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울 때 친구 심랑은 다만 탄식을 하고 머리를 가로 저은 다음 몇 걸음 걸어가더니멈춰 서서 신중한 음성으로 말했다. "근 백년 이래에 아무도 이 고묘에 들어온 사람이 없었다는말씀이신가요?" "내가 사람들을 불러서 이 고묘를 파헤칠 때 유심히 관찰해봤으나, 이고묘에는 사람들이 들어왔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소. 그 고산청의 관은뚜껑이 약간 열려 있었으나 그것은 그가 관 뚜껑을 완전히 닫기 전에 숨이끊어졌기 때문이었을 뿐이오. 그리고 고산청의 시체는 이미 백골로 변해있었으며, 관 옆에는 그가 쥐고 있다가 죽은 후에 비로소 떨어져 깨져버린옥으로 만든 잔이 있었을 뿐이었소. 그리고 그의 손은 여전히 관 밖으로나와서 관의 뚜껑을 닫으려고 관 위에 얹혀 있었소. 가장 중요한 것은 이고묘의 기관들이 한 번도 사용한 흔적이 없다는 점이오. 이러한 몇몇의사실들로 미루어 볼 때 나는 근 백년 이래에 어떠한 사람도 이곳에 들어온적이 없었다는 것을 단정할 수 있었소." 심랑이 눈썹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사실이 그렇다면 그 재물과 보석들, 그리고 무공비급은 틀림없이 이고묘에 그대로 있겠군요. 다만 김 형께서 그것들을 발견하지 못했을뿐이겠지요." "그 점은 귀하께서 마음을 놓으셔도 좋소. 이 고묘에 만약 그러한재보들이 있었다면, 나는 틀림없이 찾을 수 있었을 것이오. 그러나지금까지 내가 그러한 재물들을 찾지 못했다는 것은 이 고묘 안에는그러한 물건들이 없다는 거요." 심랑은 한동안 생각하는 듯하더니 김무망을 보며 말했다. "만약 다른 사람이 이 말을 했다면, 본인은 틀림없이 믿지 못했을 거요. 그렇지만 김 형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김 형의 말씀이 틀림없으리라고생각되오. 다만...... 다만 그 보석들과 재물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거죠? 고산청 그 사람이 원래 이 고묘에 가져오지 않은 것은 아닌가요? 그가 이 능묘를 만드는 데 자신이 갖고 있던 돈을 전부 써버려서 더이상여기에 갖고 들어올 돈이 없었던 것은 아닐까요?" 그는 하늘을 바라보며 씁쓸한 표정을 짓더니 낭랑한 음성으로 말했다. "다른 사람의 재물인데 내가 뭐하러 이런 생각을 하는지......." 말을 마친 그는 김무망의 뒤를 바짝 따라서 한 달음에 고묘 밖으로뛰쳐나갔다. 고묘 밖의 풍설은 이미 멈춰있었으며, 둥근 해가 대지에 쌓인눈을 찬란하게 비춰서 번쩍번쩍 빛을 발하고 있었다. 주칠칠이 예쁘게 웃으면서 말했다. "당신은 바로 그런 점이 대단한 장점이에요. 어떤 일이라도 당신은 문제를제기하고 나서 그 문제에 초연한 입장을 취할 수 있으니 말이에요. 다른사람들은 수십 년 동안 고생고생하면서 생각하는 일을 당신은생각하자마자 순식간에 이미 거기에 관심을 두지 않으니 말예요." 말을 마치자마자 그녀는 또 부르짖었다. "그렇지만 당신은 제 동생을 잊어서는 안 돼요. 빨리, 빨리, 빨리...... 화예선의 혈도를 풀어 주세요. 도대체 제 동생을 어디에 숨겼는지 빨리물어보세요." 화예선은 혈도가 풀린 후에도 몸을 여전히 비틀거리며 제대로 서지도못했다. 그 신선일일취의 효력이 여전히 남아 있음이 분명했다. 주칠칠은 예리한 목소리로 다그쳤다. "내 동생을 어디에 숨겼죠? 빨리 돌려 주세요." 눈이 그쳤을 때가 가장 추운 법이다. 주칠칠은 그 뼈를 에이는 듯한추위를 느끼면서도 동생 불아이를 걱정하는 마음이 앞서서 안절부절하지못했다. 그러나 그녀가 조급해 하면 할수록 화예선은 더욱 꾸물거렸다. 화예선이 냉랭하게 말했다. "지금 내 머리가 너무 어지러운데 어떻게 네 동생을 어디 숨겼는지 생각해낼 수가 있단 말이냐?" 주칠칠이 화가 나서 소리쳤다. "당신! 당신...... 내가 당신을 죽여버리겠어요." "지금 이 순간 네가 나를 죽인다 해도 소용없지. 내 몸에 남아있는 그미혼약의 효력이 사라져서 내 머리가 맑아지기 전에는...... 그렇지않다면......." 심랑이 말을 가로채서 말했다. "당신이 만약 불아이를 내놓기만 한다면 당신의 공력이 회복되기 전에어떠한 위험도 없으리라는 것을 내가 보장하겠소." 심랑은 화예선이 불아이를 내놓은 후에 주칠칠 등이 그를 죽일 것을두려워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던 것이다. 화예선은 그의 공력이 회복되기 전에 주칠칠과 같은 적이 덤벼든다면자신의 생명도 지키기 어려우나 그녀가 불아이를 그들에게 내놓기 전에는주칠칠과 심랑은 자연히 자신을 어쩌지 못하고 보호해 주리라는 계산을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때 심랑이 한 마디로 그녀의 생각을 간파해내자 화예선은 얼굴색이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눈을 이리저리 굴리면서 한참을 생각하더니 또 냉랭하게 말했다. "내 공력이 회복된 후에는 또 어떻게 하겠소?" 주칠칠이 얼른 말을 받았다. "당신의 공력이 회복된 후에 당신은 당신의 갈 길을 가고 우리는 우리 갈길을 가면 돼요. 당신을 말리지 않겠어요." 화예선이 신음소리를 내더니 냉랭하게 말했다. "그렇다면 그렇게 하는 것으로 하고 나를 따라 오시오." 한참의 시간이 경과한 후에 화예선의 약의 효력은 점점 사라졌다. 화예선은 그전처럼 마음대로 행동할 수는 없었으나 억지로라도 혼자서걸어갈 수가 있었다. 주칠칠도 당연히 스스로 걸어갈 수 있었으나 그녀는 심랑의 등에서 내려올생각을 하지 않았다. 도리어 두 손으로 심랑의 목을 꼭 부여 잡고 그 등에찰싹 달라붙었다. 김무망은 그들과 같이 걸어가고 있었으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없었다. 그러나 도망가려는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도는 김무망의 뒤를 바짝 쫓아가면서 그 큰 한쌍의 눈알을 이리저리굴리면서 쉬지않고 중얼거렸다. "만약 나였으면 벌써 도망가 버렸을거야. 이 사람들을 쫓아가서 뭘하겠다는 거지? 이 사람들이 죽여주기를 기다리는 건가?" 그러나 김무망은 그를 상대하지도 않았으며, 그의 이런 중얼거림을 듣지도못한 척했다. 화예선은 산등성이를 따라서 십여 장의 거리를 걸어가더니 한쪽에 있는거대한 암석 옆에서 걸음을 멈추고 말했다. "이 바위를 치우면 그 속에 하나의 동굴이 있는데, 너의 그 귀한 동생이바로 그 동굴 속에 있을 것이다. 흥! 우습게도 내가 그 귀한 여우털바람막이 옷으로 그를 탄탄하게 싸서 그 속에 집어 넣었으니, 어떻든 얼어죽지는 않았을 거야." 주칠칠은 이 동굴이 상당히 안전함을 확인한 다음 속으로 비로소 마음을놓았다. 그러나 겉으로는 차갑게 말했다. "심랑! 빨리 그 암석을 치워버리세요." 심랑은 아무리 말도 하지 않고 머리를 돌려 김무망을 보고 빙긋 웃을뿐이었다. 김무망은 심랑과 눈이 마주치자 큰 걸음으로 그 암석 앞으로 다가가가볍게 일 장을 휘둘러 그 암석을 쳐냈다. 그의 이 가볍게 휘두르는 일장은 조금도 힘이 들어가 보이지 않았으나 그 무게가 삼백 근이 넘을 듯한거석은 밑으로 데굴데굴 굴러가버렸다. 심랑은 그 광경을 보고 탄성을 발했다. "김 형, 대단한 장력이오!" 그러나 그는 말을 마치기도 전에 갑자기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주칠칠의 놀람에 찬 부르짖음이 들려왔으며, 화예선의 안색도 갑자기변했다. 그 굴 속에는 어디에서도 불아이의 그림자를 찾아볼 수 없었다. 주칠칠이 찢어지는 듯한 음성으로 말했다. "미친 할망구 ! 당신, 당신이 나를 속였어요." 화예선도 당황한 듯했다. "내가. 내가 분명히 그 녀석을 여기에 숨겼는데......." 주칠칠이 날카로운 음성으로 말했다. "당신이 내 동생을 여기에 숨겼다구요? 내 동생이 어디에 있어요? 당신,내 동생을 도대체 어디에 숨겼죠? 빨리, 빨리 돌려주세요. 빨리 내 동생을돌려줘요." 화예선도 마음이 조급해져서 큰소리로 외쳤다. "내가 왜 너를 속이니? 나는 내 목숨을 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인줄알아? 그런데, 그런데 이녀석이 도대체 어딜 갔지? 직접 혈도를 풀고도망간 것일까?" 옆에서 바라보던 김무망이 냉랭하게 말했다. "만약 그 애가 자기 스스로 혈도를 풀고 도망을 갔다면 이 동굴 입구를원래 상태로 이렇게 막아 놓을 필요가 있었겠소?" 주칠칠이 그 말을 받아서 소리쳤다. "맞아요. 하물며 그애는 아직 나이도 어린데 어떻게 직접 혈도를 풀 수가있겠어요? 심랑! 저 할망구를 죽여버리세요. 빨리 저 미친 할망구를죽여버리세요." 심랑이 침중한 음성으로 탄식하면서 말했다. "지금 이 사람을 죽인다 해도 별로 도움이 없소. 하물며, 내가 보건대화예선은 거짓말을 한것 같지도 않소. 당신 동생은 아마, 이미 다른 사람손에 들어간 것 같소." 화예선이 탄식하면서 말했다. "그래도 심 상공이 바른 말씀을 하시는군." 주칠칠이 말했다. "그렇다면...... 이젠 어떻게 하죠? 심랑! 빨리 무슨 방법을 생각해보세요." "지금 이렇게 조급해 한다고 해도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오. 천천히방법을 생각해 봅시다." 주칠칠이 찢어지는 듯한 음성으로 말했다. "천천히 방법을 생각해요? 내 동생의 목숨이 이미 없어졌을지도모르는데요? 당신...... 당신 너무하는군요. 이런 말을 제게하다니......." 그녀는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고 끝내는 방성대곡하기 시작했다. 김무망도 눈썹을 약간 찌푸리면서 말했다. "그녀는 좀 쉬어야 될 것 같소." 심랑이 탄식하면서 말했다. "본인이 보기에도 그렇게 해야만 될 것 같구려." 김무망이 가볍게 소매를 들어올리자 그 소매끝이 주칠칠의 혼수혈에 살짝닿았다. 순간 주칠칠의 울음소리가 점점 낮아지더니 눈을 감고 순식간에 깊이 잠이들어버렸다. 주칠칠이 흘린 눈물은 심랑의 어깨에 떨어져 순식간에 결빙되어 얼음으로변해버렸다. 김무망이 차가운 눈빛으로 화예선을 힐끗 쳐다보더니 말했다. "심 형께서는 이 녀석을 어떻게 처치할 작정이시오?" 화예선은 그의 차가운 눈빛을 바라보고 자신도 모르게 부르르 몸을떨었다. 화예선은 비로소 밝은 햇빛 아래서 김무망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있었던 것이다. 그의 모습은 기괴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그의 귀, 코, 눈, 입은 만약하나씩 떼어 내서 본다면 다른 사람과 별반 크게 다를 게 없었다. 그러나 두 귀는 한쪽은 크고 한쪽은 작았으며, 두 눈썹은 한쪽은 두텁고짙었으나 다른 한쪽은 얇고 가늘었다. 코는 마치 어린애 주먹 만큼이나커다랗게 얹혀 있었으며 입술은 날카로운 칼날처럼 얇았다. 두 눈은 손바닥 길이 만큼이나 서로 널찍이 떨어져 있었고, 왼쪽 눈알은구슬처럼 동글동글 했으나 오른쪽 눈은 도리어 뱀눈처럼 삼각형이었다. 보건대 아마 하나님이 그를 만들 때 순간적인 실수로, 본래는 오륙 명의서로 다른 사람의 얼굴에 있어야 할 기관들을 한 사람 얼굴에 갖다 붙여놓은 듯한 형상이었다. 만약 여자나 어린애가 그를 쳐다봤다면 한밤중에 잠을 자다가 악몽에놀라서 깰 듯한 그러한 형상이었다. 화예선은 그를 더이상 보지 않으려고 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눈길은 슬쩍엿보곤 했다. 그녀가 그를 보면 볼수록 차가운 기운이 더욱 짙어져갔다. 그녀는 본래 김무망이 쓸데없는 일에 간섭하며 창피도 모르는 자라고욕설을 퍼부을 작정이었으나 그의 모습을 보고 목구멍까지 올라왔던욕지거리를 속으로 도로 삼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도는 두 눈을 크게 뜨고 놀랐다는 모습으로 그의 주인을 바라보고있었다. 마치 평일에는 어떤 사람도 눈에 두지 아니하던 주인 김씨 어르신이 오늘이처럼 심랑을 존중하는 것이 매우 이상하다는 듯이....... 심랑이 가볍게 웃으면서 말했다. "김 형께서 만약 본인의 입장이라면 저 사람을 어떻게 처리하시겠습니까?" 김무망이 냉랭하게 말했다. "죽이는 것도 재미없고, 끌고 다니자니 피곤만 할 뿐이오. 아예 여기에남겨두고 가버리겠소." 그가 이렇게 말하자 화예선이 크게 놀라서 소리쳤다. "당신...... 당신이 만약 나를 여기에 놔두고 그냥 가실 바에는 차라리죽이고 가세요." 이순간 그녀는 몸에 기력이 조금도 없었으며, 입고 있는 옷은 아주 얇고짧은 것으로서 만약 다른 사람이 구해주지 않으면 그녀는 추위를 이기지못해 자기 혼자 있을 경우에는 동사(凍死)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김무망이 냉소하면서 말했다. "알고보니, 장중천마도 죽음을 두려워하는 무리들이군. 받으시오." 그는 천으로 된 허리띠를 풀어서 밧줄처럼 화예선에게 던져주었다. 화예선은 손을 뻗쳐서 김무망이 던진 허리띠를 잡았으나, 도대체 김무망의이러한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의아하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심랑이 가볍게 웃으면서 말했다. "김 형께서 이미 당신의 생명을 살려주셨으니 얼른 그 허리띠로 손목을묶으시오. 우리가 움직이는데 김 형께서 당신이 움직이는 것을 도와주실것이오." 김무망이 말했다. "심 형께서 이미 이 녀석을 죽일 마음이 없는데 본인은 심 형의 뜻을받들어 귀찮지만 이 녀석을 끌고 다닐 수밖에 없죠. " 심랑이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김 형께서 이 동생의 지기(知己)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군요. 이 동생의생각을 그렇게 정확히 알아차리다니요." 이때 화예선은 이미 얌전히 자기의 손목을 그 허리띠로 단단히 졸라 매고있었다. 그는 일생 동안 무수한 사람들을 죽였으나 자기 자신은 죽음이두렵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자신이 생사의 기로에처하자 그녀는 비로소 죽음이 얼마나 고독하고 두렵게 생각되는지 뼈에사무치게 느끼게 되었다. 김무망이 말했다. "사람에게 있어서 자고로 가장 어려운 것이 죽는다는 것이오. 화예선이죽음을 두려워할진대 본인이 어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소? 심형께서 본인의 목숨을 살려주셨으니 본인이 어찌 그 은혜를 잊을 수가있겠소? 심 형께서 어디로 가시든지 본인은 심 형 곁에서 미력이나마도움을 드리고자 하오." 심랑이 웃으면서 말했다. "제가 만약 김 형께서 은혜를 분명히 아시는 대장부라고 믿지 않았다면어떻게 안심하고 이렇게 옆에 있을 수가 있겠소? 본인이 앞장서서나아갈테니 우선 이곳에서 벗어난 다음에 다시 얘기하도록 합시다." 심랑은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앞으로 빠르게 달려나갔다. 김무망은화예선을 끌고 그 뒤를 바짝 따랐다. 두 사람은 경공을 사용하지 않았으나그 달려가는 속도는 빠르기가 비할 데 없었다. 다만 화예선은 그들 뒤를 쫓아가면서 화살 한 대 거리를 달려가기도 전에이미 입술이 파랗게 변했고, 얼굴은 혈색이 사라져 숨을 헐떡거리기시작했다. 사방은 싸늘한 적막에 싸여 있었고 새나 들짐승들도 종적이 끊겨 있었다. 그러나 눈 위에는 발자국들이 어지럽게 찍혀 있었다. 이를 통해 보건대방천리나 전령송 등이 틀림없이 아주 낭패한 모습으로 돌아간 듯했다. 심랑이 이들 발자국을 자세히 바라보니 이들 발자국은 올 때는 아주 얕게찍혀있었고 발자국과 발자국간의 거리도 적어도 오륙 척은 되는 듯했다. 그러나 돌아갈 때 찍힌 발자국은 약 이 촌이나 깊이 패어 있었으며,발자국과 발자국 간의 거리도 상당히 짧아져 있었다. 이들은 올 때는 신법이 매우 가벼웠으나, 돌아갈 때는 마치 내상을 입은듯 상당히 힘들고 무거운 발걸음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심랑은 그 발자국 자국을 보면서 김무망을 향해 말했다. "김 형께서 만든 걸작의 효과가 이렇게 나타났군요." 그러나 김무망은 깜짝 놀란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상공의 그 말씀은 무슨 의미오?" "본인은 방천리 등이 가는 척하다가 다시 돌아와서 주 아가씨를 귀찮게할까봐서 걱정했소. 그렇지만 지금 보니 그들은 이미 김 형에게 부상을 당했으니 안심을 하는바이오." "본인은 그들을 부상시키지는 않았소." 심랑이 깜짝 놀라 속으로 생각했다. (이 사람이 방천리 등을 부상시키지 않았다고 말하는 이상, 틀림없이방천리 등은 이 사람에게 부상당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누가 그들에게 부상을 입혔단 말인가? 김불환 한 사람의 능력으로써는이렇게 많은 무림 고수들을 부상시킬 수는 없었을텐데.......)그는 생각해볼수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에 따라 부지불식간에 걸음을천천히 하였다. 그들이 이생각 저생각을 하면서 한참을 걸어왔을 때,갑자기 정면에서 하나의 인형이 나는 듯이 달려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멀리서 볼 때는 점과 같았는데 그 회색 인형은 순식간에 그들 눈앞에들이닥쳤다. 그 인형은 다름아닌 난세신룡(亂世神籠)의 딸이며 철화학의 처(妻)인,얼굴에 상처자국을 가진 반면미부 그녀였다. 그는 가슴에 딸 정정(亭亭)을 안고 얼굴 가득히 황급한 표정을 띠고있었다. 그녀는 심랑을 보자 마치 친형제를 만난 듯 반가워하면서 발걸음을 멈춰숨을 몰아쉬면서 물었다. "심 상공께서는 우리집 부군(夫君)을 보셨나요?" 심랑의 안색이 갑자기 변하면서 되물었다. "철화학이 아직 돌아가지 않으셨다는 말씀입니까?" "지금까지 아무런 소식도 없어요." "방천리, 승형, 일소불 등 그 사람들은......." 심랑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반면미부가 말을 가로챘다. "그들은 모두 심 상공과 같이 그 고묘의 비밀을 캐러 가지 않았나요? 그들의 행적을 제가 어찌 알 수 있겠어요?" "그렇다면 그 사람들도 아직 돌아가지 않았단 말입니까?" 그는 철화학이 그 애처(愛妻)와 어린 딸을 상당히 사랑해 몸이자유롭자마자, 틀림없이 심양성으로 급히 되돌아가 처와 딸을만났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가 아직까지 돌아오지않았다는 말을 듣고 틀림없이 무슨 변고가 생겼음을 직감적으로알아차렸다. 또한 방천리 등 수십인의 행적도 묘연하여 심양성으로돌아가지 않았다니...... 그렇다면 그들은 도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반면미부는 심랑의 얼굴색을 살펴보고 나서 더욱 당황하면서 한손으로심랑의 옷깃을 부여잡고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화학이...... 그 사람이 혹시 이미......." 심랑은 부드러운 소리로 말했다. "부인께서는 너무 조급해 하지 마십시오. 이 일은......." 그러나 그의 눈빛이 한곳을 주시하면서 말소리도 동시에 뚝 끊겼다. 그의 눈길이 머문 곳에서 그는 이미 그 고묘를 향해 나아가는 발자국은발견하였으나, 고묘에서 심양성으로 돌아가는 발자국이 없어진 것을발견했던 것이다. 심랑은 속으로 외쳤다. (상황이 좋지 않군 !)그는 더이상 반면미부를 위로할 수도 없어서 즉시 몸을 돌려 오던 길로되돌아가기 시작했다. 김무망의 안색은 신중하게 변했으며, 반면미부의표정도 암울하게 변해갔다. 정정은 그녀의 목을 더욱 꼭 움켜 안고쉬지않고 울 뿐이었다. 일행은 심랑의 뒤를 쫓아서 오던 길로 걸어 돌아갔다. 약 화살 한 대의거리만큼 걸어 돌아갔을 때, 갑자기 심랑이 가볍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바로 여기요." 김무망이 눈을 들어 쳐다보자 심양성을 향해 가던 어지럽게 난 발자국이바로 그 자리에서 중단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강호 무예인 수십 인은 바로 이곳에서 하늘로 날았는지, 땅으로스며들었는지 그 종적이 끊겨버렸던 것이다. 반면미부가 찢어지는 듯한 음성으로 말했다. "이...... 이것은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죠?" 심랑이 무거운 음성으로 말했다. "철 형과 방천리, 일소불 등은 이미 그 고묘의 위험 속에서 벗어났었죠. 그 일행은 틀림없이 심양성으로 급히 돌아가고 있었을 겁니다. 그렇지만여기에 이르러......." 그 일행이 여기에 이르러서 도대체 어떻게 실종되었단 말인가? 도대체어떤 경천동지할 이변이 일어났단 말인가. 심랑은 머릿속이 오리무중에빠져 아무리 생각을 굴려도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낼 수가 없었다. 그는길게 탄식하면서 말을 멈췄다. 반면미부는 확실히 평범한 아낙네와는 달랐다. 이처럼 황급하고 비통한 상황 하에서도 그녀는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않았다. 그녀는 눈 위에 어지럽게 찍힌 발자국들을 몇 번 더 살펴보았다. 그발자국들은 오던 길로 되돌아간 흔적도, 혹은 옆으로 비껴간 흔적도없었다. 마치 그 자리에서 하늘로 날아가버린 것처럼....... 그녀는 비록표면상으로는 진정된 듯했으나, 그 발자국을 살펴보면 살펴볼수록이상하게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으며, 그와 더불어 놀람과 두려운 기색을나타내 보였다. 그녀의 손과 발도 동시에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극도의놀라움 속에서 그녀는 도리어 한 마디도 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김무망과 심랑은 서로 상대를 마주 보았다. 이 두 사람은 평시에는 모두세상만사를 마치 자기 손바닥을 들여다보듯 꿰뚫어보는 사람들이라고 할수 있었으나, 이 순간 만큼은 모든 생각을 굴려도, 그들이 알고 있는 모든지식을 동원해서 생각해도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낼 수 없었던것이다. 이 두 사람이 평소에 만약 귀신의 존재를 믿는 사람들이었다면 이 일을귀신의 장난으로 돌려버렸을 수도 있었으나, 그들은 평시에 일순간 이해할수 없는 일을 당했을 때 그 스스로 '이 일에는 분명히 이상한 점이 있어. 다만, 내가 생각하지 못할 뿐이야!' 하고 말하는 자기의 이성을 믿는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어떻든 두뇌가 명석하고 사려가 깊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온갖 지혜를 동원하여 이 일에 대한 많은 가능성을 생각해보았으나, 어느 한 점도 이러한 현상을 유효적절하게 설명할 수 있는방법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 두 사람은 귀신의 존재가 있다는 것도 믿지 않았고, 또 이러한현상을 자신들이 어떻게 된 일인지 해석할 수 없으면 다른 사람은 결코알아낼 수 없다는 점에 생각이 미치자 이 일이 이상하면서도 두렵게느껴졌다.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이마에서는 어느새 식은땀이흘러내리고 있었다. 이 순간에 이르러 반면미부는 마침내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떨어뜨리더니 떠듬떠듬 말했다. "천첩(賤妾)의 마음이 상당히 혼란해져 있어서 이 일을 어떻게 처리했으면좋을지 모르겠군요. 상공께서 적절히 처리해 주시기 바랍니다." 심랑이 웃으면서 말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이 일에는 틀림없이 사람을 놀라게 할 만한 음모가숨겨져 있는 것 같군요. 다만 제가 일순간 어떻게 된 까닭인지 알아낼 수없을 뿐입니다. 부인께서는 너무 비통해 하지 마시고 저와 더불어......." 이때 갑자기 찢어지는 듯한 목소리로 호통을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철씨 형수께서는 그 녀석의 개 같은 소리를 듣지 마십시오. 그 녀석 옆에서 있는 놈은 바로 쾌락왕의 수하로서 이번 이 고묘에서 장난을 친놈입니다. 그리고 심가 놈은 벌써 그 녀석과 한통속이 되었어요. 철 형과방 대협, 그리고 수십 명의 무림 친구들은 벌써 이 두 녀석한테 당했던것입니다. 나, 견리용위 김불환이 그것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이 찢어지는 듯한 음성은 바로 김불환이 냈던 것으로서, 그는 멀찍이떨어진 길가에 있는 큰 나무에 숨어서 손짓 발짓을 하면서 욕설을퍼부어대고 있었다. 그의 곁에는 네 사람이 더 있었는데, 그 네 사람은바로 불패신검 이장청, 기탄두우 연천운과 금은보다도 말을 아끼는냉가(冷家) 형제였다. 원래 이장청 등은 심양성에서 이상한 일이 생겼다는 것을 전해 듣고 밤을도와 달려오다가, 우연하게도 심랑 등을 해칠 궁리를 하고 있던 김불환과마주쳤던 것이다. 이 순간 이장청은 냉정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연천운은 이미 노한 기색이얼굴에 나타나며 날카로운 소리로 외쳤다. "우리 형제들이 저 심가 녀석의 내력을 알아낼 수가 없어서 이상하다했더니만, 원래 저 녀석은 쾌락왕의 앞잡이었구나. 냉대(冷大)! 냉삼(冷三)! 이번에는 저 녀석을 그대로 놔줘서는 안 돼오." 반면미부는 김불환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몰라서 어리둥절해 하다가인의장(仁義莊) 주인의 말을 듣고는 망설이지 않고 이를 악물더니, 아무소리없이 섬섬옥수를 들어서 심랑의 가슴을 향해 일 장을 날렸다. 그 장세의 신속하고 기괴함은 진산장 황보수보다 훨씬 더 고명했다. 심랑은 가슴에 사람을 안고 있었으나 신형을 번쩍 하더니 어렵사리나마그녀의 공격을 피해냈다. 그는 이 순간, 말로는 결코 그들의 오해를 풀 수 없음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그는 한 마디도 변명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김불환은 더욱 득의한 기색을 나타내며 소리쳤다. "여러분! 저 놈이 결국 승인하는 것을 보셨죠? 철씨 형수님! 손에 사정을두지 마세요. 연 노선배님! 노선배님께서도 같이 공격을 하셔야죠?" 연천운이 노한 소리로 말했다. "노부가 어찌 사람 숫자가 많은 것을 믿고 승리를 취하려는 그런무리겠소?" 김불환이 냉소하며 말했다. "저런 녀석을 상대하는 데 있어서 무림 도의를 앞세워야 하는가요? 연노선배님께서는저기를 보십시오. 저쪽 눈 위에 앉아 있는 사람이 누군지나 아십니까?" 연천운이 화예선을 힐끗 쳐다보더니 즉시 눈에서 분노의 불길이 활활타오르는 듯했다. 그는 폭갈을 터뜨리며 화예선을 향해 공격해 들어갔다. 그러나 그의 공격이 화예선에게 미치기도 전에 갑자기 살기등등한 회색장포를 입은 사람이 옆에서 그의 공격을 가로 막았다. 연천운이 노한 목소리로 외쳤다. "당신은 누구요? 감히 내 앞길을 가로 막다니." 김무망은 냉랭히 그를 쳐다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연천운은 그의 얼굴을 향해 위에서 아래로 주먹을 내려 찍었다. 그러나 김무망은 가볍게 일장을 휘둘러서 그가 공격하는 주먹의 기세를와해시켜버렸다. 연천운이 계속하여 다섯 주먹을 공격하여 들어갔으나,김무망의 쌍장은 마치 춤을 추듯 그의 맹문을 역공해 들어오며 한 걸음도그에게 양보하지 않았다. 연천운은 머리끝까지 화가 나서 대갈했다. "화예선과 너는 어떤 관계지?" 김무망이 냉랭하게 말했다. "화 아무개와 본인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소. 단지 심 상공이 그녀를나한테 부탁했으니, 누구도 그녀를 해칠 생각은 버려야 할 것이오." 눈 위에 앉아 있던 화예선은 그동안 김무망에게 끌려오느라 전신이 쓰리고아려서 참기 어려웠으나 이 순간, 김무망의 말을 들으면서 얼굴에감격하는 기색을 드러내고 있었다. 연천운은 수염을 부르르 떨더니 순식간에 다시 아홉 주먹을 공격해냈다. 기탄두우 연천운은 비록 형산의 싸움에서 무공의 반 이상을 상실했으나,이때 공격해 내는 주먹의 기세는 그 용맹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연천운이휘두르는 주먹에서는 바람소리가 휙휙 일어났으며, 주위에 쌓였던 눈들을어지럽게 날리게 했다. 그러나 김무망은 그 자리에 우뚝 선 채 조금도움직이지 않았다. 한쪽에서 이러한 광경을 지켜보던 이장청은 보면 볼수록 더욱 놀람에 찬표정을 드러냈다. 그는 김무망의 무공의 고강함에 놀랐을 뿐만 아니라 심랑의 표홀함과경공의 뛰어남에 더욱 놀랐다. 심랑은 가슴에 한 사람을 안고 있으면서도 그의 신형은 눈위를 이리저리나는 듯이 뛰어다니고 있었고, 그 눈 위에 발자국도 남기지 않은 채옮겨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반면미부의 장력이 비록 신속하고 기괴하기 짝이 없었으나 끝내 심랑의옷자락도 건드릴 수가 없었다. 김불환은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만면에 미소가 퍼져나가고 있었다. 사람들이 더욱 정색을 하고 싸우면 싸울수록 그는 더욱 기쁨이 넘치는모습이었다. 드디어 그는 더이상 참지 못하고 말했다. "냉대! 냉삼! 당신들도 가서 도와야죠. 당신들은......." 그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갑자기 강하고 예리하기가 그지없는 바람소리가일어나며 자기 자신의 얼굴로 곧장 지쳐들어옴을 느꼈다. 냉삼의 오른팔에 달려 있던 그 거무튀튀한 쇠갈고리가 이미 그의 면전에도달해 있었던 것이다. 김불환은 크게 놀라서 공중으로 펄쩍 뛰며 어렵게 쇠갈고리를 피해냈다. 그는 노갈을 터뜨렸다. "당신, 무슨 짓이죠?" "네 녀석 주제에 감히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지시할 수 있단 말이냐?" 그는 말을 마친 후 이미 너무 많은 말을 했다고 생각한 듯 바닥에 침을뱉었다. 김불환은 화가 나서 눈을 부릅떴으나 그를 어찌할 수는 없었다. 이때, 반면미부와 연천운는 이미 수십 초를 공격했으나 심랑과 김무망 두사람은 이리 번쩍 저리 번쩍 피하기만 할 뿐 반격을 하지 않았다. 심랑은 비록 피로가 누적되어 있었으나 다행스럽게도 반면미부 역시가슴에 딸을 안고 있었기 때문에 어렵사리나마 그녀의 공격을 피할 수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김무망은 이미 연천운의 그 강력한 주먹의 기세에쉽게 대처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의 방어만 하는 방법은 확실히 너무 힘이드는 수법이었다. 상대방과의 무공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지 않는 이상이러한 방법은 패할 수밖에 없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이장청은 그들이 대결하는 모습을 보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저 젊은 부인은 틀림없이 난세신룡의 딸 유반풍(柳伴風)이겠군. 그녀의무공이 화산옥녀보다 뛰어날 줄은 진짜 생각도 못했구나. 그녀의 남편철화학의 무공은 더욱 대단하겠지. 이러한 사실들로 볼 때 강호 중에는무림 칠대고수 이외에도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영웅들이 많음에 틀림이없어. 그렇지만 그들 부부는 어쨌든 명가의 후예인데 저 소년은 도대체누구란 말인가? 사람으로 하여금 추측을 불가능하게 하는군." 심랑은 처음부터 끝까지 반면미부의 공격을 피하기만 할 뿐, 반격을하거나 공격을 전개하지 아니하여 사람들이 그의 무공 내력을 알 수 없게했던 것이다. 이장청의 눈빛이 김무망 쪽으로 돌려져서 한참을 바라보더니 그의 두눈썹이 더욱더 깊이 찌푸려졌다. 갑자기 반면미부 유반풍이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 그녀는 이미 심랑과의싸움에서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으며, 가슴은 오르락내리락 거친 숨을몰아쉬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심랑의 옷깃조차 건드리지 못한상태였다. 그녀는 심랑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날카롭게 외쳤다. "당신! 당신은 왜 반격을 하지 않는 거죠 ?" "저는 부인과 원수진 일도 없는데 왜 반격을 한단 말입니까?" "헛소리 ! 만약 이 일이 당신이 한 것이 아니라면, 사람들이 모두 어디로갔다는 거예요? 당신이 만약 자초지종을 제대로 설명하지못한다면......." 심랑이 씁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이 일은 본인도 상당히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자초지종을 정확히 설명할 수 있단 말입니까 ?" 유반풍이 발을 구르면서 외쳤다. "당신, 당신......." 그녀는 이를 악물고 가슴에 안고 있던 아이를 내려놓았다. 정정은 심랑과반면미부가 싸움을 시작할 때부터 놀래서 더 이상 울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이순간, 두 발이 땅에 닿자마자 다시 크게 소리내어 울기시작했다. 유반풍은 그 딸과 심랑을 번갈아 쳐다보다가 결국 눈에 가득눈물이 글썽 하더니, 허리를 굽혀 딸을 껴안고 가볍게 소리내어 울기시작했다. 심랑이 하늘을 우러러 장탄식을 하면 말했다. "이 일의 진상은 쉽게 밝혀질 것 같지 않군요. 부인께서 만약 저에게보름간의 시간을 주신다면, 제가 반드시 철 대협이 계신 곳을 알아낼 수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유반풍이 갑자기 고개를 쳐들었다. 그녀의 눈빛은 심랑을 뚫어질 듯바라보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을 보고 김불환이 끼어들어 몇 마디 말을하려고 했으나 냉대, 냉삼의 차갑고 예리한 눈빛과 마주치자 한 마디도못하고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고개를 숙였다. 유반풍은 눈 한번 깜짝이지 않고 한참 심랑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좋아요. 제가 심양성에서 당신을 기다리겠어요." 심랑은 이장청에게 돌아서서 말했다. "선배님의 생각은 어떠하신지요?" 이장청이 한참을 생각하더니 가볍게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보건대, 냉씨 형제들은 자네에게 퍽 호감을 갖고 있어서 자네와싸움을 하려고 하지 않을 것 같네. 그렇지만, 내 셋째 동생...... 자네가화예선을 우리에게 넘겨주지 않는다면......." "저는 화예선이 결코 김진우(金振羽) 일가를 도살한 장본인이 아니라고보증할 수 있습니다." 연천운은 김무망과 쉴새없이 주거니받거니 싸우고 있었으나 그의 귀는여전히 이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심랑의 화예선을 비호하는 말을 듣고그는 노갈을 터뜨렸다. "개 같은 소리! 이 노부가 직접 본 것이야." 심랑이 연천운의 말을 잘라서 말했다. "선배님께서는 지금 무림 천하에 이미 수많은 절전된 무공이 다시출현하고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선배님께서는 안양오의(安陽五義)가자살수(紫煞手)라는 장법 아래 죽은 것을 아시는지요? 선배님께서자살수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알고 있는 철화학은 결코 그들을죽이지 않았습니다. 이 점은 제가 충분히 증명할 수 있습니다. 오늘 제가화예선을 선배님께 넘겨드리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진상이확실히 밝혀지기 전에 선배님께서는 반드시 그녀를 해치지 않겠다는보장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장청이 손으로 긴 수염을 쓰다듬고 또 한참을 생각하더니 시원하게대답했다. "좋네. 노부는 자네에게 보름의 시간을 주겠네. 보름 후 자네는 우리인의장으로 와주기 바라네. 철씨 부인도 그곳에서 자네를 기다리게 될것이네." 유반풍이 손으로 눈물을 닦고 나서 심랑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장청이 가볍게 질책했다. "셋째! 아직도 손을 멈추지 못하겠는가?" 연천운이 맹렬하게 세 주먹을 공격하고 뒤로 여섯 걸음 물러섰다. 그러나그의 눈빛은 여전히 날카롭게 김무망을 노려보고 있었다. 김무망은 머리를 쳐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이러한 모습을 보지 못한척했다. 김불환이 더이상 참지 못하고 대갈했다. "심랑은 놔줘도 좋습니다. 그렇지만 저 놈은 쾌락왕의 수하로서 절대 놔줄수 없습니다." 심랑이 말했다. "김 형께서 그것을 막을 수 있으시겠소?" 김불환이 깜짝 놀라서 말했다. "그것은, 그것은......." 심랑이 한 자 한 자 힘주어 말했다. "그 사람이 쾌락왕의 수하이든 아니든, 선배님들께서 이미 저를 놓아주셨으니 그 사람에게도 더이상 난처하게 하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저에게 저 사람의 도움이 없다면, 저 혼자 힘으로는 이 일의 진상을정확히 밝혀낼 수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이장청이 탄식하면서 말했다. "그분 형씨께서 가시려 한다면 아무도 그 길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오." 갑자기 그는 소매를 가볍게 휘두르면서 말했다. "일은 이미 이렇게 결정되었으니, 더이상 얘기할 필요가 없소이다. 수고스럽지만 철씨 부인께서는 저 화부인을 부축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돌아갑시다." 심랑이 냉씨 형제를 향해 웃음을 머금고 포권의 예를 보냈다. 냉대와냉삼의 일그러진 얼굴에 순간 웃는 웃음이 번쩍했으나, 그의 눈빛이 다시김불환을 바라보는 순간 웃음은 즉시 사라져버렸다. 김불환은 마른 기침소리를 내며 그들과 멀찍이 떨어져서 쫓아갔다. 그는 더이상 다른 사람들의 눈빛을 받기가 두려운 듯 고개를 모로 꼰 채따라가고 있었다. 이장청은 이러한 그의 모습을 바라보고 참지 못하고 고개를 가로 흔들며가벼이 탄식했다. 사람들이 모두 떠나간 다음 아도가 엄지 손가락을 곧추세우며 크게 감탄의소리를 냈다. "심 상공께서는 정말로 친구애가 두텁군요. 방금과 같은 어려운상황에서도 제 사부님을 버리지 아니하시다니.... 사부님께서 기꺼이 심상공을 위해서 이렇게 애쓰시는데 그것이 일리가 있다는 것을알았습니다." 심랑이 가볍게 웃으면서 말했다. "얘야, 오직 어려움에 처했을 때만 친구간의 우정이 나타난다는 것을 너는알아야 한다." "그렇지만,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어요. 상공께서는 어째서 그...... 그...... 김가 놈을 그렇게 놔줬죠?" "내가 그에게 어떤 행동을 취하려 했다면 이장청 선배께서는 틀림없이 그사람을 보호하려고 했을 것이다." 아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갑자기 심랑이 다시 말을 이었다. "본인에게는 다시 한 가지 김 형께 여쭤보고 싶은 점이 있는데, 김형께서는......." 김무망이 그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대답했다. "쾌락왕의 네 사자 중 본인이 제일 먼저 중원으로 왔소. 그렇지만 본인은화예선의 이름을 도용해서 사람들을 죽이는 짓은 하지 않았소. 그 김진우일가를 누가 도살했는지는 본인도 모르고 있소이다." 뱀 같은 색귀(色��) 그가 심랑이 말하기도 전에 심랑이 질문하고자 하는 내용을 추측해이렇게 말한 점에 대해서는 심랑은 조금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말은 도리어 심랑을 크게 놀라게 하기에 족했다. 심랑은 한참을 멍하니 있더니 중얼거렸다. "사실이 그러하다면, 김진우 일가를 죽인 것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쾌락왕 일파 이외에도 강호에는 다른 어떤 사람이 이러한 무림 중에독문절기들을 몰래 배운 사람이 있다는 말인가?" 김무망이 신중한 음성으로 말했다. "본인이 보기에도 틀림없이 그러한 것 같소. 그리고...... 새외신룡의비전절기인 자살수는 쾌락왕 수하 중 한 사람밖에 연마한 사람이 없소. 그런데 그 자살수를 연마한 쾌락왕 수하인은 지금 멀리 옥문관(玉門關)밖에 있소이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안양오의가 만약 자살수에부상을 당해서 죽은 것이라면, 본인은 그 안양오의를 공격한 것이 결코쾌락왕 수하가 아니라는 것을 보장할 수 있소." 심랑이 이 말을 듣고 더 크게 놀라서 말했다. "본인은 평소에는 세상 일을 아주 정확하게 꿰뚫어보는 능력이 있다고생각했소이다. 그렇지만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모두 본인의 상상을초월하고 있소. 그렇지만 그 안양오의는 고묘에서 부상을 입고 밖으로뛰어나와서 죽었소이다. 만약, 김 형께서 안양오의를 공격한 것이아니라면 그 고묘 중에는 김 형 이외에도 또다른 사람이 있었다는얘기인가요? 그 사람은 도대체 누구일까요? 그리고 그는 어떻게 다른사람의 독문무공을 배울 수 있었던 것일까요?" "상황이 갈수록 복잡해지는 것 같군요? 보건대 강호의 대혼란이 이미눈앞에 닥친 것 같소이다." 심랑이 암연히 말했다. "불아이는 어디로 갔는지 모르고, 철화학 등 수십 명의 고수들은 까닭도없이 실종되었소. 김진우 일가를 죽인 흉수는 찾을 수 없고, 강호상에는또 쾌락왕 이외에도 다른 사람들의 비전절기를 훔쳐 배우는 사람들이나타났소. 이 일들은 은밀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소. 이 순간, 이 모든일들은 오리무중이고 조금의 단서도 찾아볼 길이 없구려. 그런데 내가보름 안에 어떻게 그 진상을 찾아내야 할지......." 만약 다른 사람이었다면 이순간, 울려고 해도 울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심랑은 한참 탄식을 하고 중얼거리더니 곧 미간을 활짝 펴고웃으면서 말했다. "그렇지만 아직도 십오일이나 남았소. 꼭 백팔십 시간이오. 내가 지금부터걱정하기 시작한다면 김 형께서는 비웃으시겠지요?" 그는 크게 웃으며 팔을 휘젓더니 앞으로 몇 걸음 걸어나갔다. 그러나김무망이 그 자리에 멍청하게 서 있는 모습을 보자 뒤로 한 걸음 물러서서웃으면서 말했다. "김 형께서는 어째서......." 그는 말을 마치기도 전에 영감이 스친듯 급히 몇 걸음 뒤로 물러서서김무망을 쳐다봤다. 두 사람의 서로 쳐다보는 눈과 얼굴에는 기쁜 기색이떠올랐다. 그들은 더이상 말하지 않고 큰 걸음걸이로 그 고묘를 향해 다시 걸어가기시작했다. 아도는 놀라고 이상한 생각에 참지 못하고 물었다. "무슨 일이시죠?" 심랑이 말했다. "그들 사라진 사람들이 하늘로 날아 올라가지도, 땅으로 들어가지도못했을 텐데 그 발자국들이 바로 여기서 중단 돼버렸다. 만약 그 사람들이이곳까지 걸어왔다가 자기들이 이곳까지 올 때 밟았던 발자국을 다시 밟고걸어간 것이 아니라면 다른 방법으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니?" 아도는 확연히 깨달은 듯 말했다. "그렇군요. 그들은 이리로 올 때 밟은 발자국을 다시 되밟고 돌아간것이군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알아볼 수 없었던 거군요. 이들발자국들이 이렇게 깊고 어지러워서 이상하다 했는데 알고 보니 이발자국들은 모두 두 번씩이나 밟았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로군요." 올 때와 갈 때 두 번씩 밟은 발자국은 한 번 밟았던 발자국보다는 깊고어지러울 것은 당연했다. 김무망이 말했다. "그런데 지금 본인은 한 가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있소이다. 그들의이러한 행동은 틀림없이 다른 사람들의 눈을 혼란스럽게 하려는 것일것이오. 그렇지만 그들이 속이려 했던 것은 도대체 누구일까요?" "그들이 속이려고 했던 것은 우리겠지요. 그런데 본인이 이해할 수 없는것은 철화학이 어떻게 자기의 사랑하는 부인과 딸마저도 보기를 원하지않았던가 하는 점이오." "그 점은 아마......." 김무망이 눈빛을 빛내면서 말했다. "이들이 모두 다른 사람의 지시를 따르고 있지 않았었다면 불가능한일이겠지요. 그들을 지시한 사람은 이 수십 명의 고수들을 포획해 가기위해서 이러한 방법을 택했던 것이겠죠. 즉, 다른 사람들에게 혼란을 불러일으키기 위하여 이러한 방법을 택했던 것일 겁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수십 명의 무림 고수들을 얌전하게 그의 명령을 받게 만들고 심지어 그의명령에 따라서 오던 길을 되돌아가게 만들 수 있었다는 것은 불가사의한일이라고 생각되오." "다른 사람은 그렇다 칩시다. 그렇지만 그 사람이 심지어 철화학마저도자신의 사랑하는 아내와 딸과 헤어지기를 원하게 만들 수 있었다는 점은확실히 불가사의한 일입니다. 만약 그가 일종의 기이한 수단을 사용한것이 아니라면...... 그 수단을 통해서 그 고수들의 이성을 마비시킨 것이아니라면 말이오." 김무망이 박수를 치면서 말했다. "바로 그것이오. 그 방법이 아니라면 그 사람은 비록 하늘을 뒤엎을무공이 있고 다른 사람의 생사를 좌지우지할 능력이 있다해도, 그들자부심이 대단한 수십 명의 무림 고수들이 어떻게 순순히 그의 명령을들었겠소?" 두 사람은 한편으로는 말을 하면서, 눈으로는 여전히 그 눈 위에서 단서를찾으려고 이리저리 휘둘러봤다. 그들이 그 고묘 앞에 다시 돌아왔을 때,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고 동시에 걸음을 멈췄다. 그 눈 위에 남아 있던어지럽게 찍힌 발자국은 이미 깊이가 훨씬 얕아졌으며, 상당히 가지런히찍혀 있었다. 김무망이 말했다. "그 사람들은 틀림없이 여기까지 돌아온 다음 길 옆에서 마차에 올라탔을것이오. 마차 뒷편에는 아마도 큰 마른 나뭇가지가 걸쳐 있어서 마차가지나감에 따라서 그 마른 나뭇가지들이 눈 위에 남아 있는 마차바퀴자국들을 쓸어 없애버렸을 것이오." 두 사람은 순식간에 불가사의한 일들을 조리있게 이해하고 나서 답답하던가슴이 시원해짐을 느꼈다. 그러나 곧 김무망이 미간을 찌푸리면서말했다. "이 사람의 행동이 이처럼 용의주도하고 또 수십 명의 무림 고수들을포획해 갈 수 있었다니, 실로 강호의 어떠한 사람이 이렇게 대단한 능력을갖고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구려." "김 형께서는 이 천하 무림계에서 가장 미혼섭심대법을 잘 사용할 수 있는사람이 누구인줄 아십니까 ?" 김무망이 한참을 생각하더니 말했다. "운몽선자(雲夢仙子)겠지요." "그렇습니다. 그 운몽선자는 옛날, 바로 천하에서 가장 악독한 암기인천운오화면(天雲五花綿)과 미혼섭심최몽대법으로 강호에 이름을날렸습니다. 비록 무림의 절정 고수라 할지라도 그 운몽선자를 만나기만하면 그 발 아래 굴복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합니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그 운몽선자는 이미 오래 전에 죽지 않았소?" 심랑이 침중한 음성으로 말했다. "시옥관은 거짓으로 죽은 척하였으나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운몽선자또한 그렇지 않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그는 말을 하면서 가슴에서 철패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그 철패를김무망에게 보여주면서 말했다. "김 형께서는 이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김무망이 힐끗 그 철패를 바라보고 나서 얼굴색이 갑자기 변했다. 그는놀란 음성으로 말했다. "천운령(天雲令)이 아니오?" "그렇습니다. 이 물건은 바로 운몽선자가 그 천하의 마두들을 호령하던천운령입니다." "상공께서는 이 물건을 어디서 얻은 것이죠?" "바로 그 고묘 입구의 석실에 있는 돌 탁자 위에서 얻은 것입니다. 본인은이 철패가 틀림없이 김 형의 소유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보건대 이 철패를 그 돌 탁자 위에 놓은 것은 틀림없이 그 자살수로안양오의를 죽인 사람인 것 같습니다. 이번 방천리 등 무림 고수들을데려간 사람도 생각컨대는 그 사람이 틀림없을 것 같군요." 김무망이 실색하여 말했다. "그 사람이 계속 나와 더불어 그 고묘 중에 있었는데도 전혀몰랐다니...... 본인의 일거일동은 틀림없이 그의 이목을 벗어나지 못했을거요. 그 사람은 도대체 누구일까요 ? 진짜 그 운몽선자일까요?" 김무망은 그 고묘 중에 형체도 없고 종적도 보이지 않는 적이 수시로 그를엿보고 있었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부르르 떨리며식은땀이 배어나오는 기분을 느꼈다. 심랑이 신중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 사람이 운몽선자인지 아닌지, 운몽선자가 강호에 다시 출현했는지그러지 않았는지, 그리고 만약 운몽선자였다면 그가 철화학 등 무림고수를 포획해 간 것은 도대체 무슨 음모가 있어서인지? 또 철화학 등은지금 이순간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인지? 김진우 일가를 살해한 흉수는그인지 아닌지? 아 ! 이러한 의문들은 본인이 반드시 보름 이내에알아내야 할 일들입니다. 김 형께서는 본인을 도와줄 의향이 있으신지요?" "상공이 의심스럽다고 느끼는 점은 바로 모두가 본인과 관계가 있는일들이오. 이러한 의문이 속시원히 풀리지 않는 이상 본인은 하루도편안히 잠을 잘 수가 없을 것이오." "사실이 그러하다면, 김 형께서는 저와 함께 가주시기 바랍니다. 좋은일이든 나쁜 일이든 이 일들을 확연하게 파헤쳐야 될 것 같습니다. 후일김 형과 제가 친구가 되든, 적이 되든 그것은 그때 가서 결정하도록합시다." "본인의 심정도 그러하오." 두 사람은 그 마른 나뭇가지가 쓸어버린 눈의 흔적을 쫓아갔다. 그들은비록 흐릿하나마 그 종적을 계속 찾아갈 수 있었다. 김무망이 눈을 들어사방을 돌아보고 나서 가볍게 탄식하면서 말했다. "그들은 아마 서쪽으로 간 것 같소이다." 심랑도 눈썹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그들이 만약 사람이 많은 곳으로 갔다면 틀림없이 행인들의 주목을받았을 것이오. 그러나 서쪽은 바로 태행산(太行山)으로서 상당히 황벽한곳이기 때문에 그들이 행인들의 이목을 피해서 이동하기에는 아주 적절한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사람이 많기 때문에 마차가 상당히 무거워서 빨리 가지는 못했을것입니다. 우리가 조금 더 빨리 쫓아간다면, 해가 지기 전에 그들을따라잡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그러나 그들이 저녁 무렵까지 추격했으나, 의심이 갈 만한 마차는 발견할수 없었으며 길을 가는 행인들 몇 사람을 발견할 수 있었을 뿐이었다. 김무망은 그 괴상하게 생긴 용모가 행인들을 놀라게 할까봐서 멀찍이떨어져서 쫓아왔고 심랑이 행인들에게 다가가서 수소문을 했다. 그러나심랑은 아무런 단서도 찾아낼 수가 없었다. 어떤 행인은 아무 것도 보지못했다고 얘기했으며, 어떤 행인은 비록 마차의 행렬을 보았다고는말했으나, 몇 대의 마차를 보았는가? 몇 필의 말이 그 마차를 끌고있었는가? 그리고 마차의 모습은 어떠했는가? 마차를 모는 사람은 어떠한모양인가를 더 물어 들어가면 그 행인은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더이상대답을 하지 못하였다. 해가 질 무렵 다시 하늘에서는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심랑 일행은 낙양성밖에 있는 여관에 행장을 풀었다. 주칠칠은 이미 깨어나서 심랑에게 다시 투정을 부렸으나, 심랑이 이 일의자초지종을 설명해 주자 그녀 역시 두려움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시골 여관은 상당히 누추했다. 그러나 심랑이 은자를 여관 주인에게던져주자, 여관 주인은 그들에게 활활 타는 벽난로가 있는 방을 내주었다. 이들 일행은 각자 펄펄 끓는 쇠고기 우동을 한 그릇씩 먹고 심랑은 곧옆으로 쓰러져 잠들었다. 아도도 구석 자리에 쭈그리고 앉아 잠이 들었다. 그러나 주칠칠은 무릎을 감싸안고 그 벽난로 앞에 멍하니 앉아 그초라하고 더러운 요와 이불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아가씨라서 그 벽난로 속에서 활활 타고 있는 것이말똥이라고 생각하자 더 이상 눈을 감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녀가 눈을감지 않으면 김무망의 그 괴이하고 공포스러운 얼굴과 마주 대할 수밖에없었다. 주칠칠은 심랑이 깊이 잠든 것을 보고 원망스러워 속으로생각했다. (양심도 없는 사람! 어떻게 자기 혼자만 저렇게 잠들 수 있지?)화가 치민 그녀는 옷깃을 떨치고 일어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밖에는흰눈이 마치 매화 꽃잎이 떨어지는 듯 표표히 날리고 있었다. 멀리서느릿느릿하게 시간을 알리는 북소리가 들려왔다. 이미 삼 경이었다. 그때갑자기 일진의 마차 바퀴소리와 말이 '히힝' 하고 울부짖는 소리가들려왔다. 주칠칠은 정신이 번쩍 들어 속으로 생각했다. (혹시 그 사람들이 아닐까 ? 가서 심랑을 깨워야지.)그러나 그녀가 심랑을 깨우려고 몸을 돌리기도 전에 갑자기 '휘익' 하는소리가 들리더니 하나의 인형이 문을 박차고 뛰어나와 그녀의 몸을스쳐갔다. 바로 심랑이었다. 가장 깊이 잠든 듯했던 사람이 이렇게 가장먼저 빠르게 뛰어나왔던 것이다. 주칠칠은 원망스러움인지 자랑스러움인지모를 묘한 기분을 느끼며 속으로 욕설을 퍼부었다. (좋아요. 당신, 자는 척 했군요?)그가 심랑을 부르려고 하는 순간, 그녀 옆으로 또 하나의 인형이 나는듯이 달려나갔다. 그는 김무망이었다. 그들 두 사람의 신법은 너무 빨라 주칠칠이 그들을부르는 소리를 입밖에 내기도 전에 이미 담장밖으로 사라져버렸다. 주칠칠은 급히 그 뒤를 쫓아 담장밖으로 달려갔으나, 두 사람의 신형은이미 사라진 후였다. 주칠칠은 조급하고 또 화가 나서 속으로 욕설을 퍼부었다. (좋아요. 당신들이 나를 데려가지 않는다면 나 혼자 쫓아가지 뭐!)그러나 이때 마차 바퀴소리와 말이 울부짖는 소리는 더이상 들리지않았다. 방금 주칠칠은 틀림없이 이 소리를 듣기는 했으나 그 소리들이어느 쪽에서 들려오는지 정확히 듣지는 못했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발을구를 뿐이었다. 그녀는 갑자기 머리에 꽂았던 금비녀를 빼서 바닥에던지더니 그 금비녀의 뾰족한 끝이 동쪽을 가리키자 신형을 전개하여동쪽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그녀가 쫓아가는 길에는 마차는 커녕 귀신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지형은 갈수록 험악해졌고, 눈보라 속에 서있는 마른 나무들은 귀신 그림자처럼 우중충 했다. 마치 두 팔을 벌리고그녀에게 덤벼드는 듯한 형상이었다. 만약 다른 사람이었다면 진작 달려온길을 되돌아갔을 것이었으나, 주칠칠은 고집 센 성격으로서 돌아갈 생각을하지 못했다. 그녀는 그 마차의 종적을 발견하지 못하면 못할수록 더욱기를 쓰고 앞으로 달려갈 뿐이었다. 그러나 한참을 달려가도 마차의종적은 눈에 뛰지 않았다. 주칠칠의 몸은 이미 추위에 굳어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어려서부터부유하고 따뜻한 환경에서 자란 아가씨로서 이러한 추위에는 익숙하지못했다. 갑자기 뼈를 에는 듯한 한기가 몰아쳐왔다. "할 거요, 스카이. 그가 거절한다면 여왕이 그의 목을 칠 테니까. 왜냐하면 젊은 베스도 당신과 같은 여자거든." 그가 그녀의 어깨를 토닥였다. "너무 늦었소, 스카이. 그만 쉬도록 해요. 아침에 다시 봅시다." "당신이 고른 드레스가 어느 것이죠, 로비?" "진주와 다이아몬드로 수를 놓은 부드러운 크림빛깔의 옷이오." 그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제가 골랐어도 그랬을 거예요. 이 결혼에 관심이 있었다면 말이죠." 그가 호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잘 자요, 고야 델 푸엔테스 부인. 내일밤에는 린머스의 백작부인,사우스우드 부인이 될 것이고, 못생긴 아가씨치고는 나쁘지 않은 편이지." 그는 그녀가 던진 베개를 고개를 숙여 피했다. 그리고는 유쾌하게 웃으며그 방을 나갔다. 그녀의 신발이 이미 다 닳아서 눈이 녹은 물이 양말을 적셔왔던 것이다. 그 차가움은 날카로운 칼로 살을 후벼파는 것보다 더 참기 어려웠다. 주칠칠이 전후좌우를 살펴봤으나 적막만이 감돌 뿐이었다. 그녀는 더이상참지 못하고 옆에 있는 마른 나무에 기대어 두 다리를 얼싸안고 울기시작했다. 눈물이 옷에 떨어지자 순식간에 그 눈물은 조그만얼음덩어리들로 변해버렸다. 주칠칠은 눈물을 흘리면서 중얼거렸다. "내가 누구를 위해서 이렇게 고생을 하는데......? 양심도 없는 사람! 알기나 하세요?" 그러나 그녀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나무숲 밖에서 갑자기 일진의 '삭삭' 하는 발걸음소리가 들려왔다.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깊은 밤에 들려오는 이 소리에 주칠칠은 모골이송연해짐을 느꼈다. 심지어 그녀의 눈에 맺혀 있던 눈물마저도 놀라서다시 기어들어가버린 듯했다. 그녀는 발꿈치를 들고 나무 뒤로 돌아가이를 악물고 한쪽 눈으로 살며시 앞을 바라보았다. 그 발자국 소리는갈수록 가까워졌으며, 이어서 두 명의 인형이 숲속으로 들어왔다. 눈빛아래서 이 두 백의 인형은 그 옷이 땅에까지 끌렸으며, 장발이 어깨를뒤덮고 있고 손에는 각자 약 두 척 길이의 검은 비단으로 짠 긴 채찍을들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두 인형은 마치 유령처럼 표연히 걸어들어왔다. 주칠칠이 자세히 보자 그 두 인형은 얼굴이 아주 예쁘게 생긴소녀들이었다. 그녀들은 얼굴에 비록 음산한 괴기를 띠었으나 그들이소녀들에 불과함을 보고 주칠칠은 어느 정도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숨을 멈추고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이 두 백의소녀는 눈을 들어 사방을 살펴보더니 천천히 발걸음을 멈췄다. 좌측편에서 있던 소녀가 갑자기 입을 오무리더니 날카로운 휘파람 소리를 불었다. 그 휘파람 소리는 마치 귀신의 울음소리, 혹은 늑대의 울음소리와 같아서주칠칠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이때 십여 장 밖에서 비슷한 휘파람 소리가 들리더니, 곧 이어서 발걸음소리가 들리며 점점 가까와져 왔다. 갑자기 십여 명의 남자들이 두 줄로늘어서서 천천히 수풀 속으로 걸어들어왔다. 이 십여 명 중에는 늙은이도있었고, 젊은 사람도 있었으며, 키가 큰 사람도 있었고 키가 작은 사람도있었다. 그들의 얼굴은 모두 뻣뻣이 굳어 있었으며, 표정은 멍청해보였다. 그들 뒤에는 두 명의 백의 소녀가 마찬가지로 손에 긴 채찍을들고 바짝 뒤쫓고 있었다. 그들 중 어떤 사람이 행렬을 벗어나면 그들은즉각 긴 회초리를 들어올려 '팍' 하고 행렬을 벗어난 사람을 내리쳤다. 채찍을 맞으면 그 사람은 즉시 얌전히 다시 행렬 속으로 걸어 들어왔다. 그러나 그들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없었으며, 조금도 통증을 느끼지못하는 듯했다. 주칠칠은 이처럼 괴이하고 공포스러운 일을 보자 부지불식간에 다시강렬한 호기심이 머리를 쳐들기 시작했다. 그녀는 일생 중 소나 양, 말을몬다는 소리는 들었어도 꿈에도 사람을 모는 일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못했던 것이다. 주칠칠은 갑자기 상서(湘西) 지방의 시체를 모는 전설을생각해냈다. 그녀는 머리끝이 쭈뼛해져 속으로 생각했다. (이것이 바로 시체를 몬다는 그러한 것인가 ? 그러나 이곳은 상서 지방도아니며, 이 사람들의 얼굴은 비록 뻣뻣하게 굳어 있으나 결코 죽은 사람도아닌데 어떻게 다른 사람들이 채찍을 들고 그들을 모는 것을 참을 수 있단말인가?)앞장서 들어왔던 두 명의 백의 소녀가 손에 든 긴 채찍을 한 번 휘두르자그 남자 십여 명은 모두 걸음을 멈췄다. 한 명의 키가 크고 날씬하게 생긴백의 소녀가 가볍게 탄식하면서 말했다. "피곤해 죽을 지경이야. 우리 여기서 좀 쉬었다가 다시 가도록 해요." 얼굴이 보름달처럼 둥글게 생긴 다른 한 명의 백의 소녀가 역시 탄식을하면서 말했다. "이 사람을 모는 일은 정말로 괴로워요. 쉴 수도 없고, 또 다른 사람이볼까봐 겁을 내야 하고. 그런데도 큰아가씨께서는 우리에게 무슨백운목녀(白雲牧女)라는 그렇게 예쁘고 듣기 좋은 이름을지어줬으니......." 갑자기 가볍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그 웃음소리는 이어서 말했다. "목녀! 다른 사람이 이 이름을 들으면 틀림없이 우리가 소나 양을 기르는사람들인줄 알거야. 누가 우리가 사람을 모는 사람들이라고 생각이나 할수 있겠어?" 그 키가 크고 날씬하게 생긴 목녀가 웃으면서 말했다. "어떻든 사람을 모는 것이 사람에게 몸을 당하는 것보다는 나아. 너희들,이 사람들 사이에 아주 이름난 무림인들이 있는 것을 알기나 아니 ? 예를들면 바로 저 사람......." 그녀는 말하는 도중에 긴 채찍을 들어서 행렬 중의 한 사람을 지적하며이어서 말했다. "저 사람은 하서(河西) 일대에서 가장 이름을 날리는 표두야." 주칠칠은 그 채찍의 끝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눈을 돌려서 바라보자 그행렬 중에 한 사람이 뻣뻣이 서 있었는데, 키가 크고 얼굴에 수염이 가득한 사람이었다. 그는 바로 전령송이었다. 전령송이 여기에 있는 이상 다른사람들도 틀림없이 그 고묘 중에서 나와서 이 목녀 일행에게 포획되었음이틀림없었다. 주칠칠은 자신이 무의식중에 이 비밀을 발견할 줄은 꿈에도 생각지못했다. 그녀의 가슴에서 놀람과 기쁨이 끓어오름을 그녀는 막을 수없었다. 그녀는 속으로 생각했다. (심랑은 비록 비할 데 없이 총명하기는 하지만, 세상에 사람을 모는무리들이 있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거야. 도리어 이 사람들이신지(神智)가 미혹당하여서 마차에 태워져서 옮겨졌다고만 생각하고있으니...... 아이, 약간의 생각의 차이가 이렇게 크게 어긋나는 결과를만들어 버릴 줄이야...... 그가 전력을 다하여 마차의 행렬을 쫓고 있을때, 이 사람들은 도리어 이렇게 차갑고 깊은 밤 남들이 모르게 사람들을몰고 가고 있으니 그가 어떻게 쫓아갈 수가 있단 말인가?)전령송은 비록 그녀의 적이었지만, 이 순간 전령송의 수염과 머리에허옇게 고드름이 달려 있고 표정이 상당히 낭패한 듯한 모습을 보자그녀는 가슴에서 가련한 마음이 우러남을 금할 수 없었다. 그녀는 속으로생각했다. (빨리 이 사실을 심랑에게 알려야겠구나. 그러면 그가 곧 그들을 구해낼수 있을 거야.)그러나 또 금방 생각이 변하여서 속으로 생각했다. (안 돼! 심랑은 계속 나를 쓸모없는 사람으로 간주하고 있는데, 나 혼자반드시 그를 놀라게 할 만한 일을 해서 그에게 보여줘야 돼! 이것은상당히 좋은 기회인데, 어떻게 그렇게 쉽사리 그에게 말해줄 수 있냔말이야. 내가 이 일의 자초지종을 전부 알아낸 다음에 그에게 얘기하면그의 표정이 참 보기 좋게 변할 거야.)여기까지 생각했을 때, 그녀는 심랑의 놀라고 또 그녀를 찬탄하는 듯한표정이 떠올라서 얼굴에 득의에 찬 미소를 떠올리지 아니할 수 없었다. 이때 작고 예쁘게 생긴 다른 백운목녀가 하는 말이 들려왔다. "시간이 너무 늦었어요. 빨리 가도록 합시다. 날이 밝기 전에 이 사람들을몰아가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모두 벌을받게 돼요." 얼굴이 둥근 목녀가 말했다. "뭐가 그렇게 급해 ? 모두 네 갈래 방향으로 흩어져 사람들을 몰아가는데,우리만 빨리 간다고 그래도 소용이 없어." 키가 크고 날씬하게 생긴 목녀가 장탄식을 하면서 말했다. "빨리 가는 것이 늦게 가는 것보다는 좋아요. 자, 갑시다." 말을 마친 그녀는 긴 채찍을 한 번 휘두르고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전령송 등도 얌전히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그들 뒤의 두명의 목녀는 긴채찍을 휘둘러서 눈 위에 남아 있는 발자국들을 흔적도 없이 지워버렸다. 눈이 어지러이 날리는 가운데 일행은 다시 줄줄이 그 숲을 빠져나갔다. 주칠칠은 확연히 깨달은 듯 속으로 말했다. (원래 그들은 포획해 간 사람을 네 패로 갈라서 몰아가고 있구나. 그렇지만, 내가 이 패거리만 쫓아서 그들의 소굴에 도착한다면 그들은 한명도 도망갈 수 없겠지.)이때 그녀는 포부가 가슴 가득 차올랐으며, 뜨거운 피가 끓어올라 발이시리다는 것도 잊어버렸다. 그녀는 몸을 숨기고 숨소리를 멈추며 몰래그들의 뒤를 쫓아갔다. 그녀는 비록 그들에게 바짝 가까이 다가갈 수는없었으나 다행히 그 '삭삭' 하는 발자국 소리는 그들이 가는 방향을그녀에게 가르쳐주고 있었다. 