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12 양한우 (hanwoo71) [백상] 종남사부 제1권 제1장 03/21 08:56 273 line 올 린 이 : 양한우 HITEL ID : hanwoo71 제1장. 태백거(太白居)의 주인 도노대(陶老大) 태백거(太白居)의 주인 도노대(陶老大)는 오늘따라 무척이나 감정(感情)의 기복(起伏)이 심한 날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은 오늘따라 유난히도 상대하기 어려운 손님들이 아침나절부터 몰려들어 귀찮게 했을 뿐만 아니 라, 지금은 또 그와는 반대로 어디선가 웬 아리따운 소녀(少女)들이 안으로 들어와서는 그의 기분을 새롭게 바꾸어 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체 이 여자(女子)라는 존재는 어떤 것일까? 도노대는 비록 이제까지 수십 년의 세월 동안 살아오기는 했지만 아직도 그러한 문제에 대해서는 뭐라고 명확한 결론을 내리기가 어려웠다. 그저 가장 쉽게 말하자면 이 여자라는 존재는 지극히 아름다울 수도 있고 또한 지극히 추악할 수도 있지만, 정말 로 가장 아름다울 때에는 그 주위의 분위기마저 밝고 화사(華奢)하게 만들 어 놓는 재주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침나절과 정오 무렵에 주루가 터져나가라 하고 수많은 거북한 손님들이 몰려들어서 그들을 상대하느라 매우 심한 곤욕(困辱)을 겪어야만 했던 도노 대는 이제 오후가 되어 다소 한가하게 되자 방금 전에 몰려들어온 그 일단 의 소녀들을 은근히 훔쳐보며 내심의 피곤함을 달랠 수가 있었다. 비록 그 다섯 명의 소녀들 사이에 약간 불쾌하게도 한 명의 빌어먹을 사내 녀석이 끼어 있기는 하지만, 도노대는 그래도 그러한 점에 별로 개의하지 않았다. 지금 그는 자신의 나이가 그 소녀들보다 족히 서너배는 많아서 도 무지 그 사내녀석과 경쟁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그로 하여금 미처 다른 생각을 품지 못하게 하고 있는 것은 기실 그 눈앞의 그 다섯 명의 소녀들의 미모(美貌)가 기막 힌 것들이어서 그로 하여금 절로 빨려들게 하는 마력(魔力)과도 같은 기질 (氣質)들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일개 주루의 주인에 불과한 도노대는 그러한 기막힌 미소녀들의 자태(姿態) 와 용모(容貌)를 그저 한 번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해야지 전혀 다른 생각을 품을 수가 없는 일이었고, 또한 실제로 도노대는 그렇게 그저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을 느낄 수가 있으며 뿌듯한 기분을 느낄 수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도노대가 한창 소녀들의 자태를 훔쳐보는 일에 열을 올리고 있을 무 렵에 다시 한 명의 손님이 어슬렁거리며 주루의 안으로 들어왔다. "……!" 만일 상황만 허락된다면 도노대는 언제까지나 그 소녀들의 자태를 훔쳐보고 즐기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그러나 지금 그는 이 주루의 주인이고, 또한 따 로 일하는 점원 아이를 두고 있지 않은 실정이었기 때문에, 일단 손님이 안 으로 들어오게 되면 당연히 그 자신이 싫더라도 앞으로 나서서 맞이하지 않 을 수가 없었다. 이런 주루의 일을 해서 무슨 큰 돈을 벌어 부자가 되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 저 먹고 사는 정도라면 족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도노대는, 따라서 내심 아 침나절의 심한 피로감이 아직 풀리지 않았고 신물이 나 있었던 참이라 실로 그와 같은 눈요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무단히 박탈해 버린 지금 나타난 새 로운 손님에 대해서 일순 극심한 짜증이 일어남과 동심에 잔인(殘忍)한 욕 설이 치미는 것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빌어먹을 자식! 대낮부터 무슨 술독에 쳐박힐 일이 있다고 우라질 주막으 로 찾아들고 난리라는 말인가? 자라같은 놈의 자식! 할 일이 없으면 집에서 낮잠이나 날 것이지! 틀림없이 제놈의 육시랄 애비 에미가 하루아침에 염병 을 당하여 쓸데없이 떠도는 후레자식이 분명할 것이다!) 방금 들어선 그 손님은 나이가 이제 겨우 약관 스물에 이른 듯하고 키는 훌 쩍하니 컸지만, 체격은 허술하고 몸매는 다소 마른 편이며, 얼굴에는 버짐 이 더덕더덕하게 돋아난 그저 흔히 볼 수 있는 평범(平凡)한 용모의 가난한 집의 서생(書生)처럼 보였다. 