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벽혈세은창 1
<碧血洗銀槍>

서장

전설에 의하면 지난 삼백 년 동안 강호에서 운이 가장 좋았던 사람은 금단(金壇) 단가(段家)의 큰 공자 단옥(段玉)이라고 한다. 
금단 단가는 명문 호족으로 강호에서 단가만큼 명예가 혁혁한 무림세가는 없었다. 그들의 가전도법(家傳刀法)은 온유하고 평화로웠으며 독하거나 괴이한 초식이 절대 없었다. 
그러나 내공이 심후하고 초식이 다양하여 비범한 위력을 나타냈다. 그들의 도법은 마옥이라는 사람만큼이나 존경을 받았다. 
그들의 가보로 전해지는 병기는 벽옥도(碧玉刀)라고 했다. 
벽옥도는 단가의 역사만큼이나 휘황찬란했다. 
그러나 이 책에서 이야기하려는 것은 벽옥도가 아니다.
강호에는 벽옥차(碧玉金叉)라는 보물이 있었다. 벽옥도가 주인에게 행운과 재물을 가져다 주는 것과는 달리 벽옥차는 재앙을 불러일으켰다. 누구든지 벽옥차를 가지고 있으면 횡액을 당해 죽었으며 한 사람도 예외가 없었다고 한다. 
강호에는 벽옥차에 관한 전설이 아주 많고 요사하고 사악한 전설이 붙어 다녔지만, 이 책에서 이야기하려는 것은 벽옥차가 아니다. 우리들이 지금 이야기하려는 것은 벽옥주(碧玉珠)에 관한 것이다. 
벽옥주는 무엇일까? 사람일까, 무기일까, 보물일까, 아니면 일종의 신비한 단약(丹藥)일까?


1. 사공자(四公子)

엄동(嚴冬), 혹한(酷寒), 설곡(雪谷).
온누리는 흰눈으로 덮여 있었다. 
한 사람이 눈덮힌 땅에서 구덩이를 파고 있었다. 파고 있는 구덩이는 세 척의 넓이 다섯 척의 깊이 일곱 척의 길이였다. 
그는 나이가 젊었고 건강해 보였으며 키가 훤칠하게 컸고 매우 영준했다. 
그가 몸에 입고 있는 것은 한 벌의 천금이나 나가는 담비가죽으로 된 것이었다. 손에 들고 있는 것은 한 쌍의 눈부신 은창(銀槍)이었다. 
은창은 순은으로 만든 것이었고 한 자루에는 다섯 개의 글자가 새겨 있었다. 
[봉성(鳳城), 은창(銀槍), 구(邱).]
이와 같은 사람은 본래 땅을 파기에 어울리지 않았고 이와 같은 한 쌍의 은창은 더욱더 땅을 파는 데 어울리지 않았다. 
이곳은 매우 아름다운 산 계곡이었다. 
하늘은 맑고 푸르렀으며 쌓인 눈은 은처럼 빛났고 매화는 아주 붉었다.
그는 말을 타고 왔다. 
타고 온 말은 대완(大宛)의 명마였고 날렵하고 근사했으며 안장도 선명했다. 말안장과 말등자 역시 순은으로 만든 것이었다. 
이 사람은 왜 좋은 말을 타고 좋은 무기를 가지고 이곳에 와서 땅을 파고 있을까?
구덩이는 다 파졌다. 
그는 그 안에 들어가 드러누었다. 마치 구덩이가 적당한 크기인지, 편안하게 누울 수 있는 곳인지 시험해 보려는 것 같았다. 
이 구덩이가 설마하니 자기가 묻힐 구덩이일까?
이 사람은 아직 나이도 젊고 건강했다. 앞으로도 적어도 수십 년은 더 살 것같이 보이는데 어찌하여 스스로의 무덤을 파는 것일까? 이 사람은 멀쩡히 살아있는데 왜 죽으려고 할까? 어째서 이곳에 와서 죽으려고 할까? 
눈은 어젯밤에 이미 그쳤다. 하늘은 아주 맑았다. 그는 구덩이에서 나와 타고온 백마에게 다가가 안장을 풀고 말의 목을 토닥거리며 말했다. 
［너는 가거라. 가서 좋은 주인을 찾도록 해라.]
백마는 나직이 울더니 눈덮힌 산 계곡에서 달려나갔다. 
그는 말 안장에 걸터앉아 쪽빛 하늘을 쳐다보았다. 
정신이 나간듯이 눈동자를 멍하니 뜨고 쳐다보는 그의 눈동자에는 비통과 서글픔이 가득 깃들어 있었다.
이때, 눈덮힌 땅 위에 몇 사람이 나타났다. 
어떤 사람은 식합(食盒)을 들고 어떤 사람은 탁자를 들고 어떤 사람은 술주전자를 들고 또 어떤 사람은 술단지를 들고 산 계곡 밖에서 걸어 들어왔다. 
가장 앞에 서있는 사람은 보기에 술집의 점원처럼 보였다. 
그는 웃음을 띠우며 그 청년에게 입을 열었다.
[말씀 좀 묻겠소이다, 공자. 이곳이 한매곡(寒梅谷)이 맞소?]
구덩이를 판 청년은 망연히 고개를 끄덕였지만 입을 열어 대답하지도 않았고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 사람은 다시 물었다.
[혹시 두가(杜家)의 나으리와 이곳에서 만나기로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땅을 판 소년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그 사람은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나는 정말 무슨 영문인지 알 수가 없단 말이야. 두공자(杜公子)는 어째서 우리들에게 술과 안주를 이곳으로 운반하라고 했지?]
그러자 다른 사람이 웃으며 말을 받았다.
[돈 있는 사람들은 약간 괴팍한 구석이 있기 마련이지. 우리같은 가난뱅이들이야 그들의 속을 알 수가 있나.]
그들 일행은 매화나무 아래에 탁자를 내려놓고 탁자 위에 술잔과 안주와 술주전자를 차려놓더니 골짜기 밖으로 사라졌다.
한참이 지났다. 
산계곡 밖에서 돌연 한 사람이 천천히 시를 읊는 소리가 들려왔다.
[눈이 그친 하늘은 맑기만 한데 겨울 매화는 도처에 향기를 뿜는구나. 말을 타고 다리를 건너자니 영롱한 방울소리가 딸랑거린다.]
정말 영롱한 음성이었다. 
한 사람이 나귀를 타고 한 사람은 백마를 타고 골짜기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나귀를 탄 사람은 얼굴색이 창백했으며 병색이 완연했는데 그러나 얼굴에는 기쁨이 가득했고 표정은 온화하고 행동거지는 우아했고 입고있는 옷도 극히 값비싼 것이었다.
또 다른 사람은 허리에 장검을 차고 머리에 흰여우가죽으로 만든 모자를 쓰고 몸에도 흰여우가죽의 옷을 입고 있었다. 
온 몸을 은백색으로 치장하고 있었다. 
한 필의 높다란 은마 위에 올라앉아 사방을 바라보는 그의 얼굴은 매우 오만해 보였다. 
그가 오만한 것도 탓할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그처럼 잘생긴 남자는 찾아보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구덩이를 판 소년은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서 넋을 잃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마치 그들이 나타난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았다.
이 세 사람의 나이가 젊은 사람들은 모두 부자집의 귀공자 같았다. 그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이곳으로 왔지만 그들이 이곳에 온 목적은 각자 다른 것 같았다.
나중에 온 두 사람은 눈을 밟으며 다가와 매화나무 숲을 둘러보았다.
그들은 어쩌면 꽃을 감상하며 술을 마시러 왔는지도 모르나, 구덩이를 판 소년은 죽으러 온 것이다.
술은 꽃나무 아래에 있었다.
병색이 완연한 소년은 술잔을 들고 술을 따르더니 한 모금 홀짝 마시고 탄성을 질렀다. 
[좋은 술이군!]
꽃나무 아래 술이 있었고 매화는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그는 다시 한 잔을 마시더니 입을 열었다.
[좋은 꽃이다.]
꽃은 눈에 반사되었고 붉은 빛은 더욱 붉게, 흰빛은 더욱 희게 보였다.
그는 다시 잔을 들더니 입을 열었다.
[좋은 눈이군.]
그러더니 훌쩍 마셔버렸다. 
그의 창백하던 얼굴에 홍조가 떠올랐다.
매우 흥이 난 듯했다. 
그의 몸은 비록 연약했지만 또 비록 병색이 완연했지만 인생의 쾌락과 즐거운 일들을 감상할 줄 아는 사람같았다. 그는 마치 모든 일에 흥취를 가지고 재미있게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같았다. 
백마를 타고 여우가죽을 입고 장검을 찬 준수한 청년은 얼굴이 음침하고 냉막해 보였으며 마치 어떤 일에도 흥미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병색이 완연한 귀공자는 미소하며 말을 걸었다.
[이와 같이 좋은 눈이 있고 이와 같이 좋은 꽃이 있고 이와 같이 좋은 술이 있는데 당신은 어찌하여 한 잔 마시지 않는 것이오?]
백마의 미소년은 말했다.
[나는 원래부터 술을 마시지 않소.]
귀공자는 말했다.
[여기까지 와서 술을 마시지 않는다면, 이 계곡의 좋은 눈과 천 떨기가 넘는 매화송이들은 어찌하란 말이오?]
미소년은 냉랭히 말했다.
[나는 어떤 곳에서든 술을 마시지 않소.]
귀공자는 탄식하며 중얼거렸다.
[이 사람은 멋이 없군. 어떻게 이런 사람을 여기서 만나게 되었다지?]
구덩이를 파던 소년은 여전히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귀공자는 돌연 몸을 일으켜 구덩이 곁으로 다가가더니 입을 열었다.
[좋은 구덩이군.]
구덩이를 파던 소년은 들은척도 하지 않았다.
귀공자는 입을 열었다.
[이 구덩이는 정말 잘 팠군.]
구덩이를 파던 소년은 여전히 그를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귀공자는 그의 얼굴 앞으로 바짝 다가가며 입을 열었다.
[이 구덩이는 당신이 판 것이 아니오?]
구덩이를 판 소년은 짧게 대답했다.
[내가 팠소.]
귀공자는 말했다.
[나는 줄곧 당신이 구덩이를 잘 팠다고 칭찬을 했는데, 당신은 내가 왜 칭찬을 했는지 알고 있소?]
구덩이를 판 소년은 말했다.
[알고 있소. 나랑 술을 마시자는 게 아니오?]
귀공자는 웃으며 말했다.
[알고 봤더니 당신은 구덩이만 잘 파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잘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이군.]
구덩이를 파던 소년은 말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나는 술을 마실 줄 모르오.]
귀공자는 갑자기 표정이 굳어지며 말했다.
[당신도 원래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이오?]
구덩이를 파던 소년은 말했다.
[흥이 날 때는 마시고 흥이 나지 않을 때는 마시지 않소.]
귀공자는 말했다.
[지금 당신은 왜 마시지 않는 거요?]
구덩이를 파던 소년은 말했다.
[흥이 나지 않기 때문이오.]
귀공자는 그 말을 듣고 화를 내지도 않고 오히려 웃으면서 말했다.
[이제야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알겠군. 소문을 들으니 은창공자(銀槍公子) 구봉성(邱鳳城)은 성질이 괴상하다고 하더군. 그의 창처럼 뻣뻣하다고 하던데, 당신은 틀림없는 구봉성일 것이오.]
구덩이를 파던 소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귀공자는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성은 두(杜), 이름은 청련(靑蓮)이오.]
구봉성은 여전히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마치 두청련이란 이름을 예전에 들어본 적이 없었던 것처럼... 
사실 그는 두청련이란 이름을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강호에서 활동하는 사람 가운데 두청련이란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무림에는 사공자(四公子)가 있었다. 
은창(銀槍), 백마(白馬), 홍엽(紅葉), 청련(靑蓮).
강호의 청년들 중에서 그 누구도 이 네 공자를 능가할 수 없었다. 그들은 피차간에 알고 지내지는 않았지만 서로의 이름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봤다.
구봉성은 마땅히 알고 있었다.
그는 두청련을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백마를 타고 여우가죽 옷을 입고 장검을 찬 미소년이 바로 백마공자(白馬公子) 마여룡(馬如龍)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는 체를 하지 않는 것뿐이었다.
두청련은 한숨을 내쉬며 다시 입을 열었다.
[보기에 당신은 오늘 술을 마시지 않기로 작정을 한 것 같군.]
바로 이때 갑자기 골짜기 밖에서 한 사람이 큰 소리로 외쳤다.
[그들이 마시지 않는다면 내가 마시겠소.]
술을 마시는 사람이 온 것이다.
눈은 희고 바람은 더욱 싸늘한데 지금 나타난 사람은 얇은 비단 장삼을 입고 있을 뿐이었다. 
이렇게 추운 날씨에 그런 옷을 입고 있어서 그런지 그는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추위를 타면서도 그는 손에 부채를 쥐고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탁자 위에 있는 술단지와 술잔과 술주전자가 있었다. 그 사람은 오자마자 술단지를 집어들더니 입에 대고 꿀꺽꿀꺽 몇 모금을 마시고 입을 열었다.
[좋은 술이군.]
그 모습을 보던 두청련은 자기도 모르게 씩 웃었다.
나타난 사람은 다시 꿀꺽꿀꺽 몇 모금을 마시더니 입을 열었다.
[술이 좋을 뿐만 아니라 꽃도 좋고 눈도 좋군.]
연달아 다시 세 모금을 마시자 덜덜 떨리던 그의 몸은 다시 떨리지 않았고 얼굴에도 화색이 돌았다.
그 사람은 게걸스럽게 술을 먹었으나 보기 싫은 모습은 아니었고 귀여운 면이 있었다. 그의 행동거지는 보는 사람을 즐겁게 해주는 면이 있었다.
두 눈썹은 가지런하고 눈은 맑았으며 웃을 때는 입가에 보조개가 들어갔다. 
두청련은 그가 매우 귀엽다고 느꼈다.
그 사람은 입을 열었다.
[이와 같이 좋은 경치, 이와 같이 좋은 때,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은 마땅히....]
두청련은 물었다
[마땅히 어떻다는 것이오?]
그 사람은 대답했다.
[마땅히 곤장을 맞아야 해.]
두청련은 껄껄 웃었다.
그러나 구덩이를 파는 소년은 여전히 듣지 못한 것 같았다. 
그의 마음 속에는 그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관심이 없었다. 그 사람과 관계되는 사건 외에는 의미가 없었다. 
마여룡은 미간에 노기를 떠올렸으나 결코 화를 내지는 않았다.
새로 나타난 사람은 그를 향해 주전자를 들어 보이며 입을 열었다.
[자, 이리 오시오. 당신도 한 잔 하시오.]
마여룡은 냉랭히 말했다.
[나는 당신과 술을 마시고 싶지 않소.]
그 사람은 말했다.
[어떤 사람이 되어야 당신과 술 마실 자격이 있다는 것이오?]
[당신은 어떤 사람이오?]
그 사람은 대답하지 않고 착, 소리와 함께 손에 들고 있던 부채를 펼쳤다.
부채 위에는 일곱 글자가 쓰여져 있었는데 매우 명필이었다.
부채에 쓰여진 글자는 다음과 같았다.

[상엽홍어이월화(霜葉紅於二月花).]
서리 맞은 단풍잎은 이월 꽃보다 더 붉도다. 

이 사람은 비록 행색이 초라했지만 부채는 정품(精品)이었다.
부채의 일곱 글자는 의심할 여지도 없이 명가(名家)의 솜씨였다.
두청련은 술잔을 쳐들며 소리쳤다.
[좋은 글자로다.]
그 사람도 술주전자로 꿀꺽꿀꺽 술을 마시더니 입을 열었다.
[당신의 안목은 나쁘지 않군.]
두청련은 말했다.
[이 글자는 누가 쓴 것이오?]
그 사람은 말했다.
[날 제외하고 이 세상에 누가 이런 글자를 쓸 수 있겠소?]
두청련은 껄껄 웃었다.
[이제야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알았소. 심홍엽(沈紅葉)을 제외하고 당신과 같이 엉뚱한 짓을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소.]
무림 사공자중에 가장 오만한 사람은 백마공자 마여룡, 가장 강한 사람은 은창공자 구봉성, 가장 소탈한 사람은 당연히 두청련이었고, 가장 엉뚱한 사람은 바로 심홍엽이었다.
마여룡, 구봉성, 두청련 이 세 사람은 모두 명문호족의 자제들이었다. 그러나 심홍엽은 신세와 내력이 신비에 가려져 있었다. 
소문에 의하면 그는 바로 옛날의 천하제일 명협(名俠) 심랑(沈浪)의 후예라고 한다.
소리탐화(小李探花)는 생전에 가장 좋아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바로 천하제일의 쾌검(快劍) 아비(阿飛)였다. 
그 아비가 바로 그의 조상이라는 소문이 있었다. 
아비의 신세와 내력은 신비에 가려져 있었으며 그러기 때문에 심홍엽의 신세와 내력 역시 신비에 가려져 있었다. 
사람들은 그들 네 명의 공자를 한 묶음으로 말했는데, 심홍엽은 어려서부터 엽가(葉家)에서 자라났고 엽가는 바로 엽개(葉開)의 집이었기 때문에, 또 엽개는 바로 소리비도(小李飛刀)의 유일한 제자였기 때문에, 심홍엽은 그 후광에 힘입어 사대공자의 반열에 낄 수 있었던 것이다.
소리비도 유심환이 어떤 사람인지 이 세상에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무림 사공자는 모두 이곳에 왔다.
마여룡은 여전히 제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그는 심홍엽의 이름을 들어도 표정하나 변하지 않았다.
그는 손으로 칼자루를 더듬으며 심홍엽을 응시하더니 입을 열었다.
[매우 좋소.]
심홍엽은 물었다.
[뭐가 좋단 말이오?]
마여룡은 대답했다.
[당신이 심홍엽이니까 매우 좋다는 것이오.]
심홍엽은 물었다.
[어째서?]
[원래 나의 검은 보잘것 없는 사람을 상대하는 법이 없었소.]
[그래서?]
[심홍엽은 보잘것 없는 사람이 아니잖소? 그러므로 지금 당신이 또 다시 허튼소리를 한다면 나와 당신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은 이 자리에 쓰러질 것이오.]
심홍엽은 한숨을 쉬며 쓴 웃음을 지었다.
[나는 술을 마시자고 한 것 뿐인데 당신은 어째서 화를 내는 것이오?]
두청련은 말했다.
[그가 마시지 않는다면 우리끼리 마십시다.]
그는 심홍엽의 손 안에 있던 술주전자를 빼앗아들더니 술주전자 꼭지 입술에 대고 꿀꺽꿀꺽 몇 모금을 마신 뒤에 말했다.
[정말 좋은 술이군.]
심홍엽도 술주전자를 덩달아 들더니 꿀꺽꿀꺽 몇 모금을 마시고 입을 열었다.
[이 술에 독이 있다 해도 나는 생명을 걸고라도 마시겠소.]
두청련은 미소했다.
[틀림없는 말씀이오. 나는 이 술을 먹고 이 자리에서 죽는다고 할지라도 여한이 없소. 뿐만 아니라 그렇게 된다면 재수가 좋은 셈이오.]
심홍엽은 물었다.
[재수가 좋다니?]
두청련은 말했다.
[왜냐하면 이곳에는 내가 묻힐 묘자리가 이미 준비되어 있기 때문이오.]
심홍엽은 말했다.
[이 구덩이가 좋은 구덩이입니까?]
두청련은 대답했다.
[매우 좋습니다.]
심홍엽은 돌연 몸을 일으키더니 술주전자를 가지고 구덩이를 판 청년 앞으로 다가와 중얼거리듯 말했다.
[이 구덩이는 정말 잘 팠군. 한 사람이 죽은 후에 이런 좋은 구덩이에 묻힌다면 정말 재수가 좋겠어.]
두청련도 말했다.
[그러나 애석하게 이 구덩이는 우리들이 판 것이 아니지.]
심홍엽은 말했다.
[이런 구덩이는 죽은 사람에게만 필요한 것인데 설마하니 이 구덩이를 판 사람이 스스로 묻히려고 그랬을까?]
두청련은 대답했다.
[내가 보기엔 그런것 같아요.]
심홍엽은 깜짝 놀랐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아니, 정말 그런 사람이 있다니, 죽으려고 작정한 사람이 있단 말인가?]
두청련은 말했다.
[왜냐하면 그도 우리처럼 한 통의 편지를 읽고 오늘 이곳에 왔을 것이오.]
심홍엽은 말했다.
[그가 받은 편지 역시 벽옥부인(璧玉夫人)이 쓴 것이겠군.]
두청련은 말했다.
[틀림없소.]
심홍엽은 말했다.
[벽옥부인이 우리들 보고 이곳으로 오라고 했는데 그것은 우리 네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을 사위로 뽑기 위함이지.]
두청련은 말했다.
[틀림없소.]
심홍엽은 말했다.
[벽옥부인은 천하가 공인하는 제일가는 고인(高人)인데 벽옥산장(碧玉山莊)에는 천향국색(天香國色)에는 미인들만 있다고 하는데, 나는 그 편지를 받았을 때 너무나 신이 나서 밤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소.]
두청련은 말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소.]
심홍엽은 말했다.
[그녀가 만약 나를 사위로 맞아들이게 된다면 나는 너무나 신이 나서 어쩌면 미쳐버릴지도 모르지.]
두청련이 말했다.
[당신은 미치지 않는 것이 좋을걸. 벽옥부인은 미친 사람을 사위로 맞아들이지는 않을 거요.]
심홍엽은 말했다.
[그녀는 죽은 사람 역시 사위로 맞아들이지 않겠죠?]
두청련은 대답했다.
[물론이오.]
심홍엽은 물었다.
[그렇다면 저 공자는 왜 자기의 무덤을 팠지?]
두청련은 대답했다.
[그는 정에 미친 사람이기 때문이오. 그가 사랑하는 사람은 매우 아름다운 아가씨인데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자고 철석같이 맹세를 했기 때문이지.]
그는 탄식하며 다시 말을 이었다.
[만약 벽옥부인이 그를 사위로 삼는다면 그는 그 아가씨와 백수해로를 할 수가 없게 되지.]
심홍엽은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벽옥부인이 그를 사위로 삼기만 한다면 그는 이 자리에서 죽기로 결심을 한 모양이군.]
두청련은 대답했다.
[틀림없는 사실이오.]
심홍엽은 잠깐 생각해 보더니 말했다.
[이 방법은 정말 대단히 훌륭하군.]
두청련은 물었다.
[뭐가 훌륭하다는 것이오?]
심홍엽은 대답했다.
[벽옥부인은 어쩌면 그 구덩이를 볼지도 모르지 않소?]
두청련은 웃으며 말했다.
[이렇게 커다란 구덩이를 보지 못할 리가 없겠죠.]
심홍엽은 말했다.
[그녀가 이 구덩이를 보기만 한다면 그 공자가 이미 죽을 결심을 했다는 했다는 것을 알고 어쩌면 그를 사위로 뽑지 않을지도 모르지.]
두청련은 탄식했다.
[정말 별꼴이야. 정에 미치게 되면 별 이상한 짓을 다하게 되는 모양이오.]
심홍엽은 말했다.
[정에 미치면 누구나 멍청이가 되는 법이오.]
그 말을 들은 구봉성은 안색이 변하더니 벌떡 몸을 일으키고 두청련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당신은 어떻게 이 일을 알고있소?]
이것은 그 두 남녀만 알고 있는 비밀이었다.
두청련은 탄식하며 입을 열었다.
[당신은 내가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 모를 것이오. 나 역시 모르오. 그러나 그 아름다운 아가씨가....]
그가 여기까지 말을 했을 때 얼굴이 일그러졌다. 창백하던 얼굴이 갑자기 검게 변했으며 입만 딱 벌리고 무슨 말을 하려고 했으나 목쉰 소리만 나올 뿐이었다.
심홍엽은 그것을 보고 깜짝 놀라 외쳤다.
[당신....]
그런데 그의 목소리 역시 쉬어 있었다. 
그 순간 그의 얼굴 역시 기괴하게 일그러지면서 검게 변하는 것이 아닌가.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더니 눈동자에 공포스러운 빛을 떠올렸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심홍엽이 들고있던 술단지가 구덩이 밑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더니 산산조각이 나는 것이었다.
그의 얼굴에 이상야릇한 웃음이 떠오르더니 목쉰 음성으로 떠듬떠듬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우리는 정말 재수가 좋은 모양이오. 정말 이 구덩이 속에 묻히게....]
이 말은 그의 최후의 말이었다.
그는 말을 마치기도 전에 구덩이 속에 엎어지고 말았다.
이 구덩이는 그가 판 것 아니지만 그가 차지하게 된 것이었다.
살아있는 사람이 설마하니 죽어있는 사람과 하나의 구덩이를 두고 서로 다투겠는가.

2. 살수(殺手)


이때 두청련도 쓰러졌다. 
쓰러지는 그의 입가로 한 줄기 핏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더듬거리며 탁자 위로 가다가 술주전자에 있는 술을 모조리 입에 털어넣고 꿀꺽꿀꺽 마셔버렸다. 
그러더니 껄껄 웃으며 부르짖었다.
[좋은 술이다, 좋은 술이야.]
그의 음성은 처량하고 비참했다. 
[이렇게 좋은 술을 마실 수 있다니, 내가 독이 들어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해도 나는 마셨을 것이다. 당신들도 드시오.]
그는 껄껄 웃으며 비틀비틀 구덩이 옆으로 다가오더니 심홍엽의 시체 위로 쓰러졌다.
바람은 차가운데 그들 두 사람은 영원히 나올 수 없는 강에 빠져버리고 만 것이었다.
구봉성과 마여룡은 그 두 사람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보고서 하마터면 놀라 쓰러질뻔 했다. 
이 변화는 실로 너무나 돌연히 일어났고 너무나 사람을 놀라게 했으며 너무나 공포스러웠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구봉성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는 마여룡을 노려보았다.
그의 눈빛은 겨울바람보다도 차가왔고 그의 눈동자 안에는 칼날같은 살기가 번뜩이고 있었다.
그 칼날은 마여룡의 가슴을 갈라버리고 심장을 끄집어낼 것만 같았다.
그는 어째서 이런 눈빛으로 마여룡을 노려보고 있는 것일까?
마여룡도 이때 정신을 가다듬었다.
두청련이 그의 앞에서 죽었지만 그는 이미 냉정을 회복하고 있었다.
백마공자 마여룡은 영원히 고고하고 오만했다. 
그 어떤 일도 그의 마음을 흔들 수 없을 듯하였다.
구봉성은 그를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당신은 원래 술을 마시지 않소?]
마여룡은 대답을 회피했다. 
그는 언제나 다른 사람의 질문에 대답하는 것을 싫어했고 보통때는 남에게 묻거나 명령을 내렸다.
구봉성은 차가운 어조로 물었다.
[나는 당신이 술을 마실줄 안다는 것을 알고 있소. 당신은 주량이 매우 크다는 것도 알고 있소.]
마여룡은 여전히 인정하지도 않고 부인하지도 않았다.
구봉성은 다시 입을 열었다.
[당신은 비단 술을 마실 줄 알 뿐만 아니라 항상 술을 마셔서 항상 술에 취해 있었소. 언젠가 한번은 항주(杭州)의 진주방(珍珠坊)에서 삼 일 밤낮 술을 마신 적이 있었소. 그때 당신은 진주방에 있던 여아홍(女兒紅)을 모조리 마셔버린 적이 있소. 이십 근짜리 여아홍을 당신은 네 단지나 마셨소. 이 기록은 지금까지 그 누구에 의해서도 깨지지 않았소.]
마여룡은 냉랭히 말했다.
[네 번째 단지는 여아홍이 아니었소. 진짜 여아홍은 진주방에 세 단지가 있었을 뿐이오.]
구봉성은 말했다.
[이미 육십 근의 술을 마시고 나서도 최후의 한 단지가 가짜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니, 정말 주량이 보통이 아니구려.]
마여룡은 말했다.
[나의 주량은 보통이 아니오.]
구봉성은 말했다.
[그러나 오늘 당신은 한 방울의 술도 입에 대지 않았소.]
그의 얼굴은 냉랭했다.
[오늘 당신은 어째서 술을 마시지 않았소? 술 속에 독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겠지?]
마여룡은 입을 꼭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구봉성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당신은 두청련과 함께 왔소. 그러니 당연히 그가 술과 안주를 배달하라고 했을 때 그 옆에 있었을 것이오. 당신은 한 사람을 매수해서 술 속에 독을 넣도록 했을 것이오.]
마여룡은 여전히 부인하지도 시인하지도 않았다.
구봉성은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벽옥산장의 사위가 되지 않기로, 죽어도 되지 않기로 결심한 바 있소. 지금 두청련과 심홍엽은 이미 죽었소. 그러니 벽옥부인이 사위를 삼는다면 당신 한 사람을 사위로 삼을 수밖에 없을 것이오.]
그는 냉소하며 다시 말을 이었다.
[정말 축하해야할 일이군.]
마여룡은 침묵하더니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
[당신의 말뜻이 무엇인지 나는 알았소.]
구봉성은 말했다.
[당신은 마땅히 알았어야 했소.]
그는 은창의 창자루를 움켜쥐었다. 
구봉성은 은창을 치켜들고 마여룡을 향하여 한 발 한 발 다가갔다. 칼날같은 살기가 사방으로 번져나갔다.
바로 그때 돌연 한 사람의 음성이 들려왔다.
[구봉성, 당신은 나와 싸울 차례가 되었소. 나와 싸운 다음에 다른 사람과 싸우도록 하시오.]
이 사람은 언제 나타난 것일까?
두청련과 심홍엽이 갑자기 죽었기 때문에 그 누구도 그가 출현한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 사람은 바싹 마르고 키가 컸으며 광대뼈가 튀어나왔다. 
한 쌍의 손은 매우 컸다. 
그 한 쌍의 손은 한 자루의 금창(金槍), 사척구촌(四尺九寸) 길이의 금창을 움켜쥐고 있었다. 
그 금창은 금빛이 찬란하였으며 순금으로 만든 것인지 노란빛이 번들거리고 있었다. 
이 사람이 입고 있는 옷 역시 금색이었다. 옷감은 값비싼 것이고 몸에 맞게 재단한 것이었다.
강호에서 이런 금빛 옷을 입고 금창을 들고 있는 사람은 오직 한 사람뿐이었다. 
그 사람은 바로 금창(金槍) 금진림(金振林)이었다.
강호에서 가장 유명한 한 자루의 창은 원래 이 금창이었다. 금진림의 금창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왜냐하면 은창공자가 이미 삼 년 전에 그의 금창을 격패시킨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부터 금창과 은창 사이에는 그 누구도 풀 수 없는 원한관계가 맺어졌다.
금진림은 입을 열었다.
[우리들 사이에는 묵은 빚이 있지. 묵은 빚을 먼저 청산하고 나서 새로운 빚을 청산하게.]
그는 손에 들고 있는 금창으로 구봉성을 겨냥했다. 
[오늘은 바로 너와 나의 묵은 빚을 청산하는 날이다.]
구봉성은 냉소했다.
[당신이 하필 이때 나타나다니, 정말 공교로운 일이군.]
금진림은 냉소하더니 홀연 금창을 들고 번개같이 달려들며 금창으로 구봉성의 가슴을 찔러갔다. 
구봉성 역시 은창을 휘둘러 막았다. 
마여령은 뒤로 물러서서 두 사람이 싸우도록 비켜주었다.
묵은 빚을 먼저 청산한다는데 순서를 먼저 양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금창의 공격은 독하고 신속했으며 매우 강력했다. 그뿐 아니라 은창에 비하여 길이가 길었다. 
길이가 한 촌이 길면 그만큼 유리한 법이었다. 그러나 은창은 금창보다도 더욱 영활하고 더욱 빠르고 초식의 변화도 훨씬 많았다.
보기에 금창은 이번에 또다시 패배할 것만 같았다. 
구봉성은 가능한한 빨리 이번 싸움을 마무리짓고 백마공자 마여룡을 죽일 생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온몸의 힘을 다하여 전력을 다하여 금창과 겨루고 있었다. 
금창은 은창에 밀려 점점 뒤로 후퇴하기 시작했다. 
바로 이때 눈덮힌 매화나무 뒤에서 갑자기 한 사람이 튀어나왔다.
한 명의 흑의인(黑衣人)이었다.
흑의를 입고 흑색의 복면을 했으며 온몸이 온통 흑색인 한 사람이 나타난 것이었다.
이 사람은 금진림보다도 더 바싹 말랐으며 흡사 한 대의 검은색 화살과 같았다. 
그는 쏜살같이 달려들었다. 그가 손에 들고 있는 것은 한 자루의 날이 얇고 예리한 안령도(雁翎刀)였다.
칼빛이 번쩍이는 순간 비스듬히 구봉성의 왼쪽 목덜미를 후려쳤다. 이것은 정말 치명적인 일격이었다.
구봉성은 비록 위기에 처했지만 재빨리 몸을 한옆으로 날려 그 일격을 피했다. 그러느라고 그만 앞가슴에 허점이 노출되었다.
금진림의 금창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번개와 같이 그의 심장을 찔러버렸다. 
이 한번의 창은 정말 절대절명의 살수(殺手)였다. 
금진림은 일격이 명중하자 더 이상 머무르지 않고 몸을 날려 사 장 밖으로 달려나갔다. 
선혈이 번지는 가운데 구봉성은 땅에 쓰러졌다. 
금진림은 벌써 십 장 밖으로 달려가고 있었으며 흑의인 역시 그의 뒤를 따라 재빨리 쫓아갔다. 
마여룡은 금진림을 쫓아가지 않았다. 
금진림을 추적하지 않고 구봉성의 몸옆으로 다가와 구봉성이 이미 죽었는지 살펴보았다. 
바로 이때 갑자기 칼빛이 번뜩이며 흑의인이 들고 있던 안령도가 번개같이 금진림의 왼쪽 목덜미를 후려쳤다.
이 일 도는 방금 전 구봉성을 내리칠 때보다 훨씬 빠르고 악독했다.
금진림은 처참한 비명소리를 내지르며 목에서 피화살을 내쏟으며 그 자리에 꼬꾸라져 즉사하고 말았다. 
흑의인은 한 칼에 성공하자 더 머무르지 않고 몸을 날려 골짜기 밖으로 달려나갔다. 
그가 살인하는 동작은 매우 깨끗하고 날카로웠으며 또한 매우 유효했다. 그는 풍부한 살인경험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일격을 격중시키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그가 몇 걸음 달려나가지 않았을 때 골짜기 밖에서 세 사람이 달려나와서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한 사람은 키가 크고 위맹하게 생겼고 또 한 사람은 뚱뚱했으며 또 한 사람은 화상(和尙)이었다.
키가 크고 위맹하게 생긴 사람은 은발적면(銀髮赤面)의 노인이었다.
위풍이 당당했으며 기세가 웅장했다.
화상들은 웬만한 솜씨가 아닌 이상 강호를 떠돌아다니는 법이 없었다.
거지와 여자와 출가한 중들은 강호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이 가장 접촉하기를 꺼리는 부류들이었다.
경험이 노련한 살인자들, 살수들은 상대방을 선택할 때 가장 약한 자를 선택하기 마련이다. 
그 뚱뚱한 사람은 비둔해 보였을 뿐만 아니라 동작이 아주 느려보였다.
흑의인은 그 뚱보를 향하여 달려들었다.
그러나 그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이 뚱보는 바로 당금 천하의 도법(刀法)에 있어서 제일가는 명가(名家)인 오호단문도(五虎斷門刀)의 장문인 팽천패(彭天覇)였다.
당금 무림에서 가장 빠르고 가장 악독하며 또한 가장 유명한 도법의 명수인 것이다. 
팽천패는 당연히 칼을 지니고 있었다. 
칼은 칼집에 꽂힌 채 허리에 달려 있었다. 그러나 그 칼은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어느새 흑의인의 목젖을 찌르고 있었다. 
흑의인은 자기가 휘두른 칼이 다 휘둘러지기도 전에 눈앞에 칼빛이 번쩍이는 것을 느꼈고 그 순간 팽천패의 칼날은 이미 그의 숨통을 가르고 있었다. 
그 키가 크고 위맹하게 생긴 노인은 재빨리 외쳤다.
[죽이지는 마시오!]
그러나 그의 말이 떨어졌을 때 흑의인의 목은 이미 잘려졌다.
팽천패는 탄식하며 입을 열었다.
[당신이 말하는 것이 한 발 늦었구려.]
키가 크며 위맹하게 생긴 노인은 탄식하며 그 말을 받았다.
[사실 나는 벌써 생각을 하고 있었어야 했소. 당신의 칼은 원래 한 번 휘둘러졌다 하면 살려두는 법이 없지.]
그 화상은 담담히 말했다.
[팽대협(彭大俠)의 수법이 비록 엄중하지만 그가 죽인 사람은 모두 마땅히 죽어야할 사람이었소. 이 흑의인은 다섯 사람을 해쳤으니 죽어도 싸다고 하겠소.]
키가 크고 위맹하게 생긴 노인은 말했다.
[나는 그가 죽어서 안타깝게 여긴 것이 아니외다. 다만 그를 살려서 왜 다섯 사람을 죽였는지 물어보려고 한 것이오.]
[취풍루(聚豊褸)의 다섯 사환이 강호의 사람이 아닌데 그와 무슨 원한을 맺었겠소? 그런데 어째서 그는 그들 다섯 명을 죽였는지 알 수가 없구려.]
팽천패가 입을 열었다.
[그가 이미 죽었지만 왜 그가 다섯 명의 술집 사환을 죽였는지 나중에 다시 알아보면 될 것이오.]
키가 크고 위맹하게 생긴 노인이 물었다.
[나중에 누구에게 가서 묻는단 말이오? 이 사건은 그를 제외한다면 어디 가서 단서를 찾을 수 있겠소?]
그때 한 사람이 큰 소리로 외쳤다.
[내가 알고 있소!]
구봉성은 뜻밖에도 죽지 않았다.
몸을 일으키며 거친 숨을 몰아쉬더니 말했다.
[이 사건은 제가 친히 목격하였습니다.]
이화궁주(移花宮主) 자매가 죽은 후에 무림에서 가장 신비하고 신비한 한 명의 여인이 있었으니 그녀는 바로 벽옥부인(碧玉夫人)이었다.
천하에서 가장 신비한 장소는 바로 벽옥산장(碧玉山莊)이었다.
그러나 벽옥산장이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생겼는지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왜냐하면 벽옥산장도 이화궁과 마찬가지로 여자들 세상으로 남자들의 금지구역이기 때문이었다.
소문에 의하면 그 여자들은 모두 극히 아름다운 미녀들일 뿐 아니라 신기한 무공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아무리 재간이 뛰어난 여자라고 할지라도 남자가 필요할 때가 있는 법이다.
만약 후손을 얻어 대를 잇기를 원하다면 남자가 더욱 없을 수 없었다. 
지금 벽옥부인의 천금(千金)은 이미 다 자라서 어여쁜 아가씨가 되어 있었다. 
벽옥부인은 유일한 외동딸이 독신으로 늙어버리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그녀 역시 다른 엄마들과 마찬가지로 마음에 드는 사위를 찾고 싶었다. 
현재의 강호에서 그녀의 사위가 될 자격을 갖춘 사람이 있다면 의심할 나위없이 사공자뿐이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녀에게는 한 명의 딸이 있을 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단지 네 사람의 공자 가운데 한 사람의 공자만을 사위로 맞이할 수가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이 네 사람의 공자를 한매곡(寒梅谷)으로 오라고 편지를 보냈던 것이다.
벽옥부인의 초청을 거절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까지 거절한 사람도 없었을뿐 아니라 감히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구봉성과 마여룡과 두청련과 심홍엽, 이 네 명의 공자는 모두 한매곡으로 달려왔던 것이다.
벽옥부인은 결코 그 사실을 소문내지 않았고 그 네 공자 역시 이 사실을 비밀에 부쳤다. 
왜냐하면 네 사람 가운데 단지 한 사람만 사위로 뽑히게 되는데, 만약 사위로 뽑히지 못한다면 그 소문이 강호에 나게 되었을 때 창피해서 얼굴을 들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술속에 독이 들어 있어서 두청련과 심홍엽은 독사(毒死)당하고 말았다. 
또한 구봉성은 금창 금진림과 이곳에서 마주쳐 싸움을 벌이게 되었고 더군다나 금진림은 경험이 풍부한 살수(殺手)를 데리고 구봉성을 공격했던 것이다.
무림 사공자를 제외하고 그 누구도 구봉성이 오늘 이 자리에 온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금진림은 어떻게 그 사실을 알 수 있었을까.
이것은 당연히 어떤 사람이 금진림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면서 또 한편으로는 살인을 직업으로 하는 자객(刺客)을 딸려보내 구봉성을 죽이도록 했음이 틀림없었다.
그 사람은 당연히 술에 독을 넣은 사람일 것이다.
그 사람은 금진림과 자객을 골짜기 밖에 매복시키고 취풍루의 술을 배달했던 사환들을 모조리 죽여 비밀이 누설되는 것을 막았을 것이다.
그러면서 그 사람은 또다시 그 자객을 매수하여 구봉성을 죽인 후에 금진림까지 죽여 비밀이 새어나가지 못하게 했을 것이다.
그는 그 자객이 비밀을 누설하는 것은 염려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살인을 직업으로 하는 자객들은 입이 무거웠기 때문이다.
그들은 죽으면 죽었지 자기에게 살인을 청부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발설하는 법이 없었다.
구봉성은 여러 가지 정황을 생각한 끝에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나는 본래 마땅히 금진림의 창에 찔려 죽어야 했소. 그렇게 된다면 그 사람의 음모는 완전히 성공하게 되었을 것이고 영원히 그의 비밀과 음모를 파헤치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게 되었을 것이오. 벽옥부인 역시 더이상 마음 쓰면서 사위를 선택하려고 고민할 필요가 없을 것이오. 그 사람은 당연히 벽옥산장의 사위가 될 수가 있었을 것이오.]
구봉성은 그 사람이 누구인지 말하지는 않았다. 말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모든 사람들이 마음 속으로 환히 짐작하고 있었다. 
모든 사람들은 차가운 눈초리로 마여룡을 노려보았다.
마여룡은 아무 반응도 나타내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어떤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건 다른 사람들이 마음 속으로 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든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이때 팽천패는 죽어 있는 금진림의 옆으로 가더니 그 옆에 떨어져 있는 금창을 줏어들고 무게를 가늠해보더니 나직이 중얼거리듯 입을 열었다.
[이 창은 무겁지 않구나.]
구봉성은 그 말을 받았다.
[그가 연마한 것은 가전(家傳)의 이화창(梨花槍)이고, 그리고 그가 연마한 것은 날렵함을 위주로한 보법이었소.]
팽천패는 말했다.
[소문에 의하면 어떤 사람이 그를 시험해 본 적이 있다고 하더군. 일곱 개의 동전을 그의 얼굴을 향하여 던졌더니 그는 한번의 동작으로 일곱 개의 동전을 모두 창으로 찔러서 떨어뜨렸다고 하더군.］
구봉성은 말했다.
[그의 수법은 정말 매우 정확합니다.]
팽천패는 탄식하면서 입을 열었다.
[그러나 그도 이번에는 실수를 했군.]
구봉성은 말했다.
[이번에도 그는 실수하지 않았습니다.]
팽천패는 의아하다는 어조로 입을 열었다.
[그가 실수하지 않았다면 자네가 어찌하여 죽지 않았단 말인가?]
구봉성은 그 말에 대답하지 않고 상의의 단추를 열고 앞가슴을 드러내 보였다.
그의 속옷 안에는 작은 주머니가 심장 앞에 달려 있었다. 
그 작은 주머니는 꽃을 수놓은 예쁘고 앙증맞은 주머니였는데 분명히 여자가 정성들여 만든 것 같았다. 
지금 그 작은 주머니는 구멍이 뚫려져 있었고 그 주머니 속에 있던 옥패(玉佩)는 이미 가루가 되어 있었다. 
금진림의 창은 결코 실수한 것이 아니었다. 
그의 창은 정확히 구봉성의 심장을 찔렀던 것이다. 
다만 금진림은 구봉성의 심장 앞에 옥패가 들어 있는 주머니가 매달려 있다는 것을 짐작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구봉성은 말을 이었다. 
[이것은 소완(小婉)이 나에게 만들어준 것입니다. 그녀는 나보고 언제나 이것을 가슴에 달고 다니라고 했습니다. 언제나 그녀를 잊지 말라고 했죠.] 
그 말을 하는 그의 눈빛에서는 부드러운 정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언제나 그녀를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 덕분에 이렇게 살아날 수 있었구요.]
소완이라는 여자는 틀림없이 그의 정인(情人)일 것이다.
그는 차라리 죽을지언정 그 정인을 배반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팽천패는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알고보니 한 사람이 정에 미치는 것도 나쁘다고는 할 수 없군.]
그 키가 크고 위맹하게 생긴 노인이 홀연 입을 열었다.
[구공자, 나는 비록 그대를 만난 적은 없지만 자네가 가지고 있는 이 은창을 잘 알고 있다네.]
구봉성은 물었다.
[이것은 이 후배의 가보입니다. 선배님께서는 어떻게 알고 계시는지요?]
그 노인은 입을 열었다.
[옛날 영존(令尊)께서 이 한 쌍의 은창을 가지고 장백군웅(長白群熊)과 싸우고 있었을 때 그 자리에 있었다네.] 
장백군웅의 형제는 흉악한 도적들이었다.
요동(遼東)땅에 자리를 잡고 얼마나 많은 악행을 자행하였는지 모른다.
그러나 강호의 그 누구도 감히 그들을 없애지 못했었다.
그런데 구봉성의 부친은 봉천대협(奉天大俠) 풍초범(馮超凡)과 함께 장백산(長白山)으로 쳐들어가 한 쌍의 은창으로 장백군웅을 물리쳤던 것이다.
그 당시 풍초범 역시 한 쌍의 순동(純銅)으로 만든 홍원패(混元牌)를 들고 장백군웅의 소굴을 무찔렀다.
그 싸움은 그 당시 천하를 진동시켰을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었다.
구봉성은 말했다.
선배님께서는 혹시 풍대협(馮大俠)이 아니십니까?]
그 노인은 대답했다.
[틀림없네. 내가 바로 풍초범일세.]
그는 미소하며 말했다.
[자네가 저 사람이 흑의인을 죽인 수법을 보았다면 그가 누구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네.]
오호단문도를 제외하고 천하에 그누가 있어서 그와 같이 절묘한 도법을 펼칠 수가 있겠는가?
한번 휘둘렀다 하면 한 사람의 생명을 끊어버리고 마는 오호단문도의 도법.
구봉성은 탄신하며 말했다.
[이 흑의인은 흉악한 짓을 많이 저질렀으니 오호단문도 아래 생명을 잃은 것이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팽천패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나를 너무 추켜세울 필요는 없네. 만약 출수한 사람이 이 화상이었다면 그는 더욱 빨리 죽었을 것이네.] 
이 화상의 수법이 설마하니 오호단문도보다 더 고명하다는 말인가?
구봉성은 표정이 변하며 입을 열었다.
[혹시 이 분 선배님께서는 소림(小林)의 절대사(絶大師)가 아니십니까?]
팽천패는 웃으며 대답했다.
[틀림없네. 그가 바로 절화상(絶和尙)이라네.]
소림절승(小林絶僧)은 악을 미워하기를 원수처럼 했으며 악인들은 그를 생각하기만하면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는 소문이 있었다.
구봉성은 장탄식을 하며 말했다.
[뜻밖에도 오늘 세 분의 선배님께서 이곳에 계셨군요.]
팽천패는 말했다.
[우리는 본래 올 생각이 없었네.]
풍초범은 말했다.
[우리는 단지 취풍루에 가서 술을 마실 생각이었네.]
그는 사실 취풍루의 오래 된 고객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술집의 오래된 고객에게는 그를 시중드는 사환이 있게 마련이었다.
고객을 담당하는 사환은 고객의 성질과 고객의 흥미와 그가 좋아하는 음식과 술이 무엇인지 시키지 않아도 척척 갖다주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풍초범이 취풍루에 갔을 때 그를 담당하는 사환은 술과 안주를 가지고 한매곡으로 갔다는 것이 아닌가.
이와 같은 엄동설한에 한매곡에서 꽃을 감상하고 술을 마시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그 사람은 필시 풍류는 아는 아인(雅人)일 것이다.
팽천패는 말을 이었다.
[세 잔의 술을 마셨을 때 우리 세 늙은이는 호기심이 발동했네. 도대체 그 어떤 사람이 한매곡에서 꽃을 감상하며 술을 마시는지 궁금해졌지.]
풍초범은 탄식했다.
[그런데 우리는 길을 오는 동중에 술집 점원들의 시체를 발견했네.]
팽천패가 그 말을 받았다.
[그들은 모두 한 칼에 절명했더군. 살인하는 수법이 깨끗하고 날카로웠어.]
풍초범이 말을 이었다.
[그 역시 칼을 써서 사람을 죽역더군. 나는 그것을 보자마자 그 누가 이와 같이 빠른 칼질을 할 수 있었는지 궁금함을 참을 수 없었네.]
팽천패가 말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서둘러 달려오게 된 것일세.]
구봉성은 하늘을 쳐다보며 중얼거리듯 입을 열었다.
[하늘의 그물은 성성하지만 그러나 살인자를 용서하는 법이 없지요!]
그는 홀연 몸을 일으켜 마여룡을 바라보며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입을 열었다.
[내가 방금 한 말을 당신은 영원히 머리속에 기억해야 할 것이오. 절대로 잊지 마시오.]
이때 하늘은 점점 어두워지고 바람은 점점 싸늘하게 몰아치고 있었다.


3. 천살(天殺)


마여룡은 여전히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만약 다른 사람이라면 이와 같은 상황에서 도망을 치든지 극구 변명을 늘어놓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는 그 자리에 조용히 서서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을 못 들은 것처럼 아랑곳하지 않고 있었다. 
그는 변명하지 않았다. 그것은 변명할 여지가 없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 세 사람의 무공이 절륜한 고수 앞에서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까?
절대사는 그 자리에 조용히 서 있었다. 냉막한 얼굴은 무표정할 뿐이었다.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는 한 사람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네. 천하의 도법(刀法)의 정수(精髓)는 오호단문도에 다 모여있다고 하더군. 그러므로 천하 각문 각파의 도법은 오호단문도의 범위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는 것이네. 조금전 죽은 흑의인의 도법은 도대체 어떤 문파의 도법인가?]
팽천패가 대답했다.
[나도 모르고 있네.]
그의 대답은 매우 간단했다.
절대사는 매우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그것이 진짜인가?]
팽천패는 대답했다.
[모른다고 하면 모르는 것이지 어찌 진짜와 가짜가 있겠는가?]
절대사가 말했다.
[자네가 모른다고 하지만 나는 알고 있지.]
팽천패가 의외라는 듯이 입을 열었다.
[자네가 진짜 알고 있는가?]
절대사가 말했다.
[알면 아는 것이지 진짜 가짜가 어디 있는가?]
팽천패는 웃었다.
[그가 사용한 도법은 어느 문파의 도법인가?]
절대사가 대답했다.
[천살(天殺)이네!]
천살!
팽천패가 물었다.
[나도 모르는 일인데 도대체 천살이 무엇인가?]
절대사가 대답했다.
[자네는 그의 옷을 벗기고 살펴보게.] 
흑의인의 가슴에는 여러개의 붉은 글자가 새겨 있었다. 그것이 주사(呪砂)를 문신한 것인지 피로 새긴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 글자는 다음과 같았다.
<하늘은 만물을 사람에게 주었지만 사람은 한 가지 물건도 하늘에게 주지 않았다. 살(殺)! 살! 살! 살! 살! 살! 살!> 
팽천패가 물었다.
[이것이 바로 천살인가?]
절대사가 물었다.
[그렇다네.]
팽천패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애석하게도 나는 알지 못하고 있네.]
절대사가 대답했다.
[이것은 바로 살인조직이네. 조직에 있는 사람은 살인을 직업으로 삼고 있으며 살인을 즐거움으로 삼고 있으며 살인을 통하여 돈을 벌고 돈만 준다면 그 누구도 죽인다네.]
팽천패가 입을 열었다.
[자네는 어떻게 그렇게 잘 알고 있는가?]
절대사가 대답했다.
[나는 그들을 추적하는 중이네. 벌써 오 년이 되었네.]
팽천패가 입을 열었다.
[왜 추적하는가?]
절대사가 대답했다.
[그들의 수령(首領)을 찾아서 그를 죽이기 위함일세.]
그는 담담한 어조로 다시 말을 이었다.
[살인자는 죽어야 마땅하지. 그들은 너무나 많은 사람을 죽였기 때문에 그들이 죽지 않는다면 하늘이 무심한 것이지.]
팽천패가 말했다.
[자네는 그들을 추적하는데 성공하였는가?]
절대사가 대답했다.
[아직 성공하지 못했네.]
팽천패가 말했다.
[그러나 언젠가 자네는 성공하게 될 것일세. 자네는 한번 누군가를 추적했다하면 절대로 포기하는 법이 없었으니까.]
절대사가 대답했다.
[그 말이 맞네.] 
하늘은 점점 어두워졌고 차가운 바람은 칼날처럼 예리했다.
팽천패는 다시 허리를 굽혀 흑의인의 옷깃을 여며주려고 했다. 마치 그가 추위를 탈까봐 걱정하는 것 같았다.
팽천패가 그 흑의인의 옷깃을 여미는 순간, 그 흑의인의 품속에서 한 가지 물건이 굴러나왔다. 굴러나온 것은 한 조각의 옥(玉)이었다.
옥이라는 것은 진귀한 보물중의 하나다. 
옥이라는 것은 길(吉)한 것을 가지고 온다는 물건이었다. 비단 사악함을 물리치는 벽사(避邪)의 효용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에게 길상(吉祥)과 평안(平安)과 여의(如意)를 가져다준다고 하는 물건이었다.
오래된 전설에서 옥을 가리켜 체사(替死)라 부르기도 했다. 주인을 대신하여 죽고 주인을 살린다는 뜻이다. 
소완이 구봉성에게 준 그 한 조각의 옥은 구봉성의 생명을 구한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 한 조각의 옥은 마여룡의 생명을 재촉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이 한 조각의 옥에는 끈이 달려 있었는데 그 끈의 다른 한쪽에는 한 조각의 금패(金牌)가 달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금패의 앞쪽에는 한 필의 말이 새겨져 있었고 금패의 뒷쪽에는 네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천마행공(天馬行空).]
이것은 바로 천마당(天馬堂)의 명부(名府)였다. 
마여룡은 바로 천마당주(天馬堂主)의 큰아들이었다. 
천마당의 명부가 어찌하여 자객의 몸에 들어있는 것일까. 
분명 마여룡이 이 한 조각의 옥과 한 조각의 명부를 사용하여 그 자객을 매수하였고 그 자객에게 명하여 사람을 죽이라고 했을 것이다.
두청련과 구봉성과 금진림과 취풍루에서 온 사환들을 죽이라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구봉성은 죽지 않았다. 더군다나 팽천패와 절대사와 풍초범이 달려왔다. 이것은 하늘의 뜻이 아닐까? 
천살은 하늘의 뜻이 아니요, 하늘의 뜻은 살인을 금하는 것이 아닐까?
이제 그 누구도 흉수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풍초범은 살기 어린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제 우리들은 마여룡이 뭐라고 하는지 들어봐야 하겠소.]
그러나 마여룡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은색의 여우가죽옷을 벗으며 입을 열었다.
[이것은 나의 셋째 삼촌께서 소년시절에 대설산(大雪山)에 가서 사냥한 여우가죽으로 만든 것입니다. 나는 이것을 입고 있음으로써 이것이 훼손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는 그 여우가죽옷을 팽천패에게 건네주며 말을 이었다.
[나는 귀하께서 옛날 나의 셋째 삼촌과 친하게 지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나는 귀하께서 이 물건을 천마당으로 가져가 나의 셋째 작은어머니께 전해주기를 바랍니다.]
팽천패는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마삼가(馬三歌)는 일찍 요절했지. 나는 자네를 대신하여 이 옷을 꼭 전해주도록 하겠네.]
마여룡은 천천히 찬란하게 빛나는 장검을 풀어 절대사에게 건네주었다. 
[이 한 자루의 보검은 무당(武當) 현진관주(玄眞觀主)가 저의 아버님께 선물한 것입니다. 소림과 무당은 본래 일맥상통하는 관계이니 귀하께서 이 보검을 현진관에 가져다 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다른 사람의 손에 들어가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절대사는 대답했다.
[그렇게 하겠네.]
마여룡은 다시 몸에 지니고 있던 은표(銀票)와 금엽자(金葉子)를 꺼내 풍초범에게 건네주었다.
풍초범은 물었다.
[이 물건은 누구에게 건네주려는 것인가?]
마여룡은 대답했다.
금전이라는 본래 주인이 없는 물건입니다. 누구에게 주든 상관이 없습니다.]
풍초범은 잠시 생각하더니 그것을 받아들고 입을 열었다.
[나는 자네를 대신하여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도록 하겠네. 자네는 죽기 전에 착한 일을 하는 셈이 되는군.]
모든 사람들은 마여룡이 물건을 건네주는 것이 유언의 성격을 지녔다는 것을 알고 거절하지 않았다. 물건을 받아드는 그들의 마음은 납덩이처럼 무거웠다.
마여룡은 길게 탄식하며 중얼거렸다.
[이제 저에게 남은 것은 한 필의 말뿐입니다.] 
이 백마는 한 그루의 매화나무에 매어져 있었다. 이 말은 엄격하게 훈련된 명마였다. 
마여룡은 다가가 말의 고삐를 풀고 말의 목을 가볍게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
[자, 가거라!]
백마는 나직이 울더니 종종걸음으로 골짜기 밖으로 달려나갔다.
마여룡은 몸을 돌리며 풍초범을 향하여 입을 열었다.
[마지막으로 드릴 말씀이 한 마디 있습니다.]
풍초범이 입을 열었다.
[말해보게.]
마여룡은 차갑게 말했다.
[당신들은 모두 돼지다!]
이 말이 떨어지면서 그의 몸은 화살처럼 쏘아져나가 허공으로 떠올라 달려가고 있는 그의 백마 등뒤로 올라타는 것이었다. 
이 한 필의 말은 고르고 고른 준마였다.
마여룡이 등에 올라타자마자 길게 울더니 마치 용처럼 눈덮힌 골짜기 밖으로 달려나가는 것이었다. 
마여룡을 태운 백마는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졌다.
풍초범과 팽천패는 마여룡이 건네준 물건을 땅바닥에 내던지며 발을 굴렀다.
[우리들은 정말 돼지처럼 일을 했소.]
날은 이미 저물어 깜깜했고 바람은 더욱 차가왔다. 
차가운 바람은 칼날처럼 얼굴을 할퀴며 지나가고 있었다. 
마여룡의 가슴속에는 한 덩이의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다.
분노의 불길이었다. 
그는 자기가 절대로 흉수(凶手)가 아니며 절대로 술에 독을 타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는 자기의 결백을 주장할 수가 없었다. 
그는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죽음에 대해서 그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러나 흉수를 찾아 죽이고 자기의 결백을 밝히기 전에는 헛되이 죽고 싶지가 앖았다. 여기서 헛된이 죽는다면 그의 억울함은 영원히 풀 길이 없는 것이다.
진정한 흉수는 과연 누구일까?
과연 누가 술 속에 독을 넣었으며 천살의 자객을 매수했으며 사람들을 죽이게 했을까?
마여룡은 조금의 단서도 잡을 수가 없었다. 
그 흉수가 누구인지 모르지만 분명 음침하고 악독한 사람일 것이며 주도면밀한 사람일 것이다. 
마여룡은 과연 흉수가 누구인지 밝혀낼 수 있을 것인가?
현재 그는 단 한 점의 단서도 잡지 못하고 있었으며 어디서부터 착수를 할 것인지도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가 알고 있는 것은 다만 그 흉수를 밝혀내기 전까지는 그가 흉수의 누명을 쓴다는 사실뿐이었다.
만약 풍초범, 팽천패, 소림사의 절대사가 한 사람을 흉수로 지목한다면, 강호의 모든 사람들은 그 말을 믿을 것이며, 그가 어디로 가든 모든 사람들은 그를 죽이려고 할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 흉수는 갈곳이 없고 갈길이 없는 것이다. 
만약 다른 사람이 이런 경우에 처했다면 어쩌면 화가 나서 죽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그는 개의치 않았다. 
그는 믿고 있었다.
하늘과 땅은 넓고 어딘가에는 그가 몸을 숨길 곳이 있을 것이며 하늘의 그물은 엉성하지만 흉수를 언젠가는 옭아맬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손은 다른 사람에 비해서 더욱 힘이 있고 그의 생각은 다른 사람들보다 영활했으며 그의 귀와 눈은 다른 사람보다 더 영리하다고 그는 믿고 싶었다.
바로 이때 그는 미약한 신음소리를 들었다. 
눈덮힌 벌판을 쏜살같이 달려가면서도 그는 소리가 나는 곳을 향하여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그는 한 묶음의 머리카락을 보았다.
날은 이미 저물었고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칠흑같은 머리카락이 하얗게 덮힌 눈벌판 위에 흩어져 있었다.
그 사람은 온몸을 땅속에 묻고 다만 얼굴과 머리카락만 눈덮힌 벌판 위로 내놓고 있었다. 
그 사람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고 느끼는 순간 마여룡의 백마는 어느새 그곳을 지나치고 있었다. 
마여룡은 멈출 수가 없었다
그는 지금 도망치고 있는 중이었다.
절대사 일행은 지금 그를 추격하고 있었다.
이번에 그가 붙잡히기만 한다면 그는 다시는 도망칠 기회를 얻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그는 절대로 처음 보는 사람이 땅속에 묻혀 얼어죽는 것을 상관할 겨를이 없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아직 죽지 않고 신음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마여룡은 갑자기 말머리를 돌려 그 사람에게 다가갔다.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보고서 구하지 않는다면 그 어찌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마여룡은 오만하고 오만한 사람이었다. 매우 오만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기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싶지 않았다. 
칠흑같은 머리카락은 얼어붙고 창백한 얼굴에는 혈색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 사람은 기적처럼 살아 있었다.
한 사람이 눈덮힌 땅속에 묻혀 있을 때 과연 얼마나 오랫동안 죽지 않고 살아 남을 수 있을까. 
일설에 의하면 여인이 추위를 참는 능력은 남자보다 뛰어나다고 한다. 
이 사람은 여자이고 나이가 젊었으며 못생겼다.
사실상 이 여인은 놀라울 정도로 추악했다.
그녀의 코는 삐뚤어져 있었고 두터운 입술은 흡사 돼지의 주둥이 갔았다. 게다가 한 쌍의 눈동자는 쥐새끼와 같이 작았으며 얼굴은 시체처럼 창백했다. 
그녀는 아직 죽지 않았지만 살아나기는 힘들것 같았다.
한 잔의 술과 한 대접의 뜨거운 물, 한 벌의 가죽옷, 매우 실력있는 의원, 그것들이 있다면 그녀의 생명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그 아무것도 없었다. 
마여룡이 입고있는 옷음 자기자신의 추위를 참아내기도 힘들 정도였다.
그러나 그는 그를 땅위로 꺼내 말 위에 태우고 자기의 옷을 벗어 그녀의 몸을 덮어주고 그녀를 꼭 껴안아 자기의 체온으로 그녀를 녹여주려고 했다.
그리고는 말을 달렸다.
남자들의 가장 큰 비애는 우둔함이고 여자들의 가장 큰 비애는 못생긴 것이라고 했다. 
못생긴 여자들은 대부분 가련한 여인들인 것이다.
그러나 마여룡은 그녀가 못생겼다고 해서 버리지 않았고 도리어 그녀를 동정했다. 
숨이 붙어있는 한 절대로 그녀가 얼어죽도록 할 수도 없었고 야수의 밥이 되도록 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그녀를 데리고 어디로 가야할지 알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 그 자신조차도 마땅히 가야할 곳이 없었던 것이다.
날은 이미 완전히 어두워졌다. 추운 겨울밤은 일찍 찾아올 뿐만 아니라 아주 긴 법이다.