그들 백운목녀들은 이처럼 눈보라가 몰아치는 춥고 깊은 밤에 누군가가그녀들의 행적을 발견했으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한 듯 뒤 한 번돌아보는 법도 없이 오직 앞을 향해서만 나아갔다. 가벼운 발자국 소리를제외하고 일행은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수십 명이나 되는 사람을 '갑' 이라는 지점에서 신도 모르고 귀신도알아차리지 못하게 '을' 이라는 지점으로 몰아가는 이러한 사람을 모는수법은 확실히 특이하고 뛰어난 것이었다. 주칠칠은 생각할수록 이러한사람을 모는 방법이 뛰어나다고 생각되어 참지 못하고 속으로 생각했다. (이러한 방법을 이전의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을 못 했을까 ? 그렇지만,이러한 기이한 방법을 생각해낸 사람은 반드시 이상하게 생긴 괴물일거야.)그녀는 그 괴물은 도대체 누구일까, 어떻게 생겼을까를 생각하면서 그들을쫓아갔다. 부지불식간에 약 한 시진 이상 뒤를 쫓아간 듯했다. 시간은대략 오경쯤 된 듯했으나, 겨울날은 원래 낮이 짧고 밤이 긴 법이라사방은 여전히 어두침침 했으며, 날이 밝아오는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주칠칠은 그 사람들이 가는 곳은 틀림없이 아주 황폐한 곳일 것이라고생각했으나, 그들은 얼어붙은 강을 건너온 것을 제외하고는 지세는 갈수록평탄해졌으며, 마지막에는 눈의 반사광에 의해서 멀리 거대한 성곽이보이는 지점에까지 이르렀다. 이것은 확실히 주칠칠의 생각 밖이었다. 그녀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목녀들은 사람들을 몰고 성으로 들어가려는 것일까 ? 그건불가능한데......?)그러나 그녀의 생각과는 반대로 백운목녀들은 사람들을 몰고 성 아래로아래로 걸어갔다. 그녀들이 성곽 아래에 도착하자마자 성문이 열리면서 갑자기 두 대의화려하기가 비할 데 없는 마차가 성 안에서 달려왔다. 마차의 사방은 모두밝은 보석으로 치장한 등불이 걸려 있었다. 그 마차는 마치 고관이나거부가 사용하는 듯한 그러한 마차였다. 주칠칠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들은 기회를 봐서 몰래 성으로 들어가야 할 텐데, 저처럼 화려하여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마차를 타면 어쩌겠다는 것인가?)그러나 그 마차는 곧장 백운목녀들을 향해 달려왔으며, 얼굴이 둥근목녀가 가볍게 휘파람 소리를 내자 그녀들 앞에 멈출 줄이야. 열두 명의남자와 네 명의 백운목녀는 두 패로 나누어서 그 두 대의 마차에올라탔다. 주칠칠은 이러한 모습을 바라보면서 멍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이사람들의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모두 일반인의 상식을 이렇게 벗어날 줄은몰랐던 것이다. 만약 이 마차에 어떠한 사람들이 타고 있으며, 그 타고있는 사람들의 처지가 어떠한 줄을 다른 사람이 알게 된다면 어떠한사건이 일어날 것인가? 이때 마차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주칠칠은 이를 악물고 속으로생각했다. (일을 중간에서 그만두면 시작하지 아니한만 같지 못하지. 비록용담호혈이라 할지라도 이 사람들을 쫓아가봐야지.)이렇게 생각한 그녀는 몸을 번쩍이더니 그 마차의 밑으로 숨어들었다. 그녀는 마차 밑에 꼭 달라붙어서 마차가 움직이는 대로 같이 따라갔다. 만약 다른 사람이었다면 틀림없이 여러 번 생각을 한 후에 행동을 할것이었으나, 주칠칠은 천성적으로 앞만 생각하고 뒤를 돌아보지 않는성격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녀가 어떻게 그렇게 많은 화근을자초했을 것인가? 마차가 성으로 들어온 후, 주칠칠은 다만 그녀의 등이 지상의 얼어붙은눈에 긁히는 느낌과 차가운 한기가 가슴으로 몰려오는 기분을 느꼈다. 그러나 그녀는 그 마차가 도대체 어디로 가는지는 알 수 없었다. 점점사방에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사람들의 목소리는 똑바로알아들을 수는 없었으나 뛰엄뛰엄 몇 마디씩 알아들을 수 있었다. "이 장미꽃은 온실에서 재배한 것입니다. 상당히 보기 드문 것이지요." 또 한 사람의 소리가 들렸다. "지금 이 납매(臘梅)가 상당히 잘 팔리고 있어요. 지금 사지 않으시면아마 사지 못할 겁니다." "이 수선화는 상당히 청아해요. 침대 머리맡에 수선화 화분 하나를놓아두면 그 침대에 자는 사람마저도 아주 고아하게 보인다니까요." 주칠칠은 이러한 잡다한 말을 들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일진의꽃향기까지 맡을 수 있었다. 그에 따라 그녀는 이곳이 바로 새벽에 여는꽃시장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마차는 그 꽃시장에서 한참을 서있었다. 백운목녀들은 적지않은 꽃을 사는 듯했다. 주칠칠은 또 이상한 느낌을 버릴 수 없어 속으로 생각했다. (그녀들은 꽃을 사서 뭘 하려는 거지?)이때 다시 그 꽃장사가 하는 말이 들려왔다. "아가씨께서 그냥 가져가시면 돼죠. 은자는 무슨 은잡니까 ? 내일은 또목단꽃이 나올 거예요. 아가씨들께서는 오늘보다 좀더 일찍 나오셔야 할겁니다." 주칠칠은 더욱 이상하게 느꼈다. (이러한 말들로 미루어 보면, 그들은 종종 여기에 와서 꽃을 사는 것같은데...... 이처럼 신비하고 이상한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종종 와서꽃을 사다니 참 이상한 일이로군.)그러나 이때 마차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여 주칠칠은 더이상 다른 생각을할 수가 없었다. 꽃시장을 지나자 길은 구불구불해졌으며, 마차는 좌로 돌고 우로꺾어지면서 약 식사 한끼 마칠 시간 만큼 더 나아갔다. 그때, 마차에 탄사람이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대문은 열려져 있습니까?" "열려져 있소. 다른 사람들은 아마 도착했을 거요." "보세요. 제가 좀 빨리 가자고 했는데 언니는 끝까지 조금만 더 쉬자고하더니만......." "지금 원망해서 뭐하니? 빨리 들어가자." 사람들의 분분한 말소리 속에서 마차는 갑자기 위를 향해 올라가기시작했다. 주칠칠은 조그마한 동산을 올라간다고 생각했으나, 후에알았지만 그들이 올라간 것은 십여 칸의 돌계단이었으며, 마차는 그돌계단 옆에 만들어 놓은 마차 전용의 길로 올라갔음을 알 수 있었다. 그돌계단의 끝에는 아주 넓직한 문이 있었다. 그 문을 들어선 후에는 청석을 깔아놓은 길이 나타났다. 그 청석에 쌓인눈은 이미 빗자루로 깨끗이 쓸어져 있는 상태였다. 주칠칠은 사방의광경을 자세히 살펴볼 수는 없었으나, 그 속에 있는 집들이 아주 크고웅장할 뿐만 아니라 정원이 아주 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정원과 문을하나씩 하나씩 차 한 잔 마실 시간 만큼 여러 개 지나자 비로소 어떤사람이 큰 목소리로 하는 말이 들려왔다. "마차는 일곱번째 헛간으로 가서 세워두고 마차에 있는 사람들은 먼저내리도록 하시오." 주칠칠이 살짝 엿보자 그 마차의 양쪽에는 수십 개의 다리들이 왔다갔다하고 있었다. 이 사람들은 어떤 사람은 무릎까지 오는 긴 가죽장화를 신고있었으며, 어떠한 사람들은 비단으로 짠 신발을 신고 있었다. 또 어떤사람들은 바지를 입고 있었으며, 어떤 사람은 치마를 입고 있었는데그들의 몸놀림은 매우 경쾌했다. 다만 주칠칠은 그들의 얼굴을 볼 수 없을뿐이었다. 주칠칠은 이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이미호랑이 굴에 들어온 격이었으며, 이곳을 어떻게 빠져나갈 것인가에대해서는 아무런 방법도 생각해 낼 수 없었다. 사람들이 고개를 굽혀 한번 바라보기만 해도 즉시 그녀의 행적을 발견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들이 그녀의 존재를 발견했을 때 그녀가 비록 머리가 셋 달리고 팔이여섯 개 달린 하늘을 날고 땅 속으로 기어드는 재주가 있는 괴물이라 해도이곳을 살아서 빠져나갈 수는 없을 듯했다. 그녀는 조급한 마음이 들었을뿐만 아니라 약간의 후회하는 기분도 들었다. 이 순간 그녀가 여기서죽는다 해도 심랑은 그녀가 어떻게 죽었는지도 모를 것이라는 생각이들었다. 사람들의 소리가 어지럽게 들리고 말의 울부짖는 소리가 그치지 않는가운데 몇 사람이 마차를 헛간으로 끌고 들어가서 어떤 사람은 마차를씻고, 어떤 사람은 말을 씻기 시작했다. 다행히 이때까지 아무도 몸을굽혀 주칠칠이 숨어 있는 것을 보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이때 주칠칠의몸은 이미 추위에 뻣뻣하게 굳어졌으며, 마치 수천 수만 개의 예리한 침이그녀의 어깨와 팔굽을 마구 찌르듯 그녀의 팔은 쓰리고 아프기가그지없었다. 그녀는 더이상 참지 못하고 크게 소리치며 달려나가고 싶은마음이 굴뚝 같았다. 그러나 그녀는 아직은 죽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악물고 억지로 참지 않을 수 없었다. 다만 이 사람들이 빨리 그 마차와말을 씻고 이곳을 떠나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마차와 말을 씻으며, 한담을 나누기 시작했다. 그들이 나누는 한담은 열마디 중에 아홉 마디는 음담패설이었다. 주칠칠은 이를 악물고 속으로욕을 퍼부어댔다. 갑자기 일진의 구슬소리가 울리더니 어떤 사람이 크게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아침 준비가 다 됐어요. 뜨거운 죽을 먹고 싶은 사람은 빨리 일을마치세요." 헛간에 있는 사람들의 기쁨에 찬 대답소리가 들리더니 말을 씻던 사람들은솔을 팽개치고 마차를 씻던 사람들은 걸레를 팽개친 채 순식간에 뛰어나가버렸다. 마구간에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은 듯했다. 주칠칠은 비로소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불어냈다. 그와 동시에 그녀는더이상 지탱하지 못하고 '털썩' 하고 바닥으로 네 활개를 치고드러누워버렸다. 온 몸의 뼈마디가 부서지는 듯했다. 그러나 이 순간에도그녀는 여전히 위험한 상황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를악물고 아픔을 참으며 천천히 기어 일어났다. 그녀는 먼저 마차의 뒤에몸을 숨기고 그 헛간 밖의 동정을 엿보았다. 그 헛간 밖은 한 줄로 수십 그루의 소나무가 심어져 있었으며, 그소나무에는 마치 뚜껑처럼 눈이 쌓여 있었다. 소나무들을 지나서는 총총히지어진 집들이 보였으며, 그 집들은 도대체 몇 채나 되는지 셀 수 없을만큼 많았다. 주칠칠은 가만히 눈썹을 찌푸렸다. 그녀는 도저히 이곳이 어느 곳인지를알 수가 없었다. 정원이나 집들의 위세로 보아서 어느 왕후(王候)의 집에비할 바 없었으나 여러 가지 상황으로 미루어 보건대 결코 왕후의 집은아닌 것 같았다. 그녀가 이리저리 생각을 굴리고 있을 때, 갑자기 그녀의 뒤에서 가볍고경박한 웃음소리가 들리며 그녀의 목에 누군가가 가볍게 입맞춤을 했다. 그녀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게 놀라고 동시에 화가 나서 몸을 돌리려했으나 그녀의 몸은 뻣뻣하게 굳어 있어서 행동이 그렇게 빠르지는못했다. 그녀가 천천히 몸을 돌려서 뒤를 바라봤을 때, 그곳에는 아무도없었다. 그러나 바로 이 순간, 그녀의 목에 또 어떤 사람이 가볍게입맞춤을 했다. 그리고 경박하고 가볍기가 한량없는 말소리가 그녀의귓가에 웃음을 띤 채 들려왔다. "아주 달콤하군요. 아주 달콤해요." 주칠칠은 팔굽으로 빠르게 뒤를 쳤으나, 아무도 팔굽에 맞는 것이 없었다. 그녀가 몸을 돌렸을 때 그 사람은 이미 그녀의 뒤에 돌아와 있어서 그녀의목에 다시 가볍게 입맞춤하고 웃으면서 말했다. "아가씨가 부드러워야죠. 어떻게 사람을 때리오?" 그러나 이번의 음성은 노인의 목소리처럼 쉬고 갈라져서 금방 들려왔던목소리와는 전혀 다른 사람인 듯했다. 주칠칠은 놀라고 화가 나서 다시몸을 돌렸으나 여전히 그 사람의 모습은 볼 수 없었으며, 그녀의 목에여전히 또 한 번의 입맞춤을 당했다. 그녀의 뒤에서 웃음소리가 또 들려왔다. "당신이 더 빨리 돈다 해도 저를 볼 수는 없을 거예요." 그러나 이번의 말소리는 아주 부드럽고 청아하기가 묘령의 소녀의목소리인 듯했다. 주칠칠이 이를 악물고 몸을 대여섯 번 돌리는 사이의그녀의 근골이 점점 풀렸다. 그에 따라 그녀가 몸을 돌리는 속도는 갈수록빨라졌으나, 그 사람의 신형은 귀신처럼 그보다 언제나 한 걸음 빨라서그녀가 몸을 돌리는 순간 벌써 그녀의 뒤에 돌아와 있었다. 그리고 그사람의 음성도 어떤 때는 노인의, 어떤 때는 소년의, 어떤 때는 남자의,또 어떤 때는 여자의 음성으로 변하여 마치 칠팔 명이나 되는 사람이그녀의 뒤에 있는 듯했다. 주칠칠의 담력이 비록 크다 하나 이 순간만은 놀라서 손 발이 풀어지고가슴이 덜컥 내려앉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당신...... 당신 도대체 사람이에요, 귀신이에요?" 그 사람은 킥킥 웃더니 말했다. "귀신이지요. 색귀(色��)말이오." 말을 마친 그는 또 주칠칠의 목에 가볍게 입맞춤했다. 주칠칠은 그 사람의입술이 아주 차가워서 그녀의 목에 입술이 닿는 순간, 마치 독사에게물리는 것보다 더 참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피할 수도 없고 숨을수도 없었다. 그러나 어떻든 그녀는 상당히 총명한 여자였다. 눈을 몇 번굴리더니 그녀는 부드럽게 웃으면서 말했다. "당신이 색귀라면 어째서 제 얼굴에 입맞춤을 하지는 못하는 거죠?" "내가 너의 얼굴에 입맞춤을 하게 되면 너한테 내 모습을 보여주게 될텐데?" "제가 눈을 감아버리면 되잖아요?" "여자들의 말을 대부분 믿지는 못하지만 그렇지만 너는......, 너는 그래,내가 너를 한 번 믿어보도록 하지." 주칠칠은 쌍장의 진기를 모은 다음 두 눈을 크게 떴으나, 입으로는 도리어부드럽게 웃으면서 말했다. "자, 오세요." 그 순간 눈앞이 번쩍 하더니 붉은 비단옷을 입은 인형이 그녀의 면전에나타났다. 주칠칠은 전력을 다해 쌍장을 동시에 격출했다. 그러나 그녀의손이 아직 닿기도 전에 이미 그 사람에게 잡힐 줄이야......? 그 사람은 하하하고 웃으면서 말했다. "여자들의 말이란 과연 믿을 만한 것이 못 되는군. 다행히 내가 하도 여러차례 속아봤기에 망정이지......!" 누각(樓閣)속의 젊은미부 그 사람은 붉은 비단옷을 입고 있었으며, 발에도 역시 비단으로 짠신발을 신고 있었다. 그의 차림은 상당히 풍류를 알고 색을 좋아하는그러한 무리들이 즐겨 입는 차림이었다. 그러나 그의 얼굴은 도리어 코가납작하고 눈이 작고 눈썹이 얄팍하며 입술이 두꺼워 그보다 더 못생긴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의 모습이었다. 주칠칠은 숨이 막힐 듯했다. 그녀는 손이 이미 상대에게 잡힌 상태여서빠져나올 방법이 없었다. 그녀는 급히 말했다. "당신. ! 당신 아예 나를 죽이세요. 나는 원래 이곳에 들어온 첩자예요. 빨리 나를 이곳 주인에게 넘기세요. 그래서 이곳 주인이 나를 처리하게하세요." 그녀는 마음 속으로 차라리 이곳 주인에게 잡혀가 벌을 받을지언정 이행동이 귀신과 같고 생김새가 개, 돼지만도 못한 소년의 손에 희롱당하는것보다는 더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소년은 도리어 히히 웃으면서말했다. "이곳의 주인은 내 아버지도 아니고, 내 자식도 아니오. 당신은 당신의첩자 노릇이나 하시오. 나하고 무슨 상관이오? 내가 무엇 때문에 당신을이곳 주인에게 넘긴단 말이오?" "알고 보니 당신도 몰래 들어온 사람이군요?" 붉은 비단옷을 입은 소년이 웃으면서 생각했다. "그렇지 않다면 내가 무엇 때문에 이 마구간까지 왔겠소?" 주칠칠은 다시 살고 싶다는 욕구가 생겨나기 시작했다.그녀는 속으로말했다. (그의 무공을 보건대 그가 나를 도와주기만 한다면 이곳에서 빠져나갈 수있는 기회가 있겠구나!)그러나 그녀가 그 소년을 쳐다보면 쳐다볼수록 구역질이 나서 이곳을빠져나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말은 끝내 할 수 없었다. 이때 그 소년은색(色)에 굶주린 눈빛으로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한참을쳐다보던 그 소년이 갑자기 웃으면서 말했다. "당신은 내가 당신이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기를 바라는거요?" "당신......! 당신, 그렇게 할 수 있어요?" 붉은 비단옷을 입은 소년이 말했다. "다른 사람은 이곳을 용담호혈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오고 싶으면오고, 가고 싶으면 갈 수 있어요." 주칠칠은 비웃듯이 말했다. "제가 보건대 당신은 허풍을 떠는 것 같군요." 붉은 비단옷을 입은 소년이 히히하고 웃으면서 말했다. "당신이 나를 충동질하는 그러한 방법을 사용한다 해도 소용없을 거요. 만약 당신이 이곳을 빠져나가고 싶다면 얌전히 내가 당신의 얼굴에입맞춤을 할 수 있도록 가만히 계시는 게 차라리 나을 거요." 주칠칠이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눈을 감고 저 녀석에게 내 얼굴에 입맞추게 하는 것이 여기서 죽는것보다는 낫겠지. 만약 내가 이곳에서 죽게 된다면, 심랑의 얼굴도 다시는못보게 될 테니까 말야.)그는 심랑을 생각하자 더이상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만약 다시심랑을 볼 수만 있다면 그녀는 심지어 개, 돼지에게 입맞춤을 한다 해도달갑게 받아들일 그러한 심정이었다. 그녀는 즉시 눈을 감고 말했다. "좋아요! 하세요!"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얼굴에 그 소년이 입을 맞추는 기색을 느꼈다. 주칠칠의 얼굴에 입을 맞춘 그 붉은 비단옷을 입은 소년이 말했다. "대장부가 말을 했으면 지켜야 되겠죠? 나를 따라오시오!" 주칠칠은 어쩔 수 없이 그 소년에게 이끌려서 그 마구간을 빠져나왔다. 그녀가 눈을 떠서 바라봤을 때, 그 소년은 그녀를 끌고 바로 그 집들이밀집된 곳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주칠칠이 깜짝 놀라서 말했다. "당신......! 당신 어디로 가고 있는 거죠?" 붉은 비단옷을 입은 소년이 웃으면서 말했다. "본인은 당신이 도망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소. 그렇지만 다시생각해보니 당신이 이곳을 빠져나간 이후에는 다시는 나를 아는 척도 하지않을 것이 아니겠소 ? 내가 이리저리 생각을 굴려보았지만 결국 당신을이곳에 그냥 남아 있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소." "그렇지만 당신은......! 당신은......!" "이곳의 주인은 내 아버지도 아니고, 또 내 아들도 아니오. 그렇지만주인은 내 어머니요. 방금 당신이 나를 한 번 속였기 때문에 나도 당신을한 번 속였던 것이오. 우리 두 사람이 서로가 한 번씩 속였기 때문에누구도 손해본 것은 없다고 생각하오. 그리고 당신께 알려주고 싶은 것이있소. 여자들은 종종 남자를 속이지만, 남자들이 사람을 속이기 시작하면여자보다 못하지 않다는 점을 말이오." 주칠칠은 놀라움과 두려움 속에서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너 이 돼지 같은 놈, 개 같은 자식 ! 너, 너! 너는 심지어 개, 돼지만도못한 짐승이야. 내가 너를 갈갈이 찢어놓지 않나 봐라." 그녀의 욕설이 흉해지면 흉해질수록 그 비단옷을 입은 소년은 더욱 득의에찬 미소를 드러냈다. 그때 정원에 있던 흑의 대한, 백의 소녀들이 모두 그가 돌아온 것을 보자멀찍이서부터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 웃으며 말했다. "작은 주인께서 돌아오셨습니까?" 어떤 소녀들은 그 소년과 비교적 친한 듯 한 마디 더 보탰다. "작은 주인께서 하룻밤 내내 돌아오지 않았군요? 부인께서 모르도록조심하세요. 부인이 아시면 당신을 대문 안으로 한 발짝도 들여놓지못하게 할 거예요." 붉은 비단옷을 입은 소년이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원래 대문으로 들어온 게 아니오. 나는 그 마구간의 담장을뛰어넘어 들어왔어요. 누님들! 제발 어머님이 제가 하룻밤 내내 돌아오지않았다는 사실을 모르게 해주세요. 그러면 제가 후일 누님들을 반드시기쁘게 해드리겠어요." 그 소녀가 교태롭게 웃으며 가볍게 말했다. "누가 당신이 나를 기쁘게 해주기를 바란댔어요 ? 당신이 데리고 온 이계집애, 생긴 게 그런 대로 괜찮네요?" 웃음소리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붉은 비단옷을 입은 소년은 주칠칠을 끌고대나무숲 뒤에 있는 깨끗한 집으로 달려갔다. 그때 갑자기 가벼운 소리가들려왔다. 아름답고 부드럽고 가볍고 가는 이 소리는 이 대나무숲 밖에있는 한 채의 누각 위에서 들려왔다. 그 누각의 높이는 비록 수 장에달했으나, 이 외침소리는 마치 주칠칠의 귀에 대고 외치는 듯 가깝게울렸다. 붉은 비단옷을 입은 소년은 깜짝 놀란 듯 얼굴색이 변하더니 과연그 자리에 얌전히 서서 더이상 움직일 생각을 하지도 못했다. 그 누각 위에 있는 사람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네 녀석의 간이 크구나. 밖에서 돌아온 후에 아무도 모르게 슬쩍 네방으로 돌아가려 했단 말이냐?" 그 붉은 비단옷을 입은 소년은 감히 머리를 들지도 못했으나, 주칠칠은도리어 번쩍 고개를 쳐들고 그 누각을 바라보았다. 그 화려한 누각 위의붉은 난간쪽에는 머리를 구름처럼 틀어올리고 그 틀어올린 머리에 보석을가득 단 중년 미부가 난간에 의지하여 아래를 쳐다보고 있었다. 주칠칠이지금까지 보았던 미녀는 비록 적지 않았지만 만약 그들을 이 중년미부와비교한다면 그 미인들은 전부 추녀라고 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그중년미부는 아름다왔다. 주칠칠은 그녀를 한 번 바라보고 나서 눈길을그녀에게서 뗄 수가 없었다.그녀는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여자인데도 그녀를 바라보고 이 정도이니......! 만약 남자들이그녀를 바라보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마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겠지?)중년미부도 주칠칠을 한 번 바라보고 나서 냉랭하게 말했다. "이 여자 아이는 어디서 데려온 거지?" 붉은 비단옷을 입은 소년이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그녀요? 그녀...... 그녀가 바로 제가 종종 말씀드리던 연빙문(燕氷文)연 아가씨예요. 어머님께서 그녀를 보고 싶다 그러시길래 제가 어머님께그녀를 보여드리려고 이번에 데리고 온 거예요." 중년미부의 눈이 다시 주칠칠을 자세히 살펴보더니 고개를 끄덕이고웃으며 말했다. "과연, 절세미녀라고 할 만하구나? 네가 그녀에게 푹 빠져서 정신을 못차리는 걸 이해할 만하다. 그녀가 연 아가씨라면 이리로 올라오도록청......." 만약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 붉은 비단옷을 입은 소년이 그녀를 보호하기위해서 거짓말을 하는 것을 보고 아무런 소리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주칠칠은 천성이 고집이 세었으며, 여기에 더하여 이 소년이그녀를 자신의 방으로 끌고 들어간 후에 벌어질 일을 생각하자 차라리죽는 게 더 낫다는 생각에 중년미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고개를쳐들고 소리를 질렀다. "저는 연빙문이 아니에요. 제 성은 ' 주 '예요. 그리고 또 그가 저를 이곳에청해온 것도 아녜요. 저는 당신들의 마차 밑에 숨어서 몰래 이곳에 들어온거예요. 들어온 목적은 당신들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서죠. 그렇지만그에게 사로잡혔던 거예요. 그러니 죽이든 살리든 맘대로 하세요." 그녀의 이 말이 터져나오자 붉은 비단옷을 입은 소년의 손은 갑자기차가워졌다.그 중년미부의 안색도 급히 변했으며 표독스럽게 그 소년을노려보았다. "그 녀석을 이리로 데려와라." 그 누각은 겉모습만 금빛 찬란했을 뿐만 아니라 내부 장식은 더 화려하여마치 신선의 궁전과 같은 모습이었다. 중년미부는 호랑이 가죽을 깔아놓은푹신한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 있었다. 그녀의 모습은 천상의 선녀같았다. 붉은 비단옷을 입은 소년은 이미 그녀의 면전에 꿇어앉아 있었다. 그러나 주칠칠은 이미 생사문제를 도외시한 상태여서 겁날 것이 없었다. 그녀는 오만한 자세로 우뚝 서 있었으며, 심지어 얼굴에는 냉소마저 띠고있었다. 중년미부가 물었다. "너의 성은 주이고, 이름은 뭐지?" "당신에겐 상관없는 문제지만 얘기해 주죠. 주칠칠이 바로 저예요. 똑바로들어두세요." "주칠칠! 네 담력이 적지않구나." "당신처럼 아름다운 미인을 보면서 경탄하기도 바쁜데 무엇이 겁이나겠어요? 그렇지만 애석한 것은 당신은 그렇게 아름다운데 당신의 아들은너무 못생겼어요." 그 중년미부는 이처럼 담력이 하늘을 뒤엎을 듯 큰 소녀를 본 적이없었다. 그 아름다움이 철철 넘쳐흐르는 얼굴에 놀라운 기색을 감추지못했다. 그녀는 갑자기 그곳에 서 있던 백의 소녀에게 소리쳤다. "그녀들을 데려와라." 한 명의 백의 소녀가 중년미부의 명령에 따라 누각을 달려 내려갔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 네 명의 새로 빚은 듯 단단하게 보이는 장한들이주칠칠이 수풀 속에서 보았던 그 두 명의 백운목녀를 각 하나씩 끼고들어왔다. 이 두 명의 백운목녀는 중년미부를 보자 이미 놀라서 안색이변했다. 그 장한들이 그녀들을 내려놓자 그녀들은 곧 중년미부 앞에 꿇어엎드렸다. 중년미부가 천천히 물었다. "너는 이 두 사람의 마차 밑에 숨어서 들어왔던 것이냐?" "그런 것도 같고 그렇지 않은 것도 같아요." 중년미부의 입가에 갑자기 사람의 혼백을 뺏어갈 듯한 아름다운 미소가나타났다. 그녀는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얘야, 네가 아직 어리니 너한테 한 가지 가르쳐 주마. 여자가 아름답게생기면 생길수록 마음은 더욱 악독한 법이란다.추하게 생긴 여자는 도리어마음이 좋을 때가 많아." 주칠칠이 말했다. "정말 그럴까요?" "믿기지 않는다면 내가 너한테 직접 보여주도록 하마. 내 밑에 있는여자아이들 중 만약 조금이라도 실수가 있으면 어떠한 벌을 받게 되는지직접 보도록 해라." 그녀의 봄비 후에 솟아나는 죽순처럼 아름다운 섬섬옥수가 가볍게 한 번들려졌다. 그에 따라 그 두 명의 백운목녀가 동시에 처참하게 울부짖었다. 그 처참한 소리는 듣는 사람의 코허리를 시큰하게 했다. 그러나 그 새로빚은 듯한 장한들은 그 아름다운 여자들을 조금도 아끼는 마음 없이 두사람이 한 여자씩 상대하여 앞뒤에 섰다. 그 백운목녀들의 뒤에 선장한들은 소녀들의 머리채를 잡아 들었고, 앞에 선 장한들은 두 손을 벌려그녀들의 옷을 갈가리 찢었다. 그에 따라 부드럽고 반짝이는 희고 곡선이아름다운 소녀들의 몸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러자 대한들은 각자허리춤에서 뱀처럼 생긴 채찍을 꺼내서 비가 쏟아지듯이 이 눈처럼 하얀소녀들의 몸을 후려갈기기 시작했다. 채찍소리가 '쉭쉭' 하고 일어났다.그 소리는 듣는 사람의 혼백을 뺏아갈정도였다. 소녀들은 바닥에 쓰러져 처참한 소리를 지르며 이리저리굴러다녔다. 그러나 그 채찍은 무정하게도 순식간에 그녀들의 눈처럼 하얀아름다운 동체에 수십 줄기의 빨간 채찍 자국을 남겼다. 이처럼 사람을매혹시킬 듯한 동체에 여러 갈래로 난 빨간 채찍 자국은 더욱 그 장한들의야성을 폭발시키는 듯했다. 그들의 눈에서는 마치 짐승과 같은 잔혹한빛이 번득였다. 그에 따라 채찍질은 더욱 빨라졌으며 더욱 거세어졌다. 주칠칠은 더이상 참지 못하고 찢어지는 듯한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멈춰요! 제발 부탁이에요. 그들을 멈추게 해주세요." 중년미부가 미소를 짓고 가볍게 손을 흔들자 채찍질은 금방 멈췄다. 그소녀들은 미약한 숨을 겨우 내쉬고 있을 뿐이었다. 주칠칠도 얼굴 가득흘러내리는 눈물을 막을 수가 없었다. 중년미부가 가볍게 웃으면서 말했다. "두렵니?" "당신, 당신 차라리 나를 죽여주세요." "얘야, 나는 네가 죽음은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그렇지만세상에는 죽음보다 더 어려운 일이 훨씬 많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단다. 예를 들어 말하면......." 주칠칠이 두 손으로 귀를 틀어막고 떨리는 소리로 말했다. "듣고 싶지 않아요. 듣고 싶지 않아요." "그렇다면, 너는 얌전하게 나한테 말해다오. 우리들의 비밀에 대해서 너는얼마나 알고 있는거냐 ? 그리고 너 이외에 누가 또 알고 있는 거지?" "저는 모...... 몰라요. 저는 아무것도 몰라요." "정말 모른다는 거냐 ? 그래." '그래' 하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여덟 명의 대한이 주칠칠을 에워쌌다. 주칠칠은 가슴 깊숙이에서부터 두려움이 솟구침을 느꼈다. 그녀는 참지못하고 큰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다. "심랑 ! 당신은 어디 있어요 ? 빨리 와서 저를 구해주세요." 그녀의 외침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일진의 맑은 방울소리가 그중년미부가 앉아 있는 뒷편의 자색 주렴 속에서 들려왔다. 중년미부가 두눈을 약간 찌푸리더니 곧 일어서서 표연히 그곳에서 나가버렸다. 주칠칠은놀라고 당황했으나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붉은 비단옷을 입은 소년이 그녀에게 고개를 돌려서 가볍게 탄식하면서말했다. "내가 당신에게 말을 많이 하지 말라고 했는데, 당신은 듣지를않았으니...... 아이, 어떻든 당신은 오늘 운이 좋았다 그래야 될 거요. 때맞춰 우리 모친이 만나야만 하는 손님이 찾아왔으니 말이오. 그렇지않았다면......." 그렇지 않았다면 어떠했을 것인지 그는 비록 말하지 않았으나 주칠칠은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이때 한 명의 백의 소녀가 가벼운 걸음으로 누각으로 올라가서 신중한음성으로 말했다. "부인께서 이분 주 아가씨를 잠시 지하실에 보내서 대기시키도록명령하셨어요." 붉은 비단옷을 입은 소년이 반문했다. "나는?" 백의 소녀가 픽 웃으면서 말했다. "당신요? 당신은 저를 따라오세요." 주칠칠이 사방을 힐끗 훔어보고 나서 갑자기 손을 들어 한 명의 흑의대한을 쓰러뜨린 다음 몸을 공중으로 날려 제비처럼 창문을 빠져나와 누각아래로 뛰어내렸다. 그 백의 소녀와 붉은 비단옷을 입은 소년은 그녀가도망가는 것을 보고서도 그녀를 막지 않았다. 주칠칠은 자신이 이렇게쉽게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녀는가슴에서 기쁨이 용솟음침을 느꼈다. 그녀는 자신이 이 누각에서 탈출할수 있다면 다른 사람은 그녀를 막을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그녀의 발이 땅에 닿자마자 그녀의 뒷편에서 가벼운 웃음소리가 들리며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올 줄이야. "얘야, 네가 왔구나. 내가 이곳에서 너를 기다리고 있었다." 웃음소리는 부드러웠으며 목소리는 매우 예뻤다. 그것은 바로 그중년미부의 음성이었다. 주칠칠은 마치 찬물을 뒤집어 쓴듯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차가운기운이 스쳐감을 느꼈다. 이를 악물고 갑자기 몸을 돌려 쌍장을 동시에격출시켰다. 그녀는 이어서 자기가 알고 있는 가장 독한 초식들을 전부사용하여 순식간에 칠팔 초를 공격했다. 그녀의 경공은 뛰어났으며 공격도빨랐으나, 그녀가 배웠던 것은 잡다한 초식들로써 정교한 맛이 없었다. 그래서 그녀가 격출시켰던 칠팔 초는 비록 각 문파의 장점을 두루 갖추고있었으나 제대로 숙달된 초식은 하나도 없었다. 그녀의 이러한 공격은보통의 강호 무사를 상대하기에는 충분했으나, 중년미부의 눈에는어린애의 장난에 불과했다. 중년미부가 가볍게 웃으면서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얘야! 네가 배운 무공이 많기도 많구나." 그녀가 소매를 가볍게 휘두르자 주칠칠의 오른쪽 팔꿈치의유지혈(油池穴)이 그 소매에 적중되어 오른쪽 팔이 천천히 밑으로 쳐졌다. 그러나 주칠칠은 이를 악물고 왼손으로 다시 삼 초를 공격했다. 중년미부가 웃으면서 말했다. "네가 하나 알아야 할 것이 있다. 단것을 너무 많이 먹으면 이가 썩고,무공을 너무 많이 배우면 도리어 소용이 없어진다는 사실 말이다." 그녀는 허리를 가볍게 돌리더니 다시 소매를 휘둘렀다.주칠칠의 좌측팔굽의 유지혈(油池穴)이 또 마비되어 좌측팔도 더이상 쓸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항복하기를 거부하고 두 다리를 팽이처럼 돌리며북파괴자원앙퇴(北派拐子鴛鴦腿)라는 초식을 사용하여 공격했다. 중년미부가 고개를 가로젖고 웃으며 말했다. "너같이 총명한 아이가 전심전력으로 한 문파의 무공을 배웠다면, 오늘나와 대략 십 초 정도는 싸워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너는얌전히 항복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주칠칠의 두 무릎의 환도혈(環跳穴)도 그녀의소매에 격중되었다. 주칠칠은 천천히 바닥에 쓰러져 더이상 일어날 수 없었다. 그러나 그중년미부는 머리카락 하나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그녀는 평소에 아름답고우아할 뿐만 아니라 사람과 싸움을 함에 있어서도 아주 가볍고 우아하고부드러워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마치 아름다운 여자가 춤을 추고 있다고느끼게 하는 그러한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다. 주칠칠이 멍청하게 한참이나 그녀를 쳐다보고 가볍게 탄식하면서 말했다. "저는 세상에 당신과 같이 아름다운 여자가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못했어요. 더욱이 당신이 도대체 어떤 대단한 음모를 꾸미고 있는지는 더모르겠구요. 제가 짐작컨대 아마 무림계에 머지않아 큰 혼란이 생길 것같군요." 중년미부가 가볍게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하는 일은 본래 천하에 아무도 알아차릴 수 있는 사람이없단다.너는 지금은 나한테 항복한거니?" 주칠칠이 몸은 비록 움직일 수 없었으나 눈을 크게 뜨고 중년미부의 말에큰소리로 대답했다. "내가 왜 당신한테 항복해야 하죠? 만약 내가 당신만큼 나이가 많았다면당신에게 지지는 않았을 거예요." "귀여운 계집애로구나. 죽을 때까지 항복을 하지 않으려들다니. 그렇지만너에게 하나 말해줄 게 있단다. 네 나이 때 이미 내 이름은 천하를 떨게하여서 더이상 적수를 찾아볼 수 없었단다. 네가 만약 내 나이만큼 오래산다 해도 너는 나를 쫓아올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애석하게도......." 그는 갑자기 말을 멈추더니 손을 몇 번 휘젓고 몸을 돌려서 가버렸다. 그녀의 긴 치마가 표표히 휘날렸으며 그녀가 달고 있는 보석들이 '띵띵' 하고 울리는 가벼운 소리가 들릴 뿐 그녀의 모습은 순식간에사라져버렸다. 주칠칠은 그녀가 떠나면서 '애석하게도' 라고 말했던 뜻과그녀가 다시 돌아와서 자기를 어떻게 처치할 것인가 하는 문제, 그리고이곳이 아주 신비스럽고 자기가 비록 이곳에서 죽는다 해도 아무도 그것을알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점, 그리고 아무도 이곳에 자기를 구하러 올 수없으리라는 점 등을 생각했다.그녀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자신이 살아날가능성은 없으며, 죽음을 기다리는 방법밖에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며절망감에 휩싸여갔다. 이때, 두 명의 흑의 대한이 그녀를 향해 다가왔다. 그들은 음흉한 마음을품고 있는 듯 입가에 험악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주칠칠은 이를 악물고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이 비록 내가 어디서 죽었는지 모른다 하더라도 나 자신만큼은 도대체 내가 어디서 죽었는지 알아야 되겠지.)다행히 그녀는 목은 움직일 수 있었기 때문에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주위를 살펴봤다. 다섯 가지 색깔이 있는 돌을 깐 자그마한 길이 보였으며그 길을 돌아 흙으로 쌓아올린 산과 연꽃이 있는 못이 보였고, 그 뒤에동백나무 수풀 위에는 또 누각이 보였으며, 흐릿하게나마 무늬를 놓은옷을 입은 사람들이 오고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녀는 조금 더자세히 보려고 고개를 힘껏 내 빼었으나 그녀의 몸은 이미 그 두 명의흑의 대한에게 번쩍 들렸다. 네 개의 털이 부숭부숭 난 큰 손은 고의인 듯아닌 듯 그녀의 몸을 이리저리 더듬고 있었다. 주칠칠이 참지 못하고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좌측에 있던 대한이 차갑게 웃으면서 말했다. "더러운 년, 싫은 척 하지 마라. 어떻든 조만간 너도 또 우리의......." 갑자기 냉랭한 소리가 들려왔다. "조만간 어떻게 된다는 건가?" 두 명의 대한이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려 바라보자 그곳에는 그 붉은비단옷을 입은 소년이 차갑고 날카로운 눈빛을 빛내며 그들을 노려보고있었다. 두 대한의 얼굴이 갑자기 창백하게 변했으며 머리를 숙이고더이상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붉은 비단옷을 입은 소년은 주칠칠을바라보고 마치 무슨 말을 할 듯했으나, 그 옆에 있던 백의 소녀에 끌려서한편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두 명의 대한은 주칠칠을 안고 문 안으로들어섰다. 그 문 안에는 이미 다른 한 명의 백의 소녀가 자단색 탁자옆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마침 그 하얗고 보드라운 손가락으로 그탁자 위에 있는 수선화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 소녀는 주칠칠이들어옴을 보고 고개를 가로젖고 웃으면서 말했다. "이곳에 들어와서도 도망갈 생각을 하다니, 정말 쓸데없는 짓을하는군요." 말을 마친 그녀는 탁자를 두 바퀴 돌렸다. 그러자 그 탁자 옆에 있던석판이 밑으로 쑥 꺼지면서 아주 깊어 보이는 지하 통로가 나타났다. 지하통로는 상당히 밝았으며, 그 통로의 양쪽 벽에는 아주 정교하게 만든등들이 박혀 있었다. 백의 소녀가 말했다. "화산실(華山室)은 비어 있어요. 그녀를 그곳으로 데려가세요." 두 대한은 이 소녀 앞에서 표정이 상당히 엄숙했으며 공경하는 태도를보였다. 소녀의 말이 끝나자 그 두 대한은 깊숙이 허리를 굽혀 절을 하고큰걸음으로 그 지하 통로로 내려갔다. 주칠칠이 갑자기 고개를 쳐들고 그 백의 소녀에게 말했다. "언니, 여긴 도대체 어디죠? 저한테 얘기해 주실 수 있어요?" 백의 소녀가 웃으면서 말했다. "호호! 너의 그 언니라는 말이 너무 듣기가 좋구나. 그렇지만 아직은너한테 말해줄 수 없어." 주칠칠이 즉시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미친 년! 나쁜 년! 네가 얘기해 주지 않는다 해도 언젠가는 내가 알아낼거야." 그러나 그 소녀는 웃으면서 주칠칠을 쳐다볼 뿐 더이상 그녀를 상대해주지 않았다. 지하 통로는 상당히 구불구불 복잡했다. 얼핏 보건대 그고묘에 결코 못하지 않았다. 그 지하 통로의 양쪽에 있는 석문들 위에는모두 두 개의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어떤 것은 '나부(羅浮)' 였고, 어떤것은 '청성(靑城)' 이라는 글자들로 모두 중원 지방을 중심으로 한 명산의이름들이었다. 화산실 앞에 이르러서 두 명의 흑의 대한은 기관을 움직여 석문을 열었다. 그때 갑자기 좌측편에 있던 대한이 험악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나쁜 년, 내가 너한테 한 번 입맞춤을 해야겠다. 네가 어떻게 하는지도봐야겠고!" 말을 하는 순간 뾰족뾰족한 송곳처럼 생긴 수염이 난 큰 입을 주칠칠의얼굴에 갔다댔다. 그러나 주칠칠은 욕설을 퍼붓지도 않았고 반항하지도않았다. 도리어 교태스러운 소리로 말했다. "나를 좋게만 대해 주신다면 그까짓 몇 번 입맞추는 게 무슨 관계가있겠어요?" 그 대한이 대소하고 웃으며 말했다. "그래야 약간 운치가 있는 것이지. 자, 다시 한 번 더......." 이때 갑자기 처참한 부르짖음 소리가 들리며 그 대한의 얼굴에는 붉은피가 솟아나왔다. 그의 입술을 주칠칠이 한입으로 듬뿍 물어 잘라내버렸던 것이다. 그 대한은 화도 나고 분노도 치밀어올라 한 손으로주칠칠의 옷깃을 부여잡고 밑으로 찢어내리려 했다. 주칠칠이 말했다. "조금만 내 옷에 더 손을 댄다면 당신의 작은 어르신이 오셨을때 틀림없이내가 그로 하여금...... 헤헤 내가 어떻게 할 것인지 말하지 않아도알겠죠?" 그 대한은 한 손으로 상처난 입술을 부여잡고 눈에서는 불을 뿜을 듯이그녀를 노려봤다. 다른 한 대한이 말했다. "마삼(馬三)! 그만둡시다. 작은 마두의 그 성격, 잘 알지 않소?" 그는 손으로 힘껏 주칠칠을 밀어 넣은 다음 석문을 닫아버렸다. 주칠칠은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으나 눈에서는 눈물이 한 방울 한 방울쉴새없이 흘러내렸다. 그 눈물 속에서 자신과 친한 사람들의 그림자들이어른거렸다. 그 그림자 중에 가장 큰 것은 심랑의 그림자였다. 주칠칠은 눈물을 흘리며 이를 악물고 가볍게 욕설을 퍼부었다. "나쁜 사람! 당신...... 당신 지금 어디에 있는 거죠? 당신 어디에 있는거예요? 왜 빨리 와서 저를 구해주지 않아요?" 자신이 심랑의 허락도 받지 않고 그 여관에서 나온 것이 잘못이었다는점에 생각이 미치자 그는 자신도 모르게 방성대곡하기 시작했다. 그러나어떻든 그녀는 피곤이 누적된 상태여서 울다가 지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잠이 들어 버렸다. 얼마나 긴 시간을 잤는지 모르나 악몽 가운데 갑자기 심랑이 웃으면서그녀에게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크게 기뻐 그를 부르려 했으나,심랑은 도리어 그녀를 아는 척도 하지 않고 그 중년미부와 껴안고 뒨굴기시작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붉은 비단옷을 입은 소년이 자신을 껴안고웃으면서 말 했다. "그래도 내가 좋죠?" 갑자기 그 소년은 한 마리의 산고양이 모습으로 변해서 그녀 자신에게덤벼들었다. 주칠칠이 놀란 소리를 지르며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 붉은비단옷을 입은 소년은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그녀 앞에서 웃음을 머금고서서 바라보고 있었다. 그 두 눈은 마치 산고양이처럼 날카롭고탐욕스러운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마치 그녀를 한입에 집어삼키고 싶다는듯이. 악몽에서 깨어났을 때 등불빛이 너무 밝아 주칠칠은 눈을 제대로 뜰 수도없었다. 주칠칠은 방금 보았던 심랑의 모습이 꿈인지 생시인지, 아니면환각인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온몸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으며 그땀으로 입고 있는 옷이 축축히 젖었음을 느낄 수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갈라진 음성으로 부르짖었다. "심랑! 심랑! 당신 어디 있어요?" 붉은 비단옷을 입은 소년이 가볍게 웃으면서 말했다. "심랑이 누구요?" 주칠칠이 정신을 차려 바라보자 비로소 방금 악몽을 꾸었을 뿐이라는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눈앞의 이 광경은 방금의 악몽보다 더 나을것이 없었다. 그녀는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입으로 날카롭게 외쳤다. "당신...... 당신 무슨 짓을 하려는 거죠?" 붉은 비단옷을 입은 소년의 두 눈은 이미 탐욕스럽게 빛나고 있었으며빙긋이 웃으면서 주칠칠의 말에 대답했다. "내가 무슨 짓을 하려는지 당신은 정말 모르겠다는 거요?" 말을 마친 그는 손을 뻗어서 주칠칠의 창백하게 변해버린 얼굴을 가볍게쓰다듬기 시작했다. 주칠칠이 놀라서 소리쳤다. "당신...... 당신 빨리 꺼져요." 그러나 그 소년은 유들유들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꺼지지 않는다면 또 어떻게 하겠다는 거요?" 주칠칠의 창백하게 변했던 얼굴은 이미 파리하게 변했다. 그녀는 떨리는음성으로 말했다. "당신, 당신이 감히......." 그녀는 입으로는 비록 이렇게 말했으나 사실상 이미 이 소년이 자신이하고자 하는 일을 해치울수 있으리라는 것을 의심치 않았다. 그녀는 이소년이 자신에게 해올 행동을 생각하자 전신의 피부에 닭살이 돋는 기분을느꼈다. 그러나 그 소년은 도리어 주칠칠의 얼굴을 쓰다듬던 손을 멈추고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비록 색귀라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강간을 해본 적은 없소. 당신이얌전하게 내 뜻을 받아만 준다면 나는 당신을 이곳에서 나갈 수 있도록도와주겠소." 주칠칠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 "나는...... 나는 죽어도 당신 뜻을 받아들일 수 없어요." "내 어떤 점이 나쁘다는 거죠? 당신이 죽어도 나를 받아들일 수 없다니. 아! 알았소. 당신은 내가 못생겼다고 싫어하는 거로군." "그래요. 암돼지들이나 당신 같이 못 생긴 남자를 좋아할 거예요." 그 소년이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과연 당신은 내가 너무 못생겨서 싫어했군? 좋소." 그는 갑자기 몸을 돌렸다. 한참이 지난 후 다시 몸을 돌리고 웃으면서말했다. "당신은 다시 나를 쳐다보도록 하시오." 주칠칠은 바라보기도 싫었으나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슬쩍 눈을 떴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방금 전까지의 그 비할 데 없이 못생긴 소년이아니라 여자보다 더 잘생긴 미남자였다. 등불빛 아래서 그의 입술은 붉었고 이는 희었으며, 수려한 눈썹에 맑은눈, 그리고 그의 얼굴색은 하얀 가운데 붉은빛을 띠고 있어서 마치 양질의뛰어난 옥과도 비교할 만했다. 무림계에서 이름난 미남자인 옥면요금신검수 서약우도 이에 비한다면 낯이 부끄러워질 지경이었다. 주칠칠은 멍청해져서 한참 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한참 후 주칠칠이 입을열어 말을 하려했으나 그 말은 불과 한두 마디에 불과했다. "당신, 당신......." 그 소년이 웃으면서 말했다. "지금 내 모습은 어떻소? 당신은 내 뜻을......." 그러나 주칠칠은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이 요귀! 이 악마!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도 마세요." "그래도 내 뜻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거요? 아! 알았소. 당신은 내가 나의이러한 모습이 남자들의 야성미가 없다고 싫어하는 거로군. 좋소." 그는 말을 하는 순간 다시 몸을 돌렸다. 그를 다시 봤을 때, 주칠칠은거무튀튀한 얼굴에 칼날 같은 눈썹, 호랑이 눈에 미간에는 웅대한 기상이넘쳐흐르는 장한이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심지어 목소리마저도변하여 그 장한은 포권을 하고 주칠칠을 향해 말했다. "어떻소?" 그러나 주칠칠은 찬바람을 훅 들이마시고 말했다. "당신, 당신 헛된 생각을 버리세요." 그 소년은 눈썹을 찌푸리더니 말했다. "그래도 내 뜻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거요? 아! 아가씨는 아마 성숙한남자들을 좋아하는 모양이죠? 내가 너무 어리다고 싫어한다는 거요? 좋소. 다시 보시오." 이번에 그가 몸을 돌렸을 때는 그의 턱에 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랐을 뿐만아니라 미간이나 표정까지도 아주 성숙하게 변하여, 세상의 물정에 통달한중년남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러한 중년남자의 매력은 때에 따라서는확실히 젊은 남자들보다 더욱 소녀들의 가슴을 울렁거리게 만드는 것이다. 주칠칠은 놀람 속에서도 여전히 욕설을 퍼부어댔다. 그 소년은 이번에는다시 짙은 눈썹에 큰 눈을 가진, 송곳 같은 수염이 듬성듬성 난 거친장한의 모습으로 변했다. 그리고 큰소리로 말했다. "이 계집 년! 더이상 나를 따르지 않는다면 내가 너를 산 채로잡아먹겠다." 이때 그는 얼굴 모습이 거친 장한의 모습으로 변했을 뿐만 아니라표정이나 말소리도 그에 알맞게 변해 있었다. 주칠칠은 세상에 이처럼기묘한 역용술이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녀는 두 눈을크게 뜬 채 멍하니 그의 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붉은 비단옷을 입은 소년의 역용술은 확실히 뛰어나서 주칠칠로 하여금멍해지게 만들었다. 그는 웃으면서 말했다. "당신이 좋아하는 남자는 어떤 남자죠? 늙은 사람입니까? 젊은사람입니까? 당신이 어떤 남자를 좋아하든 나는 당신이 좋아하는 그모습으로 변할 수 있어요. 만약, 당신이 나에게 시집을 온다면 당신은수십 명의 남편을 가지게 되는 셈이오. 그것이 여자로서 얼마나 큰복이겠소? 다른 여자들은 아무리 애를 써도 얻을 수 없는 큰 복이오. 그런데도 당신은 싫단 말이오?" "당신...... 당신이 어떠한 모습으로 변한다 해도 내가 당신과결혼하리라는 꿈은 갖지도 마세요." 그 소년이 씁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도 싫단 말이오? 왜 싫죠? 왜요? 아! 그렇군요. 알았소. 당신은총명한 여자라서 재능을 중시하지, 외모를 중시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모양이군. 그렇다면 당신에게 말해 드리리다. 본인은 천재라고는 할 수없으나 글재주로는 시(詩), 사(伺), 가(歌), 부(賦) 모두 할 수 있고,아울러 십팔반무예(十八般武藝) 모두에 대해서 정통하지 않은 것이 없소. 문, 무, 두 가지를 제외하고도 천문이나 지리, 의술이나 점성술, 음악,서예, 회화, 또 매를 사용한 사냥이나 개 길들이기, 사격, 어느 것 하나못하는 것이 없고 또 뛰어나지 아니한 것이 없소. 만약 당신이 이러한남편을 얻어들인다면, 평생 동안 절대 적적하지 않으리란 것을 내가보장할 수 있소. 당신이 믿지 못하겠다면, 보시오." 그는 말을 하면서 이미 계속하여 아홉 종류의 신법을 전개해 나갔다. 이아홉 종류의 신법은 모두 소림사나 무당파 등, 각대 문파의 비전의절기들이었다. 아홉 종의 신법이 끝나는 순간 그는 손을 번쩍 들어 석벽을향해 일 장을 격출했다. 그 강철처럼 단단한 석벽에는 즉각 하나의장인(掌印)이 나타났으며, 심지어 다섯 손가락의 모습이 돌에 조각을 한것처럼 확연하게 찍혀나왔다. 주칠칠은 비록 무공이 뛰어나지는 못했으나, 얻어들은 것은 아주 넓었다. 그녀는 한눈에 바로 그 장법이 밀종의 대수인(大手印)이라는 것을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 소년은 이렇게 나이가 젊은데도 몸에 각파 무공의장점들만을 지니고 있었으며, 더군다나 그 절기들은 바로 강호상에전해지지도 않은 것들이었다. 이는 확실히 보고 듣는 사람을 놀라게하기에 족한 일이었다. 주칠칠은 더이상 참지 못하고 물었다. "당신의 이러한 무공은 어디서 배운 거죠?" "무공이 뭐가 그렇게 어렵단 말이오? 본인은 한가할 때는 옛사람들의시를, 사를, 부를, 공부했소. 어느 것 하나 내가 말한 것 중 능통하지않은 것이 없소. 이 천하에 본인처럼 뛰어난 인물을 찾기는 쉽지않으리라고 생각하오." 주칠칠이 눈알을 굴리고 갑자기 냉소하면서 말했다. "그렇지도 않을 걸요?" "그렇다면, 아가씨께서는 용모와 재주가 본인과 비교될 만한 인물을 알고있다는 거요?" "내가 알고 있는 그 사람은 글재주나 무공, 언어, 표정, 어느 것 할 것없이 당신보다 백 배 천 배는 더 나아요. 당신과 같은 사람은 그의 신발을닦아주는 역할도 과분할 정도예요." 갑자기 그 소년의 눈빛이 번쩍 하더니 크게 웃었다. " 아가씨께서는 고의로 나를 화나게 하려는 거요?" "믿지 못하겠다면 어쩔 수 없죠. 어떻든 그 사람이 지금 여기에 없으니. 흥, 흥, 만약 그 사람이 여기에 있다면 누가 감히 나를 잡아둘 수 있단말인가요." 그 소년은 한참을 생각하더니 눈에서 갑자기 불빛을 뿜어내며 말했다. "알았소. 그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심랑이죠?" "그래요. 심랑! 심랑! 당신은 지금 어디 있어요? 내가 얼마나 당신을생각하는지 알기나 하나요?" 그녀는 심랑이라는 이름을 떠올리자 즉시 얼굴빛이 부드럽게 변했다. 그 소년의 눈에서는 마치 불이 뿜어나올 듯했으며, 얼굴 근육은 죽은사람처럼 뻣뻣하게 굳어져갔다. 주칠칠이 약간 가련한 생각이 들어 참지못하고 말했다. "그렇지만...... 당신도 군계일학이라고는 할 수 있어요. 이 세상에 만약심랑이라는 사람이 없었다면 제가 당신을 좋아했을지도 모르죠." "그렇지만 그 말은 세상에 심랑이 있는 이상 당신은 영원히 나를 좋아할수 없다는 뜻이겠군요? 그렇습니까?" "그 말을 제가 대답할 필요가 없겠죠? 당신은 대답을 안 해도 알고있으니까요." "만약, 심랑이 죽는다면 당신은 어떻겠소?" 주칠칠의 얼굴색이 약간 변했으나 금방 예쁘게 웃으면서 말했다. "심랑과 같은 사람은 결코 당신보다 빨리 죽지는 않을 거예요. 당신은안심하세요." 그러나 그 소년이 한스러운 듯 말했다. "심랑! 심랑! 심랑!" 그는 갑자기 말을 멈추고 발을 구르더니 말했다. "좋소. 나는 심랑이라는 그 친구가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보고 싶소. 나는그가 바로 내 발 아래서 죽도록 만들고야 말겠소." 주칠칠이 눈을 깜박이면서 말했다. "당신이 만약, 나를 놓아줄 만큼의 배짱이 있다면 나는 당신을 그에게인도하겠어요. 당신들 두 사람이 도대체 누가 더 뛰어난지 그를 한 번보기만 한다면 즉각 당신 자신도 판단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 소년이 갑자기 미친듯이 웃어제꼈다. "본인을 충동질하는 계책이 뛰어나군요? 그렇지만 본인은 당신의 계책에말려들고 싶소. 좋소. 내가 당신을 놓아주겠소. 가서, 심랑이라는 친구를데리고 나를 만나러 오시오." 주칠칠은 기뻐서 어쩔줄을 몰랐으나 입에서는 여전히 냉랭한 목소리로말했다. "당신이 감히 나를 놓아줄 수 있을까요? 심랑이 당신을 죽이는 것이두렵지 않아요?" "나는 심랑이 겁이 나서 나를 만나러 오지 못할까봐 두렵소." 주칠칠이 냉소하면서 말했다. "비록 이곳이 용담호혈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은 반드시 올 거예요. 다만걱정되는 것은 당신이......." 그 소년은 이때 더이상 그녀가 충동질할 필요도 없었다. 그녀의 말이끝나기도 전에 그 소년은 손을 뻗쳐 그녀의 양팔과 무릎의 네 곳의 혈도를풀었다. 주칠칠은 기쁘고 놀라움에 벌떡 일어섰다. 그러나 두 팔과 다리가마비된 지 시간이 너무 지났기 때문에 비록 혈도가 풀리기는 했으나,일순간 피가 잘 통하지 않아서 일어서자마자 다시 쓰러졌다. 그 소년은때맞춰 그녀를 부축했다. 그리고 차갑게 말했다. "당신 혼자 걸어갈 수 있겠소?" "걸어가지 못하면 기어서라도 나갈 거예요. 당신이 부축할 필요는없어요." 그 소년은 차갑게 웃더니 더이상 말하지 않고 두 손으로 그녀의 무릎관절이 있는 곳을 가볍게 쓰다듬었다. 주칠칠은 눈을 똑바로 뜬 채 그를밀어내려 했으나, 그 소년의 두 손에서는 일종의 기이한 마력이 나오는 듯그의 손길이 스치는 곳마다 간지럽고 짜릿하고 뼈마디가 녹는 듯한 기분이들었다. 그 간지럽고 짜릿하고 뼈마디가 녹는 듯한 기분은 곧장 그녀의 뼈속으로 파고 들어서 말할 수 없이 상쾌함을 느끼게 했다. 그 기분은그녀가 아직까지 느껴보지 못한 것으로써 그녀는 더이상 그를 밀어낼 수없었다. 아울러 그를 밀어내고 싶은 마음도 없어져버렸다. 그녀는 비록마음으로는 원하지 않았으나 몸은 도리어 자기도 모르게 그에게의지하여갔다. 등불빛 아래서 그녀의 창백한 얼굴은 아주 붉은 사과처럼발갛게 달아올랐다. 그 소년의 눈에서는 다시 그 불타는 듯한 기이한광채가 뻗쳐나오기 시작했으며, 손가락 끝은 이상하게도 가볍게 떨리고있었다. 주칠칠이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멈, 멈춰요! 놔주세요. 나, 나는......." 그 소년은 입술을 그녀의 귀 밑에 갖다대고 가볍게 말했다. "당신은 진정으로 내가 손을 멈추기를 원하는 거요?" 주칠칠의 전신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에서 갑자기 눈물이흘러내리며 말했다. "저, 저도 모르겠어요. 제발 부탁이에요. 제발......." 다시 살아난 주칠칠 이때 갑자기 문 밖에서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웃음소리에 이어가볍게 질책하는 소리도 들렸다. "당신이 이곳에 몰래 숨어들어온 줄 알았어요. 당신들 두 분 도대체 뭘하는 거죠?" 그 웃음소리에는 약간 씁쓸한 기분이 배어 있었다. 그 말을 한 사람은바로 그 백의 소녀였다. 주칠칠은 놀라고 부끄러워 이를 악물고 그 소년을 밀어냈다. 그 백의소녀는 곁눈질로 그녀를 쳐다보고 가볍게 웃으면서 말했다. "당신은 저 사람을 미워하지 않았나요? 그런데 어떻게 저 사람 품속에안겨서 일어날 생각도 못하죠?" 주칠칠의 얼굴이 더욱 붉어졌다. 그녀는 평소에 말을 잘 하는 편이었으나이 순간 만큼은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녀 자신도 자기가 왜 그 소년의 품속에서빠져나오지 못했는지를 몰랐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녀가 평생 처음으로 겪어보는 성욕의느낌이었다. 그녀는 확실히 성욕의 마력이 이처럼 대단한 것인 줄은 몰랐다. 백의 소녀는 그 소년에게 눈길을 돌리며 예쁘게 웃으면서 말했다. "당신이 여자들의 혼을 빼놓는 수단이 대단하긴 대단하군요?" 갑자기 그 소년의 눈에서 불같은 빛이 뿜어져 나왔으며 몸을 한 번부르르 떨더니 아무 소리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소년은 한 걸음 한 걸음 그 백의 소녀를 향해다가가고 있었다. 그의 눈에서는 웃는 듯 마는 듯 그녀를 쳐다보며 말하고 있었다. "내가 어째서?" 백의 소녀의 얼굴이 금방 붉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갑자기 가벼운 소리를지르더니 몸을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그 소년의 팔에 안겨버렸다. 그소년의 팔에 안기자마자 백의소녀는 그 자리에 그대로 뼈도 없는 듯 스르르 주저앉아 더이상몸부림칠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 소년이 천천히 말했다. "이것은 당신이 직접 자초한 거요. 나를 탓하지는 마시오." 그의 눈빛은 갈수록 더욱 밝아졌으며, 얼굴색은 갈수록 더욱 붉게달아올랐다. 그는 갑자기 손을 뻗더니 그 백의 소녀의 옷을 찢어발겼다. 주칠칠은 놀라는 소리를 내고몸을 돌린 후 더이상 바라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주칠칠은 바람소리가 들린다고 느끼는 순간,아주 하얀 장포 한 벌이 그녀의 등 뒤에서 날아와 그녀 앞에 떨어짐을 보았다. 그리고 그 백의소녀의 거친 숨소리가 더욱 격렬해져가는 것을 느꼈다. 주칠칠의 몸도 이 거친 숨소리에 따라서쉴새없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문을 박차고 뛰어 나가려고 생각했으나, 도저히 발걸음이떨어지지 않았다. 그때 그 소년이 그녀의 뒤에서 하는 말이 들려왔다. "당신을 놓아주었는데 가지 않고 머뭇거려서 뭘 하겠다는 거요?" 주칠칠은 앵두 같은 입술을 악물고 몸을 돌려 뛰어나갔다. 갑자기 그소년이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장포를 걸치고 나가시오. 문을 나간 후에 왼쪽 모퉁이가 나타나면왼쪽으로 돌아가시오. 절대 멈추지 말고 고개를 돌려서 뒤를 돌아보지도 마시오. 가다보면 어떤사람이 나타나서 당신을 마중할 것이오. 내가 생각을 바꾸기 전에 빨리 나가시오." 주칠칠의 꽉 다문 입술에서는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신의앞에 떨어진 그 백색 장포를 집어들고 더이상 그 소년과 백의 소녀를 쳐다보지 못하고 앞으로달려나갔다. 석실을 빠져나온 후 그 백색 장포를 걸친 다음 모퉁이를 두 번 돌 때까지그녀의 가슴은 여전히 쿵쾅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감히 뒤를 돌아볼 엄두를 내지못했다. 그녀는 그 소년이 악마보다 더 무서웠으며 악마보다 훨씬 더 원망스러웠다. 그녀는 일생동안이렇게 두려움을 느낀 적이 없었으며, 이렇게 남을 원망해 본 적도 없었다. 석실의 먼 곳에서마치 쇠로 만든 체인이 바닥을 끄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그러나 주칠칠은 더이상멈춰서 살펴볼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좌로 난 모퉁이를 만나면 좌측으로 돌기를 몇 번, 비로소이 지하실의 규모가 매우 크다는 것을 느꼈다. 그녀가 몇 개의 모퉁이를 돈 후 눈을 들어 앞을 쳐다봤을 때, 그녀의앞에 두 명의 경장 대한이 그녀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주칠칠의 가슴이 다시급격히 뛰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는 뒤로 물러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녀는 용기를 내서앞으로 한 발짝 두 발짝 걸어나갔다. 그녀의 길을 막고 있는 사람이 비록 두렵기는 했으나,그녀에게 있어서는 그 붉은 비단옷을 입은 소년보다는 훨씬 덜 두려운 대상이었다. 그러나 그 두 명의대한들은 그녀를 보자 얼굴에는 조금도 이상하다는 기색도 없이 한 사람이 그 옆에 있는 동료를향해 말을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 아가씨는 상당히 얼굴이 낯선데?" 그의 동료가 말을 받았다. "틀림없이 부인이 새로 데려온 아가씨인 것 같아." 주칠칠은 그들의 이러한 대화를 듣고 나서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 그녀는비로소 그 붉은 비단옷을 입은 소년이 그녀로 하여금 백의 장포를 입고 가라고 한 까닭을 알 수있었다. 그녀는 용기를 내서 큰 걸음걸이로 걸어갔다. 그 두 명의 대한은 그녀가 그들 옆을지나가도 그녀를 막지 않았을 뿐 아니라 도리어 고개를 숙이고 웃음을 띠면서 말했다. "아가씨께서는 밖에 일이 있어서 나가시는 겁니까?" 주칠칠은 그들의 물음에 대답도 하지 못하고 '흥' 하고 콧소리만 내고빠르게 그들 옆을 스쳐지나갔다. 그녀의 등 뒤에서 그 두 대한이 작은 소리로 지껄였다. "이 아가씨, 상당히 콧대가 센대?" 지하통로의 양쪽 석벽에는 문들이 있는 것 같았으나 모두 꼭 닫혀 있었다. 전령송, 방천리 등 그들 실종된 사람들은 아마 꼭 닫힌 문 속에 갇혀 있을 듯했다. 그 누각위에서 보았던 절세미인은 틀림없이 이곳에 이러한 모든 음모의 주모자인 듯했다. 그녀가 비록운몽선자는 아닐지 몰라도 틀림없이 운몽선자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사람이리라. 이러한 일들은 모두심랑이 알아내기를 원하는 일들이었다. 지금 이러한 비밀들을 주칠칠이 알아낸 것이다. 주칠칠이 여기까지 생각하고 아울러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큰 공을세웠다는 점에 생각이 미쳤을 때, 지금까지 자신이 받았던 고난과 어려움은 아무것도 아니라는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생각 속에서 그녀의 발걸음이 갑자기 경쾌해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속으로생각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고생한다는 게 이처럼 큰 기쁨일 줄이야? 