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r 199-217 번호:199/227 등록자:HYUN9876 등록일시:97/04/06 23:18 길이:490줄 제 목 : [사마달] 불세마왕경 제 21장 불세마왕경 저자: 사마달 출판사: 대현출판사 제 21장 개방의 최고명예 두줄기 붉은 기운이 허공에서 부딪치는 순간, 콰-----르---르------르------릉 천지를 뒤흔들 듯한 폭음이 울려 퍼지면서 사방은 즉시 흙먼지로 뒤덮여 버렸다. 때를 같이하여, [으----아------악!] 홍의인의 입에서 처절한 단말마의 절규가 터져나오는 가운데 그의 몸은 오 장밖 밖으로 나가 떨어졌다. 그는 두 팔로 땅을 짚으며 몇 번 몸을 일으키려는 듯 하더니 이내 푹 꼬꾸라지고 말았다. 그리고는 칠공으로 시뻘건 선지피를 주르르 뿜어냈다. 홍의인들은 그의 죽음에 전신을 한 차례 부르르 떨었다. 반면 개방의 인물들은 기쁨의 환호를 질렀다. [와-----아!] [소협만세!] [....] 취몽주개 등은 급히 철한빙의 옆으로 다가갔다. 이어 그의 두 손을 텁석 잡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노제.. 이 은혜를...]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말한 뒤 목이 메어 뒷말을 잇지 못했다. 철한빙은 그들을 향해 미소를 보낸 후 홍의인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전향주, 어서 돌아가 당신들의 교주에게 말하시오. 본 공자가 있는 한 개방을 넘볼 생각은 버리라고 말이오. 아시겠소?] 전향주는 두 눈에서 쉴새없이 살광을 뿜어내며 복선을 파르르 떨었다. [으... 네놈의 무공이 출신입화의 경지에 도달한 줄을 모른것이 실수였다.] 그는 또다시 몸을 떨고는 악에 받친 듯한 음성으로 말했다. [네놈의 이름은 무엇이냐?] 철한빙은 가소롭다는 눈으로 홍의인들을 한 차례 둘러본 후 한자 한자 또렷하게 말했다. [설------운-------몽!] 전향주는 그의 이름을 나직이 뇌까리며 부하들에게 싸늘하게 식어가는 당주의 시 체를 둘러메게 했다. 그리고는 철한빙을 향해 사악한 기가 물씬 풍기는 음침한 어조로 말했다. [설운몽! 본교는 절대로 네놈의 이름을 잊지 않을 것이다.] 전향주는 부드득 이를 갈며 뒤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얘들아, 가자!] 홍의인들은 순식간에 개방 총단을 떠나갔다. 그들이 떠난 주위에는 수십 구의 시체가 피바닥을 이루며 뒹굴었다. 돌연, [소협, 정말 절세적인 무공을 지녔습니다.] [소협, 노부 등은 비로소 오늘에야 눈을 뜬 것 같소이다.] [....] 여기저기 중구난방격으로 한 마디씩 하자 총단이 윙윙 울릴 정도였다. 철한빙은 계면쩍은 웃음을 지으며 그들을 향해 포권을 하였다. [별말씀을, 그저 소생이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두종악이 그를 쳐다보며 짐짓 호통을 쳤다. [노제, 감히 우형을 속이다니.. 그 벌로 노부가 내리는 벌주를 들어야 하네.] 철한빙이 호쾌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핫.. 형님, 여부가 있겠습니까? 오래간만에 형님의 술잔을 받겠습니다.] 그들은 유쾌하게 웃으며 정자로 향했다. 개방의 제자들은 시체를 치우고 땅에 배인 피들을 닦아내기 시작했다. 정자에 둘러앉은 취몽주개의 사형제, 그리고 개방삼장로와 철한빙은 상다리가 휘어질 듯한 술상을 마주했다. 철한빙이 그들을 둘러보며 환하게 웃었다. [이런 술상을 한번 차리시려면 여러분께선는 앞으로 반년 이상을 굶고 지내셔 야겠군요.] 취몽주개가 코를 벌름거리며 익살을 떨기 시작했다. [헤헤헤... 노제, 자네한테 밥 빌어오란 소린 하지 않을테니 마음 턱 놓고 실 컷 들게나.] 그의 말이 끝나자 중인들은 동시에 가가대소를 터뜨렸다. [으하하하...] 그들은 동시에 술잔을 들어 단숨에 잔을 비웠다. 술잔이 몇번 돌자 독안신개가 취몽주개를 향해 넌 지시 말했다. [방주, 설소협은 우리 개방의 역사상 가장 큰 은덕을 남기신 분이오. 해서 노부 가 한가지 의견을 말씀 드리고자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취몽개주가 익살스런 얼굴을 지우며 정색을 했다. [사숙, 무슨 말씀이기에 그토록 말을 흐리십니까?] [저... 다름이 아니라 설소협을 개방의 명예태상호법으로 일임했으면 어떻까 하 오이다.] 그러자 독안신개가 무릎을 치며 입을 열었다. [옳거니! 역시 안제의 머리는 비상하구먼. 그렇지 않아도 노부도 지금 막 그 생 각을 하고 있던 중이네.] 통비협개도 역시 한 마디 거들었다. [하하하... 만약 설소협이 본방의 태상호법이 된다면 그 뉘라서 개방을 건드릴손 가!] 두종악은 연신 싱글벙글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철한빙은 그들의 말을 듣고 크게 당황했다. 개방의 태상호법은 실상 무림맹주에 버금가는 엄청난 신분이었다. 무림 역사상 아직 개방의 태상호법직을 맡아 본 인물은 한 사람도 없었다. 그것은 개방이 아직까지 남에게 도움을 받지 않은 이유도 있지만 실직적으로 그 럴만한 인물이 아직까지 없었기 때문이었다. 철한빙은 황급히 두 손을 내저으며 극구 사양을 했다. [장로님들, 소생은 아직 나이도 어리고 또 그럴만한 인물도 못됩니다. 그러니 지 금 하신 말씀은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취몽주개가 급히 그의 말을 가로채며 엄숙하게 입을 열었다. [노제는 본방이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비렁뱅이의 집단이라 안중에도 두지 않는 다는 말인가?] 철한빙은 그가 다짜고짜 이렇게 말하자 진퇴양난에 빠지고 말았다. 승낙을 하자니 그렇고 거절하자니 상대를 무시하는 것같아 안절부절을 하지 못했 다. 이때 두종악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노제, 본방의 태상호법을 맡아 주게. 하나 노제가 싫다면 더이상 긴 말 하지는 않네.] 철한빙은 그가 이렇게 말하자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 했다. 중인들은 그의 입술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이윽고 철한빙의 입술이 천천히 벌어졌다. [좋습니다. 승낙을 하겠습니다. 다만 허울좋은 직책이 되지 않을까 심히 걱정 되 는 바입니다.] 취몽주개등은 그가 승낙을 하자 일제히 희색이 만면하여 술잔을 높이 쳐들었다. [신임 태상호법을 위해 권배!] 철한빙은 얼굴을 붉히며 같이 술잔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단숨에 술잔을 비웠다. 취몽주개는 술잔을 내려놓으며 품 속에서 정교하게 다듬어진 새까만 대나무 패를 꺼냈다. [노제, 이것이 본방이 아직까지 임자를 찾지 못하던 태상호법을 대신하는 영패일 세. 어서 받게나.] 철한빙은 공손히 손으로 받아 패를 바라보았다. 검은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대나무 패는 만년묵죽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앞면은 개방의 조사인 듯 싶은 청수한 백발노인이 새겨져 있었다. 백발노인의 어깨와 두 손에는 붉은 호로가 들려져 있었고 입으로는 허연 기체를 뿜어 내고 있었다. 또한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는데 오른발은 왼쪽 무릎밑에, 그리고 왼쪽 다리는 곧 게 뻗은 묘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철한빙은 백발노인의 자세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취몽주개등은 그의 표정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하고 의아한 듯한 눈빛을 교환했 다. 철한빙은 약 일각 정도를 패에서 시선을 떼지 않다가 이윽고 천천히 시선을 취몽 주개에게 돌렸다. [형님께선 혹시 이 폐에서 무슨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습니까?] 그러자 취몽주개 등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아무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는데. 왜? 무엇이 잘못 되었는가?] 철한빙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미소를 지었다. [형님. 혹시 개방에서 오래전에 실전된 무공이 없습니까?] 더욱 더 오리무중에 빠지는 한편 경악한 표정을 짓는 취몽주개였다. [노제, 자네는 그것을 어떻게 알고 있나? 실은 본방은 삼백여 년 전에 본방의 치 고무상한 심법이 실전 되었다네.] 철한빙은 역시 자신의 생각이 들어 맞았음에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허허허.. 형님, 실은 그 심법은 실전된 것이 아닙니다. 한데 심법의 이름이 무 엇입니까?] 취몽주개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취련무아심법이라 하네만 실전되지 않았다는 말은 또 무슨 뜻인가?] 철한빙은 그저 빙그레 웃은 뒤 영패의 뒷면을 보았다. 그곳에는 용사비등의 필체로 다음과 같이 새겨져 있었다. <개방은 천하제일이요. 태상호법은 천하제일인이로다.> 철한빙은 이 글을 보고 속으로 실소를 금치 못했다. (사람 위에 또 사람이 업거늘 어찌 천하제일인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는 천천히 영패를 탁자 위에 놓으며 취몽주개에게 말했다. [형님, 소제가 보기에는 이 백발노인이 취하고 있는 자세가 실전된 취련무아심법 인것 같습니다.] [뭐라고?] 취몽주개 등은 급히 영패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리고는 이내 시선을 떼며 떨떠름하게 입을 열었다. [노제, 노부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아무리 보아도 이 자세에서 심법을 운영할 수 없었네. 그건 노제가 시험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네.] 철한빙이 그들을 한 차례 둘려보며 확실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것은 심법의 귀결이 적혀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패 어딘엔가 분명 히 적혀 있을 것입니다.] 취몽주개가 천천히 그리고 반신반의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이런 패에다 심법을 적어 놓겠는가? 아무래도 노제가 잘못 짚은듯 하네.] 그러자 통비협개가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방주, 노부가 생각하기에는 본방의 인물 중에 인재가 있나 없나를 실험해 보기 위해 조사께서 여기에다 심법을 새겨넣은 듯 합니다. 만약 본방에서 이것을 풀지 못한다면 우리 비렁뱅이들에게 은혜를 베푼 사람은 틀림없이 일대기재일것이라 생각하면서 그 사람에게 전수해 주고자 하여 이런 방법을 택한 것 같습니다.] 이때 철한빙은 전신의 공력을 두 눈에 집중시켜 영패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이었 다. 일각, 이각, 오각.... 드디어 철한빙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는 좌중을 둘러보며 잔잔한 음성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형님, 역시 이것이 취련무아심법의 자세입니다. 공력을 집중시켜 조사께서 가지 고 있는 네 개의 호로병을 보시면 그곳에 심법귀결이 적혀져 있는 것을 볼수 있 을 것입니다.] 취몽주개가 탁자에 노여진 영패를 공력을 집중시켜 주시했다. 그러나 십이성의 공력을 끌어올렸건만 아무런 글씨도 발견해 내지 못했다. 그것은 다른 사람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동시에 영패에서 시선을 떼어 의혹에 젖은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철한빙은 그들이 반신반의한 표정을 짖자 천천히 귀결을 읽어 내려갔다. [취함을 다스린다면 능히 무아의 �ㄼ망熾� 이를 것이오. 무아의 경지에 이른다함은 지고무상의 이치를 깨닫는 것일지니....] 취몽주개등은 그가 막힘업이 줄줄 읽어내려가자 경악과 감탄, 그리고 의혹에 빠 져버렸다. (아.. 태상호법의 무공은 이미 등봉조극의 경지에 이른 듯 하구나. 약관의 나이 에 어떻게 이같은 경지에 도달할 수 있었을까? 또한 그의 사부는 누구일까?) 그들은 그지 멍하니 철한빙의 얼굴만 주시하고 있었다. 철한빙은 처음부터 끝까지 귀결을 다 읽고는 취몽주개를 향해 말했다. [형님, 역시 취련무아심법은 심오하기 이를데 없군요. 만약 십이성의 경지에 이 른다면 마음만으로도 상대를 굴복시킬 수 있는 대승수위지법의 상승절예를 터득 할수가 있습니다.] [오! 오!] 그들은 철한빙의 말을 듣고 연신 고개만 끄덕였다. [취련무아심법은 개방의 지고무상한 무공이니 소제가 지금부터 귀결을 외울테니 잘 들으시고 암기하시기 바랍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취몽주개 등이 무슨 소리냐는 듯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조사께서 오늘이 있음을 미리 예견하시고 이같은 처사를 내 리셨을 터인데 어찌 취련무아심법을 노부들이 익힐 수 있단 말인가? 그러니 어서 술이나 드세.] 그러나 철한빙은 묵묵무답, 천천히 귀결을 외우기 시작했다. [취함을 다스리면 능히 무아의 경지에 이를 것이오. 무와의....] 취몽주개등은 그가 공력을 운집하여 자신들의 귀에 음을 전해주자 그의 절세적인 공력에 또 한번 놀랐다. 그들은 불가항력으로 취련무아심법의 귀결을 암기했다. 철한빙은 세번을 계속 외운 뒤 천천히 공력을 풀었다. [어떻습니까? 다들 암기 하셨습니까?] 취몽주개가 그의 손을 덥석 잡으며 감격에 겨운 듯이 말했다. [노제, 고맙네. 정말 고맙네.] 철한빙은 쑥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나직이 입을 열었다. [형님, 소제는 형님의 아우이자 개방의 제자는 아니지만 어쨌든 한 식구나 다름 없는 몸입니다. 그러니 너무 겸손하시지 마십시오.] 그러자 독안신개가 호탕스럽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핫.. 태상호법의 말씀이 맞네. 맞아.] 그들은 호탕하게 웃으며 술잔을 기울였다. 철한��＂은 개방 총단에서 이틀을 머문 뒤 섭섭한 마음을 뒤로 하고 총단을 떠났 다. 그는 애초에는 청성파를 찾아 가려고 했으나 개방의 일에 휘말리는 바람에 엉뚱 한 길로 향했던 것이다. 이에 다시 청성파로 가려고 하다가 불현듯 연화옥에 생각이 미쳤다. 오년 전에 그녀와의 정다웠던 꿈같은 추억들! 마치 한 마리 백학처럼 청순한 그녀의 모습! 그는 이런 것들이 뇌리에 스치자 그녀가 미친듯이 보고 싶었다. 철한빙은 공공답허신법을 최고도로 펼쳐 마치 섬광과도 같이 진화장을 향해 날아 갔다. x x x x x 이틀 후, 철한빙은 진화장에 도착했다. 그는 부풀은 가슴을 안고 연화옥과 처음 만났던 대문 앞에서 한참 동안을 서성거 렸다. 오년 전, 그는 상비렁뱅이의 몰골에 부상당한 몸으로 이곳에 찾아왔었다. 그리고, 그가 환상의 나래를 펴고 있을 때 갑자기 대문이 열리는 것이었다. 이어 성숙해질대로 성숙해진 연화옥이 천천히 걸어나오는 것이 보였다. 철한빙은 그녀의 모습을 대하자 두 가슴이 급작스럽게 뛰놀기 시작했다. 다음순간, 그녀는 몇 걸음 옮기자 마자 전신을 부르르 떨며 지극히 느린 속도로 제비와도 같이 날씬한 몸을 서서히 돌렸다. 그리고는 빙그레 미소짓고 있는 철한빙의 얼굴을 눈도 하나 깜작하지 않은채 똑 바로 쳐다보았다. 연화옥은 그의 얼굴을 응시하다가 갑자기 몸을 휘청거렸다. 철한빙은 대경실색을 하며 급히 그녀를 부축했다. 순간, 연화옥의 코끝에 꿈에도 못잊던 낭군의 내음이 그윽히 풍겨오는 것이 아닌가! 그녀는 전신을 가늘게 떨며 떨리는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호... 혹시 서... 설오빠가 아.. 아니세요?] 그녀는 오년 전에 애틋한 모습으로 헤어진 그의 얼굴을 찾으려는 듯 맑은 두눈을 동그랗게 치켜떴다. 철한빙은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을 느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옥매, 그동안 잘 지내셨소? 그리고 백부님도 편안하시오?] 드디어 연화옥은 기쁨에 젖은 얼굴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오빠, 오빠께선 소매를 잊지 않으셨군요. 소매는.... 소매.. 으흐흐흑..] 철한빙도 눈시울을 붉히며 그녀를 으스러져라 끌어안았다. [옥매, 울지 마시오. 나도 한시도 옥매를 잊은 적이없었다오.] 연화옥은 복받치는 울음을 참지 못하고 계속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오빠, 정말 당신이 나의 설오빠인가요?] [허허허.. 옥매, 이 세상에 나 말고 또 누가 옥매의 오라버니가 있겠소?] 연화옥은 이게 혹시 꿈이 아닌가 몸을 정도로 극도의 희열에 싸여 있었다. [오빠, 왜 이제 오셨어요. 그동안 소매는... 소매는.. 으흐흑...] 그녀는 말을 끝�ⅴ뮐� 못하고 오열을 터뜨리고 말았다. 철한빙은 가슴이 뭉클하여 전신이 나른해지는 것 같았다. 그는 서서히 고개를 숙여 눈물로 뒤범벅이 된 그녀의 얼굴을 찬찬히 쳐다보았다. 이어 그녀의 앵두같은 입술에 자신의 두툼한 입술을 포겠다. 순간 두 사람은 동시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얼마만의 재회인가? 그들은 서로를 껴안은 채 망각의 높으로 빠져들었다. 서로의 감로수가 오고가며 환희에 젖어 있는 두 남녀! 잠시 후 그들은 살며시 떨어졌다. 연화옥은 옷매무새를 고치며 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았다. 그리고는 철한빙을 향해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오빠, 어서 아버님을 뵈오세요. 아버님은 그때 오빠가 말없이 떠나시자 크게 낙 담하시고 말았어요.] 철한빙은 곧 그녀와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연계문의 방문 앞에 이르자 안에서 철한빙이 잊을 수 없는 자상한 음성이 흘러나 왔다. [옥아야, 산책을 나간다고 하더니 어째 그냥 돌아왔느냐? 그런데 옆에 계신분은 뉘시냐? 발자국 소리가 귀에 익은 듯 하구나.] 철한빙은 그의 공력에 놀라는 한편 아직도 자신의 발걸음 소리를 잊지 않은 그가 말할수 없이 고마웠다.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띄엄띄엄 말을 꺼냈다. 그의 두 분에는 어느덧 이슬이 맺혀 있었다. [백.. 백부님, 조.. 조카 운아가 왔습니다.] 그러자 안에서부터 의자를 박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뭣이! 현질이?] 이어 방문이 와락 젖혀졌다. 그리고는 격동에 가득찬 표정을 짓고 있는 연계무의 자상한 모습이 나타났다. [백부님!] 철한빙은 목이 매인 음성으로 그를 부른 뒤 천천히 큰절을 올렸다. 연계무는 떨리는 손으로 그를 부축해 일으키며 띄엄띄엄 입을 열었다. [어.. 어디보자. 네... 네가 정녕 운아란 말이냐?] [그렇습니다, 백부님. 조카 틀림없는 설운몽입니다.] 급기야 연계무의 두 눈에서 굵은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오! 오..! 하느님 감사합니다. 소인의 자식을 둘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는 철한빙이 떠난 뒤 친자식을 잃은 만큼 섭섭함과 슬픔에 싸여 있었다. 말 한 마디 없이 한 마리 철새처럼 훌쩍 떠나버린 철한빙! 그 이후로 그는 한시도 철한빙을 잊은 적이 없었다. 그는 철한빙과 연화옥이 짝지어 영원한 원앙으로 맺어 주려고 했었다. 한데 철한빙이 소리도 없이 사라진 것이었다. 연계무는 급히 눈물을 감추며 철한빙에게 말했다. [자, 어서 안으로 들어가라. 어디 네 얼굴을 똑똑히 보아야겠다.] 철한빙은 얼굴을 붉히며 안으로 들어갔다. 연화옥은 방문을 닫으며 다소곳이 옆에 와서 앉았다. 연계무는 철한빙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본 뒤 앙천대소를 터뜨렸다. [핫핫핫핫... 오년 동안 못본 사이에 더욱 준수해졌구나. 또한 장부티가 물씬 풍 기는 구나.] 철한빙은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연계무가 정색을 하며 물었다. [한데. 현질은 어째서 한 마디 말도 없이 이곳을 떠났었나? 혹시 백부가 소홀하 게 대한 적이 있었나?] 철한빙이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조카는 그때 어떤 사람들에게 납치를 당했습니다.] 이어 납치를 당해 고문을 당하던 일서부터 절벽에 떨어져 기연을 얻은 일, 그리 고 최근에 일어났던 일들을 자세히 설명했다. 그러나 공동파를 쑥밭으로 만든 사실과 자신을 납치해간 사람이 한소군이라는 것 을 밝히지 않았다. 연꼐무 부녀는 희비가 엇갈린 표정으로 끝까지 얘기를 들은 뒤 길게 한숨을 내쉬 었다. [휴------우! 이 백부는 그것도 모르고 현질을 얼마나 원망했는지 모르네. 현질 자네를 납치해간 사람은 대체 누군가?] 철한빙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조카도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연계무는 그의 말을 듣고 그가 무엇인가를 숨기고 있다고 느꼈다. 그러나 겉으로는 전혀 내색지 않았다. 연화옥이 철한빙을 향해 물었다. [오빠, 반향조화신공이란 것이 그렇게 고강한 무공이예요? 설마 아버님보다 강하 진 않을테죠?] 철한빙이 미소를 지었다. [하하핫.. 반향조화신공이 아무리 고강하기로 어찌 백부님의 해천연환검법에 비 길 수가 있겠소?] 연계무도 반향조환신공을 한번 보고 싶었으나 다음에 보기로 하고 덮어 두었다. 연화옥은 평소의 얌전함은 어디로 갔는지 마치 한 마리 참새마냥 연신 조잘거렸 다. 번호:200/227 등록자:HYUN9876 등록일시:97/04/06 23:18 길이:443줄 제 목 : [사마달] 불세마왕경 제 22장 불세마왕경 저자: 사마달 출판사: 대현출판사 제 22장 다시 만난 졸부들 철한빙은 연화옥의 천진스런 모습을 대하자 자신도 모르게 흐뭇한 감정이 일었 다. 그는 마치 오래도록 떠나 있었던 정다운 고향집을 찾아온 느낌이 들었다. 연계무는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본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옥아야, 네 오라비가 피곤할 터이니 오늘은 이만 쉬게하자. 아�뉼막� 회포를 풀 시간은 얼마든지 잊지 않겠느냐?] 연화옥은 열심히 조잘거리다가 급히 입을 다물었다. 철한빙은 미소를 지으며 연계무를 향해 두툼한 입술을 열었다. [백부님, 조카는 별로 피곤한걸 모르겠습니다.] [아니다. 원래 먼길을 가노라면 여독이 쌓이게 마련이다. 그러니 이 백부가 말할 때 푹 쉬도록 하거라.] 철한빙은 할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백부님, 조카 이만 물러 가겠습니다.] 연계무는 안면 가득히 웃음을 지으며 연화옥에게 눈짓을 보냈다. 연화옥은 수줍음에 얼굴을 물들인 뒤 철한빙에게 말했다. [오빠, 소매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오년 전 오빠가 기거하시던 방이 아직도 예 전 그대로 있어요.] 철하빙은 연계무에게 예를 올린 뒤 연화옥의 뒤를 따라 방문을 나섰다. 그는 오년 전 자신이 머물던 방문 앞에 이르자 감회가 새로왔다. 철한빙은 천천히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모두 오년 전 그대로 있었다. 그리고 매일같이 청소를 했는지 방안에는 먼지 한톨 나지 않을 정도였다. [오빠, 소매는 언젠가 오빠가 돌아오실줄 알고 매일같이 방을 청소해 두었어요.] 철한빙은 감격에 겨운 나머지 그녀를 힘껏 끌어안았다. [윽!] [오빠!] 두 사람은 입술이 서서히 하나로 포게졌다. [으---음!] 그들은 서로의 내음을 만끽하며 꿈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잠시후, 두 사람은 행복한 미소를 머금으며 서로 떨어졌다. [오빠, 편히 쉬세요. 소매가 조금 있다가 찾아 오겠어요.] 철한빙은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며 이마에 가벼운 입맞춤을 해주었다. 연화옥은 가볍게 눈을 흘긴 뒤 방문을 나섰다. 철한빙은 허전한 감이 들었다. 그는 침상에 벌렁 드러누워 팔베개를 하고 오년 전 이 자리에 누웠던 일을 생각 했다. 그의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어렸다. 그러나 이내 깊은 잠속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철한빙은 길게 기지개를 펴며 잠에서 깨어났다. 이어 침상에서 몸을 일으켜 탁자로 가서 앉았다. 이때, 똑! 똑! 똑! 가볍게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연화옥의 옥음이 들려왔다. [오빠, 일어나셨어요?] 철한빙은 옷매무시를 고치며 나직이 대답했다. [벌써 일어났소. 어서 들어오시오.] 그의 말소리가 끝나자 마자 미약하게 문여는 소리가 들렸다. 방문이 열리며 화사한 모습의 연화옥이 들어왔다. [편히 주무셨는지 모르겠어요? 어디 불편한 점을 없었어요?] 철한빙이 오만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말도 마시오. 어찌나 불편한지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단 말이오.] 연화옥은 깜짝 놀라며 물었다. [옛? 아니, 어디가 불편하셨어요? 소매가 당장 방안을 정리하겠어요.] 철한빙이 그녀의 모습을 재미있다는 듯이 바라보며 대소를 터뜨렸다. [하하핫... 내 말은 이렇게 좋은 방에서 자니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는 말이 오.] 연화옥이 짐짓 앵토라진 표정을 지으며 휙하니 등을 돌렸다. [흥 오빠는 이제보니 능글맞기 짝이 없군요.] 연화옥은 짐짓 냉랭한 표정을 지으며 돌아보지 않은 채 앙칼지게 입을 열었다. [쳇! 그렇다고 소매의 화가 풀릴 줄 아세요? 어디 아침을 주나봐라!] 철한빙은 질겁을 하며 배를 움켜쥐었다. [아이구, 배야! 아이구..] 연화옥은 그가 갑자기 비명을 지르자 소스라치게 놀라며 몸을 돌려 그의 앞으로 다가섰다. [오빠.. 어.. 어디가 편찮으세요?] 철한빙이 잔뜩 움츠리던 허리를 쭉 펴며 가가대소를 터뜨렸다. [하하핫.. 역시 소매는 인전이 철철 넘치는구려.] 연화옥은 또 속았음을 깨닫고 앙칼진 호통을 지르며 휑하니 방문을 나가 버렸다. [몰라욧! 오빠하고 다시는 말도 하지 않겠어요.] 철한빙은 잔뜩 부르�┌◑暠� 나가버리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고 빙그레 웃음을 띠었 다. x x x x x 다음날, 철한빙은 연화옥과 함께 동정호를 산책했다. 동정호의 푸른 물결을 대하노나니 철한빙의 가슴에 웅어리졌던 모든 원한이 일순 간에 물거품으로 변하는 듯 했다. 연화옥은 마냥 즐거운 표정으로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부풀어 있었다. 철한빙은 동정호반을 거니자 문득 허기를 느꼈다. 연인끼리는 일맥상통한는 점이 있듯이 연화옥도 허기를 느낀 듯 철한빙에게 말했 다. [오빠, 몹시 허기가 지니 어디가서 식사라도 들어요.] 철한빙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와 함께 호반에 자리잡은 주루로 향했다. 주루는 제법 손님들이 들어 차 있었다. 두 사람은 동정호가 마주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은 뒤 몇가지 음식을 주문했다. 그들이 즐거운 담소를 나누며 음식을 들고 있을 때였다. [아니! 이거 옥매가 아니오? 어찌 이런 곳엘 다 나오셨소?] 그들이 고개를 들어 보자 무림삼공자가 이곳으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순간 철한빙의 눈에서 살광이 번뜩였다가 사라졌다. 유운공자 한상헌이 연화옥을 보고 반색을 하다가 철한빈에게 시선을 돌리며 일순 움찔거렸다. (정말 준수하기 이를데 없구나. 한데 어디서 본듯한데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는 구나.) 그의 옆에 있던 무정공자 단명기는 철한빙을 보자 질투의 빛을 띠었다. 그는 자신보다 뛰어난 인품을 지니고 있는 사람을 무엇보다도 싫어하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반면 옥면공자 좌소천은 입가에 가벼운 미소만 머금고 있었다. 철한빙은 세사람을 훑어본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혹시 세 분께서는 무림에 위명이 널리 알려진 무림삼공자가 아니시오?] 단명기가 냉랭하게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흥! 책벌레가 그래도 귀동냥은 한 모양이군. 우리 무림삼공자를 알아 보다니!] 그의 말이 끝나자 한상헌이 당황해 하며 철한빙에게 다급하게 사과했다. [노형, 단형은 원래 농담을 좋아하니 개의치 마시기 바라오.] 철한빈이 고개를 끄덕이려는 순간 단명기의 싸늘한 음성이 들려왔다. [본 공자느 저런 책벌레와는 농담을 하지 않소.] [단형!] 한상헌이 단명기에게 눈을 부라렸다. 단명기는 이에 찔끔하며 입을 다물고 말았다. 한상헌은 이들보다 나이가 많은지라 은연중에 무림삼공자의 우두머리격이 되어 있었다. 철한빙이 손을 저어 그들을 말린 뒤 느릿하게 말문을 열었다. [자, 세 분께서는 자리에 앉으시구려. 옥매와도 안면이 잇는 듯 하니 그녀도 반 대하지 않을 것이오.] 실상 연화옥은 철한빙과 단둘인만 있고 싶었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말하는데야 별도리가 없었다. (이상하다. 오년 전에 오빠는 단명기에게 모진 수모를 당하셨는데 벌써 잊었단 말인가?) 한상헌이 두 사람에게 포권을 했다. [합석에 승낙을 해주니 정말 감사하오.] 이어 세 사람이 철한빙과 마주 앉았다. 한상헌은 점원에게 일류요리를 주문한 뒤 철한빙에게 넌지시 입을 열었다. [노형, 소제의 이름은 한상헌이라 하오. 그리고...] 그는 나머지 두 사람을 소개시켰다. 철한빙은 겸손한 태도로 일일이 인사를 하였다. 하나 단명기는 연신 코웃음을 날리고 있었다. [흥! 흥...!) 한상헌은 무안해서 얼굴을 붉히며 급히 철한빙에게 말했다. [노형의 존선대명은 어찌 되시는지요?] 철한빈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연한몽이라 하며 옥매의 고종 사촌 오라버니이외다.) 연화옥은 그가 가짜 이름을 대고 고종 사촌 오빠라고 하자 의아한 생각이 들었으 나 내색을 하지 않았다. 한상헌이 급히 포권을 하며 입을 열었다. [아.. 연형이셨구려. 몰라뵈서 죄송하오.] 단명기가 아니꼽다는 듯이 이죽거렸다. [본 공자가 알기에는 연노선배님에게 고종 사촌이 있다는 말을 듣지 못했는데..] 그러자 연화옥이 날카롭게 쏘아부쳤다. [흥! 당신이 우리 집안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계신다고 그런 망언을 하시죠?] 순간, 단명기의 얼굴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그가 분노를 느끼고 있을때 한상헌이 단명기의 발을 지그시 밟았다. 단명기는 그가 말리자 그저 얼굴만 붉힌채 거친 숨을 내쉬고 있을 뿐이었다. 점원이 올라와 요리를 놓고 가자 그들은 술잔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이때, 밟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오며 칠 팔명의 홍의대한들이 올라왔다. 그들은 곧 큼직한 탁자에 둘러앉은 뒤 탁자를 내리치며 호통을 질러댔다. [이봐, 여기 빨리 최고급 요리와 술을 내오지 못할까?] 점원이 멀찌감치 서서 몸을 오들오들 떨며 연신 알겠다는 대답을 하며 쏜살같이 주방으로 사라졌다. 그들 중에서 우두머리격인 노인이 소태를 씹은 듯한 표정을 지으며 투덜거렸다. [제기랄! 도데체 어디가서 구지신투를 잡는단 말인가? 설사 그놈을 만난다하더라 도 그의 손에서 불사도를 뺏어내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그러자 수하인 듯한 인물이 아첨으리 웃음을 흘렸다. [헤헤헤.. 그건 향주님 말씀이 옳습니다.] 한상헌이 그들의 모습을 쳐다본 뒤 좌소천에게 나직이 말했다. [좌형, 저놈들은 바로 지존교의 인물들이오. 어디 한번 장난이나 해보시지 않겠 소?] 지금까지 말이 없던 좌소천이 천천히 입을 떼었다. [글쎄요. 놈들의 세력이 워낙 방대한지라 잘못 손을 썼다가는 오히려...] 그러자 단명기가 주먹을 휘두르며 말했다. [한형, 소제가 놈들을 주물러 주겠소. 그러니 구경만 하시오.] 이때, 지존교의 졸개들이 고개를 돌리다가 그들에게 시선이 닿았다. 그들은 연화옥의 절세적인 용모를 보자 헤벌죽 벌리고 연신 군침을 삼켜댔다. 특히 향주라는 인물이 두 눈을 게슴츠레 뜨고 입을 멍하니 벌리고 있었다. 조금 전에 아첨의 웃음을 날렸던 자가 재빨리 눈치를 차리고 넌지시 의향을 물었 다. [향주님, 속하가 저 계집을 데리고 올까요?] 향주라는 인물은 빨리 데리고 오라는 드�˘뗌�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전위, 역시 자네는 노부의 마음에 드네.] 전위는 비굴한 웃음을 흘리며 뒤뚱거리며 철한빙이 있는 탁자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연화옥의 섬섬옥수를 쥐어갔다. 하나 연화옥은 재빨리 손목을 뒤집어 그의 손을 피하며 날카롭게 외쳤다. [이 무례한 녀석! 어디서 아녀자의 손목을 잡으려 하느냐?] 전위가 음침한 웃음을 지으며 더러운 주둥아리를 놀렸다. [헤헤헤,.. 향주님께서 네년을 어여삐 보시어 청하시거늘 어찌 꼬리를 빼려고 하 느냐? 만약 향주님의 품��＂에만 안긴다면 네년어�♡� 팔자는 늘어지게 될 것이다. 그러니 어서 향주님에게 가지 못하겠느냐?]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단명기가 의자를 박차며 일어섰다. [네 이놈! 감히 연약한 여인에게 그토록 무례한 망발을 하다니! 죽고 싶어 환장 한 모양이군.] 그러자 전위는 만면에 사악한 살기를 떠올리며 음험스럽게 입을 열었다. [흐흐흐.. 대가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녀석이 그래도 사내랍시고 끼어 들려고 하 다니 이거나 먹어라!] 하며 단명기의 가슴을 향해 무자비한 일장을 밀어냈다. [흥!] 단명기는 싸늘하게 냉소를 친 뒤 급히 우장을 뒤집어 상대의 장력과 맞닥뜨려갔 다. 순간, 펑! 둔탁한 괴음과 함께 전위가 비틀비틀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는 뒤에 있는 탁자에 세차게 부딪치고 말았다. 쨍그랑! 쨍! 탁자가 쓰러지며 그릇 깨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앗! 창용무극장!] 단명기는 가슴을 움켜잡고 피를 흘리는 전위를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흥! 하잘것 없는 녀석이 천방지축으로 날뛰다니 장말 가소롭구나.] 이때, 지존교의 향주가 천천히 그의 곁으로 다가서며 이리저리 눈알을 굴렸다. [소협께선 혹시 무림삼공자 중의 무정공자 단소협이 아니시오?] 단명기가 그의 얼굴을 힐끗 쳐다보며 냉랭하게 말했다. [그렇소. 본 공자가 단명기외다.] 그러자 향주는 서서히 포권을 하며 입을 열었다. [소협의 부친이신 창룡일수 단대협과는 노부가 한번 일면한 적이 있소.] 그리고는 안색을 고치며 협박하는 투로 계속 말을 이었다. [노부는 지존교에서 향주의 신분을 맞고 있소.] 단명기는 싸늘한 어조로 그의 말을 받았다. [당신이 지존교의 향주이던 행주이던 본공자와는 상관이 없는 일이오. 그러니 어 서 사하들을 이끌고 썩 물러가시오!] 향주는 그를 살살 달래려 했으나 먹혀 들지 않자 급기야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하 였다. [흐흐흐.. 네놈이 창룡일수의 아들놈이라 어여삐 봐주려 했더니 오히려 머리 꼭 대기에 앉아 북을 치려드는구나.] 단명기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덮쳐가려고 했다. 순간, [단형, 잠깐 멈추시오.] 단명기는 한상헌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급히 신형을 멈추며 그를 바라보았다. [한형, 말리지 마시오. 오늘 이놈들을 깡그리 없애지 않는다면 이 자리에서 당장 자결을 하고 말겠소.] 그러자 지존교 향주가 사악하게 웃었다. [훗훗훗훗.. 무림삼공자가 모두 한자리에 모였군.] 한상헌은 그를 향해 천천히 입을 열었다. [향주, 백주에 어찌 이같은 행동을 취하시오? 일개 향주의 신분으로는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구려.] 지존교 향주는 그가 훈계조로 말을 하자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이 이놈! 감히 어르신네를 훈계하려 들다니! 오늘 노부는 네놈들을 도저히 살려 둘 수 없다.] 그러자 옥면공자 좌소천이 싸늘하게 코웃음을 날렸다. [흥! 감히 지존교의 주구가 겁도 없이 짖어대다니! 본 공자가 네놈들에게 따끔한 맛을 보여 주겠다.] 주루 안은 어느 새 텅텅 비어있다시피 했다. 담이 큰 몇몇 인물과 무림인들만이 남아 흥미진진한 눈으로 그들을 지켜보고 있 을 뿐이었다. 한상헌은 안색을 침중하게 굳히며 빙전이 폭사되는 듯한 차가운 눈초리로 지존교 의 향주를 노려보았다. [향주, 정말 체통이 아깝구려. 소생 같았으면 수치심에 자결을하고 말것이외다.] 향주는 분노가 극에 달한 듯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며 벼락같은 쌍장을 밀어냈다. [이놈들, 뒈져랏!] 쉬-----이----잉! 날카로운 파공음이 들리며 매서운 장력이 무림삼공자를 동시에 에워싸버렸다. 무림삼공자는 그의 무공에 내심 감탄하며 급히 보법을 전개해 삼면으로 갈라섰 다. 와장창! 쨍! 쨍그랑......! 서너 개의 탁자가 박살이 나며 깨진 그릇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향주는 일초가 실패하자 제차 고함을 지르며 산악같은 일장을 다시 밀어냈다. 휘-----이-------잉! 단명긴는 가소롭다는 듯이 재빨리 앞으로 한걸음 내딛으며 향주를 향해 몰아쳐 다. [흑!] 지존교 향주는 상대방의 장력이 자신이 쳐낸 일장을 뚫고 들어오자 소스라치게 놀라며 급히 옆으로 미끄러졌다. 무림삼공자는 그들이 매서운 기세로 덮쳐오자 일제히 쌍장을 밀어내며 서로 등을 맞대었다. 그러나 장소가 협소한 관계로 쌍방은 초식을 마음대로 전개할 수 없었다. 한상헌은 나머지 이공자를 향해 전음을 보냈다. [좌형, 그리고 단형, 서로 흩어져 놈들을 해치웁시다. 만약 이대로 나가다간 진 력이 고갈되고 말 것이오.] 좌소천과 단명기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인 뒤 벼락같은 고함을 질렀다. [이----야-----압!] [받----아-----랏!] 주루 안은 순식간에 검영과 도영 그리고 장영, 지여으 깨진 그릇과 탁자부스러기 로 시야를 가리고 말았다.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관전을 하던 중인들은 급히 누각을 내려가 버렸다. 한편, 연화옥은 철한빙이 여전히 꼼짝도 하지 않자 안절부절을 하지 못했다. 그러자 웬일인지 허공을 나무하는 잡물들은 그들이 앉아있는 탁자에는 조금도 접 근하지 못한 채 일 장 밖에서 가루로 변한 채 우수수 떨어지는 것이었다. 번호:201/227 등록자:HYUN9876 등록일시:97/04/07 22:07 길이:340줄 제 목 : [사마달] 불세마왕경 제 23장 불세마왕경 저자: 사마달 출판사: 대현출판사 제 23장 월야의 교성 연화옥은 이같은 광경을 목격하자 대경실색을 금치 못했다. (오빠께선 공력이 이미 화신의 경지에 이른 듯 하구나.) 그녀는 멍하니 입을 벌린 채 철한빙만을 바라보았다. 철한빙은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는 접전장을 중시하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음.. 역시 무림삼공자의 무공은 비범하구나. 지존교의 일류고수와 무공을 지닌 듯 한데 여유있게 대적해 나가는구나.) 뜨거운 차 한잔 마실 시간이 흐르자 무림삼공자가 서서히 우세를 차지하기 시작 했다. 이에 지존교 향주는 불같은 노기를 느끼며 우렁찬 폭갈을 질러냈다. [이...야...압!] 순간 허공에 수십 줄기의 장영이 난무했다. 단명기는 급히 신형을 뒤로 날리며 필생의 공력으로 장과 지를 동시에 뻗어냈다. 콰...르....릉! 두 줄기 경풍이 허공에서 부딪치자 요란한 폭음이 일며 일진광풍이 휘몰아 쳤다. 두 사람은 동시에 양쪽으로 갈라서는 듯 싶자 이내 또 다시 상대를 향해 맹렬하 게 덮쳐들었다. 용쟁호투! 다른 한편에서는 한상현과 좌소천이 무거운 기세로 지존교 졸개들을 밀어붙이고 있었다. 그들의 싸움은 거의 막바지에 이른 듯 지존교 졸개들은 손한번 제대로 놀리지 못 하고 연신 뒷걸음질 치기에 바빴다. [받아랏!] 좌소천의 입에서 대갈일성이 터져나오자 그를 상대하던 네 명의 졸개들이 저마다 가슴에 일장씩을 얻어맞고 처참한 비명성을 질렀다. [으...아...악!] [...] 그들은 하나같이 갈비뼈가 으스러진 채 분수같이 피를 뿜으며 일제히 땅바닥을 구르고 말았다. 떼를 같이하여 한상헌과 대적하던 네 명의 졸개들도 잇달아 모골이 송연할 정도 의 처참한 비명과 함께 곧장 황천으로 치달았다. 이렇게 되자 혼자 남게된 지존교 향주는 혼줄이 빠지고 말았다. (이크! 이거 놈들을 얕보다가 큰코 다치겠구나. 오늘은 어떻게 해서든지 이곳을 빠져나가 훗날을 기약해야 되겠다.) 단명기는 이 공자가 졸개들을 처치하자 자신은 아직 상대를 요절내지 못했다는 수치심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이에 십이성의 공력으로 창룡무극장을 후려쳐갔다. 쉐------애-----앵! 고막을 찢는 듯한 매서운 파공성과 함께 한 줄기 잠력이 지존교 향주의 양쪽 어 깨를 후려쳤다. 다급하게 도망칠 궁리만 하느라 정신이 분산되었던 향주는 기절초풍을 하도록 놀 라며 급히 몸을 수평으로 뉘인 자세 그대로 옆으로 날아갔다. 그리고는 곧장 주루의 창문을 향해 번개같은 신법을 전개했다. [앗! 놈이 도주를..] 단명기는 깜짝 놀라며 그의 등에 쌍장을 밀어냈다. 쉐------액! 허공을 가르고 곧장 뻗어간 장력은 정확하게 향주의 등을 무자비하게 가격했다. 펑! [으.....윽!] 지존교 향주는 등뒤에 철퇴를 얻어맞은 듯 극심한 통증을 느끼며 이를 악물고 신 법을 전개했다. 이어 그의 신형이 몇번 오르락 내리락하는 사이에 시야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단명기는 분하다는 듯이 바을 세차게 굴렀다. [에잇! 비겁한 놈, 일개 지존교의 향주라는 놈이 꽁지가 빠져라 도망을 치다니!] 한상헌이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천천히 말했다. [단형, 다음에도 얼마든지 기회가 있으니 너무 억울해 하지 마시오.] 이때 어디에 있었는지 모를 주루의 주인이 울상을 지으며 부서진 탁자와 그릇등 을 신경질적으로 걷어찼다. 한상헌은 급히 주인에게 다가가 두 냥에 달하는 금전을 꺼내주며 사과를 했다. [주인장, 미안헤게 됐소. 이것이면 물건 값을 변상할 수 있을 것이오.] 주루 주인은 두 눈을 휘둥그래 뜨며 금전을 덥석 움켜쥐었다. 그리고는 한상헌을 향해 연신 허리를 굽혔다. [공자, 앞으로도 싸우실 일이 있으면 계속 저희집을 이용해주십시오.] 그때 한상헌 등은 배꼽을 잡고 웃었다. 이때 철한빙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한상헌에게 말했다. [한형, 소생 오누이는 이만 가봐야겠소.] 이어 단명기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단형에게 소생이 긴히 드릴 말씀이 있는데 소생을 따라와 주시겠소?] 단명기는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으나 이내 오만한 투로 입을 열었다. [하하하.. 본 공자에게 긴히 할말이 있다? 좋소이다. 갑시다.] 그리고는 한상헌과 좌소천을 향해 포권을 하며 말했다. [한형, 그리고 좌형, 소제는 이곳에서 작별을고할까 하오. 그럼 다음에 뵙겠소.] 철한빙과 연화옥도 그들과 가벼운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세 사람은 곧 주루를 나와 동정호반의 서쪽을 향했다. 잠시동안 걷자 조용한 숲이 나타났다. 연화옥은 철한빙이 단명기를 불러 낸 이유가 무엇인지 훤히 아는지라 묵묵히 뒤 만 따랐다. 세 사람은 곧 주루를 나와 동정호반의 서쪽으 향했다. 세 사람은 숲으로 들어갔다. 철한빙은 천천히 몸을 돌려 단명기에게 말했다. [단형, 소생을 어디서 본 것 같다고 느끼지 않소?] 단명기는 의혹이 젖은 표정으로 철한빙의 얼굴을 주시했다. 확실히 그의 얼굴은 어디선가 본 듯 했다. [글쎄요. 어디서 뵌것 같기도 하오만 기억이 나질 않소.] 철한빙은 일순 두 눈에 살기를 떠올리며 차갑게 입을 열었다. [단형, 오년 전 단형은 악야의 관도에서 어떤 비렁뱅이를 채찍으로 후려치고 일 장을 갈긴 적이 있었소?] 단명기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 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 괴물같은 비렁뱅이녀석 말이군. 그런데 당신은 무엇때문에 그 일을 물 으며 어떻게 그 같은 사실을 알고 있소?] 철한빙의 두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단형, 그때 그 비렁뱅이가 바로 소생이외다.] [뭐..뭣이...?] 단명기는 아연질색을 하며 급히 한 걸음 물러섰다. [그.. 그럴리가? 그때 그 녀석은 당신과 같은 용모가 아니었는데..] [후후후... 사람이란 그 용모가 점차 변하는것이오. 단형은 그것도 모르십니까?] 단명기는 이내 정신을 차리며 오만한 투로 입을 열었다. [흐흐흐.. 비렁뱅이 녀석이 일화천금을 얻은 듯이 거들먹거리는구나. 비렁뱅이 녀석아! 네놈이 본 공자를 보자는 이유가 고작 내가 비렁뱅이었소 하고 말하려는 것이었냐? 으하하.. 정말 가소롭구나.] 순간 연화옥이 앙칼지게 호통을 쳤다. [닥쳐요! 어디서 감히 더러운 입을 놀리는 거예요?] 단명기는 그녀가 앙칼지게 호통을 치며 안색을 찌프리자 음탕한 미소를 흘렸다. [흐흐흐.. 연낭자, 이까짓 비렁뱅이 녀석보다는 본 공자가 백배 나을 것이오. 그 러니 본 공자에게 오는 것이 어떻겠소?] 철한빙과 연화옥은 동시에 몸을 떨었다. 철한빙은 이때 분노가 극에 달하는지 서서히 모습이 변하기 시작했다. [아----앗! 저놈의 몰골이 또 변하는구나.] 단명기가 기겁을 하며 뒷걸음질 치자 연화옥은 급히 시선을 돌려 철한빙을 쳐다 보았다. 다음 순간 그녀는 심장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올 정도로 혼비백산하고 말았다. 그의 모습은 이미 지옥의 악귀로 변해 있었다. [오...오빠..] 그녀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철한빙은 이미 마성이 타올라 그녀의 말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는 서서히 단명기에게 다가가며 사악한 웃음을 날렸다. [흐흐흐흐.. 다녕기, 어디 다시 한번 본 공자에게 일장을 날려 보아라.] 단명기는 그의 변모한 모습에 놀라 연신 뒷걸음질 쳤다. 그러나 그는 철한빙이 무공을 익히지 않았다는 일방적인 판단으로 곧 냉정해 질 수 있었다. [흐흐흐.. 네놈의 몰골이 변했다고 해서 본 공자가 겁을 집어먹을 줄 알았다면 그건 커다란 오산이다.] 이어 쌍장을 가슴께로 들어올려 십이성의 공력으로 창룡무극을 후려쳤다. 태산을 압도할 듯한 요란한 굉음이 울리며 수십 줄기의 장력이 철한빙의 전시을 감싸 버렸다. 