4. 긴 밤(長夜)


밤. 
기나긴 겨울 밤이 시작된 것이다.
마여룡은 메마른 나무가지를 주워서 다 허물어져가는 폐묘(廢廟) 한 모퉁이의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곳에 한 무더기의 모닥불을 피웠다.
불빛은 적을 유인해 올 수도 있었고 도망치는 사람은 절대로 불을 피워서는 안 된다. 
얼어죽는 한이 있어도 불은 피울 수는 없었다.
그러나 이 여인은 한 무더기의 모닥불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그 자신은 얼어죽을 수가 있었다. 
그러나 이 알지 못하는 여자가 자기 때문에 얼어죽도록 방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차라리 얼어죽을지언정 그런 부끄러운 짓은 할 수 없었다.
모닥불은 활활 타올랐다. 그는 그 여인을 가장 따듯하고 가장 건조한 곳으로 옮겨다 놓았다. 그리고 그 옆에서 휴식을 취했다. 따듯한 불기운을 받으며 그는 자기도 모르게 스르르 잠이 들었다. 
막 잠이 든 순간 뾰족한 음성이 들려왔다.
[당신은 누구죠?]
그 여인이 뜻밖에도 정신을 차린 것이었다.
그녀는 비단 몹시 추악하게 생겼을 뿐만 아니라 음성조차도 듣기 거북할 정도로 뾰족했다.
마여룡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그 여자를 살펴보았다. 그 여자가 움직일 수 있는지 살아날 수 있는지 눈여겨 본 것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 여인은 갑자기 몸을 일으키더니 모닥불 가에서 한 토막의 메마른 나뭇가지를 쳐들고서 큰 소리로 외치는 것이었다.
[당신이 감히 내 곁으로 다가온다면 나는 당신을 때려 죽이고 말겠어요!]
그는 자기의 목숨을 돌보지 않고 그녀의 생명을 구해주었는데 이 추악하기 이를 데 없는 여인은 마여룡이 그녀를 강간이라도 할까 두렵다는듯이 과잉반응을 보이는 것이었다.
마여룡은 어이가 없어 아무 말도 못하고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여자는 손에 그 메마른 나무가지를 단단히 움켜쥐고 쥐새끼같은 눈초리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마여룡은 다시 눈을 감고 그녀를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 여자는 다시 날카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내가 어쩌다가 이곳까지 오게 되었나요?]
마여룡은 여전히 대답하지 않았다.
그 여자는 곰곰히 생각을 해보더니 비로소 약간 부드러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나는 방금전에 눈덮힌 땅바닥에 파묻혀 있었던 것 같은데 혹시 당신이 구해주었는가요?]
마여룡은 대답했다.
[그렇소.]
뜻밖에도 그 여자는 다시 외쳤다.
[당신이 나를 구할 생각이었다면 어째서 나를 데리고 성 안으로 들어가 의원에게 보이지 않는 거예요? 어째서 나를 이렇게 인적이 드문 사당 안으로 끌고 들어온 것인가요?]
그녀의 음성은 갈수록 뾰족해졌다.
[당신같은 사람은 나는 많이 보아왔어요. 당신은 틀림없이 나쁜 마음을 품고 있을 거예요.]
마여룡은 하마터면 이렇게 말할뻔 했다.
[당신은 안심하시오. 나는 당신을 강간할 리가 없소. 당신처럼 생긴 여자에게 나는 조금도 흥미가 없단 말이오.]
그러나 그는 그렇게 말할 수가 없었다. 이 여자의 얼굴은 불빛을 받아 더욱 추악하게 보였는데 그는 차마 그녀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는 단지 부드러운 말로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내가 당신을 데리고 의원에게 가지 않은 것은 나에게 한 푼의 돈도 없었기 때문이오.]
그 여인은 냉소하며 말했다.
[무슨 남자가 이 모양이야? 어찌 한 푼도 없단 말이에요? 당신은 틀림없이 놀고 먹는 것만 좋아하고 일하기는 싫어하는 사람일 거예요.]
마여룡은 그녀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여인은 여전히 그를 가만히 놔두려고 하지 않았다.
계속 욕을 해대며 그칠 줄 모르는 것이 아닌가.
마여룡은 몸을 일으키며 냉랭히 입을 열었다.
[이곳에는 마른 나뭇가지들이 있으니 오늘 밤은 충분히 모닥불을 피울 수 있을 것이오. 내일 날이 밝으면 아마 어떤 사람들이 이곳으로 찾아올 것이오.]
그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떠나기로 결정했다.
그러자 그녀는 뾰족한 음성으로 부르짖었다.
[아니 뭐라구요? 가겠다구요? 설마하니 당신은 나같이 연약하고 외로운 여자를 이곳에 남겨두고 상관하지 않겠다는 말인가요? 당신은 그러고도 남자라고 할 수 있었요?]
그녀의 모습은 사실 연약한 여자라고 보기에는 어패가 있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녀는 확실히 한 명의 여자였다.
그녀는 냉소하며 말했다.
[당신은 혹시 나의 원수를 두려워하나요? 그렇다면 빨리 도망치는 게 제일 좋을 거예요.]
마여룡은 참지 못하고 물었다.
[당신에게 원수가 있다는 말이오?]
그 여인은 대답했다.
[나에게 원수가 없는 줄 알았나요? 설마하니 나 자신이 나를 땅 속에 파묻은 줄 알았나요? 내가 머리가 어떻게 된 줄 아세요?]
마여룡은 다시 천천히 주저앉았다.
그는 그녀에게 원수가 누구인지 묻지 않았다. 그는 단지 지금은 혼자 떠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을 뿐이었다.
한 명의 여자가 눈덮힌 벌판에서 원수에 의해서 땅 속에 파묻혔고 추적을 받고 있는데 사내대장부가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이상 어떻게 나 몰라라 할 수 있단 말인가?
그 여자는 다시 물었다.
[당신은 왜 가지 않는가요?]
마여룡은 대답했다.
[나는 가지 않겠소.]
그 여자는 의아하다는 표정이 되었다.
[당신이 가지 않겠다구요? 왜 가지 않는 거죠? 혹시 지금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겠죠?]
마여룡은 쓴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그 여인은 뾰족한 음성으로 외쳤다.
[당신은 뭐가 좋아서 웃는 거예요? 도대체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거죠? 어서 말해 보세요.]
마여룡은 무슨 말도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파묘 밖에서 인기척이, 사람의 말소리가 들렸기 때문이었다. 
[그는 말할 수 없을걸. 이 분 백마공자께서 마음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무도 알 수가 없어.]
흔들리는 불빛 아래 한 사람이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그는 바로 팽천패였다.
팽천패는 그 여우가죽으로 된 옷을 들고 있었다. 
왼손으로 그 옷을 들고 오른손에는 칼을 들고 있었다. 
칼은 이미 칼집에서 뽑혀져 있었다. 그 유명한 오호단문도(五虎斷門刀)였다. 
애석하게도 이 여자는 그가 어떤 사람이며 그 칼이 어떤 칼인지 알지 못했다. 
그녀는 쥐눈깔같은 눈동자로 팽천패를 노려보며 큰 소리로 물었다.
[당신은 누구예요?]
팽천패는 대답했다.
[나는 한 마리의 돼지다.]
그 여인은 말했다.
[당신이 퉁퉁하게 살이 찐 것은 사실이에요. 그러나 돼지보다는 말랐군요.]
팽천패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나는 돼지보다 멍청하지. 그렇기 때문에 이 여우가죽으로 만든 옷을 받았던 것이지.]
그 여인은 뜻밖이란 듯이 물었다.
[이 옷이 그의 옷인가요?]
팽천패는 대답했다.
[그렇다.]
그 여인은 물었다.
[그는 어째서 이렇게 좋은 옷을 당신에게 주었나요?]
팽천패는 대답했다.
[물건을 나의 손에 쥐어주기 위함이었지.]
그 여인은 다시 물었다.
[당신이 손으로 이것을 잡은 것인가요, 아니면 이 옷이 당신의 손에 잡힌 것인가요?]
팽천패는 대답했다.
[모두 마찬가지야.]
그 여인은 물었다.
[어째서 마찬가지예요?]
팽천패는 대답했다.
[이 옷이 내 손에 들어오든 아니면 내 손이 이 옷을 만지든 간에, 어쨌든 간에 나의 두 손이 이 옷을 잡고 있었으니 칼을 뽑을 수가 없었지. 그리고 표창을 던질 수도 없었지.]
그의 비호추혼표(飛虎追魂標)는 그의 오호단문도와 마찬가지로 무섭기 짝이 없는 무기였다. 
그 여인은 여전히 알아듣지 못했다.
[그는 어째서 당신이 칼을 뽑지 못하게 하고 표창을 던지지 못하게 하였나요?]
팽천패는 대답했다.
[왜냐하면 그는 도망쳐야 했기 때문이지.]
그 여인은 다시 물었다.
[그는 어째서 도망쳐야 했나요? 혹시 그는 당신에게 빚진 것이 있나요? 그는 무엇을 빚졌나요?]
팽천패는 쓴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자기가 이 여자와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현명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었다. 
그는 즉시 얼굴을 딱딱히 굳히며 냉랭히 입을 열었다.
[마공자, 이번에 자네는 도망치기 힘들 거야. 이번에 우리 세 사람은 삼면을 포위하고 있네. 그리고 지금 나 혼자 자네에게 찾아 왔는데, 나를 죽여 입을 막고 싶으면 그렇게 해도 무방하네.]
마여룡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뜻밖에도 그 여자가 팽천패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는 당신을 죽이지 않을 거예요. 그는 좋은 사람이에요.]
팽천패는 물었다.
[그가 좋은 사람이라고?]
그 여인은 대답했다.
[그는 당연히 좋은 사람이죠. 나는 지금까지 이처럼 좋은 사람을 본 적이 없어요. 당신이 그를 못살게 군다면 나를 당신을 때려 죽이고 말겠어요.]
팽천패는 냉소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 여자가 갑자기 팽천패에게 달려들어 그를 얼싸 안더니 큰 소리로 외치는 것이 아닌가.
[내가 당신을 대신해서 이 사람을 꽉 붙잡고 있을 테니 당신은 빨리 도망가세요.]
그러나 마여룡은 도망치지 않았다.
그녀는 팽천패를 붙잡을 수 없었다. 
팽천패가 한 팔을 떨치자 그녀는 땅바닥에 나뒹굴고 말았다. 
팽천패는 호통을 쳤다.
[너는 너무 말이 많아. 잠시 누워있는 게 좋겠다.]
그는 가볍게 발길질을 하더니 그 여자의 혈도를 찍어 버렸다. 그리고 손에 들고 있던 여우가죽 옷을 그 여자의 몸 위에 덮어 주었다.
마여룡은 팽천패의 손에 들린 칼을 주시하며 그가 손을 쓰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뜻밖에도 팽천패는 칼을 칼집 안에 넣더니 두 손을 모닥불에 쬐는 것이었다.
그는 마여룡이 도망치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다. 손을 쓰기 전에 먼저 두 손을 녹이려고 하는 것이었다. 
이 강호에서 잔뼈가 굵은 늙은이는 정말 침착했다. 그 노련함에 마여룡은 탄복을 금치 못했다. 
그런데 마여룡은 뜻밖에도 매우 침착한 편이었으며 초조하게 굴지도 않았으며 먼저 손을 쓰지도 않았다. 
불길은 점점 약해졌다. 
팽천패는 몇 토막의 마른 나뭇가지를 모닥불에 집어넣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도 나와 너의 셋째 삼촌이 친구지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 그가 살아있을 때 혹시 너에게 나에 관한 일을 들려주지 않더냐?]
마여룡은 말했다.
[글쎄요.]
팽천패는 말했다.
[그는 아마 이야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너는 나와 그가 어떻게 친구로 사귀었는지 아느냐?]
마여룡은 대답했다.
[모릅니다.]
팽천패는 다시 말했다.
[우리들은 싸우고 나서 친구가 되었지.]
그는 빙그레 웃으며 말을 이었다.
[너의 셋째 삼촌은 매우 교만한 사람이다. 그러니 괜히 너의 앞에서 그 일을 들먹이지 않았을 것이다.］
마여룡은 물었다.
[무슨 일이었는데요?]
팽천패는 말했다.
[나의 총명과 재주는 너의 셋째 삼촌보다 못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는 너무 여러가지에 흥미를 가진 것이 흠이었지. 금기서화(琴棋書畵)에 조예가 깊었으며 따라서 검술을 연마하는 시간은 비교적 짧았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마여룡도 들은 적이 있었다. 
그의 셋째 삼촌은 비단 유명한 검객이었을 뿐 아니라 유명한 화화공자(花花公子:바람둥이)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여러가지 면에서 나보다 뛰어났지만 무공 방면에 있어서는 오히려 나보다 못했다. 나와 그는 일찍이 세 번 싸웠는데 싸울 때마다 내가 일백 초 이내에 그를 격패시켰지.]
그는 마여룡이 무슨 말을 하기 전에 다시 입을 열었다.
[너의 검법은 너의 셋째 삼촌에 비하면 어떠냐?]
마여룡은 한참 생각해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의 검법은 그보다 못합니다.]
팽천패는 말했다. 
[나도 너의 검법이 그보다 못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므로 네 손에 검이 들려져 있다고 할지라도 나는 일백 초 이내에 너를 죽일 수가 있다.]
그는 담담히 말을 이었다.
[그런데 너는 지금 맨손이 아니냐. 기껏해야 육십 초 내로 나는 너를 이길 수 있을 것이다.]
마여룡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팽천패는 다시 말했다.
[나의 도법으로 말할 것 같으면 한 칼질 한 칼질이 모두 살기를 띠고 있다. 초식을 펼칠 때마다 온 힘을 다 하기 때문에 비록 내 마음은 사람을 죽이고 싶지 않다고 하더라도 칼이 내려쳐지는 순간 그 누구도 생명을 건질 수가 없는 것이다. 심지어 나 자신조차도 제어할 수가 없으니까.]
그는 탄식하며 말을 이었다.
[그러므로 나의 칼 아래서 살아난 사람은 극히 적다.]
마여룡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팽천패는 다시 말을 이었다.
[너 역시 너의 셋째 삼촌처럼 총명하고 오만한 사람이다. 그러나 나는 네가 너의 셋째 삼촌처럼 일찍 죽기를 바라지 않는다.]
마여룡은 물었다.
[당신은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입니까?]
팽천패는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나는 갑자기 이번 사건이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마여룡은 물었다.
[무엇이 이상합니까?]
그는 대답했다.
[너는 내가 어떻게 이곳까지 찾아왔는지 아느냐?]
마여룡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말했다.
[그것은 네 자신이 나를 부른 것이다. 백마가 눈 위에 발굽자국을 남겼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보고 여기까지 추적해온 것이다.]
마여룡은 그제서야 그 간단한 이치를 깨달았다.
팽천패는 다시 말을 이었다.
[네가 능히 그와 같이 주도면밀한 계획으로 사람을 다쳤는데 어떻게 이렇게 허술하게 도망을 쳤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더군다나 도망치는 사람이 이렇게 못생긴 나쁜 여자를 살려주기 위해서 제대로 도망을 치지 못했다니, 정말 이상한 일이 아니냐.]
그는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내가 돼지처럼 미련한 놈이긴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단 말이야. 그렇기 때문에....]
마여룡은 물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다는 말입니까?]
팽천패는 물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네가 나를 따라가기를 바란다. 나와 손을 쓸 필요가 없다.]
마여룡은 담담히 말했다.
[당신은 나를 데리고 어디로 가려고 합니까?]
팽천패는 대답했다.
[잠시 나는 너를 소림사로 데려갈 생각이다. 삼 개월 내로 나는 너를 대신하여 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겠다. 그리하여 너의 누명을 씻어주겠다.]
마여룡은 수긍도 하지 않고 거절도 하지 않았다.
팽천패는 다시 말을 이었다.
[현재 너는 모든 사람의 표적이 되고 있다. 네가 어디로 가든 모든 사람들은 너를 놓아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너는 다만 도망을 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말은 사실이었다. 
팽천패는 천천히 그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그러니 지금 너는 반드시 나를 완전히 신뢰해야 한다. 지금 너를 도와 줄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그는 손을 내밀었다. 
이 세상에서 마여룡을 도와줄 수 있는 유일한 손이었다. 
마여룡은 마침내 두 손으로 그의 손을 움켜잡으며 감격에 찬 어조로 입을 열었다.
[나는 당신을 믿습니다. 그러나....]
그는 더 말을 잇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 순간 팽천패가 갑자기 발길질로 마여룡의 환도혈(環跳穴)을 걷어찼기 때문이었다. 
팽천패는 번개같이 마여룡의 맥문(脈門)을 찔러버렸다. 
마여룡은 손발을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팽천패는 껄껄 웃었다.
[이제야 너는 알았겠지? 누가 진짜 돼지같이 미련한 놈인지.] 
그가 가볍게 밀쳐버리자 털썩, 소리와 함께 마여룡은 땅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팽천패는 쓰윽, 하는 소리와 함께 오호단문도를 뽑아들었다. 
팽천패는 확실히 당금 무림에서 소꼽히는 도법의 명가였다.
칼은 뽑는 동작은 깨끗하고 우아했다. 그가 사람을 죽이는 자세도 필시 그렇게 우아할 것이다. 
칼을 뽑는 것은 통상적으로 사람을 죽이기 위함이었다.
마여룡을 진짜 흉수로 알고 있다면 왜 범행을 저질렀는지 알아보는 것이 순서일 텐데, 팽천패는 그것을 물어보지도 않고 칼을 뽑아든 것이었다.
마여룡은 그러나 분명히 알았다. 
팽천패가 칼을 뽑아든 것을 보고 그제서야 알았던 것이다. 
흉수는 바로 팽천패인 것이다. 모든 음모와 행동은 어둠 속에서 그가 주재한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는 천살의 자객인 흑의인을 한 마디 말할 틈도 주지 않고 단칼에 죽여버렸던 것이다.
따라서 그는 지금 마여룡에게 범행을 물을 필요가 없었다. 
그는 흑의인을 죽인 수법으로 마여룡의 입을 막아버리면 그만인 것이다. 
애석하게도 마여룡은 너무 늦게 알았다. 
칼빛은 마치 눈처럼 허공에 번뜩이는데 오호단문도는 곧장 마여룡의 목덜미를 내리쳤다. 
그 한 칼이 마여룡의 목에 떨어지는 순간, 팽천패는 갑자기 펄쩍 뛰어 뒤로 물러서는 것이었다. 
얼굴색은 참담하게 변하여 외쳤다.
[누구냐?]
혈도를 찍혀 쓰러져 있는 두 사람 외에 이 폐묘 안에는 다른 사람은 찾을 수가 없었다.
설마하니 그럼 귀신이 왔다는 말인가. 
모닥불이 너울너울 춤추는 가운데 팽천패의 얼굴색은 울그락불그락 변하고 있었다.
그는 돌연 쏜살같이 달려나오더니 재차 칼을 들어 마여룡의 목덜미를 내리쳤다. 그러나 그는 이번에도 귀신을 본 것인양 갑자기 뒤로 물어나더니 비명을 지르며 파묘 밖으로 달려나가는 것이었다.
파묘 밖은 캄캄한 어둠이었다. 모닥불을 활활 타오르고 차가운 겨울바람은 소리를 내며 불어오는데, 갑자기 폐묘 밖에서 비명 소리가 울려 펴졌다. 
짧고 날카롭고 공포와 경악으로 가득찬 비명 소리였다.
마여룡은 그 비명이 팽천패가 지른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그는 달려가 살펴보고 싶었으나 그의 두 팔과 두 다리는 이미 팽천패에게 혈도를 찍혀 움직일 수가 없었다.
팽천패는 도법으로 이름을 날린 사람인데 점혈(點穴)을 하는 수법 역시 다른 사람보다 못하지 않았다. 
그럴 때 만약 어떤 사람이 칼을 들고 폐묘 안으로 들어왔다면 한 번 내리치는 것으로 간단히 마여룡의 목을 잘라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다행히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다. 
사람도 들어오지 않았고 귀신도 들어오지 않았다.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인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그 무엇도 들려오지 않았다. 
이 천지간에는 다만 두 사람의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사람만이 점차 꺼져가는 모닥불 곁에 쓰러져 있을 뿐이었다. 
마여룡은 언제라도 사람이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설사 팽천패가 다시 들어오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풍초범이나 절대사, 구봉성같은 사람이 언제라도 들어올 수가 있었다. 
누가 들어오든 간에 마여룡을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길고 긴 겨울밤은 아직 다 끝나지 않았다.
앞으로 어떤 일이 발생할 것인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겨울밤은 정말 유난히 길고 길었다.


5. 대완(大婉)

마른 나뭇가지는 빨리 타올랐고 불꽃은 점점 사그러들었다.
마여룡은 점점 냉정을 되찾아갔다.
몸이 점점 식어갔다. 
모닥불은 꺼졌고 그의 몸은 점점 얼어들고 있었다. 혈도가 찍힌 이상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러야 비로소 혈도가 풀릴 것이다.
지금은 밤 가운데 가장 추운 시간은 아니었다. 이대로 시간이 흐른다면 산채로 얼어죽게 될 것이다.
그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사람이 이렇게 얼어 죽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사실 인생이란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장래의 일은 그 누구도 예측할 수가 없는 것이다.
조물주가 사람을 우롱하는데 그 누구도 자기의 예고된 운명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이다.
마여룡은 마음 속으로 길게 탄식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문득 자기가 결코 자기가 생각해 왔던 것처럼 그렇게 오만하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 여자가 여우가죽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마여룡의 기혈(氣穴)이 나직 유통되기 전에 그 여자의 혈도가 오히려 먼저 풀린 것이었다. 
그 여자는 쥐눈깔을 데굴데굴 굴리며 사방을 두리번거리더니 길게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그런데 그 뚱보는 어디로 간 건가요? 당신은 여전히 살아있군요.]
이것은 확실히 의외의 사건이었다. 
그 누구도 팽천패가 화살 맞은 쥐처럼 깜짝 놀라 마여룡을 두고 도망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여자는 부시시 일어나더니 마여룡의 여우가죽 옷을 입고 웃었다.
[이 옷의 모피는 정말 좋네요. 가볍고 따듯하고 부드럽네요. 내가 입으니까 딱 맞는군요.]
마여룡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그러나 그 옷은 애석하게도 나의 것이오.]
그 여자는 고개를 흔들었다.
[이 옷은 당신의 것이 아니예요. 지금은 이미 당신의 옷이 아니에요.]
마여룡은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요?]
그 여자는 대답했다.
[왜냐하면 당신은 이미 이 옷을 그 뚱보에게 주었고 그 뚱보는 다시 나에게 주었단 말이에요.]
그 여자는 추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 옷은 나의 것이 되었어요.]
마여룡은 더 다투고 싶지 않았다. 
그는 원래 이런 하찮은 일로 남과 다투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사실 너무나 추워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당신은 불을 피울 수가 있지 않소?]
그 여인은 물었다.
[불을 왜 피워요? 나는 춥지 않은데요.]
마여룡은 쓴 웃음을 지었다.
[당신은 춥지 않을지 모르지만 나는 춥소.]
그 여인은 대답했다.
[내가 춥지 않은데 당신이 추울 리가 있어요?]
그 여인은 다시 충고하기 시작했다. 
[나이가 젊은 사람은 고통을 참는 인내심을 배워야 해요. 조금 춥다고 해서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예요. 당신은 나이도 젊은데 이런 추위도 견디지 못하다니, 장래 어떻게 큰 일을 할 수가 있겠어요?]
마여룡은 입을 다물고 더 말하지 않았다.
그는 끝내 이 여자와 도리를 논하는 것이 힘을 소비할 뿐 아니라 우매하기 그지없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한 명의 여자가 이와 같은 여자를 만났을 때 가장 좋은 방법은 눈과 입을 꽉 다무는 것이리라.
이 여자는 뜻밖에도 그를 내버려 두고 중얼거렸다.
[날이 언제 밝을지 모르겠구나. 내가 나가서 살펴봐야지.]
이 여자는 중얼거리더니 밖으로 걸어나갔다. 
막 밖으로 나간 순간 그녀는 큰 소리로 부르짖으며 뛰어들어왔다. 마치 엉덩이에 화살을 맞은 것처럼... 
마여룡은 그녀를 아랑곳하지 않으려고 했었다. 그러나 이 여자는 비록 혐오감이 들기는 하지만 그에게 해를 끼친 것은 없었다. 
그가 좋은 사람이라고 변명해 주었을 뿐 아니라 목숨을 걸고 팽천패를 붙잡아 부둥켜안고 그가 도망치도록 기회를 마련해 주었던 것이다.
사람이란 모름지기 은원이 분명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마여룡은 그녀의 일에 무관심할 수는 없었다.
[무슨 일이오?]
그 여인은 놀라운 어조로 대답했다.
[밖에.... 밖에 사람이 있어요.]
하늘과 땅이 얼어붙을 정도로 추운 밤에 이 황량하고 궁벽한 파묘 밖에 어떻게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마여룡은 자기도 모르게 물었다.
[누구요?]
그 여인은 대답했다.
[그 뚱보예요.]
마여룡은 안색이 변했다.
[그는 아직도 가지 않았단 말이오?]
그 여인은 대답했다.
[가지 않았어요.]
가지 않았다면 어째서 들어오지 않는 것일까. 
마여룡은 다시 물었다.
[그는 밖에서 무엇을 하고 있소?]
그 여인은 대답했다.
[그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내가 어떻게 알겠어요? 그는 땅바닥에 누워 있어요. 잠을 자는 것 같아요.]
그 여자는 뜻밖에도 이상하게 해석을 달았다.
[뚱보들은 언제나 잠자는 것을 좋아하잖아요.]
아무리 뚱뚱하고 잠자기를 즐기는 사람일지라도 눈덮힌 땅 위에서 잠을 청할 리는 없을 것이다.
마여룡은 말했다.
[당신이 잘못 봤을 것이오.]
그 여인은 대답했다.
[나는 절대로 잘못보지 않았어요. 나의 눈동자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시력도 상당히 좋은 편이에요.]
그 여인의 눈동자는 사실 보기 좋은 것은 아니었다. 쥐눈깔이 무엇이 보기 좋단 말인가.
마여룡은 말했다.
[당신은 다시 나가서 살펴볼 수 없소?]
그 여인은 말했다.
[당신은 왜 스스로 나가서 살펴보지 않아요?]
마여룡은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 여자를 그를 바라보더니 홀연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 이제 알았어요. 당신도 분명히 나처럼 그 뚱보에게 걷어채여서 몸을 움직일 수가 없는 모양이군요.]
마여룡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여인은 입을 열었다.
[좋아요. 내가 당신 대신 나가서 살펴보도록 하지요. 어쨌거나 당신은 나에게 잘 대해 주었으니까요.]
그런데 그 여자는 밖으로 나가자마자 또다시 큰 소리로 외치며 뛰어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조금 전보다 더 놀란 표정이었다.
마여룡은 물었다.
[그가 밖에 없소?]
그 여인은 숨을 헐떡거리며 대답했다.
[그는 여전히 있어요. 그는 영원히 떠나지 못할 거예요.]
마여룡은 물었다.
[무엇 때문에?]
그 여인은 대답했다.
[그는 이미 죽었어요.]
팽천패는 어째서 죽었을까?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는 생생하게 살아있었고 신체는 건강했으며 아무 병도 없었다. 보기에 누구보다도 건강했던 것이다.
마여룡은 물었다.
[그는 정말 죽었소?]
그 여인은 대답했다.
[절대 틀림없는 사실이예요. 머리 끝서부터 발 끝까지 다 죽었어요. 깨끗이 죽었다구요.]
마여룡은 말했다.]
[그가 어째서 갑자기 죽었는지 당신은 살펴보았소?]
그 여자는 대답했다.
[나는 당연히 살펴보았어요.]
그 여자는 몸을 벌벌 떨면서 말을 이었다.
[그 어떤 사람이라도 모가지가 칼에 맞아 잘라진다면 절대로 죽지 않고는 못 배길 거예요.]
마여룡은 더욱 놀랐다. 
팽천패는 당금 무림에서 첫째 둘째로 손꼽히는 도법의 고수였다. 그의 모가지가 어떻게 한 칼에 잘려나갈 수가 있을까. 
도대체 누가 그를 죽였단 말인가.
이 세상에 그의 도법보다도 더욱 빠른 것이 있었단 말인가.
그는 왜 팽천패를 한 칼에 죽여버리고 말았을까.
그렇다면 진정한 흉수는 팽천패가 아닐 수도 있다.
음모를 꾸민 사람은 다른 사람일 것이다.
팽천패조차도 줄곧 그 사람의 조종을 받아왔을 뿐인지도 모른다.
지금 그 사람은 팽천패를 죽여 입을 막은 것이다. 
그 사람은 누굴까.
그가 이미 팽천패를 죽였는데 어째서 마여룡을 죽여 입을 봉하지 않았을까.
이 문제는 그 사람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대답할 수 없는 문제였다. 
마여룡은 끝내 이 음모가 그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무시무시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 여인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안 되겠어요.]
마여룡은 물었다.
[뭐가 안 된다는 것이오?]
그 여인은 대답했다.
[우리들은 절대로 더 이상 이곳에서 머물러서는 안 되겠어요.]
마여룡도 동의했다. 
그들은 확실히 이곳에 더 머물러서는 아니되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 여인은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일개 여인에 불과해요]
마여룡은 말했다.
[나도 알고 있소]
그 여인은 말했다.
[영웅호걸들은 모두 남자고 군자 역시 모두 남자예요. 그렇기 때문에....]
마여룡은 물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다는 것이오?]
그 여인은 대답했다.
[나는 군자도 아니고 무슨 영웅호걸도 아녜요.]
그 여자는 한숨을 내쉬며 다시 말을 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은 비록 갈 수 없지만 나는 가야겠어요.]
그 여자를 위해서 마여룡은 도망가던 것을 멈추고 모닥불을 피워 적을 끌어들이기까지 했는데 지금 그 여자는 갑자기 혼자 가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마여룡은 그러나 간단히 대꾸했다.
[좋소. 당신은 가보시오.]
그 여자는 다시 말했다.
[그러나 걸어가기 싫어요. 나는 반드시 당신의 말을 타고 갈 거예요.]
마여룡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내 말을 타고 가시오.]
그 여자는 그제서야 이 남자에게 조금 이상한 면이 있다는 것을 느낀 모양이었다. 그녀도 어쨌거나 사람이었다. 
그녀는 한숨을 내쉬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당신은 정말 좋은 사람이군요. 그러나 애석하게도....]
마여룡은 물었다.
[무엇이 애석하게도 어떻다는 것이오?]
그 여자는 대답했다.
[애석하게도 마음씨가 좋은 사람은 명이 길지가 못하죠.]
그런 말을 남기더니 정말 혼자 그녀는 폐묘 밖으로 걸어나가는 것이었다.
마여룡의 여우가죽 옷을 입고 마여룡의 백마를 타고 떠난 것이었다.
모닥불은 이미 꺼졌고 그녀는 그를 위하여 불을 피워주지도 않았다.
그녀의 행동은 엉뚱하고 매정해 보였다.
추운 밤은 적막하기만 하고 말발굽 소리는 점점 멀어져 갔다.
바람소리에 섞여 홀연 일진의 경쾌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두 사람의 발걸음 소리였다. 
그 발걸음 소리는 파묘 밖에서 멈췄다.
[여기 한 사람이 죽어 있군.]
한 사람이 놀라 외쳤다.
[죽은 사람은 팽천패다.]
[구할 수 있겠습니까?]
[한 칼에 목이 잘렸으니 신선이 온다고 해도 살려낼 수 없네.]
그 음성을 듣는 순간 마여룡의 마음은 납덩이처럼 무거워졌다.
그는 그 사람의 음성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바로 절대사와 풍초범의 음성이었다.
그 두 사람이 팽천패의 시체를 발견한 이상 두 사람은 절대로 그를 살려두지 않을 것이다. 
뜻밖에도 그들은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방금 질풍같이 지나간 백마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백마는 틀림없이 천마당의 백룡구(白龍駒)였소.]
그들도 백마를 탄 사람이 여우가죽 옷을 입고 있었다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단 칼에 사람을 죽이고 도망을 가다니, 이리처럼 악독한 놈이야. 빨리 쫓아가세!]
[그러나 팽천패는 어쩌구요.]
[팽천패는 여기서 기다릴 수 있을 것이네. 그러나 마여룡은 기다리지 않지. 우리 빨리 쫓아가세!]
몇 마디 말을 끝으로 발걸음 소리가 점점 멀어져갔다.
그들은 여우가죽 옷을 입고 백마를 탄 여인을 마여룡으로 착각한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파묘 안에 사람에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만약 그 여인이 가지않고 만약 파묘 안에 불꽃이 있었다면 그리고 백마가 이 부근에 있었다면 지금 상황이 어떻게 되었을까?
마여룡은 당연히 상상할 수가 있었다. 
그는 홀연 그 여자가 일을 처리하는 것이 절묘할 뿐만 아니라 공교롭고 매우 묘하다고 느꼈다. 
그는 돌연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것처럼 인정머리가 없고 야만적이고 이치를 따지지않는 여인이지만 어쩌면 그 여자가 그 어느 누구보다도 총명한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길고 상막하고 추운 밤이라고 할지라도 결국에는 날이 밝을 때가 있게 마련이다. 그 누구에게 혈도를 짚혔다고 할지라도 결국은 풀릴 때가 있는 것이다. 
날은 이미 밝았고 혈도는 저절로 풀렸다. 기혈은 잘 유통되고 있었다.
팽천패가 혈도를 짚는 수범은 무겁지가 않았다. 
그는 결코 마여룡의 혈도를 오랫동안 봉해 놓을 생각은 없었다.
왜냐하면 마여룡은 절대로 오랫동안 살아 있을 수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마여룡은 지금까지도 살아있고 팽천패 자신은 시체가 되어 꽁꽁 얼어붙은 상태로 땅바닥에 쓰러져 있는 것이었다.
그 한 번의 칼질은 그의 왼쪽 목덜미를 가르고 지나가 오른쪽 목덜미까지 갈라 버렸다.
목 뒷쪽에 있는 대혈관마저 깨끗이 잘려진 것이었다. 단 한 번 칼질로 깨끗이 사람을 죽여버린 것이었다.
팽천패는 도법으로 무림을 떨어울린 고수였지만 피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한 칼에 당했다.
도대체 이 세상에 그 어떤 사람이 팽천패같은 사람을 단 한 칼에 죽일 수 있었을까.
어쩌면 팽천패는 꿈에도 자기에게 복수를 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꿈에도 자기에게 칼질을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그의 친구였으며 아주 가까운 친구였으며 또한 신뢰하는 친구였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팽천패와 같은 고수가 속수무책으로 당했을 리가 없을 것 같았다. 
그들은 공동으로 이 사건을 계획하고 그들의 계획이 이미 성공하자 뜻밖에도 그 사람은 팽천패를 죽여 입을 봉한 것이다.
그 사람은 누구일까.
마여룡은 알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전혀 단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또 하나의 비교적 용이한 문제는 이 계획이 성공한 후에 무슨 일이 발생할 것인가였다. 무슨 결과가 발생할 것인가?
그 결과는 누구에게 가장 유리하게 될 것인가?
그 사람이 이 사건을 계획한 것은 당연히 자기에게 좋은 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계획이 성공하면 마여룡은 흉수로 몰리고 두청련과 심홍엽과 구봉성의 친척과 친구들은 모두 마여룡을 적으로 취급할 것이다. 
만약 그들이 마여룡을 잡지 못한다면 천마당을 찾을 것이다.
만약 그들이 마여룡을 죽인다면 천마당은 반드시 그들을 찾아가 복수를 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사건의 최후의 결과는 반드시 천마당과 두청련과 심홍엽, 그리고 구봉성의 세력과의 치열한 혈전으로 귀결될 것이다. 
이 네 가문의 싸움은 치열할 것이며 최후에는 양쪽 다 패망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어부지리를 얻는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하늘은 맑았다. 
눈덮힌 땅 위에는 말발굽 자국이 그림을 그린듯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추격하는 사람들은 발발굽 자국을 보고 쫓아갔을 것이다. 지금쯤 그들은 어쩌면 그녀를 따라잡았는지도 모른다. 
마여룡은 그들이 그와 같은 모양의 여인을 발견한 후에 어떤 추궁을 할 것인가를 상상해 보았다.
그는 문득 그 여자가 매우 못생기고 괴상하며 엉뚱한 면이 있지만 그러나 재미있는 점도 있다고 느꼈다.
이것은 그녀가 매우 재미있다고 첫 번째로 느낀 기분이었다.
어쨌든간에 그는 그녀로 인하여 큰 손해를 본 것은 없었다.
앞으로 어쩌면 다시 또 그녀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그녀는 동쪽으로 간 것이었다.
그는 서쪽으로 가기로 결정을 내렸다.
지금 그는 추워서 미칠 지경이었고 무척 배가 고팠다.
그는 서쪽의 매우 큰 성시(城市)에는 좋은 객잔이 있고 객잔의 방은 따듯하며 침대에는 부드러운 이불이 깔려져 있고 방 안에는 따뜻한 화로가 피워져 있다고 생각해 보았다.
객잔의 주방 안에는 언제나 맛있는 양고기와 구수한 요리들이 가득한 법이다. 
이것들이 그가 지금 가장 필요로 하는 것들이었다.
번화하고 시끄러운 도시 깔끔하게 청소된 길 어느 객잔 앞에는 점소(店小二) 가운데 한 명이 손님들을 부르고 있었다.
그러나 마여룡은 감히 집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막 문 앞에 이르렀을 때 그는 비로소 자기 몸에는 동전 한 푼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 조각의 떡을 사먹을 돈조차 지니고 있지 않았다.
문 입구에서 손님을 부르는 점소이도 이와 같은 손님이 들어가는 것은 원하지 않을 것이다. 
엄동설한에 몸에 은자 한닢 가지고 있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좋은 손님이 될 수 없는 법이었다.
몰락한 사람은 맛있는 음식과는 인연이 없다.
마여룡은 지금 난생 처음으로 금전의 소중함을 느끼고 있었다. 
손에는 돈이 없고 추위와 굶주림이 그를 괴롭혔지만 그는 가슴을 타고 성큼성큼 그 자리를 떠났다.
비록 그 자신조차도 자기가 어디로 가야할지를 알지 못했지만 그는 주저하지 않고 걸음을 내디디고 있었다. 
바로 이때 그는 한 필의 백마를 보았다.
그는 그 백마를 알고 있었다. 
그 백마 역시 그를 알고 있는 듯 나직이 울며 발굽으로 땅을 차고 있는 것이었다.
이 백마는 바로 그의 백룡구였다.
마여룡은 어떤 주루(酒樓) 아래 매어져 있었다. 
주루 이 층의 창문으로 홀연 한 사람이 머리를 내밀고 그를 향해 손짓을 하는 것이 보였다. 
이 사람은 뜻밖에도 사람으로 하여금 놀라게 하고 기막히게 하고 혹은 재미있게 만든 그 못생긴 여자였다.
그녀는 분명 동쪽으로 갔는데 어찌하여 홀연 서쪽 성에 나타난 것일까.
그 여자는 큰 소리로 불렀다.
[올라오세요. 빨리 올라오세요.]
마여룡이 잠시 머뭇거리자 그 여자는 다시 큰 소리로 외쳤다.
[당신이 올라오지 않는다면 내가 내려가서 당신을 끌고 올라와야 될 게 아니에요?]
그는 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내가 올라가겠소. 내 스스로 올라가겠소.]
주루 이 층은 따듯하고 넓었으며 구수한 요리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녀는 혼자 여덟명이 앉을 수 있는 커다란 탁자를 독차지하고 앉아서 여덟 명이 다 먹을 수 없는 많은 술과 음식을 시켜놓고 있었다. 그녀는 여전히 마여룡의 그 여우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고 있었다.
그녀는 마여룡을 환영했다.
[앉으세요, 빨리 앉으세요.]
마여룡은 앉는 수밖에 없었다.
그 여인은 다시 큰 소리로 말했다.
[먹어요, 빨리 먹어요.]
마여룡은 먹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그녀가 그를 잡아당기고 음식을 그의 입 속에 퍼 넣도록 할 수는 없었다.
그 여자는 어떤 일을 하던지간에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선택의 여지를 주지 않았다.
마여룡이 한 덩이의 양고기를 삼키는 것을 보던 그 여자는 눈에 웃음을 띠며 입을 열었다.
[당신은 이 한 그릇의 양고기죽을 모두 먹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나는 당신을 거들떠보지도 않을 거예요.]
마여룡은 정말 그 한 그릇의 양고기죽을 다 먹어치워 버렸다.
그리고 다시 두 개의 떡까지 먹어치웠다.
그 여자는 다시 커다란 대접에 술을 따라 그에게 내밀었다.
[배 부르게 먹었으면 술을 마실 차례예요. 술을 마셔요.]
이번에 마여룡은 고개를 흔들었다.
[나는 마시지 않겠소.]
그 여자는 말했다.
[설마하니, 내가 당신의 코를 잡고 입 속에 부어넣어야 되겠어요?]
마여룡은 여전히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는 이 여자가 여러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남자의 코를 잡고 입 속에 술을 부어 넣으리라고는 믿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틀렸다. 
그녀는 정말로 그의 코를 움켜잡았던 것이다. 
그녀의 얼굴은 매우 추악했는데 뜻밖에도 한 쌍의 손은 매우 아름다웠다. 
섬섬옥수라고나 할까. 섬세하면서도 부드럽고 윤이 나고 있었다. 연약하고 나긋나긋한 것이 뼈가 없는 것도 같았다.
이것은 마여룡의 그녀의 몸에서 첫번째로 발견한 보기 좋은 점이었다. 
그는 마침내 한 대접의 술을 모조리 마셔버렸다.
그는 그날 진주방에서 삼 일 동안 술을 마시고 대취한 후에 술을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았었다. 
그는 술을 마시지 않기로 결심했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결심을 했다고 할지라도 이런 처지에서, 더군다나 한 명의 여자가 여러사람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코를 잡고 술을 부어 넣으려고 하는데 결심이 흔들리지 않을 사람이 있겠는가.
그 여자는 깔깔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제야 그럴듯 하군요. 한 명의 남자가 술조차 마시지 못한데서야 말이 되겠어요? 그게 어디 남자 구실을 하겠느냔 말이에요.]
그녀는 다시 커다란 대접에 술을 따랐다.
[그러나 당신은 안심하세요. 이 술 속에는 절대로 독이 들어있지 않고 나는 절대로 당신을 독사(毒死)시킬 생각이 없으니까요.]
마여룡은 일단 술을 마시자 통쾌하게 마시기 시작했다. 
그는 본래 크게 취해보고 싶었다. 
그 누구라도 이러한 상황하에서는 크게 취해보고 싶을 것이다. 
세 대접을 마시자 취기가 올랐다. 
그는 입을 열었다.
[내가 몇 마디 물어봐도 되겠소?]
그 여자는 차갑게 말했다.
[물어 보세요.]
마여룡은 물었다.
[당신은 어떻게 이곳까지 왔소?]
그 여인은 말했다.
[나는 신이 났어요. 그래서 달려왔지요.]
마여룡은 말했다.
[당신은 원래 동쪽으로 가지 않았소?]
그 여자는 대답했다.
[그러나 나는 갑자기 서쪽으로 오고 싶었어요.]
마여룡은 말했다.
[당신은 혹시 나를 찾아온 것이 아니오?]
그 여인은 말했다.
[당신은 스스로가 매우 잘생긴 줄 아는 모양이군요. 여자들은 모두 다 당신에게 눈독을 들이는 줄 아시나요?]
그녀는 돌연 냉소하며 말을 이었다.
[내가 무슨 두청련의 마누라도 아니고 심홍엽의 마누라도 아니고 그렇다고 냄새나는 화상의 마누라도 아니지만, 내 어찌 당신에게 눈독을 들이겠어요?]
마여룡은 표정이 움직였다.
[당신도 그 사건을 알고 있소?]
그 여인은 말했다.
[음.]
마여룡은 다시 물었다.
[당신은 어떻게 아는 것이오?]
그 여자는 말했다.
[흥.]
마여룡이 다시 물었다.
[당신이 풍초범과 절화상을 만났으니, 아마도 그들이 이야기를 해주었겠군?]
그 여인은 연신 코웃음을 치더니 또 다시 그에게 커다란 대접에 술을 따라 내밀었다.
마여룡은 탄식하며 말했다.
[당신은 술을 마실 때에는 언제나 대완(大碗), 큰 대접에 따라 마시는군!]
그 여자는 대답했다.
[그래요.]
마여룡은 물었다.
[당신은 어째서 반드시 큰 그릇을 사용하오?
그 여자는 대답했다.
[단지 소완(小婉)만이 작은 그릇 소완(小碗) 사용하여 술을 마실 뿐이고 나는 소완(小婉)이 아니거든요.]
마여룡은 그 이름을 들은 적이 있었다. 
구봉성의 애인 이름이 소완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구봉성은 한 조각의 옥을 주머니에 넣어서 가슴 앞에 차고 있었는데 그 주머니를 바로 소완이가 주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마여룡은 참지 못하고 물었다.
[당신도 소완을 알고 있소?]
그 여자는 냉랭히 말했다.
[당신은 너무 많은 것을 묻는군요.]
마여룡은 말했다.
[그러나 당신은 한 마디도 대답을 하지 않았소.]
그 여자는 말했다.
[그것은 당신의 질문이 모두 질문하면 안 될 질문이었기 때문이예요. 마땅히 해야하는 질문을 당신은 하지 않았어요.]
마여룡은 물었다.
[내가 마땅히 무엇을 질문해야 한단 말이오?]
그 여자가 말했다.
[내가 사준 고기를 먹고 내가 사준 술을 마셨으면 최소한 나의 존성대명(尊性大名)을 물어봐야 할게 아니에요?]
마여룡은 물었다.
[당신의 존성대명은 어떻게 되시오?]
그 여자는 말했다.
[소완은 작은 그릇으로 술을 마시고, 나는 큰 그릇으로 술을 마셔요. 그러니 내가 누구겠어요?]
마여룡은 말했다.
[당신의 이름이 대완(大婉)이란 말이오?]
그 여자는 방글 웃으며 대답했다.
[이번에야 비로소 당신은 약간 똑똑한 말을 하는군요.]

6. 깨진 그릇(破碗)


이 여인의 이름은 대완이었다. 
그녀의 얼굴은 비록 매우 추악하게 생겼지만 한 쌍의 손은 다른 어떤 여자의 손보다 아름다웠다.
그녀의 눈은 비록 추악하지만 그러나 웃을 때 보면 눈동자가 맑고 부드러워 흡사 태양빛을 받아 작은 연못이 물결치는 것 같았다.
그 여자의 음성은 비록 뾰족하고 날카로웠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그 음성 가운데는 감미로움이 깃들어 있었다.
그녀가 하는 일은 비록 사람들로 하여금 웃을 수도 울 수도 없게 하는 엉뚱한 점이 있었지만, 야만적이고 도리를 따지지 않는 점도 있었지만, 그러나 나중에 누구든지 그녀의 그와 같은 행동이 당신을 위한 것임을 깨닫게 되리라.
만약 그녀가 마여룡의 여우가죽 옷을 입고 마여룡의 백마를 타고 가지 않았다면 그는 지금까지 살아있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녀는 풍초범 일행의 입을 통하여 이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뜻밖에도 그녀는 마여룡을 한 명의 냉혈하며 흉악한 살인마로 간주하고 있지는 않았다.
지금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그를 친구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그녀 한 사람뿐이었다.
그녀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란 말인가?
마여룡은 홀연 말했다.
[당신은 참 좋은 사람이오.]
그는 말을 이었다.
[이전에 나는 어쨌든 약간 당신이 이치를 따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에야 비로소 당신이 좋은 사람인 것을 알았소.]
대완은 물었다.
[당신은 어떻게 내가 좋은 사람인 것을 알았나요?]
마여룡은 대답했다.
[나는 말하지 않겠소. 그냥 알고 있다는 것만 말하리다.]
그도 그녀에게 커다란 대접에 술을 따라 내밀었다.
[자, 나도 큰 대접에 술을 따라 당신에게 올리겠으니 한잔 드시오.]
대완은 뜻밖에도 정말 그 큰 그릇의 술을 다 마셔 버리는 것이었다. 아주 통쾌하게 마시는 것이었다.
마여룡은 홀연 다시 물었다.
[당신이 대완이라면 그 소완이라는 여자와는 어떤 관계가 있으시오?]
대완은 말했다.
[아무 관계도 없어요.]
마여룡은 말했다.
[그것 참 애석하구려.]
대완은 물었다.
[무엇이 그리 애석하다는 거예요? 혹시 당신은 그 소완을 보고 싶어하는 것이 아닌가요?]
마여룡은 말했다.
[나는 사실 그녀를 보고싶소.]
대완은 말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당신은 그녀를 찾을 수가 없어요.]
마여룡은 쓴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애석하게도 그녀는 대완이 아니오.]
대완은 물었다.
[그것이 뭐가 애석하다는 거예요?]
마여룡은 대답했다.
[만약 그녀가 대완이라면 나는 비교적 쉽게 그녀를 찾을 수가 있었을텐데 애석하게도 그녀는 소완이란 말이오.]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대완이란 이름을 가진 여자 애들은 많지 않지만 소완이란 이름을 가진 여자 애들은 결코 이 세상에 적지 않소. 그녀 이름이 소완이란 것만 알고 있으니 어디 가서 그녀를 찾는단 말이오.]
대완은 말했다.
[당신은 비록 그녀를 찾아낼 수 없지만 어떤 사람은 그녀를 찾을 수가 있어요.]
마여룡은 물었다.
[누가 그녀를 찾아낼 수가 있소?]
대완은 대답하지 않고 홀연히 다시 물었다.
[지금까지 오늘 당신은 몇 잔이나 마셨죠?]
마여룡은 대답했다.
[여덟 잔을 마셨소. 큰 대접으로 여덟 잔.]
대완은 다시 물었다
[당신은 아직 몇 잔이나 더 마실 수 있나요.]
마여룡은 대답했다.
[잘 모르겠소.]
대완은 물었다.
[잘 모르겠다는 것은 바로 아직도 많이 마실 수 있다는 뜻이겠군요.]
마여룡은 대답했다.
[잘 모르겠다는 것은 바로 내가 술을 마실 때 보통 대접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뜻이오.]
대완은 물었다.
[그럼 무엇으로 마시나요.]
마여룡은 말했다.
[단지채로 마셔버리지.]
대완은 웃었다.
마여룡은 다시 말했다.
[당신은 내가 허풍을 떠는줄 아시오?]
대완은 말했다.
[만약 당신의 주량이 정말 그렇다면 나는 당신을 데리고 한 사람을 찾아가겠어요.]
마여룡은 물었다.
[누굴 찾아간다는 것이오?]
대완은 말했다.
[찾아가려는 사람은 작은 그릇으로 술을 마시지 않죠. 그 사람은 소완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이에요.]
마여룡은 물었다.
[그는 어떤 그릇으로 술을 마시는 것이오?]
대완은 말했다.
[파완(破碗)에다가 술을 마시죠.]
마여룡은 말했다.
[파완이라면 깨진 그릇이 아니오? 혹시 그 이름도 파완이 아니오?]
대완은 방긋 웃으며 말했다.
[뜻밖에도 당신은 이제 점점 총명해지는군요.] 
마여룡의 눈동자에 빛이 났다.
[당신이 말하는 그 파완은 혹시 파완(破碗) 유오(兪五)가 아니오?]
대완은 말했다.
[그를 제외하고 또 누가 있겠어요?]
그를 제외하고 확실히 누가 있을 수가 없었다. 
그와 같은 사람은 절대로 이 세상에 둘이 있을 수가 없었다.
이 세상의 그 누구도 파완 유오보다 술을 더 마실 수 없었고 이 세상의 그 누구도 술에 대하여 더 잘 알지 못했다. 
그리고 이 세상의 그 누구도 유오만큼 술에 대한 조예가 깊지 못했다. 
그러므로 술에 대해서 말한다면 파완 유오는 천하에서 제일가는 고수였다. 
유오가 이름을 알린 것은 당연히 술을 잘 마시는 것 때문에 얻어진 것은 아니었다. 
옛날 강호에는 엽개라고 하는 유명한 대협이 있었는데 그는 일찍이 열여섯 자로 파완 유오를 평한 적이 있었다.

-씻은 듯이 가난하고 그러면서도 나라에서 제일가는 큰 부자이고 이름을 천하에 떨쳤으며 그 누구도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이 몇 마디의 평은 그에 대하여 정확히 묘사하고 있었다. 
천하에서 가장 많은 부를 축적한 사람들은 소금장수들이고 가장 돈을 벌기 쉬운 직업은 기름장수와 쌀장수, 비단장수, 목재장수, 전당포 들이었다.
강남유가(江南兪家)는 비단 가장 큰 소금장수일 뿐만 아니라 기타 돈을 벌기 쉬운 모든 네 가지 직업에 손을 대고 있었다. 
강남의 유가는 확실히 천하에서 제일 가는 부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런데 강남유가의 다섯 번째 유오는 천하에서 가장 빈궁한 거지였다.
유오는 거지떼들의 우두머리로서 현재의 개방(개幇)의 방주(幇主)였다. 그는 비록 이름을 온 천하에 떨치고 있었지만 그의 진면목을 본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직접 만나고도 그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그런데 그의 부하 거지들 수십만 명은 천하에 널려져 있었다.
황하(黃河) 부근은 물론이고 대강(大江)의 남쪽과 북쪽으로 골고루 거지떼들이 분포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그가 만약 한 사람을 찾아낸다고 한다면 그 누구보다도 잘 찾아낼 수 있었다. 
사람을 찾고 싶은 사람이 그에게 부탁한다면 틀림없이 그 어떤 사람이라도 찾아줄 수 있을 것이다.
마여룡은 말했다.
[당신은 유오를 찾을 수 있소?]
대완은 대답했다.
[나는 그를 찾을 수 없어요. 그 누구도 그를 찾을 수 없을 거예요.]
마여룡은 말했다.
[그러나 당신은 그가 있을 곳을 분명히 알고 있을 것이오.]
대완은 말했다.
[사실은 당신도 짐작하고 있겠지만 그는 음식을 빌어먹고 있을 거예요. 그런 곳에서 그를 찾을 수 있겠지요.]
 
개방의 제자 거지들은 천하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었다.
사람이 사는 곳에 그들이 있었고 특히 음식과 술을 파는 곳에 그들은 가장 많이 모습을 나타냈다.
대완은 마여룡을 데리고 어느 작은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그 음식점은 규모가 협소하여 두 개의 탁자와 몇 개의 의자가 놓여있을 뿐이었다.
마여룡은 문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썩은 냄새가 코를 찌르는 것을 느꼈다. 
탁자 위에 놓여있는 몇 가지 소금에 절인 음식들은 색깔이 이미 변색되어 있었고 딱딱하게 메말라 있었다.
보기에 시궁창에서 건져올린 돌덩어리 같았다.
비록 삼 일을 굶은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절대로 그 음식을 먹고싶은 생각은 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집에서 어떻게 돈벌이를 하는지 신기하게 생각되었다.
이 몇 가지 소금에 절인 음식만 보아도 이 집의 장사가 형편 없다는 것을 잘 알 수가 있었다.
유오는 비록 개방의 방주이지만 개방의 역사상 가장 깔끔한 방주라고 소문이 나 있었다. 
그는 음식을 가려서 먹었으며 지저분한 음식은 먹지 않는다고 소문이 나 있었다. 
그럼 그가 어떻게 이런 곳에 와서 음식과 술을 구걸할 수 있단 말인가?
이 음식점 안에는 한 명의 손님도 없었는데 할 일이 없어 그런지 그 집 주인은 계산대에 앉아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그러나 대완이 가까이 다가가 뭐라고 몇 마디 나직이 하자 그는 정신이 번쩍 드는지 놀랜 눈을 비비고 대완을 쳐다보는데 그의 눈동자는 뜻밖에도 형형한 광채를 내쏟고 있었다.
강호 곳곳에는 용과 같고 호랑이같은 고수들이 숨어있는 법이다. 
설마하니 이 노인 역시 깊이 감추고 드러내지 않는 무림의 고수라는 말인가?
그 노인은 이상한 눈초리로 대완을 훑어보더니 놀라고 흥분한 표정을 떠올리는 것이었다.
마치 어린애들이 흠모하는 한 사람을 만났을 때 지어내는 표정과 같았다.
마여룡은 키가 훤칠하고 옥과 같이 준수했다. 강호에서는 마여룡처럼 잘 생긴 남자를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데도 그 노인은 마여룡은 거들떠 보지도 않고 대완을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길게 탄식하며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뜻밖이군요. 정말 뜻밖이예요.]
대완은 물었다.
[당신은 내가 올 것이라 생각도 못했나 보군요.]
노인은 말했다.
[아가씨를 만나보게 되다니, 이 늙은이는 정말 영광입니다.]
그는 갑자기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엎드리더니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더니 대완의 발등에 입을 맞추는 것이 아닌가?
그의 태도는 마치 한 명의 충성스러운 신하가 황후에게 존경을 표하는 것 같았다.
늙은이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입을 열었다.
[다섯째 나으리는 지금 후면의 주방 안에 계십니다. 아가씨께서는 저를 따라 오십시오.]
마여룡은 점점 흥미가 생기는 것을 느꼈다.
이 못생긴 여자는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어떤 내력을 지니고 있을까?
다른 사람의 그녀에 대한 극도의 존경을 표시하는데도 그녀는 부끄럽지도 않다는듯이 마치 당연하다는듯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대완은 그의 마음을 읽고 담담히 입을 열었다.
[이 노인은 원래 우리 집의 주방에서 일하던 소사였어요. 우리집의 규칙은 원래부터 엄격하거든요.]
마여룡은 이렇게 묻고 싶었다.
[설마하니 당신들의 집에 있는 하인들은 누구나 당신의 발등에 입을 맞춘다는 것이오? 황궁(皇宮) 안에도 이와 같이 엄격한 규칙은 없을 것이오.]
그러나 그는 말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주방으로 들어서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그 더럽고 냄새나는 작은 음식점 뒤에 이와 같이 깔끔한 주방이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주방은 매우 넓고 깨끗했으며 밝았다. 
모든 물건은 잘 정리되어 있었고 모든 접시와 모든 그릇들은 거울들은 반들 빛나고 있었다.
심지어 불을 피우는 아궁이 위에도 티끌 하나 묻어있지 않았다.
천마당은 대대로 내려오는 명문이었다.
그러므로 당연히 음식을 중요시 했다. 
그러나 천마당의 주방이라고 할지라도 이과 같이 깔끔하고 깨끗하지는 않았다. 
주방 안에 있던 사람은 한창 요리를 볶고 있었다. 요리를 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그 모습이 보기 좋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예외였다.
그가 손에 주걱을 들고 있는 모습은 마치 대화가(大畵家) 오도자(吳道子)가 붓을 들고 있는 모습 같았고, 천하무쌍의 명검객(名劍客) 서문취설(西門吹雪)이 검을 들고 있는 듯, 그 자세와 동작은 너무나 우아하여 감탄이 절로 나올 지경이었다.
그는 지금 두부를 볶고 있었다. 새우를 섞은 두부였다. 아직 두부는 익기 전이었다. 
노인은 그의 등 뒤에 조용히 서서 그의 작업을 방해하지 않았다.
대완 역시 조용히 서 있었다. 
그 사람의 몸은 결코 키가 크지 않았고 얼굴이 깨끗했으며 입고 있는 옷은 수백 군데를 기운 옷이었지만 깨끗이 빨아 먼지 한 점 묻어있지 않았다.
보기에 그는 마치 뜻을 펴지 못한 불우한 낙방수재(落榜秀才) 같았다.
마여룡은 참지 못하고 나직이 물었다.
[저 사람이 바로 강남의 유오란 말이오?]
대완은 탄식했다.
[그가 아니고 누구이겠어요?]
두부는 이미 익었고 냄비는 불에서 떠났다.
그는 주걱으로 두부를 뒤집었는데 매 조각의 두부마다 노릇노릇하게 잘 익어 있었다. 그것은 마치 하얀 은쟁반에 황금 덩어리가 떨어져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황금은 절대로 이렇게 구수한 향기를 가지고 사람들을 유혹하지 못하리라.
그 사람은 만두를 내려다 보더니 매우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두부를 쟁반 위에 옮겨놓고 깨끗한 탁자 위에 올려놓더니 비로소 고개를 돌렸다.
그는 마침내 대완을 발견했다.
[네가 왔구나.]
대완은 방그레 웃었다.
[네, 제가 왔어요.]
그녀의 지금 모습은 전혀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뜻밖에도 다섯째 나으리께서 저를 알아보시는군요.]
유오는 그녀의 태도가 매우 오만한 것을 보고 입을 열었다.
[너는 이미 술을 마셨구나.]
대완은 대답했다.
[조금 마셨어요.]
유오는 말했다.
[좋다, 매우 좋아. 나도 지금 그렇지 않아도 한 사람을 찾아 함께 술을 마시려고 하던 참이었다.]
대완은 미소하며 말했다.
[술을 마시는 것은 바둑을 두는 것과 같아서 반드시 두 사람이 마셔야 재미가 나지요. 그러나 세 사람이 마신다면 두 사람이 마실 때보다 더욱더 재미가 있을 거예요. 나는 또 당신과 술 마실 사람을 한 사람 데리고 왔어요.]
유오는 마여룡을 훑어보더니 입을 열었다.
[그도 술을 마실 줄 아는가? 잘 마시나?]
대완은 대답했다.
[그의 주량은 나쁘지 않다고 하더군요.]
유오는 말했다.
[너는 누구에게서 그 말을 들었느냐?]
대완은 대답했다.
[그 스스로 말했어요.]
유오는 말했다.
[그의 말을 너는 믿느냐?]
대완은 대답했다.
[당신이 믿을 수 없다면 직접 시험을 해보시면 될 게 아니에요?]
유오는 웃으며 말했다.
[좋아, 매우 좋아.]
두부는 매우 잘 익혀져 있었다.
마여룡은 조금도 사양하지 않고 순식간에 세 조각의 두부를 먹어치웠다.
두부 한 조각에 술 한 대접을 마셔 순식간에 세 그릇의 술을 마시는 것이었다.
유오 역시 세 잔을 마셨다. 
유오가 사용하는 술잔은 과연 깨진 술잔이었다. 
매우 커다란 깨진 사발을 가지고 술을 마시는 것이었다.
세 조각이 났던 큰 사발을 다시 이어 붙여서 만든 술잔이었다.
담청색의 그 술잔은 마치 비개인 하늘처럼 투명하리만치 맑아보이기도 했다.
마여룡은 홀연 입을 열었다.
[좋은 그릇입니다.]
유오는 물었다.
[자네는 이것이 좋은 그릇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는가?]
마여룡은 대답했다.
[이것은 유명한 도자기입니다. 이런 도자기가 황궁에 딱 한 개가 있고 지금 이 세상에는 절대로 제삼의 그릇을 찾아볼 수 없을 것입니다.]
유오는 말했다.
[틀림없네. 이와 같은 도자기는 천하를 통틀어 단지 두 개가 있을 뿐이네.]
그는 마여룡을 바라보며 미소했다.
[뜻밖에도 자네는 매우 보는 눈이 있구만. 사람을 보는 안목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릇을 보는 안목도 매우 좋아.]
대완은 냉랭히 말했다.
[그는 사람을 보는 안목이 좋지 않을 거예요.]
유오는 껄껄 웃었다.
[그가 사람을 보는 안목이 없었다면 어떻게 네가 마음에 들었겠느냐?]
대완은 그 말을 못들은척 했고 마여룡은 얼굴이 약간 붉어졌다.
유오는 다시 입을 열었다.
[자네들이 나를 찾아온 것은 당연히 나와 술을 마시기 위함은 아니었겠지?]
마여룡은 대답했다.
[저는 사실 한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로서는 찾을 수가 없습니다.]
유오는 말했다.
[자네는 나보고 그 사람을 찾아달라는 말이군.]
마여룡은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유오는 말했다.
[자네는 누구를 찾는가?]
마여룡은 대답했다.
[소완을 찾고 있습니다.]
유오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
[소완은 대완보다 못해. 자네에게 이미 대완이 있는데 어째서 소완을 찾는가?]
이 강호의 유명한 인물은 뜻밖에도 상황 판단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대완을 마여룡의 애인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한 여자는 매우 추하게 생겼고 한 남자는 보기 드문 미남자인데 그는 어째서 그들 두 남녀가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대완은 잘 모르겠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소완이 어째서 대완보다 못하다는 것인가요?]
유오는 대답했다.
[술을 마시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지. 작은 그릇은 큰 그릇보다 불편하단 말이야. 그러니 당연히 소완이 대완보다 못한 것이지.]
대완은 물었다.
[그러면 파완은 어때요?]
유오는 웃으며 말했다.
[파완은 대완보다 훨씬 좋지.]
대완은 물었다.
[그건 어째서인가요?]
유오는 대답했다.
[한 개의 그릇이 만약 깨어졌다면 반드시 여러 가지 고통을 맛보았을 것이 아니겠느냐? 만약 한 사람을 두고 말할 때 오랫동안 풍상을 겪었다는 뜻이 되니, 노인이 어린애보다 경험이 풍부한 것처럼 오래된 생강이 매운 것처럼, 깨진 그릇이 큰 그릇보다 나을 것이 아니겠느냐?]
그는 깨진 그릇으로 다시 한 모금을 쭉 들이키더니 껄껄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러므로 파완은 당연히 대완보다 훨씬 좋은 것이다.]
대완도 웃으며 말했다.
[우리들이 말하는 것은 사람이지 그릇이 아니에요. 사람을 두고 말할 때 소완은 대완보다 좋을 뿐만 아니라 파완보다도 훨씬 좋아요.]
유오는 물었다.
[어, 그게 무슨 말이냐?]
대완은 대답했다.
[내가 생각할 때 그 소완이라는 여자는 분명히 매우 아름다울 것이고 부드러울 것이고 다정할 것 같아요.]
유오는 말했다.
[네가 어떻게 알고 있느냐?]
대완은 대답했다.
[왜냐하면 그녀는 바로 구봉성의 애인이거든요. 은창공자가 좋아하는 여자라면 당연히 나처럼 못생기지는 않았을 거예요.]
유오는 껄껄 웃으면서 말했다.
[알고보니 그 소완은 다른 남자의 것이로구나. 어쩐지 네가 나에게 그녀를 찾아달라고 부탁하더라니.]
그는 마여룡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우리 한 가지 거래를 하는 것이 어떻겠나?]
마여룡은 물었다.
[무슨 거래를 한다는 것입니까?]
유오는 말했다.
[자네는 이곳에서 나를 벗하여 큰 그릇으로 술을 마시고 나는 자네를 대신하여 그 소완이라는 여자를 찾아주는 것이지.]
마여룡은 말했다.
[좋습니다.]
유오는 말했다.
[삼 일 안으로 나는 반드시 자네에게 소식을 알려 주겠네.]
마여룡은 말했다.
[좋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삼 일 동안 당신을 벗하여 술을 마시겠습니다.]
유오는 말했다.
[큰 그릇으로 마실 생각인가?]
마여룡은 말했다.
[당연히 큰 그릇으로 마셔야죠.]
유오는 말했다.
[나는 몇 그릇 더 마실 수 있는데 자네는 어떠한가?]
마여룡은 말했다.
[저도 더 마실 수 있습니다.]
다시 한 나절 동안 술을 마시다가 유오는 입을 열었다.
[자네는 나의 가장 큰 재주가 무엇인지 아나?]
마여룡은 대답했다.
[말씀해 보십시오.]
유오는 말했다.
[나의 최대의 장기는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잠을 자는 것이네.]
마여룡은 대답했다.
[밤을 먹고 잠을 자는 것은 나는 별 재간이 없습니다. 그러나 술 마시는 재주라면 선배님과 한 번 겨루어 볼 용의가 있습니다.]
유오는 물었다. 
[자네는 아직도 취하지 않았는가?]
마여룡은 말했다.
[저는 취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얼마든지 더 마실 수 있습니다.]
유오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
[좋아, 아주 좋아.]
이 세상에는 죽어도 굴복하지 않으려는 사람이 있다. 
마여룡은 의심할 여지 없이 그런 사람이었다.
그들은 권커니 작커니 계속 술을 퍼마셨다.
대완은 갑자기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제가 집에서 나올 때 어머니께서는 저에게 당부하셨어요. 절대로 술에 취하지 말고 술 취한 사람과 놀지 말라구요. 어머니께서는 말씀하셨어요. 천하에서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모두 마찬가지이고 자기정신이 흐리멍텅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함부로 대한다고 하셨어요.]
유오는 말했다.
[네 어머님의 말이 옳다. 너는 꼭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는 다시 한 잔을 마시고 입을 열었다.
[더군다나 남자들은 술에 취하면 무슨 짓이든 하는 법이다.]
대완은 말했다.
[그러기 때문에 어머니께서는 말씀하셨어요. 총명한 여인은 술 취한 사람을 만났을 때 재빨리 그 자리를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구요.]
마여룡은 말했다.
[일리있는 말이오.]
그는 큰 대접으로 한 사발 술을 들이키고 다시 입을 열었다.
[정말 일리있는 말이오.]
대완은 말했다.
[두 명의 술을 좋아하는 귀신들은 한 명의 술귀신보다 더욱 말썽을 피울거 같아요.]
유오는 말했다.
[그 말에도 일리가 있다.]
그는 다시 한 잔을 마시고 말을 이었다.
[한 명의 술귀신을 상대하는 것보다 두 명의 술귀신을 상대하는 것이 더 어렵겠지.]
대완은 탄식하며 입을 열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지금 이자리에는 두 명의 술귀신이 있군요.]
유오는 말했다.
[뭐, 이 자리에 두 명의 술귀신이 있다고?]
대완은 대답했다.
[바로 내 앞에 있잖아요.]
그러면서 유오와 마여룡은 번갈아 바라보았다. 
세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만 큰 소리로 웃고 말았다.
대완은 다시 입을 열었다.
[어머니께서는 저에게 말해 주셨어요. 만약 한 명의 술귀신을 만났을 때 당연히 재빨리 그 자리를 도망치는 것이 상책이고 여러가지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하셨어요. 그러나 어머니께서는 저에게 두 명의 술귀신을 만났을 때에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알려주신 적이 없어요.]
그녀는 웃으면서 다시 말을 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 스스로 좋은 방법을 생각해내야 할 것 같아요.]
유오는 물었다.
[그래 좋은 방법을 생각해 냈느냐?]
대완은 대답했다.
[나도 같이 마셔버리는 거죠 뭐.]
그녀는 큰 그릇으로 술을 한번 들이키더니 말을 이었다.
[나 자신 역시 한 명의 술귀신으로 변한다면 다른 술귀신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겠지요?]
유오는 박수를 치며 말했다.
[그것 참 일리있는 말이로구나.]
마여룡은 말했다.
[하지만 약간 문제가 있는 말이로군요.]
유오가 물었다.
[무어가 문제란 말인가?]
마여룡은 말했다.
[세 명의 술귀신이 모이면 두 명의 술귀신보다 더 말썽을 피울 것이 아니겠습니까?]
유오가 대답했다.
[그 말에도 일리가 있구나.]
그는 탄식하며 말을 이었다.
[한 두 명의 술귀신만 있어도 골치 아픈데 세 명의 술귀신이 모였으니 이것 참 야단 났는걸.]


