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세가 - 백상 서장 다소 한가로운 듯한 가을날의 오후였다. 사위는 조용한 편이었다. 절반쯤 열려져 있는 창문의 사이로 간간히 부드러운 미풍이 스며들어 와서 방안 전체로 은은하게 퍼져가고 있는 중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창밖에는 누렇게 물든 오동나무잎들이 하나둘씩 소리없이 떨어 져 내려서 마당위로 수북하게 쌓여가고 있었다. -제갈신중. 늦게까지 잠을 자다가 일어난 그는 왠지 아직 피로감이 풀리지 않은 듯한 기 색으로 약간 권태스러운 표정이었다. 다소 못마땅한 듯이 찌푸린 얼굴로 그와 같은 광경을 바라보고 있다가 그는 문득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벌써 가을이로군......) 그는 마치 지금 다시 가을을 맞게 되어서 매우 짜증스럽다는 듯한 말투였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다소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사실은, 지금으로부터 거의 삼 년 전인 지금처럼 낙엽들이 떨어져서 뒹구는 가을날에 그는 집을 나왔던 것이다. 그가 그렇게 갑자기 가출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이유에 대해서 말하라면 누 구라도 쉽게 잘라서 대답하기가 곤란해질 것이므로, 이 복잡하기 짝이 없는 인간사에 있어서 한두마디로 선을 긋는 그런식의 대답 을 하려는 노력은 아예 불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비록 그 정확한 이유는 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분명히 그 당시에 더러 심각하게 그의 가슴을 뒤흔들었었고 또한 마침내는 마 음의 상처라고까지 할 만한 것을 만들었던 하나의 커다란 문제가 틀림없이 존 재하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이제는 그만 집으로 돌아가 봐야 할까?......) 그는 여전히 권태스러운 듯한 표정으로 다시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는 이른바 남들과 조금 다르게 심한 방황을 했던 사람이었다. 나이가 아주 어렸을 적에는 그도 역시 한 때 저법 영특하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었다. 하지만 나이가 어느 정도 많아져서 일단 심한 방황속으로 빠져들게 되자 그는 이상하게도 모든 일에 있어서 바보처럼 되어갔다. 따라서 그때까지 선망의 시선만을 받아오던 사람들에게서는 반대로 조소의 시 선을 받기 시작했고, 한결같이 따뜻한 우애로써 뭉쳐져 있던 가까운 집안사람들로부터는 차가운 멸 시의 시선을 받기 시작했다. 그것은 사실 누구라도 쉽게 견딜 수 있는 그런 상황은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에 이르러 구태여 다시 집으로 돌아가 보려는 것은 분명히는 알 수 없지 만, 아마도 이미 삼년의 세월이 흘렀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비록 그렇게 해서 마음이 허락한다고 해도, 아무런 말도 없이 집을 나간 이후에 삼 년동안 연락 한 번 하지 않고 있다가 이렇게 불쑥 제멋대로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는 자체가 도무지 염치없는 일이 기 때문에, 역시 쉽게 마음이 내키는 일은 아니었다. 헌데 바로 그때 아주 공교로운 일이 벌어졌다. 느닷없이 방문이 열리고, 그 사찰의 사미승 하나가 고개를 들이밀더니 뜻밖에 도 이와 같은 말을 전해주는 것이었다. [저어 시주님, 지금밖에 제갈세가에서 사람들이 와서 시주님을 찾고 있는데 어떻게 할까요?] 제1장 어수룩한 산적들. 제갈세가- 흔히들 강호의 무림오대세가의 하나로서 불리워지고 있는 그곳 제갈세가는, 현재 호북성 양양현 융중이라는 마을에 위치하고 있으며, 천하에 그 세력을 떨치고 있는 중이었다. 제갈신중은 바로 그 제갈세가의 사람이었으며 당금가주의 차남이었다. 그 사미승의 말대로,제갈세가에서 그를 찾으러 사람들이 온 것은 분명하였으 며 그 사람들은 아복을 비롯한 하인들이었다. 가주께서 며칠안으로 돌아오시게 되었으니 부디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와 달라 는 작은 할아버지의 말씀을 전하러 온 것이었다. 제갈신중으로서는 이미 기왕에 집으로 한 번 돌아가 보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 었던 터였기 때문에, 그러한 전갈은 이를테면 시기적절하여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라고도 말할 수 가 있었다. 이제는 그야말로 명분좋게 집으로 되돌아갈 수가 있을 것이다. 제갈신중은 일단 가까운 시일내에 돌아가겠다는 대답을 하고서 아복 등을 돌 려보낸 이후에,다시 그 절에서 하룻밤을 머물렀다. 그로서는 무슨 지난날을 회고해 보고 방랑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기 위한 것이 아니라 기실은, 하인들이 왔다고 해서 금방 좋아라하고 따라나서기가 멋쩍은 느낌이 있어서 나름대로 무슨 모양을 내보고자하는 이유에서였다. 거의 해야할 일도 없고 또한 무슨 정리해야 할 물건들도 없었으므로, 저녁무렵에 안쪽으로 들어가서 절의 주지에게 그저 형식적으로 떠나겠다는 작 별인사를 고했을 뿐,그 이외에는 대부분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비록 그다지 대단한 감회는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러나 그래도 일단 무려 삼년만에 집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자 왠지 들뜨는 기분이 되어서 늦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새벽녘에 비로소 겨우 잠들 수가 있었다. 제갈신중은 거의 정오가 다 되어서야 비로소 잠자리에서 깨어났다. 제갈신중은 느릿하게 몸을 움직여서 세수를 마치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에 드 디어 떠나려고 하다가, 문득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작은 보따리를 도로 내려놓고 방안에서 자세를 잡 았다. 그는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듯 했던 가문의 무공절기들을 상기하여 한 번 시 전해 보려는 것이었다. 당시에 제갈신중은 무공방면에 있어서 너무나도 진전이 느려서 많은 사람들로 부터 늘상 심한 질책의 대상이 되곤 했었다. 비록 커다란 기대는 하지 않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그간에 삼 년이라는 세월이 흐르기도 했으니,제갈신중이 그래도 그 무 공방면에 있어서 다소나마 진전을 보게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 아닌가. 제갈세가에는 현재 대략 십여가지가 대표적인 무공으로 전해내려오고 있는데, 그것들은 모두가 그 현원전단공이라는 내공심법으로부터 출발한다. 제갈신중은 일단 그렇게 서 있는 상태로 현원전단공의 내공십법으로 운기를 한 다음에, 그것을 장력으로 서서히 펼쳐냈다. 그 현원전단공이라는 내공심법은 최절정의 무학으로서, 일단 그것이 어느 정도의 경지에 오르게되면 시전자의 주위에는 단향을 풍기는 자색기운이 일어나게 되어 있었다. 제갈신중이 현원전단공의 내공을 장력으로 펼쳐낸 수법은 바로 제갈세가의 대표적인 무학들 가운데 하나인 대천성장의 기초였는데, 일단은 그의 장심에 가벼운 자색기운이 일어나서 앞으로 밀려나가는 것 같았 으나,이내 그 기운은 석자의 거리도 나아가지 못하고 도중에서 그만 맥없이 스러지고 말았다. 만일 공력이 다소 높은 사람이라면 그와 같은 방안에서 수련을 할 때에는 거 의 공력을 발출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었다. (삼 년동안 나의 무공은 하나도 늘지 않았군.....) 제갈신중은 약간 자조적인 표정이 되어 씁쓸하게 그렇게 중얼거렸다. 제갈신중은 이번에는 역시 가문의 절학들 가운데의 하나인 천성지의 지법을, 기초적인 변화에 의거하여 한 번 찔러보았다. 찍, 그의 오른쪽 식지의 손가락 끝에서 일순 미약한 소리와 함께 한줄기의 지력이 발사되었으나, 역시 그것도 벽면에 미처 도달하기도 전에 위력이 약해져서, 정작 벽면에는 거의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못하게 되고 말았다. (안되는군.) 제갈신중은 그만 지루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웃으면서 자세를 풀고 밖으로 향 하기 시작했다. * * * 제갈신중은 비교적 늦은 시각에 출발하기는 했지만 아직은 그렇게 서둘러야 하는 상황은 아니었다. 아침과 점심식사를 거른 그는 비교적 느긋한 모습으로 형산의 기슭을 소롯길 을 따라서 천천히 내려갔다. 실상 제갈세가는 여기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만일 그의 현원전단공의 공력이 단지 일성의 경지에 오르게 되기만 해도 거의 하루만에 달려갈 수 있을 정도의 거리였다. 하지만 제갈신중은 현재 십년 정도의 공력을 소유하고 있었고, 게다가 어려서부터 제갈세가의 엄격한 규율하에서 비교적 철저한 기초무공을 체득해왔었기 때문에, 그의 무공만으로도 이러한 험한 산길을 내려가는 데에는 그다지 어려움이 없 었다. 산중에는 지금 온갖 색깔의 단풍이 한 창 물들어 있는 상태였고 가끔씩 불어 오는 산바람에 낙엽들이 우수수 소리를 내며 휘날리고 있었다. 제갈신중은 손을 넣어서 자신의 품속을 뒤져보았다. 그에게서 이제 겨우 두어냥 정도의 은자가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가 삼년 전에 집을 나올 때는 황금 열냥을 가지고 나왔었는데 이제는 그것 을 거의 다 써버리고 돈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었다. 기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머물렀던 절에서는 한달간 숙식을 하는 조건으로 은자 열냥의 시주돈을 냈었기 때문에 이제 수중의 돈이 거의 바닥이 난 그로 서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강하게 일어나는 것이 당연했다. (이만한 돈이면 집으로 돌아가는 노자돈으로는 충분하겠군.) 제갈신중은 내심으로 그렇게 생각을 굴린 뒤에 다시 느긋한 표정으로 산을 내 려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바로 그 무렵에 아래쪽에서 웬 낯선 장한들 서너명이 함께 어우러져서 어슬렁거리며 올라왔다. 마침 거의 한달간이나 절에 묵으면서 머리 깍은 중들 이외에는 사람구경을 못 하고 있던 제갈신중으로서는, 문득 그들을 보자 반가운 마음이 들게 되었다. 물론 그는 어제 오후에는 하인들을 만나보기는 했지만 지금과 그때와는 상황 이 아주 다른 것이었다. [여러분들은 약초를 캐러 올라오는 길이시우?] 제갈신중은 그들과 가까이 마주치자 옆으로 길을 비켜주면서 지나가는 말로 그 렇게 물었다. (......) 그들 네명의 장한들은 하나같이 작은 망대를 들에 매고 있었고,게다가 각기 하 나씩의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장한들은 처음에는 별로 관심도 없다는 듯이 앞쪽만 바라보며 올라가다가 제 갈신중의 그와 같은 질문을 듣고는 하나같이 약간 의아한 기색들이었다. 이런 산에서 생활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그들 장한들의 인상은 친 근감을 주기보다는 차라리 딱딱하고 무뚝뚝해 보였다. 그것은 아마도 이런 험한 산중에서 일을 하며 살아가노라면 그 마음도 같이 험악하게 닮아가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사람들 가운데에는 진실한 사람들도 많다. 장한들 가운데에서 몸집이 다소 뚱뚱하고 얼굴에 털복숭이를 하고 있는 장한 이 앞쪽을 기웃거리다가, 이윽고 제갈신중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되물엇다. [자네는 지금 절에서 내려오는 길인가?] 털복숭이 장한의 나이는 대략 서른대여섯 정도로서 제갈신중보다 십여세는 더 많은 셈이었다. 그러나, 그야말로 당당한 무림세가인 제갈세가의 자제로서 제갈신중은 다른때라면 그 와 같은 초부들의 반말을 달가와하지 않았을 것이지만, 지금은 비교적 기분이 좋은 상태였기 때문에 개의하지않고 대꾸해 주었다. [아니 여러분은 지금 절로 올라가고 있다는 말이오?] 털복숭이 장한은 잠시 제갈신중의 전신을 두루 살펴보다가 가볍게 웃으며 다 시 물었다. [왜,우리가 절에 올라가게 되면 뭐 안되는 일이라고 있다는 말인가?] 제갈신중은 상대방이 뜻밖에도 정색을 하고 그렇게 물어오는 것을 보고 약간 어리둥절 해져서 대꾸했다. [하하,뭐 안되는 일이야 없겠지만 나는 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서하는 말이 오! ] 사실 눈앞의 그 장한들은 인상들이 하나같이 험악하여 무슨 절에 가서 불공을 드리는 일등과는 어울리지않을 것 같았다. 털복숭이 장한은 약간 웃으며 다시 물었다. [어울리지 않는다니,그럼 우리들의 인상이 보기에 좋지않다는 말인가?] 제갈신중은 엉뚱한 말장난에 휘말리게 된 것 같아서 다소 귀찮은 느낌에 쉽게 대꾸했다. [사실 인상이 좋지않다는 것이 아니라,당신들의 인상은 약간 험한 구석이 있어 서 무슨 불공을 드리는 일들과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오,내 그래서 드 린 말이었소.] 털복숭이 장한은 고슴도치같은 털이 숭숭하게 나있는 아래턱을 쩍 벌리며 능 글맞게 웃어보였다. [그렇다면 결국 우리가 산적을 닮았다는 말이로군?] 제갈신중은 대화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하고 있는 것을 느끼고는 내심 어이없어 하며 대꾸했다. [그런 셈이지만 거기에 무슨 저의가 있어서 한 말은 아니었소.여러분이 내 말 을 기분나쁘게 들었다면 이해해 주시오.] 털복숭이 장한은 그 말을 듣자 이내 다시 웃으며 고개를 젓는 것이었다. [아니,아니야. 우리가 그렇게 생겼기 때문에 한 말인데 그걸 기분나쁘게 생각할 리가 있나?다만 우리는 자네에게 한가지 묻고싶은 것이 있는 것이네.] (......?) 제갈신중은 처음에는 장한들이 자신에게 시비를 걸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상대방이 금세 이렇게 시원시원하게 나오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내 심 반가운 마음이 들어서 즉시 웃으며 대꾸했다. [아 그래요? 그럼 어디 한 번 물어보시오. 마침 내가 알고 있는 것이라면 즉시 가르쳐 드리겠소.] 털복숭이 장한은 다시 한 번 앞쪽을 두리번거리다가 고개를 흔들며 다시 말했 다. [아니,아니야. 나는 지금 절의 사정에 관해서 물어보려고 하는데......자네 혼자만 가지고는 안되겠어.혹시,자네의 일행이 좀더 있는 것은 아닌가?] 제갈신중은 털복숭이 장한이 엉뚱하게도 그와 같이 물어오는 것을 보고 다시 의아해 하다가 대꾸했다. [나는 유감스럽게도 지금 혼자 절에서 내려오고 있는 길인데,대체 무슨 일인데 그러시오? 나는 그곳에 오래 머물고 있었기 때문에 그곳의 왠만한 사정에 대 해서는 잘알고 있을 것이오.] 헌데 그때의 일이었다. 갑자기 장한들의 표정이 한결같이 음산하게 변하더니, 괴이하게도 제갈신중의 주위를 에워싸는 것이었다. (......) 제갈신중은 그들의 얼굴에 느닷없이 강한 살기가 어리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의아해 하다가 다시 물었다. [아니,갑자기 왜들 그러시오? 내가무슨 말을 잘못하기라도 했단 말이오?] 그 털복숭이 장한은 제갈신중의 앞으로 한걸음 다가들더니 음험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흐흐,너는 잘못 말한 것이 아니라 잘못 생각한 것이다.] 제갈신중은 갑자기 돌변한 그들의 태도에 대해서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서 어리둥절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잠시 후에 제갈 신중은 이내 무슨 상황인지 깨달은 듯이 웃으며 이렇게 말했 다. [아! 알고보니 당신들은 사실은 진짜 산적들이었군?] 제갈신중의 말이 떨어지자 그 네명의 장한들은 일제히 으흐흐! 하고 음험한 웃음을 터뜨리는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제갈신중의 말을 시인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털복숭이 장한은 웃고난 이후에 돌연 고개를 내저으며 이렇게 대꾸하 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러나 네가 말한 것처럼 산적은 아니다. 그렇다면 너는 우리가 어떤 사람들인지 짐작할 수가 있겠느냐?] (......) 제갈신중이 다시 어리둥절해하는 것을 보고 장한들은 다시 음험한 웃음을 떠 올리기 시작했다. 헌데 제갈신중은 문득 그들을 향해 웃으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알겠소. 당신들은 그럼 산적이 아니라니, 혹시 수적이 아니오? 그리고......음, 그렇다면 이 부근에서 가까운 삼강방이나 동정십팔채의 사람들이겠군?] 제갈신중의 말이 끝나자 과연 장한들의 안색은 가볍게 변했다. 우두머리로 보이는 그 털복숭이 장한이 두 눈에서 살광을 발하며 급히 다그쳐 물었다. [네놈은 우리가 본방의 사람들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게 되었느냐? 빨리 바른 대로 대라!] 성질급한 털복숭이 장한에 의해 그들이 정말로 삼강방의 사람들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대개 그와 같은 녹림도적들의 말투는 거의 습관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를테면 그들이 동정십팔채의 사람들일 경우 본채라고 말하지 본방이라고는 말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 삼강방의 무리들은 한수와 장강이 만나는 무창성의 부근에서 활동하던 수 적들로, 근래에 들어서 당금의 정도무림맹인 영웅맹이 날로 기세를 더해감에 따라, 지하에 숨어들어서 거의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던 자들이었다. 제갈신중은 약간 여유있게 웃으며 대꾸했다. [우선 당신들은 스스로 산적이 아니라고 했고,게다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 에 와서 은근히 산적질을 하고 있으니 그렇다면 이곳과 가까운 곳에 있는 그 런 방파의 사람들이 아니면 누구이겠소?] (......?) 털복숭이 장한은 그제서야 자신이 필요이상으로 떠들어서 손해를 봤다고 알게 되었는지 즉시, 더 이상 불필요한 말을 하지 않고 고압적으로 소리쳤다. [좋다. 그렇다면 네놈은 어서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내놓아라!] 제갈신중은 사실은 귀찮은 일에 휘말리기가 싫었기 때문에 잠시 주저하다가 대꾸했다. [그럼 나를 곱게 보내주겠다는 말이오?] 털복숭이 장한은 두 눈을 크게 부라리며 재촉했다. [어서 모두 내놓기나 해라!] 제갈신중은 하는 수가 없어서 즉시 품속을 뒤져서 가지고 있던 두어냥의 은자 부스러기를 꺼내서 그자의 앞으로 내밀었다. [자, 이게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의 전부이니 어서 나를 곱게 보내주시오.] (......?) 장한들은 제갈신중이 내미는 은자 부스러기를 보자 일순 어리등절한 표정들이 었다. [그, 그게 다란 말이냐?] 털복숭이 장한은 소득이 너무 형편없다고 생각했는지 말조차 약간 더듬거렸 다. 제갈신중은 자신의 낡은 청색장삼을 가리키며 대꾸했다. [당신들은 참으로 딱하군. 나와 같은 허름한 의복을 입고 있는 사람에게 무슨 많은 돈이 있을 리가 있겠소?] 털복숭이 장한도 그 말에 수긍한 듯이 잠시 생각하는 듯 하다가 이번에는 이 렇게 다시 소리쳤다. [그렇다면 너는 그 옷이라도 벗어라!] 제갈신중은 그 말을 듣자 정말로 딱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기실 그가 무일푼이 되는 것을 감수하고서라도 은자를 주려고했던 것은 집에 도착하기 전까지의 대략 사흘간은 은자가없더라도 굶어죽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만일 그 낡은 장삼마저 빼앗기게 되면 그는 그야말로 상거지의 형상이되고 말 것이니, 어떻게 떳떳하게 낯을 들고 집으로 들어갈 수가 있겠는가? 제갈신중은 그만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대꾸했다. [나는 그렇게 할 수가 없소. 그래도 나는 이름있는 가문의 사람인데, 어떻게 지금과 같은 날씨에 헐벗고 다닐 수가 있겠소?] 제갈신이 반박하자 털복숭이 장한은 흉악하게 소리쳤다. [네놈은 목숨이 아깝지 않다는 말이냐?] 제갈신중은 가볍게 눈살을 찌푸리며 대꾸했다. [내 목이 달아난다고 해도 어쩔 수가 없소. 선비는 이른바 죽음을 당할지언정 모욕은 당하지 않는 다고 했는데, 당신들은 아직 그런 얘기도 들어보지못했 소? 대체 이 낡은 옷이 무슨 값어치가 나간다고 그러는 것이오?] 털복숭이 장한은 제갈신중이 뜻밖에도 강하게 나오는 것을 보고 의외인 듯 잠 시 그를 주시하다가 다시 소리쳤다. [값이 있고 없고는 우리가 결정한다. 네 놈이 정말로 그렇게 겁이 없다면 기필 코 목숨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털복숭이 장한은 그렇게 하고 나서 즉시 신형을 움직여서 작은 나뭇가지 하나 를 후려쳤는데, 일순간 펑! 하는 소리와 함께 그 작은 나뭇가지가 정말로 뚝 부러져 나가는 것이었다. 그것은 제갈신중을 위협할 목적으로 재간을 부린 것이었지만, 그러나 정말로 제법 위력을 지닌 것이어서 일반일들로서는 도저히 상대할 수 가 없는 수준의 것이기도 했다. 또한 그것은 다음에는 상대의 목을 후려치겠다는 최후통첩과도 비슷한 것이었 다. 하지만 제갈신중은 비록 무공이 형편없어도 그와 같은 강호의 삼류급의 인물 들에게 주눅이 들 정도는 아니었다. 제갈신중은 약간 눈살을 찌푸리며 다시 말했다. [당신의 수단은 그만하면 제법이군. 그러나 내 이 얘기는 하지 않으려고 했는 데...... 나는 바로 제갈세가의 사람이오. 그런데도 당신이 계속해서 그렇게 나 를 핍박하겠소?] 털복숭이 장한은 그 말을 듣자 일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문득 웃으며 이렇게 대꾸했다. [흐흐흐, 뭐라구? 이제는 나와 함계 말장난을 하자는 것이로군. 네놈과 같이 허약하고 무공도 없는 녀석이 제갈세가의 사람이라면 내가 그야말로 손에 장 을 지지겠다.] 제갈신중은 상대방이 자신의 말을 쉽게 믿어주지 않는 것을 보고 다시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내 당신에게 믿도록 해드리지. 하지만 만일 나의 신분을 알게 되면 즉시 나를 보내주도록 하시오. 나도 이 일로 인해 문제를 삼지는 않을 테 니......] 말이 마악 끝나는 순간에 갑자기 제갈신중의 모습이 환상처럼 빠르게 변화하 며 움직였다. 그것은 바로 제갈신중이 제갈세가의 절학들 가운데의 하나인 천기미리보라는 보법을 펼친 것이었다. 제갈신중의 화후는 아직 부족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지만, 그러나 지금의상황에서는 그 정도의 능력도 충분히 유용한 것이었다. 나머지 세명의 장한들은 대화 내용을 듣고 있다가 갑자기 환상처럼 보법을 밟 으며 빠르게 움직이는 제갈신중에게 갑자기 모두 제압당하고 말았다. 그것은 제갈세가의 절기가 훌륭했기 때문이었다. 제갈신중은 보법에 이은 천성지의 점혈수법으로 세명의 장한들의 혈도를 제압 한 후에, 그만 입을 딱 벌린 채 멍하니 서있는 장한들을 한차례 둘러보며 그 털복숭이 장한에게 다시 말했다. [자, 당신은 이제 믿겠소? 이제 나를 곱게 보내주겠소?] 털복숭이 장한은 뜻밖에도 허약해 보이는 제갈신중이 한순간에 그와 같은 눈 부신 무공절기들을 펼쳐보이자, 잠시 놀라서 망연히 바라보고 있다가, 일순 정신을 차리고 품속에서 한 자루 의 날이 시퍼런 단도를 뽑아들며 악독하게 소리쳤다. [제법 한가닥 한다마는 이제는 네놈이 제갈세가의 할아비라고 해도 결코 그냥 보내줄수가 없다.] 털복숭이 장한은 그렇게 소리치자마자 즉시 단도를 위맹하게 휘두르며 제갈신 중을 향해 덮쳐들었다. 털복수이 장한의 그 수법은 비록 단병기이기는 하나 제법 강한 공력이 시려 있어서, 상당히 사나운 위세를 가지고 있었다. [뒈져랏--!] 악독한 고함소리와 함께 어느새 위맹한 도기가 면전에 도달한 것을 바라본 제 갈신중은 약간 씁쓸하게 웃으며 즉시 다시 신형을 움직였다. 이번에 그는 조금전처럼 방심 할 수가 없었다. 사실 지금 그에게는 병장기도 없으며 공력에 있어서도 털복숭이 장한보다 낫 다고는 말할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제갈세가의 절기들을 최대한으로 활용하기로 작정한 그는 즉시 재차 천기미리 보의 보법을 밟는 것과 동시에, 조금전에 펼쳤던 천성지를 사용하여 상대에게 반격해 나가기 시작했다. 털복숭이 장한은 공격이 제법 사납고 저돌적이었으나 제갈세가의 그 신기한 보법은 그것을 피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털복숭이 장한이 무쇠와도 같은 팔뚝을 자랑하며 단도로 제갈신중의 몸을 일 격에 도살할 듯이 후려쳐 가면, 어느새 제갈신중의 신형은 그의 옆으로 피해 있었고, 게다가 그가 황급히 신형을 돌려 재공격을 감행하고자 하면 어느새 제갈신중 의신형은 다시 그의 뒤쪽에 나타나서 지풍을 펼쳐오는 것이었다. 조금전에 그 보법과 지풍의 위력을 직접 목격한 털복숭이 장한은 이에 그만 주춤하여 몸을 사리지 않을 수가 없었고, 다급히 신형을 움직이며 제갈신중의 지풍을 피해내다가 나중에 무조건 단도를 팔방풍우식으로 휘둘러서 제갈신중의 접근을 방어하기 시작했다. 약간 당황한 털복숭이 장한의 얼굴에는 이미 진땀이 가득하게 흐르게 되었고 살벌한 기세가 점차로 커져가기 시작했다. 제갈신중은 이제 별로 위협은 느끼지 않고 있었지만 자신도 더 이상 해볼 도 리가 없어지게 되어, 지금과 같은 거칠은 싸움을 벌이고 있는 자신이 한심스럽기 짝이 없었다. 제갈신중은 여태 무공에 별로 관심이 없었으나, 그렇다고 지금과 같은 난처한 상황을 좋아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제갈신중은 일순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훌쩍 뒤로 물러나며 신형을 멈추었다. (......?) 털복숭이 장한은 한참 정신없이 단도를 휘둘러 대다가 느닷없는 상대의 행동 을 보고는 즉시 단도를 멈추었다. 허나 그 순간을 노리고 있었으므로 제갈신중은 즉시 다시 앞으로 다가들면서 대천성장의 장력을 후려쳤다. 털복숭이 장한은 처음에는 다소 멍한 기색이었으나 이어 즉시 그를 향해 단도 를 마구 쪼개왔다. 헌데 변화는 바로 그 순간에 벌어졌다. 털복숭이 장한의 단도가 제갈신중의 장력을 쪼개고 나서 이어 다시 그의 몸으 난도질하려는 찰나, 어느새 제갈신중의 몸은 다시 환상처럼 빠르게 빙글 돌아가며 털복숭이 장한 의 등뒤에 이르러 지풍을 날렸던 것이다. [으악!] 털복숭이 장한은 엉겁결에 외마디 비명소리를 발하고 말았지만, 기실은 그는 그저 제압됐을 뿐 상처는 입은 것이 아니었다. 제갈신중은 아직도 단도를 든채 눈을 부릅뜨고 뻣뻣하게 몸이 굳어져 있는 털 복숭이 장한을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들은 이제 앞으로 한시진 후면 혈도가 자동적으로 풀리게 될 것이오. 다 만 그 사이에 짐승들이 와서 당신들을 잡아먹으려고 한다면 그거야 어쩔수가 없는 일이지......나는 이제 그만 가겠으니, 당신들은 앞으로는 좀더 선행을 하 도록 하시오!] * * * 갑자기 만난 도적들을 간신히 제압하고 나서 산을 내려간 제갈신중은 이윽고 해가 저물기전에 하나의 현성에 이르렀다. 판교의 이름의 그 현성은 호북성 형산을 발원지로 하는 장수의 남쪽에 위치하 여, 비교적 풍광이 수려하고 조용해 보이는 마을이었다. 제갈신중은 오늘 하루종일 아직 아무것도 먹지 못했기 때문에 매우 시장하여, 일단 입성을 하자 곧장 반점을 찾아 들어갔다. 그는 오늘밤은 그곳에서 묵어갈 생각이었다. 장하반점이라고 이름이 새겨져 있는 그 반점은 비단 술도 팔 뿐만 아니라,뒤 쪽에 작고 깨끗한 객점을 겸하고 있어서 그야말로 제갈신중에게는 적합한 곳 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반점 내부의 시설들은 대부분이 낡고 저저분했지만 그러나 한끼의 식사를 하 는데는 불편함이 없었다. 제갈신중은 우선 객방 하나를 예약해 놓고 이어 간단한 음식을 시킨 다음에 느긋한 표정으로 기다렸다. 아직 저녁때가 되지 않아서인지 반점의 내부에는 손님이 많지 않았다. 안쪽의 구석진 자리에는 이 마을의 사람으로 보이는 늙은이가 술에 취해서 잠 들어 있었고, 입구와 가까운 자리에는 한 사람의 중년인이 국수와 만두를 시켜 놓고 천천히 먹고 있을 뿐이었다. 이곳의 분위기는 제법 평화로와 보였다. 일단 나이 많은 촌로가 대낮부터 술에 취해서 잠들어 있는 광경도 보기싫지 않았고, 그리고 천천히 태평한 모습으로 음식을 먹고 있는 중년인의 모습 또한 제법 한가하게 느껴지는 것이엇다. 다만 아까 들어올 때부터 그 중년인은 무엇 때문인지 멍하니 생각에 잠긴 채 제갈신중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는데, 그러한 것은 사실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이었다. 이윽고 잠시 후에 점원이 주문한 음식들을 가져오자 제갈신중은 고개를 숙이 고서 조용히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다시 잠시 뒤의 일이었다. 제갈신중이 거의 한그릇의 밥을 다 비웠을 무렵에 갑자기 반점의 문이 덜컥 열 리더니 느닷없이 대여섯명의 사람들이 우르르 안으로 몰려들어 오는 것이었 다. (......) 제갈신중은 무심코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다가 가볍게 안색이 변했다. 그 대여섯명의 사람들 가운데 아주 낯익은 얼굴들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 다. 제2장 주루의 난폭자들. 바로 다름아닌 아까 제갈신중이 산을 내려오는 길에 만나서 혼을 내주었던 그 네명의 장한들이 그 속에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제갈신중은 일이 뜻밖에도 더욱 귀찮게 변한 것을 보고 그만 눈살을 찌푸렸 다. 순간 제갈신중을 보자 두 눈에 가득 흉광을 떠올리는 털복숭이 장한 등을 보건 대, 아까 제갈신중은 자신이 그렇게 관용을 베풀어 주면 상대방도 더이상 대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 데, 아마도 그 털복숭이 장한 등은 도저히 그를 가만히 놔둘수가 없었던 모양이었 다. 게다가 아까 실력으로 제압되었던 것을 생각하면 이번에는 틀림없이 그에대한 대비를 충분히 하고 왔을 것이 뻔했다. 아니나다를까, 지금 그 털복숭이 장한의옆에는 처음으로 보는 머리가 독사처럼 세모꼴로 생 긴 음침한 장한과, 표독해 보이는 인상에 얼굴의 한쪽 뺨에는 기다랗게 흉측한 도상이 나 있는 장한이 있었는데, 특히 그 중에서 얼굴에 흉측하게 칼자국이 나있는 장한의 눈빛은 매서워서 무 공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게 했다. 제갈신중은 자신이 그들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간파하고는, 이제 그만 난리가 났다고 생각하며 하는 수 없이 그래도 자리에 않아서 그들 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이때 다소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그들 여섯명의 장한들은 처음에는 일제히 문을 박차고 반점의 내부로 들어섰으 나, 왠지 다음 순간에 곧장 제갈신중을 향해 달려들지않고 다소 주저하는 듯한 기색 으로 주춤거리면서 주위를 둘러보다가, 이어 엉뚱하게도 제갈신중의 자리와 조금 떨어져 있는 좌측 빈자리로 걸어가 더니 그곳에 일제히 둥글게 착석하는 것이었다. 이윽고 그들은 다가온 점원을 향해 몇가지의 간단한 음식들을 시켰다. 그렇다면 그들은 제갈신중을 상대하기 위해 들어온 것이 아니었다는 말인가? 하지만 기실 그것은 아니었다. 은근히 제갈신중의 동태를 살피면서 점원이 주문한 음식들을 가져올 때까지 기다리는 그들의 시선에는 여전히 독기가 떠올라 있었으며, 게다가 잠시의 시간이 흐른 후에는 마침내 그들 가운데에서 한 명의 장한이 일 어나더니 입구쪽에 않아 있는 그 중년인의 앞으로 걸어가서 이렇게 정중하게 묻는 것이었다. [혹시 ...... 제갈세가에서 오신 분입니까?] 제갈신중은 그 말을 듣자마자 이내 그들의 속셈을 알아차렸다. 아까 제갈신중은 털복숭이 장한 등에게 자신이 제갈세가의 사람이라고 밝힌 적이 있었는데, 아마도 그들은 그 일로 인해 은근히 신경쓰며 조심하고 있는 모양있었다. 중년인의 앞에 가서 그렇게 질문한 사람은 바로 그 독사같이 세모꼴의 얼굴을 하고 있는 장한이었는데, 정중하게 질문을 하는 가운데에는 눈빛은 쉴새없이 움직이고 있어서 상당히 교 활한 자라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했다. 중년인은 그 순간 식사를 마치고 마악 차를 마시고 있는 중이었는데 느닷없는 그런 질문을 받게 되자 갑자기 크게 어리둥절한 모양이었다. [그게 무슨 ..... 무슨말이오? 나는 ...... 나는 제갈세가와는 상관이 없소.] 한순간 너무 놀랐기 때문인지 그 중년인은 손을 흔들면서 그만 찻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 찻물은 돌사같이 생간 장한의 옷자락에도 튀었으나, 그 장한은 화를 내기는 커녕 다소 기쁜 표정이었다. [아, 그러시오? 흐흐흐, 그렇다면 귀하께선 계속 그렇게 차나 마시고 계시오.] 독사같이 생긴 장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머지 장한들이 역시 음산하게 웃 으며 신형을 일으켰다. [으흐흐흐흐!] 그들은 본래 이곳에서 제갈세가의 사람일 듯한 사람은 그 중년인 뿐이라고 생 각하고 있었는데, 그가 스스로 제갈세가의 사람이 아니라고 하자 저으기 마음이 놓였던 것이었 다. 헌데 바로 그때였다. 갑자기 장내에서 누군가의 큰소리가 터져나왔다. [빌어먹을, 웬 녀석들이 떠들고 지랄이야!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구나!] 놀랍게도 그렇게 소리친 사람은 구석진 자리에서 잠을 자고 있던 예의 그 촌 로였다. (......?) 장한들은 이제 마악 마음놓고 볼 일을 보려던 찰나에 느닷없이 그와 같은 고 함을 듣게 되자, 마치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안색들이 대변했다. 본래 그 촌로는 안중에도 두지 않고 있었던 참이었기 때문에 갑자기 허를 찔 린 것 같아서 그들의 놀라움은 더했다. 장한들은 일제히 파랗게 질린 안색으로 그 촌로를 돌아보았는데, 아직도 그 촌로가 탁자위에 엎드려 있는 것을 보고는 독사같이 생긴 장한이 잠시 주저하다가 다시 그쪽으로 걸음을 옮겨갔다. 이미 심하게 질책을 받은 상황이기 때문에 마지못해서 그쪽으로 다가가는 장 한의 발길은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장한은 그 촌로가 필시 제갈세가와 연관이 있는 한명의 기인일 것이라고 생각 한 것이다. [저어 ...... 실례지만, 노선배께서는 존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겨우 촌로의 앞에 도달한 장한은 그렇게 말을 꺼내기는 했으나 감히 고개를 들고 정면으로 그를 쳐다보지 못했다. (......) 그 촌로는 왠지 더 이상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장한은 보기보다 담이 작은지 더욱 두려움을 느끼게되어 감히 다시 질문하지 못했다. 헌데 바로 다음 순간의 일이었다. 느닷없이 그 우두머리인 듯한 칼자국이 나있는 장한이 다가오더니 거칠게 탁 자를 내리치면서 소리치는 것이었다. [이 보시오 노인장! 지금 당신에게 묻고 있지 않소!] 제갈신중은 그러한 광경을 자세히 바라보다가 그만 실소했다. 알고 보니 그 촌로는 아직 잠을 자고 있었고 조금전의 그 고함소리는 그저 취 중의 잠꼬대에 불과했던 것이다. 우두머리인 그 장한은 뒤에서 그러한 사실을 간파하고는 즉시 나서서 소리쳤 던 것이었다. 과연 아니나 다를까. 그 촌로는 엉겁결에 그만 잠이 깨어서 고개를 들었는데, 일순 상황을 파악하고는 얼굴이 사색이 되어 벌벌 떨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 다. [예? 아이구, 소인을 살려주십시오. 대체 소인이 무슨 잘못을 했길래 그러시는 것입니까요? 제발 이 늙고 쓸모없는 목숨을 살려주십시오!] 전신을 벌벌 떨면서 살려달라고 애걸을 하는 그 모습은 그야말로 영락없는 촌 로의 형상이었다. 이미 고개를 들고 있던 독사같이 생긴 장한은 그것을 보자 그만 어이가 없는 듯이 일장을 후려쳐서 촌로를 죽이려고 했다 그는 자신이 그와 같은 자에게 벌벌 떨었던 것을 생각하며 독심이 일어났던 것이었다. 하지만 마악 그자의 장력이 촌로의 면상을 박살내려는 찰나에 그 우두머리 장 한의 손길이 그것을 막았다. [쓸데없는 짓은 하지 마라!] 우두머리 장한은 그렇게 말하고 나서 이윽고 제갈신중을 향해 다가갔다. (......) 제갈신중은 이미 지금과 같은 상황을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다가오자 그만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우두머리 장한은 그 흉측한 얼굴로 제갈신중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차가운 음 성으로 불쑥 이렇게 물었다. [네놈이 우리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했느냐?] 보아하니 그 장한 역시 삼강방의 인물인 것 같았다. 아마도 털복숭이 장한은 자신들이 제갈신중에게 제압당한 핑계를 보고하다가 그와 같은 말을 한 모양이었다. 제갈신중은 씁쓰레하니 웃으며 대꾸했다. [잘 알고 있지는 못해도, 당신들이 어느 곳의 사람들이라는 것은 알게 되었 소.] (.....) 우두머리 장한은 상대가 뜻밖에도 태연하게 나오자 다소 의외인 모양이었으나 이내 음산하게 다시말했다. [그렇다면 너는 어서 우리를 따라가자!] 제갈신중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고작 그와 같은 사실을 알고 있다고 해서 당신들을 따라가야 한다는 말이 오?] 우두머리 장한은 한손으로 탁자의 끝을 잡고 음산하게 웃으며 다시 말했다. [네놈이 만약 실력이 있어서 우리를 이긴다면 굳이 따라가지 않아도 좋다!] 그런데 우두머리 장한이 그렇게 말을 하는 동안에 그가 한손으로 잡은 탁자의 끝부분이 돌연 우지직! 하고 부러져 나가는 것이었다. 그저 가볍게 힘을 쓴 것 같은 데도 그렇게 나무판자가 쉽게 부러져 나가는 것 을 보고, 제갈신중은 자신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힘이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 다. 기왕에 당하게 된 바에야 굳이 이곳에서 소란을 피워서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피해가 가도록 할 필요는 없었으므로, 제갈신중은 내심 씁쓰레하게 웃으며 신형을 일으켰다. [그래, 나를 어디로 데려갈 작정이오?] 우두머리 장한은 상대가 일단 주눅이 든 것을 보고는 득의하게 웃으며 대꾸했 다. [흐흐, 그것은 우리를 따라와 보면 안다.] 제갈신중은 어느새 자신의 주위를 살벌하게 포위하고 있는 장한들을 둘러보면 서 문득 다시 입을 열어 말했다. [좋소. 내가 당신들을 따라가기는 하겠지만 거기에는 한가지의 조건이 있소. 그것은 바로 여기에 있는 나 이외의 사람들은 조금도 건들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오.] 말과 함께 제갈신중은 은근히 그 촌로와 중년인 등을 가리켰다. 우두머리장한은 그가 조건을 내걸자 다소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다가 이내 음 침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흐흐흐...... 좋다! 우리 역시 쓸데 없는 일을 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니, 그점은 염려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기실 제갈신중은 자신의 일로 인해서 다른 사람들까지 피해를 입게 되는 일이 없도록 가능한한 노력하고 있었던 것이다. 말이 끝나자, 우두머리장한은 이윽고 밖을 향해 신형을 돌리더니 걸음을 옮겨가기 시작했 다. 나머지 장한들이 저마다 흉흉해진 시선을 하고서 주위로 바싹 다가들면서, 살벌하게 빨리 그 뒤를 따라갈 것을 재촉하는 것을 보고, 제갈신중은 나직한 한숨과 함께 다소의 쓴웃음을 지으면서 천천히 그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 * 장하반점을 벗어나서 장한들이 곧장 제갈신중을 데려간 곳은 바로 현성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하나의 사당이었다. 그 사당은 판교현의 북쪽을 가로지르고 있는 장수가 빤히 내려다보이는 한 언 덕위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얼핏 보기에도 이미 오랫동안 마을 사람들이 찾지 않은 듯한 토신묘였다. 내부에는 여기저기에 온갖 거미줄과 먼지등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으나 유독 단 위만은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었다. 우두머리 장한은 일단 먼저 안으로 들어서자 그 단위에 올라가 않더니 제갈신 중이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제갈신중은 다소 주저하는 듯 했으나 이제는 험악해진 표정을 하고서 재촉하 고 있는 뒤의 장한들을 의식하면서, 하는 수 없다는 듯이 이내 뒤따라 그 토신묘의 안으로 들어섰다. 장한들은 이내 역시 뒤따라 안으로 들어서서는 재빨리 입구를 막고 제갈신중 을 가깝게 포위하며 살벌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제갈신중은 자신이 이제 꼼짝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는 것을 느끼고 는 내심 더욱 씁쓰레해 졌다. 우두머리 장한은 단위에 올라않은 채 그러한 그를 향해 문득 음산하게 웃으며 말했다. [네놈은 이제 순순히 당하겠느냐, 아니면 본좌가 직접 손을 써야 하겠느냐?] 제갈신중은 이미 주위의 장한들이 점차로 공력을 끌어올리고 있다는 것을 눈 치채고 있었다. 상황은 제갈신중에게 절대로 불리했다. 제갈신중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반문했다. [당신들은 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나를 괴롭히는 것이오? 내가 당신들이 삼 강방의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해서 그것이 그렇게도 죽어야 할 이유가 된다는 말이오?] 장한들은 일제히 음소를 날렸다. 우두머리 장한 역시 음산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으흐흐, 그러길래 예로부터 필부는 죄가 없더라도 아는 것이 죄라고 하지 않 았느냐?] 제갈신중은 다시물었다. [그렇다면 당신들은 반드시 나를 죽여야만 하겠다는 것이오?] 우두머리 장한은 음침한 표정을 지으며 대꾸했다. [그렇다. 네가 우리들의 정체를 안 것은 중대한 사건이니 결코 너를 살려둘 수 가 없다.] 제갈신중은 문득 생각을 굴리다가 다시 물었다. [내가 제갈세가의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그렇다는 말이오?] (......) 우두머리 장한은 잠시 어리둥절해 하다가 이렇게 대꾸했다. [너와 같이 어리숙한 녀석이 제갈세가의 사람일 리는 없다. 하기는 네 녀석이 제갈세가의 사람이라고 해도 상관은 없겠지만 말이다.] 제갈신중은 자신이 심한 곤경에 처하여 도저히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우두머리 장한은 말이 끝나고 나자 표정이 더욱 음산해졌다. 나머지 장한들도 마찬가지였으며 그들은 이제 드디어 손을 쓰려는 것이었다. 제갈신중은 그것을 보고 이제는 자신이 최대한 무공을 드러내어 정말로 제갈 세가의 사람임을 보여주는 도리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유감이로군.] 한마디 내뱉는 순간 제갈신중은 어느새 빠르게 움직였다. 아까 그가 주루에서 손을 쓰지 않은 것은 다른 사람들이 다칠 것을 염려한 것 이었다. 이제 그는 이곳에서 충분히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기회와 필요성을 느끼게 된 것이었다. 우선 제갈신중이 펼친 것은 역시 천기미리보라는 것이었다. 본래 그 보법은 신기막측한 현기를 지닌 것으로 만일 제대로의 위력을 발휘하 면 무궁한 변화를 일으킬 수가 있는 것이었다. 그들 장한들이 감히 형체조차 파악할 수가 없는 것은 물론이었다. 그러나, 비록 제갈신중의 무공이 아직 삼류급에 머물러 있다고는 한, 어려서부터 그 보법의 기초에 충실해 왔었기 때문에 전혀 무용한 것은 아니었 다.제갈신중이 천기미리보를 펼친 순간에 이미 그의 신형은 뿌옇게 흐려지는 듯 했으며, 우두머리 장한을 비롯한 장한들의 경악심을 사기에 족했다. 기실 제갈신중은 지금 극도의 궁지에 몰려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자연 전보다 도 더욱 전력을 다하게 된 것이었다. [잡아랏!] 일시에 제갈신중이 달아날 것을 염려한 우두머리 장한이 크게 소리쳤다. 그러나, 기실 제갈신중은 밖으로 달아나기는 커녕 오히려 전면의 우두머리 장한을 향해 공격해 들어갔다. 그가 펼친 수법은 역시 대천성장의 가운데의 기초적인 부분이었다. 그는 자신이 달아나기 위해서는 우선 공격해야 한다는 사실을 이미 간파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공격이 최대의 수비라는 말과는 통하는 것이었다. 제갈신중이 오히려 자신을 향해 공격해 들어오자 우두머리 장한은 다소 놀란 듯 했으나 이내 침착한 대응을 보였다. 그는 아까도 보았듯이 제갈신중보다는 역시 한수 위의 무공을 지니고 있는 사 람인 것이었다. 우두둑! 우두머리 장한의 골격에서 한차례 뼈가 맞부딪치는 음향이 들려오더니 이내 그의 쌍수가 빠르게 휘둘러졌다. 그것은 이른바 독사장이라고 하는 것인데, 크게 부풀어 오른 그 시커먼 장력에 한 번 맞으면 전신이 이내 썩어들어 간다 는 흑도의 치명적인 독장이었다. 그 쌍장에서 일어난 비릿한 독기가 제갈신중의 전면을 압박하는 순간에 주위 의 장한들마저 한걸을 물러서야 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때 약간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제갈신중이 그 천기미리보의 천성장력을 동시에 운용하자 일순 그의 신형이 흐릿하게 변하는 듯 하더니, 다음 순간에 어느새 상대의 쌍장을 피해서 가슴팍으로 파고들어서 펑펑펑 ! 하고 무려 삼장이나 후려치는 것이었다. 그것은 실로 한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우두머리 장한은 그렇게 제갈신중으로부터 삼장을 연달아 맞게 되자 쌍장을 거둘 생각도 못하고 그대로 멍하니 서 있었다. 그러나, 기실 그렇다고 해서 그 우두머리 장한이 그 일로 치명적인 중상을 입은 것은 아니었다. 우선 그의 체내의 공력이 훌륭했고 또한 상대적으로 제갈신중의 공력이 부족했 기 때문에 강한 효과를 기대할 수가 없었다. 우두머리 장한이 멍해진 것은 자신이 당했다는 선입견 때문이었다. 제갈신중의 장력은 그저 그의 옷의 먼지를 털어주는 정도에 그치고 말았던 것 이었다. 만일 제갈신중이 보다 모질은 마음이 있었다면 다시 장력을 후려쳐서 상대를 상하게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 순간에는 주위의 장한들도 저마다 크게 놀라서 멍하니 서있는 상태였다. 그들은 모두가 우두머리 장한이 완전히 제갈신중에게 당한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자, 이제야 내가 제갈세가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겠소? 이와 같은 신기한 절기 들을 당신은 구경도 못했겠지?] 기실 그도 자신의 능력에 약간 놀라서 주춤해진 것이었다. 하지만 우두머리 장한은 그 얘기를 듣는 순간에 이내 기혈이 움직여서 자신이 당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동시에 그는 소리치며 덤벼들었다.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순간 격분한 우두머리 장한이 최대한의 공력을 발휘하여 달려들자 일시 주위 에 비린내가 자욱해졌다. 본래 이 독사장이라고 하는 것은 장력의 위력을 높이기 위해서 독이 들어있는 모래를 사용하여 연공하고 것이므로, 그 수련이깊은 경지에 오르게 될 수록 독성이 강하게 되는 것이었다. 현재 우두머리 장한의 공력은 대략 삼십년 정도였는데, 그것은 강호의 이류급의 수준이었고, 독사장의 장력으로는 거의 정상에 가까운 화후라고 할 수가 있었다. 제갈신중은 느닷없이 다시 막강한 상대의 공격에 부딪치게 되자 약간 당황 스러워 졌다. 그는 황급히 예의 그 천기미리보를 밟았으나 그만 당황한 나머지 중심이 흔들 려서 기우뚱하고 말았다. 우두머리 장한은 노련한 강호의 도적인데 그러한 좋은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 다. 웅웅웅!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장력이 퇴로를 봉쇄하고 위에서 태산같이 짓 눌러 오게 되자, 제갈신중은 그만 급한 나머지 몸을 바닥에 빙글빙글 굴려서 그 위기를 모면할 수 밖에 없었다. 펑펑펑! 과연 그 독사장의 위력은 대단했다. 제갈신중이 몸을 피하는 찰나에 그의 주변에는 커다란 손자국이 생겨나게 되 었고, 굉장한 폭음소리와 함께 토신묘의 내부에는 비린내와 함께 자욱한 흙먼지가 가득하게 피어올랐다. 우두머리 장한은 한 번 당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즉시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계 속해서 대들었다. 제갈신중은 황급히 그의 공격을 피하다가 마침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주위의 장한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가 장한들의 부근에 있으면 우두머리 장한의 공세가 다소 주춤해질것이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그의 기대는 그야말로 헛된 것이었다. [으악!] 한명의 장한이 가슴에 정통으로 독사장을 맞고 날라가는 것을 보고서도 그 우 두머리 장한은 계속해서 그렇게 험악한 공격을 퍼부어 오는 것이 아닌가? 제갈신중은 그가 그야말로 이판사판으로 덤벼오는 것을 보고는 놀라서 그만 생각을 달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는 즉시 신형을 일으켜서 천기미리보를 밟으며 우두머리 장한을 향해 반격 해 들어갔다. 조금전에 장한이 부상을 입으면서 그에게 일어설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었다. 현재 다른 장한들은 동료가 부상을 당하는 것을 보고 감히달려들어 제갈신중 을 협공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제갈신중은 조금전의 짧은 순간에 이미 중요한 강호의 실전경험을 터득한 셈 이었다. 그는 즉시 침착해진 모습으로 우두머리 장한을 향해 대천성장을 휘둘러 가기 시작했다. 그 대천성장은 본래 천기의 흐름을 본딴 것으로서 아주 복잡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일반인은 제아무리 그 비급을 입수한다고 해도 쉽게 연성할 수가 없는 것이었 다. 제갈신중은 즉시 정신을 차리고 반격해 들어가자 과연 이내 상대의 장영을 돌 파하고 면전에 이르렀다. 이미 한 번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제갈신중은 즉시 상대의 가슴팍을 보기좋게 후려쳤다. 펑펑펑, 헌데 그 순간의 일이었다. 제갈신중은 그래도 상대가 자신의 장력에 맞아서 휘청거리거나 혹은 그것을 피하려고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우두머리 장한은 몇차례 두들겨 맞더니 꿈쩍도 하지 않고 오히려 허리춤에서, 한 자루의 날이 시퍼렇게 서있는 분수자와 같이 생긴 작은 단병기를 뽑아들더 니, 앞으로 달려들면서 공격해 오는 것이 아닌가? 그는 이제 제갈신중의 장력 정도는 몇차례 맞아도 상관없다는 것을 파악한 모 양이었다. 이에 제갈신중은 오히려 당황해졌다. 상대가 자신의 장력을 맞을 각오를 하고 공격일변도로 나오는 것이라면 이번에 는 지력을 사용해야 할 것이었으나, 워낙에 사나운 기세였으므로 제갈신중은 우선 크게 압도되어 주추주춤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 우두머리 장한은 이미 제갈신중을 죽이려고 작정을 했다. [모두 그 놈을 붙잡아라!] 우두머리 장한은 분수자를 닮은 작은 병기를 휘두르면서 덤벼들며 소리쳤다. 제갈신중은 이에 급히 주위를 둘려보면서 대응하려고 했다. 헌데 바로 그 순간의 일이었다. 갑자기 뒤허리가 조여오면서 어느새 한명의 장한이 달려들어 그의 허리를 뒤 에서 껴안는 것이 아닌가? 제갈신중은 확실히 아직 실전경험이 부족한 편이었다. 그는 조금전에 우두머리 장한의 외치는 소리를 듣고 일순 경각하고 조심하려 다가 오히려 , 보법이 흐트러지게 되어 헛점을 노출시키게 되고 말았던 것이었다. 느닷없이 맨 몸으로 달려들어 제갈신중의 허리를 꺼안은 사람은 바로 예의 그 털복숭이 장한이었다. 털복숭이 장한은 힘이 장사였기 때문에 일단 허리를 껴안자 무지막지한 힘으 로 죄어왔다. 모처럼 잡은 기회였기 때문에 결코 놓으려고 하지 않았다. 만일 보통사람이 그안에 걸려들였다면 즉시 갈비뼈가 우두둑! 하고 나가고 말 았을 것이었다. 제갈신중은 비록 그렇게 갈비뼈가 부러져 나가는 수모를 겪지 않았지만, 그러나 전 공력으로 그 무지막지한 히에 항거하고 있었기 때문에 도저히 몸을 움직이거나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제갈신중은 내심 아찔한 생각이 들어서 고개를 들고 앞쪽을 바라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다른 장한들은 동료가 다칠 것을 우려하여 머뭇거리고 있었지만, 그러나 그 우두머리 장한은 과연 그 분수자를 닮은 단병기를 휘두르며 인정사 정없이 제갈신중의 가슴팍을 쪼개오는 것이 아닌가? 그 무서운 힘의 강도로 미루어 보건대 비록 제갈신중의 가슴팍이 쪼개지더라도 그 털복숭이 장한 역시 무사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우두머리 장한은 잔인하게 공격해 오는 반면에 그 털복숭이 장한은 지나치게 우직해 보였다. 절대절명의 순간이었다. 제갈신중은 순간적으로 우직한 털복숭이 장한의 심성을 생각하다가 문득 자신 이 알고 있는 천기미리보의 반탄력을 이용한 운신의 비결을 떠올렸다. 그 구결의 내용은 기실 비무시에 상대방의 장력을 어떻게 교묘하게 이용하여, 반탄력을 얻어내고, 이어 어떻게 신형을 움직여서 상대의 허를 찌르는가 하는 내용이었는데 제갈신 중은 다급한 순간에 자신도 모르게 그것을 이요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제갈신중은 우두머리 장한의 작은 분수자가 면전에 도달한 것을 본 순간에 갑 자기 전력을 다해서 신형을 앞으로 움직였다. 분수자가 날아들고 있는 판국에 그와 같이 오히려 머리를 앞으로 내민다고 하 는 것은 실로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겉으로는 위험해 보이는 그러한 행동이 다음 순간에는 급전하여 제갈신중의 목숨을 구해주었다. 털복숭이 장한은 그야말로 죽어도 놓지 않을 심산으로 죽어라 하고 제갈신중 의 허리를 붙잡고 있었는데, 갑자기 제갈신중이 전력을 다해서 신형을 앞으로 잡아당기자, 털복숭이 장한은 자연스럽게 앞으로 끌려가지 않으려고 뒤로 버티는 힘을 일 으키게 되었다. 제 3장 바둑을 두는 괴상한 노인 이 제갈세가의 중요한 절기들 가운데의 하나인 천기미리보는 실로 현묘한 이 치가 담겨져 있는 것이었다. 제갈신중은 비록 그것을 조금밖에 배우지 못했지만 그래도 순간적으로 일어나 는 상대방의 버티는 힘에 자신의 반탄력을 일으킬 수가 있었다. 그 순간은 실로 위험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었다. 제갈신중은 사태가 다급하지 않았다면 그와 같은 위험한 수법은 쓰지 않았을 것이었다. 우두머리 장한의 분수자는 거의 제갈신중의 이마와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천기미리보의 여러가지 장점중의 한 가지는 자신의 신형을 한 개의 깃털처럼 가볍게하여 상대의 힘에 따라 적응할 수가 있다는 것이었다. 털복숭이 장한의 버티는 힘이 일어난 순간, 마치 두쪽으로 갈라질 것 같았던 제갈신중의 신형이 어느새 뒤로 물러섰으며 게다가 다음 순간에, 그의 신형이 상대방에게 잡힌 채로 환상처럼 빙글 돌아갔다. 털복숭이 장한이 버티는 힘이 제아무리 양쪽이 공평하다고 해도 다소의 차이 가 있기 마련이었다. 게다가 이쪽에서 반탄력을 일으켜서 그 힘의 평형에 균열을 가하는 천기미리보 의 수법은 정말로 교묘하기 짝이 없었다. 마치 빨리움직이는 물체에 탄력을 더하듯이 제갈신중의 신형은 놀랍게도 빠르 게 돌아갔다. 그 변화의 흐름이 얼마나 빨랐는지 우두머리 장한의 분수자가 계속해서 내리쳐 지는 순간에 , 이미 그 털복숭이 장한의 뒤통수는 그 앞에 이르러 있었다. 털복숭이 장한은 비록 순간적으로 일이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것 은 그의 힘으로 어쩔 수가 없었다. 게다가 휙!하고 섬뜩한 소리와 함께 날아드는 분수자를 감지하게 되자 그는 순간 대경실색했다. 뜻밖의 횡액을 당하게 된 그는 그만 너무나도 놀라서 두 눈을 부릅뜨고 입을 딱 벌리게 되었다. 그 순간은 너무나도 갑자기 벌어졌기 때문에 설사 우두머리 장한도 초식을 거 두어 들일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털복숭이 장한의 뒤통수가 한순간 두부처럼 으스러지며 절단나는 것 이 한눈에 보이는 듯 했다. 이미 이 토신묘 내부에 있는 사람들의 능력으로는 그러한 사태를 돌이킬 수가 없게 되었다. 헌데 바로 그 순간의 일이었다. 갑자기 어디선가 쌩! 하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그 작은 분수자가 그만 뚝 부러져 나가는 것이었다. 기실 그 상황은 워낙 짧은 순간이었기 때문에 조금도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으 며 정확히 말하자면, 먼저 분수자가 부러져 나가고나서 뒤이어 쌩! 하는 소리가 들려온 것이라고 해야할 것이었다. 놀랍게도 그 순간에 어디선가 날아온 그 물체는 소리보다도 빠른 것 같았던 것이다. 대체 그것은 무엇일까? 제갈신중 등은 물론 그 물체가 무엇인지 볼 수가 없었다. 뒤이어 날이 완전히 부러져 나간 분수자의 손잡이는 거칠게 털복숭이의 장한 의 뒤통수를 가격하고 말았다. 그것은 이미 취해진 동작이었기 때문에 우두머리 장한으로서는 회수할 수가 없 었다. [으왁!] 털복숭이 장한은 그야말로 돼지멱따는 듯한 외마디 고함을 질렀다. 그 순간에 그는 비록 두 눈을 부릅뜨고 있었으나 고개는 반대쪽으로 돌려져 있어서 자세한 상황을 볼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다른 장한들은 분수자가 갑자기 부러져 나간 것을 보고 경악한 표정을 지었으 나, 그 털복숭이 장한은 예외였다. 그는 기다리던 대로 과연 뒤통수에 커다란 충격이 느껴지자 외마디 고함을 지 르고는 곧장 넋을 놓고 기절하고 말았다. 우두머리 장한의 분수자는 비록 날이 없어지기는 했지만 털복숭이 장한의 뒤 통수를 후려쳐서 온통 피를 흘리게 만들었다. 그러나,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 털복숭이 장한의 생명에 이상이 생긴 것은 아니었다. 그 갑작스런 변화로 인해 털복숭이 장한이 기절하고 바닥에쓰러지자 제갈신중은 자유의 몸이 되었다. 제갈신중은 조금전의 방심했던 결과에 대한 경험도 있고 했으므로 급히 다시 장한들의 동태를 살폈다. 이때 장한들의 태도는 갑자기 사색이 되어 있었다. 그것은 단순이 털복숭이 장한이 기절하여 쓰러졌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바로 조금전에 우두머리 장한의 분수자를 부러뜨렸던 그 물체 때문이었다. 제갈신중은 그제서야 다소 여유를 갖고 그 물체를 돌아보게 되었는데, 기이하게도 그것은 한 개의 검은 바둑알이었다. (바둑알이었다니......!) 제갈신중은 그 바둑알이 조금도 상하지 않은 채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을 보 고 내심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조금전에 그토록 빠르게 날아와서 분수자를 지푸라기처럼 부러뜨려 버린 것이 겨우 바둑돌이었다니 실로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하긴 제갈신중도 놀라운데 하물며 그 당사자들은 오죽하랴 싶은 상태였다. 우두머리 장한은 잠시 시커멓게 변한 얼굴로 부러진 분수자를 든 채 넋 놓고 그 바둑알을 바라보고 있다가 문득 이렇게 말했다. [혹,혹시 노선배께서 오신 것입니까? 소,소인들은 감히 어르신네의 위험을 거 슬렸으니 그만...... 죽여주십시오.] 알고보니 엉뚱한 소리였다. 우두머리 장한은 두손으로 공손히 포권을 하면서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그들은 하나같이 죽고 싶어 하는 사람들인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럴 리는 없다. 다시 보니 장한들의 얼굴에는 하나같이 강한 공포심이 떠올라 있었다. 이제는 눈앞의 제갈신중의 존재는 신경도 쓰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그들은 공포감을 이기지 못해서 죽음을 자청하는 모양이었다. 혹시 저승사자라도 당도한 것이라는 말인가? 밖에서 아무런 대꾸가 없자 그 우두머리 장한은 더욱 초조해져서 포권하며 이 렇게 말했다. [저희들이 감히 귀세가의 사람에게 손을 써다는 것은 백번 죽어 마땅한 것입 니다. 그러나 ...... 그러나 노선배께서 이렇게 저희들에게 고문을 가하시는 것 은 너무도 심한 처사가 아닙니까? 부디 저희들을 공포에 떨게 하지마시고 통 쾌한 죽음을 내려 주십시오.귀 세가의 비도파천황에 대한 소문은 이미 저희들 도 듣고 있습니다] 이른바 죽기 이전의 공포감이 두려운 것이지 기실 죽고나면 고통도 없다는 단 순한 논리였다. 불가항력적인 죽음을 앞에 두고 있을 때 사람은 그 공포감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어지는 모양이었다. 제갈신중은 내심 엉뚱하다고 생각했다. 하기는 그렇게 된 일이 자신에게는 유리한 것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일은 자못 우습게 풀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아까 우두머리 장한은 자신의 분수자를 부러뜨린 바둑알의 주인이 제갈신중을 구하려던 것이었지, 결코 털복숭이 장한을 구하려던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의 분수자가 털복숭이 장한에게 향하게 된 것은 실로 순간적인 변화였기 때 문이었다. 그런데, 막상 그렇게 생각하자 그는 아까 제갈신중이 말했던 제갈세가의 사람들에 대 해서 상기하게 되었고, 이내 제갈세가에 한가지의 불가사의한 무학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낸 것이었 다. 그것은 바로 그가 말한 비도파천황이라는 절기였다. 그것은 제갈세가의 최대절기였기 때문에 강호에 널리 알려져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우두머리 장한은 식견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상황이 급변하는 바람에 매우 당 황하여 사태를 올바로 판단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제갈세가에 관해서는 당연히 제갈신중이 잘 알고 있었다. 지금 우두머리 장한은 두가지에 있어서 잘못된 판단을 하고 있었다. 우선 그는 단순히 지극히 빠르다고 해서 그것을 비도파천황일 것이라고 생각하 고 있는 것이지만, 그러나 비도파천황에 버금갈 정도로 빠르기는 하지만 조금전의 것은 결코 비 도파천황의 수법이 아니었다. 그 비도파천황이라는 절기는 제갈세가의 최대절기인 만큼 워낙에 연성하기가 어렵고, 또한 현재 그것을 터득한 사람도 극히 소수일 뿐이었다. 게다가 더욱 중요한 사실은 그 수법은 겉으로는 마치 암기술과 흡사해 보이나 그 것과는 천양지차여서, 고도의 내공과 현기를 내포하고 있는 초상승의절기라는 사실이었다. 따라서 그 비도파천황을 시전할 때에는 말 그대로 비도만을 사용하는 것이며 다른 것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이른바 초상승의 절기라고 하는 것은 조금만 달라도 위력이 아주 틀려지는 것 이므로 그러한 것은 전통처럼 거의 철저하게 지켜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두 번째의 이유로는 그 비도파천황은 비록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일단 시전하 면 전혀 소리가 일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조금전의 그 바둑알은 분명히 뒤늦은 것이기는 했지만 쌩! 하는 파공음이 분 명하게 들렸었다. 우두머리 장한이 좀더 비도파천황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면 사태를 올바르게 파악할 수가 있었을 것이었다. 하기는, 그와 같은 두가지의 이유가 아니더라도 제갈신중은 일종의 느낌으로 그것이 자신의 가문의 절기가 아니라는 것을 판별하고 있는 것이었다. 우두머리 장한은 자신들이 감히 제갈신중에게 손을 썼으므로, 제갈세가의 어떤 노선배가 자신들을 용서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고 그와 같은 말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실로 뜻밖의 사건에 의해 상황은 아주 엉뚱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제갈신중도 내심으로 그 바둑알을 던진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싶었지만 그러 나 지금으로서는 우선 자신의 안위가 급했다. (......?) 장한들은 여전히 밖에서 아무런 대꾸도 들리지않자 더욱 안면이 공포감에 물 들고 감히 더 이상 말도 하지 못했다. 제갈신중은 그런 상태로 약간의 시간이 흘러가자 그만 짜증이 이는 것 같았 다. 따라서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그들을 향해 말했다. [보아하니 그 노선배는 당신들을 용서해주려는 것 같은 데,이제 당신들은 그만 가보는 것이 어떻겠소?] 제갈신중으로서는 이 순간에 빠르게 몇가지의 경우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선 그가 생각하기에는 그 바둑알의 임자는 자신을 구하려고 했던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그 바둑알의 놀라운 위력으로 보건대 그사람이 미리 내다보고 그랬었을 가능 성도 있기 때문에 뭐라고 단정지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니까, 지금의 상황에서 제갈신중이 취할 수 있는 행동은 쉽게 두가지로 나눌 수가 있는 것이었다. 첫째는 바로 그가 미련없이 기회를 이용하여 혼자서 이곳을 무사히 떠나가는 일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오히려 상황을 이용하여 장한들을 질책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 바둑알의 임자에 대해서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는 그 두 가지가 모두 무리가 있었다. 따라서 제갈신중은 다음의 방법을 택한 것이었다. 즉 상황을 보아가며 사태를 처리한다는 것이었다. 그 우두머리 장한은 그렇지 않아도 내심으로 아주 초조하게 상대방의 대꾸를 기다리고있는 상태였는데, 제갈신중이 태연자약한 표정으로 그렇게 물어오자 그만 만면에 희색까지 떠올 렸다. 그 역시 제갈신중을 잘만 이용하면 목숨을 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었다. 우두머리 장한은 이내 그를 향해 공손히 포권하면 대꾸했다. [아,아니올시다. 우리들...아니 소인들은 감히 공자님을 몰라 뵙고 대죄를 지었 으니 죽어 마땅한 일이죠. 그저 공자께서 저희들에게 은혜를 베푸시어 통쾌한 죽음을 내리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미 삶의 희망을 엿보고 있는 그들이 정말로 통쾌한 죽음을 원하고있는 것이 었다. 이른바 녹림흑도의 무리들이라고 해도 그들 나름대로의 삶의 방식이 있는 것이 다. 대개 호탕한 기질과 의리를 최고로 내세우는 그들은 이른바 비굴하고 졸렬한 행동을 무시하고 있었다. 비록 행동은 하나같이 더럽고 치졸할지라도 겉으로는 역시 나름대로의 대의명 분을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거대한 조직이라는 것은 으레 그렇게 허식속에서 유지되어 가곤 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겉으로 치졸한 짓을 비웃어 왔으며 상대적으로 호협한 척 하는 것이 습관화돠어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한 사람이 죄를 지었으면 그가 살려달라고 애걸하는 것보다는 오히 려 호탕하게 죽여달라고 하는 쪽이 더욱 용서받기가 쉬웠으니, 즉 지금 우두머리 장한의 속마음은 제발이지 살려달라는 말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었다. 제갈신중은 비록 그러한 그들의 심리를 대충 알고 있었으나,겉으로는 웃으며 이렇게 다시 말했다. [아니, 그래서야 되겠소? 그렇다면 우리 이렇게 하는 것이 어떻겠소? 내가 저 노선배에게 잘 말해볼테니......우리는 이만 서로 화해하고 웃으며 헤어지도록 하는 것이?] (......) 우두머리장한은 마침 바라던 얘기를 듣게 되자 절로 희색이 겉으로 드러났다. [정말로 그, 그렇게 해주시겠소?] 제갈신중은 약간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오. 하지만 만일 당신들이 계속해서 나를 피곤하게 한다면 나는 생각이 달라지는 수도 있소.] (......) 장한들은 제갈신중의 의사가 그토록 분명하자 이내 더 이상 망설이지않고 그 를 향해 무릎을 꿇었다. [공자께서 하해와 같은 은덕으로 저희들의 개같은 목숨을 살려주시겠다니,이는 시로 백골난망이옵니다. 감사하옵니다.] 다섯 명의 장한들은 일제히 제갈신중을 향해 엎드려서 절을 한 다음에 소리쳐 서 그와같이 부르짖고, 이어 바둑알이 날라온 방향을 향해서도 똑같이 절하고 부르짖었다. [노선배께서 저희들의 개같은 목숨을 살려주시니 감읍할 따름입니다. 앞으로는 좋은 일만 하며 살아가겠습니다.] 강호에서 오래도록 굴러먹은 그들은 이미 닳고 닳아서 연극이 보통이 아니었 다. 그들의 어조에는 실로 절절한 감정이 깃들어 있는 것 같았고,게다가 그 가운데 의 어떤 장한은 눈물까지 흘리기도 했다. 제갈신중은 그저 담담한 기색으로 그러한 광경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그 장한들은 절을 마치고 나서 급히 기절한 털복숭이 장한을 안고서 달아나듯이 떠나버리고말았다. ...... 제갈신중은 이윽고 혼자서 토신묘에 남게 되었으므로 잠시 생각하는 듯 하다 가 문득 앞으로 걸어가서 바둑알을 집어 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제갈신중은 가볍게 안색이 변하고 말았다. 뜻밖에도 그 바둑돌은 옥돌로 다듬어진 것이아니라 작은 쇳덩어리였던 것이었 다. 그것이 아까 분수자를 부러뜨릴 때 소리가 거의 나지 않은 점이 괴이하기는 했지만, 기실 괴상한 점은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대체 이 무쇠로 만들어진 바둑알로 그와 같은 무공을 펼쳐내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며, 게다가 그가 대체 무슨 이유로 자신을 도왔을까 하는 것이었다. 제갈신중은 지금으로 볼 때는 필시 그 신비인이 자신을 도왔던 것이라고 짐작 할 수가 있었다. 제갈신중은 따라서 그 바둑알을 들고서 밖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와 같은 고인이 거부한다면 만나려고해도 만날 수 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일단 만나려고 한 것이라면 제갈신중이 구태여 수고하지 않더라도 이제 곧 그의 앞에 나타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 * * 이윽고 제갈신중이 토신묘의 밖으로 나가자 황혼 무렵의 짙은 노을이 사위를 물들이고 있었다. 사방은 아주 조용했다. 그 여섯명의 삼강방의 무리들은 무리들은 이미 멀리 달아나 버린 모양이었다. 느닷없이 바둑알을 던져서 도움을 주었던 그 신비의 고인은 이미 떠나버린 것 일까? 제갈신중은 마치 산책이라고 나온 사람처럼 현성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 다. 이 부근의 풍경은 제법 좋았다. 우측으로는 그럴듯한 야산의 구름이 겹겹이 펼쳐져 있고, 그리고 좌측으로는 비교적 맑고 깊은 강물인 장수가 물결치며 앞쪽으로 흘러 내려 가고 있었다. 이곳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면 설평이라는 현성이 나타나는데, 그곳은 바로 장수의 근원과 가깝다. 황혼무렵이어서 그런지 맑게 굽이치며 흘러가는 그 장수의 풍경은 제법 운치 가 있었다. 지금은 한창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이기에 황혼무렵의 강물은 더욱 운치를 자 아내는 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리고 문득 보이는 늙은 낚시꾼 하나...... (......) 제갈신중은 강물앞의 바위위에 걸터 앉아서 이쪽에 등을 돌리고 있는 그 흑 의노인을 바라보다가 문득 가볍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 노인의 흑의는 매우 심하게 바래서 검은 물이 빠지고 거의 회색으로 보일 지경이었다. 게다가 노인의 머리에는 머리털이 거의 보이지 않았고, 다소 왜소해 보이는 체구에 깡마른 몸매를 하고 있었다. 그 노인에게서는 어딘가 심한 세월의 풍상을 느낄수 있었다. 만일 제갈신중이 유의해서 보지 않았다면 거리가 멀고 눈에 잘 띄지 않아서 알아보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기실 제갈신중에게서 지금 가장 놀라운 사실은 바로 그가 처음에는 낚시질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지만 사실은 혼자서 앉아서 바둑을 두고 있다는 점이었 다. 그와 같은 자리에서 혼자서 바둑을 두고 있다는 것은 괴이한 일이라고 할 수 가 있었다. 하지만 제갈신중 생각은 순식간에 한 방향으로 줄달음을 치고 있었다. 그렇다면 정말로 저 흑의노인이 아까 바둑돌을 던진 그 신비고인이었다는 말 인가? 대체 그는 그 먼거리에서 어떻게 그와 같은 절기를 발휘할 수가 있었을까? 그리고 그는 대체 무엇 때문에 전혀 알지도 못하는 제갈신중을 갑자기 도왔던 것일까? 혹시 제갈신중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흑의노인은 그에 대해서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제갈신중의 상념은 한순간에 복잡하게 뒤엉켰으나 이내 결국 직접 확인해 보 는 밖에는 다른 수가 없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제갈신중은 이내 발길을 돌려서 그쪽으로 천천히 내려갔다. 제법 가파른 벼랑이었지만 그것은 문제도 아니었다. * * * 과연 그 흑의노인의 얼굴은 지나치게 오랜 풍상을 겪은 나무껍질처럼 쭈글쭈 글했고 나이를 추측할 수가 없었다. 천하를 유랑하면서 그와 같은 사람을 보는 것도 흔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제갈신중이 그 흑의노인의 옆에 이르러서 먼저 신경쓴 것은 바로 자신 이 들고 있는 바둑알과 지금 노인이 두고 있는 바둑알이 같은 것인가 하는 점 이었다. 예상대로 제갈신중이 지금 들고 바둑알은 흑의노인의 검은 바둑알과 다름이없 어 보였다. 그것들은 흑과 백 모두가 무쇠로 만들어진 바둑알이었다. 게다가 놀라운 것은 그 바둑판 역시 무쇠로 만들어진 것이었으며, 지금 그것은 바위위에 절반쯤이나 깊이 틀어박혀져 있다는 사실이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그것은 오히려 바위속에서 하나의 무쇠바둑판이 솟아나 온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럼 그 흑의노인이 바둑판을 그렇게 박아놓은 것이라는 말인가? 흑의노인은 옆에 제갈신중이 다가왔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앞쪽만 바라보며 흡사 득도한 고승처럼 바둑을 두고 있었다. 그는 지금 그와 같은 일에 상당히 몰두하고 있었는데 가식은 아닌 것 같았다. 제갈신중은 가만히 있기가 거북해서 먼저 포권하며 입을 열어 말했다. [노선배님, 혹시 조금전에 이 바둑알을 던져서 저를 도와주신 분이 맞습니까?] (......) 흑의노인은 비로소 고개를 돌려서 제갈신중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문득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야, 나는 그것과는 상관이없네,자네는 잘못 생각한 것야.] 노인의 눈빛에는 힘이 없어 보였고 게다가 목소리도 미약하게 울려나오고 있 었다. 제갈신중은 다소 뜻밖이었기 때문에 다시 물었다. [아니 그렇다면 노선배께서 이 바둑알을 던지신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까?] 흑의노인은 다시 제갈신중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휘저었다. [아니야. 자네는 잘못 생각했네.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네. 암 그렇구 말구] (......) 제갈신중은 의아해져서 다시 물었다. [제가 무슨 생각을 잘못했다고 그러시는 것입니까?] 흑의노인은 쭈글쭈글한 안면을 더욱 찡그리며 대답했다. [그리니까 내 말은 ...... 자네는 세가지의 잘못된 생각을 했네. 우선 음 그러니 까 ...... 그 바둑돌은 분명히 나의 것이네. 그러니까 어서 이리 돌려주게!] 제갈신중은 약간 어리벙벙해지며 바둑돌을 돌려주며 다시물었다. [그럼 나머지 두개의 잘못된 생각은 무엇입니까?] 흑의노인은 바둑알을 받아서 혹시 망가진 것이 아닌가 하고 조십스럽게 살피 다가 겨우 한숨을 내쉬고 그것을 바둑알통에 집어 넣으며 대답했다. [그러니까, 그것은 우선은 자네가 말한 대로 나는 자네를 돕지는 않았다는 것 이네. 하지만 사실 내가 바둑알 던진 것은 틀림이 없지. 그 얘기는 사실 비슷 한 것 같지만 실상은 다른 것이네. 비록 비슷해도 나중에는 전혀 달라지게 되 어 있는 것이지. 자네는 그 점을 항상 명심하도록 하게.] 제갈신중은 비로소 그 흑의노인이 매우 괴팍한 점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렇다면 정말로 저를 도운 사람은 누구입니까?] 흑의노인은 그의얼굴을 바라보며 약간 주저하는 듯 하다가 대답했다. [그것은 사실...... 사실 말할 수가 없지만, 그러나 자네는 매우 궁금해할 것이니 하는 수가 없군. 사실을 말하자면 나에게 자네를 피하라는 말을 한 것도 아닌 니, 그것은 말하자면 어느 정도는 자네에게 모습을 드러내도 상관이 없다는 뜻일지도 모르지. 그래서 나는 마침 이곳에서 바둑을 마저 두고 가려던 길이었 네.] 제갈신중은 그의 말이 길어지는 것을 보고 다시물었다. [그럼 그 사람은 누구라는 말입니까?] 흑의노인은 그래도 약간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그...... 그는 바로 곡주님이네. 그러니까 자네는 어디가서 이 얘기는 하지말도 록 하게.나는 자네에게 호기심을 일으킨 죄로 단지 말해주었을 뿐이니까.그건 그렇고, 자네 혹시 바둑 둘 줄 아나?] 흑의노인은 자신의 앞에놓인 바둑판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흑백의 바둑돌들이 어지러이 좋여져 있었다. 하지만 제갈신중은 그러한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는 지금 자신을 도운 사람이 누구며 무슨 속셈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싶은 뿐이다. 제갈신중은 다시 물었다. [그럼 그 곡주는 누구입니까?] 흑의노인은 즉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안 되지.그가 누구인지,그리고 그가 남자인지 여자인지,혹은 나이가 몇살 인지 등에 대해서는 조금도 말할 수가 없네.그가 자네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 도 말할 수가 없고 , 또한 무슨 이유인지도 말할 수가 없지. 그보다는 차라리 여기에서 나와 바둑이나 두는 것이 어떤가?] 제 4장 해괴한 문젯거리 흑의노인은 말로는 도움을 주라고 지시한 자를 가르쳐줄 듯 했으나 결국 곡주 라는 말 이외에 한 것이 없었다. 그 곡구라는 말은 실로 애매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본래 강호상에는 무슨무슨 방이니, 곡이니, 보니 하는 따위의 문파의 이름이 많았기 때문에 , 역시 그 곡주라는 이름 역시 흔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제갈신중은 만족하지 못하고 다시 물었다. [그럼 노선배는 그 곡주라는 사람의 수하인 모양이로군요. 대체 노선배가 소속 되어 있는 방파는 어떤 것입니까?] 흑의노인은 약간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나는 본곡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은 생각이 없네.그저 바둑이나 한판 두자니까!] 제갈신중은 흑의노인이 그저 막무가내로 바둑만 두자고 하는 것을 보고 가볍 게 한숨을 내쉬며 다시말했다. [하지만 나를 도운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가르쳐 줘야할 것이 아닙니 까?] (......) 흑의노인은 왠지 멍한 표정으로 잠시 제갈신중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대답했 다. [만일 자네가 나와 바둑에서 이기게 되면 그점에 대해서는 내가 대답해주도록 하지.] 제갈신중은 그만 하는 수가 없어서 웃었다. [좋습니다. 그럼 한판만 두도록 하지요] 기실 제갈세가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두뇌가 명석한 편이어서 당연히 바둑에도 능한 사람이 많았다. 물론 여기에 있는 한사람은 빼고 말이었다. 제갈신중은 앞에서도 말한바가 있거니와 그와 같은 모든 면에 걸쳐서 기이할 정도로 부진하여 모든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곤 했었다. 하지만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제갈신중도 그러한 가문에서 자라 나다 보니, 자연히 바둑의 기초지식만은 터득하게 되었다. 지금 제갈신중은 너무 답답한 나머지 시험삼아 한 번 두어보려는 것이었다. [좋아,좋아! 그럼 어서 이쪽에 앉도록 하게!] 흑의노인은 유쾌한 듯이 웃으며 한쪽을 가리켰다. 흑의노인의 맞은 편은 벼랑이었기 때문에 흑의노인은 우선 자신의 왼쪽에 제 갈신중을 앉게 했다. 그리고 나서 바둑판의 한쪽을 잡고서 잡아당기니 그것은 거짓말처럼 가볍게 위로 들려지는 것이었다. 그 바둑판은 정말로 무쇠를 다듬어서 만들어 놓은 두치 정도의 두께를 지닌 물 건이었다. 제갈신중이 자리에 앉으면서 보니 바둑판이 들려진 그 자리에는 바위가 납작 하데 눌려진 자국이 있었다. 제갈신중은 무림세가의 자제로서 여태까지 많은 무림인들의 능력들을 보아 왔 었지만, 그러나 실로 그와 같은 괴력은 처음인 것 같았다. 대체 멍청하고 깡마르며 내일이라도 당장 저승으로 갈 것 같은 왜소한 늙은이 에게 어디에 그런 괴력이 숨겨져 있는 것인지 알수가 없었다. 이윽고 흑의노인은 제갈신중의 맞은편으로 자리를 옮기고서 다시 무쇠바둑판 을 바위위에 박아놓으며 말했다. [그럼 자네가 먼저 두게!] 제갈신중은 약간 멋쩍은 느낌이 들었으나 곧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는 손님이고,또한 노선배는 나이도 연장자이고 하니 먼저 두십시오.] 제갈신중은 당연히 흑의노인이 재삼 선착을 양보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사양한 것은 어디까지나 인사치레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바둑실력이 형편없는 그로서는 그렇게 항상 바둑만 두기 좋 아하는 사람을 이길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흑의노인은 재삼 양보하기는 커녕 일순 득의의 웃음을 흘리면서 다음 과 같이 말하는 것이었다. [흐흐흐 그래? 그렇다면 고맙네.] 제갈신중은 노인이 즉시 흑돌을 잡아서 바둑판위에 올려놓는 것을 보고는 정 말로 그가 바둑의 승부에 미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흑의노인이 먼저 흑돌을 올려놓은 자리는 바로 정중앙인 천원이었다. 제갈신중은 그것을 보고 다소 의아해졌다. 그가 비록 바둑의 하수이기는 하나, 대개의 경우 바둑의 귀의 성점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흑의노인처럼 처음부터 천원을 차지하는 경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사실 매우 드문 일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제갈신중은 잠시 생각하다가 백돌을 집어들어 자신의 앞쪽에 있는 우하귀의 성점에 두었다. 그런데 이때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쇠바둑판과 쇠바둑알이었으므로 바둑알을 놓은 순간에 쩡! 하는 금속성이 일 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괴이하게도 바둑알을 놓는 순간에 그것은 마치 강한 탄력이 있는 고무 공에 퉁겨나듯이, 손을 놓자마자 즉시 밖으로 날아가는 것이었다. 제갈신중은 자신이 바둑돌을 놓을 때도 그와 같은 탄력이 느껴졌기 때문에 크 게 의아해졌다. (......?) 흑의노인은 그를 보고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아니 왜 그러나?] 제갈신중은 도리어 그런 질문을 받게 되자 더욱 어리둥절해져서 대꾸했다. [제가 잘못한 것입니까?] 흑의노인은 웃으며 대꾸했다. [물론이네. 바둑판이란 돌을 올려놓으라고 만들어 놓은 것이지, 그렇게 바닥에 떨어뜨려 버리면 무슨 소용이겠나?] 제갈신중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다시 백돌을 집어 들어서 아까의 그 자리에 올려놓았다. 그런데, 왠걸 또다시 바둑돌은 밖으로 날아가 버리는 것이었다. 제갈신중은 이번에는 바둑판에 바둑돌을 내려놓는 순간에 마치 쇠바둑판이 아 닌 고무바둑판에 올려놓는 듯한 강한 탄력을 느꼈다. 제갈신중은 정말로 당혹한 느낌을 받게 되었다. 비록 그가 바둑을 많이 두어보지는 않았으나 실로 그와 같은 괴이한 일은 처 음있는 일이었다. 순간적으로 제갈신중은 마치 눈앞에 허깨비가 지나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 다. 자신이 혹시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데, 알고보니 흑의노인이 어느새 신형을 날려서 날아가고 있는 백돌과 이미 땅에 떨어진 백돌을 주워가지고 오는 것이었다. 제갈신중은 그의 그와 같은 신법을 보게 되자 그만 다시 놀라고 말았다. 기실 그는 조금전까지도 그 바둑알을 날려서 자신을 도와준 사람이 정말로 흑의노인일까 하고 의심하고 있었는 데, 이제는 그런 의구심이 모두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그만한 무공이면 능히 아까와 같은 일을 할 수가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흑의노인은 어느새 돌아와 자신의 자리에 않고, 주워온 백돌을 바둑알통에 넣 으며 웃으며 말했다. [하하, 알고보니 내가 미처 그 사실을 말해주지 않았군. 이 바둑은 바로 내공 을 주입하는 것이라네.] (내공을 주입하는 것이라고?) 제갈신중은 뜻밖의 말에 다소 놀랐지만 이내 다시 어리둥절했다. 바둑을 둘 때 내공을 주입하는 것이라니,대체 무엇을 어떻게 내공을 주입하는 것이라는 말인가? 제갈신중으로서는 오늘 갑자기 별의별 괴상한 일들을 다 겪고 있는 것 같았 다. 이미 사위에는 땅거미가 몰려오기 시작하고 있었다. 제갈신중은 이 괴상한 일을 빨리 끝내고 싶어서 궁금하지만 참고 그저 시키는 대로 바둑알에 내공을 주입하며 올려놓았다. 그런데 마악 손을 떼려고 하는데 다시 바둑알이 날아가려고 하는 것이 아닌 가? (......) 제갈신중은 그제서야 대강 알 것 같았다. 알고보니 지금 천원에 놓여진 흑돌에서는 끊임없이 내력이 밀려 나오고 있었 던 것이었다. 그것은 물론 허공을 격하고 물건을 움직이는 금룡공과 비슷한 것이었다. 제갈신중은 설마하니 그 흑의노인이 그와 같은 재간으로 바둑을두며, 게다가 그 기운이 계속해서 작용을 할 줄을 몰랐다. 그렇다면 앞으로 바둑이 좀더 두어지게 되면 곳곳의 내력이 더욱 더늘어가게 될 것이 아닌가? 제갈신중은 그야말로 그렇게 내력으로 바둑을 두는 것을 처음으로 보았을 뿐 만 아니라 처음으로 듣고 있었다. 만일 정말로 그런 바둑이 두어지게된다면 양자는 서로 내력과 무공을 비교하 는 것이 될 뿐만 아니라, 그 가운데의 현묘한 이치 역시 무한하게 나타나게 될 것이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비무와도 흡사하여 고차원의 무공인 것이다. 제갈신중은 그저 한 번 상상해 보기만 해도 그 한없는 수에 대해서 머리가 어 지러워질 지경이었다. 그는 비로소 조금전에 흑의노인이 중앙의 천원을 중시했다 이유에 대해서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는 그러한 바둑을 둘 수가 없었다. 본래 그 금룡공이라고 하는 것은 최소한의 무공이 일류의 경지에 올라 있어야 만 시전이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제갈신중은 그만 씁쓰레하니 웃으며 바둑돌을 거두었다. [저는 안되겠습니다.] (......) 흑의노인은 잠시 쭈글쭈글한 얼굴로 그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끄덕 했다. [하기는 ...... 알고보니 자네는 공력이 부족한 편이었군. 공력이 그렇게 부족하니 나와 바둑을 둘 수 없는 것이 당연하지. 아, 나는 왜 미처 그러한 사실을 파악 하지 못했을까?] 흑의노인은 흐릿한 시선으로 다소 멍청하게 중얼거렸는데 그광경은 아까와는 달리 약간 불쌍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제갈신중은 몸을 일으켰다. [자, 바둑도 둘수가 없고 하니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이미 주위가 상당히 어두워진 모양이었다. 주위가 어두워지고 조용해지자 강물의 물결소리가 더욱 선명하게 들려오고 있 었다. 흑의노인은 할 수 없다는 듯이 바둑판과 바둑돌을 양손으로 나누어 들고 말했 다. [할 수 없는 일이지. 하지만 자네는 일단 나와의 바둑에 응했기 때문에 내가 아까 말한 얘기에 대해서 들려주도록 하지. 그러니까...... 우리의 곡주님께서 자네를 도운 목적은, 그러니까 그것은 아무 것도 없었네, 그것이 바로 그분의 말씀이었으니까.] 제갈신중은 약간 어이가 없어서 급히 물었다. [아니, 뭐라구요?] 그러나 기이하게도그 순간에 갑자기 흑의노인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퍽! 꺼 지듯 사라지는 것이었다. 흑의노인은 이미 어느새 떠나가 버리고 그 자리에는 환영만이 남아 있었던 것 이었다. 제갈신중은 그것을 보고 혹시 사술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아무튼, 제갈신중은 그 길로 다시 현성으로 향하는 도리밖에 없었다. * * * 마치 일장의 꿈같은 일들을 겪고나서 제갈신중이 다시 그 장하반점으로 돌아 오자그 주인은 다소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것은 제갈신중이 혹시 재난을 몰고 다니는 사람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기 때 문이었다. [아니, 저희 반점으로 주무시러 오시는 것입니까요?] 제갈신중은 가볍게 웃으며 되물었다. [그 사이에 이미 모든 방들이 다 나가기라도 했단 말이오?] 주인은 아까 제갈신중에 의해 곤란을 면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감히 그를 함 부로 대하지 못했다. 단지 그는 제갈신중이 아까 그렇게 나가고서 그렇게 무사히 돌아왔다는 사실이 약간 믿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아,아닙니다요. 저의 반점에서는 항상 여분의 방을 준비하고 있습지요.만일 공 자께서 주무시겠다면 즉시 깨끗한 방으로 모시겠습니다요.] 제갈신중은 말했다. [그럼 어서 나를 그 방으로 안내해주시오.] * * * 반점의 주인이 안내한 곳은 객방들 가운데에서 가장 안쪽에 위치하고 있는 작 고 아담한 방이었다. 제갈신중은 이미 오랫동안 강호를 떠돌아 다녀서 그렇게 객방에 묵는 것은 거 의 예사가 되어 버렸다. 대개 이런 반점은 이름처럼 음식을 팔기도 하지만, 오히려 객점이 더욱 본업 인 경우가 많았다. 이곳은 궁벽한 시골이었기 때문에 비록 상당히 방이 많았으나 하나같이 깨끗 하지 못했다. 이미 밖이 완전히 어두워졌기 때문에 제갈신중은 촛불을 켜놓은 상태로 침상 위의 퀴퀴한 냄새를 풍기는 이불위에 벌렁 드러누웠다. 비록 그는 한나절밖에 움직이지 않았지만 오늘은 제법 피곤한 일들이 겹쳐서 나른한 피로감이 엄습해 들었다. 조용한 가운데 잠시 촛불을 바라보면서 아까의 그 흑의노인에 대해서 생각하 다가 그는 문득 잠이 들고 말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한참동안 곤하게 잠을 자다가 제갈신중은 문득 서늘한 느낌에 눈을 떳다. (......?) 뜻밖의 일이었다. 제갈신중의 머리맡에는 어느새 예의 그 흑의노인이 서서 기이한 눈초리로 세 밀하게 그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괴상한 형상의 얼굴을 그렇게 촛불 아래에서 바라보자 더욱 괴이한 느낌이 들어서 제갈신중은 깜짝 놀랄 지경이었다. [아니 당신은 ......? 무슨 일이십니까?] 제갈신중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벌떡 일으키며물었다. 한쪽에서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기에 바라보니 창문이 열려 있었다. 흑의노인은 아마도그 창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온 모양이었다. 제갈신중이 다시 흑의노인을 바라보자 그는 기이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흐흐, 나는 ...... 나는 생각해냈네. 자네가 나와 바둑을 둘 수 있는 방법을 말 이네.] 이게 웬 엉뚱한 소리인가? 제갈신중은 어리둥절하여 흑의노인의 손을 살폈다. 바둑판과 바둑알통은 여전히 그 흑의노인의 손에 들려있는 상태였다. 제갈신중은 어이가 없어서 웃으며 물었다. [하하 그러십니까?] 흑의노인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다시 말했다. [자네는 ...... 자네는 아마도 내가 지금 헛소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 지만, 그러나......나는 지금 헛소리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네.] 제갈신중은 흑의노인이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하는 것이 다소 어리숙해 보여 순 진하다는 느낌까지 들었다. 하지만 그 흑의노인은 놀라운 무학고수가 아닌가. 제갈신중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노선배의 말씀이 헛소리일 리가 있겠습니까?] 흑의노인은 다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말했다. [하지만 자네는 역시 내 말을 믿지 않고 있는 것이 분명해.] (......) 제갈신중은 잠시 그의 얼굴을 살피다가 웃으며 다시 물었다. [그럼 그 방법이 어떤 것인지 가르쳐주실 수가 있습니까?] 흑의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네. 자네가 나와 바둑을 두는 방법은 그러니까, 내가 생각해낸 그 방법 은,바로 자네의 공력을 높여주는 것이네.] 제갈신중은 웃으며 대꾸했다. [하하 그렇겠군요.] 흑의노인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역시 자네는 내 말을 믿지 않는 모양이군.] 제갈신중은 사실 흑의노인의 말을 귀담아 듣고 있지 않았던 터라 미소하며 물 었다. [저를 어떤 방법으로 공력을 높여주실 생각이십니까?] 천하에 무학을 연마하는 사람치고 공력의 증가를 바라지 않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워낙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지금 제갈신중이 웃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런데 흑의노인은 즉시 품속에서 다른 손으로 하나의 물건을 꺼내들면서 이 렇게 대꾸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간단하네. 바로 자네가 이것을 복용하면 되는 것이지.] 흑의노인이 꺼내든 것은 하나의 자기로 만들어진 함이었다. 헌데 그가 그 뚜껑을 열자 그 안에는 괴이한 물건이 들어있는 것이아닌가? -산삼. 그것은 한눈에 보기에도 산삼이었지만 그 형상이 기이했다. 그 줄기와 뿌리가 기이하게 작을 뿐만 아니라 뿌리는 마치 발가벗은 어린아이 의 형상과도 같고, 게다가 완전히 시뻘건 색깔을 띠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제갈신중은 아직 그와 같은 산삼을 구경조차 해보지못했다. 그것은 혹시 전설의 동자삼이라는 것이 아닐까? 흑의노인은 마치 그의 마음속을 짐작하고 있기라도 하듯 기이하게 웃으며 다 시 물었다. [자네는 이게 뭔지 아는가?] 제갈신중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것은 혹시 천년삼왕이라는 것이 아닙니까?] 흑의노인은 다소 능글맞게 웃더니 이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아니야. 이건 무슨 천년이나 묵은 것은 아니지. 이건 바로 동자삼과 하수오를 교배시킨 것으로 인형삼이라고하지. 하지만 효과는 아마도 그에 못지 않을 꺼야.] (......?) 제갈신중은 실로 엉뚱할 뿐만 아니라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하지만 어째서 그것을 나에게 복용시켜야만 한다는 것이오? 다른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지 않소?] 흑의노인은 그 말에 다소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너는 ....... 이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말이냐?] 제갈신중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오. 세상에는 공짜가 없는 법인데, 만일 내가 그것을 복용하게 되면 대 체 무슨 곤란한 일을 당하게 될지 누가 알겠소?] (......) 흑의노인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말했다. [하지만 나는 결코 네게 다른 어떤 것도 원하지 않겠다......이건 사실 말이지 공짜나 같은 거야.] 제갈신중은 눈살을 찌푸리며말했다. [대체 구태여 나와 바둑을 두어야 하는 이유가 뭐요?] 흑의노인은 그 질문에 약간 곤혹스러운 표정이 되어 고개를 내저었다. [그것은...... 그것은 나도 잘 알 수가 없지만 아무튼 나는 너와 바둑을 두어 야한다는 거야. 이건...... 이건 느,느낌이야.] 제갈신중은 어처구니가 없어하며 다시물었다. [하지만 내가 그것을 어떻게 믿을수가 있겠소?] 흑의노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지금 본곡에서도 귀한 이 인형삼을 소모하려고 하는거야.대체......대체 내 가 무엇 때문에 이 귀한 것으로 장난을 치겠는가? 자네는 그것만 봐도 알 수 가 있지 않은가?] 제갈신중은 다시물었다. [그럼 이 일도 그 곡주라는 사람이 시킨 것입니까?] 흑의노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곡주님은 이 일과는 상관이 없지. 곡주님이 지시한 일은 아까의 그 일로 끝난 것이네. 사실 말이지......] (.......) [사실 나는 그동안 바둑을 함께 둘 사람을 찾고 있었네. 물론 곡주님께서도 훌 륭하지만 그분께서는 항상 이 일을 귀찮게 생각하시는 편이지. 헌데 아까 자 네를 만난 이후에 처음으로 자네가 나의 좋은 상대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네. 그래서 이렇게 다시 돌아온 것이지. 사실 이 인형삼은 본곡에서도 귀한 것 이어서 우리들이 단지 하나만 가지고 온 것이라네.] 제갈신중은 잠시 생각하다가 물었다. [그럼 혹시 당신은 그 곡이라는 곳에서 나온지 얼마 안되는 것이 아니오? 그리 고 이제까지 거의 밖으로 나와본 적이 없고?] 흑의노인은 이상하다는 듯이 즉시 되물었다. [아니 그것을 자네가 어떻게 알고 있나? 우리는 사실, 사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은 본곡에서 나올 수가 없는 입장이었지. 그런데 이번에 곡주께서 대공을 성취하셨기 때문에 우리들도 수십년만에 드디어 밖으로 나올 수가 있었지.] 제갈신중은 웃으며 대꾸했다. [당신이 그렇게 어수룩해 보이는데 어찌 모르겠소?] 허나 흑의노인은 제갈신중의 말에 조금도 화를 내지 않고 고개를 갸웃거리다 가 다시 물었다. [그래서 자네는 내 말에 따르겠다는 것인가, 아니면 싫다는 건가?] 제갈신중은 즉 대꾸했다. [그야 말할 나위가 있겠소? 대체 당신과 같은 사람에게 목숨을 맡기는 위험한 모험을 할 바보가이 세상에 어디에 있겠소?] 기실 이 공력을 높이는 것은 단순이 무슨 영약만을 복용한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일정한 경지까지는 그것이 가능할 지라도, 만약 상승의 공력을 성취하고자 한다며 필히 처음부터 정식대로 무공의 수련을 거쳐서 전신의 기혈을 단련시키고, 이어기를 자신의 것으로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간혹 강호상에 무조건 영약만 복용하면 무공이 상승된다고 믿는 바보들이 있 다고 하는데, 사실 모든 여건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오히려 주화입마를 초래하게 되거나 혹 은 바보천치가 되는 수도 있는 것이다. 즉 영약도 잘못 복용하면 극독이 된다는 것이다. 제갈신중은 천하의 미리좋은 가문인 제갈세가에서 자라났으니 그러한 사실을 모를 리가 없었다. 하지만 흑의노인은 웃으며 고개를 젓는 것이었다. [아니야. 나에게는 다른 방법이 있지. 내가 개정대법을 펼치게 되면 자네는 주 와입를 당하지 않고도 공력을 얻을 수가 있네. 그리고 나중에는 삼갑자의 공 력까지 얻게 되는 것이지.] -삼갑자의 공력. 제갈신중은 그 말을 듣자 일순 소름이 끼쳐졌다. 과연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물건인 그 인형삼이라는 것이 대단한 모양이었다. 당금의 유명한 영단인 소림사의 대환단도 겨우 이갑자의 공력을 증가시켜 줄 수가 있을 뿐이었다. 그것도 아주 귀하여 거의 절전되었다고 하기도 하고, 지금은 대개 일갑자의 공력을 증진시킬수가 있는 소환단이 쓰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 삼갑자의 공력증진은 대단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대체 이 흑의노인이 어디에서 나타난 사람인지 의아해지는 순간이었다. 대개 무학의 진전에는 여러개의 단계가 있는데, 우선 상승의 무학의 터득하기 위해서는 대주천반운이 장애가 없어져야 한다. 그것은 이갑자의 공력을 성취하게되면 다가오는 관문인데 실로 간단하지않는 것이었다. 당금 천하에 젊은 나이에 그 수십곳의 현관들을 타통시키고 절정무학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들이 더러 있는데, 그들을 가리켜서 무림육영이라고 부르고 있는 터였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그 황화예의 절정무학의 경지에 오르기위해서 노력하다가 헛되이 폐인이 된 사 람들은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하물며 삼갑자의 공력을 성취하게 된다면 그 이후의 다시 또 하나의 관문을 넘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최절정의 백연탄이라는 무학경지로서 반박귀진에 도달하는 것이 며, 이른바 생사현관이라는 것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말 그대로 죽음을 각오한 시도인 것이며 성공하기 어려우며, 수십년의 각고의 무공수련을 거친자만이 가능하며 당금의 천하에는 그러한 경 지에 도달한 젊은이는 거의없다. 헌데 제갈신중에게 그와 같은 것을 성취하라니 그것은 실로 독약을 복용시키 는 것보다 더욱 위험한 일이 아니겠는가. 제 5장. 갑자기 일류고수가 되다. 물론 흑의노인이 특별한 능력이 있어서 개정대법으로 약력을 고르게 퍼지게 할 지라도, 역시 나중에 그만한 무학경지를 터득하지 못하게 되면 역시 위험해지기는 마찬 가지이며, 제갈신중은 시한폭탄을 몸에 지니고 언제 터질지 몰라 조마조마한 삶을 살아 가게 되는 것과 다름이 없는 것이었다. 제갈신중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도 나는 거절하겠소.] 흑의노인은 잠시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다고 물었다. [그게 정말인가?] 제갈신중은 더 이상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소. 그러니 어서 이만 나가주시오.] (.......) 흑의노인은 문득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정말 나는 행운아로군. 정말로 알맞는 사람을 고른 것 같아.] 제갈신중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요?] 흑의노인은 다소 득의하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흐흐흐, 아마도 자네는 내가 조금 이상해 보이겠지? 암,그건 사실이야. 우리들 은 사실 조금 이상한 점들이 있기는 하지. 하지만 ......흐흐흐,너는 오히려 우리 보다 더욱 이상한데가 있다는 걸을 모르느냐?] (......?) 제갈신중은 어리둥절해졌다. [그게 어쨌다는 것이오?] 흑의노인은 대꾸했다. [나는 실로 그와 같은 사람을 찾고 있었다.그런데 지금 바로 그와 같은 사람을 만났으니 어찌 기쁘지 않겠느냐? 너는 아직도 거절하겠느냐?] 제갈신중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대체 어쩌다가 이런 괴상한 노인과 만나게 되었는지 알수가 없었다. [내가 몇번이나 말해야 알아듣겠소?] 그런데, 뜻밖에도 흑의노인은 오히려 그 말을 듣고도 빙그레웃는 것이었다. [흐흐, 내 그럴 줄 알았다.나를 꽤나 만족시키는걸?하지만 사실 너에게는 선택 권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할 것이다.] 말이 끝난 순간의일이었다. 갑자기 흑의노인의 신형이 가볍게 움직이는가 싶은 순간에 이미 제갈신중은 다시 침상위에 벌렁 쓰러졌다. 어느새 흑의노인에게 전신의 혈도가 제압된 것이다. 이 흑의노인의 무공은 생각보다 강한 것 같았다. 그는 한순간에 제갈신중을 제압하고 거의 동시에 무형진기를 이용하여 그를 부드럽게 눕혀놓았다. 비록 제갈신중의 무공이 삼류의 수준이라고해도, 그와 같이쉽게 일을 해치운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제갈신중은 안색이 급변하며 놀랐으나 도처히 어쩔수가 없는 처지에 놓여 있 는 상태였다. 단지 두 눈만 크게 뜨고서 위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에 이미 흑의노인은 공중에 붕붕 떠올라서 그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흑의노인은 어느새 바둑판도 내려놓고서 아주 엄숙한 표정으로 허공에서 가부 좌를 틀고 있었는데, 그의 아래에는 마치 아지랭이와 같은 기운이 일고 있어서 신비로운 느낌이 일 게 했다. 제갈신중은 그것을 보자 더욱 깜짝 놀랐다. 실상 그는 저렇게 허공에 떠올라 있을 수 있는 사람이있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내 그 놀라운 느낌도 오래 지속할 수가 없었다. 어느새 흑의노인이 그 붉은 동자 모양의 인형삼을 그에게 먹이고 있었기 때문 이었다. 흑의노인이 가볍게 손가락을 움직이자 제갈신중의 입이 벌어졌고 그 속으로 인형삼이 들어갔다. 그 인형삼은 역시 기이한 물건이었다. 미처 그의 입속에 들어가기도 전에 그의 입김이 닿자마다 이내 그것은 향긋한 액체로 화해서 그의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것이었다. 그 향기는 과일의 진한 향기와 비슷했고 또한 그 맛은 꿀처럼 달콤하고 진했 다. 옛말에 좋은 약일수록 입에 쓰고 입에 달은 것일수록 독에 가깝다고 했었는데 이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 제갈신중은 그저 멍청히 누워서당하는 도리밖에 없었다. 인형삼은 녹아서 뱃속으로 들어가자 이내 강렬한 열기를 발산하기 시작했다. 마치 갑자기 전신이 뜨거운 용광로속에 들어간 느낌이었는데, 그 순에 엉겁결 에 바라보니 흑의노인의 쌍수에서 무수한 기운들이 난무하기 시작하는 것이었 다. 은은한 금빛을 띠고 있는 그것들은 마치 가느다란 금선사와도 같아서 이내 방안 에 가득찼다. 그리고, 그것들은 더러는 빠르게 ,더러는 느리게, 그리고 더러는 강하고 더러는 부드럽게 온갖 모양을 갖추어서 제갈신중의 전 신대혈을 향해 파고 들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제갈신중은 마치 수백마리의 금빛 뱀들이 자신의 몸속으로 들어오는 것 같은 착각을 느꼈다. 물론 그 기분이야 좋을 리가 없었다. 세상에 뱀들이 자신의 몸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좋아할 사람들이 어디에 있겠 는가. 하지만 이상하게도 몸으로 느껴지는 것은 정작 달랐다. 일단 그 수백마리의 뱀들이 몸속으로 들어와서 이리저리 움직이기 시작하자 괴 이하게도, 그의 뜨겁게 달아올랐던 전신이 시원해질 뿐만 아니라 말할 수 없는 상쾌한 쾌감까지 불러 일으키는 것이 아닌가? 제갈신중은 이내 마음이 약간 진정되었기 때문에 그 금빛 뱀들에 대해서 궁금 해 하다가 이내 알아챘다. 알고보니 그 금빛 뱀들은 정말로 살아있는 뱀이 아니라 바로 흑의노인이 발출 한 일종의 지력이었던 것이다. 그는 지금 약속대로 개정대법을 펼치고 있는 것이었다. 이 개정대법이라고 하는 것은 이른바 몸 속의 탁한 기운을 깨끗이 씻어낸다 는 벌모세수의 수법과 흡사한 것이었다. 대개 인간이 태어날 때에는 기경팔맥이 융통되고 있다고 하지만 점차 자라나 면서 그 경락들은 퇴화하게 된다. 출생하기 이전에는 모친이 자궁속에서 배꼽으로 호흡을 하는 것이지만 이후에 는 그것이 쓸모없게 되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다시 세속의 온갖 탁한 기운들이 습격하여 그 경락들은 완전히 막혀버 리게 되는 것이니, 도가에서는 인간의 능력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그 태아적의 경락을 사용하는 방법을 연구하게 되었다. 그러한 연구는 끊임없이 계속되어 왔으며 당금에 이르러 그러한 학문은 천하 에 널리 퍼져있는 상태였다. 물론 그와 같은 무학이 도가에서 처음 시작된 것은 아닐지라도, 이른바 개정대법은 바로 그러한 세속의 탁한 기운을 제거하고 기경팔맥을 시원 하게 뚫어주는 것이었다. 물론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고 또한 무림인일 경우에 그 효과는 대단한 것이 었다. 무학의 수준이 월등히 향상되게 되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자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타력에 의한 융화관통인 만큼 앞으로도 계속 해서 효과를 보게 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한번 뚫린 경락이라고 해도 다시 탁기가 쌓이고막히게 되어있는 것이다. 지금 흑의노인이 시전하고 있는 개정대법은 일단 기경팔맥을 융통시켜서 전신 의 경락에 약력이 최대한으로 흡수되도록 하는데에 그 목적이있는 것이었다. 만일 제갈신중이 스스로 무학을 연마해서 그 약력을 최대한으로 이용할 수 있 게 되면 삼갑자의 공력을 성취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니면 그 기운이 잘못 새어나와 주화입마 등에 걸리게 될 지도 모르는 일이 기도 했다. 이른바 무학에서의 상승이라고 말하는 절정경지는 황화예라고 부르는 것으로서, 다름이 아니라 전신의 기를 기경팔맥에 흘려보내서 두루 막힘이 없이 스스로 자 력으로 융화관통시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무학의 경지가 공력의 고하에 따라 결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전혀 무관한 것도 아닌 것이다. 왜냐하면, 일단 황화예의 상승경지에 도달하게 되면 전신의 기는 갑자기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며 뜻대로 따르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됨으로써 이전까지는 전혀 사용할 수 없었던 새로운 상승절기들을 사용 할수 있게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또한 그러한 공력을 얻기 위해서는 역시 부단히 무공절기들을 연마하여 몸과 마음을 갈고 닦아야 하는 것이니, 역시 이 공력과 무공절기와는 서로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있는 것이었다. 도가의 팔단금의 수련이나 불가의 역근경의 수련과 같은 도인술은 모두 그러 한 이치인 것이었다. 그 흑의노인의 지력은 역시 제갈신중이 난생 처음보는 신기한 것이었다. 그의 가문의 유명한 천성지가 제아무리 변화무쌍하다고 해도 저와 같지는 않았 다. (......) 제갈신중이 어리둥절해 하고 있는 사이에 어느새 그의 위치는 다소 바뀌고 있 었다. 이번에는 그의 신형이 마치 구름처럼 허공으로 떠오르고 흑의노인은 반대로 바 닥에 내려서서 두 손을 움직였다. 허공을 격하고 물건을 움직이는 수법을 금룡공이라고 부르거니와 지금 흑의노 인의 수법은 더욱 신묘한 구석이 있었다. 흑의노인은 그저 선채로 아무렇게나 양손을 움직이는 것 같았는데 신기하게도 제갈신중은 허공에 떠올라서 자유로이 돌아가며 끊임없이 움직였다. 흑의노인이 제갈신중을 허공에 띄운채 움직이는 동안에도 여전히 금빛의 지력 은 무수하게 흘러나와 방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제갈신중의 몸속으로 소 리없이 사라졌다. 제갈신중은 비록 어떤 확실한 느낌은 없지만 필시 그 기운들이 자신의 기경팔 맥의 경락들을 따라서 움직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자 흑의노인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약간 맺혔다. 그러나, 흑의노인의 안색은 힘들어하는 것이 아니라 약간 곤혹스러운 표정이었다. 그는 나중에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더욱 강력한 지력을 펼쳐내곤 했다. [이상한 일이군?] 마침내 참을수 없다는 듯이 흑의노인은 손을 멈추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혼잣 말로 중얼거렸다. 그 바람에 제갈신중의 몸은 그대로 허공에서 떨어져 침상위에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아니 이게 무슨 짓이오? 갑자기 그렇게 떨어뜨리며 대체 어떻게......?] 제갈신중은 그만 정신없이 바닥에 굴러 떨어져서 몸을 벌덕 일으키며 약간 화 난 음성으로 소리쳤다. 그런데 알고보니 어느새 자신의 혈도가 전부 풀려있는 것을 알고는 다소 어리 둥절해졌다. 게다가, 조금전의 뜨겁게 느끼던 약기운도 느껴지지 않았고 그렇게 심하게 떨어졌건만 몸도 거의 다치지 않았다. 화가 나서 소리쳤다가 제갈신중은 이에 약간 겸연쩍어져서 입을 다물었다. 그 흑의노인은 여전히 혼자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제갈신중은 그의 망연한 표정을 보고는 그래도 자신을 해치지는 않았다고 생 각되어 다시말했다. [좋소. 그래 당신은 이제 어떻게 할 작정이오?] 제갈신중은 그가 즉시 다시 바둑판을 벌려놓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하지만 흑의노인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여전히 망연히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 었다. [이상하다. 이상해...... 어째서 그와 같은 일이 일어난다는 말인까?] 제갈신중은 그에게 대체 뭐가 이상하다고 물으려고 했다. 헌데 바로 그때 흑의 노인이 일순 고개를 돌리더니 이렇게 묻는 것이었다. [너는 혹시 이미 다른 내공을 연마한 것이 아니냐?] 제갈신중은 그가 그럴수록 더욱 어리숙하게만 보여서 웃으며 대꾸했다. [물론 나는 제갈세가의 사람이니 그 내공심법을 연성했소.] 흑의노인은 이에 그의 전신을 다시 찬찬히 살펴보다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 했다. [아냐, 아냐. 나는 그 현원전단공인가 하는 내공심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 른 종류의 내공을 말하는 것이다.아냐......사실 어떤 내공심법도 그와 같이 이 상할 리가 없는 것인데......] 흑의노인은 다시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제갈신중은 그 흑의노인이 비단 제갈세가의 사람이라는 말에도 놀라지않을 뿐 만 아니라, 심지어 제갈세가의 독문심법인 현원전단공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는 듯한 태 도를 보이는 것을 보고 놀랐다. 제갈신중은 역시 기이한 노인이라고 생각하면서 다시 물었다. [대체 뭐가 그리 이상하다는 말이오?] (......?) 흑의노인은 망연한 표정을 드디어 풀고는 대꾸했다. [그럼 너는 느끼지 못했다는 말이냐?] 제갈신중은 다시 물었다. [무엇을 말이오?] 흑의노인은 그의 얼굴을 쳐다보며 말했다. [나는 조금전에 나의 금광지를 이용하여 너의 기경팔맥을 뚫어주기위해 진기를 주입했다.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것들이 네 몸속에 들어가자 마자 마치 바다속 에 빠져버린 것처럼 흔적이 없어져 버렸단 말이다.] (......?) 이에 제갈신중은 더욱 어리둥절해졌다. 기실 그도 아까 그와 같은 느낌을 받고 있는 상태였었다. [대체 그럼 어떻게 되어야 정상이란 말이오?] 흑의노인은 눈살을 찌푸리며 고민스러운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야 물론 그 기운은 너의 기경팔맥을 따라서 돌아야하는 것이지.헌데 갑자기 사라지고 말았으니 이상한 일이 아니냐?] (......?) 제갈신중은 다시물었다. [그럼 나는 이미 주화입마에 걸린 것이라는 말이오?] 흑의노인은 그의 얼굴을 좀더 주시하다가 되물었다. [지금 너의 몸은 어떻느냐?] 제갈신중은 대꾸했다. [내 몸은 지금 괜찮은 편이오. 그다지 불편한 것 같지도 않고......] 기실 이순간 제갈신중은 스스로 몸을 가볍게 움직여 보다가 약간 놀라고 있었 다. 그의 몸은 이순간 아까의 나른한 피로감이 완전히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매우 상쾌하고 가볍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제갈신중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 사이에 어느새 흑의노인이 그의 앞에 불쑥 다가와서 그의 손을 잡아 진맥을 해보고는 말했다. [그렇군......] 제갈신중은 급히 물었다. [그럼 주화입마는 아니라는 말이오?] 흑의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기는 하지만 조금 이상하군.] 제갈신중은 약간 답답해져서 물었다. [뭐가 이상하다는 말이오?] 흑의노인은 주위를 둘러보다가 한쪽의 작은 탁자위에 놓여있는 찻잔들을 가리 키며 대답했다. [바로 저와 같은 것이네.자네는 무공에도 그릇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나?] 제갈신중의 무학지식은 사실 별로였다. [아, 그리요?] 제갈신중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흑의노인은 다시 말했다. [마치 그릇에 크고 작은 차이가 있는 것과 같은 것이네.그리고 그 그릇의 크기 는 무공이 높아질수록 더욱 커져서 많은 공력을 받아들이게 도는 것이지.] 제갈신중은 그 말에는 금방 이해가 갔다. [자매판에서 황화예로,그리고 황화예에서 백연탄으로 그렇게 올라갈수록 그릇 이 더욱 커진다는 말이죠?그러니까 공력을 더욱 많이 흡수할 수가 있는 것이 고.] 흑의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누구나 그릇이 있다고 할 수가 있지.하지만 자네는 아닌 것 같은 걸.....? 대체 이걸 어떻게이해해야 하는 것이지......] 흑의노인은 다시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제갈신중은 근본적으로 노인의 의아심을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답답해져 서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마도 그건 당신의 시도가 빗나갔기 때문이겠죠. 그건 그렇고, 이제나는 자 야겠으니 더 이상 볼일이 없다면 그만 내방에서 나가주시는 것이 어떻겠소?] 흑의노인은 그 말에 비로소 정신을 차린 듯이 다시 그를 보며 고개를 가로저 었다. [아냐, 내가 실패한 것이 아니야. 자네가 이상한 거지.] 제갈신중은 말했다. [하지만 바로 그게 그것이 아니겠소?] 흑의노인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는 탁자가 있는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냐,믿기지 않는 다면 어서 장력으로 그것을 쳐보게!] (......?) 제갈신중은 약간 미심쩍었으나 기실 자신도 체내에 기운이 이는 것 같아서 마 음이 움직였다. 그 탁자와는 대략 일장 정도 떨어져 있는 상태였다. 이전이라면 전혀 그것을 움직이지도 못할 거리였다. 하지만 만일 공력이 상승된 것이라면 한 번 그 탁자를 움직여 볼 생각으로 그 는 운기하고 장력을 펼쳤다. 그것은 바로 제갈세가의 대천성장의 기수식이었다. 이른바 장력을 펼친다고하는 것은 말하자면 힘을 빌어서 등에서 기를 발산하는 것으로서, 그 이치는 대개 비슷비슷하다. 허리를 펴고 그 힘이 어깨와 손 끝에 이르게 되면 그기는 내려가면서 떠오르 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장력을 발출하는 것이고 회수하는 것은 그와는 반대이다. 일단 무림인이라면 그와 같은 방법은 능히 숙달되어 있어야만 유사시에 자유 자재로 장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물론 무학이 보다 깊은 경지로 나아가게 되면 단지 마음으로 기를 자유로이 운 용하게 되는 것이다. 제갈세가의 대천성장은 심오한 반면에 기초에 아주 충실한 것이었다. 과연 아니나 다를까? 일단 장력을 일으키자 조금전에는 조용하던 체내에서 돌연 뜨거운 불기둥과 같 은 것이 일어나더니, 강렬하게 앞으로 뻗어나가는 것이 아닌가! 놀라운 일은 그 뒤에 벌어졌다. 펑! 갑자기 요란한 소음과 함께 탁자의 다리가 부러지면서 탁자가 뒤로 날아가 버리 는 것이었다. (......?) 그는 자신이 조금전에 그와 같은 괴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믿 기지 않았다. 실로 일장밖의 물체를 박살낼 수 있을 공력이라면 아마 일류급의 공력은 될 것 이었다. (내,내가 설마하니 일류고수가 되었다는 말일까?) 일류고수란 일반적으로 일갑자 반의 공력을 가진 무공절기들을 갖춘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다. 삼류고수가 십년 정도의 공력이고,이류고수가 삼십년 정도의 공력인데 반해서 이 일류고수는 물경 구십년의 공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니, 앞의 두가지와는 비교도 할 수가 없는 무서운 능력인 것이었다. 과거에 제갈신중은 유독 마음의 혼란이 많았고 무학의 진척이 느렸기 때문에 자신이 이류고수가 되는 것도 요원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홍두깨처럼 이렇게 갑자기 일류급의 공력을 갖추게 되다니 어리둥절한 일이 아닐수가 없었다. 다시 한번 시험해보기 위해 제갈신중은 이번에는 신법을 일으켜서 가볍게 발을 굴러보았다. 그러자 놀라운 일은 또 벌어졌다. 단지 가볍게 기운을 일으켰건만 용천혈에서 강한 기운이 느껴지며 그의 신형 은 그만 쿵!하고 천정에 머리를 들이박고 마는 것이 아닌가? [아이쿠] 한순간 당황하여 정신없이 바닥에 다시 굴러떨어진 제갈신중은 놀랍고 걱정되 기도하여 그만 소리를 내질렀다. 그러나 그의 몸은 그다지 아픈 것 같지가 않았다. 게다가 갑자기 기분도 매우 좋아진 것 같았다. 제갈신중이 바닥에 앉은 채로 멍하니 넋을 놓고 있는 것을 보고 흑의노인은 웃으며 그의 앞에 마주 않았다. [알겠지?앞으로 자네는 더욱 공력의 진전을 보게 될것일세.] 흑의노인이 바둑판을 내려놓는 것을 보고 제갈신중은 상념에서 깨어나서 의아 해져서 물었다. [정말로 당신은 나와 바둑을 두려고 한 것이오?] 흑의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몰론이네.자네는 그게 이상하다는 말인가?] 제갈신중은 어이없어 하며 대꾸했다. [물론이오. 아마도 바둑두기 위해서 그처럼 남의 공력을 높여주는 사람은 다시 없을 것이오.] 흑의노인은 웃으며 대꾸했다. [그것은 그야말로 그들이 이 바둑의 묘미를 모르기 때문이지. 사실 바둑이란 세 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네.] 제갈신중은 그가 바둑에 어느정도 미쳐 있다는 것은 알았으나 그가 그렇게까 지 말하는 것을 보고 실소하지 않을 수 가 없었다. [좋습니다.그럼 어서 바둑을 두도록 하죠.] 비록 나중에야 주화입마의 고통을 당하게 되더라도 일단은 지금의 상태가 기 분이 괜찮았기 때문에 제갈신중은 쉽게 마음을 움직였다. [그럼 아까처럼 역시 내가 먼저 두도록 하지] 말과 함께 흑의노인은 즉시 득의한 눈빛으로 흑돌을 하나 집어서 천원위에 올 려 놓았다. 제갈신중은 그것을 보고 자신도 백돌을 하나 집어 들어 우하귀의 성점위에 올 려놓았다. 제갈신중은 과거에 배웠던 금룡공의 수법을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 다행히 처음 시도하는 것인데도 바둑돌은 날아가지않고 얌전히 그 자리에 붙 어있는 상태가 되었다. 제갈신중이 손을 떼었음에도 불구하고 백돌이 그대로 있는 것을 보고 흑의노인 은 매우 흡족한 듯이 말했다. [좋다.이젠 되는군. 그럼 내가 다시 두도록 하지.] 말과 함께 흑의노인은 이번에는 다시 흑돌을 집어들어 백돌의 바로 아래인 삼 삼에 올려놓았다. 제갈신중은 흑의노인이 처음부터 삼삼을 침입하는 것을 보고 이상한 느낌이 들었으나 이어응수해 나갔다. 제갈신중은 백돌로 흑돌을 눌러갔다. 그런데, 마악 제갈신중이 다시 돌을 놓자마자 그의 두 개의 바둑돌이 부르르 떨며 움직 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우선 흑의노인의 흑돌이 바싹 다가들어있는 데다가,제갈신중의 금룡공 이 두 군데로 분산되었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힘이 약해져서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비로소이 바둑돌과 바둑판을 쇳덩어리로 만든 이유를 알수 있을 것 같았다. 만일 일반의 바둑돌이었다면 그것은 금방 진력에 의해 부서지고말았었을 것이 었다. 게다가, 돌을 많이 두면 자연 유리할 것이기 때문에 흑의노인이 왜 그렇게 선수를 중 요하게 생각했는지 이해가갔다. 실로 이와 같은 괴이한 바둑은 천하에 다시없을 것이었다. 흑의노인은 제갈신중의 바둑돌이 떨리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기실 이렇게 금룡공을 펼친다는 자체가 이미 제갈신중으로서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지만. [아니야,아니야. 내가 공력으로 자네를 누르려는 것은 아니니 안심해. 나는 지금 충분히 공력을 줄이고있는 것이니 자네는 그저 공력으로 맞서려고 하지말고 다 른 수법을 응용해 보게.사실은 이 바둑의 묘미는 그런데에 있는 것이지.] (......?) 제갈신중이 멍하니 그를 바라보고만 있자 흑의노인은 약간 혀를 차며 다시입 을 열어 물었다. [자네 그럼 아직 사량발천근에 대해서 모르나?] 제갈신중은 그제야 흑의노인의 말뜻을 알아차렸다. -사량발천근 그것은 바로 운기법문의 극치라고 말하는 것으로서 거의 전설처럼 강호상에 전 해져 내려오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오로지 반탄이라는 요결을 사용하여 적의 거센 힘을 퉁기거나 혹은 되돌리고, 게다가 무산시켜 버릴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당금에 이르러 그 수법은 이미 거의 보편화되어 있다. 하지만 전설이라고 말한 것은 과거의 일을 말한 것이었다. 오래전에 이 사량발천근의 수법이 강호에 처음 출현했을 때 그것은 놀랍게도 정말로 겨우 넉냥의 작은 힘으로 천근의 거력을 물리칠 수가 있었다. 하지만, 당금에 이르러서는 그러한 수법을 배우는 것이 보편화 되고, 더러는 황화예의 절정경지에 오르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연마해야 하는 수법으 로 되어서 특이할 것이 없어졌다. 말하자면 하나의 기술이 알려지지 않았을 때게는 괴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 지만, 그러나 일단 알려지게 되면 효력을 거의 발휘할 수 없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 였다. 따라서, 당금에 이르러 그 사량발천근의 수법은 더욱 발달하였지만 그러나 그 이름과 같은 효력은 사라진 것이다. 제 6장. 또 한명의 노기인. 유감스럽게도 제갈신중은 비록 그 수법에 대한 얘기는 많이 들었으나 아직 알 고 있는 바가 없었다. 제갈신중은 웃으며 대답했다. [그 사량발천근의 수법은 나를 모르고, 나 또한 그 수법을 모르니, 우리는 서 로 친숙하지 못한 것 같소.] 흑의노인은 그 말을 듣고 이내 웃으며 말했다. [하긴 그래. 아까의 자네의 그러한 공력으로 사량발천근의 수법을 배웠을 리는 없는 것이지. 하지만 걱정말게. 그 수법에 대해선 자네도 금방 배우면 될 테 니...... 사실 간단한 거야.] (......?) 흑의노인은 그저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간단하다고 말했으나 기실 그 수법을 배우는 것은 별로 간단하지 않았다. 제갈신중은 그로부터 거의 한시진이상이나 흑의노인에게서 배웠으나 아직 그 기초도 깨우치지못했다. 하긴 그는 삼류무사에서 갑자기 일류고수의 공력을 가지게 되었으니 그 공력 을 사용하는 것이 금방 익숙해질 수가 없었다. 제갈신주은 오히려 갈수록 정신이 혼란스러워졌다. 그것은 그의 공력이 높아졌기 때문에 더욱 그것을 사용하기가 쉽지 않았을 뿐 만 아니라, 이전부터 그는 복잡하고 어려운 내용을 파고들어 갈수록 더욱 정신이 혼미해 지는 습성이 있는 사람이었다. 제갈신중은 처음에는 그래도 제법 공력을 교묘하게 움직일 수 있을 듯하더니 나중에는 오히려 더욱 그 능력이 줄어들었다. 그것을 보고 마침내 흑의노인은 가르치는 것을 중단하고 이렇게 화제를 돌려 다시 물었다. [자네,천하에서 가장 오묘한 운기요결이 무엇인지 아나?] 제갈신중은 대꾸했다. [그것은 바로 귀결수가 아닙니까?] 흑의노인은 그 말에 다소 놀라서 다시 물었다. [아니,자네가 그 천륭무가의 절기에 대해서 어떻게 알고 있지?] 제갈신중은 웃으며 대답했다. [그 세외팔세는 천하에는 존재하지 않는 문파들인데 제가 어찌 그 하나인 천륭 무가의 무공을 알겠습니까?다만 저는 풍문에 이름만 들었을 뿐입니다.] 흑의노인은 곧 수긍을 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렇군.헌데 바로그 천륭무가의 귀결수에 못지 않은 것이 바로 이백 년전 의 일월신교의 절학인 일월건곤대나이라는 것이네. 물론 본곡의 금삽수도 결코 그에 못지 않지.] 제갈신중의 의아해져서 말했다. [일월신교라면 역시 세외팔세 가운데의 하나로 알려져 있는 곳이 아닙니까?] 흑의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렇네.] 제갈신중은 그 말을 듣고 내심 혹시 이 흑의노인은 역시 세외팔세의 사람이 아 닌가 하고 생각했다. (본곡이라면,그렇다면 혹시......?) 하지만 기실 그 세외팔세는 이름뿐이지, 그저 전설적으로 전해지고 있을 뿐이며 고작 지난 천년 사이에 한 번씩 나타났 을 뿐이었다. 그 세외팔세가 현재 천하에 존재하고 있다고는 말할 수가 없었다. 따라서, 제갈신중은 순간적으로 떠오른 의구심을 지우고서 웃으며 흑의노인에게 다시 질문을 던졌다. [헌데 그게 대체 어쨌다는 말씀이십니까?] 흑의노인은 다소 눈살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보다시피 나는 바로 그 본곡의 금삽수를 알고 있다는 말이다.그런데 자네는 아직 기본적인 사량발천근에 대해서도 모르니, 대체 언제 나와 바둑을 둘 수 있게 되겠나?] 제갈신중은 이제는 그 바둑이 무학의 수련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 아 냈다. 강호상의 어떤 기인들은 자신의 무학수련이 어떤 한계에 도달하게 되면 왕왕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대자연의 모습에서 무학을 배우려고 하기도 하는 것 이었다. 제갈신중은 씁쓸하게 웃으며 되물었다. [저에게 무슨 문제가 있다는 말입니까?] 흑의노인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내가 보기에, 자네는 정말로 노력하지 않는 것 같네. 그렇다면 아주 어려운 노릇이지.대체 자네는 배울수록 더욱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퇴보하고 있는 것 같으니 대체 어찌된 일인가?] (......) 제갈신중은 쓰게 웃으며 대꾸했다. [당신은 정말로 내가 게을러서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입니까?] 흑의노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아니라는 말인가?] 실상 이 문제는 비단 지금 이 순간만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제갈신중은 바로 그 문제 때문에 무공이나 기타의 학문에 진전이 너무나도 느 려서 결과적으로 더욱 방황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실로 이상한 일이기는 했다. 사실 제갈신중은 머리가 나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아주 좋은 편 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어떤 문제이든 처음에 대했을 때에는 그는 누구보다도 이해가 빠르고 쉽게 배 웠다. 그러나, 일단보다 오래 그러한 문제들에 접근해 들어가게 되면 괴이하게도 다른 사람 들은 조금이라도 진보하는 반면에, 제갈신중은 오히려 퇴보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제갈신중은 무의식적으로 어떤 문제라도 회피하고 건들거리게 되었는데, 그래도 이따금씩 학문에서 멀어져 있다가 다시 바라보면 조금씩이라도 진전이 생기는 것이었다. 당시 물론 사람들은 제갈신중의 그러한 태도를 보고 그가 일부러 게으름을 피 우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그로부터 삼년이 지난 지금도 역시 마찬가지인 것이다. 제갈신중은 모처럼 무학에 관심을 가지고 노력했으나 갈수록 오히려 혼미해져 서 처음에 깨우친 것조차 희미해지고 있는 것이었다. 제갈신중은 그것을 자신의 고칠수 없는 고질병이라고 생각했다. 과거에는 그 문제로 인해많은 고민을 했었지만 다행히도 이제는 그래도 약간 달관한 듯이 웃을 수가 있었다. 제갈신중은 웃으며 대꾸했다. [아니라면 당신은 역시 믿지 않을 것이오.하지만 당신도 지금 간과한 것이 있 소.] 흑의노인은 그의 얼굴을 주시하며 물었다. [그게 뭔가?] 이 흑의노인은 아직 세속에 물들지 않아서인지 질문할 때의 시선은 아이들처 럼 천진난만하기까지 했다. 제갈신중은 말했다. [당신은 지금 내가 사량발천근의 수법을 배우기를 바라는 것이지만, 그러나 만 일 내가 그것을 배운다고 해도 과연 당신의 적수가 될 수 있을 것 같소?당신 이 나에게서 무엇을 배우겠소?당신은 지금 그 금삽수라는 절기에 대해 능통하 고 있는 것이 아니오?] (......!) 흑의노인은 그 말에 순간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아마도그는 이순간에 심하게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그래 맞다.나는 이미 금삽수에 대해서 달통하고 있는 상태이니,자네의 그 사량 발천근에서 배울 것이 없겠지.설사 자네가 나중에 금삽수를 배우게 된다고 해 도 역시 나와는 승부가 되지 않을 거야.아아......대체 문제가 어디서 잘못된 것이지?] 흑의노인은 혼자서 정신없이 중얼거리다가 구원을 바라듯이 제갈신중의 얼굴 을 바라보았다. 제갈신중은 그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결국은 당신이 나를 바둑상대로 생각한 것이 잘못이라는 말이오.나 는 결코 당신의 바둑상대가 될 수는 없소.] 흑의노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그럴까?......] 이내 흑의노인의 안면은 심하게 일그러지며 울상이 되었으며 정신없이 고개를 뒤흔들며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아,아니야.분명히 나의 느낌은 틀린 것이 아니었어.하지만 대체 어디가 잘못된 것이었을까? 아아......대체 어디가 잘못된 것이지......?] 흡사 미친 듯이 머리를 두들기며 고민하던 흑의노인은 다음 순간에 갑자기 고개 를 번쩍들더니, 바둑판과 바둑알 등을 가지고 훌쩍 신형을 날려 귀신처럼 어둠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 * * 서늘한 밤바람은 아직도 열려져 있는 창문사이로 불어들어 오고 있었다. 마치 조금전의 일들은 꿈결인 듯 사위가 고요하기짝이 없었다. 제갈신중은 한참동안 멍하니 서서 창문을 바라보다가 문득 약간의 피로감을 느끼게 되었다. 이미 공력이 일류급에 도달하고 개정대법을 받아서 피로감이 완전히 사라진 그였지만 조금전의 일들은 심한 피로감을 주는 것이었다. 제갈신중은 천천히 걸어가서 창문을 닫은 다음에 촛불을 끄고 침상위에 옷을 입은 채로 다시 벌렁 누웠다. 솔직히 그라고 해서 무학을 배우고 싶지 않은 바는 아니었다. 하지만 배우려고 할수록 오히려 퇴보하고 혼란만 초래되는 것이니, 하는 수 없이 일부러 무학에 대해서 무관심을 고수하며 자칫 찾아들지도 모르 는 주화입마에 대비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는 제갈신중의 마음이 물론 기꺼울 수는 없었다. 그는 잠시 허공을 더듬다가 이내 깊은 잠속에 떨어지고 말았다. * * * 다음날 아침, 습관처럼 늦으감치 자리에서 일어난 제갈신주은 이윽고 식사를 마치고 장수를 건너서 길을 재촉했다. 어젯밤에 그 흑의노인에게서 인형삼을 복용하고 개정대법을 받은 덕분인지 그의 몸은 아주 가볍고 상쾌했다. 제갈신중은 가끔씩 치밀어오르는 기운에 신법을 펼쳐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으 나, 이내 그만두었다. 그는 비교적 자신에 대해서 파악하고 있었다. 아마도 처음에는 신법이 아주 순조롭게 펼쳐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내 그 신법은 더욱 복잡한 부분에 이르러서 혼란해질 것이고 자칫하 면 주화입마를 초래할 수가 있겠기 때문이었다. 기실 신체는 상쾌하기는 해도 그러한 이유 때문에 제갈신중의 마음은 별로 유 쾌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마치 자신이 시한폭탄을 몸속에 넣어가지고 있는 사람 같은 느낌이었다. 어제 하루는 아주 복잡한 일들의 연속이었지만 오늘은 왠지 한가했다. 그의앞에는 어떤 방해자도 나타나지 않았고 심지어 그 흑의노인도 다시 모습 을 보이지 않았다. 제갈신중은 그 흑의노인에 대해서 정체가 의심스러웠으나 그렇다고 심하게 집 착하지는 않았다. 장수를 건너서 양양쪽으로 곧장 가다보면 남장이라고 하는 제법 커다란 읍성 이나타난다. 제갈신중은 비록 의식적으로 신법을 펼치지는 않았으나 전신의 기운이 응하여 몸이 가볍고 빠르게 나아갔다. 그는 점심때가 되어도 전혀 피로하지 않았고 시장기도 별로 느끼지 못하고 하여 쉬지 않고 질을 재촉했다. 저녁 무렵에는 드디어 그 남장읍에 이르렀는데, 그 읍성의 남쪽에도 역시 한 수의 지류의 하나가 흐르고 있었다. 제갈신중은 수중에 은자가 넉넉하지 못했기 때문에 성내로 들어가자 가장 싸구 려 객점에 거처를 정했다. 이제 이곳에서 육중까지는 거의 하루의 거리에 불과하다. 내일 저녁이면 제갈세가에 도착하게 될 것이므로 제갈신중은 다소 심경이 복잡 해져서 일찍 객방에 틀어박혔다. 이러한 읍성에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지만 그럼에도 더욱 외로운 느낌이었다. 제갈신중은 마치 세상의 모든 일들을 다 털어버리고 살아가는 신선과도 같다고 나 할까. 그는 가능한한 모든 일들을 하나도 생각하지 않으려 하며 그저 멍청하게 시간 을 보냈다.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는 별로 내키지도 않는 저녁식사를 객방으로 주문 해서 먹었다. 이어 그는 침상위에 누워서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그것은 사색이 아니라 그저 떠오르는 대로 생각하는 공상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런데, 그렇듯 귀찮은 일을 피하려는 그에게 느닷없이 한사람이 다시 찾아들었다. 그는 제갈신중이 처음보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제갈신중으로서는 그 사람의 모습이 조금도 낯설지않았다. -홍의노인 오척 다섯치 정도의 키에 그는 지나치게 뚱뚱했다. 그를 보고 있자니 마치 잔뜩 부풀어 오른 새빨간 풍선 하나가 위태롭게 굴러 다니고있는 것 같았다. 전날의 흑의노인이 깡마른 홀쭉이였던데 비하면 그와는 정반대였다. 하지만, 제갈신중이 낯설지 않았던 것은 바로 그의 괴이한 용모였다. 비록 둥글둥글한 모습이 다르기는 하지만 수염과 머리털이 거의 없고 주름살 로 가득 뒤덮인 얼굴은 거의 다르지 않았다. 도저히 나이를 추측할 수가 없고 한눈에 보기에도 괴상한 그 노인들. 제갈신중은 어째서 갑자기 그와 같은 괴상한 노인들을 한꺼번에 만나게 된 것 일까? 그 홍의노인의 또 하나의 특징은 바로 하나의 쇠로 만들어진 작은 거문고를 한손에 들고있다는 사실이었다. 거의 자정이 되어 갈 무렵, 제갈신중이 마악 촛불을 끄고 잠들려고 하는 순간 에 나타난 홍의노인은 불쑥 그에게 이렇게 물었다. [자네가 바로 그 제갈신중이라는 애송이인가?] 그 애송이라는 말은 강호상에서 곧잘 상대방을 헐뜯는 욕설로 사용되고 있었 다. 하지만 제갈신중은 다른 데에 생각이 모아졌다. 그 생김새로 보아하니 이 홍의노인은 전날에 그 흑의노인과 연관이 있을 것 같았다. 생각해 보니 전날 흑의노인은 간혹 우리들이라는 말을 사용했었던 것 같았다. 게다가 홍의 노인은 똑같이 창문을 통해서 안으로 들어와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기이한 일은 바로 그들이 제갈신중의 이름을 이미 알고 있다는 사실이 었다. 확실히 어제 흑의노인은 일부러 제갈신중의 이름을 물어보려고 하지 않은 것 같 았다. 제갈신중은 자신도 자신의 이름을 말해주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런데도 그들은 대체 어떻게 제갈신중의 이름을 잘 알고 있다는 말인가? 혹시 그것은그를 도와주었던 일과 무관하지 않은 것은 아닐까? 제갈신중은 뜻밖의 불청객을 맞이하게 되었으나 이내 침상에서 일어나서 침착 하게 대응했다.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묻는 이유가 뭐요?] 홍의노인은 의외로 침착한 제갈신중의 태도를 보고는 다소 놀라며 웃더니 다 시 말했다. [흐흐흐,하지만 한 번 알아도 다시 확인해 보는 것이 나의 취미이다.] 보아하니 어제의 그 흑의노인은 지나치게 소심해 보였지만 오늘의 이 홍의노 인은 다소 경망스러워 보였다. 제갈신중은 홍의노인의 얼굴을 주시하며다시 물었다. [대체 당신들이 계속해서 나를 찾는 이유가 뭐요?] (......!) 홍의노인은 제갈신중의 질문에 이번에는 정말로 약간 놀란 모양이었다. 그는 눈을 크게 뜨고서 대꾸했다. [너는 그럼 이미 우리들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는 말이냐?] 제갈신중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잘 알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그러나 뻔한 일이 아니겠소?] 홍의노인은 다시물었다. [뻔한 일이라고? 너,너는 혹시 기노에게서 무슨 소리라도 들었다는 말이냐?] 제갈신중은 그제서야 그 흑의노인의 이름이 바로 기노였다는 사실을 간파하게 되었다. 제갈신중은 여유있는 자세로 응수했다. [내가 그에게서 무슨 소리를 들은 것은 사실이지만,그러나 당신들에 관한 것은 아니오.] 홍의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기노,그 녀석은 누구에게 그런 말을 할 녀석은 아니지.녀석의 간담은 그야말로 좁쌀만한 것이거든......] 제갈신중은 그를 향해 다시 물었다. [이번에 당신이 다시 나타난 것은 그 곡주인가 하는 사람의 지시오?] (......?) 홍의노인은 약간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다가 대답했다. [그렇지 않다.이번에 내가 너를 보러 온 것은 곡주님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그 러니까 넷째 그녀석의 말을 듣고 내가 한 번 찾아와 본 것일뿐이다.] 제갈신중은 약간 놀라서 재차 물었다. [그럼 기노가 넷째라는 말이오?] 홍의노인은 약간 의기양양해져서 대꾸했다. [네째는 바로 막내이고 또한 셋째인 이 금노의 동생이지.] 