그 서생은 일신(一身)에는 다소 낡은 의복(衣服)을 걸치고 한 손에는 때 묻 은 부채를 들고 있었는데, 비록 정말로 도노대가 이전에 그를 한 번이라도 보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는 실로 이러한 힘없이 허약하고 쓸모없이 빈둥 거리는 젊은 녀석들에 대해서 일종의 강한 혐오감(嫌惡感)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지금은 비록 일개 주루의 주인에 불과한 형편의 도노대이지만, 그도 기실은 한창 젊은 시절에는 뭔가 이루고 싶은 원대한 꿈과 야망(野望)이 있었고 그 야망을 달성하기 위해 오직 한 마음으로 노력(勞力)하며 심지어 밤잠마저 설치곤 했었던 적이 있던 사람이었던 만큼, 그저 아무런 할 일도 없이 빈둥 거리며 편안하게 세월(歲月)을 보내려고 하고 그렇다고 해서 부모에게서 물 려받은 특별한 재산(財産)도 없이 시건방을 떨고 다니는 녀석들에 대해서는 내심 크게 화가 치밀어오르고 생각같아서는 당장에 그 녀석의 앞으로 달려 가서 뺨이라도 시원하게 서너 차례 갈겨 주고 싶은 심정(心情)이 되곤 했 다. 그것은 아마도 일찍이 그렇게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왔으나 그 투자한 노력의 양에 비해서 결과가 너무나도 형편없게도 이제는 겨우 일개 주루의 주인으로밖에 행세할 수가 없는 자신의 신세에 대해서 반발적으로 지금 편 하게 지내려는 녀석들이극도로 미워지게 되는 것이고 또한 혐오스러움을 느끼게까지 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무튼 비록 내심의 생각이야 그와 같이 잔인한 욕설로 가득 들어차 있다고 는 해도 일단 주루의 주인의 위치에서 정말로 그렇게 손님에게 드러내놓고 욕설을 퍼붓거나 혹은 손찌검을 할 수는 없는 일이어서 도노대는 이윽고 천 천히 그 서생에 다가가서 입을 열어 물었다. "뭘 주문할 건가?" 이 도노대의 음성은 비록 다소 예의(禮儀)를 차린다고는 했으나 워낙에 불 쾌한 심사(心思)가 되어 있었던 만큼 자연히 몹시 퉁명스럽고 무뚝뚝하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서생은 마악 비어 있는 탁자들 가운데에서 하나를 차지하고 앉아서 여유있 게 주위를 둘러보려다가 느닷없는 주인의 그와 같은 퉁명스러운 질문을 듣 고는 일순 다소 어리둥절한지 도노대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다가 입을 열어 대답했다. "죽엽청(竹葉淸) 한 병과 안주 몇 가지를 가져다 주시오." "……" 그 말을 듣고 있다가 도노대는 문득 내심으로 다시 심한 권태감과 짜증이 치밀어서 그만 우라질! 하고 소리를 내지를 뻔했다. 기실 그는 워낙에 기분 이 좋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도무지 눈앞의 그와 같은 후레자식의 주문 을 받아서 일하고 싶지 않아서 상대가 그저 웬만큼의 까다로운 주문만 하기 만 하면 그저 그것을 핑계로 아예 그런 것이 없다고 그냥 밖으로 쫓아보낼 심산이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유감(遺憾)스럽게도 지금 눈앞의 이 서생이 주문하고 있는 그 죽엽 청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곳 장안성(長安城)의 웬만한 주막에서는 거의 다 전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흔해빠진 것이었고, 그리고 실제로 그의 주막인 이 태백거에서도 주로 그것을 팔아 오고 있었던 상태였으니, 도노대는 그야 말로 다른 주문은 없다고 말할 수가 있을지 몰라도 오직 그 죽엽청에 대해 서는 도저히 미리 준비하지 못했다고 둘러댈 수가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실로 외곬으로만 생각하다 보니 궁하게 되었던 것이 통하게 되었다 고나 할까, 잠시 서생의 시선을 마주 노려보고 주저하고 있던 도노대는 문 득 뇌리 속에 한 가지의 기발한 생각을 떠올리고는 이윽고 서생을 향해 이 렇게 대꾸했다. "그 죽엽청은 지금 이곳에은 없네." 서생은 그 말을 듣고는 더욱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어 그를 향해 다시 말했 다. "아니, 이곳에는 죽엽청도 없다는 말이오? 그것 참 이상한 일이군. 그렇다 면 어서 다른 아무런 술이나 가져다 주시오." 도노대는 서생의 말을 듣고 있다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다시 대꾸했다. "이곳에는 자네에게 줄 수 있는 죽엽청도 없을 뿐만 아니라 다른 아무런 술 들도 역시 하나도 없네." (……?) 서생은 그제서야 이 주루의 주인이 자신에게 느닷없이 시비를 걸려고 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는 다소 의아한 표정이 되어 그의 얼굴을 주시하다가 물었다. "보아하니 이곳에 술이 벌써 하나도 남김업시 다 떨어져 버린 것 같지는 않 은데 어째서 유독 나에게만은 그 술을 팔 수가 없다는 것이오?" 