순간, 콰----쾅! [으악!] 마치 비단폭 찢는듯한 처절한 비명소리가 들리며 단명기의 몽이 칠 장 밖으로 나 가떨어졌다. 그는 철한빙이 펼쳐낸 호신강기에 의해 두 팔이 부러진 채 땅바닥을 뒹굴며 괴로 운 신음을 지르고 있었다. 연화옥은 그의 비참한 모습을 보다못해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려버렸다. 철한빙은 싸늘한 음성으로 말했다. [단명기, 네놈은 오늘같은 날이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네놈이 비록 오만하기는 하지만 별로 악행을 저지르지 않았음에 이번 한번은 이것으로 끝을 낵��＂다. 그러니 어서 썩 눈앞에서 사라져라.] 단명기는 입으로 진한 핏덩이를 토해내며 양무릎을 두 손 삼아 억지로 몸을 일으 켰다. 그는 두 손이 축 늘어지고 안명은 피투성이가 되어 오히려 철한빙보다 더욱 음산 한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으으으.. 이놈! 본 공자는 죽어도 네놈을 잊지 않겠다.] 그는 원한으로 이를 갈아붙인 뒤 음독한 눈빛으로 철한빙을 노려보았다. 그리고는 가까스로 걸음을 옮겨 그들에게서 멀어져갔다. 철한빙은 서서히 본 면목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이윽고 정상으로 돌아온 그는 연화옥을 가볍게 불렀다. [옥매, 이제 눈을 뜨시오.] 연화옥은 천천히 두 손에서 손을 떼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그의 품으로 가볍게 날아들었다. [오빠, 도데체 어찌된 일이예요? 오빠의 모습이 왜 갑자기 변하는 것이죠?] 철한빙이 처절한 웃음을 지었다. [아.... 이것은 일종의 마성의 발동이오.] 그는 다만 이렇게만 말하고 자신의 마성이 점차 깊어져 가고 있다는 것은 말하지 않았다. 연화옥은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오빠, 어디 불편한 곳은 없으세요?] 철한빙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등을 가볍게 쓰다듬어 주었다. [이젠 괜찮소. 아무 걱정 마시오.] 두 사람은 잠시 서로 껴안은 채 시간을 보냈다. [자 옥매, 이만 돌아갑시다. 백보님께서 기다리고 계시겠소.] 그들은 서로 떨어져 정답게 진화장으로 돌아갔다. x x x x x 휘영청 맑은 달이 나뭇가지에 잡혀 파르르 떨고 있는 심야 삼경, 철한빙은 이날 따라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이리뒤척 저리뒤척거리고 여러가지 생각 에 잠겼다. 그러나 숨이 막혀오는 답답함에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음.. 내일은 청성장문인 견혼패도 부여송을 찾아가야겠구나.) 소슬한 가을 바람이 정신을 쾌청하게 해주었다. 철한빙은 화원에 하늘거리는 수많은 기화이수를 보자 자신도 모르게 나직한 싯기 가 흘러나왔다. 나무에는 연리지가 있어 꽃과 다르고 꽃에는 동심화가 있어 여러풀고 다르네. 봉들은 부부가 업이도 제 짝을 얻고 기러기는 형제가 없어도 나란히 난다네. 앞 귀절은 화원에 있는 꽃과 나무를 그린 시였고 뒤의 귀절은 자신의 신세를 한 탄한 시였다. 이때, 가볍게 옷끌리는 소리가 들리며 연화옥이 날아갈 듯한 모습으로 철한빙에게 다가 왔다. 철한빙은 그녀를 보자 급히 정색을 했다. [옥매, 야�∃꼬� 어찌 나왔소?] 연화옥이 두 볼을 물들이며 고개를 숙였다. [잠결에 오빠가 읊는 시소리에 소매도 모르는 사이에 그만..] 철한빙이 그녀의 옷자락을 보자 속살이 보일 듯 말 듯한 자리옷만 걸치고 있는것 이 아닌가? 그는 급히 시서능�ª� 돌려 버티고 말았다. 연화옥도 자신이 자리옷만 걸치고 있는 것을 깨닫자 크게 당황하여 어쩔줄 몰라 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한 차례 가볍게 떨었다. 철한빙은 그녀가 몸을 떠는 듯하자 재빨리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 [옥매, 밤바람이 차가우니 우선 내방으로 들어가 잠시 몸을 덥히시오.] 연화옥은 빨갛게 얼굴을 물들이며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철한빙은 그녀의 손을 잡고 방으로 들어갔다. 이어 두 사람은 탁자에 마주앉아 한동안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철한빙은 그녀의 해맑은 눈동자를 접하자 전신이 짜릿해지는 것 같았다. 그는 자시노 모르는 사이에 그녀의 보일 듯 말 듯한 속살을 훔쳐보고 있었다. 연화옥도 그의 따가운 눈빛을 의삭한 듯 서서히 고개를 숙였다. 철한빙은 슬며시 그녀의 손을 잡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옥매, 나는 옥매를 볼때마다 심신이 절로 평온해짐을 느낀다오. 아마도 옥매는 타고난 포용력이 있는 듯 하오.] 연화옥은 흐뭇함과 부끄러움을 동시에 느끼며 그의 품에 다소곳이 안겨왔다. [그건 소매도 마찬가지예요.] 철한빙은 그녀가 살포시 안겨오자 여인 특유의 살내음과 머리 내음에 정신이 아 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으음!] 그는 나직한 신음을 토하며 그녀의 허리를 가볍게 끌어안았다. 순간 연화옥의 몸이 한차례 떨려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철한빙은 그녀의 갸름한 턱을 두손으로 받쳐 올린 뒤 도화빛 같은 양볼에 가볍게 입을 맞춰 주었다. 그러자 그녀의 몸이 또다시 떨리기 시작했다. 연화옥 역시 남성 특유의 내음에 거의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였다. 철한빙은 입술을 옮겨 그녀의 도톰한 입술을 덮어갔다. 그들은 두 개의 얼굴이 포개지자 서로를 으스러져라 끌어안았다. 이윽고, 두 사람은 환락의 세계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서로의 몸을 만끽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동시에 나른한 몸을 견디지 못하고 망각의 세계로 빠져 들었다. 번호:202/227 등록자:HYUN9876 등록일시:97/04/07 22:07 길이:517줄 제 목 : [사마달] 불세마왕경 제 24장 불세마왕경 저자: 사마달 출판사: 대현출판사 제 24장 선음신공 이튿날, 철한빙은 연계무 부녀와 아침 식사를 들었다. 연계무는 상을 물리자 철한빙을 향해 웃음섞인 음서으로 물었다. [현질, 옥아에게 어제 저녁에 잠깐 얘기를 들었는데 무정공자 단명기를 호되게 훈계했다는데 그게 사실인가?] 철한빙은 쑥스러운 듯이 입맛을 다셨다. [예, 사실입니다.] [으음.. 단명기는 사람됨이 옹졸하고 시기심이 많아 후에 틀림없이 보복을 하려 고 들것이네. 그러니 항상 조심하게나. 옥아의 말로는 현질의 무공이 화신의 경 지에 이르렀다고 하나 커다란 창은 피하기 쉬우나 작은 화살은 피하기는 힘든 법 이네.] 철한빙은 공손히 대답했다. [백부님 말씀 잊지 않겠습니다.] 이때 연화옥이 철한빙을 쳐다보며 꾀꼬리같은 음성으로 말했다. [오빠, 아버님께 절세신공을 한번 보여 드리세요.] 그러자 연계무가 그녀의 말에 동조했다. [그래, 어디 현질의 무공을 한번 견식해 볼까?] [백부님, 조카의 무공은 그저 호신술에 불과할 뿐인데 공연히 옥매가 과장되게 아뢰었나 봅니다.] 연화옥이 곱게 눈을 흘기며 입을 열었다. [어제 오빠가 펼친 무공이 보잘 것 없는 무공이라면 천하의 무공은 모두 파리조 차 잡지 못하는 하잘 것 없는 손짓 발짓에 불과할 거예요.] 연계무가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하... 옥아의 말은 현질의 무공이 천하제일이요 나머지 무공은 잡학에 불과 하다는 말이로구나.] 철한빙과 연화옥은 얼굴을 홍당무처럼 물들였다. 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서며 철한빙에게 말했다. [현질, 이 백부 혼자서 신공을 구경하기에는 아까운 일일세. 같이 연무장으로 가 세.] 세 사람은 연무장으로 향했다. 연무장에는 수십 명의 진화장 수하들이 무공을 수련하고 있었다. 그들은 연계무등이 나타나자 일제히 손을 멈추고 허리를 굽혀 장주를 맞았다. 그들 중 풍체가 비범하고 얼굴에는 용맹스러운 기가 물씬 풍기는 오십대의 노인 이 앞으로 걸어나왔다. [장주님과 아가씨, 그리고 공자님께서 나오셨군요.] 이 사람은 진화장의 총관인 용천검 유정관이었다. 근느 진화장의 제이인자로서 강호의 절정고수 대열에 끼일만한 무공의 소유자였 다. 연계무는 예를 거두라는 말과 함께 입을 열었다. [유총관, 오늘 무림고인한 분을 초빙했으니 견식이나 넓혀 봅시다.] 유총관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장주님, 무림고인이라니 대체 그 분이 어디 계십니까?] 연계무가 미소를 지으며 철한빙을 가리켰다. [바로 설현질이오.] 유총관은 물론 한쪽에서 다소곳이 시립해 있던 제자들까지 경악에 가까운 외침을 토해냈다. [옛? 공자님이...] 그들은 이렇게 외치며 못믿겠다는 듯이 철한빙을 쳐다보았다. 이때 연화옥이 철한빙을 향해 재빨리 입을 열었다. [오빠, 어서 저분드의 안목을 넓혀주세요.] 철한빙은 그들에게 웃음을 보낸 뒤 천천히 걸음을 옮겨 연무장 한가운데에 우둑 섰다. 그리고는 진화장의 제자들을 향해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여러분들께서 들고 계신 장검을 소생이 일초에 빼앗을 테니 조심들 하 십시오.] 순간 연계무를 비롯한 모든 인물들은 내심 미간을 찌푸렸다. (아무리 무공이 고강하기로 어찌 수십 자루의 장검을 일초만에 빼앗을 수 잇단 말인가? 하물며 그들은 모두 무공이 일, 이류고수들이 아닌가? 설사 대라신선이 온다고 해도 일초만에 무기를 뺏는다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일인데..) 수십 명의 제자들은 저마다 장검을 굳게 움켜 쥐고 철한빙을 뚫어져라 주시했다. 순간, 철한빙의 신형이 자리에서 번뜩임과 동시에 유령처럼 사라져버렸다. [앗!] 중인들의 입에서 경악이 체 사라지기도전에 철한빙의 몸은 어느새 제자리로 돌아 와 있었다. 연계무 등은 그가 어떻게 움직였는지 조차 제대로 보지 못했다. 이때 수십명의 제자들은 저마다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니! 내 장검이 없질 않은가?] [아앗.. 나도..] [...] 연계무 등은 제자들의 손으로 시선을 돌리다 말고 그만 멍청해지고 말았다. 분명히 제자들의 손에 있어야 할 장검이 감쪽같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연계무등은 황급히 시선을 철한빙의 손으로 집중시켰다. 그러나 그의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 있지 않았다. 그들은 일제히 서로의 얼굴을 응시하며 의혹에 젖어있었다. 이때였다. [아앗! 장검이 바위에...] 중이들은 일제히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 연무장 한쪽 구석에 있는 커다란 바위 위에 수십 자루의 장검이 깊숙이 꽂혀있는 것이 아닌가? [아.. 저럴수가? 도저히 믿을 수가 없구나. 인간의 몸이 어쩌면 이토록 빠르며 절묘할 수 있단 말인가?] 연계무의 입에서 감탄이 절로 흘러나왔다. 커다란 바위에 꽂혀 있는 수십 자루의 장검은 아무렇게나 박혀 있는 것이 아니라 교묘하게 글자를 형성하고 있었다. <진화장은 무림제일장이로다.> 중인들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철한빙은 표효잠형보법을 사용해서 진화장의 제자들을 번개같이 스치고 지나가며 금나수법으로 장검을 낚아 챈 것이다. 이어 오성의 공력으로 양손을 떨쳐 바위에 장검을 박아 글자를 형성한 것이었다. 이러한 수법은 어떻게 보면 간단한 듯 했으나 지극히 정순한 내공이 없이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엄청난 수법이었다. 한 자루도 아닌 수십자루의 장검을 한치의 착오도 없이 깊이와 간격을 일정하게 박아 놓은 것 하며 무슨 수법을 펼쳤는지조차 모르게 손을 쓴 점 등은 가히 천하 무적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연화옥 등은 급히 정신을 차리며 일제히 우례와 같은 박수를 쳤다. 짝짝짝짝짝.... 철한빙은 입가에 미소를 떠올리며 그들을 향해 가볍게 허리를 굽혔다. 박수 소리가 점차 멀어지는 듯 싶자 철한빙은 장검을 잃은 제자들을 향해 천천히 말했다. [여러분, 소생의 무례한 점을 너그럽게 보아 주십시외. 이제 장검을 돌려드리겠 습니다.] 그리고는 바위에 꽂혀있는 장검을 향해 오른손을 앞으로 쭉 뻗었다가 안으로 끌 어 당기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수십자루의 장검이 한 줄기 막강한 흡인력에 끌려 일제히 바위에서 뽑혀졌다. 이어 진화장 제자들의 수중으로 지극히 느린 속도로 날아갔다. [아! 이접인 신공..] 수십 명의 제자들은 무의식 중에 장검을 손에 쥐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들은 두 눈이 화등잔만해져 철한빙을 바라보고 있었다. 만약 양산군자가 이들의 두 눈만을 남겨두고 몸뚱아리를 훔쳐간다해도 전혀 깨닫 지 못할 정도로 넋을 잃고 말았다. 철한빙은 천천히 걸음을 옮겨 연걔무 곁으로 다가갔다. [백부님, 보잘 것 없는 재주를 비웃지 마십시오.] 연계무는 후다닥 정신을 차리며 그의 두 손을 덥석 잡고 자랑스러운 듯이 말했 다. [하하핫.. 놀랐네, 놀랐어. 과연 개방의 태상호법답네.] 유총관을 비롯한 제자들은 철한빙이 개방의 태상호법이라는 사실에 또 한번 놀라 고 말았다. 동시에 그들은 저졸로 어깨가 으쓱해졌다. 철한빙은 장주의 조카이니 자연히 진화장의 사람이 아닌가! 더군다나 그의 무공이 천하무적의 경지에 이르렀고 또한 개방의 태상호법이라니 감히 그 뉘라서 진화장을 넘볼손가! 이에 그들은 양어깨가 저절로 으쓱해졌던 것이다. 유총관은 철한빙을 존경이 눈으로 바라보며 어깨를 추스렸다. [소장주! 유모는 오늘에야 비로소 안목을 넓혔습니다.] 그는 역시 노련한 강호인답게 철한빙을 소장주라고 칭해버렸다. 철한빙은 급히 감사의 예를 올리며 얼굴을 붉혔다. [선배님,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소생은 심히 부끄러울 뿐입니다.] 유정관이 유쾌하게 웃었다. [하하하... 소장주, 그 선배님이란 말씀에 유모는 실로 부끄러워 얼굴을 못들을 지경이외다.] 그 말에 중인들은 즐거운 웃음을 터뜨렸다. [으하하하핫...] 연계무는 분위기가 가라앉자 철한빙을 데리고 안채로 들어갔다. 철한빙은 의자에 앉자 곧 연화옥에게 퉁소를 가져오라고 했다. 연화옥은 영문을 모른채 그에게 퉁소를 가져다 주었다. 철한빙은 퉁소를 입으로 가져가 나직하게 불기 시작했다. 빌릴리! 빌릴리! 퉁소가 은은한 향수를 몰고 연화옥 부녀의 귓전을 맴돌았다. 마치 천상에서나 들어볼 듯한 성음이었다. 두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퉁소의 곡조에 심취되어 버렸다. 연계무는 꿈속을 해매는 듯 몽롱한 의식속에서 한발 앞서 이승을 떠난 청순한 부 인을 만나고 있었다. 연화옥은 또한 환상의 들판에서 철한빙과 단두이 끝없이 달리는 호나각에 사로잡 혀 있었다. 순간, 갑자기 곡조가 바뀌었다. 빠른 듯 하면서도 느리고 웅장한 듯 하면서도 가냘픈 곡조가 두 사람의 환상을 찢어 버렸다. 그들은 동시에 기혈이 격탕되는 것을 느꼈다. 철한빙은 또다시 퉁소를 떼며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씻어내며 긴 한숨을 쉬었다. 연걔무가 경악에 가득 찬 눈으로 그에게 물었다. [현질, 지금 연주한 곡조가 대체 무엇인가? 이 백부는 하마터면 영원히 눈을 뜨 지 못할 뻔했네.] 철한빙은 빙그레 웃으며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선음신공중에서 몇 곡족를 불어 본 것입니다. 사실 선음신공을 처음 연주하는 것이라 서투른 점이 많았을 것입니다.] 연화옥이 급히 입술을 떼었다. [아니예요. 천상의 음률이라 할지라도 오빠의 연주만은 못할 거예요!] 철한빙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옥매가 듣기에는 그렇소?] 연화옥은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며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옥매는 선음신공을 배우고 싶은 마음이 없소?] 연화옥은 그 말을 듣고 후다닥 고개를 들었다. [오빠, 정말이세요.] 철한빙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를 주시했다. 연화옥은 떨 듯이 기뻐했다. 연계무는 연신 웃음을 머금으며 연화옥에게 나직이 말했다. [옥아야, 어서 오라비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지 않고 무얼하고 있는게냐? 지금 네 오라비가 전수해 주는 무고은 오백 년 전 일대기인이시던 무성노인의 절세신 공이란다.] 그는 잠시 말을 끊은 뒤 천천히 뒤를 이었다. [전설로는 선음신공을 십이성의 경지까지 연마한다면 능치 천 리 밖에 있는 사람 을 상하게 할 수 있는 무서운 음공이라고 하더구나.] 그리고는 철한빙을 향해 물었다. [현질, 이 백부의 말이 맞는가?] 철한빙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역시 백부님은 견문이 넓으십니다.] 연계무가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하하하.. 현질이 이제는 아주 백부를 하늘로 띄우려고 하는구먼!] 연화옥은 날씬한 몸매를 일으켜 날아갈 듯히 절을 올렸다. [오빠의 성은에 감사드립니다.] 철한빙은 급히 그녀의 손목을 잡으며 당황한 듯이 말했다. [옥매, 집안 식구끼리 무슨 절이요? 어서 앉으시오.] 연계무는 두 사람이 손을 맞잡자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허허허... 녀석들 서로 싫지는 않은 눈치로군. 옥아의 복이로다. 복이야.) 철한빙은 그녀에게 문방사우를 가져오라 한뒤 종이에다 악곡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어 공력을 모아 음을 이루는 취기성음을 전수했다. 연화옥은 비록 총명하기 이를데 없었으나 짧은 시간에 절세신공을 익히기에는 역 부족이었다. 철한빙은 선음신공의 귀결을 일러준 뒤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옥매, 앞으로 꾸준히 선음신공을 연마한다면 능히 내노라 하는 고수들을 아래로 내려다보게 될 것이오.] 연계무는 그가 선음신공의 전수를 마치자 정색을 하며 말했다. [현질, 이 백부가 보잘 것 없는 무공이지만 해천연환검법을 전수해 주고 싶네.] 철한빙은 급히 사양하려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여 승낙을 표시했 다. 그들은 곧 화원으로 나왔다. 연계무는 화원에 떨어진 조그만 나뭇가지를 집어 천천히 해천연환검법을 전개하 기 시작했다. 철한빙은 눈도 깜빡하지 않고 나뭇가지를 주시했다. 연계무는 검법을 처음부턱끝까지 시전한 뒤 손을 멈추고 철한빙을 바라보았다. [어떤가? 기억할 수 있겠는가? 잘 모른다면 다시 한 번 반복하겠네.] 철한빙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조카는 암기를 마쳤습니다.] 순간 연계무와 연화옥의 눈이 왕방울만하게 커졌다. [뭣이! 그게 사실인가?] 철한빙은 대답 대신 그의 손에서 나뭇가지를 받아 쥔 뒤 지극히 느린 속도로 해 천연환검법을 시전했다. 연계무는 이렇게 되자 오히려 가르치는 입장이 아니라 배우는 입장이 되어버렸 다. (아.. 불세출의 기재로다. 노부가 한번 펼친 검법을 삽시간에 익히는 기억력은 몰론이고 오히려 검법에 숨어 있는 심오한 변화까지 단번에 깨닫다니! 그의 능력 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듯 하구나.) 철한빙은 검법을 끝까지 펼친 뒤 천천히 지면으로 내려섰다. [백부님, 어디 틀린 곳이 없습니까?] 연계무는 그가 자신에게 해천연환검법중에 미처 깨닫지 못한 부분을 일깨워졌음 에 크게 감격했다. [현질, 노부는 그저 감탄했다는 말밖에는 할 말이 없네.] 연화옥은 마치 자신이 칭찬이라도 받는 양 기쁘기 한량 없었다. 철한빙이 얼굴빛을 고치며 말했다. [백부님, 안으로 드시지요. 조카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연계무는 의아한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연화옥은 그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할까 생각하며 묵묵히 뒤를 따랐다. 세 사람은 자리에 앉아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철한빙이 잠시 망설이는 듯 하다가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배부님, 그리고 옥매, 조카는 오늘 떠날까 합니다.] 연계무와 연화옥은 깜짝 놀랐다. [아니! 오년만에 다시 만나 이제 겨우 며칠 같이 지냈을 뿐인데 또 어디를 간단 말인가?] 철한빙은 그들의 따뜻한 정에 가슴이 복받쳤다. [조카는 곧 돌아올 겁니다. 그러니 얼마 동안만 헤어져 있으면 될 것입니다.] 급기야 연화옥은 나직이 흐느끼기 시작했다. 철한빙은 크게 당황하여 어쩔 줄 몰라했다. 연계무는 그에게 무슨 말못할 고충이 있으리라 생각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음... 언제까지 이곳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업는 일, 하지만 옥아를 생각해서라고 속히 돌아오게.] 철한빙은 얼굴을 붉혔다. [알겠습니다. 백부님.] 그는 연화옥의 어깨를 가볍게 어루만지며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옥매, 내 곧 돌아올테니 너무 심혀 말고 기다려 주시오.] 연화옥은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천천히 쳐들며 애써 웃음을 지었다. [오....오빠, 모..몸성히 다녀오세요.] 그녀는 말을 끝내고는 오열을 터뜨리며 밖으로 사라져버렸다. 연계무가 철한빙을 향해 자랑스럽게 말했다. [현질, 옥아는 걱정말고 떠나게나.] 철한빙은 그녀가 사라진 방향으 한참 동안 바라본 뒤 걸음을 옮겼다. x x x x x 따가닥! 따가닥! 청성산으로 통한느 산길에 한 필의 백마가 나타났다. 잡털이라고는 눈으 씻고 봐도 찾아 볼 수 없는 천하의 명마였다. 백마 위에는 알맞은 체격에 일신에 은의를 걸친 준수하기 이를 데 없는 소년이 타고 있었다. 그러나 은의소년의 안색을 냉막하기가 마치 만년빙굴을 연상케 할정도였다. 그는 근처의 숲에 말을 메어두고는 곧 신형을 날려 청성파로 향했다. 신법의 빠르기는 시위를 벋어난 화살이요, 유연함은 마치 행운류수와도 같았다. 은의소년은 곳곳에 자리잡은 은미한 경비망을 교묘한 신법으로 어렵지 않게 통과 할 수 있었다. 그는 한줄기 무형의 그림자로 화해 허공으로 몸을 솟구쳤다. 이어 허공에서 몸을 수평으로 뉘인 뒤 서쪽에 자리잡은 청색누각으로 가볍게 날 아갔다. 이 누각이 바로 청성파 장문인의 거처였다. 은의소년은 기다란 독보를 내려선 뒤 미끌어지듯이 복도 끝을 치달았다. 은의소년은 모퉁이를 돌다 말고 급히 천정으로 솟구쳤다. 그와 동시에, 뚜벅! 뚜벅! 청성파 제자인 듯 싶은 인물이 장문인에게 아침 참배를 드리고 물러가는 듯했다. 은의소년은 그가 멀리 사라지기를 기다려 가볍게 밑으로 내려섰다. 그는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겨 붉은 옷칠을 한 우아한 문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이어 안의 동정을 살피는 듯 하더니 급작스럽게 방문을 열고 안으로 뛰어 들었 다. [누...누구�ⅵ�?] 안에서 가벼운 외침소리가 들려왔다. 은의소년은 방문을 닫으며 차갑게 입을 열었다. [조용히 하시오. 만약 소리를 지른다면 당장에 목이 날아갈 것이오.] 방안의 인물 즉, 견혼패도 부여송은 육십세를 갓 넘은 듯한 왜소한 체구에 얼굴 이 넙적한 인물이었다. 그는 일파의 장문인답게 곧 냉정을 되찾으며 은의소년을 향해 입을 열었다. [소협은 뉘신데 감히 이곳을 침입하였소?] 은의소년이 지극히 냉랭하게 말했다. [철한빙이라 하오. 장문인을 찾아 온 목적은 한 가지 일을 묻고자 함이오.] 견혼패도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철한빙? 처음 들어보는 이름인데, 한데 무슨용건으로 본 장문인을 찾아오셨소?] 견혼패도는 그의 서릿발같은 안색에 내심 가볍게 몸을 떨었다. [장문인은 이십 년 전 무림제왕보를 습격한 적이 있소?] 견혼패도는 갑자기 안색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리며 연신 뒷걸음질 쳤다. [무...무림제왕보.. 옥적금궁의 무림제왕보를 말하는 것이오?] [그렇소. 이십 년 전에 또 다른 무림제왕보라도 있었단 말이오?] 견혼패도는 곧 냉정을 되찾으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휴유! 한데 소협은 무림제왕보와 어떻게 되는 사이시오?] 철한빙의 두 눈에서 살기가 물씬 풍겨나왔다. [후후후.. 그것은 염라대왕에게 가면 알려 줄 것이다. 네놈 말고 무림제왕보를 습격한 놈이 또 누구냐?] 견혼패도는 그의 사악한 음성에 몸을 한 차례 부르르 떨었다. 그러나 상대가 약관의 소년인 것을 알자 경시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는 일파의 장문인답지 않게 음침한 눈빛으로 철한빙을 노려보았다. [헤헤헤... 네놈이 옥적금궁과 어떤 사이인지 모르나 그 비밀을 알고 있는이상 죽어줘야겠다. 네놈이 알고 싶어하는 인물은 본 장문인말고도 점창 장문인 육양 장 뇌표와 공래의 무적금창 남궁호등이다.] 철한빙은 그들의 이름을 뇌리에 새긴 뒤 천천히 오른손을 들어올렸다. [부여송, 앞서간 공동장문인이 네놈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니 영원한 동방자가 되 어 주거라.] 견혼패도는 상대가 공동파를 쑥밭으로 만든 장본인임을 알자 대경실색을 하고 말 았다. [네...네놈이 백인도장 등을 몰살한 마..마두냐?] [마두! 흥! 마두도 좋고 악귀도 좋다. 본 공자는 오로지 복수의 화신일 뿐이다.] 견혼패도는 간사하게 눈알을 굴리다 왼쪽 별에 걸려있는 자신의 독문병기인 패도 를 향해 신속하게 몸을 날렸다. 그러나 철한빙은 그의 이마를 향해 광세절학인 반향조화신공을 펼쳐냈다. [석파반향지!] 동시에 패도를 막 움켜쥐려던 견혼패도는 머리통이 수박이 깨지듯이 박살이 나고 말았다. [으아악!] 그는비명을 채 지르지도 못하고 왜소한 체구를 바닥에 처박고 말았다. 한편 뇌수와 살점, 핏덩이들이 깨끗한 벽에 튀겨 마치 지옥도를 그려놓은 듯 했 다. 이대 밖에서 비명을 들은 듯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요란한 발자국 소리가 들려 왔다. 철한빙은 골통이 박살나 나뒹굴고 있는 견혼패도의 시체를 싸늘한 눈초리로 쏘아 보고는 곧 창문으로 몸을 날려 쥐도 새도 모르게 청성파를 떠나갔다. 청성파는 장문인의 시체를 발견한 듯 이내 요란한 종소리와 호각소리, 아우성소 리로 청성산을 뒤덮어 버렸다. < 3권 끝 > �各�.. 아직 4권이나 남아있다니.. 헥헥.. 그런데 천리안무리동호회 대화방에 대화표현명령어 누가 만들었어여? 무지 웃기더군요.. 특히 큰형님!!!!! 으아~ 사나이 가슴에 비가...^^ �� 번호:203/227 등록자:HYUN9876 등록일시:97/04/09 21:11 길이:521줄 제 목 : [사마달] 불세마왕경 제 25장 불세마왕경 저자: 사마달 출판사: 대현출판사 제 25장 이름없는 마종, 무명마 제 26장 영웅첩 제 27장 흑의복면인 제 28장 불꽃튀는 공중전 제 29장 문 제일인 제 30장 성주의 딸 제 31장 관속의 여인들 제 32장 무수옹 제 25장 이름없는 종, 무명 강호는 핏빛 선풍으로 휘몰아쳤다. 한 달 동안에 청성파의 장문인과 점창파의 장문인 육양장 뇌표, 그리고 공래파의 장문인을 비롯한 이천 칠백 명의 제자들이 형체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비참하 게 살해되었다. 이에 무림인들은 흉슈가 잔혹하기 이를데 없는 대마두라 하여 세외일마라고 불렀 다. 또 어떤 이는 그를 가리켜 무명마라고 부르기도 했다. 한편 공동파를 비롯한 삼대문파가 잇달아 혈겁을 당하자 무림의 태산북두인 소림 사는 무명마를 찾기에 온 정열을 쏟았다. 그러나 소림은 표면상으로 이같이 행할 뿐 실직적으로 몸을 도사리고 있었다. 무림제왕보의 습격에 참가했던 인물들은 사태가 어떻다는 것을 짐작하고는 안절 부절을 하지 못했다. 그들은 언제 무명마가 방문해 자신의 목을 칠지 몰라 제대로 밤잠을 이룬 적이 없었다. 바야흐로 강호천지는 무명마라는 대마두로 인해 공포의 도가니에 휩싸이고 말았 다. 철한빙은 자신이 일세의 대마두로 찍혔다는 것도 모르고 잇달아 삼대문파를 박살 낸 뒤 청양성에 도착했다. 그는 약간 피곤한 듯한 걸음으로 맞은편에 있는 청양객점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십쇼!] 반색을 하며 맞아들이는 점원을 따라 이층에 자리를 잡은 철한빙은 간단하게 음 식을 주문했다. 이어 주위를 둘러보던 그는 갑자기 눈빛이 번쩍했다. 좌측탁자에 예닐곱 명의 흑의대한들이 바쁘게 식사를 끝내고 막 일어서는 것이 보였다. (음.. 흑풍방의 무리들이 이곳에 어쩐 일로 왔을까? 청양성에는 놈들은 분타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철한빙은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도 전에 일에서 경공술을 전개했다. 흑풍방 무리들은 점차 신형을 빨리하더니 어느 울창한 숲속으로 들어갔다. 철한빙은 공공답허신법을 펼쳐 한 줄기 무형의 그림자로 화해 급히 숲 속을 해쳐 나갔다. 이때, [모두들 준비가 되었는가? 그 늙은이는 바둑만 잘 두는 것이아니라 무공방면에도 일가견이 있으니 철두철미하게 행동해야 한다. 알겠느냐?] 그러자 지금 막 도착한 졸개들이 나직하게 대답했다. [당주님, 염려 마십시오. 기필코 일을 성공시키겠습니다.] 철한빙이 당주라는 인물을 바라보니 사십 이삼 세 가량의 중년인이었다. 뱁새 눈에 짤닥만한 키였으며 등뒤에는 커다란 박도를 메고 있었다.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수하들에게 말했다. [자, 어서 가자. 그 늙은이의 거처에 벌써 우문당주가 진을 치고 있다.] 그들은 동시에 서쪽을 향해 몸을 날렸다. 철한빙은 그들이 어떤 노인을 상대로 흉계를 꾸미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음! 무슨 이유로 많은 인원으로 한 노인을 노리는 것일까?) 그는 궁금한 가운데 그들의 뒤를 조심스럽게 미행했다. 흑풍방 무리들은 숲을 벗어나 약 두 시진 정도를 쉬지않고 달렸다. 그들은 멀리 바라다보이는 재석산을 향하고 있었다. 산중으로 접어들자 그들은 곧장 맞은편 절벽으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는 가시덤불을 해쳐 조그만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그들은 옆구리에 커다란 가죽 주머니를 차고 다시 동쪽을 향해 몸을 날리기 시작 했다. 이때 좌측의 울창한 나무 사이에서 한 사람이 뛰어 나오며 그들을 맞았다. [당주님, 이제 오십니까? 우문당주께서 눈이 빠져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들이 나무 사이로 들어가자 철한빙은 귀신같이 몸을 날려 고송 위로 몸을 숨겼 다. 이어 밑을 내려다 보자 이십여 명의 흑의인들이 모여있는 것이 보였다. 그들 중 검은 수염이 듬성듬성 나 있는 육십 세 정도의 음침하게 생긴 노인이 입 을 열었다. [길당주, 어서 오시오. 그 빌어먹을 늙은이가 완강히 버티는 바람에 어떻게 손을 쓸 도리가 없소. 늙은이 혼자 같으면 별 문제지만 그놈의 손녀를 다치지 않게 하 려니 골치요.] 그는 잠시 입을 다무는 듯 하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한데 독물은 가져 오셨소?] 길당주라는 인물이 음침하게 웃으며 말했다. [물론이오. 그런데 늙은이는 지금 어떤 형세를 하고 있소?] 우문당주가 이를 부드득 갈며 입을 열었다. [놈의 무공이 워낙 고강하여 도저히 안으로는 침입할 수가 없소. 그래서 놈의 초 옥을 불사르기 위해 길당주에게 화약을 부탁했던 것이오.] 철한빙은 그들의 대화를 엿들으며 생각에 잠겼다. (음.. 놈들은 노인의 손녀를 노리는 듯 하구나. 만약 놈들이 독물을 사용한다면 노인이 궁지에 몰릴 것이 틀림 없겠는데.) 그는 시선을 멀리 던져 약 백 장 밖에 있는 초옥을 바라보았다. 초옥 앞에는 칠팔 명의 흑의인이 피를 뿌린 채 나동그라져 잇는 것으로 보아 이 미 일전을 치룬 듯했다. 우문당주가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길당주, 만약 계집년을 부방주에게 바치지 못한다면 우리들은 이거요.] 하며 손가락을 곧게 뻗어 목을 내리치는 시늉을 해보였다. 그러자 길당주가 음흉하게 웃었다. [흐흐흐.. 우문당주, 이제 독물도 있고 몇명의 일류 제자들도 합�˙� 했으니 무공 이 아무리 고강하다고 해도 독안에 든 쥐에 불과할 뿐이오.] 우문당주가 덩달아 웃으며 입술을 씰룩거렸다. [자. 이제 늙은이를 요절내러 갑시다.] 그들은 도둑 고양이마냥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여 초옥으로 접근해 갔다. 철한빙은 여인을 납치하려는 흑풍방의 간계에 치를 떨고 말았다. (이놈들, 오늘 네놈들은 한 놈이라도 살려 보낸다면 성을 갈고 말리라.) 그의 두 눈에서는 핏빛의 살기가 광란할 정도로 쏟아져 나왔다. 흑풍방 인물들은 뒤에서 염라대왕의 사자가 노리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숨소리 를 죽여가며 초옥을 둘러쌌다. 이때 초옥 안에서 창노한 음성이 들려왔다. [이놈들! 정말 죽고 싶어 환장을 한 모양이구나.] 이어 청색 그림자가 허공에서 바람처럼 떨어져 내렸다. 신법의 절묘함은 실로 보는이로 하여금 절로 경악하게 할 정도였다. 철한빙은 청의노인을 보고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아.. 당세 제일국수 허유광..] 청의노인은 철한빙이 팔 년 전에 대국을 벌인적이 있던 허유광이었다. 철한빙은 은빛 수염을 표표히 날리며 온몸에 위풍이 넘치는 그의 모습에 저절로 존경심이 일어났다. (그렇다면 흑풍방의 부방주가 노리는 여인이란 허유광의 손녀인 녹의소녀를 가리 키는 것이란 말인가?) 철한빙은 녹의소녀에게 생각이 미치자 그녀의 아름답던 자태가 눈에 선하게 나타 났다. 이때 그의 달콤한 생각을 끊어버리는 음침한 목소리가 우문당주의 입에서 흘러나 왔다. [허유광, 본방의 부방주께서 네놈의 손녀를 어여삐 보시어 팔자를 펴게 해주시려 하거늘 네놈은 어째서 손녀의 행복을 막는 것이냐?] 순간 허유광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뭐라고? 이... 이놈이 감히 개만도 못한 수작을...] 그의 몸은 마치 사시나무 떨듯이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이때였다. [닥쳐라! 금수만도 못한 놈들 같으니!] 앙칼진 호통소리와 함께 초옥에서부터 녹색 인영이 마치 구름과 같이 가볍게 허 유광의 곁에 떨어져 내렸다. 철한빙은 녹색 인영을 보자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며 반가운 눈빛을 보냈다. 나타난 인영은 달속의 광한전에서 살고 있는 항아를 방불케 하는 절세미인이었 다. 제비같이 날씬한 몸매와 눈이 부실 정도의 아름다운 용모는 냉면철담일지라도 스 르르 녹아버릴 정도였다. (아! 저 소녀가 바로 팔 년 전에 보았던 그 소녀란 말인가? 정말로 아름답게 성 장했구나.) 철한빙이 내심 가만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흑풍방의 인물들은 녹의소녀의 모습에 일제히 두 눈을 게슴츠레 치켜뜨며 침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우문당주는 전신이 짜릿해지는 것을 느끼자 눈에 색정을 떠올리며 오금을 떨었 다. [헤헤헤.. 낭자께서 나오셨구려. 만약 본방의 부방주와 짝을 맺으신다면 천생배 필일 것이오.] 녹의소녀의 안색이 서릿발같이 변하며 표독스럽게 쏘아붙였다. [닥쳐욧! 누가 네놈들의 더러운 부방주 놈과...] 그녀는 여기까지 말한 뒤 여인으로서는 부끄러운 말을 했다는 생각에 급히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러자 길당주가 침을 질질 흘리며 히히덕거렸다. [히히히히.. 낭자도 과히 싫지는 않은 모양이구려. 말끝을 흐리는 것을 보니말이 오.] 순간 허유광 조손의 노기는 천장만장에 이르렀다. [이..이놈들! 받아랏!] 조손은 동시에 우렁찬 고함을 지르며 흑풍방의 무리들을 향해 번개같이 덮쳐갔 다. 녹의소녀는 어느새 꺼내 들었는지 조그만 비도를 들고 날카로운 초식을 펼치고 있었다. [모두 흩어져라.] 우문당주는 수하들에게 명을 내리며 급히 보법을 펼쳐 뒤로 물러섰다. [으아악!] [으-----윽!] 두 마디의 처참한 비명소리가 들리며 두 명의 졸개가 가슴이 뻥하니 뚫린 채 땅 바닥을 뒹굴었다. 뱃속에서 흘러나온 내장이 보는 이의 속을 뒤집어 놓았다. 철한빙은 허유광 조손의 무공이 범상치 않은 점에 새삼 놀랐다. [이---얍!] [차앗!] 쌍방은 병기를 난무하며 연속 살초를 펼쳐냈다. 이때 한쪽에 있던 길당주가 입술을 가볍게 달싹거렸다. 아마도 수하들에게 전음술을 전개해 무슨 지시를 내리는 듯했다. 그의 입술이 멎자 가죽 주머니를 옆구리에 찼던 대한들이 품 속에서 장갑을 꺼내 재빨리 손에 끼었다. 철한빙은 그들의 행동을 보고 독물을 풀어 놓으려는 속셈임을 알아차렸다. 길당주는 신형을 뒤로 날린 뒤 길게 휘파람을 불었다. 휘------익! 순간 허유광 조손과 대적하던 우문당주 등은 매서운 일격을 동시에 밀어낸 뒤 유 성같이 뒤로 몸을 퉁겼다. 때를 같이하여, 윙! 윙! 사르르륵! 사르르륵! 하는 소름이 오싹 끼치는 소리와 함께 하늘을 새까맣게 뒤덮은 독벌들이 허유광 조손을 향해 덮쳐들었다. 또한 땅바닥에는 독지네들과 독사 등 수많은 독물들이 지면을 완전히 뒤덮다시피 했다. [아앗! 할아버지....] 녹의소녀는 질겁을 하며 황급히 허유광의 품속으로 몸을 던지며 전신을 오들오들 떨었다. [으..악독한 놈들! 천하에서 가장 비겁한 수단을 사용하다니.] 길당주가 음침하게 웃으며 득의에 찬 음성으로 말했다. [으흐흐흐.. 허유광.. 지금이라도 손녀를 넘겨 주겠다면 독물들을 거두어들이겠 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흐흐흐..] 허유광은 노기로 인해 안면을 일그러뜨리며 분노의 호통을 질렀다. [이놈들! 노부가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절대로 네놈들의 부방주에게 손녀를 넘겨 줄 수 없다.] 그러자 길당주가 무시무시한 살기를 뿜어냈다. [늙은이의 인생이 불쌍하여 관대하게 대해주려고 했더니 끝까지 반항을 하다니.] 이어 검은 장갑을 낀 수하들을 향해 신경질적으로 고함을 질렀다. [얘들아, 늙은이를 없애라!] 명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들은 곧 품속에서 조그만 피리를 거내 불기 시작했다. 삘릴리! 삘릴리.... 피리소리가 울려퍼지자 하늘을 가득 메웠던 독벌들과 지면을 메운 독물들이 일제 히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허유광은 다급한 음성으로 손녀에게 말했다. [경아야, 어서 할아비 뒤로 오너라. 그리고 뒤에서 몰려드는 독물들을 맡아주거 라. 절대로 마음을 약하게 먹어서는 안된다. 알겠느냐?] 녹의소녀는 겁먹은 얼굴로 고개를 두어번 끄덕였다. 윙! 사르르륵! 독물들은 지상과 지면에서 두 조손을 향해 무서운 기세로 몰려들었다. 삘릴리! 삘릴! 갑자기 피리소리가 빨라지기 시작했다. 이와 동시에 독물들은 미친 듯이 날뛰었다. 급기야 인간과 독물의 생사를 건 싸움이 벌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이-----야---압!] 허유광은 분노에 가득한 기합을 깊게 뇌까리며 허공과 지면을 향해 강맹한 일장 을 후려쳤다. 퍽! 퍼퍽! 둔탁한 음향과 함께 독벌들과 독사, 독지네 등이 지독한 악취를 풍기는 핏물을 퉁겨내고 있었다. 때를 같이하여 녹의소녀의 비도가 허공을 그었다. 우수수수! 수많은 독벌들이 그녀의 비도에 맥없이 떨어져 갔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들 조손은 서서히 지치기 시작했다. 휙! 휘익... 쌩! 쌩! 퍽! 퍽! 퍽... 독물들은 피를 뒤집어 쓰면서도 악착같이 달려 들었다. 땅바닥은 삽시간에 독물들이 흘린 피로 질퍽거렸다. 허유광 조손은 독물들이 뿜어내는 악취와 점차 진력이 고갈되어 가자 전신에 식 은 땀이 흘렀다. 혀를 날름거리며 달려드는 독사들, 쉬쉬쉬욱 소리와 함께 징그럽게 기어오는 독 거미들, 새파란 빛을 발하며 쏘아오는 수많은 독벌들에 두 사람은 기진맥진하고 말았다. 급기야 그들은 몸을 몇차례 휘청거리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독물들은 이때다 싶은 듯 일제히 달려들었다. [아----앗!] 두 조손은 대경실색을 하며 필생의 공력으로 초식을 펼쳐냈다. 퍽! 퍽! 퍽! 이때, 하늘의 독물들이 번개같이 등뒤로 덮쳐왔다. 허유광 조손은 혼백이 달아날 정도로 놀랐으나 어떻게 손을 써볼 도리가 없었다. 절대절명의 순간, [한낱 미물들이 감히 인간을 핍박하려 들다니 정말 가소롭구나.] 하는 우렁차면서도 지극히 나직한 소리에 이어 뜨거운 양강의 기류가 독물들에게 몰아쳐갔다. 그러자 곧 이어 독물들의 피와 살점이 사방으로 퉁겨졌다. 퍽! 퍽! 퍽! 끼익! 끼익! 독물들은 모골이 송연할 정도의 괴성을 지르며 일제히 삼 장 밖으로 물러났다. [아---앗!] 길다주를 비롯한 수하들은 갑자기 나타난 인영에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허유광 조손은 위기일발의 순간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나자 길게 안도의 한숨을 입 밖으로 토해냈다. 이어 급히 자신들을 구해준 인물에게 시선을 돌리다가 쩍 하니 입을 벌리고 말았 다. 너무도 준수한 은의소년, 두 조손은 넋을 잃은 채 그를 바라보았다. 은의소년은 여유있는 동작으로 허공과 지면을 향해 가볍게 소맷자락을 휘둘렀다. 순간 믿기 어려운 사실은 눈앞에 펼쳐졌다. 지지지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수많은 독물들이 호홀지간에 새까만 숯덩이로 변하고 말았다. [아---앗!] 장내에 있던 인물들은 이 믿기 어려운 현실에 혼비백사한 채 멍하니 은의소년만 바라볼 뿐이었다. 은의소년 즉, 철한빙은 천천히 몸을 돌려 흑풍방 무리들을 응시했다. 순간, 그들은 동시에 흠칫 놀라며 제각기 두어 걸음씩 물러섰다. 철한빙은 지극히 냉막한 음성으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놈들의 부방주에게 가서 일러라. 본 공자가 한 달 내로 찾아가 흑풍방을 쑥밭 으로 만들어 버리겠다고 말이다.] 길당주가 험상�５봉� 표정으로 입술을 쌜룩거렸다. [흐흐흐... 스스로 무덤을 파다니...] 말이 끝남과 동시에 우문당주는 더할 수 없는 신속한 동작으로 품속으로 손을 가 져갔다. 순간, 그의 손이 빠짐과 동시에 푸른 광채가 섬전같이 폭사되어 나왔다. [흥!] 철한빙은 그것이 일종의 독침이라는 것을 알고 두 눈에 살기르 떠올리며 가벼운 냉소를 쳤다. 동시에 식지를 곧게 뻗어 그의 미심혈을 향해 일지를 뻗었다. 그리고는 호신강기를 일으켜 독침을 퉁겨냈다. [아----앗!] 우문당주는 그가 호신강기로 독침을 퉁겨내자 대경실색을 하고 말았다. 그가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기도 전에 미심혈을 향해 무형의 잠력이 몰아쳐 오는 것이 아닌가? 우문당주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급히 머리를 뒤로 제쳤다. 그러나 털끝만한 차이로 미심혈을 강타당하고 말았다. [아아아악!] 그는 처절무비한 비명을 지르며 뒤로 벌렁 자빠지고 말았다. 그의 미심혈에는 동그랗게 구멍이 뚫려져 있었으며 한 줄기 가느다란 선혈이 서 서히 흘러나오고 있었다. 장내의 인물들은 철한빙이 단 일초만에 당주를 살해하자 그야말로 아연실색을 금 치못했다. 철한빙은 우문당주의 시신을 차갑게 쏘아본 뒤 나머지 인물들에게 호통을 질렀 다. [어서 썩 꺼지지 않고 뭘 하고 있는게냐? 본 공자가 손을 쓰기라도 기다리고 있 는 것이냐?] 그러자 길당주를 비롯한 흑풍방 졸개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다리야 나 살려 라 하는 식으로 줄행랑을 놓고 말았다. 그들이 떠나자 허유광이 철한빙의 앞으로 다가서며 포권을 하였다. [소협 노부 조손의 목숨을 구해주신 은혜 백골난망하오이다.] 옆에 있던 녹의소녀도 다소곳이 절을 올렸다. [소녀 소협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철한빙은 그녀의 자태와 꾀꼬리같은 목소리에 정신이 아찔해졌다. [아..아니오. 어서 예를 거두시오. 서로 돕는 것이 인지상정이거늘 어찌 은혜라 하십니까?] 허유광이 다시 포권을 하며 말했다. [소협, 노부는 허유광이라 하며 손녀애는 허숙경이라 하오. 만약 소협이 도와주 지 않았다면 큰 봉변을 당할 뻔했소.] 이어 잠시 말을 멈춘 뒤 다시 이었다. [소협의 존성대명은 어찌 되시오?] 철한빙이 미소로서 답했다. [존성대명이라니 너무 과분한 말씀입니다. 소생은 설운몽이라 합니다.] 그리고는 두 사람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선배님께선 팔 년 전이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함이 없으시군요.] 그러자 허유광이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소협은 노부를 알고있소?] 철한빙이 고개를 끄덕였다. [선배님께선 팔 년 전 기련산 밑의 마을에서 어린 소년과 바둑을 두신 일이 있지 요?] 순간, 허유광과 허숙경의 안색이 갑자기 밝아졌다. 허유광이 급히 물었다. [그...그러고 보니 소협의 모습이 변하긴 했지만 그때 신동과 닮은데가 있구려.] 철한빙이 웃으면서 말했다. [소생이 그때 그 소년입니다.] 그러자 허유광이 잠시 멍청한 듯 하다가 이내 그의 손을 덥석 잡았다. [허허헛... 정말 몰라보게 자랐구려. 이젠 어엿한 대장부로 장성했구려.] 철한빙은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는 허숙경에게 시선을 돌렸다. [낭자, 그동안 안녕하셨소?] 허숙경은 얼굴을 도화빛으로 물들이면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예.... 고.. 공자님도 별고 없으셨어요?] 허유광이 두 사람의모습을 보고 가가대소를 터뜨렸다. [하하핫... 자, 자! 우리 안으로 들어가서 얘기합시다.] 철한빙이 정색을 하며 입을 열었다. [선배님, 말씀을 낮추십시오. 옛날에 부르셨던데로 불러 주십시오.] 허유광이 유쾌한 듯이 웃었다. [허허헛.. 그러세, 자, 소혀브 안으로 드세나.] 세 사람은 곧 초옥으로 들어갔다. 안은 그리 넓지는 않았으나 청결함과 우아함이 심신을 상쾌하게 해주었다. 그들은 박달나무로 깎아만든 둥근 탁자에 마주 앉았다. 허유광이 철한빙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철소협, 그동안 어디에 있었나? 노부와 손녀는 그 후에 기련산에 다시 갔었지만 자네는 그곳을 떠나고 없더군.] 철한빙의 안색이 침중하게 변했다. 그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일서부터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쭉 설명했다. 그러나 자신이 무명마라는 얘기와 중요한 몇가지 사실은 말하지 않았다. 허유광이 고개를 끄덕였다. [음.. 어린 나이에 무진 고생을 했구먼. 어쨌든 자네의 무공이 대성했음을 축하 하는 바이네.] 