제갈신중은 이에 더욱 놀라서 물었다. [그럼 당신과 같은 사람들이 모두 네명이나 된다는 말이오?] 홍의노인은 득의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우리는 모두 네명이고 또한 이번에 새로 강호에 나왔지.사람들은 우리를 가리 켜서 수곡사로라고 한다.] 제갈신중의 추측은 대강 들어맞는 셈이었다. 제갈신중은 다시 물었다. [그럼 당신들이 있었다는 그 곡이라는 곳은 대체 어떤 곳이오?] 흑의노인은 그러나 그 질문에는 역시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그,그것은 말할 수가 없네.] 제갈신중은 홍의노인,그러니까 금노라고 자칭 말하는 홍의노인에게 떠볼 의향 으로 다시 물었다. [당신들은 혹시 그 곡주에게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이 아니오?] 흑의노인 금노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대답했다. [두려움을 느끼고있냐고?하긴......그래.우리는 모두 그분께 두려움을 느끼고 있 지.이 세상에서 오직 그분만이 우리에게 두려움을 줄 수가 있을 거야.자네는 믿기지 않겠지?] (......?) 제갈신중은 정말로 그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사람이 있다는 말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세상에 기인이사들이 장강의 모래알처럼 많다고는 하나,실로 이렇게 괴이한 사 람들은 다시 없을 것이었다. 제갈신중은 그 문제를 생각하고 있자니 더욱 머리속이 복잡해지는 것을 느끼 고상념을 털어내며다시 물었다. [그럼 대체 당신은 나에게 무슨 용무가 있어서 온 것이오?] 금노는 자신의 홍의로 가린 풍선처럼 부풀어오른 배를 어루만지며 느끼하게 웃어보였다. [흐흐흐,그건 말이야......사실 별게 아니네.나는 조금전에 막내에게서 자네에 관 한 얘기를 듣게 되었지.그래서 말이야......] 금노는 제갈신중의 얼굴을 보면서 눈치를 살피다가 이어 자신의 우수를 일순 들어올려 보였다. [바로 나의 이 곡조를 한 번 들어달라는 것이지.] (......!) 제갈신중은 순간 대강의 짐작이 갔다. 보아하니 그 수곡사로인가하는 노인들은 무공에 미치기라도 한 사람들인 것 같았다. 기노라는 사람이 바둑에 그렇게 집착을 하더니 이번에는 이 금노라는 작자가 나서서 귀찮게 하고있는 것이었다. 물론 그들이 그렇게하는 이유는 무학을 연구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가 있었다. 제갈신중은 한 번 엉뚱한 일을 당했었기 때문에 즉시 눈살을 찌푸렸다. [만일 내가 거절하겠다면 어쩔 작정이오?] 제갈신중은 이미 그들의 고집이 황소고집보다 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일단 자신의 생각대로 나가는 수 밖에 없었다. 금노는 잠시 어리둥절해 하다가 되물었다. [아 그야 이번의 이 일은 만약 네가 무사하다면 너에게도 도움이 될 텐데 뭐가 걱정이라고 그러지? 기노와 바둑두는 것을 나의 이 거문고를 한 번 듣는 것으 로 대신하면 된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 아닌가?] 보아하니 이금노는 공짜를 상당히 밝히는 모양이었다. 기노가 중단한 틈을 타서 공짜로 자신의 무공을 시험해 볼 속셈인 것이었다. 제갈신중은 다시 물었다. [하지만 만일 내가 무사하지 못하게 된다면 어쩔 작정이오?] (......?) 금노는 자신이 조금전의 말에서 실수한 것을 깨닫고 이마에 땀을 흘렸다. [아 그것은 말이야.그러니까 아....... 만일 그렇게 되면 내가 반드시 자네를 원상태대로 회복시켜 줄 것을 보장하지.암암, 자네는 혹시 본곡의 수곡사로를 의심하는 것은 아니겠지?] 제갈신중은 눈살을 찌푸리며 내심 투덜거렸다. [마치 자신들이 성수곡에서 온 사람들인 것처럼 말하고 있군.] -성수곡 그곳은 바로전설상의 여덟 개의 문파인 세외팔세의 하나로서 그야말로 놀라운 신의가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몰론 그것은 지금으로부터 칠백여 년 전의 일이었지만...... 과거 한때는 천하의 많은 사람들이 그 성수신의를 찾아서 무병장수하기 위해 강 호를 샅샅히 뒤진 적도 있었을 정도였다. [솔직히 나는 당신들을 믿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당신에게 시험을 당하는 일도 거절하겠소.] 제갈신중은 단호하게 그런 말을 하면서 최소한 상대방이 얼굴이라도 붉어질 것 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화를 내기는 커녕 뜻밖에도 그 금노는 기분좋은 듯이 빙그레 웃으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좋아,좋아. 자네는 그야말로 나의 마음에 드는군. 만일 자네가 나를 위해서 그 와 같은 시험을 받겠다고 했다면 아마도 나는, 흐흐흐 사실 말이지 보다 냉정 해질 수가 없었을 것이네.본래 나는 정에 아주 약한 편이거든?] (......!) [하지만 지금 이렇게 자네가 냉정하게 나오고 있으니 나로서는 더욱 냉정하게 일을 처리 할 수가 있게 되어서 그야말로 적격이라는 말이네.흐흐흐......그러니 자네는 어서 준비를 하도록 하세.] 이 수곡사로인가 하는 노인들은 강호에 처음으로 출도하여 다소 어수룩한 듯 하면서도 기실은 아주 교활한 구석이 있었다. 제갈신중은 조금전에 이미 대꾸를 하여 항변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그의 몸은 이미 전신의 혈도가 제압당해서 입조차 열수가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 아닌가? 제갈신중은 이미 기노에게 한 번 당해본 경험이 있었기에 저항을 포기하고 내 심 투덜거리며 욕설을 퍼부었다. (빌어멀을!하기는 강호의 생리라는 것이 약육강식일진대,이러한 일은 어쩔 수 가 없는 일이지.) 제갈신중이라고 해서 무공을 좀더 배우지 못한데 대한 아쉬움이 없을까 마는, 그런저런 이유로 인해 그는 쉽게 매사를 포기하는 습관이 되어 있었다. 금노는 눈을 감아버리는 제갈신중을 보고는 가볍게 흡족한 듯이 웃었다. [흐흐흐,그래야만 나의 착한 실험대상이지. 사실 자네의 실력이 없어서 내게 당 하는 것이니까 그다지 억울해 하지는 말게.이 일은 ...... 그러니까 아주 쉽고 간단한 ......간단한 일이야.] 이어 금노는 우수의 거문고를 왼손에 잡고 오른손으로 현을 퉁기기 시작했다. 살집이 가득한 그의 손가락은 아주 건강하고 싱싱해 보였다. 그것은 마치여인의 손가락과도 같아서 금방이라도 아름다운 소리를 낼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그가 이어 두어 번이나 현을 퉁겼건만 기이하게도 어떤 소리도 울려나오지 않 고 있었다. 다만 제갈신중의 제압당한 육신만이 한순간 거세게 흔들릴 뿐이었다. 제갈신중의 귀에도 별로 음조는 느껴지지 않고있었다. 단지 금노가 한 번 손가락을 떨칠때마다 형용할 수 없는 무한한 잠력이 엄습 해와서, 이내 제갈신중의 전신을 후려치는 것이었다. 금노는 조금전에 아주 쉽고 간단한 일이라고 소개했었으나 기실은 그와는 정 반대의 상황이었다. 제갈신중은 비록 억지로 눈을 감고 있었으나 실로 전신이 일시에 터져나가는 것 같은 엄청난 고통과 뜨러운 열기를 무섭게 느껴지고 있었다. 체갈신중은 전혀 신음소리를 발하지 않았으나 그 엄청난 고통은 갈수록 무시 무시해 졌다. 만일 그와 같은 무서운 음파를 탁자와 같은 것이 맞았다면 당장에 터져나가고 말았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주위의 기물들은 전혀 손상을 받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금노라는 홍의 노인이 그 음파를 한쪽으로 조종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전진이 제압당한 제갈신중은 그야말로 지옥속에 들어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 았으나 뜻밖에도 상대인 금노는 다소 심드렁한 표정이었다. 십여번이나 현을 퉁기고 난 뒤에 금노는 문득 손길을 멈추고서 제갈신중을 향 해 이렇게 말했다. [자,이제 준비운동이 끝났을 테니 이제부터 슬슬 시작해 보도록 하자.이미 알 겠지만, 너는 단지 나의 이 곡조를 듣고 감상한 후에 평가를 내려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 이렇게 이상한 곡조는 다시 없을 것이다. 제 7장. 극북의 만년혈섬 제갈신중은 그 말을 듣자마자 이내 눈을 뜨더니 이렇게 대꾸했다. [당신의 그 곡조는 듣고보니 그다지 대단한 것이 아니로군.그럼 어디 계속해 보시오.] (.......) 금노는 그것을 보고 일순 깜작 놀란 표정이되었다. 제갈신중은 조금전에 그 무시무시한 내공의 무형음파에 당하면서 아혈이 풀어 지게 되어 말을 한 것이었다. 금노는 잠시 눈이 휘둥그래져서 바라보다가 대꾸했다. [너는 ......알고보니 생각보다 뼈골이 단단한 녀석이로군.흐흐흐 계속해 보라 구? 그걸 마다할 내가 아니지.흐흐, 이거 재미있는걸?] 금노는 혼자서 중얼거리며 웃다가 다시 거문고를 퉁기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그의 자세가 아까보다는 다소 신중해졌다. 여전히 소리가 나지 않았지만 제갈신중의 육신은 그때마다 격렬하게 흔들리고 있었고 놀랍게도, 지금 그가 앉아있는 침상부근이 서서히 부서져 내리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기이하게도 제갈신중의 안색은 계속 평온해 보였다. 다만 그의 안색이 싸늘하게 변해가고 있는 듯 했는 데 그의 시선만은 여전히 금노를 주시하고 있었다. 금노는 계속 거문고를 타다가 그와 같은 모습을 보고 문득 감탄스러운 기분이 들어서 한마디 하려고 했다. (세상에,나의 이 거문고의 소리를 맨몸으로 받아내는 사람이 있었을 줄이 야......) 헌데 바로 그때였다. 갑자기 멀쩡히 바라보고 있던 제갈신중의 두 동공이 크게 확대되는 듯 하더니 일순 왁!하는 소리와 함께 입으로 피를 한사발이나 토해내는 것이 아닌가? 금노는 순간 깜짝 놀라서 거문고를 타던 것을 멈추고 앞으로 다가갔다. [아니 이런!......] 제갈신중은 이미 피를 한사발이나 토해놓고서 실신해 있었다. 기실 조금전에 그의 표정이 평온해 보였던 것은 거의 오기에서 나온 것이었다. 무슨 특별한 대상을 향한 것이 아니라,제갈신중은 평소에 늘상 감당못할 그 거대한 운명에 대해서 강한 반발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이런 무모한 녀석!] 금노는 그만 화가 나서 소리쳤다. 하지만 사실 제갈신중이 무모하거나 어리석은 것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이렇게 심하게 망가질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했던 것이 니,말하자면 강한 반발심이었다. 사실 그 당사자가 되어보지 않고서는 그 심리를 알수 없게 되는 것이었다. 제갈신중은 어려서부터 불가항력적인 마음의고통에 시달려 왔었고 또한 집을 나서서 삼년여의 시간이 흐르도록 그것은 해결되지 않았다. 그것은 혹시 그의 최후의 도전장이 아닐까? 지금 제갈신중의 상태는 엄중했다. 금노의 당황해하는 태도가 그것을 충분히 입증해주고 있었다. 제갈신중의 지금 상태는 그저 한사발의 피를 쏟은 정도가 아니었다. 애초부터 금노의그 무시무시한 음공을 견뎌낸다는 자체가 무리였다. 제갈신중은 억지로 참고 있다가 나중에서야 피를 토했기 대문에 이미 그의 오 장육부는 엄중한 손상을 입고 있었던 것이었다. 제갈신중의 안색은 이내 푸르뎅뎅하게 변해갔고 또한 그의 체온이 급격하게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곧 제갈신중의 죽음이 목전에 임박했다는 것이었다. 금노는 그것을 보고 크게 당황하여 어쩔줄 모르는 표정으로 방안을 왔다갔다 하기 시작했다. [이,이것은 정말 실수다.곡주님께서는.......곡주님께서는 결코,결코 그들을 건 드리지 말라고 하셨는데 이를 어쩐다지! 이,이 녀석이 죽어버리면 나는 ....... 나는 빌어먹을! 곡주님께 엄한 문책을 받게 될 것이 아닌가?] 금노가 슬쩍 다시 한 번 바라보니 침상위에 누운 제갈신중의 육신은 이미 뻣 뻣해지고 있었다. 호흡이 이미 끊어졌고 맥박이 겨우 가늘게 뛰고있을 뿐이었다. 그 맥박도 이제 잠시후면 끊어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세상의 무엇으로도 살릴 수가 없는 것이다. 상황은 워낙에 다급했다. 금노는 초조한 표정으로 급히 염두를 굴리는 듯 하다가 마침내 크게 욕설을 퍼부으며 즉각 행동을 개시하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재수가 없으려니까 이런 곳에서 나의 귀중한 보물을 소모하게 되다 니!] 이후부터의 금노의 행동은 그야말로 눈부신 것이었다. 그는 그 자리에 가부좌를 틀고서 다시 예의 그 거문고를 타기 시작했는 데,이번 에는 기이한 음향이 흘러나왔다. 사라라랑! 동시에 마치 환상처럼 황금빛의 아지랑이가 거문고의 주위에서 일어나더니 그 것이 차츰 침상쪽으로 밀려가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신기라고 할 수가 있었다. 마치 한 마리의 봉황처럼 그 기운은 그세 제갈신중의 몸을 휘감고는 허공에 띄워올렸다. 그리고는 이리저리 제갈신중의 몸을 맴돌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그 황금빛의 기운으로 일시적으로 막히고 끊어진 제갈신중의 전 신혈맥을 타통시키고 이어주는 작업이었다. 황금빛의 기운이 전신으로 파고 들어서 순환하자 점차로 제갈신중의 안색은 다 시 창백하게 변했다가 화색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이제 제갈신중의 전신이 두루 융통이 되었다는 의미였다. 금노는 그것을 보자 거문고의 현을 놓고서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치료가 그것으로 끝난 것은 물론 아니었다. 제갈신중의 목숨을 회생시키키는 했지만 그것은 다만 임시방편일 뿐이었다. 만일 젊고 건강한 사람에게 조금전의 수법을 펼쳤다면 그 사람은 개정대법이 펼쳐진 것이어서 오래도록 건강을 유지할 수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제갈신중에게는 그것은 단지 꺼져가던 그의 목숨을 잠시 붙자고 있는 상태에 불과했다. 전신혈맥이 두루 융통되기는 했어도 자발적인 기운이 없기 때문에 그는 금노가 공력을 거두기만 하면 다시 목숨이 위태로와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실로 이러한 때에는 천하의 영약의 도움을 받는 수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는 것이었다. 다행히도 지금 금노에게는 그러한 것이 있었다. 그것이 있었기 때문에 그가 조금전의 그 수법을 펼친것이었다. 제갈신중의 육신은 금노의 황금빛의 기운이 되돌아갔는데도 여전히 허공에 떠 올라 있었다. 그것은 놀라운 경지의 접인신공이었다. 금노는 일단 거문고를 거둔 다음에 주저할 사이도없이 품속에서 하나의 옥갑을 꺼내들었다. 조금전과는 달리 그의 손길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고 잔뜩 찌푸려진 얼굴 가 운데의 두눈에서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져 나올 것 같았다. 그것은 그가 지금 손에 들려있는 그 옥갑 속의 물건을 얼마나 애지중지하고 있었는가를 말해주고있는 것이었다. 하는 수 없이 그는 그것을 제갈신중을 살리는데 사용하려고 하는 것이었다. (으으,내가 이것을 며칠후에 복용하여 최고의 공력을 얻으려고했었는데 으 으......이것 때문에 나는 봉무......봉무구천을 얻을 수 없게 될지도 몰라!) 내심 부르짖는 그는 마침내 눈물을 한방울 떨구고 말았다. 제갈신중은 여전히 화색이 약간 감도는 얼굴로 눈을 감은 채 허공에 떠올라 있었다. 금노는 마치 잡아먹을 듯이 그의 얼굴을 노려보다가 이윽고 길게한숨을 내쉬 며 그의 앞으로 걸어갔다. 옥갑을 소중하게 받들고 있던 그는 이윽고 제갈신중의 앞에 이르자 이를 악물 고 옥갑의 뚜껑을 열었다. 순간 방안이 갑자기 만년빙굴의 한기속으로 빠져버린 느낌이 들었다. 옥갑속에서는 한 마리의 작은 두꺼비가 들어 있었는데, 그 형상은 괴이하여 시뻘겋고 투명했을 뿐만 아니라 말할 수 없는 한기가 흘 러나오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고보니 그 옥갑역시 푸른빛의 한기를 발하는 것이 역시 평범한 물건은 아 닌 것 같았다. [이,극북의 만년혈섬을 복용하게 되다니 복 많은 놈!] 금노는 다시 한 번 이빨을 뿌드득 갈고는 가볍게 오른손의 손가락을 퉁겨서 제갈신중의 입을 벌려놓았다. 제갈신중의 입은 그야말로 있는 대로 크게 벌어져서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천도복숭아라도 기다리는 모양이 되었다. (......) 그것을 본 그 두꺼비는 일순 시뻘건 두눈을 이리저리 굴리더니 좋지 않은 느 낌을 감지 한 듯 꾸룩하는 소리와 함께 펄쩍 뛰어올라 달아나려고 했다. 그러나, 기실 금노의무공은 이미 가공할 수준이어서 두꺼비가 제아무리 영물이 되었다 고해도 감당할 수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두꺼비는 힘차게 뛰어올랐으나 이내 방향이 바꿔지게 되어 고스란히 제갈신중 의 입속으로 들어가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어 그것은 제갈신중의 목구멍으로 넘어가서 두어번 꾸룩꾸룩 하는 소리를 내더니 잠잠해져 버렸다. 그 괴상한 두꺼비가 넘어가자 제갈신중의 입도 자연히 닫혀지게되었고 이내 그의 몸이 급격하게 차갑게 변하면서 서리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곧 두꺼비가 제갈신중의 몸속에서 융해되어 약력을 발휘하기 시작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만일 지금의 상황에서 제갈신중이 깨어나서 상승의 내공심법으로 약력을 운기 시키지 않는 다면 그는 오히려 죽음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지금 제갈신중이 금방 깨어날 리가 없는 것이고, 또한 설사 그가 깨어났다고 해도 상승의 내공심법을 운용할 수가 없는 것이므 로 금노는 즉시 손을 쓰기 시작했다. 이제 그가 다시 개정대법으로 전신의 혈맹을 두루 융통시켜 주면 제갈신중은 목숨을 건지게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금노는 문득 마악 손을 쓰려다가 놀란 표정이 되어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아니,알고보니 이놈은 기노의 인형삼마저 복용한 상태로구나!] 어느새 제갈신중의 전신에는 허연 한기와 더불어 은은한 온기가 일어나기 시 작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 붉은 온기는 바로 다름아닌 이미 제갈신중의 혈맥속에 잠재되어 있는 인형 삼의 약력이었다. 그의신체가 얼어버릴 듯하자 그것은 저절로 약력을 발휘하기 시작하는 것이었 다. 물론 그 두가지는 천하에서 아주 희귀한 것들이며 제갈신중과 같이 그 두가지 를 한꺼번에 복용한 경우는 더욱 희귀한 일이었다. [정말 복도 많은 놈이구나!] 금노는 내심 울화가 치밀어서 부르짖으며 다시거문고를 타기 시작했다. 예의 그 봉황과도 같은 황금빛의 기운이 다시 일어서 제갈신중의 몸으로 날아 가더니 이윽고 재차 개정대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 순간에 다소 괴이한 일들이 벌어졌다. 개정대법으로 약기운들이 전신혈맥의 순환경로를 따라서 움직이기 시작하자 강렬하던 한기가 다소 줄어드는 대신에, 이번에는 붉은색의 열기가 기세를 떨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두가지의 약력은 기실 상극을 이루는 것들로서 극양과 극음의 성질을 띠고 있었으며, 게다가 그 위력 역시 비슷비슷한 것이었다. 인형삼의 약력은 비록 이제까지 숨어 있었으나,한번 강렬한 충격을 받고나서 두 번의 개정대법을 받게 되자 극음의 기운에 의해 모두 발휘되기 시작했다. 그 두가지의 상극의 성질을 가진 기운들은 엄청난 하을 가지고 있었다. 금노는 예상보다 더욱 어려운 일을 해야만 했다. 그는 결코 원하지 않는 일이었으나 한 번 시작된 그 일을 도중에 그만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제갈신중의 육신은 비록 개정대법을 받았다고는 하나 저절로 기경팔맥이 융화 관통되는 대주천반운이 성취되었던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그 통로는 작고 비좁기 짝이 없는 것이었는데 갑자기 거의 삼갑자에 달하는 두가지의 서로 다른 기운들이 거세게 그 길을 따라서 움직이기 시작하자, 그만 홍수가 나서 둑이 무너지는 것처럼 전신의 수십곳의 현관들이 갑자기 종 잇장처럼 터져나가기 시작했다. 물론 옆에서 금노가 그 흐름을 잘 조종해주지 않았다면 제갈신중은 금방 주화 입마에 걸리고 말았었을 것이었다. 그것은 사실 타의에 의해서 이기는 하나,바로 상승의 내공경지인 황화예에 드는 현상이었다. 강호인이 열심히 무학을 수련하여 이갑자의 공력에 도달하게 되면 스스로 그 러한 경지에 오를 수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제갈신중의 몸속에 날뛰고 있는 기운들은 이갑자가 아닌,삼갑자나 되는 두가지의 극성의 기운들이었다. 비록 일시적으로 제갈신중의 전신의 현관들이 터져나가서 비좁은 길이 시원하 게 트였다고는 하나,아직은 그 두가지의 기운들에 만족할 만한 상태는 되지 못했다. 따라서, 한 번은 뜨겁고 한 번은 차가운 그 두가지의 기운의 움직임을 다스리느라 금노 는 그야말로 진땀을 빼야했다. 이제 제갈신중의 목숨은 건져진 상태가 되었다. 그러나, 비록 타의에 의한 것이지만 그 두가지의 기운이 강하게 대치하고 있는 상태이 기 때문에 제갈신중의 몸은 트였던 현관들이 다시 막히지 않았고, 그로 인해서 언제라도 다시 그 두가지의 기운들이 발작을 일으킬지도 모르는 위험한 상황이되고 말았다. (......) 금노는 이윽고 거문고를 내리고 나서 이마의 땀을 닦으면서 나직하게 곤혼스 러운 모습으로 중얼거렸다. [휴우, 이렇게 되면 이놈은 복을 얻은 것인지,아니면 화를 얻은 것인지 알수가 없게 되고 말았군, 빌어먹을! 이 녀석의 무공이 그렇게 보잘 것이 없는 것일 줄을 어떻게 알았겠느냐는 말이야......] 금노는 이어 다시 보고 싶지도 않다는 듯이 침상위에 내려진 제갈신중을 등지 고 방안을 서성거렸다. 헌데 바로 다음 순간의 일이었다. 갑자기 아주 낯익은 음성이 그의 귓가에 울려오는 것이 아닌가? [당신은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소. 모든 것이 나의 복이고 화일 뿐이니까.] (......!) 금노는 깊은 상념에 잠겨있다가 깜짝 놀라면서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다소 반색한 표정을 지었다. [아,자네가 깨어났군?] -제갈신중. 그는 어느새 눈을 뜨고 침상에서 서서히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의신색은 지금 제법 평온해 보여서 그의 몸속에 그런 강한 기운들이 버티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렇소.나는 깨어났소.] 몸을 일으켜 세운 제갈신중의 안색은 언뜻 무표정해 보였다. 금노는 마치 가슴이라도 찔린 듯이 움찔하다가 은근히 시선을 돌리며 다시 말을 이었다. [다,다행이네. 하하,나는 자네가 깨어나지 않을까봐 여간 초조하지 않았다네. 그 래,몸은 이제 괜찮은가?] (......) 제갈신중은 문득 자신의 몸이 전과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감지하고 안색이 변 했으나 이내 무표정하게 대꾸했다. [나는 상관없소.] 금노는 웃으며 대꾸했다. [하하하! 그렇다면 아주 잘 되었네. 이제 우리는 슬슬 흥정을 해보는 게 어떤 가?] 제갈신중은 되물었다. [무슨 흥정을 하자는 말이오?] 금노는 눈살을 찌푸리며 대구했다. [자네는 지금 모르고 그런 말을 하는 건가. 아니면 알고도 그런 말을 하는 건가? 자네는 지금 자네의 몸이 크게 달라진 것을 모르겠다는 건가?] 제갈신중은 이내 무슨말을 하는지 알아차렸다. 그는 약간 냉소하며 대꾸했다. [내가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게 어쨌다는 것이오?] 금노는 득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그건 바로 내가 자네에게 개정대법을 펼치고 극북에서 어렵게 구해 온 내가 가장 아끼는 만년혈섬을 복용시켰기 때문이네. 알겠나? 그 만년혈섬 을 복용하게 되면 무병장수하게 되고 무려 삼갑자의 공력을 얻을 수가 있게 되는 것이지.] [......] 금노는 제갈신중이 그저 묵묵히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고 다시 정색하고 말했 다. [자,자네는 혹시 내말을 믿지 않는 것은 아니겠지? 그렇다면 이것을 보게.이것 은 바로 한옥이란 보물로 만들어진 옥갑인데, 그것은 만년혈섬을 보관하는데 쓰였던 것이지.] 금노는 품속에서 비어버린 옥갑을 다시 꺼내보이며 말했다. 제갈신중은 냉소하며 대꾸했다. [그래서 대체 어쨌다는 것이오?] (.......?) 금노는 제갈신중이 너무나도 태연한 것을 보고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며 다시 설명조로 말했다. [허허,자네는 아직도 모르겠다는 것인가?그러니까 나는 남몰래 그것을 지니고 있으면서 요 며칠 사이에 시간을 내서 복용하고 최고의 공력을 얻으려고 생각 하고 있었다는 말이네. 그런데 갑자기 그것을 자네에게 복용시키게 되었으니 나의 손해는 이만저만이 아닌 것이지. 양심이 있다면 자네가 그에 합당한 보상 을 해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 (.......) 제갈신중은 묵묵히 금노의 얘기를 다 듣고 있다고 이윽고 이렇게 탄식하며 대 꾸했다. [내가 아직 알 수 없는 것은 한가지밖에 없소. 그것은 바로 당신이 어째서 그렇 게 나를 살리지 않으면 안되었는가 하는 점이오.] (......) 금노는 약간 안색이 변해서 대꾸했다. [그야,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것은 인지상정이고 당연한 일이 아닌가? 그야말로 좋은일이지.] 제갈신중은 냉소하며 대꾸했다. [당신 마음대로 병주고 약주고 했는 데도 그게 착한일이라는 말이오?게다가 지금 나의 몸은 이상하게 변하여 힘을 쓸 수 없게 되었소.물론 당신은 능력이 있으니 마음대로 할 수가 있겠지.] 금노는 자신이 우려하던 점을 지적당하자 그만 안색이 크게 변했다. [그래서 너는 나에게 조금도 보상을 해줄 수가 없다는 말인가?] 제갈신중은 차갑게 웃으며 대꾸했다. [병주고 약주는 것은 당신의 마음대로 이겠지만 나를 바보로 만드는 것은 그다 지 쉽지 않을 것이오.] 금노는 순간 흥분하여 소리쳤다. [자,자네가 그렇게 배짱으로 나온다면 몸이 성할 것 같은가?] 제갈신중은 담담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차라리 당신은 지금 나를 죽이는 것이 신상에 이로울 것이오. 왜냐하면 나는 지금 당신이 왜 나를 살렸는지 알 듯하기 때문이오.] (......!) 금노는 일순 정색하며 다시 물었다. [그게 대체 무슨소리냐?] 제갈신중은 대꾸했다. [나는 조금전에 당신이 무엇 때문에 나를 살려야 했을 까 하고 의아해 했었는 데, 기실은 그것은 기노의 경우처럼 그 곡주라는 자가 내게 무사하기를 바라 고있기 때문일것이오. 즉 당신은 곡주를 의식해서 나를 죽이지 못하고 다시 살 려놓은 것이 아니오?] 금노는 당황해져서 대꾸했다. [너,너는 그것을 믿느냐?] 제갈신중은 웃으며 말했다. [내 추측이 옳은가는 이제 얼마후에 그 곡주라는 사람을 만나보면 알게 될 것 이오.그대 나는 당신이 나를 죽이려고 했다는 사실을 반드시 말해주겠소.당신 이 무사하리라고 생각하오?] 금노는 과연 그 말을 듣자 안색이 창백해져서 가늘게 떨었다. [너,너는 정말로......정말로 그럴 수가 있다는 말이냐?] 제갈신중은 즉시 대꾸했다. [물론이오.그가 나에게 이와 같은 관심을 보이는 것을 보면 모르겠소? 머지않 아 그는 반드시 나의 앞에 나타나게 될 것이오.] 헌데 제갈신중이 말을 마치는 순간에 금노는 이미 그의 앞에 이르러서 거문고 를 내리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는 무쇠로 만들어진 거문고를 한 번 내리치기만 하면 그야말로 제갈신중의 머 리통은 흔적도 없이 부서져 버리게 될 것이었다. [그,그렇지 않다. 그,그녀가 너희들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은 다만...... 다만 .......아무런 의도가 없는 것이다. 너와 만나지는 않을 것이다.] 제갈신중은 일순 그말을 듣는 순간에 기이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녀?......그렇다면 이들의 주인인 그 곡주라는 사람은 여자라는 말인가?) 하지만, 상대의 거문고가 거의 천령개에 닿아있는 위태로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러한 생각은 오래 지속할 수가 없었다. [그럼 당신이 지금 바로 나를 죽이는 것이 좋지 않겠소? 그렇다면 당신은 나 중에 후환을 두지 않아서 좋을 것이고 말이오.] 제갈신중이 냉랭한 어조로 태연하게 그렇게 대꾸하자 금노는 비로소 약간 찔리 는지 손을 내렸다. 그는 한동안 수척해진 안색으로 열심히 뇌리를 굴리는 듯하다가 이윽고 숨을 헐떡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우리 다시 협상을 하는 것이 어떤가? 자네는 다만 나에게 와서 나중에 그저 세가지 명령을 듣는 것으로 하는 것이?] 이 홍의노인은 생긴 것처럼 욕심이 많아서 미련을 쉽게 떨치지 못하는 모양이 었다.  제 8장. 세가에 다시 돌아오다. 제갈신중은 즉시 냉소하며 대꾸했다. [좋소. 그럼 그전에 우선 당신의 곡주라는 사람을 만나보는 것이 어떻겠소?] (......) 금노는 제갈신중이 전혀 들어먹을 태도가 아닌 것을 보고 안색이 시뻘겋게 변 하여 한동안 푸르락붉으락 했다. 그러다가 일순 더욱 격분을 참을 수가 없는 듯이 제갈신중을 향해 거문고의 한 현을 퉁겼다. 땅! [이 빌어먹을 자식이! 네놈이 만일 곡주에게 그 일을 고자질한다면 나는 반드 시 너를 찾아내서 갈가리 찢어서 죽여버릴 것이다!] 말과 함께 홀연 금노는 신형을 훌쩍 날리더니 아까 들어왔던 창문을 통해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 느닷없는 귀신같은 홍의노인 금노의 행동에 제갈신중은 잠시 멍한 표정을 지 었다. 대체 금노는 조금전에 무슨 짓을 하고 사라진 것일까? 제갈신중은 이윽고 한숨을 내쉬며 창문을 닫고 돌아와 잠을 청하려고 하다가 일순 깜짝 놀라고 말았다. 어이없게도 그의 침상이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버리고 만것이었다. 그럼 그것은 어디로 간 것일까? 아까 침상이 있던 자리에는 다만 미세한 먼지들만이 흩어져 있을 뿐이었다. 그것은 실로 한가지의 가공할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었다. 조금전에 금노는 그저 한 번 현을 퉁겼을 뿐이었는데, 놀랍게도 그 바람에 침상이 한순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으며 그것을 제갈신중도 알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무공을 사용하는 수법에 격산타우라는 것이 있기는 한데, 그것은 바로 장력을 날려서 앞쪽의 물체를 다치지 않고서 뒤쪽의 물체를 부순 다는 벽공장력의 최고봉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로 도저히 수습하기 곤란한 음파를 이용하여 아주 정확하게 앞쪽의 제갈신 중을 해치지 않고, 정확하게 침상만을 한순간에 가루로 만들었다는 것은 실로 상상도 할 수 없는 놀라운 재간인 것이었다. 이른바 격산타우와 같은 것을 인간무학의 최고봉이라고 말한다고 한다면, 그렇듯 음파마저 마음대로 조종할 수가 있다고 하는 것은 그야말로 인간의 한 계를 벗어난 능력인 것 같았다. 본래 처음에는 기노의 바둑이나 금노의 거문고는 둘다 멍청하고 쓸모없어 보 이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결코 멍청한 놀이들이 아니었고 오히려 가공스러운 무학들이라는 것 을 알 수 있었다. 확실히 갑자기 만난 그 두명의 괴노인들의 무학은 제갈신중의 상상을 훨씬 초 월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대체 그러한 노인들이 그토록 두려워하는 곡주라는 자는 누구이며,도한 그의 능력은 어느 정도라는 말인가? 제갈신중은 이제는 침상이 없어진 방안에 덩그라니 앉아서 멍하니 생각에 잠 겨 보았지만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 일들이었다. 그는 그렇게 하룻밤을 지새었다. 그 두명의 괴상한 노인들에게 시달리고 난 뒤에 확실히 달라진 특징을 가운데 의 하나는 거의 피로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제갈신중은 간밤을 온통 뜬눈으로 지새다시피 했었으나 아침에는 그다지 피로 하지 않았고 시장기도 느겨지지 않았다. 하지만 습관처럼 음식을 주문하여 아침식사를 마치고는 제갈신중은 일찌감치 남장읍성을 빠져나갔다. 간밤에 자칫했으면 목숨을 잃을 뻔했던 곳이었다. 제갈신중은 그러한 곳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마침 수중의 여비는 넉넉하지 못하고하여 서둘러 길을 재촉했다. 납장읍성에서 북쪽으로 가다보면 거대한 강물인 한수가 나타나는데, 한수의 강물은 장강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이고 바로 그 한수의 남쪽 수십리밖 에 융중은 위치하고 있었다. 객점을 떠날 때 미리 건량을 약간 준비했었으나 제갈신중은 도중에 그다지 시 장기를 느끼지 않아서 점심을 거르고 계속 걸어갔다. 지금 그는 기력이 과거와는 달리 월등하게 좋아져서 비단 걷는 것이 조금도 힘들지 않을 뿐만 아니라 속도도 매우 빨라졌다. 그는 자신의 몸이 어딘가 심한 부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고는 이후 로 더욱 무공을 펼쳐보려고 하지않았다. 사실상 지금 그는 몸속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지니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상태인 것이었다. 하지만 제갈신중의 표정은 전날과 다름없이 평온해 보였고 약간 게으르고 나 태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는 하루종일 쉬지않고 걸음을 옮긴 끝에 드디어 그날 저녁 무렵에는 양양현 의 안에 들어서게 되었다. 그곳은 거의 제갈세가의 구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당금에 이르러 제갈세가는 유독 커다란 명성을 드날리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그 제갈세가는 바로 융중이라는 마을의 북쪽 오죽림이라는 곳에 근거를 두고 있었다. 사실상 융중 전체가 제갈세가라고 말할 수가 있을 것이기 때문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 오죽림에는 일년에 고작 세치밖에 자라지 않는다는 오죽이 거대한 숲을 이루 고 있는데, 그곳에는 무시무시한 기관장치의 진법들이 펼쳐져 있고 또한 가주의 처소가 있는 것이었다. 가주가 거처하는 그건물을 오죽거라고 하는데, 실로 그곳은 제갈세가의 중추부라고 할 수가 있고 모든 무공과 학문들이 보관 되어 있으며, 외인들은 결코 함부로 그곳을 들어 갈 수가 없는 것이다. 본래 이곳 양양현의 부근은 예로부터 산자수명하고 토질이 비옥하여 의식이 풍 족하므로, 많은 시인묵객들과 현철들을 배출해왔다. 현재에 이르러 이곳은 많은 은거고인이나 기인이사들의 고향이 되었고, 은연중에 대개가 제갈세가의 영향을 받게 되어서 많은 사람들이 제갈세가의 사 람으로 자처하게 되었다. 물론 사십년 전에 한때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고 피폐되기는 했으나,그 마겁을 이겨내고 현재에는 오히려 더욱 번창하는 세력을 이루고 있는 터였다. 그 옛날의 촉한 제갈무후가 제갈세가의 시조라고 하는 얘기는 다분히 상징적 인 것에 불과한 것이고, 현재에 이르러 제갈세가는 무공과 진법,토목,지리,기관,천문,병법의 일곱가지 재간에 능하다고 하여 이를 칠절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것은 역시 물론 상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당금의 제갈세가에는 높은 수준의 무학들이 완전히 정착하여 그 가운 데 열한가지의 절학은 강호에 소문이 나 있을 정도로 무림세가로서의 면모를 굳혀가고 있는 중이었다. 사실상 제갈신중은 부친인 제갈류량이 현재 영웅맹주로 있으며 무려 삼년만에 모처럼 귀가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그다지 관심이 일지 않았다. 제갈신중은 다만 자신이 돌아갈 때가 되었다고 생각되었기에 그만 돌아가는 것이었다. 추수가 끝난 이후의 들녁은 매우 황량해 보였다. 스산한 초겨울의 삭풍에 메마른 낙엽들이 덧없이 휘날리고 나뭇가지들은 점차 로옷을 벗어가고 있었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갈 무렵에 제갈신중은 문득 이미 추수한 논에서 뭔가 열 심히 일하고 있는 중년사내를 만나게 되었다. [아니,혹시 장아저씨 아니십니까?] 그 장가라는 사내는 일을 하다가 말고 고개를 들더니 다소 놀란 표정으로 반 색하는 듯 했다. [아이쿠, 이거 둘째공자님이시로군요? 밖에 나가셨다고 하던데,지금 돌아오시 는 길이십니까?] 그 장가라는 사내는 제갈세가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건실한 사람이었다. 사내가 고개를 반쯤 수그리고 인사를 하는 것을 보고 제갈신중은 씁쓰레하니 웃으며 대꾸했다. [저야 뭐 하는 없이 여기저기 떠돌아 다니는 사람이니 그렇게까지 예를 차릴 필요가 없습니다. 헌데 지금 대체 무엇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까?] 장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웃으며 멋쩍게 자신의 옆을 가리켰다. [논을 좀더 개간하고 있었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장가의 손에는 삽을 비롯한 쟁기들이 들려져 있었고 그의 앞쪽 에는 흙이 많이 패여 있었다. 내년 봄에는 미처 땅을 개간할 여유가 없을 지도 모르기 때문에 미리하고 있 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기이하게도 지금 장가가 파고 있는 흙은 멀쩡한 논바닥이었고 마치 넓 은 웅덩이를 파고 있는 것 같았다. 개간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에 제갈신중은 의아해져서 물었다. [아니 헌데 어째서 하필이면 논바닥을 파헤친다는 말이오?] 장가는 사람좋게 웃으며 대답했다. [저는 우선 이 흙을 내다버리고 다른 곳의 흙을 떠와서 깔아놓을 생각입니다.] 제갈신중은 비로소 장가가 개토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었다. 하지만 개토를 한다고 해도 구태여 논바닥의 흙을 퍼낼 필요는 없을 것이 아 닌가? 제갈신중은 다시 물었다. [하지만 이곳의 흙은 왜 버리는 것이오?] 장가는 웃으며 대답했다. [아버님께서 말씀하셨지요.묵은 것은 새것과 교환하는 것이 이치라고요. 저는 본래 흙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렇게 하는 것이 귀찮지는 않습니다.] 제갈신중은 장가의 성실하고 우직한 모습과 그의 튼튼하게 다져진 신체를 보 고는 문득 부러워하는 마음이 일었다. [하기는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이 없겠지요.그렇게 성실하게 일하 시는 장아저씨의 모습을 보니 제가 부끄럽게 느껴집니다.] 헌데 장가는 손을 내저었다. [아닙니다.저의 아버님은 다른 말씀을 하시던데요?] (......?) 제갈신중은 의아해져서 물었다. [다른 말씀이라뇨?그래 장노인이 무슨 말씀을 하시던가요?] 장가는 고개를 들어서 잠시 생각하는 듯 하다가 대답했다. [그러니까,세상에서 가장 일을 잘하는 것은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라 고요. 말하자면 제가 이렇게 제 아무리 일을 잘한다고 해도 그것은 결국 아무 것도 하지 않으시는 공자님보다 못하다는 말이지요.] 제갈신중은 쓰게 웃으며 대꾸했다. [무위자연을 말씀하시는 군요?] 장가는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아버님께서는 몇 년 전부터 그러셨지요.둘째공자님께서 비록 겉으 로는 어리석은 듯이 보여도 기실은 나중에 가장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요. 그러니까 가장 훌륭한 도인은 오히려 겉으로는 어리석은 듯이 보인다고 하더 군요.] 제갈신중은 웃으며 대꾸했다.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고마울뿐입니다.] 제갈신중이 떠나려고 하자 장가는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참,둘째공자님이 돌아오신 것을 세가에 전해드릴까요?] 제갈신중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닙니다.그냥 두셔도 됩니다. 그보다 이젠 돌아가실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장가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왠걸요. 아직 해가 남았고, 또한 밤도 길어졌고 하니 저는 어두워질때까지 일 을 하다가 돌아갈 생각입니다. 이젠 추워져서 땅이 얼어버리면 이 일도 하지 못할 테니까요.] 제갈신중은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나눈 뒤에 그곳을 지나쳤다. 뒤에서 황소처럼 우직하게 열심히 일을 하며 일을 사랑하는 장가의 강한 근육 질이 돋보이는 것 같았다. ...... 완만한 야산의 소롯길로 접어들게 되자 흩날리는 낙엽들은 더욱 많아졌다. 만산홍엽이라고 하지만 이미 그런 시절도 지나가고 누렇게 메마른 낙엽들은 가 슴을 더욱 더 황량하게만 만든다. 제갈신중이 세가를 떠났던 것은 무작정이었으며 달리 무슨 목표가 있었던 것 은 아니었다. 그는 상황이 어쩔 수 없었으므로 나가서 떠돌다가 이제 돌아오고있는 것일 뿐 이었다. 무심한 거동이라고 할까?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야 그렇게 전혀 무심할 수는 없다. 비록 그렇듯 의미없이 드나들지라도 이렇게 황량한 낙엽들만이 그를 반기고 있 다는 것이 그에게 아픔으로 전해져 왔다. 제갈신중은 멍하니 넋을 잃은 채 걷다가 문득 다시 한명의 노인을 만낫다. 노인은 허름한 옷을 입고서 지게를 매고 있었는데, 그 지게의 위에는 제법 미 끈해 보이는 재목을 싣고있었다. 제갈신중은 그 노인의 뒷모습을 보자 이내 낯익다는 생각을 했고 이어 그 앞 에 이르러 웃으며 말을 걸었다. [호노인,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그 노인의 이름은 바로 호가였다. 주름이 깊게 패인 늙은 나이에도 무거운 재목을 지고 쉽게 걸어가는 것을 보 면 그 역시 무공을 배운 사람이었다. 이 부근에서 무공을 배운 사람들이라면 으레 제갈세가와 연관이 있기가 쉬웠 고 당연시 되곤 했다. 말하자면 눈앞의 이 호노인이라는 사람은 그런 전형적인 인물로서 즉, 제갈세 가에서 살고 있지는 않지만 그 후광으로 살아가는 대표적인 예였다. 노인은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바라보다가 일순 약간 놀라며 아는 체를 했다. [아, 둘째공자께서 오셨군요.이미 오실거라는 소문을 듣기는 했지만 허허... ...그래 세가에는 연락을 하셨습니까?] 제갈신중은 멋쩍게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 하지 않았습니다. 헌데 호노인께서는 지금 무엇을 하시는 길이십니까?] 호노인은 잠시 헛기침을 하며 표정을 바로잡더니 대답했다. [예,사실은 이번에 철적선생께서는 우리들을 위해서 세가의 밖에도 하나의 연 무대를 건립하시기로 하셨지요.따라서 우리는 자발적으로 움직이고 있는데,이 재목들은 바로 그 정자의 기둥으로 쓰려고 하는 것입니다.] 철적선생 제갈고헌은 현재의 제갈세가의 최고령자인 동시에 제갈신중의 작은 할아버지였다. 그는 현재 가주인 제갈류량이 영웅맹의 일로 집을 비우고 있는 사이에 대신 가주의 직위를 맡고 있는 것이었다. [아,그러시군요?] 제갈신중이 웃으며 인사를 하고나서 지나쳐 가려고하는데 문득 호노인이 헛기 침을 하며 그를 다시 불렀다. (......?) 호노인은 약간 엄한 표정을 하고서 다시 말했다. [둘째공자께서 지금 돌아가시는 길이라면 제가 미리 가서 알려드리지요.] 제가신중은 웃으며 사양했다. [보아하니 바쁘신 것 같은데 구태여 그러실 필요가 있겠습니까?] 헌데 호노인은 그 말에 더욱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재차 헛기침을 하며 다시 말했다. [험험,대체로 둘째공자께서는 일의 경중을 모르시는 듯 하군요.이를테면 지금 제가 이 재목들을 가지고 가는 것은 고작 집을 짓는 일에 불과하지만 둘째공 자의 일은 우리 제갈세가의 운명에 관한 일이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훈계조의 호노인의 말에 제갈신중은 고개를 수그러들었다. 그는 지난날에 그와 같은 훈계조의 말을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 수를 셀 수가 없을 정도다. [아,예 그렇군요.제가 잘못 생각했습니다.그럼 죄송하지만 호노인께서 좀 세가 에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 호노인은 제갈신중의 그러한 궁색한 모습을 보자 더욱 못마땅한 듯이 심하게 눈살을 찌푸리다가 다시질문했다. [혹시 둘째공자께서는 이번에 강호에 나가셔서 무슨 절기라도 연성하시고 돌아 오는 길이십니까?] 제갈신중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별로 배운 것이 없습니다.] 호노인은 즉시 노골적으로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험험!그래 둘째공자께서는 그간 강호에 나가서 전혀 무위도식하셨다는 말입 니까?그래도 무공이 아니라면 다른 학문이라도 배운 것이 있을 것이 아닙니까?] 제갈신중은 난처한 기색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아,아닙니다.] 호노인은 이에 한 번 길게 한수을 내쉬더니혀를 차며 말했다. [허,그러시군요.여전히 그 버릇은 어디가지 않았군요.허!......거참 알수 없는 분이시군요.둘째공자님은?이제는 그만 정신을 차리고 성실하게 노력해야 할 것이 아닙니까?] 제갈신중을 안색을 붉히며 겸연쩍어서 대답했다. [예,알겠습니다.] 호노인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렇게 건성으로 대답하실 것이 아니라 정말로 반성을 하시는 것이 좋을 것입 니다.음,이 늙은이가 저 자신을 위해서 이런 말을 한다고 생각하시는 것입니 까?] 제갈신중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야 물론 아니겠지요.] 호노인은 정색을 하고 말했다. [지금 본가는 상당히 중요한 싯점이라고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소인도 노구를 아 끼지 않고 충심으로 본가를 위해 노력하려고 하는 것입니다.제발이지,이제 둘째 공자께서도 그만 정신을 차리시는 것이 좋을 겁입니다.최소한 다른 사람들에게 누가 되는 일은 없어야 할 테니까요.] [......] 제갈신중은 아무런 대꾸도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그 얘기를 듣고 있었다. 무안한 표정의 제갈신중의 얼굴을 한 번 훔쳐본 호노인은 헛기침을 하며 다시 말 을 이었다. [험험,그럼 얘기는 그 정도면 알아들으셨을 것이고,나는 먼저 달려가서 본가에 이 소식을 전할테니 공자께선 천천히오시도록 하시오.] 제갈신중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그럼 먼저 가시지요.] 호노인은 재차 그의 얼굴을 바라보고 헛기침을 하며 지게를 진채로 앞쪽으로 빠르게 달려가 버렸다. 비록 지게를 무겁게 지고 있었지만 신법을 펼치고 있었으므로 그 호노인의 모 습은 이내 사라져버렸다. ...... 제갈신중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눈총을 받아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은 결 코 아니었다. 과거에는 더러 그가 나중에 훌륭하게 재기할 것이라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기 는 했었다. 하지만 지금에 이르러서도 그와 같은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까? 물론 조금전에 만났던 장가의 아비라는 장노인의 경우는 특별하며,그가 그 러한 생각을 하는 것은 다분히 추상적인 관념에 따른 것이다. 제갈신중은 한동안 그 자리에서 서서 괴로운 표정으로 생각에 잠겨있다가 이 윽고 다시 무거운 발길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는 혹시 자신이 잘못 온 것이 아닌가 하고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것이다. 문제는 간단하지만 그 해답을 낸다는 것은 별로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나일 그 해답을 찾았다면 방황도 끝내게 되었을 것이었다. 어쨋든 그는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이제 그는 돌아왔으니 여기에서 다시 발길을 돌린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 는 것이었다. 기왕에 왔으니 상황에 따라서 처신하는 수밖에...... 비록 미리 예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다시 조금전의 그런 일을 당하고 나 자 매우 마음이 괴로운 것을 감출수가 없었다. 제갈신중은 이제는 약간 삭막해진 기분이 되어서 거북이처럼 느릿느릿 오죽림 을 향해 걸음을 옮겨가기 시작했다. * * * 비록 호노인이 알리러 갔지만 제갈신중은 세가에서 특별히 그를 마중하러 나 오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는 예상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마악 어둑어둑해질 무렵에 오죽림의 한 입구에 이르렀을 때,느닷없이 나 타나서 반색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어마! 둘째 오라버니가 정말로 돌아오시네?] 맑고 교태가 자르르 흐르는 음성으로 소리치며 갑자기 제갈신중의 앞에 내려 선 사람은 한명의 묘령의 미소녀였다. 연남빛의 바탕에 곱게 봉황의 무늬가 수놓아진 장삼을 걸치고있는 그 미소녀 는 매우 제갈신중에게 낯익었다. 나이는 이제 스물한살이고 키는 오척여섯치에 달하며 날씬한 몸매에 아주 선명 하고 수려해 보이는 용모. 미간이 맑고 깨끗하여 총명해 보이는 그녀의 두 눈에서는 금방이라도 혜광이 빛날 것 같기도 한데, 날렵하게 호공을 날아서 선회하며 바닥에 내려서는 동작은 이미 무학이 높은 경지에 올라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했다. [아,금의! 너로구나.] 바로 제갈신중의 여동생인 제갈금의였다. 제갈신중의 부친인 제갈류량에게는 모두 네명의 자식이 있는데, 그 삼남일녀 가운데에서 눈앞의 제갈금의가 바로 가장 막내였다. 제갈신중이 안색을 펴고 마주 인사하자 바로 그것을 전후하여 다시 제갈금의의 뒤쪽에는 두 명의 청년들이 내려섰다. 제갈신중은 그들을 보자 이내 안색이 달라졌다. 학의 문양이 수 놓아진 남삼을 걸치고 있는 스물셋의 나이의 미청년으로 눈빛이 유난히 선명해 보이는 사람은, 바로 제갈세가의 삼남이자 제갈신중의 바로 아래의 동생인 제갈보중이었다. 그 제갈보중의 무공은 제갈금의와는 또 다른 경지였다. 그의 무학의 이미 명실공히 절정의 경지인 황화예에 이르러서 현재의 무림육영 의 하나로 불리우고 있는 것이다. 소제갈이라는 별호는 현재 그가 강호상에서 어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가를 말해주는 것이었다. 현재 제갈금의의 두 눈에는 영롱한 정광이 번뜩이고있는 반면에 ,제갈보중의 두 눈에는 한줄기 맑은 광채가 담담하게흐르고 있으니, 그것이 바로 두사람의 무학경지의 차이를 쉽게 느끼게 해주는 것이었다. 사실 제갈보중은 이미 삼년 전에도 그와 같은 경지에 올라 있었는데, 이제보 니 그간에 더욱 정진한 것 같았다. 실로 호부에 견자없다고 했듯이, 가히 당금의 천하제일인이라고 불리우기도 하는 부친 신기제갈 제갈류량의 명성 에 걸맞는 뛰어난 아들인 것이다. 제갈신중은 미리 예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실로 그와 만나는 것이 이렇 게 빠를 줄은 미처몰랐다. 비록 한 형제이지만 눈앞의 제갈보중과 제갈신중은 한눈에 보기에도 전혀 닮은 구석이 없을 만큼 서로 달랐다. 마치하나는 보배로운 옥그릇이고 다른 하나는 이빨빠진 질그릇인 것처럼. 제갈신중이 멍하니 서있자 제갈보중이 잠시 냉정한 시선으로 그의 얼굴을 바라 보다가 이렇게 입을 열어 말했다. [형님,돌아왔군요?] 제갈신중은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이 입을 열어 대꾸했다. [응,그래......나는 너,네가 이렇게 나를 마중나올 줄을 몰랐다.] 제갈보중은 궁상맞은 차림새로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있는 제갈신중의 몰골 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나는 형님의 마중을 나온 것이 아니오.] 제갈신중은 무슨 말이지 몰랐으나 붉어진 안색으로 즉시 대꾸했다. [응,아,알았어.그런거야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지.] 이른바 무림육영이라고 하면 당금 천하에서 가장 촉망받는 여섯명의 후기지수 들을 말하는 것일진대, 제갈신중은 자신의동생이 그와 같이 뛰어난 사람이라는 사실을 대견스럽게 생 각할 뿐만 아니라, 반대로 거기에 너무나도 못미치는 초라한 자기자신에 대해서 당황스럽도록 미안 해 하고 있는 것이었다. 대체 한 형제로서 이렇게 차이가 난다는 사실이 불가사의할 지경이었다. [......] 제갈보중은 공연히 얼굴을 붉히고 있는 둘째형을 보며 못마땅한 듯이 대꾸도 하 지 않고 서 있었다. 그것을 보고 제갈금의가 다시 입을 열어 말했다. [둘째오빠,우리는 지금 아버지를 마중하러 나가는 길이었어.] 제갈신중은 그제서야 이해할 수가 있었다. 본래 그는 내놓은 자식으로서 그들이 자신을 향해 마중나올 리는 없는 것이었 다. (빌어먹을,그렇다고 해도 일단 나를 마중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강조할 필요까지는 없는 것이 아닌가?) 제갈신중은 내심으로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보니 그랬었군.하기는 나도 너희들이 그간에 머리가 어떻게 된 것이 아닌 가 하고 의심했었지.] 제갈금의는 코웃음을 치며 대꾸했다. [우리가 그렇게 될 리가 있겠어?오히려 머리가 어떻게 된사람은 둘째 오빠인 것 같애.대체 옷차림이 그게 뭐야? 꼭 상거지 같잖아.] 제갈신중은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그동안 가진 은자를 모두 사용하고 말았기 때문에 어쩔수가 없었다.] 그것을 보고문득 다른 한쪽에 서있던 자삼청년이 갑자기 웃으며 이렇게 입을 열어 말했다. [하하,나는 형님께서 그동안 좋은 직업이라도 구하고 계신줄로 알고 나중에 돈 을 많이 벌어오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설마하니 그간에 그저 무위도식 하셨 다는 말입니까?] 제갈신중은 그 자삼청년을 주시하면서 미소를 지었다. [미안하다.내가 이렇게 상거지가 되어 돌아오니 정말 너희들에게 폐를 끼치고 있 는 것 같구나.] 나이는 이제 겨우 약관을 지난 스물 한 살. 오척 여섯치의 키에 약간 뚱뚱한 체구를 하고있으며 호인형의 친근감을 주는 용모를 한 청년. 그의 무학경지는 비록 아직 절정의 경지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형형한 정광이 오 히려 제갈금의보다 우위에 있다고 할 수가 있으며, 현재 제갈신중의 부친의 사촌인 신산자 제갈류신의 아들 제갈덕중. 바로 현재 제갈세가의 가주대행으로 있는 철적선생 제갈고헌의 친 손자이기 때 문에 제갈신중과는 육촌사이였다. 그는 허리춤에 한자루의 칼을 차고있는 것으로 보아 특이하게도 도법을 연성 한 모양이었다. 제갈적중은 제갈신중의 말을 듣고서 겸연쩍은 표정으로 대꾸했다. [하하,그야 저와는 상관이 없는 일이지요.] 제갈신중은 집으로 돌아오자 마자 그와 같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어 심기가 매 우 불편해졌다. 그는 빨리 길을 비켜줄 생각으로 웃으며 이어 말했다. [너희들이 우선 나를 보고 아는 척을 해주니 나로서는 더 이상 바랄나위가 없 구나.어쨌든 우리들의 지난날의 쌓인 회포를 나중에 풀기로 하고,우선은 너희들 은 이만 가던길을 계속가는 것이 어떠냐? 나는 피곤해서 먼저 안에 들어가서 쉬면서 기다리마.] 그런데, 뜻밖에도 제갈금의가 문득 눈빛을 빛내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참,그러지말고 둘째오빠도 지금 우리와 함께 아버지를 마중하러 나가는 것이 어때요?] 제 9장. 전설의 비도파천황. 제갈금의의 뜻밖의 제안을 듣고 제갈신중등은 약간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제갈덕중이 다소 난색을 표시하며 말했다. [하지만 저 형님은 지금 매우 피곤하실 텐데,그래도 괜찮을까?] 제갈신중은 그들이 자신과 어울리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이 어 말을 받아 말했다. [맞아.게다가 나는 지금 행색이 이래서 우선은 옷을 갈아입고 나서야 갈 수가 있 겠어.] 헌데 제갈금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굳이 고집을 부리는 것이었다. [아냐.오빠는 지금 그다지 피곤한 것 같지않고,오랜만에 아버지를 뵙게 되는 데 그게 대수겠어?그리고 지금은 밤중이라서 그 옷차림은 나중에는 보이지도 않을 거야.] 제갈덕중이 다시 그녀를 돌아보며 말했다. [하지만 저 형님은 나중에 따로 뵙도록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만일 가주님께 서 그런 모습을 보시면 좋지않게 생각할 텐데?] 제갈금의는 고개를 흔들었다. [나는 그런 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 다고 생각해.아버지께서는 이미 오빠의 그 러한 면을 잘 알고 계시기 때문에 상관하지 않을 거야.오히려 지금 함께 가지 않는 것이 더욱 이상하지않겠어?] 제갈금의는 이번에는 말을 마치자 시선을 돌려서 제갈보중을 바라보았다. 그의 의견을 묻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곧 그녀가 얼마나 제갈보중을 신뢰하며 따르고 있는가를 단적으로 나 타내고있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 제갈보중은 이제까지 묵묵히 냉정한 태도로 제갈신중을 주시하고 있다가 이윽 고 천천히 입을 열어 말했다. [누이의 말이 맞아.모두 함께 가도록 하자.] 제갈신중은 그러한 고압적인 태도를 보고 입맛이 썼다. 그러한 태도는 자연스럽게 길러진 것이겠지만 지금 자신은 도무지 체면이 서지 않는 것이었다. 어쨌거나 이윽고 그들이 신형을 날리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제갈신중은 뒤를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 * * 다소 시간이 넉넉하기 때문인지,아니면 제갈신중을 의식해서인지 제갈보중등은 비교적 신법을 천천히 펼쳤다. 제갈신중은 그저 무작정 내달리는 수밖에 없었는데 다행히도 조금도 호흡이 가 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기운이 샘솟듯이 일어나는 것을 느끼면서 그럭저럭 그 뒤를 쫓아갈 수가 있었 다. 제갈신중이 발이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부지런히 달리면서 쫓아오는 것을 보고 제갈금의가 문득 웃으며 신법을 늦추고물었다. [아니,오빠는 어째서 그렇게 달리기만 하는거죠? 이미 배운 본가의 천기신행의 신법은 벌써 잊어버렸나요?] 제갈신중은 그 질문을 받고 내심으로 생각했다. (며칠전이었다면 나도 그럭저럭 신법을 펼칠 수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만일 진기를 움직이게 되면 주화입마가 되기 쉽다는 것을 너에게 어떻게 일일이 설명해 줄 수 가있겠느냐?) 따라서 그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셈이다.하지만 그렇다고 너는 나에게 그것을 가르칠 생각을 하지 않는 것 이 좋을 것이다.] 제감금의는 자신의 둘째오빠가 창피해서 그러는 줄로 알고 구태여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 [좋아요.헌데 오빠는 지금 우리 아버지가 어째서 본가로 돌아오시는지 알고 있 나요?] (......?) 제갈신중은 약간 의아해져서 대꾸했다. [본가의 가주가 본가로 돌아오는 데에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어야만 한다는 말이냐?] 제갈금의는 약간 웃으며 되물었다. [그럼 오빠가 집으로 돌아오신 것은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는 말인가요?] 제갈신중은 대꾸했다. [나야 도중에 은자가 떨어지고 오도가도 못하게 되어 돌아온 것이지만,우리 아 버님이야 그럴 리야 없지 않으냐?] 이미 제갈보중과 제갈덕중은 저만큼 앞서서 나아가고 있었다. 그들은 이제 제갈금의가 제갈신중을 안내할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마음놓고 신법 을 펼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아마 제갈금의도 그 장소를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제갈금의는 가볍게 웃더니 그 쪽을 슬쩍 바라보고는 말을 이었다. [물론 아버지께서는 도중에 은자가 떨어질 리가 없는 것이죠.하지만 이번에 본가에 특별히 오시는 것은 분명한 이유가 있어요.] 제갈신중은 물었다. [그게 정말이냐?] 제갈금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몰론이예요.그긋은 지금 본가의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이죠.아버지 는 지난 삼년전에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에 영웅맹으로 가셔서 본가로 한 번도 돌아오시지 않다가 이번에 갑자기 돌아오시게 된 이유는 뭐라고 생각해요?] 제갈신중은 눈을 돌려서그녀를 바라보며 되물었다. [그걸 지금 나에게 맞춰보라는 말이냐?] 제갈금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오빠는 지난 삼년동안 집을 떠나 있었기 때문에 잘 모르는 모양인데, 본가의 중대한 사안이기도 하니 한번 맞춰보세요.] (......) 제갈신중은 잠시 생각하는 듯 하다가 대꾸했다. [혹시 그건......우리들을 한 번 찾아보려는 것이 아닐까?] 제갈금의는 싱거운 듯이 웃었다. 이미 사위는 완전히 어두워졌고 또한 앞서서 달리는 제갈보중 등의 모습은 보 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제갈금의는 이 방향에 대해서 아주 익숙한 듯 말하면서도 쉬지않고 신 법을 펼쳐 내달렸다. [호호,그건 정말 단순한 생각이예요.물론 전혀 가능성이 없는 얘기도 아니지만, 지금은 틀린 대답이예요.] 제갈신중은 의아해하며 다시 물었다. [그럼 정답은 뭐란 말이냐?] 제갈금의는 미소짓더니 제갈신중을 향해웃으며 되물었다. [혹시 아직도 영웅맹의 일에 대해서 기억하고 있는 것이 있나요?] 제갈신중은 대꾸했다. [본가의 일이야 내가 떠나서 잘 알수가 없겠지만,영웅맹의 일이야 내가 떠난 것도 아닌데 왜 모르겠느냐?] 제갈금의는 장난스레 대꾸하고 있는 제갈신중에게 못마땅하다듯이 길게 혀를 내 밀어보이고는 다시 말했다. [그렇다면 영웅맹의 맹주의 임기가 십년이라는 것도 기억하고 있겠군요?] 제갈신중은 깜짝 놀란 듯이 말했다. [아! 그러고 보니 올해가 아버님이 영웅맹주가 되신지 꼭 십년째가 되는 해로구 나.그렇다면 아버님은 다시 본가로 돌아오시기전에 예비로 한 번 들르시는 것이라 는 말이냐?] 제갈금의는 답답하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설마하니 오빠는 영웅맹주의 임기가 한 번 연임할 수가 있다는 것을 모른다 는 말인가요?] 제갈신중은 약간 놀라며 말했다. [그럼 아버님은 영웅맹주에 다시 도전하기위해서 본가의 사당에 고하러 오시는 것이라는 말이냐?] 제갈금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차기영웅맹주를 선출하는 천하영웅비무대회가 앞으로 석달이 남았으니 본가에 돌아오셔서 사당에 고하는 것은 당연한 이이죠.] (......) 제갈신중은 그 얘기를 듣고 잠시 묵묵했다. -천하영웅비무대회. 일면 영웅대회는 이제까지 모두 네번이 열렸었고 따라서 모두 네명의 영웅맹주 를 배출해 내었다. 사십년 전에 마겁이 지나간 이후에 개최되기 시작한 영웅대회는 그리하여 현재 제오회를 맞이하게 된 것이었다. 이 영웅맹은 일명 정도무림맹 이라고 불리우는 것으로 강호의 정기를 수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집단이었으며 그 총단은 하남성의 복우산에 있다. 비록 그 임기가 연임이 가능해도 아직 연임해본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제갈류 량의 이번 연임에의 도전은 획기적인 일이라고 할 만 했다. 초대의 영웅맹주와 제이대의 영웅맹주는 스스로 연임을 사양했고, 삼대의 영웅맹주는 십년전에 연임을 시도했으나 한명의 신예에게 비무대회에서 패하여 실패하고 말았다. 몰론 당시에 삼대영웅맹주를 물리치고 당당히 우승하여 사대의 영웅맹주가 된 사람은 제갈류량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제갈류량이 이번에는 다시 연임을 시도하는 것이었다. 당금의 강호무림은 정도의 영웅맹과 사도의 동심교로 구분되어 있으나, 절대적으로 정도의 세력이 막강하고 사도의 세력이 지하에 숨어버린 것을 생 각하면 영웅맹주는 실질적인 무림맹주라고 할 수가 있었다. 일단 영웅맹주가 되고 나면 그 자체로 천하제일인이나 다름이 없게 되는 것이 며 그것은 한 문파와 가문의 영광인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현재의 영웅맹주인 신기제갈 제갈류량은 역대의 제갈세가의 인물들 가운데에서 가장 뛰어난 위인으로 꼽히고 있는 상태였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제갈류량은 그야말로 놀라운 무학을 소유하고 있다고 했 다. 그렇게 본다면 제갈류량의 연임의 의도는 당연한 것이라고도 말할 수가 있었 다. 제갈신중이 말이 없자 제갈금의는 웃으며 다시 말을 걸었다. [오빠는 우리 아버지가 다시 영웅맹주를 연임하게 되면 어떻게 될거라고 생각 해?] 제갈신중은 대답했다. [그야,나쁘지 않겠지.능력이 있어서 천하를 위해 쓰는 것은 나쁘지 않으니까.] 제갈금의는 그러나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가 그만 집에 돌아와 주셨으면 좋겠어.요즈음 본가의 상황 이 왠지 쓸쓸하게 느껴져서......엄마는 돌아가시고 아버지도 오랫동안 밖에 계시니......] 제갈금의는 잠시 울적한 표정을 짓다가 말했다. [참 큰오라버니가 이번에 아버지와 함께 온다고 했는데 대체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해. 큰오라버니는 무림육영의 첫번째니까 말이야.] * * * 아직 달이 뜨지않아서 사위가 어두웠으나 하늘에 별이 총총하여 그다지 시야에 장애를 두지는 않았다. 제갈보중을 비롯한 일행은 한적한 야산의 바위위에 걸터 앉아서 소롯길을 바라 보며 한참이나 기다렸다. 가끔씩 서늘한 삭풍이 불어와서 모두의 옷자락을 휘날렸으나 지금은 모두 약간 긴장된 듯 입을 열지 않았다. 제갈보중의 시선은 차갑고 무표정했고 제갈신중의 시선은 약간 지루한 듯 했 으며 제갈금의의 눈빛은 초롱초롱 빛을 발하고 있었다. 참다못한 듯 마침내 제갈덕중이 그 침묵을 깨뜨리고 입을 열었다. [정말 너무하셨어. 지난 삼년동안 큰형님조차 본가에 전혀 들르지 않으시다 니......정말로 이곳으로 오시는 것이 맞을까?] 제갈금의에게 말을 걸었던 것이었으나 제갈금의는 이순간 그의 말에는 신경을 쓰지 않고 있는 상태였다. 따라서, 제갈덕중은 이번에는 시선을 돌려 제갈보중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순간 제갈 보중이 오른손을 들어올려 그를 제지하며 말하는 것이었다. [잠깐......지금 오셨다.] (......!) 제갈덕중은 안색이 변해서 급히 다시 시선을 앞쪽으로 돌렸다. 과연 아니나 다를까? 어느새 그들의 삽십여 장 앞에 마치 유령처럼 희끄무레한 사람들이 기척도 없 이 나타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일행은 다음 순간에 이미제갈보중 등의 앞에 이르렀다. 그 순간에 제갈신중은 약간 권태로운 듯한 시선으로 다가오는 사람들을 주시 하고 있었는데, 바라보니 나타난 사람들은 모두 입곱명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무공이 대단하여 신법을 펼치는 데 거의 소리를 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게다가 무형중에 풍겨지는 기도 역시 대단하여 대하자니 마치 일시에 숨이 막 힐 것 같았다. 지금 그 일곱명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눈부시도록 새하얀 백의를 걸치고 있었는 데 다른 것은 거기에 각기 수놓아진 문양들이었다. 다섯명의 사람들은 서로 다른색깔의 용의 문양을 각기 네 마리씩 수놓고 있는 상태였고, 그외에 오직 한 마리의 황금빛 대룡이 수놓아져있는 사람도 있었고 그것이 전 혀 없는 사람도 있었다. 의복에 네 마리의 용이 수놓아져 있는 사람들은 바로 영웅맹의 오당의 당주들 이라는 것을 전해듣고 있었다. 오직 한 마리의 대룡이 수놓아져 있는 사람은 바로 신기제갈 제갈류량이었다. 그리고, 아무런 문양도 없는 백의를 걸치고 있는 청년은 바로 제갈신중의 친형인 천기 공자 제갈의중. ......! 제갈류량의 일행이 너무나도 갑자기 나타나자 제갈보중 등은 일시 멍하니 넋을 잃고 바라보고만 있다가 뒤늦게야 비로소 인사를 올렸다. [아,아버님을 뵙습니다.] [가주님을 뵙습니다.] (......) 제갈보중 등의 안색은 순간 흥분과 설레임으로 이해 벌겋게 달아오르고 있었 다. -제갈류량. 일명 신기제갈이라는 별호로서 불리우는 그는 현재의 나이 오십세로 그야말로 전형적인 영웅의 상을 하고 있었다. 육척이나 되는 키에 후리후리하고 탄력이 넘쳐보이는 미끈하게 잘빠진 균형잡 인 체구와 지극히 고아하고 준수해보이는 용모. 일신에 놀라운 절세적인 절학을 지니고있으면서도 그의 눈빛은 조용하고 부드 러웠고, 선명하고 지극히 이지적으로 느껴지는 미간의 기운으로 인해 그의 지혜가 대 단히 높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게 했다. 기실 그의 별호가 신기제갈이라고 불리우게 된 이유는 바로 그만큼 그의 사고 력이 깊고 뛰어나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그의 무학경지는 현재 대홍락의 경지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아직 자신의 최고절학을 발휘하지 않아서 대체 그의 무공이 어느정도 인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다. 당금에 있어서 이 제갈류량은 마치 구름속에 숨어있는 신룡과도 같았다. 제갈류량은 특유의 고요한 시선으로 제갈보중 등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다 가 이윽고, 아직도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는 제갈신중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너는 오랜만에 이 아비를 보았는데 인사도 하지 않을 작정이냐?] (......) 제갈신중은 그제서야 궁신의 예로써 인사를 올리며 말했다. [오셨습니까,아버님. 헌데 한가지 이상한 일이 있습니다.아버님의 모습은 마치 고아한 문사와도 같은데 어떻게 그렇게 놀라운 무공을 배우실 수가 있었는가 하는 점입니다.] (......?) 제갈류량은 문득 제갈신중을 바라보는 시선에 기광을 떠올리다가 웃으며 간단 하게 대꾸했다. [신중아,너는 이 아비를 보자마자 또 쓸데없이 추켜세우는 구나. 무공은 외모 와는 별로 상관이 없는 것이니 그런 일에 마음을 빼앗길 필요는 없다.헌데 보 아하니 네게 그동안 기연이 있었던 모양이로구나?] (......) 제갈신중은 부친이 자신의 몸 상태를 한눈에 간파해 내는 것을 보고 놀라며 대답했다. [예.약간 이상한 일이 있기는 했지만 그러나 저의 무공은 전혀 진보가 없어서 그 자리일 뿐입니다.] 제갈류량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보아하니 네가 무슨 영약이라도 복용한 모양이다만, 그러나 그렇게 무리하게 공력을 높이려고 하다가는 주화입마에 빠지기 쉬운 것이니 항상 조심하도록 해라.] 제갈신중은 공손히 고개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예,알겠습니다.] 제갈류량은 이어 제갈보중에게 시선을 돌려 물었다. [너의 작은 할아버지께서는 집에 게시느냐?] 제갈보중은 엄숙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예.지금 세가에서 아버님이 돌아오시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음......] 제갈류량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뒤에 자신의 주위를 가리켰다. [그정도로 하고,너희들은 그만 이분들께도 인사를 올리도록 해라.바로 나의 친 구들이며 본맹에서 오당의 당주직을 맡아주시고 있는 분들이니라.] 영웅맹에서 의복에 수놓아진 용의 숫자는 그사람의 신분을 상징한다. 지금 제갈류량과 함게 나타난 다섯명은 바로 영웅맹의 실질적인 이인자들인 오당의 당주들이었으며, 그러한 사실은 이미 제갈보중등으로서는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다. 영웅맹은 크게 일부,일원,오당으로 되어있고, 그 가운데에서 일원인 봉공원은 거의 명목적인 기구인 만큼 맹주부에 이은 이 천지인풍운의 오당이야말로 실세라고 할 수가 있었다. [삼가 후배등이 선배님을 뵈옵니다.] 부친의 지시에 따라서 제갈보중등이 일제히 오당주들을 향해 정중하게 인사를 올리자 그들은 한결같이 미소를 지어보였다. 오당의 당주들 가운데 네 마리의 흑룡이 수놓아진 의복을 입고 있는 풍당의 당주 신산자 제갈류신이 말했다. [보중아! 덕중이는 별로인데 너의 무공은 전보다 훨씬 증진한 듯 하구나.아주 장한 일이다.] 이 제갈류신은 바로 제갈덕중의 부친이었다. 제갈덕중은 그렇지 않아도 계속해서 부친을 바라보고 있었는데,그가 입을 열 자 다소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제갈보중은 안색을 다소 물들이며 겸손한 태도로 대답했다. [과찬의 말씀이십니다.저의 재능은 미약하여 큰 형님과는 비교도 할 수가 없습 니다.] 지금 아무것도 수놓아지지 않은 백의를 걸치고있는 사람은 바로 맏이인 천기공 자 제갈의중이었는데, 조금전에 제갈보중의 말을 듣고도 묵묵히 아무런 말도 없이 엄숙히 시립하고 서있었다. 제갈보중과 비교하여 겉으로는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용봉지재이며 다소 후덕해 보이는 것이 그의 특징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그의 나이는 현재스물일곱이다. 그는 바로 차대의 제갈가주의 직위를 이어가게 될 장자인 것이다. 제갈금의는 아까는 말이 많았으나 지금은 왠지 엄숙한 분위기에 눌려서인지 아무런 말도 없이 단지 눈빛만 빛내고 있었다. 제갈덕중은 부친인 제갈류신에게 계속해서 시선을 보내고 있었고 제갈신중은 이어 다른 당주들에게도 인사를 올렸다. 현재 오당의당주들은 다음과 같았다. -천당의 당주 파천일검 남궁검휘. -지당의 당주 혼원패도 팽원성. -인당의당주 천왕권 황보대연. -풍당 당주 신산자 제갈류신. -운당의 당주 무정판관 당연종. 특이한 것은 그들이 하나같이 무림오대세가의 출신이라는 점이고,그것은 물론 제갈류량이 오대세가의 출신이기 때문이었다. 천당은 영웅맹의 내무업무를 담당하고지당은 수호업무를 담당하고 있다고 하며, 인당은 맹주의 경호업무를 담당하고 풍당은 정보업무를 담당하며 끝으로 운당 은 감찰업무를 담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제갈류량은 문득 이제까지 말이 거의 없는 제갈금의를 향해 입을 열어 물었 다. [금의야.그래 너는 그 동안 무공방면에 있어서 어떤 진전이라도 이루었느냐?] 제갈금의는 약간 상기된 표정으로 대답했다. [저는 아직 난화산수의 기초를 연마하고 있을 뿐이예요.그보다 세째오빠가 천성 지에서 많은 성취를 이루셨다고해요.] 제갈류량은 부드러운 미소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보중이의 실력이 늘었다는 것은 네말을 듣지 않아도 알만하다. 하지만 금의 네가 아직 난화산수의 기초에 머물고 있다니 이상하구나.대체 어느부분이 어려운지 내게 말해보겠느냐?] 제갈금의는 약간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음,그런한 얘기는 나중에 말씀드릴께요.그보다 저는 지금 한가지 아주 궁금한 것이 있는 걸요.] (......?) 제갈류량은 다소 의아해하며 즉시 다시 물었다. [그래?그럼 그 궁금하다는 것이 대체 뭐지?] 제갈금의는 눈빛을 이지리저 굴리다가이렇게 되물었다. [저어,본가의 무학들 가운데에서 가장 훌륭한 것으로 정말로 비도파천황이라는 것인가요?] 제갈류량은 이미 그녀의 의도를 간파한 듯이 미소하며대꾸했다. [그야 물론이지.이를테면 본가의 다른 무학들은 최절정의 무학들인데 반해서 유 독 그 비도파천황만큼은 초절정의 대홍락의 무학이기 때문이지.] 제갉므의는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저는 아직 그 훌륭한 무학을 배우지도 못했고 보지도 못했기 때문에 실감이 가지 않아요.저어,아버지께서 본가의 사상최대의 기재라고들 하시는데, 혹시 그 수법에 대해서 알고 계시나요?] 제갈류량은 미소하며 되물었다. [그러니까,넌는 나에게 그 수법을 한 번 보여달라는 말이렸다?] 제갉므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아버지께서 오랜만에 저의 안계를 넓혀주셨으면 좋겠어요.] 제갈류량은 잠시 생각하는 듯 하다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본래 나는 비록 그것을 배우기는 했으나 아직 한 번도 누구에게 펼쳐보인적 인 없었지.왜냐하면 그것은 이 아버지의 최대절학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허 허,네가 그렇게 원한다면 그까짓 것 못할 것도 없는 일이 아니겠느냐?] 제갈류량의 말에 비단 제갈보중등만이 아니라 제갈류신 등의 오당들도 하나같 이 놀라 긴장하는 표정들이었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그들의 무공은 모두 최절정의 수준이라고 한다. 이제 보다 놓은 경지의 무학을 볼 수 있다는 것은 결코 흔한 일이 아닌 것이었 다. 제갈류량은 문득 품속에서 한자루의 얇은 비도를 꺼내들더니 제갈금의를 바라 보며 말했다. [자,이걸 어떻게해야 네가 알아볼 수가 있을까?음,바로 저 바위를 표적으로 삼 으면 되겠군.] 말과 함께 그는 비도를 가볍게 놓았다. 하늘에는 어느새 희멀건 달이 떠올라서 사위를 훤하게 비추고 있었다. 사람들은 제갈류량의 손에서 비도가 날아가자 긴장을 하고 시선을 집중했다. ......! 비도는 처음에는 아주 천천히 날아갔다. 마치 비도 그 자체가 살아있어서 천천히 허공을 날아가기 시작하는 것 같았 다. 물론 그 비도는 그다지 특별하게 보이지 않는 평범한 모습의 비도에 불과한 것 이었다. 사람들은 일단 비도가 날아가기 시작하자 마치 일시적으로 주위의 공기가 얼어붙 어서 비도가 미끄러져 가는 것이라고 착각을 하게 되었다. 헌데 다음 순간에 비도의 속도가 점차로 빨라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저 빨라진 듯한 느낌이 들었을 정도였으나 다음순간에는 그것은 어 느새 번쩍! 사라져서 하나의 바위앞에 이르렀다. 아니 그렇게 판단하고 있는 것 자체가 하나의 착각일 것이었다. 분명히 비도는 믿을 수 없게도 점차로 빨라지고 있었으며 바위앞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번쩍!하는 섬광을 발휘하다가 사라졌다. (......!) 사람들은 일순 환상을 보고 있는 듯하여 놀라며 눈을 크게 떳다. 그들은 하나같이 무공을 단련해온 사람들이라서 웬만큼 빠른 속도는 분명히 분간할 수가 있는 능력들이 있었다. 헌데 기이하게도 조금전의 그 섬광은 무엇이었는지 도저히 알수가 없었던 것이 었다. 제 10장. 세가의 장손 사람들이 얼른 다시 눈을 크게뜨고 그쪽을 주시했을 때에는 놀라운 상황이 벌 어져 있었다. -비도파천황! 희미한 달빛아래 드러난 그 바위의 면은 깨끗하게 깎여져 있었고 바로 그와 같 은 글자가 양각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말하자면 조금전에 그 섬광이 번쩍였던 것은 그와 같은 상황이 지극히 빠르게 일어나던 모습이었던 것이다. 사람이 한낱 비도를 날려서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은 거의 믿을 수 없는 일 이었다. 본래는 제갈보중등이 가장 놀라고 감탄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기실 이 순간 입을 딱 벌리고 경악하고 있는 가장 놀란 표정의 사람들은 바로 다름아닌 오당의 당주들이었다. 제갈보중등은 비록 기재들이기는 하나 아직 무학에 대한 안목이 부족하여 그 무학의 가공함을 알아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제갈류신이나 파천일검 남궁검휘등은 거의 그 놀라운 진면목을 파악할 수가있었기에 경악함이 컸다. 그들은 비록 맹주의 무공이 자신들보다 높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었으나,지금보 니 오히려 자신들이크게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왠지 제갈류량의 무공은 그들의 생각보다 훨씬 뛰어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잠시의 경악함 속에서 침묵이 흘러간 뒤에 제갈금의 등은 한가지 의문을 느끼 고 주위를 돌아보았다. 대체 그 비도는 갑자기 어디로 사라졌는가 하는 것이었다. 바로 그때 제갈류량의 자상하고 인자하게 느껴지는 음성이 들려와서 그녀의 고 막을 울렸다. [잘 보았느냐?네가 거기에서 무엇을 깨달을 수 있을 지가 의문이지만 말이다.] 제갈금의는 무심코 부친을 향해 고개를 돌리다가 안색이 변해서 눈빛을 번쩍 발했다. (......) 달빛아래에서 제갈류량의 손에서 뭔가 번쩍이는 광채를 발한 것이었다. 물론 그녀가 조금전까지 궁금해 하던 그 비도였다. 섬광과 함께 사라졌던 그 비도가 어느새 제갈류량의 손에 되돌아가 있는 것이 었다. 제갈금의는 순간 깊은 경모의 느낌과 함께 정신이 멍해지는 것을 느끼며 급히 다시물었다. [대,대체 그 비도술은 어떤 것이길래 그토록 빠른 것이죠?] 실상 조금전의 것은 제갈류량이 가장 느리게 펼쳐진 것 이라는 사실을 그녀는 모 르고 있었다. 제갈류량은 비도를 갈무리하고 나서 웃으며 대답했다. [네가 이해할지 모르지만, 본가의 비도파천황은 마음으로 다루는 것이다.즉 처 음 발출할 때는 느리지만 갈수록 속도가 더해지는 것이며 ,게다가 그것은 단순 한 듯 하지만 무수한 변화를 내포하면서 또한 완벽하게 조절되는 것이다.따라 서 사람들은 이 비도 하나 만을 보는 것이지만 기실은, 보다 근본인 마음을 보아야 하는 것이다.금의야,이제 이해가 되느냐?] 제갈금의는 대번에 머리가 복잡해지는 것을 느끼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는 ...... 전혀 모르겠어요.] 제갈류량은 이번에는 제갈보중 등을 바라보았다. 제갈보중등은 역시 안색이 흥분으로 약간 상기된 채 할말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런데, 느닷없이 제갈신중이 입을 열어서 이렇게 물었다. [하지만 그 속도는 기세에 있고 또한 기세는 힘에 따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만일 힘에 의한다면 어떻게 그 정묘한 변화가 이루어지겠습니까?] 제갈신중의 말을 듣자 일순 제갈보중과 제갈덕중의 표정이 표하게 변했고 이어 제갈금의는 폭소를 터뜨렸다. [호호호! 둘째오빠,또 그런 엉뚱한 소리를 하시는 군요.하지만 무공이라는 것 은 그렇게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예요.아버지께서는 이미 그러한 경지에 올라 계시니까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이지,우리들은 그런 이치를 설령 이해한다고 해도 소용이 없는 거예요.] 제갈덕중도 그 틈에 웃으며 한마디를 했다. [둘째형님의 그 낭만적인 취미는 여전하시군요?] 제갈덕중이 말한 낭만적이라는 말은 바로 쓸데없는 공상이라는 비아냥거리는 의미였다. 제갈신중은 그만 얼굴이 붉어졌으며 자신이 쓸데없이 질문한 것을 후회하는 심 정이 되었다. 하지만 제갈류량은 담담히 웃으며 대답해 주었다. [속도는 기세에 있고 또한 기세는 힘에 따른다는 것은 틀리지않으나 그러한 힘 역시 마음에 따른다.마음에 의하여 힘을 움직이고 기세는 따른 속도를 완 전하게 조절할 수 있다면 능히 정묘한 변화를 일으킬수도 있는 것이다.물론 그 마음이라는 것은 무학의 깊은 오의에 대한 깨달음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지.] 제갈신중은 그 말을 듣고나자 다시 의문이 생겨났지만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렇다면 그 마음은 없던 것이 새로 생겨난다는 말인가?] 제갈류량은 이번에는 제갈덕중을 향해 물었다. [너는 보아하니 현허도법을 연마하고 있는 모양이로구나.그래,쉽지는 않겠지?] 본래 제갈세가에는 검법이 주류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뛰어난 도법이 드물었 다. 이 현허도법은 바로 그러한 도법들 가운데에서 최고로 꼽히는 것이며 제갈세 가의 십일대절학 가운데의 하나였다. 제갈덕중은 가주가 자신의 무공을 한눈에 알아보자 내심 놀라면서도 급히 공손히 대답했다. [예.소질의 능력이 부족하여 아직 기초를 배우고 있는 중입니다.] 제갈류량은 미소하며 다시 말했다. [본래 그 도법은 다른 도법들과는 달리 변화가 심한 것이다.현허라는 두 글자는 바로 거기에서 나온 것이지그러나 기실 그러한 특색은 일단 절정경지에 오르 고 난 이후에 배울수가 있는 것이다. 즉 , 너는 지금도 도는 맹호와 같은 기상이 있어야 한다는 상식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제갈덕중은 그 얘기를 듣자 안색이 다소 굳어졌다. 기실 그는 현허도법의 그 심오한 변화에 매력을 느껴서 배우기 시작했고 따라 서그 변화에 치중하고 있었던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제갈류량은 이어 미소하며 모두에게 말했다. [자,그럼이만 본가로 돌아가서 너희들의 작은 할아버님을 뵙도록 하자꾸나!] * * * 제갈류량이 먼저 앞장서서 나아가기시작하자 일행은 일제히 신법을 펼쳐서 그 뒤 를 따랐고, 어어 그들은 오죽림의 앞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 오죽림의 앞에는 이미 백발의 노옹인 철적선생 제갈고헌이 여러명의 다른 노인들과 함께 마중나와 있었다. [가주님,돌아오셨군요!] 오척 여섯치의 키에 마치 탈속한듯한 느낌을 주는 제갈고헌은 별호 그대로 손 에는 하나의 피리를 들고 있었다. 기실 제갈고헌은 제갈세가에서도 매우 드문 암기의 명인으로서,그 피리의 내 부에는 은하침통이라고하는, 제갈세가의 유명한 절기가 숨어져 있는 것이었다. 현재 칠십세의 제갈고헌은 바로 제갈류신의 부친이었으나,먼저 가주인 제갈류 량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간 얼마나 노고가 많으셨습니까 숙부님! 이렇게 늦게서야 다시 인사를 드 리게 된 것은 죄송스럽습니다.] 제갈류량이 두 손을 잡고 그처럼 말하자 제갈고헌을 담담하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오 가주.고생을 하고 있는 것은 오히려 가주가 더할 것이오.게다가 이늙 은이가 뭔가 도움이 될 수가 있다면 무엇을 더 바라겠소?] 뒤를 이어 주위에서있던 노인들도 일제히 제갈류량을 향해 공손히 인사를 올 렸다. [가주님을 뵙습니다!] 그들은 비록 제갈세가의 정식인원들을 아니지만, 그러나 이 부근에서 살아가 는 원로들과도 같은 사람들이었다. 당금에 있어서 제갈류량은 제갈세가에서 배출한 영웅이라고 할 수가 있었으므 로 제갈류량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에는 흠모의 빛이 가득했다. 제갈류량은 그들을 향해서도 정중하게 포권하며 답례했다. [여러분들께서도 그간 편안하셨습니다?] 그러헤 서로간의 인사가 대강 끝나자 제갈고헌은 철적을 허리춤에 꼭고서 제 갈류량 등을 안으로 이끌었다. [자,가주!지금 안에 조촐한 연석을 마련해 놓았으니 우선 안으로 들어가도록 하시게.] 제갈류량은 마다하지 않고 인도하는 대로 안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이 부근에 거대한 숲을 이루고 있는 오죽림의 대나무들은 아주 오래 묵은 것 들이었다. 비록 굵게 자라지는 않았으나,그 가늘고 단단하며 검은 윤기가 흐르는 대나무 는 칼로 후려쳐도 쉽게 잘라지지 않을 정도로 강하다고 한다. 제갈세가로 들어가는 소롯길은 그 대나무들의 사이로 아주 복잡하게 나 있었 다. 기실 이 부근에는 대주천수목환상진이라고하는 기이한 진법이 펼쳐져 있어서, 만일 그 진세를 모두 발동시킨다면 나는 새 한 마리도 통과할수 없을 뿐만 아 니라,진법이 개방되어 있는 지금에도 일반사람들은 안내자가 있어야만 안으로 들어갈 수가 있는 것이었다. 만일 그러한 것을 무시하고 자신의 목숨을 운에 맡기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대주천환상이라는 것에 걸려서, 죽을 때까지 진법속에서 헤매게 되어 있는 것이었다. 잠시동안 복잡하기 짝이없는 길을 돌고 돌아서 나아가자 이윽고,제법 웅장한 건물들이 가득 들어서 있는 넓은 분지가 눈에 들어왔다. 그 분지는 물론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물론 이곳에도 오죽들은 곳곳에서 자라고 있고 모든 건물들이 또다른 진법에 따라서 형성되어 있었지만, 외부에서는 일체 이곳을 볼 수가 없게 되어 있었다. 이곳이 바로 제갈세가의 진정한 중심부였다. 건물들은 아주 오래된 웅장한 석조전각들에서부터 이제 지어놓은 얼마되지 않은 초옥 등에 이르기까지, 천강북두팔괘대진이라고 하는 진법에 의해 정밀하게 설계되어 있는 것이었다. 이 천강북두팔괘대진의 중심인 북두성에 해당되는 것이 바로 오죽거라는 것이 었다. 오죽거는 진법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으며,그러나 그다지 화려하지 않은 모 습이었다. 그것은 석조건물과 대나무건물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서 겉으 로 보기에는 대나무조각으로 보이나 정말로 운치가 있고 견고한 건물이었다. 대개의 경우 다른 전각에서 연회가 다련되는 것이나 오늘은 바로 그곳 오죽거 의 대청에서 연석이 마련되어 있었다. 철적선생 제갈고헌은 매우 엄격한 사람이어서 제갈류량이 없는 동안은 결코 오죽거를 사용하지 못하게 함으로 써 분수를 철저하게 지켜왔었다. 이제 가주가 돌아오자 그의 거처인 오죽거를 말끔하게 치워놓아서 연회장으로 사용하게 한 것이었다. 이 제갈세가는 자급자족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오죽림의 내부 에도 수백명의 적지않은 사람들이 활동하고있었다. 으례 그러듯이 그들의 행동은 항상 조심스러웠고 절제되어 있었으며 의복은 검소하여 자연스러운 소박함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이었다. 일행이 안으로 들어가자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두 줄로 서서 가주의 귀가를 환영하였지만, 그러나 대다수의 많은 사람들은 저마다의 자리를 지키고있었다. 그것은 물론 제갈고헌의 특유한 사고방식과 행동기준을 여실하게 보여주는 것 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제갈류량의 표정은 그러한 모든 것들을 보면서 항상 여유스러웠고 또한 시선 에는 자애로움이 넘치고 있었다. 그는 비록 십년이 가까운 세월동안 집을 비우고 있었으나 모든 사람들의 이목 은 그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마치 해가 뜨면 모든 빛들이 자취를 감추는 것처럼 그는 천생적으로 지니고 있는 기질로서 금방 가주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었다. 제갈류량이 가장 먼저 들른 곳은 바로 가문의 사당이었다. 제갈류량이 다른 목적으로 돌아왔다고 해도 역시 그는 가장 먼저 그곳에 들렀 어야만 했을 것이었다. 비록 제갈신중은 새로 귀가한 사람이었지만 사당이 넓지 않았기 때문에 제갈 류량이 당주들과 함께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다. 제갈류량은 사당에 들어가서 상당히 오랜시간 오랜시간을 보냈다. -신기제갈 제갈류량. 그는 그곳에 오래 머물면서 별호처럼 또다시 천하를 경동시킬 준비를 하고 있 는 것이 아닐까? 가주의 그러한 행사는 제갈세가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키지 않을 수 가 없었다. 거의 한시진 가량이나 사당에서 머물던 제갈류량은 드디어 해시 무렵에 사당 에서 나와 오죽거로 들어섰다. 그때까지 가주를 기다리던 사람들은 환한 미소와 함게 가주를 맞이했다. 만일 가주의부인이 아직 살아있었다면 제갈류량은 그토록 오랫동안 사당에서 머물지 않았었을 것이다. 본래 제갈류량의 부인이었던 문인씨는 아주 현숙하고 지혜로운 사람이었다. 두 사람의 금슬은 워낙에 좋아서 과거에는 제갈류량이 영웅맹주가 된 이후에도 최소한 한달마다 한 번씩은 집에 다녀가곤 했었다. 부인인 문인씨가 평소에 몸이 허약했고 그래서인지 집을 떠나서 맹주부에 머 무는 것을 극히 싫어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중에 갑자기 잠을 자는 듯이 숨을 거두게 되자 제갈류량은 갑자기 세 가에 발길을 뚝 끊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삼년 전의 일이었다. 세가의 사람들 가운데 과거의 부인인 문인씨의 자애로운 성품을 기억하고있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들은 가주를 다시 대하게 되자 내심으로 눈물을 삼키고 있 었다. 제갈류량이 자리하자 그제서야 세가내의 모든 사람들이 일일이 앞으로 나서서 인사를 올리기 시작했다. 제갈고헌이나 원로들과 오당주등에게 둘러 싸여서 미소를 짓고 있는 제갈유량 의 표정은 겉으로는 매우 쾌활한 듯이 보였다. 비록 과거의 부인의 기억이 떠오르기는 해도 지금 이 제갈세가가 낳은 일세의 영웅을 대하는 사람들의 가슴은 매우 흥분되어 있었다. 연회석은 이후로 매우 편안하고도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어 갔다. 제갈류량은 확실히 많은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일종의 매력이 있었다. 그는 시종일관 거의 말을 하지않으면서도 연석을 이끌었는데,비록 사소한 얘 기들을 주고 받을 지라도 많은 사람들이 시선을 집중하고 열중하게 하는 것이 었다.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연회석은 자정무렵이 되어서 끝이 났고,대부분의 원로 들이 물러갔으며 제갈류량도 단독면담을 하기 위해 제갈고헌과 함께 지하밀실 로 사라졌다. 제갈세가는 오랜만에 가주를 맞이하여 편안하고도 안온한 분위기 속에 취해 있는 것 같았다. 대청에는 이제 미처 회포를 풀지 못한 제갈신중 등의 직계가족과 오당주등만 이 남았다. 화덕의 불로 인해서 은은한 열기가 감도는 대청의 곳곳에는 붉은 촛불 들이 타오르며 빛을 발하고 있었고 모처럼 조용한 분위기가 되었다. 제갈덕중이 문득 조심럽게 분위기를 살피며 자신의 부친인 제갈류신에게 다가 가서 정식으로 인사를 올렸다. [아버지, 그간 편안하셨습니까?] 제갈류신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너는 요사이 무공이나 글공부에 게을리하고 있지는 않겠지?] 제갈덕중은 무릅을 꿇은 채로 대답했다. [열심히 하려고 하지만 뜻대로 잘되지 않는 것 같아요.] 제갈류신은 미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의 일이란 으례 그와 같은 것이다.] 제갈덕중은 고개를 들며질문했다. [헌데 이번에는 얼마정도 머물다가 돌아가실 것입니까?] 제갈류신은 잠시 생각해 보는 듯 하다가 대답했다. [앞으로 영웅대회가 얼마남지 않았으니 그다지 오래 머물지는 못할 것이다.] ....... 제갈류신의 부자가 그렇게 나직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문득 제갈보중과 제갈금의가 제갈의중에게 다가갔다. 왠지 제갈의중은 아까부터 거의 말이 없었고 안색도 우울해 보이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그것이 혹시 돌아가신 모친의 생각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으나 그런 것 같지나 않았다. 제갈보중이 다가가서 먼저 입을 열어 물었다. [큰형,그래 영웅맹의 맹주부에서 사는 재미가 어떻소?] 제갈류량은 삼년 전에 부인을 잃고 난 이후에 자신의 큰아들인 제갈의중을 맹 으로 데려갔었다. 제갈의중은 잠시 뭔가 깊이 생각하고 있다가 제갈보중과 제갈금의를 돌아보며 빙그레 미소를 보였다. [아,너희들이구나. 그래,모두들 잘 지냈겠지?] 제갈금의가 별빛같은 눈으로 깜찍하게 웃으며 그의손을 잡았다. [우리야 그렇고 그렇지만 대체 맹주부에서의 생활이 어땠냐니까요?] 제갈의중은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 [나의 생활은 너희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리 좋지는 못하다.] 제갈금의가 다시 물었다. [왜, 무슨 다른 고민이라도있나요? 혹시 여자친구라도 사귄 것이 아닌가요?] 제갈의중은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항상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무슨 여자친구를 사귈 여가가 있겠느냐? 그리고 영웅맹에는 여자들이란 거의 없다.] 제갈금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럼 내가 나의친구들을 한 번 소개해볼까요?] 제갈의중은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내가 이미 노총각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그러나 지금은 그런 것을 생각할 시기는 아니야.보다 중요한 일이 있지.] 제갈보중이 즉시 다시물었다. [아버님께 관한 일인가요?] 사람들은 이미 제갈의중이 항상 대국적인 견지에서 생각하기를 좋아한다는 것 을 알고 있었다. 제갈의중은 심각한 표정이 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렇다. 보중아,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제갈의중과 제갈보중은 네 살이나 차이가 나지만 제갈의중이 격의없이 대했기 때문에 친구사이와 같았다. 제갈보중은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나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오.혹시 큰형은 다른 걱정이 있는 것이 아 니오?] 제갈의중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 역시 아버님께서 연임하시려고 하는 데에는 반대하지 않는다.만일 능력이 있담녀 그것을 천하를 위해 사용하는 것이 좋을 것이기 때문이지.사실 우리가 이렇게 열심히 무공을 닦는 이유도 모두가 그와 같은 협의도를 실행하기 위함 이 아니겠느냐?] (......?) 제갈보중은 다시 물었다. [그럼 큰형은 대체 무엇을 그리 걱정스럽다는 것이오?] 제갈의중은 잠시 생각하는 듯 하다가 신중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내가 우려하는 것은 근래들어서 아버님의 생각이 갑자기 바뀌었기 때문이다. 요사이의 동심교의 동태도 심상치 않고......나는 혹시 삼년 전에 어머니께서 돌 아가신 일이 아버님을 지나치게 상심시켜드린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고 있 다.] 제갈보중은 묵묵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러니까,말하자면 아버님께서 걱정된다는 말이군요.] 제갈의중은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렇다.확실히 아버님께서는 삼년 전에 어머님이 돌아가신 이후에 많이 변하셨지.비록 천하의 대사를 다스리느라고 그러셨다고는 하지만 갑자기 본가 에 발길을 끊으신 것도 그렇고......나는 혹시 무슨 절망적인 슬픔이 아버님을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 [과거 우리 어머님과 아버님의 금슬은 그야말로 더할 나위가 없는 것이었지.항 상 아버님께서는 만사를 젖혀두고서 본가로 달려오시곤 하셨으니까.나는 그래 서 얼마전부터 아버님께 재취를 하실 것을 권유해 보았는데,아버님께서는 막 무가내셨다.] (......) 제갈보중은 묵묵히 듣고 있다가 이윽고 말을 받았다. [그러니까 결국은 아버님께서 지나치게 한쪽으로 치우치셔서 모든 것들을 돌 아보시지않는다는 것입니까?] 제갈의중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바로 그렇게 될까봐 염려하고 있는 것이다.] 제갈보중은 그 말에문득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전부터 큰형님이 항상 다른 사람들을 위해 애쓰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 만,그러나요 몇 년 사이에 형님께서는 더욱 소심해 지신 듯 합니다.] 제갈의중은 일순 깜작 놀라며 물었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리냐?] 제갈보중은 웃으며 말했다. [큰형님은 현재의 우리 아버님을 어떻게 보십니까?과연 형님이 나중에 그 분 처럼 될 수가 있다고 생각합니까?] 제갈의중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버님의 재능은 워낙 군계일학적인 것이어서 나는 아무리 해도 결코 따라가 지 못할 것이다.] 제갈보중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 [바로 그것 보십시오.우리 아버님의 재능은 자타가 공인하는 것입니다.신기제 갈이라는 별호가 붙은 것은 바로 그분의 식견과 도량이 그 만큼 높은 것이라 는 의미입니다.형님께서는 과연 그분의 내심을 추측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것입니까?] (......) 제갈의중은 잠시 망연한 표정이 되어 말없이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어 그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래.나는 여태 아버님을 지나치게염려하고 있었던 것 같애.] 제갈금의가 웃으며 끼어들었다. [그것 좀 봐요.큰오빠는 항상 그렇게 지나치게 걱정이 많다니까.모든 사람들이 좋아하고 있는데 혼자서만 시무룩해 있다니......이제그만 그 얼굴좀 펴요.내 가 좋은 신부감을 소개해 주도록 할 께요!] 제갈의중은 멍한 상태에서 깨어나며 손을 가로저었다. [아냐,아냐. 나는 신부감만은 사양하겠다.] 제갈금의는 눈을 크게 뜨고 쌍심지를 세웠다. [아니 또 저모양이라니까.비록 큰오빠가 아버님을 따라가려는 것은 알지만 일 단은 혼인을 해야 자식도 볼 것이 아닌가요?큰오빠는 바로 우리 제갈세가의 장손이라는 것을 명심해야만 해요.] [......] 제갈의중은 잠시 묵묵히 앉아 있었다. 제갈금의가 은근한 어조로 다시 물었다. [큰오빠! 내가 이번에 정말로 제 친구들을 소개시켜 줄까요?비록 그녀들이 아 무리 천하절색들이라고 해도 무림육영의 첫 번째인 큰 오빠를 감히 마다할 수 는 없을 거예요.] 제갈의중은 다시고개를 저었다. [아니야.나는 지금 아무래도 그럴 기분이 아니냐.] 제갈금의는 그말에 못마따한지 입술을 삐쭉였으며 내심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흥! 큰오빠가 그런다고 내가 가만히 있을 줄 알아?중이 제머리를 못깎는다고, 이번에 내가좋은 신부감을 구해주면 큰오빠는 좋아서 입이 얼마나 벌어지게 될까?......) 제갈금의가 그와 같은 생각에 잠겨있는 동안에 제갈의중은 몸을 일으켜서 구 석진 자리에 앉아서 쓸쓸한 모습을 보이고 이는 제갈신중에게 다가갔다. [그간 잘 있었는가?] 어깨를 가볍게 치며 다가와 않는 제갈의중의 말에 제갈신중은 담담한 표정이 되어 대답했다. [나는 그저 그렇게 지냈소.] (......) 제갈의중은 잠시 제갈신중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이윽고 한숨과 함께 다시 말 문을 열었다. [네가 그동안 강호를 떠돌아 다녔다는 얘기를 듣고 있었다.보아하니 너의 무공 에는 역시 별다른 진전이 없는 모양이구나?] 제갈신중은 자조섞인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알고 있었구려?] 제 11 장. 미리 예상했던 사태. 제갈의중은 탁자위에 있는 술병과 술잔 두 개를 들어서 술잔위에 술을 따르더 니 하나를 제갈신중에게 건네주고, 다른 하나를 들고 조금씩 마시면서 말을 이었다. [사실 말이지,너는 과거에는 이와같지 않았었지. 오히려 너는 어려서 생각하는 바가 비범하여 나는 항상 네가 아버님의 대를 이어줄 것이라고 생각하곤 했었 다.] (......) 제갈신중은 받아든 술잔 속의 술을 조금 들이마시며 대꾸했다. [과거의 일을 다시 얘기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소?] 제갈의중은 이에 술잔을 내려놓더니 오른손으로 제갈신중의 왼손을 잡으며 힘 있게 말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나만은 아직 너에 대한 기대를 잃지 않고 있단 다.왠지 아느냐?] 제갈신중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대꾸했다. [그건 무엇 때문이오?] 제갈의중은 대답했다. [나는 이른바 대자연의 순리를 믿기 때문이지.말하자면 난세에는 영웅들이 나 타나게 되어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난 네게 희망을 걸고 있다.] (......?) 제갈신중은 제갈의중의 눈빛이 의외로 진지하다는 것을 알고 되물었다. [그럼 우리 아버님께 앞으로 무슨일이라도 생긴다는 말이오?] 제갈의중은 길게 숨을 들이쉬고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내뱉았다. [아지 확실한 것 은 아니지만 그것은 나의 육감이다.게다가 정말로 당금의 천 하의 흐름 역시 심상치 않고......잘은 모르지만,동심교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 한 것 같다. 이번 영웅대회에는 무슨일이 벌어질 지도 모르는 일이지.] -동심교. 그것은 바로 천하 사파인들의 집합체이다. 그러나, 기실 그러한 말은 겉모양에 불과하고 그 정체는 과거 사십년의 전의 마겁과 연관이 되어 있었다. -현현사! 가히 미증유의 대마겁이라고 불리우기까지하는 그 이름을 아직 잊고 있는 사 람은 거의 없었다. 당시에 천하무림은 지극히 쇠락해졌었고 그로 인해서 영웅맹은 탄생하게 되었 다. 하지만, 당시에 그 마겁을 평정했던 사람은 이미 죽고 없다는 사실이었다. 말하자면 동심교는 바로 현현사의 후신인 것이다. [설마하니 그 현현괴로가 다시 나타날 리는 없겠죠?] 제갈신중의 질문에 제갈의중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이론상으로는 불가능하지만,그러나 천륭무가의 가주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 는 것처럼 그 현현사의 주인 역시 계속해서 이어지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지.] 이 천륭무가나 현현사는 지난 천년동안 강호에 나타났던 미증유의 최강의 세 력들이라고 불리우는 세외팔세 가운데의 문파들이었다. 천륭무가는 천년전에 등장했었고 현현사는 가장 최근에 등장했지만 하나같이 상상을 불허하는 가공할 능력을 지닌 문파들이라는 것이었다. 기실 사십년 전에 현현사의 대마겁을 제지시키고 현현괴로를 죽인 사람은 천 륭무가의 가주라고 했었다. 하지만 그 천륭무가의 가주라는 사람은 현현괴로를 제거한 이후에 죽었다. 당시에 그의 죽음을 목격한 사람들이 많으니 그것은 도저히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제갈신중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하지만 만일 그 제이대의 현현괴로가 나타나서 아버님께서 패하신다면 우리 들 역시 상대가 안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제갈의중은 한숨과 함께 말했다. [우리로서는 만사가 평화롭게 풀려가기를 바라는 도리밖에 없지.하지만 그 동 심교는 제이대의 현현괴로를 기다리고 있는 문파인데, 요사이 그들이 심심치 않게 준동하고 있다는 것은 바로 혹시 제이대의 현현괴로의 등장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된다.] 제갈신중은 다시 물었다. [그럼 혹시 천륭무가를 한 번 찾아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제갈의중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천륭무가는 곤륜산에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곳의 위치를 모르기 때문은 아니 야.사람들은 그래봐야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제갈신중은 웃으며 다시 말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에게 어떤 기대를 해본다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 아닌가 합니다.우선 무공이라는 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않습니까?오 히려 형님이나 보중에게 기대를 거는 것이 현명하겠죠.] (......) 제갈의중은 이에 하는 수 없이 수긍을 하는지 한숨을 내쉬며 술잔을 다시 집 어들었다. [이제 너는 어떻게 할 작정이냐?] 제갈신중은 술잔을 내려놓으며 대답했다. [난는 뭐 어디에서 반기는 사람이 없으니,다시 노잣돈이나 챙겨서 길을 떠나볼 생각입니다.] 제갈의중은 다시 물었다. [너는 혹시 혼인을 하고 싶은 생각이 없느냐?] 제갈신중은 웃으며 대꾸했다. [혼인이라면 저보다 형님이 더 급한 것이 아니겠소?] 제갈의중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곰곰히 생각해본 결과,네가 방황하는 것은 혹시 환경의 문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따라서 만일 네가 혼인을 하게 된다면 사정이 달라지게 될 지도 모르는 일이지.] 제갈신중은 웃으며 물었다. [그럼 나더러 형님보다 먼저 장가를 가라는 말이오?] 제갈의중은 술을 한모금 마신 뒤에 다시 한숨을 불어쉬었다. [상황이 그렇다면 네가 먼저 장가를 갈 수도 있는 일이다.나는 왠지 지금으로 서는 혼인문제를 생각하고 싶지는 않구나.음......솔직히 우리 작은 할아버지 는 다소 완고하신 편이어서 네가 불편할 것이다.그렇지않느냐?] 제갈신중은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작은 할아버지께서 그런 면모가 있는 것은 틀림이 없지만, 그러나 그것이 나 의 문제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오.] 제갈의중은 그말에 잠시 정색을 하고 제갈신중을 바라보다가 다시 말했다. [그렇다면 앞으로 최소한 삼년간은 본가를 떠나지 말아다오. 이건 나의 부탁이 다.] 제갈신중은 물었다. [예감이 좋지 않기 때문이오?] 제갈의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그러니 너는 삼년간만 여행을 떠나는 것을 보류해주었으면 좋겠다. 물론 네가 일정을 정하고 나서 강호를 돌아다닌는 것은 상관없는 일이다.] 제갈신중은 웃으며 말했다. [형님의 말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사실은 일단 얼마간은 본가에 머물면 서 쉬려고 생각하던 참이었소.] 제갈의중은 술잔을 내려놓고 두손으로 제갈신중의 손을 잡아왔다. [고맙다!] ...... 아직 제갈류량에게 인사를 올리지못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아직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있었다. 제갈의중은 그렇게 대화를 나눈 뒤에 다시 제갈보중등이 모여있는 자리로 돌 아갔다. 거기에는 마침 한가지의 흥미로운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천왕권 황보대연. 그는 영웅맹의 인당주로서 말하자면 맹주인 제갈류량의 경호임무를 맡고 있는 사람이었다. 현재 영웅맹의 단주이하는 비무에 의해 선출한 것이었지만 이 다섯명의 당주 들은 제갈류량이 정중히 초빙한 것이라고한다. 그만큼 그들의 무학의 최고경지에 올라있는 상태였고,또한 맹주와는 친구사이 라고 할 수가 있었다. 황보대연은 본래 제갈류량을 따라서 지하밀실로 들어갔어야 했지만,맹주인 제 갈류량이 만류하여 이곳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예상외로 제갈류량과 제갈고헌의 면담시간은 길어지고 있었다. 오당주들은 그럼에도 한쪽에서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는데, 문득 제갈보중등이 달려든 것이었다. [뭐라고,한수 보여달라고?] 그렇지 않아도 약간 무료한 기분을 느끼고 있던 황보대연은 제갈금의의 제안 을 듣고는 큰소리로 웃으며 대꾸했다. 제갈금의는 그렇지 않아도 조심스러웠었는데,그가 그처럼 큰소리로 말하는 것 을 보고 안색이 붉어지고 말았다. 본래 강호상에서 한 수 보여달라고 하는 것은 비무를 신청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나이어린 제갈금의가 영웅맹의 인당주인 황보대연에게 비무를 신청하고 있을 리가 없었다. 제갈금의는 기실 정말로 한 수 보여주기를 희망하고 있는 것이었다. 황보대연은 현대 나이 마흔다섯이고 호인형의 성품에 준수한 외모를 지니고있 었다. 특히 기이한 점은 황보세가 대대로 이어지는 특징인 그의 오른주먹이 유난히 크다는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강호상의 중년인들은 기력이 가장 충만되는 시기라고 할 수가 있 으므로 일반사람들과는 달랐다. 게다가, 서로 크기가 다른 두주먹 때문에 제갈금의는 그에게 가장 호기심이 동한 것이 었다. 오당주에서 그의 무학이 가장 강한 것이 아님은 물론이었다. 제갈덕중이 겸연쩍어하는 제갈금의의 입장을 생각하여 포권하며 황보대연에게 다시 부탁을 올렸다. [후배들은 항상 선배님들을 본받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번 기회에 저희들 의 안계를 넓혀주신다면 커다란 영광이겠습니다.] 황보대연은 이번에는 제갈덕중에게 시선을 돌리며물었다. [그럼 자네가 나와 한판 겨뤄 보겠다는 말인가?] 제갈덕중은 놀라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아닙니다.저희들은 정말로 선배님께서 한수 보여주실 것을 바라고 있는 것 입니다.] 황보대연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지만 그런 것이라면 자네의 가주님께 부탁하는 것이 나을텐데! 그리고 아 까도 보지 않았는가?] 제갈덕중은 시뻘개진 얼굴로 더듬더듬 대답했다. [물론 그렇지만, 저희들로서는 가주님을 한 번 뵙는 것도 어려울 지경입니다. 선배님께서 모처럼 한가하신 듯 하니 한수만 보여주십사 하는 것입니다.] 황보대연은 순간 어이없다는 듯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핫핫,내가 지금 한가하다고? 류신! 자네 아들을 그렇게 가르쳤나?] 제갈류신은 옆에서 듣고 있다고 웃으며 대꾸했다. [내가 아들을 잘 가르치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네까지 인색해지라는 보자은 없는 것이 아닌가?왠만하면 그들에게 한수 보여주는 것이 어떤가? 젊 은 사람들의 기세는 꺽지는 것이라네.] 황보대연은 그말에 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돌려 정색을 하고 제갈보중에게 말했다. [하지만 나의 무공은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서 별로 재미가 없을 테니 알 아서하게!] 제갈보중은 즉시 포권하며 대답했다. [만일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아직 여지가 있는 것일 것입니다.선배님 게서 한수 보여주시기만 하신다면 저희들로서는 그저 영광일뿐입니다.] 황보대연은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누가 제갈세가의 사람이 아니라고 할까봐 입만 살아있군 그래.하지만 진짜 실 력도 제법인지 한 번 봐야 하겠는걸?] 황보대연은 말과 함께 오른주먹을 불숙 내밀었다. 그것을 본 제갈류신이 놀라서 소리치며 달려들었다. [나의 조카를 상하게 하지 말게!] 하지만 시간적으로 다소 늦은 감이 있었다. 황보대연은 기실 말을 하는 도중에 암암리에 공력을 끌어올리고 있다가 이미 슬쩍 발출한 것이다. 그의 별호가 천왕권이었다. 그것은 그가 천왕권이라는 절기에 능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의 성품까지 말 해주고 있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본래 어떤 상황이 불시에 닥치게 되면 무의식적인 행동을 하게 되어 있었다. 제갈보중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조금전에 황보대연과 얘기를 나누면서 권법에 대해서 생각을 굴리고 있 었다. 그러다가 문득 자신에게 부드럽고 끈끈해 보이는 괴이한 권풍이 밀려드는 것 을 보고 자신도 역시 그런 무공을 발휘하게 되었다. 그것은 그의 판단을 넘어선 무의식적인 행동이었다. 물론 제갈보중의 특기는 결코 권법이 아니었으며 평소라면 결코 그와 같은 무 모한 승부는 하지 않았었을 것이었다. 퍽! 옆에서 듣기에는 그저 가벼운 음향이 들렸을 뿐이었다. 하지만 제갈류신이 달려들었을 때에는 상황은 급변하고 있었다. 왠일인지 제갈보중의 주먹이 황보대연의 그 커다란 주먹에 붙어서 안색이 크 게 창백해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게 무슨 짓인가?] 제갈류신의 놀란 말에도 불구하고 황보대연은 태연한 표정으로 제갈보중에게 이렇게 다시 물었다. [자네는 이제 어찌된 일인지 알겠는가?] [......!] 제갈보중은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는 지금 안간힘을 다해서 버티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황보대연은 그런 것을 아는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다시 말했다. [이것은 바로 유능제강,즉 부드러운 것이 굳센 것을 제압한다는 말이네,그러니 까......자네는 조금전에 자네 가문의 광표권으로 대항해 오지 않았나? 그것은 쉽게 말해서 강성의 일변도라고 할 수가 있지.따라서 나는 지금 자네의 권경 을 되받아치고 있는 중이네.] 제갈보중은 안색이 변하더니 한마디를 했다. [하지만 어찌하여......] 말을 하던 도중에 제갈보중은 무리했기 때문인지 입에서 왁! 하고 피를 토해 내고 말았다. 제갈보중의 안색은 더욱 창백해졌다. 그러나, 제갈류신은 이미 가르치려는 황보대연의 심사를 알았기 때문에 안색이 변했지 만 잠자코 있었다. 황보대연은 웃으며 대꾸했다. [자네는 이미 강유의 흐름을 알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겠지? 그것은 이미 황화 예의 경지에 오르는 순간에 터득한 것이라고...... 하지만 기실은 그것은 자네의 생각일 뿐이지 정말로 그렇게 되었던 것은 아니었네.] [......!] [그릇이 커졌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된 것은 아니네.게다가 자네가 사량발천 근 등의 수법을 알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체득되었다는 것은 아니네.말하자면 최절정의 경지는 그렇게 몸으로 익혀가는 과정이지.] ...... [자네가 펼쳤던 광표권도 기실은 잘못된 것이었네.그것은 현묘하고 부드러운 기운을 강렬하게 펼쳐내는 것이지 결코 유리조각같은 것은 아니네.그것은 자 네의 마음에 달려있네.자네는 지금어린 나이에 촉망받는 사람이 되어있네.하지 만 내가 보기에는 자네는 너무 강해.즉 진정으로 강하려면 마음이 부드러운 줄도 알아야만 한다는 것이네.] 여기까지 말을 마치자 황보대연은 그만 손을 거두었다. 따라서, 제갈보중은 뒤로 비척거리며 두어걸음 물러나더니 이내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운기조식을 하지 시작했다. 제갈신중은 여전히 한쪽 구석에 앉아 있었는데 문득 사량발천근등의 얘기를 듣고는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게 되었다. 황보대연은 제갈금의 등의 표정이 약간 험해져 있는 것을 보고는 웃으며 다시 이렇게 말했다. [너는 정말로 나의 천왕삼권을 보고 싶으냐?] 제갈금의는 한창 열심히 운기조식을하여 안색이 천천히 되돌아오고 있는 제갈 보중을 바라보며 대꾸했다. [선배니의 천왕삼권은 그렇게 값이 비싼데 제가 어떻게 볼 수가 있겠어요?] 황보대연은 퉁명스러운 제갈금의의 말을 듣고는 씁쓰레하니 웃으며 말했다. [네가 네 오라비가 다친 것을 보고 토라진 모양인데,기실 조금전의 경험을 두 고 말한다면 그는 오히려 나에게 고맙다고 절을 해야 할 것이다. 백번의 연습 보다 그런 한 번의 경험이 보다 실전에 중요하기 때문이다.그건 그렇게 네가 보고싶다면 어려울 것도 없다.] 말과 함께 황보대연은 아까의 그 오른주먹으로 이번에는 근처의 의자하나를 후려쳤다. 헌데 그는 허공을 격하고 그 나무의자를 후려친 것이었지만 왠지 그의 주먹에 서는 아무런 기운도 발출되지 않았다. ...... 제갈금의는 그것을 보고 의아해져서 물었다. [대체 어떻게 된거죠?] 황보대연은 뒤로 한걸음 물러서며 그녀를 향해 말했다. [네가 한 번 건드려 보겠느냐?] (......?) 제갈금의는 기이하게 생각되어 즉시 다가가서 그 나무의자를 손가락으로 건드 렸다. 순간 갑자기 그 나무의자가 와르르 무너지면서 나뭇가루만이 바닥에 수북하게 남는 것이 아닌가? [앗!] 제갈금의는 그만 경호성을 발하며 황보대연은 바라보았다. 기실 조금전에 황보대연이 주먹을 휘두르는 순간에 그 의자는 완전히 부서져 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이제야 드러난다는 자체가 기이한 일이었다. 황보대연은 미소하며 말했다. [이제야 알겠느냐? 내가 펼친 것은 천왕무형뢰라는 것인데,그것은 천왕삼권을 배우게 되면 터득하게 되는 것이다.남들은 그 천왕무형뢰가 강성 일변도일 것 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기실은 그 수법은 오히려 부드러움을 위주로 하는 것 이다.] (......) 제갈금의는 비록 그 안에 숨겨져있는 의미를 알 수가 없었으나 황보대연이 그 렇게 자상하게 가르쳐주자 내심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기실 강호들은 자신의 절기를 가르쳐주기는커녕 한 번 보여주기도 꺼려하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그만큼 황보대연이 제갈금의 등을 귀엽게 보고 있다는 의미였다 [지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갈금의가 그처럼 정식으로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자 황보대연은 미소하며 담담하게 대꾸했다. [나는 다만 네가 그 의자를 도로 물어내라고 하지 않는 것으로 만족할 뿐이 다.] 제갈금의는 자신의 상대의 뜻을 곡해했다는 것을 알고 얼굴에 홍조를 떠올렸 다. [그럴리가 있겠어요?저의 마음이 그렇지않다는 것을 이제 제가 한잔의 술을 따라 드림으로 해서 표하도록 하겠어요. 이어 제갈금의가 술잔에 술을 가득하게 따라서 올리자 황보대연은 그것을 받 아들고는 호쾌하게 웃었다. [핫핫, 이거 오늘 가르친 보람이 전혀 없지는 않구나!] 좌중의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문득 다함께 폭소를 터뜨렸다. 헌데 바로 그 순간에 밖에서 문이 열리며 한명의 백의인이 급히 안으로 들어 섰다. ......! 그 백의인의 어깨와 옷소매에는 세 마리의 흑룡이 수놓아져 있어서 그가 풍당 소속의 단주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했다. 영웅맹에서는 대개 의복에 수놓은 용의 숫자로 계급을 표시하는데, 최절정고수급인 당주는 네 마리의 용이고,절정고수인 단주는 세 마리의 용,그 리고 일류고수급인 향주는 두 마리의 용이며,이류고수인 전사는 한 마리의 용, 마지막으로 가장 숫자가 많은 삼류고수급인 위사들은 아무것도 새겨져 있지 않은 백의를 걸치고 있었다. 지금 제갈의중이 백의를 걸치고 있는 것은 그가 스스로 겸손하게 행동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기 때문이었다. 느닷없이 대청안에 풍당소속의 단주가 뛰어들자 오당의 당주들은 일순 놀라는 표정들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무슨 다급한 일이 아니라면 누구라도 들어오지 못하게 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풍당은 바로 정보부서로서 강호의 정보를 관리하고 있는 곳이기에 더욱 시사함 이 크다고 할 수가 있었다. 혹시 강호상에 무슨 특별한 일이라고 벌어진 것일까? 제갈류신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그 단주를 불렀다. [무슨 일인가?] [......] 백의인은 묵묵히 가만히 서 있었다. 하지만 기실은 그가 지금 전음입밀의 수법으로 제갈류신에게 보고를 올리고 있는 것이었다. [뭐라고?] 갑자기 제갈류신의 안색이 크게 다라졌다. 제갈보중등은 그가 무슨 대단한 얘기를 들었다는 것을 파악 할 수가 있었다. 제갈류신은 바로 영웅맹의 풍당 당주이므로 중원천하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일들은 그의 시야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봐야 한다. [알겠다.] 백의인이 물러가고 나서 제갈류신이 역시 전음으로 말한 듯이 다른 사당주의 안색도 똑같이 크게 변했다. 황보대연이 말했다. [내가 안으로 들어가서 보고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제갈류신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 일은 시각을 다투는 중대한 일이니 모두 함께 들어가서 뵙는 것이 좋겠 소.] 실상 황보대연은 제갈세가의 그 복잡한 기관장치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좋아.] 그의 말이 끝나는 순간,그를 비롯한 다섯명의 오당주들이 거의 동시에 대청의 뒷문으로 사라졌다. 바로 그 쪽에 지하밀실로 통하는 기관장치가 있는 것이었다. * * * 제갈보중은 제법 오랫동안 운기조식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내상을 완전히 치 료하고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가 깨어났을 때에는 이미 상당한 격변이 휘몰아쳐간 상태였다. 아까 오당주가 지하밀실로 제갈류량을 만나러 간 이후에 그들은 갑자기 그대 로 떠나버렸다. 그리고, 제갈류량 역시 좀더 밀실에 머물면서 제갈고헌과 밀담을 나눈 이후에 급히 영 웅맹으로 뒤따라 떠나버리고 말았다. 뒤에 남은 사람은 오직 제갈의중 하나였다. 그는 제갈류량이 떠나기전에 불러서 몇가지의 지시를 들었는데,이곳을 수습하 고 나중에 돌아가는 것이 그의 의무였다. 제갈고헌은 밖으로 나와서 일을 보기위해 사라지고,제갈의중은 이윽고 대청에 돌아와서 제갈보중 등을 불렀다. [무슨 일입니까, 형님!] 다급한 어조로 묻는 제갈보중의 말에 제갈의중은 우선 담담한 웃음부터 지어 보였다. [너무 그렇게 놀랄 필요는 없다.아버님께서는 나에게 그 얘기를 모두 들려주시 고가셨으니까. 음...... 삼대마세가 준동했다.] ......! 놀라지 말라는 제갈의중의 요구와는 달리 그말을 듣는 제갈보중 등의 안색은 일순 창백하게 굳어졌다. [그게 정말입니까, 형님?] 제갈보중의 질문에 제갈의중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했다. [그렇다,정말이다.] 제갈보중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하지만 어째서 놀라지 말라는 것입니까?] 제갈의중은 미소하며 대답했다. [왜냐하면 상황은 생각보다 가장 좋은 쪽으로 결말이 났기 때문이다.] 이때 옆에서 제갈신중이 물었다. [대체 그 삼대마세가 뭐길래 다른 그러헤 수선을 떠는 거지?] 제갈금의가 아주 답답하다는 듯히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둘째오빠는 아직 그것도 모르세요?삼대마세는 바로 이백년 전의 일월신교와 백년전의 태양마교, 그리고 사십년 전의 현현사를 말하는 것이 아닌가요!] 제갈신중은 일순 눈을 휘둥그래 떴다. [아니,세외팔세에 들어 있는 세 개의 마도문파를 말하는 것 이라는 말이냐? 하 지만 그긋들은 이미 세상에서 사라졌다고 하는 것이 아니냐? 사십년 전의 현 현사만 해도 그렇고.] 제갈의중이 미소하며 끼어들어 설명해 주었다. [현현사는 말하자면, 당금의 동심교를 말하는 것이다.과거에 일월신교는 가장 잔인했고, 태양마교는 가장 끔찍스러웠으며,현현사는 가장 공포스러웠다. 하지 만 이제 그 세 개의 문파가 강호상에 동시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제갈보중은 다시 물었다. [그럼 어째서 그것이 가장 좋은 상황이라는 말입니까?] 제갈의중은 웃으며 대답했다. [그 세외팔세는 이미 거의 단절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만일 그 세 개의 문파 가정말로 과거와 같은 힘들을 가지고 있다면 강호는 가장 잔인스럽고,고통스 러우며 공포스러운 날을 맞이하게 될것이다.하지만 과연 그러한 우연의 일치 가 생겨날수가 있을 까?] ...... [그 삼대마세가 과거와 같은 힘들을 똑같이 보유하고 나타났을리는 만무하다. 즉, 그들은 모두 가짜들일 것이기 때문에 강호는 고통과 암흑이 아닌 평화스 러운 세상이 지속된다는 말이다.] 제 12장. 난세속으로 가는 이유. 제갈의중은 다소 어리벙벙해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 [사실상 내가 가장 우려했던 바는 그 삼대마세 가운데 하나만 등장하는 경우 였다.작금과 같은 경우에 만일 동심교가 준동하기 시작한다면 그것은 바로 과 거의 현현사가 부활되었을 경우이다.만일 과거의 현현괴로가 정말로 부활하지 못했다면 어떻게 동심교 따위가 단독으로 본맹에 대할 수 있겠느냐?] 실로 그럴듯한 추리였다. 제갈보퉁은 생각을 굴리다가 다시 질문했다. [그렇다면 형님은 은근히 삼대마세가 함께 등장하기를 바랬다는 말씀이시오?] 제갈의중은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렇다.사실 말이지,나는 본래 미리부터 동심교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 하고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그렇다면 결국 위의 두가지인데 진짜 현현괴로 가 등장하는 것보다 다른 두 개의 가짜세력이 늘어나는 것이 훨씬 쉬운 방법 이다.만일 현현괴로가 부활했다면 나는 절망하고 말았었을 것이지만, 일단 그 삼대마세가 나타났다는 것은 낙관해도 좋을 만하다.] 제갈덕중이 끼어들어 물었다. [그러니까,형님의 말씀은 그 동심교의 무리등이 다른 마세를 믿고 준동하기 시 작하고 있다는 말씀이로군요?] 제갈의중은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렇다.] 이에 문득 제갈금의가 의아하다는 듯이 질문했다. [하지만 그 삼대마세가 모두 다 진짜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잖아요?] 제갈의중은 미소하며 대답했다. [진짜가 나타날 가능성은 두가지다.하나는 일부이고 다른 하나는 전부이다.만 일 세곳 중에서 한두명의 진짜가 나타난 것이라면 나머지 문파는 흡수되어 나 타날 수가 없게 될 것이다.따라서 지금의 상황과 맞지 않다. 그러면 남은 한가 지 경우인데,그것은 더욱 가능성이 없다.] 제갈의중은 이어 제갈금의에게 물었다. [너는 그것이 어째서 더욱 가능성이 없는지알겠느냐?] 제갈금의는 눈살을 찌푸렸다. [제가 몰라서 묻는 것인데,그것을 또 나에게 물으면 어떡해요?] 제갈의중은 웃으며 대답했다. [과거 그 삼대마세는 동일한 시대에 나타났던 것이 아니라,각기 백년 가까운 거리를 두고 나타났었다. 그리고 그 힘들은 하나같이 가공스러웠으며 절전되 었다.그러던 것이 한꺼번에 한날 한시에 부활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있을 수 가 없는 일이다.이것은 이론적으로 가능성이 있지만 그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 [그렇다면 다른 시간의 차이를 두고 부활했을 경우인데 ,만일 그렇다면 그들이 때를 기다려서 함께 손을 잡고 얌전하게 등장하지는 않을 것이다.솔직히 당금 에 영웅맹도 그들 가운데의 한사람의 힘이면 능히 쉽게 무너뜨릴 수가 있을 것이기때문이다.무엇 때문에 그들이 일부러 바보같은 짓을 하겠느냐?따라서 그 삼대마세의 힘은 결국 가짜인것이고, 나도 마음을 놓게 된 것이다.] 제갈의중은 제갈보중 등을 돌아보면서 다시 말을 이었다. [비록 가짜이기는 하나 그 삼대마세를 제거하는것도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오당주께서는 먼저 돌아간 것이다.하지만 우리 아버님이 계신 한은 결국 본맹 의 승리가 되고 말 것이다.] [......] [이제부터 강호는 그다지 평화롭지는 못할 것이다.하지만 기실 옜날부터 그러 한 혼란은 예고되어 있었다.중요한 것은 이제 우리가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이 다. 나는 솔직히 현현괴로의 부활을 의심하여 아버님의 안전을 근심했던 것이 었다.] 제갈의중의 그와 같은 긴 설명을 듣고 나서 제갈보중은 긴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어쨌거나 강호는 그렇다면 심한 피바람이 불기 시작하겠군요?게다가 그들도 이미 아버님에 관해서 연구를 했었을 것이 아닙니까?] 제갈의중은 미소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물론 그들도 본맹에 관해 연구를 했고 대비를 했겠지.그러나 그들이 모르는 것이 하나 있다.그것은 바로 우리아버니의 능력인데......아버님의 능력은 아직 거의 발휘되지 않았다.만일 세외팔세의 진정한 주인들이 아니라면 누구도 아 버님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것이 나의 확실한 믿음이다.] 제갈의중은 말을 하는 도중에 가볍게 흥분을 느꼈는지 안색이 상기되기까지 했다. 제갈금의는 그것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큰오빠는 마치 이번에 중원천하가 혼란속으로 빠지게 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 하는 것 같군요?] 제갈의중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 그것은 솔직히 사실이다.난세는 영웅을 부른다고 하지 않느냐?커다란 위험이 없는 한은 때로 강호상의 겁란은 우리들과 같은 젊은이들에게는 좋은 자극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나는 내일 아침에 영웅맹으로 돌아가면 열심히 뛰어볼 생각이다.너희들의 생각은 어떠냐?] 제갈금의가 다시 물었다. [그럼 우리가 몰려가면 큰오빠가 우리도 활약을 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말 인가요?] 제갈의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항상 편안하게 지내는 것보다 그런 경험을 겪게 되면 너희들에게 좋은 것이지. 만약 너희들이 오겠다면 내가 먼저 가서 인편에 다시 소식을 보내오 마.] 제갈금의는 문득 눈빛을 굴리면서 뭔가 생각하는 듯 하다가 기익하게 웃으며 다시 질문했다. [그럼 내가 급히 친구들에게 연락하여 함께 가도 된다는 말이죠?] 기실 제갈금의는 이순간 다시 큰오라비를 장가 보낼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었 다. 제갈의중은 미처 그런 의도를 간파하지 못하고 대꾸했다. [물론이다.본래는 전 무림인들이 모두 발벗고 나서야 하는 일이므로,너희들과 같은 젊은이들이 열심히 나서주겠다면 그것은 아주 바람직한 일이라고 할 수 가 있지.] 제갈금의는 제갈의중으로부터 승낙을 받아내자 묘한 웃음을 떠올리며 입을 다 물었다. 지금은 그렇게 당당하게 보이지만 나중에는 두고보자는 식의 심리였다. 제갈의중은 이에 제갈보중에게 다시 물었다. [너는 틀림없이 와주겠지?] 제갈보중은 순간 제갈의중의 심사를 간파했다. 이번에 출정을 나서게 되면 혹시 목숨이 위태로와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비겁하게 목숨을 부지하는 것보다는 영웅다운 맥을 이어가자고 하는 것이 바 로 제갈의중의 뜻이었다. 제갈보중은 자신이 넘쳐보이는 큰형을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저도 친구들을 모아서 달려가도록 하겠습니다.] 그것은 그야말로 제갈의중의 마음에 가장 흡족한 대답이었다. 지금 천하는 제갈세가가 주름잡고 있었다. 비록 똑같이는 되지 못하더라도 차기에도 계속해서 제갈세가의 사람들이 천하 를 주도하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제갈의중은 미소하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어 말했다. [좋아. 나는 날이 밝는 즉시 영웅맹으로 돌아가도록 하겠다.] * * * 날이 밝자마자 제갈의중은 정말로 영웅맹으로 돌아갔고 제갈신중은 계속해서 제갈세가에 머무르게되었다. 이 제갈세가는 본래 그의 집이요 고향이었으나 지금은 모든 것들이 서먹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제갈의중을 배웅하고나자 제갈고헌은 하인들을 시켜서 그의 거처를 마련해 주 었고 의복을 새로 가져다 주었다. 아마 제갈신중이 다시 떠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지 은자도 은표의 다발로 천냥이나 가져다 주었다. 하지만 제갈신중은 제갈세가를 떠나지 않고 거의 혼자서 집안에 틀어박혀서 생활해 나갔다. 듣자니 제갈보중과 제갈금의 등은 뭔가 일을 꾸미느라 부산한 모양이었다. 지금 제갈신중이 머물고 있는 집은 비록 모옥과 같으나 잘 지어져 있고 아늑 한 분위기를 풍기는 곳이었다. 제갈신중은 하인들이 날라다 주는 식사를 먹고 대부분의 시간을 놀고 지내면 서 그간의 여독을 풀었다. 하지만, 일부러 잠자코 지낸 것이었으나 그렇게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결 코 쉬운 노릇은 아니었다. 제갈신중은 지난 삼년간 강호를 떠돌아 다니면서 배운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 은 아마도 게으름일 것이었다. 최소한 며칠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그는 삼년동안 무슨 심한 고행을 한것도 아니었고 학문적인 수련을 쌓은 것도 아니었으며, 더욱이 무슨 산천경개를 유람한 것은 물론 아니었다. 그는 실상 거의 쫓겨나다시피 해서 강호에 나갔었고,그리하여 대부분의 시간 을 사찰의 선방이나,아니면 시골의 싸구려 객방과 같은 곳에서 빈둥거리며 지 냈었다. 비록 간헐적으로 외로운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그런 곳이야말로 그를 자유롭 게 해주는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 집으로 돌아오면서 그는 혹시 전처럼 심하게 그의 자유가 속박당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고 걱정했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이제는 누구도 그에게 기대를 걸지 않아서 그것이 차라리 그에게 자 유로움을 느끼게 해주었다. 정말로 이런 상태라면 다시는 강호에서 방황하지 않아도 될 것이었다. 적어도 며칠전과 같은 여건이라면...... 불과 몇가지의 사건들을 겪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제갈신중은 노래라도 불렀었 을 것이다. 바로 그 두명의 괴인들은 만난 것이 그에게 커다란 변화를 느끼게 해주었다. 오히려 그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더욱 마음이 불편해지고있는 것이다.제갈 신중은 요 며칠간을 방안에만 처박혀서 빈둥거리며 지내고 나자 그야말로 미 칠 것 같은 불안한 상태가 되고 말았다. 그것은 바로 다름아닌 그의 몸속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제기랄,이건 밖으로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도 없고,그렇다고 이렇게 계속해서 가만히 있을 수도 없으니......] 혹시 자신의 몸속에 해충을 키우고 있는 사람이 있을까? 만일 그 해충이 그사람의 영혼을 파먹고 살아가는 존재라면 말이다. 만일 그 해충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상상하게 된다면 그 해충은 그 생각을 먹 고 거대하게 자라나게 되며, 나중에는 그 사람을 통째로 삼켜버리게 된다면 어떨까? 과연 그 사람은 정말로 그 해충에 대해서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 사람은 그런 생각을 하지않으려는 생각에 더욱 집착하게 되어 금세 일을 당하게 되고 말 것이다. 지금 제갈신중의 경우는 바로 그와 같았다. 그의 몸속에는 지금 극음과 극양의 두가지의 서로 다른 성질들이 대치하고 있 었느데, 전에 금노에게 개정대법을 시술받았기 때문에 그것들은 아직 잠자코 있는 것 이었다. 하지만 금노도 결국 그 두가지의 대립된 기운을 조화시키지는 못했다. 그가 제갈신중에게 영약을 복용시키고도 결국 포기한 것은 바로 제갈신중의 상태가 그와 같았기 때문일 것이었다. 처음에 제갈신중은 집에 돌아와서 여러 가지 일들로 인해 미처 자신의 몸에 관해서 관심을 가질 수가 없었다. 그 것은 바로 그의 행복이었다. 하지만 다시 그의 주변이 한가해지고 빈둥거리게 되자 자연 떠오르는 것은 그 기운들에 대한 생각이었다. 아니 그것들은 정말로 단순한 생각들만이 아니었다. 제갈신중이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해도 자연히 신경이 쓰이게 되었으며 그것 들은 마치 커다랗게 자라나는 생명체처럼 크게 부풀어서, 그의 육체와 정신을 무섭게 압박해오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제갈신중은 이제는 도저히 방안에 가만히 누워있을 수도 없었다. 금방이라도 그의 몸속에서 그 두가지의 기운들이 크게 팽창하여 격돌하고 그 리하여 마침내, 커다랗게 폭발하여 반신불수가 되거나 죽어버리게 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제갈신중은 하는 수없이 다시 과거에 묻어두었던 기억들을 되살리며 운기행공 을 해보기로 시작했다. -현원전단공. 그것은 바로 제갈세가의 독문내공심법인 동시에 최절정의 내공심법이었다. 대개의 내공심법들이 전신의 경락들을 운행하는 이치는 거의 비슷하지만은 다 른것은 그 심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현원전단공의 특색이라고 하면 상당히 복잡하고 정교한 운기행공의 과정을 밟게 되어 있었다. 즉, 그 과정에 있어서 아주 냉정한 마음의 자세는 필수적인 것이니 오래도록 수련 을 하다보면 비로소 나중에야 그 이치를 터득하게 되어 있었다. 제갈신중은 이미 그러한 수련을 무수히 연습했었고 또한 그 수련을 이제는 거 의 포기한 상태였다. 유독 제갈신중이 어째서 그 신공을 연성할 수 없는 것인가에 대한 확실한 대 답은 알수가 없었다. 하지만, 현재까지 제갈신중이 파악한 것은 바로 자신의 마음이 정말로 냉정해질 수가 없다는 것이며, 또한 전체의 흐름을 단숨에 이해하지 않고는 그 내용에 자신의 성취를 맡기고 차분히 기다릴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혹시 제갈신중 자신의 성격상의 결함이 아닐까? 제갈신중은 자신이 지나치게 진실되지 못하고 방탕스러우며 게다가 헛된 공상 과 욕심이 지나치게 많다고생각했었다. 괴이한 것은 그가 일단 한가지를 배우기 시작하면 조금이라도 나아가기는 커 녕 오히려 퇴보한다는 사실이었다. 천하의 그 어떤 둔재나 천치 바보라고 해도 그렇게 되지는 않는 법이었다. 사람들은 그러한 그의 상황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했다. 제갈신중으로서는 그것을 설명할 수가 없었고 따라서 다른 사람들은 그가 방 황하느라 일부러 게으름을 피우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진짜로 말해서 제갈신중은 이제까지 방황조차 정말로 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그 무엇을 할 수가 없었기에 마치 이방인처럼 혼자서 웅크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렇게 혼자서 가만히 있는 일조차 할 수가 없게된 것이었다. 형제들 가운데에서 현원전단공의 첫 번째의 관문인 대주천반운에 가장 먼저 무난히 통과한 사람은 바로 맏이인 제갈의중이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제갈의중은 가장 모범적인 아들이었고 제갈신중으로서도 충분히 본받을 만했다. 하지만 어째서 제갈신중 자신만은 전혀 시작도 할 수가 없는 것일까? 이미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구결들이었기 때문에 제갈신중은 자연 조심스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상당히 오랫동안 연습하지 않아서 매우 기억이 희미할 것으로 생각했던 그 구 결의 전문이 일순 그의 뇌리에 선명하게 떠오를 뿐만 아니라, 마치 전부터 익숙하게 사용하고 있었던 것처럼 운기가 자연스럽게 되기 시작 하는 것이었다. [......] 제갈신중은 약간놀라는 한편 은근히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마치 안개처럼 모호하기만 했던 구결의 내용이 선명하게 이해되고 체내의 진기는 말끔하게 돌아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과거에는 제갈신중은 가장 기초부분인 삼류의 경지에 겨우 머물러 있는 상태 였다. 