그렇지만 세상에는 몇 사람이나 이러한 기쁨을 느껴본 사람이 있을 것인가? 확실히 나는 다른사람들과 비교해서 상당히 행복한 여자인지도 몰라.)그녀가 이러저러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 지하 통로는 이미 끝에달했으나 밖으로 나가는 출구는 찾아볼 수 없었다. 바로 그때 그 지하 통로의 어두컴컴한 속에서 하나의 인형이 그녀 앞으로나타났다. 주칠칠은 깜작 놀라 제자리에서 풀쩍 뛰었다. 그 나타난 인형의 키는 약 팔 척이넘을 듯했다. 주칠칠의 키도 비록 적다고는 할 수 없었으나 이 사람 앞에 서자 겨우 그의 가슴께에닿을락말락했다. 아울러 주칠칠이 비록 그렇게 비쩍 말랐다고 할 수는 없으나, 그녀의허리둘레는 이 인형의 한쪽 팔의 둘레에도 미치지 못할 듯했다. 그러나 이 사람의 신체가 비록 이렇게거대했으나 그 행동은 상당히 경쾌했다. 주칠칠이 아무런 소리도 듣지 못하는 사이에 이철탑처럼 거대하게 생긴 사람은 그녀의 면전에 나타났던 것이다. 마치 신화 중에서나 나올 듯한 악마의신과 같은 모습으로... .... 그 사람의 벌거벗은 상체에는 황금색의 기름칠을 하고 있었으며,가마솥처럼 큰 머리에는 털 한가닥 남기지 않고 깨끗이 깎아버려 번쩍번쩍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러나이처럼 거대하고 험악하게 생긴 거인의 눈빛은 도리어 자상한 모친의 눈빛처럼 부드럽게주칠칠을 바라보고 있었다. 주칠칠이 마음을 안정시킨 후 용기를 내서 물었다. "당신......! 당신은 공자께서 나를 마중하라고 파견한 사람인가요?" 그 거인은 고개를 끄덕이고 손가락을 들어올려 자신의 귀 입을 가리켰다. 그에 따라 주칠칠은 비로소 깨달았다. (아! 이 인간은 원래 벙어리에다 귀머거리였군!)그 거인은 그 길고 두꺼운 양팔을 들어올려 두 사람의 키를 합쳐 놓은것보다도 더 높을 듯이 보이는 천정을 받쳐 올려 힘껏 밀어내기 시작했다. 어두침침한 속에서 금색기름을 칠한 거대한 팔의 근육이 갑자기 툭툭 불거져나오기 시작했으며 지하 통로 천정의거대한 석판이 들어올려지기 시작했다. 그 툭툭 불거져나온 근육이 위아래로 요동치는 모습은 마치 한마리의 금색 뱀이 꿈틀거리는 듯 했다. 주칠칠은 다시 깜짝 놀라서 생각했다. (대단한 힘이로구나! 이 사람을 제하고는 이 세상에 이 석판을 들어올릴수 있는 사람은 없을 듯한데.......)그러나 그녀는 더이상 여러 가지를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그녀는 그거대한 대한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도와주셔서 고마워요!" 그녀는 더이상 이 거인을 쳐다보지도 않고 몸을 날려 그 약간 열어들려진 석판의 빈 틈을 이용하여 공중으로 뛰쳐나왔다. 그녀는 이 지하 통로를 빠져나오면 사람의 인적을 찾아볼 수 없는황야이거나 아니면 공동 묘지 같은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의 생각은 크게 틀렸다. 이지하통로의 출구는 장의사의 후실이었던 것이다. 그 드넓은 집 안에는 사면에 모두 이미 만들어졌거나,혹은 만드는 도중에 있는 관들이 쌓여 있었다. 웃통을 벗어붙인 건장한 대한들이 어떤 사람은톱질을 하고 있었으며, 어떤 사람은 못을 박고 있었고 어떤 사람은 기름을 칠하는 듯 모두 바쁜모습이었다. 이 장의사 집의 장사는 상당히 잘 돼는 듯했다. 주칠칠은 깜짝 놀랐으나 그녀가 방금 뛰쳐나왔던 석판이 이미 닫혀버렸기때문에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일어서지 아니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주위에 있던 대한들은아무도 고개를 돌려 그녀를 쳐다보지 아니할 줄이야! 장의사 밖에서는 마차 소리가 덜커덕덜커덕 들려왔으며 사람들의 소리가왁자지껄했다. 그리고 그 장의사 안에서는 마침 두 사람이 관을 흥정하는 소리가요란했으며, 여기에 더하여 톱질소리, 못박는 소리 등으로 사방은 이미 시끌벅적했다. 주칠칠은 이시끌벅적한 장의사 속에서 갑자기 두려운 마음이 솟아남을 금할 수 없었다. (장의사! 왜 하필이면 장의사란 말인가? 그 지하 통로에서는 종종 사람이죽어서 방금 내가 나온 그 출구로 밖으로 보내지는 것은 아닐까? 그 출구는 어쩌면 죽은 사람만밖으로 내보내는 통로일지도 몰라. 사람이 죽어서 그 출구를 통해서 밖으로 보내지면, 곧바로 관속에 담아서 밖으로 내가게 되겠지. 그렇게 되면 신도 모르고 귀신도 알아차릴 수 없을 거야. 장의사 집에서 관이 나가는 것은 원래 극히 당연한 일이지. 아무도 그점을 이상하게 생각하지는않을 거야. 그 지하 통로에서 하루에 이십 명, 혹은 삼십 명이 죽는다 해도 그것을 이상하다고느낄 사람은 전혀 없겠지. 그들의 살인계획은 확실히 안전하고 신비롭기까지 하구나.)그녀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상하고 겁이 났다. 그녀는 깊이 숨을들이마신 다음 마음을 안정시키고 이를 악물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밖은 바로 장의사의 입구였다. 그 입구에는 두 명의 점원이 마침 손님 한사람과 관의 가격을 흥정하고 있었다. 그 두 점원 중 한 사람은 곰보였으며 다른 한 사람은입술의 살점이 떨어져나가 말을 할 때 바람이 새는 소리가 들렸다. 그 옆에는 높직한 계산대가있었으며 그 계산대 위에는 은자를 저울질하는 저울이 놓여 있었다. 주칠칠은 이러한 모습을 마음에 꼭 기억하고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이 장의사 집의 위치와 내부의 모습을 기억만 하고 있다면, 나중에심랑을 이곳으로 데리고 왔을 때.......)그때 마침, 그 손님이 그녀를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나 그 두 명의 점원은 그녀에 대해서 조금도 주의를 하지 않는 듯하였다. 주칠칠은 그 모습이이상도 하고 기쁘기도 하여 한달음에 그곳을 뛰쳐나왔다. 그 장의사 집에서 빠져나오자 밖은바로 사람들이 짝을 지어 오가는 대로였다. 그녀는 말할 수 없는 기쁨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 장의사 집의 대로를 건너 맞은편으로뛰어간 다음에야 비로소 고개를 돌려 장의사를 바라보았다. 그 장의사의 대문에는 가로로 크게 검은글자로 쓴 간판이 걸려 있었다. 그 간판에 씌어 있는 글자는 '왕삼기' 라는 세 자였다. 그왕삼기라는 세 자 옆에는 두 줄로 '장사가 너무 잘 되는 것이 겁이 날 뿐, 손님께서는이곳을 자주 찾지 마시기 바랍니다.' 라는 글자가 씌어 있었다. 주칠칠은 입가에 가벼운 웃음을띠며, 이 장의사의 간판과 그곳에 써 있는 글자를 가슴 속 깊이 새겨두었다. 그녀는 속으로 생각했다. (중이야 도망갈 수 있지만, 절간을 옮겨 가지야 못하겠지? 내가 네녀석들의 본거지만 제대로 기억하고 있다면, 너희들이 어디로 도망갈 수 있는지 두고 보라지. 나혼자의 힘으로 이 천하를 놀라게 할 만한 대음모와 대비밀을 캐내었으니, 심랑이 이후로는 나를무용지물이라고 얕보지는 못하겠지?)이러한 생각에 그녀는 마음이 가벼워짐을 느꼈다. 그러나 한 걸음을가기도 전에 그녀는 또다른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이상한데? 그들은 분명히 내가 자신들의 비밀을 알고 있다고생각을 하고 있는데 왜 나를 놔준 것일까? 그 붉은 옷을 입은 소년이 미쳤단 말인가? 나를놓아주고 나면 그 녀석의 모친이 고생하여 세운 계획을 하루아침에 멸망시키는 꼴이 될 텐데. 그녀석이무엇 때문에 이러한 것을 전부 알면서 나를 놓아준 것일까? 이것은 확실히 불가능한 일이야.)그녀는 입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얘기를 하고 있었으나, 입가에는 다시가벼운 미소가 번져올랐다. 자신이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일에 대해서 적당한 해석방법이떠올랐기 때문이다. (내가 심랑을 위해서 내 모든 것을 희생하고 있듯이 그녀석도 나를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하고 싶었던 것일 거야. 애정의 힘이라는 것은 확실히 위대한 것이야.)그녀는 여기까지 생각하자 다시 마음이 가벼워져 더이상 다른 걱정을 하지않았다. 이 시간은 바로 황혼무렵으로서 하늘 가득 석양빛이 비단처럼 아름답게펼쳐져 있었으며, 그 길을 오가는 사람들의 얼굴도 그 석양빛의 붉은 빛을 뿜어내는 듯했다. 주칠칠은 일생 동안 이렇게 아름다운 광경과 이렇게 사랑스러운 사람들의 모습은 보지 못한 듯한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발걸음도 가볍게 마치 이 아름다운 석양에서 하늘로 날아갈듯 발길을옮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둠이 밀려옴과 동시에 주칠칠은 즉각 자신이 그렇게 마음이 홀가분한처지는 아님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녀에게는 확실히 많은 걱정거리가 있었다. 그녀의 몸에는 동전 한 푼없었으나 이미 배고픔과 추위가 몰려오고 있었으며 이 의지할 곳 없는 망망한 천지에 심랑은 어디있는지, 또 어떻게 그를 찾아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조금 전 그녀가 생사의 경계에 서 있을때 이러한 걱정거리들은 근본적으로 그녀의 마음 속에 있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비로소이러한 걱정거리들이 비록 보잘 것 없는 것이었으나 상당히 현실적이며 해결하기가 어려운문제들임을 깨달았다. 이곳은 그녀의 짐작대로 낙양성이었다. 주칠칠은 낙양성 거리를 밥 한끼먹을 시간 만큼 이리저리 배회하며 이생각 저생각을 해봤으나, 자신의 마음을 정할 수 없었다. 자신이 이 낙양성 밖으로 나가야 할지, 아니면 이 낙양성 안에 머물면서 다른 방도를 찾아야할지를 결정할 수도 없었다. 심랑은 결코 지금까지 그 여관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것이다. 그는 그녀가 실종된 사실을 알아차리고 조급한 마음에 사방으로 그녀를 찾아 돌아다녔을것이다. 그러나 도대체 그가 어느쪽으로 그녀를 찾으러 갔을지. 지금 상황이 변해그가 그녀를 찾는 것이 아니고 도리어 그녀가 그를 찾아야만 할 상황이었다. 이러한 변화는상당히 기묘한 것이며 흥미있는 것이었다. 주칠칠은 이리저리 생각해 보았으나 자기 자신도우습다는 생각밖에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 순간, 어떻게 웃음이 나올수 있단 말인가.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고 손을 뒷짐진 채 성 안을 이리저리 어슬렁어슬렁돌아다녔다. 그때, 모자를 비스듬히 쓰고 몸을 흔들흔들거리면서 깡패가 아니면무뢰배처럼 보이는 장한 하나가 그녀쪽으로 다가왔다. 길거리에 사람들은 이미 찾아볼 수 없었다. 주칠칠은 갑자기 그 사람 앞으로 달려가 그 길을 가로막으면서 말했다. "이봐요! 이 낙양성에서 가장 유명한 영웅이 누군지 혹시 아시오?" 그 사람은 깜짝 놀란 듯했으나, 곧이어 주칠칠을 몇 번 쳐다보고 나서얼굴에 즉각 별로 좋지 않은 뜻을 품은 듯한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오, 나의 예쁜 아가씨! 아가씨께서 사람을 정확히 찾으셨소! 낙양성에서 가장 유명한 영웅은 바로 나, 화화태세(花花太歲) 조모(趙某)요."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얼굴에 '짝짝' 하고 대여섯 번 따귀를 얻어맞고뒤로 벌렁 넘어졌다. 그 조모라는 자가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차리기도 전에 주칠칠은 달려들어팔을 그의 등 뒤로 잡아 비틀었다. 그는 아파서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는 이때에이르러서야 비로소 이 꽃같이 아름다운 아가씨가 그렇게 만만히 봐서는 안 될 상대라는 것을 알아차려살려달라고 애걸복걸하기 시작했다. 주칠칠이 냉랭하게 말했다. "빨리 말해라! 도대체 누가 낙양성에서 가장 유명한 영웅이지?" 조모가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서성(西城)에 사시는 철면온후(鐵面溫侯) 여봉선(呂鳳先)하고,동성(東城)에 사는 중원맹상(中原孟裳) 구양희가 우리 낙양성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분들입니다." 주칠칠이 속으로 생각했다. (이 두 사람의 이름을 통해서 헤아려 보건대, 아마 그 구양희가 비교적사람을 사귀기를 좋아하는 것 같군!)생각을 마친 그녀는 재차 질문했다. "그 구양희라는 자는 어느 곳에 살고 있지? 얌전히 이 고모님을 그 사람이살고 있는 곳으로 안내하도록 해라." 그 조모의 눈에 순간 번쩍 하고 교활한 웃음이 떠오르더니 공손히 말했다. "명을 따르겠습니다. 고모님께서는 이 소인의 팔이나 좀 놓아주십시오. 소인이 고모님을 구양희가 사는 곳으로 안내하겠습니다." 그 중원맹상 구양희는 낙양성에서 과연 널리 알려진 인물임에 분명했다. 그의 집은 동성에 있었는데, 집과 집들로 이어져 그 기세가 대단했다. 수십 장 밖에서 주칠칠은이미 구양희의 집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을 바라볼 수 있었으며, 그의 집에서 나오는 사람소리와웃음소리들을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 집 앞으로 다가가자 마차들과 말들이 마치 냇물이흘러가듯 쉬지 않고 그 집 대문을 드나들고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가슴을 높이 쳐들고 다니는무림인사들이었다. 주칠칠이 속으로 생각했다. (상황을 보아하니 구양희라는 친구가 중원맹상이라는 별호에 걸맞게보이는구나. 그에게 내가 알고 있는 비밀 한두 가지를 알려주어서, 한편으로는 심랑의 소식을탐방하게 하고 한편으로는 중원호걸들에게 연락하도록 해도 괜찮을 것 같구나.)이러한 생각을 하는 순간 그녀는 이미 구양희의 집 대문 앞까지 도착해있었다. 주칠칠이 비틀어 잡은 조모의 팔을 놓아주려는 순간, 조모가 갑자기 큰소리로 부르짖기시작했다. "형제들! 빨리 이리로 오시오! 이 미친 년이 우리를 귀찮게 하려는 것같소!" 구양희의 집 대문 앞에서 어슬렁거리던 대한들이 조모의 외침소리를 듣자순식간에 마치 벌떼들이 벌집에서 몰려나오듯 달려나왔다. 어떤 장한들은 크게 소리치고, 어떤장한들은 노갈을 터뜨리며, 어떤 장한들은 도리어 우스갯소리를 하며 뛰어왔다. "조 형! 갈수록 힘이 달리는구려? 이렇게 새파란 계집 하나 상대하지못하다니 말이오." 주칠칠은 비로소 이 조모라는 자가 원래 중원맹상의 수하라는 것을알아차렸다. 그녀는 십여 명의 대한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려오는 모습을 보자 도리어 조모의옷깃을 부여잡고 그를 번쩍 들어 앞으로 집어던졌다. 앞장서서 달려들던 두 명의 장한이 두 팔을벌리고 날아오는 조모의 몸을 받으려 했으나, 세 사람이 동시에 뒤로 벌렁 나자빠졌다. 뒤에서쫓아오던 장한들이 깜짝 놀라 그 자리에 멈춰 섰으나, 도리어 이번에는 주칠칠이 그 사이로 파고들어그들을 헤쳐나가기 시작했다. 그녀가 배운 무공은 비록 잡다한 것이었으나, 이러한 인물들을 상대하는데에는 더없이 뛰어난 것이었다. 그녀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남으로 차고 뒤쪽으로 쥐어박는등 마치 호랑이가 양들 무리 속에 들어간 것처럼 그들을 어지럽게 차고 때렸다. 순식간에 그 십여명의 장한들은 주칠칠에게 얻어맞아 코가 시퍼렇게 멍이 들고 얼굴이 부어올라 사지를 뻗고동서로 널부러졌다. 주칠칠은 요 며칠 동안 억눌렸던 분통이 터져올라 싸울수록 더욱거칠어졌다. 그녀는 배가 고픈 것마저 잊어버렸다. 이들 장한들은 까닭도 없이 그녀의 화풀이 대상이되고 말았던 것이다. 이들 장한들은 싸우면서 계속 슬금슬금 뒤걸음질쳤고 주칠칠은 계속그들을 쫓아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다. 그녀가 구양희의 집 대문을 막 들어서려는 순간 갑자기가볍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멈추시오!" 키가 작지만 근육이 아주 강하게 보이는 금의 대한이 손을 뒷짐진 채대문을 가로막고 서 있었다. 그의 나이는 많아야 삼십 전후였으며, 만면에는 정기가 넘치고 상당히굳센 기색이 나타나 있었다. 그 사람보다 신체가 몇 배나 더 큰 그 장한들은 그의 앞에서는 고개도제대로 들지 못했다. 이 순간 그의 눈빛은 형형하게 주칠칠의 상하를 자세히 살펴보고 있었다. 그의 미간에는 비록 주칠칠이 전개하는 무공의 다양함에 놀란 기색이 나타나 있었으나, 표정은여전히 태연했다. 주칠칠과 싸우던 대한들은 모두 그의 몸 뒤로 숨었다. 주칠칠이 계속 그대한들을 쫓아가려고 했을 때 이 사람이 가볍게 포권을 하면서 웃음을 띠고 말했다. "아가씨의 무공이 아주 뛰어나군요." 주칠칠은 천성적으로 부드러운 것에는 굽히나 강한 것에는 굽히지 않는성격이었다. 그녀는 이 사람이 이렇게 자신에게 예를 갖추어서 말하는 것을 보고 그장한들을 쫓아가려던 주먹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금의 대한이 웃으며 말했다. "종놈들이 눈은 있어도, 눈알이 없어서 아가씨께 죄를 지은 것 같군요. 아가씨께서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괜찮아요. 어떻든 얻어터진 건 그들이지, 제가 아니니까요!" 금의 대한이 멍청한 듯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으나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아가씨의 성격이 상당히 시원하시군요!" 주칠칠이 예쁘게 웃으며 말했다. "이러한 성격, 좋아하세요?" 금의 대한이 만나봤던 사람은 상당히 많았으나 이처럼 당돌한 소녀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듯 멍청히 서 있더니, 마른기침을 하면서 뛰엄뛰엄 말했다. "좋아요! 하하, 아주 좋아요." "당신 모습을 보니 틀림없이 중원맹상 구양희라는 분이겠군요?" "그렇소이다. 아가씨께서는 무슨 가르침이라도 있어서 본장을방문하셨는지?" "당신이 이미 맹상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이상, 신세 좀 지려고찾아왔어요. 먼저, 저에게 먹고 마실 수 있게 해주세요. 그러면 제가 아주 중요한 일을 당신께알려드리도록 할께요." "아가씨 같은 분은 본인은 평시에는 초청하려고 해도 감히 초청할 수 없는분인데......! 다만 오늘은 그럴 수가......." 주칠칠이 눈썹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오늘은 어떻다는 거죠? 오늘, 당신이 돈이 없어서 나를 초대하지못하겠다는 건 아니겠죠?" 구양희가 마른 웃음을 웃고 말했다. "아가씨께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오늘 강호의 거상(巨商) 냉이(冷二)어르신께서 이미 본장을 빌려 손님들과 상담을 하려 하고 계시오. 이미 사방에서 손님들이 적지 않게오셨기 때문에 본인은 감히 아가씨를......." 주칠칠이 눈을 몇 번 굴리고 갑자기 그의 말을 가로채서 웃으면서 말했다. "당신은 어떻게 제가 냉이 어르신과 장사문제로 상담하러 오지 않았다고생각하시오? 저를 그 분이 계신 곳으로 안내해 주세요." 구양희는 자신도 모르게 다시 한 번 주칠칠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녀의 차림은 비록 단정치 못했으나, 그의 기개는 대단하여 그가 심중으로 반신반의하고 있는 사이에 주칠칠은 마치 남의 집을 자기집인 양 큰걸음걸이로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구양희는 그녀의이러한 모습을 보고 더욱 그녀의 내력을 추측할 수 없어, 일순간 그녀에게 득죄하지 않는 게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씁쓸한 웃음을 뛰우면서 주칠칠을 안내했다. 대청에는 등불이 휘황하게 밝혀져 있었으며 대청 양쪽에 붉은나무의자에는 이삼십여 명의 사람이 앉아 있었다. 그들의 나이나 생김새는 비록 달랐으나, 그들의 차림새는 상당히 화려했고 그 기개가 대단하여 강호에서 모두 내노라 하는 호상거부들임을 알 수 있게했다. 그들은 구양희가 젊은 미녀를 데리고 들어오자 얼굴에 야릇한 기색을 나타냈다. 주칠칠은 어려서부터 이미 사람들이 그녀를 쳐다보는 것에 습관이 되어서사람들이 그녀를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쉬지 않고 계속 쳐다봐도 그녀는 조금도 개의치 않고도리어 이리저리 눈을 굴리어 사방을 쓸어봤다. 대청에는 갑자기 주칠칠에 대해 쑥덕거리는 소리가 일어났다. 그러나 주칠칠은 빈의자를 찾아 앉으며 큰소리로 말했다. "여러분께서는 지금껏 여자를 본 적이 없으십니까? 사업이 중요하니 먼저사업얘기부터 합시다. 제가 눈이 셋 달린 괴물도 아닌데 그렇게 쳐다보실 필요는 없지않을까요?" 그 대청을 가득 메운 호걸의 열 사람 중 여덟 사람은 그녀의 말에 얼굴을붉히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러한 모습을 보고 주칠칠은 속으로 웃음이 터지려는 것을 애써참았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그녀를 쳐다보지 못하게 말을 했으나, 자신은 계속 쉬지않고 사방을 어봤다. 그곳에 앉아 있던 이십여 명 중, 대략 육칠 명이 진정으로 사업문제로이곳에 모인 것 같았고 나머지 십여 명은 모두 표정이 날카롭고 기세가 흉맹한 무림호걸들인듯했다. 그들 중 특히 두 사람은 다른 사람과 더욱 달랐다. 한 사람은 주칠칠의 맞은편 옆에 앉아있는 사람으로서, 그의 얼굴은 상당히 깨끗했고 입술은 있었으며 몸에는 수를 놓은 비단옷을 입고있었다. 그 대청에 있던 사람들 중에 그 사람의 나이는 가장 젊어 보였으며, 생김새도 가장영준했다. 그는 마침 슬쩍슬쩍 주칠칠을 쳐다보고 있었으나, 주칠칠이 그를 쳐다보자 그의 얼굴이먼저 붉어졌다. 주칠칠은 속으로 웃으며 생각했다. (보건대, 이 인간은 처음으로 집 밖을 나와본 풋내기인 것 같군. 아가씨들보다도 더 부끄러움을 타다니.)상대가 부끄러움을 타면 탈수록, 그녀는 더욱 상대방을 집요하게 쳐다보는성격이었다. 주칠칠은 그 비단옷을 입은 소년이 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보지 못하는것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가슴이 시원해짐을 느껴 눈길을 돌렸다. 다른 한 사람은 마치 낙제한 선비처럼 초라한 행색이었다. 그의 얼굴은푸석푸석하고 비쩍 말랐으며, 듬성듬성 몇 가닥의 사냥의 수염이 나 있었다. 그가 입고 있는옷은 청색장삼이었는데 이미 여러 번 빨았던 듯 하얀색으로 변해 있었다. 이때 그 사람은 두 눈을 감고 힘없이 앉아 있었는데 마치 며칠 동안끼니를 걸러서 말할 힘도 없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의 뒤에는 한 명의 청색옷을 입은 서동이있었다. 그 서동 역시 비쩍 말라 피골이 상접해있었다. 그 서동은 한쌍의 큰 눈을 이리저리굴리며 사방을 살펴보고 있었다. 그 서동에 있어서도 이 한쌍의 큰눈이 없었다면 조금의 생기도찾아볼 수 없는 듯했다. 주칠칠은 참지 못하고 속으로 웃으며 생각했다. (저처럼 초라한 행색인데도 감히 이곳의 사람들과 사업문제를 의논하러오다니. 저 사람은 털이 다 빠진 붓이라도 사려는 것일까?)이때, 대청에서 일어났던 가벼운 소란이 점점 가라앉기 시작했다. 구양희가 가볍게 기침하면서 말했다. "지금 겨우 냉이 어르신과 가(賈) 상공만 남았습니다. 가 상공께서는이번 낙양에 오시면서 어떤 희귀하고 뛰어난 물건을 갖고 오셨는지 모르겠군요?" 그는 말을 하면서 머리에 소요건을 쓰고 몸에는 옅은 녹색의 무늬가놓여진 장포를 입고 허리에 십여 개의 전대를 찼으며, 손에는 비취가 박힌 담뱃대를 든, 허옇고뚱뚱하게 생겼으며 이상하게 치장한 사람의 얼굴로 시선이 멈춰졌다. 그의 나이는 적지 아니한듯하였으나, 수염을 깨끗이 깎아버려 이미 늙은이 이면서도 상공의 행색을 하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사방을 어보고 히히 웃으면서 말했다. "저는 최근에 갈수록 게을러져서 이번 냉이 어르신께서 이곳에 오시면틀림없이 큰 거래가 이루어질줄 알면서도 겨우 두 가지 물건만 갖고 왔습니다." 구양희가 말했다. "물건은 종류와 품질이 문제죠,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닙니다. 가대상공께서 내놓으실 수 있는 물건이라는 것은 틀림없이 희귀하고 뛰어난 것이겠지요. 상공께서는 그물건이 무엇인지 내놓으셔서 제 안목을 넓혀주시기 바랍니다." "좋은 말씀이오, 좋은 말씀! 그렇지만 강호의 친구들께서는 모두알아두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오천 냥 이하의 매매는 본인은 지금까지 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주칠칠이 눈썹을 찌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아주 대단한 기세로군! 그의 차림새나 표정으로 보아 그가 바로 강호에서 사(士), 농(農), 어(漁), 상(商), 복(卜) 오대 악한 중 그 간상 가박피(奸商賈剝皮)라고말하는 사람이란 말인가 ? 만약 그가 간상 가박피라면 그와 거래를 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큰 손해를볼 텐데.)가 대상공은 말을 마치고 이미 한 마리의 비취를 깎아 만든 두꺼비 모양의물건을 꺼내 놓았다. 그 물건의 크기는 큰 대접만 했으며, 물건 전체에서 푸른 빛이 찬란히비추고 있었다. 특히 그 두꺼비 형상에 박혀 있는 한쌍의 눈알은 바로 한쌍의 용의 눈알 만큼 큰밝은 진주로 되어 있었는데, 등불빛 아래에서 그 진주는 번쩍번쩍 빛을 발하고 있었다. 확실히대단한 물건이었다. 가 대상공이 말했다. "여러분께서는 높은 안목을 갖고 계시니, 이 물건이 좋고 나쁨은 충분히알아보실줄 압니다. 제가 쓸데없는 설명은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께서는 먼저가격을 말씀해 보시지요? " 그가 가격을 말하도록 두 번을 재촉했으나, 대청에서는 아무도 입을 여는사람이 없었다. 주칠칠이 속으로 웃으며 생각했다. (사람들이 이미 가박피의 장난질을 알고 있으니, 당연히 아무도 그와 장사를 하려고 하지 않겠지? 그렇지만, 그렇지만 저 비취로 만든 두꺼비는 오륙천 냥 이상의가치는 있는 것인데.)가 대상공의 눈빛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더니, 갑자기 키가 작고 뚱뚱하며얼핏 봐서 속임수를 쓰지 않는 솔직한 상인과 같이 보이는 사람에게 머물렀다. 그는 웃으며말했다. "시영귀(施榮貴), 당신은 보석들을 사고 파는 분인데 가격을 한번 말씀해보시지요?" 시영귀의 얼굴에 비계덩어리가 한 번 실룩거리더니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그것은. 좋소, 제가 삼천 냥을 내지요!" 가 대상공의 안색이 신중하게 가라앉더니 냉소하면서 말했다. "삼천 냥이라고요? 삼천 냥이란 말을 당신은 입 밖에 낼 수가 있단말이오? 이 비취의 가격은 차치하고라도, 이 한쌍의 진주만 보더라도...... 헤헤, 이렇게 큰 진주는하나도 찾기가 어려운 법이오. 그렇지만 지금 여기에 두 개가 꼭 같은 것이 박혀 있소. 헤헤. 당신이 만약, 이렇게 똑 같은 진주, 이만큼 큰 것을 두 개만 찾아온다면 내가 당신께 육천 냥을드리리다." "저도 그 물건이 상당히 귀한 것인줄은 압니다. 아울러 그 물건의 값으로삼천 냥은 상당히 적다는 것도 알구요. 그렇지만, 그렇지만 대상공께서 본인에게 그 물건을자세히 살펴보지 못하도록 하시니 저는 삼천 냥 이상의 가격을 부를 수가 없군요!" 가 대상공의 눈에서 갑자기 섬광이 번쩍이더니 말했다. "당신은 내가 이렇게 들고 있는데도 자세히 볼 수 없다는 거요? 이와같이 귀중한 물건은 어찌 내가 안심하고 당신이 만져볼 수 있도록 놔둔단 말이오? 당신의 말을듣건대 당신은 나, 가모를 믿지 못하겠다는 얘기요?" 시영귀 얼굴의 비계덩어리가 다시 한 번 실룩거리더니 고개를 떨어뜨리고우물쭈물 말했다. "그것은, 그것은...... 좋소. 제가 그렇다면 육천 냥을 내리다." 그의 말이 끝나자 가 대상공이 하하하고 웃으며 말했다. "육천 냥은 본전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그렇지만 나 가모는 매매할 때통쾌하게 하는 것을 좋아하오. 본인이 당신과 다음번에 거래할 때를 생각해서 이번 만큼은 내가당신께 싼 값에 이 물건을 드리도록 하리다. 그렇지만 먼저 돈을 받고 나서 물건을 넘겨주는것이 나 가모의 매매의 규칙이오. 은자는 육천 냥에서 한 냥이라도 부족하면 아니되오." 시영귀는 마치 이렇게 싼 값에 그 물건을 살 수 있을 줄은 몰랐다는 듯얼굴에는 기쁨에 찬 기색이 넘쳐흘렀다. 다른 사람들도 시영귀가 이번에는 상당히 싼 값에 물건을샀다는 생각에 감탄과 부러워하는 소리를 가볍게 냈다. 주칠칠은 속으로 생각했다. (사람들은 그를 박피, 즉 사람의 가죽을 벗기는 사람이라고 얘기를 하는데이번의 매매를 통해서 보건대 그는 정직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약간 손해를 본 듯하구나!)주칠칠은 거부의 딸로서 보석의 가치에 대해서는 상당히 높은 안목을 갖고있었다. 그녀가 봤을 때, 그 한쌍의 꼭 같이 생긴 큰 진주들은 이미 육천 냥 은자이상의 가치가 있는 듯했다. 이때, 시영귀는 이미 은자를 저울질하여 가 대상공에게 넘겨준다음 그 비취로 만든 두꺼비를 받아왔다. 두꺼비를 받은 그가 그 물건을 한두 번 훑어보더니얼굴색이 갑자기 크게 변하여 떨리는 음성으로 외쳤다. "이...... 이것, 이 비취는 한 덩어리가 아니오. 그리고...... 그리고...... 이 진주도...... 이 진주도 한 알이오. 한 알의 진주를 두 개로 나눠서 붙인 거요. 대상공,이것은...... 이것은......." 가 대상공이 험악한 웃음을 웃으면서 말했다. "아 그래요? 그점은 본인도 미처 자세히 살펴보지 못했군요. 그렇지만 물건이 문 밖에 나서면 무를 수 없다는 것, 그 규칙을 시영귀 당신은 아직껏 몰랐단 말이오?" 시영귀는 멍청하게 한동안을 서 있더니 푹 하고 의자에 주저앉았다. 그의표정은 토종 잡개보다도 더 보기 흉하게 일그러졌다. 가 대상공은 마른 웃음을 몇 번 웃더니 말했다. "본인이 여러분께 보여드리려고 가져온 두번째 물건은 바로, 바로 기적과같은 겁니다. 여러분들께서 꿈에서도 구하려고 기다리던 기적이고,하늘이 여러분들께 내려준 기적이며, 여러분들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그러한 기적입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그 기적이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왕 공자와 서동 그의 어투에는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선동하고 유혹하려는 냄새가배어 있었다. 대청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그의 손가락이지적하는 곳을 바라봤다. 그 순간 그들의 입에서는 경탄의 소리가 흘러나왔다. 가박피가 말했던 기적이라는 것은 바로 검고 치렁치렁한 머리를 어깨까지내려뜨리고 있는 백의 소녀였던 것이다. 백의 소녀는 겁먹은 표정으로 서있었다. 아름답고 맑은 얼굴은 창백하여 혈색이 없었으나, 그녀의 표정과자태는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한쌍의 부드럽고 맑은 눈동자에는 놀람과 부끄러워하는 빛이스쳐지나갔다. 마치 한 마리의 암사슴처럼. 그녀의 날씬하고 풍만한 신체는 사람들의 시선을 받자 가볍게 떨었다. 그떨림으로 인해 그녀는 더욱 부드럽고 연약하고 가련하게 보였다. 바로 이순간에 모든 사람들은 이 가련한 작은 사슴을 꼭 품고, 자기가알고 있는 가장 부드러운 말로 그녀를 위로해 주지 못한 것을한스러워하는 듯했다. 가 대상공은 그들의 표정을 바라보고 입가에 엷은 웃음을 떠올렸다. 그는교활하고 득의에 찬 웃음을 흘리며, 한 손으로 그 소녀를 자기쪽으로끌어당겨 큰소리로 말했다. "이 여인은 원래 천상의 선녀이고, 제왕(帝王)의 비빈(妃嬪)이어야 할사람이오. 그렇지만 이곳에 있는 여러분들이 전생에 무슨 덕을 쌓아서이러한 행운을 잡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는지 본인도 모르겠소이다. 적당한 가격만 낼 수 있다면 이 천상의 선녀는 영원히 그 사람에게 속하게될 것이오. 답답하고 고민이 있을 때는 그녀가 부드럽고 아름다운 노래를불러서 그 답답함과 고민을 해소시켜 줄 것이며, 적막할 때에는 그녀가당신 옆에 꼭 붙어서 그녀의 이 따뜻하고 아름다운 몸으로 당신의 적막을달래 줄 것이오." 사람들은 가 대상공의 말을 홀린 듯 취한 듯 들으면서 멍청한 표정을 짓고있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서 갑자기 한 사람이 큰소리로 외쳤다. "그녀가 그렇게도 매력적이면 당신은 왜 당신 곁에 두려고 하지 않소?" 사람들은 모두 가 대상공의 속임수를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말에 가 대상공이 '하하' 하고 웃으며 말했다. "본인인들 어찌 그녀를 내 곁에 두고 싶지 않겠소? 그렇지만 솔직히말씀드려서 내 늙은 마누라가 그렇게 가만 놔두지 않소이다. 그렇지않다면 본인이 어찌 그녀를 이곳에 내놓을 생각이나 했겠소?" 사람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여전히 의심스러운 듯, 믿지 못하는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가 대상공이 크게 외쳤다. "여러분들은 무엇을 더 기다리시는 겁니까?" 그가 갑자기 소녀의 눈처럼 흰 옷을 잡아 한 귀퉁이를 찢어내자, 그녀가입고 있는 옷보다 더 하얀 어깨와 비둘기의 가슴보다 더 부드럽고윤기나는 젖가슴이 사람들 눈앞에 드러났다. 가 대상공이 쉰 목소리로 말했다. "여러분들은 이런 계집을 본 적이나 있습니까? 만약 이 계집이 예쁘지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틀림없이 장님일 거요." 그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얼굴에 부스럼딱지가 잔뜩 난 대한이 벌떡일어서더니 큰소리로 외쳤다. "좋소. 내가 일천 냥을 내리다. 아니, 일천오백 냥을 내리다." 사방에서 즉각 많은 사람들이 다투어서 가격을 말하기 시작했다. "일천팔백 냥이오." "이천 냥이오. 아니, 삼천 냥이오." 사람들이 다투어 가격을 부르는 것을 보고 소녀의 몸은 더욱 심하게떨렸으며, 부드러운 눈에서는 수정 같은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주칠칠은 그 소녀의 모습을 보자 가련하게 느껴져 견딜수가 없었다. (저처럼 매력적인 여자아이가 돼지 같은 남자들 손에 떨어지는 것을 그냥두고 볼 수만은 없지.)그녀는 뜨거운 피가 용솟음치는 것을 느끼며 큰소리로 외쳤다. "제가 팔천 냥을 내겠어요." 사람들은 이 소리에 모두 깜짝 놀란 듯했다. 그러나 주칠칠의 맞은편옆자리에 앉아 있던 금의 소년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본인은 일만 냥을 내겠소이다." 가 대상공의 눈빛이 번쩍이며 얼굴에 기쁜 기색을 드러냈다. 다른사람들은 이들 두 사람이 제시한 가격에 이미 놀란 듯했다. 주칠칠은입술을 다시 깨물고 큰소리로 외쳤다. "이만 냥을 내겠어요." 주칠칠이 제시한 가격은 사람들을 더욱 놀라게 했다. 대청에는 다시일진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일기 시작했다. 그 소녀는 고개를 들고주칠칠을 쳐다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기쁨과 놀라움이 교차하는 듯했다. 가 대상공이 웃음을머금고 그 소년을 바라보며 물었다. "왕 공자, 어떠시오?" 금의 소년이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가 대상공의 눈빛이 다시주칠칠에게 돌아가며 포권을 하고 웃으며 말했다. "아가씨, 축하드리오. 이 하늘의 선녀와 같은 계집애는 이미 아가씨의소유물이오. 그렇지만 아가씨의 은자는 어디에 있는지......? 하하. 이만냥이라면 그 무게만도 상당하리라고 생각되는데?" 주칠칠은 그제서야 생각난 듯 우물쭈물 얘기했다. "저는 오늘 은자를 갖고 오지 않았어요. 그렇지만...... 그렇지만 이틀내에......." 가 대상공의 안색이 갑자기 신중해지면서 말했다. "아가씨께서는 농담을 하시는 거요? 은자도 없이 물건을 흥정했단말이오?" 대청에는 즉각 비웃음소리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주칠칠의 얼굴은 더욱붉어졌으며, 나아가 부끄러움이 화로 변하여 얼굴을 쳐들고 욕설을퍼부우려 할 때, 처음부터 구석자리에 앉아 있던 허약해 보이는 초라한늙은이가 갑자기 눈을 뜨고 말했다. "괜찮소. 내가 은자를 저 아가씨에게 빌려드리리다." 사람들은 더욱 놀랐다. 주칠칠도 깜짝 놀라 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저렇게 초라해 보이는 늙은이가 어디에 이만 냥이라는 은자가 있어그녀에게 빌려준단 말인가! 그러나 가 대상공이 억지로 웃으면서 말했다. "어르신께서는 이 아가씨를 조금도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 초라한 늙은이가 픽 웃으며 냉랭하게 말했다. "당신은 그녀를 믿지 못하겠지만 이 늙은이는 그녀를 믿소이다. 당신들은그녀가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하지만 이 늙은이는 그녀가 누구인지 알고있소." 가 대상공은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이 아가씨가 도대체 누군데요?" "당신 가박피가 비록 사람들을 속여서 은자를 잘 빼앗지만, 다시 속임수를삼십 년을 더 배운다 해도 그녀 부친의 머리카락 하나 속여서 뽑아내지못할 것이오. 다른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고 다만, 그녀의 성이 주씨라는것만 말해 두리다." 가 대상공은 깜짝 놀란 듯이 말했다. "그...... 그렇다면 그녀가 바로 주씨 집안의 따님이란 말씀인가요?" 초라한 늙은이는 코웃음을 치더니 다시 눈을 감아버렸다. 그러나 그곳에있던 사람들의 눈은 모두 왕방울만하게 커졌으며, 약속이나 한듯 주칠칠을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자고 이래로 돈의 마력이란 것은 어떤 사람도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하물며 가 대상공과 같은 사람은 돈의 마력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보다 몇배나 더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 즉각 웃음이 번졌다. 그 웃음속에서 심지어 그의 눈마저도 보이지 않는 듯했다. 그는 아첨하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르신께서 보증을 서시겠다면 더 드릴 말씀이 있겠습니까? 헤헤. 비비야!지금 이 순간부터 너는 바로 이 분 주 아가씨의 사람이다. 빨리건너가서 인사드리지 못할까?" 대청에 있는 사람들 중 가장 놀란 것은 주칠칠 자신이었다. 이 초라하게생긴 늙은이가 어떻게 자기를 알아보았는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더욱더가박피 같은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초라한 늙은이를 신임할 수 있는지도짐작할 수 없었다. 그 초라한 늙은이를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아무리 훑어봐도 몸에 은자 한푼 지니고 있지 않을 듯해 보였다. 그 백의 소녀는 이미 주칠칠의 면전에 도착해 있었다. 그녀의 눈에는무한한 기쁨과 따뜻한, 그리고 부끄러운 기색이 넘치고 있었다. 그녀는공손히 주칠칠을 향해 절을 한 다음, 앵무새 같이 아름답고 흐르는 물처럼우아하고 비단처럼 윤기나고 비둘기처럼 따뜻한 음성으로 말했다. "천녀(賤女) 백비비가 주 아가씨를 뵈옵니다." 주칠칠은 황급히 손을 뻗쳐 그녀를 부축해 일으켰다. 주칠칠이 아직그녀에게 뭐라고 말도 하기 전에 대청에서는 또다시 중원맹상 구양희의커다란 목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재미있는 상담은 뒤에 있습니다. 여러분께서는 본인과 마찬가지로 냉이어르신께서 어떠한 물건을 가져오셨는지 보고 싶으시겠지요?"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그렇소이다." 주칠칠은 또 호기심이 발동했다. (냉이 어르신이란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모든 사람들이 그 사람에대해서 이렇게 존경하는 모습을 보이니 틀림없이 대단한 인물이겠지?)그녀가 눈을 들어 대청 안을 쓸어보았으나, 대청 중에 있던 수십 개의눈들은 모두 그 구석자리에 앉아 있는 초라한 모습의 노인에게 쏠리고있었다. 주칠칠이 깜짝 놀랐다. (냉이 어르신이란 바로 저 늙은이란 말인가?)주칠칠이 고개를 들었을 때, 홀연 그 금의 소년의 뒤에 또 한 사람생김새가 아주 준수한 서동이 서 있었다. 이 서동이 언제 나타났는지는모르나 그의 두 눈은 깜박거리지도 않고 주칠칠을 쳐다보았다. 주칠칠은이 서동의 생김새가 매우 눈에 익다고 생각했으나, 어디서 보았는지는생각해 낼 수가 없었다. 이때, 그 초라한 기색의 노인이 두 눈을 뜨고 마른 기침을 한 다음말했다. "고아(苦兒)야! 우리가 무슨 물건을 가져왔는지 하나씩 이 분들께말씀드려라. 이 분들이 얼마의 가격을 제시하는지 보기로 하자꾸나." 그 검고 비쩍 마른 소년 동자가 힘없이 그 노인의 말에 대답하고 천천히걸어나와 말했다. "오룡차(��籠茶) 오십 짐이요." 일순간의 소란이 지나간 후 낙양성의 거상이 오천 냥에 그 물건을사들였다. 고아가 다시 말했다. "오동기름 오백 통이요. 또 휘묵(徽墨) 일천 개요." 그는 계속하여 일곱, 여덟 가지의 물건 이름을 말했다. 그가 말하는물건들은 모두 전국 각지에서 모은 토산품들로 순식간에 그곳에 있던사람들이 높은 가격으로 사들였다. 주칠칠은 은자들이 한 꾸러미 한 꾸러미 냉이 어르신께 전해지고 있었으나물건은 하나도 보이지 않음을 보고 속으로 깜짝 놀라 생각했다. (저 냉이라는 사람은 과연 거상이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구나. 사람들이이렇게 그를 신임하다니. 그렇지만,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초라한 모습을하고 있을까? 음, 그렇지! 저 사람은 틀림없이 구두쇠일 거야.)그녀가 속으로 비웃음을 띠고 있을 때 그 고아가 다시 이어서 말했다. "벽경향도미(��梗香稻米) 천오백 석이요." 가 대상공은 지금까지 제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었으나, 벽경향도미란 말을듣는 순간 눈을 빛내면서 큰소리로 말했다. "그 물건은 제가 사도록 하지요." 고아가 물었다. "얼마를 내시겠습니까?" 가 대상공이 가볍게 신음을 하더니 선심쓴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일만 냥을 내겠소." 이 벽경향도미는 비록 많이 생산되지 않는 물건이나 시가(時價)는 많아야,일 석에 이십 냥 남짓일 뿐이다. 가 대상공이 천오백 석의 벽경향도미에일만 냥을 내겠다는 것은 확실히 낮은 가격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금의소년이 갑자기 웃으면서 말했다. "저는 일만 오천 냥을 내겠습니다." 가 대상공이 깜짝 놀랐으나, 마침내 이를 깨물면서 말했다. "일만 육천 냥이오!" 왕 공자가 웃으며 말했다. "이만 냥을 내겠습니다." 가 대상공은 안색이 변하며 말했다. "이만 냥이오? 왕 공자께서는 혹시 농담하시는 건 아닙니까? 벽경향도미는자고이래로 이처럼 높은 가격에 매매된 적이 없소이다." 왕 공자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형씨께서 사고 싶지 않으시다면 아무도 형씨에게 억지로 사라고 할사람은 없습니다." 가 대상공의 얼굴색이 붉으락푸르락 하더니 이를 깨물고 한참의 시간이지난 다음 큰소리로 말했다. "좋소, 이만 일천 냥이오." 그 가격은 이미 시가를 휠씬 초과한 것이었다. 대청에 있던 사람들은가박피가 이렇게 손해를 보는 가격으로 쌀을 사들이는 것을 보고 모두놀랐다. 사방에서는 즉각 쑥덕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왕 공자가 다시 말했다. "삼만 냥이오!" 가박피는 앉았던 의자에서 벌떡 일어서며 큰소리로 외쳤다. "삼만 냥? 당신...... 당신 미쳤소?" 그러나 왕 공자의 안색이 침울하게 변하며 냉랭하게 그의 말을 받았다. "가 형께서는 말씀을 삼가시오!" 안하무인격인 가박피가 처음으로 집 밖을 나서는 듯한 왕 공자에게 약간의두려움을 느끼는 듯 더이상 악담을 하지 않고 '풀석' 하고 의자에 도로주저앉았다. 그의 안색은 이미 백지장처럼 창백해져 있었다. 고아가 다시 말했다. "더이상의 가격을 제시하는 분이 안 계신다면 이 물건은 왕 공자께서사들이는 걸로 하겠습니다." 그러나 가박피가 갑자기 큰소리로 외쳤다. "잠깐만 기다리시오!" 그는 앉았던 자리에서 뛰어일어서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본인이...... 본인이 삼만 일천 냥을 내겠소. 왕...... 왕...... 왕공자! 본인은...... 본인은 이미 능력의 범위를 벗어났소이다. 부탁이오. 더이상 나를 난처하게 만들지 말아주시오." 왕 공자가 얼굴을 펴고 웃으면서 말했다. "그럽시다. 오늘은 당신께 한 번 양보해드리는 걸로 합시다." 가박피의 얼굴에 미칠 듯한 기쁨의 기색이 나타나며 즉각 은자를 헤아려초라한 노인쪽으로 건네었다. 대청에 있던 사람들은 가박피가 세 배가 넘는 가격으로 쌀을 사들이면서이처럼 기뻐하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자리에 있던 누구도 가박피가 오늘 이렇게 손해를 보는 장사를하리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다. 고아는 가박피의 은자를 거두어들인 다음 대소하며 웃기 시작했다. 마치그의 일생 중 이처럼 시원한 일은 처음 본다는 듯이. 왕 공자의 얼굴에도 웃음이 나타났다. 이러한 모습을 본 가박피가 말했다. "당신......! 당신 왜 웃죠?" 고아가 말했다. "개봉성(開封城)에서 어떤 사람이 은자 오만 냥으로 쌀 오백 가마를사들였다는 것을 제가 들었습니다. 아마도 제가 추측컨대, 당신은 그때문에 오늘 삼만 냥 은자로 벽경향도미 오백 가마를 사들인 것이겠지요. 제 말이 맞습니까?" 가박피의 안색이 즉각 변하며 말했다. "네......, 네가 어떻게 알지?" "개봉성에서 오만 냥 은자로 쌀을 샀던 그 거부는 바로 우리 냉이어르신께서 일부러 파견한 사람이었소이다. 당신이 벽경향도미 오백가마를 사들고 개봉성으로 찾아가면, 그 사람은 이미 사라진 후일 거요. 하하. 가박피! 가박피! 당신이 우리에게 속임을 당할 날이 있으리라고는생각도 못겠지요?" 가박피의 안색은 창백하다 못해 푸르게 변했다. 그가 외쳤다. "그렇지만, 왕 공자께서......." 고아가 웃으며 말했다. "왕 공자께서도 우리 냉이 어르신의 부탁을 받아서 그렇게 했던 것이오."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가박피는 미친 듯한 소리를 지르며 그에게덮쳐갔다. 그때 냉이 선생의 두 눈이 번쩍 뜨이며, 눈에서 차가운 기운이폭사되어 나왔다. "그애를 어떻게 하시려는 거요?" 가박피는 그의 얼음처럼 차가운 눈빛을 보고 회초리로 몇 대 얻어맞은 듯뒤로 몇 걸음 물러서 한참을 멍하니 있더니,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아얼굴을 감싸쥐고 울기 시작했다. 주칠칠은 더이상 참지 못하고 소리를 내어 웃었으며, 대청에 있던 나머지사람들의 얼굴에도 기쁜 기색이 드러났다. 그들은 가박피가 속임을 당한것을 보고 순간적으로 마음이 시원해졌던 것이다. 냉이 선생은 얼굴에 미소를 띠고 말했다. "시영귀가 금방 손해를 보았는데, 고아야! 은자 삼천 냥을 시 선생에게드리도록 해라. 어떻든 그 돈은 시 선생이 억울하게 뺏긴 것으로 일부나마찾아주는 것이니 시 선생께서는 사양하지 마시기 바라오!" 시영귀는 감격해서 어쩔줄을 몰라했으며, 주칠칠도 속으로 찬탄을 금할 수없었다. 그녀는 비로소 이 초라하게 생긴 냉이 선생이 비단 대단한 인물일 뿐만아니라 그녀가 상상했던 것과 같은 구두쇠가 아님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냉이 선생은 다시 눈을 감아버렸으며, 고아의 표정도 금방무표정한 모습으로 변해 천천히 말을 했다. "그리고 또 팔백 필의 준마가 있소이다!" 그 말이 나오자마자, 대청중에 있던 두 무리의 패거리들의 표정이긴장되었으며 그들의 눈도 '번쩍' 하고 빛이 났다. 그 두 패거리 중 한패거리는 세 사람으로 얼굴이 거무튀튀한 건장한 대한들이었으며, 나머지한 패거리는 두 명으로 그 중 한 사람은 병상에서 오랜 세월을 지낸 듯얼굴이 누렇게 떠 있었고, 나머지 한 사람의 눈은 매눈처럼 날카롭고,코는 매부리코였으며, 미간에는 거만스럽고 표독한 기색이 짙게 배어 있어안하무인격인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주칠칠은 그들을 한 번 힐끗 바라본 후, 이 다섯 사람은 틀림없이 흑도의고수이며 그 무공도 약하지 않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 세 명의건장하게 생긴 대한들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첫번째 서 있던사람이 말했다. "본인은 석문호라고 하오." 두번째 사람이 말했다. "본인은 석문표(石文豹)요!" 세번째 사람이 말했다. "본인은 석문사(石文獅)라고 하오!" 세 사람은 말할 때 모두 가슴을 치켜들고 배를 앞으로 쑥 내밀고 남들을압도하는 듯한 기세를 보였으며, 그 말소리도 고의로 크게 하는 듯했다. 그들의 모습은 그곳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시위하는 듯한 기색이었다. 시영귀 등은 이 세 사람의 이름을 듣고 얼굴색이 미미하게 변했다. 그때, 구양희가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맹호강 석씨 세 분 영웅들의 대명을 강호 인물들 누가 모르겠습니까? 세분께서는 하필 직접 이름을 밝히실 필요가 있습니까?" 석문호가 웃으면서 말했다. "좋은 말씀이오! 구양 형께서는 바로 이 팔백 필의 준마 때문에우리 형제가 이곳에 왔다는 것을 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이곳에 계신여러분께서는 우리 형제들의 체면을 봐서라도 우리 형제가 빈 손으로돌아가지 않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세 형제가 소리를 내어 웃자 지붕 위의 기왓장이 흔들리는 듯했다. 그곳에있던 사람들 중에 비록 그 팔백 필의 준마를 사려는 생각이 있었던사람들도 이 웃음소리에 놀라서 입 밖으로 나오려던 말을 다시 집어삼키지않을 수 없었다. 석문호는 사방을 돌아보며 더욱 득의한 기색을 나타냈다. 그러나 바로 이순간, 매부리코를 가진 흑의의 장한이 갑자기 냉소를날리며 말했다. 석문호의 안색이 침중하게 변하며 노한 소리로 말했다. "당신 지금 뭐라고 하셨소?" 매부리코의 장한이 말했다. "그 팔백 필의 준마는 우리 형제가 사려고 한다고 말했소." "무엇을 근거로 그 말들을 사겠다는 거요?" "냉이 선생께서 여기 계시니 자연히 은자로 말을 사야 되겠지요.누가 그말들 을 강제로 뺏을까봐 그러오?" "당신.... ! 당신은 도대체 얼마를 내겠다는 거요?" " 당신이 얼마를 내든, 우리 형제는 당신들보다 한 냥을 더 내겠소! " 석문호가 노갈을 터뜨리면서 말했다. "서문교(西門蛟) ! 내가 너를 못 알아볼 줄 아는가 ? 우리 형제들은 네녀석들이 우리와 같은 무리에 속해있기 때문에 너희들에게 계속 약간의양보를 했었는데..." 그렇지만 너.... 너 , 너무 사람을 업신여기... "서문교가 냉랭하게 그 말을 가로채서 말했다. " 그랬다면 어떻게 하겠다는 거요? "석문호가 손을 들어 탁자를 내리치며 서문교의 말에 대답하려는 순간,석문표가 한 팔로 그를 잡아끌며 낮은 소리로 신중하게 말했다. " 우리 맹호강의 천 명이 넘는 형제들은 바로 이 팔백 필의 준마가도착하는 것을 기다려 큰 사업을 벌이려 하고 있소. 서문 형께서 만약우리 형제들로 하여금 빈손으로 돌아가게 한다면 우리들의 입장이난처해지지 않겠소? "서문교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 당신들 맹호강의 형제들이 이 팔백 필의 준마를 기다리고 있듯이, 우리낙마호(落馬湖)형제들은 또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소 ? 당신들이빈손으로 돌아가서 입장이 난처해지듯 내가 빈 손으로 돌아가면 또 입장이난처해지지 않겠소? "석문사 갑자기 말했다. " 사실이 그렇다면 우리가 저 사람들에게 양보해 줍시다! "그는 한편으로 말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혹, 표 두 사람을 끌고 몸을 돌려밖으로 나가려 했다. 대청에 있던 사람들이 그들 형제들이 이처럼 순순히 물러나는 것이 이상생각하는 순간, 눈앞에서 칼빛이 ' 번쩍 '하며 세 자루의 장도가 동시에서문교를 내리치고 있었다. 그들이 내리치는 장도는 ' 휙휙 '하는 바람소리를 내고 있었다. 서문교가 이공격에 적중당한다면 즉각 고기토막이 될 듯한 그런 기세였다. 그러나석씨 형제의 술수가 비록 음험하고 독랄하고 빨랐지만 서문교는 이미이러한 상황이 일어날 것을 예상하고 있었던 듯 냉소를 날리며 신형을' 번쩍 '하는 순간 그 공격을 벗어났다. 다만 ' 우당탕 '하는 소리가 들리며그가 앉았던 붉은색의 나무의자가 그 장도에 맞아 네 조각으로 동강이나버렸을 뿐이었다. 시영귀 등은 큰소리로 비명을 질러댔다. 석문호는 두 눈이 충혈되어 찢어지는 소리로 말했다. " 오늘 네 녀석이 죽지 않는다면 바로 내가 죽는다. 한 번 해 보자! "세 사람은 다시 장도를 휘두르며 동시에 덮쳐들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아무소리 없이 가만히 앉아 있던 병색이 완연한 장한이갑자기 몸을 일으켜 한 손으로 서문교를 멀찍이 잡아끌고 가더니 침중한음성으로 외쳤다. " 세 분께서는 잠시 손을 멈추고 제 말을 한 마디만 들어보시오! "비록 그의 얼굴에는 병색이 완연했으나 그의 신법의 빠름과 정확함은사람들을 놀라게 하기에 족했다. 석문호는 내리치려던 장도를 거두고 말했다. " 좋다. 용상병(龍常病)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보자. "" 우리가 여기서 싸움을 한다면 강호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해칠 뿐만아니라 구양 형의 체면을 깍일이 아니겠소? 차라리.... "그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석문호가 날카롭게 말했다. " 어떻든 그 팔백 필의 준마는 우리 형제들이 반드시 차지해야겠소. "용상병이 가볍게 웃으면서 말했다. " 당신들이 반드시 차지해야 하듯이 우리도 반드시 차지해야 되겠소이다. 그렇지만 여기에서 생사의 결전을 벌이기 보다는 차라리 사백 필씩을 나눠가지면 우리의 우정을 손상하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요? "석씨 형제들은 서로 눈짓을 교환하더니 석문표가 신중한 음성으로 말했다. " 용 형의 그 말씀도 일리는 있소! "용상병이 말했다. "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우리 두 사람이 악수로 합의를 본 것으로 합시다! "석문호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마침내 결심한 듯 말했다. " 좋소! 사백 필도 그런대로 괜찮소! "말을 마친 그는 큰걸음으로 앞으로 걸어나갔다. 용상병도 미소를 머금고마주 걸어나왔다. 두 사람은 각각 손을 뻗쳐 서로를 맞잡으려 했다. 그러나 그 순간, 용상병의 왼쪽 손에서 ' 번쩍 '하고 두 개의 물체가날아왔으며 악수를 하려고 내밀었던 오른손으로는 ' 펑 '하고 석문호의가슴을 내리쳤다. 그리고 그 왼쪽 손에서 뻗쳐 나온 두 점의 빛은석문표와 석문사의 목젖을 정확히 맞췄다. 석씨 형제 세 사람이 동시에 처참한 비명을 지르며 몸을 부들부들 떠는순간 그들은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그들은 눈을 부릅떠서 용상병을 노려보며 찢어지는 듯한 음성으로처참하게 외쳤다. " 너.... ! 너....! "그들은 더이상의 말을 입밖에 내지 못했다. 석문호는 입을 벌리고 검은피를 꾸역꾸역 토해내고 있었으며, 석문표와 석문사 두 사람의 얼굴색도이미 검은색으로 변해 있었다. 세 명의 팔팔하게 살아 숨쉬던 대한들이순식간에 세 구의 시신으로 변해버렸다. 대청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놀라서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입을 벌린 채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러나 용상병은 다시 오랜동안 병상에 시달린 듯한 무기력한 모습으로마치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자리에 돌아가 앉았다. 구양희의 얼굴에 갑자기 노한 기색이 나타났으나 어찌된 일인지 애써 그분노를 삼켜버리고 있었다. 주칠칠도 약간의 분노를 느꼈으나 곧 생각을 고쳐먹고 생각했다. (다른사람들이 아무도 상관하지 않는데 내가 상관할 필요는 없겠지?)이순간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담담하게 그 세 구의 시체를 쳐다보더니차갑게 말했다. " 사람을 죽인 후에도 매매에는 은자가 있어야 하오! "서문교가 ' 하하 '웃으면서 말했다. " 그야 당연하지요. "그는 그의 몸 뒤에서 하나의 보따리를 풀어 탁자 위에 얹어 놓았다. 그가그 보따리를 풀어 헤치자 찬란한 금빛이 눈을 어지럽게 했다. 그 보따리는황금 보따리였던 것이다. 고아가 물었다. " 얼마나 되는 거지요? "서문교가 웃으며 말했다. " 황금 이천 냥이오. 이 정도면 충분하리라고 생각하오. "그러나 지금까지 문약한 서생처럼 보이며 얼굴에는 아직 앳된티가 채가시지도 않은 왕 공자가 갑자기 미소를 짓고 말했다. " 본인은 이천일 냥을 내겠소이다! "이 말이 나오자 주칠칠도 깜짝 놀랐으며 대청에 있는 사람들은 놀랐다. 서문교가 험악하게 웃으며 말했다. " 상공께서는 농담을 하시는 거겠지요? "그러나 왕 공자는 웃음을 띠고 말했다. " 이미 그 말들 때문에 세 사람이 죽었는데 어떻게 농담을 할 수 있단말이오? "서문교가 몸을 돌려 그를 마주보면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다. 그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대청에는 살기가 더해갔다. 사람들의 시선이모두 그를 보고 있을 때 용상병은 아무소리 없이 왕 공자의 뒤에 돌아가있었다. 용상병은 천천히 손을 들어올렸다. 그러나 왕공자는 전혀 이러한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처럼 태평했다. 서문교가 냉소하며 말했다. " 네 녀석이 나의 삼 장을 피해낼 수 있다면 팔백 필의 준마는 너에게양보하마! "그는 말을 마치기도 전에 쌍장을 번개처럼 내둘러 왕 공자의 두 어깨를공격해 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용상병의 쌍장에서는 일곱 개의 차가운 빛이 ' 번쩍 '하고폭사되었다. 이들 두 사람의 전후 협공으로 비단 왕 공자가 석씨 세 형제와 같은운명에 빠질 뿐만 아니라 그 뒤에 서 있던 서동의 생명도 안전하지 못할듯이 보였다. 주칠칠이 놀란 소리를 지르며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러나 바로 이 순간 왕 공자의 소맷자락이 뒤로 휘둘려지자 마치 그의등에도 눈이 달린 듯 그리고 그 소매에도 눈이 달린 듯 일곱 개의번쩍이는 빛은 그의 소매 속으로 빨려 들어갔으며 다시 한번 소매를휘두르자 일곱 개의 빛이 날아오던 기세 그대로 그의 정면에서 공격해들어오던 서문교의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서문교는 처참한 비명을 지르며 뒤로 휘청하고 넘어졌다. 용상병의 안색이 순간 참혹하게 변했으나 도리어 침착하게 쌍장을거둬들이자 두 자루의 비수가 그의 소매에서 튀어나와 그의 손에 잡혔다. 그는 칼빛을 번쩍이며 왕 공자의 등 뒤를 찔러 들어왔다. 그 공격의독랄함과 신속함은 차치하고라도 그 두 자루의 비수의 날은 시커멓게 변해있어 극독이 칠해져 있는 것임을 쉽게 알수 있었다. 왕 공자가 이 비수에 약간의 상처라도 입게 된다면 더이상 살아서 말을 할생각은 버려야만 할 상황이었다. 그러나 왕 공자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바로 이 급박한 순간에 앉았던자리에서 의자를 들고 약간 일으키니 그 두 자루의 비수는 바로 그가앉았던 의자의 등받이의 조각을 정확히 찔렀다. 이 등받이의 조각은듬성듬성 구멍이 나 있어서 만약 왕 공자의 계산에 조금이라도 차이가있었다면 비수는 곧바로 그 듬성듬성한 구멍을 통해 정확히 왕 공자의몸에 닿을 수 있는 것이었다. 왕 공자의 조각의 구멍 위치에 대한 계산의 정확함과 시간의 정확함은실로 사람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용상병이 크게 놀라 더이상 공격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어깨를 들썩하더니몸을 돌려 밖으로 달려나갔다. 왕 공자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 이 물건은 당신 것이니 가지고 가야 되지 않겠소? "' 이 물건은 '이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그의 소매에서는 한 줄기의 차가운빛이 ' 번쩍 '하고 용상병의 등을 향해 쏘아져 나갔으며, ' 당신것이니 '라는 말에 이르렀을 때 그 차가운 빛은 이미 용상병의 등을파고들었다. 그가 말을 마쳤을 때 용상병은 처참한 비명소리를 내며 바닥에 쓰러져사지를 부들부들 떨더니 더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왕 공자는 고개를돌리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얼굴에는 여전히 미소를 띠고 있었다. 다만입으로 천천히 몇 마디를 했을 뿐이다. " 대단히 독한 암기로군. 그렇지만 이 암기는 그 자신의 것이니.... "원래 그의 소매에는 용상병이 그를 암산했던 암기 하나가 숨겨져 있었던것이다. 그는 심지어 손 한 번 내보이지 않고 낙마호에 은거하고 있던 두명의 표독한 도적들을 황천으로 보내버렸던 것이다. 대청에 있던 사람들은 그의 이러한 옷소매로 암기를 거둬들이고 발사하는무공과 이렇게 얘기하고 웃는 가운데 살인하는 그의 표독함을 보고 더욱놀라서 멍청한 표정들이었다. 주칠칠도 심장이 오싹한 기분을 느껴 속으로 생각했다. (이 책벌레 냄새가 나는 소년이 이처럼 대단한 무공을 지니고, 이처럼독한 심장을 가지고 있다니 진짜 이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일인데.....)고개를 들자 그 왕 공자 뒤에 있던 영준하게 생긴 서동이 여전히 웃음을머금은 채 그녀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한쌍의 초롱초롱한 눈에는 그녀에게 많은 말을 하고 싫어하는 듯한표정을 지어보이고 있었다,주칠칠은 놀라고 이상하고 화가 나서 속으로 생각했다. (저 녀석은 왜 저렇게 나를 뚫어질 듯 노려보는 거지? 저 녀석이 혹시나를 알고 있다는 말인가 ? 꽤 낯익은 녀석인데 어디서 만났던 녀석이지?)그는 자리에 앉은 채 미간을 찌푸리며 이리저리 생각하기 시작 했다. 그가사들인 백비비(白飛飛)는 마치 삭은 새처럼 그녀 옆에 의지하여 부드럽고사랑스러운 웃음을 띤채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그러한 모습은사람들로 하여금 마음이 동하게 하는 모습이었다. 주칠칠이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그 서동을 어디서 봤는지 생각나지않았다. 그녀는 이생각 저생각을 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심랑에게 생각이 미쳤다. (지금 심랑은 어디에 있는 걸까? 그 사람은 지금 뭘 하고 있을까? 그사람도 지금 나를 생각하고 있을까?)갑자기 구양희가 그녀 옆에서 웃으면서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 주안상이 이미 준비되었습니다. 주 아가씨께서는 같이 참석하지않으시겠습니까? "이 말은 며칠 동안 주칠칠이 들었던 말 중 가장 반가운 말이었다. 그녀는깊이 숨을 들이마신 다음 웃음을 띠고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일어섰다. 