었다. 그리고는, 통나무의 윗쪽의 높이를 낫으로 똑같이 잘라서 맞춘다음, 다시 곧은 통나무들을 골라서 지붕대신 그위에 빽빽하게 걸쳤다. 그리고, 악불이가 장검으로 잘라놓은 작은 나무못들을 공력을 이용하여 그 통나무에 박아서 그것이 아주 견고하여 흔들리지 않게 했다. 일단 그렇게 하고 다듬어 놓자 하나의 아늑한 방이 완성된듯 했다. 백룡생은 거기에 사방에 갈잎들을 빈틈없이 채워서 바람이 전혀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했고, 역시 가져온 나무로 하나의 침상을 만들었다. 그것으로 일단 방을 만드는 일은 끝난 셈이었다. 두사람이 열심이 정돈하고 청소를 하고나자 이윽고 저녁무렵이 되었다. 악불이는 비록 다시는 백룡생에게 부엌일을 시키지 않겠다고 생각을 했었지만, 지금은 자신이 달리 할일이 있는지라 그에게 밥을 짓도록 하고 자신은 새로만든 방을 깨끗하게 청소했다. 이제 그곳은 그녀가 자게될 방이 되겠기 때문이었다. 이곳 고봉의 날씨는 저녁무렵이 되자 상당히 추었다. 비록 백룡생과 현진자에게는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아직 내공이 일천하고 여자인 악불이로서는 다소 추위를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백룡생이 가져다주는 갈잎을 침상위에 깔고 그위에 가죽을 덮은 다음에 그위에 정좌를 하고 앉아서 운공조식을 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배운 내공심법은 바로 화산파의 제일신공이라고 할수가 있는 자하신공이라는 것이었다. 원래, 이 자하신공은 화산파의 장문인만이 배울수가 있는 것이요. 다른 제자는 반드시 그다음의 신공인 태을신공이라는 것을 수련해야 하지만, 악불이가 어렸을 적에 그녀의 어머니가 그녀에게 이 자하신공을 특별히 배우도록 했기 때문에 그녀는 이 자하신공과 더불어 역시 화산파의 제일검법인 매화검법을 배우게 되었다. 물론 그 두가지 무예는 지극히 심오하여 악불이는 이제 겨우 일 이성의 단계에 머물고 있지만 갈수록 그 묘용에 감탄하는 바가 적지 않았다. 환산파의 일반제자들은 먼저 이 태을신공을 배우면서 삼재검법을 배워야 하고, 뒤이어 육합검법을 배워서 차례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이밖에 화산파의 무예로는 역시 태을검법이 있고, 죽엽수라는 절기가 있었다. 이중에서 죽엽수는 이른바 장문인의 호법무공으로 위력이 극맹하기로 소문난 것이기도 했다. 이밖에도 물론 여러가지가 더있으며 그가운데 자하강기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자하신공이 일단 십성이상의 경지에 올랐을때 펼쳐낼수가 잇는 지극히 파괴적인 이름난 강기무공을 말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위에서 말했듯이 가불이가 배운것은 자하신공과 매화검법, 그리고 그밖의 신법과 보법, 지법 등이었다. 악불이는 잠시 운공조식에 몰두하여 거의 무아지경에 들어갖자 점차 그녀의 전신에서는 은은한 자색의 안개같은 기운이 희미하게 어리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자하신공의 특징인 것이다. 만일 이 자하신공을 십이성의 단계에까지 연성하게 되면 그는 그 자색의 안개로 자신의 몸을 감출수도 있고 강기 무예를 펼칠수도 잇는 것이다. 악불이는 한참동안 우공조식을 하고나자 비로소 추위가 물러가고 전신에 따듯한 기운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그녀의 화후는 이제 겨우 일 이성의 경지에 불과했지만, 그리고 그녀의 주위에 피어오른 자색의 안개는 희미하기 짝이 업었지만 그것으로도 추위를 물리치기에 충분했다. 이어, 그녀는 운공조식을 마치고 침상위에서 일어나자, 이미 습관처럼 자신의 장검을 뽑아들어 매화검법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이 매화검법은 모두 삼십육식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인데, 그녀에게 전수된 것은 고작 칠식에 불과했다. 그러나, 다만 칠식이라고 해도 결코 얏볼수가 없는것이 바로 이 매화검법이었다. 이 검법이 매화검법이라고 불리우게 된 것은 일단 검법을 시전하게 되면 검기가 마치 매화가 피어오른 것처럼 그러한 형상을 이루면서 폭발적으로 생겨난다는 것인데, 그 화후는 바로 매화송이의 갯수로써 알수가 있다고 말할수가 있었다. 그러니까, 매화검법의 최초일식을 터득하면 하나의 매화송이를 만들수가 있고, 칠식을 터득하면 모두 일곱개의 매화송이를 만들수가 잇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 매화송이라고 하는것은 그야말로 변고 환, 그리고 산의 이치가 어우러진 검법의 극치라고 말할수가 있었다. 악불이는 비록 칠식가지 전수를 받았지만 그녀의 능력으로 펼칠수가 있는 것은 겨우 세송이의 매화에 불과했다. 그러나, 비록 그 세송이의 매화라고 할지라도 실로 위력이 막강하여 , 악불이는 지난날 얼마간 강호를 돌아다닌 적이 있었는데 그것으로 인해 거의 낭패를 당하지 않았었다. 그럼 이 매화검법의 최고봉은 어떠한 것일까? 이 이야기는 누구도 알고 잇는 것이지만, 매화삼십육식을 모두 터득하면 모두 서른여섯개의 매화송이를 만들수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매화검법의 최고봉은 서른여섯개의 매화송이가 아니라 모두 백팔개의 매화송이였다. -- 백팔개의 매화송이, 대체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는 알수가 없지만, 그리고 그러한 검법이 자기 실제로 전해지고 있는지는 알수가 없는 노릇이지만, 화산파의 역사속에는 분명히 그러한 검법을 터득한 예가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도 분명 매화검법이라느 것이다. 이는 마치 전설같은 이야기이고 믿을수도 없는 이야기지만, 화산파는 그로인해 일대검문으로서의 신화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쐐쐐쐐기... 일시 악불이의 주위에서 살엄하기 짝이없는 매서운 검기가 일어나면 그녀의 전면에 문득 폭발하듯 백색의 매화송이가 피어올랐다. 그것은 하나에세 둘로, 둘에서 셋으로 천천히 늘어나더니 더이상은 늘어나지 못하고 악불이의 주위를 맴돌았다. 악불이는 뒤이어 매화사식부터 매화칠식가지 펼쳤지만 역시 세개의 매화송이밖에 만들지 못하자 검법을 멈추고 소매를 들어 이마에 솟아난 땀을 닦았다. 장검을 다시 허리춤에 집어넣고 나자 어느새 그녀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백옥같은 얼굴에 이러한 붉은 홍조는 매우 아름다운 면모를 보여주었다. 바로 이때, 새로 만든 부엌쪽의 문이 열리며 백룡생이 새로 나무로 만든 상위에다 음식들을 가득 닦고는 안으로 들어왔다. 저녁식사가 이제 모두 준비된 것이다. 기실, 백룡생은 번쩍 식사준비를 완료하고 현진자의 방에 식사를 갖다준 다음에 이방으로 들어오려다가 악불이가 검술연마를 하고 있음을 보고는 잠시 기다렸던 것이다. 백룡생이 안으로 들어서자 악불이는 즉시 그에게 물었다. "백랑! 당신이 보기에는 저의 검법은 어떻죠?" 검법을 배우는 사람으로써 무예가 고강한 사람에게 평가를 받고싶은 것은 당연한 현사이었다. 백룡생은 그녀의 곱게 상기된 얼굴을 한번 바라보더니 웃으며 대답했다. "당신의 검법은 아주 보기가 좋소." 그말은 그냥 들으면 칭찬하는듯도 하지만, 뭔가 의미심장한 것이 있다고 여거져서 악불이는 일순 다시 물었다. "그럼 훌륭한 검법은 아니란 말인가요?" 백룡생은 그말에 고개를 내저었다. "그럴리가?... 아주 훌륭한 검법이오!" 허나, 악불이는 한번 의문이 생긴점은 그냥 넘긴적이 없는 여자였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악군산이 그녀에게 별로 신경을 써주지 않는 상황에서도 무려 세송이의 매화송이를 만들수는 없었을 것이다. 악불이는 아미를 살포시 찌푸리더니 다시 물었다. "백랑! 당신은 저에게 사실대로 말씀해 주셔야 해요, 사실 저의 검법은 겉고기만 그러듯할뿐 실속은 없다는 뜻이 아닌가요?" 백룡생은 잠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웃으며 대답했다. "지금 굳이 그런것을 따져서 무엇하겠소? 음식이 식으니 우선 식사부터 하도록 합시다!" 그러나, 악불이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고는 즉시 냉랭하게 코읏음을 치며 말했다. "흥! 당신은 저를 무시하기만 하고 위해주고 공경할줄은 모르는군요? 어째서 일부러 말을 회피하는 거죠?" 그말에, 백룡생은 다소 난감한 표정을 떠올렸다. 그는 원래 자신이 무예에 관심 없는 사람이고 그래서 그녀에게 무예를 배워서 무엇하겠느냐는 식으로 말한 것인데 그녀는 굳이 평가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하는 수 없이 대답했다. "그 검법은 매우 훌륭한 것이오. 그러나, 만일 무림고수를 만나면 헛점을 찔리게 될 것이오." 악불이는 미리 이러한 것을 예측하고 있다가 다시 물었다. "그건 왜 그렇죠?" 백룡생은 대답했다. "그것은 비록 훌륭한 검초이긴 하지만 살아있는 검법이 아니기 때문이오." -- 살아있는 검법, 그러한 얘기를 듣자 악불이는 문득 곤혹한 눈빛을 흐렸다. 그녀는 언젠가 무림명숙들에게 그러한 얘기를 들은적이 있었다. 그 살아있는 검법이란 바로 검초의 경지를 벗어난 심검의 경지를 말하는 것이었다. 이 심검이야말로 검초를 벗어났고 살아있기 때문에 검법의 진정한 정수 라고 말하는 것을 우연히 흥미롭게 들은적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대체 그 심검이란 것이 어떠한 것이며, 또한 그런것을 터득한 사람이 무림에 있는지조차 아직 그녀는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백룡생이 갑자기 그런 애기를 꺼내자 그녀는 의아해진 것이다. (혹시 백랑은 그 심검을 이미 터득한 것이 아닐까?) 그리하여 그녀는 물었다. "끄럼 당신은 그 살아있는 검법을 알고 있나요?" 백룡생은 그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잠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문득 숟가락 하나를 들어서 곧장 그녀의 목부위로 찔러갔다. 슈우, 그 움직임은 일면 아주 느려 보었다. 악불이는 그것을 보고 일순 자신이 어떠한 검법을 펼려서 저것을 막을수가 있을까하고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거의 알장밖에서 느릿하게 질러오던 그의 숟가락이 어느새 그녀의 목부분에 닿아있는 것이 아닌가? "...!" 이것을 보고 악불이는 일순 안색이 대변했다. 그녀는 비록 무예는 별로 높지는 안으나 많은 화산제자들의 연공하는 장면을 보아왔고 또한 무림명숙들의 절기를 구경할 시간이 많았었다. 그리하여 어느정도의 기본상식은 갖추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 백룡생이 펼친 이러한 검법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할수가 없었다. 상식대로라면 백룡생이 내미는 느릿한 숟가락은 매우 느려서 아직 알장의 절반도 오지 못했어야 옳았다. 그런데 갑자기 그녀의 숟가락에 느닷없이 닿아버린 것은 갑자기 그간의 공간을 뛰어넘은것 같지 않은가? 아니, 확실히 악불이는 처음에는 그의 숟가락을 보았었는데, 갑자기 그 다음부터는 증발된듯 불수가 없었다. 그런 순간에 이미 그녀의 목부위에 닿아 있었던 것이다. 악불이는 그것을 매우 유의해서 보았기 때문에 그러한 것을 알수가 없었는데, 이것은 괴이하다면 괴이하고 또한 빠르다면 지극히 빠른 검법이 아닌가? (이런것을 살아있는 검법이라고 말하는 걸일까?) 악불이가 잠시 멍하니 생각해 잠겨 있을때, 백룡생은 숟가락을 거두며 그녀를 향해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 이에, 그녀는 그에게 급히 물었다. "그게 바로 살아있는 검법인가요?" 백룡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악불이는 의아해졌다. "대체 그것은 어떻게 해야 배울수가 있는 것이죠?" 백룡생은 즉시 대답했다. "마음의 요체를 터득하면 배울수가 있소." 악불이는 눈빛을 빛내며 다시 물었다. "그 마음의 요체는 어떻게 해야 배울수가 있죠?" 백룡생은 대답했다 "우선, 그것을 배우자면 무공을 멀리해야만 하오." 그말에, 악불이는 잠시 생각하다가 곧 피식 웃고 말았다. 그녀는 이 심검이라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가 백룡생에게 물어본 것은 단순한 호기심에서이지 그것을 알아서 터득하겠다는 욕심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런데, 마침 백룡생이 살아있는 검법을 배우려먼 오히려 무공을 멀리해아 한다고 말하자 이는 그가 거기에 대해서 말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피식 웃어버린 것이다. 기실, 그녀의 상식으로는 무공을 배우려는 데 무공을 오히려 멀리해야 한다니, 이게 어디 될법이나 한 소리이겠는가? 그녀는 백룡생이 그녀에게 무공에 신경쓰지 말고 어서 식사를 하자는 뜻으로 받아들여서 곧장 웃으며 그의 손에서 상을 받아들었다. 그리고는 그것을 바닥에 내려놓고 백룡생에게 숟가락을 건네준 다음에 그와 함께 저녁식사를 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녀가 다시 물었다. "만일, 제가 아까 펼쳤던 매화송이를 백팔개나 펼칠수가 있다고 한다면 그래도 그 살아있는 검법을 당해낼수가 없을까요?" 악불이는 마침 생각나서 화산파에 내려오는 전설에 대해서 그에게 물어본 것이었다 백룡생은 잠시 생각하다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것은 일률적으로 말할수가 없소." 악불이는 의아해져서 물었다. "그건 왜죠?" 백룡생은 웃으며 대답했다. "애냐하면 매화검법을 그정도로 펼칠수가 있다고 하는 것은 이미 그 자체가 살아있는 검법이기 때문이오." 백룡생은 이미 물론 화산파의 절기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그말에, 악불이는 문득 눈을 휘둥그래 뜨고 생각했다. (아아, 역시 그렇겠구나!) 그렇다. 원래 이 백팔개의 매화송이를 만들어 낸다고 하는 것은 인간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제 20 장 암습(III) 그것이 가능하다고 한다면 어째서 매화검법은 삼십육식밖에 없겠는가? 당연히 백육식이나 백칠식, 그리고 백팔식까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역시 백팔개의 매화송이가 펼쳐질수가 있다고 하는 것은 심검이 아니고는 불가능하리라고 생각이 들었다. 심검은 말 그대로 인간의 육신의 한계를 벗어난, 마음으로 펼치는 무예이기 때문이었다. 악불이는 밥을 먹다말고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그에게 물었다. "혹시 그럼 그것을 깰수가 있는 살아있는 검법이 또한 있을수가 있다는 말인가요?" 백룡생은 이미 거의 한 그릇의 밥을 다 먹고 있었다. 그는 이어 다른 그릇의 밥에 손을 대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요." 백룡생은 실로 무예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그녀가 묻는대로 자세하게 대답하지 않았다. 악불이는 즉시 다시 물었다. "그건 어째서죠? 똑같이 살아있는 검법이 아닌가Y?' 백룡생은 우거우걱 음식을 씹다가 일시 그녀를 바라보며 그것을 꿀꺽 삼키고는 대답했다. "살아있는 검법에도 여러가지 종류가 있고 많은 차이가 있소. 만일 마음의 요체를 가장 바르게 터득한다면 그는 가장 완전한 살아있는 무예를 펼칠수가 있을 것이오." "...?" 악불이는 그의 대답을 들었지만 일시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단지 그녀는 이 심검이란 세계에도 무수한 단계가 있어서 모두가 똑같지 않고 그차이가 대단하다는 것을 느낄수가 있었다. 악불이는 그렇게 생각하다가 문득 자신의 생각이 옳은지 확인하기 위해 다시 물었다. "그 살아있는 무예라는 것은 강호에서 말하는 심검이라는 것과 본질적으로 같은 건가요?" 백룡생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은 살아있다고 할수가 있으니, 가히 그렇다고도 말할수가 있소." 기실, 백룡생은 일반 강호의 소식과 그 무예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 보다 깊은 상승무예의 경지를 다른 책자를 아직 보지 못해서 심검에 대해서도 아직 들어보지 못하고 있었다 이때, 백룡생이 밥을 다 먹자 악불이도 똑같이 숟가락을 놓았다. 그녀는 아주 조금만 먹었을 뿐인데 그것으로도 상관이 업는 모양이었다. 아니 그보다, 그녀는 기왕에 무예에 대한 말이 나왔으니 다시 자신의 검법에 대해 물어보려는 열성에 가득차 있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숟가락을 놓자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에게 자신의 매화검법에 대해서 조언은 해줄수 있는지의 여부에 대해서 질문을 던졌다. 아니, 그녀는 단지 그렇게 하려고 했을 뿐이었다. 헌데 마악 입을 여는순간 갑자기 그녀의 의식이 아득하게 흐려지며 그대로 휘청 쓰러져 의식을 잃고마는 것이 아닌가? 백룡생은 이것을 보고 일순 가볍게 안색이 변했다. 멀쩡한 사람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갑자기 혼절을 할리는 없지 않겠는가? * * * 사방은 아주 조용했다. 마치 쥐죽은듯이... 이곳에 만일 쥐가 있었다면 죄라도 죽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곳에는 워낙 높은 곳이기 때문에 쥐와같은 것들이 살지 않는다. 그렇다면 죽은 것은 쥐가 아니라 바로 사람이 아닐까? 아마 비록 죽지는 않았다고 할지라도 이렇게 사방이 조용하자 현진자는 내심 자신의 짐작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계책이 적중된 것이다. (으흐흐...!) 현진자는 다소 비열하다고는 생각이 들었지만 자신의 이러한 계책이 적중되자 일시 눈앞에 놓여있는 밥상을 보며 음산한 웃음을 흘렸다. 그가 이번에 독을 사용하기로 결심한 것은 실로 어쩔수가 없는 중대한 단안이었다. 그는 원래 백룡생이 깊이 잠들은 틈을 타서 한밤중에 기습을 하는 방법도 생각해 보았었으나 그것은 이내 타당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그는 여러번의 실험으로 인해 백룡생의 무예가 그야말로 상상할수도 없는 경지라는 것을 알아낸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그의 이목 또한 지극히 영민할 것이 아니겠는가? 그가 비록 한밤중에 기습을 하고 어떠한 함정을 꾸미더라도 백룡생에게는 쉽게 당하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결국 마지막으로 생각해낸 것이 바로 이 독을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독에는 여러가지가 있을수가 있다. 그것은 크게 곤충이나 짐승에서 뽑아내는 경우가 있고, 또하나는 식물에서 뽑아내는 방법이 있는 것이다. 몰론 그 두가지를 혼합하여 만드는 독도 있을수가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이 곤충이나 짐승으로부터 뽑아낸 독은 식물에서 추출한 독보다도 더욱 악독하고 무서웠다. 원래 무당파는 강호의 명문정파이고 독을 다루지는 않았으나 만일 남에게 독상을 입었을 경우를 대비하여 해독의 방법을 연구해 두지 않을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무당파에서는 독은 없더라고 천심해독단이라는 해독약은 있으며, 기실 독에 관한 조예가 그리 약한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비록 무당파에서는 독이 없었을 지라도 마침 이 현진자에게는 지난번에 서역에 갔을 때 우연히 구입한 하나의 극독이 아직 남아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현진자가 성정이 다소 괴팍하고 무당파에 소속되어 있으면서 평소에는 거의 단독으로 살아온 때문에 그런 것을 지니게된 것이다. 하지만, 현진자는 자신이 결코 무공으로 해결할수가 없어서 그러한 극독을 쓰게될 줄은 몰랐었다. 그는 다만 서역에 하나의 지독한 극독이 있어서 그러한 흥미삼아 한번 취하게 되었던 것이지 비록 무공이 상대보다 약하다고 하더라고 그것을 쓸 생각은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명문정파의 사람으로써 그런것을 사용할수가 없기 때문이엇다. 그러나, 그는 오늘 그것을 사용하고 말았다. 왜냐하면 그는 오늘 비단 자신분만 아니라 무당파의 앞날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한사람을 죽여야 하겠기 때문이었다. 그가 오늘 사용한 극독의 이름은 바로 심일도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서역에 있는 하나의 독충을 말하는 거인데, 일단 그 독충의 독액이 사람의 혈액에 닿기만 하면 그 사람은 당장에 심장이 멈춰져서 죽고마는 것이다. 게다가, 이것은 냄새도 없고 색깔도 없으며 맛도 없으니 그야말로 극독중의 극독이라고 말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현진자가 일부러 그러한 극독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그 극독이 워낙에 악독하고 또한 서역에서도 희귀하기 때문이었다. 헌데, 그는 오늘 저녁 그곳을 바로 이 밥을 지은 물속에 탔었다. 그러한 일은 그로서는 아주 간단했다. 아까 오후에 백룡생과 악불이는 통나무를 가져와서 방을 만드느라고 정신이 없었고 그리하여 현진자로 하여금 물속에 심일도를 탈수있는 충분한 시간적인 여유를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다만, 현진자가 매우 유의한 것은 혹시 악불이가 먼저 그 물을 마셔서 백룡생이 미처 중독이 되기전에 그것을 발견하지나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백룡생이 부엌에서 밥을 짓는 동안에 은근히 계속해서 내다보았었는데, 다행히 악불이는 왠지 부엌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후에 백룡생은 자신의 방에 밥상을 갖다주고 이어 두사람분의 음식을 들고 건너방으로 들어갔으니 얼마후에는 두사람이 필시 밥을 먹었을 것이다. 허나, 이 밥은 결코 먹을수가 없는 것이었다. 아니, 먹을수는 있으되 먹고난 즉시 그것이 소화흡수되기만 하면 그 심일도는 즉시 발작을 하여 그사람의 심장을 멈추게 하는 것이다. 사람은 일단 심장이 멈추면 살아날수가 없다. 그러니, 자연 이 심일도는 자신이 중독이 되었다고 느끼는 순간 이미 때는 늦은 것이다. 현진자는 자신이 방에 앉아서 극독이 베어있는 밥상을 음산하게 주시하며 매우 끈기있게 기다렸다. 그의 방은 아직 유등을 밝히지 않아서 매우 어두웠다. 그러나, 그는 그런것은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오로지 그의 이목은 건너방으로 향해져 있어서 그쪽의 기척을 하나도 빠지지 않고 듣는 것이다. 가연 아니나 다를까? 처음에는 제법 오랫동안 뭐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한순간 누군가가 털썩하고 바닥에 쓰러지는 소리가 났다. 그것은 이미 발작이 시작되었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뒤에는 소리가 하나도 나지 않았다. 분명 쓰러지는 기척은 하나뿐이었는데, 현진자는 잠시 이 일에 대해 의아해하면 생각에 잠겼다. 그는 이미 두번이나 암격에 실패를 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결코 실패할수가 없다는 강박관념이 머리를 짓누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허나, 그는 곧 생각을 달리했다. (만일 두사람이 함께 식사를 했다면 필히 앉아서 식사를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사람은 식사를 마치고 일어서 있다가 쓰러졌지만 다른 사람은 앉아있는 상태로 쓰러졌다면, 그리고 거의 동시에 쓰러졌다면 기척은 하나밖에 나지 않을 것이다!) 현진자는 이러한 생각을 하자 점점 자신의 생각이 옳다는 느낌을 받았다. 지금 밖에는 낮에와는 달리 다소 싸늘한 바람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비록 두사람이 쓰러지는 시기가 똑같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만약 한사람이 앉아 있었다고 한다면 그가 스스로 뒤로 벽면에 늘어지는 것은 기척을 알수가 없을 것이다. 현진자는 이 일에 확실한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한참을 생각하다가 결정을 내렸다. (틀림없다! 이 심일도는 극독중의 극독이다. 설사 백독불침의 몸이라도 결국은 중독이 되어 죽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무엇을 주저할 것인가?) 현진자는 내심 마음의 결정을 내리면 신형을 벌떡 일으켰다. 그는 워낙 갑자기 몸을 빠르게 일으켰기 때문에 방안의 공기가 갑자기 소스라치게 놀라서 거센 파동을 일으켰지만 실은 아무런 기척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것은, 그가 이미 공력을 최대한으로 돋구웠다는 증거였다. 현진자는 그런 생태로 다시 두눈에 독기를 가득 피워올리며 생각했다. (그가 만일 중독이 되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나는 이미 시작을 했으니 여기에서 중단할 수는 없다!) 일단 그렇게 최악의 경우에 대해서 결단을 내리고 나자 그의 마음은 한결 편안해졌고 강인한 투지로 인해 뜨겁게 불타올랐다. 과거 그는 이런 비열한 행동을 했다면 결코 투지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의 이른 다소 수단이 비열하기는 해도 대의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니 그의 마음은 한없이 크게 부푸는것 같았고 호연지기가 꿈틀거리는것 같았다. 바로 이때다! 현진자는 시기를 놓치지 않고 소리없이 방문을 열고 밖으로 몸을 날렸다. 그의 심혼은 지금 한없이 강하게 불타오르고 있었기 때문에 그믐 지금이야말로 백료생을 주살할 수 있는 적기라고 판단한 것이다. 제 21 장 노도장의 탄식! 밖으로 나서자, 현진자는 일순 싸늘한 바람이 불어와 그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가자 정신이 번쩍 깨이는 것을 느꼈다. 지금 그의 전신의 감각은 극도로 고조되어 있었고 살기는 하늘을 충천했다. 싸늘한 바람이 스쳐지났지만 현진자는 오히려 그 싸늘한 기운을 받자 더욱 살기가 강렬하게 피어오르며 어둠을 꿰뚫고 태산이라도 가를수가 있을것 같았다. 그의 두눈은 어둠속에도 시퍼런 살기로 인해 독화처럼 시퍼렇게 빛나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인간이란 이렇게 필사적인 집념이 모아질때 더욱더 거대한 능력을 발휘하게 되기 마련이다. 때로는 전혀 무공을 모르는 사람이라도 평소보다도 두세배의 능력을 발휘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데 하물며 무림인이야 그러한 정신적인 면을 무시할수는 없었다. 적과 대적하는데에 있어서 살기는 거의 필수적인 것이다. 그러나, 문득 현진자는 자신의 살기가 너무도 크게 경직되어 있어서 잠시후에 백룡생이 아직 죽지 않았을 겨우 확인사살을 하는 일에 지장을 초래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만일 백룡생이 멀쩡하여 무공대결을 해야할 경우에는 더더욱 심신이 경직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는 이 넘치는 살기를 다소 누그러뜨리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며 상대를 찾았다. 과연 상대할 것은 있었다. 오늘 오후무렵에 백룡생은 방을 꾸미기위해 많은 나무들을 가지고 왔었으나 그중 아직도 상당수가 전혀 쓰이지 않은체 마당에 버려져 있었다. 현진자는 그중 하나의 굵은 통나무를 골라서 발길질로 그것을 허공으로 높이 차올렸다. 순간, 그것은 무려 허공으로 십여장이나 높이 치솟았으나 강한 바람을 받지 일시 중심을 잃고 좌우로 휘돌아가려고 했다. 헌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현진자의 몸이 거의 기척도 없이 허공으로 십여장이나 떠올랐다. 동시에, 그의 우수가 가볍게 움직이더니 허리춤에서 한자루의 날이 시퍼런 칼이 뽑혀져 나오더니 그것은 즉시 그의 전신과 허공에 휘돌아가려는 통나무를 휘감으며 눈부신 백색의 도기를 사방으로 가득 분출하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가히 장관이었다. 현진자의 신형은 일순 그러한 눈부신 백색의 도기에 가려져 보이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러한 장관은 극히 짧은 순간에 펼쳐졌을뿐 그 눈부신 도기는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고 어느새 현진자의 신형은 다시 지면에 내려와 있었다. 그리고, 물론 그의 허리춤에는 마치 그 날이 세워진 도가 채워져 있었다. 헌데 그때, 갑자기 마치 허공가득 눈송이가 날리듯이 무수한 나무부스러기가 일시에 번져나가는 것이 아닌가? 다름아닌 그것은 놀랍게도 아직 현진자가 발로 차올렸던 그 통나무였다. 그 굵은 통나무가 일순지간에 그렇게 변했다는 것은 믿기 어려운 가공할 현실이었으며, 그것은 바로 현진자의 최고절학 현허도법의 정수에서 빚어진 위력이었다. 현진자는 자신의 이 모험이 확실히 두어단계 상승했음을 확인하고 잠시 입가에 만족한 표정을 떠올렸다. 허나 다음순간, 그이 두눈에서 번쩍 시퍼런 살기가 일어남과 동시에 그의 신형은 소리없이 부엌으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는 일단 부엌으로 해서 건너방으로 들어가려는 것이다. 그가 그렇게 신형을 옮기는 시간은 지극히 짧았다. 그러나, 믿을수 없게도 그는 이순간 많은 생각을 일시간에 떠올리고 있었다. (그는 과연 죽었을까? 설령 그렇더라도 나는 그 두사람을 다시 완전하게 토막내서 은밀하게 처치를 해야한다!) (그런, 그가 살아있을 경우에는 어쩔 것인가? 그땐 볼것없다! 그가 거의 죽어가고 있다면 단숨에 죽이면 되고, 멀쩡하게 살아있다면... 나는 최선을 다해서 그를 주살해야 한다.) (나는... 나는 그러기 위해서는 아마도 방문을 여는 즉시 나의 현허도법중의 최절초를 펼쳐서 안으로 덮쳐들어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허나, 그는 다시 생각했다. (아냐 아냐! 나는 방문을 열 것도 없다. 그냥 방문을 통째로 부서며 밖에서부터 기습적으로 현허무궁을 펼치면 될 것이다!) 현허무궁이란 바로 현허도법의 최절초였다, 일단 그렇게 작정하자, 현진자는 방문앞에 이르러 잠시 주춤했다. 아니, 그렇게 주춤하는듯 하더니 일순간 그의 우수에는 칼이 들려지고 곧장 현허도법의 최절초가 구름같이 펼쳐지며 방문을 부수고 해일같은 기세로 엄청난 도기가 덮쳐나갔다. 하지만 그것은 실제가 아니라 단지 그의 착각일 뿐이었다. 현진자는 일순 방문이 부숴지고 자신의 현허무궁이 가공할 기세로 펼쳐지는줄 알았는데 갑자기 괴이하게도 전신의 힘이 하나도 없어지면 그자리에 털썩 쓰러지고 말았다. 이것은 대체 어찌된 영문인가? 현진자는 바닥에 쓰러져서 의식을 잃으면서도 대체 그것이 어찌된 영문인지 알수가 없어서 두 눈을 있는대로 크게 부릅떴다. 하지만 그는 이미 의식을 잃었기 때문에 더 볼려고 해도 볼수가 없었다. * * * 현진자는 처음에는 그것이 꿈인줄로만 알았다. 그저 꿈결인듯 아득하게 들려왔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의식은 점차 뚜렷하게 맑아졌고, 그 목소리도 그의 귓전에 똑똑하게 파고 들었다. 그 목소리는 다름아닌 그에게 매우 낯익은 것이었다. 게다가, 현진자는 그 말하는 내용이 기이하다고 여겨져서 일순 귀를 기울이지 않을수가 없었다. 다름이 아니라, 바로 그것은 백룡생과 악불이의 음성이었던 것이다. 악불이의 말이었다. "백랑! 왜 그럴 살려주는 거죠?" 백룡생은 은근한 음성으로 대꾸했다. "그럼 어쩌겠소? 그렇다고 그를 죽일수는 없는 일이지 않소?" 악불이는 항변하듯이 다시 말했다. "하지만 그는 이미 당신을 두차례나 암습했고 다시 이번에는 독으로 비열하게 암살을 시도하지 않았나요? 게다가... 그는 나마저 그 무서운 도법으로 갈가리 찢어놓으려고 했어요!" 백룡생은 그말에 나직이 탄식했다. "그건 불이, 당신이 이해하시오! 그는 생각이 우리와 다르고 또한 어쩔수가 없는 상황에 몰려서 그렇게 한것일 뿐이오." 악불이는 말했다. "좋아요! 그럼 백랑의 말대로 그를 한번더 용서해 주기로 하죠. 허나, 만일 그가 다시 당신과 나를 암습해서 그때에는 위험해지면 어쩌죠?" 백룡생은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게 된다면 할수없는 일이 아니겠소?" 악불이는 문득 크게 화를 내며 소리쳤다. "어쩔수가 없는 일이라고요? 그게 과연 할수있는 말인가요?" 백룡생은 웃으며 말했다. "그럼 당신은 내게 어쩌라는 말이오?' 악불이는 즉시 대답했다. "그는 이미 당신이 두번이나 암습을 한것을 눈감아 주었는데도 다시 이런 독랄한 암습을 가했어요! 그렇다면 이번에 살려주면 그는 틀림없이 다시 당신을 암격할 거예요. 그러니... 우리는 아예 이번에 그를 죽이는 것이 좋겠어요!" 백룡생은 웃으며 말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겠소? 그는 당신에게는 볼일이 없으니 당신만 이곳을 떠나면 될일이 아니오?" 악불이의 다소 앙칼지게 물었다. "그럼 당신은 죽어도 좋다는 말인가요? 당신은 나와 전에 했던 맹세를 저버릴 생각이란 말인가요?" 그말에, 백룡생은 잠시 침묵하더니 대답했다. "불이, 사람이란 스스로 그렇게 하려고 해도 마음대로 잘 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이오. 내 비록 당신의 뜻에 따르고 싶어도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 어쩔수가 없구려." 순간, 악불이는 크게 울먹이며 말했다. "누가 지금 죽는것이 두려워서 그러는 줄 아나요? 당신은 왜... 왜 죽으려고 하죠?" 백룡생은 그저 담담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인위적인 것이 아니라 인연에 따르는 것이오. 내 어찌 그런것에 연연하겠소? 나는 그가 나를 죽이게 되면 죽는 것이고, 그러지 못하면 사는 것이오. 내가 살고 죽는일에 연연하지 않는데 그가 나를 죽인들 어떻고 죽이지 않은들 또 어떻겠소?" "..." 악불이는 흐느끼며 잠시 할말을 잊은듯 했다. 백룡생은 은은한 음성으로 다시 말을 이었다. "내가 굳이 여기에 있는 것은 언약을 지키기 위한 것이오. 내가 그를 시중드는 것은 이미 죽고사는 일과 관계없이 정해진 것이니, 그가 깨어나서 이말을 듣기전에 그대는 어서 울음을 그치도록 하오. 그리고 내일 아침에는 내가 그대를 산아래로 내려다 주리다!" 백룡생의 어조는 시종 담담했다. 어찌 듣자면 그는 자신의 일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남의 얘기를 하고 있는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백룡생의 얘기에도 불구하고 악불이의 흐느끼는 소리는 더욱 커져만 갔다. 여기까지 들은 현진자는 내심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무엇때문인지 꼬집어 말할수는 없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가슴은 뭔가 담담한 것에 의해 심하게 가로막힌듯이 억눌려 있었다. 그는 아직 저녁도 먹지 않았는데 음식이 체했을 리는 없는 일이었다. 요컨데 걸린것은 바로 의식이었다. (죽인들 어떻고 죽이지 않은들 어쩌냐고?) 현진자는 무의식중에 방금전에 백룡생이 했던 말을 중얼거리며 떠올리고 있었다. 그는 이순간 마치 넋을 잃은것 같았다. 그는 심한 충격으로 인해 감각이 마비된것 같았으며 자신이 지금 어떠한 얘기를 생각하고 잇는지도 알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 그는 뇌리에 뚜렷하게 울려오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내게 시중드는 것은 죽고사는 일과 관계가 없는 일이라고...?) 현진자는 지금 그런 말을 내심 중얼거리고 있으면서 실은 그것을 생각하고 있는것은 아니었다. 그는 다만 최면상태에 빠진 것처럼 뇌리에 떠오른 것을 내심 똑같이 중얼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현진자는 내심 다시 중얼 거렸다. (죽고사는 것은 인위적인 것이 아니라 인연에 따르는 것이다... 내 어찌 그런것에 연연하겠는가...? 그런것에 연연하지 않는데, 그가 나를 죽이건 죽이지 않건 그게 무슨 대수로운 일이냐고...?) 현진자는 일순 또다시 긴 한숨을 불어내었다. 그 한숨에는 마치 억장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그렇게 길게 한숨을 불어내었음에도 그의 답답한 가슴은 풀리지가 않았다. 아니, 한숨을 내쉴수록 그의 가슴은 점차로 무거워지고 숨쉬기가 곤란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의 전신에 이상이 있는것은 아니었다. 그의 몸은 아주 정상이었고 점혈당하지도 않았으며 전신의 기혈이 무리없이 자연스럽게 유통되고 있었다. 지금 그는 바로 아까 정신을 잃고 쓰러졌던 부엌의 바닥에 그대로 누워 있었다. 아마도 방금전에 들었던 두사람의 얘기를 듣지 못했다면 그는 아직도 백룡생이 자신의 암습을 모를지도 모르며 왜 자신이 혼절했는지도 몰랐을 지도 모른다. 그의 우수에는 칼자루가 잡혀 있었고, 그 칼날은 칼집에서 절반쯤 빠져나온게 어둠속에서 시퍼런 빛을 발하고 있었다. 잠시동안 한숨을 내쉬다가 현진자는 칼을 칼집에 밀어넣고 천천히 신형을 일으켜 밖으로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밖에는 아직도 바람이 새차게 불고 있었다. 그러나, 그 바람은 이제는 강하게 느껴지지가 않고 그저 시원하기만 했다. 현진자는 얼굴이 확확 달아올랐고, 가슴이 매우 더워져서 그 차가운 공기를 한껏 페부에 들이마셨다. 그러자, 가슴이 답답했던 것이 조금 시원해지는것 같았고, 그제서야 현진자는 탄식처럼 한줄기 중얼거림을 입밖에 토할수가 있었다. "그는... 정말로 대인대의하구나...! 그는 무당파의 절기마저도 안중에 두지 않고 있었다. 하긴 삶과 죽음조차도 안중에 두고 잇지 않은데야...!" 그렇다. 현진자는 일순 모든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는 비단 백룡생이 무당파의 사숙의 자리를 탐내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무당파의 무공에도 관심이 없으며, 게다가, 석실에서 태극혜검법을 시전한 것은 오로지 그를 무안하게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음을 알아차렸다. 그리고도 그는 연못에서 죽을뻔한 그를 구해주었으며, 뒤이어 그것을 이용하여 암습을 하려는 그이 흉심을 뻔히 보고도 모른척 해주었다. 뿐만아니라. 그는 이제 다만 언약을 지키기 위해 악불이를 내보내고 계속 자신을 모른척하고 시중들겠다는 것이 아닌가! 그는 현진자가 극독중의 극독인 심일도를 사용한일에 대해서는 아무런 감정도 갖고 잇지 않은 것이다. 현진자는 그 모든 일들을 한꺼번에 깨닫게 되자 재차 어두운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나는 그를 한낱 어리석은 사람으로 평가했지만 실은 그는 진실로 훌륭한 사람이구나, 용이요 봉황이었다! 도덕경에는 위대한 지혜를 가진 사람은 오히려 어리석게 보인다고 적혀 있었더니 나는 그 뜻을 미처 몰랐었다...!" 현진자는 중얼거림을 토하고 긴 한숨과 함께 두눈에서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그러자, 다소 그의 답답한 가슴이 시원해지는 것 같았다. 그는 다시 중얼거렸다. "그는 비록 나이는 어리나 가히 모든 사람의 존경을 받을만하고 무당파의 사숙이 될만한 사람이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감히 그에게 지극히 못되게 굴었으니... 나야말로 가장 비열하고도 천박하며 어리석은 자로다! 내 어찌 그를 다시 대할수가 있겠는가? 이제... 이제 그는 나의 눈을 한번 뜨이게 만들었으니, 내 어찌 그를 따르지 않으랴?" 그말에 끝나자 마자, 그는 문득 번쩍 신형을 날려서 절봉의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그는 너무도 자신을 자학한 나머지 자결을 하려는 것일까? 아니었다. 그는 알고보니 신법을 날려 절봉의 아래를 빠르게 내려가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 한밤중에 그는 대체 어디로 가고있는 것일까? * * * 악불이는 매우 오랫동안 흐느껴 울었다. 그녀는 처음에는 소리내어 울었으나 나중에는 소리를 죽여서 한없이 울었다. 이제 사랑하는 낭군을 만났는데, 겨우 하룻밤을 지새고 내일은 생사를 알수없는 생이별을 해야한다니 어찌 하염없는 눈물이 나오지 않겠는가? 하지만, 백룡생은 한쪽에 조용히 정좌를 하고 앉아서는 그녀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리하여, 악불이는 한참후에 드디어 울음을 그치고 백룡생에게 물었다. "당신은... 당신은 자나요?" 이때 백룡생은 그녀를 등지고 앉아서는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악불이는 그가 혹시 잠들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다. 백룡생은 잠들지 않았다. 그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더니 입을 열어 대답했다. "나는 자고 있지 않소. 그러나 당신은 어서 자도록 하시오." 헌데, 그말을 듣자 악불이는 고개를 내저었다. "나는, 나는 잠들지 않겠어요." "..." 이때, 방의 한쪽에서는 유등이 스며드는 바람에 이러저리 불꽃을 움직이고 있었다. 악불이는 백룡생의 등을 바라보며 다시 말했다. "나는 당신과 밤을 지내겠어요!" 백룡생은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굳이 그럴필요는 없소. 나는 이제 그만 나가서 자겠소." 그리고는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가기 위해 신형을 일으켰다. 헌데, 그러자 순간 악불이가 신법을 날려서 그이 앞을 얼른 가로막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어떤 절박한 감정이 서려 있었다. "당신... 당신은, 가지 말아요!" 백룡생은 그녀를 바라보며 담담하게 미소지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일부러 잠을 자지 않을 필요는 없지 않겠소?" 그말에, 악불이는 제차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예요. 아니예요! 당신은 가면 안되요. 당신은 잠을 자더라도 반드시... 반드시 나와 함께 자야해요!" 악불이는 문득 그말을 하고는 수척해졌던 얼굴이 돌연 새빨갛게 붉어졌다. 그녀는 너무나도 노골적인 말을 한 자신이 너무도 부끄러웠던 것이다. 그러나, 백룡생은 일시 그녀의 말을 잘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도 그럴것이, 그는 아직 남녀사이의 비밀스런 언어에 대해서는 한번도 접해보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는 다소 의아한 표정을 하고는 물었다. "이곳의 침상은 하나뿐인데 어떻게 내가 여기에서 잠을 잘수가 있다는 말이오?" 악불이는 문득 그런 멍청한 모습을 보자 일순 피식 웃음이 나왔다. 실상, 그런 멍청한 모습은 그녀가 매우 끌렸던 백룡생의 매력이었다. 그녀는 다시 자신의 입으로 그런말을 하기가 난처했다. 그러나, 이제 이밤만 지나고 나면 자신은 아래로 내려져서 다시는 그를 보지 못하게 될지도 모르는데 어찌 망설이고만 있을수가 있단 말인가? 그녀는 잠시 입술을 깨물다가 다시 말했다. "내말은... 당신과 내가 한 침상위에서 자자는 말이예요. 나는... 나는 당신의 아이를 낳아야 겠어요?" 백룡생이 제아무리 순진하다고 해도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모를리가 없었다. 그는 일시 안면이 붉게 물들었다. 그리고, 바라보니 악불이는 이순간 새빨개진 얼굴로 아주 요염한 시선을 한체 그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을 보자 백룡생의 얼굴은 더욱 심하게 붉어져서 가슴이 마구 쿵쾅거리는 것만 같았다. 따라서, 그는 빨리 마음을 평정시키려고 했으나 그것이 잘 되지가 않았다. "그, 그것은 안되오!" 악불이는 그말에 목덜미까지 붉히고 잇다가 고개를 쳐들고 물었다. "왜, 왜 안된다는 거죠?" 백룡생은 고개를 마구 내둘렀다. "아무튼 그건 안되오." 그말에, 악불이는 갑자기 문앞을 가로막더니 양팔을 벌리며 말했다. "당신이 만약 그 이유를 말하지 않겠다면 나는 당신을 보내드리지 않겠어요." 이에, 난처함을 느낀 백룡생은 다소 더듬더듬 말하기 시작했다. "당신은 아직 아직 나와 정식으로 혼인을 한 사이도 아니오. 그런데 어찌... 어찌 그런... 그런짓을 할 수가 있겠소?" 악불이는 이때 백룡생이 혹시 자신을 멸시하거나 싫어하는 주로 오해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말을 들어보니 정말 그런것은 아니지 않는가? 백룡생은 다만 그녀와의 정식절차를 밟으려는 것이다. 이에, 악불이는 내심 푸근한 감동이 들었으나 곧 싸늘한 어조로 대꾸했다. "그건 이유가 되지 않아요. 우선... 우선 우리는 이미 혼인을 한 사이나 마찬가지로 맹세를 했고, 그리고 지금의 상황은 특별한 것이니 구태여 어떠한 격식을 따질 필요는 없는 것이예요. 나는... 나는..." 악불이는 문득 와락 울음을 다시 터뜨리며 말을 이었다. "나는 사실 정식으로 혼인을 하고 싶단 말이예요...!" 백룡생은 그런 모습을 보자 의아한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나중에 혼인식을 올리면 될 것이 아니오?" 그말에, 악불이는 귀가 번쩍 트여서 울다말고 배꽃같이 이슬띤 두눈으로 기뻐 물었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당신은 나와 함께 갈건가요?" 악불이는 그가 만약 자신과 함께 간다면 굳이 이러한 자리에서 첫날밤을 맞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헌데, 그녀의 말에 백룡생은 다시 고개를 젖는 것이었다. "아니 내말은 당신은 다른사람에게 시집을 가면 되지 않느냐는 말이오." 이 백룡생의 말은 실로 악불이의 기뻐하는 마음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순간, 그녀의 안색은 여러가지로 변화를 거듭하다가 그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그녀는 문득 다시 물었다. "당신은 정말로 내가 싫은가요.?" 백룡생은 고개를 내저었다. "당신은 아주 아름답고 재치가 있지만 나와 인연이 맞지 않을때는 어쩔수가 없다는 것이오." 그말에, 악불이는 이 일이 더이상 억지로 할수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만약 그런다면 그녀는 매우 비참한 심정이 될 것이며, 또한 그렇다고 해서 될일도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잠시 복잡한 표정으로 생각을 거듭하다가 마침내 길을 비켜주고 말았다. 하지만, 그녀는 백룡생을 주시하며 다소 심각한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허나 만일, 당신이 죽지 않는다면 나와의 약속을 지킬 건가요?" 백룡생은 이말을 듣고 실로 그녀가 자신을 생각하는 정이 매우 깊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는 즉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오. 만약 인연이 닿는다면 나는 반드시 그렇게 할 것이오." 그리고는. 백룡생은 부엌으로 걸어나와서 자신의 거처로 돌아가서 잠자기 시작했다. 악불이도 잠시동안 깊은 생각에 잠긴것 같더니 이윽고 불이 꺼지고 잠이든것 같았다. * * * 어두운 밤이 가면 아침은 찾아온다. 간밤에 강하게 휘몰아치던 바람은 어느 사이엔가 굵고 하얀 눈발을 휘날려 모옥의 밖은 어느새 두터운 흰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리고, 바람도 어느새 잠잠해져 있었다. 백룡생이 아침일찍 밖으로 나오니 희미한 여명이 밝아오는 가운데 사방은 온통 백색 천지였다. 이 옥검봉의 암벽에도 흰눈은 가득 뒤덮여서 그 두께가 무려 한자는 되는것 같았다. 보통사람이라면 그 눈을 밟고 걸어가기도 곤욕스럽겠지만, 백룡생은 그 눈위를 걸어가되 전혀 발자국이 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그는 암벽을 이제는 쌓인 눈때문에 딛을수가 없게되자 아예 허공에 몸을 뛰우고 아래로 천천히 하강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그가 지금 마음만 먹으며 쉬운 일이었다. 그는 일부러 허공에서 천천히 하강하며 사방의 찬란하게 밝아오는 아름다운 백색천지의 장엄경을 바라보았지만, 그러자, 일단 중간쯤 내려가자 만일 이 모양을 다른 사람이 본다면 다소 귀찮은 점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급히 빠른 신법으로 바꾸었다. 번쩍! 그이 신형은 그 즉시 허공에서 마치 꺼지듯이 사라졌다 그러한 신법을 누가 믿을수가 있으랴? 그 순간에 이미 그의 신형은 아래의 계곡에 이르러 눈속을 헤치고 물을 가죽부대안에 담아들고 있었다. 그는 이미 절봉위의 물살이 모조리 독에 물들어 잇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이 새로운 물로 그것들을 깨끗이 씻고 아침밥을 해서 악불이에게 대접을 하려는 것이었다. 그의 신형은 곧 가죽부대를 짊어지고 옥검봉의 꼭대기로 아득하게 사라졌다. 제 22 장 무당파의 초대 백룡생이 모든 청소를 하고 밥을 다 지어놓았을 무렵 악불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나왔다. 그녀는 이어 세수를 하고 깨끗하고 단정하게 몸단장을 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표정은 굳어 있었고 다소 우울한 기색이 감돌았다. 그러나, 이어 두 사람이 함께 아침 식사를 할 때에도 그녀는 아무말이 없었고 백룡생 역시 굳이 말을 하지 않았다. 허나, 막상 백룡생이 상을 물리고 그녀를 아래쪽에 내려다 줄 준비를 하자 그녀는 일시 와락 울음을 터뜨리며 매달렸다. "난, 난 하루만 더 있다가 내려가겠어요. 그러면 안되나요?" 백룡생은 이미 그녀와 헤어지기로 마음을 굳히고 있었던 참이라 그의 마음은 고요한 평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헌데 이렇게 그녀가 매달리자 그녀의 집착이 심하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는 웃으며 말했다. "지금 밖에는 눈이 많이 와 있소. 우리는 지금 그 경치를 구경하러 가는 것이라오. 헌데 왜 우시오?" 악불이는 문득 그 말에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 "그럼 나와는, 나와는 헤어지지 않을 생각인가요?" 백룡생은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반드시 헤어져야 한다면 어찌 헤어지지 않을 수가 있겠소? 우리는 그런 생각을 하지 말고 다른 생각을 합시다." 악불이 혹시나 하는 마음이 일었으나 결국 백룡생의 말이 다르지 않음을 알고는 더욱 서럽게 고개를 묻고 울었다. 그러다가, 백룡생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일순 이별이 실감나는지 가녀린 몸을 파르르 떨었다. 그리고는 더욱 몸을 숙이며 말했다. "나는... 나는 가지 않겠어요. 나는 당신과 함께 여기서 살다가 죽을 거라고요. 그러니 나를 내려 보내지 말아줘요!" 그녀는 어젯밤에는 다시 생각이 달라진 것 같았다. 백룡생은 강제로 그녀를 끌고갈 수도 없다고 생각하여 잠시 난처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하여,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그녀에게 다시 물었다. "그 말은 진심이오?" 악불이는 다소 몸을 흠칫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내말은 진심이예요." 백룡생은 의아해하며 재차 물었다. "죽음이 두렵지 않단 말이오?" 악불이는 잠시 뭔가 생각하더니 일순 고개를 들어 눈빛을 빛내면서 대답했다. "나는 이미 당신과 부부로서의 언약을 했으니, 당신이 만약 그렇게 죽는다면 나 역시 그것을 따라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 백룡생은 그녀가 계속 부부의 언약에 대해서 얘기하자 도소 곤혹한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아직 그와 잠자리를 같이한 것도 아닌데, 이제 아래로 내려가서 다른 남자와 혼인을 하면 잘 살게 될텐데 왜 이렇게 고집을 부리는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백룡생은 되물었다. "하지만 당신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을텐데... 만약 당신이 그런다면 당신의 아버지가 매우 실망하지 않겠소?" 악불이는 잠시 그 말에 전신을 가늘게 떨었으나 고개를 가로저었다. "비록 부모의 은혜가 막중하기는 해도 저의 길까지 가로막을수는 없어요. 당신은... 당신은 나를 너무 무시하는군요? 나는 이미 당신의 아내이니 당신처럼 삶과 죽믐을 연연하지 않겠어요." "..." 백룡생은 잠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지금은 그저 가고싶지 않아서 그런말을 하는 것이지, 그녀가 하고 싶다고 해서 연연하지 않을 수가 있는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아마도 나중에는 매우 후회하게 될지도 모른다. 백룡생은 문득 어제 그녀가 심일도의 극독에 중독 되어서 거의 다 죽어가던 눈에 떠올렸다. 만일 그때, 백룡생이 빠르게 응급조치를 취하지 않고, 다시 그가 본신의 내력을 그녀의 맥문을 통해 흘러넣어서 심맥을 보호하는 한편 극독을 몰아내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이미 죽은 목숨이었을 것이다. 백룡생은 비록 자신이 죽는것은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다른사람까지 죽게되면 그것은 미안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어젯밤에 다급하게 악불이를 되살려 놓았었고 처음으로 현진자에게 내기를 이용하여 그의 혈도를 제압했었다. 그러나, 이렇게 그녀가 가지 않는다고 하니 어쩔수가 없는 일이 아닌가? 백룡생은 잠시 생각하다가 그녀가 비록 지금은 가지 않으려고 할지라도 시간이 지나게 되면 절로 마음이 변하게 될 것이며, 그러면 그때에 다시 보내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는 곧 담담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시오." 그러자, 악불이는 일순 너무나도 기쁜듯이 벌떡 일어나더니 그의 품속에 깊숙이 안기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녀는 말했다. "고마와요. 고마와요...!" 허나, 왠지 그 말끝은 공허하게 들렸다. 백룡생은 그녀의 등을 가볍게 토닥거려 주면서 말했다. "자, 그러면 우리는 이제 일을 해야하지 않겠소?" 그 말에, 악불이는 문득 안색을 붉게 물들이더니 대꾸했다. "지금 여기는 우리 두 사람밖에 없는데 무슨 할일이 있다고 그래요?" 그렇게 대꾸하면서 그녀는 두눈에 기이한 열기를 떠올렸는데 그것은 문득 그녀의 뇌리에 뭔가 은밀한 계획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백룡생은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알고 잇는지 즉시 그녀를 부드럽게 밀어내며 말했다. "비록 지금은 두 사람밖에 없어도 얼마후면 이곳의 주인이 돌아올텐데 우리는 그동안 마당의 눈이라도 치워야 하지 않겠소?" 악불이는 그 말에 매우 불만인듯 아미를 살짝 치켜 떴다. "응, 그는 당신을 해하려고 하는데 당신은 그를 알뜰이도 시중을 들으려고 하는군요?" 그러면서, 그녀는 문득 아슬아슬 했던 어제의 일을 눈앞에 떠올렸다. 그 심일도는 비록 백돌불침의 몸을 가진 사람도 중독시키지만 다행히도 백룡생은 백독불침이 아니라 만독불침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그가 전말 두가지 천고이물을 복용함으로써 얻어진 것이었지만, 설령 그렇지 않아도 금강불괴의 몸이 되어버린 이상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을 것이다. 백룡생의 만일 그런 만독불침의 몸이 아니었으면 그녀와 백룡생은 이미 거의 영문도 모르고 죽었을 것이다. 허나, 백룡생은 악불이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그저 담담히 웃을 뿐이었다. 그리고 이윽고, 그는 악불이를 데리고 부엌의 문을 통해 밖으로 나왔다. 이때, 밖에는 한창 맑은 하늘위에 태양이 눈부시게 빛나며 사방이 백설천지를 비춰주고 있었기 때문에 실로 아름답기 그지 없었다. 처음에는 다소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던 악불이도 이것을 보자 일순 안색을 고치고 환호를 울리며 달려 들었다. 펑! 그녀는 우선 전면을 향해 두손을 비스듬히 휘돌리며 쌍장을 휘갈겼다. 이것은 바로 매화검법의 수법에서 변화된 매화장이란 것이었다. 악불이는 이것말고도 매화지마저도 연성했다. 일순, 전면의 한자나 쌓여있던 흰눈이 무려 사방 일장가량이나 하늘로 날아오르며 허공에 자욱하게 백색의 눈송이를 피워올렸다. 악불이는 이것을 보고 의기양양해져서 소리쳤다. "호호 어때요? 당신도 한번 해보세요!" 그 말에, 백룡생은 빙그레 웃더니 우수를 가볍게 휘저었다. 그러자, 일순 그의 손끝에서 한줄기 기이한 회오리가 일어나더니 전면의 눈덮인 지면을 휩쓸며 점차 거대해져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처음에는 작았으나 그 크기가 갈수록 커져갔고, 그 위력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아서 나중에 마당의 끝부분에 이르렀을 때에는 그 폭이 무려 십여장에 이르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것의 위력은 줄지 않아서 점차 소용돌이의 반원이 커지더니 거대한 눈덩이를 휘몰고는 마침내 절봉의 밖으로 밀려나가며 서서히 사라졌다. 그것은 실로 장관이라고 말할수가 있었다. 소용돌이가 지나간 후에는 이ㅉ고에서부터 절봉의 끝부분에 이르는 점차 넓어지는 길이 형성되어 있었다. 악불이는 이것을 보고 아연 놀라서 물었다. "그건 대체 뭐라는 무공이죠?" 백룡생은 웃으며 고개를 었다. "나도 지금 처음해보는 것이라서 아직 이름을 짓지 않았소." 그 말에, 악불이는 실로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원래 무공초식이라는 것은 그것을 배울때에는 당연히 그것의 이름이나 특성등을 먼저 알게 되기 마련인데 자신이 펼치고도 그 이름을 모른다니 말이 되는가? 게다가, 아직 짖지 않았다니 그럼 그것은 그 자신이 직접 창안한 것이란 말인가? 악불이는 문득 전날의 그 암벽을 오를때의 신법을 물었을 때에도 그가 똑같은 대답을 했던것을 기억하고는 실로 백룡생의 무예는 자신의 능력으로는 추측할수도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기실, 무림에는 이와같은 회오리를 이용한 선풍장 따위가 있기는 해도 이러한 괴이한 위력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이대, 백룡생은 부근에서 통나무 하나를 찾아서는 그것을 낫으로 넓고 길게 잘라서는 그것으로 땅바닥의 눈을 밀고 있었다. 그는 워낙 진력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그렇게 한번씩 밀자 대번에 십여장이나 되는 공간이 생기곤 했다. 백룡생은 그렇게 몇번이고 쉬지 않고 열심히 눈을 밀어서 절벽아래로 내려 보냈기 때문에 이미 모옥의 주위는 깨끗해지고 절봉위의 눈마저 얼마남지 않을 정도였다. 헌데 그때였다. 백룡생이 거대한 눈덩이를 밀어서 절벽아래로 떨어뜨려 버리고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서 재차 눈을 밀려고 하는데 문득 악불이의 다소 장난끼어린 음성이 들리는 것이 아닌가? "백랑! 여기좀 봐요!" "..." 백룡생은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다가 문득 두눈에 가벼운 이체를 떠올렸다. 그쪽은 바로 그가 아직 눈을 밀지 않은 곳이었다. 그런데, 거기에는 어느새 하나의 커다란 눈사람이 만들어져 있는것이 아닌가? -- 눈사람, 백룡생은 과거 어렸을 적에 다른 아이들이 서로 어울려서 눈사람을 만드는 것을 목격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 당시 그들과 어울릴 처지가 아니었기 때문에 은근히 그들과 함께 눈사람을 만드는 것을 그리기도 했었다. 그리하여, 언젠가는 그는 한밤중에 몰래 나가서 스스로 눈을 굴려서 눈사람을 만들었는데, 그것은 생각보다도 재미있는 것이 아니었다. 물론 그렇게 혼자서 몰래 눈사람을 만드는 것은 그리 재미가 없다는 것 쯤은 그때에도 이미 알고 있었다. 허나, 다행히 그 뒤로는 거의 눈사람을 만들고 싶은 생각이 사라져서 그는 다른 아이들이 부러워하지 않게 되었는데 이제 그러한 눈사람을 다시 보게 되다니! 이 눈사람은 비록 두개의 카다란 눈덩이가 균형있게 쌓아올려져서 예쁘게 보이고 다시 얼굴부위를 잘 다듬어서 사람의 형상을 닮았으나, 아작 숯덩이를 이용하여 눈과 눈썹을 만들고 솔잎등으로 모양을 내지는 않았다. 원래, 악불이는 백룡생이 눈을 치우는데 열중하자 자신은 그쪽으로 달려가서 눈사람을 만들었지만 손이 더러워지는 것을 싫어해서 숲이나 솔잎등을 쓰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는 백룡생의 시선이 와닿자 짐짓 두손을 허리에 짚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애석하다는듯이 마* "이곳이 절봉위가 아니었다면 읍내에 나가서 작고 예쁜 모자를 씌워주었을 텐데...' 이어, 그녀는 까르륵 웃더니 다시 물었다. "어때요? 이 눈사람은 누구를 닮은 것 같아요?" 그 말에, 백룡생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보다, 지금 누가 이곳으로 오고 있으니, 나는 어서 눈부터 치워야 하겠소!" 이어, 그는 남은 눈을 치우기 위해 빠르게 걸음을 옮겨서 그쪽으로 걸어갔다. 그 말을 듣고 악불이는 다소 눈사람에 대한 흥미가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왜냐하면, 백룡생은 지금 누군가가 이쪽으로 올라오고 있다고 말했는데, 지금 이쪽으로 올라올 사람이란 오직 현진자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악불이 그렇지 않아도 현진자의 용모를 기이하다고 생각해 왔었는데, 어제의 일을 당한 이후에는 정말로 그가 미워졌다. 그녀는 가능한한 그를 보지 않으려고 했지만 허나 이미 마당에 나와있는 중이니 다시 방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고 해서 그녀는 다만 고개만 옆으로 돌렸다. 과연, 백룡생의 이목은 그야말로 귀신 같았다. 그녀가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은근히 절벽쪽을 주시한지 불과 얼마되지 않아서 문득 한줄기 그림자가 번쩍 하더니 한 사람이 절벽위에 나타났던 것이다. 그런데, 무심결에 시선을 그쪽으로 보내던 악불이는 문득 흠칫 놀랐다. 기이하게도 지금 나타난 사람은 현진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현진자는 주로 흑색의 도포를 즐겨 입었으나, 지금 나타난 사람은 일신에 청색의 도포를 수수하게 차려입은 노도였다. -- 청의노도, 그는 그외에도 현진자와 다른점이 있었다. 우선 그의 용모는 현진자처럼 괴이하고 머리만 큰 대머리가 아니라, 청수하게 생긴 절로 고아한 느낌을 주는 모습이었다. 게다가, 그이 체격 역시 현진자처럼 왜소한 것이 아니라 비단 깡말랐을 뿐만 아니라 키가 훌쩍 커서 거의 칠척에 달하는 것이었다. 지금 이 청의노도의 등뒤에는 한자루의 장검이 매어져 있었는데, 그의 무예경지를 말해주듯 그의 두눈에서는 문득문득 비수같은 예리한 기운이 느껴지곤 했다. 무림인에게 있어서 그의 안광은 왕왕 그 사람의 내공의 수준을 가름하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악불이는 현진자의 눈빛도 아직 이 정도에 이르지는 못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 청의노도는 실로 놀라운 인물인 것이다. ... 청의노도는 절봉위에 오라서자 일순 주위를 둘러보더니 시선을 곧장 마다란 눈을 치우고 있는 백룡생에게 던졌다. 이때, 백룡생은 굳이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무예를 노출시키고 싶지 않아서 그저 가볍게 눈을 치우는 시늉만을 하고 있었다. 그때, 문득 청의노인은 입술이 열리며 한줄기 창노한 음성이 들려왔다. "그대가 바로 백룡생이란 사람이오?" 이외에도, 노인의 나이는 많고 백룡생의 나이는 매우 젊은 편인데도 노인의 첫말은 매우 존중하는 어조였다. 백룡생은 신형을 바로 세우고 그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 당신은...?" 바로 그때, 그의 귓가에 문득 악불이의 전음이 들려왔다. "그는 바로 무당삼자의 둘째인 청진자예요!" 그렇다! 악불이는 전날 무당파에 있었을때 이 청의노도를 본적이 있었는데 그는 바로 현진자의 바로 위의 사형인 청진자였던 것이다. 마치 악불이의 그러한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청의노도가 대답했다. "노도는 청진자라고 불리우고 있소." 백룡생은 그가 현진자의 사형인것을 알자 즉시 그에게 공손히 인사를 했다. "그러십니까?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잠시 안으로 드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 말에, 청진자는 즉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어 그는 잠시 예리한 눈길로 백룡생의 두 눈을 직시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그대가 백룡생이 분명하다면 지금 즉시 노도와 함께 가주셔야겟소!" 그 말은 비록 다소 강압적인 면이 없지는 앉지만 매우 공경하는 빛이 서려 있었다. 이때, 악불이는 이 청진자야말로 자존심이 강화고 남에게 허리를 숙이는 사람이 아닌데 느닷없이 나타나서는 백룡생에게 매우 정중하게 대하는 것을 보고는 뭔가 사연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녀 자신은 지금 이미 백룡생의 아내나 마찬가지인데 이 일에 관여를 하지 않을수가 없다고 생각하여 즉시 입을 열어 물었다. "저의 백랑을 데려가시려는 의도가 뭐죠?" 그 말에, 현진자는 즉시 그녀에게 시선을 돌리더니 다소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에는 그녀와 백룡생이 언제 이렇게 가까와졌을까 하는 의혹과 함께 다소의 곤혹감도 어려 있는 것 같았다. 허나, 그는 곧 다시 백룡생에게 고개를 돌렸고 악불이의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고 제차 입을 열었다. "현진사제도 이미 그곳에 있소." 이에, 백룡생은 눈빛을 가볍게 빛내더니 되물었다. "그럼 현진도장께서 저를 부르시는 것이란 말입니까?" 청진자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허나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하지만 그런 것이나 다름이 없소이다." 그런것이나 다름이 없다니.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일까? 청진자는 아마도 더이상 말을 하기를 꺼려하는 것 같았고, 백룡생은 이 일은 역시 가봐야 그 까닭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그렇지 않아도 현진자가 지난밤에 사라져서 아직 돌아오지 않는것을 기이하게 여기고 있는 참이었다. 백룡생은 잠시 생각한 후에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이에, 청진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백룡생이 자신이 치우다가만 눈을 빠르게 마저 치워놓고 모옥으로 돌아가서 몇가지 물건을 치워 놓고는 다시 밖으로 나왔다. 아니, 마악 밖으로 나오려고 하는데 악불이가 부엌으로 들어와서는 그에게 다소 불안한 표정으로 속삭이는 것이었다. 그녀는 이미 현진자를 미워하고 있었는데 그의 사형이 나타나자 역시 한통속일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말한 것이다. "그를 이대로 믿고 따라간다는 것은 위험하지 않을까요?" 백룡생은 웃으며 대꾸했다. "너무 염려 마시오." 그 말에, 악불이는 이미 백룡생의 생각을 되돌릴수는 없다고 생각하여 두눈을 빛내더니 다시 말했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나도 함께 데려가요!" 그 말에, 백룡생은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쉽게 승낙했다. "그렇게 합시다." 이어, 그들이 밖으로 나오자 청진자는 더이상 조금도 기다릴 수 없다는 듯 먼저 절봉 아래로 신형을 날렸다. 그이 신법은 현진자의 것과 마찬가지로 무당파의 유명한 제운종 이라는 것이었으나, 그 멋들어진 자세에 있어서는 차이가 났다. 현진자는 왜소한 체격으로 가볍게 위로 솟구치곤 하였으나 그는 기다란 체구로 마치 구름속을 헤집듯이 표홀하게 날아가고 있었다. 바로 그러한 모습이 제운종이란 이름이 붙게된 원인이라고 말할수가 있을 것이다. 악불이는 그러한 멋들어진 모습에 내심 감탄을 금할수가 없었다. 이때, 백룡생은 악불이의 몸을 한손으로 안아들고 다른 손으로는 절벽의 튀어나온 부분을 잡아가면서 눈위를 미끄러지듯이 내려가고 있었다. 이것은 기실 절벽을 타는 것과 비슷한 모습이었으나 실제로는 전혀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백룡생은 우선 청진자에게 굳이 자신의 무예를 드러내고 싶지 않았고, 또한 이러한 행동은 이미 습관처럼 되어버렸는지라 이렇게 내려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청진자의 눈길은 비수처럼 날카로왔다. 그는 가끔씩 내려가면서 윗쪽으로 되돌아보곤 했는데, 그때마다 그의 시선에는 다소 경악의 빛이 어리기도 했다. 이윽고, 그들은 옥검봉의 아래에 이르러서 평지를 경공술을 전개해서 나아가기 시작했다. 청진자가 전개하는 것은 역시 똑같은 제운종이지만 그 수법은 절벽을 내려올때와는 다른 것이었다. 그는 빠르게 몸을 날려 한걸음에 무려 일장씩 쭉쭉 나아가고 있었는데 비단 그 속도가 지극히 쾌속할 뿐만 아니라 눈위에는 전혀 발자국이 남지 않았다. 이것은 그야말로 그의 경공술이 답설무흔의 경지에 올라 있다는 말이었다. 백룡생은 역시 두손으로 악불이를 안은채 그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원래 암벽을 다 내려왔으면 그녀도 경공술을 펼칠수가 있기 때문에 당연히 그녀를 내려놓아야 되겠지만, 우선 청진자가 그에게 여유를 주지않고 앞으로 내달리는 데다가 악불이도 아직 미쳐 아래로 내려왔는지를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그저 가만히 그이 목을 껴안고 있었다. 그래서, 백룡생은 무심결에 그녀를 안고 계속해서 청진자의 뒤를 따르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 청진자는 아마도 백룡생의 경공술을 시험하려고 하는것 같았다. 그러나, 그가 뒤를 돌아보았을때 백룡생이 악불이를 안고도 자신을 태연하게 뒤따르고 있는데 역시 눈위에 발자국이 나지 않는것을 보고는 짧은 한숨을 내쉬며 다소 걸음을 늦추었다. 그때, 악불이가 다소 안색을 붉히며 그의 귀에 속삭였다. "나, 나를 그만 내려놔요." 백룡생이 의아해져서 앞을 바라보니, 어느새 그들은 여러개의 산모퉁이를 돌아서 한곳의 다소 완만한 경사가 이루어져 잇는 평지에 이르러 있었다. 그 평지에는 실로 수십 수백채의 전각들이 끝없이 가득 지어져 있었다. 백룡생은 이것을 보고 다소 눈빛을 빛냈다. 이곳이 바로 무당파인 것이다. 백룡생은 그간 무당산에서 두어달 가량 지내왔지만 아직 무당파에 오르기는 처음이었다. 그 평지에 가까이 가자 청진자는 다소 신법을 늦추게 되었고 수많은 도복을 걸친 사람들이 지나치면서 그에게 깍듯이 인사를 했다. 그러나, 청진자는 다소 무심한 듯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윗쪽으로 오를 뿐이었다. 이 평지는 그 경사가 완만하다고는 하나 워낙에 넓은 곳이었기 때문에 맨 아래에서 가장 윗쪽으로 오르려면 거의 하나의 산위에 오르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그 가장 윗쪽에 하나의 장엄하고 오래된 석조건물이 커다랗게 몸을 누이고 있었는데 그곳이 바로 무당파의 장문인이 거주하는 중심부, 자소궁 이었다. 이 자소궁의 전문앞 처마밑에 걸려있는 도래된 현판에는 검은 바탕에 금글씨로 자소궁이라고 씌어져 있었는데, 그 용비봉무하는 듯한 글씨는 바로 천년전의 장삼봉조사가 남긴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었다. 악불이는 백룡생이 그녀의 몸을 내려놓자 스스로 신법을 펼쳐서 뒤따랐고, 세사람은 어느덧 자소궁의 앞에 이르렀다. 이 자소궁의 앞에는 눈빛이 매우 형형한 젊은 도인들이 경계를 서고 있다가 청진자를 보고는 급히 고개를 숙여서 절을 했다. 허나 역시 청진자는 그들에게 가볍게 고개만 끄덕여 보이고는 문득 물었다. "장문사형께선 지금 어디에 게시느냐?" 그 말에, 그 젊은 도인들중 하나가 공손한 어조로 대답했다. "장문사존께서는 지금 조사전에 계십니다!" 그 말에, 청진자는 즉시 발길을 다른곳으로 돌렸다. 제 23 장 무당소사숙 -- 조사전, 그곳은 자소궁에서 좌측으로 돌아서 뒷쪽의 작은 계곡으로 돌아가면 그 계곡 후면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곳은 말하자면 거대한 사당과도 같은 곳이었다. 그 역시 아주 오래된 석조전각으로 건물의 사방에는 죽은 이끼들이 가득 끼어 있었는데, 역시 몇명의 젊은 도인들이 근처에서 지키고 있었다. 그들은 청진자가 앞으로 다가가자 공손히 허리를 숙이며 예를 표함과 동시에 말했다. "장문사존께서는 안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악불이는 이 말을 듣고 다소 의아해졌다. 그럼 백룡생을 보고자 한 사람은 바로 무당파의 장문인인 옥진자였단 말인가? 백룡생의 얼굴 역시 다소 의아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청진자는 전혀 해명해줄 생각도 하지 않고 거침없이 조사전의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현판을 들어서서 몇개의 문을 통과하고 작은 복도를 지나자 곤장 아주 드넓은 대청같은 곳이 나타났다. -- 대청, 그러나 그곳은 대청이 아니었다. 바로 무당파의 수십명의 조사들의 위패를 모신 거대하기 짝이 없는 사당인 것이다. 이 사당의 좌우로는 기다란 탁자가 줄을 지어 있고, 그 위에는 수십 혹은 수백개의 위패가 세워져 있었다. 그것들 중에는 뒷면에 영정이 그려져 있는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것도 있었다. 그 위패들의 앞에는 촛대와 향로등이 놓여 있었고, 지금 이 사당안에는 짙은 단향 냄새가 가득 피어나고 있었다. 사당의 중앙이자 정면--, 그곳에는 벽면에 하나의 커다란 영정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그 위엄있고 웅후한 기세로 보아 그것은 바로 무당파의 조사인 장삼봉진인의 영정인것 같았다. 그 영정의 아래에는 커다란 향로가 놓여 있었고, 지금 그 향로에서는 짙은 단향냄새를 풍기는 연기가 가득 피어오르고 있었고, 그 주위에는 무수한 촛불들로 인해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바로 그 아래, 거기에는 지금 한 사람의 노도장이 절을 하고 있었는데, 지금 그 옆에 서 있는 낯익은 사람은 바로 현진자가 아닌가? 이때, 현진자는 분명 일행을 보았을 것이고 백룡생의 얼굴을 알아보았을 것인데도 전혀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다만 엄숙한 표정으로 시립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 옥색의 도포를 걸친 노도장이 마지막 절을 다 하고나자, 청진자는 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그에게 말했다. "장문사형. 그를 데리고 왔습니다." 글자, 그 옥색도포를 입은 노도장은 천천히 이쪽을 향해 몸을 돌렸다. 순간 그의 면목이 눈앞에 훤히 드러났다. 이 노도장의 용모는 매우 위엄이 넘치고 있었고 턱밑의 수염이 매우 가지런하며 신체는 아주 적당하게 후리후리했다. 게다가, 일순 그의 두눈에서는 한줄기 예리한 신광이 뻗어나왔는데, 악불이는 감히 그눈을 마주보지 못할 정도였다. 다름아닌, 바로 이 사람이 당금의 무당파의 장문인인 옥진자인 것이다. 무당파의 당금의 명망에 어울리게 그의 용모와 위엄은 대단한 기도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백룡생을 보자 일순 만면에 부드러운 미소를 떠올렸다. 그리고는 물었다. "시주께서 바로 백룡생, 백시주이시오?" 백룡생은 일개 무당파의 장문인인 그가 하대를 하지않자 다소 고개를 수그리며 대답했다. "예, 그렇습니다." 옥진자는 그의 용모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천천히 주시한 다음에 문득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말을 이었다. "이미 알고 계실지는 모르지만, 노도는 바로 무당파의 옥진자외다. 오늘 이렇게 시주를 보자고 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옥진자는 말을 하다말고 문득 말을 끊고 시선을 한쪽에 우두커니 서있는 현진자에게 돌렸다. 이것은 이제부터 그가 말하려는 사항이 그 현진자와 관련이 잇는 것임을 은근히 시사해 주는 것이었다. 현진자는 옥진자의 시선을 받고서 더욱 고개를 수그렸을 뿐이었다. 옥진자는 그 모습을 보고 다시 백룡생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말을 이었다. "오늘 무당파는 한가지 실로 중대한 변화를 맞게 되었는바, 거기에 대한 시주의 의견을 물으려는 것이오. 한가지 묻겠는데, 시주는 거짓없이 대답해 주시기를 바라오." "..." 옥진자는 잠시 백룡생의 두눈을 깊숙히 주시하다가 이윽고 물었다. "시주께서는 본 무당파를 어떻게 평가하시오?" -- 무당파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이 질문은 실로 답변하기가 곤혹스럽기 그지 없었다. 게다가, 그것을 묻는 장본인이 바로 무당파의 장문인이고 이곳은 또한 무당파의 심처인 조사전이 아닌가? 대체 옥진자가 느닷없이 백룡생을 보자고 하여 그러한 질문을 하는 의도를 알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아무런 이유없이 옥진자와 같은 사람이 백룡생과 같은 젊은이에게 그러한 질문을 할 리는 없는일이 아닌가? 허나, 백룡생은 원래 이 일은 현진자로부터 비롯되었고, 아마도 그에게 무슨 뜻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별로 따져보지 않고 대답했다. 상대가 현진자의 사형이고 일개문파의 장이기 때문에 그는 공경하지 않을수가 없었던 것이다. "무당파는 천년무림의 종주라고 할 수가 있지요. 예로부터 내공은 무당파에서, 외공은 소림사에게 나왔다는 말이 있으니 무당파는 강호무림의 근원지라고 말할수가 있습니다." 백룡생이 그러한 말을 미리 준비했을리는 없었다. 그는 원래 전에 무당파의 서적을 읽은적이 있고, 그때 적혀있던 이러한 표현이 제법 적절하다고 여기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그런 기억이 불쑥 튀어나오고 만 것이다. 그러나, 백룡생은 별로 상관하지는 않았다. 이에, 옥진자는 잠시 백룡생의 얼굴을 다소 특이한 시선으로 바라보더니, 짧은 한숨을 내쉬고는 옆에 서 있는 악불이를 향해 말했다. "여시주도 아시겠지만 이곳은 본파의 조사전이외다. 본래는 여인들은 출입을 할수가 없지요. 게다가 지금은 달리 중요하게 할일이 있으니 잠시 밖에 나가서 기다려 주시겠소?" 악불이는 비록 태연히 있기는 했지만 이 무당파의 장문인 옥진자의 위엄을 알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 그녀더리 백룡생과 멀어져 있으라면 그녀는 단연코 한두번쯤은 반박을 했을런지도 모르나 지금은 결코 감히 그럴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잠시 백룡생의 얼굴을 빤히 바라본 다음에 총총이 밖으로 물러가고 말았다. 이윽고, 실내가 다시 조용해지자 옥진자는 백룡생을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실은 어젯밤에 우리는 현진사제를 통해서 시주가 노도의 사조님의 유적을 찾았으며 이를 알려왔다는 전갈을 받았소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밤을 세워 그곳으로 가보았고 그리고 확인을 하였소!" 옥진자의 말은 다소 격앙에 들떠 있었다. 순간, 백룡생은 이게 대체 어찌된 영문인지 알수가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바로 현진자가 무애상인의 석실에 대한 얘기를 옥진자에게 말했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기이한 것은 옥진자의 말 가운데 이를 발견한 사람은 백룡생이고 그가 이를 무당파에 알려왔다고 말하지 않은가? 백룡생은 비록 먼저 알고는 있었지만 결코 그것을 무당파에 알릴 생각도 또한 그렇게 하지도 않았었다. 하지만, 다소의 의문을 접어두고 백룡생은 계속 옥진자의 말을 들었다. 옥진자는 가벼운 탄식과 함께 말을 이었다. "사실 노도는 선사때부터 실전된 본파의 무예를 되찾기 위해 항상 노심초사하지 않을수가 없었던 것이오. 이것은 바로 본파의 중대사였고 최대과제였소. 현데... 백시주께서 이렇게 대의지심을 발휘하여 그것을 발견하고도 탐욕을 일으키지 않으시고 본파를 위해 전갈을 해주셨으니... 무량수불, 그것은 가히 본파로 볼때는 커다란 은혜라고 말할수가 있겠습니다." "..." 옥진자는 묵묵히 듣고있는 백룡생의 얼굴을 바라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 "이번에 본파가 되찾은 무예는 실로 중요하고도 중요한 것이오. 시주께서도 이미 보셨겠지만 조사님의 진무검보는 실로 본파무예의 핵심이라고 말할수가 있소. 해서 노도가 무당파를 대신해서 드리는 말이오만... 우리는 시주의 어떠한 부탁이라도 들어주기로 했으니 한가지만 말해주기를 바라오." 이 옥진자의 말에는 뭔가 의미깊은 점이 있는 것 같았다. 허나, 백룡생은 그의 말이 끝나자 웃으며 대답했다. "실은, 아까 어른께서 말씀하시는 도중이라 미처 말을 하지는 못했지만 잘못 아신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제가 비록 그 석실을 발견한 것은 틀림이 없지만 저는 그저 우연한 기회에 현진자 어른께 말씀을 드린것일뿐 전혀 그것을 무당파에 알릴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러니 제가 무슨 은혜를 베풀었겠습니까?" 그 말에, 옥진자는 일순 크게 흠칫하는 표정을 짖더니 시선을 다시 현진자에게 돌렸다. 그러자, 현진자는 즉시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장문사형, 그, 그것은 틀림이 없소. 하지만 그는 제가 묻자 하나도 거짓이 없이 순순히 말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무공에 전혀 욕심을 내지 않고 있었으니 그것은 별로 다를바가 없습니다. 그리고..." 현진자는 심한 격동이 이는지 전신을 덜덜 떨면서 말을 이었다. "소제는 무당파와 소제의 체면을 생각해서 여러차례나 그를 살해하려고 했소이다. 그것은 그가 만일 석벽에 적혀있는대로 된다면 정말 큰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그는 나의 비열한 암습을 알고서도 대인대의의 흉금으로 그저 모른척 해주었소. 그러니 어찌 그가 자격이 없다고 말할수가 있겠습니까?" 이 말은 사실 매우 충격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장작 그 말을 들은 옥진자와 청진자의 안색은 별로 변화를 보이지 않는것을 보니 이미 현진자 모든 과거의 일을 말해버린 모양이었다. 하긴, 옥진자와 같은 인물이 석실안의 모든것을 가져오고 다시 백룡생이란 인물을 생각했을 때에는 그에 대해서 미리 자세히 묻지 않을리가 없었다. 옥진자는 현진자의 말을 듣자 잠시 생각하더니 백룡생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현진사제의 말이 사실이오. 백시주?" 백룡생은 잠시 생각하다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이 사실이기지만 무당파가 석실을 발견한 공로는 현진자 어른께 있는 것이지 제게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허나, 옥진자는 다소 눈썹을 찌푸리며 그에게 물었다. "묻겠소만, 시주께서는 스스로 석실의 존재를 본파에 알려주지 않으려고 남다는데 그 이유를 말해줄수가 있겠소?" 백룡생은 그의 어조가 다소 심각함을 보고는 잠시 생각한 후에 대답했다. "사실 사람이 태어남은 빈손으로 태어나는 것이오. 죽는것도 그러합니다. 세상의 이치가 그러하거늘 무엇 때문에 그러한 무공에 연연하겠습니까? 저는 그래서 굳이 그곳을 알리려고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옥진자는 눈썹을 꿈틀하며 다시 물었다. "그 다면 시주는 그곳에 대해서 다른 누구에게 말을 했던적은 없소이까?" 백룡생은 고개를 내저었다. "내가 얘기를 해서 함께 들어갔던 사람은 오직 현진자어른 뿐입니다. 저는 그런것을 말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 말에, 옥진자는 다소 안심이 되는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다시 물었다. "시주께서는 현진자에게 그 얘기를 들려줄때에는 비단 욕심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호의에서 그러했겠지요?" 백룡생은 생각없이 사실대로 대답했다. "그대는 물론 욕심이 없었지만 위해주겠다는 생각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다만 그에게 시중을 들고 진실해야 하기 때문에 무심결에 말했을 뿐입니다." 그 말에, 옥진자는 눈을 감고 문득 침중한 도호를 외웠다. "무량수불! 마음에 욕심이 없고 사심마저 없으니 그것이야말로 대도의 근본이로다! 이러한 대도야말로 진정한 은혜라고 할 수가 있을지니..." 옥진자는 혼자 독백을 하듯이 중얼거리고 나서 백룡생에게 다시 말했다. "무량수불, 시주는 비록 무욕의 경지에서 무심결에 한 행동일지라도 그것은 본파에 무한한 은혜를 베푼 것이니, 이 은혜를 우리는 마땅히 갚고자 하오." 이어 그는 다시 물었다. "시주께서는 아마도 석벽의 글귀를 모두 보았겠지요?" 백룡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저는 한번 빠짐없이 정독하였습니다." 옥진자는 두눈을 번쩍 빛내며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만일 이 사실을 알려주는 사람에게는 노도의 선사와 같은 대접을 해드린다는 것을 알고 계시겠지요?" 백룡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석벽에는 분명 그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그러자, 옥진자는 문득 탄식을 터뜨리더니 말했다. "우리 무당파는 다소의 명예가 훼손되는 한이 잇더라도 식언은 하지 않소이다. 이제 우리는 시주를 본파의 속가제자로 삼아서 노도의 사숙으로 모시기로 하였으니 시주께서는 마땅히 그것을 따라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 기실 어젯밤 현진자는 내심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서 더 이상 백룡생을 살해하려는 생각을 버리고 그를 자신의 사숙으로 추대를 하려고 했다. 그리하여, 그는 곧장 자소궁으로 들어가서 옥진자를 만났고, 이어 석실에 관해 알려줌은 물론 이제까지 있었던 모든 사항을 이야기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는 백룡생을 무당파의 사숙으로 모시자는 의견을 강력하게 얘기했다. 