그런데 한순간에 이미 기초의 벽을 간단하게 부수고 운공이 이류의 경지를 넘 어서서 일류급으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정말로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내공심법이 그렇게 갑자기 커다란 진보를 보이게 될줄은 몰랐다. 혹시 그것은 그의 공력이 갑자기 급증하고 또한 그 현관들이 열려있기 때문이 아닐까? 아니면 제갈신중은 내공수련을 하지 않았지만 기실은 그것이 속으로 수련이 되어왔다는 말일까? 제갈신중의 마음은 커다란 흥분속에서 복잡해지면서 기대와 설레임이 앞섰다. 만일 제갈신중이 스스로 현관의통로를 운행시키고 대주천반운에 성공하게 되 면 일단은 이 위기를 넘기는 것이고, 게다가 그 현원전단공을 대성하게 되면 그 두가지의 기운들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서 능히 무학고수가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즉, 제갈신중의 이 두가지의 기운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흡수하려면 생사현관을 타통하고 반박귀진에 이르러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진실로 제갈신중이 바라는 것은 그것 이외에 또 하나가 있었다. 그는 사실 하고자하는 바가 무수히 많았음에도 이제까지 거의 아무것도 하 지 못했었다. 바로 그 성격상의 결함 때문에 그는 비단 무공뿐만 아니라,학문이나 기타의 잡기 등에 있어서도 조금도 열중할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그러한 현실은 그야말로 그에게 있어서 무한한 고통이었고 피가 마르는 일이 었다. 만일 그가 무학방면에서 그러한 난관을 극복할 수 있다며는 그는 앞으로 다 른 무엇도 할 수가 있을 것이며, 그로 하여금 무엇인가에 열중하여 살아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해줄수가 있 을 것이다. 솔직히 제갈신중은 무공은 둘째치고라도 한 번 그럴듯하게 열중하므로써 살아 있다는 것을 느껴보고 싶었다. 지금의 상황은 죽어있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또한 이와같은 상황에서 덧없이 죽는 것이 더욱 싫었다. 그런데, 사람이 좋은 일을 만나게 되면 마가 끼는 것일까? 아니면 또다시 진짜 그의 고질병이 재발한 것일까? 마악 일류급의 관문을 벗어나서 이제는 절정급인 대주천반운에 도전해야 하겠 다고 생각하는 데 문득 그의 머리속이 다시 어지러워지는 것이었다. [......] 제갈신중은 순간 매우 당황해졌다. 그것은 그에게는 실로 익숙한 고질병의 증상이었던 것이다. 과연 아니나 다를까? 갑자기 마음속에 먹구름이 일기 시작하자 그것은 이내 전체로 퍼져나가서 모 든 것을 뒤덮어 버리는 것이었다. 모든 내용들이 갑자기 혼돈의 와중으로 변하고 말았다. 제갈신중은 조금전에 일류고수의 수준에 마악 올라섰었는데 갑자기 그것마저 시야가 가려진 듯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제갈신중은 이번에는 이류급의 내용을 점검해 보려고 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은 뇌리에 떠오르지 않았다. 제갈신은 그만 극심하게 당황하여 심장이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와서 숨소리를 자극하고 있는 것 같았다. 바로 그 순간의 일이었다. 갑자기 그의체내에 억눌려 있던 그 두가지의 기운이 마치 고삐가 끊어진 야생 마처럼 강렬하게 일어나며 날뛰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우왁!] 제갈신중은 그만 날벼락처럼 고함을 지르면서 가부좌를 풀고 벌떡 신형을 일 으켜 세웠다. 그것은 주화입마를 당할 것을 염려한 발작적인 행동이었다. [......] 제갈신중은 갑자기 그렇게 일어서는 바람에 그만 머리가 터져나가는 것처럼 아프고 몽롱하며 어지러운 것을 느꼈다. 제갈신중은 순간적으로 정말 자신이 반신불수가 되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렇게 잠시의 시간이 흐르자 고통은 서서히 가라앉고 머리도 맑아지 며 어지러움도 가시는 것이었다. 제갈신중은 비로소 몸을 움직여 보고 주화입마에 걸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빌어먹을, 겨우 살았군......] 기실 조금전에 제갈신중이 취했던 발작적인 행동은 가장 나쁜 것으로서 운기 행공시에 거의 금기시 되는 것이었다. 만일 누구라도 그와같은 중요한 순간에 벌떡 일어선다면 즉시 주화입마로 반 신불수가 되는 것을 면할 수가 없을 것이다. 운기행공 도중에 그 기운을 흐트릴 경우 그것이 다른 경락으로 마구 흘러들어 갈 위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기이하게도 실상 제갈신중의 조금전의 행동은 두가지의 이유에 가장 시기적절 한 것이 되었다. 우선 조금전에 운기행공 도중에 마가 끼어서 두가지의 기운이 제멋대로 날뛰 게 되었으나, 그러한 심마가 일순 그가 일어서서 부르짖는 바람에 운기된 기운과 함께 흐트 러져 버렸던 것이다. 실상 그에게 있어서 지금 가장 위험한 것은 심마에 걸리는 일이라고 할 수가 있었는데, 그로 인하여 다행히 그는 심마에서 벗어나게되었다. 물론 그 즉시 날뛰려던 두가지의 기운들 역시 방향을 잃고 수그러들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두 번째는 그가 이미 개정대법을 세 번 연속해서 받고서 대치되어 있는 두가 지의 기운들 때문에 항상 현관들이 열려져 있는 상태 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심마가 퇴치되고 운기된 기운들이 사방으로 흐트러지는 위험한 순간에 열려져 있던 현관들이 자연스럽게 사방에서 그 기운들을 흡수하여 결정적인 주화입마 의 현상을 막았던 것이었다. 비록 그의 몸이 완전히 개운해진 상태는 아니라고 해도, 그 두가지의 조건 가운데 한가지만 없었다면 초래 되었을 주화입마의 끔찍한 상황에 비하면 그것은 실로 아무것도 아니었다. 제갈신중은 불행중 다행히도 이미 그러한 이치를 파악했다. 그는 자신이 그야말로 간신히 위기를 모면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천천히 몸을 움직이며 호흡을 조절하던 그는 다시는 그와 같은 모험을 되풀이 할 수가 없는 일이라고 수차례나 다짐했다. 이윽고 겨우 몸을 한차례 가볍게 풀고난 제갈신중은 쓰디쓴 웃음과 함께 길게 함숨으 내쉬었다. [휴우,그렇다면 이제는 어떻게 해야한다지?] 겉으로는 그런 말을 하고 있지만 기실 그는 이미 자신이 해야할 바를 알고 있 었다. 이제는 오직 밖으로 나가서 두가지의 기운들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부딪치며 사는 것이다. 제갈신중은 마침 뇌리에 형인 제갈의중이 말했던 강호는 이제 난세라는 말이 떠올랐다. 밖에 나가서 격렬하게 부딪치며 해결의 길을 모색하는 수밖에 없는 막다른 골 목에 도달한 제갈신중은 그것이 가장 적함한 상대라는 것을 알았다. [나도 영웅맹에 가서 함께 싸움이나 해 볼까?] 그와 같은 하급의 무공실력으로 난세의 격전속에 뛰어든다는 것은 마치 섶을 지고 불속으로 뛰어드는 것이나 다름없이 위험한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조심한다고 해서 살아갈 수가 없는 그만의 곤란한 상황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그런 것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그에게 현실이 위험하고 다급할수록 오히려 더욱 두가지의 기운을 생각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솔직히 이런 곳에서 주화입마로 쓸쓸하게 덧없게 죽어가는 것보다는 정말로 부딧치다가 죽는편이 나을 것 같았다. 최소한 그 길은 하나밖에 남지 않은 도전할 수 있는 기회였다. 제갈신중은 그러한 기회를 포기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마침 그가 집에 돌아온 지 거의 일주일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제갈보중 등이 전에 사람들을 보내서 친구들을 초청한다고 했었는데 지금은 어떻게 되었는 지 궁금해졌다. 어쨌든, 이제 그들이 이미 모두 모여서 영웅맹으로 갔다고 해도 제갈신중은 뒤따라 가 야할 판이었다. [내 팔자에는 그야말로 역마살이 끼어있는 모양이군.] 제갈신중은 씁쓸하게 웃으며 그제서야 하인들이 가져온 의복들을 살폈다. 제갈고헌은 그래도 그를 생각해서 제법 훌륭한 의삼을 갖추어서 보내주었었다. 제갈신중은 그 가운데에서 우선 청백의 장삼과 속옷을 찾아입고 나머지 두어 벌은 작은 봇짐을 만들어 싸들었다. 그는 일전에 제갈고헌이 전해준 은표들을 빠짐없이 깊숙히 챙긴다음에 간단하 게 세수를 마치고 밖으로 향했다. 그는 이미 객지생활을 오랬동안 해와서 금새 길 떠나는 백면서생의 차림새가 되었다. 그가 비교적 두툼한 의복들을 많이 휴대한 것은 겨울철이 다가오는 계절에는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이제 나가면 언제 다시 돌아오려나......] 말을 마치고 나서 제갈신중은 주저없이 방문을 닫고 마당을 가로질러 대문으 로 향해 걸어 갔다. 헌데 바로 그때의 일이었다. 휘리리릭! 느닷없이 공중에서 한차례의 요란한 파공음이 들리더니 이윽고 한명의 사람이 그의 앞에 떨어져 내리며 이렇게 묻는 것이었다. [당신이 바로 그 소제갈 이라는 제갈보중인가요?] 제 13장. 오지않는 서신. 짤랑짤랑하게 울려퍼지는 그 음성에는 다분히 교태가 어려 있어서 나타난 사 람이 남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했다. [......] 제갈신중은 느닷없이 갑작스런 일을 당하여 다소 놀란 기분으로 금방 나타난 그 여자를 바라보았다. -홍의낭자. 여기저기에 화려한 봉황의 무늬가 형형색색으로 수놓아진 붉은 의삼을 걸치고 있는 그녀는 우선 나이가 그리 많지 않았다. 줄잡아서 스물 둘이나 셋정도, 게다가 그녀는 상당히 미인이었고 낯설은 얼굴이었다. 오척여섯치의 키에 붉은 띠를 졸라맨 허리가 매우 날씬하였으며 체구는 호리 호리했고 입가에 다소 요염한 교태가 어려 있었다. 제갈신중은 백옥같이 하얀 양손을 슬쩍 허리에 올려놓고 자신을 바라보는 그 녀를 보며 내심 생각했다. [아니 이거,우리 금의가 천하절색인줄 알았더니 여기에 그에 필적할만한 미인 이 또하나 나타났군.] 그 홍의낭자는 제갈신중이 바라보면서 금방 대답하지 않자 일순 무례하다고 느껴는지 아미를 살짝 찌푸리며 다시물었다. [이봐요! 지금 내가 묻는 말이 들리지 않나요? 당신은 제갈보중이 아닌가요?] 제갈신중은 그말에 담담히 웃으며 대답했다. [낭자는 잘못 짚었소.나는 제갈보중이라는 사람이 아니니 다른곳을 찾아보도록 하시오.] 제갈신중은 말을 하는 도중에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첫째는 보아하니 아직 제갈보중 등이 떠나지않고 아직 세가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이요,두번째는 어쩌면 쉽게 그들과 어울릴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었다. [......?] 그 홍의낭자는 너무도 태연자약한 제갈신중의 대꾸에 다소 의외인 표정을 하 고 있다가 다시 말했다. [나는 조금전에 이 부근에서 들려온 소리를 듣고 찾아왔어요.그 목소리에는 힘 찬 내공이 실려있어 필시 제갈보중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렇지 않 다니 유감이로군요.그럼 대체 당신은 누구죠?] 아마도 제갈신중이 조금전에 내공을 흐트러뜨리면 질렀던 소리를 말하는 모양 인데,그것이 강했다는 것은 일리가 있었다. 제갈신중은 이미 나름대로 속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웃으며 되물었다. [나는 이곳에 사는 사람인데,이를테면 당신은 이곳의 침입자요.그렇다면 침입 자인 당신보다 주인인 내가 먼저 관등성명을 말해야 하겠소?] 홍의낭자는 그 말을 듣자 재미있다고 생각되었는지 가볍게 웃었다. 그녀는 현숙해 보이면서도 일면 요염해 보이는 특이한 여자였다. [아녀자의 이름을 알려고 하다니 당신은 염치도 좋군요. 하지만 내가 아쉬운 상황이니 내가 먼저 대답하죠. 나는 황보숙한이라고 해요.당신은 나를 황보낭 자라고 부르면 되요.] 여자로서 그렇게 쉽게 자신의 이름을 밝힌다는 것은 바로 그녀가 강한 강호여 인이라는 증거였다. 제갈신중은 다소 의미있게 웃었다. [아, 알고보니 황보세가의 금지옥엽이셨구려? 이거 몰라뵈어 실례가 많았소이 다.] 제갈보중 등의 친구라면 역시 아무래도 같은 무림오대세가의 젊은이들인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제갈신중은 그녀의 이름을 들어보고서 이내 그녀의 출신을 알아낸 것이었다. 홍의낭자 황보숙한은 제갈신중이 기분나쁘게 웃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아미를 찌푸리며 다소 쌀쌀맞게 말했다. [이제는 당신이 이름을 말해야 하는 것이 순서가 아닌가요?] 제갈신중은 담담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이집의 셋째가 아니라 둘째요.] [......] 황보숙한은 그말에 다소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니,그렇다면......당신이 바로 그 천우공자......] 황보숙한은 말을 하다가 말고 자신이 실수했음을 깨닫고 안색을 붉히며 입을 다물었다. 기실 그 천우공자라는 말은 바로 형인 제갈의중의 천기공자라는 별호에 비유 해서 풍자적으로 어리석음을 놀려대는 별호였다. 과거 한 때는 촉망받던 제갈신중은 이내 그와 같은 별호를 들을 정도로 웃음 거리가 되고 말았었다. 상대방이 다소 겸연쩍어 하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제갈신중은 담담히 미소 하며 대답했다. [그렇소. 내가 바로 그 천우공자라는 제갈신중이요.] [......] 황보숙한은 제갈신중이 그렇게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대꾸하자 더욱 겸연쩍은 모양이었다. 그년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과,과연 당신의 용모는 들리는 소문의 소제갈과는 많이 차이가 있군요.] 제갈신중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내동생의 얼굴이 나보다 훨씬 잘 생겼지.게다가 그가 나보다 나은점은 비단 용모만이 아니라오.] 현재 무림육영의 하나가 되어 있는 만큼 제갈보중의 뛰어남은 황보숙한이 알 고도 남음이 있었다. 황보숙한은 더욱 어색한 태도를 보이며 말했다. [실은......우리는 며칠전에 제갈보중의 초청을 받아서 귀가에 찾아온 것이었어 요.] 제갈신중은 웃으며 다시 물었다. [아마도 당신은 아직 나의 동생을 만나보지 못한 모양이군?] 황보숙한은 고개를 끄덕이며시인했다. [비록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그 명성만큼은 항상 귀가 아프게 들어오곤 했었 죠.그와 친한 사람은 사실 나의 쌍동이 동생인 잠허예요.그가 워낙에 자랑을 하는 바람에, 나는 아까 그 소리를 듣고서 제갈보중이 이곳에 있는 줄로 알고 구태여 만류를 듣지 않고 달려온 것이죠.] 이런 곳에 와서 그렇게 제멋대로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은 그녀의 대담성을 엿 보게 해주는 것이었다. 당금에 이르러서 확실히 오대세가의 명성은 구파일방에 비해 못하지는 않는 것이 분명했다. 제갈신중은 미소하며 다시 물었다. [그럼 당신들은 어디에서 모이기로 했었소?] 황보숙한은 서슴없이 대답했다. [우리는 취의청에서 만나기로 했어요.] 취의청은 바로 가장 커다란 석조전각에 있는 대청으로 평소에 가주가 대회의 를 주관하는 곳이었다. 제갈신중은 담담히 웃으며 앞장을 섰다. [그렇다면 내가 앞장을 설테니 함게 가도록 합시다.마침 나도 그곳으로 가려던 참이었으니......] 황보숙한은 제갈신중의 길 떠나는 듯한 행색을 보고 다소 기이한 느낌이 들었 으나 약간 주저하다가 이내 그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제갈신중은 다시 물었다. [혹시 당신들이 모이기로 한 날이 오늘이오?] 황보숙한은 혼자서 골똘하게 뭔가를 생각하며 걷다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 했다. [그렇지 않아요.원래는 어제 저녁에 모두 모이기로 했었는데,우리는 이곳으로 오는 도중에 다소 지체되어 이렇게 오늘 도착하게 되었던 것이예요.아마도 다 른 사람들은 이미 모여있을 거예요.] 어쨌거나 제갈보중 등이 이미 떠났을 것 같지는 않았다. 제갈신중은 잠시 생가하다가 다시 물었다. [혹시 내가 이렇게 안내해 주는 조건으로 나를 당신들의 모임에 참석할 수 있 게 해주지 않겠소?] 황보숙한은 이제 웬 엉뚱한 주문일까 하고 생가하는 듯 하다가 웃으며 되물었 다. [그런 것은 당신의 동생에게 부탁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 제갈신증은 대꾸했다. [나는 그 전에 우선 당신에게 승낙을 얻고자 하는 것이오.] 황보숙한은 그만 가볍게 실소를 터뜨렸다. [그런 것이라면,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일단은 그다지 어려운 부탁이 아 니군요.] * * * [그것 참 이상한 일이로군.그렇다면 혹시 그간에 무슨 일이라고 벌어진 것이 아닐까?] 다른 사람이 말을 받았다. [반드시 그렇다고만은 볼 수가 없지.혹시 무슨 일이 있어서 편지를 보내는 것 을 깜빡할 수도 있지 않은가?] 처음의 사람이 말했다. [하기는......그런데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하지.무작정 여기에서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두 번째의 사람이 대꾸했다. [거기에는 모두 두가지의 선택의 여지가 있다.하나는 우리가 영웅맹으로 다시 편지를 보내서 제갈형의 의도를 묻는 것이고,다른 하나는 이대로 출발해 버리 는 것이네.] [......] 제갈신중이 황보숙한과 함께 취의청에 도착했을 때에는 마침 그와같은 논쟁이 안에서 격렬하게 오가고 있던 중이었다. 때는 이미 저녁때가 가까와진 오후무렵이었다. 느닷없이 제갈신중이 황보숙한을 대동하고 안으로 들어서자 일순 격렬한 열기 가 흐르던 대청안이 조용해졌다. [......] 제갈신중이 바라보니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와서 하나의 커다란 팔선탁을 둘 러싸고 자리하고 있었다. 거기에는 제갈보중 등의 모습들도 보였는데 대강 헤아려 보니 한 열명쯤 되는 젊은이들인 것 같았다. 아마도 모두가 제갈보중과 제갈금의 등의 친구들인 모양이었다. 제갈신중은 제갈고헌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그가 이미 이곳의 일들 을 제갈보중 등에게 맡겨버렸다는 것을 알수가 있었다. 제갈보중 등은 갑자기 제갈신중이 황보숙한과 더불어 나타나자 다소 어리둥절 한 모양이었다. 제갈신중은 자신이 나타남으로 인해서 장내의 분위기가 매우 어색하게 변했기 때문에 뭐라고 한마디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음순간에 좌중에서 한 사람이 일어나더니 황보숙한에게 다가와서 이렇게 묻 는 것이었다. [아니,한누이!이게 대체 어찌된 일이지?그리고 어째서 이제서야 나타난거야?] 붉은 장삼을 걸치고 있는 그 청년의 말투를 보고는 제갈신중은 그가 바로 황 보숙한의 쌍둥이 남동생이라는 것을 알수가 있었다. 나이는 역시 스물 셋정도이며, 오척 일곱치의 키에 후리후리한 체구를 하고 있었고 외모 또한 평범한 듯 하 면서도 준수해 보였다. 무공은 쌍둥이 누이인 황보숙한보다도 우위에 있는 듯이 두눈에서 맑은 광채 가 부드럽게 흐르고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가장 특이한 것은 그의 오른손이 왼손보다 훨씬 굵고 크다는 사실 이었다. 그것은 다름아닌 그가 바로 황보세가의 직계자손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라 고 할 수가 있었다. [그도 혹시 무림육영의 하나가 아닐까?] 당금에 이르러 오대세가가 크게 세력을 떨치고있었기 때문에 무림육영 역시 그곳의 젊은 이들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비록 구파일방에도 그와 같은 인재들이 있을지라도, 일단 약관의 나이에 무학 이 절정경지에 올라있다는 자체가 이니 그러한 대접을 받기에 충분한 것이었 다. 제갈신중이 내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몇마디의 대화를 나눈 그 황보남 매가 제갈심중의 앞으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황보숙한은 제갈신중을 향해 그 홍삼청년을 소개했다. [저를 여기까지 안내해 주셔서 고마워요.그리고 이쪽은 저의 쌍둥이 남동생인 황보잠허예요.] 제갈신중은 문득 알겠다는 듯이 눈을 크게 뜨고 되물었다. [아니, 그렇다면 그 무림육영 중의 하나인 옥면권이라는 사람이 이 사람이라는 말이오?] 황보잠허는 제갈신중이 그렇게 큰소리로 떠들며 묻자 다소 쑥스러운 듯이 웃 으며 대답했다. [과찬의 말씀입니다.오히려 당신 동생의 무공이 나보다는 나을 것입니다.] 그는 이미 황보숙한에게 제갈신중에 대해 얘기를 들은 모양이었다. 말을 하면서 황보잠허가 우수를 내밀어 악수를 청하는 것을 보고 제갈신중 역 시 개의하지 않고 손을 마주 잡았다. [겸손하시군요.] 그런데, 기실 황보잠허는 악수를 하는 그 순간에 은근히 손바닥에 경력을 주입하여 상 대의 무공을 시험했다. 헌데 이상하게도 그가 내보낸 경력이 갑자기 바닷속에 빠져버린 듯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 황보잠허는 이에 혹시 자신이 사술에라도 걸린 것이 아닌가하여 황급히 공력 을 거두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역시 무리없이 기운이 회수되는 것이었다. 황보잠허가 생각한 사술이라는 것은 한 번 손을 잡으면 상대의 공력을 한없이 빨아들이는 것이지 그런 것은 아니었다. 대개의 사람들의 경우에는 상대가 공력을 주입히면 스스로 몸속에서 방어작용 이 일어나서 그것을 반탄시키게 되어 있었다. 바로 그 기운의 강약이나 성질로 상대의 무공수준을 파악하곤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조금전에 제갈신중의 몸속은 텅비어 있어서 황보잠허의 경력에도 조금도 반응을 나타내지 않는 것 같았으니 대체 그것은 어찌된 일일까? 황보잠허는 순간 의아한 시산으로 제갈신중을 바라보았으나,제갈신중은 아무 것도 모르는 듯 태연한 표정이었다. (듯던 대로 정말 괴이한 데가 있는 사람이로군!) 황보잠허는 그렇게 생각하고 그제서야 말을 받았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 제갈신중은 황보남매가 팔선탁이 있는 곳으로 걸어가는 것을보고 내심 기이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기실 조금전의 그 상황을 그가 모르고 있었을 리가 없었다. 다만 그는 이미 극단적인 두가지의 기운들을 수용하기위해 가능한한 그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고 있으며, 바로 그것 때문에 황보잠허의 경력에도 대응하지 않게 되어 그와 같은 현상이 나타났던 것이다. 물론 그것은 단순한 생각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지금 제갈신중은 거의 목숨을 걸고 그 기운들을 잊으려 하고 있기 때문에 그 일념에 전신의 기운들이 따르고 있는 것이었다. [형님,무슨 일이십니까?] 제갈신중이 가벼운 상념에 잠겨있는 사이에 어느새 제갈보중이 다가와서 그렇 게 질문했다. 어조는 비록 공손했지만 그 눈빛은 강렬하여 결코 순순하지않았다. 제갈보중은 느닷없이 귀찮은 제갈신중이 회의장에 나타나자 지겨운 생각이 들 었던 것이었다. 제갈보중이 그렇게 고자세로 나오는 것을 보고 제갈신중은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하하하, 내가 혹시 방해가 되지는 않았는가? 나는 단지 구경만 하려는 것이니 상관하지 말게.] 제갈보중은 등에 봇짐을 짊어지고 있는 제갈신중의 차림새를 살펴보더니 눈살 을 찌푸리며 다시 말했다. [그렇다면 저쪽에 앉아서 술이나 드시도록 하십시오.] 제갈신중은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그러지.] 이윽고 제갈보중은 다시 좌중으로 돌아가서 황보숙한과 인사를 나눈 뒤에 자 리에 착석했다. 이미 장내에는 많은 음식들이 준비되어 온갖 냄새를 풍기고 상태였다. 제갈신중은 어색한 표정으로 구석진 자리로 가서 앉아 빈 술잔을 찾아들고 조 용히 자음자작하기 시작했다. 제갈신중에게 집중되었던 장내의 시선은 그리하여 다시 좌중으로 집중되기 시 작했다. 제갈신중이 술을 마시며 바라보니 장내의 젊은이들은 대개가 하나같이 용과 봉황의 기세를 닮은 준재들로서, 이제 마악 합류한 황보숙한을 포함하여 미소녀들이 넷이었고 남자는 모두 일 곱이었다. 아마도 무림오대세가의 자제들이 분명하며 그들 가운데 무림육영이 모두 모여 있는 것 같았다. 그들 가운데 몇몇 청년들의 눈빛은 제갈보중에 못지 않게 부드럽고 맑아보였 기 때문이다. 이른바 유실반허 자진귀박이라고 한다. 즉 무학이 대주천반운에 장애가 없어지게 되어 절정경지에 도달하게되면 그 눈빛은 다시 부드럽고 온화하게 변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곧 이갑자의 공력을 기본적으로 감추고 있다는 의미이니, 그와 같은 약관의 나이에 그러한 경지에 도달한 청년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은 가히 놀라운 일이라고 아니할 수가 없었다. 이윽고, 청년들 가운데에서 스물넷 정도의 나이에 체구가 약간 호리호리한 황의 창년 이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입을 열었다. 그는 바로다름아닌 아까 들려온 두 번째의 음성의 주인이었다. [험험, 그러니까......이어 말하자면,우리에게 두가지의 선택의 길이 있는데 우리는 지금 이 자리에서 그중의 한가지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오.] 그말에 문득 황보잠허가 신형을 벌떡 일으키더니 말을 받았다. [그 이전에 우선 소제가 한 말씀을 드릴까 하오.솔직히 본가는 여러분의 가문 들보다 특별히 멀리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닌데도 유독 우리남매만 하루가 늦어 지고 말았소.내가 지금 그 해명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한가지 여러분들에게 알려드리려는 것이오.] 황의청년은 즉시 포권하며 자리에 착석했다. [그럼 황보형의 고견을 듣도록 하겠소.] ......! 황보잠허는 좌중을 둘러보며 잠시 생각을 가다듬는 듯하다가 다시 말했다. [우리는 사실 제갈형으로부터 서신을 받은 이후에 가능한 먼저 도착하려고 바 로 그 이튿날 출발하게 되었소.하지만 우리는 불과 얼마 후에 다른 곳으로 가 야했으니,그곳은 바로 산동봉래파의 무리등이 만행을 벌이고 있는 곳이었소.] 약간 거무스름한 피부에 후리후리한 체구를 가지고있는 백의 청년이 일어나서 말했다. 알고보니 그는 아까의 그 첫 번째 음성의 주인이었다. [산동봉래파라면 바로 동심교의 소속으로 이미 산동성에서 자취를 감추었다는 무리들이 아니오?] 황보잠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백의 청년은 다소 놀라며 재차 물었다. [그렇다면 이미 그 동심교의 무리들이 활동의 개시했다는 말씀이오?] 황보잠허는 품속에서 종이로 둘둘 만 것을 꺼내더니 그 안에서 쇠털모양의 기 이한 암기를 드러내 보이며 대답했다. [산동봉래파의 독문암기인 귀왕침을 보신다면 여러분은 능히 그 사실을 짐작 할 수가 있을 것이오.] 백의 청년은 일순 침음성을 발하더니다시 물엇다. [그렇다면 황보형께서는 어떤 의견을 가지고계시오?] 그 귀왕침은 천하에서 악독하기로 소문난 것으로 극독이 칠해져 있고 한 번 몸속에 박힌 것은 다시 혈관을 따라서 돌게 되어있기 때문에 산동봉래파에서 도 쓰는자들이 그리 많지 않았었다. 황보잠허는 다시 귀왕침을 종이로 잘 싸서 품속에 보관한 다음에 이윽고 눈빛 을 빛내며 대답했다. [비단 그 산동봉래파 뿐만 아니라 동심교의 모든 문파들이 지금 천하에서 들 고 일어나고 있습니다.기왕에 우리가 제마멸사의 기치를 세운 것이라면 이제 더 이상 기다릴 여지는 없을 것입니다.제갈형께서도 영웅맹으로 가시기 전에 우리의 일에 동의하셨다고 하니,우리는 여기서 더 이상 주저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황의청년도 그 말에 이어서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나 역시 일단 서신이 도착한 것이라면 모르지만,지금은 상황이 급하 고 제갈형께서도 수긍을 하셨다니 구태여 회답을 받아야할 필요는 없다고 생 각합니다.] [......] 황보잠허와 황의청년이 동시에 그와 같이 주장하자 좌중의 시선은 어느덧 제 갈보중에게 향하게 되었다. 제갈보주은 이에 잠시 숙고하는 듯 하다가 신형을 일으키며 입을 열었다. [만일 여러분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라면 소제 역시 거기에 따르도록 하겠습 니다.하지만 혹시 여러분들 가운데에서 반대하시는 분은 없습니까?] ......! 좌중이 조용한 것을 보고 제갈보중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역시 우리들은 피가 끓어오르는 젊은이들이로군요.일단 대의를 이루려는 노력 에는 누구나 양보하지 않으니까 말입니다.] [......] [그럼 우리들의 결정은 그렇게 난 것으로 하고,내일 아침 일찍이 우리 모두가 영웅맹으로 향하기로 하겠습니다.저는 그 결정사항을 작은 할아버님께 보고해 야 하니,여러분은 그동안 이곳에서 계속 즐겨주시기 바랍니다.] 말과 동시에 제갈보중은 막 밖으로 걸어나가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느닷없이 낯익은 음성의 질문이 들려 오는 것이 아닌가? [잠깐,혹시 나도 그 대열에 참가하면 안될까? 나는 결코 모두에게 신세를 지는 일은 하지 않겠소.] [......!] 제갈보중은 제갈신중이 느닷없이 그렇게 말한 것을 보고 일순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설마하니 제갈신중마저 함께 가겠다고 나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 좌중의 사람들은 잠시 머뭇거렸다. 그때 갑자기 좌중에서 키가 가장크고 아주 잘 생긴 얼굴의 청삼청년이 앉은 채로 말했다. [만일 천하를 구하려는 것이라며 누구도 자격을 논할 수가 없을 것이오.귀하께 서 함께 가시고 싶다면 안될 것도 없겠소이다.] 제갈신중은 그만 너무도 고마워서 잘문했다. [아아 고맙소이다.혹시 귀하의 존성대명을 가르쳐줄 수가 있겠소?] 그 청삼청년은 제갈신중의 그말에는 귀찮은지 다소 눈살을 찌푸렸다. [나는 남궁검민이라고 하오.] 제갈신중은 그래도 기뻐서 물었다. [그렇다면 귀하가 바로 무림육영의 하나인 창궁일검이라는 말이오?] 남궁검민은 그만 다소 눈살을 찌푸리며 짜증섞인 어조로 대꾸했다. [그렇소.소제의 초라한 이름을 귀하께선 비웃지나 말아주시오.] 제갈신중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오.아니오. 내가 귀하를 비웃을 리가 있겠소? 나는 다만 너무나도 기뻐서 그러는 것이오.아마도 귀하께선 앞으로 더욱 발전을 하시며 다복하실 것 같구 려.] [......] 청삼청년 창궁일검 남궁검민은 귀찮은지 이번에는 대꾸하지 않았다. 따라서, 좌중의 시선은 서있는 제갈보중에게로 자연스럽게 향하게 되었다. 제갈보중은 다소 곤혹스런 표정이 되서 생각하는 듯 하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 이고 말았다. [형님께서 우리들을 귀찮게 하지 않겠다면 그것은 무방할 것이오.] 제갈보중이 이어 바삐 안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고 제갈신중은 술잔을 들어 올 려 단숨에 마시며 중얼거렸다. [고맙다......] * * * 제갈신중은 당장에 곤드레가 되도록 취하고 싶은지 계속해서 쉬지않고 술잔을 들이켰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었다. 취하려고 하는데도 오히려 갈수록 정신이 맑아져만 가는 것 같았다. 아마도 그의 몸속에 있는 두가지의 기운들 때문일지도 몰랐다. 그는 그러한 것을 잊어버리기 위해서라도 쉬지 않고 술을 마셔댔다. 과거에 그가 폭음한 적은 거의 없었다. 그는 과거에는 술이 약한 편이었고 게다가 그가 취한 상태를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취하지 않고는 도무지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제 14장. 전설의 고금제일인. 제갈고헌에게 보고드리기 위해 안으로 들어갔던 제갈보중은 이윽고 한참만에 돌아와서 다시 연회석을 주관하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 이미 하인들이 들어와서 술과 음식들을 다시 차려놓았고 대청의 주 위에는 잠을 잘수 있는 방도 마련해 놓았다. 제갈보중 등은 한참 혈기가 용솟음치는 나이이기 때문에 모두 주위가 어두워 져도 자러갈 생각은 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일 출정을 나가는 데 있어서 가슴을 설레이고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다만 그들 가운데에서 오직 제갈신중 한사람만이 늙은 노인인 것 같이 생각되 었다. 그는 자신이 이곳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이유로 삼아서 쉴새없이 술을 마 셔댔다. 그는 자신이 이곳에서 없는 동안에 모두가 떠나버릴 것을 두려워 하는 것이었 다. 유쾌하고 활기차게 보이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그의 마음속에는 공허한 찬 바람만이 불고 있었다. 다만 오직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 하기싫은 그러한 일들을 해야한다는 것은 그 에게있어서 일종의 고문이었다. 밤은 소리없이 깊어가고 있었다. 이곳은 떠들석했지만 그러한 시간의 흐름을 감지하기에는 간단하지 않았다. 한시진 전쯤에 소변을 보기 위해 뒷간에 들렀을 때 주위가 어두워지고 있었으 니 아마도 지금은 술시정도가 되었을 것이다. 확실히 술은 마시면 취하는 것이다. 제갈신중은 처음에는 취하지않은 것이 아닌가하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술을 마시게 되자 결국 눈앞이 먼저 흐려지고 머리를 가누기 어려워 졌다. 약간 어지러운 것 같기도했고 구토하고 싶은 것 같기도 했다. 몸은 매우 괴로워졌다. 그러나, 제갈신중의 마음속에는 한쪽에서 그것을 보고 승리의 웃음을 떠올리고 있는 듯 했다. 이제는 그 두가지의 기운도 술기운에 못이겨서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다. 아니, 그 두가지의 기운에 대한 생각마저 희미해질 정도였다. 제갈신중은 취기로 인해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씁쓸한 웃음을 떠올리며 머리 를 탁자에 처박았다. 그때 낯익은 음성이 지척에서 들려왔다. [오빠! 안으로 들어가서 쉬시는 것이 좋지 않나요?] 분명히 제갈금의의 음성이었다. 오늘따라 제갈금의의 모습은 유난히 아름다왔고 다른 청년들의 시선을 모으고 있다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제갈신중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냐,나는 ......여기서 이대로 자겠다!] 제갈금의는 그만 짜증이 나는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대 가까이에서 다시 다른 여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낯익은 음성이었다. [제갈동생, 무슨일이야? 혹시 몸이 좋지 않으신 것이 아니야?] 제갈금의는 대꾸했다. [아니예요. 취한 거예요.] 제갈금의의 한숨소리가 귓가에 천둥소리처럼 울려오는 듯 했다. 제갈신중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냐 나는,나는 너희들에게 폐를 끼치지는 않겠다.] 제갈금의는 그 말을 듣고 더욱 한심스러운지 냉소를 터뜨렸다. [흥,저러니까 남들이 천우공자라고 놀리기나 하지.] [......] 제갈신중은 한숨을 길게 내쉬며 대꾸하지 못했다. 그때 옆에서 다시 그 낯익은 여자의 음성이 들렸왔다. 제갈신중은 그제서야 그녀가 바로 얼마전에 만난 황보숙한이라는 것을 알아차 렸다. [제갈동생, 내가 한 번 달래볼테니 너의 오빠를 잠시 나에게 맡겨두는 것이 어 때?] 제갈금의는 약간 의외인 모양이었다. [어마,언니가?] 황보숙한은 웃으며 대답했다. [뭘 그렇게 놀라니? 별다른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난 그저 네 오빠를 조금 도와주려는 거야.] [언니......고마와요.] 제갈금의는 다소 감격한 듯이 뭐라고 말하다가 이윽고 다른 곳으로 인기척을 내며 멀어져 갔다. ...... [이봐요, 그 고개 좀 들어볼 수 없나요?] [......?] 제갈신중은 황보숙한의 말을 듣고 잠시 망설였다. [무슨 일이오?] 황보숙한은 그가 고집스럽게 대꾸하는 것을 보고 웃으며 다시 물었다. [당신은 숙녀를 대할 때는 그렇게 항상 고개를 숙이나요?] 제갈신중은 그만 가볍게 웃었다. [나는 지금 여자에게 진 것이 아니라 술에 진 것이오.] 황보숙한은 다시 물었다. [그럼 당신은 취했나요?] 제갈신중은 대꾸했다. [당신은 보고도 모르시오?] 황보숙한은 웃으며 말했다. [제가 보기에는 당신은 그저 취한 척 엄살을 부리고 있는 것 같은데요?나는 아까부터 당신이 술을 입으로 마시지 않고 바닥에 버리는 것을 보았었단 말이 에요.] 그녀는 확실히 총명해 보였다. 터무니없는 억지를 부려서 마침내 고개를 들게 만들다니...... [......] 제갈신중은 고개를 들었다. 우선 눈안에 들어오는 것은 희미하고 거부감이 느껴지는 불빛이었다. [그래 무슨 일이오?] 약간 홍조를 띠고있는 황보숙한의 얼굴을 낮에 보다 훨씬 더 요염하고 아름다 와 보였다. 하지만 그녀에게서 깊은 현숙함마저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제갈신증은 그것이그녀의 특유한 기질이고,또한 그것은 그녀의 눈빛에서 나온 다는 사실을 알았다. 황보숙한은 미소하며 대꾸했다. [일단 고개를 들었으니 일어설 수도 있겠죠?] 제갈신중은 눈살을 찌푸렸다. [나를 이곳에서 내쫓을 셈이오?] 황보숙한 대답했다. [그래요.나도 포함해서 말이죠.] [......] 제갈신중은 유난히 붉게 느껴지는 그녀의 입술을 바라보다가 웃으며 다시 물 었다. [그래서 나에게 무슨 이득이있다는 말이오.] 황보숙한은 대답했다. [최소한의 한가지의 이득은 있죠.이곳에서 남의 눈총을 받지않는 다는 것.게다 가 당신은 확실한 인질을 잡고 있는 셈이 되고요.] 제갈신중은 물었다. [당신이 인질이 되겠다는 말이오?] 황보숙한은 대답했다. [그래요.] 그녀의 입술은 정말로 앵두처럼 윤기가 흐르고 붉어서 대단히 유혹적인 느낌 이 들었다. 제갈신중은 물었다. [그래서 당신에게 돌아오는 이득은 무엇이오?] 황보숙한은 웃으며 대꾸했다. [당신은 항상 소채만을 먹나요? 때로는 고기를 먹을 수도 있는 일이죠.마치 그 것처럼 사람은 때로는 쓸데없는 일이 하고 싶어질 때가 있는 것이 아닌가요?] 제갈신중은 씁쓸하게웃으며 신형을 일으켰다. [때로 고기를 먹으면 몸에 이익이 되기도 하지만,날 대하게 되면 금방 실망하 게 될것이오.] * * * 제갈신중과 황보숙한은 걸어서 대청의 밖으로 나왔다. 하늘에는 달빛이 희미했고 서늘한 바람이 주위를 할퀴고 지나가고 있었다. 제갈신중은 풀밭에 이르러 벌렁 드러누웠다. [자,이제 나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해 보시오.] 뱃속에서 술기운이 뜨겁게 치밀어서 서늘한 주위의 바람이 시원스럽게 느껴졌 다. 황보숙한은 근처의 풀밭에 얌전하게 앉으며 대꾸했다. [반드시 무슨 말을 해야만 하나요?] 제갈신중은 말했다. [그럼 아무런 말도 없이 이렇게 시간을 보내자는 말이오?] 황보숙한은 웃으며 대꾸했다. [여기에서 반시진만 있으면 술이 깰 것이고,그럼 다시 안으로 들어가면 될게 아닌가요?] 제갈신중은 웃었다. [그럼 나는 다시 술을 마셔서 취해 버리게 될것이오.] 황보숙한은 대꾸했다. [그거야 나로서는 상관없는 일이죠.] 제갈신중은 잠시 누워있다가 이윽고 다시 입을 열어 물었다. [나의 형에게서 오라는 서신 연락이 오지 않았다는 말이오?] 황보숙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다고 하더군요.] 제갈신중은 다시 물었다. [그럼 영웅맹의 현재의 상황도 알 수가 없다는 것이오?] 황보숙한은 제갈신중의 얼굴을 바로보며 대꾸했다. [그래요.그런데 당신도 그런 일에 관심을 가지고 있나요?] 제갈신중은 대꾸했다. [그렇소. 하지만 내가 관심을 가지는 목적은 다름 사람들과는 다르오.그것은 ......숙명적이지.] 황보숙한은 그만 웃고 말았다. [당신도 농담을 할 줄 아는군요?] [......] 제갈신중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이윽고 다시 물었다. [당신은 세외팔세에 대해서 알고 있소?] 황보숙한은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이죠.그것은 우리들이 어렸을 때 가장 먼저 듣게 되는 강호의 전설들이 아닌가요?] 제갈신중은 말했다. [난 근래에 와서 기억이 점차로 희미해지는 느낌이오.그 전설에 대한 얘기를 해주겠소?] 황보숙한은 대꾸했다. [나는 내키지 않는데,대체 내가 그 얘기를 해주면 당신은 내게 무슨 이익을 주 실거죠?] 제갈신중은 대답했다. [은자 백냥을 드리겠소.] 황보숙한은 그만 웃고 말았다. [은자 백냥이라면 지나친 액수로군요.하지만 저는 이익을 좋아하는 사람이니 굳이 거절하지는 않겠어요.] [......] [당신은 그 가운데에서 어떤 부분을 듣기를 원하죠?] 제갈신중은 주저없이 대답했다. [처음부터 끝까지요.] 황보숙한은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그 얘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우선 간략하게 말슴드리고 이어 좀더 세부적인 얘기로 들어가도록 하죠.] [과거 지금으로부터 천년전에 한 명의 신인이 세상에 나타났어요.그는 천상신 골이라는 전무후무한 놀라운 신체를 타고나서 최초로 무학의 최고봉인 무형검 의 경지를 성취한 사람이었어요.그야말로 완벽이상으로 전해지고있는 그의 이 름은 백도건이었고 사람들은 천수자라고 불렀죠.그가 바로 천륭무가의 시조인 고금제일인이예요.] 제갈신중은 물었다. [그럼 그 이후에 다시 무형검의 경지에 오른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말이 오?] 황보숙한은 대답했다. [무형검의 경지는 완벽한 재능을 갖춘 사람이 완벽한 과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성취할 수 있다는 전설 속의 무학경지이므로,천수자 이래로 다시 그것을 성취 했다는 사람은 없어요.아니,더러 그런 사람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기록상에는 나와있지 않죠.] 제갈신중은 다시 물었다. [그럼 그 천륭무가의 사람들은 재능이 부족했었다는 말이오?] 황보숙한은 대답했다. [물론이죠. 그 가문 이라고 해도 그처럼 완벽한 사람이 계속해서 나타날리는 없는 것이죠.그 가문에서도 그 이후에는 무형검을 성취한 사람은 나오지 않았 어요.] 제갈신중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 황보숙한은 미소하며 말을 이었다. [두번째는 지금으로부터 칠백년 전의 일이예요. 그때 강호상에는 천년 전의 천 수자의 무학에 버금가는 능력을 지닌 세 사람의 천재들이 동시에 나타났어요. 그들은 이남일녀였는데, 각기 천검성자, 성수신의, 만화성모라고 불리웠죠.] 제갈신중은 불쑥 물었다. [당신은 그들의 별호가 너무 거창하다고 생각되지 않소?] 황보숙한은 웃으며 대답했다. [그것은 당시를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예요.현재에도 그런 명성을 좋아하는 사 람들이 강호상에 널리 알려지지 않아서 사람들은 그들을 신선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분명해요.] 제갈신중은 다시 물었다. [그들은 끝내 무형검의 경지에 오르지 못했다는 말이오?] [그들은 무형검에는 오르지 못하고 바로 그 아래의 단계인 광검의 경지에 까 지 이르렀다고 해요.] 제갈신중은 물었다. [광검은 무형검과 다른 것이오?] 황보숙한은 제갈신중을 돌아보았다. [당신은 아직 그러한 상식을 알지 못하나요?] 제갈신중은 대꾸했다. [나는 왠지 지금 기억이 희미해진 것 같소.] 황보숙한은 웃으며 말했다. [대개 무학의 단계를 네 가지로 나누고 있죠.그것은 자매판과 황화예, 백연탄 과 대홍락이예요. 당신은 설마하니 그것들도 기억나지 않는 것은 아니겠죠?] 제갈신중은 대꾸했다. [자매판은 일류고수까지이고 황화예는 절정고수, 그리고 백연탄은 최절정고수, 대홍락은 초절정고수를 말하는 것이 아니오?] 황보숙한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으례 그렇게 말하기도 하지요.거기에서 대홍락은 다시 세가지의 경지로 나뉜 다는 것을 당신은 모르지는 않겠죠?] 제갈신중은 대답했다. [나는 모르겠소.] 황보숙한은 그만 입을 가리고 웃으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 세가지란,바로 수중무검 심중유검 과 검즉아 아즉검, 그리고 무검무아 물 아양망 을 말하는 거예요. 음......그러니까 첫 번째인 수중무검 심중유검은 다 른 말로는 심검이라고 불리우기도 하는데, 말그대로 뜻이 있는 곳에 초식이 있다는 것이죠. 본래 대홍락의 경지 전체를 심검이라고 하는데 비해,이 심검은 협의의 의미예요.] [......] [두번째인 검즉아 아즉검 은 바로 다른 말로는 혼검, 혹은 광검이라고 불리우 기도 하죠. 혼검이라는 말은 그 원리에 입각한 명칭이고, 광검이라는 말은 그 표현에 입각한 말이예요.] 제갈신중은 다시물었다. [그럼 그 세명이 바로 그러한 경지에까지 올랐었다는 말이오?] 황보숙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세월이 흘렀어도 무학이 쉬워지는 것은 아니예요.당금의 무림이 비록 중흥하고 있다고는 하나 아직 그러한 경지에 오른 사람도 없다고들 하는군요. 혹시 당신의 부친이 이미 그러한 경지에 올라있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말이예 요.] [......] [광검의 경지는 그러니까 말 그대로, 나와 검이 하나로 동화되어 뜻은 있되 초 식은 없어진다는 것으로서 무형검의 경지에 한걸음 다가서는 것이죠.] 제갈신중은 물었다. [광검에서 무형검의 경지로 올라가는 것이 그렇게도 어렵다는 것이오?] 황보숙한은 대답했다. [대홍락의경지를 셋으로 나눈 것이라고는 하지만, 오히려 심검에서 광검으로, 혹은 광검에서 무형검으로 한단계 나아가는 것은 황화예나 백연탄의 단계를 뛰어넘는 것보다도 수천배는 어렵다고 말할 수가 있죠.그렇기 때문에 과거의 천재들도 결국 무형검만은 정복하지 못했던 것이예요.] 제갈신중은 물었다. [그럼 무형검의 경지는 대체 어떤 것이오?] 황보숙한은 대답했다. [그러니까 그 세법째인 무형검,즉 형식을 초월한 최고의 대자연 무학은 무검무 아 물아양망,즉 말그대로 검도 나도 잊어버림으로써 뜻도 초식도 모두 없어지 는 것을 말하는 것이죠.] 제갈신중은 문득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잊어버린다고? 어째서 잊어버려야 하는 것인가? 왜 검과 날 잊어버려야한다 는 것인가?] (......?) 황보숙한은 그 말을 듣고 약간 어리둥절해 졌다. [예? 뭐라고 말씀하셨죠?] 제갈신중은 문득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웃으며 대꾸했다. [아무것도 아니오.내 고질병이 재발한 것이니......어서 계속해 보시오.] 기실 제갈신중은 고차원의 생각을 하기를 좋아했는데, 그는 그것을 쓸데없는 공상을 즐기는 고질병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었다. 황보숙한은 다시 물었다. [무엇을 계속하라는 거죠?] 제갈신중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 보니 얘기가 거기에서 끝난 셈이군?헌데 그 무형검의 경지에 오르면 누구나 실력이 동등해지는 것이오?] 황보숙한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고서에 나와있는 바에 의하면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제갈신중은 물었다. [그렇다면 무형검의 경지보다 높은 경지가 있다는 말이오?] 황보숙한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지 않아요.무형검은 명실공히 무학의 최고경지죠.] 제갈신중은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말이 서로 엇갈리는 것이오?] 황보숙한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는 그 부분에 이르러서는 잘 알지 못하고 있어요.저도 일단 최상의 무학을 터득했다면 그것으로 힘이 같아질 것 같은데......고서에는 이렇게 나와있지요.] 제갈신중은 물었다. [신빙성이 있는 얘기요?] 황보숙한은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도 잘 몰라요.아무튼 그 고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죠.천년 전의 천수자는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 [무형검에는 여러 가지의 종류가 있다.그것은 말하자면 대자연무도로서 번갯불 이나 바람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즉, 그 숫자는 헤아릴수가 없다.나는 이 제 겨우 하나의 무형검에 이르렀을 뿐인데,나의 앞에는 그야말로 헤아릴 수가 없는 길이 펼쳐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길은 신의 길이다.신의 길에있 어서 나는 이제 겨우 갓난아기와 같은 것이다. 천하인들이여 작은 성취에 만 족할 것인가? 끝없이 정진하라.정진하다 보면 나의 말을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오게 될 것이다......] 제갈신중은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신의 경지라고?] 황보숙한은 말을 받았다. [그야말로 진짜 신의 경지를 말하는 것이겠죠.] 제갈신중은 다시 물었다. [당신은 그 책자의 글귀에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오?] 황보숙한은 대답했다. [저는 반반이라고 생가해요.] 제갈신중은 물었다. [그게 무슨 뜻이오?] 황보숙한은 대답했다. [우선 말 그자체에 일리가 있다고생각해요. 예를 들어서, 다른 도가의 책자에 는 원영을 만들고 삼천갑자의 공력을 얻게 되면 지상신선이 될 수가 있다고 나와 있거든요.즉 반인반선의 경지이죠.하지만 만일 그러한 것을 믿는다면 도 저히 지금의 수준 낮은 무학들을 배울수가 없게 되지않겠어요?] 제갈신중은 웃었다. [미처 바다를 헤엄쳐 건너기도 전에 질려버리고 만다는 얘기로군!] 황보숙한은 물었다. [당신은 그럼 믿을 수가 있겠나요?] 제갈신중은 문득 약간 심각해졌다. [나는......] (......?) 황보숙한은 제갈신중이 말을 하다가 마는 것을 보고 아마도 다시 한 번 생각 해 보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헌데 잠시 후의 일이었다. 갑자기 제갈신중의 몸에서 코고는 소리가 가볍게 들려오기 시작하는 것이 아 닌가? [맙소사!......] 황보숙한은 그만 어이없다는 듯이 크게 웃고 말았다. 제갈신중은 드디어 취기를 이기지 못한 것이었다. * * * 제갈신중은 다음날 아침 자신의 모옥에서 개어났다. [......?] 그는 처음에는 다소 어리둥절해 했다. [내가 언제 여기에 다시 돌아와 있지?] 돌아보니 그의 봇짐은 한쪽에 놓여 있었고 그의 옷차림은 어제 저녁때의 그대 로였다. [분명히 어젯밤의 일이 꿈은 아니었는데......] 제갈신중은 그렇게 넋놓고 중얼거리다가 문득 벌떡 신형을 일으켰다. 이미 창밖이 훤해진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아이쿠,이거 큰일났구나!) 내심으로 부르짖으며 밖으로 달려나가는 순간에 문득 그의 귓전을 두드리는 낯익은 음성이 있었다. [이미 모두 떠났을까봐 그렇게 다려가나요?] 제갈신중은 일순 깜작 놀라서 신형을 멈춰세웠다. [당신은 바로 황보낭자가 아니오?] 그렇다. -황보숙한. 그녀가 언제부터인가 대문밖에서 그를 기다리며 서 있었던 것이었다. 제갈신중은 일순 자신의 눈을 의심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황보숙한은 여전히 말쑥하고 단아한 모습이 되어 웃으며 대답했다. [간밤에 당신이 그대로 자길래 하인들에게 당신을 옮기라고 말했죠.그리고 나 서 나는 지금 당신을 데리러 온 거예요.어때요? 내가 확실해 보이지 않나요?] 제갈신중은 그제서야 알겠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렇소.당신은 정말 확실하오.] 황보숙한은 말했다. [하지만 나는 한가지 준비를 하느라 다소 늦었어요.당신은 아침을 걸러도 상관 없나요?] 제갈신중은 그대로 밖으로 걸어나가며 대답했다. [걱정마시오. 아침식사를 거르는 것은 바로 나의 취미요.] ...... 그런데, 마악 대문밖으로 나간 제갈신중은 황보숙한의 옆에 웬 한 마리의 누런 말이 매어져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아니,내게 이것을 준비해주느라 늦었다는 말이오?] 황보숙한은 웃으며 대답했다. [은자 백냥은 결코 적은 돈이 아니예요.그리고 저는 그다지 염치를 모르는 계 집이 아니죠. 나는 당신에게 필요할 것 같아서 하인들에게 부탁한 것이예요.] 솔직히 제갈신중이 다른사람들을 쫓아가려면 아무래도 말이 필요할 것이었다. [고맙소.] 제갈신중은 일단 황마의 위에 오른 뒤에 품속에서 한 장의 백냥짜리 은표를 꺼내서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그런데, 황보숙한은 그것을 굳이 사양하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호호,그것은 다음에 받기로 하죠.] * * * 제갈신중이 황보숙한과 함께 취의정이 있는 쪽으로 가자 과연 일행은 마악 떠 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저는 오늘 아침에 당신의 말을 준비하느라 미처 식사를 하지 못했어요. 그 은 자백냥으로 나중에 근사한 곳에서 식사나 한끼 대접해 주세요.] 황보숙한은 그렇게 말하고서 일행들 속으로 합류했다. 취의정의 앞에는 지금 제갈고헌이 일일이 일행에게 노잣돈을 건네주며 배웅을 하고 있었다. 제갈신중은 그의 앞으로 다가가서 인사를 올렸다. [밤새 편히 주무셨습니까?] 제갈고헌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며 되물었다. [자네도 함께 떠난다면서?] 제갈신중은 대답했다. [그렇게 되었습니다.] [.....] 제갈고헌은 잠시 엄한 시선으로 그의 얼굴과 차림새를 살피더니 다시 말했다. [어쨌든, 잘 다녀오도록 하게!] 제 15장. 느닷없이 걸려들다. 제갈고헌은 특히 제갈보중과 제갈덕중에게 각별히 안전을 당부하며 넉넉한 여 비를 건네주었다. 취의청의 앞에는 그를 제외하고도 제갈덕중의 모친 등 많은 사람들이 몰려나 와 일행을 배웅했다. 이윽고 대나무숲을 통과한 일행 열두명의 젊은이들은 빠르게 내달리기 시작했 다. 모두가 신법에 의지하여 나아가는 반면에 제갈신중만은 유독 황마의 잔등에 올라서 뒤 따랐다. 두두둑...... * * * 현재 영웅맹은 하남성 복우산 영웅요라는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제갈세가에서 북쪽으로 나아가야 하며 그 거리는 대략 천리를 조금 넘을 뿐 가 까운 편이었다. 황보숙한이 직접 마련해준 황마는 매우 건실하여 잘 달렸으며 천천히 신법을 펼치는 일행의 뒤에 쳐지지 않을 수가 있었다. 비교적 가깝지 않은 거리를 달려야 하기 때문에 일행은 무리해서 공력을 소모 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한수를 건너고, 다시 두어번 쉬면서 내달려 정오무렵에 일행은 용왕집이라는 마을에 이르렀다. 그 마을은 현성에 해당하는 곳이었는 데 제법 풍광이 수려하고 운치가 있어 보이는 마을이었다. 일행은 모두 그 현성에 들러서 역시 용왕집이라는 같은 이름을 가진 술집에 들러서 점심식사를 주문했다. 비록 아침식사를 걸렀다고는 하나 황보숙한은 그다지 허기지거나 피로한 모습 을 보이지않고 기질이 여전히 밝고 활기찼다. 하지만, 제갈신중은 오전내내 말위에서 편안하게 왔는데도 허리를 구부정하게 하고는 심히 피곤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가 오전 내내 말위에서 심마에 시달려 왔기 때문이었다. 심마라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이 바로 체내의 두가지의 기운에 대한 생각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누구라도 만일 결사적으로 어떤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면 지극히 피곤해 질 것은 뻔한 일이었다. [당신은 정말로 무공이 없나요?] 제갈신중이 말을 밖에 매어놓고 들어오자 이미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있던 황보 숙한이 농담조로 그렇게 물었다. 주루의 내부에는 점심시간인데도 불구하고 거의 다른 손님들이 없었다. 일행은 다행히 모두 편안하게 앉아서 식사를 기다릴 수 있게 되었다. 제갈신중이 구석진 자리를 차지하고 앉자, 문득 그의 앞에 앉아있는 백의 청년 이 입을 열어 말했다. [제갈형! 우리 기왕에 서로 어울리게 되었으니 우선 수인사나 나누는 것이 어 떻겠소?] 그 사람은 어제의 토의에서 항상 앞장서곤 하던 청년이었다. 그러나, 정광이 예리한 눈빛을 보니 그의 무공은 절정급은 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제갈신중은 내심 다소 뜨끔하여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나는 신경쓰지 마시오.] [......] 백의청년은 그 말에 신형을 벌떡 일으키며 그의 손을 덥썩 잡았다. [핫핫핫, 뭘 그리 쑥스러워 하는 거요? 당신의 이름은 알고 있으니 내 이름만 밝히면 되겠군. 내이름은 팽일비요. 저기에 앉아 계시는 검은 옷을 입은 사람 이 바로 나의 형님으로 철면도 팽일악이오.] 이어, 자칭 팽일비라는 백의 청년은 일행의 모든 사람을 제갈신중에게 일일이 소개 시켜 주었다. 그는 남들의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는 성품인 모양이었다. 제갈신중의 예상대로 일행은 하나같이 무림오대세가의 젊은이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었다. 무림육영 가운데에서 영웅맹의 제갈의중을 제외한 다섯명이 모두 여기에 있었 다. 즉, -철면도 팽일악. 그는 하북팽가의 사람으로 나이는 이곳에서 가장 많은 스물 일곱이었고, 오 척 일곱치의 키에 강한 근육질의 체구를 가지고 있는 흑의청년이었는데 말 수는 적으나 강한 기질이 엿보였다. -염왕편 당백승. 그는 사천당문의 사람으로서 나이는 스물넷이며, 오척 다섯치의 다소 호리호리 한 체구에 황의를 걸치고 있는 청년이었다. 별호에서 느낄 수 있듯이 그의 준수해 보이는 얼굴에는 약간 독랄한 듯한 기 질이 깔려 있었다. 그밖에, 제갈신중이 알지 못하는 여자들로는 현재 스무살의 나이에 청의를 걸치고 있 는 남궁세가의 소저 남궁녹악과, 현재 스물두살의 나이에 황의를 걸치고 있는 사천당문의 소저 당설정이 있었 다. 그 가운데 특이할 만한 것은,당설정의 용모는 다소 표독한 느낌을 주며 키도 작아서 인형같은 아름다움을 보여주었으며, 남궁녹악은 늘씬한 키에 섬약해 보이는 체구를 하고 백옥같은 피부의 고고하 고 차가운 전형적인 미모의 소녀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소개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으나 어쨌든 그렇게 하는 동안에 시간이 흘러 주문한 음식들이 나왔다. 식사시간에도 가장 말이 많은 사람은 역시 팽일비였다. 지금 일행 중에서 제갈신중을 제외하고 무공이 가장 낮은 남자들은 바로 제갈 덕중과 그 두 사람이었는데, 제갈덕중은 잠자코 식사를 하는 반면에 팽일비는 기회를 만났다는 듯이 제갈 신중을 향해 떠들었다. [제갈형, 듣자하니 지난 삼년동안 천하를 떠돌며 수련을 쌓았다고 하던데 그게 사실이오?] 제갈신중은 웃으며 대꾸했다. [천하를 돌아다닌 것은 사실이지만 수련을 한 것은 아니오.] 팽일비는 말했다. [사실 그게 그거지 구태여 나눌 필요가 어디에 있겠소? 사실 말이지......나도 한 번쯤 그렇게 해보고 싶었소.그래서 내가 제갈형을 존경하는 것이 아니오? 나는 쉽게 떠날 수가 없었지만 제갈형께서는 모든 것들을 버리고 떠나셨으 니......] 지금 일행이 주문을 해서 먹고 있는 음식들은 삶은 돼지고기와 약간의 소채볶 음,그리고 국수등이었다. 제갈신중은 게걸스레 고기를 씹어삼키면서 연신 침을 튀기고 말을 하는 상대 방이 다소 역겨운 느낌이 들었지만,그러나 참고 웃으며 계속 상대해 주었다. [과찬의 말씀이시군요.] 팽일비는 다시 질문해왔다. [그래서 말인데, 제갈형께서는 당금의 강호무림을 어떻게 보십니까?] 제갈신중은 은근히 지금 조용히 식사를 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주의가 자신 을 향해 집중되어 있는 것 같아서 당혹해 하며 대답했다. [나와 같은 자에게 무슨 대세를 바라보는 식견이 있을 수가 있겠소? 팽형께서 는 너무 소생을 노리지 마시오.] 팽일비는 가볍게 웃었다. [제갈형은 너무 겸손하시군.그렇다면 이번에......] (......?) 제갈신중은 팽일비가 말을 하다가 말고 갑자기 고개를 숙이는 것을 보고 다소 의아해졌다. 처음에는 그저 그가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 것 인줄로 생각했었는데 기이 하게도 그게 아니었다. 팽일비는 그렇게 탁자위에 엎드린 채로 움직이지 않는 것이었다. 게다가, 더욱 놀라운 것은 비단 팽일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로 서로 약속이라도한 듯이 그렇게 이미 엎드려 있는 것이었다. 이것은 대체 어찌된 일일까? 제갈신중이 크게 어리둥절해 하고 있는데 그도 갑자기 머리속이 크게 어지러 워지며 정신이 흐려지는 것이었다. 제갈신중은 탁자위에 엎어지며 내심으로 생각했다. [앗! 이것은 바로 미혼산에 당한 것이로구나!] 밖에서 갑자기 말 울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독은 아마도 일행이 먹은 음식물속에 들어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대체 어떤 자들이 일행을 상대로 독을 시전한 것일까? * * * 제갈신중이 자신이 당한 것이 미혼산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이유는 그가 과거 에도 그와 비슷한 경험을 한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삼년간 강호를 떠도는 중에 비록 그 약은 강도는 미미했었지만 당시 그 는 목 숨을 잃을 뻔했었다. [......] 그로부터 대체 얼마나 시간이 흘러간 것일까? 주위가 어두컴컴한 것을 느끼며 제갈신중은 눈을 떴다. 머리가 혼란스럽고 두통이 약간 있었지만 그것은 제갈신중의 요 근래의 흔한 현상이었다. 그는 체내의 두가지의 기운들 때문에 대부분의 시간을 그보다 더욱 심한 두통 속에서 보내야 했다. 다만 지금 특이하게 느껴지는 것은 전신이 나른하고 마치 마비된 것처럼 감각 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주위는 기이하도록 조용했다. [벌서 한밤중이 된 것일까? 그리고,다른 사람들은 모두 다 어디로 간 것이지?] 제갈신중은 주위에서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 혼자서 묶 여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제갈신중은 우선 자신의 몸을 묶고 있는 끈이 어떤 종류인지 알아보아야 하겠 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혹시 혈도가 제압되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전혀 움직일 수 없을 것으로 생각했던 그의 손이 문득 움직였으며 하나도 결 박되어 있지 않은 것이 아닌가? 게다가 일단 조금식 움직이기 시작하자 전신의 감각이 살아나기 시작하고 이어 어두웠던 주위도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제갈신중은 일단은 마음을 가라 앉히고 침착하게 주위의 사물이 완전히 분간할 수 있을 때가지 기다렸다. 그런데, 이윽고 주위가 더욱 눈에 익숙해져서 분간할 수 있게 되자 제갈신중은 일순 매우 놀라고 말았다. (......!) 이곳은 거의 두평 남짓한 토굴과도 흡사한 장방형의 공간이었다. 헌데 이곳에는 기이하게도 그 혼자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그의 일행인 나머지 열한명의 사람들이 모두 함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들은 하나같이 이곳의 내부에 아무렇게나 쓰러져 있었으며 호흡소리는 들리 지 않았다. 숨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을 보고 제갈신중은 이렇게 생각했다. (내가 먼저 인기척을 내지 않은 것이 다행이로군.) 강호상에는 이른바 숨을 쉬지 않고 견디는 귀식대법이라고 하는 수법이 흔히 쓰이고있었다. 제갈신중은 틀림없이 다른 사람들이 이미 먼저 깨어나서 상대방의 동태를 살피 기 위해 귀식대법과 같은 것을 펼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갑작스럽게 당했을 때에는 그렇게 일단 마음을 가다듬고 적의 동태를 살피는 것이 침착한 수단이었다. 제갈신중은 비록 귀식대법을 펼치지는 못하지만 일행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 급히 숨소리를 최대한 죽였다. 그런데 이때 갑자기 어디선가 음침한 사내의 음성이 거칠게 들려왔다. [어때, 보고는 올렸나?] 그러나, 다른 사내의 음성과 함께 의자에 주저앉는 듯한 인기척이 들려왔다. [물론이지.이제 대략 한 시진만 지나면 상부에서 놈들을 실어갈 마차가 당도하 게 될 것일세. 내가 보고를 올리니까 상부에서는 우리에게 매우 수고했다고 칭 찬을 아끼지 않으시더군.] 첫 번째의 사내가 득의하게 웃으며 말을 받았다. [흐흐흐. 솔직히 우리도 일이 이렇게 쉽게 풀리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지.흐흐, 정파의 애송이들이란 그저 멋모르고 날뛰는 것들에 불과해.] 두 번째의 사내가 말했다. [그렇게만 생각해서는 안되네.우리가 이렇게 쉽게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바 로 상부에서 전해준 소요산이라는 그 독약 때문이지.] 첫 번째의 사내가 약간 의기소침해져서 대답했다. [하긴 그래. 놈들은 지나치게 자신들을 믿었던 것이 실수였지. 놈들 가운데에는 제법 독을 잘 다룬다는 사천당문의 놈들도 있었으니까 말이야. 설마하니 자신 들이 독으로 당하게 될 줄은 몰랐을걸?] 그 두명의 사내들의 음성은 바로 옆방에서 들려오고 있는 것 같았다. (......?) 제갈신중은 이게 대체 어찌된 영문인지 쉽게 파악되지 않아서 그대로 있었다. 첫 번째 사내가 잠시 후에 다시 입을 열어 물었다. [혹시 밖에 나갔다 들어올 때 술을 가지고 오지 않았나?] 두 번째의 사내가 약간 놀라며 대꾸했다. [아니,자네는 그새 그 많은 술들을 혼자서 다 마셔버렸다는 말인가?] 첫 번째의 사내가 말했다. [빌어먹을,지금 저 방에는 그야말로 선녀처럼 아름다운 계집들이 네명이나 있 는 데 그것을 심지어 한 번 만져보지도 못하고 그대로 보내야만 하다니 도저 히 참을 수가 있어야지. 우라질! 오형제에게 시름을 달래려는데 갑자기 술생각 이 나지 뭐야. 헌데 이 곳은 주막이면서도 술이 별로 없더군?] 두 번째의 사내가 말을 받았다. [그거야 우리들이처음 왔을 때 술동이들을 깨버렸기 때문이 아닌가?그보다 자 네는 여색에 대해서 다소 주의하는 것이 좋아. 계속 그러다가는 공연히 목위의 물건이 성치 않을수가 있으니 말이야.]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인데 갑자기 방문이 벌컥 열리며 제갈신중은 눈부심을 느 껴야 했다. (......!) 그 사내가 그렇게 갑자기 방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 볼 줄은 몰랐기 때문에 제 갈신중은 급히 호흡을 삼켰으며 간이 콩알만해지고 말았다. 그것은 무의식중의 행동이었다. 그 사내는 방안의 일행을 하나하나둘러보는지 한참동안 방문앞에 서 있었다. 제갈신중은 행여 자신이 깨어있는 것을 그들이 눈치챌가 두려워서 감히 그 사 내의 얼굴을 바라볼 엄두를 못냈다. 이윽고 첫 번재의 사내가 뒤에서 다가오며 다시 말했다. [이봐,뭘 그렇게 소심하게 조사하고 그러나?혹시 내가 그 계집들 가운데 하나 라도 건드렸을까봐 그러는 것인가?] 두 번째의 사내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냐.] 첫 번째의 사내가 따지듯이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뭔가? 그 소요산은 한 번 중독이 되면 해독약이 없는 한 결코 깨어 나지 못하고 죽어간다는 것이 아닌가?우리는 만일에 대비해서 놈들이 먹는 술이나 음식,심지어 엽차에도 독을 탔었는데,설마하니 아직 두시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깨어난 놈이 있을라구.] [......] [그러지 말고 이리와서 나하고 술이나 한잔 하세.] 두 번째의 사내는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자네는 이미 술이 하나도 없다고 하지 않았나?] 첫 번째의 사내는 웃으며 대꾸했다. [그거야 한 번 해본 소리이고, 사실 말이지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우리에게 술 이 없다면 무슨 수로 다시 한시진이라는 시간을 기다릴 수 있겠나? 내 만일 대 비해서 약간 남겨 두었지.] [......] 두 번째의 사내는 약간 주저하는 모양이었다. 첫 번째의 사내는 다시 재촉했다. [어서 그 문을 닫고 이리로 오게.난 그 소요산을 생각하면 이미 먹은 술까지 다 깨는 느낌이란 말이야.] 두 번째의 사내는 다시 한 번 주의깊게 방안을 둘러보다가 이윽고 가벼운 한 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역다. [알겠네.] 이어 방문이 다시 닫히고 방안은 칠흑같은 어둠속으로 휩싸였다. 제갈신중은 이제까지 숨을 멈추고 있다가 금방이라도 터질 듯 했는 데,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이 순간 그의 가슴은 심하게 쿵쾅거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상황은 알고보니 아까 그가 예측했던 것과는 아주 다른 것이었다. (이럴 수가......) 제갈신중은 갑자기 벌어진 감당할 수 없는 사태에 전신이 굳어드는 느낌이었 다. 우선 지금 다른 사람들은 귀식대법을 펼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중독이 되어 혼절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이상하게도 유독 그만은 중독에서 풀려나서 이렇게 깨어있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대체 뭘까? 분명히 그는 백독불침 등의 신체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틀림없이 제갈신중이 팽일비를 상대하느라 음식을 적게 먹은 것이 그 이유중 의 하나일 것이고, 문득 떠오르는 것은 틀림없이 그의 체내의 두가지의 기운들이 스스로 움직여 서 독기운을 몰아내었을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어쨌든 간에 지금은 그런 문제보다 현 상태를 벗어나는 일이 시급했다. 듣자니 두시진이 지났다면 지금은 오후 무렵인 신시 무렵일 것이었다. 제갈신중은 일단은 이곳에서 자신뿐만 아니라 일행도 무사히 구해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대체 흉수는 어떤 자들인지 알 수가 없었다. 어쨌든 자신의 일행을 한꺼번에 노렸다니 대단한 놈들이 분명했다. 가만히 주위를 살펴보니 이 방안은 오직 아까 그 사내가 열었던 방문의 외에 는 출입구가 없는 것 같았다. 필시 이곳은 아까의 그 주점과 가까운 곳일 것이다. 당장에 밖으로 나갈 수는 없었으므로 제갈신중은 일단은 계속 누워서 사태를 보아가며 기회를 노리기 시작했다. 아까 들리는 말로는 한시진 후에 놈들의 배후에서 사람이 온다고 했다. 제갈신중은 직감적으로 이 사태가 이제까지 그가 겪었던 그 어떤 사건들보다 도 험악한 것이며, 그가 감당해내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을 감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자신은 제갈세가를 출발할 때부터 이와같은 환란을 기대하지 않았던가? 그런 생각을 하자 제갈신중은 가슴이 떨리는 가운데에서도 묘한 의지를 느꼈 다. 그때 다시 첫 번째의 사내의 다소 취한 듯한 음성이 들려오고 있었다. [우헤헤헤헤! 난 말이야, 아까 솔직히 우리 아이들이 놈들을 들어서 나를 때도 그중 한 계집의 엉덩이는 금방 죽어도 보고 싶더라는 말이야.하하하, 지금 우 리에게 그 소요산의 해약만 있었다면 나는 정말 그 계집의 엉덩이를 붙잡고 한바탕 뒹군다음에 뒷일을 생각했을 거야.하지만 말이야......잘못하면 그 소요 산이 내게도 옮겨붙어서 당할 것을 생각하니 감히 손한번 댈수가 없더라구.] [......] [그 소요산이라는 그거 말이야.그야말로 한 번 중독되면 잠을 자듯이 일주일이 되면 천하없어도 목숨을 잃고 만다는 사실이 어찌나 두렵던지 말이야. 또한 가 장 무서운 점은 무색무미무취하고 처음에 전혀 당한 것을 모르게 된다는 데 있다지.하하,이거 내가 이제까지 지하에서만 굴러먹다가 보니 간이 훨씬 작아 진 것이 아닌가 생각되네.] 두 번째의 사내가 딱딱한 어조로 말을 받았다. [술이나 마시게.목소리가 너무 크네.] 첫 번째의 사내는 오히려 목소리를 더욱 크게 높였다 [우자질! 이런 염병할 자식아, 지금 이곳은 밖으로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아서 밖에서 지키고 있는 수하녀석들이 들을 리가 없는 것이고, 또한 저방의 놈들은 하나같이 시체나 다름이 없는데 또 웬 간섭이야? 그건 그렇고 이번에 우리가 이 일의 대가를 상부에서 받게될 상품이나 생각해 보세.음 그 일월......] 첫 번째의 사내가 말을 하는 도중에 갑자기 두번째의 사내가 화난 음성으로 서리치며 말을잘랐다. [목소리가 너무 크다니까 그러네! 자네 계속 이럴텐가? 이처럼 중대한 일을 하 고 있는 데 그렇게 술에 취해서 횡성수설을 계속할 생각이냐는 말이네!] 첫 번째의 사내가 약간 주눅이 든 음성으로 말했다. [제에미, 좋아! 그 일월에 대한 얘기는 하지 않기로 하지.하지만 나는 솔직히 그런 짓거리가 마음에 안들어.사람의 목숨을 단칼에 베어버리는 거야 통쾌한 일이지만 빌어먹을 마치 거미처럼......자네 거미의 습성에 대해 알고 있나? 그 암거미라는 놈은 일단 숫놈과 정을 통한 이후에 반드시 그 숫놈의 피를 빨아 먹는 다는 거야.우리야 물론 암놈은 아니지만 말이야......나는......] 갑자기 거기에서 첫 번째 사내의 음성이 끊어졌다. 술에 너무 취해서 잠들어 버린 것인지 그것은 잘 알수가 없었다. ......! 제갈신중은 갑자기 주위가 조용해지자 더욱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다. 헌데 그때 느닷없이 다시 방문이 벌컥 열리는 것이 아닌가? 순간적으로 다시 방안으로 밝은 불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제갈신중은 깜짝 놀라며 급히 숨을 멈추고 눈을 감았으나 미처 그쪽을 향한 얼굴을 되돌릴 사이가 없었다. (......?) 그 사내는 문득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모양이었다. 잠시 방안을 둘러보더니 이어 직접 등불을 손에 들고서 안으로 걸어 들어오는 것이었다. 제갈신중은 그가 자신의 앞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 같아서 그야말로 간이 콩알 만 해졌다. 지금 이곳에 지하실이 아니고 훤한 대낮이었다면 그는 창백한 안색이 드러나 고 말았을 것이었다. 그 사내는 상당히 치밀하고 꼼꼼한 성격의 소유자인 것 같았다. 그는 직접 안으로 들어와서 등불을 쳐들고 정말 중독이 되어 혼절한 것인지 조사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물론 그저 눈으로 살피기만 하는 것이지만 제갈신중으로서는 아주 난감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는 이미 숨을 멈추고 있은지 오래 되어 금방이라도 질식할 것 같았기 때문 이었다. 사내는 천천히 한 사람씩 살피고 나서 제갈신중이 있는 쪽으로 다가오는데,그 시간이 제갈신중에게는 무한히도 길게만 느껴졌다. 그것은 실로 극심한 고통이었다. 제갈신중은 어차피 들킬 것이라면 차라리 이렇게 고통을 겪으면서 숨을 멈추고 있어야 하는 가에 회의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제갈신중은 도저히 그 사내가 지나갈 때까지 숨을 멈추고 있을 자신이 없었 다. 따라서, 그가 마악 마음속으로 모종의 결심을 내리려고 하는 찰나의 일이었다. 쿠당,쾅! 느닷없이 건너방에서 무엇인가 부딪치면서 굴러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이 아닌가? (......?) 아마도 아까 술에 취해 있었던 그 사내가 바닥에 굴러떨어진 모양이었다. 사내는 그 소리를 듣고 약간 놀란 듯이 멈칫거리다가 이윽고, 고개를 들어서 다시 한 번 빠르게 방안을 살핀 이후에 총총히 그 방으로 돌아갔다. [......] 제갈신중은 문이 닫히고나서 한참후에야 비로소 괴롭던 숨을 서서히 토해내기 시작했다. 그는 조금전에 그야말로 십년감수를 한 것 같았다. 만일 그가 조금이라도 이상한 기척을 보였다면 그는 즉시 그 사내에게 죽음을 당하고 말았었을 것이다. 오히려 중독당하지 않고 깨어있다는 사실이 지독하게 고통스러운 현실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조금전에 그 술취한 사내가 갑자기 바닥에 심하게 굴러떨어진 것은 제갈신중 에게는 과히 천우신조라고 할 만 했다. 제갈신중은 내심으로 그 사내가 다시 확인하려 들어오는 것을 대비하기 위해 이후부터 매우 긴장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 사내는 이후에는 안심했는지 다시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 * * 그 한시진이라는 시간은 이윽고 지나가버렸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그것은 꿈결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기실 계속해서 가슴을 조이고 있었던 제갈신중에게는 가히 악몽과도 같은 시간이었다고 말할 수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사건이 끝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아니, 이제부터가 기실은 감당하기 어려운 운명의 시작이라고도 말할 수가 있을 것 이었다. 제갈신중 자신은 스스로도 이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 지가 의심스러웠다. 제 16 장. 한밤중의 괴이한 일. 이미 기다렸다는 듯이 방문이 벌컥 열렸다. 그리고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사내들. 제갈신중은 이미 각오하고 호흡을 멈추고 있었던 터라 도저히 어떤 자들이 나 타난 것인지 알아볼 수가 없음은 물론이었다. 사내들은 이미 계획이 되어 있는 듯이 안으로 들어오자 마자 검은 장갑과도 같은 것을 끼고서 각기 한 사람씩 밖으로 나르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상당한 소음이 생겼기 때문에 제갈신중은 그래도 아까보다는 마 음의 부담감을 덜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호흡마저 할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다. 지금 왔다갔다 하는 사내들은 모두 대여섯 명 정도 되어 보이는데, 혹시 그들 가운데에서 누가 유심히 사람들의 동태를 살피고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천가지의 일을 잘해도 한가지를 그ㄹ면 안된다고 했던가? 비록 아직 상황이 끝난 것은 아니었지만 제갈신중은 들통날 가능성이 있는 그 어떤 행위도 할 수가 없었다. 다행히도 이번에는 사내들이 상당히 빠르게 움직였기 때문에 시간이 그리 길 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제갈신중의 몸은 어느새 한 사내의 거칠은 손에 의해 허리띠가 잡혀져서 위로 들려지게 되었다. 그 사내는 비록 그다지 조금하지 않고 있어서 약간의 옷자락 스치는 소리를 내고는 있었으나 발걸음이 매우 가벼운 것 같았다. 콰당! 제갈신중의 몸은 이윽고 거칠게 마차의 안에 던져졌다. 이곳은 밖인 모양이었다. 일단 그렇게 밖에 나오게 되자 그들의 행동이 더욱 빨라지기 시작했다. 급히 모든 일행을 마차에 태우더니 이윽고 휘장을 단단하게 닫아버리고 말을 매어서 달릴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 제갈신중은 그제서야 비로소 눈을 뜰 수가 있었고 약간의 호흡을 할 수가 있었 다. 하지만 아직 마차가 출발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감히 조금이라도 움직여서 기척을 낼 생각을 못했다. 시작은 역시 예상대로 유시 무렵인 저녁때인 것 같았다. 해는 이미 졌고 땅거미가 몰려들기 시작하고 있는 듯이 마차의 휘장안은 아까 보다는 그래도 훤했다. 제갈신중은 이미 오랫동안 어둠속에서 길들여져 있었기 때문에 지금 이곳에서 는 마치 대낮 가운데에 있는 것 같았다. [너희들은 수고했다.이제 너희들은 그 대가로 대법의 중요한 부분을 전수받게 될 ....... 틀림없이 중요하여 본교의 발전에 .......여기서 기다려라!] 문득 바람결에 밖에서 사내들이 주고받는 음성들이 들려왔다. [아,알겠습니다.교주님께 충성을!] 물론 그 얘기의 전부를 알아들을 수는없었지만 무슨 교라는 이름이 자주 거론 되는 것을 보니 단체의 이름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솔직히 그런 것에 관심이 가지 않았다. 그에게 가장 관심거리는 이제 어떻게 이 마차를 탈출하고 일행마저 구출하는 가 하는 점이었다. 이 마차는 틀림없이 그 상부인가 하는 곳으로 가는 모양인데,정말로 그렇게 된다면 탈출 기회는 더욱 없어지게 될 것이다. 제갈신주은 문득 한편으로 자신이 몸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된 것에 묘한 자조 감이 들기도 했다. 체내의 심마를 이길 수 있다고는 해도 이것은 도무지 너무나도 피곤한 일인 것 이었다. 제갈신중은 내심 생각이 다라지는 것을 느꼈다. 차라리 이런 것보다는 마음의 수양을 시작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하지 않던가? 물론 그것이 가능할지는 심히 의심스러운 이이기는 하지만...... 혼자서 그런 생각을 굴리고 있는 사이에 어느새 준비가 끝났는지 마차가 다리 기 시작했다. 두두둑...... 이 마차가뒤에 휘장을 잔뜩 쳐놓은 것은 두가지의 이유가 있는 것 같았다. 하나는 물론 외부에 내용물이 노출되는 것을 꺼리고 있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바로 중독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사내들은 비록 한둘이 아니었지만 그 소요산이라는 독에 중독되는 것을 두려 워하는지 아무도 이 휘장안에 들어오거나 들여다 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제갈신중으로서는 그것이 바로 기회를 제공해준 셈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그는 처음에는 아주 조심스러운 동작으로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몸은 아직 중독이 완전히 풀리지 않았는지 다소 뻣뻣했고 신경이 무뎠다. 하지만 이제 그가 조심해서 마차의 휘장 밖으로 나가서 소리없이 사라지기만 하면 그는 무사해질 것이었다. 그는 이윽고 천천히 기어서 마차의 뒤쪽 휘장을 조금 젖혀보았다. 과연 모든 이들이 완벽하다고 자신을 했는지 뒤따라 오는 말이나 마차는 하나 도 없었다. 비록 이 마차는 빠르게 달리고 있지만 일단 휘장 밖으로 나가서 낮은 위치에 서 떨어지게 되면 감쪽같이 일을 해치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제갈신중은 마악 그 일을 결행하려다가 문득 생각했다. (지금 내가 무사히 달아난다고 해도 정말로 이들을 구출할 수가 있을까?보아 하니 이들은 이제까지 보지 못하던 무리들인 것 같던데,만일 내가 빠르게 본가로 돌아가서 소식을 전한다고 해도 이 마차가 간곳을 알 수가 있을까? 아 니,설령 찾아낸다고 해도 그때는 이미 이들이 모두 죽은 뒤가 아닐까? 이 소요 산이라는 것은 일주일 후면 모두 죽게 된다고 하지 않던가?) 문득 그러한 생각을 하자 제갈신중은 도저히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것을 느꼈 다. 하지만 이 기회를 그냥 놓치자니 죽음에 대한 공포감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나도 컸다. 제갈신중은 내심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결코 이대로 말없이 당하고 말 수는 없어!) 제갈신중은 급히 안쪽을 한 번 바라보면서 마른침을 삼키고 이빨을 깨물었다. 그는 조금스럽게 휘장을 젖히고 나선 마차를 잡고 몸을 밖으로 움직이려고 했 다. 그런데, 휘장이 열려졌기 때문에 금방 떠오른 달빛이 스며든 것일까? 문득 고개를 돌린 그의 시야에 갑자기 창백한 안색의 황보숙한의 얼굴이 가득 하게 들어오는 것이었다. 그 얼굴은 불과 어젯밤만해도 듣기 싫은 그의 술주정을 미소와 더불어 받아주었 고,또한 그에게 관심과 친절을 보여왔었다. 솔직히 제갈신중은 자신에게 어떤 능력만 있다면 청혼하고 싶은 그런 좋은 여 자였다. 그런데 그런 여자를 이렇게 두고가야 하다니...... 게다가 이어 그의 뇌리에 떠오르는 것은 누이 제갈금의와 제갈보중 등의 형제 들이었다. 그들은 비록 지난날 제갈신중 자신에게 무수한 조롱과 멸시의 시선들을 퍼부 었고 결국에는 그가 제갈세가에서 살 수 없게 만든 장본인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제갈신중과는 피를 나눈 형제들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 실이었다. 또한 그들은 현재 아주 촉망받는 사람들이었다. 그러한 것들을 생각하자 제갈신중은 도저히 자신 혼자서만 밖으로 탈출할 수 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빌어먹을,확실히 그들의 목숨에 비하면 나의 목숨은 가치가 없는 것이지.나 같 은 것은 죽어도 상관없지만 그들이 죽는 다면 아버지는 매우 슬퍼하실거야.) 제갈신중은 금방이라도 울 듯한 표정으로, 마차의 뒷문을 잡았던 손에 힘을 풀 고 휘장을 도로닫은 다음에 기어서 다시 안쪽으로 들어갔다. (내가 지금 떠나면 그만이지만 이대로 살아만 있다면 언제라도 기회가 오지도 몰라.내가 죽더라도 동생을 살릴수만 있다면 그것은 바로 그간의 부모의 은혜 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할 수가 있겠지.) 제갈신중은 안으로 기어가면서 쉴새없이 내심으로 중얼거렸다. (솔직히 나와 같은 인생은 거의 쓸모가 없었어. 내몸도 내가 감당할 수 없을 지경이니까 말이야. 우라질!......한평생의 인생을 여기서 끝내고 말다니.) 제갈신중은 문득 멈칫하며 다시 생각을 굴려보았다. (아냐,우선은 위험하더라도 내 동생들과 저 황보낭자만 마차뒤로 떨어뜨려서 구출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아냐,아냐. 지금 그들이 중독된 것은 무서운 극독 이라고 하지 않던가? 해약이 없다면 곤란한 일이지.게다가 그 일은 지나치게 위험성이 높으니 실행 할 수가 없어......보다 좋은 기회를 노려야만 해.) 제갈신중은 문득 아까 지하실에서 겪었던 상황을 다시 상기해보자 그야말로 전신에 소름이 돋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제갈신중은 다시 안쪽으로 슬슬 기어갔다. [그래.잘못된다고 해도 이들과 함께 죽게되는 것이니,나같은 멍청이가 이들과 함께라면 재수가 좋은 셈이지.혹시 나중에 내가 대단했다고 말해줄 사람이 있 을지 누가 알겠는가? 응?] 제갈신중은 문득 기어가다가 한 물체와 마주쳤다. 그 물체는 사람이었는데 바로 아까 제갈신중이 보았던 황보숙한이었다. 기실 그는 무의식적으로 아까부터 그녀가 있는 쪽으로 기어갔던 것이었다. 비록 혼절하여 안색이 창백하기는 했으나 그녀의 몸은 아직 죽은 것이 아니어 서 따뜻했다. 제갈신중은 속으로 눈물을 삼키면서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이렇게 죽고 마는 것이라면 이 황보낭자가 나의 첫 번째이자 마지막 여자가 되는 셈이로군.) 황보숙한의 몸은 얼굴 뿐만 아니라 무예로 단련되어 지극히 늘씬하고 탄력 적이며 아름다왔다. 제갈신중은 절로 그녀의 몸과 젖가슴 등을 매만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제갈신중은 문득 손길을 멈추었다. 비록 아무리 그녀의 몸이 탐나기는 해도 이런 곳에서까지 그녀의 몸을 어루만 지고싶지는 않았다. 제갈신중은 대신 그녀의 얼굴에 두어번 입맞춤을 하고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누웠다. 그리고 이윽고 골똘히 탈출방법에 대해서 궁리하기 시작했다. [일단은......그러니까 일단은 그들의 상부라는 곳까지 가서,그리고나서 그들이 이들을 모두 해독시킨 연후에 다시 방법을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헌데 대체 그때까지 어떻게 중독된 것으로 위장한다지?빌어먹을 이럴줄 알았다면 그 귀식대법이라는 것을 배워두었으면 좋았을 것을.] 제갈신중은 이어 자신의 몸에 있는 그 두가지의 기운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헌데 바로 그때의 일이었다. 마차가 빠르게 달리다가 갑자기 돌부리에라도 걸리게 되었는 지 느닷없이 덜 컹!하는 소리와 함께, 마차가 크게 뒤흔들리더니 제갈신중의 몸 위로 뭔가가 쿵하고 부딪쳐 오는 것 이 아닌가? (......?) 제갈신중은 깜짝 놀라서 바라보니 그것은 바로 다른 여자의 몸뚱아리였는데 유 난히 섬약하고 늘씬해보이는 것이 남궁녹악이었다. 제갈신중은 느닷없이 여자의 몸뚱이가 덮쳐오자 엉겁결에 껴안고는 내심으로 다시 엉뚱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난 정말로 이대로 한평생을 끝내게 되고 말지도 몰라.그렇다면,그렇다면 역 시......지금이라도 이 여자들을 한 번 안아보고 죽는 것이 좋지 않을까?이 여자 드도 솔직히 처녀로서 한 남자의 사랑도 못받고 죽는 다는 것은 어쩐지......) 헌데 유감스럽게도 제갈신중의 그런 달콤하면서도 감상적인 생각은 오래가지 못했다. 갑자기 마차의 앞부분에서 누군가의 고함소리가 들려오며 마차가 급정거를 했 기 때문이었다. [누구냐!] 제갈신중은 한 여자의 몸을 껴안고 있다가 그와 같은 소리를 듣게 되자 순간 자신에게 한 소리인줄로 알고 그만 혼비백산해졌다. 하지만, 놀라운 일은 마차가 급정거를 하고 그의 몸이 앞쪽으로 밀려나간 이후에 갑자 기 벌어졌다. 느닷없이 마차의 휘장이 열리면서 네명의 사람이 유령과도 같이 안으로 들어 오더니, 이윽고 각기 세명씩의 남녀들을 안고서 빠르게 날아가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자신의 몸이 갑자기 새처럼 어두운 밤하늘을 훨훨 날아가게 되었을 때의 그 놀 라움이란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 제갈신중은 순간 매우 놀라면서도 가슴은 세차게 뛰었다. 그것은 그가 지금 급히 호흡을 멈추고 있다고는 하지만,비록 그렇다고 해도 이 괴물과도 같은 사람들이 그것을 모를 리가 없겠기 때문이었다. 제갈신중은 가끔 사람이 무학을 초인간의 경지에까지 수련하게 되면 새처럼 허공을 날아갈 수가 있다고 하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지만, 그러나 이렇게 직접, 게다가 그것도 그런 사람을 네명이나 보게 될 줄은 몰랐 다. 대체 이들의 무공실력을 가히 상상이나 할 수가 있을 까? 사람이 기운을 발출하는 것도 한계가 있기 마련인데 그것으로 하늘을 훨훨 날아갈 수가 있다니! 하지만 제갈신중은 어쨌든 지금으로서는 최대한 인내심을 발휘하여 숨을 죽이 고 있는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그는 혹시 이 사람들이 오랫동안 날아가면 어쩌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또한 제갈신중은 생각했다. (이들은 과연 적인가,우리편인가? 정말로 우리편이라면 말할 필요도 없이 기 적과도 같은 사실이겠지만, 그거야 바라고만 있을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다행히도 그 괴인들은 제갈신중의 일행을 데리고 그다지 멀리 가지 않았다. 그들은 이내 부근의 이름모를 야산의 정상에 일행을 내려놓았으며 한줄로 차 례대로 늘어놓았다. 제갈신중은 감히 눈을 떠보지도 못하고서 그 괴인의 손에 의해 움직이면서 자 신이마치 시체와 같다는 생각을 했다. 괴인들이 일행을 모두 내려놓자 주위는 다시조용해졌다. (.......?) 제갈신중은 이때 무거운 압박감을 견딜 수가 없어서 눈을 떠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금 하늘에는 제법 달빛이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누워서 위를 쳐다보고 있는 입장이기 때문에 그 괴인들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그 괴인들은 잠시 주위를 서성거리다가 이내 아무런 말도 없이 훌쩍 신형을 날려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제갈신중은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기이하게도 그 괴인들의 모습이 윤곽이나마 크게 낯설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제갈신중은 그 괴인들이 갑자기 모두 사라져버렸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그 만 일어서려고 했다. 하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에 잠시 누운채로 기다려 보니,아니나 다를까 주위에는 다시 한명의 사람이 나타나는 것이었다. 제갈신중은 이내 크게 마음이 뜨끔하여 호흡을 멈추고 가만히 그 사람의 행동을 살폈다. 그 신비인은 일행의 앞에 이르러서 한사람 한사람을 둘러보고는 잠시 뭔가 생 각하는 듯 했다. (......!) 제갈신중은 거의 감은 듯한 눈으로 겨우 그 신비인의 행동을 살폈는데,문득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그는 잠시 한눈을 판 것 같지도 않았는데 어느새 그 신비인은 그의 머리맡에 다가와서 뭔가를 생각을 굴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제갈신중은 자신이 가장한 것이 발각 된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그만 심장이 목 구멍 밖으로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그때 갑자기 신비인이 다른 곳으로 손짓을 하는 것이었다. [예, 곡주님.] 순간 나직한 대답소리와 함께 아까 물러갔던 괴인들 가운데에서 한 사람이 등 에 작은 봇짐을 매고서 나타났다. 그들이 모두 한통속이라는 것이 사실로 드러난 것이었다. 이후에 신비인은 전음입밀로 뭐라고 하는지 가만히 서 있었고 그 괴인은 연신 뭐라고 중얼 거리며 허리를 굽신거렸다. 그리고, 이윽고 괴인이 허리를 펴는 것을 보고 돌아보니 어느새 그 신비인은 다시 사 라져버리고 없었다. (......?) 제갈신중은 흡사 도깨비와도 같은 그 신비인의 행적에 놀라와 하다가 다시 괴 인을 주시하며 앞으로 다가올 환난을 기다렸다. 기실 조금전에 신비인이 사라진 것은 바로 그 괴인이 이미 모든 지시를 받은 후이기 때문일 것이었다. 과연 아니나 다를까? 신비인이 떠나간 이후에 과연 그 괴인은 눈부시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우선 그 등에 매고 있는 봇짐속에서 이것저것을 마구 꺼내더니 그것을 작은 솥과도 같은 것에 넣고 무엇인가를 만들었다. 이내 제갈시중의 코에 아주 역겹고 구린내가 나는 듯한 냄새가 진동하기 시작 했다. 제갈신중은 내심으로 욕을 퍼부었다. 그 괴인과 같은 무공으로 하나의 작은 솥을 공력으로 달구어서 어떤 약을 제련 한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일 것이었다. 지금 괴인은 손바닥위에 올려져 있는 그 작은 무쇠솥의 위에 모락모락 피어오 르고 있는 김들이 그것을 증명했다. 하지만 실로 이와 같은 상황에서도 유독 자신만이 그런 지독한 냄새를 맡아야 하다니, 실로 세상은 불공평하기 짝이 없었다. 제갈신중이 내심으로 크게 투덜거리고 있는 사이에 어느새 그 괴인은 약을 다 만들었는 지 그것을 들고 사람들의 사이를 한바퀴 돌기 시작했다. 그 괴인은 만들어진 환약을 사람들의 입을 벌리게 해서 하나씩 넣어주는 것이 었다. 괴인의 그러한 동작은 매우 기민하고 익숙하기 짝이 없어서 어느새 제갈신중의 지척에 이르렀다. 실로 그 환약은 해독약인지, 혹은 다른 무슨 독약인지도 도저히 알 수가 없었 다. 게다가 제갈신중은 그렇게 더러운 냄새가 나는 약은 아주 질색이었다. 그래도 하는 수가 없어서 계속 그렇게 누워 있자니,이윽고 괴인이 그의 입을 벌리게 하더니 역시 환약 하나를 넣어주었다. 그 환약은 또한 지독하게 쓰고 역겨운 맛을 가지고 있었다. 마치 금방이라도 십년 묵은 것을 다 토해내고 싶을 것 같은 그 지독한 역겨움 은 마치 그의 인내력을 시험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제갈신중은 감히 그것을 삼키지 않을 수가 없어서 그대로 꿀꺽 삼키면 서 속으로 욕을 퍼부었다. (빌어먹을 키만 멀대처럼 크고 더럽게 생긴 녀석이로군!) 그렇다. 조금전까지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었는데 정말고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그 괴 인은 키가 무척이나 컸다. 대개 사람들 가운데에게 키가 크다면 아마 육척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괴인의 키는 최소한 그것보다는 머리하나는 더 큰 것 같 았다. 그것은 비단 지금 그가 아래에서 위를 쳐다보고 있기 때문에 느껴지는 것만은 아니었다. 제갈신중은 나중을 위해서라도 급히 그 괴인의 체형에 대해서 분명하게 살펴 보기 시작했다. 아울러 그는 진작부터 그렇게 하지 않은 자신에 대해서 원망스럽기 짝이 없었 다. 이 괴인의 특징은 체력이 평범해 보이는 반면에 키가 유난히 아주 크다는 사실 이었다. 제갈신중이 다시 한 번 특징을 살피려는데 어느새 괴인은 모두에게 그 환약을 복용시키고 자신의 짐들을 거둔 다음에 그 기다란 신형을 움직여서 유령처럼 훌쩍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 그리하여 이 이름모를 야산의 산정은 다시 산바람만이 불어올 뿐 적막감이 감 돌기 시작했다. (......?) 제갈신중은 틀림없이 이어서 어떤 가혹한 상황이 드러나게 될것이라고 생각하 며 기다렸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그 이후로 한참을 기다려도 그 괴인들은 다시 나타나지 않는 것이 아닌가? 제갈신중은 여기에는 필시 어떤 꿍꿍이속이 있을 것이라고 생가하며 한층 더 긴장하고 신경을 돋구었다. 그러나 시간이 좀더 흐르자 그는 어이없게도 자신도 모르게 깊은 잠이 들어버 리고 말았다. ...... * * * 제갈신중은 아주 모처럼만에 기분좋은 단잠을 자고 일어났다. 비록 그가 잠을 잔 시작은 얼마되지 않은 것 같으나, 잠을 자고 난 그의 몸과 마음은 아주 맑고 시원해져 있었다. 그런데, 그가 마악 기지개를 켜며 눈을 뜨려고 하는데 느닷없이 아주 귀에 익은 음성 이 들려오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정말로 대단하군요. 그래, 그러한 와중에서도 잠이 오던가요?] 제갈신중은 그러한 얘기를 듣자 일순 소스라치게 놀랐다. (뭐라구, 잠? 내가 잠을 잤다구?) 그는 급히 눈을 떠서 주위를 둘러보니 이미 사방은 눈부신 아침이었다. (......?) 제갈신중은 그야말로 어리둥절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가 누워있는 곳은 역시 어젯밤의 그 산정이었기 때문에 정말로 간밤의 일은 꿈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주위의 상황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그에게 조금전에 말을 붙여온 사람은 바로 다름아닌 황보숙한 그녀였다. 그녀는 약간 상기된 표정으로 생글거리며 제갈신중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제갈신중은 정작 낯도깨비를 만난 듯한 표정이었다. [호호호! 정말로 당신은 유별나신 데가 있군요.] 황보숙한은 제갈신중이 유난히도 어리둥절해 하는 것을 보고서 그만 입을 가리 며 홍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제갈신중은 그 웃음소리가 마치 자신을 비웃고 있는 것 같이 들렸으므로 그제 서야 약간 냉정을 되찾을 수가있었다. (......) 제갈신중이 드디어 일어서서 차분하게 주위를 둘러보니 지금 대부분의 사람들 이 옷차림을 정리하고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남궁녹악이나 제갈금의와 같은 몇몇 사람들만이 다소 어지러운 차림새로 앉아 서 운기조식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안색이 화사해 보이는 것이,아마도 운기조식이 거의 끝나가는 모양이었다. 점차로 그들의 입속에서는 뿌연 안개와도 같은 기운이 흘러나와 몸주위를 감싸 기 시작하고 있었다. 강호의 내공들은 천차만별이지만 그러한 것을 보자면 역시 그 흐름은 대동소 이 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게 했다. [우리가 대체 무슨 일을 당했는지 알고 있기나 해요?] 황보숙한이 나직이 웃으며 다시 질문해 오고 있었다. 제갈신중은 도리어 멍청해져서 되물었다. [우리가 ...... 무슨일을 당했다는 것이오?] 황보숙한한 다시 입을 가리고 웃으며 대꾸했다. [호호, 우리는 사실 자칫 잘못하여 적들의 흉수에 빠지고 말았었어요.하지만 무 슨 이유에서인지 적들은 우리들의 몸이나 물건에는 하나도 손을 대지않고 놓 아주었네요?] (......!) 제갈신중은 그말에 안색이 크게 변했다. 그는 비로소 모든 일들이 꿈이 아니었다는 것을 확실히 이해하게 된 것이었 다. 그렇다면 대체 그 네명의 괴인들과 그들을 거느리는 신비인은 누구인가? 제갈신중은 급히 다시 물었다. [당신들은 그 이유를 모른다는 것이오?] 황보숙한은 제갈신중이 크게 놀라는 것이 더욱 우스운지 다시 입을 가리고 웃 다가 대답했다. [아직은 모르지만 이제 잠시 후면 자연히 밝혀지게 될 거예요.사천당문의 당소 협과 당동생도 우리가 무슨독에 당했는지 알아보겠다고 했고...... 정말로 재미 있으신 분이예요,당신은.] 제갈신중은 의아해져서 물었다. [뭐가 그리 재미있다는 것이오?] 황보숙한은 웃으며 대답했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도 그렇게 태평한 모습을 보일 수가 있다니......호호호,정 말로 전체 무림인들이 당신과 같은 마음이라면 걱정이 하나도 없겠어요.] 제 17 장 . 마시장에서의 괴행. 제갈신중은 어느 정도 씁쓸한 기분이 들었지만 이내 다시 물었다. [오늘 아침의 사정을 나에게 간단하게 설명해줄 수가 있겠소?] 황보숙한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그거야 간단하죠.오늘 아침 묘시 무렵에 가장 먼저 깨어난 사람들은 바로 남 궁소협,제갈소협과 당소협을 비롯한 무림육영에 들어있는 사람들이었죠.그들은 즉시 모두가 중독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운기조식을 하기 시작했고,이어 다 른 사람들도 깨워서 함께 운기조식하게 되었던 것이예요. 그리고 지금은 그로 부터 한시진이 흘러간 진시무렵이죠.] 제갈신중은 다시 물었다. [그럼 당신은 이미 중독에서 완전히 풀려났다는 말이오.] 황보숙한은 대답했다. [이번에 우리가 당한 독은 약간 특이하여 그 정도가 아주 가벼운 편이었죠.우리 는 이미 완전히 독을 몰아내었고,지금 저기에 있는 사람들도 거의 운기조식이 끝나가고 있는 중이죠. 아참,당신도 어서 중독이 되었나 살펴보는 것이 어때 요?] 제갈신중은 전신이 쾌적했기 때문에 구태여 조사해볼 필요가 없었다.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이미 해독되었소.] [......] 제갈신중의 대답에 황보숙한은 다소 의아한 표정을 했다. 그렇거나 말거나 제갈신중은 자리를 피해서 주위를 거닐면서 혼자 생각에 잠겼 다. (간밤의 일들은 분명히 사실이었다. 과연 그러한 사실들을 누가 믿어줄 것인 가......?) 동쪽 하늘에 떠오르는 햇살은 찬란했다. 다소 추운 듯한 산바람이 주위를 지나가고 있었고 세상은 어제 아침 과거의 달 라진 것이 없는 것 같았다. 제갈신중은 문득 산아래쪽에서 달려오고있는 사람을 보았다. 그는 바로 그의 동생인 제갈보중이었다. 제갈보중은 아마도 산아래에 가서 이곳의 위치를 알아가지고 오는 모양이었 다. 제갈신중은 다시 생각했다. (결론적으로 생각해 보자면 사실 그 괴인이 우리에게 먹였던 환약은 해독약이 었다는 것인데,그렇다면 그들은 그럼 우리들을 구해주었었다는 말인가?) 제갈신중은 고개를 휘휘 내저었다.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믿지 않을 수가 없는 현실이 아닌가? 문득 고개를 돌려보니 제갈금의 등의 운기조식이 거의 다 끝나서 하나씩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제갈신중은 다시 한 번 그 괴인들이 마차에서 일행을 구하던 때를 생각해 보 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생각해보니,정말로 그들이 우리를 구하고 직접 해독약을 지어서 먹인 것이 분명한데,대체 그들은 누구이며 무슨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제갈신중으로서는 심지어 일행을 납치하려고 했던 자들도 알 수가 없거늘, 하 물며 그들의 손에서 일행을 구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더욱 더 알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왠지 제갈신중으로서는 그 괴인들이 크게 낯설지 않았다는 점이 더욱 기이하 게 느껴졌다. 제갈신중은 잠시 생각한 후에 스스로 간단한 결론을 내렸다. 간밤의 일은 자신이 설명한다고 해도 누구도 믿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자신은 간밤의 일을 사실 그대로만 알고 있으면 되는 것이며, 나중에 만일 그들이 다시 나타난다면 그때 가서 생각해서 행동하면 될 것이 다. 제갈신중이 그렇게 마음을 정하고났을 때 그의 귓전에 문득 낯익은 음성이 낭 랑하게 들려왔다. [모두 걱정할 필요는 없겠소. 마침 이곳은 용왕집이란 마을에서 북쪽으로 약 삼 십여리 떨어진 곳에 불과하니까.이제 우리는 길을 재촉하면 오늘 저녁에 등현 이라는 현성에서 쉬어갈 수 있을 것 같소.] 제갈보중의 그와 같은 말을 매우 기다리고 있었는지 일행중 대부분의 사람들은 얼굴에 안도의 표정을 떠올렸다. 남궁검민이 즉시 말을 받아서 말했다. [우리는 지금 일단은 등현으로 가저 잠시쉬면서 현재의 일을 차분하게 검토해 보는 것이 좋겠소.] 그와 같은 남궁검민의 말은 곧 모든 사람들의 뜻이나 같았다. 이미 남궁검민이나 제갈보중 등은 일행중에서 은연중 중심이 되어 가고 있었 다. 불과 하루전까지만 해도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이 오만했던 그들 오대세가 의 자제들은 이제는 심한 고초를 겪은 셈이어서 은근히 그들에게 의지하게 된 것이었다. 일행은 곧 모두가 즉시 길을 떠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제갈신중은 그와 같은 광경을 묵묵히 지켜보다가 문득 한가지 생각이 떠올라 서 안색이 변했다. (아, 내 말은 지금 어디에 있지?) 제갈신중은 말이 있었기 때문에 일행과 함께 할 수가 있었는데, 이제 그 말이 없어졌으니 정말 큰일인 것이었다. 제갈신중은 급히 다시 황보숙한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황보낭자,혹시 내가 타고 왔던 그 말을 어디서 보지 못했소?] (......!) 황보숙한도 그 말을 듣는 즉시 심각성을 눈치챘다. [아뇨,전 보지 못했는데요?] 기실, 용왕집에서 잃어버린 그말이 제발로 걸어서 여기까지와 있을 리는 만무한 것이 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그 말을 찾아 보기 위해 다시 용왕집까지 가볼 수는 없 는 일이었다. 황보숙한이 고개를 젓는 것을 보고 제갈신중은 난색에 빠졌다. [아이구,이를 대체 어쩐다지?] 황보숙한이 그것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제가 한 번 다른 사람들과 상의해 볼 테니까요.] (......) 황보숙한은 이어 제갈보중이 있는 쪽으로 달려가서 뭐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제갈보중 등은 이쪽으로 시선을 돌려 제갈신중을 힐끔힐끔 바라보더니 이윽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빠르게 움직였다. 이윽고 제갈보중이 급히 만들어 놓은 것은 바로 작은 가마였다. 그것은 두 개의 기다란 나무위에 다시 칡넝쿨로 작은 나무들을 붙여맨 것으로 서 한사람이 타기에는 충분했다. 사정얘기를 이미 듣고 있는 팽일비가 그것을 보고 자청해서 말했다. [내가 그 가마를 들겠소.] 그리하여, 일행 가운데에서 제갈덕중과 팽일비가 각각 앞뒤에서 그 가마를 들게 되었다. 그들의 무공이 비록 아직 절정의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으나,그런 것 하나 정도 는 문제가 아니었다. [제갈형,이런 것을 타고 가실 수가 있겠소?] 제갈신중은 절로 미안해져서 대꾸했다. [내 등현에 가면 금방 다시 말을 구입하도록 하겠소.거기까지만 여러분께 부탁 을 드리겠소.] 팽일비는 그가 가마위에 올라타는 것을 보고 웃으며 다시 말했다. [우리야 상관이 없는 일이지만, 이렇게 되면 애초의 제갈형의 약속과는 달라지 는 것이 아니겠소?] 제갈신중은 얼굴이 뜨거워졌다. [하하,나도 굳이 이렇게 폐를 끼치게 될 줄은 몰랐는데......아마도 이번에 내가 여러분을 따라온 것이 잘못이었나 보오.] 팽일비는 앙천대소를 터뜨렸다. [핫핫하,농담이었으니 제갈형은 마음에 두지 마시오.] 이윽고 모든 준비를 마친 일행은 각기 신법을 펼쳐서 바람을 휘몰면서 내달리 기 시작했다. 제갈신중은 거의 본능적으로 빠르게 내달리는 가마위에서 나무를 꽉 움켜쥐었 다. * * * 일행이 몇차례의 휴식을 취해가며 하남성의 경계에 들어선 이후에 다시 등현 에 이르렀을 때에는 이미 해가 서쪽으로 완전히 기운 오후 무렵이었다. 이미 점심식사마저 거른 상태였기 때문에 일행은 미리 계획했던 대로 이곳에 서 하루 묵어가기로 했다. 이곳 등현은 비록 현성이었지만 매우 번화하여 다른 읍성들에 비해 못하지 않 았다. 일행은 등현의 성내 번화한 거리에 있는 양춘객점이라는 상급의 객점에 짐을 풀고서, 일단은 서로가 약간의 휴식을 취하며 저녁때에 만나기로했다. 그것은 일행들이 저마다 목욕을 하고 의복을 새로 구입해야 하는 등의 할 일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제갈신중은 자신을 거기가지 태워다준 사람들에게 몇번이나 거듭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나서, 이윽고 자신은 급히 말을 구하기 위해 마시장으로 향했다. 다행히도 이곳의 외곽에는 작은 마시장이 서 있었다. 당금의 육지에서 교통수단이라면 대개가 말에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현성에서는 마시장을 볼수가 있는 것이었다. 때는 늦은 오후무렵이었기 때문에 마시장도 막 파하려는 듯이 분주한 모습들 을 보이고 있었다. 말들도 많지 않았지만 손님들도 그다지 많지는 않았는데, 느닷없이 한 말 주인이 지나가는 제갈신중을 불러세웠다. [이보슈! 말을 사실려는 거유?] 제갈신중이 돌아보니 얼굴이 험상궂은 건장한 체구의 장한이었다. 장한의 뒤쪽에는 두어마리의 비루먹은 말과 흑마 한 필이 매어져 있었는데 하 나같이 별로 신통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렇소만,그래 좋은 말이라도 있소?] 장한은 일순 잠시 생각하는 듯 하다가 문득 눈알을 부라리며 다가왔다. (......?) [뭐라구?아니 지금 내게 그래 좋은 말이라도 있느냐고 물었소?] 제갈신중은 이내 그가 이런곳에서 등쳐먹고 다니는 건달이라는 것을 짐작했 다. [그렇소만,내가 무슨 말이라도 잘못했단 말이오?] 장한은 제갈신중의 곁에 다가와서 고함을 질렀다. [아니,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나?이 사람아!] [이 사람아?......정말 말을 함부로 하는 녀석이군 그래.] 제갈신중은 내심으로 약간 화가 났으나 그래도 말썽을 일으키는 것이 싫어서 웃으며 상대했다. [무슨 뜻이오?] 장한은 한차례 그 솥뚜껑과도 같은 시커먼 손바닥으로 제갈신중의 어깨를 가 볍게 후려치며 대꾸했다. [아니 무슨 뜻이냐니?그래 지금 나한테 와서 좋은 말이 없느냐고 자네가 묻고 있지 않은가?] 제갈신중은 그가 갑자기 자신의 어깨를 후려치는 바람에 그만 속으로 다소 울 화가 치밀었다. 하지만 이 순간에 제법 많은 사람들이 구경을 하기위해 몰려들고 있었기 때문 에 그는 다시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그럼 당신에게 좋은 말이 있다는 것이오?] 장한은 상대가 허약해 보여서 한 번 슬쩍 후려쳐 보았는데,의외로 꿈쩍도 하 지 않는 것을 보고 태도가 약간 달라졌다. 장한은 한 번 주위를 둘러본 뒤에 대소를 터드리며 대꾸했다. [그야 물론이지,이 사람아! 나에게 좋은 말이 없다면 대체 누구에게 좋은 말이 있겠는가? 험험,지금 자네는 필시 말을 구하고 있는 것이겠지?] [처음보는 나에게 자네라고?......정말로 제멋대로군.] 주위에 몰려든 사람들의 시선을 보니 그들은 또 한명의 순진하게 사기당하는 사람이 생기는 구나 하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제갈신중은 아무려면 자신은 이정도의 시정잡배는 상대할 수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소.] 제갈신중이 대답하자, 장한은 이내 그의 손을 잡아 끌었다. [그럼 나를 잘 찾아왔네.어서 이쪽으로 오게!] 이어, 장한이 제갈신중을 데려간 곳은 바로 예의 그 두필의 비루먹은 말들의 앞이었 다. (......) 제갈신중은 그만 어이가 없어서 물었다. [그럼 지금 이 말들이 좋은 말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오?] 장한은 목에 힘을 주고 제갈신중을 내려다 보면서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렇네. 자네는 설마하니 내말에 이의가 있다는 말인가?] 제갈신중은 일순 너무나도 어이가 없어서 웃으며 대꾸했다. [이것 보시오.나도 실은 그래도 어느정도는 말을 볼 줄은 안다고 할 수가 있는 데,이 말들은 솔직히 너무 마르고 병든 것이 아니오?] 장한은 두 눈에 힘을 주며 다시 고개를 저었다. [아니네.그것은 자네가 말을 잘못 보고 있는 것이지.옛날부터 실로 이와 같은 말들이 바로 천리준구라는 얘기를 듣지도 못했는가?] 제갈신중은 웃으며 대꾸했다. [하지만 솔직히 이 말들은 모두 너무 늙은 것들이 아니오?] 장한은 여전히 목에 힘을 주고 버티면서 말했다. [그래도 그 말들은 틀림이 없는 준마들일세.] 이치적으로도 천리준마들이 그렇게 많을 수가 없다. 제갈신중은 그자를 계속 상대하기가 귀찮아서 그 옆에 있는 흑마를 가리키며 웃으며 대꾸했다. [좋소.하지만 나는 차라리 저 말을 사고 싶은 데,나에게 저말을 팔지 않겠소?] (......?) 장한은 제갈신중의 말을 듣고 또한 그의 태연자약한 표정을 보다가 이윽고 다 소 기이한 표정이 되어 되물었다. [너는 정말로 그 말을 사기를 원하느냐?] 제갈신중은 그가 다시 눈빛을 교활하게 굴리는 것을 보았지만 주저하지 않고 대꾸했다. [나는 차라리 저 말이 마음에 든다는 말이오.] 장한은 잠시 제갈신중의 얼굴을 득의하게 바라보다가 다시 말했다. [알고보니, 너는 정말로 말을 볼 줄을 아는구나. 바로 그렇다! 그 말이야말로 천하에서 다시 보기 어려운 절세의 명마라는 것이지.] (......?) 제갈신중은 다시 어이가 없어졌다. [절세의 명마라고?] 장한은 위압적인 눈빛으로 대꾸했다. [그렇다.사실 그와같은 명마는 누구에게 파는 것은 아니지만 ,네가 그렇게 간 절히 원하니 내가 약간 손해를 보도록 하지.그래, 너는 지금 얼마나 가지고 있 지?] 제갈신중은 장한의 수작에 대해서 속으로 어이가 없었지만 이내 담담히 웃으 며 대꾸했다. [나는 지금 은자 백냥정도의 말을 사고자 하는 것이오.만일 당신이 은자 백냥 에 팔겠다면 그 흑마를 나에게 넘기도록 하시오.] 사실 그 흑마는 말이 흑마이지 전신에 잡털이 가득하고 눈에 기운이 없는 것 이 평범한 잡종에 불과했다. 그러한 말을 사려고 한다면 아무리 많아도 은자 오십냥이면 족할 것이었다. 제갈신중은 지금 비록 어이없게도 당하고 있는 처지이나, 되도록 말썽을 일으 키지 않기 위해서 무려 백냥이나 쳐주려고 하는 것이었다. 헌데 바로 그 순간의 일이었다. 장한은 갑자기 눈알을 그게 부라리더니 돌연 앞으로 달려 들어서 제갈신중의 멱살을 움켜쥐고 들어올리는 것이었다. [뭣이라고! 아니, 이 빌어먹을 자식이 감히 이 나으리를 놀려?] 장한의 양팔에는 그야말로 튼튼한 근육질이 가득했다. 비록 제갈신중의 키가 육척에 가가운 것이기는 하나, 장한이 한손으로 멱살을 잡고 힘을 쓰자 제갈신중의 몸은 공중에 들어올려지고 말았다. 제갈신중은 기어코 그와 같은 어이없는 일을 당하게 되자 크게 내심으로 울화 가 치밀었다. (......) 하지만 그는 허공에 들어올려진 채로 험상궂게 인상을 쓰고 있는 장한을 내려 다 보며 다시 물었다. [아니,내가 어째서 당신을 놀렸다는 것이오?] 장한은 제갈신중이 여전히 태평한 것을 보고 다소 어리둥절해 하다가 다시 큰 소리로 대꾸했다. [이놈아! 본 나으리는 지금 네놈의 수중에 얼마나 있는 지를 물어본 것인데,감 히 그 따위로 본 나으리를 놀려? 감히 천하명마를 은자백냥에 사겠다는 말이 냐?] 제갈신중은 어이가 없어서 다시 물었다. [그럼 내가 수중의 돈을 모두 털어서 그 말을 사야 한다는 말이오?] 장한은 흉측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렇다.다행히 네놈의 눈치가 그렇게 둔하지는 않구나!] 이어 그는 멱살을 쥐지 않은 나머지 한손으로 부근의 말을 잡아 매는 기둥을 세차게 후려쳤다. 그러자, 돌연 그 팔뚝만한 기둥이 우지끈! 하고 소리를 내며 일시에 중간이 부러져 나 가는 것이 아닌가? ......! 사람들은 부근에서 그러한 광경을 보고 저마다 놀란 표정들을 지었다. 알고보니 그 장한은 허장성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일신에 제법 무공을 갖추고 있는 건달이었던 것이다. 장한은 상대인 제갈신중이 의외에도 태연자약 한 것을 보고 겁을 주기 위해서 자신의 힘을 보여준 것이었다. 사람들은 기실 이제까지 그 장한의 실력을 거의 보지 못했었기 때문에 다소 놀 란 상태였다. 그들은 당연히 당사자인 제갈신중이 안색이 새파랗게 변해서 빌게 될 것이라 고 생각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제갈신중은 여전히 태연한 표정을 하고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럴 생각이 조금도 없소.] 이제까지 제갈신중은 속으로 많은 울분을 느끼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때로는 이렇게 완강해지는 것이었다. 장한은 그 말에 의아해지면 일순 두 눈에 살기가 감돌았다. [흐흐, 정말이냐?] 제갈신중은 주저없이 즉시 대꾸했다. [그렇소.] 순간의 일이었다. (......!) 장한이 마악 두눈에서 흉악한 안광을 발출시키며 주먹으로 제갈신중의 면상을 후려 갈기려는 찰나에, 이미 제갈신중의 발끝이 먼저 움직였다. 제갈신중이 순간적으로 발을 움직인 재간은 바로 천기미리보에 근거를 둔 것 이었다. 본시 천기미리보라고 하는 재간은 발을 움직여서 몸을 이동시키는 것이었지만 이번에는 다르게 작용했다 그것은 제갈신중 자신도 놀랄만큼의 속도로 움직여서 퍽퍽퍽퍽! 상대방의 가슴 팍의 요혈을 빠르게 점하고 말았다. 그와 동시에 제갈신중의 한손은 장한의 날아오는 주먹을 막아갔다. 이미 요혈이 제압되어 기세를 잃기는 했지만,여전히 장한의 팔뚝의 힘은 대단 한 것이었다. 하지만 제갈신중은 가볍게 한손으로 그 주먹을 막아내며 바닥에 내려섰다 장한은 그만 맥이 빠진 상태에서 멍청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자의 두 눈에는 놀란 기색이 가득했다. 주위의 사람들 역시 한순간 크게 놀라서 멍하니 입을 다물고 있었다. 제갈신중은 담담한 표정이 되어 그 장한에게 다시 물었다. [자, 이래도 나에게 공갈을 치겠다는 것인가?] 장한은 문득 현실을 파악한 듯 두눈에 공포감을 떠올렸다. 장한의 아혈은 제압되지 않았다. [그,그럴 리가......있겠습니까?] 제갈신중은 장한에게 더욱 두려움을 느끼게 해줄 생각으로 이번에는 오른손으 로아까 장한이 부러뜨렸던 말뚝을 매만졌다. 그러자, 느닷없이 그 남아있는 말뚝의 겉부분이 퍽!소리와 함께 부서져 나가는 것이 아닌가? 분명이 아까 장한이 후려쳤던 것보다는 훨씬 고명한 수법이 아닐 수가 없었 다. 주위의 사람들 뿐만 아니라,제갈신중 자신도 그것을 보고 약간 놀랐다. 그는 다만 나무를 가볍게 부러뜨릴 생각이었는데,기이하게도 부서져 버리자 어리둥절해진 것이었다. 하지만 제갈신중은 놀람에 찬 주위사람들의 시선을 무시하고 그 장한을 향해 다시 말했다. [자,이제는 우리가 다시 흥정을 할 때가 되지 않았나?이제 자네는 어서 말해보 게! 대체 저 천하명마의 가격은 얼마이지?] 장한은 뜻밖에도 팔뚝만한 나무기둥을 가볍게 부숴뜨리는 놀라운 재간을 보았 기 때문에 안색이 크게 달라져 있었다. [그,그것은 스무냥의 은자이옵니다.나으리.] 제갈신중은 눈살을 찌푸리며 다시 물었다. [아니,뭐라구? 천하명마의 가격이 그렇게 쌀 수가 있나?] 장한은 얼굴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아,아닙니다.저 말은 잡종말이지 천하명마가 아닙니다. 그,그것은 소인이 잠시 착각한 것이옵죠. 부디 살려만 주십시오.] 제갈신중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니,나에게 살려달라고 말할 필요는 없네.나는 다만 저 말을 잘 흥정해서 사 가려는 것이니까.] 장한은 애써 제갈신중의 눈길을 피하며 대꾸했다. [그러시다면 소인이 다른 좋은 말을 골라서 사드리겠습니다요. 이 혈도만 풀어 주신다면 말이죠.] (......) 제갈신중은 문득 장한의 얼굴을 주시하며 다시 물었다. [자네는 지금 아마도 혈도를 풀어주게 되면 그 철사장으로 나와 한 번 대결해 보겠다는 심산이겠지? 하지만 자네의 무공은 아직 이류급에도 못미치는 것이기 때문에 나를 상대할 수는 없네.] 장한은 자신의 무공에 대해서 훤하게 알고 있는 듯한 제갈신중의 말에 그만 안색이,핼쑥해졌다. 제갈신중은 즉시 지법을 펼쳐서 그자의 혈도를 풀어주고는 다시 말했다. [그러니 어서 자네는 순순히 그 말이나 나에게 팔도록 하게.나는 정말로 그 말 을 사려는 것이니까.자,은자 백냥이면 만족하겠나?] 자한은 약간 놀란 표정으로 손을 좌우로 내저었다. [아,아닙니다요.정희 그러시다면 소인에게는 그저 스무냥만 주시면 됩니다요.] 제갈신중은 품속에서 백냥짜리 은표 한 장을 꺼내서 장한의 손에 건네주면서 말했다. [아니야. 사양할 것은 없네. 나는 이미 말했던 대로 그저 이것으로 말 한 필을 사려던 것이었으니까.] 이어, 제갈신중은 정말로 그 흑마의 고삐를 잡고서 밖으로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아연 어리둥절해 하는 군중들의 사이를 빠져나와서 제갈신중은 잠시 더 걷다 가 말위에 올라탔다. 그 흑마는 과연 별볼일 없는 잡종말에 불과했다. 달려가는 것이 자세가 일정하지 않았고 또한 버릇이 잘 들어있지 않아서 제갈 신중은 처음에는 약간 당혹해졌다. 하지만, 말이라는 것은 본래 잘 달리게 되어있는 것이고 제갈신중이 차분하게 말을 몰 았기 때문에, 얼마 가지않아서 이내 편안하게 나아갈수가 있었다. 확실이 그냥 걸어가는 것보다는 말을 타고 가는 것은 편안했다. 하지만 일단 몸이 편해지자 머리속에 다시 잡스러운 생각들이 떠오르기 시작 했다. 게다가, 제갈신중은 문득 한가지 사실을 상기하고는 안색이 창백해지도록 크게 놀라고 말았다. (아니! 내가 그러고 보니 이미 무공을 사용했잖아?) 그렇다. 아까는 경황이 없고 문득 호승심이 일어서 무의식중에 무공을 사용하게 되었 던 것이었지만, 기실은 지금의 그로서는 알고보니 무공을 전혀 사용할 수도 없고 사용해서도 안되는 상황이 아닌가? 제갈신중은 자신이 그와 같은 무공을 발휘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도 하지 못했 지만 이어 닥쳐오게 될 부작용을 의식했다. 아까 그는 삼년 동안 강호를 돌아다니던 습관이 그대로 붙어서 그와 같은 행동 을 무심결에 하고 말았던 것이다. 솔직히 두 개의 기운들이 서로 대립하고 있는 그로서는 현재 전혀 무공을 사 용할 수 없게 되어 있었다. 만일 사용하게 된다면 그의 몸 속의 두 가지의 기운은 서로 균형을 잃고 충돌 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었다. 헌데 바로 그때였다. 느닷없이 놀랍고 경악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일단 그가 그런 생각을 하자 정말로 그의 전신이 빳빳해지면서 가슴팍이 뜨겁 게 들끓어 오르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쿵! 제갈신중은 그만 비명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그만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주인을 잃은 말은 저 혼자 걸어가고 제갈신중은 이제 어이없게도 이곳 현성의 골목길에서 주와입마의 늪속으로 빠져들어가고 있는 것이었다. 제 18 장. 동영에서 온 사나이. 제갈신중의 몸은 점차로 더욱 심각한 상황으로 달려갔다. 처음에는 그저 뜨거운 기운이 일었으나 이어 차가운 기운이 발작을 일으키고 맹렬하게 휘말리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제갈신중은 전신이 뻣뻣해졌으며 하지만 고통은 극심해져 갔다. 창백했던 그의 얼굴은 미간을 중심으로 붉고 푸른 기운으로 갈라서기 시작했 다. 그것은 바로 그 두가지의 기운이 심각하게 대립하기 시작했다는 표시로서 아 주 위험한 모습이었다. 얼굴위에 붉고 푸른색이 짙어 갈수록 그의 고통은 심해져 갔다. 제갈신중은 차가운 길바닥에 비스듬히 누워서 시체처럼 스스로를 생각했다. 그는 자신이 이제 틀림없이 죽어가고 있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빌어먹을, 하필이면 이런 길바닥에서 최후를 맞이하다니!) 이 골목길은 거의 사람이 다니지 않는 비좁은 곳이었다. 제갈신중은 차라리 사람들이 몰려들어서 마치 시체와 같은 자신을 바라보지 않는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고통이 가중되어 가는 와중에서도 제갈신중은 흐려지는 의식을 모아 최후로 하늘을 응시하려고 했다. 점차로 노을이 물들기 시작하는 황혼 무렵이었다. (정말 싱겁군!) 제갈신중은 문득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일단 강호인으로 태어난 이상에는 적어도 영웅처럼 찬란하게 살다가지는 못할 망정, 이렇게 어이없는 동기로 인해 무의미하게 생을 마감하게 될 줄은 미처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제갈신중은 마음속으로 한숨을 내쉬었으며 문득 과거일들을 상기해보기 시작 했다. 그는 솔직히 이런 싱거운 죽음을 가장 싫어 한다고 할 수가 있었다. 무의미한 죽음이라면 그것은 곧 그 인생을 무의미하게 만들고 마는 것이 아닐 까? 돌이켜 보면 별로 생각나는 것은 없지만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있는 것 같았다. 제갈신중은 또 생각했다. (이런 곳에서 게다가 눈물을 흘리면서 죽어갔다면 얼마나 초라할 것인가?) 따라서, 그는 가능한한 죽더라도 눈물을 흘리지는 않으려고 애를 썼다. 그는 눈물이 흘렀다면 가능한한 그것이 빨리 마르기를 바랬으며 그 사이에 누 군가가 그것을 보게 되지 않기를 바랬다. 그런데, 그렇게 바라는 것은 오직 그의 일방적인 생각일 뿐이었다. 미처 그런 생각을 끝내기도 전에 느닷없이 그의 앞쪽에서 한 사람의 낯설은 음성이 들려왔던 것이다. [대장부는 피를 흘릴 지언정 눈물을 흘리지 않는 법인데,자네는 눈물이 너무 흔하군. 갑자기 이런 곳에서 감상에만 젖허있고 싶어졌다는 말인가?] (......!) 제갈신중은 그 소리를 듣는 순간에 크게 가슴이 뜨끔했지만 또한 내심으로 화 도 치밀었다. (이런 곳에서 감상에만 젖어있다고?......나의 상황은 알지도 못하고.] 겨우 시선만 돌려서 바라보니 과연 아니나 다를까, 그의 앞에는 지금 한사람 이 말의 고삐를 잡고 서있었다. 그 사람은 삽십대 중반의 흑의 중년인이었는데, 키가 매우 큰편이었다. 헌데 뜻밖에도 놀라운 것은 지금 흑의중년인이 잡고 있는 말은 바로 제갈신중 의 그 흑마라는 사실이었다. 제갈신중은 거듭해서 보았지만 정말로 틀림이 없었기 때문에 잠시 어리둥절해 하다가 다시 흑의 중년인을 좀더 찬찬히 바라보았다. 그 흑의중년인은 기다란 흑색장삼속에 아주 깨끗한 백의를 받쳐입고 있었는데 용모도 아주 준수했고, 또한 전신에서 아주 신비롭고 화강암처럼 강인한 기질이 흘러나오는 것 같았 다. 하지만 그 눈빛은 안광이 강렬하게 보이지 않고 다만 맑아보였다. ......! 제갈신중은 뜻밖에도 약간 이상해 보이는 사람을 대하게 되자 잠시 어리둥절 해져서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 흑의중년인은 다시 이렇게 묻는 것이었다. [자넨 왜 그러고 누워있지? 일어나기가 싫다는 말인가?] (......?) 제갈신중은 어리둥절해 졌다. 세상에 이렇게 지저분하고 차가운 길바닥에 누워있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하나 도 없을 것이었다. (쓸데없이 일부러 이렇게 누워있는지 아나?) 제갈신중이 속으로 그렇게 욕을 퍼붓고 있을 때였다. 흑의중년인은 그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다시 물었다. [자네는 혹시 지금 일어날 수 없다고 핑계를 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제갈신중은 그만 참지 못하고 입을 열어 대꾸했다. [핑계라니,그게 무슨 말이오?] (......) 제갈신중은 그렇게 대꾸하고 나서 자신이 생각보다 분명하고 말할 수 있었다 는 사실에 약간 놀랐다. 이에 흑의 중년인은 다소 기이하다는 듯이 다시 물었다. [그럼 자네는 정말로 몰라서 그러고 있다는 말인가?만일 자네가 주화입마에 걸려있다면 그렇게 쉽게 말을 할 수가 없을 것인데?] (......!) 순간 제갈신중은 그만 깜짝 놀라서 소리를 지를 뻔했다. 알고보니 어느새 그의 몸에 느껴지던 뜨겁고 차가운 기운도 사라졌고,또한 고 통도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었다. 게다가, 문득 손을 움직여보니 아주 자연스럽게 움직였고 전신의 뻣뻣한 증상도 사라 져 있는 것이 아닌가? (아니,내 몸이 언제 이렇게 회복되었지?) 제갈신중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신통하고 기뻐서 즉시 박차고 일어서며 물었 다. [당신이 나를 고쳐준 것입니까?] 흑의중년인은 벌떡 일어서서 묻는 제갈신중을 바라보며 고개를 좌우로 내저었 다. [나는 너를 고치지 않았다.] (......) 제갈신중은 이미 괴상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보았기 때문에 아마도 이 흑의중 년인이 고의로 말을 돌려서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상대방이 자신을 구했다고 판단하여 금방 상대방에 대한 인상이 좋아졌다. 그는 다시 상대를 살피다가 문득 상대가 한손에 한 자루의 검집에 검은 빛이 감도는 장검을 들고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당신은 강호인이로군요?] 제갈신중이 웃으며 묻자, 흑의중년인은 약간 의아한 기색이 되었다. [강호인?......과연 내가 강호인이라고 말할 수가 있을까?] 흑의중년인이 스스로 반문하듯 혼자서 중얼거리는 것을 보고 제갈신중은 웃으 며 말을 받았다. [강호인이라는 것은 일명 무림인들을 말하는 거죠. 즉, 일단 무공만 터득하고 있으면 천하가 곧 강호이니,말하자면 강호인이 된다고 할 수가 있죠.이건 저의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말씀이예요.] [......] 흑의중년인은 잠시 묵묵히 제갈신중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제갈신중은 문득 다시 말했다. [아,그러고보니 당신은 중원인이 아닌 것 같군요?] 알고보니 흑의중년인의 차림새가 독특하여 중원의 복색이 아니었던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동영 부상국 사람의 복장인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반면에 중원어가 아주 유창한 것이 달랐다. 흑의중년인은 제갈신중의 질문에도 아랑곳없이 계속 바라보고 있다가 이윽고 이렇게 다시 물었다. [너는 이 말을 받지 않고 나를 계속 세워두기만 할 거냐?] 제갈신중은 깜짝 놀라서 급히앞으로 달려가서 말고비를 받았다. 아마도 이 흑의중년인은 아까 마시장에서 군중들 사이에 있다가 나중에 따라 와서 제갈신중에게 도움을 주었던 모양이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이 흑의중년인의 키는 아주 커서 거의 육척하고도 다섯 치는 더 될 것 같았다. 제갈신중보다 거의 머리 하나가 더 큰 것이다. 제갈신중은 말고삐를 받으면서 공손히 포권하며 얼른 말했다. [저는 제갈신중이라고 합니다. 실례지만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그리고 저를 무슨일로 도와주셨는지.......? 아무튼 감사합니다.] 흑의중년인은 고삐를 넘겨준 다음에 간단하게 대꾸했다. [나는 상관구패이다.] (상관구패?구패......? 정말 특이한 이름이로군.패하기를 기다린다?그럼 자신이 천하무적이라는 말인가?) 헌데 그가 마악 특이한 이름이군요 하고 말하려는데 느닷없이 눈앞의 그 흑의 중년인의 신형이 미끄러지는 듯이 일장밖으로 물러서는 것이었다. (......!) 제갈신중은 순간 깜짝 놀랐다. 알고보니 흑의중년인은 어느새 몸을 돌려서 떠나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강호상에서 신법을 펼쳐서 그와 같이 일장정도 물러서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 은 아니다. 하지만, 제갈신중은 순간 그렇게 자연스럽게 미끄러지는 몸동작을 처음으로 보았다. 흑의중년인의 신형은 한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거의 일장정도 미끄러져 나가고있 었으며 느린듯 하면서도 기실은 아주 빨랐다. 거기에는 조금의 군더더기도 없는 것 같았다. 아무런 예비동작도 없이 행운유수처럼 나아갔는데, 잠깐사이에 어느새 수십장 을 가로질러 사라져 버리는 것이었다. 문득 그것을 바라보는 제갈신중의 뇌리에 부친인 제갈류량의 모습이 떠올랐 다. 하지만, 그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제갈류량은 당금에 있어서 거의 천하제일인자로 인정받고 있는 상태였다. 그렇다면 지금 그 흑의중년인의 무공은 가히 그의 부친에게 필적할 정도의 수 준이라는 말인가? (상관구패라고?......) 제갈신중은 잠시 텅비어 있는 골목길을 바라보다가 이윽고 다시 말을 타고 객점 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 * * 다행히도 객점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체내에서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제갈신중은 가급적이면 몸 속의 기운을 일으키지 않으려고 애를 쓰면서 드디 어 일행이 예약한 양춘객점의 앞에 도달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제갈신중이 마악 말을 점원에게 주고서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때의 일이었 다. 지금 양춘객점의 길건너편에는 선인루라고 하는 제법 호화로운 거대한 반점의 앞쪽에 매어져 있는 한 마리의 황마가 아주 눈에 익은 것이었던 것이다. 생각해 보기에 그 황마는 그가 용왕집에서 잃어버린 것과 똑같은 것 같았다. 사실 말들이야 생김새가 서로 비슷비슷하게 쉽게 구별할 수가 없겠지만,의외 에도 그말은 안장의 색깔까지 아주 똑같은 것이었다. [혹시 그 말을 누가 여기까지 데려온 것이 아닐까?] 제갈신중은 심히 자신의 말인듯한 생각이 들었지만 그러나 아직은 그것이 확 실한 것이 아니고, 제다가 지금은 그 말이 반드시 필요한 입장이 아니기 때문에 잠시 망설이다가 그냥 객점의 안으로 들어갔다. 그 양춘객점은 물론 아래층에 주루를 겸하고 있었다. 제갈신중은 안으로 들어가자 일행중의 몇몇은 이미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 식사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때는 이미 해가 넘어갔으나 사방이 훤한 상태였다. 제갈신중은 그 일행들 가운데에서 문득 황보숙한을 보게 되자 한가지의 생각 이 떠올랐다. 그는 자신이 아직 그녀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을 떠올린 것이다. [오서오세요.식사를 하셨나요?] 황보숙한은 어느새 말쑥한 차림으로 새로운 홍의로 갈아입고 그 미모를 뽐내 고 있는 중이었다. 제갈신중은 다가가자 그녀는 미소하며 그런 인사를 건네왔다. 제갈신중은 마주 웃으며 말했다. [아직하지 않았습니다. 낭자는?] 황보숙한은 웃으며 좌우를 손가락으로 가르켰다. [저는 물론 지금 식사를 하려던 참이예요.여기 있는 분들도 마찬가지죠.공자께 서도 아직 식사전이라면 어서 자리에 앉도록 하세요.] 지금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남궁검민과 제갈보중 등이었다. 제갈신중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그 전에 낭자에게 한가지의 부탁을 하고 싶은데,낭자가 그것을 들어주실 지 의문이군요?] [......?] 황보숙한은 다소 의아해져서 되물었다. [무슨 부탁인데 그러시죠?] 이제까지 제갈신중을 신경쓰지않고 않고 있던 좌중의 시선이 자연히 두 사람 에게 쏠리게 되었다. 제갈신중은 말했다. [요 앞의 선인루라는 반점이 제법 그럴 듯합니다. 저와 함께 식사하러 가지 않 겠습니까?] 황보숙한은 다소 어리둥절해져서 주위를 돌아보다가 다시 물었다. [저와 함께 식사를 하시자구요?] 제갈신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황보숙한은 잠시 생각하는 듯 하다가 문득 웃으며 말했다. [아하! 알고보니 일전에 약속하신 그 일에 대해서 그러시는군요?호호! 그런 일 이라면 걱정하지 마세요.이미 식사대접을 받은 것으로 할 테니까요.] 제갈신중은 이내 그녀가 일행중에서 혼자서 빠져나오는 것이 어려워한다는 것 을 알아 차렸다. [하지만 기왕에 약속한 것이니,정말로 한 번 식사하는 것도 좋지 않겠습니까?] 제갈신중은 사실 그녀에게 약간의 속셈을 가지고 있었다. 황보숙한은 제갈신중이 그렇게 나오자 그만 마지못한 듯이 자리에서 일어났 다. [그렇다면 좋아요.한번 당신의 대접을 받도록 하죠.] 제갈신중이 그녀를 데려가는 것을 보고 제갈보중 등은 다소 딱딱한 표정이 되 었을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 * * 제갈신중이 다시 황보숙한을 데리고 밖으로 나왔을 때에는 어느 사이엔가 그 황마는 치워져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그 커다란 주루앞에 말을 매어두는 것이 좋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제갈신중은 그러한 일에는 개의하지 않고 바로 황보숙한을 데리고 선 인루의 안으로 들어섰다. 아까 양춘객점에서와는 달리, 황보숙한은 일단 선인루의 안으로 들어서게 되자 표정이 매우 활발하게 변했 다. [어마,이 반점은 제법 규모도 크고 화려하군요?] 제갈신중은 웃으며 그 말을 받았다. [아마도 이 근처에서 가장 화려한 반점일 것이오.] 황보숙한은 그를 향해 야릇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정말로 당신은 나와의 약속을 충실하게 지켜주시는 군요?] [이런 곳으로 오게 되어서 미안할 뿐이오.] 황보숙한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니예요.저는 바로 이런 곳이 가장 마음에 들어요.] 이어, 그녀는 먼저 가장 안쪽에 있는 자리로 찾아가서 착석하는 것이었다. 일단 두 사람이 자리를 잡고 나서 음식을 주문하자 다소 침묵이 이어졌다. 황보숙한은 이에 웃으며 다시 말했다. [이런 곳에 와서 식사를 하게 되어서 매우 즐거워요.헌데,우리는 일전에 그 얘 기를 마저 끝내지 못한 것으로 아는데,기억하고 있나요?] 제갈신중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소.] 황보숙한은 웃으며 다시 물었다. [우리가 어디까지 얘기했었죠?] 제갈신중은 대답했다. [아마도 칠백년 전의 세 사람에 대한 얘기였을 것이오.] 황보숙한은 부드럽게 웃어보였다. [당신은 과연 잘 기억하고 있군요.헌데 그 나머지의 얘기를 제게 마저 듣고 싶 은 생각은 없나요?] (......) 제갈신중은 웃으며 대답했다. [그 얘기는 매우 흥미로울 것이오.] 황보숙한은 부드럽게 웃었다. [호호,그럴 줄 알았어요. 좋아요.그 얘기를 마저 해드리죠. 바로 그 세명의 천 재들은 각기 천검성자,성수신의,만화성모라고 불리웠고 또한 나중에는 유명한 검총과 성수곡,그리고 성모궁의 시조가 되었죠.] 제갈신중은 물었다. [그들도 세외팔세의 하나이오?] 황보숙한은 대답했다. [천륭무가에 이른 세외팔세의 세곳이죠.] 이때 점원들이 음식들을 날라왔기 때문에 황보숙한은 스스럼 없이 그것들을 먹고 마시며 얘기를 계속했다. 제갈신중은 모처럼 아주 많은 음식을 주문했기 때문에 주문한 음식들이 탁자 위에 가득 들어찼다. 이곳의 내부는 역시 고급스러워서 식사를 즐기기에는 아주 적격이었다. 제갈신중 역시 식사를 하면서 그녀의 얘기를 들었다. 하지만 그는 얘기를 할 때마다 육감적으로 움직이는 그녀의 붉고 싱싱한 입술 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이어, 지금으로부터 삼백년 전에 다시 한명의 강호의 이인이 나타났어 요.] 제갈신중은 말을 자르며 물었다. [그럼 그 뒤의 사백년 간은 아무도 없었다는 말이오?] 황보숙한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도 없었다는 말이 아니라,말하자면 특별한 인재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 이죠.하지만 사가들은 오히려 그 당시가 무학의 중흥기였다고 말하곤 하죠.] [......] [무학에 있어서 대홍락의 초입인 심검과 이 광검의 차이는 그야말로 하늘과 따의 차이라고도 말할 수가 있죠.세외팔세의 시조들은 하나같이 그 광검이상 의 무학을 쌓은 사람들을 말해요.] 제갈신중은 다시 물었다. [하지만 그 사람 역시 무형검에는 오르지 못했다는 말이오?] 황보숙한은 대답했다. [그는 자칭 도황제라고 불렀죠.당시에 그는 천하제일이었으며 적수가 있을 수 가 없었어요.무학이 광검의 경지에 이르러 있었으니까요.하지만 그는 자신이 그 전대의 고금제일인의 경지에는 못미치는 것을 파악하고는 한탄하며 한평생 을 무학연구에만 심혈을 기울이다가 죽었어요.] 제갈신중은 불쑥 말했다. [그런 사람도 죽기는 하는군.] 황보숙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들도 피와 살을 가진 인간이니 당연히 나이를 먹으면 죽게 되어 있지 요.단지 남들보다 오래 살 뿐이죠.그는 죽기전에 도막이라는 것을 하나 만들었 다는데,그것이 바로 세외팔세의 하나예요.] 제갈신중은 물었다. [그럼 세외팔세의 나머지 세곳은 모두 그 이후에 생겨났다는 말이오?] 황보숙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로부터 다시 백 년의 세월이 흘러서,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이백년 전에 강호에는 한명의 마도의 천재가 나타나게 되었죠. 사람들은 그를 일월악마성 이라고 불렀어요.그것은 바로 그가 일월흡성대법과 일월건곤대나이라고 하는 대마공을 창안했기 때문이죠.] 제갈신중은 물었다. [그럼 그가 일월신교의 교주였다는 말이오?] 황보숙한은 대답했다. [그렇죠. 그가 바로 초대의 일월신교주죠.그는 그 두가지의 무공을 사용하여 천하를 지배하려고 했어요. 그 두가지의 마공은 극히 위험하여 당시 강호는 정말로 위험했었죠.] 제갈신중은 문득 어제 저녁엔가 들은 무슨 일월 어쩌구 하는 얘기가 떠올랐으 나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그 두가지의 무공만으로 천하를 지배한다는 것은 너무 심한 생각이 아니오?] 황보숙한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일월흡성대법은 일반의 흡력공들과는 달리 전문적으로 다른 사람의 공력 을 흡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심지어 초목이나 자연에서도 공력을 흡수할 수가 있었죠.가히 그것은 흡력공의 최고봉이었어요.일월신교의 무리들은 그것 으로 가장 빠른 시간에 공력을 높일 수가 있었고,게다가 그 일월건곤대나이는 바로 그 공력을 귀신처럼 사용하게 하는 운기법문의 최고봉이었죠.] 제갈신중은 언젠가 괴노인이 일월건곤대나이에 대해서 말했던 기억이 떠올랐 다. [그렇다면 또 어째서 천하제패에는 실패했다는 말이오?] 황보숙한은 대답했다. [이른바 그런 마도의 속성법은 아무리 완벽하다고 해도 결국에는 한두개의 결 점을 가지게 되기 마련이죠.그건 마치 외공만을 배울 경우에 반드시 몸의 어 딘가에 연약한 연문이 생겨나는 것과 같아요.일월신교도 그 마공에 의해 생겨 났지만 그 마공에 의해 무너졌죠.] 제갈신중은 다시물었다. [그 마공에 어떤 문제점이 있었다는 말이오?] 황보숙한은 대답했다. [잘은 몰라도,그렇게 외부에서 끌어드인 모든 공력들은 완전히 하나의 기운으 로 만드는 데 실패했던 것 같아요.많은 선배분들이 그렇게 전하고 있으니까요. 그말은 일리가 있는 것으로, 만일 그 엄청난 기운들을 하나로 조화시키지 못 하면 결국에는 자신이 그 기운들에 무너지게 되어 있는 것이죠.] 제갈신중도 말했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군.어째서 구태여 조화시키려고 한 것일까? 조화시키려고 했기 때문에 오히려 조화되지 못한 것이 아닐까?] 황보숙한은 제갈신중이 느닷없이 불쑥 던지는 말에 의아해졌다. [예?] 제갈신중은 웃으며 말했다. [나는 그저 혹시 그가 기운을 하나로 만들려고 했기 때문에 실패한 것 같다는 말이오.즉 하나로 만들려고 하니 오히려 분산되는 이치라는 것이오.] 