이때야 그녀는 비로소 대청 중에 있던 그 많은 사람들이 이미대부분은 나가버렸으며 대청 가운데에 널부러져 있던 시신도 치워졌음을발견했다.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속으로 생각했다,(왜 나는 심랑만 생각하면 이처럼 멍청해지는 거지?)마련된 요리들은 상당히 성대했다. 냉이 선생은 아무소리 없이 먹기만했다, 주칠칠은 일생 중 이렇게 좋은 요리들은 처음 대하는 듯한기분이었다. 비록 지나치게 많이 먹는 것이 약간 미안한 마음이 들기는했으나 그녀의 식욕이 체면을 차리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왕 공자와 그의 옆에 앉은 두 사람은 수저를 드는 둥 마는 둥하고다른 사람들이 먹는 것을 바라보기만 했다. 마치 다른 사람들이 먹는 것을보는 그 자체로 자신들은 이미 배가 부르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구양희는 쉬지 않고 계속 말을 하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자신이 주칠칠을미리 알아보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수없이 되뇌이며 다른 한편으로는주칠칠과 같은 탁자에 앉은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하기에 바빴다. 주칠칠은 먹는 데 바빠서 그가 무엇을 하는지 제대로 듣지도 못하고 다만미소를 띠고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갑자기 구양희가 하는 말이 들려왔다. " 이 분 왕 공자께서는 낙양의 세가공자(勢家公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아가씨께서는 간판에 왕삼기 (王森記)라는 세 글자가 보이면 바로 왕공자의 사업체로 생각해도 무방합니다. 왕 공자는 비단..., "' 왕삼기 '라는 세 글자가 귀에 들어오자 주칠칠은 가슴을 방망이로얻어맞은 듯 가슴이 철렁했으며 뜨거운 피가 머리로 솟구쳐올라옴을느켰다. 구양회가 그 뒤에 무슨 말을 했는지 그녀는 한 자도 제대로 듣지못했다. 눈을 들어 바라보자 왕 공자와 그 잘생긴 서동도 미소를 머금은채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왕 공자가 웃으며 말했다. " 본인의 성은 왕이고 이름은 련화라고..... "주칠칠이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 당신 ! 당신..,. 그 장의사! "왕 공자가 가볍게 웃으면서 말했다. " 주 이마씨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본인은 잘 알아 들을 수가 없군요! "주칠칠은 방금까지 불그스레 윤기가 나던 얼굴은 순식간에 창백하게변했으며 두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녀의 눈빛은 공포의 기색이 역력히 떠올라 있었다. (왕삼기 ! 이 왕련화가 바로 그 악마 같은 소년....아! 서동은 그 백의의여자였구나..... 어쩐지 그렇게 낯이 익다 했더니... 그녀가 남장을 해서내가 제때에 알아볼 수 없었던 거야.)구양희는 그녀의 안색이 갑자기 창백하게 변하고 몸을 부들부들 떠는 것을보자 크게 이상하게 여긴 듯 참지 못하고 ' 음 '하는 소리를 내고 억지로웃으며 입을 열었다. " 주 이사씨께서는.... "그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주칠칠은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앉았던 자리에서벌떡 일어섰다. 순간 ' 펑 '하는 소리가 나며 그녀가 앉았던 의자가 뒤로 그대로 넘어졌다. 주칠칠은 비틀비틀 뒤로 몇걸음 물러서서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 당신.... 당신.... "그녀는 말을 하기도 전에 갑자기 몸을 돌려 밖으로 나는 듯이 달려나갔다. 그녀의 등 뒤에서 사람들이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 주 아가씨 ! 멈추시오 ! 주 아가씨..... "그 소리들 속에는 백비비의 애처로운 소리도 섞여 있었다. " 주 아가씨 ! 저를 데려 가세요. "그러나 주칠칠은 감히 뒤를 돌아볼 용기를 내지 못하고 오직 앞만 보고달렸다. 밖은 언제부터인가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큰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그러나 주칠칠은 이것저것 살펴볼 겨를이 없어 미친 듯이 앞으로만달려나갔다. 그 왕련화의 악마와 같은 눈빛과 웃음이 계속 그녀를쫓아오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사실 어떤 한 사람이 그녀의뒤를 계속 쫓아오고 있었다. 그녀가 걸음을 멈추기 만 한다면 그녀의 뒤를쫓아오는 사람이 금방 그녀를 덮칠 듯했다. 주칠칠은 숨이 차너 더이상 앞으로 내달릴 수가 없었다. 두 눈은 쏟아지는빗물에 제대로 뜨고 있기도 어려웠다. 그녀가 만약 계속 앞으로 이렇게달린다면 틀림없이 기진맥진하여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 눈앞에 어슴푸래하게 몇 채의 집들이 보였다. 그 집들에서는 불빛이새어나오고 있었으며 문도 열려져있는 듯했다. 주칠칠은 아무 생각없이 그집 속으로 뛰어들어가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녀는 정신을 차리고나서야 비로소 이 집이 황폐한 사당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사당 안의구석에는 먼지가 수북이 쌓여 있었으며 신상은 이미 부숴져있었고 신전중앙에는 모닥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모닥불 옆에서 불을 쬐고 있는것은 머리가 이미 하얗게 세어 버린 청색옷을 입은 부인이었다. 그녀는겁먹은 듯한 표정으로 주칠칠을 바라보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 밖을 살펴봤으나 밖에서는 여전히 비가 쏟아지고 있을 뿐,그녀를 쫓아온 사람은 없는 듯했다. 주칠칠이 비로소 숨을 돌리고 옷매무새를 고친 다음 웃으며 말했다. " 할머니 ! 옆에서 불 좀 같이 쬐도 될까요? "그 청의 부인의 표정은 보기에는 매우 자상해 보였으나 주칠칠을 바라보는눈빛은 상당히 차가왔다. 그 부인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일 뿐 말은 하지않았다. 주칠칠의 머리는 이미 풀어헤쳐져 있었고 옷은 모두 젖어서 몸에 찰싹달라붙어 그녀의 몸의 곡선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고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생각했다. (다행히 이 사람이 늙은 할망구였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창피당했겠구나.)그녀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을 하며 귓볼이 화끈 달아오름을 느꼈다. 그녀는 손을 들어 대충 머리를 손질하고 그녀의 얼굴을 들어냈다. 그 청의 부인은 이 낭패한 모습의 소녀가 이처럼 아름다운 미녀였다고는 생각도 하지 못한 듯 그 차갑던 눈빛이 점점 부드럽게 변하더니 고개를 흔들고 탄식하며 말했다. " 가엾은 이이로구나...... ! 옷이 전부 젖었으니 춥지 않으냐? "주칠칠은 지금까지는 추위를 생각지 못하고 있었으나 그녀의 말을 듣자비로소 온 몸이 떨려왔다. 마수(魔手)에 빠진 말괄량이 그녀의 몸에 걸친 옷은 마치 얼음조각처럼 차갑게 느껴졌다. 청의 부인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 어떻든 이곳에 남자는 없으니 아예 젖은 옷을 벗어서 이 불에 말린다음에 입으면 조금 더 따뜻해질 것이오. "주칠칠은 부끄러워 얼굴을 붉혔지만 더이상 그 뼈를 에이는 듯한 추위를참지 못하고 손을 들어 옷을 벗기 시작했다. 비록 같은 여자의 앞이었지만주칠칠은 부끄러움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번쩍이는 불빛은 그녀의불그레하게 달아오른 얼굴과 굴곡이 뚜렷한 몸을 비추고 있었다. 청의 부인이 가볍게 웃으면서 말했다. " 다행히 나도 여자였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주칠칠은 더이상 몸에 찰싹 붙은 속옷을 더이상 벗어내릴 수 없었다. 그러나 한겹 남은 속옷은 투명한 것으로써 주칠칠의 몸의 굴곡은 이미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옷이 빨리 마르기를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이때 갑자기 밖에서 마른 기침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주칠칠이 깜짝 놀라몸을 웅크리고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 누, 누구예요? "밖에서는 침중하고도 늙수그레한 음성이 들려왔다. " 비바람이 몰아쳐서 출가한 중이 이곳에서 비를 피하고 있소이다! "주칠칠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몰아쉬고 고개를 끄덕이며 가볍게 웃고나서 말했다. " 당신은 출가인이니 군자처럼 보이는군요. 이곳으로 들어오지 않을 뿐만아니라 입구에도 가까이 다가오지 않으니....... 그러나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한 사람이 '하하' 웃으며하는 말이 들려왔다. "군자는 밖에 있지만 소인은 바로 이 집 안에 있소이다!" 주칠칠의 놀람은 말로 형용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그녀는 얼른 손을 뻗쳐아직 덜마른 옷을 움켜쥐고 가슴을 가린 다음 고개를 쳐들어 웃음소리가들려오는 곳을 바라봤다. 먼지가 가득 쌓이고 거미줄이 잔뜩 낀 대들보에사람머리가 하나 나타났다. 고양이 같은 한쌍의 눈은 주칠칠의 몸을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주칠칠은 부끄럽고 화가 나고 또 놀라서말했다. "당신......! 당신, 누구죠? 여...... 여기서 얼마나 있었어요?" 그 사람이 웃으면서 말했다. "모든 것을 충분히 볼 만큼 오래 있었소!" 주칠칠의 얼굴은 즉시 불처럼 붉게 달아올랐다. 그녀가 움켜쥔 옷하나로는 동쪽을 가리면 서쪽이 튀어나오고, 서쪽을 가리면 동쪽이튀어나와 그녀는 땅 속으로라도 기어들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 사람은 도리어 소리를 높여 웃으며 말했다. "다만 본인의 눈이 복이 없어서 충분히 보지 못했소. 아가씨의 마지막 옷한 가지를 벗은 모습을 보지 못했으니 말이오. 아깝소, 아까워! 하하!" 주칠칠은 부끄러움과 분노가 교차하는 순간에 입을 열어 욕설을퍼부어대기 시작했다. "이 강도! 나쁜 놈...... 너, 너!" 그러나 대들보 위에 얌전히 있던 그 사람이 그녀가 욕을 퍼붓기시작하자마자 밑으로 뛰어내려 주칠칠의 면전에 다가설 줄이야......! 주칠칠은 놀라는 소리를 지르면서도 입으로는 각종의 욕지거리들을 쉬지않고 퍼부어댔다. 그 사람은 다 떨어 헤진 양피저고리를 입고 있었으며 가슴은 풀어헤쳤고,왼손에는 술 호로를 들고 있었고 허리춤에는 비스듬히 칼집이 없는 단도를차고 있었다. 나이는 비록 많지 않은 듯해보였으나 얼굴 가득히 송곳 같은수염이 나 있었으며 새까맣고 짙은 한쌍의 눈썹 아래에는 고양이 눈같이생긴 눈이 있어서 마침 주칠칠의 몸을 이리저리 훑어보며 그칠줄을몰랐다. 주칠칠의 욕설이 흉하면 흉할수록 그 사람의 웃음은 더욱 득의에 찬기색을 나타내 보였다. 주칠칠이 욕을 멈추자 그 장한이 웃으며 말했다. "본인은 아가씨의 옷을 벗긴 것도 아니고, 아가씨가 옷을 벗겠다는 것을막지도 않았소. 아가씨가 이처럼 사람에게 욕을 퍼붓다니 어찌 이치에어긋나는 것이 아니겠소?" 주칠칠은 부끄럽고 원망스러워 뛰어일어나 그의 따귀를 세차게 올려붙이고싶었다. 그러나 그녀가 어찌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다만 악을 써서외칠 뿐이었다. "당신! 당신 나가요! 내가, 내가 옷을 다 입은 다음에......." 그러나 그 장한은 음흉스럽게 웃으면서 말했다. "밖에는 비바람이 세차게 몰아치는데 불쌍하지도 않소? 나를 이곳에서내쫓으려 하다니 말이오. 나처럼 다정다감한 사람이 아가씨랑 함께 있다면아가씨는 훨씬 덜 적막할 텐데......." 주칠칠은 그곳에 같이 있던 청의 부인이 틀림없이 무림 고수일거라고생각했다. 때문에 그 청의 부인이 이러한 상황을 보고 틀림없이 그녀를도와주리라고 생각했으나 그 청의 부인은 멀찍이 몸을 피하여서 얼굴에는심지어 두려운 기색마저 띠고 있었다. 주칠칠이 눈알을 굴리더니 갑자기냉소하면서 말했다. "당신은 내가 누군지 알기나 하시오? 흥, 흥! 마녀(魔女) 주칠칠은 그렇게호락호락 볼 사람이 아니에요. 당신이 만약 똑똑한 사람이라면 빨리이곳에서 빠져 나가세요. 억울하게 이곳에서 죽기 전에......." 마녀라는 이 별호는 그녀가 위급한 상황에서 임시로 생각해낸 별명이었다. 그 목적은 이 장한을 도망치게 하는 데 있었다. 그 장한은 과연 깜짝 놀란듯한 모습을 짓더니 곧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면 아가씨는 본인이 누구인지나 아시오?" "당신은 똥개죠. 짐승 같은......." "당신께 말해 드리리다. 복마금강 화화태세(伏魔金剛 花花太歲)가 바로본인의 별호요. 아가씨께서는 얌전히 내 말을 들으시오. 그렇지않다면......!" 주칠칠은 노기가 머리 꼭대기까지 뻗쳐오름을 느꼈다. 그녀는 화가 나면비록 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상태에서도 일어서서 덤벼들여자였다. 그런데 지금 이순간 비록 몸에 찰싹 달라붙는다고는 하나 옷 한가지를 걸치고 있는 이상 그녀가 더 주저할 리가 없었다. "좋아요! 보고 싶으면 보세요! 기왕이면 더 자세히 보세요. 조금 후에당신이 본 아가씨가 당신의 두 눈알을 파내버리면 당신은 보고 싶어도보지 못할 테니!" 그 장한은 세상에 이처럼 대담한 여자가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못한 듯 놀란 소리를 내더니 그 아름답고 날씬하고 투명한 주칠칠의 몸이그 앞에 달려드는 순간 도리어 그는 고개를 쳐들고 똑똑히 바라보지도못했다. 주칠칠은 용기를 내서 냉소를 날리며 한 걸음 한 걸음 그 장한에게다가섰다. 그 장한은 어쩔 수 없이 그에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뒤로물러섰다. 그의 눈은 더욱 둥그렇게 커졌다. 이때 갑자기 창밖에서 냉랭한 소리가 들려왔다. "음적(淫賊)! 밖으로 나와라!" 하나의 검은 인영이 석상처럼 그 창 앞에 서 있었다. 그는 머리에는죽립을 쓰고 턱밑에는 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비록 그 사람의모습을 정확히 볼 수는 없었으나 그는 등 뒤에 장검을 비스듬히 차고있었으며 장검 손잡이 끝에 달린 장식과 수염이 동시에 바람에 휘날리고있었다. 그 장한은 깜짝 놀란 듯 말했다. "누구한테 나오라는 거요?" 창밖의 검은 인영이 냉소하면서 말했다. "너를 제외하고 누가 있는가?" 그 장한이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아, 나 말인가요? 아, 제가 음적이었군요!" 말을 마친 그 장한이 몸을 '번쩍' 하더니 나는 듯 주칠칠의 머리를 스쳐연기처럼 창밖으로 뛰어나갔다. 주칠칠은 이 장한의 경공을 보고 깜짝놀랐다. 그러나 그 장한이 뛰쳐나가는 순간, 검광이 '번쩍' 하더니 이미그 출입구를 단단히 봉쇄해버렸다. 그 장한은 몸이 공중에 뜬 채 두 발을연거퍼 내질렀다. 검광이 한쪽으로 비끼는 순간 그 장한은 이미 폭우속으로 뛰쳐나갔다. 그 장한은 광소를 터뜨리며 예리한 소리로 외쳤다. "미친 녀석! 나하고 한 번 싸우겠다는 건가?" 창밖에 있던 검은 인영은 몸이 비쩍 마른 도인(道人)이었다. 그 도인의신법의 민첩함은 마치 영양과 같아서 검광이 다시 한 번 '번쩍' 하는 순간그 검은 이미 그 장한의 가슴으로 지쳐들어가고 있었다. 그 장한이날카롭게 외쳤다. "좋은 검법이로군!" 말을 함과 동시에 손에 들었던 술 호로를 쳐들어올리자 '땅' 하는 소리가들려왔다. 그 호로는 아주 단단한 강철로 만든 것으로써 검과 호로가부딪히는 순간, 그 도인이 들고 있던 장검은 그 진동에 못이겨 한쪽으로비스듬히 쳐졌다. 도인이 가볍게 외쳤다. "손목 힘이 대단하군!"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 도인은 이미 삼 검을 공격했다. 이 삼 초의 검세는가볍고 교묘하여 검의 끝이 살아있는 듯, 그 장한이 호로로 그것을맞받아치려 하였으나 맞받아칠 수 없게 만들었다. 주칠칠은 이 두 사람이 모두 무림의 절정고수들임을 보고 놀랍고 이상한생각에 부지불식 간에 멍하게 그 모습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뒤에 있던 청의 부인이 조용히 말했다. "아가씨, 옷을 입으려면 빨리 입으시오!" 주칠칠은 얼굴을 붉히며 옷을 줏어들었다. "고마워요!" 그녀는 아직도 축축하게 젖은 옷을 급히 입고 다시 밖을 바라보았다. 그폭우 속에서는 한 줄기의 검광이 빙글빙글 춤추듯 돌고 있었으며 그삼험한 검광은 쏟아져내리는 빗방울들을 사방으로 튕겨내고 있었다. 그 도인의 검법은 아직 충분히 그 정수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듯했으나그 빠르기는 비할 데가 없었다. 검광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일으켰고,한검에 이어 계속되는 한검은 모두 치명적인 살수들이었다. 주칠칠은볼수록 놀랐다. 이 도인의 검법은 칠대 고수 중의 옥면요금 신검수보다 더뛰어난 듯했다. 그 장한도 당황한 듯 크게 소리쳤다. "미친 놈! 나는 네 녀석과 원수진 일도 없는데 네 녀석은 내 목을 원한단말이냐 ?" 그 도인이 냉랭하게 말했다. "누구든, 그리고 무슨 까닭이든 본좌(本座)와 싸움을 시작하면 본좌의보검은 절대 상대를 용서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네 녀석과 원수진 일이 없는 사람도 죽여야 한단 말인가?" "본좌의 보검에 죽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으로 여겨야 할 것이다!" "모질구나, 모질어!" 그 두 사람이 말을 나누는 사이에 도인은 이미 이삼십 검을 격출해내어 그장한의 손발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그 장한은 방심하는 사이에 입고 있던양가죽저고리의 양털이 베어져 빗 속에서 사방으로 어지러이 날았다. 도인은 이순간 장한의 좌측 젖꼭지 밑 심맥을 빠르게 찔러 들어갔다. 그일검은 빠르고 험악하고 독랄하고 정확했다. 주칠칠은 더이상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그 사람이 지은 죄는 죽음을 당할 정도는 아니니 이제 그만 놔주세요!" 그러나 그녀의 이 말은 이미 필요가 없었다. 그가 아직 말을 끝내기도전에 그 대한의 가슴에서 갑자기 흰 빛이 '번쩍' 하더니 도인의 검광과맞부딪쳤다. 순간 '띵' 하는 가벼운 소리가 들리면서 도인은 뒤로 세걸음이나 물러섰다. 주칠칠은 도인의 손에 들고 있던 강철로 만든 장검이 반쪽으로 부러져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장한은 그 위기일발의 순간에 허리에 차고 있던 단도를 뽑아들어 검을막았던 것이다. 장한은 크게 웃으며 말했다. "대단한 친구로군! 나로 하여금 허리에 차고 다니는 신도(神刀)를 뽑도록만들다니! 당신의 검법은 이미 현 무림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것이오!" 도인은 검을 수평으로 한 다음 가슴 앞까지 끌어올려 경계의 태세를취했다. 그러나 그 장한은 진격하지 않고 광소를 날리며 삼 장 밖으로날아가버렸다. 그의 맑은 웃음소리가 비바람 속에서 들려왔다. "아가씨! 옷을 벗을 때는 먼저 사방을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시오. 아셨소?" 웃음소리가 점점 멀어지며 순식간에 그 장한의 종적은 사라져버렸다. 도인은 박아놓은 말뚝처럼 비바람 속에 우뚝 서 있었다. 손에 들고 있던장검이 조금씩 조금씩 밑으로 쳐지고 있었으며 빗방울들이 그 죽립의가장자리에서 한 방울씩 떨어져내리고 있었다. 주칠칠도 한참을 멍하니있다가 비로소 깜짝 놀란 듯 말했다. "도인께서는 얼른 들어오세요." 그 도인은 천천히 몸을 돌려 느릿느릿 걸어왔다. 주칠칠은 그 도인의몸에서 짙은 살기를 느꼈으나 어떻든 자신의 은인이었기 때문에 도인을안으로 들어오도록 불렀던 것이다. 도인은 이미 문 안으로 한 발짝 들어와있었다. 주칠칠이 옷깃을 여미며 말했다. "방금 도장께서 저를 도와주셔서 제자는......." 도인은 갑자기 냉소를 날리며 주칠칠의 말을 잘랐다. "너는 내가 누구인지나 아는가? 내가 왜 너를 구했는지나 아는가?" 주칠칠은 깜짝 놀라서 어떻게 대답해야 할 바를 몰랐다. 도인이 냉랭하게말했다. "본좌는 직접 너를 데려가기 위해서 네가 다른 사람 손에 떨어지는 것을원치 않았을 뿐이다." 주칠칠은 크게 놀라 물었다. "당신! 당신은 도대체 누구세요?" 도인은 천천히 손을 들어올려 눈썹까지 푹 내려 썼던 죽립을 걷어내고진면목을 나타냈다. 불빛이 번쩍이는 속에서 그녀의 안색은 납황색이었으며 미간에는 음침하고차가운 기색이 가득차 있었다. 그는 바로 무림 칠대고수 중 하나인 청성 현도관주 단홍자(靑城 玄都觀主斷。子)였던 것이다. 주칠칠은 그 도인이 단홍자임을 보고 도리어 마음이 안정되어 속으로생각했다. (단홍자였군! 그 장한이 이 도인의 무술이 현 무림계의 다섯 손가락 안에드는 검사의 수준이라고 했던 말이 과연 틀린 말이 아니었구나! 그렇지만그 장한은 또 어디서 온 사람이지? 무공이 강호 칠대고수와 막상막하일정도인데도 나는 어떻게 무림 중에 이러한 인물이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없을까?)그녀는 곧 그 장한에 대한 생각을 떨쳐버리고 웃음을 띠며 단홍자에게물었다. "도장과는 진정 인연이 깊은 것 같군요? 여기서 다시 단홍 도장을 뵙게되다니요! 그렇지만 도장께서 방금 저를 어디로 데려가신다고 하셨는데도대체 무슨 까닭인지 알고 싶군요." 단홍자가 말했다. "바로 화예선 때문이다." 주칠칠은 속으로 깜짝 놀랐으나 얼굴에는 여전히 웃음을 띠고 말했다. "화예선은 지금 ' 인의장 '에 있는데 도장께선 아직 그 사실을 모르세요?" "사실이 그러하다 해도 본좌는 너를 데리고 가서 확인해야 겠다." "죄송하지만 저는 다른 볼 일이 있어요. 가서 확인하고 싶으면 도장 혼자가서 확인하도록 하세요!" 갑자기 단홍자의 눈에서 살기가 번득이며 날카로운 소리로 말했다. "대단한 계집이로구나! 간사한 말로 본좌를 속이려 들다니...... 본좌가강호를 돌아다닌 지 이미 수십 년이 지났는데 어찌 너 같은 어린계집애에게 속을 것 같단 말인가?" "제가 드린 말씀은 모두 사실이에요! 만약 제 일이 아주 중요한 것이아니라면 도장과 같이 가서 확인하겠는데......." "본좌를 만난 이상 더 중요한 일도 일단 접어둬야 할 것이다!" 주칠칠은 심랑을 제외한 누구의 큰소리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그녀의 눈이 크게 떠지는 순간 노한 목소리로 외쳤다. "끝까지 가지 않겠다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자기의 보검을 이름도 모는소년에게 절단당하는......" 단홍자는 갑자기 안색이 푸르게 변하며 날카롭게 소리쳤다. "가기 싫어도 가야만 할 것이다!" 검광이 '번쩍' 하더니 주칠칠의 좌우 양 어깨를 겨누고 지쳐들어왔다. 주칠칠이 냉소하며 말했다. "당신은 내가 당신을 겁내는 줄 아세요?" 그녀는 천하에 아무도 겁나는 사람이 없는 여자였다. 상대방이 손에장검을 들고 위협을 한다 해도, 또 천하 무림계의 절정고수라 해도 화가나면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그녀의 날씬한 허리가 약간굽어지는 순간, 그녀는 그 번쩍거리는 검광을 향해 마주 쳐나가며회양칠십이로 대소금나(淮陽七十二路 大小擒拿) 수법을 전개하여 단홍자의장검을 빼앗으려 했다. 단홍자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하늘이 높고 땅이 넓은 줄 모르는 계집애로군! 본좌가 먼저 너의오른팔을 잘라내고 나서 따끔한 교육을 시키겠다!" 그의 검광은 '휙휙' 소리를 내며 주칠칠의 오른팔을 향해 급하게몰아쳐왔다. 주칠칠은 전투 경험은 풍부하지 않았으나 머리는 매우총명했다. 그녀는 단홍자의 이러한 말을 듣자 눈을 한 번 굴리더니큰소리로 외쳤다. "좋아요! 당신이 만약 나의 다른 부분을 상하게 한다면 당신은 짐승만도못한 인간이에요!" 말을 마친 그녀의 공격은 더욱 대담해졌으며 날카로웠다. 오른팔을제외하고 다른 부분은 크게 빈틈이 나타났으나 그녀는 상관하지 않았다. 그녀가 방어할 때도 다만 오른팔을 방어할 뿐이었다. 그에 따라 초식은더욱 대담하고 날카로워져 순식간에 단홍자와 대등한 싸움을 할 수있었다. 단홍자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아주 교활한 계집이군!" 검광이 '번쩍' 하는 순간 일검이 주칠칠의 좌측 가슴을 공격해 들어왔다. 주칠칠의 좌측은 이미 빈틈이 크게 나 있었으며 만약 단홍자의 검 끝이 그장한에 의해서 잘려나가지만 않았다면 그의 이 일검은 주칠칠의 가슴에구멍을 뚫어놨을 것이다. 그녀는 단홍자의 검 끝을 완전히 피하지는 못하여 역시 좌측 어깨의 옷이찢겨져 나가 희고 매끄러운 어깨가 드러났다. 주칠칠은 깜짝 놀라 대갈했다. "당당한 일파의 종사(宗師)가 자기가 뱉은 말을 지키지도 않겠다는건가요?" 그러나 그녀는 단홍자가 자기가 앉은 탁자 앞에 놓여 있는 요리들에 침을뱉어 다른 사람이 먹지 못하게 하는 그런 비열한 사람이라는 것은 모르고있었다. 이러한 사람이 그보다 더 비열한 짓이라고 하지 못하겠는가. 단홍자가 냉소를 터뜨리는 순간 검광은 밑에서 위로 뻗쳐 올라왔다. 그가 사용하는 것은 무공초식 중에서도 가장 음독하고 가장 하류라고 하는요음식(僚陰式)이었다. 주칠칠은 필사적으로 몸을 뒤집어 그 공격을 피해냈다. 그녀는 이 당당한 검법의 대가가 여자에게 이러한 하류의 초식을 사용할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녀는 놀라고 화가 났을 뿐만 아니라부끄러움에 얼굴이 금방 달아올랐다. 그녀는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이 짐승! 너는 짐승만도 못한 녀석이야!" 단홍자가 냉랭하게 그 말을 받았다. "그렇다면 오늘 너는 짐승의 손에 반드시 사로잡혀야 할 것이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는 다시 또 오륙 검을 공격해 들어갔다. 주칠칠은놀라고 부끄럽고 화가 났으나 그녀의 몸은 이미 단홍자의 검광에 겹겹이포위되어 반격을 할 여지가 없었다. 단홍자의 얼굴에 험악한 미소가 나타나더니 장검으로 주칠칠의 가슴을찌르고 배를 가로로 휘젓고 음부를 후벼파는 독랄하고 음험한 초식을 계속쏟아부었다. 주칠칠은 일파종주의 신분으로서 여자에게 이처럼 음험하고비열한 초식을 전개하는 것을 보고 그리고 자기 자신이 곧 이러한 사람의손에 떨어지리라는 생각을 하자 그녀의 전신에서는 식은땀이 솟아나왔다. 손발의 맥이 풀렸으며 가슴에서는 말할 수 없는 두려움과 비통한 기분이솟구쳐 올라왔다. 그녀는 참지 못하고 욕설을 퍼부었다. "네 녀석만 짐승이 아니라 하늘도 짐승이야!" 그녀는 요 이틀 동안 계속 위험을 당했을 뿐만 아니라 그가 만난 사람들은모두가 더럽고 창피를 모르는 음적들이었다. 그녀가 하늘을 탓하는 것도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 청의 부인은 놀라서 멍청해진 듯했다. 그녀는 쉬지 않고 나무조각들을하나씩 하나씩 계속 불 속으로 집어던졌다. 그에 따라 한 줄기의 흰연기가 용이 승천하듯 꿈틀거리며 피어올라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이때이미 주칠칠이 입은 옷은 앞가슴과 등이 대여섯 군데나 찢어져 있었다. 주칠칠이 입은 옷은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으나 단홍자의 얼굴에는 득의에찬 웃음이 흘러내렸다. 그의 차가운 외모 속에는 다년간의 금욕을 요구하는 출가생활로 인해서거센 불길이 숨겨져 있는 듯, 이 불길은 시시각각 그를 불태웠으며 그는그 고통에 금방 미칠 듯한 그러한 기세였다. 그는 이순간 손에 들고 있는 장검을 통하여 이 거센 불길을 발설하고있었다. 그는 조급히 주칠칠을 제압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다만 주칠칠이 그의 검아래에서 신음을 발하고 고통에 몸부림치는 것을 즐기려고 하는 듯했다. 주칠칠이 두려워하면 두려워할수록 괴로워하면 괴로워할수록 그의 가슴에있는 불길은 그 발설한 후의 만족을 느끼는 듯했다. 원래 모든 사람의 가슴에는 거센 불길이 있게 마련이다. 다만 그 불길을발설하는 방법이 서로 다를 뿐이다. 그런데 단홍자의 발설 방법은 사람을학대하고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 그러한 방법이었다. 그는 다른 사람과 싸움을 할 때 상대가 자신의 검 아래서 몸부림칠 때만비로소 진정한 기쁨을 얻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누구와 싸움을 하든아주 독랄하게 공격을 가했다. 주칠칠은 그의 눈빛과 미친 듯한 웃음을 보면서 가슴 속에서는 분노와조급한 마음이 끓어올랐으며 그에 따라 손발의 맥이 풀려버렸다. 그녀는생각했다. (하늘이 이렇게 나를 저주한다면 차라리 죽어버리는 게 나을지도 몰라.)이렇게 생각한 주칠칠은 그녀가 단홍자의 검 끝을 향해 자신의 몸을던지려고 했다. 순간, 단홍자의 안색이 급격히 변하더니 공격해 들어오던검식도 동시에 멈췄다. 그는 코를 몇 번 실룩거리며 무슨 냄새를 맡는듯하더니 고개를 돌려 그 청의 부인을 바라봤다. 그의 눈에는 놀라움과두려운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찢어지는 듯한 음색으로 말했다. "네년! 네년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그는 갑자기 발을 구르더니 큰소리로 외쳤다. "본좌가 오늘 여기에서 당할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구나!" 그는 몸을 훌쩍 날려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러나 문 밖에로 나가기도 전에그는 창틀에 부딪쳐 넘어졌다. 심지어 그의 머리에 쓰고 있던 죽립마저도창에 부딪혀 부서져버렸으며 그의 몸은 진흙탕 속으로 넘어졌다. 그는 그진흙탕 속에서 몇 번 구르더니 이미 잘려버린 검에 의지하여 일어서더니삼십육계 줄행랑을 쳤다. 주칠칠은 놀랍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하여 멍청해져 있었다. (그는 분명히 승기를 잡고 있었는데 왜 저렇게 낭패한 모습으로 도망을치는 걸까?)그녀가 눈을 돌려 바라보았을 때 그 모닥불 속에서는 여전히 하얀 연기가꿈틀꿈틀 피어오르고 있었으며 그 청의 부인은 돌부처처럼 사방으로흩어지는 연기 속에서 꼼짝도 않고 앉아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그 자상해보이는 얼굴에는 이미 야릇한 웃음이 번지고 있었으며 눈빛도 요기가 넘쳐흐르고 있었다. 주칠칠은 가슴이 철렁하여 떨리는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혹시, 혹시 그녀가......?" 그러나 그녀는 말을 마치기도 전에 자신의 손발이 조금의 기력도 없으며머리도 이상하게 어지러움을 느꼈다. 그녀는 이때서야 비로소 단홍자가 왜그렇게 도망쳤는지를 알아차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자상해보이는 청의부인은 악마였던 것이다. 그녀가 피우는 모닥불 속에서 피어오르는 하얀연기는 사람을 미혹시키는 독성을 가진 미혼약이었던 것이다. 그녀는누구란 말인가? 그녀는 왜 이렇게 하였단 말인가? 그러나 주칠칠은 더이상생각을 계속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달콤하고 거역할 수 없는 잠이 쏟아져서눈꺼풀이 갈수록 무거워짐을 느낄 수가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그 자리에 스르르 쓰러져내렸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주칠칠이 잠에서 깨어났을 때, 그녀의몸에는 이미 마른 옷이 입혀져 있었으며 그 자리는 따뜻했다. 그리고푹신하기가 구름과 같은 침대에 자신이 누워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가겪었던 추위와 습기와 공포는 이미 그녀에게서 멀리 떠나버린 듯했다. 그녀가 겪었던 추위와 공포를 생각하자 그녀는 악몽을 꾼 듯한 생각이들었다. 그러나 눈을 돌려 바라보자 그 청의 부인은 여전히 그녀의 곁에앉아 있었다. 자신이 있는 곳은 여관이었으며, 주칠칠은 침대에누워있었고 청의 부인은 그 침대 모서리에 앉아 있었던 것이다. 그녀의얼굴은 이미 그 자상하고 친절한 모습을 회복하고 있었으며 따뜻하게그리고 또 부드럽게 주칠칠의 얼굴을 쓰다듬고 있었다. 청의부인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얘야, 깨어났느냐? 네가 병이 든 모양이다. 좀더 자도록 해라!" 주칠칠은 자신의 얼굴을 쓰다듬는 청의 부인의 손길이 마치 독사가 자기의얼굴을 기어다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그 손을 밀어내려고 손을들어올리려 했으나 팔에는 조금의 기력도 없어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깜짝 놀라 소리쳤다. "당신은 도대체 누구죠? 왜 나를 이곳으로 데려왔죠? 도대체 나를 어떻게하려는 거예요?" 그러나 그녀는 입술이 달싹거렸을 뿐 한 마디도 입 밖으로 나오지는않았다. 주칠칠은 너무나 놀라 멍청해져 버렸다. (이...... 이 요부가 나를 벙어리로 만들어버린 것일까?)그녀가 며칠 동안 당했던 놀라움은 비록 많았으나 그 놀라움들을 이순간의놀라움에 비교한다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청의 부인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네 얼굴이 더 창백해진 것을 보니 병이 더욱 심해지는 것 같구나. 조금더 쉬도록 해라. 이 고모가 조금 있다가 너를 데리고 밖에 나가 바람을쏘여주마!" 주칠칠은 청의 부인을 바라보며 크게 외쳤다. "난 병들지 않았어요! 병들지 않았어요! 당신...... 당신 요부가 나를이렇게 만들어버린 거죠!" 그녀는 온 힘을 모아 소리쳤으나 말소리는 한 마디도 입 밖으로 나오지않았다. 자신이 이미 이러한 비참한 상황에 빠진 것을 알아차린 주칠칠은이후에 무슨 더 흉악한 일을 당할지 더이상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 애썼으나 이미 눈물이 두 볼을타고 주르르 흘러내렸다. 청의 부인이 밖으로 나갔다가 한참 후 돌아와 침대에서 주칠칠을 안아일으켰다. 점원 한 사람이 그녀를 따라들어와 가련한 듯한 눈빛으로주칠칠을 바라보고 탄식하며 말했다. "노부인께서는 정말 인내심도 많으시군요!" 청의 부인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내 이 제자는 어려서 부모를 잃고 또 거기에다가 신체가 불구이니 내가애를 돌보지 않는다면 누가 돌본단 말이오. 아이! 이것도 운명인것을...... 다른 방법이 있겠소?" 그 점원은 계속 탄식소리를 하며 말했다. "노부인은 정말 드물게 보는 좋은 분이시군요!" 주칠칠은 그 점원의 가련하다는 눈빛도 거북살스러웠을 뿐 아니라 그의이러한 말은 더욱 듣기 싫었다. 그녀의 가슴은 끓어오르는 분노로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그녀는 한입에 이 요부를 물어뜯고 싶었으나 지금의 그녀 상태는 파리 한마리 죽일 힘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이 요부가 하는 대로 자신의 몸을맡길 수밖에 없었다. 그 청의 부인은 그녀를 싸안고 나가더니 노새 등에 태우고 자신은 노새의고삐를 잡았다. 그 점원은 이러한 모습을 보더니 더욱 감동한 듯 갑자기 품속에서 은자 몇닢을 꺼내 얼른 달려와 청의 부인의 손에 쥐어주며 말했다. "숙박비는 그만두도록 하세요! 이 은자는 제발 받아주십시오!" 청의 부인은 크게 감동한 듯 울먹이는 소리로 말했다. "젊은이! 젊은이는 진짜 좋은 사람이오!" 그 점원은 금방 울음이라도 터뜨릴 듯 눈을 몇 번 문지르더니 얼른 고개를돌렸다. 그리고 재빨리 여관으로 뛰어 들어가버렸다. 주칠칠은 이 멍청한 점원의 따귀를 한 대 올려 붙이고 싶었다. 그녀는속으로 욕설을 퍼부어댔다. (이 멍청한 녀석, 이 요부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다니...... 가서죽어버려라. 이 세상 사람 모두 깨끗이 죽어버려라.)노새는 터벅터벅 앞으로 걸어갔으며 그녀의 눈에서는 눈물이 줄줄흘러내렸다. 이 요부는 도대체 그녀를 어디로 데려가고 있는 것일까? 도대체 그녀를 어떻게 하려는 것일까? 길을 가는 행인들은 모두 고개를 돌려 그녀들을 쳐다보았다. 주칠칠이 이전에 길을 갈 때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부러운 눈길을받았는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녀를 쳐다보는 것을 그녀는조금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옛날과 다른 이상한 점은 이사람들이 그녀를 한 번 바라보고는 다시는 더 이상 바라보려 하지않는다는 점이었다. 주칠칠은 이 사람들이 그녀를 더 자세히 바라봐서그녀가 이 요부에게 납치된 것을 알아내 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행인들은비단 그녀를 두 번 바라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녀를 한 번 보고나서는도리어 고개를 외로 꼬고 지나가는 것이었다. 그녀는 원망스럽고 이상하고 분통이 터져 올랐다. 그 노새의 등에서미끄러져 떨어져 죽어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청의 부인은 알게 모르게그녀를 단단히 부축하고 있어서 그녀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이렇게한참을 걸어가자 태양이 점점 더 높아졌으며 청의 부인이 부드럽게말했다. "얘야! 피곤한가 보구나? 앞에 찻집이 있는 것 같은데 우리 가서 뭘 좀먹고 다시 길을 재촉하도록 하자꾸나!" 그녀가 부드럽게 말을 하면 할수록 주칠칠은 더욱 그 요부가원망스러웠으며 그녀의 가슴에서는 피가 솟구쳐나올 듯하였다. 그녀는 평생 동안 이렇게 다른 사람을 원망해 본 적이 없었다. 찻집 입구와 그 주위 길가에는 마차와 말들이 많이 있었으며 그 찻집은손님들로 가득차 있었다. 차를 마시러 온 손님들은 청의 부인과 주칠칠이걸어 들어오자 행인들과 마찬가지로 동정과 가련함이 섞인 눈빛을 보였다. 주칠칠은 미칠 듯 했다. 이순간 누가 그녀로 하여금 이 요부의 악독함을말할 수 있게 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어떤 일을 시키든 그녀는 달가운마음으로 받아들일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 찻집은 이미 빈 자리가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들어서자마자 즉각자리를 양보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마치 그 사람들은 모두 이 청의부인의 선량함과 인자함에 감동된 듯한 모습들이었다. 주칠칠은 이순간심랑이 갑자기 이곳에 나타나 주기를 원했으나 사방에는 심랑의 그림자도찾아볼 수 없었다. 그녀는 속으로 원망스럽게 외쳐댔다. (심랑! 심랑! 도대체 어디 가신 거예요? 나를 이렇게 상관하지 않겠다는건가요? 당신에게 다른 여자라도 생긴 거예요? 이 응큼한 사람! 이 양심도없는 사람!)그녀는 본래 자기 자신이 심랑의 곁을 떠난 것이지 심랑이 그녀의 곁을떠난 것이 아님은 잊어버린 듯했다. 여자란 다른 사람을 미워하게 되면 원래가 전혀 이치를 생각하지 않는그러한 동물이다. 특히 미워하는 대상이 그 여자가 마음 속 깊이 사랑하던사람이었다면 그녀의 앞에서 어떠한 말로도 그녀를 이해시킬 생각은버려야만 한다. 갑자기 두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가 급히 달려오더니 그 찻집 문 앞에멈춰섰다. 말은 대단한 준마였으며 마차 역시 새로 칠을 하여 번쩍거렸다. 그 마차를 모는 마부의 오른손에는 채찍을 들었고 왼손에는 말의 고삐를들었는데 그 기세가 대단해 보였다. 차를 마시던 손님들은 속으로 눈썹을찌푸리며 생각했다. (이 차에 탄 녀석은 틀림없이 벼락부자겠군!)마부가 마부석에서 뛰어내리더니 공손히 마차의 문을 열었다. 마차속에서는 마른 기침이 몇 번 들리더니 천천히 한 사람이 걸어 내려왔다. 그 모습은 틀림없는 벼락부자의 모습이었다. 그의 비대한 몸에는 지나치게몸에 꼭 맞는 짙은 녹색의 장삼을 걸치고 있었다. 그 장삼은 얼핏 보아도그 사람보다 대략 삼십 근 이상은 덜 나가는 마른 사람이 입어야만 적절한옷이었다. 그의 나이는 이미 사십줄에 들어섰으나 도리어 젊은 공자의차림을 하고 있었다. 왼손에는 금색줄이 박힌 부채를 들고 있었고 오른손에는 비취가 박힌담뱃대를 들고 있었다. 그리고 허리춤에는 금빛이 번쩍번쩍 빛나는일곱,여덟 개의 금조각으로 수놓은 전대를 차고 있었다. 그 사람은 마치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돈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겁이 난다는 듯 허리춤에 차고 있던 금조각이 박힌 전대를 열어젖혔다. 그속에서는 찬란한 금색이 번쩍번쩍 빛났다. 사람들은 그의 이러한 행위를보고 모두 구토를 느끼는 듯했다. 그러나 그 전신에 돈냄새를 풍기는장사치의 뒤에는 백의를 입은 선녀처럼 아름다운 소녀가 따르고 있었다. 그 소녀는 마치 작은 새가 사람을 의지하듯이 그 장사치의 뒤를 따라들어오고 있었다. 그 소녀는 마치 연꽃이 방금 피어나듯 그 아름다움이인간세상의 사람이 아닌 듯했으며 더욱이 사람의 가슴을 아리게 하는 그가련한 모습은 더욱 사람의 혼백을 뺏는 듯했다. 차를 마시던 사람들은눈썹을 찌푸리고 탄식을 하며 중얼거렸다. "어떻게 저렇게 아름답고 신선한 꽃이 쇠똥 위에서 피어났단 말인가?" 그러나 주칠칠은 이 두 사람을 보자 가슴 속에서 기쁨이 미칠듯이솟구쳐올랐다. 이 뚱보 장사치는 가박피였으며 백의 소녀는 바로 그가련한 소녀 백비비였던 것이다. 그녀는 백비비가 다시 가박피의 수중에떨어진 것을 보고 탄식을 금할 수 없었으나 이순간 그녀가 아는 사람을만났다는 것은 그녀가 구출될 희망이 있다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녀의기쁨은 대단했던 것이다. 이때 마침 주칠칠의 왼쪽에 빈자리가 하나 있었다. 가박피는 기세 좋게백비비를 데리고 그 자리에 앉았다. 백비비는 공교롭게도 주칠칠의맞은편에 앉았다. 이순간 주칠칠은 백비비가 고개를 쳐들어 자신을 바라봐주기를 갈망했다. 심지어 가박피도 자기 자신을 쳐다봐주기를 원했다. 그녀는 눈을 크게뜨고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마침내 백비비가 고개를 쳐들었으며 가박피도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나가박피는 그녀를 바라보자마자 얼굴에 갑자기 괴롭다는 기색이 나타났으며가래침을 땅 위에 '탁' 하고 뱉더니 급히 고개를 돌려버리는 것이 아닌가? 백비비가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비록 가련하다는 빛이 떠올랐으나그녀도 주칠칠을 모른다는 듯 웃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다가와서 아는체 하지도 않았다. 주칠칠은 놀라고 분통이 터지고 더욱이 실망했다. 가박피가 그녀를 모른척 하는 것은 그렇다고 쳐도 백비비가 어찌 이렇게 무정할 수 있단말인가. 그녀는 속으로 탄식하며 생각했다. (말세다! 말세야! 세상 사람들은 간사한 무리들이 아니면 모두 무정한무리들이로군. 내가 이러한 세상에 미련을 갖고 있을 필요가 있단말인가?)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삶에 대한 미련이 사라져버려 죽고 싶다는 마음이더욱 강해짐을 느꼈다. 그때 청의 부인이 가볍게 말했다. "얘야, 목이 마르겠구나. 차 한 모금을 마시렴!" 이렇게 말한 청의 부인은 찻잔을 주칠칠의 입가에 갖다 대고 억지로주칠칠의 얼굴을 들어 올린다음 차를 그녀의 입에 쏟아부었다. 주칠칠이속으로 생각했다. (다른 방법으로는 죽을 수가 없으니 먹지도 않고 쉬지도 않으면 죽을 수있겠지!)생각을 마친 그녀는 입 속에 들어온 차를 모두 그 탁자 위에 뱉어버렸다. 그녀가 뱉어낸 찻물은 새로 칠한 탁자 위에 그대로 쏟아졌으며 그 탁자는찻물에 의해 거울처럼 변했다. 주칠칠이 무심코 고개를 숙여 그 탁자를 바라본 순간, 그녀의 피는 마치굳어버린 듯했다. 탁자에 비친 그녀의 모습은 이미 크게 변해 있었던것이다. 옛날의 그 꽃처럼 아름답던 얼굴은 지금은 이미 부스럼 딱지가더덕더덕 붙어 있는 얼굴로 변해 있었다. 옛날의 오똑한 코와 앵두 같은입술은 지금은 찌그러진 코와 비뚤어진 입술로 변해 있었다. 옛날의버들가지처럼 아름답게 생겼던 눈썹은 지금은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 순식간에 주칠칠의 영혼은 갈갈이 찢어지는 듯했다. 그녀는 탁자에 비친 귀신과 같이 생긴 모습이 자기의 얼굴모습이라고는생각할 수도 없었다. 아름다운 여자는 자기의 아름다움을 생명보다도 더 중요하게 여기는법이다. 옛날의 그녀의 아름다움이 지금은 역겨움을 느끼게 할 정도로추하게 변해버렸으니 그녀의 마음이 산산조각나는 것은 당연했다. 그녀는속으로 생각했다. (행인들이 나를 한 번 보고 더 이상 보려 하지 않는 것이 이상할 것도없구나. 그리고 그들의 눈빛이 그렇게 이상했던 것도, 심지어 백비비가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점도.......)그녀는 큰소리로 울려고 했으나 소리는 나오지도 않았으며 빨리 죽어없어지고 싶었으나 죽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고탁자에 털썩 엎드렸다. 그와 동시에 와르르 하는 소리가 나며 탁자가넘어졌고 찻주전자와 찻잔들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주칠칠도 그에 따라옆으로 쓰러져 깨어진 찻잔 조각 위로 주저앉았다. 차를 마시던 손님들이 깜짝 놀라 분분히 일어섰으며 청의 부인은 더욱어쩔줄을 몰라했다. 백비비와 다른 몇 사람이 급히 다가와 청의 부인을도와서 주칠칠을 부축해 일으켰다. 그 중 한 사람이 그녀를 바라보고 탄식하면서 말했다. "아가씨! 이렇게 어르신께서 아가씨를 돌보고 있는데 아가씨께서는 조금더 얌전하게 말을 들어야 하지 않겠소? 더이상 어른을 괴롭히지 마시오!" 이 말을 듣고 청의 부인은 눈물을 찔끔거리면서 말했다. "내 조카딸은 어려서부터 문둥병에 걸렸고 또 몸이 불구라서 이렇게성질이 난폭해졌으니 제발 그녀를 탓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은 청의 부인의 말을 듣고 고개를 가로 흔들고 더욱 탄식하는소리를 낼 뿐만 아니라 이 청의 부인을 동정하고 그녀에게 감탄하는눈빛들을 보냈다. 주칠칠은 다시 의자에 앉혀졌으나 울려고 해도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이세상의 누가 그녀가 지금 처한 비참한 상황을 알 수 있을 것인가? 이세상의 누가 그 청의 부인의 악독함을 알아차리고 그녀를 구해줄 것인가? 그녀는 완전히 절망 속에 빠졌다. 이순간 심랑이 비록 나타난다해도그녀를 알아보지는 못할 것이다. 하물며 다른 사람들이야? 다른 사람들은상상조차 못할 것이다! 백비비가 하얀 손수건을 꺼내서 주칠칠의 얼굴에 흘러내린 눈물을닦아주면서 말했다. "언니! 울지 마세요." 두 미인(美人)과 두 추녀(醜女) 언니가 비록 몸이 약간 불편하지만 이 세상에는 예쁘게 생기고도언니보다 훨씬 더 괴로운 사람들이...... 괴로운 사람들이....... "이 약한 소녀는 마치 자신의 운명의 괴로움을 생각해 낸 듯 참지 못하고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그녀는 울먹이는 소리로 말했다. " 그래도 언니에는 마음씨 좋은 고모가 보살펴주고 있지만 그렇지만나는...... 나는....... "갑자기 가박피가 대갈하는 소리가 들렸다. " 비비! 이리로 돌아오지 않고 뭘 하는 거냐? "예쁜 몸매가 부르르 떨리더니만 얼굴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그녀는 남몰래눈물을 훔치고 머리밑에 꽂았던 은비녀를 빼내어 악마의 손에 쥐어주고황급히 몸을 돌려 가박피 옆으로 돌아갔다. 악마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고가볍게 탄식했다. " 마음씨 착한 아가씨로구나! 하느님이 너를 보살펴주실 것이다! "이 부드러운 말과 자상한 용모는 마치 관음보살의 화신인 듯했다. 그러나그 외모 속에 악마와 같은 심장을 감추고 있을 줄을 알겠는가? 주칠칠은악마의 모습을 쳐다보며 눈물이 붉은 피로 변하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녀는 왕련화나 단홍자 같은 사람들이 비겁하고 악독하고 음험하다고생각했으나 지금 이순간 그 사람들을 이 악마와 비교한다면 마치 천사같다는 생각을 하였다. 지금 그녀의 얼굴은 이미 망가졌고 또 이와 같은이 지독한 악마의 손에 떨어진 이상 죽는 수밖에 그녀에게 더 무슨 희망이있겠는가? 그녀는 이를 악물고 더이상 한톨의 쌀도 한 방울의 물도 먹으려들지 않았다. 저녁이 되어서 악마는 그 집 점원의 동정과 배려로 그 집에서 가장청결하고 깔끔한 방으로 들어갔다. 주칠칠은 배가 고프고 목이 말랐다. 그녀는 비로소 배 고픈 것은 참을 수 있으나 목이 마른 것은 참기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의 몸과 마음은 마치 불구덩이 속에 있는듯 타올랐다. 점원이 차 한 주전자를 갖다주고 탄식을 하며 돌아갔다. 방안에는 마침내 주칠칠과 그 악마 두 사람만 남게 되었다. 악마는 주칠칠을바라보며 험악한 웃음을 띠었다. 주칠칠은 눈을 감고 그녀와 눈이마주치는 것을 피했다. 그러나 악마는 주칠칠에게 다가와 험악하게머리채를 휘감고 말했다. " 망할 년!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겠다는 거지? 죽겠다는 거냐? "주칠칠이 번쩍 눈을 떠서 표독스럽게 그녀를 쳐다보았다. 비록 그녀는말을 하진 않았으나 그녀의 눈빛은 이미 죽으려는 결심이 그대로 드러나있었다. 악마가 날카롭게 외쳤다. " 네년이 내 손에 떨어진 이상 네년 마음대로 죽는 것이 그렇게...... 헤헤! 그렇게 쉬울 것 같애? 얌전히 내 말을 들어라. 그렇지 않을경우....... "그녀는 손을 번쩍 쳐들어 주칠칠의 얼굴을 한 대 세차게 후려 갈겼다. 그러나 주칠칠은 이미 죽음을 결심했기 때문에 더 이상의 두려울게 없어져여전이 표독스럽게 악마를 쳐다보았다. 그녀의 비분에 가득찬 눈빛은여전히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어떻든 이미 죽으려고 결심했는데 뭣이 겁난단 말이냐? 때릴 테면때리고, 살릴 테면 살리고, 죽일려면 죽여봐라! 네가 할 수 있는 방법을다 동원해봐라, 내가 네 말을 들어주나.)갑자기 악마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 망할 년! 네년이 이렇게 독할 줄은 생각도 못했구나. 겁나지 않는다이거지? 좋다! 네년이 겁을 내는지 어떤지 두고 보자! "그녀의 말은 끝부분에 이르러 이미 남자의 음성으로 변해 있었다. 이와동시에 두 손을 내밀어 주칠칠의 가슴 앞으로 다가왔다. 주칠칠은 비록악마가 음흉하고 악독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꿈에도 남자가 여자로변장한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 찍 '하는 소리가 나며 악마는이미 주칠칠의 앞가슴의 옷을 찢어버렸다. 그리고는 주칠칠의 그 따뜻하고부드러운 젖가슴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주칠칠은 수치와 분노로 눈물이흘러나왔으며 몸을 부들부들 떨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비록 죽는 것은두렵지 않았으나 이렇게 악마의 희롱과 모욕을 받자 견딜수가 없었다. 악마는 통쾌하다는 듯이 웃으면서 말했다. " 네년을 아주 좋은 곳으로 보내주려고 했는데......! 네년이 이렇게고집을 부리니 내가 먼저 맛을 볼수밖에......! "주칠칠의 몸은 그녀의 손 아래에서 쉬지 않고 떨렸다. 그녀의 그 옥처럼하얗고 매끄러운 젖가슴은 이미 이 악마의 주물럭거림으로 인해분홍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이 악마의 차가운 웃음은 그녀의 귀에서울리고 악마의 손은 그녀의 몸을 주무르고, 그녀는 피할수도. 그렇다고반항도 할 수 심지어 분통을 터뜨릴 수도 없었다. 그녀의 눈물이 가득찬눈에는 애걸하는 표정이 나타났다. 악마는 음흉하고 징그럽게 웃으면서말했다. " 이제 두렵다는 거냐? "주칠칠은 마음 속에서 끌어오르는 분노를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악마가말했다. " 그렇다면 다음부터 얌전하게 말을 듣겠다는 거지? "이 악마의 손아귀에서 주칠칠이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있겠는가? 그녀는 천성적으로 성격이 매우 강했으나 이 악마의 앞에서는굴복하는 수밖에 없었다. 악마는 크게 웃으며 말했다. " 그래! 그래야 말이 되지! "목소리가 또 부드러운 부인의 목소리로 변했으며 가볍게 주칠칠의 얼굴을쓰다듬으면서 말했다. " 얘야! 얌전히 있거라. 내가 잠깐만 있다가 곧 돌아오마! "이 악마에게는 두 개의 용모와 두 종류의 목소리가 있었던 것이다. 순식간에 그는 남자에서 여자로 또 여자에서 남자로 변할 수가 있었다. 주칠칠은 그녀가 방문을 열고 나가는 것을 보고 즉시 대성통곡 하기시작했다. 그녀는 이 악마에 대한 두려움이 극에 달했다. 악마가 비록나가버렸으나 그녀는 감히 경거망동을 할 생각을 버렸다. 그녀는 다만마음 속에서 끌어오르는 공포와 비분, 원한과 실망, 창피함과 속상함을눈물로 만들어서 흘릴 뿐이었다. 그녀가 흘린 눈물은 옷을 적시고 이불과요를 적셨다. 그녀는 울다가 울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덧 잠이들었다. 주칠칠은 악몽중에서 일진의 차가운 바람이 그녀의 가슴으로몰아닥침을 느꼈다. 주칠칠은 그 선뜻한 차가움에 몸을 부르르 몇 번 떤 다음 눈을 떴다. 문은이미 열려 있었으며 악마는 돌아와 있었다. 그 악마의 겨드랑이에는길죽한 보따리가 끼어 있었으며 그녀는 왼손으로 문을 닫은 다음 침대곁으로 다가왔다. 침대 곁으로 다가온 그녀는 가볍게 옆구리에 끼고 있던보자기를 내려놓으며 부드러운 소리로 말했다. " 얘야, 잘 잤니? "주칠칠은 그녀의 웃음을 보고 다시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만약 이 악마의목소리와 웃음이 그녀의 마음 만큼이나 악독하다면 그것은 어쩔 수 없는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웃음이 다정하고 목소리가 자상하면 할수록주칠칠은 더욱더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녀는 그 옆구리에 끼었던길죽한 보따리를 풀어 헤치면서 말했다. " 얘야, 봐라! 이 고모가 얼마나 너를 귀여워하니? 너 혼자 있으면적절할까봐서 네 친구 할 사람을 데려왔단다! "주칠칠이 눈을 돌려 돌아보자 그녀의 가슴이 다시 철렁 하고 내려앉았다. 그 보따리 속에는 백의의 여자가 싸여 있었는데 그녀는 봉숭아처럼 빛이도는 양볼에, 눈을 가볍게 내리감고 편안히 자고 있었다. 잠자는 그녀의 얼굴은 따뜻하고 부드럽고 아름다웠다. 그녀는 바로백비비였던 것이다. 그 가련한 소녀 백비비도 이 악마의 손에 떨어졌던것이다. 주칠칠은 표독스럽게 악마를 노려보았다. 그녀의 눈빛에는 분노와원한이 가득차 있었다. 사람의 눈빛이 만약 살인을 할 수 있다면 이악마는 주칠칠의 눈빛에 수십 차례는 죽었을 것이다. 악마는 품속에서 검은 주머니를 꺼냈다. 그 검은 주머니에서 종이같이얇은 작은 칼과 번쩍번쩍 빛나는 갈고리, 정교하게 만들어진 집게 그리고국자, 가위, 세 개의 조그마한 옥병, 얼핏봐서 인두 혹은 미쟁이들이사용하는 흙손 같은 것을 네다섯 개 꺼냈다. 그 물건들은 모두 정교하게만들어졌으나 작고 장난감 같아 어린아이들이 갖고 노는 그러한 물건같았다. 주칠칠은 그녀가 무엇을 하려는지는 몰랐으나 그녀가 이러한물건을 꺼내는 것을 보고 멍청해졌다. 그때, 악마가 갑자기 웃으며말했다. " 얘야! 만약 네가 심장이 터져 죽지 않을 수 있다면 한쪽에서 내가 하는것을 봐도 좋다. 그렇지만 이 고모는 네가 눈을 감고 고개를 다른 쪽으로돌렸으면 좋겠구나! "그 말이 끝나자마자 주칠칠은 곧 눈을 감고 고개를 돌렸다. 악마가웃으면서 말했다. " 과연 착한 애로구나! "곧이어서 쇠붙이가 부딪치는 소리, 병마개를 여는 소리, 칼로 피부를자르는 소리, 가위 소리, 가볍게 두드리는 소리 등이 들렸다. 한참이지나서 악마가 한숨을 불어내쉬며 칼끝으로 후벼파는 소리, 그리고백비비의 가벼운 신음소리 등이 들려왔다. 이 죽음처럼 적막한 깊은 밤에이러한 소리들은 사람의 가슴을 서늘하게 하기에 족했다. 주칠칠은 겁이났으나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슬며시 눈을 떠서 바라보았다. 그러나악마가 등이 그녀의 시야를 가리고 있어 그녀는 악마가 두 손이 쉴새없이움직인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그는 어쩔 수 없이다시 눈을 감았다. 약 차 두 잔 마실 만한 시간이 지나서 다시 일진의쇠붙이들이 부딪치는 소리, 병마개를 닫는 소리, 주머니를 잡아 묶는 소리등이 들렸다. 이 소리에 이어 악마가 길게 한숨을 불어내며 말했다. " 다 끝났다! "주칠칠은 오장육부가 떨리는 것을 느꼈다. 그 사랑스럽고 작은 비둘기같던 백비비는 이미 머리가 반은 희어버렸고 얼굴에는 곰보 자국이더덕더덕 붙어 있고 위로 말려오른 눈썹에 매부리 코를 가진 기이할정도로 못생긴 중년부인으로 변해 있었다. 악마는 기쁜 듯 웃으며 말했다. " 얘야! 이 고모의 솜씨가 어떠냐? 이 계집년의 친부모가 봤다 해도 자기딸인 줄은 모를 거다. "주칠칠이 더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악마는 통괘하다는 듯이웃으며 손을 뻗어 백비비의 옷을 잡더니 순식간에 그녀를 실오라기 하나남기지 않고 벗겨버렸다. 등불빛 아래에서 백비비의 아름답고 날씬한 몸은마치 도살장에 끌려 가는 영양과 같이 침대 위에 웅크리고 있었다. 그모습은 사람들로 하여금 가련한 마음을 불러일으킬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혼백을 뺏아갈 정도로 아름다웠다. 악마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 과연 대단한 미인이로구나! "주칠칠은 다만 멍한 기분을 느끼며 뜨거운 피가 머리끝까지 용솟음치는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그녀의 귓볼은 불처럼 타오르는 듯했다. 그녀는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아버렸다. 그녀가 다시 눈을 떴을 때 악마는 이미백비비에게 거칠고 낡은 청포로 만든 옷을 바꾸어 입혀 놓고 있었다. 그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듯했다. 악마는 득의에 찬 모습으로 껄껄웃으며 말했다. " 얘야! 솔직히 말해봐라! 네가 지금 눈앞에 보고 있는 곰보딱지 붙은얼굴의 중년부인이 바로 그 예쁘고 아름답던 미인이라고 믿을 수가있겠니? "주칠칠은 화도 나고 부끄럽기도 하여 얼굴이 붉어졌다. 그녀는 비로소자기의 모습이 변했던 과정을 알 수 있었다. 그녀 자신도 틀림없이백비비와 비슷한 과정을 거쳤으리라 생각되었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생각했다. (내가 죽지만 않는다면 언젠가는 내 몸을 더듬던 네 녀석의 두 손을잘라버리고 내 몸을 살펴보았던 네 녀석의 두 눈알을 빼내어서 네 녀석이다시는 만지지도 보지도 못하게 만들어버리고야 말겠다! 죽지도 못하고살지도 못하는 그러한 기분을 맛보게 하고야 말겠다!)복수하겠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살아야 되겠다는 마음이 강하게 일어났다. 그녀는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굳세게 살아야 된다고 생각했다. 어떠한모욕을 당한다 해도 절대 죽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악마가 다시득의에 찬 웃음소리를 떠뜨리며 말했다. " 너는 이 역용술 기법이 옛날 운몽선자(雲夢仙子)의 비법을 전수받은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이 고모보다 더 뛰어난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아니? "주칠칠은 순간 왕삼기의 주인 왕련화의 뛰어난 역용술을 떠올렸다. 왕련화의 역용술은 확실히 이 악마보다 못하지 않았다. 그녀는 속으로생각했다. (그렇다면 왕련화는 바로 그 운몽선자의 후예란 말인가? 그 선녀처럼아름답고 뛰어난 무공을 가졌던 부인은 운몽선자였단 말인가?)그녀는 즉각 이러한 사실들을 심랑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는평생 어쩌면 다시는 심랑을 만날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심랑을다시 만난다는 희망이 점점 사라져감을 느꼈다. 이튿날 새벽, 세 사람은 다시 길을 걸었다. 주칠칠은 여전히 노새의 등에타고 있었으며 악마는 한 손으로는 노새의 고삐를 잡고 한손에는 백비비의손을 잡아 서로 의지하며 걸어갔다. 그러한 모습은 더욱 가련하게 보였다. 악마는 백비비가 근본적으로 반항하지 못할 것을 알고 몸의 기력을빼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걸을 수 있었다. 그러나 주칠칠은백비비를 쳐다볼 수 없었다. 주칠칠은 백비비의 눈물이 가득찬 눈에놀람과 두려움을 담은 그러한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성격이그처럼 강한 주칠칠도 겁이 나서 미칠지경인데 하물며 심성이 유약하고담력이 적은 백비비임에랴! 주칠칠은 비록 백비비를 쳐다보지는 않았으나 지금의 모습이 어떠하리라는것은 상상이 가고도 남았다. 그리고 그녀는 백비비도 마음 속으로 바로 자신과 같이 하늘을 원망하고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이 악마는 도대체 나를 어디로 끌고 가는 것일까? 도대체 나를 어떻게하려는 것일까?)백비비는 틀림없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노새 말굽소리가뚜벅뚜벅 나고 눈물이 얼굴을 적시며 마주 불어오는 먼지바람에 지나가는행인들의 동정이 가득찬 연민의 눈빛 등. 이러한 모습들은 어제와 꼭같았다. 이 사람을 미치게 할 것 같은 여행은 도대체 어디까지 가야 끝이날 것인가? 참을 수 없는 이 고난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이란 말인가? 갑자기 지붕을 덮은 마차 한 대가 앞에서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그낡은 마차는 종종 보이는 그러한 마차와 다를 점이 조금도 없었다. 마차를끄는 말은 비쩍 말랐고 약하고 늙고 피곤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마차를모는 사람은 바로 그 신비한 김무망이었고 김무망의 옆에 앉은 사람은꿈에도 그리던 심랑이 아닌가? 주칠칠의 심장은 즉시 밖으로 뛰쳐나올 듯했다. 이 갑작스럽게 다가온미칠 듯한 기쁨에 주칠칠의 가슴은 울렁거리며 머리가 멍청해졌다. 그녀는머리가 멍해지고 눈앞이 부옇게 흐리더니 순간 눈에서 눈물이쏟아져나옴을 느꼈다. 그녀는 필생의 힘을 다해 마음 속에서부터 외치기시작했다. (심랑! 심랑! 빨리 와서 저를 구해주세요! 빨리! 빨리요!)그러나 심랑은 당연히 그녀의 마음 속에서의 외침을 듣지 못했다. 그는주칠칠을 몇 번 돌아보더니 가볍게 탄식을 하며 눈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 마차가 다가오는 속도는 극히 느렸으며 주칠칠이 타고 있는 노새도극히 천천히 마차 앞으로 다가갔다. 주칠칠은 조급하고 원통스럽고 급한마음에 미칠 듯했다. 그녀의 마음은 갈갈이 찢어졌다. 그녀는 계속 속으로외쳐댔다. (심랑! 심랑! 부탁이에요! 제발, 저를 좀 봐주세요! 제가 바로 밤낮으로당신만을 생각하는 주칠칠이에요! 저를 모르시겠어요?)그녀는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랑이 이 순간에그녀의 마음 속의 부르짖음을 들을 수만 있다면. 