철한빙은 흐뭇함과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번호:204/227 등록자:HYUN9876 등록일시:97/04/09 21:12 길이:551줄 제 목 : [사마달] 불세마왕경 제 26장 불세마왕경 저자: 사마달 출판사: 대현출판사 제 26장 영웅첩 철한빙은 곧 정색을 하며 물었다. [한데 선배님께선 어쩌시다 흑풍방 놈들의 표적이 되셨습니까?] 허유광은 낯빛을 고치며 분노하듯이 입을 열었다. [삼 일 전이었네. 저보는 손녀애와 물건을 사기 위해 성으로 내려 갔었네.] 허유광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았다. 일상용품을 구입하기 위해 청양성으로 내려온 허유광 조손은 물건을 산 뒤 객점 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십시오.] 점원의 안내로 자리를 잡은 그들은 곧 음식을 주문하고 환담을 나누고 있었다. 이때, 우측에 앉았던 흑의대한들이 두 사람을 뚫어져라 주시하고 있었다. 여섯 명의 건장하면서도 음흉맞게 생긴 그들은 두 눈에서 야릇한 빛을 발하며 허 숙경의 풍만한 육체를 계속 훑어보고 있었다. 허유광은 그들의 눈짓을 이미 알아차렸으나 공연히 시비를 벌이고 싶지 않았 그 대로 있었다. 돌연, 주렴이 걷히며 칠십 세 가량의 사악하게 생긴 흑의노인이 돌아왔다. 여섯 명의 흑의인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히 그를 맞았다. 흑의노인이 자리에 앉자 한 대한이 그의 귀에다 대고 무엇인가 나직이 소곤거렸 다. 순간 흑의노인의 눈빛이 묘하게 이글거리며 허숙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이내 욕정에 불타는 음흉한 눈초리로 그녀를 응시했다. 허유광은 그들의 모습을 보고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흥! 네놈들이 경앙에게 응큼한 속셈을 가지고 있는 모양인데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일이지.) 이때 흑의노인이 옆 사람에게 귓속말을 했다. 그러자 그 사람은 벌떡 일어나 포권을 한 뒤 허유광의 탁자로 성큼성큼 다가오는 것이었다. 이어 허유광을 향해 길게 읍했다. [노인장, 우리들은 천하에 위맹을 떨치는 흑풍방의 사람들이오.] 여기서 잠시 말을 끊은 그는 흑의노인을 가리키며 다시 이었다. [저분 어르신네는 본방의 일인지하이신 부방주이시오.] 허유광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 그렇습니까? 이어 몰라뵈서 죄송합니다.] 흑의대한은 득의에 찬 미소를 날리며 어깨를 으쓱했다. [부교주님께서 노인장의 따님에게 적지않이 호감을 가지신 모양이오. 만약 따림 이 본부교주님의 안목에만 든다면 그날로 노인장은 팔자가 필 것이오.] 허유광은 터져나오는 욕설을 꿀꺽집어 삼키며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글쎄요. 팔자가 피는 것도 좋지만 손녀애의 의사를 들어봐야 하지 않겠소?] 흑의대한이 정색을 했다. [아하! 따님이 아니라 손녀였구려.] 그리고는 허숙경을 향해 제법 부드럽게 말했다. [낭자, 지금까지 얘기를 들었으리라 믿소. 낭자의 생각은 어떻소?] 허숙경은 수치심과 분노가 동시에 일었으나 침착한 어조로 입술을 떼었다. [대형의 부방주라는 분은 소녀와 나이도 맞지 않고 또 소녀가 마음이 업으니 정 말 미안하게 됐군요.] 순간 흑의대한은 물론 부교주도 이 말을 듣고 안색이 똥빛으로 변했다. [네 이년, 보노자의 나이가 어떻다는게냐? 본좌는 마음에 든 계집을 이제까지 한 번도 그냥 보낸적이 없다.] 허숙경은 안색을 싸늘하게 굳히며 냉랭하게 말했다. [흥! 늙은이 주제에 자기 분수를 모르고 날뛰다니 정말 가소롭기 짝이 없구나.] [뭣이!] 부교주는 분노가 머리를 뚫고 천정에 닿을 듯했다. 그는 안색이 푸르락붉으락 변해 마치 썩은 돼지간을 연상케했다. 부교주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그들 곁으로 다가왔다. [흐흐흐.. 그래도 계집년이 암팡진데가 있구나. 하기야 그런 점도 없다면 계집은 맛이 없는 법이지.] 허유광은 두 눈에 살기를 떠올리는 듯 했으나 이내 침착하게 말했다. [부교주, 어린애를 데리고 말씀이 너무 거친것 같소.] 그리고는 허숙경에게 시선을 돌렸다. [경아, 그만 가자. 오랜만에 즐겁게 식사를 하려고 했더니 쇠파리 때문에 틀린것 같구나.] [뭐...뭐라고? 쇠파리...?] 부교주는 전신의 털을 모두 곤두세우며 탁자를 힘껏 내리쳤다. 팍! 자단목으로 만든 탁자에 검은 장인이 깊숙하게 찍혔다. 허유광은 그의 내공이 출신입화의 경지에 이르렀음을 보고 가볍게 놀랐다. (음.. 역시 일개방의 부교주답게 공력이 심후하기 짝이 없구나.) 힘껏 당력으로 후려 친 탁자가 부서지지 않고 장인만 찍힌다는 것은 내공을 한곳 에 운집해야 하기 때문에 지극히 어려운 수법이었다. 부교주는 자신의 공력에 허유광이 주춤하자 사악한 웃음을 띠었다. [흐흐흐.. 만약 손녀 계집을 본좌에게 넘기지 않는다면 네놈의 골통을 박살 내 버리고 말겠다.] 순간 허숙경이 앙칼지게 소리쳤다. [늙은이가 백주에 못하는 말이 없구나. 상대방이 거절을 하면 곱게 물러날 것이 지 계속 더러운 입을 놀리고 있다니.] 부교주는 그녀의 말에 일언반구 대답을 하지 않고 오히려 오른손을 번개같이 뻗 어 그녀의 완맥을 움켜쥐어갔다. [흥!] 허숙경은 가볍게 코웃음을 치며 왼손을 옆으로 밀어내고 오른손으로 도리어 그의 갈비뼈를 찔러갔다. [엇!] 부교주는 의외라는 듯 한차례 헛김을 토해내며 급히 뒤로 두 걸음 물러섰다. 그리고는 이내 수치심으로 얼굴을 붉혔다. [흐흐흐.. 네년이 제법 앙칼지다고 생각했더니 두어 수 할줄 아는구나. 하긴 공 력이 있으면 거기에서도 훨씬 재미가 더한 법이지.] [닥쳐랏!] 허숙경은 그의 더러운 말에 살기를 가득 떠올리며 쌍장을 동시에 밀어냈다. 쐐----애앵! 부교주는 응큼하게 웃으며 제자리에서 백팔십도 회전하며 그녀의 등뒤로 돌아갔 다. 그리고는 두 팔로 그녀의 버들가지처럼 날씬한 허리를 끌어안았다. [앗!] 허숙경은 대경실색을 하며 일학충천의 신법으로 허공으로 솟구쳤다. 부교주는 금나수법으로 재빨리 그녀의 오른 팔을 움켜쥐어갔다. 이때 그의 옆구리를 향해 산악과 같은 일장이 밀려오는 것이 아닌가! 부교주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급히 초식을 철회하며 청룡출수의 신법으로 몸을 위 로 띄워 장력을 피했다. 그러는 한편 허공에 마주 떠 있는 허숙경을 향해 일지를 뻗어냈다. 실로 멋들어진 임기응변의 한 수였다. 허유광은 허공에 떠 있는 부교주를 향해 다시 일장을 날리려고 했다. 그러나 흑풍방의 졸개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늙은놈아, 받아랏!] 그들은 일제히 병기와 장을 휘둘러 허유광을 공격해갔다. 허유광은 재빨리 몸을 옆으로 누이며 허리를 뒤로 굽혀 신랄하게 일장을 후려쳤 다. 순간, [으아악!] [아----악!] 두 마디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들리며 잇따라 두 개의 신형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털썩! 둔탁한 소리와 함게 길게 뻗은 두 구의 시체에서 꾸역꾸역 선혈이 흘러나왔다. 한편 허공에 떠 있던 허숙경은 일지를 맞자 급히 비룡번신의 신법으로 급속히 몸 을 회전시켰다. 순간 허공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무서운 지풍이 아슬아슬하게 귓전을 스치고 지 나갔다. 그녀는 급히 천근추신법으로 지면으로 내려선 뒤 부교주를 향해 일장을 밀어 냈 다. 부교주는 그녀가 자신의 초식을 피하자 가볍게 놀라는 한편 우장을 들어 마구 일 장을 밀어냈다. 펑! 하는 요란한 폭음과 함께 사방에 그릇과 부서진 탁자들이 난무했다. 허숙경은 상대의 공력에 밀려 주르르 뒤로 밀려났다. 반면 부교주는 재빨리 밑으로 떨어지며 양쪽 손을 곧게 뻗어 그녀의 젖가슴과 하 복부를 노려왔다. [이 비열한 놈!] 허숙경은 무림의 금기에도 불구하고 여인의 급소만 노려오자 분기충천하고 말았 다. 이때, [아아아악!] [크윽...] 모골이 송연할 정도의 처절무비한 비명이 터져나오며 흑풍방의 나머지 졸개들이 이슬로 화해 버렸다. 두개골이 박살난 놈, 복구가 갈라져 내장이 밖으로 튀어나온 놈 등 목불인견의 참상이었다. 부교주는 이에 대경실색을 하며 재빨리 생각을 굴렸다. (음.. 이들의 무공이 상상외로 강하구나. 오늘은 일단 이곳을 벗어난 뒤 놈들의 거처를 알아 보복하는 것이 현명한 일일것이다.) 여기에 생각이 미친 그는 초식을 철회하는 척하며 허유광과 허숙경에게 동시에 허초를 밀어냈다. 허유광과 조손은 급히 장을 뻗어내며 양쪽으로 갈라선 뒤 다시 장을 쳐내려는 간, 부교주는 이때다 싶어 재빨리 뒤로 몸을 날렸다. [흐흐흐.. 오늘은 이만 간다만 훗날 열배, 아니, 백배로 보복을 해주겠다.] 허유광과 조손은 설마 그가 도주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지라 멍하니 멀어 져 가는 부교주를 바라볼 뿐이었다. 철한빙은 얘기를 들은 뒤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천하에 파렴치한 같은니 내가 놈들의 집단을 쑥밭으로 만들지 못한다면 성을 갈 고 말고 말것이다.] 허유광 조손은 그의 살기가 물신 풍기는 말에 소름이 오싹 끼쳤다. [소협, 진정하게나, 이제 놈들도 물러가고 했으니 별일 없겠지. 그리고 노부도 손녀애를 데리고 딴 곳으로 거처를 옮길 작정이네.] 철한빙이 고개를 끄덕였다. 허숙경은 고개를 숙인 채 연신 곁눈질로 철한빙을 훔쳐보고 있었다. (아... 그동안 정말 너무도 준수하게 변했구나. 마치 꿈속에서 만나보던 태자님 을 만난 기분이야.) 허유광은 그녀의 행동을 주시하며 미소를 지었다. 이어 철한빙을 향해 물었다. [한데 소협은 이제 어디로 갈 작정인가?] 철한빙은 잠시 망설이는 듯 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글세요. 특별히 갈곳도 없고 그저 천하 명산을 두루 구경할까 합니다.] 허유광이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그런가! 노부와 손녀에는 왕옥산으로 떠날걸세. 그곳까지 함께 동행하지 않으려 나?] 철한빙은 거절하려고 했으나 혹시 도중에 흑풍방의 주구들이 그들을 습격하지나 않을까 염려되어 동행을 승낙했다. x x x x x 왕옥산에서 칠십 리 떨어진 봉경성, 철한빙 일행은 느릿한 걸음으로 성내로 들어갔다. 봄비는 인파를 헤치고 주루를 찾던 그들은 맞은 편에 자지잡은 붕경루주로 향했 다. 이때 철한빙의 어깨를 툭 치는 인물이 있었다. 철한빙은 급히 고개를 돌리다 반색을 했다. [아니! 형님이 이곳에 어쩐 일이십니까?] 그의 어깨를 친 사람은 바로 취몽주개였다. 그는 코를 벌름거리며 허유광 조손을 응시했다. 허유광이 급히 포권을 했다. [혹시 개방의 방주가 아니시오?] 취몽주개가 누런 이를 드러내며 해벌레 웃었다. [헤헤헤.. 그렇소만 협객은 뉘신지요?] [허유광이라 하오. 그리고 이 애는 손녀딸 숙경이라 하오.] 허숙경이 예쁘게 절을 올렸다. 취몽주개는 때가 덕지덕지 낀 볼품없는 얼굴에 미소를 떠올렸다. [히야! 정말 기가 막히게 생겼군. 이 비렁뱅이가 사십 년만 젊었어도 나와는 기 막히게 어울리는 한쌍이 되겠건만..] [...] 허숙경은 새빨갛게 얼굴을 물들이며 고개를 푹 숙여 버리고 말았다. 철한빙은 취몽주개를 향해 넌지시 입을 열었다. [형님, 또 농담이시군요. 자 우리 주루로 가서 한 잔 하시지요?] [좋지! 좋지!] 취몽주개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입맛을 쩍쩍 다셨다. 그리고는 불록 튀어 나온 배를 살살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이놈아! 오늘은 운수대통해서 네놈을 좀 즐겁게 해줄 것 같구나.] 철한빙 등은 그의 익살에 대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그들은 곧 봉경주루에 자리를 잡고 음식을 주문했다. 취몽주개는 주위에 앉은 사람들이 음식을 드는 것을 보며 연신 군침을 꿀꺽꿀꺽 삼켰다. 그러는 한편 왼손으로는 배를 쓰다듬고 오른손으로는 열심히 들창코를 후벼대고 있었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자 그는 허겁지겁 닭다리를 쭉 찢어 한입 가득 쑤셔넣으며 볼 멘 소리로 말했다. [자, 자, 어..어서들 드... 듭시다.] 취몽주개의 식욕은 대단하기 이를데 없었다. 굵직한 닭다리가 입으로 들어가면 어느새 뼈다귀만 쑥 빠져 나오는 것이었다. 또한 술은 어떻게 퍼마시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한 마디로 옆에서 보는 사람의 기를 콱 죽여 놓을 정도였다. 철한빙 드은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며 즐거운 마음으로 식사를 했다. 탁자에 놓였던 음식이 깨끗하게 없어지고 나서야 취몽주개가 손놀림을 그쳤다. [커억! 오랜만에 잘 먹었다. 노제, 덕분에 포식했네.] 철한빙이 입을 열었다. [형님, 더 드시겠습니까?] 그러자 취몽주개가 반색을 했다. [노제, 요리를 주문한 뒤에 싸가지고 가세. 며칠간 실껏 먹을 양을 말일세.] 철한빙은 그만 멍청해지고 말았다. 허숙경은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간신히 억누르며 손으로 입을 가렸다. [킥! 킥!] 웃음이 새어 나오자 취몽주개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 질녀는 어째서 웃지? 이 비렁뱅이가 음식을 담을 곳이 없어서 그러는 모양 이지?] 하며 품속에서 커다란 보자기를 꺼내 보였다. 그리고는 두 손으로 모서리를 잡고 훌훌 털었다. [자, 이만하면 충분히 싸고도 남을 것이야.] 이때 허숙경이 질겁을 했다. [어머낫!] 취몽주개가 보자기를 털자 수많은 이들이 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졌다. 그는 무안한 듯이 뒤통수를 긁적였다. [제기랄, 이놈들이 하필이면 이곳에 숨어 있을게 뭐람. 이놈들아! 네놈들 때문에 망신살이 뻗치지 않았느냐?] 그는 이를 발로 쾅쾅 밟았다. 철한빙이 그의 행동을 말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형님, 그만 갑시다. 허선배님은 갈길이 바쁘십니다.] 그러자 취몽주개가 허공에서 발을 멈추며 씨익 웃었다. [엉! 그런가? 그럼 가보세나.] 길을 가는 동안 취몽주개는 손짓발짓을 해대며 쉴새없이 떠들어 댔다. 덕분에 그들은 지루하지 않게 왕옥산에 도착할 수 있었다. 허유광이 철한빙의 손을 살며시 잡으며 입을 열었다. [소협, 이곳까지 동행해줘서 고맙네. 노부는 사자봉에 기거할 것이니 언제든지 찾아 오게나.] 철한빙이 섭섭한 듯이 말했다. [선배님, 소생이 꼭 찾아뵙겠습니다.] 이어 허숙경에게 시선을 돌렸다. [낭자께서도 몸 건강히 지내시기 바랍니다.] 허숙경이 알 수 없는 이상한 눈빛을 발하며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공자님께서도 몸을 보증하세요. 그리고 꼭 놀러오세요.] 철한빙은 그녀의 반짝이는 눈망울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꼭 찾아 오겠소.] 취몽주개가 두 사람을 바라보며 히히덕 거렸다. [어울리는 한쌍이로군. 정말 어울리는 한쌍이야!] 두 사람은 동시에 얼굴을 물들이며 고개를 숙여 버리고 말았다. 허유광이 아쉬운 듯한 표정으로 입술을 떼었다. [그럼 이만 작별을 고해야겠소이다. 편히들 가시기 바라오.] 철한빙은 그들 조손에게 포권을 한 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렸다. 허숙경은 멀어져 가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말없이 눈물 짓고 있었다. 허유광은 그녀의 어개를 따뜻하게 감싸주며 나직하게 말했다. [경아, 그는 틀림없이 다시 찾아올 것이다. 그러니 눈물을 거두어라.] 그들은 철한빙과 취몽주개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눈으로 배웅을 했다. 한편, 철한빙은 그녀의 눈빛에서 알 수 없는 야릇한 감정을 느꼈다. 그는 마치 품안에 고이 감싸여 있던 한 마리의 어여쁜 새가 허공으로 날아가버린 듯한 묘한 감정이 일었다.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걷기만 했다. 드디어 취몽주개가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급히 말했다. [노제, 그만 잊어버리게. 다음에 다시 재회의 날을 기약하면 되지 않겠나?] 철한빙은 빨갛게 얼굴을 물들이며 당황한 듯이 급히 말했다. [형님도 농담 그만 하십시오.] 취몽주개가 정색을 했다. [헤헤헤... 농담이라니? 노제 얼굴에 벌써 나타났는데 구태여 오리발을 내밀 필 요가 무어 있겠는가? 우형이 틀림없이 책임지고 중매를 서 주겠네 이제 됐는가?] 철한빙은 짐짓 안색을 굳히며 위엄있게 말했다. [정말 형님께서 자꾸 이러시면 지금부터 밥 한끼도 대접하지 않겠습니다.] 그러자 취몽주개가 대경실색을 하며 죽상을 지었다. [노제님, 여지껏 한말은 농담일세 농담! 그러니 제발 우형의 뱃가죽이 쪼그라들 게 하지는 말아주게.] 철한빙은 미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취몽주개가 낯빛을 흐리며 심각한 듯이 말했다. [한데 근래에 희세의 대마두가 출현했다는데 자네는 이 사실을 알고 있나?] 철한빙은 희세에 대마두란 바로 자신을 가리킨다는 것을 직감으로 느낄 수 있었 다. 그러나 겉으로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희세의 대마두라니요? 금시초문인데요?] [음.. 자네는 아직 소문을 못들은 모양이군. 그놈은 구파 중에 사파를 쑥밭으로 만든 일대의 마두일세.] 철한빙이 물었다. [그렇게 무공이 고강합니까? 한데 그 사람의 정체가 무엇입니까?] 취몽주개가 떨떠름하게 말했다. [글쎄, 그놈의 행동이 어찌나 신비롭던지 전혀 행적을 드러내지 않는다네. 그래 서 무림에서는 그를 가리켜 세외일마 혹은 무명마라고 칭한다네. 어쨌든 그로 인 해 강호는 일대피바람을 일으킬 것이 분명하네.] 철한빙은 내심 고소를 지으며 말했다. [무명마가 그런 일을 저지른 데에는 무슨 곡절이 있겠지요.] 그러자 취몽주개가 의혹에 젖은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인가? 곡절이 있다니.] 철한빙은 얼굴빛을 침중하게 굳히며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무명마가 만약 희세의 대마두라면 어찌 구파 중에 사파만 몰살시켰겠습니까? 그 리고 그가 그렇게 악독한 마두라면 그에게 살해 당한 인물들이 부지기수가 아니 겠습니까?] 취몽주개는 그의 말을 듣고 한편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노제의 말에도 일리는 있네. 하지만 사파에서 죽은 인물만도 거의 조그만 동산 을 만들고도 남을 것이네.] 철한빙은 그말에는 시인을 했다. [그건 그렇습니다. 하지만 소제가 보기에는 무명마에게는 틀림없이 무슨 곡절이 있을 것입니다.] 취몽주개가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노제는 무명마가 일대의 대마두가 아니라는 것인가?] 철한빙이 당황하며 급히 말했다. [그..글쎄요. 소제는 거기까지는 생각할 수가 없군요.] 그리고는 말을 이었다. [소제의 생각으로는 그가 무슨 원한이 있기 때문에 사파에 대해 살수를 전개한듯 싶습니다. 형님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취몽주개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했다. [그건 노제가 몰라서 하는 말일세. 그파는 천하에 협맹으로 이름을 떨친 방파일 세. 그런데 무명마가 그들에게 독수를 편친 것만 보아도 그가 능히 사악한 마두 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네.] 철한빙은 무슨 말인가 하려는 듯 하다가 입을 다물업 버렸다. 괜스레 더이상 왈가불가 하다가는 취몽주개가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았다. [형님, 무명마에 대해선 그만 얘기 하도록 합시다.] 여기에서 입을 다문 그는 잠시 후에 다시 말을 꺼냈다. [한데 그 신비의 홍의인들은 다시 오지 않았습니까?] 취몽주개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헤헤헤.. 개방의 태상호법인 노제가 있는데 놈들이 얼굴을 내밀리가 있겠는가? 그 놈들은 그때 풍지박살이 난 뒤로는 전혀 감감무소식일세.] 철한빙은 그들이 언젠가는 반드시 보복을 해올 것이라고 믿었다. [형님, 그렇다고 전혀 마음을 놓으시면 안될 것입니다.] 취몽주개는 연신 웃음을 흘리며 걱정 말라는 듯이 두 손을 저었다. [노제, 이 비렁뱅이도 그렇게 미흡한 사람은 아닐세. 만일을 대비해서 항상 마음 의 준비를 갖추고 있다네.] 철한빙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역시 형님답게 철두철미하군요.] 이어 정색을 하며 물었다. [그런데 두 형님은 아직도 완강분타에 계십니까?] 취몽주개가 고개를 끄덕였다. [음.. 사제는 총단으로 내려오라고 했지만 한사코 완강부타에서�ð� 머물기를 희망 한다네.] [두 형님 성격으론느 그러고도 남을 것입니다.] 철한빙은 그럴줄 알았다는 듯이 말한 뒤 넌지시 물었다. [한데 형님은 어디를 가시는 중이었습니까?] 취몽주개가 즉시 대답했다. [이번에 무명마의 일로 인해 무림맹주인 칠절성군이 영웅첩을 돌렸다네. 그래서 무림맹으로 가고 있는 중이네.] 철한빙은 내심 뜨끔함을 금치 못했다. 번호:205/227 등록자:HYUN9876 등록일시:97/04/09 21:12 길이:504줄 제 목 : [사마달] 불세마왕경 제 27장 불세마왕경 저자: 사마달 출판사: 대현출판사 제 27장 흑의복면인 철한빙은 속으로 같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겉으로는 조금도 내색하지 않고 차분한 어조로 물었다. [그럼 정파의 인물들이 모두 모이겠군요?] 취몽주개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렇지 않네. 칠절성군은 몇몇 사람들에게만 암암리에 영웅첩을 보냈다네. 아마 소림사에서 부탁한 것도 같네.] 철한빙은 내심 암담함을 느꼈다. (아... 사부님께서는 천하창생을 위해 힘을 쓰라하셨건만 오히려 천하의 대마두 로 낙인이 찍히다니. 사부님께서 얼마나 통탄 하실까?) 취몽주개는 무심코 그에세 시선을 돌리다가 깜짝 놀란 듯이 물었다. [아니! 노제의 얼굴 빛이 어째 그런가? 혹시 어디 불편한 곳이라도 있는 것이 아 닌가?] 철한빙은 급히 생각을 멈추며 씁스레하게 웃었다. [아닙니다. 잠시 딴 생각을 하느라고 그랬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일세. 객지에 떠돌다보니 뭐니뭐니해도 배불리 먹고 편히 쉬며 건 강을 유지하는 것이 제일이라네.] 철한빙은 그 말이 취몽주개 자신에게 하는 말같이 들렸다. 취몽주개는 발밑에 있는 커다란 돌맹이를 걷어차며 말했다. [노제도 무림맹에 가볼 생각이 없는가? 만약 자네가 발벗고 나선다면 무명마쯤이 야 조족지혈에 불과 할걸세.] [원 형님도! 너무 소제를 추켜세우시는군요. 어쨌든 무림맹이란 곳엘 가보도록 할까요?] 취몽주개가 손뼉을 치며 입을 열었다. [자, 노부의 뒤만 바싹 따라오면 자연히 무림맹으로 갈 수 있다네.] 철한빙은 미소를 지으며 나직하게 입술을 떼었다. [형님, 그런데 소제는 영웅첩이 없는데 무림맹에 참석할 수 있을까요?] 취몽주개가 어깨를 으슥했다. [그 뉘라고 감히 노제를 마다하겠는가? 그 점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네.] 철한빙은 그의 뒤를 따르며 곰곰히 생각에 잠겼다. (무림맹에서 내 정체를 밝히고 이십 년 전의 일을 공개하는 것이 어떨까? 아니 야. 그들은 내말을 틀림없이 믿지 않을 것이야. 그렇다면 그들은 기만하는 한이 있더라도...) 두 사람은 느린 걸음에서 신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바람을 가르며 쏜살같이 날아가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흐르는 유성과도 같았다. 이틀 후, 철한빙과 취몽주개는 무림맹이 위치한 무창성에 당도했다. 길가는 행인들은 두 사람의 너무나도 대조적인 모습에 손가락질을 하며 수군거렸 다. 취몽주개는 남이야 흉을 보던 칭찬을 하던 내 알바 아니라는 듯이 보무도 당당하 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들은 향 한 자루가 다탈 시간이 지나서 어느 웅장하기 이를데 없는 장원에 도 착했다. 취몽주개가 철한빙을 바라보며 누런 이를 드러냈다. [노제, 이 장원이 바로 무림맹이자 칠절성군 유맹주의 거처인 풍운장원일세.] 철한빙이 고개를 끄덕이며 현판을 바라보자 금빛 찬란한 글씨로 풍운장원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들이 도착하자 대문 앞에 지켜 서 있던 두 명의 장한 중 삼십 대의 텁석부리사 내가 성큼 앞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깊숙이 허리를 굽히며 두 사람은 맞았다. [노선배님께서 개방의 방주이신지요?] 취몽주개가 무형의 장력으로 그를 일으키며 말했다. [그렇네. 한데 모두들 도착했는가?] 텁석부리 대한은 그의 무공에 내심 감탄하며 공손히 대답했다. [예, 조금 전에 모두들 당도 하셨습니다.] 취몽주개가 중얼거렸다. [음.. 노부가 제일 늦은 모양이구먼.] 이어 철한빙을 향해 입을 열었다. [노제, 모두들 당도했다고 하니 어서 들어가 보세.] 텁석부리 장한이 재빨리 앞장을 섰다. [두 분께서는 소인을 따라 오십시오.] 두 사람은 그를 따라 의사청으로 들어갔다. 텁석부리 장한은 그들을 의사청까지 안내한 뒤 다시 물러섰다. 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서자 반갑게 맞이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방주, 어서 오시오. 혹시 못오시나해서 걱정했소이다.] 철한빙이 소리난 쪽으로 시선을 돌려보니 칠절성군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이쪽으 로 다가오고 있었다. 취몽주개가 껄껄 웃으며 입을 열었다. [허허헛.. 맹주의 풍체가 더욱 좋아지셨구려. 정말 부럽소이다.] 칠절성군이 정색을 하려다 말고 철한빙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는 그의 준수함과 냉막함에 저으기 놀랐다. [방주, 이분 소협은 뉘시오?] 취몽주개가 재빨리 대답했다. [노부의 의제이오.이름은 설운몽이라 하외다.] 철한빙은 칠정성군에게 가볍게 예를 보냈다. 이어 그들을 자리로 안내했다. 취몽주개는 여러사람과 인사를 나우었다. 철한빙이 그들을 바라보니 칠정성군과 취몽주개를 제외하고 모두 열 사람이었다.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안면이 있는 사람이었다. 철한빙은 녹색장삼을 입고 세 가닥 수염을 기른 노인이 형설방주 남천일조 시원 평임을 알았다. 나머지 아홉 사람은 각파의 수뇌들로서 다름과 같았다. 철기방주 천뢰신장 좌방원, 항룡일수 단극, 사해방주 사해검군 한관중, 그리고 소림장문인 혜인선사, 아미장문인 원강선사, 화산장문인 헌월일검, 곤륜장문 마 지막에 앉은 사람은 노부인으로 사천당가의 문주인 쌍연태랑 당자양이었다. 철한빙은 이곳에 모인 인물들이 정파의 정예고수라는 것을 알았다. 이때 사해방주가 철한빙의 모습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이상하다...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인데 도통 생각이 나지 않는구나.) 그가 생각에 잠겨 있을때 칠절성군이 천천히 일어섰다. [오늘 이곳에 모인 목적은 희세의 대마두인 무명마를 어떻게 처리하느냐를 결정 짓기 위해서이오.] 그는 여기서 잠시 말을 멈추며 주위를 한차례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또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여러분의 의견을 듣고자 하는 바이오.] 그러자 쌍연태랑이 단호한 음성으로 말했다. [무명마의 행동으로 보아 천하무림을 우습게 보는 것이 분명하오. 그런 놈은 정 의를 위해서라도 한시바삐 제거해야 된다고 생각하오.] 이때 취몽주개가 반대 의견을 들고 나왔다. [당문주의 말씀도 일리는 있소. 하지만 무명마가 누군인지도 모르는 것은 고사하 고 무슨 이유로 그같은 끔찍한 일을 저질렀는지 거기에 대한 규명을 하는 것이 순서인것 같소.] 그의 말에 중인들은 고개를 몇번 끄덕였다. 하지만 이내 머리를 가로 짓는 사람이 있었으니... 화산장문인 헌원일검이 턱을 쓰다듬으며 너지시 입을 열었다. [물론 일에 대한 규명을 하는 것이 도리일 것이오. 하나 무명마는 무자비한 살생 을 일삼는 살이�♥┗沽� 불과할 뿐이지 그 어떤 이유가 있어서 그같은행동을 취했 으리라고는 보지 않소.] 소림장문인 혜인선사가 나직이 불호를 외웠다. [아미타불.. 빈승이 보건대 무명마는 천하무림을 송두리째 집어삼키려는 야욕이 있는 듯하오.] 아미장문인 원강선사가 재빨리 말을 받았다. [빈승도 소림장문인의 생각과 동감이오. 해서 하루라도 빨리 그를 제거하는 것이 무림의 평화를 위하는 길이 될 것이오.] 그러자 중인들이 일제히 찬성을 하고 나왔다. 다만 취몽주개만이 묵묵부답 말이 없을 뿐이었다. 철한빙이 그의 표정을 보며 전음을 보냈다. [형님은 어째서 찬동을 하지 않으십니까?] 취몽주개는 고개를 천천히 저으며 역시 전음으로 말했다. [소위 정파라는 인물들이 그것도 무림의 영도자격인 자들이 너무도 무분별한 것 같네. 천하의 악인이라고 하더라도 일단은 거기에 대한 자세한 사실을 밝힌다음 결정해야 할것이네. 하지만 이들은 휴우! 더 이상 말도 하고 싶지 않네.] 철한빙은 취몽주개가 비록 익살스럽기는 해도 역시 사리판단에는 밝은 인물이라 는 것을 알았다. 그는 이같은 인물을 형님으로 삼게된 것이 무엇보다도 기뻤다. 칠절성군이 손을 흔든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럼 우선은 무명마가 어떻게 생긴 인물인지를 알아내야 할것이오. 그러니 천하 에 이목이 깔린 개방의 힘을 빌리는 것이 적당할 것 같소.] 그리고는 여러사람을 둘러보았다. [여러분들의 의견은 어떠시오?] 그러자 중인들의 입에서 이구동성으로 똑같은 말이 튀어나왔다.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소.] 취몽주개는 내심 못마땅하며 막 거절을 하려고 했다. 이때, [흐흐흐.. 이런 곳에 처박혀 감히 노부를 모해할 음모를 꾸미고 있다니 정말 가 소롭구나.] 중인들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웬 놈들이기에 이곳엘 침입했느냐?] 칠정성군의 사애방은 여전히 몸을 드러내지 않은 채 목소리만 들려왔다. [흐흐흐.. 이곳이 무슨 대라금궁이라도 된단 말이냐? 노부가 이까짓 쥐새끼같은 집쯤은 하루에도 열 두 번씩은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으리라.] 칠절성군의 안색은 금시 흑빛으로 변하고 말았다. [이..무례한 놈! 썩 모습을 나타내지 못할까?] 철한빙은 수수께끼의 인영이 지붕 위에 내려설 때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 그는 곧 취몽주개에게 전음술을 보냈다. [형님, 놈이 지붕 위에 숨어 천리전음술을 펼치고 있습니다.] 쉬아아앙! 매서운 바람소리를 동반하고 거센 일장이 지붕 위로 밀려갔다. [엇?] 상대방은 가볍게 놀라며 번뜩하고 신형을 날려 유유히 의사청으로 내려왔다. 신법의 빠름은 전광석화와도 같았다. 펑! 목표를 잃은 일장은 지붕에 커다란 구멍을 뚫어버리고 말았다. 중인들은 괴인영이 취몽주개의 일장을 마치 장난하듯이 가볍게 피한 뒤 자신들의 면전에 사뿐히 내려서자 저으기 놀랐다. 괴인영은 머리 끝에서부터 발 끝까지 흑의로 몸을 감다시피 하고 있었다. 흑의복면에 뚫어진 두 개의 구멍에서는 연신 사악한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저절로 무릎을 꿇게 만드는 무시무시한 눈빛이었다. 철한빙은 그의 눈빛을 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음.. 이 사람은 혼을 빼앗는 섭혼마공을 익혔구나.) 흑의복면인은 지면에 내려서자 곧 칠절성군을 노려보았다. 순간, 그의 눈에서 녹색 광채가 어리기 시작했다. [앗!] 중인들은 동시에 경악의 외침을 토해내며 황급히 그의 눈에서 시선을 돌리려 했 으나 마치 자석에 끌리듯 도저히 눈길을 돌릴 수가 없었다. [흐흐흐흐...] 흑의복면인은 득의의 웃음을 날리며 계속 섭혼마공을 펼쳤다. 이때 취몽주개가 뒤따라 지면에 내려섰다. 이 모든 동작은 지극히 짧은 시간에 일어난 일들이었다. 철한빙은 급히 취몽주개에게 전음을 보냈다. [형님, 놈은 지금 섭혼마공을 전개해서 중인들을 꼼짝 못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만약 조금만 더 놓아둔다면 필시 칠공에서 피를 토하고 죽고 말것입니다. 그러니 속히 놈의 혼문혈을 향해 일지를 날리십시오.] 취몽주개는 섭혼마공이라는 말에 대경실색을 하며 급히 흑의복면을 향해 일지를 퉁겼다. 쉬익! 지극히 미약한 음향과 함께 매서운 지풍이 흑의 복면인의 혼문혈을 맹렬하게 찔 러갔다. [윽!] 흑의복면인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재빨리 옆으로 미끄러져 일지를 피했다. 그러나 그 바람에 섭혼마공이 풀리고 말았다. 중인들은 황급히 정신을 차리며 이마에 흐른 식은땀을 닦았다. 흑의 복면인은 취몽주개가 계속 훼방을 놓자 두 눈에서 악귀와 같은 살기를 뿜어 냈다. [흐흐흐.. 취몽주개, 네놈의 무공이 상상외로 고강하구나. 저들 머저리보다는 한 수 위인 듯 하구나.] 그는 철한빙이 취몽주개에게 암암리에 전음술을 전개했다는 사실은 꾸메도 모르 고 있었다. 철한빙을 보기는 했으나 이내 안중에도 두지 않았던 것이다. 이때 칠절성군이 취몽주개에게 포권을 했다. [방주가 아니었다면 정말 큰일날 뻔 했습니다.] 그리고는 흑의복면인에게 시선을 돌리며 살기가 가득 찬 음성으로 말했다. [네놈은 대체 누구이기에 풍운장원엘 침입했느냐?] 흑의복면인이 냉막하게 입을 열었다. [네놈들이 노부가 누구라는 것을 안다면 그 자리에서 까무라치고 말것이다.] 소림의 혜인선사가 나직이 불호를 터뜨렸다. [아미타불.. 시주께서는 너무도 안중무인이구려.] 그러자 흑의 복면인이 사악하게 웃으며 말했다. [흐흐흐.. 네놈들의 소원이 정히 그렇다면 알려주마.] 그는 잠시 말을 끊은 뒤 주위를 한차례 빠르게 훑어보았다. [노부는 세외일마인 동시에 무명마라고 하는 어른이시다.] [뭐...뭣이!] 중이들은 혼비백산하도록 놀라며 일제히 뒷걸음질을 했다. 그들의 안색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제일 크게 놀란 사람은 무명마 자신인 철한빙이었다. (아니! 이놈은 어째서 무명마라고 자칭하는 것일까? 혹시 명호를 도용해서..) 그는 총명절정에 달한 두뇌를 재발리 회전시킨 뒤 귀추를 주목했다. 창룡회주는 급히 심신을 안전시키며 차분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당신이 희세의 대마두라고 소문이 퍼진 무명마란 말이오?] 가짜 무명마가 음험하게 말했다. [그럼 노부말고 또 누가 있단 말이냐?] 항룡진인이 도호를 외쳤다. [무량수불.. 시주께서는 복면을 벗으시는 것이 어떻겠소?] 가짜 무명마는 복면을 한차례 쓰다듬으며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노부가 네놈들에게 진멱목을 보일 것 같았으면 아예 복면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 다. 그러니 허튼 수작은 그만 하고 어느 놈이 노부의 기분을 맞춰 주겠느냐?] 천뢰신장 좌방원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기분을 맞춰 주다니? 그게 무슨 뜻이냐?] [히히힛... 네놈의 대가리는 그야말로 쇠대가리로구나. 그 말뜻은 어떤 녀석이 노부와 더불어 초식을 겨루겠느냐 하는 말이다.] 좌방원은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이며 거친 숨을 씩씩 내쉬었다. [뭐...뭐라고! 네놈이 감히 노부를 희롱하다니 오냐! 노부가 네놈의 목을 비틀어 주겠다.] 가짜 무명마가 가소롭다는 듯이 웃었다. [네놈 혼자서 노부와 겨룬다면 이십 초도 못가서 골통이 빠개지고 말것이다.] 순간 좌방원의 입에서 짐승의 포효같은 고함이 터져나왔다. [이놈! 노부의 초식을 받아랏!] 이어 천뢰장을 구성의 공력으로 밀어냈다. [흥!] 가짜 무명마는 콧웃음을 친뒤 우장을 곧게 뻗었다. 그러자, 펑! 하는 광폭음이 들리며 천뢰신장 좌방원이 주춤주춤 두 걸음 물러섰다. 반면 가짜 무명마는 싸늘한 눈빛을 발하며 그를 보려보고 있었다. [헛!] 중인들은 단 일초만에 좌방원이 약세를 드러내자 깜짝 놀라고 말았다. 가짜 무명마는 어깨를 으쓱하며 득의에 찬 음성으로 말했다. [헤헤헤.. 좌방원, 네놈의 무공으로는 노부의 상대가 안되니 딴 놈들과 합세해서 노부의 손속을 덜어주는 것이 어떠냐?]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자죽검 구양서의 입에서 대갈일성이 터져나왔다. [에...에잇! 건방진 놈.] 동시에 언제 빼들었는지 모르게 자죽검을 빼어들고 빛살같이 일검을 그어갔다. 가짜 무명마는 여유있게 보법을 펼치며 차갑게 말했다. [곤륜의 절기인 운룡대팔식이로군.] 그는 비웃듯이 이죽거린 뒤 왼손을 바깥 쪽으로 뒤집어 자죽검을 움켜지어갔다. (아니! 저놈이 미쳤나?) 중인들은 이같이 생각하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구양서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삼성의 공력을 더 주입시켜 그의 손목을 베어갔 다. 하나 가짜 무명마의 이번 초식은 상대를 끌어들여 방심을 하게 만드는 허초에 불 과했다. 그는 한 마디 우렁찬 기합을 터뜨리며 그 자리에서 몸을 열 여덟바퀴 회전시켰 다. [앗!] 구양서는 비로소 상대가 허초를 사용했다는 것을 깨닫고 급히 자죽검을 거두어 들이려 했다. 그러나 간발의 차이로 늦고 말았다. 탁!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구양서의 입에서 가느다란 신음이 새어나왔다. [으----음!] 이어 왼손으로 오른쪽 손목을 움켜쥐며 비틀비틀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그의 손에 들었던 자죽검은 어느새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가짜 무명마는 구양서의 손목을 내리쳐 검을 떨어뜨리자 재차 그를 향해 덮쳐들 었다. 사해방주는 이에 기겁을 하며 황급히 십성의 공력으로 일장을 밀어냈다. 가짜 무명마는 자신의 살초가 막 적중 되려는 순간에 뒤에서 태산을 무너뜨릴듯 한 장력이 밀려오자 어쩔 수 없이 초식을 철회했다. 그리고는 유성추월의 신법을 전개해 지극히 유연한 동작으로 허공으로 솟구쳤다. 순간 태산을 무너뜨릴 것 같던 장력이 털끝 같은 차이로 발밑을 스치고 지나갔 다. 이때 구양서는 급히 몸을 퉁겨 뒤로 물러섰다. 그는 죽음의 일보 직전에서 벗어나자 �낵망袂藪� 식은 땀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허공으로 몸을 솟구친 가짜 무명마는 머리는 지면을 향하고 다리는 하늘을 향한 채 사해검군을 향해 맹렬하게 일장을 후려쳤다. 패애---앵! 날카로운 파공음이 일며 사해검군의 전신을 교묘하게 휘감아 갔다. 사해검군은 불리한 일장에서 공력을 받자 옆으로 미끄러지며 일장을 피했다. 펑! 무지막지한 장력은 바닥을 후려쳐 커다란 구멍을 만들어 버렸다. 사해검군은 오싹하는 것을 느끼며 왼손을 곧게 뻗어 상대의 발목을 후려쳤다. 그러는 한편 오른 손을 갈고리처럼 구부려 금룡혈조를 펼쳤다. 가짜 무명마는 발목을 오므리며 허리를 뒤로 꺾어 일초 이식을 간단히 피해 버렸 다. 이어 법륜구전의 신법을 펼쳐 아홉 번 몸을 비틀었다. 사해검군은 절정신공을 대하자 그만 대경실색을 하고 말았다. 그가 파훼 방법을 찾지 못하고 쩔쩔매고 있을 때였다. 퉁! 하는 소리가 들리며 새까만 물체가 가짜 무명마의 태양혈을 노려갔다. [억!] 그는 또 다시 상대를 죽일 순간에 방해를 받자 대노하고 말았다. [어----야-----압!] 그는 길게 기합을 지른 뒤 새까만 물체를 향해 십성의 공력으로 밀어냈다. 순간 물체는 힘없이 밀려 가랑잎처럼 날아가 버렸다. 철한빙은 새까만 물체가 취몽주개가 퉁겨낸 코딱지라는 것을 알고 실소를 금치 못했다. 이때 헌월일검이 번개같이 검을 빼어들고 가짜 무명마에게 덮쳐갔다. [흥! 태음검법...] 가짜 무명마는 냉랭하게 코웃음을 치며 아까와 마찬가지로 검을 움켜 쥐어갔다. 헌월일검은 자죽검 구양서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는 듯 침착하게 초식을 펼쳤다. 그러나 가짜 무명마의 무공은 거의 신의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십 삼 초가 지나자 헌월일검은 차츰 수세에 몰리기 시작했다. 헌월일검은 분노와 수치심으로 전신의 털을 빳빳이 곤두 세운 채 정신없이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다시 오초가 지나자 그는 더 이상 검을 휘두를 수조가 없게 되고 말았다. [받아랏!] 가짜 무명마는 쩌렁쩌렁 고함을 지르며 헌월일검의 전신대혈을 향해 날카로운 지 풍을 튕겨냈다. 쐐-----액! 헌월일검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허겁지겁 검을 들어 지풍을 막아갔다. 쨍! 쨍! 검과 지풍이 마주치자 경쾌한 금속성이 울려퍼졌다. 헌월일검은 몇 가닥 지풍을 막아내기는 했으나 두 줄기의 지풍에 혈도를 찍히고 말았다. [으-----윽!] 그는 나직한 신음을 지르며 제자리에 송장처럼 굳어 버리고 말았다. 칠절성군들이 급히 도와주려고 했으나 종이 한 장 차이로 손을 쓰지 못하고 말았 다. 가짜 무명마는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천천히 뒷짐을 지었다. 번호:206/227 등록자:HYUN9876 등록일시:97/04/09 21:13 길이:488줄 제 목 : [사마달] 불세마왕경 제 28장 불세마왕경 저저: 사마달 출판사: 대현출판사 제 28장 불꽃튀는 공중전 가짜 무명마는 좌중을 한차례 둘러보며 으쓱해보였다. [흐흐흐.. 오합지졸에 불과한 놈들이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교체륜환 법을 쓰려고 하다니 정말 명문정파라는 곳은 허울만 좋구나.] 칠절성군은 급히 헌원일검의 곁으로 다가가 혈도를 풀어주려고 했다. 그러나 점혈수법이 너무도 교묘하여 도무지 혈도를 풀 수가 없었다. 혜인선사가 그의 곤혹해하는 표정을 보며 넌지시 물었다. [맹주, 어찌 그러시오? 혹시 화산장문인이 잘못된 것이 아니오?] 칠절성군은 고개를 힘없이 저었다. [무명마의 점혈수법이 일반 강호의 수법과는 크게 다르외다.] [옛?] 중인들은 한결같이 놀라며 일제히 헌원일검의 곁으로 다가갔다. 가짜 무명마는 이들의 행동을 저지시키지 않고 오히려 득의에 찬 웃음을 흘렸다. [흐흐흐.. 만약 네놈들 중에서 헌원일검의 혈도를 풀 수 있다면 노부는 곱게 이 자리를 물러가마.] 혜인선사가 무명마를 힐끗 쳐다본 뒤 헌원일검의 전신을 살폈다. [음.. 화산 장문인은 기해혈과 장문혈을 제압당했소.] 그리고는 두 혈도를 가볍게 짚었다. 순간, 헌원일검이 입을 크게 벌리며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구슬같은 땀방울을 주르르 흘리는 것이 아닌가? 또한 굉장히 고통스러운 듯 오만상을 찌푸리며 두 눈은 밖으로 튀어나올 듯이 툭 불거졌다. 항룡진인이 다급하게 고함을 질렀다. [앗! 장문인, 어서 손을 멈추시오.] 혜인선사는 황급히 손을 거두며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그는 이마에 흐른 땀을 씻으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부끄럽소. 빈승은 도저히 혈도를 풀 재간이 없소.] 중인들은 반신방의하여 차례로 헌원일검의 혈도를 풀어보려고 했다. 그러나 헌원일검의 고통만 가중시킬 뿐이었다. 가짜 무명마는 허공을 우러러 가가대소를 터뜨렸다. [하하하핫... 그 뉘라서 노부의 독문점혈수를 풀 수가 있겠는가?] 이때, [흥! 보잘 것 없는 역혈참맥수법으로 공연히 으시대다니 가소롭기 짝이 없구려.] 좌중의 인물들은 소리가 들린 쪽으로 시선을 돌려보았다. 그 사람은 다름아닌 철한빙이었다. 가짜 무명마는 그가 자신의 독문점혈수법을 알아 맞히자 의혹에 젖은 눈빛을 발 했다. [애송아! 지금 네 녀석이 말을 했느냐?] 철한빙은 그의 말에는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칠절성군에게 말했다. [맹주님, 소생이 화산 장문인의 혈도를 풀어볼까 하는데 괜찮으시겠는지요?] 칠절성군은 좌중을 둘러보며 의견을 묻는 듯했다. 사해검군이 일말의 희망을 걸고 말했다. [맹주, 어차피 우리들은 속수무책이오. 그러니 저분 소협에게 맡겨 보는 것도 좋 을 듯하오.] 나머지 사람들도 잠시 망설이는 듯 하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칠절성군은 그들이 동의하자 철한빙에게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한데 소협께서는 자신이 있으시오? 괜히 실수를 한다면 화산 장문인에게 극심한 고통만 안겨주게 될 것이오.] 실상 중인들은 철한빙이 점혈수법의 이름만 요행히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니 혈도를 푼다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일이라고 여겼다. 다만 궁여지책으로 승낙을 했을 뿐이었다. 순간 철한빙의 안색이 더욱 싸늘해지는 듯 했으나 이내 정상을 회복했다. [맹주님, 소생도 확실하게 자신은 없으나 십에 팔할 정도는 성공한것 같습니다.] 칠절성군은 그대로 마음이 놓이지 않아 공연히 젊은이가 패기로 나선 것이 아니 나 하고 말하려다가 그만 두고 말았다. 철한빙은 그의 내심을 짐작하고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으나 겉으로는 전혀 내색하 지 않았다. 그는 오른손을 서서히 치켜 들어 허공를 격하며 헌원일검을 향해 지풍을 퉁겨냈 다. 순간, [으음!] 헌원일검이 나직하게 신음을 토하며 몸을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격공해혈수법...] 중인들은 제각기 한 걸음씩 물러서며 경악한 시선으로 철한빙을 응시했다. 가짜 무명마는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나직이 중얼거렸다. [저.. 저놈이 격공해혈수법을 전개하다니 믿을 수 없다. 믿을 수 없어... 격공해 혈수법은 공력이 이갑자에 달해야만 펼칠 수 있는 최상승 절예이다. 한데 스물이 될까 말까한 약관의 서생이 전개했으니 이 사실을 누가 믿겠는가?] 철한빙은 중인들의 태도에 아랑곳없이 천천히 가짜 무명마에게 다가갔다. 이럴 즈음 칠절성군이 총주에게 물었다. [방주, 저 소협이 방주의 의제라고 했는데 그게 사실이오?] 취몽주개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랑스러운 듯이 말했다. [그렇소, 노부의 의제인 동시에 본방의 태상호법이기도 하오.] [옛! 태...태상호법!] 칠절성군은 또 한 번 경악하고 말았다. 일개 나이어린 서생이 무림사상 개방의 초대 태상호법이라니! 그들은 일제히 철한빙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 저 소년의 무공이 화신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은 물론 천하 제일방의 태 상호법이라니 정말 사람은 외모로만 알 수 없는 것이구나.) 가짜 무명마는 취몽주개의 말을 듣고 혼비백산하도록 놀라고 말았다. 그는 철한빙을 향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 이놈! 늙은 비렁뱅이의 말이 사실이냐?] 철한빙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당신의 말뜻이 무엇인지 모르겠구려.] 가짜 무명마가 악을 쓰듯이 외쳤다. [네놈이 개방의 태상호법이라는 것이 사실이냐 말이다?] 철한빙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당신이 보기에는 내가 그러헥 보이오?] 