황보숙한은 다소 기이한 표정이 되어 알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당신의 그 말은 이해할 수가 없네요.당신은 가끔씩 이상한 말씀을 하시는 군 요?] 제갈신중은 그와 같은 사람들의 반응이 전혀 생소하지 않은 것이었으므로 웃 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해본 소리이니 신경을 쓸 필요가없소.그건 그렇고, 그 일월악마성은 자 신이 가장 먼저 그 마공들을 연성했을 것이니, 자연히 부작용도 가장 먼저 겪 게 되었겠군요?] 황보숙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일월신교는 그가 주축이 되었던 것이니,일단 그가 죽고 나자 스스로 자멸해 버리고 말았죠.] 제갈신중은 다시물었다. [그럼 나머비 두 개는 어떤 것이오?] 황보숙한은 대답했다. [그로부터 다시 백년 뒤인,지금으로부터 백 년 전에 다시 한명의 대마인이 강 호에 나타났는데,그는 스스로 태양상인이라고 했고 역시 무학이 광검의 경지 에 올라 있었어요.] 제갈신중은 물었다. [그 역시 강호를 제패하려고 했었다는 말이오?] 황보숙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이번에 그가 사용한 방법은 바로 앵속을 사용한 것이었죠.그는 그것으 로 광신도들을 만들어서 태양마교라는 이름아래 천하를 지배하려고 했죠.] 제갈신중은 물었다. [앵속이라고하면 ,바로 그것은 양귀비를 말하는 것이 아니오?] 황보숙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래요. 그 마약은 본래는 소량을 사용하면 아주 훌륭한 치료약이 되는 것이죠.그것으로 무공도 증강시킬 수 있었다고 해요.] 제갈신중은 물었다. [헌데 이번에는 어째서 실패했다는 것이오?] 황보숙한은 문득 웃으며 되물었다. [보아하니 당신은 실패한 것을 매우 아쉬워하고있는 듯한 표정이시군요?] 제갈신중은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있겠소? 만일 그가 정말로 천하를 제패했다면 지금은 우리도 그 광신도가 되어 있어야 할 테니 말이오.] 황보숙한은 대답했다. [그 태양상인은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는데,나중에는 이상하게도 스스로 미쳐서 죽고 말았다고 해요.] 제갈신중은 물었다. [그도 앵속을 복용했다는 말이오?] 황보숙한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럴 리가 없는 것이죠.] 제 19 장. 세외팔세의 이야기. 제갈신중은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말했다. [아마도 사람들을 광신도로 만들었던 그 집년이 오히려 화근이 되어 심마의 원인이 되었던 모양이군.] 황보숙한은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선배님들은 항상 말하죠.바른 길을 가지 않는다면, 그 방법이 제 아무 리 교묘해도 결국에는 무너지고 마는 법이라고.] 제갈신중은 다시 물었다. [그 다음이 바로 현현사요?] 황보숙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지금으로부터 사십년 전에 다시 마도에 한명의 귀재가 나타나게 되었 죠.그 현현귀로는 일명 현현대법이라고 하는 사악한 심령금제대법을 창안하여 천하인들을 뜻대로 조종하려고 했었죠.앞서의 두 번의 마겁도 대단했지만,이때 는 정말로 강호무림이 암흑속으로 들어갈 뻔 했었기 때문에 최대의 마겁이라 고 부르기도 하죠.] 제갈신중은 물었다. [당시의 그 심령대법은 어떤 사람이라도 마음대로 부릴 수가 있는 것이었다고 하던데, 그게 사실이오?] 황보숙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그와 같아요.물론 그 진실 여부는 나로서도 확실히 말할 수가 없는 것이지만 말이예요.] 제갈신중은 말했다. [그래서 천하의 모든 살마들이 심령금제술에 걸려들었다면 그건 매우 곤란한 상황이었겠군.] 황보숙한은 말했다. [하지만 미처 천하제패를 이루기도 전에 그 대법의 부작용이 드러나기시작했 죠.천하에 미친 사람들이 늘어가고,그 정신착란의 증상으로 인해 제어할 수 있 는 수단을 잃게 된 것이죠.] 제갈신중은 가볍게웃었다. [천하 도처에 미친사람들이 즐비 했다는 것은 정말로 공포스러운 상황이었겠 군.] 황보숙한은 약간 안색을 창백하게 변모시키면서 말을 이었다. [당시 정말로 많은 무림의 인재들이 죽어갔다고 해요.만일 당시에 그 천륭무가 의 가주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아마도 무림은 그대로 멸망할 수밖에 없었을 거 예요.] [삽십구대의 천수자라는 그 사람 말이오?] 황보숙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래요.당시에야 비로소 천륭무가가 천수자라는 이름으로 은밀히 대를 이어오고 있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알게 되었죠.그 슬픈 천형의 운명과 함께 말이예요.] 제갈신중은 다시 물었다. [그 천형에 대해서 알고 있소?] 황보숙한은 미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약간은요.그러니까......본래 과거 천년 전의 제일대 천수자의 경우는 정말 로 가장 완벽한 신체라는 천상신골을 타고 났던 것이지만, 뜻밖에도 그의 후손 들은 대대로 천상절맥이라는 천형의 마맥을 타고나게 되었죠.] 제갈신중은 말했다. [그래서 천륭무가의 사람들은 선조의 능력을 이어받지 못했던 것이로군.] 황보숙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셈이죠.본래 이 천상절맥은 두뇌가 천상신골처럼 뛰어나기는 하지만 어 려서부터 지나치게 원기를 소모하여 결국 누구도 서른을 넘기지 못하고 죽어 가게 된다는 것이죠.하기는 사람이 그렇게 머리를 쓴다면 원기가 손상되는 것 은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가 있고,오히려 그럼에도 원기가 소모되지 않는 천 상신골이 이상한 체질이라고 할 수가 있겠죠.] 제갈신중은 물었다. [그 천상절맥을 고칠 발법은 없었소?] 황보숙한은 대답했다. [현재 듣는 바에 의하면 천하의 온갖 불치의 절증과 산맥들 가운데에서 가장 고치기 어려운 것은 바로 전신이 마디마디 끊어지고 흩어져 있다는 만절산맥 이라고 해요.하지만 설령 그 만절산맥은 고쳐도 그 천상절맥만큼은 고칠수가 없다고 하는 거예요.] 제갈신중은 물었다. [그 이유는 뭐요?] 황보숙한은 대답했다. [천륭무가의 그 우수한 두뇌들이 아주 오랫동안 그 천형을 제거하기위해 고심 참담을 했지만 결국에는 어쩔수가 없었죠.즉,사실은 그 절중은 말이 절증이지 기실은 병이 아니기 때문이예요.] [......] [사람이 한 번 기운을 쓰면 그만큼 기운을 소모하게 되어 있는 거예요.보통사 람들이 대개 열의 기운을 소모한다면, 천륭무가 사람들은 백이나 아니면 천의 두뇌적인 기운을 소모하는 것이죠.따라서 그들이 원기를 너무 소모하였으므로 남들보다 일찍 늙어죽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어요?] 제갈신중은 불쑥 다시 말했다. [하지만 반드시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 않소.예를 들어보면 천상신골의 경우만 해도 그렇고.] (......?) 황보숙한은 잠시 어리둥절해 하다가 말했다. [천상신골의 경우는 너무나도 특수하고 또한 전설적이어서 함께 생각할 수는 없는 것이죠.우리는 대개 그 천상신골에 다른 어떤 특징이 더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아무튼,그들은 너무 기운을 써서 죽어가는것이므로 병이라고는 말할 수가 없다는 것이죠.] 제갈신중은 물었다. [그럼 그렇게 너무 기운을 소모하지 않게 하면 되는 것이 아니겠소?] 황보숙한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한 시도 역시 천륭무가의 내부에서 무수하게 시도되었다고 해요.하지만,그 럴 경우에 당연히 그 사람은 천재였던 것이 그만 범인이 되거나, 아니면 심한 경우에는 바보천치가 되고 마는 거죠.천륭무가의 사람들은 결코 자신들이 범 인이나 바보천치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고 해요.] 제갈신중은 쓴웃음을 지었다. [정말로 어쩔수 없는 천형이로군.그들이 그렇게 천재가되는 것만을 고집한다면 앞으로도 그 천형은 고쳐지지 않을 것 같소.헌데......낭자가 보기에는 천상신골 은 무슨 다른 점이 있는 것 같소?] 황보숙한은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아마도,그 신체는 너무나도 완벽하여 강한 원기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요?] 제갈신중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강한 원기를 가지고 있다고해도 결국 그것도 다할 때가 있을 것이오. 내가 보기에는 아마도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것 같소.] 황보숙한은 의아해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라고요?] 제갈신중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나는 다만 떠오르는 내 생각을 말해본 것 뿐이오.즉 발상의 전환인 데......아무리 많은 원기도 소모되기 시작하면 언젠가는 바닥을 드러내게되어 있는 것이오.그보다는 차라리 아무리 해도 원기는 조금도 소모되지 않는다고 생 각하는 것이 어떻겠소?그렇게만 된다면 아무리 원기가 적어도 그것이 고갈되 는 일은 없을 테니까 말이오.] (......?) 황보숙한은 잠시 제갈신중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당신의 말은 엉뚱한 듯 하면서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군요? 하지만 그것은 어떻게 실천할 수가 있을 까요?] 제갈신중은 말했다. [그 실천 역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지 않겠소?예를 들어서 굳이 실천해야 하 는 것이 아니라 이미 저절로 실천되고 있다고 하는......] 황보숙한은 제갈신중의 말을 듣고 있다가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모르겠어요.당신의 얘기를 듣고 있자니 마치 머리속이 헝클어져서 어지러운 것 같군요.그 얘기는 이제 그만 두고 하던 얘기를 마저 하도록 하죠.제가 어디 까지 얘기했죠?] 제갈신중은 대답했다. [천상절맥은 정말 어쩔수 없는 천형이라는 것이오.] 황보숙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그들은 지난 천년동안 그 절증에 시달리며 전해져 내려왔으니 정말 불쌍하지 않겠어요?음......사실 천형의 절증이면서도 병이 아니기 때문에 고칠 수 없다고 하는 점은 정말로 풍자적인 내용이라고 생각해요.하지만, 그렇다고 그동안 천륭무가에서 그저 놀고만 있던 것은 아니예요.] 제갈신중은 물었다. [병을 고칠 실마리를 잡았다는 말이오?] 황보숙한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렇지는 않아요.그것은 정말로 불치의 천형이니까요.하지만 그동안 무수하게 요절한 천륭무가의 천재들은 지금에 이르러 그 천형을 약간은 호전시켜 놓았 죠.과거에는 스무살도 넘기지 못했으나 이제는 삼십살까지 견딜 수가 있게 된 것이죠.] 제갈신중은 물었다. [천년만에 수명을 십년 늘려놓은 셈이로군, 하지만 고작 서른에 죽어야 한다 니......정말로 안타까운 일이겠군.만일 그들이 다시 수명이 십년 늘어나게 된다 면 세상이 크게 달라질 지도 모르겠군.] 황보숙한은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될 리는 없어요.모두들 지금의 서른살의 수명은 그야말로 그들의 최후 의 한계라고 말하고 있죠. 인간의 수명이 얼마든지 늘어나는 것은 아닌 것처 럼,그들의 수명도 역시 그 한계가 있는 거예요.] 제갈신중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쨌든, 그 삼십구대의 천수자는 현현괴로를 처치하고 나중에 천하를 돌아다 니며 많은 사람들의 심령대법을 풀어준 다음에 죽었죠.그는 많은 좋은 일을 하여 사람들의 신망을 받았었지만 그러나 그가 기실은 현현괴로보다 능력이 뛰어났던 것은 아니었다고 해요.그것은 나중에 그 자신이 밝힌 내용이었다고 해요.] 제갈신중은 물었다. [그는 무엇을 말했소?] 황보숙한은 대답했다. [당시는 이미 심령대법의 부작용이 크게 일어나서 현현괴로 자신의 능력도 거 의 사라져 있는 상황이었다고 해요. 많은 사람들이 미치자 그 자신도 점차로 정신착란의 기미가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죠.그것은 물론 그의 무학에 결정적 으로 불리하게 작용했고,이어 그가 죽고나자 사람들의 심령대법을 풀어주는 일 도 쉬워지게 되었던 거죠.] 제갈신중은 물었다. [헌대 그럼 그 천수자의 후대도 있어야할 것이 아니오?] 황보숙한은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만일 그랬었다면 당금의 무림에 많은 도움이 되었을 거예요.] 제갈신중은 물었다. [그럼 천륭무가의 대가 아주 끊어지게 되었다는 것이오?] 황보숙한은 말했다. [천륭무가는 과거 곤륜산의 깊은 산 속에서 은밀하게 전해져 내려오고 있었어 요.많은 사람들이 당시에 그것으로 가서 천수자의 임종을 보았다고 해요.당신 삼십세의 백발의 노인이 되어 죽어가는 천수자는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본래 천륭무가에는 자손이 아주 귀한 편이었는데 자신의 외아들은 아주 어린나이에 실종되어 생사를 알 수 없게 되었다고요.자신이 당시 강호에 나갔던 것은 바 로 그 아들을 찾기위해서였다고 하더군요.] [......] [그 아들 역시 천상절맥의 몸으로서 당시에 천수자도 찾지 못했다고 했으니 틀림없이 죽은 것이라고 봐야지요.따라서 그 가문도 이제는 대가 끊어지게되 었다고 많은 사람들이 한탄을 했었죠.] 제갈신중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그 세외팔세의 이야기가 끝나게 되었군.헌데 그 세외팔세 가운데 나머 지 문파에도 후대가이어지게 되었을 것이 아니오?] 황보숙한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말이야 쉽지만 기실 다른 문파들은 그 인재를 만나지 못한 것이죠.말하자면 세외팔세를 일으켰던 사람들과 같은 천재들은 거의 수백년에 하나 나올까 말 까하는데,그런 사람들이 계속 나타나서 대를 이었다는 것은 이치적으로 맞지 않는 것이죠.즉, 그 나머지의 문파들은 천륭무가와는 달리 인재가 없어서 단절 되었다고하는 거예요.] [......] 제갈신중은 문득 뇌리에 일행을 구했던 사람들의 기억이 떠올라서 멍하니 생 각에 잠겼다. 게다가, 그는 오늘 아까만 해도 한명의 괴이한 중년인을 보지 않았는가? (요사이는 일진이 좋지 않은 모양이로군.그런 사람들을 자꾸만 보게 되다 니......) 그때 어느 정도의 식사가 끝나 있었다. 저금도 사양하지 않고 이것저것 배불리 포식한 황보숙한은 이어 물수건으로 입술을 닦으면서 미소를 지었다. [제가 얘기를 만족스럽게 해드렸는지 궁금하군요.덕분에 이렇게 포식했어요.저 는 원래 많이 먹는 편인데,게다가 오늘은 유난히 시장해서,호호......그렇다고 저를 밉게 보시지는 않으시겠죠?] 두 사람이 식사를 끝내자 점원들이 보고 있다가 얼른 탁자위를 치우고 간단한 차를 내왔다. 제갈신중은 그 차를 마시며 말했다. [나로서는 낭자가 즐거웠다니 기분이 좋을 따름이오.] 황보숙한은 미소를 지으면서 차를 마시다가 다시 물어봤다. [혹시 제게 더 궁금하신 내용이라도 있으신가요?] 제갈신중은 잠시 생각하는 듯 하다가 말했다. [황보낭자는 그럼 현재의 그 삼대마세의 출현을 어떻게 생가하시오?] 황보숙한은 고개를 두어번 끄덕이며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저 역시 그들 세외팔세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나타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요.게다가 이미 사십년전에 마겁이 있었는데 이제 금방 다시 그와 같은 마겁 이 닥칠리도 없는 것이고요.] 제갈신중은 문득 다시 물었다. [황보낭자는 만일 어젯밤에 우리 일행의 앞에 나타났던 사람들이 세외팔세의 후인들이었다면 어쩌겠소?] (......?) 황보숙한은 약간 의아해졌다. [예? 아니, 그게 대체 무슨 말씀이죠?] 제갈신중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아니오.] (......) 황보숙한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문득 제갈신중을 바라보며 다시물었다. [저어,이번에 제가 한가지의 청을 드려도 될까요?] 제갈신중은 자신이 어젯밤의 일을 말해야 하는지의 일에 대해서 잠시 고민하 고 있다가 뜻밖의 질문을 듣고 즉시 되물었다. [무슨 부탁인데 그러시오?] 황보숙한은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 [간단한 거예요.어쨌든 제가 당신에게 식사대접을 받았으니,이번에는 제가 술 한잔 대접해도 되겠느냐는 거죠.호호,그것은 괜찮죠?] 세상에 이런 미녀가 함께 술한잔 하자는 것을 싫어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제갈신중은 도리어 어리둥절해 졌다. 기실, 그는 다른 얘기 때문에 식사시간이 다 지나가게 되어서 혹시 아직 하고자 하 는 얘기를 못다한 것이아닌가 하는우려를 하고있었는데, 뜻밖에도 황보숙한이 이렇게 먼저 자청하여 술 한잔을 하자고 하니 그야말로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었다. 제갈신중은 절로 얼굴이 벌개지면서 대꾸했다. [그야 물론이오.하지만 하하,이거 내가 그런 복을 누려도되는 것인지 모르겠 소.] 황보숙한은 가볍게 웃었다. [겸손하시군요?우리는 이미 일전에도 함께 술을 마신적이 있지 않은가요?] 그것은 바로 제갈세가에서의 일을 말하는 것인데,하지만 그것이 지금과 같을 수는 없다. 하지만 제갈신중은 내심으로 너무 좋아서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그렇군요.] 황보숙한은 이에 다시 점원을 불러서 여아홍을 두근 정도 시켰다. 술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황보숙한은 찻잔을 비워내며 다시 입을 열어 말 했다. [제가 보기에 당신은 매우 재미있으신 분인 것 같아요.게다가 착하시고요.저는 사실 그 세외팔세의 얘기를 다 알고 있으면서도 들어주신 것을 잘 알고 있어 요.] 제갈신중은 절로 얼굴이 벌개졌다. [모두가 과분한 말씀이오.] 황보숙한은 이에 정색을 하고다시 말했다. [하지만 제가 그렇게 일부러 식사도중에 그런 말씀을 드렸던 것은 바로 제가 드리려는 얘기는 식사시간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서 그랬어요.] 제갈신중은 기분이 절로 의미심장해지면서 대꾸했다. (혹시 그녀는 나에게 청혼을 하려는 것이아닐까?) [무슨 얘기인데 그러시오?] 황보숙한은 점원들이 술과 안주들을 가져오는 것을 보고 그것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대꾸했다. [성미가 급하시군요?제가 지금 술을 기킨 이유를 모르시겠다는 말인가요?] [아,그렇군.] 제갈신중은 황보숙한이 굳이 술을 마시면서 하려는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점원들이 술과 음식들을 다시 차려놓은 동안에 제갈신중은 겨우 밖으로 시선 을 돌렸다. 어느새 밖에는 짙은 어둠이 밀려들고 있었고 반점의 내부에는 등불이 더 늘어 나 있었다. 당연히 반점의 탁자들은 한창 손님들로 만원이 되어 있었고 점원들이 분주히 오가는 모습들이 활발해 보였다. 그런데, 제갈신중은 마악 황보숙한에게 고개를 돌리려다가 문득 다소 먼거리에 있는 탁자에서 매우 낯익은 사람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아니,저 사람들이?) 뜻밖에도 일전에 만났던 두명의 괴노인들인 금노와 기노였다. 게다가 , 그들은 지금 다른노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조용히 식사를 하고 있었다. 만일 황보숙한이 말을 걸지않았다면 그는 아마도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서 그 들에게 다가갔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동안 그가 그 괴노인들 때문에 당한 일들이 한두가지가 아니었기 때문이었 다. [뭘 그렇게 보고 계세요? 아는 사람들인가요?] 제갈신중은 급히고개를 돌리면서 대답했다. [뭐,조금 알기는 하지만 대단한 사이는 못되오.] 이에, 황보숙한은 다시 그쪽을 바라보지는 않고 제갈신중에게 술 한잔을 따라서 건 네주며 다시 말했다. [제가 듣기로 당신은 과거에는 총명하셨으나 나중에는 뜻한 바가 있어서 모든 것을 도외시하고 살아가시는 중이라는 것을 알고있어요.당신이 보시기에는 아 마도 세상의 모든 일들이다 우습게 보이겠죠?] 제갈신중은 다소 어리둥절해져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아니오.그럴 리가 있겠소!] 황보숙한은 그러나 고개를 저으며 다시 말했다. [듣기로 공자께서는 지난 삼년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절에 머무셨었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그것은 바로 세 속의 모든 일들에 초탈하신 것이겠죠?심지어 남 녀사이의 사랑이나 혼인등에 관한 일들까지도.] 제갈신중은 일시 그녀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몰라서 내심으로 중얼거렸다. (그게 아니라,난 그저 편하고 또한 비용이 거의 들지 않아서 절에 있었을 뿐 이었는데......?) 황보숙한은 다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제가 일부러 이렇게 시간을 내서 말씀드리는 것이니,지금 만큼은 부디 잠깐이라도 신경을 써주셨으면 해요.] 제갈신중은 물었다.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이오?] 황보숙한은 말했다. [좋아요.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죠.둘째공자께서는 저를 어떻게 생각하 세요?] (......?) 제갈신중은 그녀가 갑자기 자신에게 둘째공자라고 부르면서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을 보고 더욱 의아해졌다. 제갈신중은 약간 얼굴이 벌개져서 대꾸했다. [낭자는 물론 아름답고 현숙하며 또한 어디에 있어도 손색이 없는 총명한 사 람일 것이오.] 황보숙한은 그 말을 듣자 이내 얼굴이 환해지며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그,그 말은 그럼 저를 당신의 제수씨로 기꺼이 인정을 하겠다는 말씀인가요?] 그녀는 일면 기쁘고 떨리는지 말소리도 약간 더듬거렸다. (......?) 순간 제갈신중은 느닷없이 뒤통수를 크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아니,제수씨라니? 그게 무슨 말이오?] 그말에 황보숙한은 오히려 약간 놀라는 표정이었다. [그,그럼 당신은 제가 당신의 동생인 제갈보중 그분과 친하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는 말인가요?] (......?) 제갈신중은 잠시 멍해졌다. 이어 그는 얼굴이 완전히 시뻘개지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보중이와......아,그랬군. 그게 그렇게 되었겠군.] 하지만, 황보숙한은 이내 그가 모르면서도 얼버무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안색 이 가볍게 변했다. [난,원래 우리 두사람의 사이가 이미 양가에서 정혼되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당신도 알고 있을 것이라고 짐작했었는데, 알고보니 당신은 그 사실을 아직 모르고 있었군요?] 제갈신중은 갑자기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는 겨우 대꾸했다. [하지만 낭자는 저번에 우리 제갈세가에 왔을 때는 아직 내동생의 얼굴도 모 른다고 하지 않았소?] 황보숙한은 대답했다. [물론 정혼은 저의 아버지와 당신의 아버지가 정해놓으신 것이기 때문에 그날 처음으로 만나는 것이었고,따라서 제가 일부러 그를 찾아나섰던 것이예요.그리 고 ,그날 밤에 우리는 서로가 첫눈에 마음에 들어서 혼인을 약속했었죠.] 제갈신중은 물었다. [그럼 왜 당신은 나에게 접근한 것이오?] 황보숙한은 제갈신중의 눈치를 살피면서 대답했다. [나는 당신이 비교적 괴행을 하신다기에 ,앞으로 한가족이 될 사람이므로 친해 지고 싶어서 여러가지 도움을 주었던 것이예요.헌데 제가 당신에게 잘못한 것 이라도 있나요?] 제갈신중은 일시 머리가 멍멍해 지는 것 같았으나 겨우 진정하고 웃으며 대꾸 했다. [아지오.그런 일은 하나도 없었소.헌데......나에게 하시고자 했다는 말이 바로 그것이었소?] (......?) 황보숙한은 오히려 의아해했다. [시아주버니인 당신과 친해지는 일 이외에 제가 할 말이 더 어디에 있겠어 요?] 제갈신중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렇겠군.사실은 나 역시 당신을 내동생과 맺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중이었소.] [어마,그래요?] 황보숙한은 그제서야 다소 안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빌어먹을! 아마도 아버지는 내가 없는 사이에 그 혼약을 정해놓으신 모양이 로룬.허허,상대가 보중이었다니......!) 제갈신중은 그만 기가 막혀서 웃음이 절로 나오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 그런 내색을 조금도 할 수가 없는 입장이었다. 그는 간밤에 자신이 그녀와 한쌍이 되려고 생각했던 일 등을 상기해 보면서도 급히 끓어오르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알고보니 그녀는 그런 마음으로 나에게 대했던 것이로군!) ...... 제갈신중이 그런 식으로 잠시 생각에 잠겨있자 황보숙한은 다시 입을 열어 물 었다. [당신이 보기에 우리 그이는 어떻다고 생각하세요?] 제갈신중은 급히 생각에서 깨어나서 물었다. [보중이 말이오?] 황보숙한은 입을 가리고 웃었다. [호호, 그분 말고 누가 또 있겠어요?] 제갈신중은 그러한 그녀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며 문득 크게 낯설은 느낌이 들 었다. 그것은 그녀에 대한 자신의 마음 역시 달라졌기 때문이었다. [그는 물론 훌륭하오.나보다야 백배 훌륭하다고 할 수가 있지.] 황보숙한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의 말은 그게 아니라,그러니까 당신의 형과 비교하여 어떻느냐는 말이예요. 당신은 장래에 관연 누가 더 뛰어나게 되리라고 생가하고 있죠?] (......) 제갈신중은 크게 어이가 없었다. 그것은 갑자기 상대방의 심리가 훤하게 들여다 보이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여태까지 그렇게 다른사람의 마음속이 훤이 들여다 보인 적이 없었다. 일단 그렇게 되자 왠지 조금전에 느꼈던 억울한 심정이 씻은 듯이 사라지면서 상대방이 내려다 보이는 것이었다. 제 20 장. 성수곡의 곡주. 제갈신중은 전보다 훨씬 마음의 여유가 생겨서 미소하며 대꾸했다. [낭자가 보기에는 어떻소?] (.....?) 황보숙한은 제갈신중이 갑자기 그렇게 여유있게 웃는 것을 보고 의아해 하다 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야,저는 ......아무래도 가장 큰형님이 낫지 않을까요?당신의 생각은 어떻죠?] 제갈신중은 미소하며 대답했다. [나는 아직 잘 모르겠소.어쨌든 그 두사람의 능력은 비슷비슷하니까.] 왠지 이 순간의 제갈신중의 마음은 보다 넓어지고 선명해진 것 같았다. 이제는 눈앞의 여자를 얻지못한 괴로움이나 섭섭한 기분은 조금도 들지 않고 있었다. 다만 왠지 그의 마음이 다소 우울하고 씁쓸해졌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기분은 나쁘지 않아서 명쾌한 지금의 상태라면 어떤 문제도 풀수가 있을 것 같았다. (어쨌든 내가 미리 그녀에게 청혼하지 않은 것이 불행중 다행이로군!) 제갈신중은 전에 그녀에게 살짝 입맞춤을 했었던 사실이 지금은 오히려 약간 소름끼치는 것 같았다. 제갈신중이 계속 가만히 생각에만 잠겨있자,황보숙한은 이내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내가 생각을 잘못한 것 같아요.] 제갈신중은 그녀를 보며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오?] 황보숙한은 그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저는 당신이 오늘의 이 자리를 좋아할 것이라고생각했는데,지금 그렇게 앉아 만 계시는 것을 보니 저의 생각이 틀린 모양이예요.저는 당신이 기꺼워 해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알고보니,너 역시 나를 완전히 바보로 보고 있었구나.만일 상대가 형이었다고 해도 네가 이렇게 멋대로 상대방을 가지고 놀고,게다가 공손하지 않은 말투로 이와 같은 일들을 하며 제멋대로 일을 꾸민다는 말이냐?만일 상대가 내가 아 닌 형이었다면 너는 그렇게 여유만만하지못하고 좀더 공손하고 어려워했을 것 이다.) 제갈신중은 내심 그와 같은 생각을 했지만 그렇다고 상대방을 미워하는 마음 을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왠지 내려다 보였을 뿐이었다. [그렇소.확실히 낭자의 생각은 틀린 것이었소.나는 비록 낭자가 싫었던 것은 아니었지만,그러나 이와같은 대접은 나로서는 전날의 한 번으로 족한 것이오. 낭자는 자상하게 대해주는 것은 고맙지만,그러나 사실 그렇게 지나친 것은 비 단 예가 아닐뿐만 아니라 나 역시 부담스럽고 좋아하지 않는 일이오.] (......!) 황보숙한은 제갈신중이 잠시 뜸을 들이다가 그와 같은 말을 하자 다소 안색이 변했다. [그,그럼 제가 어떻게 해주기를 바라지요?] 다소 놀란 눈빛으로 묻는 황보숙한에게 제갈신중은 미소하며 다시 대답했다. [그것은 간단하오.그대는 그저 나의 동생만 신경쓰면 되는 것이요.이제 이만큼 서로간의 낯을 익혔으니 더 이상 나를 마치 장애자가 되는 것처럼 신경쓰고 돌봐주어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오.당신이 만일 정말로 나를 정혼자의 형으 로 생각한다면 말이오. 나는 그야말로 그대의 시댁어른들 가운데의 하나가 아 니겠소?] [......!] 황보숙한은 제갈신중이 길게 말을 하는 동안 대꾸도 못하고 잠시동안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녀의 낯빛은 그러는 가운데 수차례나 변했다. 이윽고 그녀는 두눈에 강한 독기를 피워올리더니 정색을 하고 다시 물었다. [그 말씀을 정말로 저에게 하시는 것인가요?] 제갈신중은 그녀가 그렇게 쏘아보자 어리둥절했으나 즉시 대꾸했다. [그렇소.그야 말할 나위가 있겠소?] 황보숙한은 그 말에 입가에 기이한 조소를 머금었다. [저는 당신이 과연 그 말을 나의 그이 앞에서도 할 수가 있느냐는 거예요.] (......?) 제갈신중은 되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오?설마하니 당신은 지금 이 얘기를 모두 보중이에게 일러바 치겠다는 말이요?] 황보숙한은 대답을 회피하며 말했다. [내가 알기로,나의 그이는 이제까지 그래도 당신에게 좋은 대접을 해왔다고 할 수가 있어요.당신은 가문에 먹칠을 하고 다니면서 형같지 않았지만 그는 그래도 계속 형 대우를 해주었지요.그런데 겨우 이런 것이 그것에 대한 보답 인가요?] (뭐라고? 내가 형 같지않다고?그럼에도 형의 대우를 받았다고?게다가 그 보답 이 바로 이거냐고......?) 제갈신중은 내심 너무나도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지만 이내 참았다. (이 낭자는 알고보니 정말로 너무하는군. 정말 웃기는군. 내가 무엇 때문에 집 을 나가야만 했었는지 그 이유도 아직 들어보지 못한 모양이로군.) 제갈신중이 그저 바라보기만 하자 황보숙한은 다시물었다. [당신은 우리 그이가 당신을 혼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나요?아니,지금 나에 게라도 한 번 혼나보고 싶은가요?] (......!) 제갈신중은 내심 은근히 화가 치밀었으나 이 순간에는 그저 참아야 한다는 생 각이 들었다. 그것은 상대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싸울 상대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제갈신중은 잠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웃으며 말했다. [좋소.내가 당신을 당할 수야 없겠지.내가 미안하다고 사과하리다.자,내가 이 술잔의 술을 마신다면 그 사과를 받아주겠소?] 황보숙한은 두 눈에서 정광을 내뿜다가 갑자기 제갈신중이 그렇게 나오자 그만 어이가 없는지 독기를 거두었다. [흥! 정말 웃기는 사람이로군요.솔직히 지금 누구도 당신의 편을 들어주지는 않을 거예요.그러니 우리에게 대항하지 않는 것이 좋을 거예요.] 냉랭하게 코웃음을 치고는 있지만 다소 독기가 풀어진 것을 보고 제갈신중은 즉시 빈잔을 그녀의 앞으로 건넸다. [알겠소.자,그 일은 내가 잘못했다고 했으니 그만 화를 푸시오.나의 술잔을 한 잔 받으시겠소?] 황보숙한은 그러나 잔을 받지않고 벌덕 몸을 일으켰다. [그만 두세요! 나는 그래도 좋은 감정으로 대해주려고 했더니......사람을 이렇게 무안하게 만들 줄이야! 정말 그이의 말을 들을 것을 잘못했어!] 말이 끝나자 갑자기 그녀는 신형을 돌려 밖으로 걸어 나가기 시작하는 것이었 다. (......) 제갈신중은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고 앉아 있다가 이윽고 내심 길게 한숨을 내 쉬었다. (신중아,신중아! 제갈신중아! 정말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말이냐? 정말 더럽 군......) 제갈신중은 즉시 술병을 들어서 병째 마시기 시작했다. 여아홍이라는 술은 원래 독하지만 쓰지는 않은 술이다. 제갈신중이 그 두근의 여아홍을 모두 비웠을 때는 이미 물론 그 황보숙한이라 는 낭자는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 * * (......) 제갈신중은 술을 모두 마시고 나서 점원에게 다시 주문을 하려다가 문득 다소 망설였다. 속에서 쓴물이 올라오는 것 같아서 도저히 술을 더 마시고 싶지 않았기 때문 이었다. 하는 수 없이 그는 신형을 일으켰다. (앞으로 그들과 함께 다녀야 하는 내 입장이 처량하군!) 헌데 막 그가 밖으로 걸어나가려고 할 때였다. 갑자기 그의 눈에 다시 예의 그 낯익은 사람들의 모습이 들어오는 것이었다. 다행히도 그들은 아직 가지 않고 둘러 앉아서 술들을 마시고 있었다. 제갈신중은 즉시 그들의 앞으로 걸어 가면서 말했다. [아이구,이거 오랜만이오!] 그 금노와 기노는 우연인지 제갈신중의 맞은 편에 앉아 있었는데,왠지 그가 오는 것을 보고 질리는 표정이었다. ...... 지금 그 탁자에는 모두 다섯명의 사람이 둘러앉아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서 금노와 기노를 포함한 네명이 아주 늙은 노인들이었다. 다른 두 늙은이의 얼굴은 낯설었지만 왠지 그들은 그다지 낮설게 느껴지지 않 았다. 제갈신중은 다른 두 노인의 용모를 유심히 살폈다. 그 가운데 청의노인은 비록 앉아 있었지만 키가 매우 커보였고,그리고 백의 노인은 오히려 아주 작은 난장이였다. 아마 일어서 보아도 키가 겨우 사척밖에 되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금노와 기노를 포함한 그들 네명의 노인들은 용모가 하나같이 나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늙었으며 괴상한 것이 특색이었다. 제갈신중은 이내 그들이 한패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일전에 기노등이 자신에게 일행이 있다는 얘기를 한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 한가지 기이한 것은 그 청의노인은 한손에 쇠로 만들어진 붓모양의 물건을 하나 들고 있었고, 백의노인은 연신 두손을 조무락거리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지금 그의 손안에는 무쇠덩어리가 마치 엿가락처럼 움직이고 있는 것이었다. 제갈신중이 특별히 신경써서 보았으니 알았지 다른 사람들은 결코 그것을 쇳 덩어리라고 생각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백의노인은 그 무쇠덩어리를 마치 진흙덩어리처럼 반죽하여 이리저리 모양을 만들어 보곤 하는 것이었다. 즉, 그들 네명의 노인들이 놀랍게도 쇳덩어리들을 사용한다는 사실이 공통점이라 고 할 수가 있었다. (......) 제갈신중은 그들이 지금 즐겁게 술을 마시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기실은 그게 아니라 그들은 거의 그냥 앉아 있었다. 가까이 다가운 그를 보고도 금노와 기노역시 힐끗 바라보기만 할 뿐,입을 열 지 않는 것이었다. 게다가, 제갈신중은 그 탁자에 앉아있는 나머지 한명인 그 황의중년인 역시 어디서 본 듯 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제갈신중은 약간 얼큰하게 취한 상태였기 때문에 상대방에 대한 예의는 생각 지도 않고 잠시 그들을 둘러보다가 돌연 소리쳤다. [그렇군! 당신은 바로 그 사람이었어!] 그렇다. 기실 그 황의 중년인은 안색이 누렇게 뜬 것이 바로 전날 제갈신중이 절에서 내려와서 주막에서 보았던 사람이었던 것이다. 삼강방의 도적들에서 당하려고 할 때에 그 황의중년인도 그 주막에 함께 있었 던 기억이 생생했다. 과연 아니나 다를까, 그 황의중년인 역시 제갈신중을 알아 보았는지 이내 입을 열어 말했다. [알았다면 어서 자리에 앉기나 하시오!] (......?) 제갈신중은 그가 가리키는 대로 탁자의 주위의 한 의자에 앉았으나 무슨 영문 인지 알 수가 없었다. [헌데 당신들은 어째서 이렇게 함께 있는 것이오?] 황의중년인은 그를 보며 대꾸했다. [정말로 당신은 몰라서 그렇게 묻고 있는 것이오?] 정말로 그 황의중년인의 음성은 아주 거칠은 탁성이어서 듣기에 좋지 않았다. 제갈신중은 어리둥절해졌다. (오늘은 내가 이상한 일만 겪게 되는군.) [그럼 당신들은 모두가 이렇게 한패라는 말이오?] [......] 황의중년인은 잠자코 말이 없었다. 하지만 주위에 앉아있는 네명의 노인들의 얼굴에는 아주 불쾌한 기색이 역력 히 피어오르고 있었다. 제갈신중은 그들과 황의중년인의 무표정한 얼굴을 바라보다가 이윽고 키가 커 다란 청의노인의 몸에 시선을 미친 순간에 갑자기 크게 느껴지는 바가 있어서 소리쳤다. [아!알고보니 당신들은 바로 어젯밤에 우리 일행을 구해주었던 그 사람들이로 군? 키다리 노인,당신이 바로 나를 치료해 주었고!] 순간 네명의 노인들은 깜짝 놀란 표정이 되어 급히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것은 제갈신중이 갑자기 너무 큰소리로 떠들어댔기 때문이었다. 금노가 그만 참지 못하고 다급하게 말했다. [이봐,그렇게 떠들지 말고 좀 작게 말할 수가 없나?] (......?) 제갈신중이 금방 이들이 어젯밤의 그 괴인들이었다는 사실을 간파해낸 것은 가히 놀라운 사실이었다. 제갈신중은 말하고 나서도 설마하는 기분이 있었지만 이내 그들의 태도를 보 고는 확신을 가졌다. 틀림없이 그 네명의 놀라운 능력을 지닌 괴인들과 한명의 신비인은 바로 이들 인 것이었다. 하지만, 금노와 기노등은 무공으로 능히 그럴수가 있다고는 해도,이 신비인인 황의중 년인 만은 그럴 수가 없었다. 처음에 주루에서 만났을 때, 오히려 그는 삼강방의 무리앞에서 전혀 무공을 모르는 사람처럼 행동하지 않 았던가? 그럼 그것은 거짓 연극이었다는 말인가? 제갈신중은 애내 기노가 전에 자신들이 무슨 곡에서 왔고 또한 곡주가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눈앞의 이 황의중년인이 바로 그 곡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애초에 그는 그 곡주라는 사람이 아마도 늙고 무서운 노인일 것이라고 생각하 고 있었는데 그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눈앞의 이 황의 중년인의 비록 표정이 다소 괴이가기는 하지만 머리결도 검고 또한 행동도 그리 노련해 보이지가 않았다. 무섭기는 커녕 오히려 약간 서투른 느낌마저 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 번 확인해보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따라서, 제갈신중은 즉시 기노에게 이렇게 입을 열어 물었다. [내가 아까 보니 당신들의 곡주가 찾고 있는 모양이던데,어째서 여기에 앉아만 있는 것이오?] 제갈신중은 기노가 소심하고 순진한 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에 게 일부러 질문한 것이었다. 과연 그 효과는 즉각 일어났다. 기노는 즉시 크게 의아한 표정이 되어 참지 못하고 손가락으로 황의중년인을 가리키며 대꾸하는 것이었다. [너느,그......그게 무슨말이냐?지금 본곡의 곡주님께서는 여기에 이렇게 계신 데,어디에 또 곡주님이 계시다는 말이냐?너는 혹시 잘못안 것이 아니냐?천하 에 곡주님이 두분이나 계신다는 것은 정말......말도 안되는 일이다!] (......!) 제갈신중은 그것으로 이내 분명히 한가지의 사실을 확신할 수가 있었다. 즉, 눈앞의 이 황의 중년인이 바로 전날에 제갈신중을 삼강방의 무리로부터 구해주 려고 했던 장본인이며, 게다가 기노등이 그렇게도 두려워하고 공경하던 곡주라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아직 크게 두가지의 의문은 남아있었다. 하나는 어째서 그렇게 그들이 제갈신중에게 관심을 보이는가 하는 것이고,다 른 하나는 바로 그들의 진정한 정체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다. 제갈신중은 순간적으로 생각을 굴리다가 문득 한가지 생각이 떠올라서 이번에 는 금노에게 물었다. [나는 당신들이 성수곡의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고있는데,어째서 당신들은 이렇 게 다시 나를 찾아온 것이오?] 우선, 제갈신중이 성수곡이라고 판단한 것은 그들의 무공이 너무 높기 때문에 역시 세 외팔세 가운데의 한곳의 사람들일 것이라고 짐작했고, 게다가 그 가운데의 곡자가 붙은 명칭은 성수곡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미 단절되었다던 세외팔세의 후인들이 다시 나타날 것 같지는 않았으 면서도 말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들의 자세로 보아 아마도 여태 이곳에서 황마로 자신을 유인하며 기다 리고 있었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었다. 제갈신중은 이미 자신은 상대에게 훤히 드러나 있고,상대는 알수 없었기 때문 에 그런 수단을 쓰는 도리밖에 없었다. 그런데, 과연 아니나 다를까? 성질이 비교적 급한 금노는 그만 놀라며 다름과 같이 대꾸하는 것이었다. [아이쿠!이봐,그렇게 본곡의 이름을 함부로 말하면 안된다고.이걸 남들이 들었 으면 어쩌질!......우리는 바로 네가 어젯밤에 우리를 보았기 때문에 그 일을 입 밖에 내지 말라고 주의시키려고 너를 만난 것인데, 이렇게 함부로 말을 하면 어떻게 해!] (......!) 제갈신중은 내심 설마했지만 정말로 그들이 전설의 세외팔세의 하나인 성수곡 에서 온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일시 정신이 멍한 기분이었다. (설마했더니 정말 사실이었군!) 그 때 황의중년인이 다시 입을 열어 물었다. 이순간 그의 두 눈에는 의아한 빛이 떠올라 있었다. [그럼 정말로 자네는 우리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말인가?] 거칠은 탁성을 들으면서 제갈신중은 개의하지 않고 되물었다. [그럼 당신은 바로 그 칠백년 전의 세명의 천재들 가운데의 하나인 성수신의 의 후계자라는 말이오?] (......) 황의중년인은 잠시 망설이는 듯 했으나 이내 할수 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나는 본곡의 제십오대 성수신의일세.] (......!) 황의중년인의 말은 이미 질문에 대한 긍정이나 다름이 없었다. 제갈신중은 세외팔세 가운데의 한명의 후계자가 나타났다는 사실에 자연 경악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동시에, 갑자기 그의 뇌리에 떠오르는 것은 아까 마시장 이후에 말을 잡아주었던 그 괴이한 흑의중년인에 대한 것이었다. (그럼, 그 역시 세외팔세 가운데의 한 후계자가 아닐까?) 과거부터 단절되었다고 전해지던 세외팔세는 분명히 맥이 이어지고 있었으며 그것은 커다란 충격이었다. 제갈신중은 급히 정신을 차리고 다시물었다. [당신은 물론 이 사실이 비밀로 붙여지기를 바라겠지?] 황의중년인의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네.나는 자네가 능히 그렇게 해줄 것이라고 믿고 있네.] 제갈신중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천만에! 나는 죽어도 그냥은 그렇게 해줄 수가 없소.당신들이 한가지의 조건 을 수락한다면 또 몰라도.] [......] 황의중년인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그 조건이란 뭔가?] 제갈신중은 말했다. [그건 바로 당신들이 어째서 나에게 접근한 것인지 그 이유를 밝혀야 한다는 것이오.] 황의중년인은 다시 물었다. [조건이란 것이 그것 뿐인가?] 제갈신중은 대꾸했다. 그는 상대방이 대단한 인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를 악물고 버티고 있었다. [그렇소.만일 그 조건을 수락하지 않는다면 나는 결코 죽는다고 해도 당신들의 말을 듣지 않겠소.] 그런데, 황의중년인은 이에 문득 웃는 눈빛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자네의 말뜻을 이해하겠군.하지만 그 조건은 너무도 간단하여 부담이 없으니 그렇게 긴장할 것은 없네.사실 말이지,내가 자네를 그 형산 아래의 주막에서 만나서 구해주고자 했던 것은 그저 우연이었을 뿐이지 다른 의도는 없었네.] 제갈신중은 의아해졌다. 그는 상대가 편하게 나오는 것을 보고 이내 긴장감이 사라졌다. [우연이었다고?] 황의중년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이 이었다. [본래 우리는 일단 강호에 출도한 이후에 먼저 맹주의 가문에 대해서 조사해 보려고 그곳에 갔던 것이네, 헌데 자네가 돌아온다는 얘기를 듣고 주막에서 앉아있다가 갑자기 그 삼강방의 도적들을 보게 되었지.] [......] 제갈신중은 묵묵히 듣고 있었으나 상대방이 너무도 태연히 술술 대답하는 것 이 더욱 이상하게 느껴졌다. [사실은 나는 정체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했었으나,혹시 나 때문에 자네가 해를 입는 것이 아닌가하여 내가 급히 기노를 보내서 자네를 구하라고 시켰던 것이 네.그 이외에는 자네의 일행을 구했던 것도 역시 마침 이 부근을 지나던 길이 었기 때문이었고.] (......) 황의중년인의 대답은 너무도 완벽하여 진실 그대로인 것 같았다. 제갈신중은 거기에서 어떤 헛점을 찾아낼 수 없자 그만 맥이 다 빠졌다. 황의중년인은 이어 다시 그에게 확인하듯 물었다. [이제 그 의문이 풀렸는가?] 제갈신중은 금방 대답을 하려고 하였으나 이내 속으로 그 아무것도 아닌 사건 으로 인해 자신이 이렇게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니 분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차라리 그 해명은 듣지않는 것보다 못한 것 같았다. 그 동기가 그저 우연이었다는 것은 자신이 상대에게 그저 보잘 것 없는 존재 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제갈신중은 조금전에 황보숙한에게서 지독한 모멸감을 당하고 나서 술을 마신 상태가 아닌가? 그런데, 바로 그때 문득 그의 뇌리에 다시 한가지의 기이한 기억이 떠오르는 것이었 다. 그것은 바로 일전에 금노가 홧김에 그만 곡주가 여자라는 사실을 드러내었던 기억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 만족할 수가 없소.] [......] 제갈신중은 다시 말을 이었다. [솔직히 나는 당신들이 누구인지,그리고 왜 나를 주시했었는지 그것만 알면 되 는 것이오.하지만 아직 나는 당신들에 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는 입장이오.] 황의중년인은 말했다. [그것이 그대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닐텐데?] 제갈신중은 고집을 부렸다. [나에게 이익이 되든 손해가되든,어쨌든 간에 나는 알아야 하겠소,솔직히 확실 하게 알지 않고서는 당신들의 말도 믿을수가 없는 기분이오.] 기실 조금전에 황보숙한에게 그렇게 심하게 당하지 않았다면 제갈신중은 이렇 게 까지 나오지 않았었을 것이었다. 이순간 그는 거의 목숨을 도외시하고 있었다. 이제까지 그는 실로 많은 고초를 겪어왔기 때문에 갑자기 될대로 되라는 식의 기분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황의중년인은 제갈신중의 생각보다도 훨씬 더 순한 태도였다. 그는 조금도 화난 기색이 없이 즉시 이렇게 물었던 것이었다. [그래, 그대가 나에게 또 원하는 것은 무엇이지?] 제갈신중은 대답했다. [그것은 바로 당신의 진짜 얼굴을 보는 것이오.나는 사실 당신이 여자이며 얼 굴에 가면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소.] (......) 제갈신중의 그 말에 금노와 기노 등의 안색은 깜짝 놀라서 딱딱하게 굳어졌 다. 그러나, 역시 뜻밖에도 황의중년인은 선선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그거야 어렵지 않아요.어차피 나의 신분을 알고 있는 이상은 얼굴을 보여주는 것은 어렵지 않으니까요.] 일순간에 그 거칠고 탁하던 목소리가 아주 맑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변했다. 확실히 이 성수곡의 곡주라는 사람은 여자였다. 이어, 황의중년인,아니 성수곡주는 오른손을 들어서 얼굴위의 가면을 벗어들었다. 순간 그녀의 용모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제갈신중은 좀더 확실히 보기 위해 눈을 크게 떴는데,그 순간에 일순 크게 놀 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선, 그 곡주라는 여자의 나이가 그리 많지 않은 것으로 이제 겨우 스물여섯 정도 에 불과하다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두 번째로 놀란 것은 바로 그녀의 용모 그 자체였다. (.......!) 제갈신중은 그만 신음소리를 지를 뻔 했다. 그만큼 그녀의 용모는 지극히 추악한 것이었다. 마치 얼굴 자체에 심한 화상이라도 입은 듯이 일그러지고 울긋불긋한 흉측한 얼굴이었다. 제 21 장. 믿기지 않는 기연. 성수곡주는 놀라는 제갈신중을 향해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나는 어렸을 적에 심한 화상을 입었었죠. 이제 내가 구태여 얼굴을 가리고 다 니는 이유에 대해서 이해가 가나요?] 대개 여인이란 자신의 용모에 매우 민감한 법이며 그와 같은 추악한 얼굴이 결코 자랑일수는 없었다. 제갈신중은 자신의 용모에 대해서 담담하게 말할 수 있는 상대방에 대해서 우 선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는 손을 내저으며 대꾸했다. [이젠 됐으니 그만 다시 가면을 쓰시오.] 세외팔세의 하나인 성수곡의 주인이라면 무공도 무공이지만 그 신분 역시 대 단한 것이었다. 하지만, 성수곡주는 이내 두말없이 그의 말에 따라서 그 가면을 얼굴에 다시 쓰는 것이 었다. ...... 성수곡주가 다시 가면을 쓰고나자, 왠지 주위에는 다소 어색하고 서먹한 침묵이 흐르기 시작했다. 제갈신중은 이미 자신의 볼일을 마쳤지만 아무래도 이대로 그냥 자리에서 일 어서는 것은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다소 머뭇거리다가 다시 입을 열어 말했다. [저어,보아하니 당신의 나이도 나와 비슷한 것 같고......기왕에 이렇게 인연 이 닿았으니 우리 통성명이나 하고 지내는 것이 어떻겠소?] 성수곡주는 대답했다. [나는 황원원이예요.] 다시 가면을 썼지만 음성은 여전히 맑고 부드러운 여자의 음성이었다. 그 아름다운 음성을 듣고 있자니 도저히 조금전의 그 추악한 용모가 연상되지 가 않았다. 제갈신중은 다소 멋쩍게 대꾸했다. [황원원......아주 좋은 이름이구려.] [황소저,나는 제갈신중이오, 아! 그것은 이미 알고 있겠구려?] 제갈신중은 말을 마치자 자신의 뒤통수를 멋쩍게 두드렸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이곳에 계속 앉아 있을 만한 명분이 없어진 것이었다. 그런데, 순간 다행히도 성수곡주 황원원이 오히려 말을 다시 건네주는 것이었다. [제갈공자! 사실 나는 당신에게 한가지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었어요.] (......?) 제갈신중은 뜻밖의 말이었기 때문에 의아해 하며 되물었다. [하하,황소저와 같은 높은 분이 나 같은 사람에게 무슨 의문사항이 있다는 말이오?] 황원원은 대답했다. [그건 바로 당신이 보통사람들과 다르기 대문이죠.] 제갈신중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보통사람과 다르다고?하기는 내가 천하에 보기드문 멍청이 인 것은 사실이 지.우리 제갈세가도 나 하나 때문에 대단한 골치를 썩이고 있는 중이니까.] 황원원은 다시 말했다. [당신은 보기 드물게 가슴이 따뜻한 사람이예요.] 제갈신중은 의아해 하며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가슴이 따뜻하다고......? 내가 말이오?] 황원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나는 어젯밤에 당신을 보고서 이내 당신의 상황과 생각을 알게 되었 죠.그것이 바로 그 증거예요.] 제갈신중은 잠시 어젯밤의 일을 떠올리는 듯 하다가 웃으며 다시 말했다. [겨우 그일을 가지고 말을 하고 계시는군.나는 또 뭐라고......하지만 그런 상 황이면 누구나 그렇게 하게 되어있는 것이 아니오?] 황원원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람을 구한다는 것은 평범한 일이겠죠.하지만 천하에는 그와 같은 평범한 일 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예요. 당시에 당신은 충분히 혼자서 달아날 수가 있었어요.다른 사람들이었다면 최소한 우선 자신은 살린 뒤에 남을 구할 생각을 했었겠죠. 하지만 당신은 자신에게 능력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면 서도 자신의 목숨을 걸고 그들과 운명을 같이하기로 했어요.] [......] [어떻게 보면 가장 어리석은 행동을 했다고 할 수가 있었겠죠.다른 사람들은 아마도 그와 같은 어리석은 짓을 결코 하지 않으려고 할 거예요.게다가...... 당시에 일행들 가운데의 대부분이 당신을 조소하고 비난하던 사람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본래 사람은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는 것이지만,자신을 몰라주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죽을 수 있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죠.이것의 당신 의 가슴이 따뜻하다는 증거예요.] (......!) 제갈신중은 당시에 자신이 심리적으로 갈등을 일으키던 것을 상기하며 쓰게 웃음을 지었다. [하하,어쨌든 일단은 나를 좋게 보아 주었다니 고마운 일이군요.그래,나에게 물 어보고 싶다는 것이 바로 그 문제요?] 황원원은 그의 눈빛을 직시하며 말을 이었다. [처음에 나는 수곡사로에게서 당신이 특이하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어요.천하에는 그만한 나이에 남자들이 수두룩하니까요.하지만 일 단 어제의 일을 겪은 이후에는 당신의 그 심리에 대해서 알고 싶어졌어요.] 제갈신중은 내심 자신에게 이렇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아주 신기하기 짝이 없었다. [하하,그러니까 당신은 겸사겸사 나를 찾아왔던 것이로군?......하하,그 얘 기를 해주는 것이야 어렵지 않지.솔직히 나는 나 자신의 가슴이 별로 따뜻하다 고 느끼지 못하고 있지만......] [......] 제갈신중은 질문에 대한 대답을 고대하는 듯한 황원원을 향해 다시 말을 이었 다. [내 그럼 솔직하게 말하겠소. 당시에 나는 한 여자에게 마음속으로 욕심을 내 고 있었소.물론 과분한 욕심이었고 또한 나의 착각에 불과한 것이었지만 ...... 아,이미 보았는지 모르지만 조금전에 나와 다투던 바로 그 여자였소.] [......] 황원원은 그저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가면을 쓰고 있기 때문에 대체 그녀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파 악할 수가 없었다. 제갈신중은 문득 그녀의 가면 속의 눈빛이 지극히 아름답다고 느꼈다. [하하,우습지 않소?나는 일단 그 여자를 살리고 싶어지자,차마 다른사람들을 팽개칠 수가 없게 되었던 것이오.그래서 결국 그 여자에게 한 번 도둑 입맞춤 을 하고 나서 그냥 그렇게 끌어안고 있었지. 그때 당신들이 나타나서 나를 구 해주었던 것이오.] [......] 제갈신중은 웃으며 다시 입을 열어 물었다. [이제 만족했소? 혹시 내 얘기를 듣고 실망하지는 않았소?] 황원원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실망하지 않았어요.] (......?) 제갈신중은 황원원의 그 아름다운 눈빛을 바라보다가 다시 물었다. [대체 그 가슴이 따뜻하다는 것이 그렇게도 특이하고 중요한 것이오?] 황원원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가슴이 따뜻하다는 것은 아주 중요하죠.그것은 바로 다른 면모를 가르쳐주는 것이니까요. 예를 들어서 무공이 설령 대홍락의 경지에 오른다고 해도 가슴이 따뜻해지는 것은 아니예요.가슴이 따뜻하다는 것은 바로 마음에 달려있는 것 이니까요.] 제갈신중은 다시 물었다. [일반적으로 모든 사람들의 가슴은 다 그렇게 따뜻한 것이 아니오?] 황원원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만일 모든 사람의 가슴이 따뜻하다면 천하는 가장 이상적인 세상이 되어 있 을 거예요.] (......?) 제갈신중은 황원원이 말하는 이른바 가슴이 따뜻하다는 것의 의미를 잘 알수 없어서 잠시 생각하다가 문득 화제를 돌렸다. [좋소. 그건 그렇다고 치고,내가 이미 당신의 질문에 대답해 주었으니 이번에 는 내가 어디 한 번 질문해 보는 것이 어떻겠소?] 제갈신중은 문득 자신의 몸에 대해서 묻고 싶어졌던 것이었다. 황원원은 성수곡의 곡주라고 하니 자연 의리에 대해 밝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 이었다. 황원원은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세요.] 제갈신중은 빠르게 생각을 정리한 다음에 물었다. [지금 나의 몸은 보기에 어떤 것 같소?] (......) 황원원은 잠시그의 몸을 바라보다가 두 눈에 이채를 떠올리며 대답했다. [당신의 몸은 지금 매우 이상하군요.] (......?) 제갈신중은 절로 긴장이 되어 가슴을 졸이며 물었다. [내 몸 속의 그 두가지의 기운이 서로 이상한 형세를 이루고있다는 말이오?] 황원원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게 아니예요. 당신의 몸 속의 생사현관이 사라졌어요.] (뭐라고?생사현관이 사라졌다고?) 제갈신중은 느닷없이 듣는 엉뚱한 소리에 놀라서 의아해 하며 즉시 다시 물었 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이오?정말로 그럴 수도있다는 것이오?] 이른바, 생사현관이라고하는 것은 절정의 황화예의 경지에서 최절정의 백연탄의 경지 로 나아가는 최대의 관문을 말하는 것이며, 일단 그것만을 돌파하면 최절정의 고수가 될 수 있는 것이지만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관문이었다. 제갈신중은 일전에 이미 금노에게서 자신이 그 생사현과만 타통하면 몸 속의, 기운들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시킬 수가 있을 것이라는 얘기를 들은 바가 있었 다. 말하자면, 생사현관이란 쉽게 말해서 전신의 기운들을 자신의 마음과 하나가 되도록하는 것인데, 그 과정이 어려운 것은 말할 나위도 없는 것이었다. 제갈신중은 아직 제대로 절정의 경지에조차 오르지 못했기 때문에 그 생사현 관을 타통시키는 것을 아예 포기하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느닷없이 생사현관이 사라져 버리다니 그게 웬 엉뚱한 소리인가? 만일 상대가 황원원이 아니었다면 일고의 가치도 없는 얘기인 만큼 그것을 믿 지 않을 수도 없었다. 제갈신중의 그런 의혹을 뒷받침하듯 황원원 역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 역시 처음보는 괴이한 현상이예요.그래서 내가 조금전에 이상하다고 하지 않았나요?] [.....?] 황원원은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보이고 있는 제갈신중에게 다시 말했 다. [믿을 수 없다면 지금 즉시 자신의 공력을 시험해 보세요. 불과 어젯밤만, 해 도 당신의 몸에는 두가지의 기운이 서로 버티고 있었는 데,지금은 갑자기 그 두가지의 기운이 완전히 하나가 되어서 공력이 대단히 높아져있어요.] (......!) 제갈신중은 그 얘기를 듣자 비로소 자신의 몸에 어떤 변화가 있다는 것을 생 각하게 되었고 놀라운 기분이 들었다. (시험을 해보라고? 지금 나의 공력이 아주 높아져 있다고?) 기실 제갈신중은 여태 지레짐작하고 한 번도 공력을 사용하지 않았었다. 일단 그런 얘기를 듣게 되자 한 번 그 사실을 시험해 보고 싶은 충동이 일어 나는 것을 느꼈다. 게다가, 설령 일이 잘못된다고 해도 지금 그의 앞에는 일명 성수신의라는 황원원이 앉 아 있는 상황이 아닌가? [조,좋소.] 제갈신중은 일단 대답한 다음에 잠시 주저하다가 이윽고 한 번 신법을 펼쳐보 기로 작정했다. (비록 아직 부족하지만 천기신행의 신법을 펼쳐보자!) 제갈신중은 고개를 들어 높이가 이장여나 되는 천정을 바라보았다. 천정에는 지금 많은 등불들이 화려하게 밝혀져 있었다. 그는 비록 천기신행신법을 거의 연마하지 못했지만, 일단은 그것으로 천정까 지 솟구쳐 보려는 것이었다. 사실 요즈음은 한 번 그렇게 공력을 일으키는 것만 해도 모험이라고 할 수가 있는 상황이었다. 제갈신중은 이어 마른침을 삼키고 호흠을 고른 다음에 신법의 요결에 따라서 훌쩍 신형을 날렸다. (......!) 제갈신중은 일순 자신의 몸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는데,그와 동시에 갑자기 천정이 그의 머리위로 쏟아져 내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 아닌가? (......?) 그것은 어찌된 일인가? 제갈신중은 자신이 천정과 박치기를 한다고 느끼는 순간에 갑자기 자신이 박 쥐처럼 변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앗! 저,저것을 봐라.] 실내에게 누군가가 천정에 다리를 붙이고 거꾸로 서있는 그의 모습을 보고 놀 라 소리치고 있었다. 제갈신중은 바닥이 멀리 내려다 보이는 것을 느꼈다. (이게 대체 어찌된 일이지?) 그런데, 바로 다음순간에 그의 신형은 그대로 바닥을 향해 거꾸로 떨어져 버렸다. 쾅,콰당당....... 그의 머리가 그대로 탁자에 부딪치고 말았는데,그럼에도 그의 머리가 터지지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제갈신중의 머리는 하나도 아프지 않고 멀쩡했고 공연히 값비싼 탁자 하나만 부서져 버리고 말았다. 사람들은 이 느닷없는 광경을 보기 위해서 다가 들었고 또한 점원들이 급히 몰려들었다. 그러나, 이내 황원원이 탁자 등을 모두 배상하겠다고 하자 점원들이 새로 다른 탁자를 가져왔고, 사람들은 아마도 제갈신중이 곡예를 부렸던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며 물러 가 버리고말았다. ...... 이윽고, 짧은 시간에 다시 주위가 정돈되고 제갈신중이 다시 의자에 앉고나자 황원원 은 웃으며 물었다. [이제야 알겠나요?] (......!) 제갈신중은 바닥에 뒹굴다가 일서나서 정신이 없던 참이었는데 일순 그 얘기 를 듣자 절로 정신이 들었다. [아니,그럼 정말로 사실이었다는 말이오?] 제갈신중은 급히 앉은 채로 현원전단공에 의해 운기를 해보았다. 과거 같으면 그는 즉시 그 두가지의 기운을 느껴야 했으나, 이번에는 왠지 그 런 것이 느껴지지 않고 상상할 수 없는 거력이,자유로이 윰직이고 있는 것 같 았다. 그 힘은 놀랍게도 이제까지는 느껴지지 않고 있었던 것이며 순한 양보다도 더 욱 유순한 것 같았다. (이럴 수가!) 제갈신중은 놀라서 내심으로 크게 부르짖었다. 그는 이제까지 자신의 몸에 이러한 변화가 나타나게 되리라고는 전혀 생가해 보지도못했다. 그는 이제까지 겨우 삼류급의 주위를 맴돌던 건달이었다. 하루아침에 벼락부자가 되었다는 말도 있기는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달라질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의 몸 속의 기운은 일단 운기를 멈추자 조용해져서 전혀 기운이 없는 것 같 은 상태로 되돌아갔다. 제갈신중은 공연히 가슴이 뛰고 놀라서 눈을 감고 생각했다. 조금전에 그는 신법을 날렸는데 뜻밖에도 그 속도가 번개처럼 빨라서 머리로 천정을 들이받을 뻔 했었다. 그런데, 일단 위기를 의식하자 다음순간에 그의 몸은 어느새 완전히 회전하며 머리대 신 두 다리로 천정을 받치고 서 있던 것이었다. 그것은 실로 그가 천기신행법을 대성한다고 해도 할 수가 있을지 의문시 되는 놀라운 절기를 보여준것이었다. 그것이 헌데 대체 제갈신중의 능력으로 어떻게 가능하다는말인가? 게다가, 제갈신중이 빠르게 솟구치던 기세를 단번에 죽이고 허공에 거꾸로 붙어있을 수가 있었다는 자체가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물론 다음에는 크게 당황하여 거꾸로 떨어져 버리기는 했지만,그러나 또한 그 는 털끝하나 상하지 않았었다. 그렇다면 운용하는 능력까지 높은 수준에 올라있다는 말인가? 이른바, 무학의 절기라는 것은 오랫동안 부단히 몸으로 연마해야 하는 것인데, 공력을 한꺼번에 증진시키듯이 그렇게 운용능력마저 갑자기 크게 달라졌다고 하는 것은 제갈신중으로서는 쉽게 이해하기 어려웠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현실이군.) 제갈신중은 결국 그 방면에 있어서 조언을 구하기 위해 다시 눈을 뜨고 황원 원을 바로보았다. 황원원은 웃으며 그에게 다시 말했다. [알고보니 당신의 무공은 이미 대홍락의 경지에 들어선 모양이군요.정말 내가 생각하기에도 이상해요.대체 그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내,내가 대홍락의 경지에 올라있다고?) 대홍락의 경지라고 하는 것은 무림인이면 한 번 꿈꿔보는 최고의 무학경지를 말하는 것으로서, 모든 절기들을 마음으로 시전할 수가 있다고 하는 상상하기 어려운 경지였다. 제갈신중은 절로 두 눈이 휘둥그래졌다. 그는 자신이 그와 같은 경지에 이르리라고는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언젠가 한 번 그는 일류경지에 오르는 것이 소원이었던 적도 있었다. 이제 황원원의 말을 듣고 나니 그것을 믿을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황원원의 신분이 진실을 입증하기에 충분할 뿐이 아니라,조금전의 상황이 그 의 말을 뒷받침해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어젯밤에 황원원과 헤어진 이후에 벌어진 일이라고는 단 하나밖에는 없었다. 그것은 바로 마시장에서 돌아오던 길에 주화입마에 이르렀던 일이었다. (그렇군!) 제갈신중은 그제서야 알겠다는 듯이 생각하며 황원원에게 대답했다. [나는 얼마전에 마시장에 갔다오다가 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소.아마도 이것은 그의 소행이었던 모양이오.] 제갈신중이 그라고 말했던 것은 물론 그 동영의 흑의 중년인이었다. 황원원은 고개를 젓는 것이었다. [뭐라고요? 아니예요.이와같은 일은 스스로의 힘으로 되는 것이지 남의 힘으로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예요.대체 어떤 사람을 만났다는 거죠?] (......?) 제갈신중은 의아해 하며 아까의 상황을 그대로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러니까,갑자기 내몸이 좋아져 있더라는 것이오.] 황원원은 다시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역시 그가 당신을 바꿔놓은 것은 아니예요.그 역시 자신은 하지 않았 다고 했었다면서요?] (난 또 그가 겸손을 떨기 위해 일부러 그러는 줄 알았지.) 제갈신중은 물었다. [그럼 대체 누가 나를 바꿔놓았다는 말이오?] 황원원은 눈빛을 빛내면서 대답했다. [확실히는 모르지만 ,그건 아마도 당신 자신일 것이예요. 당신의 얘기를 들으 니,그 흑의중년인의 능력이 범상치 않다는 것은 알겠지만,그러나 결코 그의 소 행은 아니예요.] 제갈신중은 다시 물었다. [당신은 무슨 근거로 그렇게 단언할 수가 있소?] 황원원은 대답했다. [왜냐하면 내가 이미 알고 있는 사항이니까요.그런 것을 모르고서야 내가 어떻 게 무공을 한다고 말할 수가 있겠어요?] [......?] 황원은 다시말을 이었다. [내가 보기에는 당신을 갑자기 변화시킨 것은 바로 당신의 마음이 아닌가 하 고 생각되요.그건 내가 아직 연구하고 있는 분야인데......아마도 그것은 당신 의 유난히 따뜻한 마음과 무관하지 않을 거예요.] (따뜻한 마음이라고......?) 제갈신중은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속으로 생각했다. (맞아! 당시에 심한 고통 속에서도 갑자기 마음이 편안해 지는 때가 있었지. 그 이후부터는 갑자기 고통을 느끼지 못했었는데......혹시 그것이 내 몸을 바꿔 놓았던 것일까?따뜻한 마음이라니, 대체 알수 없는 말이군. 그리고 나서 다음 순간에 그 흑의중년인이 나타났지......하기는 지금 생각해 보면 그 흑의중년인 이 나를 도울 틈이 있었던 것은 아닌 것 같았어.) 제갈신중은 속으로 생각을 굴리다가 이윽고 다시 황원원에게 물었다. [그럼 대체 그 생사현관이라는 것이 저절로 없어질 수도 있다는 말이오?] 황원원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그래서 아까도 이상하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 생사현관이란 바로 마음 의 장애와도 같은 것인데,그것이 아예 없어진다고 하는 것은 상식으로는 도저 히 상상도 할 수가 없는 것이예요.어쨌든 생사현관이 사라졌으니 그것을 타통 할 필요도 없어진 것이죠.] (......?) 제갈신중은 그녀의 말을 들을수록 머리가 복잡해지는 것을 보고 내심으로 이 렇게 생각했다. (잘은 모르겠지만,어쨌든 나는 생사현관은 넘은 모양이다.그녀가 말한 대홍락 의 경지는 아마도 과장인 것이고,대략 최절정의 경지에는 오른 것 같으니,게다 가 몸 속의 걱정이 없어졌으니 그 얼마나 다행한 일일까?정말 잘된 일이다.) 제갈신중은 그렇게 속으로 생각을 정리하고 다시물었다. [그럼 지금의 상태는 어떤 위험은 없는 것이오?] 황원원은 눈빛을 빛내며 대답했다. [내가 보기에는 다소 특이하지만 당신의 공력은 지극히 안정되어 있어 조금도 위험이 없는 것 같아요.물론 처음 보는 것이니 확신할 수는 없지만요.] 제갈신중은 고개를 끄덕이며 벌덕 일어나 포권했다. [어쨌든 이렇게 바른 가르침을 내려주시니 고마울 따름이오.마치 당신에게 치 료를 다 받은 느낌이오.] 황원원이 마주 포권하며 웃음섞인 어조로 말을 받았다. [나는 한 것도 없이 공치사를 받는 느낌이군요.어쨌든 그렇게 되신 것을 축하 해요!] 제갈신중은 말했다. [고맙소.게다가 이렇게 되고보니 나에게 그 두가지의 명약을 주었던 두분께도 감사를 드려야 하겠군요.고맙습니다.금노! 기노!] (......?) 제갈신중이 느닷없이 고개를 들어 자신들에게 포권하며 감사하다는 말을 하자 그 두사람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보였다. 단지 그중에서 비교적 약삭빠른 금노가 이내 전음으로 이렇게 말해왔다. [그렇다면 너는 나에 대해서 곡주님께 말하지 않을 거지?] 제갈신중은 아직 전음을 사용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저 입을 열어 대꾸했 다. [나는 두분께 감사하고 있으므로 실로 두분이 원하는 대로 해드리고 싶은 마 음이 있습니다.] 금노가 그것을 보고 내심 기뻐서 앞쪽의 두명의 노인들을 가리키며 다시 입을 열었다. [여기 있는 화노와 장노는 바로 나의 첫째형님과 둘째 형님이니,자네는 어서 인사를 하도록 하게!] 금노가 그렇게 수곡사로의 나머지 두명을 소개시켜 준 것은 반가운 일이었다. 바로 키다리 노인이 화노이고,난장이노인이 장노라는 것이었다. 키다리 청의노인은 쇠붓을 들고 있고,또한 난장이 백의노인은 무엇인가 계속 하여 주물럭거리고 있으니 실로 그 이름이 타당했다. [두 분 선배님들,후배가 처음으로 뵙겠습니다!] 그 화노와 장노는 곁에 황원원이 있고하여 감히 인사를 나눌수가 없는 듯이 어정쩡하게 그저 고개만 끄덕여 보였다. 제갈신중은 이어 다시 황원원을 향해 포권하며 말했다. [오늘 만나서 이렇게 좋은 가르침을 내려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를 드리며 앞 으로도 좋은 인연으로 다시 만나기를 바라는 바이오!] 황원원은 웃는 눈빛으로 물었다. [당신은 이제 가려고 하나요?] 제갈신중은 대답했다. [이제 서로간의 용무가 끝이 났는데 여기에 더 남아 있은들 무엇하겠소?] (......) 황원원은 뭔가 할 말이 있는 듯이 주저하다가 다시 말했다. [좋아요.그럼 이미 이곳 점원들에게 시켜놨으니 돌아갈 때는 당신의 말을 찾아 가도록 하세요.] 제갈신중은 이제는 말이 필요없다고 말하려다가 굳이 그러기가 뭣해서 하는 수 없이 그냥 작별을 고했다. [고맙소!] 이미 어둠이 상당히 짙어져 있었다. 제갈신중이 계산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자 과연 점원 하나가 기다렸다는 듯이 그 황마를 끌고 다가왔다. 제갈신중은 그 황마를 끌고 객점으로 돌아가면서 내심 중얼거렸다. (이제 몸도 좋아지게 되었으니 앞으로 어떻게 한다?......모르겠다! 어쨌든 기왕에 집에서 나왔으니 계속 그들을 따라다녀 보고 나중에 다시 행로를 결정 하도록 하지......)  제 22 장. 한 마리의 촌닭. 객점으로 들어가 보니 일행은 이미 모두 쉬러 들어갔고 제갈신중은 자신의 방 이 하나 예약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제갈신중은 일단 말을 점원에게 맡기고 나서 객방에 들어가서 몸을 씻고 오랜 만에 푹 잤다. 그간 불면증에 시달려 왔던 제갈신중으로서는 그야말로 보기 드물게 단잠을 잔 것이었다. 그런데, 다음날 새벽무렵에 제갈신중은 느닷없이 침상위에서 동생인 제갈보중의 방문 을 맞이해야만 했다. [아니 네가 무슨 일이냐?] 제갈보중의 안색은 별로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평소에도 거의 자신의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 것이 그의 성품이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약간 음침해 보였다. 그는 차가운 시선으로 제갈신중을 바라보다가 불쑥 입을 열어 말했다. [형님이 어제 저녁때 한매와 서로 다투었다고 들었소.] (......!) 제갈신중은 황보숙한이 어느새 그 일을 제갈보중에게 일러바쳤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사실 그는 그녀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상대하기가 싫어서 참은 것이었다. 제갈신중은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 서로간에 약간 의견의 충돌이 있기는 했지.하지만 내가 이내 그녀에게 사 과했으니 그다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야.] (......) 제갈보중은 다소 무거운 시선으로 침상위에 앉은 제갈신중을 바라보다가 이윽 고 다시 말했다. [나는 아버님의 일에 도움이 될까해서 그녀와 사귀고 있소.지금 그녀와 나는 일단 정혼한 사이이오. 형님도 그녀를 마음에 두고있는 것이 아니오?] 제갈신중은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아니다. 그녀는 비록 아름답기는 하지만 너의 여자 친구일뿐이지. 나는 그 저 그녀가 친하게 대하기에 만났을 뿐이다.앞으로는 만나지도 않을거다.] 제갈신중은 언젠가 어렸을 적에 무공시합에서 패한 이후에는 거의 모든 것들 을 제갈보중에게 양보하는 습관이 붙어 있었다. 제갈보중은 이에 기분이 다소 풀린 듯이 차분한 시선으로 제갈신중을 바라보 다가 다시 말했다. [나는 앞으로 우리 가문이 무한히 발전되기를 바라고 있소.둘째형님도 만일 생 각이 있는 분이라면 다시는 본가의 앞날에 누가 되는 일은 하지 말았으면 하 오.] 이어, 제갈보중은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가버리고 말았다. 제갈신중은 닫힌 문을 바라보다가 내심 이렇게 중얼거렸다. (네 말에도 일리는 있다만, 너는 나를 너무나도 무시하는 구나!) * * * 제갈신중은 아침부터 동생에게 한차례의 질책을 받았지만 그러나 그렇다고 해 도 기분은 오히려 유쾌했다. 그것은 그의 몸이 달라졌기 때문일까? 왠지 세상의 모든 일들이 쉽게 이해되고 포용되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미 오랫동안 당해온 설움이었지만 오늘은 왠지 그 어이없는 질책이 가볍게 느껴진 것은 바로 그런 까닭일 것이었다. 제갈신중은 이윽고 서둘러 아침세수를 마치고 일행과 함께 반점으로 내려가 식사할 준비를 했다. 아침식사로 주문한 것은 몇가지의 요리와 술,그리고 국수 따위였다. 천하어디에 내놔도 영준하고 수려한 일행의 젊은이들은 모두 피로를 씻고 깨 끗하고 말쑥한 모습이 되어 있었다. [여어,제갈형,밤새 잘 주무셨소?] 백의 청년 팽일비가 다시 손을 들어 아는 체를 했지만 나머지는 모두 그를 본 척만척 했다. 제갈신중은 황보숙한과도 대화를 나누기가 뭣해서 그저 하는 수 없이 팽일비 등과 합석하게 되었다. 저번과는 달리 오늘은 공연히 함께 어울리기가 어색한 느낌이 들어서 제갈신 중은 반기는 팽일비의 건성이 반가왔다. [그래 팽형도 잘 주무셨소?] 제갈신중이 웃는 얼굴로 그렇게 대꾸하자 팽일비는 다소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의 얼굴을 다시 보았다. 마치 상대방의 진의를 읽고자 하는 태도인 것 같았다. [제갈형은 오늘 기분이 아주 좋아보이는 구려? 그래,어제 저녁에는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었소?] 제갈신중은 혹시 사람들이 그와 황보숙한의 일을 의심할까봐 즉시 생각해 보 면서 대답했다. [사실은 어제 저녁이 아니라, 바로 어제 오후에 좋은 일이 있었지요.] (......?) 팽일비는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때 점원들이 식사를 날라왔으므로 일행은 모두 조용히 먹고 마시기 시작했 다. 기실 제갈신중은 자신이 있기 때문에 일행중에 대화가 없어졌다는 것을 잘 알 고 있었다. 그들은 대개 그가 없는 곳에서 대화를 나누며 지금은 고작 전음을 교환하는 정도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들의 입술이 가볍게 움직이고 있는 것은 바로 그런 표시였다. 제갈신중과 팽일비가 앉아 있는 자리에는 또 팽일비의 형인 팽일악과 황의소 녀 당설정이 함께 있었다. 팽일악은 동생인 팽일비보다 더욱 강인한 인상으로 묵묵히 음식을 먹고 있었 으며 당설정은 아주 냉정해 보였다. 제갈신중은 이미 황보숙한에게 채였기 때문에 자연히 맞은편의 자리에 앉은 당설정의 미모에 관심이 쏠리게 되었다. 당설정은 그 싸늘한 기질을 제외한다면 그야말로 인형처럼 아름다운 여자라고 할 수가 있었다. 약간 그을린 듯한 피부는 남궁녹악 등의 흰 피부와 대조를 이루며 뚜렷한 건 강미를 느끼게 해주었다. 한마디로 눈에 확 들어올 만큼 강한 기질을 발산하고 있는 그런 미인이었다. 그런데, 문득 팽일비가 식사를 하다가 말고 다시 질문을 던져왔다. [참,어제 오후에 제갈형은 말을 사러 가셨다고 하던데, 가신 일은 잘 되었소?] 제갈신중은 그에게 자세히 말해주고 싶지 않아서 그저 간단하게 대답해 주었 다. [다행히 말 한필을 구입하였소.하지만 어제 저녁에는 나의 말을 도로 찾았다오. 그래서 말인데 ,실은 여러분들 가운데 말이 필요하신 분은 나에게 말씀하시 오.내가 말 한필을 드리도록 하겠소.] ...... 좌중은 여전히 조용했다. 누구도 말을 달라고 말하기는커녕 한번 이쪽으로 돌아보는 사람도 없는 것 같았다. 제갈신중이 황보숙한에게 망신당한 일이 은연중에 퍼졌기 때문일 것이다. 팽일비가 문득 다시 말했다. [제갈형의 말이 그럼 저 혼자서 주인을 찾아왔다는 말이오?] 제갈신중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지는 않소.] 팽일비는 그를 쳐다보며 다시 물었다. [그럼 누군가가 제갈형을 위해 수고해 주신 모양이로군요?] (......) 제갈신중은 이미 내심으로 이제는 어느 정도의 사실을 밝히는 것은 불가피하다 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약간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그렇소.] 팽일비는 계속 그를 주시하면 다시 물었다. [그럼 그 사람은 제갈형의 친구이겠구려?] 제갈신중은 이미 이들이 극도로 예민해져서 의심이 많아졌다는 것을 알고 있 었다. [그렇소.나의 친구요. 하지만 그 사람은 여러분의 친구이기도 하오.바로 여러분 의 목숨을 구해주었으니......] 순간 좌중의 시선이 제갈신중에게 집중되었다. 특히 그 가운데에서 제갈보중 등의 시선이 더욱 따갑게 느껴졌다. ......! 제갈신중은 좌중의 분위기가 다소 긴장된 것을 보고 즉시 뭐라고 말을 이으려 고 했다. 그런데, 앞자리에 앉은 당설정이 불쑥 차가운 시선을 하고서 질문해 오는 것이었다. [당신의 그 말씀은 무슨 뜻이죠?] 제갈신중은 그녀가 갑자기 질문하는 바람에 약간 당황하기는 했으나 기실 이 미 대답할 내용을 생각해 두고 있었다. [나의 그 친구는 이미 나에게 말해 주었소.자신들이 바로 그저께 밤에 우리 일 행을 도적의 무리로부터 구했으며, 게다가 소요산의 독까지 풀어주었다고.] 이미 좌중의 일행은 어젯밤에 많은 토의를 거듭했으나 그저께 밤의 사건에 대 해서 결론을 내리지못한 상태였다. 그러다가 제갈신중의 그와 같은 얘기를 듣자 즉시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소요산? 정말로 당신의 그 친구가 소요산이라고 했었나요?] 당설정은 역시 사천당문의 여식답게 독에 민감한 반응을 나타내며 즉각 질문 해왔다. 제갈신중은 예상외로 그들이 흥분하고 긴장하는 것을 보고 다소 놀랐으나 이 내 대꾸했다. [그렇소.] 그러자, 일순 좌중의 몇몇사람들이 크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특히 그 가운데에서 당백승이 가장 놀라고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렇다!바로 그런 것이었기에 내가 중독되는 것을 알 수가 없었던 것이로군. 게다가 우리가 다시 해독된 것도 분명해.단지 그 방법에 대해서는 알수가 없지 만......] 제갈신중은 내심으로 웃으며 중얼거렸다. (흥,성수곡의 해독비방에 대해서 네가 알수 없을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 때 당백승이 흥분한 어조로 다시 말했다. [하지만 이건, 대단히 심각한 일이다!] 팽일비가 기다렸다는 듯이 그쪽을 향해 물었다. [당형! 무슨 일인데 그러시오?] 당백승은 이쪽을 돌아보며 대꾸했다. [그 소요산이란, 다름아닌 과거 일월신교에서 사용하던 일종의 독약이오. 과거 일월신교가 사라지면서 그것도 없어졌다고 했었는데,그것이 다시 생겨났다니 정말로 놀라운 일이군.] 겉으로는 대단히 심각한 표정이지만 당백승은 왠지 다소 기세등등한 표정이었 다. 그것은 기실 독의 명가의 자손으로 독에 중독된 것을 몰랐다가 이제야 독의 이름을 알아냈기 때문일 것이다. 자연 좌중의 시선은 다시 제갈신중에게 모이게 되었다. 제갈보중이 비로소 다소 심각한 기색으로 입을 열어 물었다. [그가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제갈신중은 대답했다. [사실이다.] 제갈보중은 다시 물었다, [그럼 그는 누구입니까?] 제갈신중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나도 잘 모른다.] 잘 모른다는 것은 거짓말이 아니라 제갈신중의 진짜 심정이었다. 그는 아직도 그 황원원이라는 여자에 대해서 신비롭게 생각하고 있었다. 제갈보중은 눈살을 크게 찌푸렸다. [친구라면서 모른 다니 그게 말이나 됩니까?] 제갈신중은 덤덤하게 대꾸했다. [나는 저기 선인루에서 황보낭자와 헤어진 이후에 비로소 처음으로 그와 대화 를 나누었을 뿐이다.거기에서 나는 그가 우리를 구해주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 문에 그를 친구로 여긴것이다.게다가 그는 자신이 드러나는 것을 원하지 않았 다.] 제갈보중은 눈살을 찌푸린 채 생각하다가 다시 물었다. [그는 형님에게 무슨 말을 했습니까?] 제갈신중은 서슴없이 대꾸했다. [그는 당시 우리가 일월신교의 도당들에게 사로잡힌 것을 구해주고 자신의 해 독비방을 사용하여 소요산의 독약을 해독시킨다음에 그 산위에 두었다고 했다. 그뒤는 우리가 보고 느낀대로이다.] 제갈보중은 이내 못마땅한지 눈살을 찌푸리며 다시 물었다. [그럼 어째서 그 얘기를 진작에 해주지 않았습니까?] 제갈신중은 대꾸했다. [나는 어제 저녁에는 너희들이 나와 대화하는 것을 싫어한다고 생각했었기 때 문에 오늘 아침으로 미룬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내가 말하고 있지 않느냐?] [......] 제갈보중은 잠시 말문이 막히는 지 입을 다물고 말았다. 팽일비가 다시 제갈신중에게 물었다. [제갈형, 혹시 그 친구분을 우리와 만나게 해줄 수가 없겠소?] 제갈신중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글쎄요......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에,나중에 나도 한 번 만날 수 있도록 주선해 보겠소.] ...... 좌중의 사람들은 갑자기 밥을 먹다말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팽일비는 당백승에게 다시 물었다. [당형! 제갈형의 이 얘기는 어느 정도의 신빙성이 있는 것이오?] 당백승은 다소 무거운 기색으로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신빙성이 있고도 남음이 있소.우선 그 소요산에 대해서 알고 있다는 것만 해도 평범하지 않은 일인데, 게다가 저 제갈형의 말까지 찾아다 준 것이 아니오?] 황보잠허가 옆에서 듣고 있다가 한마디를 했다. [그렇다면 이제 그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그 일월신교의 무리에 대해서 잘 알 수가 있겠군.그가 적인지 아닌지도......] 일순간 좌중의 젊은이들의 표정은 다소 참담하게 일그러져 보였다. 처음에는 기세좋게 출발했던 그들이 불과 하루도 못되어서 일월신교의 무리들 에게 당하고 또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았다니 참담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명문세가의 명예와 패기에 빛나던 그들의 어깨는 이순간 흡사 비맞은 참새처 럼 늘어져 보이는 것이었다. 제갈보중이 침묵을 지키고 있다가 다시 제갈신중에게 소리쳐 물었다. [형님은 이제 어디로 가실 것입니까?] 제갈신중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대답했다. [나는 여러사람들과 그다지 어울리지 않고 게다가 폐를 끼치기만 하고 있으니, 이제 곧 다른 곳으로 떠날 생각이다.] 헌데 제갈보중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렇게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형님께선 아직 강호행이 서투르시니 계속 우리를 따라다니면서 보호를 받도록 하십시오. 폐가 될 것은 없습니다.] 그것은 즉, 제갈신중에게 그 성수곡주가 찾아올때까지는 떠날 생각을 말라고 은근히 엄포를 주고 있는 것이었다. 제갈신중은 내심으로 쓴물이 올라왔지만 그러나 아직 달리 갈 곳도 마땅하지 않고 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고맙구나!] 제갈신중의 대답이 떨어지자 비로소 사람들은 다시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당설정이 문득 고개를 들고 다시 질문해왔다. [그 친구라는 분은 남자인가요, 아니면 여자이던가요? 그리고 나이는 어느정도 이고 일행은 몇이나 되나요?] 제갈신중은 그렇지 않아도 은근히 그녀에게 관심이 가던 차에 순순히 대답해 주었다. [그 사람은 황의중년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소.목소리는 거칠고 또한 얼굴은 무 표정한 편이었소.무공은 상당히 높은 것 같았는데 모두 네명의 노인을 데리고 다니고 있었소.] 사람들은 제갈신중이 그렇게 상세하게 말해주자 다시 어리둥절한 표정들이 되 었다. (......?) 당백승이 문득 남궁검민에게 물었다. [남궁형은 혹시 무림에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으시오?] 남궁검민은 이제까지 한마디의 말도 하지 않다가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 들어본 적이 없소.내가 생각하기에는 혹시 강호의 풍진이인들이 아닐까 하오.] 당백승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군요.] 보아하니 이제 그들은 제갈신중의 말을 거의 믿는 모양이었다. 당설정이 다시 제갈신중에게 물었다. [그 외에 친구분이 하신 얘기는 없나요?] 제갈신중은 그녀의 시선을 마주 대하면서 대답했다. [있소.그는 그 이외에 나를 보고서 이미 몸의 고질병이 제거되어 앞으로는 무 공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소.] (......?) 당설정은 저도 모르게 제갈신중의 몸을 한 번 살피며 다시 물었다. [그래요? 그럼 그 친구분은 상당히 의도에도 밝은 분이신 모양이군요?] 제갈신중은 내심으로 웃으며 대꾸했다. [물론이오. 그는 이미 스스로 소요산의 어려운 해독비방마저 금방 알수가 있다 고 했었으니 당연히 의도에 밝을 것이오.] 당설정은 다시 물었다. [당신은 그럼 그 무공을 이미 시험해 보았나요?] 제갈신중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오.나는 당시 거의 삼장이나 위로 솟구칠수가 있었소.] 당설정은 그 얘기를 듣자 이내 입가에 차가운 조소부터 머금었다. 대개 삼장정도 곧바로 솟구치려면 거의 일류고수의 능력이 있어야만 하기 때 문이었다. 당설정은 문득 조소하듯 차갑게 웃으며 이렇게 다시 물었다. [이봐요 제갈공자.당신은 혹시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요?] (......?) 제갈신중은 그녀가 갑자기 그렇게 물어오자 절로 얼떨떨해서 고개를 가로저었 다. [아, 아니오, 그건 아니오.] 당설정은 차갑게 비웃으며 다시 말했다. [그렇다면 어째서 당신은 내 앞에서 쓸데없이 그렇게 허풍을 떨며 잘 보이려 고 하는 거죠?] 순간 긴장되었던 좌중의 사람들이 저마다 킥킥거리며 조소하기 시작했다. [하하하......] [흐흐......] [호호호!......] 제갈신중은 그저 얼굴이 벌개진 채로 멍하니 앉아 있는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좌중의 비웃는 소리가 사라지고 나가 당설정이 이번에는 기이한 표정 으로 다시 말했다. [미리 말해두겠는데, 당신이 만약 나를 좋아한다면 한가지 명심해야 할 일이 있어요.] 제갈신중은 물었다. [그게 무엇이오?] 당설정은 자신의 옆에 앉아잇는 팽일악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그것은 일단은 당신이 그의 오호단문도의 칼날을 주의해야 한다는 거예요.왜 냐하면 그와 나는 지금 가까운 사이이니까요.] (......!) 여기저기에서 다시 비웃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고 있었다. 제갈신중은 당설정의 그말에 그야말로 깜짝 놀라서 안색이 변하고 말았다. 비록 그가 팽일악이 두려운 것은 아니었지만 그와 같은 말을 간단하게 내뱉을 수 있는 당설정의 독심에 질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순간 팽일악은 바로 옆의 일을 조금도 모르는 듯이 그저 조용히 음식만 들고 있었다. 하지만 어딘가 그에게서는 살벌한 기세가 흘러나왔다. 이 명문의 제자들도 일단 자신들의 체면이 유지된 다음에야 협의와 법도를 따 지는 것이지,일단 자신들의 중대한 사안이 걸리면 여지없이 사나운 맹수들로 변하고 마는 습성인 것이다. 제갈신중은 즉시 당설정을 향해 포권하며 말했다. [나는 앞으로도 결코 그대에게 관심을 갖지 않겠소.그러니 걱정하지 마시오.] 당설정은 아무런 대꾸도 없이 계속 고개를 숙이고 음식만을 먹었고 대신 팽일 비가 웃으며 말했다. [제갈형,당신은 말도 잘하는 구려.하지만 남자로서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은 체 면문제가 아니오?일단 마음을 먹었으면 끝까지 밀어붙여야지.] 제갈신중은 얼굴이 몹시 화끈거렸으나 이내 고개를 저으며 대꾸했다. [그런 말씀 마시오.나는 이미 그런 욕은 수도없이 들어왔던 몸이니 아무래도 상관없소.] 팽일비는 순간 박장대소를 했다. [핫핫핫!제갈형은 정말 재미있으신 분이구려!] 제갈신중은 서둘러서 음식을 먹었다. 길 떠나기 위해 한 마리의 말을 준비하고 또 한 필의 말은 처리해야 하기 때 문이다. 제갈신중은 그야말로 바늘방석 위에 올라앉아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 * * 제갈신중은 객점에 흑마를 헐값에 넘기고 나서 황마를 타고 일행에게 돌아가 기까지 다소 서둘렀다. 객점의 지배인이 말값을 흥정하는 바람에 다소 시간이 늦어졌으나 역시 일행 은 여전히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제갈신중은 그대로 신법을 펼칠수도 있었으나 역시 저번처럼 황마의 위에 올 라서 일행의 뒤를 따랐다. 일행은 이번에는 서두르지 않고 북동쪽으로 나아갔는데, 물론 그렇게 서두르지 않는 이유는 제갈신중이 말한 그 친구를 찾아내기위해 서였다. 그들은 지금 제갈신중의 말을 믿을 수도 없고 믿지 않을 수도 없는 듯한 반신 반의하는 심정인 것이었다. 지금 일행이 향하고 있는 쪽에 제법 커다란 성시인 남양성이 위치하고 있었 다. 일행은 바로 그 곳에서 다시 하루를 묵어갈 작정을 하고 있었다. 일단 그 남양성에 도달하고 나면 복우산의 영웅맹과는 하루거리이므로 일행의 심정은 다소 느긋해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기분이 느긋해져 가던 일해이 미처 정오를 맞이하기도 전에 다시 커다 란 사태와 부딪치게 될 줄은 미처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 * * 일행이 백우라는 작은 마을의 근처를 지나고있을 무렵의 일이었다. 갑자기 주위가 소란스러워지는 듯 하더니 찢어지는 듯한 비명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으으......아,아아악!] 일행은 느긋하게 신법을 펼치던 중이었으므로 그 소리를 듣자 이내 저마다 신 형을 멈추었다. [아니,이게 무슨 소리지?] 지금 일행이 멈춰선 곳은 마을과도 다소 떨어진 들판의 지름길이었다. 일행의 중심격인 남궁검민이 그렇게 의아해 하며 묻자,당백승이 말을 받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쎄......?이거 흔히 듣는 소리는 아닌데?] 무림세가의 자제들로서 강호에서 살아가노라면 자연 사람들이 죽고 죽이는 참 상들은 흔히 대하게 된다. 하지만, 왠지 지금 들려오고 있는 소리들은 마치 아비규환속에서 들려오기라도 한 듯 가증스러울 뿐만 아니라, 처절무비한 것이었다. 게다가, 지금 그 참혹한 비명소리들은 끊임없이 들려오기 시작하고 있었다. 듣자니 마치 수십명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참혹한 변을 당하고 있는 듯한 소리 들이었다. 팽일비가 웃으며 말했다. [하하,이거 아무래도 누군가가 지금 장난을 치고 있는 모양이로군. 얼마전까지 만 해도 강호는 평화로왔는데,설마하니 그런 일들이 일어날 리야 있겠어?] 제갈금의가 잠자코 있다가 나서서 남궁검민에게 말했다. [하지만,그래도 만일을 알 수가 없으니,우리 한 번 소리나는 데로 가보도록 해 요!] 남궁검민은 제갈금의의 시선을 받자 은근히 눈빛이 부드러워지며 고개를 끄덕 였다. [맞아!본래 우리들이 강호에 출도하는 이유는 바로 이 협의라는 두 글자에있 는 것이니,설령 가짜라고 하더라도 일단은 가보는 것이 도리이지.제갈형!그대 의 생각은 어떤가?] 이 남궁검민은 일행중에서도 키가 가장 크고 후리후리한 체격을 가지고 있는 미남자였다. 제갈신중은 옆에서 말을 타고 바라보고 있다가,제갈금의와 남궁검민이 서로 눈빛을 마주치는 것을 보고 내심으로 중얼거렸다. (흥,너희들은 서로 눈이 맞아서 이미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되었군.빌어먹을,나 혼자서만 이렇게 외톨이가 되어 수고를 해줘야 하다니,정말로 웃기는 일이군. 그냥 달아나 버릴까?) 제갈보중은 특유의 시원스럽게 생긴 눈매로 잠시 숙고하는 듯 하더니 이윽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남궁형! 그대의 생각이 옳소.] 당백승이 다시 말했다. [하지만,만일 저쪽의 상황이 지금 사실이라면 일단은 우리도 간단히 마음의 준 비를 해야하는 것이 아니오?] 남궁김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보아하니 사실 저쪽의 상황이 진짜라면 아마도 한 문파와 한 문파가 서로 맹렬한 격돌을 벌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소.제갈형의 생각은 어떠시오?] 기실 이 일행은 이미 초반에 강호의 쓴맛을 톡톡히 본 바가 있었다. 그들은 이제는 식사를 하거나 심지어 잠자리에 들 때에도 세심한 주의를 아끼 지 않고 있는 현실이었다. 그런 그들이 이번에 보다 신중하게 대처하려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고 할 수가 있었다. 제 23 장. 공포의 산장. 제갈보중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하지만 보아하니 지금 저쪽의 형세는 양쪽이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라,한쪽이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는 것 같소.] 황보잠허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를 표시했다. [내 생각도 바로 그렇소.그러니 우리는 지금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제갈신중은 옆에서 듣고 있다가 내심으로 답답해져서 입을 열었다. [지금 당장 달려가서 억울한 사람들을 구해야지,뭘 어떻게 한다는 말이오? 이 렇게 말만 하고 있다가는 그 사람들이 모두 죽어버리지 않겠소?] ......! 일행은 제갈신중이 느닷없이 그처럼 나서서 말하는 것을 보고 모두 놀라서 안 색이 대변했다. 제갈금의가 크게 어의없어 하며 두 눈에 쌍심지를 돋우고 소리쳤다. [아니 둘째오빠가 대체 뭘 안다고 그런 말을 하는 거예요?지금 우리가 그런 것을 몰라서 가만히 있는 줄 알아요?] 제갈신중은 제갈금의가 뜻밖에도 그렇게 무섭게 소리치는 것을 보고 놀라서 그만 얼버무렸다. [그,그럼 지금 누가 음모라도 꾸미고 있다는 말이냐?] 제갈금의는 냉랭한 시선으로 차갑게 대꾸했다. [오라버니처럼 무위도식하며 빈둥거리는 분이 어떻게 강호의 험난한 사정을 알 수가 있겠어요?지금 이 분들이 오빠께 잘 대하고 있는 것이 그런 오빠가 훌륭하기 때문인 줄로 알고 있나요?] 제갈신중은 자신의 여동생인 제갈금의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노골적인 말을 하는 것을 처음으로 들었다. 늘상 그러리라고 짐작하고 있기는 했지만 막상 정말로 그런 얘기를 듣고 보니 마음이 참담해지는 것이었다. (내가 무위도식하며 빈둥거린다고? 이들이 지금 나를 형식적으로나마 대우해주 고 있는 것이 다 너희들 때문이라고? 아하,이거 정말 비참하군!) 제갈신중은 내심 안색이 변해서 중얼거렸다. 그는 실로 과거에 그와 비슷한 수모들을 무수히 겪은 사람이었다. 당시에는 그러한 것들이 쌓여서 가슴속에 울화병이 생길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왠지 속으로는 비참하다고 외치면서도 겉으로는 그다지 참담하게 느껴 지지 않았다. 그것은 자신의 몸 속의 문제가 이미 해결되어 스스로 비참하지 않다고 생각하 고 있기 때문일까? 제갈신중은 하지만 여러사람들 앞이라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서 어쩔 줄을 모르고 대꾸했다. [아,알겠다.내가 잠시 분에 넘치는 얘기를 한것이지.내 이제부터는 입을 다물고 있으마.] 제갈금의가 표독스러운 시선을 한 번 더 던지고 입을 다물자,그것을 본 남궁 검민이 일행을 향해 말했다. [자,그럼 우리 우선은 저 소리나는 쪽으로 가 보도록 합시다!] * * * 일행이 달려간 그 곳은 바로 옆에 작은 호수를 끼고 있는 산장으로서 제법 풍 취가 있는 곳이었다. 보아하니, 아마도 누군가의 말년을 편안하게 보내기 위해 꾸며놓은 별장인 모양이었다. 그다지 화려하지는 않지만 곳곳에 우아한 분위기가 넘치고 소박한 묵향이 느껴 지는 것이, 대략 어떤 학식있는 노선비의 거처 정도로 여겨졌다. 하지만, 지금 그 우아한 풍취를 자아내던 곳은 그야말로 천하에 다시 없는 살벌하고 잔혹한 곳으로 변모해 있었다. ......! 일행이 그 산장의 정문에 도착했을 때에는 우선 보이는 것은 대여섯구의 참혹 한 시신들과 짙은 피비린내였다. [아이쿠,이거 진짜 무슨일이 벌어지고 있었군!] 팽일비가 먼저 놀랍다는 듯이 그렇게 소리쳤다. 하지만, 그 사방으로 흩어져 있는 대여섯구의 시선들을 바라본 일행의 안색은 갑자기 차갑게 굳어지고 말았다. 그 시신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하복들의 복장을 하고있는 사나이들의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 시선들의 형상은 참혹히기 이를데가 없어서 도무지 그 얼굴의 윤곽이 나 체형을 구분할 수가 없었다. 일반적으로 제아무리 살인에 능한 자들이라고 해도 그게 목을 베거나 상대의 급소를 찌르게 되면 병기를 거두는 것이 상례였다. 격렬한 격투간에 더러 무수한 상처들이 생겨나곤 하지만 그러나 일단 상대가 죽게 되면 손을 멈추는 것이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게도 지금 이 대여섯구의 시신들은 전신에 수십군데나 치명적인 상처가 있었으며, 마치 인육의 덩어리들 같았다. 황보잠허가 다소 긴장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말문을 열었다. [정말로 잔인한 솜씨로군.대체 어떤 놈들일까?] 이미 어느 정도의 시간이 경과되었기 때문인지 그 요란하던 비명소리 등이 사 라져 버린 뒤였다. 짙은 비린내 속에서 이 산장은 대낮인데도 불구하고 매우 음산하게 느껴졌다. 일행이 극히 긴장된 시선으로 주위를 둘러보는 가운데 당백승이 시신들을 조 심스럽게 살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저쪽에 있는 시신은 머리를 박살낸 상태에서 다시 몸뚱이를 두동강으로 만들 었고,그리고 이쪽의 시신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야말로 수십군데나 관통시켜 놓았군.대체 이것은 어떤 류파의 무공인데 이렇게 잔인할 까?] 팽일비가 약간 놀라며 물었다. [글머 이 시신들의 몸에 나있는 상처들은 일초의 무공에 의해 그렇게 된 것이 라는 말이오?] 당백승은 당연하다는 듯이 대꾸했다. [그럼 대체 어떤 사람이 이들의 머리를 반쯤 갈라놓고서 다시 가슴에 수도없 이 난도질을 하겠나?] 팽일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만일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는 살인에 미친 살인마이겠지.] ...... 남궁검민이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제갈보중에게 물었다. [제갈형이 보기에는 어떤 류파의 무공인 것 같소?] 제갈보중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내가 보기에 이 흔적들은 도무지 괴이하고 변화무쌍하여 쉽게 그 류파를 가 려낼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제갈보중이 말을 하다가 말고 도중에서 여운을 남기자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 게 다시 집중되었다. [......?] 제갈보중은 그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다시 말을 이었다. [일전에 들은 바로는, 삼대마세의 무공이 괴이막측하다고 하던데......그 본류 는 아닐지라도 거기에서 갈려져 나온 무공이라면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소.] 팽일비는 놀라서 떠들었다. [아니,그렇다면 바로 여기에 그 마인들이 나타났다는 말이오?] [......] 제갈보중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것은 반쯤은 시인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어서 일행은 안색이 더욱 변했다. 제갈신중은 옆에서 보고있다가 내심 참기 어려워서 다시 한마디를 했다. [그 마인들이야 우리가 이미 그 용왕집에서 만났었으니 여기에 또 나타났다고 해도 별로 이상할 것은 없지 않겠소?우리는 일단 상대를 알고 정신만 차리면 전번처럼 다시 당하는 일은 없을 것이오.하지만 나의 생각한 바로는 ......그러 니까 음......] 제갈신중은 뭐라고 나직하게 말을 뱉어내면서도 일해의 표정들이 워낙에 무겁 게 긴장되어 있어서 그만 나중에는 말끝을 흐리고 말았다. 그것을 보고 팽일비가 그에게 시선을 돌려 물었다. [제갈형의 생각은 어떻다는 말이오?] 제갈신중은 어색하게 웃으며 손가락으로 시신들을 가리키면서 다시 말을 이었 다. [그러니까,내 생각은 말이오,자기에 있는 시신들이 무슨 고차원의 마공에 의해 죽은 것이 아니라 그게 무공을 모르는 자에 의해서 마구 난자당한 것 같다는 말이오.그러니 그렇게 미리부터 상대에게 겁을 집어먹을 필요는 없을 것 같 소.] 순간, 듣다가 참지 못한 황보숙한이 그만 쌍심지를 돋우고 화를 벌컥내면서 제갈신 중을 향해서 쏘아붙였다. [당신이 대체 무공에 대해서 알기나 하고서 그러나요? 모르면 그저 잠자코나 계세요!] 그러자, 제갈금의도 그에 동조하듯 화난 음성으로 소리쳤다. [그렇지 않아도 정신이 없는데 오빠는 모르면 잠자코나 있어요.무공을 모르는 사람이 이런짓들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하긴 그렇다만,왠지 내가 보기에는 이것 무공에 의해 당한 것이 아닌 것 같 은데?) 하지만, 제갈신중은 얼굴이 벌겋게 되어서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헌데 바로 그때의 일이었다. 갑자기 산장의 안쪽에서 찢어지는 듯한 여인의 비명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으,으아악! 사,살려주세요! 사,사람살려요!......] 이제까지 고개만 젓고 있던 일행은 그와 같은 비명소리를 듣게 되자 저마다 안색이 새롭게 굳어졌다. 조금전에 들린 그 여인의 비명소리에는 실로 상상하기 어려운 처절한 감정이 내포되어 있는 듯 했기 때문이었다. 남궁검민이 장검을 뽑아들고 소리쳤다. [아직 일이 벌어지고 있는 모양이니 어서 가보도록 합시다!] * * * 남궁검민의 지휘로 일행은 잔뜩 긴장된 상태로 안쪽을 향해 내달렸는데, 제갈신중은 말을 몰아야 했기 때문에 자연히 그들보다 약간 늦어지게되었다. (과연 무림오대세가가 명문세가라고 불리우는 데는 이유가 있군!) 비록 적에 대한 상당한 두려움이 있다고는 해도 일단은 그것을 무릅쓰고서 패 기있게 달려가는 일행을 보고서, 제갈신중은 그들이 역시 강호의 명문정파의 사람들이라는 것을 생각한 것이었 다. 설령 그들이 사리분별을 바르게 하지는 않아도 그렇게 협의심에 몸을 맡길수 가 있다는 것은 매우 훌륭한 점이었다. 일행이 안으로 달려들어 갈수록 점차로 우려했던 바는 현실로 드러나고 있었 다. 실로 일행이 정문에서 보았던 참사는 고작 시작에 불과한 것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무참하게 찢어지고 난자된 시신들이 피비린내속에서 수십 구나 뒹굴고 있었다. 거기에는 젊은 사내들의 시신뿐만 아니라 노약자나 아녀자들의 시신들도 역시 섞여서 뒹굴고 있었다. 일행은 안으로 들어가면서그러한 광경들을 보자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 같아서 안색들이 새파랗게 질렸다. 지금 이 주위는 말하자면 어떤 지옥의 살인마가 한차례 휩쓸고 지나간 것 같 았다. (정말로 끔찍하군!) 그것은 일행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우아한 분위기를 자아내던 이 산장이 음산하게 느껴지던 것이 그 이유를 알만 했다. 조금 전의 그 찢어지는 듯한 여인의 비명소리는 이미 멎어 있었다. 질식할 듯한 무거운 적막감이 내리 누르고있는 이 외딴 산장은 어느새 죽음의 장원이 되어 버린 것 같았다. ...... 일행은 건물의 사이사이로 빠르게 내달려서 대청앞에 이르렀고,이내 그것에도 인기척이 없자 곧장 후원으로 내달렸다. 그리고, 바로 거기에서 그렇게도 궁금하던 잔인한 흉수들의 얼굴을 목격할 수가 있었 다. (......!) 그처럼 처절하던 비명소리도 사라지고 해서 일행은 이미 상황이 거의 끝나버 렸다는 것을 알수가 있었다. 먼저 일행의 눈앞에 드러난 것은 역시 사방에 어지럽게 널려져 있는 그 참혹하 게 난자되어 있는 사람들의 시신이었다. 특별한 것은 지금 그 시신들의 속에는 바깥보다는 여자들의 시신이 많다는 것이 었다. 그리고, 후원마당의 한쪽 구석, 거기에는 미약한 신음소리와 함께 아직 끝나지 않은 상황이 간헐적으로 되풀이 되고 있었다. [으......으윽,으윽......] 누워있는 사람은 색깔이 고운 옥색의 비단옷을 걸친 여자로서 소녀인 듯 했는 데, 그녀를 깔고 엎드려 있는 사람은 전신이 마치 피로 목욕한 듯한 시뻘건 한명 의 장한이었다. 장한의 어깨에는 낫과 비슷하게 생긴 시벌건 병장기가 매달려 있었는데, 그것은 그가 격렬하게 전신을 움직일 때마다 핏방울을 뿌리면서 허공에 섬뜩 한 피무지개를 자아냈다. 이와 같이 참혹한 도살의 현장에서 정사라니! 일행은 순간 분노와 함께 전신으로 파고드는 오싹하는 공포감을 느꼈다. 아직은 날씨가 그리 춥지 않은 대낮인데도 이 부근은 마치 살얼음이 내린 것 같았다. 일행이 보고있는 가운데에서도 그 신음소리와 정사는 계속되고 있었으며 누구 라도 그 상황을 짐작할 수 있게 했다. [이 죽일 놈!] 보다못한 남궁검민이 한소리 크게 부르짖으며 공력을 돋구어서 그쪽으로 몸을 날렸다. 그는 이른바 명문정파의 사람이었다. 비록 격분하여 공격하기는 하지만 미리 그렇게 소리침으로써 상대에게 일단 자신의 공격을 알린 것이었다. [조심해요!] 급히 외치는 제갈금의의 걱정스런 음성을 뒤로 하고 남궁검민은 그렇게 무려 십장이나 가로질렀다. 그는 무림육영의 두 번째이며 당금의 후기지수로서 손색이 없는 사람인 것이 다. 그의 별호는 창궁일검이었는데 그것은 그가 가전의 창궁십이검법을 잘 쓰기때 문에 붙여진 것이었다. 푸른 장삼을 걸친 그 후리후리한 체구가 미끄러지듯이 십여장을 날아가자 이 순 그 시뻘건 괴인의전신이 크게 부각되는 것 같았다. 제갈금의 등은 금방이라고 그 피투성이 괴인이 벌떡 일어나서 그 악마같은 이 빨로 남궁검민을 삼켜버릴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갑자기 남궁검민의 푸른 장삼이 넓게 펼쳐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바로 남궁검민이 이미 시작부터 창궁거법을 시전하여 거기에서 발출되 어 나온 푸른 검망들이, 마치 푸른 옷깃과도 같은 그물망을 형성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그와 같은 검망으로 그물처럼 만드는 수법은 절정고수만이 할 수 있는 것으로 서,만일 평상시였다면 일행을 그것을 보고 박수갈채를 아끼지 않았겠으나 지 금은 결코 그렇지 않았다. 남궁검민이 펼치는 검망의 그물이 제아무리 삼엄해도 순간 괴인의 시뻘건 손 길이 불쑥 솟아나와, 남궁검민의 가슴으로 파고들 것만 같은 착각이 일어나는 것이었다. 헌데 과연 그러한 것이 일행의 눈앞에 거의 현실로 드러났다. 괴인의 허리쪽에서 돌연 붉은 기운이 번쩍하더니 이어 남궁검민의 짧은 경악 성이 그 뒤를 잇는 것이었다. [아니!] ...... 일행은 그것을 보자 다함께 안색이 변해서 그쪽으로 달려갔다. 남궁검민은 이미 검세를 거두고서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 있었다. 그의 안색이 창백한 것이 이미 보통일이 아닌 것 같았다. [오빠!무슨일이 있나요?] [민오라버니,다쳤나요?] 남궁녹악과 제갈금의가 거의 동시에 먼저 남궁검민에게 달려들며 소리쳐 물었 다. 그런데, 남궁검민은 고개를 저으며 그 괴인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아니오.난 다치지 않았소.] (......?) 사람들은 일시 어리둥절해 졌다. 정말로 살펴보니 남궁검민은 아무런 상처도 없이 무사했다. 그들은 괴인에 대해서 지나치게 공포감을 느낀 나머지 무조건 그가 다쳤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그렇다면......?] 사람들의 시선은 일제히 그 괴인에게 향했다. 사실 조금전에 비쳤던 그 붉은 기운은 괴인의 몸에서 나온 피였으며 당한 것 은 괴인이었던 것이다. 지금 비스듬히 늘어져 있는 괴인의 몸에서는 피가 콸콸 흘러내리고 있어서 그 의 상처가 치명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했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 괴인이 남궁검민에게 그렇게 말없이 당한 것일까? 그 이유를 일행은 괴인의 얼굴을 보고서야 비로소 이해할 수가 있었다. 괴인은 이순간 죽어가면서도 괴상하게 웃고 있었다. 눈동자는 이미 초점이 풀려있는 상태였으며 입가에는 게거품이 흘러내리고 있 었다. 그렇다. 그는 본래 미친 사람인 것이다. 미친사람이기 때문에 그야말로 미친 듯이 많은 살인극을 저질러놓은 것이다. 미친사람은 고통도 모르는 것인지 그 괴인은 죽어가면서도 일행을 돌아보며 히 죽히죽 웃고 있었다. (......?) 일행은 그것을 보자 일시 머리가 어지러워 지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정말로 이 많은 참사가 저런 미친자의 소행이었다는 말인가? 결과적으로 남궁검민의 무공이 높았기 때문이었지만,상대적으로 그 괴인의 무 공은 변변치 않았었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그는 그야말로 미친 사람이기 때문에 그 많은 살마들을 광적으로 난자해서 죽 인 것이었다. 남궁검민이 겸연쩍은 표정으로 입을 열어 말했다. [나,난 좀더 신중했어야 했는데,그만 지나치게 흥분하여 그에게 살수를 쓰고 말았군.] 만일 이 괴인을 살릴 수만 있다면 보다 많은 얘기를 들을 수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행에게 실망감을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이내 그 괴인은 숨이 끊어져 늘어지고 말았다. [지금 그런 것을 신경쓸때가 아니예요!] 제갈금의가 나서서 괴인의 시신을 옆으로 치워버리고 밑에 깔려있던 사람을 구하려고 했다. 뜻밖에도 그 소녀는 보기 드물게 아름다운 미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옥색 비단옷차림으로 하위만 벗겨진 상태였는 데 그렇게 용모가 고울 수가 없었다. 아마도 그러한 미모가 미친 사람에게도 음심을 동하게 만들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제갈금의 등은 이내 그녀의 목숨을 구할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이미 그 괴인에 의해서 목뼈가 완전히 부러져 있는 상태였다. 사람의 팔다리는 부러지면 다시 붙일 수가 있지만 일단 목뼈가 부러지면 다시 살아날 수가 없다. 그 소녀가 아직도 살아있는 것은 아마도 그녀의 한이 그만큼 컸기 때문일 것이 었다. 일행은 꺼져가는 그녀의 눈빛에서 그러한 것을 읽었다. 그처럼 귀하고 아름다운 소녀가 하루아침에 이렇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었을 것이었다. 비록 죽은 사람들의 숫자는 많지만 그 가운데에서 무공을 할 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바로 얼마전까지만해도 평화로왔던 이 산장의 풍경을 상 징하고있는 듯 했다. 일행의 대부분은 이 참혹한 광경에 저마다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 가운데 제갈금의는 그 소녀가 마지막으로 꺼져가는 의식속에서 나직하게 말하는 것을 들을 수가 있었다. [아......아버님을......꼭......] (......?) 제갈금의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미숨을 거둔 소녀의 시신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그녀는 놀란 토끼처럼 일행 을 향해 소리쳤다. [아!맞아요.흉수가 더 있을지도 몰라요!] 제갈금의의 그 소리는 다시 한 번 일행을 크게 긴장시켰다. [그렇군!] 당백승과 팽일악등은 이내 눈빛을 빛내며 주위로 흩어지기시작했다. 이미 괴인을 죽인 이후에 일행의 공포감은 상당히 감소되어 있었다. 헌데 바로 그때였다. 갑자기 후원 뒤쪽의 한 방문이 열리더니 한명의 초로의 문사가 천천히 걸어나 오는 것이었다. ......! 일행은 그가 느닷없이 걸어나왔기 때문에 일시 깜짝 놀랐다. 일견하기로는 상당히 청수해 보이는 풍모를 지니고 있었는데, 그 초로의 문사는 일단 밖으로 나오자 장내의 상황을 살피고 이어 죽은 소녀 의 시신 등을 바라보더니 나직한 탄식을 터뜨리는 것이었다. [허허허!......] 이어 하늘을 우러러 보는데 마치 전혀 일행을 보지 못한 것 같았다. 그런데, 일행이 마악 그의 앞으로 다가가려는 데 느닷없이 비수가 햇빛아래 번쩍 하면 서 그의 가슴에 깊숙히 박혀버리는 것이었다. [앗!] 일행은 저마다 크게 소리를 지르며 그 앞으로 다가갔다. 그 초연한 태도의 초로의 문사가 갑자기 자결을 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 기 때문이었다. [이 장원의 주인이십니까?] 남궁검민이 급히 넘어지려는 문사의 몸을 잡고서 묻자 그 초로인은 감기려는 눈을 힘없이 뜨며 대꾸했다. [그렇소.하지만 이와 같은 결말을 맞이했으니 내 이름을 알려하지 말아주시오. 허헛,한갓 헛된 욕심으로 결국에는 이와 같은 화를 부르다니......] 말을 하는 도중에도 문사의 가슴에서는 피가 쉬지 않고 솟아나와 남궁검민의 의복까지 붉게 물들여 놓았다. 당백승이 급히 소리쳐 물었다. [남은 흉수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초로의 문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 뒤쪽으로 금을 숨겨놓은 광이 있소.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인가......?지금 의 상황에......이르러서는......] 초로의 문사는 그렇게 말을 하다가 말고 갑자기 숨이 뚝 끊어졌다. 남궁검민은 그 문사의 시신을 바닥에 조용히 내려놓았다. 느닷없이 당한 대낮의 이 악몽을 잊을 수가 없다는 듯이 그 문사의 눈은 죽어 서도 크게 떠있었다. [어서 가봅시다!] 일행은 즉시 죽은 문사가 가리킨 쪽을 향해 신형을 날리기 시작했다. 제갈신중 역시 말을 그대로 두고 그 뒤를 따라갔다. 일행은 이번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장 참혹한 광경을 목격한 것이었다. 가장 비참하게 당한 원혼들은 또한 그 원한을 풀 상대가 없기에 더욱 억울하 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오늘 이 산장 전체에는 무거운 어둠의 그림자가 내리깔려 있는 것 같았다. 문사가 나왔던 그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긴 복도가 나타났고, 그 복도를 지나가자 맨 뒤쪽에 하나의 광이 나타났다. 일행은 그 광의 앞에 이르러서 크게 주춤하며 긴장했다. 바로 두명의 그 시뻘건 괴한들이 버티고 서있다가 느닷없이 일행을 향해 병장 기를 휘두르며 덤벼들었기 때문이었다. 이미 핏물에 가득 젖어있어서 금방이라도 핏물을 뿌릴 것처럼 시뻘건 도끼와 칼을 휘두르며 덤벼드는 괴한들의 태도는 다분히 광적이었다. 남궁녹악을 비롯한 여인들은 그러한 소름기치는 광경을 보고 그만 비명을 지 르고 말았다. 천하의 대마두라고 해도 그처럼 흉악해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이 괴인들은 각기 두눈에서 광기가 흐르는 것이 달랐지만,표정이 어딘가 흐트 러지고 입에 게거품을 문 것이 아까의 그 괴인과 같았다. 게다가, 이 괴인들은 어찌나 힘이 센지 그저 병장기를 아무렇게나 휘두르는 것 같은데 도 어느새 주위가 살기로 가득차는 것이었다. 당백승과 팽일악이 즉시 그것을 보고 마주 대항해 갔다. 그들은 이미 이 괴인들이 자신들의 상대가 안된다는 것을 알았으나 상대가 정 상이 아니고, 게다가 기이하도록 힘이 센 것을 보고 십분 조심했다. 팽일악은 철면도라는 별호에 어울리게 칼을 뽑아서 육중하게 오호단문도를 휘 둘러 갔고, 그 옆의 당백승은 허리춤에서 하나의 기다란 채찍을 뽑아들었다. 그의 별호는 바로 염왕편이었다. 일단 그가 채찍을 휘두르기 시작하자 편영이 실내를 가득 메우면서 흡사 상대 의 넋을 빼앗아 갈 듯이 재주를 부렸다. 제 24 장. 강상의 혈투. 그 두명의 괴인들의 광적인 힘은 대단했지만,그러나 아무래도 이미 절정급에 도달한 무림고수와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우왁!] [쿠웩-!] 서로간에 불과 수초가 지나기도 전에 짧은 비명소리와 함께 그 두명의 괴인들 은 각기 상처를 입고 제압당하고 말았다. 당백승과 팽일악은 그들이 중상을 입고 비틀거리는 것을 보고 즉시 병기를 이 용하여 그들의 혈도를 제압했다. 그 두명의 흉악한 괴인들은 각기 바닥에 벌렁벌렁 넘어지고 말았다. [안으로 들어가자!] 남궁검민의 지휘아래 일행은 그 두명의 괴인들을 이끌고 다시 광속으로 달려 들어 갔다. 그런데, 일단 일행이 안으로 들어가자 거기에는 뜻밖에도 어이없는 상황이 벌어져 있 었다. 그 광은 그다지 넓지 않았다. 여기저기에 쌓아둔 물건들이 어지러이 널려 있었고 또한 곳곳에 거미줄들이 가득했다. 하지만, 당연히 어두침침해야 할 그 광속은 어둡지 않았고 훤하게 밝은 상태였다. 맞은 편의 벽면이 완전히 크게 허물어져서 그곳으로 대낮의 빛이 쏟아져 들어 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광의 한쪽 구석에는 바닥을 판 흔적이 있었고 또한 그 옆에는 하나의 작은 궤 짝이 열린 채로 놓여져 있었다. (바로 저것이로군!) 일행은 그 속의 물건을 보고서 거의 똑같이 생각했다. 이곳의 주인인 문사는 죽기전에 자신이 금에 욕심을 품었었기 때문에 화를 당 하게 되었다고 말했었던 것이었다. 궤짝속에는 열냥정도 되어 보이는 금원보가 나란히 스물 다섯 개나 누렇게 들 어 있었다. 헌데 지금 그 궤짝의 옆에는 안색이 시커멓게 변한 두명의 괴인들이 뒹굴고 있었고, 다시 그 옆에는 한명의 도인이 태연한 신색으로 서 있었다. 이 상황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가 있을 것 같았다. 필시 이 두명의 괴인들이 금궤를 훔치려는 것을 그 도인이 벽을 부수고 나타 나서 제압해 버린 모양이었다. 남궁검민은 그 도인의 등뒤에 매고 있는 장검의 자루에 송문이 양각되어 있는 것을 보고 즉시 앞으로 다가서서 포권의 인사를 올렸다. [혹시,무당파의 선배님이십니까?] 근래 들어서 구파일방의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강호의 출입을 하지 않고 있었 다. 하지만, 무당파는 여기에서 비교적 가까울 뿐만 아니라,그 송문의 장검은 그곳의 독특 한 표시인 것이었다. 과연 아니나 다를까, 그 초로의도장은 이내 입가에 조용한 미소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현송이라고하네. 보아하니,나는 오늘 무림의 영재들을 한꺼번에 만난 모 양이군!] 현재 무당파의 장교진인은 현황도장이었다. 그 초로의 도인의 도호가 현자로 시작되는 것을 보니 아마도 현 장문인의 사 제정도는 되는 모양이었다.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남궁검민을 비롯한 일행 모두는 즉시 앞으로 나서서 그 도인에게 정중히 포권 의 인사를 올렸다. 제갈신중도 그 틈에 끼어서 함께 인사를 올렸는데, 그 현송도장은 그 용모가 아주 깨끗하고 두 눈에서 물처럼 선명한 안광이 일 어나는 것이, 필시 무림육영과는 또다른 무학경지인 최절정의 무학경지에 올라있는 것 같았 다. 기실 그는 겉으로 초로의 나이로 보이지만 진짜 나이는 이미 육십을 넘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현송도장은 일행의 인사를 받으며 일일이 한 번씩 돌아본 다음에 그래도 그 가운데에서 중심이라고 할 수가 있는 남궁검민에게 다시 입을 열었다. [헌데,자네들도 모두 이 일 때문에 온 모양이군. 그렇게 젊은 사람들이 무림의 일에 나서주니 고맙네.] 일행은 현송도장이 괴인들을 가리키는 것을 보고 이미 제압한 괴인 두명도 그 앞에 끌어다 놓았다. 남궁검민은 포권하며 말을 받았다. [기왕에 선배님께서 오신 줄 알았더라면 저희 들은 쓸데없이 나서지 않을 것을 그랬나 봅니다.] 현송도장은 이에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실은 나도 방금전에야 이곳에 도착했네.자네들의 도움을 내가 입은 셈 이지.] 이어, 현송도장은 지력을 날려서 퍽퍽하고 두 괴인의 기해혈을 파괴하더니 곧장 그 들의 혈도를 풀어주는 것이었다. 팽일비가 그것을 보고 놀라며 즉시 물었다. [아니,선배님 어째서 그 흉악한 자들을 놓아주시는 것입니까?] 그 두명의 괴인들도 앞서의 괴인들처럼 안색이 시커멓게 변하면서 늘어지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일면 멍청한 듯 하면서도 고통스런 기색이 가득했다. 현송도장은 그들을 바라보면서 가벼운 한숨과 함께 대답했다. [그들을 흉악한 자들이라고 생각하는가?기실은 그들은 흉악한 자들이 아니네.] ......? 현송도장의 말에 일행은 더욱 어리둥절해 지고 말았다. 그토록 흉악하게 날뛰던 자들이 흉악한 자들이 아니라니 그것은 정말 이해하 기 어려운 노릇이었다. 남궁검민이 다시 포권하며 말했다. [선배님께서는 그 이유에 대해서 저희들에게 가르쳐주시겠습니까?] (......!) 현송도장은 눈앞의 젊은이들이 이미 자신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가지기 시작했 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담담한 미소와 함께 앞으로 나서서 금궤를 집어들더니 밖으로 신형을 돌 리며 대꾸했다. [자,우선 밖으로 나가면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할까?자 가련한 사람들은 이미 단전이 파괴었으니 다시는 나쁜 짓을 저지를 수도 없을 것일세.] ......? 일행은 더욱 의아한 생각이 들었으나 그래도 거역할 수가 없어서 이윽고 현송 도장의 뒤를 따르고 말았다. 현송도장은 복도를 나서서 이윽고 후원의 마당에 이르자 주위를 둘러보더니 가볍게 탄식하며 말했다. [무량수불!......자네들이 처음보는 나를 그래도 믿고 이렇게 따라주니 고마울 따름이네.] 이어, 현송도장은 밖으로 신형을 옮기면서 남궁검민에게 문득 질문했다. [자네는 그 다섯명의 괴한들이 어째서 오늘 이러한 짓들을 저질렀는지 알겠는 가?] 남궁검민은 정중한 태도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후배는 불민하여......선배님의 가르침을 바랍니다.] 현송도장은 빙그레 웃으며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그 금궤를 가리켰다. [자네는 무척 겸손하군. 그렇다면 그자들이 이 금궤를 노렸다는 사실을 알고 있 겠지?] 남궁검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그런데 거기에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것입니까?] 제갈신중은 그 황마를 찾아서 올라타고서 주위에서 그 대화내용을 들었다. 현송도장은 미소하며 말했다. [그렇다면 자네는 정말로 미친 사람이 이와 같은 것을 노릴 수 있다고 생각하 는가?] ......? 남궁검민은 다소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 처음에 그들은 그저 괴인들이 미쳤기 때문에 그와 같은 일들을 저지른 것이라 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과연 정말로 미친사람이라면 그렇게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치밀한 행동을 할 수가 있을까 하는 것이 의문이었다. 팽일비가 문득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소리쳤다. [그들은 이상하게도 힘이 아주 셌었는데,제가 보기에는 그것은 일반무공이 아 닌 것 같았습니다.] 현송도장은 팽일비를 돌아보며 빙그레 웃음을 떠올렸다. [잘 보았네,그들의 힘이 강했던 이유는 무공이 아니라 일종의 잠력이 격발된 상태였지.] 현송도장은 이번에는 다시 남궁검민을 향해 질문했다. [지금 내가 들고 있는 이백오십냥의 황금은 상당한 거액이네.게다가 이 원보들 은 흔하지않기 때문에 더욱 값이 나간다고 봐야 하겠지.하지만 그들이 과연 단순히 이 황금 때문에 그와 같은 짓들을 저지른 것일까?] (......?) 남궁검민은 그만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후배는 불민하오니 선배님께서 가르쳐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현송도장은 잠시 남궁검민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불쑥 다시 물었다. [자네 홍시 앵속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이미 삼대마세에 대해 의식하고 있던 일행은 일단 그 얘기를 듣자 일순 안색이 변했다. 제갈덕중이 오랜만에 입을 열어 되물었다. [그것은 바로 마약의 일종으로 일명 양귀비라는 것이 아닙니까?] 현송도장은 그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그렇다면 자네들은 과거에 그 앵속을 사용하여 천하를 제패하려고 했 던 문파가 있었다는 것도 알고 있겠지?] 황보잠허가놀라서 물었다. [그렇다면 정말로 그 태양마교가 다시 활동을 개시한 것이라는 말입니까?] (......) 현송도장은 일행을 둘러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들도 이미 거기에 대해서 알고 있군.기실 내가 장문사형의 지시를 받고 강호에 나온 목적은 바로 그러한 무리들을 제압하기 위해서라네.그런데 막상 강호에 나와 보니 그 피해는 생각보다 더욱 극심하더군.] ....... [개가 아까 그자들의 말을 들어보니 자신들은 그저 앵속을 사기 위해서 그와 같은 짓들을 저질렀다는 거야.] 황보잠허가 다시물었다. [그렇다면 그들은 그 앵속에 깊이 중독되어 있는 상태였다는 말입니까?] 현송도장은 대답했다. [본래 어떠한 독약도 어느 정도는 쓸모가 있는 반면에 어떠한 영약도 함부로 사 용하면 독이 되듯이,가끔은 병을 고치는 데 사용하기도 하는 그 앵속은 일단 중독이 되면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지.그들이 미쳐서 잠력까지 사 용하게 된 것은 바로 그러한 금단현상이 극도에 이르렀기 때문이었을 것이네.] 일행은 그 얘기를 듣고 나자 일순 그 마약의 가공할 중독증에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일단 마약을 접한 것이 잘못이겠지만,그들은 본래는 악한이 아니었지.그래서 내 그들을 살려주었던 것이네.] 제갈보중이 문득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입을 열어 물었다. [그들이 그런 심한 금단현상을 보이게 될 정도라면, 그렇다면 이미 태양마교 는 벌써부터 활동을 개시했다는 것이 아닙니까?] 현송도장은 제갈보중을 향해 고개를 가로저었다. [예리한 생각이지만,그러나 반드시 그렇지 않을 수도 있네,반드시 오랫동안 앵 속을 복용시키지 않아도 그렇게 만들 방법은 있을 테니까.] 제갈덕중이 다시 입을 열어 물었다. [하지만 그들을 추궁하면 그들의 본거지를 찾아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현송도장은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들은 철저하게 행동하기 때문에 그들을 추궁한다고 해도 결코 그들의 본거지 를 알아낼 수는 없네.본래 그와 같은 조직들은 천하를 병들게 하는 악랄한 집 단들이지만,오히려 그런 조직들일수록 더욱 철두철미하여 쉽게 색출해 낼 수 가 없다는 것이네.] 일행은 그러한 얘기를 듣고 나자 마치 먼 옛날의 얘기로만 느꼈던 태양마교가 흡사 자신들의 눈앞에 나타난 듯하여 안색들이 굳어졌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현송도장과 일행은 그 산장의 정문앞에 이르렀다. 현송도장은 산장을 향해 도호를 외우고 몇줄기의 경문을 읊은 다음에 다시 일 행을 향해 고개를 돌려 말했다. [나는 이 금궤를 요 가까운 마을에 전해주고 이곳의 뒤처리를 부탁할 생각인 데,자네들은 혹시 바쁘지 않다면 나와 함께 가지 않겠나?] 일행은 현송도장이 말은 안해도 자신들이 증인이 되어주기를 바란다는 것을 알고 모두가 혼쾌히 수락했다. [좋습니다.선배님!] * * * 현송도장은 가까운 마을인 백우현으로 가는 도중에 일행에게 여러 가지의 이 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러한 이야기는 대부분이 그가 젊엇을 때 강호를 돌아다니던 경험담으로 일 행에게 매우 유익한 것들이었다. 아쉽게도 백우현은 지척에 있었지만 설령 멀리 있었다고 해도 일행은 다른 일 을 마다 않고 들으려고 했었을 것이었다. 이윽고, 현송도장은 백우현에 이르자 곧장 그곳의 나이 많은 촌장을 찾아가서 금궤를 전해주고 상황 설명을 했다. 번거로우리라고 생각되었던 그 일은 의외로 마을 사람들이 쉽게 이해해 주 었기 때문에 빨리 끝냈다. 이제 일행은 계속해서 남양성으로 나아가야 했고 현송도장은 자신은 이곳에 서 만날 사람들이 있으므로 남겠다고 했다. 그런데, 마악 그들이 서로 작별인사를 나누기도전에 문득 그들의 앞으로 한명의 거지 가 찾아온것이었다. 그 거지는 개방에 소속되어 있는 사람이었는데 현송도장에게 한 장의 쪽지를 전해주는 것이었다. (......!) 현송도장은 그 쪽지를 받자 마자 이내 안색이 변했다. [무슨일이라도 있으십니까?] 남궁검민이 묻는 말에 현송도장은 다소 침중한 안색으로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본래 여기에서 일행을 만나기로 되어 있는데,지금 이 쪽지를 보니 그 일 행이 지금 급한일이 생겨서 조하를 건넜다는 군.] 조하는 바로 이 백우현의 북쪽에 있는 작은 강이었다. 남궁검민은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좀더 선배님과 동행하게 되었으니 다행이로군요?] * * * 백우현을 떠난 이후에 겉으로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으나 현송도장은 왠지 다 소 서두르는 기색이었다. 그는 이전과 달리 거의 말이 없었으며 신법도 다소 빠르게 펼치고있었다. 아마도 그의 일행 가운데에서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있는 모양이었다. 백우현을 떠나서 대략 삼십여 리 정도 나아가자 조하의 앞에 도달할 수가 있 었다. 조하는 그다지 크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그다지 작지도않은 하천이었다. 하천의 앞쪽에는 강을 건네주는 나룻터가 있었는데, 현송도장은 갑자기 그 앞에 이르자 안되겠는지 일행을 향해 말했다. [나는 아무래도 먼저 가야 하겠으니,자네들은 뒤에서 천천히 오게.만일 기회가 있다면 금방 다시 만나게 될 것일세.] 일행은 더 이상 말리지 않고 즉시 포권하며 작별인사를 했다. 많은 풍파를 겪은 이래로 그와 같은 강호의 선배를 만났다는 것은 일행에게는 든든한 믿음이었다.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선배님!] 현송도장은 그렇게 인사를 받자마자 이내 강물쪽으로 신형을 훌쩍 날렸다. 그러자, 놀라운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거의 사십여장이나 되는 강물을 현송도장은 그대로 가볍게 날아넘어서 빠르게 건너편으로 사라지는 것이었다. 일행은 그러한 광격을 보자 저마다 눈이 휘둥그래 졌다. [정말로 대단하신 신법이로군.나 같으면 겨우 절반 정도야 겨우 흉내나 내볼수 가 있겠지만......] 남궁검민의 말에 제갈금의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맞아요.하지만 우리들은 아직 십장도 날아갈 수가 없으니,그런 것을 생각하면 민오라버니는 그야말로 대단한 것이지요.] 남궁검민은 웃으며 손을 저었다. [그거야 제갈형이나 팽형도 마찬가지이니 너무 과분하게 칭찬하지 마시오.] 일행은 그렇게 대화를 주고 받으며 나룻터로 내려갔다. 나룻터에는 지금 나룻배가 하나 매어져 있었는데,그 안에 한명의 사공이 낮잠 을 자고 있다가 일행을 맞았다. [강을 건너실 작정이우?] 아직 졸린 듯한 표정으로 사공이 질문해왔다. 당백승이 대꾸했다. [그렇소만,지금 강을 건널 수가 있겠소?] 사공은 일행을 한바탕 둘러보다가 심드렁하니 대꾸했다. [손님들께서 배삯만 넉넉히 주신다면야 지금이라도 배를 띄울 수가 있지만,그러 나 이 배는 작아서 저 말은 태울 수가 없겠는 데요?] 일행의 시선이 자연 제갈신중에게 집중되었다. 제갈금의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럼 둘째오빠는 나중에 강을 건너시면 되겠네요.] 제갈신중은 어이가 없어서 대꾸했다. [뭐라구?그럼 아예 나더러 다른길로 가라고 하는 것이 어떠냐?] 제갈보중이 말했다. [본래 말은 헤엄을 잘 치는 법이므로,배 뒤에 묶어서 따라오게 하면 되지 않습 니까?] 제갈신중은 잠시 생각하다가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이 여름이라면 모르지만,지금은 강물이 매우 차가울 것이니 그렇게 할 수 는 없다.] 황보잠허가 옆에서 웃으며 말했다. [우리 일행을 두패로 나누어서 강을 건너면 될 것이 아닙니까? 그렇게 싸우실 것은 없습니다.] 제갈보중은 다소 못마땅한 듯이 했으나 이내 입을 다물었다. 제갈신중은 사실 속으로 이 황마를 돌려보내고 자신은 신법을 사용하는 것이 어떨까하고 생각하고 있었으나, 제갈보중의 그와 같은 태도를 보고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다. 따라서, 제갈신중은 일행이 두패로 나뉘어서 강을 건너게 됨에 의해서 제갈보중,팽일 비와 함께 먼저 강을 건너게 되었다. 제갈보중이 함께가는 이유는 물론 제갈신중을 감시하기 위한 것이었고,팽일비 는 스스로 자원한 것이었다. 일행이 그렇게 정하고 말을 먼저 태우자 사공은 두말하지 않고 배를 저어가기 시작했다. 팽일비는 제갈신중과 제갈보중의 사이가 다소 어색한 것 같아서 문득 강물위에 서 사공에게 말을 걸었다. [보아하니 배를 아주 잘 저으시는 군요.나는 본래 강북에서 살던 사람이라 배 를 저을 줄 모르는데 ,혹시 나에게 그 요령좀 가르쳐줄 수가 있겠소?] 사공은 노를 저으면서도 반쯤은 졸고 있다가 겨우 눈을 뜨며 어색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이거야 소인놈이 어려서부터 밥을 벌어먹는 재간으로 익혀온 것이온데 ,별로 대단치 않은 것이옵니다요. 신경쓰지 마십시오.] 하지만, 팽일비는 가만히있으며 몸이 쑤시는지 고집을 부렸다. [허!그러니까 자신의 하나뿐인 기술을 남에게 전수해줄 수가 없다는 말인가?정 히 그렇다면 내가 그 보답으로 은자 열냥을 내지,그래도 싫다고하긴가?] 팽일비는 그러면서 정말로 품속에서 열냥짜리 은표 하나를 꺼내보이는 것이었 다. 하지만, 사공은 역시 점잖게 거절을 했다. [하하,소인은 감히 그런 돈을 받을 만한 사람이 못됩니다요.그러니 다른 사람 이나 찾아보십시오.] 팽일비는 그만 혀를 차고 말았다. [알고보니 당신은 배가 부른 모양이군? 은자 열냥을 마다하는 사람이 다 있다 니......] 그러는 사이에 이미 배는 건너편의 나룻터에 도착해 있었다. 확실히 이 사십여장 너머의 강물은 그리 좁은 것이 아닌데도 빨리 건넌 것을 보면 사공을 팔힘이 좋았다. 제갈신중이 말과 함께 내리고 팽일비가 마저 내리자 이번에는 제갈보중을 다시 태우고 배가 다시 건너갔다. 제갈신중은 제갈보중이 건너편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을 보고 말에게 근처의 풀 을 뜯기며 잠자코 기다리고 있었다. 팽일비는 옆에 있다가 무료한지 다시 말을 걸었다. [제갈형은 정말로 그렇게 무공이 형편없소? 계속 이렇게 말을 타고다니자면 피곤해질 텐데?] 제갈신중은 자신이 이제는 무공을 사용할 수가 있다는 얘기를 하려다가 그만 두었다. [여러분에게 미안할 뿐이오.] 팽일비는 이에 문득 생각난 듯이 다시물었다. [아참!아까 들으니 제갈형은 이미 고질병을 고치고 무공을 회복했다고 하던 것 같은데,혹시 그게 사실이오?] 제갈신중은 그저 말장난에 불과한 팽일비의 질문을 받고 어이가 없어서 그만 웃고 말았다. [사실은 그런 것 같소.] (......?) 팽일비는 다소 의외의 대답을 듣게 되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다시 물었다. [그럼 이제부터 말을 버리고 신법을 펼치면 될 것이 아니오?아참 지금 제갈형 의 무공수위는 어느 정도요?] 제갈신중은 웃으며 대답했다. [나도 그렇지 않아도 이제부터 신법을 펼쳐볼 생각이었소.] (......?) 팽일비는 더욱 의아해졌다. 이제 어느새 배는 나머지 사람들을 모두 태우고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중 이었다. 그는 그쪽을 한 번 살핀 다음에 다시 제갈신중을 향해 물었다. [아니 그게 정말이오?] 제갈신중은 미소하며 대답했다. [내가 무엇 때문에 거짓말을 하겠소?] [......?] 제갈신중은 이어 이제까지 자신이 태워주었던 황마를 바라보며 은근한 웃음을 떠올렸다. 이 황마는 비록 천리준마는 아니지만 그래도 그간에 제갈신중으로서는 약간의 정이 들었다고할 수가 있었다. 그는 말에게 다가가서 말의 갈기를 쓰다듬어 주려고 손을 들어올렸다. 헌데 바로 그때의 일이었다. 휙! 어디선가 날아온 시커먼 화살과도 같은 것이 갑자기 퍽하는 소리와 함께 말의 정수리에 틀어박히는 것이었다. 그것은 느닷없이 벌어진 깜짝 놀랄만한 사건이었다. 히히힝!...... 황마는 갑자기 머리에서 피를 쏟으며 쓰러져서 그대로 절명하고 말았다. (......!) 제갈신중은 너무나도 느닷없는 사태를 당했기 때문에 일시 정신이 하나도 없 어서 멍하니 서있었다. 그때 연이어 팽일비의 외치는 고함소리가 지척에서 들려왔다. [웬 놈들이냐!] 제갈신중은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고개를 들었다. 팽일비가 크게 경악한 표정으로 허리춤의 칼을 뽑아들고 있었는데, 어느새 그들의 주위에는 이미 십여명의 흑의복면인들이 다가들고 있었다. 제갈신중은 문득 시선을 급히 강상으로 돌려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지금 그 배는 사공은 어디론가 사라진 채 강물의 중앙에서 완전히 부서져서 맴 돌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알고보니 적들이 이미 강물속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배의 구멍을 뚫고 공격을 개 시한 것이었다. 그것은 분명 미리 잘 짜여진 음모인 듯 했다. 제갈신중은 지금 가라앉아 가는 배위에서 호통을 지르고 있는 남궁검민 등을 바라보다가, 문득 다가드는 흑의복면인들이 매우 낯익게 생각되어 내심 중얼거렸다. (이들은 혹시 저번의 그 일월신교의 무리들이 아닐까?) 그때 팽일비의 다급하게 외치는 소리가 다시들려왔다. [제갈형,조심하시오!] 아닌게 아니라 이미 십여명의 흑의복면인들 가운데에서 두어명이 빠르게 그를 향해 습격해 들어오고 있었다. 제갈신중은 순간적으로 다시 생각했다. (과연 내가 정말로 무공을 잘 펼칠수가 있을까?) 그때의 일이었다. 갑자기 제갈신중의 신형이 뿌옇게 흐려지는 듯 하더니 사라지면서, 느닷없이 흑의복면인들의 후미에 나타났다. ......! 제갈신중은 내심으로 중얼거리는 순간에 이미 가전의 천기미리보를 운용한 것이었다. 그 세명의 흑의복면인들은 마악 제갈신중의 몸을 습격해 들어가다가 갑자기 상 대가 사라지자 그야말로 깜짝 놀라는 표정들이었다. [앗,저쪽이다!] 황급히 병기를 거두어서 자세를 돌린 그들은 즉시 다시 제갈신중을 향해 덮쳐가 기 시작했다. 제 25 장. 발휘된 숨은 능력. 그 흑의복면인들은 이미 빠른 시간내에 두 사람을 제거하기로 결심한 것 같았 다. 제갈신중이 갑자기 그렇게 신형을 피하자 이내 그들은 거의 한꺼번에 한덩어리 가 되어 제갈신중을 공격해 왔다. 그들의 무공은 정말로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제갈신중의주위는 일시 물샐틈없는 병기의 그물망으로 인해 햇빛마저 차단되는 것 같았다. 그들이 비록 살수가 아니라고 해도 실로 이러한 악랄한 공격은 살수들을 능가 할 것 같았다. 제갈신중은 이미 첫 번째에는 몸을 피했지만 두 번째에는 왠지 무사히 피할 수 있는 자신이 없어졌다. (빌어먹을,이럴 줄 알았으며 무공을 한 두 번 이라도 연습해두는 건데.) 제갈신중은 내심으로 다소 화가 나서 중얼거리며 조금전의 천기미리보와 동시 에 응혈신조를 펼쳤다. 그 응혈신조는 물론 그의 가전의 수법으로서 말하자면 내가의 중수법에 해당되 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다지 훌륭한 무공은 되지 못하나 보다 악랄한 점에 그 면모가 있다 고 할 수가 있었다. 그 중수법에 한 번 당하면 더러는 죽거나 혹은 십중팔구는 병신이 되게 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수법의 단점은 바로 직접 상대방의 손과 손이 닿아야 하는 것이므로 유사 시의 실전적인 수법이라고는 말할 수가 없었다. 제갈신중이 그럼에도 순간적으로 그 수법을 뇌리에 떠올리게 된 것은 순전히 지금 그의 기분여하에 달린 것이었다. 그는 조금전에 말이 횡사하는 광경을 보았었기 때문에 내심 화가 나 있어서 절로 그와 같은 악랄한 수법을 자신도 모르게 운용하게 된 것이었다. 흑의복면인들의 공세가 마악 짓쳐드는 찰나에 그 간발의 차이로 제갈신중의 신형의 이미 한 흑의복면인의 가슴팍으로 바싹 파고들어가 있었다. 그것은 당연히 거의 눈에 보이지도 않는 몸놀림이었다. 그 흑의복면인은 전혀 상대방의 행동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가 일순 전신이 뻣뻣해지면서 뒤로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제갈신중의 신형은 자연히 그 옆으로 옮겨졌다. 