그러나 심랑은 조금도 그러한 기색을 모르는 듯했다. 그러나 악마는갑자기 심랑 등이 타고 있던 마차 앞으로 다가가서 그 길을 막아설줄이야! 그녀는 마차를 막아서서 손을 벌려 애처로운 소리로 애걸했다. " 마부 어르신! 적선 좀 하세요. 이 불쌍한 년에게 적선 좀 하세요! 하느님이 복을 내리실 겁니다. "심랑의 얼굴에 갑자기 놀라고 기이하게 생각하는 듯한 기색이 얼핏스쳐갔다. 심랑은 마차를 가로막고 구걸을 하는 사람들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김무망은 그 악마에게 몇 장의 은표를 쥐어주는 것이 아닌가? 주칠칠은 눈을 크게 끄고 심랑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서는 마치 피가뿜어져 나올 듯했다. 그녀의 가슴 속에서의 부르짖음은 이미 분노에 찬욕설로 변해 있었다. " 심랑! 심랑! 당신은 진짜 나를 알아보지 못한단 말인가요? 이 무정하고사람 생각을 해줄 줄 모르는 사람! 심장도 없는 악한! 당신......! 당신! 나를 더이상 보지도 않다니!)심랑은 확실히 그녀를 더이상 바라보지 않고 있었다. 그는 다만이상하다는 눈빛으로 악마와 김무망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악마가중얼거렸다. "좋은 분이시군요! 하느님이 당신을 행복하게 도와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김무망의 얼굴에는 아무 표정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은표를주고 나서 가볍게 채찍을 들어 말의 궁둥이를 내리쳤다. 그들이 탄 차는다시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 순간 주칠칠은 깊은 구렁텅이로 빠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녀는심랑이 자기를 알아보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심랑을 만나기전까지는 미약하게나마 약간의 희망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마차는덜컥덜컥 하며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점점 멀어져가는 마차는 그녀의모든 희망을 가져가버렸던 것이다. 그녀는 마침내 완전히 절망한다는 것이어떠한 기분인지를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더이상 슬퍼하지도 원망하지도두려워하지도 괴로워하지도 않았다. 그녀의 심신은 완전히 마비상태로빠져 들어갔다. 그녀의 눈앞은 깜깜한 암흑이었으며 아무것도 볼 수도들을 수도 없었다. 이 미칠 듯한 마비현상! 이것이 아마 절망의 느낌인 듯했다. 길에는행인들의 왕래가 끊기지 않고 이어지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기쁜소리로 왁자지껄 떠들고 지나갔으며, 어떤 사람들은 슬픔에 찬 모습으로,어떤 사람들은 침중한 모습으로, 어떤 사람은 마치 무엇을 찾는 듯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지나가고 있었다. 이 많은 사람들 중에 진정한절망의 기분을 아는 사람은 몇 사람이나 될 것인가? 심랑과 김무망이 탄 마차는 이미 백 장 밖으로 벗어나고 있었다. 차가운바람이 앞쪽으로 불어닥치자, 심랑은 머리 위에 올려놓고 있던 그비싸지만 이미 낡아버린 담비 가죽으로 만든 모자를 눈썹과 눈빛이 보이지않도록 푹 눌러썼다. 그는 더이상 김무망을 쳐다보지 않았다. 다만기지개를 켜며 중얼거렸다. "삼 일, 삼 일이 지났는데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했고, 아무것도 보지못했구나! 약속한 날짜는 갈수록 다가오는데......." 김무망이 말했다. "그렇소! 이미 희망이 없는 것 같소이다." 심랑의 입가에 맑고 깨끗한 웃음이 번쩍 스치더니 말했다. "희망이 없다구요? 그렇지만 희망은 어떤 상황에서도 있는 겁니다." 김무망이 말했다. "그렇소! 이 세상에 어떠한 일도 신념을 완전히 절망하게 하지는 못할것이오." "김 형께서는 나의 유일한 희망이 무엇인지나 아십니까?" 그는 말을 멈췄으나 김무망이 대답이 없자 다시 이어서 말했다. "우리의 유일한 희망은 바로 주칠칠입니다. 그녀가 이번에 실종 된 것은틀림없이 무슨 비밀을 발견해 냈기 때문일 겁니다. 그녀는 심기가 깊고오기가 대단한 아가씨라서 제가 생각하기에 혼자 힘으로 이 비밀을알아내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고 살짝사라져버렸던 것이지요. 그렇지 않다면 그녀는 자기 혼자만 사라질 이유가없었을 겁니다." "그렇소! 어떠한 사람들의 마음 씀씀이도 모두 심 형을 속이지는못하는데, 하물며 주칠칠의 마음 씀씀이야......." "그렇지만 삼 일이 지났는데도 그녀를 찾아내지 못하는 것을 보니 아마다른 사람의 손에 떨어진 것 같아요. 그렇지 않았다면 그녀의 성격으로어디를 가든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을 것이고, 우리는 그녀의 소식을얻어들을 수 있었을 겁니다." "그렇소." 심랑이 갑자기 웃음소리를 내며 김무망의 말을 잘라 말했다. "나는 계속하여 네 번이나 말을 했는데 김 형께선 계속하여 ' 그렇소 '하고대답을 하는군요. 김 형께서는 무슨 다른 걱정거리라도 있는 건가요? 방금제가 했던 말은 근본적으로 김 형께서 대답할 필요도 없던겁니다." 김무망이 아무말 없이 한참을 있더니 천천히 고개를 돌려 심랑을 뚫어질듯이 쳐다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여전히 별다른 표정이 없었으나 입으로는천천히 말을 하고 있었다. "그렇소. 심 형의 짐작이 맞았소. 나는 지금 다른 생각을 하고있었소이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심 형께서는 짐작해내실 수있겠소?" 심랑이 가볍게 웃으면서 말했다. "짐작을 해낼 수는 없지만 좀 이상하다고 느낀 점이 있습니다." "무엇이 이상하다는 거죠?" 심랑의 눈빛이 번쩍 하더니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가 방금 길에서 한 번도 본적이 없는 부인을 만났는데 김 형께서는그녀에게 일만 냥 은자의 은표를 아무말 없이 내주시었소. 그것이이상하다고 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김무망이 한참 동안 말없이 있더니 입가에 갑자기 웃음기가 돌면서 말을했다. "세상에 심 형의 눈을 속일 수 있는 일은 진짜 없다니까요." "제가 생각하기에 많지는 않다고 봅니다." "당신도 상당히 호방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 아니오?" "그렇소이다. 나에게 만약 일만 냥의 은자가 있을 때 방금과 같은 그렇게가련한 구걸을 하는 사람을 만났다면 나도 일만 냥 은자 전부를 그녀에게주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상하다는 거죠?" 심랑의 눈빛이 그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저는 본래 집을 떠난 떠돌이지만 김 형 당신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고김 형은 근본적으로 그렇게 남에게 적선이나 하는 사람으로 보이지도않소이다. 그런데 그 부인은 왜 하필 나에게 구걸을 하지 않고 김 형에게구걸을 했을까요?" 김무망의 고개가 점점 밑으로 숙여지며 중얼거렸다. "이 세상에 어떠한 일도 당신을 속일 수는 없으니...... 당신을 속일 수는없으니......." 김무망이 갑자기 머리를 번쩍 들어올렸다. 그의 표정은 다시 차갑고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그는 침중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렇소이다! 제가 그 부인에게 은표를 준 것은 확실히 이상한 것이오. 그렇지만 나는 그 관계를 얘기해 드릴 수는 없소이다." 두 사람의 눈빛이 마주쳤다. 또 한참의 시간이 지나서 심랑의 입가에가벼운 웃음이 떠돌더니 이 웃음은 점점 멀리 펴져나가 온 얼굴이 웃는모습으로 변했다. 김무망이 말했다. "심 형의 웃음은 상당히 깊은 의미가 있는 듯한데......." "김 형이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는 말을 직접적으로 해주지 않으신다 해도제가 약간은 추측해 볼 수가 있을 것 같소이다." "그렇게 자만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한 번 추측해 보도록 하죠." "심 형 마음대로 해보시오. 다른 일은 심 형께서 추측할 수 있을지 몰라도그렇지만 이번 일 만큼은......." 마차를 끄는 말들의 발굽에서 일어나는 먼지들을 주시하면서 심랑이천천히 말했다. "김 형과 제가 교분을 쌓기 시작한 이래 김 형께서는 어떤 일도 저를이렇게 속이려고 하지 않으셨소. 그렇지만 이 일에 대해서김형께서는...... 이러한 상황을 보건대 이 일과 김 형과의 관계의중요성은 말씀하지 않으셔도 충분히 짐작이 가오." "어, 그래요? 으흠......." "이 일과 김 형의 관계가 그렇게 중요하다면 제가 생각하건대 이것은틀림없이 그 쾌락왕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되는데......?" 그는 비록 말발굽에서 일어나는 먼지를 바라보고 있는 듯했으나 사실상김무망의 얼굴에 나타나는 조그만 변화도 그의 눈을 피해갈 순 없었다. 심랑이 이곳까지 말했을 때 김무망의 얼굴에는 과연 약간의 변화가일어났다. 심랑이 즉시 이어서 말했다. "그래서 제가 보기에 그 가련한 부인은 틀림없이 쾌락왕과 관계가 있다고생각됩니다. 그리고 그 부인의 그 가련한 모습은 아마 연극이었다고생각되는데......?" 여기까지 말하고 나서 그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의 눈빛은 이미김무망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김무망은 입술을 꼭 다문 채 얼굴이마치 얼음처럼 차갑게 변해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가 서로를 뚫어질 듯이쳐다보았다. 마치 서로가 상대방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를알아내기라고 하겠다는 듯이......! 김무망은 심랑의 안색에서 도대체 심랑이 어느 정도까지 알고 있는지를알아내려고 하였으며, 심랑은 김무망의 얼굴에서 도대체 무슨 일인지얘기할 것인지 안 할 것인지를 알아내려고 하는 듯했다. 한참 동안 두사람은 서로 쳐다만 볼 뿐 말을 하지 않았다. 마차는 이미 또 백여 장 이상의 거리를 달려가고 있었다. 마침내 얼음처럼차갑게 굳어 있던 김무망의 얼굴이 점점 펴지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심랑의 마음도 풀리기 시작했으나 그는 애써서 얼굴 표정이 부드럽게변하는 것을 막았다. 그 까닭은 심랑은 이 순간이 바로 가장 중요한 순간임을 알고 있었기때문이다. 사람과 사람과의 심리적 대립과정에서 상대방보다 우세를점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그 미묘한 순간인 것이다. 만약 이 순간 자신이참지 못하고 말을 하게 된다면 김무망은 더이상 입을 열지 않으리라는것을 심랑은 알고 있었다. 김무망이 마침내 입을 열어 말을 하기시작했다. 그는 깊이 숨을 들이마시더니 천천히 말했다. "그렇소! 그 청의 부인은 틀림없이 쾌락왕의 수하요!" 심랑이 어찌 가만히 있을 것인가? 그는 김무망의 말이 끝나자마자 즉각반문했다. "김 형은 쾌락왕 밑에서 재물을 장악하고 있으니 그 지위가 상당히 높다고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부인이 스스럼없이 김 형에게 돈을 요구했고김 형은 한 마디도 없이 내주셨습니다. 이를 통해서 볼때 그녀의 지위는김 형보다 아래가 아닐 것 같습니다. 그녀는 누구입니까? 바로 주, 색,재, 기 사대 사자 중에 하나인가요? 그렇지만 그는 왜 사대사자인데도여자입니까?" 그의 말은 마치 회초리처럼 한 마디 한 마디가 김무망에게 숨돌릴 기회도주지 않았다. 그의 질문은 모두 정곡을 찌르는 것이었다. 김무망은 심랑의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한참이 지나서 그는 갑자기 반문했다. "심 형께서는 이 천하에 역용술로 운몽선자 일파 외에 어느 파가 가장뛰어난지 아시오?" 심랑이 가볍게 신음소리를 내고 나서 천천히 말했다. "역용술은 원래 무공의 범위에는 들어가지 않지요. 그렇기 때문에역용술이 뛰어나다고 반드시 무림의 명가라고는 할 수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그는 갑자기 무릎을 탁 치더니 실성한 소리로 말했다. "그렇군요. 김 형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산좌사도(山左司徒)가 아닌가요?" 김무망은 머리를 들지도 않았고 더이상 말을 하지도 않았다. 도리어말채찍을 높이 쳐들어 말의 궁둥이를 힘껏 내리쳤을 뿐이다. 그러나 그말은 이미 늙고 기력이 다하여 아무리 채찍질을 해도 더이상 빨리달리지는 못했다. 심랑의 눈에 흥분한 기색이 떠오르더니 말했다. "산좌사도 가문은 비단 역용술에만 뛰어날 뿐 아니라 경공이나 암기,미혼약 등에 두루 뛰어나지 않음이 없었습니다. 지난날 강호상에서의지위도 운몽선자에게 약간 뒤쳐질 뿐이었소. 최근 강호상에서는 비록산좌사도 가문의 무공이 대부분 음험하여서 하늘의 재앙으로 일문이 모두죽어서 그 대가 끊겼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다리가 많은 벌레는 죽어서도넘어지지 않듯이 산좌사도 가문도 틀림없이 살아있는 후인, 후손들이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명예와 지위를 볼 때 만약 그들이 쾌락왕문하로 들어갔다면 틀림없이 그 지위는 사대사자 정도에 임명되었을것이오." 그러나 김무망은 여전히 말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심랑이 또 중얼거렸다. "내가 만약 쾌락왕이라면, 그리고 만약 산좌사도의 자제들이 내 문하로투항해 들어왔다면 나는 그들에게 어떠한 임무를 맡기는 게 가장적절할까요?" 심랑의 얼굴빛이 차차 환해지더니 이어서 천천히 말을 하기 시작했다. "산좌사도는 술에 대해서는 잘 알지도 못하고 재물은 이미 김 형이책임지고 있소. 나머지는 색사(色使)와 기사(氣使)인데 기사는 언제나쾌락왕 곁에서 쾌락왕을 보호하고 있소. 그런데 그 산좌산도 자제들은그렇게 호전적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소이다. 그러나 만약 산좌사도제자들로 하여금 쾌락왕을 위하여 천하의 미녀들을 모아오게 한다면 아마그보다 더 적절한 임무는 찾아보기가 어려울 것이오. 김 형! 제 말이맞습니까?" 김무망이 냉랭하게 말했다.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소이다. 심 형이 말씀하신 건 모두 직접 추측해낸 것일 뿐이오." 심랑의 눈빛이 '번쩍' 하더니 하늘을 우러러 깊은 생각에 빠지기시작했다. 한참 후 심랑이 또 천천히 말했다. "내가 만약 산좌사도의 자제들로 쾌락왕을 위해 천하의 미녀를 모아오는임무를 부여받았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어떻게 나에게 부여된 임무를완수했을까?" 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천천히 이어 말했다. "우선 나는 틀림없이 역용술로 나 자신을 여자, 혹은 부인의 모습으로바꾸겠지. 그러면 내가 여자들과 접촉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질테니까." 김무망의 눈빛은 이미 감탄하는 기색을 보이고 있었다. 심랑은 이어서 말했다. "내가 미녀들을 포획하여 온 후에는 또 어떻게 했을까? 옥문관(玉門關) 밖쾌락왕이 있는 곳까지 미녀들을 옮긴다는 것은 그렇게 수월한 일은 아닐것이야. 왜냐하면 그 미녀들은 틀림없이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킬테니까." 여기까지 천천히 말하던 그의 입가에 다시 엷은 미소가 번져나갔다. "그렇지만 내가 역용술에 뛰어난데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거야. 그미녀들을 역용술로 더없이 못 생긴 여자들로 만들어버리면 그녀들을바라보는 사람은 한 번 바라보고 나서 더 보려고 하지도 않겠지? 그리고또 그녀들이 고분고분 말을 듣지 않는 것은 그녀들에게 미혼약을 먹여서말도 못하고 전신에 기력이 빠져서 꼼짝도 못하게 하면 말썽을 부리지않게 할 수 있을 거야!" 김무망이 길게 탄식을 하면서 고개를 돌려 그 마차 속에서 깊이 잠들어있는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고 중얼중얼 말했다. "네가 후일 심 상공의 반 정도만 총명하다면 그걸로 충분하겠구나." 그 아이는 며칠간의 쌓인 피로로 깊이 잠든 듯 김무망의 말은 못들은 것같았다. 그러나 김무망의 말은 그 아이에 대해 말했던 것이 아니라 '심랑당신은 진짜 총명하오! 모든 비밀을 당신은 모두 알아맞췄소!' 하고 말한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심랑이 어찌 김무망의 말 속에 숨은 뜻을 알지못했을 것인가. 그는 가볍게 웃으면서 말했다. "돌아갑시다." 김무망이 눈썹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돌아가다니오?" "방금 그 청의부인을 쫓아가던 그 두 명의 여자들은 틀림없이 괜찮은집안의 딸들인 것 같소. 내가 어떻게 그녀들이 이처럼 비참한 경우에떨어지는 것을 그대로 놔두고 본단 말이오?" 김무망이 갑자기 냉소를 하며 다시 고개를 돌려 아이를 바라보고 말했다. "네가 후일 크거든 어떤 일은 심 상공을 배워서는 안 된단다. 조그만 일을참지 못하면 큰일을 그르친다는 말, 너는 이것을 꼭 가슴에 기억해두어라." 심랑이 가볍게 웃으며 더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차도 방향을바꾸지 않고 계속 가던 방향으로 나아갔다. 한참이 지나서 김무망이갑자기 심랑을 향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고맙소!" 심랑과 김무망이 같이 지내기를 수일, 김무망의 지금 이 웃음은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진정으로 우러났던 것이다. 심랑이 웃음을 머금고 물었다. "뭐가 고맙다는 거지요?" "심 형께서는 한순간이라도 빨리 쾌락왕이 거처하는 곳을 알고싶어하셨소. 또 그 산좌사도가 틀림없이 쾌락왕이 있는 곳으로 돌아간다는것을 알고 있소. 심 형께서는 몰래 산좌사도의 뒤를 쫓아갈 수 있었을것이오. 그렇지만 산좌사도가 이미 심 형과 내가 같이 있다는 것을 본이상 심 형이 그를 쫓아서 쾌락왕이 있는 곳까지 갈 수 있다 하더라도 그죄는 내가 뒤집어쓰게 되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심 형은 나를 위해 이렇게좋은 기회를 포기하는 것이겠지요? 심 형께서 이렇게 나를 좋게대해주면서도 입에서는 한 마디도 나에게 은혜를 베푼다는 내색을 하지않고 있으니 내가 어찌 심 형께 고맙다고 하지 않을 수 있겠소?" 이 냉막하고 과묵한 괴인이 이렇게 긴 말을 뱉을 줄은 심랑도 생각하지못한 일이었다. 심지어 김무망의 말에는 감동으로 인한 떨림이 섞여있었다. 심랑이 탄식하면서 말했다. "친구라는 것은 서로 알아준다는 데 그 소중한 뜻이 있는 거요. 김 형께서이미 제 마음을 알아주셨으니 제가 더이상 무엇을 바라리까?" 두 사람의 눈빛이 서로 부딪쳤다. 그러나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알고 있는이상 말이라는 것은 불필요한 것이었다. 갑자기 도로 전방에서 일진의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제일신투(第一神偸) "천금을 부리니 미인의 마음은 가볍게 움직이는구나! 자고로 영웅은 영락한 자가 많으니 술을 빌려 남아의 기백을 되찾을밖에......!" 한 명의 팔척 대한이 앞에서 큰 걸음걸이로 걸어오고 있었다. 이 대한은키가 클 뿐만 아니라 짙은 눈썹에 큰 눈을 가졌으며 허리춤에는 칼집이없는 단도를 비스듬이 차고 있었고 손에는 번쩍번쩍 빛나는 호로병을 들고있었다. 그는 노래를 하면서 그 사이사이에 호로병을 기울여 벌컥벌컥술을 마시곤 했다. 그 사람은 머리를 풀어헤치고 가슴의 옷도 제대로여미지 않은 채였다. 그리고 발에는 마로 만든 신발을 신고 있었으며차림은 비록 상당히 초라했으나 용이 날고 호랑이가 뛰듯 그 걸음걸이는상당히 활기차고 빨랐다. 그의 표정은 아주 맑고 깨끗했으며 그 기개가바다를 뒤엎을 듯 대단한 기세였다. 길을 가던 행인들의 눈빛은 모두부지불식간에 그 장한에게 쏠려 있었다. 그렇지만 그 사람의 눈빛은 시종심랑의 얼굴에 쏠려 있었다. 심랑이 그를 바라보며 가볍게 웃었다. 그장한도 심랑에게 웃음을 보이더니 갑자기 말했다. "마차를 같이 타도 될까요?" 심랑이 웃으며 말했다. "올라오시오." 그 장한은 그 자리에서 펄쩍 뛰더니 마차에 올라 심랑의 옆에 비비고앉았다. 김무망이 냉랭하게 말했다. "우리가 가는 곳하고 당신이 가는 곳은 다른 것 같소. 우리가 가는 곳은바로 당신이 지나온 곳이오. 우리랑 마차를 같이 탄다는 게 이해가 가지않소이다." 그러나 그 장한은 앙천대소하면서 말했다. "대장부는 사해(四海)를 집으로 삼는 법이오. 내가 가지 않으려는 곳은아무데도 없소이다. 뭐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거요?" 그는 손을 뻗어 심랑의 어깨를 툭툭 치더니 호로병을 건네며 말했다. "자, 한 모금 드시지요." 심랑이 빙긋 웃으며 호로병을 받아들었다. 그 순간 그는 그 호로병이강철로 만든 것이라는 사실을 알수 있었다. 그는 한 모금 가득 술을마셨다. 그 술맛은 달고 차갑고 아주 향기가 좋았다. 그 호로병에 담겨진술은 시중에서는 쉽게 구할 수 없는 아주 오래된 좋은 술이었던 것이다. 두 사람은 서로가 상대방의 내력이나 가는 방향 혹은 이름도 묻지 않고순식간에 호로병에 가득차 있던 술을 깨끗이 마셔버렸다. 그 소년 장한이기분이 좋은 듯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진짜 대장부로군요! 아주 좋은 주량이오!" 그 소년 장한의 웃음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김무망은 마차를 조그마한 시골마을에 세웠다. 그의 안색은 더욱 음침하게 변해 있었다. 그는 차가운목소리로 말했다. "우리가 가야 할 곳에 다 왔소. 자, 친구! 이제 그만 마차에서 내리시오." 그러나 그 장한은 도리어 심랑의 한 팔을 잡고 말했다. "좋소! 당신은 먼저 가시오. 나는 이 친구와 몇 잔을 더 마셔야겠소." 말을 마친 그는 심랑의 한 팔을 끌고 기름때가 시커멓게 끼어 더럽고 다쓰러져가는 작은 주점으로 들어갔다. 김무망은 차갑게 '흥' 하고 코웃음을 날렸다. 그의 미간에는 냉기가뻗쳐오르고 있었다. 그는 마차 속에 있는 소년에게 말했다. "마차를 잘 지켜라." 말을 마친 김무망이 그 작은 주점으로 들어섰을 때 심랑과 그 소년 장한은이미 세 잔씩의 술을 마시고 있었고, 그들의 앞에 한접시 가득 소고기가놓여 있었다. 천하에서 가장 호화스러운 곳에서부터 가장 지저분한 곳까지심랑은 어느 곳이든 가리지 않고 가는 사람이었으며, 천하제일의산해진미에서부터 천하에서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형편없는 음식까지가리지 않고 먹는 사람이었다. 그가 어디를 가든 무엇을 먹든 언제나이러한 태도였다. 김무망이 차가운 안색으로 주저앉아서 차갑게 그 소년장한을 노려보았다. 약 차 두 잔 마실 만한 시각을 노려보고 나서김무망이 냉랭하게 말했다. "도대체 네 녀석은 무엇을 원하는 게냐?" "무엇을 원하다니오? 술을 마시고 친구를 사귀고 있는 거요." "네 녀석이 어떤 인간인지 내가 모를 줄 알아?" "그렇습니다. 저는 좋은 사람은 못되죠. 그렇지만 귀하도 좋은 사람은못되는 것 같군요. 그렇소! 저는 강도입니다. 그렇지만 귀하는 나보다더한 대강도일지도 모르지요." 김무망의 안색이 더욱 차갑게 변했다. 그러나 그 소년은 도리어 술잔을높이 쳐들고 웃으며 말했다. "자, 자, 자! 이 작은 강도가 대강도에게 한 잔을 권합니다." 김무망의 손은 탁자 아래에 놓여 있었으나 이순간 탁자에 있던 젓가락이마치 요술에 걸린 듯 공중으로 날아오르더니 '쉿' 하는 날카롭고 짧은소리를 내면서 그 소년 장한의 면전으로 날아갔다. 그 소년 장한이날카롭게 부르짖었다. "좋은 기공(氣功)이오!" 그 소년이 '좋은' 이라는 말을 할 때 약간 입을 벌리고 그 날아오는젓가락 앞으로 고개를 디밀었으며 '기공' 이라는 말이 입에서 나오는 순간이미 젓가락을 입으로 꽉 깨물었다. 그리고 '이오' 라는 말을 하는 순간 이소년은 입에 물었던 젓가락을 다시 토해냈다. 그 젓가락은 날아오던 기세그대로 바람소리를 일으키며 김무망의 두 눈을 향해 날아갔다. 이젓가락이 날아가는 속도는 마치 번개불이 번쩍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순간 심랑이 가볍게 웃는 소리가 들리더니 공중을 날아가던 젓가락은형체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자세히 살펴보자 그 젓가락들은 이미 심랑의 수중에 떨어져 있었다. 번개처럼 날아다니던 젓가락을 심랑이 도대체 어떠한 수법으로 낚아챘는지두 사람은 전혀 알아차릴 수 없었다. 그 소년의 무공의 높음은 김무망의예상 밖이었다. 그러나 심랑의 무공의 높음은 더욱 이 소년의 예상밖이었다. 이 세 사람의 무공은 모두 강호에서 드물게 보는 절정고수의수준으로서 세 사람이 서로 돌아다보고 얼굴에 놀랍고 기이하다는 기색을드러냈다. 심랑은 가볍게 손 안에 쥐었던 젓가락을 김무망의 앞에내려놓은 다음 아까와 마찬가지로 태연하게 미소를 띤 채 부지런히 술잔만기울일 뿐이었다. 마치 방금 일어났던 일은 근본적으로 발생하지 않았던일이라는 듯이....... 김무망은 더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젓가락을 움직여 안주를 집지도않았다. 다만 그는 속으로 강호에 언제 이러한 소년 고수가출현했었는지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할 뿐이었다. 그 소년 장한도 더이상김무망을 아는 체 하지 않고 아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심랑과 통쾌하게술을 들이킬 뿐이었다. 술을 마시면 마실수록 그 소년은 점점 취해가는듯했다. 마침내 그 소년이 몸을 일으켜 중얼거렸다. "이 동생은 가서 볼 일을 좀 보아야 할 것 같소!" 말을 마치기도 전에 그의 몸이 비틀 하더니 탁자 위에 그대로 엎어졌으며탁자 위에 가득 널려 있던 술과 안주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이때김무망은 깊은 생각에 잠겨 있어서 그 소년의 모습을 주의하지 않다가 그소년이 엎어짐과 동시에 안주 국물을 전신에 뒤집어썼다. 그 소년이웃으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말을 하면서 그 소년은 급히 김무망에게 다가가 김무망의 전신에 묻은안주와 국물들을 닦아내려 하였으나 김무망이 세차게 손을 뿌리쳤다. 김무망의 이 뿌리침에 의해서 그 소년은 뒤로 서너 걸음을 물러서더니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저는 호의였을 뿐인데 친구는 어째서 사람을 치는 것이오?" 말을 마친 그는 뒷문으로 급히 볼 일을 보러 뛰어나갔다. 김무망이 심랑을돌아보고 말했다. "저 녀석의 의도가 의심스럽소. 심 형께선 하필 그와 어울릴 건 뭐요? 차라리......." 말을 마치기도 전에 그의 안색이 갑자기 크게 변하더니 탁자를 탁내리치며 일어나 날카롭게 외쳤다. "좋지 않소. 쫓아갑시다!" 그러나 심랑은 도리어 그의 소매를 잡고 웃으며 말했다. "그 친구를 쫓아가서 뭘 하겠단 말씀이시오?" 김무망의 안색이 갑자기 파랗게 변했다. 그는 더이상 한 마디도 하지 않고여전히 쫓아가려는 기세를 띠었다. 심랑이 말했다. "김 형의 물건 중에 무엇을 그 녀석이 훔쳐가기라도 했단 말인가요?" "그 녀석이 내 물건을 훔쳐갔으니 나는 그 녀석의 목숨을 훔쳐와야겠소!" 그러나 그의 눈빛이 번쩍 하는 순간 갑자기 물었다. "그 녀석이 내 물건을 훔쳐간 걸 심 형께서는 어떻게 아셨소?" 심랑의 얼굴에 가벼운 미소가 떠오르더니 탁자 밑에 있던 손을들어보였다. 그의 손에는 은표와 상당히 정교하게 만든 조그마한 주머니가들려 있었다. 김무망이 기이하다는 안색으로 물었다. "이...... 이 물건이 어떻게 심 형 손에 들어와 있죠?" "그 친구가 이 은표를 김 형 몸에서 훔쳐냈을 때 나는 그에게서 다시은표를 훔쳐왔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약간 재주를 더 부려서 그 친구가가슴에 품고 있던 주머니까지도 같이 가지고 왔지요." 김무망이 심랑을 한참 바라보더니 갑자기 그의 입가에 진심에서 우러나는미소가 흘러나왔다. 그는 천천히 그 자리에 주저앉아 술잔을 들어 깨끗이한 잔을 비웠다. 술을 한 잔 깨끗이 비운 그는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나는 이미 십여 년 동안 술을 입에 대지 않았소. 그렇지만 이 한 잔은천하에서 손재주가 가장 뛰어난 도둑인 제일신투(第一神偸)를 위해서마시는 것이오." 심랑이 고의로 웃으면서 물었다. "도대체 누가 제일신투라는 거지요? 김 형께서는 그 소년을 말하는 거요?" "그 녀석의 손재주가 빠르긴 빠르오.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놀래게 할정도로 빠르다는 것은 본인도 인정은 하오. 그렇지만 심 형 당신이 이세상에 살아있는 한 그가 제일신투라는 멋진 별명을 얻어들을 생각은버려야 할 것 같소." 심랑이 대소하며 말했다. "김 형께서는 사람을 도둑이라고 욕을 하면서도 그렇게 듣기 좋은 별호를하사하다니...... 그렇지만 저는 그 좋은 별호를 감당할 수 없을 것같군요." 그는 은표를 김무망에게 돌려주면서 말했다. "우리 닭을 훔치려다가 쌀이나 좀 먹는 친구가 무엇을 남기고 황급히도망갔는지 보기나 합시다." 그 주머니 속에는 은자는 많지 않았다. 겨우 은조각 몇 개가 있을뿐이었다. 심랑이 고개를 가로젓고 웃으면서 말했다. "그 친구의 손재주를 봐서는 수입이 꽤나 괜찮을 것 같은데 겨우 이렇게은자 몇 조각밖에 남질 않았군요. 틀림없이 그 친구는 돈을 부리기도 잘부리는 친구인 것 같소." "쉽게 벌은 돈은 빨리 없어지는 법이외다." 심랑이 미소를 띠고 그 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그 종이는은표가 아니고 편지였다. 편지의 글씨는 매우 조잡하고 서툴렀다. 그편지에는 다음과 같이 씌어 있었다. "큰형님 전. 큰형님께서 지난번 이 동생을 취하게 한 후에 이 동생은 다른 사람을취하게는 했지만 제 자신이 취해본 적은 없습니다. 하하! 상당히 기분이좋군요. 최근 이 동생이 돈 몇 푼을 벌었는데 모두 큰형님의 말씀대로불쌍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이 동생은 지금은큰형님과 마찬가지로 끼니는 있으면 때우고 없으면 거르고 밤에 잠은황폐해진 사당에서 자고 있습니다. 하하! 생활은 비록 괴롭지만 마음은비할 데 없이 유쾌하고 홀가분합니다. 지금 이순간 비로소 큰형님께서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재미가 무엇보다도 좋다고 하였던 말씀을 이해할 수있을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 보던 심랑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어떻소? 그래도 그 소년은 대장부의 기개가 있다고 생각되지 않소?" 편지에는 이어서 다음과 같이 계속 씌어 있었다. "번씨(蕃氏) 둘째 녀석은 과연 여자를 도둑질하는 창피를 모르는녀석이어서 이미 이 동생이 요절을 내어버렸습니다. 또 도로도(屠老刀)는혼자 돈을 착복했고, 단일성(單一成)은 이름난 효자의 돈을 훔쳤으며,조금전(趙錦錢)은 자기의 말을 어기고 신의를 배반하여서 큰형님을 화나게하였으니 제가 한번에 그들의 귀 한쪽씩을 베어버렸습니다. 인육을 술안주삼기 좋아하는 노주(老周)가 다른 사람의 고기를 술안주로 삼으려는 것을보고 이 동생이 그 노주 녀석의 귀 한쪽을 베어서 직접 그 자신이 먹도록했습니다. 하하! 그녀석이 다른 사람의 귀를 잘라서 먹는 것은 통쾌했을지몰라도 자기 자신의 귀를 먹을 때의 그 씁쓸하고 이상한 표정은 제가글재주가 없어서 자세히 설명할 수가 없군요. 큰형님께서 곁에서 보셨다면좋았을 걸요. 이러한 일이 있고 나서 노주는 아마 다시는 인육(人肉)을먹을 엄두를 내지를 못할 겁니다." 여기까지 보고 나서 김무망마저도 부지불식간에 실소를 날리지 않을 수없었다. 편지는 계속되었다. "다행히 감문원(甘文源), 고지(高志), 감립덕(甘��德), 정웅(程雄),육평, 김덕화, 손자은(孫慈恩) 이 녀석들은 형님의 말씀을 충실히이행하고 있으며 일도 잘 하기 때문에 이 동생이 기분이 좋아서 큰형님대신 그 녀석들을 청해서 실컷 먹고 마시게 했습니다. 그런데 다 먹고보니 이 동생의 몸에는 돈이 한푼도 남아 있지 않더군요. 또 우리가 먹고마시던 그 술집 주인이 구두쇠라는 얘기를 듣고 모두가 으스대며 돈을내지 않고 그냥 나와버렸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나오면서 계산대에서오백칠십 냥이라는 돈을 빌려서 길거리에서 두부상점을 하고 있는웅(熊)가 녀석에게 마누라를 얻으라고 주어버렸죠. 그리고 꼭 드리고 싶은말씀은 저희들과 같은 노선을 걷고 있는 불쌍한 친구들이 이미 우리형제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모두 육백팔십사 명인데 이 동생은이미 그들에게 우리끼리 연락할 수 있는 암호를 말해주었습니다. 그들이만약 길거리에서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벌어서 살찐 듯한 인간들을만나기만 한다면 틀림없이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여 큰형님께 연락을 할것입니다. 하하! 이제 우리 무리들이 수천 명이 되었으니 그 기세가 결코적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큰형님은 이 점을 염� 恝� 두셨다가 다음번 술이취하셨을 때는 우리들을 위하여 우리들을 대표할 수 있는 이름을 하나지어주시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편지 끝에 서명한 것은 홍두응이었다. 심랑은 단숨에 그 편지를 다 읽고나서 찬탄하는 듯한 음성으로 말했다. "대단하군! 대단해! 그 소년이 이렇게 어린 나이에 이렇게 큰일을 해냈을줄이야......!하물며 이미 수천 명 형제를 거느린 큰형님일줄이야......!" "다만 심 형과 내가 그녀석들에게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벌어서 살찐인간들로 보였다는 게 우습소." "생각컨대 김 형께서 방금 그 산좌사도에게 은표를 건네줄 때 그들형제들에게 들킨 것 같소이다. 그래서 그 친구가 앞질러 돌아와서 우리를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소." 그는 말을 잠시 멈췄다가 다시 말했다. "이 편지에 씌어진 이름들은 사람 고기를 먹는 주청(周靑)을 제외하고는모두 이름이 널리 알려진 자들이오. 특히 이 편지를 쓴 홍두응이라는친구는 벌써 오래 전부터 강호에서 독행대도(獨行大盜)로 이름을 날리던친구요. 듣건대 이 사람의 경공은 단홍자 등보다 못하지 않다고 합니다. 이런 인물들마저도 이 소년에게 굴복해 들어갔으니 이 소년의 사람됨은가히 짐작할 수가 있을 것 같소이다. 더 나아가 부자집을 털어서 가난한사람들을 도와주는 이러한 기개는 우리가 사귀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생각되오." 김무망이 '흥' 하고 코웃음을 치고 나서 대답을 하지 않았다. 심랑이차갑게 말했다. "방금 그 소년의 행동에 대해서 김 형은 여전히 화가 나 있는 것이오?" 김무망이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도리어 말을 돌렸다. "주머니에 또 어떤 물건이 있는지 봅시다." 심랑이 그 주머니를 거꾸로 흔들자 다시 두 가지 물건이 떨어졌다. 하나는엄지 손가락 크기의 백옥을 갈아 만든 조그만 고양이 모습의 노리개였다. 그 옥을 다듬은 솝씨는 상당히 뛰어나서 몇 번의 칼질에 마치 살아있는 듯생기가 넘치는 고양이의 모습이 되었다. 그 물건이 너무 작지만 않았다면얼핏 보아서는 살아있는 진짜 고양이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그갈아 만든 고양이를 자세히 보자 고양이의 목부분에 몇 개의 알아보기힘든 글자가 조각되어 있었다. "웅묘아(熊描兒)가 스스로 조각하고 스스로 갖고 다니고 혼자 보며 혼자즐긴다." 심랑이 웃으며 말했다. "이 소년의 이름이 웅묘아였구만!" 김무망이 냉랭하게 말했다. "그 녀석의 모습을 보건대 진짜 고양이와 비슷한 점이 없지 않았소." 심랑이 웃으면서 두번째 물건을 집어들어 자세히 살폈다. 그러나 순간그의 웃음소리가 뚝 그쳤으며 안색도 급히 변했다. 김무망이 이상스럽게생각하여 물었다. "이 물건은 또 뭐가 이상한 점이 있소이까?" 두번째 물건 역시 옥으로 만든 노리개에 불과했다. 그 옥은 상당히아름다운 것이었으나 특이한 점은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러나 김무망이심랑의 손에서 그 물건을 받아들고 살펴보는 순간 그의 안색도 놀라운기색이 넘쳐 흘렸다. 이 노리개에는 '심랑' 이라는 두 글자가 조각되어있었던 것이다. 김무망이 이상하다는 듯이 말했다. "심 형의 노리개를 어떻게 그 녀석이 갖고 있었던 거죠? 그 녀석이 심형에게 먼저 손을 썼던 건가요?" "이 노리개는 내 것이 아니오!" 김무망이 더욱 이상하다는 듯이 말했다. "심 형의 노리개가 아니면 어떻게 심 형의 이름이 조각되어 있는 거요?" "이 노리개는 주칠칠의 것이오!" 김무망은 더욱 놀라 얼굴색마저 변하며 물었다. "주 아가씨의 노리개를 어떻게 그 녀석이 갖고 있었던 거죠? 혹시......? 혹시......?" "원인이야 어떻든 이 옥벽이 그 소년의 몸에서 나온 이상 주칠칠의 소재를그 녀석은 틀림없이 알고 있을 거요. 우리는 결과가 어떻든 먼저 그소년에게 주칠칠의 소재에 대해서 물어보도록 합시다." "그 녀석은 이미 가버렸는데 어떻게 그 녀석을 찾아서 물어본단 말이오?" 심랑이 그의 말에 대답도 하기 전에 김무망은 스스로 그 방법을생각해내고는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말했다. "그렇지! 그러면 되겠군! 우리가 길거리에서 거리의 무리들을 만나기만한다면 그녀석들에게서 웅묘아란 녀석의 소재지를 찾아낼 수 있을것이오!" "내 생각도 바로 그렇소. 웅묘아의 형제들이 육백팔십여 명이나 되는데우리가 그녀석의 소재지를 찾지 못할까봐서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소. 갑시다!" 그는 이미 문 밖으로 나서고 있었다. 날씨는 을씨년스럽고 차가운 바람은 흙먼지까지 일으키고 있었다. 인적이드문 황폐한 사당에서는 모닥불이 활활 타고 있었다. 십칠팔 명의 대한이그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아 있었으며 그들 주위에는 술단지와 술잔들이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그들은 박수를 치면서 노래하고 있었다. "웅묘아는 강호 제일 유협객이라네! 그 손재주는 아무도 알아볼 사람 없으며 부자집을 털어서 가난한 집을도와준다네! 천하인들은 모두 그에 비할 자가 없다고 말을 한다네!" 웃음소리와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중에 갑자기 사당 밖에서 그들의 노래에응하는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천하인들이 그에 비할 자가 없다고 말을 하기보다는 차라리 술취한고양이라고 말하는 게 더 알맞다네!" 하나의 인영이 공중에서 네 번 재주넘기를 하더니 모닥불 곁에 떨어져내렸다. 그 사람은 바로 짙은 눈썹에 큰 눈을 가진 호쾌하고 속된 냄새가전혀 없는 웅묘아였다. 대한들이 동시에 웃으면서 몸을 일으켜 말했다. "큰형님께서 오셨습니까?" 어떤 사람이 또 말했다. "큰형님께서는 성공하셨습니까?" 웅묘아가 눈을 들어 사방을 돌아보고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형제들은 웅묘아가 빈 손으로 돌아온 적이 있었다는 말을 들었소이까?" 그는 손을 뻗어 모닥불 곁에 서 있던 붉은색 얼굴의 대한의 어깨를두드리면서 말했다. "오(吳) 넷째! 자네 눈썰미가 보통은 넘는군. 그 두 사람은 확실히 어딘지이상한 면이 있는 친구들이었어. 그리고 허리에는 디룩디룩 살이 졌더군. 그렇지만 그 두 사람의 무공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할 만큼이나 높았어!" 그 장한 오씨의 넷째가 웃으면서 말했다. "무공이 아무리 높다고 해도 어떻게 큰형님의 손재주를 막을 수가있었겠습니까?" 옹묘아가 앙천대소하며 말했다. "일리가 있는 말이오. 내가 이번 그들에게서 가져온 물건을 여러분들께보여드리리다. 이 은표 한 장이면 북문(北門)에 있는 열 몇 가구의 고아,과부들이 이 겨울을 편안히 보낼 수 있을 것이오." 말을 하면서 그는 손을 뻗어서 허리께를 더듬었다. 그러나 그 순간 그의웃음소리가 갑자기 멈춰졌으며 안색도 크게 변했다. 허리를 더듬던손마저도 더이상 빼낼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대한들이 놀라고이상하여 급히 물었다. "무슨 일이죠?" 옹묘아는 멍청히 그 자리에 서 있었으며 입으로 중얼거렸다. "대단하군! 대단한 솜씨야!" 그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한 방울 한 방울 맺혀나오고 있음을 볼 수있었다. 그러나 그는 갑자기 앙천대소하면서 말했다. "좋은 손재주, 좋은 손재주이고 멋진 친구로군! 나 웅묘아가 오늘 당신과같은 인물을 만났으니 비록 내 모가지를 떼어간다 해도 달갑게떼어드리겠소." 오씨 넷째가 말했다. "큰형님께서는 도대체 누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웅묘아가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우면서 말했다. "이 사람의 무공은 천하에서 드물게 볼 정도로 높을 뿐만 아니라 그인품의 뛰어남은 내가 평생 보지 못한 바이오! 내가 만약 여자였다면맹세코 이 사람이 아니면 시집을 가지 않을 것이오!" 오씨 넷째가 더욱 이상하다는 듯한 안색으로 말했다. "그 친구는 도대체 누굽니까?" 웅묘아가 말했다. "내가 말하는 사람은 그 아까 이상한 사람 둘 중에 젊은 사람이오." 대한들이 멍청한 안색을 지어보였으며 오씨 넷째는 중얼중얼 말했다. "큰형님께서 이처럼 그 친구를 추켜세우신다면 그는 틀림없이 뛰어난사람이긴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그는 웅묘아가 허리춤에서 손을 빼내지 못하는 것을 힐끔 바라보더니 말을멈추었다. 웅묘아가 웃으면서 말했다. "이 순간 자네 마음 속에서는 의문스러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도 차마나에게 직접적으로 질문하진 못하는 것이겠지? 그렇다면 내가 자네에게말해주지. 내가 그 사람에게서 빼내온 은표를 이미 그 젊은 친구가 다시빼내어가 버렸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내 자신 전대까지도 그 소년이가져가 버렸다네. 이게 어찌 놀랄 만한 일이 아니겠나?" 만약 다른 사람이었다면 이렇게 체면을 손상당하는 일을 자기의 수하에게얘기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웅묘아는 사실 그대로를 얘기했으며 그 말을 할때 그는 기쁜 듯크게 소리내어 웃고 있었던 것이다. 대한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아무소리도 하지 않았다. 웅묘아는 그러한 모습을 보고 웃으면서 말했다. "왜 그런 모양들을 짓는 것이오? 이러한 대단한 인물을 만날 수 있었다는것은 우리에게는 큰 복이오. 내 물건을 조금 잃어버렸다고 대단할 것은없지 않겠소. 하물며 그 물건은 원래 다른 사람 것이 아니오?" 오씨 넷째가 중얼중얼 얘기했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형님의 전대는......." 웅묘아가 말했다. "그 전대가 뭐 대수로울 게 있겠소? 애석한 것은 다만 내가 이 허리에차고 있는 보도로 직접 깎아 만든 고양이인데, 그렇지만......." 말을 하던 그의 안색이 갑자기 변하며 실성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야! 다른 물건이 하나 더 있었어!" 대한들은 그가 물건을 잃어버리고도 조금도 애석해 하지 않고 있다가 다른한 가지 물건을 생각하고 갑자기 안색이 크게 변하는 것을 보고 그 물건이그의 심중에는 상당히 귀중한 것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오씨 넷째가참지 못하고 말했다. "무슨 물건인데요?" 웅묘아가 묵묵히 한참 있더니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 물건은 비록 내가 그 황폐한 사당 속에서 주어온 것이긴 하지만그렇지만...... 그렇지만......." 그는 고개를 쳐들고 장탄식을 하더니 이어서 말했다. "그 물건은 어떤 아가씨의 몸에 지니고 다니는 물건이었소." 오씨 넷째가 쭈뼛쭈뼛 무엇을 더 물어보려는 태도를 지었으나 감히 입을열어서 물어보지 못하는 기색이었다. 웅묘아가 그 모습을 바라보고말했다. "도대체 그 여자가 누군지 알고 싶은 거겠지?" "그 아가씨는 큰형님의...... 큰형님의 어떤......?" 그는 여전히 그 이상의 말은 할 수 없었다. 대한들은 이미 참지 못하고웃음을 떠올리고 있었다. 웅묘아가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소! 그 아가씨는 확실히 내 마음을 가장 크게 움직인 아가씨요. 내가본 숱한 여자들 중에 아름다운 여자요. 그렇지만 나는 그녀의 성이무엇이며 이름이 무엇인지 또 어떤 내력을 갖고 있는 아가씨인지도 모르고있소이다." "제가 가서 그 아가씨가 어떤 아가씨인지 알아볼까요?" 웅묘아가 씁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럴 필요없소. 내가 그날 그 아가씨를 한 번 보고 나서 그 아가씨는실종되어 버렸소. 내가 이미 며칠을 두고 계속 그 아가씨를 찾아다녔지만그녀의 그림자도 찾을 수 없었소." 그는 말을 마치고 나서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가려 하였다. 대한들이이구동성으로 물었다. "형님께서는 어디로 가시는 겁니까?" "좋든 싫든 그 전대를 찾아와야 할 것 같소. 아울러 이 기회에 그젊은이와 교분을 맺고 싶소. 당신들은 다른 일이 없으면 여기에서 내가돌아올 때까지 기다리시오." 말을 마치기도 전에 그는 이미 밖으로 걸어나가고 있었다. 오씨 넷째가그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중얼거렸다. "내가 강남, 강북을 수십 년 동안 돌아다녔지만 웅 형님처럼 호쾌하고성격이 급한 분은 만나본 적이 없소이다. 우리가 그분의 형제가 될 수있었다는 것은 우리에게는 큰복이라 할 수 있소. 이런 사람은 천성적으로우두머리를 할 사람이오. 형님이 사람을 찾아서 나가시니 좋든 싫든 내가가서 그분을 도와드려야 할 것 같소." 말을 하면서 그도 몸을 돌려서 나갔다. 해는 이미 서산으로 밀려가고 있었으나 아직 땅거미가 드리워지지는않았다. 웅묘아는 빠른 걸음으로 큰길을 걷고 있었다. 그러나 길거리에오가는 행인들 중에서 심랑과 김무망을 찾기 위해서 그의 그 뛰어난경공을 전개하지는 않았다. 그가 차 한 잔 마실 정도의 시간을 걸어갔을때 한 명의 청의 부인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청의 부인은 허리를구부정하게 굽힌 채 한 손에는 다른 여자의 손을 잡고 한손에는 노새의고삐를 잡고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노새에 탄 여자와 그 청의 부인의손에 잡혀 걸어가고 있는 여자는 모두 세상에서 드물게 보는 못생긴여자들이었다. 심지어 웅묘아마저도 한 번 힐끗 바라본 후에 더이상 다시쳐다볼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눈길이 청의 부인으로 향하는순간 그는 그 부인이 바로 그날 자신의 마음을 그렇게 움직였던 소녀를만났을 때 그 쓰러져 가는 사당 속에서 불을 쬐던 부인임을 알 수 있었다. 그는 눈썹을 찌푸리고 약간 멈칫 하더니 갑자기 뛰쳐나가 이 세 사람의앞길을 막았다. 그는 손을 활짝 벌리고 히히하고 웃으면서 말했다. "저를 알아보시겠습니까?" 그 청의 부인은 웅묘아의 위아래를 몇 번 훑어보더니 웃으면서 말했다. "어른신께서는 저희들에게 적선을 해주시려는 겁니까?" "부인께서 저를 알아보시지 못한다고 해도 저는 부인을 알아봅니다. 그날부인께서는 혼자였는데 어떻게 지금은 세 분이 같이 다니시는 거죠? 부인께서는 그 아가씨를 그 후에 다시 본 적이 있으신가요?" 청의 부인에게 사로잡혀 있던 주칠칠의 절망에 가득찬 가슴이 다시 '펑펑'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녀는 아직 이 무뢰배 같은 소년을 기억할 수있었다. 그녀는 꿈에도 이 무뢰배 소년이 그녀 자신을 찾아오리라고는생각지 못했다. 그러나 그때 청의 부인의 말이 들려왔다. "무슨 한 사람, 세 사람이란 말이오? 그리고 또 무슨 아가씨란 말이오? 어르신께서 하시는 말씀을 나는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소. 어른신께서저에게 적선을 하려면 하시고 그렇지 않다면 이만 지나가겠소." 웅묘아가 눈을 크게 뜨고 그녀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부인께서는 진짜로 저를 모르신단 말입니까? 아니면 모르는 척 하시는겁니까? 그날 부인과 그 사당에서 불을 쬐던 아가씨를 부인은잊어버리셨단 말이오? 바로 그 눈이 크고 입술이 조그마한......." 그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청의 부인이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한 기색을지으며 말했다. "아! 어르신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바로 그 옷을 말리던 아가씨말씀이군요? 참 예쁘게 생긴 아가씨였죠. 그렇지만...... 그렇지만 그날저녁 그 아가씨는 어르신과 싸움을 하던 그 도인 어르신과 함께가버렸습니다. 아마 동쪽으로 간다고 했죠? 어르신께서는 그녀를 따라잡을수 없을 거요." 웅묘아는 실망한 듯 탄식소리를 내면서 더이상 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몸을 돌려 그 자리를 떠나려는 순간 그는 청의부인에게 손을잡혀 끌려오고 있던 못생긴 여자가 그를 바라보는 표정이 남다르다는 것을느낄 수 있었다. 그는 발을 멈추고 눈썹을 찌푸렸다. 이상하다는 느낌이언뜻 스쳐갔으나 그는 더이상 자세히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이때 청의 부인은 이미 절뚝거리며 한손으로는 노새를 끌고 한손으로는여전히 그 못생긴 여자의 손을 잡은 채 그의 옆을 스쳐서 지나가버렸다. 주칠칠은 일말의 희망이 사라지는 기분을 느꼈다. 이후부터는 주칠칠은조금의 희망도 가질 수 없다는 생각에 몸서리 치지 않을 수 없었다. 웅묘아는 옆구리에 차고 있던 호로병을 흔들어보았으나 그 호로병에는 한방울의 술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는 길게 탄식을 했다. 낙담인지애처로움인지 혹은 쓰라림인지 모를 그러한 기분이 자신을 엄습함을느꼈다. 그때 갑자기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형님!" 오씨 넷째가 총총히 그를 쫓아왔던 것이다. 그는 거친 숨을 몰아쉬고있었다. 그러나 그를 바라본 순간 웅묘아는 그의 표정이 기이하다는느낌을 받았다. 웅묘아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 "무슨 일이오?" 오씨 넷째가 그 청의 부인의 뒷모습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나지막하게말했다. "그 두 녀석이 바로 저 부인에게 은표를 주었기 때문에 저희들이 형님께말씀드렸던 것입니다." "정말이오?" "제 눈이 그래도 쓸만 합니다. 그들이 저 부인에게 준 은표는 붉은 글씨로쓰여져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 은표가 적어도 오천 냥 이상짜리라는겁니다." 웅묘아는 느끼는 바가 있어서 얼굴색을 변하면서 물었다. "자세히 보셨소?" "절대 틀림이 없을 겁니다!" 웅묘아가 그 짙은 눈썹을 약간 찌푸리고 말했다. "만약 길거리에서 가난한 사람에게 적선을 할 경우에는 절대 한번에 오천냥 이상의 은표를 줄리는 없다고 생각되오. 생각컨대 이 부인은 틀림없이그 두 사람과 깊은 관계가 있을 것이오. 그 두 사람이 이미 강호의기인이라면 이 부인도 틀림없이 평범한 무리라고는 볼 수가 없을 것이오. 그런데 저처럼 어리숙한 모습을 하고 있다니...... 이것은 틀림없이 다른원인이 있기 때문일 거요!" 말을 마친 그는 갑자기 몸을 돌려 그 청의 부인을 쫓아가기 시작했다. 그가 뒤에까지 바짝 쫓아갔으나 청의 부인은 여전히 알아차리지 못하는듯했다. 웅묘아의 눈빛이 번쩍 하더니 갑자기 손을 들어 바람소리를 내며청의 부인의 어깨쭉지를 공격해 들어갔다. 그의 장풍에는 이미 진력이잔뜩 차 있어서 무공을 조금이라도 연마한 사람이라면 그 장풍의 소리를들을 수 있었으며 그 공격을 그대로 맞받는다면 어깨뼈가 산산조각나리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청의 부인은 여전히 웅묘아의 공격을모르는 듯했다. 그러나 그때 그녀의 다리가 휘청 하더니 몸이 앞으로넘어지면서 공교롭게도 위기 일발의 순간에 웅묘아의 공격을 빗나가게했다. 웅묘아는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과연 뛰어난 무공이오!" 청의 부인이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면서 망연히 말했다. "무슨 무공 말씀이오? 어르신께서 하시는 말씀을 저는 알아들을 수가없군요." "부인께서 알아듣든 알아듣지 못하든 그건 둘째 문제요. 나랑 같이갑시다." "어디...... 어디로 간단 말인가요?" "저는 부인께서 이처럼 고생하시는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파서 부인께적선을 좀 하려고 하오." "어르신의 호의는 고맙소만 이 노부(老婦)에게는 두 명의 질녀를 빨리데려가야만 할 급한 일이 있어서......." 웅묘아가 갑자기 대갈했다. "가기 싫어도 가야만 할 것이오." 말을 하는 순간 그는 몸을 번쩍 날려 노새의 등 뒤에 올라앉아 노새의궁둥이를 힘껏 내리쳤다. 그 노새는 깜짝 놀라 앞으로 미친 듯 달려가기시작했다. 청의 부인은 당황한 듯 얼굴색이 크게 변하며 소리를 질렸다. "이 악당 놈! 돌아와라!" 웅묘아가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소! 난 본래 악당이오! 당신의 가련한 그러한 기색은 협의의인사들에게는 통할지 몰라도 나와 같은 악당에게 그러한 수단을쓴다면...... 헤헤! 아마 당신이 당하고 말 것이오." 그 노새는 비록 비쩍 마르고 약해 보였으나 이러한 말을 주고 받는 순간이미 이십여 장을 달려가고 있었다. 청의 부인이 발을 구르며 소리쳤다. "강도야! 강도! 사람 살려요!" 그러나 웅묘아는 여전히 멀찍이 달려가면서 소리칠 뿐이었다. "그렇소! 나는 바로 강도요! 그렇지만 강도는 호인(。人)을 겁내지않소이다. 호인이 도리어 강도를 겁내죠. 당신이 목구멍이 터져라외쳐보시오. 아무도 당신을 구해줄 수는 없을 것이오." 그의 모습은 이미 시야에서 사라져가고 있었다. 청의 부인은 더이상 참지못하고 이를 악물더니, 허리를 돌려 백비비를 껴안고 다른 사람이 놀래든말든 상관없이 몸을 날려 쫓아가기 시작했다. 그의 경공은 과연 보통이훨씬 넘는 수준이었다. 그녀는 옆구리에 한 사람을 끼고서도 몇 번 몸을날리더니 이미 이십 장 밖으로 달려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웅묘아는 두다리로 노새의 등을 꼭 끼고 한손으로는 그의 앞에 앉아 있는 추녀주칠칠을 껴안고 다른 한손으로는 계속 노새의 궁둥이를 때리며 웃으며말했다. "어떻소? 내가 당신이 무공을 전개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었지요?" 청의 부인은 표독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렇다면 또 어쩔테냐? 곧 죽을 녀석이......." 그녀가 몇 번 몸을 날리자 그 노새의 뒤에까지 바짝 쫓아갔다. 그러나웅묘아가 갑자기 주칠칠을 껴안고 노새의 등에서 뛰어내릴 줄이야! 웅묘아는 노새의 등에서 뛰어내려 앞으로 달려나가면서 계속 웃으면서말했다. "나를 쫓아온 후에 다시 얘기합시다." 그가 몸을 한 번 번쩍 날리자 노새는 이미 한참이나 뒤에 쳐졌다. 그는이미 이 청의 부인이 쫓아오는 것은 노새가 아니라 노새 위에 앉아 있던추녀임을 알았차렸던 것이다. 만약 협의의 인사들이었다면 이러한 일은하지 못했을 것이었으나 웅묘아는 남의 이목을 고려하지 않고 목적이정당하기만 하고 또 자신이 해치울 수만 있는 일이라면 아무런 일이나해치우는 그러한 사람이다. 청의 부인은 이 무뢰배 소년이 이처럼 뛰어난경공을 지녀서 자신이 그를 쫓아가지 못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한 듯했다. 그녀는 조급하고 화가 나서 대갈했다. "멈춰라! 할 말이 있으면 우리 의논해 보기로 하자!" 웅묘아가 말했다. "무슨 할 말 말이오?" "도대체 뭘 원하는 거지? 우선 내 조카딸을 내려놓아라. 그리고 나서의논해 보자." 이때 두 사람의 신형은 모두 그 황폐한 사당에 가까워져 있었다. 웅묘아가웃으며 말했다. "멈추는 것도 괜찮지요. 그렇지만 당신이 먼저 멈추시오. 그러면 내가멈추리다. 그렇지 않을 경우 당신이 삼일 밤낮을 나를 쫓아온다고 해도아마 따라잡기는 어려울 것이오. 이점 당신은 이미 잘 알았으리라고생각하는데......?" 청의 부인의 분노에 찬 음성이 들려왔다. "이 악당 놈! 무뢰 배 녀석!" 그러나 마침내 부득불 먼저 신형을 멈추지 않을 수 없었다. "뭘 원하는 게냐? 말해봐라!" 웅묘아는 그녀의 오 장 밖에 멈추어 서서 웃으며 말했다. "나는 아무 것도 원하는 게 없소이다. 다만 당신께 몇 마디 물어보고 싶은말이 있을 뿐이오." 청의 부인의 눈빛이 번쩍였다. 그녀의 얼굴에는 이미 조금도 자상한기색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녀는 표독스럽게 말했다. "빨리 물어봐라." "당신에게 은표를 준 그 두 사람은 도대체 누구요?" "지나가다가 나에게 적선한 사람을 내가 어떻게 안다는 거냐?" "만약 당신이 그 사람들을 모른다면 그 사람들이 어떻게 당신에게 그런거액의 은표를 주었겠소?" 순간 청의 부인의 표정이 변하더니 날카롭게 외쳤다. "좋다! 말해주마. 그 두 사람은 원래 강양(江洋)의 대도로서 나에게그들의 비밀을 들켰기에 은자로 내 입을 막으려 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두 사람이 지금 이순간 어디로 갔는지는 난 정말 모른다." 웅묘아가 대소하며 웃으면서 말했다. "그 두 사람이 만약 강양의 대도라면 당신도 틀림없이 그들과한패거리겠구려? 그런데 당신과 같은 사람에게 어떻게 두 명의 불구의여자가 같이 붙어 있는지 모르겠소. 내가 보건대 여기에는 틀림없이 무슨비밀이 있을 것 같은데......?" 청의 부인이 노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점은...... 그점은 네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웅묘아가 앙천대소하면서 말했다. "나 웅묘아는 평생 다른 사람의 일을 상관하기를 좋아하오. 비록근본적으로 나하고 관계가 없는 일이라고 할지라도 말이오. 오늘 내가당신을 제압하지 아니하면 당신은 사실대로 얘기할 것 같지가 않구려?" 말소리가 멈추는 순간 그는 갑자기 크게 외쳤다. "형제들 나오시오!" 그의 외침소리가 끝나자마자 그 황폐한 사당에서는 이미 십여 명의 대한이뛰쳐나왔다. 웅묘아는 그 중 한사람에게 주칠칠을 건네주면서 말했다. "이 여자를 은밀한 곳에 감추고 잘 지키도록 하시오." 장한들의 그의 말에 대한 대답소리가 끝나는 순간 웅묘아는 몸을 날려이미 청의 부인의 면전에 도착해서 말했다. "자, 손을 쓰시오." 청의 부인이 차갑게 웃으면서 말했다. "네 녀석은 정말 죽고 싶다는 건가? 좋다!" '좋다' 하는 말이 입에서 나오는 순간 그녀는 이미 삼 장을 공격해들어오고 있었다. 그녀는 그 무뢰배 같은 소년을 지나치게 경시할 수없다고 생각한 듯 겨드랑이에는 여전히 백비비를 끼고 있었으나 그 삼장은 전력을 다한 공격이었다. 웅묘아는 호랑이가 뛰고 용이 몸을꿈틀거리듯 순식간에 삼 초를 피해버렸다. 그리고 나서 웃으면서 말했다. "당신이 부인이기 때문에 다시 삼 초를 더 양보하리다!" 청의 부인의 안색은 더 침중해졌으며 날카롭게 외쳤다. "후회하지는 말아라!" 말을 마친 그녀는 왼발을 앞으로 내딛고 몸을 반쯤 돌린 다음 몸을 천천히앞으로 뻗어내었다. 그리고 입에서는 여전히 차갑게 말했다. "이것이 제 일 초다!" 그녀의 뻗어내는 오른손의 다섯 손가락은 반은 굽혀졌으며 엄지 손가락은식지 손가락 위에 겹쳐 있었다. 그 모습은 주먹인 듯했으나 주먹도 아니며장력인 듯했으나 장력도 아니었다. 그의 공격은 더없이 천천히전개되었다. 그의 제 일 초가 약 반 이상이 시전되었으나 웅묘아는 아직껏그녀가 공격하려는 것이 어느쪽인지 알아차릴 수도 없었다. 웅묘아는 꼼짝않고 서서 그 오른손을 가만히 뚫어져라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공격을 쳐다보는 웅묘아의 눈빛은 침중하였으나 그의 입가에는여전히 태연한 웃음이 떠돌고 있었다. 청의 부인의 오른손은 중도에서 갑자기 위로 쳐들리더니 곧장 웅묘아의좌측 귀를 공격해 들어왔다. 중지와 무명지, 소지(小指)도 동시에 튕겨져나왔다. 그 공격은 전광석화 같았다. 그 좌측 귀쪽은 비록 공격 범위가매우 좁았으나 상대방이 결코 예상하지 못한 공격지점이었다. 다른 말로하여 상대방의 취약점이었던 것이다. 웅묘아는 과연 예상밖인 듯 총망중에 깊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몸을 오른쪽으로 굽혔다. 그러나 그 청의부인은 이미 그가 이 일 초를 피하는 순간 아랫도리는 움직일 겨를이없었으며 그 피하는 간격도 넓지 못함을 예상한 듯 웅묘아가 오른쪽으로몸을 굽히는 순간 그의 식지가 급속히 튕겨지며 내가(內家)의 무공 중의하나인 탄지신통(彈指神通)이라는 초식을 펼쳤다. 장세가 아직 도착하기도 전에 날카로운 바람소리가 곧장 웅묘아의이혈(耳穴)을 짚어나갔다. 그 이혈 속은 인체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의하나였다. 보통 부드러운 종이 끝으로 그곳을 찌른다 해도 그 아픔이 참기어려운 법인데 이 순간 청의 부인은 손가락 끝으로 진기를 뭉쳐서 공격해냈던 것이다. 그녀의 공격은 비록 눈에 보이지 않았으나 눈에 보이는물건보다도 더 날카롭게 이혈을 짚어갔다. 그녀의 공격이 웅묘아의귓속으로 파고들 경우 고막은 즉각 파열될 상황이었다. 웅묘아는 꿈에도그녀가 처음부터 이렇게 음험하고 독랄한 초식을 전개하리라고는 생각하지못했다. 만약 심장이 독사나 사갈처럼 악독한 사람이 아니라면 꿈에도이처럼 험악한 초식은 전개하지 않는 것이었다. 웅묘아는 당황한상태에서도 급히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늘어뜨려 몸을 뒤로 눕히면서 몇척을 물러섰다. 그러나 그 날카로운 지풍은 그가 비록 빨리 피하기는하였으나 여전히 그의 이마를 스쳐지나갔다. 그 지풍에 스친 그의 이마는즉시 빨갛게 달아올랐다. 웅묘아는 놀랍고 또한 화가 나서 대갈했다. "이것도 일초라고 간주해야 되겠소?" 그의 외침소리가 일어나는 순간 청의 부인은 그림자처럼 그에게 접근해왔으며 그의 외침이 끝나는 순간 청의 부인의 제 이 초가 그의 아랫배의요혈을 공격했다. 이번 일 초는 아까보다 더욱 독했다. 이때 웅묘아는아직 몸의 균형을 제대로 잡기도 전이라서 청의 부인의 이 두번째 공격은그를 그대로 쓰러뜨릴 것 같았다. 그러나 웅묘아의 체력의 강건함은어떠한 사람의 상상도 초월하는 것이었다. 그의 체내의 진력은 마치 높은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처럼 끊임없이 흘려나왔던 것이다. 그가 가슴으로가볍게 숨을 들이마시는 순간 그의 몸은 '휙' 하는 소리를 내며 뒤로 몇척을 물러섰으며 다시 발을 들어 껑충 뛰어서 공중에서 제비잡기를 하는순간 다시 청의 부인의 면전에 돌아와 있었다. 청의 부인은 그가 비단 자기의 두 번의 공격을 피했을 뿐만 아니라 그신법이 기이하고 뛰어나 물러서고 다가섬이 전광석화 같음을 보고 놀랍고당황한 기색을 드러냈다. 그러나 그녀는 또 날카롭게 외쳤다. "아직 일 초가 남았다. 받아봐라!" 그녀는 다시 손을 천천히 앞으로 밀어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제 일초와 꼭같은 것이었다. 웅묘아가 냉소하면서 말했다. "방금 공격까지 이미 삼 초라고 계산해야 되지 않겠소? 