이때, 옥진자는 급히 둘째인 청진자를 불렀고 이들 삼인은 즉시 그 무애상인의 석실에 가보았으며 현진자의 말이 모두가 사실임을 알았다. 자연 그들은 매우 기뻐했으며 즉각 무애상인의 유고로가 장검을 거두고 준비해갔던 종이에 그 석벽에 적혀있는 모든 내용을 베껴올수가 있었다. 그러나, 기설 그들은 난감하지 않을수가 업* 천년의 위대한 전통을 가지고 있는 무당파가 백룡생과 같은 젊은이를 갑자기 사숙으로 맞아들일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그것은 무당파의 명예를 훼손시키고도 남음이 잇는 일이었다. 그러나, 현진자의 얘기를 들어보고 그의 강력한 주장을 들어보면 그러지 않기도 어려운 노릇이었다. 그들은 이미 현진자의 마음이 돌아선 이상은 현진자가 했던 그 방법대로 그를 제거할수도 없는 입장임을 알아차렸던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 그들 삼인은 밤세워 숙고들을 했지만 백룡생을 사숙으로 맞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말았다. 그래서 청진자가 그를 데리러 가게 되었던 것이다. 이 조사전은 매우 중요한 의식을 치룰때 쓰이는 곳이다. 옥진자가 백룡생을 이리로 부른것은 그러한 뜻이 있었던 것이다. 헌데, 옥진자는 그를 맞아서 처음에는 은근히 그에게서 무당파의 사숙이 되기를 바라도록 유도를 하고 그것을 들어주는 형식을 취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웬걸, 어이없게도 백룡생은 비단 아무런 욕심이 없을뿐만 아니라 무당파의 사숙이 되는 것도 거부할 자세가 아닌가? 만일 무당파에서 그를 제거하지 않는한은 그가 무당파의 사숙이 되지 않게 한다는 것은 오히려 더욱 무당파의 명예에 관련이 되는 것이었다. 이 일이 만일 소문이 퍼져나가서 그가 무당파의 사숙이 되는 것도 거절했다고 한다면 장차 무당파의 제자들은 얼마나 곤욕스럽겠는가? 그것은 차라리 백룡생을 무당파의 사숙으로 남게 하는 것이 오히려 나은 것이다. 그리하여, 옥진자는 백룡생이 자신은 아무런 은혜가 없다고 말하자, 얼른 말을 바꾸어서 그러한 것이 바로 커다란 은혜라고 말하고는 늦지않게 바로 본론을 꺼낸 것이다. 실로, 이러한 미묘한 심리적인 변화는 복잡하다고 말할 수가 있었다. 원래는 무당파는 태극혜검법이 실전이 되지 말았어야 했고, 그것이 실전되어 진무검보까지 찾게 된 것은 커다란 복연이라고 는 하나, 무애상인은 그것을 무당파에 돌려주는 사람에게 사숙이 되도록 하라는 말을 적지를 말아야 했었다. 그러나, 그일은 워낙에 중대ㅏ인지라 그는 그렇게 하지 않을수가 없었고, 그렇다면 현진자가 바로 백룡생을 아예 죽여버림으로서 이 일은 깨끗하게 매듭을 지어야 했다. 아니, 그가 하지 못했더라도 그는 옥진자등에게 알려서 무당파의 명예를 위해서 함께 백룡생을 제거하는 방향으로 나갔어야 했다. 그러나, 현진자는 자신이 서너번의 암습이 실패하는 것까지는 좋았으나 어처구니 없게도 그에게 감복이 되어서 열렬한 그의 신봉자가 되어 있었다. 원래, 그렇지 않아도 백룡생을 제거하는 일은 가히 천하에 지탄을 받을만한 일이요. 명문정파에서는 감히 할수가 없는 비열한 짓이었다. 그런데 뿐만 아니라 현진자가 적극적으로 반대를 하고 나서자 옥진자는 도저히 백룡생을 제거하자는 주장을 관철시킬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현진자의 의견을 들어서 백룡생을 무당파의 사숙으로 모시기로 결정을 했고, 그렇다면 오직 길은 그것 하나뿐이었다. 백룡생과 같은 사람이 무당파의 사숙이 되는 것을 거절 했다고 한다면 이제 무당파는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겠는가? 비록 허수아비라도 만들어서 명분대로 하는 것이 나은 것이다. 옥진자, 그는 이미 이십여년간이나 장문인직을 수행해 왔기 때문에 사람을 보는 눈이 예리했다. 뿐만 아니라 화술도 가히 능란하여 백룡생이 거절할 듯하자 그렇게 말하여 그를 꼼짝도 못하게 묶어놓은 것이다. 그러나, 그는 한가지를 생각하지 못했다. 이 백룡생이란 위인은 결코 보통사람과 같은 사고방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구석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옥진자가 그렇게 말을 했음에도, 백룡생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던 것이다. "장문인께서는 또 착오를 하시는군요. 저는 석벽에 적혀있는대로 한 것이 아닙니다. 저는 다만 알고있는 바를 현진자어른께 알려주었으니 그것은 인연이었지요. 저는 그런것을 빙자해서 무당파의 사숙이 되고 싶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그럴만한 인재는 되지 못하지요." 사실, 세상에 무당파의 사숙이라는 거대한 복연을 마다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백룡생은 실로 엉뚱하여 마치 그것이 더러운 물건이라도 되는 것처럼 애써 덜어내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다만 인연이라고 얼버무릴 뿐이었다. 허나, 만일 세상의 사람들이 이러한 사실을 안다면 어찌 그것을 백룡생의 거대한 공로가 아니라고 말할 것이며, 무당파가 식언을 밥먹듯이 한다고 말하지 않겠는가? 백룡생의 말에, 돌연 청진자가 몸을 돌리더니 냉전같은 안광을 그에게 퍼부었다. 그리고, 그에게서는 살벌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시주께선 지금 무당파를 욕보이자는 것이오? 무당파가 그렇게 무시할수 있을만큼 만만히 보인다는 말이오?" 이 일은 무당파의 중요한 명예와도 관련이 있었다. 그러나, 자연 청진자가 살기를 떠올리며 분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백룡생은 오히려 그를 이해할 수 없다 표정을 지었다. "그것이 어찌 무당파를 만만히 보는 것이란 말입니까? 소생은 다만 무당파를 위하고 제가 감히 그렇게 될 수가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그런것을 다른 모든 사람들도 이해해 줄 것이라고 믿소?" 청진자는 대체 이 백룡생의 생각을 알수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대체 그는 바보라는 말인가? 청진자가 싸늘한 시선으로 쏘아보자 백룡생은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다면 제가 그것에 관한 말을 하지 않으면 비밀이 지켜질 것이 아닙니까?" 하지만, 어찌 그러한 말을 믿을수가 있겠는가? 이때, 옥진자가 손을 저어 청진자를 제지하며 백룡생에게 물었다. "시주께서는 그 태극혜검법이 어떠한 것이라고 생각을 하시오?" 백룡생은 대답했다. "그것은 상당히 훌륭한 무학이더군요?" 옥진자는 고개를 저었다. "노도가 말하려는 것은 그런일이 아닙니다. 이 태극혜검법은 반드시 무당파의 인물, 특히 장문인에게만 전수하도록 되어 있지요. 헌데 시주께서는 이미 그것을 연성을 하셨다면서요?" 옥진자는 전에 백룡생이 그것을 펼쳐보였다는 현진자의 말을 듣고 그렇게 물은 것이다. 백룡생은 엉겹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그게 잘못입니까?" 옥진자는 고개를 내저었다. "무량수불, 잘못은 아닙니다. 그리고 시주께서는 본파에 은혜를 입히신 분이지요. 그러나... 시주께서 정히 본파에 들지 않으시겠다면 노도는 본파의 규정을 지키기 위해서 부득이 백시주를 제거하고 그 죄를 받아서 자결을 하는 수밖에 없소이다. "그... 그것은...?" 백룡생은 문득 반박을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겠느냐고 말하려다가 그것이 상대에게 먹혀 들어갈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사실 일개문파의 규율은 그렇게 엄증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우연히 그것을 보았을 뿐인데 이렇게 똑같이 적용하려는 것은 분명 그로하여금 꼼짝없이 무당파의 도사로 만들려는 뜻이 아니겠는가? 옥진자는 다소 당황해하는 그를 향해 다시 물었다. "무량수불, 시주는 혹시 그 모든 내용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릴 수가 있소이까... 그렇다면 노도는 시주에 대해서 손을 쓰지 않을수도 있소이다." 백룡생은 얼른 대답했다. "저는 그것을 완전히 잊을수는 없을 것이지만 기억하지 않으려고 노력은 하지요. 그러면 안되겠습니까?" 옥진자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기억하지 않는다고 해도 이미 규율을 어긴 것이니 어쩔수가 없소이다. 자, 시주께서는 그만 준비를 하도록 하시지요!" 말이 끝나자, 옥진자는 정말로 그를 향해 우장을 들어올리며 전신의 진기를 가득 끌어올리는 것이었다 곧장 그의 옥색도포가 풍선처럼 부풀어오르고 그의 전신에서 피어오른 기운은 실내의 공기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그것은 바로 무당파의 여러가지 무공중의 진산장이라는 절기였다. 백룡생은 현진자의 무공을 몇번 보았지만 지금의 이러한 위세는 현진자의 것보다도 훨씬 뛰어난 것이었다. 물론 백룡생은 이러한 위세가 두려운 것은 아니지만 실로 난처한 기분이 들었다. 그는 원래 자신이 무당파의 사숙이 되는 것이 절대로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만일 지금 그와 옥진자와의 싸움이 벌어지게 되면 어쨌거나 비단 무당파에 불리할 뿐만 아니라 자신은 설혹 옥진자를 죽이지는 않더라도 그들에게 영원히 쫓기는 몸이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유일한 해결책은 그 스스로가 자결을 하는 것이지만 그는 그렇게 할 마음은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잠시 생각한 후에 내심 탄식했다. (이것은 어쩔 수가 없다! 어쩔수가 없다면 이것도 인연이요. 이것이 인연이라면 그대로 따르면 되는 일이 아니겠는가?) 백룡생은 일단 어쩔수가 없다는 생각이 듣자 곧 자신이 뜻을 포기하고 말았다. 그는 원래 무엇에도 그리 완강한 침묵이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비록 상식울 다소 파괴하는 일이더라도 마음을 돌리자 금방 수긍하게된 것이다. 그는 사실 원칙적으로는 그럴수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설혹 무당파의 사숙이 된다고 해도 그다지 마음에 부담이 가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오히려 일단 그렇게 마음을 정하고 나자 마음이 매우 홀가분해졌다. 그리하여 그는 다소 웃으며 말했다. "좋습니다. 그럼 제가 여러분의 사숙이 되기로 하지요! 그렇게 하면 될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말에, 옥진자를 비롯한 무당삼자는 일제히 무량수불! 하고 도호를 외웠다. 그들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이었다. 그러나, 옥진자와 청진자는 내심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무당파는 천년의 명문정파인데 네가 이렇게 무당파의 사숙이 되는 것도 과분하거늘, 우리로 하여금 이렇게 사정하게 만들었으니 이게 대체 말이나 되는 일이란 말인가? 너는... 너는 그야말로 너무도 염치가 없고, 멍청할 뿐만 아니라 이제 우리 무당파의 암적인 존재가 되겠구나! 빌어먹을...) 그것은 실로 당연한 생각이라고 말할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같이 수양이 많은 늙은 도인들이었으므로 결코 내색을 하지는 않았다. 제 24 장 옥허산인 이렇게 어렵고도 어려운 결정이 나자, 옥진자는 이어 전면의 장삼봉진인의 영정으로 다가가서 다시 서너대의 향을 피운 다음에 백룡생에게 말했다. "백시주께서는 어서 조사님께 대례를 올리도록 하시오!" 그는 아직 백룡생이 정식으로 ㅂ무당파의 제자가 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저 백시주란 호칭을 다시 사용한 것이다. 백룡생은 이미 무당파의 사숙이 되기로 마음을 굳혔으니 더이상 사양할 것은 없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옥진자에게 물었다. "절은 몇번하면 되는 것이오!" 그말에, 옥진자는 다소 침중하게 도호를 외우더니 대답했다. "무량수불! 배사지례는 구배지례이오." 즉, 스승에 대한 예의는 아홉번을 절한다는 말이었다. 옥진자는 그*}게 말을 하면서 백룡생에게 그것도 모르냐는 한심하다는 듯한 태도를 보인 것이다. 백룡생은 그러나 웃으며 고개를 거였다. "ㅇ라겠소." 이 , 그는 영정을 향해 공손하게 절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는 사실 현진자에게만 볼일이 있었지 도가와는 별볼일도 없었는데 지금 이렇게 느닷없이 무당파의 속가제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백룡생은 비록 그들의 뜻에 못이겨 절을 하면서도 내심은 이렇게 중얼거렸다.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이것이 어쩔수가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나는 본래 이 도가에 대해서 별로 탐탁지 않게 생각해 왔다. 이 세상에 삶과 죽음을 초월한다면 도라고 하는 말도 있을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 없는 것에 집착함은 잘못인데, 그러한 잘못된 것에 절을 하고 신봉을 한다는 것도 잘못이다. 그러나... 진실로 모든것을 초월한다면 그러한 잘못마저도 초월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따라서, 지금 내마음은 아주 평온하니 그것으로서 나는 절을 하면서도 실은 하나도 절하지 않은 것이 된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매우 복잡하고 괴이한 논리였다. 보통사람은 그런 생각을 한다면 다소 심사숙고를 해야 하겠지만 그는 절을 하는 도중에 그야말로 줄줄이 내심 중얼거렸으며 앞에 그려져 잇는 장삼봉진인의 영정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도 쓰지 않았다. 만일 이러한 사실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만일 그것이 드러났을 경우에는 옥진자들의 표정은 극심하게 일그러졌을지도 모른다. 백룡생이 절을 하고 일어서자, 옥진자는 일순 엄숙한 표정으로 품속에서 미리 마련한 듯한 하나의 문서를 꺼내 읽었다. "...이리하여 오늘 제차 백룡생은 무당파의 제 오십삼대제자로 입문하게 되었습니다. 그러하오니 조사님이시여! 흠향하시고..." 옥진자의 그 문서는 매우 길어서 그가 그것을 읽는 것을 기다리는 백룡생은 다소 지루한 느낌이 들었다. 옥진자는 그것을 다 읽자 백룡생을 향해 다시 말했다. "예를 올리시오!" 백룡생은 다시 물었다. "이번에도 아홉번을 절해야 합니까?' 옥진자는 심히 마음이 노한듯 눈을 부릅뜨며 대답했다. "무량수불, 조사님께 하는 예의는 언제나 구배지례이오!" 그가 다소 화를 내는 모습을 보고는 백룡생은 그저 담담하게 웃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무당파의 역사책에는 그런것이 적혀 있지 않았는데 내가 그것을 어떻게 알겠는가!) 허나, 백룡생은 웃는 얼굴로 다시 영정을 향해 아홉번의 절을 했다. 그러자, 옥진자는 그를 향해 말했다. "무릎을 꿇으시오!" 백룡생은 그가 영정을 향해 무릎을 꿇으라는 소리인줄 알고 얼른 그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러자, 옥진자는 그의 앞에 서더니 엄숙한 어조로 말했다. "우리 무당파의 배분은 무허진운학송의 글자로 내려가고 있소이다. 따라서, 제 오십삼대 제자의 글자는 허이니, 본좌는 조사님을 대신하여 그대에게 도호를 내리겠소이다. 그대의 도호는 옥허이오" 그말에, 백룡생은 고개를 쳐들어 그에게 물었다. "그럼 나는 옥허자가 되는 것이오!" 옥진자는 고개를 내저었다. "선사의 도호는 자허였으며, 그분께는 산인이라는 존칭을 쓰고 있소이다. 그러니 자연 그대의 도호도 옥허산인이오!" -- 옥허산인, 백룡생은 졸지에 옥허산인 백룡생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옥진자는 말을 이었다. "그대는 비록 도호를 받았다고는 하나 속가의 제자이므로 도가의 온갖 법도에 구애될 필요는 없소이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하나의 행동을 하더라도 사문의 명예를 위해서 신중하게 움직일 것이며, 만약 대의와 인륜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을시에는 즉각 조사님의 이름으로 그대를 처단할 것이오." 옥진자는 백룡생의 사고방식이 매우 엉뚱하므로 처음부터 확실하게 잡아두고 엄격한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는 처음에는 구애받을 필요가 없다고 말했던 세세한 무당파의 규칙까지도 그에게 똑똑하게 들려주기 시작했다. 백룡생은 옥진자의 말이 한없이 길게 이어지자 점차 크게 지루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는 원래 고요히 명상에 드는 것이 습관이었는지라 내색하지 않고 가만히 듣고 있다가 그의 말이 끝나자 물었다. "이제 모든 의식이 끝난 것이오?" 옥진자는 그말에 다소 눈살을 찌푸렸다. 원래, 이 의식은 여러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다소 장황하게 치루었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백룡생이 무당파의 사숙이 되는 것은 특별한 경우이고 또한 그의 성격이 엉뚱해서 분란의 소지가 없지 않은지라 간단하게 약식으로 거행한 것이다. 그러니까, 이제 그의 존재를 무당파의 전제자들에게 알리는 일만 남은 것이다. 옥진자는 순간 다시 노기가 치밀어 오를뻔 했으나 겨우 참고 말했다. "조사님께 예를 올리시오!" "..." 백룡생은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제차 구배지례를 올렸다. 그러자 옥진자는 조용히 영정을 향해 읍을 하더니 곧장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가버렸다. 백룡생은 이에 다소 어리둥절해졌다. 뒤를 이어 청진자 역시 옥진자의 뒤를따라 나가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리하여, 그는 급히 남은 현진자를 향해 물었다. "도장어른, 이제 끝난 것입니까?" 헌데, 그말에 현진자는 일순 크게 당혹한 표정으로 고개를 수그렸다. "소, 소사숙! 앞으로는 저를 그런식으로 부르면 안됩니다. 저는 이제 소사숙의 사질에 불과하기 때문에 오히려 소사숙께서 저의 어른이 되시는 셈입니다." 백룡생은 다소 의아한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나는 이제 당신을 어떻게 불러야 한다는 말이오?" 현진자는 백룡생이 아직 그러한 내용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고는 자세하게 대답해 주었다. "우선 저의 장문사형에게는 그는 무당파의 장문인이기 때문에 장문인이라고 존칭을 하셔야 합니다. 혹은 장문사질이라고 해도 무방하지요. 그러나, 청진사형에게는 청진사질이라고 말하며 하대를 해야 합니다. 저 역시 그러하며 제게는 현진사질이라고 불러주십시오. 그 밑으로는 다만 도호에 사손이라는 말을 붙이시면 됩니다." 벡룡생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다소 곤혹해져서 물었다. "하지만 내가 당신에게 감히 하대를 한다면 어떻게 시중을 들어드릴수가 있겠소?" 그말에, 현진자는 안색이 창백해져서 급히 고개를 내저었다. "시, 시중이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오히려 제가 소사숙의 시중을 들어야 하지요. 그리고, 잠시 하대를 할수가 없다는 말은 더욱... 더욱 불가합니다." 현진자는 일순 전신에 식은땀이 나고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다. 그것을 보고 백룡생은 더욱 의혹에찬 표정을 했다. "그럼, 이제 당신은 나의 시중이 필요없다는 말이오?" 이말은 기실 평범한듯 해도 의미심장한 것이었다. 백룡생은 전에 만약 현진자가 그가 시중을 드는 것을 마다하지만 않는다면 떠나지 않겠다고 했었고, 만일 현진자가 마다한다면 그는 곧장 떠나겠다고 했던 것이다. 그가 만약 떠난다면 그것은 그와 현진자와의 관계가 끝났음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허나, 현진자는 바로 이와같은 사실을 알고 있었어도 구태여 신경쓸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백룡생이 그를 시중들 수는 없다는 것은 이미 기정사실이고, 설령 백룡생이 떠난다고 해도 이제 그는 무당파의 제자이니 상관이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실로 저는 너무나도 거북스러워서 감히 소사숙의 시중을 받을수는 없습니다. 다만 이제부터는 소사숙께서는 마음 편하게 이곳에서 지내도록 하십시오. 제가 가끔씩 들러서 시중을 들어드리면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백룡생은 그말을 듣고 잠시 생각했다. (원래 어르신께서 나에게 이분 도장과 함께 살라는 것은 다만 시중을 들어드리라는 말만은 아닌지도 모른다. 그분께서는 단지 가서 함께 살라고 하셨으니 이제 처지가 바뀌어서 내가 그의 시중을 받는다고 해도 어르신의 뜻을 어기는 것은 아니진 않은가?) 백룡생은 순간 다시 생각했다. (맞아! 그럴지도 모른다! 어르신께서 나를 굳이 이곳 무당산에 보내신 것은 혹시 내가 무당파의 제자가 되기를 바라셨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굳이 마다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백룡생은 일순 그렇게 마음의 결정을 내리자 마음이 편해졌다. 기실, 이렇게 신분이 뒤바뀌고 시중을 들어주는 사람이 뒤바뀌는 것은 일반적인 관계에서는 지극히 곤란하고도 곤혹스러우며 어색하기 짝이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아무래도 무리가 뒤따랐을 것이다. 허나, 백룡생은 원래 그가 현진자와 같은 사람의 시중을 들어주는 것도 부담이 없이 마다 하지 않았고 동시에 그 반대라도 상관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만일 그가 그 어 나 일에 구애되는 사람이었다면 그렇게 지독한 대우속에서도 그토록 현진자를 깍듯이 모시지는 못했을 것이다. 따라서, 이제 상황이 뒤바뀌어 그가 현진자의 시중을 받게 되었어도 그는 조금도 마음의 변화가 일지 않았을 분만 아니라 역시 편안하고 태연해졌다. 다만 중요한 것은 인연에 따른다는 마음의 결정 뿐인 것이다. 게다가, 현진자 역시 전날 백룡생에게 매우 감탄한바가 크고 깨달은 바가 있었기 때문에 마음이 전과같지 않아서 스스로 백룡생을 모시겠다는 열의가 충만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이 두사람의 신분과 위치는 거짓말처럼 자연스럽게 뒤바뀌었다. 백룡생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그러면 그렇게 합시다! 하지만... 하지만 내가 굳이 여기에서 살라는것은, 실로... 실로 불가하지 않겠소?" 백룡생은 자신이 이미 옥검봉위에서 사는 것이 습관이 들었고, 게다가 그가 여기에서 살게되면 아마 옥진자가 말한 여러가지 규칙을 모조리 지켜야할 지도 모르며, 여러가지 자유분방한 그의 행동거지에 장애가 생길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현진자는 그말을 듣자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장문사형과 청진사형은 둘다 소사숙께서 이곳에 머무는 것을 달가와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굳이 이곳에 계시라고 말할 필요는 없겠구나!) 그렇게 생각을 하고는 그는 대답했다. "그럼 소사숙께서는 역시 전에 살던 그대로 옥검봉의 위에서 살고 계시다가 제가 가끔씩 이곳에 머무르면서 찾아가 뵙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백룡생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그럼, 그대는 이제는 나와 함께 옥검봉위에서 살지않고 이곳에서 살겠다는 말이오?" 현진자는 고개를 내저었다. "소질이 거처할 장소는 비록 그곳 옥검봉의 꼭대가가 아니더라도 실은 많고도 많습니다. 소질은 과거 이곳 무당산의 곳곳에 거처를 마련해두고 가끔씩 옮겨다니며 살곤했지요. 그러니 이제 소질은 그중 다시 한곳을 고르는 것쯤은 문제도 아닙니다." 그렇다. 현진자의 이 말은 사실이었다. 백룡생은 고개를 거이지 않을수가 없었다. 허나,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물었다. "하지만, 하지만 그대는 이미 나에게 시중을 받는일에 익숙해져 있었는데 만약 다른곳에서 혼자서 살게 된다면 그건... 그건 너무도 외롭고 따분하지 않겠소?" 그말에, 현진자는 일순 만면에 가벼운 미소를 떠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이 백룡생의 성품이 지극히 인자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비록 과거에 자신을 무수하게 해치려고 했었음에도 이제 다시 그를 생각하여 그러한 말을 해주는 것이었다. 이것은 그가 신분고하에 집착하는 것과는 또다른 부드러운 감정이었다. 현진자는 이에 웃으며 대답했다. "사실, 소사숙의 시중드는 능력은 천하에서 따라갈 사람이 없을 정도이지요. 저는 아마도 항상 그때가 그리울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제는 굳이 문하를 봉문하지 않고 제자를 ㄹ받아들여서 그들의 시중을 받으면서 살아갈 예정입니다." 현진자는 이제 백룡생의 훌륭한 인자함에 감화되어 그 편벽한 성격이 사라진 것이 . 백룡생은 그가 이제는 제자까지 두고 시중을 받으면서 살겠다고 말하자 더이상 자신과 함께 살자고 말할수가 없었다. (그는 본래 무당파의 도인이고 이제 나 또한 무당파의 사람이니 비록 떨어져서 산다고 해도 역시 함께 사는 것이나 다름이 없을 것이다!) 내심 그렇게 ㅅ생각한 백룡생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현진... 현진사질은 그렇게 하도록 하시오!" 현진자는 그말에 공손히 예를 오리며 대답했다. "예, 소사숙!" 그때, 밖에 나가있던 악불이가 슬그머니 안으로 들어오다가 이와같은 광경을 보고는 매우 의아한 심정이 되어 다가와 물었다. "이게 대체 어찌된 영문이지요? 그리고, 도장께서는 왜 백랑에게 소사숙이라고 부르죠?" 그녀는 이제 현진자의 태도가 크게 호의적으로 변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는 마음놓고 질문을 한 것이다. 그말에, 백룡생은 웃으며 그녀에게 설명했다. "나는 이제 무당파의 소사숙이 되었기 때문에, 현진... 현진사질은 나에게 인사를 하는 것이라오.:" 백룡생은 이제 금방 현진자에 대한 호칭을 바꾸게 되자 다소 어색해서 말을 더듬는 것이다. 하지만, 악불이는 그런말을 듣고는 도대체 어찌된 영문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백랑이 무당파의 소사숙이 되었다고? 그, 그럼 나는 소사숙모가 되는 것일까? 헌데... 헌데 대체 백랑은 무슨수로 무당파의 소사숙이 되었다지?) 악불이는 백룡생의 무예는 물론 그의 행동거지가 다소 엉뚱하면서도 불가사의하다는 것을 느껴온 바였지만 대체 이러한 변화에 대해서는 실로 아연해질 뿐이었다. 그리고, 이제 자신이 무당파의 소사숙모가 되었다는 사실에 다소 야릇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때, 현진자가 앞장서서 조사전을 나가며 백룡생에게 말했다. "소사숙님, 소질이 무당파의 아래에까지 소사숙님을 배웅해드리겠습니다." 그말에, 백룡생은 고개를 끄덕이며 선뜻 그의 뒤를 따랐다. 악불이 역시 어리벙벙한 태도를 하고 정면의 중앙에 걸린 장삼봉진인의 영정을 보면서 도저히 알수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그 뒤를 ㄹ따랐다. * * * 그들이 조사전의 밖으로 나가자, 그곳을 지키고 있던 젊은도인들은 즉시 현진자를 향해 공손히 예를 올렸다. 이어, 뒤따라오는 백룡생에게도 역시 공손하게 예를 올리는 것이었다. 그들은 아마도 백룡생이 이미 무당파의 소사숙이 되었다는 사실에 대해서 어느정도 눈치를 챈듯 했다. 그러나, 아래로 내려갈수록 아직 무당파의 다른 제자들은 그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불과 몇시진 후면 그들은 무당파에 하나의 괴물이 나타났음을 알게될 것이다. 현진자는 무당파의 전각이 끝나는 곳에 이르러 백룡생에게 공손하게 예를 올렸다. "소질은 여기까지만 배웅을 하겠으니 소사숙께서는 살펴가십시오!" 백룡생은 역시 그에게 공손히 마주 답례했다. "현진사질께서도 그만 돌아가서 다른 거처를 마련해 보시오. 그리고 만일 무당파에 무슨 일이 생긴다면... 생긴다면 나는 그야말로 이제는 모른척만 할수 없는 일이 아니겠소?" 그말은 만일 무당파에 무슨일이 생긴다면 자신에게 전갈을 해달라는 말이었다. 현진자는 담담히 웃으며 고개를 거였다. "알겠습니다. 그때는 소질이 직접 달려가서 말씀을 드리지요. 그럼..." 그는 말과함께 허리를 깊이 숙였다. 이에, 백룡생은 하는 수 없이 고개를 숙여 답례를 하고는 몸을 돌려 그곳을 떠나지 않을수가 없었다. * ** "백랑! 대체 어찌된 일이요!" 무당파를 따나오자 악불이는 거의 매달리다시피 하면서 백룡생에게 그간의 사정을 물엇다. 이에, 백룡생은 미소하며 간단하게 그간의 사정을 말해주었다. 악불이는 그 이야기를 듣고 더러는 이해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들을수록 의아함이 가득찼고 불신과 의혹이 빛이 가득했다. 백룡생이 구령산에서 어떻게 인연을 맺어져서 이곳 무당산의 옥검봉이 이르렀으며 다시 이렇게 석실을 발견하였는지에 관한 이야기는 직접 듣더라도 믿을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악불이는 이제 백룡생이 더이상 현진자를 시중들지 않아도 되며, 다시는 죽음에의 위험이 사라졌음을 깨닫고 매우 기뻐서 춤을 추었다. "그럼, 그럼 그 옥검봉의 정상은 우리만이 보금자리가 된다는 말인가요?" 백룡생은 문득 그녀가 무엇을 생각하고 잇는지를 생각해보다가 은근히 안색을 붉혔다. "그런 셈이오. 하지만..." 백룡생은 그가 갑자기 말을 하다가 끊어버리자 궁금해져서 물었다. "하지만 뭐죠?" 백룡생은 기실 아직은 혼인을 하지 않았으니 두사람은 당연히 법도를 지켜야할 것이라고 말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 그녀에게 그러한 말을 하기가 매우 쑥스러운 것을 느끼고 그는 은근히 말을 돌렸다. "하지만 우리는 그곳에서 해야할 일이 있다는 말이오." 악불이는 그의 말을 생각해보지도 않고 웃으며 대꾸했다. "맞아요! 우리는 앞으로 다소 바빠질것 같아요. 우선, 우리는 그 낡아빠진 집을 다시 헐어서 새로 짓도록 해야하고... 돈을 조금 들여서 물건들을 새로 들여놓고 또한 집안을 따ㄸㅅ하게 만들어야 하겠죠? 그리고 거 에서 우리는 아들과 딸을 낳고..." 거기까지 말하다가 악불이는 문득 자신이 실언을 했음을 ㅇ라고는 안면을 노을처럼 붉혔다. 그녀는 이제 모든 위험이 사라지고 걱정이 해결되자 마치 날아갈듯한 기분인 모양이었다. 허나, 그러다가 그녀는 문득 생각난듯 물었다. "참, 우리는 언제까지 그곳에서 살아야 하죠? 우리는 강호에는 나가지 않을 건가요?" 악불이는 자신의 혼인문제를 생각하자 자연 강호에 나가서 이름을 떨치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말에, 백룡생은 오히려 의아해하며 되물었다. "아니, 우리가 무엇때문에 강호에 나가야 한다는 밀이요?" 순간 매우 기뻐하던 악불이는 다소 흥겨운 마음이 식어버렸다. 그녀는 백룡생이 전혀 강호에 출도할 마음이 없는 것을 보자 얼른 대꾸했다. "우선 강호에는 아주 악랄한 대마두가 많으니 당신이 척결을 해야한단 말이예요. 그리고 당신이 만일 이름을 날리면... 이름을 날리면, 우리는 그때는 정정당당하게 모든 사람들 앞에서 혼인식을 올리는 것이예요." 악불이는 문득 그러한 정경을 눈앞에 떠올리는 듯 아득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백룡생은 그말에 의아해져서 물었다. "만일 우리가 강호에 나가서 이름을 날리지 않으면 혼인식을 할 수가 없다는 말이오?' 악불이는 그 질문에 대해 생각했다. (아니, 굳이 그러지 않아도 백랑은 이미 무당파의 소사숙이 되었기 때문에 아버지는 혼인을 허락하실 거야! 그러나,... 그러나...) 왠지 석연치 않은 마음이 들던 그녀의 뇌리에 문득 옥진자등의 싸늘하던 그 태도가 떠올랐다. 그리하여, 그녀는 어쩌면 이 무당파의 소사숙이란 신분은 다만 허수아비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다시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가 만일 강호에서 이름을 날리게 되면 그대는 가장 확실하지 않겠는가?) 따라서, 그녀는 차후에 백룡생에게 충동질을 해서 강호로 나가도록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굳이 그러한 말을 꺼낼 필요가 없으므로 그녀는 대답했다. "그러니까 내말은, 우리가 좀더 행복하게 살기위해 노력하자는 말이예요." 그말이 끝나자, 악불이는 돌연 신법을 배가시켜서 앞쪽으로 훌훌 달려나갔다. 그녀가 그렇게 앞으로 빠르게 달려가는 모습은 눈송이가 휘날려서 마치 한명의 아름다운 선녀가 춤을 추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어느새 두사람은 옥검봉의 가까이에 이르러 있었다. 악불이는 옥검봉의 바로 아래에 이르자 더 신법을 펼치지 못하고 신형을 멈춰 세웠다. 헌데 그때였다. 멍청하던 그녀의 몸이 돌연 그자리에서 풀썩 쓰러져버리는 것이 아닌가? 이에, 뒤에서 무심코 다가가던 백룡생은 일시 가볍게 안색이 변했다. 그는 혹시 악불이가 어젯밤에 당했던 그 극독의 기운이 아직 남아서 그것이 다시 발작을 일으킨 것이 아닌가 하고 걱정했다. 백룡생은 비록 완전하게 처치한다고 하기는 했지만 이 극독이라는 것은 아주 조금만 있어도 증세를 발휘하는 것이니 알수가 없는 일인 것이다. 한데, 풀썩 쓰러져서 눈위에 떨어져 내리려던 그녀의 몸을 일순간 백룡생이 빠르게 다가가서 가볍게 안아들었을 때였다. 돌연 마치 죽은듯하고 늘어져 있던 그녀의 두눈이 열리며 다소 짓궂은 표정으로 방긋웃는 것이 아닌가? "호호, 놀랬죠?" 백룡생은 그제서야 자신이 그녀의 속임수에 넘어갔음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그는 담담하게 웃을 뿐이었다. 그것을 보고 악불이는 문득 말했다. "자, 이제는 나는 더이상 올라갈 수가 없으니 당신이 나를 앉고 올라가봐요!" 그리고는 두눈을 살며시 감고는 그의 목을 두팔로 꽉 껴안는 것이었다. 백룡생은 조용히 웃고는 천천히 위로 몸을 움직였다. 허나, 비록 천천히 움직인다고 느낀 순간 그의 신형은 허공에 빠르게 날아서 이미 옥검봉의 정상에 내려서고 있었다. 악불이는 눈을 감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발리 움직인 것을 깨닫지 못했다. 그러다가, 뭔가 느낌이 이상한 것을 알고 눈을 떠보니 어느새 그곳은 모옥의 앞이 아닌가? 이에 악불이는 자연 경악했다. (그는... 그는 대체 언제 나를 안고 이 위로 올라온 것일까? 이것은, 이것은 실로 믿을수가 없는 일이다. 이렇게 빠른 신법이 있을까?) 악불이는 지금 이순간이 마치 꿈만 같았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계속 그의 품속에 안겨 있을수는 없으므로 그녀는 배시시 웃으며 얼른 그의 품에서 바닥으로 내려섰다. 그리고는, 얼른 모옥으로 달려가며 말했다. "어서... 어서 방을 정돈하도록 해요! 우리는 필요한 것은 버리고 새로 집을 꾸미는 거예요! 당신, 당신은 왜 그렇게 멍청하게 서있기만 하는거죠?" 악불이가 돌연 모옥의 입구에서 고개를 돌리며 앙칼지게 소리쳐 묻자 백룡생은 일시 어리둥절해졌다. 그는 갑자기 달라진 그녀의 태도에 일시 종잡을 수가 없었다. 허나, 백룡생은 천천히 그곳으로 걸어가자 악불이는 다시 까르르 웃으며 안으로 팔랑팔랑 들어가 버리는 것이었다. 백룡생은 고개를 가볍게 내저으며 안으로 따라들어갔다. 그리고 이어 현진자의 방으로 가서 모든것을 깨끗이 치우기 시작* 제 25 장 통나무집 다행히, 현진자는 본래 은자나 중요한 물건들은 항상 자신이 가지고 다니는 데다가 방안에는 별로 그럴싸한 옷가지도 없었기 때문에 악불이는 즉시 방안의 모든것을 밖으로 가지고 나가서 불에 태우기 가했다. 그리고, 방안은 하나도 물건이 남아있지 않아서 텅비게 되었다. 악불이는 자신이 나서서 백룡생을 재촉해서 그 방안을 아주 깨끗하게 청소하도록 했다. 그리고 나서 백룡생에게 다시 침대 하나를 만들도록 한 다음에 문득 물었다. "당신, 혹시 은자를 가진게 있나요?" 백룡생은 이말에 고개를 내저었다. 원래 그는 구령산을 떠나올때 다소의 은자를 가지고 있었지만 현진자와 이곳으로 오는 동안에 전부 써버리고 은자가 하나도 남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자, 악불이는 다소 고소하더니 문득 품속을 뒤져서 자신이 가지고 잇는 은자들을 모두 끄집어 냈다. 그것은 스무냥짜리 은원보 하나와 몇조각의 은자였는데, 기껏 전부 합해봐야 은원보까지 해서 스물닷냥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실상, 이 스물닷냥의 은자는 노잦돈으로는 상당한 금액이라고 말할수가 있었다. 악불이는 원래 이곳이 화산파와 그리 멀지 않았기 대문에 굳이 노잣돈을 그리 많이 가져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 스물닷냥의 은자는 두사람이 여기에서 온갖 물건을 사고나면 겨우 한달정도 살아갈수가 있을 금액인 것이다. 백룡생은 과거에는 손수 일을 해서 돈을 벌어왔었지만 요사이는 현진자가 읍내에 나가서 가금씩 쌀과 반찬거리를 사왔었기 때문에 그다지 돈에는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악불이는 그를 향해 배시시 웃다가 말했다. "나를 어서 아래에 내려다줘요! 나혼자 읍내에 갔다 올테니, 당신은 그간 침대를 하나 만들고 그리고... 기왕이면 이 쪽의 집을 모두 헐고 새로 짓는 것이 좋겠어요!" 악불이는 전에 현진자가 사던 방쪽의 건물을 가리켰다. 기실, 그쪽의 건물은 백룡생이 만들어 놓은 건너방보다는 훨씬 간단하고도 쉽게 지어진 것이었다. 게다가 오랜 풍우에 시달려서 거의 다 낡아 있었다. 백룡생은 굳이 모든것을 새롭게 짓고자하는 마음은 없어졌지만 악불이의 그러한 말을 듣고나자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이어, 그는 악불이를 안고 가볍게 옥검봉을 내려왔다. 악불이는 이번에는 백룡생의 신법의 속도를 보려고 하였으나 그는 이번에는 천천히 두둥실 아래로 떨어져 내리는 것이었다. 허나, 그는 이러한 신법도 그녀에게는 경악스러운 것이었는지라 거의 아래애 다 내려왔을 때에는 그녀의 얼굴은 경악감에 다소 창백해져 있었다. 강호에는 능공허도라고 해서 허공을 평지처럼 걷는다는 전설의 경공술도 있다지만, 그녀는 실로 이렇게 허공높은 곳에서 천천히 떨어져 내리는 신법은 처음이었던 것이다. 이윽고, 악불이는 바닥에 내려서자 백룡생을 향해 가볍게 웃어보이고는 밖으로 신법을 펼쳐 달려갔다. 그것을 보고는, 백룡생은 근처의 깊은 산중으로 몸을 날리기 가했다. 그는 우선 굵고도 굵은 통나무들을 손으로 잘라서 칡덩로 묶어서는 마치 하나의 작은 산처럼 쌓아가지고는 옥검봉의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오래된 건물을 모조리 헐어버리고 그 자리를 평탄하게 고른 다음에 전처럼 그 통나무들을 뾰족하게 하여 바닥에 꽂아가기 시작했다. 그는 전에는 악불이가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실력을 감추는 바가 있었으나 이제 혼자 남게 되자 가능한한 빠르게 하기위해 자신의 본실력을 발휘하게 되었다. 그는 통나무하나를 집어들자 어느새 그것을 다듬어서 끝을 뾰족하게 만들었고, 그것을 마치 암기를 내던지듯 허공으로 집어올렸다. 그러자, 그것들은 순식간에 바닥으로 퍽퍽퍽! 소리나게 꽂히면서 정확하게 방의 모양을 이루는 것이었다. 따라서, 백룡생이 이번에 만드는 것은 방하나와 거기에 딸린 중앙의 부엌이었지만 이번의 속도는 전번보다도 훨씬 빨랐다. 그는 모옥의 지붕과 부엌의 모든 기물, 그리고 침상까지 새롭게 만든 다음에 이번에는 다시 아래로 내려가서 아까처럼 통나무를 가져와서 그것들을 모옥의 밖에 다시 둘러싸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바람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전에는 비록 그와 현진자가 바람을 신경쓰지는 않았지만 이제는 악불이가 다소 공력이 약하기 때문에 바람이 스며들면 혹시 병이 날지도 모르는 것이다. 백룡생은 통나무를 두줄로 빽빽하게 막아넣은 다음에 그 사이에 갈잎을 많이 베어다가 가득 채워 넣었다. 사방의 벽은 물론 그는 지붕까지도 그렇게 만들었다. 특히 지붕은 비가 새지 않도록 갈대잎을 많이 가져다가 겹겹이 중간에 막아놓았는데, 그렇게 해놓자 설사 태풍이 들이닥쳐도 전혀 끄덕하지 않을 듯한 견고하고 아늑한 집이 되었다. 그리고 나서 깨끗하게 청소를 하자, 백룡생은 이제 쉬면서 악불이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런데, 예상외로 악불이는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가 읍내로 나간것은 점심때 이전이었는데, 지금은 거의 저녁때가 다되었어도 그녀는 옥검봉의 아래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럼 혹시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긴것은 아닐까? 백룡생은 문득 자신에게 초조한 감정이 드는 것을 느끼고 즉시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며 저녁밥을 지어놓았다. 그럼에도 아직 악불이가 돌아오지 않자, 그는 즉시 절벽아래로 신형을 날렸다. 아까 악불이가 은자를 꺼낼때 생각했던 것인데, 그는 이제 자신이 직접 일을 해서 돈을 벌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과거 그는 오매촌에서 나무를 하고 약초를 캐며 밭을 일구는 등의 갖은 일은 다 해보았다. 그리하여, 비단 그러한 일에 능숙할 뿐만 아니라 이제는 돈을 버는 것은 더욱 쉬우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그는 무예가 뛰어나니 산에서 약초를 보다 쉽게 캘수가 있을 것이고, 만일 좋은것 하나라도 캔다면 굳이 다른 일을 할 필요가 없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을 하며 백룡생은 옥검봉을 벗어나서 즉시 깊은 계곡쪽으로 신형을 날렸다. 동시에, 악불이가 먼저 도착할 것을 생각하여 그는 절벽의 아래에 몇자 적어두는것을 잊지 않았다. * * * 무공이 뛰어나고 신법이 탁월하다고 해서 무조건 훌륭한 약초를 캘수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우선, 약초가 자랄수가 있는 장소와 그럴 가능성이 많은 장소를 찾을줄을 알아야 하고, 또한 그 약초를 쉽게 찾아낼수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백룡생은 이러한 요건들을 모두 갖추었기 대문에 약초를 캐는 것은 그다시 어렵지가 않았다. 다만 그는 보다 나은 것을 원하고 있었기 때문에 무당산의 후미진 계곡은 다 뒤지고 다니기 시작했다. 물론 그는 무당산의 후미진 계곡의 절반도 채 뒤지지 않아서 여러가지 제법 괜찮은 약초를 캐낼수가 있었으며, 그 가운데에는 무려 수명이 백여년에 달하는 산삼이 두뿌리나 섞여 있었다. 백룡생은 이어 그것으로 만족을 하고 다시 옥검봉이 있는 곳으로 되돌아 왔다. 그때는 이미 말이 저물어서 사방은 어둑어둑했다. 그런데, 백룡생이 마악 옥검봉의 아래에 당도하여 위로 오르려는 때였다. 갑자기 저쪽 산모퉁이에서 기척이 일더니 돌연 커다란 작은 산만한 덩어리가 이쪽을 향해 빠르게 달려오는 것이 아닌가? 백룡생은 일순 의아해하다가 가볍게 웃음을 떠올렸다. 다름이 아니라, 이 커다란 덩어리의 정체는 바로 악불이였던 것이다. 악불이는 커다란 보따리의 아래에서 이것을 몸에 둘러매고 있었는데, 실로 곤욕스런 표정이 역력했다. 백룡생은 실로 어이가 없어하면서도 그녀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한손으로 그짐을 번쩍 들어서 바닥에 내려놓자 그 짐의 크기는 무려 악불이의 수십배는 될것 같았다. 이때, 악불이는 학학거리며 가쁜숨을 내쉬다가 이마의 땀을 닦으며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제 이렇게 무거울줄은 몰랐어요! 나는 원래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하려고 한거번에 많은 물건을 사지 못하고 작은 보따리로 만들어서 작은 동굴속에다가 날랐지요. 헌데, 다섯 번을 그렇게 하고 돌아와보니 왠걸 짐이 아주 많아졌지 않겠어요? 그래서 나는 얼른 다시 읍내로 내려가서 커다란 보따리를 사서는 이것을 모두 싸가지고 돌아오기 시작했지요. 헌데 이게 이렇게 무거울 줄은... 아야아야, 왜 당신은 멍하니 그렇게 보고만 있죠!" 그녀는 나중에는 백룡생을 향해 소리를 팩하니 질렀다. 백룡생은 그녀가 일시 크게 수선을 떠는 바람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지만 대충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것 같았다. 그녀는 욕심이 많아서 모든 물건을 다 구입해오려고 하나씩 사서 모았다가 마침내 그 짐이 커져버리자 고생고생을 한 모양이었다. 백룡생은 그녀를 향해 문득 수중에 들고있던 약초보따리를 내밀었다. (...?) 악불이는 힘이 없어서 겨우 그것을 펴서 보다가 일순 백년이나 묵은 산삼이 두뿌리나 잇는 것을 발견하고는 일순 기뻐서 소리를 내질렀다. "어마! 당신... 당신은 어디서 이런것ㄹ 캤죠? 이 산삼은 나도 알아요. 이건 바로 백년도 더 묵은 것인데 잘하면 천냥, 혹은 만냥까지도 받을수가 있는 것이라고요!" 그녀는 화산파 장문인의 딸이니 물론 이런 산에서 나는 약초에 대한 견식이 일반인 보다는 높았다. 하지만 그녀 역시 이러한 산삼은 처음 보는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니, 그녀는 기실 두사람이 사는데 있어서 은자가 매우 부족하다고 여기고 있었던 차이라 이렇게 황금보따리가 굴러 들어온 것을 보자 내심 말할수도 없이 기뻐했다. 사실, 무림인들이라고 해서 은자가 필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며, 화산파는 비록 궁하지는 않더라고 은자가 그리 풍족하지 않아서 악불이는 은자의 중요성을 실감하고 있었던 터였다. 그런데 이제 이 두뿌리의 산삼만 해도 능히 이만냥은 받을수가 있을테니 그것이면 두사람이 평생을 먹고사는데 전혀 지장이 없을 것이 아닌가? 악불이는 일시 너무나도 기뻐서 백룡생을 향해 물었다. "당신.... 당신은 알고보니 내가 읍내에 나갔을 때 종일 이것을 캐러 돌아다녔었군요? 하지만 당신은 오늘 아주 큰일을 했으니 비록 집을 고치지 않았다고 해도 상을 받아야 하겠죠?" 그녀는 말을 하고는 백룡생의 품속으로 달려들어 그이 입술에 가벼운 입맞춤을 했다. 비록 다소 어두운 와중이나 백룡생은 안색이 시뻘겋게 물들었고 악불이의 얼굴도 수줍음으로 새빨갛게 달아오름을 보았다. 백룡생은 웃으며 대답했다. "사실 나는 이미 집을 고쳐놓았을 뿐만 아니라 저녁까지 지어 놓았소. 우리는 어서 위로 올라가서 저녁을 먹도록 합시다. 그말에, 악불이는 절로 두눈이 휘둥그래졌다. 그녀는 일시 믿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백룡생의 능력이 거의 불가사의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곧장 이를 믿고 가슴이 기쁨으로 벅차서 그의 품속에 파고들며 나직하게 속삭였다. "당신은 너무나도 훌륭해요... 나는, 나는... 너무 행복해요." 그녀는 마치 누군가가 그말을 들을까봐 두려운듯 아주 낮은 음성으로 말했는데, 그 말이 끝나도 그대로 가만히 있더니 이윽고 잠시후에 그의 품속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약초보따리는 자신이 들고 자신이 가지고온 커다란 보따리를 가리키며 백룡생을 향해 말했다. "이제는 저것을 당신이 들어야하겠죠. 백랑?" 그녀는 방금전까지만 해도 매우 피로하고 지친 기색이었는데 지금은 아주 명랑하고 태도가 당당했다. 그것은 피로보다도 그녀의 기쁨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보따리는 대체 무엇이 들었는지 실로 상당히 무거웠다. 그것은 전에 백룡생이 등에 매었던 가죽부대보다도 오히려 더욱 무거운것 같았다. 무려 오백근도 더 나갈것 같은 이러한 무거운 것을 등에 메고 읍내에서 멀리 이곳까지 달려온 악불이의 고생은 상상이 가고도 남음이 있었다. 악불이를 바라보니, 그녀의 태도는 매우 흐뭇하면서도 의기양양한 것이 원래 그녀가 목적하던 물건은 모두 사가지고 돌아온 모양이었다. 백룡생은 그녀의 얼굴을 부드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다가 이어 그녀의 몸을 부드럽게 안았다. 악불이는 그렇지 않아도 체내의 진력을 다하여 곧 쓰러질것 같았는데 백룡생이 자신의 몸을 한손으로 안아들자 그녀는 즉시 두팔로 그의 목을 껴안았다. 헌데 이상한 일이었다. 이때, 백룡생의 손끝은 자연이 그녀의 몸이 닿게 되었는데 순간 그곳으로부터 한줄기 따뜻하고 부드러운 기운이 장강대해와도 같이 흘러 들어오더니 그녀의 체내의 피로를 말끔히 없애주는 것이 아닌가? 뿐만 아니라, 백룡생의 그 기운은 악불이의 몸에 진기를 가득 채우고서야 느릿하게 멈춰졌다. 악불이는 이로인해 자신의 내공력이 한단계는 족히 올라갈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는 내심 매우 기뻐서 황홀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백룡생이 그녀를 바닥에 내려놓는데 그녀가 급히 주위를 둘러보니 이미 그곳은 옥검봉의 정상이 아닌가? 그녀는 이에 그만 두눈에 휘둥그래졌다. 대체 그녀는 어제 백룡생이 그녀를 안고 다른손으로는 그 커다란 보따리를 들고 이곳에 올라왔는지 알수가 없었다. 물론 그녀는 지금의 이러한 백룡생의 신법이 의심스러운 것은 아니나, 단지 자신이 두눈으로 그 빠르기를 보지 못한것이 유감일 뿐이었다. 허나, 그러한 감정도 금세 사라지고 그녀는 즉시 자신이 가져온 보따리에 관심을 쏟았다. 따라서, 발리 모옥의 앞에 내려놓으라고 말하려다가 그녀는 문득 모옥이 새롭게 아주 견고한 통나무집으로 바뀌었음을 보고는 일순 감탄과 기쁨의 탄성을 내질렀다. "당신... 당신은 과연 재주가 많군요? 이렇게 훌륭한 집을 금방 만들어 내다니!" 악불이는 더욱이 사방의 벽과 지붕을 이미 두겹으로 쌓고 집안이 더욱 아늑해졌음을 확인하고는 더욱 기뻐했다. 그녀는 비록 오늘 물건을 사오느라 고생을 했지만 일단 이곳에 당도하자 기쁨의 연속인것 같았다. 이어, 그녀는 빨리 백룡생을 재촉하여 보따리를 통나무집의 안으로 들여가는 한편, 그녀는 먼저 통나무집의 안으로 들어가서 유등을 켰다. 이 통나무집의 안은 밖에서 생각근던 것보다도 훨씬 아늑했다. 그것은 백룡생이 이 집을 지을때 세심한 노력을 기울였다는 증거였다. 악불이는 자신의 아늑해진 방과, 이어 전에는 현진자의 방이 있었던 자리에 새롭게 마련된 백룡생의 방을 돌아보며 행복감에 문득 눈물을 한방울 두방울 흘러내렸다. 허나, 그녀는 곧 눈물을 닦고 얼른 백룡생이 가지고 들어온 보따리에 매달렸다. 그녀는 그것을 부엌에 내려놓게하고 즉시 풀어해쳤다. 그러자, 거기에서는 실로 오만가지의 모든 물건들이 다 튀어나왔다. 우선 그들이 수십일간 먹고살수 있는 식량과 반찬거리, 그리고 두사람의 의복, 특히 백룡생은 거의 의복이 낡아서 없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기 때문에 두사람의 많았다. 게다가, 아래로 내려갈수가 있는 길고 튼튼한 밧줄과 침상위에 깔게될 가죽과 이불등... 그야말로 생활에 필요한 것중에 없는 것이 없었다. 심지어는 목욕을 할수가 있는 커다란 물통마저 들어있을 정도였다. 백룡생이 그것들을 보고 아연 두눈이 휘둥그래지자, 악불이는 즉시 그것들을 빠르게 제자리에 정리해 놓았다. 그리고, 정리가 모두 끝나자 그녀는 백룡생과 함께 부엌의 넓게 마련된 탁자앞에 저녁음식을 늘어놓고 마주앉았다. 이때, 백룡생은 매우 시장하였으므로 밥을 두그릇 가득히 담아서 빠르게 먹어치웠으나, 악불이는 배가 고플텐데도 거의 음식을 들지 않았다. 그녀는 아마도 너무나도 들든 나머지 배고픔마저 잊어버린 모양이었다. 이어, 저녁상을 물리고 나자 그녀는 얼른 아까의 그 약초보따리를 가져와 유등의 불빛이 환하게 비치는 탁자위에 올려놓았다. 그녀는 이어 그것들을 하나의 세세히 살펴보면서 점차로 눈이 휘둥그래졌다. 보따리안에는 비단 두뿌리의 산삼뿐만 아니라 오래묵은 황정이나 하수오, 그리고 수십년 묵은 산삼들도 적지 않았다. 악불이는 헤아려보니 그것들만 해도 가히 수천냥의 은자는 만들수가 있을 것 같았다. 그리하여 그녀는 그것들을 바로 잘 싸서 놓아둔 다음에 백룡생에게 물었다. "대체 이 많은 약초들을 어디에서 캐어왔죠?" 백룡생은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원래 약초를 캐는 것이 직업이었는데, 이렇게 무공이 고강해지니 깊은 계곡으로 들어가자 금방 발견할수가 있었소." 하지만 이런 약초를 캐는일이 백룡생의 말처럼 쉽다면야 어찌 굶어죽는 사람이 생기겠는가? 악불이는 백룡생의 능력이 실로 불가사의 하다가 생각하면서 기뻐 박수를 쳤다. "정말 대단하군요! 우리는 평생 일을 하지 않고 당신이 약초만 두어번 캐어와도..." 그러다가, 문득 그녀는 안색을 가볍게 변화시키면서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아니예요! 당신은 이제 그만 더이상의 약초는 캐지 말아요. 저는 이제 행복한데 더이상의 욕심을 부린다면 하늘이 화를 낼것 같아요. 저는 더이상 욕심을 내지 않겠어요!"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얼굴에는 이 행복을 지키겠다는 신념이 강하게 깃들어 있었다. 백룡생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그렇게 합시다." 그는 약초를 캐는 것은 상관이 없지만 악불이가 욕심이 적어졌다는 사실에 마음이 흡족했다. 이대, 악불이는 다소 안색을 상기시키며 말을 이었다. "사실,... 저는 오늘 물건을 사다보니 제가 가지고 있던 은자를 거의 다 써버리고 말았어요. 그래서 속으로는 어느정도 근심하고 있었는데... 이제 우리는 돈걱정은 하지 않고 살겠군요?" 이어, 그녀는 문득 생각난둣 입을 열어 물었다. "참! 우리 내일은 둘이서 함께 이 약초들을 팔러 나가는 것이 어때요!" 원래, 이런 커다란 명산이 있는 주변에는 약초를 캐는 사람들과 그 약초를 사려는 사람들이 많기 마련이다. 특히 이 무당산에는 정기가 어려 있어서 예로부터 좋은 약초가 많이 생산되므로 그러한 사람들이 매우 많았다. 백룡생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합시다." 이에, 악불이는 즉시 신형을 가볍게 튀어올려 허공에서 부드럽게 몇번 공중돌기를 하더니 탁자를 넘어서 날아와 백룡생의 목을 두팔로 휘어감으며, 그의 빰에 부드럽게 입맞춤을 했다. 그리고는, 아주 상당한 음성으로 말했다. "당신은 어서 그만 들어가서 자요! 저는 오늘밤에 목욕을... 목욕을 해야겠어요!" 그녀는 그말을 하고서 다시 얼굴색이 빨개졌다. 원래는 태연하게 말한다는 것이 일단 그렇게 말을 해놓고 보니 극심한 수치감이 든것이다. 백룡생은 그저 빙긋 웃고는 그녀의 몸을 내려놓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어, 그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서 침상위에 눕자, 악불이는 즉시 물을 데워서 목욕을 하기 가했다. 백룡생은 비록 아직 여인의 정에 완전히 눈이 뜨인 것이 아니고 또한 마음이 맑아서 욕념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 찰랑거리는 물소리를 듣자 자연 쉽게 잠을 이룰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애써서 마음의 평정에 들었고, 그녀의 목욕이 거의 끝나갈 즈음에는 이미 깊은 잠에 빠져들어가고 있었다. 그날밤은 그렇게 지나갔다. 악불이는 전날만해도 그에게 신한 유혹을 하더니 그날밤은 의외로 스스로 자신의 방으로 돌아 가서 잠을 잤던 것이다. * * * 다음날 아침, 백룡생은 먼저 일어나서 대략 반시진가량 명상에 잠긴 다음에 밖으로 나왔다. 밖은 아직 아침해가 뜨기 전이었다. 동쪽의 하늘이 점점 붉게 물들어오고 있었다. 백룡생은 이제 악불이가 사온 굵고 기다란 밧줄을 가지고 오선 절봉의 가장 윗부분에 아주 튼튼하게 맨 다음에 나머지 부분을 들고 점차 아래로 내려가면서 십여장의 간격으로 그것을 절벽위에 박아놓았다. 그것은 악불이가 그 밧줄을 잡고 올라올 때 잠시 쉴수 있도록 함과 동시에 밧줄이 흔들리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백룡생은 그런식으로 해서 매우 튼튼하게 옥검봉의 아래에 까지 밧줄을 박으며 내려갔고, 드디어 맨 아래에 이르렀다. 이 밧줄의 깊이는 충분했기 때문에 앞으로는 악불이가 산을 오르내리는 데에 있어서 그다지 어려운점은 없을리라 여겨졌다. 즉, 이 밧줄을 예비용이요, 평상시에는 아무래도 그가 그녀를 안고 다닐 것이기 때문이었다. 백룡생은 그렇게 밧줄을 설치한 다음에 가죽부대에 물을 가득 담아 들었다. 절봉위에 땔감은 많이 있었기 때문에 굳이 지금 나무를 해갈 필요는 없었다. 그대신에 백룡생은 잠시동안 목욕을 하기로 했다. 어젯밤 악불이가 목욕을 하는 것을 보고서 자신이 목욕을 하지 않은 것이 여러날 지난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대문이었다. 그는 원래 혼자서 살때는 별로 목욕을 많이 하지는 않았지만 이제 악불이와 함께 살게 되었는데 그녀에게 지저분한 냄새를 피울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백룡생은 즉시 흰눈이 군데군데 둥둥 떠있는 맑고 차가운 품속에 첨벙 뛰어들었다. 그는 진력이 넘쳐흐르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더운물이 필요하지 않았다. 게다가, 금강불괴의 몸은 스스로 피부를 깨끗하게 하는 조화를 지니고 있었다. 체내의 기운이 피부에까지 확산되기 때문에 더러운 때와 같은 것은 그의 피부에 닿자마자 얼마가지 않아서 떨어져버리는 것이었다. 게다가, 백룡생이 물곳에 들어가서 몇번 이러저리 움직이자 다소 남아있던 때마저 완전하게 씻어져 버리고 백룡생은 정신까지 매우 맑아졌다. 이에, 백룡생은 잠시후에 박으로 나와서 몸과 옷을 말렸다. 지금 이곳의 기온은 매우 낮아서 일반인이라면 옷이 젖었을 경우에는 그 옷에 얼음이 얼어버릴 정도였다. 그러나, 백룡생의 옷은 그와는 반대로 금세 깨끗하게 말라버렸고 그러니 자연 그의 몸이 완전히 물기가 제거된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이것 역시 그의 신체의 특이한 성질중의 하나엿다. 백룡생은 맑아진 마음으로 잠시 한쪽의 바위위에 정좌를 하고 앉아서 명상에 잠기다가 그것이 끝나자 가죽부대를 들고 옥검봉의 위로 올라갔다. * * * 백룡생이 정상에 올라가자 악불이는 이미 잠에서 깨어나서 청초한 모습으로 아침밥을 짓고 있었다. 그러다가 목욕을 마치고 올라온 백룡생을 보고는 말했다. "이제부터는 제가 밥을 짓기로 했으니 당신은 그저 옆에서 구경이나 하세요." 허나, 그녀의 밥을 짓는 행동은 서투르기 그지 없었다. 그녀는 밥을 지을때는 물을 지나치게 적게 부었고, 음식을 만들때는 또한 물과 양념을 지나치게 많이 사용하여 맛을 괴상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백룡생은 옆에서 그저 웃으며 바라볼뿐 가타부타 말을 일절 하지 않았다. 다만 그녀가 무려 다섯번에 걸친 시행착오끝에 비로소 제법 괜찮은 밥을 지었을때 그는 가볍게 웃으며 먹어주었을 뿐이었다. 이렇게 아침식사가 끝나자, 악불이는 백룡생에게 이제 그녀가 사온 새옷을 입게했다. 그 옷은 바로 백의로 서생의 복장인데, 한눈에도 그녀가 돈을 많이 들였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옷감이 좋았다. 게다가, 그 옷은 백룡생의 몸에 아주 잘 맞는 것이었다. 백룡생이 백의를 걸치고 나자 악불이는 그가 벗어놓은 남은 옷가지들은 모두 불에 태워버리고 예리한 칼날로 그의 턱수염등을 깨끗하게 밀어주었으며, 기다란 머리를 깨끗하게 빗겨서 머리위에 상투를 틀어주었다. 이어, 그위에 문사건을 하나 집어쓰자 백룡생은 영락없는 준수하기 짝이없는 미서생으로 둔갑을 했다. 악불이는 자신이 꾸며놓은 백룡생의 준수한 모습에 잠시 넋을 잃은듯이 바라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이윽고 그녀 역시 단장을 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서 단장을 하는 시간은 매우 오래 걸렸다. 그러나, 단지 그녀가 나왔을 때에는 백룡생은 일시 눈이 다 부시는 것을 느껴야 했다. 그녀는 자의를 좋아하는듯 자색의 아름다운 옷을 걸ㅊ쳤는데, 산뜻하게 경장의 차림을 하고 허리에 한자루의 장검을 맨 그녀의 모습은 그야말로 아름답기 그지 없었다. 악불이는 가볍게 달려와서 그의 품속에 한번 안긴 다음에 어젯밤에 잘 보관해 두었던 그 약초보따리를 꺼내서 품속에 넣었다. 그리고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 "자, 이제 우리는 어서 가요!" 그러는 그녀의 내심은 이렇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호호, 이렇게 한걸음씩 밖으로 나가서 나중에는 강호를 주유하자고 하는거야! 그 비용은 이것을 팔면 충분하고!) 그녀의 마음은 그렇게 행복감과 미래에 대한 기대로 크게 들떠 있었다. 백룡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이어, 그는 악불이의 몸을 가볍게 안아들고 절봉아래로 신형을 날리기 시작했다. 제 26 장 성수약포 호북성 무당산의 부근에는 많은 읍성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백룡생과 악불이가 내려간 곳은 바로 무당산의 윗쪽에 비교적 가까운 십언진이란 마을이었다. 이 십언진은 비록 무당산의 뒷쪽에 위치하고 잇지만 오히려 이 부근에서 가장 번성하고 있는 읍성이었다. 그것은, 무당산의 앞쪽은 무당파가 있기 때문에 여러개의 읍성이 발달하였으며, 그곳들은 대부분 사람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반해, 비교적 사람들의 통행이 적은 이쪽은 약초를 팔고사는 상인들이 많기 때문이었다. 그 많은 약초를 거래하는 읍성들 중에서도 이곳 십언진은 가장 커다란 읍성이었다. 악불이는 어제 옥검봉과 가장 가까운 읍성에 내려갔다가 그 얘기를 듣고 백룡생을 이쪽으로 데리고 갔던 것이다. -- 십언진 그러나 이곳은 그들이 전에 보았던 무창성등의 번화함에 따를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그저, 넓은 평지에 몇갈래로 나있는 대로의 부근에는 많은 객점들과 주루들이 손님을 끌고 있었고 그외에는 거의가 약초를 사고파는 상점들인것 같았다. 백룡생은 별반 마음의 변화가 없었으나 악불이는 그래도 다소 사람들이 북적대는 이러한 넓은 읍성에 오게되자 다소 마음이 들뜨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백룡생의 앞에 서서 다소 오만한 듯도 하고 당당한 걸음걸이로 사람들의 숲을 헤치고 나아갔다. 사람들은 그들의 기우가 헌앙하고 아름다운 모습에 일시 길을 가다가 넋을 잃고 바라보는 사람들도 많았다. 두사람은 우선 약초를 팔아야 겠기에 대로상에 줄을 지어있는 수많은 상점들 가운데 그래도 가장 커다란 곳으로 골라서 들어갔다. 그곳이 이름은 바로 성수약포였다. 일반적으로, 이런 약초를 경영하는 사람들은 눈치가 빠르고 다소 짙은 장삿꾼의 냄새를 풍기게 보이기 마련이었다. 그것은 그들이 바로 산사람들에게 약초를 사서 더욱 비싼 값에 넘겨야 하기 때문에 매사에 눈치가 빨라야 하기 때문이었다. 악불이도 그러한 점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일단 약포에 들어갈 때에는 마음가짐을 강하게 했다. 그것은 바보처럼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들은 일단 안으로 들어서자 이곳의 분위기는 뭔가 다르다는 것을 감지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우선 이곳에는 사람들의 눈빛이 음침하지 않고 오히려 다소 형형하게 빛나는 듯했으며, 그들의 태도는 지나치게 친절하여 아부하는 듯하지 않고 오히려 다소 무뚝뚝하게 보이기 조차 하는 것이었다. 백룡생도 전에 약초를 캐서 팔아왔었기 때문에 장삿꾼들의 표정은 이와는 정반대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우선 산사람을 친절하게 유인을 하고는 갖은 부드러운 말로 설득을 시키며 그리하여 최고로 싼값에 물건을 사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곳의 분위기는 전혀 그렇지 않고 당당하여 마치 무도장같은 느낌을 주었다. 넓은 실내의 대부분의 공간에서는 십여명의 사람들이 약초를 고르거나 손질을 하고 있었고, 백룡생과 악불이를 맞이한 사람은 삼십대의 중년인이었다. 그는 두 사람을 보더니 다소 사무적으로 물었다. "두분은 무엇때문에 오셨소?" 악불이는 다소 의아해져서 확인하듯 물었다. "이곳에서도 약초를 사나요?" 그말에, 중년사내는 그녀의 아름다운 용모를 보고 다소 놀라는 듯 하더니 곧 다소 싸늘하게 대꾸했다. "물론 약포에서 약초를 사고팔지 뭘하겠소?" 그말은 다소 무례하게까지 들려져서 악불이는 은근히 성질이 날 정도였다. 하지만, 이 중년인의 눈빛은 음침하지 않고 정색을 하고 있어서 그가 그녀를 비웃으려고 한 말이 아님을 알수게 잇게 했다 (흥! 제대로 하지 않기만 해봐라!) 악불이는 내심 약이 올라서 다소 벼르면서 입을 열었다. "우리는 약초를 팔러왔어요!" 그말에, 중년인은 다시 무뚝뚝하게 물었다. "어떤 약초요?" 이때, 악불이는 즉시 품속에 들어있던 약초주머니를 꺼내서 그의 앞에 던져놓았다. 원래 그녀는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처음에는 다소 흥정을 하다가 내보이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일단 물건이 건네지지 않은 상황에서는 좀더 높이 값을 부를수가 잇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은근히 약이 올라서 그가 값을 최대한 낮게 부르기를 바라고 있는 형편이었고, 그렇게 해서 그가 주머니를 돌려주지 않으려고 한다면 한판을 크게 벌일 생각이었다. 이런 곳에서 아무리 힘꽤나 쓰는 장정이라도 일단은 무림인인 그녀의 무예를 당할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뒤에 백룡생이 있다는 것을 단단하게 믿고 있었다. 그런데, 중년인은 처음에는 별로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주머니를 펼쳐보는듯 하더니 일시 다소 놀라서 두눈이 휘둥그래졌다. 그야말로 이 백년이 넘은 산삼들은 중원천하에서도 흔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잠시, 중년인의 손끝이 가늘게 떨리는듯 했다. 이것을 보고 악불이는 내심 생각했다. (옳지! 저녀석이 욕심을 내기 시작했군! 그렇다면 어서 흉계를 펼쳐라!) 헌데 그때였다. 중년인은 일시 안색을 다시 싸늘하게 굳히더니 말하는 것이 아닌가? "이것은 모두 오만냥을 드리겠소?" "...?" 그말에, 내심 단단히 벼르고 있던 악불이는 순간 입을 딱 벌리고 크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원래 그녀는 대략 이만오천냥은 받을수가 있을 것이며, 그렇게만 된다면 성공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중년인이 만일 흉계를 부린다면 대략 오천냥을 말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가 부른 액수는 오천냥도, 이만오천냥도 아닌 오만냥이 아닌가? 이것은 적반하장이란 말을 쓸수도 없고 그저 놀랍고도 어이가 없는 일인 것이다. 악불이는 따라서 놀라 되물었다. "당신은 지금 오천냥이 아니라 오만냥이라고 말했나요?" 그말에, 중년인은 그녀를 차갑게 쏘아보며 대꾸했다,. "그렇소. 오만냥이오? 내가 오천냥인 것을 가지고 오만냥이라고 말하겠소?" 악불이는 더욱 어이가 없어서 다시 물었다. "이게... 대체 어째서 오만냥이나 된다는 거죠?" 이때, 중년인은 다소 귀찮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렸다. "당신인 아직 시세를 몰라서 그렇게 묻는 것이오. 아니면 나와 농담을 하려는 것이오? 당신은 돈을 많이 받는것을 싫어하지 않을텐데 무슨 잔소리가 그리 많소?" 악불이는 내심 더욱 어이가 없어서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나는 원래 그보다는 낮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당신이 그렇게 값을 높게 부르니까 믿을수가 없어서 그래요. 당신의 그말은 설마 거짓이 아니겠죠?" 이순간 악불이의 마음은 그가 그토록 많은 값을 쳐주겠다고 했기 때문에 악의가 호의로 변하여 방금전에 벼르던 생각은 깡그리 사라지고 말았다. 그녀는 이만오천냥이나 되는 것을 많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시 그와 같은 액수의 돈이 더 생기게 되었으니 어찌 한낱 감정에 눈을 팔겠는가? 이때, 중년인은 그제서야 그녀의 심정을 파악한 듯 다소 냉소하며 입을 열었다. "하긴 당신들이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오. 그러나, 우리 성수약포는 물건값을 속이지 않는 것을 신조로 삼고 있으니, 어찌 당신들을 속이겠소?" 그말에, 악불이는 의아해져서 물었다. "그럼 당신들은 뭘 먹고 살죠?" 중년인은 그녀의 말에 다시 냉소하며 대답했다. "우리는 이윤을 남기기 위해 이런 약포를 운영하는 것이 아니오." 악불이는 더욱 이상해져서 물었다. "그럼 무엇을 바라고 이런 장사를 하죠?" 헌데, 중년인은 그말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다시 차갑게 웃으며 대꾸했을 뿐이었다. "당신들이 그런것을 알아서 뭘 하겠소? 지금 이 두 뿌리의 백년묵은 산삼은 각각 하나에 실제가격은 이만냥에 해당되오. 그리고, 나머지는 합쳐서 모두 일만냥, 그래서 전부 오만냥이오 팔려거든 팔고 그렇지 않으려면 도로 가져가시오!" 악불이는 실로 아연해지지 않을수가 없었다. 하지만, 다소 이상하기는 해도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뭐니뭐니해도 돈을 많이 받는 것인 것이다. 보아하니 그는 더달라해도 더줄사람 같지도 않으니 그녀는 즉시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수가 없었다. "좋아요. 헌데 당신들은 지금 그많은 돈이 있나요?" 그말에, 그 중년인은 다시 싸늘한 냉소를 흘렸다. "우리 성수약포를 뭘로 아는 것이오?" 그리고는 대뜸 탁자밑의 서랍을 열고 한뭉치의 은표를 꺼내서는 그중 몇장을 세어서 그녀에게 건네주는 것이었다. 악불이가 받아서 세밀하게 주시해보니 그것은 틀림없는 중원에서도 가장 신용이 높은 은하전장의 은표였다. 일만냥 짜리로 다섯장, 악불이는 방금전에 중년인이 들고있었던 뭉치에는 그런것이 백장도 어 있었다는 사실을 생각하고는 내심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일만냥짜리가 백장이면 물경 은자 백만냥이다. 무려 그많은 돈을 이런 시골의 한낱 읍성에 잇는 약포에서 가지고 있단 말인가? 실상은 더많은 돈이 있을런지도 모르는 일이 아닌가? 악불이는 혹시나 해서 이 은표가 가짜가 아닌가 하고 재삼 살폈지만 정말로 가짜가 아닌 진짜였다. 하지만 그녀는 그럴수록 더욱 믿을 수가 없어서 내심 생각했다. (밖에 나가 전자에 가서 은표를 바꿔보면 알수가 있겠지!) 만일 이 은표가 조작된 것이라면 이번에는 그야말로 이 약포를 박살낼 생각이었다. 일단 그렇게 생각하자, 이미 약초주머니를 집어넣고 태연히 다른일을 보기 시작하는 중년인의 옆얼굴을 슬쩍 주시한 다음에 악불이는 백룡생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온 악불이는 마치 옆에 들뜬 사람처럼 정신이 없었다. 만일 이 은표가 모두 진짜라면 그들은 횡재를 하는 것이고, 가짜라면 어이없게도 이만오천냥을 날리게 되는 것이다. 이때, 백룡생은 아무런 말도 없이 묵묵히 그녀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그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표정이 거의 무심했다. 악불이는 너무나도 정신이 없어서 그에게 말을 걸어보지도 못하고 빠르게길을 걷다가 눈앞에 보이는 하나의 전장으로 들어갔다. 마침, 그곳은 바로 은하전장의 십언진 지점이었다. 은하전장은 중원천하에 거대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고 이런 읍성에도 지점을 두고 잇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곳 십언진에는 약초를 사고팔기 대문에 많은 금전이 오고가는 것이다. 전장의 안으로 들어가자 수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무슨일로 오셨습니까?" 그렇게 묻는 한 점원에게 악불이는 다섯장의 은표를 내밀었다. "이것을 모두 천냥짜리로 바꿔주고 그중에서 천냥은 은자로 주세요!" 그말에, 그 점원은 일시 액수의 거대함을 보고 놀라서 뒤로 달려가서 보다 윗사람들과 함께 일일이 조사를 해보는 눈치이더니, 놀랍게도 잠시후에는 아주 공손히 마흔아홉개의 천냥짜리 은표와 한주머니의 백냥짜리 은원보 열개가 들어있는 것을 건네주는 것이 아닌가? 악불이는 이것을 보고 기쁨과 함께 어리둥절한 느낌을 받았다. 그녀의 손에 무려 오만냥이라는 거금이 있다니, 이것은 정녕 사실일까? 꿈이 아닐까? 허나 정녕 꿈은 아니었다. 악불이는 한참동안 옆에 들뜬 듯이 서있다가 뒤로 고개를 돌려 백룡생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백룡생은 대체 무슨 일이냐는 듯이 이렇게 묻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또 바꿀것이 남아있소?" 악불이는 그말을 듣자 일순 머리가 개운해지면 웃음이 터져나오는 것을 느꼈다. 참으로 백룡생은 욕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횡재를 해서 무려 오만냥이나 되는 거금을 벌었어도 거의 상관도 하지 않는 것이다. "아니예요. 우리 이만 가요!" 악불이는 웃음을 겨우 참고 품속에 은표들을 조심스럽게 잘 간수한 다음에 백냥짜리 은원보는 따로 넣고 백룡생의 손을 잡고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밖으로 나오자, 하늘에는 흰구름이 두둥실 흘러가고 있었다. 악불이는 그런것을 바라보며 마음이 한껏 부푸는 것을 느꼈다. 은자 오만냥이나 있다는 것은 정말로 흔치않은 일이며, 가히 작은 시골에서는 최고의 부자라는 소리를 들을수가 있을 것이다. 악불이는 아까 성수약포에서 괴이하게도 그렇게 많은 은자를 주었다는 사실에 괴이함을 느꼈었으나 지금은 공연히 귀찮은 생각이 들어서 다 잊어버렸다. 사람들은 저마다 무슨 특별한 사정이 있을지도 모르며, 그녀로서는 그런것과는 상관없이 그저 돈만 정확하게 맞으면 되는 것이다. 다만, 그녀는 품속에 따로 집어넣은 은자주머니가 매우 무거워서 거추장스러운 것을 느꼈다. 원래 이 백냥짜리 은원보는 은원보 가운데에서고 가장 큰것인데 그것이 무려 열개나 있으니 어찌 거추장스럽지 않겠는가?" (아까 한 두개만 남기고 나머지는 역시 은표로 바꿔달라고 할걸?) 악불이는 문득 은표로 바꾸지 않은 것이 후회가 되었다. 그렇다고 지금 다시 전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일지 않아서 문득 백룡생을 바라보다가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아참! 그렇게 하면 되겠구나!) 이어, 그녀는 덤덤한 표정으로 걷고있는 백룡생에게 말했다. "백랑! 당신이 은자를 좀 갖고 가지 않겠어요?" 백룡생은 무슨말인가 하고 생각하다가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이에, 악불이는 품속에서 은자주머니를 꺼내 백룡생에게 건내주려다가 문득 생각나서 그안에서 한개의 은원보를 집어든 뒤 나머지를 백룡생에게 주었다. 그러자, 백룡생은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 은자주머니를 품속에 잘 갈무리했다. 그것을 보고 악불이는 매우 흐뭇한 생각이 들어서 만면에 가득 미소를 떠올렸다. 그리고, 문득 생각했다. (우리가 그런 산꼭대기에 심심하게 살 것이 아니라 이런 읍내나 번화한 성시에 가서 살면 또한 재미있지 않을까?) 악불이는 이어 그것은 차후에 함께 의논해서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우선 지금으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두사람의 정당한 혼인문제인 것이다. 그것을 위해 악불이는 두사람이 하루빨리 강호에 출도를 해야 한다고 거듭 생각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매우 흥겨운듯 수중에 들고있는 백냥짜리 말굽모양으로 생긴 은원보를 동동 굴러보았다. (대체 사람들은 이게 뭐가 그리 좋다고 그렇게 구하려고 할까?) 그녀는 자신도 신기할 지경이었다. 이어, 그녀는 생각했다. (원래 이 은원보는 오만냥의 은자중에서 처음으로 사용하는 것이니 만큼 무엇을 사는데에 써야할까?) 그녀는 좌우를 열심히 둘러보는데 돌연 좌측에 하나의 병기점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그녀의 뇌리에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백랑과 함께 강호출도를 하자면 반드시 어떤 병기가 백랑에게 있어야할 것이다.) 악불이는 그러한 생각이 생각할수록 적당한 것이라고 여겨져서 급히 백룡생의 손을 잡아서 그쪽으로 끌었다. "우리 어서 저쪽으로 가요!" "...?" 백룡생은 이에 말없이 그녀에게 이끌려 바라볼 뿐이었다. * * * 그 병기점은 그다지 크지도 작지도 않은 보통 흔히 볼수가 있는 병기점이었다. 악불이가 백룡생을 이끌고 안으로 들어서자 주인으로 보이는 사내 하나가 안에 있다가 밖으로 나오며 물었다. "병기를 찾으시오?" 악불이는 그의 얼굴을 한번 주시한 후에 물었다. "좋은 보검이 있나요?" 그말에, 주인은 슬쩍 두사람의 행색을 살폈다. 그것은 과연 두사람의 수중에 있는 돈의 무게를 가늠하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그는 가볍게 히죽 웃더니 대꾸했다. "병기점에 검이 없다면 말이 되겠소?" 악불이는 주인의 이같은 태도에 다소 아미를 찌푸렸다. 자연 그녀의 말투가 싸늘해졌다. "나는 지금 보검을 찾고 잇는 거예요!" 그말에, 주인은 의미심장하게 한번 웃은뒤에 두말없이 뒤돌아서 걸으며 말했다. "그럼 따라오슈!" "..." 악불이는 즉시 시선을 그쪽으로 던졌다 그러나, 그녀의 시선은 즉시 가볍게 찌푸려지고 있었다. 이곳에 결려있는 수많은 것들은 제법 괜찮게 보이기는 하나 실상 그녀의 마음에 드는 보검은 한자루도 없었던 것이다. 하긴, 이런 시골의 병기점에 들러서 보검을 찾는다는 것 자체가 무리일지도 몰랐다. 악불이가 다소 머뭇거리자 주인은 옆에서 느물거리며 다시 물었다. "어째 마음에 드는 것이 없소? 하지만 검이란 겉과 속이 반드시 같은 것이 아니니 잘 골라봐야 할 것이외다!" 문득, 악불이는 그렇지 않아도 살 생각이 없었는데 그말을 듣자 더욱 살 마음이 없어져서 백룡생의 손을 잡고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것을 보고 주인은 다소 의아해하면서도 굳이 잡지는 않았다. 살테면 사고 말테면 말라는 식이었다. 헌데, 그들이 마악 병기점을 나왔을 때였다. 문득 문앞에서 한명의 늙은 거지가 더러운 몸에 봉두난발을 하고서 지팡이 하나를 짚은채 그녀를 향해 애걸하는 것이 아닌가? "아가씨, 적선 좀 합쇼! 적선을 많이하면 나중에 복받고 잘살게 된답니다." 그 늙은거지는 머리털마저 드문드문한 것이 그야말로 볼상사나운 용모였다. 악불이는 평소라면 그와같은 거지와는 상면을 하고 싶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일단 품속에 무려 오만냥에 가까운 돈을 지니고 있는 상황이라 다소 마음이 누그러져서 내심 생각했다. (나는 아직 젊고 돈이 많아서 잘 살수가 잇지만 이 거지는 이미 늙은데다가 이모양이니 얼마나 불쌍하고 괴로울 것인가?) 그리하여, 그녀는 원래는 백룡생과 강호출도하는 상징으로 검을 한자루 살 생각이었던 백냥짜리 은원보를 순간 그 늙은 거지의 손에 집어주고 말았다. 헌데 순간, 그것은 착각이었을까? 거지의 혼탁한 두눈에서 일순 한줄기 번갯불같은 빛이 번쩍이는 것같지 않은가? 그러더니 그는 고개를 숙이며 말해다. "아가씨께서는 나중에 복많이 받게 될 것을 이 늙은거지가 보증을 합죠!" 악불이는 이 늙은거지의 안광이 심상치 않은 것이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그저 다만 마음이 부풀어서 응, 하고 대답하기만 했다. 그러자, 늙은 거지는 곧장 빠르게 걸음을 옮겨서 거리의 사람들 속으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악불이는 잠시 그쪽을 바라보다가 이어 다시 걸음을 옮기려 했다. 헌데 그때였다. 아까 그 주인이 별안간 그녀의 앞을 가로막는 것이 아닌가? 악불이는 문득 불쾌한 생각이 들어서 소리쳐 물었다. "무슨 일이죠?" 그말에, 주인은 다만 머뭇거리기만 할분 금방 대답을 못했다. 그러다가, 문득 간사스러운 웃음을 흘리며 말하는 것이었다. "헤헤, 두분께서 굳이 좋은 검을 찾으신다면 반드시 없는것은 아닙죠. 네네!" 그말에, 악불이는 일순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는 일순 이자의 속셈을 알아차린 것이다. 원래, 무림인이라고 하면 누구나가 선망의 대상으로 삼지만 실속이 없어서 몸에 늘상 은자를 많이 가지고 다니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러다보니, 자연 병기점에서 검과 같은 물건을 사는 사람들도 무림인은 결코 좋은 물건을 많은 돈을 들여서 사려고 하지 않았다. 다만 좋은 물건을 보았는데 돈이 부족하면 강제로 취하려고 드는 경우가 비일비재할 뿐이었다. 따라서, 이와같은 병기점에서는 오히려 무림인들을 좋아하지 않고 일반의 사람, 특히 대부호의 귀공자와 같은 사람만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와같은 사람은 비단 통이 클분 아니라 실제로는 물건을 볼줄을 몰라서 장삿꾼들은 많은 이익을 남길수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와같은 이치로, 이 병기점의 주인은 악불이와 백룡생의 옷차림이 화려하긴 해도 악불이의 허리에 차고있는 장검이나 그녀의 차디찬 눈빛을 보고는 즉시 무림인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그리하여 그는 단지 그들을 일반의 검이 잇는 곳으로 데려다 주었을 뿐인 것이다. 허나, 주인은 그저 무심코 그들을 따라나왔는데 놀랍게도 악불이가 은자를 무려 백냥이나 거지에게 주어버릴 줄이야! 주인은 이와같은 통이 큰 사람을 결코 만나보지 못해 때문에 즉시 앞으로 나서게 되었고 다소 비굴하지만 직업적인 수단을 보이는 것이었다. 악불이는 이러한 그의 태도에 매우 불쾌한 느낌을 받았지만 문득 그가 좋은 검이 있다고 하는 말을 듣고는 생각이 달라졌다. (만일 좋은 검이 있다면 사고, 신통치 않으면 나오면 될 것이다.) 그리하여, 그녀는 다소 불쾌하더라도 백룡생을 위해서 다소의 수고를 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악불이는 이에 다소 쌀쌀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럼 어서 안내해요!" 그말에, 주인은 즉시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예예...!" 헌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주인은 연신 대답을 하면서도 손으로는 밖으로 나와서 가게의 문을 닫아버리는것이 아닌가? 악불이는 이것을 의아하게 생각을 하면서도 그에게 무슨 꿍꿍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가만히 하는 행동을 지켜보았다.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주인은 가게의 문을 완전히 닫아버리더니 가게의 뒷쪽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악불이는 이를 기이하게 여기면서 백룡생의 손을 잡아서 이끌고 그의 뒤를 따라갔다. 가게의 뒷쪽, 그곳에는 바로 그 주인의 집인듯한 하나의 모옥이 넓게 자리하고 있었다. 이 모옥에는 창고로 쓰이는 듯한 방이 여러개가 붙어 있었고, 넓은 앞마당에는 제법 잘 가꾼듯한 인상을 주는 정원이 자리하고 있었다. 비록 지금은 한겨울이라 푸른 잎이 자라지 않고 꽃이 피어나지 않지만 이렇게 잘 정돈된 정원이 이런 평범한 집마당에 있다는 것은 다소 특이한 일이었다. 헌데, 그 주인은 바로 두사람을 데리고 그 화단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 화단 근처의 나무밑에 손을 넣고 잡아당기자, 돌연 한줄기 괴이한 소리와 함께 화단의 중앙이 옆으로 밀려나며 어두운 공간이 드러나는 것이 아닌가? 그그긍! 악불이는 이것을 보고 다소 놀랐다. 이것은 그야말로 절묘한 기관장치의 하나였다. 이런 평범해 보이는 병기점의 주인에게 이러한 놀라운 재주가 있었단 밀인가? 그런데, 주인은 그녀의 그러한 의혹을 불식시키려는 듯 고개를 돌리며 웃으며 말하는 것이었다. "헤헤, 소인의 집은 대대로 병기점을 해왔사온데, 이 지하실은 바로 옛날 저희 조상들이 발견하였던 것으로, 원래는 무림인들의 소유였다고 합죠!" 악불이는 그제서야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과거 무림인들 중에 이러한 기관장치를 설치한 사람이 있었는데, 이 병기점의 주인의 선조가 그것을 발견하고 창고로 쓰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마치 그러한 사실을 입증이라도 해주듯이 그 입구에는 돌벽에 검은 이끼가 가득하게 끼어 있었다. 그렇다면 혹시 이러한 곳에 희대의 보검이라도 잇는 것이 아닐까? 마침 수중에 돈이 넉넉한 판이라 악불이는 문득 가슴이 다소 설레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렇게 겉만 번드르한 곳이 정작 쓸만한 것은 없을수도 있으므로 그녀는 스스로 흥분되려는 마음을 달래기도 했다. 이때, 주인은 화섭자에 불을 붙여서 그것으로 입구에 걸려있는 유등에 다시 불을 붙였고, 그 유등을 들고 입구가 열려진 지하로 계단을 걸어서 들어가기 시작했다. 악불이와 백룡생은 천천히 그 뒤를 따라 들어갔다. 과연, 그 지하실은 바로 병기들을 보관해 놓은 창고였다. 주인은 유등을 지하실의 중앙에 걸어놓은 다음에 두사람에게 이것저것을 가리키며 말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여기에 있는 모든 병기들은 저희 선조들이 대대로 병기점을 운영하면서 수집한 아주 훌륭한 병기들입죠. 여기에서 두분은 마음에 드는 것을 반드시 고르실 수가 있으실 것입니다." 주인의 말은 대충 절반 정도가 맞은 것이었다. 이곳에 있는 수십종류의 가득찬 병기들은 과연 연대가 오래된 것임에 분명했다. 그러나, 악불이는 대충 그것들을 둘러본 순간 내심 다소 실망을 금치 못했다. 하긴, 희대의 보검이 아닌 이상은 병기란 금방 만든것이 나을 거이며, 오래된 것일수록 녹이 슬게 되고 이가 빠지게 마련이다. 여기에 있는 병기들은 다소 훌륭했던 것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았으나, 실상 지금에는 거의 고철이나 다름없는 것들이었다. 과연 이 가운데 정말 쓸만한 보검이라도 있는 것일까? 주인은 사방을 둘러보는 그들에게 다시 한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검을 보시겠습니까? 그럼 이쪽으로... 이쪽으로 오십시요!" 악불이는 백룡생의 손을 잡고 주인이 가리키는 쪽으로 다가갔다. 그쪽에는 과연 오래된 검들이 줄줄이 걸려져 있었다. 그러나, 이미 먼지가 수북하게 묻어있고 낡은 것들이라서 그중에 보검이 있다고 하더라고 찾아낼수가 없을 것 같았다. 악불이는 천천히 그것들을 살폈다. 그녀는 검날을 만져보기도 하고 손에 잡고 흔들어 보기도 했다. 허나, 아무리 찾아봐도 보검이라고 할만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이때, 악불이가 마악 몸을 돌려 나가려고 하는데, 그것을 본 주인이 문득 구석진 곳에서 하나의 검을 집어들고 물었다. "이런것은 어떻습니까? 이것은 바로 오직 현철로만 만든 것인데, 비록 이렇게 무겁기는 해도 값이 많이 나가는 것입죠." 악불이는 그쪽으로 시선을 보냈다. 허나, 주인인 건네주는 장검을 받아들었을 때 그녀는 일순 눈살을 가볍게 찌푸리고 말았다. 그 장검은 색깔이 다소 거뭇하고 무게가 조금 많이 나가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비단 날이 예리하지 않았을 분만 아니라 주인의 말대로 현철로 만들어진 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명문의 검문에서 자라왔기 때문에 불ㄹ곰 검의 가치나 그 재질에 대해서 훤하게 알고 있었다. 만일 이 장검이 순전히 현철로만 만들어졌다면 다소 귀한 것일테지만, 그럴려면 반드시 그 무게가 일백근 이상은 나갔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 장검의 무게는 고작 이삼십근 정도에 불과했다. 