가짜 무명마는 음침하게 웃었다. [흐흐흐.. 노부는 믿지 못하겠다. 어떻게 네놈같은 애송이가 개방의 지고무상한 태상호법 자리에 오를 수가 있겠느냐? 늙은이가 헛소리를 한것이 분명할것이다.] [허허허헛... 원래 가짜 눈엔 가짜만 보이는 법이오.] 가짜 무명마는 대경실색을 하도록 놀랐다. 그러나 칠절성군등은 그의 말뜻을 이해할수가 없었다. 가짜 무명마는 떨리는 음성으로 띄엄띄엄 물었다. [네...네놈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이냐?] 철한빙은 두 눈에서 싸늘한 광채를 쏘아냈다. [당신이 더 잘 알고 있을텐데 어찌 소생에게 물으시오?] 가짜 무명마는 그의 눈빛을 보자 혼백이 달아날 것만 같았다. (음.. 이놈의 눈빛은 폐부를 찌를 듯이 날카롭구나. 또한 노부가 가짜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린 것으로 보아 예사인물이 아닐 것이다.) 그는 재빨리 생각을 굴린 뒤 음침하게 말했다. [헤헤헤.. 네놈이 무슨 말을 지껄이던 노부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이어 주위를 한차례 훑어본 뒤 말을 이었다. [노부는 애초의 약속대로 헌원일검의 혈도를 네놈들 중에서 풀었으니 이만 물러 가겠다.] 하며 신법을 전개해 막 문을 벗어나려는 순간, 인영이 번뜩하는 것과 동시에 철한빙이 어느새 입구를 버티고 선 채 뒷짐을 지고 있었다. [헛!] 가짜 무명마는 그의 귀신같은 신법에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중인들 또한 철한빙이 도데체 어떻게 몸을 움직여 그의 앞을 가로 막았는지 도무 지 알 수 없었다. 철한빙은 미미하게 입술을 움직여 차가운 목소리를 흘려냈다. [당신은 어찌 이대로 돌아가시려고 하오? 소생은 아직 가라는 말을 하지 않았소 이다.] 가짜 무명마는 그가 자신을 안중에도 두지 않는 듯이 말하자 분노가 치밀러 올랐 다. [대가리에 피도 마르지 않는 녀석이 황천에 가지 못해 안달이 난 모양이구나.] 철한빙은 빙천과 같이 냉혹한 눈빛으로 그를 쏘아보았다. [당신이 만약 본인의 손에서 십초를 넘긴다면 무사히 이곳에서 벗어나게 해주겠 소.] 광언! 중인들이 듣기에는 분명히 미친소리였다. 일파의 장문인들조차 가짜 무명마의 손에서 이십여 초를 넘긴 사람이 없거늘 약 관의 서생이 그를 십쵸만에 격패시키겠다니 이게 말이나 될 법한가? 간접적으로 말한다면 각파의 장문인들은 철한빙의 손에 십초의 적수 밖에 안된다 는 말과 같았다. 가짜 무명마의 양옆 쪽 귀와 코구멍에서 더운 김이 무럭무럭 솟아 올랐다. 분노가 극에 달한 것이었다. [훗훗훗... 이놈! 정말 뒈지고 싶어 환장을 한 모양이구나. 뭐? 십초만에 노부를 격패시킨다고!] 철한빙은 그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지극히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 [십초만 견디면 보내준다고 했소. 격패시킨다고는 하지 않았소. 하지만 당신은 본인의 십초를 받아내려면 아직도 몇 십년은 더 수련해야 할 것이오.] 취몽주개가 불난 집에 부채질 하듯이 한 마디 덧붙였다. [헷헷헷.. 노제, 십초는 그놈을 너무 과대평가한 것일세. 노제의 공력이 라면 오 초도 많을 것일세.] 가짜 무명마는 분노와 수치심에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그는 취몽주개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본 뒤 다시 시선을 철한빙에게 돌렸다. [흐흐흐.. 네놈이 한시바삐 염라전에 들어가고 싶은 모양인데 소원을 풀어주마.] 철한빙은 여전히 뒷짐을 진 채 차갑게 입을 열었다. [후후후.. 만약 당신이 본인에게 염라전을 구경시켜준다면 백백치하하겠소이다.] 가짜 무명마는 살기가 이글거리는 눈빛을 발하며 천천히 품속으로 손을 가져갔 다. 이윽고 품속을 빠져나오는 그의 손에 징그럽도록 새빨간 조그만 비검이 들려 있 었다. 중인들의 입에서 동시에 경악에 가까운 외침이 터져나왔다. [아앗! 혈비검...] 혜인선사가 두 눈을 지그시 감으며 연신 불호를 외웠다. [나무아미타불.. 저주의 혈비검이 또다시 강호에 나타나다니 혈겁이로다. 혈겁.. ..] 철한빙은 중인들이 투명하도록 새빨간 비검을 보고 놀라자 의혹에 잠겼다. (음.. 저 단검을 보고 놀라는 것으로 보아 전대의 비검인 모양이구나. 한데 어재 서 혈겁운운하는 것일까?) 철한빙이 생각에 잠겨 있는 때 가짜 무명마의 음침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흐흐흐.. 네놈은 혈비검의 악령에 재물을 바칠 각오나 하거라.] 철한빙은 대체 혈비검이 무엇이기에 가짜 무명마가 큰 소리를 칠까 생각해 보았 다. 그러는 한편 중인들에게 시선을 돌리다 가볍게 놀랐다. 그들은 마치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전신을 와들와들 떨고 있었다. 혜인선사와 원강선사 그리고 항룡진인은 두 손을 합장한 채 연신 불호와 도호를 외우고 있었다. (음.. 혈비검에는 분명히 무슨 신비한 사연이 있는 모양이구나.) 이때 취몽주개의 떨리는 듯한 전음이 들려왔다. [노...노제, 저놈이 지니고 있는 단검은 전설에 전해서 녀래오는 저주의 혈비검 일세. 그러나 확실한 것은 아직 단정지을 수 없네. 그러니 노제는 절대로 놈을 얕보아서는 안되네. 그리고 혈비검에서 쏟아져 나오는 붉은 빛을 정면으로 보아 서는 안되네. 알겠는가?] 철한빙은 그가 잔뜩 긴장한 듯이 말하자 다시 한 번 혈비검을 바라보았다. 동공이 쓰리도록 빛나는 붉은빛 외에는 별다른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가짜 무명마는 천천히 혈비검을 수평으로 뉘였다. [흐흐흣.. 애송이 녀석! 어디 혈비검 앞에서 한 번 날뛰어 봐라.] 이어 혈비검을 곧장 뻗어내 유근혈을 찔러갔다. 초식이 빠름은 전광석화 바로 그것이었다. 철한빙은 오른손으로 금나수법을 사용해 빛살같이 빠르게 혈비검을 낚아채갔다. [네놈이 죽지 못해 환장을 했구나.] 가짜 무명마는 음침한 소리와 함께 혈비검을 뒤집어 그의 손목으로 잘랐다. 철한빙은 상대가 의외로 고강하자 애초에 경시하던 마음을 버렸다. [이얍!] 그는 한소리 맑은 기합을 터뜨리며 곧장 허공으로 몸을 띄웠다. 가짜 무명마는 초식이 실패하자 혈비검을 수직으로 세워 허공으로 솟구쳤다. 바야흐로 무림사에 전무후무한 공중전이 벌어진 것이다. 두 사람은 한 모금의 진기를 이용해 허공에 몸을 의지한 채 신랄하게 초식을 난 무 했다. 중인들은 한 폭의 그림같은 광경에 �ⅷダ� 잃고 말았다. 이때, 갑자기 혈비검이 용이 울부짖듯이 울기 시작했다. 동시에 붉은 화염이 일듯이 의사청 전체를 뒤덮어버렸다. [앗! 혈비검의 저주..] 중인들은 혼비백산하며 급히 두 눈을 감어버렸다. 취몽주개는 정싱이 아득해짐을 느끼고 두 눈을 감으며 벼락같이 고함을 질렀다. [노제 혈비검의 저주가 시작되었네. 빨리 눈을 감고 검광을 피하게. 만약 붉은빛 을 정며으로 바라보면 혈비검의 재물이 되고 만다네.] 허공에 떠 있던 철한빙은 취몽주개의 말대로 붉은 검광을 대하자 전신의 진기가 모두 흩어지는 것을 느꼈다. 아울러 두 눈이 찢어질 듯이 아파오는 것이었다. 그는 급히 두 눈을 감고 검광을 외면해 버렸다. 그러나 고수와의 싸움에서 눈을 감는다는 것은 죽을 목숨이나 다름 없는 것이었 다. 그는 혈비검의 신비감을 비로소 절감했다. 철한빙은 두 눈을 감자 흩어졌던 진기가 다시 모여들었다. 돌연, 쉬-----익! 허공을 가르는 지극히 미약한 파공음이 들려왔다. 철한빙이 아니면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작은 음향이었다. 그는 혈비검이 왼쪽 옆구리를 노리고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끼며 급히 허리 를 비틀었다. 그러나 혈비검은 급기야 피의 전주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우우웅! 우-------웅...... 순간 철한빙은 혈비검이 어느 방향에서 찔러오는지 방향 감각을 잡을 수가 없었 다. 중인들은 혈비검에서 들려오는 저주의 마음을 들으며 어떻게 손을 쓸도리를 찾지 못했다. 만약 그들이 눈을 뜨고 철한빙을 도와준다면 붉은 검광을 견디지 못하고 장님이 되고 말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를 도와준다고 할지라도 그를 구할지가 의문이었다. 이때 철한빙은 전신에 식은 땀을 흘리며 무작정 공공답허신법을 펼쳤다. 덕분에 가짜 무명마는 좀처럼 철한빙의 종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만약 철한빙에게 최절정의 신법인 공공답허신법이 없었다면 벌써 혈비검의 재물 이 되었으리라. 철한빙은 신법을 펼치는 한편 생각에 잠겼다. [아.. 세상에 이토록 괴이한 검이 있었단 말인가! 일개 단검 앞에 이토록 쩔쩔 매야하다니 이미 구초가 지났건만 공격은 커녕 수비도 힘든 판이니...] 그가 생각에 잠겨 있을 때였다. 우우우웅! 사방에서 검의 울음소리가 들리며 삽시간에 자신의 몸을 감싸오는 것이 아닌가? [앗!] 그는 다급하게 외치며 십이성의 공력으로 신법을 펼쳤다. 그러나 이것이 실수였다. [으하하하핫... 이놈, 받아랏!] 가짜 무명마는 공공답허신법을 따라 잡지 못하자 내심 당황하고 있었다. 이때 정신없이 혈비검을 휘두르던 차에 철한빙의 다급한 외침을 들은 것이다. 그는 십이성의 공력을 끌어 올려 마음추살의 살초를 전개했다. 순간, 찌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철한빙의 다급한 음성이 들려왔다. [아아앗!] 그는 소매자락이 혈비검에 의해 길길이 찢겨져 나갔음을 알았다. 그러나 천만다행으로 상처는 입지 않았다. 철한빙은 등줄기에 식은 땀이 흐르는 것을 느끼며 점차 분노가 솟구치기 시작했 따. 급기야 그의 분노가 극에 달한 듯 점차 모습이 변하기 시작했다. 머리털과 눈썹이 순식간에 새빨갛게 변하자 철한빙의 모습은 그야말로 소름이 오 싹 끼치는 몰골로 변했다. 순간, 그의 두 눈이 번쩍 떠졌다. 그러자 만년한빙처럼 차갑고 만년한철이라도 녹여버릴 무시무시한 녹생 광염이 빛살같이 폭사되어 나와 의사청을 뒤덮어 버렸다. 철한빙의 마성이 급기야 오성을 지배하기 일보 직전에 이른 것이다. 만약 마성이 오성을 완전히 지배한다면 철한빙은 악마의 화신이 되고 말리라. 중인들은 옷자락 찢어지는 소리에 혼비백산하도록 놀랐다. 취몽주개는 당혹을 금치 못하며 급히 입을 열었다. [노제, 괜찮은가?] 그러나 마성에 사라잡힌 철한빙에게 그의 말이 들릴 리가 없었다. 취몽주개는 그가 대답이 없자 너무도 다급한 나머지 두 눈을 번쩍 뜨고 말았다. 순간 �＃♣� 누에 붉은 빛과 새파란 녹생 광염이 비쳤다. 그는 두 눈이 파열되는 것을 느끼는 중에도 철한빙이 아직도 괜찮다는것을 직감 했다. 한편 가짜 무명마는 철한빙의 눈에서 새파란 녹염이 쏟아져 나오며 모습이 변하 자 대경실색라고 말았다. [아...아니! 저놈의 모습이 어... 어째서 지오그이 악마와 같이 변한단 말인가? 그리고 두눈에서 쏟아져 나오는 녹염은 상대의 두 눈을 멀개하고도 남을 정도로 살염에 가득 차 있지 않은가?] 그러나 철한빙이 혈비검의 검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두 눈을 떳다는 점에 무엇 보다 놀랐다. [저..저놈은 사람이 아니다. 아...악마의 화...화신이다.] 그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리며 사색으로 변해 있을 때 철한빙의 입에서 악마의 외 침이 터져나왔다. [크하하핫..] 이어 쌍장을 쭉 뻗으며 벼락같은 호통을 질렀다. [혈천경혼!] 바로 반향조화장의 절초가 펼쳐진 것이다. 우르르릉... 가짜 무명마는 고막을 갈가리 찢을 듯한 굉음과 함께 이루 형용할 수 없는 무서 운 장력이 몰아쳐오자 혼비백산하고 말았다. 그는 �괵ず胄价� 필사의 공력으로 휘두르는 한편 본개보다 빠르게 옆으로 몸을 날 렸다. 그러나, [으---아----악!] 처절하도록 긴 비명소리가 들리며 피와 살이 허공으로 튀었다. 가짜 무명마는 한덩어리 고기로 변한 채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뭉개지 고 말았다. 철한빙은 고깃덩어리로 변한 그의 시체를 바라보며 얼굴을 씰룩거렸따. [흣흣흣흣..] 그는 한차례 광소를 터뜨린 뒤 번뜩하며 신형을 날렸다. 철한빙은 마성에 사로잡혀 이성을 잃은 채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가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중인들은 비명소리에 자신들도 모르게 두 눈을 뜨고 말았다. [앗!] 그들은 동시에 공포와 경악에 젖은 눈으로 고깃덩어리로 변한 시체에 시선을 고 정 시켰다. 그리고는 잇달아 뒷걸음질을 쳤다. [아미타불..] [무량수불..] 불호와 도호가 어울려 들려오는 가운데 취몽주개는 급히 장내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철한빙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반면 가짜 무명마도 눈에 띄지 않았다. 취몽주개는 황급히 시체 앞으로 달려가 모습을 살폈다. 하지만 철한빙의 시신인지 가짜 무명마의 시신인지 분간해낼 수가 없었다. 그는 옷으로 구별해 내려고 했으나 옷은 가루로 변해 형체도 찾아볼 수가 없었 다. 취몽주개는 전신을 사시나무 떨 듯이 와들와들 떨었다. [만약 이 시체가 �ð◀磁뗌� 시체라면 혈비검이 근처에 떨어져 있어야 한다. 그러 나 어디에도 혈비검은 없지 않은가? 그리고 이 시체가 무명마라면 노제가 이 자 리에 있어야 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렇다면....] 그는 세차게 머리를 흔들었다. [아니야,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그럴리가....] 취몽주개는 마치 미친 사람마냥 머리를 쥐어 뜯으며 악을 쓰기 시작했다. 중인들도 사지가 발기발기 찢어진 시체가 철한빙일 것이라고 단정했다. 그러나 무명마도 부상을 입고 도주했으리라 믿었다. 칠절성군이 취몽주개를 진정시키며 말했다. [방주, 진정하시오. 이미 간 사람을 생각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소. 우리는 정의 를 위해 쓰러져간 소년기협을 위해서라도 기필코 악인들을 처단해야 할것이오.] 취몽주개는 피눈물을 흘렸다. [무명마! 노부는 하늘 끝까지라도 네놈을 쫓아가 노제의 한을 풀어 주리라.] 그들은 철한빙이 혈비검에 의해 무참하게 살해당한 것으로 믿었다. 무림 역사상 혈비검의 저주로부터 빠져나간 사람이 없기에 더욱 그랬던 것이다. 그만큼 혈비검은 공포의 마검이었다. 사해검군이 핌통하게 말했다. [아... 하늘은 어찌하여 천하의 기재를 데려갔단 말인가? 정말 원통한지고!] 중인들은 시체를 바라보며 말없이 눈물짓고 있었다. �� 요즘 자격증 시험공부 때문에 연재가 어렵네요.. 아무튼 잼있게 보세요~�� 번호:207/227 등록자:HYUN9876 등록일시:97/04/10 19:09 길이:521줄 제 목 : [사마달] 불세마왕경 제 29장 불세마왕경 저자: 사마달 출판사: 대현출판사 제 29장 문무제일인 한편, 철한빙은 마성에 사로잡힌 채 무작정 신법을 펼쳤다. 휘익! 휙.... 한 줄기 유성과도 같이 달리던 그는 진기가 거의 떨어져서야 신형을 멈추었다. 그는 커다란 바위에 걸터앉아 괴로운 듯 얼굴을 찡그렸다. 얼마가 지나자 그의 모습이 서서히 정상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정상으로 돌아온 철한빙은 몽롱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 그는 주위의 경치에 가볍게 놀랐다. 온갖 기화이초와 이름모를 아름다운 새들이 천상의 조화를 이루어 마치 세외도원 을 연상케 했다. 순간, 쨍그랑! 맑고 청아한 급속성이 일며 그의 손에 쥐었던 혈비검이 땅으로 떨어졌다. [엇! 이 검이 어떻게 나한테 있지?] 그는 자신이 행한 일을 전혀 기억해 내지 못했다. 다만 마성이 발작하기 전에 혈비검에 대해 몇마디 들었을 뿐이었다. 그는 허리를 굽혀 혈비검을 주은 뒤 천천히 뜯어 보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비검에 지나지 않았다. 철한빙은 혈비검을 이리저리 뜯어본 뒤 품속에 넣으려고 했다. 이때, 그의 귀에 지극히 미약한 소리가 들려왔다. 급히 그곳으로 시선을 돌려보니 세속을 초월한 듯한 선풍도골의 백발노인이 천천 히 다가오고 있었다. 철한빙은 백발노인이 지척에 당도해서야 겨우 인기척을 느낄 수 있었음에 내심 크게 놀랐다. [음.. 이 노인의 무공은 가히 입신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 구나.] 백발노인은 철한빙의 앞 일 장 정도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젊은이, 자네의 손에 쥔 것이 혈비검이 아닌가?] 철한빙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만 그건 어째서 물으십니까?] 백발노인은 지상한 미소를 머금었다. [허허허.. 물어본 것이 잘못이라면 노부가 사과하겠네.] 이렇게 되자 오히려 철한빙이 무안을 느낄 정도였다. 백발노인은 정기가 번뜩이는 맑은 눈으로 바위를 가리켰다. [젊은이, 여기 앉아 노부의 말동무가 되어주지 않으려나?] 철한빙은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앉으시지요.] 두 사람은 나란히 바위에 걸터앉았다. [젊은이, 노부가 이런 말을 해서 될까 모르겠네만 늙은이의 주착없는 말이라고 생각하고 들어주게.] 철한빙은 백발노인이 필시 무림의 숨은 고인일 것이라 생각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가르침을 주시기 바랍니다.] 백발노인은 섬광이 번뜩이는 눈으로 철한빙을 쳐다본 뒤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노부가 보기에는 자네에겐 어떤 말못할 원한이 도사리고 있네. 자네는 그 원한 으로 인해, 아니 어쩌면 천성일지도 모르는 마성에 사로잡혀 있네.] 그리고는 확인이라도 하듯이 물었다. [어떤가! 노부의 말이 맞는가?] 철한빙은 대경실색하고 말았다. (대체 이 노인은 누구이기에 첫눈에 사람의 심정을 알아본단 말인가?] 백발노인은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노부가 누구인지는 후에 알게 될 것이네.] 철한빙은 자신의 속셈을 낱낱이 파악해 내는 상대에게 호감과 경계심을 동시에 느꼈다. 백발노인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자네는 어떤 광세적인 절학을 익혀 자신도 모르게 마성을 억제하고 있 네. 그 무공이 아니었다면 자네는 벌써 악마의 화신이 되었을 것이네.] 철한빙은 말없이 그의 말만 듣고 있었다. [자네의 총명함은 제갈량을 능가할 것이며 무공 또한 천지를 뒤덮을 것이네.] 백발노인은 철한빙의 안색을 살피며 계속 말했다. [자네의 마성이 오성을 지배한다면 그때는 천하억조창생에 일대 피선풍을 일으킬 것이네.] 철한빙은 그의 말에 동조를 했다. [소생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백발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음.. 자네같은 불세출의 기재에게 그같은 시련이 내려지다니 아마도 하늘의 제 시인 듯 하구먼.] 그는 혼잣말로 뇌까린 뒤 허공을 응시했다. [이 젊은이를 어떻게 인도해야 한단 말인가?] 백발노인은 천천히 철한빙에게 시선을 돌렸다. [자네의 심성을 고치는 일은 한 가지 길밖에는 없네. 그것은 백여년 전에 제일기 인이시던 불세신협의 무공비급에 실린 심법을 익히는 길 뿐이네.] 철한빙이 물었다. [그 무공비급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백발노인이 나직이 입을 열었다. [그것은 불가의 무상신곤이 적힌 광불화엄진경이라네. 바로 세인들이 말하는 불 세마왕경 중에서 하나이지.] 철한빙은 비로소 진해무선경 중에 불세신공이 광불화엄진경이라는 것을 알게 되 었다. [그렇다면 그것을 얻으려면 봉래도를 찾아 봉래산으로 가야하지 않겠습니까?] 백발노인이 빙그레 웃었다. [그렇다고 할 수 있지. 하지만 꼭 봉래산 있는지는 미지수일세.] [한데 노선배님께선 어떻게 광불화엄진경을 알고 계십니까?] [선사로부터 알게 되었네.] 이어 정색을 하며 말했다. [젊은이, 자네는 혈비검의 내막에 대해서 알고 있나?] 철한빙은 의혹에 젖은 표정을 지었다. [모릅니다만 노선배님께선 이 검을 얻게 된 경위를 어째서 묻지 않으십니까?] [혈비검을 어떻게 얻었는지는 노부가 알 필요가 없네. 다만 혈비검이 어떤 검이 냐가 중요할 뿐이네.] 철한빙은 검미를 치켜올렸다. [대체 혈비검에 무슨 내막이 얽혀 있습니까? 소생은 이 검이 저주의 마검이라는 것 밖에는 아는 것이 없습니다.] 백발노인이 먼 하늘을 응시했다. [그렇다네. 혈비검은 바로 악마의 검일세.] 백발노인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혈비검은 지금으로부터 이백여 년 전에 홀연히 강호에 나타났다네. 원래 신병이 기 라면 목숨도 불사하는 무림인은 혈비검을 차지하려고 저마다 쌍심지를 켰다 네.] 철한빙이 물었다. [그렇다면 혈비검이 강호에 나타나자 검의 위력을 무림인들이 알았단 말입니까?] [자세한 내막은 노부도 모르네. 그리고 또한 누가 그 검을 만들었는지조차 모른 다네.] 철한빙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도 그 검을 사용한 사람은 있을 것이 아닙니까?] [노부의 말을 들어보게. 혈비검이 나타나자 어느 이름모를 강호인이 그 검을 차 지하게 되었네. 그 당시 그 사람은 이류정도의 무공밖에는 지니지 못했다고 하 네. 그런데 그가 검을 차지하고 일 년간 자취를 감춘 뒤 다시 강호에 나왔을 때 는 딴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네. 다시 말해 무적의 검수가 된 것이네.] 철한빙은 계속 의혹에 잠겼다. [일 년만에 무적의 검수가 되다니 도무지 믿을 수가 없군요.] [원인은 혈비검의 겁집에 있다네. 그곳에는 피를 부르는 저주의 무공비겨리 적혀 있었네. 그 사람은 그 무공을 익혔던 것이네.] 철한빙이 급히 물었다. [한데 지금의 혈비검은 검집이 없지 않습니까?] [노부의 말을 들어보면 알게 될 것이네. 검집에 적힌 무공을 익힌 그는 천하무림 에 피바다를 뿌리기 시작했네. 무림인들은 그를 가리켜 혈비존자라고 부르게 되 었다네. 혈비존자는 날이 갈수록 포악하게 날뛰어 급기야 흑백양도가 무림사상 처음으로 단합해 그를 제거하기에 이르렀네.] 철한빙은 그때의 상황을 회상해 보기라도 하듯 두 눈을 감았다. 백발노인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서 혈비존자와 정사의인물들은 태백산에서 공전절후의 대혈투를 벌였다네.] 철한빙은 궁금하다는 듯이 재빨리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 백발노인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입술을 떼었다. [그 결과 시체는 산을 이루고 피는 냇물을 이뤄 삼일 동안 태백산을 진동시켰다 네. 정사의 정예고수들은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핏속을 뒹굴었으며 근 천 여명에 달하던 인물들이 태백산의 고혼이 되었네. 혈비존자도 급기야 사흘 밤낮 을 싸운 끝에 진기가 고갈되어 전신이 갈가리 찢겨져 비참한 최후를 마쳤네. 혈 비검은 그때 깊은 골짜기로 떨어졌으며 검집은 어디로 갔는지 찾지를 못했다네.] 철한빙이 몸서리를 쳤다. [정말 무시무시한 대혈투였군요. 한데 혈비검이 그것 때문에 저주의 마검이라고 불리게 됐습니까?] [그 이유도 있지만 실질적인 이유는 딴 곳에 있다네. 혈비검은 피 자체를 흡수하 는 이상한 힘을 가지고 있네. 즉, 흡혈귀와도 같은 검이지. 그래서 사람들은 그 검을 저주의 마검, 혹은 악마의 혈비검이라고 부른 것일세. 또한 천 명의 피를 흡수할 때마다 한 방울의 맑은 액체를 형성해 낸다고 하네. 액체의 효능은 가히 만년혈홍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라고 하네.] 철한빙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만년혈홍은 전설적인 봉황의 피가 아닙니까? 그렇다면 혈비검이 만들어내는 액 체는 공력을 증가시켜주고 백독을 물리치는 희대의 영약이란 말입니까?] 백발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할 수 있겠지.] 그느 또다시 말을 이었다. [그러니 젊은이는 혈비검을 함부로 사용하지 말아주게. 자네의 마성과 혈비검이 합쳐진다면 천하무림은 전무후무한 일대혈겁이 일어날 것이네. 이 늙은이의 부탁 은 젊은이가 한시바삐 광불화엄진경을 익히라는 것이네.] [....] 백발노인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노부는 이만 가보겠네. 모쪼록 젊은이의 앞날에 행운이 있기를 바라네.] 철한빙은 말했다. [노선배님의 존함이라도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백발노인은 담담히 웃었다. [자기 자신을 잊을 수 있다면 곧 깊은 지혜를 얻을 수 있으니 세인들은 망아의 참뜻을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누나...] 이 한 마디를 남기고 백발노인은 사라져버렸다. 철한빙은 노인이 사라진 곳을 응시했다. [자기 자신을 잊을 수만 있다면...] 여기까지 중얼거리던 그는 돌연 무엇을 깨달았는지 탄성을 발했다. [아! 저분이 바로 우내십기 중의 이선 중 하나인 망아혜선이었구나.] -----망아혜선! 그 신비로운 신선을 출현이었다. 서주성----! 오대호의 하나인 홍택호를 끼고 있어 천하의 영웅호걸들이 몰려드는 곳이기도 했 다. 철한빙이 남루한 옷차림으로 이곳에 나타났다. 홍택호에 도착한 그는 구비치는 물결을 바라보며 호반을 거닐었다. 수많은 놀잇배가 술에 취한 듯 출렁거리며 호걸과 미인의 간드러진 웃음이 바람 에 실려왔다. 철한빙은 우울한 심사를 달래려는 듯 걸음을 주루로 옮겼다. 이때, 호화롭기 그지없는 풍범선이 미끄러지듯이 호숫가로 다가왔다. 이어 두 갈래로 머리를 땋은 청의소녀가 선창에 나타났다. 청의소녀는 어린 티를 벗지 못한 채 맑은 눈빛을 발하며 철한빙을 향해 말했다. [공자님, 소녀의 아씨께서 공자님을 청하시는데 올라 오시겠어요?] 철한빙은 청의소녀를 바라보며 의혹에 젖었다. (초면에 남자를 청한다? 혹시 아는 여인이 아닐까?) 철한빙은 생각을 멈추며 나직이 입을 열었다. [낭자의 아씨란 누구를 말함이오?] 청의소녀가 까르르 웃었다. [아씨면 아씨지 누구를 말하는 건 또 뭐예요?] 철한빙은 씁쓰레하게 웃었다. (어디 한번 어떤 여인인가 만나볼까?) [좋소, 응낙하리라.] 청의소녀가 생긋이 웃으며 사공에게 시켜 사다리를 내리게 했다. 철한빙은 배위 로 올라서며 호화로운 선창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청의소녀가 나직이 말했다. [공자님, 소녀를 따라오세요.] 철한빙은 그녀를 따라 선실앞에 당도했다. 청의소년느 선실 안을 향해 조그마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씨, 공자님을 모시고 왔사와요.] 그러자 안에서 은방울이 부딪치는 듯한 청아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음... 어서 모시고 들어 오너라.] 청의소녀는 철한빙을 향해 상냥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공자님, 들어 가셔요.] 하며 휘장을 들쳐 주었다. 휘장을 열고 들어가자 왼쪽으로 다시 조그만 문이 있었다. 청의소녀는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철한빙은 안으로 들어서자 여인의 체취와 지분 냄새에 정신이 아찔해지는 것을 느꼈다. 선실 안은 더없이 깨끗했으며 비단 침상은 화려하면서도 우아했다. 가운데에는 지극히 깨끗한 탁자가 놓여져 있었으며 취의소녀가 단정하게 앉아 있 었다. 그녀의 용모는 지상의 아름다움을 모두 갖춘 듯이 화용월태하기 이를데 없었다. 철한빙은 그녀의 아름다운 용모에 가볍게 놀랐다. 취의소년는 다소곳이 고개를 쳐들며 맑은 눈동자로 그를 바라보았다. [공자님, 초면에 이렇게 청한데 대해 너무 나무라지 마시기 바랍니다.] 철한빙은 가볍게 예를 하며 겸허한 듯이 말했다. [낭자, 별 말씀을 다 하시는구려. 사해에 퍼져 있는 만물은 모두가 하나이거늘 어찌 그같은 말을 하시오.] 취의소녀가 자리를 권했다. 그가 자리에 앉자 청의소녀가 술상을 내려왔다. [소녀는 소약란이라 하오며 공자님의 탈속함에 이끌려 청했습니다.] 철한빙은 담담히 웃었다. 순간 소약란은 그의 여인같은 뇌살적인 웃음에 심신이 격탕되는 것을 느꼈다. (아.. 남자의 웃음이 어찌 이다지도 아름답단 말인가? 약간 냉막함은 있어도 범 속지 않은 인물인 듯 싶구나.) 두 사람은 천천히 술잔을 기울이며 학문을 논하기 시작했다. 소약란은 철한빙의 해박한 지식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철한빙 역시 그녀의 박학다식함에 내심 놀랐다. 소약란은 앵두같은 입술을 벌려 청아한 싯귀를 읊조렸다. 국화가 중구일뒤까지 남아 한 가지 피었구려. 내 술맛 돋구려는 듯 싶은데 순간에 다시 띄운들 뉘 해로우랴. 철한빙은 술잔을 한잔 들이킨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국화가 아무리 가을에 피기는 하지만 이같은 늦가을에야 어찌 필 때랴, 아직도 맑은 향기 풍기며 곱게 피었으니 어찌 차마 한 가지 꺾어 잔에 피우지 않 으랴. 철한빙이 즉흥적으로 시를 받자 소약란은 얼굴을 붉혔다. 아니, 시의 내용이 뜻하는 바를 깨닫고 붉힌 것이다. 철한빙은 자신이 읊은 시를 돌이켜 보고 스스로 놀라고 말았다. 그는 급히 소약란을 향해 변명하듯이 말했다. [낭자, 소생은 별 뜻 없이 읊조린 것이니 과히 허물지 마시오.] 소약란은 고개를 살며시 숙였다. [알고 있습니다.] 철한빙은 속으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소약란은 한동안 말이 없더니 선실 한쪽에 놓여있는 향비파를 탄주하기 시작했 다. 딩! 띵! 또동! 마치 멀리 헤어진 님을 못잊어 밤낮으로 눈물로 지내는 여인의 슬픈 사랑을 그리 는 듯했다. 철한빙은 그녀의 비파솜씨가 충분히 일가를 이룰만하다고 생각했다. 약 이각 동안을 탄주한 소약란은 천천히 곡을 마쳤다. 철한빙은 두어 번 손뼉을 친 뒤 차분하게 말했다. [낭자의 향비파 솜씨는 그야말로 선인의 음인 듯 싶소. 소생이 낭자의 지상천곡 을 들었으니 이에 보답하고 싶소.] 그리고는 주위를 들러보며 입을 열었다. [낭자, 혹시 피리나 퉁소를 가지고 계시오?] 소약란은 급히 품 속에서 자색빛이 감도는 옥피리를 꺼내 공손히 건네주었다. 철한빙은 옥피리를 받아 두 눈을 감고 입가에 갖다대었다. 순간 옥피리로부터 강렬한 내임이 코속으로 스며들었다. 사향 냄새도 아니고 지분냄새도 아닌 이상햐릇한 내음이었다. 그는 급히 심신을 안정시키며 서서히 옥피리를 불기 시작했다. 삘릴리! 삘리리! 느린 듯 하면서도 빠르고 웅장한 듯 하면서도 가녀린 피리소리가 고요하게 퍼져 나갔다. 실로 용가봉생의 음률이었다. 소약란은 그의 음률에 깊이 심취되고 말았다. 아니 그녀 뿐만이 아니라 근처에 있던 모든 유람선들은 일제히 제자리에 선채 천 상의 음률을 듣고 있었다. 약 삼각 정도가 지나자 서서히 음률이 사라졌다. 철한빙은 피리를 거둔 뒤 소약란에게 돌려주었다. [낭자의 귀가 더렵혀지지 않았을까 걱정이외다..] 소약란이 화들짝 놀라며 엉겁결에 옥피리를 받아 들었다. [아...예.] 그녀는 자신의 실태를 깨닫고 고개를 숙였다. [공자님의 음률은 인간세상의 음이 아닌 천상의 음이라 생각됩니다.] 철한빙이 가볍게 소매를 저었다. [그건 낭자의 과찬이오. 어찌 소생의 조예가 낭자만 하겠소.] 소약란은 얼굴을 붉혔다. 다행이 얼굴을 숙여 보이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그녀의 양볼은 마치 홍시처럼 붉 게 물들어 있었다. 그녀는 부끄러움을 감추려는 듯 철한빙의 술잔에 한잔 가득히 따라 주었다. 철한빙은 그녀의 희디 흰 목덜미를 보자 전신이 격탕되는 것을 느꼈다. 그는 단숨에 술잔을 기울인 뒤 허공을 응시했다. 소약란이 고개를 쳐들며 주저하듯이 말했다. [저..공자님의 조.. 존함이....] 철한빙은 자신이 아직까지 이름을 밝히지 않은 데에 쑥스러움을 느꼈다. [소생은 설운몽이라 하며 일개 글방서생이오이다.] 소약란이 수줍은 듯이 입을 열었다. [아.. 설공자님이셨군요.] 이어 소곤거리듯이 말을 이었다. [소녀는 서주성 내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공자님의 학문의 깊이를 측량할 수 없 음에 드리는 말인데 소녀의 동생에게 학문을 가르쳐 주시지 않으시겠어요?] 철한빙은 크게 당황했다. [아.. 아니되오. 소생은 아직도 배우는 입장이며 누구를 가르칠 단계가 되지 않 았소.] [하지만 공자님의 학식은 당세 제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에요. 그러니 소녀의 청을 물리치지 말아주세요.] 그 누가 미인의 은혜와 청을 받아 드리지 말라고 했던가! 철한빙은 난감하기만 했다. 그가 대답을 하지 않자 소약란은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철한빙은 그녀의 청순한 모습에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그래, 한 두어 달 머물면서 취련무아심법도 익힐 겸 해서 승낙을 하자. 이 기회 에 한 번 마성을 억눌러 보리라.) 그는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천천히 입술을 떼었다. [좋소. 낭자의 분부에 따르기로 하겠소. 하지만 조건이 있소.] 소약란은 그가 승낙을 표하자 뛸듯이 기뻐했다. 그러나 겉으로는 전혀 내색을 하지 않은 채 고개를 쳐들었다. [조건이 무엇인데요?] [첫째, 소생이 떠나고 싶을 때는 언제라도 그곳을 떠나겠소. 둘째, 소생에게 어 떤 제지를 가하지 마시오. 가령 소생이 어디를 간다던가 아니면 하루 이틀 외출 을 하던가 하는 일체의 일들을 말이오. 세째, 소생에 대해 무엇을 알려고 하지 마시오. 이 세가지 조건을 들어준다면 승낙을 하겠소.] 소약란은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세 가지 조건을 들어 드리겠어요.] 소약란은 술잔을 쳐들며 한모금 마신 뒤 즐거운 듯이 말했다. [소녀의 동생들도 공자님같은 스승을 모시게 되어 상당히 기뻐할 거예요.] 철한빙은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허허헛... 아마 모르긴 해도 소생을 그리 달갑게 생각하지 않을 것같소!] 소약란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어째서 공자님을 달갑게 생각게 하지 않는다는거죠?] 소약란은 그제서야 깨달은 듯 아! 하는 소리와 함께 말했다. [공자님의 인상은 처음에는 냉막한 듯이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금방 느낄수 있어요.] 철한빙은 계면쩍은 웃음을 지으며 속으로 고소를 지었다. 번호:208/227 등록자:HYUN9876 등록일시:97/04/10 19:10 길이:537줄 제 목 : [사마달] 불세마왕경 제 30장 불세마왕경 저자: 사마달 출판사: 대현출판사 제 30장 성주의 딸 철한빙은 사두마차에 몸을 싣고 서주성 내로 들어갔다. 얼마를 더 달리자 천천히 마차가 멈추었다. 옆에 있던 소약란이 살며시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공자님, 이제 다왔어요.] 순간 그의 두 눈이 휘둥그래졌다. [아니! 이곳은 성주가 기거하는 관사가 아닌가?] 그는 급히 소약란에세 시선을 돌렸다. 소약란은 마차에서 내려 사뿐사뿐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이때, 관복차림의 건장한 대한이 그녀를 향해 공손히 절을 올렸다. [아가씨, 이제 오십니까!] 소약란이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에 답했다. 철한빙은 관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두 사람이 일개 조가 되어 순시를 돌고 있었으며 좌우 양쪽에는 병기를 옆구리에 찬 관졸들이 우뚝 버티고 서 있었다. 그들은 소약란을 보자 일제히 허리를 굽혔다. 소약란은 철한빙을 향해 나직한 음성으로 말했다. [공자님, 어서 들어오셔요.] 철한빙은 마음이 내키지 않았으나 일단 승낙을 한 이상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는 천천히 그녀의 뒤를 따랐다. 소약란은 외청을 지나 내청으로 향했다. 철한빙은 씁쓸함을 느꼈다. (소낭자가 관직의 딸일 줄이야 꿈에도 몰랐구나. 그런데 성주의 딸일까? 아니면 그 밑에 관직의 자손일까!) 소약란은 내�괵맙【�도 가장 깊숙한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녀는 기다란 복도를 지나 어느 우아한 방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공자님, 이제 다왔어요. 여기가 부모님이 기거하시는 곳이예요.] 이어 안을 향해 가볍게 입을 열었다. [아버님, 소녀 약란이옵니다.] 그러자 안에서 위엄이 셔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 잘 놀다 왔느냐? 어서 들어 오너라.] 소약란은 철한빙에게 눈짓을 보내며 안으로 들어갔다. 방안은 전형적인 관리의 냄새가 물씬 풍겼다. 사방에는 국사에 관한 서적으로 가득 찼으며 가운데에는 호랑이 가죽을 입힌 탁 자와 의자가 가리잡고 있었다. 호피의자에는 위엄이 전신에 넘치는 검은 수염의 중년인이 앉아 있었다. 그는 철한빙에게 시선을 돌리며 가볍게 놀랐다. (오.. 군계일학이로고.) 철한빙이 급히 허리를 굽혔다. [미천한 백성이 성주님을 뵈옵니다.] 그러자 소약란이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어랏! 공자님은 어떻게 아버님이 성주라는 것을 아셨어요?] 철한빙은 그녀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가씨, 이곳은 관사이며 성주님의 위엄을 보고 알았습니다.] 순간 소약란의 이마가 곱게 찌푸러졌다. [공자님께선 어째서 소녀를 아가씨라고 부르죠?] 철한빙은 잠시 주춤거리며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성주는 그런 그에게 자리를 권하였다. 철한빙은 몇번 사양하다가 자리에 앉았다. 소약란도 뒤따라 앉으며 철한빙을 청해온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성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음.. 난아가 보았다면 틀림없겠지.] 그리고는 소약란에게 말했다. [난아, 안채에 들어가 어머니와 애드을 나오도록 하여라.] [예!] 소약란은 다소곳이 절을 올린 뒤 안채로 사라졌다. 잠시 후 나직한 말소리에 이어 소약란이 중년부인과 칠팔 세 가량의 남아 아이와 여자아이를 데리고 나왔다. 중년부인은 우아하면서도 청순했으며 중년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름다움 을 간직하고 있었다. 소약란과 흡사하게 닮아 그녀가 모친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가 있었다. 남자 아이는 여덟살 가량 되었으며 총명한 두 눈으로 철한빙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자 아이 또한 슬기롭기 짝이 없게 생겼으며 깨물어 주고 싶도록 귀여웠으며 일 곱 살 정도로 보였다. 그들이 자리에 안자 성주가 철한빙에게 인사를 시켰다. [이 사람은 본직의 처 되는 사람일세.] 철한빙이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올렸다. 부인 또한 다소곳하게 답했다. [그리고 사내녀석은 올해 여덟 살이며 소검영이라 하네. 계집아이는 일곱 살이며 소국란이라네.] 이어 소검영과 소국란에게 말했다. [얘들아, 이분은 앞으로 너희들에게글을 가르치실 스승님이시다. 어서 인사를 올 리거라.] 두 아이는 얌전히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하게 절을 올렸다. [제자들이 스승님을 뵈옵니다.] 철한빙은 두 아이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그만 예를 거두거라. 너희들을 가르칠만한 학식이 나에게도 있을지모르겠구나.] 성주가 입을 열었다. [본직이 보건대 충분히 가르치고 남음이 있을 듯하네. 그리고 한 달에 금전 두닢 을 지불하겠네.] 철한빙이 급히 사양을 했다. [아닙니다. 소생은 은자를 받고자 했으면 이곳까지 오지도 않았을 겁니다.] 성주는 그의 청렴함에 내심 흐뭇함을 느꼈다. [하기야 훌륭한 스승을 어찌 은전 따위로 논할 수 있겠는가? 하여튼 본직의 자식 들을 잘 부탁하네.] 그리고는 소약란에게 말했다. [난아, 설선생을 앞으로 거처하실 곳으로 않내해 드려라.] 소약란이 대답을 한 뒤 철한빙을 데리고 나섰다. 그러자 두 아이가 부리나케 뒤를 따라갔다. 부인이 철한빙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여보, 저분 공자는 뉘집 자손인가요?] 성주가 고개를 저었다. [글쎄 나도 모르겠소? 난아가 초빙해 왔을 뿐이오. 듣자하니 자신의 신분내력에 대해선 묻지 말아달라는 조건을 내건 듯하오. 하나 그의 태도며 용모로 보아 범 상치 않은 자손인 것 같소.] 부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소첩이 보기에는 저만한 젊은이는 눈을 씻고 찾아 보아도 없을 거 같아요.] 성주는 무엇을 생각하는 듯 검은 수염을 쓰다듬었다. x x x x x 철한빙은 소약란 자매의 안내로 뒤뜰에 자리잡은 아담한 처소로 들어갔다. 뜰 전체가 꽃으로 뒤덮여 있었으며 저마다 그윽한 향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붉은 옷칠을 한 난간에 기대섰노라면 절로 꽃향기에 심취되고 말듯했다. 난간을 지나자 청초한 방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창가에 자리잡은 탁자에는 문방사우 외 몇권의 서책이 단정하게 놓여져 있는 것 이 보였다. 소검영이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굴리며 말했다. [스승님, 방이 마음에 드십니까!] 제법 어른스러운 말에 철한빙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주 만족스럽구나. 그런데 이 방은 어느 분이 기거하신던 방이냐?] 소국란이 재빨리 대답했다. [저번에 계시던 스승님이 몸이 괴약해지셔서 고향으로 내려가섰어요.] [음.. 그것 참 안�┳런립�.] 소약란이 좌측에 있는 침상을 가리켰다. [침소는 저곳이고요 세면은 시녀들이 시중을 들어 줄거예요.] 철한빙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약란은 잠시 그를 바라보다 두 동생을 데리고 방문을 나섰다. 철한빙은 천천히 창가로 걸음을 옮겨 꽃들을 바라보았다. (어디 내 인격 수양이 어느정도인지 또 학문이 어디까지 도달했는지 시험삼아 열 심히 가르쳐보자.) 이튿 날부터 철한빙은 두 아이에게 글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두 아이는 천성적으로 총명하여 이미 사서의 논어, 맹자, 중용 대학에 통달해 있 었다. 다만 삼경의 주역이 조금 모자랄 뿐이었다. 철한빙은 글을 가르칠 때는 엄격하기 그지없었으나 그외에는 구 아이를 친동생처 럼 대해주었다. 두 아이는 이에 철한빙을 무척이나 따랐다. 보통 때는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한시도 떨어져 있지 않으려고 했다. 철한빙은 주역을 가르치는 한편, 시, 서, 기, 화 등을 가르쳤다. 덕분에 두 아이의 학문은 일취월장했다. 철한빙은 소약란에게서 성주의 이름이 소상안임을 알았다. 또한 부인의이름이 진 설향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철한빙은 이날도 두 아이를 돌려보낸 뒤 의자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었다. (내일부터 취련무아심법을 익혀야겠구나.) 이때 가볍게 문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요?] 밖에서 소약란의 맑은 음성이 흘러 들어왔다. [소녀예요.] 철한빙은 몸을 일으켜 방문을 열어주었다. 밖에는 성주가 그녀와 같이 와 있었다. 철한빙은 예를 올리며 가볍게 입술을 떼었다. [성주님께서 어인 행차십니까? 어서 안으로 드십시오.] 그들은 옆으로 들어와 앉은 뒤 소상안이 먼저 입을 열었다. [설선생의 학문이 보통이 아닐 것이라고 짐작은 했으나 그토록 심오한 줄은 몰랐 네. 선생 덕분에 두 아이가 눈에 띄게 달라졌다네.] 철한빙은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떠올렸다. [소생의 덕이 아니라 두 자녀의 자질이 워낙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소상안은 가가대소를 터뜨렸다. [하하핫... 겸손의 말이네. 겸손의 말..] 소약란이 입을 열었다. [그래요. 동생들의 자질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가르치는 사람이 시원치 않다 면 박옥혼금만 못한 것이예요.] 철한빙은 멋쩍게 웃고 말았다. 소상안이 정색을 했다. [아무쪼록 설선생이 아이들을 잘 보살펴주기 바라네.] [예, 힘껏 노력하겠습니다.] 소상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일어섰다. [자, 존직은 일이 있어 그만 가보겠으니 난아와 좀더 얘기를 나누게.] 철한빙이 급히 일어섰다. [아니! 어찌 일어나십니까!] [바쁜 일이 있어 먼저 실례하겠네. 나오지 말게.] 소상안은 철한빙의 어깨를 눌러 자리에 앉힌 뒤 걸음을 옮겼다. [그럼 살펴 가십시오.] 소상안이 사라지자 두 젊은 남녀는 왠지 모르게 쑥스러움을 느꼈다. 소약란은 옷자락만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철한빙은 역시 허공만 응시할 뿐이었다. 그들이 말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문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소검영의 목소리 가 들려왔다. [스승님, 검영이옵니다.] 철한빙은 마치 구세주라도 만난 듯이 반색을 했다. [오! 어서 들어오너라.] 방문이 열리며 소검영과 소국란이 들어왔다. 소국란이 소약란을 발견하고 어! 하는 소리와 함께 말했다. [언니가이곳에 웬일이야? 혹시 글을 배우려고 그래?] 소검영이 소국란의 머리를 가볍게 쥐어 박았다. [이 멍청아! 모르면 잠자코 있지 뭘 안다고 나서냐?] 철한빙고 소약란은 그의 맹랄한 말에 얼굴을 붉히며 피식 웃고 말았다. 소국란이 머리를 문지르며 맑은 눈을 굴렸다. [그러면 언니가 무엇 때문에 이곳에 왔지?] 소검영이 또다시 쥐어 박으려 하자 소국란은 재빨리 철한빙의 뒤로 가서 숨었다. [오빠는 매일 내 머리만 때린단 말야. 이담에 내가 크면 그때는 어림도 없을 줄 알어.] 소약란이 소국란을 향해 짐짓 나무라는 듯이 말했다. [국란아, 어찌 스승님 앞에서 그같은 행동을 취하느냐?] 철한빙이 웃으면서 잔잔하게 입을 열었다. [놔두시오. 지금은 스승이 아니라 친구로 지내는 시간이오.] [아무리 그래도...] 소검영이 재빨리 그녀의 말을 가로챘다. [흥! 스승님이 그러면 그렇게 알 것이지 마치 자기가 스승인 양 호통을 치다니.] 소약란은 그만 얼굴이 홍당무로 변하고 말았다. [공자님, 이녀석들을 혼좀 내 주세요. 이대로 놔둔다면 필시 버릇이 없어지고 말 거예요.] 철한빙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허허헛.. 절대로 그렇지 않을 것이오.] [국란아, 그렇지 않느냐?] 그러자 소국란이 손뼉을 치며 말했다. [스승님 말씀이 맞아요. 저희들은 결코 버릇없는 행동을 하지 않아요.] 하며 소약란을 향해 혀를 낼름 내밀었다. 소약란은 얼굴을 붉히며 어쩔줄 몰라했다. 철한빙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자, 이제 그만하고 어째서 찾아왔지?] 소검영이 말했다. [스승님하고 화예를 겨룰까 해서 왔어요.] 소약란이 당황을 하며 꾸짖었다. [검영아, 어찌 그런무례한 말을 하느냐? 