그렇지만 다시 일초를 더 양보해도 상관은 없소!" 용(籠)과 봉(鳳)과 들고양이의 만남 그가 말을 끝마쳤을 때 청의 부인의 장세는 이미 반 밖에 전개되지 않고있었다. 웅묘아는 마치 산처럼 우뚝 서서 두눈을 호랑이처럼 부릅뜨고 청의부인을노려보고 있었다. 그녀가 이 초식을 전개하고 나면 즉각 살수를 전개할듯한 그러한 기세였다. 청의 부인이 가볍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받아라!" 그러나 그녀의 손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도리어 오른발로 갑자기남자의 급소인 아랫도리를 차 들어갔다. 이 일 초는 확실히 예상밖의공격이었다. 웅묘아가 몸을 번쩍 날려 겨우 그 일 초를 피하는 순간, 청의 부인의 소매속에서 갑자기 또 수십 줄기의 은빛과 같이 가느다란 실들이 복사되어나왔다. 날카로운 바람소리와 번쩍이는 은빛은 웅묘아의 주위 삼 장둘레를 물샐틈 없이 에워쌌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웅묘아가 비록 무공이하늘을 뒤덮을 듯하나, 그 공격은 피할 수 없을듯 보였다. 한쪽에서 싸움을 구경하고 있던 대한들은 방금 웅묘아가 여러번 위험에빠졌으나 그때마다 그 위험에서 빠져 나오는 것을 보고 놀라고 기쁨에 차환호성을 내질렀으나 이순간 그들은 안색이 퍼렇게 변해갔다. 바로 이순간 웅묘아가 손에 들고있던 호로병을 갑자기 휘둘렀다. 그호로병에 따라서 하늘 가득 차있던 은빛들은 마치 벌들이 그 벌집을찾아가듯 모두 그 호로병으로 빨려 들어갔다. 청의 부인은 대경실색하였고 대한들의 푸르게 변했던 얼굴은 기쁨에 찬환호성으로 변했다. 웅묘아는 그 자리에 우뚝서서 광소를 터뜨리며 말했다. "지독한 암기에, 지독한 수법이로군. 마침 나 웅묘아가 전문적으로 천하각문 각파의 암기를 파기하는 재주를 가졌으니 망정이지......." 청의 부인이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너...... 너의 호로병은 어디서 나온거지?" 웅묘아가 대소를 터뜨리며 말했다. "당신이 상관할 바가 못될 것이오. 이제 나의 일 초를 받아보시오." 웃음소리 속에서 그는 손에 들고 있던 호로를 벼락처럼 청의 부인의머리를 향해 내리쳤다. 청의 부인은 급히 뒤로 수 척을 물러서 감히 웅묘아의 공격을 맞받아칠생각을 하지 못했다. 웅묘아가 웃으며 말했다. "왜 피하는 거지요? 한 번 받아보시오!" 청의 부인이 표독스럽게 그를 바라보고 이를 깨물며 말했다. "내가 오늘 너 같은 녀석을 만날줄은 생각도 못 했구나. 너의 그호로병은......." 발을 웅크리더니 다시 말했다. "그만두자!" 말을 마친 그녀는 곧 몸을 돌려 도망가려 했다. 그러나 웅묘아가 광소를 터뜨리며 말했다. "그대로 가시려 하시오? 그렇지만 그렇게 쉽지는 않을 거요!" 차가운 빛이 번쩍이는 순간, 그의 허리에 차고있던 단도가 허리를떠나더니 청의 부인이 도망가려는 길을 가로막았다. 청의 부인의 눈빛에 핏발이 어리더니 갑자기 겨드랑이에 끼고있던백비비를 번쩍 들어 그 단도를 향해 맞받아쳐 나갔다. 이번에는 웅묘아가 깜짝 놀랐다. 그는 얼른 단도를 잡은 손을 아래로웅크리며 두 팔로 백비비를 받아 안았다. 바로 이 순간 청의 부인은 이미수 장 밖으로 뛰쳐 나갔으며 다시 몸을 움찔하는 순간 이미 행적도 없이사라져버렸다. 오노사가 길을 가는 행인을 살피며 걸어가는 순간 갑자기 그 청의부인에게은표를 적선했던 두 명의 이상한 사람들이 마침 한 그루나무 밑에서앞가슴을 풀어헤친 대한에게 계속 질문을 던지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볼 수있었다. 그 나이가 약간 많은 듯한 사람의 안색은 상당히 음침하였으며 모습이괴이하여 얼핏 보았을 때, 마치 시체와 같아서 사람들로 하여금 가슴속에서 찬바람이 일어나게 하는 그러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 나이가 약간 젊은 사람은 이와는 반대로 표정이 깨끗하고잘생긴 얼굴에 입가에는 미소를 띠고 있어서 사람이 그 모습을 볼 때가슴에 마치 봄바람이 일렁거리듯 그에게 가까이 접근하고픈 마음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그러한 모습이었다. 오노사는 그들을 본 순간 그들이 바로 웅묘아가 찾고있는 그 사람들임을알아차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큰형님께서 마침 저 녀석들을 찾고 있는데, 저 녀석들도 큰형님을 찾고있는 듯한 모습이니 참 이상한 일이로군. 그렇지만 애석하게도 그들이질문하고 있는 것은 우리의 형제가 아니니.......)생각을 마친 그는 큰 걸음으로 그 앞으로 다가가 웃으며 말했다. "두 분께서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까?" 나무 아래서 그 대한에게 질문을 하고 있던 사람은 바로 심랑과김무망이었다. 두 사람은 오노사를 위아래로 한 번 훑어보고 나서 심랑이 눈이번쩍하더니 웃으며 말했다. "우리가 찾고 있는 사람을 친구께서는 알고 계신단 말이오?" 오노사가 말했다. "두 분께서 어떤 분을 찾고 계신지 말을 하시면 제가 혹시 알지도모르지요." 심랑은 그 손에 쥐고있던, 옥을 깎아 만든 고양이 형상을 오노사의 면전에보여주며 웃으며 말했다. "바로 이 사람을 찾고 있소." 오노사의 얼굴에 기쁜빛이 번쩍 스치더니 손을 뻗쳐 그 옥으로 만든고양이를 낚아채려 하였다. 그러나 그의 손이 움직이는 순간, 심랑은 이미 손을 움추리고 얼른 그옥으로 만든 고양이를 거둬 들였다. 오노사는 어쩔 수 없이 마른 웃음을몇 번 웃더니 말했다. "두 분께서 다른 사람을 찾으신다면 몰라도 이 사람은......." 심랑이 기쁜 음성으로 말했다. "친구께서 이 사람을 아신단 말씀이오? 그 사람은 지금 어디에 있죠?" 오노사가 웃으며 말했다. "두 분께서는 저를 따라 오시지요." 말을 마친 그는 몸을 돌려 큰걸음으로 걸어나갔다. 겨울해는 짧아서어둠이 빨리 밀려들고 있었다. 그 황폐한 사당에는 모닥불이 더욱 활활 타오르고 있었으며 사방 벽에는또 대여섯 개의 등불이 걸려 있어서 이 눈보라 속에 외떨어져 초라해보이는 황폐한 사당을 한층 더 따뜻하게 보이게 하고 있었다. 웅묘아는 두 다리를 쭉 뻗고 구석자리에 있는 검불더미에 퍼질러 앉아 그모닥불 옆에 있는 두 명의 못생기고 불구인 여자들을 멍하니 바라보고있었다. 그는 이 순간까지 이 두 여자가 역용술로 이미 본모습이 바뀌어져 있다는것을 알아차리지는 못했으나 이 두 여자에게 확실히 이상한 면이 있음은느끼고 있었다. 산좌사도 일가의 역용술은 확실히 뛰어 난 것이었다. 그는다만 이 두 명의 여자가 그들의 눈빛에서 할 말이 매우 많으나 입밖으로말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을 뿐이었다. 그녀들의 눈빛은조급하고 긴박하고 억울하고 부끄럽고 그리고 기쁨에 찬 그러한눈빛이었다. 주칠칠은 운명이 이렇게 기묘한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자신을그 악마의 손에서 구해낸 것이 바로 그녀 자신이 뼈에 사무치게 미워하던그 무렵의 소년일줄이야. 그러나 심랑! 아, 심랑은 또 어디로 갔단말인가. 그 기묘한 호로병은 마침 웅묘아의 무릎 부근에 놓여 있었다. 그호로병에는 가늘기가 마치 소털과 같은 날카로운 침들이 가득 붙어 있어서그 모닥불빛 아래서 찬란한 은빛을 발해내고 있었다. 웅묘아의 눈빛이 그 호로병을 향하더니 불을 지피는 장작을 하나 들어호로병에 붙어 있던 그 은빛 침을 하나 떼어내서 자세히 살폈다. 한참을살피던 그의 얼굴이 갑자기 가볍게 변했다. 바로 이순간 오노사가 사당 안으로 뛰어 들어오며 외쳤다. "형님! 이 동생이 손님을 모시고 왔습니다." 웅묘아가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어떤 손님이오?" 그가 말을 마치고 몸을 돌리는 순간 김무망과 심랑은 이미 그의 옆에다가와 서 있었다. 김무망의 안색은 여전히 음침하였으나, 심랑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오르고있었다. 심랑은 옥으로 만든 고양이를 두 손으로 공손히 웅묘아에게 건네었다. 웅묘아도 두 손으로 공손히 그 물건을 받아들었다. 두 사람은 아무 말없이 가볍게 웃을 뿐이었다. 두 사람간에 해야 할 모든 말은 바로 이 가벼운 웃음 속에 모두 포함되어있었던 것이다. 옥으로 만든 고양이를 건네주고 난 심랑은 또 그 옥으로만든 노리개를 꺼내 들었다. 이때 주칠칠이 심랑이 이곳에 온 것을 보고 그녀의 심장은 마치 멈추어진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또 그가 심랑이 옥으로 만든 노리개를 갖고있는 것을 보자 그녀의 두 볼이 붉게 물들었다. 그녀는 이미 이 옥으로만든 노리개가 바로 그날, 자신이 옷을 벗어 말릴 때 잃어버린 것인줄은알고 있었으나, 어떻게 이 노리개가 다시 심랑의 손에 들어갈 수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웅묘아가 손을 뻗쳐 그 노리개를 받으려는 순간 심랑은 얼른 손을 빼내어버렸다. 웅묘아가 웃으며 말했다. "그 노리개도 본인 것 같소이다만......?" 심랑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형씨께서는 이 노리개에 새겨진 두 글자를 보셨소이까?" "당연히 봤지요. 거기에 새겨진 두 글자는 ' 심랑 '이라는 두 글자요." "형씨께서는 이 두 글자가 무슨 의미인지 아시오?" "당연히 알지요. 그 심랑, 두 글자는 바로 본인이 옛날 깊이 애모하던여인의 이름이외다. 본인은 그녀를 생각하기 위해서 그녀의 이름을 그노리개 위에 새겨넣었던 것이오." 주칠칠은 한편에서 웅묘화의 말을 듣고 우습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여속으로 생각했다. (이 녀석은 틀림없는 무뢰배로군. 저 노리개를 얻기 위해서 이러한 큰거짓말을 엮어내다니.......)심랑도 실소를 날리면서 말했다. "형씨께서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본인이 바로 형씨의 그 애모하는여인이겠구려?" 이말을 들은 웅묘아는 멍청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그것은 무슨 말이오?" "심랑, 두 자는 바로 본인의 이름이외다!" 웅묘아는 멍청한 듯 그자리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이 갑자기 빨갛게달아오르더니 순식간에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하하. 좋소이다, 좋소이다. 당신의 물건을 훔치지도 못했고, 도리어 내물건을 당신이 훔쳐갔을 뿐 아니라 당신을 속이려 해도 속이지도못하다니. 내가 당신한테 항복했소. 이제 됐소이까?" 심랑은 웅묘아의 모습을 바라보며 웅묘아가 상당히 사랑스럽다는 기분을느꼈다. 웅묘아가 갑자기 웃음을 멈추더니 눈썹을 찌푸리고 말했다. "그렇지만 내가 아는 바에 있어서는 이 노리개는 형씨의 물건도 아닌데형씨의 이름이 새겨져 있으니. 그 아가씨가...... 그 아가씨가 아마형씨의......." 심랑이 얼른 말을 가로채고 말했다. "그렇소이다.그 아가씨는 바로 본인의 친구외다.본인이 이곳을 찾아온까닭은 바로 그녀의 행방을 찾기 위해서외다. 형씨께서 그녀의 행방을말씀해 주시면 매우 감사하겠소." 웅묘아는 심랑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멍하니 심랑을 바라보며 중얼거릴뿐이었다. "그 아가씨가 형씨의 이름을 언제나 몸에 갖고 다니는 노리개에 새겨넣었음을 볼 때, 틀림없이 그녀는 형씨에 대해 깊은 정을 갖고 있을것이오. 아, 좋은 일이오." 심랑이 어떠한 인물인가? 웅묘아의 이러한 모습을 바라보는 순간 그는 즉각 웅묘아가 주칠칠에대해서 깊이 애모하는 마음이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의 생각이여기에 미치자 그는 더욱 웅묘아가 틀림없이 주칠칠이 있는 곳을 알고있으리라고 단정할 수 있었다. 그는 가볍게 기침을 하며 질문을 던졌다. "그 아가씨는......?" 웅묘아는 이때서야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형씨께 솔직히 말하자면 본인도 그 아가씨를 한 번 밖에 만나보지못했소. 이 노리개는 바로 그때 내가 주운 거요. 그 후에는 한 번도그녀를 다시 만난 적이 없소이다." 그는 한숨을 쉬고 이어서 말했다. "더욱이 요 며칠 동안 본인은 사방으로 그녀의 행방을 알아보았으나,그녀는 실종된 듯 행방을 알 수가 없었소이다. 어떠한 사람은 단홍자가그녀를 데리고 갔다고 말하기도 했소." 심랑은 그를 뚫어질 듯 바라보면서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알 수 있었다. 그에 따라 주칠칠의 행방을 찾는 이 단서도 다시 사라짐을느꼈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신중하게 탄식소리를 내었다. 그러나 그러한 모습을 바라보는 주칠칠은 조급하여 마음이 터질듯했다.그녀는 크게 외치고 싶었다. (이 멍청이! 당신들 이 멍청이들. 나는 바로 여기 있단 말이에요. 당신들은 나를 알아볼 수 없단 말인가요?)그러나 그녀의 옆에 있는 백비비의 눈빛은 도리어 그녀보다 훨씬 안정된듯하여 보였다. 그녀는 처음부터 주칠칠보다 훨씬 편안한듯한 기색을보이고 있었다. 한편 김무망의 눈빛은 뚫어질 듯 웅묘아의 호로병을 바라보고 있었다.그가호로병을 좀더 자세히 살피는 순간 그의 눈빛이 갑자기 놀란 기색으로덮이더니 갑자기 질문을 던졌다. "이 호로병은 어디서 나온 거죠?" 웅묘아의 입가에 갑자기 신비한 웃음이 스쳐가더니 김무망의 질문에는대답하지도 않고 도리어 되물었다. "형씨께서는 이 호로병의 내력을 아신다는 건가요?" 김무망은 코웃음을 치면서 말했다. "알지 못한다면 묻지도 않았을 것이오." "형씨께서 이 호로병의 내력을 이미 알고 있다면 질문을 할 필요도 없지않겠소?" 김무망은 다시 '흥' 하고 콧소리를 내고 더이상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심랑은 그들 두 사람은 수수께끼와 같은 문답을 들으면서 자신도 모르게주위력을 그 호로병으로 돌렸다. 그 호로병을 몇 번 쳐다보는 순간,심랑의 눈에 번쩍하는 빛이 스쳐갔다. 이때 김무망이 다시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한 명의 그 청의 부인과 맞부딪쳤던 것이오?" 웅묘아가 여전히 그 말에 대답을 안고 반문했다. "당신은 그녀를 안다는 거요?" 김무망이 노한 소리로 말했다. "도대체 당신이 나한테 질문을 하는 거요, 아니면 내가 당신에게 질문을하는 거요?" 웅묘아가 '하하' 하고 대소를 터뜨리면서 말했다. "미안하외다. 내가 질문을 할 필요도 없는건데. 만약 당신이 그녀를 알지못한다면 어떻게 그러한 질문을 나한테 할 수 있었겠소. 그렇소이다. 본인은 이미 그녀와 몇 초를 주고 받았소." 그는 뚫어 질듯 김무망을 바라보며 천천히 이어 말했다. "나는 비단 그녀와 몇 초를 주고 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녀가 바로산좌사도의 후예인 점도 알아내었소이다. 바로 저 모닥불 곁에 있는 두아가씨는 내가 그녀의 손에서 구해낸 사람들이오. 그리고 내 이 호로병에붙어있는 독침들도 바로 그 산좌사도 일가의 독문암기요. 그 독침들의독성은 ' 철령오화면 '의 ' 연우단장사 '(煙雨斷腸絲)에 버금가는 독한것이오." 순간 김무망의 안색이 크게 변하더니 한달음에 모닥불 곁으로 달려가고개를 숙이고 주칠칠과 백비비를 뚫어질 듯 살피기 시작했다. 백비비는 감히 김무망의 얼굴을 마주 쳐다볼 수 없었으나, 주칠칠은도리어 눈을 화등잔만하게 뜨고 그를 바라봤다. 웅묘아가 말했다. "산좌사도는 암기 이외에도 역용술로 이미 강호에 이름을 드날린 자요. 다만 내가 아직까지 그 두 아가씨가 그에게 역용을 당했는지 알아내지못하고 있을 뿐이외다." 김무망이 차갑게 말했다. "만약 당신이 알아낼 수 있었다면 산좌사도의 역용술은 대단한 것이못되지 않겠소?" 심랑은 뇌리에 번쩍 스치는 생각이 있어 얼른 입을 열었다. "형씨께서 천하 각문각파의 암기를 격파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동해(凍海)의 자석으로 만든 건곤일대장(乾坤一垈裝)이라는 호로병때문이었겠죠? 형씨께서 이처럼 진귀한 물건을 갖고 있으니, 형씨의내력도 대단할 것이오! 생각컨대 산좌사도의 역용술을 풀 수 있는 방법을알고 있으리라고 생각하오. 형씨께서 한 번 그 재주를 보여서 이 두 분아가씨의 진면목을 우리에게 보여줄 수는 없겠소?" 웅묘아가 웃으며 말했다. "원래 형씨께서도 건곤일대장의 내력을 알고 계셨군요. 그렇지만애석하게도 본인은 형씨께서 말하는 그러한 역용술을 푸는 재주는 없어서,이 두 아가씨의 진면목을 형씨께 보여드릴 수가 없구려." 오노사가 더이상 참지 못하고 끼어들면서 말했다. "역용술을 푸는 게 뭐가 그리 어렵다는 거죠? 이 동생이 물을 가져다가그녀의 얼굴을 한 번 씻어주면 되지 않을까요? 만약, 씻어낼 수 없다면기껏해야 칼로 그걸 긁어내면 될 것 같은데요." 웅묘아가 실소하면서 말했다. "네 말을 듣는다면 산좌사도의 역용술을 무대에서 연극하는 배우들의분장술과 다를 게 없는 듯 하구나! 그렇지만 산좌사도의 역용술을 이미오랫동안 천하에 이름을 떨친 것으로서 어떻게 네가 말한 것처럼 그렇게간단한 것일 수가 있겠어? 네가 칼로 긁어내다가 만약 그녀들의 원래의얼굴에 흠집을 내게 된다면 그 책임은 또 누가 진단 말인가?" 오노사는 어색한 듯 웃으며 더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주칠칠은 그들의 대화를 들으면서 더욱 조급하고 화가 났다. 그녀는 크게외치고 싶었다. (칼로 긁어내봐요. 내 얼굴에 흠집을 낸다고 해도 상관없어요.)김무망이 그녀의 눈을 자세히 바라보다가 천천히 말했다. "이 아가씨는 이미 역용을 당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산좌사도의 말을하지 못하게 하는 약까지 복용당했소. 본인이 보건대 이 여자는 상당히많은 할 말이 있는 듯 하나 말을 하지 못하는 것 같소이다." 웅묘아가 갑자기 귀퉁이가 떨어져나간 함지박을 찾아오더니, 그 함지박에모닥불 속에서 재를 가득 퍼내어 잔뜩 담아 주칠칠의 눈앞으로 갖다놓으며 아주 가늘고 작은 장작을 찾아서 그녀의 손에 쥐어 주었다. 주칠칠의 눈에 즉각 기쁨에 찬 빛이 새어 나왔다. 웅묘아가 말했다. "우리가 하는 말을 당신은 틀림없이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하오. 지금당신이 하고자 하는 말을 바로 이 나뭇가지로 이 재 위에 써 보시오." 주칠칠은 그녀가 말을 마치기를 기다리지도 않고 이미 떨리는 손을들어올렸다. 그녀의 고통이 곧 끝나는 듯할까? 이순간 그녀의 흥분과 격동은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알아차릴 수있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글자를 쓸 기력도 이미 없을 줄이야! 그녀는 원래 먼저 자기의 이름을 쓰고자 했으나, 그 나뭇가지는 잿더미위에서 어지럽게 이리저리 선을 그을 뿐 아무도 무엇을 쓰는지 알아볼 수없게 하였다. 마침내 그녀는 그 나뭇가지조차 제대로 쥘 기력이 없어 털썩 하고 팔을 재위에 그냥 떨어 뜨렸다. 주칠칠은 조급하고 화가 나서 한 팔로 자기의 그팔을 잘라버리고 싶었다. 그녀는 자기의 얼굴을 쥐어뜯고 싶었으나쥐어뜯을 힘도 없었고, 자기의 혀를 깨물어 혀를 잘라버리고 싶었으나깨물 힘도 없었고, 미치고 싶었으나 미쳐버릴 수도 없었다.심지어방성통곡을 터뜨리고 싶었으나 울수도 없었고, 다만 눈물이 볼를 타고흘러내렸다. 심낭과 김무망, 웅묘아 등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장탄식을터뜨렸다.심지어 그들을 에워싸고 이러한 모습을 구경하고있던대한들마저도 가련한 마음이 솟은 듯 눈시울이 붉어졌다. 웅묘아가 탄식하며 말했다. "다른 방법을 사용하도록 하죠." 백비비는 비록 이때 말을 할 수는 없었으나 그녀의 몸은 주칠칠보다 훨씬자유로웠다. 그녀는 원래 약간의 바람에도 쓰러질 듯한 유약한 여자였기때문에 근본적으로 그녀의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약을 복용시키지는않았던 것이다. 웅묘아는 다시 재가 담긴 함지박을 백비비의 면전으로 옮겨놨다. 그녀는천천히 써 내려갔다. (저는 백비비라고 합니다. 원래 운명이 기구한 고아인데 그 악마같은부인이 어째서 저를 납치해 왔으며 이처럼 저에게 고통을 주는지모르겠어요.)웅묘아는 눈을 몇 번 깜빡거리더니 갑자기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원래 상당히 아름다운 여자였겠구려?" 백비비의 눈에 부끄러운 듯한 기색이 나타났다. 그녀는 여전히 나뭇가지를손에 들고 있었으나 더이상 써내려 가지 못했다. 이러한 모습을 보고웅묘아가 웃으며 말했다. "당신의 모습을 보니 내 말이 틀림없는 것 같구려. 그렇다면 당신과 같은경우를 당한 이 아가씨는 당신처럼 아름다운 분인가요? 그녀의 이름은무어라고 부르죠?" 백비비가 웅묘아의 질문에 다시 글자를 써내려갔다. (저는 그녀가 누구인지 몰라요. 그리고 그녀가 예쁜지, 안 예쁜지도 본적이 없어요.)웅묘아가 신음소리를 내면서 말했다. "그렇다면 그녀가 당신보다 먼저 그 부인에게 잡혔다는 말인가요?" 백비비가 또 써내려갔다. (맞아요. 저는 원래 매우 그녀가 가련하다고 생각했는데, 저마저도.......)그녀는 더 이상 써 내려가지 못했으나 그 모습을 보고있는 사람들은그녀의 마음을 이미 알 수 있었다. 그녀의 눈에 반짝이는 눈물이 맺혔으며그 눈물이 다시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웅묘아가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지금에야 제가 알아냈소이다.그 악독한 청의 부인은 틀림없이 절세미녀들을 유괴하여서 어느 우리가 모르는 한 곳으로 보내고 있었을것이오. 다만 그 운송도중에 귀찮은 일이 발생할까봐서 그녀들을 이러한모습으로 역용시켜 놓았을 것이외다." 심랑이 탄식하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 소년은 무공만 뛰어날 뿐만 아니라 머리 회전도 상당히 빠르군.)웅묘아가 말했다. "이 두 여자는 틀림없이 절세의 미녀들일 것이오. 어떻든 우리는 절세의미녀들인 이 여자들을 이러한 모습으로 한평생을 살아가게 해서는 안 될것 같소이다. 어떠한 방법이든 그녀들이 원래의 모습을 회복할 수 있는방법을 찾아내어서 그녀들에게 본 모습을 돌려주어야 할 것 같소." 김무망은 입을 다물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으나 심랑이 탄식하면서 말했다. "어떠한 방법이 있을 것 같소이까? 다시 그 산좌사도의 후예를 찾아와서그녀들을 맡기는 수밖에......?" 웅묘아가 잠깐 생각하더니 갑자기 웃으면서 말했다. "본인은 낙양성에 친구가 한 사람 있는데, 이 친구는 비록 나이가 어리나문무 모두를 동시에 갖춘 사람이며 음악이나 서예, 그림, 의술, 점복 등등못하는 게 없으며 또 잘나지 아니한 게 없소이다. 우리 그를 찾아갑시다. 그에게는 틀림없이 방법이 있을 거외다." 심랑이 웃으며 말했다. "그처럼 대단한 인물이라면 저도 한 번 만나보고 싶군요. 어떻든 우리들도낙양성으로 가서 계속 수소문을 해봐야 하니까. 다만...... 다만 형씨께서그 분과 교류가 있는지 모르겠구려." 웅묘아가 말했다. "그 사람은 비단 술귀신일 뿐만 아니라 색마라고도 할 수 있어서 본인과의기투합하지요. 우리가 그를 찾아간다면 그는 틀림없이 크게 환영할거외다." 주칠칠은 그 비통함이 극에 달해서 근본적으로 그들이 무슨 말을 하고있는지 들을 수도 없었다. 다만 그녀 자신이 다시 마차에 태워지고 있음을 느낄뿐 도대체 그들이그녀를 어디고 데리고 가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마차에는 그녀가 아는동자 한 명이 있었으나 그 동자는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다. 심지어 그동자 역시 그녀를 피해 멀찍히 앉아서 더이상 그녀를 바라보려고 하지도않았다.웅묘아는 장막으로 그 마차를 덮은 다음 낙양성을 향해 달리기시작했다. 마차는 밤을 도와 달려서 새벽녘에는 낙양성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성문밖에서 차 한 잔 마실 정도의 시간을 기다리자 성문이 열렸으며 그들은 성안으로 급히 달려 들어갔다. 심랑이 말했다. "이처럼 새벽에 남의 집을 소란스럽게 할 수 있겠소?" 웅묘아가 웃으며 말했다. "본인은 낙양성에 또다른 친구가 한 사람 있는데, 그 집 대문은 일년 내내열려 있소이다. 어떤 사람이든 어느 때든 그집에서는 문전박대는 하지않소." 심랑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그 사람은 아주 맹상군(孟嘗君)의 기풍이 있군요." 웅묘아가 손뼉을 치고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 그 사람은 복성으로서 구양(歐陽)이라 하며 이름은 한글자로 희(喜)라하오. 평생 동안 가장 좋아하는 것은 바로 그 자신을 맹상군에 비교해주는 것이오. 이 친구가 만약 형씨의 말을 들었다면 기뻐서 까무라쳤을것이오." 김무망이 차갑게 말했다. "보건대, 귀하는 개나 여우 같은 친구들이 적지 않은 것 같소이다?" 웅묘아는 그를 상대하지도 않고 급히 김무망의 손에서 채찍을 빼앗아 말의궁둥이를 힘껏 내리쳤다. 새벽녘, 웅묘아는 낙양성 거리를 미친 듯 말을 몰고 질주했다. 이때갑자기 한쪽에서 사람소리가 왁자지껄하며 꽃향기가 풍겨왔다. 웅묘아가 손에 쥐었던 채찍을 쳐들어 한쪽 길을 가리키고 웃으며 말했다. "이곳이 바로 천하에 이름을 날리는 낙양의 꽃시장이오. 멀리 천리밖에서도 이곳에 꽃을 사러 오는 사람들이 적지 않소이다. 특히 낙양의목단화는 천하제일이라고 하지요." 심랑이 웃으며 말했다. "본인도 낙양 꽃시장의 이름은 일찍이부터 들은 적이 있소. 오늘 이곳에왔으니 신선한 생화 한 송이를 사야되는데. 그렇지만, 그렇지만 꽃을사고픈 마음은 있으나 꽃을 꽂아줄 사람이 없으니. 역시 다음으로 미루는게 좋을 듯하오." 두 사람은 서로를 보고 크게 웃었다. 그러나 마차 속에 타고있던 주칠칠은심랑의 말을 듣고 취한 듯 가슴이 떨려옴을 느꼈다. 이순간, 그녀가심낭의 옆자리에 앉아서 심랑으로 하여금 마차에서 내려 꽃 한 송이를사들고 직접 그녀의 옆머리에 꽂아줄 수 있도록 하게만 할 수 있다면 지금당장 그녀에게 죽으라고 해도 달갑게 받아들일 것 같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이순간 그녀는 이 꽃시장을 지나면 바로 방천리, 철화학 등을가두고 있는 비밀 소굴임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가슴 가득 비밀을 갖고 있었으나, 그 비밀을 심랑에게 말을 해 줄수도 없는데 그녀 머리에 꽃을 꽂아주게 하는 그러한 운치있는 일은 더욱요원한 꿈일 수밖에 없었다. 마차의 덜컹거림에 따라서 그녀의 눈물이 또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때 갑자기 두 대의 흰 말이 끄는 화려한 마차가 옆길에서 뛰쳐 나와꽃시장으로 들어갔다. 그 마차의 바퀴는 동으로 만든 등이 밝게 빛나고있었으며, 마차 속에서는 간드러진 목소리들이 새어 나왔고 수시로 머리에꽃을 꽂고 옥구슬들을 주렁주렁 매단 미인들이 그 마차의 창에 드리워진주렴을 통해 밖을 쳐다보며 사람들과 말을 주고받고 있었다. 주칠칠이 무심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기분을느꼈다. 그 백마가 끄는 마차는 바로 그날, 철화학 등을 태우고낙양성으로 입성했던 그 마차였던 것이다. 마차는 마침내 일 년 내내 문이 열려 있다는 그 집의 대문 앞에 도착했다. 구양희는 과연 웅묘아를 보자마자 크게 기뻐하며 즉석에서 주연을베풀었다. 웅묘아는 총총히 심랑과 김무망을 그에게 소개하고 나서 더이상 다른 일에상관하지 않고 먹고 마시기에 바빴다. 구양희가 웃으면서 말했다. "이 고양이는 갈수록 들고양이가 되어 가는 것 같애. 일 년내내 한 번도볼 수 없더니 오늘 갑자기 우리집에 쫓아들어왔으니, 얻어먹는 것 말고다른 일이 있어서 온건가?" 웅묘아가 웃으며 욕설을 퍼부었다. "자네는 내가 가짜 맹상군이 보고 싶어서 찾아온 줄 아는가? 헤헤. 네녀석의 이 비계덩어리 고기 몇 점하고 이 값싼 술로 나를 여기까지 오게만들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나?" 구양희가 말했다. "네 녀석이 다른 사람집에 갔으면 문전박대를 당할 만했기에, 어쩔 수없이 우리집에 온거겠지?" 웅묘아가 술잔과 젓가락을 내려놓고 정색한 얼굴로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오늘 아주 중요한 일이 있어서 왕련화를 찾아온것이네. 그런데 그 친구가 낙양성에 머물러 있는지 모르겠군." 구양희가 웃으며 말했다. "운이 좋은 녀석이군. 그 녀석도 마침 낙양성에 그대로 눌러 앉아 있네." 말소리를 멈추고 다시 약간 웃더니 말을 이어 나갔다. "그런데 그녀석에 대해서 말인데, 약간 우스운 이야기가 있어." 웅묘아가 말했다. "왕련화(王憐花)에 대해서 웃기는 얘기는 적지않지. 그런데 이번은 도대체어떤 얘기인데?" 구양희가 말했다. "며칠 전 냉이 선생이 이곳에 와서 상담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한 명의부잣집 미녀가 뛰쳐 나왔다네. 우리의 그 위대하신 왕 공자께서는 그미녀를 어떻게 해보려고 노렸던 모양인데, 그런데......." 말을 하던 그는 고의로 말을 멈췄다. 웅묘아는 과연 더이상 참지 못하고급히 재촉했다. "그런데 어떻단 말인가?" 구양희가 '하하' 하고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그 아가씨가 우리의 위대하신 왕 공자를 보자마자 마치 귀신을 본듯 고개도 돌리지 않고 도망가 버렸다네. 이런 일은 아마 그의 일생 중 한번도 당해보지 않았던 일일 거야. 대신 가박피가 이득을 봤지. 가박피 그친구는 원래 계집종 하나를 그 아가씨한테 팔았었는데, 그 아가씨가도망가 버리자마자 가박피는 어수선한 틈을 타서 그 계집종을 데리고가버렸다네!" 옹묘아가 큰소리로 웃으며 그 아가씨가 도대체 누구인가를 물으려 할 때심랑이 그보다 앞서 질문을 던졌다. "그 냉이 선생께서는 인의장과 관계가 있는 분입니까?" 구양희가 말했다. "바로 그렇소이다. 그 냉이 선생께서는 인의장을 위해서 백방으로동분서주 하시는 분이죠. 강호인들은 모두 냉이 선생의 장사수완이천하무쌍이며 일년중에 아주 많은 돈을 벌어간다는 것을 알고 있으나,냉이 선생은 그가 번 모든 돈을 고스란히 인의장으로 갖다 드리지요. 도리어 당신은 먹는 것도 입는 것도 아껴서 심지어 옷 한 벌을 사기가아까와서 일 년 내내 푸른 장삼 한 벌로 지내지요. 그분을 알아보지못하는 사람들은 도리어 그를 가난한 선비나 아니면 구두쇠라고 생각할정도요." 심랑이 숙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냉씨 세 분 형제께서 모두 이처럼 뛰어난 영웅들일줄은 생각지도......."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정원에서 낭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구양 형, 형의 집 장정들이 대단하긴 대단하구려. 내가 아직 잠자리에서일어나기도 전에 쫓아와서 고양이 한 마리가 집안에 들어왔다고 일러주니말이오. 아마 그 녀석들은 내가 그 고양이를 쫓아내 주기를 바라는모양이오. 그런데 그 친구들은 비록 내가 용을 항복시키고 호랑이를 꿇어엎드리게 하는 재주는 있지만, 그 고양이를 보면 골치 깨나 썩힌다는사실은 모르는 모양이오." 말소리가 끝나면서 화려한 복장을 한 미소년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웅묘아가 대갈일성하며 공중으로 몸을 날려 탁자를 뛰어넘어서 그 소년의면전으로 달려들어 한 손으로 그의 옷깃을 부여잡고 웃으면서 욕설을퍼부었다. "창피한 줄도 모르는 녀석! 네 녀석이 예쁜 꽃이나 꺾고 말썽이나 부리는재주 이외에 무엇을 더 할 수 있다는 말이냐? 감히 용을 항복시키고호랑이를 꿇어 엎드리게 하는 그러한 재주를 갖췄다고 스스로 자화자찬을하다니. 네 녀석의 혀가 굳어버릴까봐 두렵지도 않단 말인가?" 그 소년이 웃으며 말했다. "큰일났군. 이 고양이 새끼가 갈수록 들고양이가 되가는 것 같은데?" 웅묘아가 큰소리로 말했다. "최근 네 녀석이 또 몇 명이나 되는 양가집 부녀자들을 꾀어 냈는지솔직히 이자리에서 털어놔!" 그 소년은 얼굴에 여전히 웃음을 띠고 있었으나, 김무망과 심랑이 눈에들어오자 큰 걸음으로 그들 앞으로 걸어가서 웃음을 띠고 포권을 하면서말했다. "구양 형께서는 어째서 이 두 분을 이 동생에게 소개시키지 않는겁니까?" 구양희는 어수선한 가운데 심랑의 이름을 잊어버렸다. 김무망의 이름은그는 근본적으로 알지도 못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두리뭉실하게소개했다. "이 분은 김 대협이고 이분은 심 상공이외다. 그리고 이 분은 바로 왕련화왕공자요. 세 분은 모두 인중의 용과 봉이니 후일 가깝게 지내시면서로에게 큰 도움이 있을 것이오!" 김무망이 차갑게 '흥' 하고 코웃음을 쳤으나 심랑은 웃음을 머금고포권으로 왕련화의 인사에 대신했다. 사람들이 모두 자리를 찾아 앉고, 바쁘게 얘기들을 주고 받았다. 구양희가 말했다. "왕 형, 이 들고양이는 오늘 본래는 왕 형을 찾아온 것이오. 그런데 무엇때문에 왕 형을 찾는 것인지는 얘기하지 않는데, 지금 왕 형께서 그에게물어 보도록 하시지요." 왕련화가 웃으며 말했다. "들고양이가 나를 찾아왔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좋은 일은 아닐 것이외다. 요 며칠 동안 내 방의 창밖에서 까마귀들이 그렇게 시끄럽게 울어서 안좋은 일이 있을까 하고 문을 닫고 집안에 앉아 있었는데, 두통거리가하늘에서 떨어져 내렸구려!" 웅묘아가 웃으며 말했다. "이번에는 네 녀석이 틀렸어. 내가 이번 네 녀석을 찾아온 것은 돈을달라는 것도 아니고 술을 달라는 것도 아니야. 다만 두 명의 절세가인이있어서 네 녀석에게 눈요기 좀 시켜주려고 온 것뿐이지." 심랑이 속으로 웃으며 생각했다. (이 웅묘아라는 친구는 얼핏 보기에는 심기가 없는 것 같은데, 다른사람에게 무슨 일을 시키고자 할 때에는 먼저 약간의 재주를 피워서상대방의 마음이 동하여 스스로 걸려들게 만드는 묘한 재주가 있군!)왕련화가 크게 웃으며 말했다. "네 녀석이 나를 찾아왔는데 좋은 일이 있을 수가 있을까? 나를 죽인다해도 그것은 믿기 어려운데...... 그 두 분 절세가인은 자네가 옆에 두고실컷 감상이나 하게. 나는 사양하겠네." 웅묘아가 웃으며 욕설을 터뜨렸다. "소인 녀석! 소인의 마음으로 군자의 흉금을 헤아리려 하다니. 내가 이미가인 두 사람을 보내온 이상 네 녀석이 보기 싫어도 봐야만 할거야. 다만......." 말을 마치지도 않고 그는 눈을 깜박거리며 왕련화를 쳐다보았다. 왕련화가 웃으며 말했다. "네 녀석이 눈을 깜박거리면 다른 꿍꿍이 속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어떻든 내가 이미 네 녀석의 낚시에 걸려 들었으니, 네 녀석이 무슨 말을할 것인지 빨리 말이나 마치도록 해. 사람들이 조급해 하기 전에......." 심랑과 구양희도 모두 실소를 금치 못했다. 웅묘아가 말을 했다. "이제 농담은 그만두고, 다만 왕 형이 그 두 분 가인을 보기 위해서는약간의 재주가 필요하다는 거요!" "무슨 재주가 필요하다는 거요?" "왕 형께서는 시, 부, 가, 무, 점술, 의술 등 이러한 재주에 또 무슨재주가 있으시오?"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단 말이오?" "충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아주 부족하오." 왕련화가 고개를 가로 흔들고 웃으며 말했다. "웅 형은 정말 시정의 무뢰배나 마찬가지구려? 다만 애석하게도 내가 웅형의 부친의 모습이 어떤지 몰라서 안타까울 뿐이오. 내가 웅 형의 부친이어떠한 모양임을 안다면 내가 웅 형 부친 모습으로 변해서 웅 형 같은못된 자식을 단단히 가르쳐 줄텐데 말이오." 웅묘아는 이말을 듣고 갑자기 탁자를 내려치며 큰 소리로 말했다. "바로 그거요!" 왕련화와 구양희는 그의 큰소리에 깜짝 놀란 듯 동시에 말했다. "뭐란말이오?" "왕 형께서는 역용술을 안다는 거죠? 맞소? 헤헤. 제발 역용술을 모른다고고개를 가로젓지는 마시오. 이미 왕 형은 역용술을 안다는 말을했으니까!" 왕련화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역용술을 안다면 또 어떻다는 거요?" "그 두 분 절세가인은 지금 다른 사람의 역용술로 그녀들의 모습을바꿔버렸소. 만약 왕 형께서 그녀들의 원래의 모습을 회복시킨다면, 나웅묘아는 진심으로 왕 형에게 탄복할 것이오." 왕련화의 눈빛이 번쩍이며 물었다. "그 두 분 아가씨는 도대체 누구요?" "그것은...... 그것은 나도 잘 모르오. 다만 그들 중의 한 사람이 성이 백씨라는 것을 알 뿐이오." 왕련화의 눈에 떠올랐던 빛이 즉각 사라지며 속으로 마치 안도의 한숨을내쉬는 듯했다. 그는 갑자기 웃으면서 이어서 말했다. "웅 형께 솔직히 말씀드리면 내가 아는 역용술은 피부 모습을 약간 바꾸는것을 알 정도요. 나 왕련화에게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변장하라면 할 수없지만, 그렇지만 다른 사람이 역용해 놓은 모습을 원래 모습으로 씻어내라는 말은 한 번 시험은 해 볼 수 있소이다." 웅묘아가 크게 기뻐하면서 말했다. "그럼 됐소! 빨리 나를 따라 오시오!" 주칠칠과 백비비는 이미 조용한 방 안에 안치되어 있었다. 웅묘아는 왕련화를 끌고 큰걸음으로 그 방으로 들어왔으며 심랑 등은 그들뒤를 따라 들어왔다. 주칠칠은 왕련화를 보는 순간, 그녀의 심장은 또 고동을 멈추고 전신의근육이 마비되며 피부에는 닭살이 돋는 듯한 오싹한 한기를 느꼈다. 그녀는 꿈에도 웅묘아가 데려온 사람이 바로 이 두려운 악마일줄은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그녀가 그 청의 부인의 수중에 떨어져 있을때는왕련화는 이 청의 부인과 비교하여 훨씬 덜 두렵다고 생각했으나, 지금이순간 그녀가 청의 부인의 손에서 벗어나자 또 이 악마를 만났으니, 이왕련화의 종종 그녀를 두렵게 하던 모습이 순식간에 그녀의 머리에떠올랐던 것이다. 그녀는 뚫어질 듯이 심랑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심랑을 바라볼 때만 그녀가슴에 떠오르는 두려운 생각이 약간 감소되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심랑은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웅묘아가 말했다. "왕 형, 자세히 이 사람들을 살펴보시오. 그녀들의 얼굴에 가해진장난질을 왕 형께서는 원래의 모습대로 회복시켜줄 수 있단 말이오?" 왕련화는 고개를 숙이고 자세히 그녀들의 얼굴을 살피기 시작했다. 주칠칠은 놀라고 두렵고 동시에 기쁨을 느꼈다. 그녀는 이 왕련화가틀림없이 그녀의 본래의 모습을 회복시켜 주리라는 점에 대해서는기뻤으나, 운명의 장난이 너무도 기묘해서 그가 그녀를 구하게 되리라고는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그녀는 속으로 이를 악물고 생각했다. (하느님, 하느님 감사합니다. 당신의 장난은 진짜 너무 뛰어난 것이군요? 이 녀석이 제가 말을 할 수 있게만 해준다면, 저는 제일 먼저 이 녀석의비밀을 사람들에게 말해줄 겁니다. 그때 이녀석은 도대체 어떠한기분일까요?)여기까지 생각을 마친 그녀는 요 며칠 사이에 처음으로 마음이 가벼워지는기분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왕련화가 그녀의 눈에 떠오르는 놀람과두려움과 기쁜 기색을 알아차릴까봐서 얼른 눈을 감아버렸다. 왕련화는 약차 두 잔 마실 정도의 시간을 그녀들의 얼굴을 이리저리 자세히 살필뿐조금도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웅묘아 등도 숨을 멈추고 그 곁에서 왕련화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있을 뿐이었다. 마침내 왕련화가 몸을 일으키고 길게 탄식을 하며 말했다. "대단한 기술이군, 대단한 기술이야." "어떻소? 왕 형께서는 그녀들의 모습을 회복시켜줄 수 있을 것 같소?" 왕련화는 그 말에는 대답을 하지 않고 말했다. "이 역용기술을 보건데, 틀림없이 지난날 산좌사도 가문의 비전의 기술인것 같은데......." 웅묘아가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왕 형은 과연 대단하구려. 왕 형께서 이미 그 역용술의 유래를 알아낼 수있었으니 틀림없이 그 역용술을 푸는 방법도 알고 있겠구려." "본인이 한 번 시도는 해 볼 수 있소. 그렇지만......." 그가 길게 탄식하고 이어서 말했다. "이 두 아가씨에게 역용을 한 사람은 그 기술이 이미 절정에 달해 있소. 이 두 사람의 얼굴에서는 조금치의 소홀한 점도 발견할 수가 없소이다. 조금치의......." 웅묘아가 더이상 참지 못하고 그의 말을 가로채고 말했다. "그렇다면 또 어떻다는 거요." "당신들이 볼 때는 이 두 분의 얼굴이 못생겼다고만 생각하겠지만, 그러나본인이 볼 때는 이 두 사람의 얼굴은 아주 뛰어난 예술작품이외다. 마치화가가 모든 정렬을 기울여서 그린 예술과 심혈의 결정체나 마찬가지요. 나는 확실히 이러한 예술품을 망가뜨리고 싶지는 않소이다." 웅묘아는 그의 말을 듣고 한참을 멍청히 입을 벌리고 있더니 비로소웃으면서 욕설을 퍼부어댔다. "미친 놈! 미친소리!" 그러나 왕련화는 고개를 가로젓고 탄식하면서 말했다. "웅 형과 같은 속인(俗人)은 이러한 기분을 이해할 수가 없을 거요." 전라( 裸)의 두 여인 웅묘아가 한팔로 그를 잡아끌면서 말했다. "그것이 예술품이라도 좋고 장난질이라도 좋소. 나는 상관하지 않소이다. 다만 나는 왕 형이 이 두분 아가씨의 본래의 얼굴을 찾아주기를바랄뿐이오. 왕형께서는 할 건지 안 할 건지 대답이나 하시오!" 왕련화가 씁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웅 형과 같은 들고양이를 만난 이상 아무리 뛰어난 예술품이라도 아낄수가 있겠소? 그렇다면 먼저 내 손을 놔 줘야 어떻게 해볼 게 아니겠소?" 웅묘아가 웃으며 그의 손을 놓아주며 말했다. "그리고 또 이 두 분 아가씨는 이미 미약을 복용당하여 말도 할 수 없고기력이 조금도 없소. 왕 형께서는 의술이 고명하다고 스스로 직접 말하고있으니, 틀림없이 그녀들을 구할 수 있는 방법도 있겠지요." 왕련화가 신중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것도...... 그것도 한 번 시도해 보겠소. 그렇지만 내가 이렇게 애를쓰는데 당신들도 한가히 있을 수는 없을 것이오. 내가 만약 당신들이 나를도와주라고 말했을 때, 당신들은 절대 그것을 거절해서는 안 될 것이오." 이 말을 할때 그의 눈빛은 의식적인지 무의식적인지 심랑을 힐끗바라봤다. 심랑이 웃으면서 말했다. "제가 힘을 쓸 곳이 있다면 형씨께서 분부만 하신다면 그대로 할 것이오." 왕련화가 얼굴을 활짝 펴고 웃으면서 말했다. "좋소이다! 한마디로 그렇게 하도록 합시다!" 이번에는 그의 눈빛이 구양희에게 향해졌다. 구양희가 실소하면서 말했다. "왕 형께서는 나도 놓아주지 못하겠다는 거죠? 복이 되든 화가 되든 왕대공자께서는 분부만 하시오. 내가 따르리다." 왕련화가 웃으면서 말했다. "좋소. 구양 형께서는 잘 들으시오. 검은 식초 일등품 네 병, 여러해 묵은술 일등품 네 병, 깨끗한 소금 열 근, 일등품 마포 네 필......." 구양희가 말했다. "왕 형, 당신은...... 당신은 잡화점을 여실 생각이오?" 왕련화는 그 말에는 대답을 않고 계속 말했다. "그리고 동으로 만든 새 대야 둘, 이것은 특대호라야 하오. 그리고 새가위 둘, 작은 칼 두 자루, 또 화로 네 개, 동주전자 네 개, 이것도 모두특대호라야 하오. 그리고 화력이 가장 강한 석탄 이백근, 그리고 또 빨리구양 형께서는 집안의 여종들을 불러서 반 시간내에 깨끗하고 가장일등품인 흰 마포로 나와 심 상공이 입을 두 벌의 장포를 준비해 주시오. 잘 만들 필요는 없으나 반드시 깨끗해야 하오." 사람들은 그의 이러한 잡다한 물건들을 요구하는 것을 보고 모두멍청해졌다. 웅묘아가 웃으며 말했다. "왕 형이 요구하는 이 물건들을 보니 잡화점을 열려는 것 같기도 하고 또애를 받으려는 산파가 되려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얼핏 보면 인육(人肉)을파는 상점 주인으로서 이 아가씨들을 삶아서 먹으려는 것 같기도 하구려?" 구양희도 웃으며 말했다. "그렇지만 그의 요구는 나를 괴롭히는 게 아니겠소? 반 시간 내에 이러한잡다한 물건들을 준비하도록 하라니 말이오? 나를 죽으라는 것과 같지요!" 그는 입으로는 비록 이렇게 말을 하고 있었으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떠올라 있었다. 왕련화가 이처럼 잡다하고도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하는물건들을 요구하는 이상 틀림없이 그가 사람들을 놀라게 할 만한 기술을보이려는 것이다. 소위 말하는 역용술이란 것은 비록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었으나,대부분의 경우는 다른 사람에게 얻어들은 것에 불과하고 직접 본 적은드문 것이었다. 구양희도 강호에 오랫동안 돌아다녔으나, 오늘에 이르러서야 직접 이역용술의 기묘한 기술을 보게 된다는 생각에 그의 얼굴에는 웃음이떠올랐던 것이다. 말을 마친 그는 총총히 왕련화가 요구하는 물건들을 준비하기 위해서그곳을 떠났다. 반 시간도 채 못 되서 구양희는 왕련화가 요구하는 모든 물건들을 준비해보내왔다. 화롯불은 이미 활활 타오르고 있었고 동주전자에 가득 채워진물도 이미 끓을 기세였다. 왕련화는 흰 마포로 만든 장포 한 벌을 집어들고 심랑에게 건네주며말했다. "수고스럽지만, 심 형께서는 이 장포를 입으시고 제 조수가 되어 줄 수있겠소?" "분부대로 하겠소이다." 웅묘아가 더이상 참지 못하고 물었다. "나는? 나는 뭘 해야지?" "웅 형께서는 빨리 나가주시오. 밖에서 얌전히 기다리기만 하면 되오." 웅묘아가 멍청한 듯 우물쭈물 말했다. "나가라고? 여기서 보면 안 된단 말이오?" 구양희가 웃으면서 끼어 들었다. "웅 형께선 왕 형이 나가라고 했으니 빨리 나가기나 하시죠. 우리들은......." 왕련화가 말했다. "구양 형께서도 나가 주시오." 구양희도 멍청한 듯 말했다. "나...... 나도 보면 안 된단다는 거요?" 왕련화가 정색을 하고 말했다. "제가 시술을 할때는 반드시 마음이 안정되어야 합니다. 어떠한 사람도소란스럽게 해서는 안 되죠. 만약 소재가 약간의 실수를 하게 될 경우에,그래서 만일 이 두 아가씨의 얼굴에 약간의 흠집이라도 남기게 될 때에는비록 신선이 나타난다 해도 원상을 복구시키지는 못하게 될 겁니다. 그래서 당신들 두 사람은 나가야 될 뿐 아니라 심지어 이분 김 대협께서도잠시 이 자리를 피해주셨으면 합니다." 구양희와 웅묘아는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얼굴 가득 실망한 기색을떠올렸다. 그러나 김무망은 차갑게 '흥' 하고 코웃음을 치면서 몸을 돌려밖으로 나가버렸다. 구양희와 웅묘아는 더이상 시간을 끌어봤자 별 도리가없음을 알고 풀이 죽은 기색으로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그들이 나간 후 왕련화는 문을 꼭 닫아 걸고 사방에 걸려있던 주렴을 모두내렸다. 주렴이 내려지자 그 밀실은 캄캄해 졌으며 갑자기 일종의 신비한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활활 타고 있는 화롯불은 이러한 신비한 기색을 더욱 농후하게 만들었다. 심랑은 조용히 서서 그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화로에 올려진 물은끓어서 수증기가 뿜어져 나왔으며, 일진의 '식식' 하는 소리를 뿜어내고있었다. 왕련화가 갑자기 몸을 돌려 심랑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말했다. "제가 그분들을 잠시 피해달라고 한 것은 역용술의 비밀을 그들이 알지못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점, 심 형께서는 이미 알아차리셨겠죠?" 심랑이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소이다!" 왕련화가 신중한 음성으로 말했다. "구양희와 웅묘아는 이 소재가 여러 해 동안 사귄 친구인데, 형씨와소재는 오늘 처음으로 만났소이다. 제가 역용술의 비밀을 그 두 사람이알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그들을 나가라고 하면서도 형씨에게 도와달라고했던 것은 까닭이 있기 때문입니다. 형씨께서는 뛰어난 지혜를 갖추신분이니 지금 틀림없이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계시겠지요?" 심랑이 가볍게 웃으면서 말했다. "본인은 왕 형의 가르침을 받고 싶소이다." 왕련화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 까닭은 저와 형씨는 비록 처음 만났지만, 형씨의 풍채는 이 소재가평생 동안 보지 못한 그러한 것으로서 소재로 하여금 탄복하지 않을 수없게 하였기 때문이외다." "지나친 과찬이시오. 사실, 본인도 평생 동안 많은 사람을 만나 보았으나,호강한 기개로 말할 것 같으면 웅 형 같은 사람을 따를 사람이 없었고,만약 학식이나 재주 혹은 지혜로 말한다면 이 천하에 왕 형을 따를 사람이없을 것 같다고 생각하오이다." 그가 잠깐 말을 멈추더니 눈빛이 번쩍 하며 이어서 말했다. "이 이외에도 형씨께서는 다른 까닭이 있을 것 같은데, 본인에게......." 왕련화는 심랑이 말을 다 마치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가로채서 웃으면서말했다. "그렇소. 제게는 확실히 다른 까닭이 있습니다. 그래서 형씨에게 조금 더접근해 보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 까닭이라는 것이 틀림없이 아주 재미있을 것 같소이다만?" "확실히 아주 재미있는 겁니다." "그렇게 재미있는 것이라면, 형씨께서 말씀을 해 주실 수 있을는지요?" 왕련화는 그 말에는 대답을 하지 않고 한참을 생각에 잠겨 있더니 이어서말했다. "방금 구양희가 형씨를 저에게 소개시킬 때 형씨의 성함을 말하지 않은 것같은데, 그렇죠?" "구양 형은 틀림없이 소재의 이름을 잘 듣지 못했거나 혹은 잘 들었다해도 곧 잊어버렸기 때문이겠죠. 이러한 것은 이미 많은 사람을 만나는구양 형 같은 사람으로서는 당연한 일이 아니겠소?" "그렇지만 소재는 형씨의 성함을 추측할 수 있을 것 같소이다." "형씨에게 그러한 재주가 있다는 거요?" "형씨의 대명은 심랑이 아니신가요?" 심랑이 결국 얼굴에 깜짝 놀라는 기색을 드러내면서 말했다. "그렇소. 왕 형께서 바로 알아 맞추셨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왕형께서는 어떻게 제 이름을 짐작할 수 있었던 거죠? 혹시 다른 사람이이미 형씨에게 저에 대해서 말한 적이라도 있다는 겁니까?" 두 사람이 말을 주고받는 순간, 그 곁에서 이 말을 듣고 있던 주칠칠은놀랍고 부끄럽고 기쁨에 들떠 있었다. 그녀는 왕련화가 심랑의 이름을말하기를 원치 않았으나 한편에서는 왕련화가 심랑의 이름을 말해줬으면하고 바라고 있었다. 또 왕련화가 심랑에게 공격을 하기를 바라지않았으나, 한편으로는 심랑이 한주먹으로 왕련화를 때려 주기를 바라고있었다. 그녀는 더이상 참지 못하고 번쩍 눈을 떠서 왕련화를 바라보았다. 그녀는도대체 왕련화가 어떻게 심랑을 상대할 것인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할것인가를 알고 싶었던 것이다. 왕련화가 웃으면서 말했다. "형씨께서 제가 어떻게 형씨의 대명을 알고 있는가를 모르신다면, 그문제는...... 그문제는 후일 형씨께서 자연히 알게 되실 겁니다." 말을 마친 그는 몸을 돌려서 식초병을 열였다. 그는 더이상 심랑을바라보지 않았으나 식초병을 들은 그의 손은 미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주칠칠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불어내었다. 그러나 그녀는 실망인지 혹은다행스러움인지 모를 묘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이순간 그녀의 생각의복잡함은 그녀 자신도 도대체 어찌된 영문인지를 모를 지경이었다. 왕련화는 동으로 된 주전자의 수증기 구멍을 백비비의 얼굴을 향하게돌려놓았다. 그 일진의 뜨거운 수증기가 백비비의 얼굴로 쏘아 들어가자 백비비는 눈을감을 수밖게 없었다. 약 차 한 잔 마실 만한 시간이 지나서 왕련화가 말했다. "심 형께서는 주전자 뚜껑을 열어 주시오." 심랑은 그때까지 조용히 왕련화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으나 왕련화의이러한 말이 떨어지자 즉각 미소를 짓고 그가 시키는대로 손을 뻗어서주전자 뚜껑을 움켜 쥐었다. 그 뜨겁기가 불덩이보다도 더 심한 청동 주전자의 뚜껑을 그는 손으로움켜쥐면서도 전혀 개의치 아니하는 듯했다. 왕련화는 겉으로는 심랑의 그러한 모습을 보지 않는 듯했으나, 눈길을옆으로 돌려 심랑이 청동 주전자 뚜껑을 움켜 쥐는 모습을 보고 얼굴에약간의 변화가 나타났다. 그 변화는 놀라움인지 탄복인지 흠모인지, 아니면 질투인지 모를 그러한변화였다. 아마도 이러한 네 가지의 심정이 약간씩 모두 섞여 있는 듯한변화일지도 몰랐다. 왕련화는 식초를 동주전자 속으로 부어넣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서주전자 수증기 구멍에서는 다시 뜨거운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기시작했으며, 그 수증기는 아주 강렬한 식초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이 강렬한 식초냄새는 백비비로 하여금 더욱 눈을 꼭 감게 만들었다. 이러한 상태로 밥 한끼 먹을 만한 시간이 흘러가자 백비비의 입가에굳어있던 근육이 약간 풀어지는 듯하였으며, 그 입에서 침을 흘리기시작했다. 왕련화는 식초병을 내려놓고 술병을 들더니 술을 다시 주전자에 쏟아부었다. 시큼한 식초냄새는 술냄새로 변했다. 순식간에 백비비의 눈에서는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방 안 가득 화롯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으며, 심랑과 왕련화의이마에서는 이미 땀방울이 흘러 내리고 있었다. 왕련화는 다시 두개의대야에 술과 식초와 맑은 물을 가득 부은 다음 말했다. "번거롭지만 심 형께서는 이 아가씨의 옷을 모두 벗겨내시고 아가씨를 이대야 속으로 집어 넣으시오." 심랑이 당황한 듯 우물쭈물 말했다. "옷도...... 옷도 벗겨야 한단 말입니까?" "그렇소이다! 지금 그녀의 전신의 털구멍이 모두 역용의 약물로 막혀 있는상태라서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그녀를 구할 수가 없습니다." 말을 하면서 그는 품속에서 세 개의 조그마한 나무로 만든 병들을 꺼냈다. 그는 그 병에서 약간의 가루들을 부어내더니 그 두 개의 동으로 만든대야에 조금씩 부어놓고 웃으면서 말했다. "당당한 남자 대장부가 여인의 옷도 벗기지 못한단 말이오?" 심랑은 고개를 돌려 백비비를 쳐다보았다. 백비비의 한쌍의 눈에서는 놀람인지 부끄러움인지 애걸인지 모를 기색을띠고 있었다. 그는 가볍게 탄식하고 말했다. "상황이 그렇다니 아가씨를 구하기 위해서 본인도 어쩔 수가 없구려! 아가씨께서 용서하시기 바라오!" 말을 마친 그는 천천히 손을 뻗어 백비비의 겨드랑이 아랫부분을 잔뜩동여맨 끈을 풀기 시작했다. 한편, 웅묘아와 구양희는 방문 밖에서 쉬지않고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그들은 얼굴 가득 조급한 기색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들의 마음은 마치부인이 애를 낳는 방 밖에서 자기의 부인이 낳는 첫 애가 도대체 어떤애인지를 알고 싶어하는 애 아버지의 마음과 흡사했다. 김무망 역시 비록 꼼짝않고 앉아 있었으나 그의 눈빛도 이미 평정을 잃고있었다. 방 안에서는 일진의 불이 활활 타는 소리, '칙칙' 하는 물이 끓는소리, 무엇인가를 대야에 쏟아붓는 소리, 칼소리, 가위소리, 그리고목욕을 하는 소리, 이러한 소리들이 쉬지않고 들려왔다. 웅묘아가 갑자기 웃으면서 말했다. "이러한 소리들로 볼 때, 그 두 친구가 안에서 마치 소나 돼지를 잡고있는 듯한 형상이군! 그 두 아가씨가 도대체 어떠한 상태에 있는지모르겠소!" 구양희가 씁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왕 형이 만약 나를 들어가서 보게만 해준다면 내가 그 친구에게 세 번 큰절을 한다고 해도 달갑게 받아들일 텐데......." 웅묘아가 고개를 끄덕거리고 탄식하며 말했다. "누군 그런 마음이 아니겠소? 그렇지만 애석하게도......." 이때 갑자기 방 안에서 놀람에 찬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바로 심랑의목소리였다. 김무망이 갑자기 몸을 벌떡 일으키더니 방 안으로 뚫고 들어가려고하였으나, 웅묘아가 한 팔로 그를 잡았다. 김무망이 노한 소리로 부르짖었다. "왜 가로 막는거지?" 웅묘아가 웃으면서 말했다. "형씨께서는 이렇게 긴장하실 필요가 있습니까? 심 형과 같은 인물이 무슨큰 일이라도 당한단 말입니까? 김 형께서 만약 이렇게 뚫고 들어가신다면,왕련화가 화가 나서 반쯤밖에 하지 않은 일을 더이상 하지 않을지도모르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되죠? 그 두 아가씨는 평생 다른사람을 똑바로 보지도 못하고 살아가게 되지 않을까요?" 김무망이 신음소리를 발하며 한참을 그대로 있더니, '흥' 하고 코웃음 치고웅묘아의 손을 부리친 다음 큰 걸음걸이로 앉았던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김무망 그 자신도 심랑과 같은 인물은 절대 어떤 일을 당하지 않으리라고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이때, 방에서는 또 일진의 급박한 손이 부딪히는 소리들이들려왔다. 김무망의 얼굴색이 또 변하며 벌떡 몸을 일으켰다. 구양희도 눈썹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이건 무슨 소리죠?" 웅묘아가 침중한 음성으로 말했다. "아마도 왕련화가 그 두 아가씨의 굳어진 몸을 풀기 위해서 등이라도두드려주고 있는 것 같은데요." 구양희가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말했다. "그런 것 같군요! 그런 것 같군요!" 김무망은 비록 말은 하지 않았으나, 아마 웅묘아의 생각을 받아들이는듯하였다. 그러나 그가 다시 자리에 내려 앉는 순간, 그 방에서는 다시 놀람에 찬부르짖음이 들려왔다. 이번의 부르짖음은 왕련화가 낸 것이었다. 구양희의 안색이 갑자기 변하며 방으로 뛰쳐 들어가려고 했다. 또웅묘아가 이를 저지했다. 구양희는 방에서 왕련화의 놀람에 찬 부르짖음 소리를 듣고 중얼거렸다. "왕 형의 성격은 상당히 침착한 편인데, 지금 이렇게 놀란 부르짖음소리를 내다니. 혹시, 혹시......?" 웅묘아가 그 말을 가로채고 말했다. "혹시 어떻다는 거요? 왕련화는 마침 그 두 아가씨를 구하려고 손을 쓰고있는데, 심 형이 이 기회를 틈타서 공격이라도 했다는 거요? 그 두 사람은오늘 처음 만난 사람이라서 서로 원수진 일이 없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서로가 서로를 존경하는 듯한 기색까지 보였는데. 헤헤. 내가 생각하건대구양 형께서는 그 소리를 핑계로 방으로 뛰쳐 들어가서 도대체 어떻게 된건지 구경하고 싶으신 거겠죠?" 구양희가 실소를 날리면서 말했다. "상당히 말재주가 좋은 고양이로군. 웅 형께서는 그 부르짖음이이상하지도 않다는 거요?" 웅묘아가 웃으면서 말했다. "아마 내가 생각하건대, 그 두 친구는 그 두 아가씨가 너무 예뻐서 깜짝놀란 소리를 낸게 아닐까 하오. 특히 왕련화 그 친구는 우리가 모두 잘알고 있는 색마이지 않소? 아마 이순간, 그 친구의 뼈마디가 전부흐물흐물 하고 있겠죠?" 구양희가 고개를 가로젓고 웃으면서 말했다. "그 여복은 그 두 친구들만 나눠 가질 수 있는건데, 웅 형! 당신은 뭐가그리 안타까와서 얼굴색이 변하는 거요?" 방문은 여전히 꼭 닫혀 있었으며, 비교적 크게 들리는 깜짝 놀라는부르짖음 소리를 제외하고는 더 아무말도 들리지 않았다. 심지어 심랑과 왕련화의 목소리는 문밖에서는 들을 수조차 없는 것이었다. 구양희는 창으로 고개를 내밀어 밖을 살펴보았다. 해는 이미 하늘가운데까지 떠올라 있었다. 그는 또 조급한 마음이 들기 시작하여왔다갔다 하면서 중얼중얼거렸다. "그 두 사람이 왜 지금까지 안 나오는 것이지? 혹시? 혹시무슨일이라도......?" 심랑이 백비비의 겨드랑이 아래에 꼭 묶여 있던 옷깃을 푸는 순간,백비비는 눈을 꼭 감고 있었으나 그녀의 손 발은 가볍게 떨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얼굴은 비록 더할 수 없이 추하게 보였으나, 그녀가 눈을 감기이전에 눈가에 나타난 부끄러워 하는 듯한 기색은 사람의 마음을 동하게하기에 충분했다. 이처럼 유약한 소녀들의 부끄러워 하는 모습은 바로주칠칠 같은 여자에게서는 볼 수 없는 것이었다. 이순간, 그녀가 비록눈을 감고 있었으나 심랑은 심지어 그녀의 눈을 바라볼 수도 없을지경이었다. 그는 가볍게 그녀의 옷을 벗겨내렸으나 손가락 끝도 그녀의 몸에 직접닿게 하지는 않았다. 백비비는 장삼 속에 내의를 입고 있지 않았다. 순식간에 백비비의 그옥처럼 매끄럽고 눈처럼 부드럽고 학처럼 아름다운 몸매가 심랑의 눈앞에드러났다. 그녀의 동체는 사람을 미치도록 끌어들이는 그러한 매력은없었으나, 도리어 형용하기 어려운, 사람들로 하여금 가련하게 여기게하는 그러한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다. 그것은 일종의 깨끗한 소녀들만이갖고 있는 그러한 매력이었다. 심랑은 그녀의 몸을 바라보지 않으려 했으나, 이미 바라보지 않을 수없었다. 그가 백비비의 발가벗은 몸을 바라보는 순간, 그는 그녀의아름다운 몸매에 홀린 듯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는 비록 영웅이었으나,어쩔 수 없는 남자였던 것이다. 주칠칠은 심랑이 백비비의 옷을 벗겨야 한다는 말을 듣는 순간, 눈을부릅뜨고 표독스럽게 그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지금 이순간, 심랑이이처럼 얼빠진 모습으로 백비비의 벌거벗은 몸을 바라보는 것을 보고그녀의 눈에서는 더이상 참지 못하고 질투에 찬 원망스러운 기색이 뿜어져나왔다. 그녀는 한스러운 듯 속으로 중얼거렸다. (심랑, 심랑. 원래 당신도 호색한에 지나지 않았군요. 내가 다른 남자들을거들떠 보지도 않고 당신만을 바라보고 있는데, 당신은 이처럼 정신나간듯 다른 여자를 보고 있다니...... 나, 나는 왜......?)생각을 하면서 그가 눈을 돌려 바라보자 왕련화는 구석자리에 꼼짝않고 서있었다. 그는 등을 심랑과 백비비에게 돌린 채 그들을 곁눈질로도 바라볼생각을 않고 있는 듯했다. 이때 그가 마른 기침을 하고나서 말했다. "옷을 다 벗기셨소? 됐습니다. 그렇다면 심 형께서는 그녀를 그세숫대야로 안아다 넣으시오. 그리고 제가 이미 재단해 놓은 천으로그녀의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자세히 두 번을 씻어주시오. 첫번 씻을때는 좌측에 있는 대야의 물을 사용하여야 하고 두 번째 씻을 때는 우측에있는 대야의 물을 사용해야 합니다. 절대 그 순서를 바꿔서는 안 됩니다." 심랑이 고개를 돌리고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형씨께서는 왜 같이 손을 안 쓰시는거죠?" 왕련화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가볍게 웃으면서 말했다. "깨끗한 처녀의 몸을 어떻게 마음대로 본단 말입니까? 지금 이순간,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 어쩔 수 없이 이 지경이 되었지만......! 그렇지만 한 사람이라도 깨끗한 처녀의 몸을 덜 보게 된다면 그게 더 좋은게 아니겠습니까? 그녀는 이미 심 형의 사람이 되었으니 심 형께서 끝까지도와 주셔야 되겠지요." 심랑이 조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 그녀가 소재의 사람이라구요? 도대체 무슨 말씀이지요?" 왕련화가 웃으면서 그 말에는 대답을 하지 않고 말했다. "물 속에 풀어 놓은 약의 효력이 이미 사라지려 하고 있습니다. 심형께서는 빨리 손을 쓰시지요." 심랑은 한참을 멍하니 있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불어 내고백비비의 몸을 안아 일으켜서 세숫대야의 물 속으로 집어 넣었다. 그리고한편으로는 세숫대야 모서리에 걸려 있던 천을 집어들어 백비비의 몸을씻기려고 하였다. 왕련화는 여전히 뒷짐을 진 채 천천히 또 말을 했다. "이 두 아가씨는 틀림없이 경국지색일 겁니다. 오늘 심 형께서는 여복이터진 것 같소이다." 심랑은 더이상 참지 못하고 얼굴에 노한 기색을 띠며 신중한 기색으로말했다. "형씨의 이러한 말씀은 이 소재를 어떠한 사람으로 보고 하시는말씀이오?" 왕련화가 말했다. "저는 잠깐 농담을 한 것에 불과합니다. 형씨께서는 제발 화를 내지마시기 바라오. 그렇지만......." "그렇지만 뭐요?" "이 두 아가씨는 심형께서 데리고 온 사람들이고 그리고 지금 이 순간그녀들의 깨끗한 몸이 모두 심 형의 눈에 들어왔으며, 또 그 몸은 심 형의손에 들어 왔습니다. 