하지만, 이미 그 사이에 잠간 멈칫하는 바람에 그 흑의복면인은 이미 제갈신중이 자신 의 앞에 나타나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한명의 동료가 당한 것을 간파했는지 지체하지 않고 그 흑의복면인은 아미강 자와 같은 병기를 휘둘러 왔다. 제갈신중은 마악 그 흑의복면인을 제압하려는 찰나에 그것을 보았다. 만일 그가 그것을 무시하고 제대로 응혈신조를 펼쳤다면 그 흑의복면인은 그냥 도중에 거꾸러지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제갈신중은 경험이 미숙했다. 상대방이 목숨을 돌보지 않고 무섭게 덮쳐드는 것을 보고는 감히 그것을 무 시할 수가없어서 일단 몸을 피했다. 그런데, 이때 상상밖의 일이 벌어졌다. 그 흑의복면인들의 수법은 아주 괴이했다. 분명히 오른쪽으로 오리라고 생각되어 왼쪽으로 피했는데, 다음순간에 그 아미 강자는 어느새 왼쪽의 허리를 후려오는 것이 아닌가? (......!) 그것은 일반적인 무학의 상식으로는 이해할수 없는 일이었다. 제갈신중은 크게 경악함과 동시에 급히 그것을 피하려고 했다. 그러나, 날카로운 그 아미강자의 칼날은 이미 그의 허리춤의 옷자락을 베어 들어오고있 었다. 스읏, 제갈신중은 허리가 섬뜩해지는 것을 느끼고 정신없이 신형을 움직였다. 놀랍게도 그는 미처 그 아미강자의 시퍼런 칼날이 살갗을 베기 전에 피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러는 바람에 그는 너무 많이 움직였다. 미련스럽게도 많은 사람들의 병장기가 다가서는 그 사이로 그는 들어간 것이었 다. 번쩍하는 사이에 이미 전면에서 하나의 파풍도와 하나의 유엽도가 덮쳐들고있 었고, 좌우에서는 만도와 낭아봉,일월쌍륜 등이 한꺼번에 짓쳐들고 있었다. 그런한 기형의 병장기들은 비단 보기에도 무시무시할 뿐만 아니라 실제로 대 응하기도 어려운 것이었다. 제갈신중은 다급한 상황중에서도 조금전의 당한 일을 상기하여 이번에는 좌우 로 피하지 않고 위로 솟구쳤다. 기실 제갈신중이 그러한 상황에서 다시 위로 솟구칠수 있다는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다. 흑의복면인들 가운데에서 누군가가 그것을 보고 어,하는 경악성을 발했다. 하지만, 위로 솟구친 제갈신중은 정작 그보다 더욱 크게 놀라야 했다. 당연히 그의 아래쪽으로 빗나갔어야할 만도와 낭아봉이 어느새 그의 머리위에 서 이마를 내리 쪼개려고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갈신중은 당황하여 그만 급히 고개를 숙이고 몸을 우측으로 비틀었다. 하지만 허공에서의 그러한 동작은 지상에서와 같을수가 없었다. 간신히 만도와 낭아봉이 좌측의 웃깃을 스치며 빗나가는 순간에 어느새 일월 쌍륜 두 개가 위맹한 소음을 내며 그의 등줄기를 긋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그때 놀란 외침을 발한 사람은 오히려 그 일월쌍륜을 날린 당사자였다. 그 일월쌍륜은 대단히 날카롭고 또한 톱니바퀴처럼 생겨있어서 일단 옷자락을 꿰뚫은 이후에는 등줄기를 두토막으로 만들었어야 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옷자락만 길게 베었을 뿐 미치 아주 부드럽고 탄력있는 솜뭉치를 벤 것처럼, 등줄기에 아무런 상처도 주지 못하고 그대로 퉁겨져 나오는 것이 아닌가? 제갈신중은 그렇다고는 해도 그 순간에 이미 기절할 만큼 놀랐다. 그 바람에 그의 신형은 갑자기 기운을 움직여서 아래쪽으로 뚝 떨어져내렸다. 아래쪽에는 한자루의 파풍도와 한자루의 유엽도가 빠르게 공간을 차단하고있었 다. 제갈신중은 아래쪽으로 빠르게 떨어지면서 당황한 나머지 다시 예의 그 응형 신조를 펼쳤다. 이 순간의 그의 응혈신조는 이미 익숙해져있었다. 그 응혈신조는 본래 그의 손과 상대의 몸 어디라도 닿아도 효과를 볼 수가 있게 되는 것이었다. 제갈신중은 엉겁결에 파풍도를 든 손을 건드렸는데 그 순간에 그 상대는 그만 전신이 갑자기 얼어붙는 듯하여 파풍도를 놓치고 뒤로 벌렁 넘어지고 말았다. 제갈신중은 그 순간에 이미 유엽도가 가슴으로 파고 드는 것을 보고 놀라서 그 주인을 잃은 파풍도를 잡아서 도법을 펼쳤다. 그것은 바로 현허도법이었다. 제갈덕중이 그것을 수련했으나 아직 경지에 이르지 못했고, 제갈신중도 그 덕 에 약간 배울수가 있었다. 그 현허도법은 본래 아주 초식이 복잡하고 현묘한 것이지만 바탕은 오히려 웅 후한 기상을 움직이는 것이었다. 이 순간 제갈신중이 그것을 운용하자 뜻밖에도 그 웅후한 기세와 현묘한 초식 이 동시에 발휘되었다. 유엽도가 가슴의 옷자락을 베기도 전에 이미 그것은 자루에서부터 두동강이 나 버렸다. 동시에 제갈신중의 신형이 갑자기 눈부신 그물같은 도망속으로 휩싸였는데, 그 순간에 만도와 낭아봉 같은 상대편의 병장기들이 하나같이 박살나서 사방 으로 흩어지고 말았다. 기실 흑의복면인들은 하나같이 무림의 일류고수들로서 그들의 무공초식은 일반 의 상리를 벗어난 것이었다. 일반의 상리를 파해하는 무공초식을 사용함으로써 일반의 상리에 따르는 상대 방은 곤욕을 치르게 되어 있었다. 그 괴이한 수법은 한 때 강호상에서 거의 무적으로 군림했었다. 하지만, 무공은 초식만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나중에는 그러한 초식의 틀을 멸해가야 하는 것이니, 제갈신중의 빠르고 강한 공격에는 제아무리 절묘무쌍한 초식이라고 해도 당할 수가 없었다. 제갈신중은 이미 한순간에 기선을 제압하였고 또한 자신감도 느끼게 되었다. 그는 먼저 파죽지세로 상대방의 병기를 부순 다음에 응혈 신조를 사용하여 그 들을 제압했다. 이미 이쪽의 십여명의 흑의복면인들이 그렇게 제압을 당하자 더 이상 제갈신중 에게 달려드는 자가 없었다. 옆에서 그저 세명의 흑의 복면인이 팽일비를 곤경에 몰아넣고 있을 뿐이었다. 팽일비는 사실 비록 아직 절정고수에는 오르지 못했으나 거기에 매우 근접하 여 초일류급의 고수였다. 비록 흑의복면인들의 괴이한 무공에 무지한 곤경을 겪기도 했으나 그 상처들은 경상에 가까운 것들이었다. 게다가, 지금은 흑의복면인들이 이쪽을 살피느라 공세가 뜸해져서 그만큼 팽일비의 위험 도 줄어들고 있었다. 흑의복면인들은 이쪽을 보고서 저마다 믿을 수 없다는 경악한 눈빛들이었다. 제갈신중은 비록 위험하지는 않을지라도 팽일비가 온통 전신이 피투성이가 되 어 있는 것을 보고서 도와줄 마음이 생겼다. 그는 약간 생각하다가 천성지의 수법을 사용했다. 기실, 그가 애초부터 그 천성지의 수법을 사용했더라면 이렇게 파풍도를 잡을 필요 도 없었을 것이고, 또한 그렇게 곤경을 당하지도 않았었을 것이었다. 제갈신중은 싸움의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그러한 곤경을 사서 불러들인 것이었 다. 그 천성지는 본래 무수한 변화를 내포하는 것으로서 최고의 경지에 이르게 되 면 검푸른 현광이 발출되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제갈신중이그것을 펼치자 전혀 어떠한 광채도 발산되지 않은 것 같았는데 그 두명의 흑의 복면인들이 쓰러졌다. 그들은 놀랍게도 어깨쪽 중부혈 부위가 구멍이 뻥 뚫려서 혼절하고 쓰러져 있 었다. 이에 팽일비는 영문을 알 수가 없어서 놀라와 했지만 정작 제갈신중 역시 놀라 서 멍하니 서 있었다. 그러다가, 남은 한명의 흑의복면인이 악착같이 팽일비에게 달려드는 것을 보고 제갈신 중은 문득 강심쪽으로 신형을 날렸다. 비록 곤란을 당하겠지만 팽일비가 능히 그 한명의 흑의복면인을 상대할 수가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 * * 강심에는 역시 생각대로 어지러운 상황이 펼쳐져 있었다. 나룻배는 이미 완전히 물속으로 가라앉아서 몇몇 사람들만이 그 작은 조각에 몸을 의지하고있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물속에 들어가서 침입자들과 격렬한 수중전을 펼치고 있었 다. 작은 나무조각에 몸을 의지하고 있는 사람들은 남궁녹악,제갈금의 등의 연약 한 여인들이었고, 남궁검민 등의 남자들은 모두가 결사적으로 물속에서 병장기를 뽑아들고 대항 하고 있었다. 지금 물속에서 공격하고 있는 자들은 무려 이삼십명이나 되는 흑의복면인들이 었는데, 그들은 하나같이 물속에서 활동하기 편한 가죽옷과 물갈퀴를 차고, 게다가 손 에는 분수자를 들고 있었다. 그 이삼십명의 흑의복면인들은 비단 역시 무공초식이 괴이할 뿐만 아니라 수중 전에 아주 능한 것 같았다. 남궁검민이나 제갈보중 등은 비록 무공이 절정경지에 올라있는 사람들이었으 나 물속에서는 확실히 역부족이어서 대단한 곤경을 치르고 있었다. 게다가, 그중에서도 비교적 강남지역에 사는 남궁검민 등은 비교적 수영에 능했지만, 가장 무공이 약한 제갈덕중은 이미 적에게 중상을 입은 것 같았다. 흑의복면인들은 비교적 오랫동안 물속에서 공격을 계속했지만, 제갈보중 등은 비록 수영을 할 수가 있다고해도 물속에서 오래 견딜수가 없었 다. 바로 그러한 점만해도 일행이 흑의복면인들에게 당하는 것은 당연했다. 제갈신중은 막상 무작정 그쪽으로 날아가기는 했으나 그러한 광경을 보고 일 시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는 그만 내심으로 주저하다가 남궁녹악 등 여인들이 잡고 있는 작은 나무조 각의 위에 내려서게 되었다. (......?) 남궁녹악등은 아래쪽의 흑의복면인들의 공격에만 신경을 쓰고 있다가 느닷없 이 나타난 제갈신중을 보고 저마다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년들은 제갈신중을 처음에는 흑의복면인들로 착각했던 것이었다. [아이구 깜짝이야!여기에 이렇게 서 있으면 어떡해요!] 제갈금의가 놀라서 소리쳤으며 그와 동시에 당설정은 직접 손을 뻗어서 제갈 신중의 다리를 후려쳐 왔다. 그 독살맞은 눈빛과 눈부시게 부드러운 손길이 다리를 후려쳐오는 것을 보고 제갈신중은 놀라서 그만 신형을 다시 떠올렸다. 하지만, 이 주위는 온통 물뿐이어서 내려설 자리가 없었기 때문에 제갈신중은 공중에 서 허우적 거리다가 근처의 물위에 떨어지고 말았다. (아이구,나는 수영을 잘 못하는데?) 제갈신중은 물위에서 첨벙거리면서 그녀들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오해하지 마시오.난 당신들을 구해주러 온것이오.] 제갈금의가 장검으로 아래쪽의 분수자와 대항하면서 소리쳐 대꾸했다. [어서 달아나요.그게 바로 우리를 돕는 거예요!] 제갈신중은 그게 아니라고 말하려고 했다. 헌데 바로 그 순간에 뒤쪽이 섬뜩해지면서 한자루의 분수자가 빠르게 덮쳐오 는 것이 아닌가? 제갈신중은 그만 크게 놀란 나머지 신형을 돌리면서 그 분수자를 잡아버렸다. (......!) 상대편 흑의복면인은 느닷없이 그렇게 자신의 분수자를 빼앗겨 버리자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는 듯이,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뒤로 물러났다. 제갈신중은 일단 위기는 넘기기는 했지만 이작 물에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방어할 생각으로 , 양손에 병기 하나씩을 들고 보법을 펼쳐 보았다. 기실 이런 물속에서 지상에서 쓰이는 보법이 통할리가 만무 한 것이었다. 하지만, 제갈세가의 이 천기미리보는 그 기초가 상진하허,즉 하체를 가볍게 한다는 것 이었는데, 제갈신중이 일단 그 보법을 펼치자 느닷없이 위로 떠오르는 힘이 작 용하게 되어 그의 몸이 물위로 둥실 떠오르는 것이었다. (앗!) 제갈신중은 뜻밖에도 자신의 몸이 물위에 둥둥 떠올라 있는 것을 보고 놀라서 그만 비척거렸다. 일단 몸이 비척거리게 되자 제갈신중은 몸의 균형을 잡기위해서 서두르게 되었 고 다시 물에 빠지게 되었다. (아이쿠,빌어먹을!) 제갈신중은 보기좋게 물속으로 첨벙 빠져들어 갔는데 그 순간에 다시 흑의복 면인 하나가 덮쳐오는 것을 보고 내심 욕을 퍼부었다. 제갈신중은 일단은 자신에게는 물속에서도 그 보법이 통한다는 사실을 깨달았 으므로 다시 보법을 운용했다. 보법을 운용하여 반대편으로 달아나듯 하다가 갑자기 그 자의 가슴팍으로 다가 들자 그 흑의복면인은 대경실색한 표정을 지었다. 이미 팔안에 들어왔기 때문에 그 흑의복면인은 당황한 나머지 급히 분수자를 되돌려서 제갈신중의 등을 찌르려고 했다. 제갈신중은 그것을 보고 이미 생각해 두었던 대로 양손을 움직여서 상대의 좌 우의 견정혈을 제압하려고 했다. 그런데, 제갈신중은 이미 양손에 각기 한자루의 파풍도와 한자루의 분수자를 들고 있 었으므로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제갈신중은그저 상대의 혈도만을 제압하려고 했었으나 일순간 그 두개의 병기 가 상대의 양쪽 어깨에 박혀버리고만 것이었다. 일순 흑의복면인이 양 어깨에서 핏물이 솟구쳐오르면서 고통으로 크게 부릅떠 진 두 눈이 크게 확대되어 왔다. 제갈신중은 그것을 보자 문득 자신이 잔인한 짓을 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뒤로 훌쩍 물러나면 달아났다. 제갈신중은 급히 삼사장이나 뒤로 물러나면서 문득 자신이 물속에 오래 있어도 그다지 숨가쁘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정말 이상한 일이군.) 바로 그때 갑자기 그의 눈앞에 한가지 경악스러운 광경이 들어왔다. 일행중에서 그래도 가장 무공이 부족한 편인 제갈덕중이 그 순간에 가슴이 쩌 억 벌어진 채로 피를 흘리며 바닥으로 가라앉아 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직 완전히 죽지 않았는지 흑의 복면인 하나가 급히 그 뒤를 쫓고 있었다. 제갈신중은 그것을 보자 워낙에 다급한 심정에 그 흑의복면인을 향해 일지를 날렸다. 본래 이런 물속에서는 지상에서 사용하는 지법이 잘 통하지 않는 법이었다. 그런데, 막상 제갈신중이 천성지를 날리자 느닷없이 그 흑의복면인의 오른쪽 어깨가 구멍이 뻥 뚫리며, 분수자를 놓치고 그대로 물위로 달아나 버리는 것이 아닌가? (......?) 제갈신중은 거의 무소불위에 가까운 자신의 능력에 대해서 크게 놀라와 하다 가 이내 그쪽으로 신형을 날려서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는 제갈덕중의 몸을 안아 들었다. (아이쿠,이거 급하게 됐군!) 제갈신중은 제갈덕중이 숨이 아직 끊어지지않는 것을 보고 급히 물밖으로 나 가기시작했다. 그 순간에 무려 십여명이나 되는 흑의복면인들이 달려들었으나 이제는 제갈신 중으로서도 약간의 경험이 있었다. 그는 상대와 싸우지 않고 자유로이 물속을 피해다니다가 이윽고 다시 물위에 이르렀다. 제갈신중은 이번에는 물위에 올라섰어도 저번처럼 그렇게 당황해 하지는 않았 다. 이미 추격하는 흑의복면인들을 떨쳐낸 이후였기 때문에 제갈신중은 다시 제갈 금의 등에게 소리쳤다. [나는 이 사람을 건너편에 데려다 주고 다시 오겠소!] 제갈금의 등은 이미 상황이 더욱 어려워져 있었다. 하지만, 무심코 고개를 돌리다가 제갈신중이 제갈덕중을 안고서 물위에 떠있는 것을 보 고 일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 제갈신중은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즉시 물을 박차고 신형을 허공으 로 뽑아올렸다. 보통사람들은 물위에 설수도 없는 것인데 그는 물을 박차고 간단하게 허공을 날아서 건너편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이십여장의 거리를 날아서 건너편에 이르자 팽일비는 이미 그 흑의복면인을 해치우고 겨우 한숨을 돌리고있는 중이었다. [이 사람을 좀 보호해 주시오!] 제갈신중이 허공을 가볍게 날아와서 제갈덕중을 내려놓자 팽일비는 일시 눈을 크게 뜨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보이고 있었다. [......?] 제갈신중은 그와 얘기를 나눌 시간이 없어서 다시 빈손으로 강심을 향해 날아 가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한 번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다소 수월했다. 그는 강심에 이르자 그중에서도 약한 남궁녹악이 물속으로 휩쓸려 들어가는 것을 보게 되었다. 미처 나무조각을 잡을 여유가 없는 그녀는 이미 많은 상처를 입었는지 안색이 창백했다. 제갈신중은 그녀가 가장 위급하다고 보고 다가가며 소리쳤다. [걱정마시오.내가 돕겠소!] 제갈신중은 먼저 물속으로 들어가서 지력을 날려서 남궁녹악을 공격하는 두명 의 흑의복면인의 혈도를 제압했다. 그 두명의 흑의복면인들이 마혈에 구멍이 뚫려서 분수자를 놓치고 물러갈 때 문득 뒤쪽에서 다시 섬뜩한 예기가 밀려들었다. 바로 남궁녹악이 거의 탈진된 상태에서 정신없이 도리어 그를 공격하고 있는 것이었다. (빨리 처리해야지,그렇지 않으면 위험하겠군?) 제갈신중은 가볍게 그녀의 공세를 피하면서 안으로 파고 들어가서 슬쩍 그녀의 맥문을 제압하고서 곧장 물속에서 솟아올랐다. 그는 마치 물속에서 솟구친 푸른 용처럼 곧장 허공을 가로질러 날아가서 다시 팽일비의 앞에 이르렀다. 그와 같은 제갈신중의 무공의 가히 인간 같지가 않았기 때문에 팽일비는 더 욱 입을 딱 벌리고있었다. (이크, 아직도 멍청히 있다니!) 제갈신중은 팽일비가 아직 제갈덕중의 응급조치도 해주지 않은 것을 보고 즉 시 혈도를 짚어서 지혈을 시키고 심맥을 보호시킨 다음에 , 비로소 그의 몸의 온기가 점차로 돌아오는 것을 보고 팽일비에게 말했다. [팽형,이 낭자는 수혈을 짚어 놓았으니 잠시 후면 깨어날 것이오.이들을 잘 돌봐주시오!] [......?] 팽일비는 여전히 어리벙벙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제갈신중은 그것을 보고서 다시 강심으로 날아갔다. 제갈금의는 다소 고전하고 있었으나 그렇다고 혼절할 정도는 아니었다. 제갈신중은 먼저 그녀를 공격하는 두명의 흑의 복면인들을 제압한 다음에 물위로 올라와서 물었다. [금의,나와 함께 저쪽으로 가겠느냐?] 제갈금의는 사실상 이미 탈진상태여서 더 이상 고집을 부릴 수가 없었다. [정말로, 정말로 나의 오라버니인가요?] 제갈신중은 제갈금의가 몹시 믿을 수 없어 하는 것을 보고 어색하게 웃었다. [물론이다.나는 너의 둘째오라비가 분명하다.]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제갈신중은 이미 그녀의 말을 허락하는 것으로 간주해 버렸다. 그는 즉시 제갈금의를 안고서 건너편으로 물보라를 일으키며 날아갔다. 제갈신중이 다시 날아온 시간이 거의 촌각에 불과했기 때문에 팽일비는 아직 도 멍청한 표정으로 서있었다. 제갈신중은 그를 보고 한숨을 쉰 다음에 내려놓은 제갈금의에게 말했다. 그녀는 예상대로 약간의 경상을 입었을 뿐 중상은 아니었다. [남궁낭자는 내가수혈을 짚어 놓았으니 네가 잘 보살펴 주고,그리고 저기 있는 덕중이를 네가 잘 간호해 주어라!] 하지만, 제갈금의 역시 그를 바라보며 멍청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제갈신중은 그 이유가 무엇때문인지 잘 알고있었기 때문에 내심 쓴웃음을 지으 며 다시 말했다. [나는 저곳에 또 가보겠다.] * * * 제갈신중은 이미 네명의 일행을 구했다. 하지만, 막상 다시 강심에 가 보니 그는 내심으로 난처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제 남은 당설정과 황보숙한 등은 결코 그의 도움을 받으려고 하지 않을 것 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현재 그녀들의 상태는 제갈금의에 비해서 못했으면 못했지 조금도 나은 구석이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둘다 아직 혼절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녀들은 조금전에 제갈신중의 놀라운 무공을 보고 대단히 경악하는 눈치였으 나 이제는 그를 바라보는 시선에 독기가 잔뜩 어려 있었다. 어째서 또 왔느냐는 식의 눈초리들이었다. 제갈신중은 그만 주춤하며 시선을 그 옆으로 돌렸다. 일명 무림육영 가운데의 다섯사람인 남궁검민등은 지금 상태가 그래도 가장 나은 편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지금까지 각기 대여섯명의 흑의복면인들과 격렬한 혈투를 벌이고있었 으며, 전신에 나있는 상처들은 오히려 더욱 많을 정도였다. 비록 이제는 수중전에서 만이 익숙해져서 점차로 승기를 잡아가고 있었지만, 그래도 편하지는 못한 상황등이었다. 물론 이제까지 제갈신중이 많은 흑의복면인들을 제압해 주었기에 망정이지 그 렇게 않았다면 당하는 쪽은 오히려 그들이었을 것이다. 흑의복면인들이 상당히 여유를 가지고 습격해왔을 것인데, 그만하면 그 다섯명의 청년들은 대단히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고 있는 셈이었 다. 제갈신중은 보다 못해서 이윽고 제갈보중이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제 26 장. 또 한명의 이방인. 제갈신중은 곧장 제갈보중의 주위로 다가가서 예의 그 천성지로 단숨에 여섯 명의 흑의복면인들을 제압했다. 흑의복면인들은 마혈이 제압되어 전혀 무공을 사용할 수 없게 되자 황급히 물 속으로 헤엄쳐서 달아났다. 그들은 비록 상체는 움직일 수가 없어도 단지 발만을 움직여도 제법 빠르게 달아나는 것이었다. 제갈보중은 따라서 간신히 물위로 떠올라서 숨을 들이쉬며 숨을 돌릴 수가 있 었다. 제갈보중은 이미 싸우면서도 제갈신중의 활약하는 모습을 목격한 모양이었다. 그는 괴로운지 기쁜지 알수 없는 표정이었다. 그는 제갈신중을 바라보다가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형님,이제까지는 제가 잘못했다고 치죠.하지만 형님도 잘했다고는 말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어쨌든......한매를, 부탁합니다.] 제갈보중은 그 말을 남기고 나서 다시 물속으로 동료를 구하러 들어갔다. (내가 잘못했다고?) 제갈신중은 잠시 생각하다가 급히 황보숙한이 있는 쪽으로 날아갔다. 황보숙한과 당설정은 이미 거의 한계에 도달해 있었다. 만일 지상에서라면 그녀들은 그들과 상대할 수가 있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여기는 물속이고 수중전에 약한 그녀들이 이제까지 버텨온것만 해도 이미 능력 이상을 발휘한 것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황보숙한등은 이미 제갈보중의 얘기를 들은 모양이었다. 거의 탈진하여 혼절할 지경인데도 그녀들은 제갈신중을 향해 독기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모든 얘기는 나중에 하도록 합시다!] 제갈신중은 그 네명의 흑의복면인들을 제압한 다음에 거의 막무가내로 두 사람 의 맥문을 잡고서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황보숙한 등은 뭐라고 할 말이 있는 듯 했으나 이내 더 이상 기력이 없는지 그 냥 입을 다물고 말았다. ...... 제갈신중이 그 두명의 소녀들을 데리고 건너편에 이르자 제갈금의는 제갈덕중과 남궁녹악을 간호해 주고 있는 중이었다. 제갈신중은 남궁녹악의 수혈을 풀어주었고 이어 황보숙한과 당설정도 제갈금의 에게 맡겼다. 제갈금의는 가장 양호한 상태에서 구했기 때문에 비교적 가장 몸이 성한 편이 었다. 황보숙한과 당설정등도 위험하지는 않았고, 보아하니 제갈덕중도 간신히 위기 는 넘긴 모양이었다. 중상이었던 가슴팍의 상처에는 금창약이 발라져 있었고 호흡도 정상으로 돌아 오고있었다. 제갈금의는 돌아온 제갈신중을 한 번 돌아보았으나 뭐라고 말을 하지는 않았 다. 제갈신중은 그렇게 하고 나가 다시 강심으로 신형을 날려갔다. 그는 이번에 물위에 서서 아래쪽을 내려다 보며 지풍을 날려서 흑의복면인들 을 제압해 주었다. 제갈보중이 동료들을 돕고 있는데다가 제갈신중이 물 밖에서 그렇게 도와주 자 흑의복면인들은 절로 당황해져서 의외로 쉽게 무너졌다. 더러는 다섯명의 청년들에게 당하기도 하고 더러는 놀라서 그만 뿔뿔이 달아나 버리고 말았다. 격렬했던 수중의 혈투는 그렇게 끝나고 말았다. 남궁검민등은 이미 기진 맥진하여 적들이 달아나는 것을 보고서도 조금도 추 격할 수가 없었다. 제갈신중은 그 다섯명의 일행이 모두 무사한 것을 보고 이윽고 천천히 다시 건너편으로 돌아갔다. ...... 비록 싸움에는 이겼으나 누구도 그것을 기뻐하는 사람은 없었다. 제갈신중은 먼저 자신의 응혈신조에 의해 제압당한 사람들을 모두 일으켜 주고서 그들에게 일장의 연설을 했다. [당신등은 모두 본가의 응혈신조에 당했으니 앞으로 극히 몸조심을 해야할 것 이오.병을 치료하려면 칠칠은 사십구,즉 사십구일간을 땅속에 머리와 목만 내놓고 들어앉아 있되 밖으로 나와서는 아니되오.특히 술과 여자는 독약과 같 으니,살고 싶다면 반드시 삼가해야만 할 것이오.이 응혈신조에 당한 이상은 그 렇게 하지 않으면 당신들은 일주일 안에 반드시 전신의 피가 썩어 들어가 서......] 헌데 그때의 일이었다. 제갈신중은 말을 하다가 말고 입을 다물고 멍하니 넋을 잃었다. 갑자기 누런 그림자가 장내에 번뜩이더니,당백승이 자신의 채찍을 휘두르며 흑의복면인들을 죽이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크아아악!......] 그 흑의복면인들은 비록 혈도가 풀리기는 했으나 아직 거의 무공을 사용할 수 가 없는 상황이었다. 당백승은 비록 기진맥진하기는 했으나 이미 약간 숨을 돌린 상태에서 마치 날 뛰는 성난 이무기와도 같았다. 독기어린 그의 채찍이 황사만리편법을 시전하자 그 십수명의 흑의복면인의 목 숨은 일제히 추풍낙엽처럼 떨어져 버리고 말았다. 일시 이 강가에는 유혈이 낭자하고 피비린내가 진동하게 되었다. ......! 제갈신중이 멍하니 바라보고있는 사이에 당백승은 흑의복면인들을 모조리 주 살하고 나서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귀하께선 지나치게 순진하시군요.저런 자들은 살려두면 무림의 해악일 뿐이 니,오직 일벌백계로 다스려야 할 뿐이오.] [......] 제갈신중은 일시 대꾸할 말도 없었지만,그가 이내 신형을 돌리는 바람에 말을 할 수도 없었다. (이게 바로 정파인들의 진면목이라는 말인가?) 제갈신중이 한동안 넋을 놓고 물러나서 한쪽에 서있을 때 다른 일행들은 서둘 러서 다시 떠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누구도 당백승의 행위에 대해서 항의하는 사람은 없었고,오히려 더러는 그의 의사에 적극동조하는 것 같기도 했다. 실로 당백승은 염왕편이라는 별호에 걸맞는 사람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남궁녹악은 정신을 차리고 잠시 운기조식하여 기력을 약간 회복하였고 나머지 사람들도 모두 상처를 치료했다. 일행중에서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는 사람은 제갈금의였고,반면에 팽일비는 아 직도 다소 멍한 표정이었다. 누구도 말이 없었고 더군다나 제갈신중에게 다가와서 말을 건네는 사람은 하 나도없었다. 제갈신중은 그것을 보면서 자신이 아직도 일행을 따라다녀야 하는 것인가를 의문스러워 했다. (이들은 아직도 그 황소저를 만나고 싶어할 까?) 제갈신중은 자신과 일행의 사이가 너무나도 삭막하고 부담스러워 떠나는 것이 상책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지금은 일단 부상자가 너무 많으니 좀더 동행해 주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잠시후에 의식을 회복한 제갈덕중은 급조한 작은 가마위에 묶여졌고 그것을 제갈보중과 황보잠허가 앞뒤로 들어서 일행은 다시 길을 떠나기 시작했다. 그들이 떠나가는 이 조하의 강가에는 아직 거두지 않은 흑의복면인들의 시신 들이 남아서 참혹상을 더해주고 있었다. 이제 잠시후면 다른 흑의복면인들이 나타나서 그들의 시신들을 수습해갈것이 다. * * * 일행은 부상자들이 있기 때문에 더욱 천천히 신법을 펼쳐서 나아갔는데 제갈신중은 가장 뒤에 쳐져서 뒤따라가면서 내심 무거운 침묵을 의식하며 쓸 쓸해 했다. 이럴 때는 차라리 팽일비의 쓸데없는 말장난이 그리워지기까지 했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가 더욱 굳게 입을 다물고 있는 상황이었다. 겉으로 보기에, 제갈신중의 능력이 드러남으로 인해서 가장 많은 충격을 받은 사람은 그인 듯 했다. 얼마전에 먼저 조하를 건너서 떠나갔던 현송도장의 자취는 찾을 수가 없었다. 일행은 삼사십리를 달리다가 이윽고 어느 작은 계곡의 앞에 이르러서 점심식 사를 할 겸해서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역시 강호는 험난한 곳이다. 그들은 오늘은 이미 두 번이나 험한 꼴들을 당해야만 했다. 그 계곡의 물은 맑고 시원해서 쉬어가기에는 아주 적격이었다. 제갈신중은 자신이 직접 건량을 가져오지 않았기 때문에 그저 한쪽에 물러나 서 몇모금의 계곡물만 마셨다. 역시 식사를 하게 되면 사람의 긴장도 풀어지는 것인지,그제서야 일행의 몇몇 은 식사를 하며 얘기를 나누기 시작하고 있었다. 제갈신중은 자신이 능력을 보이기 이전보다 더욱 입장이 곤란해졌다고 생각했 다. 헌데, 잠시후에 제갈금의가 문득 그가 앉아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 그녀는 가볍게 미소하며 제갈신중에게 약간의 건량을 내밀었다. 말린 만두와 육포조각 같은 것들이었다. [드세요.] 제갈신중은 절로 어색해져서 그 건량을 받으면서 물었다. [모두들 무사하냐? 너도?......] 제갈금의는 웃으며 건성으로 대답했다. [모두 무사해요.그리고 나도요.] 제갈신중은 그녀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맞받을 수가 없어서 절로 고개를 돌리며 다시 말했다. [그렇다면, 다행이다.] (......) 제갈금의는 잠시 더 제갈신중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다시 말없이 돌아갔다. 잠시 후에, 식사시간으로 인해 누그러진 분위기 속에서 일행은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헌데 일행이 겨우 사오십리 정도나 달렸을 무렵의 일이었다. 하나의 완만한 계곡의 입구에 도달했을 때 앞서서 길을 인도하던 남궁검민이 문득 아,하고 놀란 소리를 질렀다. (.....?) 일행은 모두 의아해져서 앞쪽으로 시선을 보냈고,제갈신중 역시 급히 앞으로 나아갔다. 그 계곡에 다가가자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것은 피비린내였다. 일행은 이미 조금전에 격렬한 싸움을 벌이고 온 상황이기 때문에 그러한 피비 린내에는 다소 익숙했다. 그 계곡의 안쪽에는 정말로 일견하기로도 수십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시신이 어지러이 널려있었다. 하지만, 남궁검민이 그저 단순히 그런 시신들을 보았다고 해서 놀랄 사람은 아니었다. 그 시신들의 대부분은 홍포를 걸친 사람들의 것이었고,거기에 더러 도인들의 시신도 끼어 있었다. 그 도인들의 시신은 하나같이 장검을 들고 잇었던 사람들이었고, 그 장검에는 소나무의 문양이 양각되어 있었다. 앞으로 나서서 그 도인들의 시신을 살피던 당백승이 말했다. [무당파의 도사들이군!] 황보잠허가 그 말을 듣자 의아해 하며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상한데?어째서 이 시신들을 그대로 두었지?] 그렇다. 상식적으로 무당파는 명문정파이며 자파의 사람들이 위난을 당하게 되면 즉시 수습을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지금 이렇게 그 시신들이 그렇게 방치되어 있다고 하는 것은 두가지의 경우에 한하기 마련이다. 하나는 무당파에서 전혀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거나 다른 하나는 비록 알고 있기는 해도 무당파에서 그럴 겨를이 없을 경우이다. 일행은 이미 얼마전에 현송도장이 이 부근을 지나갔던 것을 알고 있었다. 제갈보중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다면,지금 무당파에서 심한 위난을 당하고 있다는 말인가?] 시신들의 몸에서는 아직 피가 흘러내리고 있어서 그다지 죽은지가 오래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수 있게 했다. 당백승이 남궁검민에게 물었다. [남궁형,어떻게 하겠소?] 남궁검민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이 길은 기왕에 우리가 나아가던 길이었으니 좀더 가보면서 상황에 따라서 결정하도록 합시다.] 당백승은 즉시 동조했다. [아,그게 좋겠군.] 황보잠허가 제갈보중에게 물었다. [제갈형,혹시 이 홍포인들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소?] 제갈보중은 묵묵히 생각하고 있다가 대답했다. [나는 한가지의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소.] (......?) 황보잠허가 놀라며 물었다. [아니 그렇다면 ......저들은 바로 태양마교의 사람들이라는 말이오?] 당백승이 나서서 말참견을 했다. [저번에 만난 그 사람들의 무공이 형편없지 않았소?] 제갈보중은 대꾸했다. [나는 과거에 그 태양마교가 붉은 옷을 표기로 했었다는 것을 들은 바가 있소. 지난번에 비해 이번의 자들은 정말로 태양마교의 사람들일지도 모르오.] 그렇다. 무림의 명문 무당파를 맞이하여 이렇게 서로간의 사망자가 발생할 수 있었다 는 것은 그만큼 상대의 능력들이 뛰어나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황보잠허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면서 당백승에게 말했다. [사실,아까 조하의 강가에서 싸울 때 당형께서는 그들 가운데 최소한 한명은 남겨서 소속을 물어 보았어야만 했소] 당백승이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모르시는 말씀.그런 자들이 쉽게 대답할 것 같소?게다가 그런 자들은 대개가 입속에 극독을 넣어가지고 다니면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것이오.음...... 내가 보기에는 그들은 역시 그 일월신교의 무리들이 맞소.] 황보잠허는 말했다. [하지만 그들이 동심교의 무리들일 수도 있지 않소?게다가 혹은 정작 태양마 교의 인물인지도 알수가 없는 일이고.] 당백승은 말했다. [그러한 문제에 대해서는 쉽게 판별할 수가있소.황보형께서는 그들의 요사스러 운 무공을 보지도 못했소?그것은 소문에 듣던 일월신교의 일월건곤대나이가 분명하오.그 일월건곤대나이에는 내공과 외공이 있는데,그중에서 내공은 운기 법문이지만 외공은 변칙적인 무공초식이라고 들었소.] 황보잠허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 역시 그러한 점을 들어서 알고 있지만,아까 보아하니 그들은 저마다 기질 도 다르고 병장기를 쓰는 방법도 달라서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고 생각했었소.] 남궁검민이 듣고 있다가 제갈보중에게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제갈형이 보기에는 어떻소?] 제갈보중은 곰곰히 생각하는 듯 하다가 대답했다. [아직 불확실하기 때문에 쉽게 단정을 짓는 다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느낌이 드오.특히 이 부근에서 그 무리들이 거의 동시에 출몰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 의 연관성을 간과할 수가 없는 노릇이며,아무래도 좀더 시간을 두고 생각해봐 야 알 수가 있을 것 같소.] ...... 제갈보중의 말을 듣고 나서 일행은 저마다 이 상황이 간단치 않다고 느꼈는지 일제히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남궁검민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제갈형의 말이 나의 생각과 같소.자,그럼 우리는 좀더 앞으로 나가보도록 합 시다!] * * * 그 계곡은 그다지 깊지도 않았고 또한 길게 이어지지도 않았다. 하지만, 계곡이 끝날때까지 시신들의 행렬은 이어지고 있었고 그 특색도 달라졌다. 갈수록 홍포인들의 시신은 많아진 반면에 무당파 도인들의 시신은 적어지고 있었다. 그것은 홍포인들이 숫적으로 우세한 반면에 무당파의 사람들은 정예들이라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일행은 갈수록 의문이 커졌다. 대체 무당파에서는 어떤 문제가 있길래 이런 시신들을 수습하지도 않고 떠나 간 것일까? 좀더 상황을 추적하고 싶었으나 안타깝게도 계곡이 끝나자 시신들의 행렬도 끝이 나서 더 이상 다른 흔적들을 찾을 수가 없었다.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현송도장을 찾았으나 다행히도 그 시신들 가운데 현송 도장의 시신은 보이지않았다. 그렇다면 현송도장은 아직 살아있을 가능성이 많은 것이다. 대체 그럼 그 현송도장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일행은 가능한한 모든 정황들을 분석하여 그러한 모든 의문점들을 해결하려고 했으나 쉽지 않았다. 단지, 계곡이 끝나는 장소에 이르렀을 때 뜻하지도 않게 일행은 한명의 낯선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지금 일행중에서 가장 키가 큰 사람은 남궁검민으로 육척이나 되었다. 남궁검민은 키가 육척이나 되고 또한 체격이 늘씬하여 매우 헌칠하게 느껴지 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만일 남궁검민처럼 커다란 키를 가지고서 다시 우람한 근육질의 체격을 가지 고 있다면 그사람은 전체적으로 거대한 사람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일행은 갑자기 그렇게 자신들의 앞에 나타난 거대한 체구의 백의중년인을 보 고 문득 기묘한 느낌을 받았다. 그 기묘한 느낌은 결코 그가 체격이 크다고 해서 느껴지는 것은 아니었다. 다름이 아니라,그는 바로 두 눈이 푸름색을 띠고 있는 색목인이었던 것이었다. 그 색목인은 등뒤에 한자루의 장도를 멋들어지게 매달고 있었는데 일견하기로 도 중원인은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일행을 만나자마자 특시 유창하게 중원어를 해대는 것이었다. [너희들은 어느 문파의 사람들인가?] (......?) 제갈신중은 그 백의 중년인을 보게 되자 문득 한사람이 뇌리에 떠올랐다. 그 살마은 흑의를 입고있었고 장검을 차고 있었으며 제갈신중에게 말을 찾아 준 사람이었다. 그 흑의중년인의 나이는 이 백의중년인의 나이와 비슷했다. 하지만, 제갈신중의 뇌리에 갑자기 그 사람이 떠오르게 된 것은 그저 단순한 서로 나 이가 시슷했기 때문일까? 아닐 것이다. 우선 눈에 띄는 두사람의 또다른 공통점은 둘다 중원인은 아니면서 게다가 중 원어에 아주 능숙하다는 사실이었다. (상관구패라고 했던가?) 남궁검민은 한눈에 이미 상대방의 기도가 범상치않다는 것을 알아 보았다. 그는 즉시 앞으로 나서며 포권하며 대답했다. [후배의 이름은 남궁검민이옵고,저희들은 모두 무림오대세가의 사람들입니다. 선배님께서는 함자가 어떻게 되십니까?] 백의중년인은 빙그레 웃으며 일행을 한차례 돌아보며 대답했다. [나는 곽자성이다.] 사람들은 그 백의중년인에게 어엿한 중원식의 이름이 있는 것을 보고 더욱 이 상하게 생각했다. (곽자성......역시 특이한 이름이로군.] 남궁검민은 포권하며 다시 말했다. [그러시군요.헌데,선배님께서 지금 저희들의 앞길을 가로막으신 것은 대체 무 슨 연유이십니까?] 백의중년인 곽자성은 담담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금방 이유부터 묻다니 꽤나 빡빡한 녀석이로군. 좋다!내가 지금 너희들에게 묻고자 하는 것은 바로 한 사람의 행방이다.] 남궁검민은 그래도 강호의 무림육영의 첫째둘째는 다투는 사람이었다. 상대가 제아무리 선배라고 해도 감히 그에게 함부로 반말을 하는 것은 경우에 맞지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남궁검민은 차분한 성격 그대로 조금도 화내지 않고 즉시 다시물었다. [실례지만,지금 선배께서 찾고자 하는 분은 어떤 사람입니까?] 곽자성은 즉시 대답했다. [그 사람은 얼굴에 가면을 쓰고 있는 데 네명의 노인들과 함께 다니고 있다.가 장 특징적인 점은,그들의 무공이 높다는 것이지.] 제갈신중은 그 얘기를 듣자 일순 깜짝 놀랐다. 보아하니, 느닷없이 만난 이 백의의 색목인이 황원원 등을 찾고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 다. 그 황원원은 기실 세외팔세의 하나인 성수곡의 주인으로서 무공이 대단한 사 람인데 이 색목인이 그녀를 알고 있다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남궁검민등은 잘 알 수가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기실 강호에서 그러한 이유만으로 사람을 찾아낸다는 것은 쉬운 노릇이 아니 기 때문이었다. 헌데, 마악 남궁검민이 입을 열어 대답하려고 하는데 일행의 뒤쪽에 서있던 제갈신 중이 먼저 입을 열었다. [당신은 어째서 그들을 찾고 있는 것입니까?] 실상, 제갈신중이 느닷없이 나서서 그러한 질문을 한 것은 바로 자신이 그녀에 대해 서 호기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보아하니 이 백의중년인은 그다지 사악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에 혹시 그녀에 대해서 좀더 알수가 있을 까 해서 질문한 것이었다. 헌데 바로 그때의 일이었다. 일행은 대낮의 햇살아래 갑자기 눈앞의 백의중년인의 신형이 앞으로 길게 늘 어지는 것 같은 착각을 느꼈다. 그런데, 느닷없이 바로 다음 순간에 그 백의중년인은 어느새 제갈신중의 코앞에 도착 해 있는 것이 아닌가? .....! 일행은 갑자기 그와 같은 백의중년인의 놀라운 신법을 보고는 경악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일순 너무나도 경악하여 상대가 자신들의 속으로 스며들어와 있다는 사실에서 잊어 버릴 지경이었다. 제갈신중 역시 별로 예외는 아니었다. 상대방이 느닷없이 자신의 앞에 불쑥 나타나 있는 것을 보고 그는 깜짝 놀라 서 뒤로 넘어질 뻔했다. [네가 그녀를 아느냐?] (......?) 제갈신증은 상대가 황원원이 여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확실히 그녀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단지 아직은 확신할 수는 없다고 생각되어 간단하게 얼버무렸다. [안다고 할 수도 있고 모른 다고 할 수도 있소.] (......) 백의중년인은 다소 기이하다는 듯이 제갈신중을 바라보다가 다시 물었다. [너의 그 말뜻은 뭐냐?] 제갈신중은 마침 일행의 시선도 집중되어 있었으므로 모두에게도 해명할 겸해 서 대답했다. [사실 그 사람은 한 번 우리들을 구해준 적이 있고 마침 우연히 내가 그 사람 의 얼굴을 볼 수가 있었을 뿐이오.나는 그를 친구로 여기고 있는데,그 이상은 별로 아는 것이 없으니 어찌 안다고도 모른다고도 말할 수가 있겠소?] ......? 일행은 느닷없이 제갈신중이 그러한 말을 하는 것을 보고 하나같이 놀랍고 의 아하게 생각했다. 백의중년인은 기이한 눈초리로 제갈신중을 주시하며 다시 말했다. [너는 말을 교묘하게 하고 있는데,그렇다면 네가 조금전에 나에게 질문한 것은 무슨 이유에서이냐?] 제갈신중은 내심 기다렸다는 듯이 손짓으로 일행을 가리켰다. [나는 마침 저들이 나의 그 친구를 만나보고 싶어 하기에 그녀를 찾아서 저들 과 대면시켜주고 싶었기 때문이오.] ......! 일행은 그제서야 제갈신중이 말했던 그 황의중년인의 모습을 한 친구가 바로 백의중년인이 찾는 사람이며, 자신들을 은밀히 구해주었다는 그 사람이 뜻밖에도 여자였다는 사실에 매우 기이하게 생각했다. 백의중년인은 이에 약간 싱겁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니까 너도 실은 그녀를 찾고 있었다는 말이로군.하지만 실로 너와 같은 애송이가 그녀를 알고 있다니 이상한 노릇이구나.] [......] 제갈신중은 그 곽자성이 천천히 고개를 돌리는 것을 보고 내심으로 이렇게 생 각했다. (천하에 이와 같은 사람들이 늘어나다니......혹시 이들도 세외팔세의 주인들이 아닐까?) 남궁검민 등의 일행은 이순간 부상당한 사람이 있어서 곽자성과 같은 낯선 사 람과 어울리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따라서, 빠르게 생각을 굴린 즉시 곽자성이 신형을 돌리는 것을 보고 포권하며 말했 다. [알고보니 선배님께서는 그런 분들을 찾고 계셨었군요?하지만 지금은 그런 분 들의 위치를 알지 못하므로 이만 작별을 고할 까 합니다.] (......) 곽자성은 남궁검민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문득 웃으며 대꾸했다. [너는 보기에 체격은 좋아 보이는 데 마음은 너무 째째해 보이는 구나.무릇 사 내대장부라면 가슴이 넓어야 하는 것이지.] 남궁검민 등은 이제까지 이와같은 무림고수의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했다. 하지만, 조금전에 놀라운 한수를 직접 목격했기 때문에 감히 따지지 못하고 다시 포권 하며 말했다. [후배가 불민한 것은 송구스럽습니다.하지만 저희들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제 27 장. 느닷없는 대혈전. 그런데, 곽자성은 그 말을 듣자 이내 고개를 가로젓는 것이었다. [아니야.나는 이제부터 너희들과 동행을 하려고 생각하고 있으니 나에게 그런 인사를 할 필요는 없다.] 남궁검민은 그말에 그만 어리둥절해지고 말았다. (......?) 황보잠허가 그것을 보고 나서서 물었다. [선배님께서는 어째서 하필이면 저희들과 동행하려는 것입니까?] 곽자성은 황보잠허를 돌아보더니 기이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 이유를 대라면 못할 것이 없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는 것을 좋아하지,따라서 나는 너희들이 나를 좋아할 때까지 따라다닐 생각이다.] 당백승은 분명 이자가 자신들에게 시비를 걸고 있다고 생각하고는 전신의 공 력을 끌어올리며 나섰다. [그렇다면 당신은 아마도 죽을 때까지 우리들을 따라다녀야 할 것이오.] 곽자성은 당백승을 돌아보며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그렇지는 않다.오히려 나는 너희들이 잠시후에는 나를 좋아하게 될 것 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당백승은 다시 물었다. [그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다는 말이오?] 곽자성은 그를 바라보더니 담담하게 웃으며 다시 말했다. [무엇에 대해서 확신한다는 것은 오로지 나의 판단이지 다른 사람에게 그 이 유를 설명해줄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너희들은 감히 그와 같은 하찮은 무공 으로 나를 상대할 수가 있다고 생각하느냐? 상대를 두려워하지 않는데 내가 무엇 때문에 거짓말을 하겠느냐?] 남궁검민이 다시 나서서 포권하며 말했다. [그렇다면 선배님께서는 어째서 저희들이 선배님을 좋아하게 될것이라는 것입 니까?] 곽자성은 웃으며 대답했다. [그것은 바로 지금 너희들이 궁금해하는 장소를 가르쳐 줄수 있을 것 같기때 문이다.너희들도 지금 누군가를 찾고있는 상태가 아니냐?] 남궁검민은 놀라서 다시 물었다. [정말이십니까? 선배님께서는 정말로 무당파의 도인들이 있는 장소를 알고 계 신다는 말입니까?] 곽자성은 담담히 웃으며 한쪽의 언덕을 가리켰다. [확실히 그들인지 장담할 수 없지만,지금 나의 귓가에 가까이에서 싸움을 벌이 고 있는 것이 들리는 것은 사실이다. 자,나를 따라오겠느냐?] 곽자성을 그렇게 말을 마치자 이내 그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일행은 그러한 것을 보고 일순 어리둥절해지지 않을수가 없었다. 뜻밖에도 현송도장 등의 행적을 알 수 있는 기회를 만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 다. 현재 일행의 상황으로서는 부상자가 많아서 누구를 돕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 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지금 현송도장등이 위기를 당했을 지도 모르는데 그냥 지나쳐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일행은 저마다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이윽고 그쪽으로 따라가기 시작했 다. * * * 곽자성은 한참을 천천히 나아가다가 이윽고 일행이 뒤쫓아오는 것을 보고 뒤 돌아보고 웃으며 말했다. [의리를 그렇게 중시하다니 너희들은 정말로 중원의 명문정파의 사람들이로 군.] 당백승이 냉랭하게 말을 받았다. [당신이 만일 거짓말을 하였다면 우리는 결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오.] 곽자성은 이에 싸늘하게 안색을 바꾸며 말했다. [너희들이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하하,네 녀석은 정말로 분수를 모르는구나. 비단 너희들 뿐만 아니라 설령 너희 오대세가의 사람들이 전부와도 나에게 감히 그런 말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당백승은 그 말을 듣자 두눈에서 독기를 내뿜었으나 감히 정말로 반박하지 못 했다. 황보잠허가 나서서 말했다. [하지만 당신이 말한 것은 잘못이오.우리 오대세가에도 인물은 있다는 것을 알 아야 할 것이오.] 곽자성은 가볍게 웃었다. [하하,현재의 영웅맹주인 제갈류량을 가리키는 모양이로군?하기는 그는 약간 뛰어나다고 할 수가 있지. 하지만 지금 너희들과 같이 겨우 절정경지에 도달 해 있는 무공으로는 감히 나에게 큼소리를 칠 수가 없다는 말이다!] 황보잠허는 그 얘기를 듣고 내심 의아해 하며 생각했다. (아까 보아하니, 저 제갈신중의 무공은 결코 절정경지가 아닌 그보다 훨씬 뛰 어나 보였다.그의 무학의 최소한 백연탄의 경지에 올라있을 것이다.헌데 그는 어째서 우리 모두를 절정경지라고 말하는 것일까?) 일반으로 무공이 뛰어난 고수는 고수를 알아보게 된다고 했다. 그것은 상대방의 기도나 무형지기로 인해 상대방의 무공경지를 알아보게 되는 것인데, 물론 무공이 뛰어난 고수일수록 그러한 평가가 정확하게 되어 있었다. 상식대로라면 이 곽자성의 무공은 대단할 것이므로 당연히 제갈신중이 최절정 이상의 무공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봤어야 했다. 하지만, 왠지 지금 곽자성은 제갈신중이 특별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조차 간파 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황보잠허는 이어 생각했다. (혹시 이 곽자성이라는 자의 무공이 사실은 별볼일 없는 것이거나,아니면 저 제갈신중의 무공이 상상외로 뛰어난 것이 아닐까?) 분명히 가까운 곳이라고 했었지만 정작 곽자성이 일행을 데려간 곳은 상당히 먼곳이었다. 일단 언덕위에 올라서 험한 숲속으로 대략 십여리는 나아간 것 같았다. 정말로 곽자성이라는 사람이 그토록 먼거리에 있는 소리를 들었을까하는 의구 심이 남을 정도였다. 하지만, 일행은 막상 하나의 안개가 가득 뒤덮힌 깊은 계곡의 앞에 이르게 되자 곽자 성의 말이 혹시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계곡안에서는 지금 한창 치열하게 벌어지는 격전음이 들려오고 있었기 때문 이었다. 온갖 비명소리와 병장기가 부딪치는 소리들 중에서도 더러 아주 괴이한 쥐어 짜는 듯한 소음들도 들려오고 있었다. (......?) 일행은 그러한 소음들을 듣자 주저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이내 다시 생각을 정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름이 아니라, 바로 그 입구의 앞쪽에 역시 무당파의 도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시신이 두어 구나 늘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행은 비록 별로 남을 도우려는 생각은 없었지만 그것을 보자 즉시 안으로 들어서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행히도 그 곽자성이라는 사람은 그 계곡을 들어가는 일에 있어서도 앞장을 서 주었다. ...... 그 계곡은 지독히도 험난한 지형이었고 게다가 운무가 가득히 끼어 있어서 안 으로 진입하기가 용이하지 않았다. 하지만, 불행중 다행인 것은 바로 일행이 안으로 들어가도 그들을 제지하는 자들이 없 다는 사실이었다. 단지 일행을 맞이하는 것은 장검에 의해 도륙된 홍포인들의 시신과 도인들의 얼마되지 않는 시신들 뿐이었다. 그런데, 문득 도인들의 시신을 살피던 제갈보중이 말했다. [이제는 분명해졌군.] 남궁검민은 곽자성의 뒤를 따르다가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뭐가 분명해졌다는 말이오?] 제갈보중은 대답했다. [나는 아까 그 시신들의 가슴이 약간 그을려 있는 것을 보고 긴가민가 했었는 데, 지금 이 시신들을 보니 가슴이 불에 탄 자국이 완연하오.최소한 여기에 지 금 그 태양마교의 무리들이 있는 것은 확실하다는 말이오.] (......!) 과연 제갈보중의 말대로 도인들의 가슴이나 옷자락이 눈에 띄게 검게 타있는 것이 보였다. 남궁검민은 놀라서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저 것은 바로 석년의 그 유명했던 태양마장공에 당한 흔적이란 말 이오?] 제갈보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과거 그 태양마장은 태양마공과 더불어 태양마교의 유명했던 독특한 무공들이 었다. 그 태양마장은 장심에 불길과도 같은 뜨거운 열기를 응집시켜 펼쳐낼 수가 있 기에, 검게 타있는 것만 보고서도 제갈보중은 그 무공을 추측해 낸 것이었다. 헌데, 앞서가던 곽자성이 그 얘기를 들었는지 고개를 돌리면서 문득 이렇게 말했다. [제대로 보기는 하는군.하짐나 아직 놀라기는 이르다.이 입구만 지나가면 좀더 놀라운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말이야.] [......!] 과연 곽자성의 그 말은 사실이었다. 불과 촌각의 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일행이 입구를 지나 하나의 작은 분지에 이르렀을 때, 일행은 그만 크게 놀라서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뻔했다. 그 작은 계곡 속의 분지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주위에 급조한 듯한 많은 건물들이 불타서 화광이 충천하는 가운데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물론 한편인 무당파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무당파의 사람들이라는 것은 이미 익숙해진 복장 뿐만 아니라 그 가운 데 낯익은 현송도장이 섞여 있다는 사실만으로 분명히 알수 있었다. 현재 무당파의 도인들은 대략 두패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하나는 이삼십명의 도인들로 구성된 커다란 검진이었고, 다른 하나는 모두 일곱명의 도인들로 구성된 작은 검진이었다. 그 대검진은 중년의 도인들로 이루어져 있었고 그에 반해 소검진은 초로의 도 인들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소검진은 비록 숫자는 훨씬 적었으나 오히려 활약은 더욱 눈부셨다. 대검진은 둥글게 커다란 원을 그리면서 마치 태극의 모양이 돌아가는 것 같았 지만, 소검진은 마치 일곱명의 사람들이 북두칠성의 모양을 갖춰가며 돌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 멀리서 보자니 그 북두칠성 모양의 소검진은 마치 살아있는 용이 이리저리 눈 부시게 날뛰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일행은 이미 무당파에 유명한 두가지의 검진이 있다는 얘기를 들은 바가 있었 으므로, 바로 그 두가지의 검진이 무당파의 그 유명한 양의검진과 칠성검진이라는 것 을 알아차렸다. 양의검진은 무당파의 일대제자들이 펼치는 것이고 칠성검진은 장로들이 펼치 는 것이다. 일행은 이미 현송도장이 그 칠성검진 속에 들어있다는 것을 알아보았다. 보아하니, 양의검진을 펼치고 있는 무당파의 일대제자들만 해도 이미 무공이 절정경지에 올라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이삼십명이 일제히 십여장의 거리를 단숨에 오가며 허공에 무수한 검 화를 뿌려대는 것이, 그양말로 검기충소라는 말을 연상케하여 정말로 구파일방 가운데의 무당파의 놀라운 저력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았다. 양의검진이 장내에 눈부시고 화려한 검광들을 뿌려대고 있는 것이라면 그에 반해 칠성검진은 오히려 조용하고 표홀했다. 그것은 마치 구름 속의 신룡이 꿈틀거리는 듯 대번에 이삼십장을 오가며 무수 한 적들을 거꾸러뜨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기실 현재 두곳으로 분리되어 있다고는 하나 장내는 거의 다른 편인 홍포인 들의 천지였다. 그들의 숫자는 어림잡아도 수백명에 달할 것 같았으며 장내를 온통 뒤덮고 있 었다. 게다가 그들은 뜻밖에도 무공도 대단하여 한편으로는 뜨거운 장력을 발출시키 고 다른 한편으로는 병기를 휘둘러대곤 하여, 무당파의 도인들이 그렇게 무섭게 공격을 해도 마치 거대한 바다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광란하는 파도속에서 두 개의 배가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는 듯한 광경과 흡사했다. 일행은 그 홍포인들이 그렇게 계속해서 죽어가면서도 여전히 일사불란한 흐름 을 유지하고 있는 것에 의아해했다. 허나 그것은 알고보니 그들이 하나같이 입으로 뭐라고 주문을 외고 있기 때문 이었다. 바로 아까 입구에서부터 들었던 그 쥐어짜는 듯한 듣기싫은 소음들이 그것이 었는데 놀랍게도, 홍포인들은 모두가 도취되기라도 한 듯이 그러한 주문을 외며 죽음도 두려워 하지 않고서 무공을 펼치는 것이었다. 홍포인들의 병장기는 모두가 각각이었고 거기에서 펼쳐지는 무공들 역시 아주 다양했다. 그러나 역시 그들의 무공 가운데에서 가장 위력적인 것은 바로 그 태양마장이 라는 것인 듯 했다. 그들의 손바닥은 하나같이 마치 옷 색깔처럼 시뻘겋게 변해 있었는데, 일단 그들이 붉은 장력이 발출되면 무당파의 도인들은 마치 독을 대하기라도 하듯이 서둘러 피하곤 하는 것이었다. 일행은 뜻밖에도 그와 같은 일평생에서 다시 보기 어려운 주술적이고도 소름 끼치는 광경을 보게 되자, 크게 놀라는 한편으로 무학상의 호기심도 일었다. 이 홍포인들을 대체 누가 지휘하고 있는 것일까 하고 장내를 둘러보다가 일행 은 문득 가장 안쪽에 서있는 한명의 홍포인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홍포인은 다소 특이하게도 가슴에 황금빛의 태양을 새겨놓고 있었는데 그 의 주위에는 대여섯명의 홍포인들이 호위하듯이 늘어서 있었는데 마치 그들의 주위에 홍염이 이글거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칠성검진을 펼치고있는 무당파의 장로들은 은연중 그곳으로 다가 가려고 하는 것 같았는데 그것이 잘 되지 않았다. 홍포인들의 무공은 그다지 높은 것 같지 않았지만 그 괴이한 주술의 마력이 작용하여 무당파 도인들의 공격을 저지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마도, 이곳은 태양마교의 어느 한 본거지 였는데 무당파의 도인들이 이곳을 발견하 여 이제 본격적인 혈전이 벌어지게 될 모양이었다. 태양마교는 현재 무림에 커다란 해악을 끼치고 있으므로 무당파에서 그들을 제거하려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했다. 칠성검진을 펼치고있는 장로들은 아직 건재하고 있었지만 양의 검진을 펼치고 있는 일대제자들은 홍포인들의 거대한 저항에 가로막혀서, 상대를 죽이기도 하지만 자신들도 간혹 심한 부상을 입거나 죽어가기도 하고 있었다. 대체적으로 장내의 상황은 무당파에게 있어서 그다지 유리하지는 않은 것 같 았다. 일행은 지금 이러한 상황에서 자신들의 힘이 거의 무당파에 도움이되지 않으 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은 명문정파의 사람들이므로 그렇다고 이렇게 멀쩡히 서서 구경만 할 수 는 없었다. 그런데, 마악 남궁검민 등이 앞으로 나서서 장내에 뛰어들려는 순간에 곽자성이 문득 그것을 가로막으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잠깐,너희들은 굳이 나설 필요가 없다.곧이어 형세가 달라지게 될 테니......] 지금 칠성검진을 펼치고 있는 무당파의 장로들이 그렇게 거대한 위세에도 불 구하고 거의 맥을 쓰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이미 말했듯이 홍포인들의 장력과 그 기이한 주문에 있었다. 그 주문에 의해 무형의 화염이 거대한 벽을 형성하고 있는 것 같았고 무당파 의 장로들은 마치 그것이 두려운 듯이 거의 효과적인 공격을 하지 못하고 있 는 것이었다. 팽일악은 곽자성의 말을 듣고 의아해져서 즉시 물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 곽자성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입을 다문 대신에 느닷없이 장내의 상황이 일변하여 정말로 그 대답을 해주었다. 일행은 처음에는 양의검진의 뒤쪽을 별로 유심히 살펴보지 않았었는데,문득 그뒤에서 한 사람이 걸어나왔던 것이었다. -거지 그 사람은 지금의 이러한 상황에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도 않은 늙고 초라해 보이는 거지였다. 허리는 약간 구부정하니 의기소침해 보였고 의복은 더러웠으며 등에 하나의 커다란 술호로를 매고 있었다. 봉두난발한 머리카락 아래 두눈은 약간 취한 듯 거슴츠레해 보였는데 코는 약 간 딸기코였다. 일행은 처음에는 어째서 그 보잘 것 없어 보이는 한 명의 늙은거지의 등장이 그토록 시선을 끄는 것인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어 그들은 분명히 깨달을 수가 있었다. [무공이 뛰어난 사람들은 간혹 그 뛰어난 기도 때문에 돋보이게 되는 것이지. 그런데 너희들은 저 늙은 거지에 대해서 알고 있느냐?] 곽자성이 다시 그러한 질문을 던졌을 때 남궁검민은 그제서야 다소 놀란 표정 을 감추고서 공손히 대답했다. 그는 곽자성이 정말로 사람을 잘 알아보는 것을 보고 실로 그가 능력자라는 것을 인정한 것이었다. [예, 그 분은 바로 현재의 개방의 태상장로이신 호연신개 동방청이라는 분입니 다.] 곽자성은 그 말을 듣자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아는 체를 했다. [아하,바로 그 전대의 영웅맹주였던 동방청이라는 말이군?] (......?) 남궁검민 등은 곽자성이 그렇게 아는 체를 하자 오히려 어리둥절해 했다. 기실 그 전대맹주의 얘기는 이미 오래된 강호의 비사로서, 그러한 내막마저 훤하게 알고 있는 듯한 상대방의 신분이 크게 의아스러웠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본래 그 영웅맹에는 이제까지 모두 세명의 전대맹주들이 있었는데, 초대의 영웅맹주는 사십년 전 당시 사십대 초반의 소림사의 기재였던 만공선 사가 맡았었다. 당시 초대의 영웅비무대회는 아주 치열하여 최후에 만공선사는 옥허라고 하는 무당파의 도인과 우승을 다투게 되었는데, 만공선사는 거기에 승리하여 초대의 영웅맹주가 되었던 것이었다. 당시 비무대회에서 패한 옥허진인은 크게 절치부심하여 십년 후의 비무대회를 노리게 되었는데, 그러나, 정작 만공선사는 십년의 세월이 지나자 불심이 깊어지고 야심이 사라져서 스 스로 맹주직을 사퇴하였으므로, 옥허진인은 자연히 이대의 영웅맹주가 되게 되었다. 당시에 만공선사와 옥허진인은 발군의 능력자들이었으므로 두 사람을 상대할 사람들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옥허진인이 역시 십년의 세월이 흐르자 맹주직에 욕심이 없어졌는지 스스로 물 러나게되었고, 그 뒤를 이어 비무대회에 우승하여 제삼대의 영웅맹주가 된 사람은 바로 개방 이 낳은 기재 호연신개 동방청이었다. 당시 동방청은 사십대 중반의 한창때였으며 개방은 그로 인해서 한때 번성기 를 누리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다시 십년이 지난 지난 십년 전에 허망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동방청은 전대의 두 맹주와는 달리 이미 자신의 능력을 자신하고 영웅맹주의 직위를 연임할 욕심을 품었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그의 앞에 한명의 기재가 나타났으니,그가 바로 현재의 영 웅맹주인 제갈류량이었다. 당시 동방청은 최후의 비무에서 제갈류량에게 패했으므로 스스로 그것을 괴로 와 했다. 그는 만공선사,옥허진인과함께 영웅맹의 태상봉공에 추대되었으나, 스스로 부끄럽다고 하여 영웅맹을 나서서 술을 벗삼아 천하를 유랑하는 풍진 이인이 되어 있었다. 남궁검민 등도 평소에 거의 행적이 묘연하던 그를 이곳에서 보게 될 줄은 뜻 밖의 일이었다. 호연신개 동방청은 과연 장내에 나서자 상황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그는 앞으로 나서자 마자 등뒤에서 술호로를 끌어내어 한 모금씩 술을 마시고 홍포인들에게 내뿜었는데,순간 치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홍포인들이 펼친 무 형의 화염들이 삽시간에 구멍이 뚫려버리는 것이었다. 그것은 마치 겉으로 보기에는 물로 불을 끄고 있는 것과도 같았다. 일단 그렇게 무형의 장벽에 구멍이 뚫리게 되자 자연히 크게 세력을 떨치게 된 것은 무당파의 도인들이었다. 특히 칠성검진을 형성하고 있는 무당장로들은 이내 십수명이나 제거하면서 바 싹 우두머리가 있는 쪽으로 다가들기 시작하고 있었다. [으아악!-] 동방청이 여기저기에 술을 내뿜어 장난처럼 무형의 벽을 무너뜨리자 자연 홍 포인들은 크게 주춤하게 되었고, 반대로 세력을 떨치고 승기를 잡기 시작한 쪽은 무당도인들이었다. 그렇게 대세가 갑자기 역전되게 되자 과연 그 우두머리 홍포인의 표정이 매우 달라졌다. 그자는 잠시 장내를 둘러보다가 우수를 가볍게 저어 자신의 주위에 서있는 자 들에게 신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순간 그 주위에 있던 대여섯명의 홍포인들이 거의 동시에 칠성검진이 다가서 는 쪽으로 신형을 날렸는데, 뜻밖에도 그들의 무공은 상상보다 더욱 높았다. 무려 이삼십장이나 곧장 날아가서 허공에 떠있는 상태로 아래쪽으로 장력을 날렸는데, 그 순간에 강력하게 일어나던 칠성검진의 위력이 시뻘건 화염속으로 휩싸이고 마는 것이었다. 본래 그 칠성검진을 이루는 장로들의 무공은 거의 최절정의 경지에 올라있는 것이고, 게다가, 그 일곱명이 위력적인 검진을 형성하고 있는데도 그처럼 당한다는 것은 믿기 어려운 노릇이었다. 물론 그것은 홍포인들의 장력에 특이한 마력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었다. 다른 홍포인들의 손은 시뻘건 빛깔이었는데 반해서 그 여섯명의 홍포인들의 손은 흰색이었고, 단지 장심만이 동전만하게 붉은 광채를 띠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태양마장이 최고의 경지에 올라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태양마장이 최고의 경지에 오르면 뜨거운 기운을 장시에 작게 응집시킬수가있 는 것이요, 거기에서 실로 무쇠라도 단숨에 녹일 수 있는 강렬한 화염을 발산하여 상대의 검기마저도 소멸시켜 버리는 것이었다. 그 여섯명의 홍포인들이 지상에 내려서자 칠성검진은 오로지 그들과 상대하기 시작했다. 그 여섯명의 홍포인들의 무공이 비록 놀랍기는 해도 무당파의 칠성검진 역시 녹녹한 것은 아니어서, 그 두패는 즉시 격렬하게 얽혀서 서로 우열을 가리기 힘들게 되었다. 그런데, 상황의 변화는 다른 곳에서 연이어 벌어졌다. 여섯명의 홍포인들을 내보낸 이후에 이윽고 그 우두머리 홍포인이 직접 나섰 던 것이었다. 그 홍포인은 가볍게 허공에 떠오르더니 이어 무려 오십여장의 공간을 빠르게 날아서 동방청의 앞에 내려섰다. ......! 동방청도 이미 그럴 것을 예상했는지 더 이상 술을 내뿜지도 않고 엄중한 표 정으로 상대를 마주하고 섰다. 장내가 비록 어지럽기는 하지만 그 두사람을 위해 공간이 생겨나는 것은 자연 스러운 현상이었다. 동방청이 문득 카랑카랑한 어조로 입을 열어 말했다. [정말로 그 재주가 아깝군! 비록 마공이기는 하나,혹시 마음을 돌려서 정의를 위해 힘쓰는 것이 어떻겠는가?] 홍포인은 잠자코 있다가 이내 음랭한 냉소를 터뜨렸다. [개소리를 하고 있군!] 동방청은 그 말에 약간 화가 난 듯 했다. 하지만, 미처 그가 다시 입을 열기도 전에 돌연 홍포인의 전신에서 투명한 붉은 기운 이 일어나더니 그의 손짓에 따라서 동방청에게 덮쳐오는 것이었다. 그 속도는 지독하게 빨라서 마치 불의 허깨비가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았다. 제 28 장. 괴인출현. 동방청은 이미 상대의 몸에서 붉은 기운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서 즉시 자신도 준비하고 있었다. [태양마공이로구나!] 한소리 크게 부르짖으며 그는 우수를 마치 노를 젓듯이 휘저었다. 그러자, 일순 그의 우수에서 마치 거대한 용과도 같은 무형의 기운이 일어서 상대와 맞서가는 것이었다. 꽈르르릉-! 일시 두사람의 중간지점에서 흡사 벼락치는 듯한 굉음이 일어나며 그 여파로 거대한 흙먼지가 일어나고, 광풍이 휘몰아쳤다. 그들 주위에서 움직이던 몇몇 사람들이 그 광풍에 일순 날려가 버렸다. 하지만, 정작 그 두사람은 전혀 그러한 것에 영향을 받지 않고 계속해서 그 무공을 펼 쳐내는 것이었다. 그 두사람의 능력은 얼핏 보기에 아주 엇비슷해 보였다. 기실 동방청이 지금 펼쳐내고 있는 무공은 그의 성명절기인 용음십이수라고하 는 것으로서, 그이름만큼이나 과거에 천하를 위진시켰던 절학이었다. 그 경지는 비록 아직 대홍락의 경지에는 오르지 못했으나 그래도 백연탄의 경 지는 벗어난 것으로서, 일면 백연탄과 대홍락의 중간경지라고 일컬어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일개 무명으로 보이는 홍포인이 그러한 절기와 대등하게 맞설 수 있다고 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그 두사람이 격전을 벌이게 됨으로써 장내의 상황은 더욱 살벌하고 혼란스러 워졌으며, 상황도 여러번이 반전되어 가고 있었다. 남궁검민등은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도 자신들이 나서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 고 고민했다. 보다못한 제갈보중이 문득 제갈신중에게 소리쳐 물었다. [형님! 지금 우리는 나서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갈보중은 최소한 제갈신중 만큼은 지금의 싯점에서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런데, 제갈신중이 다소 주저하고 있는 사이에 곽자성이 다시 입을 열어 말했다. [어리석군.너는 지금 상황이 불리하다고 생각하느냐?] 지금 동방청과 칠성검진은 호각을 이루고 있었지만 기세를 올려가던 양의검진 은 오히려 고전하기 시작하고있었다. 그것은 이전의 칠성검진이 맡았던 자들마저 양의 검진이 맡아야 하기 때문이 었다. 제갈보중은 눈살을 찌푸리며 대꾸했다. [보시는 대로요.] 곽자성은 빙그레 웃으며 다시 물었다. [너는 단지 전체를 보되 그 핵심을 보지는 못하고 있구나. 그렇지 않느냐?] 제갈보중은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핵심은 무엇이오?] 곽자성은 가볍게 냉소하며 대꾸했다. [지금 전체적인 싸움이 벌어지고 있지만 다른 것은 몰라도 저 동방청이라는 사람만 유리한 편이다. 만일 그만 승리한다면 다른 것들은 상관없이 승리할 것이라는 말이다.] 제갈보중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하지만 당신은 더 다른사람들의 목숨은 안중에도 두지 않겠다는 말이오?] 곽자성은 고개를 저었다. [세상에 두가지를 모두 얻는 경우는 없다. 항상 대를 위해서는 소는 희생되어 야 하는 것이지. 너는 설마하니 어리석게도 저들을 위해서 손을 쓸 생각이냐?] 제갈보중은 고개를 돌려 제갈신중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들은 명문정파의 사람들로서 과거에 누군가를 도운적이 있었을 것이오.하지 만 지금 그들이 위기를 당했을 대 누군가의 도움이 없다면 너무나도 불쌍한 일이 아니겠소?] 그말은 물론 제갈신중을 자극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말을 듣고 정작 마음을 움직인 사람은 곽자성이었다. [하하,너는 제법 말을 할줄 아는구나. 하지만 너무 감상적으로 흐르는 것은 좋 지 않지......어떠냐? 나에게 한 번 그 부탁을 해보는 것이?] (......?) 제갈보중은 그에게 고개를 돌리면서 물었다. [당신은 그들을 구할 수가 있다는 말이오?] 곽자성은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며 즉시 대답했다. [정말로 바보같은 질문을 하는구나.지금 여기에서 감히 누가 그런 일을 할 수 가 있겠느냐? 너의 그 형이라는 자는 무공이 너보다도 못한 것 같은데도 그와 같은 부탁을 하다니 이상한 노릇이로구나?] (......?) [나는 네가 만일 부탁을 하기만 하면 즉시 그들을 모두 구하고 상황을 빨리 끝나게 할 수도 있다.] 제갈보중은 상대방의 말이 다소 이상하다고 생각되었지만 이내 물었다. [그렇게 해주는 데 대한 당신의 조건은 뭐요?] 곽자성은 웃으며 대꾸했다. [너는 제법 총명하구나.나의 조건은 바로 너희들이 그 가면을 쓴 여자와 노인 들을 만났을 경우에 나에게 알려달라는 것이다.] 제갈보중은 이내 곽자성의 목적이 그러한 데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 제갈보중은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물었다. [우리는 당신을 찾을 수가 없는데 어떻게 알린다는 말이오?] 곽자성은 대답했다. [그것은 걱정없다. 네가 대답을 하기만 하면 이후부터 내가 너희들의 주변에 항상 있을 것이니,구태여 그때가 되면 알려주지 않아도 될 것이다.] 제갈보중은 웃으며 재차 물었다. [그러니까 알고보니 당신의 요구사항은 우리와 계속 동행하는 것이었군요?] 곽자성은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다.그 일은 너희들에게 거의 손해가 없는 일이지.] 헌데, 제갈보중은 이내 고개를 가로젓는 것이었다. [아니오.우리는 좋아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당신과 함께 다니는 것도 좋아 하지 않으니 그 조건은 결코 들어줄 수가 없소.] (......) 순간, 곽자성은 다소 어이없다는 듯이 제갈보중을 바라보다가 이윽고 웃으며 말했 다. [너는 정말로 눈치가 빨른 녀석이로군.너는 혹시 내가 그 조건이 없더라도 이 일을 할 것이라는 것을 알아버린 것이 아니냐?] 제갈보중은 다소 눈살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말이오?] 곽자성은 약간 냉소하며 말했다. [나는 본래 일단 그 일을 하기로 마음먹으며 누가 뭐라고 해도 하고야 마는 성격이다.네가 나의 이러한 성격을 교묘하게 이용한 게 아니냐는 말이다.] 제갈보중은 약간 의아해져서 곽자성을 바라보았다. [나는 당신을 만난지 얼마 되지도 않는데 어떻게 그러한 것을 알수가 있겠 소?] 곽자성은 그러한 시선을 받자 다소 냉랭하게 말했다. [네가 그렇지 않다고 해도 상관없다.내가 이 일을 하는데는 변함이 없으니까.] 이어, 곽자성의 신형은 문득 일행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얼마전에 놀라운 그의 신법을 목격한 일이 있지만 이렇게 다시 갑자기 사라지 는 신법을 보게 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 곽자성은 이어 장내에 불쑥 나타났는데 그가 나타난 곳은 다름 아닌 칠성검진 이 있는 곳이었다. 그 여섯명의 홍포인들은 한창 칠성검진을 맞아 격전을 벌이고 있었는데 느닷 없이 곽자성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뜻밖에도 낯선 외부인이 출현했기 때문이었다. 칠성검진을 펼치는 무당파의 장로들은 한창 자신들의 양의검진을 걱정하기에 바빴지만 그 홍포인들은 달랐다. 그들은 다소 여유가 있었으므로 그 가운데의 하나가 빠르게 곽자성에게 공격 을 해왔다. 물론 그것은 예의 최고경지에 도달한 태양마장이었다. 홍포인은 장심을 펼쳐서 마치 용암과도 같은 강렬한 화염을 곽자성에게 보내 왔다. 그런데, 곽자성은 그것을 보자 자신도 가볍게 우수를 내밀었다. 그러자 느닷없이 그의 손에서도 그와 비슷한 백색의 광채가 일어나 상대와 마 주쳐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곽자성의 장력은 상대의 장력과 마주치자 마자 이내 상대의 화염 을 일거에 녹여버리고, 이어 상대의 가슴을 후려치는 것이 아닌가? [으악!] 비명소리는 주위의 소음에 비하면 그다지 크지 않았으나 기실 그 단말마는 일 행에게 경악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 홍포인들의 무공은 현송도장 등도 상대하기 곤란한 것이었다. 그러한 자들을 곽자성이 마치 장난처럼 가볍게 해치울 줄이야 누구도 쉽게 상 상치 못한 일이었다. 비록 일행이 곽자성의 능력을 어느 정도는 인식하고 있었으나 실로 그정도일 줄은 짐작도 하지 못했다. 곽자성은 먼저 한명의 홍포인을 그렇게 죽여버린 이후에, 뒤따라 놀라서 한꺼번에 덮쳐드는 홍포인들을 향해 역시 마치 장난하듯이 빠 르게 일장씩을 보냈다. 홍포인들은 속으로 긴가민가 하면서도 각기 자신의 태양마장으로써 응수 했는 데 놀랍게도 그 결과는 한결같은 것이었다. [으아아악-!] 본래 그 태양마장은 장력의 최고경지에 올라있는 것으로서 거의 무적에 가까 왔다. 그런데, 그것을 마치 어린아이와 장난하듯이 가볍게 파괴해버린 곽자성의 그 백색장력 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심지어 무당파의 장로들은 자신들이 바쁜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만 넋을 잃고서 그 중년의 색목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곽자성을 그것을 보자 그만 어색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이번에는 박수를 치는 것이었다. 짝,짝,짝...... 그의 박수소리는 그다지 큰 것 같지자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의 박수소리가 울려퍼진 이후에는 홍포인들의 주문을 외는 소리 가 거대한 태풍을 만난 듯이 장애를 일으키는 것이었다. 곽자성의 박수 소리에 사람들의 혼백을 빼앗는 힘이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처음에는 일정하게 박수를 치다가 나중에는 그것을 빠르게하고 이어,점 차 느리게 해갔다. 그에 따라서 놀랍게도 홍포인들의 주문소리도 빨랐다가 느려지기 시작했으며, 이어, 곽자성이 어느 한순간이 박수치는 것을 중단하자 갑자기 홍포인들의 주문소리 가 제각기 속도가 달라지며 혼란에 빠지는 것이었다. 그에 따라서 장내의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본래 그러한 주문소리는 전체의 소리가 하나가 될 경우에는 괴력을 발휘할 수 도 있는 것이지만, 그러나 그 호흡이 맞지 않을 경우에는 오히려 부담을주게 되어 본래의 능력마 저 감소시킬수가 있는 것이었다. 느닷없이 그렇게 홍포인들이 대혼란에 빠지게 되자 정신을 차리고 공세를 강 화하기 시작한 것은 무당도인들이었다. 이제까지는 그 괴이한 마력 때문에 제 실력을 발휘하지못하던 그들은 이내 늑 대들의 무리속에서 날뛰는 성난 호랑이들로 변했다. 양의검진을 펼치는 일대제자의 숫자는 이제 삼분지 일이나 감소되어 스무명 정도에 불과 했지만 이제는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일단 질서가 무너지기 시작하자 홍포인들은 갑자기 형편없는 오합지졸들로 변 했다. 정말로 그렇게 본다면 곽자성의 능력은 아주 놀라운 것이라고 아니할 수가 없 었다. 무당파의 두 개의 검진은 그 가운데를 파고 들어서 거의 파죽지세로 홍포인들 을 베어 넘기기 시작했다. [으아악!......] 아까는 죽음을 상관조차 하지 않던 홍포인들 가운데 이제는 달아나려고 하는 무리들마저 생겨났다. 무당파의 두 개의 검진이 좌우로 휩쓸어 감에 따라서 잠깐 사이에 수십구의 시신들이 생겨나기 시작하고, 장내는 유혈이 난무하는 아비규환의 지옥도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장내의 상황은 너무나도 갑자기 반전되어 아주 이상할 정도였고 그것은 이제 돌이킬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지금 동방청과 격전을 벌이고 있는 우두머리 홍포괴인도 매우 놀란 표정이었 지만 도저히 어쩔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그러한 광경을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던 일행에게 곽자성은 어느새 다가와서 이렇게 물었다. [어떻느냐? 나의 작품이 마음에 드느냐?] 그는 마치 지금 막 재미있는 장난을 끝내고 온 사람처럼 웃고 있었다. 제갈보중은 그가 자신을 보고 있는 것으 보고 다소 생각하다가 되물었다. [대체 당신은 어떤 사람이오? 현재의 신분과 출신지를 말해 보시오.] 곽자성은 예의 그 신비로운 푸른 눈으로 웃으며 대꾸했다. [너는 내가 너의 그 질문에 대답할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제갈보중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지는 않을 것이오.] 곽자성은 냉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나는 본래 하고싶지 않은 얘기를 다른 사람에 의해 강제로 한 적이 없 다.] 제갈보중은 다시 말했다. [그렇다면 이제 당신은 그만 우리들의 곁을 떠나버리는 것이 어떻겠소?] 곽자성은 기이하게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것 역시 떠나고 안떠나고는 내가 정한다는 사실을 너는 모르지는 않을 것 이다.] 제갈보중은 그만 할 말이 없어서 고개를 돌리고말았다. 헌데 그즈음에 장내에 다시 기이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그 우두머리 홍포인은 당황한 나머지 점차로 동방청에게 밀리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동방청이 우두머리 홍포인을 압도하게 되자 장내의 상황은 더욱 더 심하게 기 울었고 금방이라도 싸움이 끝날 것 같았다. 헌데 바로 그때의 일이었다. 우우우우우!...... 갑자기 어디선가 땅속에서 울려오는 것 같은 괴이한 울림이 전해져 오기 시작 하더니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돌연 혼란에 빠졌던 홍포인들이 다시 호흡을 맞추어 주문을 외기 시작했고 그 우두머리 역시, 다시 침착하게 반격을 개시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믿을 수 없게도 그 소리는 홍포인들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는 활력소인 것 같 았다. 이 현실은 조금전의 곽자성이 했던 것보다도 더욱 불가사의한 것이었다. 홍포인들이 다시 활력을 찾기 시작하자 무당도인들은 반대로 재차 힘겨워지게 되었고, 결국 장내의 이 상황은 처음과 비슷하게 되돌아가고 만것이었다. 게다가, 기이하게도 갑자기 들려오기 시작한 그 소리는 이어 갈수록 커져가고 가까와 지는 것이었다. 그것은 마치 지옥에서 울려오는 악마의 음성이 점차로 가까와지고 있는 듯한 불길한 느낌을 가중시켰다. 대체 그 소리는 무엇일까? 그것은 대체 이 홍포인들과 어떠한 관련이 있는 것일까? 마치 그러한 궁금증을 알고 있기라도 하듯이 미처 일행이 생각을 굴려보기도 전에 문득 북쪽의 하늘에서 뭔가 하얀 물체가 나타나는 것이었다. ......! 그 물체는 허공을 아주 빠르게 날아서 어느덧 장내의 위에 이르렀다. 일행은 자신도 모르게 그 물체를 주시하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토록 괴이한 소리를 내고 있으며 게다가 하늘을 마치 비조처럼 날아온 것은 바로 사람이었던 것이다. 상황은 더욱 점입가경이어서 일행은 지금 마치 믿기 어려운 꿈을 꾸고있는 것 같았다. 사람에게 날개가 달려있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정말로 허공을 날아다닐 수가 있다는 말인가? 심지어 홍포인과 싸우고 있는 동방청마저 크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아무리 다시 확인을 해봐도 이것은 정말로 사실이 아닌가? 우우우우! -백의복면인. 전신을 백의로 감싸고 얼굴마저 백색의 천으로 휘감은 그 괴이한 사람은 장내 의 위에서 잠시동안 좀더 괴성을 발하다가 이윽고 멈추었다. 동방청과 한창 싸우고있는 우두머리 홍포인은 겉으로는 그가 나타난 것을 개 의하지 않는 것 같았다. 대체 그 두사람의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인가? 제갈신중은 그 백의복면인을 보게되자 일순 형언하기 어려운 기묘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그것은 일면 아주 가증스러운 듯 하면서도 어떤 공포감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제갈신중은 문득 옆의 곽자성은 어떤 해석을 내릴 것인가 하고 생각하며 옆으 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그가 미처 확인도 하기 전에 황보잠허가 소리치며 말하는 것이었다. [앗! 그 선배는 또 어디로 갔지?] (......!) 제갈신중은 다시 한 번 의아해졌다. 곽자성이 어느새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그토록 오만하던 곽자성은 이 순간에 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지금 남궁검민 등의 일행은 연이어 계속되는 커다란 사건들과 놀라운 괴인들 의 등장에 정신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하기는, 그들은 아직 천하에 이런 사람들이 있다는 소리를 들어보지도 못했었다. 소문으로 삼대마세의 출현을 들었을 때에도 설마하니 이 정도일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 곽자성이라는 사람이 혹시 저들과 무슨 연관이라도 있는 것이 아닐까?) 제갈신중은 내심 그런 생각을 하며 다시 시선을 장내로 돌렸다. 어느새 그 백의 복면인은 아까 우두머리 홍포인이 서있던 자리에 조용히 내 려서 있었다. 그는 거의 표정없는 투명한 눈빛으로 장내를 둘러보고있었는데, 은연중 그의 전신에서는 보는 이의 혼백을 빼앗아버릴 듯한 마력이 흘러나오 는 것 같았다. 그 백의복면인이 나타남으로 인해서 홍포인들의 무공은 더욱 증강된 것 같았 으며 반대로 무당도인들은 더욱 곤란해졌다. 칠성검진과 양의검진의 검세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으며 간간이 양의검진의 일 대제자들이 죽음을 당하기도 했다. 상황이 어려워진 것은 동방청도 마찬가지 였다. 그는 왠지 그 백의복면인의 출현을 지나칠정도로 신경쓰는 것 같았으며 그 바 람에 수세에 몰리게 되었다. 남궁검민 등은 그것을 보고서 겨우 마음을 가다듬고 숙의를 했다. [제갈형,우리도 나서야 하지 않겠소?] 조금전에는 곽자성의 힘을 빌렸으나 이제는 그도 없는 상황이므로 실로 난감 하기 짝이 없었다. (......) 제갈보중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대답했다. [지금 우리가 나선다고 해도 저들의 짐만 될 뿐인 것 같소.] 그렇다. 기실 지금 일행 가운데에는 부상자가 많아서 만일 장내에 뛰어들게 되면 거의 개죽음을 당할 상황인 것이었다. 남궁검민은 차마 그러한 말을 못하고 있었으나 막상 제갈보중에게 그러한 얘 기르 듣자 나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이제서야 우물안 개구리에 불과했었다는 것을 알겠소.대체 이전에는 전 혀 듣지도 못하던 저런 자들이 어디에서 갑자기 나타난 것인지 모르겠소.] 일행은 그 말을 듣자 크게 의기소침해지면서 가슴이 울적해지는 것을 느꼈다. 헌데, 그때 문득 당백승이 나서서 말했다. [하지만 아직 우리 모두가 그렇다고는 말할수가없소. 우리들 가운데에는 제법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으니까 말이오.] 당백승은 말과 함께 고개를 돌려 제갈신중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물론 제갈신중을 두고 말하는 것이었다. [하긴,그가 정말로 우리를 일행으로 생각하고 있느냐가 의문이지만 말이오.] ...... 제갈신중은 일행의 모든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되자 매우 어색한 느낌을 받았 다. 이것은 당백승이 아주 야비한 수법으로 그를 농락하는 것이었다. 만일 제갈신중이 충동질에 넘어가서 나서게 되면 일행을 대신해서 헛되이 목 숨을 잃게 되느 것이고, 만일 그렇지 않고 이곳에서 계속 버티게 되면 다른 일행들의 모멸어린 시선을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제갈신중은 당백승의 그 악랄한 시선과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면서 쉽게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제갈신중으로서는 목숨을 두려워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당백승과 같은 음험한 자의 간교한 농간에 넘어가서 헛되이 모험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데, 바로 그 무렵, 다시 새로운 상황이 벌어져서 제갈신중은 그다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다. -백의복면인. 그가 상황을 빨리 끝내고 싶었던지 느닷없이 신형을 날려서 이제 스무명이 채 못되는 양의검진을 공격한 것이었다. 대체, 그 백의복면괴인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 사람은 그냥 뻣뻣하게 선채로 유령처럼 움직이는 것이 마치 산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그 백의복면인의 무공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그저 하얀 그림자가 번쩍하는 순간에 그는 양의검진의 앞에 이르렀고 이어 가 볍게 손을 내밀었다. 순간의 일이었다. 백의복면인을 향해 장검을 찔러오던 앞쪽의 다섯명의 일대제자들이 갑자기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몸통이 터져나가면 날아가는 것이었다. [으아악!] 몸통이 터져나가고도 아직 살아있는 사람은 없다. 일순간에 무당도인들이 다섯명이나 참살을 당하자 양의검진에는 물론 커다란 구멍이 뚫리게 되었으며, 일행은 하나같이 경악을 했다. 하지만, 장내에서 누구보다도 가장 경악하는 사람은 바로 뜻밖에도 제갈신중이었다. 그는 자신도 이해할 수가 없었지만 백의복면인이 손을 쓰는 것을 보는 순간에 내심 말할 수 없는 분노감을 느꼈다. 그것은 마치 육감적으로 전해져 오는 형용하기 어려운 공포와도 같은 기분이 었다. 단순히 백의복면인이 사악하게 느껴지는 기질이 나빴기 때문이었을까? [그건 안돼!] 제갈신중은 한순간 자신도 모르게 크게 부르짖으며 백의복면인의 앞으로 빠르 게 날아갔다. 그의 그러한 행동은 물론 그 뿐만 아니라 일행 모두에게도 전혀 의외의 일이 었다. ......? 일행의 시선이 어리둥절해진 가운데 제갈신중은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아주 빠 르게 날아갔으나, 그때는 이미 한꺼번에 달려들던 무당도인들을 향해 백의복면인의 제이수가 펼 쳐진 이후였다. [으아아악-!] 백의복면인이 그저 가볍게 내두른 우수의 그림자가 주위를 뒤덮는 순간에 놀 랍게도 무려 열명의 무당제자들이 박살이 나서 죽어갔다. 실로 백의복면인의 무공은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이제 남은 서너명의 무당파의 일대제자들은 더 이상 공격을 하지 못하고 넋을 잃고서 백의 복면인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들을 향해 백의복면인의 세 번째의 손이 올라갔으나 그들은 전혀 그런 것을 보지도 못한 것 같았다. 바로 그 순간에 제갈신중은 날아와서 그들의 앞을 막아섰고 이내 우수를 휘저 어 반격했다. 제갈신중이 펼쳐낸 것은 가전의 대천성장이었다. 그저 순간적인 임기응변이었으나 왠지 이 순간의 제갈신중의 장력은 상대인 백의복면인의 장력과 흡사한 느낌이 들었다. 어째서 그러한 느낌이 들었을까? 백의복면인의 장력은 어둡고 음산하며 무수한 변화를 내포하고 있는 반면에 제갈신중의 장력은 약간 단순하고 밝은 기운이 어려있는 것 같았다. 제 29 장. 가공할 현실들. 일순간 제갈신중의 대천성장과 그 백의복면인의 사악해 보이는 장력은 도중에 서 격렬하게 마주쳤다. 꽈르르르릉-! 갑자기 거대한 벼락이 내리친듯한 굉음이 사방을 진동시키고 땅이 흔들렸으며 막대한 압력이 주위를 휩쓸었다. 제갈신중은 그 막대한 압력을 느끼는 순간 정신이 아득해지면서 뒤로 주춤 한 걸음 물러나고 말았다. 그런데, 눈을 뜨고 정신을 차려보니 뜻밖에도 상대인 백의복면인도 이미 뒤로 한걸음 물러서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한 결과는 비단 일행뿐만 아니라 제갈신중 본인에게도 뜻밖의 일이었다. 제갈신중은 자신이 잘해야 그저 죽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실 로 자신에게 그정도의 능력이 있을줄을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 일행은 하나같이 불신의 표정으로 눈을 크게 또고 바라보았고 제갈신중은 다 소 어리벙벙한 표정이었다. 제갈신중은 현실을 다소 의심하면서도 재차 다가올 백의복면인의 공격을 긴장 하며 기다렸다. 제갈신중은 비록 자신이 어쩌다 한 번 상대의 공력을 막아내기는 했지만 아직 경험이 없어서 결국에는 당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상대인 백의복면인은 매우 의외인 듯이 제갈신중을 바라보고 있다가 이윽고 다시 우수를 들어올리는 것이었다. 이번의 그의 공격은 아까보다도 훨씬 무서운 것인 듯 갑자기 그의 전신이 거 대한 그림자로 화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제갈신중은 그것을 보자 자신도 급히 자신의 공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는 한 편으로 상대의 무공을 주시했다. (이상한 일이군. 본가의 무공과는 전혀 다르고 수법도 괴이해 보이는 데 어째 서 이렇게 낯익은 것일까?) 제갈신중은 백의복면인의 자세만 보고도 이내 그가 전개할 무공을 알수가 잇 을 것 같아서 내심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이때 아주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갑자기 백의복면인이 공격을 하려다가 말고 시선을 우측으로 돌리더니 이채를 떠올리며 황급히 뒤로 물러나는 것이 아닌가? ......! 제갈신중으로서는 다행한 일이었겠지만,백의복면인이 갑자기 어째서 그와 같 은 행동을 취하게 되었는지 그것은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제갈신중은 무심코 그쪽으로 고개를 돌려 보았지만 험준한 절벽 이외에는 특 이할 다른 것은 보이지 않았다. (......?) 혹시 누군가가 그쪽에서 백의복면인에게 모종의 신호를 보냈던 것이 아니었을 까? 제갈신중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에 백의복면인은 정말로 뒤로 훌쩍 물 러나더니, 이윽고 아까의 그 자리에 서서 예의 그 괴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우우우우! 제갈신중은 그래도 혹시 이 백의복면인이 무슨 거짓된 수작을 부리고 있는 것 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헌데 순간의 일이었다. 백의복면인의 그 괴성을 듣자마다 홍포인들이 느닷없이 미친 것처럼 행동이 달라지기 시작하는 것이아닌가? 칠성검진등과 격렬하게 싸우던 수백명의 홍포인들이 느닷없이 싸움을 그만두 고 계곡의 밖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그것은 뜻밖에도 동방청과 싸우던 우두머리 홍포인도 마찬가지였다. 동방청이 쉽게 놓아주지 않아서 다소 시간이 걸리기는 했으나, 이윽고 번갯불처럼 수십차례의 공격을 퍼붓고는 상대가 약간 주춤하는 틈을 타서 그 홍포인은 밖으로 빠르게 날아가는 것이었다. 보아하니 백의복면인의 그 괴이한 이번의 소리는 홍포인들에게 달아나라는 일 종의 지시였던 모양이었다. 대체 그 백의복면인은 어째서 그렇게 갑자기 태도를 바꾸게 된 것일까? 그들의 행동은 추측을 할 수 조차 없어서 마치 도깨비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우두머리 홍포인은 옆의 절벽을 넘어서 사라졌지만 대부분의 홍포인들은 저마 다 입구쪽으로 향했다. 일행은 가만히 구경을 하다가 그야말로 봉변을 당할 뻔했다. 하지만, 일행이 급히 옆으로 자리를 피하자 홍포인들은 누구도 그들을 상관하지 않고 모조리 우르르 달아나 버리고 말았다. 그것은 마치 홍수가 밀려왔다가 썰물처럼 모조리 빠져나가는 듯한 엄청난 광경 이었다. ......! 동방청과 남은 무당도인들은 물론 그들을 추격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이윽고, 홍포인들이 모두 사라지고 나자 백의복면인도 나타날때와 마찬가지로 허공을 날아서 아득하게 사라져 버렸으며, 이 피비린내 나는 넓은 계곡의 안쪽에는 불과 십여명의 사람들만이 남아있게 되었다. (......?) 사람들은 비록 더러 무사하기는 했지만 그러한 가공할 일들을 당하게 되자 모 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특히 제갈신중은 그 백의복면인의 익숙한 듯한 무공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해 보다가 다가드는 일행 등을 맞이했다. 일행은 제갈신중에게 어색한 감정들이 있어서 비교적 천천히 다가왔지만 무당 파의 도장들은 급히 그를 찾았다. 역시 현송도장이 먼저 다가와서 제갈신중에게 아는 척을 했다. [무량수불, 요즈음의 인재는 모두 제갈세가에서 나오는군?이번에 본파를 위해 애써 주어 고맙네.] 모두가 그렇게 자신에게 우르르 다가드는 것을 보고 다소 당황스런 기분이 들 었다. 제갈신중은 즉시 포권하며 약간 상기된 안색으로 대답했다. [제가 미리 도움을 드리지 못한 것이 죄송스러울 뿐입니다.] 현송도장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네. 실로 자네와 같은 숨은 와룡과도 같은 사람을 알아보지 못한 나의 잘 못도 큰 것이지.] 현송도장은 이어 현생,현진등으로 불리우는 장로들과 혜방 등의 일대제자들을 그에게 직접 소개시켜 주었다. 무당파의 장로들은 이미 제갈신중에게 매우 감사하고 또한 그의 능력에 경탄 하고 있었으므로 줄줄이 인삿말들을 늘어놓았다. [자네가 바로 제갈세가의 그 둘째공자라는 말인가? 듣던 것과는 전혀 딴판으로, 자네는 도리어 무림육영들보다 훨씬 뛰어난 기재였군 그래. 자네와 같은 무림 의 인재가 나타난 것은 실로 천하의 복일세......] [이상한 일이군.어째서 자네는 그런면서도 전혀 무공을 익힌 흔적이 드러나지 않는 것인가? 혹시 어떤 특수한 신체를 타고난 것이 아닌가?] ...... 특히 비록 나서서 말을 하지는 못했지만 살아남은 혜방 등의 서너명의 일대제 자들은 제갈신중에게 매우 고마워하는 표정들을 했다. 일행은 그제서야 무당파의 도인들의 앞에 이르러 각기 예를 올렸으며, 무당파 의 도인들도 상대방의 신분을 생각해서 다소간의 예를 갖추는 듯 했다. 그렇게 서로간의 번잡스러운 예절이 오고 가자 이윽고 누군가가 제갈신중을 향 해 물었다. [자네의 그 무공은 누구에게 배운 것인가?] (......!) 제갈신중이 고개를 들어보니 그 사람은 바로 다름아닌 호연신개 동방청이었다. 그는 번거로운 것을 싫어하여 조금전에 일부터 뒤로 물러나 있다가 이윽고 다 가와 불쑥 물었었 것이다. 제갈신중은 이미 그에게 어느 정도 감탄하고 있었으므로 이내 정중하게 포권 하며 되물었다. [후배는 당연히 가전의 무공을 배운 것인데,무엇 때문에 그러십니까?] 동방청은 고개를 흔들었다. [나는 이미 너의 아비에게 패한 바가 있다. 그런데 너의 무공은 너의 아비의 무공과 다른 듯하여 물어보는 것이다.] 제갈신중은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저도 우연히 이렇게 무공이 늘게 되었는데 그 이유를 잘 모르고 있습니다.] 동방청은 그의 표정이 진실해 보이므로 고개를 저으며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 다. [모른다고? 정말로 괴상한 녀석이로군!] 말과 함께, 누가 다가와서 인사라도 할세라 동방청은 이내 신형을 돌려 빠르게 휘적휘적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기실, 제갈신중은 기노와 금노에 의해 공력이 높아지기는 했으나 정말로 자신의 무 공이 갑자기 높아진 이유를 모르고 있었다. 과거에 그는 무공을 수련할수록 오히려 퇴보하기만 했던 사람이었으나 이제는 어떤 무공이라도 쉽게 시전이 가능해졌다. 제갈신중은 그것이 자신의 마음이 트였기 때문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그것들이 과연 어떤 것들인지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문득 내심으 로 생각했다. (나중에 황소저를 만나게 되면 그 문제에 대해서 물어봐야지.) 남궁검민 등은 이때 비로소 현송도장 등과 궁금한 사항에 대해서 질문을 하고 있었다. [선배님,이곳은 대체 어디입니까?] 현송도장은 다른 동료들이 급한대로 주위를 정리하고 있는 것을 보고 씁쓸하 게 웃으며 대답했다. [이미 알겠지만,이곳은 바로 새로 나타난 태양마교의 한 분당일세.그리고 아 까의 그 황금빛 태양을 새긴 우두머리는 바로 이곳의 당주이고.] 남궁검민 등은 그말을 듣자 매우 놀라와 했다. [예에? 정말로 그가 태양마교의 일개 당주에 불과하다는 말씀입니까?] 실로 당주의 무공이 그 정도라면 정작 교주의 무공은 어느 정도일지 상상이 가 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현송도장은 남궁검민 등의 마음을 헤아린 듯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믿기지 않지만 바로 그렇네.들리는 정보에 의하면 태양마교에는 교주 아래로 그와 같은 당주들이 여럿이 있다고 하더군. 우리는 마침 이곳을 발견하 여 파쇄시키려다가 오히려 못난 꼴만을 보인 것이네.] 태양마교의 그와 같은 얘기를 듣고 남궁검민은 그만 눈이 휘둥그래졌다. [그렇다면......설마하니 태양마교에서 과거의 교주인 태양상인의 진전을 이은 후계자가 나타났다는 말씀이십니까?] 현송도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셈이지. 바로 오늘 들어온 정보에 의하면 그 태양마교주는 스스로 제삼 대 태양상인을 자처했다고 하더군.] 남궁검민 등은 그만 눈을 크게 부릅뜨고 말았다. 애초에 그들이 제갈세가를 출발할 때에는 최소한 세외팔세의 후계자들은 나타 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정황들을 종합해 보아도 세외팔세 가운데의 후계자들이 나타난 것은 명백한 것 같았다. 그렇다면 과연 현재의 영웅맹은 그들을 물리칠 수가 있을까? 대체 앞으로 강호의 흐름은 어떻게 전개되어 갈 것인가? 남궁검민 등의 일행은 애초에는 그저 좋은 경험을 한다는 취지에서 강호로 나 섰던 것이었으나, 이제는 상황이 너무나도 험악하게 변모해 있어서 도저히 그럴 상황이 아니고 목숨조차 보전하기 어렵게 되었다. 실로 하루가 다르게 갑자기 변해가는 대풍운의 난세가 도래했다고나 할까? [실로, 믿을 수가 없군요......] 남궁검민은 너무나도 엄청나서 말소리조차 떨려나왔다. 현송도장은 그런 그에게 다시 입을 열어 물었다. [자네, 그럼 조금전의 그 백의복면인에 대해서 알고 있나?] 남궁검민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모르겠습니다.혹시 선배님께서는 알고 계십니까?] 현송도장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삼대마세의 주인들은 바로 어제 오늘간에 모두가 제각기 세외팔세의 후계 자들임을 자처했다네. 태양마교의 태양상인 이외에도 제사대 일월신교의 교주 라는 일월악마성......그리고 제이대 현현사의 사주라는 현현괴로가 있는데,조금 전에 보았던 그 백의복면인은 아마도 가장 신비하다는 현현괴로가 분명한 것 같네.] 남궁검민 등은 그만 너무나도 놀라서 입을 딱 벌렸다. [예? 아,아니 뭐라고요?] 남궁검민 등은 정말 상황이 이렇게까지 극단적으로 변모해 있을 줄은 감히 상 상도 하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은 과거에 불가능하리라고 생각했던 그야말로 최악의 사태였다. 세외팔세 가운데에서 세 개의 마세가 동시에 완벽한 힘을 갖추고 강호에 나타 나 혈겁을 일으키다니...... [비,빌어먹을.] 남궁검민등은 문득 아까 그 백의복면인이 괴상한 소리로 수백명의 홍포인들을 조종하던 광경을 떠올렸다. 과거에 초대의 현현괴로도 악마의 심령대법인 현현대법으로 무수한 사람들을 꼭둑각시처럼 부렸었다고 하지 않던가? 그 백의복면인이 현현괴로 일 것이라는 현송도장의 말은 실로 일리가 있는 것 이었다. 대체 갑자기 나타난 그 많은 마인들은 어디에서 그렇게 쏟아져 나온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정말 현송도장의 말대로라면 현재의 영웅맹으로서는 도저히 그들을 상대해낼 수가 없을 것이 뻔했다. 강호는 대체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호,혹시 앞으로 강호무림이 완전히 끝장나려고 그러는 것이 아닐까?) 저마다 그러한 생각들을 굴리는 일행의 안색은 일제히 시커멓게 변하고 있었 다. 현송도장은 그들을 향해 다시 말을 이었다. [현재 정보에 의하면 태양마교와 일월신교는 각기 자체세력을 가지고 있는 반 면에 현현사의 주인인 현현괴로는 아직 세력이 없지.하지만 현현괴로는 현재 동심교를 움직이고 있다고 하고,역시 그가 가장 신비한 인물로 부각되고 있지. 그런데......] 현송도장은 제갈신중을 가리키며 다시 말을 이었다. [놀랍게도 이 제갈공자가 능히 그 현현괴로와 동수를 이루었다는 사실이네.] 제갈신중은 현송도장의 말을 그대로 믿을 수는 없었지만 절로 겸연쩍어져서 웃으며 대답했다. [저는 그저 한 번 간신히 막아내었을 뿐입니다.그가 계속 공격했더라면 저는 아마도 아직 살아있지 못했을 것입니다.] 현송도장도 그 말에는 어느 정도 수긍을 하는지 이의를 제기하지않았다. [아까 그가 자네를 쉽게 보았던 것은 사실이지.하지만 결과적으로 이상하게 우 리가 그 일로 죽지않게 되었으니 다행한 일이라고 할 수가 있겠지.게다가....... 자네는 아직 젊으니 앞으로 노력여하에 따라서 능력을 더욱 늘릴 수도 있을 것일세.] [......] 제갈신중은 묵묵히 그 말을 들었다. 현송도장은 남궁검민을 향해 문득 다시 물었다. [헌데 자네들은 오늘 한가지 괴이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는가?] 남궁검민등은 오늘 기실 너무나도 괴이한 일들을 많이 겪어서 모두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대체 그 가운데 어느것을 괴이하지 않다고 말할 수가 있겠는가? 그런데, 문득 제갈보중이 이렇게 되묻는 것이었다. [현현괴로라는 자가 태양마교도들을 부렸다는 사실 말씀이십니까?] 현송도장은 제갈보중을 바라보며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렇네.그것은 곧 한가지의 가능성을 말해주는 것이지.정말로 믿기지 않 는 일이지만......] 제갈보중이 즉시 다시물었다. [혹시 그 삼대마세가 하나의 세력으로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말입니 까?] 현송도장은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내가 본 바에 의하면 일월신교나 태양마교의 무리들은 과거에는 동심 교의 무리들이었을 가능성이 아주 높네.게다가 이번에 태양마교가 급해지자 동 심교를 지휘하는 현현괴로가 나타나서 도왔으니 알만한 일이지.] 일행도 그러한 문제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으나 이제는 그 문제가 어마어마 한 것을 보고 입을 딱 벌리고서 다물지를 못했다. 당백승이 나서서 물었다. [그럼 그 현현괴로가 괴수인 것입니까?] 현송도장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것은 아직 확실하지 않네.게다가 아직 그것이 종적인 관계인지,아니면 횡 적인 연맹관계인지도 분명하지가 않네.앞으로 그러한 것들이 자연 드러나게 되겠지.] 황보잠허가 물었다. [현재 영웅맹에서는 어떤 행동을 취하고 있습니까?혹시 영웅맹이 지금 공격받 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현송도장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현재 영웅맹은 별다른 활동도 하지 못하고 있지만 공격을 받고 있는 상황은 아니네.앞으로 자네들은 계속 영웅맹으로 가볼 생각인가?] 일행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남궁검민이 이윽고 대답했다. [지금으로서는 몸을 피한다고 해서 안전한 상황도 아닌 것 같습니다.저희들은 일단 영웅맹에 가본 뒤에 결정하려고합니다. 영웅맹에는 일행의 어른들이 있기 때문에 남궁검민은 그렇게 말한 것이었다. 사실 일행은 지금의 상황에서 뿔뿔히 흩어졌다가는 도리어 위험하리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현송도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생각이네.비록 현재의 강호사정이 한치의 앞도 내다볼 수가 없다고 해 도,전 무림인들이 한마음으로 노력하게 되면 다시 평화는 찾아오리라는 것이 나의 생각일세.] 그 무렵에 무당파의 도인들은 일단 간단한 수습을 마치고 떠날 준비를 하고 있 었다. 현송도장은 일행을 향해 다시 말했다. [우리는 일단 무당산으로 돌아가서 뒷일을 논의할 생각이네.자네들이 영웅맹으 로 간다니 우리는 이만 헤어져야 하겠군.모두의 무운을 비네.무량수불!] 무당파의 도인들은 그렇게 모두 떠나갔다. 무당파의 장로들과 제자들은 특히 제갈신중에게 은근히 작별인사를 보내며 떠 나갔는데, 이윽고 그렇게 되자 이 피비린내 나는 곳에서 열두명의 일행만이 남게 되었 다. [자,우리도 이제 갑시다!] 남궁검민의 지휘에 따라서 이내 일행도 도망치듯이 그 장소를 떠나가기 시작 했다. * * * 처음에는 다소 여유있게 시작되었던 걸음이 이제는 상당히 늦어지게 되었다. 일행은 그대로 걸음을 재촉하여 요하를 건넜고,뒤이어 간신히 해가 질 무렵에 목적하던 남양성에 도달하게 되었다. 이제 이곳 남양성에서 하루만 가면 복우산의 영웅맹에 도착하게 되는 것이므 로 일행은 일단 한시름을 놓은 것이었다. 지금까지 들른 현성들과는 달리 이 남양성은 성시여서 성내의 모든 것들이 화 려하고 번화했다. 비록 강호무림의 사정은 한없이 어둡고 복잡할지라도, 세 속의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은 거기에 상관없이 여전히 평화롭고 활기차 보 였다. 일행은 일단 성내로 들어가서 번화가에 있는 만안반점이라는 객점에 방을 예약 하였고, 곧장 방이 마련되자 간단하게 식사를 마치고 자러 들어갔다. 그것은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상을 당한 후이기 때문에 그것을 치료하고 운기조식을 하기 위한 것이었다. 작금의 상황에서 무엇보다도 자신들의 몸관리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는 것이었다. 일행은 대개 겉으로는 여전히 명문세가 사람으로서의 품위와 자존심을 잃지 않 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왠지 제갈신중이 보기에는 현재의 어처구니가 없는 가공할 상황에 눌려서 그들 의 어깨가 처져 있는 것 같았다. 으례 그렇듯이, 일행은 각기 방을 찾아서 들어갔고 제갈신중 역시 하나의 방을 찾아서 들어가 쉬게 되었다. 제갈신중으로서는 일행과 함께 행동하는 것도 어색하지만 이렇게 혼자서 객방 에 있는 것도 약간 따분했다. 그는 과거에 혼자있는 생활을 많이 해왔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기실 속으로 그 런 감정은 일종의 사치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제갈신중은 잠시 방안에 켜진 촛불을 바라보고 있다가문득 오늘 오후에 느꼈던 자신의 무공에 대해 새삼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 그는 과거에는 가문의 무공들 가운데에게 그 어느것도 배울수가 없었지만 이상 하게도 이제는 그것들이 거의 모두 시전가능했다. 제갈신중은 따라서 가부좌를 틀고서 현원전단공을 운기하면서 가문의 무공들 을 천천히 운용해보기 시작했다. 지금의 그의 몸은 확실히 과거와는 달라져 있었다. 과거에는 감히 운행하지 못하던 현원전단공의 모든 부분들이 순조롭게 운행될 뿐만 아니라, 그밖의 장법이나 권법,그리고 지법 등에 이르기까지 잘되지 않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제갈신중은 그러한 것들을 점검하면서도 어딘가 답답한 점이 있다는 것을 알아 차렸다. 제갈신중은 따라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황소저는 지금 나의 무공이 대홍락의 경지라고 했었는데,그래서 지금 내가 본 가의 최절정의 무학들을 답답하게 여기는 것일까?) 제갈세가에서 가장 뛰어난 무공은 비도파천황이라는 것이었고 바로 대홍락의 경지에 있는 것이었다. 제갈신중은 문득 그 절기를 한 번 배워볼까하는 생각을 했다. 과거에 그는 가능한 모든 배움의 수단을 찾기 위하여 가전의 대부분의 무학서 적들을 탐독했었고, 그리하여 실제는 배우지 못했어도 내용을 기억하고 있는 것들이 많았다. 비도파천황이라는 무공 역시 거기에 속하는 것이었다. 제갈신중은 한참동안 그 비급상의 내용을 떠올린 다음에 그 요결을 터득해 보 려고 했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은 것 같은데?) 대체 어떤 변화가 일어난 것인지 알 수가 없지만 일단 그의 몸이 달라진 이 후에는 모든 무공들이 쉬워지는 것이었다. 제갈신중은 어느 정도 구결을 이해하게 되자 이제는 그 절기를 시전할 비도 를 구하기 위해 신형을 일으켰다. 그런데, 바로 그때 문밖에 누군가가 다가오더니 돌연 방문을 벌컥 여는 것이었다. [아니,네가 웬일이냐?] 갑자기 나타난 사람은 바로 제갈금의였다. 그녀는 방안을 둘러보다가 제갈신중이 그냥 서 있는 것을 보고는 눈살을 찌푸 렸다. [별로 이상할 것도 없잖아!난 오빠가 반드시 어떤 이상한 짓을 하고 있을 것 이라고 생각했는데......] 제갈신중은 웃으며 대꾸했다. [그래서 네가 그렇게 방문을 갑자기 열었다는 말이냐?] 보아하니 제갈금의는 이제 부상을 거의 치료한 듯 얼굴에 보기좋은 홍조가 떠 오르고 있었다. 제갈금의는 안으로 들어서며 대꾸했다. [둘째오빠는 그야말로 괴상한 능력을 가진 분이니,자연 평소의 행동도 다른 사 람들과는 다르지 않겠어요?] 제갈신중은 다소 고소하며 말을 받았다. [너는 나를 아예 괴인 취급을 하는구나.그래, 지금 이렇게 네가 나를 찾아온 이 유가 뭐냐?] 제갈금의는 두 눈을 토끼처럼 동그랗게 떴다. [나는 무슨 일이 없으면 오빠의 방에 들어올 수가 없다는 뜻인가요?] 제갈신중은 웃으며 대꾸했다. [그렇다는게 아니라,내가 보기에 지금 너는 무슨 볼 일이 있을 것이라는 말이 다.] (......?) 제갈금의는 잠시 의아한 듯이 제갈신중의 얼굴을 살피다가 가볍게 한숨을 내 쉬며 말했다. [사실은 그래요.둘째오빠는 어렸을 때부터 상당히 머리가 비상하다고 생각되었 던 분이었죠.결국 이렇게 훌륭하게 될 것을 몰라보다니......둘째오빠는 그동안 나에게 몹시 섭섭했었겠죠?] 제갈신중은 가볍게 웃었다. [너는 지금 나에게 무슨 부탁이 있는 모양이로구나?] 제갈금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부탁이 아니라, 서로간에 현명한 길을 찾자는 거예요.] 제갈신중은 말을 받았다. [알고보니 협상을 하자는 말이로군?그래, 장소는 어디냐?] 제갈금의는 대답했다. [지금 마침 모두가 한 방에 모여 있어요.] 제 30 장. 한 침상의 다른 꿈. 과연 제갈신중이 이 제갈금의를 따라가자 다른 일행들이 모두 하나의 넓은 방 안에 모여서 토의를 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미 부상을 완전히 치료했고 오직 가장 상처가 심한 제갈 덕중만이 아직 침상위에 누워 있었다. 그것은 그들의 무공이 하나같이 높을 뿐만 아니라,평소에 휴대하는 좋은 금창 약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시간은 벌써 자정이 가까와져 있었고 일행은 이미 열띤 토의를 벌이고 있었는 지 방안에는 열기가 감돌고 있었다. 제갈신중이 제갈금의와 안으로 들어서자 얘기가 잠시 중단되었으나,이내 남궁 검민이 포권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어서 오시오 제갈공자!] 그들은 이전부터 제갈신중에게는 소협이라는 칭호 대신에 공자라는 말을 쓰고 있었는데, 이제는 그것이 자연스럽게 굳어져있는 듯 했다. 제갈신중이 마주 포권하자 남궁검민은 그가 침상위에 걸터앉기를 기다려서 다 시 말을 이었다. [우리는 지금 앞으로 거취에 대해서 의논하고 있었소.제갈공자께서도 좋은 의 견이 계시면 기탄없는 말씀을 부탁드리겠소.] 제갈신중은 이미 이곳에 들어올 때부터 사람들의 좋지 않은 시선을 느낄 수가 있었으므로, 다소 계면쩍은 표정으로 말을 받았다. [나는 애초에 여러분과 한 일행이 될 자격이없는 사람이었소.따라서 나는 앞으 로 당신들이 원한다면 나의 그 친구를 소개시켜 주고 떠나갈 것이니 나는 상관 하지 말도록 하시오.] 순간, 왠지 방안의 분위기가 절로 찬바람이 이는 것 같았다. .....! 당백승이 문득 입을 열어 차갑게 조소하며 말했다. [듣자니,그 친구라는 사람은 중년남자도 아니고 여자였다고 하더군.대체 당신 은 어째서 그 사실을 우리에게 속인 것이오?] 제갈신중은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사실 그녀에게 비밀을 지켜줄 것을 부탁받았었소.따라서 그 부분은 말하 지 않았던 것인데,여러분을 속일 생각은 없었소.] 당백승은 싸늘하게 다시 말했다. [그렇다면 아직 우리에게 감추고 있는 사실이 있겠군. 당신은 바로 그 비밀을 지켜주는 조건으로 그와 같은 무공을 전수받은 것이오?] 제갈신중은 당백승이 간악스럽게 나오는 것을 보고 딱한 생각이 들었다. 그는 웃으며 대꾸했다. [그녀가 나에게 여러 가지의 도움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이미 말했다시피 지금 나의 무공은 가전의 무학이오.그녀는 단지 내 몸의 상태가 나아졌다고 가르쳐 주었을 뿐이오.] 당백승은 냉랭하게 조소했다. [그 말을 누가 믿을 수가 있겠소?] (.......) 제갈신중은 그만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신형을 일으키며 말했다. [그렇다면 당신들은 아예 나의 말을 믿지도 않겠군. 정말로 당신들은 나에게 그녀를 소개 받고자 하는 것이오?] 당백승은 다시 말했다. [자신의 분수를 잘 알고 있다니 다행이군.솔직히 우리는 그 가면을 쓰고 있다 는 계집은 만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제갈신중은 내심 어이가 없어서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당신은 오로지 내가 그 일을 저질렀다는 말이오?] 당백승은 말했다. [당신은 여태 그렇게 우리를 속여왔으니,그 꿍꿍이 속을 누가 알겠소?] 제갈신중은 그야말로 대꾸를 다하가는 한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즉시 밖 으로 걸음을 옮겼다. 순간, 눈앞에 그림자가 하나 번쩍 하더니 한 사람이 그의 앞을 막아섰다. 바로 제갈보중이었다. [형님!] (......!) 제갈신중은 자신의 앞을 막아서고 눈살을 찌푸리고 있는 제갈보중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도 지금 나의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말이냐?] 제갈보중은 매우 못마땅하다는 듯이 이맛살을 찌푸리며 대꾸했다. [지금은 그런 얘기가 아니지않소?] (......!) 제갈신중은 문득 가볍게 웃었다. 이제까지 그는 많은 수모를 감수하고서 참아왔지만 문득 내심에서 강한 환멸 감이 치솟는 것이었다. [그럼, 내가 아직도 너희들에게 멍청한 바보녀석의 대접을 받아야만 옳다는 말 이냐?] 제갈보중은 문득 가볍게 흠칫하며 대꾸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나가는 것은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일은 아니지 않소?] (......) 제갈신중은 다시 표정을 바꾸며 물었다. [그럼 내가 어떻게 해야한다는 말이냐?] 제갈보중은 빠르게 눈빛을 굴리면서 대꾸했다. [그것은 형님이 잘 아실 것이오.우리는 지금 서로에게 좋은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서 토의하는 중이오.] (......) 제갈신중은 이미 이들이 이렇게 나가다가는 한없이 무례하게 나올 것이라는 사 실을 간파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흥분을 하게 되면 자신만 바보가 되고 마는 것이었다. 그는 가능한한 좋은 감정으로 그들을 대하려고 했으나 전혀 그것이 효과가 없 는 눈앞의 이익에만 어두운 자들을 씁쓸하게 생각했다. 솔질히 제갈신중은 이제까지 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차마 냉정하게 대하지 않 고 있었던 것이었다. (어리석은 녀석!) 제갈신주은 내심 그렇게 중얼거렸다. 남궁검민이 다시 나서서 말했다. [그렇소.우리는 지금 서로간에 최선의 길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므로 피차 감정 으로 달릴 필요는 없는 것이오.] 제갈신중은 남궁검민을 향해 가볍게 웃으며 물었다. [그렇다면 당신이 바라는 최선의 방법이란 어떤 것이오?] 남궁검인은 즉시 웃으며 대답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앞으로 모든 행동을 함께하며 가능한 천하를 위해 애쓰자 는 것이오.] 제갈신중은 말을 받아 다시물었다. [혹시 그 말은 앞으로 천하를 위해 애쓰며 가능한한 함께 행동한다는 말이 더 정확한 것이 아니오?] (......?) 남궁검민은 다소 어리둥절해 다하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렇소. 제갈공자께선 거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오?] 제갈신중은 미소하며 대꾸했다. [나는 물론 찬성하는 마음이오.지금 달리 내게 해야할 일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오. 그런데......이 일은 보아하니 약간 불공평한 것 같소.] 남궁검민은 의아해져서 물었다. [불공평하다니요?] 제갈신중은 대꾸했다. [말하자면 그 얘기는 결국 나의 이 힘을 빌리자는 것이 아니오? 나야 뭐 기분 나쁠 것이 없겠지만,당신들에게 봉사를 하는 반면에 돌아오는 이득이 없으니 그게 불공평하다는 말이오.] 남궁검민은 절로 안색이 벌개지면서 물었다. [그럼 제갈공자께서는 무엇을 원하시오?] 제갈신중은 좌중을 돌아보며 웃으며 대꾸했다. [이 일은 서로간에 편하고자 하는 일이니 나 역시 구태여 어떤 조건을 달고 싶지는 않소.다만, 내가 여러분과 일행이 되기 이전에 우선 한가지 분명하게 해둘 것이 있소.] 남궁검민은 물었다. [무엇을 분명히 해두겠다는 것이오?] 제갈신중은 대답했다. [바로 나의 결백이오.나는 사실 정말로 얼마전까지만 해도 전신의 기운이 서로 상충되어 무공을 쓰지 못하게 되어 있었소.그러다가 바로 그 고질병을 고치게 되어 이렇게 무공을 사용하게 되었는데,만일 그런 나의 결백을 인정하지 않고 나를 마치 흉수처럼 생각한다면 도저히 여러분들과 일행이 될 수가 없다는 뜻 이오.] 남궁검민은 그의 얼굴을 보며 다시 물었다. [제갈공자께서 바라는 조건은 바로 그것뿐이오?] 제갈신중은 고개를 끄덕였다. [만일 나의 결백을 인정해준다면 앞으로 여러분은 나의 친구가 될 것인데,무슨 다른 조건을 걸겠소?] (......) 남궁검민은 그 말을 듣자 일순 입가에 미소를 떠 올렸다. [그렇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오.본래 우리 오대세가는 한형제와 같은 데 누가 제갈형을 의심하겠소?] 남궁검민이 제갈형이라고 부른 것은 특별히 그를 자신들의 친구로 생각하겠 다는 의미였다. 제갈신중은 웃으며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앞으로 내가 구태여 그 가면쓴 여자를 데려오지 않아도 되는 것이 오?] 남궁검민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오.사실 우리는 당시 무사했고, 또한 제갈형의 말을 믿고 있는데 구태 여 그런 사람을 데려와야할 필요가 어디에 있겠소?] 제갈금의가 웃으며 나서서 말했다. [그래요! 우리는 그 외에 해야할 일들이 아주 많을 거예요. 정말로 둘째오빠는 알고보니 호탕한 분이로군요?] 제갈신중은 가볍게 웃으며 대꾸했다. [물론이다.너는 그것을 이제야 알았다는 말이냐?] 일시 실내가 부드러운 훈풍이 감돌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남궁검민은 즉시 당백승에게 말했다. [당형,이제 제갈형은 우리의 치구가 되었으니 화해하는 것이 어떻겠소?] 당백승은 이에 앞으로 나서며 제갈신중에게 말했다ㅏ. [당신이 우리의 일원이 된 것을 축하하오.] 제갈신중은 그에게 물었다. [당신도 이제부터 나의 결백을 믿어주는 것이오?] 당백승은 기이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물론이오.당신은 아주 결백하며 그 가면쓴 여자는 데려올 필요가 없는 것이 오.] 제갈신중은 순간 좌중의 사람들을 향해 포권하며 말했다. [고맙소.여러분이 이렇게 나의 고충을 헤아려주니 나로서는 고맙기 짝이 없는 일이오.사실 말이지.......나는 지난 삼년동안 강호를 떠돌다가 우연히 많은 공력을 얻게 되었는데, 그것들이 상충작용을 일으켜서 고생을 하다가 근래에 들어서야 그 고질병을 고치고 깨달음을 얻어서 무공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오.] ...... [만일 나의 무공이 어떤 이치에 의한 것인가 하고 묻는다면 나는 자세히 말할 수가 없소.게다가 ,아까 그 동방노선배도 나의 무공이 부친과 다른 듯 하다고 하였으니,만일 나의 무공이 어디에서 온것인가를 의심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 로서는 곤란한 일이었소.] ...... [그러니까 ......어떤 사람들은 내가 어떤 특별한 마공을 연성하여 천하를 어지 럽히기 위해서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까지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오.그러나,나 의 무공이나 행동을 보더라도 나에게 그럴만한 가능성이나 증거가 거의 없기 때문에 여러분은 여전히 내가 명문의 무공을 연성하고 천하를 위해 애쓰려는 사람이라는 것을 믿어주기바라오.] 제갈신중이 그렇게 일장의 거창한 연설을 마치고 나가 제갈덕중이 침상위에서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형님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으니 안심하십시오.만일 형님이 그 와 같은 음모를 꾸미는 대마두라면,무림은 오히려 아무런 걱정도 없게 될 것입 니다.] 제갈덕중은 이미 제갈신중이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것을 고맙게 생각하고 있었 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한 것이었다. 문득 남궁녹악도 눈빛을 빛내며 입을 열었다. [맞아요.제갈오빠는 공연히 엉뚱한 얘기를 꺼내시는 군요?] 제갈신중은 포권하며 말을 받았다. [그렇습니까?아이쿠,이거 오히려 제가 쑥쓰러워지는 군요. 그건 그렇고 여러분 은 앞으로의 일에 대해서 논의한다고 했는데, 그 얘기는 이미 끝났습니까?] 남궁검민이 대답했다. [우리는 이대로 계속 영웅맹으로 가느냐에 대해서 토의했었는데,조금전에 이미 계속 영웅맹으로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제갈신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나의 생각과 동일하군요.그외은 다른 얘기는 없습니까?] 남궁검민은 미소하며 말했다. [없습니다.만일 제갈형께서 피곤하시다면 가서 주무시도록 하십시오.] 이에 제갈신중은 주저하지 않고 즉시 포권하며 말했다. [그렇게 편리를 보아 주시니 고맙군요.사실 나는 아직 여독이 풀리지 않던 참 이었는데......하하,여러분! 그럼 내일 아침에 다시 뵙도록 하겠소이다!] 그렇게 제갈신중이 밖으로 나오자 실내는 일시 정적으로 휩싸였다. * * * 제갈신중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오자 아까 하려던 비도파천황의 수련을 할까 하고 생각하다가, 밤도 깊어졌고하여 오늘밤은 그대로 잠을 자기로 했다. 제갈신중은 침상위에 누워서 문득 조금전의 일을 생각하다가 가볍게 탄식하며 내심으로 중얼거렸다. (어리석은 사람들,어째서 그렇게 좋은 것은 좋게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말인가? 나는 정말로 너희들의 동무이 되고 싶으나,도리어 그것을 원하지 않으니 하는 수가 없다.) 제갈신중은 얼굴 가득히 씁쓸한 웃음을 떠올리며 잠을 청하고 말았다. 다음날 아침, 제갈신중은 비교적 일찍 잠에서 깨어나서 아래층의 반점으로 내려갔다. 반점에서는 아직 식사는 만들지않고 다만 청차만을 팔고 있었는데,제갈신중은 차를 시켜서 천천히 몇잔이고 따라 마시며 일행이 내려오기를 기다렸다. 이즈음에 날씨는 제법 선선해져 있었다. 과거 같으면 이런 날씨에는 약간 추위를 느꼈었겠으나 이제는 간편한 의복을 입고도 추위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은 물론 그의 몸이 전과 크게 달라졌기 때문이었다. 제갈신중은 그런 생각을 하자 문득 그때의 그 황원원이 보고 싶어졌다. (그녀는 과연 지금 어디에 있을까?과연 그녀는 현재 날뛰고 있는 삼대마세의 정체를 알고 있는 것일까?) 기실, 제갈신중과 다른 일행이 느끼고 있는 형세판단은 약간 다른 것이었다. 정말로 공교로운 우연의 일치가 되겠지만, 일단 삼대마세가 나타나고 성수곡의 주인이 나타난 이상은 세외팔세의 다른 사 람들도 나타날 가능성이 농후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무림은 그야말로 미증유의 대겁란에 휩쓸리게 되는 셈이 로군.) 제갈신중은 문득 전에 보았던 상관구패와 곽자성이라는 두명의 특이한 인물들 을 떠올렸다. 그 두사람은 각기 모습도 다르고 특징도 다르지만 한가지의 뚜렷한 공통점들이 있었다. 제갈신중이 느끼기에 그 두사람에게서는 일종의 상상하기 어려운 힘이 느껴진 다는 사실이었다, 제갈신중은 특히 그 두사람이 하나는 검을 차고 있고 다른 하나는 도를 차고 있었던 일에 대해서 신경이 거슬렸다. (혹시 그들은 각기 세외팔세의 하나인 검총과 도막의 주인들이 아닐까?)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엄청난 일이며 강호는 다시 새로운 상황에 놓 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기실 그럴 가능성은 아무래도 농후한 것 같았다. 제갈신중은 그러한 것을 생각하며 머리가 어지러운 것을 느끼게 되었다. 제갈신중은 청차를 다시 한잔 들이키며 생각했다. (어쨌든 나는 나에로의 길을 걸어가면 되는 것이다.) 제갈신중은 자신의 무공에 대해서 생각하자 문득 다시 황원원에 대한 소식이 궁금해졌다. (그녀는 과연 나의 질문에 대해서 뭐라고 대답할까?) 헌데 제갈신중이 그러한 생각을 굴리고 있는데 문득 밖에서 한 사람이 낯익은 모습으로 들어왔다. 제갈신중은 무심코 그쪽을 바라보다가 일순 놀란 표정을 지었다. -흑의중년인. 뜻밖에도 자신을 상관구패라고 소개했던 그 기이한 복장의 사나이가 천천히 안 으로 들어오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 흑의중년인 상관구패는 비단 기질이 남다를 뿐만 아니라, 키가 육척반에 달하는 키다리여서 설사 수백명의 사람들 속에 있다고 해도 쉽 게 알아 볼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까지 제갈신중이 본 사람들 가운데 가장 키가 커던 사람은 성수곡의 수곡 사로 가운데의 하나인 화노였고, 바로 그 다음이 이 상관구패인 것 같았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사람이 키가 크면 상대적으로 체격이 허술하고 빈약해 보이는 것과 는 달리, 이 상관구패는 도리어 후리후리하고 화강암과도 같은 강인한 기질을 보이고있 었다. 상관구패도 역시 안으로 들어서서 주위를 살피다가 이내 제갈신중이 앉아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아,자네도 여기에 와있었군?] 거의 입술을 움직이지도 않은 것 같은데 제갈신중의 귓전에는 뚜렷한 그의 음성 이 들려오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고도의 전음수법이었다. 대개 강호인들은 일류고수가 되면 누구나 전음입밀의 수법을 사용할 수가 있 고, 게다가 최절정의 고수가 되면 거의 천리전음술이나 백리지청술 따위의 수법들 을 구사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제갈신중은 비록 무공이 상상외로 높아지기는 했으나 아직 그러한 수법을 사 용해본 적이 없었다. 따라서, 그는 한 번 그것들을 사용해볼 속셈으로 전음의 수법을 이용하여 대꾸했다. [또 만나니 반갑습니다.저번의 도움은 고마왔습니다!] (......?) 상관구패는 제갈신중이 이렇게 전음으로 대꾸하자 다소 의아한 기색을 지었다. 하지만, 그는 이내 전음으로 대꾸했다. [그까짓 말을 잡아준 것이 무슨 그리 대단한 도움이겠나?칭찬이 좀 심하군.] (......) 제갈신중은 그렇지 않아도 황원원의 말을 듣고서 아직 확신은 내리지 못하고 있었는데, 과연 이제 정말로 상관구패의 말을 들어보니 그가 다른 도움을 주지 않은 것은 명백해 보였다. 제갈신중은 웃으며 다시 전음으로 말했다. [어쨌거나 그것도 인연인 만큼,오늘 제가 그것을 기념하는 의미로 한잔 대접하 겠습니다.이쪽으로 오십시오!] 그런데, 뜻밖에도 상관구패는 고개를 저으며 좌측의 다른 자리로 걸어가는 걸이었다. [아니야,자네의 성의는 고맙군.이미 한잔 대접받은 것으로 하지.나는 오늘 다 른 볼 일이 있어서 자네와 합석을 할 수가 없군.] (......) 제갈신중은 그 상관구패가 이어 하나의 탁자를 차지하고 점원에게 술을 시키 는 것을 보고, 어쩔수 없이 다시 혼자서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그는 대체 어떤 볼일로 이곳에 온 것일까?) 제갈신중은 상관구패와 같은 인물이 자신도 안중에 두지 않고 어떤 다른 일을 보려는 사실이 궁금해졌다. 그러한 의문을 직접 물어볼 수도 없는 일이고, 그저 훤히 건너다 보이는 곳이니 이렇게 앉아있다 보면 저절로 알게 될 것이 라고 생각했다. 제갈신중은 속으로 그쪽으로 관심을 집중시킨 채 겉으로는 관심이 없는 듯이 고개를 돌리고 계속 천천히 차를 마셨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차주전자의 차가 바닥이 나고 말았다. 제갈신중은 다시 차를 한 주전자 더 주문하기 위해 마악 점원을 부르려고 했다. 헌데 바로 그때의 일이었다. 갑자기 좌측에서 어떤 알수 없는 강렬하고 급박한 느낌이 전해지는 것이 아닌 가? (......!) 제갈신중은 황급히 고개를 돌리다가 일순 안색이 변했다. 지금 그의 가슴을 향해 무엇인가가 아주 빠르고 소리없이 날아오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그것은 바로 하나의 술잔이었던 것이었다. 제갈신중은 워낙에 촉급한 상황이라 즉시 기운을 일으켜서 가슴을 보호하는 것을 물론 좌수를 뻗어 그 순잔을 잡아 갔다. 헌데, 마악 술잔을 잡으려던 제갈신중은 자신의 좌수가 그저 허공만 움켜쥔 것을 보 고 다시 한 번 놀라고 말았다. 그것은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술잔은 지극히 빠르게 날아오다가 갑자기 제갈신중의 석자앞에서 마치 거 짓말처럼 허공에 멈춰섰는데, 놀랍게도 거기에는 술이 가득하게 담겨져 있고 그 술이 밖으로 조금도 흘러나 오지 않은 것이었다. 제갈신중은 이내 그것이 누구의 수작인지 알아차렸다. 과연 아니나 다를까? 다음순간에 문득 다시 상관구패의 전음소리가 귀를 울리는 것이었다. [자네의 무공은 상당히 발전한 것 같군. 자, 나의 술을 한잔 들도록 하게!] (......?) 상관구패는 제갈신중이 소리없이 술잔이 날아오는 기척을 감지한 능력을 칭찬 하고 있는 것이었다. 제갈신중이 고개를 들어보니 상관구패는 어느새 주문한 술의 마개를 따고서 안주를 먹으며 기다리고있었다. 상관구패는 물론 그 술잔을 그렇게 던져서 제갈신중의 무공을 시험한 것이었 다. 제갈신중이 그것을 감지하지 못했어도 결코 그 술잔은 그를 해치지 않았을 것 은 분명한 일이었다. 제갈신중은 하는 수없이 그 술잔을 들어서 단숨에 술을 마셨다. 독하기로 소문난 죽엽청이었다. 제갈신중은 술을 마시고 나서 잠시 생각하다가 문득 다시 그 빈 술잔을 상관 구패에게 던졌다. [잘 마셨습니다만,저는 지금 술이 없으니 빈잔을 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것은 역시 물론 전음이었다. 그런데, 지금 상관구패에게 되돌아가고 있는 술잔이 다소 기이했다. 기실 제갈신중은 조금전에 한 번 시험해볼 생각으로 술잔을 던지는 것에 비로 파천황의 수법을 적용한 것이었다. 술잔은 처음에는 그저 평범하게 날아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어 그 속도는 빨라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한순에 너무나도 빨라져서 마치 도중에서 술잔이 사라진 것 같은 착각 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정작 상관구패의 곁에 이르렀을 때에는 그 술잔의 속도는 다시 거짓말처럼 줄 어들어서 서서히 탁자위에 내려앉는 것이었다. 이곳 반점에는 다른 손님들이 거의 없었고 또한 점원들도 바쁘게 움직이느라 미처 그와 같은 광경들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만일 조금전에 술잔이 그처럼 기묘한 재주를 부리면서도 소리하나 일지 않은 것을 보았다면 크게 놀랐을 것이었다. (......) 상관구패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손을 뻗어서 그 술판을 받았는데, 그러나 왠지 그의 두 눈에는 기이한 감탄의 빛이 어려있는 것 같았다. [이것은 바로 제갈세가의 비도파천황이로군. 정말 대단하군 그래.] (......!) 제갈신중은 그 전음소리를 듣고 내심으로 다소 흠칫했다. 상관구패가 이내 그의 무공을 알아보고 게다가 그것을 쉽게 받아냈다는 것은 최소한 그의 무학이 우위에 있다는 것을 말해주기 때문이었다. [과찬의 말씀입니다.] 제갈신중이 전음을 보내며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상관구패는 다시 술을 따르 며 자음자작하기 시작했다. 헌데 바로 그때 이층의 계단에서 다서 시끄러운 소음소리가 드려왔다. [아,제갈형께서 바로 여기에 계셨군요?우린 그런 것도 모르고 사방을 헤매며 찾았으니......] 낯익은 음성이었다. 그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다름아닌 팽일비와 남궁녹악이 나란히 계단을 내려 오며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남궁녹악은 그렇다고 치고, 이 팽일비는 불과 어제만해도 침울해 보이고 거의 말이 없었는데 오늘은 다시 시끄럽게 말을 걸어오니 정말로 기복이 심한 사람이었다. 제 31 장. 어떤 여자의 고백. 팽일비는 남궁녹악과 함께 제갈신중의 맞은편의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제갈형,간밤에는 잘 지냈소?] 제갈신중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잘 지내기야 했지만,그래 무슨 일이라도 있소?] 팽일비는 짐짓 쾌활하게 웃어보이면 대꾸했다. [그 말은 ,만일 무슨일이 없다면 내가 제갈형을 찾아서는 절대 안된다는 것이 오?] 제갈신중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는 않지만, 지금 두분의 표정을 보아하니 내게 긴히 볼일이 있는 것 같 아서 하는 말이오.] (......) 팽일비는 잠시 제갈신중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실은 그렇소.우리는 어젯밤에 제갈형이 나간 뒤에도 토의를 계속했는데, 일단 부상자가 완전히 치유되지 않았으니 이곳에서 하루 더 묵어가기로 결정하였소.] (하루 더 머물기로 결정했다고? 그럼 지금은 나에게 그 사실을 통보하려는 것 이로군.나와 같은 사람은 의논의 대상이 되지않으니까......지금은 상황이 어려 우니 일단 나를 달래서 적당히 이용해 먹으려는 너희들의 속셈을 내가 모를 줄 아는가?) 제갈신중은 그런 생각을 하며 내심 마음이 씁쓸해졌으나 겉으로는 전혀 내색 하지 않고 대꾸했다. [좋은 생각이오.앞으로 영웅맹에 가게 되면 어떤 험난한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르는데,일단은 여기에서 하루 더 묵으면서 휴식으로 힘을 저축하였다가 다시 활동하는 것이 나을 것이오.] 팽일비는 환한 표정으로 말을 받았다. [제갈형께서도 마침 찬성하시니 다행한 일이구려?] (만일 찬성하지 않는다고 해도 어쩔수가 없는 일이 아니냐?나는 이제 나이나 능력에 있어서도 너희들의 대형이 되어도 부족하지 않은 터에 ,너희들이 나를 이렇게 대하다니 정말 우스운 일이로구나.너희들은 이렇게 하면서도 나의 힘 을 빌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이냐?허허......너희들은 아예 나를 어 리숙한 사람으로 보고 있구나!) 제갈신중은 잠시 그렇게 생각을 굴리다가 대꾸했다. [나로서는 여러분이 이렇게 이른 아침에 그러한 사실을 일부러 통보해주니 고 마울 따름이오.] 팽일비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한 것은 우리가 서로 친구이니 당연한 일이 아닙니까?] (너희들은 겉으로는 친구라고 말하고 있으면서도 실은 전혀 친구의 대우를 해 주지 않고 있다.이것은 마치 내가 너희들의 친구가 되지 못해서 안달하고 있 고,너희들은 거드름을 피우고 있는 듯한 광경이로구나.하지만 너희들은 오히려 나의 친구가 되기를 안달해야 하는쪽은 너희들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는 말 이냐?지금 너희들이 친구운운하는 것은 결코 선심을 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제갈신중은 내심 그러한 생각을 하며 어이가 없었지만 실제로 그런 말을 한 다고해서 통할 상대들이 아니므로, 미소하며 대꾸했다. [하기는 그렇구려.] ...... 팽일비는 이에 잠시 머뭇거리다가 정색을 하고 다시 말했다. [그건 공적인 일이고......제갈형!나는 사실은 어제 나를 구해준 일에 대해서 감 사의 말씀을 전하려 왔소. 여기있는 이 남궁소저도 역시 마찬가지요.] (어제 내가 너희들의 목숨을 구해준 것은 바로 구명지은 인 것이므로 최소한 커다란 대접은 하지 못하더라도 고맙다는말만은 진실해야 할 것이다.하지만,보 아하니 너희들은 전혀 고마와 하기는 커녕 그저 겉치레로 그런 말을 하고 있 구나.) 제갈신중은 내심 미소하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와 같은 일은 우리가 한 일행으로서 당연한 일인데 그렇게 새삼스럽게 말 할 필요가 어디에 있겠소?나는 다만 여러분에게 내가 그동한 무공을 속인 것처 럼 되었던 사실에 대해서 미안해 하고 있는 중이오.] 그말에, 남궁녹악이 비로소 눈빛을 반짝이며 입을 열어 물었다. [그래서 묻는 말인데요......제갈오빠는 정말로 그렇게 갑자기 그런 무공을 성 취하게 되었나요?] 제갈신중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팽일비가 다시 끼어들어 말했다. [하지만 그러한 경우는 아직 전혀 들어보지 못했는데, 그게 어떻게 가능하다는 말씀입니까?] 제갈신중은 웃으며 대꾸했다. [나 역시 어째서 그것이 가능했는지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있소.그러나 그 모 든 것들이 사실인 것은 분명하고.대체 내가 무엇 때문에 그러한 일에 대해서 거짓말을 하겠소?] (......) 팽일비는 잠시 생각하는 듯 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는 본래 강호인들은 누구나 한두가지의 비밀은 가지고 있는 법이고,게다 가 자신의 독문절기상의 무학에 대해서는 타인이 묻는 것이 거의 금기화되어있 는 상태이니 제갈형은 굳이 그 일로 신경 쓸 필요가 없을 것이오.] 제갈신중은 담담히 미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소.] 그 팽일비는 비록 전처럼 다시 말이 많아지기는 했으나 태도는 달라져 있었 다. 전에는 사뭇 상대를 내려다 보는 듯한 모습이었으나 이제는 거의 절반쯤은 공 경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그는 그야말로 상황에 따라 적응하는 처세술이 뛰어난 것 같았다. 팽일비는 다시 말했다. [어쨌든 우리는 모두 제갈형의 그 놀라운 무공에 대해서 경탄하고 있소.솔직히 과거의 제갈형의 부친도 그 나이에는 결코 그러한 경지에는 오르지 못했었을 것이오.] 제갈신중은 물었다. [과찬의 말씀이오.헌데,앞으로 영웅맹에 가면 어떻게 활동을 할 것인지에 대해 서 개략적인 방향은 정해 놓았소?] 팽일비는 대답했다. [아직은 그곳의 상황을 확실히 알 수 없고 해서 분명한 것은 정하지 않았소.우 리는 아마도 그때 그때 임기응병으로 움직이게 될 듯하오.그때에는 필시 제갈 형께서 다시 많은 도움을 주실 듯하니 미리 부탁을 드리는 바이오.] (흥,내가 너희들의 고용된 경호원으로 생각하느냐? 너희들의 마음대로 나를 이 용하려면 아마도 그 정도로는 어림도 없을 것이다.) 제갈신중은 내심으로 다른 속셈을 굴리면서도 겉으로는 태연히 고개를 끄덕였 다. [나는 최선을 다할 것이오.] 팽일비는 문득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소제는 그렇게 알고 이만 올라가겠습니다.] (......?) 제갈신중은 다소 의아해 하며 물었다. [아니,이제 식사시간이 된 것 같은데,식사를 하지 않고 어째서 올라가려는 것이 오?] 남궁녹악은 여전히 앉아있는 상태였다. 팽일비는 의미심장한 시선으로 그 두사람을 둘러보며 대답했다. [예,사실은 우리는 이미 그 방에서 아침식사를 하기로 하고 주문해 놓았지요.실 은 그것은 제갈덕중을 위한 것입니다.] (......!) 제갈신중은 그제서야 거의 시간이 되었는데도 전혀 일행이 반점에 나타나지 않 는 이유를 알아차렸다. 기실 그들은 제갈덕중의 몸이 불편하기 때문이라는 핑계를 달고 있지만,제갈 신중을 꺼려하고 자신들만의 유대감을 더욱 강화하려는 의도인 것이었다. 그들은 오늘 하루종일 보기 싫은 제갈신중과 멀리하고 푹 쉬면서 전력을 재정 비하려는 모양이었다. 팽일비가 지금 굳이 내려와서 제갈신중에게 내일 떠난다는 사실을 통보한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인 것이었다. 제갈신중은 실로 겉과 속이 다른 일행에 대해서 내심 더욱 입맛이 썼지만 여전 히 웃으며 대꾸했다. [아,그랬었구려? 그렇다면 국이 식을지도 모르니 어서 위로 올라가 보구려!] 팽일비는 이에 포권하며 말했다. [그럼 두 분은 즐겁게 드시기를 바라겠소.] [두 분?] 제갈신중이 어리둥절해 하고 있는 사이에 팽일비는 다시 윗층으로 올라가 버 리고 자리에는 남궁녹악과 제갈신중만이 남았다. 제갈신중은 남궁녹악을 보고서 팽일비가 말한 두 분이라는 말뜻을 알아차렸 다. 하지만, 아직 이 남궁녹악이라는 여자의 속셈은 알 수가 없었다. 