스승님께 어서 사죄드리지 못하겠느냐.] 철한빙이 급히 그녀를 말렸다. [아니오. 배움이란 자기보다 나은 상대를 택해 기량을 겨룸으로써 점차 발전하는 것이오. 그러니 아이들을 나무랄 수는 없소.] 소검영과 소국란이 그것보라는 표정을 지었다. 소국란이 재빨리 탁자로 달려가 그림에 필요한 도구를 가지고 왔다. 소국란은 한장의 화선지를 철한빙에게 공손히 내밀었다. 철한빙은 화선지를 받아쥐며 두 아이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무엇을 대상으로 그렸으면 좋겠느냐?] 소검영이 창 밖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밖은 이미 어둠이 까리기 시작했고 방안에는 그릴만한 것이 없고...] 이때 소국란이 손뼉을 탁 치며 입을 열었다. [옳지, 언니를 상대로 그리면 되겠구나.] 철한빙과 소약란은 동시에 당황을 금치 못했다. 철한빙이 급히 입술을 떼었다. [얘...얘들아, 방안은 조금 어두우니 그건 곤란하구나.] 소검영이 재빨리 등잔에 불을 붙였다. [스승님, 이젠 환해졌지요.] 철한빙은 어이가 없었다. [허, 이것 참!] 소국란은 소약란에게 다소곳이 앉아 있으라고 하며 그림을 그리려 했다. 철한빙은 무안한 듯이 입맛을 다셨다. [낭자, 무례를 저질러도 되겠소?] 소약란이 귀뿌리까지 물들이며 기어들어가는 듯한 음성으로 말했다. [어찌 무례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오히려 소녀가 공자님의 화폭에 옮겨지는것이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소검영이 껄껄대며 웃었다. [헤헤헤.. 누님이 언제부터 그렇게 얌전해지셨수?] [요녀석이!] 소약란이 짐짓 눈을 부릅떴다. [어이구! 잘못했어, 잘못했어.] 소검영이 짐짓 죽는 시늉을 했다. 그때 소국란이 점잖게 말했다. [오빠, 어서 심신을 통일한 뒤 그림 그릴 준비나 하세요.] 소검영은 즉시 행동을 멈춘 뒤 몇번 심호흡을 했다. 그림을 그리기 전에 필히 갖추어야 할 조건 등 하나가 바로 화의였다. 소검영과 소국란은 바르게 자세를 잡은 뒤 소약란의 화고를 뜨기 시작했다. 철한빙 역시 두 눈을 지그시 감은 뒤 약 일각이 지나서야 눈을 떴다. 이어 천천히 화필을 놀렸다. 얼마후, [휴우!] 철한빙은 그림을 다 그린 뒤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소검영 남매에게 말했다. [너희들도 다 끝났느냐?] [예!] 철한빙은 소약란을 바라보며 미안한 듯이 입을 열었다. [낭자, 정말 미안하오. 이리로 오셔서 소생이 그린 것을 평가해 주겠소?] 소약란은 사실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철한빙이 심혈을 기울여 그리는 것을 보자 힘든 것이 삽시간에 사라지곤 했었다. 그녀는 사뿐사뿐 걸음을 옮겨 철한빙에게 다가섰다. 이보다 먼저 솜검영 남매가 철한빙이 그린 그림을 보며 두 눈을 휘둥그렇게떴다. [야! 이.. 이게 그림이란 말인가?] 소약란이 급히 그림을 바라보다 그 자리에서 굳어지고 말았다. [아..] 철한빙이 그린 것은 도저히 사람의 솜씨라고 할 수가 없었다. 화선지에는 마치 소약란의 전신이 살아서 생동하듯이 박혀 있었다. 금방이라도 말을 할듯한 앵두같은 입술,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날아갈 듯한 버들 가지 같은 허리, 나부낄듯한 옷자락, 이 모든 것이 살아서 움직일 것만 같았다. 철한빙은 화구를 챙기며 넌지시 물었다. [어디 잘못된 곳이 있더라도 너무 탓하지 마시오.] 소약란이 급히 정신을 차리며 감탄한 듯이 말했다. [공자님은 정말 신과 같은 분이군요? 소녀는 그저 감탄할 뿐이예요.] 철한빙은 소검영 등이 그린 그림을 바라보았다. [검영아, 그리고 국란아, 너희들의 그림은 훌륭하다고 할수 있으나 화필의 힘찬 뻗음과 의장, 그리고 그림에 혼이 깃들어 있지 않느니라. 그러니 앞으로도 더욱 노력해야 될 것이다.] [스승님의 가르침에 명심하겠습니다.] 철한빙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들을 응시한 뒤 화선지를 말아서 소약란에게 건네 주었다. [낭자께서 애를 쓰셨는데 이것은 보답이 될까 모르겠소.] 소약란은 급히 사양을 했다. [아니예요. 공자님께서 애쓰셔서 만든 그림을 어찌 소녀가 가질 수 있겠어요?] 철한빙은 사람을 흘릴 듯한 아름다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낭자, 소생이 드리는 것이니 받아주시오.] 그러자 소검영이 재빨리 말했다. [누나, 스승님이 그리신 것은 인간의 그림이 아니예요. 그러니 어서 받아 주세 요.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철한빙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자, 낭자, 어서 받아주시오.] 소약란이 얼굴을 붉히며 두 손으로 공손히 그림을 받아 쥐었다. [공자님, 감사하옵니다.] 철한빙은 마주 예를 취했다. 그는 소검영과 소국란에게 시선을 돌렸다. [얘들아, 이제는 그만 가서 쉬어야지.] 그리고는 철한빙을 향해 공손히 예를 올렸다. [공자님, 편히 쉬세요.] [스승님,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철한빙이 웃음으로 말했다. 그는 소약란 등을 보낸 뒤 침상으로 올라갔다. 이어 품속에서 태상호법 영패를 꺼냈다. 그리고는 개방조사가 뤼한 자세대로 흉내낸 뒤 심법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진기가 잘 운영되지 않았으나 한시간이 지나자 차츰 심법대로 진기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진기가 유통됨에 따라 심신이 상쾌해지며 전신이 허공에 두둥실 뜨는 듯했다. 잠시 후, 그는 무아지경에 돌입하고 있었다. 순간 그의 코에서 한줄기 가느다란 홍색기체가 나왔다. 홍색기체는 마치 실같이 가느다랗게 허공으로 피어올랐다. 그의 몸 삼 장까지 올라간 홍색기체는 천천히 꿈틀거리며 동그란 테를 형성했다. 그리고는 점차 밑으로 내려와 백회혈 부근에서 딱 멈추었다. 이어 지극히 느린 속도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둥근태는 약 일각 정도를 회전한 뒤 천천히 멈추었다. 이와 동시에 또다시 철한빙의 코에서 주색 기체가 새오 나오는 것이었다. 주색기체는 홍색시체와 똑같은 잔털을 밟은 뒤 바로 그 위에 머물렀다. 때를 같이 하여 이번에는 황색 기체가 피어올랐다. 역시 전과 마찬가지로 똑같이 반복한 뒤 주색기체 위에 실날같은 간격을 둔 채 머무는 것이었다. 그러나 세 가지 각기 색이 다른 기체가 나온 뒤 더이상 기체가 피어오르지 않았 다. 만약 일곱 가지 무지개 색이 모두 피어 오른다면 취련무아심법을 십이성까지 끌 어올리는 것이었다. 철한빙이 첫번 운용에도 불구하고 단번에 세 가지 색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은 그의 자질과 무공 덕분이었다. 과거에 개방조사조차 사십 년을 연마한 끝에 겨우 다섯가지 색밖에 만들어 내지 못했다. 이것 하나만 보더라도 철한빙이 가히 불세출의 기재라는 것을 알고도 남음이 있 었다. 다시 한시간이 지나자 이번에는 황색 기체가 또다시 회전을 하기 시작했다. 이어 아까와는 정반대로 허공으로 솟구친 뒤 둥근 테를 풀고 한가닥 실날같이 변 했다. 그리고는 지극히 느린 속도로 철한빙의 콧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 다음 주색기체, 홍색기체가 차례대로 코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그와 동시에 철한빙의 두 눈이 번쩍 떠졌다. [휴우!] 그는 길게 숨을 내쉰 뒤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철한빙은 몸이 날아갈 듯이 가볍다는 것을 느꼈다. (음... 취련무아심법을 십이성까지 익힌다면 마성을 제압시킬지도 모르겠구나.) 그는 잠시 여러가지 생각을 한뒤 옷을 벗고 잠자리에 들었다. 번호:209/227 등록자:HYUN9876 등록일시:97/04/10 19:11 길이:489줄 제 목 : [사마달] 불세마왕경 제 31장 불세마왕경 저자: 사마달 출판사: 대현출판사 제 31장 관속의 여인들 이튿날, 철한빙의 그림 솜씨가 화선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소문이 성내에 파다하게 퍼졌 다. 해서 명문대가들은 그를 초빙하지 못해 안달이 날 지경이었다. 반면 성주 일가는 흐뭇핫기 짝이 없었다. 철한빙은 소검영 자매에게 글을 가르치랴 취련무아심법을 익히랴, 또 자신을 찾 아오는 사람들에게 초상화를 그려주랴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이러는 사이에 세월은 덧없이 흘러 어느 덧 한달이 지났다. 철한빙은 소검영등의 학문이 이미 사서삼경등에 능통하고 딴 방면으로도 뛰어난 지라 떠날 결심을 했다. 그는 결심이 서자 곧 성주의 거처로 향했다. 똑! 똑! 똑! [뉘시오?] 철한빙이 문을 두드리자 소상안의 음성이 들려왔다. [소생이옵니다.] 그러자 소상인이 반색을 했다. [오! 어서 들어오세. 그렇지 않아도 설선생을 찾아 뵈려고 하던 중이었네.] 철한빙이 안으로 들어서며 물었다. [소생을 찾다니요?] 그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소상안의 옆에는 허연 수염을 가슴앞까지 드리운 육순의 노인이 앉아 있었다. 첫눈에 보아도 자상함과 위엄이 동시에 흘러 조정의 인물임을 알 수가 있었다. 옆에는 소약란도 같이 앉아 있었다. [설선생, 이 분은 조정에서 재상을 맡아보고 계시다. 또한 본직의 사촌형님이시 기도 하네.] 철한빙은 급히 절을 올렸다. [미천한 백성이 재상을 뵈옵니다.] 재상은 그를 부축하며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 [선생, 예를 거두시오. 이 성에 볼 일이 있던 중 들렀었소. 그런데 선생의 화예 가 세상을 놀라게 한다는 말을 듣고 한 번 만나 보려던 참이었소.] 철한빙이 허리를 굽혔다. [그건 성주님이 소생을 깊이 헤아리셔서 하신 말씀이옵니다.] 재상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본직은 아우의 성격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소. 그는 모든 것이 확실 하거나 자신이 없기 전에는 절대 입밖에 내지 않는 사람이오. 그러니 선생은 겸 송을 거두시오.] [황공할 다름입니다.] 재상은 허연 수염을 쓰다듬으며 천천히 입술을 떼었다. [마침 주상께서 화품을 찾고 계시던 중이오. 조정에도 몇사람 있기는 하나 한결 같이 주상의 마음에 들지 않는 듯하오.] 그는 잠시 말을 멈춘 뒤 철한빙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선생을 황궁으로 모셔 주상을 배알시켰으면 하는데 선생의 뜻은 어떠시오?] 철한빙은 당황하며 말했다. [소생은 조정에 뜻을 두지도 않거니와 그럴만한 능력도 없습니다. 그러니 다른인 재를 등용하시기 바랍니다.] 이때 소약란이 재빨리 끼어 들었다. [공자님, 꼭 조정에 몸을 의탁하시는게 아니예요. 주상전하의 용안만 화폭에 옮 기면 되는 거예요.] 소상안이 그녀의 말을 거들었다. [설선생, 이보다 더한 영광이 어디에 있겠는가? 하니 승낙을 하게.] 철한빙은 곰곰히 생각에 잠겼다. (조정에 다녀 오려면 최소한 보름은 걸릴 것이다. 원수도 갚아야 하고 또 형님들 도 만나야 하는데 재상을 따라 간다면 많은 시간을 낭비할 것이다.) [말씀은 고맙습니다만 소생은 감히 응할 수가 없습니다.] 그는 소약란 등을 빠르게 훑어 본 뒤 재차 입을 열었다. [또한 검영 자매의 학문이 깊어감에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습니다. 해서 소생은 이곳을 따나려던 참이었습니다. 실은 성주님을 찾아온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소약란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옛! 떠나시다니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철한빙은 씁쓰름하게 웃었다. [소생은 처음 이곳에 초빙되어 올때 낭자와 한 약속이 있소. 바로 떠나고 싶을 때는 언제고 떠난다는 조건이었소. 낭자께서도 기억하고 계시오?] 소약란은 두 눈이 충혈되며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재상이 약간 당황한 듯이 말했다. [선생, 혹시 본적 때문에 그같은 결단을 내린 것이 아니오?] 철한빙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소생은 사사로운 일이 있어 더 이상 성주님 곁에 머무를 수가 없습니 다.] 소상안이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설선생, 이제가지 묻지는 않았지만 혹시 부모님들 때문이 아니오?] 순간, 철한빙의 눈에서 지극히 짧은 시간에 살기가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아닙니다. 소생에게는 부모님이 계시지 않습니다.] 소약란 부녀는 동시에 놀랐다. 그가 천애고아인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설선생, 본적이 괜한 걸 물었나보오.] [별말씀을 다하십니다. 소생은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소상안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설선생, 기왕 떠나시겠다면 사촌 형님의 말씀에 응하시는 것이 어떻겠나? 궁중 이래야 이곳에서 열흘 거리밖에는 되지 않네. 그러니 본직의 처음이자 마지막 부 탁을 들어주게.] 철한빙은 생각에 잠겼다. (그래, 원수를 늦춰준다고 해서 놈들이 어디로 가겠는가? 성주의 부탁을 들어주 는 것도 좋은 것이다. 하지만 일단은 한달 뒤로 미루자.) 그는 생각을 멈추며 나직하게 입술을 떼었다. [그럼 성주님 분부에 따르겠습니다.] 순간, 재상의 얼굴에 은은히 웃음이 번졌다. 그는 이미 철한빙이 그런 초상화를 보고 그의 솜씨에 매료되어 버렸던 것이다. 소약란은 두 눈을 붉힌 채 철한빙을 그윽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마치 그를 향해 무슨 말인가 하려는 듯했다. 철한빙은 그녀의 누빌 에 무언의 감정을 느낄 수 없었다. [공자님, 정말 떠나셔야만 하나요? 이제 떠나시면 다시는 못오시겠지요?] 철한빙은 그녀의 눈에서 이런 말을 읽을 수 있었다. 철한빙 역시 뜨거운 눈길로 그녀를 응시했다. (낭자, 소생은 떠나야만 하오. 가슴에 응어리지고 하늘에 맺힌 원한을 찾아서 말 이오. 낭자만은 소생의 심정을 헤아리라 믿소.) (알아요. 소녀는 알고 있었어요. 공자님의 전신에서 뻗어 나오는 싸늘한 한기를 소녀는 알고 있었어요.) (낭자, 한달이 지나는 동안 소생은 낭자와 극도로 가까와졌소. 하지만 나는 일개 평범한 백성이오. 소생은 이 한달간의 즐거움을 영원한 추억으로 간직하겠소.) 철한빙의 눈빛이 이같이 말하는 듯 하자 소약란의 애절한 눈빛이 절규를 토해냈 다. (아니예요. 소녀는 추억으로 간직할 수 없어요. 소녀는 공자님을 처음보는 순간 부터 말할 수 없는 야릇한 감정을 느꼈어요. 소녀는 .. 소녀는 ... 공자님을 사 랑하고 있어요.) 급기야 그녀의 두 눈에서 구슬같은 눈물이 또르륵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사랑의 결정체가 철한빙의 시야에 비쳤다. 그는 내심 크게 당황했다. (어.. 어서 이곳을 떠나자. 떠나야만 한다.) 그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성주님, 소생은 이만 떠날까 하옵니다.] 소상안은 섭섭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소약란에게 식구들을 데리고 나오라고 일렀다. 소약란은 눈물을 훔치며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진설향 등이 나와 철한빙을 만류했다. 철한빙은 거듭 사양을 한 뒤 걸음을 옮겼다. 관문 밖에 이르자 소검영과 소국란이 그의 두 팔을 잡으며 눈물을 글썽였다. [스승님, 꼭 가셔야만 해요?] 철한빙은 두 제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정말 미안하구나. 모쪼록 열심히 학문을 닦아 만인이 우러러 보는 사람이 되거라.] 소약란은 말없이 오열을 삼키고 있었다. 철한빙은 그들을 둘러본 뒤 작별을 고했다. [그럼, 내내 편안하십시오.] 이때 성주가 조그마한 목합을 건네 주었다. [설선생, 정말 섭섭하네. 자, 이것은 본직의 성의니 받아주게.] 철한빙은 극구 사양하다 할 수 없이 받아 품속에 넣었다. 이어 재상을 향해 말했다. [소생이 한달 후에 금릉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재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시오. 금릉에 오셔서 본직의 거처를 물으면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오. 그 럼 잘 가시오.] 철한빙은 그들에게 일일이 작별을 올렸다. 소약란의 앞에 이르렀을 때 그는 심하게 가슴이 고동쳤다. [낭자, 그동안 즐거웠소. 그리고 몸을 보중하시오.] 소야간은 급기야 주르르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공자님...] 그녀는 할말이 태산같이 많았지만 입 밖으로 나오지가 않았다. 철한빙은 그들을 향해 깊숙이 고개를 숙인 뒤 몸을 돌렸다. 유유히 은의를 나부끼며 걷는 그의 모습에 중인들은 가슴이 괜스레 뿌듯해지는 것을 느꼈다. 철한빙의 모습은 그들의 시야에서 멀어져만 갔다. x x x x x 휘익! 동백산 기슭을 타고 유령처럼 달리는 인영이 있었다. 전신에 눈이 부실 정도로 깨끗한 은의를 걸친 절세의 미소년이었다. 은의소년은 서주성을 떠나 화산파로 향하는 철한빙이었다. 그는 절세적인 경공술로 산기슭을 거슬러 올라갔다. 이때, 그의 앞 오십 장 정도에서 하나의 홍색 그림자가 번뜩하며 사라졌다. (음... 몹시 서두르는 듯 한데 대체 무슨 일일까? 저만한 신법이라면 능히 초법 입성의 경지에 이르른 듯 하건만 정신없이 서두르다니?] 그는 재빨리 생각한 뒤 홍색인영의 뒤를 따라 보기로 했다. 홍색인영은 벌서 이백여 장 밖을 달리고 있었다. 철한빙은 급히 공공답허신법을 펼쳐 앞으로 쏘아갔다. 그러자 순식간에 홍색인영과 오십 장의 간격을 줄일 수 있었다. 철한빙은 그의 뒷모습에서 늙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향 한 자루가 탈 시간이 지나자 홍색인영은 신형을 늦추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좌측 숲속으로 들어갔다. 한데 홍색인영이 바람처럼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닌가? 철한빙은 이내 깜짝 놀랐다. (아니! 이같이 짧은 시각에 내 시야에서 벗어날 수 있다니. 이 사람의 무공은 무 시못할 정도로구나.) 주위를 둘러보던 그는 좌측에 있는 커다란 무덤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무덤 앞에 섰다. 묘비조차없는 쓸쓸한 무덤이었다. 철한빙은 잠시 무덤을 바라본 뒤 몸을 돌리려 했다. 이때, 스르르릉! 하는 소리가 들리며 묘비가 반으로 갈라지는 것이 아닌가? 철한빙은 대경실색을 금치 못하며 급히 숲속으로 몸을 날렸다. 그가 막 몸을 숨기자 무덤 안에서 사라졌던 홍색인영이 번개같이 솟구쳐나왔다. 이어 주위를 한차례 둘러보았다. 그러자 그 홍의인이 칠십 세 가량 된 음침한 노인임이 달빛에 드러났다. 홍의노인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조용하고 음침하게 웃었다. 그리고는 무덤 옆에 있는 조그만 바위를 가볍게 두번 쓰다듬었다. 순간, 스르르릉! 소리와 함께 안으로 갈라졌던 무덤이 감쪽같이 원상태로 돌아갔다. 철한빙은 교묘한 기관장치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홍의노인은 무덤이 닫히자 혼잣말로 음침하게 말했다. [흣흣흣.. 이제 한 명만 더 구한다면 노부는 천하무적의 신공을 연성한다.] 홍의노인은 나직이 중얼거린 뒤 번개같이몸을 날려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철한빙은 그가 천하무적 어쩌고 하자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그는 천천히 무덤 앞으로 나가갔다. 그리고는 오른손을 앞의 바위에 갖다대고 가볍게 두번 쓰다듬었다. 그러자, 스르릉! 무덤이 거짓말처럼 반으로 갈라졌다. 철한빙은 고개를 수그려 안을 쳐다보았다. 어두컴컴한 가운데 밑으로 곧게 뻗은 계단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철한빙은 조심스럽게 계단을 밟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막 안으로 들어갔을 때였다. 스르르릉! 무덤이 저절로 닫혀지는 것이었다. 철한빙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황급히 몸을 날려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이렇게 되자 무덤안은 삽시간에 칠흑같은 어둠으로 뒤덮였다. 철한빙은 등줄기에서 식은 따�㈋맴ª� 흘리며 공력을 두 눈으로 집중시켰다. 그리고는 기관장치를 찾아보았다. 하지만 도무지 발견할 수가 없었다. (음.... 이왕 갇힌 몸 어디 밑으로 내려가 보자.) 그는 위급한 상황에 처해 있으면서도 침착하게 행동했다. 철한빙은 전신에 공력을 끌어올려 호신강기를 펼친 뒤 한걸음 한걸음 조심스럽게 계단을 밟았다. 계단은 의외로 길어 뜨거운 밥 한끼 머긍�ª� 시간이 지나서야 밑에 당도할 수 있 었다. 쾌쾌한 냄새�´ː� 코를 찌르며 음산한 한기가 몰아쳐 왔다. 양쪽 벽에는 기름 등잔이 일 장 간격으로 막혀 있었다. 정면에는 조그만 석문이 보였으며 지키는 사람은 없었다. (음.. 대체 이같이 음침한 곳에서 홍의노인은 무슨 무공을 연성한단 말인가?) 그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석문 고리를 잡았다. 이어 공력을 집중시킨 뒤 가볍게 열어보았다. 끼끼긱! 지극히 음침한 소리와 함께 석문이 열렸다. 철한빙은 좌장을 가슴 앞으로 올려 만일에 대비하여 조심스럽게 안을 살폈다. [앗!] 그는 석문 안의 굉음에 놀라며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양쪽으로 수많은 관들이 널려 있었다. 또한 중앙에는 커다란 항아리가 놓여 있었으며 거기에서는 더운 김이 무럭무럭 피어올랐다. 그 밑에는 누렇게 찌들은 뼈다귀들이 수북이 쌓여 있는 것이 보였다. 철한빙은 급히 심신을 안정시킨 뒤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 순간,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역겨운 내음은 항아리에서 흘러나왔다. 철한빙은 주위를 한차례 둘러본 뒤 항아리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부글부글! 항아리에서는 용암이 끓듯이 거품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거품 속을 들여다 보던 그는 또 한번 놀라고 말았다. 거기에는 사람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철한빙은 심장이 목구멍 밖으로 �끽¤돗爭た� 것 같은 역겨움을 느꼈다. 그는 걸음을 관쪽으로 옮겼다. 검은 목관들은 보기에도 으시시했다. 철한빙은 마름 침을 꿀꺽 삼키며 허공에서 섭물신공을 펼쳤다. 순간, 관 뚜껑이 소리없이 옆으로 밀려났다. [억!] 철한빙은 관속을 들여다 보고는 질겁을 했다. 거기에는 전신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않는 전라의 이십대 소녀가 반듯하게 누워 있었다. 철한빙은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을 느끼며 급히 관뚜껑을 덮어버렸다. 그는 이어 옆에 있는 관도 열어보았다. 첫번째 관과 마찬가지로 묘령의 소녀가 전라의 몸으로 누워 있었다. 철한빙은 정신없이 차례대로 관을 열어 본 뒤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백개의 관에 두 개를 빼고는 하나같이 묘령의 소녀들이 죽어 있다니, 그 렇다면 홍의노인은 여인들의 순음을 채취해서 사악한 음공을 익히려고 하는 것이 로구나.) 그는 이에 생각이 미치자 치가 떨렸다. 아무리 천하무적의 신공을 익히려고 한다지만 백 명의 소녀들을 희생하면서까지 말이나 될법한가! 철한빙은 이를 부드득 갈았다. [이놈의 늙은이! 돌아오기만 해봐라. 이 항아리 속으로 처박아 버리고 말겠다.] 이때, 가벼운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철한빙은 필시 홍의노인일것이라 생각했다. 이에 급히 몸을 숨길만하 곳을 찾아보았다. 그러나 좀처럼 숨을만한 곳이 눈에 띄지 않았다. 발자국 소리는 점점 가까와졌다. (할 수 없다. 솬속에 숨어서라도 놈의 동태를 살펴보자.) 철한빙은 재빨리 관뚜껑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다음 순간, 그는 질식할 것만 같았다. 아무리 시체라지만 전라의 여인과 포개고 눕자 전신에 힘이 쭉 빠졌다. 마치 솜처럼 몽실몽실한 나신 위에 누운 그는 당장이라도 뛰쳐 나가고 싶었다. 철한빙은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며 잽싸게 관뚜껑을 닫았다. 그리고는 조그만 틈새를 내서 밖을 내다보았다. 그러는 한편 시체 위에 누워있다는 생각에모골이 송연해질 정도였다. 철한빙은 나신의 몸에 손이 닿을 때마다 움찔움찔 몸을 떨었다. 짜릿함과 오싹함! 이때, 석문이 끼끼끽 열리며 홍의노인이 들어왔다. 옆구리에는 이십 이삼 세가량 되어 보이는 절세의 미인이 들려져 있었다. 철한빙은 이를 부드득 갈았다. (망할놈의 늙은디. 어디 무슨 짓을 하는지 두고 보자.) 홍의노인은 부글부글 끓는 항아리를 바라보며 기쁜듯이 웃음 터뜨렸다. [하하핫,.. 드디어 삼십 년이 걸려서야 백 명의 처녀를 구했구나. 그 동안 금방 갖다묻은 묘령의 처녀를 파내기 위해 얼마나 고생을 했던가! 하지만 이제 노부는 천하의 제일인자가 될 것이다. 흐흐흐흣...] 철한빙은 그가 무덤을 파헤쳐 시체들을 인양 해왔다는 점에 분노를 금치못했다. 홍의노인은 여인들의 수의를 벗겼다. 순간, 시체임에도 불구하고 터질듯이 눈이 부신 육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철한빙은 당장 뛰어나가 홍의노인을 일장에 박살내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하는 행동을 지켜보기로 마음을 진정시켰다. 홍의노인은 철한빙이 숨어서 지켜보고 있다는 것도 모른 체 신나게 콧노래를 부 르고 있었다. 이어 갑자기 시체 앞에 가부좌를 틀고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리고는 오른쪽 손바닥을 여인의 회음혈에 갖다 대었다. 철한빙은 그가 순음을 채취하기 위해 그같은 행동을 취한다는 것을 깨달고 더이 상 참을 수가 없었다. [에잇! 더러운 늙은이!] 순간, 관뚜껑이 산산조각이 나며 허공을 나무했다. [앗! 웬놈이냐?] 홍의노인은 기절초풍을 하도록 놀라며 급히 손바닥을 떼고 벌떡 일어났다. 철한빙은 가볍게 그의 앞에 내려서며 냉기가 감도는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 [더러운 늙은이 같으니, 여인들의 순음을 채취해 사공을 익히려 하다니 당신도 사람이오!] 홍의노인은 나타난 사라밍 약관의 서생인것을 알자 가소롭다는 듯이 웃었다. [헤헤헤.. 네놈이 어떻게 이곳에 숨어 들어온지는 모르나 노부의 손에 죽어줘야 되겠다.] 철한빙이 항아리를 가리키며 차디차게 말했다. [저 항아리는 어디에 사용하는 것이오?] 홍의노인은 두 눈에서 살기가 물씬 풍기는 사악한 기운을 쏟아냈다. [흐흐흐.. 이왕 뒈질 목숨이니 속시원하게 알려주마. 일단 여인의 순음을 빨아들 인 뒤 백명의 시체를 차례대로 항아리에 넣어 녹인 뒤 그것에 손을 담그고 석달 이 지나면 천하무적의 신공인 음마천공을 연성할 수 있다. 노부는 이미 아흔 아홉명의 시체로부터 순음을 ��＂채취하여 이미 음마천공이 칠성 에 도달했다.] 철한빙은 가소롭다는 듯이 코웃음을 쳤다. [흥! 음마천공인지 뭔지 하는 무공은 본인이 보기에는 닯잡는 데나 사용할 재간 인것 같소.] [뭐..뭣이! 이놈이 뒈지고 싶어 환장을 한 모양이구나.] 그리고는 우장을 번개같이 휘둘렀다. 순간, 그의 손바닥이 얼음처럼 투명하게 변하며 전신이 얼어 붙을 듯한 차가운 한기가 쏟아져 나왔다. 쉬익! 철한빙은 지극히 차가운 기운이 몰려오자 재빨리 옆으로 몸을 피했다. 그러자 퍽!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장력은 반대편 벽을 세차게 후려갈긴 것이었다. [핫!] 철한빙은 가볍게 놀랐다. 장력이 후려친 벽은 커다란 구멍을 냈으며 그 주위에는 얼음들로 둘러 싸였다. 가벼운 음향만 내고 두껍디 더꺼운 벽의 구멍을 뚫은 장력의 위력은 가히 일절��＂ 이라고 할 만했다. 철한빙은 자신도 모르게 한모금의 진기를 들이마셨다. (음... 칠성의 공력이 이러할진대 만약 십이성의 경지에 이른다면 가공할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다행히 내가 이놈을 만났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이놈으 로 인해 또 한 차례 피보라를 일으킬 뻔했구나.) 그는재빨리 생각을 굴린 뒤 표효잠형보법을 펼쳤다. 번호:210/227 등록자:HYUN9876 등록일시:97/04/10 19:11 길이:443줄 제 목 : [사마달] 불세마왕경 제 32장 불세마왕경 저자: 사마달 출판사: 대현출판사 제 32장 무수옹 철한빙은 보법을 전개해 홍의노인의 곁으로 미끌어져가며 재빨리 일장을 후려쳤 다. 홍의노인은 급히 쌍장을 들어올리며 음마천공장을 전개했다. 순간, 콰르르릉! 석실이 무너져 내릴 듯한 광폭음이 울려퍼졌다. 철한빙은 전신이 얼어 붙을 듯한 냉기에 이를 딱딱 부딪쳤다. 다행히 호신강기 덕분에 상처를 입지 않았지 그렇지 않앗으면 한조각 얼음덩이로 변하고 말았을 것이다. 두 사람은 제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못한 채 평수를 이루었다. 홍의노인은 심성의 공력으로 밀어낸 장력을 그가 막아내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아니! 아직 젖비린내도 가시지 않는 녀석이 천하제일의 음장을 막아내다니 도무 지 막을 수가 없구나.) 그는 재빨리 염두를 굴리며 전신의 공력으로 끌어 올려 쌍장을 후려칠 자세를 취 했다. [흐흐흐.. 어린 녀석이 의외로 두어 수 할 줄 아는구나. 오냐, 노부는 네놈을 상 대로 지금까지 익힌 음마천공을 시험해보겠다. 네놈은 음마천공의 첫번째 희생자 가 된것이다.] 그리고 필생의 공력으로 쌍장을 밀어냈다. 철한빙도 감히 경시하지 못하고 십성의 공력으로 원양신공 중의 야화소천을 전개 했다. 그러자 얼음덩어리 같은 차가운 기류와 불같이 뜨거운 양강의 기류가 허공에서 부딪쳤다. 다음순간, 치지지직! 음랭한 기류는 양강의 기류를 견디지 못하고 귀가 따가운 음향을 질러댔다. 고리고 이내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앗!] 홍의노인은 대경실색을 하며 앞까지 밀려온 뜨거운 기를 피하려고 했다.하지만 태극중 양의 무공인 원양신공을 어찌 당해낼 수 있겠는가! 그는 실날같은 차이로 야화소천의 일초에 격패당하고 말았다. [으아아악!] 십장을 쥐어 뜯던 처절한 비명소리에 이어 새까만 인영이 세차게 벽에 부딪쳤다. 퍽! 동시에 선혈과 내장등이 허공에 뿌려졌다. 홍의노인은 전신이 숯덩어리로 변한 채 처참하게 죽고 말았다. 철한빙은 시체를 바라본 뒤 오른손을 쭉 뻗었다. 그러자 동그랗게 뭉쳐진 시체가 허공으로 두둥실 떠올랐다. 철한빙이 다시 가볍게 손바닥을 뒤집자 시체는 부글부글 끓는 항아리 속으로 쏜 살같이 빠져 들었다. 첨벙! 보글보글.... 시체는 삽시간에 뼈만 남은 채 녹아 버리고 말았다. 그것도 잠시 뿐 어느새 뼈마저 녹아 없어져 버렸다. 철한빙은 한참동안 항아리를 응시한 뒤 기름 등잔을 빼들었다. [소녀들의 넋이여! 더 이상 치욕을 당하지 않게 소생이 영혼을 소각해 주겠나이 다.] 그는 나직이 중얼거린 뒤 등잔을 허공으로 띄웠었다. 다음 순간 가볍게 소매를 휘둘러 등잔을 허공에서 후려쳤다. 그러자 수많은 불꽃들이 사랑을 난무했다. 따다닥! 따다닥! 백 개의 관이 서서히 불길에 싸여 버렸다. 철한빙은 급히 석실을 빠져 나와 입구를 향했다. 다행이 입구는 열려져 있었다. 철한빙은 어째서 입구가 열려져 있는지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무덤을 빠져 나왔 다. 이어 반향조화장으로 무덤을 후려쳤다. 퍼---엉! 흘과 먼지가 하늘을 뒤덮으며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았다. 철한빙은 곧 신형을 날려 그곳을 떠나갔다. 한참이 지나자 흙먼지가 가라앉았다. 한데, 조금 전까지 있었던 커다란 무덤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 아닌가? 이것은 바로 반향조화장의 위력 문이었다. 무덤이 있던 자리는 삽시간에 평지로 변했다. 이때, 하나의 인영이 가볍게 그곳에 내려섰다. [흥! 만약 내가 입구를 열어 주지 않았다면 네놈은 무덤 속에서 재로 변했을 것 이다. 하지만 나는 네놈이 허무하게 죽어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 가 당했던 것 만큼 네놈에게 고통을 안겨주기 위해서이다. 나는 기필코 네놈을 살지도 죽지도 못하게 만들고 말겠다. 히히히...!] 괴인영은 귀신같은 웃음을 흘린 뒤 철한빙이 사라진 곳으로 번개같이 몸을 날렸 다. x x x x x 철한빙은 사흘 후에 화산에 당도했다. 그는 은밀한 곳에 몸을 숨긴 뒤 천면신공을 전개했다. 그러자 그의 모습이 삽시간에 칠순 노인으로 변했다. 머리카락마저 백발로 변해 어김없는 선풍도골의 은의노인이었다. 그는 뒷짐을 진 채 유유자적하게 걸음을 옮겼다. 얼마를 걷자 화산파 제자인 듯 싶은 몇명의 인물이 보였다. 그들은 중년의 나이였으며 한결같이 옆구리에 검을 차고 있었다. 그들 중 왼쪽 눈밑에 검은 사마귀가 달린 장한이 철한빙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 다. 나머지 두 사람 역시 뒤늦게 그를 발견하고는 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철한빙의 신선같은 용모에 눌린 것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그들은 철한빙을 향해 공손하게 포권을 했다. [노선배님께서는 본파를 방문하시고자 하십니까?] 철한빙은 점잖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화산에 유람을 왔다가 귀파 장문인을 뵙고 갈까 해서 왔는데 접견해줄 지 모르겠소.] 사마귀가 달린 장한이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죄송합니다만 노선배님의 존성대명이 어찌되시는 지요?] 그는 잠시 말을 끊은 뒤 재차 일렀다. [실은 요사이 무명마라는 대마두로 인해 본파는 물론 각파의 경계가 삼엄하여 여 간해서는 외인의 방문을 허락지 않고 있습니다.] 철한빙은 짐짓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무명마? 그런 사람이 있었던가? 하기야 노부가 은거한지가 백여 년이 넘었으니 그동안 신진고수들이 많이 등장했겠군.] 그의 중얼거림을 들은 세 사람은 은의노인이 전대고인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필시 무공도 엄청나게 고강하리라고 생각했다. 철한빙은 그들이 들으라고 한 마디 한후 천천히 몸을 돌렸다. [허어! 외인을 접견하지 않는다니 섭섭하지만 이대로 돌아가야겠구먼. 그럼 수고 하시오.] 하며 몸을 돌렸다. 그러자 사마귀가 달린 장한이 재빨리 물었다. [노선배님,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일단 연락을 해보고 뒤에 가셔도 늦지 않으 실 겁니다.] [그래?] 철한빙은 여전히 뒷짐진 채 몸을 돌렸다. 사마귀가 달린 장한은 품 속에서 화전을 꺼낸 뒤 하늘을 향해 높이 쏘아올렸다. [노선배님, 잠시만 지채하십시오. 이제 곧 사람이 올겁니다.] 철한빙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두 줄기 인영이 번개같이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철한빙이 안력을 집중시켜 바라보니 앞에 선 사람은 육십 세 정돌의 나이에 네모 반듯한 얼굴에 송충이가 기어 가는 듯한 눈썹을 가지고 있었다. 뒤의 사람 역시 육순 정도이며 약간 창백한 낯빛에 둥그스름한 얼굴을 한 사람이 었다. 그들은 일신에 청의를 입고 있었다. 두 사람은 눈 깜짝 할 사이에 세 사람 앞에 내려섰다. 사마귀가 달린 장한과 나머지 두 장한은 공손히 허리를 굽혔다. [제자들이 사숙을 뵈옵니다.] 네모 반듯한 얼굴의 노인이 사마귀가 달린 장한에게 물었다. [전강, 어째서 화전을 발사했느냐?] 전강이 급히 입을 열었다. [예, 다름이 아니라 이 분 노선배님게서 장문인을 뵙고자 하십니다.] 이어 그의 옆으로 바싹 다가가 나직하게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철한빙은 전강이 자기를 전대고인 어쩌고 하며 하늘로 높이 치켜 올리자 속으로 실소를 금치 못했다. 전강이 설명을 마치자 두 청의노인은 일제히 철한빙에게 시선을 돌렸다. 네모 반듯한 얼굴의 노인이 공손히 읍을 하며 말했다. [후배는 화산장문사형의 사제인 손복전이며 이 사람은 왕경풍이라고 합니다. 하 온대 선배님의 존함은 어찌되시는지요!] 철한빙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입술에 떼었다. [노부는 이름을 사용한지가 하도 오래되어 그만 잊어 먹고 말았소. 허허허.... 너무 흉보지 마시지 바라오.] 손복전과 왕경풍은 그가 일부러 이름을 대지 않으려는 것을 알았다. 철한빙이 한차례 너털웃음을 흘린 뒤 재차 입을 열었다. [지금 귀파의 장문인은 뉘시오?] 왕경풍이 약간 경계하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음.. 헌월일검이라 합니다.] [헌원일검?] 철한빙은 짐짓 고개를 가웃거렸다. 손복전이 재빨리 말했다. [장문사형의 성함은 양관승입니다.] 그제서야 철한빙이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 양관승, 그가 벌써 장문인이 되다니 세월은 정말 유수와 같군.] 왕경풍의 눈빛이 빛났다. [선배님께서는 사형을 아시고 계십니까!] 철한빙은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화산대협이 언제인가 노부가 은거한 곳으로 놀러온 적이 있었소. 그때 그의 제자 중에서 양관승이란 제자가 뛰어나다는 말을 들었지.] 그리고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말했다. [한데, 이노제는 지금 지금 어디에 머물고 있나?] 두 사람은 물론 전강 등도 크게 놀라고 말았다. 화산대협은 장문인 헌원일검 사형의 스승이었다. 한데 은의노인이 화산대협을 이노제라고 부르는 것이 아닌가! 또한 화산대협은 이미 작고한 지가 삼십년이 훨씬 넘었던 것이다. 이때 손복전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서...선배님께서는 백여 년 전에 은거하셨다고 제자에게 들었는데 호... 혹시 스승님의 의형이신 무수옹 사백이 아니십니까?] 그러자 멍청해진 사람은 오히려 철한빙이었다. (무수옹? 무수옹이 누군가? 그냥 화산대협이 전대 장문인이라는 것을 알고 그의 이름을 빌어 헌원일검을 만나려고 했는데 정말 화산대협 이진걸에게 얼굴이 알려 지지 않은 의형이 있을 줄이야. 어쨌든 일이 쉽게 풀리는군. 잘만 하면 손에 피 르 �ª▷�히지 않고도 원수를 알아낼 수 있겠구나.) 철한빙은 재빨리 생각을 마치며 짐짓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허어! 그대는 어떻게 노부를 알고 있오? 현 무림에서 노부를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텐데...] 그러자 손복전 등의 안색이 희열에 가득찼다. 이어 두 무릎을 털썩 꿇으며 큰절을 올렸다. [제자들이 사백님을 알현합니다.] 철한빙은 위엄과 자상함이 동시에 깃들은 음성으로 나직이 말했다. [그만들 예를 거두시오. 노부는 인사차례를 싫어하외다.] 사실 옛날의 무수옹도 예절을 무척이나 싫어했다. 철한빙이 하는 말은 은연중에 척척 맞아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는 다섯 사람을 향해 가볍게 소매를 휘둘렀다. 순간 다섯 사람은 한줄기 막강한 장력에 의해 저절로 몸이 일그러졌다. 그들은 철한빙의 무공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일장에 다섯 사람을 일으키�ⅲ¤募� 그것도 두 사람의 일류고수가 끼었는데도 불구 하고 말이다. 왕경풍은 기쁨에 들뜬 음성으로 말했다. [사백님의 공력은 반박귀신의 경지에 도달하셨군요.] 철한빙은 짐짓 손을 내저었다. [허허허.. 그건 과찬의 말씀이외다.] 손복전이 한 걸음 나서며 공손하게 입을 열었다. [사백님, 어찌 제자들에게 경어를 쓰십니까? 제자들은 몸둘 바를 모르겠으니 말 씀을 낮춰 주십시오.] 철한빙이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그렇게 하겠네.] 그리고는 정색을 했다. [자, 노부를 장문인에게 안내해 주겠나?] 손복전이 황송하다는 듯이 고개를 숙였다. [사백님, 제자가 앞장을 서겠습니다.] 말을 마친 뒤 왕경풍에게 말했다. [사제, 속히 사형에게 사백님께서 방문하셨다고 전하게.] 왕경풍은 고개를 끄덕인 뒤 철한빙에게 공손하게 입을 열었다. [사백님, 제자 한 걸음 먼저 가겠습니다.] 철한빙이 인자한 미소를 띠었다. [그럼 수고 좀 해주게.] 왕경풍은 곧 신형을 날려 산위로 날아갔다. 손복전은 그가 사라지자 곧 철한빙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철한빙은 뒷짐을 진 채 한가롭게 걸음을 옮겼다. 뜨거운 차 한잔 마실 시간이 지나자 눈앞에 화산파의 웅장하며 장엄한 건물이 나 타났다. 이때 거대한 대문이 천천히 열리며 헌원일검과 몇명의 인물들이 부리나케 달려오 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철한빙의 앞에 당도한 뒤 일제히 대례를 올렸다. [제자들이 사백님을 뵙습니다.] 헌원일검 등은 허리를 펴며 철한빙의 모습을 살폈다. 그리고는 한결같이 놀라움에 찬 눈빛을 발했다. 헌원일검은 옆에 있는 한 창노한 두명의 청의노인을 소개했다. 오른쪽에 있는 노인은 구십여 세에 달했으며 얼굴은 붉으스름했다. 두 눈에서는 신광이 번득였으며 양쪽 태양혈이 불쑥 튀어 나와 있었다. 왼쪽 노인은 팔십 사오 세 정도였으며 만면에 인자한 웃음이 넘쳤다. 이들은 헌원일검의 사형들로서 장로의 직분에 있었다. 오른쪽 노인은 계철군이며 왼쪽 노인은 방사원이었다. 두 사람은 화산의 진산절예인 태음검법을 화신의 경지까지 연마했다. 이에 강호인들은 두 사람을 가리켜 태을이로라 불렀다. 철한빙은 태사청에 앉은 뒤 헌원일검의 소개로 화산파의 중요인물을 모두 알게 되었다. 두 시진이 지나서야 철한빙은 헌원일검 사형제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장문인, 좀전에 제자들에게 들은 말이 있네만 무명마가 데체 누군가?] 순간 중인들의 안색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헌원일검이 소태를 씹는듯이 입을 열었다. [무명마란 당세 제일의 마두를 말하는 겁니다. 놈은 정파를 쑥밭으로 만든 천하 의 흉악도입니다.] 그리고는 무명마가 저지른 만행을 빠짐없이 설명했다. 마지막 자신이 혈도를 집힌 얘기에 가서는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철한빙은 그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음.. 설운몽이란 젊은 기재가 아깝게 목숨을 잃었구먼. 또한 무명마가 혈비검을 가지고 있다니 무림이 잠시도 편안할 날이 없겠군.] 헌원일검이 재빨리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놈이 숨을 쉬고 있는 한은 무림에 피가 마를 날이 없을 것입니다.] [한데 무명마가 살생을 저지르는 이유가 무림제왕보라고 하는 보와 관련이 있다 고 하는데 그건 또 무슨 말인가?] 헌원일검 등은 동시에 뜨끔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그건..] 철한빙이 다그치듯이 물었다. [그게 뭐냐 말인가?] 헌원일검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실은 무명마가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이십 년 전에 멸망된 무림제왕보의 복수를 한다는 것입니다.] 철한빙이 다시 물었다. [무림제왕보의 복수? 그렇다면 그가 제왕보 사람이란 말인가?] 헌원일검이 고개를 저었다. [자세한 것은 모릅니다. 하지만 그 자가 늙은이라는 점을 토대로 본다면 그때 혈 겁에서 살아남은 인물인 듯 싶습니다.] [한데 그가 왜 정파를 몰살시켰단 말인가?] [...] 헌원일검은 말이 없었다. 아니, 너무도 창피한 일이기에 차마 사실을 말할 수가 없었다. 계철군이 대신 입을 열었다. [사실은 이렇게 된 것입니다.] 계철군은 정사각파가 무림제왕보를 습격해 불사도를 탈취하려던 일들을 자세하게 설명해주었다. 그는 이야기하는 동안 수치심에 입을 다물곤 했다. 철한빙은 속으로 피의 절규를 토했으나 겉으로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있었다. [그래, 화산파에서도 그날 습격에 참가한 인물이 있는가?] 중인들은 낯빛이 창백해지며 한동안 말이 없었다. 철한빙은 그들을 싸늘한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어째서 말들을 하지 않는건가?] 방사원이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제... 제자의 미천한 계승자 놈이 ... 그.. 그만 그 일에 참.. 참가했습니다. 노...놈은 지금 뒷산에 감금되어 이...있습니다.] 철한빙은 빙강이 폭사되는 눈으로 그를 응시했다. [흥! 제자를 어떻게 다스렸기에 천인공노할 만행에 끼어들게 했느냐? 이노제가 살아 있었다면 그는 아마 미처 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방사원을 비롯한 중인들은 등줄기에 식은 땀이 주르르 흘렀다. [사백님, 제자 하나 다스리지 못한 미천한 소인을 벌하여 주십시오.] 그리고는 눈물을 주르르 흘리며 고개를 수그려 버렸다. 철한빙은 그의 모습을 보자 살심이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래, 스승님의 유시대로 용서해 줄 사람은 관대히 용서하자, 아... 이것도 하 늘의 안배란 말인가!) 그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헌원일검에게 다짐받듯이 입을 열었다. [장문인, 그대는 노부를 화산파의 사백으로 인정하는가?] 헌원일검은 깊숙이 머리를 조아렸다. [제자가 어째 인정하지 않겠습니까?] 철한빙이 중인을 둘러보며 차분하게 말했다. [그럼 노부가 과거의 잘못에 대한 책임을 그대들에게 묻겠느니라.] 순간 방사원 등은 사색으로 변했다. [ 4권 끝 ] �各맘�~ 드뎌 4권을 끝냈내여... 이제 3권이...�� 번호:211/227 등록자:HYUN9876 등록일시:97/04/14 00:27 길이:323줄 제 목 : [사마달] 불세마왕경 제 33장 불세마왕경 저자: 사마달 출판사: 대현출판사 제 33장 해괴한 두 괴물 제 34장 기녀월향 제 35장 기구한 운명 제 36장 소혈교 제 37장 락성 제 38장 철저한 음모 제 39장 인피면구 제 40장 오인의 말로 제 33장 해괴한 두 괴물 헌월일검은 얼굴에 비장한 각오를 떠올렸다. [사백님, 모든 것이 제자의 불찰이오니 제자를 벌하여 주십시오.] 그러자 계철군 등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아닙니다. 