악불이는 내심 자신을 속이는 주인의 태도가 다소 불쾌했지만 굳이 말상대를 하기가 싫어서 검을 돌려주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자, 문득 주인이 눈빛이 기이하게 빛나는듯 하더니 다소 비굴한 듯이 웃었다. "헤헤, 알고보니 두분은 장검에 대해서 잘 아시는 분이셨구려?" 이어, 그는 장검이 걸려있는 석벽으로 다가가더니 장검들을 좌우로 젖히고 그곳에서 하나의 서랍같은 것을 꺼내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그곳에 벽장같은 것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과연 그안에는 몇자루의 장검이 들어 있었다. 주인은 그 서랍을 힘겹게 들어서 두사람앞에 내려놓아 보이며 말을 이었다. "두분이 장검에 대해서 훤히 아신다면야 소인이 두분을 속일수는 없는 노릇입죠. 하지만 여기에 있는 이 장검들은 소인이 가지고 있는 최고의 보물인 만큼, 두분께서는 심사숙고해서 결정을 하십시오!" 서랍안에 들어있는 장검은 모두 세개였다. 하나는 녹이 잔뜩 슬어있는 무거운 장검이었는데, 악불이가 바라보니 그것은 바로 현철로 만들어진 장검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나도 오래된 것이고 날이 많이 빠져 있어서 그다지 쓸모가 없는 것이었다. 두번째는 검날이 마치 가죽처럼 부드러운 것이었다. 바로 연검인 것이다. 그러나 악불이에게는 연검도 별로 특별할 것이 없는 것이었으므로 별로 내키지가 않았다. 헌데, 세번째의 검은 그야말로 휘황찬란했다. 검신이 예리하게 날이 서있음을 물론이요. 검자루에는 눈이 번쩍 뜨이게 하는 옥과 보석들이 박혀 있었고 그 주위에는 금으로 테를 입힌 것이었다. 이것은 그야말로 돈많은 귀공자가 좋아할만한 값비싼 패검인 것이다 주인도 내심은 그것을 고르기를 바라는지 시선을 그쪽으로 두고 있었다. 그러나, 악불이는 그 장검의 검날을 만져본 결과 실상 그것은 요란하게 치장을 하였을 뿐이지 정교한 점과 강도에 있어서는 연검보다도 훨씬 못미친다는 사실을 알수가 있었다. 말하자면 이 주인은 두사람에게 속여서 돈을 긁어내려고 하는 것이다. 이에, 악불이는 내심 실망을 하고 공연히 이 주인을 따라온 자신이 내심 어처구니 없다고 느껴졌다. 그리하여 그녀는 쌀쌀한 음성으로 주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이 가지고 잇는 검이 전부 이것뿐이라면 우리는 이만 가겠어요." 주인은 그말에 안면이 다소 일그러졌다. "왜, 왜 검이 마음에 들지 않으십니까? 이 현철장검만 해도 과거에 유명한 대협께서 쓰시던 것이고, 이 연검은 아주 신기한 것입죠! 그리고 이 값이 많이 나가는 보검은..." 악불이는 그가 말을 길게 끌며 설명을 하려고 하자 마음이 불쾌히ㅐ져서 곧장 듣지않고 백룡생의 손을 잡으며 몸을 돌렸다. "백랑, 우리 그만 가죠!" 이때, 백룡생은 그저 덤덤한 표정으로 물끄러미 장검들을 둘러보다가 역시 묵묵히 그녀의 듯에 따라 신형을 돌렸다. 순간, 그것을 보자 주인이 펄쩍 뛰면서 달려와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헤헤 이거 왜 이러십니까요? 그냥 가시다니요?" 악불이는 그가 매우 귀찮게 굴자 저도 모르게 허리춤의 검자루로 손이 갔다. 동시에 그녀의 음성이 싸늘해졌다. "당신은 감히 보검도 없으면서 우리를 귀찮게 굴 건가요?" 주인은 그말에 다소 기가 죽은듯이 움찔 하더니 비굴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헤헤, 실은 보검이 꼭 하나가 없는 것은 아닙죠. 허나, 그게 워낙 값이 비싸서..." 악불이는 싸늘하게 대꾸했다. "값은 우리가 원하는데로 치뤄 주겠어요. 하지만 그것이 만일 보검이 아니라면...? 당신은 본낭자를 원망하지 말기를 바래요!" 악불이가 이렇게 살벌하게 나가자 주인은 다소 태도가 얼어붙었다. 이제 그는 상대를 더이상 속일수가 없다고 느꼈는지 만면에 고소를 지으며 손을 내저었다. "보검이야 틀림이 없죠. 하지만 두분께서 마음에 들지 않을수도 있는 것이니, 소인이야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사시든 안사시든 마음대로 하십시오!" 그리고는 다시 아까의 그 석벽으로 다가가서 그 뒷쪽의 부분을 건드렸다. 그러자, 드드드... 한줄기 기이한 음향과 함께 석벽에서 서랍 하나가 밖으로 빠져나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속에는 두자루의 장검이 들어 있었다. 헌데, 그 두자루의 장검은 과연 이 주인이 장담할 만한 보검임에 틀림이 없었다. 장검이 담겨있는 밖으로 빠져나오는 순간 일순 그 안으로부터 싸늘하고도 기이한 검기가 사방으로 분출되는 듯한 느낌이 일었던 것이다. 아니, 그것은 다만 느낌뿐 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미 검에 대해 어느정도의 일가견이 있는 악불이는 순간 이끌리듯 그 장검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그녀의 두눈에 두자루의 장검의 모습이 확연하게 들어왔다. -- 두 자루의 장검, 그것들은 언뜻 보기에도 특이했다. 원래 보통의 장검들은 양쪽의 검날이나 검끝이 뾰족하고 예리하게 되어있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칼은 휘두르는 힘에 의해 날을 주로 사용하지만, 검은 대부분 찌르는 것이 주가되어 검끝 부분이 많이 사용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두자루의 장검은 형상이 똑같았는데, 둘다 똑같이 검날과 검봉이 둥글둥글 무딘것이 마치 일부러 그렇게 갈아 놓은 것같았다. 다만 두자루 장검의 다른 점은 그 재질과 색깔에 있었다. 한자루의 장검은 마치 검신이 괴이하게도 백옥으로 만든듯이 은은한 백색을 띠고 있었고, 다른 한자루의 장검은 검신이 마치 흑옥으로 만들어진 듯 은은한 검고 투명한 광채를 부리고 있었던 것이다. 악불이는 처음에는 다소 호기심과 흥미를 느꼈으나 장검의 그와같은 생김새를 보고는 다소 실망하는 마음이 들지 않을수가 없었다. 일반적으로, 장검을 고를때에 가장 중요시된 것은 바로 검의 강도와 예리함인 것이다. 그런데, 대체 이 두자루의 장검은 겉보기에만 아름답고 화려할 뿐 도무지 그 두가지면 모두에서 쓸모가 없을 것 같지 않은가? 제 27 장 두자루의 보검 이때, 주인이 옆에서 다소 초조한 기색으로 바라보고 있다가 한마디를 했다. "헤헤 그 두자루의 장검은 보검이 틀림없지만 그 생김새가 하도 이상해서 헤헤... 솔직히 그래서 여태 팔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죠. 하지만, 소인이 그것을 구입한 것도 얼마되지 않고 또한 본사람도 얼마되지 않으니 언젠가는 그 검의 가치를 알아주는 주인이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헤헤..." 이 주인은 변명조로 그와같이 말했다. 그는 원래 이 두자루의 장검이 다소 특이하게 빛을 발하기는 해도 생긴것이 괴이하여 이 두사람이 사갈 희망이 거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 정작 악불이는 이 두자루의 장검에 대해서 왠지 기이한 집착이 들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주인의 말을 듣는둥 마는둥 하면서 손을 내밀어 두자루의 장검을 각각 하나씩 두손에 들어보았다. 그러자, 그녀의 두손에 일순 괴이한 감각이 엄습함을 느꼈다. 백옥검을 들고 있는 우수에는 부드럽고 따스한 기운이 느껴지는 반면, 흑옥검을 들고 있는 좌수에는 차갑고 싸늘한 기운이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부드럽고 따뜻한 기운은 잘 느껴지지 않는 반면에 차갑고 싸늘한 기운은 금새 그녀의 전신을 엄습하여 정신을 맑게 일깨우는 것 같았다. 이것을 보고 악불이는 문득 괴이하게 여겨 생각했다. (사물지에 의하면, 천하에는 스스로 한기와 온기를 발하는 천고의 기물인 만년온옥과 만년한옥이 있다던데 이 두가지의 장검은 혹시 그것들로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허나, 다음순간 그녀는 자신의 생각이 크게 잘못되었음을 알아차렸다. 세상에 그렇게 커다란 만년한옥과 만년온옥이 없을뿐만 아니라, 설령 그러한 것이 있다손 치더라도 이렇게 검으로 만든다면 금방 깨어져 버리기 때문에 소용이 없는 것이었다. 그럼 대체 이 두자루의 장검은 무엇으로 만들어진 것일까? 악불이로서는 잘 알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자연 검신의 중앙에 새겨져 있는 검의 이름을 살피게 되었다. 헌데, 그 이름 역시 다소 특이했다. 백옥검은 군자라고 새겨져 있고, 흑옥검은 숙녀라고 새겨져 잇는 것이 아닌가? (군자검과 숙녀검이라고?) 이 이름을 뇌까린 악불이는 내심 다소 야릇한 기분이 들었다. 하긴, 이 두자루의 검의 성질로 보건데 마치 군자나 숙녀처럼 매우 유순하고도 깔끔하여 덕성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했다. 다가, 마침 이 두자루의 장검을 백룡생과 그녀가 각각 하나씩 나누어 갖는다면 얼마나 의미가 깊겠는가 하는것이었다. 원래, 악불이에게는 한자루의 장검이 있었지만 그것은 백련정강으로 만들어진 평범한 검에 불과했다. 몰론 그보다는 예리하지 못하겠지만 기왕에 출발을 하는 마당인 두사람이 각각 이러한 검을 정표로서 간직하게 된다면 그 얼마나 의미가 깊겠는가 하는 것이었다. 일단 그런 생각이 들자, 악불이는 다소 쓸모가 없는 것이라도 이 두자루의 장검을 사야겠다는 결심이 들었다. 기실, 백룡생은 무예가 매우 기이하게 고강하여 검의 예리함을 빌리지 않아도 좋을 그러한 상태였기 때문에 어떤 검이라도 좋을 것이 분명했다. (그럼 어디 강도는 어떠할까!) 악불이는 기왕에 검을 사기로 마음을 먹었으니 한번 시험해 보기로 하고 자신의 장검을 뽑아서 숙녀검과 검날을 서로 마주쳐 보았다. 그러자, 창--! 맑고 요란한 음향이 우리며 중간에서 불꽃이 번쩍 튀었는데, 결과를 보니 백련정강의 자신의 장검은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지만 숙녀검 역시 그대로 멀쩡한 것이 아닌가? 악불이는 이 숙녀검이 단순히 기이한 재질의 흑옥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알았는데, 이와같은 강도를 보이는 것을 보자 일순 대단히 마음이 흡족했다. 이는 바로 이름 그대로 군자와 숙녀가 자신도 당하지 않고 남도 해치지 않는다는 논리와 매우 상통하는 것인 것이다. 사실, 악불이는 이런 곳에서 무슨 특별하게 희귀한 보검을 찾은것이 아니라 어떤 상징적인 보검을 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비록 쓸모는 없더라도 이와같은 장검을 보게되자 그녀의 마음은 매우 흡족해졌다. 그리하여 그녀는 마음을 정하고 주인에게 물었다. "이 두자루의 장검은 검집이 따로 있나요!" 주인은 악불이가 숙녀검으로 보통의 검에 부딪쳐서 도무지 보검다운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필시 그녀가 다소 화를 내며 가버릴 것이라고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원래, 그가 아까 말한 내용은 사실로서, 그는 얼마전에 우연하게 천축을 오가는 상인에게 이 두자루의 장검을 얻게 되었는데, 겉으로는 매우 아름답게 보여도 도무지 실속이 없어서 마치 두개의 막대기와 같았기 대문에 그는 이것을 값비싸게 팔 것을 매우 고심하고 있었던 차였다. 왜냐하면, 그는 처음에는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그 천축의 상인을 만나서 무려 각각 백냥씩이나 지불했었던 것이다. 그가 기왕에 그렇게 많은 돈을 주고 구입을 했으니 다시 그것을 싸게 팔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그리하여, 그는 일단 돈많은 귀공자를 만다면 속여서라도 본전을 왕창 울궈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막상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이 악불이가 관심을 기울이며 묻는것을 보고는 즉시 절로 만면에 회색이 가득하여 대답했다. "예, 물론입죠! 검집이야 틀림없이 따로 있습죠!" 말을 하고는 주인은 급히 구석으로 달려가서 커다란 보따리를 풀어헤치더니 그곳에서 두개의 귀한 가죽으로 만들어진 검집을 가지고 왔다. 실상 악불이가 검집에 대해서 물은 것은 이 두자루의 검은 비단 그 검신의 색깔이 특이할 뿐만 아니라 검자루까지도 그 색깔과 똑같아서 그렇게 물어본 것이었다. 그런데, 과연 하얀 장검에는 하얀 가죽으로 만들어진 검집이, 검은 장검에는 검은 가죽으로 만들어진 검집이 따로있는 것이 아닌가? 악불이는 이것을 보고 매우 기뻐했다. 이 두자루의 장검의 무개는 보통의 것과 비숫했다. 그녀는 얼른 몸을 돌려서 백룡생의 허리에 백색의 장검을 달아주며 그에게 물었다. "어때요? 마음에 드나요. 백랑?" 백룡생은 자신의 허리에 채워진 장검을 내려다보더니 고개를 다소 갸웃거릴 뿐이었다. "글쎄..." 악불이는 그가 이러한 장검에도 욕심이 없어서 그런가보다 생각하고는 이어 검은색의 장검을 자신의 허리에 찼다. 그러자, 그 숙녀검은 그녀의 아름다운 자의에 어울려서 매우 보석같은 아름다움을 자아내는 것이 아닌가? 악불이는 그만 그러한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원래 자신이 차고있던 장검을 풀어서 왼손에 옮겨 들었다. 그리고는 내심 한숨을 가볍게 내쉬며 생각했다. (이 숙녀검이 정말 쓸모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굳이 다른 장검을 손에 들고다니지 않아도 좋을 것이고..." 이어, 그녀는 주인에게 물었다. "이 두자루의 장검의 값은 얼마죠?" 주인은 이때 조금전부터 자신이 불러야할 액수에 대해서 면밀하게 생각을 굴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는 악불이가 묻는 말에 눈빛을 교할하게 굴리더니 대답했다. "헤헤, 이 두개의 보검은 원래는 절세의 보검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래서 최소한... 최소한 하나당 오백냥은 주셔야..." 주인은 이렇게 일단 운을 떼어 놓고는 두사람의 얼굴표정을 살폈다. 그는 원래 이런 장검에 하나당 오백냥씩이나 받는다는 것은 과한 욕심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처음에 샀던 금액이 백냥이었으니 대략 삼백냥 정도만 받아도 그는 횡재를 한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그렇게 부르면 상대는 또다시 값을 깎을 것이므로 그는 일단 그렇게 높여서 부른 것이었다. 과연, 악불이의 안색은 그말에 다소 찌푸러졌다. 원래 그녀는 이 두자루의 장검을 하나의 정표나 예물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비록 쓸모는 없더라도 그런 점 때문에 사려고 했었는데, 무려 그 값을 하나당에 오백냥이나 부른다는 것은 실로 너무한 일이 아닐수가 없었다. 이 오백냥이란 금액은 당시 다섯식구가 아무일도 하지않고 무려 이년은 먹고살 수 잇는 금액이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그녀의 아미가 다소 찌푸려지는 것을 보고 주인은 슬쩍 물었다. "그럼 두분은 대체 얼마를 예상하고 계시는지...!" 악불이는 잠시 생각하다가 차갑게 잘라 말했다. "이 검 한자루당 삼백냥씩 모두 육백냥을 드리겠어요. 더이상은 올리지 말아요!" 그녀가 방금 말한 액수는 바로 주인이 원하고 있던 액수였다. 따라서, 주인은 이에 안면이 밝아지며 못이기는 척 하고 그러한 흥정을 받아들이려고 했다. 헌데, 그때였다. 느닷없이 여태 아무런 말도 하지 않던 백룡생이 문득 입을 여는 아닌가? "잠깐, 그 가격은 적당하지 못하오!" 그말에, 비단 악불이도 놀랐을 뿐만 아니라 주인은 매우 흠칫하는 기분이었다. 그는 속으로 내심 켕기는 바가 없지 않았기 때문에 생각했다. (그는 혹시 내가 이것들을 하나에 백냥씩 샀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래도 그렇지, 여자는 백냥씩이나 거지에게 척척 주는데 사내녀석이 너무나도 째째하구나! 그가 만약 한자루당 이백냥씩 하지고 하면 어쩔까? 그럼 나는 하나당 이백오십씩 해서 모두 오백냥만 달라고 우겨야 겠다!) 내심 그렇게 생각을 정한 주인은 백룡생을 쳐다보며 다소 불만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그럼 당신은 대체 얼마를 주겠다는 것이오?" 주인은 내심 그렇게 물으면서 매우 초조한 심정이 되어서 다시 생각했다. (네가 만일 백냥 이하로 부른다면 나는 개자식이라고 욕을 해주겠다!) 헌데, 정작 백룡생의 대답은 전혀 의외의 것이었다. 그는 주인과 악불이를 번갈아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내가 보기에, 이 두자루의 장검은 하나에 삼천냥이 적당하오." ... 그말에, 악불이와 주인은 동시에 놀라서 할 말을 잊었다. 악불이는 정말 어이가 없다는 듯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고, 주인은 일시 그 말이 크게 황홀하여 넋을 잃은 표정이었다. 아니, 그는 자신의 귀를 불신하는 표정이기도 했다. 이때, 악불이는 백룡생이 세상일에 그다지 욕심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실로 이것은 너무도 어이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쓸모없는 장검을 삼천냥씩 주고 산다면 그 얼마나 손해인 것이며, 남들이 어리석게 생각을 하겠는가? 악불이는 때로는 백룡생이 불가사의하게 훌륭해 보이다가도 꼭 이럴때면 더할나위 없이 멍청해 보인다고 생각하여 내심 걷잡을 수 없이 슬픈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다소 짜증난 음성으로 그에게 물었다. "대체 어째서 이게 삼천냥이나 간다는 거죠?" 백룡생은 그녀의 마음을 짐작하는지 웃으며 대답했다. "이 두자루의 검은 사실은 보검이오." "...?" 악불이는 잠시 멍하니 그를 응시하다가 웃으며 대꾸했다. "그건 나도 알아요. 그래서 나도 삼백냥이나 주고 사겠다는 것이 아닌가요?" 그렇게 말하면서 그녀는 문득 아까 성수약포에서 있었던 그 괴이한 일을 떠올리고 혹시 백룡생이 거기에 감염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지금 그녀가 들고있는 백련정강의 장검도, 대략 삼십냥 정도만 주면 얼마든지 고급으로 살수가 잇는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삼천냥이라니? 이건 무슨 숫자놀음을 하자는것도 아니고, 백룡생은 혹시 은자가 너무 많다고 생각하여 이 교활한 주인에게 은자를 주지못해 안달이 난 것이 아닐까? 헌데, 그러한 병적인 증상이 엿보이기는커녕 백룡생의 안색은 태연했고 여전히 덤덤했다. 그는 역시 웃으며 대꾸하는 것이었다. "이 두자루의 장검은 겨우 삼백냥으로 살수가 있는 그러한 장검은 아니오." 그말에, 악불이는 주인이 바라보고 있음에도 화가 치밀어 아미를 살풋 찌푸렸다. "그건 어째서죠?" 그러면서 그녀는 생각했다. (바보, 바보...! 설령 무슨 특별한 점이 있더라도 그렇게 굳이 이 주인에게 제값을 주어야할 필요가 어디에 있겠어?) 허나, 백룡생은 다소 웃더니 자신의 허리에서 예의 그 군자검을 뽑아들었다. 일순, 그가 군자검을 잡았기 때문인지 그의 백의와 어울려서 그 백색의 검신은 주위에 은은한 백색투명한 광채를 발산하는 것 같았다.' 악불이는 그것을 보자 스스로도 그 두자루의 검이 실로 범상치 않다는 느낌을 새삼 인식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백룡생은 이어 그녀에게 말했다. "당신의 그 검을 내게 주어보겠소?" "...?" 백룡생이 달라고 하는 것은 바로 그 녀의 백련정강의 장검이었다. 악불이는 대체 무슨 ㅇ리인지 알수가 없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즉시 그에게 그 장검을 건네주었다. 백룡생은 곧장 그 장검을 검집에서 벗겨내고 검날을 옆으로 한채 좌수에 들고는 우수에 들고있는 군자검의 검날과 마주쳐 가는 것이었다. 곧이어, 당연이 챙 하는 소리와 함께 불꽃이 튈것 같았다 헌데, 그대였다. 돌연 두개의 장검이 서로 마주쳤는데, 전혀 아무런 소리도 일지않고 백련정강의 장검의 윗부분이 삼분의 일가량 떨어져나가는 것이 아닌가? 쨍그랑, 비록 소리는 났지만 그것은 검끼리의 마찰에 의해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잘려진 검조각이 석실바닥에 떨어지면서 부딪치는 소리였다. ... 이것은 놀라운 일이었기 때문에 주인도 눈을 부릅떴고 악불이는 다소 아연한 표정이 되었다. 그녀가 아까 확인해본 바에 의하면 저 군자검의 날도 뭉툭하여 저렇게 예리하게 소리없이 백련정강의 검을 잘라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럼 대체 이게 어찌된 영문일까? 제 28 장 성수방! 악불이는 매우 놀라다가 그에게 물었다. "하지만 그건 당신의 무예가 뛰어나기 때문에 그런것이 아닌가요?" 그녀는 원래 전에 누군가에게 무예가 뛰어난 사람은 병기의 좋고나쁨을 가리지 않으며, 설사 나뭇가지라도 그에게 들리면 신병이기로 갑을 한다고 들은적이 있었다 지금도 마치 그와같이, 백룡생이 내력으로써 자신의 백련정강의 장검을 잘라낸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헌데, 백룡생은 고개를 저으며 백련정강의 검을 다시 그녀에게 건네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웃으며 말했다. "당신도 한번 해보시오!" 악불이는 다소 눈살을 찌푸렸다. 분명히 아까 그녀는 한번 시험을 해본적이 있었고 그때는 전혀 그와같은 기미가 없었는데 어찌 또다시 그런 시험을 하라는 것일까? 그런데, 다소 의심하는 그녀를 향해 백룡생은 웃으며 다시 말하는 것이었다. "이 장검은 그냥 사용하면 효과가 없고 반드시 자신의 내력을 주입하여 검기를 일으켜야 하오." 악ㅂ루이는 그말에 놀라며 반신반의 했다. 지금 그녀가 검법을 펼치면 검기가 일지않는 것은 아니었다. 강호에는 경기로서 사람을 죽이는 수법도 존재하기는 하지만, 그녀는 아직 내력이 부족하여 그러한 경지에 이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니, 당연히 사람의 육신보다도 단단한 백련정강을 소리없이 자를수는 없는 일이었다. 헌데, 지금 백룡생의 말은 내력만 주입하면 자신도 능히 그렇게 할수가 있다는 말투로 들리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혹시?) 악불이는 멍하니 백룡생을 바라보다가 일순 결심을 하고 우수에 숙녀검을 뽑아들었다. 그리고 일순 검신에 진기를 주입하자, 이게 웬일인가? 검신에서는 일순 칼날같은 검기가 마치 찌르듯이 강렬하게 피어올라 사위를 서늘하게 제압하는 것이 아닌가? 이것은 분명 악불이의 본신의 내력에 의한 검기가 아님이 분명했다. 그녀의 내력은 결코 이런 경지에 도달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놀랍게도 이 두자루의 장검은 비록 겉모양은 둔탁하지만 속에는 무서운 검기를 내포하고 있었다는 말인가? 악불이는 이것에 놀라며 학인하기 위해 자신의 잘려나간 백련정강의 장검을 숙녀검을 향해 아까와 마찬가지로 부딪쳤다. 다만, 이번에 달라진 것은 그녀가 숙녀검에 내력을 주입했다는 사실이었다. 헌데 이때였다. 분명 두자루의 장검의 날이 서로 교차되었건만 비단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을뿐만 아니라 가의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는것이 아닌가? 동시에, 쨍그랑... 그녀의 귓전을 예리하게 강타하는 음향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놀랍게도 방금전에 다시 절반으로 잘려나간 그녀의 백련정강의 장검이었다. "..." 악불이는 잠시 자신도 이러한 결과에 믿기지 않는지 멍하니 숙녀검과 잘려나간 검을 번갈아보며 말을 잊었다. 그것은 역시 주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주인은 확실히 손익에 관한 생각이 빨랐기 대문에 이미 정신을 차리고 손익을 점치고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 악불이는 지금의 상황을 생각하지 않고 놀라 백룡생에게 물었다. "그럼... 그럼 이 두자루의 장검은 바로 신병이기라는 마린가요?" 헌데, 백룡생은 그저 담담하게 역시 고개를 내저었다. "신병이기는 아니오. 그러나 희귀한 보검임에는 틀림이 없소." 그렇다! 백룡생의 그말은 이 두자루의 장검을 평가하는데 가장 적절했다. 왜냐하면, 그는 원래 검의 기운을 보고 그 정체를 쉽게 파악할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악불이 역시 그가 아까 한자루에 삼천냥을 주어야 한다는 사실에 이제야 이해가 가는 것을 느꼈다. 그리하여 그녀는 생각했다. (그래! 이런 희귀한 보검이라면 차라리 제값을 주고 사는 것이 마음이 편할것이야!) 그렇다. 그래야만 이 보검은 비로소 자신의 것같은 느낌이 들 것이기 때문이었다. 헌데 이때였다. 주인이 갑자기 그들의 앞으로 다가들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험 험! 미... 미안하지만 그 장검들은 팔지 않겠소이다." "악불이는 그말에 발작적으로 고개를 주인에게 돌렸다. 그녀는 일순간 주인의 심사를 알아차렸고, 그의 교활한 행동에 내심 분노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싸늘하게 물었다. 주인은 다소 어색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눈빛을 음침하게 굴리며 대답했다. "험! 알고보니... 알고보니 그것은 우리집안의 가보였소. 그런데 내가 어떻게 그것을 함부로 팔 수가 있겠소?" "..." 악불이는 내심 정말 어이가 없었다. 그리고 내심 매우 화가 치밀었다. 세상에는 진실로 선량한 사람이 드물었다. 백룡생은 그저 호의에서 제값을 주고 사려고 그런 말을 했을 것이다.ㄱ 그런데, 그러한 호의의 말에 되받아서 악의로 갚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악불이는 전신에 살기가 도는 것을 느끼며 다시 물었다. "당신의 그말, 진심인가요?" 주인은 일시 그녀의 태도에서 무한한 무서운 기운이 느껴지는 것을 자각하고 절로 소름이 끼쳐서 얼굴빛이 핼쑥해졌다. 그러나, 그는 상인이고 사인은 황금을 위해 목숨이라도 바칠수가 있는 것이다. 그는 그래도 굴하지 않고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무, 물론이요, 당신들은 물론 나를... 나를 죽이고 그것들을 훔쳐갈수도 잇겠지만 나는, 나는 그것을 당신들에게 팔지 않겠소." 주인은 눈앞의 이 두사람의 심성이 그리 악독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단단히 믿고 그렇게 말을 한 것이다. 이것은 이른바 격장지계라는 것이었다. 그말을 듣자, 과연 악불이는 차마 그를 죽일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내심 깊은 한숨을 내쉬며 백룡생을 바라보았다 워낙 그의 불가사의한 능력을 많이 보아왔고 또한 그에게 의지하는 마음이 깊었기 때문일까? 악불이는 평소에는 제멋대로 일을 처리하다가도 이렇게 곤혹스런 상황에 처하게 되자 내심 어찌할바를 몰라 백룡생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었다. 그런 눈빛을 보고 백룡생은 즉시 그녀의 생각을 알게되어 웃으며 말했다. "불이, 우리가 굳이 이러한 검을 구해야할 필요가 있겠소? 나는 필요없으니 우리 그만 나가도록 합시다!" 그리고는, 그는 정말로 군자검을 풀어서 주인에게 건네주는 것이었다. 이 백룡생은 과연 욕심이 전혀 없었다. 악불이는 자신이 그에게 기대를 했던 것이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일단 두자루의 장검이 그들에게 있다면 문제는 조금 다르겠지만 이제 군자검이 주인에게 돌아간 이상은 악불이 역시 혼자서 숙녀검을 갖고 있을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그녀가 하는수 없이 자신도 숙녀검을 빼어서는 주인에게 던지듯이 주어버리고 말았다. 이어, 다소의 아쉬움을 떨치며 그녀는 백룡생의 손을 잡으며 밖으로 걸어나와 버리고 말았다. 이때 해는 거의 중천에 떠올라 있었다. 밖으로 나와서 대로쪽으로 돌아오며 악불이는 그제서야 다소 마음이 아쉬움에서 벗어나며 그를 향해 웃으며 물었다. "백랑! 우리 이제 주루에 가서 점심이나 먹을까요?" 백룡생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럽시다." 이어, 그들은 빠르게 주루를 찻아서 걸음을 옮겨가기 시작했다. 아니, 마악 그렇게 하려고 했을 때였다. 다시 한사람이 문득 그들의 앞을 가로막는 것이 아닌가? 놀랍게도 그는 바로 조금전에 헤어졌던 병기점의 바로 그 주인이었다. 악불이는 그를 보자 일순 노화가 치밀어 허리로 손을 가져가며 차갑게 소리쳤다. "대체 무슨 이유로 또 우리를 가로막는 거죠?" 그녀가 허리로 손을 가져간 것을 무의 식적으로 허리에 차고 있는 검을 잡아간 것이었다. 이제 그녀는 이 악질적인 주인을 증오하여 당장에라도 목을 베어버리고 싶었던 것이다. 헌데, 마땅히 잡혀야할 장검의 자루는 잡히지 않았다. 그제서야 그녀는 자신의 장검은 이미 그 지하실속에 세토막이 난채로 버리고 왔었음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비록 검이 없더라고 그녀가 주인을 죽이지 못하란 법은 전혀 없었다. 주인의 그녀의 서슬퍼른 기색을 보자 일순 행인이 많은 땅바닥에 그대로 무릎을 꿇으며 애걸했다 "살려주십시오. 아가씨! 나으리! 그저 이놈이 늙어서 망령이 들었었나 봅니다! 악불이는 그의 애걸하는 모습을 보며 더욱 철면피하다고 여겨져서 싸늘하게 코웃음을 날렸다. "흥, 누가 당신같은 사람을 죽이겠다고 했나요? 죽이지 않을테니 어서 썩 거지거나 해요!" 허나, 주인은 그래도 바닥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일순 두눈을 교활하게 굴리더니 음침하게 웃으며 말하는 것이었다. "헤헤,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랬다고... 이제 흥정이 마악 시작되려는데 두분께서 그렇게 가시면 어떻게 합니까?" 악불이 그말에 그가 또다시 생각이 달라졌음을 알고는 차가운 냉소를 날렷다. 사실, 주인은 일시적인 욕심으로 그 두자루의 보검이면 능히 천금을 받을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팔지 않겠다고 한 것이었으나, 다시 그들이 나가고 난 다음에 생각해 보니, 가연 누가 앞으로 그러한 장검의 진면목을 알아줄 사람이 있을지 알수가 없는 것이며, 게다가 그들은 이 순진하기 짝이없는 청년보다 결코 많이 줄것 같지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그가 원래 두자루의 장검에 투자한 돈은 겨우 이백냥에 불과하지 않은가? 이렇게 생각하여 자칫하며 수천냥에 달하는 장사를 놓칠것이라고 생각하여 그는 염치불구하고 앞에 나타나 무릎을 꿇은 것이다. 허나, 악불이는 이미 한번 당했기 때문에 별로 그 숙녀검을 갖고 싶은 마음이 일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녀는 냉랭하게 대꾸했다. "우리는 그 검을 사고싶지 않으니 당신은 그만 꺼지도록 해요!" 주인은 자신의 일시 그릇된 욕심으로 대사가 이미 그르쳐졌음을 알고는 안색이 크게 일그러졌다. 그는 다시 애걸하는 수밖에 없었다. "부디 다시 생각해 주십시오! 소인이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흥정을 하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주인은 이러한 이익은 결코 놓칠수가 없다고 생각하여 물불을 가리지 않는 것이었다. 그말에, 악불이는 다소 어느정도 노화가 풀어졌는지 그를 보며 대꾸했다. "좋아요! 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어요. 나는 내가 아까 말했던 한자루당 삼백냥의 은자를 제외하고는 더이상 값을 쳐줄수가 없어요. 만일 그렇지 않다면 당신은 어서 사라지도록 해요!" 한자루당 삼백냥이라면 아까 백룡생이 말했던 액수의 십분의 일밖에 되지 않는다. 주인의 안색은 그만 극심하게 일그러졌다. 그는 일시 그만 물러서 버릴까 하고 생각도 해보았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현명한 방법인지는 자신도 감히 확신할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애걸하며 다시 말했다. "나으리, 그것이 두배인 천 오백만 주십시오! 더이상은 달라고 하지 않겠습니다." 그런말을 하는 주인의 마음은 쓰디셨다. 그는 그저 가만히 있기만 했어도 수중에 육천냥이 들어왔었을 텐데 이제는 겨우 그것의 사분지 일밖에 부르지 못하는 처지가 아닌가? 실로 아찔한 손해라고 아니할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원래 자신이 원했던 육백냥에 비하면 그대로 엄청나게 횡재를 한 것이라고 자위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허나, 악불이는 이미 거의 흥미가 가셔버린 상황이라 냉정하게 거절했다. "아니예요! 나는 육백냥에서 단 한푼이라도 더줄수는 없으니 만일 당신이 원하지 않는다면 어서 그냥 가보도록 해요!" 그말에, 주인의 얼굴이 일순 무수하게 푸르락붉으락 했다. 그는 악불이가 이렇게 완강한 이상은 이제는 그저 물러서는 도리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원래는 겨우 육백냥을 원하고 있었던 터였는데다가 지금에 와서 이렇게 쉽게 흥정할수가 있었던 상대를 놓친다는 것은 매우 꺼림칙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하여 그는순간 생각하다가 다시 물었다. "좋습니다. 소인은 그 오백냥은 떼어버리고 단지 천냥만 받기로 하겠습니다. 두분게선 이래도 안되겠습니까?" 악불이는 원래 마음이 크게 틀어져서 그 두자루의 장검을 사지 않으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주인이 막상 이렇게 양보를 하고 나오자 그녀의 심정은 다소 변화를 일으켰다. 원래 그 두자루의 장검은 그녀의 관심을 크게 끌었던 것이 아니었던가? 그리하여, 그녀는 잠시 생각하다가 문득 백룡생에게 말했다. "백랑, 그 주머니를 제게 주세요!" 주머니란 바로 그녀가 아까 백룡생에게 맡겨두었던 백냥짜리 은원보가 아홉개가 들어있는 은자주머니였다. 백룡생은 묵묵히 곧장 그것을 꺼내 그녀에게 주었다. 그러자, 악불이는 그것을 주인에게 내밀며 말했다, "여기에는 지금 구백냥의 은자가 들어있어요. 만일 당신이 이것으로 그 두자루의 장검을 교환하겠다고 한다면 나는 수락하겠어요." 보아하니 그것은 그녀로서는 최대의 허용기준인것 같았다. 주인은 잠시 생각하며 망설이다가 문득 땅이 꺼져 내려라 한고 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 좋습니다! 기왕에 소인이 어리석어서 수천냥의 손해를 보았는데 그까짓 백냥을 더 손해보지 못하겠습니까? 제가 그것을 팔도록 합죠!" 그것으로 이 엉뚱하게 벌어진 한차례의 흥정은 끝을 맺었다. 주인은 구백냥의 은자가 들어있는 주머니의 안을 세세하게 살펴본 다음에 그것을 품속에 갈무리하고 자신의 집쪽으로 다시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뒤따라온 악불이와 백룡생에게 얼른 지하실에서 아까의 그 군자검과 숙녀검을 가져다가 건네주고는 씁쓸하게 웃으며 사라지는 것이었다. 원래, 이 교활한 주인이 흥정을 손해를 보면서도 강맹한 것은, 무엇보다도 그자신이 물건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엇다. 그가 만약 군자검과 숙녀검이 그렇게 훌륭한 보검이라는 사실을 확신하고 있었다면 결코 그렇게 수천냥이나 되는 손해를 보지는 않았을 테지만, 원래 그 두자루의 검을 그렇게 높이 평가한 사람은 여태 백룡생 하나 분이었고, 주인은 그의 어리숙한 면모를 보고는 믿을수가 없었던 것이다. 어쨌든, 주인은 자신이 예상하고 있었던 값의 절반이나 더 많은 구백냥의 물건을 팔았으면 서도 매우 마음이 석연치않은 것은 사실이었다. 악불이는 이미 전에도 강호를 주유하여 강호의 인심을 훤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 주인이 그들에게 또다시 속임수를 쓰는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여 주인이 검을 건네주는 즉시 그것들을 검집에서 뽑아보았다. 과연, 그것들은 진짜 군자검과 숙녀검이 분명했다. 아마도 세상의 다른 장검은 모방할수가 있어도 이 괴상하게 생긴 두자루의 장검과 비슷한 것은 있을 수가 없을 것이다. 악불이는 결과적으로 자신들이 이익을 보았으므로 내심 크게 만족하여 군자검을 다시 백룡생의 허리에 매어준 다음에 그의 손을 잡고 다시 대로로 나왔다. 이대는 바야흐로 점심시간이었다. 대로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물결치듯이 움직이고 있었7다. 길가에 가득 널려있는 온갖 가게에서, 손님을 부르는 소리, 그리고 그것들을 하나하나 구경하며 걸어가는 행인들의 행렬읗 한동안 산속에서만 살아온 악불이에게 삶의 화력을 불어주는것 같앗다. 하지만, 주루를 찾기 이전에는 악불이는 잠시 생각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아까 남은 은자를 모두 써버려서 지금 우리에게는 오직 천냥짜리 은표밖에 없는 실정이다. 그럼 만일 우리가 주루에 가서 그것을 낸다면 그들은 매우 어처구니없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지 않아도 그녀는 다시 전장으로 가서 은자를 작은 것으로 바꾸고 싶었었던 상태였다. 악불이는 주루를 찾아가던 발길을 돌려 아까의 그 은하전장의 지점으로 되돌아갔다. 거기에서 그녀는 천냥짜리 은표 하나를 꺼내서 그것을 백냥짜리 은표 열개로 바꾸는 한편, 그 백냥짜리 은표를 다시 열개의 열냥짜리 은원보 작은 것으로 바꾸었다. 이 열냥짜리 은원보는 크기가 작고 모양이 깜찍하여 그녀가 가지고 다니는데 불편함이 전혀 없었다. 악불이는 은자를 백룡생에게 맡길 생각을 하지않고 자신이 모두 지닌채 백룡생의 손을 잡고 주루를 찾았다. 그런데, 그들이 마악 하나의 주루를 찾아서 안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였다. 갑자기 전면의 대로상에 수많은 군중들이 줄을 지어 늘어서 있는것이 눈에 띄는 게 아닌가? 이 대로상에는 가게가 많으니 사람들이 모여있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이렇게 눈에 확 띄일 정도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는 것은 뭔가 궁금증을 불러 일으켰다. 헌데, 악불이는 그 모인 사람들이 시선이 집중되어 잇는 한 건물, 그리고 그 건물의 처마밑에 걸려 잇는 커다란 현판에 새겨져 잇는 글씨를 본순간 일순 흠칫 놀랐다. 거기에 적혀있는 글씨는 바로 성수의원이었던 것이다. 악불이는 문득 아까 그들이 약초를 팔았던 그 약포의 이름에 성수자가 붙어 있었다는 것을 상기하고는 내심 곤혹하여 생각했다. (성수약포, 성수의원... 여기에는 뭔가 연관이 있는것이 아닐까?) 그리하여, 궁금한 나머지 그녀는 줄을 서있는 많은 사람들중 한 노인에게 다가가서 물어보았다. "할아버지, 대체 모두들 왜 이렇게 장사진을 치고 있는거죠?" 그 노인은 시골의 볼품없는 평범한 노인이었는데 악불이의 공손한 질문을 받고는 잠시 그녀의 아래위를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오늘 성수의원에서 무료로 환자를 치료해 준다기에 모두들 이렇게 서있는 것이라오." (무료로 치료해 준다고?) 악불이는 다시 의아해 져서 물었다. "그들은 왜 그와같은 짓을 하죠?" 의원에서 무료로 환자를 돌보는 일은 가끔 있었지만 이와같은 지금의 상황은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아가씨는 보아하니 무림인인것 같은데도 나보다도 모르다니 이상하군? 아가씨는 아직 성수방의 이름도 듣지 못했소? 이 성수의원은 바로 성수방의 소속인데, 오늘 성수방의 소공녀께서 와서 모든 사람을 무료로 치료해 주는 것이라오." "..." 순간, 악불이는 아하 하고 크게 놀라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 성수방, 그렇다, 그녀가 그러한 이름을 모르고 있었던 바는 아니었지만 그것은 무림의 일이었기 때문에 잠시 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성수방은 바로 당금의 천하를 휩쓰는 일곱개의 초강세력, 무림칠패 가운데 하나였다. 성수방은 말 그대로 중원천하의 의원들의 연합조직이며, 들리는 바에 의하면 중원천하의 의원들의 삼분지 일이 이미 그속에 가입되어 있다고 하니 상상을 불허하는 일인 것이다. 비록 그들은 뛰어난 무공을 갖춘것은 아니고 그렇다고 그렇게 커다란 부자인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설혹 무공이 극한에 이르러도 반드시 의원을 찾을날이 있으며, 부자일 지라도 역시 의원을 찾을수가 있을 것이기 때문에 결코 그들의 힘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아니, 누구에게도 의원들은 존경과 감격의 대상인 것이다. 원래 이러한 의원들의 조직이 쉽게 이루어진 다는 것은 가히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과거 그러한 연합조직이 있었던 적도 없지는 않았으나, 그들은 응집력이 없어서 거의 실력행사와는 거리가 멀었었다. 그러나, 지금의 성수방은 비단 그 세력이 방대할 뿐만 아니라 무림에서도 엄청난 실력을 행사하고 있는 중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천하의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존경과 신뢰의 마음을 받고 있었다. 그것은 지금 이 노인의 경우만 봐도 능히 알수가 있는 것이었다. 이런 시골의 평범한 노인조차도 그들의 이름을 말할때는 절로 존경의 념을 두눈에 떠올렸던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이러한 거대한 상상못할 조직을 이끌어나가는 사람은 대체 누구일까? 그 이름은 비밀이 아니었고 세상에 훤하게 알려져 있었다. 지금 실질적인 성수방의 일을 통괄하는 사람은 소방주인 새화타 심지평이란 사람이었다. 그리고, 방주는 이미 은거한 것으로 알려진 성수노인 심환이었다. 소방주인 심지평은 방주 심환의 아들이요, 심환은 이미 자신의 후계를 멀지않아 아들인 심지평에게 물려준다는 공언을 한바가 있었다. 당금천하에서 이 두 이름은 거의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 존경의 대상이 되고 있었다. 그것은, 이 성수방은 결코 이익을 탐하지 않으며, 많은 사람들을 구제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기 때문에 가난과 기근이 심한 요즈음의 천하인들의 신망을 깊이 받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이곳 성수의원에서 의술을 펼치고 있다고 노인이 말한 그 소공녀는 바로 소방주의 딸인 심낭자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악불이는 그러한 모든 사실을 일시에 떠올리게 되자 순간 한가지 궁금했던 사실을 알수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성수약포, 그녀가 그곳에서 그토록 만족스런 가격에 약초를 팔수가 있었던 것은 바로 그곳이 성수방의 소속인 약포였기 때문이었다. 악불이는 언젠가 그런일에 대해서 들은적이 있었는데 잠시 망각했던 자신의 기억력을 탄식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실로, 그 약포의 중년사내가 말해던 것처럼 성수약포등지에서는 값을 터무니없이 올리거나 아서 이윤을 남기지 않는것이 통례였던 것이다. 굳이 말하자면, 그녀가 그곳으로 약초를 팔러 들어갔던 것은 정말 다행한 일이었다고 말할수가 있었다. 이렇게 아까의 의문을 말끔히 풀어버리고 또한 더없는 미담을 듣고나자 악불이의 마음은 푸른 하늘처럼 맑게 개어서 기쁨으로 빛났다. (실로 그러한 사람들이 잇기 때문에 세상은 더욱 아름다와지는 거야!) 악불이는 비록 아직 얼굴을 보지 못했지만 그 심낭자라는 사람과 성수방의 인물들에게 절로 친근감을 느끼며 뒤로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뒤에는 백룡생이 여전히 그 몽롱한 촛점이 거의 잡혀있지 않은듯한 시선으로 멍하니 장사진을 치고있는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를 보며 악불이는 문득 호의가 일어 물었다. "백랑, 당신도 성수방을 알고 계시나요?" 백룡생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담담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나도 알고 있소." 악불이는 그의 대답을 듣고 다시 마치 꿈꾸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만약... 만약 우리가 강호에 출도했을때, 그와같은 사람들을 만나서 얘기를 나눠볼수가 있다면 얼마나 영광일까요?" 이어, 그녀는 장차 그렇게 될지도 모르는 미래를 그리며 다소 황홀해 하기도 했다. 하지만, 백룡생은 별로 그건 기대감이 일지 않았으므로 미미하게 웃었다. "글쎄..." 악불이는 그 덤덤한 말에 일시 흥취가 다 달아나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매우 기분이 크게 좋아서 있었으므로 그런것을 상관하지 않았다. "그럼 우리 어서 가서 점심을 먹도록 해요!" 그녀는 백룡생을 재촉하며, 다시 허리에서 느껴지는 서늘하고도 맑은 정기가 서려있는 숙녀검의 자루를 만져보며 눈앞의 주루로 향했다. 제 29 장 여심 그 주루는 이곳 심언진에서도 가장 크다고 할수가 있는 곳이었는데, 그 이름은 바로 황룡주루였다 그 이름은 아마도 요 근처에 있는 황룡탄이라는 여울의 이름에서 따온것 같았다. 마침 이층에 올라가자 사방이 시원하게 트여서 성수의원의 모습이 훤하게 내려다보이는 장소였다. 지금 비록 점심때이긴 해도 다소 이른 시각이었기 때문에 이층에는 창가에 비어있는 탁자가 있었다. 악불이는 백룡생을 이끌고 그곳으로 다가가서 앉았다. 그러자, 그곳의 점원이 다가와서 공손이 주문을 받았다. "무엇을 드시겠습니까?" 이대, 악불이와 백룡생의 용모는 비단 아름다울뿐만 아니라, 그들이 걸치고 잇는 의복들도 하나같이 상품의 것들이었고, 뿐만 아니라, 그들의 허리에 걸려있는 흑과 백의 은은한 광채를 발하는 장검들은 마치 하나의 장신구처럼 보여서 마치 부잣집의 규수와 공자를 연상케 했다. 그러니 자연 그 점원의 태도가 공손해지는 것은 당연했다. 원래 이 악불이는 과거 천하를 떠돌며 온갖 맛좋은 음식을 다 맛볼수가 있을만큼 풍족했었기 때문에 음식을 주문하는 데에는 일가견이 있었다. 그녀는 일순간에 무려 십여가지나 되는 고급요리를 줄줄이 점원에게 늘어놓았다. 그것은 대개가 곰발바닥 요리나 바다제비집 요리와 같은 진귀한 것들로, 비록 이곳 황룡주루에는 그런것들을 만들 능력이 있었지만 점원은 그녀가 너무나도 많은 고급요리를 주문하자 일시 놀라서 눈이 다 휘둥그래졌다. 그리하여, 점원은 되묻지 않을수가 없었다. "그것들을 전부다 말입니까? 혹시 다른 손님이라도 또 오십니까?" 악불이는 그의 질문에 다소 귀찮은듯 아미를 살풋 찌푸렸다. "다른 사람은 오지 않아요! 왜요? 내가 그 음식값을 모두 지불하지 못할가봐 그러나요?" 그러면서, 그녀는 마치 시위라도 하듯 품속에서 작은 은자주머니를 꺼내보았다. 그 은자주머니에는 모두 열개의 작은 은원보가 들어있었는데, 그것은 말굽모양으로 생겨 있어서 은은한 요염한 광채를 발하고 있었다. 그녀가 시킨 음식의 양이 비록 많다고는 하나 그것을 전부 모으면 은자 스무냥도 채 되지 않을 것이다. 기실 식사 한끼에 무려 은자 열냥이상이나 쓴다는 것은 어이가 없는 일이지만 점원은 그녀에게 무려 은자가 백냥이나 있는 것을 보고 두말하지 않았다. 오직 그는 더욱 공손한 표정으로 허리를 깊이 구부렸을 뿐이었다. 이것을 보고, 악불이는 문득 수중에서 열냥짜리 은원보 하나를 점원에게 던져주며 물었다. "여기에 혹시 아주 오래된 여아홍이 있지 않나요?' 점원생황를 비록 오래하더라도 이 열냥이나 되는 금액은 결코 쉽게 받을수가 없는 거금이었다. 점원은 갑자기 자신이 그와같은 거금을 받게되자 일시 입이 찢어지도록 벌어져서 기뻐서 즉시 대답했다. "예, 예! 있습죠! 이곳 항룡주루는 역사가 오래되어서 무려 수십년 묵은 여아홍도 있답니다. 그것을 갖다 올립깝쇼?" 악불이는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여아홍은 이십년이 자나면 그 맛이 오히려 좋지 않게되니 당신은 그저 십년에서 십오년 사이의 것으로 한근만 가져오도록 해요! 만일 당신이 성실하게 그일을 잘해준다면 그 은자는 바로 당신거예요." 그말에, 점원은 기뻐서 입이 양쪽으로 찢어졌다. 그는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행여나 악불이가 마음이 변해서 자신에게 준 은자를 거둘까봐 그는 서둘러 아래층의 주방으로 내려가 버리고 말았다. 악불이는 이렇게 온갖 값비싼 음식에다 술까지 시키고 나자 다소 마음의 여유를 느끼며 편안한 의자의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원래 그녀는 비록 일찍이 어머니를 여의었다고는 하나 화산파에서 아주 사랑을 독차지하고 자라나 세상에서 먹는것에 구애를 받아본 적이 없었다. 항상 나중에 굶을것을 대비하여 많이 먹어두는 백룡생과는 달리, 그녀는 이런 값비싼 음식들은 아니더라도 비교적 훌륭한 음식들을 조금씩 먹는것이 습관화되어 있었다. 그런데, 지난 며칠간 그녀는 백룡생과 산꼭대기에서 머물며 거의 음식다운 음식을 먹어보지 못했고, 그런 마당에 이렇게 많은 은자를 갖게되자 일시 호사를 부리고 싶은 마음이 생겼던 것이다. 그녀로 말하자면 이곳이 이런 시골구석이 아니라 장안이나 무창과같은 거대성시가 아닌것이 유감일 정도였다. 어쨌든, 악불이는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나자 마음이 느긋해져서 백룡생을 건너다보며 물었다. "백랑! 이제 우리는 평생동안 일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먹고살수가 있게 되었으니, 앞으로는 무슨 일을 하면서 세월을 보낼까요?" 백룡생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쎄..." 기실, 평생을 별로 할일이 없이 지낸다는 것은 아주 심각한 문제라고 할수가 있었다. 하지만 우선 백룡생은 그러한 일에 신경을 쓰는 사람이 아니었고, 악불이는 심 계획하고 있는 바가 있었으므로 그저 건성이었다. 그녀는 백룡생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을 보며 다시 물었다. "백랑, 우리는 기왕에 이 많은 돈이 생겼으니 그런 삭막한 절봉의 꼭대기에서 살것이 아니라 이런 작은 읍내에서라도 집을 사서 사는게 어때요?" 그말에, 백룡생은 즉시 반문했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불과 집을 지은지 얼마 되지 않았지 않소?" 허나, 그말을 들은 악불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내저었다 "그런 집은 우리가 아직 돈이 없었을 때에나 필요한 것이었지요. 하지만 우리는 이미 이렇게 많은 돈이 잇는데 무엇때문에 그런 곳에서 사서 고생을 해야만하죠?" 백룡생은 그녀의 추궁에 일시 어리둥절했다. "그럼... 당신은 그 새집에서 사는 것이 좋지 않다는 말이오?" 원래, 백룡생은 적막한 산골인 오매촌에서 자라났고 또한 명상에 잠기는 것을 즐겨서 주변이 시끄러운 것보다는 조용한 것을 좋아했다. 그리하여, 그는 스스로 그 절봉위를 상당히 마음에 들어 하고 있었는데 설마 악불이는 그와 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을줄은 몰랐다. 그러나 자연 다소 당황해질 수밖에, 악불이는 그의 얼굴을 쳐다보며 단호하게 대꾸했다. "물론이예요. 전 사실 그렇게 높은곳은 오르기가 불편해서 살고싶지 않아요. 게다가... 내가 만일 아기라도 낳게되면... 낳게되면, 그대는 아기에게 얼마나 위험하겠어요?" 악불이는 백룡생을 설득하기 위해 그런 말을 생각해냈었으나 일순 처녀의 몸으론 그런 말을 한다는 자체가 매우 부끄러워 다소 안색을 붉혔다. 하지만, 백룡생은 미처 그러한 것을 보지 못하고 다소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군. 그렇겠군... 난 왜 그런 것을 미리 생각해 보지 않았을까?" 이때, 악불이는 마치 지금 이순간을 기다리기라도 한듯 얼른 그에게 말했다. "백랑! 그래서 말인데... 우리 차제에 한차례 강호를 유람하면서 우리가 살아갈 장소를 찾아보는게 어때요? 이만한 돈이면 우리는 어디에서건 충분히 살아갈수가 있으니까요." 백룡생은 그녀의 말에 잠시 깊이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난듯 물었다. "하지만, 무당파는 이미 나의 소속이고 또한 현진사질이 나중에 나에게 무슨일이 있을시는 달려와서 말해주겠다고 했는데, 그런데 만일 그때 내가 거기에 없다면 그는 얼마나 서운해 하겠소?" 그말에, 악불이는 내심 실소를 금치 못했다. 이 백룡생은 비록 무공이 불가사의하게 높고 능력이 신비할지라도 세상을 살아가는 요령애는 전혀 문외한이어서 마치 세살먹은 아이처럼 멍청하다고 느꼈다. 악불이는 그의 그러한 점이 어떤때에는 다소 슬프게 느껴지다가도 어떤 때에는 산뜻한 매력으로 보이기도 해다. 백룡생은 거의 완벽할 정도로 능력이 대단한 사람인데 그런 어수룩한 면이 없다면 그녀가 어 게 그와 어울릴수가 있겠는가? 악불이는 내심 그에게 깊은 정이 느껴져 정겨운 눈빛으로 대답했다. "그건 당신이 잘못알고 있는 거예요. 비록 무당파에 무슨일이 발생하면 그분 도장이 당신에게 연락을 하기는 하겠지요. 그러나, 무당파는 천년의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는 거대한 문파인데 그들이 당신을 도움을 바라겠어요? 아마 그들은 당신의 도움이 필요없다고 생각할 거예요." 그말에, 백룡생은 가볍게 낯빛이 변했다. 그는 마음이 충후하여 ㄱ여태 그러한 미묘한 심리적인 것은 생각해보지 않고 있었다. 허나, 그의 머리는 원래 우둔한 것은 아니었다. 지금 악불이의 말을 들어보니 기실 전에 그가 무당파에 입문할때 느꼈던 자신을 매우 부담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모습들이 확연히 떠오르는 것이 아닌가? 백룡생은 그제서야 악불이의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아차리고 안색이 조금 변해서 생각했다. (나는 사실 어르신의 유언으로 현진사질과 함께 지내려고 했는데 그것은 이미 틀려버린 셈이나 다름이 없다. 그리고 단지 무당파와의 인연인 닿아있을 뿐인 것이다. 헌데 알고보면 그들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라면 나는 구태여 그들과 함께 살아갈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닌가?) 백룡생은 여기에서 문득 다소 자신이 소외된듯한 감정을 맛보았다. 그러나, 그는 원래 그러한 집착에서 멀리 떨어진 사람이었으므로 곧 그런 소외된 감정을 머리에서 지워버렸고 즉시 편안한 감을 맛보았다. 이로써 전에 어르신이 그에게 말해던 유언은 이미 깨끗하게 이루어 드렸다는 홀가분하고 시원한 감각을 느낀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제는 천하에 그를 가로막는 것은 하나도 없고 무슨 일을 하든 그는 한없이 자유로운 것이다. 일반사람들은 그 자유로움의 기쁨을 잘 이해하기가 어려울지는 모르나, 백룡새으로서는 그야말로 무한한 평온한 기쁨이 젖어드는 것 같았다. 그리하여, 그는 즉시 만면에 화색을 가득 떠올리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의 말이 옳소. 당신의 말이 옳소!" 악불이는 그말에 내심 뛸듯이 기뻐졌다. 이제 그녀는 그 무시무시한 절봉의 꼭대기에서 살지 않아도 될 분만 아니라 소망하던 강호촐도를 할 수가 있게된 것이다. 일순, 그녀의 뇌리에는 찬란하게 펼쳐질 자신의 영광된 모습들이 선하게 보이는듯 했다. 동시에, 그녀는 기뻐서 다시 물었다. "그럼 기왕에 말이 나왔으니 우리는 바로 내일 그 절봉을 떠나서 강호유람을 시작하는 것이 어때요?" 백룡생은 이미 걸리적거리는 문제가 없어졌으므로 아무런 이의가 있을리가 없었다. 그는 거의 생각해보지도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합시다. 그렇게 합시다!" 일단 그렇게 결정이 나자 악불이는 내심 매우 기뻐서 어쩔줄을 몰랐다. 오늘은 마치 그녀 혼자만의 행복을 위해서 존재하는 날인것 같았다. 헌데 이때, 점원들이 아까의 그 점원을 선두로 해서 많은 음식들을 날아왔으므로 두사람은 대화를 멈추고 그것들을 바라보았다. 이곳 황룡주루의 음식들은 매우 정갈했고 또한 그 맛도 일품이었다. 그 십여가지의 음식들이 탁자위에 가득 놓이게 되자 일순 주위에 후각을 황홀하게 만드는 향취가 가득 흘렸으며 그 냄새만 맡아도 절로 침이 마구 흘러내릴 정도였다. 악불이는 그중 한조각을 집어들어 맛을 보고는 다소 만족한 빛을 보였다 그때, 먼저의 그 점원이 한근의 술이 담겨있는 작은 술단지를 개봉하여 탁자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보십시오, 이게 바로 십오년된 여야홍입니다." 과연, 술단지는 매우 오래된 것이었고 아직 뚜껑이 개봉되진 않았던 것이었는데, 뚜껑을 열자 그 속에는 실로 향기로운 술냄새가 풍겨나왔다. 이 여아홍은 원래 대략 십여년의 숙성을 필요로 하는 것으로, 일설에 의하면 여아가 태어났을 때 장차 시집갈 것을 대비하여 미리 담그어 놓는 술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그 십여년이란 기간은 거이 들어맞는 것이다. 이 여아홍이란 술은 말 그대로 맑은 가운데 불그레한 기운이 감돌았고, 일반의 작은 술집에서는 팔지않는 고급의 술에 속했다. 점원은 악불이가 고개를 수경 술냄새를 맡아보며 만족한 눈치이자 즉시 고개를 깊이 숙이며 절을 하고는 물러갔다. "그럼 즐겁게 드십시오!" 점원이 물러가자 백룡생은 이미 시장했던 참이라 즉시 수저를 들고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원래 그의 식욕은 왕성했다. 게다가 이곳의 음식은 기가막힌것 뿐이었으므로 그는 일단 수저를 들자 한접시의 쇠고기요리를 그야말로 마파람에 게눈감추듯 먹어치웠다. 그러나, 이곳의 음식은 워낙 많았기 때문에 백룡생은 미처 세접시의 음식을 다 먹기도 전에 이미 배가 부른 것을 느꼈다. 그리하여, 그는 그만 천천히 수저를 놓으며 고개를 들다가 일순 다소 의아해졌다. 음식을 먹느라고 정신이 없어서 보지 않았었는데, 일고보니 악불이의 앞에 놓여있는 음식들은 아직 전혀 손도 대지 않은 상태였던 것이다. 그가 바라보니, 악불이는 아직 그 여아홍의 향긋한 냄새를 맡아보며 기이한 표정에 젖어있는 중이었다. 그녀는 바로 그 향긋한 술향기에서 행복의 느낌을 감상하고 있다는 것을 그가 어찌 이해할수가 있으랴? 백룡생은 의아해져서 물었다. "배가 고프지 않소?" 악불이는 사실 배가 고프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는 기실 백가 고프더라도 음식을 즐기는 취미가 있었다. 악불이는 그제서야 젓가락을 들어서 전면의 바다제비집요리를 한조각 듣어서 입속에 넣으며 백룡생에개 문득 되물었다. "술한잔 하시지 않겠어요?" 백룡생은 그말에 고개를 저었다 "나는 술을 마실줄을 모른다오." 그말에, 악불이는 문득 새침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흥, 누군 그럼 언제 술을 먹어본 줄 알아요?" 백룡생은 그녀가 원래 술을 좋아하는 줄 알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녀의 말을 듣자 의아해져서 물었다. "아니 그럼 술을 마실줄 모르면서 술을 시켰단 말이오?" 악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하지만 강호의 영웅호걸이라면 마땅히 이런 술을 한잔쯤은 할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특히 당시는... 한잔하면 좋을 거예요." 그렇게 말하는 악불이의 안색은 마치 이미 술한잔을 한 사람처럼 발그레하니 달아올라 있었다. 원래 이 여아홍은 능히 그 냄새만 맡아도 취할수가 잇는 독한 술이었던 것이다. 그렇다. 악ㅂ루이는 지금 백룡생의 사고방식이 매우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하여 그에게 억지로 유기해서 술을 마시게 하려는 것이다. 백룡생은 그녀가 자신에게 굳이 술을 마시라고 하자 내심 생각했다. (전에 어르신께서는 술은 사람의 마음을 흐리게 하니 마시지 않는것이 좋다고 말씀 하셨었다. 그러나, 지금 그녀가 저렇게 권하고 있으니... 아마 조금쯤은 상관이 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그럼 한잔 합시다." 이에, 이미 그러한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던 악불이는 즉시 술단지를 기울여서 술잔에 가득히 따라서는 을 백룡셍에게 건네주었다. 백룡생은 즉시 그것을 받아들고 단숨에 입속에 들이켰다. 일순, 향긋하고 씁쓰레한 기운이 목구멍을 넘어가자 뜨거운 불길같은 기운이 뱃속에서 이는것 같았다. 백룡생의 안색은 이에 대번에 불그레해졌다. 그러나, 그것은 오직 한순간의 일일 분이었다. 이상하게도 즉시 그의 뱃속에서 한줄기 맑은 기운이 일더니 그 뜨거운 술기운을 모조리 제거해 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바로 다름아닌 그의 몸이 금강불괴이기 때문에 스스로 술기운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그것은 태양의 휘황한 광채아래 어떠한 어둠도 사라지는 이치와 흡사했다. 백룡생은 처음에는 뜨겁다가 다시 몸이 맑아지자 이 술에 대해서 별로 호기심을 느끼지 못했다. 이때, 악불이는 그의 안색이 갑자기 붉어졌다가 금방 정상으로 돌아오는 것을 보고는 재차 술을 따라주려고 했다. 헌데 그때였다. 갑자기 주위의 분위기가 기이하게도 조용해지는 것을 느끼고 악불이는 고개를 돌렸다. 원래 이시각에는 이미 이 이층에도 모든 탁자가 손님들로 가득차서 더이상 손님을 받을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이상하지 않은가? 이 이층에는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음식을 먹고 잇건만 어찌해서 이토록 갑자기 조용해진 것이란 말인가? 악불이는 매우 의아해 하다가 문득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은 은연중 주루내의 한 탁자쪽으로 집중되고 있었던 것이다. 악불이는 따라서 무심결에 그쪽으로 시선을 보내다가 다소 기이한 눈빛을 했다. 그 탁자는 그녀와 백룡생이 앉아있는 탁자와는 그리 멀지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지금 그 탁자앞에는 한명의 준수한 황의청년 이 앉아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악불이가 다소 놀란 것은 그 청년의 용모가 매우 준수하기 대문만은 아니었다. 그 청년의 이목구비는 매우 뚜렷하고 영기발랄하여 마치 봉황과도 같은 느낌을 풍겼는데 악불이가 놀란 것은 그 청년의 총명절륜해 보이는 기질이었다. 사실, 지금 그녀의 앞에 앉아있는 백룡생의 용모도 결코 그에 못하다고는 말할수가 없었지만 백룡생에게는 없는 총명하고도 강렬한 기질이 그녀의 눈길을 끌었던 것이다. 젊은 청년의 용모가 그렇게 준수한 데다가 총명한 기질가지 겸비했으니 어찌 뭇 여인들의 시선을 끌지 않으랴? 비록 용모는 서로 비슷하다고 할지라도, 백룡생의 전체적인 인상이 촌닭과도 같다면 그 사 은 바로 인중용봉 과도 같았다. 사람의 기질이라고 하는 것은 그렇게 심한 차이를 전해주는 것이었다. 악ㅂ루이는 그렇게 생각을하며, 문득 자신이 백룡생을 헐뜯고 은근히 그 청년에게 호감을 느끼고 잇다는 사실에 크게 흠칫했다. 허나, 이 황의청년은 분명히 모든 여인들의 방심을 뒤흔들만큼 수려한 인물이었고, 악불이가 만나본 인불들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것 같았다. 하지만, 과연 지금 주루안의 모든 사람들이 단순히 그가 그렇게 수려한 인물이라는 점 때문에 모두들 은근히 시선을 모으고 있는 것일까? 악불이는 문득 이러한 점을 생각해보다가 고개를 내젖지 않을수가 없었다. 지금 이층 주루안에는 별로 여인들이 없었기 때문에 같은 남자로서 단지 용모때문에 그렇게 반한다는 것은 있을수가 없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대체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 이때, 마치 그녀의 궁금증에 답변이라도 해주듯이 모든 사람들의 시선은 다시 이번에는 이층으로 올라오는 게단의 끝부분에 집중되었다. 그리고, 순간 누군가의 도저히 참을수가 없다는 듯한 억눌린 음성이 무의식중에 터져나왔다. "심, 심낭자다...!" -- 심낭자, 이 한마디는 확실히 악불이에게도 마음의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 원래 중원의 여인들은 2자신들의 이름을 은밀하게 생각한 나머지 그 이름을 부르지 않고 무슨 낭랑이니, 무슨 낭자니 하는 말로 즐겨 표현했다. 그러니까, 시집을 간 여자도 남편의 성을 따라서 첫째부인이면 무슨 대랑, 둘째부인이면 이랑의 식으로 호칭을 했던 것이다. 따라서, 단순히 그저 심낭자라는 말로는 그녀가 누군인지 알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왜냐하면 그저 심낭자라는 말로는 그녀가 누구인지 알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왜냐하면 천하에는 심씨성을 가진 낭자가 무수히 많은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악불이는 이미 성수방의 소공녀가 지금 성수의원에 와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게다가 그 심낭자는 대개가 그녀를 지칭하는 특수한 말과도 같았던 것이다 그러니 어찌 놀라지 않으랴! 악불이는 일순 눈을 크게 뜨며 계단쪽으로 시선을 돌리지 않을수가 없었다. 순간, 그녀의 두눈에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이층으로 마악 올라서는 한명의 담황색의 장삼을 걸친 소녀의 모습이 들어왔다. -- 황의소녀, 그녀의 용모는 실로 기막히게 아름답다고 해야만 할 것이었다. 원래 악불이 역시 천하에서 누구에게도 빠지지 않은 용모를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미모가 세속적인 것이라면 이 황의소녀의 아름다움은 인세의 것이 아닌 천사의 고귀한 선녀의 아름다움인것 같았다. 이것은 비단 차이가 있을뿐만 아니라 그것도 매우 크다. 그렇다면 이 황의소녀의 용모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가히 짐작이 가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그녀는 실로 아름다왔다. 전신의 섬세한 골격은 물론, 그 빼어나게 수려한 용모는 마치 천신이 오랫동안 심혈을 기울여서 세공을 한것 같은 미태를 풍기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녀의 전신에서는 고아하면서도 다소 성결한 분위기가 풍겨나고 있었으니, 대체 하늘아래 이토록 완벽하게 아름다운 여인이 있을수가 있을까? 악불이는 실로 스스로 자격지심이 일어나는 것을 느끼며 내심 생각했다. (혹시 그녀가 바로 심낭자일까?) 악불이는 아직 그 이름만 들었을뿐 한번도 직접 보지 못했기 때문에 단순이 추측만을 할수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추측은 거의 정확했다. 비록 황의소녀의 용모가 이토록 아름답다고는 해도 그녀가 바로 심낭자가 아니라면 어떻게 모든 사람들에게 이런 존경의 념을 동시에 받을수가 있단 말인가? 악불이는 말로만 들었던 심남자가 실은 이토록이나 아름답다는 데에서 경이감을 느끼며 문득 내심 생각했다. (이 바보... 아니 백랑이 혹시 그녀에게 정신이 팔려 있는것은 아닐까?) 그리하여, 그녀는 즉시 시선을 백룡생에게 돌렸다. 허나, 다행히 백룡생은 여전히 식탁위의 음식을 하나씩 집어먹을 뿐 전혀 그녀의 출현에 신경을 쓰는 눈치가 아니었다. 이것을 보고 악불이는 내심 웃으며 생각했다. (나의 백랑은 너무나도 세사의 일에 욕심이 없어서 그런지 저런 여자에게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구나? 하긴... 그는 이미 내게 맹세를 했으니 다른 여자에게는 신경을 쓸수가 없는 일이겠지!) 이어, 그녀는 다시 급히 그 황의소녀에게 시선을 보냈다. 헌데 이때, 그 황의소녀는 천천히 앞으로 걸어오더니 아까의 그 황의청년의 앞으로 다가가서 탁자앞에 마주앉는 것이 아닌가? 그러고보니 악불이는 황의소녀와 황의청년의 용모가 다소 닮은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렇다면, 대체 이 황의청년은 누구일까? 이때 주루안의 사람들은 처음에는 두사람의 만나는 모습을 예의 주시했으나, 곧 흥미를 잃고는 각자 음식을 먹고들 있었다. 허나, 그렇다고 모든 사람들이 그 두명의 젊은이에게 대한 관심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황의소녀와 황의청년은 모든 사람들이 보고있음에도 별로 귀찮은 기색이 아니었다. 그들은 아주 자연스러운 표정으로 서로 반기더니 마주 않아서 낮은 음성으로 미소하며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보아하니 그들은 매우 가까운 사이인것 같았는데 악불이는 그 대화내용은 들을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이미 주루안에는 시끄러운 소음이 들리기 시작하고 그들은 아주 낮은 음성으로 말을 교환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때, 그러한 광경을 보면서 악블이는 문득 생가 다. (우리는 이제 그렇지 않아도 강호에 출도를 해야할 입장이다. 그렇다면 저러한 유명한 인물들과 한번 대면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악불이는 은근히 그 황의청년의 정체를 알고싶은 충동이 일었기 때문에 더욱 자신의 그러한 생각이 옳다고 간주했다. 그리하여 그녀는 즉시 백룡생을 향해 전음으로 말했다. "잠깐 식사를 멈추고 입을 닦아요! 우리는 우선저기에 잇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어야 겠어요!" 그말이 끝나자, 악불이는 다소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있는 백룡생의 손을 잡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즉시 그쪽의 탁자를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제 30 장 성수방의 사람들! 악불이가 백룡생의 손을 잡고서 그들의 앞에 이르렀을 때에도 그들은 역시 웃음 나직한 말을 주고받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악불이가 백룡생을 이끌고 다가오는 것을 보고는 이쪽으로 시선을 돌려서 다소 의아한 눈빛을 했다. 악불이는 이미 그들에게 할 말을 생각해 두었던 터라 즉시 황의소녀에게 포권하며 물었다. "혹시... 당신이 바로 성수방의 심낭자인가요?" 황의소녀는 잠시 의아한 태도로 악불이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여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요. 헌데 무슨 일이죠?" 황의소녀가 악불이를 대하는 태도는 그저 덤덤하기만 했다. 하지마 악불이는 그것을 눌러참고 대답했다. "소매는 바로 화산파의 악불이예요. 오래전부터 심언니의 명성을 들었었는데 이렇게 뵙고보니 정말 훌륭한 분이시군요!" 황의소녀 심낭자는 그말에 다소 겸연쩍은 빛을 보였다. 그러나, 악불이의 신분이 바로 화산파의 장문인의 여식이라는 것을 알자 그녀의 태도는 즉시 달라졌다. 그녀는 곧 악불이를 향해 마주 포권하며 대답했다. "바로 화산파의 악낭자시로군요? 소매의 이름은 바로 심황이라고 해요!" 원래 같은 여인들 끼리라도 자신의 이름만큼은 거의 숨기는 편이었다. 그러나, 이 심낭자는 악불이가 먼저 자신의 이름을 밝혔기 때문에 어쩔수가 없다고 생각하여 자신의 본명을 밝히게된 것이었다. 악불이는 웃으며 대꾸했다. "심황이라...? 정말 너무나도 아름다운 이름이로군요? 헌데 이분은?.." 물론 악불이가 물은 것은 그 황의청년이었다. 심황은 웃으며 대답했다. "그분은 바로 저의 오빠세요. 이름은 바로 심룡이죠." 남자의 이름은 가히 자랑을 할만 했으므로 심황이 그것을 밝히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악불이는 역시 심룡의 이름을 어딘가에서 들은적이 있는것 같았다. 그렇다면, 알고보니 이 두사람은 바로 남매지간인 것이다 악불이는 뭔가 한숨이 나오는 것을 느끼며 즉시 그 황의청년 심룡에게 포권했다. "당신은 바로 성수방의 소공자이시군요? 처음뵙겠어요!" 다소 대담한듯한 악불이의 첫인사에 심룡은 다소 웃으며 대꾸했다." 화산파의 악낭자의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뵙고보니 과연 명불허전이라군요?" 심룡의 음성은 다소 탁한듯 하면서도 웅후하게 울렸다. 악불이는 그러한 음성을 듣자 웬지 가슴이 크게 울렁거리는 것을 느꼈다. 게다가, 방금 심룡이 말한 것은 보통 강호인들이 만나면 서로 주고받곤 하는 의례적인 인사였지만 실로 그 내용이 의미심장하게 들리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문득 자신도 모르게 얼굴색을 붉히며 대답했다. "저도 역시 당신과 같은 분을 뵙게 되어 반가와요!" 그말에, 심룡은 두눈에 일순 특이한 기색을 떠올렸다. 그러다가 그는 문득 악불이의 뒤에 서있는 백룡생을 돌아보고는 다소 의아해하며 물었다. "헌데 실례지만 저분은 누구시오?" 악불이는 그러한 질문을 받자 내심 다소 흠칫했다. 그녀가 원래 백룡생과 언약을 한 이후에 이처럼 다른 남자에게 관심을 가진다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 남녀간의 감정이란 것은 실로 복잡하고 미묘하여 그녀 자신도 그런것을 알면서도 쉽게 심룡에 대한 미련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은, 우선 그녀가 이미 백룡생과 제법 많은 날들을 함께 생활해 와서 그의 특수한 능력에 대해서 별로 둔감해진 실정이었고, 더군다나 지금 그녀에게 무려 오만냥에 달하는 은자가 있으니, 문득 다소 멍청한듯한 백룡생의 태도가 매우 지겨운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사실, 악불이는 이 오만냥의 은자가 이미 자신의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 많은 은자는 대개 사람의 신분을 격상시켜 주기도 한다. 악불이는 과거에는 백룡생과 같은 사람에게 사랑을 느끼고 만족한 느낌을 받았지만 이제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느끼고 있었다. -- 무공이 제아무리 고강해도 인간됨이 멍청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것이 바로 그녀의 심정이었다. 마침 그러하던 차에 심룡이라는 용봉지재를 대면하게 되었으니, 어찌 그녀의 마음이 기울지 않겠는가? 그리하여, 심룡이 그녀에게 백룡생에 관해 묻자 그녀는 순간 생각했다. (그는 아직 나와 잠자리를 같이 한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살을 섞은것도 아니다. 다만 두어번 입맞춤을 했을 뿐인데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따라서, 그녀는 다소 겸연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는 나의 친구일뿐 그이상은 아무것도 아니예요." 심룡은 그말에 다소 기이한 눈빛이 되어 백룡생을 두어번 주시했다. 이 백룡생은 지금 눈빛도 평범하고 다소 혼몽해 보이는 거이 그저 멍청한 서생이나 다름이 없어 보였다. 단지 신체가 다소 후리후리하고 건장해 보이나 그것은 심룡의 안목에 비하면 무공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하지만, 다시 백룡생의 허리에 걸려있는 백색의 기이한 기운을 발하는 장검과 악불이의 허리에 매어있는 검은 장검을 바라보고는 다소 흠칫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말했다. "헌데 두분은 한쌍의 보검을 나누어 가지셨으니 보통의 사이가 아닌것 같군요?" 이 심룡은 역시 장검을 알아보는 눈이 보통이 아니었다. 그는 단지 겉모양만 보고서도 그것이 한쌍을 이루는 것임을 알아보았던 것이다. 그말에, 악불이의 일순 당황안 마음이 되어서 말했다. "아니예요. 그것은 그것은... 제가 잠시 그에게 맡겨둔 거예요."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백룡생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당신, 그것을 제게 돌려주시겠어요? 이 한쌍의 보검은 제가 구입한 것이잖아요?" 백룡생은 그녀의 그러한 말에도 별반 표정이 없었다. 그는 그저 덤덤하게 있더니 웃으며 즉시 허리에서 군자검을 꺼내서 건네주는 것이었다. "여기있소." 이때, 심룡은 비단 백룡생이 무공을 연성하지 않은 멍청해보이는 서생인데다가 이렇게 순순히 장검을 내주는 것을 보고는 악불이의 말대로 두사람의 사이가 대단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는 즉시 백룡생이란 존재에 대한 관심이 사라졌다. 그리고는 열심히 백룡생이 악불이에게 건네준 군자검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었다. "악낭자, 소생이 그 검을 한번 살펴봐도 되겠소?" 그말에, 악불이는 순간 기쁨의 눈을 빛냈다. 기실 그의 이러한 말은 그녀가 내심 바라고 있던 바였다. 그녀는 즉시 그것을 검집채 심룡에게 건네주었다. "저는, 이미 이 검이 있으니 이것은 당신이 가지도록 하세요!" 이에, 심룡은 일순 커다란 기쁨과 놀람을 느꼈다. 원래 무공올 연마하는 사람은 한자루의 보검을 갖게되는 것이 소원인 법인데, 이렇게 한순간에 한자루의 보검을 갖게 되었으니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게다가, 심룡은 허리춤에 한자루의 장검을 차고 있어서 그가 검법을 사용한다는 사실을 알ㄱ수가 있었는데 이것은 그야말로 안성맞춤이었다. 심룡은 일시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되물었다. "이, 이것을 소생이 가져도 되겠소?" 악불이는 그의 기쁨이 클수록 더욱 마음이 흡족한지라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예요. 이제 그것은 당신거예요!" 그말에, 심룡은 매우 기뻐하며 즉시 군자검을 검집에서 뽑아보았다. 순간, 눈이 시릴 정도로 하얗게 빛나는 검신의 투명한 광채가 거의 마음을 크게 흡족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일순 그는 검날이 모두 뭉툭하게 되어있는 것을 알고는 다소 곤혹스러운듯 미간을 좁혔다. 그는 이것이 겉으로는 보검임에 틀림이 없어보이지만 대체 어째서 이렇게 날이 서있지 않은 것인지 이해할수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는 웃음을 거두지 않으며 악불이에게 말했다. "이 장검은 비록 날이 없어도 검신에 신기를 품고 있으니 반드시 무슨 다른 쓸모가 있을 것이오. 내 나중에 조사하여 낭자에게도 일러주리다!" 그는 필시 한쌍인 숙녀검마저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자신도 모르게 악불이가 거기에 대한 비밀을 알리가 없다고 생각하여 그렇게 말한 것이었다. 하지만, 악불이가 이미 그 비밀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그가 일리가 없었다. 악불이는 그말을 듣고 내심 생각했다. (그 역시 군자검의 묘용을 모르는구나! 헌데, 그렇다면 백랑, 아니 그 바보는 어째서 그렇게 금방 그 묘용을 알수가 있었을까!) 악불이는 이미 자신의 마음은 백룡생에게서 떠나버렸다고 생각하고는 백랑에서 그 바보로 호칭을 내심 바꾸었다. 그녀는 그러면서도 내심은 그에게 미안하다는 마음을 갖고 있었지만 이런 이성간의 심정이라는 것은 어쩔수가 없다고 자위하면서 마음을 모질게 굳혔다. 게다가, 그녀가 다행스럽게 여기는것은 백룡생이 그녀의 그런 태도를 보고 있으면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라는 사실이었다. 과연 백룡생은 너무나도 바보이기 대문에 그런 그녀의 심정변화를 모르는 것일까? 아니면, 알면서도 너무나도 욕심이 없기 때문에 마음이 덤덤한 것일까? 악불이는 잘 알수가 없었지만 아무래도 좋다는 느낌이었다. 이때, 악불이는 심룡의 마음을 무안하게 만들수는 없다고 생각하여 웃으며 말을 받아주었다. "고마와요. 심소협!" 심룡은 그 군자검을 다시 검집에 넣고 좌측의 장검이 걸려있는 부위에 함께 채우고 있었다. 그것은 그가 가지고 잇는 장검 역시 버릴수가 없는 중요한 물건이라는 의미였다. 심룡은 이어, 악불이가 여전히 앞에 서있는 것을 보고는 웃으며 물었다. "장검을 선물받았으니 보답을 해야하겠는데... 혹시 아직 식사전이라면 함께 점심이라도 들지 않겠소?" 악불이가 이것을 마다할리가 없었다. 그녀는 심룡의 그 준수하고 뛰어난 기풍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고마와요! 하지만 그전에 잠시 저의 친구와 해야할 얘기가 잇는데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심룡은 이미 암이 흔쾌해진듯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오. 먼저 음식을 시켜놓을테니 그동안 어서 얘기를 하고 오도록 하시오!" 그말에, 악불이는 심룡을 향해 가벼운 목례를 해보인 후에 백룡생을 이끌고 다시 그들의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백룡생을 향해 전음으로 말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전음으로 얘기를 하도록 해요, 당신도 알다시피, 나는.. 나는... 이미 그와 친하기로 마음을 먹었어요! 당신은 이제 전에 나에게 했던 그 맹세는... 맹세는 이제 지킬 필요가 없어졌어요. 내말뜻을 알겠나요?" 악불이가 제아무리 안면이 두껍다고 해도 자연 그녀의 얼굴은 붉어지고 말을 더듬지 않을수가 없었다. 그녀가 말한 그날의 맹세를 지킬 필요가 없다는 말은 그녀의 청혼과 두사람의 약혼은 이미 취소되고 파혼되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백룡생은 물론 바보가 아니었다. 그는 악불이가 처음 심룡을 대할때부터 이미 이러한 그녀의 심경을 내다보았다. 사실, 백룡생은 세상사에는 다소 둔감한 편이었어도 심성이 맑아서 사람의 심리를 꿰뚫는데에는 누구보다도 뛰어난 사람이었다. 원래 그는 처음부터 이러한 결과를 예측해오지 않았던가? 비록 다소 악블이에게 정이 들기는 했어도 그러한 것이 그의 평정을 깨뜨리지는 못했다. 악불이가 나중에 마음이 변해서 다른 남자를 따라갈것을 예측하고 있었던 백룡생은 그저 담담하게 웃으며 역시 전음으로 대답했다. "알겠소. 당신은 편한대로 하시오!" 그말에, 백룡생이 너무나도 쉽게 대답해버리자 일시 악불이는 의문이 솟았다. (그는 혹시 나의 의도를 곡해하고 그러는 것이 아닐까!) 그리하여, 그녀는 다시 전음으로 말했다. 이런일은 확실하게 매듭을 짖는것이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내말은, 이제는 더이상 나는 당신의 여자가 아니고 당신은 나의 남자가 아닌 서로간 남남이라는 사실이예요. 그리고 과거의 일은 서로가 덮어두는것이 좋겠어요. 단지 우리 두사람만이 알고 다른사람에게 알리지 않는다면 좋겠어요. 내말 뜻을 이제 알겠나요? 우리는 이제 철저한 남남이라고요!" 백룡생은 그녀의 그런 의혹을 제거해주기라도 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오. 내 그렇게 하리다!" 악불이는 그의 이런 너무나도 덤덤한 태도에 크게 의아해하면 물었다. "당신은, 당신은 내가 이러는 것이 화가 나지도 않나요?" 백룡생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럴리가 잇겠소? 모든것은 인연에 따라서 오가는것... 거기에 무슨 미련을 두겠소?" 악불이는 그런 말을 직접 들으면서도 실로 믿을수가 없었다. 그녀는 갑자기 이 백룡생이란 남자에 대해서 더욱 알수가 없어진 느낌이었다. 하지만, 심룡이라는 일대기재와의 만남에 이르러 백룡생과 정리를 하려는 이마당에 그의 이러한 태도는 오히려 그녀에겐 잘된 일이었고 안심을 주었다. 허나, 그녀는 문득 한가지 일을 생각하고는 다시 전음으로 물었다. "이제 우리는 서로 남남이 되었으니 각자의 것을 분명히 해야할 것이예요. 당신은... 당신은 대체 얼마를 원하고 있죠? 나는 당신에게 이만오천냥까지 드릴 용의가 있어요!" 윈래, 악불이는 약초값으로 받은 오만냥중에서도 그 절반인 이만오천냥은 생각지도 않게 얻어진 횡재와도 같은지라 그것은 일단 자기몫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나머지 이만 오천냥으로 두사람이 나누더라도 그녀가 선심을 써서 한푼도 갖지 않겠다고 말한 것이다. 이에 대해 백룡생은 웃으매 대답했다. "나는 돈이 별로 필요하지 않으니 필요하다면 모두 당신이 가지도록 하시오F!" 그말에, 악불이는 내심 몹시 기뻤다. 실로 이만오천냥이라는 은자는 가히 목숨과도 바꿀수가 있다고 할만큼 거대한 액수였던 것이다. 악불이는 사양하지 않았다. 만일 그러다가 혹시 백룡생이란 이 미련스러운 작자의 마음이 변해서 다만 일만냥이라도 달라고 한다면 그 얼마나 손해인가 해서였다. 사실, 화산파의 제자가 무수하고 따라서 문파를 유지하는 비용이 적지않게 든다고 해도 이 일만냥이 라는 은자는 화산파의 이년간의 에산보다도 많은 금액이었던 것이다. 대신 그녀는 짐짓 선심을 쓰는듯이 말했다. "좋아요. 당신의 그런 제의는 받아들이기로 하죠! 다만, 그 절봉에 있는 나의 물건이나 모든 물품들은 당신의 듯대로 처분하거나 사용하도록 하세요. 저는 다시는 거기에 가지 않을 테니까요." 백룡생은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이때, 악불이는 잠시 백룡생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다시 말했다. "거듭 말하지만 이제 당신과 나의 인연은 끝난 것이예요. 그러니 이제 나중에 나를 만나더라고 굳이 아는체를 할 필요는 없어요. 그리고... 이곳의 계산은 내가 하고 갈테니 당신은 여기에서 좀더 마시다가 혼자 가시도록 하세요. 알겠나요?" 백룡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그말에, 악불이는 드디이 몸을 일으키며 그에게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했다. "그럼, 잘가요F!" 그녀의 이 한마디는 전음이 아닌 육성으로 했기 때문에 근처에 탁자에 잇던 심룡등도 충분히 그말을 들을수가 있었다. 이것은 물론 악불이가 그에게 들으라고 한 소리였다. 그녀는 즉시 몸을 움직여 사뿐히 심룡의 탁자로 걸어가며 웃으며 말했다. "그간 오래 기다리셨나요?" 심룡은 웃으며 그녀를 반기면서 대꾸했다. "그리 오래지는 않았소. 헌데... 두 사람은 지금 혹시 작별을 하는 중이었소?" 악불이는 그에게 가볍게 눈웃음을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사실은 그가 다소 순진해 보여서 잠시 동행을 했었는데 자꾸 달라붙으력 하는것 같아서... 호호, 그래서 아예 선을 그어버린 거예요. 여자란 행동거지가 깨끗해야 하지 않겠어요." 심룡은 다소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렇소. 여자에게 정절이란 중요하지요." 이어, 그는 악불이가 그의 건너편 자리에 앉자 다시 말을 꺼냈다. "화산파는 무림정파의 태산북두와도 같은데, 당금의 장문인이신 영존 께서는 아직 건강하시오?" 악불이는 웃으며 대답했다. "저의 아버지는 매우 건강하시고 날마다 제자들에게 무공을 전수하시기에 여념이 없어요." 심룡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렇겠군..." 이때, 점원들이 음식들을 날라왔으므로 그 세사람은 모두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원래 이 음식들은 아까 악불이가 주문했던 그러한 최고급의 음식들보다 급수가 낮은 것으로 그 맛도 그리 훌륭하지 않았다. 그러나, 마음에 드는 사람이 앞에 있으면 식욕도 더불어 생기는 것일까? 악불이는 조심스럽게 앉아서 천천히 식사를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심룡은 때대로는 일을 묻고, 때로는 그자신의 강호경험을 이야기하며 악불이로 하여금 폭소를 일으키게 했다. 이렇게, 실로 뜻하지 않던 한때의 식사가 계속 되었다. 허나 결국 그러한 식시시간도 끝나기 마련이다. 심룡이 수저를 놓자 악불이도 따라서 수저를 놓았지만 그녀는 내심 다소 초조하기 이를데가 없었다. 이제 그와 헤어지게 되면 언제 다시 그를 만날수가 있단 말인가? 그리하여 그녀가 스스로 그에게 동행하자고 구실을 붙이려고 했는데, 문득 심룡이 그녀에게 이렇게 묻는것이 아닌가? "악낭자, 혹시 바쁘지 않으시면 소생은 이번에 무당파로 다소의 불일이 생겨서 가게 되었는데 동행이 되어 주지 않겠소?" 그야말로 악불이로서는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인 셈이었다. 그녀는 그러나 즉시 응하게 되면 그가 천하에 볼것을 우려하여 잠시 난처한 기색으로 생각하다가 웃으며 대답했다. "저는 빨리 화산파로 돌아가야 하지만 심소협께서 그렇게 원하신다면 시간을 낼수가 있을거예요. 