도노대는 상대가 비로소 자신의 의도를 어느 정도 짐작한 듯하자 드디어 만 면에 득의의 흉소(兇笑)를 떠올리며 대답했다. "그것은 바로 지금 너에게는 그 술을 마실 수 있는 은자가 없을 것이라고 내가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손님이 그다지 많지 않은 한가한 오후라고는 하나 그래도 제법 많은 사람들이 주위에서 듣고 있는 만큼 그들을 의식해서 만들어낸 도노대의 핑 계거리는 제법 치밀하게 갖추어진 것이었다. 서생은그 말을 듣자 일순 자신의 차림새가 너무나도 초라한 것이어서 그러 는가 보다라고 생각하고는 가볍게 웃으며 품속에서 즉시 두어 냥 정도의 은 자 덩어리를 꺼내서 탁자 위에 올려 놓으며 도노대를 향해 다시 말했다. "그렇다면 걱정하지 마시오. 여기 은자가 있으니까. 당신이 만일 나를 믿을 수가 없다고 한다면 먼저 이 은자들을 맡아둔다고 해도 상관은 없소. 설마 하니 이 은자들로도 부족하다는 말은 아니겠지?" "……" 그러나 도노대는 잠시 탁자 위에 올려져 있는 은자 덩어리들을 바라보다가 이윽고 고개를 쳐들며 기이하게도 능글맞은 표정으로 한 차례 웃었을 뿐 전 혀 그 은자를 집어들거나 혹은 주방으로 걸어가려는 등의 기미를 보이지 않 고 있었다. 서생은 그것을 보고서 마침내 무슨 뜻인지 알아차리고는 크게 놀라고 어처 구니가 없어 하며 다시 물었다. "아니, 정말로 이 은자들로도 이곳에서 술을 마실 수가 없다는 말이오? 이 곳의 술값은 그렇게도 비싸다는 말이오?" 서생은 그렇게 소리치고 나서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는 듯이 고개를 좌우 로 돌려서 실내의 구조물들이나 장식물들을 살펴보아 과연 이곳이 정말로 그와 같은 고급의 술집인가를 알아보려는 듯한 행동을 보였다. 기실 이 태백거는 장안성 내에서 그다지 유명하다고 할 수가 없는 이삼류에 불과한 작은 주막일 뿐이었고, 따라서 술값이 다른 곳보다 더 비쌀 이유는 하나도 없는 상태였다. 이제까지 주위의 탁자를 차지하고서 이곳의 술값이 쌀 것이라고 짐작하고는 마음놓고 술과 음식들을 마시고 먹고 있었던 여러 명의 손님들은 느닷없는 그 서생의 말에 자신들도 내심으로 크게 흠칫하여 이쪽으로 다소 긴장된 시 선을 보내기 시작했다. 만일 정말로 술값이 지나치게 비싸다고 한다면 그들 가운데의 대부분은 이내 금방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나가 버릴 태세 였다. 도노대는 비록 치밀한 핑계거리를 만들어 내기는 했으나 미처 그와 같이 변 하는 사태를 예상하지 못했었기 때문에 이내 그러한 상황을 금새 파악하고 는 다른 사람들에게 해명하는 방편으로 서생을 향해 이렇게 대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흐흐흐! 우리 주루의 술값은 고작해야 죽엽청 한 병에 은자 두 푼 정도로 오히려 다른 주루들에 비해서 싼 편이라고 할 수가 있다. 그리고 안주의 값 도 매우 저렴하여 일단 손님으로 맞이한 이상은 누구에게도 폭리(暴利)를 취하지 않는다." 서생은 이에 더욱 의아해하며 그를 향해 재차 물었다. "아니, 그렇다면 어째서 유독 나는 이 많은 돈으로도 술을 전혀 마실 수가 없다는 말이오?" 이 한 푼이라고 하는 것은 한 냥(兩)의 백분지일에 해당되는 금액이었기 때 문에 지금 서생이 내놓은 두어 냥의 은자라면 최소한 죽엽청을 일백 병은 살 수가 있을 것이기에 실로 그가 그렇게 묻고 의아해하는 것은 당연한 일 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도노대는 능글맞은 시선으로 그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이윽고 음험(陰險)한 표정으로 천천히 대꾸했다. "나는 일단 손님으로 맞아들인 사람에게는 공손하게 대하지만, 실로 너와 같은 녀석을 보게 되면 즉시 혐오감을 느끼게 되기 때문에 손님으로 맞아들 이지 않는다. 따라서 청하지 않은 손님이 안으로 들어와서 나에게 술을 달 라고 하면 나는 유독 그 녀석에게는 술값을 비싸게 받는 버릇이 있는 것이 지. 나는 실로 너와 같은 녀석을 보게 되면 온몸에 심한 두드러기가 나는 것 같아지기 때문에 정말로 그와 같이 한다고 해도 그와 같은 계산은 나로 서는조금도 이익이 되는 것이 아니라고 할 수가 있다." "……" 서생은 그 말을 듣고 나서 몹시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대 체 그 바싸게 받겠다는 술값이 얼마나 되는 것이냐고 물어보고 싶은 심정이 겠지만, 그러나 그는 이미 상대가 자신에게 술을 팔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 을 확실하게 눈치챘기 때문인지 이내 화제를 돌려서 다시 말했다. "그렇다면 이곳에서 술을 팔 수가 없다면 엽차(葉茶)나 다른 음식들은 팔 수가 있는 것이 아니겠소? 