7. 소완(小婉)


이윽고 마여룡은 취해버리고 말았다.
사람은 자기가 믿는 사람과 술을 마실 때 숫제 취하는 법이다. 
그는 대완과 유오를 믿고 있었다. 
한 사람이 마음이 좋지 않고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에는 쉽게 취하는 법이다. 
더군다나 한 사람이 커다란 대접으로 계속 술을 퍼마신다면 언젠가는 취하게 될 것이다. 
그는 이미 삼 일 동안 계속 술을 퍼마셨다. 그러므로 그는 취했다. 한 사람은 술에 취했을 때 무슨 말을 했고 무슨 짓을 했는지 분명히 기억할 수 없는 법이다. 
설사 기억해낸다고 할지라도 꿈처럼 모호하기만 하고 마치 다른 사람이 말하고 행동한 것처럼 낯설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는 지금 생각해도 깜짝 놀랄 말을 했던 것같은 기억이 났다. 
그때에 다들 취해 있었는데 그는 갑자기 대완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당신은 나에게 시집 오는 것이 좋지 않겠소?]
대완은 그 말을 듣고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쉬지 않고 웃었으며 심지어 숨이 넘어갈 것처럼 한참 웃어대더니 그녀는 이렇게 질문했다.
[당신은 어째서 내가 당신에게 시집가기를 바라는 거죠?]
마여룡은 대답한 것 같았다.
[왜냐면 나는 당신이 매우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나를 의심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모두 나를 흉수라고 지목했지만 그래서 모두 나를 죽이려 했지만 그러나 당신만은 나를 믿어주었소. 오직 당신만이 나를 도와주었소.]
그의 말은 진심이었다.
한 사람이 진정 취했을 때에는 진심을 토로하기 마련이다. 
대완은 그러나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당신이 나보고 시집오라고 하는 것은 당신이 술에 취해서 하는 말에 불과할 뿐이예요. 당신은 술에서 깨어났을 때 반드시 후회하게 될 거예요.]
그녀는 비록 웃고 있었지만 그 웃음은 매우 처량해 보였다.
그녀는 입을 열었다.
[당신이 나보다 예쁜 여자를 보게 되었을 때 당신은 죽도록 후회할 거예요. 나는 못생겼고 괴상하고 흉악하고 나보다 뛰어난 여자들은 이 세상에 얼마든지 있어요.]
지금 마여룡은 이미 정신이 들었다.
그러나 대완이 그에게 시집을 오겠다고 허락을 했는지 안했는지는 잘 기억할 수가 없었다. 
그는 혼자 속으로 생각해 보았다.
(만약 그녀가 나에게 시집을 오겠다고 허락했다면 나는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나는 그녀가 나에게 시집 오는 것을 정말로 바라고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으며 그 말을 한 것을 후회하고 있는 것일까?)
이 문제는 그 자신조차도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바로 이때 그는 한 명의 여자를 보았다.
대완보다 훨씬 아름다운 여자였다.
그가 술에서 깨어났을 때 그의 몸은 주방 안에 있지 않았다.
유오와 대완 역시 보이지 않았다. 
그가 술에서 깬 것은 침대 위였다. 
매우 넓고 부드럽고 평안한 향기가 나는 침대였다.
이 침대는 별로 크지 않으면서도 깨끗하고 편안하며 향기가 나는 방에 있었다. 
이 방의 창문 밖에는 몇 그루의 매화나무가 서 있었다. 
창문 아래로는 작은 화장대가 있었고 그 화장대 위에는 작은 구리거울도 걸려 있었으며 구리거울 옆의 꽃병에는 매화꽃이 꽂혀 있었다.
그 여자는 바로 그 매화꽃 옆에 있었다. 
매화꽃은 고귀하고 아름다웠지만 그 여자는 그 꽃보다도 더욱 아름다웠다. 그녀는 세속의 티가 묻지 않은듯이 수려한 용모에 붉은 옷을 입고 얼굴은 눈처럼 희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아주 맑았는데 그러나 우울한 그늘이 져 있었다. 
그녀는 지금 마여룡을 바라보고 있었다. 
매우 이상한 눈초리로 마여룡을 바라보면서 약간 호기심을 느끼고 또 약간은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마여룡은 이 여자를 알고 있지 못했다. 그리고 자기가 어떻게 이곳까지 왔는지 기억할 수 없었다.
그 여자는 홀연 입을 열었다.
[당신이 바로 백마공자 마여룡입니까?]
마여룡은 대답했다.
[바로 납니다.]
그 여자는 말했다.
[며칠 전에 당신은 바로 한매곡에 있지 않았습니까?]
마여룡은 대답했다.
[그렇소.]
그 여자는 말했다.
[당신은 구봉성을 보았습니까?]
마여룡은 말했다.
[당신도 그를 알고 있소?]
그 여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직이 입을 열었다.
[나의 성은 소(蘇) 이름은 소완(小婉)이에요. 내가 바로 당신이 찾고 있는 소완이에요.]
마여룡은 물었다.
[그렇다면, 이곳은 어디요? 내가 어쩌다가 이곳까지 오게 되었소?]
소완은 대답했다.
[유오라는 사람이 당신을 데리고 왔어요. 유오 나으리는 말했어요. 당신이 구봉성의 친구일뿐 아니라 그의 행방을 알고 있다고 말했어요. 그래서 나는 당신을 이 집으로 받아들인 거예요.]
마여룡은 쓴 웃음을 지었다.
유오는 술에 취해 정신을 잃은 그를 이곳까지 데리고 온 것이었다.
그는 다시 물었다.
[이곳이 당신의 집이오?]
소완은 대답했다.
[나에게는 집이 없어요. 이곳은 집이라고 하기가 우습지요.]
마여룡은 그녀의 뜻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집이라는 말은 결코 한 칸의 방이라는 뜻이 아니었다.
아무리 화려한 방이고 멋있게 꾸민 방이라 할지라도 단란한 가정은 될 수 없는 것이었다.
소완은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원래 성 안에 있는 이방원(怡芳院)이라는 술집의 기생이었어요. 어려서부터 부모님을 잃고 기녀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구봉성이 나를 기생의 명부에서 빼내어주고 나에게 이 집을 사주었습니다.]
그녀는 처량하게 웃으면서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가 이곳에 없으니 이것을 어떻게 집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마여룡은 탄식을 금할 수 없었다.
[아, 그는 정말로 다정한 남자로군요.]
구봉성과 같이 이름을 날린 유명한 집안의 자제들은 체면을 중시하는 법이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구봉성은 술집의 기생을 사랑하게 되어 이렇게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감동케 하는 일을 했던 것이다.
[봉성은 성질이 매우 깐깐하지만 그러나 마음씨가 매우 착하여 그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나에게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미안한 일을 한 적이 없어요.]
구봉성에 대하여 이야기가 나오자 그녀의 눈동자에는 부드러운 정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는 나에게 너무 잘 대해 주었어요. 언제나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배려해 주었고 단 한 번도 나를 무시한 적이 없어요. 나와 같은 여자가 그런 남자를 만났다는 것은 정말로 행복이라고 할 수 있을 거예요. 나는 정말 죽어도 여한이 없어요.]
마여룡은 말했다.
[당신은 나이가 어린데 왜 죽는다는 말을 입에 올리는 것이오?]
소완은 처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가 약속보다 한 걸음이라도 늦는다면 그것은 바로 우리가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에요.]
마여룡은 그 말을 듣는 순간 구봉성이 그 구덩이를 파는 광경을 생각했다.
소완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는 떠날 때 약속했어요. 늦어도 오늘 밤까지는 반드시 돌아오겠다고 했어요.]
마여룡은 말했다.
[만약 그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는 것이오?]
소완은 처량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것은 그가 이미 이 세상에 살아있지 않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예요. 나 역시 그를 따라 죽어야지요.]
그녀의 음성은 비록 부드러웠으나 죽을 결심으로 가득차 있었다.
철썩같이 굳은 사랑의 맹세는 사람으로 하여금 죽음까지도 두려워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었다.
마여룡은 나직이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다행히 그는 아직 죽지 않았소.]
그는 그들을 위로해주고 축하해 주고 싶었다.
[그 역시 당신과 마찬가지로 죽을 결심을 하고 있었소. 그러나 그는 아직 죽지 않았을 것이오.]
[그렇다면 그는 지금 어디에 있나요? 어째서 돌아오지 않고 있는거죠?]
마여룡은 입을 다물었다. 
그 역시 구봉성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팽천패, 풍초범, 절대사가 마여룡을 추적했을 때 구봉성은 그들과 있지 않았던 것이다. 
금진림의 금창이 비록 구봉성을 죽이지는 못했지만 구봉성이 상처를 입은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그가 입은 상처는 결코 가볍지 않았던 것 같았다.
한 명의 상처를 입은 사람이, 중상을 입은 사람이 어디로 갔다는 말인가. 
그날 그들 사공자는 벽옥부인의 초청을 받고 한매곡으로 갔었다. 
나중에 벽옥부인은 그곳에 도달했을까? 
혹시 벽옥부인이 구봉성을 데리고 벽옥산장으로 간 것이 아닐까?
마여룡은 알 수가 없었다.
소완은 그를 바라보며 대답을 기다렸다.
마여룡은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았다.
소완은 나직이 탄식하며 입을 열었다.
[나는 알고 있어요. 그가 죽지 않았다면 분명히 돌아올 거예요. 그런데 그는 어째서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고 있는 것일까요?]
마여룡은 더듬거렸다.
[나는....]
소완은 재빨리 그 말을 잘랐다.
[당신은 더 이상 나를 속이려고 하지 마세요. 당신의 입을 통해서 봉성이 그토록 나를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나는 곧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그녀는 갑자기 냉랭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이미 날이 어두워졌으니 당신은 이만 돌아가 보세요. 나는 더 이상 마공자를 대접해 드릴 수가 없군요.]
마여룡은 떠나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떠날 때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당신의 결심을 알고 있소. 나는 결코 당신을 막을 수는 없소. 그러나 나는 당신이 삼 일 동안만 더 참고 기다려주기를 바랍니다. 삼 일 내에 나는 반드시 구봉성의 소식을 알아다가 당신에게 알려주겠소.]
소완은 한동안 주저하더니 한참 후에야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좋아요. 나는 다시 삼 일을 더 기다리겠어요.]
날은 이미 어두웠다. 
집 밖은 좁고 기다란 골목길이었다.
소완의 이 집은 골목길의 막다른 길에 자리잡고 있었다.
마여룡은 옷깃을 여미고 바람을 맞으며 걸어나갔다.
마여룡이 소완을 찾은 것은 구봉성이 그날 했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그는 사실 구봉성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아무런 단서를 찾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리저리 수소문을 해보고 있는 것이었다.
지금 그는 비로소 구봉성이 확실이 다정한 사람으로서 구봉성과 소완의 감정은 그 무엇으로도, 심지어 죽음으로도 가를 수 없이 끈끈하다는 것을 실감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들을 돕고 싶었고 삼 일 내로 구봉성의 소식을 알아다가 소완에게 알려줌으로써 그 두 남녀가 껴안고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랬던 것이다.
그러나 문득 그는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무엇이 이상한지는 꼬집어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소완의 그 방안에는 없어야 할 것이 있었고 오히려 있어야 할 것은 없었던 것 같았다.
무엇이 없어야 할 것이고 무엇이 있어야 할 것일까? 
그는 그러나 확실하게 알 수가 없었다.
대완은 지금쯤 술에서 깨어났을까? 
그녀 역시 그처럼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플까? 
그는 문득 자기가 그녀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대완처럼 못생기고 야만적이며 이치를 따지지 않는 여인에게도 귀여운 면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는 근본적으로 그녀가 어디에서 온 사람이며 그녀가 어디로 갈 것인지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지금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그들은 부평초처럼 서로 만나 잠시 있다가 지금은 서로 헤어져 버린 것이었다.
앞으로 영원히 다시는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마여룡은 한숨을 내쉬며 다시는 그녀를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이 해도 저물어가고 있었다. 
집집마다 설맞이로 한창 분주해 있었다.
사람들은 주머니에 두둑이 돈을 가지고 여러 가지 설맞이 물품을 사고 있었다. 
이 골목길 바깥쪽에 작은 꽃가게가 있었다.
한 명의 주부가 하녀를 데리고 설맞이 물건을 사고 있었다. 
금침(金針), 목이(木耳), 홍조(紅棗), 백과(百菓), 순건(筍乾)같은 물건들이 바구니에 가득 담겨져 있었다. 
그 나이 어린 하녀는 대바구니를 들고 그 주부의 뒤를 따라가다가 화분에 심은 매화에 시선이 갔다. 
십오륙 세쯤 된 소녀가 아름답고 향기롭고 붉은 매화꽃을 좋아하지 않을 리 없었다. 그녀는 입을 열었다.
[마나님, 우리들도 저 두 화분의 매화를 사가지고 집으로 가는 것이 좋지 않겠어요?]
[안 돼.]
누빈 솜옷을 입은 주부는 딱딱하게 얼굴을 굳히고 잘라 말했다.
하녀는 그래도 고집을 꺽지 않았다.
[이 꽃은 별로 비싸지도 않으니 사다가 놓고 구경을 한다면 참 좋을 것 같은데요?]
그 젊은 부인은 말했다.
[나는 그 꽃을 살 기분이 아니란 말이야.]
하녀는 하숨을 내쉬며 나직히 말했다.
[마나님, 너무 신경쓰지 마셔요. 나으리께서는 이삼 일 돌아오시지 않았을 뿐인데 꽃을 감상할 마음의 여유를 잃어버리면 어떻게 해요.]
그 부인은 차갑게 말했다.
[잔소리가 많구나. 어서 가자.]
하녀는 불만을 품은 듯 입을 삐죽 내밀더니 젊은 부인을 따라갔다. 이것은 흔히 있는 일이고 다른 사람들의 주의를 끌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마여룡은 유심히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 명의 작은 가정의 주부조차도 하녀를 데리고 다니는데 구봉성은 어째서 소완에게 하녀를 붙여주지 않았을까. 
한 명의 주부조차도 남편이 이삼 일 동안 돌아오지 않는다면 꽃을 감상할 마음의 여유가 없는데, 소완의 화장대 위에는 어째서 매화 꽃이 꽂혀져 있을까. 
만약 구봉성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녀는 자살을 하겠다고 했다. 자살을 결심한 여자에게 꽃을 꺽어 감상할 마음의 여유가 있을 수 있을까?
이제서야 마여룡은 소완의 방에 없어야 할 물건이 무엇이고 있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가 있었다.
있어야 할 하녀는 없고 없어야 할 꽃병이 있었던 것이다.
문은 이미 잠그어져 있었다. 
이 골목길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평범한 사람들이었고 소완의 집이 그래도 비교적 컸다. 
담장도 비교적 높았고 튼튼하게 지어져 있었으며 나무판으로 만든 대문은 이미 안으로 잠겨져 있었다.
마여룡은 열살 때 이미 담을 뛰어넘는 경신술을 익힌 적이 있다.
천마당의 경공과 검범은 강호에 이름을 떨치고 있었다.
그는 이미 소완을 의심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는 마땅히 담을 뛰어넘어서 몰래 소완의 동정을 살펴보아야 했다.
한 사람의 진면목을 살펴보는데 있어서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관찰하는 것이 가장 좋은 법이다. 
그러나 마여룡은 그런 짓을 할 수가 없었다. 이전에도 한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문을 두드릴 준비를 했다.
그가 막 문을 두드리려고 했을 적에 그는 일종의 기괴한 음성을 들었다.
그가 들은 것은 웃음 소리였다.
인간이란 다소 비참하고 불행한 일을 당할지라도 그리고 언제 어디서라도 웃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가 기괴하게 느낀 것은 그 웃음 소리가 남자의 웃음 소리였으며 소완의 방에서 흘러나왔기 때문이었다.
이 집은 구봉성이 소완에게 사준 것이었다.
집 안에는 소완 혼자 살고 있었는데 어떻게 남자의 웃음소리가 흘러나올 수 있을까.
조용한 밤 골목길 안도 쥐죽은 듯이 고요했다.
웃음소리는 비록 짧막했지만 그는 분명히 들었던 것이다. 이번 사건과 관련된 사람은 언제라도 죽음을 당할 두려움이 있었다.
어떤 사람은 사람을 죽이기 직전에 웃는 버릇이 있다고도 한다. 
그는 그 사람이 혹시 소완을 죽여 입을 막으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마여룡은 더 생각할 여유도 없이 담장을 뛰어넘어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집의 정원 서쪽에는 창문이 약간 열려 있었고 그 옆에는 매화나무 두 구루와 오래된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그 소나무에 몸을 숨기고 내려다 보면 집 안의 광경을 잘 살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여룡은 담장 안으로 뛰어들어 그 소나무 위로 올라갔다.
그는 결코 다른 사람의 사생활을 훔쳐볼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그런 것을 따질 겨를이 없었다.
그는 나무에 올라서는 순간 창문을 통하여 소완의 모습을 보았고 한 남자의 모습을 보았다.
그는 그 남자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그 남자는 창문을 등지고 의자에 앉아 맞은편의 소완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여룡이 본 것은 다만 그 남자가 의자 밑으로 내려뜨린 한쪽 발뿐이었다.
그의 발에 신겨져 있는 신은 매우 비싸고 화려하게 치장되어 있는 신발이었다.
다만 여자를 홀리고 돈을 물쓰듯 하는 바람둥이들만 신을 수 있는 신발이었다.
소완은 그 남자의 앞에 서서 기괴한 눈초리고 그를 바라보며 차갑게 웃었다.
[당신은 정말 내가 죽기를 바라나요?]
그 남자는 냉소하며 말했다.
[당신은 내가 감히 그러지 못하리라고 생각했소?]
소완은 대답했다.
[좋아요. 당신이 내가 죽기를 바란다면 당신 앞에서 죽어 보이겠어요.]


8. 사정(私情)


어떤 사람은 천성적으로 꽃을 좋아한다. 어떤 심정이든간에 꽃을 꽃병에 꽂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남자는 무엇 때문에 소완을 핍박하여 죽게 하려는 것일까?
이 남자와 소완은 무슨 관계일까?
혹시 구봉성의 친구로서 그녀에게 순정(殉情)을 강요하러 달려온 것일까?
아니면 그녀를 죽여 입을 막으려는 것일까. 
마여룡의 여러가지 생각을 하고 있는데 소완은 갑자기 그 남자에게 달려들더니 그 남자의 무릎 위에 앉아 그 남자의 목을 슬쩍 껴앉고 그 남자의 귀를 살짝 깨무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할딱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이 내가 죽기를 바란다면 나도 당신이 죽기를 바라겠어요.]
그녀는 옷을 훌훌 벗어던졌다.
분홍빛 젖가리개까지 벗어던졌다.
희고 탐스런 젖무덤이 나타났다. 
그 남자는 미친듯이 그녀의 젖꼭지를 빨기 시작했다.
마여룡은 더 이상 볼 수가 없었다. 
그는 다른 사람의 사사로운 애정에 간섭할 입장이 못 되었다.
그러나 그는 구봉성이 소완을 사랑한 나머지 죽음을 각오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가 팠던 구덩이도 생각났다.
그는 하마터면 이 죽일 년놈들아 하고 달려들 뻔했다.
그러나 그는 창문을 뛰어넘어 달려들지 않고 다시 담장 밖으로 뛰어나가 있는 힘을 다하여 대문을 두드렸다.
한참 두드렸을 때 비로소 소완의 음성이 안에서 들렸다.
[누구세요?]
[나요.]
[내가 누구예요? 당신이 누군지 내가 어떻게 알겠어요? 당신은 설마하니 이름조차 없다는 말인가요?]
소완의 목소리는 매우 짜증이 나 있었다.
그러나 결국 그녀는 대문을 열어주었다.
[이제 보니 당신이군요.]
마여룡을 발견하고 그녀는 약간 놀라는 것 같았다.
그러나 곧 얼굴을 딱딱하게 굳히며 냉랭히 입을 열었다.
[뜻밖에도 마공자께서 오셨군요. 혹시 나 혼자 외롭게 밤을 보내는 것이 딱해서 구봉성을 대신하여 나랑 놀아주려고 왔나요? 도대체 이 밤중에 무엇하러 왔어요?]
이 말은 빨리 꺼지라는 말과 같았다. 
눈치 빠른 사람이라며 그 말을 듣는 순간 재빨리 사라져 주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마여룡은 이번에 눈치가 없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그는 담담히 말했다.
[나는 당신이 외롭고 쓸쓸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소. 내가 걱정하는 것은 당신이 다른 사람에 의해서 살해되는 것이오.]
소완은 얼굴을 붉혔다. 그러더니 갑자기 몸을 돌려 안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나를 따라오세요.]
마여룡은 그녀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뜻밖에도 그를 데리고 자기의 침실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침실 안에 그 남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그 남자가 앉아 있던 의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앉으세요.]
그러나 마여룡은 앉지 않았다. 
그 남자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러나 마여룡은 그 남자가 신던 그 화려하고 멋있는 한 쌍의 신발을 발견했던 것이다.
이 방의 침대 뒷쪽에는 휘장이 내려져 있었다. 
매우 긴 휘장이었다.
땅바닥까지 내려오는 휘장이었지만 약간 부족해서 그 신발이 땅 밑으로 들여다 보였던 것이다. 소완은 말했다.
[당신은 어째서 앉지 않는가요?]
마여룡은 대답했다.
[이 의자는 내가 보기에 아무래도 내가 앉을 자리 같지가 않군.]
소완은 거북하게 웃으며 말했다.
[당신이 앉지 않는다면 여기에 누가 또 있어서 그곳에 앉을 수 있겠어요.]
마여룡은 말했다.
[한 사람이 앉을 수 있을 것이오.]
소완은 말했다.
[이 방 안에는 구봉성을 제외하고 오로지 당신만이 들어왔으며 그밖에 어떤 사람도 들어온 적이 없어요.]
그녀는 이때에 이르러서도 매우 침착했다.
그리고 이 방 안에 다른 사람이 없다고 극구 부정하는 것이었다.
마여룡은 더 참지 못하고 달려가 휘장을 열어젖혔다.
휘장 뒤에는 당연히 사람이 있었다.
소완의 말대로 이 방 안에는 구봉성과 마여룡을 제외한 다른 사람은 없었다.
휘장 안에 있던 사람은 바로 뜻밖에도 구봉성이었던 것이다.
마여룡은 방에서 달려나가 대문을 박차고 골목길로 들어섰다. 
다행히 날은 이미 어두웠다.
추운 날씨여서 아무도 길을 다니지 않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 모두 그를 미친 놈으로 쳐다보았을 것이다. 
지금 그가 하고 싶은 유일한 일은 자기의 따귀를 힘껏 치는 일이었다. 그는 영원히 그가 휘장을 열어젖히던 그 순간을 잊어버릴 수 없을 것이다.
구봉성이 그를 바라보는 표정을, 소완이 그를 바라보는 표정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는 마땅히 구봉성이 언제라도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 생각했어야 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바로 구봉성이라는 것을 짐작했어야 옳았다.
그리고 구봉성의 음성을 알아차렸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못했다.
구봉성은 필경 교양이 매우 풍부한 명문 가족의 아들이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그는 웃음을 잃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웃음은 마여룡의 따귀를 때리는 것보다 마여룡은 견디기가 어려웠다. 그는 창피하기 이를 데 없어서 그 순간 방 안에서 달려나왔던 것이다. 
지금 그는 혼자였고 한 푼의 돈도 지니지 않았으며 마땅히 갈 곳도 없었다. 
이번 사건에 있어서 그는 단 한 건의 단서조차 잡지 못했다.
그는 이 넓은 세상에서 외톨이가 되어 떠돌아다니다가 보람없이 죽게 될런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문득 그는 자기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의 뒤에 한 사람이 따라오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뒤에 따라오는 사람이 누구이든간에 그는 지금 그를 주의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갑자기 뒤따르던 사람이 바짝 따라오더니 매우 아름다운 손을 내밀어 그에게 한 가지 물건을 전해 주었다.
마여룡은 그 물건을 받아들었다. 그것은 술에서 깨게 하고 머리를 맑게 하는 한 봉지의 두통약이었다.
그가 그 두통약을 삼키기를 기다려 그녀는 입을 열었다.
[이것은 술을 깨게 하고 속을 편안하게 하는 약이에요.]
마여룡은 웃었다.
[당신은 머리가 아프지 않소?]
대완은 대답했다.
[아프지 않아요.]
마여룡은 물었다.
[어째서 아프지 않을까?]
대완은 대답했다.
[왜냐하면 나는 줄곧 다른 사람의 쓸데없는 일에 상관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다른 사람의 쓸데없는 일에 상관하는 일은 매우 골치아픈 일이다. 다른 사람의 머리를 아프게 할 뿐만 아니라 자기의 머리도 아프게 되는 것이다. 그녀는 다시 물었다.
[당신은 소완을 만나 보았나요?]
[그렇소.]
[어땠어요?]
[뭐가 어땠다는 것이오?]
[그녀는 어떻게 생겼나요?]
[생긴 것은 그럴듯 하더군요.]
[그녀가 예쁘게 생겼는데 당신은 왜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이렇게 허둥거리는 거죠?]
마여룡은 탄식했다. 차라리 귀신을 보았으면 좋았을 것을.
대완은 물었다.
[당신은 무엇을 보았나요?]
마여룡은 대답했다.
[내가 본 것은 구봉성이었소.]
그는 조금 전에 일어난 사건을 모두 이야기해 주었다. 이것은 창피한 일이기 때문에 그는 원래 그런 일을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그녀 앞에서는 어떤 일도 숨기지 않았다.
대완은 웃더니 입을 열었다.
[내가 당신이라고 해도 나 역시 부끄러워서 몸둘 바를 몰랐을 거예요. 그런데 이상한 일이군요.]
마여룡이 물었다.
[무엇이 이상하다는 것이오?]
대완은 말했다.
[구봉성은 당신을 잘알고 있었는데 어째서 몸을 숨긴 것일까요.]
마여룡은 대답했다.
[그들은 어쨌거나 정상적인 부부는 아니잖소? 명문가족의 후예인 그 공자는 어쨌거나 남들에게 그런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을 것이오. 그래서 몸을 숨겼겠지.] 
대완은 그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당신은 다른 사람을 잘 이해하고 있는 것 같군요.]
마여룡은 말했다.
[그럴지도 모르지.]
대완이 말했다.
[본래 나는 당신을 오만하고 자기밖에 모르며 다른 사람이야 죽든 말든 신경쓰지 않는 사람인 줄 알았어요.]
그녀는 갑자기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그러나 지금 나는 당신을 다시 보게 되었어요. 내가 잘못 보았던 것이지요.]
이 야만적이고 이치를 따지지 않는 여인은 뜻밖에도 자기의 잘못을 시인하는 솔직함이 있었다. 그것은 사실 뜻밖의 일이었다. 
대완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는 당신을 본 후에 무어라고 말했나요?]
마여룡은 말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소. 그것이 더욱 견디기 어려웠소.]
대완은 물었다.
[당신은 무슨 말을 했나요?]
마여룡은 쓴 웃음을 웃었다.
[그런 처지에서 내가 무슨 말을 할 수가 있었겠소?]
대완은 물었다.
[그는 당신을 붙잡아 풍초범에게 넘겨주고 싶어하지 않았나요?]
마여룡은 말했다.
[그러지는 않았소.]
대완은 말했다.
[당신은 그에게 물어보지 않았군요. 그날 당신이 떠난 후에 한매곡에 어떤 일이 발생했는지, 벽옥부인이 그곳에 도달했는지, 그를 사위로 맞이하게 됐는지...]
마여룡은 대답했다.
[나는 물어보지 않았소.]
그는 갑자기 눈을 크게 뜨고 의아스럽다는 어조로 대완에게 물었다.
[이러한 일들을 당신은 어떻게 알고 있소?]
대완은 신비하게 웃으며 말했다.
[당연히 어떤 사람이 나에게 알려 주었어요.]
마여룡은 물었다.
[누가 당신에게 알려 주었소?]
대완은 말했다.
[한 명의 술 취한 사람이에요.]
마여룡은 말했다.
[그 술취한 사람은 혹시 내가 아니오?]
대완은 웃었다.
[당신은 어쨌든 바보 멍청이는 아니군요.]
마여룡은 쓴 웃음을 짓는 수밖에 없었다.
그가 술 취한 후에 적지 않은 말을 지껄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무슨 말을 그녀에게 지껄였는지 지금 제대로 기억할 수가 없었다.
대완이 입을 열었다.
[사실 벽옥부인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심홍엽은 이미 죽었고 당신은 이미 모든 사람이 손가락질 하는 흉수가 되었으며 은창공자 구봉성을 제외하고 그 누가 벽옥산장의 사위가 될 사람이 있었겠어요?]
그녀는 탄식하며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러나 구봉성을 선택한 것이 현명하다고 하기는 힘들 것 같아요.]
사실 이 사건이 발생한 후에 오로지 구봉성만이 유리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마여룡은 이렇게 말했다. 
[물론 구봉성만 유리하게 되었소. 그러나 그는 절대로 흉수라고 할 수가 없소.
대완은 물었다.
[그것은 어째서 그런가요?]
마여룡은 대답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생사를 약속한 소완이라는 여인이 있기 때문이오. 그는 근본적으로 벽옥산장의 사위가 되려고 하지 않았소. 그럴 바에는 차라리 목숨을 끊으려고 했었소.]
대완은 탄식하며 말했다.
[어쨌거나 그가 흉수가 아니라면 그럼 누가 흉수일까요?]
마여룡은 대답했다.
[천살이 흉수일 것이오.]
대완은 물었다.
[천살은 어떤 사람인가요?]
마여룡은 대답했다.
[천살은 사람이 아니오. 그것은 비밀 조직이오. 사람을 죽이는 조직이오.]
대완은 말했다.
[천살에서는 어째서 이런 일을 만들었을까요? 그들은 어째서 당신을 죽이려고 했을까요?]
마여룡은 대답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혼란을 조성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오. 사대공자의 가문과 그들의 친구들이 서로 싸우기 시작한다면 강호에는 반드시 큰 혼란이 생길 것이고 그들은 어부지리를 얻을 것이오.]
그의 해석은 매우 합리적이었다.
이렇게 무림이 온통 혼란에 휩싸이는 일은 이전에도 발생한 적이 없었고 이후에도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천살이라는 조직은 비밀에 쌓여 있기 때문에 그 누구도 그들의 조직을 파헤치지 못해서 그들은 이번 계획이 완전히 성공한 뒤에 아마 변신을 꾀할 것이고 아마 광명정대한 커다란 문파를 만들 것이오. 그러면 그들의 막강한 힘앞에 강호는 평정되고 말 것이오. ]
대완은 말했다.
[그렇겠군요. 사대공자의 가문과 그들과 관계된 모든 강호인들이 서로 죽이고 죽는 싸움을 한다면 모두 같이 망하게 될 거예요.]
마여룡은 대답했다.
[그러나 난 절대로 그런 일이 생기도록 방관하지 않을 것이오.]
대완은 물었다.
[당신은 무슨 좋은 방법을 생각해 두었나요?]
마여룡은 대답했다.
[나는 반드시 먼저 천살의 우두머리를 찾아낼 것이오.]
대완은 물었다.
[당신은 그를 찾아낼 방법이 있는가요?]
마여룡은 말하지 않았다. 
그는 실제로 전혀 단서를 잡지 못했다. 근본적으로 어디에서부터 착수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고 있었다.
대완은 말했다.
[천살의 우두머리는 분명히 당신들 사공자가 그날 한매곡으로 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거예요.]
마여룡은 말했다.
[그렇소.]
대완은 말했다.
[그는 어떻게 알았을까요? 당신들 사공자를 제외하고 누가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요? 당신은 그 사건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린 적이 있었나요?]
마여룡은 말했다.
[나는 알린 적이 없소. 그러나 구봉성은....]
그는 홀연 소완이 한매곡의 일을 거론했던 것을 생각해냈다.
소완은 그에게 이렇게 물었었다.
[며칠 전 당신은 한매곡에 있었나요?]
그녀가 그들이 한매곡에 갔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것은 당연히 구봉성이 그녀에게 알려주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구봉성은 그 사건을 그녀에게 말해주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에게도 말했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소완이 다른 사람에게 말했는지도 모른다.
마여룡은 여자들이 비밀을 지키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어쩌면 이것이 유일한 단서가 될지도 모른다.
마여룡은 말했다.
[나는 반드시 그에게 가서 물어보아야 하겠소. 많은 일들은 다만 그에게 물어보아야 비로소 명백하게 될 것이오.]
대완은 물었다.
[당신은 혹시 지금 당장 그에게 가서 물어볼 생각이 아닌가요?]
마여룡은 대답했다.
[당연히 지금 곧바로 갈 것이오.]
그는 말을 하며 걸음을 옮겼다.
대완은 탄식하며 말했다.
[그들은 지금 서로 좋아서 죽으려고 하고 있을 텐데 지금 또 다시 그들에게 찾아간다면 그들이 어떤 표정을 지을까요?]
마여룡은 말했다.
[그렇다면 내가 언제 가야 한단 말이오?]
대완은 기괴한 표정을 짓더니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아무래도 지금 당장 가보는 것이 좋겠네요. 빨리 가봅시다.]
여자의 마음은 정말 변덕이 심한 모양이었다.
마여룡이 참지 못하고 다시 물었다.
[당신은 어째서 지금 곧 가야 된다고 하는 거요?]
대완이 말했다.
[왜냐하면 당신이 지금 가지 않는다면 어쩌면 영원히 갈 수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에요.]
그녀는 탄식하며 말을 이었다.
[지금도 어쩌면 당신이 갈 수 없을지도 모르죠.]
이때 그들은 다시 골목길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마여룡은 더 왜냐고 묻지 않았다. 그는 더 물을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골목길 양쪽에 칠팔 명의 흑의인이 그들의 앞길을 막고 있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9. 진정(眞情)


골목길은 매우 길고 또 어두웠다. 
그들의 앞에 네 사람이 나타났고 그들의 주위에는 세 사람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 일곱 사람은 모두 검은 옷을 입고 검은 복면을 하고 있었다.
그들의 발걸음은 매우 느릿느릿했다. 보기에 조금도 조급함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 두 남녀가 이미 독 안에 든 쥐요 그물에 걸린 고기 꼴이 되어 근본적으로 도망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여룡은 나직히 말했다.
[당신은 두려워하지 마시오. 내가 그들에게 당신을 놓아주라고 하겠소.]
대완은 물었다.
[그들이 내가 가도록 놓아 줄까요?]
마여룡이 물었다.
[이 일은 근본적으로 당신과는 전혀 관계가 없으니 어찌 당신이 가는 것을 막겠소?]
대완은 말했다.
[그들이 당신을 찾아온 것인가요?]
마여룡은 말했다.
[당연히 그렇지]
대완은 말했다.
[당신 생각이 틀렸어요.]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나도 그들이 당신을 찾아왔기를 희망해요.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렇지 않을 것 같아요.]
마여룡은 물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시오?]
대완이 말했다.
[당신은 살인을 한 흉수예요. 흉수를 잡는 것은 떳떳하고 자랑스러운 일인데 무엇 때문에 복면을 하고 나타났겠어요?]
마여룡은 그녀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대완은 다시 말했다.
[그러나 당신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요. 나도 그들에게 말해서 당신을 놓아주도록 할게요.]
마여룡은 말했다.
[당신은 나보고 도망을 가라는 것이오?]
대완은 말했다.
[우리 두 사람의 사이는 크게 친한 것도 아니고 크게 먼 것도 아니예요. 다른 사람이 나의 목숨을 원하는데 설마하니 당신이 나를 따라 같이 죽겠다는 것인가요?]
마여룡은 말했다.
[어쨌든간에 나는 당신과 함께 이곳에 있을 것이오.]
대완은 물었다.
[그건 어째서인가요?]
마여룡은 말했다.
[당신 한 사람을 남겨두고 내가 어찌 혼자 도망칠 수 있단 말이오?]
대완은 말했다.
[나는 나쁜 여자이고 남에게 좋은 일을 베푼 적이 없는 사람이에요. 나를 도와줄 필요는 없어요.]
마여룡은 말했다.
[나는 당신이 결코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소.]
[당신이 어떻게 알아요? 당신은 나의 성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잖아요?]
마여룡은 말했다.
[그렇지만 나는 당신을 믿소.]
대완은 그를 바라보며 탄식했다.
[나는 지금까지 당신이 어느 정도 총명하다고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당신이 이렇게 멍청하군요.]
이 골목길이 비록 길고 일곱 명의 흑의인들이 천천히 걷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어쨌거나 거리는 점점 좁혀지고 있었다. 
그 일곱 명의 흑의인은 모두 병기를 휴대하고 있었다. 모두 보기드믄 이상하게 생긴 병기였다.
어떤 사람이 들고 있는 것은 상관금홍(上官金虹)이 소리비도(小李飛刀)과 싸울 때 사용했던 용봉금환(龍鳳金環)을 들고 있었고, 어떤 사람은 한 쌍의 원앙과호람(鴛鴦跨虎襤)을 들고 있었다.
이러한 무기들은 강호에서 오래 전부터 사용한 사람이 사라진 것이었다.
이런 종류의 병기는 위력이 엄청나게 크지만 그 반면에 연마하기가 극히 힘들었다.
그러므로 이런 종류의 병기를 사용하는 사람은 하나같이 무공이 뛰어나고 상대하기 어려운 사람들 뿐이었다.
그러나 마여룡은 겁을 먹지 않았다.
대완은 홀연 입을 열었다.
[그들이 나를 잡으러 온 걸까요, 아니면 당신을 잡으로 온 걸까요?]
손에 용봉쌍환을 든 흑의인은 키가 작고 복면 밖으로 흉흉한 안광을 뿜어내고 있었는데 그는 냉랭히 대완의 말을 받았다.
[너를 잡으러 왔으면 어떻고 저 놈을 잡으러 왔으면 어떻다는 것이냐?]
대완은 말했다.
[만약 그를 잡으러 왔다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군요. 나는 무슨 영웅호걸도 아니고 군자도 아니니, 당신들이 그를 죽이든 말든 나는 상관하고 싶지 않아요.]
그 사람은 냉소를 했다.
[너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나도 알아보았으니까.]
대완은 말했다.
[그러나 당신들이 만약 나를 잡으러 왔다면 상황은 결코 간단하지가 않을 거예요.]
그 사람은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냐?]
대완은 물었다.
[이 남자는 결코 내가 당신들에게 죽도록 수수방관하지 않을 거예요. 당신들이 허튼 짓을 한다면 그는 당신들과 목숨을 걸고 싸울 거예요.]
그 사람은 말했다.
[네 말뜻은 우리들이 만약 너를 잡으려 한다면 먼저 그를 죽여야 한다는 말이로구나.]
대완은 마여룡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셈이죠.]
마여룡은 침착하게 대답했다.
[사실이 그렇소.]
그 자신도 이런 일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사실 그는 지금 할일이 너무 많았다. 
지금 이런 일로 그가 죽고싶은 생각은 없었다. 
지금 그가 여기서 죽게 된다면 그는 영원히 억울한 누명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말한 것이다.
그는 한 번 말한 이상 절대로 후회하지 않았다.
대완은 물었다.
[당신들도 그의 말을 들었죠?]
흑의인은 냉소했다.
[보기에 그는 영웅일뿐 아니라 군자인 모양이구나.]
대완은 말했다.
[그는 확실히 그래요.]
그 사람은 말했다.
[그러나 이런 사람은 애석하게도 명이 길지 못해.]
대완은 탄식하며 말했다.
[그 말을 일찌기 내가 그에게 해준 적이 있어요. 애석하게도 그는 내 말을 귀담아 듣지 않더군요.]
쨍, 하는 소리와 함께 금환이 서로 부닺쳐 불꽃을 사방으로 튕겨냈다.
옛날 상관금홍이 천하를 떨어울리며 금전방(金錢幇)을 창립했을 때 그의 무공은 모든 사람을 놀라게 했고 그의 지략은 천하를 삼킬 수 있을 것 같았다.
백효생(百曉生)이 지은 병기보(兵器譜)중에 상관금환은 비록 서열 이위였지만 강호에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의 무공이 결코 서열 일위였던 천기노인(天機老人)의 아래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손에 잡고 있던 한 쌍의 용봉금환은 천하에서 가장 패도적인 무기라고 공인되고 있었다.
이 무기가 흑의인의 손에 들어 있으니 비록 상관금환이 옛날 천하를 독보했을 때만큼 기개가 크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보는 사람에게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그런데 대완은 그 남자는 거들떠 보지도 않고 마여룡을 보면서 빙그레 웃고 있었다.
부드럽고 유쾌한 눈빛이었다.
강적이 이미 덮쳐오고 있는데 생사가 갈리는 순간에 그 여자는 뜻밖에도 매우 유쾌하게 웃고 있는 것이었다.
왜 그럴까? 
그것은 마여룡이 그녀를 버리고 도망가지 않고 그녀를 지켜주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녀에게 이것은 그녀가 살고죽는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이었다.
마여룡은 그녀가 자기를 바라보는 눈동자에 정이 가득한 것을 보고 덩달아 유쾌해졌다. 
미와 추 사이에는 본래 절대적인 표준은 없는 것이다.
유쾌하게 된다면 누구나 사랑스러워 보이는 것이 아닌가.
대완은 나직이 물었다.
[당신은 두렵지 않은가요?]
마여룡은 두렵지 않았다.
두려움이란 것은 가장 극복하기 어려운 약점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 속에 어떤 종류의 감미로운 정감이 싹틀 때는 능히 두려움은 이길 수 있는 것이다. 
대완은 물었다.
[당신이 만약 두렵다면 지금이라도 도망가면 됩니다.]
마여룡은 대답했다.
[나는 가지 않을 것이오.]
대완은 나직이 탄식하더니 말했다.
[그렇다면 나는....]
그녀는 말을 마치지 못했다. 
그녀의 음성이 갑자기 멈췄는데 마치 보이지 않는 칼이 그녀의 목구멍을 가르고 보이지 않는 마수가 그녀의 목을 잘라버린 것 같았다. 
그녀의 눈동자는 갑자기 극히 두려운 빛을 떠올랐으며 마치 그녀의 눈앞에 귀신이라도 나타난 것 같았다.
마여룡은 고개를 돌렸다. 
그는 순간 자기 뒤에 있는 한 사람의 모습을 보았다.
그 사람은 매우 평범한 여인이었다. 
몸에 입고 있는 것은 매우 소박한 청색의 베옷이었고 손에 들려있는 것은 한 개의 꽃바구니였다.
그녀는 막 골목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마여룡은 다시 고개를 돌려 대완을 바라보며 물었다.
[당신, 왜 그러시오?]
대완은 말했다.
[당신은 도망가야 되겠어요. 당신은 도망가지 마세요.]
그녀는 뜻밖에도 정말 도망치고 말았다.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그녀의 몸은 이미 바람처럼 날아서 옆에 있던 한 흑의인의 머리 위로 뛰어올라 높은 담장 위로 뛰어오르는 것이었다.
이때 그 꽃을 파는 소녀는 갑자기 빠른 속도로 달려왔다. 
그녀는 머리를 푹 숙이고 냅다 달려오는 것이었다.
그는 근본적으로 그녀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높은 담장을 보지 못한 것 같았다. 
모든 사람들은 그녀가 담장을 머리고 박을 것이고 곧 머리가 터져 피가 흐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그녀의 머리가 담장을 부딪혔으나 도리어 담장이 그녀에 의해 무너지고 말았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세 치 두께의 높은 담장에 갑자기 사람 모양의 구멍이 뚫렸다.
이 꽃을 파는 여자는 뜻밖에도 담장을 종잇장처럼 뚫고 그 속으로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대완은 이미 어디로 도망쳐 버렸는지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마여룡은 깜짝 놀랐고 모든 사람들도 다 깜짝 놀랐다.
대완의 경공술만 해도 사람을 놀라게 하였는데 꽃을 파는 사람의 경공술을 더욱 놀라게 했다. 
날은 더욱 어두워지고 바람은 더욱 차가워졌다.
흑의인들은 마여룡을 빙 둘러쌌다. 
마여룡은 마침내 참지 못하고 물었다.
[당신들이 찾고 있는 사람은 그녀이오, 아니면 나요?]
흑의인은 말했다.
[그녀다.]
마여룡은 말했다.
[그녀는 이미 도망쳤소.]
흑의인은 말했다.
[그렇다면 하는 수 없이 너를 죽여야겠구나.]
마여룡은 물었다.
[그건 어째서요?]
흑의인은 대답했다.
[왜냐하면 보검이 칼집에서 한 번 나왔다면 피를 보아야지 그냥 칼집으로 들어가면 재수가 없으니까.]
그는 사람을 죽이는 날카로운 무기를 쳐들며 눈에 살기를 띠고 말을 이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다. 우리들도 일단 출동했다 하면 사람을 죽이지 않을 수가 없다. 이미 그녀가 도망갔으니 우리들은 너를 죽이는 수밖에 없구나.]
마여룡은 말했다.
[좋소, 손을 쓰시오.]
이때 마여룡의 처지는 좋지가 않았다.
그의 손에는 무기가 들려 있지 않았고 마음 속에도 사람을 죽이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사람들은 어째서 사람을 죽일까.
마여룡은 폭력을 증오했다.
어떤 상황하에서도 그는 무력을 써서 폭력을 제지했을 뿐이었다.
그는 온몸에 힘을 주고 싸울 태세를 갖추었다. 그에게는 단지 하나의 목숨밖에 없었다. 그가 죽지 않으려면 힘으로 다가오는 폭력을 물리쳐야 하는 것이다.
쨍,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다시 짱, 하니 서로 부닥치며 불꽃이 사방으로 튀어나갔다.
그 순간의 마여룡의 몸이 용수철처럼 튕겨져 나갔다. 
그러더니 금환을 들고 있는 흑의인 옆에 있는 약해보이는 한 사람을 향하여 달려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자기가 살기 위해서 적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
그가 지금 공격해 들어가는 사람은 흑패(黑覇)라고 하는 자로, 키가 팔척 구촌이나 되고 어깨 넓이가 삼 척이나 되었으며 팔의 다른 사람의 넓적다리만큼 굵었고 주먹은 어린 아이들의 머릿통 만큼이나 컸다. 
마여룡은 어째서 이 사람이 상대방 가운데서 가장 약한 고리라고 생각한 것일까.
등나무 넝쿨은 큰 나무에 의지해서 뻗어 올라가고, 여우는 맹호의 위풍에서 사람을 놀라게 한다. 
약자는 결국 강자에 의지해서 위풍을 나타내는 것이다. 금환을 쥐고 설치는 흑의인은 바로 이 흑패를 믿고 설쳤던 것이다.
마여룡은 먼저 흑패를 제압하면 다른 사람들을 쉽게 제압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마여룡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흑패가 사용하고 있는 무기는 한 쌍의 혼원철패(混元鐵牌)였다. 
보기에 혼원철패는 최소한 칠십 근은 나갈 것 같았다.
마여룡이 달려들자 혼원철패가 곧장 마여룡의 얼굴을 향하여 찍어 들어왔다. 그러나 무기가 무겁다고 해서 위력을 발휘한다고는 할 수 없었다.
마여룡의 주먹은 날렵하게 혼원철패의 중간을 가격했다. 
혼원철패가 옆으로 비껴지는 순간 마여룡의 주먹은 다시 한 번 흑패의 콧잔등을 후려쳤다.
푹, 하는 소리와 함께 마여룡의 주먹은 흑패의 얼굴 속을 파고 들었다.
신음소리 한 번 내지 못하고 흑패는 뒤로 쓰러졌다.
흑패의 얼굴은 이미 본래의 형체를 상실하고 있었다.
흑패가 쓰러진 순간 마여룡의 발끝이 혼원철패의 한 쪽을 걷어차 하늘로 튕겨올라가게 만들었다.
혼원철패를 왼손으로 움켜쥐면서 몸을 빙그르르 돌려 혼원철패로 금환을 쥐고 있는 사람을 향해 후려쳤다. 
금환을 쥐고 있는 사람이 뒤로 물러났는데 마여룡의 오른 손은 맹렬하게 한 사람의 손목을 내리쳐 그 사람이 들고 있던 판관필(判官筆)을 땅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러나 천살의 조직원들은 무서웠다.
순식간에 마여룡을 다시 에워싸고 짓쳐들어오고 있었다.
흑패는 땅바닥에 쓰러져 얼굴이 짓뭉개진 상태에서도 숨을 헐떡거리면서 미친 듯이 부르짖고 있었다.
[그를 죽여라! 그를 죽여라! 죽여! 죽여! 죽여! 죽여!]
그는 죽이라는 말을 무려 일곱 번이나 반복했다.
발악을 하는듯 처절한 음성이었다.
그러면서 자기 가슴의 옷자락을 찢어버렸다.
그의 앞 가슴에는 열아홉 개의 붉은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한매곡에서 죽은 천살의 자객의 가슴에도 그와 똑같은 글자가 새겨져 있었던 것이다. 
마여룡은 미친 듯이 싸우기 시작했다. 그는 자기가 승산이 반드시 있는지 없는지는 고려할 수가 없었다.
오로지 모조리 때려죽인 다음에 비로소 자유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갑자기 그는 한 줄기 은빛 광채가 빛나는 것을 보았다.
눈부시게 그 은빛 광채는 허공을 가로지르며 날아들어왔다.
그것은 한 자루의 은창이었다. 
그가 그 은창을 발견하는 순간 구봉성의 음성이 들렸다.
[네 놈들이 그를 죽이려 한다면 먼저 나의 은창을 꺾어야 할 것이다. 네 놈들이 나의 은창을 꺾으려고 한다면 먼저 나를 죽여야 할 것이다.]
뜻밖에도 구봉성이 나타나 마여룡을 도와준 것이었다.
위급할 때 비로소 친구의 가치를 안다고 했다.
날카로운 은창의 창날은 한 사람의 목구멍을 찔러버리고 은창공자 구봉성의 주먹은 한 사람의 갈비뼈를 부러뜨렸다.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죽지 않은 흑의인들은 갑자기 도망쳐 버렸다.
그들은 이미 은창공자와 백마공자 두 사람을 도저히 당해낼 수 없다는 사실을 느꼈던 것이다.
밤은 점점 깊어가고 골목안으로 불어오는 바람은 더욱 차가왔다.
마여룡은 하나의 따스한 손길이 그의 손을 잡는 것을 느꼈다.
구봉성은 부드럽고 따뜻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나는 당신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알고 있소. 당신은 지금 몹시 술이 마시고 싶을 것이오.]


10. 문제(問題)


술은 좋은 술이 아니었다. 잘 숙성된 것도 아니었다.
더군다나 여아홍(女兒紅)도 아니었다.
단지 시장에서 아무때나 살 수 있는 화조(花雕)일 따름이었다.
마여룡은 어떤 술이든 간에 개의치 않았다.
소완이 그 옆에서 해석을 해주었다.
[봉성은 이 방에서 술 마실 때가 별로 없습니다. 친구들을 불러오는 적도 없지요. 그러므로 술 마실 기회가 별로 없답니다. 이 술단지는 내가 조금 전에 나가서 사온 것입니다.]
술은 그녀가 친히 사온 것이고 요리도 그녀가 주방에서 친히 만든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에게는 하녀가 필요없었다.
[봉성은 조용하고 깨끗한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하인을 두려고 하지 않았죠. 그렇기 때문에 이 안에 있는 모든 물건은 나 자신이 만든 것입니다.]
그녀의 음성 속에는 여성의 부드러움이 가득했다.
그녀의 생활은 오로지 구봉성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구봉성이 무엇을 좋아하면 그녀는 그 무엇을 했던 것이다. 
남녀 두 사람이 서로 좋아하면 그뿐이지 하인을 둘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또 반드시 좋은 술을 마셔야 할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마여룡은 홀연 그들에 대한 존경심이 솟아올랐다.
그는 속으로 생각해 보았다.
만약 그에게도 소완과 같이 오로지 자기만을 좋아하는 여자가 있다면 모든 것을 그를 위하여 베푸는 여자가 있다면 모든 것을 그를 위하여 버릴 줄 아는 여자가 있다면, 정말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홀연 대완이 생각났다. 
만약 그가 대완을 부인으로 맞아들인다면 그녀는 이런 방법으로 그를 섬기지 않을까? 
그러나 마여룡은 더 생각하지 않았다.
이 문제는 비단 황당하고 가소로운 뿐 아니라 웃기기까지 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당연히 절대로 대완과 같은 여자를 맞아들지 않을 것이다.
누가 보아도 대완과 같은 추악한 여자는 마여룡과 같은 미남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마여룡을 좋아하는 소녀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그런데 어찌 대완같은 여자를 배필로 맞아들일 수 있겠는가.
마여룡은 큰 잔을 쭉 들이키면서 더 이상 대완을 생각하지 말자고 결심했다.
구봉성의 주량도 적지 않은 것 같았다.
그는 오늘 술을 마실 기분이 났기 때문이다. 
소완도 벗하여 술을 마셨다.
두 남녀는 술기운이 오르자 더욱 친밀하게 굴었다.
마치 그들 앞에 마여룡이란 사람이 없는 것처럼 다정하게 구는 것이었다.
마여룡은 더 머물러 있기가 민망했다.
그는 완전히 구봉성을 신임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문제에 대해서 물어볼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그가 막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을 때 구봉성은 그에게 한 잔의 술을 권하고 소완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웃었다.
[소완, 너도 세 잔 더 마셔라.]
소완은 낄낄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한 잔만 더 마실래요.]
구봉성이 말했다.
[안 돼, 세 잔을 꼭 마셔야 돼.]
소완이 말했다.
[세 잔을 다 마셔 버린다면 나는 당신을 잡아먹고 싶어질 거예요.]
구봉성이 말했다.
[네가 나를 잡아먹는다면 나는 너를 목졸라 죽일 거야.]
소완은 음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는 정말 당신이 나를 목졸라 죽였으면 좋겠어요.]
구봉성이 말했다.
[정말이니?]
소완이 말했다.
[당연히 정말이죠.]
구봉성이 말했다.
[좋아.]
구봉성은 웃으며 한 손을 뻗쳐 소완의 목덜미를 움켜잡았다. 
그리고 나직이 말했다.
[그럼 나를 정말 목졸라 죽이겠다.]
마여룡은 그들이 장난치는 것을 더 두고 볼 수가 없었다.
그가 막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을 때 그는 갑자기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그의 눈앞에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소완의 교태를 머금던 눈동자가 물고기 눈처럼 툭 튀어나왔고 얼굴색도 새파랗게 질렸으며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졌기 때문이었다.
구봉성은 정말로 살아있는 소완을 목졸라 죽인 것이었다.
마여룡은 너무나 놀랐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그의 목을 조이는 듯 숨이 막히고 손발에 식은땀이 흘렀다. 
소완은 이미 땅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구봉성은 쓰러져 있는 그녀를 바라보는데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태연스러웠다.
얼굴에는 뜻밖에도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구봉성은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거짓말을 하는 것은 가장 나쁜 습관입니다. 나는 지금까지 거짓말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는 웃으면서 다시 말을 이었다.
[나는 그녀를 목졸라 죽이겠다고 분명히 말했고 그녀는 자기를 목졸라 죽여달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나의 말을 실천한 것뿐입니다. 그러므로 마공자 당신은 이제부터 내가 하는 말은 진실이라고 믿어도 될 것입니다.]
마여룡은 한 마디도 대꾸할 수 없었다.
그는 다만 토하고 싶었다.
구봉성이 대접한 술과 안주를 모조리 토하고 싶었다.
그러나 토할 수도 없었다. 토해지지가 않았다.
구봉성은 웃으며 유쾌하게 말했다.
[당신은 어째서 나에게 묻지 않소? 왜 그녀를 목졸라 죽였는지.]
그렇게 말하더니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사실 나는 일찍부터 그녀를 목졸라 죽일 생각을 하고 있었소. 그녀를 처음 만난 날부터 나는 그녀를 죽일 생각을 하고 있었소. 나는 돈을 주고 그녀를 샀소. 그리고 그녀에게 이 집을 사주었소. 왜냐하면 그녀를 이 집에서 목졸라 죽이기 위해서. 나는 그녀를 처음 본 순간 그녀가 매우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한 남자를 사랑하게 되면 목숨까지 바칠 것이라는 것을 알았소. 그런 종류의 여인이야말로 나의 계획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오.]
마여룡은 묻고 싶었다. 
[당신의 계획이 무어란 말이오?]
그러나 그는 묻지 않았다.
구봉성은 다시 설명했다.
[나는 모든 사람이 알도록 하고 싶은 것이오. 내가 이미 이와 같이 나를 위하여 죽음을 각오한 한 여자를 데리고 있고 둘이 서로 사랑을 맹서한 이상, 다른 사람은 모두 절대로 내가 백옥부인의 사위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오. 나는 그것을 노렸던 것이오.]
그는 탄식하며 말했다.
[사실 나 역시 목숨을 건 도박을 한 것이오. 그러나 나의 경쟁자인 세 명의 공자는 너무나 뛰어난 인물들이었소. 나 자신이 벽옥산장의 사위가 된다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었소. 그래서 나는 먼저 반드시 그 세 사람의 공자를 죽여야 했던 것이오. 그러나 그 세 사람의 공자를 죽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소. 다행히 당신 세 사람은 모두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었소. 마침 공교롭게도 두청련이 취풍루에서 술과 안주를 시켜 운반해 왔소. 그래서 나는 취풍루의 사환을 매수하여 술 속에 독을 넣고 또다시 천살의 살수를 고용하여 그 사환의 입을 막았던 것이오. 그러나 뜻밖에도 당신은 술을 마시지 않았소. 그러나 나는 일을 할 때는 항상 신중하기 때문에 언제나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일을 했소.] 
구봉성이 준비한 그 다음의 후수는 바로 금진림과 팽천패를 동원하는 일이었다. 
금진림은 이미 그에게 항복하였고 팽천패는 본래 구봉성과 한통속이었다.
가슴 속에 들어 있던 옥이 들어 있던 주머니를 찬 것도 그 계획의 일부분이었던 것이다. 
일이 성사된 후에 그는 모든 사람들을 죽도록 안배했다.
구봉성은 말했다.
[풍초범과 절대사는 사정을 알지 못하고 있어서 나는 일부러 팽천패에게 그들을 데리고 취풍루에 가서 술을 마시라고 했고 다시 그들을 데리고 한매곡으로 오라고 했소. 그것은 그들에게 이 사건을 알려주어 증인으로 삼기 위함이었소. 내가 절대로 무고한 사람이고 당신이 바로 흉수라는 것을 그들이 입증해 주도록 하기 위함이었소.]
구봉성은 미소하며 말을 계속했다.
[당신은 나를 탓할 수 없을 것이오. 당신 자신의 운이 나쁜 것을 탓해야 하오. 그런데 뜻밖에도 당신은 술을 마시지 않아서 죽지 않았소. 만약 당신이 그때 죽었다면 나는 지금처럼 번거롭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오.]
사실 구봉성은 지금 적수가 없었다. 
벽옥부인의 사위를 놓고 경쟁하는 사람은 모두 사라진 것이다. 
그러나 소완이 만약에 죽지 않는다면 그가 벽옥부인의 사위로 가는 일은 차질을 빚게 되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소완은 죽지 않으면 안되었다.
구봉성은 마여룡을 바라보며 다시 말을 계속했다.
[당신에 대해서 말한다면 당신이 죽든 말든 이제는 더 이상 중요한 일이 아니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은 이미 당신을 흉수로 지목하고 있기 때문에 당신이 죽지 않는 것이 나에게는 오히려 이익이 되는 것이오.]
마여룡은 물었다.
[어째서 당신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이오? 내가 죽지 않는다고 해서 당신에게 득이 될 것이 무엇이란 말이오?]
구봉성은 탄식하며 천천히 말했다.
[설마하니 당신은 아직까지도 내가 바로 천살의 수뇌 인물이란 것을 알지 못한단 말이오?]
마여룡은 그 말을 듣는 순간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천살을 생각하면 강호에 곧이어 조성될 크나큰 혼란이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었다. 이제야 마여룡은 이 사건의 내막을 환히 알 수 있게 되었다. 뜻밖에도 흉수는 자기 스스로 마여룡에게 진상을 낱낱이 알려준 것이었다.
마여룡은 참지 못하고 물었다.
[당신은 어째서 당신 자신의 비밀을 나에게 알려주는 것이오?]
구봉성은 웃으며 대답했다.
[왜냐하면....]
그 말을 하다 말고 갑자기 그의 얼굴색이 변했다.
마치 두청련이 죽기 직전에 보여주었던 얼굴 표정과 똑같았다.
창백하던 얼굴이 갑자기 검은 색으로 변하고 온몸을 뒤틀더니 그는 탁자를 걷어차 쓰러뜨리고 자기도 함께 땅바닥에 쓰러졌다.

11. 형벌(吊刑)


마여룡은 또 한 번 놀랐다. 술 속에 독이 있었단 말인가.
누가 독을 넣었을까. 
혹시 소완이 이미 구봉성이 그녀를 죽일 것을 알고 미리 술 속에 독을 넣었단 말인가.
그렇다면 마여룡 역시 똑같은 술단지에서 똑같은 술항아리 똑같은 술주전자에서 따른 술을 마셨는데 어째서 지금 구봉성은 독이 발작하여 죽었는데 그 자신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말인가.
이 문제는 정말 매우 복잡해서 설명을 하기가 힘들었다.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이 시비의 장소에서 빨리 떠나는 것이었다.
그가 막 그 자리를 떠나려고 생각했을 때 갑자기 팍, 하는 소리와 함께 마여룡의 사방에서 거대한 압력이 밀려들었다. 해일과 같은 압력은 사면팔방에서 그를 향하여 압박하여 왔다. 그 압력에 그의 심장은 무섭게 뛰었고 금방이라도 호흡이 멎을 것만 같았으며 코에서 피가 나오고 눈동자가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그는 하마터면 기절하여 쓰러질 뻔했다.
갑자기 그 압력이 소멸되더니 방 안에 네 사람이 나타났다.
제일 먼저 모습을 나타낸 사람은 절대사였다.
절대사에 이어 풍초범도 나타났고, 한 명의 바싹 마르고 피부가 시커먼 회색 옷을 입은 중이 나타났다.
그 중이 입고 있는 승포(僧袍)는 여러 번 기운 것이었고 그 중이 손에 들고 있는 것은 값비싼 취옥불주(翠玉佛珠)였다. 
또 한 사람은 소매가 넓은 옷을 입고 마혜(麻鞋)를 신었으며 머리를 단정하게 묶고 피부가 수정처럼 곱고 맑아 마치 옥으로 깎아 만든 것 같은 사람이었다.
이 네 사람이 네 방향에서 동시에 방을 향하여 밀려들어온 것이었다.
방으로 들어서기 전에 그 네 사람은 각자 수십 년 동안 갈고 닦은 내공을 발출하여 마여룡으로 하여금 도망갈 수가 없게 만든 것이었다.
마여룡을 습격한 네 줄기 압력 가운데 동쪽과 서쪽의 압력이 남쪽과 북쪽에서 밀려들어온 압력보다 훨씬 컸었다.
이것만 보아도 동쪽에서 들어온 중과 서쪽에서 들어온 옥도인(玉道人) 두 사람의 내공이 절대사나 풍초범보다 훨씬 강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마여룡은 이전에 그들을 본 적이 없지만 그들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고행승의 법호(法號)는 흘고(吃苦)라고 했다. 
그는 천축(天竺)에서 중원에 이르기까지 두루 돌아다니며 천하에 있는 불문무공(佛門武工)을 모두 섭렵한 사람이었다.
옥도인은 옛날 한 자루의 장검으로 천하를 진동시켰으며 천하 영웅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였고 천하의 모든 미녀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옥랑군(玉郞君)이었다. 
이 네 사람을 보는 순간 마여룡의 마음은 무겁게 가라앉았다.
이 세상에 그 누구도 이들 네 사람의 포위에서 벗어나 도망칠 수는 절대로 없었다.
이때 구봉성은 이미 숨이 멎어 있었다.
탁자 위에 있던 술과 술잔도 모두 땅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흘고화상(吃苦和尙)은 코를 벌름거리며 냄새를 맞아보더니 한쌍의 깊히 박힌 눈동자에서 칼날처럼 예리한 빛을 쏘아냈다.
그는 천축에서 중원에 이르기까지 불문무공을 배우러 다니는 동안 얼마나 많은 산과 물을 건넜으며 그동안 얼마나 많은 독충과 독사와 맹수와 돌벌레와 독초를 만났는지 모른다.
세상에 있는 모든 독은 그가 보지 않은 것이 없었다.
절대사는 비록 출가한지 오래된 중이었지만 성질이 매우 급했다.
그는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흘고화상은 입을 꼭 다물고 눈을 꼭 감고 생각에 잠겼다.
그러더니 한참 후에 입을 열었다.
[주전자와 술단지 안에는 독이 없습니다.]
절대사가 물었다.
독은 어디에 있습니까?]
흘고화상이 대답했다.
[그가 마신 최후의 한 잔 술에 독이 있었습니다.]
절대사가 물었다.
[무슨 독입니까?]
흘고화상이 대답했다.
[견기(牽機), 단장(斷腸), 소혼(銷魂), 이 세가지의 독초(毒草)를 혼합하여 만든 추충산(秋蟲散)입니다.]
절대사는 물었다.
[확실합니까?]
흘고화상은 대답했다.
[이러한 종류의 독은 색깔도 없고 냄새도 없습니다. 술 속에 넣는 것이 가장 좋은데 술에 일단 배합이 되면 매우 빠르게 발작합니다.]
절대사가 말했다.
[얼마나 빨리 독이 퍼집니까?]
흘고화상이 대답했다.
[마시는 순간 이미 독이 발작하여 그 사람을 죽게 만듭니다.]
절대사가 말했다.
[그는 방금 중독된 것 같군요.]
흘고화상 했다.
[그러기 때문에 독은 반드시 그가 마신 최후의 잔에 있던 것이오.]
절대사가 물었다.
[독을 해독할 수 있겠습니까?]
흘고화상이 말했다.
[추충산을 마신다고 해서 반드시 죽는 것은 아닙니다. 빨리 손을 쓰면 능히 해독할 수 있습니다.]
절대사가 물었다.
[당신은 해독할 수 있습니까?]
흘고화상이 말했다.
[나는 할 수 없지만 그는 할 수 있습니다.]
흘고화상은 옥도인을 바라보며 말을 계속했다.
[독을 알아보는데 있어서는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가는 사람이고 해독하는데 있어서는 당신이 나보다 훨씬 뛰어날 것이오.]
옥도인은 말했다.
[당신은 어떻게 내가 해약을 쓰는 데 뛰어나다는 것을 알고 있소?]
흘고화상은 대답했다.
[왜냐하면 당신은 바로 배신을 많이 한 사람이기 때문이오. 그러나 나는 배식한 적은 없소.]
옥도인은 빙그레 웃을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옥도인은 열여섯 살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여자들이 그를 독살하려고 했는지 모른다.
왜냐하면 그는 이곳저곳을 다니며 모든 여자들에게 정을 뿌리고 다녔기 때문에 사귀던 여자를 배반하고 새로운 여자를 사귀고 또 더 새로운 여자를 사귀면서 사귀던 여자를 배신했다.
이렇게 되자 그에게 배신당한 여자들은 그를 독살하려고 기도했던 것이다.
병을 오래 앓게 된다면 의원이 된다는 말이 있다.
그는 여러가지 독약에 당해봤기 때문에 능히 모든 독약을 해독할 수가 있었다.
흘고화상이 입을 열었다.
[만약 당신이 해독하지 못한다면 당신은 곧 죽은 시체가 되었겠지. 오늘 이곳까지 오지도 못했을 것이오.]
절대사는 말했다.
[만약 그가 이 추충산의 독을 해독하지 못한다면 그 누구도 해독할 수 없을 것이오.]
옥도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맞소.]
마여룡은 분명히 알았다.
이번에 그는 또 다시 함정에 빠진 것인데 이번의 함정은 예전의 함정보다 깊어서 도저히 빠져나올 수가 없는 것이었다.
독은 구봉성이 마신 최후의 술잔 속에 있었다.
그때 이미 소완은 죽어 있었을 때였다.
그렇다면 독을 쓴 사람은 당연히 소완이 아니다.
만약 구봉성 자신이 스스로에게 독을 썼다면 그 누구도 그 사실을 믿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독을 쓴 사람은 당연히 마여룡이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구봉성이 독이 발작할 때의 모습은 심홍엽과 두청련이 죽을 때의 모습과 완전히 같았다.
한매곡에서의 그 술 속에도 추충산을 넣었던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므로 이번에 독을 쓴 사람은 당연히 마여룡일 것이다.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구봉성이 이미 절대사 일행이 올 것을 알고 그들이 와서 자기를 해독시켜 구해줄 것을 알고 미리 자기가 마실 술에 독을 탔던 것이다. 그가 비록 마여룡의 앞에서는 자기가 흉수라는 것을 시인했지만, 그러나 마여룡을 주의하고 그 말을 들은 사람은 이 세상에 없었다. 
그러니 그 누가 마여룡의 말을 믿어 주겠는가.
구봉성이 마여룡에 의해서 독살당했다면 소완 역시 마여룡에 의해 목졸려 죽었을 것이다. 
그 누구도 구봉성이 소완을 목졸라 죽였다는 말을 믿지 않을 것이다.
살인을 한 살인자는 죽어야 하는데 마여룡은 이제 더 이상 변명할 여지가 없이 되고 말았다.