그말에, 심룡은 몸을 일으켜서 미소하며 그녀에게 포권했다. "악낭자와 같은 미인의 후의에 소생은 몸둘바를 모르겠소이다." 그말은 비록 평범한 사례의 말이었지만 악불이로 하여금 다시 폭소를 자아내게 했다. 이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호감이 가는 사람의 말은 이렇게 항상 기분을 유쾌하게 만드는 것일까? 악불이는 문득 전에 백룡생과 함께 다닐때에는 그저 물같이 담담하고도 지루한 감을 느꼈었던 것을 상기하고는 실로 그와같은 바보와 헤어진것을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또한 그녀는 생각했다. (만일 내가 이분과... 이분 심소협과 혼인을 하게 된다면 아마 아버지는 반대를 하시지 않을뿐만 아니라 매우 기뻐하실 것이 틀림없어!) 그녀는 이제 더욱 백룡생과 헤어진것을 잘했다고 생각을 굳혔다. 심룡은 기왕에 몸을 일으켰으므로 곧장 박으로 걸음을 옮기기 가했다. 악불이는 이미 그와 동행하기로 승낙을 했으니 즉시 그의 뒤를 따라 신형을 옮기기 가했다. 그때 문득, 심룡은 자신의 누이동생인 심황에게 고개를 돌려 물었다. "황아, 너는 역시 이곳에서 계속 머무를 생각이냐? 심황은 입가에 기이한 미소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물론 오빠처럼 정다운 사람도 없으니 계속 이곳에서 환자나 치료해야겠지요. 오빠는 가금 제게 연락을 보내세요." 악불이는 옆에 서 듣고 있다고 심황의 정다운 사람이란 말이 자신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내심 달콤한 기분에 젖어 안색이 붉어졌다. 심룡은 허나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그럼 내가 먼저 계산을 마치고 가마!" 이어, 그는 즉각 아래층으로 내려가 버리고 말았다. 악불이 역시 그의 뒤를 바싹 따라갔다. 이때, 심황은 역시 그들의 뒤를 따라가려고 하다가 문득 생각난듯이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다시 한쪽으로 걸어가는 것이었다. 그곳은 다름아닌 백룡생이 앉아있는 탁자쪽이었다. 원래, 백룡생은 이만 볼일이 없어졌으니 절봉으로 곧장 돌아갈 생각이었지만 탁자위에 펼쳐져 있는 많은 음식들을 그냥 버리기에는 아깝다고 생각하여 조금씩 그것을 꾸역꾸역 목고있는 중이었다. 백룡생은 본시 음식을 많이 먹는 체질이었지만 금강불괴의 몸이 되고난 이후에는 능력이 더욱 증대되어 아무리 먹어도 몸에 이상은 없었다. 그것은, 비록 배가 부르더라도 그가 평소보다 많은 음식을 먹게되면 체내에서 자연적으로 진기의 움직임이 활발해져서 소화를 돕고 음식의 양을 아주 작게 압축시켜서 거북하게 만들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현상은 실로 기이하여 일반인으로서는 가히 상상할수도 없는 것이었는데, 굳이 말하자면 백룡생은 그가 사흘밤 사흘낮을 계속해서 음식을 먹어치운다고 할지라도 전혀 위장에 탈이 없으며 그저 조금씩 소변과 대변을 보면 해결될 뿐이라는 사실이었다. 따라서, 백룡생은 비록 황소 몇마리라도, 너끈히 먹을수가 있으며 그가 먹을수 있는 양은 가히 무한대라고도 말할수가 있는데, 지금 탁자위에 펼쳐져 잇는 음식들이 칠팔인분은 될지라도 그가 모두 먹지 못할 것은 없었다. 백룡생은 처음에는 배가 불렀으나 그뒤에는 아무리 계속해서 먹어도 더이상 배가 부르거나 거북한 느낌이 없었다. 그리하여, 그가 탁자위에 차려진 음식을 거의 다 먹고 마악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때였다. 순간, 한줄기 맑고 부드러운 음성이 그의 귓가를 간지럽히는 것이 아닌가? "당신의 이름은 뭐죠?" 이 음성은 실로 듣기가 좋아서 마치 수백마리의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새가 일제히 우짖는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니, 그것은 다소 슬픈듯도 하고 다소 우수에 잠겨있는듯도 한 음성이었다. 백룡생은 악불이의 음성도 아름답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 음성은 그보다도 훨씬 아름답다고 수긍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그것은 바로 다름아닌 심황의 음성이었다. 백룡생이 마악 자리에서 일어나려다가 고개를 들어보니 어느새 그녀는 탁자의 앞에 이르러 그를 향해 가벼운 미소를 보내고 있었다. 기실, 백룡생은 미처 그녀의 기척을 듣지못한 것이 아니라 외부의 일에 신경을 쓰지 않았기 대문에 무관심하고 있었던 거이다. 백룡생은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백룡생이라고 하오만, 낭자께선 내게 무슨 용무라도 있소?" 실상, 심황이 문득 그에게 다가온 것은 아까 은근히 살펴본 결과 이 백룡생이란 사람의 심성이 다소 특이하다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비록 심룡은 다소 몰랐지만 심황은 같은 여인의 입장으로서 악불이의 미묘한 여심에 대해서 어느정도는 눈치를 채고 있었던 것이다. 즉, 한순간에 여자로부터 바람을 맞아버린 이 백룡생이란 사람의 태도가 워낙 담담한 점이 기이했고, 또한 어느정도 동정심이 들었기 때문에 다가와 보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 백룡생은 자신의 얼굴을 보고도 그저 담담한 표정이 아닌가? 심황은 원래 자신의 용모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고, 여태 자신과 대면해서 이렇게 얼굴표정 하나 달라지지 않는 사람을 처음 보았는지라 그녀의 두눈에서는 다소 특이한 빛이 떠올랐다. 제 31 장 무림쌍괴 그리하여, 심황은 다소 눈빛을 빛내다가 되물었다. "용무가 없다면 당신을 만나서는 안되나요?" 그 말에, 백룡생은 다소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럴리가 잇겠소? 나는 다만 무슨 용건인가 하고 물어보았을 뿐이오." 그러는 백룡생의 어조는 역시 담담했다. 그는 마치 눈앞에 절색의 미녀가 서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것 같았다. 원래 이 심황은 성격이 아주 차분하면서도 생각이 깊어서 쉽게 남에게 정을 주지 않았고 행동거지도 매우 신중했다. 그런점은 그녀의 아름다움을 배가시켜주는 요인이었다. 그런데, 문득 이와같이 너무도 담담한 태도의 백룡생을 보게되자 그녀는 일순 기이하게도 내심 깊은 곳에서 작은 도발의 의혹이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이것은 그녀로서는 다소 의외의, 그리고 처음있는 일이었다. 따라서. 그냐는 상대가 허락하지도 않았는데도 스스로 백룡생의 맞은편은 의자에 앉으며 관심있는 시선으로 그를 주시하며 물었다. "허나 만일 당신에게 약간의 볼일이 있다면 당신은 나를 정중하게 대해 주겠나요?" 백룡생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요." 심황은 그가 무슨 볼일이냐고 묻지도 않자 다시 말했다. "나의 볼일은 당신은 어째서 애인에게 딱지를 맞았는데도 그렇게 태연하게 있을 수가 있느냐는 것이예요. 내 말이 틀렸나요?" 백룡생은 그녀의 말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맞았소." 심황은 아미를 살짝 찌푸렸다. "그런데 당신은 어째서 아무렇지도 않죠?" 이때, 백룡생은 정말로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여 누구의 말에도 흔들리지 않았고 세상의 일에 관여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다. 그러나, 심황이 그와 같은 질문을 하자 스스로 구도에의 열의가 살아나서 무심결에 진지한 표정으로 이렇게 대답했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파초같이 연약하여 언제 죽을지 알수가 없는 것이오. 그리고, 그러한 육신에 의해 이루어지는 마음과 그러한 집착의 상념과 애욕은 모두가 부질없는 것이오. 나는 다만 그러한 것을 인연으로 돌리고 바라볼 뿐인데 어찌 마음의 번뇌가 있겠소?" 그 말에, 심황은 일시 마음속 깊은 곳에서 놀라움을 느꼈다. 그녀는 실로 이렇게 세상사에 달관한 젊은 청년을 만나보지를 못했었다. 게다가, 이 청년의 두눈은 비록 총명해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그 살결은 얼마나 말고 부드러우며 얼굴에 떠올라 있는 미소는 얼마나 안온한 느낌을 주는 것인가? 심황은 실로 대철대오한 고승의 얼굴이 이러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녀는 다시 물었다. "허나, 당시의 그러한 말은 아직 집착할만한 상대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 말에, 백룡생은 내심 가볍게 흠칫한 기분이 들었다. (과연 나는 그런 상대를 만나지 못했기 대문에 아직 마음의 평정을 유지할 수가 있는 것일까?) 백룡생은 스스로 생각해 보니 정말 알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원래 악불이를 매우 아름답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실상 악불이는 가장 아름다운 것은 아니었고 지금 눈앞에 이 심황이란 낭자만 해도 실로 그녀보다는 몇배나 아름다울 정도였다. 그렇다면, 혹시 그는 이 심황이란 낭자보다도 다시 몇배나 아름다운 여인을 만났을 경우에도 이렇게 마음의 평정을 유지할수가 있을 것인가? 과연 그러한 여인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실로 장담할수가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는 내심 크게 반성하며 생각했다. (아아 나는 스스로 마음의 수양이 깊은 경지에 이르렀다고 생각했으나 여전히 크게 부족한 실정이로구나! 나는 이번 기회에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이루어야겠다!) 일단 그가 그러한 결심을 하게되자 그의 얼굴은 즉시 엄숙하게 굳어졌고 눈빛에서 맑은 빛을 발하며 정색을 하게 되었다. 허나, 다만 지금 이순간에 수행을 할수는 없는 노릇인지라 그는 다시 조용하게 마음을 풀었다. 헌데 그 순간, 심황은 무심결에 백룡생의 혼탁해 보이던 두눈이 마치 구름이 열리고 햇빛이 쏟아지듯 맑고 눈부신 광채가 쏟아지는 것을 보고는 마음에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그녀는 처음에는 자신의 착각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으나 그것은 결코 착각이 아니었다. 비록 짧은 순간에 나타났다가 즉시 다시 사라지고 말았지만 그러한 맑고 신비로운 광채는 그녀의 마음에 깊은 인상을 심어 주었다. 원래 백룡생의 외모에 있어서 한가지 흠이라면 그의 눈빛이 다소 혼몽해 보인다는 사실이었다. 이 눈빛은 그 사람의 정신을 알리는 것이기 때문에 만일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눈빛이 멍청한 사람을 좋아할 리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 순간적으로 백룡생의 두눈에서 빛났던 그 광채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럼 백룡생은 여태 자신의 진면목을 숨기고 있었단 말인가? 심황은 그러한 생각을 하면서 백룡생의 두 눈을 계속해서 바라보았지만 그의 흐릿한 눈빛은 다시 변화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녀는 문득 가늘게 한숨을 내쉬고는 물었다. "제게 술한잔 따라주시지 않겠어요?" 만일, 그녀를 알고 있는 누군가가 이러한 말을 들었다면 아마 크게 놀랐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는 원래 술을 마시지도 않은 사람일 뿐만 아니라 아직 어떤 남자의 앞에서도 이러한 부탁을 하지도 않았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한마디로 모든 사람들이 애모하는 성결스런 우상으로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왠지 심황은 이순간 한잔의 술이 먹고 싶어졌다. 그것은 그녀의 마음에 지금 커다란 변화가 일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백룡생은 거의 생각도 하지 않고 다만 한잔박에 마시지 않은 여아홍의 술단지를 기울여서 빈잔에 술을 따라 건네주었다. 그러자, 심황은 주저없이 그 술잔을 받아서는 맑고 향긋한 액체를 입안에 털어 넣었다. 순간 쓰디쓴 그 술맛에 그녀의 옥용이 다소 찌푸려지는 듯 했다. 허나, 그녀는 즉시 안색을 다시 폈고 환하게 밝아진 얼굴로 빈잔을 그에게 내밀었다. "다시 한잔 주시겠어요?" 백룡생은 무심코 다시 그녀의 술잔에 술을 채워주려다가 문득 생각난 것이 있어서 웃으며 말했다. "사람들은 기분이 울적할 때에는 술을 찾아서 시름을 달래고는 하지만 기실 술은 사람의 시름을 푸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오. 다만 도피일 뿐이지... 용기있는 사람은 도피하지 않고 문제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오." 이것은 역시 백룡생의 생각속에 잠재해 잇던 사고의 편린이었다. 심황은 문득 그의 그러한 말을 듣자 맑고 다소 우수에 찬듯한 두눈을 반짝 떴다. "도피라고요? 정면으로 맞서라고요? 무슨 문제라도 말인가요?" 그녀의 지금 이 말은 다소 기이했다. 그녀는 성수방의 소공녀라는 고귀한 신분에 있고 또한 용모가 지극히 아름다와서 모든 사람들의 사모하는 바가 되고 있는 실정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성수방의 소공녀답게 의술이 거의 신비의 경지에 이르러서 오히려 그녀의 오라비인 심룡보다도 뛰어나다고 하며 모든 사람들을 구제헤주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헌데, 지금 그녀의 말을 들어보면 다소 어딘가 심각한 고민이 있는 것 같지 않은가? 대체 그녀는 무슨 거대한 문제를 가지고 살고 있는 것일까? 하긴, 사람이라 아무리 좋은 환경 속에서도 다소의 문제를 안고 살아가게 마련이니 그녀 역시 예외는 아닐 것이다. 백룡생은 거의 생각하지 않고 대답했다. "그렇소, 가장 용기있고 지혜있는 사람은 정면으로 문제에 맞서서 마침내는 슬기롭게 극복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오." "..." 그 말에, 심황은 잠시 멍하니 백룡생의 얼굴을 홀린듯이 바라보았다. 지금 백룡생의 이 말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허황된 것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그녀가 이해하는 바로는 매우 심오한 구석이 있는 것들이었다. 그녀는 대체 이러한 혼탁한 눈빛을 하고 있는 사람의 입속에서 어떻게 그런 심오한 얘기가 줄줄이 흘러나올수가 있느냐는 신기한 마음 때문에 그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다가, 그녀는 이윽고 술잔을 탁자위에 내려놓더니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다소 유정이 깃든듯한 시선으로 그에게 입을 열었다. "저는 이만 많은 환자들이 기다리니 가봐야 겠어요. 그럼 나중에 다시 만나뵙기를 바래요." 이어, 그녀는 마악 몸을 돌려 걸음을 ㄹ옮기려다가 문득 생각난듯 고개를 돌려 다시 말했다. 헌데 이번에는 음성이 아닌 전음이었다. "나는... 그 악낭자가 당신을 버리고 저의 오빠를 선택한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었다는 것을 알겠어요!" 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순간 다시 몸을 돌려서 빠르게 아래로 내려가 버리고 말았다. 대체 그녀의 심사는 일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녀는 대체 무엇 대문에 악불이의 일을 그렇게 말하는 것일까? 그리고 설령 그렇게 생각하고 있더라도 굳이 무엇때문에 그런 말을 하는 거일까? 이것은 알수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백룡생은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심황이 사라진 게단쪽을 힐긋 바라본 다음에 곧장 몸을 일으켜 주루를 걸어 내려갔다. 심황은 이미 그 성수의원으로 돌아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백룡생은 전혀 그러한 일이 신경을 쓰지 않고 곧장 신법을 일으켜 자신의 거처인 옥검봉으로 향했다. 그는 오늘 아침에 아주 맑은 기분으로 악불이와 함께 읍성에 내려왔었다. 그러나, 비록 올때는 두사람이었지만, 돌아갈때는 오직 그 혼자 뿐이었다. 하지만, 백용생의 마음은 그로인해 어두워지거나 괴로와지지 않았다. 그의 얼굴은 평온했다. * * * 백룡생은 옥검봉의 자신의 거처 통나무집으로 돌아왔다. 이제 현진자나 악불이도 없이 그 혼자 이곳에 오르자 마치 통나무집 전체가 텅 비어 있는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러나, 백룡생은 이에 상관하지 않고 곧장 자신의 방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는 평평한 나무침상위에 정좌를 하고 깊은 먕상속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는 이미 주루에서 자신의 마음을 한층 공고히 하자는 결심을 했었다. 따라서, 지금은 그런 결심을 실천에 옮기려는 것이었다. 원래 그가 주루에서 먹은 음식의 분량은 가히 그의 서너끼 정도의 분량이라고 할수가 있었다. 그러니 자연 그는 이제 하룻동안은 거뜬히 아무것도 먹지 않고 고요히 명상속에 잠길수가 있는 것이었다. 백룡생은 이미 명상이라는 수련에 습관이 들어버린 사람이었다. 따라서, 일단 그가 마음만 먹자 그는 즉시 깊은 명상속에 들어갔고 외부의 일에 신경을 쓰지 않은채 마음을 맑게 하기에 노력했다. 마침, 이곳 옥검봉은 대단히 높아서 날짐승이나 들짐승들이 오가지 않았고 적막하여 그러한 수련을 하는 데에는 더없이 적격이었다. 백룡생은 스스로 강한 구도의 열의를 거듭해서 불러일으켰고, 점차 시간이 갈수록 그의 심경은 말할수 없이 고요하고 투명하게 변해갔다. 그는 마치 자신의 모든 허다한 번뇌의 고리를 하나하나 꿰뚫을 듯한 기세였다. 그러는 가운데 시간이 소리없이 흘러갔다. 이곳 옥검봉의 위는 더없이 적막하여 시간에 흐르는 것조차도 잊을 지경이었다. 어느새, 하늘의 태양이 서쪽으로 기우는가 싶더니 자욱한 붉은 노을이 옥검봉의 주위를 가득 뒤덮었다. 아니 그것도 잠시, 옥검봉의 정상은 대우주의 이치에 다라 점차로 깊은 어둠속에 잠기기 시작했다. 백룡생은 방안이 어두워졌는데도 전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마음은 갈수록 맑아졌고 그간의 모든 때를 하나하나 말끔히 씻어버리려는 듯이 투명한 기운으로 충만되었다. 그리고 어느순간, 그의 육신은 저도 모르는 사이에 허공으로 둥실 떠올라 있었다. 그러한 상태에서 그의 전신에서는 이루 형용하기 어려운 황금빛 투영함 광채가 미미하게 은은한 빛깔을 뿌리고 있었다. 그것은 그의 마음이 최고조에 이르러 그의 육신 역시 그 역할이 최고조에 이르렀다는 증거였다. 백룡생은 그러한 생각속에서 더욱더 마음을 말게 비워갔다. 그러한 과정은 매우 어려운 것이었고 시간을 많이 필요로 했다. 어두운 시간은 끊임없이 흘러갔고 또한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러다가 일순, 백룡생은 문득 자신의 마음이 아주 맑고 깨끗하게 비워져 있음을 발견했다. 이것은 그이 또다른 성취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비록 그것이 그의 무공에는 거의 연관이 없을 지라도... 백룡생은 여기에서 머물지 않고 보다 나은 경지로 몰입해 들어가려고 했다. 그러한 경지는 아직 그로서도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백룡생은 묵묵히 마음의 눈을 들어서 주위를 바라보았다. 순간, 그의 입가에는 실로 고요한 미소가 어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의 마음이 눈이 트인것을 의미했다. 그러한 마음의 눈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의 일반적인 육안과는 조금 다른 것이었다. 아니, 전혀 차원이 다르다고 해야할 것이다. 이때는 이미 어느새 사위가 환하게 밝아져 있었다. 밤이 자나고 아침이 되어버림 것이다. 그때, 문득 백룡생은 그러한 마음의 눈에 의해 지금 옥검봉의 아래에서 누군가가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헌데 바로 그는 현진자였다. 이때, 백룡생은 드디어 정좌를 풀고 천천히 신형을 지면으로 내려놓았다. 비록 간밤을 한숨도 자지 않았지만 백룡생의 몸은 전혀 피로를 느끼지 않았고 매우 평안했으며 부드러운 활력으로 가득차 있었다. 백룡생은 눈을 뜨고 만면에 미소를 떠올린채 느릿하게 방문을 열었다. 그러자, 희미하게 밝아오는 여명과, 산뜻한 새벽바람이 그의 몸을 서늘하게 훑고 지나갔다. 백룡생은 그 바람을 좀 더 깊숙이 호흡하려는듯 기지개를 켜며 밖으로 나갔다. 그때, 과연 가벼운 인기척이 일며 한 사람이 절봉의 위로 날아 올라왔다. 그는 다름아닌 현진자였다. 현진자는 자신이 매우 이른 새벽에 올라왔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미 백룡생이 밖에 나와 있는것을 보고는 다소 흠칫하여 얼른 공손히 그에게 예를 올렸다. "소사숙님! 일찍 일어나셨군요?" 사실 그는 백룡생이 아직 한잠도 자지 않았음을 모르고 있었다. 백룡생은 웃으며 마주 답례했다. "현진사질께서는 일찍 오셨군요 헌데 무슨 일이라도 잇습니까?" 현진자는 마침 긴요한 할말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가 이런 이른 새벽에 절봉위로 올라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헌데, 그가 마악 무심코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입을 열려고 했을 때였다. 현진자는 일순 백룡생의 두눈을 보고는 다소 경악하여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 백룡생의 두 눈, 그것은 원래 매우 혼몽하게 보여서 어찌보면 아주 멍청한 모습으로 보이게까지 만들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그의 두눈은 아주 달라져 있었다. 비단 그의 두눈이 그 혼몽함이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그의 두눈에서는 실로 알 수 없는 신비로운 광채가 일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결코 무공의 내력에 의한 신광이 아니었다. 다만 현진자는 그 광채를 마주본 순간 마치 자신의 마음속이 낱낱히 그 아래에 드러나는 듯한 착각을 맛보아야 했다 이것은 기실, 백룡생이 심안이 트여서 여태 멍청하게 보이던 눈빛이 역시 자연스럽게 맑게 트인 현상에 불과했다. 지금 현진자가 경험하는 그 신비로운 광채는 바로 높은 경지의 마음의 눈빛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어제 심황이 문득 백룡생에게서 보았던 그 잠깐동안의 신비로운 눈빛과 같은 것이었다. 헌데 한명의 사람에게 있어서 그 눈빛이라는 것은 많은 인상의 주요부분으로 작용하기 마련이었다. 과거 백룡생의 눈빛이 혼탁해 보였을 때에는 그의 모습은 매우 바보스럽고 멍청하게만 보였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현진자는 이 백룡생의 모습이 과거의 그런 멍청한 모습과는 천양지차로 다른 지극한 혜지가 넘치는 듯한 모습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변화할수가 있는 것일까? 만일 현진자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와같은 변화를 믿을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현진자는 많은 백룡생의 변화를 보아 왔었고, 그의 뛰어난 점을 알고 있었는지라 일시 그 변화에 경악할 뿐은 의심을 품지는 않았다. 이때, 백룡생의 모습은 겉으로 보기에도 과거의 그런 바보스런 모습이 아니라 아주 조용하고 현명해 보이는 고요한 대학자의 모습과도 비슷했다. 현진자는 한참동안 그런 것들 을 생각하다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사실은, 본파에 갑자기 변고가 생길것 같아 소사숙님을 찾아뵌 것입니다." 변고가 생길것 같다는 것은 아직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아직 변고가 일어나지 않았음에도 이렇게 현진자가 이른새벽에 찾아올 정도라면 대체 얼마나 거대한 변고가 일어날 것이란 말인가? 백룡생은 다소 의문이 들었으나 우선 그를 자신의 방안으로 안내를 했다. "잠시 안으로 드시겠소?" 현진자는 잠시 주저했으나 지금 그가 백룡생에게 해야할 말이 많다는 사실을 상기하고는 사양하지 않고 그를 따라서 방안으로 들어갔다. 이 방은 비록 전의 현진자의 방이 있던 자리에 있는 것이었지만 똑같은 것은 하나도 없고 게다가 전보다도 훨씬 아늑하고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현진자는 잠시 방안을 둘러보다가 백룡생의 권하는 말을 듣고 함께 침상의 위에 걸터 앉았다. 그러자, 백룡생은 그에게 입을 열어 물었다. "대체 무슨 변고가 있을 것인지 내게 말해줄수가 있겠소?" 현진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이어, 그는 천천히 말을 시작했다. "이 일을 설명하자면 우선 요 근래에 일어나 소림사의 궤멸에 대해서 말을 해야만 하겠습니다." 현진자는 계속해서 말을 이으려고 했으나 이때 백룡생이 다소 놀란 음성으로 잘라 물었다. "아니, 소림사가 궤멸을 다했단 말이오?" 기실, 백룡생은 이 옥검봉의 꼭대기에서 살고만 있었으니 강호의 소식에 어두운 것은 당연했다. 현진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소림사가 궤멸된 것은 지금부터 약 사오일 전의 일입니다. 당시 소림사는 거의 멸문에 이를 정도로 막대한 타격을 입고 거의 완전히 궤멸된 채 봉문에 들어갔지요. 이제 소림사의 명성과 세력은 단지 과거의 일에 지나지 않습니다. 백룡생은 물었다. "대체 소림사를 그렇게 만든곳은 어디란 말이오?" 현진자는 대답했다. "그곳은 바로 녹림맹입니다." 그 말에, 백룡생은 다소 놀라며 뇌까렸다. "녹림맹?" 과거, 그는 구령산에서 이곳 무당산으로 오는 도중에 녹림맹의 인원들을 본적이 있었다. 그 세력은 실로 막강했었다. 당금의 녹림맹은 천하에 곳곳에 퍼져 잇는데, 그때는 비록 그 좌검상이라는 청년에게 당하기는 했어도 녹림맹소속의 일개 채의 능력이 그 정도라는 것은 놀라운 사실인것이다. 물론, 백룡생은 비단 그뿐만이 아니라 이미 무당전적을 읽고 천하의 모든 상항을 눈앞에 보듯 훤하게 내다보고 있는 상태였다. 당금의 무림성은 바로 칠패와 구파일방, 그리고 오대세가와 기타문파들의 세력다툼지라고 말할수가 있었다. 이는 그야말로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 하는 것이엇다. 무림칠패에는 만화교, 녹림맹, 성수방, 현현보, 검문, 도회, 장곡이 있고, 구파일방에는 누구나 알고 있듯이 소림사와 무당파, 화산파, 아미파, 곤륜파, 점창파, 공동파, 청성파, 종남파, 개방이 있으며, 오대세가에는 과거로부터 오랫동안 명성을 떨쳐온 남궁세가, 제갈세가, 하북팽가, 황보세가, 사천당문등이 있는 것이다. 게다가, 기타의 거대문파로는 무산신녀문, 천산검문, 해남검파, 묘강독문, 서장포달랍궁, 동해불구도등이 잇는 것이다. 비록 당금의 무림은 비교적 평온하기는 했어도 항상 격변의 위험은 도사리고 있었다. 그런데, 현진자가 소림사를 궤멸시킨 곳이 바로 녹림맹이었다니 백룡생으로서는 다소 놀라지 않을수가 없었다. 현진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렇습니다. 당시 이 사건이 터진 직후 우리는 모두 모여서 대체 녹림맹이 무엇때문에 그러한 짓을 했을까 하고 조사를 해보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갑자기 그뒤로부터 전 무림이 거대한 혈풍속으로 뒤덮일 줄은 누가 알았겠습니까?" 백룡생은 그 말을 듣고 눈살을 가볍게 찌푸렸다. "그럼 지금 무림은 혈겁의 와중이란 말이오?" 백룡생은 이전의 전적을 잃었으니 지금의 상황을 모르는 것은 당연했다. 현진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먼저 소림사에서 그런 커다란 변괴가 터지자 우리는 다소 경각을 하고 일시에 남은 무림각파에 알려서 대책을 논의하자고 했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어느새 무림전역에서는 혈겁의 바람이 일기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그 시작은 바로 소림사였고 두번째는 청성파 였고 세번째는 점창파였습니다. 백룡생은 그 말에 가볍게 안색이 변했다. "그럼 이미 그 두 문파는 멸문을 당했단 말이오?" 백룡생은 반신반의했다. 그는 이미 무당전적에서 그 두문파의 오랜 역사와 전통을 알고 있었던 터에 갑자기 멸망을 당했다니 믿어지지가 않은 것이었다. 현진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청성파를 멸문시킨 곳은 바로 사천당문이었고, 점창파를 멸문시킨 곳은 바로 공동파였습니다." "..." 백룡생은 잠시 멍하니 듣고 있다가 의아해하면 물었다. "그 사천당문과 공동파는 이미 모래전부터 무림의 명문으로 불리워왔던 곳이 아니오?" 현진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렇게 때문에 이번일이 심상치 않다는 것입니다 .뒤이어 우리는 검문은 녹림맹을 치고, 도회는 장곡과 치열한 격전을 벌인일을 알아냈습니다." 검문과 녹림맹, 도회와 장곡, 이 네곳은 바로 다같이 무림칠패에 속하는 집단들이 아닌가, 몰론 무림칠패에 속한다고 해서 성격이 같을수는 없겠지만, 일시에 네개의 집단이 둘로 갈라져서 격전을 벌였다는 것은 기이했다. 게다가, 이미 소림사와 청성파 점창파가 멸문을 당한 어수선한 상황이 아닌가? 백룡생은 일시 여기에 뭔가 심상치 않은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무림은 그간 매우 평온한 상태였는데 갑자기 이런 일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한꺼번에 일어난다는 것은 보통의 일이 아닌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현진자는 말을 이었다. "우리는 그래서 이 일을 기이하게 생각한 나머지 정보망을 총동원해본 결과 한가지 놀라운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그것은 바로 무림칠패중의 만화교, 녹림맹, 현현보, 장곡 이 네곳에서 일거에 연합하여 무림제패를 이루려고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제 32 장 무당파의 위기 백룡생은 가볍게 눈빛을 빛냈다. -- 무림제패, 이 얼마나 가공할 말인가? 그는 무당전적에서 불과 삼년전에 현현보에서 무림제패를 위해서 천하의 각대문파에 첩자를 심어두었었던 사실을 일거 있었다. 그런데, 이제 불과 삼면도 지나지 않았는데 다시 이번에는 네개의 거대문파가 연합하여 무림을 제패하려고 한다는말인가? 다른 사람이 이말을 들었다면 경악하여 안색이 크게 변했을 것이다. 그러나, 백룡생은 이미 거의 세사의 일에 관심이 없어서 단지 눈살만 다소 찌푸러지며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사천당문과 공동파는 이미?" 현진자는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소사숙께서는 역시 금방 아시는군요? 그 두개의 문파는 바로 적혈련이 사주를 받은 것이었습니다." 백룡생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적혈련은 또 무엇이오?" 적혈련이라는 말은 아직 그가 들어보지도 못한 말이었다. 현진자는 일순 자신이 말을 성급하게 했음을 알아차리고 얼른 대답했다. "강호에서는 그 네 문파의 연합을 가리켜 그렇게 부르고 잇습니다. 이에 반해, 칠패중의 나머지 세 문파가 연합하여 이에 대항하고 있는데 그 을 백혈맹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 적혈맹가 백혈맹, 어느새 이러한 이름가지 나왔다니 그간 강호는 실로 복잡하고 살벌해진 모양이었다. 백룡생은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어서 그에게 물었다. "그럼 검문과 도회뿐만 아니라 성수방에서도 적혈련과 대항해서 사우고 있다는 말이오?" 현진자를 고개를 가로저었다. 검문과 도회가 적혈련과 정면에서 격돌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성수방은 기실 마땅한 무림조직이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다만 그뒤를 도와주고 있는 형편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성수노인은 이미 은거를 한것이나 다름이 없고, 소방주인 새화타는 겨우 자식인 심룡을 보내서 일을 처리하고 있을 뿐입니다. 백룡생은 이미 그 심룡이 무당파에 가겠다고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물었다. "그럼 그 심룡이란 사람은 아직 무당파에 있소?" 현진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본파에서 그들의 백혈맹에 합류하여 함께 적혈맹에 대항하자고 온 것이었는데 아직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백룡생은 다소 의아해져서 물었다. "비록 적혈맹이 그토록 강하다고 할지라도 백혈맹이 있고, 또한 무림의 나머지 거대문파들이 연합해서 사운다면 그들을 이길수도 있지 않겠소?" 헌데, 현진자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원래 그들 적혈맹은 본시부터 막강한 상태였는데다가 요 몇년간을 아마 이일을 위해 세력을 강화시켜온 모양이었습니다. 그들과는 겨우 검문과 도회만이 하나씩 대항할수가 있을 뿐 성수방은 상대를 할수도 없고 나머지 다른 문파들은 마찬가지입니다." 백룡생은 문득 그때 그 좌검상이 녹림맹의 인물들과 싸우던 광경을 떠올리며 물었다. "적혈맹이 힘이 그렇게도 강하다는 말이오?" 현진자는 대답했다. "물론 나머지의 문파가 일시에 하나로 뭉친다면 그들을 물리칠수도 있겠지만, 이 일은 너무나도 급작스럽게 터진 것이라 무림각파는 경황이 없어서 미처 연합을 할 여유를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어디에서 적이 닥칠지 모르는 상황이니까요." 그말에, 백룡생은 다소 이해가 갔다. 적혈맹이 일거에 그런 혈풍을 불러일으키고 사천당문과 공동파마저 매수한 것은 무림전역을 일시에 혼란에 빠뜨려서 연합을 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가 분명했다. 무림각파가 혼란중에 이리저리 허우적거리고 있는 동안에 그들은 하나씩 문파를 제거해버릴 것이다. 현진자는 말을 이었다. "우리 무당파만 해도 그렇습니다. 백혈맹에 합류하고 싶기는 해도 이번의 그 변괴가 생겨날 것이기 때문에 어절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백룡생은 이미 아까부터 그 변고의 얘기를 들으려던 참이라 물었다. "그 변고라는 것은 무엇이오?" 현진자는 대답했다. "지금 무림각파의 모든 세력은 긴장을 하고 있으며, 첨예하게 정보망을 최대한 이용하고 있습니다. 헌데, 본파의 정보에 의하면... 오늘 만화교가 본파를 일거 습격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만화교가?" 백룡생은 일시 눈이 휘둥그래졌다. 그는 이 만화교가 하나같이 여인들로 이루어진 집단이며, 그 근거는 기원이나 홍등가와 같은 곳에서 웃음을 팔고 몸을 파는 화류계의 여인들을 주로하며, 그러한 천하의 거의 모든 여인들을 총망라하여 그 세력이 가히 상상불허의 것이라는 얘기를 이미 책자에서 읽은적이 있었다. 이 만화교의 교주는 역시 여인으로 이름은 만화성모 음소희라고 하는데 그 여인의 일신의 무예가 가히 추측불허의 경지라고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대체 만화교의 진실한 능력이 어느정도인지 아직 신비에 가려져 있었는데 오늘 그곳에서 무당파를 습격해온다니 이는 놀랍지 않을수가 없었다. 아마도, 적혈련에서는 먼저 소림사를 궤멸시키더니 이어 무당파마저 그렇게 만들려는 작정인것 같았다. 백룡생이 생각하기에도 이 만화교의 세력은 결코 녹림맹에 못하지 않았다. 그러니 어찌 무당파로서는 당혹스럽지 않겠는가? 백룡생은 물었다. "그렇다면 본파에는 이미 그만한 준비는 되어있소?" 현진자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저희들은 다만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백룡생은 의아해 했다. "그럼 다른 문파에서도 구원하러 오지도 않았단 말이오?" 현진자는 고개를 무겁게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아무도... 그들은 사실 각파가 그들에게 공격당할 것을 더욱 염려하고 있는 상항이지요." "..." 백룡생은 그말에 대충 이해가 갔다. 그러니까, 지금 무림각파는 사방에서 적들이 날뛰자 한곳에 합치고 싶어도 자파가 그들에게 습격을 당할 것을 두려워하여 차마 자기의 문파를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허나, 그런 것이 과연 그들에게 도움이 될 것인가? 지금의 상황은 자파의 희생을 불구하고라도 일단은 여러문파의 힘이 한곳에 뭉쳐야만 할 것이 틀림없었다. 백룡생은 모든 상황을 전해듣자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현진자가 매우 고심하는 이유를 알만했다. 소림사는 녹림맹에 궤멸을 당하고 말았다. 그런데 지금 녹림맹에 결코 못하지 않은 만화교가 습격을 하려는데 무당파는 사실 소림사보다도 힘이 약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무당파가 궤멸될 것은 자명한 사실이란 말인가? 현진자는 이미 무당파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자파가 멸망하는 것은 결코 눈뜨고 볼수가 없을 것이었다. 백룡생이 묵묵히 생각에 잠기는 것을 보고 현진자는 다소 조심스런 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 "소, 소사숙! 대체 어찌했으면 좋겠습니까?' 원래 이 소사숙인 백룡생은 무당파에서 가장 웃어른이었다. 다만 옥진자나 청진자등이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다만 허수아비쯤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와서 도움을 청하지 않는 거이나, 현진자는 내심 깊이 백룡생에게 존경심을 품고 있었던 터라 즉시 달려와서 묻는 것이다. 백룡생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그에게 웃으며 말했다. "너무 걱정하실 필요는 없소." 현진자는 그말에 두눈에 생기를 찾으며 눈을 크게 떴다. "그렇다면 소사숙께서는 직접...?" 백룡생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그는 무당파의 이 위기를 결코 모른척 할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어, 그는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아무튼 우선 가봅시다!" "예, 소사숙님." 백룡생이 밖으로 걸음을 옮기자, 현진자는 즉시 그뒤를 따랐다. * * * 그들이 밖으로 나오자, 이미 사방에는 휘황한 아침햇살이 가득 번지고 있었다. 태양이 어느새 떠올라서 동쪽하늘을 불그레하니 물들이고 있었다. 백룡생은 곧장 절봉위에서 아래쪽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는 기왕에 이제 무공을 사용하게 되었는데 더이상 자신의 무공을 감출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이때, 현진자는 무심코 전과같은 신법으로 몸을 날려 아래로 내려가다가 이와같은 광경을 보고는 일시 경악하여 입을 벌렸다. 백룡생은 아무런것도 의지하지 않은채 허공에서 둥실 떨어져 내리고 있었는데, 그 광경은 실로 고요하기 이를데가 없어서 마치 거짓말과도 같은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현진자는 강호에 이렇게 호공에서 떨어져내리는 부운공과 같은 경공술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실로 이렇게 완전한 신법은 아직 보지를 못했다. 게다가, 백룡생은 문득 그 자세에서 현진자를 향해 말까지 태연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 일반적으로 이런 고도의 무예를 시전하면서 말을 할수가 있다는 것은, 말을 하게되면 진기가 쉽게 끊어지기 때문에 가히 믿을수가 없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아직 그들이 침입을 한 것은 아니지요?" 현진자는 너무나도 놀란 가슴을 억누르며 대답했다. "아직 그들이 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현진자는 그렇게 대답을 하면서도 크게 놀라서 말을 헛딛었고 그 바람에 실족할뻔 해서 절로 등줄기에 식은땀을 흘리게 되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무한히 기뻤다. 이제 잘하면 무당파는 위기를 넘길수가 있다는 희망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백룡생이 허공에서 떨어져 내리는 속도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아서 현진자와 똑같이 아래쪽에 이르렀다. 그러자, 그들은 이어 평지를 바람같이 달려서 무당파로 향하기 시작했다. -- 무당파, 그들이 무당파에 이르렀을때 수많은 제자들이 서성거리고 잇다가 그들을 보고는 즉시 공손히 고개를 숙여서 절을 했다. 그것은 비단 현진자 뿐만 아니라 백룡생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백룡생이 무당파의 사숙이라는 사실을 전 제자들에게 전달되었던 것이다. 백룡생은 지금 그에게 공손히 절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나이가 오륙십에 달하는 늙은 제자들도 있는지라 당황해서 마주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순간에도 지금 무당파의 상황을 살폈다. 보아하니 무당파는 지금 사방의 곳곳에 검진을 펼치고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무당파의 절학 진무칠절진이었다. 이 진무칠절진은 가히 소림사의 백팔나한진에 버금가는 것으로 한때 무림에 그 명성이 드높았었다. 백룡생은 잠시 그 모양을 주시하다가 현진자를 따라서 자소궁으로 향했다. -- 자소궁, 그곳은 역시 지금 삼엄한 경계가 펼쳐져 있었다. 역시 진무칠절진으로, 그것을 펼치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사십대의 중년도인들인 것으로 보니 아마도 무당파의 진, 운 다음의 배분인 학자배의 도인들인것 같았다. 그들 역시 백룡생이 현진자와 함께 들어가자 즉시 공손히 허리를 숙여 절을 했다. 백룡생은 그들의 인사에 답례를 한 후에 현진자와 함께 안으로 들어서서 잠시 복도를 걸어갔다. 그러다가, 문득 나타난 하나의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서자 그곳은 바로 드넓고 장중한 기풍을 느끼게 해주는 대청이었다. 백룡생은 전에 왔을 때에는 이곳에 들러보지 못해서 들어서자마자 좌우에 시선을 돌려서 찬찬히 둘러보았다. 그러다가, 대청중앙의 거대한 팔선택의 주위에 여러사람들이 앉아있는ㄱ 을 보고는 즉시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원래 백룡생은 무당파의 최고배분의 사람이므로 그가 일단 나타나면 모두가 몸을 일으켜서 맞아야 하건만 아무도 그렇게 하지 도 않았으니 이는 지극히 무례한 것이었다. 한마디로 그를 우습게 보는 것이었다. 현진자는 뒤에서 이를 보고 매우 불쾌한 표정이었다. 허나, 정작 당사자인 백룡생은 오히려 그게 편하게 느껴져서 별로 탓하지 않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지금 대청안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안색을 크게 찌푸린 상태로 백룡생이 안으로 들어서자 좌우로 두리번 거리는 것이 매우 어리숙해보여서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이때 백룡생의 신색은 어리숙한 것이 아니라 매우 크게 달라져 있었다. 멀리서 볼때는 몰랐으나, 일단 가까이에서 보게되자 사람들은 그의 전신에 고요하기 짝이없는 현기가 어려있음을 느낄수가 있었다. 그것은 모두가 그의 맑고 투명한 광채를 발하는 눈빛때문이었다. 이때, 대청안에는 장문인인 옥진자를 비롯하여 그의 좌측에 청진자 그리고 우측에는 낯익은 인물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들은 바로 놀랍게도 어제 만났던 심룡과 악불이가 아닌가? 악불이는 심룡의 바로 옆에 앉아 있었는데, 그녀가 아직 떠나지 않고 심룡의 옆에 붙어 있다는 사실은 의외의 일이었다. 허나, 옥진자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 특히 악불이등은 백룡생의 완전히 달라진 신색을 보고는 매우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백룡생은 곧 그들에게서 시선들 돌려서 그 아래에 줄줄이 앉아있는 사람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들은 바로 하나같이 무당파의 도인들로 나이가 대략 오십에서 육십의 사이였다. 즉, 그들은 무당파의 진자배의 바로 아래인 운자배에서도 가장 중요한 인물들인 것이다. 그들의 숫자는 모두 열명이었다. 백룡생은 곧 그들의 앞으로 다가가서 옥진자에게 말했다. "안녕하시오. 장문사질! 아직 적들이 침입해 오지 않았으니 다행한 일이외다." 옥진자는 지금 비록 백룡생의 면모가 새롭게 보이고 있지만 그이 말투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업소, 게다가 얼마전에 그의 애인이었던 악불이가 이제는 다른 사람과 친한것을 보고는 더욱 우습게 여기는 마음이 일어서 일어서지도 않고 태연히 대꾸했다. "무량수불, 만일 적들이 오면 우리는 단지 물리치면 되는 것이오. 어째서 소사숙께서는 다행이라고 하시오?" 백룡생은 굳이 그와 말다툼을 하기 싫었기 때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렇군요. 헌데... 그들을 막을 준비는 다 되었습니까?" 옥진자는 다시 대답했다. "몰론 아직까지 준비를 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소?" 백룡생은 옥진자가 자신에 대해서 매우 경멸하고 증오하고 있다고 생각하고는 내심 씁쓸하게 웃을뿐 더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서 남아있는 가장 아래쪽의 자리로 가서 앉았다. 원래 그는 가장 윗자리에 앉아야할 신분이면서도 위에는 전혀 자리가 없었기 때문에 할수없이 그곳에 앉은 것이다. 그럼에도 옥진자는 물론 나머지 제자들도 전혀 몸을 일으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비록 형식상으로는 백룡생을 소사숙이라고 불러주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들 무당파의 제자로 여기지 않는 것이었다. 물론 백룡생은 이러한 그들의 행동에 전혀 기분나빠하지 않았고 신경쓰지도 않았다. 허나, 성질급한 현진자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백룡생이 이러한 대우를 받고있는 것을 보자 일순 참다못해 노화가 폭발해서 열명의 운자배의 제자들을 향해 소리쳤다. "너희들은 도대체 위아래도 없느냐? 소사숙님이 눈에 보이지도 않느냐?' 이때 현진자는 매우 격노하여 그들에게 손가락질을 했기 때문에 그들 십인은 다소 얼굴에 붉은 기색을 떠올렸다. 그러나, 현진자의 말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전혀 일어설 생각을 하지 않았다. 실상, 현진자는 전혀 제자를 키우지 않아서 이ㄱ곳의 제자들중 그의 제자는 하나도 없었고, 자연 무당파에서 그의 의사는 거의 무시되는 상황이었다. 현진자는 평소에 은근히 그것을 느껴왔었지만 이제 그러한 것을 더욱 실감하게 되자 말할수 없이 노화가 복받쳤다. 그는 금방이라도 그 십인의 제자에게 쌍장을 휘둘러 박살낼 기세였다. 그러나, 그때 옥진자의 음성이 들려와 그의 행동을 제지시켰다. "현진사질, 그들은 나의 명을 받고 거기에 앉아있는 것일세, 자네가 어째서 나서서 난리를 치는 것인가? 현진자는 그말에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그는 본래 장문사형인 옥진자를 매우 존경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그 존경의 마음이 크게 반감되는듯한 기분이었다. 그는 불복하여 대꾸햇따. "장문사형, 그는 어쨌든 우리의 사숙입니다. 그런데 그를 이런식으로 대접한다면 그것은... 그것은 실로 너무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현진자는 원래 그것은 하극상이 아니냐고 말하려다가 장문인의 위신을 생각하여 말을 돌린 것이었다. 옥진자는 그런 그의 생각을 어느정도 파악한듯 음침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자네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군, 지금 상황은 그야말로 비상시국일세, 이런 떼에는 평소의 예법을 다하지 못할수도 잇는 것일세, 더군다나 그는 특별한 경우의 사람이 아닌가?" 현진자는 다시 물었다. "그가 특별하면 안된다는 법이라도 있습니까?" 그말에, 옥진자는 눈살을 크게 찌푸리며 소리쳤다. "현진! 이는 내가 장문인의 권한으로 여러사람들과 오늘의 일을 토의하기 위해 이런 배치를 한 것인데 자네가 감히, 감히 본좌에게 들수가 잇다는 말인가?" "..." 현진자는 일시 할말이 없었다. 옥진자의 말은 지금 전부가 이치에 닿지도 않는 것이었다. 이것은 그가 노골적으로 백룡생을 무시하여 그를 궁지에 몰아놓고 자신의 뜻대로 하려는 의도인것 같았다. 하지만 현진자로서는 감히 그에게 어떻게 대들수가 있겠는가? 다만 그는 전신을 가늘게 경련시키며 이렇게 중얼거릴 뿐이었다. (장문사형은 모두에게 존경을 받고 있지만 실은, 실은 저렇게 좋지않은 면이 있구나...!) 이때, 백룡생이 일어서더니 현진자에게 다가와서 웃으며 말했다. "나는 지금 소변이 마렵고 또한 본파의 일에 대해서는 아직 잘 모르니 먼저 밖에 나가서 기다리기로 하겠소. 그러니 신경쓸 것은 없소." 현진자는 그말에 가벼운 탄식을 불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차라리 그러는 편이 나을 것이다.) "예, 그럼 소질도 함께 밖으로 나가죠!" 이어, 그는 백룡생의 뒤를 따라서 밖으로 나갔다. 옥진자와 청진자등은 이것ㅇㄹ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들은 전혀 만류할 생각이 없는 것이 아마도 현진자 정도는 없어도 회의에 지장이 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백룡생이 소변이 마렵다고 한 말은 기실 거짓말이었다. 그는 자소궁을 나선뒤 천천히 현진자와 함께 걸음을 옮겨서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현진자는 다소 침통한 표정으로 그의 뒤를 따랐다. 무당파의 건물들은 자소궁이 맨 위에 잇고 나머지는 아래쪽에 위치하고 있으니 두사람은 무당파의 외곽지역에 가고있는 셈이었다. 그런데 문득, 백룡생은 앞에서 길을 걸어가다말고 걸음을 멈추었다. 지금 이곳 외곽지역에는 사방에 거의 빈틈없이 삼엄한 경계망이 펼쳐져 있었다. 헌데 그 경계망이 펼쳐져 잇는 전면의 한곳에 홀연 둥글게 펼쳐져 잇는 진무칠절진의 중앙에 한명의 중년인이 화려한 검무를 펼치고 있는ㄱ 서이 아닌가? 보아하니 그것은 예사의 검무가 아니라 바로 무당파의 절기인 양의검법을 시전하고 있는 중이었다. 백룡생은 마침 따로 할일이 없었는지라 곧장 ㄱ족으로 다가갔다. 그 중년인은 물론 무당파의 도인이었다. 헌데 그 기도가 한눈에 보기에도 범상치가 않았다. 원래, 이 양의검법은 무당파의 제자라면 삼재검법을 연성한 연후에는 누구나 익히도록 되어있는 보편화되어 있는 검법이었다. 그러나, 비록 보편화되어 있을 지라도 완숙하게 성취하기란 실로 어렵다는 것은 무당파의 제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었다. 대략 무당파에 입문한지 삼년정도면 입문검법인 삼재검법을 완전히 연상하게 되고 뒤이어 양의검법을 익히게 되는데, 이 양의검법은 겉으로는 쉬운듯 보여도 그 속에 내포된 오의를 깨우치고 실전에 적용하기가 매우 어려워서 그것을 대성하기는 비단 십년이 아니라 이삼십년이 흘러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그리하여, 당금의 무당파의 제자들 중에는 진자배의 바로 아래인 운자배의 제자들도 이것을 완전하게 터득한 사람이 많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 한눈에 보기에도 저 중년도인의 양의검법은 이미 그 극의에 도달하여 한점의 군더더기나 무리가 없었다. 검끝은 표홀하고 엄정하여 법도에 맞으며, 그 초식의 흐름은 마치 장강대하가 흘러가는 것처럼 웅대하여 부드러우면서도 강하고, 강하면서도 다시 한없이 부드럽다가 문득 그가운데 노도의 기세가 느껴지는등, 비록 그 검세는 중앙의 한곳에만 머물고 있었지만 거기에서 피어오르는 삼엄한 검기는 가히 폭발적으로 피어올라 허공을 가득 수놓고 있었다. 이것은 말하자면 시범인 것이다. 지금 그러한 광경을 바라보고 있는 제자들의 두눈은 한결같이 경이의 빛이 떠오른체 그 중년도인의 검무에 정신을 팔고 있었다. 헌데, 기이한 것은 지금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중년도인보다 나이가 훨씬 많아보이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들의 시선에 떠오른 빛도 한결같이 경외심이라는 사실이었다. 백룡생은 가까이 다가가서 이를 바라보며 내심 생각했다. (무당파가 그토록 명성을 얻은 것은 과연 이유가 있는 것이었군, 이러한 뛰어난 제자들이 있으니... 하지만, 그는 누구길래 모든 제자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고있는 것일까? 이때, 마치 그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듯 현진자가 그이 뒤에 다가오며 말했다. "그는 바로 장문사형의 관문제자인 운학이란 자입니다." 관문제자라면 마지막 제자를 말하는 것이다. 백룡생은 내심 그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장문사질이 제자로 거둘만한 인재로군!) 원래, 당금 무당파의 운자배의 제자들은 거의다 나이가 오십에서 육십사이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옥진자가 마지막으로 이러한 젊은제자를 하나 더 받아들였다고 하는 것은 그이 재질이 특별히 뛰어나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비록 다른 나이많은 제자들이 있어도 모두가 경외의 빛을 띠는 것은 그가 바로 그들보다 한 배분이 높은 운자배의 제자이기 대문이었다. 무림의 명문정파는 배분을 아주 중요시한다. 왜냐하면 배분이 흐트러지면 규율과 질서를 바로잡기가 어렵게 되기 때문이었다. 이 운학이라는 제자는 아마도 자신의 나이가 어린점을 참작하여 자소궁의 회의에는 참석하지 못하고 이렇게 제자들에게 시범을 보이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의 시범이 원가 훌륭한 것이었기에 제자들은 거기에서 하나라도 더 얻기위해 연신 감탄을 하면서 숨을 죽이고 지켜보고 있는 것이었다. 이때, 드디어 그 운학도장의 시범이 끝나고 그는 허공에서 두어차례 가볍게 몸을 뒤집으며 천천히 지면으로 내려섰다. 허나, 이미 그렇게 열정적으로 검법을 전개했건만 지금 지면에 내려서는 그의 이마에는 땀방울 하나 흐르지 않고 있었다. 단지 추운 이 겨울날씨에 그의 안색에는 맑고 훈훈한 기운이 감돌 뿐이었다. 그것은 곧 그가 나이에 비해 실로 내력의 기초가 튼튼하고 심후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이었다. 그의 주위에 둘러앉아있던 제자들은 그의 시범이 끝이나자 일제히 열화와도 같은 박수를 치며 환호를 울렸다. 기실, 지금은 만화교의 침습이 임박하여 모두의 생사가 알수없는 상황인데도 그렇게 무예의 열의를 보일수가 있다고 하는 것은 대단한 기상이었다. 백룡생은 그들과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묵묵히 그러한 광경을 지켜보았다. 현진자는 마치 시립하듯 그의 뒤에 서 있었고, 그들 두사람의 마음에 피어난 감정은 무당파는 아무리 험난한 풍파가 닥친다고 해도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는 신념이었다. 헌데 이때, 백룡생으로서는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났다. 그 운학도장이 시범을 마친후에 환호하는 제자들을 향해 미미하게 웃으며 손을 들어보인 다음에 곧장 이쪽으로 다가와서 백룡생에게 공손히 말하는 것이 아닌가? "소사숙조님! 소사숙조님의 무예의 신비함은 이미 전 제자들에게 알려져 있습니다. 허나 모두들 궁금하게 여기고 있사오니 지금 모두에게 한수 보여주시지 않겠습니까?" 제 33 장 태극혜검법 알고보니, 다른 제자들은 그의 검무에 정신이 팔려서 미처 백룡생이 다가오는 것을 몰랐지만, 이 운학도장은 검법을 펼치는 도중에 그의 출현을 보았던 모양이었다. 사실, 운학도장의 말대로 전제자들이 백룡생의 신비한 무예를 알고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운학도장은 전에 그런 얘기를 조금 들은적이 있었기 때문에 다소 과장해서 그렇게 말했던 것이다. 이에, 자연 운하도장의 시범을 보고있던 제자들의 시선은 모두 이쪽으로 크게 집중되었다. 이에 백룡생은 자연 그의 요청을 마다할 수가 없었다. 그는 즉시 고개를 끄덕이며 운학도장을 향해 말했다. "좋네, 그럼 자네의 검을 잠깐 빌려주겠는가?" 백룡생은 군자검을 갖게 되었었으나 악불이가 다시 그에게서 가져가는 바람에 지금 수중에는 병기가 하나도 없었다. 그말에, 운학도장은 즉시 허리를 굽히며 자신이 들고있던 장검을 공손히 건네주었다. 이때 무당파의 제자들은 은근히 백룡생의 어수룩한 점과 그가 어떠한 경로로 무당삼자의 사숙이 되었는지 듣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정도 그를 깔보고 있었다. 그를 정식으로 무당파의 제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헌데, 무당파의 일대기재라고 할 수 있는 운학도장이 그처럼 시범을 요청하자 그들은 일순 호기심을 느껴서 백룡생이 일거일동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과연 백룡생이 무당파의 절기 하나라도 제대로 알고 있을까 하는 것이 그들의 거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그러나, 백룡생은 그들의 거의 무시하는 듯한 시선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무슨 무예를 펼칠까하고 생각하다가 문득 장검을 허공으로 내던졌다. 대체 그가 무슨 검법을 펼칠것인가 하고 궁금해하던 제자들은 그의 이러한 행동을 보고는 일순 다소 의아해했다. 무당파에는 이렇게 검을 내던지는 비검술의 수법은 그리 잘 사용하지 않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검도의 이론과는 다소 거리가 멀고 다분이 임기응변적인 요소가 많기 때문이었다. 사실 그 은 검법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웠다. 이를 본 제자들 가운데에는 다라서 일순 코웃음을 날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헌데 그때였다. 백룡생이 그저 집어던진것 같은 장검이 전면의 허공으로 일직선으로 날아가더니 일순 한 지점에서 거짓말처럼 멈춰지면 느릿하게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 아니, 그 움직임은 점차 빠르고 영활하며 웅대해져 갔다. 제자들은 그러한 광경을 보게 되자 일순 하나같이 넋을 잃고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들의 시선에 떠오른 것은 하나같이 불신에 가득찬 표정이었다. 왜냐하면, 지금 장검이 허공에서 펼치고 잇는 것은 바로 조금전에 운학이 펼쳤던 것과 똑같은 양의검법이었던 것이다. 무림에는 이른바 이거어검술이라고 해서 내력이 상승의 경지에 이른자가 검에 자신의 기를 불어넣어 밖으로 내던져서 기운으로 그것을 조종하는 수법이 있었다. 그것을 일컬어 정기신의 합일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빠르게 검을 날려서 적을 제거하고 되돌아오게 하는 간단한 동작만을 할수가 있을 뿐이었다. 왜냐하면 일단 검이 수중을 떠나게 되면 아무리 검공이 신화적인 경지에 이르러도 자기 마음대로 그 검을 움직이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장검을 외부에 내던져서 그것이 마치 수중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한다는것은 단연코 불가능했다. 그것은 지금 이 자리에 모여있는 수많은 제자들의 공통된 경험에서 나온 말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 불가능이 가능으로 화해서 그들의 눈앞에 여실히 펼쳐지고 있는것이 아닌가? 뿐만 아니라. 지금 펼쳐지고 잇는 양의검법은 바로 조금전에 운학도장이 펼쳤던 것보다도 오히려 완벽하고 더욱 자연스러워 보였다. 이것은 실로 믿을수가 없고 경악에 경악을 거듭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아닐수가 없었다. 인간의 육신은 무한한 능력을 갖츨수가 없는 것이다. 그것은 말처럼 빠르게 달릴수도 없고, 새처럼 하늘을 날아다닐수도 없으며, 가장 쉬운 예로는 인간의 팔은 다만 안으로 굽어질 뿐 박으로는 굽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그러한 장애는 비단 하류의 무인들 분만 아니라 상승의 검도를 연성한 사람에게도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운학도장이 비록 내력을 웅후하게 운용하여 양의검법을 펼쳤어도 그 역시 그러한 장애를 추월할 수는 없어서 어딘가 이론보다는 부자연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른바 이론과 현실의 차이인 것이다. 그러나, 지금 모든 사람들의 눈위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은 바로 그러한 장애가 완전히 제거된 이론이 완벽하게 재현된 양의검법이었다. 허공에 있는것 같은 그 무형의 인간은 비단 팔이 밖으로도 굽어질 뿐만 아니라 허공을 자유자재로 날아다녔고 그 어떻나 장애도 없었다. 그야말로 양의검법이라는 이치에 가장 부합되는 것이었다. 무당제자들은 처음에는 저마다 불신의 표정을 하고 크게 놀랐지만 나중에는 이러한 이치를 보고 하나같이 눈을 크게 뜨고 주시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여태 장애가 섞여 있는 양의검법을 보아왔고 또 그렇게 수련해 왔었다. 그러나, 지금 이러한 이란검법을 보게되자 그들은 즉시 그 이론을 한눈에 꿰뚫게 되었고 양의검법을 바라보는 시야가 맑게 트이게 되었다. 그렇게 시야가 트였다는 것은 이미 그들의 검법이 한단계를 넘어서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따라서, 처음에는 다소 백룡생을 멸시했던 무당제자들은 이제는 전혀 그런 생각을 완전히 잊어버린채 자신의 검법과 그 양의 검법을 비교분석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아까 운학도인의 시범은 그들에게 많은 시야를 넓혀주었다고 할 수가 있었다. 허나, 지금의 이러한 시범은 가히 파천황적인 일이었다. 마치 그것은 과거 현진자에게 태극혜검법을 보여줄때처럼 모든 사람의 무예에 대한 안목을 두어단계정도 트이게 만들었다. 자연, 무당제자들은 모두가 두눈을 튀어나올 정도로 크게 부릅뜨고 지금 펼쳐지고 있는 기이한 양의검법을 한순간이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 헌데 그때, 양의검법의 칠십이식이 거의 다 펼쳐졌을 무렵이었다. 무당제자들이 여전히 눈을 부릅뜨고 쳐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그 장검은 우뚝 검법 시전을 멈추더니 비쾌하게 광장의 허공을 가로질러서 동쪽의 아름드리 고목쪽으로 날아가는 것이 아닌가? 이때, 무당제자들은 워낙 장검의 동작에 집중하고 있었기에 그것을 볼수가 있었지, 사실은 그 날아가는 속도는 워낙 빨라서 육안으로 분간할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자검이 날아간 고목위에서 돌연(앗!)하는 경악성과 함께 뭔가 검은 물체가 장검에 꿰뚫려서 쏜살같이 무당제자들의 가운데에 떨어져 내리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나서, 그 장검은 어느새 검은물체에서 빠져나와 훌훌 자연스럽게 움직여서 운학도장의 손안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러한 광경은 신기에 가까운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신기였다. 수많은 무당제자들은 한동안 넋을 잃고 양의검법을 바라보다가 이와같은 변기를 보고는 다시 크게 경악했다. 알고보니, 방금전에 그 고목에 있다가 장검에 꿰뚫려 무당제자들의 사이로 떨어져버린 물체는 사람이었고 그것도 여자였다. 젊게 보이는 흑의여인이었던 것이다. 헌데, 당연히 몸에 장검이 찔려 피를 흘리고 있을 줄 알았던 그 흑의여인은 땅바닥에 떨어진 즉시 몸을 벌떡 일으키는 것이 아닌가? 무당제자들이 바라보니 그녀의 몸에는 상처하나 없었다. 그렇다면 이건 어찌된 일일까? 사실, 백룡생이 날린 그 장검은 흑의여인의 허리에 묶은 끝만을 잡아채서 이쪽으로 내던졌던 것이다. 물론 그런 가운에 그 끈마저 전혀 손상을 입지 않았다는 것은 거의 신기에 가까운 적절한 힘의 배합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헌데 느닷없이 무당파에 웬 여인일까? 무당제자들은 순간 그녀를 보자 이제 곧 쳐들어올 만화교의 여인들을 상기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여인의 복장은 만화교의 것이 틀림없었다. 흑의여인은 몸을 벌떡 일으키더니 즉시 허리에서 한자루 장검을 뽑아들며 소리치는 것이었다. "누구냐? 비겁하게 기습을 하다니! 누구든 정정당당히 덤벼라!" 무당제자들은 그녀의 태도에 잠시 아연했다. 그녀는 틀림없이 만화교의 척후로서 무당파를 미리 조사하기 위해 잠입한 것 같은데 도리어 기습을 했다고 날리니 적반하장이 아니겠는가? 이 흑의여인은 백룡생이 장검을 날렸을 때에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었던것 같았다. 그녀는 그 장검이 운학도장의 손안으로 돌아가자 필시 그가 한 짓이라고 생각하고는 즉시 독랄한 초식을 전개해서는 그를 향해 덤벼왔다. 그러나, 그녀의 초식이 비록 독랄하기는 해도 운학도장의 적수가 될수는 업었다. 운학도장의 몸이 미끄러지듯 부드럽게 그녀의 뒤로 돌아가는가 싶더니 어느새 그녀는 그의 우수에 의해 맥문이 제압되어 있었다. 이어, 운학도장은 그녀의 전신대혈을 격공점혈의 수법으로 제압하며 물었다. "당신은 어디에서 온 누구요?" 이 흑의여인의 전신대혈은 제압되고 간지 아혈만이 풀려서 입만 놀릴수가 있을 뿐이었다 헌데 순간, 그녀의 전신이 가늘게 경련을 일으키더니 안색이 검게 변하면서 그 자리에서 풀썩 쓰러져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것을 보고 누군가가 놀라 소리쳤다. "앗, 입안의 독을 깨물었구나!" 그렇다. 그 흑의여인은 이미 입안에 독을 숨겨가지고 있다가 붙잡히게 되자 즉시 독약을 깨물어 자결해 버렸던 것이다. 이것은 실로 독랄하기 이를데 없는 방법으로, 이로 미루어 만화교가 얼마나 극악한 집단인지 절로 느끼게 해주었다. 그대였다. "으악," "악...!" 돌연 전면의 아래쪽에서 무수한 비명성이 들리기 시작했고 그것은 곧 사방으로 크게 확산되는 것이 아닌가? 누군가의 커다란 외침이 들려왔다. "만화교의 칩입이다--!" 그렇다! 무당제자들이 흑의여인에게 관심을 쏟는순간 어느새 무당파이 아래쪽에서는 무수한 흑의여인들이 구름처럼 밀려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기세는 마치 거대한 해일가도 같았다. 마치 조수가 한꺼번에 밀려들듯 검은 인영들이 수중에 갖가지의 병기를 들고 침습해들기 시작하자 여기저기에서 칼부림이 일고 피가 튀기며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 만화교의 침습은 실로 급작스런 것이었다. 무당파는 비록 오랫동안 그들이 침습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지만 여태 그들의 접근을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다. 그로인해 맨앞에서 경계를 서던 무당파의 제자들이 줄줄이 피곤죽이 되어 넘어갔다. 이 만화교도들의 복장의 특징은 흑의에 갖가지의 꽃송이를 수 놓은 것이었는데, 그녀들의 무예는 놀라운 것이어서 금방 무당파의 제자들의 시신을 타고넘어서 파죽지세로 윗쪽으로 쳐들어왔다. 무당파의 전체 제자들의 숫자는 대략 수천여, 그러나 이 흑의여인들의 숫자는 도저히 헤아릴 수가 없이 많아서 몇만이라도 되는 것 같았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메뚜기의 떼가 자욱하게 일어나서 하늘의 해를 가리는 광경과도 같다고나 할까? 하지만,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던 무당파의 제자들도 결코 녹녹치만은 않았다. 그들은 즉시 미리 준비했던 진무칠절진을 전개했고, 그 진법의 위력은 마치 풍차처럼 사위를 휩쓸며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 진무칠절진은 다 하나의 소진으로만 이루어져 있는것이 아니라 몇개의 커다란 대진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진무칠절진은 말 그대로 일곱명이 한 조를 이루게 되는데, 그 일곱명이 한조를 이룬 소진이 다시 일곱개의 방위를 점하여 만들어진 것이 중진이며, 이러한 중진이 다시 일곱개의 방위를 점하여 거대하게 무당파를 감싸고 있는것이 대진이었다. 그러니까, 이 하나ㅢ 대진은 대략 삼백오십여명의 인원으로 구성되는 셈이었다. 지금 만화교의 흑의여인들은 무당파를 사면에서 일시에 공격을 개시하고 있었다. 그것은 좌우뿐만 아니라 후면에서도 살벌한 외침과 비명성이 들려오기 때문이었다. 이 진무칠절진의 대진은 무당파에 대략 십여개가 펼쳐져 잇는 셈이었는데, 그중 이곳의 대진은 운학도장의 지휘를 받아서 격렬하게 움직여가고 있었다. 무당파는 평소에 무예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아서 일단 진법이 발동되자 그 흐름은 매우 격렬하고도 장강대해처럼 웅후하기 그지 없었다. 거기에는 거의 빈틈이 없었다. 진법의 가장자리에는 다소 나이가 젊은 도인들이 조를 이루고 있었는데 그들이 신법은 빠르고 움직임은 매우 격렬했으며,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그 움직임이 장중해지고 무게가 있었다. 한마디로 이 진법은 거대한 힘을 갖추고 있으면서 법도가 분명하고 변화막측했다. 그들이 일단 진법을 펼치자 사방에서 몰려들던 흑의여인들의 기세는 일순 급격하게 꺾이는 듯 했다. 그러나, 비록 진무칠절진의 위력이 극강하기는 해도 흑의여인들의 무예는 비단 막강했을 뿐만 아니라 그 숫자가 너무도 많았다. 게다가, 그녀들은 아주 독랄하고도 필사적인 공격을 감행하고 있었다. 무당파의 제자들도 모두 목숨을 걸고 대항하고 잇는 상황이었지만 그녀들의 그러한 엄청난 기세에는 도무지 당해낼 수가 없었다. 그것은 마치 무수한 벌떼가 한마리의 사자라도 쏘아죽일 수 있다는 이치와도 같았다. 게다가, 흑의여인들 가운데에는 실로 무예가 고강한 여인들이 있어서 그들은 거의 진무칠절진의 영향을 받지 않고 파죽지세로 무당제자들을 쓰러뜨려왔다. 따라서, 강호에서 이름난 무당파의 대진은 이미 어느 곳에서는 그 일각이 무너지기 시작하는 곳도 있었다. 그렇게 일단 무너지기 시작한 진법은 그야말로 너무도 허망하게 궤멸되기 시작했다. 그것의 흑의여인들의 무예가 실로 악랄하고도 무섭기 때문이었다. 실로 무림사에 이렇게 막강한 여인들의 방파가 잇었는가 의심이 갈 정도였다. 원래 이 흑의여인들은 대개가 삶에 한을 품고 화류계에 뛰어들었던 사람들인 만큼 자연 그녀들의 심성과 무예가 독랄해지지 않을수가 없었다. 그녀들은 일단 대진의 한쪽이 무너지자 즉시 그쪽으로 집중해서 달려들었고, 즉시 그곳에서는 피가 튀고 살이 갈라지는 무서운 대살육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광경은 마치 지옥의 아수라장과도 같았다. 백룡생은 원래 무당파를 구하기 위해 온 것이었지만 일순간에 이렇게 전개되는 것을 보고는 너무나도 어이가 없어서 망연히 한동안 서 있었다. 대체 사람이 이렇게 잔인해질수가 있을까? 그이ㅡ 얼굴에는 일순 짙은 탄식이 떠올랐다. 그는 비록 세상사에 거의 거의 달관하여 신경을 쓰지 않는 편이었지만 이렇게 잔인무도하는 처절한 광경을 그냥 두고볼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그가 마악 입을 열어 싸움을 중지시키려고 했을 때였다. 어디선가 우렁찬 도호소리가 울리면서 그쪽으로 몰려갔던 무수한 흑의여인들이 분분히 시신이 되어 사방으로 날려갔다. "무량수불, 만화교주는 어디있소--!" 백룡생은 이미 그 음성을 알고 있었다. 그 음성은 다름아닌 옥진자의 것이었던 것이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이미 옥진자는 청진자와 함께 운자배의 십여명의 제자들을 거느리고 장내에 나타나 있었다. 이때 옥진자의 얼굴은 노화가 극도에 달한듯 시뻘개져 있었는데, 그의 주위에는 운자배의 제자들이 무서운 검세를 일으켜 흑의여인들을 제거하는 바람에 일시 흑의여인들의 기세가 크게 죽어 있었다. 그때였다. 마치 이에 회답하기라도 하듯 홀연 허공에서 한줄기 맑고 냉랭한 여인의 음성이 들려왔다. "모두 잠깐 멈춰라!" 거 음성은 그리 큰 것이 아니었는데 일순 그 음성이 터지자 흑의여인들이 공격을 멈추고 분분히 뒤로 물러서는 것으로 보아 일시 대단한 인물의 음성인것 같았다. 장내의 무서운 격전은 이렇게 잠시 멎었고 모두의 시선은 그 음성이 들려온 허공에 집중되게 되었다. 그러나, 사람이 대체 허공에 둥둥 떠있을 수가 있을까? 그곳을 바라본 무당제자들은 일순 한결같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지금 그쪽의 허공에 어느새인가 나타나서 둥둥 떠 있는 것은 바로 사람아 아니라 한채의 화려한 교자였던 것이다. 이 교자를 들고있는 사람은 놀랍게도 두명의 백발의 노파였다. 그 두명의 노파는 교자를 들고서 허공에 거짓말처럼 둥둥 떠있었는데, 그 교자가 천천히 지면에 내려서자 일순 그 주위에 다시 십여명의 여인들이 나타났다. 그 십여명의 여인들은 모두 하나같이 흑의가 아닌 아름다운 형형색색의 화의를 걸치고 있었는데 그녀들의 신법은 그야말로 신비롭기 그지 없었다. 그녀들은 여태 격전에는 참가하지 않고 있다가 갑자기 나타났는데 그 모습이 마치 그 자리에서 우뚝 솟아난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무당제자들은 그들을 보고 일시 경악함과 동시에 마음이 크게 경직되었다. 그것은 바로 이들이 만화교의 수뇌인물들이 틀림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무당제자들은 이 기척도 없이 나타난 열두명의 화의여인들과 놀랍게도 교자를 들고 허공에서 천천히 걸어내려온 두명의 노파, 그리고, 교자안에 지금 들어 앉아 있을지도 모르는 사람에 대해서 의혹과 공포감을 느꼈다. 사람들은 그리고 아까의 그음성은 바로 교자를 매고 있는 두명의 백발노파중의 앞에 서 잇는 노파의 것이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늙으면 목소리도 변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 백발노파의 음성이 아직도 맑다는 것은 그녀의 내력이 그만큼 정순하다는 말이었다. 그렇다면 혹시 그녀들은 처녀의 순음무극공이라도 익힌것이 아닐까? 옥진자는 이들이 나타나는 것을 다소 놀란 안색으로 바라보고 있다가 그 교자가 바닥에 천천히 내려앉자 침중한 도호와 함께 입을 열었다. "무량수불, 귀하가 바로 만화교주요?" 이때, 옥진자는 이들의 놀라운 무예를 보고 이미 무당파가 온전히 명맥을 유지하기는 글렀다고 생각하고 안색이 크게 어두워져 있었다. 헌데, 그의 질문에 다시 아까의 그 백발노파가 냉랭하게 대꾸했다. "교주께서는 한가하게 너희들과 대면을 하실 몸이 아니시다. 그러니 어서 너희들은 스스로 자결을 하는 것이 어떠냐?" 그녀의 말은 그야말로 오만무례한 것이었다. 만화교가 제아무리 성세가 드높다고 해도 천년전통의 무당파의 장문인에게 그러한 언사를 쓸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녀의 말에 무당파의 제자들은 일시 자신들의 상처도 잊고 극도의 분노한 기색의 지었다. 그러나, 옥진자는 그럼에도 쉽게 노하지 않고 오히려 표정이 담담했다. 그는 도호와 함께 다시 입을 열었다. "무량수불, 빈도가 비록 무능한 몸으로 무당파를 이끌고 있어서 역대조사의 명성에 누를 끼쳤다고는 하나 그래도 일파의 장문인인데 귀파의 이러한 행동은 실로 강호의 도의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오?" 그 말에, 문득 그 교자안에서 한줄기 기이한 음성이 울려펴졌다. "흥, 쓸모없는 말코도사가 제법 입은 살아있군!" 헌데, 이 음성은 실로 아름답고 부드럽기 짝이없는 것이었다. 그 음성은 촉촉하게 음색이 젖어있는 가운데 마치 누군가에게 은밀하게 속삭이는듯한 도발적인 요염함이 서려 있었다. 세상에 이러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 여인은 결코 많지 않을 것이다. 무당제자들은 원래 그 음성의 욕설을 듣고는 매우 대노했으나 그러한 그 요염한 음색에 마음이 흔들려 경악하여 마음을 수습하기에 바빴다. 동시에, 그들은 문득 그 교자안에서 한명의 화려한 궁장을 걸친 소녀가 나타나 있는것을 발견했다. 무당제자들은 비록 그 숫자가 많았지만 아무도 그녀가 언제 어떻게 그 교자안에서 나왔는지 자세히 불 수가 없었다. 다만, 교자의 휘장이 가볍게 흔들린다 싶은 순간에 그 궁장 소녀는 앞에 나타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실은 그러한 점은 놀라운 일이 될수가 없었다. 무당제자들은 이제 곧 만화교주가 나타나리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웬걸 막상 나타난 사람을 보니 이제 겨우 열 여덟이나 되었을듯한 묘령의 절색의 미소녀가 아닌가? 그럼 바로 이 소녀가 그 유명한 만화교주란 말인가? 그것은 이치적으로 따져보아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만화교주인 만화성모는 이미 오래전부터 강호에서 그 무예가 신비하기로 소문이 나 있었는데 어찌 그녀가 그러한 성취를 이루었겠는가? 하지만, 무당제자들의 더러는 세상사가 워낙 불가사의하니 역시 알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놀라운 것은 궁장소녀의 미모였다. 백룡생은 여태 악불이의 미모를 보아왔고 다시 심황의 절세적이라고 할 수 잇는 용모를 보았었다. 그러나, 악불이의 용모는 심황의 용모를 따라가지 못했고, 다시 그 심황의 용모는 지금의 이 궁장소녀의 미모를 따라갈수가 없다고 말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아니, 가히 근처에도 가지 못할 것이다. 실로 아무리 보아도 이 소녀는 인세의 여인이 아닌 것 같았다. 전신에서는 맑고 차고 깨끗하며 요염한 기운이 가득 흐르고 있었고, 그녀의 조금드러난 피부는 옥보다도 더욱 맑고 희었으며, 얼굴의 수려함은 실로 천상의 신장이라도 그렇게 아름답게 만들지 못할 정도였다. 그녀의 두눈은 흑요석보다도 더욱 맑고 투명하게 빛났으며, 게다가 전체적으로 가냘프고 섬약하며 순결하게 보이는 그녀의 전신에서는 역시 말못할 무한한 염기가 발출되고 있었다. 세상에 이처럼 아름다우며 요염하고 순결한 미를 두루 갖춘 여인이 있을까? 백룡생은 이미 심황보다도 몇배나 아름다운 여인이 있을까 하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단연코, 이 여인의 아름다움은 심황보다도 몇배가 아니라 몇십배가 뛰어난 것이었다. 그러니 어찌 모든 무당제자들이 경악하지 않으랴, 원래 무당제자들은 거의 혼인을 하지 않으며 살아온 것이 대부분이었는데 이렇듯 인세의 우물을 보게되자 격전의 흉험함마저 잊고 넋을 잃은 표정이 되었다. 그러다가, 옥진자의 침중한 도호소리를 듣고 모두가 화들짝 정신을 차렸다. "무량수불! 시주가 바로 만화성모요?" 그말에, 궁장소녀는 살포시 교소를 짓더니 대꾸했다. "당신은 역시 멍청하군요! 내가 감히 만화성모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분은 나의 사부님이세요!" 이로써 그녀의 정체는 드러난 셈이었다. 그녀는 만화성모가 아니다. 그렇다면 대체 만화성모는 지금 어디에 있으며 이 궁장소녀의 직위는 어느 정도일까? 옥진자는 다시 물었다. "그럼 여시주는 누구요?" 궁장소녀는 살풋 교소를 떠올리더니 미미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나는 만화교의 소교주에요. 모두들 나에게 백화선자라고 부르죠." -- 백화선자, 무당파의 제자들이 그 이름을 들은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만화교의 소교주가 백화선자라는 것은 전부터 들어오던 터였고, 단지 그 백화선자가 이토록 어여쁘고 어린 소녀일 줄은 몰랐을 뿐이었다. 원래, 전해지기로는 만화성모는 나이가 이미 칠십을 넘었다고 했다. 그런 그가 굳이 이런 어린 소녀에게 소교주의 지위를 맡긴것을 본다면 이 소녀의 자질은 대단한 것이 틀림이 없었다. 허나, 이 궁장소녀는 계속 표정이 순결하고 순진해 보였는데 그것이 더욱 상대에게 강렬한 염기를 느끼게 해주는 것이었다. 옥진자는 눈살을 길게 찌푸렸다. 그럼 오늘 여기에 만화성모는 오지 않았단 말이오?" 궁장소녀는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그럴리가 있겠어요?" 그러면서 그녀는 은근히 자신이 내렸던 가마를 되돌아보았다. 그것은 바로 지금 만화성모가 그 안에 타고 잇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이어, 그녀는 교소하며 말했다. "다만 당신들은 우리 사부님의 상대가 되지 않을 것 같으니 내가 대신 상대를 해주는 거예요." 무당제자들은 그 말에 크게 분격했다. 청진자가 앞으로 나서며 싸늘하게 말했다. '만화교의 사람들은 모두가 오만무례하군! 빈도가 그대를 상대해 주겠소!" 그는 장문인인 옥진자가 이 소녀와 상대할 수가 없다고 느끼는 동시에 보기보다 이 소녀의 무공이 대단하기 때문에 스스로 나선 것이다. 헌데, 그것을 본 궁장소녀는 다소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리며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당신과는 상대할 시간이 없어요. 그러니 당신은 십이향신녀 중의 하나와 겨루어 보도록 해요!" 그리고는 그녀 주위에 서 잇는 여인들에게 말했다. "십이신녀가 그와 맞서도록 해봐요!" 아마 그 열두명의 회의여인들은 바로 십이향신녀라고 불리우는 모양이었다. 그러자, 과연 그녀들 가운데 맨 뒤에 서 잇던 화의여인 하나가 번쩍 몸을 날림과 동시에 청진자의 앞을 가로막았다. 동시에 가타부타 말도 없이 즉각 청진자를 향해 공격을 퍼붓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뿐만 아니라, 그녀의 공격은 가공스러웠다. 일단 그녀가 손속을 펼치기 시작하자 허공에 가득 무수한 손그림자가 생겨나며 삽시간에 청진자의 전신을 뒤덮었던 것이다. 무당제자들은 그녀의 무공이 이토록 뛰어날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터라 일시 경악하여 비명을 지르는 사람도 있었다. 이것은 바로 최심장이라는 것으로, 그 위력은 상상을 불허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청진자는 원래 무당파에서도 무예에 정심하기로 소문난 사람인데 거기에 쉽게 당할리가 없었다. 그는 자신의 몸이 최심장의 손그림자속에 들어갔다 싶은 순간 이미 뒤로 미끄러지듯 물러섰고 어느새 상황이 좋지 못하기 대문에 속전속결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이 연성한 검법중의 가장 자신이 있는 태극검법을 즉시 전개하기 시작했다. 원래 이 태극검법은 장문인만이 연성하는 태극혜검과는 별도의 무예였다. 그것은 말하자면 태극혜검의 근원에 해당된다고 말할수가 있었다. 하지만, 역시 그것을 터득하는 것은 어려웠기 때문에 무당파에서는 양의검법을 완성하고난 사람에 한해서 이 검법을 배울수가 있었다. 물론, 비록 청진자는 이것을 거의 화경에 이르도록 연성했지만 기실 무당파에서는 그를 제외하고는 그러한 경지에 오른 사람이 전무할 정도였다. 그만큼 이 태극검법의 위력은 무서웠다. 그것은 정신이 검의 앞에 있고, 면면히 끊어지지 않는다는 원리에 입각한 것이기 때문에 다소 느린듯 하면서도 무한한 힘이 깃들어 있었다. 화의여인의 최심장의 공세가 무서운 것이긴 해도, 일단 청진자가 이 태극검법을 펼치자 그의 주위에는 무한한 기세가 피어올라 그녀의 공세를 서서히 뒤로 밀려가기 시작했다. 이 태극검법에는 모두 삼십육식의 검초가 있었다. 그러나, 태극혜검법과 마찬가지로 그 궁극에 이르면 검초가 자연 사라지는 것으로, 그 위력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무서운 기세에서 비롯되는 것이었다. 화의여인의 최심장은 바로 신체의 어느 한곳만 격중당하면 내장이 박살이 난다고 하는 무시무시한 위력이 잇는 것이었는데, 허공을 가득 메운 수십수백의 손 그림자는 일순 청진자의 태극검법의 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소멸하기 시작한 셈이다. 이에, 다소 당혹한 회의여인은 일순 뒤로 한걸음 물러나는듯 했다. 허나 그런것 같은 느낌이 드는 순간 오히려 그녀의 몸은 청진자의 검세안으로 뛰어드는 것이 아닌가? 무당제자들은 이것을 보고 있다가 일시 눈을 크게 떴다. 그녀는 일순 자살이라도 하려고 한 것일까? 물론 그럴리는 없었다. 청진자 장검이 화의여인의 몸가까이에 이르러 어느새 그녀의 몸을 두쪽으로 쪼개려는 순간, 일순 그녀의 우수가 마치 갈고리처럼 변하여 청진자의 정수리를 파고들었던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실로 괴이했다. 사실, 이 태극검법은 면면히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것이어서 얼핏 보기에는 느린듯 하지만 실상 당하는 사람은 그것이 결코 느리지 않다는 것을 알게되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마악 움직인다고 느낀 순간에 이미 검날은 자신의 코앞에 이르고 있는 불가사의한 속도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헌데, 지금 이 순간 분명히 먼저 움직인 것은 청진자의 장검이었음에도 나중에 움직인 화의여인의 갈고리와 같은 우수가 먼저 청진자의 정수리에 닿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청진자는 이에 안색이 대변했다. 그가 계속 장검을 휘두른다면 물론 그 여력으로 화의여인의 몸을 두로 나눌수가 있겠지만 그 역시 화의여인의 갈고리와 같은 우수에 의해 정수리가 파열될 것이 분명했다. 이 화의여인이 방금 시전한 갈고리와 같은 손속은 실로 무서운 수법이었다. 허나, 청진자가 그와같이 생각하는 것은 단 한순간의 일이었고, 이미 그의 신형은 번개처럼 그녀의 손속을 피하여 좌측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와함께 태극검의 검세가 바뀌어서 좀 더 빠르게 화의여인의 몸으로 덮쳐 들었다. 이 태극검의 또 하나의 특징은 비록 적의 공격이 막강하여 검세를 바꾸게 된다고 하더라도 결코 그 위세가 줄어들지 않고 점차로 강해진다는 데에 있었다. 그러나, 그 화의여인의 무공 역시 만만치가 않았다. 그녀 역시 청진자와 거의 동시에 몸을 움직였고, 어느새 쌍수를 똑같이 휘둘러 청진자를 핍박해가기 시작했다. 또다시 두 사람의 그림자가 어지러이 빠르게 교차하며 허공에 무수한 손그림자가 난무했다. 그러나, 이번의 화의여인의 수법은 아까의 그 최심장이 아니라 바로 만화교의 비전절기인 구음백골조라는 무서운 절기였던 것이다. 이 구음백골조는 비단 상상을 불허하는 속도와 위력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공격하는 방향이 예측을 불허하는 것이어서 청진자조차도 일시에 그녀를 어쩌지를 못했다. 