나는 일단 그것이라도 먹고 가야겠소." 도노대는 그 지독한 모멸감이 섞인 말을 듣고도 별로 안색이 변하지 않는 이 서생은 알고보니 그래도 제법 어느 정도 수양이 되어 있는 사람인 것 같 았다. 그러나 뒤를 이어 도노대의 입 속에서 흘러나온 대꾸는 더욱 어처구 니가 없는 것이었다. "우리 주루에서 너의 말대로 다른 음식들을 팔기는 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오로지 식사만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술을 마시는 데 있어서 안주로 삼으라 는 말이다. 따라서 네녀석이 술을 마실 수가 없다면 역시 안주가 되는 다른 음식들도 갖다줄 수가 없는 것이며, 게다가 설령 물 한 방울이라도 줄수가 없는 것이다. 흐흐흐! 네놈은 이 일에 대해서 다소 억울할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이 주루의 규칙은 이미 그렇게 정해져 있는 것이니 차라리 네놈은 빨리 포기를 하고 나가서 다른 주루를 찾아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상대로 하여금 어찧ㄹ 도리가 없게 하는 일방적인 축객령(逐客令)이 분명한 것이었다. "……!" 도노대는 일단 그렇게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을 마치고 나자 이윽고 서생이 멍하니 앉아서 잠시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힐끗 바라보고는 내심으로 매우 득의한 기분이 들어서 마침내 천천히 몸을 돌리고 걸음을 옮 겨서 계산대의 옆에 마련되어 있는 자신의 자리로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기실 겨우 두어 걸음이나 걸어갔을까 했는데 느닷없이 주루의 입구 에 웬 귀엽고 잘생긴 소년동자 녀석이 하나 나타나는가 싶었는데 엉뚱하게 도 그를 향해 빠르게 다가드는 것이었다. (……?) 도노대는 내심으로 다시 이게 웬 미친 어린 녀석이 대낮에 주루의 안으로 달려 들어오고 있는 것인가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믿을 수가 없게도 그 귀 엽게 생긴 잘생긴 소년동자 녀석은 이내 그의 앞에 이르자 이내 즉각 고사 리와도 같은 그 작고 예쁘장한 손바닥으로 다짜고짜 도노대의 뺨을 후려쳐 오는 것이었다. 게다가 더욱 믿을 수 없는 사실은 도노대가 본능적(本能的) 으로 손을 쳐들어서 그 손속을 막으려고 했을 때 느닷없이 소년동자의 우수 가 한 순간 뿌연 그림자로 화하더니 은은하게 백색(白色)의 광채를 발출시 키며 어느새 그의 좌우 뺨을 세차게 후려치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철썩! 철썩! 철썩! (……?) 도노대는 그만 어처구니가 없게도 나무토막처럼 멍청하게 서 있다가 그 세 번의 세찬 따귀를 얻어맞게 되고 말았는데, 가장 놀라운 사실은 그 소년동 자의 손속은 비단 기이한 변화(變化)를 가지고 있어서 빠르고 신비(神秘)로 웠을 뿐만 아니라, 그 고사리와도 같은 작은 손아귀에 실로 무서운 힘이 실 려 있어서 따귀를 얻어맞은 도노대의 두 뺨이 즉시 시뻘건 장인(掌印)이 새 겨지면서 크게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도노대의 그 두 개의 뺨은 이미 거센 세파에 시달릴 대로 시달려서 거죽이 매우 두터워졌는데도 불구하고 한 순간에 그와 같이 되었으니 실로 그가 조 금 전에 따귀를맞으며 느낀 고통이야 능히 상상이 가고도 남음이 있는 것 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실제로 도노대는 한 순간에 양뺨에서 불이 번쩍하는 느낌을 받게 되었는데, 그야말로 그런 가운데 아직 이빨이 부러지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해 야 할 것이었다. 도노대는 그제서야 요 깜찍하게 생긴 소년동자가 기실은 일신에 무공(武功) 을 갖춘 무림인(武林人)이었다는 것을 알겐 되었는데, 일시적으로 너무나도 어처구니가 없게 그와 같은 일을 당하게 되자 주춤주춤 뒤로 서너 걸음이나 물러나서 두 손으로 부어오르는 양뺨을 가린 채 이게 대체 무슨 영문일까 하는 멍한 표정을 짓게 되었다. 그리고는 간신히 쥐어짜듯이 소리쳤다. "아니, 소, 소공자(少公子)! 이, 이게 대체 무슨 짓이오?" 만일 소년동자의 손속이 조금이라도 허술해 보여서 도노대가 능히 완력으로 누를 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더라면 결코 그의 입 속에서 그와 같은 쥐 어짜는 듯한 신음소리는 나오지 않았었을 것이었다. 