12. 말리화(茉莉花)


구봉성은 죽지 않았다.
그는 이번에 두 번째로 죽음에서 다시 살아난 것이었다. 
마여룡은 지금 금진림의 그 금창을 생각하고 구봉성이 가슴에 달고 다니던 옥이 들어 있는 주머니를 생각해 보았다.
그 옥이 들어있는 주머니는 소완과 구봉성이 얼마나 서로를 사랑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구봉성의 계획은 너무나 치밀하게 되어 있어서 그 누구도 그를 의심할 수 없게 되어 있었다.
매번 그는 스스로를 죽음으로 몰아넣음으로서 다른 사람이 절대로 그를 의심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구봉성은 몇 번 토하더니 정신을 차렸다.
네 명의 후수는 구봉성을 살려놓은 후에 마여룡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들의 눈초리는 칼날과 같이 예리했다.
제일 먼저 입을 연 사람은 풍초범이었다.
[너는 아직도 할 말이 있느냐?]
마여룡은 할 말이 없었다.
그가 이 사건의 진실을 말한다고 해도 그 누가 그의 말을 믿어 주겠는가.
그 누가 구봉성이 소완을 목졸라 죽이고 구봉성 자신의 비밀을 마여룡에게 말했다고, 그리고 자기가 마시는 술 속에 독을 탔다고 믿을 수 있겠는가.
절대사는 냉랭히 말했다.
[이번에 너는 무슨 물건을 내놓을 생각이냐?]
지금 마여룡에게는 보검도 없었고 주머니에 황금도 없었으며 여우가죽 옷을 입고 있지도 않았다.
더 이상 그런 물건을 내놓는다고 해서 속을 네 사람이 아니었다.
물론 내놓을 물건도 없었지만....
절대사는 냉랭히 말했다.
[지금 너의 죄상이 백일하에 드러났는데도 너는 지금 자기의 죄를 시인하지도 않고 가만히 앉아서 우리가 너를 사로잡도록 가만히 있지도 않을 것 같구나.]
그 말은 사실이었다. 
마여룡은 지금 변명을 할 수도 없었고 도망을 갈 수도 없었지만 한 숨의 숨이 붙어있는한 반항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절대사는 다시 말했다.
[우리 네 사람이 너를 사로잡는 것은 손바닥을 뒤집는 것보다 쉽다. 그러나 우리들은 많은 사람의 수로 한 사람을 이겼다는 명예스럽지 않은 말을 듣고 싶지는 않구나.]
[나는 이제야 당신의 뜻을 알 수 있겠군요.]
절대사는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
마여룡은 대답했다.
[당신은 당신 자신이 직접 나를 상대하여 친히 나를 죽이고 싶은 것이오. 왜냐하면 당신은 살인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인간이기 때문이오.]
그의 이 말은 정곡을 찌른 것이었다.
절대사는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고 한참 있더니 차갑게 입을 열었다.
[네가 나하고 싸우기 싫다면 다른 한 사람을 지적해도 좋다.]
마여룡은 말했다.
[나는 당신을 선택하겠소.]
절대사가 말했다.
[매우 좋다.]
마여룡은 다시 말했다.
[사실 내가 당신을 선택하지 말았어야 했소. 당신의 내공은 흘고대사보다 형편없소. 검술은 옥도인보다 못하며 무공을 따진다면 그들보다 못하지만, 그러나 당신은 사람을 죽인 경험이 다른 사람보다 훨씬 풍부하오.]
마여룡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나는 그 사실을 알지만 여전히 당신을 선택한 것이오.]
절대사는 물었다.
[그것은 어째서냐?]
마여룡은 대답했다.
[내가 당신을 선택한 것은 당신이 한 명의 잔혹하고 고집세고 자존망대한 미친 사람이기 때문이오. 당신은 지금까지 자기 스스로 다른 사람의 죄상을 만들었고 당신이 어떤 사람에게 죄가 있다고 인정하기만 한다면 당신은 그를 곧바로 죽였으며 그 사람은 죽지 않고는 견디지 못했던 것이오.]
그의 음성은 격동되어 있었다.
[내가 당신을 선택한 것은 당신에게 죽어간 억울한 원혼들을 위로하기 위함이오. 나는 비록 당신의 적수가 되지 못하지만 나는 확실히 장담할 수가 있소. 나는 당신과 함께 죽을 방법이 있소.]
절대사는 물었다.
[무슨 방법이냐?]
마여룡의 말을 그는 믿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얼굴은 약간 긴장되어 있었다. 
한 마음 한 뜻으로 죽기로 작정한 사람이 다른 사람과 같이 죽으려고 한다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마여룡의 말은 결코 과장이라고 볼 수가 없었다.
마여룡은 홀연 껄껄 웃으면서 말했다.
[하하하, 알고보니 당신도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군. 자기의 생명에 애착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군.]
그는 조롱하듯 말했다.
[나는 사실 당신과 함께 죽을 무슨 좋은 방법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소. 다만 당신을 한 번 놀려주고 싶었을 뿐이오.]
그 말을 들은 절대사는 눈에 핏발을 세우며 독수리 발톱같은 손가락을 높히 쳐들었다. 그리고 한 걸음 한 걸음 마여룡을 향하여 다가왔다.
이 방의 방바닥은 매끈매끈한 유목판(柚木板)을 깔아 만든 것이었다.
절대사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밑에 있는 목판이 산산이 부서져 나갔다.
그는 이미 온몸의 진기를 극도로 끌어올리고 일격에 마여룡을 쳐죽일 결심을 하고 있었다.
목판이 부서지는 소리 외에는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그들은 한 여인의 음성을 들었다.
[꽃 사세요, 꽃을 사. 주란(珠蘭)도 있고 말리(茉莉)도 있어요.]
그 소리는 처음에는 멀리서 들려왔는데 급속히 가까워져서 말이 끝날 때쯤에는 지척에 당도해 있었다.
그 맑고 귀를 즐겁게 하는 여인의 음성은 귓가에 입을 대고 부르는 것처럼 뚜렷히 들려왔다.
갑자기 벽의 한 귀퉁이에 사람 모양의 구멍이 뚫렸다.
그러더니 한 명의 대나무 삿갓을 쓰고 푸른 옷을 입고 몸매가 호리호리한 꽃을 파는 여자가 나타났다.
그녀의 손에는 철사줄에 꽂혀진 말리화가 들려 있었다. 
그녀는 갑자기 자기 몸으로 벽에 구멍을 뚫고 들어온 것이었다.
말리화는 향기롭고 아름다웠다. 
그녀의 손은 더욱 아름다웠다.
마여룡은 그 좁은 골목길에서 대완을 놀라 도망치게 만들었던 그 신비한 꽃 파는 여자를 퍼뜩 떠올렸다.
그녀는 지금 여기에 뭣하러 나타난 것일까?
[만리화 한 송이 사주세요.]
그녀는 홀연 손 안에 들고있던 말리화를 절대사의 손을 향하여 내밀었다.
절대사는 지금 온몸의 공력을 두 손바닥에 잔뜩 돋구고 있엇기 때문에 어떤 물건이든지 그 손바닥에 부딪치는 순간 산산조각이 나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의 손은 말리화를 꽃은 철사에 의해서 종잇장처럼 구멍이 뚫려 버렸다. 말리화를 꽂은 철사줄은 그 여세를 몰아 절대사의 심장을 찔러갔다.
절대사는 깜짝 놀라 재빨리 몸을 뒤로 날려 창문 밖으로 뛰쳐 나갔다.
이 꽃 파는 여자는 누구일까? 
이 한 송이의 말리화는 어떤 신비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말인가. 
꽃 파는 여자는 이미 몸을 돌려 옥도인의 얼굴 앞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말리화 한 송이만 사세요. 향기롭고 보기좋은 말리화, 말리화를 빨리 사세요. 사지 않는다면 당신은 반드시 후회를 하게 될 겁니다.]
옥도인은 말했다.
[내가 왜 그 꽃을 사야 된다는 거냐?]
꽃 파는 여자는 맑은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한 사람의 목숨과 한 송이의 말리화를 바꾸자는 것이지.]
옥도인은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나는 사지 않겠다.]
그의 몸이 갑자기 뒤로 튕겨지더니 쏜살같이 집밖으로 도망쳐 버렸다.
흘고화상이나 풍초범 역시 재빨리 도망쳐 버렸다.
꽃 파는 여자는 나직이 탄식했다.
[이 향기로운 말리화를 어째서 사지 않으려고 할까?]
마여룡은 홀연 입을 열었다.
[그들이 사지 않는다면 내가 사겠소.]
꽃 파는 여자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말했다.
[당신에게는 오로지 하나의 목숨밖에 없는데 어떻게 살 수가 있겠어요?]
마여룡은 말했다.
[내가 만약 반드시 사야 되겠다면?]
꽃 파는 여자는 말했다.
[나는 절대로 팔지 않겠어요.]
마여룡은 물었다.
[어째서?]
꽃 파는 여자는 말했다.
[왜냐하면 나는 당신의 목숨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마여룡은 말했다.
[나의 이 목숨은 주워온 것이고 덤으로 얻은 것인데 무엇이 소중하다는 것이오?]
꽃 파는 여자는 말했다.
[주워온 것이기 때문에 더욱 소중히 여겨야 하는 것이지요.]
그녀는 그 말을 마치고 밖으로 달려나갔다.
마여룡은 그녀의 뒤를 쫓아갔다.
그들은 재빨리 그 방에서 벗어나 어두운 골목길로 들어섰다.


13. 매화녀(賣花女)


차가운 밤하늘에는 구름 한점 없이 별들만 총총히 빛나고 있었다.
담담한 별빛 아래서 마여룡은 앞서 가고 있는 그 신비한 꽃 파는 여인이 그녀의 뒷모습이 왠지 눈에 익다고 여겨졌다.
이전에 그녀를 한번 본 것만 같았다.
마여룡은 급히 그녀를 앞질러 그녀를 한번 보려고 했으나 그녀는 여전히 그로부터 열 걸음쯤 앞에서 가고 있었다.
마여룡이 강호에 이름을 떨친 천마당의 경공술을 발휘하여 있는 힘을 다해서 쫓아갔지만 그녀는 언제나 그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앞장 서서 가고 있었다.
마여룡이 천천히 가면 그녀도 천천히 걸음을 옮겼고 마여룡이 재빨리 뒤쫓아 가면 그녀 역시 재빨리 앞장 서서 달려나갔다.
보기에 그녀는 그가 그녀를 앞지르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셈인 것 같았다.
얼마나 달렸을까. 
마여룡은 갑자기 외쳤다.
[당신은 내가 당신을 알아보지 못하도록 하려는 것 같군. 그러나 내가 당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줄 아시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여룡은 웃으면서 말했다.
[미안하게도 나는 이미 당신이 누구인지 알아버렸소.]
꽃 파는 여자는 홀연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의 웃음 소리는 적막한 밤 공기를 타고 마여룡의 귓가로 흘러들었다.
그 웃음소리는 한 잔의 뜨거운 술처럼 마여룡의 온 몸을 훈훈하게 해주었다.
그녀는 낄낄거리고 웃더니 말했다.
[정말 당신은 바보가 아니군요.]
그녀는 당연히 대완이었다. 
그녀는 꽃 파는 여자를 보자 놀라 도망을 쳤는데 지금은 어째서 꽃 파는 여인의 옷을 입고 손에 꽃바구니를 들고 이곳에 나타난 것일까. 
그 신비한 꽃 파는 여자는 어디에 있을까.
마여룡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대완이 신비하게 느껴졌다.
대완의 신세의 내력과 무공은 모두 신비에 가려져 있었다.
그날 그녀는 어째서 눈덮힌 땅구덩이에 파묻혀져 있었을까? 
절대사 옥도인은 무림의 고수들인데 어째서 그녀를 그토록 무서워하는 것일까. 
그녀에 관계된 모든 일들은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다. 
그는 그녀를 사귀면 사귈수록 도리어 더욱 이해할 수가 없다고 느껴졌다.
매번 그녀가 출현할 때마다 기묘하고 신비한 사건이 발생했었다.
이번에 그녀는 또 무슨 일을 하러 나타났으며 어째서 꽃 파는 여자로 변장을 했단 말인가.
대완은 장난기 어린 웃음을 웃더니 입을 열었다.
[나는 당신이 담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요. 그래서 이번에 당신을 데리고 이상한 곳으로 가려고 합니다.]
마여룡은 물었다.
[어디로 가려는 것이오.]
대완은 대답했다.
[한 사람을 찾아가는 거죠.]
대완은 매우 신비하게 웃었다.
[한 사람의 매우 괴상한 여자예요.]
마여룡은 물었다.
[내가 본 적이 있는 여자요?]
대완은 말했다.
[아마 한 번 본 적이 있을 거예요.]
[혹시 그 꽃 파는 여자가 아니오?]
대완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말했다.
[당신은 정말 바보가 아니군요. 그런데 당신은 감히 그녀를 보러갈 자신이 있나요?]
마여룡은 당연히 감히 가볼 자신이 있었다.
설사 그 꽃 파는 여자가 사람을 잡아먹는 요귀라고 할지라도 그는 여전히 가고 싶었다.
대완은 눈을 깜빡 거리더니 물었다.
[당신은 정말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나요? 그녀를 만난 후에 어떠한 일이 발생하든지간에 당신은 모두 후회하지 않을 생각인가요?]
마여룡은 대답했다.
[내가 이미 이렇게 많은 마땅히 후회할 일을 겪었는데 거기에 한 가지가 더 첨가된다고 해서 무슨 상관이 있겠소?]
대완은 깔깔 웃었다.
[물론 관계가 없겠죠.]
그녀의 웃음 소리는 맑고 즐거워 마치 방울 소리와 같았다.
[전혀 관계가 없을 거예요.]
이리하여 그들 두 남녀는 나란히 걸음을 옮겼다.
길을 가는 동안 마여룡은 줄곧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이번에 이 여자는 그를 데리고 도대체 어떤 곳으로 가는 것일까.
그는 여러가지 이상한 장소를 생각해 보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녀가 마여룡을 데리고 도달한 곳은 현성(縣城)의 아문(衙門)이었다. 
지현(知縣)의 벼슬은 칠품(七品)에 불과했지만 그 고장 사람들의 우두머리였다.
관아의 대문은 이미 잠겨 있었다.
그들은 옆문을 통하여 안으로 들어갔다.
마여룡은 난생 처음 관아에 들어오는 것이었다.
높은 시렁 위에는 억울할 때 북을 쳐 울리라고 만들어진 북이 높히 걸러 있었고, 대당(大堂) 위에는 사람을 고문할 때 쓰이는 곤장과 판자와 곤봉 각종의 형기들이 걸려 있었다.
이와 같은 물건들은 모두 그에게 매우 신기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가 가장 기괴하게 느낀 것은 다른 것 보다도 머리에 홍앵모(紅앵帽)를 쓴 포졸들이었다.
현관은 일찍 퇴근하고 관아에는 몇 명의 포졸들이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마여룡과 대완을 보았지만 마치 눈이라도 먼 장님들처럼 마치 근본적으로 그들을 보지 못했다는 듯 눈길조차 주지 않는 것이었다.
포졸들이 두 눈은 멀쩡했는데 마여룡과 대완이 분명 그들의 앞을 지나갔는데도 그들은 어째서 본 체도 하지 않는 것일까.
설마하니 대완이 신기한 마법을 사용하여 몸을 숨겼단 말인가.
대당 뒤에는 집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두 명의 포졸이 밖을 지키고 있었다.
마여룡은 갑자기 그들에게 다가가서 입을 열었다.
[이것 보시오. 당신들은 내가 보이지 않소?]
그러나 포졸들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한 명의 포졸은 옆에 있는 포졸에게 이렇게 묻는 것이었다.
[이보게, 자네는 조금 전에 누가 말하는 것을 듣지 못했겠지?]
그러자 다른 포졸이 말했다.
[나는 듣지 못했네.]
그러자 그 포졸이 말했다.
[나도 듣지 못했어. 자네도 역시 아무도 보지 못했겠지?]
다른 포졸이 말했다.
[나도 역지 듣지도 못했고 보지도 못했어. 귀신 그림자도 본 적이 없지.]
마여룡은 그들이 자기의 목소리를 듣고 자기의 모습을 분명히 보고서도 일부러 보지못한 것처럼 가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때 대완이 웃으며 말했다.
[당신이 그들의 앞에서 곤두박질을 친다고 해도 그들은 보지 못할 거예요.]
마여룡이 물었다.
[어째서 그렇소?]
대완이 대답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언제 벙어리 행세를 해야하고 언제 장님 행세를 해야하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죠.]
그녀는 홀연 화제를 돌렸다.
[당신은 이 정원이 있는 곳이 무엇하는 곳인지 알고 있나요?]
마여룡은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이 부근에 있는 집들로부터 일종의 귀기(鬼氣)가 감도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대완은 담담히 말했다.
[이곳은 바로 시체를 부검하는 곳이에요. 이 지방에서 살인 사건이 났을 때 시체는 반드시 이곳으로 보내져서 검시관들에 의하여 부검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인을 규명하게 되는 거죠.]
마여룡은 그 말을 듣는 순간 눈쌀을 찌푸렸고 속이 매슥거리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시체를 해부하는 곳에서 그 누가 속이 편할 수가 있겠는가.
대와은 어째서 그를 데리고 이곳으로 왔을까.
시체를 해부하는 방들은 두 줄로 늘어서 있었다. 
등불빛도 비치지 않았고 창문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오른쪽 마지막 칸에 있는 방에서는 열려진 문틈으로 불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대완은 그곳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마여룡은 참지 못하고 물었다.
[당신이 만나려고 하는 사람은 바로 이 방안에 있는 것이오?]
대완은 말했다.
[당신이 직접 보면 알게 아니에요?]
그렇게 말하며 문을 열었다.
실내에는 한 개의 어둠침침한 등불이 걸려 있었다.
하나의 침대가 있었는데 침대 위에는 흰 천이 덮혀 있었고 그 흰 천은 불룩한 것이 그 밑에 시체가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그런데 시체를 덮는 흰 천은 길이가 좀 짧아서 침대 위에 누워있는 시체의 몸을 다 가리지 못하고 얼굴쪽은 가렸지만 두 개의 다리는 천 밖으로 삐죽 나와 있었다. 
마여룡은 그 발을 바라보았다. 
여자의 발이었다.
눈처럼 흰 발, 봉긋 솟아오른 복사뼈, 발가락도 부드럽고 유연해 보였다. 
이 발가락만 보고도 그 시체가 얼마나 아름다운 여인인지 알 수가 있을 것 같았다. 
그 골목길에서 마여룡은 꽃 파는 여자의 얼굴의 보지 못했지만 이제는 그녀가 얼마나 아름다운 여인인지 충분히 상상할 수 있었다. 그는 참지 못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죽은 것이오?]
대완이 대답했다.
[보기에 죽은것 같군요.]
마여룡이 물었다.
[당신이 그녀를 죽였소?]
대완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녀의 무공은 나보다 훨씬 강했어요. 언제라도 나를 쓰러뜨릴 수가 있었지요. 내가 그녀를 보자마자 도망친 것은 그녀로 하여금 나를 과소평가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어요.]
자기의 적을 과소평가한다는 것은 언제나 씻을 수 없는 착오를 불러일으키게 마련이다. 
대완은 나직이 말을 이었다.
[그녀는 나를 과소평가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 나는 서있는데 그녀는 쓰러져 있는 거죠. 보기에 그녀는 죽은 것 같군요.]
마여룡은 참지 못하고 물었다.
[단지 죽은 것처럼 보일 뿐이란 말이오?]
대완은 말했다.
[그런 것 같아요.]
마여룡은 물었다.
[그렇다면 사실에 있어서 그녀는 아직 죽지 않았다는 말이군?]
대완은 신비하게 웃으며 말했다.
[당신은 어째서 스스로 가서 살펴보지 않으세요? 똑똑히 살펴보면 될 것이 아니겠어요?]
똑똑히 살펴보기 위해서는 시체를 덮은 천을 치워버리면 될 것이었다. 
마여룡은 침대 곁으로 다가가 시체를 덮은 흰 천을 와락 걷어 치웠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는 재빨리 흰 천으로 도로 그 시체를 덮었다. 그의 얼굴은 온통 시뻘개져 있었으며 그의 심장은 평상시보다 몇 배나 빠르게 뛰고 있었다. 
그는 자세히 살펴보지는 못했지만 더 이상 감히 살펴볼 수가 없었다. 흰 천에 덮혀 있던 여자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었다.
아름다운 얼굴, 하얀 피부, 봉긋한 유방, 잘록한 허리, 늘씬한 두 다리, 배꼽 아래의 무성한 숲... 
마여룡은 지금까지 이와 같이 아름다운 여인을, 이렇게 아름다운 몸매를, 이렇게 아름다운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얼굴이 정말 죽었다면 실로 애석하기 이를 데 없는 일이었다.
대완은 물었다.
[당신은 보았나요? 그녀는 죽었나요, 살았나요?]
마여룡은 똑똑히 보지못했다. 
그는 아무 말도 못했다.
대완은 다시 물었다.
[당신은 한 번 보았으니 당연히 그녀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것이 아니겠어요. 설사 그녀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모른다고 해도 그녀가 아름다운 미녀라는 것은 알아볼 수가 있었겠죠?]
마여룡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완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그녀는 죽으면 안 되겠군요.]
마여룡은 물었다.
[그게 무슨 뜻이오?]
대완은 나직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녀는 정말 너무나 아름답기 때문에 나조차도 그녀를 차마 죽게 할 수가 없었어요. 그녀를 죽이고 싶었지만 차마 손을 쓸 수가 없더군요.]
마여룡은 길게 탄식했다.
대완은 말했다.
[당신은 어째서 탄식하는가요?]
마여룡은 대답했다.
[왜냐하면 나는 나 자신이 정말 바보같다고 느꼈기 때문이오.]
대완은 물었다.
[당신은 어떻게 발견했나요?]
마여룡은 대답했다.
[내가 이미 그녀를 보았는데 그런데도 그녀가 죽지 않았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으니 내가 바보가 아니고 무엇이겠소? 궁금한 것이 있는데 물어봐도 되겠소?]
대완은 말했다.
[무엇이 궁금한가요?]
[그녀와 내가 무슨 관계가 있소?]
대완은 말했다.
[지금까지는 아무 관계가 없었어요.]
마여룡은 물었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째서 나를 데리고 와 그녀를 보도록 했소?]
대완은 말했다.
[당신 둘은 지금까지는 아무 관계가 없지만 앞으로는 틀림없이 관계가 맺어질 거예요.]
마여룡은 물었다.
[앞으로 무슨 관계가 맺어진다는 것이오?]
대완은 신비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직까지 나는 당신에게 모든 것을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러나 나는 보증할 수 있어요. 내가 하는 일은 당신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을 거예요.］ 
마여룡은 물었다.
[지금 당신은 또다시 나를 위하여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 것 같군.]
대완은 대답했다.
[나는 당신을 데리고 또 한 사람을 만나러 갈 생각이에요.]
마여룡은 물었다.
[누구를 만나러 간다는 것이오.]
대완은 말했다.
[한 명의 당신을 매우 좋아하는 사람이죠. 당신도 약간은 그를 좋아하고 있어요.]
마여룡은 물었다.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한단 말이오?]
대완은 대답했다.
[그를 한 번 본 사람은 그를 좋아하지 않게 되는 것이 상당히 어렵죠.]
마여룡은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혹시 강남 유오가 아니오?]
대완은 대답했다.
[그를 제외하고 또 누가 있겠어요?]
마여룡은 물었다.
[그도 이곳에 있소?]
대완은 대답했다.
[근처에 있어요.]
마여룡은 물었다.
[그는 어디에 있소?]
대완은 말했다.
[그가 어디에 있는지 당신같은 사람은 아마 짐작하지 못할 거예요.］


14. 절인(絶人)


마여룡이 처음 유오를 만났을 때 유오는 요리를 만들고 있었다.
이 세상에서는 매일같이 수많은 사람들이 요리를 만들고 있다.
요리를 만드는 것은 절대로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강남 유오는 뜻밖에도 친히 요리를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마여룡이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은 이곳 해부를 하는 곳에 주방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마여룡은 물었다.
[이곳에는 주방이 없는데 그는 어디에 있다는 말이오?]
대완은 대답했다.
[만약 당신이 그가 어디 있는가를 알아낸다면 나는 당신에게 탄복할 거예요.]
마여룡은 대답했다.
[나는 당신이 탄복하기를 바라지 않소. 나는 정말 알아낼 수가 없군요.]
대완은 대답했다.
[그는 지금 머리를 빗고 있어요.]
머리를 빗는 것은 절대로 이상한 일이 아니다. 
강남 유오는 지금 머리를 빗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머리를 빗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다른 사람의 머리를, 한 명의 다 늙어서 이빨이 다 빠진 노파의 머리를 빗겨주고 있었다. 
맞은편의 한 칸의 작은 방 안에는 어느새 등불이 밝혀져 있었다.
그 노파는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그녀가 입고 있는 옷은 붉은 옷이었다.
마치 새 신부가 입는 옷처럼 예쁜 꽃이 수놓아진 옷이었다. 
그녀의 발에는 붉은 비단에 꽃을 수놓은 홍수혜(紅繡鞋)를 신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바둑판의 줄처럼 깊은 주름이 수없이 잡혀져 있었고 이빨도 거의 다 빠져서 마치 어린애와 같았다.
그러나 기다란 장발은 여전히 검고 윤기가 나는 것이었다.
만약 그녀가 입고 있는 옷과 그녀의 머릿카락만 본다면 그 누구도 그녀가 이빨이 거의다 빠지고 주름살 투성이인 노파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더욱 뜻밖인 것은 강남의 유오가 노파의 머리를 빗겨주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가 머리를 빗겨주고 있는 동작은 요리를 만들 때의 동작처럼 우아한 아름다움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그는 어떤 일을 하고 있든, 손에 주방의 기구를 들고 있을 때에도 손에 빗을 들고 있을 때에도 보기 좋았다. 그는 어쨌든 강남의 유오, 이 세상에 둘 도 없는 강남의 유오이기 때문이다.
마여룡은 강남의 유오가 무엇 때문에 그 노파의 머리를 빗겨주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대완이 무엇 때문에 그를 데리고 와서 그런 광경을 보여주고 있는지 도무지 짐작을 할 수가 없었다.
유오는 그들이 들어왔다는 사실을 근본적으로 알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무슨 일을 하든지 온 정신을 기울여 그 일에 몰두하는 사람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다른 사람보다 유명해질 수 있었을 것이다.
유오는 한 자루의 길고 검은 빛이 나는 나무 비녀를 가지고 그녀의 머리를 쪽진 후에 자기의 걸작을 감상했다. 정말 걸작이었다. 마여룡이 보아도 그 노파는 몇 년은 더 젊어 보이는 것 같았다.
그 노파는 눈을 감고 있었는데 마치 애인이 애무를 받고 있는 것처럼 감미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노파는 머리 손질이 다 끝난 것을 느끼고 입을 열었다.
[이 세상에 그 누구도 당신보다는 못할 거요. 당신을 따라가는 사람은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어요.]
그녀의 음성도 늙어 있었다. 그러나 음성 속에는 그녀가 젊었을 때 지녔던 감미로움이 약간은 깃들어 있었다.
그녀는 가볍게 탄식하며 다시 말을 이었다.
[당신의 무공이 머리 빗는 재주의 반만 되어도 당신은 이미 천하무적이 되었을 것이오.]
유오는 미소하며 그 말에 대답했다.
[다행히 나는 천하무적이 되지 못했소.]
그 노파는 물었다.
[그것이 다행이라니 무슨 말이지?]
유오는 대답했다.
[한 사람이 만약 천하무적의 무공을 지니고 있다면 단 하루도 편안하게 보낼 수 없을 것이고 단 하루도 한가한 시간을 낼 수가 없었을 것이오.]
노파는 껄껄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나는 당신이 좋아, 정말 좋아. 당신이 내 머리를 빗겨주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나는 당신의 부탁을 들어주고 싶군.]
이 노파는 도대체 누구일까. 
유오는 왜 그녀를 찾아서 무슨 부탁을 했을까.
마여룡은 호기심이 일어나는 것을 느끼고 유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유오는 가볍게 그의 소매를 잡고 밖으로 끌고 나갔다.
대완은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지금 당신을 데리고 또 한 사람을 보러 갈 거예요.]
마여룡은 물었다.
[이번에는 또 누구를 본다는 것이오?]
대완은 대답했다.
[한 폭의 그림을 보러가는 거예요. 그림 속에 그려진 사람을 보러가는 거지요. 당신이 아무리 총명하다고 해도 절대로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모를 거예요.]
벽 하나를 격한 옆방에도 등불이 켜져 있었다. 
그 방의 벽에는 화폭이 걸려 있었다. 그림 속에 그려진 인물은 매우 평범하게 생긴 중년인이었다. 이렇게 평범하게 생긴 사람은 한 번 보면 곧 잊어버리게 마련이다.
대완이 입을 열었다.
[이 사람의 이름은 장영발(張榮發)이라고 해요. 매우 충후하고 성실한 사람이죠. 성 안에서 잡화점(雜貨店)을 열고 있는 사람인데 그는 또 한 명의 하인을 거느리고 있어요.]
대완은 그림 속에 있는 사람을 가리키며 다시 입을 열었다.
[이 사람은 금년에 마흔네 살이에요. 그리고 돼지띠죠. 열아홉 살 때 결혼을 했는데 그의 마누라 이름은 계지(桂枝)라고 해요. 그의 마누라는 화를 잘내고 또 병이 자주 나죠. 슬하에는 자녀가 없고 그러다 보니 자연 화도 잘나고 병도 자주 나서 최근에는 병들어 누웠는데 침상에서 아예 일어나지도 못하죠. 밥 먹는 것조차 남편이 그녀에게 먹여주고 있을 정도예요. 그러다 보니 그녀는 점점 성질이 나빠지고 신경질이 많아져서 그 누구도 그녀 옆으로 가지 않죠.]
그녀는 거기서 말을 멈추더니 마여룡에게 물었다.
[당신은 똑똑히 들었나요? 나의 말을 똑똑히 들어야 해요.]
마여룡은 물론 똑똑히 들었다. 
그러나 그는 대완이 무엇 때문에 그를 데리고 이 그림 속의 인물을 구경하게 하며 더군다나 그림 속에 그려진 인물의 신상내력을 그렇게 소상히 말해주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
[도대체 이 사람이 나와 무슨 관계가 있다는 것이오?]
대완은 대답했다.
[약간 있지요.]
마여룡은 말했다.
[난 도무지 그 사람과 내가 무슨 관계가 있는지 알 수가 없군.]
대완은 대답했다.
[왜냐하면 이 사람이 바로 당신이기 때문이예요.]
대완은 엄숙한 표정으로 다시 말을 이었다.
[당신이 바로 그이고 그가 바로 당신이예요.]
마여룡은 매우 우습다고 느꼈다. 그가 막 웃으려고 했을 때 대완은 엄숙한 어조로 다시 입을 열었다.
[잘 알아 들었나요?]
마여룡은 물었다.
[이 장영발이라는 사람이 바로 나란 말이오?]
절대로 틀림없는 사실이에요.]
마여룡은 물었다.
[내가 볼때 그는 조금도 나를 닮지 않았는데.]
대완은 대답했다.
[그러나 당신은 머지않아 그를 닮게 될 거예요. 아주 똑같이, 완전히 똑같이 닮게 될 거예요.]
마여룡은 말했다.
[애석하게도 나는 모습이 변할 수 없구려.]
대완은 말했다.
[당신은 변할 수 없지만 어떤 사람은 당신의 모습을 변화시킬 수가 있어요.]
대완은 그 말을 하더니 다시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유오가 무엇 때문에 그 대소저(大小姐)의 머리를 빗겨 주었는지 알고 있나요?]
마여룡은 말했다.
[그 여자가 대소저라니 내가 볼 때는 노파 같더구만.]
대완은 그 말을 받았다.
[그녀는 노파가 아니고 대소저예요. 그녀와 같은 사람은 비록 이백 살을 산다고 해도 여전히 대소저라고 불리워야 해요.]
마여룡은 물었다.
[그녀가 그런 종류의 사람이란 말이오?]
대완은 대답했다.
[절대 틀림 없어요.]
마여룡은 물었다.
[그건 왜 그렇소?]
대완은 대답했다.
[왜냐하면 그녀의 성이 옥(玉)씨이기 때문이에요.]
마여룡은 그와 같은 말을 듣고 한 사람을 생각해냈다.
[설마하니 그녀가 바로 육십 년 전의 그 옥대소저(玉大小姐)와 무슨 관계라도 있단 말이오?]
대완은 대답했다.
[그녀가 바로 그 옥대소저예요. 그녀가 바로 영롱옥수(玲瓏玉手) 옥영룡(玉玲瓏)이에요.]


15. 옥수(玉手)


육십 년 전 강호에는 가장 이름을 떨친 세 쌍의 손이 있었다. 
무정철수(無情鐵手).
신투묘수(神偸妙手).
영롱옥수(玲瓏玉手).
철수 무정은 그의 손 아래서 그 누구도 함부로 날뛰지 못하게 했고 묘수 신투는 어떤 사람의 물건이라도 다 훔칠 수 있었다.
옥수 영롱은 사람의 모습을 감쪽같이 바꾸어 버리는 중요한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그 어떤 사람이든 간에 그녀의 두 손에 의해서 반 시진 이내에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뀔 수 있었다.
마여룡은 끝내 알아차리고 입을 열었다.
[유오가 그녀의 머리를 빗겨주는 것은 그녀에게 내 모습을 장영발로 바꿔달라고 부탁하기 위함이었군.]
대완은 대답했다.
[그래요.]
마여룡은 말했다.
[당신들이 이 곳을 선택한 것은 강호 사람들이 절대로 이곳에 오지 않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겠군.]
대완은 대답했다.
[맞아요.]
마여룡은 다시 입을 열었다.
[그 몇 명의 포졸들은 우리들을 보고도 보지 못한 척했는데 이것은 내 생각에 유오가 옛날 그들에게 베푼 정에 보답하는 것 같군.]
대완은 대답했다.
[그 말도 맞아요.]
마여룡은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이미 사람을 죽인 흉수라고 지목된 이상 그 어디로 도망쳐도 사람들에게 발각될 위험이 있을 것이오. 그렇기 때문에 당신들은 나의 모습을 바꾸어서 나로 하여금 얼마 동안 살아갈 수 있도록 하려고 이런 일을 꾸미고 있었군.]
대완은 대답했다.
[틀림 없어요.]
대완의 태도는 매우 간곡했다.
[유오도 당신을 믿고 나도 당신을 믿고 있어요. 우리들은 당신이 결코 흉수가 아니며 당신이 모함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우리들 역시 당신이 구차하게 일개 작은 잡화상의 주인으로 행세하면서 삶을 누려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요.]
마여룡은 한참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그는 피가 끓는 젊은이였다. 
그가 어찌 진정으로 구차하게 살기를 바라겠는가.
그러나 마여룡은 한참 후에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당신들은 어째서 나를 신뢰하는 것이오?]
대완은 대답했다.
[왜냐하면 나는 정말 사람을 죽인 악독한 흉수라면, 도망갈 때에 다른 사람을 위해서 도망가는 것을 포기하고 생면부지의 못생긴 여자를 절대로 구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에요.]
마여룡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의 가슴 속에는 대완과 유오에 대한 감사의 정이 가득 고이기 시작했다.
대완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나 당신 자신은 믿어야 해요. 인간 세상에는 정의가 살아 있으며 사악한 사람들은 조만간 반드시 멸망한다는 것을, 그리고 음모는 조만간 탄로난다는 것을, 당신이 받고 있는 억울함과 모함은 조만간 백일하에 그 누명을 씻게 된다는 것을, 당신은 꼭 믿어야 해요.]
그녀는 가볍게 두 손을 잡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당신에게 그런 믿음만 있다면 잠시동안의 굴욕을 참는다고 해서 무슨 문제가 있겠어요.]
마여룡은 한참 침묵하다가 홀연히 입을 열었다.
[그 잡화점은 어디에 있소?]
대완은 대답했다.
[성의 서쪽에 있는 좁은 골목 안에 있어요. 그 주변의 이웃은 먹고 살기 바쁜 사람들이기 때문에 당신이 모습을 바꾸기만 한다면 절대로 당신이 누구인지 알아차리지 못할 거에요. 그들은 남의 일에 참견할만큼 한가하지가 않거든요.]
그녀는 다시 보충 설명을 했다.
[당신이 데리고 있는 그 하인은 무능해서 술 마신는 것만 좋아할 뿐이지 다른 일은 제대로 하는 일이 없죠.]
마여룡은 말했다.
[그가 혹시 주인이 바뀐 것을 알아차리지 않을까?]
대완은 대답했다.
[그는 시력이 별로 좋지를 못해요. 그리고 귀도 잘 들리지 않아요.]
마여룡은 말했다.
[그는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고 해도 다른 사람은 어떨까?]
대완은 말했다.
[다른 사람이라니요?]
그녀는 홀연 깔깔 웃더니 입을 열었다.
[당신은 그 병든 마누라를 말하는 거죠?]
마여룡은 쓴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그 마누라는 어떤 사람이오?]
대완은 깔깔 웃었다.
[당신은 마땅히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마여룡은 말했다.
[내가 알아차린다니? 나는 그녀를 본 적이 없지 않소?]
대완은 말했다.
[조금전에 당신은 그녀를 보았어요.]
마여룡은 흠칫 놀랐다.
[설마하니 조금 전에 내가 본 그 여자, 시체실에 있던 그 여자가 바로 나의 마누라....]
그는 홀연 자기가 실수를 했다는 것을 알고 다시 말을 바꿨다.
[설마하니 그녀가 장영발의 마누라였단 말이오?]
대완은 대답했다.
[원래는 그렇지 않았어요. 그러나 곧 그렇게 될 거에요. 이것은 마치 당신이 마치 원래 장영발이 아닌데 장영발로 변하는 것과 마찬가지에요.]
마여룡은 물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원래 누구였소?]
대완은 망설이며 한참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이번에 마여룡은 뜻밖에도 그대로 놔두지 않고 다그쳤다.
[그녀는 원래 어떤 사람이었소? 이제 와서도 당신은 나에게 알려주지 않겠다는 말이오?]
대완은 마침내 탄식하더니 대답했다.
[지금 내가 알려주지 않는다면 당신은 몹시 화를 낼 것 같군요.]
마여룡은 끄덕였다.
대완은 입을 열었다.
[그녀의 이름은 사옥륜(謝玉崙)이에요. 감사하다 할 때의 사, 홍옥 할 때의 옥, 곤륜산 할 때의 륜이에요.]
마여룡은 말했다.
[그 세 글자는 내가 잘 기억하겠소. 당신은 더 자세히 들려 줄 수 없소?]
대완은 말했다.
[그녀는 여자에요.]
마여룡은 말했다.
[내가 설마하니 그녀가 여자인지 남자인지도 알아보지 못하는 줄 알았소?]
대완은 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당신이 보기에 내가 너무 질질 끌면서 뜸을 들인다고 느낄 거예요. 그런데 사실 나는 당신에게 얼마나 이야기를 해주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마여룡이 말했다.
[당신이 나에게 알려준 것이 얼마나 된다고 그러시오?]
대완은 마침내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좋아요. 당신에게 말해주겠어요. 그녀는 금년에 열아홉 살이에요. 그리고 남자와 가까이 해보지 않았고 완전한 숫처녀예요.]
마여룡은 물었다.
[그녀가 정말 열아홉 살밖에 안 되었단 말이오?]
대완은 말했다.
[설마하니 그녀가 늙은 할머니란 말인가요?]
마여룡은 말했다.
[그녀가 젊은 여자인 것은 사실이오. 그러나 그녀가 몸으로 담장을 종잇장처럼 부순 것을 볼때, 그렇게 젊은 나이에 그런 무공을 익혔다는 것이 나로서는 믿어지지가 않소.]
대완은 말했다.
[나의 무공도 그녀에 비해서 별로 뒤떨어지지 않아요. 설마하니 내가 늙은 할머니같이 보이나요?]
마여룡은 입을 다물었다.
대완은 말했다.
[무공의 깊이라는 것은 나이하고는 별로 상관이 없는 거예요.]
마여룡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도 일리가 있소.]
대완은 말했다.
[그녀의 무공은 확실히 높아요. 내가 알고 있는 몇 명의 영웅호걸들은 절대로 그녀의 십 초를 받아내지 못할 것이에요. 왜냐하면 그녀는 비단 좋은 사부를 두었을 뿐만 아니라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부터 무공을 연마했기 때문이에요.]
마여룡은 물었다.
[그녀의 사부가 누구요?]
대완은 대답했다.
[나는 다만 그녀에 관해서만 들려주면 되지 그녀의 사부까지 알려줄 필요는 느끼지 못하겠군요.]
마여룡은 쓴 웃음 지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나는 더 묻지 않겠소.]
대완은 말했다.
[그녀는 성질이 더러워요. 대소저의 성질도 더럽기는 마찬가지에요. 만약 사옥륜 그녀가 자기가 한 잡화점의 늙은 할머니로 변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녀는 아마 미치고 말 거예요.]
마여룡은 말했다.
[그녀가 발광할 때 잡화점의 그 주인을 한 칼로 찔러 죽이면 큰일인데...]
이 점에 대해서 그는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잡화점의 주인은 바로 그이기 때문이었다.
대완은 빙그레 웃었다.
[이 점은 안심해도 좋아요.]
마여룡은 물었다.
[그녀가 어째서 나를 죽일 수 없다는 것이오. 그녀의 무공은 나보다 훨씬 뛰어나지 않소.]
대완은 말했다.
[왜냐하면 그녀는 병이 들어서 침상에 누워 있어요. 자기 몸을 일으키지도 못할 지경이지요.]
한 명의 어제까지만 해도 자기의 몸으로 담장을 종잇장처럼 부수고 지나갔던 절정의 고수가 오늘은 갑자기 병이 들어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한다니...
마여룡은 더 묻지 않았다. 
그는 이미 상상할 수 없었다. 
이런 종류의 병이 어떻게 생기는지, 어떻게 그런 종류의 병을 만들 수 있는지, 대완의 재주를 가지고 말한다면 한 사람을 병자로 만드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마여룡은 한참 후에 말했다.
[그런데 그녀는 아무리 봐도 절대로 잡화점의 늙은 할망구처럼 보이지 않더군.]
대완은 말했다.
[지금은 그렇게 보이겠지만 잠시 후에는 그렇게 보일 거예요. 원래의 잡화점의 그 늙은 할망구와 똑같이 보이게 될 거예요.]
[옥영롱이 그처럼 변장술에 능통하다는 말이오?]
[물론이에요. 잠시 후에 당신 자신도 보게 될 거예요.]
마여룡은 탄식했다.
[나는 상상이 가지 않는군요.]
대완은 말했다.
[사옥련 그녀는 깨어났을 때 이미 잡화점 뒤의 작은 방에 눕혀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거예요.]
마여룡은 물었다.
[그렇다면 나는?]
대완은 말했다.
[당신은 당연히 그녀의 침대 옆에서 그녀를 돌보아야 해요. 왜냐하면 그들 두 부부는 다년간 다정하게 지내왔기 때문이에요.]
마여룡은 쓴 웃음을 금하지 못했다.
[그녀는 그런 일을 절대로 승인하지 않을 것이오.]
대완은 말했다.
[사옥련은 당연히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겠죠. 그러나 당신은 그녀가 바로 그 잡화상의 늙은 마누라이고 이름이 왕계지라는 사실을 계속 주지시켜야 해요. 당신들은 이미 결혼한 지 십팔 년이나 지났으니 그녀가 무슨 말을 하든 무슨 투정을 부리든 당신은 개의치 말고 그녀가 잡화상의 마누라라는 사실을 항상 주입시켜 주세요.]
마여룡은 말했다.
[그렇게 세뇌 공작을 한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 자신도 점점 흐리멍텅하게 변해서 자기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게 되겠군.]
대완은 웃으면서 말했다.
[아마 그렇게 될 거예요.]
마여룡은 말했다.
[그런데 나는 한 가지 이해 안 되는 점이 있소.]
대완은 말했다.
[말씀해 보세요.]
마여룡은 말했다.
[나와 그녀는 아무런 원한 관계가 없는데 그녀가 어째서 이렇게 불공평한 일을 당해야 하는 것이오?]
대완은 말했다.
[왜냐하면 이렇게 하는 것이 당신에게 좋을 뿐만 아니라 그녀에게도 좋은 면이 있기 때문이에요. 당신도 절대 잊지 마세요. 이런 방법을 써야 당신의 억울함을 풀 수가 있고 그들의 음모를 백일하에 폭로할 수 있는 거예요.]
그녀는 다시 엄숙한 태도로 간곡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나는 당신이 얼마나 오만한 사람인지 알고 있어요. 이런 종류의 일을 당신은 절대로 허락할 사람이 아니에요. 하지만 이번 한 번만 나를 믿어주세요. 내가 하는데로 내버려 두세요.]
마여룡은 무슨 말을 더할 수가 없었다. 
그는 오만한 사람이기에 절대로 다른 사람의 부탁을 저버리지 못했던 것이다.
마여룡은 잠시 후에 물었다.
[이제 내가 할 일이 무엇이오?]
대완은 방그레 웃으며 말했다.
[당연히 술을 마시러 가는 거죠. 유오도 있고 당신도 이곳에 있으니 두 사람이 먼저 통쾌하게 술을 마시지 않는다면 그게 말이 되겠어요?]
두 줄로 늘어선 집들 뒤에는 한 채의 커다란 집이 있었다. 
늘어진 석가래, 빛이 바랜 벽, 오래된 듯한 그 집은 음산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그 방의 사면 벽에는 검시관들이 시체를 해부하는 공구들이 널려져 있었고 그것은 보기만 해도 으시시했다.
뼈를 자르는 칼, 창자를 끄집어 내는 갈고리, 잘라진 살을 다시 붙이는 바늘과 실, 그러나 유오는 그것들을 한쪽 구석으로 치우고 방안을 깨끗하게 청소했다.
그러고나니 한결 분위기가 밝아지는 것 같았다.
탁자 위는 하얀 천을 씌웠고 그 위에 술과 안주가 놓였다. 네 단지의 술은 원래 잘 숙성되고 이십 년 가까이 묵은 여아홍이었다.
보통 사람들은 이런 술을 보기만 해도 취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마여룡은 보통 사람이 아니었고 유오 역시 술 취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유오는 입을 열었다.
[나는 자네가 여아홍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네. 그런데 이 지방에는 여아홍이 없어서 멀리서 가지고 왔지.]
마여룡은 말했다.
[감사합니다.]
유오는 매우 유쾌하게 말했다.
[우리는 각자 두 단지의 여아홍을 마시도록 하세.]
마여룡은 대완을 바라보았다.]
[한 사람이 여아홍 두 단지를 마신다면 당신은 무엇을 마시지?]
대완은 웃으며 말했다.
[이번에 나는 마시지 않을 거예요. 옥대소저가 저에게 말했어요. 여자들은 술을 마시면 빨리 늙을 뿐만 아니라 쉽게 남에게 속임을 당한다고 했어요.]
옥대소저는 바로 옥영롱이었다. 
그녀는 이 방의 한쪽 옆에 있는 긴 탁자 옆에서 탁자 위의 한 개의 옥으로 장식한 은상자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순은으로 만든 대야에 따뜻한 물을 담아가지고 와서 손을 넣어 온도를 재어보더니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이 대소저는 비록 나이는 많지만 여전히 동작 하나하나가 젊었을 때의 우아함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녀는 유오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당신들은 술을 마시고 나는 나의 일을 하도록 합시다.]
그녀는 다시 웃으며 말했다.
[나는 비록 술을 마시지 않지만 다른 사람이 술을 마시는 것을 절대로 반대하지 않아요. 그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이 술마시는 것을 구경하기를 좋아하죠.]
대완도 웃으며 말했다.
[때때로 나도 다른 사람이 술마시는 것을 보면서 내 자신이 즐거워하곤 합니다.]
옥영롱은 동의했다.
[어떤 사람은 술만 마시면 쓸데없는 소리를 하고 쓸데없이 말썽을 피우지. 그런데 어떤 사람은 술을 마시면 오히려 조용해지고 말도 없어지지. 또 어떤 사람은 술에 취하면 울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쓸데없이 웃기도 하지. 나는 그것들을 보면 참 재미있어.]
그녀는 다시 마여룡을 바라보며 물었다.
[자네는 술에 취하면 어떤 모양인가?]
마여룡은 대답했다.
[나는 잘 모릅니다.]
그는 정말 모르고 있었다. 한 사람이 술에 취했다면 취중에 한 일을 대부분 기억하지 못하는 법이다. 
술에서 깨어나면 목이 마르고 머리가 깨어질 것처럼 아프다는 것을 느낄 뿐이다. 그리고 엉뚱하게도 마땅히 잊어버려야 할 일은 모두 기억나고 마땅히 잊지 말아야할 일은 도리어 깡그리 잊어버리는 수가 있다. 
옥영롱은 웃으며 말했다.
[나는 평생동안 단 두 명의 미남자를 보았을 뿐인데 자네가 그중 한 명이네. 그러므로 나는 자네가 취했을 때 어떤 모습인지 보고싶군.]
유오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
[그가 술에 취하면 어떤 짓을 하는지, 당신은 곧 보게 될 것이오.]
마여룡은 빨리 취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늦게 취하지도 않았다. 
그는 술을 마시는 동안 옥영롱의 일거일동을 눈여겨 바라보았다.
옥영롱은 물 속에 두 손을 집어넣더니 밥 한 끼 먹을 시간 동안 꺼내지 않았다. 
그런 후에 부드러운 수건으로 손을 잘 닦더니 은상자 속에서 작은 칼을 꺼내 손톱을 깍기 시작했다.
이 은상자 안에는 어떤 물건이 있을까.
손톱을 다 소제하고 나서 그녀는 여러가지 물건을 꺼냈다.
어떤 것은 화장할 때 쓰는 분가루였고 어떤 것은 끈적끈적한 액체였으며 어떤 것은 누런 가루였고 순은으로 된 작은 칼, 작은 가위, 작은 갈고리, 작은 톱, 작은 방망이도 끄집어냈다.
옥영롱은 어떤 일을 할 적에 주도면밀하게 모든 준비를 갖추고 시작하는 것 같았다.
여아흥을 반 단지쯤 마셨을 때 마여룡은 문득 이상한 생각을 떠올렸다.
[그녀가 다른 사람의 모습을 바꿀 수 있다면 추악한 사람을 아름답게 바꿀 수 있고 아름다운 사람을 추악하게 바꿀 수 있고 늙은 사람을 젊게 바꿀 수 있고 젊은 사람을 늙어 보이도록 만들 수가 있는데 그녀는 어째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바꾸지 않습니까?]
그 말을 듣고 옥영롱은 대답했다.
[나는 다만 다른 사람의 모습을 바꿀 뿐이지 지금까지 한 번도 내 모습을 바꾼 적이 없네. 왜냐하면 나는 나 자신을 기만할 수 없기 때문이지.]
그녀는 담담히 웃으며 말을 이었다.
[다른 사람을 속이는 일은 할 수 있지만 나 자신을 속이는 일은 나는 절대로 하지 못하네. 자, 이제 나도 내가 할 일을 해야지.]
마여룡이 술에 취하지 않았다면 그는 아마 도망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곧 취했기 때문에 최후의 한 가지 일밖에는 기억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옥영롱의 손이 그의 얼굴을 문지를 때 그의 손이 매우 매끄럽고 동작이 매우 부드러웠다는 느낌이었다.
그가 나중에 기억한 것은 그 느낌밖에 없었다.


16. 잡화점


마여룡은 낯선 방에서 깨어났다.
그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의자에서 일어나 화장대 앞으로 다가가 구리 거울을 꺼내 거기에 묻은 먼지를 소매로 닦아냈다.
그는 자기의 손이 떨리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의 눈에 보인 것은 그의 모습이 아니고 장영발의 모습이었다. 
절대로 틀림없는 장영발의 모습이었다.
대완이 보여준 그림 속의 인물과 완전히 똑같은 사람이 구리 거울 속에 있었다.
그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야릇한 충격을 받았다.
한 사람이 거울을 보았을 때 거울 속에 다른 사람이 보인다면 그 심정이 어떠할까.
이것은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는 평소 일부러 의식하려고 하지는 않았지만 자기 자신이 보기드믄 미남자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준수한 얼굴을 가지고 있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거울 속에 있는 모습은 평범한 중년의 남자가 아닌가. 
그는 혼자 중얼거렸다.
[나중에 나는 나의 원래의 모습을 회복할 수가 있을까.]
이것은 그 자신으로서는 대답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집 밖의 골목길은 행인들의 시끄러운 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었다. 침상 위의 여인은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마여룡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그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침대에 누워있는 여인은 얼굴이 누렇고 바짝 말랐으며 병색이 완연하고 초췌했다.
여인의 아름다움이라고는 눈을 씻고 보아도 찾을 수가 없었다.
정말 그녀가 하나의 부검실의 그 흰 천 밑에 누워 있던 천하절색의 미녀란 말인가.
그녀는 깨어나 자기가 갑자기 이런 모양으로 변해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어떻게 할까.
마여룡은 그녀에게 깊은 동정심을 느꼈다.
이제 마여룡은 장영발이 되었고 장영발이 머물고 있는 방을 보았으며 장영발의 마누라가 어떤 모습인지 보았다.
그의 잡화점은 어떤 모양의 잡화점일까.
그가 데리고 있는 하인 장노실(張老實)은 어떻게 생긴 사람일까. 
그는 참지 못하고 밖을 내다보았다.
잡화점의 진열대 위에는 잡다한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기름, 소금, 된장, 식초, 쌀, 계란, 바늘, 실, 칼, 가위, 못, 종이.... 
이것들은 일반 가정에서 필요한 물건들이었고 모두 잡화점 안에 구비되어 있었다.
잡화점의 입구에는 허름한 간판이 걸려 있었다.
장기잡화(張記雜貨)라고 쓰여진 간판이었다.
잡화점 밖의 거리에는 바람이 불 때마다 먼지가 날리고 있었다.
비가 올 때면 길이 매우 질척거릴 것 같았다.
잡화점 주변의 이웃집들은 초라해 보였고 코흘리개 어린애들이 골목길을 뛰놀며 울고 불고 싸우고 씨끄럽게 굴고 있었다.
이런 누추하고 가난한 마을에 많은 사람들은 어린이를 데리고 노는 것 외에는 별다른 오락이 없을 것 같았다.
강호의 영웅호걸들이 어떻게 이렇게 더럽고 누추한 마을에서 마여룡이 잡화상의 주인으로 변하여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하겠는가.
하인 장노실은 땅딸한 체구에 둥그스름한 얼굴, 영원히 잠에서 깨지 않을 듯한 게슴츠레한 눈, 시뻘건 주먹코를 지니고 있었다. 
장노실은 주인에게 예의바르게 굴지도 않았고 웃지 않으면 말조차 하지 않았으며 동작은 느리기 이를 데 없었다.
마음에 드는 점이라면 장노실이 입이 무겁다는 점이었다.
입이 가벼운 사람은 언제나 말썽을 불러일으키는 법이다.
유오와 대완은 그곳에 나타나지 않았다.
마여룡은 생각했다.
(나는 이렇게 살아가게 되는구나. 언제까지나 이런 생활을 하게 될까.)
이 때였다. 
애를 배어 배가 부른 나이 젊은 주부가 당근을 사러 들어왔다.
바로 이때 마여룡은 비명소리를 들었다.
그 비명 소리는 비록 크지 않았지만 마여룡은 놀람과 비분에 차 있었다.
틀림없이 사옥륜이 정신을 차린 것 같았다.
그녀가 변한 자기 모습을 본다면 놀라 기절을 하든지 미쳐 발광을 하게 될 것이다.
마여룡은 잠시 주저했다. 감히 방 안으로 들어가 그녀를 살펴 볼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배가 부른 젊은 주부는 마여룡을 바라보며 걱정스런 어조로 말했다.
[부인의 병이 갈수록 심해지는 것 같군요.]
마여룡은 쓴 웃음을 짓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방의 주렴을 걷어올리고 침실로 들어갔다.
사옥륜은 이때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몸을 버둥거리고 있었고 눈빛은 놀람과 분노와 공포가 가득했다.
그녀는 목쉰 소리로 외쳤다.
[당신은 누구예요? 이곳은 어디죠? 당신은 어째서 나에게 다가오는 거죠?］
마여룡은 침착하게 대답했다.
[이곳은 바로 당신의 집이오. 당신과 나는 이곳에서 십팔 년을 살았소. 나는 바로 당신의 남편이오. 내가 보기에 당신의 병은 갈수록 심해지는 것 같군. 이제는 자기의 집과 남편조차도 알아보지 못하니 말이오.]
사옥련은 깜짝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
그 누구도 그녀의 눈동자에 있는 복잡한 감정을 형용할 수 없으리라. 
배가 부른 젊은 아낙은 문의 주렴을 들추고 안을 들여다보며 탄식했다.
[할머니가 이제는 헛소리까지 하시네. 저럴 때는 생강탕을 끓여 먹이면 좋다고 하던데요.]
그녀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사옥륜은 있는 힘을 다하여 침대 옆에 있는 작은 탁자 위에 있는 그릇을 집어들고 그 젊은 아낙을 향해 던졌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녀는 병이 너무 깊어 그릇조차 멀리 던질 수가 없었다.
그녀는 더욱 놀라 온몸을 벌벌 떨었다.
그녀 자신은 자기의 무공이 사람들을 놀라게 할 정도로 높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무공은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젊은 아낙은 탄식하더니 당근을 들고 집으로 돌아갔다.
반 시진도 되지 않아 이웃사람들은 잡화점의 마누라가 병이 깊어 미쳐버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옥륜은 정말 미칠 지경이었다.
그녀는 이미 자기의 손을 보았던 것이다. 
한 쌍의 부드럽고 뼈가 없는 파뿌리같던 흰 손이 지금은 이미 닭발처럼 보기 흉하게 변해 있었다. 
다른 곳은 어떠한가.
그녀는 손을 이불 속에 집어넣었다가 얼른 움츠렸다.
제 이불 속에 독사가 있어 깨무는 것처럼 말이다. 
그녀는 벌벌 떨리는 손으로 구리거울을 집어들더니 자기의 얼굴을 비춰보았다.
그 순간 그녀는 그만 기절하고 말았다.
마여룡은 천천히 허리를 구부려 땅바닥에 부서진 그릇의 파편을 주웠다.
그러면서 자기가 어떻게 이런 모양으로 살게 되었는지 한심하다는 생각을 했다. 심지어 자기의 따귀를 때리며 그녀에게 꿇어엎드려 용서를 빌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그는 대완에게 미안한 짓을 할 수가 없었다.
대완은 그를 신임하고 그 역시 그녀를 믿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대완이 이렇게 한 것은 반드시 깊은 뜻이 있을 것이다.
마여룡은 길게 탄식하고 밖으로 걸어나가 하인에게 말했다.
[오늘은 일찍 가게 문을 닫도록 하자.]


17. 기절(氣絶)



저녁 반찬은 고추를 넣은 볶은 새우가 있었고 또 한 가지가 있다면 뼈를 고은 국물이 있었다. 
이것은 환자가 마시도록 만든 것이다. 
환자는 깨어난 이래 줄곧 침상에 누워서 천정을 노려보고 있었다. 
마여룡도 침대 옆의 다 떨어져나간 등나무 의자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는 여러가지 생각을 해보고 있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어째서 이와 같이 큰 거리가 있는 것일까.
무엇 때문에 사람이 이렇게 비참해져야 하는가.
무엇 때문에 나는 옛날에 그렇게 오만했던가.
그는 오늘 발견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가 가까워진다면 정말 의미가 있는 일임을.
만약 그가 옛날의 일을 계속하고 있었다면 그는 이 점을 깨닫지 못할 것이다. 
한 사람이 뜻밖의 좌절과 고난을 겪으면 이와 같이 좋은 점도 생기는 것일까.
대완이 사옥륜과 그를 만나게 해준 것도 그런 까닭 때문이 아닐까.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마여룡은 마음은 조금 편해졌다.
그는 사옥륜이란 여자가 옛날에는 매우 교만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실제로 교만할만한 이유가 있었다.
사옥륜이 그를 바라보며 홀연 입을 열었다. 
[여보세요, 다시 한번 말씀해 보세요.]
마여룡은 물었다.
[무얼 말하라는 것이오.]
사옥륜은 입을 열었다.
[당신은 누구라고 말했죠? 나는 또 누구라구요?]
마여룡은 대답했다.
[나는 장영발이고 당신은 왕계지라고 하오.]
사옥륜은 울었다.
[우리들은 부부인가요?]
[우리들은 십팔 년 동안 부부생활을 해왔소. 우리들은 줄곧 이곳에서 살아왔소. 이 잡화점을 열고 살아왔으며 부근의 모든 사람들도 우리들을 알고 있소.]
마여룡은 탄식하며 다시 말을 계속했다.
[어쩌면 당신은 우리들의 이런 생활이 계속되는데 대해서 우리들이 너무나 가난하고 고통스러우니까 이런 생활이 지긋지긋해져서 생각하기도 싫었는지도 모르겠구려. 그렇기 때문에 전부 잊어버리고 싶었겠지.]
그는 다시 그녀를 위로했다. 
[사실 이렇게 사는 것이 크게 나쁘다고도 할 수 없는 것이오. 최소한 우리들은 마음 편안히 살 수 있소.]
사옥륜은 그를 노려보듯 보았다.
한참동안 노려보다가 그녀는 입을 열었다.
[당신은 잘 들으세요.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모르고 이번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 알 수 없어요. 그러나 나는 분명히 알 수 있는데 다른 사람이 당신과 내통해서 나에게 해를 끼치고 있는 거예요.]
[누가 당신에게 해를 끼치겠소? 무엇 때문에 해를 끼친단 말이오?]
사옥륜은 말했다.
[당신은 정말 내가 누구인지 모른단 말인가요?]
마여룡은 되물었다.
[당신 자신은 당신을 누구라고 생각하고 있소?]
사옥륜은 냉소했다.
[만약 내가 누구인지 당신이 알게 된다면 당신은 몸둘 바를 모르게 될 거예요.]
그녀의 음성이 갑자기 오만하게 변했다.
[나는 바로 신의 딸이에요. 세상의 그 어떤 여자도 나와 비교할 수 없어요. 나는 언제라도 당신을 부자로 만들어줄 수도 있고 나는 언제라도 당신을 죽일 수가 있고 그 무엇이든 할 수 있어요. 그러니 당신은 빨리 나를 보내주는 것이 가장 좋을 거예요. 그렇지 않다간 조만간 당신을 난도질해서 개밥으로 던져버리고 말 거예요.]
그녀는 과연 매우 오만한 여인이었다.
다른 사람을 안중에 두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생명까지도 하찮게 여기고 있었다. 그녀 자신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의 생명도 가치없게 여기고 있었다.
이와 같은 여인이라면 약간의 좌절을 겪게 하는 것도 그녀에게 좋은 일일 것 같았다. 
마여룡은 탄식하며 말했다.
[당신의 병이 다시 도졌구려. 오늘은 일찍 자도록 하시오.]
그는 여기까지 말하다가 비로소 한 가지 문제가 생각났다.
이 방 안에는 침대가 하나밖에 없는데 그 자신은 어디서 자야 할까.
사옥륜 역시 이 문제를 떠올리고 갑자기 날카롭게 외쳤다.
[당신이 감히 침대 위로 기어 올라온다면 나는.... 나는....]
그녀는 말을 계속하지 못했다.
지금 마여룡이 그녀를 어떻게 하려고 한다면 그녀는 반항할 방법이 없는 것이었다.
마여룡은 남자였다. 
신체가 건강하고 더군다나 그녀의 진면목을 보았으며 그녀의 벌거벗은 모습을 보았던 남자였다. 그는 이 여인이 실제는 대단히 아름다운 여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시체 해부실의 침대 위, 하얀 천 밑에 들어있던 그녀의 아름다운 육체를 그는 영원히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녀를 어떻게 하지 않았다. 그녀의 손 한 번 잡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 못지않게 마여룡 역시 매우 오만한 남자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런 짓을 여자가 싫어하는데 여자를 범하는 짓은 여지껏 해본 적이 없었고 죽인다고 할지라도 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그 역시 자존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하루하루가 흘러갔다.
사옥륜은 점점 안정을 되찾아갔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을 때에는 그것을 참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참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 소용도 없을 뿐만 아니라 미치고 발광을 하고 땅바닥을 구르고 머리로 벽을 들이받는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마여룡은 이와 같은 생활을 예전에 겪어본 적도 없었고 상상해본 적도 없었다.
예전의 그는 평범하고 용렬하며 비속하고 천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 그는 그런 사람이 되어 있었고 그런 사람들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때때로 그 역시 답답함을 느끼게 될 때도 있었다.
어떤 때는 밖으로 나가서 강호의 소식을 알아보고 대완과 유오를 찾아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충동을 억눌렀다.
그런데 최근 며칠 동안에 잡화점에는 이상한 손님이 생겼다.
매일 황혼이 질 때면 그 손님은 스무 개의 계란과 두 근의 종이와 한 근의 소금을 사 가는 것이었다.
한 가족이 매일같이 스무 개의 계란을 먹고 두 근의 소금을 먹는다는 것은 실로 이상한 일이었다.
그런 말은 마여룡으로서는 들어본 적도 없었고 상상해본 적도 없었다.
이 사건은 비록 기괴한 면이 있었지만 그러나 그 사람이 사가는 물건 자체는 이상할 것이 없었다.
계란과 소금과 술은 모두 보통의 가정에서 필요한 음식들이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사러 오는 사람은 보기에 매우 평범해 보였다.
키는 크고 비쩍 말랐는데 이 마을의 다른 사람처럼 수심에 잠겨 있으면서 항상 피곤해 보였다.
어느날 배가 부른 젊은 아낙네가 마여룡에게 그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했을 때부터 마여룡은 그 사람을 주의하기 시작했다.
그때 젊은 아낙은 이렇게 물었다.
[그 사람은 누구인가요? 예전에 나는 그 사람을 본 적이 없는데.....]
이 마을 사람들을 모두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 젊은 아낙은 이런 말도 했다.
[그 남자는 절대로 이 마을 사람이 아니에요. 더군다나 절대로 이 마을에 와보지 않았던 사람이에요.]
이때부터 마여룡은 그 남자에게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마여룡은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아니었다.
명문세가의 공자들은 보통 다른 사람을 관찰하는 법이 없다.
그 남자는 체구는 비쩍 말랐지만 손과 발은 특별나게 컸다. 
손을 내밀어 물건을 집고 돈을 낼때 그 동작이 매우 재빨랐다. 마치 다른 사람이 자기의 손을 보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 같았다.
매일 황혼 무렵이 되면 다른 사람이 집으로 돌아가 밥을 먹는 시간이 되면 그리고 거리에 인적이 뜸할 때가 되면 그 사람은 어김없이 나타나곤 했다.
그 사람은 키가 크고 손발이 큰데 길을 걸을 때 보면 매우 날렵했고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았다.
언젠가는 한 번 비가 와서 골목길이 온통 질척거리고 있었는데 그러나 그의 신발에는 진흙이 별로 묻지 않았었다.
어느새 새해가 되고 봄이 되었건만 날씨는 아직 싸늘한 편이었는데 그 사람이 입고 있는 옷은 다른 사람보다 엷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추위를 타지 않는 것 같았다.
마여룡은 이것을 보고 그 사람이 분명히 무공을 익힌 사람이며 무공의 조예가 가볍지 않으며 한 쌍의 손으로 특이한 무공을 익혔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 사람이 익힌 무공은 분명히 철사장(鐵砂掌)같은 무공일 것이다.
무림의 고수가 무엇 때문에 매일 저녁 잡화점에 와서 계란과 소금과 술을 사가지고 가는 것일까.
만약 그가 원수를 피하여 이곳으로 도망쳐 온 사람이라면 매일같이 그런 물건들을 사야할 필요가 어디 있을까.
만약 그가 유오의 부하라면 그래서 암암리에 마여룡을 보호하기로 된 사람이라면 어째서 다른 사람들의 주의를 끄는 그 짓을 하는 것일까.
설마하니 구봉성이나 절대사 일행이 이미 이 잡화점이 이상하다는 것을 발견하고 부하들을 파견하여 감시하는 것일까.
정말 그렇다고 해도 무엇 때문에 매일 스무 개의 계란과 두 근의 소금을 사가지고 갈까?
마여룡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알 수 없는 일들은 생각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법이다.
그러나 마여룡의 호기심은 점점 짙어져 갔다.
사람은 누구나 호기심이 이씨는 법이고 마여룡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런데 사옥륜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그녀도 그와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느 날 그녀는 참지 못하고 질문을 던졌다.
[그 사람은 정말로 남자인가요?]
마여룡은 대답했다.
[당연히 남자지.]
사옥륜은 다시 물었다.
[그는 남장을 한 여자가 아닐까요?]
마여룡은 역용술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남자를 여자로 바꾸고 여자를 남자처럼 바꾸는 것은 꼭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마여룡은 대답했다.
[절대 그럴 리가 없소.]
사옥륜은 그 말을 듣더니 매우 실망하는 눈치였다.
마여룡은 그녀의 질문이 이상하다고 느끼고 되물었다.
[당신은 어째서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이오. 그 사람이 여자이기를 바라는 것이오?]
사옥륜은 한참 동안 곰곰히 생각하더니 탄식하며 대답했다.
[만약 그 사람이 여자라면 그것은 나를 구하러 온 것이라고 볼 수 있어요.]
마여룡은 속으로 생각했다.
[어째서 여자만이 당신을 구하러 온단 말이오?]
그러나 그는 그 말을 입밖에 내지는 않고 담담히 입을 열었다.
[당신은 나에게 시집온지 십팔 년이 되었소. 나는 당신에게 섭섭하게 대한 것이 없는데 어째서 당신은 다른 사람이 당신을 데리고 갔으면 하고 바라는 것이오?]
사옥륜은 한맺힌 눈초리로 그를 노려보았다.
이 문제를 들먹일 때면 언제나 그녀는 눈동자에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통과 원한의 빛을 떠올리는 것이었다.
그녀가 그런 표정을 떠올릴 때마다 마여룡은 즉시 밖으로 나가곤 했다.
그는 정말 그녀의 그와 같은 눈동자를 감히 바라볼 수가 없던 것이다.
어느 날 저녁.
그 신비한 남자가 막 물건을 사가지고 돌아간지 얼마 되지 않아서 배가 부른 젊은 아낙이 뛰어들어오더니 마여룡에게 매우 흥분한 어조로 말했다.
[나는 알아냈어요, 나는 알아냈어요.]
그녀는 숨을 헐떡이며 말을 계속했다.
[나는 그 남자 어디에 살고 있는지 알아냈어요.]
줄곧 말이 없던 장노실은 이때 비로소 궁금하다는듯 물어보는 것이었다.
[그 남자는 어디에 머물고 있는가요?]
그 젊은 아낙은 말했다.
[도보의(陶保義)의 집에 머물고 있어요. 나는 친히 그가 들어가는 것을 목격했어요.]
도보의는 이 마을의 유지였다. 소문에 의하면 그는 옛날에 무공을 익힌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가 무공을 연마하는 장면을 보지는 못했다.
그의 집은 이 마을에서 가장 컸다.
붉은 벽돌로 쌓아올린 집인데 그의 교우가 무척 넓어서 친구들이 그의 집에서 머무르는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집에는 단지 부부 두 사람만이 살고 있었다.
거기다가 친구 한 사람이 추가된다고 하더라도 매일같이 스무 개의 계란과 두 근의 소금을 매일같이 세 사람이 먹어치울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 젊은 아낙은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조금전에 일부러 도보의의 집으로 들어가서 이곳저곳을 살펴보았지만 그 사람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더군요. 그러나 나는 분명히 그 사람이 그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단 말이에요. 나는 도보의 아주머니에게 그 사람이 무엇 때문에 매일같이 두 근의 소금을 사가지고 가느냐고 물어보려고 했어요. 그런데 도보의와 그 아주머니가 갑자기 다른 일로 다투는 바람에 그냥 나오고 말았지 뭐예요.]
장노실은 가만히 듣고 있더니 불쑥 물어봤다.
[오늘 당신은 당근을 살 것인가요?]
그 젊은 아낙은 대답했다.
[오늘은 사지 않을 거예요.]
장노실은 다시 물었다.
[그럼 된장을 살 것인가요?]
그 젊은 아낙은 말했다.
[된장도 사지 않을 거예요.]
장노실은 갑자기 얼굴을 딱딱하게 굳히고 말했다.
[그렇다면 어째서 당신은 빨리 집으로 돌아가서 잠자지 않소?]
그 젋은 아낙은 장노실을 흘겨 보더니 밖으로 걸어나갔다.
장노실은 가게문을 내리더니 입속으로 중얼중얼 얘기했다.
[할일 없는 여편네 같으니, 쓸데 없이 남의 일에 간섭하는 것은 정말 좋은 일이 못 돼. 그런 사람을 나는 가장 싫어하지.]
마여룡은 장노실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그는 이 장노실이란 사람에게도 이상한 구석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그가 장노실에게 처음으로 느끼는 이상한 감정이었다.