내공이 이미 거의 신화경에 도달한 두사람의 수법은 거의 눈에 보이지도 않을 속도로 빠르게 오고갔고 두 사람의 신형도 한덩어리의 뿌연 그림자로 화해갔다. 그것은 두 사람의 격전이 점차로 치열해지고 있고, 금방 우열을 가리기가 어렵다는 말이었다. 이에, 이것을 보라보고 있던 무당파의 제자들은 하나같이 경악했다. 청진자는 무당파에서도 몇 안되는 최고 고수이고 상대는 겨우 열두명의 시위 가운에 하나일 뿐이었다. 게다가, 그녀가 열두번째라고 하면 다른 열한명의 무예는 어떻겠는가? 옥진자 역시 이러한 점을 의식했는지 안색이 더욱 무거워졌다. 이때, 그런 그를 향해 궁장소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어때요? 이제 당신이 나서야 할 차례가 아닌가요?" 제 34 장 백화선자! 옥진자는 그말에 잠시 망설였다. 정말로 자신이 이런소녀와 맞서야 하는가 하는 곤혹감 때문이었다. 헌데 그때, 마침 그의 곤혹감을 해소시켜주며 앞으로 나서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바로 옥진자의 뒤에서 악불이와 함께 서있던 성수방의 심룡이었다. "내가 한번 당신과 맞서보겠소!" 심룡은 그렇게 소리친 다음에 허리춤에서 장검을 하나 뽑아들었다. 그 장검은 군자검이 아니라 그이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것이었는데, 일순 장검이 뽑혀나오자 주위에 서늘한 검기가 느껴지는 것이 실로 보검임에 틀림없었다. 허나, 궁장소녀는 그의 얼굴을 다소 기이한 표정으로 주시한뒤 고개를 젓는 것이었다. "나는 당신과는 싸우기 싫어요. 당신도 역시 십이향신녀와 싸워보도록 해요!" 말게 함께, 그녀는 우수를 가볍게 내저었다. 그러자, 즉시 십이향신녀중 하나가 바람처럼 날아가서 심룡을 공격하는 것이었다. 이때 심룡은 궁장소녀의 전면으로 덮쳐들려고 했었으나 화의여인이 자신을 공격하고 막아서자 어쩔수 없이 그녀와 어울려 싸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심룡의 무예는 대단했다. 그는 일단 검법을 펼쳐내자 눈부시게 강렬한 검기를 사방에 피어올려 하의여인과 대적을 했는데, 보검의 위력때문인지 화의여인에게 결코 밀리지 않았던 것이다. 이 화의여인은 결코 청진자와 싸우는 여인에 비해 못한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기실 심룡의 무예는 거의 청진자의 수준에 이르렀단 말인가? 이제 장내에는 두무리의 사람들이 뒤엉켜 돌아가기 시작했고, 그들의 무예가 얼마나 고강한지 그들의 신형은 뿌옇게 흐려진채 주위에는 단지 무서운 살기만이 휘몰아쳤다. 그러나 그들중 당분간은 쉽게 우열이 가려질것 같지 않았다. 이렇게 되자, 옥진자는 하는수 없이 궁장소녀와 한판 겨루지 않을수 없었다. 옥진자는 이 궁장소녀의 무예를 추측할수가 없다고 생각하여 전신에 진기를 가득 돋우며 앞으로 나섰다. "무량수불! 여시주께서 먼저 공격을 하시겠소?" 궁장소녀는 그말에 냉랭하게 코웃음을 쳤다. "도장께서 그렇게 원하신다면 마땅히 제가 들어드려야지요!" 하지만 그녀의 음성은 설사 코웃음을 치고 화를 내더라도 요염하고 듣기에 가슴설레지 않을수 없게 만들었다. 헌데 그때였다. 과연 그녀의 신형이 뿌옇게 흐려지는듯 하더니 어느새 옥진자의 전면으로 덮쳐드는 것이 아닌가? 이를 바라본 사람들은 일시 눈이 휘둥그래졌다. 미리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이 갸냘프기 짝이없는 소녀의 신법은 상상을 불허하여 화의여인들보다 몇배나 뛰어났던 것이다. 일순 그녀의 신형이 흐려진다고 느낀 순간, 어느새 그녀는 옥진자의 면전에 이르러 뿌옇게 하얀 백색의 옥장을 휘둘러대고 있었다. 그것은 거의 아무런 기척이 없었기 때문에 마치 환각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결코 그것은 환각이 아니었다. 옥진자의 두눈에 떠오른 경악의 표정에서 그것은 입증되었다. 궁장소녀의 투명한 옥장은 너무도 빠르게 상대의 면전으로 파고들었기 때문에 아마 보통 사람이었으면 전혀 반항도 해보지 못하고 머리가 박살났을 것이다. 그러나, 물론 옥진자는 무당파의 장문인으로서 뭔가 남다른 점이 있었다. 옥진자는 궁장소녀의 옥장이 곧장 파고들자 경악한 순간 이미 무당파의 절정보법을 하고 밟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칠성둔형이라는 가히 환상에 가까운 보법이었다. 일순, 궁장소녀의 옥장이 옥진자의 머리를 그대로 부수었다고 생각되는 순간 어느새 옥진자의 신형은 갑자기 연기처럼 사라지며 어느새 궁장소녀의 뒤에 가있었다. 동시에, 옥진자는 어느새 장검을 뽑아들고 궁장소녀의 허리를 공격하고 있었다. 이미 옥진자는 아직 만화성모조차 나타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최선의 살수를 다동원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그는 비록 상대가 연약해보이는 소녀라고 할지라도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았다. 아니, 옥진자의 공세는 너무도 빠르고 위력적인 것이었기에 모두의 눈에는 적어도 그렇게 보였다. 그러나 순간 궁장소녀의 허리가 거의 믿을수 없을 정도로 돌아가며 까르르 요염한 웃음소리가 울러퍼지는 것이 아닌가? "호호호! 당신은 제법 나와 겨룰만 하군요? 좋았어요!" 궁장소녀는 옥진자의 그렇게 무서운 공격에도 오히려 두렵기는 커녕 신이 나는것 같았다. 그녀는 말을 하는 동안에 이미 옥진자의 삼엄한 회심의 일격을 피해버렸고, 뒤이어 옥진자의 우측에 이르러 재차 쌍수를 전개하고 있었다. 허나, 이번에도 역시 백색투명한 옥장이었지만 그 위력은 뭔가 달라보였다. 옥진자는 이미 자신이 장검을 뽑아들었고 준비가 되어있기 때문에 마주 검세를 펼쳤으나 문득 궁장소녀의 쌍장이 미처 다가오지도 않았는데 기운이 그이ㅡ 안면을 덮쳐 들었던 것이다. (이것은?) 옥진자는 일순 눈을 휘둥그래 뜨고 피하는 도리밖에 없었다. 그는 비록 수중에 장검을 가지고 잇고, 상대는 적수공권이었지만 먼저 당하는 쪽은 오히려 그였다. 이것은 실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으나 현실이었다. 궁장소녀는 북과 쌍장을 조금 움직였을 뿐인데 이미 그 장세는 가공할 위력으로 이미 일장밖을 쇄도해들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아까 화의여인이 펼쳤던 최심장과 모양이 비슷해 보여도 실은 천양지차로 다른 것이었다. 다름아니라. 이것은 바로 만화교의 절대신공이라고 할수있는 구음신장이었던 것이다. 이 구음신장은 바로 구음신공에서 유래되며, 구음신공이 들어있지 않은 최심장과 구음백골조는 이와는 천양지차의 위력차이가 잇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실로 이 작은 소녀가 그런 신공절학들을 와 ㄴ히 터득했을 줄은 미처 생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무당파의 절학이 비록 뛰어나도 만화교는 당금이ㅡ 무림에 거대한 세력을 떨치고 있으니 그들의 절학 역시 뒤지지 않는 것이었다. 아니, 어떠한 면에 있어서는 더욱 날카롭고 무서운 점이 있엇따. 옥진자는 이러한 점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궁장소녀의 구음신장을 가까스로 피해내며 내심 이를 악물었다. 그는 태극혜검법을 전개하려는 것이었다. 원래 그는 가급적이면 이 어린소녀에게 호법무공을 전개하지 않으려고 했었으나 이제는 도저히 그럴 상황이 아닌 것이다. 그는 즉시 이를 악물며 장검으로 태극혜검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이 태극혜검법은 태극검법과는 또다른 것이었다. 그 위력면으로 보더라도 천양지차라고 말할수가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무당파의 역사 가운데 태극검법을 대성한 사람은 많았어도 태극혜검법을 오성이상 성취한 사람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원래 이 태극혜검법은 장문인에게만 전해지는 것이었고, 장문인들의 자질이 뛰어나지 않을리가 없었을 텐데도 그렇다는 것은 가공스런 일이 아닐수 없었다. 옥진자는 원래 운검구결이 전해지지 않아서 겨우 일성의 경지에 머물고 있었으나 전번에 무애상인이 남긴 진무검보상의 구결을 해득하고 이제 삼성정도의 위치에 이르러 있었다. 허나, 비록 삼성정도라고 해도 짧은 시간에 비하면 놀라운 성취이며, 지난날 무애상인의 경지가 그정도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낮은것은 아닌 것이다. 옥진자는 일단 태극혜겁법의 기수식을 취하자 일순, 그의 신형은 장검에서 뿜어나오는 찬연한 검기로 인해 희미하게 가려졌다. 동시에, 그의 장검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마치 사방이 온통 자욱한 검기의 안개속에 갇힌듯한 느낌이 들었다. 무당파의 제자들은 장문인이 이러한 무학을 전개하는 것을 처음 보았으므로 저마다 넋을 잃고 그것을 바라보았다. 궁장소녀는 이대 여전히 옥장을 휘두르고 있었으나 이제는 쉽사리 자신의 장력이 상대에게 파고들지 않는것을 발견했다. 그리하여, 일순 그녀의 눈빛이 반짝 빛나더니 돌연 장세가 다시 일변했다. 돌연 그녀의 쌍장이 지극히 빠르게 움직이더니 그녀의 전신마저 안개처럼 흐려지면서 그속에서 무수한 가공할 힘이 분출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그녀의 최고무공이었다. 지금 그녀의 몸에서 발출되고 있는 것은 단지 장력뿐만 아니라 구음신권 , 구음신조따위가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 아니, 그녀의 몸은 마치 일천개의 손이 달려서 한꺼번에 그러한 절학들을 무수하게 발출하고 있는것 같았다. 이것은 가히 불가사의한 광경이었다. 이것을 과연 어떻게 설명을 하며 이해할수 있을까? 궁장소녀의 전신은 점차 그로인해 백색투명한 광채로 변해갔으며, 그 광채가 점차 확산되더니 옥진자의 태극혜검법을 도리어 핍박해가기 시작했다. 이 태극혜검법은 끊임없이 무궁무진하게 운용되는 것에 의미가 있는 것이지 특별하게 검초를 전개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 위력이 갈수록 증대되어 상대를 억압하고 굴복하게 만드는 것이다. 자연 직접적인 것은 아니더라도 거기에서 나오는 힘은 가공무쌍 하다고 말할수가 있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태극혜검법의 그 거대한 힘은 오히려 궁장소녀에게 밀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러한 기세에서 밀리게 되자 옥진자는 내심 매우 당황해졌다. 그는 기세에서 밀리게 되자 자유롭게 검법을 펼치는 데에 있어서 크게 지장을 받기 시작한 거시었다. 그렇게 되자, 자연 그의 전신에 피어오른 검세는 더욱 엷어져 갔고 점차 낭패한 기색이 드러났다. 반면 궁장소녀의 위세는 점차 거대해지고 있었는데, 이것을 본 무당제자들의 안색은 실로 경악으로 물들어졌다. 이것은 물론 구음신공이 태극혜검법을 능가한다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태극혜검법은 현문정종의 최고검법으로 구음신공에 비해 뛰어난 바가 있었다. 다만 두 공력의 화후가 서로 비슷하다면 태극혜검법으로서는 해볼만 하겠지만 지금은 궁장소녀의 구음신공의 화후가 옥진자의 태극혜검법의 화후를 능가하고 있엇따. 바로 그런 점이 지금과 같은 상황을 초래한 것이었다. 자연 옥진자의 안색은 침중하게 일그러졌다. 그리고, 그의 안색이 일그러질수록 무당제자들의 심정은 더욱 처참한 심정이 되어가는 것이었다. 무당파는 이미 천년의 전통을 지니고 있는 명문이었다. 그 위대한 전통이 여기에서 끊어지고 말 것인가? 지금 비록 옥진자가 최선을 다해서 대항하고 있기 대문에 당장에 그가 궁장소녀에게 당하지는 않는다고 할지라도 앞으로의 승부는 이미 결정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헌데 이때, 마치 그러한 상황을 조소하기라도 하듯 어디선가 한줄기 음성이 들려왔다. "흐흐! 무당파에도 인재가 없군, 게다가 태극혜검법은 막상 기대를 했었는데 역시 실망이야..." 그 말은 실로 무당제자들의 안면을 크게 일그러지게 만드는 말이었다. 헌데, 그 음성은 아주 부드러우면서도 가느다란 여인의 음성이었으며 그리 크지도 않았는데도 모든 사람들의 귀에 매우 똑똑하게 들렸다. 무당제자들은 일시 분개하다가 그런 사실을 깨닫고 일제히 놀라서 시선을 한쪽으로 집중시켰다. 과연 그 음성은 그 교자안에서 들려 나오고 있었다. 음성으로 보아 나이는 짐작할 수가 없었지만 실로 그 공력은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이라고 여겨졌다. 마치 그러한 사실을 입증이라도 하듯 다시 그 음성이 교자안에서 울려 나왔다. 지금 주위는 세곳에서 치열한 격전이 일어나고 있는 바람에 다소 시끄럽고 요란한 파공성이 계속해서 울리고 있었는데도 그녀의 음성은 아주 또렷하게 울렸다. 그것은 그녀의 공력이 매우 심후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높은 음성으로 모두에게 들리게 하기는 쉬어도 낮은 음성으로 모두에게 똑같이 똑똑하게 들리게 하기는 실로 어려운 노릇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혹시나 하고 왔었지만 사실은 오지 않아도 상관이 없을것을 그랬구나...! 허나 어쨌든, 안됐지만 무당파는 오늘로써 끝장이다." 무당파의 제자들은 왠지 그 말을 듣는 순간 공포로 인해 머리끝이 쭈뼛 일어서는 것을 느꼈다. 만일 다른 일반사람이 그런 말을 했다면 그들은 공포를 느끼지 않고 오히려 분노를 느꼈을 것이었다. 과연, 지금 말을 하고 있는 사람은 바로 그들이 상상하고 있는 만화성모 일까? 이때, 그 음성이 다시 들려왔다. 허나 이번에는 남은 열명의 화의여인들에게 한 말이었다. "얘들아! 이제 더이상 볼것이 없을것 같으니 어서 그만 쓸어 버리도록 해라! 밤이 길면 꿈이 많을수가 있고, 또한 이런 일은 길게 끄는것이 좋지 않으니까." 그 말에, 남은 열명의 화의여인들은 일제히 공손하게 허리를 접었다. "예, 성모님...!" 과연 그녀는 만화성모가 분명했다. 하긴 그녀가 아니고 누가 이런 상황에서 그러한 말을 할 수가 있을 것인가? 하지만, 무당제자들은 미처 그 만화서모의 존재에 대해서 생각해볼 여유가 없었다. 지금 바로 그녀에게서 최후의 명령이 떨어졌으니 이제 바야흐로 무당파는 시산혈해에 잠기에 생겼던 것이다. 그 말을 듣고 무당파의 제자들은 마치 꿈에서 깨어난듯 크게 흠칫하며 저마다 진기를 가득 끌어 올렸다. 그것은 물론 상대인 화의여인도 마찬가지였다. 헌데 그때, 마악 쌍방이 부산하게 움직이며 요란한 소음을 일으키고 있을때 문득 그속을 가로지르는 맑고 부드러운 음성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여인의 음성이 아닌 젊은 남자의 음서이었다. "누가 무당파에는 인재가 없다고 하였소? 누가 태극혜검법을 엉망이라고 하는거요?" 그 말은 사실 그다지 위력적인 것도 아니었고 그저 담담하게만 들렸다. 그러나, 정작 그 말의 내용은 쌍방을 크게 놀라게 하는 것이기에 일순간 만화교도들과 무당제자들의 행동이 멈춰지게 되었고 모두의 시선이 한쪽으로 집중되었다. 물론 거기에서 그런 말을 한 사람은 바로 백룡생이었다, 백룡생은 여태까지 상황을 지켜보다가 다시 격전으로 돌입할것 같자 하는 수 없이 나선 것이었다. 지금 백룡생의 뒤에는 현진자가 따르고 있었는데 백룡생은 천천히 말을 하고는 느릿하게 걸어서 그 교자의 앞에 이르렀다. 원래, 십이향신녀중의 열명은 아직 교자를 에워싸고 있었으나 백룡생의 그 말이 워낙 엄청난 것이었는지라 잠시 나서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이고 있었다. 그때, 교자안에서 다시 예의 그 음성이 들렸다. "그대는 누군가" 백룡생의 모습은 전혀 무공을 모르는 백의서생과도 같았다. 그러나, 그의 한마디가 워낙에 대담한 것이었기에 만화성모는 다소 특이하게 본 모양이었다 백룡생은 즉시 그쪽을 향해 정중하게 포권을 하며 대답했다. "소생은 바로 옥허산인이라 하오." 백룡생은 기왕에 무당파를 대표하여 끼어 들었으니 도호를 대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교자안에서 다소 의외인 듯한 음성이 터져 나왔다. "그럼 그대는 바로 무당파의 제자란 말인가?" 이때, 현진자가 뒤에 서있다가 옆으로 나서며 대꾸했다. "이분은 바로 본파의 최고배분인 우리의 소사숙이요, 그러니 당신은 말을 조심하도록 하시오!" 청진자나 옥진자와 같은 사람이었으면 감히 만화성모에게 그런 말을 할수가 없었겠으나 현진자는 워낙 백룡생을 존경하고 있었던 터라 두려움없이 그렇게 말했던 것이다. 교자안에서 다시 놀란 음성이 터져 나왔다. "그대는 바로 무당삼자의 하나인 현진자로군. 그렇다면 정말로 그가 무당파의 허자배의 사람이란 말인가...?" 백룡생은 가능한한 그녀에게 믿도록 하고 싶었으므로 즉시 말했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어야만 일이 쉽게 매듭될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렇소, 나는 바로 옥허산인이 틀림없소." "..." 잠시 교자안에서는 말이 없었다. 아마도 만화성모는 이 일의 진위를 가려보려는 모양이었다. 그 가 문득 보다 냉랭한 그녀의 음성이 흘러 나왔다. "강호에는 별 해괴한 일이 다 있으니 네가 무당파의 소사숙이라고 해서 이상할 것은 하나도 없지, 헌데 네놈은 무엇 때문에 나섰느냐?" 그녀의 음성은 이미 상대를 무시하는 욕설이었다. 그러나, 백룡생은 평소에도 그러한 말에 구애되지 않았으므로 담담히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당신에게 무당파에도 인재가 잇고 태극혜검법의 진수를 보여줄 것이오. 그리고..." 백룡생은 잠시 말을 끊었다. 그러자, 문득 교자안의 음성이 싸늘하게 말을 잘랐다. "우리를 물러서게 하겠다는 말이냐?" 백룡생은 고개를 숙였다. "실로 그렇소. 기실 이렇게 서로 피를 흘리며 싸우는 것은 모두가 부질없는 짓이니, 더이상의 싸움은 벌이지 말고 그냥 물러가 주기를 바라오." 백룡생의 그 말은 아까의 그 대담한 용기에 비해 다소 어리숙한 점이 있었다. 세상에 그와같은 말을 듣고 정말로 따를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일순, 교자안에서 다시 어이없는 듯한 냉소가 흘러 나왔다. "흥! 정말 어처구니 없는 녀석이로군. 얘들아! 뭣하느냐? 이런 녀석은 신경쓸 필요가 없으니 어서 모두들 해치워라!" 백룡생이 아무리 특이하고 대담하게 행동을 하더라도 어찌 만화성모가 그 때문에 쓸데없는 시간과 힘을 낭비하겠는가? "알겠습니다. 성모님--!" 십이향신녀는 내심 기다리고 있다가 즉시 소리높여 일제히 대답했다. 그리고, 그녀들은 즉시 날벼락같은 신법을 발휘하여 아직 멍하니 이쪽을 바라보며 움직이지 않고 있는 만화교도들을 재촉하기 위해 그쪽으로 움직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렇게 하려고 조금 움직였을 뿐이었다. 헌데 그 순간, 실로 놀라운 사건이 벌어졌다. 그녀들이 마악 움직여 허공으로 떠오르는 찰나, 문득 한줄기 환각과도 같은 희뿌연 그림자가 거짓말처럼 일시에 그녀들의 사이를 한차례 휩쓸었다. 모든 사람들은 이러한 광경을 분명히 보았지만 그것은 너무나도 빠르게 일어난 일인지라 그들은 모두 이것이 환각이 아닐까 하고 의심했다. 그만큼 그 하얀 그림자의 행동은 믿을수 없을만큼 빨랐다. 게다가, 그것이 환각이 아니었다는 증거는 곧 드러났다. 그렇게 바른 신법으로 허공을 솟구치던 열명의 화의여인들이 돌연 갑자기 몸이 굳어 버린듯 땅바닥에 떨어져서 전혀 움직이지 못했던 것이다. 이것을 보고 비단 무당제자들 뿐만 아니라 만화교도들도 일제히 크게 경악했다. 이 샙이향신녀들이 누구인가? 그들은 바로 만화교내에서 교주와 소교주를 제외하고는 거의 수뇌부의 인물들이었다. 그만큼 그들의 무예는 뛰어나서 거의 적수가 없었는데 오늘 이렇게 일제히 제압되 수가 있다는 말인가? 물론 방금전의 그 희뿌연 그림자는 바로 백룡생이었다. 백룡생은 다시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제자리에 서있었는데, 장내의 모든 시선이 집중되거나 말거나 그는 여전히 담담했다. 그때, 이러한 놀라운 장내의 변화때문에 청진자와 심룡, 그리고 옥진자가 각각 화의여인과 궁장소녀로부터 몸을 빼내어 잠시 싸움을 멈추고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의 시선에도 불신의 표정이 가득했다. 그러나 가장 놀라운 변화는 바로 교자의 앞에 있었다. 거기에는 지금 언제 나타났는지도 모르게 한명의 백발의 백의여인 이 거짓말처럼 서있었던 것이다 -- 백의여인, 그녀의 용모는 일견하기로도 매우 특이했다. 우선 그녀는 머리가 백발인데도 불구하고 얼굴은 아직 삼십대의 팽팽한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녀의 전신에서는 이루 형용하기 어려운 백색의 투명한 기운이 일어서 그녀의 신형을 흐려 놓았기 때문에 그녀의 몸은 마치 실제가 아닌 허깨비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녀를 허깨비라고 말할수가 있으랴. 전신은 비록 백색투명한 허깨비처럼 흐릿했어도 그녀의 두눈에서는 실로 무시무시한 광채가 마치 햇살처럼 강렬하게 빛나고 있었으니 그녀는 인간이 아닌것 같았다. 그럼 인간이 아니면 무엇일가? 그년ㄴ 바로 교자안에 있었던 만화성모인 것이다. 마치 그것을 증명하듯 아까와 똑같은 음성이 그녀의 입속에서 흘러 나왔다. "너는... 너는 대체 누구냐?" 그녀의 음성은 그러나 심한 흥분으로 인해 다소 떨리고 있었다. 백룡생은 그녀를 보고서도 여전히 담담한 표정이었다. 그는 즉시 포권하며 그녀에게 말했다. "나는 옥허산인이오. 이미 말하지 않았소?" 이때, 장내의 모든 사람들은 만화성모의 공포스런 진면목을 보고는 저마다 크게 경악하여 숨을 죽인채 몸을 경직시키고 있었다. 만화성모는 그러나 즉시 고개를 내저었다. "무당파에서는 너와 같은 인재를 길러낼 수가 없다. 그리고 네가 방금전에 펼쳤던 무예는 무당파의 무공이 아니었다!" 그렇다. 백룡생은 방금전에 십이향신녀가 움직이자 문득 다급해진 나머지 무의식적으로 그녀들을 제지하기 위해 무공을 펼치게 되었다. 그런데 그것은 워낙 촉망중의 일이었는지라 무당파의 무공이 아니었다. 백룡생이 순간적으로 몸을 움직여서 일시적으로 열명의 십이향신녀를 제압한 무예는 순간적으로 그가 떠올린 자연스런 무예라고 할수가 있었다. 이는 바로 그 무예가 극의에 이르렀기 때문에 어떠한 초식이라도 펼칠수가 있다는 이론과도 같은 것이었다. 백룡생은 금강불괴를 성취하고 내공을 완성한 후에 자연스럽게 이와같은 무예를 펼칠수가 있게 되었다. 이것은 말하자면 어떠한 형식이 굳이 필요없는 무형식의 무예, 즉 지상최고의 무예라고 알려진 무형검과도 통하는 논리였다. 백룡생은 아직 완전하게 무형검에 도달했다고는 말할수가 없으나, 워낙 그가 무예에 신경을 쓰지 않아서 그렇지 십중팔구는 그렇다고 말할수가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요체를 꿰뚫고 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만일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금방이라도 무형검의 경지에 도달할수가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백룡생은 지금 그러한 것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있었고, 만화성모도 아직까지는 그러한 생각을 하지 못하고 단순히 초식만을 생각하고 있는 중이었다. 백룡생은 자신의 일시적인 무예를 그 짧은 순간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간파해 버리자 일순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나 내가 무당파의 사람인 것은 사실이오. 아까는 잠시 실수한 것이지만, 이제는 무당파의 절학을 펼쳐 보이면 될 일이 아니오?" 만화성모의 눈빛이 괴이하게 빛났다. "그럼 너는 태극혜검법을 정말로 알고 잇단 말이냐?" 백룡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무당파의 제자를 자처할 수가 있겠소?" "..." 만화성모는 그 괴이한 눈빛을 점차 강렬하게 확산시키며 백룡생의 전신을 뚫어지게 주시했다. 백룡생의 몸은 겉으로 보기에는 거의 무공을 연성한 흔적이 드러나지 않았다. 단지 그의 전신에는 왠지 맑고 투명한 기운이 서광처럼 어려 있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만화성모는 불과 조금전까지만 해도 그런 점들을 보면서도 백룡생이 실로 이러한 무공을 가졌다는 것과 그의 말을 믿지 않았었다. 백룡생의 두눈에서 빛나는 맑은 광채는 역시 무공에서 나오는 신광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지금 현실을 보았기 때문에 인정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을 인정하자니 그녀의 무학에 대한 근본상식이 완전히 허물어지는 듯한 감각을 맛보아야 했다. 대체 이러한 사실을 믿어야 한단 말인가? 만화성모의 괴이한 시선은 그런 의미였다 허나, 기실 백룡생이 말한것은 굳이 말하자면 이치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그는 무당파의 사람이라면 당연 태 혜검법을 알고 있다고 말했는데 그것은 결코 사실이 아닐뿐만 아니라, 얼마전에는 무당파의 장문인 조차도 그 진정한 요결을 알지 못했었던 것이다. 아마 무당파의 장문인이 아닌 제자로서 태극혜검법을 알고있는 사람은 그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만화성모는 이순간 백룡생이라는 낮도깨비와 같은 존재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그러한 것을 따지지 않았다. 제 35 장 만화성모 백룡생은 그녀를 향해 다시 웃으며 말했다. "사실 이렇게 피비린내나는 혈전을 벌여서 좋을것이 뭐가 있겠소? 나는 지금 태극혜검법을 시전해볼테니, 당신들은 그냥 물러가는 것이 어떻겠소?" 사람들은 이 말에 다소 당혹감을 느꼈다. 그들은 백룡생이 혹시 멍청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그의 무공은 경악스러운 바가 있지만, 이 만화교는 무림을 제패하기 위해 무당파를 멸문시킬 목적으로 여기에 온 것이다. 그렇다면 오직 피가 튀기는 혈전과 삶과 죽음만이 있을 뿐이지 어떻게 만화교가 순순히 그냥 물러갈 수가 있겠는가? 그러나 만화성모는 냉랭하게 대꾸했다. "우리가 물러가는 것은 둘째치고, 우선은 네가 태극혜검법을 시전하는 것을 보아야겠구나? 백룡생은 그녀의 말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으나 역시 자신이 한수를 보여지지 않으면 안되리라 생각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그럼 당신이 나와 상대가 되어 보겠소?" 이때, 옥진자와 싸움을 하다가 멈춰서 있던 궁장소녀가 만화성모의 앞으로 다가들며 말했다. "사부님, 제가 그와 한번 대결해 보겠어요!" 만화성모는 그 말에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네가 한번 해보아라!" 만화성모의 태도는 다소 기이했다. 그녀는 궁장소녀가 백룡생의 상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백룡생은 궁장소녀가 앞으로 나서자 자신의 수중에 병기가 없음을 생각하고는 즉시 고개를 돌려 현진자에게 말했다. "나에게 병기를 빌려 주겠소?" 현진자는 이말을 듣고 생각했다. (태극혜검법은 반드시 검으로 시전을 하시는 하는 것인데 소사숙께서는 어째서 나의 병기를 달라는 것일까?) 현진자가 가지고 있는 병기는 한자루의 날이 두터운 칼이었다. 이 칼로써 무공을 펼치는 것과 검으로 무공을 펼치는 것은 겉으로는 비슷해 보여도 실상은 완전히 판이한것이다. 따라서, 현진자가 비록 백룡생을 신뢰하고 있다고는 하나 순간적으로 걱정이 되어서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이미 백룡생이 그렇게 말했기 때문에 비록 걱정은 하더라도 즉시 허리에서 칼을 뽑아 공손히 그에게 바치는 수 밖에 없었다. 헌데 이때였다. 백룡생이 그것을 뽑아들기 위해서 그쪽으로 몸을 기울이는 순간, 갑자기 궁장소녀가 번개처럼 달려들며 그의 뒷등을 기습하는 것이 아닌가? 이것은 실로 모든 사람에게도 의외의 것이었다. 그들은 궁장소녀와 백룡생이 정정당당하게 비무를 겨룰 줄로만 알았지 이렇게 궁장소녀가 급작스럽게 기습을 할줄은 몰랐었다. 아마도 궁장소녀는 이번의 일격에 전력을 다한것 같았다 그도 그럴것이, 그녀는 이미 백룡생이 실력을 아까 보았었기 때문에 가장 빠르게 그를 제거하는 길만이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궁장소녀는 옥진자를 맞아서 열심히 공방을 벌이기는 했어도 그렇게 전력을 다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녀가 이번에 전력을 다해서 기습을 하게 되자 그녀의 진정한 실력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그녀는 원래 백룡생과는 삼장의 거리를 두고 있었다. 헌데, 그녀의 신형이 별안간 뿌옇게 흐려지는듯 하더니 갑자기 백룡생의 등뒤 지척에 다가들어 완전히 백색투명한 장력으로 소리없이 백룡생의 몸을 완전히 뒤접어 씌우는 것이 아닌가? "앗..." 누군가의 입에서 이러한 비명이 절로 터져나올 정도였다. 그들은 이미 이 궁장소녀의 장력의 위력을 목격했기 때문에 한순간 그 백색광채에 둘러싸인 백룡생의 전신이 갈가리 터져 나가는 듯한 착각을 맛보았다. 아니, 최소한 백룡생이 제아무리 재주를 부린다고 해도 팔다리 등 어느 한 곳은 여지없이 잘려져 나가리라는 것이 대부분의 생각이었다. 헌데 그때였다. 백룡생은 전혀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듯 태연하게 현진자의 칼을 받아들고 그녀에게 몸을 돌리는 것이 아닌가? 자연 그 순간에 이미 퍼퍼퍼퍽! 하는 굉장한 소리와 함께 궁장 소녀의 백색의 눈부신 장력은 수십 수백 차례나 백룡생의 몸에 적중되었다. ...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백룡생은 그러한 가공할 공격을 고스란히 몸에 맞고서도 여전히 태연하게 웃으며 궁장소녀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일시 그가 너무나도 많은 공격을 받은 나머지 그 상태로 죽어버린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백룡생은 이미 지척에 이르러 있는 궁장소녀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이윽고 웃으며 덤덤하게 말을 했던 것이다. 사람들은 그러한 광경을 보고 믿을수가 없어서 저마다 입을 크게 벌리고 다물지를 못했다. 이것은 과연 사실일까? 혹시 꿈이 아닐까? 궁장소녀의 공격이 필시 솜방망이가 아닌한은 최소한 어떤 탸격이 있었을텐데 어떻게 이럴수가 있단 말인가? "낭자는 좀 성급하군요? 하지만 우리 다시 시작해 봅시다." "..." 궁중소녀 역시 믿기지 않는지 한동한 멍하니 몸이 굳어진채 백룡생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가 낭자 운운하며 부르자 일순 그녀의 안색에 빨갛게 물들어졌다. 여태 그녀는 그러한 소리를 남자에게서 들어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녀는 지금까지 은밀한 곳에서 무공연마에 전념하며 여자들로 부터 시중을 들어왔을 뿐인데 언제 그런 말을 들어볼 수가 있었겠는가? 허나, 순간 현실을 지각한 그녀는 즉시 뒤로 몸을 슬쩍 빼면서 제차 아까와 같은 공격을 백룡생의 면전에 펼쳐냈다. 그녀는 비록 방금전의 공격이 차단되기는 했어도 그러한 사실을 믿을수가 없었던 것이다. 일순, 그녀의 전신에서 다시 무수한 백색의 광영이 눈꽃처럼 일어나며 백룡생의 몸을 뒤덮어 갔다. 백룡생은 그것을 보자 일순 빙그레 미소를 떠올렸다. "좋은 수법이오!" 그와 동시에, 그는 어느새 다리를 굽히지 않은 상태에서 이미 허공을 미끄러져 뒤로 일장이나 후퇴하고 있었다. 이어, 그는 현진자에게 빌린 칼을 들어서 태극혜검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허나 그는 지금 칼로서 무예를 펼치고 있는 것이지 어찌 그것을 검법이라고 말할수가 있으랴. 그것은 당연히 태극혜도법이라고 불러야할 것이다. 원래, 백룡생은 당연히 검을 빌렸어야 했지만, 이때 전에 그가 장검을 빌렸던 운학도장은 멀리 진무칠절진의 중앙에서 무당도인들을 지휘하고 있었고 옆에 서 있는 옥진자등은 그에게 장검을 빌려주지 않을 것이 뻔했다. 따라서, 백룡생은 뻔히 알면서도 현진자에게 칼을 빌리게 된 것이다 . 원래 일반 무림인들에게는 칼로서 태극혜검법을 펼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왜냐하면, 이 칼이라고 하는 것은 그 성질이 강맹하고 격렬한 반면에 검의 성질은 표홀하고 부드러운 갖가지의 변화를 연출하는 것이니 어찌 동일하게 취급할 수가 있겠는가? 만일 하류의 단순한 초식을 펼친다면 문제가 다르겠지만, 이런 상승의 심오한 무학을 펼치는데 있어서는 그저 실오라기와 같은 차이가 있어도 커다란 장애로 작용하는 것이다. 자연, 칼로써 검법을 펼치기 위해서는 미리 검법을 도법으로 변형을 시켜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백룡생은 미처 그러한 여유가 없었지만 이미 그렇게 하는것은 그에게 있어서는 쉽고도 쉬운 일이었다. 그는 요체를 이미 정확하게 꿰뚫고 있는 사람이기 대문에 비단 칼이 아니라 창이나 곤이라고 할지라도 태극혜검법을 대신해서 펼칠수가 있는 것이다. 물론 그때는 태극혜검법이 아니라 당연히 형태가 태극혜창법 이나 태극혜곤법이 될 터이지만, 어쨌든 중요한 것은 그 속에 스며있는 완전한 무학의 이치인 것이다. 백룡생은 일단 택극혜도법을 펼치기 시작하자 일순 그의 신형은 뿌연 도기속으로 완전히 사라지며 그 자리에는 단지 하나의 거대한 칼만이 남았다. 그러나, 그것은 현진자가 그에게 주었던 바로 그 칼이 아니었다. 지금 모든 사람의 눈앞에 보이는 칼은 그 크기가 무려 사람의 키만큼이나 컸으며, 그것은 거대한 도기의 결정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물론 태극혜도법의 정체는 단순히 그렇게 도기가 거대한 칼을 형성하는 것만이 아니었다. 그러한 칼은 사실 고정되어 있는 것 같지만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실상이 아닌 허상이라고 말할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굳이 허상이라고 하면 허상도 아니었다. 궁장소녀는 일순 자신의 무수한 장영이 거짓말처럼 스러지며 가공할 검기의 세력이 그녀의 몸을 해일처럼 파고듬을 느꼈다. 그녀는 이미 백룡생의 모습은 간곳이 없고 어느새 사방이 엄청난 기운의 도기로 가득차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일순 게속해서 자신의 무공을 펼쳐서 방어를 하려고 했지만 그것은 모두가 허사였다. 그녀가 일단 내공을 끌어올려 발출하기만 하면 즉시 그것은 거짓말처럼 흔적없이 스러지곤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마치 그녀의 전신이 망망대해에 빠진것 같은 느낌과 같기도 했다. 대자연의 거대한 힘, 그앞에서 한낱 인간의 몸짓은 무력하기만 한 것이다. 궁장소녀는 일시 그러한 착각 속에서 할 수 없이 모든것을 포기하고 눈을 감고 말았다. 허나, 그녀의 그러한 생각은 단순한 착각만은 아니었다. 이 태극혜검법은 동중정, 정중동의 극치로써 단순히 장검을 움직이는 것이라기 보다는 검기를 운용하는 것이었다. 태극검법은 장검을 운용하는 것이지만 이것은 검기를 운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더욱 어려우며 그 조화는 무궁무진했다. 그것이 대성의 경지에 이르면 하나의 거대한 검이 나타나며, 그 검기로 이루어진 검은 점차 거대하게 확산되어 사방을 온통 검기의 세력 아래로 만들어 놓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비록 검초가 있기는 해도 검법이 아닌 검도에 가까왔다. 백룡생이 마음만 먹으면 전혀 반항도 하지 못하고 그 거대한 검기의 흐름에 휘말려서 간단하게 죽고마는 것이었다. 허나, 백룡생은 전혀 이 궁장소녀를 죽이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는 비단 이 소녀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때는 이미 거대한 칼의 모양을 하고 있던 도기가 넓게 확산되어 사방을 안개처럼 뒤덮고 있는 중이었다. 헌데, 백룡생은 궁장소녀가 눈을 감고 반항을 포기하자 즉시 도를 멈추고 내력을 거두어 들였다. 그러자, 일순 그렇게 가득차 있던 사방의 안개같은 도기가 금방 씻은듯이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사람들은 태극혜검법을 보게 되었다고 생각했었는데 느닷없이 태극혜도법을 보게 되었고, 다시 이런 조화를 보게 되자 일순 저마다 눈이 휘둥그래졌고 희안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궁장소녀는 곧 자신의 목이 그 가공할 도기 아래 잘려져 나갈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눈을 꼭 감고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되기는 커녕 일순 무서운 기운이 흔적없이 사라진 것 같지 않은가? 그녀는 즉시 눈을 크게 떴다. 과연 그녀의 생각대로였다. 사방에 자욱하던 도기는 완전히 사라지고 백룡생은 여전히 자신의 앞에 서서 담담한 웃음을 떠올리며 칼을 매만지고 있었다. 그것을 본 궁장소녀는 생각했다. (나는 원래 그를 죽이던가 아니면 내가 죽거나 최소한 부상을 입었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나를 고의로 살려주었으니 이는 사부님의 명성에 누를 끼치는 일이었다. 따라서, 나는 그와 지금 당장 생사결전을 벌이지 않으면 안된다!) 순간, 그녀의 전신에서는 구음신공의 내력이 발작적으로 끊어 올랐고, 어느 한 순간 그녀의 신형은 백룡생의 전면으로 파고들어 무서운 백색장영 을 가득 발출시키기 시작했다. 퍼퍼퍼퍽...! 흡사 가죽부대를 두드리는 듯한 요란한 음향이 사위를 진동시키기 시작했다. 헌데 이때, 사방의 모든 사람들은 백룡생의 그러한 절기에 저마다 넋이 빠져서 멍하니 아무 생각도 없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궁장소녀가 갑자기 다시 달려들어 공격을 할 줄은 몰랐는지라 다시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그리하여, 지금 사방은 더할나위 없이 고요한 정적을 유지하고 있는 가운데 그녀의 공격하는 요란한 소리만이 울려퍼질 뿐이었다. ... 그 은 실로 괴이한 분위기를 연출시켰다. 궁장소녀의 백색장영이 마치 푹죽처럼 쉴새없이 백룡생의 전신에 작렬하고 있었는데도 백룡생은 그저 다소 어색한 표정으로 덤덤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이것은 믿을 수 없는 광경기도 했다. 하지만 사실이었다. 기실, 백룡생은 이미 내공의 최상승의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그의 내력은 이미 더이상 오를수가 없는 경지에 올라 있었기 때문에 내력을 주무기로 하는 궁장소녀의 장영은 아무리 파괴적이라고 해도 단지 그의 몸에 흡수될 뿐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강물이 바닷물에 흡수되고 시냇물이 강물에 흡수되는 이치와도 흡사했다. 백룡생의 체내에 존재하고 잇는 내력은 마치 바닷물과도 같아서 무궁무진했다. 그런데, 궁장소녀가 제 아무리 파괴적인 무공을 펼치고 있었어도 이미 금강불괴인 그의 몸이 조금이라도 손상을 입을 이유가 없을 뿐만 아니라, 진력이 거짓말처럼 흡수되어 단지 미약한 가죽부대 두드리는 듯한 소리만이 울리고 있었던 것이다. 만일 모르는 사람이 이러한 광경을 보았다면 아마 그는 궁장소녀의 무예를 의심했을 것이 틀림이 없었다. 백룡생은 물론 그녀의 공격을 피할수도 있었다. 그러나, 궁장소녀의 필사적인 눈빛을 보았기 대문에 그는 차라리 그냥 그녀의 공격을 맞고 있는 것이었다. 장내에는 잠시 궁장소녀의 공격하는 소리외에는 괴이한 침묵이 흘러갔다. 그러다가, 궁장소녀도 마침내 더이상 어쩔수가 없다는 것을 알았는지 진력의 거의 탈진되고 얼굴색이 빨개진채로 그녀는 손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멍하니 백룡생의 얼굴을 올려다 보았다. 방금전에 그녀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온갖 재주를 모두 다 부려 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녀는 매초식마다 그의 급소인 사혈만을 골라서 공격을 했고, 대론 날아가는 그녀의 진력은 강기화하여 보통의 장검보다도 오히려 예리했다. 그랬건만 그는 피부하나 다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옷자락하나 상하지 않았다. 이것은 대체 믿을수가 있을까? 궁장소녀는 그만 넋을 잃고 얼굴색이 빨개진채로 멍하니 백룡생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여전히 백룡생의 안색은 담담하고 태연했다. 그는 그 맑고 고요한 눈빛을 아래로 내려서 궁장소녀의 시선을 마주보다가 그녀가 매우 무안해 한다고 생각한 나머지 웃으며 말했다. "우리는 공연히 싸우지 말고 친구가 되는 것이 좋을 것이오. 안 그렇소. 낭자?" "..." 궁장소녀는 묵묵히 그를 마주보며 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그녀의 얼굴이 그의 시선을 받아서 더욱 붉어졌을 분이었다. 그때, 문득 만화성모의 싸늘한 음성이 들려왔다. "란아! 그만됐다. 돌아오너라!" 그 말에, 궁장소녀는 일순 가벼운 한숨을 내쉰 뒤 곧장 몸을 돌려 만화성모의 옆으로 돌아갔다. 그녀가 방금전에 내쉰것은 안도의 한숨인지 뭔지 잘 알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자, 백룡생은 다시 만화성모와 대면하게 되었다. 백룡생은 그녀에게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제는 태극혜검법을 보셨으니 그만 돌아가는 것이 어떻겠소?" 많은 사람들은 지금 전혀 소리하나 내지 않고 그의 음성을 듣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백룡생의 무학에 대해서 경악을 거듭한바가 있었지만 지금 그의 말을 듣는순간 그것은 실로 말도 안되는 것이라고 느꼈다. 이미 쌍방간에는 엄청난 피해자가 생겼고, 따라서 무당파는 이대로 물러서지 않으려고 할 것이며 만화교도 기왕에 어려운 행동을 개시했으니 그냥 물러서지는 않을 것이다. 이 만화성모도 태극혜검법을 보려고 온 것이 아닌바에야 어찌 그러한 말을 할수가 있다는 말인가? 사람들은 이 백룡생을 본 순간 그의 말에서부터 이치가 닿지 않고 더욱이 무공까지 불가사의하니 그만 정신이 혼란되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다만 이 만화성모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것 같았다. 그녀는 태연한 기색으로 말을 받았다. "우리는 때가 되면 당연히 돌아갈 것이다. 헌데 과연 우리가 돌아간다고 해도 저들이 그냥 우리를 내버려둘까?" 만화성모는 손가락으로 옥진자를 가리켰다. 이대, 옥진자의 안색은 매우 복잡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그는 설마 백룡생의 무예가 이 정도에 이르렀을 줄은 몰랐을 분만 아니라 태극혜검법의 진수를 보게되자 마음이 크게 흥분되어 있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이미 그러한 검법이 한단계 진보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지금 그는 결코 그러한 일에 신경을 쏟고 있을 처지가 아니었다. 그는 무당파의 당당한 장문인으로서 모든일에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만화성모가 손가락으로 그를 가리키자 백룡생은 내심 가볍게 흠칫하여 옥진자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는 물었다. "장문사질, 우리는... 우리는 여기에서 그만두는 것이 좋지 않겠소?" 그 말에, 옥진자는 내심 어이가 없었다. 지금 무당파는 거의 수백명의 인영이 손상을 당한 후였다. 그것은 순전히 만화교가 무단히 침입해서 그렇게 된 것으로, 만일 여기에서 그가 이대로 물러선다고 결정한다면 많은 무당파의 제자들이 한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이 만화교는 이제 그야말로 철천지의 원수가 되었다. 게다가, 그들은 이미 무림제패를 노리고 있는 상황이니 설사 모두가 함께 싸워서 전멸을 당하더라도 이대로 그들을 놓아보낼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헌데, 백룡생이 무당파이 최고배분으로서 그따위 말을 하다니, 대체 그는 철이 없는 것일까? 옥진자는 전에 그를 다소 소홀이 대한 점이 마음에 걸리기는 했지만 이러한 점은 결코 그냥 넘길수가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백룡생의 무공이 기이하여 언뜻 만화교도들을 물러칠 희망이 보이지 않은가? 옥진자는 눈살을 깊게 찌푸리며 대꾸했다. "소사숙은 이미 본파의 수백명의 제자들이 저들의 손에 희생을 당한 것을 보고서도 그런 말씀을 하시오?" 이때, 만화성모는 백룡생의 신분에 대해서 긴가민가 하고 있었는데 옥진자마저 그를 소사숙이라고 부르자 백룡생이 무당파의 인물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백룡생은 옥진자의 말뜻을 파악하고는 담담히 웃으며 대꾸했다. "하지만 희생을 당한것은 저쪽도 마찬가지가 아니겠소?" 옥진자는 그 말에 격노하여 눈을 부릅떴다. "소사숙께서는 그것을 어찌 똑같이 볼수가 있겠소? 그들은 침입자이고 우리는 피해자인 것이오. 그들이 죽음을 당한것은 당연하지만 우리가 희생을 당한것은 억울하기 짝이없는 일이오. 소사숙께서는 어찌 이런점을 망각하시오?" 백룡생은 웃으며 대답했다. "나 역시 그런점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계속 무의미하게 서로간의 살상을 계속한다면 그것은 무슨 득이 있겠소?" 옥진자는 싸늘하게 대꾸했다. "물론 득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은 천만금의 보화를 얻는 것이나 다름이 없소. 왜냐하면 강호의 사악한 대방파를 멸망시키는 것이기 때문이오. 그것은 천만금을 얻는 것이나 다름이 없소." 이때, 수많은 무당파의 제자들이 장문인의 그와같은 말을 듣고 있었다. 그들은 본래 공포에 질리고 싸움에 지쳐 있었으나 그와같은 말을 듣고는 심히 옳다고 여겨서 내심 투지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 제마멸사 파사현정. 실로 이것이야말로 그들이 누차 배워왔던 정협의 길이요, 무인의 대의에 임하는 유일한 길이었기 대문이다. 따라서, 무당파는 그동안 누차에 걸쳐서 강호의 마두들을 제거하고 정도천하를 이루기 위해 노력해 왔으며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뤄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죽는다고 해도 모두들 당연하고도 영광으로 생각했고 오히려 자랑스럽게 후배에게 정신적인 유산으로 물려 내려왔던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무당제자들의 마음에 격렬한 투지가 불타오른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허나, 백룡생의 생각은 그와는 또 달랐다. 그는 다소 어색하게 웃더니 말했다. "장문사질의 생각은 틀렸습니다. 사람이란 모두 한가지인 법인데 단지 그 생각이 다소 잘못되었을 뿐이오. 그러하거는 이렇게 모든 사람을 다만 죽이려고 하고 말로써 깨우치려고 하지 않는다면 어찌 무모하다고 하지 않을수가 있겠소?" 이는 백룡생이 자신의 생각을 말한 것이다. 그러나, 무당제자들은 그 말을 듣는순간 일제히 말도 안된다고 내심 소리쳤다. 그들은 백룡생의 놀라운 무예에 처음에는 다소 존경심까지 느꼈으나 이제는 매우 실망하는 마음이 들지 않을수가 없었다. 대체 그는 어째서 이렇게 시세를 모른단 말인가? 지금 이들 만화교의 인물들이 그의 말처럼 말로해서 알아듣는 사람들이란 말인가? 무당파의 제자들은 어이가 없어서 매우 흥분하여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때, 이에 편승하여 옥진자가 돌연 자신의 허리에 채워져 있던 하나의 작은 보검을 검집채 빼들고서 우수에 들고 머리위로 쳐들며 소리쳤다. "무당파의 제자 옥허는 조사의 명을 받들라!" 사람들은 순간 흠칫하여 그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 작은 보검의 크기는 마치 비수처럼 작았다. 그러나 상당히 연대가 오래된 듯 고색창연했을 뿐만 아니라 놀랍게도 그럼에도 갖가지의 보석으로 꾸며져 있어서 상당히 화려해 보였다. 이것은 바로 무당파의 조사신물 진무검령이라는 것이었다. 원래 이것은 천년전의 장삼봉진인이 사용했었다는 것으로, 그것은 장문인의 신물이며 또한 무당파를 대표하는 조사의 신물이었다. 누구나 이 진무검령을 본다면 조사를 대하듯이 그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은 원래 무당파의 장문인이 소유하는 것이었는데, 과거 무애상인은 다행스럽게도 이것만은 남겨두고 실종되어서 사라지지 않았던 것이다. 백룡생도 물론 저번에 조사전에서 모든 규정에 대해서 들을때 이런 사항을 들었기 때문에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 옥진자가 그것을 사용할 줄은 미처 몰랐었다. 백룡생은 옥진자가 진무검령을 높이 들고 소리치자 일순 허리를 숙이고 대답했다. "제자는 명을 받겠습니다." 옥진자는 그것을 보고 냉엄하게 말을 이었다. "이것은 무림대의를 위하는 것이니, 옥허는 어서 저 만화교의 악당들을 남김없이 주살하도록 하라!" 무당제자들이 보기에는 옥진자의 그러한 지시는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백룡생은 마음이 달랐다. 그는 생각했다. (남김없이 주살하라고? 내가 어찌 그럴수가 있겠는가?) 백룡생은 잠시 머뭇거렸다. 그러자, 옥진자는 그가 감히 반기를 드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싸늘하게 다시 소리쳤다. "그대는 감히 조사의 명령을 듣고 있으면서도 우물쭈물 하는가? 어서 빨리 시행하지 못할까?" 백룡생은 그 말에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내가 만일 그 지시를 따르지 않는다면 어찌되는 것이오?" 옥진자는 그가 감히 그와같은 말을 하자 대노하여 소리쳤다. "만일 그런다면 그대는 본파에서 파문축출 당하는 것이다. 그런것도 몰랐던가?" 백룡생은 그 말에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나는 차라리 파문축출을 당하겠소!" 제 36 장 파문축출 그 말에, 장내의 무당제자들 뿐만 아니라 비단 만화교의 여인들조차도 일시 크게 경악하고 의아해했다. 만화교의 여인들은 백룡생의 무예가 실로 불가사의하여 매우 두려운 상대로 생각하고있었는데 느닷없이 그가 자신들을비호하고 그로인해 파문축출 당하기에 이르자 이는 매우 신기하고 희안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들은 오늘단지 무당파를 멸문시키기 위해 온 것인데 이런 진기한 광경을 보게 될줄은 어찌 알았으랴! 반면, 옥진자를 비롯한 무당제자들은 그말에 크게 수치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들은 일생동안 가장 커다란 책벌은 파문축출이며 그러는 바에는 차라리 목숨을 버리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무림에서 명예라고 하는것은 목숨과도 바꿀수가 있는 것이다. 게다가, 문파에서 축출을 당하면 비단 그 문파의 무예를 모조리 제거당할 뿐만 아니라 그 문파의 인물들과도 서로 원수가 되는 것이니 문파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입장에서 어찌 그럴수가 있겠는가? 뿐만 아니라 그 문파의 무공을 제거당하면 거의 한평생을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니 어찌 감당할수가 있겠는가? 그런데, 지금 백룡생은 무당파에서 축출을 당하는 것을 마치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그 말을 듣고나자 그의 무공이 놀라운 것을 생각하여 그에게 다소의 호의를 갖고있던 사람들도 일시 크게 격분했다. 이제 거의 무공이 높은것은 그들에게 분노의 대상이 되고 있었다. 아마도 그는 자신의 무공을 믿고 말을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옥진자의 안색은 일순 여러차례 일변했다. 그는 사실 한순간의 분노가 이러한 행동을 보인 것이었는데 그는 정말로 백룡생이 그러한 대답을 할줄은 미처 몰랐다. 원래 그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백룡생이 축출되는 것을 물론 바라지는 않았다. 단지 조사의 위세와 대의에 입각해서 백룡생을 움직이려 했을 뿐이었다. 헌데 실로 이와같은 상황으로 변하자 그는 내심 크게 당황하는 마음이 되었다. 아무리 생각하여도 백룡생이 없다면 오늘 무당파가 멸망을 당하는 것은 기정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일파의 장문으로서 더군다나 조사의 이름으로 말한 것을 다시 줏어담을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안색을 붉게 물들이고 냉랭하게 물었다. "만일 그렇다면 그대의 인도자인 현진도 책벌을 당하게된다. 그래도 좋단 말인가?" 과연, 옥진자의 말대로 한 사람이 축출의 죄를 지면 그를 인도한 사람이나 그의 사부도 연달아 벌을 받아야 하는 규정이 있었다. 그러나, 백룡생은 잠시 생각한 후에 고개를 흔들었다. "내가 무당파의 제자가 된 것은 당신의 요청이었지 현진사질의 요청이 아니었소. 물론 그가 나를 인도했을지는 몰라도, 이런 경우의 책벌은 간단할 것이오. 아니 설령 그의 책벌이 중해진다고 할지라도, 나는 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을 살상할 수는 없으니 그는 당지 그것을 인연이라고 생각해야할 것이오." 백룡생의 생각은 뚜렸했다. 옥진자는 최후의 미끼로 현진자를 이용했으나 그것마저 통하지 않자 어쩔수가 없다고 생각햇다. 이미 무당제자들 가운데 여기저기에서 그를 파문하라는 성화가 강렬하게 일기 시작했다. 그들은 비록 무공이 높고 낮음을 떠나서 백룡생과 같은 문파의 조사를 우습게 여기는 자는 함께 생활할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일순, 그들 가운데에는 격렬한 항의와 욕설이 일기도 했다. 허나 옥진자는 그것을 보고 은근히 원망하는 마음이 되었다. 그는 원래 백룡생을 억지로 입문시킨 것이었는데, 이렇게 파문을 하게되면 자신들만 손해라서 어이가 없게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시작을 자신히 했으니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옥진자는 하는 수 없이 백룡생에게 다시 말했다. "만일 그대가 파문을 당하게 되면 무당파의 무공은 도로 내놔야 하오." 백룡생은 그 말에 웃으며 대꾸했다. "당신은 네게 그런것이 있다고 생각하시오? 옥진자는 잠시 생각해보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보기에도 백룡생의 내공은 결코 무당파의 양란신공이나 순양무극공, 태극공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러한 내공을 연성하려면 많은 시일을 요하게 되는데, 백룡생에게 전혀 그러한 시간이 없었다. 다만 그는 무당파의 제반 초식들을 알고 있을 뿐이었는데 그것은 어쩔수가 없는 일이다. 옥진자는 내심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대는 그렇다면 앞으로 절대로 무당파의 무공은 사용하지 말아야 하오." 그가 한숨을 내쉰 것은 이 일이 결코 백룡생에게는 손해가 없을뿐만 아니라 오히려 자신들에게 무한한 불이익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원래, 백룡생이 무당파에 입문하고 나서의 무공을 폐하는 것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는 옥진자는 그와 같은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백룡생이 무당파의 초식을 배운 것은 그가 무당파에 입문하기 이전이었으며, 그는 그것들을 배운 댓가로 무당파의 절학을 무당파에 전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백룡생은 자신이 무당파의 무공을 굳이 써야할 필요가 없는데 다가 공연히 귀찮은 말다툼을 하기가 싫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그러자, 옥진자는 이제 할 수 없이 그를 파문해야할 형편에 이르렀다. 그는 비록 장문이어서 문파내의 거의 모든일을 마음대로 하지만 이러한 대의에 있어서는 문도들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수가 없는 것이다. 헌데 그가 진무검령을 든 손을 높이 올리고 마악 그와같은 축출의 선언을 하려고 했을 때였다. 청진자가 묵묵히 듣고만 있다가 일순 그에게 다가가서 입을 열었다. "장문사형, 지금 그일은 급한것이 아닙니다. 지금은 본파가 흥망의 기로에 잇는데 어찌 그런일에 마음을 쓰십니까? 그것은 우선 지금의 상황을 벗어난 다음에 다시 처리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청진자의 속셈은 역시 백룡생이 지금 축출되면 무당파의 상황이 암담해지기 때문에 그렇게 일부러 지연시킨 것이었다. 옥진자는 내심 매우 꺼리고 있었는데 청진자의 그와같은 말을 듣자 마치 고기가 물을 만난듯이 크게 좋아ㅎ여 소리쳤다. "그렇다! 반도 하나를 축출하는 것은 지금 그리 급한 것이 아니니 이 일은 나중에 처리하도록 하겠다!" 옥진자는 그 말을 하고는 다시 진무검령을 슬그머니 허리춤에 보관했다. 무당파의 제자들은 모두 그와같은 청진자의 말과 옥진자의 말에 일리가 있는 것이었기 대문에 달리 반박을 하지 못했다. 기실, 그들 역시 의기가 끓어서 한순간 격분하기는 했으나, 역시 목숨은 귀중한 것이어서 자신의 목숨을 생각할 때 은근히 백룡생이 축출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물론 이 일이 끝나고 나면 그때는 상관이 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옥진자의 행동은 그냥 흐지부지 끝이나고 말았다. 백룡생은 그가 그렇게 자신의 일을 뒤로 미루자 더이상 그와는 얘기를 할 수가 없다고 생각하고 나서 다시 만화성모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정중히 말했다. "무당파는 저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군요. 하지만... 한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것은 칠층의 보탑을 쌓는 것보다도 더욱 훌륭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부디 호생지덕을 발휘하여 그냥 물러가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백룡생은 비록 무당파가 원하지 않더라도 만화교주가 원한다면 그냥 물러가는 것은 어렵지 않은 것임을 알고 있었다. 만화성모는 그의 얼굴을 기이한 눈빛으로 주시하다가 싸늘하게 열명의 십이향신녀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렇다면 자네는 우선 저들의 혈도를 풀어주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렇다. 백룡생은 아까 그들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전신대혈을 제압해 놓았던 것이다. 이에 백룡생은 담담히 웃으며 대답했다. "그들의 혈도는 한시진이 지나면 저절로 풀어질 것이니 상관없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문득 이것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했다. 만화성모는 무공이 지극히 고강하여 누구의 점혈수법도 쉽게 풀수가 있을 것인데 어째서 백룡생에게 그와같은 말을 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바로 조금전에 그녀가 일일이 그녀들의 혈도를 풀어주려고 노력했으나 실패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몸은 움직이지 않고 암암리에 그 일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 만화성모는 일순 백룡생의 그와같은 말에 눈빛을 괴이하게 빛냈다. 그러다가 그녀는 말을 이었다. "좋네, 내 그렇다면 자네의 의견대로 이곳을 떠나도록 하지. 그 시기는 바로..." 이때, 만화성모는 말을 하다말고 문득 백룡생의 뒷쪽 허공을 바라보며 괴이하게 눈빛을 빛내며 소리쳤다. "앗, 저게 누군가?" 백룡생은 이순간 그녀가 자신의 의견대로 떠나겠다고 했고, 또한 그 시기를 말하려고 했기 때문에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그녀의 놀란 표정을 보고는 이상하게 생각했다. 만화성모의 두눈에서는 마치 정말로 낮도깨비라도 본듯한 표정이 실려 있었던 것이다. 기실, 백룡생은 요즘 들어서 한가지 기이한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어이없게도 이미 죽은 그의 어르신에 대한 생각이었다. 처음에도 그 노인의 죽음을 믿지 않았었지만, 요즈음 들어서는 더더욱 그가 죽지 않고 살아서 백룡생의 모든것을 돌봐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평소보다도 그가 깊은 명상에 들었을때 더욱 강렬한 예감이 작용했다. 사실, 노인이 죽고난 다음에 백룡생은 많은 기연을 얻어서 제법 성취를 이루었지만 그것은 오로지 그의 노력과 기연 이었다고 말할수가 있었다. 거기에서 어떤 인위적인 누구의 도움 따위가 개입된 것 같은 흔적은 없었다. 그러나, 그의 깊은 명상에서 오는 예감에 의하면, 이 모든 상황은 이미 그 노인이 예측을 한 것이며 미리 모든것을 내다보고 그를 이곳에 보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백룡생이 스스로의 힘으로 물속에서 기연을 얻은것 같지만 그것은 치밀한 노인의 안배에 의한 것이었으며, 노인은 은밀하게 백룡생이 이런길을 걷도록 유도하지 않았나 하는 것이었다. 그런 가운데, 백룡생은 누군가가 그 자신을 은연중에 보호하고 있는 것 같은 예감이 들며, 그런 사람이라면 오직 그 노인밖에는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 노인은 기실 백룡생이 생각하기에도 매우 신비로운 능력이 있었다. 뭐라고 꼬집어서 어떤 능력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워도, 노인의 행동거지에는 완전한 흐름이 엿보였고 게다가 자연스럽게 백룡생을 이렇게 키워놓았다. 그냥 보기에는 매우 평범해 보였지만 그의 행동에는 가만히 생각하면 부족한 점이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경지는 실로 지금의 백룡생으로서도 상상하기 힘들었다. 대체 그것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지금 백룡생을 여기에 보낸것도 노인의 안배일 가능성이 높았다. 노인이 그렇게 아무런 의미도 없이 죽을리는 없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노인이 그와같은 안배를 꾸몄다면 그렇게 쉽게 죽었을리는 없으니 지금 어딘가에 숨어서 몰래 그의 행동을 지켜보고 잇지 않겠는가? 백룡생은 깊은 명상에 들게되면 그런 시선이 어딘가에 느껴지고 있는 것 같은 예감이 들었던 것이다. 그는 따라서 구령산으로 돌아가서 노인의 무덤을 헤쳐보고 그 사실을 호가인하고 싶었다. 그러나, 만일 노인이 일부러 그러한 안배를 했을 시에는 뭔가 까닭이 있을 것인데 그는 자칫 그것을 자신이 깨뜨리지 않을까 하여 주저하고 있었던 것이다. 헌데 이때, 만화성모가 느닷없이 뒤를 바라보며 그와같은 표정을 짓자 그는 순간 혹시 어르신이 나타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강렬하게 일어났다. 원래 그는 만화성모의 말에 잔득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서 설령 그와같은 생각이 없더라고 필시 그녀의 시선을 따라서 고개를 돌렸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마음은 그만큼 순수하기 때문이었다. 허나, 그가 그순간 노인의 얼굴을 떠올렸기 때문에 그는 더욱더 화급하게 뒷쪽으로 고개를 돌리기 되었고 즉시 두눈을 크게 뜨고 정신을 집중해서 노인은 찾게 되었다. 그러나, 이상한 일이었다. 거기엔ㄴ 그저 텅빈 허공만이 있을 뿐 비단 노인뿐만 아니라 다른 어떠한 사람도 없는것이 아닌가? 심지어 거기에는 새 한마리도 날지 않는 푸른 창공만이 존재하고 있었다. 헌데 그때였다. 갑자기 백룡생은 전신에 무시무시한 공포스런 느낌이 뒤에서 섬뜩하니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그리하여 내심 궁금증에 휩싸여 잇던 백룡생은 자신도 모르게 빠르게 다시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게 되었다. 그 순간, 백룡생은 일시 놀라 눈을 크게 떴다. -- 만화성모, 그녀가 어느새 그의 지척에 다가들어 무서운 기운을 그에게 발출시키고 잇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 이것은 바로 만화성모의 간교한 계락이었다. 그녀는 일부러 말로써 이 순진한 배 생의 주위를 딴 곳으로 돌린 다음에 기습적으로 그에게 암습을 전개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녀는 왜 굳이 그런 비열한 암수를 선택했을까? 그것은 조금전에 그녀가 백룡생이 제압해 놓은 십이향신녀의 혈도를 풀지 못했다는 데에서 심한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그녀는 이 백룡생의 무공이 자신보다도 뛰어날지도 모르기 대문에 암습을 해서라도 그를 죽여야 겠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백룡생은 물론 워낙 순진하여 그녀의 계략에 보기좋게 넘어갔다. 게다가 그는 그 순간에 정신을 완전히 뒷쪽으로 쏟아져 노인을 찾고 있었기 때문에 미처 만화성모의 기척을 알아내지 못했다. 이 만화성모의 무공은 정말 가공스러웠다. 백룡생이 반격할 시간이 있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거짓말이었다. 백룡생이 그녀를 보고 놀라 눈을 크게 뜨는 순간 이미 그녀의 전신에서 발출된 햇살같은 백색의 거대한 덩어리는 가공할 기세로 백룡생의 가슴을 후려치고 있었다. 꽝--! 흡사 거대한 환산이 폭발하는 듯한 굉음이 울리며 지축이 다 흔들거렸다. 이 만화성모의 공력은 그 모양으로 보아 궁장소녀의 구음신공과 그 맥을 같이하고 있는것 같았다. 그러나, 비록 그 맥은 비슷할지라도 그 차원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궁장소녀의 구음신공은 백룡생의 체내에 그대로 흡수되었지만 만화성모의 그 태양같이 눈부신 백색의 광채는 백룡생의 몸에서 순간적으로 크게 반탄되었다. 백룡생은 순간 멍청하게 서 있다가 이 일을 당했다. 그는 거대한 굉음이 귓전을 울리고 그와 함께 전신에 거대한 충격이 느껴지는 것을 경험하며 아찔한 의식으로 몸이 뒤로 훌훌 달려갔다. 이것은 마치 만화성모가 그의 몸을 세게 날려버린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만화성모의 몸은 그 거대한 굉음이 있은 직후 가볍게 뒤로 한걸음 물러섰지만, 백룡생의 몸은 마치 추풍낙엽처럼 정신없이 무려 이십여장이나 까마득하게 날려갔던 것이다. 무당파의 제자들은 이것을 보고 그래도 백룡생에게 한가닥의 기대를 가지고 있었는데 절망하는 심정이 되었다. 아울러, 만화교의 여인들은 일순 자신들의 교주가 승리했음을 알고는 크게 함성을 내저었다. 만화교의 기세는 충천하여 금세라도 무당파를 뒤집을 것 같았고, 무당제자들의 안색은 극도로 침중해져서 결사항전의 심정으로 이를 악다물었다. 본래 백룡생의 무공은 지극히 놀라운 것이었는데, 그를 그렇게 날려버린 만화성모의 무공은 대체 어떻게 하겠느냐는 것이 그들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헌데 이때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뒷쪽으로 무려 이십여장이나 형편없이 날려갔던 백룡생의 몸이 거칠게 하나의 전각에 부딪쳐서 박살이 날 것 같았는데 그의 몸이 둥실 허공에서 멈춰서더니 천천히 아래로 내려서는 것이 아닌가? 사람들은 그가 그렇게 멀리 날려갈 정도라면 그는 이미 심한 내상을 입었을 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의 오산이었다. 지금 가볍게 몸을 뒤집고 천천히 허공에서 내려서고 있는 백룡생의 몸은 비단 여전히 단정했을 뿐만 아니라 안색의 변화도 없었다. 그의 눈빛은 여전히 맑았고 안색은 평온했으며, 얼굴에서는 역시 담담한 황금빛 광채가 투명하게 일고 있었다. 이것은 결코 내상을 입은 얼굴이 아니다. 이때, 무심코 만화성모쪽으로 고개를 돌린 사람들은 한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백룡생의 얼굴은 평온했지만 이 만화성모의 안색은 다소 창백한듯 찌푸려져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오히려 뒷쪽으로 날려간 백룡생은 멀쩡하고 암습을 가한 만화성모의 몸은 내상을 입은 것이란 말인가? 물론 그렇게 쉽게 단정을 내릴수는 없었다. 이런 극상승의 고수들의 대결은 누구도 쉽게 판가름할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표정으로 보아 만화성모가 다소 손해를 본 것은 틀림이 없는 것 같았다ㅣ. 이에, 모든 사람들은 즉시 희비가 크게 교차되었다. 만화교의 여인들은 금방 기세가 죽어 들었고, 무당제자들은 매우 기뻐서 환성을 울리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제 곧 백룡생은 자파에서 축출될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절로 우울해져서 금세 목소리를 낮추고 말았다. 어쨌든, 장내에는 기이한 분위기가 잠시 일었다. 그러다가 만화성모는 모든 사람들의 예측을 인정하기라도 하듯 주위의 만화교도들에게 이렇게 지시를 내리는 것이었다. "이만 돌아가자!" 그말을 끝으로 그녀의 신형은 흡사 꺼지듯이 사라졌다. 모든 사람들은 그녀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전혀 보지 못했는데, 그녀는 실로 다시 교자안에 들어간 것이었다. 그 신법은 워낙 발랐기 때문에 아무도 보지 못했다. 다만 그 자리에는 그녀가 마지막가지 백룡생을 향해 괴이한 시선으로 노려보던 광경이 여운으로 남았다. 만화성모가 교자안으로 들어가자 즉시 궁장소녀도 힐긋 백룡생을 주시한 후 따라들어갔고 즉시 교자는 하늘을 펄펄 날아서 빠르게 사라지기 시작했다. 무당파의 모든 제자들은 만화교에 대해서 원한을 가지고 있었지만 아무도 그것을 제지하지 못했다. 교자를 맨 두명의 백발노파는 그야말로 쏜살같이 허공으로 떠올라서 곧장 아득히 남쪽으로 사라져 버렸던 것이다. 그리고, 교자가 그렇게 아득한 하늘멀리 사라지는 동안 이미 만화교의 수만의 여인들은 마치 썰물이 빠지듯이 일제히 사라져 버리고 있었다. 무당도인들은 웬만하면 그녀들을 추격하여 수백명쯤 도살할수도 있었겠으나, 워낙 만화성모의 무예에 질려 있었기 때문에 감히 그럴 생각도 하지 못했다. 이렇게 무당파의 혈겁은 가까스로 중간에서 막을 내리게 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무당파가 건재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백룡생의 공로라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수는 없는 일이었다. * * * 백룡생은 지면에 천천히 내려서서 만화성모등이 돌아가는 것을 보고는 내심 다행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허나 그저 그뿐이었다. 그는 이제 부지런히 흩어져서 움직이기 시작하는 무당제자들의 은근한 눈총도 아랑곳하지 않고 천천히 걷기 가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제부터 그가 해야할 일을 생각했다. 해야할 일은 없었다. 다만 한가지 있다면 그것은 여기에서 잠시 기다리며 무당파에게 축출을 당하는 것을 경험하는 것인데 그것을 어찌 할일이라고 할 수가 있을 인가? 지금 옥진자와 청진자등은 제자들을 지휘하여 부상자와 시신들을 옮기고 치료하며 부서진 전각들을 고치도록 명을 내리고 있었다. 만화교의 여인들은 하나도 남지 않고 모두 떠나버렸고, 시산혈하 의 참혹한 지면위를 무당제자들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중 아무도 겉으로는 백룡생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아니, 돌려 그의 시선을 피하려고 하는것 같기도 했다. 허나, 백룡생은 전혀 그런것을 개의하지 않았기 대문에 그저 산보하듯이 천천히 걸음을 옮길수가 있었다. 그는 가능한한 시선과 부상자는 밟지 않으려고 했고, 걷다가 개울을 만나면 개울을 건넜고 둔덕을 만나면 둔덕을 올라갔다. 그리하여, 그는 문득 눈앞에 작은 시냇물이 줄줄 흘러내리는 광경이 보이는 둔덕위에 올라서 걸음을 멈추게 되었다. 지금 그 시냇물이 있는 곳에는 시신들이 모두 치워진 상태였다. 다만 붉은 핏물이 여기저기 남아있을 뿐이었다. 백룡생은 천천히 뒷짐을 지고서 묵묵히 상념에 잠기듯이 그 시냇물을 굽어 보았다. 그러나 그는 기실은 옥진자등이 자신을 파문시키기를 기다리는 증이었다. 문득 콧속에 지독한 타는 냄새가 전해졌는데 그것은 바로 사람의 시신을 한데 모아서 태우는 냄새였다. 무당파의 제자들은 따로 시선을 수습하겠지만 만화교의 여인들의 시신은 한곳에 모아놓고 태워버리고 잇는 것이었다. 백룡생은 그러한 것을 생각하며, 마음이 더욱 허탈해지고 평온해졌다. 그는 육신에 집착하는 마음이 사라져서 더욱 마음의 장애가 줄어들게 되었다. 게다가, 이제 무당파에서 축출이 되고나면 그는 그저 발길이 닿는대로 어디든지 갈수가 있을 것이다. 그는 현진자를 다시 모시는 일을 생각했지만 그것은 이제는 그도 원하지 않을것이 분명했다. 일단 문파에서 축출히 된 사람과는 결코 상종할 수가 없는것이 무당파 제자의 규칙이었기 때문이었다. 백룡생은 그것을 인연의 소치로 돌리니 자연 마음이 더욱 편안해졌다. 헌데 문득, 그의 뇌리에 떠오르는 얼굴이 이었었다. 그것은 바로 매우 인상이 깊었던 그 궁장소녀의 아름답기 짝이없는 얼굴이었다. 그녀의 얼굴은 순결하면서도 요염하여 그야말로 인세의 우물이라고 말할수가 있었다. 백룡생은 만화성모보다는 오히려 그녀가 더욱 인상이 깊은것을 느꼈다. 과거 그는 그가 혹시 여인에게 빠지게 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을 한 적은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두려워서 여인을 만나지 말자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의 생각은 그렇지 않았다. 여인도 역시 사람일진대 장애라면 그가 넘어야 하는 것이다. 모든것을 인연에 돌리고 고난이 오면 오는데로 극복하면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렇게 고난이 강하고 번뇌가 극심할수록 그것을 이겨내면 더더욱 깊은 경지의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그 무엇도 마다하지 않았고 그 궁장소녀의 인상이 깊게 새겨지는 것도 애써 지우려고 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마음의 평정을 잃지 않기에만 노력했다. 지금 그는 마음의 평정이 깨어진 것은 물론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마음의 평정은 더욱 공고해진 느낌이 들었다. 헌데 이때, 상념에 젓어있는 그의 귓전에 누군가가 다가오는 기척이 들렸다. 아니나 다를까, 뒤이어 한줄기 맑고 시원스런 음성이 들려왔다. "하하! 여기에 계셨군요?" 백룡생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이ㅡ 뒤에 다가온 사람은 다름아닌 심룡, 성수방의 소공자였다. 그는 원래 아까 자소궁에서도 백룡생을 아는척하지 않았는데 백룡생의 놀라운 능력을 보고난 후에야 관심이 생긴 모양이었다. 백룡생은 그의 친근한 표정을 짓는 눈동자를 조용히 마주보다가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심룡은 그의 말에 일시 흠칫하는듯 하더니 어색한듯 한 손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하하, 특별히 무슨 일이라기 보다..." 이어, 그는 손을 내리며 인상좋게 웃더니 말을 있었다. "당신에게 그간 소홀하게 대해왔던 것을 사과하러 왔습니다." 심룡의 그와같은 말은 그의 신분으로 볼때는 상당히 파격적인 행동이라고 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그와같은 지위에 잇는 사람은 결코 남에게 허리를 굽히는 행동을 하기를 싫어하는 것이다. 그러나, 백룡생은 그러한 그의 행동을 특별히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았다. 그저 담담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었다. "겸손의 말씀이로군요." 심룡은 그의 말에 일순 다시 하하! 하고 대소를 터뜨렸다. 그리고는 잠시 있다가 문득 그에게 다시 물었다. "혹시... 누구에게 사사 받으셨는지 알려주실수가 있갰소?" 백룡생은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알고보니 그는 그러한 점을 알기위해 그를 찾아온 것이다. 백룡생은 미미하게 웃다가 대답했다. "나는 무공은 배운적이 없습니다." 심룡은 그 말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렇다면...? 설마, 농담이시겠지요?" 백룡생은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농담이 아닙니다." "..." 심룡의 안색은 가볍게 굳어졌다. 그는 백룡생의 말의 진위를 파악하려고 하는것 같았으나 잘 알기가 어려운 모양이었다. 그렇게 잠시 있다가 그는 다시 물었다. "무당파에서 떠나시면 어디로 가실 것이오?" 백룡생은 그가 무엇 때문에 그러한 질문을 하는지는 알수가 없었으나 곧장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모릅니다." 그의 이 대답은 아까와 같이 거짓말이 아니었다. 그는 아까 자신이 무공을 배운것이 아니라 절로 터득하게 된 것이라는 뜻에서 그렇게 말을 했고 이번에는 역시 자신도 모르는 것이다. 그러나, 심룡은 이번에도 한참동안 그의 내심을 들여다보려는듯 바라보더니 문득 발했다. "혹시 갈곳이 없으시다면...?" 헌데, 왠지 그는 문득 말을 멈추더니 잠시 다시 생각하는 눈치였다. 이것을 보고 백룡생이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제 37 장 장문인의 고심 백룡생의 질문에 심룡은 문득 크게 당황하는듯 하더니 웃으며 얼버무렸다. "하하, 아무것도 아니, 나중에 서로 인연이 있다면 다시 만나자는 말이지요." 백룡생은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으나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죠." 이에, 심룡은 다소 어색하게 웃더니 손을 흔들었다. "그럼 나먼저 들어가겠소. 산인께서는 나중에 천천히 오시오!" 그는 아마도 백룡생이 아직 무당파에서 축출읗 당한것이 아니기 때문에 산인이라고 부르는 모양이었다. 심룡은 그렇게 ㅁ라하고는 곧장 훌쩍 신법을 날려 뒷쪽으로 사라져 버렸다. 백룡생은 잠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 천천히 시냇물을 따라 아래로 걷기 시작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문득 그의 눈앞에 하나의 제법 널찍한 연못이 나타났다. 시냇물은 바로 그 연못으로 흘러들고 있었는데, 이 연못이야말로 무당파에서 유명한 해검지인 것이다. 해검지란 과거 무당파가 한창 세력을 떨칠대에 누구라도 무당산에 오르기전에 일단 이곳에서 병기를 맡겨야 한다는 일종의 존중하는 뜻에서 나온 규정의 의미였다. 허나, 지금도 그러한 것이 철저하게 지켜지고 잇는지는 자세히는 알수가 없는 노릇이다. 이곳은 바로 무당파로 들어가는 길목이었다. 연못의 옆에는 길이 잇고 다시 길옆에는 이미 심하게 부서진 전각이 온통 혈흔이 가득한 채로 자리하고 있었다. 평소라면 이곳에서 무당파로 오르는 사람들을 조사하고 병기를 맡겨두는 제자들이 있었겠지만 지금은 아까의 그 격전으로 모두 바쁘게 움직이느라 이곳까지 돌볼 여유가 없는 모양이었다. 백룡생은 몰론 여기에 사람이 있든 없든 상관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거의 유유자적하며 그저 거닐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그는 혹시 무당파에서 자신을 찾고 잇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여 해검지의 윗길을 따라 천천히 무당파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헌데 그때, 문득 그는 앞쪽에서 한 사람이 빠르게 다가오고 잇는 것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한 사람이 모퉁이를 돌아서 그의 눈앞에 빠르게 나타나고 있었다. 그런데 의외에도 그 사람은 바로 악불이였다. 악불이도 그를 보자 다소 의외인듯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처음에는 흠칫하여 주춤하는 듯 했으나 무슨 생각을 했는지 곧장 그의 앞에로 걸어왔다. 그리고는 두 눈을 기이하게 빛내면서 묻는 것이었다. "당신은 혹시 우리 그분을 보지 못했나요?" 백룡생은 의아해하며 되물었다. "심룡 말이오?" 악불이는 눈살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내게 그분밖에 더 있겠어요?" 그녀가 심룡을 우리 그분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니 아마도 그 사이에 꽤나 친숙해진 모양이었다. 백룡생은 차라리 두 사람 사이가 잘 되었다면 좋은 일이라고 여겨져서 웃으며 대답했다. "얼마전에 그가 나를 찾아왔었는데, 그후 그는 곧바로 윗쪽으로 올라가 버렸소." 악불이는 다소 눈살을 찌푸렸다. "자소궁으로 말인가요?" 백룡생은 잠시 생각해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그럴 것이오." "..." 악불이는 잠시 묵묵히 서 있었다. 그녀는 아마도 백룡생의 방금 한 말을 곰곰히 생각해 보고 잇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러다가, 그녀는 문득 눈빛을 기이하게 빛내더니 다시 물었다. "당신은 지금 무당파로 다시 올라가는 중인가요?" 백룡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악불이는 다시 물었다. "당신은 이제 무당파를 떠나면 어디로 갈 거죠?" 그녀의 이 질문ㅇ든 아까 심룡의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백룡생은 왠지 그 느낌이 다르다고 느끼고 있었다. 대체 그것은 무엇일까? 이제 백룡생의 두눈은 과거처럼 혼탁하고 멍청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아주 맑고 부드러운 광채로 가득차 있어서 실로 모든 사람의 눈을 부시게 만들었다. 악ㅂ루이 역시 그가 대답을 하지 않아서 그의 눈을 마주보다가 자신의 눈이 부신것을 느끼고 금방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그때 백룡생이 말했다. "그것은 나중에 다시 생각해 봐야겠소." 사실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할 것도 없었다. 백룡생은 나중에 그저 발길이 닿는대로 떠나갈 생각이었지만 말은 일단 그렇게 나온 것이었다. 그러자, 악ㅂ루이가 문득 고개를 돌리며 그에게 물었다. "그럼 혹시 우리 화산파에는 오지 않을건가요?" 백룡생은 그 말에 고개를 돌리며 되물었다. "내가 왜 거기엘 가야한단 말이오?" 백룡생은 그녀가 이제 심룡과 친하게 되었는데 그가 그곳에 가서 무엇을 하겠느냐는 식으로 그렇게 물은 것이었다. 헌데, 이순간 기이하게도 악불이의 안색은 발갛게 물들어 있었다. 그녀의 안색은 과거 백룡생과 이야기를 나누며 수줍어하던 모습과 다를것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그녀는 곧 안색을 싸늘하게 굳히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군요. 당신은... 당신은..." 악불이는 그렇게 말을 끌다가 백룡생을 돌아보고 정새을 하며 말했다. "당신은 천천히 오세요. 나는 먼저 올라가겠어요!" 그리고는, 곧장 백룡생의 얼굴을 쳐다보더니 몸을 돌려 아까 내려왔던 길을 신법을 펼쳐서 올라가기 시작했다.. "..." 백룡생은 무심한 듯한 시선으로 그녀의 뒷모습이 ㄷ사라지는 것을 보다가 이윽고 다시 천천히 윗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해검지에서 무당파의 본채에 이르기까지의 길은 상당히 긴 편이었다. 원래 ㄴ 그 중간중간에는 매복이 있거나 지키는 사람이 있어서 불의의 침입자를 막아내도록 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러한 것은 없고 간혹 시신등을 옮기는 제자들의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백룡생은 무당파의 전각들이 보이자 좀 더 걸음을 빨리했다. 그리하여 그가 아까의 그 광장에 다시 도달했을대, 문득 한 사람이 그를 향해 빠르게 신형을 날려오는 것이 보였다. 그는 바로 다름아닌 현진자였다. 현진자는 아까 백룡생이 태극혜검법을 펼칠당시 칼을 빌려 주었다가 즉시 되받아서 허리에 차고 있었다. 그는 싸움이 끝난직후에 옥진자등과 함께 자소궁으로 올라가는 것 같았는데 이제 백룡생을 찾아온 것을 보니 비로소 어느정도 그를 쫓아낼 준비가 된 것 같았다. 백룡생은 그저 담담한 시선으로 그를 맞이했다. 이제 현진자 역시 그와는 인연이 멀어진 것 같았다. 백룡생은 담담한 표정으로 앞에 내려서는 그에게 물었다. "장문사질이 저를 찾고 있습니까?" 백룡생은 아직 무당파의 소사숙의 신분이라고 할 수가 있으므로 그렇게 물은 것이었다. 현진자는 즉시 허리를 숙이며 대답했다. "예, 모두 자소궁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백룡생은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이제 이곳 무당파도 끝이라는 생각이 비로소 들었다. 그는 천천히 무당파의 전각들을 둘러본 뒤 현진자에게 말했다. "그럼 어서 올라가 보도록 합시다!" 백룡생의 음성은 매우 홀가분해 보였다. 그리고, 사실 그의 심정은 매우 평온하고 홀가분했다. 그는 원래가 이런 일개문파의 구속에 얽매이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 구속에서 풀려나게 되었으니 어찌 홀가분하지 않겠는가? 백룡생이 말을 내고 먼저 자소궁으로 향하자 현진자는 묵묵히 그의 뒤를 따랐다. * * * 뒤로 올라갈수록 이미 무당파의 전역은 거의 다 정돈되어가고 있었다. 특히, 자소궁이 있는 부근에는 아직 싸움이 일지 않아서 깨끗하고, 피비린내가 없었으며 점의 그 제자들이 엄밀하게 지키고 있었다. 그들은 백룡생이 다가오는 것을 보자 일시 주저하더니 예를 올리는 척했다. 백룡생은 답례한 뒤에 자소궁의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자소궁의 안에는 그가 아침 나절에 보았던 그와같은 인원이 거의 비슷하게 모여 있었다. 단지 차이가 잇는 것은 운자배의 인물들이 다소 바뀌어 있었을 뿐 옥진자와 청진자가 있는것과 심룡이 앉아있는 것 역시 다르지 않았다. 악불이는 어느새 심룡의 옆에 앉아 있었는데, 그녀는 백룡생을 보고도 아까와는 달리 아는체를 하지 않았다. 백룡생은 잠시 기다렸다가 뒤에오는 현진자와 나란히 안으로 들어갔다. 자연 모두의 시선은 그에게 몰리게 되었다. 백룡생은 굳이 자리에 앉고 싶지 않았으므로 그대로 그들의 앞에 서서 옥진자를 향해 입을 열었다. "저는 이미 이곳에 이르렀으니 하실 말씀이 있으면 주저말고 하시오!" 그말에,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옥진자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말했다. "우리는 지금 장차의 무림의 안위에 대해서 토의하고 있는 중이오. 소사숙께서도 함께 하시겠소?" 백룡생은 웃으며 대답했다. "굳이 그럴것이 있겠습니까? 저는 이제 파문을 당하는 것이 기정사실일테니 어서 발리 매듭을 짓고 저는 떠나고 싶습니다." 옥진자는 그 말에 가볍게 탄식을 하더니 물었다. "만일 본파를 떠나면 갈곳은 있소이까?" 백룡생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런곳은 업지만 천하에 어찌 나 한사람 갈 곳이 없겠소?" 옥진자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군요..." 이어, 그는 다시 물었다. "소사숙께서는 굳이 본파를 떠나고 싶으시오?" 