장문인은 그때의 일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제자들도 비록 뒤늦 게나마 알았으나 그 일에 대한 불찰은 제자들에게 있으니 저희들을 벌하여 주십 시오.] 철한빙은 그들의 외침을 듣고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잠시 후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자들은 듣거라. 노부는 너희들의 노승을 대신해 엄벌을 내려야 마땅하겠으나 서로를 아끼려는 마음과 죄를 뉘우치는 마음가짐에 과오를 묻지 않겠다.] 순간 헌월일검 등의 안색이 환하게 밝아지며 감격의 눈빛을 발했다. [사백님의 성은이 망극할 따름입니다.] 그들은 눈물이 글썽이는 눈으로 철한빙을 응시했다. 철한빙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했다. [너희들에게 이르노니 앞으로 절대로 무명마와 대적지 말아라. 노부가 보건대 그 는 어쩌면 사람이 행하여할 도리를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구나. 다만 너무 많은 살생을 저질렀을 뿐이다. 그리고 무명마는 절대로 화산파를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헌월일검이 두 눈을 휘둥그렇게 치켜 떴다. [옛! 무명마가 찾아오지 않다니, 사백님이 그걸 어찌 아십니까?] 철한빙은 안색을 엄숙하게 바꾸었다. [천기는 누설할 수 없는 법, 하지만 노부가 감히 장담하거늘 무명마는 오지 않을 것이다.] 헌월일검 등은 반신반의했으나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철한빙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장문인, 이제 그만 가보아야겠네. 그리고 노부의 말을 명심하게.] 헌월일검 등은 깜짝 놀라며 급히 만류했다. [사백님, 어찌 이대로 가시려 하십니까? 며칠간 기거하시며 제자들의 곁에 계셔 주시기 바랍니다.] 철한빙은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노부는 장문인 등의 따뜻한 마음을 잘 알고 있네. 이 노제에게 들어서 알고 있 겠지만 노부는 한곳에 오래 머물지 못하는 성미이네. 그러니 만휴하지 말게.] 헌월일검 등은 섭섭함이 가슴에 덮쳤다. 철한빙은 걸음을 옮겨 밖으로 향했다. 헌월일검 등은 심리 밖까지 전송을 나왔다. 철한빙은 그들을 향해 부드럽게 말했다. [자, 이제 그만들 들어가 보게. 차후에 다시 한 번 찾아오겠네.] 헌월일검 등은 깊숙이 허리를 굽혔다. [부디 몸을 보중하시길 바랍니다.] 철한빙은 두어 번 고개를 끄덕인 뒤 서서히 걸음을 옮겼다. 아니, 걸음을 옮기는 것이 아니라 지면에서 일척 정도 떠서 마치 구름처럼 유유 히 흘러가는 것이었다. 다음 순간 철한빙은 번뜩하는 것과 동시에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아.. 사백님은 인간이 아닌 신선이시로구나.] 그들은 동시에 철한빙이 사라진 곳을 향해 대례를 올렸다. 한편 철한빙은 화산파를 떠난 뒤 희비에 엇갈려 있었다. [하늘에 계신 부모님의 영령이시여! 원수를 눈앞에 두고도 용서해준 못난 자식을 마음껏 꾸짖어 주십시오.] 그러자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안개가 낀 듯 몽롱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빙아, 너는 역시 능가의 자랑스러운 기둥이니라. 과오를 뉘우친 원수에게까지 죄과를 묻는다면 너 또한 그들과 무엇이 다르겠느냐? 정말 장하도다.] 철한빙은 가슴에서 들려오는 부모님의 말씀을 스스로 느꼈다. 그는 약간 홀가분해지는 듯하자 하늘을 우러러 길게 장소를 터뜨렸다. [우....!] 마치 용이 승천하며 지르는 듯한 맑은 여음이 길게길게 퍼져나갔다. 그러자 갑자기 서쪽에서부터 두 마리의 용트림이 들려왔다. 철한빙은 공력이 가득 실린 장소를 듣고 무림의 절정고수라는 것을 알았다. 휘익!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두 개의 인영이 낙엽처럼 사뿐이 철한빙 앞에 떨어졌 다. 철한빙은 그들의 신법이 최절정에 달했음을 알고 가볍게 놀랐다. 두 사람 역시 철한빙의 신선같은 모습에 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한 사람은 관옥같이 준수한 얼굴에 섭선을 들고 있었다. 마치 여인을 연상하게 만드는 발그스름한 두 볼, 매끄러운 살결 등은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나이는 삼십 오륙 세 되어보였다. 또 한 사람은 구척 장신에 사람도 아니고 원숭이도 아닌, 얼굴과 소등에 무수하 게 털이 돋아 있는 괴물이었다. 한가지 옷을 입혀 놓았기에 사람이라고 여겨질 뿐이었다. 철한빙은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대체 누루일가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그러나 무림에 이같은 인물들이 있다는 소문은 전혀 듣지 못했다. 섭선을 든 중년인이 철한빙의 아래 위를 훑어 보며 말했다. [당신이 장소성을 발했소?] 철한빙은 그의 목소리가 여인처럼 가냘픈 점에 가볍게 아미를 찌푸렸다. [그렇소만 그대들은 왜 노부의 앞길을 막고서는게요?] 중년인은 섭선으로 왼손을 툭툭 치며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본인 형제는 대체 어느분의 공력이 그토록 심후한가 궁금해서 왔던 것이지 당신 의 앞길을 가로막은 것은 아니오.] 철한빙은 그를 재빨리 쳐다본 뒤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가 두 사람의 길을 막 지나칠 때였다. 갑자기 중년인이 번개같이 섭선을 들어 옆구리의 복결혈을 찔러왔다. 철한빙은 그의 번개같은 초식에 내심 감탄하며 오른손의 손가락중 두 손가락으로 섭선을 가볍게 내리쳤다. 탁! 순간 중년인의 손목이 부러질 듯한 통증을 느끼며 하마터면 섭선을 놓칠뻔했다. 그는 급히 두 걸음 물러선 뒤 경악에 가득찬 눈으로 철한빙을 바라보았다. 철한빙은 천천히 몸을 돌려 그에게 말했다. [귀하의 초식은 비록 정확하고 빠르긴 하지만 운용의 묘를 살리지 못하는 것같고 소.] 이어 중년인이 펼쳤던 수법을 손을 대신해 가볍게 전개했다. 그러자 수십개의 손 그림자가 직선으로 뻗어나갔다. [아앗!] 중년인은 대경실색하며 계속 뒷걸음질 쳤다. 그리고는 손을 들어 철한빙을 가르켰다. [다.... 당신은 어떻게 본인의 독문절예를 알고있소?] 철한빙은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귀하가 가르쳐 주지 않았소?] 중년인은 멍청해지고 말았다. [아니! 본인이 언제 당신에게 가르쳐 주었단 말이오? 당신과 나는 오늘 처음보는 초면이 아니오?] 철한빙은 또 다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귀하가 조금 전에 가르쳐 주었거늘 어찌 능청을 떠시오?] 순간 중년인은 깨닫는 것이 있었다. 그는 혼비백산한 표정을 지으며 경악에 찬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그.. 그럼 당신은 본인이 펴...펼친 수법을 보고 알았단 말이오?] 철한빙은 천천히 고개를 끄�━？눼�. 중년인은 세차게 고개를 내저었다. [그럴리가 없소! 신이 아닌 다음에야 어찌 잠깐 본 초식을 익힐 수 있단 말이오? 하물며 당신은 초식의 심오한 점까지 알고있지 않소? 그것만 보더라도 족히 오륙 년은 연마했을 것이오.] 철한빙은 안색을 고치며 차분하게 말했다. [귀하는 조금 전에 펼친 초식이 독문절예라고 하지 않았소? 한데 노부가 알고 있 다면 어찌 독문절예라 할 수 있겠소.] 그러자 중년인은 의혹에 가득찬 시선으로 철한빙을 주시했다. 철한빙은 그가 믿지 않는 듯 하자 넌지시 입을 열었다. [귀하가 정히 못믿겠다면 또 다른 초식을 펼쳐 보시오.] 중년인은 급히 심신을 안정시켰다. [좋소. 하지만 이번에는 조심하시오.] 동시에 섭선을 쫙 펼치며 철한빙의 전신대열을 노려갔다. 철한빙은 사방에서 밀려오는 듯한 수많은 섭선의 환영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순간 그의 몸이 번뜩이는 듯 싶자 자리에서 유령처럼 사라져 버렸다. [앗!] 중년인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급히 신법을 전개해 옆으로 미끄러졌다. 그리고는 철한빙이 서 있던 자리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때 등 뒤에서 철한빙의 잔잔한 음성이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중년인은 혼백이 달아나도록 놀라며 재빨리 몸을 돌렸다. 그곳에는 철한빙이 여유있는 동작으로 뒷짐을 지고 빙그레 웃고 있었다. [귀하의 초식은 일반 초식과는 아주 딴판이구려. 노부는 하마터면 아까운 옷이 상할 뻔 했소이다.] 그는 말을 마친 뒤 한 걸음 앞으로 다가섰다. [귀하의 섭선을 잠시 빌려 주시겠소?] 중년인은 넋나간 듯이 섭선을 넘겨주었다. 철한빙은 섭선을 들고 잠시 내려다보았다. 옥으로 살을 만들었고 비단도 아니고 그렇다고 종이도 아닌 천으로외어 있었으며 양면에는 산수화가 그려져 있었다. 철한빙은 천천히 섭선을 들어 올렸다. 이어 재빨리 조금전에 중년인이 펼친 초식을 펼쳤다. 순간 마치 소나기와도 같이 수많은 섭선의 환영은 어찌 보면 장관을 이룰 정도였 다. [아..!] 중년인은 기가 질린 듯 가볍게 입을 벌리며 탄성을 발했다. 지금가지 한 마디 말도 없이 무표정하던 괴인조차 경악의 눈빛을 발해냈다. 허공을 가득 매웠던 섭선의 환영이 삽시간에 사라지며 철한빙의 목소리가 들려왔 다. [어떻소? 이젠 조부의 말을 믿겠소?] 중년인은 급히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는 낙심천만한 표정을 지으며 괴이하게 말했다. [탁형, 우리 형제가 원대한 웅지를 품고 중원을 찾아 왔는데 허황된 웅심인 것 같소. 일찍이 중워누림에 기인이사가 많다고 들었지만 이같은 줄은 정말 몰랐구 려.] 그러자 괴인은 화등잔만한 두 눈을 크게 부릅뜨며 떠듬떠듬 입을 열었다. [노..노제, 어찌 노제답지 아.. 않게 벌써부터 시..실망을 하는가? 저 노인이 비.. 비록 범상치 않다고 하나 아... 아직 제대로 초... 초식을 겨루지 않았지 아...않은가? 그러니 미리부터.. 낙담할 필요는 어..없다고 보네.] 그는 말하기가 몹시 힘겨운 듯 간신히 입을 덴 후 느릿느릿 철한빙에게 다가갔 다. [노... 노인장, 우리 혀..형제는 노인장의 신선같은 재지에 가..감탄했소. 우.. 우리 형제는 머...멀리 변방에서 와..왔소.] 철한빙은 담담한 감이 들었으나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결..결론만 말한다면 노.. 노인장과 기예를 겨루고 싶소.] 철한빙은 그가 생김새와는 달리 상당히 온순하다고 생각했다. [좋소. 멀리서 오신 분을 맞지 않는다면 예의가 아닐것이오.] 괴인은 구척의 몸을 구부렸다. [고..고맙소.] 싸움을 청해 놓고 고맙다고 하니 어찌 보면 우습기도 했다. 철한빙은 여유있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어느 분께서 먼저 나서시겠소?] 중년인이 재빨리 앞으로 나섰다. [본인이 먼저 당신의 절학을 가르침 받겠소.] 철한빙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향해 섭선을 던졌다. [귀하의 섭섭을 돌려주리라.] 섭섭은 지극히 느린 속도록 중년인에게로 날아갔다. 중년인은 관옥같은 얼굴을 찌푸리며 손등을 위로 하여 섭선을 움켜쥐어갔다. 순간 한 줄기 막강한 잠력이 섭선으로부터 퉁겨져 나왔다. [....!] 중년인은 속으로 헛�ぃ‰汰� 발한 뒤 급히 공력을 손으로 집중시켜 섭선을 움켜쥐 었다. 그러나 철한빙이 대수롭지 않게 던진 섭선을 받아쥔 그는 전신을 한 차례 떨었 다. 그리고는 연속 두 걸음이나 물러서서야 신형을 안정시킬 수 있었다. 중년인은 내심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들의 무공이 비록 천하무적은 못 되었으나 그래도 변방에서는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그런데 철한빙이 가볍게 던진 섭선조차 제대로 받아내지 못하자 자신의 무공에 회의를 느꼈다. [음.. 저 노인의 공력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고강하다. 우리 두 사람이 동시 에 덤빈다고 해도 이길 수 있을지가 의문인데 하물며 나 혼자서는 계란으로 바위 를 치는 격일 뿐이다.] 그는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은연중에 전의를 상실하고 말았다. 그러나 다음 순간 변방 사람들 특유의 오기가 솟구쳐 올랐다. ----죽으면 죽었지 상대에게 나약한 점을 보이지 않는다. 중년인은 섭선을 굳게 움켜 쥐며 비장하게 입을 열었다. [본인은 당신의 상대가 아님을 익히 알고 있소. 하지만 당신의 초식을 받아보고 싶소. 자, 초식을 받을 준비를 하시오.] 철한빙은 서서히 뒷짐을 풀었다. 동시에 중년인의 입에서 우렁찬 기합이 터져나왔다. [조심하시오!] 순간 태산을 압도할 듯한 위맹한 강풍이 철한빙을 휩싸버렸다. 번호:212/227 등록자:HYUN9876 등록일시:97/04/14 00:27 길이:724줄 제 목 : [사마달] 불세마왕경 제 34장 불세마왕경 저자: 사마달 출판사: 대현출판사 제 34장 기녀월향 그는 표효장형보법을 전개해 강풍을 피해내며 신형을 허공으로 솟구쳤다. 중년인은 또 다시 대갈일성한 뒤 섭선을 솟구쳐 올렸다. 또한 섭선을 펼치는 동시에 몸을 허공으로 띄우며 왼손을 기묘하게 휘둘렀다. 철한빙은 섭선과 장력을 동시에 대하자 상대방의 초식에 가볍게 놀랐다. 그는 재빨리 일장을 맞받아치는 한편 오른손을 쭉 뻗어 섭선을 움켜쥐어갔다. [헛!] 중년인은 헛바람을 토한 뒤 몸을 두어 번 맴돌았다. 이어 섭선으로는 천령혈을 노리며 왼소으로는 투골지를 퉁겨냈다. 철한빙은 지풍의 위력이 바위라도 뚫을 듯한 기세로 쏘아오자 가볍게 소매를 휘 둘렀다. 그러는 한편 왼쪽 발을 뻗어 섭선을 차나갔다. 실로 교묘하기 짝이 없는 한 수였다. 중년인은 투골지가 무형 중에 해소되고 섭선은 상대의 발에 차여 날아갈 듯한 위 기를 맞자 급히 천근추를 사용해 밑으로 떨어졌다. (역시 노인의 무공은 범상치가 않구나. 그렇다면 할 수 없이 삼초를 펼쳐야만 되 겠다.) 재빨리 생각을 굴린 중년인은 섭선을 쫙 펼쳤다. 그러자 그곳에서부터 산악과도 같은 삭풍이 빛살같이 쏘아져 나갔다. 중년인의 독문절기인 섭풍십팔기 중에서 십오식까지 받아낸 사람이 없을 정도의 절세기예였다. 철한빙은 갑자기 섭선의 초식이 살초로 변하자 일시 당황했다. 또한 오금의 전기를 들어 마신 뒤 여유있게 대항해 나갔다. [사영분광!] [함주장표!] 중년인의 입에서 호통이 터질 때마다 수많은 살풍이 눈을 현혹시켰다. 또한 전신을 얽어멜 듯한 무형의 강기가 철한빙의 주위를 감싸고 돌았다. 난무하는 흙먼지, 무수한 풀부리들이 시야를 가렸다. 철한빙은 상대방의 공세가 이외로 강경하자 감히 태만하지 못했다. 그는 칠성의 방위를 역으로 밟으며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며 간간히 초식을 펼 칠 뿐이었다. 두 사람의 격전은 저�ħ� 극도에 달하기 시작했다. 철한빙은 상대와 평수를 유지하려고 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선풍십팔식의 초식 이 막강해지자 생각을 달리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적혈비급에 적혀 있는 초식 중 정천립지의 초식으로 당새의 손목을 후려쳐 갔다. 동시에 일로의 금나수법으로 빛살보다 빠르게 섭선을 낚아채 버렸다. [헉!] 중년인은 상대가 손목을 후려쳐오자 대경실색을 하며 급히 한 걸음 물러섰다. 그러나 다음 순간 섭선을 쥐었던 손이 허전해지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란 그는 재빨리 섭선을 쥐었던 손으로 시선을 던졌다. [아니!] 중년인은 망연자실하며 철한빙에게 시선을 던졌다. 철한빙은 한 손을 뒷짐 지고 있었으며 나머지 한 손에는 자신의 섭선을 들고 있 는 것이 보였다. 중년인은 그만 고개를 푹 수그리고 말았다. [졌소.] 그의 목소리는 시무룩했으며 전혀 기운이 없었다. 철한빙은 천천히 걸음을 옮겨 중년인 앞으로 다가섰다. [노부는 재수가 좋아 일초의 승리를 거두었을 뿐이오. 그러니 너무 언잖게 생각 하지 말기 바라오.] 하며 섭선을 건네주었다. 중년인은 감격에 겨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섭선을 받아 쥐었다. 이때 한쪽에 서 있던 괴인이 육중한 몸을 움직여 느릿느릿 다가왔다. [노....노인장 역시 무공이 비범하기 짝이..... 없구려. 이제 저.. 저에게 가르 침을 주...주시기 바랍니다.] 이어 양다리를 조금 벌리고 태산같이 우뚝 버티고 섰다. 철한빙은 그의 철탑같은 모습을 보고 속으로 헤아리고 있었다. (저 사람은 필시 대단한 실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혹시 그가 철포삼과 같은 외문무공을 지녔다면 상대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을 것이다.) 철한빙은 재빨리 염두를 굴린 뒤 천천히 수비 자세를 취했다. [귀하께서 먼저 공격을 하시오.] 괴인은 사양하지 않고 솥뚜껑만한 손을 지극힌 느린 속도로 들어올렸다. 그의 신법은 체구와는 달리 유연하기 짝이 없었다. 철한빙은 제자리에 우뚝 선 채 허공에 떠 있는 괴인을 응시하며 공력을 십성으로 끌어올렸다. 괴인은 허공에서 한 바퀴 맴돈 후 곧장 철한빙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받으시오!] 순간 전신을 갈가리 찢어버릴 듯한 무시무시한 장력이 철한빙을 짓눌러 왔다. 철한빙은 쌍장을 허공으로 뻗어 적혈장으로 마주쳐갔다. 콰르르릉! 엄청난 폭음과 함께 흙먼지가 회오리 쳤다. 손에 땀을 쥐며 관전을 하고 있던 중년인은 장풍의 여력에 연달아 뒷걸음질을 쳤 다. 잠시 후, 흙먼지가 가라앉자 두 사람의 모습이 서서히 나타났다. 철한빙은 두 발목이 땅 속에 깊숙이 파묻혀 있었다. 그러나 안색은 여전히 평온했다. 반면 괴인은 전신을 가볍게 떨며 봉두난발을 하고 있었다. 또한 입가에 가느다란 선혈을 머금고 있어 가볍지 않은 내상을 입은 것 같았다. 그는 떨어지지 않는 입을 간신히 벌리며 띄엄띄엄 말했다. [져..졌소.] 철한빙은 천천히 발목을 빼내며 위엄있게 입을 열었다. [아니오. 귀학가 패했다고 볼 수 없소. 노부도 땅 속으로 깊이 박혔으니 승부를 가리기엔 이르외다.] 괴인은 감격에 찬 눈빛을 발한 뒤 중년인을 바라보았다. [노...노제, 우..우리가 중원에 오기 전에 맹...맹세한 것을 실천에 옮길 시기가 되... 된 듯하네.] 그러자 중년인은 심각하게 낯빛을 고쳤다. 이어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괴인의 옆에 다가섰다. 두 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했다. 그들은 똑같이 땅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철한빙을 향해 큰절을 하는 것이 아닌가! [소인들이 주인님을 뵈옵니다.] 철한빙은 이들의 급작스런 돌변함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는 급히 옆으로 비켜서며 당황한 듯이 말했다. [두 분 왜 이러시오? 주인이라니 그건 또 무슨 말이오?] 두 사람은 그가 절을 피하자 다시 그쪽으로 몸을 옮기며 이구동성으로 합장하듯 이 입을 열었다. [소인들은 중원에 들어오기 전에 누구든지 우리 의형제를 격퇴 시키는 사람을 평 생동안 모시기로 했습니다. 그러니 소인들의 뜻을 깨지 말아 주십시오.] 철한빙은 크게 난처함을 느꼈다. [이러지들 마시오. 노부는 누구를 거두고 말고 할 자격도 없거니와 또한 그럴입 장도 못되오.] 그러자 두 사람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중년인은 마치 비장한 각오라도 한 듯이 단호한 음성으로 입술을 떼었다. [주인님께서 소인들을 마다하시니 어쩔 수 없군요. 이승에서 모실 수 없다면 저 승에서라도 모셔야 하는 법, 소인들은 먼저 저승에서 주인님을 기다리겠습니다.] 순간 철한빙은 혼비백산 하도록 놀라며 다급하게 말했다. [두 분 제발 소생을 난처하게 하지 마시오. 소생은 아직 나이도 어리고 두 분을 받아 들일만한 재능도 갖추지 못했소.] 두 사람은 그의 말을 들으며 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아니! 연세가 어리시다니? 주인님은 소인들을 놀리고 있군요.] 철한빙은 자신이 실언했다는 것을 깨닫고 내심 고소를 금치 못했다. 중년인의 눈빛이 갑자기 광채를 발했다. [주인님, 혹시 인피면구를 착용하시지 않았습니까?] 철한빙은 그의 심기에 가볍게 놀라는 한편 감탄을 했다. [귀하의 재치는 뛰어나기 그지 없구려. 지금 모습이 진면목은 아니지만 인피면구 는 착용하지 않았소.] 그러자 중년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소인은 역용술에 대해 웬만큼 알고 있으나 주인님은 전혀 역용의 흔적이 없는데 그건 또 어찌된 연유입니까?] 철한빙은 그들이 자신의 진멱목을 본다면 속히 생각을 바꿀지도 모른다는 점에 천면신공을 풀기로 작정했다. [두분께 소생의 진면목을 보여 드리겠소.] 이어 서서히 천면신공을 풀었다. 순간 늙은이의 모습과 백발이 점차 변하기 시작했다. 그의 모습은 눈깜짝할 사이에 진면목으로 돌아왔다. 두 사람은 이같은 신공에 혀를 내둘렀다. 연후, 그의 얼굴을 바라보고는 아연해져 버렸다. 너무나도 준수한 약관은 백면서생, 그들은 도무지 믿을 수가 없는 눈치였다. 철한빙은 그들의 멍해진 모습을 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이게 소생의 진면목입니다. 두 분은 연세도 높으시고 또한 혁혁한 명성을 떨치 실 분들이니 명철한 판단력이 있을 줄 아오. 그럼 이만 실례하겠소.] 두 사람은 급히 무릎을 고 걸음을 옮겨 떠나려는 그의 옷자락을 잡았다. [주인님, 소인들은 한 번 맹세한 바는 죽어도 지키는 성미입니다. 정히 소인들을 물리치신다면 저승에서나마 주인님을 모시겠습니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사혈인 백회혈을 내리쳐갔다. 철한빙은 기질추풍을 하도록 놀라며 황급히 양손을 뻗어 그들의 손목을 움켜쥐었 다. 그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그럼 우리 의형제를 맺읍시다. 그러면 되겠소?] 하나 두 사람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안됩니다.] 간단하면서도 호강스러운 말에 철한빙은 코끝이 찡해졌다. (아... 이 사람들은 변방을 주름잡던 절정고수들이 아닌가? 한데 나이어린 나를 이토록 진지하게 대해 주다니. 그래 어른의 청을 더 이상 마다하면 오히려 그들 을 비웃는 격이 되리라.) 그는 재빨리 생각을 마치며 두 사람의 손을 놓고 입을 열었다. [두 분 이제 일어나시오. 소생 승낙하겠소이다.] 순간 두 사람의 얼굴에 환희의 빛이 떠올랐다. [주인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철한빙은 마주 예를 올린 뒤 두 사람을 일으켰다. [이제 소생은 그대들의 주인으로서 첫번째 명을 내리겠소.] 두 사람은 공손히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소인들은 물불을 가리지 않고 행하겠습니다.] 철한빙은 표정을 엄숙하게 바꾸었다. 철한빙은 신광이 번뜩이는 눈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며 냉엄하게 말했다. [두 분은 소생에게 주인님이라고 부르지 마시오. 만약 이것을 거절한다면 소생은 어쩔 수 없이 두 분 곁을 떠나는 도리 밖에 없소.]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응시하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이내 결심을 굳힌 듯 중년인이 말했다. [주인.. 아니, 공자님 말씀에 따르겠습니다.] 철한빙은 그제서야 안색을 폈다. [한데 두 분의 존함을 어찌 되시오?] 중년인은 아차 싶다는 듯이 재빨리 입술을 떼었다. [소인은 추평해라 하오며 형님은 탁원규라고 합니다.] 이들은 변방에서 유명을 떨치는 천외쌍절이었다. 형인 탁원규는 원숭이와 사람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별호를 대력신원이라고 불렀 다. 의제인 추평해는 반결미랑이라고 불렀다. 추평해는 별호가 말해주듯이 한 달 중에서 보름달은 남자로 변하고 나머지 보름 은 여인의 몸으로 지내는 음양인이었다. 또한 그에게는 한 가지 고질병이 있었으니 남자로 지내는 동안에는 하루에 한번 은 꼭 나체여인을 감상하는 버릇이 있었다. 반면 여인으로 지낼때는 그 반대로 남자의 나체를 보는 버릇이 있었다. 추평해는 자신도 그것을 알고 고질병을 없애려고 무척이나 애를 썼으나 부질없는 것에 그칠 뿐이었다. 한 가지 다행한것은 나체만 감상할 뿐 절대로 관계를 맺지는 않는다는 점이었다. 추평해는 철한빙에게서 사실대로 얘기하며 얼굴을 붉혔다. 그러자 마치 도화꽃을 연상케 하는 아름다운 얼굴이 나타났다. 철한빙은 그의 얘기를 듣고 동정심을 금치 못했다. (음.. 음양인이라고 할지라도 반드시 한 가지 성으로 돌아오게 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내가 틀림없이 그를 구원해 주리라.) 그는 생각을 멈추며 탁원규에게 물었다. [탁형, 상세는 어떠시오? 혹시 많이 다치지 않았소?] 탁원규가 미처 입을 열기도 전에 추평해가 다시 말했다. [공자님, 걱정하시지 마십시오. 형님은 웬만한 상처쯤은 안에서 저절로 치유된답 니다.] 철한빙은 운공조식도 하지 않고 어떻게 내상이 저절로 치유될까 의아한 듯이 생 각을 굴리고 있었다. [탁형, 그게 사실이오?] 탁원규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철한빙은 두 사람 모두 보기 드문 인물임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는 모든 생각을 떨쳐버리며 천천히 입술을 떼었다. [자, 오늘 소생이 한턱 내겠소. 어디 조용한 곳으로 가서 마음껏 듭시다.] 그러자 옆에 철한빙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급히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우하하하..] 탁원규가 귀청이 달아나도록 쩌렁쩌렁한 웃음을 터뜨렸다. 철한빙은 짐짓 두 눈을 부르뜨며 추팽해에게 말했다. [추형의 병을 하루 빨리 고치지 않는다면 소생까지 물들겠구려.] 그는 한 마디 농담을 던진 뒤 두 사람과 함께 몸을 날렸다. x x x x x 진시화, 이곳은 수많은 기방들이 오밀조밀 모여있는 커다란 기생가였다. 철한빙 일행은 진시화에 도착하였다. [소행도 기방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추형이 오자고 해서 오긴 했지만 여인들의 지분냄새에 코를 들 수가 없을 지경이구려.] 추평해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공자님, 잠시만 기다리시면 꽃밭에서 노시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지나가자 수많은 하인들이 저마다 불러 세웠다. 추평해가 그들의 손길을 뿌리치며 철한빙에게 입을 열었다. [공자님 이곳 진시회는 변바에까지 알려진 유명한 곳입니다. 이곳에 있는 기방중 에 옥봉루라는 곳에 절색의 기녀가 있다고 들었는데 그곳으로 가시지오.] 철한빙은 피식 웃었다. [멀리 있었으면서도 알기도 잘 아는구려.] 탁원규가 힘겹게 말했다. [그..그러니깐 반.. 반결미랑 아닙니까?] [하하하핫..] 그 말에 철한빙은 대소를 터뜨렸다. 그러자 나비를 쫓는 수많은 기녀들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다음 순간, [아..] 기녀들은 저마다 앵두같은 입술을 벌리며 다물 줄을 몰랐다. 그녀들은 한결같이 이런 마음에 사로 잡혔다. (세상에 저렇게 멋진 미공자가 있을 줄이야. 저 공자의 품에 한 번이라도 안길수 있다면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겠건만...) 이때, 추평해가 손가락으로 우측의 거대한 누각을 가리켰다. [공자님, 저곳이 옥봉루로군요. 빨리 가십시다.] 그는 안달이 난 듯 급히 걸음을 재촉했다. 그들이 옥봉루 앞에 이르자 안내하는 녀석이 반색을 했다. [어이쿠! 어서들 오십쇼. 정말 손님들께선 풍류를 아시는군요. 진시회 중에서는 저희집이 단연 제일이지요.] 하며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웠다. 그리고는 안을 향해 사람을 불렀다. 곧 이어 전신에 요염한 기가 흐르는 중년 여인이 지분을 잔뜩 바른 얼굴로 모습 을 나타냈다. 그녀는 철한빙과 추평해의 용모에 아랫도리가 후들거리는 것을 느꼈다. [호호호... 손님들 어서 오십시오.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세 사람은 그녀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진한 지분냄새와 악기소리 웃음소리 노래소리 등이 귀가 따갑게 울려퍼졌다. 그리고 방마다 호탕한 웃음소리와 간드러진 여인의 교성이 귓전을 어지럽혔다. [핫핫핫핫..] 철하닝 일행은 어느 깨끗한 방으로 안내되었다. [손님들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곧 아이들을 부르겠어요.] 추평해가 그녀의 손에 한 웅큼의 금전을 쥐어주며 속삭였다. [여보게. 우리 공자님은 특별히 월향이를 보러 오셨네. 그러니 속히 월행이를 이 리로 보내게.] 그러자 중년여인은 손에 가득 넘치는 금전을 마치 대수롭지 않은 듯이 품 속으로 넣으며 말했다. [호호호.. 알겠사와요. 그럼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월향이는 지금 손님을 접대 중이지만 당신네 공자님을 생각해서 특별히 잠시만 보내 드리겠어요.] 그러고는 철한빙에게 애교가 뚝뚝 돋는 추파를 남기고 사라졌다. 추평해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허허.. 공자님 덕분에 소인은 포주에게까지 찬밥을 얻어 먹습니다.] 그의 농담에 철한빙은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철한빙은 기방 출입은 처음인지라 마치 바늘 방석에 앉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탁원규는 추평해를 따라 이런 곳에 많이 와본 듯 무표정한 태도였다. 잠시가 지나자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술상이 들어왔다. 이어 주렴 밖에서 듣느 이의 귀를 즐겁게 하는 꾀꼬리 같은 음성이 들려왔다. [들어가도 좋겠습니까?] 그러자 천천히 주렴이 걷히며 세 명의 여인이 들어와 날아갈 듯이 절을 올렸다. 철한빙은 맨 앞에 있는 여인을 보고 내심 크게 놀랐다. (아.. 이같이 천향국색이 기방에서 썩고 있다니. 정말 아깝구나. 아마 이 여인이 월향인 듯 하구아.) 앞에 선 여인은 기녀로서는 전혀 어울리지 않으리만큼 청순함을 지니고 있었다. 곱게 땋아 올린 부드러운 머리카락, 만지면 터질 듯한 풍만한 몸매 등은 가히 천 하일품이었다. 갓 이십여 세가 되었을까 말까한 나이에 기녀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어떤 위 엄이 깃들어 있는 듯했다. [소녀 월향이 인사 드립니다.] [소녀 국향....] [난향....] 다소곳이 고개를 수그린 그녀들의 모습은 화중왕인 모란꽃을 연상케했다. 추평해가 급히 입을 열었다. [월향아씨, 공자님께 술을 한 잔 권하는 것이 어떻겠소?] 월향은 천천히 고개를 들며 철하닝의 곁에 가서 조심스럽게 앉았다. 이어 그의 얼굴에 시선을 돌리다가 멍하니 굳어지고 말았다. 철한빙은 역시 가까이서 그녀를 대하자 더욱 아름다움을 느꼈다. 추평해가 월향이를 향해 농담을 던졌다. [허허헛.. 월향아씨께서 공자님의 관옥같은 용모에 넋을 빠뜨리고 있구려.] 순간, 철한빙과 월향이는 동시에 얼굴을 붉혔다. 월향은 섬섬옥수로 술병을 들어 철향빙의 잔에 가득히 따라주었다. 그러자 추평해가 또 입을 열었다. [어허.. 본인이 듣기에는 월향아씨는 절대로 술을 따르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헛 소문인 모양이구려?] 월향의 두 볼은 급기야 홍시처럼 붉어졌다. 그녀는 철한빙의 준수한 용모를 힐끗 바라보며 내심 생각에 잠겼다. (아.. 이같이 잘 생긴 공자님은 평생 처음 대하는구나. 하지만 기녀가 어찌 이분 을 평할 수 있겠는가!) 철한빙은 월향의 몸에서 풍기는 야릇한 내음에 숨이 막혀옴을 느꼈다. 그는 단숨에 술잔을 기울인 뒤 심신을 안정시켰다. 이때, 추평해는 국향이를 옆에 앉히고 뜨거운 눈으로 전신을 훑어 보고 있었다. 만약 철한빙이 없었다면 그는 벌써 그녀를 발가벗겼을 것이다. 철한빙은 급히 그에게 어풍전음술을 보냈다. [추형, 어서 그녀에게 눈을 떼고 심신을 안정시키시오.] 추평해는 그의 전음을 듣고 후다닥 정신을 차렸다. 이어 잠시 눈을 감고 진기를 운용하는 듯했다. 탁원규는 난향이 따라주는 술잔만 두꺼비 파리 잡아 먹듯이 넙죽넙죽 받아 미시 고 있을 뿐이었다. 추펑해는 잠시 후 마음이 진정된 듯 국향을 향해 말했다. [낭자, 술이 있고 미인이 있는데 흥취를 돋구는 노랫가락이 없어서야 말이 되겠 소?] 그러자 국향은 생긋이 미소를 지은 뒤 한쪽 벽에 있는 거문고를 가져야 현을 퉁 기기 시작했다. 이어 무릉도원의 아름다운 새가 지저귀듯이 노래를 불렀다. [십분 꼬다운 술은 님의 입맛을 돋구고 한 조각 맑은 얼음 손이 어는 듯 차게..] 그녀의 노랫소리는 듣는이의 마음을 절로 취하게 만들었다. 띠땡! 띠땡! 거문고의 여음이 길게 울리며 노래가 끝났다. 추평해가 두어 번 박수를 친 뒤 즐겁다는 투로 말했다. [좋소. 좋아, 정말 천상의 선음이오.] 이번에는 난향이가 거문고를 받아 들고 가볍게 현을 퉁겼다. [해마다 천금같은 귀한 술을 보내주고 얼음이며 진수까지 곁들여서 보냈다네. 님 향한 일편담심 변할 줄이 있으랴만..] 난향의 노랫가락 역시 듣는 이의 심금을 울리는 애절한 곡조였다. 그녀의 노래가 끝나자 중인들은 일제히 잔을 들어 권배를 했다. 국향이 월향이를 향해 넌지시 말했다. [언니는 오늘 어쩐 일이세요? 술을 권하는가 하면 또한 마시기까지 하니 아무래 도 공자님께 반하신 모양이에요.] 순간 월향은 귀뿌리까지 빨개진 얼굴을 감추지 못하며 국향을 흘겨 보았다. 그리고는 옆에 있는 월금을 가볍게 탄주했다. [추수하고 촌스러운 이내 몸 그 누가 바아주랴. 오직 공만이 좋아하고 감싸주네, 함께 술잔 기울이니 풍류 아름다왔고 구슬픈 곡조 들려주니 육신의 때 녹아 없어 지네.] 마치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듯한 구슬픈 곡조였다. 월향은 월금을 가볍게 내려놓았다. [하핫.. 정말 아름다운 음에 멋들어진 구슬픈 사연이 담긴 듯한 가락이오. 이번 에는 본인이 시 한 수를 선사하겠소.] 추평해가 통쾌학 웃은 뒤 천천히 시를 낭송했다. [창자는 말라 진한 술 마셔 취하고 눈은 어두워도 미인만 주시하네. 하늘과 땅은 모두 두 시가 속에 오르내리고 세월은 부질없이 술잔 가운데 흐르누나.] 국향과 난향이 가볍게 박수를 친 뒤 추평해에게 말했다. [하하핫.. 여깃 추평은 풍류운사외다.] 탁원규가 질세라 한수 읊었다. [불이 기생집을 다 태워도 어찌하여 꺼줄 사람없었나, 내 만일 젊은 시절이라면 머리 타는 것도 겁내지 않았으리.] �괩교ず昰� 그가 해학적인 싯귀를 읊자 엄지 손가락을 추켜 세웠다. [이제보니 탁형께서는 시선을 능가할만한 실력을 가졌구려.] 탁원규 옆에 있던 난향이 그의 술잔에 술을 따르며 짐짓 아양을 떨었다. [어머! 소녀는 대가께서 풍채만 좋으신 줄 알았는데 시에도 깊은 조예가 있으셨 군요?] 탁원규는 통쾌한 듯이 웃어 제친 뒤 철한빙에게 말했다. [공자님께서도 한 수 읊으심이 어떻겠습니까?] 철한빙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이어 낭랑한 목소리로 읊조리기 시작했다. 꽃다운 술은 응당 푸른 상수요, 세 명의 미인은 붉은 위화로세. 시는 실정에 맞아야 좋은 것이요, 술은 적당히 마셔야 즐겁노니라. 여기서 위화라는 것은 모란꽃의 이명인데 곧 미인의 아름다운 자태에 비유한 말 이었다. 철한빙은 세 명의 기녀를 화중앙과 연관 시킨 시였다. 그의 시가 끝나자 박수 갈채가 터져나왔다. 탁원규가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로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역시 우리들의 공자님답습니다. 최...최곱니다. 최고!] 국향과 난향 또한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공자님의 싯귀야말로 옛날에 두보가 살아난다해도 기겁을 하고 달아날 거예요.] 철한빙은 그들이 계속 추켜올리자 계면쩍은 표정을 지었다. 월향이 지극히 낮은 음성으로 속삭이듯이 입을 열었다. [공자님께서 미천한 소녀들을 화중왕에 비유해 주시다니 송구스럽기 짝이 없습니 다.] 철한빙은 정색을 하며 진지한 어조로 입술을 떼었다. [낭자, 소생은 절대로 과장하지 않았소. 아니, 오히려 화중왕이란 표현이 부족할 지경이오.] 월향은 기쁨과 부끄러움을 동시에 느끼며 고개를 수그리고 말았다. 추평해가 잔을 높이 올렸다. [자, 자, 모두 건배합시다.] 그러자 탁원규가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건배!] 그들은 단숨에 술잔을 비운 뒤 주거니 받거니 했다. 철한빙 등의 주량은 대단했으나 술에는 장사가 없는 법, 그들은 천천히 취기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철한빙은 실로 오랜만에 통음을 했는지라 정신이 띵해지며 취기를 감당하지 못했 다. 추평해가 허꼬부라진 소리로 중얼중얼 거렸다. [세...세 분 낭자, 술.. 술잔이 비었소. 어서 한 잔 가득...] 그는 몽롱한 눈을 억지로 치켜뜨며 몇마디 한 뒤 술상에 엎어지고 말았다. 때르 �ªː걋鎌臼� 철한빙과 탁원규도 술상에 엎어지며 골아 떨어지고 말았다. [어멋! 너무 과음을 하셨나봐.] 국향과 난향은 가볍게 놀라며 그들은 흔들었다. 그러나 마음이 통하는 장부들끼리 마음을 풀어놓고 마신 그들은 이미 술의 포로 가 된채 간금되고 난 뒤였다. 월향은 맑은 눈망울로 바라다보며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x x x x x [으으으음!] 철한빙은 천천히 술에서 깨어났다. 순간, 머리가 빠개지는 것 같이 쑤시며 눈이 쓰려왔다. [엇!] 그는 자신이 침상에 누워 있음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니! 나는 분명히 술상에 엎어져 정신을 잃은 것 같은데 어째서 침상에 누워 있는 것일까?) 그러는 한편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는 또 다시 가볍게 놀랐다. 자신이 누워 있는 침상은 여인의 침상인 듯 그윽한 여인의 향기가 풍겨나오고 있 었다. 또한 침상 옆에 있는 여인의 옷들이 이방이 처녀의 규방이라는 것을 저절로 느끼 게 했다. 그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급히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순간 급작스레 몸을 일으킨 그는 머리가 띵 하며 천정이 빙글빙글 돌았다. [아..] 철한비은 다시 침상에 주저앉아 몇번 심호흡을 했다. 그러나 워낙 심한 폭음을 한지라 쉽사리 취기가 가시지 않았다. 그는 침상 옆을 둘러본 뒤 물병을 찾아 몇모금 마셨다. 조금 정신이 맑아지는 듯했다. (이방은 대체 어느 규수의 방일까? 그리고 추평해와 탁원규는 어디로 갔지?) 그는 그들을 찾아 보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는 한편 이방의 주인에게 인사라고 드리고 떠나야 겠다는 생각도 가졌다. (어쩌면 추평해가 나를 이곳으로 옮겨온지도 모르겠구나. 한데 하필이면 왜 여인 의 규방으로 데리고 왔을게 뭐람!) 그는 한편으로는 이렇게 생각했다. 철한빙은 침상에 앉은 채 취기를 몰아내기 위해 취련무아심법을 운용했다. 잠시 후 그의 머리에는 네 개의 홍색, 황색, 녹색 등이 차례로 머리 위에 자리잡 았다. 그의 심법이 또 한층 진보되었음을 알 수가 있었다. 이때, 소리없이 문이 열리며 침상에 선녀같은 절대적인 미인이 들어왔다. 그녀는 침상으로 시선을 돌리자 기절초풍을 하도록 놀라고 말았다. (아.. 저건 대체 무슨 운공조식의 방법이란 말인가? 저러한 운공조식이있다는 것 은 도무지 금시초문인데 더군다나 무공을 전혀 모르는 줄만 알았던 저분이 상승 의 수법을 운용하다니...) 절세미인은 옥봉루의 기녀인 월향이었으며 이방은 바로 그녀의 방이었다. 철한빙은 운공조식이 절정에 달한 듯 네 가지 열롱한 색깔을 온통 방안을 비추기 시작했다. 다음 순간 녹색이 회전을 시작한 뒤 한 줄기 가느다란 실같이 변해 그의 코 속으 로 들어가 버렸다. 나머지 세 가지 빛깔도 곧 사라지고 말았다. 때를 같이하여 철한빙이 두 눈을 번쩍 떴다. 순간 그의 두 눈에서 무쇠라도 녹여 버릴 듯한 강렬한 신광이 뻗어나왔다. 그러나 이내 사라져 버렸다. 신광이 사라지자 전혀 무공은 연마하지 않은 일개 서생이 평범한 눈으로 돌아왔 다. 다만 틀린 것이 있다면 그의 눈은 지극히 맑고 지혜가 충만해 있다는 점이었다. 철한빙은 조식을 마치며 일어나려다가 월향을 발견했다. 그는 크게 당황하며 황급히 침상에서 내려왔다. (이방은 월향의 방이었구나!) 철한빙은 그제서야 깨달았으며 안절부절을 못하며 포권을 했다. [낭자, 정말 죄송하게 됐소.낭자에게 추태를 보인 듯 하구려.] 월향은 얼굴을 붉히며 지극히 작은 소리로 말했다. [아니예요. 오히려 소녀의 누추한 방에 모신 것이 죄송스러울 뿐이예요.] 철한빙은 냉막한 얼굴 한편으로 얼굴을 붉히며 입을 열었다. [소생은 술에 취해 쓰러진 뒤 정신을 잃었는데 낭자가 이곳으로 데려온 듯 하구 려. 정말 뭐라고 사과와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철한빙은 정색을 하며 물었다. [낭자, 그런데 추형과 탁형은 어디로 갔소?] 월향은 꾀꼬리가 지저귀듯이 청아한 옥음을 흘려냈다. [두 분께서는 딴 방에서 주무시고 계십니다.] [오! 그들도 소생처럼 술에 취했던 모양이구려.] 월향은 고운 눈망울로 그를 응시했다. [그들은 먼저 술에 취하시고 공자님은 그 뒤에 정신을 잃으셨는데 기억이 나지 않으시는 모양이죠?] 철한빙은 멋적게 웃었다. [글쎄, 통 기억이 없구려.] 이어 약간 불안한 듯이 물었다. [낭자, 호...혹시 무슨 실수를 저..저지른 것은 없었소?] 월향이 다소곳이 미소를 지었다. [공자님 같은 정인군자께서 실수를 하신다는것은 있을 수 없는일이 아니겠어요?] 순간 철한빙은 소태를 씹은 듯이 입안이 떨떠름해졌다. [허허허.. 낭자께서는 소생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것 같소.] 월향은 좌측 창가에 있는 탁자를 가리켰다. [두분이 일어나시면 연락을 해달라고 하인들에게 시켜 놓았아요. 그러니 그분들 이 깨어나실 동안 좀 쉬도록 하세요.] 철한빙은 며천 망설이다가 의장에 앉았다. 창밖에는 급왕지절을 알리는 온갖 꽃과 새들이 한가롭게 한들거리고 있었다. 철한빙은 자신도 모르게 찬탄이 터져나왔다. [아름다운 화원이요. 마치 신선도를 방불케 하는구려.] 월향은 창밖의 날아가는 새를 보며 얼굴 가득히 알 수 없는 우수의 빛을 띠었다. [몸은 진흙에 묻혔으나 마음은 상아를 향하누나.] 번호:213/227 등록자:HYUN9876 등록일시:97/04/14 00:28 길이:454줄 제 목 : [사마달] 불세마왕경 제 35장 불세마왕경 저자: 사마달 출판사: 대현출판사 제 35장 기구한 운명 철한빙은 그녀의 얼굴을 주시하며 의혹에 잠겼다. (음.. 역시 이 여인은 무슨 말못할 사정으로 기방에 몸을 담은 듯 하구나.) 월향은 살며시 두 손으로 턱을 괴며 넋을 잃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철한빙은 잠시 망설이는 듯 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낭자, 소생이 보기에는 낭자는 이런 곳에서 적을 둘 여인이 아닌듯 싶은데 어째 서 이런 곳에 몸을 담고 있소? 혹시 무슨 곡절이라도 있소?] 월향은 움찔하는 듯 하더니 시선을 그에게 돌렸다. [공자님의 안력은 고명하기 짝이 없군요. 소녀가 이곳에 있는 목적은 의인을 구 하고자 함이예요.] [의인?] [예. 소녀는 이곳에 머문지 삼 년이 되었어요. 소녀의 뜻에 부응해 줄 사람은 아 직 찾아내지 못했었어요.] 철한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의인을 구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오. 그런데 그 이유는 어디에 있소?] 월향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소녀는 원래 나천성에 이름난 대부호의 딸이었어요. 한데 어느날 갑자기 저희 집에 어떤 교파의 당주라는 인물이 찾아 왔어요.] [교파라니? 무슨 교를 말하는 것이오?] [나천성 일대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색혈교라는 교파예요.] 철한빙은 색혈교라는 말에 언젠가 취몽재개에게 들었던 말을 또올랐다. [색혈교는 녹림의 무림들로서 약탈과 노략질, 강간등을 일삼는 흉폭한 집단이라 고 협박을 가했어요. 아버님은 대노하시어 당장 그에게 축출형을 내리셨어요.] 철한빙은 입술을 꼭다물고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러자 당주라는 사람은 음침하게 웃은 뒤 나중에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사악하 게 말한 뒤 돌아가 버렸어요.] 그녀는 잠시 말을 끊고 길게 한숨을 뽑아낸 뒤 다시 입을 열었다. [그 뒤로 한 달 동안은 아무 일 없이 지나갔어요. 저희 식구들은 그때의 일을 점 차 잊고 즐거운 나날을 보냈어요. 한데 또 다시 한달이 지나가자 나천성주의 칙 사가 찾아왔어요. 칙사는 성주가 보낸 공문을 중얼거린 뒤 저희집 재산을 국고로 압수 한다고 말했어요.] 철한빙은 재빨리 물었다. [아니! 공문에 뭐라고 적혀 있기에 불문곡직하고 개인의 재산을 국고로 돌린단 말이오?] 급기갸 월향의 맑은 두 눈에 이슬이 고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원통하다는 듯이 말했다. [공문에는 아버님의 재산이 타인의 재산을 강제로 뺏은 것이라 적혀 있었어요. 또한 아버님은 재산을 믿고 장정들은 물색해서 성주를 몰아내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어처구니 없는 내용이었어요.] 철한빙은 넌지시 입을 열었다. [낭자의 아버님께서 정말 그런 분이셨소?] 월향은 처절하게 웃었다. [아버님은 나천성 일대에세 생불이라고 불리실 정도로 착하신 분이셨어요.] 철한빙은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렇다면 성주가 고의적으로 그런 날조를 한 것이로구려.] [그래요.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색혈교주와 암암리에 결탁해서 아버님의 재산을 송두리째 삼키려고 했던 것이예요.] 철한빙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럴 것이오. 색혈교주가 나천성주를 꾀어 재산을 분배하라는 명목 아래 그의 흉계를 꾸몄을 것이오.] [공자님의 말씀이 맞아요. 아버님은 노발대발하시며 공문은 누군가의 훙꼐에 의 해서 날조된 것이라고 하셨어요. 그러자 칙사는 나라에 대한 불신임과 모반의 조 짐이 있다고 소리치며 관졸들을 시켜 관아로 압송해 갔어요. 소녀는 그때 어려서 자세한 내막은 몰랐으므로 그냥 멍청하게 있었어요. 어머님과 오라버님은 대성통 곡을 하시며 하늘을 원망했어요. 그 이튿날 관아의 사람들이 밀어 닥쳐 집안의 모든 식구들을 쫓아내 버렸어요. 하인들은 저마다 눈물을 뿌리며 뿔뿔이 헤어졌 어요.] 철한빙은 두 눈에서 살기를 떠올리며 주먹을 불끈 지었다. [천하에서 악독한 놈! 권세를 악용해서 선량한 백성을 도탄에 빠뜨리다니 정말 죽일 놈들이구너.] 월향은 눈물을 주르르 흘리며 계속 말을 이었다. [하루 아침에 길거리에 나앉은 저희 세 식구는 마른 하늘에 청천벽력을 맞은 듯 이 하늘이 노래졌어요. 저희들의 처지를 동정한 성내의 주민들이 번갈아 가며 숙 식을 제공해 주었어요. 