벽혈세은창 2
<碧血洗銀槍>

18. 식염(食鹽)


이 날 밤 마여룡은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침대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그러나 잠이 오지 않았다.
사옥륜도 잠을 자지 않고 있었는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여보세요, 당신 잠을 자는 거 아니죠?]
마여룡은 눈을 뜨고 대답했다.
[깨어 있었소.]
사옥륜은 물었다.
[당신은 어째서 잠을 자지 않고 있나요? 혹시 그 사람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요?]
마여룡은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요?]
사옥륜은 말했다.
[그 도보의란 사람이 이미 무공을 익혔다면 그는 옛날에 분명히 살인 강도짓을 한 사람이었을 거예요. 소금을 사러온 사람은 분명히 그의 옛날 패거리였을 거예요. 그 사람이 이곳에 온 것은 함께 작당을 하여 무슨 사건을 벌이려는 것이 틀림없어요.]
마여룡은 물었다.
[사건을 벌이는 것하고 소금을 사는 것이 무슨 관계가 있다는 것이오? 그리고 그것이 우리들과 무슨 상관이 있겠소?]
사옥륜은 말했다.
[어쩌면 그들은 우리 잡화점을 노략질하려고 준비하고 있는지도 모르죠. 그래서 소금을 사는 척하고 염탐을 하고 있을 거예요.]
마여룡은 참지 못하고 다시 물었다.
[우리들의 이 잡화점에 가치있는 물건이 뭐 있다고 노략질을 한단 말이오?]
사옥륜은 말했다.
[한 가지가 있죠.]
마여룡은 물었다.
[한 가지라니?]
사옥륜이 대답했다.
[나 말이에요.]
마여룡이 물었다.
[그들이 당신을 노략질해간단 말이오?]
그는 그 말을 하면서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옥륜은 갑자기 탄식하더니 말했다.
[당신은 정말로 내가 누구인지 모르나요? 그러나 당신은 내 말을 믿어야 해요. 만약 내가 그들의 손에 떨어지지만 않았어도...]
그녀는 여기까지 말하더니 분하고 원통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한참동안 말을 잊지 못하다가 이윽고 나직이 입을 열었다.
[나는 아직도 당신이 무엇 때문에 나를 이렇게 대하는지는 모르겠어요.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당신이 나븐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러니 반드시 당신은 내 말을 들어 그 사람의 내력을 한 번 조사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마여룡은 물었다.
[나보고 어떻게 조사를 해보라는 것이오?]
사옥륜은 냉소하며 입을 열었다.
[내가 당신이 무공을 익힌 사람이라는 것을 몰라볼 줄 알았나요? 비록 당신이 지금은 잡화점의 주인에 불과하지만 옛날에는 분명히 강호를 주름잡는 유명한 고수였을 거예요. 왜냐하면 나는 당신의 무공이 결코 평범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볼 수 있었기 때문이에요.]
마여룡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공을 십여 년 동안 익힌 고수들은 어쨌거나 평범한 사람들과는 행동거지가 다르게 마련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그녀의 말을 믿고 있었다.
그녀는 매일같이 그를 주의해서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실제로 무슨 할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마여룡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사옥륜은 그를 똑바로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만약 당신이 내 부탁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나는 당장....]
마여룡은 물었다.
[당신은 당장 어떻다는 것이오?]
사옥륜은 대답했다.
[나는 당장 이제부터 다시는 음식을 먹지 않고 물을 먹지도 않을 것이고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겠어요. 나는 굶어죽겠단 말이에요!]
이 말은 정말 마여룡으로서는 가볍게 들어 넘길 일이 아니었다.
마여룡은 그녀가 굶어죽도록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사옥륜은 다시 물었다.
[어떻게 할 거예요?]
마여룡은 탄식하며 입을 열었다.
[당신은 나보고 그 사람을 조사해 보라는 거겠지? 언제 어떻게 조사를 해야 되겠소?]
사옥륜은 말했다.
[지금 당장 가보세요.]
그녀는 잠깐 생각해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당신은 검은 옷으로 갈아입으세요. 그리고 검은 복면을 하세요. 만약 다른 사람에게 발견 되더라도 그리고 누가 당신을 쫓아 올지라도 당신은 절대로 이곳으로 도망쳐 오면 안 되고 빙 둘러서 추격자를 따돌린 다음에 들어오서야 되어요. 그렇게 해야 다른 사람들은 당신이 이 잡화점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알아보지 못할 거예요.]
사옥륜은 뜻밖에도 강호의 흑도 인물들이 행동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사옥륜은 다시 입을 열었다.
[당신은 반드시 내 말대로 해야 되어요. 내가 시키는 방법은 강호의 유명한 인물이 나에게 가르쳐준 것이에요.]
그녀는 탄식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이 잡화점 안에서 살아있는 것도 아니고 죽어있는 것도 아닌 상태로 누워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당신의 정채가 발각되어서 이 집에 누가 쳐들어 오게 된다면 우리들 두 사람은 모두 죽고 말 거예요.]
마여룡은 그 말을 듣고 쓴 웃음을 지었다.
그는 한 번도 남을 조사하는 이런 짓은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밤은 이미 깊었다.
가난한 이웃집들은 대낮의 어려운 노동을 마치고 일찍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들었다.
어둠에 덮힌 골목길에는 등불도 없었고 지나가는 행인도 없었다.
마여룡은 살금살금 그의 잡화점에서 걸어나왔다. 
그는 이미 검은 옷으로 갈아입고 검은 복면을 하고 한 쌍의 눈만 빠꼼히 내놓고 있었다.
그는 도보의가 머물고 있는 집이 어느 쪽인지 짐작하고 있었다.
붉은 벽돌로 쌓아올린 도보의의 집은 모두 다섯 칸의 방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세 칸의 방은 불이 꺼져 있었고 두 칸의 방은 불이 켜져 있었다.
집 뒤쪽으론는 작은 정원이 있었다.
정원 외쪽으로는 주방이 있었고 주방 옆으로는 곳간이 있었으며 그 사이에 하나의 우물이 있었다. 
마여룡은 살금살금 집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보았지만 별 이상한 것을 발견하지도 못했고 무슨 이상한 것을 줍지도 못했다.
그는 한 번 살펴본 다음에 곧 잡화점으로 돌아왔다.
사옥륜은 그가 돌아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마여룡은 나가서 본 일을 모두 들려 주었다.
사옥륜은 말이 끝나자 가볍게 한숨을 내쉬더니 입을 열었다.
[강호에서 일어나는 일을 당신은 조금도 모르는군요.]
마여룡은 결코 반박하지 않았다.
사옥륜은 다시 입을 열었다.
[당신은 마땅히 살펴보아야 할 것을 살펴보지 않았고 마땅히 살펴보지 않아도 될 일을 살펴보았군요.]
마여룡은 물었다.
[어떤 것을 살펴보아야 했다는 것이오?]
사옥륜은 말했다.
[당신은 주방 뒤로 가보았는가요?]
마여룡은 말했다.
[가보지 않았소. 나는 주방 안에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무엇 때문에 가본단 말이오?]
사옥륜은 말했다.
[아궁이에 불을 지핀 흔적이 있는지 최근에 불을 땐 적이 있는지 확인을 해보아야 했어요.]
마여룡은 더욱 이상하게 생각했다.
아궁이 불을 때는 것하고 이 사건이 무슨 관계가 있다는 말인가.
사옥륜은 다시 물었다.
[당신은 그 우물을 살펴보았나요? 우물에는 물이 있던가요, 없던가요.]
마여룡은 또 다시 물었다.
[우물에 물이 있는 것하고 없는 것이 이 사건하고 무슨 관계가 있소?]
사옥륜은 말했다.
[아궁이에 불을 지핀 자국이 있는 것과 우물에 물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중요한 거예요. 아궁이와 우물에는 사람이 숨어있을 수가 있거든요.]
마여룡은 탄식하며 말했다.
[뜻밖에도 당신은 이 방면에 조예가 깊구려. 알고 있는 일이 적지 않군.]
사옥륜은 말했다.
[나도 누구에게 들은 거예요. 그래서 지금 당신에게 전해주는 거죠.]
마여룡은 말했다.
[그럼 내가 한 번 더 갔다와야 하겠구려.]
사옥륜은 말했다.
[당장 가보세요.]
아궁이는 따뜻했고 아궁이에는 불씨가 남아 있었다.
부뚜막 위에는 따뜻한 물이 담겨진 세숫대야도 있었다. 
우물 안에는 물이 없었다.
이 남자는 혹시 정말로 우물 안에 숨어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깊은 우물 속은 보이지가 않았다.
마여룡은 어렸을 때부터 벽을 타고 기어오르고 내리는 벽호공(壁虎功)을 익힌 적이 있었다. 
벽호공을 사용하여 우물벽을 타고 밑으로 내려가 우물 밑바닥을 살펴보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만약에 우물 밑바닥에 사람이 숨어있다면 그가 내려오는 기회를 틈타 그에게 암습을 가할 우려가 있었다.
그렇다면 우물 벽을 타고 내려가는 것은 방어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치명상을 입을 위험이 있었다.
그는 우물 속으로 내려갈 자신이 없었으나 사옥륜이 질책할 생각을 하니 그냥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는 이제야 세상의 많은 남편들이 마누라의 바가지를 두려워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가 우물 입구에서 망설이고 있는데 갑자기 우물 밑바닥에서 냉랭한 음성이 들려왔다.
[장 주인, 당신이 왔구려.]
그 목소리는 목이 쉬어 있었고 잠겨 있었는데 바로 그 소금을 산 남자의 음성이었다.
마여룡이 그 사람을 발견하기 전에 그 사람이 먼저 마여룡을 발견한 것이었다.
마여룡은 쓴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내가 왔습니다.]
소금을 사간 사람은 말했다.
[당신이 이미 온 이상 어째서 밑으로 내려오지 않으시오?]
마여룡은 본래 망설이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벌써 그가 누구인지 알고 있는 이상 반드시 우물 밑바닥으로 내려가보아야 했다.
다른 사람에게 정체가 탄로난 이상 도망치는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에게 발각되면 안 되는 입장에서 어찌 그냥 돌아갈 수가 있겠는가.
마여룡은 말했다.
[내가 내려가겠소.]
검고 어두운 우물 밑바닥에 갑자기 한 점의 불빛이 빛났다.
우물 밑에는 두 사람이 있었다.
한 사람은 소금을 사간 그 사람이었고 또 다른 한 사람은 소금을 먹는 사람이었다.
소금을 먹고 있는 이 사람은 어깨가 넓고 손발이 길고 이마가 넓고 광채뼈가 불룩 튀어나온 사람이었다.
원래는 키가 크고 우람했을 체구였는데 지금은 바싹 말라서 사람의 형체를 하고 있지 않았다. 온 몸의 피부는 모두 말라 비틀어졌고 피골이 상접한 모습이었다.
더욱 이상한 것은 그가 잠시도 쉬지 않고 끊임없이 물을 마시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물을 한 입 먹고 소금을 한입 먹고 그리고는 계란을 먹고 있었다.
그는 소금에 찌드는 것이 두렵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의 피부는 가뭄을 만난 땅처럼 메말라 있었다.
소금을 사간 사람은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가 사가지고 간 술이었다. 그는 한 모금 한 모금씩 아주 조금씩 천천히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가 술을 마시는 것은 마치 인색한 수전노가 돈을 아끼고 있는 것과 같았다.
술을 다 마셔버리는 것이 아깝다는듯 소중하게 아껴먹고 있었다.
사실 그는 취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그 소금을 먹는 친구를 돌보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19. 정저(井低)


우물 밑바닥은 우물 입구보다 훨씬 넓었다.
그 안에는 뜻밖에도 한 개의 침대와 한 개의 탁상과 한 개의 의자가 있었다.
둥불은 탁자 위에 있었다.
소금을 먹는 사람은 침대 위에 누워 있었고 소금을 사간 사람은 조용히 그 옆의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 두 사람은 마여룡이 우물 벽을 타고 미끌어져 내려오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술병을 들고 있는 그 사람의 손은 크고 거칠었으며 손톱에서는 윤이 나고 있었다.
틀림없이 주사장(朱砂掌)같은 무공을 익힌 것 같았다.
그의 의자 옆에는 한 자루의 무거운 죽절편(竹節鞭)이 있었는데 적어도 사오십 근은 나갈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사람은 마여룡에게 공격을 하지 않고 다만 차갑게 말했을 뿐이었다.
[장씨, 우리들은 언젠가 당신이 이곳을 찾아오리라고 생각하고 있었소. 당신은 과연 왔구려.]
마여룡은 의아하여 물었다.
[내가 올 것을 어떻게 알고 있었소?]
그 사람은 술을 한 모금 마시고 입을 열었다.
[내가 잡화점의 주인이라고 해도 만약 한 사람이 매일같이 와서 두 근의 소금을 사가지고 간다면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오.]
그는 차갑게 웃으며 말을 계속했다.
[그러나 정말 잡화점을 경영하는 주인이라면 이상한 손님이 온다고 할지라도 다른 사람의 일에 쓸데없이 참견하지 않을 것이오. 그러나 당신은 쓸데없는 일에 참견을 하고 있소.]
마여룡은 말했다.
[그럴지도 모르지요.]
술을 마시는 그 사람은 다시 말을 했다.
[당신은 원래 그 잡화점의 주인이 아니었을 것이오. 마치 내가 원래는 잡화점에 가서 소금을 산 일이 없는 것처럼 말이오.]
마여룡은 흠칫 놀랐다.
[당신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가 없구려.]
그 사람은 다시 말했다.
[당신이 나의 내력을 조사하러 온 것처럼 나 역시 벌써 당신의 내력을 조사해 보았소.]
마여룡은 물었다.
[나의 내력이 어쨌다는 것이오?]
소금을 사가는 사람은 천천히 대답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소. 당신이 정말 장영발이라면 그 잡화점을 연지 십팔 년이 됐고 병든 마누라가 있고 게으른 점원이 있으니 그렇게 본다면 당신은 평생 동안 좋은 꼴을 별로 보지 못하고 살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오.]
그는 갑자기 탄식하며 말을 계속했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당신은 장영발이 아니오. 절대로 아니오.]
마여룡은 물었다.
[당신은 어떻게 내가 장영발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소.]
소금을 사간 사람은 말했다.
[왜냐하면 당신의 손톱은 매우 깨끗하고 머릿카락도 잘 빗겨져 있소. 더군다나 매일 세수를 하고 있지. 내가 알기로는 장영발은 옛날에 별로 깨끗한 사람이 아니었소.]
마여룡은 할 말이 없었다.
이 사람은 정말 강호에서 잔뼈가 굵은 노련한 인물 같았다.
마여룡이 그에 대해서 의심하기 전에 그가 먼저 마여룡을 의심하고 있었던 것이다. 
소금을 사간 사람은 다시 말했다.
[만약 당신이 장영발이 아니라면 당신은 누구일까. 무엇 때문에 장영발처럼 꾸미고 있다는 말일까. 진짜 장영발은 지금 어디에 있소?]
마여룡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소금을 사간 사람은 다시 말했다.
[이 문제를 나는 오래전에 생각해 보았었던 것이오.]
마여룡은 물었다.
[그래서 결론이 어떻게 났소?]
소금을 사간 사람은 다시 말했다.
[딱 한 가지 점을 짐작할 수 있었소.]
마여룡은 물었다.
[한 가지 점이 어떤 것이오?]
소금을 사간 사람은 대답했다.
[이 사건은 매우 주도면밀한 계획 아래 시도된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소. 당신이 장영발로 분장하고 십팔 년 동안 같이 지내온 사람들을 속일 수 있었던 것은 극히 정묘한 변장술 덕분이라고 할 수 있소. 강호에서 역용술에 정통한 사람은 많지 않소. 더군다나 이와 같이 감쪽같이 사람의 모습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뿐이오.]
이 사람은 당연히 영롱옥수 옥영롱이었다.
소금을 사간 사람은 말을 계속했다.
[옥대소저는 강호의 사건에 개입하지 않은지 이십 년이 지났는데 그녀를 다시 끌어올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뿐이오.]
마여룡은 물었다.
[단 한 사람뿐이란 말이오?]
소금을 사간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절대로 단 한 사람밖에 없소. 강남의 유오를 제외하고 그 누구도 그녀를 끌어내올 수 없소.]
마여룡은 쓴 웃음을 지었다. 그는 이 세상에는 비밀이라는 것이 없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구봉성의 약점과 진의를 알아차리지는 못했다고 할 수 있었다.
소금을 사간 사람은 다시 말했다.
[당신이 이렇게 치밀하게 준비하고 한 명의 잡화점의 주인으로 변장했는데 그 이유는 당신도 우리들처럼 도망을 치고 있는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 몸을 숨긴 것이라고 짐작이 가오. 아마 당신의 목숨을 노리는 사람은 틀림없이 우리들의 목숨을 노리는 사람보다 더욱 무서운 인물일 것 같소.]
그는 빙그레 웃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당신이나 우리나 모두 같은 강호의 망명도배이니 피차 서로의 비밀을 캐낼 필요가 어디 있겠소? 나도 당신의 비밀을 알아낼 필요가 없고 당신 역시 나의 비밀을 알아내려고 할 필요가 없는 것이오. 그러기 때문에 나는 매일 당신의 잡화점에 가서 물건을 사왔던 것이오.]
마여룡은 탄식하며 말했다.
[나는 생각도 못했던 일이었소.]
소금을 사갔던 사람은 말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당신은 이미 이곳까지 쫓아왔소.]
마여룡은 물었다.
[당신은 나를 죽여 내 입을 막을 생각이오?]
소금을 사간 사람은 말했다.
[강남 유오같은 사람이 당신을 도와주는 것을 볼때 당신은 분명히 대단히 유명한 인물일 것이오. 그리고 무공도 대단히 뛰어날 것이오. 내가 당신을 죽여 입을 막고 싶어한다고 할지라도 나에게는 그럴 실력이 없을 것이오.] 
그는 홀연 웃으며 말을 계속했다.
[만약 당신이 정말로 내가 생각한 그 사람이라면 나는 당신에게 섯불리 덤벼들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이오. 그러다가는 당신의 손에 내가 죽게 될 것이니까 말이오.]
마여룡은 물었다.
[당신은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고 있소?]
소금을 사간 사람은 대답했다.
[당신은 바로 마여룡이오. 천마당의 큰 공자 백마공자 마여룡이 바로 당신이오.]
마여룡은 깜짝 놀랐다. 
만약 옥수영롱 옥영롱이 그의 얼굴을 바꾸어 놓지 않았다면 그는 표정이 매우 어색하게 변했을 것이다.
마여룡은 즉시 되물었다.
[당신은 어째서 나를 마여룡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오?]
소금을 사간 사람은 말했다.
[거기에는 그만 이유가 있소.]
마여룡은 물었다.
[어떤 이유가 있다는 것이오?]
소금을 사간 사람은 대답했다.
[지금 강호에서 모든 사람들이 사로잡으려고 하는 사람은 바로 마여룡이오. 지금 강호의 삼대가족(三大家族)과 오대문파(五大門派)에서는 오만 냥의 황금을 현상금으로 내걸고 당신을 찾고 있소. 당신을 잡아서 현상금을 받기 위해서 일류고수 오륙십 명이 천하를 샅샅히 수색하고 있소. 그런데 이상하게도 개방의 제자들은 당신을 찾으려고 하지 않고 있소. 개방의 제자들은 숫자가 수십만 명이나 되고 각지에 분포되어 있고 소식이 정통하기 때문에, 그리고 개방은 가장 가난하고 돈이 필요한 사회이기 때문에 오만 냥의 현상금을 보았다면 당연히 당신을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야 마땅하다고 보겠소. 그런데 이상하게도 개방에서 당신을 찾지 않고 있소. 이것은 당연히 유오가 당신을 도와주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오.]
마여룡은 한참동안 침묵하다가 천천히 말했다.
[당신은 조금 전에 한 말을 하지 않았어야 했소.]
소금을 사간 사람은 말했다.
[그럴지도 모르오. 내가 당신의 비밀을 폭로한 이상 당신은 어쩌면 나를 죽여 비밀이 새어나가는 것을 막으려고 들지도 모르오. 내가 당신을 밀고해서 상금 오만 냥을 타려고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마여룡은 물었다.
[당신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오?]
소금을 사간 사람은 잘라서 말했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지 않소.]
마여룡은 물었다.
[그건 어째서 그렇소?]
소금을 사간 사람이 대답을 하려고 하는데 소금을 먹고 있는 사람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그것은 나 때문이오.]
그는 줄곧 소금을 먹고 있었다.
이 세상에 그 누구도 그 사람처럼 많은 소금을 먹어보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루에 두 근의 소금을 먹어치우는 사람, 거기다가 스무 개의 계란을 먹어치우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약간 상기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십 년 동안 많은 사람들이 나를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소. 나는 다른 사람에게 발각당할까봐 두려워하는 심정과 억울하게 도망을 다녀야 하는 심정을 잘 이해하고 있소. 그렇기 때문에 오만 냥의 상금이 비록 적은 액수는 아니지만 내 눈에는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오.]
마여룡은 물었다.
[당신은 나 역시 억울하게 당했다는 것을 알고 있구려.]
소금을 먹는 사람은 말했다.
[왜냐하면 나는 유오라는 사람을 믿기 때문이오. 만약 당신이 억울하지 않다면 유오는 가장 먼저 당신의 생명을 빼앗았을 것이오.]
마여룡은 물었다.
[당신은 도대체 누구입니까?]
소금을 먹는 사람이 대답했다.
[나 역시 당신과 마찬가지로 억울하게 도망다니는 사람이고 머리에 현상금이 달린 사람이오. 내가 이렇게 개 돼지처럼 억울하게 숨어서 비천하게 사는 것은 죽은 것이 두려워서가 아니고 언젠가 이 억울함을 씻기 위함이오. 억울함을 씻을 수만 있다면 나는 죽어도 여한이 없소.]
그는 처량하게 웃더니 다시 말을 계속했다.
[나의 이름이 무엇인지 묻지 말아주시오.]
마여룡은 한참동안 그를 바라보다가 다시 소금을 사간 사람을 향하여 입을 열었다.
[나는 당신이 절대로 나를 팔아 먹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소.]
소금을 먹는 사람은 말했다.
[나 역시 당신을 믿소.]
그는 손을 뻗어 마여룡의 손을 잡았다.
소금을 먹는 사람은 차갑고 거친 손으로 잡았지만 마여룡은 마음 속으로 따뜻함을 느끼고 있었다.
소금을 먹는 사람은 말했다.
[당신은 이만 돌아가시오. 나는 당신을 막지 않겠소.]
마여룡은 말했다.
[당신들이 다시 소금을 사러 온다면 나 역시 더 이상 당신들의 일에 대해 묻지 않을 것이오.]
소금을 먹는 사람은 한참동안 마여룡을 바라보더니 길게 탄식했다.
[애석하게도 우리들이 만난 것이 너무 늦었소. 나는 이미 몸에 중상을 입고 있어서 당신의 억울함을 씻는 일을 도와주기가 힘들구려.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반드시 당신의 좋은 친구가 되어 줄 텐데.]
마여룡은 말했다.
[지금 당신은 나의 친구가 된 것입니다. 꼭 자기에게 도움이 된다고 해서 친구를 사귀는 것은 아니죠.]
소금을 먹는 사람은 갑자기 껄껄 웃었다.
그 웃음 소리는 비록 목이 쉬고 잠겨 있었지만 그러나 그 호기는 하늘을 찌를 것만 같았다.
그는 말했다.
[당신이 마여룡이든 아니든 당신이 누구이든간에 나는 이제 당신을 나의 친구로 여기겠소.]
마여룡은 두 손을 잡으며 말했다. 
[나 역시 당신이 누구이든간에 당신을 친구로 여기겠소.]
날은 아직 밝지 않았고 추위는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
그러나 마여룡의 마음 속은 점점 따뜻해졌다.
왜냐하면 한 명의 간담상조(肝膽相照)하는 친구를 사귀었기 때문이었다.

[당신이 그런 사람을 친구로 사귀었단 말인가요?]
사옥륜은 마여룡의 말을 듣고 이렇게 물었다.
[당신은 그가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그를 친구로 사귀었단 말이에요?]
마여룡은 대답했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그를 원수로 여긴다고 할지라도, 세상 사람들이 모두 그를 난도질해 죽이고 싶어한다고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그를 친구로 여길 것이오.]
사옥륜은 물었다.
[그건 어째서인가요?]
마여룡은 대답했다.
[이유는 없소.]
이유는 없다. 
이 말이야말로 친구를 사귀는 사람이 가져야하는 가장 중요한 말이었다. 
만약 이유가 있어서 친구를 사귄다면 그것이 과연 친구라고 할 수가 있겠는가.
창밖에는 여명이 빛춰들고 있었다.
마여룡은 창문 밑에 앉아 있었고 사옥륜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참 후에 사옥륜은 나직이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당신의 뜻을 나는 잘 알았어요.]
그녀는 뜻밖에도 마여룡을 이해해 주었다.
사옥륜은 돌연 물었다.
[당신은 그 친구가 무엇 때문에 소금을 먹고 있는지 알고 있나요?]
마여룡은 근본적으로 알지 못하고 있었다.
사옥륜은 말했다.
[나는 알고 있어요. 그는 반드시 삼양절호수(三陽絶戶手)에 적중되었을 거예요.]
마여룡은 무림세가(武林世家)의 자제였지만 그런 무공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사옥륜은 설명했다.
[그런 종류의 장력(掌力)은 실전된 지 이미 오래 되었고 그런 종류의 장력에 한 번 얻어맞기만 한다면 온몸에서 탈수(脫水) 현상이 일어나고 피부가 갈라지고 메말라 터지고 음식을 먹어도 맛을 모르게 돼요. 오로지 소금을 먹고 싶고 그래서 소금을 많이 먹게 되는데 소금을 먹으면 먹을수록 목이 말라 물을 자꾸 먹게 되죠. 상처가 점점 심해지면 나중에는 죽게 되는데 죽을 때는 온몸의 피부가 모두 갈라터져서 새카맣게 변하여 죽어버린다고 해요.]
그녀는 잠깐 생각에 잠기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계란을 먹는 것은 물을 마시는 것보다는 조금 좋지만 그러나 고작해야 반 개월을 버틸 수 있을 뿐이고 결국에는 죽게 된답니다.]
마여룡은 물었다.
[절대로 살려낼 수는 없는 거요?]
사옥륜은 대답하지 않고 오히려 되물었다.
[당신의 그 친구는 어떤 모양인가요? 어떻게 생겼나요?]
마여룡은 대답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는 원래 매우 키가 크고 우람했던 것 같소. 어깨가 보통 사람보다 두 배 정도나 넓고 손발은 무지무지하게 컸소. 내가 보기에 외가장력(外家掌力)을 분명히 수련한 사람일 것이오. 그는 비록 지금은 중상을 입어 죽음을 기다리는 몸이지만 그러나 말하고 행동할 때 보면 영웅호걸의 기상이 흘러 넘치고 있소.]
사옥륜은 눈빛을 빛내며 말했다.
[나는 그가 누구인지 알았어요.]
마여룡은 물었다.
[그가 누구요?]
사옥륜 말했다.
[그가 맞은 장력은 원래 음가(陰家), 최가(崔家)의 삼음절호수(三陰絶戶手)보다 더 무서워요. 그리고 연마하기도 어려워요. 그런 무공을 익히려면 절대로 여색을 가까이 하면 안 되요. 평생 동안 단 한 번도 여자를 가까이 하면 안 돼요.]
평생 동안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않는 사람이 강호에 몇 명이나 될까.
사옥륜은 다시 말을 이었다.
[내가 아는 바에 의하면 오십 년 전에 그런 종류의 무공을 연마한 사람이 딱 한 사람 있어요.]
마여룡은 즉시 물었다.
[그 사람이 누구요?]
사옥륜은 대답했다.
[절대사예요. 절대사는 결코 이런 종류의 비장의 무공을 함부로 사용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그의 상대방이 장력이 극히 고강하고 무섭지 않으면 그는 절대로 이와 같은 무공을 사용하지 않았을 거예요.]
강호의 고수들은 대부분 깊히 감추고 보여주지 않는 비장의 무공들이 있었다.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고는 절대 다른 사람 앞에서 비장의 무공을 사용하지 않는 법이다.
사옥륜은 다시 말을 이었다.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었다면 절대사는 결코 삼양절호수라는 비장의 무공을 사용하지 않았을 거예요. 절대사로 하여금 그와 같은 비장의 무공을 사용하도록 한 사람은 몇 사람이나 될까요?]
마여룡은 대답했다.
[몇 사람 되지 않을 것이오.]
사옥륜은 말했다.
[당신은 혹시 번천복지(飜天覆地) 철진천(鐵震天)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나요? 그 정도의 사람이라면 절대사로 하여금 능히 비장의 무공을 펼치도록 할 수 있을 거예요.]
마여룡은 그 말을 듣고 얼굴색이 변했다.
그는 당연히 번천복지 철진천이라는 사람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었다. 
철진천이라는 사람은 강동(江東)에서 이십 년 동안 횡행하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는지 모른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원한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행적이 표홀해서 다른 사람은 절대로 그를 찾아내지 못했고 더군다나 그의 무공이 매우 높았고 수단이 매우 악독했기 때문에 그를 찾아내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모조리 그의 손에 의해서 패배하고 말았다.
사옥륜은 다시 물었다.
[당신이 생각할 때 당신의 그 친구가 철진천일 것 같지 않은가요?]
마여룡은 대답을 회피했다.
그는 그가 분명히 철진천이라고 생각했다.
그 사람이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이십 년 동안 나의 목숨을 노리는 사람은 많았다. 오만 냥의 황금은 나의 안중에도 없다.]
철진천을 제외하고 그 누가 그와 같은 말을 하겠는가.
그러나 그 사람은 또 이런 말도 했었다.
[억울함을 당하여 쫓겨다니는 맛을 나는 충분히 맛보았네.]
마여룡은 홀연 큰 소리로 말했다.
[그가 무슨 짓을 예전에 했든간에 나는 지금 그의 고충을 이해햐고 있소. 더군다나 스스로 협의를 주장하는 무리들에 의해서 나는 지금 쫓기고 있는 몸이오.]
사옥륜은 물었다.
[절대사가 설마하니 좋은 사람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우겠어요?]
마여룡은 말했다.
[그가 억울한 누명을 씌운 사람은 절대로 철진천 한 사람에 그치지 않을 것이오.]
사옥륜은 탄식하며 말했다.
[당신은 정말 좋은 친구이군요. 친구가 좋은 사람이든 나쁜 사람이든 당신은 친구로 여기는군요. 그러나 애석하게도 당신들 이 한 쌍의 친구들은 교분이 길지 못할 것 같아요.]
마여룡은 물었다.
[그가 정말 죽게 될까요?]
사옥륜은 담담히 말했다.
[만약에 내가 사가(謝家)의 대소저(大小姐)라면 어쩌면 그는 풀려날 수 있을지도 모르죠.]
그녀는 짐짓 한숨을 내쉬더니 말을 이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지금 나는 다만 잡화점의 늙은 마누라에 불과할 뿐이에요. 나의 병조차도 치료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을 살려낼 수 있겠어요?]
마여룡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사옥륜의 말뜻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만약 그가 이 사건의 진상을 말한다면 그녀는 어쩌면 정말로 철진천을 살려 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약 그렇게 한다면 그는 대완에게 정말 미안하게 되고 유오를 볼 면목이 없어지는 것이 아닌가.
그들 역시 그의 친구였다.
사옥륜은 몸을 한 번 뒤척이더니 마여룡을 바라보았다.
[당신 피곤해 보이는군요. 그만 주무세요.]
마여룡은 잠을 자지 않았다. 
그는 자기가 잠들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사옥륜은 정말 잠이 들었는지 잠이 든 척을 하는지 모르지만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20. 선택(選擇)


창문 밖이 뿌옇게 밝아오기 시작했다. 
골목길의 사람들의 인기척이 들리기 시작했다.
마여룡은 천천히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마여룡이 가게문을 열고 골목길로 나서니 맞은편의 한 집에서 어린애가 울고 있었다.
멀리 한 집의 문이 열리고 배가 부른 아낙이 남편을 배웅하고 있었다.
그녀의 남편은 작은 꾸러미를 들고 일을 보러 나갔다.
그 젊은 여인은 마여룡을 주의하지 못하고 몸을 돌려 집안으로 들어갔다.
마여룡은 빠른 속도로 달려 도보의의 후원으로 들어갔다.
부엌에서 밥짓는 소리가 들렸다.
도보의의 마누라는 매우 부지런한 여인이었다.
벌써 일어나 남편을 위하여 아침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도보의는 지금 정원에서 무예를 연습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는 옛날 철진천의 부하였는지도 모른다.
마여룡은 그들 부부를 아랑곳하지 않고 그 물이 없는 우물 속으로 들어갔다.
한 근의 술은 이미 다 마셔버리고 없었다.
소금을 사간 그 사람은 술에 취하지 않고 있었다.
그는 지금 그의 친구를 위하여 이불을 개주고 있었다.
소금을 먹는 사람도 잠에서 깨어나 얼마 남지 않은 소금을 먹고 있었다.
그들은 마여룡을 보았으나 놀란 빛은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
마치 그가 다시 올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마여룡은 그들을 보자마자 입을 열었다.
[당신이 바로 철진천입니까?]
[내가 바로 천진천이네. 내가 바로 사람을 죽이고도 눈 하나 깜빡거리지 않는 대도(大盜) 철진천일세.]
마여룡은 말했다.
[당신은 혹시 절대사의 삼양절호수에 얻어맞은 것이 아닙니까?]
철진천은 약간 놀란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어떻게 알았나?]
마여룡은 말했다.
[당신이 받은 상처는 치료할 수 있습니까?]
철진천은 되려 되물었다.
[그대는 어찌하여 나의 일에 관여하려고 하는가?]
마여룡이 말했다.
[왜냐하면 나는 바로 당신의 친구이기 때문입니다.]
철진천은 말했다.
[자네는 이미 내가 바로 대도 철진천이라는 사실을 알았으면 그러면서 어째서 나를 친구로 여기는 것인가?]
마여룡은 말했다.
[내가 이미 당신과 친구가 된 이상 그 무엇으로도 우리 사이를 갈라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철진천은 그를 바라보더니 갑자기 껄껄 웃었다.
[나 철진천은 한평생을 살면서 얼마나 많은 못된 짓을 했는지 모르네. 그런데 뜻밖에도 한 명의 친구가 생겼군. 자네가 나를 친구로 인정해주는 이상 나 역시 자네를 친구로 인정하는 수밖에 없겠군.]
소금을 사가는 사람이 홀연 입을 열었다.
[그는 평생동안 확식히 잘못을 많이 저질렀네. 그것은 그가 매우 경솔하고 충동적이기 때문이지. 더군다나 친구를 위해서 그는 어떤 일이든 했었지. 더군다나 이번에 절대로 그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네.]
이번에 그가 저지른 일은 무엇일까.
무엇 때문에 억울한 일을 당하여 도망다니고 있을까.
마여룡은 그러나 묻지 않았다.
그는 그를 믿었기 때문이다.
그는 다만 이렇게 물었을 뿐이다.
[당신의 상처는 치유할 수 있는 것입니까?]
소금을 사간 사람은 말했다.
[치료할 수는 있는데 한 가지 약이 있어야 한다네.]
[그 약이 무엇인지요?]
소금을 사간 사람은 다시 탄식하며 말했다.
[내가 말해도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우리들은 절대로 그 약을 구할 수가 없다네.]
그는 쓴 웃음을 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비단 구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약을 훔칠 수도, 빼앗을 수도 없다네. 그렇지 않다면 내가 벌써 훔치거나 빼앗아 왔을걸.]
마여룡은 다시 물었다.
[당신들이 말하는 그 약은 혹시 성이 사씨인 사람들의 집안에서 만든 것이 아닙니까?]
소금을 사간 사람은 깜짝 놀라서 물었다.
[자네가 어떻게 그 사람의 성이 사씨라는 것을 알았나?]
마여룡은 대답했다.
[내가 어찌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소금을 사간 사람은 말했다.
[사실은...] 
그는 입을 열었지만 거기에 얽힌 비밀을 말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철진천이 갑자기 큰 음성으로 끼어들었다.
[사실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이 그녀의 성이 사씨라는 사실을 아는 것을 원하지 않았지. 왜냐하면 옛날 그녀는 마음의 상처를 입은 적이 있었는데 그 누구를 막론하고 그 사실을 들먹이기만 한다면 그녀는 곧바로 그 사람을 죽여버렸네.]
마여룡은 말했다.
[그 사람은 누구입니까?]
철진천은 말했다.
[벽옥산장의 벽옥부인이네. 나의 상처는 다만 그녀의 벽옥주(碧玉珠)가 있어야 치료할 수 있다네.]
마여룡은 그 말을 듣고 잠시 어리둥절했다.
벽옥부인의 성이 사씨라면 사옥륜과 그녀는 어떤 관계일까?
사옥륜은 벽옥산장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마여룡은 돌연 그가 이전에 상상을 해보지 못했던 이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바로 이 때였다. 
우물 입구쪽에서 한 사람의 차가운 음성이 들려왔다.
[철진천, 너는 도망갈 수 없다. 철전의(鐵全義), 너 역시 도망칠 수 없다.]
그들의 원수가 마침내 추격하여 온 것이다.
도망치고 있는 사람은 우물 안에 들어 있었다.
그야말로 독 안에 든 생쥐, 그물에 걸린 고기 꼴이었다.
그들은 도망칠 길이 없었다.
마여룡은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는 우물 위에서 말하는 사람이 바로 풍초범의 음성임을 알았던 것이다.
풍초범이 이미 도착해 있으니 절대사도 반드시 부근에 있을 것이다.
흘고화상과 옥도인 역시 왔을 것이다.
비록 그들이 마여룡을 찾아온 것은 아니지만 마여룡 역시 도망칠 수 없었다.
철진천은 갑자기 한 손을 뻗어 마여룡의 입을 막고 다른 한 손으로는 한 줌의 소금을 집어 삼킨 다음에 돌연 큰 소리로 외쳤다.
[그렇다. 내가 바로 이곳에 있다. 나의 형제도 이곳에 있다. 우리들은 이곳에서 네놈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위에서는 더 이상 아무 말도 들려오지 않았다.
위에 있는 사람은 조금 놀란 눈치였다.
철진천이 어째서 아직까지 죽지 않았는지 이상하게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더군다나 그의 음성이 이렇게 커다랗고 힘찬 것을 보고 더욱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잠시 후에 절대사의 차가운 음성이 다시 들려왔다.
[철진천, 기어 올라오너라. 철전의도 함께 기어 올라오너라. 모조리 죽여주마!]
철전의는 바로 소금을 사간 사람이었다.
철전의는 호탕하게 소리쳤다.
[우리 형제들은 이미 각오하고 있었다. 죽어도 함께 죽을 것이다.]
철진천은 큰 소리로 웃었다.
[하하하, 좋아, 좋은 형제군. 절대사, 이 중놈아. 네가 만약 우리 형제들의 목숨을 뺏기를 원한다면 네놈이 기어 내려오너라!]
그러나 절대사는 내려오지 않았다.
아무도 내려오지 않았다. 
우물 밑에 있는 사람에게는 도망갈 길이 없었지만 기어 내려오는 사람 역시 목숨을 유지하기 힘들기 때문이었다.
철진천은 나직한 음성으로 냉소했다.
[그들은 절대로 기어 내려오지 못할 것이네. 그들은 우리가 도망갈 길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니까 위에서 그냥 기다릴 거야.]
철정의도 나직이 말했다.
[그럴 것입니다. 그들은 위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철진천은 말했다.
[그러나 그들은 오래 기다리지 않을 거야. 그들은 필시 불을 내려보내든지 물을 붓든지 독을 뿌릴 거야.]
마여룡은 물었다.
[그들의 신분으로 그런 짓을 하겠습니까?]
철진천은 냉소했다.
[그들에게는 핑계가 있지.]
그는 웃으면서 비굴에 찬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우리와 같은 도배들은 무슨 수단을 써서 죽여도 좋다고 생각될 거야. 그 누가 무어라고 하겠는가.]
그는 홀연 마여룡의 손을 움켜잡았다.
[자네는 나의 친구겠지?]
마여룡이 대답했다.
[그렇소.]
철진천은 다시 말했다.
[나의 나이가 자네보다 훨씬 많지. 그러니 자네는 나의 말을 들어야 할 것이네. 더군다나 이번 사건에 있어서 자네는 더욱 나의 말을 들어야 하네.]
마여룡은 말했다.
[말씀해 보십시오.]
철진천은 말했다.
[그들이 화공을 쓰거나 물을 들이붓거나 할 때 우리들은 곧 위로 올라갈 것이네.] 
마여룡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우리들은 지금 당장이라도 위를 향하여 쳐올라갈 수 있습니다.]
철진천은 나직이 말했다.
[위로 올라가는 사람은 나와 철전의 두 사람이지 자네는 아닐세. 그들은 나와 철전의가 이곳에 숨어있는 것은 알지만 자네가 이곳에 있는 것은 모르고 있을 거야. 그들은 당연히 잡화점의 늙은 주인이 이곳에 왔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것이고 대도 철진천의 친구가 되었다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네.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다만 우리 두 사람 뿐이네. 그들은 우리 두 사람만 죽인다면 더 이상 이곳으로 내려와 살펴보지 않을 것이네. 그들이 떠나기를 기다려 자네는 그제서야 도망치면 될 것이야.]
그는 마여룡의 손을 꽉 움켜잡았다.
[자네와 나는 오늘 헤어지겠지만 나중에 저승에서 만날 날이 있을 것이네. 나는 자네가 나를 위해 복수해 주기를 바라지는 않네. 그리고 나의 억울함을 씻어주기를 바라지도 않네. 다만 자네가 살아서 이곳에서 나갈 수만 있다면 나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네.]
그 역시 마여룡의 친구였다. 그가 원하는 것은 다만 친구가 살아남는 것이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마여룡이 자기의 복수를 하려다가 오히려 적들의 손에 죽게 될 위험성이 많다는 것을.
그러므로 그는 마여룡에게 자기의 목수를 할 생각을 하지 말라고 당부했던 것이다.
마여룡은 조용히 듣고 있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할 말이 많았지만 아무 말도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말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마음 속으로 이미 작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철진천도 더 말하지 않고 다시 소금을 먹기 시작했다.
소금을 입 속으로 꾸역꾸역 집어넣으면서 그는 최후의 결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철진천과 마여룡은 완전히 성격이 닮았다고 할 수 있었다.
우물 위에서는 오랫동안 아무 동정도 없었다.
우물 밑에 있는 사람은 어쨌든 도망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철전의는 허리춤에서 한 자루의 면도(緬刀)를 꺼냈다. 부드럽게 칼날을 어루만지더니 그는 한맺힌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내가 난도질에 죽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반드시 그 놈을 죽이고 말겠소.]
철진천이 물었다.
[자네는 누구를 죽이겠다는 말인가?]
철전의가 대답했다.
[도보의입니다.]
철진천은 말했다.
[그를 죽일 수 없네.]
철전의가 말했다.
[이번에 그 놈이 우리를 팔아먹은 것이 분명합니다. 내 어찌 그 놈의 목숨을 남겨놓겠습니까?]
철진천이 말했다.
[그는 이미 결혼한 남자야. 그의 마누라는 애도 뱄네. 강호에서 친구를 배신한 사람이 어찌 그 한 사람에 그치겠는가? 자네는 하필이면 어째서 그를 죽이려고 한단 말인가?]
그는 장탄식을 하며 다시 말을 이었다.
[만약에 자네가 반드시 그를 죽여야 한다면 먼저 나를 죽이도록 하게.]
철전의가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지?]
철진천이 대답했다.
[만약 나를 위해서가 아니었다면 자네가 어찌 오늘날과 같은 처지가 되었겠는가?]
철전의는 그 말을 듣고 껄껄 웃었다.
[하하하, 맞아. 자네의 말이 맞아. 만약 자네가 없었더라면 나에게 어찌 오늘날이 있었겠는가? 나의 부모가 참살되고 나의 처자가 능욕을 당하여 죽고 그런 비극적인 사건이 생겼을 때 다른 사람은 그 누구도 나를 위하여 복수해준 사람이 없었네. 만약 자네가 아니었다면 그 누가 나를 위해 복수를 해주었겠는가? 나는 정말 자네에게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네.]
그의 음성은 쉬어 있었고 얼굴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돌연 그는 몸을 제끼더니 큰 소리로 외쳤다.
[나 철진천은 평생동안 천하를 종횡하면서 무수히 많은 사람을 죽였노라! 오늘날 나는 내 목숨을 떼어붙이고 네놈들과 싸우겠다! 이놈들아, 어서 오너라!]
그는 그 말을 마치자 위로 뛰어올라가려고 했다.
그는 그 자신이 적의 표적이 됨으로서 자기의 친구가 도망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기를 바랬던 것이다.
그는 자기가 죽고 사는 문제는 조금도 마음에 두지 않았다.
마여룡은 그의 뜻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철진천 역시 분명히 알고 껄껄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내가 먼저 죽을 수 있도록 해주게. 나의 목숨이 붙어 있는 한 그 누구도 자네를 건드리지 못할 것이네.]
껄껄 웃으면서 그는 비쩍 마른 몸을 일으키더니 갑자기 뛰어올라 철전의의 어깨를 밟고 다시 몸을 위로 솟구쳐 우물 밖으로 나갔다.
그 순간 우물 밖에서 처참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철전의 역시 몸을 날려 위로 솟구치고 있었다. 철전의도 그가 먼저 죽든 누가 먼저 죽든 죽고사는 문제를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만약 마여룡이 이와 같은 친구의 의리를 보았다면 감동해서 눈물을 흘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에게는 지금 눈물이 남아있지 않았다.
가슴 속에 남아있는 것은 오로지 끓는 피 뿐이었다.
한 사람이 죽기를 작정했을 때 그는 울지 않는다.
그는 철진천의 말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조용히 우물 안에 숨어있다가 철진천이 죽은 후에 몰래 빠져나가 잡화점으로 돌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앞으로 절대로 소금을 사러 오는 사람도 없을 것이고 그의 뒷일도 탄로나지 않을 것이다.
마여룡은 그렇게 하면 자기의 목숨을 보존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마여룡 역시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자기의 목숨에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마여룡은 세상에는 목숨보다 더 귀중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절대사는 우물 속에 단 두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만약 갑자기 세 번째 사람이 튀어나온다면 그들은 깜짝 놀라 혼란에 빠질 수도 있고 그렇게 된다면 세 사람 가운데 한 명쯤은 도망을 칠 수도 있을 것이다.
마여룡은 번개같이 우물입구를 향하여 몸을 날렸다.
한 사람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자기가 마땅히 해야할 일을 해야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나 어떤 사람이 자기가 마땅히 해야할 일을 하지 못하고 살아간다면 그 삶이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우물은 정원 안에 있었고 지금은 해가 떠올라 있었다.
여기저기 뿌려진 선혈은 햇빛은 비추어 주고 있었다.
다른 사람의 피도 있었고 철진천과 철전의의 피도 있었다.
철진천이 우물 위로 뛰어올라갔을 때 그 순간 한 자루의 칼이 그의 얼굴을 내리쳤다. 철진천은 한 손으로 그 사람의 손목을 붙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그 사람의 어깨를 잡고 힘껏 잡아당겼다.
그러자 그 사람은 팔이 떨어져 나가고 말았다. 그러나 그 사람은 애석하게도 절대사가 아니고 풍초범도 아니었다.
주방 밖에 있는 두 개의 의자 위에 절대사와 풍초범이 단정히 앉아서 차가운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이 데리고 온 사람들이 그들을 대신해서 손을 쓰고 있는 것이었다. 
그들의 신분으로 어떻게 한 명의 부상당한 사람을 상대로 손을 쓸 수가 있겠는가?
그들은 확실히 우물 안에서 제 삼의 인물이 뛰어나오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었다.
마여룡은 원래 뛰어올라가는 순간 기회를 포착하여 절대사가 풍초범 가운데 한 사람에게 치명적인 일격을 가할 생각이었다.
그중에 한 사람만 처치할 수 있다면 나머지 한 사람도 처치할 가능성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가 우물밖으로 뛰어나갔을 때 절대사와 풍초범은 모두 수 장 밖에 있었다.
마여룡의 지금의 얼굴은 천하의 그 어떤 영웅호걸도 알아보지 못했다.
그러나 마여룡의 무공은 소림사나 무당파처럼 역사가 유구한 문파에 비교하여 볼때 천마당이라는 무공의 독특한 점이 있었다. 어떤 사람이 성공하고 이름을 날릴 때는 반드시 독특한 점이 있게 마련이다. 더욱이 경공술에 있어서는 천마당의 경공술은 천마가 하늘을 나는 것처럼 허공을 날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안겨주곤 했었다.


21. 의리(義理)


마여룡이 우물 위로 몸을 솟구치자 절대사는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가 천천히 그 자리에 앉으며 차가운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 사람은 누구냐?]
철진천이 말했다.
[내 친구다.]
절대사는 다시 물었다.
[뜻밖에도 너같은 사람에게도 친구가 있었구나.]
철진천은 광소를 터뜨렸다.
[내가 비록 사람을 많이 죽여 원한을 많이 맺었지만 내 친구는 아마 네 친구보다 많을 것이다. 더군다나 이와 같은 친구는 네 놈이 단 한 사람도 가지고 있지 못할 것이다.]
절대사는 냉랭히 마여룡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네가 정말 그의 친구냐?]
마여룡은 대답했다.
[그렇소.]
절대사는 물었다.
[너는 정말 그를 위하여 목숨을 받칠 생각이냐?]
마여룡은 대답했다.
[물론이오.]
절대사는 다시 물었다.
[너는 내가 무엇 때문에 철진철을 죽이려고 하는지 아느냐?]
마여룡은 알지 못했다.
절대사는 다시 물었다.
[너는 형제간에 우애가 있고 부모에게 효도를 했던 양가 삼형제(楊家 三兄弟)에 관해서 들어봤느냐?]
마여룡은 양가 삼형제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그들 형제 세 사람은 돈도 많았고 유명한 사람들이었고 세력도 있었으며 호협했고 의리도 있었으며 효성이 지극했다.
형제 세 사람은 모두다 한 장원에서 살고 있었고 그들의 부모를 봉양하고 있었다.
절대사는 무거운 안색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너는 그들 삼형제의 가족이 이십 구명이나 되는 남자들이 모조리 어느날 밤 철진천의 칼에 맞아 죽은 것을 알고 있느냐? 그리고 열 일곱 명의 여자들이 모두 철진천에 의해서 변방의 주둔군이 경영하는 병령으로 노예가 되어 팔려간 것을 알고 있느냐?]
철전의가 갑자기 큰 소리로 외쳤다.
[이 땡초야, 너는 철진천이 무엇 때문에 그런 짓을 했는지 알고 있느냐? 네 놈은 양가 삼형제 그 못된 놈들이 무슨 방법을 써서 나의 부모와 처자식을 죽였는지 아느냐?]
절대사는 냉소했다.
[그것은 네놈이 마땅히 받아야할 보응(報應)을 받은 것이다!]
철전의도 말했다.
[양가 삼형제 놈들도 마땅히 받아야할 보응을 받은 것이다. 양가 삼형제의 남자 가족들은 모조리 내가 죽였고 여자 가족들은 모조리 내가 팔아 버렸다. 그러므로 그 사건은 다른 사람과는 관계가 없다.]
그는 말을 하면서 절대사가 데리고 온 여러사람들이 자기네들을 포위하고 호시탐탐 손을 쓸 기회를 노리고 있는 것을 쳐다보더니 말을 계속했다.
[이 몇 사람들은 당연히 양가 삼형제의 친척이나 친구들일 것이다. 그런데 내가 이미 네놈의 삼양절호수 아래 상처를 입었으므로 그들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나를 죽여 이름을 얻으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 죽지 않았다. 네놈들이 나를 죽이려고 한다면 쉽지 않을 것이다. 나는 최소한 네놈들 가운데 대여섯 놈의 머리통을 박살을 내버릴 것이다.]
절대사는 냉랭히 말했다.
[그들은 의리가 있는 사람들이다. 친구를 위해 복수를 하다가 죽는다고 해도 절대로 불평하지 않을 사람들이다. 나는 그들을 막을 생각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그는 손으로 마여룡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내가 하는 일은 이 사람과 전혀 관계가 없다. 이 사람을 놓아 주기만 한다면 나는 기꺼이 네놈들에게 내 목을 내놓겠다. 나는 절대로 너희들과 맞서 싸우지 않겠다.]
절대사는 마여룡을 바라보며 물었다.
[나는 지금까지 너같은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너는 보기에 악한 사람같지는 않구나.]
마여룡은 듣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절대사는 다시 입을 열었다.
[너는 언제 철진천을 알았느냐?]
마여룡은 말했다.
[오래 되지 않았소.]
절대사는 물었다.
[오래되지 않은 것이 얼마나 된 것이냐?]
철진천은 입을 열었다.
[그가 나를 안 것은 하루도 되지 않았다.]
절대사는 탄식했다.
[하루밖에 되지 않았는데 그런 사람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다니 이런 사람은 과연 많지가 않지.]
그는 홀연 마여룡을 위하여 손을 저었다.
[너는 가보아라. 잡지 않겠다.]
그러나 마여룡은 그 자리에 서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절대사는 한참동안 그를 바라보더니 물었다.
[너는 왜 가지 않느냐?]
마여룡은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가지 안겠소. 절대로 가지 안겠소.]
철진천은 큰 소리로 외쳤다.
[그가 가라고 했는데 왜 안 가는가. 빨리 가게.]
마여룡은 단호하고도 나직한 음성으로 말했다.
[나를 가게 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오. 방법은 딱 한 가지가 있소. 그것은 나를 죽여서 내 시체를 끌고 가는 것이오.]
절대사는 냉랭히 말했다.
[너를 죽이는 것은 어렵지 않다.]
마여룡은 말했다.
[나도 알고 있소.]
절대사는 물었다.
[너는 정말 죽기를 각오하고 친구를 도울 생각이냐?]
마여룡은 말했다.
[틀림없소.]
절대사는 물었다.
[그건 왜 그러냐?]
마여룡은 말했다.
[이유는 없소.]


22. 안개(濃霧)


마여룡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똑바로 세웠다. 
태양빛이 그의 얼굴을 비췄다.
지금 그의 얼굴은 많은 소녀들이 넋을 잃고 따라다닐 미남자의 얼굴은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 그 누가 보던지 그의 표정은 매우 엄숙했으며 존경스러워 보였다.
철진천은 그를 멍하니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나는 이미 말하지 않았는가. 우리 두 사람은 비록 죽을지언정 자네는 살아서 도망쳐야 한다고. 어째서 내 말을 듣지 않는가.]
마여룡은 절대사를 향하여 물었다.
[당신은 나와 거래를 할 생각이 없소?]
절대사가 물었다.
[무슨 거래를 한다는 것이냐?]
[이들 두 사람의 목숨을 다른 한 사람의 목숨과 바꾸자는 것이오.]
절대사는 냉소했다.
[그런 거래는 하지 않는다.]
마여룡은 물었다.
[무엇 때문이오?]
절대사는 말했다.
[그 어떤 사람의 목숨도 이들 두 사람의 목숨과 바꿀 수 없다.]
절대사는 냉랭히 말을 이었다.
[그만한 가치가 있는 목숨은 없을 것이다.]
마여룡은 말했다.
[한 사람이 있소. 최소한 한 사람이 있소.]
절대사는 물었다.
[그게 누구냐?]
마여룡은 대답했다.
[마여룡이오.]
이 말을 듣고 절대사는 움찔 놀랐다.
마여룡은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당신들이 가장 찾고자 하는 사람이 바로 마여룡이지 철진천이 아님을 알고 있소.]
절대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여룡이라는 사람의 목숨이 있다면 능히 이 두 사람의 목숨과 바꿀 가치가 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 누구도 마여룡을 찾을 수가 없구나.]
마여룡은 말했다.
[그러나 한 사람은 능히 그를 찾을 수가 있소.]
절대사가 물었다.
[그게 누구냐?]
마여룡이 대답했다.
[바로 나요. 당신이 이들 두 사람을 놓아주기만 한다면 나는 마여룡을 당신에게 데려다 줄 수가 있소.]
그 말을 들은 철진천은 갑자기 껄껄 웃었다.
[자네가 나를 생각해주는 호의는 잘 알겠네. 그러나 허튼 수작은 하지 말게. 자네의 헛소리를 누가 믿고 거래에 응하겠는가? 그 누구도 자네의 헛소리를 믿지 않을 거야.]
그러나 절대사는 마여룡을 바라보고 마여룡 역시 절대사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철진천의 말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마여룡은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말했다.
[당신은 나의 말이 헛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오.]
절대사는 말했다.
[나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을 먼저 보내 줄 수는 없다.]
마여룡이 말했다.
[당신은 나를 믿지 못하는 것이오?]
절대사는 대답했다.
[먼저 네가 나에게 마여룡을 건네주면 나는 이 사람들을 놓아보내겠다.]
마여룡이 말했다.
[당신이 나를 믿지 못하는데 내가 어떻게 당신을 믿겠소?]
그러자 풍초범이 끼어들었다. 
[왜냐하면 나는 풍초범이고 그는 절대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는 내력이 불분명한 사람일 뿐이다. 네가 거래가 성사되기를 원한다면 단지 우리의 요구대로 해야할 것이다.]
절대사도 입을 열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먼저 철진천을 죽이고 그 다음에 너를 죽여버리겠다.]
이렇게 되자 마여룡은 선택할 여지가 없었다.
그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말했다.
[좋소, 나는 당신을 믿겠소. 내가 먼저 당신들에게 마여룡을 데려다 주겠소. 내가 바로 당신들이 찾는 마여룡이오.]
절대사는 깜짝 놀라 물었다.
[네가 마여룡이라고?]
마여룡은 말했다.
[그렇소, 내가 바로 마여룡이오.]
그는 마여룡이었다. 그는 자기자신을 팔아버린 것이었다.
친구를 구하기 위해서.
만약 어떤 사람이 왜 그랬냐고 묻는다면 그 역시 대답할 말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자신도 이것이 현명하다고는 믿지 않았다.
어쩌면 일시적인 충동인지도 모르고 어쩌면 끓는 피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런 종류의 용기와 의리는 그 누구도 납득하기 힘든 것이다. 
마여룡은 여전히 고개를 쳐들고 있었다.
햇빛은 그의 얼굴을 비춰주었다.
그는 말했다.
[당신은 나의 말을 믿지 못하는 모양인데 나의 얼굴은 이미 누군가에 의해서 바뀌어져 버렸소. 나는 지금 잡화점의 주인으로 변장하고 숨어서 산 지 오래 되었소.]
그 자신조차도 자기의 원래 모습을 회복할 수가 없었다.
옥영롱의 손을 빌리지 않고서는 원래의 자기모습을 회복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마여룡은 입을 열었다.
[자, 내가 바로 마여룡이오. 당신들은 마땅히 이 두 사람을 놓아주어야 할 것이오.]
절대사와 풍초범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눈짓을 교환하고 있었다.
절대사가 물었다.
[자네는 어떻게 보는가?]
풍초범은 말했다.
[만약 이 사람이 마여룡이라면 무엇 때문에 철진천을 위하여 자기 자신을 팔겠는가?]
절대사가 말했다.
[맞네.]
철진천이 홀연 껄껄 웃었다.
[나는 이미 그대가 그들을 속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네. 그 누구도 자네의 헛소리를 믿지 않을 거야.]
그는 껄껄 웃으면서 연달아 기침을 해댔다.
마여룡의 말은 헛소리가 아니었다.
그가 말하는 한 마디 한 마디는 모두 진실이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
이런 일은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철진천은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자네는 단지 한 명의 내력이 분명하지 않는 무명소졸일 뿐이야. 그런데 비해서 나는 바로 그 유명한 대도 철진천이란 말이야. 자네같은 사람 열 명이 있다고 해도 나의 목숨과 바꿀 수는 없네. 그러니 자네는 어서 가게.]
그러나 마여룡은 떠나지 않았다.
철진천은 계속 웃더니 갑자기 큰 소리로 외쳤다.
[자네는 어째서 가지 않는가. 자네가 나보다 가치가 나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가.]
마여룡은 차분하게 말했다.
[왜냐하면 당신은 나의 친구이고 나는 바로 당신의 친구이기 때문이오.]
절대사는 냉랭히 말했다.
[그러니까 너는 철진천과 함께 이곳에서 죽기로 작정했다는 말이구나?]
철진천은 몸을 돌리고 절대사를 노려보았다.
[이 중놈아, 너는 그를 보내주겠다고 말하지 않았느냐?]
절대사가 말했다.
[나는 그렇게 말한 적이 있다.]
철진천이 말했다.
[그런데 왜 지금 그를 놓아주려고 하지 않는거냐?]
절대사가 말했다.
[나는 그를 놓아주기 싫다고 말한 적이 없다. 그 스스로 가지 않을 뿐이다. 나는 지금까지 하기 싫다는 사람을 강제로 하도록 만든 적이 없다. 그러므로 그 누구도 떠나기 싫으면 떠나지 않으면 그만이다. 만약 가기 싫다는 사람을 강제로 떠나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 사람부터 죽여 버리겠다.]
철진천은 그를 노려보았다.
눈이 찢어져라 부릅뜨고 입을 열었다.
[나는 이제 명백히 알았다.]
절대사가 물었다.
[무엇을 알았다는 말이냐?]
철진천은 이를 갈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네놈이 비록 마음이 흉악하고 손을 악랄하게 썼지만 네놈을 사람으로 생각해왔다. 네가 비록 시비를 가리지 못하고 억울한 사람을 죽여왔지만 나는 여전히 너를 인간으로 대해 줬다. 나 철진천은 평생동안 강호를 종횡하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는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억울하게 사람을 죽인 적은 없다. 그러나 나는 지금 분명히 알았다. 네놈은 사람이라고 할 수가 없다는 것을.]
절대사는 차가운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너는 네가 보는 앞에서 네 친구가 죽어가는 꼴을 보겠느냐, 아니면 네 친구의 앞에서 네가 죽어가는 꼴을 보이고 싶으냐. 어떤 것을 선택하겠느냐?]
철진천은 분노의 함성을 내지르며 절대사를 향하여 덮쳐갔다.
바로 그때 정원 안에 홀연 맑고 예리한 음성이 울려퍼졌다.
[여러분은 무엇 때문에 죽으려고 합니까?]
말소리와 함께 담장 밖에서 일진의 담담한 안개가 피어올라 정원 안으로 밀려들어왔다.
취록색의 그 안개에서는 말리화의 향기가 뿜어나오고 있었다.
그녀의 말이 끝날 때 즈음에 안개는 더욱 짙어져서 정원에 있는 모든 사람을 덮어버렸다.
철진천은 덮쳐들면서 최후의 일격을 가했다.
그는 죽기를 각오하고 공격해간 것이다.
이때 마여룡은 재빨리 그의 허리춤을 잡고 잡아당겼다.
절대사는 원래 철진천과 싸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벽록색의 안개를 보는 순간 그의 얼굴 표정이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그 순간 벽록색의 안개는 그들을 완전히 뒤덮고 점점 짙어져서 자기의 손가락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23. 하인(下人)


마여룡은 철진천의 허리를 잡고 잡화점으로 돌아왔다.
절대사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마여룡 역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이 지방에서 몇 개월을 살았기 때문에 도보의의 집에서 자기의 집으로 가는 길을 알고 있었다.
일찍 자는 사람은 일찍 일어나기 마련이었다.
잡화점은 일찍 문을 열었다.
그러나 오늘은 예외였다. 
마여룡은 철진천을 데리고 잡화점을 돌아 후원으로 들어가 담장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철진천은 이미 기진맥진해 있었다.
철전의는 비록 철진천의 친형제는 아니었지만 다년간 그들은 생사를 같이 해왔다.
그들 사이는 이미 피보다 더 짙은 정이 연결되어 있었다.
철진천은 말했다.
[우리들은 돌아가서 그를 데리고 와야 하는데.]
마여룡은 말했다.
[그 놈들이 요구하는 것은 당신이지 그가 아닙니다. 당신이 그들의 손에 떨어지지 않은 이상 그들은 절대로 그를 어떻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잡화점의 후원은 그 모양이 도씨 집의 후원과 별 차이가 없었다.
우물이 없는 대신 한 칸의 방이 더 있을 뿐이었다.
장노실이 머무는 방의 문은 이미 열려져 있었다.
그러나 장노실은 방안에 없었고 주방에도 없었다.
사옥륜은 잠이 든 것 같았다.
마여룡은 조심조심 문을 열고 들어가 그녀가 놀라지 않도록 했다. 그는 철진천을 침대 옆의 의자에 앉히고 한 통의 소금을 그의 얼굴 앞에 가져다 주었고 십여 개의 계란을 그에게 가져다 주었다.
장노실은 상점 안에도 없었다.
한 웅큼의 소금과 생계란을 마신 후에 철진천은 비로소 입을 열었다.
[여기가 자네의 잡화점인가?]
마여룡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철진천은 다시 물었다.
[침대에 누워 있는 여자는 누구인가? 자네의 마누라인가?]
마여룡은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는 철진천을 속일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그 질문에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한다는 말인가. 
근본적으로 그 질문은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철진천도 더 묻지 않고 갑자기 탄식하며 말했다.
[자네는 나를 이곳으로 데려오지 말았어야 했네.]
마여룡이 말했다.
[나는 반드시 당신을 이곳으로 데려와야 했습니다.]
설진천이 물었다.
[그것은 무엇 때문인가?]
마여룡이 대답했다.
[왜냐하면 이곳에 있는 한 사람은 어쩌면 당신의 상처를 치료해 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 말을 듣자 철진천의 눈이 빛났다.
그가 어찌 흥분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떤 사람이 그의 상처를 치료해주기만 한다면 그는 절대사를 맞아 한번 싸워볼 자신이 있었다.
이번에 다시 싸우게 된다면 그는 절대사에게 당하지 않을 것 같았다.
철진천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누가 나의 상처를 치료해 줄 수 있겠는가?]
이 말이 떨어지게 되자 줄곧 잠이 든 척하던 사옥륜이 갑자기 눈을 뜨고 마여룡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당신은 그를 이곳으로 데려오지 말았어야 했어요. 왜냐하면 이곳에는 그의 병세를 치료해 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에요. 사씨 집안의 사람을 제외하고 그 누구도 그의 상처를 치료할 수 없어요.]
마여룡은 물었다.
[그러나 당신은....]
사옥륜은 돌연 눈을 크게 뜨더니 그를 노려보았다.
[나는 사씨 집안의 사람이 아니에요. 나는 다만 이 잡화점의 늙은 노파에 불과해요.]
그녀는 지금 마여룡을 핍박하여 진상을 말하도록 유도하고 있었다. 이런 기회를 그녀가 놓칠 리가 없는 것이었다.
철진천은 홀연 몸을 일으키며 다시 한 웅큼의 소금을 입에 넣고 두 개의 계란을 깨서 삼키고는 말했다.
[나는 그만 가보겠네.]
그는 걸어서 나가려고 했다.
그는 강호에서 이십여 년 간 굴러먹었기 때문에 마여룡에게 말하고싶지 않은 곡절이 있는 것을 알고 마여룡을 더 이상 난처하게 하고싶지 않았던 것이다.
사옥륜은 차가운 음성으로 말했다.
[당신은 진작 나갔어야 했어요.]
그 말을 듣자 뜻밖에도 철진천은 다시 그 자리에 주저앉는 것이었다.
[나는 갈 수 없소.]
사옥륜은 물었다.
[무엇 때문인가요?]
철진천은 마여룡을 향하여 말했다.
[나는 이곳에 머물기로 했네. 그들이 이곳으로 자네를 찾아 왔을 때 나는 그래도 목숨을 걸고 자네를 도와주기로 했네.]
마여룡은 물었다.
[그들이 나를 찾아온다구요?]
철진천은 말했다.
[지금 그들이 찾으려고 하는 첫 번째 인물은 바로 자네일세.]
마여룡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철진천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자네는 정말로 그들이 자네의 말을 믿지 않은 줄로 아는가?]
마여룡은 말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철진천이 말했다.
[그들은 자네 말을 믿고 있었네.]
마여룡이 물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인정하지 않았을까요?]
철진천이 대답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네의 말을 사실이라고 인정할 수 없었지. 그들이 자네가 마여룡이라는 것을 인정하면 나를 놓아보내야 했을 테니까.]
그는 냉소하며 말했다.
[우리들이 모두 그들의 수중에 있었는데 한 사람이라도 내보낼 리가 있겠는가? 그런데 그들이 어찌 자네의 말을 믿는 척하겠는가? 그렇게 되면 나를 놓아주어야 하지 않았겠는가?]
마여룡은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그제서야 강호 사람들이 마음이 얼마나 험악하고 간교한지 상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옥륜은 줄곧 그를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갑자기 몸을 뒤척이며 일어나 앉았다.
[당신이 바로 마여룡인가요?]
그녀의 음성은 놀라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당신이 바로 그 음험하고 악독하며 못된 짓이라고는 도맡아 하는 마여룡이란 말인가요?]
마여룡은 갑자기 가슴 속에서 피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끼고 대답했다.
[맞았소. 내가 바로 마여룡이오. 내가 바로 온갖 못된 짓만 골라하는 마여룡이오.]
철진천은 어리둥절해졌다.
그는 세상을 살면서 많은 이상한 일들을 보아왔지만 마누라가 남편의 이름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는 처음 보았다.
사옥륜은 한참동안 침묵을 지키더니 탄식했다.
[당신은 마여룡이 아녜요.]
마여룡이 말했다.
[내가 바로 마여룡이오.]
사옥륜이 말했다.
[당신은 아녜요. 절대로 아니란 말이에요. 그 마여룡이란 사람은 음험하고 악독하고 무슨 짓이든 모두 하는 사람이에요.]
그녀의 음성이 돌연 부드럽게 변했다.
[나는 당신하고 삼 개월 하고도 이십 일일을 같이 지내왔어요. 나는 당신이 절대로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마여룡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목이 꽉 막히는 듯하여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지금은 이미 다른 사람의 능욕을 받는데 익숙해져 다른 사람의 동정하고 이해하는 것이 오히려 받아들이기 어렵게 느껴졌던 것이다.
바로 이때 앞의 잡화접 가게에서 장노실의 음성이 들려왔다.
마여룡은 눈앞의 사옥륜을 돌볼 겨를이 없다는듯 즉시 밖으로 나갔다.
장노실은 상점 안으로 들어와 물건을 정리하고 있었다.
곧 문을 열 준비를 하는 것 같았다.
마여룡은 그를 노려보았다.
[당신이 돌아왔군.]
장노실이 대답했다.
[나는 돌아온게 아닙니다. 나는 근본적으로 어디로 간 적이 없었어요. 어째서 돌아왔다고 하십니까?]
그는 정말 밖으로 나간 적이 없었단 말인가. 그는 정말 집안에 없었고 주방 안에도 없었던 것이 아닌가. 
장노실은 다시 말했다.
[나는 조금 전에 주방에 있었습니다.]
마여룡은 장노실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잡화점의 문을 열기 전에는 여러가지 물건을 정리해야 한다.
장노실은 지금 그런 일을 하고 있었다.
한 명의 잡화점에서 십팔 년 동안 일을 한 사람이라면 상점 안에서 한 통의 소금통이 없어지고 계란 한 줄이 없어졌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장노실은 지금 그것을 발견하지 못한 것 같았다.
어제 오후 비가 내려 골목길은 질척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장노실의 신발에는 진흙이 묻어 있었고 결코 깨끗한 상태가 아니었다.
그는 조금 전에 어디에 갔다 온 것일까?
왜 그는 거짓말을 하는 것일까?
마여룡은 장노실에게 매우 신비함과 기괴함을 느꼈다. 이것은 마여룡이 장노실에게서 느끼는 두 번째 이상한 감각이었다.
장노실은 문을 열 준비를 끝냈다.
그가 막 문을 열려고 할때 마여룡은 홀연 물었다.
[오늘 우리는 하루만 가게 문을 닫도록 하자.]
장노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오늘이 명절입니까?]
마여룡은 말했다.
[그렇지 않다.]
장노실이 다시 물었다.
[오늘이 우리 집안의 경사라도 있는 날입니까?]
마여룡은 말했다.
[그렇지 않다.]
장노실은 다시 물었다.
[그러면 왜 문을 닫아요?]
마여룡은 이유를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는 거짓말을 하고싶지 않았다. 그는 단지 이렇게 말했을 뿐이다.
[내가 오늘 문을 열지 말라고 하면 문을 열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이때 안에서 사옥륜의 음성이 들려왔다.
[오늘 우리들은 문을 열고 영업을 해야 합니다.]
마여룡은 침실 안으로 뛰어들어가며 약간 성난 어조로 말했다.
[당신은 어째서 나의 일에 참견을 하는 것이오?]
사옥륜은 말했다.
[내가 참견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 친구가 당신 일에 참견하는 거예요.]
이때 철진천이 말했다.
[오늘은 반드시 상점 문을 열어야 하네. 열지 않으면 안 되네.]
마여룡은 물었다.
[지금 그들은 마여룡이 이 잡화점의 주인으로 변장하고 숨어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언제라도 나를 찾으러 올 수 있는데 어떻게 문을 열어놓고 그들을 맞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철진천이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문을 열어야 하는 것이네.]
마여룡은 물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철진천이 대답했다.
[왜냐하면 잡화점의 가게 문이 열리지 않으면 그들은 반드시 쳐들어올 것이네. 우리가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다면 그들은 도리어 우리의 허실을 탐지하기 위해서 감히 경거망동하며 안으로 들어오지 못할 것이네.]
사옥륜이 냉랭히 그 말을 받았다.
[내가 보기에 당신은 정말 노련한 강호인이군요.]
마여룡은 입을 다무는 수밖에 없었다.
사옥륜과 철진천은 정말 생각이 깊은 사람이었다.