백룡생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럴리가 있겠습니까? 저는 사실 아무래도 좋지만 여러분이 불편할 것 같아서 기왕이면 일을 빨리 끝냈으면 하는 것이지요." 그말에, 옥진자는 문득 두 눈을 가볍게 빛냈다. 그러더니 그는 잠시 생각한 후에 백룡생을 향해 물었다. "그렇겠군요... 허나, 허나 만일 본파에서 소사숙을 쫓아내지 않는다면 어쩌시겠소?" 그말은 백룡생으로도 의외였다. 특히, 장내의 운자배의 인물들중 몇몇이 크게 놀란듯 몸을 벌떡 일으키며 옥진자에게 말했다. "장문사존께 아룁니다. 만일 그러신다면, 그것은 본파의 명예를 땅에 떨어뜨리는 결과가 될 겁니다. 그는 감히 조사지령을 무시했으니... 그는, 그는 아무리 무공이 높다고 해도 차라리 없는것만 못할 것입니다!" 다른 제자가 또 말했다. "장문사존께서는 숙고해 주십시오! 저런 자를 계속 본파에 있게 하다가는 본파는 마침내 세상의 웃음거리가 될 것입니다." 그외에도 다시 몇명이 일어서서 소리쳤으며 그 내용은 한결같이 백룡생을 축출하자는 말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옥진자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잇는 것일까? 그는 원래 백룡생을 축출하기로 마음을 정했으면서도 혹시 다소 마음이 달라진 것이란 말인가? 옥진자는 제자들의 말을 듣고는 손을 들어서 그들의 소요를 가라앉혔다. 그리고는 입을 열었다. "나는 너희들의 뜻을 알고 있다. 그러니 더이상 말할것이 없다" 그리고는 백룡생을 향해 재차 물었다. "소사숙께서는 그래도 떠나시겠소?" 백룡생은 그가 의도하는 바를 잘 알수가 없었으나 웃으며 대꾸했다. "그럴리가 있겠습니까? 나는 일부러 인연을 끊는 사람은 아닙니다." "무량수불...!" 백룡생의 대답에 옥진자는 한차례 엄숙한 도호를 외웠다. 그리고는 말했다. "소사숙께서는 정말로 마음이 훌륭하시군요. 그러나... 빈도는 소사숙을 어쩔 수 없이 축출해야 하겠습니다." 이말은 다소 불안해하던 운자배의 제자들에게는 저으기 안심이 되는 말이었다. 백룡생도 다소 이상한 느낌이 들었으나 역시 문제삼지 않았다. 그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게 하십시오." 헌데, 그때 옥진자는 엄숙한 음성으로 다시 말을 이었다. "허나, 그전에 먼저 해야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빈도가 우선 장문인의 자리에서 물러난뒤 본파에서 축출을 당하는 것입니다." ...! 그말에 일순 장내는 커다란 경악의 감정이 물결쳤다. 그것은 비단 운자배의 제자들 뿐만 아니라 백룡생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실로 옥진자가 이와같은 말을 할줄은 몰랐었다. 옥진자의 옆에 앉아있던 청진자가 놀란 어조로 물었다. "장문사형, 그건 대체 어째서 그렇소?" 옥진자는 가볍게 탄식을 터뜨린 연후에 대답했다. "무량수불, 빈도는 원래 소사숙을 직접 본파에 입문을 시킨 사람이니 오히려 현진사제보다도 더욱 죄가 크다고 해야할 것이네. 게다가... 원래 빈도의 사조이신 무애상인께서는 유언하시기를 절학을 전한 소사숙에게는 항상 그와같은 대접을 하라고 하셨거늘, 빈도는 장문인으로서 그러한 유언을 받들고서도 그것을 위배하였네, 그러니 내 어찌 본파의 장문인의 자리를 계속 유지할 수가 있겠으며, 사조의 유시를 위배하고도 축출을 당하지 않겠는가?" 원래 그 석벽에는 항상 그와같이 하라는 말은 없었다. 다만 옥진자가 지금 그와같이 변화시켜서 말을 한 것은 뭔가 중대한 의도가 엿보이는 것이었다. 청진자는 옥진자의 그와같은 말을 듣자 깊은 생각에 잠기며 묵묵히 말하지 않았다. 그때, 운자배의 제자들 중에서 한 사람이 일어서서 말했다. 그는 바로 운자배 가운데에서 가장 서열이 높은 운룡도장이었다. 물러나시겠다는 것은 본파의 안위를 위해서도 결코 좋지 않을 것입니다. 재고해 주십시요!" 그말에, 옥진자는 다소 싸늘하게 그의 말을 받았다. "운룡! 너의 말은 형평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다." 운룡도장은 지금 나이가 대략 육십여세는 되는 노도장이었다. 그는 일순 흠칫하여 되물었다. "그것은 어째서 그렇습니까?" 옥진자는 눈빛을 빛내더니 차갑게 말했다. "노도 이미 들었겠지만, 소사숙과 나의 죄는 별로 차이가 없는 것이다. 그렇거늘 오직 나만을 단지 상황을 위해서 벌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찌 공평하다고 말할수가 있겠느냐? 장문인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다 .오히려 장문인은 더욱 규율을 엄수해야 하는 것이거늘..." 이에, 운자배의 제자중 다시 한사람이 일어섰다. 그는 바로 운자배의 서열 이위인 온봉도장 이었다. 그 역시 육십대의 노인인 것은 다를바가 없었다. 운룡도장은 참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하지만 특수한 상황에서는 특별한 지침을 내릴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만일 본파의 미래를 위하는 것이라면, 어찌 그런 규율이 얽매이시려고 하십니까? 이런 상황에서 어지 장문사존과 소사숙조를 같게 볼 수가 있겠습니까?" 그말은 다분히 최고배분의 백룡생을 무시하는 노골적인 발언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입장에서는 그것은 사실이었고 두말할 나위가 없는 것이었다. 백룡생은 물론 그러한 점을 알면서도 담담하게 흘러보낼 뿐이었다. 허나, 순간 옥진자는 두눈에서 번쩍 신광을 발하며 운봉도장을 쏘아보았다. "운봉, 너의 말은 또한 틀렸다! 너는 오늘의 일을 보고서도 그런 말을 한단 말이냐? 너는 이 장문인인 내가 무당을 구했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면 소사숙이 무당을 구했다고 생각해느냐?" "...?" 운봉은 일시 그말에 할말이 없어졌다. 옥진자의 말은 기실 재론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었다. 그때 옥진자는 능력이 없어서 만일 백룡생이 아니었다면 무당파는 이미 멸문지화를 당하고 말았을 것이다. 운봉도장은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물었다. "그, 그렇다면 장문사존께서는...?" 옥진자는 대답하지 않고 오히려 되물었다. "너는 그렇다면 당금의 상황에서 무당파를 가장 확실하게 지켜줄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대체 누가 특별대우를 받아야만 한다고 생각하느냐?" ... 운봉도장은 일시 할말이 없어졌다. 그는 자신의 입으로 특별한 상황에서는 특별한 규율을 적용할수가 있다고 말을 했고, 지금 옥진자의 말을 들어보건데 그런 특별한 사람은 분명이 소사숙조인 백룡생이 분명했다. 지금 같은 무림의 살벌한 상황에서는 백ㄹ요생과 같은 극상승의 고수를 잡아둔다면 그것은 특수한 법이라도 상관이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곧 무당파의 안위가 직결이 되기 때문이었다. 이제 장내의 모든 운자배의 제자들은 옥진자의 말뜻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는 사실 백룡생을 축출하려던 것이 아니었다. 그는 백룡생이 규율에 반기를 드는 것을 보고는 모든 제자들을 의식하여 일단 백룡생을 축출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규율이 허술해지면 그 문파는 오래갈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옥진자는 당금과 같은 상황하에서 비단 규율을 어길수도 없었지만 백룡생과 같은 인재를 놓치고 싶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백룡생이 무당파를 떠난 후 다시 만화교가 침입을 한다면 그때는 십중팔구는 무당파가 멸망을 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오랜 전통의 규율을 어길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보면 이 규율과 백룡생의 수용과 서로 상반되어 서로를 용납할수가 없는 입장이었다. 옥진자는 필히 둘중에서 하나를 선택하고 하나는 버려야 할 입장인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결코 그렇게 하여 천추의 한을 남기고 싶지 ㅇ낳았기 대문에 편법을 사용하게 된것이다. 그 편법이란 바로 특수한 규율을 특수한 상황에서는 적용할수가 있다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실로 간단치 않은 옥진자의 장문인으로서의 고심이 역력이 깔려 있었다. 옥진자는 아까 백룡생에게 심한 모욕과 무시를 당했다고 할수가 있지만 무당파를 구하기 위해 그러한 감정도 불사하고 이러한 방법까지 고안해낸 것이다. 실로 이는 그가 아니면 이루기 어려운 일이었다. 옥진자는 무당삼자의 우두머리로서 강호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었던 것은 결코 우연의 소지가 아니었다. 잠시의 침묵이 흘러간 후, 이번에는 다시 다른 제자가 나서서 입을 열어 물었다. 그는 바로 운자배의 서열삼위인 운진도장이었다. 그는 첫째인 온룡과 둘째인 운봉보다도 냉정한 성품이어서 사태를 파악하는 힘이 강했다. "그렇다면 장문사존께서는 어떠한 법으로 소사숙조를 수용하실 생각이십니까?" 옥진자는 잠시 운자배의 제자들을 주시하다가 대답했다. "원래 소사숙께서는 본파의 소속도 아니었고 그 근본무공도 전혀 다른 것이다. 다만 그분이 무애상인의 절학을 전해주었기 때문에 사조님의 유시에 따라서 그러한 대우를 해주려고 했었을 뿐이었다. 허나... 그것은 단지 우리쪽의 사정이었기 대문에 소사숙께서는 구태여 구속을 당하지 않으시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즉, 우리는 비록 소사숙으로 모실수는 있지만 어떠한 힘으로도 그분을 구속할수는 없다는 것이다." 옥진자의 음성은 침중하게 울러펴졌으며, 모든 사람들은 묵묵히 이를 경청했다. 옥진자는 말을 이었다. "나는 본래 소사숙을 일반의 제자와 같이 생각하여 그분을 구속했었으나 그것은 사실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었다. 따라서... 나는 이런 법으로써 특별하게 소사숙을 대하고하 한다. 오직 그분은 소사숙으로 받들어질 뿐이며 어떠한 힘으로도 그분을 구속할수가 없다는 것을!" 이에, 운자배의 제자들 가운데 다분히 학자타입의 운생도장이 일어나서 물었다. "허나 만일 소사숙께서 마음대로 규율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신다면 그때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렇다. 그것은 운자배 제자들의 공통된 걱정이었다. 일단 그렇게 법으로 정해놓으면 그 이후로는 그를 억제시킬 방도가 없지 않은가? 허나, 옥진자는 그말에 냉랭히 대꾸했다. "운생, 너는 여전히 나의 말뜻을 모르고 있구나! 우리가 비록 지금 특별히 규정을 정한다고 해도 원래 이렇게 된 것은 모두 사조님의 유시에서였다. 사조님의 유시에는 무조건 그렇게 하라고 적혀 있었거늘, 너는 그럼 사조님의 유시를 어기자는 말이냐?" 옥진자는 자못 꾸짖듯이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여기에서 운자배의 제자들은 옥진자의 비장한 결의를 읽을수가 있었다. 그는 백룡생의 성품을 파악해 보고 모든것을 판단하여 일종의 도박을 하려는 것이다. 근느 무당파를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백룡생으로 인해 생겨날 또 하나의 위기에 대해 어차피 수용하지 않을수가 업는 것이다. 그 위기는 일어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수도 있기 때문이다. 운자배의 제자들은 그 말을 듣자 다소 침통한 표정으로 묵묵히 자리에 앉아 말을 잊었다. 이것을 보고, 옥진자는 고개를 돌려 백룡생을 향해 물었다. "빈도는 이렇게 정했소이다. 소사숙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오?" 원래부터 백룡생은 이러한 대우를 받아야 마당했을 것이다. 그는 무당파에 커다란 은혜를 베풀었던 것인데 그로인해 그가 오히려 구속을 받고 곤란을 당한다면 어찌 그것을 보답이라고 말할수가 있겠는가? 백룡생은 특별히 무당파에 입문한 것인만큼 특별대우를 받았어야 하는 것이다. 백룡생은 물론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바보가 아니었다. 단지 그는 귀찮게 따지는 것이 싫었고 그들이 그렇게 정하자 그대로 따랐을 뿐이었다. 헌데 지금 옥진자는 이제야 그런 특별한 규정을 그에게 적용시키려고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보답의 의미보다는 오히려 무당파의 계산적인 의미가 더욱 짙게 깔려있었다. 그러니까 무당파로서는 어쩔수 없이 필요하니까 그런 법으로라도 못마땅한 녀석을 붙잡아 두겠다는 말이었다. 따라서, 백룡생은 앞으로 특별한 대우를 받게 되겠지만 결코 기분이 좋을리는 없었다. 이것은 원래의 보답적인 의미와는 다르기 때문에 그는 차라리 무당파를 떠나는 쪽이 더욱 마음 편할 것이다. 아니, 바로 멍청이가 아니어서 이런 사살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누구라도 이곳에 있지않고 즉시 떠나 버렸을 것이었다. 대체 그가 무당파에 그토록 미움을 받고 울며겨자 먹기로 주는 특별대우를 받는다고 한들 얻을 것이 뭐가 있겠는가? 그러나, 기이하게도 이 백룡생은 바단 바보 멍청이가 아닐 뿐만 아니라 일부러 무당파를 떠나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것은 바로 그가 특이한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특이하게 인연으로 무당파와 맺어졌다. 그렇다면 그러한 인연에 따를뿐 굳이 사람들의 감정 때문에 인연을 끌으려고 하지는 않는 것이다. 무당파에서 스스로 그와의 인연을 끊지 않는 한, 이점이 보통 사람들과 백룡생이 다른 점이었다. 그리고, 그점은 그를 간혹 어리석게 보이게도 만든다. 허나, 과연 그는 어리석은 사람일까? 백룡생은 옥진자의 질문에 담담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렇게 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자, 옥진자는 엄숙하게 일어선 자세로 수중에 다시 그 진무검령을 꺼내 높이들며 소리쳤다. "그렇다면 빈도는 조사의 이름으로 특별한 규정을 그렇게 정하노라! 만일 이의가 있는 사람이 있다면 손을 들 것이요. 그렇지 않다면 이 안건은 조사지령 앞에서 통과된 것이다!" 대개가 그러하듯 무림각파에서 가장 권위있는 절대적인 권한은 바로 조사지령이었다. 따라서, 조사지령의 앞에서 통과된 규정은 가장 강력한 것이요. 누구도 어떠한 힘으로도 허물수가 없는 것이었다. ... 잠시의 무겁고 긴장된 침묵이 흘러갔다. 그러나, 아무도 손을 들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옥진자가 말했던 그 안건은 완전히 통과가 된 셈이었다. 옥진자는 마치 그것을 그렇게 결론 짓기라도 하듯 잠시후에는 진무검령을 천천히 내려서 다시 허리에 보관했다. 이로써 백룡생은 무당파에서 축출을 당하지 않고 특별한 존재로써 대우를 받게된 규정이 확실하게 확정되었다. 이때, 옆에 앉아았던 심룡과 악불이는 무의식중에 그러한 의식의 공증인이 된 셈이었다. 제 38 장 사람들. 그와같이 백룡생에 관한 문제가 해결되자, 옥진자는 이어 천천히 자리에 앉으면서 좌중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럼 이제는 본파의 앞일에 대해서 논의해 보도록 합시다." 그리고는, 그는 운자배의 제자들에게 의자를 두개 더 가져오게 해서 자신의 옆자리에 놓도록 하고 백룡생과 현진자에게 그쪽에 와서 앉을것을 청했다. 백룡생과 현진자는 마다하지 않고 그 자리에 가서 앉았다. 그곳은 바로 청진자의 옆이었고 심룡과 악불이가 앉아있는 곳과는 반대편이었다. 백룡생과 현지자가 자리하고 나자, 이윽고 아까 일어났던 운룡도장이 다시 몸을 일으켜서 입을 열었다. "당금의 형세는 정녕 아까 심소협이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과연 어떻게 어떠한 방법으로 백혈맹의 총단으로 떠날 것이며, 과연 천하의 각파에서도 이에 호응할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앞부분은 우리가 좀 더 상세하게 논의를 해야 하겠지만, 뒷부분은 명확하게 하기 위해 심소협께서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마도, 그들 사이에는 여태 백혈맹에 관한것과 무림의 형세, 그리고 차후의 무림연합에 대해서 논의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백룡생도 이미 현진자에게 그 대강의 얘기는 들어서 알고 있었다. 운룡도장이 자리에 앉자, 여태 백룡생의 일을 유심히 지켜보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던 심룡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서 옥진자를 향해 한번 읍을 해보인 다음에 입을 열었다. "당금의 대혈겁은 비단 이곳 무당파만이 겪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알다시피 소림사가 그렇게 되었고, 점창파와 청성파가 멸문을 당했으며, 며칠전에는 개방의 수개분타가 녹림맹의 침습을 받고 붕괴되었다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당금의 무림의 연합을 해야 한다는 것은 필수적이 것이며, 그렇게 해야만이 천하무림이 과 의 평화를 되찾고 적혈련의 무리들을 제거할 수 있다는 것은 불문가지의 일인 것입니다." 심룡은 잠시 열변을 토한뒤에 옥진자를 향해 말을 이었다. "우리는 비록 힘은 없으나 천하에 깔려있는 정보망을 통해서 직접 간접으로 백혈맹의 눈과 귀가 되고 있으며, 또한 백혈맹을 명실공히 천하무림의 연합체로 만들기 위해서 천하각파에 이미 유력한 인사들을 보냈던 것입니다. 미력한 소생이 과분하게도 무당파에 와서 중책을 맡게된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청진자가 그에게 문득 물었다. "그럼 나머지 문파들이 거의 동조할 것이 틀림이 없다는 것이오?" 심룡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에 찬 음성으로 대답했다. "바로 그렇습니다. 당금의 천하각파들은 비록 그 세력이 막강하다고 해도 오늘의 무당파와 마찬가지로 적혈련의 하나의 세력을 감당하기가 어렵습니다. 비록 그들이 대대로 물려온 터전을 잠시 떠나는 한이 있더라도 문파의 명맥을 보존하고 적혈련과 대항하기 위해서는 한곳에 뭉칠수 밖에 없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이론적인 근거를 제외하고도 이미 저희들은 화산파와 아미파, 그리고 종남파와 개방뿐만 아니라 멀리서 곤륜파까지도 이미 우리의 대업에 찬성을 하여 이에 도네ㅁ하고자 맹의 총단으로 향하고 있다는 전갈을 받았습니다. 물론 오대세가중 남궁세가와 제갈세가등도 우리의 뜻에 동조하고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심룡이 말은 명쾌했고 군더더기가 없었으며 사람의 심리를 끄는 힘이 있었다. 옥진자등은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헌데, 문득 운진도장이 일어서서 한마디를 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이곳을 떠나서 총단으로 가고 있는 도중에 적들의 습격을 받는다면 그것은 오히려 역효과가 아니겠소?" 심룡은 고개를 내저었다. "비록 우리는 그런 화를 당한다고 하더라도 함께 힘을 모으지 않을수가 없습니다. 허나 다행스럽게도 본 성수방의 이목은 가히 적혈련의 동태를 파악할 만 하여 총단으로 모여드는 각파들의 위험을 일러주고 그들을 도와주고 있으며, 아직 한건도 화를 당한적이 없습니다. 게다가..." 심룡은 문득 고개를 돌려 백룡생을 힐끗 주시하며 말을 이었다. "무당파는 가히 믿을만한 사람이 있으니 이번의 거동에 화는 없을 것입니다." 그 말에, 운진도장은 은근히 안색이 붉어졌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었고, 다소 수치감이 들기는 해도 무당파가 안전하다는 데에는 실로 안심이 되지 않을수가 없었다. 그가 자리에 앉자 옥잔자가 심룡에게 물었다. "무량수불, 그렇다면 심소협의 의견으로는 우리는 어떠한 규모로, 어떠한 방법으로 총단으로 가는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하시오?" 심룡은 이미 질문을 기다리고 있었기라도 하듯 즉시 입을 열어 낭랑하게 대답했다. "이번의 일은 대대적인 거사이므로 인원이 많을수록 좋습니다. 게다가 만일 주력이 떠난 다음에 남은 사람들이 습격을 당할것은 생각한다면, 아무래도 전원이 일제히 조를 짜서 움직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옥진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심소협의 의견은 과연 지당하오. 무량수불...!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을 듯 하오." 옥진자는 도호를 외우다가 고개를 두어번 끄덕였다. 그것은 그의 뇌리에 이미 결정이 났다는 습관적인 동작이었다. 이때, 백룡생은 궁금하여 옥진자에게 물었다. "대체 그 백혈맹의 총단은 어디입니까?" 그말에 심룡이 대신 나서서 대답해 주었다. "이번에 저희와 뜻을 같이한 검문과 도회는 적혈련의 세력을 봉쇄하는데 전력을 다하고 있기 때문에 부득이 백혈맹의 추진은 저희 성수방에서 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번 백혈맹의 총단은 저희 성수방의 총단과 동일합니다." 백룡생은 그의 말에 되물었다. "그 호남성 설봉산이란 말이오?" -- 설봉산, 그것은 동정호의 남쪽에 자리하고 있는 거대한 대악이다. 대대로 성수방의 총단은 그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백룡생은 무당전적을 읽음으로 인해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 심룡은 그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설봉산 성수곡입니다." 성수곡이란 바로 성수방이 있는 계곡의 이름이었다. 이 설봉산은 과거 백룡생이 살던 구령산과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고 할 수가 있었다. 단지 중원에서 가장 넓은 호수인 동정호를 사이에 두고 있을 뿐인 것이다. 그러나, 비록 그렇더라도 설봉산으로 가려면 구령산으로 가는 행로와는 달리 이곳 무당산에서 곧바로 남쪽으로 내려가야 한다. 백룡생이 고개를 끄덕이자, 심룡은 옥진자를 향해 물었다. "그렇다면 귀파에서는 언제쯤 출발하실 생각이십니까?" 옥진자는 이미 회동을 수락했기 때문에 잠시 생각해 보다가 대답했다. "무림의 일은 화급을 요하는 것이나, 다소 무리가 있더라도 내일 아침에는 출발을 하도록 하겠소." 심룡은 그 말에 매우 만족한 듯 그를 향해 포권하며 말했다. "장문인께서 그렇게 협조를 해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그럼 소생은 이만 그 사실을 본방에 알려야 하기 때문에 먼저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심룡은 금방 작별을 고했다. 기실 그가 지금 떠나려는 것은 이미 회동의 결정이 내려졌는데다가 그가 더이상 있을 필요가 없고, 무당파만의 논의 에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서였다. 옥진자는 만류하지 않았다. "무량수불, 그러시겠소? 그렇다면 앞으로 수고를 계속 해주시요!" 옥진자는 몸을 일으켜서 그를 향해 포권을 했다. 심룡은 비록 나이가 어리지만 그는 성수방과 백혈맹을 대표로 해서 온 사자 기 때문에 옥진자는 그를 정중하게 대하는 것이었다. 이에, 심룡은 함께 일어난 악불이와 같이 재차 무당도인들에게 포권의 예를 올린 뒤에 서서히 뒤돌아서 밖으로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백룡생도 그러한 광경을 지켜 보았으나, 심룡의 뒤를 따르는 악불이는 여전히 고개 한번 돌리지 않고 걸어나가고 있었다. 이때, 옥진자의 눈짓에 의해 운자배의 인물들중 여기에서 가장 막내인 운현도장이 일어나서 그를 대붕하기 위해 따라나갔다. 이윽고, 그들이 모두 사라지자 이제는 오나 히 무당파만의 논의장이 되었다. 이제는 과연 내일 출발하는데 어떻게 조를 짜느냐는 데에 관심이 몰려 있었다. 제자들의 시선이 침중된 가운에, 옥진자가 문득 백룡생에게 물었다. "소사숙께서는 어떠한 방법으로 가고 싶으십니까?" 백룡생은 일시 그의 말뜻을 몰라서 그냥 대꾸했다. "나는 걸어서 가는 것이 좋겠소." 백룡생은 무심코 전에 현진자와 함께 구령산에서 여기까지 걸어왔던 점을 생각하여 그렇게 말한 것이었다. 허나, 지금의 그의 신법은 이미 초절하여 과거와는 비교도 할수가 없을 것이다. 옥진자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 일은 화급을 다투는 것이므로 신법이 비교적 낮은 자들은 도저히 빠르게 따를수가 없습니다. 자연 우리는 말을 이용하는 것이 좋겠지요. 그러나, 그런 문제는 둘째치고라도 전체가 한꺼번에 모여가느냐, 아니면 따로따로 가느냐 하는 질문입니다." 백룡생은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나는 따로따로 가는 것이 좋을듯 한데 장문사질의 생각은 어떻소?" 이때, 청진자가 옆에서 말했다. "우리는 인원이 많기 때문에 모두 함께 갈수도 없고, 그렇다고 모두 흩어져서 간다면 적들의 침습을 받을 우려가 있습니다." 백룡생은 그에게 되물었다. "그럼 어떻게 가면 좋겠소?" 청진자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비교적 무공이 낮은 제자들은 적들이 그다지 중요시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들은 우선 몇명의 인솔하에 각각 조를 나누어서 따로 수단을 강구해서 떠나도록 해야할 것이고, 나머지 중요한 핵심인원들은 소사숙과 함께 전원이 이동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설봉산의 아래에서 만나도록 하는 것입니다." 청진자는 가능한한 백룡생의 힘을 이용하자는 생각인 것이었다. 백룡생은 잠시 생각해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게 좋을것 같군요. 그럼 그 인원은 어떻게 나누는 것이 좋겠소?" 청진자는 백룡생이 무당파의 사정에 대해 자세히 올지도 못하면서 그러한 점까지 세세하게 물어오자 문득 짜증이 일어서 내심 생각했다. (내가 만약 그 방법을 알려줘도 너는 모를 것이다!) 그러나, 겉으로는 감히 그에게 무례하게 대할수가 없어서 대답했다. "본파의 인원은 오십오대가 삼십여명이고 오십육대는 삼백여명, 그리고 오십칠대는 칠백여명으로 모두 천여명을 헤아리고 있습니다. 따라서... 한조에 삼십여명씩 무리를 지어서 오십오대의 제자에게 한조씩 맡기면 될 것입니다." 무당파의 제자들은 그 숫자가 많고 질서가 복잡한듯 해도 모두가 일정한 법칙에 의거하여 스승과 제자를 두게 되어 있었다. 따라서, 천여명이나 되는 많은 숫자에도 불구하고 질서있게 나눌수가 있는 것이다. 몰론 그러한 것을 알자면 제자들의 계보를 파악하지 않으면 안된다. 백룡생은 물론 그러한 계보를 알지 못했다. 다만 오십오대가 지금 눈앞에 낮아있는 운자배의 사람들이고, 오십육대는 학자배, 오십칠대는 송자배라는 사실만을 알고 있었다. 백룡생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그렇게 하면 되겠군!) 그리고는 가만히 앉아서 뒤이어 청진자와 옥진자가 운자배의 제자들과 숙의를 하여 조를 나눈 것, 그리고 모든 것을 정리하여 뒤탈이 없게 하는 것, 이어 제자들이 준비해야할 물건들을 차례로 지시하고 결정하는 것을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한 광경을 바라보는 것은 얼핏 지루하기도 했다. 백룡생은 굳이 그러한 일에 나서고 싶지도 않았고 또한 알지도 못했기 때문에 잠시동안 그런것을 바라보다가 슬그머니 일어서서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이때는 가히 점심때가 지나 있었다. 아마도 옥진자등은 내일의 일을 숙의하느라 끼니도 잊고 있는것 같았다. 백룡생은 잠시 무당파를 돌아볼까 생각하다가 문득 생각했다. (나도 집으로 돌아가서 정리를 하고 준비를 해야하지 않을까?) 기실, 백룡생은 도호를 가지고 있기는 해도 속가의 제자였기 때문에 집이 따로 있었고 일반의 무당제자들과 함께 어울려서 숙식할 필요는 없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백룡생은 다시 안으로 들어가서 현진자에게 말했다. "나는 일단 옥검봉으로 돌아가서 있을테니, 내일 아침에 다시 여기에 오기까지 무슨 일이라도 있으면 연락을 해주시오." 현진자는 백룡생이 축출을 당할뻔 하는 사이에 매우 침통한 표정을 짓고 아무말도 없었다. 그는 내심 두 사형과 제자들이 행동들이 매우 불쾌한 것이다. 그러나, 다행이 일이 잘 풀렸기 때문에 현진자의 안색도 많이 풀려 있었다. 그는 백룡생의 지시에 고개를 숙여 공손히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소사숙님, 그럼 소질이 내일 아침에 그리로 가겠습니다." 백룡생은 그의 공손한 태도에 미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시오." 이어, 그는 한참 숙의에 여념이 없는 옥진자등을 한번 돌아본 다음에 몸을 돌려 무당파를 떠나오고 말았다. 무당제자들은 그때까지도 그가 축출을 당했는지 어쩐지를 몰라서 다소 그를 보고도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 * * 백룡생은 옥검봉에 이르자 우선 그곳에 있는 짐을 정돈했다. 물론 그는 앞으로도 무당파를 떠날 것이 아니니 굳이 모든것을 버릴 필요는 없지만 밖에 나가있는 공백이 얼마일지 모르기 때문에 식품등도 정리를 해야하고, 악불이의 물건들도 치워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일단 악불이의 방에 들어간 백룡생은 굳이 그곳을 치울 필요가 없고 자신의 방이 따로있는 지라 그냥 나오고 말았다. 그는 이어 우선 두어끼분의 밥을 짓고 식사를 한 다음에 생각했다. (나는 이제 무당파의 제자들과 함께 행동할 텐데 아무리 그렇더라도 숙식비를 그들에게 의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 내게는 수중에 한푼도 없으니 우선 돈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다른 사람이었다면 돈을 마련하는 일에 골머리를 익혔을 것이지만, 백룡생은 그런 일은 아주 간단했다. 그는 이미 경험도 있었기 때문에 아직 뒤져보지 않은 무당산의 심곡에 가서 그저 몇뿌리의 산삼을 캐어오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일단 그렇게 생각하자 백룡생은 즉시 그것을 행동에 옮겼다. 그는 즉각 무당산의 깊은 계곡으로 들어가서 빠르게 움직이며 몇군데를 뒤지다가 다시 한뿌리의 백년묵은 산삼을 발견하자 더 이상 뒤지지 않고 그대로 그것만을 가지고 십언진으로 향했다. 그 산삼 한뿌리면 이만냥을 받을 수 있다고 했기 대문에 굳이 더 많은 약초를 캘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백룡생의 무예가 초극의 경지에 이르러서 약초를 캐는 능력이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이지 그렇게 오래 묵은 산삼이 많고 흔한것은 아니었다. 백룡생은 십언진에 이르자 곧장 어제 들렀던 그 성수약포에 들어갔다. 때는 이미 저녁해가 가까운 시각이었는데 마침 어제의 그 중년사내는 역시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헌데 그는 마치 백룡생을 처음 보는듯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무슨일로 오셨소?" 백룡생은 즉시 수중에 들고있던 산삼을 그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대답했다. "이것을 팔러왔소!" 순간, 산삼을 본 중년사내의 두눈이 가벼운 놀라움으로 크게 떠졌다. 그러다가 그는 두눈을 기이하게 빛내더니 물었다. "얼마나 원하시오?" 이것은 그가 어제 보여준 태도와는 다소 다르다고 할수가 있었다. 백룡생은 어제의 전례가 있었는지라 주저없이 대답했다. "이만냥." 헌데, 당연히 수긍을 할 줄을 알았던 중년사내는 일순 크게 눈살을 찌푸리더니 도로 산삼을 그에게 내미는 것이 아닌가? "당신 정신이 있소? 이만냥이라니?" "...?" 그의 그런 돌변한 태도에 백룡생은 다소 어이가 없는 기분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물었다. "그럼 얼마나 하겠소?" 중년사내는 잠시 두눈을 기이하게 굴리더니 대답했다. "오천냥, 거기에서 단 한푼도 더 줄수는 업소!" 그 말에, 백룡생은 더욱 어이가 없어서 대꾸했다. "하지만 분명 어제는 이것 한뿌리에 이만냥을 주지 않았소? 설마 밤 사이에 값이 폭락해단 말이오?" 백룡생도 원래 약초를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던 사람이었는지라 어느정도의 가격은 알고 있었다. 이 백년묵은 산삼은 비록 이만냥은 못되고 만냥은 받을수가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이 중년사내가 오천냥이라니 어찌 기이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중년사내는 차갑게 대꾸할 뿐이었다. "그건 당신들이 어제 시기를 잘 탔었기 때문이오. 그런 산삼 한뿌리에 이만냥이나 주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소?" 시기를 잘 탔다니, 그럼 오직 그때만 그렇게 좋은 가격을 매겨 주었단 말인가? 그것은 실로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 아닐수가 없었다. 백룡생이 의아한 표정으로 서 잇자, 중년사내는 잠시 생각하다가 그에게 속삭이듯이 말했다. "좋소, 정히 그렇다면 어제의 일도 있고 하니 이천냥을 더 드리리다. 그러면 당신은 아주 횡재한 거라구!" 오천냥에 이천냥을 더한다고 해도 칠천냥일 뿐이었다. 이것은 결코 제 가격이 아니다. 게다가, 중년사내는 마치 그것이 선심을 크게 쓰는 것이라도 되는양 그를 향해 나직하게 속삭이고 있었다. 이것은 바로 야비한 상술이었다. 백룡생은 그의 이러한 돌변한 태도를 보고는 설령 다른 야비한 상인에게 팔지라도 그에게 팔고 싶은 마음은 사라졌다. 대체 사람이 이렇게 하루 아침에 돌변할수가 있다는 말인가? 백룡생은 따라서 그의 말은 들은척도 하지 않고 탁자위에 올려놓은 산삼을 집어들고 즉시 몸을 돌렸다. 헌데 그때였다. 휘리리릭! 난데없이 일진의 파공음이 들리더니 중년사내의 몸이 허공을 날아서 탁자를 뛰어넘고 그의 몸마저 뛰어넘어서 그의 앞에 사뿐히 내려서는 것이 아닌가? 놀랍게도 그는 무림의 고수였던 것이다. 일순간에 그러한 신법을 펴 ㄹ수가 있다는 것은 무림의 이류고수를 벗어나는 것이었다. 그는 백룡생의 앞을 그렇게 가로막더니 음침한 웃음을 흘리며 말하는 것이었다. "흐흐, 어디로 그렇게 급히 가려는 것이오?" 그는 아마도 백룡생의 차림새와 모습을 보고 그를 단순히 백면서생쯤으로 착각한 것이 틀림이 없었다. 그의 태도에서는 어제와는 달리 흉악한 악한의 냄새가 풍기고 있었다. 성수방은 강호에서 위명을 날리는 방파인데 이처럼 태도를 돌변해서 강도짓을 하는 자가 있다는 것은 어이없고도 슬픈 일이 아닐수가 없었다. 성수방은 비록 뛰어나도 워낙 그 소속인원들이 많기 때문에 이러한 자들을 일일이 가려낼수는 없는 것일까? 백룡생은 일순 그러한 생각들을 떠올리며 무심한듯 대꾸했다. "나는 다른 곳에서 팔아볼 생각이오." 중년사내는 음흉하게 웃었다. "흐흐흐! 왜 나의 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는가? 이제 그는 마음놓고 반말을 하고 있었다. 이때는 이미 저녁 무렵이어서 약포안으로 들어오는 사람도 없었고, 게다가 점원들중 하나가 달려가서 얼른 문을 닫아버리는 것이 아닌가? 이들은 아마도 합세해서 백룡생의 산삼을 강탈할 속셈임에 분명했다. 백룡생은 그러나 굳이 신경을 쓰고 싶지가 않아서 순순히 대답했다. "그렇소, 당신의 가격은 마음에 들지 않소." 중년사내는 의외로 침착한 백룡생의 태도를 보고는 가볍게 흠칫하다가 기이하게 눈알을 굴리며 물었다. "그렇다면 내가 다시 조건을 제시하는 것이 어떤가?" 백룡생은 무심히 물었다. "무슨 조건이오?" 중년사내는 그를 향해 음흉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 산삼 한뿌리에 은자 두냥을 주지, 어떤가?" "..." 그는 아까는 칠천냥이라고 했다가 이제는 불과 두냥이라고 낯두껍게 말하고 있었다. 그는 이어 징그러운 음소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흐흐, 너는 아까 내가 말했을때 순순히 따랐어야 했다. 불행이 자신도 모르게 찾아오는 것도 모르고, 흐흐 이 어리석은 놈아!" 그러나, 대체 과연 누가 어리석은 자일까? 백룡생은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나는 그 가격에는 팔지 않겠소." 중년사내는 이쯤이면 그의 안색이 달라질 만도 한데도 여전히 그가 아주 태연한 것을 보고는 일순 다소 흠칫했다. "그으래?" 이어, 그는 눈알을 부릅뜨더니 손을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만일 네놈이 그 산삼을 순순히 건네주고 사라진다면 네놈의 목숨을 해치지는 않겠다. 이것은 마지막 경고다!" 아마도 이 중년사내는 이런일로 사람을 해치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하긴, 그는 사람들의 이목을 속여야 하니 그럴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아직 한번이ㅡ 경고도 하지 않고 마지막 경고라고 말하는 것은 이치에 닿지 않는 말인 것이다. 백룡생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산삼을 잡은 손을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만일 당신이 이것을 가져갈수가 있다고 한다면 나는 그냥 드리겠소." :...?" 중년사내는 일시 그것이 무슨 말인가 하고 생각해 보는 듯 하다가 피식 실소를 날렸다. "흐흐, 네놈이 감히 나와 장난을 하자는 것이로군!" 그는 백룡생이 아무리 봐도 백면서생이라 능글맞게 웃으며 즉시 그 ㅅ산삼을 잡아갔다. 그런데, 그는 마악 산삼을 손에 잡은순간 돌연 안색이 대변하여 크게 일그러지고 말았다. 갑자기 그가 잡은 산삼으로부터 막대한 경력이 밀려오며 그의 전신에 피가 일제히 역류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일시적으로 피가 역류하는 고통이란 상상할수도 없는 것이었다. 중년사내는 순간 이 백면서생이 실은 상상도 못하는 무림고수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이미 때는 늦어 있었다. 그의 안색은 극심한 고통과 심적 충격으로 사색이 되어 있었다. 백룡생은 그를 향해 말했다. "나는 그냥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오?" 그 중년인은 극도의 고통에 못이겨 턱을 덜덜 떨며 대답했다. "나, 나는... 살려주시오! 제발... 이, 이만냥을 드릴테니..." 백룡생은 고개를 저었다. "나는 그냥 가겠다고 하지 않았소?" 그러자, 중년사내는 그의 듯을 알고는 즉시 대답했다. "어, 어서 문을 열어... 이분을 나가게... 나가게 해드려라...!" 이때, 십여명의 점원들은 일시 크게 당황하고 흉흉한 태도로 사태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중년사내의 말이 덜어지자 얼른 다시 문을 열고 말았다. 이에, 백룡생은 즉시 경력을 거두고 중년사내를 풀어 주었다. 그러나 중년사내는 일시 그 엄청난 고통에서 헤어났으되 기력이 탈진되어 그 자리에 털썩 주저 앉고 말았다. 백룡생은 그것을 보고 그냥 밖으로 걸어나와 버렸다. 성수약포의 점원들이 하나같이 그를 향해 독기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지만 그는 개의하지 않았다. 성수방과 같은 훌륭한 방파의 하부에도 이러한 무리들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딱한 노릇인가? 그렇다면 세상의 악이라고 하는 것은 도무지 끝도 없다는 결론이 헌데ㅡ, 그곳에는 불과 어제만 해도 구름같이 많은 사람들이 몰려 들었으나 지금은 그저 한산했다. 아마 무료로 치료를 해주던 심황은 이미 가버린 모양이었다. 백룡생은 굳이 더이상 신경을 쓰지 않고 옆에 있는 약포 하나를 아무렇게나 골라서 안으로 들어갔다. "누구시우?" 안에서 늙수그레한 노인의 음성이 들려왔다. 과연 안으로 들어가니 평범해 보이 노인 하나가 작은 의자에 앉아 있었다. 백룡생은 그 노인을 보자 문득 과거에 약초를 팔던 일이 생각나서 웃으면서 다가갔다 노인은 백의서생 하나가 안으로 들어오자 다소 의외인듯 물었다. "약초를 사실 생각이시우?" 백룡생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저는 약초를 팔 생각입니다. 나는 어제 백년묵은 산삼 두뿌리를 사만냥에 요 옆의 성수약포에서 팔았는데, 오늘은 한뿌리에 오천냥이라니 그만 나와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말에, 그 노인은 일시 크게 놀라 정신이 없는 표정이었다. 희귀한 백년묵은 산삼의 얘기도 그렇지만 성수약포의 얘기도 그의 마음을 놀라게 하는 것 같았다. 그는 잠시 마음을 진정시키고는 물었다. "그래, 그 백년묵은 산삼이 지금 댁의 수중에 있단 말이오?" 백룡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한번 보시겠습니까?" 이어, 그는 노인의 앞에 있는 탁자위에 그것을 올려놓았다. 제 39 장 악불이의 본심! 노인은 백년이나 묵은 산삼을 보고는 한동안 넋이 빠진듯이 바라보고 있다가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내가 아주 어렸을 적에 이런 산삼을 본적이 있는데 지금 다시 이런것을 볼줄은 정말 몰랐군." 이어, 그는 백룡생을 향해 물었다. "이거 하나뿐이오?" 백룡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는 두뿌리였지만 오늘은 하나입니다. 어제의 두개는 성수약포에 팔았었지요." 노인은 그가 어제는 두뿌리고 오늘은 하나라는 말을 듣고는 일시 어리둥절했다. 노인이 지금 물은것은 약초가 이것뿐인가 하고 물은 것인데, 백룡생은 지금 백년묵은 산삼이 어제도 두개나 있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아주 희귀한 것인데 어찌 그리 많을수가 있단 말인가? 허나 노인은 이 젊은이가 값을 많이 받고자 그런말을 한다고 생각하고는 웃으며 다시 물었다. "이만냥이라고 했소?" 백룡생은 두뿌리에 사만냥이라고 했으니 하나에 이만냥인 셈이었다. 백룡생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는 그렇게 받았는데 오늘은 오천냥이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그냥 그곳을 나와버렸지요." "..." 노인은 잠시 생각하다가 문득 웃으며 대꾸했다. "젊은이는 정말로 성수약포에 들어갔다 나온 모양이구려? 하지만 이런 물건을 가지고 그런곳에 갔다가 살아돌아온 것을 보면 신통하구먼! 그런곳은 어떤때는 물건을 아주 비싸게 ヨ기도 하지만 무서운 곳이라 가지 않는것이 좋을 것이오..." 이어, 노인은 산삼을 집어서 이리저리 돌려보며 말했다. "내 약초를 팔고사는 사람으로서 솔직히 말하리라, 이런 물건은 거의 수십년에 하나가 나올까 말까 하는 것이오. 하긴 내가 보지 못해서 그럴지도 모르지만... 이것은 원래 우리가 값을 정할때는 대충 한 이만냥은 잡게되오. 그러나, 이것은 기사회생의 묘약은 아니라도 그 바로 아래쯤은 되는 것이라서 우리같은 사람들은 자연 욕심이 나기 마련이지, 비록 손해는 보더라도 사고 싶은게..." 노인은 힐끗 백룡생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워낙 귀해서 남겨뒀다가 내가 쓸수도 있고 또한 아주 급한 사람에게 넘기는 한 십만냥도 받을수가 있는 것이지, 이런것은 원래가 값을 정할수가 없으니까. 그래서 말인데... 내 어느 한도까지는 들어줄테니 값을 한번 불러보슈!" 이 노인은 의외에도 아주 솔직한 노인이었다. 백룡생은 웃으며 대꾸했다. 이에, 노인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들고 그에게 물었다. "한 이만냥쯤 드리면 되겠소?" 노인은 방금전에 백룡생이 한말을 생각한 모양이었다. 백룡생은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도 남는것이 있습니까?" 그말에, 노인은 일시 허허 하고 웃었다. "내가 이미 말했지 않소? 내가 비록 다른 것으로는 돈을 벌어도 이것만큼은 욕심이 나서 손해를 보더라도 사고 싶다고, 당신도 나이가 많아지면 나와같은 심정을 알게될거요!" 백룡생은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여기에 그많은 돈이 있기야 하겠습니까?" 백룡생은 이 약포가 다소 작고 허술하여 그런 말을 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오산이었다. 노인은 웃으며 즉시 탁자밑에서 한봉지의 은표를 꺼내 보이는데, 거기에는 일견하기로도 수만냥의 은표가 있는것이 아닌가? 그는 그중 이만냥의 은표를 계산해서 백룡생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이런 작은 곳이라고 우습게 보는 것은 옳지 않은 것이요. 사실은 알짜부자들만 살고 있으니까." 노인이 준것은 은하전장의 천냥짜리 은표 스무장이었다. 노인은 이어 나머지 은표를 탁자밑의 은밀한 곳에 집어놓고 단단히 잠그는 것이었다. 허나, 백룡생은 노인이 건네준 스무개의 은표중에서 열개를 다시 그이 손에 쥐어 주었다. 노인은 이것을 보고 놀라 눈이 휘둥그래져서 물었다. "이, 이게 무슨 짓인가?" 백룡생은 웃으며 말했다. "사실 물건의 가격은 만냥이면 족합니다. 노인장께서도 이익을 좀 보십시오!" 그리고는 그는 즉시 남은 열장의 은표를 들고 밖으로 걸어나왔다. "아니 이봐 젊은이...!" 뒤에서 노인의 기쁨과 놀람에 가득찬 음성을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백룡생은 문득 마음이 다소 기꺼운 것을 느꼈다. 세상에는 그런 사람도 있고 이런 사람도 있는 것이다. 그는 대로를 걷다가 문득 전에 들렀던 은하전장의 지점을 보고는 악불이와의 일이 뇌리에 떠올라서 그는 즉시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열장의 은표중에서 하나를 꺼내 아홉장의 백냥짜리 은표와 열냥짜리 은원보 열개로 바꾸어서 각각 따로따로 품속에 간직했다. 아무리 그라고 해도 돈은 필요한 법이다. 원래 그는 오매촌에 있을때에도 은자를 유용하게 쓰는 일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역시 은표를 아주 소중하게 다루었다. 은자를 단단히 갈무리하자 그는 이윽고 천천히 옥검봉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백룡생은 옥검봉의 통나무집에 돌아오자 저녁을 먹은뒤에 내일가져갈 작은 보따리를 싸기 시작했다. 그것의 대부분은 전에 악불이가 그에게 사주었던 새옷 몇벌이어었다. 백룡생은 그런것들을 싸면서 자연 전에 악불이와 함께 거처하던 일을 떠올리지 않을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생각했다. (그녀는 아주 귀엽고 깜찍스러우면서 정이 깊은 성격을 가지고 있었지. 그녀는 한때 나와 잘살아보려고 했지만... 이제는 다른 좋은 남자를 만났으니 잘된 일이지!) 백룡생은 오전에 만났던 그녀의 표정을 떠올리고는 문득 미소를 지었다. 그는 어느새 그녀에게 정이 많이 들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마음에 괴로움은 일지 않았다. 그는 짐을 모두 싸고 날이 어두워지자 침상위에 누워서 잠을 청했다. 어젯밤에는 한숨도 자지 ㅇ낳았기 때문에 쉽게 잠이 왔다. 그는 오경무렵까지 달게 잠을 잤고, 그뒤에는 잠시 일어나서 세수를 하고 잠시 명상에 들었으며 다시 밥을 미처 먹어치우고 떠날 준비를 했다. 그대는 이미 아침햇살이 마악 사방으로 퍼져나가고 있을 때였다. 작은 봇짐을 등에 짊어지고 밖으로 나가자, 문득 아래에서 현진자가 올라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과연, 잠시후에 나타난 사람은 현진자였다. 현진자는 그를 보자 즉시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모두들 이미 출발하고 있습니다. 어서 가셔야 하겠습니다." 백룡생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럽시다." 이어, 앞으로 얼마동안 보지 못하게 될 자신의 통나무집을 한차례 돌아본뒤, 그는 즉시 현진자의 손을 이끌고 아래로 신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 * * 무당파에 도착하자, 옥진자등은 이미 연무장에 나와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새 무당파에는 제자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고 그저 옥진자의 뒤에 서있는 청진자와 그밖의 몇명밖에 남지 않은것이 아닌가? 놀랍게도 무당파의 전제자들은 이미 출발해버린 것이었다. 백룡생은 핵심인물들을 그와 같이 하겠다고 말했던 청진자의 말을 상기하고는 설마 이토록 적은 숫자일줄은 몰랐다. 옥진자와 청진자를 제외한 남은 인물은 바로 어제 백룡생도 보았던 운자배의 서열 일 이 삼위인 운룡, 운봉, 운진도장과 가장 젊은 제자인 운학도장이었다. 그러니까, 일행은 백룡생까지 합쳐서 모두 여덟명인 셈이었다. 어제 보았던 남은 운자배의 인물들은 모두 무당제자들을 인솔하고 떠났음을 알수가 있었다. 백룡생은 옥진자의 앞에 이르자 포권하며 예를 표했다. "장문사질 소생이 늦었소이다." 옥진자는 다소 정중하게 답례했다. "무량수불, 소사숙 어서 가십시다!" 이어, 나머지 모든 사람들이 백룡생에게 저마다 예를 표하자 일행은 즉시 무당파를 등지고 출발하기 시작했다. 무당파의 무수한 전각들은 사람이 하나도 없자 마치 괴괴한 분위기마저 일으키는것 같았다. 일행은 그러한 광경을 돌아보면서 천천히 해검지로 향했다. 해검지도 사람이 보이지 않는 광경은 다소 씁쓸했다. 문득 옥진자의 얼굴을 돌아보니, 그것들을 바라보는 그의 안색이 매우 엄숙하게 굳어져 있었다. 보아하니 그는 이번의 출동을 매우 중대하게 여기고 있는 것 같았다. 하긴, 만일 이번의 출동에서 실패하면 무당파는 정말로 사람없는 빈집이 될테니 그가 어찌 신중을 기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백룡생은 무심코 앞쪽을 바라보다가 일순 가볍게 놀랐다. 해검지에서 대략 수십장의 앞쪽에 한 사람이 앉아 있었는데 그사람은 바로 이미 떠난줄 알았던 악불이가 아닌가? 백룡생은 즉시 그녀의 앞으로 다가가서 물었다. "아니, 여기서 뭘하시오 악낭자?" 이때, 악불이의 안색은 다소 실의에 빠져 있는것 같았다. 그녀의 두눈은 다소 넋을 잃은듯이 멍하니 한곳을 바라보고 있었고, 얼굴은 매우 수척한듯 핼쑥해 보였다. 헌데, 무심코 그녀의 시선을 따라 눈길을 보내던 백룡생은 문득 가볍게 놀랐다. 거기에는 바로 그와 함께 병기점에서 구입했던 군자검과 숙녀검이 둘다 놓여 있었던 것이다. (군자검은 심룡이 가져간 것이었는데 그가 다시 그녀에게 돌려주었나?) 백룡생은 의아해져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악불이는 잠시후에 고개를 들더니 그에게 물었다. "당신들은 지금 성수방으로 가고 있는 것인가요?" 백룡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악불이는 그 대답을 듣더니 문득 눈빛을 가볍게 빛내며 말했다. "나, 나도 그곳으로 가야겠어요." 백룡생은 그녀의 넋을 잃은듯한 태도를 보고는 그녀가 어떤 심한 마음의 충격을 받았다고 느꼈다. 그리하여, 그는 안스러운 마음이 일어나서 웃으며 대꾸했다. 대체 그녀는 무엇때문에 이런 마음의 충격을 받았을까? 악불이는 그말에 가볍게 흠칫하더니 고개를 거였다. "그, 그래요." 이어, 그녀는 얼른 그 두자루의 검을 집어서 허리에 차고는 백룡생을 바라보았다. 이때는 옥진자등도 멀리서 다소 지루하게 기라디고 있었으므로 백룡생은 즉시 웃으며 그쪽으로 신형을 움직였다. "그럼 어서 갑시다!" "..." 백룡생이 신법을 펼쳐서 나아가자 악불이는 즉시 그의 뒤를 따라갔다. 그들은 금방 옥진자의 곁에 이르렀다. 옥진자등은 백룡생이 느닷없이 하나의 혹을 달고온데 대해서 별로 달가와하지 않는 눈치였다. 게다가, 그녀는 원래 그들도 알다시피 백룡생의 여인이었는데 마음을 돌려서 심룡에게 돌아선 여인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그들은 별로 내색은 하지 않았다. "그녀는 우리와 함께 성수방에 가겠다고 하는군요." 백룡생의 말에, 옥진자가 다소 싸늘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을 뿐이었다. "제자들은 이미 멀리 갔을테니 우리도 신법을 재촉해야 하겠소이다." 백룡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어서 갑시다!" 그러자, 일순 일행은 다함께 신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들의 신법은 매우 빨랐다. 원래, 무당삼자의 신법은 빠르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운자배의 서열 삼위까지의 운룡, 운봉, 운진의 세 도장의 무예도 뛰어나서 무당삼자의 신법에 뒤지지 않았다. 게다가, 놀라운 것은 바로 운학도장의 신법이었다. 그는 나이가 이제 사십대의 중년도인으로 운룡등과는 나이차이도 심할뿐만 아니라 무당파에 입문한 기간도 매우 차이가 심할텐데도 역시 신법에서 뒤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 백룡생은 그의 내력을 비추어 보아 그의 내공이 지극히 심후한 경지에 이르렀고, 기초가 매우 튼튼하여 결코 운룡등에 크게 못지 않다는 사실을 알수가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그가 전에 양의검법을 펼쳤을 때 느꼈던 신선한 충격처럼 역시 놀라운 일이 아닐수가 없었다. 원래, 무학이라고 하는 것은 각자의 재질이나 기연에 의해 성취가 좌우되는 이다. 허나 기연이라고 하는 것은 감히 기다릴수가 없는 것이고, 보통 자질에 의해서 성취도가 결정되는데 이 운학도장의 자질은 그저 보기에도 평범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다금 무림에서 위명을 떨치고 있는 무당삼자중 옥진자의 자질 보다도 뛰어난 것이었다. 백룡생은 내력이 이미 극치에 이르렀기 때문에 금방 그와같은 사실을 알아볼 수가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내심 생각했다. (장문사질이 일부러 그와 동행하려는 이유를 알만하다. 아무래도 그는 이 막내제자에게 기대를 많이 걸고 있는 모양이로구나! 그는 혹시 변을 당하지 않을까 우려하여 자신이 직접 동행하는 것이다. 그러고보면 앞으로 무당파의 장문인직은 저 운룡도장이나 운봉도장이 아니라 이 운학도장에게 이어지게 되고... 장차 그에 의해 무당파는 세력을 한차례 떨치겠군!) 그렇다. 기실 옥진자는 자신의 수발을 들어줄 사람을 운학도장으로 지목하여 동행한 것이지만 본뜻은 백룡생이 생각한 그러한데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옥진자는 자칫 운룡들이 알아서 불화를 초래할까봐 내색하지는 않았다. 무당삼자는 일부러 신법을 늦추는 편이었고, 운자배의 네 제자는 충분히 그들을 따라갈수가 있었으며, 백룡생의 신법이야 말할 나위도 없었다. 백룡생은 그저 산보를 하듯이 짐을 지고 천천히 앞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렇건만 기이하게도 그의 신형은 한걸음마다 십여장씩 쭉쭉 나아갔기 때문에 마치 허공을 미끄러져 가는것 같았다. 아직 그의 신법을 구경하지 못한 옥진자와 운자배의 제자들은 이러한 광경을 보고는 매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옥진자도 한걸음에 칠팔장은 나아갈수가 있었지만 그토록 여유있게 십여장이나 미끄러져 나아갈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다름아닌 악불이였다. 그녀는 내공이 가장 뒤떨어지고 신법이 부족해서 처음에는 어느정도 따라붙는가 싶더니 금방 그 정체가 탄로나고 말았다. 그녀의 얼굴은 금방 붉어지더니 헉헉거리며 어느새 뒤로 처지고 말았던 것이ㅏ. 확실히 이들 무당파의 고수들의 신법을 따라잡기에는 그녀로서는 무리였다. 백룡생은 그저 평온한 마음의 심경을 즐기려는듯이 무심한 안색으로 신법을 계속 펼치다가 처음에는 그러한 것도 의식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문득 그는 멀리서 부르는 소리를 듣고서야 순간 그러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백... 백대협!" 고개를 돌리고 보니 어느새 그녀는 까마득하게 뒤로 수백장이나 뒤쳐져서 헉헉거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것을 보고 백룡생은 순간 자신의 부주의를 탓하고는 옥진자에게 말했다. "그냥 가시오. 내 잠깐 그녀를 데리고 오겠소!" 그말에, 옥진자는 무심한 태도를 보였지만 청진자는 참지 못하고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소사숙께서는 그녀를 데려다가 어찌하려는 것이오?" 백룡생은 무슨 말이냐는 듯이 의아해하며 대꾸했다. "그녀는 과거 나의 친구였소. 그런데 지금 성수방으로 동행을 하자고 하는데 어찌 그녀를 혼자 내버려둘수가 있겠소?" 허나, 청진자는 싸늘하게 냉소했다. "소사숙게서는 아직 여인을 모르시는구려! 그녀는 차라리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 좋을 것이오. 만일 그녀의 남자가 이 사살을 안다면 좋아할것 같으시오?" 그말에, 백룡생은 문득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과연 청진자의 말은 옳은 것이었다. 심룡이 만일 그와 악불이가 동행을 했다고 한다면 좋아할 리가 없는 것이다. 원래 남녀의 사이는 미묘한 것이니 오해의 요소가 다분히 있지 않겠는가? 백룡생의 순간 생각을 고쳐먹고 고개를 끄덕였다. "맞소. 청진사질의 말은 매우 옳소. 나는 가지 않겠소!" 헌데 그때였다. 이미 아득하게 멀어진 곳에서 다시 악불이의 부르짖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백대협! 제발 나를 함께 데려가 줘요!" 백룡새은 그 음성을 듣자 일순 과거의 정이 물큰 피어올라 크게 주저하는 마음이 일었다. 그것을 보고 문득 옥진자가 웃으며 말했다. "소사숙, 정히 마음이 놓이지 않으시면 갖다오시오, 좋은일을 해서 나쁜보를 받는 법은 없는 법이니까," 옥진자는 이무렵 점차 백룡생의 성품이 매우 온후하다는 것을 알고 은근히 마음이 끌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일파의 장문인이니 그와 함께 농담을 주고 받을수는 없는 일이었다. 백룡생은 옥진자의 말에 비로소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내 빨리 갔다오겟소!" 그말이 끝났을 때였다. 무심코 계속해서 신법을 날리던 옥진자등은 일순 경악하여 눈을 부릅뜨고 말았다. 백룡생의 신형은 번쩍 움직이는가 싶더니 어느새 아득히 먼곳에 있는 악불이의 면전에 이르러 있는 것이 아닌가? 무림에는 육지비행술이나 어풍비행과 같은 허공을 날아가는 신법이 있기는 하지만, 대체 지금 백룡생이 펼친 신법은 무엇인지 알수가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고도의 비행술을 펼친다고 하더라도 그처럼 빠를수는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을 보고 경악한 나머지 옥진자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리고 말았다. "그는... 그는 정말로 놀라운 무예를 터득하고 있구나. 이는... 이는 정말로 무공인지조차 의심스럽구나...!" 그러나, 자연 나머지 운자배의 네명의 도장들의 마음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그들의 안색은 크게 경직되고 두눈을 부릅떠진채 입은 크게 벌어져 있었다. 또한 한참동안 그 입은 다물어지지 않았다. 악불이는 백룡생들이 이미 멀리 사라져 버리자 그만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리하여, 그녀는 한마디 마지막으로 소리쳐본 것이었다. 그런데 웬걸, 다시 눈을 떠보니 어느새 눈앞에 백룡생이 다가와 있는것이 아닌가? 그녀는 순간 매우 기쁘고 놀라서 물었다. "당신은... 아직 가지 않았었나요?" 그녀는 백룡생이 워낙 갑자기 나타났기 때문에 돕기 그가 이 근처에 있었나 하고 물은 것이엇다. 백룡생은 이에 고개를 저었다. "그럴리가 있겠소? 당신의 소리를 듣고 되돌아온 것이오." "...?" 이어, 백룡생은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물었다. "정말 우리와 함께 가시겠소?" 악불이는 그이 말뜻을 생각해보고는 대답했다. "그래요. 당신은 혹시... 혹시 내가 귀찮아진 것은 아닌가요?" 백룡생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 아니오, 나는 다만..." 백룡생은 다만 이런 행동을 심룡이 오해하지 않을까 걱정이다라는 말을 하려고 했으나 차마 그녀의 앞에서 그런 말을 할수가 없어서 도중에 입을 다물었다. 악불이는 그의 얼굴을 슬쩍 바라보며 말했다. "다, 당신이 귀찮지만 않는다면 부탁을... 부탁을 드려요. 저는 여자의 몸이기 때문에 어찌... 어찌 수천리의 길을 혼자서 가겠어요?" 백룡생은 그제서야 그녀가 굳이 그와 동행하려는 이유를 알았다. 당금의 강호는 그야말로 험란하기 그지 없으며, 더욱 여자의 몸으로 숯ㄴ리의 길을 간다는 것은 대단한 모험인 것이다. 그녀는 비교적 친분이 있는 그에게 의지를 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백룡생이 그것을 거절할 사람이 아니었다. 단지, 그는 지금 악불이가 그와같은 말을 하면서 눈물을 글서잉고 말을 더듬고 어조가 다소 떨리는 것이 조금 기이할 뿐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이 그녀가 매우 마음이 불안해서 그렇다는 것을 알고는 즉시 말했다. "좋소, 그럼 우리 함께 가십시다! 헌데... 내 손을 잠시 잡으시겠소?" 배룡생은 그녀와 함게 씬법을 펼치려면 부득히 손으로 어딘가를 잡아야 하기에 그런 말을 했지만 속으로는 다소 뜨끔했다. (그녀는 이미 다른 사람의 여자인데 네게 감히 손을 맞잡아도 될까?) 헌데, 악불이는 의외에도 순순하 한쪽손을 그에게 내미는 것이었다. 그녀의 손은 여전히 파뿌리처럼 희고 아름다왔다. 백룡생은 그녀가 주저없이 손을 내밀자 다소 마음의 부담이 없어져서 즉시 그손을 잡고 내력을 일으켜 그녀를 보호한뒤 신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순간, 백룡생의 몸은 악불이의 몸을 동반하고 수백여장의 공간을 가로질러 날아갔다. 악불이는 그저 눈앞에 아찔하고 한차례 어두워졌는가 싶은 순간에 이미 자신의 몸이 수백여장을 날아왔다는 것을 알고는 경악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그녀의 안색은 문득 붉게 상기되었다. 손목에 은은하게 백룡생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이제 남의 여자로서 그의 체온에 수치감을 느끼는 것일까? 백룡생과 악불이가 순식간에 옥진자등의 곁에 이르자, 옥진자는 다소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웃으며 말했다. "내평생 이렇게 빠른 신법은 처음이오. 자, 어서 가기나 합시다!" 그말에, 경악감에 다소 몸이 굳어있던 다른 사람들은 옥진자의 뒤를 이어 신법을 다시 펼치기 시작했다. 백룡생은 악불이의 몸을 보호했던 기운을 풀어주며 여전히 그녀의 손을 잡은채로 신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처음에, 악불이는 전적으로 백룡생의 손에 이끌려 나아가는 형국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체내에 그의 진력이 밀물처럼 스며들어온다는 것을 알고는 자신도 함게 신법을 펼치기 시작햇다. 그러자, 그녀는 전혀 힘들지 안헥 일행을 따라갈수가 있는 것이 아닌가? 다만 그것은 백룡생의 손이 그녀의 손을 잡고있지 않다면 불가능한 노릇이었다. 악불이는 자연 계속 그 손을 의식하게 되었고, 왠지 알수없는 처연한 표정을 지었다. * * * 무공이라는 것은 겉으로는 그 경지를 잘 알수가 없을지라도 일단 신법을 펼쳐서 오랜 시간이 자나게 되면 자연 화후의 높고, 낮음이 절로 드러나기 마련이었다. 즉, 이런 때에는 아무리 해도 내력을 속일수가 없는 것이다. 무려 두어시진이나 계속해서 그와같은 속도로 신법을 펼쳐 달려가자 물론 무당삼자는 심후한 내력이 있었고 별로 힘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했지만, 자연 운자배의 네명의 제자들에게는 어렴풋이 그 차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과연, 운룡도장은 운자배의 가장 맏이로서 내력이 심후하여 그중에서도 제법 호흡이 안장되어 있었고 단지 안색만 붉어졌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아래의 운봉도장은 안색이 시뻘개져서 땀방울이 흐르기 시작하고 있었고, 운진도장은 거기에 이미 호흡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이것은 이미 그들의 내력이 거의 탈진상태에 이르렀다는 말이었다. 하긴, 그들은 거의 최고의 속도로 무려 세시진 가까이나 달려왔는데 어찌 내력이 탈진되지 않겠는가? 다만 그들은 옥진자등에게 잘보이기 위해서 스스로의 내력을 조절하고 가능한한 작은 내력으로 최상의 신법을 펼치려고 노력했을 뿐이었다. 기실, 이 세사람은 외관상 차기장문인인 될 유력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옥진자가 그들만을 동행한 것을 그것을 시사해 주는 일이었다. 그러니 어찌 그들이 나름대로의 최선을 다하지 않을수가 있으랴? 하지만, 승부의 세계는 냉정하고 결과는 이미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무예로는 여깃 운룡도장이 가장 뛰어나고 그 다음이 운봉도장, 그리고 운진도장은 가장 처진다고 말할수가 있었다. 그런데, 이때 놀라운 사실이 있었다. -- 운학도장, 예상대로라면 벌서 탈진하고 쓰러졌어야 했을 그가 여전히 신법을 계속해서 펄채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정도는 운진도장보다도 오히려 나은편이 아닌가? 제 40 장 운학도장! 이때 운학도장의 상태는 안색이 시뻘겋게 변한채 그저 땀방울만 흘리고 있을뿐 호흡이 거친것은 아니었다. 놀랍게도, 지금 운학도장의 내력은 둘째인 운봉도장의 내력과 맞먹는 것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실로 충격적인 일이 아닐수 없었다. 특히 운룡등의 삼인은 그중에서도 운진도장의 마음은 이것을 보고 실로 참담해지지 않을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가뜩이나 호흡이 곤란한데 그의 얼굴은 일그러질대로 일그러졌다. 과거, 전날에는 설마하니 그는 가장 막내인 운학도장의 내공이 이정도에 이른줄은 상상도 못하고 있었었다. 다만 운학도장이 가끔씩 제자들에게 시범을 보이기를 좋아하는 것을 단지 흐뭇하게 바라볼 뿐이었는데 어느새 그가 자신을 추월해 있었다니! 이것은 그로서는 믿을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신법을 펼치는 것은 가장 내력을 속일수가 없는 것인데 어찌 믿지 않을수가 있다는 말인가? 그제서야, 운룡등 삼인은 옥진자가 무엇때문에 운학도장에게 자신의 수발을 들도록 하면서 동행을 시켰는지 그 이유를 알만했다. 운학도장을 자신의 수제자로서 키워주려는 것이다. 무릇 대제자와 수제자는 다를수도 있는 것이다. 대제자는 비록 장문인의 후보가 아니라도 수제자는 반드시 차기의 장문인으로 선정된 사람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이런 저런 생각속에 운진도장등의 삼인은 극도의 고통을 받고 있었다. 그들은 점차 심하게 탈진되어 더이상 나아갈수가 없게 되었다. 그러자, 이를 본 옥진자가 문득 손을 들어 일행을 멈춰세웠다. "그만 쉬었다 가도록 하자!" 그말에, 운자배의 제자들은 급히 신형을 멈춰세우며 긴 한숨을 불어쉬었다. 이어 그들은 즉시 각자가 자리를 잡아서 정좌하고 앉아서 운공조식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여태 허다한 산과 평원을 지나왔고, 여기는 야산이 있는 기슭이었다. 제법 굵은 나무들도 있었고 평평한 바위나 갈대숲도 있었다. 이때, 운학도장은 다른 제자들과는 달리 운공조식에 들어가지 않고 금방 주변에서 마른 갈대잎을 베어와서는 평평한 자리에 ㅇ낮을자리를 마련해 놓고는 옥진자등에게 그곳에 앉기를 권했다. 그라고 해서 왜 금방 운공조식에 들고싶지 않겠냐마는 그는 자신의 소임을 철저하게 다하려는것 같았다. 운학도장은 그러고 나서야 한쪽에 정좌하고 앉아서 운공조식에 들어갔다. 옥진자나 현진자등 ㅇ무당삼자는 이때 별로 내력의 소모가 심하지 ㅇ낳아서 잠시 운공조식을 취하고 나자 눈을 뜨고는 그 네명의 제자들이 운공조식을 하는 광경을 바라보게 되었다. 운학도장은 가능 늦게 운공조식에 들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기이하게도 이번에도 그의 조식하는 속도는 가장 빠른 편이었다. 일반적으로 무공이 고강할수록 그 진력을 되찾는 속도가 빨라지게 된다. 운진도장은 아직도 내력이 잘 모아지지 않아서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건만 운학도장은 어느새 깊은 무아지경으로 빠져들어가고 있었다. 그러자, 얼마후에 그의 머리위에서 백색의 뿌연 기운이 연기처럼 피어오르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더니 그것은 점차 짙어져서 그의 머리위 석자쯤 되는 위치에서 둥글게 뭉치기 시작했다. 아니, 잠시 후에는 그것의 색깔이 적과 청의 두가지로 분리되어 빙글빙글 맴돌기 시작했다. 이러한 광경은 매우 신기한 일이라고 말할수가 있었다. 뒤이어, 그 두가지의 기운은 저 짙어지고 넓게 확산되면서 맴돌더니 드디어는 거대한 하나의 환처럼 화하여 운학도장의 몸을 감사고 천천히 아래위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이때, 무심코 바라보고 있던 옥진자의 얼굴에 다소 놀란 빛이 떠올랐다. 그 넓게 펼쳐진 환이 운학도장의 단전부위까지 내려왔을 순간 갑자기 그의 몸이 둥실 허공에 떠오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부공삼매! 이것은 운학도장의 내공심법이 이미 최고조에 이르렀음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운학도장의 전신은 무아지경에 빠진채로 허공에 석자정도 떠오른 음 더욱 강렬해진 환이 막처럼 그이 전신을 완전히 뒤덮고서 휘돌기 시작했다. 이제 그의 모습은 다시 하나의 뿌연 백색의 덩어리처럼 보였다. 이는 기실 놀라운 일이었다. 옥진자는 물론이요. 청진자와 현진자도 이를 보고는 일시 경악하여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지금 운학도장이 운공하고 있는 것은 사실 무당파의 최고내공심법은 태극공이라는 것이었다. 헌데 이는 바로 무당파의 장문인만이 연성할수가 잇는 내공심법으로, 무당파의 일반제자들이 연성하는 양의신공의 최정수라고 말할수가 있었다. 사실, 그것은 운학도장의 신분으로는 감히 연성할 수가 없는 것이었지만 옥진자는 그이 자질을 총애한 나머지 십여년전에 그것을 몰래 가르쳐 주었다. 그런데, 옥진자도 이 태극공을 연성한지 이십년이 넘는 오년전에야 완성할수가 있었거늘, 지금 운학도장은 불과 십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완성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원래 이 태극공은 그 근본이 양의신공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어서 우선 그것을 연마할때는 양의신공을 완성한 이후에야 한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는 놀라운 일이 아닐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옥진자도 태극공을 완성하는데 오륙십년이 걸렸을 정도인데 운학도장은 겨우 이삼십년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계산이 나오기 때문이었다. 이는 따라서 무당파의 역대조사들에 비해도 가히 파천황적인 빠른 진보였다. 여태 아무리 빠른 기재라도 오십세 이전에 태극공을 완성한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어찌 옥진자등이 놀라지 않으랴! 청진자나 현진자는 말할것도 없고, 옥진자는 여태 이러한 성취를 이룬것을 모르고 잇다가 갑자기 이렇게 대성하는 광경을 보게되자 놀라움과 동시에 기쁨을 느끼지 않을수가 없었다. 사실, 운학도장은 아직 태극공을 완성한 것은 아니었는데, 갑자기 내력을 크게 소모하여 마음을 모아서 운공을 하게되자 머리가 일순 크게 트이게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하나의 신공을 대성하는 것은 물론 그사람의 자질과 총명함이 함께 갖추어져야 하며, 내력도 어느정도 바탕이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반드시 내력이 고강하다고 해서 쉽게 대성할수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신공을 대성한다면 내력은 반대로 더욱 급증하게 되는 것이다. 역시, 운학도장이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내력이 정순하고 심후했던 것은 그가 태극공을 거의 대성에 이르도록 성취하며 내공진전이 빨랐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신공을 대성했으니 다시 그의 내력은 크게 급증했을 것이 분명했다. 옥진자는 원래부터 심중에 두고있던 자신의 제자가 이와같은 놀라운 성취를 이루는 것을 보고는 자연 기쁘고 크게 마음든든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때 그와는 달리 매우 마음이 불편한 사람이 세사람이나 있었다. 그들은 바로 운룡도장을 비롯한 운봉도장과 운진도장 이었다. 원래, 그들의 운공조식하는 속도는 운학도장보다도 느려서 그들은 당연히 운학도장보다도 늦게 일어나야 했다. 그러나, 운학도장은 본래는 운공조식만 하려고 했었으나 마음을 모아서 조식에 전념하다보니 절로 신공구결을 크게 깨닫게 되어서 그만 무아지경에서 대성의 순간을 맞이했던 것이다. 자연 뒤늦게 운공조식을 마친 그 세사람이 먼저 눈을 뜨고 일어나다가 이와같은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그들은 자연 이제 겨우 양의신공을 완성한 터였는데 운학도장의 이런 태극공의 대성하는 광경을 보게 되었으니 어찌 배가 아프지 않으랴! 아니, 그들은 즉각 그들의 사부인 옥진자가 유독 운학도장에게만 특혜를 베풀어서 그로 하여금 태극공을 연성하게 했음을 알고는 크게 억울하게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그들중 운룡도장은 대제자로서 거의 자신이 장문인의 대를 이를 것을 믿고 있었는데 이와은 광경을 보았으니 어이가 없어서 넋을 잃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비록 크게 불만이 일었지만 감히 내색할 수는 없었다. 헌데 이러한 그들의 심경을 눈치채고는 옥진자가 문득 그들을 향해 싸늘하게 입을 열었다. "운룡, 운봉, 운진! 너희들은 내가 운학에게만 특혜를 베풀었다고 생각하느냐?" "..." 그 세사람은 비록 불만을 토로할수는 없어도 너무나도 마음이 괴로운 나머지 도저히 그렇지 않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들의 생각에 의하면 이것은 분명한 옥진자의 특혜인것이다. 이에, 옥진자는 더욱 냉랭한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나는 다만 무당파룰 발전시키기 위한 일념에만 가득차 있을 뿐이지 결코 누구를 더욱 좋아하여 특혜를 베풀거나 한적은 없다!" 그말에, 운룡도장이 참다못해 입을 열어 물었다. "하지만 그는 어떻게 해서 그와같은 태극공을 알고 있는 것입니까?" 운룡도장의 반박은 당연한 것이라고 말할수가 있었다. 그러나, 옥진자는 냉랭하게 코웃음을 쳤다. "물론 내가 아직 장문인이 되지 않은자에게 태극공을 가르친 것은 다소 규율에 어긋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너희는 아느냐? 당신 본파에는 태극혜검법의 정수가 실전되어 본파의 무예는 많이 퇴보하고 있었다. 나는 실로 이와같은 현실을 통탄하게 생각하여 오직 인재를 발굴하려고 했을 뿐이었다. "..." 온룡도장등은 옥진자의 태도와 차가와지자 절로 마음이 움츠러져서 묵묵히 듣는 수밖에 없었다. 옥진자는 차갑게 말을 이었다. "나는 가능한한 제자들의 무공을 높이기에 심혈을 기울였던 것이다. 따라서, 만일 너희들이 먼저 양의신공을 완성했었다면 나는 당연히 너희들에게 태극공을 가르쳤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들은 스스로 아다시피 이제야 그러한 것들을 완성한 것이 아니야?" 원래, 운룡도장은 대대로 그와같은 나이에 양의신공을 대성하는 것이 보통이었기 때문에 자신들의 성취가 그리 늦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과연 사실 그러했다. 따라서, 운룡도장은 문득 묻지 않을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그때에 이미 사제는 양의신공을 완성한 상태였단 말입니까?" 옥진자는 그말에 잠시 삼인의 얼굴을 주시하더니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너희들은 믿기지 않겠지만 그것은 사실이었다. 운학은 불과 삼십대에 양의신공을 완성했던 것이다. 나 역시 이러한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었을대 그의 믿을수가 없었으며, 속으로는 매우 기뻐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이제야 무당을 빛낼 인재를 찾았다는 느낌이었다. 너희들은 나의 그러한 마음을 이해하겠느냐?" 이때, 운룡도장등은 내심 크게 놀라서 생각했다. (운학이 지금 태극공을 대성한 것을 보면 방금 장문사존의 그러한 말은 결코 거짓이 아닐것이다. 그토록 심오하다는 태극공을 이미 대성했으니 양의신공이야... 그렇다면... 그렇다면 사부께서는 즉시 그에게 태극공을 가르치고 싶었을 것이다.) 그때, 옥진자는 그들에게 싸늘한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나는 운학이 양의신공을 대성한 것을 보고는 그 아까운 자질을 그대로 썩힐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나는 기왕에 마음을 먹은김에 그에게 태극공을 전수했던 것이다. 너희들은 나의 이러한 행동이 단순히 편애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나는 오직 무당파의 앞날을 위해 일부러 규율까지 어겨가며 이런 일을 했던 것이다." 그말에, 문득 운룡도장은 무릎을 꿇으면서 말했다. "사부님! 사부님의 말씀은 매우 지당합니다. 이 제자는 감히 그러한 취지를 헤아리지 못하고 불편한 마음을 품었사오니 죽여 주십시오!" 원래 이 운룡진인은 마음이 후덕한 편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가 어찌 이렇게 너그럽게 이런일을 받아 들일수가 있겠는가? 일단 그가 그렇게 말하면서 무릎을 꿇자 나머지 운봉과 운진도 함께 무릎을 꿇지 않을수가 없었다. "죽여주십시오, 사부님!" 옥진자는 이에 다소 안색을 풀며 말했다. "죽여달라고 할것 까지는 없다. 그러나, 너희들은 함부로 사특한 마음을 품고 어리석은 짓을 자행한다면 나중에 감히 내게 용서를 바랄수가 없을 것이다. 나는 기실 누구를 더 편애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너희들이 모두가 더 뛰어나게 되어서 무당파를 이끌고 나가기를 바란다. 너희들이 만일 나의 이러한 취지를 알았다면 오늘은 운학이 태극공을 대성한 기쁜 날이니 그에게 한마디의 축하라도 해주기를 바란다. 운룡등 삼인은 그말에 즉시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사부님!" 옥진자의 신분은 장문인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일단 공식적인 장소에서는 그를 장문사존이라고 부르고 지금은 그저 사부라고 호칭하는 것이다. 옥진자는 평소에 매우 엄격한 편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이 말은 다소 간곡한 데가 있었고, 따라서 운룡도장을 비롯한 삼인은 불만스런 마음이 다소 수그러들게 되었다. 옥진자의 말은 그들이 서로 내분을 일으키게 되는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 옥진자의 말은 하나하나 일리가 있었고, 더군다나 운학도장의 지금 실력은 더욱 불어나서 앞으로는 그들이 당해내지 못할것이 아니겠는가? 운룡도장은 마음이 넓어서 후덕한 성격이었기에 이를 수용할 수가 있었고, 운봉도장은 운룡도장을 의시갛여 평소에 그리 커다란 희망을 품고 있지는 않았기에 체념할수가 있었다. 그러니 자연, 운진도장의 경우는 체념이 더욱 쉬운 것이다. 이리하여, 옥진자는 내심 걱정하고 있던 제자들의 내분문제를 거의 효과적으로 진정시킬수가 있게 되었다. 바로 그때, 운학도장이 운공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게 되었으므로 그들 삼인은 다소 씁쓸한 표정으로 그에게 다가가서 축하를 했다. "운학사제! 대공성취를 축하하네!" 이 운학도장은 평소에 성품이 원만하여 거의 무리가 없었고 모든 사람들로부터 사라오가 존경을 받아오던 터였다. 그는 즉시 어떻게 된 영문인지 파악하고는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세분 사형!" 이어, 그는 옥진자에게 다가가서는 얼른 대례를 올리기 시작했다. "사부님께서는 이와같은 은혜를 베푸시어 제자가 오늘 대성을 이루었으니 이는 오로지 사부님의 보살핌을 입은 덕분이옵니다." 옥지낮는 이에 매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온화한 음성으로 말했다. "너는 앞으로 오만하지 말고 더욱 겸손하고 정진하여 장차의 무당파를 빛낼 그릇이 되어주기를 바란다." "예, 사부님!" 운학도장이 절을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옆에 앉아있던 청진자와 현진자도 더불어 축하의 말을 해주었다. 운학도장은 연신 감사의 예를 올리고는 즉시 가지고온 물건 중에서 보따리를 풀어서 마른음식을 꺼내고 다시 맑은 물을 떠다가 먹고 마실수 있게 했다. 때는 마침 정오였다. 이때, 여태까지는 운학도장이 시중을 받는것을 당연하게 생각해 왔던 운룡도장등은 이제는 감히 더이상 그럴수가 없다고 생각하고는 운학이 하는 일을 함께 거들어 주었다. 자연, 이러한 광경을 지켜보는 옥진자의 마음은 매우 흐뭇하여 크게 부풀엇고 오랜만에 웃음을 드러내며 청진자 현진자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때, 백룡생은 한쪽에 앉아서 그러한 광경을 물론 다 지켜보았다. 그러나, 원래 그는 자신의 무예에 대해서도 별로 신통하게 생각하지 않는데 운학도장의 성취에 대해서는 더 말할 나위도 없는 일이었다. 그는 거의 무심한 표정으로 묵묵히 그러한 광경을 바라보고 있을뿐 끼어들지는 않았다. 그가 보기에는 운학의 지금 그러한 성취는 별로 대단할 것이 못되기 때문이었다. 허나, 그는 자신만이 가만히 있을수가 없어서 그저 얼굴에 담담한 웃음만을 떠올렸을 뿐이었다. 운학도장은 기실 그에게도 인사를 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백룡생의 표정이 워낙 담담하고 또한 자신은 그에게 달리 할 말도 없는지라 그만 어물어물 끝내버리고 말았다. 백룡생은 역시 그런일에 개의하지 않았다. 그는 다만 나중에 운학도장이 그에게 건량과 물을 가지고 왔을때 웃으며 이렇게 말했을 뿐이었다. "무당파는 복이 많군, 당신과 같은 인재가 있으니," 그말에, 운학은 안색을 다소 붉히며 대답했다. "과찬의 말씀입니다." 헌데 이때, 운학이 이어 옆으로 건량과 물을 가져가는 것을 보고 백룡생의 시선은 문득 그쪽으로 돌려지게 되었다. 거기에는 바로 악불이가 다소곳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던 것이다. 기실, 아까 백룡생이 이곳에 이르러 그녀의 손을 놓아주었을대, 그녀는 다소 무안한듯도 하고 수줍은 듯도 하면서 그저 그쪽에 앉아서 이제까지 아무런 말도 없었다. 물론 백룡생은 이미 그녀에게 어떤 거리를 두고 있었기 때문에 공연히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따라서, 백룡생은 잠시 스스로의 상념에 젖어서 그녀를 잊어버렸던 것인데, 문득 운학의 행동에 따라서 그녀가 아직 그곳에 그러한 자세로 앉아 있음을 알았던 것이다. 악불이는 이미 많이 변해 있었다. 과거의 발랄하던 성격은 이미 간곳이 없고, 그녀는 마치 배꽃같은 우수에 젖은 눈빛을 깔고 안자아 있다가 묵묵히 운학이 건네주는 건량을 받을 뿐이었다. 백룡생은 이것을 보고 혹시 그녀와 심룡의 사이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허나, 그는 더이상 생각하는 것은 공연히 남의일에 대한 간섭이라고 생각하고는 고개를 돌려 음식을 모두 먹고는 잠시 그자리에 정좌를 하고 앉아서 명상에 들어갔다. 이때, 그는 명상에 들어서 눈을 감고 있어도 기이하게도 마치 눈을 뜬 사람처럼 훤하게 주변의 일을 볼수가 있었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눈을 뜨고 보는 것보다도 더욱 멀리 본다고 말할수가 있을 정도였다. 백룡새은 깊은 명상속에 잠겨 있다가 이윽고 모든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길을 떠날 채비를 하는 것을 보고는 천천히 눈을 떴다. 그러자, 악불이가 몸을 일으킨 자세로 그의 옆에 서있었다. 백룡생은 웃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그럼 우리도 이만 갈가요?" 이미 옥진자등은 천천히 신법을 펼치고 있었다. 악불이는 이에 다소 안색을 붉히며 고개를 수그렸다. 백룡생은 그것이 승낙의 표시라고 생각하고는 즉시 그녀의 손을 잡아서 진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백룡생의 내공은 이미 상상을 불허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설사 사흘반 사흘낮을 그녀에게 계속해서 진기를 넣어준다고 해도 전혀 축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이에, 악불이는 즉시 신법을 펼치기 시작했고, 백룡생은 그녀와의 보조를 맞추었다. 그렇게 그들은 옥진자등의 뒤를 따라갓다. 과연 운학도장의 내력은 태극공을 대성한 이후에 크게 진보를 보여서 이미 대제자인 운룡도장과 비슷한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그것은 오후에 신법을 펼쳐서 달려가는 도중에 여실하게 나타났다. 그리고, 나중에 그의 내력은 더욱 빠른 진보를 보일 것이다. 일행은 오후에도 오전과 마찬가지로 빠른 속도로 쉬지않고 신법을 펼쳤으며 그것은 운진도장의 내려깅 다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바로 거기에서 운학도장의 공력이 증가된 것이 드러났으며, 이때에 가장 곤란해진 사람은 뭐니뭐니해도 바로 운진도장이었다. 그는 숨히 턱에 차서야 쉴수가 있었고, 대체 이러한 강행군을 얼마나 더 해야 할지 일수가 없는 일이었다. 옥진자는 거기에서 일행을 한번 더 쉬게 하고는 이어 어두워질 때까지 신법을 펼쳐서 달렸다. 그리하여, 그들은 하나의 제법 커다란 읍성에 도달할수가 있었다. 그 읍성의 이름은 보강이라고 했다. 원래, 지금 일행이 신법을 펼치는 속도는 가히 준마가 달리는 속도에 비해 두배인상은 빠르다고 말할수가 있었다. 헌데 옥진자는 모든 제자들에게 신법을 펼치거나 아니면 말을 사용하거나 밤낮을 도와서 강행군을 할것을 지시했으며, 제자들이 이무리 밤에도 쉬지않고 달린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그 두배이상의 속도로 달려왔었기 때문에 밤에는 쉴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따라서, 옥진자는 일행을 이글고 보강성내의 하나의 객점에 들게 되엇다. 그 객점은 성내에서 가장 큰것이었는데, 그 이름은 역시 보강객점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이 보강객점의 점원들은 근래에 들어 별로 손님이 많지 않았는데 난데없이 이렇게 한대의 손님이 찾아들자 매우 기뻣 소리치며 그들을 맞았다. 청진자가 그들에게 물었다. "별채가 잇는가?" 그의 말에 한 점원이 대답했다. "별채는 없지만 큰방은 있습죠. 커다란 방을 하나 드릴까요?" 이런 읍성의 객점에서 별채를 찾은것이 잘못이었다. 청진자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지 말고 중간의 것으로 두개, 그리고 작은 것으로 두개의 방을 주게!" 