심 형께서 이후에 이 두 여인에게 대해서 모른 척해서는 결코 안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심 형께서 만약 조금이라도협의심이 있다면 이 두 여인의 평생을 심 형의 책임이라고 생각해야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절대 제 3의 여자에게 대해서 마음이 흔들려서는아니 되겠지요." 심랑은 왕련화의 말을 들으면서 놀라고 화도 났으나 왕련화의 말은 한마디한마디 모두 정당한 것이었고 틀린 게 없었다. 심랑은 일순간 어떻게 반박해야 될지를 몰랐다. 그러나 왕련화가 이러한말을 하고 있는 원인을 주칠칠은 알고 있었다. 다만 이순간 그녀 자신을제외하고는 누구도 그녀가 주칠칠인줄 몰랐기 때문에 왕련화가 이런 말을하였던 것이다. 왕련화가 이러한 말을 하는 근본적인 까닭은 심랑으로 하여금 깨끗한처녀의 몸을 보고, 만진 이상 그 처녀들을 책임져야 한다는 의무감을 갖게만들고 그 처녀들에게는 심랑을 자기의 남자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게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그녀들이 심랑을 그녀들의 남자로 받아들이는 이상 심랑을 다른 제 3의여자에게 눈을 돌리지 못하게 올가 매기 위한 것이었다. 왕련화가 말했던 제 3의 여자라는 것은 바로 주칠칠을 가리키는 것이다. 왕련화의 이러한 계책은 더없이 훌륭한 것이었으나 그 두 여자 중 한여자가 바로 주칠칠이란 점은 그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심랑은 더이상 말을 하지 않았으나 그의 입가에는 다시 미소가 번져나오고있었다. 왕련화가 말했다. "심 형께서는 이미 다 씻으셨습니까? 됐습니다. 다시 심 형께서는 그녀의몸을 깨끗이 닦아 주십시오. 됐습니다. 그러면 다음에는 심 형께서는장력으로 그녀의 소음혈(少陰穴)의 사방 사십육곳 혈도를 주물러주십시오. 그렇지만 심 형께서 약간 멋적으시다면 먼저 이 아가씨에게옷을 입히셔도 좋습니다." 그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옷을 입히는 부스럭대는 소리가 들렸으며,이어서 가볍게 손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심랑의 호흡이 점점 거칠어졌으며, 백비비도 가벼운 숨찬 소리와 사람의혼을 뺏을 듯한 신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 소음혈 사방은 바로 여자의 몸에서 가장 민감한 곳으로서 만약, 남자의손으로 그곳을 주무르거나 가볍게 두드렸을 때의 기분이라는 것은 충분히상상할 만한 것이었다. 주칠칠은 표독스럽게 심랑의 손이 백비비의 몸을 이리저리 주무르고두드리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갑자기 그날, 지하 석실에서 왕련화가자기의 몸을 주무르던 그때의 기분을 생각해 냈다. 순식간에 그녀는일진의 기이한 기분이 전신으로 퍼져 나감을 느꼈다. 그녀의 가슴은 마치불이 타오르듯 갑자기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부끄러움인지분노인지 원망스러움인지를 모를 묘한 기분에 빠져 들어갔다. 백비비의 눈은 더욱 꼭 감겨졌으며, 그녀의 몸은 더욱더 격렬하게 떨고있었다. 왕련화는 천천히 몸을 돌려서 가위를 펄펄 끓는 식초에 소독을 했다. 그는얼굴에 미소를 띠고 조용히 백비비와 심랑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심 형께서는 결코 손을 멈춰서는 아니 됩니다. 심 형께서 무엇을 보셨든멈춰서는 아니 됩니다. 만약 심형께서 손을 멈추신다면 지금까지의 공이수포로 돌아가고 말 겁니다. 그 책임을 저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심랑이 가볍게 웃으면서 말했다. "형씨께서는 안심하셔도 좋소. 저는 이 평생에 다른 사람을 실망시키는일은 해본 적이 없소이다." 그의 말에는 마치 모든 돌발적인 사태에 대비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다는 듯한 기색이 배어 있었다. 그가 어떻게 백비비가 그의 손에서느끼는 미묘한 반응을 느끼지 못할 것인가? 그 자신도 어떻게 이러한기이한 반응에 따라서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인가? 그러나그의 얼굴은 결코 표정이 바뀌지 않았으며 마치 이미 모든 상황에 대비할자세가 되어있다는 듯한 기색을 나타내고 있었다. 왕련화가 백비비의 면전으로 돌아가서 말했다. "지금 이순간, 이 아가씨의 얼굴에 발려 있는 역용 약물은 밖에서 쐬던술과 식초의 증기와 그녀의 몸 속에서 나온 땀의 협공으로 상당히부드러워져 있습니다." 그는 말을 하면서 두 손으로는 백비비의 얼굴을 가볍게 문질렀다. 백비비의 얼굴에 있는 그 진짜인 듯한 표피가 그의 손길을 따라서 이리미끌, 저리 미끌 요동쳤다. 그 모양은 더욱 기이하고 공포감을 자아내는것이었다. 왕련화가 한 알의 약을 꺼내고 백비비의 입 속에 집어 넣으면서 말했다. "지금 그녀의 체내의 기혈은 이미 정상적으로 통하고 있고, 말도 할 수있습니다. 다만......." 그는 갑자기 웃음소리를 내더니 이어서 말했다. "다만 지금 이순간, 그녀는 심 형의 그 손아래에서 이미 뼈마디가흔들거려서 비록 말을 할 수 있지만 말을 하려 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만약 다른 사람이 이 말을 들었다면 즉각 손을 멈췄을 것이었으나, 심랑은듣고도 못 들은 척 손을 멈추지 않았다. 왕련화가 웃으면서 말했다. "좋습니다." 그는 갑자기 왼손을 들어올려 엄지와 식지로 백비비의 눈꺼풀을 주무르기시작했다. 또 오른손으로는 가위를 들어 올리더니 왼손 두 손가락으로 꼭끼어 올린 눈꺼풀을 찔러 들어갔다. 순간 '찰칵' 하는 소리가 나면서백비비의 눈꺼풀이 가위에 의해서 잘려 나갔다. 백비비는 약간 통증을느끼지 않는 듯하였으나, 그 모습을 보는 심랑과 주칠칠은 깜짝 놀라지않을 수 없었다. 왕련화는 잘라낸 물건을 소금통 속으로 집어 던진 다음, 즉각 작은칼을들어올려 방금 잘라낸 눈꺼풀 속의 구멍을 통하여 칼을 그녀의 얼굴로찔러 넣었다. 심랑은 더욱 놀랐다. 그러나 백비비는 여전히 통증을 느끼지 않는 듯했다. 칼을 잡은 왕련화의손은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였다. 백비비의 얼굴을 덮고 있던 그 피부는칼끝을 따라서 조각조각 찢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녀의 얼굴은 즉각 마치 손톱으로 이리저리 갉아놓은 과일 껍질모양으로찢어져 나가서 더욱 말할 수 없는 기괴함과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느끼게했다. 심랑은 이 피부가 역용 약물이 뭉쳐서 이루어진 것임을 알고 있었으나, 그모습을 보면서 여전히 놀라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갑자기 차가운 빛이 번쩍하면서 왕련화는 손에 잡고 있던 칼을 곧장심랑의 얼굴을 향해 공격해 들어왔다. 그 빠르기는 전광석화 같았다. 이 모습을 바라본 주칠칠의 놀람은 말로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심랑은 이때 정신을 집중하여 백비비의 몸을 주무르고 있었기 때문에왕련화의 이 공격을 피하기는 불가능할 듯해 보였다. 그러나 심랑이가벼운 소리를 부르짖으며 가슴과 배를 뒤로 쑥 잡아 빼는 순간, 두다리는 움직이지 않았는데 상반신이 평평하게 뒤쪽으로 삼 촌을 이동하며칼끝이 그의 얼굴을 스쳐갔으나 조금도 그에게 상처를 입히지 못할줄이야. 주칠칠은 부지불식간에 전신에 식은땀이 흘러 내렸으나, 심랑의 두 손은여전히 멈추지 않고 백비비를 두드리고 주무르고 있었다. 다만 그의 눈에서 노한 기색이 뻗쳐 나오고 있었다. 심랑이 날카롭게 물었다. "왕 형께서는 무얼 하는 거죠?" 그러나 왕련화는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가볍게 웃으면서 말했다. "저는 다만 심 형께서 정신을 집중하여서 어떠한 상황하에서도 두 손을멈추지 아니 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려고 시험했던 것뿐이오." 심랑도 가볍게 웃으면서 말했다. "아, 그렇소?" 말을 마친 그도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방금의 일에 대해서 더이상얘기하지 않았다. 왕련화는 심랑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에서는 감탄하는기색과 질투하는 기색이 동시에 떠오르고 있었다. 심랑을 한참이나바라보던 왕련화가 갑자기 길게 탄식을 하고 말했다. "형씨는 한평생 어떠한 일도 마음에 새겨둔 적이 없습니까?" 심랑이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지는 않지요. 당연히 새겨둔 것들이 있습니다. 다만, 다른 사람들이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할 뿐이지요." 심랑의 말소리는 여전히 부드럽고 평정했다. 그러나 심랑의 이러한 말을듣는 왕련화는 어찌된 까닭인지 가슴 속에서 찬바람이 부는 듯한 기분을느꼈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심랑과 같은 인물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한 나 왕련화는 무슨 재미로살아갈 것인가?)이러한 생각을 하면서 왕련화의 손은 가볍게 움직였다. 일진의 가벼운바람이 불어가자 백비비의 얼굴에서 너풀거리던 찢겨진 피부 근육들이즉시 바람에 따라서 펄럭거렸다. 그리고 그 찢겨진 피부조각들은 마치눈이라도 있는 듯 한조각 한조각 모두 소금물통 속으로 떨어져 들어갔다. 심랑이 웃으면서 말했다. "대단한 장력이시오. 아주 대단한......." 말을 마치기도 전에 그의 눈이 백비비의 얼굴을 살펴보는 순간 그는말소리를 멈췄으며, 한참이나 그러한 상태로 멍청하니 백비비의 본래의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녀의 장미처럼 아름다운 두 볼에서는 여전히 진주 크기만한 땀들이송글송글 맺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긴 눈썹은 눈꺼풀을덮고 있었으며, 오똑 솟은 콧날에 앵두 같은 입술에서는 여전히 가뿐 숨을 '헉헉' 몰아쉬고 있었다. 심랑이 방금 그녀의 벌거벗은 몸을 보고 이미 그녀의 부드럽고 따뜻하고매끄러운 피부를 직접 손으로 만졌었으나, 아무런 감흥이 일지는않았었다. 그러나 이순간, 그가 그녀의 이러한 수줍음을 머금은 듯한 예쁜얼굴과 사람의 가슴을 울렁거리게 하는 아름다움을 보고 그의 가슴에서는일종의 설레임이 솟아났던 것이다. 그는 더이상 그녀의 몸을 어루만지지도못했다. 그는 신체 건장한 젊은 남자였던 것이다. 심랑이 느끼는 이러한 감정은 이 세상 모든 남자가 피할 수 없는것이었다. 왕련화도 백비비의 모습을 보고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한참이지나서 그는 길게 탄식을 하면서 말했다. "과연 경국지색이라 할 만하군요. 과연......." 주칠칠은 이 두 남자가 백비비를 쳐다보는 표정을 보고 이를 악물며속으로 욕설을 퍼부었다. (남자들이란, 남자들이란...... 이 세상의 모든 남자들은 전부 저모양이야!)그녀는 비록 마음이 넓은 여자였으나, 이 두 남자 중 하나는 그녀가 깊이사랑하는 사람이고 또 하나는 그녀를 깊이 사랑하는 남자이다. 그녀가 이두 남자가 다른 여자를 보고 그렇게 넋이 빠져 있는 것을 보고, 마음속에서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질투와 원망의 마음이 일어났던 것이다. 그녀는 어떻든 젊고 예쁜 여자였던 것이다. 이러한 그녀의 마음은 이세상의 모든 여자들이 피할 수 없는 심리인 것이다. 주칠칠의 눈빛은 알게 모르게 왕련화에게 향해졌다. 왕련화는 그때 마침심랑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에서는 살기가 빛나고 있었다. 주칠칠은 속으로 외쳤다. (심랑, 큰일났어요!)그녀가 당황하는 순간, 왕련화의 쌍장은 이미 심랑을 향해 장력을 격출해내고 있었다. 그 장세의 신속함과 빠름은 주칠칠의 생각이 정리되는것보다도 더 빨랐다. 그의 이번 공격은 갑작스레 일어났으며, 그 빠르기가비할 데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심랑은 그를 보지도 않은 듯하고 있었으나사실상 왕련화의 일거수 일투족은 심랑의 눈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왕련화의 장력이 격출되는 순간 심랑의 쌍장도 이미 그 장력을 맞받아쳐나갔다. 그순간, 장력이 부딪히는 소리가 급격히 일어났다. 십여장을 서로맞부딪힌 후에도 심랑은 여전히 그 자리에 꼼짝않고 서 있었다. 그러나도리어 왕련화는 놀람에 가득찬 소리를 지르며 뒤로 서너 걸음이나물러섰다. 심랑이 말했다. "형씨의 이번 공격은 뭐라고 말씀하실 거죠?" 왕련화는 구석자리로 물러가서야 비로소 신형을 안정시킬 수 있었다. 신형을 안정시킨 그는 새로 맞춘 그 하얀 마포 장삼을 털고 나서 여전히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웃으면서 말했다. "저는 방금 심 형께서 이 아가씨를 치료하느라 기력이 전부 소모되지않았는지 한 번 알아보고자 했을 뿐입니다." 심랑은 왕련화를 똑바로 쳐다보고나서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아, 정말이시오? 고맙소. 관심을 가져 주어서......." 말을 마친 그는 여전히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방금 일어났던 왕련화의공격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더 하지 않았다. 주칠칠은 눈을 부릅뜨고 이를 깨물면서 속으로 외쳤다. (심랑, 심랑! 이 멍텅구리 바보 같은 사람! 그 녀석이 당신을 조수로쓰고자 했던 것은 바로 기회를 틈타서 당신을 없애려 했던 거란 말예요. 그것도 모르세요? 바보 같은 사람, 양심도 없는 사람! 진짜 어떤 때는당신이 죽어버렸으면 싶어요.)백비비도 살며시 눈을 가늘게 뜨고 심랑의 모습을 쳐다보았다. 그녀의붉게 달아올랐던 얼굴은 아직 붉은 기운이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었으나,그의 꿈을 꾸고 있는 듯한 눈알은 부끄러움인지 아니면 사랑인지 모를묘한 기색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녀는 심랑을 쳐다보는 외에는 다른사람의 얼굴은 본 척도 하지 않았다. 왕련화는 다시 식초와 술에 의해서 만들어진 수증기를 주칠칠의 얼굴로향하게 했다. 주칠칠은 눈물과 콧물이 동시에 흘러나왔다. 이러한 고난은 그녀는 더이상참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가 자기 자신이 즉시 지금까지 당했던고난에서 벗어난다는 점에 생각이 미치자 그녀의 가슴은 펑펑 뛰기시작했다. 자기의 신체에 더이상의 고통이 가해진다해도 그녀는 모두 참을수 있을 것 같았다. 왕련화는 다시 새로운 대야에 술과 식초와 약물과 맑은 물을 섞어 놓았다. 이번에는 그는 아까보다는 더 많은 약의 분량을 섞어 놓았다. 그런 후에그는 고개를 돌려 심랑을 바라보고 웃으며 말했다. "이 아가씨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아까보다 훨씬 더 곤란한 점이 많을겁니다. 심 형께서는 아까보다 조금 더 힘을 쓰셔야 할 거요." 말을 마치기도 전에 그는 다시 구석자리로 가서 벽을 맞대고 조용히 섰다. 심랑이 씁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아까와 꼭 마찬가지 방법으로 해야 되는 거요?" 그는 마치 다른 사람의 요구 사항에 대해서 거절할줄을 모른다는 듯,어떠한 일에 대해서도 모두 순순히 받아들인다는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왕련화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소이다. 아까와 꼭 마찬가지 방법이오. 심 형께서는 이 아가씨를 그두 개의 대야의 물에 담가서 깨끗이 씻어주셔야 하......." 주칠칠은 심랑의 손이 자기의 옷고름에 닿는 것을 느끼자 그녀의 가슴이마치 작은 사슴의 심장처럼 펑펑 뛰기 시작했다. 그녀의 심장은 밖으로튀어 나올 듯했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두 눈을 내리 감았다. 그녀는 다만 자신의 몸이 선뜻한 기분을 느꼈으며, 이어서 그녀 자신의몸이 따뜻한 물 속에 들어가는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그녀는 일진의동정이 섞인 숨소리와 신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녀는 방금 속으로 백비비를 저주했으나, 이순간 이 거친 숨소리와신음은 모두 그녀 자신의 입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었다. 그녀는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정신이 몽롱하여 마치 꿈을 꾸고 있는 듯,구름 속을 날아다니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흘렀는지는 몰랐으나, 아주 많은 시간이 흐른 듯도 하였고 순식간의 일인듯도 하였다. 마침내 그녀의 몸은 다시 부드러운 천에 휩싸여 몸에 뭍은물기가 깨끗이 닦여졌으며 옷이 입혀졌다. 이순간 지금까지의 그녀의 뻣뻣하게 굳어있던 마비된 상태의 몸이 점점풀려 그녀는 감각이 생김을 알 수 있었다. 이어서 그녀는 한쌍의 데일 듯뜨거운 손바닥이 그녀의 몸을 주무르기 시작함을 느꼈다. 그녀의 몸에감각이 돌아오고 신음소리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은 아주 기뻐해야 할일이었다. 그녀는 이미 그녀 자신이 말을 할 수만 있다면 그자리에서 즉각왕련화의 정체를 밝혀 내겠다고 맹세했었다. 동시에 그녀는 심랑에게단단히 본떼를 보여 주겠다고도 맹세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순간 그녀의 마음은 취한 듯 홀린 듯, 자기 자신이 말을 할 수있다는 사실마저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백비비는 침대의 구석자리에 웅크리고 앉아서 여전히 거친 숨을 몰아쉬고있었다. 그녀의 눈은 수시로 심랑의 얼굴을 훔쳐보고 있었다. 왕련화는여전히 벽을 맞대고 조용히 서 있었다. 그의 모습은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듯했다. 이러한 네 사람이 만들어내는 모습은 얼마나 기이한 광경인가? 왕련화는 한참 동안 깊은 생각에잠겨있다가 마침내 천천히 몸을 돌려 심랑과 주칠칠의 곁으로 다가왔다. 이어서 그는 새로운 가위를 집어들고 주칠칠의 얼굴을 문지르기 시작했다. 색귀(色��) 왕련화의 정체 이와 더불어 오른손에 들고 있던 가위는 이미 주칠칠의 얼굴 피부에 닿아있었으나, 머뭇머뭇 그 피부를 찌르지는 못하고 다만 뚫어질 듯 심랑을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심랑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 "형씨께서는 어째서 손을 쓰지 않으시는 거죠?" 왕련화가 말했다. "지금 이순간, 제 마음이 상당히 복잡하여서 정신을 집중할 수가 없구려. 만약 조금의 실수라도 하게 된다면 이 아가씨의 아름다운 얼굴 모습을상하게 되지나 않겠소이까?" 심랑이 기이하다는 듯 말했다. "형씨가 왜 갑자기 마음이 어지러워진 거죠?" 왕련화가 가볍게 웃으면서 말했다. "저는 마침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이 두 분 아가씨의아름다운 모습을 원래의 모습대로 복원시킨 후에 형씨께서는 어떻게 저를상대하실 것인가 하는 생각말입니다." 심랑이 웃으면서 말했다. "당연히 친구로 형씨를 상대하지 않겠소? 형씨께서는 걱정되는 점이라도있으시오?" "방금 제가 두 번이나 심 형에게 손을 썼는데, 형씨께서는 정말 마음에새겨 두지 않으신다는 겁니까? 형씨께서는 정말 제가 형씨를 해칠마음으로 손을 썼다고 생각하지는 않으신다는 겁니까?" "본인과 형씨는 조금의 원한도 없고 서로 알지도 못했었소. 내가 왜형씨가 손을 써서 나를 해치려 한다고 생각한단 말이오?" 왕련화가 얼굴을 활짝 펴고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다면 저는 안심입니다. 형씨께서는 방금 하신 말씀을 영원히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영원히 친구로써 저를 상대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형씨께서 본인을 친구가 되지 못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이상, 제가 어찌방금 뱉은 말을 잊을 수가 있겠소?" 왕련화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다면 저도 안심입니다." 말을 마친 순간 그는 가위를 내려 놓고 옆으로 걸어갔다. 심랑이 더이상 참지 못하고 다시 물었다. "형씨께선 이번에는 왜 다시 가위까지 내려 놓으시는 거죠?" 왕련화가 웃으면서 말했다. "형씨께서 기왕에 저를 친구로써 받아들이시니 제가 어찌 형씨께 술 몇잔을 권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말을 마친 그는 두 개의 찻잔을 찾아들고 술병에서 가득가득 흰 술 두잔을 따랐다. 심랑이 말했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이 아가씨는......." 왕련화가 말했다. "형씨께서는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이 아가씨의 원래 모습은 제가책임지고 회복시켜 놓겠습니다. 형씨께서는 지금 잠시 손을 멈추신다해도무방합니다." 말을 마친 그는 이미 가득 채운 술잔 하나를 심랑에게 권해왔다. 심랑도그에 따라 자연히 손을 멈추고 왕련화가 권해 오는 술잔을 받아들었다. 왕련화가 술잔을 높이 쳐들고 웃으면서 말했다. "이 한 잔의 술은 심 형의 다복(多福)과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입니다. 더욱이 형씨께서 이후부터는 소재를 지기로써 받아들여서 환난을 같이나눌 수 있게 되기를 원하는 의미입니다." 심랑도 술잔을 높이 쳐들고 웃으면서 말했다. "고맙소!" 이때 주칠칠의 정신은 점점 맑아지고 있었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눈을굴려 심랑과 왕련화를 쳐다보았다. 이순간, 심랑은 이미 왕련화가 건네온술잔을 입가에 갖다 대고 있었다. 방금 주칠칠은 심랑이 백비비를 주무르는 것을 보고 그에게 약간의 불만이있었다. 아울러 이순간, 그녀는 그녀 자신이 소리를 내어 왕련화의 정체를벗 길때 왕련화는 더이상 그녀를 치료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 자신은 어쩌면 영원히 그 추한 모습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할지도모른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심랑이 왕련화가 건네준 술을마시려는 것을 본 순간, 그녀는 더이상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그녀는 급한 마음에 갑자기 큰소리로 외쳤다. "내려놔요!" 그러나 그녀의 목소리는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았던 탓인듯 '내려놓아요' 하는 외침은 심랑과 왕련화가 정확히 알아 들을 수 없는소리였다. 심랑과 왕련화는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심랑이 얼른 고개를 돌리고 물어왔다. "아가씨!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주칠칠이 원래 말을 하려고 하였던 것은 '술잔을 내려놓아요! 술에는 독이있어요!' 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 자기의 목소리가 밖으로나올줄은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며칠간의 벙어리 신세가 되었던 이후에지금 목소리를 회복한 순간, 그녀 마음의 격동과 기쁨은 당해보지 않은사람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녀는 '내려놓아요!' 하는 몇 마디를 한 후에 자신의 목소리에 그녀자신이 깜짝 놀라 멍청해져 버렸다. 한동안 그녀는 그 이상의 말을 할수가 없었다. 왕련화의 눈빛이 번쩍하는 순간 갑자기 주칠칠에게달려오더니 그녀의 아랫턱에 있는 아혈(啞穴)을 눌러 버렸다. 그녀가 계속말을 하려 했으나 이제는 더이상 말을 할 수도 없었다. 그녀는 급한마음에 몸에서 식은땀을 흘릴 뿐이었다. 심랑이 눈썹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왕 형께서는 어째서 이 아가씨가 계속 말을 하도록 해주지 않으시는겁니까?" 왕련화가 웃으면서 말했다. "이 아가씨는 한동안 너무 큰 놀라움을 당해 그 정신이 약간 평정되지못한 상태에 있습니다. 지금 이순간, 목소리를 회복하고 몸을 움직일 수있으면 바로 무슨 미친 짓을 할 지도 모르지요. 저는 방금 이러한 점을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지금 이러한 점이 생각났기 때문에 그녀에게 조금더 쉬도록 만든 것입니다." 말소리를 약간 멈추고 다시 술잔을 들어서 심랑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자, 마십시다." 심랑이 약간 멈칫거렸으나, 왕련화가 이미 술잔을 비우는 것을 보고자신도 고개를 쳐들고 술을 넘겼다. 주칠칠은 한편에서 이러한 모습을 바라보면서 너무 조급한 마음에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나왔다. 왕련화가 또 술을 한 잔 가득 따라서 웃으면서 말했다. "이 한 잔으로는 형씨의......." 왕련화의 입에 발린 듯한 칭찬의 말을 들으며 심랑은 부지불식간에 술 세잔을 모두 마셔버렸다. 주칠칠은 전신이 차갑게 굳어 오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날 그 지하 석실에서 왕련화가 원한을 품은 듯한 목소리로 하던 말이지금 이순간 그녀의 귓가에 들려 오는 듯했다. (심랑! 심랑! 좋다! 도대체 그녀석이 어떻게 생긴 인물인지 한번 보자! 그 녀석으로 하여금 내 발밑에서 죽게 만들 것이다!)주칠칠은 왕련화가 그날 했던 말을 다시 생각해 냈다. 그녀는 지금 이순간심랑이 일곱 구멍에서 피를 흘리며 그 자리에 쓰러지는 모습을 보는듯했다. 그녀는 심랑이 마신 세 잔의 술이 자기 자신이 마신 것이었다면 하는생각을 하고 있었다. 달은 점점 높이 솟아 올랐고,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웅묘아 등은 이미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고 있었다. 구양희는 더욱 참지 못하고 발을 구르면서 말했다. "어째서 아직까지 나오지 않는 거지?" 이순간, 방 안에서는 오랫동안 더이상의 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고 있었다. 이렇게 지나치게 이상한 적막은 도리어 사람들에게 의심을 불러 일으키고있었다. 웅묘아가 탄식을 하면서 말했다. "보건대, 애를 낳는 것보다도 더 어려운 듯하군." 이미 대청에는 주안상이 차려져 있었으나,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세사람은 먹을 생각도 잊고 있었다. 구양희가 중얼거렸다. "무슨 큰일이 난 것 같아. 틀림없어, 큰일이 난 것 같아!" 곁눈질로 웅묘아를 쳐다보면서 다시 이어서 말했다. "어떻게 생각하오? 여전히 이렇게 밖에서 멍청하게 기다릴 거요?" 웅묘아가 신음소리를 내면서 말했다. "조금만 더 기다려 봅시다! 조금만요!" 김무망이 갑자기 차가운 음성으로 말했다. "조금 더 기다리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그 책임을 당신이 질 거요?" "내가 책임을 진다고요? 왜 내가 책임을 져야 하죠?" "당신이 책임을 질 수 없다면 나는 지금 그 속으로 들어가 봐야 되겠소." 그는 말을 마치면서 갑자기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번에도 웅묘아가문을 가로막으면서 그를 저지했다. 김무망이 노한 음성으로 말했다. "어떻게 하겠다는 거요?" "들어간다 하더라도 먼저 문이라도 두드려 보고 들어가야 되지 않겠소?" 구양희가 그 말을 듣고 즉각 방문을 두드렸다. "우리 들어가 봐도 되겠소?" 그러나 그 방 안에서는 왕련화의 목소리가 들려올 뿐이었다. "무엇이 그리 조급하오? 약간만 더 기다리시오! 금방 끝나오!" "어떻소? 약간 더 기다린다고 무슨 해 될 것이라도 있을 것 같소?" 주칠칠은 밖에서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마음에서 기쁜 기색이떠올랐다. 그녀는 웅묘아, 김무망 등이 빨리 뛰쳐 들어오기를 바랐다. 어떻든 그들만이 심랑을 위기에서 구할 수 있으리라고 여겼던 것이다. 그러나 왕련화가 몇 마디 대답한 후에 밖에서는 다시 조용해져 버릴뿐이었다. 주칠칠은 실망하고 화가 나고 걱정이 되었다. 그는 걱정스럽게 심랑을쳐다보았다. 그러나 심랑은 그녀의 예상밖으로 여전히 그 자리에 꼼짝않고서 있을 뿐이었다. 그의 입가에는 여전히 그가 갖고 있는 독특한 미소를떠올리고 있었다. 맑고 깨끗하고 아무 일에도 상관하지 않는 듯한미소였다. 그에게서는 조금도 중독된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주칠칠은 또 멍청해져 버렸다. 그녀는 놀라움인지 기쁨인지 모를 묘한기분에 사로잡혔다. 그가 마신 술에 독이 없었다는 것은 그녀가 미처생각하지 못했던 사실이다. 이때 왕련화가 말했다. "마지막의 작업은 더이상 심 형께서 도와주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심형께서 방금 도와주셨기 때문에 지금 심 형께서는 상당히 피곤하시리라고느끼는데, 앉아서 좀 쉬시지요." 심랑이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왕 형께 부탁드리겠소!" 말을 마친 그는 과연 매우 피곤한 듯 그 자리에 주저 앉아 눈을 감았다. 이순간 그의 몸이 좌우로 가볍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그의입가에 떠올랐던 미소도 사라져갔으며 좌우로 흔들리던 몸은 벽을 기대고옆으로 비스듬히 쓰러졌다. 잠을 자고 있는건지 아니면 약에 취해서쓰러진 것인지 분간을 할 수 없는 자세였다. 주칠칠은 심랑의 모습을 보고 마음을 놓는 순간 다시 심랑이 이러한상황에 빠져듬을 보고 나서 급한 마음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녀자신이 방성통곡을 터뜨리지 못함이 한스러울 뿐이었다. 심랑은 결국 왕련화의 꾐에 빠지고 말았던 것이다. 그녀가 방금 왕련화가건네는 술잔에 독이 들었으리라는 추측은 틀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세잔의 술 속에는 확실히 독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왕련화는 차가운 눈으로 심랑을 바라보고 나서 입가에 얇은 미소를떠올렸다. 그의 웃음은 더욱 기괴하고 이상스럽게 보였다. 그는 입가에 미소를 띤채 주칠칠의 앞으로 걸어와서 고개를 숙이고 그녀를바라보았다. 주칠칠의 눈에서는 금방 불이라도 뿜어져 나올 듯했다. 그녀는 그녀의눈에서 불이 뿜어져 나와 그를 바라보는 왕련화의 얼굴을 태워버리지못함이 안타까왔다. 그러나 그녀를 바라보는 왕련화의 눈빛은 도리어 부드럽고 친절한것이었다. 그는 왼쪽손으로 주칠칠의 막혔던 혈도를 풀고 오른손으로는그의 아혈을 짚었다. 이에따라 주칠칠은 말은 할 수 있었으나, 여전히 그호흡은 시원스럽지 못했다. 그리고 말을 하는 목소리도 맑고 높지 못했다. 주칠칠은 이를 악물고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왕련화가 도리어 가볍게 웃으면서 말했다. "주 아가씨, 할 말이 있으시면 해 보시오! 왜 말을 하지 않는 거요?" 백비비의 눈이 갑자기 크게 뜨이며 기어 일어나려는 듯했다. 그러나왕련화가 소매를 가볍게 흔들어 그녀의 수혈(睡穴)을 짚어버리자 백비비는그 자리에 쓰러져 잠이 들어버렸다. 주칠칠은 크게 놀라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당신, 당신 어떻게 내가 주...... 주......." 왕련화가 그녀의 말을 가로채고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방금 당신의 그 신음소리를 들었을 때, 바로 당신이 주 아가씨라는것을 추측할 수 있었소. 왜냐하면 그 신음소리는 상당히 귀에 익었던것이었기 때문이오. 그순간부터 나는 후회를 하기 시작했던 거요. 왜 내가진작 당신이었다고 생각하지 못했을까? 왜 내가 당신을 심랑의 손에넘겨줬던가 하고 말이오. 내가 꾸민 계책에 도리어 내가 빠져 버렸던거요." 주칠칠은 부끄럽고 원망스러웠다. 그녀는 이 악마가 확실히 자기의 그러한신음소리를 들었던 것을 기억해 냈다. 바로 그 지하 석실에서 이 악마가가볍게 그녀를 애무할 때 냈던 그 신음소리였던 것이다. 왕련화가 응큼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다만 애석한 것은 당신의 그 심 상공은 당신의 그러한 신음소리를 들어본적이 없다는 거요. 그래서 그 사람은 꿈에도 당신이리라고는 생각지도못했던 거요." 주칠칠은 찢어지는 듯한 음성으로 말했다. "당신! 이 악마 같은 사람! 당신......." 왕련화는 그녀의 말에는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이어서 말했다. "그가 꿈에도 당신이리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당신이 방금그렇게 크게 소리를 질렀어도 그 친구는 당신의 음성을 알 수 없었던거요. 그렇지만 본인은 이미 그 목소리가 당신의 소리임을 알아차렸던거요." "당신! 당신 이 짐승 같은......." 왕련화는 더욱 득의에 찬 기색으로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소. 나는 짐승이오. 그렇지만 나 같은 짐승은 당신눈에 그렇게대단한 영웅으로 보이는 심장보다 훨씬 더 강하오. 이말은 내가 이미당신한테 했던 말이오. 당신이 비록 그때 내말을 믿지 않았지만 지금이순간 당신이 그의 모습을 쳐다보면 비록 심랑같은 인물 천명이달려든다해도 나 왕련화 한 사람을 감당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깨닫게 될것이오." 주칠칠이 원망스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꾀를 써서 사람을 상하게 하고 나서도 여전히 자화자찬을 늘어놓다니. 천하의 남자들의 체면을 모두 당신이 손상시키는군요! 당신이 만약 당신의진짜 실력으로 그를 죽일 수 있다면 나도 당신한테 탄복할 거예요! 그렇지만 당신의 지금과 같은 행동은 나는...... 나는 죽어서 귀신이된다해도 절대 용서할 수 없어요!" 왕련화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지만 애석하게도 당신은 여전히 살아있고, 죽어서 귀신이 될 수는없을 것이오!" 주칠칠이 찢어지는 듯한 목소리로 외쳤다. "만약 그 사람이 죽게 된다면 나도 즉각 그 사람을 쫓아서 죽을 거예요!" 왕련화가 말했다. "저 친구가 죽는다고? 누가 저 친구를 죽인단 말이오." 주칠칠이 깜짝 놀란듯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당신! 당신이 저 사람을 죽이지 않는단 말인가요?" 왕련화가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만약 저 친구를 죽인다면 당신이 평생 동안 나를 원망하지 않겠소? 당신은 내 일평생 중 진정으로 좋아한 여자인데, 어떻게 당신으로 하여금나를 원망하게 만든단 말이오." 주칠칠은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여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그렇지만, 저 사람은. 저 사람은 지금......." "저 친구는 지금 내 미혼약에 중독되었을 뿐이오. 한 잠 자고 나면 그약의 효력은 자연히 사라지게 되어 있소. 그리고 조금치도 나쁜 영향을끼치지도 않을 것이오. 심지어 그가 깨어났을 때 자기 자신이 약에 취해쓰러졌다는 그 사실 자체도 기억하지 못하게 될것이오. 다만 자신이 약간졸았다고 생각할 뿐이오." "당신, 당신은 왜 이렇게 하......."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다만 당신눈으로 하여금 내가 저 친구보다 더강하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한 것이오. 만약 저 친구가 당신이 얘기하는것처럼 그렇게 총명하다면, 어떻게 나의 이러한 간단한 수법에 당했겠소?" "저 사람은 군자예요. 당연히 당신이 그러한 소인의 행위를 생각하지않았겠죠." "그렇소. 저 친구는 군자고 나는 소인이오. 그렇지만 당신도 소인이오. 소인과 소인은 아주 잘 맞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소? 당신은 언젠가는어떻든 내가, 나 왕련화만이 당신의 배필이 될 자격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될 것이오. 당신은 언젠가는 나한테 돌아오게 될 것이오. 그것은 어쩌면당신이 근본적으로 저 친구의 배필이 될 자격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르오. 당신은 왜 하필 그날까지 기다리는거요? 차라리 지금 이순간 내 품으로오는 게 좋지 않겠소? 그럴 경우 후일 저 친구가 당신을 버렸을 때, 그쓰라림을 겪지 않아도 될 거요." 주칠칠이 노한 음성으로 욕설을 퍼부어댔다. "헛소리, 헛소리! 내가 차라리 개나 돼지한테 시집을 간다해도 당신과같은 개,돼지보다도 못한 짐승한테는 결코 가지 않을 거예요. 단념하세요!" 왕련화가 웃으면서 말했다. "지금 이순간 나를 원망해도 좋고, 나를 욕해도 좋소. 그렇지만 한 가지당신이 꼭 기억해야 될 점은 오늘 이순간 내가 당신한테 했던 말들이오." 주칠칠이 원망스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당연히 잊지 않을 거예요. 아주 꼭 기억할 거예요. 죽을 때까지 말예요. 그렇지만 내가 만약 당신이라면 지금 이순간, 나와 심랑을 모두 죽여버렸을 거예요. 후한을 남기는 게 두렵지 않으세요." "내가 왜 당신을 죽인단 말이오? 내가 어떻게 당신을 죽일 수 있단말이오?" "당신이 만약 나를 죽이지 않는다면 심랑이 깨어났을 때 바로 그자리에서당신의 정체를 벗겨 버릴 거예요. 당신의 비밀을 그에게 낱낱이 알려 줄거예요. 그러면 심랑이 당신을 죽이겠죠?" "나는 당신이 그렇게 하기를 바라오. 그렇지 않았다면, 내가 왜 당신을놓아 주었겠소? 또 이순간, 내가 왜 이러한 말들을 당신에게 하겠소?" 주칠칠은 그가 이처럼 득의에 찬 웃음을 날리는 것을 보고 이상한 생각이들어서 말했다. "두렵지 않으신가요?" "당신이 심랑에게 말을 하는 순간, 내가 두려워하는지 안 하는지를 알게될 거요." 갑자기 심랑쪽에서 가볍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왕련화는 하던 말을뚝 끊고 주칠칠의 혈도를 짚었던 손을 풀어 주었다. 그리고 또 주칠칠의얼굴을 문지르면서 오른손으로 가위를 집어들어 주칠칠의 얼굴 가죽을찢었다. 그의 손 씀씀이의 숙련됨과 빠름은 말로 형용하기가 어려울지경이었다. 주칠칠은 이순간 비록 큰 소리를 내어 부르짖을 수 있었으나 그러지는못했다. 아름다운 얼굴을 사랑하는 것은 여자들의 천성이었다. 그녀는자신이 소리를 지름으로 인해 왕련화가 그 소리에 놀라 자신의 얼굴에흠집을 내기를 원치 않았던 것이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참을 수밖에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순간 주칠칠은 심랑이 길게 숨을 불어내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기척을느낄 수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심랑은 한참을 멍청한 듯 주칠칠과 왕련화를 바라보더니실소를 하면서 탄식하는 기색으로 말했다. "형씨께서는 아직도 다 끝내지 않으셨소? 제가 졸았다고 비웃지나않으셨는지요?" 왕련화는 두 손을 멈추지도 않고 심랑을 바라보지도 않은 채 대답했다. "심 형께서는 약간 깜박 졸았을 뿐입니다. 제가 곧 일을 다 끝내게되었습니다. 형씨께서는 다가오셔서 한 번 보시죠." 심랑이 웃으면서 말했다. "안 그래도 저는 이 아가씨가 도대체 누구인지 한 번 보고 싶소이다." "방금의 그 아가씨가 경국지색이듯이 이 아가씨도 틀림없이 매우 아름다운아가씨일 거요. 좋소. 심 형께서는 두 눈을 크게 뜨고 기다려 보시오." 그는 입으로는 말을 하면서 손에 든 가위로 주칠칠의 얼굴 밖을 덮고 있던가짜 피부를 사분오열로 찢어 냈다. 이때 왕련화가 가볍게 손을 흔들자주칠칠의 진면목이 심랑의 눈앞에 나타났다. 심랑은 천성적으로 침착한 사람이었으나 이순간은 깜짝 놀라 기쁨에 찬소리를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다. 심랑의 이 놀람에 찬 부르짖음소리가 문밖에 들리는 순간 김무망은 더이상참지 못하고 몸을 번뜩여 문앞으로 달려들어 일 장으로 문을 열어 젖히고나는 듯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웅묘아는 그를 저지할 생각이었으나, 이미 김무망의 몸은 시위를 떠난화살처럼 그 옆을 미끄러져서 들어가버렸던 것이다. 방 안으로 들어선김무망은 주칠칠을 보는 순간 그도 기쁨에 찬 소리를 질렀다. 심랑이 중얼거렸다. "주칠칠! 어떻게 당신일 수가......." 웅묘아도 멍청한 듯 그 자리에 박힌듯 서 있을 뿐이었다. 그도 중얼거렸다. "당신이었군요? 원래, 원래가 당신이었군요!" 그들 두 사람은 그들이 이미 신발이 다 닳도록 사방으로 찾아 헤맸던주칠칠이 진작부터 그들 옆에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바로 이순간 주칠칠이 갑자기 몸을 일으키더니 쌍장을 동시에 신속하게펼쳐 왕련화의 오른쪽 어깨의 견정혈(肩井穴)과 좌측 가슴에 있는현기혈(玄機穴), 두곳 대 혈을 짚어갔다. 왕련화는 진작부터 그녀가 이러한 행동을 보이리라고 예상이라도 했던 듯신형을 번쩍이더니 가볍게 그녀의 공격을 피해버렸다. 주칠칠이 왕련화에게 공격을 가하는 모습을 본 심랑과 웅묘아는 모두 깜짝놀랐다. 그들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듯 동시에 손을 뻗쳤다. 그들은순식간에 주칠칠의 양 손목을 각각 부여잡았다. 오른손목을 부여잡은 심랑은 신중한 음성으로 말했다. "칠칠! 당신 미쳤소? 어떻게 왕 공자에게 공격을 가한단 말이오?" 주칠칠의 심랑에게 잡힌 손목은 마치 족쇄로 손목을 조인듯 꼼짝을 할수가 없었다. 그녀는 급한 마음에 얼굴이 붉게 달아 올랐으며, 두 발을들어 어지럽게 차면서 찢어지는 듯한 목소리로 외쳤다. "손을 놔요. 당신, 당신. 돼지처럼 멍청한 사람들! 내 손목을 잡고 뭘하겠다는거예요? 빨리 손을 놔 주세요. 빨리 손을 놔요. 내가 저 도둑 놈같은 녀석의 정체를 벗겨낼 거예요." 왕련화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여러분들께서는 자세히 보시기 바랍니다. 본인이 고생을 하여서 이아가씨를 그 고통 속에서 빠져 나올 수 있도록 하였는데, 이 아가씨는도리어 본인을 도둑 놈이라고 부르고 정체를 밝혀 놓는다고 말씀하고계시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심랑이 그 소리를 듣고 웃으면서 말했다. "아마 그녀의 정신이 아직 맑아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오." 주칠칠이 발을 구르면서 욕설을 퍼부어댔다. "헛소리! 당신이 뭘 안다고 그러세요? 제 정신은 지금 이순간처럼 맑아본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당신, 당신...... 당신이 정신이 흐릿한 개,돼지예요." 왕련화가 말했다. "아가씨가 만약 정신이 맑은 상태라면, 왜 은혜를 원수로 갚으려고그러시는 거요?" 주칠칠이 노한 음성으로 부르짖었다. "당신 그래도 변명하고 여전히 모른 척 할 건가요? 만약 당신이아니었다면, 제가 어떻게 오늘과 같은 이러한 상황에 빠졌겠어요? 저는...... 저는 좋든 싫든 당신과 사생결단을 할 거예요." 왕련화가 씁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이 분은 아가씨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본인은 확실히 알아들을 수가없습니다. 심 형, 구양 형, 웅 형 세 분께서는 무슨 말씀이신지 알아들을수 있겠습니까?" 웅묘아가 말했다. "나도 확실히 주 아가씨가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소. 주아가씨께서는......." 주칠칠이 노갈을 터뜨렸다. "닥쳐요!" 심랑이 탄식하면서 말했다. "닥칠 것은 바로 당신이오!" 주칠칠이 발을 구르면서 말했다. "멍청이, 바보! 아직도 모르겠다는 건가요? 이 왕련화라는 녀석이 바로철화학이나 전영송 등을 사로 잡아간 악마란 말이에요." 심랑이 깜짝 놀란 듯 눈썹을 찌푸리며 왕련화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왕련화는 웃으면서 말했다. "주 아가씨, 약을 더 드셔야 될 것 같소이다. 본인은 아가씨와 한 번도만난 적도 없는데 아가씨는 왜 이렇게 본인을 괴롭히지 못해서안달이시오?" 주칠칠이 말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요? 괴롭히지 못해서 안달이라고요? 당신...... 당신. 이 도둑 놈, 이 짐승! 당신이 한 일도 감히 내가 했노라고 승인할배짱이 없다는 건가요?" 왕련화가 망연히 말했다. "본인이 무엇을 했다는 거요? 본인은 다만 아가씨를 구했을 뿐이오. 그것이 잘못됐다는 건가요? 심 형! 심 형께서 한 번 말씀해 보시지요." 심랑이 탄식하면서 말했다. "왕 형께서는 잘못한 점이 없소. 그녀는 아마도......." 주칠칠은 이미 조급한 마음에 미칠 것만 같았다. 그녀는 두 발로 자기의두 팔을 움켜 쥐고있는 심랑과 웅묘아를 어지럽게 걷어찼다. 그녀의허여멀건 두 다리가 그녀의 발길질에 따라 밖으로 드러났는데도 그녀는전혀 상관하지 않는 듯했다. 심랑은 어쩔 수 없이 그녀의 아랫도리의 혈도를 제압하고 탄식하면서말했다. "진정하시오!" 그러나 그녀의 혈도를 제압한 심랑은 약간 미안한 마음이 드는듯탄식하면서 말했다. "당신은 내가 당신을 위해서 이러한 행동을 한다는 것을 이해해 주시오.!" 주칠칠이 찢어지는 듯한 음성으로 말했다. "멍청한 사람, 방금 왕련화가 왜 당신을 한 칼에 죽이지 않았는지나아세요?" 심랑이 씁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왕 형께서 왜 나를 죽인다는 거요? 당신은......." "그래도, 그래도 모르겠다는 건가요? 돼지! 개! 당신을 물어 죽이고싶어요." 말을 하면서 그녀는 입을 벌려 심랑을 깨물려 하였으나 차마 마음이 아파심랑을 깨물지 못하겠다는 듯 주저했다. 구양희가 이러한 소란을 보면서 참지 못하고 말했다. "아가씨께서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면, 천천히 차근차근 말씀해 보시죠?" 주칠칠이 부르짖었다. "천천히 말하고 싶지 않아요. 저는. 지금 미치고 싶어요. 미치고 싶어요. 차라리 저를 죽여주세요. 더이상 살고 싶지 않아요." 그녀가 하는 말은 모두 사실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그녀를 정신이혼미해진 사람이라고, 혹은 미친 사람이라고 본다는 사실에 그녀는 더욱조급해지고 더욱 기가 죽어갔다. 그녀가 어떻게 더이상 참을 수 있단말인가. 마침내 그녀는 방성통곡을 터뜨렸다. 사람들은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한순간 아무도 입을 벌려 말을 하지못했다. 백비비가 더이상 참지 못하고 주칠칠의 곁으로 다가와 부드러운소리로 말했다. "아가씨, 아가씨. 제발 울지마세요. 제발 천천히 좀 말하세요. 아가씨께서이러신다면 아가씨 혼자만 고생을......." 주칠칠이 노한 음성으로 부르짖었다. "너는 상관하지 마라. 고생을 한다고 해도 나 혼자의 일이니까. 꺼져! 아주 멀리 꺼져버려! 너를 더이상 보고 싶지도 않아." 백비비가 고개를 떨어뜨리고 풀이 죽은 모습으로 주칠칠의 곁을 떠나갔다. 그녀의 눈에서는 눈물이 솟아나오고 있었다. 심랑이 탄식하면서 말했다. "그녀가 한 말은 후의에서 한 말이오. 당신이 어떻게 그녀를 이처럼각박하게 대할 수가 있소?" 주칠칠이 통곡하면서 말했다. "내가 그렇게 하고 싶어서 그랬어요. 당신이 왜 끼어 드세요? 그래요. 그녀는 좋은 사람이고 나는, 나는 미치광이에요. 당신은 가서 그녀나 돌봐주세요. 내일에는 상관도 하지 마세요." 백비비는 마침내 참지 못하고 그 자리에 쓰러져서 방성통곡하기 시작했다. 이때 왕련화가 약을 한 알 꺼내들고 말했다. "이 아가씨의 모습을 보니 정신이 아직 제대로 돌아온 것 같지 않소이다. 본인이 갖고 있는 이 약은 그녀를 진정시켜 줄 수 있을 것이오. 심 형께서그녀에게 한 알 복용시켜 주시죠." 심랑이 그 말에 따라서 주칠칠을 돌아보자 그녀는 눈에 벌겋게 핏발이섰고 머리를 풀어 헤쳤으며, 확실히 미친 사람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왕련화의 손에서 약을 받아들고 말했다. "형씨에게 감사하오!" 그의 말이 끝나는 순간, 주칠칠이 도리어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전 안 먹어요. 죽어도 안 먹어요. 그 약은 틀림없이 미혼약일 거예요. 제가 그 약을 먹게 된다면 제가 죽고 싶어도 죽을 수도 없어요." 심랑은 그녀의 말에는 상관도 않고 약을 그녀의 입가에 갖다 대면서말했다. "말을 들으시오. 제발 이 약을 삼켜 주시오." 주칠칠이 미친 듯 고개를 가로 저으면서 찢어지는 음성으로 부르짖었다. "안 먹어요. 죽어도 안 먹을 거예요. 제발 부탁이에요. 제발 부탁이에요. 억지로 먹이지는 말아주세요. 제가 만약 이 약을 먹게 된다면 영원히 저녀석의 정체를 밝힐 수 없어요." 심랑이 약간 머뭇거리는 듯하더니 탄식하는 음성으로 말했다. "당신이 만약 평정하게 마음을 가라앉혀서 차근차근 말을 한다면,당신에게 억지로 이 약을 먹이지는 않겠소. 그렇지 않다면......." 주칠칠이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좋아요. 제가 진정을 하겠어요. 제가 차근차근히 말을 하겠어요. 당신이억지로 그 약을 먹이지만 아니 한다면, 당신이. 당신이 나한테 무슨 짓을하라고 해도 나는 하겠어요." 그녀는 확실히 두렵고 겁이 났다. 어쩔 수 없이 심랑의 말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왕련화가 말했다. "아가씨께서 보시기에는 이 약에 독이 있는 것 같소?" 말을 마친 그는 차갑게 웃으면서 심랑의 손에서 다시 그 약을 받아 들고단숨에 삼켜버렸다. 약을 삼킨 그는 고개를 쳐들고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약 속에 독이 있다니. 내가 금방 죽겠구려?" 심랑이 장탄식을 하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주칠칠, 더이상 할 말이 있소?" 주칠칠은 얼굴 가득 눈물 범벅이 되어서 말했다. "부탁이에요. 제발 저 녀석을 믿지 마세요. 저 녀석의 일거일동은 모두그의 계책이에요. 저 녀석은...... 저 녀석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악독한놈이에요." 왕련화가 냉소하면서 말했다. "주 아가씨, 본인이 아가씨와 도대체 무슨 원한이 있소? 왜 나를 사지에몰아넣지 못해서 그렇게 안달이시오?" 주칠칠은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심랑, 제발 제 말좀 들으세요. 그날, 제가 당신과 헤어진 후에우연하게도 전령송 등을 볼 수 있었어요. 그들은 모두 이성이 마비된 듯한모습이었어요." 그녀는 횡설수설 자기가 어떻게 사람을 모는 백운목녀들을 만났으며,어떻게 마차 안에 숨어 들어갔고, 어떻게 그 신비한 정원으로 기어들어갔으며, 어떻게 왕련화를 만났고, 또 어떻게 그 절세의 아름다운부인에게 사로잡혔는지, 어떻게 지하석실에 보내졌는지 등등에 대해서말을 하였다. 그녀가 한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말을 들은 심랑은 믿을 수도 믿지 아니할 수도 없었다. 이때 왕련화가 차갑게 웃으면서 말했다. "아주 사람을 감동시키는 얘기군요. 심 형께서는 이 아가씨의 말을믿으십니까?" 심랑은 비록 말은 하지 않았으나 이미 그의 눈에는 의심스럽다는 기색이역력히 나타나 있었다. 왕련화가 말했다. "심 형께서는 그녀가 한 말이 모두 사실이었다면, 이렇게 큰 비밀을 알고있는 그녀를 본인이 놔줄 수 있었으리라고 생각하십니까?" 구양희가 참지 못하고 끼어 들었다. "그래요. 그러한 상황 아래서 왕 형께서는 자연히 주 아가씨가 자신의비밀을 누설할까봐서 그녀를 그대로 곱게 보내줄 수는 없었겠죠?" 심랑은 여전히 말을 하지 않고 있었으나, 그 의심에 가득찬 눈빛을이번에는 주칠칠에게로 돌렸다. 주칠칠이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그 가운데에는 까닭이 있어요. 왜냐하면...... 왜냐하면......." 그녀는 비록 개성이 강한 여자였으나, 그녀가 그 지하석실에서 겪었던 일,왕련화가 그녀에게 하였던 말 등은 도저히 많은 사람앞에서 할 수 없었던것이다. 심랑은 그러나 도리어 그녀를 재촉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뭐란 말이오? 빨리 말해 보시오!" 주칠칠이 이를 악물고 갑자기 고개를 쳐들고 큰소리로 외쳤다. "좋아요. 말하겠어요. 왜냐하면 저 왕가 녀석이 저를 좋아했기때문이에요. 그렇지만 저는 도리어 심 아무개를 좋아한다고 얘기 하였기때문에 저 녀석이 화가 나서 나한테 심 아무개를 저 녀석 앞으로 데려올수 있도록 나를 놔 줬던 거예요." 구양희 등은 어린 아가씨의 입에서 이러한 말이 나오자 모두 깜짝 놀란듯한 기색이었다. 웅묘아의 눈에는 이미 괴로운 듯한 기색이 떠올라있었다. 그러나 왕련화는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주 아가씨의 말씀은 사실 매우 흥미롭군요. 주 아가씨께서 비록 하늘의선녀라해도 본인이 그렇게 미친듯 주 아가씨를 좋아할 수 있을까에대해서는 본인 자신이 의심스럽소." 주칠칠이 찢어지는 음성으로 말했다. "그래도 승인하지 않겠다는 건가요? 당신은 여러번에 걸쳐서 심랑을해칠려고 했는데 그 때문에 그런 게 아니란 말인가요? 방금 당신은 저한테제가 당신이 평생 동안 진정으로 좋아한 유일한 여자였다고 말했는데 그말도 부인하겠다는 건가요?" 왕련화가 크게 웃으며 주칠칠의 말을 잘랐다. "내가 방금 그러한 말을 아가씨께 했단 말이오? 심 형! 심 형께서는 제가말하는 걸 들으셨습니까?" 심랑이 씁쓸한 웃음을 날리면서 말했다. "나는 들은 적이 없소!" 주칠칠이 조급하게 말했다. "저 녀석이 분명히 그렇게 말했어요. 다만, 다만 그때 당신은 미혼약물에중독되어서 잠이 들었을 뿐이에요. 그 기회를 틈타서 저 녀석이 나한테말했던 거예요." 왕련화가 고개를 가로젓고 탄식하면서 말했다. "아가씨께서는 방금 본인이 여러번에 걸쳐서 심 형을 해치려고 들었다그랬는데, 지금 이순간 또 본인이 심 형을 미혼약으로 잠을 재웠다고말씀을 하시니. 심 형! 본인이 심 형을 해치려고 하였다면 왜 심 형께서미혼약에 취해서 잠이 들었을때 제가 손을 쓰지 않았겠습니까? 여러분께서는 전부 들어 보십시오. 세상에 이러한 사람이 있을 수가있겠습니까?"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왕련화의 말에 더이상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주칠칠이 큰 음성으로 외쳤다. "네 녀석이 저 사람을 잠재운 것은 나한테 말을 하기 위해서였지. 왜냐하면 그때 네 녀석이 이미 그 추하게 생긴 여자가 나인줄을알아차렸으니까 말야. 그렇지만 네 녀석은 내가 평생 네 녀석을원망할까봐서 저 사람을 죽이지는 못했던 거야." 왕련화가 말했다. "그순간, 심 형마저도 당신을 알아보지 못했는데 내가 어떻게 당신을 알수 있었겠소? 하물며 한 걸음 물러나서 내가 당신을 알아봤다고 합시다. 그렇지만, 내가 당신을 구한 후에 당신이 내 정체를 벗기리라는 것을알면서 내가 무엇 때문에 당신을 구했겠소? 무엇 때문에 당신으로 하여금말을 할 수 있게 만들어 드렸겠소? 내가 미쳤단 말이오? 내가 미친 사람이아닌 이상 내가 왜 그렇게 했겠소?" 여기까지 말을 했을 때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도 주칠칠의 말을더이상 믿을 수 없는 심정이었다. 주칠칠은 사람들의 안색을 둘러보고 나서 다시 조급한 마음에 미칠듯하였다. 그녀가 찢어지는 음성으로 말했다. "이 악마! 네 녀석이 다시 무슨 간사한 꾀를 쓸려고......." 왕련화가 그 말을 가로채고 웃으면서 말했다. "본인이 보건대, 아가씨께서는 꿈을 꾸신 것 같소이다. 아주 황당하기가극에 달한 꿈말이오. 그렇지만 확실히 아주 재미있는 꿈이오!" 주칠칠이 한 말은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사실이었으나, 한 사람도 그녀의말을 믿어주지 않는 이상 어찌해볼 도리가 없었다. 이처럼 사람에게뒤집어 씌움을 당하는 기분이라는 것은 확실히 사람들이 참을 수 없는것이었다. 그녀는 발악하듯 크게 외쳤다. "여러분들은 아무도 제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건가요?" 그녀의 말에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사람들의 얼굴에 나타난 표정이 아주 좋은 답이었던 것이다. 주칠칠은눈을 돌려 사방을 쳐다보고 나서 마침내 참지 못하고 다시 통곡을터뜨렸다. 그녀는 아주 서러운 듯 억울한 듯 한참을 그렇게 울고 있었다. 그때 웅묘아가 갑자기 말했다. "주 아가씨가 한 말이 사실인지 거짓인지를 알아볼 방법이 있소." 구양희가 말했다. "무슨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는 거요?" 웅묘아가 말했다. "주 아가씨가 하신 말이 만약 사실이라면 주 아가씨께서는 틀림없이우리를 주 아가씨가 말하는 그곳으로 데려갈 수 있을 것이오." 주칠칠은 웃음소리를 멈추지도 않은 채 기쁨에 넘친 소리로 외쳤다. "그래요. 바로 그렇게 해요. 제가 이미 말했죠? 제가 당신들을안내하겠어요. 왕련화 네 녀석도 가지 말고 같이 쫓아와야 돼! 그곳에도착한 후에 네 녀석이 무슨 말을 하는지 어디 두고보자." 심랑이 탄식하는 소리로 말했다. "이 일은 이미 더이상의 증명이 필요없다고 생각하오. 그렇지만 그녀로하여금 이 꿈을 깨게 하기 위해서는 그 방법 밖에 없을 것 같소이다. 그렇지만 왕 형께서는 저희들과 같이 가 주실지 모르겠군요?" 왕련화가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심 형께서 말씀하시지 아니하셔도 저는 같이 쫓아 갈 겁니다. 본인이직접 제 눈으로 한 번 주 아가씨가 말씀하시는 곳이 어떤 곳인지 살펴보고싶군요. 주 아가씨가 자신의 말을 증명하지 못할 때 그녀의 표정이 어떻게변하는지 본인이 직접 보고 싶습니다." 이때 시간은 이미 정오가 지나 있었다. 번화하기로 중원에 제일 가는낙양성은 길을 오가는 행인들이 적지 않았다. 심랑, 주칠칠 등의 일행이길거리에 나타나자 당연히 오가는 행인들의 주목을 끌었다. 그러나중원맹상 구양희는 이 낙양성에서 확실히 남들이 무시못할 그러한 영향력있는 인물이었다. 행인들은 그들 일행 가운데 구양희가 있는 것을 보자 두번 쳐다볼 생각을 하지도 못하는 것 같았다. 주칠칠은 눈물 흔적은 말랐으나, 두 눈은 여전히 빨갛게 핏발이 선 채앞장서서 걸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길이 익숙하지 못하여 한참 동안 돌아다녔으나, 길을 제대로 찾지 못했다. 심랑과 웅묘아는 좌우에서 바짝 그녀에게 붙어서 걷고 있었으며, 백비비는바로 그들 뒷면에서 고개를 떨어뜨리고 가련한 표정으로 쫓아오고 있었다. 한참을 돌아다닌 후에 구양희가 더이상 참지 못하고 눈썹을 찌푸리면서말했다. "주 아가씨께서 만약 길을 잘 모르시겠다면, 그곳의 특징이 어떠한지에대해서 말씀만 해주십시오. 그러면 본인이 앞장서서 주 아가씨를안내하리다." 주칠칠은 얼굴을 차갑게 굳히고 말했다. "당신이 안내할 필요없어요. 그리고 당신이 끼어들 필요도 없어요." 다시 한참을 돌아다녔을 때, 갑자기 길고 큰 길이 나타났다. 그 길의양쪽에는 서너 채의 작은 음식점들이 있었다. 그 음식점에서는 향기로운음식 냄새들이 풍겨나오고 있었다. 주칠칠은 진작부터 배가 고팠던 터에 이러한 음식 냄새를 맡자 그쪽을힐끗거렸다. 그때 갑자기 그녀는 그날, 그 장의사 집에서 나왔을 때 아주 배가 고파있었는데 이러한 음식냄새를 맡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녀가 다시 길가에있는 점포들을 봤을 때, 그 점포들의 모습이 매우 눈에 익은 듯했다. 주칠칠은 기쁜 마음에 앞으로 달려나갔다. 한참을 달려가서 그녀가 고개를 쳐들었을때, 이미 '왕삼기' 라는 세 글자가눈에 들어왔다. 그 흑색 바탕에 금색으로 글을 써 놓은 간판은 그녀가 봤던 그 장의사 집간판과 같은 것이었다. 하물며 그 간판의 양쪽에는 여전히 '장사가 너무잘 되는 것이 겁이날 뿐, 손님께서는 이곳을 자주 찾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고 씌어 있는 것도 보였다. 다시 더 자세히 살펴보자 그 장의사 집 안의 계산대에는 저울이 놓여있었으며, 그 옆에 있는 두 명의 점원 중 한 명의 입술은 한쪽이 떨어져나갔고, 한 사람은 곰보딱지였다. 그들은 마침 은의 무게를 저울질 하고있었다. 이러한 모든 상황은 바로 그날 그녀가 이곳을 도망쳐 나왔을 때보았던 모습과 꼭 같았다. 주칠칠은 참지 못하고 크게 기뻐하며 입을 열었다. "바로 여기에요!" 심랑이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 장의사집 말이오?" 주칠칠이 말했다. "바로 이 장의사 집이에요! 절대 틀릴 리가 없어요!" 왕련화가 웃으면서 말했다. "이 장의사는 확실히 본인의 점포들 중의 하나요. 주 아가씨의 집안에누가 만약 돌아가신 분이 있다면, 그래서 관이 필요하다면 본인은 주아가씨에게 관 몇 개를 보내드릴 용의가 있소이다." 풀 수 없는 비밀 그러나 주칠칠은 왕련화의 이러한 조롱을 듣지 못한 듯 앞장서서 장의사안으로 뛰쳐 들어갔다. 두 명의 점원은 뛰쳐 들어오는 주칠칠을 막으려 했으나, 왕련화가 그 일행중에 섞여 있음을 보고 동시에 허리를 굽혀 웃으면서 말했다. "작은 어르신께서 오셨군요? 아주 영광스럽습니다! 저희들이 얼른 가서차를 내오겠습니다!" 왕련화는 손을 흔들어 그 점원들을 막은 후에 손님들을 안내하였다. 그러나 그가 손님들을 안내할 필요도 없었다. 심랑과 웅묘아는 벌써주칠칠을 따라서 장의사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그 문의 뒷편은 목재들을 쌓아놓은 집이었다. 그 집의 사방에는 이미 다만들어놓은 관, 혹은 만들다 만 관들이 쌓여 있었다. 그리고 웃통을벗어붙인 대한들이 금방 점심을 끝낸 듯 관과 목재 위에 걸터앉아 어떤사람은 차를 마시고, 어떤 사람은 한담을 나누고 있었으며, 어떤 사람은담배를 피고 있었다. 그들은 왕련화 등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모두 그자리에서 일어서서 웃음을 머금고 아는 체를 하였다. 대패밥과 못 등은사방에 흩어져 있었다. 그러나 주칠칠은 그러한 것에는 주의를 하지 않고 사방을 주의깊게 몇 번돌아보더니 좌측에 있는 석판 하나가 움직인 흔적이 있음을 발견할 수있었다. 그녀는 지세를 가늠하고 나서 그 석판이 바로 그날 그녀가뛰쳐나왔던 곳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때 그일, 그 상황을 그녀가어찌 잊을 수 있었을 것인가. 그녀의 얼굴에 가벼운 웃음이 스쳐지나갔다. 이것은 그녀가 요 며칠 동안 처음으로 보이는 웃음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왕련화가 앞장서서 그녀를 막는 것을 겁내어 아무일도 없는듯한 모습으로 몇 걸음 그 석판을 향해 걸어갔다. 몇 걸음을 걸어간 후그녀는 더이상 참지 못하고 번쩍 몸을 날려 그 석판 위에 내려섰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왕련화를 바라보고 큰소리로 외쳤다. "바로 이곳이에요. 이래도 더이상 할 말이 있어요?" 왕련화는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여전히 눈썹을찌푸리면서 말했다. "그게 뭔데요?" 주칠칠이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도 시치미를 떼겠다는 거예요? 당신은 이 석판 아래가 바로 그 지하석실로 통하는 입구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요. 