제갈신중은 따라서 전혀 모르는 것처럼 의아한 표정으로 남궁녹악에게 물었 다. [아니,낭자께선 어째서 같이 위로 올라가지 않는 것이오?] 남궁녹악은 이에 갸름한 얼굴을 살짝 움직이며 배시시 웃어보였다. [저는 다른 목적이 있어서 남았어요.그것은 바로 당신에게 오늘 아침의 식사대 접을 해드리려는 것이예요.] (......?) 제갈신중은 의아한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아니 낭자는 나에게 달리 빚진 것이 있는 것도 아니데 어째서 아침식사를 대 접하겠다는 것이오?] 남궁녹악이 남아서 식사대접을 해주겠다는 것은 실로 엉뚱하기 짝이 없는 일 이었다. 제갈신중은 짐짓 어리숙한 듯이 그렇게 물었다. 남궁녹악은 어리둥절해졌다. [아니 뭐라고요?] 제갈신중은 다시 말했다. [일전에 나는 황보낭자에게 다소의 빚진 일이 있어서 그녀에게 저녁을 사주었 던 것이오.그런데 낭자가 갑자기 아침을 사겠다니 ......혹시 그럼 낭자는 언젠 가 내가 모르게 빚진 일이 있었다는 말이오?] (......?) 남궁녹악은 그 말을 듣자 일순 더욱 어리둥절해 하더니 이윽고 무슨 뜻인지 알 앗는지 그만 박장대소를 했다. [호호홀!당신은 정말 재미있는 분이로군요.이봐요!사람이 식사대접을 한다는 것은 그렇게 반드시 빚이 있기 때문만은 아니예요.] 제갈신중은 이미 기호지세라 더욱 어리숙한 표정을 보였다. [아니 그럼, 거기에 다른 이유도 있다는 말이오?] 남궁녹악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예를 들어서 나처럼 상대에게 호감을 표시하기 위해서 간혹 식사대접 을 하기도 하는 거죠.] (......?) 제갈신중은 이번에는 정말로 의아해져서 물었다. [아니 그럼 당신이 나에게 호감을 표시하려는 것이라는 말이오?] 남궁녹악은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래요. 당신은 나의 이 말이 믿기지 않나요?] 제갈신중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쎄요......] 남궁녹악은 웃으며 말을 받았다. [하기는 너무 갑작스런 말이라서 쉽게 믿기지는 않을 거예요.우리 일단 식사부 터 시키도록 하죠.] 이어, 남궁녹악은 점원을 불러서 아침식사를 주문했다. 이 무렵에는 객방에 있던 많은 손님들이 우르르 몰려내려와 점차로 반점의 내 부가 시끌복잡해 지고 있었다. 반점의 주방에서도 비로소 식사를 제공하기 시작하여 실내가 매우 활기차게 돌 아가기 시작했다. 제갈신중은 남궁녹악이 음식을 주문하는 사이에 주위를 둘러보다가 문득 입구 쪽을 보고 가볍게 이채를 띠었다. 문득 반점의 바깥쪽 입구에 한명의 나이어린 백의소녀가 안으로 들어서고 있 었는데 유난히 시선을 끌었기 때문이었다. 나이는 이제 십오륙세 정도 되었을까? 일신에 하얀 매화꽃 무늬의 장삼을 걸친 그 소녀는 매우 아름다운 편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제갈신중에게 유난히 시선을 끄는 이유는 바로 그러한 것들이 아니었 다. 그녀에게는 쉽게 감지하기 어려운 일종의 서릿발과도 같은 기운이 감돌고 있었 는데, 그것이 불현 듯 제갈신중에게 어떤 기묘한 예감을 불러 일으켰기 때문이었다. 과연 아니나 다를까? 정말로 제갈신중의 예감을 적중시키기라도 하듯이 그 백의소녀는 곧장 상관구 패의 앞으로 다가가더니 가볍게 인사를 하며 뭐라고 하는 것이었다. 이때는 실내의 소음이 대답하여 미처 그 음성을 들을 수가 없었다. (저 사람이 오늘 볼일이 있다는 것은 그럼 저 백의소녀를 만나려는 것이었 나?) 제갈신중은 절로 궁금한 생각이 들어서 한 번 백리지청술의 수법을 사용해 보 았다. 비록 그것은 처음으로 사용하는 것이었으나 일단 귀를 그쪽으로 기울이자 이내 효과가 나타났다. 본래 이 백리지청술은 지상에 귀를 대고 있으면 과장해서 백리 안쪽의 모든 소 리들을 구분해서 들을 수가 있다는 수법으로, 과거에는 소수의 독문절기였으나 이제는 무림세가에서는 많이 접할 수 있는 흔한 절기들이 되어 있었다. 비록 실내의 소음이 갖가지로 방해를 하고 있었지만 제갈신중은 이내 아주 뚜 렷하게 그들의 대화내용을 들을 수가 있었다. [뭐라고?......그럼 너는 누구냐?] 상광구패의 질문에 백의소녀는 공손히 대답했다. [소녀는 성모님 좌하의 사군자화의 하나인 백매이옵니다.] 이어 그녀는 계속해서 말했으나 전음을 사용하는지 들리지않았다. (성모라고......?대체 누구를 말하는 것이지?) 제갈신중은 그러한 얘기를 듣자 내심 더욱 궁금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일설에 의하면 무학이 대홍락의 경지에 오르면 남의 전음도 들을수가 있다고 하던데,한번 시도해 볼까?) 헌데 제갈신중이 마악 더욱 마음을 모으려고 할 때였다. 느닷없이 남궁녹악이 앞에서 소리치며 그의 정신을 분산시켜 버리는 것이었 다. [아니 이봐요!뭘 그리 여자를 보고 넋이 나가 있죠?나를 정말로 그렇게 대해 도 되는 건가요?] (......!) 제갈신중은 그만 정신이 번쩍 들어서 서슬이 푸른 남궁녹악을 향해 변명했다. [아,아니요.나는 단지,뭔가 생각할 일이 있어서 그랬던 것이오.] 남궁녹악은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 [흥,그렇게 나이어린 계집을 보아야만 생각을 할 수가 있나요?대체 그녀보다 내가 못한 것이 뭐가 있죠?] 제갈신중은 그만 정신이 없어졌다. 상관구패와 백의소녀는 이미 서로간의 얘기를 마쳤는지 함께 밖으로 나가고 있 었다. 제갈신중은 자신이 그들의 뒤를 쫓지 못하는 것을 딱하게 생각하며 다시 남궁 녹악을 향해 말했다. [그게 대체 무슨말이오?지금 나의 나이는 그녀보다 무려 열살 정도나 많은데,내 가 무슨 그런생각을 할 수가 있겠소?솔직히 그녀가 내가 아는 사람인가 했던 것 뿐이지,다른 욕심은 없었소.게다가 낭자의 미모를 그 어린 계집아이의 못난 얼굴에 비하라니,그건 어림도 없는 일이오.] 남궁녹악은 과연 여자이기 때문인지 칭찬을 하자 이내 기분이 풀어졌다. [아,그런가요?호호!그렇다면 오히려 내가 방해를 한 꼴이 됐네요?하지만 그 계 집아이의 얼굴이 못났다는 말은 옳지 않아요.그 계집의 미모는 앞으로 머지않 아 천하일색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을 거예요.] (......) [그나저나 저 때문에 그들을 놓치게 되어서 어쩌죠?] 제갈신중은 상관구패와 백의소녀가 이미 밖으로 사라진 뒤이기 때문에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어쩔 수가 없는일이오. 사실,그다지 중요한 일도 아니었소.] 남궁녹악은 비로소 안심한 듯 입가에 예의 그 미소를 떠올렸다. [어마 그런가요?그렇다면 그나마 다행스럽네요?] [......] 그 무렵에 점원들이 식사를 날라왔기 때문에 두 사람의 대화가 잠시 끊어졌다. 제갈신중은 내심 고개를 숙이고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아까 그 백의소녀가 말한 성모라는 사람이 혹시 세외팔세의 하나인 성모궁의 주인인 만화성모라면......그렇다면 이제 천륭무가를 제외한 세외팔세의 모든 후 인들이 모두 나타난 셈인데?......아아,그렇다면 앞으로 무림천하는 어떻게 되어 갈 것인가?천하는 그야말로 그들의 세력다툼의 각축장이 되지는 않을까?......) 제갈신중은 그만 절로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그럴리는 없겠지만 거기에 정말로 천륭무가의 후인마저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허허......그 세외팔세는 본래 천년동안 하나씩 나타났었던 것인데 이 제 그것이 한꺼번에 나타난다면 그야말로......그야말로 상상할 수도 없는 세상 이 되겠구나.대체 어째서 이와 같은 불가사의한 일이 벌어지고있는 것인가?정 말로 세상이 멸망하려는 것일까?......) 비록 아직 확실하지 않은 가상적인 일들에 불과하지만 제갈신중으로서는 언뜻 마음이 긴장되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자신이 지나치게 혼자서만 생각에 잠긴 것을 느끼고 고개를 들어보니 과연 음 식상이 다 차려져 있고, 남궁녹악은 다소 기이한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남궁녹악은 그야말로 날씬하고 섬약해 보이는 듯한 체격에 전형적인 계란 형의 피부가 흰 아름다운 미소녀였다. 반듯하고 아름다운 코와 우유빛으로 은근히 빛나는 그 얼굴은 흡사 인형을 보 는 듯하고, 게다가 그 가운데의 두 개의 눈동자는 마치 흑보석을 박아놓은 듯이 반짝이고 있었다. 솔직히 그녀의 무공이 일류고수의 수준이어서 그렇게 더욱 아름다운것이지만, 현재 걸치고있는 녹색의 청초한 난초무늬의 의복도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없 었다. (......) 제갈신중은 혹시 그녀가 다시 화가 난 것이 아닌가 하고 걱정했으나 뜻밖에도 그녀는 전혀 그런 기색이 아니었다. 제갈신중이 고개를 들자 그녀는 문득 다소 흠칫하는 듯 하더니 이렇게 물어보 는 것이었다. [무슨 생각을 그리 열심히 하죠?내가 당신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도 믿기지 않나요?] (......) 제갈신중은 쉽게 상대방의 마음을 알수가 없었기 때문에 다소 생각하는 듯 하 다가 대답했다. [당신은 우리 일행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여자인데,내가 어떻게 당신을 쉽게 믿을 수가 있겠소?] 남궁녹악은 그 얘기를 듣자 다소 얼굴이 빨개졌다. [그 얘기는 다소,과찬이군요. 당신의 여동생인 제갈금의만 해도 절대 나보다 못하지 않고...... 하지만, 당신의 그 심정은 이해할 수 있어요.] [......?] 제갈신중은 상대방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저 앞에 차려져 있는 음식들을 먹고 마시기 시작했다. 이곳의 요리들은 정말로 고급의 음식들답게 맛이좋고 훌륭해 보였다. 남궁녹악은 자신은 먹지 않고 제갈신중이 식사를 하는 것을 보면서 다시 입을 열어 말했다. [사실,저는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당소협과 친했었어요.당신도 이미 들어서 알 고 있을 지 모르지만.......그러나,사실은 모두가 생각하는 것처럼 우리들의 사이 는 그렇게 가까운 것은 아니예요.다만 우리 오라버니가 그와 친하기 때문에 나 도 친근하게 대해주었을 뿐인 거예요.] (......?) 제갈신중은 전혀 뜻밖의 얘기를 듣고 내심 절로 어리둥절해지지 않을 수가 없 었다. 사실 그는 이 남궁녹악이 당백승과 친했었는지 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 두사람의 사이가 멀어지게 되었다는 것이오?] 남궁녹악은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예요.사실 우리 두 사람의 사이는 멀어지고 할 것도 없는 것이므로 단지 내 얘기는 우선 서로간의 오해는 없애자는 것이지요.내가 지금 말하고자 하 는 것은 그러니까......] 제갈신중은 그녀가 말꼬리를 흐리는 것을 보고 말을 받았다. [그러니까 당신이 진짜 호감을 느끼기 시작한 사람은 바로 나라는 말이오?] 남궁녹악은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래요.] 제갈신중은 그녀가 그렇게 정색을 하고 말하자 도리어 싱거워지고 말았다. [......] 제갈신중이 묵묵히 음식만 먹자 남궁녹악은 다시 웃으며 물었다. [당신은 내가 당신의 무엇에 반하게 되었는지 왜 물어보지도 않으시죠?] 제갈신중은 그만 어색하고 싱거운 느낌이 들었으나 즉시 고개를 들고 물었다. [그럼 그 이유는 무엇이오?] 남궁녹악은 이에 배시시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당신의 무공이 갑자기 높아졌다는 사실이 많은 작용을 했다는 것을 부인 하지는 않겠어요.무림에서는 사실 배분이나 나이보다 진짜 무공이 높은 사람 이 어른이고 영웅호걸이니까요.게다가 나는 전부터 제갈세가를 어느 정도 동 경하고 있었어요.] 제갈신중은 웃으며 물었다. [당신은 지금 나에게 청혼하고 있는 것이오?] 남궁녹악은 다소 당황한 듯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예요.물론 그 정도는 아니지만 어쨌든 ,일단 제가 호감을 느끼기 시작했 으니 앞으로 우리 사이는 좀더 나아질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요?안그런가요? 당신의 생각은 어떻죠? 저를 어떻게 생각하나요?] 남궁녹악은 여전히 음식은 먹지 않고 있었다. 지금 그녀는 마치 세 속의 음식을 먹지 않고 이슬만 받아먹고 사는 산 속의 선녀처럼 보였다. 제갈신중은 대답했다. [나 역시 당신에게 어느 정도는 호감을 느끼고 있소.] 기실. 제갈신중은 전날 황보숙한을 부인으로 맞이하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물론 당시는 지금과는 상황이 전혀 달랐지만 지금이라고 해도 그때와 그렇게 다르지는 않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제갈신중은 더러 인생의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도 하지만, 역시 자신도 남들처럼 한명의 여자와 혼인하여 한평생을 살아가게 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남궁녹악이 청혼을 해온다면 거의 마다할 이유가 없는 것 이며 제갈신중의 대답은 그런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었다. 남궁녹악 역시 그러한 제갈신중의 속마음을 눈치챘는지 일순 빙그레 웃으며 다 시 말했다. [정말 그런가요?아아 고마워요.저는 마치 기분이 날아갈 것만 같군요.] 제갈신중은 웃으며 말했다. [나 역시 기분이 좋소.하지만 지금 귀한 음식이 식고 있으니 우선은 식사부터 하는 것이 어떻소?] 제갈신중은 본래 남을 가능한한 좋게 보려는 버릇이 있기 때문에 남궁녹악의 그러한 말을 듣자 이내 그간의 감정이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만일 이런 여자와 한평생을 살아갈 수만 있다면 그까짓 많은 다른 사람들에 게 무례를 당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제갈신중은 문득 자신이 너무 외곬으로만 생각하여 일행에게 오해를 하고 지 나쳤던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남궁녹악은 문득 자리에서 일어서면 그윽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아니예요.저는......저는 지금 소변이 마려워서......미안하지만 잠시 뒷간에 갔다와야 하겠어요.] 제갈신중은 일단 마음이 풀려있었고 게다가 늘씬하고 아름다운 그녀의 용모와 그윽한 눈빛을 보자 절로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특히 그녀는 소변이라는 원색적인 말을 사용했기 때문에 일순간 제갈신중의 심장은 쿵,하고 뛰는 것 같았다. [미안하기는 뭐가 미안하오.어서 다녀오시오!] 제갈신중은 그렇게 말하고 나서 남궁녹악이 뒷간을 찾아가는 것을 보면서도 정 신이 없었다. 그는 이순에 자신이 빨리 자신의 일행에 대한 판단에 오해는 없었는지 생각해 봐야 하겠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러한 생각을 빨리 끝내야 자신의 행동도 앞으로 분명하게 책임질 수가 있겠 기 때문이었다. (한심하구나,제갈신중!......) 제갈신중은 내심 자신의 마음을 정리하기 우해서 생각을 굴리려고 했으나 조 금전에 너무 흥분했기 때문인지 잘 되지 않았다. 따라서, 제갈신중은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기 위해서 운기조식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 그의 무공으로는 앉은 채로 운기조식을 하는 것이 가능한 것은 물론이 었다. 일단 그렇게 운기조식을 하자 흥분되었던 마음이 다소 가라앉는 것 같았다. 따라서 그는 이번에는 생각을 다른 곳으로 돌려보기 위해 이전에 궁리하던 것 에 신경을 써보려고 했다. 제갈신중의 뇌리에는 문득 조금전에 생각했었던 그 남의 전음을 듣는 수법에 대한 것이 떠올랐다. 그것을 일명 천청대법이라고 한다고 했다. 제 32 장. 신기한 천청대법. 그 천정대법이라는 것은 달리 수법이나 구결이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저 이 름만 알려져 있는 것이었다. 과거부터 제갈세가에는 대홍락의 이상의 무학경지에서는 그 천청대법을 펼치 는 것이 가능하다고 전해지고 있었다. 제갈신중은 아직 자신이 부친이 그러한 능력이 있는지는 듣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제갈신중은 그것이 되고 안되고를 떠나서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기 위해 한 번 노력해 보려는 것이었다. 그는 일단 과거 자신이 주화입마를 입어서 땅바닥에 쓰러졌을 당시의 마음 상 태를 유지하려고 애를 썼다. 제갈신중은 이미 스스로도 자신이 비록 가전의 무학을 사용하고 있기는 하지 만 그 근본은 전혀 다른 것이라는 사실을 감지하고 있었다. 제갈신중은 따라서 그의 몸을 변화시켰었던 당신의 그 심경을 돌아키려고 애 를 쓰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한 그의 노력은 비록 처음이었으나 거의 확실한 효과를 나타냈다. 제갈신중은 즉시 마음이 느긋해지고 부드럽게 가라앉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 다. 그는 일단 그렇게 마음이 평정되기 시작하자 그 상태에서 마음을 현재의 주위 의 상황으로 돌려보았다. 그러자, 주위가 마치 투명한 듯한 느낌이 들면서 그의 귓가로 실내의 모든 소리들이 들 리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실로 신비로운 경험이었다. 이제까지 가전의 무학을 펼치면서 느꼈던 일종의 답답한 기분이 이 순간에는 느껴지지 않고 있었다. (좋군!) 제갈신중은 내심 마음이 흡족해져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이 순간에 있어서 물론 그의 마음은 이미 조용하고 맑게 가라앉아 있었다. 조금전의 그 흥분된 감정은 이미 사라져서 흔적도 찾을 수가 없게 되었다. 제갈신중은 내심 스스로 그러한 것을 알고는 이제는 그만 아까 하려던 일행 에 대한 생각을 하려고 했다. 그는 약간의 아쉬움도 없지 않았으나 주위의 소음들을 한 번 더 들어본 연후에 이윽고 마음을 현실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헌데 바로 그 무렵에 느닷없이 그의 귓전에 우연히도 다음과 같은 낯익은 사람 들의 음성이 들려오는 것이었다. ...... [그래, 그 자식이 뭐라고 했지?] [어떻게 되었을 것 같아요?] [그야 물론 그 녀석이 너에게 홀딱 넘어가고 말았겠지.흐흐,어리석은 놈의 자 식!] [흥,내가 얘기해 주지 않아도 잘 아는 군요.이제는 내가 또 어떻게 해야 하는 거죠?] [악매,화가 난 거야? 내가 악매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잖아?] [흥,그 말은 정말로 하는 말인가요?] [물론이지.이제 이번의 일이 끝나서 집으로 돌아가면 정식으로 아버님께 말씀 드려서 매파를 보내도록 하겠어.우리는 만인들이 보는 앞에서 혼인식을 올리 는 것이고,너는 앞으로 우리집의 대부인이 되는 거야.내 이미 그 얘기는 너의 오빠에게도 말해두었다고.] [알았어요.어서 앞으로 내가 해야할 일이나 말해보라니까요.] [악매,너 호,혹시 이미 정말로 그 녀석에게 마음을 빼앗기기 시작한 것은 아닐 테지?] 그것은 겉으로 듣기에는 그저 어떤 남녀사이의 사랑얘기인 것 같았다. 만일 그 두 음성이 상당히 낯익은 것이 아니었다면 제갈신중은 갑자기 그 소리 에 귀를 기울이지도 않았었을 것이었다. 게다가, 만일 얘기가 거기에서 끝나고 말았다면 제갈신중은 그저 영문도 모르고 어리 둥절해지고 말았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다음의 말소리는 일순간 그의 마음을 크게 상심시켰다. [사천당가의 당백승, 승오라버니! 당신은 그렇게도 자신감이 없나요?당신의 그 염왕편이라는 별호는 이제 개에게나 줘버리는 것이 어때요?] 그렇다. 제갈신중은 바로 그 순간에 분명하게 알수가 있었다. 지금 얘기를 나누고 있는 두 사람은 다름아닌 당백승과 뒷간에 다녀오겠다던 남궁녹악이었던 것이었다. 제갈신중은 지금까지 마음속으로 의아해하고 있었으나 조금전의 남궁녹악의 말 로써 그러한 사실을 분명하게 알수가 있었다. 기실, 이러한 반점에는 뒷간이 건물의 내부에 있는 것이어서 제갈신중은 그녀가 정 말로 뒷간으로 찾아가는 줄로 알았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뒷간으로 가는 듯이 모퉁이를 돌아가서는 구석진 보이지 않는 다 른 자리로 가서 당백승과 만나고 있는 것이었다. 제갈신중은 처음에는 느끼지 못했으나 이내 그 모든 소리들로 인해 자신이 이 주변의 형상을 마치 투시하는 듯이 알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 그 두사람의 음성은 마치 모기소리처럼 작게 들리고 있었다. 그 음성은 계속되었다. [흐흐흐,하기는 너는 이미 나와 살을 섞은 사이이니 그렇게 하려고 해도 할 수 가 없을 거다.네가 만일 그놈에게 마음이 기울면 내가 다 불어버릴 테니까 말 이야!] 남궁녹악은 싸늘하게 코웃음을 쳤다. [요 악독한 노란 원숭이야! 나는 그날 네가 만일 나를 강제로 범하지 않았다 면 너와 한몸이 되지는 않았을 거야.] 당백승은 음침하게 말했다. [하지만 악매! 악매가 만일 나를 싫어했다면 며칠전에 그렇게 나에게 달라붙고 좋아서 괴성을 지르지는 않았을 걸?] 남궁녹악은 대꾸했다. [흥,정말로 자꾸만 그런 얘기를 할 거예요? 창피스럽게......대체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그래?] 당백승은 웃으며 대꾸했다. [우리가 지금 이렇게 전음으로 말하고 있는데 대체 누가 듣는다고 그래?본래 우리는 그놈의 무공이 높아서 엿들을 까봐 전음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아닌가? 흥,놈은 우리가 이렇게 얘기하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모르고 있을 것이다.이봐 악 매,오늘밤은 어때? 내가 밤새도록 진저리를 치게 만들어 줄까?] (......!) 제갈신중은 순간 한가지의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알고보니 그는 지금 두사람의 전음을 멀리서 엿듣고 있었던 것이었다. 즉, 자신이 어느새 그 천청대법이라는 놀라운 수법을 터득하게 되었다는 것인데, 하지만 제갈신중은 미처 그런 성취감을 느끼기도 전에 계속 그들의 대화내용을 들어야 했다. 대체 그들이 자신을 어떻게 하려는지를 알기 위해서였다. 이어 남궁녹악은 다소 웃으면서 말을 받았다. [요 노란 원숭이는 정말로 못말리겠군요!그건 그렇고,어서 앞으로 내가 어떻게 해야할지에 대해서 가르쳐 줘요.내가 뒷간에 간다고 하고 나왔지만 이렇게 계 속 시간을 끌다가는 그가 의심할 지도 몰라요.] 당백승은 말했다. [흥,그대가 돌아가서 대변을 보았다고 말하면 될게 아닌가?저번 날에는 내가 그대가 대변보는 것을 구경했었는데,실은 그 모습이 일품이더군 그래, 천하에 그런 모습조차 음탕해 보이는 여자는 아마도 그대밖에는 없을 거야.] 이어 당백승이 어디를 어떻게 했는지 남궁녹악이 전음으로 뽀족하게 소리쳤 다. [어마,남들이 볼지도 모르는데 이런데서 이러면 어떡해요! 어서 손을 치우지 못 해요?] 당백승은 다소 쑥스러운 듯이 말을 받았다. [음 좋아,내 그럼 앞으로 해야할 일에 대해서 말해주지.앞으로 그대는 그 제갈 신중이라는 녀석을 유혹하여 얼마간 몸이 달아오르게 만든 다음에, 이윽고 우 리들을 위해 몸과 마음을 다 바치도록 만드라는 말이야. 그러니까 너는 그자 에게 마음을 줄 듯 하면서도 결국은 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지.] 남궁녹악이 물었다. [그럼 나중에 그 모든일을 마치고 나면 어쩌지?] 당백승은 말했다. [내가 보기에, 그 녀석은 이번에 그렇게 된다면 결국 비명횡사를 당하게 되고 말 것이다. 너는 단지 그때까지 놈을 조종하여 우리에게 이익이 되게 하며, 가 능한한 놈에게서 그 무학의 비밀을 알아내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지.지금의 상 황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어.] 남궁녹악은 다시 물었다. [만일 그가 나중에도 죽지 않으면 어쩌지?] 당백승은 대답했다. [사실 지금의 무림정세가 너무나도 위험하여 우리에게는 그 놈이 오래도록 살 아있을수록 좋은 것이다.그놈은 틀림없이 우리의 방패가 되어줄 것이거든! 하 지만 나중에 정말로 그자가 부담이 되어 죽여야 한다면 한가지의 확실한 방법 이 있지.그건 바로 놈을 대마두로 몰아서 무림공적으로 만드어 버리는 거야.솔 직히 놈이 그 삼년동안에 어떤 마공을 연성한 것이라고 하고,우리 모두가 증 인이 된다면 놈을 무림공적으로 삼는 일은 손바닥을 뒤집는 일보다도 쉬울 것 이다.] 남궁녹악이 다시 물었다. [하지만 그 제갈남매들이 반대하지 않을까?] 당백승은 대꾸했다. [흐흐,그건 걱정할 것이 없어.사실 우리 오대세가는 한몸이나 마찬가지이고 서 로 뭉쳐야만 살게 되어있는 것이므로,그들은 자신들의 입지를 위해서 반대할 리가 없는 거야.특히 이번에도 그들이 은근히 동조를 한것이므로 조금도 걱정 할 것이 없는 셈이지.흐흐흐, 그 녀석은 심지어 자신의 친혈육에게도 그와 같 은 적대감을 받고 있으니 정말로 웃기는 일이지 뭐야.] 남궁녹악은 웃으며 말을 받았다. [호호호, 알겠어요.그러고 보니 앞으로 그자는 죽게 되어있는 것이므로 나는 전혀 부담이 없어지는 것이로군요! 그렇다면 나는 그자를 앞으로 마음대로 요리할 자신이 있어요. 보기보다 아주 순진한 녀석이거든요.호호호!] 당백승은 말했다. [악매의 그 요녀적인 능력은 내가 알고도 남음이 있지. 그러니까 악매는 앞으 로 그 재능을 마음껏 발휘하면 되는 거야.그리고......오늘밤의 그 약속은 잊지 말어!] 남궁녹악은 그만 까르르 웃으며 전음이 아닌 육성으로 말했다. [승오라버니가 살려달라고 빌지 말아요!] 순간, 그들은 대화를 끝내고 가볍게 손짓을 하더니 헤어졌다. 당백승은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움직여서 이층으로 올라갔고, 남궁녹악은 그 길로 소리를 거의 내기 않고 뒤쪽에서 돌아서 뒷간이 있는 쪽 에서부터 천천히 이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 제갈신중은 눈을 뜨고서 천청대법도 가동하고 있었는데, 과연 아니나 다를까? 남궁녹악이라고 느껴진 그 사람의 움직임이 모퉁이를 돌아나오는 순간 정말로 거기에 남궁녹악이 나타나는 것이었다. 제갈신중은 사실 그 순간에 자신의 천청대법이 틀렸었기를 차라리 바랬었는지 도 모를 일이었다. 남궁녹악은 아까와 거의 다르지 않은 모습에 그윽한 눈빛을 하고 있었는데 다 가와서 제갈신중에게 이렇게 말했다. [미안해요,제가 그만 너무 당신을 기다리게 했죠.사실은 그저 소변만을 보려고 했는데 갑자기 거기에서 복통이 오는 바람에......] 그녀의 표정은 너무나도 그럴듯해 보여서 이번에도 역시 정말인 듯한 느낌까 지 들었다. (정말로 어처구니가 없군!) 제갈신주은 내심으로 말할 수 없는 상심과 분노를 느기고 있었으나,눈앞의 여 자에 대해서는 차라리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여전히 미소하면 대꾸했다. [그렇다면 당연히 늦어졌겠군. 어쨌든 거기 앉으시오, 식사나 마저 하도록 합 시다.] 남궁녹악은 이에 기다렸다는 듯이 자리에 다시 앉으며 약간 눈살을 찌푸렸다. [그래요.헌데 음식들이 전부 식어서 엉망이 되었군요.제가 다시 시키도록 할까 요?] 제갈신중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소.나는 이미 어느정도 식사를 마친 상태이고......낭자 가 만일 생각이 없다면 지금 밖으로 나가서 함께 시장이나 둘러보았으면 하 오.] 남궁녹악은 그 말에 안색이 환하게 밝아졌다. [어마, 그럼 저에게 선물을 해주시려구요?] 제갈신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내 명색이 사내대장부로서 어찌 그대에게 얻어먹고만 있을 수가 있겠 소?] 남궁녹악은 그말에 신형을 일으키며 탄성을 질렀다. [아아, 당신은 그야말로 멋진 사내대장부로군요!] 제갈신중은 이어 남궁녹악과 함께 천천히 밖으로 나갔다. * * * 시장은 반점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거기에는 온갖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는데 아직은 시간이 일러서 내놓은 물건 들이 거의 없었다. 제갈신중은 이윽고 커다란 포목점의 안으로 들어가서 남궁녹악이 원하는 의복 한벌을 사줄 수가 있었다. 남궁녹악은 그런 것을 선물받자 기분이 좋은지 연신 조잘거렸다. 제갈신중은 대강 그녀의 말에 답변을 해주면서 천천히 거리를 걸어다니다가 이윽고 하나의 제법 화려해 보이는 주루에 들어섰다. 제갈신중이 구태여 그렇게 그녀와 함께 주루에 들어선 것은 지금은 왠지 다시 반점에 돌아가고 싶지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실로 뜻밖에도 제갈신중은 거기에서 그처럼 다시보기를 고대하던 황원원과 그 일행을 보게 되었다. 황원원은 게다가 지금 그 곽자성이라는 거구의 색목인과 자리를 같이 하고 앉 아 있는 상태였다. 제갈신중은 안으로 들어서서 그러한 광경을 보자 먼저 기이한 의구심이 앞섰 지만, 이내 한가지의 다른 생각을 떠올리고는 급히 남궁녹악에게 고개를 돌려서 전 음으로 말했다. [낭자! 갑자기 뜻밖의 소득을 보게 되었소.지금 저기에 앉아 있는 사람이 바로 그 가면을 쓰고 있는 여자인데, 내가 여기에서 지키고 있을 테니 어서 반점으 로 달려가서 일행에게 이쪽으로 오라고 전갈해 주시오!] (......?) 남궁녹악은 그 말에 다소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허나, 이미 일행이 가면쓴 여자를 궁금해 하던 일과,그리고 제갈신중이 계속해서 재 촉하는 바람에 이내 빠르게 혼자서 반점쪽으로 다려가기 시작했다. [여기가 회심주루하는 사실을 잊지 마시오!] 남궁녹악의 등뒤에 대고 그렇게 전음으로 소리친 제갈신중은 문득 아까 자신의 기억이 떠올라서 내심 이렇게 중얼 거렸다. (혹시 저 사람들도 지금 나의 전음을 듣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돌아보니 전혀 그런 것 같지만 않아서 제갈신중은 이윽고 천천히 그들이 앉아 있는 자리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 * * 제갈신중이 그 여섯명의 사람들의 앞으로 다가가자 이내 그들은 각기 제갈신 중을 향해 아는 척을 했다. [어? 자네를 여기에서 또 만나게 되는 군.] 황원원과 수곡사로는 약간 담담한 표정이었지만 특히 곽자성은 유독 제갈신중 을 반기는 척했다. 제갈신중은 그가 전과 달리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을 보고 의아해 했으나 이내 포권하며 인사했다. [그간 안녕하셨소이까?] 곽자성은 그를 마주 바라보며 싱글벙글한 표정이었다. [나야 뭐 늘 그렇지.그나저나 자네는 은인에게 인사도 안하는가?] 곽자성은 황원원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은인이라고?) 제갈신중은 이전에 그녀에게 여러 가지 도움을 받은 적이 있지만 그러나 정작 은인이라는 말에는 다소 의아해졌다. 그런데, 제갈신중이 무심코 다시 과거의 주화입마 당했던 기억을 떠올리는 순간에 문 득 그의 귓가에 이러한 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당신은 그 얘기를 하지 않겠다고 해놓고서 또 그런 얘기를 하나요?] (......?) 제갈신중은 그만 크게 어리둥절해졌다. 그것은 바로 황원원의 말이었다. 하지만 황원원은 지금 전혀 입을 열지도 않았고 게다가 자신이 아닌 곽자성을 향해 하는 말이었다. 그러니까 전음입밀인 것이다. 제갈신중은 무심코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다가 자신도 모르게 다시 천청대법을 펼치게 되어서 황원원의 전음을 엿듯게 되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기실 바로 거기에 괴이한 점이 있었다. 본래 이 천청대법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 말 그대로 지상의 모든 소리들을 들 을 수가 있는 것이아니라, 오히려 전음이라고 해도 만일 상대의 무공이 자신과 비슷하거나 혹은 높으면 전음을 엿들을 수가 없게 되어 있었다. 어쩌면 그것은 당연힌 일일 것이었다. 헌데 지금 제갈신중은 황원원의 전음을 듣고 있으니 이것이 대체 어찌된 일이 란 말인가? 혹시 정말로 제갈신중의 무공이 현재 황원원을 능가하고 있다는 말인가? 허나, 제갈신중은 이내 뭔가 이유가 있는 것이지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뒤이어 곽자성의 답하는 전음소리도 그의 귓가에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아,알겠소 황소저! 내 그 얘기를 집어치우도록 하지.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나중을 위해서라도 그 얘기는 저 녀석에게 해주는 것이 좋을 텐데? 저번의 그 계곡에서 현현괴로가 달아난 것은 오직 당신이 부근에서 도왔기 때문인데,혹 시 저 녀석이 그것도 모르고 다시 현현괴로의 앞에 무모하게 도전할 지도 모 르지 않소?] (......!) 제갈신중은 그 애기를 듣자 일순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없었다. 전날 태양마교의분당이라는 계곡에서 현현괴로가 갑자기 달아났던 것이 여태 강한 의문으로 남아 있었는데, 놀랍게도 알고보니 당시에 현현괴로를 쫓아주었던 것은 이 황원원이었다는 것 이 아닌가? 제갈신중은 당시 현현괴로가 자신과 일장을 겨루고 난 뒤에 갑자기 다른 곳을 보고 이채를 띠었던 것을 상기하면서 저로 아연해졌다. 제갈신중은 설마하니 황원원이 그 일을 해주었을 줄을 꿈에도 몰랐었으며,만 일 그것을 알았다면 여태 이렇게 그녀를 다시 만나기 위해 마음을 졸이지도 않았었을 것이었다. 확실히 이렇게 남의 전음을 엿들을 수 있다는 것은 뜻밖의 소득을 가져오는 모양이었다. 황원원은 제갈신중이 어정쩡하게 서있는 것을 힐끗 바라보면서 이어 전음으로 간단하게 대구했다. [어쨌든 지금은 그런 얘기를 해서는 안되니,눈치채게 하지 말아요.] (......) 제갈신중은 모처럼 좋은 말들을 들을 수 있는 기회인지라 조용히 남은 자리에 앉으며 딴곳을 보는 척했다. 곽자성은 그런 제갈신중을 힐끗 보더니 다시 전음으로 황원원에게 말했다. [하여튼,황소저에게 그와 같은 깊은 사랑을 받다니 저 녀석은 아주 복이 많은 녀석인 것 같소.] 황원원은 눈빛을 다소 붉히며 전음으로 즉시 대꾸했다. [사랑이라니요.나는 그저 그가 특이해 보여서 약간 그를 도왔을 뿐이예요.] 곽자성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저 그런 관계라고?하지만 저 녀석이 무공이 그렇게 높은 것도 다 당신의 작 품일 것이고,게다가 당신은 숨어서 계속 저 녀석의 뒤를 밟고 있었으니 그 증 거가 아니오?] 황원원은 제갈신중이 탁자위의 찻잔을 들어서 차를 마시고 주위를 둘러보는 것 을 보고 곽자성에게 다시 전음으로 말했다. [그의 무공이 높은 것은 결코 나의 작품이 아니에요.하지만 만일 그렇다고 해 도 대체 그게 어쨌다는 거죠? 당신이 나에게 원하는 바는 뭐예요?] 곽자성은 가볍게 웃으며 대꾸했다. [그걸 황소저는 모르겠다는 것이오?] 황원원은 힐끗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당신은 나와의 승부를 원하나요?] 곽자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을 말이라고 하오? 만일 그것이 아니라면 내가 무엇 때문에 강호에 나왔 겠소?] 황원원은 제갈신중에게 보이지 않도록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당신도 아시겠지만 지금 강호는 한창 어수선한 상황이예요.그런데도 지금 우 리가 그렇게 승부를 내야 할까요?그것이 그렇게도 중요한가요?] 곽자성은 대꾸했다. [누가 뭐라고해도 나에게는 그 승부가 중요하오.아마도 황소저 당신이 현 무림 에서 가장 강한 것 같기 때문이오.나에게 강호의 안위 따위가 어떤 문제가 될 것 같소?] 황원원은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현 무림에서 내가 최강의 고수인 것은 아니예요.게다가 나는 결코 당신과의 승부를 하지도 않을 것이고요.] 곽자성은 약간 음산하게 웃었다. [내가 이렇게 지키고 있는데 그렇게 마음대로 될 것 같소?] 황원원은 이에 다소 화가 난 듯이 곽자성을 쏘아보았다. [당신은 정말 이러긴가요?] 곽자성은 음침하게 대꾸했다. [뿐만 아니라,나는 당신이 저 녀석을 몰래 사모하고 있다는 것도 밝혀버릴 수 도 있소.] (......?) 황원원은 약간 무거운 시선으로 바라보다가 이윽고 할 수 없다는 듯이 말했 다. [좋아요!사흘후 정오에 우리가 만났던 그곳에서 만나기로 해요!] 그것은 바로 비무를 약속하는 것이었다. 곽자성은 이에 아주 만족한 듯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황소저는 역시 시원시원 하구먼!] (......) 그렇게 서로간의 비무가 결정되자 두 사람은 더 이상 얘기할 것이 없는 모양 이었다. 황원원은 이윽고 제갈신중에게 고개를 돌리고 물었다. [그래, 그간에는 잘 지냈나요?] 제갈신중은 약간 왠지 심술이 나서 그녀를 보며 대꾸했다. [내가 잘 지내는 것이 황소저와 무슨 관계가 있겠소?] 곽자성은 그 말을 듣자 다시 금방이라도 입을 열고 싶은 눈치였으나 억지로 눌러 참는 모양이었다. 황원원은 즉시 다시 말했다. [저 곽대협의 애기는 헛소리에 불과하니 신경도 쓰지 말아요.보아하니 당신의 무공은 전보다도 더욱 증가한 것 같군요?] 제갈신중은 이 순간 하고 싶은 말이 많았으나 억지로 참으면서 대꾸했다. [나의 무공이야 아직 자신의 앞가림도 못할 상태에 불과하지요.그보다 ......지 금 한가지의 부탁이 있는데 들어주겠소?] 이상하게도 황원원의 앞에서는 그 부탁이라는 말이 무리없이 술술 나왔다. 제갈신중은 평소에 남에게 거의 부탁을 하지 않는 편인데, 문득 그런 사실을 깨닫고 다소 의아해졌다. 그것은 사람을 아주 편안하게 해주는 황원원의 독특한 기질 때문일까? 황원원은 웃으며 대꾸했다. [대체 무슨 부탁인데 그러죠?] 제갈신중은 옆의 곽자성을 힐끗 돌아보다가 대답했다. [실은,나는 어제 아침에 본의 아니게 나의 일행에게 당신이 그날 밤에 우리를 도와주었다는 애기를 하게 되었소.헌데,뜻밖에도 일행이 내 말을 믿지 않아서 당신에게 해명을 부탁하려는 것이오.] 황원원은 웃으며 다시 물었다. [지금 그들이 이리로 오고 있나요?] 제갈신중은 이미 자신과 일행사이의 일들을 황원원이 알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제갈신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내가 당신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미안하오.] 황원원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예요.차라리 잘됐어요. 본래 영원한 비밀이라는 것은 없는 법이죠. 그보다 나는 당신을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니 반갑군요.] 제갈신중은 내심 이렇게 중얼거렸다. (흥,여태 나의 뒤를 밟아왔으면서도 시치미를 떼다니!) 황원원은 다시 말을 이었다. [나는 사실 당신을 다시 보게 되기를 바랬어요.] 제갈신중은 은근히 그녀의 시선을 피하며 대꾸했다. [사실은 나도 그랬었소.] (......) 제 33 장. 전설속의 무학. 곽자성이 담담한 표정으로 듣고 있다가 이윽고 일어서며 말했다. [아,이만 나는 일이 있어서 물러가야 하겠소이다.] (......) 황원원이 전혀 아는 척을 하지 않자 곽자성은 제갈신중을 향해 다시 말했다. [이봐 괴상한 젊은 친구! 우리 그럼 인연이 있으면 다음에 다시 만나기로 하 지.] 제갈신중은 그를 향해 포권했다. [안녕히 가십시오!] ...... 곽자성은 곧장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한 듯 신법을 펼치지는 않고 빠르게 걸어 서 밖으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이봐 소형제! 자네는 이제 우리에게는 아는 체도 하지 않을 건가?] 제갈신중은 이에 즉시 몸을 일으키며 그들에게 일일이 포권의 예를 취해 보였 다. [아! 제가 잠시 얘기를 하느라고 미처 인사를 드리지 못했군요. 여러분들은 그 동안 편히 지내셨습니까?] 금노는 엎드려서 절 받는 식이 못마땅한 듯이 인사도 받지 않고 눈살을 찌푸 리면 대꾸했다. [편한 것이 다 뭐냐? 우리는 그동안 너 때문에 십년감수를 할 뻔했다. 실로 그 현현괴로는 무지하게 무서운......?] 금노는 말을 하다가 말고 옆에게 기노가 꼬집는 통에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즉 시 입을 다물었다가 말을 돌렸다. [하하,그렇게 무서운 괴상한 노인이 있었다는 말이다.] (......) 제갈신중은 금노가 말하려는 뜻을 이미 알고 있었으므로 내심 웃으며 곰곰히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수곡사로는 다소 성격이 괴팍해서 그렇지 제갈신중이 이렇게 되게 만들었 던 원동력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게다가, 요즈음 그가 느끼는 일행의 그 간악한 심정들을 생각하면 지금 이들의 순진한 마음이 그렇게도 친근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제갈신중은 즉시 금노에게 물었다. [혹시 아직도 그 음률을 들어줄 상대를 찾고 계십니까?] 금노는 그말에 약간 입이 벌어졌다. [그럼 너는 이제 나의 악기소리를 들어주겠다는 말이냐?] 제갈신중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안되지만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그렇게 해드리겠습니다.그리고 기노선 배님도 역시 마찬가지고요.] (......!) 금노는 그만 좋아서 싱글벙글해지는 눈치였지만 기노는 그 얘기를 듣고도 고 개를 저으며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아니,너...... 너는 어째서 그렇게 우리에게 갑자기 도움을 주려고 하지? 이, 이것은 혹시...... 무슨 수작이 있는 것이 아니냐?] 제갈신중은 즉시 아니라고 대답하려고 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에 그의 귓전에 인기척이 들림과 동시에 낯익은 사람들이 빠르게 안으로 들어서는 것이었다. (......!) * * * 물론 그 순간에 주루의 안으로 들어선 사람들은 바로 다름아닌 남궁검민 등의 일행이었다. 그들은 남궁녹악의 안내를 받아서 급히 안으로 들어서자 일제히 제갈신중 등을 주시하는 것이었다. [바로 그들이예요!] 남궁녹악이 손짓으로 황원원 등을 가리키다 남궁검민 등은 좀더 탁자쪽으로 다가왔다. 제갈신중이 살펴보니 일행중에서 팽일비만이 제갈덕중을 보호하기 위해 객방 에 남은 듯,남은 아홉명이 이 순간에 모두 살벌한 기세로 다가와 있었다. 황원원과 수곡사로는 그들이 다가와도 그저 가만히 있었으므로 제갈신중이 자 리에서 일어나 일행을 맞이했다. [어서 오시오!] ...... 일행이 저마다 황원원과 수곡사로를 바라보다가 그 가운데에서 당백승이 다소 싸늘한 음성으로 제갈신중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 곽가라는 선배는 왜 보이지 않는 것이오?] 제갈신중은 남궁녹악이 그새 자세히도 설명했다고 느끼고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 곽선배는 조금전에 볼 일이 있다고 하시고는 가 버렸소.이 일은 그와는 관 계가 없으니 상관없지 않겠소?] 제갈신중이 의식적으로 남궁검민을 주시하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는 그렇지요.] 제갈신중은 웃으며 다시 말했다. [자,우리는 모두 기왕에 만났으니 그리 서두를 필요는 없을 것이오.일단은 보 다 넓은 곳으로 자리를 옮긴 다음에 얘기를 나누는 것이 어떻겠소?] 당백승 등도 황원원등에게서 뭔가 범하기 어려운 점을 느꼈는지 감히 나서지 않았다. 남궁검민은 즉시 고개르 끄덕였다. [좋은 생각이십니다!] 제갈신중은 이에 점원을 불러 넓은 자리에 데려다 달라고 했고 , 이어 그 점원의 뒤를 따라서 일행 모두가 일층의 하나의 객실안으로 들어서게 되었다. * * * 점원에게 술과 음식들을 주문하고 나서 일행이 모두 자리하자 제갈신중은 다 시 일어서서 일행에게 말했다. [여러분! 내가 이미 말했다시피 여기에 있는 분들이 바로 그날 저녁에 우리들 을 구해주신 분들입니다.만일 의문이 있다면 차례대로 기탄없는 질문을 해주 시기를 바랍니다!] 제갈신중이 그렇게 말하고 나자, 당백승이 기다렸다는 듯이 즉시 입을 열어 황원원에게 물었다. [우선 확인을 하겠는데, 저 제갈형의 말은 사실입니까?] 황원원은 그저 담담한 어조로 대답했다. [예, 사실입니다.] ......! 일행은 정말로 그런 대답을 듣게 되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모양이었다. 당백승은 그러한 긴장감을 누르며 다시 입을 열어 물었다. [당신은 여자라는데 그것도 사실입니까?] 황원원은 이미 거칠은 음성을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 [그것도 사실이예요.] 일행은 황원원의 부드러운 음성에서 그녀가 여자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수가 있었다. 당백승은 다시 물었다. [실례지만 당신의 성함을 가르쳐 주실 수가 있겠습니까?] 황원원은 여전히 시원시원하게 대답해 주었다. [나는 황원원이라고 해요.] ......! 일행은 상대가 그렇게 격의없이 나오고 ,게다가 음성으로 보아 나이도 많지 않다는 것을 알고서 더욱 어리둥절한 표정들이었다. 당백승은 빠르게 눈빛ㅇ르 굴리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아,그러니까 귀하는 바로 황소저이겠구려.헌데 실례지만 황소저께서는 어째서 그렇게 늘 가면을 쓰고 다니시는 것이오?] 황원원은 대답했다. [그것은 나름대로의 고충이 있기 때문이예요.] 당백승은 눈빛을 날카롭게 빛내며 다시 물었다. [죄송하지만 , 지금 이 자리에서 그 가면을 벗어보일 수는 없습니까?] 수곡사로는 이제까지 황원원의 좌우에 묵묵히 앉아 있었다. 하지만, 당백승의 그런 질문을 듣자 일순 참을 수가 없다는 듯이 장노가 투덜거렸다. [빌어먹을, 이건 구해주고도 마치 죄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신문을 받는 꼴이구 면! 그래서 나는 왠지 구해주고 싶지 않았는데......] 하지만, 황원원은 전혀 개의하지 않고서 즉기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물론 가능해요!] 이어, 황원원은 정말로 손을 들어서 얼굴의 가면을 벗어보이는 것이었다. ......! 느닷없이 지독히도 추악한 황원원의 얼굴이 드러나자 다른 일행들은 물론 경 악한 표정이었지만, 당백승 역시 크게 놀라는 모습이었다. 황원원은 그들을 향해 다시 말했다. [나는 본래 이렇게 추악하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가면을 써야만 했던 거예요. 여러분들이 그점을 이해해 주기를 바래요.] 일행 가운데에는 여자들도 있었다. 대개 여자들은 자신의 추악한 모습을 남에게 보이는 것을 지극히 싫어하는 편 이라서 그녀들은 황원원이 그렇게 태연한 것이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 황원원이 이어 다시 그 가면을 얼굴에 쓰고 나자,남궁검민이 포권하며 정중하 게 질문했다. [소저께서 이렇듯 우리에게 성의있는 답변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헌데 그렇 다면 소저의 출신에 대해서 가르쳐 주실 수가 있겠습니까?] 강호에서는 이른바 출신과 배분들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기 마련이었다. 그것은 곧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알 수 있게 해주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일반적으로 더러 자신의 출신내력을 숨기는 사람들도 있지만, 황원원은 이번 에도 역시 순순히 대답하는 것이었다. [나는 성수곡의 주인인 제십오대 성수신의로서 성수곡에서 왔어요.그리고 이분 들은 바로 본곡을 지키는 사람들인 수곡사로로서 함께 나왔지요.] (......!) 남궁검민은 갑자기 뜻밖의 대답을 듣게 되자 일순 크게 놀라며 즉시 다시 물 었다. [아니,성수곡이라면 바로 세외팔세 가운데의 하나인 그 성수곡을 말하는 것입 니까?] 황원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래요.그러니까 나는 칠백년 전의 그 초대의 성수신의의 열네번째의 후 계자가 되는 셈이지요.] ......! 일행은 그처럼 엄청난 말을 듣자 이순 크게 경악하여 그만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당백승은 눈빛을 날카롭게 빛내며 다시 소리쳐 물었다. [하하,당신은 나이도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그런한 말을 우리가 믿을 것 같소?] 황원원은 그러나 조금도 기색이 달라지지 않았다. 그녀는 다시 물었다. [그럼 내가 어떻게 해야 당신들이 그것을 믿을 수가 있겠어요?] 당백승은 잠시 생각하다가 대꾸했다. [본래 우리가 세외팔세를 경의하는 것은 오로지 그들의 무학이 하나같이 초인 적이기 때문이오.따라서 당신이 만약 초인적인 무공을 보여주기만 한다면,우리 는 비록 당신이 성수곡주가 아니라고 해도 해도 그에 준하는 대우를 해줄 것 이오.] 황원원은 그 말을 듣자 즉시 웃으며 대꾸했다. [그렇다면 어려울 것이 없어요.] 말과 함께 황원원은 문득 눈빛을 가볍게 빛내더니 슬쩍 허공으로 가부좌를 틀고 떠오르는 것이었다. 황원원은 이윽고 그렇게 가부좌를 튼 상태로 천정과 탁자와의 사이에 거짓말 처럼 신형을 멈춰세웠다. [이 정도라면 되었나요?] ......? 일행은 황원원이 그렇게 허공에 뜬 상태로 말까지 자연스럽게 하는 것을 보고 그만 멍해지고 말았다. 일반적으로, 무학의 경지에 있어서 일명 초인간의 경지라고 일컫는 대홍락의 경지에 오르 면 일단 전설의 신법인, 육지비행술과 같은 신법을 펼쳐서 하늘을 마음대로 날아다닐 수가 있다고 한 다. 물위에 전혀 아무런 도움도 없이 떠있을 수 있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의 경지 였다. 하지만, 무학이 그보다 높은 경지인 광검에 오르게 되면 사람은 불가사의하게도 허공 에 둥둥 떠 다닐 수 있게 되는데, 그것을 일명 능공허도라고 한다고 했다. 실로 그 광검의 경지는 현재의 영웅맹주인 제갈류량마저 아직 오르지 못한 경 지이며, 일행은 그와 같은 경지가 있다는 것을 이제까지 그저 말로만 들어왔을 뿐이었 다. 그런데, 이순간 느닷없이 놀랍게도 황원원이 그와 같은 신법을 펼쳐내는 것을 보게 되 자 자연 입이 딱 벌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조금전에 그녀가 성수곡주라고 말로만 들었을 때에는 반신반의 하였다가, 이제는 그야말로 뒤통수를 거세게 얻어맞은 듯한 충격에 휩싸이고 말았다. 지금 황원원이 그와 같은 놀라운 절기를 너무도 간단하게 펼쳐보였기 때문에 그들은 지금 마치 헛것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일행중에서도 당백승이 가장 냉혹하고 의심이 많은 편이었다. 그는 잠시 어이없는 듯이 황원원을 바라보다가 일순 소리쳤다. [그렇다면 내 시험해 볼테니 잠자코 계시오!] 순간, 당백승은 즉각 허리춤에서 예의 그 기다란 채찍을 휘둘러서 빠르게 황원원의 몸을 휘감아버리는 것이었다. 물론 그것은 정말로 확인해 보려는 것이었다. 황원원은 여전히 가만히 떠있었으며 이윽고 전후좌우는 물론 상하까지 모조리 채찍으로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당백승은 슬그머니 채찍을 거두고 말 았다. 황원원은 그들을 향해 다시 물었다. [이제는 정말 내말을 믿을 수가 있겠나요?] (.......!) 당백승은 지극히 창백해진 안색으로 잠시 생각하다가 이윽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 능공허도의 수법은 광검의 경지에서만 가능한 것이니, 이제 나로서도 믿을 수밖에 없을 것이요.하지만 일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 한 번 다른 곳으로 움 직여 보지 않겠소?] 황원원은 이에 두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이어, 그녀는 그대로 미끄러지듯이 허공에 뜬 채로 방안을 날아다니기 시작했는데 빠르고 혹은 느렸으며 게다가 여러 가지로 운신하는 것이 지상에서 보다 더욱 자유로와 보였으므로 마치 환각을 대하고 있는 것 같았다. 황원원은 잠시 그렇게 환상적인 신법을 보여주다가 이윽고 다시 자신의 자리 로 가서 앉으며 물었다. [이제는 그만 만족했겠지요?] 당백승은 한동안 넋을 잃고서 신법을 펼치는 황원원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이 윽고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만족했소! 당신은 아마도 성수곡의 주인이 맞는 것 같소.] 황원원은 웃으며 말을 받았다. [본래 우리 세외팔세는 각기 특색있는 무공으로 구분이 되는데 여러분들이 나 의 무공에 대해서 판별할 수가 없는 것이 아쉽네요.만일 그렇게 할 수만 있다 면 여러분은 확실히 내가 성수곡주임을 믿을 수가 있을 거예요.] 문득 남궁검민이 나서서 가벼운 탄식과 더불어 말했다. [세상에 광검의 무공을 성취한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세 외팔세의 사람들일 것이오.게다가 현재의 삼대마세의 무공들은 드러나 있고, 당 신은 전에 소요산마저도 해독시켰다고 했으니, 필시 성수곡의 주인임이 분명 할 것이오.] 황원원은 웃으며 말을 받았다. [고마와요.나는 앞으로 영웅맹주가 나의 무공을 보게 되면 반드시 나의 신분을 증명해줄 것이라고 확신해요.] 황보잠허가 처음으로 입을 열어 물었다. [출신내력에 관한 것은 그 정도로 충분한 것 같고,당신이 이번에 강호에 출도 한 목적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겠소이까?] 황원원은 대답했다. [확실한 위치를 밝힐 수는 없지만, 우리 성수곡은 칠백년 전부터 호남성 무릉 산에서 전해내려져 오고 있었어요.헌데 불행히도 대대로 곡주들이 시조의 절 학을 대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본곡을 강호에 나서지를 못했지요.그러다가 저 의 대에 이르러서 간신히 그 진전을 이을 수가 있었기 때문에 한 번 강호에 나와본 것이었는데, 저로서는 현재의 강호가 이렇게 복잡하게 변했을 줄은 상 상도 못했어요.] 그것은 아주 솔직하게 느껴지는 대답이었다. 전대곡주들이 시조의 절학을 대성하지 못했다는 얘기는 이해가 갔다. 특별한 재능과 인연,그리고 무한한 잠재력이 없다면 결코 성취할 수 없다는 것이 바로 광검의 경지인 것이었다. 일행으로서는 실로 눈앞의 젊은 여자가 그러한 경지에 올라있다는 사실이 도 저히 믿기지 않는 것이기도 했다. 문득 화노가 나서서 부연설명을 했다. [우리는 이제까지 본곡에서 한 번도 나가보지 못하다가 이번에 곡주께서 대공 을 성취하시는 바람에 겨우 바깥구경을 하게 되었던 것이오.만일 우리들의 그 런한 사정을 짐작한다면 능히 모든 것을 이해할 수가 있을 것이오.] 화노는 키가 가장 클 뿐만 아니라 수곡사로의 맏이여서 제법 말하는 것에 무 게가 있었다. (......) 당백승은 더 이상 캘것이 없다고 생각되어 화제를 돌려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그건 그 정도로 하고, 이제는 당시에 우리를 구하던 상황에 대해서 자세히 말씀해 주시겠소?] 황원원은 웃으며 대답했다. [당연히그래야지요.당시 우리가 당신들을 보게 되었던 것은 사실 우연의 일치 가 아니라 필연이었어요. 나는 본래 제갈공자의 일에 관심을 가지고 접근하던 중에 당신들의 위기를 간파하게 되었죠.] (......!) 당백승은 제갈신중의 얘기가 나오자 눈빛을 빛내며 다시 물었다. [그럼 어째서 하필이면 제갈형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까?] 황원원은 시원시원하게 대답해 주었다. [그렇다면 역시 처음부터 설명해야 하겠군요.나는 본래 일단 강호에 나서자 당 금의 영웅맹주인 제갈류량의 거처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죠. 헌데 그가 귀가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먼저 제갈세가에 가서 둘러보던 중에 문득 삼년동안 집을 떠나서 방황한다는 제갈공자의 얘기를 듣게 되었어요......] 이어지는 황원원의 얘기는 전개된 사실과 다르지 않았다. 단지 제갈신중이 영약을 복용한 일에 대해서 편의상 기노와 금노가 호기심에 의해 성수곡의 영약을 복용시켰다는 말로 대신하였을 뿐이었다. 황원원의 이야기는 느릿하게 계속되었다. 도중에 점원들이 바쁘게 음식을 차려놓고 물러갔으나 누구도 그러한 것에 신 경을 쓰는 사람들은 없었다. [저는 금노가 몸을 치료하려다가 오히려 잘못하여 두가지의 기운이 상충되게 만들었다는 사실과,게다가 그 제갈공자의 기질이 다소 특이하다는 얘기를 듣 고 비로소 그를 한 번 만나볼 속셈으로 여러분의 뒤를 밟게 되었던 것이죠.] 남궁검민이 포권하며 말했다. [그럼 그 뒤의 상황에 대해서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황원원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우리는 여러분들이 갑자기 사라진 것을 알고 조사하다가 일월신교의 잔당들 에 의해 납치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하지만 그들이 어떻게 여러분들을 미 리 알고 기다렸는가를 조사하려다가 그만 시간이 늦어지게 되어서 한밤중에야 여러분을 마차에서 구출하게 되었던 것이예요.그 위는 제가 마침 소요산의 독 성을 해독할 수가 있었기에 그 산정에 여러분들을 뉘어 놓았던 거예요.] 황보잠허가 의아해 하며 물었다. [우리를 중독시켜서 납치하려던 자들이 일월신교의 무리들이 확실합니까?] 황원원은 대답했다. [확실해요.그들은 상부의 지시로 특별히 여러분을 납치하려던 것이었는데, 그 러한 일은 우리의 눈을 속이지는 못하는 법이지요.하지만 상부의 누가 그런 지시를 내렸는지는 시간이 촉박하여 미처 알아내지 못했어요.] (......) 일행은 문득 전날에 조하의 강상에서 일월신교의 무리들로 보이는 흑의복면인 들의 공격을 받은 일을 상기하고는, 정말로 황원원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남궁검민은 신형을 일으켜서 황원원에게 포권하며 새삼스럽게 인사를 올렸다. [알고보니 정말로 소저께서는 우리들의 목숨을 구해주신 은인들이셨군요.은혜 에 감사드리며 무례하게 대한 것을 사죄드리는 바입니다.] 이미 그 무렵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황원원의 말에 대해서 신뢰를 하기 시작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의심많은 당백승은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다시 물었다. [헌데 우리를 그렇게 구해주고 나서 일부러 모습을 감춘 이유는 무엇입니까?] 황원원은 대답했다. [본래 나는 성수곡의 주인으로서 모든 일들을 행적을 드러내지 않고 하려고 했지요.그것은 세외팔세가 나타나면 무림은 혼란에 빠지기 쉬울 것이기 때문 입니다.하지만 먼저는 제갈공자에게 비밀을 지켜주실 것을 부탁했으나,이제는 무림정세가 혼란스러워졌으므로 나의 신분을 알려주려는 것입니다.] 황원원은 이순간 제갈신중이 중독되지 않았던 얘기는 하지 않고 있었는데, 아마도 그것은 혹시 일어날 지도 모르는 어떤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한 것 같 았다. 황보잠허가 다시 물었다. [저 제갈형의 몸이 그렇게 위험한 상태였다면 어째서 지금은 갑자기 좋아진 것입니까?] 황원원은 제갈신중을 돌아보면서 대꾸했다. [당시 제갈공자는 주화입마에 빠지기 쉬운 상황이었어요.하지만 본래 무학의 정점이라는 것은 무학의 초식보다는 마음에 의해 좌우되는 이치인 것이예요. 내가 이미 특이하게 보았듯이,제갈공자는 주화입마에 드는 순간에 갑자기 저 절로 마음이 열리고 무학의 오의에 통하게 되어서 그렇게 장애가 제거되고 무 공이 급증한 것 같아요.이를 테면 불도에서의 깨닫는다는 것과 비슷한 이치이 겠지요.] 일행은 이미 제갈신중의 두가지의 영약을 복용하여 체내에 엄청난 공력이 잠 재하고 있었다는 얘기를 들었으므로 비로소 약간 이해하는 모양이었다. 황보잠허가 다시 물었다. [그럼 우리도 그와 같은 상황이 되면 혹시 그와 비슷한 결과를 얻게 될지도 모른다는 말입니까?] 황원원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지는 않아요.나는 아직도 제갈공자의 변화에 대해서 이해할 수가 없지만, 최소한 다른 보통사람들은 그러한 상태에서 백이면 백,모두 다 주화입마되어 죽음을 당하게 된다는 사실만은 알고 있어요.문제는 바로 제갈공자의 특이한 심성이 불가사의한 변화를 일으킨 것인데,완전히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가능한 일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죠.] ...... 일행은 그 말을 듣자 제갈신중에 대해서 비로소 새롭게 인식하게 되어 절로 그의 얼굴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실로 제갈신중의 무학이 가전의 것과 다소 다른 것도 이해가 가는 순간이었 다.물론 일행은 제갈신중에 대한 오해도 대부분 풀 수 있게 되었다. 당백승은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물었다. [이제 당신은 앞으로 어떻게 하실 계획입니까?] 황원원은 웃으며 되물었다. [이제 나와 저 제갈공자에 대한 오해가 풀렸나요?] 당백승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확실히 우리가 모든 면에서 오해하고 있었음을 인정하겠습니다.] 황원원은 웃으며 말을 받았다. [그렇게 시원하게 대답해 주니 고맙군요.나는 앞으로 무림의 정세를 보아가며 행동할 작정이예요.물론 강호의 평화를 위해서죠. 여러분에게 다른 질문은 이 제 없나요?] 남궁검민이 이윽고 다시 입을 열어 물었다. [황소저께서는 현 무림의 정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황원원은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그건 한마디로 딱 잘라서 말하기가 어렵군요.아직 내가 현무림의 정세에 대해 서 잘 모르고 있기 때문이죠.] 남궁검민은 다시 물었다. [그럼 현재 혈겁을 일으키고 있는 삼대마세가 세외팔세 가운데 세곳의 진전을 이은 것이라는데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황원원은 대답했다. [그것은 아마도 사실이 틀림없을 거예요.나도 처음에는 뜻밖에도 세외팔세의 후인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것에 대해서 의아해 했지만, 믿을 수 없게도 정말 그것은 사실이예요.] 일행은 내심 혹시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가 그런 확정적인 얘기를 듣게 되 가 그만 절로 암담한 생각이 들었다. 하기는, 눈앞에 이미 세외팔세 가운데의 성수곡의 주인이 나타나 있으니,거기에 다시 삼대마세의 후인들이 더 나타나지 말라는 보장도 없는 것이었다. 남궁검민은 다시 물었다. [그럼 현재 천하에 나타나 있는 세외팔세의 주인들은 모두 소저를 포함하여 네명이라는 말씀입니까?] 황원원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예요. 그보다 더 많지요. 바로 아까 그 곽대협도 역시 세외팔세 가운데의 한 사람이죠.나는 여러분이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했었는데, 모르고 있었나요?] 제 34 장. 청혼을 하다. 일행은 일순간 그 말을 듣자 크게 어리벙벙했다. 비록 혹시나 하는 생각을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정말로 그런 사실을 듣 게 되자 얼이 다 빠지는 느낌이었다. 비록 세외팔세의 다른 사람들이 더 있다면 그것이 견제하는 역할을 하게 되어 강호무림에 이롭게 작용할 지는 알 수가 없으나, 일단은 그것이 너무나도 엄청난 얘기이기 때문에 말문이 막히는 것이었다. 남궁검민은 잠시 어리둥절해 하다가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그 이외에도 더 있다는 말씀입니까?] 황원원은 대답했다. [그 곽자성은 도막의 주인으로서 제칠대의 도황제이고, 그밖에 성모궁의 주인 인 만화성모와 검총의 주인인 천검성자도 나타났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 일행은 그만 하나같이 넋이 다 달아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조금전에 네 명도 많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알고보니 세외팔세 가운데 이미 일 곱명이나 나타나 있다는 것이 아닌가? 일행은 너무나도 놀라서 일시 넋이 다 달아날 지경이었다. 하기는, 그러한 상황이라면 이제 강호무림은 세외팔세간의 각축장이 될것이며 오히려 혈겁은 줄어들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불과 며칠전까지만 해도 영웅맹에 의해 움직이던 천하가 갑자기 그렇게 되어 버리다니, 대체 그것을 믿고 수용할 수가 있을 까? 남궁검민도 멍하니 넋을 잃고 있다가 다시 물었다. [그럼 세외팔세 가운데에서 오직 천륭무가를 빼고 나머지 일곱 개의 세력이 모두 나타난 것이 아닙니까?] 황원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내가 이상하게 생각하는 거예요.비록 우연히 두어개의 세 력이 한꺼번에 나타날 수도 있겟지만 이렇게 일곱 개나 동시에 나타났다는 것 은 어딘가 자연스럽지 못하고 작위적인 느낌이 느껴져요.] (......?) 남궁검민은 절로 눈이 휘둥그래졌다. [작위적이라면, 그럼 누군가가 뒤에서 그렇게 되도록 조작했을 가능성이 있다 는 말씀입니까?] 황원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잘은 모르지만,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거예요.] 순간 일행은 더 이상 놀랄 기력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천하의 세외팔세가 일곱 개나 나타났다는 사실만 해도 머리가 터질 듯이 놀랍 고 경악스러운데, 거기에다 다시 그것을 일부러 조작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니 그게 어디 상 상이나 해볼수가 있는 일인가? 하긴, 일전에 현송도장도 삼대마세를 조종하는 하나의 힘이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을 했었다. 만일 그렇게 세외팔세 가운데의 일곱 개를 조종하는 그보다 뛰어난 능력자가 정말로 있다면, 대체 그는 누구이며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는 말인가? 비록 그것은 아직 확실하지 않은 추측에 불과하지만 너무나도 가공스러워서 듣는 일행의 전신은 일순 모골이 송연해질 지경이었다. ...... 일행은 잠시 마음이 진정되기를 기다렸으나 더 이상 그와 같은 질문을 하고 싶은 용기가 나지 않아서, 황보잠허가 한숨과 함께 말을 돌리며 물었다. [그렇다면 소저께서는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어느덧 일행은 대부분이 자연스럽게 황원원에게 경어를 쓰기 시작하고 있었으 며 너무 놀라서 자신들도 아직 모르고 있었다. 황원원은 대답했다. [글쎄요.아직은 뭐라고 말할 수가 없겠으나,일단은 어떤 일이 벌어지든 간에 천하의 무림인들이 올바른 마음으로 합심하여 천하를 구하려는 노력을 펼치 고,게다가 조금도 경솔하게 움직여서 헛되이 목숨을 잃는 일이 없어야 하겠지 요.] ...... 일행은 일전에 자신들이 지나치게 자만하고 경솔하여 하마터면 일을 그르칠뻔 했던 일들을 상기하고는 그만 전신에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남궁검민은 문득 무슨 생각을 했는지 포권하며 다시 물었다. [혹시 소저께서는 지금 특별히 하고자 하시는 일이 없으신 것이 아닙니까?] 황원원은 웃으며 대답했다. [함께 행동하자는 말씀이로군요? 하지만 저는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기 때문에 지금 장담할 수는 없군요. 일단은 가능하면 그렇게 하도록 해 보지요.] 그와 같은 황원원의 말을 듣자, 남궁검민은 갑자기 천군만마라도 얻은 듯이 기쁜 표정을 지었다. 지금과 같은 극히 혼란한 시기에 황원원과 같은 사람만 옆에 있다면 그보다 안전한 것이 없겠기 때문이었다. 남궁검민은 다시 포권하며 말했다. [그렇게 애써주시겠다니 실로 감사드리는 바입니다!] * * * 일행과 황원원은 비록 아직 식사때는 되지 않았지만,이어 거기에서 식사를 마 치고 곧장 반점으로 옮기기로 했다. 제갈신중은 아까부터 시종 황원원과 단둘이 대화를 나누고 싶었으나 사람들 때문에 미처 그런 기회를 잡을 수가 없었다. 일행이 모두 만안반점으로 옮길 때 그는 간신히 앞쪽에서 황원원과 어깨를 나 란히 하고 걸을 수가 있었다. 제갈신중은 그녀를 향해 전음으로 물었다. [혹시 나 때문에 곤란을 겪게된 것은 아닙니까?] 황원원은 제갈신중을 돌아보면서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예요.어째서 그런 생각을 하죠?] 제갈신중은 아까 그녀가 자신 때문에 곽자성과 비무약속을 한 일을 말하려다 가 참았다. 본래 남의 전음을 듣는다는 것은 미안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나의 무공에 관해서 당신과 얘기를 나누고 싶소.] 황원원은 눈빛으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그래요.] (......?) 제갈신중은 그녀를 보며 물었다. [당신의 무공에 대해서 나와 의논하고 싶다는 말이오?] 황원원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것은 아무래도 상관없어요.저는 다만 당신과 얘기를 나누고 싶어요.당신 과 얘기를 나누고 있노라면 왠지 마음이 따뜻해지니까요.] (......) 황원원의 그 말은 혹시 자신에게 호감을 표시하는 것이 아닐까? 제갈신중은 다소 생각하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혹시 당신이 지금 우리와 함께 행동하려는 것은 나 때문에 그러는 것이 아니 오?] 황원원은 즉시 웃으며 대답했다. [저는 실로 당신과 같은 사람이 천하에 오래도록 살고 또한 많은 영향을 끼치 기를 바래요.그것은 무공과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이요.저의 생각이 잘못된 것 인가요?] 제갈신중은 그녀를 보며 다시 물었다. [혹시 당신은 나에게 뭔가 바라는 것이 있는 것이 아니오?] (......) 황원원은 잠시 생각하는 듯 하다가 되물었다. [아무래도 저는 감히 그럴 수야 없겠죠? 당신은 훌륭한 분이니......] 제갈신중은 왠지 가슴에 우울한 격정이 치밀어서 대꾸했다. [아직 천하에서 나를 훌륭하다고 말해주는 사람은 당신밖에는 없소.나는...... 나 자신이 정말로 모든 행동에 대해서 책임질 수 있을 까 하는 생각이 드오.] 두 사람이 그렇게 전음으로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어느새 모든 일행은 반점의 안에 들어서게 되었다. 남궁검민 등은 급히 점원들에게 좋은 객방 두어개를 마련하라고 주문한 이후 에 모두가 반점에 앉아 차를 마셨다. 제갈신중은 공연히 황원원과 가깝다는 내색을 하기 싫어서 다소 떨어져 마주 보고 앉았는데, 그의 옆으로 즉시 남궁녹악이 다가와 앉는 것이었다. [호호,왜 그래요? 기분이 별로 좋아보이지 않는데요?] 그녀에게서는 남자의 가슴을 설레이게 하고도 남을만한 진한 향수의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 제갈신중은 문득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남궁녹악은 돌아보지도 않고 건너편의 황원원에게 물었다. [황소저,혹시 이미 혼인할 남자가 있는 것이 아니오?] ......? 좌중의 일행은 저마다 엄숙한 표정으로 차를 마시고 있다가 그 얘기를 듣고는 놀라 황원원을 바라보았다. 비록 가면에 가려져 있으나 황원원은 갑자기 육성으로 그런 질문을 받게 되자 당황했는지 제갈신중을 바라보았다. [저는 아직 무공수련에만 몰두하느라 아는 남자도 없을 뿐만 아니라 혼인을 하지도 못했어요.헌데 왜 갑자기 그런 질문을 하시는 거죠?] 제갈신중은 이미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기 때문에 즉시 대꾸했다. [나는 문득 황소저와 같은 분과 장차 혼인하는 남자는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 이 들었기 때문이오.] 그말에, 남궁녹악은 그렇지 않아도 의아해 하고 있다가 놀라며 옆구리를 가볍게 꼬집 었다. [내가 지금 여기에 있는데 그게 대체 무슨 소리예요?] 전음으로 소리치는 그녀의 말을 들었는지 황원원은 웃으면 대꾸했다. [과찬의 말씀이시군요.저처럼 못생긴 여자에게 누가 청혼을 하겠어요?] 하지만, 제갈신중은 여전히 개의치 않고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만일 저와같은 사람이 청혼을 한다고 해도 받아주겠다는 말씀이 오?] ......! 일행은 뜻밖에도 제갈신중이 정색하고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보고 다 함께 의 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황원원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그것은 ......물론이예요. 저는 사실 아무하고나 혼인하고 싶은 여자는 아니지 만,제갈공자와 같은 분은 정말로,천하에서 둘도 없는 훌륭한 분이라고 생각하 고 있었어요.] (......) 제갈신중은 내심 그녀가 용기있게 대답해 주는 것을 보고 기뻐서 즉시 다시 말했다. [그렇다면,지금 나는 이 자리에서 당신에게 정식으로 청혼을 하는 바이오.원 원! 나와 혼인해 주겠소?] ......! 좌중의 일행은 대화가 점점 더 엉뚱한 방향으로 나가는 것을 보고 정말로 어 이없어 했다. 게다가, 황원원은 즉시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상공! 물론 저는 당신의 청혼을 기꺼이 받아들이겠어요.당신이 그렇게 저를 선택해 주시니 저는 정말로 행복해요.] 황원원은 얼굴은 비록 추악할 망정 눈빛만은 지극히 아름다웠다. 제갈신중과 그녀의 눈빛이 허공에서 마주치자 일순 뜨거운 사랑의 불길이 타 오르는 것 같았다. 남궁검민이 어리둥절 하다가 의아해 하며 황원원에게 물었다. [아니 이거...... 이거 두분이 정혼을 하신 것이 사실입니까? 두분은 지금 정말 로 그런 얘기를 나눈 것입니까?] 황원원은 태연하게 웃으며 그를 향해 대꾸했다. [그럼 이런 얘기를 장난으로 하는 사람도 있나요,남궁소협? 저는 이시간 이후 로 저분 제갈상공의 약혼녀가 되었음을 정식으로 선언하는 바 이예요.] (......) 남궁검민은 상황이 설마하니 이렇게 변할 줄은 몰랐었기 때문에 망연한 표정 을 짓다가 할 수 없이 포권하며 말을 이었다. [그,그렇다면 두분의 약혼을 축하하는 바이오......] 황원원은 이내 그를 보며 포권하며 답례했다. [고마와요!] ...... 대체 이렇게 갑자기 엉뚱하게 약혼을 해버리는 사람들도 있을까? 갑작스런 제갈신중과 황원원의 괴상한 약혼은 다른 일행에게는 마치 느닷없이 날벼락을 맞은 것 같은 일이었다. 이것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엉뚱한 일이었다. 일행 가운데에서 교활하고 냉혹한 당백승등이 지켜보고 있었으나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혼인이라는 것은 역시 당사자들의 일이며 제삼자가 관여할 수가 없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실상 그 당사자들만의 일로 인해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기 이를데가 없었다. 우선 일행중에서도 가장 직접적으로 피해를 느끼고 있는 것 같은 사람은 남궁 녹악이었는데, 그녀는 한동안 어리둥절하여 멍하니 넋을 잃고 있다가 이어 두 눈에서 원독의 빛을 발하며 일어나 소리치는 것이었다. [아,당신은 ......당신은 나를 좋아한다고 해놓고 이럴수가 있나요?나와 한마디 의 상의도 없이 이렇게 나를 물먹일 수가 있나요?] (......) 제갈신중은 고개를 돌려서 비로소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태연자약하게 대꾸 했다. [내가 당신에게 물을 먹였다고?실로 이상한 말이로군! 설마하니 우리가 정혼 이라도 했다는 말이오?나는 오늘 아침에 낭자가 호의로 대접하기에 나 역시 옷을 한 번 선물했을 뿐인데,그렇다고 해서 나의 이 중대한 약혼문제를 거론 하는 자리에서 그런 욕설을 퍼붓다니...... 낭자는 혹시 지금 너무 분수를 모 르고 있는 것이 아니오?] 순간 남궁녹악은 눈에서는 독광이 번뜩였으나 일시 대꾸할 말이 생각나지 않 아서 말을 더듬거렸다. [뭐라고 나더러 분수를 보른다고?이......이 팔푼이 같은 자식이!......네놈이 감히 나에게 이런 무례를 보이고도 멀쩡할 줄 하느냐!] 말이 끝나자 남궁녹악은 더 이상 참을수 없다는 듯이 뒤쪽으로 달려나갔다. [악매!] 당백승이 소리치며 은근히 그 뒤를 쫓아갔다. ...... 좌중은 그 느닷없는 사건으로 인해 갑자기 매우 어수선하게 변했다. 조금전의 상황은 객관적으로 너무나도 명백하여 제갈신중에게는 조금도 불리 함이 없었다. 남궁검민은 자신의 누이로 인해 생긴 일이라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일어 서서 황원원에게 포권하며 말했다. [황소저! 이거 저의 누이가 아직 철이 없어서 생긴 일이나,부디 너그러이 용서 해 주시기 바랍니다.] 황원원은 이에 웃으며 고개를 고로저었다. [아니예요.저의 낭군은 워낙에 훌륭하신 분이므로, 나라고 해도 그런 상황이었 다면 질투심이 났을 거예요.저는 이해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남궁검민은 황원원이 뜻밖의 방향으로 대답하는 것을 보고 어리벙벙하여 그만 천천히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이때 제갈신중은 이미 천청대법을 펼치는 것이 거의 습관화 되어 있었으므로 두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는 중이었다. 바로 조금전에 다려나간 남궁녹악과 당백승의 전음이었는데,공교롭게도 그들 이 대화하는 자리는 전과 동일했다. 대화의 내용은 남궁녹악이 신경질을 부리고 당백승이 그것을 얼르는 것이 대 부분 이었다. [아니, 사태가 이렇게 되었으니 난 이제 어쩌란 말이예요!] 당백승은 약간 짜증이 난 듯 했다. [그러길래 내가 조심하라고 했잖아! 이건 누구를 원망할 것이 없이 악매의 책 임이야.] 남궁녹악은 약간 흐느끼는 어조로 다시말했다. [난 갑자기 놈이 내옷을 사주기에 아침에 내가 꼬신 것이 잘먹혀 들어간 줄로 알고 있었는데,놈이 속으로 다른 마음을 품고 있었을 줄이야 누가 알았겠어 요?아이구,남자들이란 모두가 양가죽을 쓴 늑대놈들이야!] [......] 남궁녹악은 당백승이 묵묵하자 다시 전음으로 물었다. [이젠 어떻게 하죠, 승오라버니?] 당백승은 잠시 후에 대답했다. [나는 놈이 이미 우리사이의 깊은 관계를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 하고 있어. 따라서 네가 아양을 떨며 유혹해도 놈은 속으로는 너를 더럽다고 생각하며 넘어가지 않은거야.] 남궁녹악은 화난 음성으로 대꾸했다. [아니 당신은 지금 불난집에 부채질을 하는 거야?앞으로 내가 어떻게 할 것인 가를 묻고 있잖아,이 노란 원숭이야!] 당백승은 약간 음침한 어조로 대꾸했다. [그러니까 내 말은, 지금의 상황을 정확히 알아야 취할 방도가 정해진다는 것 이지.즉, 앞으로 악매가 취할 행동은 두가지라고 할 수가 있지.] 남궁녹악은 즉시 물었다. [두가지라니,그런 뭐야?] 당백승은 대꾸했다. [하나는 물론, 기왕에 그렇게 되었으니 우리 사이의 일을 숨기고 그놈에게 혼 인을 하자고 하며 공개적으로 그 황소저와의 일을 방해한다는 거야.그렇게 된 다면 그놈은 상황이 곤란해질 것이고,너는 그놈을 확 휘어잡을수가 있는 거야. 즉, 이제라도 나가서 네가 그놈과 깊은 관계를 맺었으니 어쩔거냐고 협박하는 거야.] 남궁녹악은 물었다. [아니,그렇다면 나는 정말로 당신과 혼인하기가 어려워지는 것이 아니야?말하 자면 나는 천하의 걸레라고 소문이 날텐데,나중에 해명을 하더라도 어떻게 사 천당가의 며느리가 될 수가 있겠어? 내몸을 이렇게 망쳐놓고 그렇게 한다면 난 정말 노란 원숭이 너를 죽어 귀신이 되더라도 용서하지 않을거야!] 당백승은 매우 짜증이 나서 대꾸했다. [알았얼! 제발 그 듣기싫은 별명은 이젠 부르지좀 마! 그래서 내 또 한가지의 길이 있다고 하지 않았어?사실 놈이 갑자기 저렇게 된 이상은 그 미인계를 쓸 수도 없는 입장이니,다른 방법을 써야 할거야.] 남궁녹악은 즉시 물었다. [그 두 번째의 길이라는 것은 뭐지?] 당백승은 잠시 있다가 대답했다. [그것은 바로 네가 나가서 오늘 아침에 호의로써 대해주려고 했더니 감언이설 로 너를 유혹하려고 했다고 해.하지만 너에게는 이 승오라비가 있다고 역시 정식으로 밝히는 거지.나역시 그것을 인정하고......지금으로서는 놈의 위치가 달라지게 되었으니 좀더 상황을 보아가며 신중하게 대처하는 수밖에 없어.] [......] [이제까지는 악매,너를 이용했지만 이제부터는 정식으로 내가 나서서 놈을 짓 밟아버릴거야.내가 머지 않아서 놈을 밑바닥으로 짓밟아버리지 못하면 이 당 백승이 아니지!] 이빨을 뿌드득 가는 것을 보고 남궁녹악은 기뻐하며 전음으로 말했다. [아이,고마워 승오라버니! 실은 나는 승오라버니가 그렇게 해줄 줄을 미리 알 고 있었지.정말로 승오라버니는 지략이 풍부하여 옛날의 장량이나 제갈공명보 다도 훨씬 뛰어난 사람 일거야!] 당백승은 음침하게 말했다. [그런 쓸데없는 말을 할 시간이 없어.이제 곧 자리에 다시 나가면 침착하게 행 동해야 하는 거야.아무래도 지금으로서는 놈과 황소저가 필요하기는 하니까.] 남궁녹악은 고소하며 대꾸했다. [그런 걱정은 하지도 마!내가 그런 병신같은 자식에게 채이다니 정말로 속상 하지만 속으로 천만번을 더 저주하고 있어.난 반드시 승오라버니가 놈의 면상 을 짓밟아버리는 것을 보고야 말거야!] 이어, 남궁녹악이 당백승에게 덮쳐들었는데 무슨 짓을 했는지 당백승이 약간 당황한 듯이 말했다. [이,이게 무슨 짓이야?누가 볼지도 모르는데?......] 남궁녹악은 이어 다시 전음으로 속삭였다. [보기는 누가 본다고 그래?가만히 있어봐! 내가 기분좋게 해줄테니까......] 대화는 거기에서 일단 끊어졌다. 제갈신중은 거기까지 듣다가 문득 황원원에게 전음으로 물었다. [모두 들었소?] 황원원은 시선을 돌려 제갈신중을 바라보며 역시 전음으로 대꾸했다. [모두 들었어요. 그리고 당신께서 천청대법을 터득하신 것을 축하드려요.] (......) 제갈신중은 다시 말했다. [내가 이런 식으로 당신에게 청혼한 것을 미안하게 생각하오.하지만 내 마음의 진실만은 다름이 없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좋겠소.] 황원원은 눈빛으로 가볍게 웃었다. [상공!상공의 처지를 저는이미 십분 이해하고 있어요.이러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도요.아무튼 저는 당신의 사랑을 얻어으니 행복해요!] (......) 제갈신중은 그녀의 눈빛에서 실로 애틋한 애정을 느끼고 절로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헌데 그때 바로 당백승과 남궁녹악이 천천히 걸어나와 일행의 앞에 나란이 섰 다. 저로 표정이 굳어지는 일행을 향해 남궁녹악이 안색을 굳히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우선 여러분에게 조금전에 물의를 일으킨 점에 있어서 사과드려요.하지만 그 일에 있어서 오해의 소지가 많기 때문에 우선 확실히 해두려는 거예요.] 남궁녹악은 이어 당백승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분명히 말해두지만 이 승오라버니와 저는 이미 깊이 서로를 사랑하고 있고 혼인을 약속하였어요.본래 저는 승오라버니의 마음을 편하게 해드리기 위해 저 제갈공자에게 오늘 아침식사대접을 해드렸던 것이었지요.] 당백승은 일행의 시선이 집중되자 포권하며 말을 받았다. [이 불초한 사람으로서 먼저 장가를 가게 되어 죄송합니다.사실 악매의 말대로 우리는 서로 깊이 사랑하고 있었지요.악매와 저분 제갈공자의 사이에는 아무 런 일도 없었으니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보고 남궁녹악은 이번에는 제갈신중에게 말했다. [이봐요 제갈공자! 당신은 마치 자신이 나를 거절한 것처럼 생각할지 모르지 만,사실은 당신이 약간 오해했던 거예요.나는 그저 승오라버니의 부탁을 받고 당신에게 잘해주었던 거예요.] 제갈신중은 태연히 미소하며 그 말을 받았다. [내가 보기엔 낭자의 말이 더욱 이상하구료.나는 이미 낭자가 저 당소협과 아 주 친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소.그런데 내가 어찌 당신에게 조금이라도 흑심을 품을 수가 있겠소?내가 당신에게 오늘 낮에 나가서 옷을 사준 것은 그저 식사 대접에 대한 보답일 뿐 그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니오.] 남궁녹악은 그가 자신과 당백승의 사이를 이미 알고 있었다는 얘기를 듣고는 안색이 변했으나, 이내 아무런 말도 없이 자리에 앉았다. (흥,아까 내가 승오라버니와의 관계가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했었는데도 그것 을 전혀 믿지도 않았던 모양이지?) 남궁녹악이 그렇게 자리에 앉은 채 제갈신중을 표독스럽게 노려보다 좌중의 분위기는 다시 이상하게 변했다. 남궁검민이 그것을 보고 신형을 일으키며 말했다. [자,이제 보아하니 방도 마련된 것 같은데,우리는 그만 자리를 피하고 황소저 께도 쉴 시간을 드려야 하는 것이 아니오?] 황원원은 즉시 자리에서 일어서면 그들에게 인사를 했다. [여러분들이 이렇게 저에게 관심을 가져주시니 뭐라고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어요.하지만 제가 여기에 있더라도 저의 모든 경비는 제가 부담할 것이니,그런 점에 있어서는 염려하지 마시기를 바래요.] 황원원이 그렇게 말하고 수곡사로와 함께 자리를 뜨자,제갈신중은 담담히 웃 으며 그 뒤를 따랐다. * * * 황원원과 수곡사로가 배정된 세 개의 상상은 시간적인 차이 때문인지 다른 일 행의 처소와 다소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 방들은 우선 하나같이 넓고 고급스러웠고,지내기에 편리했으며 우아한 분 위기들을 곁들이고 있었다. 황원원은 자신의 방앞에 이르자 수곡사로를 방으로 보낸 다음에 제갈신중에게 말했다. [안으로 들어오세요.제가 상공께 보여드릴 것이 있으니까요.] (......?) 제갈신중은 그저 무심코 뒤따라온 것이었으나 그녀가 자신에게 보여줄 것이 있다고 하자 공연히 가슴이 달아올랐다. 제 35 장. 좋은 날, 좋은 점괘. 황원원은 제갈신중이 방안으로 들어서자 즉시 방문을 안에서 잠그고 침상쪽으 로 걸어가 앉았다. 아직은 겨우 정오 무렵이었다. 비록 서로가 이미 약혼을 한 사이이기는 해도 그렇게 방문까지 안으로 걸어 잠그자 제갈신중은 의아해졌다. [아니.왜 문을 잠그는 것이오?] 황원원은 웃으며 대답했다. [이제부터 제가 가장 비밀스러운 것을 보여드리려고 하는데,방문을 잠그지 않 을 수가 있나요?남들이 보면 곤란해져요.] 황원원은 말과 함께 자신의 옆에 앉으라고 손짓을 했다. (......?) 제갈신중은 그 자리에 앉으며 황원원에게 물었다. [나에게 어떤 것을 보여주려고 하는데 그러시오?] 황원원은 제갈신중을 바라보며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 [뭐,별 것은 아니지만, 당신은 아마도 보시면 약간 놀라실 거예요.] 가까이에서 고개를 이쪽으로 돌리고 웃고 있는 그녀의 눈빛이 아름다왔다. 제갈신중은 문득 그녀의 몸에서 형용하기 어려운 상쾌하고도 그윽한 향기가 난다고 생각했다. [내가 왜 놀란다는 것이오?] 제갈신중의 질문에 황원원은 말없이 손을 올려서 얼굴의 가면을 벗었다. (......) 예의 그 보기에도 역겨운 추악한 용모가 드러났다. 헌데 느닷없이 황원원은 다시 얼굴에 손을 대더니 또 한꺼풀의 인피면구를 벗 어드는 것이었다. 물론 그것은 추악한 몰골의 면구였다. (......!) 제갈신중은 무심코 바라보고 있다가 일순간 크게 놀라며 멍하니 넋을 잃고 말 았다. 믿을 수 없게도 이제 제갈신중의 눈앞에 드러나 있는 황원원의 얼굴은 그야말 로 다시 보기 어려운 천향국색의 얼굴이었던 것이다. 마치 신이 정성을 다하여 조각한 듯한 아주 고귀해보이는 아름다운 윤곽의 얼 굴과, 가느다랗고 수려한 눈썹의 아래에 자리하고 있는 그 아름답고 부드럽게 보이 는 두 개의 눈동자! 오랫동안 햇빛을 받지 못했기 때문인지 약간 창백한 듯도 보이는 백옥같은 투 명한 살결위에 가벼운 홍조가 깃들고 있는 듯 했는데, 문득 황원원은 그 얼굴로 제갈신중을 바라보며 이렇게 묻는 것이었다. [저의 이 얼굴이 보기에 밉지는 않아요?] (......!) 제갈신중은 겨우 정신을 차리고서 그녀의 손에 들린 그 추악한 인피면구와 그 녀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며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아니 그렇다면......이,이건 당신의 진짜 얼굴이 아니라 가짜였다는 말이오?] 황원원은 그 아름다운 얼굴로 가볍게 미소를 짓더니 이어 가벼운 한숨과 함께 손에 들린 인피면구를 바라보며 고개를가로저었다. [아니예요.사실은 그것도 진짜였지요.나의 이 지금의 얼굴도 진짜이고요...... 믿기지 않으실지 모르지만, 나의 이 말은 사실이예요.] (......?) 제갈신중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나는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구려.그 이유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겠 소?] 황원원은 미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그녀는 신형을 일으켜서 침상의 앞쪽을 천천히 거닐면서 말하기 시작했다. [사실,저는 아주 어렸을 적에 극심한 화상을 입게 되었었지요.공교롭게도 그것 은 결과적으로 나의 무학수련에는 도움이 되었지만, 나이가 많아졌어도 저의 얼굴이나 전신은 끔찍한 흉터로 가득하게 되었어요.저는 나중에는 수술을 이 용하여 흉터를 제거하려고 생각도 해보았었지요.하지만 이내 그 생각을 그만 두고 말았어요.] (......?) 제갈신중은 잠시 넋을 잃고 듣고 있다가 문득 물었다. [어째서 그 생각을 그만두었다는 말이오?] 황원원은 웃으며 대답했다. [그 추악한 얼굴 덕분에 저는 이제까지 오직 무학수련에만 정진할 수가 있었 으니,그것은 차라리 저에게는 복된 일이었다고 할 수가 있지요.저는 단지 겉모 양을 위해서 그런 수술을 하는 것이 싫었던 거예요.] 제갈신중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그 얼굴은 어떻게 된 것이오?] 황원원은 웃으며 대답했다. [불과 얼마전에 저는 사문에 전해지는 모든 무학들을 대성하고 크게 환골탈태 를 하게 되었지요.그 과정에서 저는 이 흉터투성이의 거죽을 벗게 되었고 이 런 옛날의 모습을 회복하게 되었던 거예요.] (......) 제갈신중은 비로소 두 개의 얼굴이 모두 진짜라는 황원원의 말을 이해할 수가 있었다. [내가 알기로는 최절정의 고수가 되는 반박귀진의 단계에서 환골탈태를 경험 하는 것이 아니오?] 황원원은 고개를 저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그렇지만, 그것은 당시의 상황과 인연에 따르는 것으로 써,환골탈태를 경험할 수도 있고, 혹은 나중에 할수도 있으며, 심지어는 전혀 하지 않는 경우도 있지요.저는 두 번째의 경우에 해당된다고 할 수가 있어요.] 제갈신중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보니, 당신은 그 추악한 얼굴에 많은 집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도 진짜라고 말한 것이었구려?] 황원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이 이렇게 쉽게 이해해 주니 저도 마음이 편해지는 군요.저는 사실 이 추 악한 얼굴에 그다지 집착이 강한 것은 아니었지만,일단은 나의 혼인할 남자에 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제갈신중은 웃으며 물었다. [그것은 상대방의 자질을 시험해볼 의향이었소?] 황원원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것은 아니예요. 물론 상대방을 시험하는 마음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겠지만 그러나 나는 왠지 이것을 그 남자에게 보여주고 싶은 기분이었어요.] 제갈신중은 가볍게 웃으며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나는 당신의 그 시험에 통과한 사람이 되겠군요?] 황원원은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예요.저는 아직 당신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는 데 어떻게 시험할 수가 있겠어요?그런 그렇고, 저의 이 얼굴은 예쁜가요?] 제갈신중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너무나도 아름답소.내가 도저히 바라볼 수 없을 만큼.] 황원원은 안색을 가볍게 붉혔다. [과찬의 말씀이시군요.] 제갈신중은 다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의 이말은 과찬이 아니오. 하지만 아직 나에게 궁금한 점은 있소.] 황원원은 웃으며 물었다. [그건 뭐죠?] 제갈신중은 손가락으로 그녀의 얼굴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나는 혹시 그 아름다운 얼굴도 가면이 아닐까 하는 것이오.] 황원원은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어디 한 번 만져보세요.인피면구가 제아무리 완벽하다고 해도 결국 만져보면 그 차이를 알 수 있게 되니까요.] 제갈신중은 이에 사양하지 않고 일어서서 손을 내밀어 그녀의 볼을 어루만져 보았다. 약간의 홍조를 떠올리고 있는 그녀의 백옥같은 두 개의 볼은 비단 부드럽고 매끄러웠을 뿐만 아니라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제갈신중은 이제 분명히 그녀의 진짜 얼굴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미 진짜 얼굴을 확인하였는데도 불구하고 제갈신중은 쉽게 그 손을 내리지 못했다. 그 아래쪽의 흡사 앵두처럼 탐스럽고 붉은 윤기가 흐르는 입술이 짙은 향기를 발하며 그를 유혹했기 때문이었다. (......) 제갈신중은 이내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가져갔는데,순 간 마치 그것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이 황원원은 그의 목을 껴안으며 입맞춤에 응하는 것이었다. ......! 그 첫 입맞춤의 순간은 비록 짧았으나 숨막힐 듯이 전율스러웠고 두 사람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기에 족했다. 황원원은 입맞춤이 끝나자 거의 완전히 새빨개진 얼굴로 뜨거운 숨결을 토하 며 말했다. [오늘같은 날에는 한잔의 술이 필요하겠지만, 아쉽게도 이곳에는 마련된 술이 없군요.지금 우리 함께 술을 마시러 나가겠어요?] 이런 반점에서는 술이라면 즉시 주문만 하면 가져다줄 것이다. 하지만, 제갈신중은 황원원이 아직 이런 뜨거운 분위기를 부담스러워 한다는 것을 알 아차렸다. 제갈신중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헌데 그 가면은 앞으로도 쓰고 다닐 것이오?] 황원원은 이에 중년사내의 가면을 그 추악한 인피면구와 함께 한손에 들고 고 개를 가로저었다. [이미 상공께 저의 얼굴을 보였으니 앞으로는 그럴 필요가 없을 거예요.비록 남들이 약간 오해를 한다고 해도 그때마다 둘러대면 되지요.] 황원원은 이어 그 손안에 황금빛의 광채를 떠올리더니 두 개의 가면을 일순간 에 재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었다. (......!) 그 황금빛의 장력은 마치 손안에 작은 태양이 있는 것 같아서 신비로운 모습 이었다. 하지만, 제갈신중은 한순간에 재로 변해서 사라지는 황원원의 두 개의 가면에 더욱 관 심이 쏠렸다. 이를테면 성인식이라고 할까? 황원원은 지금 그것들을 불태움으로 자신의 남아있는 아픔 기억들을 제거해 내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어찌보면 성결스럽다고 할 수도 있는 광경이었다. 황원원은 잠시 자신의 손을 바라보다가 이윽고 그 가루마저 사라진 손을 툭툭 털며 말했다. [자,이제 우리함께 가요!] 황원원은 말과 함께 창문쪽으로 걸어가서 창문을 활짝 열었다. 그녀는 귀찮은 사람들에게 구태여 들키지 않으려는 것이었다. 창문의 밖으로는 이곳 남양성의 풍경이 시원스럽게 펼쳐져 있었다. 지금은 대낮이어서 두사람이 신법을 펼치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놀라게 될 것 이다. 황원원은 아래족으로 내려다 보이는 풍경들 가운데 한 골목을 가리켰다. [바로 저기로 빠르게 가는 거예요.할 수 있겠어요?] 제갈신중은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수곡사로는 데려가지 않소?] 황원원은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리만의 장소에 그 늙은이들을 데려가서 뭣하겠어요? 그들은 우리들이 없더 라도 항상 안전하니 상관할 것이 없어요.] 말이 끝나자 순간 황원원은 그의 손을 잡고서 즉시 신형을 날렸다. 그녀의 신법은 과연 놀라왔다. 제갈신중의 눈앞에 한순간에 무수한 환각이 어른거린다고 느껴진 찰나,제갈신 중과 황원원은 이미 그 골목길에 서 있었다. (......!) 제갈신중은 뒤를 돌아보고 무신코 약간 놀랐다. 이금 이곳에서 그 객방의 창문까지는 줄잡아도 오십여장은 될 것이었다. 게다가 중간에 장애물도 많은 거리를 단숨에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저번의 그 능공허도 보다도 뛰어난 것 같았다. 황원원이 그런 놀라운 신법을 쓰는 바람에 비록 훤한 대낮이라고 해도 이 성 시의 사람들은 아무도 그들이 날아가는 광경을 보지 못했다. 단지, 재수없게도 그 시작에 막 골목길로 들어서던 한 촌로가 엉겁결에 그 광경을 보고는 눈이 휘둥그래졌다. [다,당신들은 혹시......혹시 귀신들이 아니오?] 갑자기 나타난 두사람을 보고 다리를 덜덜 떨어대는 것이 그야말로 금방이라 도 오줌을 쌀 것 같았다. 황원원은 차마 그러한 광경을 두고 볼 수가 없어서 웃으며 대꾸했다. [저희들은 귀신이 아니니 염려마세요.] (......!) 그 촌로는 두어번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그제서야 다리떠는 것을 멈추고서 고 개를 끄덕였다. [하긴......귀신들이라면 그렇게 예쁘고 잘생겼을 리가 없지.] 황원은 뜻밖에도 그런 칭찬의 말을 듣게 되자 은근히 기분이 좋아졌다. 그녀는 상냥하게 웃으며 그 촌로에게 물었다. [할아버지는 이 부근에 사시는 분이세요?] 촌로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아니야. 나는 그저 말년에 이곳저곳을 떠돌아 다니고 있는 중이지.] 황원원은 그 촌로의 행색이 다소 곤궁해보이는 것을 보고 소매속에서 백냥짜 리 은표 한 장을 꺼내서 건네주며 말했다. [그럼 이것을 여비에 보태쓰도록 하세요!] (......?) 그촌로는 느닷없이 그처럼 막대한 액수의 돈을 받아들게 되자 그만 눈이 휘둥 그래졌다. [아,아니 이게 뭔가?] 황원원은 촌로가 은표를 손에 들고 다시 손을 떨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웃으 며 대답했다. [그냥 저희들이 드리는 거예요.조금전에 저희들에게 좋은 말씀을 해주신 대가 라고 생각하세요.] 그런데, 촌로는 다시 고개를 젓는 것이었다. [하,하지만 이럴 수는 없네.] 기실 은자 열냥이면 다섯식구가 한달은 먹고 살수가 있다고 했으니 촌로가 놀 라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가 있었다. 황원원은 본의 아니게 쓸데없는 일로 시간을 지체하게 되자 약간 지루해져서 촌로에게 대꾸했다. [그렇다면 길을 가다가 주우셨다고 생각하시면 되잖아요.저희들은 할아버지의 만수무강을 빌어드릴께요.] 황원원은 이어 제갈신중의 손을 잡고서 그 자리를 피하려고 했다. 그런데, 미처 황원원은 골목길을 다 나오기도 전에 다시 그 촌로에게 발목이 묶이고 말았다. 촌로는 우선 두 사람의 앞을 가로막고 뭔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하는 듯 하더니 불쑥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자네들은 이미 복채를 냈다고 생각하고 지금 나에게 한 번 점을 보 는 것이 어떻겠는가?] (.......?) 황원원과 제갈신중은 촌로의 그 뜻밖의 말을 듣고 다함께 어리둥절했다. 알고보니 이 노인은 평범한 촌로가 아니라 점장이 노인이었던 모양이었다. 과연 아니나 다를까? 이윽고 그 노인은 등에 지고 있던 둘둘말은 돗자리와 같은 것을 내려서 바닥 에 깔더니, 무슨 세상의 일은 무불통지라는 따위의 문가가 씌여진 깃발을 늘어놓는 것이 었다. 제갈신중과 황원원은 공연히 시간을 지체하게 되었지만 그와 같은 광경을 보 게 되자 그만 웃음이 나왔다. 노인은 두 사람이 그저 웃고 있는 것을 보고 약간 화를 내며 다시 말했다. [아니 자네들은 지금 내가 쓸모도 없는 돌팔이라고 놀리고 있는 것인가?] 황원원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예요.헌데 어째서 점괘를 뽑는 나무막대기 같은 것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 는 거죠?] 기실 노인은 지금 그와 같은 허황된 깃발들을 늘어놓고 낡아빠진 돗자리 위에 올라앉았지만, 정작 점을 치는 도구들은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었다. 노인은 역시 약간 화를 내며 대꾸했다. [어허! 나처럼 신통한 점장이는 그런 조잡스런 물건들은 쓰지 않는 법이야.그 건 그렇고,어서 두 사람의 사주팔자를 말하지 않고 뭘하는가?] 두 사람은 이미 이 노인이 비단 엉뚱하게도 점장이일 뿐만 아니라 성격마저도 약간 괴팍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빨리 이곳을 벗어나는 길은 그저 순순히 따르는 도리밖에 없다고 생각한 두 사람은 이내 자신의 사주를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 사주로써 나이를 따져보니 현재 황원원이 스물여섯이어서 스물다섯인 제갈신 중보다 한 살이 더 많았다. 노인은 두 사람의 사주를 차례로 듣고 나서 잠시 눈을 감고서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생각하는 듯 하더니, 이윽고 눈을 뜨며 제갈신중을 향해 말했다. [이봐, 자네는 얼굴에 상서로운 기운으로 가득한 것이 사주와 같지 않네. 혹시 자네가 사주를 잘못 말한 것이 아닌가?] (......) 제갈신중은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닙니다.제가 왜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 노인은 왠지 알수가 없다는 듯이 다시 눈을 감고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윽고 다시 눈을 뜨고 두 사람에게 말했다. [이봐!그 소저는 사주도 아주 좋고 상도 모두 훌륭한데,저 청년은 상과는 달리 사주가 좋지 않아.이거......두 사람이 앞으로 살아가는데 문제가 있겠는 걸?] 제갈신중은 이 노인이 이미 두 사람의 사이를 대충 때려잡고 있다는 것을 알 아차렸다. 아마도 이 노인은 지금 복채를 더 바라고 그런 말을 하는 모양이라고 생각하 고는 웃으며 물었다. [그럼 대체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노인은 그말에 은근히 황원원을 돌아보며 되물었다. [만일 내가 그 방도를 가르쳐 준다면 자네들이 반드시 그대로 하겠는가?] (......) 황원원은 지금 두 사람이 정식으로 새출발을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기 때문에 비록 신빙성이 없더라도 그냥 들어 주고 싶었다. [예, 어디 한 번 말씀해 보세요!] 노인은 이에 일순 흡족한 듯이 대소를 터뜨렸다. [헛헛헛, 그 소저의 마음 한 번 시원시원해서 좋군! 그래,자네들이 만일 이 방 도대로 한다면 앞으로 두 사람의 사이가 원만해지는 것은 물론,아들 딸 잘 낳 고 오래도록 행복하게 영화를 누리게 될 것일세.] 제갈신중은 그만 다소 지루해져서 재촉하듯 물었다. [그럼 그 방도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노인은 즉시 품속을 뒤지더니 한 장의 작은 지도 한 장을 꺼내 황원원에게 건 네주더니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었다. [음,자네들의 사이에는 사주상의 겁살의 액운이 끼어있네. 따라서 만일 자네들 이 지금 즉시 그곳으로 가서 그 속에 있는 한 생명을 구해주게 된다면 곧 그 액운은 사라지게 되고 자네들의 앞날에 영화만이 가득하게 될 것일세.] ......? 두 사람은 노인이 은자를 요구할 줄로 알고 있었는데 실로 뜻밖의 말을 하자 다소 어리둥절해 졌다. 노인은 그렇게 일단 말을 마치자마자 얼른 돗자리와 깃발 따위를 걷고 등에 짊어진 뒤에, 휘적휘적 골목밖으로 사라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어리둥절해 하는 두사람의 귓전에 타령조의 노인의 음성이 마치 놀리듯이 멀 어져 갔다. [자,그럼 다음에 보세나! 인생은 무상하여 뜻을 둘 곳이 없고,인연은 바람과도 같아서 허공만을 맴도나니.....아하! 이내 몸은 뉘와 함께 어디로 돌아갈 것인 가......?] ...... 이내 노인의모습이 보이지 않자, 제갈신중은 잠시 생각하는 듯 하다가 문득 황원원을 돌아보며 물었다. [혹시 저 노인이 좀 이상하지 않소?] 황원원도 다소 기이하다는 듯이 고객를 갸웃거리며 대꾸했다. [아마도 동진이인이었던 모양이예요.] (......?) 제갈신중은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지금 즉시 쫓아가서 다시 물어봐야 하는 것이 아니오?] 황원원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예요.제가 보기에는 그분께 무슨 곡절이 있는 것 같기도 해요.] 제갈신중은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 노인의 말대로 따르자는 말이오?] 황원원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제가 보기에는 강호에는 실로 무수한 이인들이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그분이 그렇게 말씀하신 데에는 무슨 이유가 있을 지도 모르죠.우리에게 그다지 어렵 고 손해되는 일도 아니고.장소도 여기에서 그다지 멀지 않아요.] 황원원은 자신의 손에 들린 그 지도를 가리켰다. 제갈신중은 다소 생각하다가 다시 물었다. [혹시 이 일이 우리를 함정으로 몰아넣으려는 음모가 아닐까?] 황원원은 그말에 되물었다. [만일 음모라면 당신은 두려워하겠어요?] 제갈신중은 황원원의 고운 입가에 떠올라 있는 미소를 보자 문득 가슴을 폈 다. [아니오.당신과 함께 있는데 내가 왜 두려워 하겠소?] 황원원은 이에 즉시 그의 손을 잡았다. [그렇다면 우리 어서 함께 가봐요!] * * * 일반적으로 여인들은 분위기에 약하고 또한 가급적이면 좋은 분위기를 꾸미려 고 노력하는 편이라고 할 수가 있다. 황원원도 거의 예외는 아니어서 그 점장이 노인이 앞으로 좋아질 것이라고 말 하자 깊이 생각해 보지도 않고 즉흥적으로 움직였다. 두 사람은 이내 그 골목길을 나섰으며 혹시나 하고 그 노인을 찾아보았는데 어느새 그 노인은 눈에 띄지 않았다. 따라서, 두 사람은 그 지도에 적혀있는 대로 이 남양성의 서북쪽에 있는 공동묘지로 찾아가 보기로 했다. 엉뚱하게도 그 지도에는 공동묘지에 있는 한 무덤이 표시되어 있었던 것이었 다. ...... 두 사람이 신법을 펼쳐서 그 곳에 도착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그들은 골목길의 후미진 부분을 이용해서 간간이 신법을 펼쳤고,이어 반시진 도 못되어 예의 그 공동묘지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 때는 미시 무렵이었으므로 비록 그 공동묘지에 무덤들이 많다고는 하나 별로 으시시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바로 이곳이로군!] 제갈신중이 그 중 하나의 작은 무덤을 찾아내어 지도와 비교해 보고는 황원원 을 향해 소리쳤다. 황원원도 그 무덤이 지도와 일치하는 것을 알았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이쪽으 로 다가왔다. 그 무덤은 아주 오래되어 봉분이 거의 밋밋해져 있고, 또한 상석이나 비석 따 위가 글자를 알아볼수가 없게 되어버린 그런 평범한 무덤이었다. (......?) 제갈신중은 그 무덤을 세밀하게 바라보다가 이내 다소 눈살을 찌푸렸다. 황원원이 다가와서 물었다. [왜 그러시죠?] 제갈신중은 그녀의 얼굴을 돌아보며 대답했다. [이 무덤은 전혀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게 되어 있는 것 같소.그런데 어떻게 안으로 들어가서 사람을 구한다는 말이오?] 황원원은 그 말을 듣자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생명을 구하라고 했지,사람을 구하라고는 하지 않았어요.] (......?) 제갈신중은 의아해졌다. [그럼 그게 그런 말이 아니라는 말이오?] 황원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에는 어떤 물건을 마치 자기 자식처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어요.실로 그 런 사람들에게 그것이 생명을 가진 것이나 다름이 없죠.] 제갈신중은 이내 수긍할 수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는 지금 이 속에서 산사람이 있다면 그는 이미 죽고 말았을 것이오.] 황원원은 문득 다시 물었다. [상공께서는 그가 왜 우리에게 이 일을 시켰는지 알고 계시나요? 그 자신도 능히 할 수가 있을 텐데 말이예요.] (......?) 제갈신중은 다시 의아해졌다. [그럼 그가 우리에게 뭔가 좋은 선물을 주려고 이런 심부름을 시킨 것이라는 말이오?] 황원원은 인적이 없는 황량한 무덤들을 둘러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래요.이 부근에는 달리 살기도 느껴지지 않고......게다가 그가 단순히 이런 일로 액운이 사라진다고 말한 것은 이해가 되지 않아요.] 일순 산 바람이 스쳐지나며 그녀의 머리카락 몇 개를 휘날렸다. 이런 스산한 풍경속에 서 있어도 여전히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자는 오직 황원 원밖에 없을 것이었다. 제갈신중은 잠시 멍하니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대꾸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그가 호의적이라고는 단정지을 수가 없지 않 소?]  제 36 장. 석연치 않은 느낌. 황원원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바로 예감이예요.] 제갈신중은 눈을 크게 떴다. [예감이라고?] 황원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보기에 당신은 실은 보통의 사람이 아니예요.그러니까 당신과 같은 분께 는 자연 좋은 인연이 뒤따르게 된다는 것이죠. 저는 당신을 만나는 순간에 이 미 그것을 직감했어요.실상 아까 그 노인도 사실은 은근히 당신의 눈치를 보 던데요?] (......) 제갈신중은 잠시 생각하다가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보기에는 그것은 아마도 당신의 착각인 것 같소.사실 나도 당신처럼 훌 륭한 사람이 되고 싶지만, 그러나 모든 일들이 다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 않소?] 황원원은 웃으며 고개를 다시 저었다. [아니예요.사실 당신의 능력이 모두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지, 저 같은 사람 은 당신의 발끝에도 쫓아가지 못할 거예요.저는 직감으로 그런 것을 알수 있 어요.] 제갈신중은 그만 정색하고 말하는 황원원에게 더 이상 반박을 할 수가 없었 다. 그는 손가락으로 무덤을 가리키며 웃으며 말을 받았다. [하지만, 무덤은 저렇게 되어 있는데 설령 그가 우리에게 선물을 남겼다고 해 소 이미 소용이 없는 일이 아니오?] 황원원은 그 말에 웃으며 대답했다. [그 문제는 조금도 걱정하실 것이 없어요.만일 저 안에 무엇인가가 있다면 그 곳은 텅비어 있을 거예요.그리고 그렇다면 이곳은 기관장치가 되어있다는 말 인데, 으례 기관장치라는 것은 몇가지의 방식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죠.] (......!) 제갈신중은 비록 어려서부터 등한시했다고는 하나 그래도 제갈세가의 사람으 로서 기관장치에는 다소 일가견이 있다고 할 수가 있는데, 황원원이 그렇게 말하는 것을 보고 다소 놀랐다. 실로 이곳에는 아까부터 자세히 보아왔지만 기관장치가 있을 것 같지가 않았 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황원원이 이어 그 무덤의 오른쪽에 있는 무덤으로 다가가서 비석을 가볍게 쓰 다듬고 나자, 가벼운 소음과 함께 그 무덤의 상석이 앞으로 밀려나오며 지하로 들어가는 통 로가 생겨나는 것을 보고 그만 경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일반적으로 제법 기관장치에 능한 사람들이라고 해도 이런 곳에서는 단지 그 무덤만을 주목하기 마련인데, 뜻밖에도 그 기관장치가 바로 옆의 무덤에 장치되어 있었을 줄을 가히 상상치 도 못했을 일이었다. 그 무덤의 기관장치의 열쇠는 그 무덤 자체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바로 옆의 무덤에 있었던 것이었다. 일단 그렇게 무덤의 문이 열리고 나가,두 사람은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무덤 속의 분위기는 좁고 어두침침했지만 그 두 사람의 시력은 이미 어둠을 꿰뚫어 볼 수가 있는 경기에 이르러 있었다. [이제 저의 말이 옳다는 것을 인정하시겠나요?] 황원원은 일단 안으로 들어가서 내부를 둘러본 다음에 제갈신중을 돌아보며 그렇게 물었다. 제갈신중은 웃으며 대답했다. [하기는 그런 것도 같소.] 무덤 속의 내부는 거의 텅 비어 있었다. 단지 한쪽 구석에 덩그라니 관이 하나 놓여 있을 뿐이었는데 그 어디에도 함 정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두 사람은 자연히 그 관의 앞으로 다가가게 되었는데 이어 그 위에 씌여져있 는 하나의 글귀를 보게 되었다. - 이는 바로 내가 평생동안 정당한 방법으로 모은 재산이니,용기있고 지혜로 우며 아름다우신 두분께 드리는 바입니다! 글씨가 씌여진 종이는 그다지 오래된 것 같지가 않았다. 제갈신중은 문득 그것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상하군.그렇다면 오히려 그 노인이 우리보다 먼저 와서 기다리며 이 글을 남 겼다는 말인가?] 황원원은 웃으며 물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죠?] 제갈신중은 그 글귀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 두분이라는 말은 바로 우리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겠소?그렇다면 그가 우리를 만난 이후에 먼저 이곳에 와서 글을 남겼다는 결론인데......그렇다면 결 국 그의 무공이 우리보다 높다는 결론이 아니겠소?] 황원원은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보아하니 저 글씨는 마른지가 이미 오래인 듯 하니 조금전에 쓴 것이 아니예 요.아마도 우연히 글귀가 맞앗거나 아니면 그가 미리 우리를 점찍어두었을 수 도 있죠. 게다가 그 노인은 제가 보기에는 무공을 가진 사람은 아니예요.] (......) 제갈신중은 황원원의 말이 맞을 듯 했으나 여전히 석연치 않은 점이 있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기는 하지만, 혹시 당신은 너무도 그 노인의 일에 대해서 관대한 것이 아 니오?] 황원원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가요?] 하지만, 그녀의 내심은 순간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하긴 그래요. 만일 당신과 같은 분과 부부가 되었다면 그 어떤 여자가 마음 이 관대해지지 않을 수가 있겠어요? 하지만 염려마세요. 이번 일은 저의 짐작 으로도 우리를 해코자 하는 것은 아니예요.) 제갈신중은 잠시 주저하다가 다시 물었다. [정말로 이 안에 우리에게 줄 어떤 선물이 있을 까?] 황원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이곳의 기관장치가 다소 교묘하기는 해도 그는 그다지 높은 무공을 가 진사람은 아닐거예요.게다가 지금 여기에 그렇게 쓰여 있으니 반드시 안에 무 엇인가가 있을 거예요.자, 그럼 열어볼까요?] 황원원은 말과 함께 그 관의 뚜껑을 열었다. 덜컹! 겉으로 보기에는 나무조각 같으나 기실 그 관은 무쇠로 만들어진 것이어서 열 리면서 둔탁한 소음을 냈다. 뜻밖에도 관의 뚜껑은 쉽게 열렸다. 그리고, 그 안에는 역시 황원원의 말대로 시신은 없고 단지 네 개의 손에 들수 있는 철상자가 들어있을 뿐이었다. 황원원은 마치 그 안의 내용물을 알기라도 하듯이 쉽게 그 가운데의 한 상자 를 들어서 뚜껑을 열었다. 그러자, 일순 주위가 훤하게 밝아지는 듯 했다. 놀랍게도 그 안에는 무려 일백냥자리의 황금 대원보가 스물다섯개나 들어있었 던 것이었다. 황원원은 일순 그것을 보자 다소 놀라는 듯 했다. 일반적으로 스무냥짜리 원보와 쉰냥짜리 대원보는 구경할 수가 있을 지라도 이렇게 커다란 대원보를 구경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황원원은 이어 곧장 나머지 세개의 철상자도 열었다. 그러자 역시 그 안에도 휘황찬란한 스물다섯개의 황금 대원보들이 들어있는 것이었다. [모두 백개니까, 황금 일만냥이 되겠군!] 황원원이 다소 놀란 표정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녀는 비록 은자에 구애받고 사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렇게 황금 일만냥을 고게 되는 것은 의외였기 때문이었다. 제갈신중은 물론 아직 태어나서 이렇게 많은 황금을 본적이 없었다. 그는 잠시 어이없다는 듯이 그 대원보들을 바라보다가 문득 황원원을 바라보 며 물었다. [과연 그 노인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는 점을 쳐서 이 많은 재산을모은 것 일까?] 황원원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알 수 없는 일이죠.] 제갈신중은 다시 물었다. [과연 그 노인이 무엇 때문에 이것을 우리에게 준다고 생각하시오?] 황원원은 웃으며 대답했다. [아마도 그는 점을 치는 사람이기 때문에 당신의 모습이 귀상이라는 것을 내 다보고 일부러 시주를 하는 것일지도 모르죠. 그는 당신과 같은 사람에게 시 주하면 복을 받게 될 것이라고 믿는 모양이예요.] (......) 제갈신중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어쨌든, 이 일은 우리에게는 손해가 없는 것 같소. 당신은 이것들을 받을 생 각이오?] 황원원 즉시 그 네 개의 상자를 집어들며 대답했다. [물론이예요.저는 이것들을 우리의 약혼을 기념하는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싶어 요.설마하니......당신은 내가 이것들을 모두 다 들고 가기를 바라시지는 않겠 죠?] 그 대원보는 하나가 각기 어른의 주먹보다 커다란 것이었다. 따라서, 보통사람들이라면 감히 들고갈 엄두도 내지 못할 것이었다. 황원원은 비록 무공이 고절하여 그것들을 깃털보다도 가볍게 들 수가 있는 것 이지만, 그녀가 청하기에 제갈신중은 웃으며 마지못해 두 개의 철상자를 나누어 들었 다.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할 작정이오.] 황원원은 웃으며 대답했다. [누구도 이것들을 겉으로 보기에는 보물상자라고 생각하지는 못할 거예요.일단 은 이것을 수곡사로에게 보관하도록 하겠어요.그건 그렇고,이제는 우리 술이나 한잔 하러 가야죠?] 그 황금 일만냥은 가히 막대한 액수로서 그야말로 돈벼락을 만난 것이나 다름 이 없었다. 보통사람은 평생을 호의호식해도 다쓰지 못할 거액인 것이었다. 제갈신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럽시다!] 본래 그들은 아까부터 한잔 하려고 나왔던 것이었는데, 지금의 이 일이 아니었다면 벌써 한 주루에 가서 술을 마시고 있었을 것이었 다. 두 사람은 이내 밖으로 나와서 기관장치를 움직여서 무덤을 닫아놓고 신법을 펼쳐서 사라져 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들 두 사람이 사라진 지 얼마 지나가 않았을 무렵의 일이었다. 갑자기 마치 땅속에서 솟아나기라도 한 듯이 한 사람이 무덤의 앞에 나타났는 데 이렇게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모든 일들은 다 나의 뜻대로 이루어져 가고 있다!하지만...... 정말로 그렇다 고 나의 꿈은 이루어질 것인가?] 놀랍게도, 그는 다름아닌 조금전에 제갈신중 등의 앞에 나타났었던 괴상한 점장이노인이 었던 것이다. * * * 제갈신중과 황원원은 이윽고 곧장 다시 성내로 들어서서 번화가에 있는 하나의 주루로 들어갔다. 때는 마침 가장 손님이 뜸할 시간인지라 주루는 매우 한산하였다. 네 개의 철상자는 바닥에 내려놓고, 이어 약간의 술과 안주들을 시킨 다음에 황원원은 엽차를 마시면서 제갈신중 을 향해 가벼운 미소를 보냈다. [상공! 당신은 못내 저 상자들이 꺼림칙한가요?] 제갈신중은 그만 한숨을 내쉬며 마주 웃었다. [하기는, 길흉화복은 서로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였으니,설령 저것이 아니더라 도 우리에게 화복은 찾아오게 될 것이오.나는 원원, 당신과 함께라면 그 어떤 일들도 두렵지 않은 것 같소.] 황원원은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 [당신께서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저로서는 마음이 매우 편해요.저 역시 실은 당신과 함께라면 그 어떤 화복이라고 해도 함께 할 자신이 있어요.] (......) 황원원은 실내를 한 번 둘러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 [하지만,설마하니 저들 가운데 누구도 이곳에 황금 만냥이나 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없겠죠?] 지금 실내에는 비록 한산하지만 그래도 몇몇의 손님들이 자리를 차지하고있는 중이었다. 제갈신중은 물었다. [당신은 은근히 그 사실이 고소한 모양이구려?] 황원원은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그때 점원이 다가와서 주문한 술과 안주들을 늘어놓고 갔기 때문에 황원원은 전음으로 대답했다. [저는 단지 세상의 일이란 그처럼 기이하다는 것을 말하려는 거예요.] 황원원은 이어 술병을 들어서 제갈신중의 술잔을 채우고 자신의 술잔에도 술 을 따랐다. 제갈신중은 그 술을 마시며 역시 전음으로 대꾸했다. [헌데 당신은 미리부터 그렇게 전음으로 말했어야 하지 않겠소?] (......) 황원원은 제갈신중의 말을 알아듣고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지 않아요.제가 보기에는 지금 이곳에는 우리 이외에는 무공이 높은 사람 들은 하나도 없어요.저 상자들로 인해 어떤 말썽이 일어나지는 않을 거예요.] 제갈신중은 빈잔에 자신이 술을 따라서 마신 뒤에 다시 말했다. [하기는, 정말로 저 상자에 그저 좋은 뜻만 있다면 얼마나 근사하겠소?] 황원원은 자신의 술잔을 들어서 가볍게 입술을 축이며 대답했다. [정말로 그저 좋은 뜻만 일을 테니 당신은 그것을 믿으세요.] 술을 한모금 들이키자 왠지 황원원의 안색과 입술이 더욱 붉게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제갈신중은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미소짓다가 재차 술잔에 술을 따랐다. [나는 이전에 당신을 만나면 하고자 하는 말이 많았었는데 왠지 지금은 아무 런 말도 하고 싶지가 않군.] 황원원은 흥미롭다는 듯이 물었다. [그건 왜죠?] 이 물벼에 이미 그녀의 미모는 실내에 알려져서 은근히 많은 사람들이 술을 마시며 두 사람을 훔쳐보고 있었다. 두 사람은 이미 전음으로 대화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저 술을 마시며 앉아있기 만 하는 것 같았다. 제갈신중은 전음으로 다시 대답했다. [나는 다만 당신의 얼굴만 바라보고 싶을 뿐이오.ㅓ] (......) 황원원은 술잔에 남아있는 술을 모두 들이키며 웃으며 말을 받았다. [호호호, 당신도 그런 말씀을 하실 줄 아는군요. 그 말은 그럼 저를 사랑하신 다는 고백인가요?] 제갈신중은 부드럽게 웃었다. 이즈금에는 그는 전음을 펼칠 때 황원원처럼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전혀 움직 이지 않는 수법을 쓰고 있었다. 그것은 필시 천청대법을 성취하고 난 이후에 저절로 된 것일텐데,그는 아직도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만일 그렇다면 당신은 부담스럽소?] 황원원은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지는 않지만,그러나 그렇게 단지 얼굴만 마주보고 있다는 것은 왠지 쑥스 러운 느낌이 드는 군요.] 제갈신중은 웃으며 말을 받았다. [그럼,역시 내가 생각했던 말들을 해보도록 할까?] 황원원은 그의 술잔과 자신의 술잔에 함께 술을 채우며 되물었다. [당신이 저에게 하고 싶었던 말들은 대체 뭐죠?] 그때 문득 점원이 쟁반에 한병의 술을 올려놓고 다가왔기 때문에 제갈신중은 문득 입을 다물었다. [무슨 일이죠?] 황원원이 묻자,그 점원은 잠시 멍하니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안색을 붉히 며 대답했다. [예,이것은 ......바로 이십년정도 묵은 죽엽청으로 우리 대운주루에서는 상품 으로 치는 것입죠.] 황원원은 다시 물었다. [그래서 어쨌다는 거죠?] 점원은 감히 그녀의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고 얼른 대답했다. [예 그러니까,저쪽에 계신 손님들께서 손님들게 전해달라고 하신 것입니다요.] 황원원과 제갈신중은 점원이 손짓으로 가리키는 쪽을 바라보았다. 건너편의 약간 구석진 자리에 두명의 시커먼 장한들이 앉아있었는데,지금 그 들도 이쪽을 바라보며 징글맞게 웃고 있었다. 필시 황원원의 자색이 지극히 고운 것을 알고 수작을 걸려는 것이 분명했다. 기실, 제갈신중과 황원원은 이미 대화를 나누면서 그들의 시시덕거리는 수작을 다 듣고 있던 터였다. 그들은 각기 흉측한 병장기 등을 소지한 것이 필시 강호의 삼류무뢰배들이 분 명했다. 제갈신중은 그만 어이가 없었지만 황원원이 가볍게 웃으며 점원에게서 그 술 병을 받아 그쪽으로 던지면 말했다. [그렇다면,당신은 그쪽으로 가서 우리는 이유없는 호의는 받지 않는다고 전 해요!] ...... 점원은 그 말을 듣자 다소 엉거주춤한 표정을 지었다. 술병은 느릿하게 그 건너편의 자리로 날아갔으며 이내 그 가운데의 하나가 손 을 뻗어 그 술병을 받으려고 했다. 헌데, 바로 그 순간이 갑자기 술병에서는 술줄기가 솟구쳐 오르면서 두줄기가 되어 두 사람에게 날아가는 것이 아닌가? [아앗!] 그 두명의 무뢰배들은 순식간에 술벼락에 몸을 흠뻑 적시고 말았다. 게다가, 어떻게 당했는지 똑같이 전신이 마비가 되면서 일제히 기혈이 역류하기 시작 하는 것이 아닌가? [으아악!] 그들은 각기 돼지멱따는 비명소리를 지르면서 주위를 뒹굴기 시작했다. 그 고통은 무려 일각 동안이나 계속 되다가 이윽고 겨우 사라졌다. 주위의 손님들이나 점원들이 몰려와서 놀라고 기이하게 생각했음은 두말할 나 위도 없는 것이었다. 제갈신중과 황원원은 그전에 일찌감치 어디론가 종적을 감춘 뒤였다. * * * 제갈신중과 황원원은 그녀의 미모 때문에 귀찮은 일이 벌어지자 이내 주루를 나와서 다른 한적한 장소로 향했다. 그들은 근처의 주루에 들러서 술과 안주 등을 사가지고 성의 부근을 흐르고 있는 백하라는 넓은 강가에 이르렀다. 제갈신중이 제법 경치가 좋아 보이는 곳에 간단하게 자리를 펴고 술과 음식들 을 늘어놓자, 황원원이 옆에 앉아서 도도히 흘러가는 강물을 내려다 보다가 문득 입을 열어 말했다. [미안해요.저 때문에 ......기분이 상하셨죠?] 제갈신중은 일순 그녀의 시선을 따라 강물을 보다가 웃으며 말을 받았다. [아니오.하지만 앞으로는 차라리 가면을 쓰는 것이 좋을 것 같던데?] 황원원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를 보고 돌아앉았다. [하지만 저는 싫어요.당신에게 다시 그런 모습을 보이기 싫거든요.앞으로는 주 의하도록 하겠어요.] 제갈신중은 그녀에게 술잔을 건네며 가볍게 웃었다. [어쨌든 그런 것은 상관없소. 그건 그렇고, 아까 마시던 술이나 마저 듭시다!] 황원원은 부드럽게 미소지으면서 그 술잔을 받아들었다. [저는 그보다 아까 당신이 하려던 말을 더 듣고 싶은데요?] 제갈신중은 먼저 자신의 술잔에 들어 있는 술을 비우며 다시 강물을 바라보았 다. [내가 하려던 말은,그러니까 나의 무공에 관한 것이었소. 나의 신체에 관한 것도 있고.] 황원원은 가볍게 술로 입술을 축이다가 다소 반색을 했다. [제가 당신께 하려던 말도 바로 그것에 관한 것이예요.저는 당신의 심성에 관 해서 알고 싶어요. 대체 당신은 지난 삼년동안 어디서 무엇을 한 것이죠?] 제갈신중은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을 바라보며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오후의 햇살아래 그녀의 용모는 더욱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만일 의복만 여장으로 바꾼다면 마치 하늘의 신녀가 하강한 듯한 착각을 느끼 게 될 것이었다. [나의 그 삼년동안은 그저 여기저기를 방황하는 것이었소. 아니,방황한다기 보 다는 차라리 객점이나 절 등을 돌아다니며 책을 보거나, 아니면 쓸데없는 공 상을 하는 경우가 많았지, 쓸데없는 시간이었소.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는... ...나는 남들처럼 변변히 강호유람이나 강호경험도 해보지 못했었소.일종의 도피라고나 할까......?] 제갈신중의 음성은 갈수록 낮아졌고 그의 눈빛도 자신감을 잃고서 강물쪽으로 향했다. 황원원은 흡사 별빛처럼 맑은 시선으로 제갈신중을 바라보며 대꾸했다. [하지만 그런 일로 자책하지는 마세요.저는 그래도 필시 당신의 어딘가에 남다 른 구석이 있었고, 게다가 그 삼년동안에도 얻어진 것이 있었을 것이라고 확 신해요.] 제갈신중은 그녀를 다시 바라보며 물었다. [내가 무엇을 얻었다는 말이오?] 황원원은 잠시 시선을 내리고 생각하는 듯 하다가 대답했다. [음...... 그러니까, 저는 이전에 이런 글귀를 본적이 있어요.아무것도 얻지못 한 것이 실은 가장 많은 것을 얻은 것이다.......] 제갈신중은 그녀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얻지 못한 것이 가장 많은 것을 얻음이라고?그러니까,사실은 아무것 도 얻음이 없다는 말이오?] (......?) 황원원은 다소 놀라며 제갈신중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렇기는 해요.하지만 당신은 설마하니 그 뜻을 이해하고 있다는 말인가요?] 제갈신중은 약간 쑥스러운 듯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뜻이야 당연히 알게되는 것이 아니오.나는 다만 지난날에 공상을 즐기다 가 그런 생각들도 많이 하게 되었던 것이오.그러니까, 그 뜻에 의하면 기실은 아무것도 얻지 못한 나나,혹은 많은 것을 얻었다고 하는 사람들이나 다 같이 아무 것도 얻지 못하고 똑같다는 말이 아니오?] (......?) 황원원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는 그런 문제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해요.그런 얘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죠. 대신 당신이 어째서 그렇게 생사현관이 사라지게 되었는지 말해주세요.가령 이를테면 생각나는 특이한 점이라든지......] 제갈신중은 듣고 있다가 불쑥 대답했다. [특이한 점이라면 한가지 있기는 하오.] 황원원은 그를 보았다. [뭐죠?] 제갈신중은 대답했다. [그런 좀 웃기는 얘기지만 나는 무공이나 다른 것들을 배우면 배울수록 오히 려 후퇴한다는 것이오. 게다가 나중에 노력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안목이 나아지게 되는 것이오.그래서 빈둥거리는 나에게 사람들은 게으르다고 핀잔을 주었었소.] 황원원은 다소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노력할수록 오히려 후퇴한다고요? 그건 정말로 이상하군요? 그래서 당신의 무공은 당신 동생들보다 훨씬 못했었군요? 무공이라는 것은 단지 이해하기만 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몸으로 배워야 하는 것이니까요.] 제갈신중은 대답했다. [바로 그렇소.당시 사실 내가 무공을 전적으로 배울 수만 있다면 그토록 어리 석은 주화입마에도 걸리지 않았었을 것이오.그런데 나는 도저히 무공을 배울 수가 없었고, 그리하여 주화입마에 빠지고 말았던 것이오.] (......?) 황원원은 다시 이상한 생각에 물었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떻게 그 위기를 벗어나게 되었죠?] 제갈신중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대답했다. [최근에 와서 느낀건데......나는 당시에 주화입마로 몸이 굳어가면서,세상의 일들이 마치 꿈과 같다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소.] 황원원은 다시 어리둥절해 졌다. [꿈과 같다고요?] 제갈신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나는 이번에 천청대법을 배우고 나서야 비로소 그것을 약간 알게 되었 소.] 황원원은 의아해 하며 물었다. [그렇게 세상을 꿈과 같다고 말하는 것은 누구나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닌가 요?] 제갈신중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생각할 뿐이지 직접 보지는 못한다는 말이오.] (......?) 황원원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내저었다. [저는 당신의 그 말을 이해할 수가 없군요.하지만 반드시 그 어딘가에 당신의 뛰어난 점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제갈신중은 물었다. [그럼, 대체 내가 무공을 배울 수가 없었던 까닭은 뭐라고 생각하시오?] 황원원은 다소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제가 보기에는 그것은 아마도 당신이 지나치게 무엇인가에 집착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대개 어떤 일에 지나치게 집착하다 보면 오히려 그 일이 잘 안되는 수가 있거든요.] 제 37 장. 이어지는 사건들. 제갈신중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바로 그렇소.나는 처음에는 집착이 없었어도 나중을 갈수록 그 집착이 강 해져 가는 것 같았소.] 황원원은 그를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 [그런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랬다는 것인가요?] 제갈신중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 것을 깨달은 것도 요즈음의 일이오.] 황원원은 의아해 졌다. [그렇다면 이미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닌가요?] 제갈신중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오.나는 다른 사람들도 무엇을 하는데는 집착을 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 문이오.그런데도 오직 나만이 그런 장애가 일어난다는 것은 조금 이상한 일이 아니오?] 황원원은 물었다. [당신은 그럼 거기에 다른 요소가 있을 거라는 말인가요?] 제갈신중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렇게 느끼고 있소.나에게는 다른 사람들과 다른 무슨 이유가 있었을 것이오.잘은 모르지만......] 황원원은 가볍게 탄식하며 말했다. [제가 보기에는 그것은 역시 집착 때문인 것 같아요. 이상한 점은 당신의 그 집착은 유달리 예민하다는 것이죠.] (......?) 제갈신중은 의아해 하며 물었다. [그렇다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이오?나는 그 문제만 해결되면 어떠한 일이든 해볼 수가 있을 것 같은데?] 황원원은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그것은 간단해요.집착을 버리는 것이죠.만일 집착을 버리게 되면 그 이상한 장애는 나타나지 않을 거예요.] 제갈신중은 다시 물었다. [그럼 그것은 쉬운 일이오?] 황원원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웃었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예요.세상사람들은 모두가 그 집착을 끊으려고 노력하지 만 안되는 것이고,절에서 수십년을 수행한 사람들도 집착을 모두 제거하지는 못한다고 하죠.] 제갈신중은 문득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은 내가 보기에는 다소 이상하군.] [......?] 제갈신중은 황원원을 바라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 [아까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다는 것이라면, 그렇다면 이 집착이라는 것도 얻 지 못할 것이고,그렇다면 그것을 끊으려는 집착 또한 얻을 수가 없는 것이 아닌가?] 황원원은 의아해져서 물었다. [그럼 아예 집착이 없다는 말인가요?] 제갈신중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집착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나 혹은 끊으려는 노력등이 모두 있 는 듯도 없는듯도 하다는 말이오.] (......?) 황원원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도 그런 얘기를 읽은 적이 있지만 이해할 수가 없네요.그것은 마치 장애없 는 것처럼 들리는데,그렇다면 당신은 이내 그 문제를 풀게 되는 것이 아닌가 요?] (......!) 제갈신중은 갑자기 그 얘기를 듣고는 안색이 변해서 놀란 표정으로 멍하니 중 얼거렸다. [아! 그렇군! 바로 그렇다! 내가 미처 그것을 생각하지 못했군! 아! 어째서 미 처 그것을 생각하지 못했을까......?] (......?) 황원원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그럼 이제 알았나요?] 제갈신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황원원은 다시 물었다. [그럼 그 장애는 없어지게 되었나요?] 제갈신중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장애라는 것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오.] (......?) 황원원은 의아해 하며 다시 물었다. [대체 그게 무슨 말이죠?] 제갈신중은 웃으며 대답했다. [그밖에는 달리 말할 수가 없소.나도 아직은 확실하지 않으니까.하하! 당신이 나에게 그 숙제를 풀게 해주어서 고맙소!] (......?) 황원원은 어리둥절해 하며 다시 물었다. [정말로 제가 도움이 되었나요?] 제갈신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나는 사실 얼마전부터 왠지 간질간질한 느낌이었는데,문득 당신의 얘 기를 듣고 알게 되었소.아마 그것이 정확한 것 같소.] (......?) 황원원은 더욱 어리둥절해 하다가 다시 말했다. [저로서는 대체 무슨 얘기인지 모르겠군요.아무튼 당신이 그 문제를 풀게 되었 다니 축하를 드려요.아아......이젠 골치가 아프니 다른 얘기를 하도록 해요. 음......당신은 앞으로 어떻게 하실 거죠?] 제갈신중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생각하다가 문득 대답했다. [그야, 앞으로 당신과 혼인을 하고 살아가면 되는 것이지, 무슨 다른 할 일이 있겠소?] 황원원은 웃으며 약간 상기된 안색으로 대꾸했다. [그런 것은 말고,강호무림에 관한 것 말이예요.] 제갈신중은 다소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그것은 앞으로 좀더 사태를 지켜보다가 ......나도 아직 잘 모르겠구려.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황원원은 고개를 저으며 되물었다. [당신은 만일 무림이 위기에 처하게 되면 그저 수수방관하기만 할 것인가요?] 제갈신중은 한숨을 내쉬며 대꾸했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노력한다고해도 사태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 않소?그들 도 원하지 않을 것이고......] 황원원은 가볍게 탄식하다가 다시 물었다. [하지만 만일 당신에게 그 어떤 능력이 생겨난다면 강호무림의 평화를 위해 애쓰실 것인가요?] 제갈신중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오. 나는 사실 내가 뭔가를 도울 수 있게 되기를 바라고 있소.] 황원원은 다시 물었다. [당신은 그럼 내일 영웅맹으로 따라가볼 생각인가요?] (......?) 제갈신중은 그녀를 바라보며 되물었다. [당신은 어떻게 할 작정이오?] 황원원은 가볍게 웃으며 대꾸했다. [저는 이미 당신의 여자가 아닌가요?저는 앞으로 당신이 무엇을 하든 간에 따 르도록 하겠어요.] 제갈신중은 그 얘기를 듣자 매우 흡족한 듯 얼굴이 벌개졌다. [그렇다면 우리는 일단 그들을 따라서 영웅맹에 가보도록 합시다.그 뒤의 일은 그때 다시 생각하기로 하고. 황원원은 미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상공!] 황원원은 손수 술을 따라서 술잔을 제갈신중과 나누고 각기 한잔씩을 들이켰 다. 이곳 강가의 바람은 다소 서늘했지만 오후의 햇살을 아직 따스했다. 제갈신중은 문득 생각난 듯이 다시 입을 열어 물었다. [이제는 당신이 살아온 얘기를 해보는게 어떻겠소?] 황원원은 술잔에 술을 따르고 술잔을 들어서 입술을 가볍게 축이다가 이윽 고 웃으며 대답했다. [저는 아주 어렸을 적에 부모를 잃고 죽을 뻔한 고아였대요.저의 선사께서는 당 시에 안휘성의 어느 마을에서 저의 부모님이 전염병이 들어서 질에 불을 지르 고 죽으려던 것을 발견하고 안으로 뛰어들어가서 저만 겨우 구해내셨대요.그 당시에 입은 화상이 바로 그것이었죠.] [......] [저에게는 그밖의 달리 친척도 없었다고 해요.그래서 저는 성수곡에서 이제까 지 자라왔는데, 얼마전에 선사께서 돌아가시자 저와 그 수곡사로만이 남은 거 예요.] 제갈신중은 다시 물었다. [그럼 성수곡에는 다른 사람들은 없다는 말이오?] 황원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이번에 성수곡을 나오면서 그곳을 잠시 폐쇄했어요.만일 상공께서 가보 고 싶으시다면 나중에 데려가 드리겠어요.] 제갈신중은 웃으며 다시 물었다. [차라리 우리는 그곳에 가서 사는 것이 어떻겠소?] 황원원은 안색을 가볍게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께서 좋으시다면,저는 물론 반대할 생각이 없어요.] 제갈신중은 잠시 그녀의 보기좋게 상기된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자신의 술잔을 단숨에 비우고 말했다. [자,그럼 우리 오늘을 기념하는 뜻으로 우선 석잔의 축하주를 마셔보는 것이 어떻겠소] ...... * * * 제갈신중과 황원원이 다시 만안반점으로 돌아온 것은 거의 해가 질 무렵이었 다. 그런데, 뜻밖에도 거기에는 한가지의 사건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빌어먹을! 사람이 여기에서 없어졌는데 전혀 모르겠다니, 그게 도대체 말이나 되는냐! 이놈들아! 그렇게 서 있지만 말고 어서 술이나 더 가져오너라!] (......!) 제갈신중과 황원원은 반점의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느닷없이 들리는 고함소리 와 함께 내부가 매우 어수선해져 있는 것을 보고 다소 놀랐다. 뜻밖에도 수곡사로가 그 어수선해진 실내 중앙의 탁자에 둘러앉아서 그처럼 고함을 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점원들은 더러는 주위의 부서지고 망가진 탁자들을 치우고 있었지만 대부분은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는데,안으로 들어와 보니 그토록 우아했던 이곳 실내가 갑자기 태풍이라도 휩쓸고 지나간 듯이 난장판으로 변해 있었다. 지금 고함을 지르고 있는 사람은 수곡사로 가운데에서도 가장 키가 작은 사척 의 난장이 노인인 장노였다. 제갈신중과 황원원은 그들이 자신들을 찾다가 이런 소동을 벌여놓은 것이라고 짐작하고는 내심 어이가 없었다. 그 두사람이 안으로 들어서자 과연 장노는 놀란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고,나머 지 노인들은 즉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곡주님께서 돌아오셨군요?] 수곡사로 가운데에서 그래도 가장 약삭빠른 편인 금노가 먼저 반색을 하며 달 려와 인사를 했다. [......] 황원원은 거의 난장판이 되다시피한 실내를 둘러보고는 다소 눈살을 찌푸렸 다. 비록 수곡사로가 다소 괴팍한 면들이 있기는 하나, 그렇다고 그녀가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그와 같은 사건을 벌여놓을 줄은 미 처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옆의 제갈신중은 어이없어 하며 내심 중얼거렸다. (이거,방금 선물받은 황금을 급히 써야할 곳이 생기고 만 것 같군!) 그런데, 황원원은 문득 주위를 둘러보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화노에게 이렇게 묻 는 것이었다. [혹시 어떤 자들이 왔다간 것이 아닌가요?] 그말에, 미처 화노가 대답하지도 못했는데 금노가 다시 나서서 눈을 휘둥그래 뜨고서 되물었다. [아니 곡주님, 대체 그것을 어떻게 아십니까? 혹시 그들과 한패......?] 금노는 황원원에게 그들과 한패냐고 물으려다가 문득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급히 입을 다물고 말았다. 제갈신중은 옆에서 그와 같은 얘기를 듣자 내심 궁금해지지 않을 수가 없었 다. 