그는 일단은 무당삼자는 한방을 사용하고, 그리고 운자배의 네명의 제자는 역시 한방을, 그리고 백룡생과 악불이는 각각 작은방에 하나식 들게하면 될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이때 여태까지 아무런 말도 없이 일행속에 따라오던 악불이가 불쑥 입을 열어 말했다. "제방은 제가 따로 신청할테니 신경쓰지 마세요!" 이어, 그녀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은자가 백룡생의 것이 섞여 있다는 사실을 생각했는지 문득 가볍에 안색을 붉혔다. 허나, 백룡생은 그녀의 그러한 심정을 전혀 생각해 보지도 않고 불쑥 나서서 말했다. "나도 역시 그렇게 해주시요." 헌데, 그말은 청진자가 다소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소사숙께서는 악낭자와 함께 행동하실 것입니까?" 백룡생은 문득 그의 어조가 뭔가 민망한 뜻이 담겨 있는것 같아서 안색을 다소 붉혔다. 그리고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오, 아니오. 니는 다만 굳이 나까지 이런 비용부담을 끼쳐드린다면 그것은, 그것은 너무 미안한 일이기 때문에 그러오." 백룡생의 그말은 기실 사실이었다. 그러나, 청진자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소사숙께서는 이미 본파의 사람이온데 무슨 비용부담이 미안하다고 하시는 것입니까? 당연히 본파의 행동을 같이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기실, 청진자는 기왕에 그를 데리고 나섰으니 항상 그를 방패삼으려고 하는 것이었다. 만일 그와 헤어지게 된다면 어떠한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백룡생도 내심 그러한 그의 속셈을 대강 눈치챘다. 그러나, 그는 그의 그러한 속셈은 상관이 없을 지라도 자신이 공연히 무당파에 부담을 주는 일은 하고 싶지가 않았다. 제 41 장 개방방주! 그리하여, 그는 즉시 품속에서 하나의 천냥짜리 은표를 꺼내서 그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그렇다면 나는 신세를 질수밖에 없군요. 하지만 이것을 쓰도록 하시오!" "...?" 사람들은 일시 이러한 광경을 보고 다소 어리둥절해했다. 백룡생이 지금 꺼낸 이 천냥짜리 은표는 매우 많은 액수엿다. 무당파가 비록 많은 예산속에서 움직이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 천냥이란 액수는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었으며, 게다가 지금 무당파는 이번의 출동을 위해 많은 돈을 소모하게 되었다. 따라서, 경제적으로 다소 궁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백룡생이 이런 많은 액수의 돈을 꺼내줄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일어었다. 아니, 그의 수중에 이토록 많은 돈이 있었다는 것이 신기했다. 허나 그들은 백룡생의 수중에 비단 천냥뿐만 아니라 일만냥 가까이 있으며 마음만 먹으면 금방 그 이상이라도 가질수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사실, 백룡생이 아무리 무당파에서 비용부담을 끼친다고 해도 아마 한 백냥정도면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청진자는 다소 어리둥절한 가운데에서도 지금의 무당파의 경제사정을 생각하고는 두말없이 그 은표를 받아들었다. 그것은 또한 백룡생을 자신들의 주변에 묶어두려는 의지였다. 그리고는 청진자는 점원들을 향해 다시 말했다. "그럼 중간방으로 세개를 주도록 하게!" 청진자는 이미 백룡생이 천냥이나 낸만큼 그를 작은방에서 자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여 그렇게 조치한 것이었다. 이어, 그들은 점원의 안내를 받아서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백룡생은 그들의 뒤를 따라가다가 문득 고개를 돌려서 아직 그자리에 서있는 악불이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악낭자, 그럼 우리는 내일 다시 만나기로 하지요!" "..." 악불이는 그말에 묵묵히 고개를 끄덕일분 말을 하지 않았다. 이에, 백룡생은 얼른 다시 몸을 돌려 안쪽으로 걸어들어가기 시작했다. 점원이 안내해준 세개의 방은 그래도 이런 읍성의 객점에 비해 제법 깨끗하고 아담한 방이었다. 다만 두개의 방은 옆에 붙어있고 나머지 하나는 따로 떨어져 있었는데, 백룡생은 그 떨어진 방 하나를 차지하게 되었다. 운자배의 도장들은 일단 방으로 들어가자 짐을 정리해 놓고 한편으로는 운공조식을 하며 한편으로는 다른방에 있는 무당삼자의 수발을 들기에 분주했다. 백룡생은 그런 것에 신경을 쓰지 않고 간단하게 세수를 한 뒤에 점원이 날라온 저녁식사를 먹고난 다음에 곧장 침상위에 올라 명상에 들었다. 이렇게 명상에 드는 것은 그의 일과나 다름이 없었다. 더군다나 운학등이 무당삼자의 수발을 마치고 안으로 들어가서 휴식을 취하게 되자 이 객점내부는 더욱 조용했다. 백요새은 자정무렵까지 명상에 잠기다가 이윽고 잠자리에 들기 위해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켰다. 헌데 그때였다. 누군가가 다가와서 가볍게 그의 방문을 두드리는 것이 아닌가? 똑똑... 백룡생은 무심결에 물었다. "누구시오?" 헌데, 그 순간 문이 가볍게 열리더니 한 사람이 안으로 들어서는 것이 아닌가? 백룡생은 미리 문을 잠가놓지 않았다. 그러나, 백룡생은 상대가 대답도 하지 않고 무단히 안으로 들어왔다는 데에 놀라움을 느낀것은 아니었다. 그가 놀란 까닭은 방금 들어선 사람이 바로 다름아니 악불이라는 사실이었다. 악불이는 이미 심룡의 여자나 다름없을 것이고, 그렇다면 엄연히 백룡생과는 남인데 이런 야심한 시각에 무엇때문에 그를 찾아온 것이란 말인가? 악불이는 그의 놀란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평소와 같은 차림새로 방문을 닫고 조용히 그를 바라보며 서있었다. 그럼 그녀는 여태 잠을 자지 않았었단 말인가? 백룡생은 문득 그녀의 두눈에 배꽃같은 이슬이 맺혀 있는것을 발견했다. 백룡생은 그녀가 말없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고는 웃으며 말했다. "악낭자, 무슨 일이오? 혹시..." 그가 말끝을 흐리자 악불이가 즉시 되물었다. "혹시 뭐죠?" 백룡생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 "혹시 아직 방을 잡지 못한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오. 만일 그러다면 내가 이 방을 비워드리고 나는 밖에 나가서 잠을 자도록 하겠소." 그것은 백룡생의 진심어린 호의에서 나온 말이었다. 그런데, 악불이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바로 이 옆방을 얻었으니 그러실 필요는 없어요." 백룡생은 그말에 다소 의아해졌다. "그럼 혹시 돈이 모자라는 것이 아니오?" 악불이는 다시 고개를 내저었다. "나는 지금 그많은 돈을 아직 그대로 가지고 있으니 돈걱정은 없어요." 백룡생은 더욱 이상해졌다. "그럼 혹시 무슨 문제라도 생겼다는 말이오?" 악불이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다만 당신과 얘기를 하고자 왔을 뿐이예요." 그말에, 백룡생은 순간 아하 하고는 생각했다. (그렇군. 그녀는 그저 할말이 잇어서 나를 찾아왓을수도 있겠군. 허나... 허나 그녀는 이미 심룡을 따라가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그녀는 이렇게 야심한 시각에 얘기를 하러 온다는 것은 좋지 않은 일이다 그녀는 왜 내일 아침에 얘기를 하려하지 않고 반드시 지금 이렇게 굳이 나와 얘기를 나누려는 것일까?) 백룡생은 그녀의 젖은 눈빛에서 모종의 결심을 느낄수가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다시 생각했다. (아냐 아냐, 그녀는 반드시 중대한 얘기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번 들어보는 것도 괜찮겠지.) 따라서, 그는 그녀에게 물었다. "당신이 내게 할 얘기란 무엇이오?" 악불이는 다소 주저하다가 되물었다. "당신은... 당신은 내게 자리를 권하지도 않나요?" 백룡생은 문득 그녀의 말에 자신이 다소 실례를 했음을 느끼고는 즉시 앞쪽의 탁자를 가리켰다. "아아, 미안하오! 그럼 그리 좀 앉으시겠소?" 헌데, 악불이는 정작 그가 자리를 권하자 도리어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예요 아니예요. 나는 자리에 앉지 않고 여기에서 말하겠어요!"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눈빛에는 짙은 갈등의 빛이 심하게 노출되어 있었다. 백룡생은 그녀가 마치 떼를 쓰는 것처럼 말을 하자 내심 생각했다. (그녀는 전에도 이렇게 나에게 떼를 쓰곤 했엇는데 실은 그녀의 성격은 그리 변하것은 아니었구나!) 그러면서, 그는 담담히 웃으며 물었다. "그래 할 말이란 무엇이오?" "..." 악불이는 잠시 대답하지 않고 묵묵히 백룡생을 주시했다. 그러다가, 그녀는 이윽고 용기를 낸듯 불쑥 소리쳐 물었다. "당신은... 나를 아직도 친구로 생각하나요?" 백룡생은 그녀가 무슨 어려운 말을 꺼내나보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고작 그러한 말을 하는것을 보고는 일순 가볍게 미소를 떠올렸다. "물론이오. 그걸 말이라고 하겠소?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가 어떻게 서로 동행자가 되었었겠소?" 헌데, 악불이는 고개를 천천히 내저었다. 그리고는 다소 억눌린듯한 음성으로 재차 묻는 것이었다. "내말은... 내말은 내가 만일 당신에게 돌아간다면... 그때는, 그때는 당신이 저를 다시 받아주겠냐는 말이예요." 그녀의 이말은 매우 힘겹게 했다. 백룡생은 그말을 듣는순간 다소 어리둥절해져서 되물었다. "하지만 지금 당신에게는 다른 좋은 남자가 있지 않소?" 그말에, 악불이는 안색을 초췌하게 변모시켜며 되물었다. "당신은 바로 그... 그를 말하는 것인가요?" 백룡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심룡, 그 심소협은 헌데 지금 어디에 있길래 보이지 않소? 혹시 일이 너무나도 바빠서 먼저 가버린 것이 아니오?" 이에, 악불이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마치 넋나간듯한 표정을 하더니 말했다. "나는... 나는 그를 좋아하지 않아요. 그는... 그는 나쁜 사람이었지요. 물론, 물론 제가 더 나빴죠..." 어떤 과거를 회상하는지 그녀의 어조는 매우 떨렸고 또한 그녀의 표정을 어둡고 고통스런 분위기가 느껴졌다. 백룡생은 그것을 보고 그녀를 위로해줄 생각으로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것은 당신이 잠시 그를 오해했기 때문인지도 므르지 않소? 무릇 완벽한 사람이란 없는 법이나 그를 잘 이해하면 그를 좋아하게 될 것이오." 헌데, 악불이는 그의 말에 차갑게 되쏘았다. "그가... 그가 좋아질 것이라고요? 오해였다고요? 그가 그렇게 나의 진정을 몰라주고 나를 버리고 떠나버린 것도 오해인가요?" 지금 악불이의 심경은 너무나도 복잡해서 그녀는 잠시 이성을 잃은것 같았다. 하지만, 백룡생은 그녀의 말 가운데에서 적지않은 사실을 알아낼 수가 있었다. 그는 다소 놀라서 되물었다. "그럼... 그럼 그가 당신을 이미 버렸다는 말이오?" 악불이는 그말에 일순 크게 흠칫하며 정신을 차리는것 같더니 체념한듯 고소하며 싸늘하게 대꾸했다. "그래요. 당신은 이제 내가 아주 천박하게 보이겠죠?" 백룡생은 잠시 어리둥절해 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럴리가 있겠소 당신은 천박하지 않소." 그말에, 악불이는 대뜸 냉랭한 코웃음을 날렸다. "흥! 천박하지 않다고요?" 이어, 그녀는 자신의 백옥같은 흰 오른팔을 소매를 걷어서 보이며 그에게 내밀었다. "보이냐요?' 백룡생은 그녀의 희고 아름다운 백옥빛 살결을 보았을뿐 거기에 다른 무엇도 찾아볼수가 없다는 것을 알고는 어리둥절해서 되물었다. "뭘 보라는 것이오?" 악불이는 말했다. "여기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 백룡생은 그녀의 말을 이해할수가 없어서 되물었다. "그게 어쨌다는 말이오?' 악불이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나는 원래 여기에다 수궁사를 찍어두었었지요." -- 수궁사, 그것은 바로 강호의 여인들이 즐겨쓰는 방법으로 바로 처녀성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들리는 말로는 서역의 곤충의 액으로 팔뚝에 붉은 흔적을 남긴다고 하는데, 만일 그여자가 순결을 상실하게 되면 그것이 다시 사라진다고 한다. 백룡생은 비록 여인들과의 교류가 거의 없엇지만 이러한 사실을 강호에 흔히 유전되는 이야기엿기 때문에 오매촌에서도 들을수가 있었다. 그러니까, 악불이는 지금 자시느이 순결이 심룡에게 파괴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대체 그녀는 무엇때문에 이러한 말을 그에게 하고 있는 것일까? 백룡생은 그 말을 듣는순간 기이하게도 마음이 흔들렸다. 그는 눈빛을 가볍게 흔들리다가 짧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것은... 그것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에는 흔한 일이라고 들었소. 그런데 그게 무슨 잘못이란 말이오?" 악불이는 잠시 멍하니 그를 바라보다가 물었다. "당신은 화가 나지 않나요?" 백룡생은 담담히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당신은 이미 그의 여자인데 내가 왜 화를 내겠소?" 악불이는 눈빛을 처연하게 피어올렸다. "나는 이미 그와 헤어졌어요." 백룡생은 다소 놀라며 되물었다. "그럼 그말이 정말이란 말이오?" 악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왜 거짓말을 하겠어요? 나는... 나는 본래 그를 차지할 마음으로 심언진에서 그를 따라가며 유혹했었죠. 내가 나쁜계집이예요! 그는 과연 저의 말을 들어주는척 하더군요. 하지만 그는 저의 순결을 빼앗고 나서 저를 멀리하기 시작했어요. 나중에... 나중에 무당파에서 나왔을때 제가 따라가겠다고 하니까 그는 말했어요. 염치없는 계집애라고!" 백룡생은 일시 그 말을 믿을수가 없었다. 그는 심룡과 같이 준수하고 장래가 촉망되는 청년이 그와같은 행동을 했다는 것이 실로 믿기지가 않았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속이라고 하는 것은 모를 일이었다. 비근한 예로 그 성수약포의 중년사내도 태도를 돌변시키지 않았던가? 백룡생은 문득 그 심룡이 육체적인 욕망으로 악불이를 건드렸다가 뒤늦게 후회를 하고 그녀를 버린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젊은 혈기를 지닌 청년은 그렇게 잠시 이성을 잃을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실로 불행한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악불이는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저는 사정사정을 했죠. 무슨 일이든 다할테니 그와 함께 있게만 해달라고, 그러나 그는... 모질게 저를 짐승처럼 구박하고 이 군자검도 던져버리고 떠나갔어요." 백룡생은 심룡이 그녀를 짐승처럼 대했다는 말을 일시 믿을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녀가 자신의 허리춤에 매어져 있는 군자감을 가리키자 믿지 않을수도 없었다. 백룡생은 의아해하며 다시 물었다. "그럼 당신은 성수방으로 가겠다고 한 것은 거짓말이었단 말이오?" 악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전... 저는 문득 당신에게 매달리고 싶다는 생각때문에... 호호! 저는 염치없고 나쁜 계집애예요!" 그녀는 말을 하다말고 일순 짙은 자조섞인 웃음을 터뜨렸다. "..." 백룡생은 잠시 묵묵하다가 생각했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이는 참으로 안된 일이구나! 그녀가 이런 변을 당했으니 나는, 나는 어떤 위로를 해주어야 할가?) 그리하여 그는 물었다. "그러니까 당신의 말은, 나에게 다시 돌아올테니 내가 당신을 받아달라는 말이오?" 악불이는 자조섞인 웃음으로 웃으며 말했다. "당신은... 정말로 나를 받아줄 수가 있나요?" 백룡생은 잠시 곤혹해졌다. 그는 이러한 때에는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잘 알수가 없었다. 허나, 그는 곧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당신을 받아주겠소." :..." 악불이는 그말에 일순 멍하니 백룡생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일순 까르르 웃으며 말했다. "내가 나쁜 계집애예요. 원래 당신은 아주 좋은 분이었는데 내가 당신을 버렸으니 무슨 염치로... 호호호! 사실 제가 여기에 온 것은 그런 말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예요." 백룡생은 이미 전에 자신이 한 맹세도 있고 해서 그녀를 받아주려고 했었는데 그녀가 아니라고 말하자 일순 의아해져서 물었다. "그럼 무슨 말을 하자는 것이었소?" 악불이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처연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저는... 사실 당신의 곁을 떠나기 위해서였어요." 백룡생은 의아해져서 물었다. "그럼 어디로 가겠다는 것이오?" 악불이는 처연하게 웃었다. "내가 갈 곳은 내가 알아요. 그전에 당신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또한 당신의 물건들을 돌려주려고 왔던 거예요." 이어, 그녀는 자신의 허리춤에 걸려있던 군자검과 숙녀검을 검집에 끼어있는채로 줄줄이 탁자위에 내려놓았다. "이것들은 원래 당신의 것이나 마찬가지였어요. 그런데 제가 당신것을 빼앗다시피 했지요. 저는 이제 이러한 것들이 필요없으니 모두 당신께 드리고 떠나겠어요." 그리고, 그녀는 이어 품속에서 다시 한뭉치의 은표를 거내서 그에게 건네주었다. 그것은 바로 전에 그녀가 가졌던 사만냥이 훨씬 넘는 금액의 은표였다. 악불이는 그것들을 백룡생에게 건네주벼 말을 이었다. "이것 역시 당신의 것이니 당신이 가지도록 하세요!" 백룡생은 그녀가 돈을 매우 좋아하고 있었던 것을 알고 있었는지라 의아해져서 물었다. "그럼 당신은 앞으로 은자도 없이 어떻게 하려고 하시오?" 악불이는 처연한 기색으로 고개를 저었다. "나는... 상관하지 말아요. 나는 나름대로 준비가 되어 있어요." 백룡생은 이상한 생각이 들었지만 그녀가 준비가 이미 되어 있다는 얘기를 듣고는 더이상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할수없이 그는 그 은표들을 품속에 갈무리하고는 그녀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어디로 가는지에 대해서 말해줄수는 없겠소?" 악불이는 고개를 가볍게 내저엇다. "당신은... 이제 머지않아 알게될 것이예요." "...?" 악불이는 그렇게 모든 것을 정리하고 나자, 곧장 방문을 열고 다시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백룡생은 잠시 멍하니 서있다가 무심결에 그녀를 따라나가지 않을수가 없었다. 악불이는 그러나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객점의 문쪽으로 걸어갔다. 그녀가 문을 열자, 박ㄲ에는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겨울비였다. 헌데 악불이는 우산도 쓰지 않은채로 곧장 그 자욱한 빗속을 달려가 버리는 것이 아닌가? (...?) 백룡생은 문앞까지 따라나왔다가 그녀의 그런 행동을 보고는 일시 밖으로 따라나갈 생각을 하지 못했다. 잠시 그녀가 어디로 가는지 알수가 없어서 멍하니 그녀가 사라진 어둠속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녀는 신법을 펼쳐서 빠르게 사라졌고, 겨울비가 자욱하게 내리고 있었기 대문에 그녀의 자나간 흔적은 곧장 지워져 버렸다. 백룡생은 그런 광경을 바라보다가 일순 가슴속이 서늘한 것을 느꼈다. 마음이 허전한 것이다. 그는 실로 악불이가 그의 내심에 이렇게 깊은 영상으로 남아 있을줄은 몰랐다. 백룡생은 자신의 마음의 평정이 께어지고 있는지도 전혀 생각하지 않은채 멍하니 빗속을 바라보며 서있었고, 곧 싸늘한 바람이 불어와 빗방울을 그의 옷깃에 뿌리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난데없는 목소리가 그의 귓전에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나으리, 적선좀 삽시요! 적선을 하면 만복을 누리게 되어있습죠..." 백룡생은 문득 가볍게 흠칫하여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바로 한명의 늙고 추레한 형상의 거지가 서있었다. 그런데, 그는 바로 다름아닌 전에 악불이와 함께 심언진에 갔을때 악불이가 우연히 백냥이란 거금을 던져주었던 그 늙은 거지가 아닌가? 백룡생은 그 거지를 지금 여기에서 다시 만나게 될 줄은 정말 몰랐었다. 그 늙은 거지는 지금 처마밑에 비를 피하면서 다소 기이한 눈빛으로 백룡생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백룡생은 그의 눈빛에서 그가 생각되로 절정의 무공을 터득한 고수라는 사실을 알수가 있었다. 사실, 방금전에 백룡생이 정신없이 생각을 다른곳에 집중하고 있었고, 게다가 빗소리가 요란해사 그렇기는 하나, 이 늙은 거지가 기척도 없이 나타난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그런데, 이 늙은 거지는 다시 그를 향해 놀라운 질문을 던지는 것이 아닌가? "악낭자는 지금 어디에 있소?" 백룡생은 그말에 문득 웃으며 대꾸했다. "노인장은 무림의 인물이시군요?" 늙은 거지는 금라에 신비롭게 웃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셈이오. 그대는 개방을 아시오?" 백룡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개방은 바로 천하제일방이 아닙니까?" 그말에, 늙은 거지는 문득 씁쓸하게 고개를 저었다. "윈래는 그랬지만 지금은 단지 천하제이방일 뿐이오." 아마도 그는 성수방을 의시갛고 있는것 같았다. 사실, 당금의 성수방은 천하에 그 세력이 막강하게 퍼져 있어서 개방의 성세를 능가하고 있었다. 물론 그들은 의원과 그 제자들인 것이다. 백룡생은 그의 말을 반박하지 않으며 물었다. "그럼 노인장께서는 개방의 인물이십니까?" 늙은 거지는 그말에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니 무슨 생각을 하는듯 백룡생을 쳐다보며 물었다. "그대는 내가 개방의 방주라면 믿겠소?" -- 개방의 방주, 백룡생은 이미 그 사람에 대해서 어느정도 책에서 읽은바가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일순 안색으 ㄹ펴며 웃으며 말했다. "아하! 노인장께서 바로 개선 홍대통, 홍방주이시군요?" 늙은거지, 홍대통은 미미하게 웃으며 대꾸햇다. "허나 그 이름은 무당의 옥허산인보다는 성가가 높지 않은 것이지." 아마 홍대통은 이미 백룡생의 신분등에 대해서 휜하게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원래, 이 개방은 과거의 천하제일방으로, 정보망도 뛰어나기 그지 없었고 이를테면 천하에 일어나는 일은 그들의 눈과 귀를 속일수는 없었다. 당금의 천하는 기근이 극심해서 거지가 곳곳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자연 홍대통이 백룡생의 신분을 알아낸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백룡생은 개의하지 않고 웃으며 대꾸했다. "겸손하시군요. 저는 단지 허명 뿐입니다.' 이어, 그는 물었다. "그런데 무슨일로 오셨습니까?" 홍대통은 웃으며 대꾸했다. "이 거지는 은혜를 입으면 보답을 하는 사람이오. 악낭자는 지금 어디에 있소?" 아마 그는 전일에 악불이에게서 백냥짜리 은원보를 받은일을 두고 말하는 모양이었다. 백룡생은 그의 질문에 다소 눈쌀을 찌푸렸다. 왠지 마음이 답답해지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그는 즉시 솔직하게 악불이가 이러이러한 말을 남기고 홀로 떠나버렸음을 말해주었다. 그러자 이상한 일이었다. 홍대통이 돌연 눈을 크게 뜨고 놀란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묻는 것이 아닌가? "그대는 그녀가 그런 말을 남기고 떠났는데도 어디로 갔는지 몰랐단 말이오?" 백룡생은 그의 질문이 이상하여 오히려 되물엇다. "그럼 노인장은 알고 있다는 말입니까?" 홍대통은 고개를 내저었다. "노인장이 아니라 노화자라고 불러주오." "..." 백룡생은 그가 갑자기 딴청을 피우자 어리둥절해서 얼른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노화자, 당신은 그녀가 어디로 갔는지 알고 있다는 말입니까?' 홍대통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무림인은 결코 자신의 병기를 버리지 않는 법이오. 그녀가 병기를 버리고 갔으니 일단 무림을 떠났다고도 불수가 있겠으나, 그렇다면 은자는 가지고 가야 할텐데 그녀는 사는데 필요한 은자마저 버리고 떠나갔소. 게다가 어디로 가는지 말해주지도 않고 이제 얼마후면 절로 알게될 것이라고 했으니... 이는, 이는 실로..." 홍대통은 뒷말을 이을까 말까 하고 다소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다. 백룡생은 그것을 보고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서 물었다. "그럼 그녀는 혹시 자결을 하기 위해서... 자결을 하기 위해서 갔단 말입니까?" 백룡생은 이말을 하면서도 혹시나 했을뿐 믿을수가 없었다. 그런데, 홍대통은 즉시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아닌가? "그렇지 않다면 그녀가 대체 어디로 갔겠소? 아마 그녀는 어떤 마음의 상처를 입고 치유하지 못해서 그런 모양이오. 휴우... 인명은 제천이니 너무 상심해 마시오." "..." 백룡생은 그가 이미 악불이가 죽은 것처럼 말을 하자 너무나도 어이가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얼른 물었다. "그녀는 대체 어디로 갔을까요?" 홍대통은 슬쩍 그의 눈치를 살피더니 대꾸했다. "글세... 사람이 죽는 것은 여러가지 방법이 있겠으나, 검을 버렸으니 병기로 찔러서 죽을것 같지는 않고, 그렇다고 이런 읍성에서 갑자기 독약을 구할수도 없을 테니..." 홍대통은 이미 산전수전을 다 겪은 사람이었다. 그는 풍진에 오랫동안 찌들은 얼굴로 태연하게 말을 끌더니 이윽고 말을 맺었다. "아마 그녀가 사람에 의해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면 이런 날씨에 비뿌리는 절벽위에서 몸을 던지지 않을까 생각하오." "..." 이어, 그는 태연하게 말을 이으며 백룡생에게 물었다. "젊은 사람들의 사랑사움은 때로는 아주 무서운 결과를 낳기도 한다오. 웬만하면 그만 마음을 돌리는 것이 어떻겠소?" 헌데 그때였다. (...!) 백룡생의 신형이 갑자기 흐려진다 싶은 순간에 이미 퍽 하고 꺼지듯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닌가? 홍대통은 무심코 보다가 일순 크게 놀라서 입을 딱 벌렸다. "이, 이런 신법이...?" 이어, 그는 백룡생이 사라져간 곳으로 짐작되는 방향으로 즉시 몸을 날리기 시작했다. 제 42 장 망혼애 홍대통은 한참 동안이나 빗속을 달려갔다. 지금 그의 신법은 빠르기 그지없는 것이었으나 그래도 비를 피할수는 없어서 이미 그의 전신은 완전히 흠뻑 빗물에 젖고 말았다. 그런 와중에도 그는 내심 생각했다. (허, 이거... 소문보다도 훨씬 더 대단한 무공을 지녔군! 도대체 너무 빨라서 어디로 갔는지 알수가 있어야지. 이쪽 방향이 맞아야 할텐데...) 그가 내심 중얼거리고 있을 때였다. 문득 전면에 한줄기 희끗한 물체가 있었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 보니 그것은 바로 백룡생이 아닌가? 그는 자욱하게 쏟아지는 빗속에 서 있었는데, 기이하게도 그의 전신은 한겹의 투명한 막이 생겨나는듯 전혀 젖지 않고 있었다. 이것은 그의 신체의 자연스런 움직임이었다. 백룡생은 지금 멍하니 뭔가를 생각하며 서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홍대통은 실로 믿을수가 없어서 그러한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그에게 다가갔다. "여기서 뭘하는가?" 그말에, 백룡생은 일시 흠칫하더니 고개를 돌려 그에게 말했다. "빗속이라... 그녀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홍대통은 그말에 싱긋 미소를 떠올렸다. "그런 일이라면 나에게 맡겨야지." 백룡생은 고개를 돌리며 그에게 물었다. "그럼 노화자께서는 그곳을 알고 계시다는 말입니까?" 홍대통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네, 나는 항상 여기저기를 떠돌아 다니느 ㄴ사람이라 물론 이곳의 지리에도 훤한 편이지, 아마도... 이곳 부근에서 몸을 던지기가 가장 좋은 곳은 망혼애이네." 백룡생은 급히 물었다. "그럼 그곳으로 안내해 주십시오." 그말에, 홍대통은 웃더니 몸을 돌렸다. "좋네, 어서 나를 따라오게나!" * * * 망혼애, 그 이름은 마치 자결을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지어져 잇는것 같이 아주 걸맞았다. 백룡생은 그러한 이름의 절벽이 공교롭게도 이 부근에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믿지 않을 경황도 없었다. 그는 홍대통의 신법이 느려터지다고 연신 생각을 하면서 부지런히 그의 뒤를 따랐다. 홍대통은 험한 산붕으로 기어 올라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그는 하나의 높은 절벽위에 올라섰다. 헌데 그때였다. 그가 갑자기 놀란 어조로 크게 소리치는 것이 아닌가? "앗! 저기에 있네." "...!" 백룡생은 그 말에 즉시 그의 옆으로 다가가서 전면을 바라보았다. -- 단애. 이곳은 마치 하나의 거대한 암봉을 절반으로 갈라놓은 것 같이 중간에 깎아지른 천장단애가 펼쳐져 있었다. 이것은 마치 전날 백룡생이 기연을 얻었던 구령산의 절곡의 형상과도 비슷했으나 단애의 갈라진 폭이 더욱 넓고 주위의 분위기도 더욱 삭막했다. 아마 이곳을 망혼애라고 부르는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이곳의 형상은 자결하고 싶은 사람에게 더없이 투신하기에 좋은 장소를 제공하고 있었고, 단애의 사방에 깔려있는 음울한 안개와 스산한 바람들은 설사 죽고싶지 않은 사람에게도 염세적인 심정을 느끼게 할 정도였다. 이때, 단애의 반대편의 절벽의 뒤에는 한 사람이 비를 맞으며 처연한 신색으로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백룡생은 일시 눈을 크게 떴다. 그녀는 바로 악불이가 틀림이 없었던 것이다. 그의 두눈은 이미 어둠을 꿰뚫어 볼수가 있었기 때문에 비록 지금 사방이 어둡고 비바람이 휘몰아치고 있을지라도 그녀의 얼굴표정 하나까지 뚜렷하게 다 보였다. 백룡생은 이에 내심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정말로 자결을 하려고 하는구나! 이것은... 이것은 모두 나의 잘못이 아니겠는가? 내가 좀 더 그녀를 세심하게 대해 주었었다면 이런일은 없었을 것이다.) 백룡생은 내심 씁쓸하게 웃으며 잠시 먼산을 보았다. 헌데 그때였다. 홍대통이 갑자기 안색이 크게 변해서 소리치는 것이 아닌가? "아니 저... 저것! 그녀가 정말로 몸을 던졌네!" 그 말에, 잠시 상념에 잠겨있던 백룡생은 즉시 그쪽으로 다시 시선을 던졌다. 그리고, 그의 두 눈은 한순간 가볍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정말로 그순간 악불이는 절벽 위에서 둥실 아래로 몸을 날렸던 것이다. 그녀의 신형은 처음에는 아래쪽에서 일어나는 기류에 다소 떠드는 것 같더니 곧이어 즉시 아래쪽으로 빠르게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홍대통은 이것을 보고 즉시 안색이 새파랗게 굳어져서 발을 동동 굴렸다. 지금 그들이 단애의 앞에 서 있다고 하더라도 그쪽과는 적어도 수십장의 거리가 있는것 같았다. 게다가, 악불이가 저렇게 빠르게 아득한 단애의 아래로 떨어져내리고 있으니 어떻게 그녀를 구할수가 있다는 말인가? 그러나, 홍대통은 다음순간 두눈을 있는데로 부릅떴다. 백룡생, 그가 어느순간 기척없이 사라지는가 싶더니 어느새 저 아득한 밑에서 악불이의 몸을 받아들고 있었던 것이다. 홍대통은 이러한 사실을 믿을수가 없어서 그만 입을 딱 벌렸다. 그리고 내심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이것은 신법이 아니야, 이것은... 이것은, 정말 믿을수가 없는 노릇이군!) -- 악불이, 그녀는 이미 죽기를 각오한 사람처럼 두눈을 꼭 감고 두 손은 가슴앞에 모으고 있었으며 입술이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그러다가, 그녀는 문득 느낌이 이상한지 눈을 떴다. 그녀를 향해 백룡생은 문득 웃으며 말했다. "정말로 그렇게 죽고 싶다는 말이오?" 이에, 악불이는 문득 그의 품속에 파고들며 격렬하게 울부짖기 시작했다. "그럼 제가 더이상 어쩌란 말이예요? 당신은... 당신은 나를 책임질수가 있나요? 나는 이미 더러운 계집인데..." 헌데 그때였다. 악불이의 얼굴은 곧 들어올려졌다. 그녀의 눈앞에는 백룡생의 눈부신 얼굴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일순 그의 입술이 그녀의 파리한 입술을 점령하는 것이 아니가? 악불이는 이에 전신을 마치 벼락이라도 맞은 사람처럼 부르르 떨어댔다. 이어, 백룡생은 그녀의 몸을 부드럽개 안아주며 말했다. "당신은 하나도 더럽지 않소. 이제는 나와 함게 살도록 합시다. 나의 아내가 되어주오." "..." 악불이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녀는 그만 눈물을 줄줄이 흘리며 어린아이처럼 그의 품속으로 파고들 뿐이었다. 백룡생이 악불이를 안고 다시 절벽위로 올라오자 홍대통은 멍청하게 서 있다가 일순 대소를 터뜨리며 입을 열었다. "이러한 일순 무림의 일대 기사라고 할수가 있지...! 아무튼 혼인식날에는 나도 불러주시오. 만일 화산파의 그 악군산이 방해를 한다면 그건 나에게 맡기고... 하하하! 그럼 나는 이만 가겠소. 다음에 봅시다!" 홍대통은 그말을 하고 신법을 펼쳐 아득한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그야말로 풍진이인의 걸맞는 모습이었다. 백룡생은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보니 악불이의 안색은 어느새 발그레 하니 제색깔을 되찾고 있었고 다소 수줍은 기색마저 서려 있었다. 백룡생은 즉시 그녀를 부드럽게 안아 올렸다. "자, 그럼 우리는 이만 갑시다!" 말이 끝나는 순간, 백룡생의 신형은 악불이의 몸을 안은채 어두운 하늘을 비쾌하게 가르고 있었다. * * * 백룡생은 자신의 객방으로 돌아와서 진기로써 악불이의 옷을 말려준 다음에 그녀에게 다시 사만냥이 넘는 은표를 되돌려 주었다. 그리고, 숙녀검은 돌려주었으며 군자검은 자신이 허리에 다시 찼다. 그러자, 악불이는 말없이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서 모든 짐을 운반해 오는 것이었다. 그녀는 갑자기 요조숙녀로 변한 느낌이었다. 그녀는 말하지 않아도 얼른 백룡생의 침상을 깨끗이 치워 주었고, 자신 역시 옷을 벗고 속옷 바람으로 침상위에 반듯하게 누웠다. 그런 그녀의 태도에는 지극한 순종적인 모습이 였보였다. 백룡생은 그것을 보고 망설이지 않았다. 그가 만일 지금에도 망설이고 그녀를 받아주지 않는다면 그녀는 자칫 다시금 오해를 하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백ㄹ요생은 비록 욕정에 눈이 어두운 사람이 아니었으나, 아주 기거운 마음으로 자신역시 옷을 벗고 침상위에 올랐다. 그리고, 서둘러 그녀의 속옷을 벗기고 입술을 점령했다. 이때 그녀의 몸은 다소 굳어 있었다. 백룡생의 손길이 닿자 그녀의 전신은 일제히 격렬하게 떠는 것 같았다. 이에, 백룡생은 내심 웃으며 생각했다. (그녀는 비록 순결이 파괴되었다고 하지만 역시 수치심은 남아 있구나!) 이어, 그의 오른손운 도발적으로 융기한 탄력적인 그녀의 엉덩이를 부드럽게 애무해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악불이의 몸은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고, 곧이어 두 사람의 몸은 아교처럼 끈끈하고도 꿀같이 달콤한 열락속에 빠져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러한 행도은 비록 처음이라도 스스로 알게 되어있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 * * 간밤에 악불이는 처음에는 다소 거부반응을 보였으나 나중에는 몇번이나 열락속에 전신을 파도처럼 움직이곤 했다. 백룡생은 아침 일찍 몸을 일으켜서 명상에 들어서 그와같이 생각하고 은은하게 미소를 떠올렸다. 따라서, 지금 그는 비록 명상에 들어 있지만 기실은 명상이 아니라 엉뚱한 상상을 하고 있는 셈이었다. 그는 그러한 상상이 너무도 즐거웠기 때문에 굳이 다시 마음의 평정을 유지해야겠다는 강박관념이 들지 않았다. 그는 간밤에 너무도 육감적이고 풍만하며 탄력적이면 악불이의 몸을 생각하며 이는 실로 신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악불이의 몸은 걸으로 보기에는 전혀 군살이 없고 날씬하기 짝이없는 버들가지와 같은 몸매였기 대문이었다. 그때, 백룡생이 즐거운 상상을 하고 있는 사이에 악불이가 이미 아름답게 단장한 몸으로 세숫물을 떠서 들고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백룡생은 그것을 보자 일순 참을수가 없었다. 그는 악불이가 세숫대야를 바닥에 내려놓기가 무섭게 그대로 몸을 날려서 그녀의 몸을 으스러지도록 껴안으며 입맞춤을 하기 시작했다. "피곤하지 않소?" 아마 그전이었으면 악불이는 함게 깔깔거리며 장난을 쳤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백룡생의 입술을 곱게 받아들이면서 다만 얼굴에 홍조를 띠고 다소고산 태도를 보일 뿐이었다. 백룡생은 오히려 그러한 그녀의 변화가 신기하여 더욱더 사랑스럽게 애무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악불이의 얼굴은 더욱 붉어져 갔다. 그러다가 그녀는 마침내 자신도 모르게 흥분하여 숨을 할딱거리게 되자 겨우 한마디를 떨리는 어조를 내뱉었을 뿐이었다. "무, 물이 식을... 식을 거예요. 어서... 어서 세수를 하세요." 백룡생은 일순 하하 하고 웃으며 그녀의 몸을 번쩍 들어올려서 침상위에 앉혀놓고는 세수를 하기 시작했다. * * * 백룡생이 식사를 마치고 악불이와 함께 밖으로 나가자, 이미 옥진자등은 그를 기다리고 서 있었다. 그러다가, 그들은 이 두사람의 사이가 심상치 않게 달라진 것을 괴이하게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허나, 백룡생은 개의하지 않고 물었다. "언제 출발하실 것입니까, 장문사질?" 옥진자는 백룡생과 악불이르 ㄹ번갈아 바라보다가 도호를 외우며 대답했다. "무량수불, 바로 지금이오." 이어, 그는 빠르게 객점의 밖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계산은 이미 끝낸 후였다. 옥진자는 앞장서서 읍성을 빠져나갔고, 이른아침이라 행인이 거의 없는 관도위를 즉각 신법을 편여서 앞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어제와 다름이 없는 속도였다. 그러나, 이때 백룡생은 옥진자등이 뭐라고 하든 상관없이 악불이의 몸을 부드럽게 안아들고 그들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어제와 같이 가다가 쉬고 하면서 일행은 끊임없이 남쪽으로 내려갔다. 옥진자등의 일행은 변화가 없었으나 백룡생과 악불이의 사이의 변화는 거다란 것이었다. 그들은 밤마다 객점에 들을때면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한방에 들었고 끊임없이 뜨겁고 황홀한 사랑을 나누었다. 그렇게 한밤을 지새고 나면 악불이는 다소 수척해지는 듯 했으나, 다음날 백룡생은 신법을 펼치면서 그녀를 안고 기력을 보충해 주었다. 그야말로 백룡생의 사랑을 받는 악불이로서는 꿀같이 달콤한 시간의 연속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러한 행복한 시간이라면 그것이 오래가기를 누구나 바랄 것이다. 다행히, 일행은 남쪽으로 내려가면서 전혀 다른 사람들을 만자지 않아서 악불이의 그러한 행복한 시간은 보장을 받았다. 허나, 아무리 오랫동안 펼쳐지는 잔치라도 끝나는 데가 있기 마련잉다. 그 끝나는 날은 드디어 찾아왔다. 대략 열흘 가까이 아래로 내려간 결과 일행은 드디어 성수방이 있는 설봉산의 어귀에 이르렀던 것이다. * * * -- 설봉산, 호남성의 무릉산에서 아래로 내려가면 이 설봉산이 나오는데, 이 산은 비단 산세가 웅장하고 산맥이 끝이 없을 뿐만 아니라 아주 높고 험준한 산이었다. 게다가, 가장 높은 봉우리의 꼭대기에는 항상 백설이 뒤덮여 있어서 마치 머리가 하얗게 세어버린 노인의 얼굴을 연상케 했다. 바로 이 험준한 산속에 당금의 천하제일방으로 꼽히는 성수방의 총단이 있는 것이다. 일행이 그 설봉산의 어귀에 이르자, 자연 그들을 안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바로 성수방의 사람들이었는데, 옥진자는 일단 운룡도장에게 제자들이 오면 이 부근에서 진을 치고 모여 있으라고 지시를 내린 다음에 그자의 뒤를 따라갔다. 그자의 신법은 매우 엄격하고 법도에 맞는 것이어서 당금의 성수방의 위상을 짐작하게 했다. 안내자는 신법을 펼쳐서 설봉산의 계곡을 이리저리 돌아서 하나의 거대한 계곡으로 안내했다. 바로 그곳이 성수곡인 것이다. -- 성수곡, 그곳은 사방이 거대한 절벽에 둘러싸여 있었고, 중앙에는 작은 야산이나 기암괴석의 분지가 끝없이 펼쳐져 잇는 넓은 하나의 분지였다. 그 분지의 곳곳에는 맑은 물이 굽이치고 푹포수를 이루며 흐르고 있었는데, 이러한 곳은 그야말로 천혜의 지역이라고 말할수가 있었다. 인공은 거의 가미되지 않았으나, 사방에 무수하게 들어선 전각들이 기암괴석글과 폭포수들과 어울려 거의 신선도원경을 연출하는 것 같았다. 그것을 보고 비록 옥진자라도 다소 감탄의 표정을 떠올리지 않을수가 없었다. 사실 무림칠패와 구파일방은 서로간의 교류가 거의 없었기 대문에 그는 이제서야 이곳 성수방의 총단을 보게된 것이다. 무당산은 비록 웅장하고 무당파는 제법 장엄한 면모를 갖추고 있다고는 하나, 이곳의 아름다운 정경에 비하면 초라하다 말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이곳은 지금 겨울철인데도 이렇게 아름다운데 만약 봄이 되고 여름이 되어 푸른 세싹이 돋고 나무들이 형형색색의 색깔을 띠고 울긋부 한 기운을 토한다면 그 얼마나 아름다울 것인가? 아마도, 누구라도 한번 이곳에 들게되면 속세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사라질 것이다. 실로 천하의 대방인 성수방이 왜 이런 깊은 산속에 존재하고 있는지 수긍이 가는 순간이었다. 안내자는 곧장 일행을 가장 가까운 거대한 건물로 인도했다. 그 부근에 이르자, 일행은 비로소 많은 사람들이 이미 이곳에 와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그들은 모두 눈빛이 형형하게 맑고 병장기를 몸에 지닌 무림인들이었는데, 백룡생은 그들의 정체를 알수가 없었지만 옥진자나 운자배의 제자들도 가끔씩 그들과 지나치며 인사를 교환하곤 했다. 이때, 물론 일행은 천천히 걷고 있었기 때문에 백룡생은 벌써부터 악불이의 몸을 내려놓고 스스로 신법을 펼치게 했다. 이 거대한 건물은 아주 커다란 것이었다. 게다가, 주위에는 넓은 연무장도 잇고 또한 넓고 맑은 물이 고여있는 연못도 있었다. 정말로 천하제일의 무림방파를 실감케 하는 곳이었다. 일행은 그러한 주위의 정경을 두럴보며 안내자를 따라서 건물의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의 안으로 들어서자 맨 먼저 보이는 것은 눈앞에 시원하게 뚫려 있는 넓고 기다란 통로였다. 그리고, 그 통로의 끝에는 거대한 문이 닫혀 있었고, 좌우로는 많은 작은 통로들이 줄지어 나 있었다. 안내자는 손가락으로 통로의 문이 닫혀 있는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곳이 바로 대의사청입니다. 나중에 모두가 모이게 되면 저곳으로 가십시오." 백룡생은 의아해져서 물었다. "그럼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는 것이오?" 안내자는 미미하게 웃으며 좌측으로 나 있는 작은 통로를 따라 걸어갔다. "여러분은 우선 숙소를 배정받게 됩니다. 따라 오십시오!" 백룡생은 즉시 그의 뒤를 따르며 말했다. "우리는 부부이기 때문에 방이 하나 따로 필요한데 그래 주시겠소?" 그말에, 옥진자등은 실로 백룡생의 말이 너무도 철면피하다고 느껴서 내심 생각했다. (그는 도무지 수치감을 모르는구나! 이제부터 그의 입속에서 곤란한 말들이 쏟아져 나올텐데 이를... 이를 어쩐다지?) 그들은 지난 열흘간 안전하게 오면서 백룡생의 덕을 많이 본 셈이지만 이제는 이곳에 당도하자 귀찮고 부담스런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러나, 안내자는 담담하게 웃으며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것은 걱정 마십시오. 방은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그러다. 방은 얼마든지 있었다. 게다가 그 방들은 하나같이 근사한 객방이나 닮이 없게 꾸며저 있었다. 역시 무당삼자가 하나의 방, 그리고 운자배의 삼인이 하나의 방, 이어 백룡생이 악불이와 하나의 방을 배정받자 백룡생은 연신 즐거워했다. 그러자, 안내자는 웃으며 말했다. "이제 수하들이 때가 되면 식사를 올릴 것입니다. 일단 식사를 마치신 후에는 아무곳이나 돌아다니셔도 상관이 없습니다." 이어, 안내자는 공손히 예를 표하고는 물러갔다. 실로 이런 좋은 안내자만 보아도 성수방의 훌륭한 인상이 느껴지는 듯 했다. 안전을 위해서 옥진자는 무당삼자의 방을 백룡생과 운자배의 방의 중간으로 했다. 그리고, 옥진자는 매우 염려되어 백룡생에게 말했다. "소사숙! 비록 그들이 아무곳이나 돌아다녀도 좋다고 말했지만 이곳은 엄연한 타문파의 총단이므로 함부로 돌아다녀서 그들의 일을 방해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소사숙께서는 기왕에 소질등의 보호를 맡겠다고 하셨으니 가능한한 저희들의 주위를 떠나지 마십시오." 백룡생은 잠시 생각했으나 옥진자의 요구는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그는 악불이와 함게라면 몇달이라도 방을 떠나지 않을수가 있을것 같았다. 게다가, 식사는 때마다 갖다준다고 했고, 또한 방안에는 한쪽에 욕실과 뒷간이 함께 붙어 있었기 때문에 전혀 밖으로 나올 필요가 없었다. 따라서, 백룡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그렇게 정하고 나자 각자는 방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백룡생 역시 자신의 방으로 악불이와 함게 들어와서 문을 잠궈버리고 말했다. "불이! 이제 우리만의 새상이 되었구려?" 그말에, 악불이는 금방 안면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대답했다. "그런... 그런 경박한 말씀을 함부로 하시면 안돼요. 혹시 남들이 우리의 말을 듣는다면 얼마나... 얼마나 웃겠어요?" 백룡생은 담담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웃고 싶으면 웃으라지! 하지만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소, 내가 앞으로 음파를 차단하여 우리방에서 소리가 나가지 않게 할테니까." 이어, 백룡생은 보따리를 집어던지고 악불이의 몸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때 악불이는 백룡생이 내공으로 음파마저 차단할수가 있다는 말을 듣고는 잠시 멍하니 생각에 잠기다가 돌연 그의 손에 의해 몸이 벌렁 들리고 말았다. 백룡생의 애무는 매우 짖궂었다. 악불이의 몸은 이미 거기에 많이 길들어져 있어서 금방 달아올랐다. 그녀는 할딱거리며 다소 반항했다. "지, 지금은... 대낮인데 그것을 한다는 것은... 너무... 너무 심해요. 어서... 어서 손을 멈추세요." 그러나, 백룡생은 그녀의 요구대로 손을 멈추지 않았다. 다만 그는 더욱 빠르게 그녀의 옷을 발가벗겼고, 자신의 옷을 벗은 다음에 즉시 침상으로 그녀를 안아 몸을 던져 뒹굴기 시작했다. 그러자, 처음에는 다소 반항을 하던 악불이의 나신도 점차 그의 몸을 수용하고 함께 뜨겁게 뒤엉키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이미 이러한 일에 이력이 나 있었고 또한 쾌락의 맛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들은 그야말로 지금이 대낮인지도 상관하지 않고 한번 두번 계속해서 끊임없이 즐기고 서로르 희롱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문득 밖에서 문두드리는 소리에 그들은 드디어 화들짝 놀라며 몸을 일으켰다. "식사를 가져왔습니다!" 밖에서 말하는 소리에 두사람은 서둘러 옷을 걸치고 이어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거기에는 서너명의 사내들이 각기 음식상을 들고 서 있었다. 이것을 보고 백룡생은 다소 눈이 휘둥그래졌다. 그 음식들은 모두 하나같이 훌륭하고 푸짐한 것이었기 대문이었다. 따라서, 그는 얼른 옆으로 비켜서며 나직하게 말해다. "성수방의 대접은 제법 괜찮은 편이군!" 헌데 그때였다. 어디선가 다소 우울한듯한 음성이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본방에서 모두에게 그와같은 대접을 하는 것은 아니예요." 백룡생은 어디선가 그 음성을 들은 기억이 있었다. 그리하여, 다시 문밖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어느새 거기에는 한 사람이 새로 나타나 있는것이 아닌가? 놀랍게도 그녀는 바로 심황이었다. 그녀는 백룡생과 눈이 마주치자 웃으며 물었다. "뜻밖이신가요?" 백룡생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곳의 주인은 당신인데 주인이 잠시 나와본다는 것은 결코 뜻밖이 아니겠지." 심황은 그 말에 웃으며 박수를 짝작 쳤다. "물론 그렇죠! 나는 두분을 대접하러 온 거예요." 이어, 그녀는 살짝살짝 걸음을 옮겨서 안으로 들어섰다. 제 43 장 음모와 사랑 이윽고 사내들이 각각 들고잇던 음식상을 탁자위에 펼쳐놓고 물러가자, 심황은 맞은편의 자리를 백룡생에게 권하며 말했다. "이것은 제가 당신에게 마지막으로 권하는 음식이니 많이 드세요." "...?" 백룡생은 무심코 고개를 끄덕이며 음식을 먹으려다가 그 말뜻을 생각해 보고는 다소 의아해 했다. 마지막이라니? 설마 누가 죽기라도 한다는 말인가? 하긴 그런 말을 그냥 하는 수도 있겠지만, 백룡생은 다소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고개를 들고 그녀에게 물엇다. "마지막이라니 그게 무슨 뜻이오?" 심황은 그 말에 일순 꽃같이 아름다운 얼굴에 배시시 웃음을 떠올렸다. 그녀의 그러한 얼굴은 다소 수척해 보이기도 했다. 그녀는 웃음을 지은 다음에 다소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런, 나중에 저절로 알게될 거예요." (나중에 저절로 알게될 거라구? 그건 불이가 저번에 쓰던 말과 똑같잖아?) 물론 그 의미가 똑같을 리는 없겠지만 백룡생은 문득 기이한 느낌이 들었다. 이것이 혹시 불길한 무엇을 예고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다소 장난끼섞인 음성으로 웃으며 물었다. "아주 무서운 것이오?" 이에, 심황은 역시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요, 아주 무서워요!" 백룡생은 일시 눈이 휘둥그래졌다. "그렇다면 이거... 음식이... 음식이 넘어가지 않겠는걸?" 백룡생은 마치 공포에 질려서 음식이 마악 목구멍을 내려가다가 걸린 사람처럼 아주 거북한 표정을 우스꽝스럽게 해냈다. 그러자, 심황은 일순 깔깔 거리며 웃고 말앗다. 일순 그 덕분에 은연중에 어려있는 것 같던 우울한 분위기는 사라진 것 같았다. 이어, 심황은 웃으며 말했다. "나는 당신이 그렇게 간이 작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백룡생은 이에 눈을 휘둥그래 떴다. "그럼 태연히 이 음식들을 먹어야 한단 말이오?" 심황은 주저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그말에, 백룡생은 즉시 웃으며 음식상으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못할것도 없지." 그는 비록 심황이 장난 비슷하게 위헙을 하기는 했어도 원래가 두려움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지금 매우 시장한 상태였으므로 그가 그 많은 음식들을 마다할 리는 없었다. 백룡생은 즉시 탁자 앞에 앉아서 음식들을 꾸역꾸역 하나씩 모조리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이 백룡생의 위장은 사실 무한하다고 할 수가 있었다. 지금 이곳에는 거의 십여인분의 화려한 흠식상이 차려져 있었지만, 백룡생이 그것을 모조리 먹어치우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심황은 마치 백룡생이 이토록 대식가인줄은 몰랐다는 듯이 다소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가 식사하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백룡생은 한참동안 음식을 먹고 있는데 문드 고개를 돌려보니 악불이가 여전히 음식을 먹지 않고 앉아만 있는것이 아닌가? 그리하여 그는 물었다. "아니, 왜 식사를 하지 않소 불이?" 악불이는 그의 말에 고개를 내저었다. 나는 먹고싶지 않아요." 그말에, 백룡생은 의아해져서 다시 물었다. "왜? 입맛이 없소? 이 음식들은 하나같이 아주 근사한 것들인데 한번 먹어보는 것이 어떻겠소?" 허나, 악불이는 제차 고개를 내저었다. "나는 입맛이 없어요. 먹지 않겠어요." 그녀의 태도는 조금 이상한 것 같았다. 아무리 입맛이 없다고 하더라도 이런 음식들을 한번쯤 먹어보는 것은 상관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태도는 다만 음식을 먹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백룡생의 의견을 무시하기 위한 것으로 비춰졌다. 게다가, 그녀는 불과 방금전까지만 해도 백룡생과 함께 방사를 치루며 열락의 걸을 달렸고, 또한 표정이 매우 수줍은듯 순종적이었는데, 지금의 그녀의 표정은 왠지 딱딱하게 느껴졌다. 그렇다면 그녀는 혹시 지금 매우 역겨운 느낌이라도 일고있는 것이 아닐까? 그녀가 입맞이 없다고 말한것을 상기한 백룡생은 그래서 이렇게 물었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당신은 혹시 임신을 한 것이 아니오?" 헌데, 그말에 악불이는 돌연 안색을 빨갛게 붉히더니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예요. 나는 그렇지 않아요." 그녀의 태도는 다소 부끄러운 듯 해도 매우 완강해 보여서 임신은 아니라는 것을 알수가 있었다. 백룡생은 이에 대해 왠일인지 알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물었다. "그럼, 당신은 혹시 내가 심낭자와 반갑게 얘기를 나누는 것을 보고 질투를 하는 것이오? 그렇다면 그녀를 곧 돌려보내면 되지." 그러나, 악불이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나는 당신 때문에 기분이 나쁜것은 아니예요." 백룡생은 더욱 의아해져서 물었다. "그럼 누구 때문이오? 아니, 정말로 기분이 나쁘다는 것이오?" 악불이는 그이 얼굴을 바라보면서 대꾸했다. "나는 오직 나 때문에 기분이 나빠요." 이때, 왠지 그녀의 두눈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 백룡생은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웃으며 말했다. "불이, 살다보면 자신이 못마땅할 때도 있는 것이오. 그렇다면 그것을 이겨내면 그만이지 공연히 연연할 필요가 어디에 있겠소?" 악불이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말했다. "당신은 나의 함정에 걸려 들었어요. 이제 무슨 말인지 알겠나요?" 백룡생은 웃으며 대꾸했다. "물론 알고 있소. 나는 이미 당신의 포로요. 사랑의 포로이며 매우 튼튼한 밧줄에 묶여있는 셈이오." 악불이는 백룡생이 두손으로 마치 자신이 거대한 밧줄에 묶여있는 듯한 자세를 지어 보이자 일순 가볍게 웃고 말았다. 그리고는 말했다. "나의 함정은 그런 밧줄이 아니라 음식이었어요." 백룡생은 그 말에 일시 눈을 휘둥그래 떴다. "음식이라니, 이상한 일이군? 나는 매일 그러한 함정속에서만 산다면 걱정이 없을 것이오." 이에, 악불이는 그만 답답하다는 듯 그를 보며 싸늘하게 소리쳤다. "당신은 정말 멍청하군요!" 백룡생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멍청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데 당신은 이제야 그것을 알다니 이상하군?" 악불이는 다시 소리쳤다. "나는 이미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 새삼 다시 느끼는 거예요." 백룡생은 담담하게 웃었다. "그런것이 무슨 문제가 된단 말이오? 나의 진면목을 다시 파악했으니 굳이 달라질것이 뭐겠소?" 악불이는 고개를 내저었다. "당신은 원래 바보가 아니예요." 백룡생은 의아해졌다. "그게 무슨 말이오?" 악불이는 다시 말했다. "당신은 다만 함정에 걸린 거예요. 나는 당신을 속였어요." 백룡생은 그녀의 말이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고 말했다. "나를 속였다고? 대체 무엇을 속였다는 말이오!" 이에, 악불이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나는 사실 심룡, 심소협과 헤어진 것이 아니었어요, 나는 그와 함게 하기 위해서 당신을 속이고 함정으로 몰아넣은 거예요." "..." 백룡생은 일순 말을 잊었다. 악불이의 이 말은 매우 놀랍고도 믿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녀는 그날 빗속에서 절벽에서 떨어져 내린것도 모두가 그를 속이기 위한 연극이었단 말인가? 백룡생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믿을수가 없소." 헌데 그때였다. "내가 믿도록 해주지!" 한줄기 싸늘한 음성과 함께 문이 열리며 다시 한사람이 방안으로 들어서느 것이 아닌가? 백룡생은 그를 본 순간 눈빛이 가볍게 변했다. 그 사람은 다름아닌 바로 심룡, 그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일과 악불이의 말이 사실이었단 말인가? 마치 그러한 것을 증명이라도 해주듯이 심룡은 방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악불이에게 다가가서 그녀의 손을 다정하게 잡아주는 것이었다. "수고했소. 불이!" 그러자, 악불이는 일순 눈매를 파르르 떨더니 슬며서 고개를 숙이는 것이었다. 심룡은 그녀의 몸을 한차례 안아준 다음에 백룡생에게 고개를 돌려서 웃으며 말했다. "이제야 그대는 믿을수가 있겠지?" 백룡생은 잠시 악불이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하지만 나는 한가지 알수없는 것이 있소." 심룡은 조소하듯이 물었다. "그게 뭔가?" 그의 태도는 매우 위압적이며 마치 백룡생이 포로라도 된듯한 표정이었다. 백룡생은 그의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고 악불이에게 물었다. "왜 나에게 그런 일을 했는지 말해줄수가 있겠소?" 악불이는 잠시 주저하다가 대답했다. "그건 이미 말하지 않았나요? 심소협의 지시를 받았다고." 백룡생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하지만 나는 아직 두가지의 모르는 점이 있소." 이어, 그는 심룡에게 물었다. "대체 그녀가 나에게 무슨짓을 했다는 것이오?" 심룡은 웃으며 대꾸했다. "너는 역시 우리가 말해주지 않으면 죽는 순간까지 알지 못할 것이다. 좋아! 내가 자세히 말해주도록 하지." "..." 심룡은 백룡생의 얼굴을 주시하며 말을 이었다. "우리는 네게 독을 썼다." 백룡생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럴리가? 나는 만독불침의 몸이라는 것을 당신들은 모르고 있었소?" 심룡은 고개를 흔들었다. "물론 네가 만독불침의 몸이라는것은 이 악낭자에게서 들을수가 있었지. 너는 심일도라는 극독에도 끄덕도 없었다면서?" 백ㄹ요생은 의아해졌다. "그러면서도 독을 썼단 말이오?" 심룡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엄격히 말하면 그것은 독이면서도 독이 아니기 때문이었지." "..." 심룡은 백룡생을 바라보며 다시 말했다. "너는 우리 성수방이 약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독에 관해서도 조에가 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사용한 것은 바로 벽옥로 와 비소청풍이었다." 백룡생은 물었다. "그것은 어떤 것들이오?" 심룡은 대답했다. "우리는 먼저 악낭자에게 벽옥로를 그대의 음식에 조금씩 섞어라고 말했다. 원래 벽옥로는 독이 아닌 좋은 영약에 속하는 것이다. 게다가 무색무미무취하니 너라도 전혀 이를 눈치챌수가 없었지, 그러나... 이것은 비소청풍을 만나면 기이한 효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백룡생은 다시 물었다. "그 비소청풍은 무엇이오?" 심룡은 대답했다. "그것은 바로 역시 무색무취한 극도의 산공분인 것이다. 원래 보통 사람은 이것을 조금만 맡기만 해도 즉시 전신의 공력이 사라지고 탈진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너의 특이체질을 생각해서 거기에 벽옥로를 더할 수 밖에 없었다. "..." "너는 원래 만독불침의 몸이라 배소청풍을 만나도 전혀 아무렇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일단 벽옥로를 오랫동안 복용해온 터라, 너의 몸은 이 비소청풍에 가장 민감하게 변했다.. 너는 지금 왠지 기운이 없어지고 있지 않느냐?" 심룡의 질문에 백룡생은 다소 안색이 변했다. 실상, 아까부터 백룡생은 자신의 몸이 갈수록 무기력해진다는 사실에 은근히 괴이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진력을 끌어올릴수가 없다는 사실에 매우 당혹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바로 이들의 짓이었다니, 벽옥로와 미소청풍, 이 두가지 독에 관한 얘기는 쉽게 수긍이 가지 않고 믿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의 눈앞의 현실이 그렇게 변해버렸는데 어찌 믿지 않을수가 있겠는가? 백룡생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물었다. "헌데 나는 언제 비소청풍에 당했다는 밀이오?" 심룡은 웃으며 대답했다. "너는 그점이 궁금할 것이다. 그러나 나 역시 그점에 대해서는 알수가 없으니 나의 누이동생에게 물어보도록 해라!" 백룡생은 이에 심황에게 시선을 던졌다. 그 비소청풍은 그녀가 백룡생에게 전개한 것이란 말인가? 심황은 백룡생의 시선을 받자 다소 눈살을 지푸리더니 대답했다. "나는 아까 방안으로 들어오면서 그것을 전개했어요. 그런것은 당연한데 굳이 물어볼 것이 뭐가 있겠어요?" 백룡생은 의아해져서 물었다. "하지만 악불이나 그 사나이들은 중독되지 않았지 않소?" 그 말에, 심황은 다소 귀찮다는 듯이 대꾸했다. "당신은 정말 생각이 부족하군요? 나는 이미 의술이 고도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예요. 다라서 독술을 펼치는 기술 또한 그에 못지 않다고 말할수가 있지요. 내가 굳이 그 기술을 일일이 설명을 해줘야 하나요? 나는 능히 당신과 말을 하는 와중에도 전혀 모르게 독을 시전할수가 있다고요." 백룡생은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제야 자신이 어떠한 상황에 처했는지 잘 알수가 있었다. 이들이 전개한 독술은 확실하 고명하여 이미 금강불괴인 그의 몸을 무기력하다 못해 점차 의식을 몽롱하게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백룡생은 의문이 있는 상태에서 쓰러질수가 없으므로 심룡을 향해 다시 물었다. "이제 나는 마지막 의문이 남은 셈인데, 어째서 나를 이렇게 대하는 것이오?" 그렇다. 설로 그것이야말로 백룡생의 의문이었다. 성수방은 백혈맹의 주도자이고 자신은 이제 그곳에 가입하려는 무당파의 사숙이 아닌가? 대체 이들은 무슨 목적이 있어서 그를 이렇게 만든 것일까? 그것은 혹시 원한관계일까? 하지만, 백룡생은 도대체 자신이 이들과 무슨 원한이 있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심룡에게 물은 것이다. 헌데, 심룡은 그 말을 듣자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 이유는 아직 극비사항이니 말씀드릴수가 없구려. 미안하오! 대신 내 한가지 좋은 소색을 들려주겠소." 백룡생은 굳이 상대가 말하지 않겠다고 하자 듣고싶으 마음도 없었다. 그는 사실 악불이에 대해 그간 다소의 집착이 일었던 것이었는데, 그녀가 다시 이러한 면모를 보이자 그러한 집착도 사라지고 다만 과거의 마음의 평안에만 주력하고 있었다. 실로 이 평안한 마음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것이다. 백룡생은 일단 그렇게 생각하자 실로 지금에 이르러서 자신이 죽음을 당한다고 해도 과히 마음이 괴롭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는 절로 웃으며 그에게 물엇다. "그 소식이란 뭐요?" 심룡은 그가 갑자기 웃는것을 보고는 괴이하게 여겨서 잠시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그것은 바로 벽옥로가 비소청풍을 만나게 되면 또 하나의 기이한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오. 그것은 바로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최음제가 되는 것이오." "..." 백룡생은 그이 말을 듣고 내심 흠칫했다. 과연, 그의 말대로 괴이하게도 그이 몸은 무겁게 가라앉고 의식이 혼미해져 오건만 그의 육신은 점차로 심한 욕정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는 사실이었다. 이는 마치 이제 그가 정신을 잃으면 그 거대한 욕망의 포로가 될것같은 전조였다. 그러나, 백룡생은 문득 답답한 웃음을 떠올렸다. 그것을 보고 심룡은 의아해져서 물었다. "그대는 이런 상황에서도 웃음이 나온다는 것이오?" 백룡생은 웃으며 대답했다. "이것은 다만 나의 생각일뿐이니 당신은 상관할 바가 못되오." "...?" 심룡은 그의 말이 지극히 애매하다고 느껴서 눈살을 찌푸릴뿐 더이상 묻지 않았다. 그때, 심황이 입을 열어 물었다. "당신의 그 생각이란 것은 어떤거요?" 백룡생은 그녀를 향해 대답했다. "나는 사실 죽음에 대해서 그리 두려워하지 않고 있소. 게다가, 나는 세상의 일에 대해서도 별로 집착이 없으니, 이제 내 몸이 그렇게 된다고 해도 상관이 없다는 것이오." 심화응ㄴ 믿을수가 없다는듯 아미를 찌푸리며 물었다. "어떻게 그럴수가 있죠?" 백룡생은 웃으며 대답했다. "이것은 다만 나의 생각일 분이니 그래서 내가 상관하지 말라고 했던 것이오. 이제 당신들은 마음대로 해도 좋소." 심황은 일시 의혹에 가득찬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정말로 이 사람을 믿을수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때, 문득 백룡생이 한족에 서 있는 악불이를 낮은 음성으로 불렀다. "불이, 어서 이리 오시오. 당신에게 해야할 말이 잇소." "...?" 악불이는 다소 초췌한 안색으로 서 있다가 묵묵히 그의 앞으로 다가가서 물었다. "대체 무슨 할말이 있다는 거죠?" 이때, 백룡생의 의식은 거의 가물가물한 상태였다. 전의 그의 놀라운 무예를 생각한다면 이 독은 실로 불가사의하기 그지없는 것이라고 할수가 있었다. 백룡생은 안간힘을 다해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은 나에 대해서 미안한 감정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오?" 악불이는 그를 쏘아보며 되물었다. "내가 왜 그렇다고 생각하지요?" 백룡생은 대답했다. "굳이 그렇지 않다고 해도 상관없소. 다만, 나는 당신이 오해를 하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말을 꼭 해야 하겠소." 악불이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대체 무슨 말을 하겠다는 거죠?" 과거, 대략 열흘전에 그녀가 백룡생으로 하여금 그렇게 묻게 만들었는데 이러한 광경은 실로 그때와 비슷하니 기이한 일이었다. 악불이는 당시 일부러 말을 길게 끌어서 그에게 감정을 불러 일으키고 자살하는 연극까지 꾸몄던 것이다. 게다가, 그녀는 개방의 방주까지 이용했던 것이니. 이는 대단한 계략이었다. 그것은 그의 흐려져가는 눈빛이 그것을 말해주었다. 백룡생은 겨우 힘을 모아서 말했다. "당신은 내가 과연 당신의 그때의 말들을 그대로 믿었을 것 같소?" 그말에, 악불이는 일순 크게 소리쳤다. "그게 대체 무슨 말이죠?" 백룡생은 거의 힘이 없었기에 빠르게 말을 이었다. "나와같은 사람은 비록 바보인것 같아도 결코 쉽세 속일수는 없는 것이오. 당신의 그때의 그 표정을 비록 격렬했어도 가식이 엿보였소. 그리고 그 마음의 불안은 숨길수가 없는 것이오. 뿐만 아니라 그 개방의 홍방주의 태도나 당신이 떨어질때 공포에 질린 모습이나... 나는 사실 당신의 의도를 어느정도 파악하고 있으면서도 모른척한 것이오. 그러니 당신은 내게 미안해할 필요는 없소." 그렇다! 어느것이 사실인가 하면 백룡생의 이 말은 그야말로 진실 그대로였다. 그는 비단 바보가 아닐분만 아니라 눈이 트여서 보통 사람들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힘마저 어느정도 가지고 있었다. 그런 그가 오로지 악불이의 연극에 속았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를 바보라고 생각을 하지만 그는 결코 바보가 아니다. 단지, 그는 생각이 조금 다를 뿐이다. 악불이는 처음에는 그의 말을 믿을수가 없었으나 급히 묻지 않을수가 없었다. "당신은 왜, 왜 그렇게 했죠?" 백룡생은 웃으며 대답했다. "그것은 바로 당신이 그것을 원했기 때문이오. 나는 당신에게 뭔가를 해주고 싶었소. 그래서 당신의 계략에 그대로 속는척 했던 것이오. 나는 을 전혀 드러내지 않으려고 했는데, 설마 이렇게 상황이 되어버릴줄은 몰랐고, 또한 이로인해 당신이 미안해할 것이라고 생각하여 할수없이 본색을 밝히는 것이오. 이는 원래 내가 자초했던 일이니 당신은 전혀 미안해할 필요가 없소. 말하자면, 내가 너무 나 자신을 믿었다고나 할까? 허나... 그렇다고 해서 후회는 되지 않소..." 백룡생의 말은 이미 흐려져서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그의 눈꺼풀은 이미 무겁게 닫혀져 있었다. 이것을 본 악불이는 문득 감정이 격해져서 소리쳤다. "내가 당신에게 뭘 잘해준 것이 있다고 그렇게 했죠? 나같이 더러운 계집이 어디가 이쁘다고 그렇게까지 했냐구요?" 백룡생은 희미하게 대답했다. "당신은 내게 잘해준 것이 별로 없지만... 나는 당신이 떠난뒤에 통나무집에서 당신의 옷가지들을 보고 사실 당신이 무척 보고 싶었소... 그래서 나는... 당신에게 잘해주고 싶었던 것이오... 지난 열흘간 나는 즐거웠소... 시간이 나면 통나무집에 가서... 그 곳의 당신의 물건은 그대로... 있으니... 까..." 여기에서 백룡생의 말은 완전히 끊어졌다. 그는 완전히 의식을 잃은 것이었다. 하지만, 악불이는 더이상 그의 말을 듣지 않아도 모든것을 알아차릴수가 있었다. 그녀는 함참동안 백룡생의 앉은 모습을 바라보다가 일순 두눈에 눈물을 주르르 흘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물은 얼핏 보기에도 쉽게 그칠것 같지가 않았다. 이때, 그것을 보고 심룡이 짧게 소리쳤다. "데려가라!" 그러자, 방문이 다시 열리며 서녀명의 사내들이 안으로 들어와 빠르게 백룡생의 몸을 안아가지고 나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나갈대 백룡생의 몸에 부대를 씌떫을 뿐만 아니라 행동이 매우 빠르고 은밀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결코 들키지를 않았다. 이윽고, 그들이 모두 사라지고 심황도 그들을 따라서 사라지자, 방안에는 오직 악불이와 심황만이 남았다. 이에, 심룡이 웃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불이! 매우 수고했소. 사실 그는 여간 뛰어난 놈이 아니었기 대문에 아마 당신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잡을수가 없었을 것이오." 그렇다. 심룡의 이 말은 사실이었을 것이다. 악불이는 소매로 눈물을 닦으며 대꾸했다. "당신은 설마하니 약속을 저버리지는 않겠지요?" 그말에, 심룡은 문득 가볍게 흠칫하더니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이오! 당신은 맞아들이는 것과 화산파를 지켜주는 일은 아주 쉽고도 쉽소!" "..." 그말에, 악불이는 재차 눈물을 떨구더니 망연히 허공을 응시하다가 밖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심룡은 입가에 한줄기 의미심장한 미소를 달더니 역시 밖으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제 44 장 동심각 넓은 지하와 석실--. 그곳에 일곱명의 사람이 모였다. 헌데, 특이한 것은 그들의 모습은 대부분이 호호백발의 노인이요. 주그렁텅이 영감인데도 괴이하게도 그들의 몸에서는 심상치 않은 무시무시한 기운이 느껴진다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그들 가운데에는 전에 백룡생이 무당파에서 보았던 만화성모도 섞여 있었다. 그렇다면, 이들은 바로 당금의 무림칠패의 주인들이 아닐까? 하지만, 지금 무림칠패는 두갈래로 나뉘어 있는데 어떻게 그들이 이렇게 한자리에 은밀하게 모일수가 있다는 말인가? 그러나, 이들이 비단 이자리에 은밀하게 모일수가 있을 뿐만 아니라 매우 친밀해 보였다. 현실이란 가끔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저 우리들 인간들이 생각하고 판단을 내리는 것은 그 얼마나 가소로운 일인가? 한마디로 이들 일곱명의 뇐들의 신위는 가공무쌍하여 이 드넓은 지하석실을 가득 메우고 한꺼번에 거대한 폭발을 일으킬것만 같았다. 그러나, 이곳 지하석실은 매우 단단하게 지어진 것이라 그렇게 쉽게 무너질 염려는 없었다. 문득 한 노인이 입을 열었다.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군!" 그의 전신에서는 마치 구름덩어리와 같은 백색의 기운이 찬얀하게 일고 있었는데, 그는 바로 도회의 회주인 도황 곽의방 이었다. 그러자, 옆에 서 있던 다른 노인이 침음성을 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그렇군! 정말로... 믿기 어려운 노릇이야." 그는 전신이 아주 시뻘건 구름같은 기운에 뒤덮여 있었는데, 역시 살결이 붉은 일색으로 투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는 바로 장곡의 곡주인 장존 적용세였다. 그들은 지금 한결같이 둥글게 둘러서서 아래쪽에 누워있는 한 사람이 전신을 마치 세세하게 핥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물론 지금 그 바닥에 길게 누워 있는 사람은 백룡생이었다. 백룡생은 지금 의식을 잃고 누워 있었는데, 가슴의 기복이 전혀 없어서 그가 지금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길이 없었다. 이를 보고 옆에서 다른 사람이 다시 례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빌어먹을! 우리는 한평생에 걸쳐서 이와같은 공력을 겨우 연성했건만 이녀석은 이제 겨우 새파란 나이에 이러한 경지에 오르다니... 우라질! 이건 너무 불골평한 노릇이군!" 그는 마치 억울하고 분해서 견딜수가 없다는듯이 욕을 하며 격렬하게 소리쳤다. 그에 따라서 그의 전신에 어려있는 검은빛 먹물같은 기운이 마치 악마의 입김처럼 거세게 파동을 쳤다. 그는 바로 당금의 녹림맹의 맹주인 그 유명한 녹림사신 독고홍기 였다. 이에, 그말에 옆에서 만화성모가 까르르 웃으며 차갑게 대꾸했다. "호호, 독고맹주께선 잠시 착각을 하고 계신것 같군요? 그의 경지는 우리보다도 훨씬 높은 거예요. 내가 저번에 무당파에서 그를 습하려다가 도리어 심한 내상을 입었었다는 사실을 잊었나요?" 독고홍기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끄덕 했다. "하긴, 음교주의 발견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자칫 일을 그르칠뻔 했었지... 나는 음교주의 그러한 공을 높이 평가하고 있는 사람이오." 만화성모의 이름은 바로 음소희였다. 음소희는 독고홍기의 칭찬에 싸늘하게 코웃음을 쳤다. "호호, 당신은 꽤나 나를 생각해 주는척 하는군요?" 그때, 일곱 사람중 은근히 중앙에 서 있던 한 노인이 다소 눈살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지금은 말장난을 할 때가 아니라 이녀석을 처지해야만 하는 시각이오. 여러분은 각자 의견을 말해보도록 하시오!" 이 노인의 얼굴은 그 형상이 매우 엄숙하고 장엄해 보였다. 게다가, 그의 전신에서는 다른 사람들 보다도 다소 강력한 황색의 기운이 자욱하게 일고 있어서 능히 그가 이들의 우두머리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다름 아니라, 그는 바로 이곳 성수방의 주인인 성수노인 심환이었다. 무림칠패의 주인이 이렇게 한곳에 모여 있는것도 놀라운데 게다가 그들이 모두 이 성수노인을 중심으로 뭉쳐 있다는 것은 더더욱 놀라운 사실이었다. 그의 말에, 도황 곽의방이 나서서 웃으며 말했다. "그가야, 이 녀석을 그저 단칼에 죽여버리면 될 것이 아니오?" 이어, 그는 장말로 허리춤에서 한자루의 백색의 거대한 도를번적휘둘러 누워있는 백룡생의 목을 그대로 휘둘러갔다. 쭈왁! 일시 그이 도끝에서 무려 길이가 일장가량이나 되는 엄청난 도기가 일어서 마치 하나의 거대한 대도의 형상을 한채 그대로 백룡생의 목을 내리잘랐다. 아니, 한순간 그렇게 보였을 뿐이었다. 그 가공스런 일초도식아래 태산이라도 쪼개질 것 같았ㄴㄴ데 설마하니 인간의 목이 견딜리는 없는 것이므로, 그런데, 그 설마하는 생각이 정말로 사실로 나타났다. 꽝--! 흡사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는 것처럼 엄청난 굉음이 울리더니 곽의방의 백색도는 그대로 위로 튕겨져 올라가는 것이 아닌가? 이에, 곽의바의 안색은 다소 흑빛으로 변했다. 그는 순간적으로 심한 충격을 손아귀에 느겼을 뿐만 아니라 백룡생의 목은 전혀 흠집도 나지 않은 그대로였던 것이다. "정말로, 이녀석은 금강불괴란 말인가?" 이때, 한 사람이 나서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그는 완전한 금강불괴의 몸이오." 그 사람은 아직 한마디로 말도 않던 사람이었다. 원래 그는 침묵하고 있었는데, 일단 말을 꺼내자 마치 그의 말은 그대로 기정사실인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묘한 힘이 있었다. 그 노인은 일신에 현기를 가득 피어 올리고 있었는데, 이 사람은 바로 현현보주인 현현노조 모용일박이었다. 이 현현노조는 두뇌의 회전이 빠르고 귀계백출해서 항상 이들의 군사와 같은 역할을 하는것 같았다. 그말에, 성수노인이 그에게 말했다. "모용보주! 좀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시겠소?" 현현노조는 그말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옆에 있는 사람에게 말했다 "좌문주! 잠시 수고를 해주시겠소?" 이 좌문주라고 불리우는 사람은 역시 여태 말을 하지 않았던 사람으로, 일신에 푸른 청색의 기운을 가득 피워 올리고 있었다. 그는 다름아닌 칠패의 남은 사람인 검문의 문주인 신검노야 좌구패였는데 현현노조의 말을 듣고 아무말없이 앞으로 다가갔다. 그는 아마도 현현노조의 말뜻을 십분 이해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의 허리춤에는 한자루의 검은빛 자검이 걸려 있었는데 백룡생의 앞으로 다가들자 즉시 그의 몸을 가볍게 차올림과 동시에 장검을 뽑아들었다. 허나, 기실 그의 그러한 동작은 너문도 빠르고 깨끗하여 전혀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다만 백룡생의 몸이 느닷없이 허공으로 솟아오르는 순간 일순 그의 허리춤에서 검푸른 한줄기 광채가 구름처럼 일었을 뿐이었다. 꽝...! 일시 백룡생의 허공에 떠오른 전신이 거세게 한번 흔들리는가 싶더니 그의 몸을 뒤덮은 검푸른 구름같은 검기가 씻은듯이 사라졌다. 어떻게 된 것일까? 백룡생의 몸은 다시 둔탁하게 바닥에 떨어져서 늘어졌고, 신검노야는 곧장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왔다. 이것을 보고, 일순 만화성모가 요란스럽게 박수를 치며 감탄사를 토했다. "과연 신검노야의 검법은 무섭고도 놀랍군요! 소매는 감탄했어요!" "..." 허나, 신검노야는 묵묵히 한번 그녀를 바라보았을 뿐 대꾸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는 거의 말이 없는 성격인 것 같았다. 이것을 보고 현현노조가 한번 만화성모를 돌아본 다음에 증인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여러분도 방금전에 보셨다시피, 좌문주는 일검에 저자의 인체 주요혈도인 삼백육십대혈을 한꺼번에 공격했소이다. 그러나... 역시 그는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았소!" 현현노조의 이말은 그저 아무렇지 않게 말해진 것이었지만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인간이 어떻게 하나의 검으로 동시에 삼백육심대혈을 베어버릴수가 있다는 말인가? 그러나, 그불가능은 가능했고,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사람은 신검노야, 그리고 무림칠패의 주인들이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이미 보았지만 막상 그 말을 듣자 다소 안면을 좁히며 침중한 음성을 토했다. 장존 적용세가 다소 떨리는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인간의 몸에는 다소의 약점이 있기 마련이고, 설사 금강불괴의 몸을 성취하더라도 하두개의 조문이 있기 마련인데... 그는 그러한 것이 없으니 설마... 설마 무혈지체라도 되었다는 말일까?" 그말에, 현현노조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렇소이다. 그의 신체는 바로 무혈지체요!" ... 그말은 다시한번 나머지 사람들을 크게 경악하게 만들었다. 현현노조는 백룡생의 몸을 세세하게 주시하며 말을 이었다. "이 무혈지체는 전설의 완전한 금강불괴를 말하는 것이오. 이것은 우리도 도달하기를 소망하는 무극신체를 이루었을 때에야만 비로소 가능한 것이오. 우리는 비록 음양과 오행의 신체를 이루었지만, 이자는 불가사의하게도 모든 무공의 극치인 무극신체를 이루었던 것이오 이렇게 된 이상은 그를 죽일 수 있는 방법이란 이 세상에는 없소." 그말에. 곽의방이 놀란 어조로 물었다. "하지만 이자는 지금 이렇게 우리에게 제압되어 있지 않소?" 현현노조는 고개를 거였다. "물론 제압되어 있으니 우리가 그를 볼 수가 있는 것이오. 만일 그렇지 않고 우리가 모두 합쳐서 그를 상대했다고 해도 우리는 결코 승리를 장담하지 못했을 것이오. 이 일은 노부의 심혈이 기울어진 것이었다는 사실을 여러분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오." 녹림사신 독고홍기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아무리 그래도 전혀 죽일 방법이 없단 말이오? 세상에는 예외라는 것도 있지 않소?" 현현노조는 문득 의미심장한 미소를 띄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예외라는 것은 분명히 있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 이 자리에 모여서 이자의 최후를 즐기려는 것이오." 이 현현노조는 분명히 최후라는 말을 했다. 그것은 그가 백룡생을 죽일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다는 확실한 말인 것이다. 나머지 사람들은 이에 다소 안심을 하면서도 곤혹해하는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현현노조는 말을 할까 도소 망설이다가 눈길을 성수노인에게 던졌다. 이에, 성수노인은 빙그레 미소하더니 득의에 찬 표정으로 말하는 것이었다. "여러분, 사실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은 없는 법이오.지금 그의 몸은 물리적인 방법으로 더이상은 어떠한 수를 쓸수가 없소. 지금 그를 중독시킨 것은 오직 유일한 방법이었으며 아마 그는 얼마후면 깨어나게 될 것이오. 그리고 그때는 지금의 이러한 독도 그에게 먹혀들지가 않을 것이오. 그러나... 우리는 물리적인 방법이 아닌 심리적인 방법을 쓰기로 했소." 도황 곽의방이 물었다. "그 심리적인 방법이란 무엇이오?" 성수노인은 대답했다. "그것은 말 그대로 마음에 충격을 주자는 것이오. 여러분도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우리같이 극상승의 무예를 터득한 사람은 자칫 심마에 걸려들기가 쉬운 것이오. 그리고 그 심마에 한번 걸려들면 그대로 끝장이며, 무예의 최후의 경지는 역시 마음에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을 것이오. 그래서 만일 이 마음에 충격을 준다면 제아무리 금강불괴의 몸이라도 역시 깨지지 않을수가 없다는 것이 노부의 생각이외다." 성수노인이 방금 말한 이론은 바로 그들 칠인만이 알수가 있는 상승무도 의 요체가 들어있는 것이었다. 사실 성수노인의 말을 정확했다. 그들은 갈수록 마음의 힘이 놀랍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 마음에 충격을 받게되면 금강불괴가 불균형을 이루어서 깨어나지 않을까? 녹림사신 독고홍기가 물었다. "그럼 어떠한 방법으로 그에게 마음의 충격을 준다는 것이오?" 성수노인은 그를 주시하다가 대답했다. "이자는 아직 나이가 어리고 경험이 미숙하여 역시 색관에 가장 취약할 것이 틀림없소. 따라서 우리는 색으로써 이자의 마음을 뒤흔들어 볼 생각이오." 녹림사신과 나머지 사람들은 그제서야 아하 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 무공을 수련하는 사람들은 색욕에 마음이 흔들려서 대공을 놓치는 수가 허다하다. 바로 그들 노인들이라고 해도 색욕만큼은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었거늘, 이 젊은 혈기가 넘치는 백룡생이 어찌 그러한 관문을 넘을수가 있겠는가? 그리고, 백룡생이 만일 색관에 마음이 혼란되어진다면 그는 바로 심마에 들게되는 것이다. 성수노인은 중인들의얼굴을 돌아보며 다시 말했다. "우리 일곱사람은 본래 동심각이라는 비밀연합체를 만들었으며, 그 동심각의 계획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 다소 괴뢰집단인 백혈맹과 적혈맹을 만들었소. 사실, 이 백혈이란 세상에 없는 가공적인 것처럼 우리는 고의로 칠패를 두개로 나누는 척 하면서 적혈련으로는 무림각파를 치고 백혈맹으로는 은근히 비호하는듯한 태도를 보인 것이오. 그것은 모두가 동심각의 장기적인 안목이었소!' 이에, 장존 적용세가 다소 의아해하며 물었다. "그러한 사심은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바인데 세삼 말해서 무엇하겠소?" 