도노대는 이미 이러한 생활에 있어서 오랜 경륜을 쌓아온 사람이라고 할 수 가 있었기 때문에 소년동자의 무공수법이 결코 강호상의 하류잡배들의 것과 는 다른 아주 정교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간파해내고는 금새 아예 처음부터 다소 과장된 몸짓으로 엄살을 떨어대는 것이었다. 기실 이런 술장사를 해먹는다는 것도 사실은 그리 간단하지 않은 것이어서 몇 가지 반드시 알아두지 않으면 안되는 금시사항들이 있기 마련이었는데, 실제도 도노대가 생각하고 있었던 금기사항들 가운데에서 강호의 무림고수 들에게는 결코 무례를 범해서는 안된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었 다. 지금의 도노대로서는 도저히 눈앞의 그 소년공자가 무엇 때문에 느닷없이 자신의 앞에 나타나서 세차게 따귀를 후려쳤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 금방 파 악할 수가 없었지만,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함부로 손을 쓰지 않는 것이 일 반적인 무림인들의 습성인 만큼 필시 여기에는 어떤 부득이한 까닭이 있었 을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우선은 엄살부터 떨어대고 있는 것이었다. 만일 그다지 세파에 사달리지 않고 대갓집에서 곱게 자라나온 사람이엇다면 그와 같이 표정을 쉽게 바꿀 수가 없었겠지만, 이 도노대는 이미 그러한 일 에는 이력(履歷)이 나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가 있었기 때문에 그야말로 천 연덕스럽게 표정을 바꾸고 쉽게 연기할 수가 있었다. 그 소년동자는 일단 도노대를 그와 같이 몇 차례 후려갈긴 후에 왠지 다소 상기된 표정이 되어 조금 전의 그 자리에서 다소 오만(傲慢)한 자세로 양손 을 허리춤에 올려놓은 채로 도노대를 노려보고 서 있었다. 그러다가 그는 이윽고 눈살을 가볍게 찌루피며 다소 냉랭한 어조로 입을 열어 말했다. "당신은 감히 나에게도 그와 같이 무례하게 대할 수가 있나요?" (……?) 도노대는 이 순간 내심으로 부지런히 대체 자신이 눈앞의 이 소년동자에게 무슨 죄(罪)를 지었을까 하고 생각을 굴리고 있었던 참이라 즉시 소년동자 의 말을 듣고는 문득 느껴지는 바가 있었다. 알고 보니 이 소년동자는 조금 전에 도노대가 그 서생을 향해 무례하게 대했던 것을 두고 따지고 있는 것 이 아니겠는가! 강호상에는 비록 많지는 않으나 이렇게 남의 일에 간섭을 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는 법인지라 도노대는 비록 몇 대 얻어맞은 것이 분해서 속으로 빌어먹을! 하고 부르짖었지만 한편으로는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라는 데에 서 약간의 안도의 숨을 내쉬게 되었다. -- 계속 -- #5713 양한우 (hanwoo71) [백상] 종남사부 제1권 제2장 03/21 08:57 279 line 올 린 이 : 양한우 HITEL ID : hanwoo71 제2장. 기이한 서생 화검운(花劍雲) 도노대는 한 순간에 눈앞의 소년동자의 의도를 파악하게 되자 즉시 허리를 숙이고 머리를 조아리며 다소 붉어진 얼굴로 대답했다. "예예, 여부가 있겠습니까요? 소공자 나으리께서는 틀림이 없는 소인의 귀 하신 손님이지요. 소인이 감히 무례하게 대해드릴 수가 있겠습니까요?" 도노대의 그와 같은 말에 소년공자는 왠지 다시금 안색을 살짝 붉히는 듯하 더니 이윽고 재차 차갑게 코웃음을 치며 소리쳤다. "흥! 당신은 결국에는 약한 자들에게만은 강한 척하고 강한 자에게는 슬슬 아부나 하는 못된 작자였군 그래. 흥! 흥! 내가 당신과 같은 사람을 그냥 둘 줄 아는가?" 소년동자는 생각과는 달리 몹시 분개한 듯한 표정이었는데, 마치 금방이라 도 두 팔을 걷어부치고 도노대를 향해 달려들 듯한 기세였다. 그런데 이때 느닷없이 어디선가 다음과 같은 말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아닌 가! "용아(龍兒)! 너는 비록 겉으로는 그와 같이 말하고 있지만 기실은 감히 그 사람을 해칠 수가 없는 것이 분명해. 그렇지 않다면 어째서 그저 코웃음만 치고 직접나서서 좀더 매운 맛을 보여주지 않는 것이지?" 지금 이 순간에는 이 주막의 내부가 매우 조용해져 있었기 때문에 느닷없이 들려온 그 여자아이의 음성은 아주 분명하게 들려왔다. 도노대는 내심으로 약간 궁지에 몰려서 끙끙대고 있다가 무의식중에 그 목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 보다가 이윽고 안색이 그야말로 거 뭇하게 변하고 말았다. 방금 전에 그와 같은 말을 한 사람은 바로 일신에 화려한 연홍색의 비단 장 삼을 걸치고 있는 열두 살 가량의 아주 예쁘게 생긴 계집아이였는데, 그녀 는 언제 안으로 들어왔는지 벌써 자리를 잡고 앉은 채 이쪽을 향해 천연덕 스러운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아마도 조금 전에 도노대가 소년동자에게 당 하느라 정신이 없는 사이에 주루의 안으로 들어와서 그렇게 자리를 차지하 고 앉아버린 모양이었다. 