그러나 이 사실이 곧 성주의 귀에 들어가자 성주는 만일 저희 가족을 먹여 주거나 제워주는 사람은 삼족을 멸한다는 명을 내렸어요. 이에 저희들은 눈물로 허기를 채우고 원한을 베개삼아 하루하루를 보냈어요. 그런데 그만 또 다시 날벼락이 떨이족 말았아요.] 철한빙은 두 눈이 뻘겋게 충혈된 채 정신을 가늘게 떨었다. (아...아니 낭자의 신세는 어쩌면 나보다 더욱 비참했겠구나.) 월향은 비단 수건을 꺼내 간간이 눈물을 훔치며 계속 말을 이었다. [그것은 옥중에 계시던 아버님께서 병사하셨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예요. 저 희들은 한가닥 믿었던 희망마저 꺼져버리고 말았어요.] 그녀는 눈물을 짓씹으며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아버님이 병사하신 뒤 어머님께선 그만 화병으로 몸져 눕고 말았어요.] 철한빙은 하염없이 흐르는 그녀의 구슬같이 맑은 눈물을 바라보았다. [저런! 그래 어디 친척 집이라도 찾아 가셨소?] 월향은 고개를 두어번 힘없이 가로 저었다. [아버님께서는 구대독자셨기 때문에 친척이라고는 한 사람도 없었어요.] 철한빙은 그녀의 처지에 동정을 금치 못했다. [그러 어머님은 어찌 되었소?] [저희 남매는 어머님을 다 쓰러져 가는 싸당으로 모신 뒤 정성으로 간호해 드렸 어요. 의원을 찾아가려고 해도 은전이 없고 또한 은전이 있다 손치더라도 어머니 르르 치료해 줄 의원은 아무도 없었어요.] [어머님은 비가 억수같이 퍼붓는 어느날 저녁에 저희 남매의 손을 꼭 잡으시며 피맺힌 한을 기필코 갈으라고 하시며 조용히 누늘 감으시고 말았어요.] 그녀는 여기까지 말한 뒤 오열을 터뜨리고 말았다. [흐흐흑...!] 철한빙 역시 눈앞이 뽀얗게 가려졌다. 월향은 입술을 악물고 오열을 참으며 억지로 말을 이었다. [오라버니는 어머님이 돌아가시자 이성을 잃으시고 짐승같이 울부짖으며 정신없 이 빗속을 뚫고 어디론지 사라져 버렸어요. 소녀는 목메게 불렀으나 이미 이성을 상실한 오라버니는 영영 돌아오지 않았어요.] 철한빙은 급히 물었다. [그럼 낭자의 오라버니는 아직까지 생새를 모르겠구려.] 월향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후로는 전혀 생사를 알지 못해요.] 그녀는 잠시 말을 끊고 붉디 붉은 혀로 입술을 핥았다. [소녀는 눈물로 어머님을 묻은 뒤 두 번 세 번 복수를 다짐하며 오라버님을 기다 리기 위해 며칠간 사당에서 보냈어요. 그러나 오라버니는 돌아오지 않았어요. 이 에 소년는 그곳을 떠나 방황하게 되었어요. 그 후 세월이 흘러 소녀가 성숙하자 어떤 영감이 떠올랐어요.] 철한빙이 궁금한 듯이 물었다. [영감이란 대체 무엇이오?] [소녀는 온갖 고생을 다 하며 자라던 중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알게 되었어요. 소녀는 일단 원수를 갚으려면 무공이 고강하며 정의에 불타는 무림협객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것은 소녀가 무공은 가지고 있으나 색혈교주와 그 밖에 많 은 악도드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기 때문이었어요.] 철한빙은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소생은 낭자가 고강한 무공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첫눈에 알아 보았소. 한데 영 사는 뉘시오?] 월향은 잠시 주저하는 듯 하다가 말했다. [스승님은 소녀가 방황하던 시절에 우연히 만나게 되었어요. 스승님은 무산신니 라고 하시는 분이세요.] 철한빙은 아직 강호에 견문이 얕은지라 무산신니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무산신니는 불문여승 중 최고의 기인으로 꼽히는 인물이었다. 월향은또 다시 나직하게 말했다. [소녀는 한 가지 결심을 했어요. 기방에 몸을 담아 천하의 영웅호걸들 중 협객을 찾아내자고 말이예요. 그래서 이곳에 몸을 담게 되었던 것이예요.] 철한빙은 그녕의 신세를 듣고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아.. 이 여인의 말을 들으니 아지 �＃♣풉邃蔥朗� 인물을 찾아내지 못한 듯 한데 내가 도와주어야겠구나.) 이에 생각이 미친 그는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낭자를 도와줄 사람을 찾았소?] 어떻게 들으면 부질없는 물음이었다. 월향은 살며시 고개를 숙였다. [아직.. 그런 분을 찾지 못했어요.] [이곳에는 많은 기인협사들이 물려들 터인데 그 많은 사람들 중에 그런 인물이 없었단 말이오?] 월향은 살포시 고개를 치켜들며 맑은 눈으로 그를 응시했다. [몇 사람 있었어요. 하지만 협담을 가진 인물은 무공이 부족했고 무공이 고강한 사람은 색혈교와 나천성주의 권세에 주춤거리는 하잘 것없고 졸장부들이었어요.] 철한빙으 천천히 두어 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었구려.] 이에 정의감에 빛나는 신광을 번뜩이며 월향을 쳐다보았다. [낭자, 소생의 힘이 부족한 줄은 알지만 도움을 주고 싶은데 소생의 능력으로 될 지 모르겠소.] 순간 월향의 눈이 묘하게 반짝이며 얼굴에 화색을 띠었다. [공자님, 그게 정말이십니까?] 철한빙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 장부가 실언을 하겠소? 소생의 힘이 부족하다면 추형과 탁형도 틀림없이 낭자를 도울 것이오.] 그러자 월향은 살며시 자리에서 일어서며 큰절을 올렸다. [공자님의 은혜 저승에 가서라도 잊지 않겠습니다.] 철한빙은 �꼈떠� 당황하며 급히 그녀를 부축했다. [낭자, 이러지 마시오. 낭자의 처지를 안다면 그 누가 힘을 아끼겠소이까? 어서 일어나시오.] 월향은 포근하기 이를 데 없는 철�덱┷昰� 두 손이 양쪽 손목을 붙잡자 전신을 부 르르 떨었다. 철한빙 또한 뼈가 없는 듯한 몽실몽실한 그녀의 손목을 잡자 전신이 짜릿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황급히 손을 놓으며 한 걸음 물러섰다. 이때 월향은 사뿐사뿐 걸음을 옮겨 침상으로 다가섰다. 이어 살며시 옷고름을 푸는 것이 아닌가? 순간, 그녀의 상의가 미끌어지듯 흘러내렸다. 그러자 백옥같이 미끈한 살결이 눈이 부시게 드러났다. 동그스름하며 가냘픈 양 어깨, 눈을 현혹시키는 붉은 젖가리개, 철한빙은 정신이 아찔해지는 것을 느끼며 급히 고개를 돌려 버렸다. [낭자, 이게 무슨 짓이오? 어서 옷을 입도록 하시오!] 그는 가벼운 분노를 느끼며 문을 박차고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돌연, [공자님, 소녀의 말을 들어 보세요. 소녀는 어느 분이든지 도움을 주시는 분에게 미천한 몸을 바치기로 했어요. 공자님께서는 소녀가 이런 곳에 있다고 해서 순결 을 지키지 않는 천한 계집이라고 여기실 거예요. 하지만 소녀는 정절만은 고히 간직하고 있어요.] 그녀는 말을 끊고 가볍게 흐느끼기 시작했다. [흐흐흐..] 철한빙은 가슴이 찡해오는 것을 느끼며 걸음을 멈추었다. 월향의 울음섞인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소녀는 월금을 타며 노래만 부를 뿐 그 이상은 한 적이 없어요. 술은 따르는 것 도 공자님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예요. 흐흐흑...] 철한빙은 다시 멍청하게 서 있었다. (아... 조그만 실수가 한 소녀의 가슴을 여지없이 도려내고 말았구나. 어떻게 위 로를 해야 좋단 말인가?) 철한빙은 생각을 멈추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낭자, 소생이 실례를 범한 것 같소. 그러니 어서 옷을 입도록 하시오.] 잠시 후 부시럭거리며 옷입는 소리가 들려왔다. 철한빙은 그런 연후에 한참이 지나서야 시선을 그녀에게 돌렸다. 월향은 침상에 걸터 앉은 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가볍게 양 어깨를 들썩거 리고 있었다. 철한빙은 천천히 곁으로 다가가 그녀를 향해 부드럽게 말했다. [낭자, 울음을 그치시오. 누가 들으면 어쩔려고 그러시오.] 월향은 잠시 후 울음을 그쳤다. 철한빙은 비단 수건을 꺼내 마치 동생에게 대하듯 정성스럽게 눈물을 닦아 주었 다. 그러고는 그녀 엎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낭자, 소생의 처지도 낭자와 비슷하오. 낭자와 마찬가지로 피맺힌 원한이 나에 게도 있다오.] 그러자 월향이 눈물젖은 눈으로 철한빙을 바라보았다. [아니! 공자님께서도 원한이...] [그렇소. 소생의 원한은 수많은 고혼들의 원한이기도 하오.] 월향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레 무슨 말씀이세요?] 철한빙은 두 눈에서 무서운 살기를 쏟아내며 처절한 미소를 지었다. [소생의 식솔들은 근 백여 명에 달하는 흉적들에게 무참하게 학살 당했소. 소생 의 원한은 천하를 상대로 펼쳐질 것이오.] 월향은 살기가 뚝뚝 떨어지는 말에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무.. 무서워요.] 그리고는 철한빙의 품에 얼굴을 묻어버렸다. 철한빙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급히 살기를 지웠다. 그러는 한편 떨리는 입술을 떼었다. [나..낭자!] 순간 월향은 대경실색을 하며 급히 그의 품에서 떨어졌다. [고...공자님, 소..소녀의 실례를 용서해 주세요.] [아니오. 소생이 일시적으로 분노를 참지 못하고 함부로 망발을 했기 때문에 낭 자가 놀랐으니 책임은 소생에게 있는 것이오.] 철한빙이 자시 입을 다물고 있다가 다시 말했다. [낭자, 이제 소생은 동조자가 됐으니 방명을 가르쳐 줄 수 있겠소?] 월향은 얼굴을 도화빛으로 물들이며 기어들어가는 듯한 음성으로 속삭였다. [소녀의 이름은 홍혜령이라고 해요.] 철한빙은 그녀의 이름이 매우 아름답다고 칭찬한 뒤 또다시 물었다. [생사를 모르는 오라버니의 이름은 무엇이오?] 홍혜령은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홍보연이라고 하는데 살아계실지 모르겠어요.] 철한빙은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하늘에 안배가 있다면 필시 어디엔가 살아있을 것이오. 한데 그 분의 나이가 몇 이오?] 홍혜령이 말했다. [살아 계신다면 올해 스물 일곱이예요.] 철한빙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정색을 하며 입을 열었다. [낭자, 원한을 갚게 된다면 그 뒤에는 어떻게 할 작정이오?] 홍혜령은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소녀는 수결을 버린 뒤 원한을 갚으면 자결을 하려고 마음 먹었어요. 하지만 이 제는 스님 곁에 영원히 머무르기로 결심했어요.] 철한빙은 깜짝 놀랐다. [아니! 그러면 불문에 귀의하겠단 말이오?] 홍혜령은 영롱한 눈망울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여승이 되어 부모니의 영령을 위해 염을 하고 소녀의 손에 죽어간 색혈교와 나천성주의 영혼을 위로해 주겠어요.] 철한빙은 크게 감동하여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았다. [낭자, 절로 고개가 숙여질 정도로 숭고한 희생이요. 하지만 낭자는 불문에 귀의 해서는 안되오.] 순간, 홍혜령의 두 눈이 일순 반짝였다. 그러나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아니예요. 소녀는 이미 결심을 굳혔어요.] 철한빙은 그녀의 손을 살며시 놓으며 길게 한숨을 쉬었다. [휴-----우--------! 사람은 제각기 운명이 쥐어지는 법, 어찌 한낱 인간의 운명 을 바꿔놓을 수가 있겠소. 모든 것을 만물의 이치대로 행할 뿐이오.] 홍혜령은 허공을 응시하며 땅이 꺼져라 길게 한숨을 토해냈다. 철한빙은 설레설레 고개를 흔들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내가 행하는 일이 잘하는 것인지 아니면 잘못하는 것인지 도시 갈피를 잡을수가 없구나.] 이어 홍혜령을 향해 말했다. [낭자, 이왕 소생이 미약한 힘이나마 도움을 주기로 했으니 그대로 행하겠소.] 그리고는 그녀의 해맑은 눈을 응시하며 재말 말을 이었다. [낭자께선 언제 색혈교를 향해 떠날 예정이오?] 홍혜령은 눈을 살며시 뜨며 천천히 입술을 떼었다. [내일 아침 일찍 떠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소녀도 이제 기녀의 신분을 벗어 버리겠어요.] 철한빙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당 그래야 할 것이오.] 철한빙은 말을 멈추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한데 추형 등은 아직도 깨어나지 않았나? 이미 날이 저문 듯 한데 어디가서 숙 소라도 잡아야지.] 홍혜령이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며 옷자락을 만지작거렸다. [저..지금 나가셔도 숙소를 정하실 수가 없을 거예요.] 철한빙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그건 또 무슨 이유요?] 홍혜령이 두 볼이 빨갛게 물들었다. [소녀가 말씀을 드리는 동안 벌써 두 시진 쯤 흘러 지금은 이미 야밤 삼경쯤 되 엇을 거예요.] 철한빙은 다급해졌다. [삼경이오?] 그는 안절부절을 못하고 손바닥을 싹싹 비볐다. [이..이걸 어쩐다?] 홍혜령은 침상에서 일어나 사뿐사뿐 걸음을 옮기며 탁자로 향했다. [소녀는 이곳에서 지낼터이니 공자님께서는 침상에서 주무세요.] 번호:214/227 등록자:HYUN9876 등록일시:97/04/14 00:29 길이:545줄 제 목 : [사마달] 불세마왕경 제 36장 불세마왕경 저자: 사마달 출판사: 대현출판사 제 36장 소혈교 철한빙은 당황하며 급히 말했다. [낭자, 그건 안될 말이오. 소생이 탁자에서 잠을청할테니 침상에서 주무시구려.] 홍혜령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예요. 공자님께서 편히 쉬셔야해요.] 철한빙은 잠시 망설이다가 천천히 입술을 떼었다. [그럼 탁자 위에 안자 얘기나 나누도록 합시다.] 홍혜령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탁자를 마주하고 나란히 앉아 서로를 바라보았다. 홍혜령은 철한빙의 준수한 얼굴을 응시하며 앵두같은 입술을 움직였다. [공자님께서 익히신 무공이 무엇이길래 운공조식 때 나타나는 현상이 특이하죠?] 철한빙은 직감적으로 자신의 운공조식을 하고 있을 때 그녀가 보았다는 것을 알 았다. [그건 취련무아심법이라고 하는 상승 심법이오.] [취련무아심법?] 그녀가 의아한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철한빙은 재차 말을 이었다. [그것은 개방의 지고무상한 심법이오.] 이어 그녀의 얼굴을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만약 낭자께서 배우실 마음이 있다면 소생이 전수해 주겠소이다.] 홍혜령은 내심 몹시 기뻤으나 정색을 했다. [아니예요. 어찌 공자님의 절예를 소녀가 익힐 수 있겠아요?] 그리고는 의혹에 젖은 눈빛을 발했다. [그런데 공자님께서는 개방의 제자이신가요?] 철한빙은 두어 번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그러나 어떻게 보면 개방의 제자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오.] 홍혜령은 곤혹어린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소녀는 공자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가 없군요.] 철한빙은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소생이 너무도 두서없이 말을 했소이다. 실은 개방의 방주이신 취몽주개가 소생 의 의형님이시오.] 홍혜령은 그제서야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 그래서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었군요.] 철한빙은 그녀의 월궁항아와 같은 모습을 쳐다보며 나직이 말했다. [낭자, 지금버투 취련무아심법의 귀결을 알려줄테니 익히도록 하시오.] 홍혜령은 황급히 사양하려고 하였으나 그의 입에서 가느다란 음성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취함을 다스린다면 능히 무아의 경지에 이를 것이오, 무아의 이르려면...] 홍혜령은 철한빙의 호의에 크게 감격해하며 정신을 집중시켰다. 그녀의 기억력은 매우 좋아 철한빙이 한번 불러주자 간단하게 암기해버렸다. 철한빙은 그녀의 총명함에 내심 감탄했다. [낭자, 취련무아심법을 꾸준히 연성한다면 천하무적의 신공을 가진 살람이라고 할지라도 낭자를 어떻게 하지는 못할 것이오.] 홍혜령은 수줍은 듯이 살포시 고개를 숙였다. [공자님의 은혜 하해와 같사옵니다.] [허허허.. 낭자, 그런 소릴랑 그만 두시오.] 홍혜령은 천천히 꼬개를 들어 물기가 어린 눈망울로 그를 응시했다. 철한빙은 그녀의 초롱한 눈망울을 대하자 가슴이 격탕되는 것을 느꼈다. 소약란에게 느꼈던 그 야릇한 눈빛, 그는 가볍게 몸을 떨며 급히 시선을 떨구고 말았다. 이때 그의 귓가에 땅이 꺼질 듯한 홍혜령의 한숨이 들려왔다. [휴----우!] 철한빙은 고개를 쳐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낭자, 너무 심려하지 마시오. 소생과 추령, 그리고 탁형등 세 사람이면 색혈교 를 가볍게 대항해 나갈 수 있을 것이오.] 홍혜령은 보일 듯 말 듯한 작은 미소를 지었다. 철한빙은 그녀의 한떨기 이슬에 젖은 모란꽃 같은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두 손을 살며시 잡았다. 홍혜령은 잠시 움쭐하는듯 했으나 이내 무감각한 듯 가만히 있었다. [공자님, 소녀는 어떤 일이 올바른 길인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어요.] 철한빙은 그녀의 느닷없는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낭자, 갈피를 잡을 수 없다는 건 또 무슨 말이오?] 홍혜령의 맑은 눈에 이슬이 맺히기 시작했다. [모르겟어요. 소녀도 모르겠어요. 이곳에 머문지 이언 삼 년, 이제야 기인을 만 났건만 왠일인지 소녀의 마음의 복수심이 점점 꺼져가는 것 같아요.] 철한빙은 말없이 그녀의 말만 듣고 있었다. [소녀는 지금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요. 원수도, 의인도, 또한 더러운 세속 도...] 철한빙은 이제 막 피어나는 소녀가 세상에 환멸을 느낀 듯이 말하자 자신도 역시 피비린내 나는 세속에 증오심이 일었다. 그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낭자, 어찌 그토록 나약한 마음을 가지시오? 세속은 피로 물들었으되 의인의 마 음 속은 성혈로 젖어 있소.] 홍혜령은 송리없이 한방울의 진주를 떨어뜨렸다. 철한빙은 서서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옆으로 다가가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 주었다. [낭자, 어떻게 보면 소생 역시 낭자보다 더할 지 모르오. 세속에 대한 환멸과 끓 어오르는 복수심, 무자비한 살생, 이 모든 것들이 말이오.] 철한빙은 이렇�Вː� 말하며 두 주먹을 불끈쥐었다. 그리고는 처절한 미소를 지었다. 홍혜령은 그의 미소를 접하자 알 수 없는 야릇한 감정이 일었다. 그녀는 의식적인지 아니면 무의식적인지 천천히 그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철한빙은 가볍게 당황했다. 그러나 이내 자신의 처지와 그녀의 처지에 생각이 미치자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낭자, 소생이 외람되게 한 마디 하겠소. 세상에는 더러운 �（�이 있는 반면 깨끗 한 것도 있고 추악한 살생이 있는 반면 지고한 사랑도 있소. 낭자는 이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오.] 철한빙은 그녀를 달래기 위해 별 뜻 없이 한 말이었으나 홍혜령은 달랐다. 그녀는 철한빙의 말 속에서 이�♥じ뼈� 서광을 발견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녀는 살며시 고개를 쳐들며 철한빙을 응시했다. 그리고는 살포시 두 눈을 감았다. 눈밑으로 흘러 내리는 맑은 이슬 방울, 철한빙은 가슴이 꽉 메어지는 것 같았다. 꼭 감은 눈 사이로 이슬을 머금은 듯 피어 있는 백진주, 약간 벌린 앵두같은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오는 감미로운 입김, 그 사이로 들여다 보이는 백옥같이 가지런한 눈부신 치아, 철한빙은 정신이 아찔해지며 손가락을 가늘게 떨었다. 가슴에서는 용광로의 시뻘건 불꽃이 사방으로 튀기기 시작했다. 그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그러나 홍혜령의 몸에서 풍겨 나오는 청아한 살내음, 후각을 자극시키는 사향내 등이 의지를 흐트려 놓았다. 철한빙은 가볍게 몸을 떨며 천천히 고개를 숙여 그녀의 도톰한 입술을 눌러갔다. 급기야 두 개의 입술이 마주치자 그들은 동시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으----음!] 쾌락에 젖은 신음성이 가볍게 터져 나오며 그들은 서로의 감로수를 들이켰다. 철한빙은 오른손을 그녀의 잘룩한 허리에서 천천히 둔부로 옮겨갔다. 홍혜령은 그의 손길이 스칠 때마다 전신을 움찔움찔 떨었다. 철한빙은 정신없이 그녀의 전신을 애무하며 앵두같은 입술을 탐했다. [으으음!] 홍혜령의 입에서 극도에 달한 신음이 새어 나왔다. 순간, 철한빙은 희미하게 이성을 되찾았다. 그러자 가슴 한 쪽에서 천둥과 같은 꾸지람이 터져 나왔다. ----빙아! 너는 어째서 불구대천지수를 망각하고 여자에게 얽애어 헤어나지를 못 한단 말이냐? 천하에 못난 녀석! 철한빙은 질겁을 하며 급히 홍혜령으로부터 떨어졌다. [나...낭자, 소생의 무례함을 용서하시오.] 이어 문을 박차다시피하여 밖으로 뛰어나왔다. [흠!] 그는 맑은 밤공기를 마시자 정신이 맑아지는 것 같았다. 홍혜령은 아쉬움과 부끄러움을 느끼며 잠시 제자리에 멍청하게 서 있었다. 그러나 이내 걸음을 옮겨 밖으로 나가 철한빙의 뒤에 섰다. [공자님, 소녀의 무분별한 행동을 나무래 주시어요.] 철한빙은 고개도 돌리지 못한 채 나직하게 말했다. [낭자, 잘못은 소생에게 있소. 그러니 사과는 소생이 하여야 할 것이오.] [공자님, 바바람이 차니 그만 들어가세요.] 철한빙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그녀의 호수같이 잔잔한 눈을 응시했다. [낭자 먼저 들어 가시오. 조금 후에 들어가겠소.] 철한빙은 다시 고개를 돌려 밤바람에 하늘거리는 꽃들을 바라보았다. 홍혜령은 제자리에 선 채 그의 뒷모습만 쳐다보고 있었다. 반시진이 지나자 철한빙은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리고 홍혜령이 아직도 제자리에 다소곳이 서 있자 깜짝 놀랐다. [아니! 어찌 아직도 안들어 가셨소? 공연히 소생때문에 오한에 걸리겠소. 어서 들어갑시다.] 그제서야 홍혜령은 걸음을 옮겼다. 두 사람은 방에서 마주 앉았다. 철한빙이 말했다. [낭자, 날이 밝아오는구려. 언제쯤 떠나겠소?] 홍혜령이 나직하게 말했다. [조금 있으면 국향고 난향이 올거예요. 그애들에게 사실을 얘기한 뒤 곧 떠나도 록 해요.] 철한빙은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럼 국향과 난향아씨는 낭자와 뜻을 같이 한 사람들이었구려?] 홍혜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녀들은 소녀의 처지를 듣고 기꺼이 도와줄 것을 다짐했어요. 그녀들은 파 운성모의 제자들이예요.] [파운성모?] [예, 파운성모는 대강남북을 휩쓴 천하의 여걸이에요.] 철한빙은 파운성모의 이름을 되새겼다. [파운성모께서는 정파의 사람이오?] 홍혜령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그녀는 정파의 인물인 동시에 또한 매서운 손속으로도 유명하신 분이에 요.] 철한빙은 맑은 눈을 반짝이며 또다시 입을 열려고 했다. 이때, [언니, 일어나셨어요?] 밖에서 국향의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철한빙은 크게 당황했다. 자신이 홍혜령과 같이 있으면 국향이 필시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볼것이다 그러나 실상 국향은 어제 저녁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홍혜령은 가볍게 입을 열었다. [들어 오거라.] 방문이 열리며 국향이 사뿐사뿐 걸어 들어왔다. 그녀는 홍혜령에게 가볍게 눈인사를 보낸 뒤 철한빙에게 예를 올렸다. [공자님, 밤새 편히 쉬셨습니까?] 철한빙은 안절부절을 못하며 엉거주춤 마주 예를 취했다. [아, 예. 펴...편히 쉬었습니다. 낭자께서도 밤새 무양하셨습니까?] 국향이 손으로 입을 가리며 가볍게 웃었다. [호호호.. 공자님께서는 왜 안절부절을 못하시죠?] 이에 철한빙은 얼굴이 홍당무처럼 물들고 말았다. 홍�덴◁�은 그녀에게 눈짓으로 지지시키며 의자를 가리켰다. [이리 앉아라.] 이에 철한빙이 자신에게 도움을준 이야기를 설명해 주었다. 국향은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 공자님은 전혀 무공을 하신 분이 아니신 것 같은데 어찌...] 홍혜령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동생, 이분은 겉보기에는 전혀 무공을 지니시지 않은 것 같으나 실지는 지극히 뛰어난 무공을 지니신 내가고수야.] 국향은 그래도 못믿겠다는 듯이 철한빙을 응시했다. 이때, 또다시 난향이 들어왔다. 그녀 역시 못믿겠다는 듯이 철한빙을 쳐다보았다. 철한빙은 가볍게 미소와 함께 홍혜령을 향해 입을 열었다. [낭자, 추형과 탁형을 불러온 뒤 나천성으로 떠납시다.] 홍혜령의 눈빛이 맑은 빛을 발해냈다. [그래요. 떠나요. 부모님의 원수를 향해서 말이에요.] x x x x x 나천성. 때는 해가 중천에 매달려 있고 소슬한 바람이 옷깃을 할퀴고 지나가는 오시무렵, 두두두두! 갑자기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여섯 필의 말이 질풍같이 달려왔다. 삼남삼녀, 그들은 바로 철한빙 일행이었다. 성문 앞에 당도한 철한빙은 시선을 홍혜령에게 돌렸다. [낭자, 색혈교가 어디에 위치하고 있소?] 홍혜령과 국향, 난향은 일신에 홍의경장을 했으며 등 뒤에는 붉은 수실이 달린 장검을 메고 있었다. 그녀들의 몸에서는 기방에서 볼 때와는 전혀 달리 여걸다운 기풍이 풍겨 나오고 있었다. 홍혜령이 성문 좌측을 가리키며 옥음을 굴렸다. [성문을 지나 좌측으로 삼심여 리쯤 가면 그곳에 자리잡고 있어요.] 탁원규가 커다란 손을 두어 번 휘둘렀다. [망할 놈의 자식들! 오늘 이 어르신네가 묵사발을 만들고 말겠다.] 추평해가 눈을 흘겼다. [형님, 그곳에 가자마자 손을 쓰지 않는다면 아마 전혀 팔 다리 운동을 하지 못 할 것이오.] 탁원규가 급히 고개를 돌렸다. [엥! 그.. 그건 또 무.. 무슨 소린가?] [공자님이 손을 쓰시기 전에 형님이 먼저 손을 써야 된다는 말입니다.] 탁원규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 맞아. 그럼 노부가 먼저 가서 놈들을...] 철한빙이 재빨리 입을 열었다. [탁형, 우선 그들에게 교주를 방문하러 왔다고 알려야 도리외다. 그러니 너무 서 두르지 마시오.] 탁원규가 두 주먹을 휘둘렀다. [공자님, 그런 노들에겐 방문 따위의 예절이고 뭐고 따질 것이 없습니다. 그저 한방에 요절을 내야 합니다.] 철한빙은 빙그레 미소를 지은 뒤 가볍게 입술을 떼었다. [자, 갑시다.] 두두두! 여섯필의 말은 힘차게 네 다리를 놀려 색혈교를 향했다. 약 향 한자루를 태울 시간이 지나자 그들은 거대한 건물을 마주 대하게 되었다. 철한빙은 안력을 집중시켜 가물가물 보이는 현판을 주시했다. 색혈교! 피가 뚝뚝 떨어지는 듯함 음산한 붉은 글씨가 또렷하게 새겨져 잊었다. 그들이 요란한 말발굽 소리와 함께 문앞에 도착하자 가벼운 경장차림을 한 칠팔 명의 대한이 앞을 가로 막았다. 그들 중 왼쪽 눈을 가린 중년인이 입술을 씰룩거렸다. [웬 놈들이기에 감히 말을 타고 본교를 시끄럽히느냐? 어서 썩 말에서 내리지 못 할까?] 그때 입술 밑에 검은 점이 있는 오십 세 가량의 늙은이가 감탄의 음성을 토해냈 다. [이야! 고것들, 정말 양귀비 뺨치게 생겼구나. 이 계집들은 교주님께 바친다면 두둑한 상금이 나오겠는걸.] 그러자 나머지 대한들도 히히덕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왼쪽 눈을 가린 중년인이 탁원규의 모습에 움찔한는 듯했다. 그러나 이내 음산하게 웃었다. [흐흐흐.. 네놈은 대체 사람새끼냐 아니면 짐승의 새...] 그는 말을채 끝마치기도전에 얼굴전체를 덮어 버리는 시커먼 그림자를 발견했다. [헉!] 왼쪽 눈을 가린 중년인은 질겁을 하며 급히 우장을 들어 막으려고 했다. 그러나, [으악!] 처절한 비명소리에 이어 그는 얼굴이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박살난 채 몇 자 밖으로 나가 떨어졌다. 얼굴 근육이 완전히 묵사발이 되어 피와 살이 범벅이 된 채 즉사해버렸다. [앗! 강형!] 경장대한들은 소스라치게 놀라는 한편 일제히 병기를 꺼내 들었다. 쨍! 쨍! 순간 새파란 검광이 중인들의 눈을 어지럽혔다. 점이 달린 노인은 수중의 검으로 탁원규를 가리켰다. [이...이놈의 괴물새끼가 죽고 싶어 환장을.....] 그 역시 채 말을 끝내지 못하고 처절한 단말마의 절규를 남기고 황천으로 떠나버 렸다. 얼굴이 떡이 되어 흉측한 몰골로.... 잇달아 동료들이 거꾸러지자 나머지 경장대한들은 잠시 주춤거렸다. 철한빙은 탁원규를 말리려고 했으나 손을 쓸 겨를이 없었다. 그러나 실상 말리고 싶은 마음도 그다지 없었던 것이다. 탁원규는 귀신이 울부짖는 듯 공포스런 웃음을 자아냈다. [으흐흐흐... 감히 어르신네가 제일 싫어하는 금기를 저지르다니 죽어도 할말은 없을 게다.] 이때 안에서부터 수십 줄기의 인영이 번개처럼 날아왔다. [웬놈들이기에 감히 본교에서 소란을 피우는 것이냐?] 그들은 말소리와 동시에 철한빙 등의 면전에 떨어져 내렸다. 철한빙은 그들을 찬찬히 훑어 보았다. 세 사람은 홍색장삼을 걸쳤으며 나머지는 갈색장삼을 입고 있었다. 말을 한 사람은 칠십여 세 정도의 쥐눈에 염소 수염을 기르고 있는 노인이었다. 그가 색혈교의 외삼당 당주인 구양생이었다. 그의 양 옆에 있는 홍의인은 향주의 신분인 듯 싶었다. 구양생은 쥐눈을 부릅뜨며 두 구의 시체를 바라본 뒤 철한빙을 빠르게 훑어 보았 다. [흐흐흐... 년놈들이 쌍쌍이 잘들 날아나는구나. 하지만 그것도 오늘로써 마지막 일 것이다.] 철한빙은 그의 말을 귓전으로 흘리며 지극히 차분하게 말했다. [소생들은 귀하의 교주를 만나러 왔는데 안내를 부탁해도 되겠소?] 구양생이 어처구니 없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뭐, 교주님을 만나러 왔다고. 흥! 웃기지 말아라. 본교의 제자들을 살해해놓고 도 그런 말이 나올 수 있느냐?] 탁원규가 철한빙을 향해 못참겠다는 듯이 말했다. [공자님, 역시 이놈들은 좋은 말로 해서는 되지 않을 놈들입니다.] 철한빙은 그를 힐끗 쳐다본 뒤 생각에 잠겼다. (음.. 수하가 이 정도이니 교주란 작자는 보지 않아도 알만하구나. 그렇다면 속 히 해결한 뒤 내 볼일을 보는 것이 좋을 듯 하다.) 여기에 생각이 미친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 탁형의 솜씨를 구경해 볼까요?] 순간 탁원규의 입에서 우렁찬 폭갈이 터져나왔다. [으핫핫!] 기합소리와 동시에 태산을 무너뜨릴 듯한 엄청난 장력이 구양생 등에서 몰려갔 다. [앗!] 그들은 깜짝 놀란 외침을 터뜨리며 일제히 장력을 피해냈다. 그러나 간발의 차이로 피하지 못한 서너 명의 갈색대한이 비단폭 찢어지는 소리 를 지르며 이삼 장 밖으로 나뒹굴었다. 그들은 칠공에서 검붉은 피를 흘리며 몇 번 일어나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이내 고 개를 처박고 죽고 말았다. 구양생 등은 탁원규의 장력이 그토록 강맹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이어 철한빙을 향해 섬전같이 덮쳐들었다. [흥!] 추평해는 가볍게 코웃음을 친 뒤 수중의 섭선을 두어 번 접었다가 폈다. 그러자 섭선으로부터 전신을 갈가리 찢을 듯한 살풍이 뻗어 나왔다. [앗!] 구양생은 그의 절묘한 수법에 경악을 터뜨리며 잇따라 두 걸음 물러섰다. 때를 같이하여, [으아악!] [아악! 으헉!] 모골이 송연하고 간장을 쥐어 뜯는 듯한 비명이 하늘을 뒤덮었다. 비명소리가 채 사라지기도 전에 이번에는 탁원규의 장이 번뜩거렸다. [아---악!] [.....!] 비명은 순식간에 반짝였다가 사라졌다. 구양생은 어느 틈에 사라졌는지 시체더미에서 찾아볼 수가 없었다. [낭자, 들어 갑시다.] 철한빙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일행은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수십 개의 건물들이 즐비한 가운데 곳곳에서 청색과 홍색인영이 벌떼처럼 몰려 들고 있었다. 탁원규는 그들을 바라보며 커다란 입을 벌렸다. [으하하핫.. 어서들 오너라. 어르신네가 네놈들을 편안하게 잠재워 주마.] 이때, 붉은 화염에 싸인 듯한 인영이 허공을 가르며 지극히 느린 속도록 철한빙 등을 향해 날아오는 것이었다. 홍색인영은 솜털처럼 날아 눈깜짝할 사이에 지면에 내려섰다. 팔십 세 정도의 나이에 안색은 붉으스름 했으며 메기 입을 지닌 사악하게 생긴 노인이었다. 그는 흉악한 눈으로 철한빙 등을 쏘아본 뒤 천천히 입술을 달싹거렸다. [흐흐흐... 네놈들은 대체 누구이기에 이곳에 와서 소란을 피우는 게냐?] 지금까지 말이 없던 홍혜령이 절규하듯이 외쳤다. [갈천호, 당신은 홍운표라는 사람을 잊지는 않았겠지요?] 순간 홍색인영, 즉 색혈교주는 안색이 변하며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뭣이! 홍운표!] 그는 질겁을 하며 홍혜령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잠시 후 그는 그녀의 얼굴 모습에서 무엇인가를 찾아낸 듯했다. [흐흐흐.. 어린 계집아! 네년은 혹시 홍 늙은이의 딸이 아니냐?] 홍혜령은 안색이 새파랗게 질리며 전신을 파르르 떨었다. 번호:215/227 등록자:HYUN9876 등록일시:97/04/14 00:29 길이:516줄 제 목 : [사마달] 불세마왕경 제 37장 불세마왕경 저자: 사마달 출판사: 대현출판사 제 37장 락성 홍혜령은 색혈교주가 되는대로 말을 지껄이자 노기와 살기를 동시에 띠었다. [갈천호. 당신은 그 당시의 죄를 뉘우치기는 커녕 더욱 포악해진것 같군요.] 색혈교주는 허공에 향해 대소를 터뜨혔다. [푸하하하하... 어린 계집아! 몇년 못본 사이에 사람의 간을 살살 녹일 정도로 요염하게 자랐구나. 흐흐흐.. 어쨌든 본좌를 잊지 않고 찾아왔으니 오늘 본좌와 더불어..] [닥쳐랏!] 난향이 듣다못해 쌍장을 동시에 밀어냈다. [허허헛.. 그년도 제법 풍만하기 이를데 없구나. 본좌는 오랜만에 향락을 즐기게 되는것 같구나.] 말과 동시에 오른 소매를 가볍게 휘둘러 장력을 해소해 버렸다. [앗!] 난향은 자신의 일장이 소리없이 사그라져 버리자 깜짝 놀랐다. 그러나 곧 정색을 했다. [흥! 늙은이가 제법 한가닥 하는군. 그러기에 짐승같은 짓을 서슴없이 저질렀구 나.] 색혈교주는 전혀 화를 내지 않은 채 능글맞게 웃었다. [헤헤헤.. 계집아! 기운은 아꼈다가 조금 후에 침상 위에서 쓰는 것이..] 이때 탁원규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이 후레자식 놈아! 나이 값도 못하고 입에서 나..나오는데로 주절대...대다니, 뒈져랏!] 하며 솥뚜껑만한 손바닥을 힘껏 후려쳤다. 순간 엄청난 강풍이 살기를 목고 색혈교주를 향해 빛살처럼 짓쳐 들어갔다. [흑!] 색혈교주는 괴물같이 생긴 그가 이처럼 강맹한 일장을 후려쳐 오자 대경실색을 금치 못했다. 그는 급히 보법을 전개해 옆으로 미끄러지며 장력의 옆을 �덱で� 일장을 밀어냈다. 펑! 두 가닥의 장력이 부딪치자 고막이 터질 듯한 폭음이 울려 퍼졌다. 히히힝! 탁원규가 타고 있던 말은 장풍의 여력에 마주치자 손목이 찌르르 울렸다. (이크! 이놈의 장력이 얄볼 것이 아니로구나. 흉가 계집은 이놈을 믿고 본좌를 찾아온 모양이구나.) 생각은 자유라는 말을 실감케하는 장면이었다. 탁원규는 일장에 그를 날려 보내지 못하자 대노하고 말았다. 그가 재차 장력을 밀어내려고 하려는 찰나, 철한빙의 잔잔한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탁형, 잠시만 참구려. 기회는 얼마든지 있소이다.] 탁원규는 치미는 울화를 억지로 누르며 손을 오르락 내리락 거렸다. 철한빙은 시선을 색혈교주에게 돌리며 지극히 차분한 음성으로 물었다. [교주, 귀하가 홍낭자의 아버님을 나천성주와 결탁하여 모해한 것이 사실이오?] 색혈교주는 생각도 하기 싫다는 듯이 거침없이 대답했다. [흐흐흐.. 홍가 계집이 네놈에게 귀띰을 해준 모양이구나. 그렇다! 하지만 홍가 늙은이는 제풀에 죽은 것이지 본좌 등이 살해한 것이 아니다.] 홍혜령의 두 눈이 살기로 물들기 시작했다. [닥쳐욧! 당신들이 아버님을 직접 해하지는 않았지만 그것보다 백배 천배 잔인한 방법으로 살해한 셈이에요.] 색혈교주는 두 눈을 거슴츠레 뜨고 그녀를 응시했다. [모든 것이 네년의 말대로라고 하자. 자, 이제 어떻게 할셈이냐? 저 괴물을 믿고 찾아온 듯 하지만 그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일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네년 도 알고 있을텐데?] 철한빙이 재빨리 말을 이었다. [교주, 귀하가 할 일은 한가지 밖에 없소.] 색혈교주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렇소. 귀하는 이 자리에서 홍낭자에게 사죄를 하고 자결을 하시오. 그러면 귀 하의 수하들은 더러운 목숨이나마 보존할 수 있을 것이오.] 이때, 주위에 새까맣게 몰려있던 색혈교주의 주구들이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어린 놈아 뒈지고 싶어 발광을 하는구나. 뭐가 어쩌고 어째?] 색혈교주도 어이가 없는지 멍하니 서 있기만 했다. 추평해가 쩌렁쩌렁한 음성으로 고함을 질렀다. [갈천호, 공자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느냐?] 색혈교주는 고막을 찢을 듯이 쩌렁쩌렁한 음성에 흠칫 놀랐다. (아니! 저 계집애처럼 생긴 녀석의 무공이 이토록 심후하다니? 또한 저 녀석은 서생녀석에게 공자님이라고 부르지 않는가?) 그는 급히 시선을 철한빙에게 돌려 그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훑어 봐도 서생일 뿐이었다. 전신에서 풍겨나오는 냉막한 한기 외에는 말이다. [본좌가 자결을 하면 수하들을 살려주겠다? 그렇다면 본좌는 네놈들이 한팔을 자 르고 계집들을 남겨 놓는다면 이곳을 무사히 벗어나게 해주겠다.] 철한빙은 두 눈에 살기를 떠올렸다. [좋은 말로 해서는 들어먹지 않을 위인이군, 귀하는 소생의 손속이 매정하다고 원망치 마시오.] 이어 추평해에게 말했다. [추형, 색혈교주의 주구를 상대로 한바탕 몸을 풀어 보지 않겠소?] [하하핫... 그렇지 않아도 지금 손이 근지러워 끙끙 앓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추평해는 어느 새 말등 위에서 사라져 버린 뒤였다. 때를 같이하여 섭선의 그림자가 색혈교 무리들의 머리 위를 덮쳤다. 순간, [으아악!] [으-----아----악!] 항아리가 깨지는 듯한 기나긴 비명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울려 퍼졌다. 탁원규는 군침을 꿀꺽꿀꺽 삼키며 철한빙에게 애원의 눈길을 보냈다. 철한빙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한 번 끄덕거렸다. 탁원규는 마치 오랜 압박 속에서 헤어난 듯 커다란 장소를 터뜨렸다. [우-----!] 이어 �い본貳낮� 색혈교 주구들을 덮쳐갔다. 홍혜령은 더 할 수 없이 빠른 동작으로 장검을 빼들며 쾌속하게 색혈교주를 덮쳐 갔다. 쨍! 쨍그랑.. [으악!] [....!] 색혈교는 삽시간에 아비규환의 생지옥으로 변했다. 색혈교주는 홍혜령을 상대로 여유있게 대항해 나갔다. 그는 간간히 음탕한 말을 지껄이며 여인의 중요한 부분을 슬쩍슬쩍 공격해 갔다. 홍혜령은 수치심과 분노, 그리고 원한등이 물밀듯이 밀어닥쳐 반쯤 이성을 상실 하고 있었다. 고수와의 싸움에서 이성을 잃는다면 십중 십을 패하는 법, 색혈교주는 그녀의 헛점을 재빨리 간파하여 천지혈과 거관혈을 향해 가볍게 지풍 을 퉁겼다. 홍혜령은 아예 목숨을 내걸고 공세만 취했는지라 전혀 무방비한 상태였다. [앗!] 그녀는 대경실색하며 몸을 피하려고 했으나 지풍은 이미 일척정도 가까이 다가 오고 있었다. (어차피 지풍을 피할 수는 없다.그렇다고 동귀어진의 수법을 쓸 도리밖에 없다.) 이에 생각이 미친 그녀는 지풍을 무시한 채 곧바로 장검으로 기해혈을 노려갔 다. [엇! 이년이 미쳤나?] 색혈교주는 크게 당황하며 몸을 옆으로 돌리는 한편 번개같이 신속하게 장검을 내리쳤다. 딱! 하는 음향과 함께 홍혜령의 장검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아앗!] 홍혜령은 동귀어진의 수법이 실패로 돌아가고 장검을 놓치자 대경실색을 했다. 색혈교주는 득의의 웃음을 토해내며 허공으로 몸을 솟구쳐 장검을 낚아채갔다. 그가 장검을 막 낚아채려는 순간, 하나의 인영이 한 마리 은학처럼 지극히 멋들어진 신법으로 허공으로 솟구치며 간발의 차이로 장검을 먼저 낚아챘다. [헉!] 색혈교주는 눈앞이 흐릿해지는 순간 장검이 감쪽같이 사라지자 혼비백산하고 말 았다. 그는 급히 지면으로 내려서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 색혈교주는 급기야 철한빙의 손에 들은 장검을 발견하고 나직한 탄성을 질러냈 다. 그는 한걸음 물러서며 철한빙을 가리켰다. [네..네놈이 장검을 낚아챘느냐?] 철한빙은 입가에 조소를 지으며 시선을 엉뚱하게 홍혜령에게 돌렸다. [낭자, 절대로 정신을 분산해서는 안되고 경거망동은 더욱 금물이오.] 그리고는 장검을 건네주었다. 홍혜령은 그가 어떻게 색혈교주의 장검을 낚아챘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아... 이분의 무공은 이미 신의 셩지에 이른 듯 하구나.) 색혈교주는 철한빙이 자신의 말에는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엉뚱한 짓을 하자 불같 은 노기가 치밀어 올랐다. [어린 놈아! 본좌의 말이 들리지 않느냐?] 철한빙은 그제서야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아! 소생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었소?] 색혈교주는 극도의 분노와 함께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네...네놈이 본좌를 회롱하려고 들다니, 도... 도저히 살려둘 수 없다.] 철한빙은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흥! 귀하는 애초부터 그런 말을 하지 않았소?] 순간 색혈교주는 분기충천, 급기야 광풍노도와 같은 쌍장을 밀어냈다. [이놈! 뒈져랏!] 철한빙은 말위에 여유있게 앉은 채 말채찍을 가볍게 휘덜렀다. 그러자 태산을 무너뜨릴 듯한 장력이 형체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색혈교주는 혼백이 달아나도록 놀라고 말았다. 홍혜령 역시 기겁을 하며 급히 입을 열었다. [공자님. 소녀는 저 사람과 삼초에 이기기는 커녕 적수가...] 철한빙은 손을 저어 그녀의 말을 끊은 뒤 색혈교주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한편,추평해와 탁원규는 피에 굶주린 사자마냥 닥치는 대로 살수를 펼치고 있었 다. [으악!] [....!] 국향과 난향 역시 파운성모의 제자들답게 매서운 초식으로 피를 쫓고 있었다. [크----윽!] [으악!] 장검이 허공을 그을 때마다 두세 명의 시체는 피를 뿌리며 쓰러져 갔다. 색혈교주의 당주급 인물들은 비록 일류 고수들이었지만 상대의 흉험한 기세에 손 한 번 제대로 써보지 못한 채 나뒹굴었다. 구양생은 쥐눈을 뒤룩뒤룩 굴리며 자기 한목숨이라도 살려는 듯 꽁무니를 뺄궁리 만 있었다. 이때, 탁원규는 파죽지세로 색혈교의 구양생을 발견했다. 그러다가 막 도주를 하려는 구양생을 발견했다. [이놈! 잘만났다.] 그는 헌원신법을 펼쳐 그를 덮쳐가며 솥뚜껑만한 손으로 일장을 후려쳐 갔다. [억!] 구양생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급히 보법을 전개하여 구궁팔쾌의 방향을 밟았다. 순간, 쉬익! 하는 음향이 귓전을 때리고 지나갔다. 그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이마에 맺힌 따을 닦으려는 찰나였다. 쌔앵!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수십 개의 섭선이 머리를 향해 짖쳐 들어오는 것이 아닌 가? 그는 경황실색을 하며 피하려 했으나 섭선의 허실을 전혀 파악해내지 못했다. 구양생은 입술을 질끈 깨물며 닥치는 대로 장을 후려쳤다. 그러나, 추평해의 섭선은 정화히 구양생의 정수리를 가격해 버렸다. 퍽! 수박이 깨지는 듯한 둔탁한 소리에 이어 피에 젖은 뇌수가 사방으로 튀었다. 쿵! 강호를 좀먹는 악도가 영원히 사라져 가는 순간이었다. 또다시 장면은 바꾸어 철한빙에게 돌아갔다. [어떻소? 구미가 당기지 않소?] 색혈교주는 무시당한다는 기분에 극도의 분노와 수치를 느꼈다. 그는 전신의 털을 빳빳이 곤두세우며 이를 부드득 갈아붙였다. [으... 네.. 네놈이 감히 본좌를 경시하다니. 오냐! 네놈이 보는 앞에서 흉가 계 집을 갈기갈기 찢어 죽여주마.] 철한빙은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어풍전음술로 홍혜령에게 말했다. [낭자, 소생이 세 가지 검법을 알려줄테니 놈을 살해해 원수를 갚으시오.] 홍혜령은 철한빙을 철석같이 믿는지라 괜히 승낙했다. 잠시가 지나자 홍혜령은 천천히 색혈교주의 안으로 다가섰다. 색혈교주는 사악한 눈빛으로 그녀를 응시하며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 [흐흐흐... 네년은 먼저 간 아비에게 보내줄테니 잠심나 기다리거라.] 홍혜령은 서서히 장검을 들어올렸다. 색혈교주는 가소로운 듯이 뒷짐을 지고 우뚝 버티고 서 있었다. [자, 어디 마음껏 공격해 봐라. 삼초가 아니라 삼뱁 초라도 받아주마.] 홍혜령은 장법을 지극히 느린 속도로 앞으로 뻗어냈다. [하하하.. 그런 곰벵이 같은 초식으로 어디 파리라도...] 그는 말을 하다말고 갑자기 안색이 급변했다. 지극히 느린 속도로 뻗어오던 장검이 급작스럽게 돌변하여 수십 개의 검광을 그 려내는 것이 아닌가? 또한 쾌속절륜하게 전신대혈을 파고드는 것이었다. 색혈교주는 이같은 기괴한 점법에 아연실색을 터뜨리며 급히 일장을 후려치며 옆 으로 몸을 틀었다. 순간 홍혜령의 장검이 뱀처럼 꼬부라지며 재차 단전을 노려오는 것이었다. 색혈교주는 너무도 놀라 등줄기에 식은 땀을 흘리며 재빨리 생각에 잠겼다. (아니! 이년의 검법이 아까와는 전혀 틀리지 않는가? 대체 이게 어찌된 일일까?) 그가 잠시 생각에 잠겨 있을 때 홍혜령의 장검은 여지없이 그의 왼쪽 온자락을 길게 찢어 버렸다. 찌익! 비단이 길게 찢어지는 소리에 이어 색혈교주의 입에서 헛김 빠지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흑!] 그는 머리가 쭈뼛해지는 것을 느끼며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이때 철한빙의 입에서 쩌렁쩌렁한 음성이 터져 나왔다. [마지막 제삼초!] 순간 갑자기 하늘의 무너져 내리는 듯한 굉음과 함께 검영이 난무했다. 홍혜영의 몸은 검광과 검영이 허실을 가려 희끄므레하게 보일 뿐이었다. [아-----앗!] 색혈교주는 검광과 검영의 허실을 분간하지 못한 채 속수무책이었다. 