24. 대적(對敵)


잡화점의 네 개의 문짝이 모두 열렸다.
장노실은 빗자루를 들고 문밖을 깨끗이 청소했다.
마치 귀한 손님을 맞는 것 같았다.
철진천은 물었다.
[밖에서 땅을 쓸고 있는 사람은 자네의 종업원인가?]
마여룡은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철진천은 물었다. 
[그는 어떤 사람인가?]
마여룡은 대답했다.
[그의 이름은 장노실이라고 합니다.]
철진천은 눈을 빛냈다.
[이름이 매우 특이하구만. 노실이라면 성실하다는 뜻이 아닌가?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이름 또는 자기 자신을 표방하는 긍정적인 평가와는 다른 점이 많다네. 정직한 군자라고 자처하는 절대사 같은 경우도 간악하고 음험한 소인배일 뿐이네. 그 중놈은 자네가 바로 마여룡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먼저 철진천을 죽이고 그 다음에 마여룡을 죽이려고 했네.]
그는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말을 이었다.
[나는 그와 같은 가짜 군자 놈을 내 손으로 직접 죽여버리고 말 것이네.]
사옥륜이 갑자기 탄식했다.
[아,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와 같은 가짜 군자는 당신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을 것 같군요. 오히려 당신 자신이 머지않아 죽을 것 같군요.]
이 말은 사실이었다.
철진천의 목숨은 얼마 남지 않았다.
사옥륜은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은 그들이 비록 이곳의 허실을 모르기 때문에 경거망동하지 못하고 감히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지만 그들은 분명히 이 잡화점을 포위하고 쳐들어올 기회를 노리고 있을 거예요.]
그녀의 음성 속에는 여러가지 의미가 담겨 있었다.
연민같기도 하고 슬픔같기도 하고 조롱같기도 했다.
그녀는 다시 입을 열었다.
[당신들이 이곳에 있으니 나 역시 당신들과 함께 이곳에 있을 수밖에 없군요. 어쨌든간에 그들은 조만간 사람을 보내서 이곳의 허실을 탐지하려고 할 것 같아요. 사람을 파견하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에요. 왜냐하면 잡화점에는 그 어떤 사람이라도 언제라도 들어올 수 있으니까요.]
그녀는 담담히 말을 계속했다.
[그들이 일단 쳐들어오게 된다면 나도 당신들과 함께 죽게 되겠군요.]
이것은 사실이었다.
사옥륜은 마여룡을 노려보며 말을 계속했다.
[나는 당신이 예전에 무슨 짓을 했는지는 아는 바가 없어요. 그러나 지금 당신에게 한 마디만 묻겠어요. 당신은 나로 하여금 진상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당신을 따라 죽도록 할 생각인가요? 당신은 정말 나에게 미안하고 부끄럽지 않은가요?]
그녀의 말은 채찍처럼 마여룡의 몸을 후려쳤다.
그는 실로 부끄럽기 이를 데 없었다.
마여룡은 말했다.
[나는 그들에게 당신은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말할 것이오. 그리고 나는 먼저 당신을 보내 줄 수 있소.]
사옥륜은 냉랭히 입을 열었다.
[당신은 나를 어디로 먼저 보내주겠다는 겁니까? 그들이 내가 무고하다는 것을 믿어주겠어요? 그들은 나를 개 돼지처럼 취급하고 고문할지도 모르지요.]
마여룡은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당신은 내가 어떻게 해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오?]
사옥륜은 말했다.
[나는 단지 당신이 나에게 한 가지를 돌려주기를 바랍니다.]
마여룡은 물었다.
[무엇을 돌려달라는 것이오?]
사옥륜의 얼굴에 갑자기 분노하는 표정과 격동하는 표정이 떠올랐다.
[나의 진면모와 나의 무공을 돌려주세요. 당신이 어떤 방법으로 나의 얼굴을 이 모양으로 만들어 버리고 나의 무공을 없애버렸는지는 모르겠어요. 그러나 당신에게 일말의 양심이 있다면 전부 나에게 돌려 주어야 해요. 지금 당장 돌려 주세요.]
마여룡은 돌려 줄 방법이 없었다.
그는 단지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는 정말 자기가 좀도둑보다도 못한 놈이라고 여겨졌다.
차라리 그녀가 채찍을 들고 그를 때린다면 어떠한 매질이라도 달게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때 철진천이 나직이 입을 열었다.
[잡화점에 한 사람이 들어왔소.]
오늘 오는 손님들은 그 누구이든간에 절대사가 보낸 첩자일 가능성이 있었다.
철진천은 주먹을 움켜쥐며 입을 열었다.
[자네는 나가서 그가 무슨 물건을 사는지 살펴보도록 하게. 그가 정말 물건을 사러 왔는지 아니면 우리들의 목숨을 노리고 왔는지 알아보게.]
들어온 손님은 배가 불룩한 그 젊은 아낙이었다.
그녀는 이 부근에서 가장 할일 없는 여자였으며 가장 남의 일에 참견하기를 좋아하는 수다쟁이였다. 그녀는 매일 웃고 있었다. 아주 기분이 좋아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녀의 뱃속에는 새로운 생명이 자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여룡은 그녀의 웃음소리를 듣자 마음이 놓였다.
[그녀는 우리 집의 단골입니다. 매일같이 옵니다.]
철진천이 물었다.
[매일같이 온다고? 매일같이 와서 무엇을 사는가?]
마여룡이 대답했다.
[당근을 사가지고 갑니다. 그녀는 당근이 인삼과 같이 몸을 보신하고 백 가지 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인삼을 살 수 없는 사람은 당근을 사는 수밖에 없다.
인삼과 당근은 모두 마음의 위안을 주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사람이 신을 믿고 부처를 믿는 것과 같았다.
그러나 오늘 그녀는 뜻밖에도 당근을 사러온 것이 아니었다.
마여룡은 이미 그녀와 장노실이 주고받는 대화를 들었던 것이다.
장노실이 입을 열었다.
[당근을 사러 왔소?]
그녀는 낄낄거리며 대답했다.
[나는 오늘 당근을 사러 오지 않았어요.]
장노실은 물었다.
[그럼 뭘 사러 왔소?]
그녀는 대답했다.
[소금을 사러 왔어요.]
잡화점에는 소금이 있기 마련이고 모든 사람들은 소금을 먹는 것이다.
사람들은 매일매일 소금을 먹는다.
이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장노실은 물었다.
[당신은 얼마나 필요하오?]
젊은 아낙은 말했다.
[오늘 우리집에서 고기를 소금에 절여야 해요. 나는 삼십 근을 사겠어요.]
잡화점에는 매일같이 소금을 사러오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한 번에 삼십 근의 소금을 사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보통의 잡화점에는 기껏해야 사오십 근의 소금이 있을 뿐이다.
철진천은 눈쌀을 찌푸리며 말했다.
[당신은 그녀를 들어오라고 하게. 그녀가 들어온다고 하지 않으면 그녀를 잡아끌고 들어오게.]
마여룡은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철진천은 다시 말했다.
[자네는 왜 나가서 그녀를 데리고 오지 않나?]
마여룡은 대답했다.
[그녀는 임산부입니다. 나는 임산부에게 그렇게 대할 수가 없습니다.]
[절대사 그 중놈이 파견한 사람인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그렇게 하지 못하겠다는 것인가?]
[나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런 일을 마여룡은 어떤 상황하에서도 할 수 없었다.
차라리 죽을지언정 할 수 없었다.
철진천은 그를 노려보더니 길게 탄식했다.
[자네는 정말 착한 사람이로군. 나는 지금까지 자네와 같은 사람을 본 적이 없네. 자네같은 사람은 요즘에는 찾아보기 힘들지.]
사옥륜이 홀연 나직이 탄식하며 입을 열었다.
[이와 같은 사람을 나 역시 본 적이 없습니다.]
이때 장노실이 그 젊은 아낙에게 말했다.
[잡화점 안의 소금은 이미 모두 팔려나가고 없소. 당신은 저녁때 다시 오시오.]
젊은 아낙은 가게를 나가면서 웃고 있었다.
잡화점 안에 소금이 없다니 정말 우스울 것이다.
철진천은 말했다.
[자네가 그녀를 돌려보냈으니 그녀는 절대사에게 이곳의 사정을 고해바칠지도 모르겠군. 내가 보증하건데 이 잡화점은 오늘 장사가 잘 될 것이네. 조금 있으면 두 번째 손님이 올 거야.]
그의 말은 틀림없었다.
잠시 후에 두 번째 손님이 문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두 번째로 들어온 손님은 들어오자마자 말했다.
[나는 물건을 사고 싶네.]
그 사람의 음성은 목이 쉬어 있었고 나직했다.
장노실이 물었다.
[당신은 무엇을 사러오셨습니까?]
그 사람은 대답했다.
[이곳에 있는 모든 물건을 사겠네.]
장노실은 깜짝 놀랐다.
[모두를 사겠다구요?]
그 사람은 대답했다.
[한 가지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살 생각이네.]
잡화점에서는 손님이 그 무엇을 사겠다고 하면 그 무엇을 팔면 되고 모든 물건을 사겠다고 하면 모든 것을 팔면 되는 것이었다.
마여룡은 철진천의 얼굴이 변하는 것을 바라보았다.
마여룡 자신의 얼굴도 딱딱하게 굳어져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장노실의 얼굴이 어떻게 변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장노실의 음성이 들려왔다.
[이 가게의 물건을 적지 않은데 어떻게 가져가려고 하시오?]
그 사람이 말했다.
[나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운반해 갈 것이네. 다만 얼마인지 말만 하게. 물건 값은 즉시 지불해 주겠네.]
사람을 데리고 와서 운반해 가겠다니!
장노실의 음성이 들려왔다.
[나는 잡화점의 하인일 뿐입니다. 이렇게 큰 거래를 내가 결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 사람은 물었다.
[그럼 누가 결정하는가?]
장노실은 대답했다.
[나의 주인이 결정합니다.]
그 사람이 물었다.
[자네의 주인은 어디 있나?]
장노실은 대답했다.
[주인님은 안에 계십니다. 당신은 안으로 들어가서 주인님과 상의해 보십시오.]
그 사람은 말했다.
[나는 들어가지 않겠네. 주인 보고 나오라고 하게.]
장노실은 물었다.
[당신은 어째서 들어가지 않으려고 하시오?]
그 사람은 말했다.
[주인은 어째서 나오지 못하는가?]
장노실은 말했다.
[왜냐하면 그는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큰 가게든 작은 가게의 주인이든 어쨌거나 주인들은 거드름을 피우는 면이 있지 않습니까?]
그 손님은 말했다.
[그가 나오지 않는다면 나는 아무것도 사지 않겠네.]
그러자 장노실은 말했다.
[당신이 사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25. 고객(顧客)


철진천은 그 손님과 장노실의 대화를 유심히 듣고 있었다.
그러더니 철진천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왕만무(王萬武)가 왔군!]
그는 나직이 입을 열었다.
[자네의 그 직원이 두 팔이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겠어.]
무림에는 오직 단 한 명의 왕만무가 있을 뿐이었다.
그의 분근착골수(分筋錯骨手)와 대력응조공(大力鷹爪功)은 강호에서 독보적인 절기였다.
그는 마음이 악독하고 손이 매웠으며 그의 무공이 뛰어난 것만큼이나 악독했다.
그가 일단 손을 썼다하면 틀림없이 상대방의 중요한 관절을 뽑아버리거나 부러뜨리곤 했다.
그와 손을 쓴 사람은 누구나 죽지 않으면 병신이 되었다.
철진천은 경고했지만 이미 늦어 있었다.
마여룡은 그 순간 가게 안에서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나는 것을 들었다. 매우 나직한 소리였으나 그 소리는 그의 귀에 뚜렷하게 들려왔다.
마여룡은 자기의 팔이 부러지는 듯한 섬뜩한 기분을 느꼈다.
장노실은 어쨌든 그의 하인인 것이다.
적어도 그와 삼 개월 하고도 스무하루를 같이 지낸 하인이었다.
이상하게도 그는 뼈가 부러지는 소리는 들었지만 비명소리는 듣지 못했다.
단지 두 종류의 사람만이 이런 종류의 고통을 당하고서도 비명을 지르지 않을 것이다.
한 종류는 의지가 굳센 사람으로서 어떤 고통이 밀려와도 소리를 지르지 않고 또 다른 한 종류는 죽은 사람이다.
죽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기절하여 죽은 거나 다를 바 없는 사람만이 비명을 지르지 못하는 것이다.
마여룡과 철진천이 밖으로 뛰어나가려고 했을 때 밖에서 한 사람이 들어왔다.
그 사람은 뒷걸음질치면서 방으로 들어왔다.
그 사람의 왼쪽 어깨는 완전히 이미 분질러져 있었고 그 사람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혀 있었으며 있는 힘을 다하여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고 있었다.
뜻밖에도 이 사람은 장노실이 아니라 왕만무였다.
분근착골수로 무림을 진동시킨 회남(淮南)땅의 제일가는 무림고수 왕만무가, 수많은 영웅호걸들의 어깨뼈를 부러뜨렸던 왕만무가 그것도 잡화점의 한 명의 하인에 의해서 부러진 채로 뒷걸음질치며 들어오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죽어도 이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철진천과 마여룡도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러나 사건은 분명히 눈앞에서 벌어져 있었으니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었다.
왕만무의 표정은 경악과 고통과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한평생 살아왔지만 지금처럼 겁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분근착골수와 대력응조공은 회남의 응조왕(鷹爪王)이 지니고 있는 독특한 무공절기였다.
왕만무는 응조왕의 직계 제자로서 회남 응조원의 제일가는 고수였다.
그러나 그가 한 번 손을 쓰자마자 오히려 잡화점의 한 명의 하인에게 반격을 당하여 단 한 번에 팔뼈가 부러지고 병신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그는 한 걸음 한 걸음 뒤로 후퇴하면서 침실의 주렴을 밀고 침실 안으로 뒷걸음질쳐 들어갔다.
주렴이 다시 문앞을 가리면서 그는 더 이상 평범하고 게을러 보이는 잡화점의 하인의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철진천은 갑자기 일어나며 왕만무의 팔을 잡고 그를 그 의자 위에 앉혔다.
왕만무는 당연히 철진천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옛날에는 한때 친구지간이었는데 나중에 적으로 변한 것이었다.
친구보다는 적을 더 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의 눈앞에 서 있는 이 사람이 바로 철진천이라는 사실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그는 이마에서 콩알같은 땀을 흘리면서 끊임없이 문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그는 나직한 음성으로 문밖을 바라보면서 공포에 젖은 음성으로 물었다.
[그 사람은 도대체 누굽니까?]
이것은 철진천도 마찬가지로 궁금하게 여겼던 바였다.
철진천은 마여룡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당신의 그 하인은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마여룡은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가 아는 사실이라곤 그 하인의 이름이 장노실이라는 것과 약간 멍청해보인다는 것 뿐이었다.
장노실은 예전에 무슨 혁혁한 영예가 있었던 사람도 아니고 앞으로 무슨 커다란 꿈이 있는 사람도 아니었으며 그저 다 낡아빠지고 허름하고 보잘것 없는 잡화점에서 평생을 늙어 죽기 알맞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사람이 어떻게 단 한 번에 무림에 이름을 날리고 있는 왕만무를 제압할 수 있었을까.
마여룡 역시 알지 못했다.
이 잡화점의 주인이 이미 예전의 주인이 아닌 것처럼 잡화점의 하인 역시 예전의 하인이 아닌 것 같았다.
마여룡은 이에 생각이 미쳤지만 그러나 그는 그 하인이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 낼 수가 없었다.
왕만무의 얼굴에는 식은 땀이 흐르고 있었다.
공포에 질린 얼굴로 입속으로 뭐라고 중얼거리고 있는 것이었다.
철진천은 갑자기 그의 따귀를 한 대 후려쳐서 정신을 차리게 만들었다.
왕만무는 평생동안 한 번도 다른 사람의 따귀를 때린 적이 없었다.
왕만무는 마침내 정신을 차리고 눈앞의 철진천을 바라보았다.
그는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당신.... 당신이 여기 있었군.]
철진천은 차갑게 말했다.
[그렇다. 바로 나다. 너는 원래 내가 이곳에 있다고 추측하고 있지 않았느냐?]
왕만무는 철진천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고통과 서글픈 빛이 떠올라 있었다.
[나는 네가 이곳에 있을 줄 짐작하고 있었다. 나는 이곳에 올 때 너를 죽일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는 너에게 미안한 짓을 했고 너를 팔았기 때문에 나는 도리어 너를 증오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 말은 조금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진실이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배신하고 팔아치웠다면 그 사람이 죽기까지는 마음이 편하지 않을 것이다.
그 사람이 살고 있는한 영원히 마음이 불안하고 영원히 마음 속에 부끄러움을 간직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원한을 느끼는 대상은 상대방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것이다.
왕만무는 입을 열었다.
[십 년전 내가 너를 팔아치웠는데 그 때부터 나는 너에게 미안한 마음을 품고 있었고 네가 알까봐 두려워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칼을 빌어,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서 너를 죽이려고 했던 것이다.]
철진천은 말했다.
[나도 알고 있다.]
왕만무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네가 이미 잘 알고 있다면 그때 어째서 나를 죽이지 않았느냐? 나는 차라리 너의 손에 죽기를 원했었다. 그 당시 네가 나를 죽였다면 나는 이 모양으로 너를 만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 말은 진실이었다.
그가 유명한 대도 철진천의 손에 죽었다면 최소한 오늘같이 허름한 잡화점의 이름없는 하인의 손에 패배당하는 치욕은 겪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은 실로 참담하고 고통스럽고 치욕스러운 패배였다.
철진천은 이런 종류의 고통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방 밖에서는 오랫동안 아무런 동정도 없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았다.
장노실 역시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장노실은 여전히 가게 안의 자기 의자에 멍하니 앉아서 마치 조금 전에 그가 몸에 절기를 지닌 유명한 고수를 패배시킨 적이 없다는듯이 따분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그는 도대체 누구일까.
그는 어째서 마여룡과 함께 이 잡화점 안에 숨어있을까.
마여룡은 갑자기 방 밖으로 달려나갔다.
그는 철진천보다도 더욱 장노실의 정체가 궁금했던 것이다.
장노실은 태평하게 평소와 다름없이 찌그러진 의자에 멍하니 앉아 있었고 이 잡화점 안에는 옛날과 달라진 점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밖의 상황은 평상시와 달랐다.
평소의 이 때쯤이면 거리가 시끌벅적하고 지나가는 행인들과 뛰어노는 어린이들이 보였는데 지금은 그러지 않았다.
이 거리는 비록 가난한 마을에 위치해 있었지만 언제나 생동감이 넘쳐흘렀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거리에는 한 사람의 행인도 없었다.
지나가는 행인도 없었고 움직이는 물체도 없었고 어떤 소리가 나는 것도 아니었다.
이 생동감 넘치던 골목길은 지금은 완전히 죽음의 골목처럼 적막했다.
이 잡화점 안에는 금고가 없었다.
다 낡은 탁자 위에 한 권의 장부와 뚜껑이 없는 동전을 넣는 상자가 있었을 뿐이었다.
마여룡은 그 탁자 옆의 등받이가 없는 의자에 앉아서 장노실을 바라보았다.


26. 사지(死地)


장노실은 여전히 멍청한 표정을 짓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렇게 앉아 있었다.
그가 조금전에 강호에 이름을 떨친 왕만무를 일격에 격퇴시켰다는 사실을 그 누가 믿을 수 있을까. 
그 역시 영롱옥수 옥영롱이 변장을 시킨 사람일까.
그는 원래는 누구였을까.
일초에 왕만무를 격퇴시킬수 있는 사람은 몇 명 되지 않을 것이다.
마여룡은 그를 한참동안 바라보다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대완!]
장노실은 여전히 아무런 표정도 떠올리지 않고 입을 열었다.
[대완이라니요? 당신은 큰 사발이 필요합니까? 사발은 모두 주방 안에 있는데 나보고 가서 가지고 오라는 말인가요?]
마여룡은 말했다.
[내가 말하는 대완은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네.]
장노실은 입을 열었다.
[아, 그렇습니까?]
마여룡은 다시 말했다.
[자네는 그녀를 본 적이 없는가?]
장노실은 대답했다.
[내가 본 대완은 그릇일 뿐 사람은 아닙니다. 나는 그런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
마여룡은 탄식을 하더니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갑자기 그는 식지와 중지 두 손가락을 뻗쳐서 장노실의 두 눈을 찔러갔다.
장노실은 그 순간 눈을 질끈 감았다.
이것이 그의 유일한 반응이었다.
눈동자를 제외하고 그의 온 몸은 단 한 군데도 움직이지 않았다.
마여룡은 당연히 진짜 손을 쓴 것이 아니었다.
그는 홀연 자기가 한 짓이 바보처럼 쓸데없는 짓임을 깨달았다.
이런 방법을 쓴다고 해서 장노실이 자기의 본색을 드러낼 가능성은 없었다.
누가 보아도 소용없고 무공으로 시험해 보아도 소용없는데 무슨 방법이 있겠는가.
마여룡이 무슨 방법을 써야 되는지 생각해 보고 있을 때 또 한 명의 손님이 다가왔다.
탁탁탁.
나무지팡이가 땅을 찍는 소리는 처음에는 멀리서 들렸으나 급히 가까워졌다.
들어오는 사람은 두 사람이었다. 두 사람은 모두 절름발이었으며 각자 나무지팡이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의 상반신은 멀쩡했다. 그들이 입고 있는 옷, 표정, 용모는 모두 판에 박은 듯이 똑같았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발육이 되지 않은 다리였다.
그들은 한쪽 다리가 마치 갓난아기 때부터 발육하지 않은 것처렴 아랫배 밑에 매달려 있었다.
마치 한쪽 다리를 잘라내고 갓난아기 한쪽 다리를 갖다붙인 것처럼 보기가 흉했다.
그러나 그 두 절름발이의 표정은 매우 엄숙했으며 자기자신에 대한 자부심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 두 절름발이는 한 개의 주형으로 떠낸 것처럼 똑같았다.
유일한 다른 점은 한 사람은 왼쪽 다리가 불구고 다른 한 사람은 오른쪽 다리가 불구라는 것이었다.
마여룡은 그들을 보는 순간 무림에 전설처럼 내려오는 신화적인 두 명의 인물을 떠올렸다.
극북(極北)의 성숙해(星宿海)에는 한 쌍의 태어날 때부터 병신인 쌍동이 형제가 있었는데 한 사람은 이름이 천잔(天殘)이고 다른 한 사람은 이름이 지결(地缺)이었다.
그들은 성격이 괴이하고 무공 역시 괴이했다.
그들이 제자들은 받아들일 때는 반드시 그들과 똑같이 쌍둥이 병신만을 받아들인다고 했다.
강호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모두 그들은 알고 있었다. 그들을 본 사람들은 극히 드물었지만 그들에 관한 소문은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없었다.
성숙해의 제자들은 강호에 출현할 때가 드물었고 그들을 직접 본 사람 역시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런데 성숙해의 제자들은 누구나 매우 화려한 것을 좋아하고 치장하기를 좋아하며 온몸에 또는 의복에 화려한 장식과 문신을 새겨가지고 다닌다는 것이었다.
그들이 입고 있는 옷은 심지어 진주로만 꿰어만든 진주삼(珍珠衫)이라는 것도 있다는 말이 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불구인 그들은 그들의 부족함을 보충하기 위해서 화려하고 사치스럽게 꾸미고 다녔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나타난 이 두 사람은 입고 있는 의복도 매우 평범했고 정상적인 사람과 다를 바가 없었다.
성숙해의 제자들은 반드시 무예를 완전히 익힌 후에 강호에 들어선다고 했다.
그들의 사부는 제자들이 그 누구에게도 패하지 않을 단계가 되었을 때라야 비로소 강호출입을 허락한다는 소문이 있었다.
병신들이 무공을 연마하기란 정상인보다 훨씬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성숙해의 제자들이 강호에 출현할 때 그들의 나이는 결코 어리지 않았다.
그런데 이 두사람은 나이가 젊었다.
기껏 해봤자 스물세 살 정도였다.
설마하니 그들이 이 젊은 나이에 벌써 성숙해의 독특하고 기발한 무공을 배웠단 말인가.
나무 지팡이로 땅을 찍는 소리가 멈췄을 때 그 두 사람은 완전히 잡화점 안에 들어와 있었다.
마여룡은 몸을 돌려 그들을 바라보았다.
마음 속으로는 그들이 성숙해의 제자라는 짐작이 들었지만 그는 입을 열어 물었다.
[두 분은 무엇을 사러 오셨소?]
왼쪽 다리병신이 먼저 입을 열었다.
[우리들은 아무것도 사지 않아.]
그러자 오른쪽 다리병신이 그 말을 받았다.
[우리들은 단지 당신이 어떤 사람이길래 왕만무를 억류할 수 있는지 살펴보러 왔을 뿐이오. 당신은 무슨 방법으로 그를 억류하였소?]
그들의 말에는 조금도 허식이 없었고 교만한 빛도 없었다.
왼쪽 다리병신이 입을 열었다.
[나는 손조(孫早)라고 하고 이 애는 나의 쌍둥이 동생 손지(孫遲)라고 하오. 출생할 때 내가 약간 먼저 나왔기 때문에 형이 되었소.]
그들의 이름도 역시 매우 평이했다.
소문에 듣던 성숙해 무인들의 교만하고 신비하며 현학적인 이름들과는 다른 점이 있었다.
손조는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들은 쌍둥이 형제이고 기형인데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성숙해 문하를 자칭하는 것이지.]
손지가 그 말을 이어서 말했다.
[그러므로 당신은 아마 우리들이 성숙해 문하가 아닐까 짐작하고 있을 것이오.]
손조가 말했다.
[그러나 당신의 생각은 틀렸소. 우리 두 형제는 성숙해와 전혀 관계가 없소.]
손지가 그 말을 이어 받았다.
[십 년 전에 우리는 일찍이 성숙해로 한 번 갔었소. 우리들은 전설 속의 그 이인(異人)을 찾아 천하무적의 무공을 배우려고 했던 것이오.]
손조가 말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우리들은 실망했소.]
손지가 말했다.
[그곳은 단지 사람이 살지 않는 황폐한 곳이었을 뿐이고 여름에는 무지무지하게 덥고 겨울에는 무지무지하게 추웠소. 도저히 사람이 생존할 수 없을 지경이었소. 우리들이 당신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는 것은 우리들의 무공이 우리 자신이 고생스럽게 지킨 것이라는 것을 당신에게 알려주고 싶었기 때문이오.]
손지가 말했다.
[그러므로 당신이 만약 우리들을 억류하고 싶어한다면 조금도 꺼리낄 것이 없을 것이오. 우리들은 성숙해의 제자가 아니니까 말이오.]
마여룡은 줄곧 그들이 말을 끝낼 때까지 듣고 있으면서 마음 속으로 여러가지 생각을 해보고 있었다.
그들은 나이가 젊었고 잘난체 하지 않았으며 거짓이 없는 것 같았다. 그들은 자기 스스로 자기들의 명성을 날리기를 원하는 사람이지 다른 사람에게 의지해서 명성을 날리지 않으려는 것 같았다.
그들은 비록 병신이지만 조금도 자기자신을 비하시키거나 자포자기하는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마여룡은 이런 젊은 사람을 적으로 삼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는 말했다.
[나는 당신들을 억류하고 싶은 생각은 없소. 당신들은 아무 때나 나가도 좋소.]
그러나 그들은 가지 않았다. 
형제 두 사람은 이상하다는 눈초리로 형제 두 사람을 지그시 바라보더니 한참 후에 손조가 입을 열었다.
[우리들도 당신들과 적이 되고 싶은 생각은 없소. 만약 당신이 다른 사람이었다면 우리들은 어쩌면 친구가 되었을지도 모르오.]
손지가 말했다.
[당신은 사실 간교하고 악독한 소인배는 아니오. 그러나 한 가지 애석한 사실이 있다면 당신이 바로 마여룡이라는 사실이오.]
형제 두 사람은 동시에 탄식하더니 동시에 몸을 돌려 퍽, 하는 소리를 내며 지팡이로 땅을 찍더니 밖으로 나갈 준비를 했다. 그들은 마치 마여룡을 적으로 삼고 싶은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들은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그들이 막 몸을 돌리고 겨드랑이 아래에 있던 나무지팡이가 땅바닥을 짚었을 때 장노실의 손이 쳐들린 것이다.
마여룡은 단지 귓가에 극히 미세한 파공성을 들었을 뿐인데 그 두 자루의 나무지팡이가 갑자기 중간에서 부러지고 말았다. 두 자루의 지팡이를 부러뜨린 것은 뜻밖에도 두 알의 땅콩이었다.
장노실은 술 마시는 것을 좋아했다.
땅콩이란 가장 보편적으로 여러 사람이 즐겨먹는 술안주였다. 장노실의 탁자 위에는 한 무더기의 땅콩이 쌓여 있었다.
두 알의 땅콩을 던져서 칼로 쳐도 동강내기 힘든 나무지팡이를 단번에 부러뜨린 것을 그 누가 믿을 수 있으랴.
손조 형제 역시 미쳐 생각해보지 못한 사건이었다.
그들은 비록 당에 쓰러지지는 않았지만 한쪽다리로 땅을 디디고 서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모습은 마치 땅바닥에 못을 박아놓은 것처럼 보였다.
그들의 안색은 크게 변해 있었고 마여룡의 안색도 변해 있었다.
[자네는 무엇을 하려는 것인가?]
장노실은 아무 표정도 없이 담담하게 말했다.
[나는 그들을 억류하려는 것입니다. 당신은 원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저는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마여룡은 왜냐고 더 묻지 않았다.
바로 이때 손조 형제의 몸이 허공으로 솟구쳐 오르더니 밖을 향하여 뛰쳐나가고 있었다.
그들은 비록 불구자였지만 그들이 몸을 날리는 모습은 그 자체는 우아할 뿐만 아니라 쾌속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들은 불구자였지만 그들의 경공술은 강호에서 짝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고명했다.
그러나 그들이 땅에 내려섰을 때 여전히 그들은 잡화점 안에 있었다. 그들은 한 번 떨어진 이후에는 다시는 뛰어오를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 형제 두 사람의 몸에 있는 네 군데의 혈도가 모두 막혀 버렸기 때문이었다.
여덟 알의 땅콩이 그들 몸에 있는 혈도를 격중시킨 것이었다.
진정한 내가고수라면 꽃을 던져 사람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고 나뭇잎을 던져 사람의 혈도를 찍을 수도 있었다.
당연히 땅콩을 던져 허공을 격하고 다른 사람의 혈도를 찌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장노실이 그와 같은 내가고수일 줄이야 그 누가 알았겠는가.
장노실은 어째서 출수하여 손조형제를 부러뜨렸을까. 
마여룡이 미처 보지도 못한 사이에 장노실은 어느새 손조 형제를 제압한 것이었다.
정말 번개같이 빠른 솜씨였다.
이때 장노실은 손조 형제에게 다가가더니 그들의 품속에서 약병을 한개 끄집어냈다.
장노실은 그 약병을 자기 입속에 대고 약을 흘려넣더니 무표정한 음성으로 담담히 입을 열었다.
[주인님, 당신은 내가 무엇 때문에 그들을 억류해 두려고 했는지 이해를 하시겠습니까?]
마여룡은 이미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비록 눈으로 보지는 못했지만 충분히 상황을 짐작하고 있었다.
손조 형제의 독은 눈으로 볼 수도 없고 느낄 수도 없는 형체도 없고 냄새도 없는 독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진실을 말함으로서 상대방으로 하여금 방심하게 만들어놓고 그 틈을 타서 형체없는 독을 풀어놓으려고 했던 것이다.
이것은 마치 친구를 만들어놓고 친구를 팔아먹는 것과 동일한 짓거리였다.
마여룡은 그러나 이렇게 말했다.
[그들을 놓아주게. 당장 놓아주게나.]
장노실은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무엇 때문에 놓아줍니까?]
마여룡은 말했다.
[왜냐하면 내가 바로 마여룡이기 때문이네. 그들이 한 짓은 그들로서는 마땅히 해야할 짓이었을 뿐이야.]
사실 나이가 어린 사람들은 왕왕 이런 짓을 하여 자기자신의 이름을 떨치기를 좋아하는 것이다.
성공하기를 좋아하고 이름얻기를 좋아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니 그들만을 탓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나이가 젊은 사람이 성공하고 싶어하고 이름을 얻고 싶어하는 것은 절대로 큰 잘못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손조 형제는 떠나갈 때 고개 한번 돌리지 않았고 마여룡을 한번 쳐다보지도 않았다.
마여룡도 더 이상 그들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는 그들 자신이 마음 속으로 한번 더 부끄러움을 느끼도록 해주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다만 장노실에게 이렇게 물었을 뿐이었다.
[네가 정말 대완을 보지 못했다면 그가 누구인지도 모르겠구나. 그런데 너는 줄곧 이 잡화점에서 하인 노릇을 했느냐?]
장노실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땅바닥에 떨어진 땅콩을 한 알 한 알 줍더니 껍질을 까서 입속에다 집어넣고 있었다.
땅콩을 다 씹어 먹은 후에 그는 비로소 중얼거리듯 입을 열었다.
[마땅히 물어보아야 할 일을 묻지 않고 마땅히 물어보아야 할 사람에게 묻지 않는군. 나에게 이런 쓸데없는 질문을 하다니.]
마여룡은 물었다.
[너는 내가 마땅히 왕만무에게 가서 물어보아야 한다는 것이겠지. 이번에 그들이 몇 명이나 출동했고 온 사람이 누구누구인지 물어보라는 것이냐?]
장노실은 되물었다.
[당신은 어째서 가서 물어보지 않소?]
마여룡은 대답했다.
[왜냐하면 내가 지금 현재 묻고 있는 질문은 그 사건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장노실은 탄식하며 말했다.
[중요하다구요? 무엇이 중요하다는 것입니까? 내가 대완을 보았다면 또 어쨌다는 것입니까? 대완을 보지 못했다면 또 어떻댜는 것입니까? 당신은 어째서 그것을 물으십니까?]
마여룡은 센 어조로 말했다.
[왜냐면 나는 그녀가 어디 있는지 알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꼭 알아야 한다.]
장노실이 물었다.
[그녀가 어디에 있든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마여룡은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했다.
[당연히 관계가 있다. 만약 네가 어떤 한 사람을 마음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면 내가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이해를 할 것이다.]
장노실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었다. 그러나 손에 있는 땅콩을 땅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는 다시 허리를 굽혀 땅콩을 주웠다.
마치 마여룡의 뜨거운 눈동자를 피하려는 것처럼.
바로 이때 침실에서 사옥륜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신이 대완에 관해서 알고 싶다면 어째서 이리로 들어와 묻지 않는가요?]
마여룡은 즉시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가 침실 안으로 들어가 주렴을 다시 내렸을 때 밖에서는 한 떼의 사람들이 재빨리 이 골목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스물여덟 명이었는데 나이가 젋고 건장하며 동작도 매우 민첩했고 행동은 일사불란했다. 스물여덟 명은 모두 몸에 착 달라붙은 검은 옷을 입고 손에는 모두 이상하게 생긴 크기가 모두 똑같은 검은 색 부대를 들고 있었다.
부대 안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이 스물여덟 명의 대한들은 무엇 때문에 온 것일까.
마여룡은 그러나 그들에게 힐끗 눈길을 던졌을 뿐이었다.
대완을 제외하고 그에게는 다른 어떤 사람도 다른 어떤 일도 관심 밖인 것 같았다.
사옥륜은 이미 버둥거리며 앉아 있었다.
그녀의 눈빛은 복잡하고 기괴했다.
그것은 고통일까, 분노일까, 아니면 서글픔일까.
그녀는 마여룡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당신은 대완을 알고 있는가요? 이번 사건이 대완과 당신 두 사람이 내통하여 나를 해꼬지한 것인가요?]
마여룡은 부인할 수가 없었다.
그는 부인할 생각도 없었고 부인할 수도 없었으며 부인할 필요도 없었다.
사옥륜은 한 쌍의 메마른 손으로 이부자락을 으스러져라 움켜잡고 있었는데 그 손은 끊임없이 떨리고 있었다.
[당신은 줄곧 그녀만을 생각하고 있었나요? ]
그녀의 목소리는 쉬어 있었다.
[당신은 매일 나와 함께 있으면서도 매일 그녀만을 마음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단 말인가요?]
마여룡은 부인하지 않았다.
이 점 역시 부인할 수가 없었다.
부인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사옥륜의 손은 더욱 무섭게 떨리고 있었다.
[당신은 어째서 그녀를 생각해야 하나요? 설마하니 당신은 그처럼 못생긴 여자를 좋아한단 말인가요?]
이 점은 바로 마여룡이 평소에 자기자신에게 묻던 것이었다.
나는 무엇 때문에 이처럼 그녀를 생각하고 있을까.
혹시 내가 정말 그녀를 좋아하기 때문일까.
좋아하지 않는다면 이렇게 오래도록 간절하게 그녀가 보고싶어질 수가 있을까.
그러나 이 점은 그가 자기자신도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사옥륜은 냉소하며 말했다.
[당신은 그녀가 누구인지 알고 싶은가요?]
마여룡은 말했다.
[그렇소.]
사옥륜은 말했다.
[만약 그녀가 누구인지 당신이 알게 된다면 아마 실망을 금치 못할 거예요.]
마여룡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나는 그러지 않을 것이오. 그녀가 누구이든 나는 실망하지 않을 것이오.]
사옥륜은 부르짖듯 절규하며 외쳤다.
[좋아요. 내가 말해 주겠어요. 그녀는 나의 일개 하녀일 뿐이에요.]
마여룡의 태도는 매우 조용했다.
[당신은 대소저고 그녀는 하녀라고? 당신은 미녀이고 그녀는 추녀이고? 그러나 당신이 누구이고 그녀가 누구든 간에 나는 여전히 그녀를 생각할 것이오.]
이 말을 마치고 그는 방에서 걸어나갔다.
사옥륜은 그의 뒷모습을 보고 다시 외쳤다.
[돌아오세요. 당신에게 할 말이 있단 말예요.]
마여룡은 돌아가지 않았다. 심지어 고개조차 들리지 않았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든 그는 들은체도 하지 않았다.
사옥륜은 갑자기 침대에 엎드려 격렬하게 어깨를 들썩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정말 한 분의 대소저였다.
공주보다도 더 오만했고 더 존귀했으며 자존심이 강한 여자였다.지금까지 그 누구도 그녀가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본 사람은 없었다.
설마하니 그녀는 지금 울고 있다는 말인가?
장영발은 단지 허름한 잡화점의 주인일 뿐이고 마여룡은 단지 한 명의, 사람을 죽이고 못된 짓을 자행한 악인에 불과한데 그녀는 어째서 그 때문에 눈물을 흘린단 말인가?
철진천과 왕만무는 차가운 눈초리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철진천은 홀연 탄식하며 말했다.
[나는 여색을 밝히는 사람이었소. 내가 관계를 맺은 여자는 최소한 백 명이 넘을 것이오.]
왕만무가 그 말을 받았다.
[나도 비슷한 처지입니다.]
철진천은 탄식했다.
[그러나 나는 지금까지 여자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네. 나와 같은 사람은 이해할 방법이 없을 거야. 지금도 알 수가 없군.]
왕만무가 말했다.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여룡은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27. 흑석(黑石)


그가 밖으로 나가보니 밖에는 놀라운 일이 벌어져 있었다.
장노실은 술이 취했는지 탁자 위에 엎드려 있었다.
그의 탁자에는 빈 술잔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는 잠이 든 것일까, 취한 걸일까. 아니면 무슨 큰 근심이 있는 것일까. 그는 언제나 이렇게 흐리멍텅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놀라운 변화는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사는 골목길 안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밖에는 원래 사람이 보이지 않고 있었다.
골목길가 판자집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고 지금 그들이 살고 있는 집조차도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골목길 옆에 늘어져 있던 가난한 집들은 이미 모두 철거되었고 스물여덟 명이나 되는 나이가 젊고 건장하며 동작이 날렵한 흑의인들이 그들의 포대에 철거의 잔해를 담아 운반해 가버린 것이었다.
지붕 위의 판자조각과 기와조각은 헐려졌고 못은 모두 뽑혀졌으며 빠른 속도로 운반되어 갔던 것이다.
철거된 집 안에는 빨래한 옷도 있었고 빨래하지 않은 옷도 있었고 장난감도 있었고 여인네들이 시집올 때 가져온 패물도 있었으며 남편들이 마시는 술도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이 포대자루에 담겨서 사라져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이 거리가 비록 가난한 사람들의 집들이 모여있는 골목이었지만 그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이 하잘것 없는 집들이 비바람을 막아주는 보금자리였다.
지금 그들의 집은 사라지고 그들의 방도 사라지고 사람마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이 골목길은 더 이상 골목이 아니었다.
마여룡의 잡화점을 제외하고 그 주변에 있던 모든 집들은 이미 처러거되어 버린 것이다. 
이 골목은 갑자기 질척질척하고 보기 흉한 공터로 변해 버렸다.
하늘은 여전히 푸르고 흰구름은 유유히 흘러갔으며 태양은 밝게 빛나고 있었다.
그러나 마여룡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황폐해진 공터뿐이었다.
실로 뜻밖의 일이었다.
그가 고개를 돌렸을 때 장노실은 마침 얼굴을 쳐들고 있었다.
그는 근심에서 깨어난 것일까, 술취한 것에서 깨어난 것일까, 아니면 잠에서 깨어난 것일까.
그 눈초리는 여전히 게슴츠레했다.
마여룡은 즉시 그에게 물었다.
[자네는 무엇을 보았는가?]
장노실은 대답했다.
[나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마여룡은 입을 열었다.
[설사 그들이 우리를 이곳에 가두어 둘 생각이 있다고 해도 부근의 집들을 모조리 철거할 필요는 없었는데 실로 악독하고 철저한 놈들이군.]
그는 그들이 무엇 때문에 집들을 철거했는지 장노실에게 물어보려고 했지만 장노실은 보지 못했다고 했다.
바로 이때 스물여덟 명의 대한들이 또 다시 빠른 걸음으로 골목길 안으로 들어섰다.
마여룡은 그들이 방금 전에 포대자루를 가지고 나타났던 사람들과 다른 또 한떼의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들 역시 나이가 젊고 건강했으며 몸에 착 달라붙는 검은 옷을 입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손에 포대자루를 들고 있는 것이 아니고 검은 색 대바구니를 들고 있었다.
대바구니 안에는 검은 색의 둥근 돌이 들어 있었다.
그 검은 돌은 구슬처럼 둥글고 검은 빛이 번들거리고 있었다.
보기에 검은 색의 주옥(珠玉)처럼 보였다.
마여룡은 이제까지 이렇게 생긴 검은 돌을 본 적이 없었다.
그는 또한 이 나타난 젊은 사람들이 누구의 부하인지도 알아볼 수가 없었다.
이와 같은 검은 돌은 구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었다.
한두 개의 검은 돌을 구하기도 쉽지 않은데 이 흑의를 입은 대한들은 이렇게 희귀한 검은 돌을 대바구니에 가득 담아가지고 와서는 갑자기 골목길 안에 늘어서더니 모를 심듯이 검은 돌을 땅바닥에 깔아놓는 것이었다.
그들의 동작은 질서정연하고 신속했다.
질척거리는 공터는 즉시 검은 돌로 포장이 되고 말았다.
스물여덟 명의 대한들은 바구니에 있는 돌이 다 없어지자 재빨리 그곳을 떠나는 것이었다.
그들이 떠나자마자 즉시 또 다른 한 패거리의 스물여덟 명이나 되는 몸에 착 달라붙은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검은 돌이 가득 담긴 대바구니를 들고 나타나더니 같은 모습으로 골목길의 땅바닥에 검은 돌을 깔아놓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마여룡은 장노실에게 그들이 누구의 부하인지 아느냐고 그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아느냐고 물어보려고 했다.
그러나 마여룡은 물어보지 못했다. 
왜냐하면 갑자기 장노실의 얼굴이 기이하게 변했기 때문이었다.
한 쌍의 게슴츠레 하던 눈에 갑자기 극도로 공포스러운 표정이 떠오르더니 그는 벌떡 일어나 가게문 앞으로 다가가 재빨리 가게문을 닫아 잠그는 것이었다.
오늘 그는 반드시 장사를 해야한다고 우기고 가게문을 열더니 지금은 어째서 갑자기 허둥지둥 가게문을 닫으려는 것인지 마여룡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장노실은 그의 팔을 붙잡더니 총총걸음으로 침실로 향했다.
침실로 들어서자마자 장노실은 품속에서 검은 나무 병을 꺼내 철진천에게 내밀었다.
[이것을 당신에게 주겠어요.]
그의 음성은 매우 초조해 보였다. 
[당신은 반을 먼저 삼키고 나머지 반은 꼭꼭 씹어서 삼키세요.]
철진천은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이게 무엇이오?]
장노실은 대답했다.
[이것이 발로 벽옥주(碧玉酒)예요. 반 시진만 지나면 당신은 상처가 절반은 치료될 거예요. 그리고 황혼이 질 무렵 당신은 상처가 거의다 치료되고 옛날의 내공을 거의다 찾을 수 있을 거예요.]
그는 탄식을 내쉬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당신이 그 때까지 살아 남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겠군요.]
철진천은 눈빛을 빛냈다.
그가 받아든 검은색 나무로 만든 병 속에는 천하에 둘도 없는 명약이 들어있는 것이다.
천하에서 가장 귀중한 약이 들어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 약을 먹지 않고 장노실에게 물었다.
[당신은 누구요? 당신은 어째서 벽옥주를 지니고 있소?]
장노실은 대답했다.
[이것은 당신이 상관할 필요가 없는 일이에요.]
철진천은 말했다.
[그렇지는 않소. 나 철진천은 평생 동안을 살아오면서 아무 일도 없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은 적이 없소. 내가 만약 당신이 누구인지 모른다면 어떻게 당신의 약을 먹을 수 있겠소.]
은원이 분명한 남자들은 본래 차라리 죽을지언정 이와 같은 일을 원하지 않는 것이다.
마여룡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당신은 그 약을 복용하도록 하십시오. 그에게 은혜를 입었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무슨 보답을 해야되겠다고 생각하지도 마십시오.]
철진천은 물었다.
[어째서?]
마여룡은 대답했다.
[왜냐하면 그는 나의 친구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의 친구도 되는 것입니다. 친구 사이에는 누가 누구에게 좋은 일을 해주고 누가 누구에게 보답을 한다는 그런 말이 필요 없는 것입니다.]
철진천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병뚜껑을 열고 절반의 약을 삼켰다.
왕만무는 홀연 장탄식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철진천, 자네는 이제 나를 죽여도 좋아. 나는 지금 죽어도 아무 여한이 없네.]
사실 왕만무는 그를 격퇴한 사람이 한 명의 이름도 없는 하인이었다는 사실 때문에 죽어도 눈을 감지 못할 것같은 억울함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벽옥산장의 사람이 벽옥주를 가지고 있고 벽옥주를 가지고 있는 벽옥산장의 사람의 손에 패한 것이 아닌가. 
그러니 무엇이 억울하고 죽는다고 해서 무엇이 안타깝겠는가?
왕만무는 비록 그와 같은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철진천은 이미 잘 이해하고 있었다.
지금 모든 사람들은 장노실이 바로 벽옥산장의 제자이며 수백 년동안 벽옥산장의 제자들은 여자만 있어왔고 따라서 장노실은 의심할 여지도 없이 여자가 남자로 변장한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마여룡은 두 눈으로 장노실을 응시하며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입을 열었다.
[당신은 지금에 이르러서도 시인하지 않을 생각이오?]
장노실은 말했다.
[무엇을 시인하라는 것입니까?]
마여룡은 말했다.
[당신이 바로 대완이란 사실을 시인하란 말이오.]
장노실은 끝내 탄식하며 대답했다.
[맞아요. 내가 바로 대완이에요.]
장노실은 과연 대완이었다.
바로 마여룡이 자나깨나 생각하던 대완이었다.
그녀 역시 마여룡을 언제나 생각하고 있지 않았을까?
그녀가 언제나 마여룡을 생각하고 있었다면 그녀는 어찌하여 마여룡으로 하여금 그녀가 바로 그가 항상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도록 하지 않았을까. 
마여룡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여자들의 마음은 원래 남자들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대완은 반가운 마음에 자기도 모르게 마여룡의 손을 잡았다.
마여룡도 그녀의 손을 굳게 움켜잡았다.
그러나 갑자기 대완은 얼른 손을 빼냈다.
그러더니 냉랭히 입을 열었다.
[철진천의 무공이 회복되고 있으니 왕만무도 죽을 필요가 없고 당신도 죽을 필요가 없군요. 기회가 오기만 하면 당신들은 즉시 뚫고 나갈 수가 있을 거예요.]
마여룡은 대완이 손을 빼자 아쉬운 생각이 들었으나 곧 자기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입을 열었다.
[우리는 도망간다고 치고 당신은....]
갑자기 사옥륜이 외쳤다.
[당신들은 어째서 나를 도외시하는 거예요? 나는 어떻게 해야 하죠?]
대완은 그 말을 듣더니 사옥륜을 바라보았다.
사옥륜의 눈동자에는 분노와 공포와 원한이 가득 서려 있었다.
사옥륜은 노성을 질렀다.
[너는 어째서 나를 이 모양으로 만들어 놓았느냐?]
대완은 말했다.
[정말 죄송해요. 그러나 당신은 나를 믿어주셔야 돼요. 저는 절대로 당신에게 해로운 짓을 하려고 한게 아니에요.]
사옥륜은 물었다.
[너는 어째서 이따위 짓을 했느냐?]
대완은 대답했다.
[나는 당신이 구봉성에게 시집가지 못하게 하려고 그랬어요. 우리들은 어렸을 때부터 함께 자란 사이에요. 저는 절대로 당신이 그렇게 악독하고 교활하고 음험한 악인에게 시집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어요.]
마여룡은 깜짝 놀라서 물었다.
[그녀가 바로 벽옥부인의 딸이란 말이오?]
대완은 대답했다.
[그래요. 벽옥부인이 당신들을 한매곡에 초대한 것은 바로 한 명의 사위를 고르기 위함이었어요.]
마여룡은 물었다.
[그날 당신도 갔었소?]
대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나는 갔을 뿐만 아니라 친히 그 자리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지켜보고 있었어요.]
친히 그 자리에서 모든 일을 지켜보았다면 그 누구라도 마여룡을 흉수라고 인정했으리라. 그런데 어째서 대완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말인가.
대완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나 나는 반드시 그 가운데 음모가 있다는 것을 알았죠.]
마여룡은 즉시 물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했소?]
대완은 대답했다.
[왜냐하면 그 가운데는 공교로운 점이 너무나 많았어요. 나는 공교로운 일이 너무나 많다는 것은 진실이라고 믿지를 않아요.]
눈덮힌 땅구덩이, 소완이 주었다는 주머니 속의 옥, 금진림의 금창은 바로 그 옥을 찔렀던 것이다.
절대사와 팽천패는 때맞추어 그곳에 나타났고....
이런 공교로운 것이 모두 동시에 일어났으니 이것은 우연이라고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많았던 것이다.
대완은 다시 말을 이었다. 
[벽옥부인은 나를 보고 그곳에 가서 사윗감을 물색하라고 하셨어요. 이번 사건은 대소저의 평생 행복과 관계되는 일이기 때문에 나는 절대로 경솔하게 판단할 수 없었어요.]
그녀는 마여룡을 응시하며 말했다.
[그러기 때문에 나는 당신을 시험해 보았던 거예요.]
눈덮힌 땅바닥에 구덩이를 파고 마여룡의 눈에 뛴 것이 그녀가 마여룡을 첫 번째로 시험한 것이었다.
대완은 말했다.
[만약 당신이 그때 나를 구해주기 위해서 멈추지 않고 계속 도망쳤다면 그날 나는 당신을 쫓아가 죽여버리고 말았을 거예요.]
한 명의 도망치는 흉수는 절대로 생명부지의 못생긴 여자를 구원하기 위하여 도망을 멈출 수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추위를 무릅쓰고 옷을 벗어서 덮어주고 말에 태워 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 시험 이후에도 또 한 번 또 한 번 시험은 계속됐던 것이다.
대완은 말했다.
[몇 차례에 걸쳐 당신을 시험한 끝에 나는 당신을 비로소 당신이 절대로 음험하고 악독한 사람이 아님을 알았고 나는 구봉성에게 의심을 품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다만 구봉성의 음모와 계획은 너무나 주도면밀하고 치밀하여 나조차도 그의 음모를 파헤칠 수 없었던 겁니다. 비록 내가 당신이 억울하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당신의 억울함을 씻어 줄 방법은 없었던 것입니다.]
그녀는 가볍게 탄식하며 다시 말을 이었다.
[내가 아무런 증거도 없었기 때문에 벽옥부인은 당신이 무고하다는 사실을 믿지 않을 것 같았고 당신을 믿도록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증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마여룡은 쓴 웃음을 지었다.
[벽옥부인이 나를 믿어준다고 할지라도 절대사 일행은 나를 놓아주지 않을 것이오.]
한 명의, 강호의 모든 사람에게 흉수로 지목된 사람이 어떻게 벽옥산장의 사위가 될 수 있다는 말인가?
대완은 대답했다.
[나중에야 나는 알았어요. 내가 당신의 뒤를 쫓고 있는 동안 벽옥부인은 이미 구봉성을 사위로 맞이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을요. 심지어 혼인 날짜까지 이미 결정되었어요.]
왕만무는 홀연 입을 열었다.
[그 일에 대해서는 나 역시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구려.]
대완은 말했다.
[벽옥부인이 한번 결정한 일은 뜯어 고치는 적이 없어요. 내가 증거를 확보하기 전에는... 구봉성의 음모를 증명하기 전에는 벽옥부인은 그 혼인을 취소하지 않을 거예요.] 
그런데 구봉성은 일을 치밀하게 했기 때문에 자기에게 불리한 증거를 남기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구봉성은 친히 마여룡에게 자기의 음모를 밝혀준 적이 있었다.
그러나 마여룡이 그 말을 들을 때 다른 사람이 주변에 없었던 것이다. 마여룡은 그 말을 해보아도 다른 사람들은 오히려 그가 일부러 구봉성을 모함하는 것이라고 믿었으며 도리어 마여룡 자신이 흉수라는 것을 확신하게 만드는 데 일조했을 뿐이었다.
구봉성은 먼저 스스로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그 후에 다시 교묘하게 살아났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의심할 여지를 봉쇄했던 것이다.
대완은 다시 탄식하며 말했다.
[그의 이번 계획은 치밀하고 주도면밀하여 나조차도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그러나 나는 그 구봉성이 대소저와 결혼하는 것을 도저히 묵과할 수가 없었던 거예요.]
사옥륜은 탄식하며 입을 열었다.
[이제보니 그렇게 된 일이었구나.]
대완은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당신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저는 마음 속으로 언제라도 당신을 나의 자매처럼 생각해 왔어요.]
사옥륜은 쓴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너는 갑자기 손을 써서 나를 제압해 버렸지.] 
대완은 말했다.
[저로서는 그 방법밖에 없었어요.]
그녀는 시간을 두고 증거를 수집해야 했다.
벽옥부인은 이미 혼인날짜를 잡아놓았는데 만약 신부가 갑자기 사라진다면 혼례식을 당연히 올릴 수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대완은 말했다.
[나는 많이 생각해 보았어요. 가장 좋은 방법은 당신들 두 사람을 감추어두고 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 않게 하는 것이었어요. 그러면 당신은 마여룡이 어떤 사람인지 점점 이해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대완은 마여룡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일부러 당신으로 하여금 대소저가 기가막히게 아름다운 여자라는 사실을 알도록 하고 그 후에 당신을 시험해보기 위해서 당신들 두 사람이 한 방에서 잠을 자도록 했던 거예요. 그리고 당신이 대소저에게 무례한 짓을 하는지 하지 않는지 두고 본 거예요.]
마여룡은 물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은 하인으로 변장하고 곁에서 우리들을 지켜보았군.]
사옥륜이 말했다.
[대완은 남녀 두 사람이 있으니까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겠죠.]
대완은 말했다.
[만약 당신이 대소저에게 엉뚱한 짓을 했다면 당신은 지금까지 살아있지 못했을 거예요.]
사옥륜은 가볍게 탄식하며 말했다.
[대완, 너는 잘못 보지 않았다.]
그녀의 음성은 매우 부드럽게 변해 있었다.
[마여룡은 확실히 나쁜 사람이 아니다.]
마여룡은 이제서야 사건의 내막을 파악할 수 있었다.
철진천이 갑자기 길게 탄식하며 말했다.
[그는 본래 좋은 사람이오. 이번 일도 원래 좋은 일인데 애석하게도 그는 나쁜 친구를 사귄 것 뿐이오.]
마여룡은 말했다.
[친구는 친구인 것이오. 친구에는 절대로 나쁜 친구와 좋은 친구가 없소. 왜냐하면 진정한 친구라면 친구를 팔아먹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오. 그러한 친구 사이라면 애초에 친구라는 말을 쓸 수가 없을 것이오.]
그는 엄숙하게 말을 계속했다.
[나는 신을 믿지 않고 부처를 믿지 않습니다. 나는 다만 친구를 믿습니다.]
철진천이 말했다.
[나는 자네의 뜻을 알겠네. 그러나 내가 없었다면 자네의 신분은 탄로나지 않았을 것이네. 그러니 결국 내가 자네에게 누를 끼친 셈이 되었어.]
마여룡은 말했다.
[당신은 혹시 나를 사귄 것을 후회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나로 하여금 당신이라는 친구를 사귄 것을 후회하도록 만들려는 것입니까?]
철진천은 말했다.
[나는 후회하지 않네. 나는 알고 있네. 자네가 절대로 나를 사귄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렇다. 우정이란 단어속에 후회라는 두 글자는 없는 것이다.
왕만무가 홀연 탄식했다.
[당신들의 우정을 보고서야 나는 비로소 나란 놈이 예전에 친구를 사귄 적이 없다는 것을 알았소.]
마여룡의 비밀은 확실히 철진천으로 인해서 탄로난 것이었다.
마여룡의 비밀이 탄로나지 않았다면 그 누가 장노실이 바로 대완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을까. 그리고 그녀가 벽옥산장의 문하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었겠는가.
만약 마여룡을 위해서가 아니었다면 그녀의 이 계획이 어찌 중도에서 무산되고 말았겠는가.
그러나 대완은 철진천을 원망하지 않았고 그녀가 한 일을 후회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마여룡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근본적으로 이 일을 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마여룡은 다시 그녀에게 물었다.
[우리들이 포위되어 있을 때 그 벽록색의 짙은 안개가 사방을 꽉 메웠는데 그것은 당신이 뿌린 것이겠지?]
대완은 말했다.
[그것은 안개가 아닙니다. 그것은 벽옥산장의 취한연(翠寒煙)이라는 것으로 안개보다 더욱 짙고 흩어지는 속도가 늦기 때문에 일단 그것이 살포되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마여룡은 말했다.
[당신이 취한연을 살포한 것을 보고 그들은 비로소 이 사건이 벽옥산장과 관계있다는 것을 알았겠군.]
대완은 말했다.
[벽옥산장과 관계되는 사람이 이 사건과 관계되어 있고 이 잡화점에 숨어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들은 감히 경거망동 못하고 있는 거예요. 그들은 지금은 함부로 움직이지 않고 있지만 때가 되면 쳐들어올 거예요. 우리에게도 기회가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제가 보기에는 이미 도망치기는 힘든 상황인 것 같아요.]
마여룡은 물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시오?]
대완은 반문했다.
[당신은 조금전에 무엇을 보았나요?]
마여룡이 말했다.
[조금 전에는 칠십여 명의 흑의인을 보았소.]