대체 지금 이들이 말하고 있는 그들이란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혹시 지금 이 반점의 내부를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은 사람은 수곡사 로가 아니라는 말인가? 그의 의문은 이내 화노의 대답으로 다소나마 풀려질 수가 있었다. 화노는 그 커다란 키를 절반이나 숙이면서 천천히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예 곡주님, 조금전에 일월신교의 놈들이 왔다갔습니다.] [일월신교?] 제갈신중은 내심 어리둥절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새 일월신교의 무리들이 이곳에 왔다갔다는 말인가?] 제갈신중은 문득 전날의 그 조하의 강상에서 싸우던 흑의복면인들을 뇌리에 떠올렸다. 황원원은 화노에게 다시 물었다. [그래 그들이 이곳에 와서 무슨 짓을 했소?] 그 말에 금노가 참지못하고 다시 먼저 말했다. [그들이 이곳에 와서 기물을 부수고 사람을 잡아가는 일외에 또 다른 무슨일 을 했겠습니까?] 화노는 다시 대답하려고 했으나 금노가 먼저 초를 치는 바람에 다소 어정쩡한 표정이었다. 황원원은 다소 놀라며 다시물었다. [아니 그럼,그들이 우리의 일행을 모두 잡아갔다는 말이오?] 화노는 다시 기회를 놓칠까봐 얼른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예...... 그러니까, 그들 모두를 생포해갔습니다.] 제갈신중은 뜻밖에도 남궁검민 등의 일행이 모두 일월신교의 무리들에게 잡혀 갔다는 소리를 듣고 놀라며 입을 열어 물었다. [아니! 당신들은 그새 무엇을 하고 있었길래 그들이 잡혀갔다는 것입니까?] ...... 제갈신중의 질문에 수곡사로는 잠시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는지 말이 없었다. 그렇게 말이 많던 금노는 고개를 돌리고 딴전을 피우고 있었고 화노와 장노 역시 말이 없었는데, 이윽고 기노가 약간 더듬거리며 말을 받았다. [우,우린 혹시 그들이 죽지않나 살펴보고 있었소.] 그들 수곡사로는 이미 제갈신중이 황원원의 신랑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 기 때문에 제갈신중을 대하는 말투가 달라져 있었다. 제갈신중은 놀라서 다시 물었다. [아니 그럼, 당신들은 뻔히 그렇게 그들이 잡아가는 것을 보면서도 그저 가만 히 바라보고만 있었다는 것입니까?] 기노는 약간 더듬거리며 다시 말했다. [음, 그......그건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소.곡주께서 우리에게 출수하지 말라 고 하셨기 때문에......] (......!) 제갈신중은 그 말을 듣자 내심 어이가 없어서 멍해지고 말았다. 그는 이제야 사태가 어떻게 된 것인지 거의 알 수가 있었던 것이다. 본래 그는 일월신교의 무리들이 수곡사로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일행을 잡아갔 다는 소리를 듣고는 다소 의아해 했다. 일월신교의 무리들이 제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수곡사로의 무공은 이미 하나같이 대홍락의 경지에 들어서 있는 것이기 때문 이었다. 전날 조하의 강상에서 일월신교의 무리들은 비록 악랄했으나 무공은 그다지 높 지 않았었는데, 이제 수곡사로가 있는데도 그런짓을 했다는 것은 그들의 무공이 대단하다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그럼에도 수곡사로의 옷차림이 전혀 손상이 없이 깨끗한 것을보고 더욱 의아해 했었다. 결국 그는 수곡사로가 근처에서 바라보고 있으면서도 아예 그들 일행을 도와 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어처구니가 없어졌다. 그것은 바로 황원원이 그들에게 자신의 지시가 없이는 출수하지 말라고 지시 를 내렸기 때문이었다. 허나 그것은 수곡사로의 성격이 괴팍하기 때문에 그것을 경계하기 위해 내려 놓은 지시였는데, 지금에 이르러 그만 일행을 끌려가게 할 줄은 미처 생각지도 못할 일이었다. 사실 그것은 누구의 잘못이라기 보다는 수곡사로가 하나같이 융통성이 없고 고 지식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남궁검민 등을 그토록 손쉽게 생포해 갔다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일월신교에 서는 이번에 제법 고수가 나타났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지만, 그러나 만일 수곡사로 가운데 하나만 나섰더라도 그들은 결코 뜻을 이루지 못 했었을 것이다. 제갈신중은 문득 주위를 둘러보다가 조금전에 황원원이 일월신교의 출현을 눈 치챈 이유를 알아차렸다. 지금 이곳 실내의 기물들은 온갖 병기에 의해 심하게 부러지고 베어져 있었는 데, 그것은 하류의 무공이 펼쳐진 광경이지 결코 수곡사로와 같은 고수가 시전한 광경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제갈신중은 아직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내 그러한 사실을 파악한 황원원 에게 내심으로 찬사를 보냈다. [아니 그래, 당신들은 그렇게 수수방관하면서도 마음이 편했다는 말이오?] 제갈신중의 핀잔섞인 질문에 그제서야 금노가 입을 열어 대답했다. [우,우리는 물론 마음이 매우 편하지 못했지요.그래서 우리는 일부는 서둘러 곡 주님을 찾고,나머지는 그들의 안전을 살피며 그들의 행적을 알아 두었습니다.] (......) 제갈신중은 그제서야 수곡사로도 그동안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는 것 을 알수 있었다. 알고보니 수곡사로는 그래서 급히 황원원을 찾았던 것이고, 그러는 와중에서도 일행의 안전을 도모했었다니 과연 그들의 숨은 노력을 알 아줄만 했다. 제갈신중은 이곳에서 격렬한 혈전을 벌였었을 제갈보중 등의 일행의 모습을 떠올리며 문득 다시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즉시 그들을 찾으러 가야하는 것이 아니오?] 황원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그래요.다행히 끌려간 장소를 알아두었다니, 지금 즉시 그들을 구하려 가기로 해요!] 황원원의 그 말이 떨어지자 수곡사로는 다급히 밖으로 신형을 움직이려고 했 다. 하지만, 제갈신중은 그들이 미처 움직이기도 전에 철상자들을 하나씩 맡기며 말했다. [자! 이것은 당신들 주인의 것이니 앞으로는 당신들이 보관하도록 하시오.] ......! 수곡사로는 뜻밖에도 이상한 철상자들을 받게 되자 어리둥절 하며 그 가운데 의 금노가 물었다. [아니 이것은 무엇입니까?] 제갈신중은 문득 수곡사로가 자신에게 존대하는 말을 쓰는 것을 매우 어색해 하는 것을 보고, 웃으며 대답했다. [그건 나중에 당신들의 주인에게 물어보면 알게 될 것이오.그리고, 나에게는 이렇게 존대말을 쓸 필요가 없소.그저 나와 친구처럼 대하는 것이 어떻겠소?] 기실, 수곡사로는 은근히 그들간에 제갈신중을 대하는 문제에 대해서 이론이 분분했 었다. 여러가지 의견이 오갔지만 결국은 제갈신중은 곡주의 신랑이 될 것이기에 같은 대우를 해주기로 했다. 하지만, 처음 제갈신중을 만났을 때의 기노와 금노 등의 입장은 나이가 나이려니와 다 소 난처하고 어색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던 것을 제갈신중이 그렇게 말해주자 금노 등은 일순 매우 기뻐했다. 금노는 즉시 손을 들어 제갈신중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웃으며 말했다. [맞아,맞아! 자네는 계급이 우리보다 하나 높고,또 우리는 나이가 자네보다 많 으니 서로 친구가 되는 것이 좋겠군! 자네는 정말 멋진 친구야!] 동시에 일제히 싱글벙글하는 수곡사로는 이미 자신들이 들고있는 철상자에 대 한 의문도 잊어버리고 있었다. * * * 수곡사로가 일행이 잡혀간 장소를 알고 있다고 한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반점을 급히 출발한 그 여섯명은 이내 은밀하게 신법을 펼쳐서 내달리기 시작 했고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서,수곡사로가 안내하는 대로 성밖의 사오십리밖 에 위치하고 있는 제법 험준한 산중에 도착하게 되었다. 때는 이미 황혼의 저녁놀이 짙게 물들기 시작하는 무렵이었다. 이 저녁놀은 쌀쌀한 날씨와 어울려 왠지 음산하고 공포스러운 느낌을 불러일 으키는 것 같았다. [바로 저깁니다.곡주님!] 직접 확인하고 왔다는 금노의 말이 떨어지자 일행 여섯명은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듯이 신형을 멈추었다. ......! 그곳은 험준한 산속에 있는 풀 한포기 나지 않는 거대한 돌산이었는데,특이하 게도 그 돌산의 중턱에는 동굴들이 벌집처럼 무수하게 뚫려 있었다. 일행은 모두 초절정의 놀라운 무공들을 소유하고 있었으므로 빠르고 간단하게 그 앞에 이르렀다. [아니,여기는 아무도 없잖아?] 장노가 동굴들의 앞에 이르러 주위를 둘러보다가 말했다. 화노가 즉시 고개를 저으며 대꾸했다. [아니야.지금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필시 안에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 분명해! 보라구,숨소리가 들리잖아! ] 기실, 성시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이런 산중에서 어떤 세력을 은밀히 키우고 있었다 는 자체가 이미 놀라운 일인 것이었다. 그들이 만약 어떤 흔적을 보였다면 그들의 행적이 알려지지 않을 리가 없었 다. (......) 황원원은 제갈신중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하는 듯 하다가 이윽고 먼저 그 가운 데의 한 동굴속으로 소리없이 진입하기 시작했다. 지금 이 돌산의 동굴속에는 많은 사람들이 은밀하게 모습을 감추고 경계를 서 고 있는 중이었다. 이미 그들 가운데 몇몇은 일행이 나타난 것을 눈치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나타난 사람들은 실로 그들의 상대가 아니었다. 과연 아니나 다를까? 황원원을 선두로 해서 일행이 안으로 들어서자 그들 가운데의 몇몇은 놀라서 앞으로 나서려고 했다. 그러나 황원원의 무공은 즉시 눈부시게 발휘되기 시작했다. 황원원의 오른손이 가볍게 쳐들린 순간 형체도 보이지 않는 무수한 지력들이 발출되어, 그들의 신형이 한꺼번에 소리없이 쓰러지고 말았다.그들은 하나같이 혼혈이 제압되어 쓰러진 것이었는데, 그렇게 한꺼번에 수십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혼혈을 정확하게 제압해낼 수가 있다는 것은 아주 놀라운 일이었다. 수곡사로도 뒤이어 사방으로 신형을 날렸으나 그저 쓰러져 혼미한 상태에 있 는 흑의인들을 발견하고는 놀리듯이 중얼거렸다. [바보같은 놈들,그래서 세외팔세의 하나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들이 이모양이라 니......정말 지루해 죽겠군!] 동굴의 내부에는 좀더 들어가자 훤한 횃불이 밝혀져 있었다. 처음에는 좁은 동굴이던 것이 갈수록 넓어져 갔고,게다가 천연적인 동굴에 인 공을 가미한 흔적이 뚜렷해졌다. 황원원과 수곡사로의 능력은 과연 뛰어난 것이었다. 제갈신중은 미처 손을 써보지도 못했는데 그 다섯명은 각기 경쟁이라도 하듯이 무공을 펼쳐서 이미 백여명이나 되는 경계서는 자들을 제압해 버렸다. 아마도 아직 조용한 것을 보니 그들은 미처 침입하는 사실을 알리지도 못한 모양이었다. 통로에는 횃불이 밝혀져 있었고 그러나 구석진 곳에는 상당히 어두웠지만 여 섯명은 이미 어둠마저 꿰뚫는 시력을 가지고 있었다. 일행이 그렇게 순식간에 경계서는 자들을 제압해 버리고 하나의 작은 광장에 이르렀을 때, 거기에는 다시 무수한 동굴들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아마도 이곳은 동굴로 이루어진 일종의 미로진인 모양이었다. 대개 이러한 곳에 함부로 들어갔다가 잘못 나아가면 한평생 빠져나오지도 못 하고 헤매는 수가 있었다. 하지만, 일행은 하나같이 무공이 고절하여 전혀 장애를 받지 않았고, 내부에서 들리는 인기척만으로도 들어가는 길을 알 수가 있었다. 황원원은 문득 고개를 돌리며 수곡사로에게 말했다. [이제부터는 좀더 신중하세요!] 그러니까, 이 관문만 지나면 적들의 소굴이 눈앞에 도래할 것이라는 말이었다. 황원원은 이어 수곡사로가 미처 고개를 끄덕이기도전에 먼저 하나의 동굴속으 로 신형을 날렸다. 그 동굴을 밖에서 보기에는 매우 좁고 또한 어두웠다. 하지만, 과연 조금 나아가자 동굴은 상당히 넓어졌고 이윽고 막다른 장소에 도달할 수 가 있었다. 동굴이 완전히 하나의 벽으로 가로막혀 있는 것을 보고 금노가 다소 의아해 하면 전음으로 황원원에게 물었다. [아니 이건 막다른 길이 아닙니까?] 황원원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역시 전음으로 대꾸했다. [아니예요.이건 뚫려있는 길이예요.] 과연 아니나 다를까? 황원원이 우수를 가볍게 젓자 일순 그그긍! 하는 소리와 함께 전면의 석벽이 서서히 뒤로 물러나는 것이었다. 아마도 그 석벽은 기관장치에 의해 안에서 열도록 되어 있었던 모양이었다. [앗,누구냐!] 갑자기 석벽이 열리기 시작하자 다소 놀란듯한 외침이 안쪽에서 흘러나왔다. 그것은 아직 전혀 그들이 침입자가 나타난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 는 일이었다. 당연히 안쪽에서 열수 있게 되어있는 석벽이 손도 대지 않았는데 갑자기 열리 니 이상스러운 것은 당연했다. 제 38 장. 괴이한 사태. ......! 석벽이 완전히 뒤로 물러난 순간 그안에 있는 흑의인들의 놀란 표정들이 불빛 과 함께 눈안에 들어왔다. 하지만, 흑의인들은 처음에는 밖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고 다소 고개를 가로저으며 어리둥절해 했다. 물론 그밖에 아무도 없는 것은 당연히 아니었다. 황원원과 수곡사로 등은 그 순간에 다소 어두운 천정에 올라가 있다가 일제히 안으로 날아들어갔다. [으앗!] 갑자기 귀신과도 같은 빠른 물체들이 흡사 허깨비처럼 안으로 날아드는 것을 보고 흑의인들은 놀라 소리를 질렀으나 이내 거의 동시에 제압되고 말았다. 그 통로에서부터는 역시 횃불이 훤하게 밝혀져 있었다. 이러한 곳에 이러한 시설이 마련되어 있었다고 하는 사실은 실로 놀랍게 했 다. 이곳은 더군다나 영웅맹에서 그다지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이 아닌가? 동굴의 한쪽에는 기관장치를 지키기 위한 장소인 석실이 두어개 마련되어 있 었는데 그곳까지 들어가서 모든 흑의인들을 제압한 일행은, 이어 다시 빠르게 안으로 진입했다. 실로 거기부터는 정식으로 놈들의 소굴인 모양이었다. 동굴의 사방은 이제까지와는 달리 아주 반듯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횃불의 숫 자도 갈수록 많아졌다. 일행은 진입할수록 더욱 요란한 인기척들을 느꼈다. 과연 아니나 다를까? 불과 십여장 아래쪽으로 향하는 통로를 따라서 내려가자 문득 하나의 커다란 석문이 나타나는 것이었다. 주저없이 다가가서 석문을 열자 일순 넓은 지하광장에서 거칠게 움직이는 수 백명의 흑의인들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아마도 이 넓은 광장에서 일월신교의 무리들은 연무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 다. [어?누구야?] 연무를 하던 흑의인들 가운데에서 몇몇 사람들이 제갈신중 등의 일행을 발견 하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것은 한때일 뿐이었다. 황원원과 수곡사로 등은 어느새 그들이 미처 행동을 취하기도 전에 마치 날벼 락차럼 날아들어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황원원과 수곡사로의 손짓발짓에 따라서 한꺼번에 수십명씩 흑의인들이 나동 그라졌다. [앗! 적이다! 저놈들을 공격해라!] 흑의인들은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수백명이 한꺼번에 일행을 향해 사방에서 공격해 들어오기 시작했다 ......! 하지만, 제아무리 흑의인들이 한꺼번에 악랄하게 반격해오기 시작한다고 해도 도저히 황원원 등의 상대가 될 수는 없었다. 도무지 이 싸움은 승부가 되지 않는 것이었다. 황원원과 수곡사로는 그저 흑의인들의 혼혈만을 제압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갑자기 수십명씩이나 쓰러져 갔다. 뜻밖에도 상대가 그렇게 놀라운 괴력들을 발휘하는 것을 보자 흑의인들의 기 세도 급히 줄어들었다. 그들은 점차 자신들이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자 슬그머니 달아날 궁리 들을 하기 시작했다. (......) 제갈신중은 이미 무공이 급격히 상승하여 자신으로서는 조금도 위험하지 않다 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게다가 지금 상황은 그가 구태여 무공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였다. 하지만, 제갈신중은 장내를 살피다가 수곡사로 등이 마치 부챗살처럼 펼쳐지는 황금빛 의 지력을 사용하는 것을 보고 다소의 호승심이 일었다. 그 황금빛의 지력은 이미 전에 기로와 금노가 사용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던 것으로, 성수곡의 절기 금광지라는 것이었다. 비단 화려하고 아름답게 느껴질 뿐만 아니라, 아주 가늘게 뽑을 수도 있고 소리없이 무수한 변화도 일으킬 수가 있는 것이 다. 제갈신중은 그러한 광경을 바라보다가 문득 자신도 천기미리보를 일으킨 상태 에서 천성지를 펼치기 시작했다. 그는 이미 나름대로의 문제점을 해결한 상태였기 때문에 한결 그런 무공의 시 전이 수월해졌다. 얼마전에 그는 미처 자신의 무공의강도를 조절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마치 그렇나 이치와 변화가 한눈에 들어오는 것 같아서 손쉽게 황원원 처럼 흑의인들의 혼혈만을 제압할 수가 있었다. 본래 천성지는 다소 검푸른 현색을 띠게 되는 것이었으나, 지금의 그의 지력은 전혀 아무런 기척을 느낄수가 없고 또한 무형무색이었다. 그것은 어찌보면 본래의 천성지와 전혀다른 것 같기도 했고,혹은 같은 것 같 기도 했다. 수백명의 흑의인들이 아우성을 치면서 흡사 아귀들처럼 이리저리 달려드는 가 운데 마치 환상처럼 , 눈에 보이지도 않을 빠르기로 장내를 종횡하며 지력을 펼치는 그 여섯 사람의 능력과 모습은 갈수록 현란해졌고, 급기야 흑의인들은 숫자가 백여명에 이르게 되자 그만 기겁하여 사방으로 뿔 뿔이 달아나기 시작하고 말았다. ...... 제갈신중은 구태여 그들을 뒤쫓아가서 모두 제압하고 싶은 생각은 나지 않았 다. 그는 황원원에게 바라보았다. 마침 황원원은 그때 수곡사로에게 동시에 전음을 날리고 있었다. [그대들은 어서 사방으로 흩어져서 사람들이 갇혀있는 장소를 찾아봐요!나는 제갈상공과 함께 저자의 뒤를 추척해 볼테니!] 수곡사로는 이미 공감하고 있었기 때문에 두말없이 신형을 사방으로 날리고 있었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서두르지 않으면 놈들이 포로들을 모두 죽여버릴 위 험이 있는 것이었다. 제갈신중은 즉시 황원원의 옆으로 다가가며 전음으로 물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에서 다시 회합하는 것이오?] (......?) 황원원은 그 말을 듣자 일순 그녀답지 않게 그를 바라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제갈신중은 그녀가 왠지 다소 주춤하는 것을 보고 손가락으로 앞쪽을 가리키며 다시말했다. [저자가 달아나고 있소! 자,어서 추적하도록 합시다.] (......) 황원원은 그제서야 미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상공!] 제갈신중과 황원원이 추격하려는 사람은 바로 아까부터 수백명의 흑의인들을 지휘하던 자였는데,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얼굴에 검은 복면을 하고 있었다. 비록 다른 무공이 고강한 사람들도 많이 있었지만 두 사람은 이내 그자의 종 적을 찾아낼 수가 있었다. 그자는 제법 경쾌하고 빠른 신법을 사용하여 어느 한 석문안으로 사라지고 있 었는데, 제갈신중과 황원원은 즉시 은밀하게 추격하여 그 뒤에 바싹 따라붙었다. 그 흑의복면인은 석문을 지나서 제법 넓고 화려한 통로를 따라서 나아가고 있 었다. 게다가, 그 흑의복면인의 신법은 다소 특이하여 마치 발바닥을 지면에 대고서 차례로 미끄러져 가는 것 같았는데, 그저 보자니 마치 검은 그림자가 환상처럼 이동하는 것과 흡사했다. 제갈신중은 그자의 신법이 다소 특이해 보여서 황원원에게 물었는데 황원원은 전음으로 이렇게 대답해 주었다. [일월신교에는 흡성대법과 건곤대나이 이외에도 많은 무공들이 있는데, 저것은 그 가운데의 하나인 일광혼이라는 신법이예요.그 이치는 건곤이기를 발바닥에 주입하여 그 탄력을 이용하여 빠르게 나아가는 것이죠......] 제갈신중은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저자는 진짜 일월신교의 고수라는 말이오?] 황원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광혼의 신법은 가히 대홍락의 경지에 육박하는 것이니,저 정도의 무공을 지 니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핵심부에 속한다고 할 수가 있겠죠. 그의 무학은 현 재 최절정의 경지인 것 같아요.] [......] 제갈신중과 황원원이 빠르게 전음을 주고받는 사이에 그 흑의복면인은 어느새 다시 하나의 석문앞에 이르렀다. 그 석문은 앞서의 것보다 훨씬 크고 웅장했었는데, 주위에는 촛불들을 무수하 게 밝혀놓아 휘황했다. 흑의복면인이 그 석문의 앞으로 다가서자 문득 안에서 누군가의 음산한 목소 리가 들려나왔다. [누구냐?] 흑의복면인은 뒤를 돌아보며 경계하는 듯 하다가 이내 대답했다. [제삼향주입니다.] 그러자 다시 안쪽에서 예의 그 말소리가 들려 나왔다. [무슨일인가?] 흑의복면인은 초조한 기색으로 주저하다가 대답했다. [저어,갑자기 침입자가 나타나서 급히 보고드리려는 것입니다.] 순간, [뭐라구?] 다소 놀란 듯한 음성과 함께 그 커다란 석문이 서서히 열렸다. 제갈신중과 황원원은 물론 당시에는 천정에 바싹 붙어 있다가 그렇게 석문이 열리는 순간을 이용하여 빠르게 안으로 날아들어갔다. 넓은 방안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 석문의 안쪽은 뜻밖에도 그저 보통의 통로 에 불과했고, 주위에 작은 석실들이 있었으며 뒤쪽에 앞의 것과 흡사한 거대한 석문이 하나 더 자리하고 있었다. 통로에는 지금 두명의 음산한 인상의 흑의노인들이 서있었는데 그들은 아마도 이곳의 문지기인 모양이었다. 그들의 기도로 보아 무공은 흑의복면인보다도 우위에 있는 것 같았는데, 실로 그러한 자들이 한낱 문지기가 되어 있다니 이곳은 그야말로 여기에서 가 장 중요한 곳이 틀림없는 것 같았다. [대체 어떤 놈들이 나타났는데 그러느......?] 두명의 흑의노인들 가운데 하나가 급히 흑의복면인에게 묻다가 문득 통로안에 다시 두명이 더 들어와 있는 것을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마치 허깨비와 같은 신법을 펼치고 있는 황원원과 제갈신중을 바라보는 그들 의 시선에는 놀라움이 가득했다. [너희들은 누구냐?] 다른 한명의 흑의노인이 눈알을 부릅뜨며 물었다. 하지만, 제갈신중과 황원원은 결코 이곳에서 그들과 노닥거리며 시간을 소모하고 싶 은 없었다. (......) 대꾸도 하지 않고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제갈신중과 황원원은 각기 빠르게 한명씩의 흑의노인에게 덮쳐갔다. 황원원의 능력으로 그 흑의노인 한명을 제압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바로 제갈신중에게 있었다. 제가신중은 자신이 이미 그것을 느끼고 내심으로 약간 긴장되어 있었다. 상대는 바로 과거에는 달려들 엄두도 못냈을 최절정의 경지의 정상에 올라있 는 대마두들인 것이었다. 제갈신중은 앞으로 덮쳐들면서 그가 얼마전에 터득한 최고의 무예인 천청대법 을 상기해 보았다. 그것은 그가 그만큼 긴장해 있다는 표시였다. 물론 과거에 현현괴로와 맞서보기도 했었지만 이렇게 최절정의 고수와 정식으 로 부딪치는 것은 처음있는 일이었다. 제갈신중이 덮쳐들면서 펼친무공은 바로 가전의 대천성장이었다. 보통 그 장력을 펼치게 되면 검푸른 강기가 일어나지만, 지금 제갈신중이 펼치는 장력에는 거의 아무런 소리나 빛깔도 없었다. (......?) 제갈신중이 그러한 공격을 해가자 상대인 흑의노인은 다소 놀라는 눈치였다. 그런데, 막상 제갈신중의 장력이 닿으려는 순간에 흑의노인의 신형이 흡사 유령처럼 그 자리에서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제갈신중은 이미 그 조하의 강가에서 신물이 나도록 그 일월신교의 괴이한 무 공을 접한 적이 있었다. 그들의 무학은 실로 무학의 상리를 찌르고 있어서 대개 고수라고 해도 그것을 모른다면 당하고 마는 것이었다. 게다가, 지금 이 흑의노인은 당시에 접했던 일류급의 인물들과는 달리 자그마치 최절 정의 고수이니, 그 괴이함이 어떤 경지에 이르렀겠는가? 제갈신중은 미리 짐작해둔 바가 있었기 때문에 다소 놀라기는 했지만 그다지 당황하지는 않았다. 흑의노인은 지금 이상한 각도로 피한 것이기 때문에 갑자기 증발한 것처럼 보 이는 것이었다. 그런데, 제갈신중은 막상 정신을 가다듬고 흑의노인의 위치를 찾으려다가 문득 스스로 깜짝 놀라고 말았다. 지금 그는 분명히 앞을 보고 있건만 허공위에서 그를 향해 반격해 오고있는 흑의노인의 모습이 그의 뇌리에 선명하게 비치는 것이 아닌가? 알고보니 그것은 바로 천청대법을 펼치고 있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었다. 그는 조금전에 천청대법을 상기하다가 무심코 그것을 운용하게 되었고, 따라서 싸움에 돌입한 순간 설사 흑의노인이 그의 시야를 벗어나 있더라도 역 시 선명하게 보이는 것이었다. 게다가, 더욱 기이한 것은 바로 그 천청대법의 효과였다. 일단 그렇게 천청대법으로 보게 되자 눈을 뜨고는 알수가 없었던 상대방의 움 직임의 이치에 대해서 아주 선명하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것은 마치, 눈을 뜨고 보는 것은 무학의 상리에만 매어있다가 그것을 찌르는 공격에는 무 력하게 되는 것이지만, 일단 천청대법을 펼치게 되면 그런 습관에도 물들지 않아서 괴이한 무공에도 능히 꿰뚫어 볼 수가 있는 것이라고나 할까? 어쨌든, 제갈신중은 천청대법으로 상대의 종적을 알아낸 순간 신형을 뽑아올려 바로 그자의 앞으로 다가들었으며, 그 순간에 이어 가전의 난화산수를 펼쳐냈다. 쩌러렁! 하지만 기실 그가 그 순간에 그러한 수법을 사용한 것은 이론상의 문제가 있 는 것이었다. 본래 그 난화산수라고 하는 것은 제갈세가의 최절정의 절학이기는 하지만 주 로 여인들이 배우던 것이었다. 그것은 제법 위력을 매섭고 파괴적인데가 있지만 순간순간의 변화에 능숙하게 대응하기 못하는 단점이 있었다. 제갈신중 자신도 그 순간에 어째서 확실히 배우지도 않은 난화산수를 펼쳐냈 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결과는 전혀 엉뚱하게 나타났다. 난화산수가 펼쳐진 순간에 이미 그 흑의노인은 몸을 공중회전시키면서 돌연 옆으로 미끄러져 가고 있었는데, 어느새 뜻밖에도 무형으로 변한 그 난화산수가 갑자기 그와 똑같이 변화하여 그대로 공격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 그것은 심지어 난화산수를 전개한 제갈신중마저도 놀랄 지경의 일이었다. 흑의노인은 자신이 피했다고 생각했으나 어느새 오히려 더욱 휘험하게 된 것 을 보고 그만 다급히 상장을 내밀어 반격했다. 그의 쌍장에서는 일순 흡사 조각달처럼 생긴 강기들이 뻗어나와 소리없이 제 갈신중의 무형장력에 부딪쳐 갔다. 그 두 개의 조각달 모양의 푸른 강기는 그저 보기에는 마치 칼날과도 같아서 괴이한 위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결과는 역시 이상했다. 퍽! 흡사 살가죽이 터져나가는 것 같은 단순한 음향이 들려오더니, 흑의노인이 펼ㅊ니 푸른강기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대신 그의 두팔이 그 대로 어깨에서부터 으스러지며 핏물과 함께 터져나가는 것이 아닌가? [......!] 흑의노인은 그렇게 된 사실이 너무나도 어이가 없는 듯 바닥에 떨어진 이후에 도 그저 멍하니 서있었다. 제갈신중은 그것을 보고 문득 지력을 발출하여 그자의 혼혈을 짚어주고는 내 심 생각했다. [이상한 일이군! 그렇다면 일단 무공을 펼칠때는 반드시 천청대법을 사용해야 하는 것이라는 말인가!] 고개를 도려보니 황원원은 어느새 한명의 흑의노인을 제압하고 나서 다시 흑 의복면인의 혼혈을 제압하고 있었다. 역시 황원원은 정상적인 무학수련의 과정을 밟아왔기 때문에 무공을 실전에 응용하는 것이 능숙했다. 제갈신중이 바라보자 황원원은 가볍게 미소를 짓더니 그 석문의 앞으로 다가 가서 우수를 가볍게 저었다. 그것은 역시 기관장치를 움직이는 모양이었다. 제갈신중은 비록 제갈세가의 자식이기는 했지만 그 기관장치에 대해서도 황원 원에게 손을 드는 수밖에 없었다. 스스스! 이 두 번째의 거대한 석문은 아까보다는 천천히, 그리고 나직한 소음을 발하 며 열렸다. ......! 석문이 활짝 열리자 제갈신중과 황원원은 일순간 매우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 다. 예상대로 그곳은 제법 넓고 또한 아주 화려하게 대리석과 고급의 목재나 모피 등으로 꾸며진 석실이었다. 곳곳에 아름다운 촛불들이 불빛을 발하고 있는 가운데 한쪽에는 아주 호화롭 고 넓은 침상이 있었고, 그 옆에는 또한 넓고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커다란 욕조가 아름답게 꾸며져 있었다. 놀라운 일은 바로 그 욕조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지금 그 넓은 욕조의 한가운데에서 작은 돌출된 돌침상위에 누워있는 사람은 보기에도 끔찍해 보이는 돼지같은 노인이었다. 그 노인은 머리가 훤하게 벗겨진 대머리로 전신에 엄청나게 살이 쪄있었는데 벌거벗은 상태였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바로 지금 그 늙은이의 주위에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 신으로 정성껏 몸을 씻고 있는 낯익은 네명의 소녀들, 그 사람들은 다름아닌 일행인 남궁녹악,제갈금의 등의 여자들이 아닌가? 제갈신중은 비록 걱정을 하고는 있었지만 실로 그러한 광경을 보게 되자 내심 멍청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네명으 소녀들은 자신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앙칼진 성품의 소 유자들이며, 평소에는 죽으라고 해도 저런 일은 결코 하지 않을 것인데 그와 같은 일들을 하고 있다니 믿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제갈신중은 일시 그녀들이 무슨 힘에 의해 저렇게 되었는지 알수가 없었다. 만일 시간이 많이 지났다면 다소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수곡사로의 말을 들어보니 이제 겨우 그들이 납치된 것은 한시진 정도밖에 지 나지 않은 상태가 아니던가? 이순간 그렇게 치부를 완전히 드러내놓고 벌거벗은 그 네명의 소녀들의 모습 은 아름답고 유혹적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제갈신중은 일순 그녀들이 매우 불쌍하게 느껴질 뿐만 아니라 일종의 형언하 기 어려운 화도 치밀었다. (......!) 그 네명의 여자들은 문이 열린 순간에 이쪽을 바라보고 놀라운 표정을 지었으 며 이윽고 그 노인도 고개를 돌렸다. 제갈신중은 그때 네여자의 얼굴에 떠올라 있는 공포의 표정을 보았다. 노인은 뜻밖에도 낯선 사람들이 안에 들어온 것을 보고 몸을 벌떡 일으키며 소리쳐 물었다. [웬 놈들이냐?] 동시에 그는 가장 가녀린 몸매를 가지고 있는 남궁녹악의 알몸을 들어서 자신 의 무릎앞에 앉히며 마음껏 치부를 주무르는 것이었다. 남궁녹악은 한순간 자신의 몸이 노인에 의해 마음껏 유린당하고 있는데도 안 색만 창백해질뿐 아무런 소리조차 지르지 못했다. 제갈신중은 그것을 보자 멍청해졌고 황원원은 감히 바라보지도 못했다. 그러자, 노인은 다시 양쪽에 서있는 제갈금의와 황보숙한의 젖가슴을 마구 주무르며 다시 소리쳐 묻는 것이었다. [노부가 지금 웬놈들이냐고 묻고 있지 않느냐! 네놈들이 감히 여기까지 찾아 올 배짱이 있었다면 관등성명을 말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 (......) 제갈신중은 노인의 그 독랄해 보이는 눈빛을 보고 이미 정신을 차렸다. 그는 비로소 노인이 그 네명의 여자들을 인질로 삼으려고 한다는 것을 눈치챈 것이었다. 제갈신중과 황원원이 갑자기 여기까지 나타난 것을 보고 노인도 그들의 실력 을 어느 정도 파악한 모양이었다. 황원원이 난처한 기색으로 서 있기에 제갈신중은 나서서 입을 열었다. [우리들은 당신과 사귀려고 온 사람이 아니니 굳이 이름을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오. 그보다 먼저 서로의 실력을 보이는 것이 합당하지 않겠소?] 노인은 흉악한 눈빛으로 제갈신중의 얼굴을 살피며 다시 물었다. [그럼 네놈은 감히 나와 겨룰 자신이 있다는 말이냐?] 제갈신중은 그를 격동시킬 생각으로 이렇게 대꾸했다. [최소한 당신처럼 나이 어린 여자들을 인질로 삼고 있지는 않소.] 하지만, 노인은 이내 흉측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흐흐,네놈은 보기보다 멍청하구나! 보다시피 내가 목욕을 하고 있는 사이에 네놈이 찾아온 것이지,어째서 내가 인질을 잡고 있다고 본다는 말이냐?] 제갈신중은 화가 치밀었다. 노인은 그렇게 대답하는 와중에도 보라는 듯이 손을 부지런히 움직이며 제갈 금의 등의 나신을 고루 어루만지는 것이었다. [당신은 그렇다면 정말로 그녀들을 놔주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오?] 노인은 이에 더욱 음흉하게 웃으며 두 여자의 치부까지 마구 주물렀다. 기이하게도 남궁녹악뿐만 아니라 나머지 여자들도 이순간 혈도가 제압된 것도 아니면서 전혀 반항을 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물론이다,흐흐흐! 잘못은 마침 이시간에 나타난 네놈에게 있는 것이지 어째서 나를 탓하느냐? 만일 노부와 겨루어 보고 싶다면 거기에서 잠자코 기다려라. 내 잠시 즐기고 갈 것이니!] 물론 노인이 그렇게 하는 것은 제갈신중 등을 격동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그 여자들을 이리저리 주무르면서도 그의 다리 사이에는 노인답지 않게 시뻘 겋고 커다란 흉물이 매달려 흔들거리고 있었기 때문에, 황원원은 도저히 그것을 보고 나설 수가 없었다. 제갈신중은 그것을 알고서 내심 무거운 기색으로 다시 말했다. [당신은 그렇다면 앞으로 후회하지 않도록 하시오.] (......) 노인은 그말에 잠시 멈칫하고 제갈신중을 바라보더니 대꾸했다. [뭐라고?나더러 후회하지 말라고?흐흐흐,나는 솔직히 네놈들이 이것들을 구하 려 왔다는 것을 알고 있지.흐흐! 네놈이 만일 자신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달려 들어서 이것들을 구해보는 것이 어떠냐?] 제갈신중은 눈빛을 차갑게 빛내며 다시 물었다. [당신은 그래 죽음은 두렵지 않다는 말이오?] 노인은 황원원의 쪽을 한 번 돌아보며 음침하게 대꾸했다. [호호,나는 최소한 네놈에게는 당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 순간, 제갈신중은 더 이상의 말이 필요없다는 것을 알고 마침내 그쪽으로 번쩍 신형 을 날리고 말았다. 이번의 그의 출수는 이미 작정한 것이어서 신속하기 그지없었다. 한 번 움직인다고 생각된 순간에 어느새 그의 신형은 노인의 전면으로 육박해 들어가고 있었다. (......!) 그토록 자신만만해 하던 그 노인도 느닷없이 제갈신중의 그 신속한 움직임을 보게 되자 매우 놀라는 표정이었다. 조금전의 경험도 있고 하여 제갈신중은 이미 예의 그 천청대법을 활용하고 있 는 상태였다. 제갈신중이 육박해 들어가면서 펼친 절기는 바로 대천성장이었는데,그것은 지 금과 같은 상황에서 적절한 운용이라고 할 수가 없었다. 이미 제갈신중은 장력은 무형무성의 경지에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변화도 자유 로왔다. 제갈신중은 먼저 상대의 가슴을 후려쳐 갔는데 노인이 그것을 보고 급히 옆으로 몸을 피하며 제갈금의를 움직여 방패로 삼으 려고 하자, 제갈신중의 장력도 어느새 환각처럼 전환하여 여전히 노인의 가슴으로 짓쳐들 고 있었던 것이었다. (......!) 노인은 제갈신중이 마치 자신의 움직임을 미리 읽고 있는 듯이 여전히 자신의 가슴을 위협하고 있는 것을 보자 한순간 더욱 놀라는 표정이었다. 이미 그가 피하기에는 시간적으로 늦어 있었다. 그는 황급히 자신의 최대절학인 일월건곤대나이의 신공을 사용하여 오른손을 내뻗었고,이어 전력을 다해 그 다섯손가락을 퉁겼다. 따라서 노인은 겨우 위기를 모면할 수 가 있었지만 뜻밖에도 일월건곤대나이 를 사용하는 손가락이 마치 불에 데인 듯이 화끈거리는 것을 보고, 그는 그만 너무도 놀라서 두 눈이 휘둥그래졌다. 제 39 장. 마침내 선보인 광검. 하지만, 바로 그 순간에 노인뿐만 아니라 제갈신중도 역시 상대의 무공에 놀란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의 무형무성의 무서운 위력이 담긴 장력이 쇄도해 가는 순간에 갑자기 노인 은 다섯 손가락을 앞으로 내밀더니,이어 마치 가야금을 타듯이 홀연히 퉁기고, 홀연히 누르며,홀연히 비틀고,홀연히 잡아당기면서 한순간에 제갈신중의 장력 을 모두 무산시키거나, 더러는 한쪽에 서있는 벌거벗은 당설정의 몸쪽으로 되돌리는 것이 아닌가? (......!) 제갈신중은 느닷없이 자신의 장력으로 당설정의 몸이 박살날 위기에 처하게 되자 그만 놀라서 안색이 변했다. 그는 미처 상대방의 초수도 파악하지 못했지만 다른 생각을 할 여유도 없이 즉각 천기미리보의 보법을 사용하여, 환상처럼 빠르게 공간을 가로질러 당설정의 몸을 잡아서는 황원원이 있는 쪽 으로 집어던졌다. [원원! 받으시오!] 이어 본래 노인이 되돌렸던 그 장력의 기세가 그의 등뒤를 후려쳤으니 실로 그의 보법의 신속함을 알고도 남음이 있는 일이었다. 제갈신중은 물론 그 장력을 맞았다고 해도 전혀 옷자락 하나 손상을 받지 않 아 마치 그저 바람이 스친 것 같았다. 노인이 그러한 광경을 보고 더욱 경악한 것을 두말할 나위도 없는 일이었다. (혹시 그것은 일월건곤대나이의 사량발천근이라는 수법이 아닐까?) 제갈신중은 전날 기노가 가르쳐 주었던 구절을 상기해 보는 것이었다. 그때 노인이 커다랗게 고함을질렀다. [이놈아! 어서 이년들을 살리고 싶다면 뒤로 물러나라!] 노인은 가공스럽게도 제갈금의와 황보숙한의 목을 각기 양손으로 잡아서 들어 올리며 소리치는 것이었다. 기실, 노인은 제갈신중의 몸에서 전혀 무공을 익힌 흔적을 찾을 수가 없어서 쉽게 보았던 것이었으나, 한 번 그렇게 격돌한 이후에는 당황하여 그런 수법을 쓰는 것이었다. 제갈신중은 자신의 여동생과 황보숙한이 알몸으로 얼굴이 하얗게 질린채 버둥 거리고 있는 것을 보고, 내심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만일 노인이 다급하여 우선 그 가운데 하나를 죽여버리고 다시 협상을 하자고 한다면 그것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제갈신중은 급히 신형을 날려서 황원원의 곁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황원원은 이미 당설정을 받아서 옆에 내려놓고 방안의 의복을 찾아서 그녀에 게 걸치게 해주고 있었다. 제갈신중은 황원원의 옆에 내려서서 노인을 바라보며 다급히 소리쳤다. [멈추시오! 그녀들을 함부로 하지 마시오!] 노인은 제갈신중이 당황하는 것을 보고 음흉하게 웃으며 다시 말했다. [흐흐흐! 그렇다면 네놈은 어서 순순히 항복하고 스스로 무공을 폐쇄하는 것 이 어떠냐?] 말과 함께 그는 오른쪽의 황보숙한의 앞가슴으로 입을 가져가서 그녀의 연분 홍색 젖꼭지를 혓바닥으로 핥는 것이었다. 노인은 지금 제갈신중을 자극하는 것이었지만, 기실은 그는 그녀들을 바닥에 내려놓았을뿐 손은 여전히 그녀들의 목을 놔주 지 않아서 긴 장감을 늦추지 않고 있었다. 그의 무공은 기실 최절정의 경지보다도 높은 것이어서 제갈신중이 아무리 공 격한다고 해도, 최소한 그녀들을 죽일 수 있는 여유는 남아있는 셈이었다. (......) 제갈신중은 실로 뜻밖의 상황에 몰리게 되자 잠시 어쩔줄을 모르고 당황한 표 정을 지었다. 그것을 보고 황원원이 문득 노인을 향해 입을 열어 말했다. [이봐요! 당신은 일월악마성 휘하의 어떤 인물이죠?] 황원원은 처음에는 노인의 흉물을 보고 고개를 돌릴 수가 없었으나,이내 사태 가 심각해지자 냉정한 표정이었다. 노인은 기실 처음부터 황원원을 경계하고 있었으므로 그녀의 질문을 받자마자 이내 대꾸했다. [노부는 바로 교주님 좌하의 제사당주이며 이곳 제사분당의 책임을 맡고 있다. 너는 누구냐?] 황원원은 상대방의 긴장감을 약간 늦추기 위해서 약간 웃으며 대답했다. [믿을지 모르지만, 나는 바로 제십오대의 성수신의예요.] 노인은 그 말을 듣자마자 눈이 휘둥그래지며 물었다. [그,그럼 네가 바로 성수곡의 곡주라는 말이냐?] 황원원은 즉시 신형을 위로 떠올려 허공에 정지하면서 대꾸했다. [바로 그래요.이제 당신은 어서 그녀들을 순순히 풀어주도록 해요.만일 그런다 면 나는 나의 이름을 걸고 당신을 해치지는 않겠어요.] 일반적으로 허공을 날아 다니는 것보다도 그렇게 기척없이 허공에 정지할 수 있는 것은 더욱 어려운 법이었다. 그 능공허도의 신법을 보게 되자 노인은 잠시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더니 이어 다시 악독한 기색으로 말했다. [흐흐! 네가 정말 성수곡주라는 것은 인정하기로 하지.하지만 설사 너라고 해 도 내가 이년들을 죽이는 것은 말릴 수가 없을 것이다.흐흐흐! 어떠냐?네년도 어서 무공을 폐지하는 것이!] 이어, 노인은 좀더 자극적인 상황을 연출하기 위해 이번에는 제갈금의의 젖가슴을 잡아서 세게 비트는 것이었다. 제갈신중은 내심 갈등을 일으키고 있었으나 그러한 광경을 보자 더 이상 가만 히 있을 수가 없었다. [아악!] 제갈금의의 입에서 놀람에 찬 비명소리가 터져나오는 순간에 제갈신중은 즉시 신형을 날리며 소리쳤다. [멈춰라!] 이번에 제갈신중이 사용한 무공은 광표권이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제갈세가의 십일대절학 가운데 하나에 속하는 것으로서 조용하고 선명 한 제갈세가의 절학 답지않게, 아주 거칠게 휘몰아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기실 그것은 아주 치밀한 변화 가운데 조용하고 잠잠하던 것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이치가담겨져 있는 것이기 때문에 결코 무지막지한 무공은 아니었다. 제갈신중은 너무나도 다급하고 화가난 나머지 그 절학을 사용했다. 그는 비록 그처럼 광폭한 절기를 사용하고 있지만 역시 천청대법을 사용하고 있는 중이었다. (......!) 노인은 이미 조금전에 경험을 했었기 때문에 제갈신중이 달려오자 매우 긴장 하고 먼저 일월건곤대나이를 사용했다. 그것은 이른바 현존하는 최고의 운기법문이었으며, 일월신교의 가장 강력한 무공 가운데의 하나였기 때문에 역시 가장 유력한 것 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노인은 약간 계산을 잘못했다. 지금 제갈신중이 펼치고 있는 광표권은 잠재된 공력을 한꺼번에 폭출시키는 것이기 것이기 때문에 그 위력이 아까와는 또 판이했다. 노인은 제갈금의를 잡고 있던 손을 풀어서 그것으로 흡자결을 사용하고 제갈 신중의 장력을, 고스란히 황보숙한에게 돌려주려고 했다. 그렇게 되면 노인의 몸은 멀쩡하고 오히려 손길이 닿아있는 황보숙한이 그 공 력을 받아서 참혹한 죽음을 당하게 될 것이다. 노인이 그 순간에 제갈금의를 놓아주었던 것은 이내 제갈신중이 그녀를 더 중 시한다는 것을 간파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어찌된 셈인지 노인이 미처 그 장력의 기운을 흡수하기도 전에 그의 손가락이 불길같이 뜨거워지며 문드러지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바로 노인의 흡력공에 비해 제갈신중의 장력의 기운이 너무도 엄청났기 때문이었다. 마치 작은 도랑으로 홍수의 범람하는 강물을 흡수하려고 한 것과 같은 꼴이라 고나 할까? (......!) 노인은 비록 한순간 실수했으나 임기응변은 노련했다. 그는 한손이 문드러지자 그 시뻘겋게 변한 손 대신에 다른 손을 사용하여 이 번에는 아까처럼 공력을 무산시킨 것이었다. 그렇게 하는 데에는 역시 반탄으로 되돌리는 힘이 작용해야 했다. 노인은 이번에는 그 힘을 다급한 나머지 아래쪽에 있는 남궁녹악에게 되돌렸 는데 그 힘이 너무 강하여, 그의 신형은 저절로 위로 떠올랐다. (......!) 제갈신중은 노인이 그 힘을 되돌리는 것을 보고서야 다시 자신의 잘못을 깨달 았다. (아,차라리 지법을 펼치는 건데!) 하지만, 이미 생각하고 어쩌고 할 시간은 전혀 없었다. 제갈신중은 즉시 광표권을 거두고 노인이 위로 떠오른 사이에 아래쪽의 남궁 녹악의 몸을 집어드어 황원원을 향해 집어 던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소리칠 여유도 없었다. 등뒤에서 즉각 노인이 되돌린 광표권의 기운이 거세게 후려쳤으며, 이어 마치 태양의 광채가 작렬하는 듯한 노인의 장력이 그의 뒤통수를 후려 갈겼기 때문이었다. 제갈신중은 노인의 그 장력이 아주 만만치 않은 절기라는 것을 간파하고 신형 을 급히 옆으로 이동시켜 피했다. 그런 상황에서 그렇게 다시 천기미리보를 운용하여 피한다는 자체가 이미 전 력을 다한 것이었다. 노인은 이미 자신의 공력이 먹혀들어가지 않을 것을 다소 예상한 모양이었다. 자신의 장력이 무위로 돌아간 순간 급시 다시 제갈금의의 알몸을 안아들고 번 쩍 신형을 날렸다. 제갈금의는 물론 이 자리를 피하고 싶었겠지만 그들의 움직임이 너무나도 빨 라서 그럴 수가 없었음은 물론이었다. 노인은 이어 석실의 구석진 자리로 가서 한손으로 제갈금의의 허리를 휘감고 다른 손으로 그녀의 목을 움켜쥐며 악락하게 소리치는 것이었다. [뭐, 멈춰랏! 그렇지 않으면 이 계집을 당장 죽이겠다!] 그의 두 눈은 시뻘겋게 핏발이 서있고 광기로 빛나고 있어서 금방이라도 무슨 짓을 저지를 것 같았다. 헌데 바로 그 순간의 일이었다. 느닷없이 실내에 한줄기 지극히 강렬한 금광이 피어오르는가 싶더니 갑자기 노인의 그 눈빛이 멍해지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마치 혼을 빼앗긴 것과 같은 기이한 표정이었다. 조금전까지만 해도 길길이 날뛰던 그 얼굴에 흡사 갑자기 죽음의 그림자가 내 리깔린 것 같았다. 과연 아니나 다를까? 노인의 양손에 힘이 풀리면서 늘어지더니 노인의 그 대머리 이마에 일직선으 로 가느다란 혈흔이 선명하게 생겨나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그 혈흔은 이내 급속도로 커지더니 노인의 머리를 벌려 놓았다. 다름이 아니라 황원원이 그 순간에 무공을 전개하여 노인을 죽여버린 것이었 다. 하지만, 어떻게 그와 같이 완벽하고 빠른 무공이 존재할 것인가? 제갈신중은 엉겁결에 돌아보다가 그만 넋을 잃고 두 눈을 휘둥그래 떴다. [조금전의 그것은 바로 ......과,광검이라는 것이 아닐까?] -광검. 그것은 이제 까지는 거의 전설로만 전해지던 빛과 같은 무학이었다. 제갈신중은 한순간 그런 의문이 생겼으나 이내 현실은 그런 의문을 해결할 여 유를 주지 않았다. ......! 노인의 시신이 뒤로 털썩 나동그라지자, 그제서야 가공할 공포속에서 벌어난 제갈금의는 그만 으앙!하고 어린에처럼 울 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옆의 황보숙한은 여전히 알몸인채로 멍하니 제갈신중을 바라보고 있었고,남궁 녹악 역시 옷을 걸치고 있었으나 다소 정신이 나간 듯한 표정이었다. (......!) 제갈신중은 매우 정신이 산란했으나 이러한 상황에서는 자신이 정신을 냉정하 게 차리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황원원은 이어 황보숙한과 제갈금의에게도 의복을 가져다 주고 있었다. 상황은 그렇게 비로소 끝났다. 제갈신중은 제갈금의가 눈물을 멈추고 옷을 입기를 기다려 그녀에게 물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디에 있는지 아느냐?] 제갈금의가 입을 열기도 전에 가장 먼저 구출되어 기다리고 있었던 당설정이 다가와서 말했다. [우린 오자마자 갈라졌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위치는 몰라요.하지만 일단 광 장에 나가보면 쉽게 알 수 있을 거예요.] (......) 당설정의 말은 제법 그럴듯한 것이었다. 어느새 그 네명의 여자들이 모두 옷을 입은 상태였기 때문에 제갈신중은 황원 원을 향해 말했다. [이제 그만 광장으로 돌아가 보는 것이 어떻겠소?] * * * 제갈신중과 황원원이 이곳 일월신교의 제사분당의 당주를 제거하고 여자들을 구출하고 난 뒤에 광장에 이르렀을 때, 거기에는 뜻밖에도 다시 새로운 사건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마,모두들 이미 구출되었네요?] 남궁녹악의 다소 기운을 차린 반가운 외침과 같이 정말로 나머지 일행 일곱명 은 모두 풀려나와 광장에 있었다. 하지만, 제갈신중 등이 놀란 것은 그들의 존재가 아니라 그들의 행동이었다. [으악!] 생을 마감하는 처절한 단말마의 비명소리! 당백승과 팽일악,팽일비 등이 바쁘게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아까 황원원과 제갈신중 등은 광장에서 많은 흑의인들을 제압하여 놓았었는 데, 지금 그들이 거의 무방비의 상태인 흑의인을 병장기를 동원하여 무자비하게 주살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당백승의 기다란 채찍이 연신 흑의인들의 가슴을 관통시켰고,팽일악의 칼날이 흑의인들의 수급을 잘라냈으며,게다가 팽일비의 도까지 거기에 가세했다. 제압당한 것이 시원치 않아서 점차 의식이 돌아오는 자들은 비명을 질렀고 나 머지는 그대로 죽어갔다. 이 광장의 내부에는 이내 백여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죽어갔고 피비린내가 진동 하기 시작했다. 남궁검민과 제갈보중 등은 서서 그러한 광경을 구경하고 있었고 제갈덕중은 이제 부상이 많이 나았는지, 서 있는 혈색이 좋아보였다. 수곡사로는 한쪽에 다소 어정쩡한 표정으로 서있었는데,그들이 무서워서인지 장내에는 움직이는 흑의인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 제갈신중은 잠시 어리둥절해 하며 그곳을 바라보다가 이윽고 그쪽으로 다가가 서 물었다. [아니 이게 대체 무슨 짓이오?] [......] 남궁검민은 그를 보면서도 아무런 소리도 못하고 그저 뒤따라오는 여자들을 향해 고개를 돌릴 뿐이었다. 제갈신중이 제갈보중이나 황보잠허를 바라보아도 그들 역시 마찬가지의 표정 들이었다. (......) 제갈신중은 그만 계속 살수를 후두르고 있는 당백승의 앞으로 다가갔다. 당백승은 마악 채찍을 날려 한 흑의인의 가슴에 구멍을 내놓고 나서 신형을 돌리려는 중이었다. (......?) 제갈신중이 다가온 것을 보자 그는 이내 무슨 뜻인지 알았다는 듯이 피가 낭 가하게 묻은 손을 툭툭 털면서 이렇게 물었다. [나더러 지금 그만두라는 말이오?] 제갈신중은 가볍게 탄식하며 대꾸했다. [나는 가급적이면 인명을 살상하는 일은 피했으면 하는 것이오.] 당백승은 그말에 씨익하고 조소하듯 웃으며 다시 말했다. [가급적이면 인명살상은 피하라...... 좋은 말이시군! 하지만 저런 사마외도의 무리들이 있기 때문에 강호가 혼란에 빠져드는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는 말이오?흐흐흐,하지만 우리는 그저 힘이 없고 구출을 받았으니 당신이 하 라는 대로 하지!] 이어, 남은 백여명의 흑의인들의 목숨을 취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운 듯이 채찍을 다 시 허리에 차는 것이었다. 팽일악과 팽일비는 그즈음에서 눈치를 보아가며 손을 거두었다. ...... 제갈신중은 분위기가 어색한 듯도하여 수곡사로와 황원원이 있는 쪽으로 걸어 갔다. 수곡사로는 한참 황원원에게 전음으로 상황설명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아 글쎄! 그 죽일 놈들이 바로 저 녀석들을 하나씩 끌어내어 두들겨 패 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그래서 우리는 금방 달려들어서 놈들을 제압하고 저녀석을 풀어주었죠.헌데......저 녀석들은 또 무공이 회복되자 그 감옥의 간 수들을 하나씩 모두 죽여버리는게 아닙니까?곡주님,저희들은 아직단 한 명도 죽 이지 않았다고요......] 보아하니 팽일악이나 당백승 등의 몸에 상처를 입은 흔적들이 역력했다. 게다가, 그들은 이번에 그야말로 실력으로 패하여 이런 곳으로 잡혀왔으니 속으로 악 독한 마음이 생겨나는 것도 무리가 아닌 것 같았다. 제갈신중이 그렇게 생각을 굴리고 있을 때, 이윽고 남궁검민 등의 일행은 대강 자신들의 주변을 정리하고 반점으로 되 돌아갈 준비를 끝내고 있었다. 제갈신중은 황원원 등과 함께 천천히 밖으로 나가는 일행의 뒤를 따르기 시작 했다. 도중에 황원원은 전음으로 제갈신중에게 이렇게 물었다. [피곤하신가요?] 제갈신중은 웃으며 전음으로 대꾸했다. [나는 별로 한 일도 없는데 무엇 때문에 피곤하겠소?] 황원원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본래 가장 피곤한 일은 정신적인 경우가 많죠.제가 보니까......그들은 상공과는 어울리지 않는군요?] 제갈신중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부족하기 때문인지도 모르는 일이죠.그 보다도 ...... 당신은 혹시 그 이유 를 알고 있소?] (......?) 황원원은 웃으며 되물었다. [그녀들이 어째서 그렇게 쉽게 그자에게 굴복했느냐 하는 거로군요?] 제갈신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나는 그녀들이 갑자기 그렇게 무력하게 굴복한 원인을 쉽게 이해할 수 가 없소.] 황원원은 웃으며 대답했다. [당신은 어째서 그것을 반드시 굴복이라고만 생각하시죠? 상황에 따라서 그녀 들에게는 그것이 최후의 저항수단이 될 수도 있는 거예요.그것이 너무도 의외 라고 생각되는 것은 ......아마도 당신이 그녀들을 너무도 좋게만 생각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 제갈신중은 다시 물었다. [그럼 당신도 상황에 따라서 자신의 몸을 무기로 사용할 수도 있다는 말이 오?] 황원원은 담담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의 몸이 어떤 무기가 될 수 있을지는 알수가 없지만, 그러나 저는 아마도 그렇게는 하지 않을 거예요.그런 것은 왠지 거부감이 느껴지니까요.] (......) 제갈신중은 기실 이 황원원이 그런 천박한 여자들과는 어딘가 다르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는 화제를 돌릴 생각으로 다른 질문을 했다. [오늘 당신의 도움이 없었다면 정말로 큰일이 날뻔했소.헌데, 아까 그 당주라 는 자를 죽인 수법은 바로 광검이라는 것이었소?] 황원원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사용한 것은 그 가운데에서도 무극광검이라는 것이었죠.상공께서도 이번 에 훌륭하셨어요!] (......) 제갈신중은 광검이라는 무공에 대해서 생각해 보다가이내 고개를 저었다. [나처럼 그런 자도 이기지 못하는 사람이 무슨 일을 했겠소?그저 방해만 되었 을 뿐이지.] 황원원은 문득 기이하게 웃으며 다시 물었다. [하지만 당신의 무공은 오히려 저보다 높다는 것을 알고 계시나요?] 제갈신중은 그 엉뚱한 소리를 듣고 어리둥절해 하며 되물었다. [아니 그게 대체 무슨 말이오? 내가 당신보다 무공이 높다니?] 황원원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다시 물었다. [당신은 혹시 벌써부터 제가 남에게 보내는 전음을 들을 수가 있으셨던 것이 아닌가요?] (.......!) 제갈신중은 마침 자신이 궁금해 하던 문제를 물어오는 것을 보고 정신이 번쩍 들어서 대꾸했다. [하긴 내가 천청대법을 터득한 이후부터 그랬지만, 그것은 어떻게 알게 되었 소?] 황원원은 미소하며 대답했다. [아까 당신의 말을 듣고 그것을 알게 되었죠.바로 그런 점만 보더라도 당신의 무공이 저보다 월등하다는 것을 알수가 있어요.] 제갈신중은 다시 물었다. [아니,그렇다면 정말로 상대의 전음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은 무공이 더 높다는 것이라는 말이오?] 황원원은 담담한 기색으로 대꾸했다. [일반적으로 알리 천청대법이라는 것은 없어요.다만 무공이 미세해지게 되면 능히 상대의 전음을 들을 수가 있게 되는데,그것을 말하는 것이죠.] [......] [본래 이 말하는 것과 듣는 것은 서로 반대이지만, 무림인에게 있어서 그것들 은 거의 동시에 따라가도록 되어 있어요.즉, 무공이 비슷한 두 사람은 둘다 상 대의 전음을 도청할 수가 없는거예요.하지만 만일 무공이 더욱 미세한 사람이 있다면 그는 미세한 소리인 전음을 더욱 미세한 청력으로 들을 수가 있는 것 이죠.즉 ,여기에서 무공이 미세하다는 것은 더욱 깊어져 있다는 의미예요.] 제갈신중은 내심 그럴 법도 하다고 생각하다가 다시 말했다. [하지만,아까도 보았겠지만 나는 전력으로 무공을 펼쳤지만 당신보다 못했고 또한 그자를 이기지도 못했지 않소?] (......) 황원원은 이에 웃으며 되물었다. [제가 보기에, 아까 당신은 시종일관 제갈세가의 무공을 쓰고 있는 것 같던데, 그게 사실인가요?] 제갈신중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이오.헌데 그것이 어떤 문제라도 있다는 말이오?] 황원원은 대답했다. [제갈세가의 그 절학들은 비록 하나 같이 뛰어난 것들이지만 역시 대부분 최 절정의 경지에 머무르고 있는 거예요.당신의 능력은 깊고도 넓은데 그런 낮은 수준의 무공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죠.그것은 마치 힘이 아주 센 장사가 지푸 라기와 같은 것으로 힘을 쓰려고 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도저히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가 없게 되어요.모름지기 힘이 센 장사는 그에 알맞는 무기를 갖추 어야 하는 것이죠.] (......?) 제갈신중은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나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이오?] 황원원은 대답했다. [제가 보기에 당신의 능력은 아주 뛰어난 것이예요.따라서 당연히 그처럼 높은 수준의 무학을 사용해야 하는 것이죠.] 제갈신중은 어리둥절해 졌다. [그럼 나더러 광검과 같은 무공을 사용해야 한다는 말이오?하지만 나는 지금 전혀 그러한 것을 모르는데?] 황원원은 미소하며 대답했다. [본래 광검이라고 하는 것은 즉, 전하는 말 그대로 뜻은 있되 초식은 사라지는 것을 말해요.그러니까 무한의 초식이 생겨나는 것이죠.그것은 누군가의 가름침 이 있어야 하기보다는 무학의 오의에 대한 깨달음이 필요해요.어쩌면 당신에 게는 그보다도 더욱 높은 수준의 무학이 필요할 지도 모르죠.] 제갈신중은 더욱 어리둥절해 졌다. [하지만 나는 전혀 그러한 무학의 오의에 대해서 모르는데?] 이때, 일행은 어느새 산중을 벗어나서 이윽고 거리를 지나 예의 그 만안반점의 앞에 이르러 있었다. 남궁검민 등은 거의 말도 없이 그저 저녁식사도 하지 않은 채 우르르 객방으 로 들어가 버렸고, 제갈신중과 황원원 등도 그다지 시장하지 않고 반점의 내부도 어수선하여 그 대로 객방으로 향했다. ...... 황원원의 그 객방은 아직도 창문이 열려져 있었다. 황원원은 그 창문을 닫고 제갈신중이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기다려 촛불을 켜고 침상위에 앉았다. 제 40 장. 진정한 대자연무도. 제갈신중은 탁자앞에 앉아서 불빛에 비친 황원원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이윽고 다시물었다. [혹시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소?] 황원원은 침상위에 걸터앉은 채로 웃으며 대답했다. [이 대홍락의 무학은 스스로 깨달아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은 가르 쳐줄수가 없어요. 하지만, 제가 보기에 당신에게는 한가지의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대개 대홍락의 경지는 초식이 자유로와지는 것인데, 당신의 경우는 그 제갈세가의 초식에만 너무 집착하는 것 같아요.] (......!) 제갈신중은 문득 눈이 번쩍 뜨였다. [내가 집착했다고?] 황원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의 무공의 특색은 집착하지 않는데에 있는 것 같은데,만일 당신이 그러한 초식에서도 자유로울 수가 있다면 더욱 나아질 것이라는 생각이예요.] (......) 제갈신중은 약간 내심으로 충격을 받은 듯 고개를 쳐들고 나직하게 중얼거려 보았다. [그렇군.그래!...... 헌데 내가 왜 아직 그런 것을 생각하지 못했을까?] (......) 황원원은 다시 물었다. [음...... 아까 말했던 그 천청대법에 관해서인데,당신은 언제부터 저의 전음을 듣게 되었었죠?] 제갈신중은 웃으며 주저하다가 대답했다. [그것은 바로 당신이 아까 주루에서 곽자성과 만났었을 때부터였소.] (......) 황원원은 약간 안색이 변하며 즉시 되물었다. [그렇다면 제가 전날 태양마교의 분당에서 당신을 도왔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 겠군요? 그래서 당신은 저에게 그토록 친근하게 대해주었던 것이로군요?] 제갈신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을 부인하지는 않겠소.나는 당신이 그와 나 때문에 비무약속을 하는 것을 보고 솔직히 감격했었소.] 황원원은 안색이 다소 붉어지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피할 수 없었기 때문이지 단지 당신 때문만은 아니예요.] 제갈신중은 미소하며 물었다. [그나저나 사흘후의 그 비무에서 당신은 위험하지않겠소? 장소는 어디로 정한 것이오?] 황원원은 살포시 웃으며 대답했다. [장소는 바로 그때 그 태양마교의 분당의 산정이예요.그리고 저는 그를 이길 자신이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음....... 나중에 만일 내가 위험해지면 당신께서 저를 도와주시면 되잖아요?] (......) 제갈신중은 그런 그녀의 시선을 받자 은근히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이 저녁무렵의 촛불아래 드러난 그녀의 용모는 정말로 눈부시게 아름다왔다. 하지만, 제갈신중은 왠지 그녀를 향해 어던 욕정을 일으키는 것은 무례하다고 어울리 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윽고 제갈신중은 말을 돌렸다. [그때에는 우리가 함께 비무장소에 나가기로 하고 ......이번에 한가지 이상한 일이 있지 않소?] 황원원은 웃으며 물었다. [무슨 이상한 일이죠?] 제갈신중은 대답했다. [나도 잠시 잊고 있었는데, 우리 일행이나 다른 사람들이 아름답게 변한 당신 의 얼굴을 보고도 거의 놀라지도 않더라는 말이오.이거 좀 이상한 것이 아니 오?] 황원원은 웃으며 말을 받았다. [별로 이상한 일은 아닌거예요. 그들은 아마도 내가 가면을 다른 것으로 바꿔 썼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죠.] 제갈신중은 뒷머리를 툭쳤다. [아! 바로 그랬겠군. 그리고 상황이 어수선하여 미처 그런 것을 눈치채지도 못 했고......] 황원원은 웃으며 다시 말했다. [설령 그들이 어떤 항의를 해온다고 해도 상관없어요. 저는 솔직하게 해명할 테니까요.] (......) 제갈신중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황원원이 그것을 보고 의아해 하며 물었다. [왜 벌써 일어나시나요? 저는 식사와 곁들여서 함께 술이나 마시자고 할 작정 이었는데?] 제갈신중은 문득그녀에게 되물었다. [혹시 나와 함께 있는 시간이 심심하고 지루하지 않소?내가 부담스럽지 않 소?] 황원원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심심하고 지루하다니요? 저는 당신의 정혼자인데 그럴 리가 있나요?] 제갈신중은 웃으며 그녀에게 다가가 입을 가볍게 맞추었다. [그렇다면 고맙소.나는 별로 시장하지도 않고 또한 무공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서 이만 방으로 가봐야 하겠소.잘자시오 원원!] (......?) 제갈신중이 그렇게 입맞춤을 하고서 방을 나서자 황원원은 다소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 * * 제갈신중이 그렇게 부득부득 우기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간 것은 기실 그러한 여러 가지 이유들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황원원과 함께 방안에 오래도록 앉아있다 보니 왠지 어지러운 감정 이 생겨났기 때문이었다. 그가 그런 감정을 조절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일단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나온 것이었다. 하지만, 제갈신중은 일단 방안으로 들어가자 그 핑계대로 정말로 자신의 무공에 대해서 깊이 연구하기 시작했다. 요즈음의 그는 불과 하룻밤을 지샌다고 해서 체력이 떨어질 상태는 아니었다. 그는 일단 의복을 편안하게 하고서 평평한 침상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촛 불을 켜지 않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비록 방안이 다소 어두웠지만 이 어둠은 그에게 조금도 장애를 주지 못했다. 제갈신중이 먼저 생각한 것은 황원원이 말해주었던 그 초식에 관한 것이었다. 비록 이미 몇차례의 고전들을 겪기는 했지만 그는 그것으로 자신의 무학이 대 홍락의 경지라는 것을 실감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는 대홍락의 경지만을 생각해 보기로 했다. 이 대홍락의 경지에 관한 얘기들은 이미 너무나도 유명하여 그도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다. 본래 대홍락의 경지는 크게 심검이라고 불리우기도 한다. 그것은 다시 협의의 심검과 광검,그리고 무형검으로 나뉘어 지는데, 여기서의 심검이란 일명 수중무검 심중유검 으로, 말하자면 마음속에 검이 있으니,뜻하는 대로 초식을 펼칠수가 있다는 것이었 다. 그러한 경지에 오르면 물위를 마음대로 걸어다니고 육지비행술이나 어풍비행 술로 허공을 마음대로 날아 다니는 것은 물론, 초식을 펼치는 데 있어서 육신의 제약을 받지 않아서 불가사의한 초식을 구사 할 수가 있다고 한다. 그것은 이른바 최절정의 경지라고 하는 백연탄의 경지와는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으로서, 제갈신중은 이미 부지불식간에 그러한 것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이 심검의 경지에 오르면 초인간의 능력을 얻게 되어 가장 빠른 초식과 가장 변화가 많은 초식, 그리고 가장 위력이 강한 초식 등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강호에서는 그 경지를 일면 초절정의 경지라고 부르기도 하는 것이었 다. 대홍락의 두번째의 경지인 광검은 이른바 중간적인 단계이다. 그것은 이른바 검즉아 아즉검 이라고 하는 것으로, 혼검이라고도 불리우며 즉, 검과 내가 하나로 동화되어 뜻은 있되 초식은 사 라진다는 것이다. 기실 이 초식이 사라진다고 하는 것은 기이한 일이었다. 일반적으로 무초라는 것은 모든 초식이 섞여진다는 것을 말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 초식이 섞여진다는 것은 또한 무엇인가? 제갈신중은 문득 아까 지하석실에서 보았던 황원원의 광검을 상기해 보았다. (혹시 그것은 하나의 혼으로 꿰뚫는다는 것이 아닐까?) 제갈신중은 다시 생각했다. (섞여진다는 것은 섞지 않는다는 것과 같을 수도 있다.그리고 섞지 않았다는 것은 ......초식이 나타나기 이전이다.그것은 곧 뜻을 강조한 것이며 그 뜻으로 무공을 펼침에 따라서 모든 초식이 그 안에 감추어져 있는 것이다.그래서 혼 의 무학이라고 하는 것이 아닐까?) 제갈신중은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야!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나는 그럴 수는 없다. 나로서는 무초라는 것은 무초일수가 없다.무초인 것도 아니고 무초가 아닌것도 아니고......말하자면 장애가 없게 되는 것이다. 장애가 없다면 초식에 있어서 무한한 변화를 낳을 수가 있을 것이다.그것은 곧 초식이 섞여진 것이며 무초라는 것이 아닐까?) 제갈신중은 골똘하게 다시 생각했다. (하지만 또한 이 혼이라고 하는 것은 의식이 강하게 모인 상태이기 때문에,나 로서는 그 의식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니므로 그 의식이 강하게 모인 상태 도 의미가 없게 되는 것이 아닌가?......그렇다면 나는 이 초식과 뜻에 있어서 모두가 장애가 없게 되고,그것은 곧 진정으로 초식과 뜻이 사라지는 것이 아 닐까?진정으로 사라진다는 없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말이다....... 그렇다면 그 것은 혹시 진정한 무형검이 아닐까?) 대홍락의 경지에서 두 번째인 광검의 경지! 그것은 다시 심검과는 비교할 수 없는 능력을 지니며 허공에서도 지상에서와 같이 거의 장애가 없어지게 된느 능공허도의 신법을 펼칠 수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대홍락의 최후의 단계인 무형검의 경지는 다시 그 광검의 능력마저 크게 초월 하는 것으로서, 가히 무학의 이상이라고 해도 좋았다. 아까 황원원도 말했듯이, 광검에는 무수한 종류가 있는데,그것은 다름아닌 무형검에 오르기 위한 노력 인 것이며, 무형검에 도달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나타내는 일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무형검이라고 하는 것은 더러 무심검이라고 불리우기도 한다. 무검무아 물아양망으로 즉, 검도 나도 다함께 잊어버림으로써 뜻도 초식도 없 어지는 경지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일명 천의무봉하고 의검멸아한 대자연무도라고도 한다. 일반적인 사고방식들은 그러했다. 바로 그러한 경지에 도달하면 의행일치하고 의형수형하여 마음대로 무형지기 를 사용하며, 능공허도의 경공술은 아주 능숙하게 구사하고 또한 전설상의 경공술인 축지성 촌의 경공술을 펼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 제갈신중의 생각은 다소 달랐다. (진정한 무형이라고 하는 것은 형식이 있는 것도,없는 것도 아닌 것이다.즉,무 검무아 물아양망 이라고는 해도,기실은 없는 것도 있는 것도 아닌 것이며,그렇 다면 잊어버릴 것도 없고 또한 없어지는 것도 없는 것이다.그리고 물론 그 없 다는 것도 있는 것도 아니다.게다가......) 제갈신중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만일 그 내용대로라면 무심이라고 하지만 아직 집착을 떨치지 못하고 있어서 장애없는 것은 아니다.그것을 어찌 완전한 최고의 이상이라고 말할 수가 있을 까?......) 과거에 그 무형검은 천수자라는 사람에 의해 한 번 천하에 나타났었고 그는 고금제일인으로 추대되었다. 그 이후로 수많은 기인이사들이나 무학천재들이 나타나서 그 무형검의 경지에 도전했지만, 간발의 차이로 그들은 모두가 실패하고 말았다. 제갈신중이 지금 생각하고 있는 내용이 아니라고 해도, 그야말로 온갖 번뇌와 욕망들을 물리치고 무심한 상태가 되는 것은 어렵다. 실로 무형검의 경지가 성취하기 어려운 것은 그와 같은 이치인 것이다. (......) 제갈신중은 그렇게 내심으로 모든 생각들을 정리하고 검토해 보다가 이윽고 자신의 생각을 실제로 운용해 보기로 했다. 흔히 무공은 시전하기 위해서는 상대가 대상이 필요하게 된다. 제갈신중은 눈을 떠서 실내를 둘러보다가 이윽고 눈앞에 있는 탁자앞의 나무 의를 대상으로 삼기로 했다. 제갈신중은 먼저 천청대법으로 들어가서 초식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그는 이제까지 거의 제갈세가의 무공에만 신경을 썼지만 이제는 그러한 집착 을 버리고 모든 초식에 관해서, 그 근본과 흐름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 천청대법을 펼칠 때는 그는 자신의 영대가 아주 밝아져서 깨달음이 빠르다 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우선 가장 빠른 초식을 펼쳐볼까?) 대개 가장 위력적인 초식은 변,쾌,붕의 세가지라는 것을 그도 알고 있었다. 처음에 그는 먼저 자신이 알고 있는 초식부터 사용해보기 시작했다. 손끝으로 검기를 발출하여 사용하는 것은 그도 익숙해져 있었다. 제갈세가의 초식에서 이어 천청대법으로 그 속도를 조절해 나가자 갑자기 자 신의 기가 지극히 투명해지고 섬세해지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것은 그가 천청대법으로 소리를 들을 때 소리가 투명하고 섬세하게 느껴진 것과 흡사했다. (바로 이것인 모양이군!) 제갈신중은 내심으로 문득 그렇게 중얼거렸다. 이때읜 검기의 빠르기는 정말로 지극히 빨라져 있었다. 그가 일단 손끝을 내밀고 마음만 먹으면 그 섬세하게 변한 기운은 눈에 보이 지도 않을 빠르기로, 전면의 나무의자로 뻗어나가서 정확하게 금을 긋고는 되돌아 오는 것이었다. 제갈신중은 그것을 연습할수록 더욱 기가 투명하고 섬세하여 부드럽고 탄력적 인 것으로 느껴져서, 갈수록 몰입하여 시간가는 줄도 몰랐다. 나중에는 비록 더욱 통제하는 것이 쉬워지기는 했지만 그 속도는 자신도 감지 하기어려울 지경이 되었다. 제갈신중은 이에 이번에는 거의 변화를 수련하기 시작했고 그 변화역시 정점에 이르자, 다시 힘의 검법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단지 이곳에서는 굉음을 내서는 안되기 때문에 그는 아주 적은 기만을 사용하 여 그것을 수련했다. 그 수련에 의해 실내에는 처음에는 펑펑,하는 소리가 울리다가 그것이 점차로 금속성으로 변해갔으며, 더욱 기운을 줄이고 수련하자 나중에는 소리는 나지않지만 실내의 공기가 크 게 파동을 일으켜서 온갖 기물들이 들썩거리는 것이었다. 이제 제갈신중에게 있어서 기라는 것은 더할 수 없이 유순하고 투명하며 탄력 적인 것으로변해 있었다. 그것은 제갈신중에게 있어서 외형상의 경악할만한 변화였다. 제갈신중은 이제 뜻대로 그 어떤 초식들도 간단하고도 쉽게 구사할 수가 있었 다. 무학초식이라는 것이 이렇게 간단한 것인가 하고 생각해 보면 약간 싱거워질 정도였다. (이제는 초식의 장애에서 벗어나야 하겠군.) 제갈신중은 내심 중얼 거렸다. 이미 그는 마음의 장애에서 벗어나 있는 상태였으므로 일단 초식의 장애에서 벗어나면 즉시 무형검을 성취할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은 먼저 초식을 멸하고 뜻을 멸하는데 반하여, 그는 오히려 거꾸로 뜻의 장애를 벗어난 상태에서 초식의 장애를 벗어나려고 하고 있었다. 제갈신중은 이어 이제까지 온갖 검기를 격중시켰고 나무의자의 기둥에 검기로 조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바로 초식의 장애에서 벗어나는 방법이었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그 일은 생각보다 훨씬 쉬웠다. 아마도 그것은 조금전에 초식에 매달리 때 무의식중에 그런 집착에서 벗어나 고자 하는 기운이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즉, 하나의 초식으로 되어있는 무공보다는 차라리 모든 초식들이 복합되어 있는 무공이 더욱 자연스러운 것인 것이다. 그것이 바로 천의무봉한 대자연무도가 아닐까? 대자연의 흐름에는 여러 가지가 복합된 것이며 한두가지의 흐름만으로 되어 있는 것은 없는 것이다. 제갈신중은 생각외로 쉽게 나무기둥에 얼굴을 조각해 가기 시작했다. 거기에는 빠른 쾌와 변화,그리고 힘의 붕 등의 초식이 모두 함께 들어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모든 초식들을 생각해보며 출수가 자연스러워지지 않았다. 하지만, 일단 하나하나에 집착하지 않고 전체적인 흐름을 인식하다 보니 출수가 자연 스러워 지고 초식들이 부드럽게 뒤섞였다. 거기에는 어떤 무리도 없었다. 마치 꼬마가 진흙을 주무를 때는 여러 가지 기능이 종합되는 것처럼, 제갈신중에게 있어서 기는 극도로 투명해지고 익숙해져서 자연스럽게 정밀한 일을 할 수가 있었고, 개개의 초식들은 하나의 흐름이 되었지만 독립된 듯 했고,그 무수한 초식들이 독립된 듯 하지만 또한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진 듯 했다. 제갈신중의 뇌리는 점점 더 투명해져 가고 있었고 그의 전신의 진기는 이제는 완전히 제 역할을 하기 시작했으며, 그의 마음속에는 그러한 이치들이 선명하게 드러나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저 겉으로 보이는 광경은 나무기둥의 나무조각이 미세하게 잘려나가면서 저 절로 사람얼굴을 드러내고 있는 기이한 광경이었다. 그 조각은 처음에는 다소 서툴었다. 하지만 이내 갈수록 정교해졌고 또한 조각하는 속도도 빨라졌다. 그러다가, 이윽고 한참의 시간이 지나서 그가 지워버리고 다시 조각한 조각품의 형상이 마치 살아있는 듯 하고, 또한 속도도 불과 잠깐 사이에 되었을 때 문득 그는 한숨을 내쉬며 손을 내렸 다. 이제야 그는 비로소 목표로 했던 수련을 마친 것이었다. 지금 그의 경지가 과연 무형검의 경지인지는 그도 잘 알수가 없었다. 단지, 갑자기 은은하게 신기가 발산되는 듯한 그의 전신에서 그가 잠깐사이에 엄청 난 변화를 겪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했다. 과거에 그는 별로 특징적으로 준수한 모습은 아니었기에 절세준미하다고는 말 할 수가 없었다. 그의 용모는 평범한 듯하여 그의 형이나 동생들보다 못하다고 알려져 왔다. 하지만, 이 순간의 그의 용모는 그야말로 평범한 듯한 가운데 수려하고 담담하게 빛나 고 있어서, 그 아름다운 용모는 가히 천하제일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었다. 그것은 남자의 용모는 그 생김새보다는 기상이 제일이기 때문이었다. 지금 제갈신중의 눈빛은 마치 어둠속에서 빛나는 찬란한 별빛과도 같았다. ...... 제갈신중이 나무의자의 기둥에 새겨좋은 조각의 얼굴을 바로 다름아닌 황원원 의 것으로서, 마치 황원원이 살아서 부드럽게 미소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제갈신중이 편안한 자세로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그 조각상은 일순 나무의자 와 함께 소리 없이 가루가 되어 부서지고 말았다. 지극히 고운 분말처럼 변한 그 나무가루들은 이내 주위로 흩어져 사라지고 말 았다. 그리하여, 그 실내의 여러개의 의자들 가운데 한 의자가 사라졌을 뿐 제갈신중이 수련한 흔적은 조금도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 제갈신중은 일단 그렇게 자신의 수련을 끝내고 나자 다소 긴장되기도 한 심정 으로 흥분을 가라앉히고 있었다. 불과 며칠전까지만 해도 그는 결코 이러한 경지에까지 오르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었을 것이었다. 갑자기 세상이 뒤바뀌고 그리고 그의 모습도 달라지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일련의 변화는 필연이라는 말인가? 그때, 제갈신중은 문득 문밖을 지나던 한 인기척이 다시 되돌아 와서 자신의 문앞에 멈춰선 것을 느끼고 정신을 차렸다. 그 사람은 분명히 여자였는데 행동거지가 매우 조심스러웠다. 제갈신중은 일행 가운데에서 한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고는 문득 가볍게 미소 를 지었다. (그녀로군!) 바로 황보숙한이었던 것이다. 대체 그녀는 이미 자정이 다 된 이시각에 무엇 때문에 그의 방문앞에 서성거 리고 있는 것인가? 과연 아니나 다를까? 잠시 후에 황보숙한은 음성을 나직하게 가다듬어서 문을 두드리며 이렇게 말 하는 것이었다. [제갈공자! 지금 주무시나요?] 제갈신중은 그말을 듣고 의복을 갖춰입은 다음에 우수를 가볍게 저어 촛불을 밝혔다. 그가 그렇게 촛불을 밝히는 것은 물론 과거에는 할 수 없었던 능력이기도 했 다. [무슨 일이시오?] 제갈신중이 그렇게 묻자, 황보숙한은 다소 반가운 듯이 다시 입을 열어 말했다. [다른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실은 한가지 드릴 말씀이 있어서....... 제갈공자,어 서 문좀 열어주세요!] (......) 제갈신중은 그녀가 자신을 찾아온 의도를 거의 파악하고 있었으나, 이어 마지못한 듯이 문을 열어주었다. [......] 황보숙한은 방안에 들어서자 잠시 실내를 둘러보더니 자신이 들어왔던 방문을 잠그고, 그리고 침상위에 가볍게 걸터앉았다. 제갈신중은 느닷없이 그녀가 방문을 잠그는 것을 보고 의아해 하다가 이윽고 그녀를 향해 물었다. [무슨 일이오. 황보낭자?] (......) 황보숙한은 그제서야 고개를 쳐들어서 제갈신중을 바라보고는 되물었다. [박절하시군요? 저에게 차도 한잔 대접하지 않고 내쫓으시고 싶은가요?] (......?) 제갈신중은 방안에 마련되어 있는 청차를 한잔 따라서 그녀에게 건네주고는 탁자 앞에 앉았다. [밤이 깊었으니 혹시 남들이 의심할까 두렵소.낭자는 무엇 때문에 지금 나를 찾아온 것이오?] 황보숙한은 청차 한모금을 마시고 나서 마음이 다소 진정되는지 비교적 차분 한 기색으로 되물었다. [당신은 정말로 그 이유를 모른다는 말인가요?] (......) 제갈신중은 잠시 생각하는 듯 하다가 대답했다. [나는 물론 짐작하고 있소.당신은 아까 그 석실에서의 일 때문에 나를 찾아온 것이 아니오?] 황보숙한은 대답하지 않고 기이한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당신은 그날 이후로 아마도 나를 미워하고 있겠죠?] 제갈신중은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지는 않소.만일 내가 당신을 미워하고 있었다면 지금 이 방안에 들어오게 하지도 않았었을 것이오.] (......!) 황보숙한은 다소 붉어진 안색으로 잠시 제갈신중의 얼굴을 바라보다가다시 물 었다. [정말로 당신은 ...... 제가 단지 그일 때문에 온것이라고 생각하나요?] (......?) 제갈신중은 도리어 어리둥절해졌다. [아니 그럼 다른 목적이 있다는 말이오?] 황보숙한은 대답하지 않고 다시 질문했다. [아까 보니,당신의 그 황소저는 아주 아름답더군요. 제가 질투가 날 정도로... ...그 얼굴은 사실 가면이 아니라 진짜가 맞죠?] 제갈신중은 눈이 휘둥그래졌다. [아니 그것을 어떻게 알고 있소?] 황보숙한은 자조섞인 표정으로 웃으며 대답했다. [이른바 직감이라는 거죠.으례 우리 여자들은 그런 부분에는 민감하기 마련이 죠.저희를 우습게 생각하지 말아요! 당시는 그저 너무 정신이 없었기 때문에 모른 척 했을 뿐이죠.] 제갈신중은 즉시 포권하며 말했다. [나는 결코 당신들을 우습게 생각하지 않소.그리고 이번의 그 일도 우리는 당 신들에게 거짓말을 할 의도는 아니었소.지금의 얼굴도 사실이지만 과거에 그 녀의 얼굴이 추했던 것도 사실이었소.] (......) 황보숙한은 다시 물었다. [만일 지금이라고 다른 여자가 나타난다면 당신은 그녀를 버릴 수가 있나요?] 제 41 장. 영웅맹으로. 제갈신중은 실로 뜻밖의 질문이라 약간 당혹해져서 되물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이오?] 그런데, 그녀는 느닷없이 대답 대신에 신형을 빙글 허공으로 되돌려서 침상위에 올라 선 다음에, 이윽고 자신의 옷을 벗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아니 그게 무슨 짓이오?] 제갈신중은 놀라서 소리쳤으나 그녀는 상관하지 않고 이내 알몸이 되었다. 알고보니 그녀는 이미 조금전부터 그 홍의정장속에 속옷을 하나도 입지 않고 있었던 것이었다. 대체 그녀는 무엇 때문에 일부러 제갈신중의 방에 와서 옷을 벗으려고 한 것 일까?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 그대로 침상위에 선 황보숙한은 이어 여전히 태연한 표정으로 입을 열어 말했다. [당신은 아까 저의 모습을 실컷 보지 않았나요? 그런데 거기에 한 번 더 본다 고 해서 달라질 것이 뭐가 있겠어요?] 제갈신중은 비로소 아까 그녀가 방문을 잠근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제갈신중은 가볍게 탄식하며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낭자가 나에게 원하는 것은 무엇이오?] 황보숙한의 나신은 아까 다소 시달렸다고는 하나 여전히 촛불아래 눈부신 열 기를 발하고 있었다. 황보숙한은 태연한 표정이다가 제갈신중이 시선을 돌리자 약간 안색이 변했 다. 가볍게 벌린 다리사이의 유혹이 뜨겁고 젖가슴 위의 두 개의 유두가 부끄러운 듯이 긴장되어 있건만, 그녀의 음성은 냉랭해 냉랭해 보였다. [당신은 제가 단지 아까의 그 일에 대해서 비밀을 지켜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서 여기에 온 것으로 생각하나요?] 제갈신중은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럼 무슨 다른 이유라도 있다는 말이오?] 제갈신중의 시선이 다시 향하자 문득 황보숙한의 나신이 다소 붉은 기운을 띠 는 듯 했다. [아까의 그 일은 분명한 사고였어요.당시에는 당신의 누이도 있었고......당신 이 설사 비밀을 지키더라도 모두들 알고 있을 것이고, 게다가 그들은 모두 이 해할 수가 있을 거예요.] [......] 제갈신중은 이 황보숙한이라는 여자가 이렇게 대담할 줄은 미처 몰랐다. 황보숙한은 마치 자신의 늘씬하게 잘빠진 아름다운 나신을 과신하기라도 하듯 이 드러내 보이며 말을 이었다. [제가 당신을 찾아온 것은, 바로 당신에게 아직도 저를 사랑하고 있느냐를 물 어보고 싶었기 때문이예요.] 제갈신중은 탄식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나는 당신에게 미워하는 마음은 가지고 있지 않소. 하지만 이런 식은 아주 곤 란하오. 당신은 나의 제수씨가 될 사람이 아니오?] 황보숙한은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만 저는 아직 당신의 동생과 혼인을 한 것은 아니예요.만약...... 당신이 지금 저를 취하신다면 앞으로는 상황이 달라지고, 저는 당신의 제수씨가 아 닌 마누라가 될 거예요.] 제갈신중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것은 불가하오.] 황보숙한은 일순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 [알고보니 당신은 저를 더럽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로군요?호호...... 하지만 사 실 저는 당신의 동생과 몇번 관계를 갖지도 못했어요. 당신은 천하에 진짜 순 결한 여자가 있을 수가 있다고 생각하나요?] [......] [제가 당신의 동생을 버리려는 것은 그가 아까 저를 지켜주지 못했기 때문이 예요. 저를 지켜줄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저의 남편감으로는 부족하죠.] 제갈신중은 그녀의 나신을 차마 바라볼 수가 없어 하며 대꾸했다. [그러나 나는 이미 마음을 정했을 뿐만 아니라,설령 두 번째의 부인을 구한다 고 해도 낭자와 같은 사람은 싫소.] (......!) 황보숙한은 그 말을 듣고 안색이 변했으나 그렇게 쉽게 포기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약간 처연하게 웃으며 말했다. [좋아요! 그렇다면 나는 당신의 부인이 되는 것은 포기하죠. 하지만 설마하니 저의 한가지 부탁만은 들어주겠죠? 만일 앞으로 당신이 저를 잘 보호해 주시 겠다면 저는 지금 아무런 대가도 없이 당신의 시중을 들어드리겠어요.비록 당 신의 그 정혼녀만은 못해도 혼인전에 저와 같은 사람과 한 번 자보는 것도 좋 은 경험이 될 거예요.] 제갈신중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나는 그 제안이 마음에 들지 않소. 당신은 그만 돌아가 보는 것이 좋 을 것이오.] (......) 황보숙한은 그말에 그만 수치심도 잃고 악독한 표정을 떠올렸다. [당신은 정말 너무하는 군요! 내가 이렇게 와서 그냥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하 나요?] 제갈신중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로서는 너무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당신은 다른 수단이라고 있다는 말 이오?] 황보숙한은 차가운 시선으로 다시 물었다. [당신은 정녕 권하는 술은 마시지 않고 벌주를 마시려고 하는군요?] 제갈신중은 되물었다. [당신은 어쩌겠다는 것이오?] 황보숙한은 음침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이 자리에서 즉시 소리를 지를 뿐만 아니라 난장판을 일으켜서 당신이 나를 범했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고 말겠어요.그때가 되면 과연 당신이 어 떻게 나올지 궁금하군요?] 제갈신중은 그말에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됐지만 그것은 실현 가능성이 없소. 나는 지금 이미 이 방안의 음파를 차단 하여 외부에서 들을 수 없도록 하고 있으며, 또한 당신이 난장판을 일으킬 수 도 없을 것이오.] 순간, 황보숙한의 두 눈이 악독한 심사로 인해 옆으로 찢어지며 살기가 쏟아져 나왔 다. [믿을 수 없다!] 그녀는 소리치며 한순간 침상을 박차고 알몸 그대로 제갈신중을 향해 공격해 들어갔다. 지금 그녀가 펼치고 있는 무공은 태산십팔반이라고 하는 것으로 가전의 천왕 보에 수미산장을 정반으로 동시에 일으키는 것이었다. 평소에 그 무공은 무림의 일절로서 상당히 오묘한 솜씨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 광경은 야릇하고 자극적이기 짝이 없었다. 알몸인 채로 다리와 팔을 휘저으며 공격해 들어오는 그녀의 모습은 그 어떤 고수의 공격보다 상대하기가 어려운 것이었다. 하지만, 기실 황보숙한에게 안된 일은 바로 제갈신중의 능력이 아까와는 또한 판이하 게 달라졌다는 사실이었다. 황보숙한이 신형을 날려 공격해 들어오는 순간 제갈신중은 좌수를 들어올렸는 데 그러자, 느닷없이 흡사 시간이라도 정지한 것처럼 황보숙한의 나신이 뻣뻣하게 굳어진 상태로 허공에서 멈춰졌다. 그리고, 이어 제갈신중이 우수를 가볍게 들어 올리자 그녀가 벗어놓은 의복들이 마치 살아있기라도 하듯이, 둥둥 떠올라 날아와서 하나씩 그녀의 몸위에 입혀지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 그것을 당하는 황보숙한의 표정은 그야말로 믿을 수 없어하는 경악한 것이었 다. 그녀가 허공에 떠올라 있기 때문에 오히려 옷을 입는 시간은 금방 끝났다. 제갈신중은 이어 방문을 열고 그녀를 손짓하여 문밖으로 내보낸 다음에 문을 닫고 나서 그녀의 혈도를 풀어주었다. 그러자, 이내 거칠게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황보숙한의 악에 받친 욕설이 들려 오기시작하는 것이었다. [제갈신중! 이 병신같은 자식아! 네놈도 사내자식이냐! 그렇게 성인군자와 같 이 행동하려면 차라리 그 물건은 잘라버리지 그래? 사내구실도 뭇하는 병신같 은 자식! 내 반드시 네놈이 잘되는 가 두고 보겠다!] 제갈신중은 내심 어이가 없어 하며 내심 중얼거렸다. [그야말로 성이 난 암말과도 다를 바가 없구나. 내가 전에는 어째서 그녀에게 호감을 느꼈었을까?] ...... 황보숙한은 제갈신중이 문도 열어주지 않고 상대도 하지 않자 이윽고 그만 절 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제갈신중은 다시 촛불을 끄고는 문득 창밖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기실 조금전에 그곳에는 한 사람이 머물다가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그 사람은 바로 황원원이었다. 제갈신중은 그녀를 생각하자 조금전의 그 어수선한 마음이 모두 사라지고 따 뜻한 사랑으로 가득차는 것 같았다. [원원!......] * * * 제갈신중은 다음날 아침 다소 일찍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황원원의 방으로 가 보니 어느새 그녀의 방은 비어 있었다. 기이하게 생각하여 아래층의 반점으로 내려가니 거기에 황원원은 수곡사로와 함께 자리를 잡고 앉아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이곳 반점은 어느새 밤사이에 내부를 깨끗이 수리하고 다시 손님들을 받기시 작하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상공!] 황원원은 제갈신중이 내려오자 반가운 표정으로 그를 맞이했다. 수곡사로 역시 그를 친구로 생각하는 듯이 저마다 아는 체를 해보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제갈신중은 자리에 앉자마자 황원원에게 놀라운 소식을 들어야만 했 다. [그들이 모두 떠났어요.] (......?) 제갈신중은 제갈보중 등의 일행이 모두 떠났다는 얘기를 듣고 일시 어리둥절 해 하다가 물었다. [아니 떠났다니? 그게 대체 무슨 말이오?] 황원원은 차분한 신색으로 대답해 주었다. [아까 제가 나왔을 때에는 아무도 없었어요. 그래서 점원들에게 물어보니 모두 가 미처 새벽이 되기도전에 계산을 마치고 떠났다고 하더군요.] (......!) 제갈신중은 그 얘기를 듣자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마 치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었다. 남궁검민 등의 일행은 이제 더 이상 제갈신중과 황원원 등을 자신들의 동료로 생각하지 않고 떠나간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제갈신중은 미처 그런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크게 당혹스러운 기분이었다. 특히 그의 뇌리에는 간밤에 그를 찾아왔던 황보숙한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과연 그들은 어디로 간 것 같소?] 황원원은 대답했다. [아마도 영웅맹으로 갔을 거예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그들이 달리 갈만한 곳은 없을 테니까요.] 제갈신중은 내심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군!] 황원원은 그의 내심을 읽기라도 하듯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들은 보아하니 한시진쯤 전에 출발한 것 같은데,우리도 그들의 뒤를 따라가 려면 식사부터 해야할 거예요.시간은 아직 넉넉하니까요.] 그렇다. 일행이 아무리 빠르게 달린다고 해도 결코 오전중에는 영웅맹에 도착하지 못 할 것이고, 제갈신중 등은 무공이 초절정의 경지이기 때문에 이내 쫓아갈 수가 있을 것이 니 시간의 여유는 아직 충분한 셈이었다. 제갈신중은 일행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다가 문득 그렇게 세심한 배려를 해주 고 있는 황원원이 새삼 고맙게 느껴졌다. 가히 천하를 오시할 수 있는 경천동지할 무예를 가지고서 일개 남자를 위해 그렇듯 헌신적으로 대할 수 있다는 것은 실로 보통의 정성이 아니었다. (......) 제갈신중은 자신이 너무 흥분하여 미처 아침인삿말도 하지 못한 것을 깨닫고 이윽고 황원원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그래, 간밤에는 잘 잤소?] 황원원은 제갈신중의 마음속을 헤아리고는 미소하며 대꾸했다. [잘 잤어요.그런데, 당신의 모습은 오늘따라 유난히 멋지게 보이는 군요?] 제갈신중은 의아해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이오?] 황원원은 대답했다. [지금 당신의 몸에서는 무형지기가 마치 물처럼 맑게 충만되어 흐르는 것 같 아요.보아하니 당신은 어젯밤에 좋은 성취를 이루셨군요?] (......) 제갈신중은 비로소 간밤에 그녀가 잠시 자신의 창밖에 왔다갔었던 것을 상기 하고는 되물었다. [어젯밤에는 내방의 앞에 왔었으면서도 왜 그냥 돌아갔었소?] 황원원은 미소하며 대답했다. [저는 다만 당신이 무학수련에 방해를 받을까봐 걱정했던 거예요. 당신이 제가 있었던 것을 알았다니 이미 높은 성취를 이루신 거로군요? 아무튼 잘된 일이 예요.] 수곡사로 가운데의 금노가 끼어들었다. [아니 그럼 제갈형제의 무공이 우리 보다 높아지게 되었다는 말입니까?] 황원원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예요.앞으로 그대들은 상공의 발끝에도 따라가지 못할 거예요.] [......?] 수곡사로는 그 말에 일제히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 * * 제갈신중과 황원원 등의 일행은 그렇게 아침식사를 마치고 주문해 놓은 건량 따위를 챙긴뒤에, 이윽고 서둘러서 영웅맹으로 남궁검민 등의 뒤를 따라서 출발했다. 이미 그들이 먼저 일행을 따돌린 것이니 제갈신중의 일행으로서는 남궁검민등 과 합류하지 않아도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제갈신중으로서는 그들 가운데 자신의 친형제들도 있기 때문에 부득이 그들을 보호해 주려는 것이었다. 남양성에서 영웅맹이 있는 복우산까지는 족히 삼백리가 넘는 거리였고, 일류급의 인물들이 섞여있는 남궁검민 등의 일행으로서는 거의 하루종일을 꼬 박 달려야 도착할 수가 있을 것이었다. 제갈신중과 황원원 등은 반시진 만에 번화한 남양성을 빠져나가서 이어 바람 을 휘몰고 경공술을 전개하였고, 별로 힘들이지도 않았는데 한시진만에 복우산에 이르렀다. -복우산. 하남성의 중앙부를 동서로 가로지르며 길게 뻗어 있는 복우산은 예로부터 알 려져온 천하의 명산이었다. 그 생김새가 마치 커다란 소가 누워있는 것 같다고하여 이름 붙여진 복우산은 지금은 그 등줄기에 흰눈을 가득 덮고 있었다. 복우산의 산세는 대체적으로 웅장하고 완만하며 흡사 군자의 어질고도 힘찬 기상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영웅맹의 총단은 그 복우산의 심처, 영웅효라고 이름 붙여진 곳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그 모양이 마치 거대한 말굽을 찍어 놓은 것 같아서, 복우산이 비록 산맥들이 수백리에 걸쳐서 뻗어있다고 해도 찾기는 그다지 어 렵지 않았다. 게다가, 제갈신중은 몰라도 황원원은 이미 얼마전에 이곳에 와본 적이 있었다. 마치 거대한 말굽을 찍어놓은 것 같은 그 영웅효는 직경이 거의 이십여리에 달했고 사방이 높은 절벽으로 에워싸여 있으며, 밖으로 나가는 통로는 몇 개 되지 않았는데, 그 중에서도 남쪽으로 향한 대로 는 하나 뿐이었다. 제갈신중과 황원원은 정오가 되기 전에 그 앞에 도착하여 아직 남궁검민 등이 도착하지 않은 것을 알았기 때문에 잠시 근처에서 쉬기로 했다. 이 부근은 영웅맹의 세력권이기 때문에 그들 일행에게 별다른 위험은 없을 것 이라는 생각에서 였다. 황원원은 수곡사로에게 약간의 건량들을 나누어 주고 남쪽의 대로 부근에서 기다리며 그들 일행이 나타나면 알려달라고 하고는, 제갈신중과 함께 잠시 근처로 쉬러 갔다. 흰눈으로 가득 뒤덮인 복우산의 등줄기에 햇빛이 내리비치자 그야말로 시원스 럽고 아름다운 장관을 자아냈다. 제갈신중과 황원원은 함께 신법을 펼쳐서 그 산등성이 위를 날아가면서 적당 한 자리를 찾았다. 황원원은 그렇게 나아가면서 문득 고개를 돌리고 제갈신중에게 말했다. [축하해요! 상공의 신법도 이제는 저보다도 훌륭해 보이는 군요?] 제갈신중은 웃으며 어색한 듯이 대답했다. [과찬의 말이지만,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다 그대의 덕이오.] 기실, 아까 처음 경신술을 펼칠 때는 제갈신중은 아직 하늘을 날아갈 수도 없었다. 하지만, 막상 이내 그가 전신의 투명한 기운을 운용하고 신법의 이치에 대해서 파악하 게 되자, 나중에는 수곡사로보다 더욱 수월하게 달릴 수가 있었고, 지금은 산바람이 이는 산등성이 위를 날아가는 데에도 마치 구름을 타듯이 미 끄럽게 나아가고 있었다. 그것은 그가 이미 허공에서의 운신이 자유로와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 다.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간혹 옷자락이 가볍께 휘날리기도 하지만, 허공을 날아가면서 바람에 의해 미미한 파공음을 일으키는 황원원에 비하면 훨씬 조용하고 안정되어 있어서, 황원원이 문득 한 말이었다. 하지만 아직 제갈신중의 경신술은 완성되지 않은 것임을 그녀는 모르고 있었 다. ...... 두 사람은 이내 하나의 힘차게 떨어져 내리는 폭포수를 발견하게 되었다. [우리 저곳으로 가요!] 황원원의 제의에 따라서 두 사람은 즉시 그쪽으로 내려갔고 이내 하나의 거대 한 폭포의 위에 내려서게 되었다. 콰콰콰콰콰! 그 폭포수는 거의 수십장에 달했지만 제법 대단한 기세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 는데 허연 포말이 일어나는 가운데 무지개가 걸려 있는 것 같았다. 실로 그것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십년 묵은 체증이 시원하게 내려갈 것 같은 장쾌한 풍경이었다. 어째서 그런 생각이 갑자기 떠오른 것일까? 제갈신중은 문득 옆으로 고개를 돌리며 황원원에게 물었다. [우리 목욕이니 할까?] 이 추운 날씨에 폭포수에서 목욕을 한다는 것은 일반인으로서는 가히 엄두도 못낼 일이었다. 하지만 그 두 사람은 이미 초인간의 능력을 쌓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런 것 은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황원원은 마치 기다리고 있기라도 하듯이 즉석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이런 상황에서 서로의 뜻이 하나가 된다는 것은 상당히 유쾌한 일이다. 일순 두 사람은 서로를 보고 웃더니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거의 동시에 아래쪽으로 신형을 날렸다. ......! 폭포수의 아래쪽으로 내려가자 곳곳에 얼어붙어 있는 얼음조각들로부터 냉기 가 전해지고, 허옇게 부서지는 물보라와 폭포소리가 더욱 거대하게 느껴졌다. 폭포수의 아래쪽에는 제법 짙푸른 물이 출렁이고 있는 직경 십여장 정도의 작 은 연못이 자리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곧장 그 연못의 위에 이르러 허공에서 마치 거짓말처럼 신형을 멈 추고는 다시 서로를 보고 웃었다. 이렇게 두 사람이 폭포수의 앞에 떠올라 있으니 마치 갑자기 세속을 벗어나서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황원원은 문득 자신의 아래쪽과 제갈신중의 아래쪽을 번갈아 가리키며 입을 열어 말했다. [이로써 당신의 무공이 저보다도 우위에 서게 되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군 요!] 제갈신중은 다소 어리둥절해 하며 되물었다. [그럼 내 무학의 경지가 광검에 올라 있다는 말이오?] 황원원은 야릇하게 미소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예요.그보다 훨씬 더 높은 경지에 올라있을 지도 몰라요.] 제갈신중은 그말에 다소 놀라서 내심 생각했다. [그렇다면,내가 정말로 무형검에...... 무형검의 경지에 올라 있는 것이라는 말 인가?] 기실, 지금 황원원이 떠있는 아래쪽의 물은 계속해서 가벼운 파동을 일으키고 있는 데 반하여, 제갈신중이 떠있는 허공 아래쪽의 물은 전혀 아무런 파동도 없이 맑고 고요하 게 가라앉아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곧 두말할 나위도 없이 제갈신중의 신법이 더욱 기척도 없고 안정되어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제갈신중은 아직 확실하지도 않은 말을 꺼내기도 겸연쩍고 하여 웃으며 말을 돌렸다. [어쨌든 우리는 기왕에 이렇게 내려왔으니 정말로 저 물속으로 들어가서 목욕 을 하는 것이오?] 황원원은 그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우리는 서로 속이지 않기로 해요.] 기실 그들 두 사람이 공력을 거두고 물속으로 들어간다고 해도 만일 옷을 적 시지 않으려고 하면 간단한 노릇이었다. 만일 옷을 적시지 않는다면 무슨 목욕이 되겠는가? 제갈신중과 황원원은 거의 동시에 미소를 지으며 물속으로 들어갔다. ...... 그 물속은 상당히 깊고 또한 물도 맑고 차갑기 짝이 없었다. 두 사람은 시원한 물속에 잠수하여 몸을 씻고 즐겁게 유영했지만, 비록 물속 이라고 해도 그들에게 전혀 지장을 주지 못했다. 그들은 비단 물속에서도 얼마든지 숨을 멈추고 있을 수가 있을 뿐만 아니라 시력에도 장애가 없었고, 말하고 듣고,또한 움직이는 것까지 자유롭기 짝이 없었다 제갈신중은 물속에 들어가서 이내 적응되자 즐거이 왔다갔다 유영을 하면서 물속을 구경했고, 황원원 역시 공력을 거두어 물속에 옷과 몸을 모두 적신채 조용히 움직였다. 황원원의 한손에는 마치 커다란 공만한 거품이 들려져 있었는데, 그것은 그녀가 가지고 있던 봇짐이 젖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공력을 사용하여 물을 밀어내었기에 그런 공과 같은 공간이 생겨난 것이었다. 제갈신중은 잠시 그녀와 함께 서로 마주보며 이곳저곳을 헤엄쳐 다니다가 이 윽고 다시 왼쪽으로 올라와서 손가락으로 뒤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우리,잠시 저 안에 들어가서 옷을 말리는 것이 어떻겠소?] 알고보니 폭포수의 뒤쪽에는 아주 깨끗하고 작은 천연동굴이 생겨나 있었던 것이었다. 황원원은 즉시 찬성을 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제갈신중은 이내 그 거대한 폭포수의 밑으로 가서 떨어지는 폭포수를 받치고 작은 통로를 만들었다. 콰콰콰콰! 이내 물로 만들어진 작은 우산과도 같은 통로가 길쭉하게 생겨나는 것을 보고 황원원은 감탄하여 말했다. [굉장하군요! 대체 그런 재간은 또 언제 배웠죠?] 제갈신중은 미소하며 먼저 앞장서서 안쪽으로 그녀를 인도했다. 폭포수의 압력이 엄청날 텐데도 제갈신중은 여전히 평온하기 그지 없었으며 그 통로 또한 안전하기 짝이 없었다. 제갈신중이 먼저 그녀의 손을 잡고 그 통로의 안으로 들어가자 마치 그것은 처음부터 있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그들이 완전히 안으로 들어가자 제갈신중은 공력을 거두었고 이내 폭포수가 다시 떨어져서 그들의 모습을 감추었다. ...... 그 작은 동굴은 본래가 돌로 이루어진 동굴이었기 때문에 깨끗했는데 제갈신중 이 물줄기를 내뿜어서, 구석구석 청소하자 더욱 깨끗하고 아늑한 장소가 되었다. 일반인이라면 그 안이 매우 추웠겠지만 두 사람은 별로 추위를 느끼지 않았 다. 그 동굴의 밑바닥에는 물이 약간 차서 들어왔다 나갔다 하고 있었는데, 제갈신중이 중앙에 솟아오른 바위를 검기를 일으켜서 마치 무우를 자르듯이 평평하게 잘라내자, 물로 다시 매끈하게 씻어낸 다음에 두 사람은 그 위에 올라앉았다. 옷을 말린다고는 했지만, 이미 두 사람의 몸에서 피어나는 무형지기로 인해 두 사람의 옷에 묻은 물기는 사라지고 하나도 없었다. 여전히 요란하게 웃음을 토하고 있는 폭포수 쪽에서는 은빛의 태양광선이 스 며들어와 내부를 밝혀주고 있었고, 그 빛은 또한 선명하게 빛나는 황원원의 얼굴과 눈빛에도 부드럽게 반사되었 다. 제갈신중은 다소 어색한 듯한 기분에 젖어서 주위를 두러보다가 문득 그녀에 게 물었다. [혹시 춥지는 않소?] 황원원은 비록 깨끗하게 말랐지만 이미 물속에서 심하게 구겨져 버린 자신의 담황색의 장삼을 매만지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예요.] 제 42 장. 실종된 영웅맹주. 이곳은 본디 좁은 곳이었다. 제갈신중은 이순간 황원원과 아주 가까이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그녀의 체취 를 물씬 느낄수 있는 것 같았다. 제갈신중은 춥지 않느냐고 물어보았지만 기실 그는 상대방이 추위를 느끼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순간 그의 가슴은 왠지 뜨겁게 강한 열기를 발산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제갈신중은 다소 망설이다가 그녀의 손을 다시 잡았다. 아까와는 다르게 그녀의 손에서는 일종의 짜릿한 열기가 일어나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것 같았다. 제갈신중은 다시 입을 열어 물었다. [정말로 나와 혼인하는 것을 후회하지 않소?] 황원원은 고개를 들고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후회하지 않아요. 저는 당신을 만나게 된 것을 아주 감사하고 있었요.] 제갈신중은 그만 더 참지 못하고 그녀를 껴안고서 입을 맞추었다. (......!) 황원원은 물론 반항하지 않았다. 그녀는 부드럽고 조용하게 순종적으로,그러나 열정적으로 마주 대해왔다. 그 입맞춤은 이제까지와는 달리 아주 깊고 농밀했다. 그들의 입속에는 달디 단 감로가 들어 있어서 서로가 상대방의 감로를 맛보기 위해 탐식하는 것 같았다. 제갈신중은 그녀의 몸에서 일종의 부드럽고 우아하며 달콤하고 고상한 향기가 난다고 생각했다. 제갈신중은 그 향기를 느끼자 일순 전신이 급격히 팽창되는 듯한 뜨거운 기운 을 느꼈다. 제갈신중은 끝없이 그녀의 입술을 탐하면서도 손을 움직여서 그녀의 젖가슴과 은밀한 부위를 어루만지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 황원원의 뜨거운 열정속에서도 잠시 몸이 긴장되는 듯 했으나 이내 순순히 그 가 옷을 벗기는 것을 도와주는 것이었다. ......! 제갈신중은그녀의 옷을 모두 벗기고 또한 자신도 옷을 벗었다. 실로 그녀의 알몸은 아름답기 그지 없었다. 제갈신중은 세상에 태어나서 이토록 아름답고 사랑스런 여인의 몸을 본적이 없다고 생각했다. [사랑하오!] 제갈신중의 입속에서는 들뜬 음성이 절로 흘러나왔다. 황원원은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크게 긴장된 듯 했으나 여전히 그가 하는 대로 순순히 따랐다. [저도...... 사랑해요.] 제갈신중은 바닥에 벗어놓은 의복들을 차례로 깔고서 그녀를 부드럽게 애무하 다가 천천히 그 위에 눕혔다. [사랑하오!......] 제갈신중은 일순 자신이 아주 뜨거운 불덩어리가 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 * * 두 사람의 그 첫 번째 정사는 처음에는 뜨겁고 격렬했으나 이내 서로가 부드 러운 기분을 맛보았다. 황원원은 첫경험이었으며 무척 고통스러웠겠지만 거의 아무 내색을 하지 않고 그를 대했다. 정사가 끝나고 난 뒤에 제갈신중은 더욱 마음이 산뜻하고 투명해지는 것 같았 으며 황원원 역시 더욱 용모가 빛나 보였다. 두 사람이 일어나서 몸을 씻고 다시 옷을 입을 때 황원원은 자신의 봇짐을 풀 어서 거기에서 새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녀의 의복은 이미 첫순결의 상징인 앵혈로 얼룩지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 이윽고 약간 어색한 기분을 느끼면서 제갈신중이 의복을 갖추고서 고개를 돌 렸을때,그는 약간 놀랐다. [아, 원원......] 황원원은 알고보니 어느새 아름다운 담황색의 궁장차림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 다. 그런 그녀의 용모는 더욱 아름답기 짝이 없었고 고귀하여 누구라도 쉽게 넘보 지 못할 것 같았다. [저의 이 옷 모습이 어때요? 오늘과 같은 날이 오면 입으려고 미리 사서 가지 고 다녔었는데......?] 황원원은 약간 수줍은 듯이 웃으며 그렇게 물었다. 제갈신중은 멍하니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정말로 아름답구려! 당신이 정말로 이 세상의 사람인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오. 혹시 내가 당신과 같은 절세미인을 아내로 맞이하려다가 하늘의 시샘을 받게 되는 것이 아니오?] 확실히 황원원은 그러한 경장이 더욱 잘 어울렸다. 황원원은 부끄러운 듯이 그의 품속에 안기며 고개를 저었다. [천만에요! 상공이야말로 천하에서 가장 멋지고 훌륭하신 분인걸요! 저 역시 당신이 너무 훌륭하신 것이 가끔씩 불안해져요!] (......) 제갈신중은 그녀의 몸을 안고 가볍게 입을 맞추다가 말했다. [이런 장소에서 당신과 첫날밤을 보내게 되다니,정말 미안하오!] 황원원은 그의 얼굴을 바로 바라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예요.저는 정말이지...... 당신의 사랑을 받게 된 것이 기쁘고,또한 당신 과 한몸이 된 것이 즐거워요.그밖에는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제갈신중은 그녀의 그런 심성이 너무나도 고마와서 나직하게 탄식을 하며 다 시 말했다. [내 반드시 앞으로 한평생을 변함없이 그대를 사랑하고,또한 그대를 위해 이 한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고 보살펴주리다. 사랑하오 원원!] [사랑해요. 상공......] 그 두사람은 다시 깊고도 정열적인 농도깊은 입맞춤을 한참동안 나누었다. 그러다가, 이윽고 황원원은 제갈신중의 품속에서 떨어져서 건량 등을 꺼내며 말했다. [우리 마침 여기에서 식사를 하고 가도록 해요!] 이미 시간이 많이 흘러서 정오도 훨씬 지난 상태였다. 황원원은 바위위에 건량 등을 내려놓으며 버린 의복 등은 깨끗하게 소각시켰 다. 제갈신중은 그녀의 앞에 앉으며 물었다. [수곡사로가 이제 우리를 찾아올때가 되지 않았소?] 황원원은 그의 손안에 건량으로 만든 육포조각을 작게 찢어주며 고개를 끄덕 였다. [아마 그럴 거예요.] 헌데 바로 그때의 일이었다. 느닷없이 폭포수의 밖에서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듯이 수곡사로 가운데의 화 노의 전음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곡주님,어디 계십니까?] 아까 황원원은 수곡사로가 자신들을 찾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이곳으로 오 면서 약간의 표시를 해놓았었다. 제갈신중은 황원원과 함께 있으면서 마음이 흥분되어 미처 수곡사로가 다가오 는 것을 보지 못했다. (......?) 제갈신중이 폭포수를 꿰뚫고 바라보니 수곡사로 가운데에서 화노와 장노가 연 못가에 서서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그들은 양반이 못되는 모양이로군요!] 황원원은 그렇게 말하고 킥,웃으며 제갈신중과 함께 일어나 밖으로 신형을 날 렸다. 제갈신중은 이번에는 수곡사로에게 자신들만의 장소를 알려주게 되는 것이 싫 어서 그녀의 손을 잡고 특이한 신법을 펼쳤다. 그는 가볍게 날아간 것 같은데 어느새 연못과 수곡사로 마저 건너뛰어서 저편 에 내려선 것이었다. (.....!) 황원원은 다소 놀랐으나 내색하지 않고 화노와 장노를 향해 입을 열어 놓았 다. [그들이 왔나요?] (......!) 화노와 장노는 느닷없이 자신들의 뒤쪽에서 황원원의 음성이 들려오자 일순 놀라서 신형을 돌렸다. 화노는 두 사람이 정답게 손을 잡고 서있는 것을 보고 놀라며 물었다. [아니,두 분께서는 지금 어디를 다녀오신 것입니까요?] 황원원은 제갈신중의 의도를 알고 짐짓 둘러대었다. [우리는 이 근처를 잠시 유람하던 중이었어요.그런데,지금 금노와 기노는 어디 에 있죠?] 화노등은 이미 황원원의 얼굴에 화사하고 수줍은 교태가 피어나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두 사람 사이의 일을 짐작했다. 화노는 내심 미소하며 공손히 대답했다. [그들이 조금전에 영웅맹의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저와 둘째는 곡주님께 알리 러 온 것이고,셋째와 넷째는 지금 그들을 추적하고 있는 길이죠.] 황원원은 그 말에 다소 놀라는 듯 했다. [영웅맹주가 있을 지도 모르는데 그들 두 사람이 무단히 안으로 들어갔다는 말인가요?] 화노는 잠시 머뭇거렸고 난장이인 장노가 금속성이 이는 음성으로 대답했다. [비록 당금의 영웅맹주의 무공이 높다고해도 그들 두사람이면 별로 당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장노를 말을 하다가 말고 문득 제갈신중의 얼굴을 슬쩍 돌아보았다. 당금의 영웅맹주는 바로 제갈신중의 부친이기 때문이었다. 제갈신중은 잠자코 있었으나 황원원이 다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예요.현재 영웅맹에는 당신들과 비슷한 수준의 고수인 두명의 전대맹주들 이 있다고 했고,게다가 그 당금의 영웅맹주의 무공은 오히려 그들보다도 우위 에 있다고 하더군요.만일 운이 나쁘면 그들 두 사람은 곤란을 면치 못할 거예 요.] [......] [자!이제 우리는 어서 가서 그들을 도와야 하겠어요.여러분은 일단 영웅맹에 들어서면 더욱 몸조심을 하고 언행에 신중을 기해야만 할 거예요.] 화노는 즉시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예,곡주님.] 하지만, 장노는 보기보다 벌컥하는 성질이 있어서 참지 못하고 다시 한마디를 했다. [흥,당금의 영웅맹주의 무공이 천하제일이라고 하지만,우리 곡주님보다 훨씬 못한 사람이 어떻게 천하제일이라는 말인가?] ....... * * * 제갈신중과 황원원 등이 곧장 신형을 날려 미처 영웅맹의 정문에 이르지 못했 을 때의 일이었다. 느닷없이 금노가 황급히 나타나서 황원원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곡주님! 지금 영웅맹에는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모든 장문인들이 모여있고 또한 한가지 이상한 소문이 나돌고 있는 실정입니다.] (......?) 황원원은 물었다. [한가지 이상한 소문이라니,그게 뭐죠?] 금노는 즉시 대답했다. [그것은 저,제갈공자의 부친인 영웅맹주가 며칠전부터 갑자기 실종됐다는 것입 니다!] 제갈신중은 그 말을 듣자 일순 눈이 휘둥그래졌다. [아니 뭐라고요?] 금노는 이번에는 제갈신중을 바라보며 웃으며 대꾸했다. [아 글쎄, 자네의 아비가 실종됐다니까?] 제갈신중은 다시 물었다. [그게 확실한 정보입니까?] 금노는 다소 고개를 갸우뚱 하더니 이어 대답했다. [글쎄...... 그것이 확실한 얘기인지는 몰라도,우리는 그 녀석을 쫓다가 우연히 그 얘기를 듣게 되었다는 말이야!] (......) 제갈신중은 다소 시름에 빠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가 이제까지 무림의 일에 그다지 심각하게 대처하지 않은 원인은, 한편으로 는 그의 부친인, 제갈류량을 믿는 바가 컸기 때문이기도 했다. 제아무리 세외팔세의 사람들이 갑자기 등장하고,삼대마세가 혈겁을 자행한다 고 해도, 워낙에 유명했던 부친이었기에 제갈신중은 은연중 그 부친을 크게 신뢰하고 있는 편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느닷없이 그 부친이 이미 며칠전부터 실종된 상태라니...... 황원원은 금노에게 다시 물었다. [그럼 지금 기노는 어디에 있죠?] 금노는 공손하게 대답했다. [그는 지금 아직도 그 녀석을 쫓고 있는 중이죠.워낙에 교활하기 짝이 없는 녀 석들이니까 또 무슨 수작을 꾸미려는지를 알아보려는 것이죠.저야 물론 그 사 실을 미리 전하려 이렇게 달려나왔지만......] 황노가 문득 끼어들어 말했다. [아,그렇다면 이거 큰일이겠군! 그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장문인들이 한꺼번 에 와 있고,게다가 두명의 전대장문인들도 있을 것이니,막내가 위험해지지 않 았는가?] 화노가 저 혼자 나온 것을 나무래자 금노는 다소 계면쩍은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항변했다. [아냐,막내는 위험하지 않을 거야.그도 내가 이곳으로 오는 것을 찬성했단 말 이야.정말이라니까!] 황원원은 곰곰히 생각하고 있다가 다시 신형을 날리며 말했다. [어쨌든 우리는 어서 안으로 들어가 보도록 해요!] * * * 영웅맹의 남쪽으로 향한 정문앞에서 금노는 다소 못마땅한 어투로 황원원에게 질문했다. [곡주님! 이거 우리가 정말 정식으로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까?] 황원원은 고개를 저으며 대꾸했다. [지금 우리는 기왕에 정체가 드러나게 되었으니, 드러내놓고 활동하는 수밖에 없겠어요.아마도 그들이 우리를 좋지않게 얘기한다면 앞으로 우리에게 적지 않은 장애를 일으킬 수가 있을 테니까요.] 화노가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이번에 우리는 모든 정체를 완전히 드러내는 것입니까?] 황원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봐야 하겠지요.아직 시기적으로 빠른 느낌이 없지는 않지만......그 러나 지금으로서는 어쩔 수가 없어요.] 그때 정문에서 한명의 백의인이 여러명의 위사들을 거느리고 다가와서 물었 다. [당신들은 지금 본맹의 안으로 들어가겠다고 했습니까?] 그 백의인은 다른 위사들과는 달리 기도가 출중하고 어깨와 옷소매에 각기 두 마리씩의 작은 백룡들이 새겨져 있었다. 제갈신중 등은 그 백의인의 옷에 새겨진 백룡의 숫자로 보아 그가 지당소속의 향주라는 것을 알수가 있었다. 영웅맹에는 모두 오당이 있고, 맹을 수호하는 부서인 이 지당에는 당주 한명, 당주 세명,그리고 향주가 열 다 섯명밖에 없는데, 평소에는 거의 감찰만을 해오던 향주가 이렇게 직접 정문의 경계를 서는 것은 지금이 비상시국이기 때문이리라. 이 향주는 강호의 일류고수급이며, 백룡이 하나씩 새겨진 그 아래의 대주들은 이류고수급이며, 또한 전혀 아무것도 새겨져 있지 않은 백의를 걸친 위사들은 삼류급으로서 그 숫가 가장 많았다. 황원원이 앞으로 나서서 그 향주의 말을 받았다. [그래요.] 황원원은 이어 품속에서 하나의 황금으로 만들어진 명패를 그 향주에게 내밀 었다. [이것을 맹주께 전해드리기 바래요!] 그 명패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정교하게 양각되어 있었다. -제십오대 성수곡주 황원원. 그 명패는 광채가 선명한 것으로 보아 만든지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다. (......!) 그 향주는 그 명패를 받고 읽어보다가 일순 크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다,당신은 정말로 세외팔세의 하나인,성수곡의 주인이라는 말입니까?] 황원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하지만, 황원원은 그 향주가 전혀 믿지 않는 것을 보고 능력을 보여줄 속셈으로 즉시 손을 썼다. 일순 그녀의 우수가 가볍게 위로 올라갔는데, 그 순간에 느닷없이 십장밖에 있는 집채만한 바위가 허공으로 둥실 떠오르더니, 이윽고 미끄러지듯이 부드럽게 움직여서 황원원의 손 끝에 내려앉는 것이었 다. ......! 향주라는 자가 그것을 보고 경악한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그 바윗덩이는 무게가 대략 수만근은 될 터인데도 그와 같이 허공섭물의 묘기 를 발휘하여 십장밖에서 가볍게 들어올린다고 하는 것은, 가히 꿈속에서나 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황원원은 이어 손끝을 퉁겨서 다시 그 바위를 날려 원래의 자리에 돌려놓고는 향주에게 물었다. [이제 저의 말을 믿겠나요?] 향주라는 자는 즉시 고개를 조아렸다. [예예,믿고 말굽쇼! 여기에 잠시 계시면 금방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향주라는 자는 그렇게 대단한 능력자는 역시 세외팔세의 주인들 이외에는 거 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 향주라는 자가 빠르게 신형을 날려 안쪽으로 사라지고 나자, 나머지 위사들은 대단히 경악한 표정으로 뒤로 멀찌감치 물러서서 일행을 감 시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이윽고, 잠시의 시간이 지나자 그 향주라는 자의 인도로 많은 사람들이 안에서 걸어나 왔는데, 그 숫자는 대략 이십여명에 달한 것 같았다. 역시 세외팔세 가운데의 하나인 곡의 위명은 대단한 것이었다. 제갈신중은 그 가운데 몇몇 사람의 얼굴이 낯익다는 것을 알아보았다. 즉, 일전에 맹주와 함께 제갈세가를 찾아 왔던 오당주 들이었는데, 역시 금노의 말대로 그들은 있었지만 맹주인 제갈신중의 부친의 모습은 보이 지 않고 있었다. 기실 이즈음의 제갈신중은 이미 자신도 모르게 그 사람의 기질로써 그 사람의 신분을 파악할 수가 있는 수준이 되어 있었다. 그가 가장 먼저 시선을 보낸 쪽은 실상 오당주가 아니라 그 옆의 두명의 노인 들이었는데, 하나는 늙은 중이었고 다른 하나는 늙은 도사였다. 그들은 하나같이 미목이 수려하고 안색이 청수했을 뿐만 아니라, 그 기질상에 있어서 하나는 엄중하고 하나는 소탈하였지만 무공은 가히 수곡 사로와 비슷한 수준인 것 같았다. 지금 그들의 주위에는 십여명에 달하는 많은 최절정 이상의 각각의 특질을 가 진 고수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은연중에 그 두사람을 존중하는 듯한 것을 보고서,실로 그 두사람이 많은 사람들의 우두머리라는 것을 알수가 있었다. (혹시 저들이 영웅맹의 두명의 전대맹주인 소림사의 만공선사와 무당파의 옥 허진인이 아닐까?......하지만 전에 보았던 개방의 호연신개 동방청은 보이지 않 으니 이상하군!) 제갈신중이 그런 생각을 빠르게 굴리고 있는데, 문득 눈에 익은 오당주 가운데에서 수장격인 천당의 당주 파천일검 남궁검휘 가 앞으로 나서며 정중하게 입을 열었다. [실례지만, 어느 분이 성수곡의 주인이십니까?] 그는 분명히 위사에게서 얘기를 들었을 텐데도 황원원의 나이가 아주 어려 보 여서 은근히 수곡사로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의 눈에 비친 수곡사로의 세명도 분명히 괴이한 기질을 가진 노인들임에 틀림이 없었다. 황원원은 나서며 대답했다. [제가 바로 당대의 성수곡주이자 제십오대 성수신의인 황원원이예요!] ......! 장내의 사람들은 일순 깜짝 놀랐다. 아까 그 위사의 말을 듣고서 그들은 내심 설마하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황원원이 즉각 신형을 허공에 떠올리며 손을 썼던 것이었다. 그녀는 대략 일 장 정도의 허공에 올라가서 정지한 다음에 우수를 펼쳤는데, 놀랍게도 그 순간에 그녀의 손끝에서는 황금빛의 화려한 봉황조가 나타나서 날개짓을 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봉황조의 크기는 대략 한자 정도 되었는데, 수려하고 고귀한 모습으로 허공에서 날개짓을 하는 광경은 흡사 전설의 불사 조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황원원은 이어 손끝을 가볍게 움직였는데, 그에 따라서 그 황금조는 거의 눈에 보이지도 않을 빠르기로 그 십장밖의 바 위로 날아갔다가 되돌아왔다. 그 순간에 놀랍게도 그 집채만한 바위의 중앙에 봉황의 형상처럼 구멍이 뻥 뚫려버리는 것이었다. [앗, 저것은 봉무구천이다!] 제갈신중은 주목했던 그 두명의 노인들 가운데에서 늙은 중이 다소 경악한 표 정으로 불현 듯 그렇게 소리쳤다. 사람들은 크게 놀라는 한편 이 신기한 광경에 잠시 넋을 놓고 있었다. -봉무구천 그것은 전대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성수곡의 표기로서, 말하자면 그 무극광검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나타나는 신비로운 현상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장내의 사람들 가운데에서 유독 제갈신중만은 그것을 보고서 다소 고개를 갸 웃거렸다. 그는 왠지 그 봉무구천을 펼쳐보이는 황원원의 무공에 다소 어색하고 자연스 럽재 못한 것을 발견한 것이었다. 제갈신중은 절로 황원원의 얼굴을 바라보며 혼자 생각했다. (혹시......?) 제갈신중은 혹시 그녀가 갑자기 어디 불편한 것이 아닌가 하고생각한 것이었 다. 그런데, 제갈신중이 고개를 갸웃거리자,황원원도 그것을 알아차렸는지 이쪽을 바라보 며 미소를 짓는 것이었다. (......?) 이어 황원원은 그 황금빛의 봉황조를 거두고 지면에 내려서서 사람들에게 물 었다. [당신들은 저의 신분을 인정하시겠나요?] 먼저 말을 꺼냈던 파천일검 남궁검휘는 아직 단정할 수가 없어서 시선을 은근 히 예의 그 늙은 중에게 보내는 것이었다. 그러자, 그 늙은 중은 주저하지 않고 앞으로 한걸음 나서며 입을 열었다. [인정하겠소! 그렇게 봉무구천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성수곡의 주인밖에는 없소. 아미타불...... 시주께서 젊은 나이에 그와 같은 경지에 오르셨다니,이 늙은 중은 탄복을 금치 못하겠소이다!] 말과 동시에, 그 늙은 중은 문득 아까 황원원이 보냈던 황금명패를 가볍게 날려보내는 것이 었다. 그 명패를 받아든 황원원은 역시 그 늙은 중이 이들의 우두머리임을 알고 미 소하며 물었다. [이것은 소림사의 달마삼검 가운데의 일식이로군요.대사께서는 소림사의 어느 분이시죠?] 조금전에 그 늙은 중이 명패를 날려보낸 수법에는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지만 실로 심오한 변화가 숨겨져 있었다. 그 늙은 중은 내심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그녀를 시험해본 것이었다. 늙은 중은 상대가 아주 간단하게 자신의 명패를 받아드는 것을 보고 더욱 감 탄하며 불호와 함께 대꾸했다. [아미타불! 노납은 만공이라고 하오. 현재 영웅맹의 태상봉공을 맡고 있는 중 이지요.] (......!) 역시 그 늙은 중은 초대의 영웅맹주가 되었었던 소림사의 태상장노 만공선사 가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아무래도 그 옆의 늙은 도사는 제이대의 영웅맹주이자 무당파의 태 상장로인 옥허진인이 분명해 보였다. 제갈신중은 옆에서 듣고 있다가 역시 자신의 부친이 나타나지 않는 것을 보고 는 정말로 자신의 부친이 실종되것이 아닌가 하고 크게 걱정했다. 황원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그러시군요? 아, 그렇다면 지금 영웅맹주께서는 바쁘셔서 미처 나오시지 못하 고 계신 것인가요?] 제아무리 영웅맹주의 지위가 높다고 해도, 일단 성수곡주가 나타났으면 한 번 마중나와 봄직한 일이었다. 그 만공선사는 약간 망설이는 듯 하다가 대답했다. [아미타불,우리 맹주께서는 지금 출타중이기 때문에 부득이 시주를 맞이할 수 가 없습니다. 그 점을 양해해 주십시요.헌데, 시주께서는 무슨 볼일로 본맹을 찾아오신 것입니까?] 성수곡은 과거부터 아주 전통적인 정파일색이었다. 황원원의 신분이 확인되자 만공선사가 그토록 정중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황원원은 이미 생각해 둔 듯이 주저없이 대꾸했다. [저는 지금 영웅맹이 환란을 당하고 있다고 들었기 때문에, 저의 부군과 함께 도우려고 찾아온 거예요.] 말과 함께 황원원은 손짓으로 제갈신중을 가리켰다. ......!  제 43 장. 괴이한 공포. 사람들은 기실 화려한 궁장미녀인 황원원과 괴이한 기질의 늙은이들인 수곡사 로들만 의식하고 있었을 뿐, 한옆에 서있는 평범한 미남자인 제갈신중은 별로 신경쓰지 않고 있었다. 제갈신중의 얼굴에 선기가 흐르고 있었어도 겉으로는 무공을 익힌 흔적이 나 타나지 않았으며, 무엇보다도 장내의 많은 사람들이 제갈신중의 신분을 대강 알고 있었기 때문 이었다. 하지만, 느닷없이 그 절세적인 미모를 가지고 있는 일대기녀가 그를 자신의 부군이라 고 소개하자, 사람들은 아연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제갈신중의 용모에서 다소 신비로운 기운이 발산되고 있기는 해도, 그의 기질이 다분히 문약하게 느껴져서 사람들은 혹시 그가 외모로써 그녀를 유혹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만공선사는 보다 진중한 성격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성급한 판단을 하지 않고 즉시 제갈신중에게 합장하며 물었다. [아아,그러하시군요! 아미타불...... 실례지만 부군께서는 명호를 알려주실 수 가 있겠습니까?] (......) 제갈신중은 갑자기 황원원이 자신을 부군이라고 공개적으로 소개할 줄은 미처 몰랐다. 다만, 그는 자신에 대해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눈앞에 있기에 아주 대답하 기가 난처해졌다. [예, 저는...... 제갈세가의 둘째아들로서 이름은 신중이라 하옵고,아직 별호는 없습니다.] 제갈신중은 포권하며 그렇게 공손히 대답한 후에 과연 사람들이 어떻게 나올 까 하고 걱정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사람들은 대부분 설마하고 있었는지 일순 저마다 눈이 휘둥그래지는 것이었 다. 다만, 만공선사만은 다소 자애로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아미타불,당금의 인물들은 모두 제갈세가에서 나오는구려. 실로 경하드리는 바이오. 제갈시주께서 성수곡의 부군이 되셨다면 이는 무림의 홍복이오이다.] 제갈신중은 만공선사의 그말에 다소 시름을 놓으며 포권하며 다시 말했다. [하지만 저희들은 아직 정식으로 혼인식을 올리지 못했으나, 앞으로 혼인식을 올릴 때에는 대사님께 주례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만공선사는 미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암,그거야 여부가 있겠소이까? 아미타불......] (.......) 제갈신중은 눈앞의 다른 사람들도 모두 일파의 종주들이기 때문에 예의를 갖 추지 않으면 결례라고 생각하고, 만공선사에게 다시 물었다. [실례지만, 후배가 인사를 올릴 수 있도록 대사님께서 다른 분들을 저에게 소 개해 주시겠습니까?] 만공선사는 마침 그러려던 참이었는지 즉시 고개를 끄덕이며 응해 주었다. [아미타불,그러지요. 우선 내옆에 계신 이분 도우는...... ] 만공선사는 먼저 자신의 옆에 서있는 예의 그 늙은 도인을 소개했는데, 과연 그 늙은 도인은 만공선사와 함께 차례로 영웅맹주의 직위를 맡았었던 무 당파의 옥허진인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각기 예상대로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수뇌들이었는데, 그들은 지금 강호가 지극히 혼란한 것을 보고 자진해서 영웅맹으로 달려온 것 이었다. 만공선사가 소개할 때마다 제갈신중은 일일이 깍듯이 예의를 차렸는데, 그들도 제갈신중이 성수곡의 부군이라는 신분을 생각했는지 앞으로 나서서 각 기 예의를 갖춰 주었다. 영웅맹의 오당주들은 남궁검휘,팽원성 등을 제외하면 그 사람들의 명호는 다 음과 같았다. -소림사의 방장, 혜방대사. -무당파의 장문인 현황도장. -화산파의 장문인 매화신통 악처현. -곤륜파의 장문인 적성진인. -아미파의 장문인 관심사태. -점창파의 장문인 점창일수 전귀수. -청성파의 장문인 천송도장. -공동파의 장문인 신음진인. -종남파의 장문인 태을신검. -개방의 방주 강룡개 풍화룡. -남궁세가의 가주 제왕신검 남궁수휘. -하북팽가의 가주 혼원벽력도 팽원교. -사천당문의 가주 만류귀종 당염의. -황보세가의 가주 무적권 황보대암. 본래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는 영웅비무대회를 제외하고는 거의 이렇게 모이지 를 않았었다. 특히 오대세가가 세력을 떨치기 시작한 지난 십년 사이에 구파일방은 거의 강 호활동을 하지 않고 있었는데, 비무대회 기일을 석달 정도 남겨놓은 지금에 무림의 환란으로 인해 이렇게 다 시 모인 것이었다. 그들은 영웅맹의 내부에서 무림의 대사를 논의하다가 이윽고 성수곡주가 나타 났다는 말을 듣고는 한꺼번에 우르르 몰려나왔음이 분명했다. 비록 세외팔세 가운데의 세곳인 삼대마세가 세력을 떨치고 있지만, 역시 성수곡주의 등장은 그들에게는 가히 충격적이라고 아니할 수가 없었다. 장내에는 그밖에도 금창보나 청해파,왕옥파 등의 문파의 장문인들이 있었으며, 그들 가운데에서 그래도 가장 무공이 높아보이는 사람들은 소림의 장문인 혜 방대사와, 무당파의 장문인 현황도장, 그리고 남궁세가의 가주 제왕신검 남궁수휘였는데, 그들 세명의 무공은 최절정과 대홍락의 중간단계로 보였으며, 나머지는 대개 최절정의 졍지였다. 역시 소림과 무당, 그리고 남궁세가의 명성은 무시할 수가 없는 것이다. 제갈신중은 개방의 장문인인 강룡개 풍화룡을 소개받았을 때 문득 그의 사부 인 호연신개에 대한 것을 물어보려고 했으나, 이내 그만 두었다. 남궁검민 등의 모습은 지금 이 자리에서 보이지 않았다. 그럼 그들은 제갈신중 등이 나타날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리지 않은 것일 까? 제갈신중은 자신의 부친과 명성을 나란히 하는 남궁수휘등과 정식으로 인사를 나누면서 다소 송구스러운 느낌이 들었지만, 그런 가운데에서도 그들 오대세가 사람들의 눈치를 살폈으나 별다른 징후는 느껴지지 않았다. 이윽고, 서로간의 간단한 수인사가 오가고 나자, 영웅맹의 천당 당주인 파천일검 남궁검휘는 황원원을 향해 포권하며 안쪽으 로 인도했다. [자,그럼 곡주께서는 안으로 드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제갈신중은 이미 수곡사로의 세명에 관해서도 수인사를 하는 도중에 간략하게 설명해둔 바가 있었다. 황원원은 미소하며 그에 따랐다. [고마와요!] * * * 영웅맹의 총단은 직경이 이십리도 넘는 넓은 분지위에 넘치도록 건물들을 세 워놓았기 때문에, 외부에서 보기에도 그 모습이 장관이었지만 안으로 들어갈수록 그 방대한 시 설에 놀라는 것이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이곳 영웅맹의 시설 규모는 대단했었지만, 지금과 같은 짜임새 있는 시설을 갖춘 것은 십년 전의 제갈류량이 맹주로 취 임하고부터 였는데, 그저 보기에는 아무렇지 않은 곳 같아도 기실 그 시설 전체가 거대하고 작은 무수한 진법들의 조화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제갈신중과 황원원 등은 남궁검휘 등의 인도에 따라서 정문을 통과하여 안쪽 에 있는, 거대한 연무장을 앞에 두고 있는 한 석조전각의 대청에 들어서게 되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각기 볼 일을 보고, 또한 일행의 묵을 장소 등을 마련하는 사이에 만공선사 등이 역시 일행을 접 대했다. 제갈신중 등은 빨리 기노 등의 안부를 알고 싶었지만 내색할 수가 없어서 마주 응하는 수밖에 없었다. 서로 자리를 정하고 약간의 다과가 놓여지자 진지한 대화가 오가기 시작했다. 만공선사는 황원원이 여자이고 수곡사로는 말이 없고 해서 그랬는지 특히 제 갈신중에게 말을 걸었다. [아미타불......제갈공자도 이미 아시다시피,이곳에 현재 제갈공자의 형제들도 와있는 상태이고, 또한 맹주께서 함께 계신다면 더욱 좋을텐데 이 일이 다소 난처하게 되었소이다 그려.] (......?) 제갈신중은 마침 그러한 일들에 의문을 가지고 있던 터라 즉시 입을 열어 만 공선사에게 질문했다. [지금 그들은 이곳에 와 있습니까?] 만공선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분들은 지금 이곳에 와서 시주의 형과 만나고 있는 중입니다.] 이 만공선사는 소문과는 달리 용모가 평범하고 보잘 것 없는 늙은중의 형상을 하고 있었으나, 눈빛만은 아주 자애로운 편이었다. 제갈신중은 내심 반가운 기분이 들어서 만공선사의 그 눈을 바라보며 다시 물 었다. [그런데,지금 저희 부친께서는 어디로 가셨는지 아십니까?] 만공선사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불호와 함께 대답했다. [아미타불,안타깝게도 아직 그것을 모르고 있소이다.맹주께서는 사흘전에 홀연 히 맹을 떠나셨는데,아직 그 거취를 알 수 없는 상황이외다.] (......) 제갈신중은 아까 금노의 말이 정말이라는 것을 알았다. 영웅맹주인 그의 부친은 실종된 것이다. 실로 그가 있다고 해도 어려운 이 상황에 그마저 실종되었다니 무림의 상황이 암담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제갈신중은 다시 물었다. [그럼 저의 부친께서는 혼자 떠나셨다는 말씀이십니까?] 만공선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 맹주께서는 침소에서 갑자기 사라지셨는데, 함께 떠난 사람은 없소이 다.] 제갈신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 일은 아무래도 형인 제갈의중과 함께 상의해 봐야 하겠다고 생각했 다. 그런데, 제갈신중이 성수곡주와 함께 나타났다는 소문을 들었다면 벌써 달려왔어야할 제갈의중은 기이하게도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혹시 그에게도 무슨 일이 있는 것이 아닐까? 제갈신중이 고개를 숙이고 그러한 문제를 골똘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문득 만 공선사가 다시 물었다. [아미타불,시주께서는 당금의 강호 상황을 어떻게 보고 계시오?] 제갈신중은 고개를 들고는 대답했다. [감히 말씀드릴 수는 없겠으나 제가 보기에는 아주 좋지 않은 듯 합니다.] 만공선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물었다. [그건 삼대마세의 주인들이 출현했기 때문이오.] 제갈신중은 대답했다. [그런 점도 있지만, 이번에 세외팔세의 주역들이 대거 등장했고, 게다가 그들 의 대다수가 저마다의 영욕에 빠져서 무림의 안위를 돌보지 않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 만공선사는 잠시 그 대답을 듣고 묵묵히 생각하는 듯 하더니 다시 이렇게 말 했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당금의 무림이 아주 희망적이라고 생각하오.] (......?) 제갈신중은 그를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 [그건 어째서입니까?] 만공선사는 대답했다. [대개 무림의 앞날은 그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달려있다고해도 과언이 아닐 것 이오.지금 시주와 같은 훌륭한 인재가 강호를 걱정하고 있는데 어찌 희망을 갖지 않겠소?] 그 말을 끝내자 만공선사는 입가에 자애로운 미소를 떠올리더니 나직한 불호 를 외우는 것이었다. (......) 제갈신중은 그것을 보고 다소 의아해 졌다. 그는 다른사람들은 몰라도 혹시 이 노승이 자신의 무학경지를 알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그즈음에 사방이 어두워졌으므로 대청안에 촛불들이 가득히 밝혀지고 저녁 식 사가 나왔다. 제갈신중은 일부러 황원원의 옆에 앉아있다가 식사를 하는 척 하면서 그녀에 게 전음으로 물었다. [원원, 아까 나를 보고 웃은 것은 무엇 때문이었소?] 제갈신중은 그녀가 혹시 몸이 불편한지에 대해서 물어보려는 것이었다. 황원원은 제갈신중의 얼굴을 슬쩍 돌아보더니 역시 전음으로 대꾸했다. [제가 상공을 보고 웃는 것도 무슨 이유가 있어야만 하나요?] 제갈신중은 느닷없이 그녀가 장난을 거는 것을 알고 내심 웃음을 참으며 다시 물었다. [하지만 아까 그 봉무구천의 무학을 펼쳤을 때는 그냥 웃는 것이 아닌 것 같 던데?] 황원원은 가볍게 미소지으며 대답했다. [하긴, 그 때의 웃음은 다소 의미가 있는 것이었어요.] [......] 제갈신중은 묵묵히 황원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황원언은 그의 시선을 의식하고 살짝 안색을 상기시키고는 말을 이었다. [당신이 그때 고개를 갸웃거린 것은 바로 저의 무학 가운데 어떤 이상한 점을 느꼈었기 때문이 아니었나요?] 제갈신중은 그녀가 자신의 심경을 훤히 알고 있는 것을 보고 즉시 전음으로 다시 물었다. [바로 그렇소. 나는 당시 당신의 그 무학이 어딘지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운 것 을 느끼고 고개를 갸웃거렸던 것이오.그래,어디 몸이라도 아픈 것이오?] 이때의 그의 전음은 입술은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설령 바로 앞 자리에 앉은 사람도 그것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였다. 겉으로 보기에 그들은 그저 다정하게 식사만 하는 것으로 보였다. 황원원은 가볍게 웃으며 그를 보았다. [제가 정말로 몸이 아픈 것처럼 보이나요?] 제갈신중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아니오. 나는 단지 아까의 그,그 일이 너무 당신에게 부담을 주었나 하는 것이오.] 황원원은 은근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는 오히려 행복할 뿐이지 아무렇지도 않아요. 그리고 당신에 저의 무공이 부실했던 것도 아니고요.] (......?) 제갈신중은 의아해졌다. [아니 그럼 어찌된 일이오?] 황원원은 대답했다. [저의 무공이 이상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당신의 안목이 크게 달라졌던 거 죠.전에는 저의 무공에서 헛점을 발견할 수가 없었지만, 이제는 오히려 저의 무공에서 그런 헛점들을 알아차릴 정도로 당신의 무공이 발전한 거예요.그런 이유를 정말 모르시겠어요?] 제갈신중은 다시 의아해졌다. [그런데 어째서 당신은 웃은 것이오?] 황원원은 미소했다. [저는 당신이 이제는 저보다 높은 경지에 도달한 것을 알고는 기뻐서 웃은 거 예요. 당신처럼 그런 경지에 오르는 것은 누구나 꿈꾸는 것인데,그리 쉬운 줄 로 아세요?] 그렇다! 기실 황원원은 이미 어느정도 스스로의 한계를 느끼고 있는 중이었는데 제갈신 중의 그 한계를 깨버렸으니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 제갈신중은 문득 가슴의 열기가 치솟는듯하여 급히 다시 물었다. [그럼,내가 무형검의 경지에 도달했다는 말이오?] 황원원은 웃으며 대꾸했다. [아마 그럴 거예요.] 기실, 황원원의 무학경지는 광검 중에서는 최후의 경지에 도달해 있는 것이기에 그 런 말을 한 것이었다. 그런데, 제갈신중이 마악 뭐라고 질문을 하려는데 문득 앞쪽의 자리에서 무당파의 옥 허진인이 입을 열어 황원원에게 묻는 것이었다. [무량수불! 곡주께서는 앞으로 본맹이 사태를 헤쳐나가려면 어떻게 해야한다 고 생각하십니까?] 황원원은 내심 전음으로 속삭이던 것을 들킨 듯하여 약간 흠칫해야며 그를 향 해 대답했다. [저는 중요한 것은 강호의 평화를 위해 헌신하려는 여러분들의 마음자세라고 생각해요.만일 여러분의 뜻이 모아진다면 우리들은 성의를 다해서 도울 생각 이예요.] (......) 옥허진인은 잠시 황원원의 말을 음미해 보는 듯 하다가 다시 물었다. [무량수불, 본래 모든 일에는 그 일을 책임지고 처리하는 우두머리가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본맹의 맹주께서 잠시 자리를 비우셨으니 곡주께서 잠시 그 자리를 받으심이 어떻겠소이까?] (......!) 황원원은 비로소 상대방이 하는 얘기가 그저 농담이 아니라는 것을 간파하고 는 정색하고 대답했다. [그건 옳지 못해요. 저희들은 비록 무공은 다소 자신이 있다고는 하나 아직 경 륜은 여러분에 비하면 부족할 거예요. 만일 두 분의 태상봉공 가운데에서 어느 한 분이 이끌어 주시면 저희들은 그저 옆에서 도와드리도록 하겠어요.] 순간, 옥허진인은 왠지 다소 못마땅한 어조로 언성을 높이며 고개를 젓는 것이었다. [무량수불, 불가하외다! 곡구께서는 지금 너무나도 한가하시군요? 현재의 상황 을 아시고도 그런 한가하신 말씀을 하시는것입니까?] 황원원은 느닷없는 호통소리를 듣게 되어서 다소 어리둥절해 하며 되물었다. [그럼 도장께서는 제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거죠?] 