그는 필생의 공력을 끌어 올려 일학충천의 심법으로 허공으로 솟구쳤다. 그러나, 장검에는 흡사 눈이라도 달린 듯 그의 두 다리를 뱀처럼 휘감아 버리고 말았다. 순간, [으------아-----악--!] 기나긴 비명이 허공을 뒤덮었으며 피보라를 일으키는 가운데 두 개의 물체가 밑 으로 떨어졌다. 털썩! 허벅지에서부터 잘려져 나간 두 개의 다리, 잇달아 지축을 흔드는 듯한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쿵! 두 다리를 잃은 색혈교주가 땅바닥에 곤두박질치고 만것이다. 그는 잘려져 나간 허벅지 부분을 움켜쥐고 전신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쉴새없이 쏟아져 나오는 선혈, 선혈..... 쨍그랑! 홍혜령의 피에 묻은 장검이 손에서 미끄러져 땅바닥에 떨어졌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두 줄기 눈물을 소리없이 흘렸다. 철한빙은 그녀를 향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낭자, 원수를 갚게 된것에 축하를 드리오.] 홍혜령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이어 고통에 몸부림치는 색혈교주를 향해 나직하게 말했다. [갈천호, 이것으로 우리들의 은원은 끝이 났어요.] 색혈교주는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며 처절한 미소를 지었다. [홍낭자, 어째서 본좌를 죽이지 않소?] [당신도 두 다리가 잘라져 나가는 순간 이미 원한도 복수도, 모든 것은 끝난거예 요. 이제 당신도 나머지 여생을 착하게 살기를 바래요.] 색혈교주가 하늘을 우러러 길게 웃음을 터뜨렸다. [으하하하핫...] 효웅의 말로를 대변해주는 듯한 처절한 광소였다. 그는 천천히 웃음을 멈추며 홍혜령을 향해 입술을 떼었다. [홍낭자, 노부는 오늘에서야 모든 것을 깨달았소. 인간의 목숨이란 무상하다는 것을 말이오. 노부는 인과응보라는 말을 철저하게 실감했소. 이제 홍늙은이의 곁 으로 가서 무릎을 꿇고 백배 아니, 만배 속죄를 하겠소. 홍낭자, 그럼 이만 작별 하겠소.] 이어 마지막 나은 기력으로 천령개를 내리쳤다. [앗!] 홍혜령은 급히 저지하려고 했으나 이미 한발 늦은 뒤였다. 퍽! 머리가 산산조각이 나며 그의 몸이 서서히 기울어졌다. [아....] 철한빙은 점점 떠가는 구름을 바라보며 길게 탄식을 했다. 그는 언제인지도 모르게 손을 멈추고 겁에 질려 서 있는 색혈교 무리들을 향해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여러분, 이제 더 이상 죄악을 저지르지 마시고 각자 고향으로 돌아가 조용히 여 생을 지내시오.] 순간 그들은 한마디 말도 없이 뿔뿔이 흩어져 버렸다. 그들은 교주의 죽음을 보고도 전혀 뉘우치는 기색이 없었다. 추평해와 탁원규가 그들의 행동에 발끈 화를 냈다. [저런 빌어먹을 자식들! 저런 놈들은 살려두었자 선량한 사람들만 못살게 굴터이 니 당장에 박살을 내버리는 것이 훨씬 잘하는 일이지.] 하며 동시에 몸을 솟구치려 했다. 철한빙은 급히 그들을 제지하며 국향과 난향을 향해 말했다. [낭자들이 고생을 했구려. 정말 당기찬 무공을 지니고들 계십니다그려. 부럽소이 다. 부러워.] 국향이 곱게 눈을 흘겼다. [공자님도 농담을 다 하실 때가 계시군요.] 철한빙은 멋쩍게 웃었다. 그리고는 말머리를 돌리며 홍혜령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낭자, 이제 나천성주에게 가서 빛을 따집시다.] 홍혜령은 즐비한 시체와 흐르는 선혈을 바라보며 주르르 눈물을 흘렸다. 이어 하늘을 바라보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아버님, 그리고 어머님, 소녀 비록 원수는 갚았으나 어찌 이다지도 가슴이 쓰리 단 말입니까? 원수는 원수를 낳고 살생은 피를 잉태하는 법, 소녀는 불효인줄 알 지만 원수를 용서해 주고싶습니다. 아버님, 어머님, 뭐라고 말씀좀 해주십시오.] 그녀의 애절한 말소리는 중인들의 가슴에 여지없이 파고 들었다. (아..정말 성녀라고 해도 모자랄 정도의 아름다운 마음씨를 지녔구나.) 그들은 동시에 이같이 느꼈다. 홍혜령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철한빙을 응시했다. [공자님, 그리고 여러분, 소녀는 이것으로 모든 은원을 잊고 조용히 불문에 귀의 하고싶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의 은혜는 저승에 가서라도 잊지 않을 것입니다.] 난향이 눈물에 젖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언니, 어찌 그 같은 생각을 가지시는 거예요. 언니의 마음은 비록 하늘을 감동 케 할 수 있으나 불문에 귀의하신다는 것은 천리를 어기는 처사에요. 그러니 그 같은 생각을 버리도록 하세요.] 철한빙은 역시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낭자, 부모님을 생각하셔서라도 홍가의 대를 이어야 할 것이오. 만약 낭자가 불 문에 몸을 담는다면 홍가의 대는 누가 이를 것이오?] 순간 홍혜령의 몸이 가늘게 격탕되었다. 철한빙은 그녀를 그윽한 눈으로 바라보며 나직하게 입술을 떼었다. [인간이 어찌 천리를 거역할 것이며 천리 또한 어찌 인간사를 좌지우지하겠소. 천기에 가려면 모래알같은 순간들은 일시에 물거품처럼 꺼져가기 마련이오.] 철한빙의 이 한마디는 홍혜령의 가슴을 여지없이 강타하였다. 그녀는 두 눈을 스르르 감으며 깊은 상념에 젖어 들었다. (만약 내가 불문에 귀의한다면 홍가의 대가 끊어질 것인가? 만약 오라버니가 살 아계신다면 과연 나를 용서해 주실까? 모르겠다. 모르겠어. 모든것을, 모든 것 을....) 그녀는 몸부림을 치며 말없이 오열을 터뜨렸다. 철한빙은 그녀의 얼굴을 응시한뒤 천천히 말머리를 돌렸다. 추평해와 탁원규도 소리없이 그의 뒤를 따랐다. 그들은 힐끗힐끗 뒤를 돌아보며 홍혜령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멍하니 넋을 잃고 허공만을 바라보았다. 철한빙은 무표정한 얼굴에 반짝이는 눈빛으로 멀리 보이는 우뚝 솟은 산을 찬찬 히 뜯어 보았다. 그리고는 지극히 낮은 소리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일찍이 구름처럼 떠서 태산과 월궁을 찾고 또한 구름처럼 떠돌아 원수와 원한을 되씹고 외로이 거처하는 곳에 기적자리 깔고 낙성을 바라보니, 떨어지는 별이 아 니고 모란꼿의 꽃가루일세.] 그의 몸은 점차 멀어져 까만 점으로 화해만 갔다. 번호:216/227 등록자:HYUN9876 등록일시:97/04/14 00:30 길이:569줄 제 목 : [사마달] 불세마왕경 제 38장 불세마왕경 저자: 사마달 출판사: 대현출판사 제 38장 철저한 음모 사흘후, 철한빙은 한필의 말에 몸을 의탁한 채 향산을 지나고 있었다. 뒤를 따르던 추평해가 넌지시 입을 열었다. [공자님, 말도 지치고 저희들도 시장하니 잠시 쉬었다 가지요?] 철한빙은 천천히 말고삐를 늦추며 말했다. [그럽시다. 소생도 약간 피곤하구려.] 그들은 말에서 내려 널찍한 바위에 올라가 앉았다. 탁원규는 말안장에 매달아 놓은 마른 음식을 꺼내 바위 위에 깔았다. [공자님, 음식이 식기는 했지만 시장기는 면할 수 있을 겁니다.] 하며 닭다리를 철한빙에게 건네 주었다. 철한빙은 빙그레 웃으며 닭다리를 받아 쥐었다. 그들이 음식을 들고 있을 때였다. 두 명의 흑의장한이 천천히 걸어 오며 말을 주고 받고 있었다. [철형, 무명마가 사해방의 삼개 분타를 쑥밭으로 만들었다는 소문을 들었소?] 말을 건 사람은 삼십 칠팔 세 정도는 되어 보이는 넙적한 얼굴의 사내였다. 옆에서 듣고 있던 얼굴이 새까맣고 사팔뜨기의 중년인이 말을 받았다. [듣다 마다요. 또한 무명마가 지존교의 이개분타를 씨하나 남기지 않고 도륙한 일까지 알고 있소이다.] 철한빙은 그들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아니! 무명마가 사해방과 지존교의 분타를 박살내다니? 그렇다면 풍운장원에서 죽였던 작자말고 또 다른 가짜가 있었단 말인가?) 흑의장한은 바위에 앉아 음식을 들고 있는 철한빙 일행을 흘끗 쳐다보며 그자리 를 지나쳤다. 그들은 바위 곁을 지나치면서 또다시 말을 주고 받았다. [처형, 한데 무명마라는 인물이 우내십기 중 제일 인자한 혈적무황에게 도전을 청했다는데 그게 사실이오?] 사팔뜨기 장한이 대답했다. [정말이오. 앞으로 사흘후 금정산 흑운애에서 해가 중천에 뜰때 대결을 벌인다하 고.] 넙적한 얼굴의 대한이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무명마가 무공이 아무리 고강하다고 해도 어찌 신선을 방불케 하는 혈적무황에 견줄 수 있겠소. 하여간 강호 천지는 이 일로 해서 지금 금정사으로 벌떼같이 모 여들고 있다고 하는데 정말 공전철후의 대혈투가 될 것이오. 또한 그날 흑백양도 의 고수들도 온다고 하오.] 다음말은 그들이 멀어져감에 따라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음.. 그가 무슨 목적으로 혈적무황에게 도전을 청했을까? 그리고 마지막에 한 말인 그날 흑백양도의 고수들이 어쩐다는 것일까? 그곳으로 몰려든다는 말일까?) 철한빙이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추평해가 넌지시 물었다. [공자님, 혈적무황이라면 우내십기중 일황이 아닙니까? 그런데 그에게 도전한 무 명마란 대체 어떤 인물입니까?] 철한빙은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무명마는 근간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절정고수이오. 그는 또한 세외일마라 고 부르기도 하오.] 탁원규가 냉랭한 코웃음을 쳤다. [흥! 세외느 무...무슨 세외야! 우리 형제가 천외니까 따라서 세외라고 칭했나보 군요.] 철한빙은 내심 고소를 지었다. (그러고 보니 세외고 저들은 천외라는 호가 붙어 있으니 우연치고는 참으로 이상 하군.) 철한빙은 음식이 별로 먹히지가 않았다. 탁원규는 대력식사원이라는 별호 그대로 식성 또한 엄청나기 이를데가 없었다. 그들은 식사를 마친 후 말등에 몸을 실었다. 철한빙은 두 사람을 향해 넌지시 물었다. [두 분은 급정산 흑운애로 가보지 않겠소?] 그들이 어찌 마다 하겠는가! [좋습니다. 대체 무명마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기 짝이 없군요!] 철한빙의 말이 끝나자 탁원규가 주먹을 휘둘렀다. [노..노부는 무명마에게 세일외마의 별명을 딴 것으로 바꾸라고 해야지. 만약 바 꾸지 않겠다면 세외와 천외 중 누가 더 센지 우열을 따져봐야겠어.] 그는 철한빙과 지내는 동안 말을 더듬는 것을 많이 고칠수가 있었다. 철한빙은 금정산으로 가려면 모습을 바꾸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즉시 천면신공을 전개해 무수옹으로 변모했다. 천외쌍절은 전에도 이같은 것을 한번 본적이 있으나 도시 무공인지 알수 없었다. [자, 그만 갑시다.] 철한빙의 목소리가 창노하면서도 늙수그레한 음성으로 변했다. 동시에, 그들은 말 옆구리를 걷어차 질풍같이 앞으로 달려갔다. 따가닥... 따가닥------! x x x x x 금정산! 가을에는 특히 절경을 자랑한다하여 민천산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아흔 여덟개의 봉우리마다 혐준한 절벽단애가 있는 계곡이 제일 음침하면서도 험 준했다. 그 중 흑태봉과 운도봉 사이에 계곡이 가장 험준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계곡을 흑운애라고 이름지었다. 때는 금정산이 극치의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십이월 초인지라 울긋불긋한 단풍이 저마다 활짝 미소짓고 있었다. 하지만 흑운애만 검은 구름으로 뒤덮여 있어 음산한 귀기를 풍겨내고 있었다. 휘이잉! 휘-----잉! 마치 귀신의 울음소리인양 날카로운 바람이 계곡 사이를 할퀴고 지나갈때마다 더 욱 등골을 오싹하게 했다. 철한빙 등은 아침일찍 금정산에 도착했다. 오늘이 무명마와 혈적무황의 격전일인지라 산기슭에는 장사진을 이루다시피했다. 철한빙은 군웅들 중 개방의 제자가 거의 이곳을 향해 몰려들고 있다는 점에 의아 한 생각이 들었다. 그는 산중턱에 오르는 동안 사해방주와 각파의 인물들, 그리고 무림삼공자, 월하 노인, 대막신타 등 많은 인물들을 볼 수가 없었다. (음.. 오늘 가짜 무명마가 날개가 달렸다고 해도 흑운애를 빠져 나가지는 못하겠 군. 그도 이같이 될 줄은 이미 짐작했을터인데 왜 스스로 무덤을 파려고했을까?) 철한빙은 가짜 무명마의 의도를 전혀 짐작해낼 수가 없었다. 철한빙 일행은 궁웅들에 휩싸여 천천히 흑운애를 밑으로 내려갔다. 밑에는 이미 사람들로 인삼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철한빙은 천천히 계곡 밑을 쳐다 보았다. 이어 입구 쪽을 바라보았다. 이때 추평해가 전음술을 전해왔다. [공자님, 이곳은 천연적인 험지로군요. 만약 누군가가 입구를 막고 흑운애 위에 서 공격을 가한다면 이곳에 있는 사랑은 아무도 살아남지 못할 것입니다.] 철한빙은 그의 판다력에 내심 감탄했다. 만약 위에서 돌과 화살로 공격을 가한다면 밑에 있는 사람들은 전혀 피신할 곳이 없을 만치 넓은 공지였다. 해는 서서히 솟구쳐 올라 잠시 후면 중천에 매달리게 되었다. 이때, [사백님께도 이곳에 오셨군요.] 철한빙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헌원일검 및 태을이로, 그리고 화산파의 제잘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철한빙은 그들의 예를 받으며 나직이 입을 열었다. [음. 장문인께서도 오셨구먼.] 헌원일검은 주위에 자리잡고 있는 각파의 장문인을 소개했다. 소림의 혜인대사 등은 철한빙이 각파의 사백이라는 사실에 크게 놀랬다. 그들은 철한빙에게 정중하게 예를 올리며 그의 선풍도골같은 용모에 흠모의 정이 솟았다. 드디어, 해가 중천에 솟았다. 그러나 무명마는 물론 혈적무황조차 나타나지 않았다. 월하노인이 침중하게 말했다. [음.. 혈적무황이 무명마의 도전을 기절하지는 않았을 터인데 어째서 두 사람 다 나타나지 않을까?] 이때, [흐흐흐..] 모골이 송연할 정도의 음침한 괴소와 함께 계곡 사이를 유유히 떨어져 내리는 인 영이 있었다. [아..무명마다.] 각파 장문인들의 입에서 이구동성으로 터져 나온 음성이었다. 전신에 흑의를 걸친 무명마는 마치 한 조각 구름인 양 지극히 느린 속도로 지면 으로 내려섰다. [능공도허..] 철한빙은 그의 신법을 보며 가볍게 중얼거렸다. 무명마가 막 지면에 내려섰을 때였다. [무명마! 이제야 나타났...구나. 어서 설노제의 목숨을 배상하도록 해라.] 벼락같은 호통과 함께 취몽주개와 두종악, 그리고 개방 삼장로도 허공을 가르며 번개같이 날아왔다. 무명마는 복면사이로 의아한 빛을 발하는 듯 하다가 곧 음산하게 웃었다. [흐흐흐.. 네놈의 설노제가 누구이기에 노부에게 목숨을 배상하라는 것이냐?] 취몽주개의 두 눈에서 화염이 이글거렸다. [네놈은 풍운장원에게 한 소년을 무참하게 살해하지 않았느냐?] 무명마는 움찔하는 듯 했으나 이내 복면을 씰룩거렸다. [노부의 손에 황천으로 간 놈들이 부지기수이거늘 어찌 한낱 애송이를 기억할수 있겠느냐?] 이때, 하나의 인영이 유성같이 계속 아래를 향해 떨어지며 벼락같은 호통을 질렀다. [무명마 네놈이 얼굴 가죽이 두껍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구나.] 먼지 한 점 일으키지 않으며 지면에 사뿐히 내려선 인물은 바로 무림맹주인 칠저 성군이었다. 무명마는 그를 바라보며 섬전과 같은 눈빛을 쏘아냈다. [유세천, 주제에 맹주라고 늦게 도착해서 으시대려고 하다니 정말 가소롭구나.] 칠절성군은 냉소를 쳤다. [흥! 네놈이 감히 일황 노선배님께 도전을 청하다니 아마도 제정신이 아닌 듯 하 구나.] 순간 무명마의 복면이 파르르 떨렸다. 한편 철한빙은 취몽주개 등을 만나자 반갑기 그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무수옹으로 변장을 하고 있기 때문에 아는 척 할 수가 없었다. 돌연, [우....] 마치 곧 상승할 듯한 용트림이 흑운애를 가득 메우며 중인들의 귓전을 때렸다. 때를 같이하여 한 줄기 금빛 인영이 번뜩하는 순간에 장내로 내려섰다. [아..혈적무황!] 중인들은 일제히 그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철한빙은 나타난 사람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일신에 금색 장포를 걸친 백여개 가량의 노인이었으며 역시 금빛 수염이 가슴앞 까지 늘어져 있었다. 또한 얼굴은 불그스레했으며 학발동안의 면모를 갖추고 있었다. (음.. 저 노인의 공력은 이미 반로환동의 경지에 도달했구나.) 철한빙은 혈적무황의 위엄에 존경을 금치 못했다. 혈적무황은 복면의 무명마를 힐끗 쳐다보며 부드럽게 말했다. [그대가무명마인 듯 하구려. 명예와 허세는 일순간에 불과한 것이거늘 어찌 생사 를 논하려 하시오?] 무명마는 그의 위엄에 놀란 듯 잠시 주춤거렸다. 그러나 이내 두 눈에서 사악한 빛을 뿜어냈다. [흐흐흐.. 혈적무황, 노부는 그대와 더불어 자웅을 겨루고 싶소. 조부가 이긴다 면 천하제일인이 될 것이오. 만약 진다면...] 혈적무황이 차분하게 물었다. [만약 진다면?] [흐흐흐.. 노부가 진다면 전설의 봉래도를 그대에게 두손으로 바치겠소이다.] [앗! 봉래도...] 중인들은 봉래도라는 말에 일제히 술렁대기 시작했다. 철한빙 역시 봉래도라는 말에 귀가 솔깃했다. [봉래도! 바로 광불화엄진경을 찾을 수 있는 천하의 비도가 아닌가? 나는 그 무 공비급을 찾아 마성을 제거해야 하는데.] 그는 곧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만 천하의 기진이보는 덕망이 있는 사람만이 차지하는 법 어찌 내가 그것을 탐할 수 있겠는가?) 혈적무황은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기는 듯했다. 이윽고 천천히 눈을 뜨느 혈적무황은 동요됨이 없는 듯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그대가 가지고 있는 봉래도를 한 번 볼 수 있겠소?] 무명마는 말 대신해 품속에서 낡은 양피지를 꺼내 들었다. [이것이 봉래도요. 이젠 됐소이까?] 월하노인이 재빨리 말했다. [무명마, 혹시 그건 가짜가 아니오?] 순간 무명마의 눈에서 무서운 살기가 폭사되어 나왔다. [월하노인은 눈깔이 삐었느냐? 봉래도가 무슨 진짜 가짜가 있단 말이냐?] 월하노인은 또다시 물었다. [당신은 그것을 어디에서 얻었소?] [그것을 노부가 네놈에게 대답해줄 의무가 없다.] 잠자코 듣고 있던 혈적무황이 잔잔한 어조로 빨리 말했다. [무명마, 그대는 몇초를 한계로 노부와 자웅을 겨루려 하오?] 무명마가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이 재빨리 입을 열었다. [둘중 하나가 쓰러질 때까지!] 혈적무황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 방법도 좋소. 하짐나 그렇게 되면 누군가가 목숨을 잃어야 할 것이오. 노부는 그것을 바라지 않소.] 역시 일황다운 행동이어었다. 무명마는 잠시 생각을 굴리는 듯 하더니 제차 입을 열었다. [그럼 삼백초를 한계로 정하는 것이 어떻겠소?] 혈적무황이 말했다. [그것도 너무 많소.] [그럼 이백초?] 혈적무황이 역시 고개를 내저었다. [십초!] 그의 입에서 간단하나 말이 떨어졌다. [뭐..뭣이! 십초...!] 무명마는 깜짝 놀라며 두 눈을 왕방울만하게 치켜떴다. 그러자 곧 사악하게 입을 열었다. [흐흐흐.. 혈적무황, 그대는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것 같구려. 좋소! 십초를 한계로 손속을 겨뤄 봅시다.] 급기야, 공전절후의 대결투가 벌어지기 일보적진이었다. 철한빙은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가짜 무명마가 가지고 있는 것이 진짜 봉래도일까? 전에 독심수가 가지고 있었 던 것은 가짜가 아니었던가? 만약 무명마가 가짜를 가지고 은연중에 군웅들을 유 혹한다면...) 그는 재빨리 중인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들은 정사 양파를 막론하고 한결같이 무명마에게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두 눈에서는 탐욕의 빛이 끊임없이 흘러 나오고... 옆에 있던 추평해가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공자님, 두 사람 중에서 누가 이길 것 같습니까?] 철한빙은 급히 전음을 보냈다. [추형, 공자라고 부르지 마시오. 이곳에 모인 군웅들은 이목이 날카롭기 그지 없 소.] 이어 차분하게 말했다. [혈적무황의 내공은 이미 최절정에 달해있소. 하지만 무명마 역시 만만치 않은 상대일 것이오.] 추평해는 누가 이긴다는 말인지 알 수가 없었으나 더 이상 묻지 않았다. 혈적무황은 지극히 차가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그대가 먼저 공격을 하시오.] 무명마는 사양하지 않고 곧 우장을 뻗어 부드러운 경풍을 밀어냈다. 그러나 경풍은 혈적무황 앞 삼사 척을 남기자 가변 강맹하게 바뀌었다. [좋은 수법-------!] 혈적무황은 옆으로 한 걸음 비켜서서 가볍게 장력을 피했다. 이어 칠절성군을 향해 잔잔하게 말했다. [맹주, 그대가 공중인이 되어 주시오.] 칠저성군은 급히 허리를 굽혔다. [영광이옵니다.] 무명마는 냉랭히 코웃음을 치며 재차 권풍을 밀어냈다. 순간 혈적무황이 가볍게 놀랐다. [오! 용신권법....] 그리고는 가볍게 소매를 휘두르며 재차 말했다. [실전된지 근 삼백년이 된 절기가 그대의 손에서 펼쳐지나다니 부럽소이다. 부러 워.] 조롱인지 칭찬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는 한마디였다. 막강한 위력을 자랑하는 용신권법은 혈적무황이 슬쩍 휘두른 옷소매에 막혀 더이 상 밀려가지 못하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쇄애앵------! 사방으로 퍼진 권풍은 바람을 가르면서 땅바닥을 거세게 후려쳤다. 펑! 소리와 함께 지면에는 방원 일 장 둘레의 커다란 웅덩이가 파였다. 실로 무서운 권법이었다. 두 사람은 순식간에 사오 초를 교환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우세를 접하지 못했다. 부서진 돌가루와 풀뿌리 등이 허공으로 십여 장 정도 솟구치며 온통 시야를 덮어 버릴 지경이었다. 꽈-----르------릉! [이-----얍!] 장력 마주치는 소리, 기합소리가 귀가 따갑게 들려왔다. [화룡점청!] [용사추혼!] 그들이 입에서 초식을 외칠 때마다 중인들은 제자리에 서 있지 못하고 대여섯걸 음씩 물러서야만 했다. 헌원일검이 슬그머니 철한빙의 곁으로 다가섰다. [사백님이 보시기에는 누가 승리를 거둘 것 같습니까?] 철한빙은 격전에서 눈을 때지 않고 입술만 달싹거렸다. [글쎄, 현재로서는 누가 이건다고 장담을 할 수가 없네. 하지만 혈적무황이 절초 를 펼친다면 앞으로 삼사초 안에 승부가 결정날 것이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혈적무황과 무명마의 그림자가 어지럽게 난무했다. 그들은 누가 누구인지조차 분간할 수 없으 정도로 빠르게 몸을 날리고 있었다. 두 사람의 신형을 분간할 수 있는 사람은 철한빙을 비롯해 겨우 손가락을 꼽을 수 있을 정도였다. 순간, 무명마는 손이 품 속으로 들어갔다가 나오는 듯 싶자 어느새 수중에 유연하기 이 를데 없는 짤막한 협도가 쥐어져 있었다. 때를 같이하여 혈적무황이 붉은 색깔의 피리를 꺼내 들었다. 그들은 병기로써 결판을 내려는 듯했다. [이------얍!] [받아랏!] 두 사람은 쩌렁한 기합을 터뜨리며 동시에 엇가리듯이 엉겨붙었다. 쨍! 쨍! 맑은 금속성이 울려 퍼지며 그들은 허공으로 몸을 솟구쳤다. 중인들은 휘몰아치는 광풍을 헤치며 두 사람의 격전에 넋을 잃고 있었다. 그러나, 흑운애 위에서는 천인공노할 음모가 한창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그 누가 알겠 는가! 혈적무황과 무명마는 병기를 한 번 부딪칠 때마다 십여 장씩 허공으로 솟구쳤다. 그들의 신형은 까마득히 솟아올라 조그만 점을 형성하고 있을 뿐이었다. 칠절성군의 입에서 우렁찬 음성이 터져 나왔다. [구초!] 때를 같이 하여 허공으로 떠있던 두 사람의 입에서 아스라이 기합소리가 들려왔 다. [이얍...] [차앗...] 다음순간, 그들은 동시에 중인들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철한빙은 직감적으로 아차 싶었다. 그가 공력을 돋구어 그들을 바라보니 서로 병기를 부딪쳐 그 여세로 가볍게 흑운 해 위로 올라서는 것이었다. (음모다.) 철한빙은 혈적무황과 무명마가 거짓으로 싸움을 벌였다는 것을 알수가 있었다. 그렇다면 그 저의가 무엇일까? 철한빙은 재빨리 생각을 굴렸다. (그렇다. 그들은 모든 군웅들을 천연적인 험지로 유인해 들인 것이다. 일거에 몰 살해 버리려는 흉악한 계획아래 말이다. 그러면 혈적무황은 인면수심의 대마두였 단 말인가?) 그의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군웅들의 입에서 경악에 찬 음성이 터져 나왔다. [아앗! 바위가 떨어진다.] [헉! 화살과 끓은 기름..] 철한빙은 대경실색을 하며 황급히 위를 쳐다 보았다. 흑운애 위에서는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무수한 물체들이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었다. 군웅들은 삽시간에 이성을 잃고 아우성을 치기 시작했다. [아! 입구로 나가자!] [한 걸음이라도 늦는다면 개죽음을 면치 못한다.] 그러나 그들은 몇걸음 옮기지 못해 바윗덩어리와 화살, 통나무 등에 비참하게 최 후를 마쳐야만 했다. [으-----아-----악!] [....!] 군웅들은 떨어지는 물�ª▣섯� 향해 혼신의 공력으로 장력을 뿌려댔다. 쾅! 콰아쾅! 장력에 맞아 산산조각이 난 바위들과 화살, 그리고 무수한 통나무 등이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가 다시 떨어졌다. 그러나 끓는 기름만은 어찌해볼 도리가 없었다. [아악! 뜨거워...!] 바위에 맞아 골통이 으스러진 사람, 통나무에 깔려 내장이 밖으로 튀어 나온 사 람, 무수한 화살에 맞아 고슴도치가 된 사람 등 그야말로 지옥의 형상을 그대로 재현하는 듯했다. 이때, 철한빙은 군웅들을 향해 벼락같이 고함을 지르는 한편 쌍장을 동시에 날렸다. [여러분, 침착하시오. 위에서 떨어지는 물체를 떨치는 한편 입구쪽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십시오.] 그가 공력을 잔뜩 실어 음성을 발하자 수백 명의 군웅들이 일제히 정신을 차렸 다. 헤인선사가 동에 번쩍 서에 음성을 발하자 번쩍하는 철한빙의 신형을 보며 나직 이 불러를 외웠다. [아미타불.. 기인이로다. 기인이로다.] 이어 군웅들에게 사자후로써 말했다. [그렇소. 여러분, 모두 침착하게 사태에 대응해 나갑시다.] 군웅들은 냉정을 되찾고 허공을 향해 장과 병기를 휘두르며 천천히 입구로 몸을 옮겼다. 철한빙과 천외쌍절은 종횡무진 위에서 떨어지는 물체들을 물리치고 있었다. 대력신원 탁원규는 타고난 신력을 이용해서 집채만한 바위도 마치 종이장처럼 가 볍게 받아 옆으로 내던지고 있었다. 철한빙은 적혈신공을 사용해 우박같이 떨어지는 수많은 물체들을 순양의 진기로 써 녹여 버렸다. 중인들은 걸음을 옮기는 한편 그들의 활약을 보고 내심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들 중 화산파의 제자들은 험경에 처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쁘기 이루 말할수 없었다. 혜인선사가 커다란 바위를 향해 장력을 후려치며 헌원일검에게 말했다. [장문인, 귀파의 사백께서는 마치 신선을 방불케 하는 기인이시구려. 공력으로 논한다 할지라도 그분은 혈적무황과 배중지세를 이를 듯 하오. 한데 저런 분이 이제서야 나타나시다니 어쨌든 무림의 복이외다.] 헌원일검은 가슴이 뿌듯했다. 그러나, 철한빙의 진정한 무공을 알았다면 지금 이 자리에 모여있는 사람들은 혼비백산하 고 말았으리라. 그때였다. [입구가 막혔다!] [화..화살과 바위가 날아온다----!] 번호:217/227 등록자:HYUN9876 등록일시:97/04/14 00:31 길이:514줄 제 목 : [사마달] 불세마왕경 제 39장 불세마왕경 저자: 사마달 출판사: 대현출판사 제 39장 인민면구 군웅들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어지럽게 장풍을 날렸다. 펑! 펑..! [으아악!] [으----악!] [.......!] 그러나 미처 장력을 방출해내지 못한 군웅들은 처절한 비명과 함께 고혼이 되고 말았다. 철한빙은 입구가 돌로 막혀져 있음 알자 다급하기 짝이 없었다. 자기 혼자라면 얼마든지 이곳을 빠져 나갈 수는 있지만 군웅들이 걱정되어 그럴 수도 없었다. 그는 급히 천외쌍절에게 말했다. [두 분께서는 속히 흑운애 위로 올라가 매복을 해치우시오.] 천외쌍절은 아스라이 보이는 흑운애를 올려다 보았다. [고..공자님, 저.. 저곳까지 경공이 미칠 수 있을까요?] 흑운애 위까지는 족히 백 팔구십 장은 되어 보였다. 철한빙은 장력을 쳐내 바윗돌과 그밖의 것들을 밀어내며 황급히 입을 열었다. [소생이 도와줄테니 어서 몸을 솟구치시오.] 천외쌍절은 더 이상 생각할 겨를도 ��＂벗이 허공으로 몸을 솟구쳐 올렸다. 그들은 단숨에 칠십여 장을 솟구치더니 오른 발로 왼쪽 발등을 찍으며 또다시 이 십여 장을 솟구쳤다. 근 백여 장 가량 솟구치자 그들은 진기가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바로 이순간, 철한빙은 땅바닥에 널려진 돌덩이를 양손에 움켜쥐며 우렁차게 외쳤다. [두분은 소생이 던져주는 돌을 이용해 위로 올라가십시오.] 이어 양손을 허공에 대고 힘껏 뿌리쳤다. 쌔----앵 수십개의 잔돌이 빛살같이 허공으로 쏘아갔다. 잔돌들은 천외쌍절의 발밑에서부터 흑운애 위까지 인렬로 나란히 늘어섰다. 두 사람은 철한빙의 공력에 새삼 감탄하며 순시간에 돈들 위로 올라갔다. 일렬로 늘어선 잔돌들을 걷어차며 허공으로 올라가는 모습은 실로 장관이 아닐수 없었다. 철한빙은 그들이 무사히 올라가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으악!] [으아악!] [...!] 군웅들은 쉴새없이 비명을 지르며 추풍낙엽처럼 쓰러져 갔다. 철한빙은 군웅들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여러분, 중앙으로 모여 진을 형성하시오.] 군웅들은 황급히 중아으로 모이며 칠성검진, 나한진 등을 형성했다. 소림과 무당이 주측이 되어 진을 형성한 뒤 위에서 떨어지는 물체를 대항하자 사 상자가 배로 줄어들었다. 화산파는 태을검진을 태두리첨럼 형성하고 곳곳에서 밀어 닥치는 화염을 물리치 고 있었다. 철한빙은 군웅들이 어느 정도 대항해 나가자 곧 흑운애 위를 향해 신형을 솟구쳤 다. 마치 계단을 밟듯이 지극히 유연한 동작으로 올라가는 그의 모습은 천신을 방불 케 했다. 철한빙이 약 백여 장 가량 올라가자 위에서부터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 은 불화살이 쏘아왔다. 그는 우장을 휘두르는 한편 호신강기를 펼쳐 불화살을 막아냈다. 동시에 그는 진기가 떨어지는 것을 느끼면서도 허공에 몸을 띄운 채 장력과 호신 강기를 펼쳤다. 그것은 자살행위나 다를 바 없었다. 철한빙은 벽을 향해 가볍게 일장을 날리며 그 반탄력을 이용하여 다시 위로 솟구 쳤다. 급기야 그는 흑운애 위에 당도하게 되었다. 철한빙은 재빨리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곳에는 근 백여 명에 달하는 홍의인들이 끓는 기름솥과 무수한 바위돌, 그리고 통나무들을 밑으로 떨어뜨리고 있었다. 또한 절벽가에는 수많은 궁수들이 연신 활시위를 당기고 있었다. 이삼십 명에 달하는 홍의인들이 천외쌍절을 상대로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철한빙은 홍의인들을 보고 가볍게 놀랐다. [아니! 이들은 개방총단을 쳐들어 왔던 신비교의 무림들이 아닌가?] 그가 생각에 잠겨 있을 떼였다. [또 한 놈이 올라왔다. 저놈을 죽여라.] 홍의인들 중에서 가슴에 붉은 손이 그려져 있는 노인이 소리를 질렀다. [와!] 홍의인들은 삽시간에 철한빙을 향해 몰려들었다. 순간 철한빙의 눈에서 지옥의 악귀와도 같은 살기가 뻗쳐 나왔다. 그는 공력을 팔성으로 끌어 올려 홍의인들을 향해 붉은 장영을 후려쳤다. 때를 같이하여, [으아악!] [크----악!] [...!] 십여 명의 홍의인이 충풍낙엽처럼 절벽 밑으로 떨어졌다. 철한빙은 적혈장을 전개하는 한편 표표잠형보법으로 나비처럼 날아다녔다. [으악!] [....!] 그의 손이 번뜩일 때마다 여지없이 피를 뿌리며 고꾸라지는 수많은 홍의무리들을 천외쌍절은 철한빙이 도착하자 절로 힘이 솟구치는지 찌르고 후려치고 할퀴는 등 종횡으로 활약을 했다. 탁원규의 손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홍의인들은 전신이 뭉개져 처참하게 죽어갔 다. 퍽! 퍽! 쉬익! 위익! [받아랏!] 싸늘한 호통소리와 요란한 파공음이 흑운애를 온통 휘말아 버렸다. 철한빙은 우선 계곡 밑을 공격하는 인물부터 제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우-----!] 그는 맑은 장소성을 터뜨리며 빛살같이 몸을 뒤집었다. 이절벽가를 향해 맹렬하게 덮쳐갔다. [으----아----악!] [....!] 소름이 오싹 기치는 처절무비한 비명소리가 한동안 그치지 않았다. 잠시 후, 철한빙은 좀전의 자리에 가볍게 내셔섰다. 그를 상대하던 홍의인들은 그가 바람처럼 사라졌다가 졸지에 나타나자 기겁을 하 고 말았다. 다음순간 그들은 절벽가를 응시하고는 제자리에 못박힌 듯 멍청하게 굳어버렸다. 보라! 절벽가에서 밑으로 공격을 하던 사십여 명의 홍의인들은 �．셔育� 박살나고 사지가 잘려나간 채 처참하게 있는 것이 아닌가! 홍의인들은 급기야 전시을 후들후들 떨었다. 이때, [흐흐흐. 네놈의 무공이 상상외로 고강하구나. 그러나 본좌의 눈에는 한낱 어린 애 장난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철한빙은 천천히 그곳으로 시선을 돌렸다.등뒤에는 두 사람이 나란히 서 있었는 데도 언제 나타났는지 알수가 없었다. 철한빙은 그들이 혈적무황과 가짜 무명마임을 알고 내심 짚히는 바가 있었다. 혈적무황은 수하들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일부는 그 두 놈을 계속 상대하고 일부는 다시 흑운애 밑으공격을 감행하라.] 철한빙 역시 천외쌍절을 향해 나직이, 그리고 힘차게 말했다. [두 분께서는 손속에 인정을 베풀지 말고 놈들을 모조리 죽여 버리시오.] 천외쌍절은 동시에 외쳤다. [알겠습니다. 공자님!] 철한빙은 혈적무황을 향해 비웃음을 던졌다. [후후후.. 명색이 우내십기 중 일할이라는 작자가 사악한 무리와 어울릴줄은 정 말 몰랐소이다.] 혈적모황이 징그럽게 웃었다. [흐흐흐.. 만약 네놈만 아니었다면 밑에 있는 놈들은 벌써 박살이 나도 말았을 것이다. 하짐나 그것도 잠시 시간만 늦춰질 뿐이니 별로 개의할 일도 아니지.] 이어 음산하게 말했다. [늙은 놈아! 네놈은 대체 어디서 굴러 먹던 인물이냐? 어서 썩 이름을 대지 못할 까?] 철한빙은 냉랭하게 코웃음을 쳤다. [흥! 그대들은 노부의 신분을 알 자격이 없소. 혹시 그대들의 조상 정도면 또 몰 라도.] 순간 혈적무황의 안색이 썩은 돼지간처럼 변했다. [뭐,.뭣이! 네놈은 관을 보기 전엔느 눈물을 흘리지 않겠구나.] 철한빙은 그 말을 못들은 척 넘기며 넌지시 물었다. [당신은 어째서 군웅들을 기만하여 한 자리에 모아놓고 몰살시키려고 했소?] [흐흐흐.. 천상천하유아독존이라는 말을 네놈도 잘 알고 있을텐데?] 철한빙은 가볍게 코웃음을 날렸다. [그래요? 정말 커다란 포부를 가지셨구려.] 이 순간 이십여 명에 달하는 홍의인들이 계곡 밑을 향해 또 다시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위세는 미약하기 짝이 없었다. 천외쌍절은 제 세상을 만난 듯 인정사정없이 살생을 저질렀다. [으----악!] [억!] 또다시 그들의 손에 ��＂십여 명이 쓰러졌다. 혈적무황은 크게 당황한 듯 가짜 무명마를 향해 급히 말했다. [천당주는 속히 늙은이를 ��Þ애 버리시오.] 가짜 무명마 즉, 천당주는 공손히 대답을 한 뒤 철한빙을 향해 번개같이 덮쳐가 다. [늙은 놈아! 뒈져라!] 그는 수중의 혈도로 비폭류천의 살초를 뻗어냈다. 철한빙은 역시 손전손결을 결심하고 원양신공을 펼쳐내었다. [자살화공!] 순간 그의 장심에서 자색 불빛이 천당주의 전신을 향해 쏘아갔다. [앗!] 천당주는 초식을 펼치기도 전에 왼손으로 재차 시뻘건 화염이 이글거리는 장력을 후려쳐갔다. [야화소천!] 이때 혈적무황이 혼비백산을 하며 급히 고함을 질렀다. [천당주, 급히 몸을 피하시오.] 하며 더 할 수 없이 신속한 동작으로 소매를 떨쳤다. 순간 금빛 찬란한 새털같은 침들이 철한빙을 향해 새까맣게 뒤덮어갔다. 그러나 혈적무황의 신속한 동작에도 불구하고 천당주는 장력을 가슴에 정통으로 얻어 맞고 말았다. [아---아----악!] 지지지지지! 처절한 비명소리와 살타는 냄새가 귓전을 할퀴고 지나갔다. 쿵! 천당주는 온몸이 새까만 숯덩이로 변한 채 전신이 짓뭉개져 있었다. 철한빙은 천당주를 살해한 뒤 금빛 침을 향해 오른쪽 소매를 쭉 뻗었다. 그러자 수많은 침들이 소매 안으로 고스란히 들어가 버리는 것이 아닌가? 혈적무황은 대경실색을 하며 연속 두 걸음이나 물러섰다. 그는 처참하게 죽어있는 천당주의 시체를 보자 번개같이 뇌리를 스치는 것이 있 었다. 혈적무황의 눈은 점차 커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공포의 빛으로 변하고 말았다. 그는 전신을 가볍게 떨며 철한빙을 가리켰다. [네.. 네놈이 바로...] 철한빙은 재빨리 그의 말을 끊었다. [그렇소. 하지만 당신을 몰라도 될 것을 알아 버렸소. 노부는 부득이 당신을 죽 여야만 될 것 같소.] 하며 그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그러던 중 혈적무황에게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엇! 저놈의 얼굴 가죽이 약간 이상한데? 혹시 인피면구를 쓴 것이 아닐까?] 그는 천면신공을 익혔는지라 아무리 상대가 역용변장을 하더라도 단번에 알아낼 수가 있었다. 하지만 혈적무황이 인피면구를 썼는지의 여부는 확실히 판단할 수가 없었다. [만약 그가 인피면구를 쓰고 있다면 천하에 다시 없는 정교한 것이 틀림없다. 당금 무림에 이토록 정교한 인피면구를 만드는 인물이 대체 누구일까?] 그가 생각에 잠겨 있을 때였다. [이놈! 받아랏!] 혈적무황은 그 트�㈋맴ª� 이용해 혈적을 꺼내들고 번개같이 기습을 가해왔다. 철한빙은 천만 뜻밖에 그가 기습을 가해오자 노기충천하고 말았다. [비겁한 놈! 그래도 일황이라고 자처할 수 있느냐?] 그는 표표장형보법을 사용해 삽시간에 칠십 이보를 옮겨 다녔다. 혀적무황은 기습이 실패하자 크게 당황하며 재차 살초를 전개했다. 철한빙은 혈적무황이 소문보다 무공이 고강하지 않자 그가 가짜라고 단정했다. 그는 여유있게 초식을 피해내며 천외쌍절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전신을 피로 목욕한 채 무자비하게 초식을 전개하고 있었다. 그 많던 홍의인들은 이제 겨우 칠팔 명 밖에 남지 않았다. 철한빙은 두 사람의 무공에 내심 감탄했다. 그는 급히 그들을 향해 전음을 보냈다. [두 부는 그들을 빨리 처치하고 근처에서 밧줄을 밑으로 내려 군웅들을 올라오게 하시오. 되도록 빨리 행동하시오.] 천외쌍절은 전음을 듣고 독문절예를 펼쳐 순식간에 칠팔 명의 골통을 부서버렸 다. 이어 근처에서 밧줄을 찾아 매듭을 잇기 시작했다. 밧줄을 모두 묶자 간신히 백 팔십여 장의 길이를 만들 수가 있었다. 혈적무황은 이광경을 보고 내심 몹시 당황했다. [이크! 이거 정말 큰일났구나. 잘못하다가는 이곳에서 뼈를 묻게 될지도 모르겠 구나. 백여 명에 달하는 수하들이 한갓 세 놈에게 어이없이 당하고 말다니. 이럴 줄 알았으면 방주님 말씀대로 제이진을 매복시켜 두는 것인데.] 철한빙은 여유있게 몸을 날리며 혈적을 피해갔다. 혈적무황은 다급함을 금치 못하며 필생의 공력을 끌어 올려 혈수마공을 전개했 다. 순간 혈적이 수십 개로 변하며 흑운애를 붉게 물들였다. 초식의 매서움은 전신을 갈가리 찢어 놓고도 남을만 했다. 혈적무황은 혈수마공을 펼쳤는데도 불구하고 철한빙의 옷자락조차 스치치 못하자 수치심과 분노에 치를 떨었다. [이놈! 어째서 미꾸라지처럼 피하기만 하는것이냐? 어서 초식을 펼치지 못할까?] 철한빙은 전혀 대꾸도 하지 않은 채 가벼운 미소만 짓고 있을 뿐이었다. 이때 밧줄을 타고 제일 먼저 올라오는 군웅이 보였다. 혈적무황은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하며 눈알을 디룩디룩 굴렸다. [군웅들이 올라오기 전에 이곳을 빠져 나가야 한다.] 그는 재빨리 생각을 굴린 뒤 양소매를 빛살같이 뻗어냈다. 순간 수없이 또 다른 많은 침들이 번개같이 철한빙을 덮쳐갔다. 그리고는 필생의 공력으로 일장을 후려치며 맞은편 봉우리를 향해 신형을 날렸 다. [흥!] 철한빙은 그가 도주하려고 하자 냉랭하게 코웃음을 쳤다. 이어 소매자락으로 재빨리 금침을 날려보냈다. 그러는 한편 혈적무황을 향해 더 할 수 없이 신속한 동작으로 식지를 튕겼다. 쉬익! 날카로운 지풍은 혈적무황의 신유혈을 곧장 찍어갔다. [헉!] 혈적무황은 등 뒤에서 바람을 가르는 음향이 들려 오자 대경실색을 했다. 그는 황급히 일학충천의 신법을 전개해 허공으로 몸을 솟구쳤다. 그러나 지풍은 마치 눈이라도 달린 듯 허공에 솟구친 그의 신유혈을 쫓아가 정확 하게 찍어버렸다. [으윽!] 혈적무황은 신유혈을 짚이자 맥없이 밑으로 떨어졌다. 그가 떨어지고 있는 곳은 바로 흑운애 밑이었다. 이때 철한빙은 오른손을 쭉 뻗어 허공섭물신공을 전개했다. 그러자 밑으로 떨어지던 혈적무황의 몸이 주춤하는가 싶더니 철한빙의 면전으로 빨려가 버렸다. 쿵! 철한빙의 앞에 떨어진 그는 분신쇄골을 면하자 한가닥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곧 사색으로 변하고 말았다. 그는 혈돌르 짚혀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게 되자 미칠 것만 같았다. 때를 같이하여 밑에 있던 군웅들이 전부 올라왔다. 군웅들은 혈적무황이 쓰러져 있는 것을 보자 처음에는 무척 놀라는 표정을 지었 다. 그러나 그들은 곧 내막을 깨닫게 되었다. 혜인선사가 천천히 철한빙을 향해 말했다. [노선배님, 오늘의 혈겁을 막아 주신 점, 깊이 기억하겠습니다.] 철한빙은 묵묵히 두 눈을 내리감았다. 항룡진인이 혈적무황의 아�뉼막� 다가서며 나직히 도호를 외쳤다. [무량수불... 노시주께서는 어째서 이같이 천인공노할 음모를 꾸미셨소? 정말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더니 바로 노시주를 두고 이른 말인가보 오.] 혈적무황은 입을 벌리지 못하는지라 원한에 사무친 사악한 눈빛만 쏘아내고 있었 다. 철한빙은 천천히 눈을 뜨고 중인들을 둘러 보았다. 삼사백 명에 달했던 군웅들이 지금은 고작 백여 명 정도가 살아 남았을 뿐이었 다. 그것도 태반이 부상을 당했거나 약간씩 내상을 입고 있는 듯했다. 정사 양파는 실로 엄청난 피해를 입은 것이다. 철한빙은 혈적무황의 혈도를 풀어 신비교의 내막을 알아내려고 했으나 주저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만약 혈도를 풀어준다면 그는 틀림없이 군웅들에게 자신의 신분을 폭로할 것이 분명했다. 이에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했다. 이때 군웅들 사이에서 악에 받친 울분이 터져 나왔다. [저놈을 갈기갈기 찢어 죽여 무림동도들의 원한을 갚아줍시다.] [그럽시다.] 동시에 군웅들은 우르르 혈적무황에게 덮쳐들었다. 혜인선사가 크게 놀라며 급히 그들을 제지시켰다. [여러분, 잠시만 기다리시오. 그의 혈도를 풀어 어째서 이같이 끔찍한 짓을 저질 렀는지 자초지종을 들어 봅시다.] 군웅들은 또다시 잠잠해졌다. 혜인선사는 혈적무황의 혈도를 풀어 주려고 했으나 어디를 제압댕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으..네...네놈은 간교하기 이를 데 없는 심기를 지녔구나. 오냐? 본좌는 네놈에 게 완전히 굴복했다. 하지나 원귀가 되어서라도 네놈을 죽여 버리고 겠다.] 그리고는 군둥드을 향해 무시무시한 살기를 뿜어냈다. [오늘 네놈들은 천운으로 목숨을 건졌으나 보..본교는 처...천하를 움켜 쥐..쥐 기까지....] 혈적무황은 갑자기 음성이 미약해지며 서서히 무너져 내렸다. [앗!] 군웅들은 대경실색을 하며 황급히 그에게 몰려 들었다. 그런 혈적무황은 얼굴이 푸르뎅뎅하게 변하며 전신을 파르르 떨었다. 그것도 잠시 뿐 곧이어 그의 몸은 점차푸르스름한 액체로 변하는 것이었다. [앗! 이 자는 부골산을 복용했구나.] 혈적무황의 시체는 삽시간에 옷가지만 남기고 푸른 물로 변하고 말았다. 그의 얼굴이 이떤 부근에는 정교하기가 매미 날개처럼 얇은 인민면구가 한장 남 아 이었다. [아니! 이것은 또 어찌된 일이란 말인가?] 군웅들은 잇달아 놀랐다. 철한빙은 허공섭물신공으로 인피면구를 거둬들이며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이 자는 혈적무황이 아니라 어떤 신비한 단체의 인물이 변장을 한 것이었소.] [뭣이?] 군웅들은 아에 망연자실해져 버렸다. 철한빙은 삼매진화로써 인피면구에 묻은 부골산의 독을 녹여 버렸다. 피시식!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찌르자 부골산의 독이 거짓말처럼 녹아서 연기로 변해 버리 는 것이었다. 군웅들은 그의 공력에 재삼 감탄을 금치 못했다. 철한빙은 칠절성군을 향해 착잡한 어조로 물었다. [맹주, 이 인피면구를 노부가 보관해도 좋겠소?] 칠절성군은 급히 허리를 굽혔다. [후배가 어찌 가타부타 할 수가 있겠습니까? 노선배님의 의향에 따를 뿐입니다.] 철한빙은 빙그레 웃으며 인피면구를 품 속에 접어 보였다. 이어 먼 창공을 바라보며 한숨을 불어냈다. [휴우! 무림의 혈세가 갈수록 흉험해지는구나. 노부가 어찌하여 세속에 발을 들 여놓게 되었는고.] 옆에 있던 천외쌍절은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간신히 참았다. 철한빙은 그들을 힐끗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헌원일검을 향해 입을 열었다. [장문인, 본파와 각파의 희생자는 얼마나 되는가?] 헌원일검이 침중하게 낯빛을 고치며 말했다. [예, 본파는 칠십 이 명이 사망했고 부상자가 십여 명에 달합니다. 각파의 제자 들도 역시 본파와 비슷할 것입니다.] 철한빙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도 많은 희생자가 생겼구나.] 그는 곧 흑도의 무리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는 그들은 철한빙의 눈빛을 감히 정면으로 마주대하지 못하고 슬금슬금 뒷 걸음질 치더니 순식같에 사라져 버렸다. 철한빙은 싱겁게 웃고 말았다. 그는 취몽주개에게 시선을 돌렸다. [당신이 개방의 방주시오.] 취몽주개가 얼른 고개를 숙였다. [그렇습니다. 이 비렁뱅이가 취몽주개 올습니다.] 철한빙은 웃음을 참으며 짐짓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음.. 그대가 개방을 잘 통솔해 나가고 있다는 소문을 익히 들었소.] 취몽주개는 또다시 허리를 굽혔다. [노선배님의 과찬에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철한빙은 속으로 실소를 금치 못했다. (참! 형님이 언제부터 이같은 예의를 배웠을까?) 그러나 겉으로는 전혀 내색을 하지 않았다. [모쪼록 잘 이끌어 나가기 바라며 억조창생을 위해 힘을 아끼지 말아 주시오.] [명심하겠습니다.] 이때 각파 장문인들과 군웅들은 헌원일검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의 눈빛은 하나같이 자신들의 본파에도 철한빙같은 절세기인이 있었으면 얼 마나 좋을까 하는 눈치였다. 헌원일검은 물론 태을이노 등은 자신도 모르게 어깨가 우쭐해졌다. 화산파는 졸지에 철한빙 덕분에 가치가 몇 배로 뛰어오른 것이다. 읽기(번호) 쓰기(W) 목록열람(DIR,L,LL) 다음메세지(N) 앞메세지(P) 도움말(H) 등록자검색(FROM) 제목검색(SUBJ) 답장(R) 삭제(DEL) 기타(Z) 선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