허나, 성수노인은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그의 표정은 지금 매우 엄숙하여 아마도 중대한 어떤 단안을 내리려고 일부러 사실을 길게 끌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는 적혈련으로 하여금 백혈맹을 쳐서 멸망하게 만들어 놓고 무림이 어수선해지고 무림인들이 새로운 영웅을 애타게 기다릴때 우리 동심각은 자연스럽게 적혈련을 물리치면서 등장하는 것이 우리의 각본이었소. 원래 이러한 우리의 계획은 실현 가능성이 아주 많았소. 과거 삼년전에 비록 각문파에 첩자를 박아둔 것이 발각되어 잠시 계획이 변경되기는 했지만 우리의 힘은 막강하여 결코 이번일에 실패는 없다고 생각했었소. 그런데 이런 일이 터진 것이오." ... 성수노인의 어조는 갈수록 열기를 띠어갔고 엄숙하게 변해갔다. 그는 조용해진 중인들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이는 마치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는 이치를 말해주는 매우 중대한 사건이었소. 우리가 만일 이를 빨리 발견하고 미리 암계를 설치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우리는 계획이 모두 들통날뻔 했을 것이오. 그러나, 우리는 결코 이 대사를 실패해서는 안되는 것이오. 우리의 거대한 야망 을 위해서... 안 그렇소이까 여러분?" 도황 곽의바은 그가 뭔가 중대한 할말이 있다는 것을 간과하고 물었다. "각주께서 할 말이 있다면 주저말고 하십시오!" -- 각주, 그것은 성수노인의 또다른 신분이며, 그가 바로 동심각이란 가공할 세력의 우두머리임을 말해 주는 것이었다. 이에, 성수노인은 만면에 기이한 미소를 떠올리더니 말했다. "나는 비록 심리적인 방법으로 저자가 심마에 걸려들 것이라고 장담을 하짐나 그러나, 세상의 일은 감히 장담으로 해결할수가 없는 것이기에 차선책을 더불어 병행하기로 했소. 즉 만화교의 대법으로 저자의 공력을 그대로 흡수하는 것이오." 만화성모는 이미 그의 뜻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그러니가 당신은 천욕색혼마라무에 천욕흡공대법을 병행하자는 말이군요?" 성수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렇소이다." 이때, 주위에 둘러선 중인들은 무다가 이 두가지의 괴공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천욕색혼마라무는 만화교의 천하제일이라고 말할수가 있는 가공할 위력의 음무였다. 아직 그것이시전된 적은 거의 없지만 일단 그것이 시전된다고 하면 설사 득도한 고승이라고 해도 욕정이 일어나 참을수가 없어진다는 것이었다. 득도한 고승도 그렇다거늘, 백룡생은 득도한 고승이 아니라 이미 최음제를 복용한 상태이니 더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헌데, 만화성모가 말한 두번째의 괴공이 문제였다. -- 천욕흡공대법, 그것은 만화성모와 같은 여자가아니라면 말하기가 어려운 수법이었다. 그것은 바로 화류계의 여인들이 간혹 사용하곤 하는 채양보음의 술법을 가장 최극으로 이룩해 놓은 고도의 흡정대법이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물론 정사를 통해 이루어지며, 여자가 남자의 체내의 공력을 자신의 음부로써 흡수하는 수법이었다. 사실 이러한 수법은 괴이한듯 하나 기실은 아주 공포스런 것이었다. 왜냐하면, 일단 이 천욕흡공대법에 걸리는 사람은 체내의 경력이 완전히 소모되고 원기까지 빠져나가지 않으면 정사를 멈추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이 천욕흡공대법은 죽음의 공포스런 대법이었다. 이 대법에 한번 걸려든 남자는 욕정에 미쳐서 자신의 원기가 완전히 소모될때까지 정사를 벌이다가 마침내 뼈와 가죽만 남은채 죽음을 당하는 것이다. 이것은 결코 어느 채양보음지술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것이었다. 녹림사신 독고홍기가 물었다. "그렇다면 음교주가 그 일을 한다는 말이오?" 만화성모는 그말에 문득 안색을 붉히며 고개를 내저었다. "나는 그만한 복을 타고나지 못했으니 당신은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그말은 비록 쑥스러운 듯 하긴 해도 역시 날카로운 가시가 들어있는 말이었다. 성수노인은 웃으며 나섰다. "저자의 공력을 흡수하게 되면 아마도 그 사람은 천하제일의 공력을 터득할 것이기 때문에 우리 일곱사람은 공정을 유지하기 위해 결코 그런짓을 해서는 아니되오. 게다가, 우리는 일단 저자의 공력을 흡수한 사람을 나중에는 제거해야만 하는 것이오. 그것은 바로 제이의 저자와 같은 능력자가 생겨날 것을 대비하기 위한 것이오." ... 그말에, 중인들은 다소 침묵했다. 그들은 비로소 성수노인이 왜 그렇게 서두를 길게 끌면서 이렇게 말을 했는지 이해가 가는 것이었다. 즉, 누군가가 백룡생을 죽이기 위해 희생되어야 하는 것이다. 곽의방이 물었다. "도대체 그 두가지의 대법을 쓰게되면 저자는 확실히 죽게되는 것이오?" 현현노조가 그의 말을 받았다. "그것은 장담할 수가 있소. 저자의 금강불괴라는 것도 사실은 공력 때문이니 일단 공력이 모조리 빠져나가면 저자는 그저 보통 사람에다 시체와 다름없이 될 것이오." 이 현현노조는 결코 헛된 말이나 자신없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가 시체라면 시체인 것이요. 정말로 그렇게 시체나 다름없다고 하면 이제는 전혀 백룡생이 두려울 리가 없는 것이다. 곽의방은 다시 물었다. "그럼 누구에게 그러한 희생을 시킨다는 말이오?" 비록 중인들 가운데 차마 이러한 질문을 할수는 없었지만 이번일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바로 그점이었다. 그 두가지의 대법을 알고 있는 사람이란 필시 중요한 인물일 것이고 또한 한정되어 있다. 그런 중요한 인물 가운데에서 누구를 희생시켜야 한다는 말일까? 곽의 방의 질문이 떨어지자, 중인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만화성모에게 집중되었다. 그 두가지의 대법을 아는 사람은 오직 만화교내의 인물 밖에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만화성모는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자 다소 씁쓸한 미소를 떠올리며 대답했다. "무두 걱정말아요! 나는 비록 이기적이긴 하지만 대사를 저버리고 작은 정에 연연하는 사람은 아니니까요." 현현노조가 그녀에게 물었다. "그럼 마땅한 사람이 있소이가?" 만화성모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있어요! 다름아닌 그 아이는 내 제자이지요. 나 외에는 오직 그 아이만이 그 두가지의 대법을 알고 있으니 어쩔수가 없는 것이 아니겠어요? 그 아이는 여태 무공수련만 하고 거의 써먹지를 못했었는데 이런일로 희생을 시켜야 하다니... 정말 나는 마음이 아프군요. 당신들은 나의 이러한 심정을 안다면 반드시 댓가를 지불해야만 해요!" 그 말에, 현현노조가 웃으며 대답했다. "좋소이다. 그렇다면 음교주가 그 일을 성취한다면 우리는 앞으로 당신의 지위를 각주 다음가는 서열 이위로 만들어 드리리다!" -- 서열 이위, 그러한 것이 어떠한 좋은점이 있는가는 알수가 없어도 만화성모는 일순 그 말을 듣자 눈빛을 반짝이며 생기를 띠었다. 동시에, 그녀는 여러 사람에게 물었다. "당신들 모두 그것을 인정하나요?" 그러자, 중인들은 일제히 대답했다. "그렇소. 이 일을 성취한다면 당신은 이제 서열 이위가 되는 것이오." 만화성모는 그 말에 안면 가득 훈훈한 웃음을 내뿜었다. "알겠어요!" 그녀의 이어지는 음성에서는 득의한 기운이 뭉게뭉게 퍼지고 있었다. * * * 백룡생의 몸은 다시 다른 은밀하고 작으 밀실 안으로 옮겨졌다. 헌데, 그곳의 형태는 다소 기이했다. 밀실의 절반은 그저 보통의 석실과 다름이 없는데, 다른 몄나은 마치 투명한 유리로 만들어진 듯한 막이 쳐져 있었고 그 안에는 다시 호화로운 침상이 놓여 있었다. 그야말로 하나의 벽을 사이에 두고 두곳이 황량하고 화려한 극심한 대조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모조의 필요해 의해 바쁘게 제작된 밀실이었다. 지금, 그 유리벽안의 밀실에는 한명의 지극히 아름다운 소녀가 거의 투명하게 비치는 망사의 차림으로 서서 부드럽게 춤을 추기 시작하고 있었다. 아아...! 그녀는 다름아닌 전날 궁장을 걸치고 무당파에 만화성모를 따라 왔었던 그 백화선자라는 소녀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동심각의 인원들은 그녀를 희생자로 선택한 것일까? 그렇다. 그녀 외에는 다른 사람이 있을리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자신의 죽음이 목전에 임박한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엄숙하고 고요한 태도로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는 극치의 욕정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니, 이것은 ㅈ바로 천하제일의 음무라는 천욕색혼마라무였다. 여기에는 설사 득도한 고승이라도 그 욕정을 참을수가 없게 된다고 한다. 소녀의 전신에는 점차 뿌연 안개같은 기운이 피어올라 마치 환상처럼 순결하다고 성스러운 분위기 아래 공포스러운 욕정의 기운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이 유리벽은 바로 막혀 있었지만 공기까지 통하지 않는것은 아니었다. 공기가 통하기 때문에 소녀의 그러한 정욕의 기운은 빈 공간을 스며나가 반대쪽의 백룡생의 코속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문득 시체처럼 누워만 있던 백룡생의 두눈이 천천히 크게 떠졌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두눈은 과거의 맑은 광채가 흐르던 눈빛이 아니라 시뻘겋게 충혈되고 극심한 욕정의 포로가 되어버린 욕정의 눈빛이었다. 그는 이미 욕망의 화신이 되어버린 것이란 말인가? 백룡생의 눈빛은 점차 이끌히듯 유리벽을 향해 돌려졌다. 그러나, 여전히 그의 몸에는 기운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상태였다. 유리벽 안의 소녀의 음무를 바라본 백룡생의 전신은 일순 격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그는 이미 미친 사람이나 다름이 없었다. "우와아... 우와..." 입을 겨우 열어서 숨막힐듯한 괴성을 지르던 그는 손과 발을 움직여서 그쪽으로 가려고 했으나 손과 발에 힘이 하나도 없자 바닥을 긁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도 소용이 없자 그는 이어 온몸을 긁기 시작했다. 그런는 가운데에서도 그의 시선은 계속해서 유리벽안의 소녀의 음무를 미친듯이 주시하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이윽고 그의 두눈이 돌아가고 손과 발이 제멋대로 뒤엉키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이것은 바로 그의 욕정이 너무나도 극심해져서 드디어 심마의 관문에 집어들고 있는 신호였다. 말하자면, 일반 무림인들의 주화입마나 비슷한 것이다. 백룡생은 전혀 기운이 없자 안으로 욕정이 발작했고, 그럴수록 그가 심마에 빠져드는 속도는 점차 가중되어 갔다. 헌데 이때, 문득 유리벽 안에서 나직한 탄성이 흘러나왔다. "더이상 당신을 두고볼 수가 없군요." 이어, 그 소녀는 음무를 멈추고 서서히 백룡생을 향해 유리벽을 열고 걸어나오기 시작했다. 제 45 장 천욕흡공대법 백룡생은 소녀에 의해 다시 유리벽안의 침상위로 옮겨졌다. 이대 백룡생의 몸은 전혀 힘이 없어서 아무런 저항도 못했고 마치 어린아이처럼 그녀의 손길에 따라서 움직이고 있었다. 소녀는 얼른 유리벽의 문을 닫아버린 후에 나직한 한숨을 내쉬며 백룡생에게 속삭이듯이 말했다. "..." 백룡생은 여전히 욕정에 미쳐서 허우적거릴뿐 그녀의 말을 듣는 기색이 아니었다. 그러나, 소녀는 그가 듣건말건 계속해서 말을 했다. "우선 나의 이름을 당신에게 말해야 하겠군요? 당시는 나의 첫사랑이자 낭군이나 마찬가지이니..." 그녀는 말하면서 서서히 백룡생의 옷가지를 풀기 시작했다. "나의 이름은 음사란이예요. 어릴때 사부님께 선택되어 부모도 모르는 채로 이렇게 자라게 되었죠. 나의 성은 사부님의 성을 따른 것이고, 내 이름도 그분이 지어주신 거예요. "..." "그렇게 말하면 당신은 아마 나의 사부님이 아주 좋은 분이라고 생각을 하겠죠? 맞아요! 아주 좋으신 분이죠. 가끔은요... 하지만 그분은 또한 매정하기도 하답니다." "..." "그분은 이번의 일을 마치면 나에게 좋은 신공을 전수하겠다고 했어요. 그러나 나는 바보가 아니예요. 그분의 생각을 알고 있죠... 그분이 나를 희생시키려고 한다는 것을! 왜냐면 내가 당신의 공력을 전부 흡수하게 되면 공력이 천하제일인이 되고 당신과 비슷한 능력을 갖게될텐데 나의 사부님이 용납을 하겠어요?" :..." "그분은 나를 아마도 제거하게 될 거예요. 아니... 굳이 그럴 필요도 없겠죠. 저는 언젠가 이 대법으로 남의 공력을 너무 심하게 흡수하여 마침내 그 공력을 감당하지 못해서 전신이 갈가리 터져나간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들은적이 있어요. 아마 사부님이 손을 쓰기도 전에 나의 몸이 그렇게 될지도 모르죠. 아마 그럴거예요..." "..." 이제 그녀는 백룡생의 옷을 전부 벗겨놓자 이어 자신의 나삼을 하나씩 천천히 벗어 내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하는 백색투명한 살결에서는 무한한 순결과 욕정의 빛깔이 뒤엉켜서 흐르고 있었다. 그녀는 만화성모도 희생시키기를 아까와 한 전생의 우물인 것이다. 그녀는 옷을 벗으면서도 말을 계속했다. 마치 지금 말하지 않으면 다시 그런 말을 할수가 없다는 듯이, 그녀는 천천히 백룡생의 나체를 바라보며 부끄러움도 없이 조용히 말을 이어갔다. "그러면 아마 당신은 내게 묻겠죠? 왜 이런일을 알면서도 하느냐고요. 호호 그건 당신이나 나나 마찬가지예요. 당신도 알면서도 속아주었다가 이렇게 되었다면서요? 물론 나의 마음은 누구를 사랑해서 이러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우선 나를 그동안 길러준 사부님에게 희생으로 보답을 하고 싶고, 또한 제가 반항을 한다고 해도 이쩔수가 없으니 하는 거지요. 당지 그 상대가 당신이어서 다소 마음이 놓이고 기분이 좋아요." 이윽고, 그녀는 옷을 다 벗고 완전한 나신이 되었다. 그러자, 그녀는 주저없이 백룡생의 나체위로 올라갔다. 일순 하복부를 예리하게 꿰뚫는듯한 고통이 전해졌지만 그녀는 내색하지 않고 천천히 몸을 움직이며 말을 이었다. "사실 당신은 나의 눈에 들었던 첫번째의 남자였어요. 그날 무당산에서 당신을 본 이후에 얼마나 당신의 생각을 했었는지 몰라요. 때로는 당신의 여자가 되고 싶기도 했죠. 헌데 지금 이렇게 소원을 풀게 되는군요. 호호... 당신과 나는 함께 저승으로 가게 되었는데 당신은 기쁘지 않나요?" 점차 그녀의 전신은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백룡생의 몸에서 피어나는 열기가 전해졌기 때문이었다. 백룡생의 몸에서 지금 생겨나는 열기는 실로 막대하기 이를데가 없었다. 그리고, 그 열기는 지금 마치 장강대하처럼 그녀의 음부로 몰려들고 있었다. 음사란은 그 기운을 단전으로 모으며 아득한 정신속에서도 계속 말을 이었다. 당신은... 당신은 반항하지 말아요. 당신은 내가 이러지 않아도 결국은 죽게 된다고요. 삶에 대한 미련을 버려요. 나도 당신을 구해주고 싶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것을 어쩌겠어요? 단지 우리는 부부가 되어서 함께 저승으로 떠나는 것에 만족해야해요..." 이때, 그녀는 그 열기가 갈수곡 배가 되었으므로 더이상 말을 못하고 정신이 몽롱해졌다. 그러나, 비록 그녀가 힘을 다하지 않아도 이 천욕흡공대법은 위력이 가공하여 갈수록 백룡생의 내력을 빠르게 빨아들이고 있었다. 헌데 이 무렵, 백룡생의 의식은 과연 완전히 욕정의 포로가 되어 그녀의 말을 듣지 못하는 것일까? 아마 당연히 그래야만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눈빛은 완전히 욕정에 물들어 있었고 포로가 되어 미친 형상이었기 대문이엇다. 그러나, 예상외로 한가지 기이한 일이 이순간 일어나고 있었다. 백룡생의 육신은 비록 극도의 욕정에 의해 몸부림을 치며 정사를 하면서도 그 정욕을 감당하지 못하고 날뛰고 있지만, 기이하게도 그의 마음은 그 뒤에 맑은 시선을 잃지 않고 있었다. 그것은 비단 그가 전에 의식을 잃고 넓은 지하석실에 누워 있을때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육신은 비록 의식을 잃었지만 마음의 눈은 여전히 남아서 그안의 모든 상황을 여실히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자연 그의 동심각의 일과 그밖의 중요한 무림의 경천동지할 비밀을 절로 듣게 되었다. 대체 이러한 현상이 어째서 생겨난 것일까? 그것은 단 하나로 말할수가 있었다. 그에게는 이미 마음의 눈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는 그 마음의 눈으로 비록 육신이 엉망이 되어도 모든 것을 바라볼 수가 있었다. 이것은 마치 그가 전날 명상속에서도 사방의 주위를 뚜렷하게 바라볼수가 있었던 것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었다. 백룡생은 원래 자신이 극도의 무공을 닦았으면서도 그러한 것에 집착하지 않고 오히려 멀리하며 마음의 수양을 주로 했었다. 따라서, 그는 지금 이 순간에도 육신의 집착에서 벗어나 있는 것이다. 대체 이러한 현상은 어 게 가능한 것인지 그로서도 잘 알수가 없는 것이었다. 단지, 백룡생은 실로 우연히 이 음사란이란 아름다운 소녀의 고백을 듣게 되었고,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햇다. (나는 삶에 대한 미련이 없소. 당신은 마음 편하게 하시오. 그리고 우리가 부부로써 함께 저승으로 간다면 그것도 재미있는 일일 것이오...) * * * 백룡생의 몸이 힘이 없고, 또한 음사란의 행위 또한 조용하고 엄숙하기 그지 없었지만 기실 그들의 행위는 광란의 극치를 달리는 것이었다. 백룡생의 진력은 마치 미친 강물처럼 벌람하여 홍수를 이루며 그녀의 체내로 밀려들었다. 아마 웬만한 공력을 가진 사람이었다면 불과 일각도 안되어서 뼈와 가죽만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백룡생의 공력은 그야말로 무한하여 끝없이 음사란의 체내로 밀려 들어갔다. 음사란은 대체 이 사람의 공력은 그 깊이를 알수가 없다고 생각하며 자연 놀라지 않을수가 없었다. 백룡생의 몸에서 나오는 진기는 갈수록 적어지기는 커녕 갈수록 많아졌던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시간이 무려 다섯시진 가까이 흐르게 되자 음사란의 체내는 이미 백룡생의 진기로 가득차서 더이상 빈틈이 없을 지경이었다. 그녀의 몸은 터져나갈것만 같이 팽창되기 시작했는데, 그럼에도 백룡생의 내력은 더욱더 강해진 힘으로 그녀의 체내로 밀려들었다. 이 천욕흡공대법은 불가사의하여 한번 시전을 하면 시전자도 그것을 멈출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것은 실로 악마적인 위력이라고 말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따라서, 음사란은 점차 전신의 고통을 느끼며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그녀의 전신은 마치 터져 나갈것만 같았고, 기혈이 마치 미친듯이 들끓으며 사방으로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이것은 가장 지독한 주화입마의 전조였다. 음사란은 그것을 멈출수도 없었기 때문에 아예 포기하고 단지 정신을 몽롱한 가운데 두고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백룡생의 진기는 원래 그가 전신이 터져 나갈것 같은 상황속에서 최상의 내공심법으로 이룩된 것이었다. 그러니 음사란에게 그것이 전부 옮겨졌다면 그녀의 전신이 어찌 배겨나겠는가? 음사란의 의식은 이미 기진하여 아득하게 흐려지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이때였다. 느닷없이 그녀의 귓가에 이런 한줄기 음성이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고통을 멈추게 하고 싶다면 내말대로 진기를 운행하여라." 그것은 처음듣는 노인의 음성이었다. 이때, 음사란은 정신이 이미 몽롱하여 무엇을 분간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녀는 고통을 멈추게 해준다고 하자 즉시 무의식적으로 노인의 말대로 진기를 운행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주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전신에 마구 날뛰고 있던 진기가 일순 제자리를 찾더니 그녀의 뜻대로 순순히 운행되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노인이 말해주는 진기의 운행방법은 실로 복잡하고 심오하기 이를데가 없었다. 음사란은 노인의 말을 전혀 이해할수가 없었고 또한 기이하게도 어려웠으므로 단지 그가 일러준 방법대로 진기를 운행하기에만 바빴다. 따라서, 그녀가 눈을 떠서 노인의 정체를 살핀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진기를 운행하는 일에만도 정신이 없었기 때문에 나중에는 노인의 존재마저 잊고 거의 무아지경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나 흘렀을가? 음사란은 드디어 백룡생의 몸에서 흘러나온 엄청난 량의 진기가 자신의 몸에 자리를 잡았으며 천욕흡공대법의 기운도 운용이 중단되었음을 알았다. 원래 그 대법은 결코 중단이 되지 않는 것인데 이것은 매우 이상한 일이라고 할수가 있었다. 그러나, 사실은 천욕흡공대법은 그 위력이 마력적이었으나, 노인이 알려준 기이한 운공대법은 그것을 초월하는 내공심법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바로 백룡생이 스스로 깨달았던 그 내공심법과 공교롭게도 일치했다. 만일, 백룡생이 운공만 할수가 있었다고 한다면 그는 능히 천욕흡공대법을 이길수가 있었다는 결론이었다. 그렇다면, 대체 음사란에게 위기의 순간에 나타나서 그러한 내공심법을 들려준 노인은 누구일까? 음사란은 물론 그 내공심법을 모조리 기억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했으니 단 일회용이었을 뿐이었다. 그녀는 내심 다소 아쉬움을 느끼지 않을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제 그녀의 몸은 거의 무한대에 가까운 공력과 진기가 넘치고 있어서 날아갈듯이 가벼웠고 매우 평안했기 때문에 그녀는 마음이 절로 고요하게 가라앉았다. 그리하여, 그녀는 일순간 천천히 눈을 뜨게 되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호련 그녀ㅢ 눈앞에 한명의 노인이 등을 돌리고 앉아있는 것이 아닌가? 음사란은 자신과 백룡생이 이미 발가벗고 괴이한 자세를 취한채 있다는 사실에 심한 수치감을 느꼈지만 동시에 한가지 의혹이 앞섰다. 지금 이곳은 서수방의 밀실 중에서도 가장 은밀한 곳에 속하는 곳이었다. 헌데 이 노인은 언제 어떠한 경로로 이렇게 이곳에 와서 앉아있는 것이란 말인가? 대체 이것은 믿을수가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이 노인은 바로 그녀에게 운공구결을 가르쳐준 그 노인인것 같지 않은가? 대체 이 신비한 노인은 누구일가? 음사란이 의혹감에 가득차 있을 때였다. 이때 돌연 그 노인이 앉은 자세로 그대로 몸을 돌리더니 그녀를 향해 예의 그 음성으로 웃으며 말하는 것이 아닌가? "어서 옷을 입고 그에게도 옷을 입혀서 떠날 준비를 하거라!" 음사란은 일순 노인의 시선이 자신의 괴이한 형상을 한 나신에 와닿는 것을 의식하고는 안색이 빨갛게 변했다. 그러나, 기이하게도 느껴지는 것은 수치감보다는 엄숙함이 강했다. 게다가 노인의 평범해 보이는 얼굴에서는 왠지 기억하기 어려운 숭고함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음사란은 노인이 보고 있는데도 할수없이 몸을 일으켜서 빠르게 옷을 걸치고 백룡생의 몸에도 옷을 입혀주기 시작했다. 이때, 백룡생의 몸은 여전히 극도의 욕정 속에서 헤매고 있었으나 이제 그의 진력이 모두 소모된 것은 아니었다. 그의 체내에는 아직도 약간으니 진기가 남아 있는 것이다. 헌데, 사실 지금 백룡생의 마음은 극도의 경악과 기쁨속을 헤매고 있었다. -- 어르신, 그가 항상 생각해오던그 어르신이 바로 지금 이 순간 그의 앞에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위기의 순간에 나타나서 음사란의 운공을 도와주고 지금 그들의 눈앞에 보이고 있는 이 노인은 바로 얼마전에 구령산에서 분명히 죽었었던 그 노인이었던 것이다. (어르신께서는 살아 계셨구나! 살아 계셨었구나!) 백룡생은 내심 격렬하게 소리치고 있었다 다만 그것은 그의 육신으로 나타나지 않을 뿐이었다. 여태까지 그의 예감속에 느겨졌었던 그러한 것들은 실로 사실이었던 것이다. 백룡생은 노인의 얼굴을 보자 얼른 달려가서 그의 품속에 안기고 싶은것이 소원이었다. 노인, 백노인은 마치 그러한 그의 심경을 알길도 하듯 그의 얼굴을 향해 의미있는 미소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때, 음사란은 거의 무의식적으로 노인의 말을 따르고 있었다. 그녀는 수치감과 당혹감, 그리고 경외감에 뒤범벅이 되어버린 마음으로 호아망히 옷을 거치고 백룡생의 옷을 모두 입혀주자 즉시 그의 몸을 안아들었다. 지금 그녀의 공력은 백룡생의 공력을 거의 다 가져간 셈이라 실로 상상을 불허할 정도였다. 비록 백룡생의 몸을 안아들었지만 그녀의 느낌에는 그저 가벼운 깃털 하나를 들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음사란이 백룡생의 몸을 안아들고 노인을 바라보자, 노인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그럼 어서 가자! 따라 오너라!" "...!" 그녀의 생각에는 무엇 때문에 노인을 따라가야 하는지 그러한 의혹은 일지 않았다. 다만 왠지 노인을 반드시 따라가지 않으면 안되는 듯한 정신적인 압박감이 느껴져서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다음순간 가볍게 놀랐다. 노인은 먼저 유리벽의 밖으로 나가더니 그쪽 석실의 바닥에서 하나의 작은 석판을 들어내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일견하기로도 잘려진지 오래되지 않은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 노인은 땅속으로 해서 그 석판을 자르고 올라온 것이란 말인가? 하지만, 노인의 몸에는 흙한점 묻어있지 않았고, 게다가 그렇게 땅속으로 들어온다는 자체가 원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기 때문에 음사란은 일시 믿을수가 없었다. 허나, 노인의 신형이 문득 그 석판이 들어올려진 빈 공간으로 스며들듯 사라지자 그녀도 즉시 백룡생을 안고 노인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이 노인이 백룡생과 모종의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던 것이다. 아니, 이제 그녀는 설령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결코 백룡생의 몸을 놓치지 않았을 것이다. 석판의 아래엔 역시 어둡고 기다란 통로가 있었다. 게다가, 이 통로는 금방 만들어진듯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허나다행히 음사란은 눈이 거의 훤하게 밝아졌고 신법이 초절해져서 아래로 내려가서 빠르게 노인의 뒤를 쫓아가기 시작했다. 과연, 그녀가 노인의 뒤를 쫓기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아서 이 기다란 동굴은 뒷쪽으로부터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우르르릉...! 음사란은 신법을 극도로 펼치고 있었으나 그 무너지는 기세가 자신의 뒤를 바짝 추격해 오자 그만 질겁을 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그녀의 신법은 과거에 비해 거의 십배에 달할 정도로 빨랐다. 그럼에도 무너져 내리는 흙더미를 따돌릴수가 없다는 것은 이 동굴은 지금 거의 한꺼번에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음사란은 달리는 와중에서도 내심 생각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이렇게 공교로운 일이 있을까? 사부님과 그들은 우리를 쫓아오려고 해도 이제는 동굴이 완저니 무너져 버렸으니 그럴수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 지금 이 동굴이 이렇게 무너져 내리고 있으니 이 동굴은 형체조차 없어져서 도대체 동굴이 있었는지 조차 알수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안배 역시 노인이 해놓은 것이란 말인가? 그것은 음사란으로서는 일시 판단할수가 없었다. 다만 그녀는 이 노인이 매우 신비하고 불가사의한 능력을 지닌 사람이라는 것을 알뿐이엇다. 그녀는 과거에 오직 만화성모가 가장 뛰어난 사라미라고 생각하여 자라왔었는데, 저번에 그녀를 능가하는 백룡생을 만났고, 이제는 이런 노인을 보게되니 그야말로 산너머 산이요 하늘위에 하늘이 있음을 새삼느끼게 된 셈이었다. 과연 중원에는 기인이사들이 많았다. 허나, 그녀는 이러한 노인이 중원에는 오직 하나밖에 없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노인은 앞에서 마치 허깨비처럼 몸을 움직여가고 있었다. 그것은 신법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웠다. 마치 노인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앞쪽의 공간이 스스로 움직여서 노인의 옆을 스치고 지나가고 있는것 같았다. 그런 가운데 노인의 속도는 항상 그녀와 보조를 맞추었다. 그녀가 신법을 빨리하면 역시 노인의 걸음도 빨라졌고 그녀가 신법을 늦추면 노인의 신형도 어느새 느린채로 똑같은 간격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허나, 음사란은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결코 노인의 신법을 유의해볼 시간이 없었다. 지금 이 동굴은 정말 끝없이 이어져 있고, 이미 저 앞쪽에서부터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제 아무리 무공이 고강하다고 해도 이런곳에 갇히게 되면 그대로 이곳은 무덤이 되는 것이다. 음사란은 기왕에 희망이 생겼는데 이곳에서 죽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하여, 그녀는 전신에 무한하게 넘치는 내력을 이용하여 최대한의 신법을 펼쳤다. 그리고는 내심 생각했다. (이 동굴은 정말 끝이 없는 것이 아닐까?) 그녀는 이미 지극히 빠른 속도로 무려 반시진 가까이 신법을 펼쳐 달려왔기 때문이었다. 지상에서라면 이러한 거리는 아마 오백여리는 넘을것이 분명했다. 따라서, 그녀가 그러한 생각을 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었다. 헌데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음사란은 일순 눈을 번쩍 떴다. 우르릉! 거대한 굉음과 함께, 마치 화산이 갑자기 폭발하듯이 거대한 동굴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는 것이 아닌가? (앗!) 음사란은 촉망중에 경악성을 발했다. 동굴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면서 그녀의 몸과 노인의 몸을 일시에 뒤덮기 시작했던 것이다. 음사란은 일시 절망했다. 결국 이렇게 땅속에 묻히고 마는 것일까? 헌데 그때였다. 전면의 아득한 곳에 문득 한점의 맑은 구슬같은 것이 보이지 않는가? (바같이다!) 그렇다. 그 구슬같이 작은 한점은 바로 동굴의 밖이었다. 음사란은 일순 그것을 확인하자 무너져 내리는 흙더미속에서 최대한으로 그쪽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그녀는 지겨운 흙더미가 아닌 눈부신 햇살을 얼굴에 찬연하게 느낄수가 있었다. 이 동굴의 끝은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마침내 그 동굴을 벗어나서 자유를 찾은 것이다. 마치 그것을 기다리기라도 한듯, 뒤이어 꽝! 하는 거대한 굉음과 함께 그 동굴이 완전히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아아...!) 음사란은 일순 가슴으로 충만된 기쁨을 가득 느꼈다. * * * 노인은 동굴을 벗어나서 계속해서 달렸다. 음사란은 이미 이곳이 설봉산의 경내를 벗어난 지역임을 알수가 있었다. 음사란은 노인이 계속 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멈출수가 없어서 그저 빠르게 신법을 펼쳐서 따르는 수 밖에 없었다. 만일 평소에 그녀가 이렇게 오랫동안 신법을 펼쳤다면 벌서 탈진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지금 오히려 진력이 남아 돌아서 이렇게 계속해서 한없이 달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것은 그녀가 아직 내공심법을 자세히 알지 못해서 체내의 진력이 무한정 남아돌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대략 다시 두어시진이나 달렸을까? 노인은 비로소 서서히 신법을 늦추며 산속의 어느 험한 이름모를 계곡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계곡의 깊은곳에 위치한 하나의 천연동굴의 안으로 들어가서 비로소 신형을 멈추는 것이었다. 음사란은 비록 노인에게 괴이한 장면을 보이긴 했어도 이미 수시진이나 힘을 써서 달려왔기 때문에 그러한 수치감은 벌서 잊고 있었다. 그녀는 다소 상기된 얼굴로 노인의 앞에 내려서며 물었다. "이게 다 왔나요. 할아버지?" 음사란은 왠지 할아버지라는 말이 어울리는 것 같아서 그렇게 불렀다. 노인은 친밀하게 웃더니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 아이를 내게 주거라!" 음사란은 엉겁결에 백룡생을 노인에게 건네주고는 노인이 동굴의 안쪽으로 깊이 들어가려하는 것을 보고는 물었다. "전, 전 뭘하죠?" 노인은 그말에 웃더니 그녀의 앞에 뭔가를 던져 주었다. "심심하면 여기에서 이것이나 보고 있거라!" 노인이 그녀에게 던져준 것은 바로 하나의 두터운 책자였다. 그런데, 그것을 펼쳐본 결과 그 내용은 바로 전에 노인이 그녀에게 들려주던 그 내공심법의 구결과 그 운용방법들이 기술되어 있는것이 아닌가? 음사란은 마침 그러한 내용을 미처 기억하지 못해서 섭섭하게 여기고 있었던 참이라 내심 매우 기뻐하며 즉시 동굴의 한쪽에 앉아서 열심히 책자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헌데 그녀는 지금까지 거의 무공만 익혔을 정도로 무공에 대한 열의와 지식이 해박했다. 그런데, 이 이름없는내공심법의 이치가 자신이 배운 구음신공의 이치와는 비교도 할수없는 것임을 알고는 매우 뛸듯이 기뻐했다. 그것은 다름아닌, 그녀가 이 책자의 내용을 완전히 터득하면 전에 백룡생의 능려글 자신도 발휘할수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녀는 금세 거의 모든 것을 잊고 자신의 처지와 장소도 망각한채 한편으로는 구결을 읽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바삐 그것들을 체득해 가기 시작했다. 그러는 가운데 시간은 흘렀고, 그녀의 무공은 무아지경속에서 불가사의한 진전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것 역시 그 노인이 예측한 일이 아닐까? * * * 노인은 백룡생의 몸을 안고는 동굴의 가장 깊은 곳으로 들어가서 그의 몸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손을 가볍게 저어서 커다란 바위를 이용하여 동굴의 입구쪽을 막아놓는 것이었다. 그런 다음에 그는 백룡생의 몸을 정좌시키고 자신도 그앞에 정좌를 하더니 문득 입을 열어 물었다. "용아야, 그동안 잘 있었느냐?" 이말을 들은 백룡생은 순간 말을 못했지만 기쁨과 왠지 설움이 북받쳐서 눈물을 주르르 흘리고 말았다. "어르신!" 헌데, 백룡생은 분명 자신의 마음속으로 그렇게 외쳤건만 그 마음의 울림이 분명이 노인에게 전달되는것 같지 않은가? 게다가, 그의 그러한 느낌은 사실이었다. 노인은 곧 웃으며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나는 너의 마음을 읽을수가 있으니 하고 싶은 말을 해도 좋다. 그러나... 지금은 그리 시간이 많지 않으니 너는 반드시 의문사항만을 묻도록 해라!" 헌데, 백룡생은 그전부터 노인의 말에 순종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었다. 따라서, 그는 이순간 매우 격정이 치밀었지만 즉시 제어하고 노인에게 마음속으로 물었다. "어르신께서는 역시 돌아가시지 않으셨군요?" 제 46 장 고금제일문! 노인은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 허나 내가 죽은것과 죽지않은 것은 서로 같다는 것을 너는 나중에 알게될 것이다." 백룡생은 일시 그 말뜻을 알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다시 물었다. "제가 이렇게 모든 성취를 보인 것은 모두가 어르신 덕택이로군요? 저는... 어르신을 다시 뵙게 되어서 매우 기뻐요!" 허나, 노인은 잠시 웃더니 정색하며 말했다. "너는 이제 할말을 대충했을 것이다. 나머지의 의문은 나중에 저절로 알게될 거시다. 그러니 우선 나의 마를 듣고 내가 시키는 대로 하거라!" 백룡생은 즉시 대답했다. "예, 어르신." 그러자, 노인은 다소 빠르게 말하기 시작했다. "너는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나는 너의 조사이면서 제육대 만우문주 인 것이다. 너는 이러한 사실을 이미 알고 있겠지?" 백룡생은 잠시 생각하다가 놀라며 대답했다. "예..." -- 만우문, 과거 백룡생은 무당전적에서 이에 관한 얘기를 읽은적이 있었다. 이 만우문은 일명 고금제일문이라고도 하며, 가장 성스러운 무예인 성검을 터득한 사람만이 그 계승자가 된다는 것이었다. 사실, 이 만우문의 존재는 전설에 가까와서 당금의 강호인들은 거의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과거 제육대 만우문주가 나나탄 것을 지금으로부터 이백년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이 백노인의 나이는 지금 이백살도 훨씬 넘는 것이란 말인가? 기실 그러했다. 이 노인은 사실 백룡생도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의 백씨가문의 조종 이었으며, 할아버지 보다도 훨씬 윗대의 사람이었다. 따라서, 백룡생은 그를 할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고 단지 어르신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그의 할아버지와 할머니, 어머니와 아버지가 모두 돌아가시고 나자 그는 백노인의 뜻에 따라서 그를 모시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백룡생은 내심 계속해서 노인의 죽음을 부인해 왔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의 예측은 들어맞았다. -- 만우문, 백노인은 만우문의 제육대 문주라면 그는 지고무상의 가장 성스러운 무예인 성검을 터득했을 것이니 이는 당연한 일일 것이다. 백룡생은 내심 그 전적을 읽고 혹시나 하고 생각해 왔었는데, 정말로 그런 얘기를 노인에게서 듣자 가슴이 크게 부풀고 힘차게 뛰었다. 노인은 말을 이었다. "너는 잠시후면 절로 알게되겠지만, 본 만우문의 하는일은 바로 천하를 돌보는 일이다. 평소에는 나타나지 말것이며, 제자는 두지 않고 오직 문주 한사람으로만 전해지는 것이다. 너역시 만우문주가 된다면 앞으로 이런 규율을 차대의 문주에게 전해야 한다." 그말에, 백룡생이 문득 참을수가 없어서 물었다. "어르신, 제가 어찌 감히 그런 사람이 될수가 있겠습니까?" 노인은 고개를 흔들었다. "억대로 만우문주는 이백년을 격하고 대대로 전해졌다. 천하에 인재가 이백년만에 하나씩 나타났던 것이다. 그리고, 당세의 만우문주가 될 인재는 바로 다름아닌 너다!" "..." 백룡생은 일시 의구심이 일었으나 더이상 잘문을 하지 않고 공손히 그의 말을 들었다. 노인은 말을 계속했다. "나는 너에게 문주직을 물려주기 위해서 너를 그동안 데리고 있었던 것이고, 또한 너를 다시 무당파로 보냈다. 내가 너를 무당파로 보낸것은 내가 항상 나의 곁에만 있으면 열심히 노력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대만족이다." 이어, 뇌는 다소 기꺼운 표정을 지었다. 이에, 백룡생은 다소 의아해하며 물었다. "하지만 저는 이미 내공력도 거의 사라졌는데 어떻게 성검을 이룰수가 있겠습니까?" 그말에, 노인은 웃더니 되물었다. "너는 성검이 내공인줄로 아느냐? 너는 나에게 그런 내공이 있다고 생각하느냐?" "..." 백룡생은 잠시 생각해보고 내심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수가 없었다. 그렇다. 백노인에게는 내공의 기운이라는 거의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노인이 가지고 있는 그 신비로운 정체는 무어실가? 노인은 마치 그 의혹을 풀어주려는듯 대답했다. "만일 내공력이 필요했더라면 네가 내공을 빼앗기도록 내버려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너에게는 그러한 것들이 필요없기에 그냥 내공을 빼앗기도록 내버려 두었던 것이다." 백룡생은 문득 자신이 내공을 빼앗기던 장면을 생각하고는 절로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노인은 말을 이었다. "성검이란 내공이 아니라 마음의 공부이니라, 그리고, 지금 내가 네게 가르치려는 것도 바로 그것이다." 백룡생은 그말을 듣고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그는 그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던 터였다. 허나, 잠시 생각한 후에 문득 물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르신께서 계신데 제가 굳이 그런 것들을 배울 필요가 있을까요?" 노인은 그말에 담담하게 미소를 지었다. "너는 나의 수명이 무한하리라고 생각하느냐?" 백룡생은 일순 가볍게 놀라 물었다. "그렇다면 어르신께서는 오래사시지 못한다는 말입니까?" 노인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것에 관한 모든것은 네가 성검을 터득하게 되면 절로 알게된다. 그때는 마음의 눈으로 비춰서 모든것을 알게되는 것이다. 내가 너에게 문주직을 물려주는 것은, 나는 이제 천하의 안위를 너에게 맡기고 좀 쉬려는 것이다." 노인은 이어 말했다. "자, 얘기는 이정도 했으면 됐고... 우리는 이제 시작하자!" 백룡생은 노인의 뜻을 파악하고는 놀라 물었다. "바로 지금 성검을 배우라는 것입니까?"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너의 기초는 매우 튼튼하다. 그리고 지금은 아주 좋은 상황이나 어찌 머뭇거릴수가 있겠느냐? 게다가... 나는 별로 시간이 없다!" 백룡생은 방금전에도 노인에게서 시간이 없다는 소리를 들은것 같았다. 대체 어째서 노인은 그렇게 시간이 없다는 것일까? "..." 백룡생은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해다. "예, 어르신." 그러자, 노인은 만족한듯 웃으며 말했다. "자, 그렇다면 너는 이제부터 나의 말을 정신을 기울여서 듣고 기억하도록 해라. 뿐만 아니라 너는 이자리에석 그것을 터득할수 있도록 해야한다." 이어, 노인은 실로 길고긴 얘길를 그에게 들려주기 시작했다. 그것은 말로써 전해지는 육성이 아니라 바로 마음속으로 들려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내용은 바로 마음의 공부에 관한 것이었다. 그 근본은 백룡생이 지금 터득하고 있는 기초적인 것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고, 점차로 심오하기 이를데없는 곳으로 나아갔다. 그러한 구결은 매우 길고도 길었다. ...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가? 노인은 드디어 구결을 전부 말해주고 두어번 재차 반복해서 말해준 다음에 말했다. "여태까지는 이론을 말해주었지만 이제부터는 실체를 보여주마!" 바로 그때였다. 여태가지 그저 평범하게만 보이던 노인의 전신에서 일순 황홀하고 아름답기 짝이없는 황금빛 서광이 찬란하게 빛나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일시 황금빛 광채속에 잠긴듯하자, 백룡생은 노인의 모습이 그 황금빛 광채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아니, 그것은 단순한 느낌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노인의 육신은 황금빛으로 녹아서 하나의 둥근 덩어리를 이루더니 돌연 그것이 거짓말처럼 퍽 꺼지듯이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 그것을 바라보는 백룡생의 마음은 일순 왠지 깊은 슬픔으로 물들었다. 동시에, 동굴안에 가득차 있던 황금빛 광채도 사라졌으며, 노인의 신형도 온데간데가 없이 사라져버린 뒤였다. 대체 노인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가? 이것은 비록 노인이말해준 바는 아니지만 백룡생은 그의 가르침에서 자연 어찌된 일인지 알수가 있었다. 노인은 그에게 성검의 진수를 보여주고 일순 생의 종말을 고했던 것이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과거, 노인은 거짓죽음으로 땅속에 묻혔던 적도 있었지만, 그것은 허상의 죽음이었고, 이것이야말로 실체의 죽음이었던 것이다. 이 실체라고 하는 것은 성검 그 자체였고, 노인의 실체는 그순간 이 세간에서 사라져 버렸던 것이다. 그것은 세상사람들이 말하는 죽음과 비슷한 것이었다. 다시는 그를 볼수가 없게 되었으므로, 그러나, 백룡생은 그다지 커다란 슬픔에 잠겨서 감정이 흔들리지는 않았다. 그것은 이미 그의 마음이 커다랗게 성숙되었음을 의미했다. 그리고, 그는 이 고요하고 적막한 동굴속에서 이제야 정말로 심오한 마음의 공부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노인의 구결을 그는 이미 기억했지만 그것을 실제로 깨달아가는 것이다. 노인이 이미 사라졌기 때문에 그의 그러한 열외는 절실했다. 또한, 노인의 부탁을 저버리지 않기 위해서 그는 그야말로 혼신의 마음을 다했다. ...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가? 이 동굴에서는 시간의 개념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동안 백룡생의 마음은 때로는 공포와 분노, 그리고 고통속에 크게 흔들리기도 했다. 게다가, 무수한 번뇌가 일어서 그의 마음을 엄습했다. 그러나 백룡생의 결의는 실로 대단하여 그는 마침내 그러한 모든 어려우믈 이기고 점차 마음의 평정을 이루어가기 시작했다. 이번의 마음의 평정은 과거의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백룡생의 마음은 극도의 맑고 투명해졌고, 그ㅢ 마음의 눈속에는 세상의 이치가 그대로 적나라하게 비치는것 같았다. 그리고, 그는 이어 마음의 법칙을 관조하게 되었다. 바로 그 순간, 점차 그의 육신에 괴이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아무런 바람도 육체적인 내공의 조화도 없는데 그의 신형이 앉은 자세를 그대로 허공에 둥실 떠올랐던 것이다. 과거 그는 금강불괴의 몸을 이루었을대 이렇게 몸이 떠오른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보다 낮게는 부공삼매라는 것도 있다. 그러나, 지금 그의 몸이 허공에 떠오른 것은 하찮은 부공삼매나 완전한 금강불괴를 이루는것 따위가 아니라 모든것을 초월하고 있었다. 무공을 벗어난 최고의 무공이 바로 성검인 것이다. 지금 백룡생의 몸이 허공으로 떠오른 것은 다만 마음의 깨달음에 의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어, 점차 그의 육신에서 찬란한 황금빛 서광이 발출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노인이 전에 보여주었던 그 광채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일시 동굴전체가 찬란한 황금빛 서광속에 가득 메워지면서 백룡생의 육신도 그속에 녹아버린듯 사라졌다. 아니, 그의 신형은 노인의 것과는 달리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잠시 후, 황금빛 광채가 조금 부드러워지더니 서서히 걷혀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아까의 그자라에 백룡생의 모습이 다시 나타났다. 그러나, 지금의 그의 모습은 아까와는 완전히 달랐다. 아까는 극독에 중독되어 마치 시체같고 두눈은 욕념에 시뻘겋게 불타고 있었는데, 지금의 그의 용모는 과거 중독을 당하지 않았을 때와 비슷했다. 아니 오히려, 그의 외부에서는 더욱 부드러운 서광이 무형중에 흐로고 있었고 눈빛은 기이하게도 끝없이 맑게 빛나고 있었다. 그것은 가히 천하제일의 미남자의 모습이라고 말할만했다. 게다가, 어느새 그의 입가에는 한줄기 고요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그것은 그가 이미 깨우칠 것을 깨우치고 얻을것을 얻었다는 증거였다. 바로 그것은 성검일까? 그렇다. 백룡생은 이제 제 칠대 만우문주가 된 셈이었다. 백룡생은 눈빛도 고요하게 천천히 허공에서 지면으로 내려섰다. 그리고, 이어 서서히 밖을 향해 걸어나가기 시작햇다. * * * 음사란은 한참동안 정신없이 무공을 익히고 있다가 문득 기이한 느낌에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어느새 백룡생이 그녀의 앞쪽에 고요히 나타나 있는 것이 아닌가? "..." 음사란은 일순 그의 얼굴을 보고 넋을 잃고는 망연히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다가 그녀는 얼른 그의 품속으로 뛰어들었다. "당신...! 살아나셨군요?" 백룡생은 미미하게 웃으며 그녀를 부드럽게 안아주었다. "그렇소." 음사란은 백룡생의 태도를 보고 그가 이미 뭔가 불가사의한 무예를 터득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그녀는 그게 왠지 알수가 없어서 일순 물었다. "다신, 그 검은 어디서 난거죠?" 알고보니, 백룡생은 허리춤에 있는 군자검 이외에도 한주루의 칠흑같이 검과 기이한 기운을뿌리는 장검을 하나 들고 있었던 것이다. 검의 호수 부분에는 지존이라는 검명이 새겨져 있었다. -- 지존검, 백룡생은 웃으며 대답했다. "이건 어르신께서 물려주신 것이오." 그렇다. 이것이 바로 만우문주의 신물이었던 것이다. 백룡생은 성검을 터득한 이후에 그것이 있는 장소를 알고는 금방 가서 가져왔던 것이다 "...?" 음사란은 잠시 의아한 표정을 짓다가 즉시 곧 다시 그의 품속에 얼굴을 묻었다. "어쨌든, 당신이 살아돌아와서 너무나도 기뻐요! 전... 만일 당신이 돌아오지 않으면 당신을 위해 그들에게 복수를 하려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렇다. 음사란은 바로 그점 때문에 혼자서 동굴을 지키며 그토록 열심히 무공을 익혔던 것이다. 이어, 그녀는 노인이 그녀에게 주었던 비급을 보여주면서 살포시 웃었다. 그녀에겐 사실 비급이나 지존검 보다도 백룡생이 돌아온 것이 더할나위 없이 기뻤다. 백룡생은 이미 그녀가 어쩔수 없이 그의 아내가 된 셈이므로 미소하며 부드럽게 그녀를 안아 주었다. "그렇다면 내가 당신에게 감사를 해야 하겠는걸?" 이어, 그가 그녀의 몸을 안아올려 부드럽게 입맞춤을 해주자, 음사란의 얼굴은 매우 고혹적으로 아주 빨갛게 물들었다. 그녀는 쿵쿵하는 가슴을 겨우 억제하며 문득 다시 물었다. "참, 그 할아버지는 지금 어디에 계시죠?" 백룡생은 웃으며 대답했다. "그분은 가셨소!" "...?" 음사란은 백룡생의 말뜻을 잘 알수가 없었으나 어쨌든 그가 웃으므로 일이 잘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어, 그녀는 말했다. "우리 그럼 어서 가요!" 백룡생은 웃으며 물었다. "어디로 가지?" 음사란은 즉시 대답했다. "밥먹으러요. 저는 지금 무척 배가 고파서 죽겠다구요!" 그렇다. 음사란은 백룡생을 지키기 위해 동굴의 입구에서 거의 먹지도 못하고 그토록 오랫도안 기다렸으니 얼마나 배가 고프겠는가? 백룡생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럽시다." 이어 그는 지존검을 허리에 찬 뒤에 음사란을 향해 말했다. "우리 가까운 반점까지 누가 빨리 도착하나 내기하지 않겠소?" 음사란은 마침 자신이 배운 놀라운 무예를 선보이고 싶었던 터라 즉시 찬성했다. "좋아요. 늦게 도착하는 사람이 식사비용을 지불하기예요!" 말이 끝나는 순간 그녀는 신법을 극도로 펼치기 시작했다. 그녀의 지금 신법은 거의 과거의 백룡생에 맞먹을 정도였다. 그런데, 음사란은 한참동안 달리다 보니 전혀 뒤를 쫓아오는 기척이 없는 것이 아닌가? 그리하여 그녀는 내심 생각했다. (그는 아직 몸이 회복되지 않았는지도 모르는데 내가 너무나도 빨리 달린 것이 아닐까?) 일단 그런 생각이 들자 그녀는 감히 더이상 가지 못하고 그자리에 주저 앉아서 한참을 기다렸다. 헌데 잠시 후였다. 문득 그녀의 머리위에서 한줄기 부드러운 음성이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사란, 왜 가지 않고 그렇게 앉아만 있는 것이오?" 음사란은 그말에 일시 화들짝 놀라서 위를 올려다 보았다. 그녀의 허공 바로 위, 거기에는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백룡생이 둥둥 신형을 허공에 떠올린채 그녀를 내려다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음사란은 이것을 보며 경악하는 한편 안색이 절로 붉어졌다. 그녀가 경악한 것은 그가 이토록 가까이에 있었어도 자신이 전혀 그 기척을 몰랐다는 것이고, 안색이 붉어진 것은 그녀의 부끄러운 마음이었다. 다름이 아니라, 백룡생이 그녀의 이름을 애칭으로 불렀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생각해냈다. (그는... 그는 나를 아내로 생각해 주는 것일까?) 이어, 그녀는 다소 떨리는 음성으로 대꾸했다. "전... 도저히 못당하겠어요. 백랑! 이리 내려와서 함께 가도록 해요!" 그녀는 자신도 애치으로 그를 부르고는 얼굴이 새빨갛게 변했다. 백룡생은 이것을 보고 웃으면서 그녀의 앞에 내려왔다. 그리고, 그녀의 가녀린 몸을 안으며 말했다. "그럼 내가 당신을 데리고 가겠소!" 동시에, 백룡생은 그녀를 안고 몸을 날렸다. * * * -- 망혼애, 이 망혼애에는 심한 스산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갈라진 단애의 사이에서는 음산한 바람이 마치 귀곡성을 울리고 있는듯 하고, 주변의 황폐한 분위기는 염세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그런데 지금, 이 망혼애의 절벽위에 한 사람이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헌데 그 사람은 바로 다름아닌 악불이였다. -- 악불이, 그녀는 무엇대문에 이곳으로 다시 온 것일까? 그것은 죽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전날 이곳에서 한번 백룡생에게 구함을 받은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유독 이곳을 택해 죽으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녀는 왜 죽으려는 것일까? 한줄기 스산한 바람이 그녀의 머릿결을 흔들고 지나자 악불이는 일순 처연한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내려 단애의 아래쪽을 바라보았다. 지금은 저번처럼 밤이 아니어서 사방이 훤하게 보였다. 그러나, 단애의 아래는 짙은 음산한 안개로 뒤덮여 있어서 그 밑바닥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곳의 아래에는 마치 전설에나 나오는 지옥의 음산한 유부가 있을것 같아서 극심한 공포심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악불이는 새삼 턱에 받치는 숨을 들이쉬며 마음을 결연하게 했다. (불이야, 불이! 너는 대체 뭘 더 망설이는 거지? 그분도 이미 돌아가셨다는데 너는 너는 더이상 망설일 필요가 없지 않은가?) 그렇다. 악불이가 지금 죽을 이유는 한 사람이 이미 죽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그사람은 누구일까? 심룡일가? 아니었다. 악불이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사람은 바로 백룡생이었다. 그렇다면 그녀는 어째서 그가 죽었다고 해서 다시 이곳으로 와서 죽으려고 하는 것일까? 사실, 그 이유를 알자면 복잡한 여심을 들추지 않을수가 없다. 왜냐하면 다름 사람들은 잘 모르는 악불이만의 가슴앓이가 그사연속에 숨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과연 진정으로 백룡생을 배신했던 것이었을까? 그녀는 과연 진정으로 심룡과 살기를 희망했던 것이었을까? 아니었다. 그런것은 단지 겉모습이었을뿐 내면의 그녀의 마음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그렇게 복잡한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을까? 그 원인을 말하자면 당연히 그녀가 심언진에서 심룡을 따라갔던 일에서 비롯되었다. 물론 당시 그녀는 그를 따라가지 말았어야 했지만... 그 날, 악불이는 심룡을 따라가서 그의 환심을 사려다가 그만 몸을 빼앗기고 말았다. 허나, 그당시는 그런것이 그다지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심룡과 혼인하게 된다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후의 심룡은 그녀를 거의 노골적으로 멸시를 했으며 마치 귀찮다는 듯이 자주 그녀를 피해다녔을 뿐만 아니라 간혹 짜증을 내기도 했다. 게다가, 악불이는 당시 백룡생의 진면목을 다시한번 생각하고 보게 되었고 실로 자신의 판단이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수가 있었다. 그녀가 심룡을 따라갔던 것은 여인의 헛된 허영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나중에서야 자신이 얼마나 백룡생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으며 그것은 실로 불가항력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로 인해 이미 심룡에게 몸을 빼앗기고 백룡생에게 절교를 선언한 그녀는 절망에 빠져버렸다. 비록 겉으로 그를 만났을 때에는 다소 아무렇지도 않은척 했었지만 그녀는 실로 한시라도 백룡생이 없으면 살수가 없을것 같았다. 그리하여, 그녀는 나주에 심룡의 야박한 말이나 행동도 그리 괴로운 것이 아니었으며, 그가 백룡생을 함정에 몰아놓도록 말을 할대도 그녀는 마음은 실상 다른곳에 가있었다. 그런데, 심룡의 제의를 듣는 도중에 그녀는 문득 이상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제 그녀는 생전에는 백룡생과 맺어질 수가 없을테니, 함게 죽어서 그와 다시 해로하자는 생각이었다. 이 생각은 매우 엉뚱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지만 백룡생을 생각하는 마음이 골수에 맺힌 그녀로서는 자연 그렇게 생각되지 않을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그ㄴ녀는 일단 심룡의 제의를 받아들이는 척 했다. 세상에 그들만이 백료생을 죽일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를 결정하고도 심한 갈등을 겪었으며 전날 이 망혼에에서 그녀가 뛰어내렸을 때에는 그녀는 사실 그 계획을 포기한 상태였다. 사실, 그렇지 않았다면 아무리 좋은 조건이라고 해도 그녀가 어찌 감히 이런 곳에서 뛰어내리는 모험을 할수가 있다는 말인가? 그녀의 마음은 참혹해져서 개방방주에게 연락을 해놓고도 다시 이곳에서 죽으려고 했었는데, 그것이 일순 백룡생에게 구출이 되자 그녀는 마음을 돌리지 않을수가 없었다. 그후 그녀는 진정으로 백룡생을 사랑했으며 그에대해 진정으로 미안해 했다. 그러다가, 서수방에서 백룡생을 구할 생각을 했다. 그래서 그녀는 심룡에게 짐짓 조검에 대해 말을 했던 것이다. 그녀는 심룡과는 애초에 함께 살 생각도 없엇다. 그녀가 심룡과 단한번의 몸을 섞은 것은 그저 난데없는 봉변이었을 뿐이었다. 심룡은 그녀가 나중에 조건을 말하자 다소 안심을 하고 그녀를 경계하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서, 악불이는 백룡생을 구하기 위해 갖은 애를 썼다. 그러나, 그녀의 힘은 미력했고 칠패의 주인들에게 넘어간 백룡생을 그녀가 구할수가 있는것이 아니었다. 그러던중 백룡생이 이미 죽었다는 소문을 듣게되자 그녀는 그만 절망을 하고 애초의 생각대로 그의 뒤를 따르리라 결심하고는 이곳으로 왔던 것이다. 이곳은 이미 그녀가 한번 뛰어내렸던 고시기 때문에 인연이 깊었다. 악불이는 백룡생이 자신을 구해주었던 곳에서 죽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와는 달리 대낮이라 치밀어 오르는 공포감을 그녀는 감당하기 어려웠다. 제 47 장 어리둥절한 무림군웅들! 악불이는 한참동안 아래를 내려다 보다가 문득 생각했다. (나는 만일 지금 검으로 목을 자르고 아래로 떨어진다면 공포감을 줄일수가 있지 않을까?) 그리하여, 그녀는 즉시 허리춤에서 그 숙녀검을 꺼내들었다. 숙녀검은 지극히 예리한 보검이다. 그것은 평소에는 둔탁하지만 진기만 주입하면 설사 금서기라도 무우베듯 하는 것이다. 그런데 하물며 사람의 목쯤이야! 악불이는 그검에 진기를 주입하자 즉시 서늘한 검기가 물씬 느껴졌다. 그녀는 입술을 꼬옥 깨물고 그 숙녀검을 자신의 목으로 가져가면 마른침을 한차례 꿀걱 삼켰다. 아마 그녀가 이 검을 휘두르기만 하면 미처 아픔을 느끼기도 전에 그녀는 저승으로 가버릴 것이다. 그런 점에서는 안심이 되었다. 그러나, 제아무리 그렇다고 한들 어찌 공포심을 감출수가 있으랴, 원래 이 숙녀검은 그녀가 백룡생과 더불어 구입했었고, 그것으로 한때의 협명을 천하에 날릴려고 마음을 먹었었는데 이제 그것으로 자신의 목을 자르게 될줄은 정말 몰랐다. 악불이는 문득 그런 것을 생각하자 일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게다가, 눈물이 가득찬 두눈속에 백룡생의 환영까지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그리하여 그녀는 소리쳤다. "백랑, 사랑해요! 나도 당신곁으로 가겠어요!" 동시에, 그녀는 처절하게 소리치며 자신이 들고있던 숙녀검을 거꾸로 들고 우에서 좌로 한번 빠르게 그었다. 슷, 소리는 별로 없다. 게다가 이 예리한 숙녀검은 감촉까지도 전혀 느껴지지 않고 그녀의 목을 베어버린 것이었다. 그녀는 그러고도 자신이 아직 똑바로 서있는 것을 신기하게 생각했다. (죽는것도 실상은 별것이 아니구나!) 그녀는 이미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했다. 헌데, 그녀는 여전히 기다려도 쓰러지지 않을뿐만 아니라 여혼도 육신을 떠나지 않은 그대로가 아닌가? 그리하여 그녀는 생각했다. (나는... 나는 한번더 목을 긋는것이 낫지 않을까?) 그녀는 아마도 지금 자신의 숙녀검이 너무도 예리하야 그녀의 목은 이미 절단 났지만 역시 목위에는 그대로 얹혀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목위에 뭔가 뜨끈한 것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녀는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하고 다시 눈물이 치솟았다. 그러나, 그녀는 이렇게 목이 굴러떨어지지 않는다면 자신은 육신을 떠날수가 없을테니 실로 곤란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재차 숙녀검을 목으로 가져갔다. 그녀는 이번에는 조금 천천히 잘라서 아예 목이 굴러 떨어지게 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마음을 아주 독하게 먹었고 자연 두눈에서는 눈물이 줄줄이 흘러나왔다. (백랑, 백랑! 날 도와줘요!) 동시에, 그녀는 재차 숙녀검을 우에서 좌로 이번에는 천천히 손에 힘을 주고 입술을 꼭 깨물며 옆으로 그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전혀 감각이 없는것이 아닌가? 이에, 그녀는 눈을 감고 생각했다. (이것은... 이것은 실로 내가 이미 죽었기 때문에 감각을 모르는 것일거야. 그렇지만 나의... 나의 시신이 이렇게 뻣뻣하게 서서 죽는다면 이것은... 이것은 꼴사나운 모습이 되지 않을까?) 그리하여 그녀는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묵을 떨구고 아래로 떨어지려고 몸을 다소 앞으로 굽혔다. 헌데 그때, 악불이는 아무래도 이상했다. 그녀의 전신감각은 전혀 죽은것 같지않고 평소와 다름이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녀는 문득 생각했다. (나는... 나는 혹시 아직 죽지 않은것이 아닐까?) 일단 그런 생각을 하자, 왠지 그녀는 실로 절실하게 살고 싶다는 욕망이 불길처럼 타올랐다. 순간 그녀는 생각했다. (내가 만일... 만일 아직 죽지 않았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녀는 불과 조금전의 죽어야 겠다는 생각이 사라지고 살고 싶은 의욕으로 마음이 가득차 오르는것을 느꼈다. 헌데 순간, 악불이는 무심코 눈을 떠서 보니 자신의 숙녀검이 오직 검자루만이 남은채 검신은 갑자기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는것이 아닌가? (...?) 악불이는 이런 사실을 믿을수가 없어서 이것이 꿈이 아닌가, 혹은 환각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며 절로 자신의 볼을 가볍게 꼬집었다. 헌데 꿈이 아니었다. 분명히 자신의 볼에 따끔한 감각이 전해졌던 것이다. 그녀는 이순간 그 아픈 감각이 그렇게 반갑고 즐거울 수가 없었다. 세상에 이토록 즐거운 고통의 감각이 있다니! 그것은 바로 그녀가 아직 살아있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바로 그때였다. "꿈은 아니오 불이! 환각도 아니오... 나는 당신을 사랑하여 여기까지 왔다오. 어서 나의 품에 안기지 않겠소?" "..." 악불이는 눈을 번쩍 떴다. 그러고 보니 눈앞에 백룡생이 허공을 밟고 둥둥떠서 그녀를 바라보며 웃고있지 않은가? 순간,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그의 품속으로 몸을 날리며 눈물을 흘렸다. "아아 백량...!" 헌데, 그 순간 이미 단애의 허공으로 몸을 던지 악불이의 눈은 무심코 아래쪽을 보게 되었고 순간 그녀는 생각했다. (나는 너무도 그의 못습을 절실하게 그린 나머지 그의 환상을 보고 이렇게 몸을 날린 것이 아닐까...) 그것은 능히 그럴수가 있는 일이었다. 만일 그렇다면 이제 그녀의 몸은 아득한 아래로 추락해서 떨어져 죽을것이 아니겠는가? 그런것을 생각하자, 순간 악불이는 전신의 소름이 왕창 일어나며 공포심으로 머리끝과 등줄기가 쭈뼛 일어서는 것을 느꼈다. 그리하여, 그녀는 황망히 백룡생의 존재를 확인하기위해 고개를 쳐들고 앞을 보았다. 다뇐히 백룡생의 환영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모습은 실체일까 환영일까? 악불이는 그의 모습이 눈앞에 있음에도 믿을수가 없어서 감촉을 느껴봐야 알수가 있다고 생각했다. 환영이라 결코 감촉이 있을수가 없으니까, 지금 눈앞의 백룡생의 모습은 마치 금방이라도 만지면 꺼져버릴것만 같았다. 악불이는 극심한 공포속에서도 백룡생의 모습이 사라질까봐 몹시 두려워했다. 그의 모습이 사라짐다면 그녀는 즉시 아래로 곤두박질쳐져 떨어질 것이 아니겠는가? 헌데, 다행히 다음순간 백룡생의 몸에서는 부드러운 감촉과 함께 진한 그의 체취가 물씬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순간, 악불이는 그의 품속에 마치 떨어질것을 겁내는 듯이 다라붙으며 왕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것은 대체 무엇때문인지 그녀도 잘 알수가 없었다. 다만, 한가지 중요한 점은 이순간 그녀의 눈이 크게 뜨였다는 사실이었다. 삶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이... 그녀는 이제 더이상 자결을 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엉엉 마치 어린아이처럼 우는 그녀의 얼굴에 백룡생의 부드러운 손길이 사랑스럽게 눈물을 닦아주고 있었다. 그렇다! 백룡생이 그녀가 자결하는 순간에 나타나 그녀의 숙녀검을 순간적으로 박살내어 버렸던 것이다. 그 수법이 워낙에 불가사의했으므로 그녀는 미처 그것을 몰랐고 이와같은 보기드문 광경이 벌어졌다. 백룡생은 이미 그녀의 마음을 훤히 내다보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악불이가 이렇게 새로운 삶의 활력을 되찾은데 대해 내심 매우 기뻐했다. 그리고, 악불이가 겨우 울음을 그치자 뒤에 서있는 음사란을 그녀에게 소개해 주었다. "불이, 앞으로 함게 살아가게될 우리 식구요! 서로 인사하구려." 만일, 악불이가 이전에 백룡생에게 다른 여자가 생겼다는 말을 들었다면 결코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고 아마도 사생결단이라도 내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년ㄴ 설사 그녀가 있다고 해도 전혀 아무렇지도 않았다. 오직 그녀가 아직 살아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가! ... * * * -- 성수방, 이곳에는 언제부터인가 아주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돌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언제부터인가 아주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돌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무림의 군웅들이 모두 모여있는 와중에 성수방에서 돌연 태도를 돌변시켰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그들은 이곳으로 적혈련의 세력이 침입을 해왔다고 했었다. 마침 무림각파의 대부분의 인원들은 성수방의 외곽에 진을 치고 있었는데, 모두들 대청에 모여서 논의를 하려고 할때, 돌연 무림칠패의 주인들은 대청의 곳곳을 막아서며 빠르게 나타났었다. 물론 무림칠패의 주인들이 그렇게 일을 다급하게 벌린 이유는 백룡생을 놓쳐버렸는데다가 마음의 불안이 겹쳐서 군웅들이 모인김에 적혈련의 핑계를 대려고 한 것이었다. 그리고, 적혈련에 의해 무림군웅들이 죽었으나 성수노인등이 나타나서 적혈련의 세력들을 제거하고 무림을 화평하게 만들었다고 하면 그들의 등장은 명분이 서는 것이다. 물론, 지금 성수방의 외곽에는 적혈련의 세력이 침입을 하여 한창 무림각파의 인원들과 격전을 벌이고 있을 것이다. 성수노인이 나서서 그런 의사를 밝혔을대 많은 무림군웅들은 결코 이를 믿고 싶지가 않았다. 아니,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하지만, 본인들이 직접 나서서 말을 하는데야 어찌 믿지 않을수가 있겠는가? 잠시 처음에는 농담을 하눈줄 알았던 무림군웅들은 일순 저마다 안색이 새파랗게 변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그제서야 그들은 당금의 무림의 혈겁의 주동자가 적혈련이 아닌 동심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아연 경악했다. 이 동심각의 세력이야말로 가히 미증유의 거대세력이요. 그들은 비단 이런일 뿐만 아니라 어떠한 일도 할수가 있는 역량이 있는 자들이었기 때문이었다. 허나, 무림에는 비교적 꿋굿한 인사들도 있는 법이다. 화산일검 악군산이 낯을 새파랗게 변화시키며 소리쳤다. "성수노인! 우리를 모두 죽인다고 해서 무림인들이 당신들의 말을 믿어줄것 같소?" 성수노인은 그저 담담하게 웃엇다. "그런것은 걱정마시오. 그대는 그저 죽어주면 되는 것이지!" 곤륜파의 적풍진인이 싸늘하게 물었다. "그대들은 또다른 흉계라도 있다는 말이오?" 성수노인은 고개를 내저었다. "밤이길면 꿈이 많은 법... 우리들은 다만 그대들만 죽어주면 무림은 크게 혼란할테니 그때에 나서서 무림에 힘으로 재질서를 만들려는 것일 뿐이오. 설령 믿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힘으로 되지 않는 법이 있겠소?" ... 성수노인의 말은 명백했다. 여차하면 무림각파의 인원들도 모조리 주살할수가 있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실로 가능한 말이었다. 실로 힘으로 안되는 일이 얼마나 있으며 그들의 힘을 합한 것이면 당금무림의 산산이 흩어진 세력은 금방 와해될 것이 분명할 것이다. 군웅들은 일시 너무도 분노했지만 이런 엄연한 사실앞에 어이없고도 놀라서 입이 다 얼어붙었다. 그러나, 이때 사람이 궁지에 몰리면 어떠한 생각도 다해보는 것이어서 무당파의 장문인인 옥진자는 한숨을 내쉬며 나서서 말했다. "당신들은 성공할 수가 없을 것이오." 성수노인은 그가 입을 열자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건 무엇때문이오?" 옥진자는 잠시 주저하다가 대답했다. "우리의 소사숙이 당신들을 저지할 것이기 때문이오." 사실, 백룡생은 이미 이곳에서 의문의 실종을 당한지 벌써 십여일이나 지나고 있었다. 옥진자는 그 일에 매우 커다란 의구심을 느껴 왔으나 지금에 이르러 한가닥의 희망을 가져보는 것이다. 그리고는 다시 생각했다. (혹시 소사숙도 저들에게 이미 당한것이 아닐까?) 저들의 세력이 그토록 막강한데 능히 그럴것도 같았다. 그러나, 성수노인의 태도를 보고는 다소 희망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때 성수노인의 안색은 처음으로 괴이하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는 싸늘하게 되물었다. "그자를 당신들이 보았다는 말이오?" 옥진자는 그의 말이 괴이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고개를 저었다. "보지는 못했지만 그는 하늘이 내린 사람이니 능히 어떠한 난관도 극복하고 당신들의 사악한 야망을 부수어버릴 것이오." 그렇다! 바로 이 말이야말로 옥진자의 백룡생을 생각한 본심이라고 할수가 있었다. 사실, 백룡생은 다소 멍청한듯도 하지만 더없이 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 복에 의해 혹시 무림이 구해지지 않을까하고 생각해 보는 것이다. 허나, 이거슨 워낙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가 생각해본 일에 불과했다. 평소라면 옥진자는 결코 그와같은 말과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헌데, 옥진자의 그말은 또다시 성수노인의 마음에 변화를 가져왔다. 게다가 성수노인의 눈빛마저 가볍게 흔들렸던 것이다. 사실, 이들 동심각의 인원들은 그날 백룡생과 음사란이 괴이하게 실종을 한 이후에 많은 고심과 갈등을 겪지 않을수가 없었다. 그들은 그 결과 우선 백룡생이 이미 심마에 들고 내력을 빼앗겼기 때문에 거의 경계할 필요가 없어졌고, 게다가 음사란도 한낱 여자이기 대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혹시 세월이 지나면 어떻게 사태가 돌변할지 알수가 없으므로 그들은 좀더 일을 빠르게 추진하기로 마음을 굳혔었다. 그러나, 지금 다시 옥진자의 말을 듣자 성수노인은 아연 마음이 크게 흔들리지 않을수가 없었다. 이 백룡생이란 존재는 그들에게 더없는 충격을 안겨 주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것을 보고 현현노조가 싸늘하게 웃으며 잘라 말했다. "그녀석은 이미 적어도 황천의 문앞에 가있을테니 걱정할 필요가 없소. 우선 이자들를 제거하고 나서 좀더 생각해 봅시다!" 그말에, 성수노인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지." 이어, 그가 마악 전원도살의 명령을 내리려고 할 때였다. 갑자기 어디선가 한줄기 은은하고 담담한 음성이 들려왔다. "사란, 어째서 이곳을 황천이라고 말하는 것일까? 우리는 정말로 황천의 문앞에 와있단 말이오?" 그말에, 맑고 아름다운 옥음이 그말을 받았다. "호호, 백랑! 그들은 아마도 이 대청의 이름을 그렇게 지었나봐요.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황천의 문앞에 와있는 것이 아니고 뭐겠어요?" ...? 일순 장내의 시서는 마치 벼락이라도 맞은듯이 갑자기 그쪽으로 쏠렸다. 그 음성은 몇몇 사람들에게는 아주 낯익은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그쪽으로 시선을 돌린 많은 사람들의 시선은 일순 굳어졌고 경악했으며 곧이어 갖가지의 음성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앗, 소사숙!" "소사숙조님..." "앗, 너는 불이가 아니냐? 네가 여기엔 웬일이냐?" "네, 네놈은 바로!..." ... 소사숙이나 소사숙조를 부른 사람들은 물론 무당삼자와 무당파의 운자배의 제자들이었다. 그들은 매우 반가와서 일시에 목이 다 메일 정도였다. 그리고, 악불이를 부른 사람은 바로 악군산이었고, 욕을 한 사람은 물론 동심각의 인원들중 하나였다. 다름이 아니라, 백룡생이 음사란과 악불이를 좌우에 거느리고 대처의 입구에 어느새 나타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을 본 장내의 사람들은 즉시 희비가 크게 교차되었다. 물론 그중에서도 백룡생의 정체를 몰라서 뭐가뭔지 어리둥절해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안녕하셨소?" 백룡생이 그들에게 손을 흔들며 그들의 중앙으로 걸어가자, 동심각의 인원들은 일순 한거번에 몰려들어 그를 포위하며 소리쳤다. "네놈이 감히 우리에게 다시 나타났구나!" 그것은 바로 장존 적용세의 악에 받친 욕설이었다. 그말에, 백룡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당신들은 내가 반갑지 않으시오?" 적용세는 성질이 급해서 두눈을 벼락같이 부릅뜨며 소리쳤다. "그럴리가 있겠느냐? 네놈을 죽여야겠다!" 소리침과 동시에, 적용세는 전신의 붉은 기운을 마치 거대한 햇살처럼 일으켜서 백룡생을 향해 발출시켰다. 그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공격이었다. 그의 일장은 일순지간에 백룡생의 몸을 휘감고 폭죽처럼 터뜨려 버리는것 같았다. 헌데 다음순간, 괴이하게도 그 붉은 기운이 씻은듯이 사라지더니 백룡생은 적용세의 코앞에 서있었다. 백룡생은 그의 머리를 두드리며 말하는 것이었다. "당신은 성질이 급하시군. 옛 친구에게 그렇게 험악하게 대하는 법이 어디에 있소?" 그런데, 이 적용세는 단지 두눈을 이리저리 굴릴뿐 전혀 움직이지도 못하고 대꾸도 못하는 것이 아닌가? 그는 틀림없이 백룡생에게 제압된 것이 분명했다. 이것은 실로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아무도 백룡생이 어떻게 신형을 날려서 적용세를 제압하는지 보지를 못했다. 게다가, 적용세의 몸이 이미 거의 금강불괴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알고있는 사람은 여섯명의 동심각의 인원들은 실로 경악을 금치 못했다. 백룡생의 무공은 지난번보다도 훨씬 초월하여 불가사의하게 고강해진것 같지 않은가? 그리하여, 성수노인이 소리쳐서 말했다. "어서 한꺼번에 놈을 공격합시다!" 이때, 이미 대청안에 있던 수십 수백의 군웅들은 벌써 자신의 목숨에 지장이 생길까봐 일찌감치 피한 뒤였다. 대청의 중앙에는 드넓은 공간이 생겨났다. 음사란은 악불이와 함께 한쪽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에는 불안의 빛은 없었다. 백룡생이 이길것을 그녀는 확신하기 때문이었다. 성수노인의 일갈이 터진 순간, 수많은 군웅들은 일시 자신들의 동고이 터져나갈듯한 강렬한 광채가 대청안을 가득 메우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모두 여섯가지 빛깔이었는데, 그 하나하나가 태야의 광채보다도 더욱 강렬했기 때문에 아무로 거의 제대로 눈앞의 광경을 바라볼수가 없었다. 다만, 그 여섯명의 무서운 공격이 일제히 빈틈없이 백룡생의 몸으로 덮쳐들었다는 것을 알고는 그 가공할 무공에 절로 식은땀을 흘렸을 뿐이었다. 헌데 이때였다. 갑자기 그 무섭던 광채가 일제히 씻은드시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동시에 장내의 광경이 훤하게 군웅들의 앞에 드러났다. 동심각의 인원들, 그들은 마치 적용세의 모습처럼 그자리에 선채 꼼짝도 하지 않고 있는것이 아닌가? 이것은 더욱 믿을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럼 그들은 일시에 모두 제압된 것이란 말인가? 세상에 그들을 눈깜짝할 사이에 모조리 제압할 무공이 있을까? 그런데 이상한 것은 백룡생의 모습이었다. 그는 어느새 턱하니 동심각의 인원들의 중간에 앉아서 조용히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역시 동심각의 인원들에 의해 피해를 입은 것이란 말인가? 이것은 양패구상이 아닐까? 군웅들은 일시 백룡생도 피해를 당한것이 아닐까 하고 곤혹해 하다가 문득 가볍게 흠칫했다. 백룡생은 홀연 앉은자세 그대로 고개를 갸웃거렸던 것이다. 제압을 당했다면 결코 그렇게 할수가 있을리가 없었다. 이어, 그의 입에서 한줄기 담담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사란, 그리고 불이! 잠깐만 이리와 보시오!" 그리고 악불이와 음사란에게 손짓을 하는 것이었다. 이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은 경악해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이때, 음사란이 마치 그럴줄 알았다는듯이 악불이의 손을 잡고 번쩍 그의 앞에 내려섰다. 그녀의 놀라운 신법을 보고 군웅들은 다시 생각했다. (저자의 무공이 저렇게 높은데 그 여자까지도 무공이 무시무시하군!) 그때 음사란이 백룡생에게 다가가 물었다. "백랑 무슨 일이죠?" 백룡생은 손가락으로 동심각의 인원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들을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한번 생각해 보시오." 그말에, 음사란은 다소 안색이 굳어지더니 대답했다. "저는 모르겠어요. 당신의... 뜻대로 하세요." 그녀는 은연중 만화성모의 길러준 은혜를 생각했던 것이다. 만화성모는 그래도 그녀를 그 얼마나 애지중지 길러 주었던가? 백룡생은 그말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우리는 귿릉ㄹ 모두 그냥 풀어줍시다." 그말에, 음사란의 안색은 화사하게 풀렸다. 또한 이미 흙빛으로 변해있던 동심각의 일곱명으이 인원들의 안색 역시 기쁨과 기대의 빛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와는 반대로 무림의 군웅들은 이때 일제히 크게 경악하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앗, 안되오! 그들을 풀어주면 안되요!" "무림을 위해서 그들을 죽여야 합니다! 대협! 제발 그들을 죽여버리시오!" "소, 소사숙...!" 특히 그들 가운데 무당삼자는 급급히 백룡생의 곁에 이르러 소리쳤다. "소, 소사숙! 그... 그러시면 안됩니다!" 말과 동시에, 청진자는 장검을 뽑아서 그들을 베어버리려고 했다. 허나 순간, "안되긴 뭐가 안되오? 이미 밖의 싸움도 완전히 멎었고, 무림의 혈겁이 끝이 났는데 이들을 살려준들 뭐가 어떻다는 말이오?" 백룡생은 소리침과 동시에 우수를 가볍게 휘젖는 것이 아닌가? 그순간이었다. 별안간 괴이하게도 동심각의 일곱명의 인원들의 혈도가 갑자기 시원스럽게 풀려버리는 것이 아닌가? 이때는 청진자의 장검이 마치 적용세의 목으로 후려쳐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순간 적용세가 몸을 무섭도록 빠르게 움직이며 맨손으로 청진자의 장검을 잡아서 쥐고 두눈을 부릅뜨고 그를 쳐다보자 청진자는 그만 놀라서 장검을 놓고 뒤로 주춤주춤 물러서고 말았다. 무인에게 있어서 이렇게 병기를 빼앗기고 도망간다는 것은 지독한 수치였다. 그러나, 적용세는 백룡생이 자신들을 그저 살려준 점을 생각하여 청진자에게 손을 쓰려 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장검을 손안에서 부러뜨려 바닥에 팽개쳤을 뿐이었다. 이렇게, 동심각의 인원들이 한거번에 그냥 풀려나자 무림군웅들은 크게 당혹했고 정작 동심각의 인원들 역시 매우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이것을 보고 백룡생음 말했다. "여러분! 굳이 이렇게 싸울 필요가 뭐가 있겠소? 모두 싸우지 말고 잘 살아 봅시다. 그럼, 나는 이만 갈테니 여러분은 함께 잘 의논해 보시오!" 그말과 함께, 백룡생은 느닷없이 음사란과 악불이를 대동하고 바끙로 느릿하게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이것을 보곡 군웅들은 더욱 어이가 없었다. 특히 무당삼자중 옥진자의 안색은 거의 흑빛이 되어가고 있었다. 동심각의 인물들은 무공이 이미 극한에 이른 사람들인데 그들과 함께 의논을 하라니 이는 도대체 말도 되지 않는 일인 것이다. 그리하여, 백룡생의 신형이 마악 밖으로 나가는 순간 옥진자는 이런 시기에 다시한번 조사지령을 발동하여 그를 구속해볼까 말까 하고 망설였다. ... 대청안의 분위기는 실로 괴이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헌데 이때, 백룡생이 걸어나간 곳을 향해 빠르게 뒤쫓아가는 섬연한 하나의 인영이 있었다. 그녀는 바로 성수노인의 손녀딸인 심황이었다. 제 48 장 옥검봉의 고민 백룡생은 세명의 여인들과 함게 무당산의 옥검봉으로 돌아왓다. 그 세명의 여인들은 하나같이 절색의 미를 가지고 있었고, 또한 마음씨 또한 매우 훌륭하기 때문에 그는 오랜만에 즐거운 생활을 누리려는 것이다. 백룡생은 이 옥검봉이 그야말로 행복의 터전이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그런 그의 생각이 빗나갈 줄이야! 그런 전조는 며칠전부터 시작되었다. 아래로 물을 길으러 내려갔던 음사란이 그에게 다가오더니 다소 심각한 음성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여보 큰일났어요! 무림구웅들이 옥검봉의 주위에 진을 치고 있어요!" "뭐라고?" 백룡생은 급히 놀라 몸을 벌덕 일으키지 않을수가 없었다. "그, 그들이 나를 잡으러 왔단 말이오? 나는 별로 그들에게 잘못한 것이 없는데?" 허나, 음사란은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그들은 당신을 잡으러 온 것은 맞는데, 잡아서 무림맹주를 시키겠대요! 그들 가운데에는 과거의 동심각의 사람들도 섞여 있거든요?" 그말에, 백룡생은 더욱 질색을 했다. "아, 아이고! 나... 나는 못해!" 그것을 보고 음사란은 곱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당신은 아래로 내려가지 말아요. 그들은 감히 이 위로 올라오지 못할 거예요." 이에, 백룡생은 겨우 안심을 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그럴까?" 헌데 몇달이 지났을 때였다. 심황이 달려와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무림군웅들은 이제 모두 돌아갔어요. 그러나 무당파의 장문인인 옥진자는 과연 당신이 언제까지 내려오지 않을 수가 있는지 두고 보겠다고 제자들을 산 아래에 항상 상주시킨다고 하더군요?" "뭐라구?" 이때, 악불이가 덩달아 말했다. "저와 심언니, 그리고 음언니도 모구 하나같이 아이를 가졌는데 아무래도 아이를 기르기 위해서는 산 아래에 집을 지어야 겠는데 어쩐다죠?" "...?" 백룡생은 일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그의 고민이란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이제는 강호를 등지고 그의 뜻대로 자유분방하게 살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이미 강호에 널리 알려졌고, 강호인들이 그를 붙잡고 한결같이 놓아주지 않는데 어떻게 그렇게 살수가 있겠는가? 따라서, 백룡생은 내심 생각했다. (무당소사숙을 그만둘까, 말까...?) ... 여기에서 본 무당소사숙을 마칩니다. < 대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