28. 사곡(死谷)


대완은 말했다.
[그리고 또 무엇을 보았나요?]
마여룡은 말했다.
[검은 색의 둥근 돌맹이를 보았소.]
검은 색의 돌맹이가 어째서 무서울까.
그것을 삼켜야 되는 것도 아니고 어떤 사람이 그것으로 머리통을 때리는 것도 아닌 이상 그것이 흰 색이든 붉은 색이든 보라색이든 노란 색이든 검은 색이든 그런 돌맹이가 무서울 이유는 없을 것 같았다.
이상한 것은 대완만 무서운 표정을 짓는 것이 아니라 사옥륜 역시 매우 두려운 표정을 짓고 있다는 것이었다.
사옥륜은 입을 열었다.
[당신들이 본 그 검은 돌은 혹시 매우 매우 검나요? 또 둥글고 검은 빛이 나나요?]
마여룡은 대답했다.
[그렇소.]
사옥륜은 다시 물었다.
[당신은 어디에서 그것을 보았나요?]
마여룡은 대답했다.
[흑의인들의 손에 있었소. 그들 각자는 검은 돌이 가득 담긴 대바구니를 들고 있었소.]
사옥륜은 물었다.
[그래서요?]
마여룡은 대답했다.
[그후 그들은 그 검은 색 돌을 한 알 한 알 땅바닥에 깔아 놓았소.]
사옥륜은 더 묻지도 않고 말하지도 않았다.
그녀의 눈에 대완과 마찬가지로 매우 공포스러운 표정이 떠올랐다. 그것은 마치 한 명의 어린애가 그가 꿈에 만났던 귀신을 길을 가다가 갑자기 만난 것과 같은 표정이었다.
그들을 어째서 그 검은 돌맹이를 그토록 두려워한단 말인가?
철진천 역시 호기심을 느끼고 참지 못하고 물었다.
[이 부근에는 그와 같은 검은 색 돌맹이가 없습니까?]
마여룡이 대답했다.
[없습니다. 설사 몇 개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많을 수는 없습니다.]
왕만무는 마여룡을 대신해서 보충설명을 했다.
[나는 이곳까지 오는 동안 이미 이 부근 수백 리 지역을 모두 다녀 보면서 조사해 보았소. 그런데 이 부근에는 검고 둥글며 윤이 나는 그런 돌맹이는 보이지 않았소.]
철진천은 물었다.
[그렇다면 그 돌맹이는 반드시 몇 백리 밖에서 운반하여 온 것이겠군요.]
왕만무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철진천은 더욱 이상하게 생각했다.
[어째서 몇백 리 밖에서부터 돌맹이를 운반해다가 길바닥에다가 깐다는 것인가요?]
대완은 말했다.
[왜냐하면 그가 미치광이이기 때문이에요. 진짜 미치광이들은 두려울 것이 없죠. 두려운 것은 겉으로는 정상인 것같지만 기실 내면이 미친 미치광이들이죠. 평상시에는 규칙을 잘 지키고 예의가 바르지만 그러나 일단 발작했다면 진짜 미치광이들조차도 하지 않을 짓을 해대는 그런 미치광이들이야말로 무서운 거죠. 한 가지 가장 두려운 점은 누구도 그가 미친 점이 발작했다는 사실을 모르고 더욱이 그가 언제 발작하는지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그를 방지하기란 어렵죠. 일반적인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을 도덕군자로 알고 있는데 그 미치광이는 그를 정상으로 보는 사람의 눈과 귀를 빼어서 개의 먹이로 던져버리죠. 그렇게 되면 눈알이나 코빼기가 떨어져나간 후에야 비로소 자기가 사람을 잘못봤다는 사실을 알게 되죠. 내가 말하는 이 미치광이는 아주 골치가 아픈 존재입니다.]
철진천이 물었다.
[당신은 그런 미치광이를 본 적이 있습니까?]
대완은 대답했다.
[글쎄요. 아직은 부딪친 적은 없습니다.]
그녀는 다시 한숨을 내쉬더니 입을 열었다.
[그러나 머지않아 보게 될 것입니다.]
사옥륜은 갑자기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 사람이 정말 올 수 있을까?]
대완은 말했다.
[그는 반드시 옵니다. 취한연이 그를 끌어들였죠.]
마여룡은 말했다.
[당신은 그 검은 돌맹이를 보고 그가 올 것을 아는 것입니까?]
대완은 대답했다.
[그래요. 이 세상에는 다만 그가 사는 곳에서만 그런 종류의 검은 돌이 나거든요.]
마여룡은 물었다.
[그는 어떤 곳에서 살고 있소?]
대완은 대답했다.
[사곡(死谷)에서 살고 있어요. 사곳에는 아무 것도 없고 단지 그런 종류의 검은 돌만 있죠. 그곳에는 인적이 드물고 나는 새도 지나가지 않고 있으므로 그 누구도 그런 곳에서는 살아갈 수 없지만 뜻밖에도 그는 아직 살아있고 아주 잘 살고 있는 것 같군요.]
마여룡은 물었다.
[그는 무엇 때문에 그런 곳에서 살고 있습니까?]
대완은 대답했다.
[그 스스로 간 것은 아니죠. 남에게 핍박을 받아서 어쩔 수 없어서 간 것이죠.]
마여룡은 물었다.
[누구에게 핍박을 받아서 간 것이오?]
대완은 대답했다.
[세상에 단 한 사람만이 그 사람을 이길 수가 있어요. 그러므로 그 단 한 사람만이 그를 그곳으로 보낼 수 있었고 그가 하기 싫은 짓을 할 수 있도록 만들 수 있었던 거예요. 당신은 삼십 년 전 강호에 무십삼(無十三)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요?]
마여룡은 물었다.
[오십삼(吳十三) 말이오? 그는 어째서 무십삼이라고 불리워지는 것이오?]
대완은 대답했다.
[왜냐하면 그 자신은 자기자신을 가리켜 이렇게 말했어요. 자기는 이름이 없고 성이 없고 부친이 없고 아우가 없고 누나가 없고 여동생이 없고 아들이 없고 딸이 없고 처가 없고 친구가 없는 사람이라고 했어요.]
마여룡은 물었다.
[없는 것을 다 합쳐봤자 열두 개밖에 되지 않소? 나머지 한 가지 없는 것은 무엇이오?]
대완은 말했다.
[적이 없는 거죠.]
마여룡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적이 없다고? 진짜 적이 없었소?]
대완은 대답했다.
[삼십 년 전 그는 불과 이십삼 세의 나이였어요. 그는 강호를 휩쓸고 다녔으며 천하에 적수가 없었어요.]
마여룡은 여전히 믿을 수가 없었다.
[삼십 년 전이라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오. 어째서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을까요? 
철진천은 홀연 입을 열었다.
[나는 그 소문을 들어 알고 있지. 그 해는 바로 경자(庚子)년이었는데 나는 그때 막 열아홉 살이 되어 있었지. 그해 구월 구일 나는 그의 일름을 들었네.]
마여룡이 물었다.
[당신은 정말 똑똑히 기억하고 계시는군요.]
철진천이 말했다.
[왜냐하면 그날이 바로 내 생일이었기 때문이라네. 그는 바로 그날 하루 동안에 연산운(連山雲)을 격패시켰네.]
연산운은 그 당시의 최고 고수였다.
횡운차일칠칠사십구검(橫雲遮日七七四十九劍)이라는 검법으로 강호를 진동시켰으며, 그의 검법은 회풍무류칠칠사십구검(廻風舞柳七七四十九劍)을 만든 파산(巴山) 고도인(顧道人)의 아래가 아니었다.
철진천은 말했다.
[연산운은 단 일 초 만에 무십삼에게 패했네. 한 명의 강호에 처음 들어온 나이가 젊은 무십삼은 맨손으로 그의 칼을 빼앗아 버린 것이지. 연산운은 칠칠사십구검의 제 일초도 펼치기 전에 칼을 빼앗기고 말았네.]
마여룡은 물었다.
[정말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그렇다면 정말 놀라운 일이군요.]
철진천은 말했다.
[그 당시 이런 소문까지 들렸지. 옛날의 그 유명한 천하를 경동시킨 검객 연십삼(燕十三)조차도 그보다는 검술의 조예가 낮았다는 소문이 있었지. 그러나 그후 삼 개월 후에 무십삼은 강호에서 사라졌다네. 삼 개월 딱 구십 일 만에 사라졌지.]
마여룡은 참지 못하고 물었다.
[당신은 어떻게 딱 구십 일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철진천은 대답했다.
[왜냐하면 구월 구일부터 그는 강호에서 가장 유명한 마흔세 사람의 고수들은 연달아 격패시켰다네. 최후에는 철검문(鐵劍門)의 장문인(掌門人)을 격패시켰지.]
마여룡은 물었다.
[그 후에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철진천은 대답했다.
[그 후에 그는 사라졌지.]
마여룡은 물었다.
[사라지다뇨?]
철진천은 대답했다.
[그 날 이후로 그는 종적이 사라진 것이지. 강호에서 다시는 그에 관한 소문을 들을 수 없었다네.]
[아무도 그의 행방을 모른다는 말입니까?]
철진천이 말했다.
[그렇다네.]
이때 대완이 끼어들었다.
[아닙니다. 그의 행방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도 알고 있습니다.]
그녀는 다른 사람은 모르는 것을 알고 있었다.
대완은 말했다.
[철검문의 장문인을 격패시킨 그날 이후로 무십삼은 벽옥산장을 찾아왔습니다. 그 날은 그해 섣달 그믐이었죠. 무십삼은 벽옥부인과 장원밖의 비취파(翡翠坡)에서 결전을 벌였는데 그 일전에서 당연히 무십삼이 패배한 것입니다. 벽옥부인이 이겼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없지요. 이상한 것은 벽옥부인은 결코 그를 죽이지 않고 다만 그를 사곡(死谷) 안에 가둬두고 다시는 사곡 밖으로 나오지 않겠다는 맹세를 하도록 했습니다. 풀 한 포기 자라지 않고 나는 새도 지나가기 어려운 사곡은 북쪽 끝의 황량하고 추운 성숙해와 마찬가지로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무십삼은 사라졌으며 세상사람들은 빠른 속도로 그를 잊어버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결코 그를 잊지 않고 있었지요. 왜냐하면 벽옥부인은 항상 말씀하셨어요. 만약 세상에 사곡에서 생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일단 복수하려고 마음을 먹기만 한다면 자기의 맹세를 어기고 사곡 밖으로 나올 거라고 말씀하셨죠.]
마여룡은 물었다.
[사곡 안에는 단지 그 한 사람만 살고 있었소?]
대완은 대답했다.
[단지 그 혼자였죠.]
마여룡은 말했다.
[그러나 지금 그는 최소한 여든네 명의 부하를 거느리고 있지 않소?]
대완은 탄식하며 말했다.
[애석하게도 벽옥부인조차도 그가 어떻게 사곡에서 살아남았는지 그 사람들이 어떻게 왔는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인께서는 말씀하신 적이 있지요. 다른 사람은 상상도 못하는 일을 그는 능히 할 수가 있다고요.]
바로 이 때였다. 
갑자기 밖에서 맑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더니 지극히 우아하고 유쾌한 음성이 들려왔다.
[대소저와 아가씨께서 나를 칭찬해 주시고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시니 감사하오. 사실 그런 일은 나 스스로 할 수가 없는 일이었소. 다만 나의 운이 특별히 좋았다고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오.]
대완은 소리쳤다.
[당신이 바로 무십삼입니까?]
밖에 있던 사람이 대답했다.
[내가 바로 무십삼이오.]
대완은 일부러 탄식하며 말했다.
[당신은 귀가 밝은 사람이군요. 쥐새끼처럼 남이 하는 말을 엿듣고 있다니 말예요.]
그녀는 그를 격노하게 만들어 그 스스로 집안으로 들어오도록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밖에 있던 사람은 껄껄 웃더니 유쾌한 음성으로 말했다.
[작은 소리를 듣는 것은 내가 사곡에 있으면서 저절로 습득한 기능이오. 그러니 그것을 가지고 너무 나무라지 말구려. 내가 사곡에서 외롭게 살면서 그동안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그 누구도 보이지 않았소. 답답해서 나는 미칠 지경이 되었었소. 그렇기 때문에 나는 다른 사람이 들을 수 없는 작은 소리를 듣는 방법을 개발했던 것이오.]
대완은 물었다.
[무슨 소리를 들었다는 것인가요?]
무십삼은 대답했다.
[독사들이 땅밑에서 교미하는 소리, 작은 벌레들이 땅 위를 기어가는 소리, 뱀이 벌레를 잡아먹는 소리, 거북이가 알을 낳는 소리, 그런 소리를 들었소.]
무십삼은 껄껄 웃더니 다시 말을 계속했다.
[이런 소리를 여러분들은 아마 들어보지를 못했을 것이오.]
그 말은 사실이었다. 
무십삼은 다시 말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소리를 놓치지 않고 다 들을 수 있었소. 아주 똑똑히 들을 수 있었소.]
한 사람이 만약 그런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멀리서도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무십삼은 다시 말했다.
[다행히 지금의 나는 더 이상 그런 소리를 들을 필요가 없어졌소. 왜냐하면 그로부터 오 년 후에 나는 나와 함께 대화할 수 있는 많은 사람을 찾아냈기 때문이오. 그 사람이 살지 못하던 사곡 안에는 지금 이미 팔백이십사 명이 살고 있소. 내가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하면 그들도 나에게 무슨 말을 하오.]
대완은 물었다.
[당신은 어째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데려다가 당신의 말 상대로 삼았나요?]
무십삼은 웃으며 말했다.
[왜냐면 나의 운수가 매우 특별히 좋았기 때문이오. 그 사곡 안에는 검은 돌을 제외하고도 유별난 물건이 있었소.]
대완은 물었다.
[유별난 물건이 무엇인가요?]
무십삼은 유쾌하게 웃더니 말했다.
[황금이오. 나는 보증하는데 여러분 중에 그 누구도 그렇게 많은 황금을 본 적이 없었을 것이오. 그렇기 때문에 나의 기분은 날이 갈수록 유쾌해졌고 무공도 점점 진보했소. 나는 마침내 사곡에서 나가 벽옥부인과 벽옥산장의 대소저를 만나기로 결심했소. 만약 그녀들이 아니었다면 어찌 오늘의 내가 있었겠느냔 말이오.]
대완은 참지 못하고 물었다.
[당신은 대소저가 여기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나요?]
무십삼은 웃으며 말했다.
[나는 당연히 알 수 있었소. 한 사람이 그렇게 많은 황금을 지니게 된 후에는 모르는 일이란 거의 없게 되는 것이오.]
대완은 말했다.
[당신은 어째서 안으로 들어와 그녀를 만나보지 않나요?]
무십삼은 말했다.
[나는 급하지 않소. 나는 이미 이십 년을 기다렸는데 며칠 더 기다린다고 해서 무엇이 대수롭겠소.]
대완은 물었다.
[당신은 무엇을 기다리나요?]
무십삼은 대답했다.
[나는 이미 사람들을 파견했소. 가장 좋은 비단 옷감을 준비하고 세상에서 가장 수를 잘 놓는 수예가를 초청해 오고 그리하여 대소저의 몸에 맞게 예쁜 옷을 만들기로 했소. 그리고 또 사람을 북경성으로 보내서 가장 좋은 화장품을 가지고 오도록 했소.]
무십삼은 껄껄 웃으며 말을 이었다.
[사 대소저가 새옷으로 갈아입고 아름답게 치장한 후에 나는 자연히 들어가 만나보게 될 것이오. 지금은 나는 급할 것이 없소. 왜냐하면 나는 더러운 여인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오.]
대완은 그 말을 듣는 순간 속으로 깜짝 놀랐다.
무십삼이 예쁜 여인을 좋아한다는 것은 사옥륜이 아름답게 치장하기를 기다려 사옥륜을 범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철진천도 그 눈치를 채고 있었다.
그는 나직이 대완에게 물었다.
[그는 혼자이겠죠?]
대완은 말했다.
[아마 지금은 그럴 거 같네요.]
철진천은 말했다.
[그것 참 잘 되었소. 그도 한 사람이라면 나도 한 사람이오. 내가 어찌 나가서 그를 보지 못하겠소?]
밖의 무십삼이 즉시 말했다.
[그렇다면 빨리 나와 보시오. 나는 이미 여기서 싸울을 벌일 준비를 하고 여러분의 왕림을 기다리고 있소.]
철진천은 껄껄 웃었다.
[나도 마침 손이 근질근질하던 참이었다.]
그는 홀연 왕만무에게 입을 열었다.
[자네의 생각은 어떠한가?]
왕만무도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나도 죽을 각오가 되어 있소.]


29. 도살(屠殺)


황폐해진 공터에는 둥글고 수정처럼 빛나는 둥근 돌이 가득 깔려 있었다.
그 한 가운데에 나무의 질이 극히 좋고 조각이 정교하게 된 침대가 놓여 있었다. 
침대 뒤에는 하얀 비단으로 된 휘장이 높히 쳐져 있었고 그 옆에는 한 명의 털이 무성하고 새파란 눈동자가 깊히 들어가 박힌 파사노(波斯奴)가 서 있었다.
그 파사노는 파란 실이 달린 붉은 모자를 쓰고 금색의 수실로 수놓은 검은 장포를 입고 붉은 허리띠를 맸으며 손에는 만도(彎刀)를 쥐고 있었다.
무십삼은 바로 그 침대 위에 앉아 있었다.
무십삼은 보기에 절대로 이름도 없고 성도 없고 부모도 없는 고아처럼 보이지 않았고 더욱더 미친놈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의 얼굴은 매우 희었고 매우 영준했으며 태도는 우아하고 온화했으며 얼굴이 너무 희어 다른 사람은 그의 실제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워 보였다.
우아하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미소와 화려하고 고귀한 복장은 더 사람들로 하여금 근본적으로 그의 나이를 추측할 수 없게 했다.
싸움은 아직 시작되기 전인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벌써 구경꾼들이 꽤 많이 모여 있었다.
절대사 일행도 뜻밖에도 그들 구경꾼 틈에 섞여 있었다. 
이곳에는 그 한 개의 침대 외에는 의자도 없었고 탁자도 없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앉아 있을 만한 물건이 없는 것이었다.
그 침대를 제외하고는 이곳에는 근본적으로 아무 물건도 없었다.
철진천과 왕만무가 걸어나오자 무십삼은 매우 겸손한 태도로 말했다.
[자, 앉으십시오.]
그러면서 무십삼은 공손하고 진지한 어조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여러분, 여러분께서도 어서 자리에 앉으십시오. 그런 다음에 이야기를 나눕시다.]
제일 먼저 앉은 사람은 뜻밖에도 절대사였다. 
그가 앉을 의자는 근본적으로 존재하지 않았는데 그는 아무 표정도 없이 허공에 엉덩이를 갖다대고 마치 의자에 앉는 것처럼 엉거주춤 앉는 것이었다.
그러자 다른 구경꾼들도 모두 기마자세를 하고 의자에 앉은 듯한 태도를 취했다.
앉지 않은 사람은 철진천 한 사람뿐이었다.
그는 그 자리에 우뚝 서 있었다.
무십삼은 그에게 물었다.
[귀하는 어째서 자리에 앉지 않으시오?]
철진천은 대답했다.
[나는 서서 음식을 먹는 것을 좋아하오. 서서 먹으면 더욱 맛이 좋은 법이오.]
무십삼은 손뼉을 치면서 웃었다.
[일리있는 말씀이군요. 자, 여러분 마음껏 드십시오. 오늘 저는 여러분을 위해서 많은 음식을 준비했습니다. 동해에서 나온 오어(烏魚), 북해에서 나온 어시(魚翅), 남해의 연와(燕窩)와 용하(龍蝦), 경성의 양고(羊羔)와 고압(膏鴨), 강남의 작어(雀魚)와 증해(蒸蟹)를 모두 준비했습니다. 거기다가 또 한 마리의 소를 잡았습니다. 그러니 여러분께서는 마음놓고 실컷 드십시오.]
그가 말한 이런 물건들은 근본적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아주 겸손하고 정중한 태도로 다시 말하는 것이었다.
[자, 마음껏 드십시오.]
그러면서 절대사를 향하여 말했다.
[대사님은 고기를 안드시는 것을 알고 제가 약간의 소채를 준비했습니다.]
제일 먼저 식사를 한 사람은 절대사였다.
절대가사 음식을 먹는 시늉을 하자 다른 사람들도 덩달아서 음식을 먹으면서 맛있다고 칭찬을 하는 것이었다.
거기에 모인 몇 사람들은 모두 무림에서 유명한 사람들이었고 강호에서 떠받들어지는 영웅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마치 어린애들이 소꼽장난을 하는 것처럼 젓가락을 쥐고 음식을 집어먹는 시늉을 하는 것이었다.
어린이들의 소꿉장난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들 자신도 이런 종류의 소꿉장난에 재미를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보기에 우스워보였지만 그들의 표정은 매우 엄숙했다.
절대사를 제외하고 모든 사람들의 표정은 한 쌍의 보이지 않는 손이 목을 조이고 있는 것을 느끼고 있는 것같은 얼굴이었다.
절대사의 얼굴에는 아무 표정도 없었다.
그는 다만 한 젓가락 한 젓가락 천천히 소채를 집어서 천천히 씹어 먹는 시늉을 할 뿐이었다.
그가 씹어먹는 것은 분노일까, 공포일까, 아니면 쓰디쓴 물일까?
그는 이름을 떨친 이후로 그 어떤 사람 앞에서도 이와 같이 체면을 잃는 일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지금 존재하지도 않는 존재하지도 않는 의자에 앉아 있지도 않는 음식을 꼭꼭 씹어서 삼키고 있었다.
철진천은 그 모양을 보며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그가 어찌 절대사가 무슨 까닭으로 이 모양이 되었는지 알 수 있겠는가.
(절대사는 무엇 때문에 이 미치광이를 이토록 두려워하는 걸까.)
그는 지금에야 비로소 무십삼이라는 사람이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는 사실을 절실히 느꼈다.
대완이 그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 주었지만, 알고보니 대완이 자세히 설명한 것은 그의 미치광이 짓을 형용하기에는 만분의 일도 미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무십삼은 철진천을 노려보았다.
철진천 한 사람만이 젓가락질을 하지 않고 있었다.
[당신은 어째서 음식을 들지 않으시오?]
철진천은 되물었다.
[뭘 먹으라는 것이오?]
무십삼은 말했다.
[양고기도 있고, 생선도 있고, 이것들은 모두 맛이 아주 좋소. 거위 고기도 푹 익혀서 맛이 아주 좋소이다. 
철진천은 물었다.
[거위 고기가 어디 있단 말이오? 생선은 또 어디에 있소?]
무십삼은 눈쌀을 찌푸렸다.
[당신은 보이지 않는단 말이오?]
철진천은 잘라 말했다.
[나는 보이지 않소.]
천진천은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보이는데 당신은 어째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오?]
철진천은 마라했다.
[왜냐하면 나는 그들만큼 총명하지 않기 때문이오. 당신이 말하는 그 물건들은 아마 총명한 사람들만 볼 수 있는 모양이오.]
무십삼은 그를 한참동안 바라보다가 갑자기 껄껄 웃었다.
[알고보니 당신은 바보였군. 이렇게 맛있는 음식은 바보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법이지.]
그는 갑자기 말을 멈추더니 얼굴에 극도로 분노한 표정을 떠올리고 얼굴을 홱 돌리더니 흉악한 눈초리로 풍초범을 바라보며 매섭게 물었다.
[너는 어째서 이런 짓을 했느냐?]
풍초범은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제가 무슨 짓을 했습니까?]
무십삼은 말했다.
[너는 어째서 맛있는 여러가지 음식을 놔두고 하필이면 내가 사랑하는 강아지를 잡아먹었느냐?]
풍초범은 어리둥절해서 말했다.
[당신의 강아지라니요? 당신의 강아지가 어디 있습니까?]
[조금전에만 해도 있었는데 지금은 네가 껍질과 뼈까지 모조리 먹어치웠다.]
그는 보기에 매우 분노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매우 안타까워하는 것 같았다. 
그는 말했다.
[그 강아지는 내가 내 아들처럼 귀여워하던 강아지였다. 네가 어찌 감히 그것을 먹어치운단 말이냐? 너는 어쩌면 이다지도 잔인하냐?]
풍초범은 안색이 변했다.
봉천대협(奉天大俠) 풍초범은 삼십 년 동안 강호를 누비며 이름을 날렸다. 
그의 한 쌍의 육십 근이나 나가는 혼원철패(混元鐵牌)를 휘두르며 백산흑수(白山黑水) 사이를 주름잡았던 것이 아닌가.
그런데 지금 무십삼은 그에게 터무니없는 누명을 덮어씌우는 것이었다.
그는 절대사가 자기를 도와 이 미치광이와 목숨을 걸고 싸우기를 바랬다.
그들은 다년간 사귄 친구였으며 절대사는 최소한 그를 위하여 변명이라도 해주었으면 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를 편들어준 사람은 그가 믿고 있었던 절대사가 아니고 그가 줄곧 원수처럼 미워했던 대도 철진천이었다.
철진천은 말했다.
[이곳에는 원래부터 한 마리의 개도 없었소. 큰개도 없었고 강아지 새끼도 없었소.]
무십삼은 말했다.
[너는 바보니까 당연히 보이지 않았겠지. 나는 친히 목격했다.]
철진천은 말했다.
[이번에 당신은 아마 잘못 봤을 것이오.]
무십삼은 말했다.
[정말로 이곳에 개가 없었단 말인가?]
철진천은 단언했다.
[절대로 없었소.]
무십삼은 홀연 얼굴에 신비한 미소를 띠더니 천천히 말했다.
[나는 있다고 말했다. 다만 풍초범이 먹어치웠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 강아지는 풍초범의 뱃속에 들어 있다. 당신은 나와 내기를 해볼 자신이 있는가?]
철진천은 물었다.
[무슨 내기를 한다는 것이오?]
무십삼은 낄낄 웃더니 말했다.
[강아지 새끼가 풍초범의 뱃속에 있는지 없는지 내기를 하자는 것이다. 자네의 목을 걸고 내기를 하자 이거야.]
철진천은 그 말을 듣는 순간 손발이 싸늘하게 식어오는 것을 느꼈고 위장이 뒤틀리며 구역질이 나는 것을 느꼈다.
그는 이미 이 미치광이가 무엇을 하려는지 알고 있었다.
풍초범 역시 그 눈치를 채고 홀연 크게 외치며 무십삼을 향하여 공격해 들어갔다.
그의 호조공(虎爪功)과 혼원철패는 관동(關東) 지방을 떨어울린 무림의 절기였다.
절대사가 그 순간 변하며 재빨리 소리쳤다.
[잠깐 멈추어라!]
그러나 그의 말은 너무나 늦어 있었다.
풍초범의 몸이 달려들었을 때 무십삽의 옆에 있던 파사노가 만도를 뽑아든 것이었다.
칼빛이 한 번 번뜩이더니 선혈이 소나기처럼 쫙 뿌려졌다.
이와 같은 방법은 한 사람의 뱃속에 강아지 새끼가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하기에는 가장 적합한 방법이었다.
이것은 일종의 가장 원시적이고 가장 야만적이며 가장 잔혹한 방법이었으며 미치광이들만이 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삼십 년 동안 강호를 주름잡았던 풍초범은 그 한 칼에 의해 배가 갈라지고 말았다.
모든 사람의 안색이 확 변했다.
어떤 사람은 참지 못하고 구역질을 했고 어떤 사람은 도망을 쳤고 어떤 사람은 맹렬히 무십삼을 향하여 공격해 들어왔다.
무십삼은 미친 듯이 웃었다.
그 웃음소리는 괴기하면서도 처량했고 소름 끼쳤다.
파사노가 휘두르는 칼은 연신 번뜩이고 있었고 칼이 한 번 번뜩일 때마다 한 명씩 죽어버렸다.
어떤 사람도 파사노의 한 칼을 피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파사노가 칼을 찍어올 때 벌써 한 조각의 검은 돌이 날아들어 그의 혈도를 마비시켜 놨기 때문이었다. 
그 검은 돌은 무십삼의 손아귀에서 날아나갔다.
무십삼은 가운데 손가락으로 검은 돌을 퉁겨내고 있었다. 파공성이 한 번 일어날 때마다 검은 돌은 상대방의 혈도를 때렸다.
혈도를 맞아 몸이 굳어진 순간 파사노의 칼은 어김없이 그 자를 죽여버리고 있었다. 능히 몸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절대사와 철진천뿐이었다.
그러나 그들도 침대 가까이에 육박해 들어갈 수는 없었다. 칼빛이 일고 피가 솟구쳤으며 뻘건 피보라는 시야를 가릴 정도였다.
바로 그때 그들은 마여룡을 보았다.
마여룡은 칼빛과 피비가 쏫아지는 속으로 뚫고 들어왔다.
그는 죽으러 들어온 것이 아니고 사람을 구하러 온 것이었다.
그는 차라리 죽을 지언정 이와 같은 잔혹한 현장을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는 사람을 구해서 돌아와야 했다.
그 순간 그는 근본적으로 자기가 죽고 사는 문제는 마음에 두고 있지 않았다. 그가 몇 사람을 구하여 잡화점 있는 곳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기진맥진하여 땅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가 목숨을 걸고 구해낸 사람은 누구일까.


30. 화교(花轎) 


마여룡이 정신을 차렸을 때 사방은 조용했다.
그는 자기가 침대에 놓여 있는 것을 알았다.
이 침대에 그는 처음으로 누워보는 것이었다.
사옥륜은 그 옆에 서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방 안에는 단지 그들 두 사람뿐이었다.
마여룡은 억지로 그녀에게 웃어보이며 물었다.
[사람은 어찌 되었소?]
사옥륜은 물었다.
[무슨 사람?]
마여룡은 물었다.
[내가 구해 돌아온 몇 사람 말이오.]
사옥륜은 대답하지 않고 도리어 반문했다.
[당신은 당신이 누구를 구해가지고 왔는지 아는가요?
마여룡은 말했다.
[나는 알고 있소.]
[철진천은 나와 함께 돌아왔소.]
사옥륜이 물었다.
[다른 사람이 누군지 아는가요?]
마여룡은 차분한 음성으로 말했다.
[또 한 사람은 절대사요. 절대사도 나와 함께 돌아왔소.]
그의 음성은 매우 차분했다. 그러나 사옥륜은 도리어 매우 격동된 어조로 물었다.
[당신 자신이 그를 구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나요?]
마여룡은 웃었다.
[내 어찌 알지 못하겠소?]
그는 뜻밖에도 웃었다.
어째서 그는 마땅히 웃으면 안 될때 웃는 것일까?
사옥륜은 더 격분한 어조로 물었다.
[당신이 알고 있었다구요? 절대사는 당신을 핍박하여 도망갈 수도 없게 만들었고 줄곧 당신의 목숨을 노렸어요. 그런데도 당신은 그를 구해주었다는 말인가요?]
마여룡은 말했다.
[내가 구해준 것은 사람이오. 단지 그가 사람이기 때문이오. 그가 미치광이의 손에 개죽음을 하는 것을 차마 두고 볼 수가 없었기 때문에 구해주었던 것이오. 그가 나의 친구가 되었든 원수가 되었든 마찬가지요.]
사옥륜은 매우 기괴한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더니 한참 후에 물었다.
[당신의 말을 진심인가요, 아니면 나에게 보여주려고 꾸민 것인가요?]
마여룡은 대답하지 않았다.
사옥륜은 한참 후에 말했다.
[나는 당신을 믿어요. 왜냐하면 당신은 조금 전에 목숨을 걸었으니까요.]
그녀는 홀연 탄식하며 말했다.
[나는 원래 당신이 그렇게 착한 사람인지 믿지 않았었어요. 그러나 이제 나는 당신을 믿게 되었어요.]
절대사는 줄곧 가게 한쪽 구석 진열대 옆에 서 있었다.
그는 잡화점 안에 들어올 때부터 줄곧 그 자리에 서서 움직이지도 않았고 입을 열지도 않았고 다른 사람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의 몸에는 핏자국이 묻어 있었고 옷은 이미 갈갈이 찢겨져 있었다.
더군다나 상처까지 입은 몸이었다.
그러나 그는 냉정침착하게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와 함께 구출을 받은 사람은 철진천 외에도 두 사람이 있었다.
그들 두 사람은 원래 그의 친구였다.
그러나 그 두 사람은 마치 그를 보지도 못한듯이 가까이 오지도 않았다.
무슨 전염병에 전염이라도 될까봐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당연히 잡화점의 사람들이 절대사를 원수처럼 여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절대사와 가까이 지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절대사도 그들을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멍한 눈초리로 촛점없이 한 군데를 바라볼 뿐 아무도 보지 못한 것처럼 서 있었다.
제일 먼저 입을 연 사람은 대완이었다.
[나는 당신이 이곳에 있는 것이 매우 견디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그러나 당신이 원하다면 나는 당신을 몰아내지 않을 거예요.]
절대사는 여전히 침묵을 지켰다.
대완은 다시 말했다.
[당신은 혹시 무슨 할 말이 있나요?]
절대사는 홀연히 입을 열었다.
[있소. 나는 할 말이 있소. 단지 한 사람에게 말하고 싶소.]
대완은 물었다.
[그게 누구인가요?]
절대사는 말했다.
[마여룡이오.]

작은 방은 산만하고 누추했다.
대완은 이 방에서 사 개월 동안 잠을 잤던 것이다.
지금 방 안에는 단지 두 사람이 있을 뿐이었다.
절대사와 단독으로 마주앉은 사람은 마여룡이었다.
절대사는 말했다.
[이번에 자네는 나를 구해주었네. 만약 자네가 없었다면 나는 이곳에 있지도 못했을 것이고 만약 내가 이곳에 있지 못했다면 나는 다른 사람에 의해서 이미 밖에 있는 사람들처럼 죽어 있었을 것이네.]
그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러나 나는 절대로 이번 일이 있다고 해서 자네를 놓아 줄 생각은 없네. 내가 죽지 않고 자네도 죽지 않는 이상 나는 자네를 곱게 내버려 두지는 않을 것이네.]
마여룡은 웃으며 담담히 말했다.
[내가 당신을 구해준 것은 당신이 나를 놓아주기를 원해서가 아닙니다. 그렇지 않다면 내가 어찌 당신을 구해주었겠습니까?]
절대사는 말했다.
[어쨌거나 나의 생각은 변함이 없네.]
마여룡은 탄식하며 말했다.
[좋습니다. 당신이 어떻게 나에게 대하든간에 상관이 없습니다. 어쨌든간에 우리는 내일까지 살아있기가 힘들 테니까요.]
절대사는 말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죽지 않았네. 옷을 만드는 재봉사가 도착하지 않고 화장품을 가지러 간 사람이 도착하지 않는다면, 그 미치광이는 그 때까지는 이곳에 쳐들어오지는 않을 것이네.]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절대사는 말했다.
[반드시 그렇게 될 거야. 나는 그 미치광이를 잘 이해하고 있어. 그는 우리들을 우물에 갖힌 고기로 생각하기 때문에 초조하게 빨리 우리의 생명을 빼앗으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네. 그러므로 우리들은 어쩌면 아직 도망칠 기회가 있을 수도 있네. 그러므로 나는 자네에게 알려주는데 자네와 내가 나중에 적이 되든 친구가 되든 지금 단계에서는 나는 오직 자네 마여룡의 말을 따르도록 하겠네. 나는 평생동안 다른 사람의 명을 따른 적이 없는데 이번에는 예외가 될 것이네.]
마여룡은 그를 응시하더니 함참 후에 말했다.
[이것이 당신이 나에게 하고 싶어하던 말입니까?]
절대사는 말했다.
[그렇네.]
이번에 마여룡이 구해가지고 돌아온 사람은 철진천과 절대사 외에도 두 사람이 더 있었다. 그 중의 한 사람은 왕만무였고 다른 한 사람은 팔에 부상을 입은 사람이었다. 그는 뜻밖에도 파사노의 칼에 맞았으나 중상은 입지 않았던 것이다.
대완은 절대사와 마여룡이 작은 방으로 간 후에 철진천에게 물었다.
[나는 당신의 한 명의 형제가 절대사의 손에 떨어져 있는 것을 알고 있어요. 당신은 왜 그에게 그 친구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묻지를 않는 거예요?]
철진천은 말했다.
[나도 이미 생각해 보았소.]
대완은 물었다.
[당신은 어째서 물어보지 않았나요?]
절진천은 말했다.
[나는 물어볼 수가 없었소. 그리고 물어볼 생각도 없소. 나는 그가 이미 나의 친구를 죽였다고 말할까봐 두렵소.] 
철전의가 이미 절대사의 손 안에 죽었다면 철진천은 절대사를 가만 놔둘 수 없는 것이다.
철진천은 말했다.
[그러나 나는 그를 죽일 수 없소. 마여룡이 이미 그를 살려가지고 돌아온 이상, 내가 절대사를 죽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오.]
이때 왕만무가 대완에게 말했다.
[나도 단독으로 그를 만나봐야 되겠소.]
대완이 물었다.
[누구를 만난다는 거죠?]
왕만무가 대답했다.
[마여룡.]
대완은 물었다.
[당신도 그에게 할 말이 있나요? 왜 꼭 그에게만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가요?]
왕만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것은 당신이 알 필요가 없소.]
이때 철진천은 왕만무를 향하여 입을 열었다.
[자네는 자네가 어째서 아직까지 죽지 않았는지 아는가?]
[내가 죽지 않은 것은 당신이 줄곧 나를 보호해 주었기 때문이오. 우리들이 이전에는 비록 원수지간이었지만 지금은 이미 친구가 되었소.]
철진천은 말했다.
[그렇다면 자네는 어째서 마여룡에게만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것인가? 어째서 나에게는 이야기를 하지 않나? 나를 믿지 못한단 말인가?]
왕만무는 말했다.
[나는 당신을 믿습니다. 그러나 마여룡을 더 신임합니다.]
철진천은 물었다.
[자네는 어째서 그를 그렇게 신임하나?]
왕만무는 대답했다.
[왜냐하면 절대사까지도 그를 신임하니까요. 절대사는 그의 친구가 아니지 않습니까?]
철진천은 말했다.
[당연하지.]
왕만무가 말했다.
[한 명의 원수가 신임하고 또한 친구가 신임하는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이 어찌 그 사람을 신임하지 않겠습니까?]
철진천은 껄껄 웃었다.
[좋아. 말이 되는 소리야.]
그는 왕만무의 어깨를 굳게 움켜잡았다.
[당신은 가서 마여룡을 만나보게.]
왕만무는 마여룡과 단독으로 만나기를 원했다. 단 둘이 만나게 되자 왕만무는 첫마디에 그의 비밀을 마여룡에게 알려주었다.
[제가 아직 죽지 않은 것은 철진천이 보호해 주어서가 아니랍니다. 내가 아직 죽지 않은 것은 무십삼이 나를 근본적으로 죽일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죠.]
그는 또 다시 하나의 비밀을 누설했다.
[그의 탄지신공(彈指神功), 비석타혈(飛石打穴), 이와 같은 무공은 확실히 지금까지 그 어떤 사람도 도달하지 못한 높은 경지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그 파사노의 칼질은 번개같이 빨라서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그들 두 사람의 힘만으로는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이지 못했을 것입니다. 비석과 만도를 가지고 짧은 시간에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일 수는 없지요.]
마여룡은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왕만무는 대답했다.
[죽은 사람 가운데 절반 이상은 배신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든다면 장삼(張三)과 이사(李四)가 친구라고 할때 장삼이 이미 그에게 매수되었다고 합시다. 이사는 그 사실을 모르고 파사노와 겨루게 됩니다. 그런데 갑자기 장삼이 이사의 혈도를 찔러놓았다면 이사가 어떻게 파사노의 한 칼을 당해낼 수 있겠습니까?]
마여룡은 말했다.
[그렇겠군요.]
마여룡은 다시 말했다.
[다른 사람들이 무십삼의 손가락으로 퉁겨내는 돌에 신경을 쓰는 동안에 매수된 사람들은 자기의 친구들의 혈도를 찔렀죠. 그리하여 다른 사람들은 무십삼의 비석에 혈도를 맞아 움직이지 못하는 줄 알았던 것입니다.]
마여룡은 말했다.
[그럴 수 있겠군요.]
왕만무는 다시 말했다.
[사실이 그러했습니다. 결코 무십삼의 비석에 혈도를 맞은 것이 아니고 혼란 중에 자기가 믿었던 동료의 손에 혈도를 찍힌 것이죠. 내가 이것을 당신에게 알려주는 이유는 당신이 무십삼의 무공을 과대평가도 하지 말고 과소평가도 하지 말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마여룡은 물었다.
[당신은 어떻게 그 비밀을 알아냈소?]
왕만무는 쓴 웃음을 지었다.
[왜냐하면 나 역시도 매수당한 사람 가운데 한 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아직까지 죽지 않았던 것입니다.]
마여룡은 말했다.
[당신은 어째서 그 비밀을 나에게 이야기하는 것이오?]
왕만무는 대답했다.
[당신을 믿기 때문입니다. 나는 지금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절대로 그 어떤 사람도 팔아넘기지 않는다는 사실을요.]
마여룡이 구출해낸 사람은 절대사, 철진천, 왕만무 외에도 또 한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나이가 별로 많지 않고 그렇다고 적지도 않았으며 생긴 것도 영준하지도 않았고 못생기지도 않았고 입고 있는 것도 화려하지도 않았고 누추하지도 않았다. 
이런 종류의 사람은 언제나 흔히 볼 수 있는 것이었다.
그가 아직 죽지 않은 것은 어쩌면 그의 모양이 특이하지 않기 때문에 그랬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특이하지 않은 사람이 가끔은 비범한 일을 할 때가 있는 법이다.
대완은 그런 이치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그 사람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당신은 이름이 무엇입니까?]
그 평범하게 생긴 사람은 히죽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대완은 다시 물었다.
[당신은 내 말이 들리지 않습니까? 아니면 말을 할 줄 모르는 것입니까?]
그 사람은 다시 실실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대완은 그것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대완은 홀연 웃으며 입을 열었다.
[당신은 벙어리도 아니고 귀먹어리도 아닌데 어째서 당신의 이름을 말해주지 않는 것입니까? 내가 물을 때 대답하지 않아도 되지만 다른 사람이 물었을 때 대답하지 않으면 아마 곤란할 것입니다.]
그 사람은 갑자기 반문했다.
[당신들은 혹시 한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게 아닙니까?]
대완은 말했다.
[누구를 기다린단 말인가요?]
그 사람은 말했다.
[한 명의 재봉사를 기다리는 것이죠. 무십삼이 사 낭자의 신부 옷을 지으라고 초대한 그 재봉사 말이에요.]
대완은 그를 노려보았다.
[당신이 어떻게 무십삼이 그 재봉사를 데려오라고 한 것을 알고 있나요? 당신은 어떻게 우리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요?]
그 사람은 말했다.
[나는 당연히 알지요. 나는 그 재봉사가 벌써 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비단과 화장품을 가지고 왔고 또 한 대의 꽃가마를 가지고 왔습니다.]


31. 재봉(裁縫)


대완은 물었다.
[그 재봉사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평범하게 생긴 그 사람은 갑자기 신비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 사람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제가 바로 재봉사입니다.]
대완이 깜짝 놀랄 때 그 사람은 다시 미소지으며 입을 열었다.
[나는 아주 훌륭한 재봉사입니다. 이 부근 백 리 이내에서는 절대로 나보다 바느질을 잘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내가 만드는 옷은 최신식입니다. 그리고 몸에 딱 들어맞죠.]
재단을 잘하는 사람은 본래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는 법이다. 
그러나 이 재단사는 예외였다. 이런 사람은 이런 지방에서는 절대로 환영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대완은 억지로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나도 당신이 훌륭한 재봉사라는 것은 알아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훌륭한 재봉솜씨를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옷감이 없으면 옷을 만들 수가 없죠.]
옷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무십삼은 이곳으로 쳐들어 오지 않을 것이다.
대완은 이 재봉사가 옷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알아보았다. 왜냐하면 이 재봉사는 몸에 천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데 그 재봉사는 도리어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미 가져왔습니다. 가장 좋은 천이에요. 색깔도 곱고 문양도 예쁘고 옷감은 아주 최고급입니다. 신부의 옷을 짓기에 손색이 없죠.]
대완은 물었다.
[당신이 옷감을 가지고 있다구요?]
그 재단사는 말했다.
[바로 여기 있습니다.] 
그 누구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순간 그 사람이 몸을 한 바퀴 돌리자 그의 손에는 홀연 두 필의 비단이 쥐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한 필의 붉은 비단은 금색 실로 모란화가 수놓아져 있었다.
모든 사람은 그 광경을 보고 깜짝 놀라고 어리둥절해졌다. 
그 누구도 그가 무슨 방법을 써서 어디에서 그 두 필의 비단을 꺼냈는지 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 사람은 다시 몸을 한 바퀴 돌렸다.
그러자 화장품이 그의 손 위에 들려져 있었다.
그 누구도 그가 어디서 화장품을 꺼냈는지 알지 못했다.
철진천은 탄식하며 말했다.
[뜻밖에도 나와 같은 강호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도 알아볼 수가 없군요. 이 분은 정말 고인이십니다.]
그 재단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고인이 아닙니다. 내 키는 크지가 않거든요. 당신이 나보다 훨씬 크군요. 키 큰 사람은 옷을 입으면 모양이 나죠. 그런데 애석하게도 당신은 좋은 옷을 입고 있지 못하군요.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내가 반드시 당신에게 두 벌의 옷을 지어드리겠습니다.]
철진천은 말했다.
[조금 전에 당신은 꽃가마까지 가지고 왔다고 하지 않았소?]
그 재봉사는 웃으며 말했다.
[모두 함께 온 것이니 꽃가마 역시 왔죠. 신랑 신부는 급하게 굴지 않는데 여러분이 초조하게 구십니까?]
신랑 신부라는 말에 모든 사람들은 얼굴이 변했다.
무십삼이 자기의 야욕을 채우기 위해서 벽옥산장의 대소저를 건드린다면 벽옥부인은 기가막혀 죽을 것이고 대완은 자살하고 말 것이다.
철진천은 홀연 대완에게 물었다.
[우리들이 그로 하여금 사 낭자의 옷을 짓도록 할 수 있습니까?]
대완은 말했다.
[그럴 수 없죠.]
철진천은 말했다.
[이 세상에는 옷을 짓지 못하는 재봉사가 있을 수 있습니까?]
대완은 말했다.
[한 종류의 재봉사가 옷을 짓지 못하죠.]
철진천이 물었다.
[어떤 종류의 재봉사가 옷을 짓지 못하나요?]
대완은 말했다.
[죽은 재봉사예요.]
그런데 이 재봉사는 그들의 말뜻을 알아듣지 못하고 여전히 웃으며 말했다.
[나는 죽은 재봉사가 아니에요. 나는 실력있는 재봉사예요.]
철진천은 냉소하며 말했다.
[그러나 애석하게 실력있는 재봉사도 죽은 재봉사로 변할 수가 있지.]
철진천은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그의 상처는 이미 거의 회복되어 있었다. 그의 손이 뻗어나가자 온몸의 관절에서 콩볶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이 재단사는 그제서야 어떻게 된 사건인지 알고 깜짝 놀라 외쳤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내가 할 말이 있습니다.]
철진천은 말했다.
[말해보아라.]
재단사는 말했다.
[나는 마여룡에게만 말할 수 있습니다.]
철진천은 바짝 다가가며 말했다.
[그는 듣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가 네 말을 듣지 않을 것을 알고 있다.]
이때 마여룡이 홀연 가까이 다가오며 말했다.
[이번에는 당신이 틀렸군요. 그도 역시 사람입니다. 그가 하는 말을 내가 어찌 듣지 않겠습니까?]
마여룡은 재봉사를 데리고 갔다.
아무도 그를 저지하지 않았고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
단지 마여룡이 결정한 일이라면 그 누구도 반대하지 않았다.
이 재봉사는 또 무슨 비밀을 마여룡에게 말하려고 하는 것일까.
무엇 때문에 마여룡 한 사람에게만 말을 하려고 하는 것일까.
그것은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모든 사람들은 마여룡을 믿었다.
마치 자기자신처럼 믿었다.
그 누구도 이와 같은 정황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몰랐다.
그러나 지금의 정황은 이미 이렇게 되어 있었다.
꽤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마여룡은 돌아왔다.
그 혼자 돌아온 것이었다.
대완은 즉시 그에게 물었다.
[그 재봉사는 어디에 있어요?]
마여룡은 대답했다.
[그는 뒤의 방 안에서 사옥륜의 옷을 만들고 있소.]
대완은 물었다.
[당신은 어째서 그를 들여보냈나요?]
마여룡은 말했다.
[왜냐하면 그는 한 명의 재봉사이고 그는 옷을 만들고 싶어했소. 세상에는 그 한 사람의 재봉사만 있는 것은 아니오. 내가 그를 사옥륜의 방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 해도 다른 재봉사가 얼마든지 있는 것이오.]
그의 말은 틀림이 없었다. 
지금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시간을 버는 것이었다.
일각을 더 벌면 그만큼 기회도 많아지는 것이었다.
이런 도리를 마여룡은 잘 알고 있었다.
애석하게도 백화점 안의 사람들이 침울한 탄식을 내불고 있을 때 백화점 밖에서 무십삼이 갑자기 큰 소리로 웃는 것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다른 사람에게 탄복해본 적이 없는데 지금은 자네에게 탄복하지 않을 수 없군.]
마여룡은 물었다.
[당신이 어째서 나에게 탄복한단 말이오?]
무십삼은 말했다.
[왜냐하면 나는 자네가 바로 그 마여룡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지. 거기에 있는 사람들은 원래 모두 자네의 원수였는데 지금은 그들 모두 자네에게 승복하고 무슨 비밀이라도 자네에게 모두 이야기를 해주고 있지 아니한가? 자네가 무슨 바보같은 짓을 하든 그들은 반대하지 않으니 자네같은 사람은 정말로 그들과 함께 죽여버리기가 아깝군.]
마여룡은 물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무십삼은 다시 말했다.
[자네는 이리 나와 보게. 우리 한 번 친구가 되어보세.]
마여룡은 뜻밖에도 대답했다.
[좋소. 내가 나가겠소.]
그는 정말 걸어 나갔다.
그 누구도 그가 걸어나갈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심지어 무십삼 자신조차도 생각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런데 마여룡은 그 누구도 꿈에도 생각하지 못할 일을 한 것이었다.
설마하니 그는 정말로 그 미친 놈과 친구가 되려고 한단 말인가?
설마하니 그는 정말로 그가 한 번 나갔다 하면 그 미친 자의 손에 죽게 된다는 것을 모른단 말인가?
설마하니 그는 이미 미쳐버렸단 말인가? 
무십삼과 마찬가지로 미쳐버렸단 말인가?
평상시에는 멀쩡하다가 어느날 갑자기 무섭게 발작하는 미치광이였단 말인가.
그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보면서 집 안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철진천은 대완을 바라보았고 철진천은 대완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모두 마여룡이 갑자기 이렇게 멍청하게 변한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눈빛이었다.
철진천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가 어떻게 된게 아니오?]
대완이 대답했다.
[글쎄, 잘 모르겠어요. 그는 그렇게 멍청한 사람은 아닌 걸로 알고 있었거든요.]
철진천이 말했다.
[그는 그렇게 멍청한 사람이 아니죠.]
대완이 물었다.
[그렇다면 그는 어째서 나갔을까요?]
철진천이 말했다.
[그 거야 하늘만이 아는 일이겠지요.]
이런 일은 정말 하늘만이 안다고 할 수 있으리라.
철진천이 다시 물었다.
[당신이 볼때 그 재봉사가 조금 이상하지 않소? 나는 조금 수상해 보이는구려.]
대완이 말했다.
[이상한 것이 사실이죠. 그러고 보니 너무 이상하군요.]
그 누구도 모르게 갑자기 몸에서 두 필의 비단을 꺼내고 화장품을 꺼내는 사람이라면 평범한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대완이 말했다.
[나는 강호에 일종의 섭심술(攝心術)이 있다는 말을 들었어요. 다른 사람의 넋을 빼앗고 본성을 잃도록 만들어 바보가 되게 만든다고 하더군요.]
철진천이 말했다.
[그런 것이 정말 있다고 하더구려.]
대완이 말했다.
[혹시 마여룡이 그 재봉사의 섭심술에 미혹되어 저런 모양으로 변한 것이 아닐까요? 그러지 않고서야 저렇게 멍청한 짓을 할 수가 없잖아요.]
그녀의 말은 사실 일리가 있었다.
만약 그 재봉사가 사옥륜을 인질로 잡고 마여룡을 위협했다면 능히 그럴 수 있으리라.


32. 지하도(地下道)


절진천과 대완은 여기에 생각이 미치는 순간 안방의 주렴을 열고 침실 안으로 뛰어들었다.
침실 안으로 뛰어드는 순간 그들은 또다시 대경실색하고 말았다.
이것은 조금전 마여룡이 밖으로 나갈 때보다 훨씬 놀라운 정도가 컸다.
마치 귀신이라도 보고 놀란 것 같았다.
철진천은 수십 년 동안 강호를 종횡했지만 이와 같이 놀라운 일을 본 적이 없었고 그는 자기의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도대체 무엇을 본 것일까?
방 안의 정황은 이미 많이 달라져 있었다.
사옥륜이 누워있던 침대는 지금 한쪽 구석으로 치워져 있었고 평소에 손을 들 힘도 없이 나약했던 사옥륜은 방 한구석에 똑바로 서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철진천과 대완이 놀란 원인은 아니었다.
그들이 놀란 것은 그들이 마여룡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마여룡은 사옥륜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한 옆에 서 있었다.
그런데 그 재봉사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대완과 철진천은 두 눈으로 똑똑히 마여룡이 문 밖으로 조금 전에 걸어나갔던 것을 보았는데 이 방안에 또다시 마여룡이 엄연히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사실 본 방금 전에 밖으로 나간 사람은 마여룡이 아니었다. 물론 여기서 마여룡이라고 하는 것은 장영발로 변장한 마여룡을 말한다. 
그들의 인상 중에서 장영발은 곧 마여룡이오, 마여룡은 곧 장영발이었다.
조금 전에 장영발 모습을 한 마여룡이 분명히 밖으로 걸어 나갔는데 이곳에 또다시 장영발 모습을 한 마여룡이 서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재봉사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원래 침대가 있던 곳은 지금은 아무것도 놓여져 있지 않았다.
그러나 마여룡과 사옥륜은 나란히 서서 긴장된 눈빛으로 침대가 있던 땅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대완과 철진천이 방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자 마여룡은 즉시 둘째 손가락을 입에다 갖다대어 말을 하지 말라는 시늉을 했다.
대완과 철진천은 즉시 입을 다물었다. 그들은 결코 그 미치광이가 독사가 교미하고 거북이가 알을 낳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청력이 밝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대완은 즉시 가게로 달려나가 평소에 기재하는 장부와 연필을 가지고 왔다.
그녀는 필묵으로 하고 싶은 말을 마여룡에게 물었다.
[당신은 누구인가요?]
그녀는 방금 전에 집밖으로 나간 마여룡과 이 방안에 있는 마여룡 중에 누가 진짜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방금 전에 나간 사람이 누구인가요?]
그러자 마여룡은 필묵을 받아들고 다음과 같이 썼다.
[그 사람은 재봉사요.]
대완과 철진천은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 재봉사가 어째서 장영발로 변장했나요?]
마여룡은 웃으면서 장부에다가 다음과 같이 썼다.
[그녀는 나를 장영발로 분장시켜 주었는데 그녀 자신을 장영발로 분장하는 것이 무엇이 어렵겠소?]
대완은 그 글을 보자 깜짝 놀랐다.
그 순간 놀라움과 함께 기쁨이 솟아올랐다.
그녀는 실로 이런 일이 생길 줄은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그제서야 그녀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할 수 있었고 그러나 철진천은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당신들이 말하는 그 사람은 누구입니까?]
대완은 급히 한 사람의 이름을 적었다.
[영롱옥수 옥영롱.]
이 사건은 표면적으로 볼 때는 극히 복잡하고 신비한 일이었다.
그러나 답안을 보는 순간 극히 간단하게 풀려버렸다.
철진천은 영롱옥수 옥영롱이란 글자를 보는 순간 모든 것을 환히 알아차렸다.
옥영롱은 천하제일의 역용술의 대가였다.
한 사람의 용모가 평범하고 다른 사람의 주의를 끌지 않는 재봉사가 무십삼의 초대를 받고 오고있는 재봉사로 변장하고 여기까지 숨어들어온 것이었다.
그녀가 이곳에 올 줄은 그 누구도 알지 못했고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은 그녀로부터 헛점을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녀와 마여룡이 단독으로 만났을 때 그녀는 미리 준비했던 도구와 약물을 가지고 자기자신을 또하나의 장영발로 변장시켰던 것이다. 이것은 당연히 그녀가 미리 준비한 계획대로 실행에 옮긴 것이었다.
그녀는 어째서 이와 같이 했을까.
어째서 마여룡의 신분으로 가장하고 무십삼을 만나러 갔을까.
대완과 철진천은 여전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본래 침대가 있던 자리는 지금 아무것도 놓여져 있지 않았다.
마여룡과 사옥륜은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그들은 어째서 그 침대를 한쪽으로 옮겨 놓았을까.
대완과 철진천은 이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그들이 마여룡에게 물었어나 마여룡은 단지 웃어보였을 뿐이었다.
대완과 철친천은 바보같이 멍하니 한쪽 구석에 서서 마여룡의 시선을 따라 침대가 옮겨진 빈 공간을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그들은 갑자기 깜짝 놀랐다. 
정말 사람을 놀라게 하는 일이 벌어지고 만 것이었다.
이번에 그들이 본 것은 한 개의 손이었다.
이 아무것도 없던 빈 땅바닥에 갑자기 손 하나가 불쑥 튀어올라온 것이었다. 이 손은 크고 두터웠으며 우악스러워 보였다. 이 모습은 마치 한 그루의 작은 나무가 홀연 흙을 뚫고 솟아올라온 것과 같았다. 중지와 소지와 무명지는 곧게 펴져 있었고 엄지와 식지는 원을 그리며 닿아 있었다.
이런 종류의 손짓은 통상적으로 어떤 일이 해결되어 문제가 없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것은 누구의 손일까.
이 손은 어떻게 하여 땅 속에서 솟아 올라왔을까.
이것은 당연히 살아있는 사람의 손이었다. 죽어 있는 사람의 손은 절대로 손가락이 움직일 수 없는 것이었다.
그들은 이미 이 집에서 몇 개월을 살았는데 방 밑의 지하에 살아있는 사람이 또 있었단 말인가.
방바닥에서 살아있는 사람의 손이 불쑥 솟아올랐다는 것은 보는 사람을 깜짝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마여룡은 뜻밖에도 조금도 놀란 기색이 없었다.
마여룡은 갑자기 자기도 손을 뻗쳐 땅바닥에서 솟아오른 손의 엄지손톱을 향하여 자기의 엄지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렸다.
세 번씩 세 번에 걸쳐 퉁겨보내자 그 하나의 손은 홀연 움츠러들더니 땅 밑으로 들어갔다.
손은 다시 없어지고 손이 나왔던 구멍만 주먹만큼 남아 있었다.
손은 그 구멍에서 나왔는데 그 구멍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이 방바닥은 땅과 연결되어 있었다.
이 땅의 흙 역시 다른 땅의 흙과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초목과 과실과 꽃과 나무가 자랄 수 있고 농사를 지을 수도 있는 곳이 절대로 구멍이 저절로 생겨날 리는 없을 것이다. 이 안에는 수시로 손을 뻗쳐낼 수 있는 구멍이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대완과 철진천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 다음에 두 사람은 일제히 마여룡을 쳐다보았다.
그들은 이것이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들은 마여룡이 분명히 알고 있으리라 믿고 있었다.
그런데 마여룡은 그들을 쳐다보지도 않고 온 정신을 집중하여 방바닥의 뚫어진 구멍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주먹 하나가 들어갈만한 그 구멍이 갑자기 커졌다.
구멍 옆의 딱딱한 흙이 갑자기 파도처럼 기복을 이루고 흔들리기 시작했다.
파도는 갈수록 커지고 그 움직임은 갈수록 격렬해졌다.
마치 뜨거운 솥 안에 물이 끓는 것과 같았다.
돌연 끓는 물과 같았던 흙들이 갑자기 내려앉았다.
그러더니 작은 구멍이 큰 동굴로 변했다.
탁자 크기의 동굴이었다.
한 사람이 동굴 속에서 기어나왔다.
네모 반듯한 얼굴에는 흙먼지가 가득 묻어 있었는데 눈빛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그는 마여룡을 향하여 한 번 웃어보였고 대완을 향하여 웃어보였고 모든 사람들을 향하여 한 번씩 웃어보이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결코 그들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들 역시 그를 모르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지금까지 그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그는 자기가 방금 뚫어놓은 동굴에서 기어나와 그 옆에 서더니 동굴을 내려다보았다.
눈빛에는 기쁨과 득의양양한 표정이 서려 있었다.
이것은 마치 예술가가 자기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걸작을 보고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그는 한참동안 바라보더니 비로소 몸을 돌려 장부에 이렇게 썼다.
[여러분 안으로 들어가시죠.]
이 동굴은 매우 깊었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동굴이라기보다는 지하도였고 그 지하도는 깊고 길게 뚫려 있었다.
이 지하도는 아주 먼 곳으로부터 파들어온 것이고 출구는 딱 알맞게 마여룡이 기거하고 있는 잡화점의 침실 침대 밑이었다.
대완은 이제서야 분명히 알았다. 
모든 사람들도 분명히 알았다.
이 지하도는 바로 그들의 유일한 활로였다.
모든 사람들은 모두 그 지하굴 속으로 들어갔다.
지하도는 몇 개의 거리를 지나 길게 뚫려져 있는 것 같았고 어느 으슥하고 넓은 골목길 옆으로 출구가 나 있었다.
출구 밖에는 한 대의 귀족들과 부잣집 사람들만이 탈 수 있는 호화스러운 마차가 서 있었다. 
마차를 끄는 네 필의 말은 모두 날래고 건장해 보였다.
그런데 저쪽 옆으로는 이 마차와 똑같이 생긴 마차 세 대가 세워져 있었고 마차를 모는 마부도 이미 채찍을 들고 출발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33. 입동(入洞)


동굴을 뚫고 그들을 안내했던 그 청의의 장한이 그들에게 입을 열었다.
[무십삼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서 우리들은 별도로 세 대의 마차를 준비했습니다. 마차마다 마찬가지로 여섯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가 타고 있지요. 그리고 남겨지는 마차 바퀴 자리는 똑같은 모양입니다.] 
그가 말하는 육남 일녀는 대완을 남자라고 치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말하더니 그 사람은 마부석에 앉았다.
[여러분은 옥영롱 대소저를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그녀는 반드시 무십삼을 상대할 방법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벗어날 방법이 있습니다.]
그는 마차에 오르기를 주저하는 마여룡을 향하여 미소하며 말했다.
[옥영롱 대소저는 특별히 나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에게 이 말을 꼭 전해주라고 했죠. 절대로 그녀를 기다리지 말랍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지금같은 상황에서 쓸데없는 고집을 부릴 것을 염려하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이번에 마여룡은 쓸데없는 고집을 더 이상 부리지 않았다. 그가 마차에 오르자 마부는 채찍으로 말을 후려쳤다.
다른 세 대의 마차도 동시에 출발했다.
열여섯 필의 건마는 동시에 땅을 박차며 달려나갔고 서른두 개의 마차바퀴는 동시에 굴러가기 시작했으며 사방의 길에는 똑같이 생긴 마차바퀴 자국과 말발굽 자국이 생겼다.
청의장한은 마차를 몰면서 말했다.
[네 대의 마차가 가는 길은 한 대는 천마장으로 가는 것이고 다른 한 대는 숭산(嵩山)으로 가는 것이고 또 한 대는 벽옥산장으로 가는 것입니다.］
마여룡은 물었다.
[그럼 나머지 한 대는요?]
청의장한은 말했다.
[나머지 한 대는 무십삼이 온 곳으로 갑니다. 사곡으로 가는 것이지요.]
사옥륜은 희망에 찬 어조로 말했다.
[우리들이 가고 있는 길은 어느 곳인가요? 벽옥산장으로 가는 것이겠죠?]
청의장한은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무십삼은 우리들이 분명히 벽옥산장으로 가는 길로 마차를 몰고 갈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사옥륜은 탄식하며 말했다.
[당신은 우리들을 어디로 데리고 가는 것입니까?]
청의장한은 말했다.
[사곡으로 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누구도 우리가 사곡으로 갈 것을 예상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다시 보충설명을 했다.
[옥영롱 대소저도 사곡에서 함께 만나기로 하셨습니다.]
아무도 그녀가 왜 그곳으로 오느냐고 묻지 않았다.
모든 사람들은 옥대소저가 그렇게 하는데는 반드시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마차는 평온하고도 신속하게 달렸고 마차는 넓고도 편안했다.
대완은 줄곧 그 청의장한을 주시하고 있더니 홀연 물었다.
[당신은 혹시 개방의 제자가 아닙니까?]
이것은 모든 사람들이 그럴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렇게 주도면밀한 계획을 짜서 일을 성사시키는 것은 개방과 같은 거대한 문파에서 인력을 동원하고 물력을 동원하지 않는다면 불가능하고 또한 이와 같은 일을 할 사람은 강남 유오밖에는 없었다.
그 청의장한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개방의 제자가 아닙니다.]
그는 미소하며 말을 이었다.
[나는 근본적으로 강호에서 활동한 적이 없습니다.]
이 대답은 매우 뜻밖이었다.


34. 유육(兪六)


대완은 다시 물었다.
[당신의 존성대명은 무엇입니까?]
청의대한은 잠시 주저했다. 
마치 자기 이름을 밝히기를 꺼리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하면 마치 자기의 체면을 잃는 일이라도 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마침내 대답했다.
[나는 유육(兪六)이라고 합니다.]
모든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매우 뜻밖이라고 생각했다.
대완은 참지 못하고 물었다.
[강남의 유오는 당신과 어떤 관계입니까?]
유육은 대답했다.
[그는 나의 다섯째 형입니다.]
강남 유오는 명성이 천하에 떨쳐져 있었고 강호에서 제일 큰 개방의 방주였으며 그의 친구들은 사방에 널려져 있었다.
그렇다면 그의 동생 역시 마땅히 유명한 인물이어야 할 텐데 이상하게도 그 누구도 유육이라는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유육은 말했다.
[당신들은 아마 유오에게 나와 같은 동생이 있다는 것을 몰랐을 것입니다. 당신들은 이상하게 생각하겠지만 그렇습니다. 강남 유오의 동생이 무엇 때문에 다시 강호에서 활동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강남 유오 한 사람으로 충분하지요. 내가 아무리 날고 기어봤자 강호에서 활동하게 된다면 백 년이 흐르든 천 년이 흐르든 유오의 동생밖에 더 되겠습니까?]
그는 자기의 두텁고 넓은 손을 바라보더니 천천히 말을 이었다.
[더군다나 내가 무슨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나는 땅 파는 재주밖에 가진 것이 없거든요. 강호에서 활동하기에는 적합한 인물이 아닙니다.] 
마여룡은 그를 보면서 탄복했다는 눈빛을 발했다.
그는 줄곧 그런 종류의 기상있는 사람을 좋아했고 이렇게 자주적인 인격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좋아했었다.
마여룡은 물었다.
[당신이 재주가 없다고 하지만 땅 파는 재주는 대단하더군요. 내가 보기엔 그뿐만이 아닌 것 같습니다. 팔십 장 길이나 되는 지하도를 파고 출구를 반드시 잡화점 침실의 침대 밑으로 하고 한 치의 오차도 없었으니 당신의 재주는 정말 대단합니다. 이와 같은 지하도를 당신을 제외하고 그 누가 팔 수 있겠습니까?]
유육은 웃으며 말했다.
[당신의 말을 듣고 보니 내 재주가 쓸 만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군요.]
그는 웃으면서 망여룡을 바라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제야 나는 명백히 알았습니다. 나의 다섯째 형이 어째서 그런 말을 했는지 말입니다.]
마여룡은 물었다.
[그는 무슨 말을 했습니까?]
유육은 말했다.
[그는 말했습니다. 당신의 가장 좋은 장점은 다른 사람의 장점을 기억하는 것이라구요. 그는 또 말했습니다. 당신같은 사람은 그가 일생동안 단 두 명밖에 본 적이 없답니다.]
마여룡이 물었다.
[그 두 명이 누구입니까?]
유육은 미소하며 말했다.
[한 명은 그 자신입니다. 또 한 사람은 바로 당신입니다. 그리고 그는 나에게 말해주었지요. 당신을 만나면 당신에게 이렇게 물어보라고 했습니다. 한 명의 땅밖에 팔 줄 모르는 사람과 친구를 맺을 수 있느냐구요.]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마여룡은 벌써 손을 내밀고 있었다.
강남 유오는 강호에서 유명한 협객이고 이름을 떨친 사람이었으며 재간이 비상하고 탈속한 것처럼 멋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유육은 완전히 그와는 달랐다.
자기자신이 말하는 것처럼 그는 확실히 투박하고 손발이 클 뿐 아니라 평범하고 무식하게 생겼다.
네모진 얼굴 위에는 총명한 티라고는 보이지 않았고 단지 미소를 지을 때만 약간 유오와 비슷한 분위기가 약간 느껴지곤 했다.
그러나 지금 모든 사람들은 그에게 호기심을 느끼고 있었다.
그가 겉으로는 평범하고 간단해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여러가지 문제들을 그에게 묻고 싶었다.
그가 궁극적으로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마여룡은 물었다.
[당신은 강호에서 활동하지 않았다고 했는데 평상시에는 무슨 일을 하십니까?]
유육은 대답했다.
[아무 일이나 합니다. 그런데 보통 나는 집 짓는 일을 합니다.]
마여룡은 물었다.
[당신은 목수 일을 합니까, 아니면 미장이 일을 합니까?]
유육은 대답했다.
[목수 일을 할 때가 있고 미장이 일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보통은 집을 설계하는 일을 합니다. 집을 지으려면 먼저 설계를 해야 합니다. 집의 모양을 설계해야 하고 집의 높이를 설계해야 하고 지붕의 각도를 계산해야 하고 집의 무게를 계산해야 하고 기초공사를 얼마나 깊이 해야 하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모든 설계는 매우 극히 정확해야 하며 절대로 착오가 있어서는 안 된다. 만약 착오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집은 곧 무너져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땅굴을 파는 것도 마찬가지로 계산이 필요하다.
머리를 계산해야 하고 방향을 계산해야 비로소 제대로 땅굴을 팔 수가 있다. 조금이라도 실수가 있다면 그 출구가 원래 계획했던 곳에서 벗어날 수가 있는 것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만약에 그가 뚫고 들어온 출구가 잡화점의 침실이 아니라 무십삼이 있는 골목길로 나왔다면 그렇다면 그는 자기의 무덤을 파는 꼴이 되었을 것이다.
대완은 탄식하며 말했다.
[이제야 나는 알았어요. 당신의 다섯째 형이 어째서 당신에게 땅을 파라고 했는지를. 그와 같은 땅굴을 파는 일은 정말 집을 짓는 일보다 훨씬 어렵겠군요.]
유육은 말했다.
그 지하도는 나 혼자 판 게 아니랍니다. 조금 전에 보았던 세 대의 마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나의 조수입니다.]
대완은 물었다.
[그들은 당연히 당신의 다섯째 형이 파견한 사람들이겠죠? 모두 개방의 제자들인가요?]
모든 사람들은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러나 유육은 한번 빙그레 웃더니 말했다.
[그들은 개방의 제자가 아닙니다. 그들은 모두 나를 도와 집을 짓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도 땅굴을 팔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뜻밖으로 생각했다.
[이번 일은 전적으로 당신이 계획한 것입니까?]
유육은 미소하며 말했다.
[나의 다섯째 형이 나에게 어떤 일을 맡겼을 때 나는 당연히 모든 것을 알아서 처리합니다.]
이와 같이 주도면밀한 계획을 짜고 일사불난하게 행동을 하고 조직적으로 일을 실행하는 것은 이와 같이 거칠고 투박해 보이는 사람이 주관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는 보기에 매우 투박하고 어리숙해 보였지만 그리고 손과 얼굴과 옷과 신발에 모두 흙이 묻어 있었지만 심지어 손톱에까지 흙이 묻어 있었지만 생긴 것과 딴판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모두 느낄 수가 있었다.
대완이 물었다.
[당신의 다섯째 형은 어떤 도움을 주었습니까?]
유육은 탄식하며 말했다.
[그는 이 일을 나에게 맡긴 뒤에 아무것에도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철진천은 갑자기 탄식했다.
[만약 나에게도 당신과 같은 형제가 있었다면 나 역시 유오와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걱정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가 탄식할 때 눈동자는 절대사를 노려보고 있었다.
모든 사람들은 그가 탄식할 때 그가 바로 철전의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와 철전의 두 사람도 유오형제만은 못했지만 그러나 그들 두 사람은 다른 형제들은 해낼 수 없는 일을 해냈었다. 그들 형제 두 사람은 언제라도 형제를 위하여 죽을 수 있었던 것이다.
절대사는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고 다른 사람이 무슨 말을 하든 신경도 쓰지 않았으며 마치 아무것도 듣지 못한 것 같았다.
깊은 밤이었다.
그들을 태운 마차는 어둠을 뚫고 달렸다.
그들은 이미 두 시간을 달렸다.
모든 사람들은 유육이 반드시 밤을 새워 마차를 몰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의 짐작은 빗나갔다.
그들은 어느 하나의 커다란 시진(市鎭)으로 들어갔는데 하나의 커다란 큰길을 지나게 되었다.
마차의 창밖으로 내다보니 거리 양쪽의 점포들은 모두 문을 내렸지만 그러나 이 성이 매우 번화하고 발전한 곳임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이 밖을 내다보고 있을 때 마차는 홀연 하나의 작은 골목으로 꺽어져 들어갔다.
골목의 막다른 끝에는 길이 없었고 다만 하나의 커다란 집이 있을 뿐이었다.
붉은 대문 밖에는 양쪽으로 두 개의 석사자가 놓여 있었다.
마차는 그 집의 대문을 향해서 곧장 돌진해 들어갔다.
그들의 마차가 막 그 대문과 충돌하려는 순간 갑자기 붉은 칠을 한 대문이 활짝 열리고 마차는 그곳으로 빨려들어 가듯이 들어가 버렸다.
마차가 멈추어서고 보니 한 정원 안에 마차는 이미 들어와 있었다. 마차가 들어온 것과 함께 마차는 즉시 닫혔다.
유육은 마차의 문을 열면서 말했다.
[여러분 내리십시오.]
마여룡은 물었다.
[내리라니. 왜 내립니까?]
유육은 말했다.
[오늘밤 우리들은 여기서 묵어야 합니다.]
마여룡은 물었다.
[어째서 여기서 묵어야 합니까?]
유육은 웃으며 말했다.
[왜냐하면 무십삼은 우리들이 반드시 밤을 새워 길을 갈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누구나 그가 밤을 새워 달려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는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묵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철진천은 웃으며 말했다.
[그것은 정말 좋은 생각이군요.]
정원은 매우 좋고 집도 매우 좋았다. 기둥마다 멋있는 조각이 되어 있었고 멋있게 색칠이 되어 있었다.
새로 바른 문창호지는 눈처럼 희었고 밤에 보니 희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러나 집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사람도 없고 집기도 없었으며 가구도 없었고 등불도 없었다.
그러나 등불은 없었지만 별빛과 달빛이 있어서 어렴풋이 볼 수는 있었다. 이 거대한 집에 사람이 없으니 썰렁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었다.
유육은 말했다.
［이 집은 내가 최근에 지은 집입니다. 집주인은 은퇴한 조정의 대신인데 이번 달 말이 되어야 이곳으로 이사를 옵니다.］
마여룡은 물었다.
[방금 문을 연 사람은 누구입니까?]
유육은 말했다.
[그는 나를 도와 집을 지은 사람입니다. 나는 보증하겠습니다. 그는 절대로 당신들의 비밀을 누설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사람은 당연히 그들의 비밀을 누설 할 수가 없었다.
그 누구의 비밀도 누설할 수가 없었다.
그 사람은 귀머거리에다가 벙어리였다.
등은 낙타처럼 구부러진 곱추였으며 인생에 대해서는 이미 완전히 의욕을 상실한 것 같았다. 이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그의 마음을 흔들리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일곱 명의 도망치는 사람들은 그 꼽추가 들고있는 등불의 안내에 따라 네 칸의 방에 각각 배정되었다.
마여룡과 유육이 한 칸을 썼고 대완과 사옥륜이 한 칸을 썼으며 철진천과 왕만무가 한 칸을 썼고 절대사는 혼자 한 칸에 있었다.
절대사는 다른 사람이 자기에게 접근하는 것을 싫어했고 다른 사람도 그에게 가까이 가기를 기피했다.
모든 사람은 매우 피곤했다.
그러나 잠이 든 사람은 별로 없었다.
사옥륜 역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녀는 방바닥에 핀 돗자리에 누워서 잠을 청하고 있었다.