그 계집아이는 그렇게 웃는 얼굴로 계속해서 소년동자의 얼굴을 주시하고 있었는데, 틀림없이 그녀가 방금 전에 말한 용아라는 호칭은 바로 눈앞의 이 소년동자를 가리키는 것임이 분명해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소년동자는 일순 그 계집아이의 말을 듣자마자 안색부터 붉 어지는 것이었다. 도노대는 다음 순간에 그 계집아이와 이 소년동자의 얼굴 생김이 아주 흡사 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그로 인해서 두 사람이 같은 일행이며 매우 친 밀한 사이라는 것을 파악하게 되었다. 하지만 기실 가장 놀랍고 어리벙벙한 사실은 바로 다름이 아니라 그 계집아 이가 지금 앉아 있는 자리가 조금 전에 도노대에게 축객령을 받았던 그 서 생과 한 탁자를 두고 서로 마주보는 자리이며, 게다가 비록 시선을 분명하 게 보내지는 않고 있지만 그 계집아이의 시선은 은연중에 그 서생을 의식하 고 부드럽게 빛나고 있다는 현실에 있는 것이었다. 도노대는 아직 자신의 눈이 틀림이 없다고 믿고 있었지만, 이윽고 그러한 사실을 파악하게 되자 이내 자신의 안목을 불신(不信)하게 되었으며, 절로 아득해져 오는 의식 속에서 대체 지금의 이 난관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 인가 하고 내심 중얼중얼하게 되었다. 도노대는 원래 그 서생을 전혀 별볼 일없는 녀석이라고 짐작하고 있었으나 실로 이러한 어린 소년 소녀(少年少 女)와 인연이 닿아 있는 사람이라면 결코 예상했던 대로의 별볼일없는 사람 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었다. 소년동자는 그 어린 계집아이의 말을 듣고는 잠시 주저하는 듯하다가 이윽 고 결심한 듯 다시 앞으로 한 걸음 나서며 도노대를 향해 소리쳤다. "나는 이미 말했듯이 당신가 같은 사람은 그냥 놔둘 수가 없어요! 그러니 어서 당신도 나와 대적할 준비를 하도록 해요!" 도노대는 이미 이 눈앞의 무공을 터득하고 있는 소년동자와 대적을 한다는 것이 천만부당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말을 듣자 매우 황당(荒 唐)한 듯이 멍한 표정을 보였다. 바로 그때였다. 이제까지는 다소 어리숙한 태도를 유지하며 잠자코 앉아 있 던 예의 그 서생이 돌연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그 어린 계집아이를 향해 문득 이렇게 입을 열어 말하는 것이 아닌가! "봉아(鳳兒)! 세상의 사건이라는 것은 적을수록 좋은 것이다. 그런데 어째 서 너는 자꾸만 일을 더욱 귀찮게 만들려고 하느냐? 용아에게 너무 충동질 하지 말아라." 그저 단순히 아는 사이로만 짐작하고 있었던 도노대 등의 사람들에게 있어 서 소년동자와 어린 계집아이를 향한 서생의 아랫사람을 대하는 듯한 말투 는 실로 더욱 의외(意外)의 것이라고 아니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사람들이그 서생에 대해서 좀더 주의깊게 바라보려고 하는 다음 순 간에 느닷없이 한쪽 구석에서 짧고 아름다운 여자들의 경탄성이 터져나왔 다 . "아!" 느닷없이 경탄성을 터뜨린 사람들은 바로 얼마 전부터 도노대가 은근히 그 자태를 훔쳐보고 있었던 그 일단의 소녀들이었는데, 다름이 아니라 그 서생 의 말을 듣자마자 그 어린 계집아이가 갑자기 그 자리에서 신형을 날려서 마치 팔랑개비처럼 공중에서 돌면서 허공을 지나 도노대의 앞에 서 있는 소 년동자의 옆으로 사뿐히 녀려섰기 때문에 저마다 커다란 감탄성을 터뜨렸던 것이었다. 비록 강호상에는 약간의 잔재주를 배워서 그와 같은 공중돌기를 예사로 하 는 사람들이 많이 있겠지만, 그러나 의자 위에 앉아 있던 자세에서 그대로 깨끗하게 신형(身形)을 뽑아올려 유려(流麗)한 동작(動作)으로 허공을 날아 간 모습 등은 그러한 방문좌도(傍門左道)의 수법(手法)들과는 전혀 거리가 먼 정통적(正統的)인 명가(名家)의 경공술(輕空術)의 면모(面貌)를 보여주 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었기 때문에 충분히 감탄성을 자아낼 만했다. 그 어린 계집아이는 나이가 이제 불과 열두 살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 같았 는데도 벌써부터 실로 그와 같은 절기(絶技)를 완벽(完璧)하게 구사할 수가 있다는 것은 확실히 기문(奇聞)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지금 구석진 자리에 둘러앉아 있다가 느닷없이 경탄성을 터뜨린 그 다섯 명 의 소녀들은 비단 외모(外貌)만 특출나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그녀들 가 운데에는 더러 병장기(兵仗器)들을 휴대하고 있는 듯했고, 게다가 그녀들의 눈빛이 대부분이 매우 발랄하고 예리(銳利)하게 빛나곤 하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틀림없이 강호상의 여인들이 분명해 보였다. 