옥허진인은 엄숙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현재 우리는 이미 삼대마세 이외에도 여러곳의 세외팔세 가운데의 사람들이 나타났다는 것을 알고 있소이다.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과거의 신의를 저버리 고 정작 무림의 장래를 위해 걱정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는 실정이외다.이제 머지않아서 삼대마세가 본맹으로 들이닥칠 것은 뻔한 일이고 말이오......그런 데,] 옥허진인은 잠시 한숨을 내쉬고 다시 말을 계속했다. 이 순간 그의 두눈에서는 흡사 화광과도 같은 열기가 일어나고 있었는데, 그것은 겉으로 보기에 소탈해 보이기만 한 그가 기실은 그런 강인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것을 알게 했다. (......) [지금 맹주께서는 본의 아니게도 모습을 보이지 않으시고, 정말로 앞장서서 목 숨을 걸고 사태를 해결해야할 사람들이 그저 옆에서 지켜보고나 있겠다니 대 체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곡주께서는 맹주라는 직위가 무슨 감투나 되는 줄 로 알고 그러시는 것입니까? 이제 만일 곡주께서 나서시면 누구도 반대하지 않을 것이고, 절망에 빠진 무림을 구할 수 있는 길도 열리게 될 것이오!] ......! 황원원은 그 충직한 기개가 넘치는 이 노도장의 말을 듣고는 그만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처음에는 혹시 이들이 자신들이 나타난 것을 경계하지 않을 까 하고 우려하고 있었다. 하지만, 뜻밖에도 이 노도장의 말을 들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근래 삼사십 년 간을 무림은 평온한 가운데 중흥기를 맞이하였는데, 실로 그것은 이런 인물들이 있었기 때문이며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었다. (이들은 정말 훌륭하신 분들이로구나!) 황원원은 그만 자신이 말을 너무 쉽게 해버린 것을 약간 후회했다. 그녀는 따라서 즉시 웃으며 그에 대한 해명을 하려고 했다. 헌데 그때의 일이었다. 식사가 거의 끝나가는 무렵인데 갑자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앗! 침입자다! 잡아랏!] 황원원이 마악 입을 열려고하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그런 외침이 터져나오면서 주위가 돌연 소란스러워지는 것이었다. ......! 제갈신중 등은 그것이 가까운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인 것을 알고 저마다 신형 을 일으켰다. [어디에 침입자가 나타났다는 말인가?] 대청안에서도 부산하게 그에 호응하는 소리도 높아졌다. (......?) 제갈신중 등은 그 소란스러운 광경을 보자 문득 자신들이 아직 한 사람을 찾 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은 처음에 들어오면 바로 기노를 찾으려고 했었으나, 느닷없이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고 대화를 나누는 바람에 미처 그럴 사이가 없 었다. 아니, 기실 더러 생각나기는 해도 아직 어떤 사건이 터지지는 않는 것 같아서 필시 그들이 온 것을 전해듣고 제발로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침입자라는 고함소리가 상당히 귀에 익은 것을 알고는 그들은 갑자 기 마음이 불안해졌다. 제갈신중의 일행의 생각은 한결같이 그와 같았다. 하짐나, 운명은 공교롭게도 바라지 않은 쪽으로 늘상 기우는 것일까? 그 소리가 터져나온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마치 비맞은 개처럼 엉망진창의 몰 골을 하고서, 후문을 통해 대청안으로 기어들어온 사람이있었으니 놀랍게도 기노였다. -기노. 일행은 기가 분명히 기노라는 사실을 확인하기는 했으나 일순 그것을 부정하 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다. 이 기노는 우선 두손으로 겨우 후문을 밀어젖히고 흡사 개처럼 기어들어 왔는 데 바지는 오줌으로 젖어있는 듯 했고, 마치 무엇에라도 홀린 사람처럼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허겁지겁 무엇인가를 찾 는 데 흡사 미친 것 같았다. 이게 대체 왠일일까? 본래 기노는 다소 괴팍하기는 했어도 그래도 어느 정도 소탈한 면모도 있었고 다소 소심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약간은 탈속적인 면모가 엿보이는 노인이었다. 그는 하늘을 간단하게 날아 다니는 초인간의 능력을 지닌 사람이었으며 결코 이렇게 개처럼 기어 다니는 사람은 아니었다. 지금 그가 늘상 가지고 다니던 바둑판과 바둑돌 등은 전혀 보이지도 않고 있 었다. 기노는 갑자기 왜 이렇게 변한 것일까? 혹시 누군가를 만나서 저렇게 당한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대체 누가 기노를 저렇게 만들어 놓은 것일까? 이미 영웅맹주도 실종되고하여 일행은 일시 이 영웅맹의 내부에서 기노를 그 렇게 할만한 실력자가 있다고는 믿기지 않았다. 일행이 그래도 기노에게 그리 급하게 연락을 취하지 않은 것도 사실은 그의 무공을 믿었기 때문이며, 이런 몰골이 되어 나타나리라고는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이 영웅맹에서 현재,최고 실력자라면 만공선사와 옥허진인일 것이고 그들의 능력은 그저 수곡사로와 비슷한 수준일 뿐이었다. 게다가 지금 그 두사람은 일행과 함께 있는 상태가 아닌가? (혹시 영웅맹주가 다시 나타난 것이 아닐까?) 제갈신중 등은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설사 그 영웅맹주가 다시 나타나서 기노에게 손을 썼다고해도, 그저 심하게 부상을 입을 정도여야지 어떻게 저렇게 반쯤 미친 사람이 돌 수 가 있겠는가? 오죽했으며 일행이 처음에는 그가 기노가 아니라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침입자를 잡으라고 외치는 목소리가 급격하게 가까워지는 것을 보고 그 침입 자가 바로 기노라는 사실을 간파한 일행은 일단 머저 그를 구하려고 했다. 과연 아니나 다를까? 일행이 미처 탁자를 벗어나기도 전에 다시 후문이 벌컥 열리더니 아주 낯익은 얼굴들이 빠르게 달려들어와서, 삽시간에 기노의 주위를 살벌하게 포위해 버리는 것이 아닌가? [사,살려줘! 살려줘!......] 기노는 그들을 보자 마치 흉신악살이라도 대한 듯이 허둥대며 비명을 질러대는 것이었다. 그 게거품을 흘리면서 비명을 질러대는 기노를 내려다보며 음악한 표정들을 짓고 있는 사람들! 그들은 바로 남궁검민,당백승 등의 무리였다. 제 44 장. 몰려드는 세외팔세. 제갈신중 등은 그 외치는 소리를 듣고도 내심으로는 약간 설마하고 있었으나 정작 그들을 보게 되자, 크게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으아아......사,살려줘 제발!] 바닥에서 설설 기면서 연신 비명을 질러대는 기노를 보다못해 금노가 달려가서 남궁검민 등을 헤치고 얼싸안았다. [막내! 막내야!] 금노가 껴안고 소리치자 기노는 잠시 안정을 되찾은 것 같았다. 하지만, 이내 그는 혼절한 듯이 그대로 눈을 까뒤집고 늘어져 버리는 것이었다. ......! 그래서 식사시간이던 이곳 대청은 갑자기 살벌한 시장바닥처럼 변하고 말았 다. 금노가 기노를 보고서 이러둥절해 있는 상황에서도 남궁검민 등의 사람등은 병장기를 뽑아든 채로, 여전히 그 포위망을 풀지 않고 있었다. 주위에 몰려든 사람들 가운데에서 남궁세가의 가주인 제왕신검 남궁수휘가 앞 으로 나서서, 자신의 아들인 남궁검민을 향해 물엇다. [민아! 이게 무슨 일이냐?설마 저 사람이 적의 첩자라도 된다는 말이냐?] (......) 남궁검민이 다소 머뭇거리고있는 사이에 당백승이 나서서 공손히 예를 취하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남궁백부님! 저 자는 본래 무단히 이곳으로 침입하여 우리의 동태 를 살피고 있었고,게다가 우리를 보자마자 저렇게 도망치고 있으니 어찌 적의 첩자가 아니겠습니까?] (......!) 남궁수휘는 뭔가 상황을 눈치챈 듯 눈빛을 빛내며 다시 남궁검민에게 물었다. [그럼,너희들이 저 사람을 저렇게 만들었다는 말이냐?] 남궁검민은 부친의 시선이 자신에게 강하게 향해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직 접 대답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닙니다......저희들이 저자를 보았을 때에는 이미 저렇게 되어 있었습니다.] ...... 사천당문의 가주 만류귀종 당염의가 나서서 군웅들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자,여러분! 우리는 우선 저자에게 몇가지의 사항을 물어봐야 할 것 같은데,어 떻게 생각하십니까?] 금노가 그 말을 듣고 가뜩이나 화가 난 상태라 고개를 쳐들고 소리쳤다. [빌어먹을! 우리는 모두 한형제이니 그에게 물어보려거든 나에게 물어보아라!] (......!) 당염의는 날카로운 눈빛을 번뜩이며 금노를 향해 음침하게 물었다. [그렇다면 당신이 모든 책임을 질수가 있다는 말이오?] 금노가 기노를 끌어안고 신형을 벌떡 일으키며 대꾸했다. [그렇다! 네놈은 어쩔테냐?] 당염의는 아주 음침한 웃음을 흘리며 다시 되물었다. [그렇다면 당신들은 어째서 한편으로는 정인군자인 척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는 저 사람을 보내 본맹을 정탐하려고한 것이오?대체 그 저의가 뭔지 말씀해 줄 수가 있겠소?] 금노는 이미 크게 화가 난 터라 거칠 것이 없이 대꾸했다. [그렇다! 우리는 너희 영웅맹을 박살내려고 작정을 하고 온 사람들이다! 너희들 이 감히 우리를 어떻게 할 수가 있을 거라고 믿는다는 말이냐?] 당염의는 그말에 전신의 공력을 끌어올리고 음산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으흐흐! 혹시 그것은 너무 지나치신 말이 아니오?이곳이 우리 영웅맹의 총단 이라는 사실을 잊은 것 같은데?] 그때였다. [아마타불......!] 갑자기 크게 긴장된 가운데 만공선사가 웅혼한 음성으로 불호를 외우며 앞으 로 나섰다. 그는 먼저 당염의를 향해 말했다. [당시주! 노납이 보기에 이 일은 단순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 같으니 분기를 거두시고 그만 물러서는 것이 어떻겠소이까?] 당염의가 약간 놀란 표정으로 반문했다. [아니 단순한 오해라고요? 대사님께서는 지금의 상황을 보시고도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까?] 만공선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미타불,그렇소이다.이 일은 단순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며 노납이 보증할 수가 있소이다.] 당염의는 뜻밖이라는 듯이 바라보다가 다시 힘을 주어 물었다. [대사께서 그들을 비호하시다니 실로 의외의 일이로군요! 하지만 만일 이일에 어떤 문제가 발생한다면 대사께서 책임을 지시겠습니까?] 만공선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엄숙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미타불,물론이오.만일 나중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노납의 이 늙은 목숨 이라도 기꺼이 바치겠소이다.] ......! 당염의 등은 그 말에 다소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뒤로 물러섰다. 그들로서는 만공선사가 왜 그렇게 제갈신중 등을 비호하는지 알 수가 없지만, 그래도 일단은 무림의 최고원로라고 할 수가 있는 만공선사가 자신의 목숨까 지 바치겠다고 하므로 감히 더 이상 나서서 말할 수가 없었다. 제갈신중과 황원원은 기실 사태가 워낙에 뜻밖이고 또한 괴이하여 자신들이 직 접 나서지 못하고, 일단은 사태가 돌아가는 광경을 보는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처음 그들이 예상했던 것보다도 더한 최악의 상황인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서도 이렇게 만공선사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자신들을 비호해주자 그야말로 고맙기 짝이 없었다. 만공선사는 이어 제갈신중을 향해 합장하며 말했다. [두 분은 피곤하실 텐데 그만 방으로 들어가서 쉬시는 것이 어떻겠소?] 그것은 즉, 기노의 상태가 워낙에 좋지않으므로 빨리 들어가서 그를 치료해 주라는 말이었다. 제갈신중은 그와 같은 만공선사의 배려에 내심 고마와서 즉시 포권하며 대꾸 했다. [말씀대로 따르도록 하겠습니다.대사님!] 그때, 문득 황원원의 귓전으로 옥허진인의 전음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오늘 밤에 이곳에서 대사를 논의할 생각이니 두 분은 필히 참석해 주시기 바 라오!] 황원원은 고개를 가볍게 끄덕인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지금 남궁검민이나 당백승 등은 만공선사 등이 나서는 바람에 부득이 뒤로 물 러나 있었다. 그들은 처음에는 기세를 올렸으나 당염의와 마찬가지로 이제는 더 이상 나설 수가 없는 입장이었다. 그만큼 당금의 무림에서 아직도 만공선사의 덕망은 무시할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현재 남궁검민 등과 함께 나타난 사람들 가운데 또 한 사람의 낯익은 사람이 있었다. 그는 바로 제갈신중의 친형인 제갈의중이었다. (......) 제갈신중은 갑작스런 변고에 경황이 없다가 이윽고 그쪽으로 다가가서 웃으며 인사를 했다. [형님,그간 무고하셨군요?] 그런데, 뜻밖에도 제갈의중은 그저 멍하니 서서 고개만 끄덕일 뿐 반가운 표정도 없었 고 말도 없는 것이 아닌가? (......?) 그것은 마치 제갈보중 등과 마찬가지로 제갈신중을 냉대하는 듯한 분위기였 다. 혹시 그는 이미 제갈보중 등으로부터 얘기를 잘못 전해들어서 제갈신중에 관 하여 일종의 오해를 하고있는 것이 아닐까? 제갈신중은 친형의 그러한 모습을 보자 내심 깊은 괴이한 느낌이 들었으나, 지금은 상황이 매우 좋지 않으므로 이야기를 좀더 나누어볼 여유도 없이 그대 로 밖으로 나서고 말았다. * * * 안내하는 사람을 따라서 일행이 한 객사에 들어섰을 때에는 주위가 약간 어두 워지는 무렵이었다. 그 객사에는 손님들을 묵어가게 하기 위해 지어놓은 듯 많은 방들이 있었는데 지금의 손님은 일행밖에는 없었다. [그럼 편안히 쉬시기 바랍니다.] 안내하는 사람이 정중히 예를 차리고 물러간 이후에 황원원은 즉시 기노를 침 상위에 눕혀서 치료하기 시작했다. 제갈신중은 만일을 대비하여 실내의 음성이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음파를 차 단시켰다. 황원원은 말 그대로 성수곡의 곡주인 성수신의이므로 누구를 치료하는 데에는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다. 황원원은 우선 잠시 기노의 손목을 잡고 진맥을 한 뒤에 심호흡을 하고 그의 신형을 위로 떠올렸다. ......! 그렇게 신형을 위로 떠올려서 치료하는 수법은 제갈의중도 이미 두 번이나 당 한 적이 있었다. 당시에 기노와 금노가 사용했던 무공은 성수곡에서 의술에 많이 이용되는 금광 지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황원원이 사용하는 것은 예의 그 봉무구천이었으며, 그녀가 그 황금조를 일으켜서 기노를 치료하는 동안에 방안에 흡사 꿈결과도 같은 황급빛 노을광으로 가득 들어찼다. 그런데, 쉽게 끝날 것 같은 황원원의 치료는 좀처럼 끝나지 않았고, 한차례 치료를 마치고 한숨을 돌리면서 화노에게 약방문을 가르쳐주고 약을 제 조하게한 다음에, 이윽고 다시 반시진여나 치료하고 나서야 그녀는 뒤로 물러서서 운기조식에 들어갔다. 실로 그것만 봐도 기노의 상태가 얼마나 위중했는가를 알 수가 있을 것 같았 다. 대개 그렇게 치료를 하는 것은 거의 무공을 겨루는 것 만큼이나 진력의 소모 가 따르게 되기 마련이다. 황원원은 약 일간 가량 운기조식을 하고 나서 다시 화색이 도는 얼굴로 몸 을 일으켰다. 제갈신중은 그녀에게 물었다. [어떤 것 같소?] 황원원은 다소 곤혹시러운 표정으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산독에 의한 중독이예요.] (......) 제갈신중은 그 말을 듣고는 도리어 약간 어리둥절해 졌다. 황원원의 대답 자체는 이상할 것이 없지만 지금 그녀의 곤혹해 하는 태도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만일 그녀가 천하의 질병에 관해 소상하게 알고 있지 않다면 감히 성수신의 를 자처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런데, 대체 지금 그녀를 곤혹하게 만드는 기노의 병명은 무엇이길래 그러는 것일까? 제갈신중은 다시 물었다. [그런데 무슨 일이라도 있소?] (......) 황원원은 다소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사실 저의치료는 아까 불과 일각 정도에서 끝이 났었어요.하지만 이상하게도 기노의 두뇌에 먹구름이 끼어 있어요.그래서 제가 오랫동안 시간을 끌었던 거 예요.] 제갈신중은 기노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기노는 이미 화노가 처방대로 조제한 해독약을 복용하고 얼굴에 화색이 돌아온 상태에서 침상위에서 잠들어 있었다. (......?) 제갈신중은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치료가 실패했다는 말이오?ㅓ] 황원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제가 노력을 했지만 그 먹구름은 지울 수가 없었어요.제가 보기에 ,그 것은 병이 아닌 것 같아요.] 제갈신중은 다시 물었다. [병이 아니라면, 그럼 무엇이라는 말이오?] 황원원은 다소 주저하다가 이윽고 결심한 듯이 대답했다. [아마도 그것은 일종의 심령금제일 거예요.] (......!) 제갈신중은 그만 눈이 휘둥그래졌다. [심령금제?] 금노도 옆에서 듣고 있다가 놀라서 떠들었다. [아니 그럼 막내가 최면술에 걸렸다는 말입니까?] 황원원은 고개를 끄더였다. [그것은 아주 고도의 심령대법이예요.] 제갈신중은 다시물었다. [고도의 심령대법이라면,그럼 현현사의 현현괴로에게 당한 것이라는 말이오?] 황원원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제가 보기에 이 것은 과거의 현현대법과는 약간 다른 것 같아요.일단 심령금 제에 당했다고 해도 거의 표시가 나지 않는 것이 다른 점이죠.] 제갈신중은 어리둥절해 졌다. [그럼 현현괴로가 아니라는 말이오?] 황원원은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당금 무림에서 심령금제술의 최고봉은 그일테니, 당연히 그 현현괴로라고 봐야 하겠지요.하지만 괴이한 점은 이번의 사건이 영웅맹의 내부에서 일어났다는 거 예요.] (......?) 제갈신중은 그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그 현현괴로가 이 영웅맹의 내부에 침투해 있다는 말이오?] 황원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할수가 있겠지요.] 제갈신중은 다시 물었다. [하지만,만일 그라면 어째서 또 산공독을 사용한 것일까?자신의 수작을 은페하 기 위해서였을까?] (......?) 제갈신중은 다시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야.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오히려 더욱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 아닌가?] 황원원은 고소하며 대꾸했다. [모든 사항은 거 기노가 일어나서 말해주는 것이 가장 확실할 거예요.] (......) 제갈신중은 다시물었다. [그렇다며 기노는 언제 일어나는 것이오?] 황원원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 그의 몸의 중독은 완전히 해소되었지만 아직 심령금제가 풀리지 않았으 므로 앞으로 그것이 풀려야만 깨어날 수가 있을 거예요.] 제갈신중은 어이가 없었다. [아니 그럼 앞으로 언제 깨어날지 모르는 것이 아니오?] 황원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우리는 기다리는 수밖에 없어요.] ...... 제갈신중 뿐만 아니라 수곡사로의 세명도 그말을 듣고 일시 아연실색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뜻밖에도 일단 영웅맹의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그렇게 어이없는 기습을 당하고 만 것이다. 그렇다면 그 흉수는 정말 누구일까? -과연 예상대로 신비의 현현괴로일까? 제갈신중은 문득 다시 입을 열어서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아무튼,그 흉수는 우선 이곳의 사정에 대해서 훤히 알고 있는 자일 것이고,또 한 그 능력과 심계가 매우 뛰어난 자 일 것 같소.그리고 ......뭔가 의도하는 바가 있겠지.] 황원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다. [그래요.그리고 그 흉수가 바로 당금의 상황을 배후에서 조종하는 인물일 가능 성이 있다는 예감이 드는군요.영웅맹의 내부에서도 그토록 마음대로 할 수가 있으니까 말이예요.] (......) 제갈신중은 곰곰히 생각하다가 그녀에게 다시 물었다. [헌데 그 흉수는 어째서 아직 우리에게는 손을 뻗치지 않은 것일까?] 그런데, 황원원은 그 말을 받으려다가 문득 입을 다 물었다. 그 순간에 밖에서 누군가가 이 방쪽으로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갈신중은 역시 음파를 차단했던 공력을 풀어버렸다. 과연 아니나 다를까? 이윽고 문이 열리더니 예의 그 안내자가 나타나서 정중한 태도로 이렇게 말하 는 것이었다. [지금 대청에서 회의가 있으므로 두분께서는 잠시 오시라는 말씀입니다!] * * * 제갈신중과 황원원은 기노가 아직 혼수상태이기 때문에 나머지 수곡사로들을 그 객사에 남겨두고, 단 둘이서 안내자를 따라서 다시 그 대청에 이르렀다. 시각은 이미 해시 무렵이었다. 대청안에는 아까보다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고 탁자에는 음식들이 가득하 게 차려져 있었다. 그쯤 되고 보면 이미 모두가 취흥이 도도해져 있을 법 한데도, 그러나 장내는 기이할 정도로 조용했다. 너무나도 조용했기 때문에 냉막하게 느껴졌고, 그걸을 의식해서인지 누구 하나 자신의 앞에 놓인 술을 마시려는 사람은 없었 다. ......! 제갈신중과 황원원은 안으로 들어서려다가 그와 같은 크게 경직된 분위기를 느 끼고 함께 의아해졌다. 그들은 혹시 이 사람들이 아까 기노의 문제를 두고 다시 시비를 걸려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불행인지 다행인지는 모르지만,그것은 아니었다. (......) 제갈신중은 황원원과 함께 안으로 들어서서 중앙의 자리로 나아가자 만공선사 가 두 사람을 자리로 안내한 뒤에 이렇게 말했다. [아미타불,드디어 이어 벌어지고 말았소이다. 제갈시주1] (......?) 제갈신중은 자리에 앉으면서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무슨 큰일이 벌어졌다는 말씀입니까?] 만공선사는 거저 말없이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세장의 명첩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각기 검은색,붉은색,그리고 회색으로 되어 있었는데, 그 위에는 각기 다음과같은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제사대 일월악마성 구양사립. -제삼대 태양상인 적용홍광. -제이대 현현괴로. 제갈신중은 절로 놀라며 다시 물었다. [아니 그것은 바로 당금의 삼대마세인 일월신교, 태양마교, 현현사의 주인들의 명첩이 아닙니까?] 명첩에는 일월신교나 태양마교의 주인들의 이름은 나와 있었으나 역시 현현사 의 주인의 이름은 나와 있지 않았다. 만공선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렇네, 그것은 바로 조금전에 동시에 본맹으로 전달되었지.] 제갈신중은 무거운 표정이 되었다. [그럼 그들은 서로 한패라는 것을 이제 공공연히 드러낸 것이라는 말입니까?] 만공선사는 재삼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렇네, 게다가 그들은 명첩을 보냄과 동시에 내일 본맹을 쳐들어 오겠 다고하는 선전포고도 해왔지.] 제갈신중은 일순 그말을 듣고 절로 눈이 휘둥그래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바로 내일! ...... 이거 너무 빠른 것이 아닐까?) 제갈신중은 혼자 심각하게 생각해 보다가 만공선사에게 다시 물었다. [그럼 대사께서는 어떤 방책을 세우고 계신 것입니까?] 그 말에, 문득 이번에는 옥허진인이 나서서 품속에서 무엇인가를 꺼내보이며 말했다. [문제는 지금 그것뿐만이 아니네.] (......?) 제갈신중은 그쪽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눈이 크게 떠졌다. 지금 옥허진인이 들고 있는 것도 역시 세장의 명첩이었다. 각기 자색,청색,백색으로 되어 있는 그 명첩들, 바로 그 명첩들에는 각기 다음과 같은 글귀가 새겨져 있는 것이 아닌가? -제십육대 만화성모 운성죽. -제십칠대 천검성자 상관구패. -제칠대 도황제 곽자성. 제갈신중은 느닷없는 사태를 당하여 그야말로 눈이 앞으로 튀어나올 듯이 놀 랐다. [그렇다면 그 명첩들도 함께 온것이라는 말입니까?] 그 명칭들은 바로 성모궁,검총,도막의 주인들을 나타내고 있었다. 제갈신중은 실로 이제서야 장내의 사람들이 왜 그렇게 심하게 경직되어 있었 는지를 알 것 같았다. 알고보니 이제는 천륭무가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세외팔세가 나타나서 공공연 히 모습을 드러낸 셈이었다. 지금 보이는 명첩들 가운데에는 상관구패와 같은 제갈신중이 미리 예상했던 인 물들도 속해 있었다. 제갈신중은 순간 전날에 상관구패가 만화성모의 수하에게 인도되어 사라지던 광경을 상기했다. (이건 어이가 없는 일이군!) 옥허진인은 비교적 침착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이 세 개의 명첩도 거의 비슷하게 오기는 했지만,그들은 선전포고를 한 것은 아니라 그저 내일 한 번 놀러오겠다고 했네.] (놀러 오겠다고?) 제갈신중은 그 여섯명의 초인간들이 한꺼번에 거의 비슷한 시기에 나타난다는 사실에, 어떤 기묘한 예감을 느꼈다. 제갈신주은 문득 다시 물었다. [하지만 그들은 어째서 내일 오겠다는 것입니까?오늘 밤에 올 수도 있지 않겠 습니까?] 옥허진인은 감탄한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아주 예리한 지적일세.사실 우리도 조금전에 문제를 논의하고 있었지.사실 그 들이 우리에게 방비할 시간적인 여유를 주겠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뜻으로 들리기도 하네.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그들의 술책일지도모르지.] 제갈신중은 안색이 무거워졌다. [그럼 오늘 밤이라도 습격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까?] 옥허진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모두가 모여있는 것이라네.] 제갈신중은 다시 물었다. [그래서 지금 많은 인원들이 연무장에 집결해 있는 것입니까?] 옥허진인은 대답했다. [현재 우선적으로 영웅맹의 인원들은 사방의 경계를 맡고,나머지 우리들이 데 려온 인원들은 대개 연무장에 모여있는 상태일세.] (......) 제갈신중은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질문했다. [하지만 만일 그 나중에 명첩을 보낸 세 사람이 삼대마세를 막아준다면 우리 로서는 그다지 위험은 없는 것이 아닙니까?] 만공선사가 그 말을 받았다. [그것은 현재로서는 거의 믿을 수가 없는 일이네.게다가, 우리는 지금 한가지 의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있는 중이네.] 제갈신중은 물었다. [그 세외팔세의 사람들이 모두 한꺼번에 이곳에 나타난 것은 누구의 조작일 가 능성이 있다는 것입니까?] 만공선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미타불! 그렇네.우리는 일단은 그러한 생각마저 해두어야 하는 것이 아니겠 는가?] (......?) 제갈신중은 문득 기노가 심령금제에 걸려 있다는 얘기를 할까 하다가 다소 주 저하며 화제를 돌렸다. [지금도 저의 부친께서는 소식이 없습니까?] 만공선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 따라서 우리는 일단 이 자리에서 당금의 일을 헤쳐나갈 새로운 지도 자인 임시맹주를 선출하기로 의견을 모았네.아미타불.......] 제갈신중은 그 의견에 즉시 수긍했다. 역시 어려울 때에는 모두가 합심하여 나아가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기 때문이 었다. 하지만, 과연 그 임시맹주를 누구로 선출할 것인가? 제갈신중은 은근히 만공선사와 옥허진인의 시선이 황원원에게 향하는 것을 느낄수가 있었다. 실로 그녀라면 강호의 명문중의 명문이요, 대대로 강호에서 무수한 선행을 해왔었기 때문에 누구라도 그다지 반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제갈신중 역시 그것에는 찬성이었다. 그는 곰곰히 생각에 젖어 있는 황원원을 의식하며 일부러 만공선사에게 다시 질문했다. [그럼 그 임시맹주는 이미 선출하였습니까?] 만공선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렇네.아미타불!] 제갈신중은 다시 물었다. [그럼 그 사람은 누구입니까?] 옥허진인이 나서서 대신 대답했다. [바로 자네의 안사람인 성수곡의 주인 황소저일세!] 제 45 장. 변괴와 변괴. ......! 그것은 이미 누구도 예상할 수 있었던 결과였다. 그러나, 황원원은 그 애기를 듣자 일순 안색부터 불그레하니 물들었다. 옥허진인은 그것을 보고 이 자리에서 당장 승낙을 받아 내려는 듯이 그녀를 향해 물었다. [무량수불! 황소저! 우리는 이미 조금전에 모든 사항을 의결하였소이다.당금의 무림을 위하여 본맹의 임시 맹주가 되어 주시겠소?] 황원원은 그 얘기를 듣자 잠시 망설이더니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아니예요.현재 이곳에는 저 이외에도 더욱 훌륭한 조건을 갖춘 사람이 있는데 제가 왜 임시맹주가 되겠어요?] 만공선사가 나서서 되물었다. [하지만 그 사람은 나는 아닐테고 ......혹시 소저의 부군을 말하는 것이 아니 오?] 그 말에, 비단 장내의 모든 사람들도 놀랐을 뿐만 아니라 제갈신중이나 황원원 같은 당 사자들도 놀랐다. 제갈신중은 혹시 만공선사가 자신의 무공을 알아보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 고 의아해 했다. 기실 그의 무공은 그보다 훨씬 무공이 강한 곽자성 등도 미처 알아보지 못했 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어지는 만공선사의 말은 이내 그의 그러한 의문을 말끔히 해소시켜 주었다. [하긴,제갈시주로 말하자면 지극히 총명하고 덕망이 있으며 부친의 능력을 이 어받았을 테니 임시맹주가 되는 것이 어렵지는 않을 것이오.] 만공선사는 황원원이 옆에서 도와주는 것을 은근히 염두해두고 그런 말을 한 것이었다. (역시 모르고 있었군!] 황원원은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즉시 제갈신중의 무공에 대해서 말하려고 했다. 그런데, 느닷없이 그녀의 귀에 제갈신중의 전음이 들려오는 것이었다. [원원! 내게 생각이 있어서 그너니,내 무공에 관한 얘기는 하지 마시오!] (......?) 제갈신중은 이어 웃으며 입을 열어 사람들에게 말했다. [대사께서는 저를 너무나도 추켜세우시는 군요. 하지만 우두머리는 역시 능력있 는 사람이 맡아야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특히 부친께서 실종되신 터 라 차마 그런 중책은 맡을수가 없군요.] 제갈신중이 이렇듯 사양하자 자연히 모두의 시선은 다시 황원원에게 향해졌 다. 황원원은 이에 문득 하는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 목청을 뽑아서 다시 말했다. [정히 그렇게 여러분들께서 권하신다면 그럼 저는 이제 더 이상 사양할 수가 없군요.하지만 우선 그 임시맹주의 직위를 수락하기 이전에 먼저 말해두어야 할 것이 있어요.말하자면 ......이것은 오직 당금의 사태가 해결되기까지의 임시 직이고,게다가 만일 도중에라도 현임맹주가 나타나면 제가 다시 물러난다는 조건이예요.] 만공선사는 합장하여 대꾸했다. [아미타불,그 조건은 들어드리지 않을 수가 없군요! 자! 이제 새로운 맹주께 서는 어서 단 위로 오르시지요!] (......) 황원원은 잠시 주저하다가 제갈신중을 그곳에 남겨두고 자신은 이윽고 걸음 을 옮겨 단위의 맹주의 태사의에 자리했다. 황원원은 만공선사와 옥허진인이 각기 태사의의 좌우에 시립하는 것을 보고 장내의 사람들을 향해 다시 말했다. [지금은 다급한 상황이니 그밖의 모든 절차는 생략하도록 하겠어요! 기왕에 여 러분이 이렇게 저를 임시맹주로 선출해 주셨으니,저는 앞으로 목숨을 다 바치 더라도 무림의 안녕을 위해 이번 사태를 수습하도록 노력하겠어요!] ......! 불과 조금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얼굴에 홍조를 떠올렸으나 그렇게 말하는 그 녀의 전신에는 갑자기, 여태 감추어 두고 드러내지 않았던 웅대한 기상이 구름처럼 피어오르는 것 같 았다. 따라서, 처음에는 단지 만공선사 등의 주도에 의해 따라야 했던 많은 사람들도 그 절 세미모의 여장부를 보자 그만 박수갈채를 절로 터뜨리게 되었다. 짝짝짝-! 모든 사람들은 기립하여 경의를 표했으며 다시 만공선사가 대표로 말했다. [아미타불! 우리 영웅맹이 당금에 이르러 맹주와 같은 분을 모시게 된 것은 실로 전 무림인들의 홍복이라고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저희 군웅들은 이순간 부터 맹주의 지시에 따를 것이며,만일 정당한 명령에도 불복한다면 어떠한 책 벌이라도 감수할 것을 맹세하는 바입니다.] 황원원은 손을 들어서 답례하고 모두를 착석하게 한 다음에 다시 말했다. [저는 덕망도 능력도 없지만, 이렇게 높으신 두 분 원로께서 손수 나서주시니 실로 마음 든든합니다.하지만,지금 이 자리에서 한가지의 제의를 드리는 바예 요.] ...... 황원원은 제갈신중을 가리키며 다시 말을 이었다. [저는 사실 조금전에 외람되지만 저의 부군을 임시맹주로 추천하려고 하였어 요.왜냐하면 그에게는 숨은 능력이 있기 때문이죠.실로 당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그의 능력이 절실하게 필요할 것입니다.따라서......그를 지금부터 본맹의 임시 군사로 삼고자 하는데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세요?] 만공선사는 미소하며 대꾸했다. [그야,혜안을 지니신 맹주께서 추천하시는 데 여부가 있겠습니까? 저희들은 마 땅히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옥허진인은 웃으며 도호와 함께 말했다. [무량수불! 지금은 무림을 위해 모두가 나서야할 때입니다.두 분이 그렇게 나 서신다면 누가 감히 말리겠습니까?] 이 옥허진인은 평소 성품이 소탈하여 존경을 받고있는 반면에 다소 급한 성격 도 있기 때문에 누구나가 절반쯤은 두려워 했다. 지금도 그가 나서자 장내의 많은 사람들은 누구도 감히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 다. 황원원은 그것을 보고 제갈신중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상공!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원하고 있으니 어서 이 단상으로 오르시는 것이 어떻겠어요?] 그녀는 이어 전음으로 다음과 같은 말을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여보, 죄송해요!] (여......여보라고?) 제갈신중은 내심 자신이 남들의 앞에 나서는 것을 꺼리고 있었는데 문득 그와 같은 황원원의 밀어를 듣게 되자 그야말로 가슴이 후끈 달아올랐다. [아, 알았소!] 제갈신중은 얼른 전음으로 대답해준 뒤에 자신의 얼굴의 상기된 빛을 지우려 고 애쓰며, 천천히 단상으로 올라가 황원원의 오른쪽에 섰다. 그는 자신이 황원원의 아랫사람이 된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군웅들을 향해 포 권하며 진지하게 이렇게 말했다. [저는 옛날의 선조이신 제갈무후보다도 훨씬 못하고,게다가 별로 능력도 없 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승낙해 주시니 미력이나마 맹주의 곁에서 최선의 노 력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 제갈신중의 음성은 그다지 크지 않았으나 마치 잔잔한 물처럼 조용하게 장내 에 울려퍼졌다. 헌데 바로 그때, 장내에서 한 사람이 일어서서 박수를 치며 소리쳤다. [두 분이 본맹의 맹주와 군사가 되신 것을 축하드리옵니다! 그런 의미에서 소 제가 축하의 술을 한잔 따라드릴까 하는데,괜찮습니까?] (......!) 그 소리에 비단 제갈신중 등만 아니라 장내의 사람들도 다소 놀랐다. 그렇게 소리친 사람은 뜻밖에도 당백승이었던 것이었다. 지금 그의 주위에는 어느새 들어왔는지 남궁검민,제갈보중 등이 모조리 자리 하고 있었다. 그들은 각기 손에 두어병씩의 술호로를 들고 있었는데, 누구도 그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황원원은 다소 생각하는 듯 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축하주를 주신다니 고맙게 받도록 하겠어요!] ...... 느닷없는 젊은이들의 출현으로 각 세가의 가주들은 일어서서 말리려다가 맹주의 말을 듣고 그만 두었다. 그들은 기왕에 그들의 나이가 서로 비슷하니 이번 기회에 친구가 된다면 좋으 리라는 생각에서였다. 따라서, 당백승이 단상으로 걸음을 옮기니 다른 젊은이들이 사방으로 흩어져서 술을 따 르기 시작하자 그들은 오히려 환영하며 즐겨 그술을 받아마셨다. 사실 황원원이 당백승의 술을 받아마시겠다고 한 것은 우선은 그녀가 어떠한 독이라도 대응할 자신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순간 어떤 예감을 느껴서 그 축하주를 받기로 한 것이었다. 당백승은 천천히 두 사람의 앞에 이르렀고, 이어 두 개의 빈잔을 꺼내서는 그 안에 호로 속의 술을 가득히 채웠다. 황원원은 미소하며 먼저 술잔을 들어 한모금을 마시고 다시 탁자위에 내려놓 았다. 그녀는 한순간 술을 마셨지만 이미 모든 독의 가능성을 검사하여 평온한 모습 을 보이는 것은 괜찮다는 뜻이었다. 제갈신중은 이어 주저없이 자신의 술잔을 들어 단숨에 비워버렸다. 그것을 보고 당백승이 다시 술잔을 채우며 제갈신중에게 말했다. [제갈형! 기왕에 술을 받으셨으니 석잔은 마셔야 하는 것이고,게다가 부인의 것까지 합쳐서 여섯잔은 드셔야 하는 것이 아니겠소?] 제갈신중은 웃으며 스스럼없이 대꾸했다. [그거야 무어 그리 어렵겠소?이제 우리는 한자리에 모였으니 앞으로는 화해하 고 함께 일 해보는 것이 어떻게소?] 당백승은 다소 음침한 표정이 되어서 대꾸했다. [제갈형이 일부러 나를 천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여섯잔의 술을 다 마시겠다 고 하는데, 소제가 감히 따르지 않을 리가 있겠소?] (......) 제갈신중은 당백승의 눈에 아직도 독기가 서려있는 것을 보고 다소 마음이 어 색해졌으나, 하는 수없이 이윽고 한잔씩 모두 따라주는 대로 여섯잔의 술을 마시고 말았 다. 헌데 바로 그때의 일이었다. 갑자기 당백승은 제갈신중이 술을 다 마시고 잔을 내려놓는 것을 보고서 고 개를 쳐들며 미친 듯이 앙천광소를 터뜨리는 것이었다. [으하핫핫핫! 이제 됐다! 이제야 네놈들이 걸려 들었군!] (......!) 제갈신중은 그 말을 듣자 문득 짐작가는 바가 있는 듯 눈을 크게 뜨며 당백승 에게 물었다. [아니,당신이 그럼 우리에게 암수를 썼다는 말이오?] ......! 그말을 듣자 일순 장내의 사람들은 크게 놀라 저마다 안색이 변해 비틀거렸 다. 뜻밖에도 자신들의 몸에 이상이 생기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장내의 군웅들은 실로 그와 같은 뜻밖의 일이 생겨날 줄을 몰랐기 때문에 크게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당백승은 그런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제갈신중에게 대꾸했다. [그렇다.나는 독을 사용했다!] 장내의 사람들은 더욱 경악했다. 보다못한 사천당문의 가주인 당염의가 당백승을 향해 소리쳤다. [승아!이게대체 무슨 짓이냐?어서 빨리 독을 풀어주지 못하겠느냐?] 당백승은 그말에 자신의 부친을 바라보며 음침하게대꾸했다. [아버님께서는 저의 이 일에 관여하지 마십시오! 저는 단지 저 두사람만 제거 하고 나면 곧 여러분의 중독을 풀어드릴 것입니다!] ...... 장내의 군웅들은 저마다 곧 크게 발작할 기세엿으나, 당백승의 그러한 말을 듣고는 이내 잠시 사태를 관망하려는 듯 진정하는 기미 를 보였다. 하지만, 그들은 느닷없이 어처구니가 없게도 나이어린 녀석들에게 뒤통수를 얻어맞은 꼴이 되었기 때문에, 상당히 불쾌해 했으며 마치 하나같이 도깨비를 만난 것 같은 표정들이었다. 당백승이 그렇게 말하자 장내의 인물들 가운데에서 만공선사와 옥허진인이 나 서서 말렸다. [아미타불,안되네! 황소저는 바로 우리의 맹주라는 사실을 잊었는가?] [무량수불! 그들을 치려거든 노도 등을 치고 지나가게!] 하지만, 만공선사와 옥허진인 역시 당백승의 말대로 중독이 되었는지 다리를 휘청거리 고 있었다. 당백승은 그들이 나서는 것을 추호도 두렵게 생각하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 [흐흐,당신들이 나선다고 해도 나의 이 일을 막을 수는 없는 일이지.지금 일부 러 시간을 끈하고 해도 해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이어, 그는 마치 보란 듯이 고개를 돌려서 자신의부친인 당염의에게 물었다. [아버님, 이 독이 무슨 독인지 아시겠습니까? 해독이 가능하겠습니까?] 당염의는 대단히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나로서는 이제까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기이한 절독이다.헌데 어찌 해독 할 수가 있겠느냐?......그런데 너는 정말로 이 일을 강행할 생각이냐?너는 결코 후회할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 당백승은 음침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염려마십시오!] 이 사천당문의 가주인 당염의는 가히 암기와 독의 대행가라고 할 수가 있었 다. 그런데, 그마저 해독할 수가 없다는 말을 듣자 사람들은 일순 대단히 놀라는 표정들을 지었다. 당백승은 은근히 그러한 분위기를 의식하는 듯 만공선사 등을 향해 음침하게 웃으며 말을 계속했다. [보다시피 그렇소.나는 비록 선배님들을 존경하지만, 만일 이 일에 방해를 할 경우에는 모든 것을 돌보지 않을 지도 모르오.그러니 현명한 선택들을 하시는 것이 어떻겠소?] 만공선사가 탄식을 하며 물었다. [아미타불,지금 자네가 요구하는 바가 대체 뭔가?] 당백승은 고개를 저으며 대꾸했다. [지금 내가 요구하는 바는 바로 저 두 사람의 목숨일 뿐이지 다른 것은 아무 것도없소.만이 그것만 성사되면 나는 정말로 여러분의 독을 풀어드릴 것을 약 속하겠소!] 옥허진인이 분기탱천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너는 나중에 책벌을 받는 것이 두렵지도 않다는 말이냐?] 당백승은 이에 음산하게 대꾸했다. [흐흐,그야 물론 나에게는 그런 대비가 없는 것이 아니오.나는 설마하니 여러 분이 나중에 나를 책벌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소이다!] 그 오만무례한 태도에 옥허진인도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것을 보고 이윽고 제갈신중이 다시 입을 열어 물었다. [당형,당신은 대체 무엇 때문에 그렇게 우리를 원수 대하듯 하는 것이오?] 당백승은 그 말에 돌연 이빨을 뿌드득 갈아부치며 차갑게 대꾸했다. [무엇 때문이냐구?흐흐흐! 바로 너희들 때문에 우리는 갑자기 무림에 설 땅이 없어지게 되었다! 그것은 곧 우리가 죽은 것이나 다름이 없지! 으흐흐흐! 그런 데도 너희들이 우리의 원수가 아니라는 말이냐?] 제갈신중은 절로 탄식하며 말했다. [그것은 당신등이 아주 오해한 것이오.우리는 당신들을 해칠 의사가 없고 또한 앞으로 사건이 해결되면 심산에 은거하려고 하는데 어찌 당신들의 장애가 되 겠소? 게다가, 만일 지금 뜻을 바꾸면 앞으로 우리가 당신들의 입지를 위해 애써줄 것이니,부디 마음을 돌리는 것이 어떻겠소?] 당백승은 그말에 다소 생각하는 듯 하다가 이내 음산하게 웃었다. [우리에게 뜻을 돌리라구? 그것은 웃기는 일니다! 예로부터 독하지 않으면 장 부가 아니라고 했다.나는 이미 칼을 뽑았는데 여기에서 그만 둘 것으로 아느 냐?흐흐흐,이제는 죽음이나 기다리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어, 당백승은 태연하게 걸음을 옮겨서 만공선사와 옥허진인의 혈도를 제압한 다음 에 다시 제갈신중의 앞에 이르렀다. 그는 그 두사람이 만일 사력을 다해서 덤빈다면 자신의 일에 지장을 줄 것이 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어이없게도 만공선사와 옥허진인,그 두명의 최고원로들은 당백승의 손속에 조 금도 저항하지 못하고 뻣뻣하게 굳어버리고 말았다. 당백승은 이어 도반삼양공이라는 가전내공을 일으키고 비서장이라는 장력으 로, 손을 휘둘러 누앞의 제갈신중의 머리를 소리없이 박살내려다가 문득 한가지 생각난 듯이 멈칫하고 웃으며 다시 입을 열어 말했다. [아참! 그러고보니 너는 아직 한가지 궁금한 일이 있겠구나! 너는 그래도 당금 강호의 특이한 인재라고 할 수가 있는데,그렇게 의문을 가지고 죽어서는 미안 한 노릇이지.] [......] 제갈신중은 다소 넋을 놓은 듯한 표정으로 물끄러미 당백승을 바라보고 있었 다. 이순 간에 비록 중독되어 고통스럽기는 해도 모든 장내의 군웅들의 시선은 그 쪽으로 일제히 집중되어 있었다. 당백승은 제갈신중과 황원원을 돌아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너는 조금전에 내가 너희들을 중독시켰다고 했을 때 다소 이상했을 것이다.분 명히 마시는 술에는 독이 없었고,게다가 저 두분의 최고원로들은 전혀 술을 마시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흐흐흐......그것이 바로 성동격서,허즉실, 실즉허의 전법이라는 것을 설마 알수가 없었겠지?] 말과 함께 당백승은 자신의 왼쪽 허리춤에 매달려 있는 술호로를 가르켰다. [흐흐흐, 그 독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그리고 그러한 독은 지독하여 해약이 없 는 한은 설사 세외팔세의 우두머리라고 해도 배겨날 수가 없을 것이다!] ......! 사람들은 그제서야 확연히 사실을 깨닫고 저마다 안색이 변했다. 알고보니 당백승 등은 술을 따르는 척 하면서 다른 술호로에 독연기를 가득 넣어서 그 무색무취한 연기로 사람들을 중독시켰던 것이었다. 술을 전혀 마시지 않았던 만공선사 등이 중독된 것도 당연한 일이었고, 게다가 당백승의 일행인 남궁검민 등이 그렇게 많은 술호로들을 가지고 장내 를 열심히 돌아다녔던 일과, 당백승이 제갈신중으로 하여금 술을 여섯잔이나 마시게하여 시간을 끈점 등은 모두가 이유가 있는 것이었다. 어쨌든 그럼에도 독의 대가인 당염의 등이 전혀 몰랐다는 것은 실로 그 독이 평범치 않은 것이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쉽게만 생각했던 그들 젊은이들이 의외로 계략이 치밀한 것과, 그리고 그와같은 놀라운 독을 구해냈다는 사실에 자연 놀라움과 의혹을 금치 못했다. 당백승은 그렇게 말하고 나서 다시 공력을 끌어올려 예의 그 비서장을 펼치려 고 했다. [흐흐흐,그렇게 알아 들었다면 이제는 죽을 준비가 되었겠지?] -비서장. 그것은 말 그대로 솜뭉치가 소리없이 날아가는 듯한 특성을 지닌 장력으로, 사천당문의 특이한 권법인 금사권과 함께 아주 유명한 것이었다. 구파일방 가운데의 무당파에도 그러한 비슷한 특성의 면장이라는 수법이 있기 는 하지만, 무당파의 면장은 이를테면 이유제강 후발제인 등의 아주 정통적인 무의에 의 지하여 펼쳐지는 정통적인 장법인데 반하여, 이 비서장은 약간 편벽한 느낌마저 줄 정도로 그와는 다른 특이한 것이었다. 그것은 처음에는 소리없고 부드럽게 나아가지만 나중에는 그야말로 강맹한 힘 으로 변하여, 무쇠라도 일격에 부술 수가 있는 것이며, 금사권과 함께 역시 상대의 허를 찌르는 암수와 비슷한 성격을 띠고 있는 것 이었다. 당백승은 그 비서장의 수법을 지금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는 가운데 아주 공개 적으로 사용하려고 하고 있었다. 그는 제갈신중의 머리가 박살나서 뇌수가 한꺼번에 터져나가는 광경이 보기좋 다고 생각하였으며,따라서 지금 자신의 병기인 채찍은 쓰지 않고 있는 것이었 다. 그런데, 당백승의 장력이 마악 제갈신중의 곁에 이르지도 않았는데 문득 제갈신중이 가볍게 탄식하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당신의 계획은 실패하였소.] (......) 당백승은 본래 악랄하기도 하지만 매우 치밀한 성격의 사람이었다. 그는 따라서 무모한 듯도 보이지만 기실은 가장 안전한 길을 택해서 나아가는 사람이었다. 본래 그는 제갈신중이 그런 말을 하든 말든 그대로 장력을 끝까지 발출 할 수 도 있었다. 하지만, 느닷없이 제갈신중이 태연한 신색으로 그와 같이 말하는 것을 보게 되자, 일순 자신도 모르게 깜짝 놀라서 황급히 신형을 뒤로 날려서 후퇴하고 말았 다. 그것은 그의 거의 본능적인 예민한 반응이었다. 당백승은 급히 후퇴하고나서 스스로 약간 수치심이 들었는지 급히 만공선사의 맥문을 틀어쥐고 소리쳤다. 확실히 그에게는 제갈신중은 실로 괴이하면서도 두려운 존재인 것은 틀림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그게 무슨 말이냐? 너희들은 설마하니 그 독에 중독이 되지 않았다는 말이 냐?] 제갈신중은 당백승과 상대하자니 절로 입맛이 써서 간단하게 대꾸했다. [그건 원원이 잘 말해줄 것이오.] ......? 그 기이하고도 이상야릇한 대꾸에 비단 당백승 뿐만 아니라 장내의 모든 사람 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집중되었다. 황원원은 사람들의 그러한 시선을 의식하고는 다소 탄식하며 입을 열었다. [당신은 내가 왜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성수신의라는 별호를 쓰는 지 그 이 유를 알았어야만 했어요.게다가......사실 이 독은 제가 얼마전에 대한 적이 있는 것이고요.] 당백승은 그 말을 듣자 눈이 휘둥그래져서 소리쳤다. [난 그 말을 결코 믿을 수가 없다!] 황원원은 비교적 담담한 표정으로 다시 말했다. [이 독은 군자산이라는 일종의 산독에 강력한 연근산을 배합하고,거기에 다시 독성이 강한 삼충삼초의 독을 잘 배합하여 색깔과 냄새를 없앤 것이예요.내가 이러한 이치를 잘알고 있는데 거기에 다시 중독된다면 결코 성수신의라고는 말할 수가 없죠.] (......?) 당백승은 황원원이 그렇게 일시에 소상하게 말해버리자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 을 짓다가 이내 악독하게 대꾸했다. [흥! 그렇다고 해도......그렇다고 해도 아직은 너희들이 이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금 이자들이 보이느냐? 만일 너희들이 이자들의 목숨을 구 하려고 한다면 즉시 스스로 자결해야만 할 것이다!] 말과 동시에 당백승은 전신의 공력을 끌어올린 상태에서 양손으로 각기 만공선 사와 옥허진인의 머리위를 누르는 것이었다. 그가 만일 약간만 힘을 가하기만 하면 설사 그 유명한 비서장이 아니더라도 공력이 상실된 두 최고원로의, 천령개는 여지없이 부서지고 말 것이다. [아미타불!] 만공선사는 이에 무거운 불호성을 발했고, 반면에 옥허진인은 노기가 충천하는지 연신 눈섭을 꿈틀거렸다. 황원원은 그것을 보고 당백승에게 다시 물었다. [당신은 정말로 우리가 그저 자결하고 말리라고 생각하나요?] 당백승은 음산하게 대꾸했다. [그렇다면 설마하니 너희들에게 다른 수라도 있다는 말이냐?] 이때, 당백승의 일행 가운데에서 더러는 당백승을 돕기 위해서 부근의 군웅들의 급 소를 누르고 있는 자들도 있었다. 지금의 상황은 아무리 봐도 다소 당백승 등에게 유리한 것 같았다. 하지만, 황원원은 여전히 여유만만하게 웃으며 대꾸하는 것이었다. [다른 수가 없다면 우리가 이렇게 말이라도 할 수가 있겠어요?하지만 그 일으 일단 저의 상공께 미루는 수밖에 없겠군요!] 말과 함께, 황원원은 제갈신중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시늉을 했다. (......?) 그 태도가 너무나도 태연자약하여 군웅들은 일순 의아한 생각마저 들었다. 당백승 역시 그러한 광경을 보자 자신도 승기를 믿고 있었지만 만약은 알수 없 다고 생각되어 소리쳤다. [그에게 미룰 것도 없다! 우선은 이 늙은이 한명을 죽여버리고 나서 우리는 다시 협상하도록 하자!] 말과 동시에 당백승은 우측의 장심을 약간 들어올렸다. 그가 이제 장력을 내쏟기만 하면 그 아래의 옥허진인의 천령개는 흡시 두부처 럼 부서져버릴 것이었다. 제 46 장. 의문의 대흉수는 누구? 그 일촉즉발의 순간의 일이었다. 제갈신중은 가만히 앉아 있다가 문득 우수를 눈앞에 들어올렸다. 그의 그러한 동장은 일면 너무나도 싱겁게 보여서 마치 장난을 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때의 일이었다. 사람들은 왠지 제갈신중의 그 손끝에서 말할수도 없는 기이한 투명한 기운이 흡사 환상처럼, 일어나서 장내를 휩쓸어 버리는 것을 느꼈다. 그 환상적인 기운은 흡사 물처럼 고요하면서도 너무나도 빨라서 사람들은 일순 자신들의 눈에, 착각이 일어난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착각이 아니라고 하는 결과는 이내 나타났다. 마악 장력을 내쏟으려던 당백승의 우수가 마치 어떤 벽에 가로막힌 듯히 돌연 멈춰졌고, 이내 그를 비롯한 많은 일행인 젊은이들이 영문도 모르고 혼절한 채 뒤로 벌 렁벌렁 나동그라졌다. ......! 그 뜻밖의 놀라운 사태에 다소 놀란것은 비단 군웅들뿐만 아니라 황원원도 마 찬가지였다. (......!) 그녀는 비록 기대하기는 했지만 제갈신중이 그와같은 무공을 펼쳐보일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기실 제갈신중이 조금전에 펼쳤던 그 무공은 그녀 자신도 흉내낼 수가 없는 아주 완벽하고 환상적인 무공이었던 것이었다. 만일 그녀에게 다음과 같은 전음이 들려오지 않았다면 그녀는 계속해서 넋을 잃고 있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결국,당신은 저들에게 나의 무공을 보여주게 하는구려!] 황원원이 돌아보니 제갈신중은 다소어색하게 웃고 있었다. (......?) 황원원은 그만 멍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웃으며 전음으로 대꾸했다. [당신은 앞으로 큰일을 하실 분이니 자연히 무공이 드러나게 되지 않겠어요? 호호, 저들은 아마도 당신을 맹주로 추대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게 될 걸요?] (......) 황원원은 말이 끝나자 마자 이윽고 신형을 번쩍 날려서 우선 만공선사와 옥허 진인의 혈도를 풀어준 다음, 모든 사람들의 중독을 풀어주기 시작했다. 이미 기노에게 시술했던 경험이 있었으므로 그녀가 많은 사람을 해독시킨다는 것은 아주 신속했다. 마치 황색의 아름다운 환영이 장내를 온통 수놓듯이 그녀의 신형이 일각 동안 에 장내를 돌아 다니는 사이에, 이미 모든 사람들의 중독은 거의 해소되어 있었다. 실로 그녀의 성수신의라는 별호는 명불허전 이라고 할 만 했다. 황원원은 이어 단상위에 올라와서 그들이 스스로 운기조식을 하여 남은 여독을 몰아내기를 기다렸다. 기실, 그들의 중독이 이렇게 쉽게 풀린 연유중의 하나는 역시 그들의 중독이 기노보 다 훨씬 덜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 이윽고,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운기조식에서 깨어날 무렵, 만공선사와 옥허진인은 사람들을 시켜서 당백승 등의 일행을 들어서 한곳에 모아놓도록 한 다음에, 황원원에게 입을 열어 물었다. [아미타불, 저들은 어찌 했으면 좋겠습니까,맹주님?] (......) 황원원은 내심 제갈신중의 높은 성취가 매우 기뻐서 흐뭇하게 생각하고 있다 가 이내 고개를 제갈신중에게 돌렸다. [당신은 어떻게 했으면 좋겠죠?] 제갈신중은 그녀가 아주 애교가 가득한 얼굴로 살살 웃으며 그와 같이 물어오 는 것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져서 다소 말을 더듬으며 대꾸했다. [나,나는 아무래도 그들을 한 번 용서해 주는 것이 좋을 듯 하오.] ...... 장내의 군웅들의 시선은 어느새 이쪽으로 크게 집중되어 있었다. 그들은 조금전에 제갈신중의 그 희안하고 놀라운 불가사의한 무공을 보았기 때문에 이미 제갈신중의 한마디에, 당백승 등의 운명이 결정되리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아미타불, 부처님의 자비로고......!] 만공선사는 제갈신중의 선심에 고개를 끄덕이며 불호를 외웠다. 하지만, 성질이 급한 데다가 가장 심한 수난을 당했던 옥허진인은 그것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아니되오.그것은! 지금과 같은 어려운 시기에 그와 같은 자를 그대로 방치한 다는 것은 본맹의 질서를 문란하게 할 것이오! 비록 그 부모들은 잘못을 따 지지 않는 다고 해도, 그 당사자들은 엄하게 처벌하여 다시는 이런 일이 벌 어지지 않도록 해야만 할 것이오.] 옥허진인이 그와 같이 말하는 것을 듣고 제갈신중은 다소 고민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사실 이 일은 자신으로 인해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제갈신중의 그러한 심중을 짐작한 소림사의 방장 혜방대사가 문득 나서서 중재 안을 제의했다. [지금은 상황이 좋지 못하니,일단은 풀어주었다가 그들로 하여금 공적을 쌓게 하여 나중에 다시 공과를 논의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이 혜방대사는 만공선사의 수제자로서 육십여세의 나이에, 둥글둥글하고 호인형의 얼굴을 가진 무학의 고수였다. 만공선사는 그 얘기를 듣자 계속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미타불, 선재 선재로다!] 황원원은 그것을 보고 이윽고 판결을 내렸다. [좋아요! 그렇다면 저들에게 앞으로 죄를 씻을 수 있는 한 번의 기회를 더 주 어서 강호무림을 위해 일하도록 하겠어요!] 옥허진인은 그 말에도 못마땅한 듯이 눈썹을 찌푸렸으나, 결국은 아무런 소리도 못하고 남궁수휘나 당염의 등이 자식들을 데려가는 광경 을 바라보기만 할 수밖에 없었다. ...... 상황이 그렇게 한순간에 해결되자 은연중 장내의 분위기는 제갈신중과 황원원 에게 기우는 듯했다. 당백승 등을 데려가기 위해 오대세가의 많은 사람들은 많이 물러가고, 이윽고 구파일방 사람들이 주로 남게 되었을 때 문득 점창파의 장문인 점창일 수 전귀수가 입을 열어, 마침내 궁금하던 것을 질문했다. [저어,제갈공자! 아까의 그 무공은 노부가 처음대하는 것 같던데,대체 뭐라고 하는 무공이오?] 이 점창일수 전귀수는 나이가 육순에 가까운 상태였지만 워낙에 무공을 좋아 하여 무공광, 혹은 무치 라는 별명이 붙어 있을 정도였다. 전귀수는 비록 상대가 나이도 어리고 초면이기는 하지만 자신의 그 궁금한 점 을 물어보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역시 그 점에 대부분이 의구심을 느끼고 있던 터라 일제히 제갈신중 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런데, 정작 제갈신중은 문득 대답을 하려니 할 말이 없어서 난처해지고 말았다. [그......그것은 나도 잘 모릅니다.그저 생각나는대로 펼친 무공에 불과한 것이 니까요.] ......? 그말에 비단 질문을 던진 전귀수 뿐만 아니라 장내의 사람들 대부분이 의아해 지고 말았다. 기실, 제갈신중은 분명하게 무공을 펼치기는 해도 그것을 한 번도 말로 정리하려고 하지 않아서 대답이 궁한 것이었다. 전귀수가 즉각 다시 물었다. [아니,정말 그렇게 모르고 아무렇게나 무공을 펼쳐도 된다는 말입니까?] (......) 제갈신중은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의 입만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고 도저히 그냥 있을 수가 없어서, 순간적으로 고심을 하다가 문득 떠오른 대로 다시 대답했다. [뜻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며,초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며,그러한 모든 무학의 형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닙니다.] ......? 전귀수 등은 더욱 의아해져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뜻과 초식이 있거나 혹은 없다는 얘기를 들어보았으나,그렇게 있다는 것 도 아니고 없다는 것도 아니라는 얘기는 처음으로 듣는군요.대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라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전귀수의 계속되는 질문에 제갈신중은 역시 대책도 없이 생각나는 대로 대꾸했 다. [그것은 말하자면 장애가 없다는 말과 비슷한 것입니다.] (......?) 전귀수는 다시 의아해져서 물었다. [아니 어째서 장애가 없어진다는 것입니까?그리고 어째서 장애가 없다는 것과 비슷하다니요?] (......?) 제갈신중은 그러한 질문을 받게 되자 드디어 자신이 감당할 수가 없게 말을 마구 늘어놓았음을 알게 되었다. 그는 그만 얼굴이 벌개져서 손을 내저으며 대꾸했다. [그것은, 후배가 불민하여...... 감히 대답해 드릴 수가 없습니다.죄송합니다!] [......?] 전귀수 등은 그것을 보자 더욱 어리둥절해지고 말았다. 그들은 대체 눈앞의 이 신비로운 무공을 구사하는 제갈신중이 똑똑한거지 아 니면 멍청한 것인지, 쉽게 알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것을 보고 문득 혜방대사가 다시 입을 열어 자신의 스승인 만공선사에게 물 었다. [제갈신주께서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우리 불문의 교법과 흡사한 것 같군요.그렇지 않습니까?] 만공선사는 혜방대사가 비록 자신의 제자이기는 해도 소림사의 방장직을 맡고 있기 때문에 아주 성실하게 대답해 주었다. [아미타불,불문의 교법에 불입문자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말하자면 진실한 법은 오묘불가사의하여 도저히 말이나 문자로 나타낼 수가 없는 것이라고 하 는 것이오.선재로다! 만일 제갈시주의 무공이 그러한 경지에 이르렀다면, 이는 그야말로 가장 진실된 경지에 오른 것이 아니겠소?] 순간, 제갈신중은 무심코 옆에서 그 얘기를 듣고 있다가 일순 가슴이 후련해지는 듯 한 감각을 맛보았다. (아,그렇군! 알고보니 그랬어!) 제갈신중은 어째서 자신이 자신의 무학에 대해서 설명하기가 어려웠는지 한순 간에 깨닫게 된 것이었다. 어쨌든, 만공선사와 혜방대사의 대화내용을 듣고 있던 사람들은 이윽고 자연히 황원원 에게 다시 시선을 보내게 되었다. 황원원은 그것을 보고 웃으며 대답해 주었다. [여러분의 생각이 맞아요.제가 보기에 저의 상공의 무공은 이미 무형검의 경지 에 오른 것 같아요.사실 조금전의 그 수법은 저도 감히 흉내낼 수가 없는 것 이었거든요?] -무형검! 황원원의 입으로부터 그 얘기를 듣게 되자 일순 사람들은 크게 놀라서 대청전 체가크게 흔들리는 것 같은 충격을 맛보았다. 이 무형검이라는 말은 비록 흔히 거론되기도 하지만, 지난 천년전의 천수자가 처음이지 마지막으로 그것을 성취한 이래로 얼마나 많은 무림인들이 가슴을 울리고, 그들의 꿈과 욕망의 대상이 되어온 전설이던가? 게다가, 이제 나이가 불과 약관을 조금 벗어난 젊은이가 그와 같은 경지에 이르렀다니 사람들은 일시 넋을 잃을 것만 같았다. 전귀수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황원원에게 다시 입을 열어 질문했다. [하지만 들리는 바에 의하면 그 무형검이라는 것은 뜻도 초식도 다 없어진다 는 것이 아닙니까?] 황원원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도 아직 그러한 문제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므로 답변해 드릴 수가 없군요. 단지 상공께서 저보다 무공이 훨씬 높다는 것은 분명해요!] ...... 사람들은 황원원의 말을 듣고 다소 곤혹스러워 했다. 분명히 성수곡주보다 무공이 높다면 무형검과 비슷할 것인데도 그것이 정말로 잘 분간이 가지 않는 것이었다. 어쨌든 사람들은 제갈신중의 무공이 그렇게 높다는 사실에 약간의 위안이라도 받게 되었다. 무당파의 현황도장이 화제를 돌리기 위해 포권하며 황원원에게 입을 열어 질 문했다. [맹주께서 조금 전에 그 독에 대해 아는 바가 있으시다고 했었는데, 그것은 무 슨 의미입니까?] 성수곡의 곡주인 황원원이 독에 관해서 알고 있다고 하는 것은 실상 별로 특 이할 만한 사항이 아니라고 할 수가 있었다. 사람들은 그래서 별로 그 일에 관해서 질문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아까의 그 황원원의 말에 뭔가 다른 의미가 있는 듯한 것을 느꼈던 현황도장의 그 질문은 사실 뜻밖에도 정곡을 찌를 것이었다. (......) 황원원은 고개를 돌려서 현황도장을 바라보다가 미소하며 다시 입을 열어 대답 했다. [사실 그 얘기는 제가 말씀드리려는 것이었는데 질문을 해주시는 군요!] 사람들은 제갈신중의 무공에 관해서 곤혹스러워 하다가, 이번에는 그러한 황원원의 대답을 듣고는 다시 한 번 더 어리둥절해 졌다. 화산파의 장문인인 사십대의 매화신통 악처현이 문득 입을 열어 질문했다. [아니 그렇다면, 아까의 그 말씀에는 다른 의미가 있었다는 말입니까?] 황원원은 악처현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인후 이어 군웅들을 향해 차분한 표 정으로 대답했다. [그래요.사실 제가 그 독을 보게 된 것은 바로 조금전의 일이었어요.우리 성수 곡을 지키는 사람들 가운데의 하나가 그 독에 당한 것이죠.] ......? 사람들은 이때 제갈신중의 무공에 관해서 생각해 보느라고 다소 이상하게 생 각하기는 했으나, 실상은 무공쪽에 더욱 관심이 깊어서 황원원의 말은 다소 건성으로 듣고 있던 중이었다. 하지만, 뜻밖에도 황원원에 말에서 불현 듯 뭔가 크게 심사치 않은 것을 느낀 듯 했기 때문에 일순 그 쪽으로 다시 시선을 집중했고, 이번에는 종남파의 장문인인 청수한 외모의 태을신검 육조룡이 입을 열어 물 었다. [아니 그럼 아까의 그 침입자라는 분이 바로 그 독에 당한 것이라는 말입니 까?] 황원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사실 본곡의 그 수곡사로는 무공이 이미 모두가 대홍락의 경지에 오른 사람 들입니다.만일 그 독에 당하지 않았다면 어째서 그렇게 맥을 못추었겠습니까?] 개방의 방주인 강룡개 풍화룡이 입을 열어 물었다. [그러니까 맹주께서는 그 수하분을 치료한 뒤였기 때문에 이번의 독을 쉽게 치료할 수가 있었다는 말이로군요?] (......) 장내의 군웅들이 드디어 너나 할 것 없이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기실 이제는 황원원 등을 직위에 맞게 인정한다는 의사표시와 같았으 므로 황원원은 기쁘게 대답했다. [본래 그 독은 이미 본맹에 있었던 것이 확실합니다.아까의 그 당소협 등은 우 리 상공의 성취를 시기하여 늘상 해치려는 마음을 품고 있었지요.그래서 저의 수하들 가운데의 하나가 일부러 그들의 뒤를 추적하여 본맹의 내부로 숨어들 어 왔었던 것입니다.하지만 그는 나중에는 오히려 그들의 음모를 알아차리게 되었지만 역으로당하게 되어 그독의 첫 번째 희생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 사람들은 황원원의 그러한 해명 비슷한 설명을 듣고 더러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화산파의 장문인인 매화신통 악처현이 눈빛을 빛내며 다시 질문했다. [그렇다면 그들은 그 독을 대체 어디에서 구입한 것일까요?혹시 사천당문에서 이번에 새롭게 개발한 것입니까?] 황원원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독은 아까도 들으셨겠지만 사천 당문의 것이 아니예요.그들이 이번에 본맹 에 들어와서 우연히 구입하게 된 것이죠.사실......지금에야 말씀드리는 것이지만, 저의 수하인 그 기노는 비단 그 독 뿐만 아니라 실은 그보다 더욱 지독한 또 한가지의 수법에 걸려있었죠. 저는 비록 기노의 그 독은 해독할 수가 있었지만 나머지의 그 수법만은 풀 수 가 없어서 그저 다른 수곡삼로에게 그를 맡기고 나온 거예요.] 칠십여세의 나이에 수염을 보기좋게 기른 청성파의 장문인 청송도장이 입을 열어 물었다. [무량수불, 대체 성수곡주께서 치료할 수 없다는 그 수법은 무엇이오?] 황원원은 간단하게 대답했다. [심령금제예요.] ......! 비록 황원원의 말은 간단했지만 오히려 그것은 이제까지의 말들 보다는 더욱 강한 충격을 주기에 족했다. 장내의 군웅들은 이제까지는 다소 마음을 놓고 있는 듯 했으나 일순 그 얘기 를 듣자 모두가 안색이 새파랗게 얼어버렸다. 무당파의 옥허진인이 그만 놀라서 소리치며 물었다. [방금 심,심령금제라고 했소?] 비교적 조용한 성품인 만공선사도 일순 크게 놀랐는지 불호성을 터뜨렸다. [아미타불!] -현현사! 그것이 나타났던 것이 지금으로부터 겨우 사십년 전의 일이었으며, 현재 만공선사나 옥허진인 등이 당시의 그 처절했던 공포를 가장 절감했던 사 람들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그때 현현사의 주인인 현현괴로가 사용했던 심령금제술은 바로 현현대법이라고 하는 것으로, 무림제패를 위해 그가 그 현현대법을 사용하여 심령금제술을 대부분의 무림인 들에게 펼친결과, 강호에는 온갖 살인귀와 미친사람들이 속출했으며 강호 전체가 일종의 정서불 안증으로 시달릴 정도였다. 그러한 당시의 공포는 정말로 경험해본 사람이 아니면 알 수가 없는 것이었 ㄷ. 그 현현괴로는 결국 천륭무가의 제삼십구대 천수자에 의해 죽음을 당하고 말았 지만, 이미 그때 이전에 현현대법을 당했던 사람들은 고치지도 못하고 끝내는 미쳐 서 참혹한 죽음들을 맞이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만공선사와 옥허진인은 당시 사십대의 한창 때였으며, 그저 요행으로 현현대법에 당하지 않고서 고스란히 그 공포를 맛보았던 사람 들이었다. 지난 이백년 전에 일월신교가 나타난 이래로 강호는 태양마교에 이어 세 번째 로 겁란을 당하게 된 셈이었지만, 기실 사람들은 일월신교나 태양마교의 겁란때 보다는 오히려 사십년 전의 그 현현사 때의 겁란을 강호최대의 마겁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당시에 강호의 정의심은 땅에 떨어지고, 무림의 정기가 크게 쇠퇴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영웅맹을 조직하게 되었던 것 이었다. 이제 사람들이 이미 그 현현사 뿐만 아니라 나머지 이대마세도 나타났다는 것 을 익히 알고있었다. 하지만, 이제까지는 내심 다소나마 설마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가, 정작 정말로 심령금제가 나타났다는 말을 듣게 되자,그만 과거의 공포가 다시 재현된 것 같은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었다. 조금전까지만 해도 다소 온화한 듯 하던 장내의 분위기가 금새 시퍼렇게 얼어 붙고 말았다. 무당파의 현황도장이 매우 무거운 표정으로 다시물었다. [그럼 그것은 현현대법이었소?] 황원원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제가 보기에 그것은 현현대법은 아니었어요.하지만,최소한 그보다는 더욱 뛰어 난 심령금제술임엔 분명해 보였어요.] 살마들은 현현대법이 아니라는 말에 다소 안심을 하는 듯 했으나 이내 그보다 더욱 뛰어나다는 말에, 그만 두 눈이 일제히 휘둥그래지고 말았다. 소림방장인 혜방대사가 불호와 함께 다시 물었다. [아미타불! 그렇다면 그것은 제이대의 현현괴로가 과거의 현현대법을 더욱 발 전시킨 것이겠군요?] 황원원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천하에 심령금제의 수법은 더러 있지만 그 가운데에서 현현대법은 가히 독보 적이었다해도 과언이 아니었죠.따라서......그 현현대법을 보다 뛰어나게 발전시 켰을 가능성이 가장 커요.] 화산파의 매화신통 악처현이 의아한 표정이 되어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결국은 그 현현괴로가 이미 본맹의 내부에 들어와서 그 심령금제술 을 펼치고 또한 그들에게 독도 주었다는 말입니까?] ......? 황원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의 수하는 사실 그들에게 당할 사람은 아니었어요.아마도 현현괴로가 심령금 제로 먼저 기노를 제압한 다음에 다시 독을 주입시켰을 가능성이 가장 신빙성 이 있을 듯 해요.] 매화신통 악처현은 안색이 변해서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그 당백승이라는 녀석을 깨워서 닥달해 보면 그 사실을 분명히 알수 있지 않겠습니까?] 황원원은 그 말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것은 그 심령대법에 대해서 모르시고 하는 말씀이예요.그들이 독을 받았을 때에는 이미 그들도 심령대법에 당했을 가능성이 있죠.게다가 이 심령대법은 설령 당했다고 해도 그 사실을 말할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스스로 도 전혀 모르게 되는 수가 많아요......이 심령대법이라고 하는 것은 형체가 없 는 기공이기 때문이죠.] 그 소리를 듣자, 사람들은 일순 왠지 등골이 오싹하는 듯, 저마다 자신들의 주위를 빠르게 둘러보았다. 마치 그 현현괴로가 심령대법을 펼치기 위해 형체도 없는 유령처럼 자신들의 등뒤에 나타나 있는 것 같은 공포감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 갑자기 장내가 크게 스산하게 변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내의 그 누구도 이곳을 떠나려고는 하지 않았다. 그래도 이곳에 있는 것이 좀더 안전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수도하는 사람은 마음이 깊은 지 무거운 표정으로 침착하게 다시 입을 열어 질문했다. [무량수불,하지만 이상한 일이 아닙니까?만일 현현괴로였다면 황소저가 그 기 노를 치료하면서 독을 파악할 것을 알텐데도, 굳이 그렇데 다시 당백승등을 보낸 의도는 무엇이었을까요?] 황원원은 고개를 끄덕인 다음에 대답했다. [매우 중요한 질문을 해주셨군요.그래요! 제가 보기에도 그 흉수는 뻔히 결과 를 알면서도 그와 같은 짓을 시킨 것 같아요.자신의 정체가 드러날 것을 뻔히 알면서도 말이예요.대체 그 의도는 무엇일까요?......] 개방의 방주인 강룡개 풍화룡이 끼어 들어 물었다. [혹시 그가 맹주의 실력을 잘 모르고 실수한 것이 아닙니까?] 황원원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지 않아요! 일반적으로 이 심령대법이라고 하는 것은 배우기가 워낙에 어려운 것이기 때문에 두뇌가 지극히 명석한 사람이 아니고는 대공을 성취할 수가 없죠.그리고 그렇게 심계가 뛰어난 사람이 그와 같은 실수를 할 리는 없 어요.] 현황도장은 다시 물었다. [그럼 맹주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황원원은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제가 보기에 아마도 그는 자신의 자신감을 드러내 보이고있는 것 같아요.마치 어떻게 되어도 상관이 없다는 것처럼......그리고 우리의 동태를 살피는 것이겠 죠.] ......! 사람들은 황원원의 그 말을 듣고 마치 지금 어두운 검은 악마가 소름끼치는 눈 길로 자신들을 위에서 내려다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을 느꼈다. 그들은 이 성수곡의 주인인 황원원이라는 소저의 뛰어난 능력에 대해서 이제 어느 정도 알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그녀의 능력마저 우습게 생각할 정도의 능력을 가진 자가 과연 존재할 수가 있을까? 혜방대사가 어느덧 불호소리도 잊고 긴장된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결국은 그 현현괴로가 이번의 삼대마세를 주도하는 사람이겠군요?] 황원원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아마도 그가 이번의 모든 겁란들을 주재하고있는 자인 것 같아요.] 하지만, 지금 황원원이 말한 그라는 사람은 왠지 정작 현현괴로와는 약간 다른 것 같 은 어감을 주고 있는 듯 했다. 제 47 장. 대혈겁의 서막. 제갈신중과 황원원은 군웅들을 두고 방으로 자러 들어갈 수가 없었기 때문에 일단 사람을 시켜서, 수곡사로를 대청으로 오라고 한 뒤에 여러사람들과 함께 사태를 경계하면서 그대로 밤을 지새었다. 사실 그들과 같은 정도의 사람이라면 설사 여러날을 잠을 자지 않는 다고 해도 별로 지장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혹시나 한밤중에 삼대마세가 쳐들어 오지나 않을 까 하고 전전긍긍하면서도, 그들이 그렇게 밤을 지새우면서 주로 나눈 대화의 내용은 세외팔세에 관한 것 과 무공에 관한 것들이었다. 그들에게 만약 그러한 대화상대자마저 없었다면 한밤을 지내기가 더욱 곤욕스 러웠을 것이었다. 제갈신중은 겉으로는 그들의 대화를 듣는 척 하면서도 내심으로는 다른 생각 을 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부친의 실종된 것과 그의 친형인 제갈의중에 관한 것이었다. 특히 부친이 실종된 것은 현재로는 어쩔 수가 없다고는 해도, 친형인 제갈의중이 은근히 자신을 멀리하는 것과,게다가 지금은 그가 어디에 있는지 모습도 보이지 않는 다는 사실이 그를 당혹스럽게 했다. 본시 그는 과거에는 집안에서 제대로 대접도 받지못하고 자라왔었으나, 이렇게 큰일을 대하고 보면 그래도 역시 생각나는 것은 우선 친혈육들인 모양 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어수선한 가운데 하룻밤을 보내고 나자 이윽고 아침은 다시 찾아왔다. 밤새도록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던 군웅들은 아침을 대하자 새롭게 마음을 굳 히면서도 더욱 긴장하는 눈치들이었고, 하지만, 그러한 군웅들에게 둘러싸인 황원원의 모습은 여전히 부드럽고 조용하며 황홀 하도록 아름다웠다. 제갈신중은 이미 군사라는 직책을 맡아서 공인이 되었으므로 가급적이면 사사 로운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그러나 역시 그러한 자신의 정혼녀의 모습을 보자 절로 미소가 나오는 것을 금할 수가 없었다. 일단 싸움에 임하기 전에 든든하게 먹어둬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연무장을 비롯한 각처에 있는 사람들에게 먼저 식사를 하도록 시킨 후에, 이윽고 부지런히 대청으로 날라온 음식들을 대하게 되었을 때, 문득 개방의 방주 강룡개 풍화룡은 음식을 보자 절로 힘이 나는지 주먹으로 탁자를 쾅,하고 내리치며 소리쳤다. [빌어먹을! 제아무리 흉악한 흉수가 있다고 해도 우리에게는 아주 훌륭한 맹 주와 군사가 있으니 아무런 걱정도 없을 것이다!] 기실 그는 은근히 제갈신중 쪽의 능력을 믿고 있는 것이다. 황원원이 이미 자신의 입으로 그의 무공이 더욱 뛰어나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제갈신중은 이미 그에게 태상장로이자 전대맹주인 호연신개 동방청에 대해서 물어보았었는데, 뜻밖에도 그의 대답은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밤새도록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던 소식은 약간 한숨을 돌리려는 순간에 느닷 없이 앞문이 벌컥 열리더니, 한 사람이 달려 들어와서 소리치는 것이었다. [맹주님께 아룁니다! 적들이 나타났습니다!] ......! 일순 그 한소리에 장내는 갑자기 벌집처럼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군웅들은 깜짝 놀라서 저마다 허둥거리며 달려나가기 시작했고, 제갈신중과 황원원은 그들 나름대로 놀랐다. 설마하니 적들이 이렇게 아침 일찍이 들이닥칠 줄은 미처 예상도 못한 일이었 다. 강룡개 풍화룡은 그래도 닭다리를 먹으려고 입속에 넣고 씹어 삼키다가 돌 연 목에 걸렸는지 캑캑거렸다. 오대세가의 가주들도 이미 자제들을 정리하고 대청안으로 돌아와 있는 상태였 다. 남궁수휘가 급히 물었다. [적이 어디에 나타났다는 말이냐?] 그 알리러 온 사람은 거의 울상이 되어 대답했다. [어디가 아니라 사방팔방입니다.지금 이미 본맹의 사람들과 대전이 벌어지고 있는 중입니다!] ......! 그러고보니 은은하게 비명소리와 고함소리 등이 사방에서 들려오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어서 나갑시다!] 황원원의 지시와 함께 군웅들은 모두 밖의 연무장으로 걸어가가기 시작했다. ...... * * * 모두가 연무자으로 나와서 둘러보니 아닌게 아니라 그야말로 사방팔방에서 치 열한 접전이 벌어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본래 이 영웅맹의 총단이 자리하고 있는 영웅요는 천험의 요지여서 밖으로 나 가는 길이 별로 없는데, 이미 사방에서 적들이 가득 들어차 있는 것으로 보아, 필시 몇몇의 실력자들을 앞세워 전격적인 기습을 감행한 것 같았다. 한눈에 그 전황을 살펴보니 너무나도 승패가 뚜렷하여 영웅맹의 인원들이 사 정없이 밀리고 있었다. 왜냐하면 적들은 모두 네 부류나 되기 때문이었다. 동쪽은 흑의인들로 일월신교의 무리들이었고, 서쪽은 온갖 복색의 사마외도들이 다 모인 것으로 보아 사파의 핵심인 동심교 의 무리들인 것 같았다. 게다가 남쪽은 태양마교인 홍의인들의 수천의 무리들이었고, 북쪽은 현현사의 무리들인 듯 회의인들의 무리였으니, 영웅맹이 제아무로 경외감이 충천한다고 해도 그들 삼대마세와 동심교를 한꺼 번에 상대하는 것은 무리인 듯이 보였다. 삼대마세의 위세도 놀라왔지만, 동심교의 무리들은 오랫동안 지하에 숨어들어서 온갖 수모를 당해왔던 것에 대한 앙갚음인지, 더욱 악락하게 파상적으로 공격해 들어오고 있었다. [으아아악-!] [으악!.......] 영웅맹의 인원들이 안간힘을 다해서 막으려고 하고 있었으나 그들의 목숨은 덧없이 이슬처럼 사라지고, 사방에서 공격해 들어오는 자들의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있는 듯 했다. 황원원은 그것을 보고 즉시 명령을 내렸다. [지금 이것은 우두머리들의 싸움이지 저들과 관계된 것은 아니예요.그러니 어서 모든 인원들은 이 연무장으로 퇴각시키도록 하세요!] 황원원은 가능하면 희생을 줄이려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녀가 맹주가 되고 나서 처음으로 명령을 내린 것이었는데, 과연 빠르게 그 명령이 전달되자 영웅맹의인원들은 주저없이 퇴각하여 연무장 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 삼대마세와 동심교의 무리들은 오히려 그것을 보고 잠시 공격을 주춤하여 갑 자기 서로간의 격전이 중지되게 되었다. 하지만, 과연 예상대로 그들은 서서히 무리를 이루며 연무장을 향해 공격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야말로 숨막히는 가공스러운 광경이었다. 아직도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기노는 나머지 수곡삼로가 들것에 태우고 보호 하고 있으므로 괜찮고, 제갈신중은 황원원의 주위에서 맴돌면서 은근히 제갈의중의 모습을 찾았으나 끝내 그를 찾지 못했다. 그런데, 적들이 거의 절반쯤이나 다가왔을 무렵의 일이었다. 느닷없이 서쪽의 동심교가 있는 방향에서 소란이 일어나는 가 싶더니 조용하 던 적막을 깨고 비명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 군웅들의 긴장되었던 시선은 당연히 그쪽으로 쏠릴 수밖에 없었다. 일단 영웅맹의 안으로 많이 들어와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 정도의 거리라면 웬만한 고수라면, 거의 그 상황을 알아볼 수가 있었다. 그런데 제갈신중 등은 그것을 보자 일순 놀라고 말았다. 다른이 아니라, 지금 당백승 등의 일행 열한명이 그쪽에서 동심교의 무리들과 일대 격전을 벌 이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마도 그들은 간밤에 깨어나서 이곳에 더 이상 있기가 곤란한 것을 느끼고 밖으로 탈출하려다가, 그래도 가장 허약하게 보았던 동심교의 무리에게 발각되어 저렇게 고전을 하 고 있는 모양이었다. 비록 그들 가운데에는 절정고수가 다섯명이나 있었으나, 네명의 여인들을 보호해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수세에 몰리고 있었고, 그 가운데에서 가장 앞장을 섰던 당백승이 한명의 강적을 만나서 그만 두 다리가 잘려나가고 말했다. 실로 그 상대는 대단한 자였는데, 약간 큰 키에 우람한 체구를 가지고 있는 흉악한 인상의 흑의노인으로 놀랍게 도, 그가 당백승의 다리만을 자른 것은 실수해서가 아니라 그저 장난하듯 한 것으 로 보였다. 그는 장검을 가볍게 움직였을 뿐인데 거대한 검기가 마치 먹구름처럼 일어나 서 조금도 반항을 못한, 당백승의 두 다리를 무릎에서부터 썩뚝 잘라버렸던 것이었다. [으윽!] 이를 악물며 바닥에 떨어져 피를 쏟으면서도 자신의 병기인 채찍을 놓지 않고 있는 당백승을 바라보며, 그 흑의노인은 득의한 흉소를 흘리고 있었다. 제갈신중은 그것을 보고 군사라는 직분도 잊어버리고 신형을 날리려다가 문득 다소 주저했다. 느닷없이 어디선가 당백승의 앞에 한 사람이 나타나 흑의노인과 대적하기 시 작한 것이었다. 뜻밖에도 갑자기 나타난 그 사람은 바로 전대맹주였던 호연신개 동방청이었 다. 그 동방청은 비록 역시 영웅맹의 태상봉공이지만 얽매이는 것을 싫어하여, 이번에는 강호를 떠돌다가 이번에야 다시 나타난 모양이었다. 동방청은 등에 커다란 술호로를 매고 있었고 평소에는 늙은 술주정뱅이 같았 지만 그의 절학은 용음십이수라는 것이었다. 장력을 휘두르면 무형의 기운이 일어나서 굉장한 용울음과 함께 상대를 압박하 는 것이었다. 상대인 흑의노인은 느닷없이 나타난 동방청을 보자 다소 놀라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서로간에 한차례의 격돌이 벌어지자, 상대인 흑의노인은 멀쩡한 반면에 오히려 동방청의 옷이 갈가리 찢겨지며 그 검기의 여파로, 그의 술호로가 그만 박살이 나는 것이 아닌가? 그것으로 이미 그 두사람의 우열은 완전히 드러난 셈이었다. (동심교에서 저러한 인물이 있었던가?혹시 그자가 수라교의 교주이자 동시교 의 부교주라는 수라노자 탁염무가 아닐까?) 본래 동심교라는 것은 과거의 현현사와 의미가 같은 것이었다. 단지 이름만 바꾸었을 뿐이었는데, 동심교의 우두머리인 수라노자 탁염무는 장차 나타날 제이의 현현괴로를 의식 하여 자신이 교주가 될 수 없다고 하며, 부교주라고 자칭하게 되었으니 결국 그가 동심교주나 마찬가지였다. 제갈신중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거의 동시에 그쪽으로 신형을 날렸다. 이미 다른 사람들인 제갈보중 등의 형세도 위태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 무렵에 제갈신중의 무공은 자신의 무고에 대한 확신 때문에 어제저녁보다 오히려 더욱 증가해 있었다. 말 그대로 천의무봉하게 되어 전혀 그가 신형을 날리는 광경이 보이지 않았 다. 다만 그의 신형이 이곳에서 사라졌는데 갑자기 오리밖의 그 장소에 나타나 있 는 듯한 모습을 보일 뿐이었다. ......! 제갈신중은 동방청이 흑의노인으로부터 두 번째의 공격을 받으려는 순간에 돌 연 그 둘의 사이에 나타났다. 제갈신중의 육신은 이미 기운처럼 투명한 듯 해져서 그의 뜻대로 움직여지고 있었다. (......?) 갑자기 제갈신중이 마치 거짓말처럼 나타나서 자신의 검세를 간단하게 해소시 켜 버리는 것을 보고 흑의노인은 크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너는 누구냐?] 제갈신중은 우선 피를 쏟으며 안색이 창백해져 있는 당백승에게 다가가서 그 의 혈도를 짚어 지혈시켜 주고서, 흑의노인은 상관하지 않고 동방청에게 말했다. [선배님께서 어서 저의 친구들을 좀 도와 주십시오.] 가까스로 위기에서 벗어나서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동방청은 그만 믿을수가 없는지, 고개를 휘휘 내저으며 옆으로 제갈보중 등을 구하러 갔다. 제갈신중은 당백승의 몸이 아직 위험하지 않은 것을 보고 이윽고 흑의노인에 게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당신이 바로 동심교의 부교주라는 탁염무요?] 흑의노인은 잠시 넋을 놓고 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만,노부는 너와 같은 나이어린 고수를 처음 본다! 대체 너는 누구냐?] 이때 흑의노인 즉, 수라노자 탁염무의 파탄을 알고 동심교의 무리들이 다소 주춤했기 때문에, 동방청은 비교적 쉽게 나머지 일행들을 구할 수가 있었다. 그가 일행들을 데리고 연무장쪽으로 달아나는 것을 보고 제갈신중은 다시 탁 염무를 향해 말했다. [나는 아직 무림의 무명소졸이기 때문에 말해준다고 해도 당신은 모를 것이오. 하지만 나는 당신에게 하고자 하는 말이 있소!] 탁염무는 상대가 무명소졸이라는 말을 듣자 이에 태도가 약간 달라졌다. [무슨 말을 하겠다는 거냐?] 제갈신중은 그의 뒤쪽에 무수하게 늘어서 있는 동심교의 무리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당신들은 지금 쓸데없이 가혹한 혈겁을 일으키고 있느 것이지만 그러나 나는 당장 그것을 중지할 것을 권하는 바이오.] 탁염무의 두 눈이 대번에 흉악하게 변했다. [뭐라구,우리더러 중지하라고? 흐흐흐! 노부가 한평생 너와 같은 애송이의 지 시를 받은 적이 있는 것 같으냐?] (......!) 제갈신중은 지금은 말로 할 때가 아니라고 생가하고 이내 우수를 가볍게 휘저 었다. 그러자, 순간 놀라운 광경이 일어났다. 눈앞의 탁염무의 신형이 미처 그가 반격을 하기도 전에 옷이 갈가리 찢어지더 니 뒤쪽의 백여명의 무리들과 함께, 두로 십여장이나 날려가는 것이 아닌가? [으아아악......!] 대번에 아수라장과 같은 혼란이 일어나고 한꺼번에 비명소리가 진동했다. 하지만, 그것은 동심교 무리들의 제풀에 놀란 것이었는데, 제갈신중은 그들 모두에게 약간을 겁을 주었을 뿐이지 해를 입히지는 않았다. 제갈신중은 그것을 보고 즉시 당백승의 몸을 안아들고 연무장 쪽으로 신형을 날렸다. 두 다리를 잃고 안색이 창백해진 당백승은 내심 절망에 빠져 있는지 이 순간 에 아무런 말도 없었다. 제갈신중은 비교적 천천히 날아가는 도중에 그의 기혈을 잘 유통되게하여 기 력을 회복시켜 주었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무공을 사용할 수가 없다면 그것은 이미 죽은 목숨이나 다를바가 없기 때문이었다. 당백승은 기력을 회복하자 겨우 제갈신중을 향해 한마디를 던졌다. [당신은 혹시 바보가 아니오?] (......) 제갈신중은 뭐라고 대답을 하려고 하였으나 이미 연무장에 도달한 것을 알고 당설정 등에게 다가가 당백승을 건네주었다. 남궁검민이나 제갈보중 등은 다행히 별로 부상이 심하지 않은 상태로 그 부근 에 모여있었는데, 이 순간에는 제갈신중을 바라보는 시선이 전과 달리 유순하게 느껴졌다. ...... 제갈신중은 오히려 그들을 대하기가 민망하고 어색한 기분이 들어서 황원원이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적어도 칭찬의 말이라도 들을 줄 알았던 그곳에서 제갈신중은 뜻밖의 얘기를 듣게 되었다. [당신의 부친께서 돌아오셨대요!] (......!) 황원원의 그러한 얘기를 듣게 되자, 제갈신중은 일순 놀랍고도 반가운 생각이 드는 반면에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가 없는 기분이 되었다. [아니 그게 정말이오?] 놀라 확인하듯 묻는 제갈신중에게 황원원은 그 대청의 문쪽을 가리켰다. [바로 저기를 보세요! 지금 나오시고 계시는군요!] ......? 제갈신중은 그만 어리둥절해지고 말았다. 지금 그 대청안에서 천천히 걸어나오고 있는 사람들, 그 두 사람은 바로 놀랍게도 제갈의중과 자신의 부친인 신기제갈 제갈류량이 었던 것이다. (......?) 제갈신중은 제갈의중에 대해서도 약간의 의문이 없는 바가 아니었지만 순간 무엇보다도 자신의 부친인 제갈류량에 대해서 왠지 알수 없는 괴이한 의문을 느끼게 되었다. (빨리 가서......아버님께 예를 올려야 하지 않을까?) 내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왠지 제갈신중은 거부감과 의문을 동시에 강력 하게 느꼈다. 그 거부감과 의문의 실체가 무엇인지 자신도 분명하게 알지 못했다. 황원원이 옆에서 제갈신중이 그렇게 심하게 당혹스러워 하는 것을 보고 이내 전음으로 물었다. [상공! 왜 그러죠?무슨 나쁜 일이라고 있나요?] 제갈신중은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역시 전음으로 대답했다. [아니,아버님의 모습이 갑자기 이상한 것 같아서 말이오.] (......?) 황원원은 약간 의아해져서 다시 물었다. [이상하다니요?] 제갈신중은 다소 주저하다가 이어 대답했다. [왠지 낯익은 것 같으면서도 낯설어 보이고,한편으로는 친근하게 느껴지면서도 왠지 이상한 거리감이 느껴지는 것 같소.] (......?) 황원원은 다소 어리둥절해 하다가 이내 웃으며 다시 말했다. [그건 당신이 예전과는 달라졌는데다가 또한 오랫동안 부친과 헤어져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요?] 제갈신중은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쎄.......] 그때, 이윽고 사람들의 앞에 도달한 제갈의중과 제갈류량은 사람들을 향해 인사를 하고 있었다. 제갈류량은 별로 말이 없었으나 제갈의중이 자신의 부친을 가리키며 군웅을 향해 먼저 입을 열었다. [지금 여러분들께서는 저의 부친께서 갑자기 나타나신 일에 대하여 궁금하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하지만, 지금 저의 부친께서 돌아오신 데에는 그만한 이 유가 있습니다!] 옥허진인이 돌연 소리쳐 물었다. [맹주! 이게 대체 어찌된 일인지 자세히 밝혀주시오!] 그러나, 여전히 제갈류량은 다소 창백한 안색으로 묵묵한 채 대신 제갈의중이 입을 열 어 대답했다. [저의 부친께서는 바로 며칠전에 어떤 흉수의 손에 의해 암산을 당하시어 본맹 의 지하밀실에 감금되셨었습니다.제가 우연히도 얼마전에 발견하여 구해드리 게 된 것입니다.하지만......지금 저의 부친께서는 그때의 부상이 완쾌되지 않으 셔서 아직 말씀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그 점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 군웅들은 이 기막힌 순간에 영웅맹주가 다시 나타난 데다가, 또한 그가 부상을 입어서 아직 말을 할 수가 없다는 소리를 듣고 저마다 어 리둥절해 하고 곤혼스러워 했다. 옥허진인은 이번에는 제갈의중에게 직접 물었다. [그럼 맹주는 지금 무공도 사용하지 못한다는 말인가?] 제갈의중은 공손히 포권을 하며 대답했다. [다행히도 저의 부친께서는 이미 과거 무공의 십중 칠팔할을 회복하셨으니, 그 다지 걱정스러울 단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옥허진인은 다소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제갈류량을 바라보며 대체 이 일을 어지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무량수불......] 만공선사가 나서서 불호와 함께 입을 열었다. [아미타불! 지금 상황은 긴박하니 그런 얘기는 일단 나중으로 미루고 앞으로 의 일을 논의하는 것이 좋겠소이다!] 만공선사는 당금의 무림에서 가장 신망을 받고 있는 원로로서 그의 말 한마디 는 결정적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사람들은 비록 이 순간에 오만가지의 의문이 솟구쳤으나 그만 그 의문을 참고 마는 듯한 표정들이었다. 우선 각파의 수뇌들은 제갈류량에게 다가가서 인사를 했고, 제갈류량도 역시 묵묵히 고개를 끄덕여서 답례를 했다. 제갈류량의 표정이 워낙에 무뚝뚝하고 말이 없었기 때문에 정작 그가 돌아온 것이 어색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말았다. 이윽고, 제갈신중은 황원원과 함께 제갈류량의 앞으로 나아가서 인사를 올렸다. 황원원은 비록 그가 자신의 시아버님이기는 해도 공적인 자리이기 때문에 정 색을 하고 이렇게 말했다. [저는 맹주께서 이렇게 돌아오신 것을 무척 기쁘게 생각해요.그리고 이미 말씀 드린 바와 같이 맹주께서 돌아오셨으니, 이제부터 저와 저의 상공의 임시맹주 와 임시군사의 직책은 해제되는 것으로 하겠어요!] ......! 제갈류량이 어정쩡한 상태로 나타나자 군웅들이 가장 염려한 것은 바로 그것 이었다. 아주 능력이 뛰어난 두 사람이 어정쩡한 능력의 맹주가 돌아옴으로 인해서 물 러나게 되었다는 것은, 지금 상황에서 매우 안타까운 변화인 것이었다. 보다못한 옥허진인이 나서서 말참견을 했다. [무량수불,우리는 지금 맹주의 유고시에 임시맹주를 세운 것이므로,비록 맹주 가 돌아왔다고 해도 아직 정상인 것은 아니니,계속 그렇게 임시맹주의 직책을 맡고 있는 것이 어떻겠소이까?] 제갈신중은 그말에 정중하게 포권하며 답변했다. [천만부당하신 말씀입니다.현재의 맹주께서는 저희들의 웃어른이신데 어찌 감 히 우리가 그 자리를 대신할 수가 있겠습니까?다만 저희들은 비록 직책이 없 더라도 전과 다름없이 본맹과 맹주님을 도울 것이니,그 점은 염려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결국 그들이 직위에서 물러나도 역시 부친이 맹주이니 다를 것이 없다는 말이 었다. 하지만, 정작 상황에 부딪치면 한치 건너 두치가 되고 정황 또한 달라진다는 것을 알 고 있는 옥허진인은 내심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우지 않았다. 다만 만공선사는 담담하게 미소하며 입을 열어 찬성을 표시했다. [아미타불! 예로부터 자리와 금전에 유혹받지 않는 것은 모두가 배워야할 귀 감이었소.이제 두 분께서 담담하게 그것을 실천해 주시니,이는 부처님의 가호 에 의해 무림의 평화가 다시 돌아올 조짐이오이다!] 일단 상황이 그렇게 정리되자 이윽고 제갈의중은 제갈신중을 바라보며 기이한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둘째야! 나는 네가 이렇게 성장했을 줄은 몰랐다! 어쨌든 기쁜일이고 ,또한 네가 이렇게 양보해주니 아버님도 기뻐하실 것이다!] 제갈신중은 모처럼의 그의 호의적인 말을 듣고는 절로 기꺼운 심정이 일어나 서, 웃으며 마주 대꾸했다. [천만의 말입니다.의당 그래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제갈의중은 다시 기이한 시선으로 제갈신중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이내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려버렸다. (......) 제갈신중은 이에 다시 어색한 기분이 되어 시선을 부친에게 돌렸다. 그런데 이때 제갈신중은 갑자기 부친의 얼굴을 보고 흡사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이 멍청해지고 말았다. 지금 창백한 듯이 보이는 제갈류량의 얼굴은 흡사 인피면구가 아닌가 하고 여 겨졌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것은 과거에 황원원이 사용했던 것보다도 훨씬 정교하여 눈치채기 어 려운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제갈신중의 안목은 그의 무공만큼이나 크게 진전하여 있었던 것이었다. (대체 이게 어찌된 일이지?......) 제 48 장. 반전, 그리고 반전. 만일 지금 제갈류량이 인피면구를 쓰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대체 그의 진정 한 정체는 무엇일까? 그리고 그는 대체 무엇 때문에 그런 제갈류량의 인피면구를 쓰고 나타나 있는 것일까? 제갈신중은 한순간에 그러한 의문들이 일찍이 머리속을 온통 뒤집어 놓는 듯 했지만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일단은 확신이 서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을 직접 거론 할 수는 없었다. (형은 대체 어디에서 아버님을 만났다는 말인가?) 그러한 의문이 계속해서 그의 입가에 맴돌았다. 제갈의중이 더 이상 상대해 주지 않았기 때문에 제갈신중은 하는 수 없이 수 곡사로를 대동하고, 황원원과 함께 군웅들의 한 옆으로 물러났다. 제갈의중은 그러한 그들의 움직임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부친의 의사를 헤아려서 사람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지금 제갈류량은 제갈의중의 손바닥에 글씨를 써서 말을 전달하고 있었는데, 군웅들은 직접 그것을 보고 있었으므로 감히 뭐라고 항변하거나 이유를 댈 수 가 없었다. [자! 이제 상황이 다급하니 이곳의 인원들은 모두 십대로 나누시겠다는 말씀 이오!우선 소림사의 스님들은 동쪽을 방비하시되 그쪽의 적을 쳐부수는 주력이 되시오!그리고 아미파의 스님들께서는 그에 보조하여......] 제갈의중의 말을 빌려서 제갈류량이 내린 명령은 다음과 같았다. 우선 구파일방을 각기 십대로 나누어서 그것을 다시 주력과 보조의 의미를 가 진 다섯 개의 부대로 나누고, 그 오대로 사대는 각기 동서남북의 적들을 방어 하고 , 나머지 하나로는 이곳의 위기를 돕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오대세가와 금창보의 군소방파를, 영웅맹의 인원들은 맹주의 곁에서 대기하여 상황을 기다린다는 것이었으니, 비록 그것이 제법 발빠른 운용이라고는 해도 아까의 황원원의 지시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황원원은 쓸데없는 희생을 줄이기 위해서 모든 군웅들을 안으로 철수시켰으 나, 도리어 제갈류량의 전략의 그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전력상으로는 소림과 무당,그리고 개방에서 주축이 되어 가장 강한 세 력인 동남북의 적들을 막게 되었는데, 아까도 보았지만 호연신개 동방청의 경우만해도 가장 세력이 약한 동심교의 우두머리조차 당하지 못했는데, 비록 다수가 결사적으로 나간다고 해도 나머지 삼대마세를 당해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비록 승산이 없음을 알지라도 일단 맹주의 명령이고 또한 반박할 말도 별로 없고 보니, 그들은 각기 이빨을 악다물고, 출전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미 적들은 수백여장의 밖에 도달해 있었다. 무수한 건물들 사이로 진법과 기관장치 등을 파괴하면서 밀려드는 그들의 모 습은 흡사, 무서운 악마의 군단들을 연상시켰다. 특히 미친듯한 광란에 젖어서 앞뒤를 돌보지 않고 달려드는 현현사의 잿빛무 리들은, 그 사악한 기운이 절로 번뇌를 일으키게 하고 정신을 이상하게 만드는 것 같 아서 군웅들은 더욱 공포감을 느꼈다. 구파일방 등의 사람들은 비록 대단한 열세에 처해 있었지만 그러나 비굴하지 는 않는 모습들을 보여주었다. 만공선사 등의 지휘에 따라서 그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적들에게 부딪쳐갔다. [으아악!] 귓고막을 움리는 섬뜩한 첫 번째의 단말마의 비명을 시작으로 이내 거대한 혈 전의 막이 오르려는 것 같았다. 특히, 만공선사 등은 자연히 삼대마세의 우두머리들과 부딪치게 되었는데, 그들이 당하고 말 것은 뻔한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제갈신중은 그만 그것을 보고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크게 소리를 질렀다. [모두들 멈추시오! 만일 지금 즉시 멈추지 않는다면 내가 용서하지 않겠소!] 그의 그러한 고함소리는 모든 사람들의 가슴을 섬뜩하게 하기에 족했다. 제갈신중은 지금까지 잠시동안 심하게 고뇌하다가 이윽고 더 이상 가만히 있 을 수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대개 무학의 경지가 깊어질수록 그 마음은 더욱 감정을 자제해야 하는 것이 상식이었다. 만일 그러한 사람이 지금 제갈신중처럼 소리를 질렀다면 그 위력이 훨씬 감퇴 되어 별로 효과를 기대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제갈신중은 이미 그 천청대법에서 시작된 자신의 무학에 익숙해진 상태여서 그가 감정을 사용하자 그것은 오히려 더욱 커다란 위력을 발휘했다. 만일 한 사람의 무학이 정점에 이르게 되면 그가 하는 행동은 모두가 다 무학 이 되기 마련이다. 제갈신중이 한순간 투명한 마음속에서 발휘한 그 기이한 음공은 즉시 사방으 로 퍼져나가, 즉각 전쟁을 벌이려던 양쪽의 사람들의 귓전으로 파고 들었다. 아니 그 투명한 음성은 그들의 가슴속으로 파고들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 기이하게도 그 소리를 듣는 순간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치 느닷없이 전신에 서 주화입마가 일어나는 듯한, 아주 섬뜩한 충격을 느끼게 되었고 기운은 흐트러졌으며 저마다 당황하여 뒤 로 물러서게 되었다. 그것은 가히 신기한 마음의 무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사방의 격전이 잠시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졌지만, 비록 한편이기는 해도 제갈신중의 느닷없는 행동에 놀라기는 제갈의중 등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제갈신중이 자신들의 행사를 방해한다고 생각하여 급히 그에게 달려와 서 물으려고 했으나, 바로 그때 다시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으핫핫핫핫! 나는 믿지 않았는데 무림에 이러한 고수가 나타나다니 놀라운 일이군!] 한소리 맑고 쩌렁쩌렁한 웃음소리와 함께 느닷없이 동남쪽 절벽위에서 세명의 남녀가, 순식간에 허공울 날아서 장내에 내려서는 것이었다. ...... 사람들은 비록 사람이 하늘을 그렇게 마음대로 날아다닌다는 점이 기이하기는 했으나 이미, 그보다 더욱 놀라운 일들을 많이 당하고 있기 때문에 별로 놀라는 표정들은 아니었다. 다만, 오히려 보다 고수들인 제갈신중 등은 약간 놀라는 표정들이었다. 다름이 아니라, 지금 나타난 그 세명의 남녀는 이미 그들에게 익숙한 느낌을 주는 신분의 사 람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다름아닌 세외팔세 가운데의 성모궁과 검총, 그리고 도막의 주인들이었 다. (......!) 나타나면서 소리를 지른 사람은 도막의 주인 곽자성이었는데, 그는 지면에 내려서면서 다시 제갈신중에게 확인하듯 물었다. [정말로 방금전의 소리는 네가 지른 것이냐?] [......] 하지만 제갈신중은 대꾸도 하지 않았다. 지금 그의 마음은 커다란 마음의 울분을 트끼고 전장쪽을 향하고 있었다. 성모궁의 궁주는 오척 여덟치 정도의 키에 아름답고 늘씬한 몸매를 하고 있는 이십대로 보이는 여인으로, 자색의 궁장을 하고 있었으며 고아하고 부드러운 성품을 느끼게 해주는 천하 절색의 미녀였다. 제갈신중은 시선은 전장을 바라보고 있으면서도 내심은 그들을 주시하며 생각 을 굴리고 있었다. [원원의 말에 의하면 제십육대 만화성모의 이름은 운성죽이고 나이는 사십대 라고 했던가......?) 지금 그 만화성모 운성죽은 한쪽 손에 꽃바구니를 들고 있었는데, 굳이 그러한 이유를 들지 않더라도, 지금 검총의 주인인 상관구패 등과 함께 서있는 것과, 그리고 그녀의 무공을 간파해 보건대 그녀가 성모궁의 주인이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가 있었다. 그녀는 아주 신비롭고 기이한 시선으로 제갈신중을 바라보고 있었고 반면에 상관구패는, 정작 아는 체도 하지 않고 다소 무뚝뚝하게 먼산만 바라보고 있었다. ...... 사람들은 느닷없이 다시 세외팔세의 세 곳이 나타난 것을 보고 아연해 하는 한편 두려워 했다. 그들은 모두 제갈신중이 전혀 대꾸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일제히 긴장했다. 만일 이곳에서 싸움이 벌어지게 되면 그것은 바깥보다는 더욱 격렬하게 변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군웅들이 그렇게 우려하던 일은 현실로 나타나지 않았다. 제갈신중이 들은 척도 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곽자성이 화를 내기는커녕 다 시 고개를 돌려서, 사방의 적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어이! 이것들 보시오! 이 친구가 지금 당신들에게 화를 내고 있구만! 기왕에 이렇게 되었으니 그렇게 바보처럼 미련하게 굴지 말고,어서 이리들와서 직접 대면하는 것이 어떻겠소?] 곽자성의 그 음성은 그저 편하게 한 것 같으나 이내 이 영웅요 일대로 퍼져나 가서 찌릉찌릉하게 울렸다. 그 웅장한 기세만 본다면 오히려 제갈신중의 조금전의 소리보다도 더욱 맹렬 한 것 같았다. 기실, 그 소리는 곽자성이 한 번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 본 것이었다. 과연 아니나 다를까? 곽자성의 그말이 퍼져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윽고 동남북의 삼대마세쪽에서 각기 한명씩의 사람들이 흡사 허깨비처럼 간 단하게 허공을 날아서, 일제히 장내에 내려서는 것이었다. 만공선사 등은 자신들은 이쪽으로 따라오고 싶었지만, 아직 남아있는 자들의 무공도 만만치 않은 것들이었기 때문에라도 감히 움직 일수가 없어서, 고개를 돌리고 이쪽을 바라보기만 했다. ...... 이것은 실로 기이한 상황이 되고 말았다. 사방의 무리들이 서로 대치하여 멍청하게 바라보고 있는 가운데, 중앙의 이 연무장에는 몇몇의 중요한 인물들이 서로 대치하게 되었다. 방금 나타난 흑의중년인,홍포노인,그리고 회의복면인. 흑의중년인은 오십대의 나이에 육척의 키를 가지고 있는 독랄하고 사악한 분 위기가 느껴지는 사내였고, 홍포노인은 칠십대의 나이에 잔인악락한 기질을 느끼게 하는 매부리코의 음산 한 인상의 노인이었으며, 그 두 사람의 무공이나 기질을 보아하니 역시 삼대마세 가운데의 두곳의 우두 머리들의 분명했다. 그들의 무학이 각기 곽자성이나 운성죽 등처럼 광검의 경지에 이르러 있기 때 문이었다. (제사대 일월악마성 구양사립,그리고 제삼대 태양상인 적용홍광이라고 했던 가?) -세외팔세의 주인들, 미리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정말로 동시대에 그들이 이렇게 많이 나타 났다는 것이 실로 경악할 만한 일이었다. 몇몇 정파의 무림인들이 무림의 존재여부를 근심했던 것도 알만한 일이었다. 그런데, 제갈신중은 뜻밖에도 마지막인 그 세 번째의 회의복면인을 바라보고는 일순 크게 놀라고 말았다. (......!) 그 회의복면인은 조금전에 가장 유연하고 빠른 신법으로 날아왔었다. 하지만, 지금 제갈신중이 놀라고 있는 것은 바로 그러한 그의 무공이 아니라 그의 기 질과 눈빛이었다. 그의 기질은 제갈신중에게 너무나도 충격적이고도 익숙하며 게다가 섬뜩한 거 부감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 눈빛은 아주 젊은 느낌을 줄뿐만 아니라 더욱 낯익은 느낌을 주는 것이 아닌가? (이,이자가 바로 그 현현괴로라는 말인가?)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군웅들은 그가 맹내에 숨어들어서 일을 벌이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 장내에는 그야말로 금방이라도 억눌려서 질식 할 것 같은 무시무시한 긴장감 이 내리깔리고 있었다. 곽자성은 제갈신중이 나설줄 알았으나 그가 시종 현현괴로를 주시하며 가만히 서있자 다시 입을 열어 말했다. [아,이거 이렇게 되면 세외팔세 가운데에서 무려 일곱이나 모인 셈인가?이거 정말로 재미있지 않소?] 그러자, 삼대마세 가운데에서 태양상인 적용홍광이 음산한 얼굴에 음산한 웃음을 일으 키며 되물었다. [그런 것 같군.당신이 바로 도막의 주인이오?] 곽자성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헌데 당신은 바로 태양마교의 주인이겠지?] 순간, 그 적용홍광은 그 주름살이 가득한 우수를 가볍게 쳐들어 강렬한 빛살을 발출 시켰다. 그런데 그것은 곽자성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 [으아악-!] 여러마다의 찢어지는 듯한 비명소리와 함께 그 홍광이 사라져서 바라보니, 느닷없이 그쪽의 남궁세가 사람들 수십명이 한꺼번에 반쪽은 살이 거의 녹아 버린 모습으로, 죽겠다고 땅바닥을 마구 구르고 있었다. 하지만, 기실 적용홍광이 목표로 한 사람은 그들이 아니라 그들 가운데의 한 사람이었 다. -제왕신검 남궁수휘! 남궁세가의 가주인 그의 육신이 이미 시커멓게 타버려서 푸석푸석하게 먼지로 화해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 사람들은 분노하는 한편 지극히 경악했다. 그 남궁수후는 그래도 남궁세가 역대의 인물들 가운데의 인재라는 소리를 듣 던 사람이었다. 이제 육순에 도달한 상태에서 무공은 이미 거의 대홍락의 경지에 올라 있는 상태였는데, 그렇게 어이없게도, 조금도 피하거나 심지어 말 한마디 못하고 죽음을 당했다는 것은 그 적용홍광 의 능력을 믿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 남궁세가의 사람들은 일시 너무나도 엄청난 일을 당했기 때문에 감히 나서서 대들지도 못하고 멍한 표정들을 지었다. 곽자성도 전혀 뜻밖이었는지라 즉시 적용홍광에게 물었다. [아니 이게 무슨 짓이오?] 적용홍광은 음산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무슨짓이라니?나는 그대가 질문하기에 나의 신분을 확실하게 보여주었을 뿐 인데,나의 이 태양광검의 위력이 어떻소?] 곽자성은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을 보고 그만 씁쓸하게 대꾸했다. [아 그랬구려?잘 보았으니 이제 그만 두시오!] 그런데, 적용홍광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다시 우수를 들어올리는 것이었다. [그만 두라니 그게 무슨 소리요?귀하는 조금전에 미처 자세히 보지 못한 것 같은데?] 순간, 다시 그의 우수가 예의 그 공포스러운 홍광을 발출시켰다. 비록 황원원을 만나보기는 했으나 군웅들은 조금전의 그 한수로 이미 광검이 라는 무공의 가공함을 이미 맛보았다. 이번의 그 홍광은 바로 멍청하게 서 있는 제갈류량에게 날아갔다. 제갈신중은 그 순간까지 뭔가를 골똘하게 생각에 잠겨 있다가 문득 깜짝 놀라 서 손을 쓰려고 했다. 하지만, 이미 그보다 먼저 황원원이 그쪽으로 움직이며 손을 쓰고 있었다. 갑자기 번쩍! 하는 소리와 함께 황원원의 손끝에서도 황색의 그와 흡사한 광 채가 발산되어 마주쳐 갔다. 그것은 비록 지극히 짧은 한순간에 벌어진 일이었지만 어찌보면 대단히 환상 적인 광경이었다. 순간, 느닷없이 그 두가지의 광채가 동시에 사라지며 적용홍광이 뒤로 비실거리며 두걸음이나 물러나는 광경이 보였다. 황원원의 안색은 비교적 평온했는데 이미 창백하게 변한 그자의 안색을 보니 이번에 필시 손해를 본 모양이었다. 제갈류량은 물론 무사했다. 제갈신중은 그것을 보고 내김 기꺼워하며 황원원에게 다가가려고 했다. 헌데, 그때 갑자기 누군가 소리치며 적용홍광에게로 덮쳐갔다. [이놈 죽어랏-!] 그것은 뜻밖에도 당백승과 한 일행인 남궁검민이었다. 그는 한순간 신검합일하여 불꽃같은 검기를 발출시키며 대번에 이십여장의 거 리를 한꺼번에 날아 무섭게 걱용홍광에게 덮쳐가고 있었다. 그 기세는 그야말로 패기와 살기가 넘쳐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만일 강호의 일류고수에게 사용했다면 그것이 두려운 수법이 되었겠지만, 잘라 말해서 이 적용홍광 같은 초인간의 고수에게는 그야말로 계란으로 바위 를 치는 격이나 다름이 없었다. 남궁검민은 조금전에는 정신을 잃고 있다가 이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그렇게 달려드는 것이었다. 확실히 그 자신도 이미 알고 있었겠지만, 그것은 정말 무모했다. 적용홍광이 미처 나서기도 전에 옆에서 일월악마성 구양사립이 잔인하게 웃으 며 나서고 있었다. 구양사립의 우수가 가볍게 쳐들린 순간에 이미 남궁검민의 검세는 사라지고 그의 검끝이 괴이하게도, 빠르게 녹아들어가기 시작하고 있었다. 실로 정말로 그렇게 장검이 점차로 녹아들어갈 수가 있을까? 아마도 그것은 가공스러울 정도로 강한 힘으로 검끝으로부터 문드러뜨리고 있 는 것이리라. 남궁검민은 느닷없이 전신의 기운이 완전히 사라지면서 공허한 가운데 흡사 거대한 불길속에, 자신이 빠져들어간 것 같은 무시무시한 고통과 공포를 느꼈다. 그 무시무시한 공포는 그의 전신을 휘감고 단번에 그의 머리를 부수려고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미처 그의 머리가 박살나기 전에 갑자기 남궁검민은 믿을 수 없게도 상쾌하고 도 시원스러운 해방감을 맛보았다. (......!) 이미 구양사립의 그 무시무시한 공격은 씻은 듯이 사라지고 없었고 남궁검민 자신은 어느새, 제갈신중의 손에 들려져 있었다. 남궁검민은 비로소 자신이 그에 의해서 구출되었다는 것을 알고는 표정이 멍 청하게 변했다. 그것은 자신을 자학하는 것인지 아니면 부친의 참혹한 죽음 슬퍼하는 것인지 금방 알기 어려웠다. 제갈신중은 그를 조용히 밀어서 아까 서있던 장소로 되돌려 보냈다. 그러자, 남궁검민은 번쩍 눈을 크게 뜨더니 눈물을 흘리면서 이렇게 소리치는 것이었 다. [제갈공자,부디 부친의 원수를 갚아주시오!만일 그렇게 해주신다면 나는 앞으 로 당신의 시종이라도 되어 드리리다!] (......) 제갈신중은 제갈금의가 재빨리 남궁검민의 몸을 받아서 부축하는 것을 보고 묵묵히 다시 고개를 돌렸다. ...... 그 흑의중년인 구양사립은 조금전에 제갈신중이 자신의 무공을 간단하게 해소 시켰기 때문에 매우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제갈신중은 그를 향해 물었다. [당신들은 정말 이럴 것이오?정말로 피를 보기를 원하는 것이오?] 구양사립은 그러나 아직은 전혀 주눅이 든 것은 아니었다. 그는 이내 흉악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흐흐흐,그렇다면 어쩔테냐?설마하니 네놈이 혼자서 우리들을 다 막겠다는 것 은 아니겠지?] 제갈신중은 의식적으로 왠지 회의복면인을 힐끗 돌아본 다음에 대꾸했다. [당신은 그것을 반드시 설마라고 생각한다는 말이오?당신은 내가 조금전에 당 신을 죽일수가 없었다고 생각하시오?] 구양사립은 그말에 두 눈 가득히 사악한 독광을 피어올렸다. [그렇다면 네놈이 지금 나와 겨루자는 말이냐?] 제갈신중은 거의무표정하게 대꾸했다. [나는 이번에는 사정을 두지 않고 당신의 목숨을 취하도록 하겠소.당신들은 이 미 죽음을 자초했으니 나중에 후회할 수도 없을 것이오.] 제갈신중의 그 말은 아주 이상하게 사람의 마음을 긴장시켰다. (......?) 구양사람도 그 말을 듣고 일순 자신이 생기지 않는지 얼굴만 흉흉하게 일그러 뜨릴 뿐, 주저하며 쉽게 출수하려고 하지 않았다. 실로 이들 고수들간에는 그 우열을 파악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승부는 또한 한순간에 나게 되는 것이었다. 그 구양사립은 모르긴 해도 무한한 노력을 통해서 그와 같은 경지에 이르렀을 것인데, 자신의 안위도 돌보지 않고 무작정 덤벼드는 위인은 아니었다. 문득 그것을 보고 회의복면인인 현현괴로가 앞으로 나섰다. [흠! 자네가 그렇게 자신의 무공에 확신을 가지고 있다는 말인가?] 그 음성은 처음으로 듣는 것이었지만 아주 기이하게 들렸다. 사람의 영혼을 휘어잡는듯 하면서도 그러나 제갈신중에게는 왠지 익숙한 느낌 이 들었다. (......!) 제갈신중은 마침 그의 동태를 암암리에 주의하고 있었으므로 이내 주저없이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것은 이미 구양사립의 공격 정도는 얼마든지 대응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 시였다. [그렇소.당신은 믿기지 않으시오?] 황원원은 이때 역시 그 현현괴로에 대해서 주의하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제갈신중이 그렇게 너무도 자신만만해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오히려 걱정이 되었다. (상공께서 혹시 너무 감정이 앞서시는 것이 아닐까?) 따라서, 그녀는 급히 신형을 움직여서 제갈신중의 곁에 이르렀다. 현현괴로는 제갈신중의 그말에 오히려 다소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허허......그렇다면 설마하니 너의 무학이 이미 무형검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말 이냐?] 제갈신중은 여전히 지지않고 대꾸했다. [그렇소......당신은 믿기지 않으시오?] 지금 이렇게 제갈신중이 스스로 무형검을 성취했다고 공공연히 자인한 것은 처음있는 일이었다. 그것은 이미 그가 스스로도 자신의 무학에 대해서 자신감을 갖기 시작했다는 의미였다. 현현괴로는 제갈신중의 그말에 일순 더욱 뜻밖이라는 듯이 놀라 제갈신중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다시 물었다. [그럼 그와 같은 믿을 수 없는 일을 나더러 믿으라는 말이냐?] 제갈신중은 이내 대꾸했다. [그렇소.당신은 반드시 믿어야할 것이오.왜냐하면......나는 이미 당신의 정체 를 알고 있기 때문이오!] 순간, 장내의 모든 사람들 뿐만 아니라 심지어 그 현현괴로조차 크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현현괴로는 잠시 정색을 하고 뚫어져라 하고 제갈신중을 바라보다가 돌연 다 시 물었다. [그럼 너는 나를 누구라고 본다는 말이냐?] 제갈신중은 차분한 신색으로 대꾸했다. [당신은 바로 이번의 모든 일들을 일으컨 대흉수요.] 현현괴로는 그말에 일순 긴장을 풀며 가볍게 실소했다. [흐흐! 그야말로 너는 제법 나에 대해서 알고 있구나.하지만 기실 그러한 내용 을 지금의 상황이면 누구나 알수 있는 것이 아니냐?] 제갈신중은 그말에 기다렸다는 듯이 다시 말했다. [하지만 아울러 ......당신은 바로 천륭무가의 가주요.] (......!) 순간 현현괴로는 약간 느긋하던 기색이 갑자기 어리둥절하니 굳어버렸다. ......? 사람들이 그러한 광경을 보고 더욱 눈이 휘둥그래진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는 것이리라. 현현괴로는 잠시 무시무시하고 놀라운 듯한 시선으로 제갈신중을 바라보다가 이윽고 다시 물었다. [너는 대체 그러한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되었더라는 말이냐?] 제갈신중은 내심 설마하고 있었다가 그 얘기를 듣고는 즉시 대답했다. [나는 조금전에 천청대법을 사용하여 저 적용홍광이 당신에게 전음으로 가주 운운하는 소리를 들었던 것이오.천하에 무림세가는 많아도 실로 당신과 같은 능력자를 배출할 곳은 천륭무가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이오.] 하지만 기실 제갈신중은 자신이 현현괴로의 전음마저 엿들었다는 얘기는 아직 하지 않았다. 제 49 장. 대단원. 현현괴로는 그제서야 자신이 어이없게도 약간 오해하여 역으로 당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그만 실소했다. 하지만, 그는 역시 모든 혈겁을 주재한 사람답게 대답하기 짝이 없었다. 오히려 화를 내기는커녕 태연한 기색으로 제갈신중을 향해 이렇게 말하는 것 이었다. [그렇다! 기왕에 본좌의 정체가 드러난 이상은 더 이상 감출 필요도 없겠지. 본좌는 바로 다름아닌 우리 천륭무가의 제사십대 가주 천수자 백무성이다! 그 러나......흐흐흐,너희들은 오히려 나의 그러한 비밀을 알아낸 것을 후회해야 할것이다!] ......! 사람들은 그래도 내심 설마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현현괴로가 그것을 시인하고 나선 바람에 그만 저마다 놀 라서 눈이 휘둥그래지고 말았다. 그것은 거의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 사람들 가운데에서 제갈신중만은 비교적 침착하여 다시 입을 열어 물었다. [우리가 후회해야 한다니,그게 무슨 뜻이오?] 현현괴로,즉 스스로 제사십대 천수자라고 소개한 백무성은 이내 복면을 벗어 버리며 저주했다. [나는 본래 계획상,영웅맹주를 제거한 이후에 본모습으로 마를 제압하며 나타 날 생각이었다.그것은 살생을 최소화하고 내가 무림의 신이 되는 방법이었지. 하지만,이제 네놈이 나의 정체를 밝히는 바람에 어쩔수 없이 이곳의 모든 놈 들을 죽이게 되었다는 말이다!] ...... 그것은 실로 소름끼치는 얘기가 아닐 수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제 겨우 제정신을 차리고 있었지만, 그래도 아직 대다수는 멍청한 표정이 되어서 반쯤 얼이 빠져있는 것 같았다. 제갈신중은 안색을 굳히며 다시 물었다. [당신은 그것이 가능하리라고 생각하시오?] 복면을 벗자 드러난 백무성의 얼굴은 뜻밖에도 아주 낯설으면서도 준수한 외모 의 중년인의 모습이었다. 제갈신중은 내심 그것을 더욱 이상하게 생각했다. 백무성은 이내 냉소하며 차갑게 말했다. [너는 네 자신을 지나치게 믿고 있구나! 네가 천청대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 때문이겠지? 흐흐! 하지만 나도 실은 무학이 이미 무형검의 경지에 도달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그것도 이미 오래전의 일이지.너는 이제 알겠느냐?] (.......?) 제갈신중은 의아해져서 물었다. [무엇을 아느냐는 것이오?] 백무성은 차가운 음성으로 대꾸했다. [흐흐,너는 무공을 너무 빨리 성취했기 때문에 아직 그와 같은 무학의 기본상 식은 전혀 모르고 있구나? 즉,이른바 무형검의 경지에 오르게 되면 이후부터 는 그 공력의 대소에 따라 능력의 차이가 생기게 된다.] (......?) [보아하니 너는 아직 무형검을 성취한지 얼마되지 않아서 공력이 그저 육갑자 의 수준일 것이다.하지만 흐흐......본좌의 공력은 이미 십갑자를 넘어서고 있다 는 것을 알아야 한다.알겠느냐? 지금 나와 너의 능력은 비록 겨뤄보지 않아도 그렇게 알 수 있는 일이다.] 제갈신중은 그만 어리둥절해 졌다. 그의 공력이 육갑자의 수준이라고 말한 백무성의 말은 틀림이 없는 것이었다. 게다가 백무성이 이미 무형검의 경지에 올라 있다고 하는 말은 역시 틀림이 없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정말로 그의 능력은 싸워보지 않아도 백무성보다 훨씬 못한 것일까? 백무성은 그를 바라보며 다시 득의하게 말을 이었다. [사실 말하자면 나는 능력있는 인재를 매우 아끼는 편이다.하지만 너는 너무도 뛰어나서 오히려 나의 안전을 위협받게 되었으니 부득이 죽이지 않을 수가 없 구나!] (......) 제갈신중은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어 그만 마음이 답답해졌다. [하지만 당신이 우리를 모두 죽이기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오!] 백무성은 이에 가볍게 웃었다. 제갈신중이 은근히 곽자성 등을 충동질하려는 의도를 이미 파악했기 때문이었 다. [너의 그러한 말은 옳지 않다.사실 말이지 혼자의 힘으로도 지금 이곳의 모든 사람들을 제거할 수가 있는 상태이지.그러나......네가 그토록 우려한다면 나의 또다른 힘을 보여주도록 하지!] 말과 동시에 우수를 가볍게 휘저었는데 돌연 뜻밖의 상황이 다시 벌어졌다. 느닷없이 까마득한 허공위에서 백색의 점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그것들이 사람들의 형상을 하여, 백여장 위의 허공에서 문득 정지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백무성의 손짓을 따라서 허공을 바라보다가 일순 크게 경악하고 말 았다. 그 백색의 점들은 다름아닌 이십여명이나 되는 백의노인들이었고, 게다가 그 가운데에 겨우 약관의 나이로 보이는 백발의 미청년이 있어서, 백무성을 향해 공손히 절하며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었다. [아버님! 소자 대기하고 있사오니 명령만 내려 주시옵소서!] 사람이 저렇게 허공에 떠있을 수 있다는 것은 그 사람의 무공이 이미 광검의 경지에 올라있다는 증거이다. 게다가 그들의 숫자라면 장내의 사람들을 제거하는 것은 간단한 일일 것이다. 제갈신중은 뜻밖에도 백무성이 저런 수하들까지 거느리고 있었다는 사실에 그 만 입이 딱 벌어졌다. 그것은 모든 군웅들은 물론 세외팔세의 사람들 역시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본래 광검의 경지는 세외팔세의 사람들에 한한다고 알려져 있었는데, 실로 그러한 초능력자들이 저렇게 많이 있다는 사실은 그야말로 어처구니가 없는 느낌이 들게 하는 것이었다. 제갈신중은 그만 절로 멍해지는 기분속에서 물었다. [저 사람이 바로 당신의 아들이라는 말이오?] 백무성은 싸늘하게 웃으며 군웅들을 향해 대꾸했다. [나의 저 아들의 이름은 백군실이라고 하지.그는 지금 보다시피 광명각을 이끌 고 있는데,그를 포함하여 저 광명각의 인원들은 무공이 하나같이 광검 이상이 라는 것이다!] 백무성은 친절하게도 그러한 설명까지 해 주었는데, 이윽고 그 광명각의 신비로운 인원들이 장내의 부근에 내려서는 것을 바라보 며 사람들은 그만 절망에 빠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도무지 이 백무성의 능력은 너무나도 가공스러워서 상대가 되지 않았다. 마치 이제부터 앞일을 예견하듯이 구양사립과 적용홍광 등은 흉악한 표정으로 득의하게 웃고 있었다. ...... 제갈신중은 황급히 이 위기를 헤쳐나가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고,혹은 자신의 무학을 상기해 보다가, 이윽고 반쯤은 넋을 잃은 듯한 표정이 되어서 다시 백무성에게 물었다. [대체 당신은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을 하려는 것이오?이런 일들을 한다고 해서 무슨 소득이 있겠소?] 백무성은 답답한 표정으로 제갈신중을 바라보다가 이윽고 싸늘하게 웃으며 대 꾸했다. [너는 제법 나를 귀찮게 하는구나! 하지만,비교적 너의 자질이 아까우니 그 얘 기를 해주도록 하지!] (......) [너는 이미 아다시피,우리 천륭무가의 사람들은 그동한 천형이라고 할 수가 있 는 천상절맥에 걸리게 되어 대대로 조사의 무학을 다 배울수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또한 일찍 요절해야만 했다.그 슬픔은 커다란 것이었다. 바로 저 내 아 들인 백군실이의 머리가 흰것도 그 이유이다.하지만......나는 운좋게도 과거 천 년전의 조사와 같은 체질인 천상신골의 완벽한 신체를 타고나게 되었던 것이 다!] ......! 사람들은 이 눈앞의 백무성이 기실은 그 전설상의 신체를 타고났다는 얘기를 듣자 다시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제갈신중은 점입가경이었기에 그만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그래서 하늘에 보복하기 위해서 이와 같은 혈겁을 일으켰다는 말이오?] 백무성은 그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늘에 보복하다니 그게 무슨 소리냐?나는 완벽한 신체를 가지고 태어난 사 람으로 적어도 그렇게 속좁은 아니다.나는 다만 이 세상에 가장 이상적인 무 림계를 건설하여 스스로 신이 되고 싶었을 뿐이다.] 제갈신중은 그만 어처구니가 없어서 눈이 휘둥그래졌다. [이상적인 세상의 신이 되겠다고?] 백무성은 싸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의 본가의 조사이신 제일대 천수자는 아직 고금제일인이라는 칭호를 받 고 계시지만,그러나 그는 무림의 신이라는 칭호는 받지 못하고 있다.따라서,나 는 같은 천상신골의 완벽한 신체를 타고난 사람으로서 이 일로 한 번 그를 능 가해보려는 것이다.본래 대장부는 야망이 있어야 한다.너는 나의 이 야망이 훌 륭하다고 생각지 않느냐?] [......] 제갈신중은 그만 너무나도 어이가 없어서 전혀 대꾸를 하지 못했다. 백무성은 약간 들뜬 듯한 표정으로 다시 말을 이었다. [본래 나는 어렸을 때부터 이 야망을 꿈꾸어 왔고,그리고 그것의 실천을 위해 일찌감치 집을 떠나서 수련의 길에 올랐다.그래서 사람들은 내가 죽었다고 지 레짐작하고 또한 본가의 대가 끊어졌다고 생각한 것이다.허허......그것은 오히 려 나에게는 유리한 상황이었기에 나도 모른 척 해던 것이다.] ...... [나는 과연 생각대로 일찌감치 조사의 무학을 대성하고 무형검의 경지에 올랐 다.그리고 나이 사십오세에 은밀히 강호에 출도했으며 모든 세력들을 키우고 또한 부추켜서 대사를 성취하기 위해 만전을 기했다.물론 그 가운데 너와 같 은 다수의 변수가 생겨나기는 했지만, 그러나 이제 결국 대사는 성공되기에 이른 것이다.] ....... [나는 지금 너희들을 모조리 제거할 것이지만 ,그러나 정말 무림까지 멸망시킬 생각은 없다.나는 스스로 무림의 구세주로 행세할 것이며,따라서 모든 무림인 들은 앞으로 이상세계에서 행복하게 살게 될 것이니,너희들은 그것을 위안으 로 삼고 죽어가는 것도 그다지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제갈신중은 문득 백무성의 시선이 이어 제갈류량에게 향하는 것을 보고 그를 먼저 제거하려는 것임을 눈치챘다. 하지만, 갑자기 기이한 의문이 떠올라서 그는 급히 다시 질문했다. [아니,저 영웅맹주는 인피면구를 쓰고 있는 가짜로서 당신의 꼭두각시일 것인 데 지금 구태여 그를 죽이려는 의도는 어디에 있소?] (......?) 백무성은 다소어리둥절해 하다가 그만 실소하며 대꾸했다. [하하,이런 엉뚱한 녀석을 봤나?나는 네게 아까 저자의 지시를 거역하기에 다 소 이상하게 생각했었는데,알고보니 바로 그것 때문이었군! 하지만 허허,그는 정말로 진짜 제갈류량인 것이다!] 제갈신중은 그만 마음이 혼비백산해지도록 놀라서 다시 물었다. [아니 그게 대체 무슨 소리요?] 백무성은 잠시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며 제갈신중을 바라보다가 이윽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하기는 네가 오해할 만도 하게 되었지.좋아, 내 그 얘기마저 드려주도록 하 지! 사실 그는 나와 나이도 같고 또한 아주비슷한 체형을 가지고 있었다.그것 이 바로 그의 불운이었다고 할 수가 있겠지.] (......?) [나는 지난 오년전에 강호에 출도하여 모든 준비를 시작하였고,그리하여 일단 삼대마세를 다시 일으켜서 영웅맹을 멸망시키고 이후에 내가 등장해야 하겠다 고 생각했다.하지만 기실 저 제갈류량은 보기보다 훨씬 똑똑하여 그것이 쉽지 않았는데,따라서 나는 오히려 역으로 그의 모습으로 변장하기 위해 이미 삼년 전에 그를 제압하고 그의 얼굴에서 인피면구를 벗겨내게 되었던 것이다!] [뭣이라구?] 제갈신중은 그만 두 눈이 휘둥그래졌다. 삼년전이라면 그가 방황을 시작할 때였고 모친이 죽고난 이후였다. 그때 이미 살아있는 부친의 얼굴에서 껍질을 벗겨냈다니 그야말로 이는 상상 도 못할 일인 것이었다. [나는 이미 당시에 현현사의 무공을 모두 터득한 뒤였으므로 얼굴 껍질을 벗긴 제갈류량을 복면을 씌워서 현현사주로 만들어 놓고,거기에 다시 내가 보완한 심령대법으로 그를 조종했다.그는 이후에 나의 꼭두각시가 되었고 나는 그동 안 완벽하게 영웅맹주의 역할을 해내었던 것이다. 제갈신중은 그만 너무나도 놀라서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그렇다면 바로 얼마전에 본가에 나타났던 사람은 바로 당신이었다는 말이 오?] 백무성은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다.나는 삼대마세가 준동하는 기회를 주기 위해서 비무대회를 석달 앞 두고 귀가한다는 명분으로 너희 제갈세가를 찾았던 것이다.당시 나도 네가 이 렇게 성장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지만......아무튼 나는 모든 계획에 따라서 움 직였고 또한 너의 아비를 이용하여 삼대마세를 부렸다.아마도 너도 그때 태양 마교의 분당에서 너의 아비를 본적이 있지 않느냐?] 제갈신중은 입이 딱 벌어져서 말도 나오지 않았지만 겨우 다시 물었다. 그는 이제서야 비로소 자신이 어째서 부친과 백무성에게 동시에 괴이한 느낌 을 갖게 되었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럼 당신은 이제 다시 필요해져서 그 인피면구를 우리 아버님께 씌워놓은 것이라는 말이오?] 백무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나는 다시 그를 움직이면 전보다 일이 쉬워지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 제갈신중은 그러한 말을 다 듣고 나자 일순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 보다가 이 윽고 부친과 황원원을 번갈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는 극도의 슬픔과 분노를 느끼다가 일순 마음을 정리한 것이다. 그는 자신으로서는 최선을 다해서 그들을 위해 목숨을 던지려는 생각이었다. 이윽고, 그는 백무성을 바라보며 다시 말했다. [자,그렇다면 이제는 우리가 대결할 때가 되지 않았소?] 백무성은 제갈신중의 그러한 모습을 바라보다가 이윽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 다. [좋다! 나 역시 그대가 마음에 들기는 하지만 죽일 수밖에 없다! 나와 네가 동 시대에 태어난 것을 악운으로 생각해라!] 이어 백무성은 우수를 들어올리더니 정말로 드디어 예의 그 가공할 무공을 전 개했다. 실로 그의 무공은 가공스러워서 일시 장내가 무형의 기운으로 가득차서 황원 원 등의 목을 죄어오는 것 같았다. 당사자도 아닌 옆사람이 그렇게 느낄 정도인데 실로 당사자가 받는 충격은 말 할 나위도 없을 것이었다. 황원원은 제갈신중이 이 순간에 손을 반쯤 들다가 말고 경악한 표정으로 몸이 굳어지는 것을 보고 내심 깊은 울음을 삼켰다. (상공! 저도 당신의 뒤를 따를테니 먼저 가 계세요.) 황원원은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며 일순간 전신의 공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 렸다. 백무성이 이미 제갈신중을 제거한 이상은 자신에게 공격해올 것이 뻔했기 때 문이다. 그런데, (......) 그렇게 마음을 정하고 기다리는데 백무성이 여전히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고 의아해 하는데, 느닷없이 이미 죽은 줄로 알았던 제갈신중이 돌연 고개를 쳐들고 껄걸 웃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핫핫핫! 아니 이런 일이 있나? 이거야 정말 핫핫,정말로 웃기는 노릇이군! 뭣 이, 당신이 무형검에 올랐다구? 핫핫핫......!] ......! 그것은 그야말로 너무나도 어이가 없는 변화였으며 실로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괴상한 광경이었다. 즉 불가사의한 괴변이라고 말할 수가 있을까? 하지만, 상대인 백무성 역시 다친 것은 아니어서 창백해진 안색으로 이내 눈을 부릅뜨 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아니야,이것은 현실이 아니야! 나의 무형검은 정확한 것인데 어째서 이런 일 이 벌어진다는 말인가?] 놀랍게도 아마 상황은 반전되어 제갈신중의 승리인 모양이었다. 과연 아니나 다를까? 제갈신중은 웃으며 이내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건 바로 당신의 무형검이 정확하지 않았다는 말이오.즉,당신의 공격은 비록 힘이 있었으나 쓸데없이 분산되어 있었소.그래서 나보다 약했던 것이오.] 제갈신중은 아마도 상대인 백무성이 무공을 펼치는 순간 그것을 알고서 크게 놀랐던 모양이었다. 황원원은 이미 어젯밤에 제갈신중이 무공을 펼쳐서 가장 효율적으로 당백승 등을 제압했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녀는 문득 마음속 깊이 뜨거운 환희의 감정이 솟구치는 것을 느끼며 울며 중얼거렸다. (맞아! 상공의 무학이야말로 진정한 무형검인 거야!) 이때 제갈신중은 이미 간단하게 백무성을 제압해놓고 그의 앞에서 거창하게 일장훈시를 늘어놓고 있었다. [그러니까 말이오......당신은 말하자면 세가지의 실수를 범했다는 것이오.그 하나는 나와 같은 살마이 나타나는 것을 몰랐다는 것이고,두번째는 스스로 탐 욕에 젖어서 사악한 심령대법을 사용했기 때문에 심성이 마경에 들었던 것이며, 그리고 세 번째는 그러한 마음으로 천하제패를 꿈꾸었기에 하늘의 운이 닿지 않았다는 말이오.따라서 당신은 앞으로 반성을 하고......] 황원원은 제갈신중이 갑자기 그렇게 말을 잘하게 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백무성은 그야말로 참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 채 묵묵부답이었다. 광명각의 인원들도 그것을 보고 감히 준동할 수가 없었다. 황원원은 그것을 보자 절로 미소를 지었다. 하짐나, 갑자기 그녀는 광명각의 사람들을 보자 한가지 생각이 떠올라서 안색이 대변 하여 제갈신중에게 다가가 전음으로 말했다. [잠깐, 좋아하기는 아직 일러요! 그는 사실 원흉은 아니예요!] (......?) 제갈신중은 뜻밖에 얘기를 듣자 다시 의아해져서 말을 중단하고 고개를 돌려 황원원을 바라보았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이오?] 이순간 황원원은 왠지 아주 불안한 표정이 되어서 다소 주저하다가 이내 역시 전음으로 대답했다. [음,제가 그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는 모두 세가지의 이유때문이예요.우선 첫째 는,당신이 어젯밤에 진정한 무형검을 사용했었어요.그런데 어째서 저자는 그 것을 모르고 있는가 하는 것이고......] (......?) [둘째는,일찍이 제가 생각했었던 대로 세외팔세가 이렇게 한꺼번에 갑자기 나 타난 데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얘기예요.저자가 마지막으로...... 저 광명각의 사람들은 보아하니 하나같이 나이들이 아주 많은 것 같아요.과연 정말로 저 백무성이 만들 수 있는 조직이라고 생각하나요?] 순간, 제갈신중 역시 문득 깨닫는 바가 있어서 놀라며 전음으로 물었다. [아니 그렇다면, 진짜 원흉은 그보다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는 말이오?] 헌데 바로 그때의 일이었다. [바로 그렇다! 이제야 비로소 나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는 말이냐?] 한소리의 낯익은 음성과 함께 느닷없이 한 사람이 장내에 불쑥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 제갈신중은 순간 깜짝 놀라 안색이 크게 변했다. 그 사람은 다름아닌 전날에 그들에게 황금원보를 주었던 그 괴상한 거지점장 이 노인이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제갈신중이 더욱 놀라고 있는 것은 그것보다는 조금전에 그 노인이 자신 의 전음을 엿들은 듯 했기 때문이었다. 제갈신중은 천청대법을 터득한 이래도 아직 자신의 전음을 도둑맞은 적은 없 었고 오직 자신이 엿들었을 뿐이었다. 그러한 사실이 실로 그를 불안하게 하는 것이었다. 제갈신중은 급히 소리쳐 물었다. [당신은 대체 누구입니까?] 그 거지점장이 노인은 잠시 두 사람을 돌아보며 미소짓더니 이윽고 대답했다. [왜? 내가 갑자기 나타나서 놀랬는가? 허허......나는 사실 천수자 백도건일세.] 제갈신중은 그만 놀라서 눈이 휘둥그래졌다. [그렇다면 당신은 천년전의 그 제일대의 천수자라는 말입니까?] [왜 믿기지 않나?] 노인은 가볍게 웃더니 이어 백무성쪽을 바라보고 눈살을 찌푸리며 다시 말을 이었다. [사실 저런 녀석이 나의 이름에 먹칠을 하고 있는 것이지.나는 그동안 혼자서 세외팔세라는 것을 건립하고 또한 지금 그것들을 이곳에 모이게 했네.내가 그 세외팔세를 만들어내고 또한 이런 일들을 꾸민 것은 역시 이상세계를 건설하 기 위한 것이야! 사실 저 녀석은 나의 하수인에 지나지 않지!] 실로 이 노인의 말은 더 이상 경악할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제갈신중은 그 소리를 듣고 놀라서 소리쳤다. [나는 믿을 수가 없소!] 노인은 웃으며 대꾸했다. [그럼 시험해 보면 될게 아닌가?] 이에 제갈신중은 두말하지 않고 노인을 향해 예의 그 무형검을 전개했다. 그런데, 정말로 괴이한 일이 일어났다. 이번에는 정작 노인은 가만히있고 공격한 제갈신중만이 전신이 피투성이가 되 어 뒤로 날려가는 것이 아닌가? 제갈신중이 이에 대해 다시 공격해 보아도 결과는 마찬가지였고 그의 상처는 깊어질 뿐이었다. 게다가 노인의 말은 더욱 가관이었다. [믿을지 모르지만,나는 이미 원영에 삼천갑자의 공력을 성취하고 마음대로 육 신을 옮길 수 있는 불사의 경지에 이르렀네.지금 이 육신에 들어와 있는지도 꽤나 되었지.그래서 자네는 결코 나를 이기지 못할 것일세!] 과연 노인의 그러한 얘기를 곧이 들을 수가 있을까? 어쨌든 노인은 이어 제갈신중을 향해 우수를 들어올렸는데,거기에서 검푸른 뇌전이 일어나는 것이었다. ......! 그 뇌전은 순간적으로 제갈신중의 몸을 관통했으며 그것으로 그의 목숨은 끊 어진 것 같았다. 하지만 이때 한가지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언제부터 제갈신중의 품속을 벗어났는지 알수 없는 한 장의 은표가 아주 느릿 하게 날아서 노인의 이마 한가운데에 꽂히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너무나도 천천히 일어나서 마치 장난처럼 보이기도했다. 하지만 결코 장난은 아니었다. 노인의 몸에서는 괴이한 균열이 일기 시작했으며 그는 이마에서 피를 철철흘 리며 묻는 것이었다. [나의 불사의 몸을 파괴하다니,이것은 대체 뭔가?] 제갈신중은 이윽고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형식을 따지자면 우리 가문의 비도파천황이라는 것이오.사실......나는 조금전 에야 비로소 내가 기에 집착하고 있었음을 알아냈소.] 노인은 그말에 일순 눈을 휘둥그래 떴다. [지,집착이라고......? 역시 그랬었군!] 동시에 그의 이마는 터져 나가고 몸뚱이는 산산이 부서져 버리고 말았다. -천수자 백도건. 그 고금제일인의 이 세상에서의 최후였다. 하지만 제갈신중의 귓전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들려오고 있는 듯 했다. -사실 말이지,내가 그렇게 천년을 살아온 것은 도를 닦기 위해서였다면,자네는 믿겠는가?...... 강호는 다시 평온해졌고 영웅맹은 사라졌으며 제갈신중과 황원원은 손을 잡고 심산에 은거해 버렸다. 언제 혼인식을 치렀는지 알 수 없지만 만공선사가 주례를 섰다고 하며, 곽자성 등은 제갈신중과 비무를 해보기 위해 끝없이 그들을 쫓아다닌다고 했 다. -대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