그날 저는 바로 이석판 아래 입구로부터 뛰쳐나온 거예요." 이 순간 김무망마저도 얼굴에 놀라는 듯한 기색을 나타냈다. 그는표독스러운 눈으로 왕련화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왕련화는 도리어 크게웃으면서 말을 했다. "대단하군요! 대단해요!" 주칠칠이 차갑게 웃으면서 말했다. "뭐가 대단하다는 거죠? 이러한 상황에서도 웃음이 나오다니요?" "석판 아래에 비밀 통로가 있다면, 아가씨께서는 왜 그 석판을 열어젖혀서살펴보지 않으시는 겁니까?" "당연히 열어젖혀서 살펴볼 거예요!" 웅묘아가 얼른 앞으로 한 걸음 나서면서 말했다. "내가 열어젖히겠소!" 주칠칠이 눈을 크게 뜨면서 말했다. "이것은 제가 발견한 거예요. 다른 사람이 손을 쓰는 것을 원치 않아요." 말을 마친 그녀는 바닥에 있던 철퇴와 호미 몇 자루를 집어들고 그 석판의밑을 파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 석판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그 조금씩 들어올려지는 석판을주시하고 있었다. 이때 주칠칠의 가벼운 놀람에 찬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석판이 활짝열려졌던 것이다. 그러나 석판이 열려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주칠칠이왕련화를 흘겨보왔으나, 석판이 열려지는 순간 사람들의 안색이 급격히변하며 이번에는 주칠칠을 흘겨보고 있었다. 주칠칠은 놀람에 찬 부르짖음소리를 내면서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 석판 아래는 진흙에 불과했던것이다. 거기에는 어떠한 비밀 통로도 없었다. 왕련화는 크게 웃기 시작했다. 그 웃음소리 속에는 말할 수 없는 득의에찬 기색이 넘쳐 흘렀다. 심랑은 눈썹을 찌푸리며 주칠칠을 바라보았다. 웅묘아와 구양희는 다만고개를 가로젖고 한숨을 불어낼 뿐이었다. 김무망은 박아놓은나무토막처럼 그 자리에 꼼짝 않은 채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백비비의눈에서는 도리어 동정이 가득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주칠칠은 한참을 멍하니 서 있더니, 갑자기 미친 듯 사방에 있는 석판을파헤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차갑게 그녀의 행동을 바라볼 뿐 아무도말리지 않았다. 그녀는 그곳에 있던 석판을 모두 파헤쳤으나 석판 아래는여전히 흙이 있을 뿐 사람들이 석판 아래를 파내었던 흔적은 조금도보이지 않았다. 왕련화가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주 아가씨! 더이상 할 말이 있으시오?" 주칠칠의 전신은 땀으로 흠뻑 젖었으며 군데군데 진흙으로 범벅이 돼있었다. 그녀는 왕련화의 웃음소리에 따라 찢어지는 듯한 음성으로소리질렀다. "나쁜 자식! 너...... 너...... 틀림없이 이미 우리가 올 줄을 알고 몰래여기에 있던 비밀 통로를 봉쇄해버린 거지?" 심랑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 땅 위에 나 있는 석판의 자국으로 볼 때, 어린아이라도 이미 수십 년동안 이 석판을 움직인 적이 없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을 것이오. 주아가씨! 제발 부탁이오! 더이상 이러한 행동을 하지 마시오. 당신때문에 당신을 아는 우리 모두의 체면에 손상이 가지 않겠소?" 주칠칠이 주먹으로 가슴을 두드리고 발을 구르며 눈물을 흘리면서외쳐댔다. "심랑! 정말이에요! 내가 말한 건 모두 진짜예요! 부탁이에요! 제발 저를믿어주세요! 저는 평생 당신을 한 번도 속인 적이 없어요!" 심랑이 탄식하면서 말했다. "그렇지만, 이번에도 속이지 않았다고 우기는 거요? 이번에는......." 왕련화가 갑자기 심랑의 말을 자르고 웃으면서 말했다. "주 아가씨가 만약 여전히 포기하지 않으신다면, 본인이 이곳을 전부 파서아가씨께 보여드릴 용의가 있소이다." 심랑이 말했다. "왕 형께서는 그렇게 하실 필요가......." 왕련화는 여전히 심랑의 말을 자르고 웃으면서 말했다. "괜찮소이다. 사실을 정확히 밝혀내지 못한다면 본인도 기분이 편하지않을 것이오." 그는 그곳에 있던 대한들에게 손짓을 하면서 말했다. "모두 이리로 와서 빨리 손들을 쓰시오!" 황혼 무렵, 그 장의사의 바닥은 모두 파헤쳐졌으나 그 이전에 다른 사람이그 바닥을 파헤쳤던 흔적을 찾아볼 수는 없었다. 심랑과 웅묘아 등은고개를 흔들며 탄식할 뿐이었다. 왕련화가 웃으면서 말했다. "주 아가씨! 어떻소?" 주칠칠은 털썩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녀의 얼굴은 뻣뻣하게 변해있었으며, 얼굴 표정은 취한 듯 몽롱한 상태였다. 다만, 눈을 크게 뜨고멍청하게 그대로 앉아 있을 뿐이었다. 심지어 그녀의 눈에서는 눈물도흐르지 않았다. 왕련화가 말했다. "나 왕련화의 낙양성 안에서의 장의사는 겨우 이 한 집 뿐이외다. 다른분점도 없소. 여러분께서 만약 믿지 못하시겠다면, 다른 사람들한테물어보십시오." 이 순간 누가 그의 말을 믿지 못하겠다고 말하겠는가? 심랑이 탄식을하면서 말했다. "본인은 왕 형께 미안하다는 말밖에는 더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다만 왕형께서는 주 아가씨가 나이 어린 젊은 여자라는 점을 생각하셔서 이 일을마음에 새겨두지 마시기 바랍니다." 왕련화가 웃으면서 말했다. "심 형께서 하신 그 한 마디는 제가 집을 전부 허문다 해도 괜찮을 정도의말씀입니다. 심 형께서 만약 누추하다고 싫어하지 않으신다면, 저의 집에가셔서 술이나 한 잔 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제가 어찌 감히 그렇게 왕 형을 번거롭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 저는......." 주칠칠이 갑자기 앉았던 자리에서 펄쩍 뛰어 일어나며 큰소리로 말했다. "당신이 안 가겠다면 나 혼자라도 가겠어요!" 심랑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도대체 어디로 가겠다는 거요?" "저 녀석의 집에요!" "왕 공자께서 언제 당신을 초청하셨소?" "저 녀석이 당신을 초청했으니 저는 당신을 쫓아갈 거예요. 저는...... 저는 반드시 어떻게 된 영문인지를 알아내고야 말 거예요." 왕련화가 웃으면서 말했다. "좋습니다. 주 아가씨께서 가기 싫다 하셔도 본인은 반드시 주 아가씨께서저희집을 방문하실 수 있도록 초청을 할 것입니다. 본인은 좋든 싫든 주아가씨께서 저희집을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고야 말겠습니다." 왕련화는 낙양에서도 손꼽히는 갑부였다. 그의 거대한 고대광실과 같은집들과 정원은 확실히 보통이 넘었다. 대문을 들어서자마자 주칠칠은동서로 눈을 두리번거렸다. 그 모습을 보고 왕련화가 웃으면서 말했다. "집이 비록 좁고 누추하지만, 후원에는 수풀도 약간 있고 그렇습니다. 다만 제가 배운 것이 부족해서 이 후원을 별로 잘 가꿔놓지 못했습니다. 심 형께서는 일세의 기재이시니 후원에 가셔서 저에게 약간 가르침을주신다면 다시 후원을 새로 단장해 놓을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심랑이 말을 하기도 전에 주칠칠이 차갑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는 후원을 한 번 살펴보려던 참이에요!" 심랑이 씁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왕 형께서 하신 말씀은 바로 당신이 후원으로 가서 살펴보라는 의미요. 당신이 후원을 살펴봐서 왕 형을......." 주칠칠이 냉소를 하며 심랑의 말을 가로채서 말했다. "다만 교활한 인간이 그런 말을 할 수가 있는 거죠! 이런 말은 내가 비록그 말뜻을 알아들어도 알아듣지 못한 척할 거예요!" 말을 마친 그녀는 앞장서서 후원을 향해 걸어 들어갔다. 그녀는 이곳저곳조금치도 미안해 하는 기색도 없이 다른 사람의 집을 마치 자신의 집인 양살펴봤다. 심랑은 주칠칠의 뒤를 따라가면서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가로저을 뿐이었다. 그 후원에는 소나무가 깨끗한 자태로 서 있었고, 정자하나와 누각 하나가 있었다. 나무들과 정자, 누각의 배치는 세심한 주의를기울인 듯하였으며 또 그 정자와 나무, 누각들에 쌓여 있는 눈과 더불어더욱 초세속적인 분위기를 풍겨내고 있었다. 그러나 정원에는 적막만이감돌 뿐 사람의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으며, 새 울음소리도 없었다. 주칠칠은 드디어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하여 속으로 생각했다. (그 우람하게 생긴 대한들과 백운목녀들은 도대체 어디로 갔다는 거지?)그녀는 비록 성격이 대담하였으나, 다른 사람들이 묶는 집 문들을 일일이다 열어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후원 끝까지 걸어들어갔을 때, 다시 몇개의 복도와 누각들이 나타났다. 그 하나의 누각 옆에는 마구간이있었으며, 말이 울부짖는 소리가 차가운 바람 속에서 때때로 들려왔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광경은 모두 주칠칠이 그날 보았던 광경이 아니었다. 주칠칠은 마침내 걸음을 멈추고 크게 소리내어 물었다. "네 녀석의 집은 여기가 아니야!" 왕련화가 웃으면서 말했다. "아가씨의 말씀은 본인이 자신의 집도 어딘지 모르는 그러한 멍텅구리라는의미요? 그렇다면 아가씨께서는 본인의 집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계시다는말씀이오?" 주칠칠이 발을 구르면서 말했다. "분명히 여기가 아니야! 네 녀석이 다시 나를 속이고 있어!" 구양희가 더이상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왕 공자께서 이곳에 사는 것은 이미 몇 해가 지났소이다. 그것은틀림없는 사실이오. 주 아가씨께서 만약 믿지 못하시겠다면, 본인이 내목을 걸어놓고 보증할 수 있소." 주칠칠이 말했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이 녀석에게는 틀림없이 다른 집이 또있어요." 왕련화가 웃으면서 말했다. "본인은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다른 첩의 집을 갖고 있을 필요가있겠소?" 주칠칠이 갑자기 대갈일성하며 말했다. "분통이 터져서 죽을 것만 같애!" 말을 마친 그녀는 그 자리에서 펄쩍 뛰어올라 정자 모퉁이에서 눈을 한움큼 움켜쥐고 입으로 쑤셔넣었다. 그녀의 눈을 씹는 소리가 부지직부지직들려왔다. 그러한 그녀의 모습을 보는 사람들은 모두 부르르 몸을떨었으나 그녀의 얼굴은 도리어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녀는 조급하고화도 나서 몸 전체가 불에 타고 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심랑이 씁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당신은 하필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주칠칠이 대갈했다. "당신은 상관하지 마세요. 당신은 비키세요." 그녀는 갑자기 왕련화 앞으로 달려들더니 말했다. "네 녀석에게는 모친이 한 분 계시지?" "본인에게 만약 모친이 안 계시다면 내가 어디 돌무더기 속에서솟아오르기라도 했단 말이오? 그런 질문을 하시다니 아가씨께서는 모친이없으신가요?" 주칠칠은 그의 긴 말은 못 들은 척하며 또 질문을 던졌다. "네 녀석의 모친도 여기에 살고 계시겠지?" "아가씨께서 가모(家母)를 만나보시겠다는 거요?" "바로 그래! 빨리 나를 안내해!" "그렇지 않아도 본인은 심 형에게 가모를 소개할 예정이었소." 심랑이 말했다. "왕 형께서는 그녀의 생각없는 말씀을 들으실 필요가 없습니다. 제가 어찌영당대인을 귀찮게 해드릴 수가 있습니까?" "괜찮습니다. 가모께서는 연세가 비록 많으시지만 젊은 영웅들을 만나보는것을 좋아하십니다. 심 형께서 믿지 못하시겠다면. 하하. 구양 형께서는이미 가모를 만나보셨습니다." 구양희가 웃으면서 말했다. "저는 만나뵈었을 뿐만 아니라, 왕노백모께서 직접 끓여주시는 탕도마셨습니다. 그 어르신께서는 아주 자상한 노부인이시지요." 왕노부인은 비록 낮잠에서 방금 일어난 듯한 기색이었으나, 머리 가득덮힌 백발은 이미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이 단정하게 빗어 넘기고 대처의자에 꼿꼿이 앉아 웃음을 머금은 채 사랑하는 아들의 귀한 손님들을맞아들였다. 그녀의 얼굴은 주름투성이었으나 얼굴 가득 웃음을 띠고한편으로는 담소를 하면서 한편으로는 그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에게 이귀한 손님들을 위하여 주안상을 준비할 것을 지시했다. 사람들은 서로를바라보고 약속이나 한듯이 속으로 생각했다. (과연 상당히 자상한 노부인이시군!)그러나 주칠칠이 이 자상한 노부인을 보는 순간, 그녀는 금방 미칠듯했다. 그녀는 큰소리로 부르짖고 싶었다. (이 사람은 네 녀석의 모친이 아니야.)그러나 그녀는 애써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 말만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할수 없었던 것이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머리가 빙빙 돌며 다른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 한 마디도 듣지못했고 다른 사람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똑바로 쳐다볼 수도 없었다. 어렵사리 시간을 보내고 나서 술과 밥을 먹은 다음 왕노부인은 휴식을취하러 들어가버렸다. 왕련화는 그들을 여러 번 만류하였으나, 심랑은마침내 작별을 고하고 밖으로 나왔다. 왕련화가 갑자기 웃음을 머금고불렀다. "주 아가씨!" 주칠칠이 고개를 돌리면서 말했다. "뭐라고 불렀소?" "저희집 대문은 영원히 주 아가씨를 위해서 열려있을 것입니다. 주아가씨의 마음에 여전히 의심스러운 점이 있다면 언제라도 다시 오셔서조사해도 좋소이다." 주칠칠은 표독스럽게 그를 몇 번 노려본 다음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고개를 돌렸다. 왕련화가 이어서 웃으면서 말했다. "주 아가씨께서는 왜 말씀을 하지 않으시는 거지요?" 주칠칠은 화가 난다는 듯 발을 몇 번 구르고 앞장서서 대문 밖으로뛰쳐나갔다. 심랑이 씁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왕 형께서 이렇게 그녀를 좋게 대하시는데 그녀가 무슨 더 할 말이있겠습니까?" 눈보라가 몰아치는 차갑고 깊은 밤이었기 때문에 심낭은 더이상낙양성에서 벗어나자고 주장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일행은 다시 구양희의집에 여장을 풀었다. 저녁 밤참이 나올 때까지 주칠칠은 여전히 말을 하지않고 입을 꾹 다문 채였다. 그녀는 시종 눈썹을 찌푸리고 고개를 숙인 채무엇을 생각하는 듯한 기색이었다. 누가 그녀를 향해 말을 걸어도 그녀는상대도 하지 않았다. 마치 근본적으로 듣지 못하였다는 듯이....... 구양희가 더이상 참지 못하고 탄식하며 말했다. "그 왕련화라는 친구는 비록 군자라고는 할 수 없지만, 결코 주아가씨께서말씀하시는 그러한 인물은 아니외다. 틀림없이 여기에는 어떤 오해가 있는것 같소. 심 형께서는......." 심랑이 웃음을 머금고 구양희의 말을 가로채서 말했다. "형씨께서 말씀을 하시지 않으셔도 본인은 알고 있습니다." 구양희가 말했다. "하물며 그 친구는 문무를 겸비한 친구로서 지금까지 사람들 앞에서수작을 부린 적이 없습니다. 낙양성에 사는 사람들은 그가 풍류를좋아하는 부잣집 공자로 생각할 뿐 누구도 그 친구가 몸에 절기를 지닌강호의 고수인 줄은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심랑이 웃으면서 말했다. "그점은 저도 알고 있는 점입니다." 주칠칠이 갑자기 탁자를 내리치며 큰소리로 말했다. "당신이 뭘 안다고 그러세요?" 심랑이 눈썹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상황이 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소란을 피우겠다는 거요? 당신이그렇게 남을 모함했는, 왕 공자의 성격이 선량하고 부드럽지 않았다면어떻게 당신을 그대로 놔두었겠소?" 주칠칠이 한스러운 듯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녀석이 나를 놔주지 않는다면 또 어떻다는 거예요? 흥, 내가 그녀석을놔주지 않을 거예요." "도대체 당신은 어떻게 하겠다는 거요?" 주칠칠의 가슴이 거친 숨으로 오르내리고 있었다. 한참이 지나서 그녀는갑자기 길게 탄식하면서 말했다. "가서 잠이나 자야겠어요!" 심랑이 얼굴을 펴고 웃으면서 말했다. "당신은 진작 잠자리에 들었어야 했소!" 그때까지 주칠칠의 옆에 조용히 앉아 있던 백비비도 주칠칠을 따라서조용히 일어서면서 말했다. "제가 아가씨께서 주무시는 것을 돌봐드릴께요." 그녀는 머리를 숙인 채 주칠칠의 뒤를 따라서 몇 걸음을 옮겨놨다. 그때주칠칠이 갑자기 몸을 돌리고 대갈했다. "누가 너의 도움을 받는다고 했어? 멀리 꺼져." 백비비가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아가씨의 큰 은혜는......." 주칠칠이 냉소를 하면서 말했다. "너는 누구의 은혜를 입었다는 거지? 바로 심가 녀석의 은혜야. 내가너한테 은혜를 준 적은 없어. 차라리 너는 가서 저 사람 잠자는 거나시중들어 드려!" 손을 돌려서 그녀를 밀어제친 다음 뒤돌아보지도 않고 가버렸다. 백비비는그녀가 미는 힘에 어쩔 수 없이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녀의 눈에서흘러내리는 눈물은 이미 더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쉼없이 쏟아져내렸다. 심랑은 손을 뻗쳐 그녀를 부축하고 부드럽게 말했다. "그녀의 이러한 성격을 아가씨는 마음에 두지 마시오. 사실, 그녀가 비록흉악한 기색을 보인다 해도 그녀의 마음은 이처럼 흉악한 사람은 아니오." 백비비는 눈물을 머금은 채 고개를 끄덕이고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주 아가씨께서 저에게 하늘과 같은 은혜를 베푸셨는데. 저는 한평생아가씨의 사람입니다. 아가씨께서...... 아가씨께서 저를 어떻게 대하시든그것은 제가 응당 참아야 할 일이에요." 심랑 그녀를 한참이나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의 평화롭고 부드러운 얼굴에갑자기 격동의 기색이 스쳐갔다. 한참이 지나서 그는 비로소 장탄식을하면서 말했다. "그렇지만 그것은 너무 아가씨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이오." 백비비가 처연하게 웃으며 말했다. "저는 태어날 때부터 운명이 기구한 여자였어요. 어떠한 고생을 하든 저는이미 습관이 되어 있어요. 하물며 공자들께서 이렇게 저에게 잘해주시는데...... 저는...... 저는 요며칠이 일생 중 가장 행복한날들이었어요." 그녀는 남들이 알아볼까 몰래 눈물을 닦아냈다. 그러나 닦아내도 닦아내도눈물은 쉬지 않고 계속 흘러 내렸다. 한참이나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심랑이 마침내 가볍게 탄식을 하며 말했다. "아가씨도 가서 주무시오." 백비비가 말했다. "공자께 감사드려요." 그녀는 다시 조용히 몸을 일으키더니 고개를 숙인 채 그 자리를빠져나갔다. 그녀는 감히 고개를 똑바로 쳐들고 심랑의 눈을 바라볼용기도 없는 듯하였다. 그녀는 처음에는 천천히 걸어나갔으나, 점점 그걸음이 빨라지더니 방을 나설 무렵 그녀는 마치 뒤에서 귀신이쫓아오기라도 하는 듯 울음을 터뜨리며 밖으로 잽싸게 달려나가버렸다. 구양희가 길게 탄식하면서 말했다. "이러한 여자가 진정한 여자라고 할 수 있겠죠! 이러한 여자를 아내로맞아들일 수 있는 남자는 진짜 하늘이 내려준 복을 받은 남자라고 할 수있을 것이오!" 웅묘아가 말했다. "당신이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그 주 아가씨는 진정한 여자가 아니라는의미오?" "주 아가씨는. 하하...... 주 아가씨는......!" "여우 같은 친구! 말하기 싫으면 말하지나 말지 뭐하러 쓸데없는 웃음을웃고 그러시오? 사실상 백 아가씨는 비록 물처럼 부드럽고 꽃처럼아름답지만 주 아가씨 역시 그녀에 뒤진다고 할 수는 없소." "주 아가씨도 당연히 절세미인이죠. 다만 그녀의 성격이......." "뭘 안다고 그러시오? 그녀의 그러한 성격은 그녀가 상당히 정열적인여자이기 때문에 그렇소. 이러한 여자의 사랑을 받는 남자가 비로소진정한 복이 있는 남자요." "그게 복인지 아닌지 심 형에게 물어봐야 할 것 같소이다." 심랑은 가볍게 웃으면서 좌우를 돌아볼 뿐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이때 창밖에서는 눈보라가 여전히 휘날리고 있었으나 방 안은 마치 봄처럼따뜻했다. 심랑은 눈을 들어 창밖을 바라보면서 갑자기 중얼거렸다. "이처럼 추운 밤, 추위를 무릅쓰고 밖으로 나가야만 한단 말인가?" 구양희는 그의 말을 똑바로 듣지 못한 듯 참지 못하고 물었다. "무슨 말씀을 하셨습니까?" 심랑이 웃으면서 말했다. "아무 것도 아니오. 자, 웅 형! 제가 웅 형께 한 잔 드리리다." 다시 몇 잔의 술이 더 들어간 후에 웅묘아가 갑자기 술잔을 치켜들고 크게웃으면서 말했다. "저는 이미 많이 취했습니다. 가서 자야 할 것 같아요. 하하. 술취하고 잘때는 꿈 속에서 아름다운 여인들이 내 품으로 달려들지요. 하하." 그의 큰 웃음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펑' 하고 그가 앉았던 의자가 뒤로넘어졌다. 웅묘아는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그 자리에서 빠져나갔다. 심랑이 크게 부르짖었다. "이러한 자리에 웅 형께서 빠진다면 말이 되겠소?" 그러나 왕련화가 그 말을 가로막고 말했다. "저 취한 고양이를 먼저 보내줍시다. 우리끼리 다시 한 번 거나하게마셔보도록 하죠." 기녀들의 집 웅묘아는 방문을 빠져나와서 사방을 둘러본 후 주위에 사람이 없음을알아차리자 비틀대던 걸음이 즉시 민첩하고 안정을 되찾았다. 그리고 그의취기로 느슨하게 풀려 있던 눈동자도 즉각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는기척도 없이 대청을 빠져나와 긴 복도를 미끄러져 나갔다. 그가 두 팔을가볍게 휘젓자 그의 몸은 이미 눈보라가 휘날리는 밖으로 뛰쳐나와있었다. 그가 몸을 한 번 번쩍이는 순간, 그는 다시 눈이 쌓여 있는 지붕꼭대기로 날아 올라갔다. 눈보라는 하늘 가득 휘날리고 있었으며, 그때문에 사방은 흐릿하게 보였다. 웅묘아는 몸을 잠깐 멈추고 방향을 확인한 다음 눈보라를 마주쳐달려나갔다. 그의 앞으로 불어오는 세찬 바람은 마치 칼날처럼 그의풀어헤친 앞가슴을 거세게 때려왔으나, 그는 눈썹 한 번 찌푸림없이도리어 앞가슴을 더욱 열어제쳤다. 그가 일곱,여덟 번 몸을 날린 후 그는이미 수십 장 밖에 나가 있었다. 그가 눈을 들어 멀리 바라봤을 때,하나의 인영이 바로 그의 앞에 있는 집의 지붕 꼭대기에 서 있는 것을 볼수 있었다. 그 인영은 몸을 반쯤 굽힌 채 마치 방향을 분간하려는 듯한기색을 취하고 있었다. 웅묘아는 소리도 없이 그 인영의 뒤쪽으로 달려갔다. 순식간에 그는 이미그 인영의 뒤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 인영은 웅묘아가 그의 배후에까지달려온 것도 모른 듯 중얼거리고 있었다. "망할! 왜 하필 이런 때 눈이 오는 거지? 눈이 올 때 일을 한다는 건 정말골치아픈 일인데......." 웅묘아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당신은 뭘 훔치려는 거요?" 그 인영은 깜짝 놀란 듯 황급히 몸을 돌리더니 시비곡절을 가리지 않고살수를 전개하여 웅묘아의 가슴을 향해 일 장을 격출시켰다. 웅묘아가가볍게 소리쳤다. "어이쿠!" 그의 비명이 끝나기도 전에 그는 이미 그 자리에 털썩 쓰러졌다. 그인영은 정장차림을 하고 있었으며 얼굴에는 복면을 하고 있었다. 그인영은 자신의 일 초가 성공한 것을 보자 깜짝 놀란 듯 그제서야 비로소상대방이 누구인가를 알아보려는 생각에 미친 듯했다. "당신은 누구요?" 웅묘아는 꼼짝도 않고 그 자리에 쓰러져있었다. 입에서는 계속 신음소리를내고 있었다. 그 인영이 중얼거렸다. "이 사람의 경공이 약한 것 같지도 않은데 무공은 왜 이렇게 형편없지?" 그 인영은 더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듯 웅묘아에게 다가와 몸을 굽혀누구인지를 확인하려고 했다. 눈빛 속에서 웅묘아는 두 눈을 찔끔 감고안색이 창백하게 변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인영은 자기의 일 장에 쓰러진 사람이 웅묘아임을 확인하는 순간, 놀란소리를 발설했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원래 그...... 그 사람이었군. 이......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지?" 그녀는 후회스럽고 조급한 듯한 모습을 드러냈다. 심지어 목소리마저도떨려나왔다. 그리고 마침내 웅묘아의 몸을 부둥켜 안고 말했다. "이봐요. 어떻게 된 일이에요? 말좀 해보세요. 당신 왜 이렇게형편없어요? 그 정도의 공격도 막아내지 못하다니." 그러나 그녀는 황급함 속에서 웅묘아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를 바라보고있으며 그의 입가에 슬쩍 미소가 스쳐가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없었던것이다. 웅묘아는 갑자기 손을 번쩍 들어올려 그 인영의 복면을 벗겨냈다. 그 인영은 깜짝 놀란 듯 멍청한 표정 그대로 있었다. 그녀의 눈에서는급한 마음에 눈물이라도 쏟아질 듯하였다. 그녀는 바로 주칠칠이었던것이다. 웅묘아가 가볍게 웃으면서 말했다. "바로 당신이였구려? 내가 이미 당신인 줄 알았었소!" 주칠칠이 두 어깨를 으쓱 하고 금방 웃는 모습을 드러내며 말했다. "정말이에요?" 웅묘아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지만 내가 생각지 못했던 점은 당신이 내가 부상당한 걸 보고 이렇게조급해 할 줄은 몰랐다는 점이오. 나는......!" "기분이 좋다는 거죠? 그래요?" "당신이 나 때문에 이렇게 조급해 하다니, 내가 당신에게 관심을 가진 게헛된 점은 아니었음을 알았다는 거요!" 주칠칠이 예쁘게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처음부터 당신에게 아주 좋은 감정을 갖고 있었는데, 당신 그걸몰랐단 말이에요?" "나는...... 나는 당신이...... 당신이......." "나는 계속 당신을 생각하고 있었어요. 당신이 보고파서 죽을 정도로말예요." 말을 마친 순간, 그녀는 손을 들어 웅묘아의 따귀를 대여섯 차례올려붙였다. 그리고 발을 번쩍 들어 웅묘아를 지붕에서 밑으로 차버렸다. 웅묘아는 예상 못한 그녀의 행동에 지붕에서 바닥으로 떨어져내려 몇 번을데굴데굴 굴렀다. 주칠칠은 지붕 위에서 두 손을 허리에 낀 채, 고개를숙이고 욕설을 퍼부어대기 시작했다. "이 병든 고양이 같이...... 게으른 고양이 같은 녀석! 이 아가씨가 네녀석을 안중에나 둘 줄 알아? 혼자서 자아도취하다니...... 너 빨리 꺼져. 가서 죽어버려!" 그녀는 한편으로는 욕설을 퍼부어 대면서 또 한편으로는 눈을 뭉쳐서웅묘아를 향해 집어던지기 시작했다. 한참을 눈을 집어던지던 그녀는 뒤를돌아다보지도 않고 가버렸다. 웅묘아는 그녀가 던진 눈에 몇 번 얻어맞고서는 그녀가 가는 모습을 보고그녀를 부르려 했다. 그러나 웅묘아와 주칠칠의 소란에 놀라서 그 집에있던 몇 사람이 몽둥이를 집어들고 달려나와서 불문곡직하고 웅묘아를두드려 패기 시작했다. 웅묘아는 반격할 생각도 못하고 몇 대를얻어맞았다. 그는 다만 소리를 지를 뿐이었다. "멈추시오. 멈춰요!" 그러나 그 사람들은 도리어 더 크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도둑놈의 새끼! 이 도둑놈의 자식! 죽어봐라! 맞아봐라!" 웅묘아는 그 장정들에게 흠뻑 얻어맞은 후에야 비로소 그 장정들의틈새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는 몸을 날려 지붕으로 뛰쳐올라가 나는듯 도망을 가기 시작했다. 그는 화도 나고 우습기도 했다. 그가 출도한이래 강호를 종횡하였으나, 이렇게 낭패한 꼴은 당해본 적이 없었던것이다. 그가 고개를 돌려 쳐다봤으나, 주칠칠의 모습은 이미 사라지고보이지 않았다. 그는 주칠칠이 사라진 방향을 쫓아가면서 화가 나서중얼거렸다. "망할 계집애, 나쁜 계집애. 혼자서 돌아다니다가 또 무슨 말썽이나일으키려고. 또 사람들을 얼마나 괴롭히려고......." 갑자기 어둠 속에서 '픽' 하는 웃음소리와 더불어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 때문에 그렇게 조급해 하시는 거죠 ?" 주칠칠이 손으로 머리를 쓸어올리며 어둠 속에서 그 날씬한 몸매를드러냈다. 번쩍거리는 눈빛 속에서 그녀의 전신은 사람들로 하여금 똑바로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아주 밝은 광채를 뿜어내고 있는 듯했다. 웅묘아는주칠칠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멍청해져 버렸다. 그는 중얼거렸다. "당신......! 당연히 당신 때문에 조급하죠!" "그렇다면, 방금 말씀하신 망할 계집애, 미친 계집애라는 욕도 나한테 한거네요?" 말을 하면서 그녀는 한 걸음 한 걸음 웅묘아를 향해 걸어왔다. 그에 따라웅묘아는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씩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주칠칠이 은구슬을 굴리는 듯 맑은 웃음소리를 내며 부드럽게 말했다. "안심하세요. 당신이 나를 욕했지만 나는 화가 나지 않았으니까요." "그래요? 허허...... 그래요? 그거 잘 됐군요." 그는 더이상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몇 마디 말을 뱉었으나그 자신도 도대체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를 모를 지경이었다. 그는더이상 참지 못하고 실소를 날렸다. 주칠칠이 말했다. "당신 모습이 볼 만하네요. 전신에 눈을 뒤집어 쓰고 그리고 머리도사람들한테 얻어터져서 혹이 생긴 것 같네요. 이렇게 큰 사람이 자기자신도 돌보지 못해요?" 그녀의 목소리는 아주 부드러웠다. 마치 웅묘아가 방금 당했던 난처한상황은 그녀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듯한 그러한 모습이었다. 웅묘아의실소는 또 어느덧 씁쓰레한 웃음으로 변해 있었다. 그가 말했다. "아가씨께서는......." 주 아가씨는 그가 말을 하기를 기다리지도 않고 가슴 속에서 손수건을꺼내면서 말했다. " 얼른 이리 오세요! 제가 당신의 얼굴을 닦아드릴께요!" 웅묘아는 계속 뒷걸음질치면서 두 손을 어지럽게 흔들며 말했다. "고맙소. 고맙소. 아가씨가 이처럼 나에게 호의를 베풀다니, 그렇지만본인은 아가씨의 호의를 받을 자격이 없는 것 같소이다. 다만아가씨께서는 이후에는 그렇게 불문곡직하고 손발로 나를 두드려 패지나않는다면 본인은 상당히 고맙게 생각할 거예요." "제가 방금 당신하고 장난 좀 한 것을 아직도 마음에 새겨두고 계신건가요?" "나는......." 주칠칠이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당신은 정말 다 큰 애들 같네요. 제 생각에는, 아예 당신이 나를 당신의누나로 삼으세요. 그러면 제가 누나로서 당신을 돌봐드리죠." 웅묘아는 더이상 참지 못하고 큰소리로 웃어제끼기 시작했다. 주칠칠이눈을 크게 뜨면서 말했다. "뭐가 그렇게 우습죠 ?" "당신은 도대체 나한테 무엇을 해달라는 거요? 빨리 말해보시오! 이렇게호의를 베푸는 척할 필요는 없지 않겠소? 나한테 만약 당신과 같은 누나가있다면, 사나흘도 지나지 않아서 내 뼈마디가 전부 부서지고 말 거요!" 주칠칠의 얼굴이 금방 붉어졌다. 그리고 얼른 주먹을 쥐더니 다시웅묘아의 가슴을 때렸다. 그러나 웅묘아는 미리 이러한 상황을 예견이라도하고 있었던 듯 가볍게 주칠칠의 주먹을 피해버렸다. 주칠칠이 이를깨물고 가볍게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이 병걸린 고양이 같으니! 당신...... 당신......." 웅묘아가 주칠칠의 말을 자르고 웃으며 말했다. "안심하시오. 어떻든 당신이 나한테 무엇을 하라고 시키기만 한다면 나는그대로 따라서 할 뿐이오." 그는 비록 웃음을 머금고 말하고 있었으나 그의 눈빛은 진실한 빛으로가득차 있었다. 주칠칠은 더이상 욕을 퍼부어 댈 수가 없었다. 그녀가말했다. "당신이 말하는 게 진심에서 우러나는 얘긴가요?" "나의 말은 술이 수백 년을 묵으면 아주 좋은 향기를 뿜어내듯 절대거짓이 없소이다." 주칠칠이 그를 한참을 주시하고 나서 말했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당신이 왜 그렇게 하겠다는 거죠?" 웅묘아가 말했다. "나는......, 나는......." 갑자기 그는 발을 구르면서 큰소리로 이어서 말했다. "당신은 내가 왜 그러는지에 대해서 알 필요없소. 어떻든 내가 이미 입밖에 낸 말은 바꾸지 아니하는 사람이오. 당신이 내가 무슨 일을 해주기를원한다면 빨리 말이나 해보시오." 칠칠이 한숨을 쉬고 말했다. "낙양성의 길들에 대해서 당신은 잘 알고 계신가요?" "당신이 만약 나에게 길을 안내해 달라는 거라면 당신은 사람을 제대로찾은 셈이오. 낙양성의 큰 길, 작은 골목 할 것 없이 마치 우리집의 방 몇개, 복도 몇 개를 알듯이 나는 눈을 감고서도 찾아낼 수가 있소." "그러면 됐어요. 당신이 나를 낙양의 꽃시장으로 데려다 주세요." 깊고 추운 밤, 이름난 낙양의 화시는 다만 보잘 것 없는 좁고 초라한골몰길에 불과했다. 근면하기로 이름난 낙양 화시의 꽃장사들은 비록 일찍 일어나기는 하지만이처럼 깊은 밤에 이곳에 올 리는 없는 것이었다. 주칠칠은 눈을 들어사방을 쳐다봤으나 사람 그림자는 찾아볼 수도 없었다. 다만 드물게나마눈에 반쯤 파묻힌 꽃가지들을 발견할 수 있을 뿐이었다. 주칠칠은 사방을이리저리 왔다갔다 배회하고 있었다. 웅묘아는 한쪽에 우두커니 서서수수방관하고 있었다. 주칠칠이 중얼거렸다. "낙양에는 꽃시장이 이곳 하나뿐인가요?" "다만 이곳에 밖에 없소. 다른 데 분점이 있는 것도 아니오. 그렇지만아가씨께서 꽃을 사고 싶다면 지금 시간이 너무 이른 것 같소이다." "나는 꽃을 사러 온 게 아니에요." 옹묘아가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꽃을 살 생각도 없으면서 화시를 찾아왔다니? 여기에 세차게 몰아치는서북풍이라도 한 모금 마시려고 찾아온 거요?" 이때 주칠칠의 눈빛이 멀찍이 바라보면서 꼼짝않고 서 있었다. 그녀는가볍게 말했다. "다 까닭이 있어서 찾아온 거예요." "무슨 까닭이오?" "당신이 무슨 까닭인지를 알고 싶다면 당신에게 말해 드리죠. 그렇지만......." 주칠칠은 멀찍이 바라보고 있던 눈빛을 거둬들이며 웅묘아의 얼굴을똑바로 쳐다보며 신중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렇지만 제가 이 비밀을 말하기 전에 먼저 당신한테 한 가지 묻고 싶은것이 있어요." "당신이 언제부터 이렇게 잔소리가 많아졌소 ? 물을 게 있으면 얼른물어보시오." "좋아요. 제가 묻겠어요. 제가 낮에 했던 왕련화에 대한 말을 당신은믿으세요?" 웅묘아가 눈을 깜박거리고 중얼거렸다. "왕련화란 친구는 어떤 때는 확실히 이상한 점이 없지도 않소. 사람들이그 친구의 무공의 내력을 물어보면 그 친구는 한 마디도 해주지 않소이다. 당신이 그 친구가 무슨 일을 했다고 말을 한다고 해도 나는 결코 놀라거나그러지는 않을 거요." 주칠칠이 웅묘아의 말을 가로채서 말했다. "그러면 됐어요. 그날 내가 마차 밑에 숨어들어서 낙양성으로 들어올 때바로 이 꽃시장을 지났었어요. 그 마차를 타고 있던 소녀들은 이곳에서마차를 세워서 꽃을 사기도 했는 걸요." "그래서 오늘 당신이 이 꽃시장에서부터 시작해서 그들이 어느 쪽으로갔는지를 찾아보겠다는 거요?" 주칠칠이 웃으면서 말했다. "당신은 그래도 꽤 총명한 편이네요." 웅묘아가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멍청하지나 않다면 그것으로 다행이오." "좋아요! 똑똑한 사람! 먼저 마차를 한 대 구해다 줘요." 웅묘아가 눈을 크게 뜨고 이상하다는 기색으로 말했다. "마차를 구해서 뭐에 쓰게요?" 주칠칠이 고개를 가로젓고 탄식하면서 말했다. "방금 저는 당신이 총명하다고 말했는데 또 멍청해졌군요? 그날 저는마차의 밑바닥에 숨어서 들어왔기 때문에 아무것도 보지를 못했어요. 다만마차가 나아갔던 방향을 기억할 뿐이에요. 때문에 그들이 어느 쪽으로갔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마차를 구해와야만......!" 웅묘아가 실소를 날리면서 말했다. "그렇구려. 이번에는 내가 진짜 멍청해졌구려. 그러한 이치도 생각을 하지못하다니. 그렇지만 이렇게 깊은 밤에 날더러 어디 가서 마차를 구해오라는 거요?" 주칠칠이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 당신과 같은 사내 대장부가 못 할 일이 뭐 있겠어요 ? 마차 한 대가아니라 열 대라 해도 저는 당신이 구해올 수 있으리라고 생각해요. 그렇죠?" 웅묘아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주칠칠이 얼른 그의 말을 가로채고 부탁하는 듯한 음성으로 말했다. "부탁이에요, 네? 부탁이에요......." 그녀는 눈썹을 찌푸리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가련한 모양을 지어보였다. 세상의 어떤 남자가 이러한 여자의 부탁을 거절할 수 있을 것인가? 웅묘아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고 말했다. "좋소! 내가 가서 한 번 시도나 해보리다!" 주칠칠이 얼굴을 활짝 펴고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야 말을 잘 듣는 착한 아이라 할 수 있겠죠! 빨리 가보세요! 저는여기서 당신이 돌아올 때를 기다리겠어요!" 그녀는 그의 얼굴을 가볍게 쓰다듬으면서 그의 귀에 대고 말했다. "꼭 구해와야 돼요! 저를 실망시키지 마세요!" 웅묘아는 얼굴을 씁쓰레하게 찡그리며 고개를 흔들고 어쩔 수 없다는 듯그 자리를 떠나갔다. 차 한 잔 마실 만한 시간이 지나서 말발굽 소리가 요란스럽게 눈보라속에서 들려오더니 웅묘아가 과연 마차 한 대를 몰고 돌아왔다. 그의 얼굴에는 득의한 기색이 가득 서려 있었다. 주칠칠이 손벽을 치면서웃으면서 말했다. "했군요! 과연, 당신은 대단한 재간이 있는 사람이군요? 그렇지만...... 그렇지만 이 마차를 어디서 구해온 거죠? 원래 마차에 있던 모든장식품들은 또 어디에 떼버렸어요? 이 마차를 도둑질 해온 건 아니겠죠?" "도둑질을 해왔든, 뺏어왔든, 어쨌든 나는 이미 당신이 요구한 마차를당신에게 가져온 것 아니오. 그래도 아직 만족하지 못하단 말이오?" 주칠칠이 예쁘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요. 당신 말이 맞다고 해요." 말을 마친 그녀는 몸을 숙이고 마차 밑으로 기어들어가려고 했다. 웅묘아가 말했다. "당신 무슨 짓을 하려는 거죠?" 주칠칠이 씁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멍청이! 내가 당신한테 여러 번 얘기 했었잖아요? 똑바로 듣지 못했다는건가요? 그날, 저는 바로 마차 밑에 숨어서 낙양성으로 들어왔었어요. 때문에 오늘도 또 마차 밑으로......." 웅묘아가 갑자기 방성대소하면서 말했다. "그렇소! 그렇소! 나는 확실히 멍청이오!" "그러면 당신이 멍청이가 아니란 말예요 ? 무슨 까닭에 웃죠?" 웅묘아가 웃음을 참고 말했다. "아가씨, 아가씨는 그날 아가씨의 행적이 사람들한테 발견될까봐서 어쩔수 없이 마차 밑으로 기어들어갔던 거죠. 그렇지만 오늘은 아가씨가 마차밑으로 기어들어가서 뭘 하겠다는 거요? 아가씨가 만약 방향만 기억하고있다면, 마차 속에 앉아서도 마찬가지 아니겠소? 기껏해야 눈을 감고생각해보면 될 일이오. 꼭 마차 밑으로 기어들어가야만 마음이 놓이겠소?" 주칠칠의 얼굴이 즉각 붉어졌다. 한참이 지나서 그녀는 입을 비죽거리면서말했다. " 흥, 이번에는 당신이 제대로 말했다고 하기로 해요. 그렇지만 대단한일도 아닌데요, 뭐! 그렇게 득의한 표정을 지을 필요는 없잖아요. 당신보다 더 멍청한 사람도 가끔씩은 한 번씩 제대로 된 소리를 할 때가있는 법이에요." "누가 득의한 표정을 지었소?" 주칠칠이 발을 구르면서 말했다. "당신...... 당신......! 득의한 표정을 짓고 있잖아요. 당신 마음이통쾌해서 죽을 것 같죠? 안 그렇단 말인가요? 당신이 제 말이 틀렸다고생각한다면 저는 영원히 당신을 다시 쳐다보지도 않겠어요." 웅묘아가 씁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좋소! 좋소! 내가 득의한 표정을 지었다고 하기로 합시다." 주칠칠이 여전히 발을 구르면서 말했다. "창피한 줄도 모르고...... 뭐가 그렇게 득의하죠? 뭐가 그렇게 기분이좋죠? 네? 뭐가 그렇게 기분이 좋아요?" 웅묘아는 멍청한 듯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는 울 수도 웃을 수도없었다. 입으로는 더이상 참지 못하고 중얼거렸다. "심랑이 아가씨를 그렇게 만만하게 보지 못하더니...... 이러한 아가씨는나도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사람이로군." 주칠칠이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뭐라고 말했어요?" "아무말도 안 했소. 아가씨, 빨리 마차에 오르기나 합시다." 웅묘아가 채찍을 들어 말을 내리치자 말은 앞으로 힘차게 달리기시작했다. 주칠칠은 웅묘아의 옆에 앉아서 눈을 감고 중얼중얼 헤아리기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마흔 일곱까지 헤아렸을 때 그녀는 갑자기 눈을 번쩍 뜨고 큰소리로외쳤다. "틀렸어요! 틀렸어요!" "뭐가 틀렸다는 거요?" "마차가 너무 천천히 가고 있어요. 그날 제가 탔던 마차보다 훨씬 천천히가고 있어요. 얼른 마차를 아까 그 자리로 다시 돌아가게 해주세요. 화시에서부터 다시 헤아려보기로 해요." 웅묘아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예! 명령에 따르리다!" 말을 마친 그는 과연 마차를 되돌려서 다시 화시로 돌아갔다. 마차가 다시원점에서 움직이기 시작하자 주칠칠은 눈을 감고 수를 헤아리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마흔 일곱까지 헤아렸을 때 그녀는 다시 눈을 번쩍 뜨더니 큰소리로말했다. "틀렸어요! 틀렸어요! 이번에는 마차가 너무 빨리 왔어요!" 웅묘아가 더이상 참지 못하고 큰소리로 외쳤다. " 아가씨는 조금 빨리 알아차릴 수 없소? 꼭 이렇게까지 멀리 온 다음에야알아차리다니......!" 그러나 주칠칠은 손을 뻗쳐 그의 입술을 가로막고 부드럽게 웃으며말했다. "한 번만 더 하기로 해요. 꼭 한 번요, 네? 그럴 수 있죠?" 웅묘아는 멍청한 듯 그녀를 한참이나 쳐다보더니 마침내 어쩔 수 없다는듯 씁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 당신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끓어오르던 화가 전부 날아가버리오. 한번만이 아니라 열 번이라도 제가 아가씨의 말을 따라야 되겠죠!" 말을 하면서 그는 과연 마차를 다시 원점으로 되돌려 세웠다. 주칠칠이웃으며 말했다. "당신은 정말 좋은 분이에요." 마차가 다시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그 속도가 적당한듯했다. 주칠칠이 곧장 아흔 번까지 세고 나서 말했다. "오른쪽으로 도세요. 그리고 또 그 앞에서 왼쪽으로 도세요." 웅묘아가 눈을 들어 앞을 바라보자 과연 몇 장 앞에는 교차로가 있었다. 그래서 마차는 다시 우측으로 돌아서 나아갔다. 주칠칠은 다시 몇 번을 헤아리고 나서 오른쪽으로 몇 번, 왼쪽으로 몇 번하고 계속 지시를 내렸다. 주칠칠이 우측으로 돌라고 하면 우측에는 과연 도로가 있었으며, 좌측으로돌라고 하면 좌측에도 또 도로가 나타나고는 했다. 비록 어느 정도의차이는 있었으나, 주칠칠의 말에 따라 새 골목이 나타나곤 했던 것이다. 웅묘아는 자신도 모르게 주칠칠에 대해서 상당히 감탄하는 듯한 기색을나타내고 있었다. 그는 중얼거렸다. (이 계집애의 기억력이 대단하군! 이러한 점으로 볼 때 그녀가 말했던말들은 거짓말은 아닌 것 같은데......!)순간 주칠칠이 가볍게 외쳤다. "다 왔어요! 바로 이곳이에요!" 웅묘아는 얼른 말고삐를 잡아당겨 말을 세우며 이상하다는 듯한 기색으로물었다. "어디말이오?" 주칠칠이 눈을 뜨고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들이 멈춰 있는 곳은 석판을깔아놓은 도로로서 그 도로의 양쪽에는 높은 담장이 둘러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들 앞에는 붉은 칠을 한 대문이 있었으며, 그 대문으로 올라가는돌계단은 아주 가지런히 반듯반듯 놓여 있었다. 그 대문에는 밝은 등이걸려 있었으며, 그 돌계단의 양쪽에는 과연 마차가 올라 갈수 있는비스듬한 길이 나 있었다. 그녀가 그 돌계단쪽을 쳐다보고 얼굴에 기쁜기색을 나타내면서 말했다. "바로 저 대문이에요!" 그러나 웅묘아의 얼굴에는 놀라고 이상스럽다는 듯한 기색을 나타내면서말했다. "당신이 말하는 건 바로 저 문을 말하는 거요?" "그래요." "내가 보건대, 이번에는 당신이 틀린 것 같소!" "아뇨. 틀리지 않았어요! 맞았어요! 틀릴 리가 없어요!" 웅묘아가 신중한 음성으로 말했다. "내가 보기에는 틀림없이 틀렸소! 왜냐하면 이 집은 내가 이미 알고 있는집이기 때문이오." 주칠칠이 깜짝 놀랐다는 듯한 기색으로 두 눈을 크게 뜨고 물어왔다. "당신이 안다고요? 그렇다면 왕련화의 집이란 말인가요?" 그녀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웅묘아가 그녀의 말을 가로채면서 말했다. "왕련화도 이 집에 와봤을 것이오. 그렇지만 결코 그의 집은 아니오!" "그렇다면,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곳이란 말이죠?" 웅묘아가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가로젓고 말했다. "그점은 미안하지만 아가씨에게는...... 아가씨에게는 말해 줄 수가없소이다!" "왜 말해 줄 수가 없다는 거죠? 저는 들어야겠어요. 말하세요! 빨리말해보세요!" 웅묘아는 주칠칠의 핍박에 못이겨 한참을 머뭇거리더니 마침내 입을열였다. "좋소! 내가 말하리다. 그렇지만 당신이 내 말을 듣고 나서 얼굴이붉어질까봐서 두려운데요?" "내 얼굴이 그렇게 쉽게 붉어질 것 같아요?" "좋소! 말해드리리다. 이곳은 암문자(暗門子)요!" 암문자라는것은 바로 기원(妓院)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주칠칠은 그것이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한참을 멍청한 기색으로 있더니, 눈을 몇 번꿈벅거리고 나서 고개를 흔들면서 말했다. "이 대문은 이렇게 밝은데 왜 암문자라고 얘기하시는 거죠?" 이번에는 웅묘아가 놀랐다는 듯 씁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암문자라는 뜻은 바로 이 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신녀(神女)들이라는 의미요!" 주칠칠이 노한 음성으로 말했다. "이 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악마들인데 당신은 어째서 그들이신녀라고 얘기하는 거죠? 당신도 그 사람들과 같은 패거리는 아니겠죠?" 웅묘아는 화도 나고 우습기도 하여서 말했다. "아가씨! 아가씨는 정말 아무 것도 모른다는 거요?" 주칠칠이 크게 외쳤다. "난 모든 걸 다 알아요. 당신...... 당신도 그 사람들과 같은 패거리죠? 당신...... 당신...... 당신들이 서로 짜고 나를 놀린 거죠?" 말을 하면서 마침내 그녀는 울먹이기 시작했다. 이러한 모습을 본웅묘아는 얼른 그녀를 달래면서 말했다. "아가씨! 울지 말아요! 울지 마세요!" 주칠칠은 토라진 듯 몸을 가볍게 흔들더니 돌아서서 발을 구르면서말했다. "누가 울었다는 거예요? 빨리 말하세요. 여기가 도대체 어떤 곳이에요? 빨리 말하세요." 웅묘아가 탄식하면서 말했다. "말해드리리다. 신녀라는 뜻은 바로...... 바로 여기에 살고 있는아가씨들은 모두...... 모두 좋은 일을 하지 않는 여자들이라는 뜻이오." 말을 마치고 나서 그는 주칠칠이 여전히 알아듣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듯조금 더 노골적으로 한숨에 말해버렸다. "여기는 바로 기원이오! 여기에 살고 있는 아가씨들은 모두 기녀들이란말이오!" 그 말을 듣는 순간, 주칠칠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으며 웅묘아에게 돌린등을 더욱 마주 돌리려고 하지 않았다. 그녀는 고개를 떨구고 옷깃을만지작거리면서 그대로 서 있을 뿐이었다. 한참이 지나자 그녀는 얼른고개를 돌리며 눈을 크게 뜨고 웅묘아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큰소리로말했다. "기원? 여기가 어떻게 기원이 될 수 있다는 거죠? 나를 속이는 거죠?" "만약 믿지 못하시겠다면, 왜 직접 가서 살펴보지 않는 거요?" "들어가라면 들어가죠! 내가 겁낼 줄 알아요?" 말을 마친 그녀는 단숨에 그 돌계단을 뛰어 올라가서 대문을 두드리려고손을 들었다. 그러나 대문을 두드리려고 들었던 손을 얼른 내리고 그녀는다시 돌계단을 뛰어 내려왔다. 웅묘아는 미소를 띤 채 그녀를 바라볼 뿐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주칠칠이 중얼거렸다. "기원? 그래 맞았어. 틀림없어. 여기는 확실히 기원일 거야. 그백운목녀들은 바로 모두가, 모두가 신녀들일 거야. 그녀들은 아마기원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자신들의 행동을 위장하고 있을 거야. 확실히똑똑한 방법이로군! 세상의 누구도 평소에 그렇게 세상을 뒤엎을 듯이기개가 센 무림의 영웅들이 이런 몇 안 되는 기녀들에게 사로 잡혀가서기원 속에 갇혀 있다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겠지?" 웅묘아는 여전히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두 눈썹이찌푸려졌으며 웃음은 이미 그의 얼굴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주칠칠은 한손으로 그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가볍게 말했다. "어떻든 우리가 이미 여기까지 온 이상, 좋든 싫든 어떻게 된 일인지자세히 조사나 해보기로 해요!" "그렇다면 아가씨께서 빨리 들어가보시오!" "당신......! 당신은 나 혼자 들어가라는 건가요?" "아가씨께서는 그러면 내가 아가씨를 대동해서 같이 가주기를 원한다는거요?" 주칠칠은 이를 악물고 원망스러운 듯한 음성으로 말했다. "좋아요. 당신 맘대로 하세요. 제가 당신한테 부탁이라도 할 줄 알아요? 흥! 꿈도 꾸지 마세요. 나 혼자도 들어갔다 온 적이 있는데 내가 거기들어가는 것을 겁낼 줄 알아요?" 그녀는 비록 겁나지 않다고 말하고 있었으나, 마음은 이미 두려움이솟구치고 있는 듯 얼굴색이 약간 변해 있었다. 그녀는 그날, 그지하실에서 당했던 여러 가지 상황이 떠올랐으며 그리고 그 중년미부의높은 무공과 독랄한 심장, 수단들이 계속 떠올랐다. 이러한 일들은 모두그녀를 더없이 두렵게 만들었으며 그에 따라 그녀 혼자는 감히 들어갈 수없었다. 그녀는 몸을 날려서 담장 위로 뛰어올랐으나, 즉시 또되돌아왔다. 그 높은 담장을 마주치고 그녀는 굳은 듯 한참을 서 있다가천천히 몸을 돌려 웅묘아를 쳐다보았다. 웅묘아는 뒷짐을 진 채 얼굴에미소를 띠고 그녀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주칠칠은 마침내 더이상 참지 못하고 말했다. "당신......! 당신......!" "내가 어떻다는 거요?" 주칠칠이 우물쭈물 말했다. "당신은...... 들어가지...... 않겠다는 건가요?" "이러한 곳은 내가 만약 들어간다면 날이 저물 무렵, 황혼 무렵에들어가는 거요. 그리고 몸에 은자 몇 푼을 지니고 큰 걸음걸이로 들어가는거죠. 무엇 때문에 이렇게 야밤중에 도둑놈처럼 살며시 담장을 넘어서들어간다는 거요?" 주칠칠은 눈을 크게 뜨고 그를 한참 쳐다보더니, 순간 몸을 번쩍 날려담장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웅묘아는 원래 조금 더 그녀를 골려줄생각이었다. 그녀가 조급해 하면 할수록 웅묘아의 눈에는 그녀의 모습이더 귀엽게 보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 아가씨의 천성적인 개성은 부드러운것은 받아들이지만 강한 것은 받아들이지 못하는 강한 성격이라 화가나자마자 즉각 뛰어 들어가버렸던 것이다. 그녀의 이러한 돌연한 행동에웅묘아는 깜짝 놀라 어깨를 으쓱 하는 순간, 그의 몸도 담장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그러나 그의 몸이 땅을 밟는 순간, 주칠칠이 담벼락 구석에서서 얼굴에 기쁜 기색을 띠고 있을 줄이야. 주칠칠이 가볍게 웃으면서 말했다. "저는 당신이 절대 저 혼자 들어가게 그냥 놔두지 않을 줄 알았어요." 웅묘아는 화도 나고 우습기도 하여 고개를 가로젓고 말했다. "됐소! 됐소! 내가 당신에게 항복했다고 해두도록 합시다." "당신이 저한테 항복을 했다면, 이제부터는 제 말을 잘 들으셔야 돼요." 웅묘아가 갑자기 정색을 하면서 말했다. "이곳이 만약 아가씨가 말한 바로 그곳이라면 용담호혈이나 마찬가지요. 사면팔방에 모두 매복이나 함정이 있을지 모르니 반드시 주의해야 할것이오." "맞아요!" "때문에 우리는 각별히 조심을 해야 될 것이오. 만약 조금의 잘못이라도발생한다면 아마 우리 두 사람 모두 살아서 이곳을 나갈 생각은 버려야 할거요." "알았어요. 제가 앞장설께요. 저를 따라오세요." 말을 하는 순간, 그녀의 몸은 이미 조용히 앞으로 미끄러져 들어가고있었다. 그 정원 안은 삼 경이 되기 전에는 틀림없이 등불이 휘황하고가야금이나 거문고 소리들이 끊이지 않았을 것이나 그들이 들어온 이순간은 적막만이 감돌 뿐이고 사방엔 불빛 한점 보이지 않았다. 주칠칠은눈빛에 의지하여 주위를 가늠하여 보았다. 그러나 눈빛은 너무 약해서주위의 모습이 흐릿하게 비춰질 뿐이었다. 그녀 자신은 심지어 이곳이 그날 그녀가 숨어들어왔던 곳인지 아닌지도단정할 수 없었다. 웅묘아가 그녀의 뒤에 쫓아와서 말했다. "눈 위에 발자국이 남지 않도록 조심하시오!" "당신이 걱정하지 않으셔도 알고 있어요!" "어떻든 당신이 이렇게 야밤중에 남의 집을 드나드는 것은 나보다 훨씬못할 테니까 내가 앞장서겠소." 그는 주칠칠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앞으로 나섰다. 두 사람은 앞서거니뒤서거니 하면서 나무와 정자들에 몸을 숨기면서 후원으로 달려 들어갔다. 그들이 후원에 이르기까지 사람은 하나도 없었으며, 그렇다고 매복이 있는것 같지도 않았다. 그러나 지나친 적막함은 도리어 사람을 더욱 긴장시키고 걱정시켰다. 주칠칠은 자신의 심장이 쿵쿵 뛰는 것을 느꼈으며 이 심장의 뜀은 갈수록급박해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갑자기 그녀의 발이 무엇인지 모를부드러운 물체에 걸려 비틀했다. 주칠칠은 이미 극도의 긴장상태 속에있었으므로 이 순간 참지 못하고 입을 벌려 놀람에 찬 소리를 부르짖으려했다. 다행히 그녀가 소리를 내기 전에 옹묘아가 얼른 몸을 돌려 손으로그녀의 입을 막고 나직히 말했다. "무슨 일이오?" 주칠칠은 말을 하지 못하고 손가락으로 자기가 걸려 넘어진 물건을지적했다. 웅묘아는 그녀의 손가락 끝을 따라서 살펴보았다. 마른 나무아래에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를 두 명의 흑의 대한이 꼼짝않고 엎어진채 있었다. 두 사람의 안색이 동시에 변했다. 그들은 자신도 모르게 각자뒤로 한 걸음씩 물러섰다. 거기에 엎어져 있는 두 명의 대한은 여전히꼼짝도 않고 있었다. 칠칠이 말했다. "혹시......! 혹시 죽은 사람일까요?" 웅묘아가 한참을 기다렸으나 그 대한들이 반응이 없자 마침내 몸을 굽혀그 대한들을 뒤집어놓았다. 두 명의 대한은 두 눈을 부릅뜨고 입을 벌린채였으며, 얼굴에는 눈이 잔뜩 묻어 있었다. 그리고 얼굴 근육은 이미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그러나 코로는 여전히 미약하나마 숨을 쉬고있었으며, 가슴은 따뜻했다. 그 두 사람은 아직 숨이 붙어 있는 상태였다. 웅묘아가 한참을 바라보고 나서 말했다. "이 사람들은 혈도를 제압당했소!" 주칠칠이 두 눈을 부릅뜨고 더욱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다. "이 녀석들의 차림새로 보아하니 틀림없이 이곳 패거리들이에요. 두녀석은 여기에서 아마 야간 보초를 서고 있었을 거예요." "그런 것 같소!" "그렇지만......! 그렇지만...... 누가 이녀석들의 혈도를 짚었던 거죠?" "당신이 나한테 묻는다면 나는 누구한테 물어보라는 거요?" 주칠칠이 조급한 음성으로 말했다. "당신이 그들의 혈도를 풀어주고 그들한테 물어보면 되잖아요?" 웅묘아가 고개를 가로젓고 탄식하면서 말했다. "손을 쓴 사람은 내력이 아주 심오할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점혈수법은상당히 기이하여 그 사람이 직접 막힌 혈도를 풀어주지 않는 한 누구도 이친구들의 혈도를 풀어줄 수는 없을 것 같소." 주칠칠이 기이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그 사람은 도대체 누구일까요?" "상황을 보아하니 이미 우리보다 먼저 어떤 기인이 이곳에 들어온 것같소. 우리의 행적이 이미 그 사람에 의해서 발견되었는지도 모르겠소!" "그렇다면 또 어떤가요?" 웅묘아가 몸을 일으키면서 말했다. "우리는 먼저 돌아가서 다시 생각해 보기로 합시다." 그말을 받아 주칠칠이 강한 어조로 말했다. "돌아가요? 제가 이미 여기까지 왔는데 돌아갈 것 같은가요? 비록우리보다 앞서 다른 사람이 왔다고 해도 그 사람이 이곳 패거리들의혈도를 제압한 이상 틀림없이 우리랑 같은 편에 속한 사람일 거예요. 우리에게는 우리를 도와주는 사람이 생겼는데 더욱 이대로 돌아갈 이유가없죠. 좋든 싫든 저는 끝까지 조사해 봐야 되겠어요. 억울한 누명을벗어야 되겠어요." 웅묘아가 한참을 생각하고 나서 그녀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고 느껴 어쩔수 없이 말했다. "좋소! 당신 말대로 하도록 합시다." 두 사람은 아까보다 더욱 조심하며 앞으로 계속 나아갔다. 갑자기 그들앞에 보이는 대나무숲속에서 아주 흐릿한 등불빛이 비춰 나왔다. 주칠칠이말했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지 않고 어떻게 호랑이 새끼를 잡겠어요. 우리저쪽으로 다가가서 살펴봅시다." 웅묘아도 상황이 이에 이른 이상 그녀의 말을 듣지 아니할 수 없다는생각에 어쩔수없이 그녀를 따라서 대나무 숲으로 숨어들었다. 그 대나무숲에는 서너 칸이나 되는 깨끗한 집이 한 채 있었다. 등불빛은 바로 그집의 창을 통하여 비춰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이 순간, 웅묘아도호기심이 발동하여 용기를 내서 그 집 창문 밑 앞에까지 슬며시 다가갔다. 두 사람은 창문 아래에 납짝 엎드려 정신을 집중하고 창문 속에서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한참을 그러고 있을 때, 창문 안에서 '찍찍' 하는 소리가 들렸으며 여자의가벼운 신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신음소리는 한참동안 그치지 않고계속되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마음은 더욱긴장되고 있었다. 주칠칠은 속으로 생각했다. (혹시 또 백운목녀 중의 한 사람이 잘못을 범하여서 의혹을 받고 있는것일까?)그러나 이상한 것은 그녀가 그 신음소리를 들으면 들을수록 그 신음소리는고통에 찬 신음소리가 아니라 말 못할 희열에 차서 부르짖는 신음소리처럼들린다는 점이었다. 이때 또 남자의 숨이 턱에 찬 음성이 들려왔다. 그남자의 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웅묘아의 얼굴색이 이상하게 일그러졌다. 그는 가볍게 주칠칠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그녀에게 빨리 이곳을 떠나라는손짓을 해보였다. 그러나 주칠칠은 창문 속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대해서가뜩이나 이상함을 느끼고 있었는데 어찌 그대로 물러설 것인가? 그남자의 숨에 찬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좋소? 좋소?" 여자의 달콤하면서도 낯간지러운 소리가 신음소리에 이어서 들려왔다. "좋아요. 좋아요. 더이상...... 더이상 참지 못하겠어요! 차라리 저를죽여주세요! 죽...... 죽을 것 같아요." 웅묘아는 주칠칠에게 고개를 돌리는 순간 깜짝 놀라서 말했다. "당신......! 도대체 머리에 뭘 꽂아놓고 있는 거요?" "뭐가 있다는 거죠?" 그녀가 눈을 돌리는 순간 그녀도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 "당신......! 당신 머리에 있는 것은 또 뭐예요?" 두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동시에 자기의 머리 위로 손을 올려 머리를더듬었다. 그들의 머리 위에는 각자 마른 나뭇가지를 엮어 만든 왕관이하나씩 씌워져 있었으며, 그 왕관 위에는 종이쪽지 하나씩이 끼워져있었다. 두 사람은 동시에 그 종이쪽지를 펼쳐서 미약한 눈빛 속에비춰보았다. 주칠칠의 왕관에 꽂혀 있던 종이에는 다음과 같이 씌어 있었다. '멍청이 황후' 웅묘아의 왕관에 꽂혀 있던 종이쪽지에는 또 다음과 같이 씌어 있었다. '멍청이 황제' 그들 두 사람은 누가 그들의 머리 위에 왕관을 씌워 놓았는지, 또 언제씌워 놓았는지조차도 알 수 없었다. 두 사람의 놀람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왕관에 꽂혀 있던 종이쪽지의 내용을 살펴보고는 두사람은 울지도 웃지도 못할 심정이었다. 주칠칠이 표독스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미친 놈! 미친 녀석! 무슨 멍청이...... 멍청이...... 만약 내가그녀석을 잡기만 하면 조각조각 그 녀석을 찢어놓지 않나 봐라." 웅묘아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는 그 사람이 언제 우리의 머리 위에 수작을 부렸는지도 모르고있는데, 어떻게 그 사람을 잡는다는 말을 할 수 있는 거요? 아마 내가생각하기에는 그 사람의 그림자도 잡지 못할 거요." 주칠칠 역시 이 사람의 무공의 높음과 기묘한 경공, 그리고 재빠른 손씀씀이에 생각이 미치자 '훅' 하고 찬바람을 들이키지 않을 수 없었다. 또 그녀는 자기 자신의 머리 위에 씌워진 것이 만약 장난을 위한 왕관이아니고 독을 바른 독침이었으면 어떻게 됐을까 하는 점에 생각이 미치자그녀의 전신에 식은땀이 솟아남을 느낄 수 있었다. 웅묘아가 중얼거렸다. "내가 생각하건대 이 사람은 틀림없이 그 두 명의 흑의 대한의 혈도를제압한 사람일 것이오. 그렇지만, 그렇지만 그 사람이 도대체 누군지 이천하에 누가 이렇게 대단한 경공과 무공을 갖고 있는지 모르겠군요." "그 사람이 누구든 우리는 그래도......." 웅묘아가 그 말을 가로채서 말했다. "내가 생각하기엔 이쯤에서 돌아가는 게 좋을 것 같소." "돌아가요? 당신은 돌아가는 것밖에 모르세요?" "이 사람은 우리에게 악의는 없는 것 같소. 만약 악의가 있었다면 이미우리 두 사람의 목숨을 빼앗았을 것이오. 그렇지만 이 사람이 이렇게장난을 했던 것은 우리에게 경거망동 하지 말라는 경고라고 생각되오. 여기에 더이상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오." "왜 그렇죠?" 웅묘아가 사방을 둘러본 다음 신중한 음성으로 말했다. "내가 보건대 이 어둠 속에는 도처에 함정이 있는 것 같소. 다만, 우리가그것을 알지 못할 뿐이오. 그 사람은 아마 우리가 그 함정에 빠져드는것이 걱정되어서 빨리 돌아가라고 경고를 한 것 같소." "그 사람이 돌아가라고 했다고 돌아가겠다는 건가요? 당신 언제부터그렇게 남의 말을 잘 들었죠?" 웅묘아가 탄식하면서 말했다. - 제2권 끝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