35. 악야(惡夜)


창 밖으로 부는 바람은 귀신의 울음소리처럼 음산하게 들려왔다.
사옥륜은 물었다.
[대완아, 너는 잠을 자고 있느냐?]
대완은 역시 잠을 자지 않고 있었다.
[저는 깨어 있습니다.]
사옥륜은 다시 물었다.
[너는 왜 자지 않느냐. 마음 속으로 무엇을 생각하고 있느냐?]
대완은 말했다.
[나는 아무것도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나는 그저 빨리 잠을 자고싶은 생각뿐입니다.]
사옥륜은 홀연 웃으며 입을 열었다.
[너는 나를 속일 필요가 없다. 나는 네가 마음 속으로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알고 있으니까. 너는 지금 마여룡을 생각하고 있지? 그리고 너는 그를 매우 좋아하고 있다. 나는 다 알고 있다.]
대완은 시인도 하지 않고 부인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오히려 되물었다.
[당신은 왜 잠을 자지 않고 있나요. 당신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나요?]
사옥륜은 탄식하더니 입을 열었다.
[나도 너와 마찬가지로 마여룡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 몇 달 동안 그는 매일 밤 나와 함께 한 칸의 방에서 잠을 잤다. 매일 밤 나는 그의 숨소리를 들었다. 그러니 내가 어떻게 그를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어떻게 그가 없이 잠을 이룰 수가 있겠느냐.]
대완은 더 말하지 않고 천천히 몸을 일으켜 창문 곁으로 다가갔다. 창문을 열고 시원한 밤바람을 맞으며 그녀는 격동하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시작했다.
사옥륜은 다시 말했다.
[너와 나는 자매와 다름이 없다. 나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은 바로 너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네가 나를 범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날 갑자기 네가 나의 혈도를 찍었을 때 나는 정말 놀라 죽는 줄 알았다. 이제야 나는 네가 나에게 그렇게 대한 것이 나를 위해서 한 짓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정말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대완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옥륜은 다시 입을 열었다.
[만약 내가 혈도를 찍혔을 때 완전히 정신을 잃었다면 차라리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몸은 움직일 수 없었지만 정신은 말똥말똥했다. 그러므로 네가 나에게 한 모든 일을 나는 다 알고 있다. 그 모든 일을 나는 절대로 잊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탄식하며 말을 이었다.
[네가 나를 데리고 아문 안으로 들어가서 나를 한 칸의 방에 가두었었지. 내 옷을 완전히 벗기고 나를 딱딱하고 차가운 목판 위에 눕히고, 그러더니 한 명의 남자를 데리고 와서 나의 알몸을 그 남자에게 보여주었다. 나는 그 모든 일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대완은 탄식하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나는 그때 당신이 정신을 잃고 있는 줄 알았어요. 그렇기 때문에....] 
사옥륜은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 말을 가로챘다.
[너는 그때, 내 마음이 어땠는지 아느냐? 너는 아마 모를 것이다. 한 명의 여자가 남자에게 최초로 알몸을 보여주는 느낌을 말이다.］
대완은 대답했다.
[나는 몰라요.]
사옥륜은 말했다.
[너는 당연히 모르겠지. 왜냐하면 너는 옷을 완전히 벗고 남자에게 보여준 적이 없으니까.]
그녀는 깔깔거리며 말했다.
[그러나 나는 보증할 수 있다. 너는 곧 그런 기분이 어떤지 맛보게 될 것이다.]
대완은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몸을 날려 창 밖으로 도망을 치려고 하는 순간 어느새 그녀의 뒤에는 사옥륜이 다가가 혈도를 찍어버린 것이다. 
혈도를 찍히는 순간 대완은 창문 밖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만약 사옥륜이 그녀의 말을 하지 못하게 하는 혈도를 찍지 않았다면 대완은 창문 밖의 놀라운 사실을 사옥륜에게 말했을 것이고 그 이후의 놀라운 사건들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녀는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사옥륜은 번개같이 일곱 번이나 혈도를 찔러서 대완으로 하여금 몸을 움직이지도 못하게 했고 말을 하지도 못하게 했던 것이다.
사옥륜은 대완이 쓰러지자 유쾌하게 웃었다.
[너는 이제 곧 그 당시 내가 마음 속으로 느낀 기분이 어떤 것인지 납득이 될 것이다.]
사옥륜은 낄낄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나는 네가 나에게 한 방법 그대로 너에게 베풀어주겠다. 나는 마여룡을 데리고 와서 너의 알몸을 보도록 하겠다.]

마여룡은 잠들지 않았다.
그는 유육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으나 유육은 하나의 돗자리 위에서 깊이 잠들어 있었다.
유육은 강호의 사람이 아니었고 무림에서 이름을 떨친 사람도 아니었다.
이름이 없는 사람은 유명한 사람보다 고민이 적은 법이다.
마여룡은 마음 속으로 탄식하면서 자기도 유육과 같이 평범한 사람이 되어 매일 침대에 눕자마자 잠들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마여룡이었다.
이때 그는 홀연 창문 밖에서 한 사람이 그에게 손짓하는 것을 보았다. 바로 사옥륜이 그에게 손짓을 하는 것이었다.
마여룡은 밖으로 나갔다.
사옥륜은 눈을 빛내며 말했다.
[나는 당신을 데리고 가서 보여 줄 것이 있어요. 나는 보증하는데 당신은 분명히 좋아할 거예요.]
그녀는 유쾌하고 신비스럽게 웃었다.
마여룡은 당연히 그녀를 따라갔다.
그들이 사옥륜과 대완이 묵었던 방으로 들어가보니 방 안은 조용했다. 대완은 돗자리에 누워 있었고 사옥륜이 깔고 누웠던 돗자리는 그녀의 몸을 덮어놓고 있었다.
사옥륜이 입을 열었다.
[당신은 저 돗자리를 들쳐보세요. 먼저 이쪽을 보고 그 다음에 저쪽을 보세요.]
그녀는 마여룡이 먼저 대완의 다리를 보고 그 다음에 얼굴을 보기를 원했다.
마여룡은 그녀가 시키는대로 했다.
그는 먼저 이쪽을 보는 순간 얼굴이 확 변했고 다시 저쪽을 보는 순간 얼굴이 칼에 맞은 듯 일그러졌다.
사옥륜은 깔깔거리며 입을 열었다.
[나는 당신이 이렇게 놀랄 줄은 몰랐네요. 왜냐하면 당신은 마땅히 짐작하고 있었을 테니까요. 내가 복수를 한 거예요.]
마여룡의 얼굴은 놀라움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는 한참 후에 비로소 입을 열었다.
[당신은 누구에게 복수를 한 것이오?]
사옥륜은 깔깔 웃었다.
[당연히 대완에게 복수를 했죠. 그녀가 나에게 예전에 한대로 나도 그녀에게 보답을 한 거예요.]
마여룡은 물었다.
[당신은 혹시 대완의 혈도를 찍은 것이 아니오? 그래서 그녀를 이 돗자리 밑에 숨겨놓았던 것이 아니오?]
사옥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웃었다.
마여룡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돗자리를 걷어치워 버렸다.
사옥륜의 얼굴에 떠올랐던 웃음이 갑자기 지워지고 얼굴이 칼에 맞은듯이 일그러졌다. 그녀는 분명히 대완을 돗자리 위에 눕히고 돗자리로 그녀를 덮어놓았었다.
그러나 지금 돗자리 밑에서 나타난 사람은 대완이 아니었다. 그 사람은 바로 귀머거리에 벙어리에 꼽추등을 한 그 늙은이였다.
그는 이미 죽어 있었다.
그런데 그는 비록 죽었지만 한 손으로는 무엇인가를 굳게 움켜잡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한 명의 수전노가 돈주머니를 끌어안고 죽은 것과 같았다.
그의 손 안에는 도대체 무엇이 있을까.
마여룡은 그의 손을 펴보았다. 그 순간 그의 얼굴이 두려움으로 질려버리고 말았다. 그 꼽추의 손 안에 들려져 있는 것은 바로 한 알의 돌이었다. 둥글고 검은 색이 반들거리는 바로 사곡에서 난다는 그 돌이었다.
사옥륜은 놀라 부르짖었다.
[무십삼!] 
만약 무십삼이 정말 왔다면 대완은 어디로 갔을까?
이 문제에 대해서 마여룡과 사옥륜은 대답할 수가 없었고 심지어 상상을 할 수도 없었다.
유육의 계획은 절대로 주도면밀하고 치밀했는데 무십삼은 어떤 방법으로 이곳을 찾아왔단 말인가?
철진천은 잠들어 있었다.
그와 같이 노련한 강호인은 잠잘 기회를 놓치지 않는 법이다. 
그는 유육의 계획이 주도면밀하고 치밀하다는 것을 알고 이곳이 매우 안전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노련한 강호인들은 잠이 들지라도 항상 경각심을 늦추지는 않는 법이다.
그가 이상한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어났을 때 왕만무는 방 안에 없었다. 심지어 그가 깔고 누웠던 돗자리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 방은 하나의 방문과 두 개의 창문이 있었는데 그 문들은 안에서 꽉 잠겨져 있었다.
그는 왕만무가 창문을 열거나 방문을 여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더군다나 그 창문과 방문은 안에서 잠궈져 있었다.
왕만무가 나간 후에는 역시 안에서 문을 잠글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방문과 창문은 열려진 흔적이 없는데 왕만무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어떻게 이 방에서 빠져나간 것일까?
유일한 해답은 이 방안에 별도의 비밀 출구가 있다는 것이다.
커다란 저택에는 본래 언제나 이렇게 비밀 출구를 마련해 놓는 법이다. 더군다나 이 집은 유육이 설계한 집이다.
철진천은 그러나 비밀 통로의 출구를 찾을 수가 없던 것이다.
그는 매우 이상하게 생각했다.
왕만무는 그와 함께 처음으로 이 방으로 들어온 것인데 어째서 그는 찾을 수가 없는데 왕만무는 비밀 통로를 찾을 수가 있었을까?
왕만무는 무엇 때문에 잠을 자지 않고 살그머니 밖으로 나갔을까.
나가도 방문을 통해서 나가지 않고 어째서 비밀 통로를 통해서 나갔을까.
이 문제는 철진천으로서는 대답을 얻을 수가 없었다.
그는 알 수 없는 일은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그는 벌써 행동을 개시한 것이다.
그가 방문을 열고 나갔을 때 그는 사옥륜이 마여룡을 손짓해 부르는 것을 보았다.
철진천은 그들을 보았으나 그들을 부르지는 않았다.
이 야심한 밤중 젊은 두 남녀가 다른 사람 몰래 만나 밀회를 즐기는데 그가 어찌 그들을 방해할 수 있겠는가.
그는 다만 왕만무를 찾아볼 생각뿐이었다.
그들이 머물고 있는 방, 그 밖은 매우 커다란 정원이었다.
정원은 아직 완전히 가꾸어져 있지 않았지만 적막한 밤중에 황량하고 음산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는 둥근 돌을 깔아서 포장한 작은 돌길을 따라 걸었다. 그는 홀연 가산(假山)의 뒤에서 한 사람이 신음하는 소리를 들었다.
가산 뒤에는 연못이 있었다. 아직 연못은 가꾸어 놓지 않았지만 연못 물을 이미 끌어 대어져 있었다.
한 사람이 벌거숭이로 물 속에 들어가 있었다.
그 사람은 물 속에 들어가 차가운 물로 냉수마찰을 하면서 덜덜 떨면서 추위를 견디고 있었다.
그 사람은 왕만무가 아니고 놀랍게도 절대사였다.
철진천은 절대사가 이런 모양으로 변해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절대사 역시 사람이었고 욕망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성적인 욕망을 배설할 수가 없는 몸이었다. 그러므로 단지 아무도 보지 않을 때 살그머니 기어나와 냉수마찰을 함으로서 마음 속에 불붙고 있는 정욕을 억제하고 있었던 것이다.
철진천은 이 사람이 매우 가련하게 느껴졌다.
그의 냉엄한 성격과 편향된 성격은 그가 오랫동안 금욕생활을 한 결과인 것 같았다.
절대사는 철진천을 보자 얼른 밖으로 나와 승포로 사타구니를 가렸다. 절대사의 하체는 딱딱하게 발기되어 있었던 것이다.
철진천은 탄식하며 말했다.
[당신은 내가 다른 사람에게 이 사실을 누설할 것을 염려할 필요 없소. 오늘 밤에 본 것을 나는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오.]


36. 삼경(三更)


절대사는 놀람과 당혹함과 수치스러움과 분노와 회한을 담은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자네는 철전의가 이미 죽은 것을 알고 있는가?]
철진천은 두 주먹을 불끈 움켜쥐며 말했다.
[네가 그를 죽였느냐?]
절대사는 말했다.
[누가 그를 죽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네가 그를 위해 복수를 하려고 한다면 지금 손을 쓰도록 해라.]
철진천은 그를 바라보기는 했으나 손을 쓰지는 않았다.
그는 탄식하며 말했다.
[지금 나는 너를 죽이지 않겠다.]
절대사는 물었다.
[무엇 때문이냐?]
지금 철진천은 절대사에게 연민과 동정을 느꼈을 뿐 살기는 솟아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이때 갑자기 뾰족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사옥륜이 꼽추의 시체를 보고 내지른 비명이었다.

시체 위에는 상처도 없었고 핏자국도 없었다.
그가 죽은 원인은 심맥(心脈)이 다른 사람의 내가장력에 진동되어 끊어졌기 때문이었다.
일종의 극히 음유한 내가장력은 사람의 심맥을 끊어 버려서 죽게 만드는데 겉으로는 조금도 상처가 남지 않는 것이다.
철진천이 달려왔을 때 유육도 왔다.
유육은 당황한 음성으로 말했다.
[누가 그를 죽였소? 무엇 때문에 이 가련한 병신을 죽였느냔 말이오.]
철진천도 화가 난 음성으로 말했다.
[그 흉수가 누군지 모르겠구려.]
마여룡이 말했다.
[혹시 무십삼이 아닐까요? 그를 제외하고 누가 있겠습니까?]
유육은 더욱 놀란 음성으로 말했다.
[그가 어떻게 이곳을 찾아올 수 있었겠소? 설마하니 나의 계획이 무산되었단 말이오? 나의 계획에 어떤 빈틈이 있었단 말인가?]
사옥륜이 입을 열었다.
[이제 알았어요.]
유육이 물었다.
[무엇을 알아단 말이오?]
사옥륜은 대답했다.
[그 악마는 거북이가 알을 낳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다고 했어요. 그러니 당신들이 땅을 파는 소리를 못 들었을 리가 있겠어요? 그는 반드시 그 땅굴의 지하 밖에서 우리들을 지켜보고 있었을 거예요.]
유육은 부정했다.
[그럴 리가 없소. 그는 절대로 내가 땅을 파는 소리를 듣지 못했을 것이오.]
사옥륜은 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유육은 말했다.
[만약 그가 귀를 땅바닥에 대고 정신을 집중해서 들었다면 모르겠소. 그러나 내가 땅을 팔때 그가 주의해서 들은 것은 잡화점 안의 사람들의 음성이었소. 어찌 멀고 먼 거리에서 땅바닥에서 소리가 나는 것을 들을 겨를이 있었겠소? 우리들은 행동을 조심스럽게 했으니 조금의 소리도 나지 않았다고 자부할 수 있소.]
그것은 그가 자신하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도 그를 믿었다. 그러므로 문제는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유육은 말했다.
[만약 무십삼이 땅 파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고 한다면 이 계획에도 빈틈은 없소. 그가 어떻게 이렇게 짧은 시간 동안에 이곳까지 찾아올 수가 있었겠소?]
철진천이 말했다.
[이 계획에는 빈틈이 있습니다.]
유육이 물었다.
[빈틈은 어디에 있소?]
철진천이 말했다.
[왕만무의 몸에 있습니다.]
유육은 물었다.
[당신은 그를 첩자로 보는 것이오? 그가 길을 오는 동안 몰래 부호를 남겨 무십삼으로 하여금 우리를 추적해 오도록 만들었다는 것이오?]
사실 왕만무를 제외하고는 이 안에 있는 어떤 사람도 첩자가 될 수는 없었다. 만약 첩자가 없었다면 무십삼도 그들을 추적해올 수 없었을 것이다.
유육은 물었다.
[왕만무는 어디 있소?]
철진천은 물었다.
[그는 이미 보이지 않습니다. 내가 깨어났을 때 그는 이미 보이지 않았습니다.]
유육은 물었다.
[당신은 왜 깨어났소?]
철진천은 대답했다.
[나는 이상한 소리를 듣고 깨어났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왕만무가 지하도로 들어가는 소리 같았습니다.]
유육이 말했다.
[그 방은 원래 이 집 주인이 서방(書房)으로 설계된 것이오. 그렇기 때문에 비밀 통로가 당연히 만들어져 있소.]
철진천은 말했다.
[그러나 나는 비밀 통로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유육이 비밀 통로를 만들었는데 다른 사람이 쉽게 찾을 수가 있겠는가.
당연히 그는 자기가 만든 비밀 통로를 쉽게 찾을 수가 있었다.
비밀 통로의 입구는 왕만무가 누워있던 땅바닥이었다. 비밀 통로의 뚜껑을 여는 기관장치는 철진천은 찾아내지 못했는데 그것은 뜻밖에도 벽에 조각된 꽃무늬 가운데 하나의 꽃봉오리였다.
유육이 그 꽃봉오리를 누르자 비밀 통로의 뚜껑이 열리며 지하도가 나타났다.
지하도 안은 어둡고 습했다.
지하도의 출구는 우물 안에 있었다. 
이 우물은 물이 없었다.
물은 없었지만 사람은 있었다.
죽은 사람이었다.
시체는 돗자리에 말려져 있었는데 그 돗자리는 그들이 잠을 잘 때 깔고 잤던 돗자리였다.
죽은 사람은 바로 왕만무였다.
시체에는 상처도 없었고 피자국도 없었다.
왕만무 역시 일종의 음흉하고 극히 무서운 장력에 심맥이 절단되어 죽은 것이었다.
사옥륜이 입을 열었다.
[그는 어떻게 해서 죽게 되었을까요?]
철진천은 대답했다.
[그는 당연히 죽어야 하오. 첩자 노릇은 한 놈은 원래 이런 꼴이 되는 법이오.]
사옥륜은 입을 열었다.
[당신은 무십삼이 그를 죽여 입을 막았다고 생각하나요?]
모든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이 유일한 가능성이오, 유일한 답안이었다.
사옥륜은 다시 입을 열었다.
사옥륜은 다시 입을 열었다.
[무십삽은 어디에 있을까요? 대완은 또 어디 있을까요? 무십삼은 무슨 수단으로 대완을 상대할까요?]
이것은 모든 사람들이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는 일이었다.
멀리서 삼경을 알리는 북소리가 들려왔다.
삼경은 사람들의 영혼을 혼미하게 하는 시간이다.
그들은 홀연 절대사를 생각해냈다.
사옥륜의 비명소리가 들렸을 때 철진천은 곧바로 달려왔다. 
그러나 절대사는 여전히 연못 옆에 있었다.
절대사와 철진천은 동시에 사옥륜의 비명소리를 들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무슨 놀라운 일이 생겼다면 절대사는 즉시 이곳으로 달려왔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달려오지 않은 것이다.
설마하니 왕만무와 마찬가지로 절대사 역시 피살되었단 말인가.
첫 번째로 죽은 사람은 꼽추였고 두 번째로 죽은 사람은 왕만무였다.
세 번째로 죽은 사람은 절대사일 가능성이 있었다.
그 다음 차례는 누구일까.
삼경이 막 지나고 야색은 더 깊어졌다.
이 밤이 다 지나갈 즈음에는 더 많은 사람이 죽을지도 모른다.
사람을 죽인 흉수는 유령처럼 홀연히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지금도 그 흉수는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그 다음 대상을 물색하고 있을 것이다.
이때 마여룡은 입을 열었다.
[당신들은 떠나시오.]
사옥륜이 물었다.
[떠나다뇨? 어디로 가라는 것이에요?]
마여룡은 말했다.
[아무대로나 가시오. 다만 이곳을 빨리 벗어나야 하오.]
사옥륜은 말했다.
[우리들 보고 가라면, 당신은요?]
마여룡은 말했다.
[나는....]
사옥륜은 돌연 큰소리로 말했다.
[나는 당신이 무엇을 하려는지 알고 있어요. 당신은 이곳에 남아 대완을 찾으려고 하는 거죠? 그녀를 찾기 전에 당신은 절대로 이곳을 떠나지 않을 거예요.]
마여룡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오. 설마하니 내가 그녀를 찾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오?]
사옥륜은 냉소했다.
[당신은 당연히 그녀를 찾아야 해요. 그러나 당신은 생각봤나요? 당신이 그녀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설마하니 당신이 무십삼의 손에서 그녀를 구해낼 수 있을 것 같은가요? 당신은 무십삼의 적수가 될 수 있나요? 무십삼이 당신을 죽이지 못할 것 같나요?]
그녀는 말을 하면 할수록 격동되었다.
[당신이 한마음 한뜻으로 다만 그녀를 찾으려고 하는 것을 알고 있어요. 그녀를 제외하고 다른 사람은 설마하니 사람이 아니란 말인가요? 당신은 어째서 다른 사람은 생각하지 않는 거예요? 어째서 당신 자신을 생각하지 않나요?]
최후의 두 마디 말을 할때 그녀의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륵 흘러 내렸다.
모든 사람들은 그녀가 왜 눈물을 흘리는지 알 수 있었다.
마여룡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말하지 않았다는 것은 바로 누가 뭐라고 하든 그가 이곳에 머물기로 결심했다는 뜻이었다.
사옥륜은 입술을 깨물며 발을 굴렀다.
[좋아요. 당신은 스스로 죽음을 찾아가려고 하는군요. 그렇다면 가세요. 우리는 이만 떠나겠어요.]
그녀는 떠나겠다고 외쳤지만 한 발자국도 내디디지 않았다.
마여룡은 한숨을 내쉬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사실 당신도 알고 있을 것이오. 만약 실종된 사람이 대완이 아니고 당신이라고 해도, 나는 마찬가지로 이곳에 남아서 당신을 찾을 것이오.]
사옥륜은 그 말을 듣자 다시 눈물을 흘렸다.
철진천은 하늘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나는 이제야 깨달았소.]
마여룡이 물었다.
[당신은 무엇을 깨달았다는 것입니까?]
철진천은 대답했다. 
[원래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정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소. 그러나 나는 지금 나의 그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았소. 원래 정이 많은 사람들은 더욱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알았단 말이오. 왜냐하면 그들의 마음 속에는 정으로 가득차 있기 때문에 다른 일들은 그들의 안중에도 없는 것이오.]
그는 마여룡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자네는 떠나지 말게. 우리들도 떠나지 않겠네. 대완을 찾기 전에는 그 누구도 떠나지 않겠네.]
그러나 그 말을 마치자마자 그의 몸은 갑자기 화살처럼 달려가는 것이었다.
마여룡과 사옥륜도 그를 따라 달려갔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때 말울음 소리를 들었던 것이다.
대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말울음 소리와 함께 마차바퀴 굴러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이 대문 밖으로 나왔을 때 마차는 이미 먼지를 남기고 멀리 사라지고 있었고 마차를 모는 마부는 대문 앞에 쓰러져 있었다.
마부는 이미 수족이 싸늘하게 식어 있었는데 손 안에는 한 알의 검은 돌이 쥐어져 있었다.
누가 마차를 몰고 갔을까.
마차에는 누가 타고 있을까
밤바람의 틈에 섞여 마차바퀴 구르는 소리와 말울음 소리가 아련히 들려왔다.
추격하기에는 이미 늦은 시간이었다.
철진천이 갑자기 하늘로 날아오르며 외쳤다.
[쫓아갑시다.]
그는 팔보간선(八步桿蟬)의 경공신법을 펼쳐서 마차가 사라진 방향을 향하여 질풍같이 달려갔다.
강호에 있는 사람은 누구나 팔보간선의 경신법에 대하여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팔보간선의 경신술을 익힌 사람은 몇 명 되지 않았다.
그만큼 익히기가 힘들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마여룡은 천마행공(天馬行空)이라는 무림에 이름을 날리는 경공술법을 익힌 적이 있었다.
그는 곧바로 천마행공의 신법을 펼쳐서 철진천을 쫓아가기 시작했다.
그는 잠시 후에 철진천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달릴 수 있었다.
이 두 사람의 경공술은 실로 놀라웠다.
스스로 생각해도 대견할 정도였다.
철진천은 마여룡의 어깨를 툭 치며 웃었다.
[하하하, 자네의 경신술은 정말 놀랍군. 아마 온 무림을 다 통틀어봐도 자네와 나만큼 빨리 달릴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야.]
그러나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들의 옆에는 어느새 사옥륜이 나타나 있었다.
사옥륜은 날렵하게 옷자락을 표표히 날리며 그들의 옆에서 달리고 있었는데 조금도 힘들어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옥대소저의 영롱옥수가 그녀의 무공을 회복시켜준 뒤에 그녀의 내공은 완전히 회복되었다.
그들 세 사람은 무림의 절정고수였다.
그들이 힘을 합친다면 어쩌면 무십삼과 파사노의 번개같은 칼을 대항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경공의 가장 큰 용도는 공격에 있지 않고 물러서는 것과 수비하는 데 있다. 어떤 싸움에 있어서든 물러서고 수비하는 것은 공격하는 것보다 비중이 낮은 것이 아니다. 때로는 공격하는 것보다 물러서서 수비하는 것이 더욱 중요할 때도 있다.
경신술을 펼치는 것은 체력의 소모가 극심하여 공격하여 싸우는 것에 못지 않았다.
사옥륜은 한참 달리다가 숨이 차는 것을 느끼고 말았다.
[우리들은 절대로 쫓아갈 수가 없겠어요. 그 마차는 네 필의 훌륭한 말이 끌고 있어요. 말들은 사람보다 인내력이 강하죠. 나는 마차에 타고 있을 때 이미 그 말들이 얼마나 빨리 달릴 수 있는지 알아보았어요. 처음에 출발할 때 우리들은 말보다 빠를 수가 있어요. 그러나 십 리 정도 달려간다면 우리들의 속도는 점점 늦어지고 말들은 점점 속도가 빨라져요.]
야려룡과 철진천도 사옥륜의 말을 수긍했다.
[그러나 추격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이미 할 일이 결정된 이상 결과가 어찌되든 진행하고 볼 일이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위대한 점이다.
그들은 쫓아갈 수가 없었다. 앞에 가고 있는 마차는 점점 멀어져가고 점점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뒤에서 마차바퀴 구르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점점 가까워졌다.
마차를 몰고 달려오는 사람은 유육이었다. 처음 출발할 때 그는 비교적 늦게 출발했지만 이미 그들을 따라잡은 것이었다.
그는 네 필의 말이 끌고 바퀴가 여섯 개 달린 커다란 마차였다.
유육은 가까이 다가오자 소리쳤다.
[여러분, 빨리 마차에 타시오, 이 길은 직선 도로이기 때문에 우리들은 이 길만 따라가면 될 것이오.]
마여룡은 물었다.
[이 길은 어디로 가는 길입니까?]
유육은 말했다.
[사곡으로 가는 길이오.]
사곡으로 가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일까?
그들은 근본적으로 무십삼의 적수가 될 수 없는데 추격해 간다고 해서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그러나 모두들 마여룡의 고집을 알고 있었다.
그는 해야 하는 일이라면 결과가 어찌되든 반드시 하고야 마는 성격이었다.


37. 입곡(入谷)


사옥륜은 말했다.
[사곡은 어쨌거나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은 아니에요. 우리들이 들어가는 것은 결코 용이한 일이 아닐 거예요.]
그 누구도 사곡에 들어가본 적이 없었다.
그 누구도 사곡이 어떻게 생긴 곳인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은 생각하고 있었다.
그곳은 이미 황량하고 사람이 없는 곳이 아니고, 사람들이 몽매에도 그리는 많은 황금이 있고 황금을 노리고 몰려드는 많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황금은 그곳에 있는 모든 것을 바꿔 놓을 수가 있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을 그곳으로 끌어모아 화려한 궁전을 지어 놓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의 생각은 빗나갔다. 사곡은 단지 사곡일 뿐이었고 황금도 없었고 화려한 궁전도 없었다.
그들이 추격하고 있는 마차는 사곡의 입구로 들어가자마자 홀연 사라지고 말았다.
이미 날이 밝고 태양이 불끈 솟아오르고 있었다.
태양빛이 수정처럼 빛나는 검은 돌을 비추자 그 반사하는 빛에 눈이 부셨다.
그러나 검은 돌은 검은 돌일 뿐 아무리 빛을 발한다고 해도 황금은 될 수 없는 것이다. 
만약 그곳에 근본적으로 황금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무십삼은 무엇으로 그 많은 사람들을 매수했을까.
이곳에 정말 황금이 그렇게 많다면 그의 눈에는 왜 황금의 사금쪼가리 하나 보이지 않는단 말인가.
마여룡의 관심은 황금에 있지 않고 대완에게 있었다.
그는 그 마차를 추격하기만 한다면 순순히 대완을 찾을 수 있으리라 믿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추격하는 마차는 사곡의 계곡으로 들어오자마자 종적을 감춰버린 것이었다.
마치 일진의 바람처럼 밝고 맑은 태양빛 아래 종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었다.
마여룡은 홀연 말했다.
[밑에 있을 것이오.]
사옥륜은 물었다.
[뭐가 밑에 있다는 거예요?]
마여룡은 대답했다.
[마차와 황금과 사람이 모두 밑에 있소. 그들은 반드시 지하에 거대한 비밀 요새를 구축해 놓았을 것이오.]
이 말은 결코 과장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황금은 원래 있던 것을 변형시킬 수가 있고 근본적으로 만들 수 없는 것을 만들 수 있는 힘이 있는 것이다.
만약 이곳에 정말 지하 요새가 있다면 그곳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유육 한 사람만이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유육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자네가 틀렸네. 그들은 절대로 밑에 있지 않네. 그들은 위에 있네.]
마여룡은 물었다.
[위에 있다뇨?]
유육은 말했다.
[저길 보게.]
마여룡은 고개를 돌려 유육의 시선이 머무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그는 붉은 옷에 허리에 만도를 찬 파사노가 하나의 험악한 계곡 옆의 커다란 바위에 올라서서 그에게 손짓하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그 파사노는 외쳤다.
[누가 마여룡이냐? 네가 대완을 찾으려고 한다면 나를 따라오너라. 다른 사람은 따라오지 말라. 다른 사람이 따라온다면 대완은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하늘은 맑고 푸르렀으며 태양빛은 찬란했다.
생명은 이와 같이 다채로운데 그 누가 죽기를 원하겠는가?
그러나 세상에는 그와 같은 사람이 있고 죽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있는 것이다.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있을 때 그 일은 죽는 한이 있어도 해야하는 것이다.
마여룡은 바로 이런 사람이었다.
마여룡은 천천히 몸을 돌리고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당연히 그가 어떤 사람인지 이해하고 있었다.
철진천은 원래 무슨 말을 하고 싶었지만 무슨 말을 하든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잠시 후에 그는 참지 못하고 말했다.
[그 사람은 미치광이네. 그는 사람을 죽일 때 이유를 따진 적이 없네.]
마여룡은 대답했다.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철진천은 말했다.
[하물려 이번에 그는 이유가 있어서 자네를 죽이게 될 것이네. 왜냐하면 자네는 이미 그를 한 번 속였고 이번에 그는 절대로 자네를 놔두지 않을 걸세. 그가 자네를 죽인 후에 마찬가지로 대완을 죽일지도 모르지.]
마여룡은 말했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철진천은 물었다.
[자네는 그런데도 가겠는가?]
마여룡은 그를 응시했다.
[만약 당신이 저라면 당신은 가지 않겠습니까?]
철진천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갈 것이네. 반드시 갈 거야.]
그는 다가가 마여룡의 손을 굳게 잡았다.
유육도 다가와 마여룡의 한쪽 손을 잡았다.
그런 다음에 뒤로 물러섰다.
그들은 사옥륜이 반드시 마여룡과 긴히 나눌 말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두 남녀가 주고받는 말을 듣기를 원하지 않았고 차마 들을 수도 없는 심정이었다.
햇빛을 받아 사옥륜의 얼굴은 화사했고 차가운 달처럼 창백했다.
이번에 그녀는 눈물을 흘리지 않고 도리어 방긋 웃으며 말했다.
[나는 당신이 반드시 갈 것을 알고 있어요. 만약 내가 그의 손에 떨어졌다 해도 당신은 역시 구하러 갈 테니까요. 나는 지금 당신에게 단 한 가지를 분명히 해두고 싶어요.]
마여룡은 물었다.
[말해 보시오.]
사옥륜은 입을 열었다.
[당신이 죽을지 살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당신이 마음 속으로 누구를 좋아하든지 나는 이미 당신의 사람이에요. 당신도 생각해 보세요. 당신 한 사람을 제외하고 내가 누구에게 시집을 갈 수 있겠어요.]
마여룡은 아무 말없이 몸을 돌려 걸어갔다.
그녀가 한 말은 그가 대답할 수 없는 문제였다.
그는 몇 걸음 가다가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며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가 가고난 후에도 하늘은 여전히 푸르렀고 햇빛은 여전히 찬란했으며 지상의 검은 돌들도 여전히 눈부신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이 세상은 절대로 어떤 한 사람이 죽고 산다고 해서 바뀌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는 떠나간지 아주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사옥륜은 홀연 물었다.
[우리들도 이만 가지요.]
철진천이 물었다.
[우리들이 가야 한다구요? 어떻게 우리가 갈 수가 있습니까?] 
[우리들은 그가 절대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기다린다고 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유육은 홀연 큰소리로 말했다.
[소용이 있소!]
사옥륜은 물었다.
[무슨 소용이 있나요?]
유육은 말했다.
[나는 이미 찾아냈기 때문이오.]
아옥륜은 물었다.
[무엇을 찾아냈나요?]
유육은 말하지 않고 행동으로 대답했다.
그는 이미 사곡의 비밀을 발견한 것이다.
이미 그 비밀의 중추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검은 돌은 태양빛을 되쏘고 있었다.
수천만 개의 검은 돌은 얼핏 보기에 모두 같아 보였다.
그러나 사실은 같지가 않았다.
만약 당신이 유육과 같은 경험과 안력을 가지고 있다면 당신은 수천만 개의 돌 가운데 마흔아홉 개가 완전히 다른 모양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가 있을 것이다.
마여룡의 추측은 틀리지 않았다.
사곡의 비밀은 확실히 땅속에 있었으며 지하 밀실의 입구는 바로 그 마흔아홉 개의 모양이 다른 돌 사이에 있었다.
유육은 이미 이 비밀의 중추를 발견했던 것이다.

거친 산에 험한 길이 나 있었다. 
주변에는 풀 한 포기 자라지 않았다. 
마여룡은 묵묵히 파사노의 뒤를 따랐다. 그는 파사노가 그를 어디로 데리고 가든 얼마나 멀리가든 개의치 않았다. 지금 그는 그들이 계속 추적해온 마차가 어떤 곳으로 갔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마차는 사라진 것이 아니고 한 고비를 돌아 산 위로 달려올라 갔던 것이다.
뜻밖에도 얼핏 보기에 험해보이는 이 산 중간에는 마차가 달릴 만한 넓이의 길이 나 있었다.
그러나 그 산길의 끝에는 화려한 궁전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깊은 동굴이 있었다.
마차는 그 동굴 속으로 사라져버린 것 같았다.
태양빛은 그 동굴 속으로 비쳐들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마여룡은 그 동굴 내부의 상황을 볼 수가 없었다.
그가 볼 수 있는 것은 다만 무십삼 혼자 뒷짐을 지고 동굴 앞에 한가하게 서 있는 모습뿐이었다.
마여룡은 마침내 그 사람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무십삼도 마여룡을 똑바로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무십삼은 갑자기 야릇한 웃음을 웃더니 입을 열었다.
[마여룡, 우리들이 꾸민 이 연극은 이제 그만 해도 되겠군요.]


38. 의문(疑問)


지하에는 황금도 없었고 궁전도 없었다.
그 실종된 마차도 보이지 않았다.
지하도의 입구는 비록 잘 다듬어져 있었으나 밑에는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협소하고 누추했다.
지하실 안에 들어가자 더 이상 햇빛은 비쳐들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어렴풋이 한 개의 침대와 한 개의 탁자와 한 개의 큰 의자가 보였다.
그것들은 모두 진흙으로 빚어 만든 것 같았으며 진흙 외벽을 검은 돌을 해박아 치장해 놓고 있었다.
설마하니 이곳이 바로 무십삼의 거쳐였단 말인가?
이와 같은 세상을 놀라게 한 무림의 괴걸이 어떻게 이런 곳에서 살았단 말인가.
모든 사람은 놀라움과 기이함 그리고 실망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그들이 자세히 생각해 보니 이곳은 원래 마땅히 이와 같은 모양이어야 했다.
이곳은 그 무엇도 그 아무것도 없는 사곡이었다.
무십삼은 필경은 사람이지 신이 아니었다. 그가 비록 그의 결심과 지혜와 노력과 기교와 한 쌍의 손을 동원하여 이와 같은 교묘한 지하 길을 만들었지만 그러나 그 역시 허공에서 침대를 만들어볼 수는 없었던 것이다.
침대가 진흙과 검은 돌을 섞어 만든 것은 이곳에는 본래 진흙과 검은 돌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이 알아볼 수 있었다.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의 부하들이 그렇게 건강하고 우수했고 훈련을 잘 받은 청년들인데 그들은 어디에서 나왔으며 어디에서 살고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이곳에 있는 것은 침대이든 의자이든 탁자이든 모두 진흙으로 만든 것이었다.
그러나 침대를 덮은 이불보, 탁자 위에 있는 기름 등은 흙으로 빚어 만든 것이 아니었다.
침대를 덮고 있는 천은 매우 부드럽고 포근한 비단 같았다.
그 이불보와 등은 어디서 생겨난 것일까?
유육은 지니고 다니는 화접자(火摺子)를 이용하여 탁자 위에 있는 수정으로 만든 등에 불을 당겼다.
그 수정 등은 무척 비싼 것으로 그 안에는 기름이 있었다.
심지에 불을 붙이자 지하실 안은 대낮처럼 밝아졌다. 지하실이 밝아지는 순간 모든 사람들은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고 심지어 강호를 주름잡고 있었던 철진천조차도 놀라 소리를 내질렀다. 그들이 발견한 것은 꿈에도 생각 못했던 것이었다.
그들이 본 것은 한 사람이었다. 침대 위에는 놀랍게도 한 사람이 누워 있었다. 꽃을 수놓은 비단 이불이 그의 몸을 덮고 있었고 다만 이불 밖으로 백발이 된 머리카락만 나와 있었다.
철진천은 앞으로 다가가며 큰소리로 외쳤다.
[당신은 누구요?]
그의 음성은 너무나 커서 귀머거리가 아니면 누구나 들을 수 있었다. 아무리 깊은 잠에 빠진 사람이라도 당연히 깜짝 놀라 일어날만큼 큰 음성이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귀머거리가 아니면 필시 죽은 사람일 것이다.
철진천은 갑자기 달려들어 이불을 걷어치웠다. 이불 밑에 있는 사람은 죽은 사람이었다. 죽은 지 오래되어 뼈만 남은 해골이었다.그 해골의 왼쪽 앞가슴에는 한 자루의 뾰족한 죽창이 꽂혀 있었다.그 죽창은 앞가슴부터 뚫고 들어가 심장을 꿰뚫고 침대까지 깊이 박여 있었다.
이 사람이 깊이 잠든 틈을 타서 갑자기 찔러 죽인 것이 분명해 보였다. 반항한 흔적도 보이지 않았고 한 번 찔러 깨끗이 절명케 한 것이었다.
암습을 한 사람은 손 씀씀이가 정확하고 손 씀씀이가 악독했으며 행동이 매우 민첩했던 것 같았다.
또한 침대 위에서 죽어있는 사람과 매우 친숙한 사람으로 전혀 경계를 하지 않고 있었을 가능성도 컸다.
이 사람은 누구일까.
무십삼은 어째서 한 사람의 시체를 해골이 다 될 때까지 이곳에 놓아두었단 말인가.
사옥륜은 홀연 말했다.
[이 사람이 바로 무십삼이에요.]
철진천과 유육은 깜짝 놀라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말을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절친천은 물었다.
[이 사람이 바로 무십삼이란 말이오?]
사옥륜은 대답했다.
[절대 틀림없어요.]
철진천이 물었다.
[당신이 어떻게 아시오?]
사옥륜은 대답했다.
[그는 옛날에 벽옥산장에 왔던 적이 있었어요.]
철진천이 물었다.
[그때 당신이 세상에 태어났었소?]
사옥륜은 대답했다.
[태어나지 않았어요.]
철진천은 한숨을 내쉬며 쓴 웃음을 지었다.
[그때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았으면서 어떻게 그를 볼 수 있었소? 설사 예전에 보았다고 해도 뼈만 남은 것을 보고 알아볼 수는 없을 것이오.]
그 누구도 뼈만 남은 해골을 보고 그 사람이 살아있을 때의 신세와 성명과 내력을 알아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옥륜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비록 그를 본 적이 없지만 그를 알아볼 수가 있어요.]
철진천은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요?]
사옥륜은 대답했다.
[왜냐하면 나의 어머님께서는 그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셨어요. 그 중에 한 가지를 나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어요.]
유육은 물었다. 
[한 가지 일이 뭐요? 그것이 어떤 것이오?]
사옥륜은 대답했다.
[이빨이에요.]
유육은 물었다.
[이빨이라니?]
사옥륜은 대답했다.
[틀림없어요. 바로 이빨이에요. 한 사람의 용모는 비록 바뀌어질 수가 있지만 이빨은 절대로 바뀌어질 수가 없어요. 모든 사람의 이빨은 모두 생김새가 달라요.]
이빨은 죽어서도 썩지 않는다. 
사옥륜은 다시 말했다.
[나의 어머니께서는 항상 말씀하셨어요. 이 세상에서 가장 이빨이 이상하게 난 사람이 바로 무십삼이라고요.]
유육과 철진천은 해골의 이빨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보아도 무슨 기괴한 점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철진천은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그의 이빨이 뭐가 이상하다는 것이오?]
사옥륜은 말했다.
[그의 이빨은 다른 사람보다 네 개가 많아요. 그의 이빨은 모두 합해서 사십 개예요.]
그녀는 철진천에게 물었다.
[당신은 이빨이 사십 개 난 사람을 보았나요?]
철진천은 본 적이 없었다.
유육도 본 적이 없었다.
모든 사람들이 서른여섯 개의 이빨을 가지고 있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두 개의 눈알을 가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 해골은 마흔 개의 이빨을 가지고 있었다.
사옥륜은 말했다.
[나는 이미 두 번이나 세어 보았어요. 그러므로 나는 이 사람이 바로 무십삼이라고 확신해요.]
철진천은 어리둥절했다.
유육도 어리둥절했다.
한참 후에 그들은 동시에 물었다.
[만약 이 죽은 사람이 무십삼이라면 그 무십삼은 또 누구란 말이오?]
사옥륜은 대답했다.
[그는 가짜예요.]
철진천과 유육은 동시에 외쳤다.
[가짜라고?]
사옥륜은 대답했다.
[이곳은 근본적으로 황금이 없어요. 무십삼도 근본적으로 그렇게 많은 사람을 거느릴 능력이 없었어요. 그런고로 그 무십삼은 당연히 가짜예요. 더군다나 그 누구도 무십삼을 본 적이 없어요. 그 누구도 그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아차릴 수가 없어요. 모든 사람들은 누구나 그를 사칭할 수가 있어요.]
철진천은 물었다.
[무엇 때문에 그를 사칭한단 말이오?]
사옥륜은 대답하지 않았다.
바로 그 때였다.
또 한 사람의 음성이 들려온 것이다. 지하실에는 그들 세 사람뿐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다른 사람의 음성이 들려온 것이다.
그 음성은 매우 나직했다. 마치 먼 곳에서부터 들려오는 소리같았다. 그러나 그 음성은 매우 똑똑히 들렸다. 
그 음성은 이렇게 말했다.
[마여룡, 이제 우리들이 꾸민 연극은 그만 둘 때가 된 것 같군요.]
모든 사람들은 지하실 속에서 숨을 쉬고 있었다.
이것은 지하실에 바람이 통하는 곳이 있다는 증거였다. 그렇기 때문에 무십삼의 시체는 부패되고 풍화될 수 있었던 것이다.
한 자루의 거대한 대나무 마디를 뚫어 그 대나무를 지하실에서부터 땅 위에까지 이어지게 해놓은 것이었다.
이것으로 지하실의 공기가 통풍되고 있었다.
그들이 들은 음성은 바로 그 통풍구를 통하여 전해오고 있었다.
그 음성은 생소하여 누구의 음성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곧이어 그들의 귀에 매우 익은 음성이 들려왔다.
바로 마여룡의 음성이었다.
[연극을 꾸미다니, 누가 연극을 꾸몄다는 것이오?]
그 음성은 말했다.
[당연히 우리 두 사람이 꾸민 연극이지. 당신도 내가 무십삼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 않소? 당신은 나에게 오천 냥의 은자를 주면서 나보고 이 모든 일을 꾸미라고 했지 않소?]
마여룡은 놀라 외쳤다.
[내가 당신을 무십삼처럼 꾸며 놓았단 말이오?]
그 사람은 말했다.
[당연히 당신이 그렇게 시켰지.]
마여룡은 외쳤다.
[내가 무엇 때문에 그런 일을 한단 말이오?]
그 사람은 말했다.
[왜냐하면 당신은 다른 사람들이 모두 당신을 좋은 사람으로 여기게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오. 그러므로 나를 천하에서 가장 나쁜 악인으로 분장시켰고 사람을 죽이도록 했던 것이오. 당신은 그들을 구해줌으로써 다른 사람들은 친히 당신의 영웅기개를 볼 수 있도록 만들었던 것이오.]
마여룡이 외쳤다.
[그 몇 사람들을 네가 죽인 것이 아니란 말이냐?]
그 사람은 웃으며 말했다.
[당연히 내가 죽인 것이 아니지. 내가 어떻게 살인하는 무공을 지니고 있겠소. 당신은 죽은 사람들의 동료를 매수해서 먼저 혼란을 조성한 후에 혼란을 틈타 죽은 사람들의 혈도를 찍도록 하고 그리고 나서 당신이 고용한 파사노가 그 기회에 그들의 목을 잘랐던 것이오. 나는 다만 당신의 꼭둑각시에 불과했던 것이 아니겠소?]
마여룡은 물었다.
[골목길 부근의 집들을 모조리 철거한 사람들은, 그 사람들은 누구냐?]
그 사람은 말했다.
[그들은 당연히 당신이 고용한 사람이오. 천마당은 돈이 있고 세력이 있는데 무슨 일인들 못하겠소? 나는 정말 당신에게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소. 당신은 사곡에 황금이 있다고 엉뚱한 소리를 하였으니, 당신은 정말 천재라고 할 수 있소.]
마여룡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사람은 다시 웃으면서 말했다.
[더욱 묘한 것은 나의 수중에는 당신이 제조하여 준 전문적으로 돌을 날리는 대통이 있었다는 것이오. 나의 소매 속에 숨겨두고 검은 돌을 하나씩 퉁겨 내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것이 내가 탄지신공을 발휘해서 발출한 것으로 알았었소.]
마여룡은 한참 후에 물었다.
[설마하니 당신은 근본적으로 무공을 할 줄 모른단 말이오?]
그 사람은 말했다.
[약간이야 할 줄 알지만 당신들에 비하면 한참 멀었죠.]
마여룡은 물었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떻게 우리들이 잡화점 안에서 말하는 소리를 다 들을 수 있었소?]
그 사람은 말했다.
[내가 무엇을 들었다는 말이오? 당신들의 말을 나는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했소.]
마여룡은 물었다.
[그때 밖에 있던 사람이 당신이 아니란 말이오?]
그 사람은 말했다.
[당연히 내가 아니오.]
마여룡은 물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누구였소?]
그 사람은 대답했다.
[그 사람이 누군지 내가 어떻게 알겠소? 그때 밖에서는 근본적으로 말을 한 사람이 없었소. 이 연극은 당신이 꾸민 것인데 그 중의 교묘함을 당신이 어찌 모른다고 하시오? 어찌됐든 좋소. 이미 연극은 끝났소. 대완 낭자와 그 늙은 화상은 모두 산동굴 안에 있소. 당신은 빨리 가서 그들을 만나 보시오. 이번에 당신은 정말 멋있게 영웅행세를 하게 된 것이오. 나는 오천 냥을 받고 이런 일을 하게 되었지만 사실은 양심에 좀 찔리긴 하오. 그렇다면....]
그의 음성은 여기서 중단되었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음성은 더 이상 들리지 않게 된 것이다.
지하실에 있는 사람은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마여룡은 그들의 친구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환풍구를 통하여 마여룡의 비밀을 들었던 것이다.
그들이 무슨 말을 할 수 있으랴.
한참 후에 유육이 길게 탄식하며 물었다.
[뜻밖에도 마여룡은 그런 사람이었구나.]
이것은 정말 뜻밖의 일이었다.
만약 그들이 이 지하실에 들어와 있지 않았다면 환풍구를 통하여 들리는 마여룡의 비밀을 듣지 않았다면, 그들은 마여룡을 이 세상에서 가장 솔직하고 의리있는 사람으로 여겼을 것이다.
철진천은 홀연 입을 열었다.
[나는 아직도 모르는 점이 있소.]
유육이 물었다.
[무엇을 모른단 말이오?]
철진천은 말했다.
[그 무십삼을 사칭한 사람은 우리들이 잡화점 안에서 하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고 했는데, 그때 우리는 분명히 무십삼의 음성을 들었단 말이오. 그것은 도대체 누가 말한 소리일까요?]
유육은 한참 생각하다가 말했다.
[만약 내 짐작이 틀리지 않는다면 분명히 잡화점 안에 있는 사람이 했을 것이오.]
철진천은 물었다.
[그 당시 잡화점 안에 있는 사람 중에는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소.]
유육은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입을 열지 않고도 말을 할 수가 있소.]
철진천은 말했다.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이오?]
유육은 말했다.
[복어(腹語)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소. 나는 그런 사람을 본 적이 있소.]
철진천은 확연히 깨달은 듯 입을 열었다.
[맞았소. 나도 그런 사람을 본 적이 있소. 그런 사람은 배로 말을 할 수 있소. 그 당시 우리들은 그 음성이 가까이서 들려오는 것처럼 똑똑히 귀에 들렸던 것을 기억하고 있소.]
유육은 물었다.
[당신은 아직도 그 사람이 누군지 생각을 못한단 말이오?]
철진천은 말했다.
[나는 이제 알겠소. 그 사람은 바로 왕만무요. 그가 틀림없소.]
유육은 물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오]
철진천은 대답했다.
[그는 원래 스스로 그물 속으로 들어올 리가 없었소. 그가 잡화점으로 들어온 것은 일부러 우리를 현혹시켜 우리들로 하여금 무십삼이 신통한 능력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밖에 있는 무십삼이 진짜 무십삼이라는 것을 믿도록 하기 위해서였소.]
유육은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마여룡은 나중에 왕만무를 죽여 자기의 비밀이 탄로나는 것을 방지했던 것이오.]
철진천은 냉소했다.
[왕만무같은 인간은 마땅히 죽어야 했소.]
그렇다면 마여룡같은 사람은 마땅히 어떠해야 할까? 
철진천은 두 주먹을 움켜쥐며 입을 열었다.
[우리들은 위로 올라가 마여룡을 기다립시다. 우리들은 그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한번 들어봅시다.]
유육은 말했다.
[좋소. 갑시다.]
그때 사옥륜이 입을 열었다.
[잠깐만 기다리세요.]
유육이 물었다.
[무엇을 더 기다린단 말이오?]
사옥륜이 말했다.
[나의 물건을 여기에 떨어뜨렸어요. 나는 반드시 그것을 찾은 다음에야 나갈 거예요.]
그녀는 어쩌다가 이곳에 물건을 떨어뜨렸을까.
떨어뜨린 것은 무엇일까.
그녀는 뜻밖에도 정말 떨어뜨린 물건을 주웠다. 그 물건은 세 알의 진주였다. 그녀는 문 옆에서 그것들을 주운 것이었다.
철진천과 유육은 의아하여 물었다.
[그게 당신의 것이오?]
사옥륜은 대답했다.
[그래요.]
유육은 물었다.
[당신의 물건이 어째서 여기에 떨어져 있소?]
사옥륜은 차가운 음성으로 말했다.
[왜냐면 나는 예전에 여기에 와본 적이 있기 때문이에요.]
철진천과 유육은 깜짝 놀라 입을 열었다.
[당신은 어떻게 여기에 오게 되었소? 무엇 때문에 온 것이오?]
사옥륜은 말했다.
[나는 나의 외삼촌을 찾아왔어요.]
철진천은 깜짝 놀랐다.
[당신의 외삼촌이라니, 무십삼이 설마하니 당신의 외삼촌이란 말이오?]


39. 해답(解答)


사옥륜은 대답했다.
[무십삼은 우리 어머니의 친동생이에요. 그러나 나는 지금까지 그를 본 적은 없었어요. 왜냐하면 벽옥산장은 원래 남자들을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벽옥산장의 여자들이 남자아이를 낳게 되면 즉시 멀리 갖다 버리지요.]
지금에 이르러서야 철진천은 비로소 무십삼이 어째서 무십삼이라고 이름을 붙였는지 알 것 같았다.
그는 자기의 신세 내력을 안 후에 당연히 비통함과 분노를 느껴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부모도 없고 형제도 없다고 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한마음 한뜻으로 벽옥산장을 찾아가 한바탕 다투었을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는 패배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제야 철진천은 어째서 벽옥부인이 예를 깨뜨리고 그를 살려주었는지 알 수 있었다. 어떻게 그의 이빨이 사십 개인지 알 수 있었는지도 짐작할 수 있었다.
사옥륜은 말했다.
[어머니께서는 이곳 사곡으로 쫓아냈지만 그러나 자기의 친동생이기 때문에 항상 내 앞에서 무십삼에 관한 얘기를 하셨어요. 나는 무십삼 외삼촌이 어떻게 생긴 분인지 궁금해서 이곳에 그를 한번 찾아오기로 했던 거예요.]
유육은 말했다.
[당신이 그를 찾아왔을 때 그는 이미 죽어 있었겠군요. 그러니 당연히 그 무십삼은 가짜가 확실하군.]
사옥륜은 말했다.
[틀림없어요.]
유육은 물었다.
[당신은 어째서 진즉에 그의 음모를 폭로하지 않았소?]
사옥륜은 대답했다.
[왜냐하면 나는 이 기회를 이용하여 외삼촌을 죽인 흉수가 누구인지 알아내려고 했던 거예요. 이런 기회는 두번 다시 오지 않기 때문이죠. 외삼촌을 죽인 흉수라야 비로소 그가 죽은 것을 알 것이고 외삼촌으로 사칭할 수 있었을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음모의 주모자가 바로 외삼촌을 죽인 흉수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되는 거죠.]
유육은 길게 탄식했다.
[다행히 흉수는 밝혀졌소. 흉수는 바로 마여룡이오.]
사옥륜은 뜻밖에도 이상한 눈초리로 유육을 바라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당신은 틀렸어요.]
유육은 물었다.
[내가 틀렸다고? 뭐가 틀렸다는 것이오?]
사옥륜은 잘라 말했다.
[흉수는 마여룡이 아녜요. 절대로 아니에요.]
유육은 물었다.
[그렇다면 누구란 말이오?]
사옥륜은 유육을 노려보며 비통하고 원독에 찬 음성으로 외쳤다.
[당신이에요!]
그녀는 유육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흉수는 바로 당신이에요!]
유육은 빙그레 웃었다.
[당신은 정말 우스운 말을 하는군. 그러나 애석하게도 당신의 말은 전혀 우습지가 않군.]
사옥륜은 말했다.
[이 우스개의 말은 당연히 우습지가 않죠. 왜냐하면 근본적으로 우스개 말이 아니고 사실이기 때문이죠.]
유육은 물었다.
[당신은 정말 나를 흉수로 여기는 것이오?]
사오륜이 대답했다.
[나는 원래는 당신이라고 생각을 못했었어요. 다행히 나는 다른 사람이 모르는 또 한 가지의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당신이 흉수라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유육은 물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말씀해 보시오.]
사억륜이 말했다.
[나는 유오에게는 동생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절대로 있을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유오는 바로 나의 외삼촌이기 때문이에요.]
철진천은 깜짝 놀랐다.
유육은 뜻밖에도 빙그레 웃었다.
[그 한 가지 사실만으로 당신은 내가 흉수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오?]
사옥륜은 대답했다.
[그것만 가지고는 부족하죠. 다행히 대완은 우연히 그녀가 보지않아야 할 사건을 목격했어요.]
유육은 물었다.
[무슨 사건이오?]
사옥륜은 말했다.
[당신이 친히 왕만무를 죽이는 것을 대완은 보았어요. 그녀는 친히 목격한 거죠.]
유육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사옥륜은 다시 말했다.
[그때 나는 대완에게 그 사실을, 당신의 음모를 누구에게도 폭로하지 말라고 했어요. 왜냐하면 그 때까지만 해도 우리들은 당신이 누구인지 몰랐기 때문이에요.]
유육은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그렇다면 지금 당신은 알고 있단 말이오?]
사옥륜은 대답했다.
[이제야 나는 알게 되었어요. 당신이 이 일을 계획한 것은 마여룡을 함정에 빠뜨리게 하기 위한 거예요. 왜냐하면 당신은 모든 사람들이 점점 마여룡에게 호감을 가지는 것을 알았고 모든 사람들이 점점 그를 믿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당신은 이런 계획을 세워 그를 해치려고 한 것이에요.]
그녀는 홀연 철진천에게 물었다.
[당신은 그 누가 가장 마여룡을 죽이고 싶어하는지 짐작이 가나요?]
철진천은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는 즉시 대답했다.
[그 사람은 바로 구봉성이오.]
사옥륜은 말했다.
[맞아요. 당연히 구봉성이죠.]
그녀는 손가락으로 유육을 가리키며 한 자 한 자 잘라 말했다.
[당신이 바로 구봉성이에요!]
유육은 껄껄 웃었다.
[당신은 끝내 모든 것을 알아챘군. 나는 더 이상 부인하지 않겠소. 맞았소. 내가 바로 구봉성이오.]
사옥륜은 탄식하며 입을 열었다.
[당신이 순순히 시인을 해주니 고맙군요.]
구봉성은 말했다.
[그러나 아직 한 가지 사실을 당신들은 모르고 있을 것이오.]
사옥륜은 물었다.
[무슨 일인가요?]
구봉성은 말했다.
[나는 무십삼의 유일한 제자였소.]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천하를 제패하고 싶은 야심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구봉성 집안의 은창수법만 가지고는 천하를 제패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한번은 그가 무의식중에 우연히 무십삼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구봉성은 입을 열었다.
[무십삼은 정말 기인이었소. 나는 천신만고 끝에 이 사곡까지 와서 그를 만날 수 있었소. 나를 만나자 무십삼은 매우 기뻐하며 나를 제자로 맞아주었소.] 
사곡에서 혼자 쓸쓸히 지내던 무십삼은 구봉성을 만나자 너무나 반가와 당장 제자로 삼고, 가지고 있던 모든 무예를 그에게 전수해 주었던 것이다.
무십삼이 가지고 있는 재간은 한 가지가 아니었다.
구봉성은 말했다.
[땅굴을 파는 재간도 그가 나에게 가르쳐 준 것이오. 기문둔갑(奇門遁甲)과 기관(機關)에 관한 학문, 독을 쓰고 모양을 바꾸는 재주도 모두 정통해 있었소. 그는 모든 것을 나에게 가르쳐 준 것이오.]
사옥륜은 물었다.
[당신은 어째서 그를 죽였나요?]
구봉성은 대답했다.
[나는 그의 모든 재간을 배웠고 그는 내가 사곡에서 떠나는 것을 막았기 때문이오. 내가 그를 죽이지 않고 누굴 죽인단 말이오?]
사옥륜은 말했다.
[당신은 그를 죽였을 뿐 아니라 당신과 함께 나란히 이름을 떨치던 두청련, 심홍엽까지 죽였고 마여룡까지 죽이려고 했어요.]
구봉성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당신의 말은 모두 사실이오. 나는 마여룡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신임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를 제거하기로 결심했던 것이오. 마여룡은 확실히 간단하게 볼 사람이 아니었소.]
사옥륜도 탄식하며 말했다.
[사실 당신은 아무 짓도 할 필요가 없었어요. 우리들은 근본적으로 당신의 허점을 알아차리지 못했어요. 그리고 당신이 흉수라는 증거도 잡지 못했어요. 그러나 애석하게도 당신은 너무 총명해서 스스로 마각을 드러낸 거예요.]
구봉성은 말했다.
[너무 총명한 것이 항상 나쁘다고는 할 수 없소. 당신들이 나의 음모를 알아차렸든 알아차리지 못했든 그 결과는 마찬가지요.]
사옥륜이 물었다.
[그 결과는 마찬가지라니요? 그게 무슨 말씀인가요?]
구봉성은 홀연히 물었다.
[어쨌거나 당신들은 곧 죽게 될 것이기 때문이오. 당신들은 조금 전에 퍽, 하는 소리를 들었지 않소? 그것은 칼로 목을 잘라버리는 소리였소. 누구의 칼이 누구의 목을 잘랐는지 짐작이 가시오? 무십삼을 사칭한 사람의 목이 잘라졌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당신들의 착각이오.]
사옥륜은 놀라서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렇다면 누구의 목이 잘라졌다는 것인가요?]
구봉성은 말했다.
[당연히 마여룡의 목이 잘라진 것이오. 팽천고(彭天高)의 칼이 마여룡의 목을 자른 것이오. 팽천고는 바로 그 파사노요. 그는 팽천패의 아우인데 그의 도법은 팽천패보다 훨씬 뛰어나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는 파사노인 여자를 어머니로 두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 어머니가 부친의 첩이었기 때문에, 영원히 오호단문도의 도통을 계승할 수가 없었소. 팽씨 집안의 엄청난 재물도 그에게는 한 푼도 돌아오지 않았소.]
사옥륜은 물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은 그를 꼬셔서 당신의 부하로 삼았고 팽천패를 죽였군요.]
구봉성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 시인했다. 
그러더니 다시 화제를 바꿨다.
[무십삼이 살아있을 때 나는 그에게 물은 적이 있었소. 가장 가지고 싶은 물건이 무엇이냐고. 그러자 그는 뜻밖에도 침대를 덮는 이불과 한 개의 등잔을 갖고 싶다고 했소.]
사옥륜은 말했다.
[당신은 당연히 그에게 그 물건들을 가져다 주었겠군요.]
구봉성은 말했다.
[나는 가장 비싼 이불과 가장 좋은 등을 가져다 주었소. 등의 심지와 기름도 가장 좋은 것이었소. 그러나 최후로 가져다 준 물건은 별로 좋은 것이 아니었소.]
사옥륜이 물었다.
[최후로 가져다 준 것은 무엇인가요?]
구봉성은 웃으며 말했다.
[미약(迷藥)이 섞여 있는 등불에 넣을 기름이었소. 그 미약은 당연히 아주 성능이 우수한 것이오. 등불을 켜자 그 미약의 향기가 퍼져나가 무십삼은 그만 정신을 잃고 힘을 잃어버렸으며 나는 그 틈을 타서 가볍게 그를 죽여버릴 수가 있었소. 당신들은 조금 전에 등불을 켰으니 이미 미약의 독에 중독되었다고 할 수 있소.]
그는 매우 유쾌하게 웃어댔다.
그러나 그의 웃음은 길지 않았다. 홀연 쨍, 하는 소리와 함께 탁자의 불이 꺼졌던 것이다.
문 밖에서 한 점의 불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너울거리는 불빛 아래 출현한 사람은 바로 마여룡이었다.
마여룡의 뒤로 대완과 절대사가 따라오고 있었다.
그들은 당연히 죽지 않았다.
대완이 포로가 된 것은 대완과 사옥륜이 짜고 한 짓이었다.
사옥륜은 마지막으로 구봉성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그날 밤 대완의 혈도를 찍고 그런 말을 한 것은 일부러 당신이 들으라고 한 것이에요. 내가 대완에게 복수를 한다고 당신이 믿도록 하기 위함이었어요. 당연히 나는 마여룡을 데리러 나가는 척하면서 당신으로 하여금 대완을 데리고 나갈 기회를 주었던 거예요. 그러나 사실 나는 방에서 나가기 직전에 대완의 혈도를 풀어놓았죠.]
그러자 대완이 담담하게 그 말을 이어받았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들은 칼이 목을 자르는 소리를 들었을 때 그것이 팽천고의 칼이란 것을 알았을 거예요. 그러나 잘라진 모가지도 그의 것이었어요.]

구봉성은 당연히 그가 마땅히 받아야 할 벌을 받았다. 
절대사는 멀리 곤륜산의 높은 봉우리로 들어가 동굴에서 면벽을 하며 자기의 죄를 뉘우쳤다.
철진천과 마여룡은 통쾌하게 삼 일 간 술을 마시고 달밝은 밤에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다.
강남 유오는 여전히 강남 무림을 이끌었고 옥대소저는 여전히 행적이 표홀하여 그녀의 종적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대완과 사옥륜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녀들과 마여룡은 어떤 결과를 맺었을까?
몇 년 후 어떤 사람이 강남에서 우연히 마여룡을 보았다는 소문이 들렸다. 그의 말에 따르면 마여룡은 두 명의 꽃과 같고 옥과 같은 예쁜 부인을 얻어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고 했다. 그중에 한 사람은 사옥륜이었는데 또 한 사람은 누구인지 모른다고 했다.
그녀는 혹시 대완이 아닐까?
이것은 그 누구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옥대소저의 솜씨를 아는 사람이 있었다면 그녀가 대완이라는 사실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