소년동자의 옆에 사뿐히 내려선 그 어린 계집아이는 일단 경탄성을 발했던 그 소녀들의 자리를 향해 한 차례 돌아본 연후에, 이윽고 다시 고개를 전면 으로 돌려 소년동자의 앞을 가로막으며 도노대를 향해 다소 싸늘한 표정으 로 이렇게 입을 열어 말했다. "당신이 감히 우리의 화 상공(花相公)님께 그와 같은 망발을 하였으니 그 대가로 설사 일백 번을 죽게 된다고 해도 할 말이 없을 거예요. 하지만 사 실 우리의 화 상공님께서는 마음이 매우 너그러우셔서 구태여 당신과 같은 사람을 해치지 말라고 하시니 우리는 당신에게 손을 쓰지 않도록 하겠어요. 그러나 다시 묻겠는데, 당신은 설마하니 아직도 우리 화 상공님을 괄시(恝 視)하고 싶은 생각이 있나요?" 그 어린 계집아이의 음성은 아주 맑고 또렷하였고, 게다가 그 말의 내용이 매우 논리정연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치 가슴이 일시 에 후련해지는 듯한 감각을 맛보게 되었다. 이때 도노대는 내심으로 매우 전전긍긍하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설사 그 어린 계집아이가 조금 전에 그와 같은 놀라운 경공술을 보여주지 않았다고 해도 공손히 따라야 할 입장이었는데, 대체 어디서 날아왔는지 모르지만 그 두 명의 소년 소녀가 마치 어린 용과 봉황(鳳凰)과도 같은 뛰어난 아이들이 라는 것을 알고는 감히 조금도 태만하거나 주저할 수가 없었다. 도노대는 즉시 자신의 체면을 생각하지 않고 그 자리에 넙죽하니 엎드려서 그 서생과 눈앞의 두 명의 소년 소녀를 향해 쉴새없이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요. 죽을 죄를 지은 소인(小人)의 목숨을 살려주신 것만 도 커다란 은혜(恩惠)이온데, 소인이 어찌 감히 다시 무례를 저지르겠습니 까? 그저 여러분들께서 한 번만 용서해 주신다면 다시는 그와 같은 짓을 저 지르지 않을 것이니 부디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예예." 조금 전에 서생을 향해 거만하기 짝이 없었던 도노대의 태도는 지금 그야말 로 비굴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다. 몸소 나서서 책망을 하려고 했던 그 어린 계집아이도 그러한 광경을 보자 마치 더러운 물건을 대한 듯하여 다소 눈살을 찌푸렸고, 소년동자는 옆에 서 있다가 느닷없이 앞으로 다가들어 바닥에 엎드려 있는 도노대의 목덜미 를 움켜잡아서 주방이 있는 쪽으로 휙! 던져 버렸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서음식이나 준비해 오도록 해요!" 이 도노대의 체구는 그래도 제법 커다란 편이었는데, 그 소년동자는 그의 몸을 마치 짚단을 잡아서 던지듯이 전혀 힘을 쓰는 모습이 아니었고, 도노 대의 몸뚱이는 엉겁결에 허둥거리며 주방으로 날아가서 쿵! 하고 떨어졌으 나, 다행히도 심하게 다치지 않았는데 금새 몸을 일으켜서 급히 음식들을 장만하기 위해 서두르는 모습이었다. 주방에는 주방장을 포함한 요리사들이 두 명 정도 있었는데, 느닷없이 주인 이 그렇게 서두르는 모습을 보자 그들마저도 일시 경황이 없는 듯해 보였 다. 어린 계집아이는 그와 같은 광경을 바라보다가 이윽고 안면에 부드러운 미 소를 떠올리며 소년동자를 향해 다시 입을 열어 말했다. "용아, 다른 것은 몰라도 너의 그 던지는 수법은 제법 쓸 만해 보이는구나. 전설(傳說)에 의하면 석가척상공(釋迦擲象功)이라는 것이 있다고 하던데, 혹시 너의 그 던지는 수법은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용아라는 소년동자는 그 말을 듣자 비로소 안면에 가벼운 웃음을 떠올리며 그녀을 얼굴을 돌아보더니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꾸했다. "그렇지 않아. 옛날에 석가모니(釋迦牟尼)는 태자였을 당시 길을 막아서는 코끼리를 잡아서 집어던졌는데 그 코끼리가 하늘로 높이 올라가서 사흘 후 에야 땅에 떨어졌다고 했는데, 사실 나는 석가모니가 아닌 용아일 뿐이고, 게다가 내가 집어던진 것은 코끼리가 아니라 그저 한 마리의 빌빌거리는 잡 종개일 뿐이었으니 석가척상공이 아니라 차라리 용아척견공(龍兒擲犬功)이 라고 해야 할 것이야." 그들의 대화 내용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제법 의미심장하여 듣는 이로 하여금 절로 입가에 미소가 떠오르게 만들었다. 용아와 봉아라는 그 어린 계집아이는 일단 그렇게 얘기를 나누고 나서 이윽 고 신형을 돌려 천천히 서생이 앉아 있는 자리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마악 그들이 서생의 앞자리에 이르러 그 탁자 앞에 차례로 자리하고 앉으려고 했을 때였다. 느닷없이 그들의 뒤쪽에서 가벼운 기척이 일어나더 니 이윽고 한 줄기의 맑고 아름다운 음성이 들려와 그들의 움직임을 저지하 는 것이 아닌가! "잠깐! 너희들은 대체 어디서 온 아이들이이지? 우리는 서로 통성명이나 나 누어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용아와 봉아는 즉시 의자에 앉으려던 몸을 다시 세우고 고개를 돌렸는데 바 로 거기에는 한 명의 아리따운 화의소녀(華衣少女)가 조용한 신색(身色)으 로 서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그녀는 바로 조금 전에 경탄성을 발했던 그 구석진 자리에 앉아 있었던 다섯 명의 미소녀(美少女)들 가운데의 한 사람 이었던 것이었다. 용아는 그것을 보고 잠시 망설였으나 봉아는 그 화의소녀의 등뒤에 붉은 수 실이 일렁거리는 한 자루의 장검이 걸려 있는 것을 보고, 게다가 그녀의 지 나칠 정도로 아름다운 얼굴에 계속해서 사람들을 홀릴 것 같은 눈웃음이 감 도는 것을 보고는 왠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이렇게 불쑥 대꾸했다. "아이들이라고요? 그럼 당신들은 특별한 어른들인가요? 흥! 얼굴이 그렇게 반반하니 남자들을 꽤나 홀렸겠군요?" (……?) 그 화의소녀는 기실 순수한 호의(好意)에서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와 말을 걸었던 것일 뿐이었는데, 느닷없이 봉아의 다소 차가운 듯한 욕설이 섞인 대꾸를 듣고는 일시 멍한 표정이 되어 크게 어리둥절한 모습을 보이게 되었 다. 그녀는 설마하니 자신이 봉아에게 그와 같은 말을 듣게 될 줄은 모르고 있었다가 뒤늦게야 새삼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는가를생각해 보는 것이었 다. 그런데 바로 그때 화의소녀와 맞은편의 위치에 자리하고 있었던 예의 그 서 생이 부드러운 음성으로 다시 입을 열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봉아야, 상대방은 순수한 호의에서 서로 통성명을 나누자고 하는 것인데, 네가 그와 같은 말을 해서야 쓰겠느냐? 어서 빨리 사과하지 못하겠느냐?" 서생의 그 말은 비록 느긋했고 조금도 화난 기색이 없어 보였으나, 정작 듣 고 있는 봉아에게는 매우 준엄한 질책이 되는 모양이었다. 봉아는 그 소리 를 듣게 되자 금새 안색이 다소 붉어지더니 즉시 정색을 하고 눈앞의 화의 소녀를 향해 공손하게 허리를 숙이며 예를 올리는 것이었다. "소녀의 이름은 봉아(鳳兒)라고 해요. 제가 일시적으로 언니가 너무나도 예 쁜 나무지 질투를 하여 결례를 범하고 말았군요. 부디 용서해 주시기를 바 래요." 그 화의소녀는 이 순간에 다소 망연한 신색이 되어서 대체 어째서 자신이 그와 같은 욕설을 듣게 되었는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봉아로부터 자신이 너무나도 예뻐서 질투심이 생겼다는 말을 듣고는 절로 얼굴을 붉히 게 되어 말했다. "예쁜 동생, 내가 너무 잘생겼다고 하는 것은 옳지 않은 말이야. 보아하니 동생이 나보다 훨씬 예쁜 것 같은데? 그리고 내가 아까 했던 아이들이라는 말은 생각없이 한 말이었지만 취소할께. 앞으로는 다시 그런 말을 하지 않 겠어, 봉아 동생!" 봉아는 내심으로 상당히 불만스러운 기분이었으나 상대인 화의소녀가 오히 려 자신이 더욱 예쁘다고 말핸주자 그만 그 불만스러운 기분이 금새 풀려지 게 되었고, 또한 상대방에 대한 선입관도 바뀌어 안색이 훤하게 변해서 다 시 입을 열었다. "정말 그런가요? 그렇다면 대체 언니의 이름은 뭐죠?" 화의소녀는 봉아가 아주 예쁜 얼굴로 총명해 보이는 두 눈을 반짝이며 관심 있게 물어 오는 것을 보고 다시 몹시 귀여운 느낌이 들어서 그녀의 한쪽 손 을 잡고서 웃으며 대답했다. "응, 나의 이름은 악산산(岳珊珊)이라고 해. 혹시 너의 친구들의 이름에 대 해서 나에게 가르쳐 주지 않겠니?' 화의소녀는 처음에는 그저 귀엽다는 생각에 절로 나서게 되었던 것이었지 만, 이제는 봉아가 너무나도 깜찍스러워 보여서 그들과 반드시 친해지고 싶 은 생각이 일어났던 것이었다. 봉아는 이미 마음을 돌린 뒤여서 친근하게 나오는화의소녀 악산산이 전혀 싫지가 않아서 웃으며 남은 한 손으로 가리키며 즉시 대답했다. "그거야 어렵지 않아요. 음, 이 애는 바로 용아(龍兒)이고, 그리고 여기에 계시는 이분은 바로 저희들의 주인(主人)님이신 화 상공님이세요." 용아는 이제까지 아무런 말도 없이 어색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막상 봉 아가 손짓으로 가리키며 소개하자 왠지 금새 안색을 가볍게 상기시키는 것 이었다. 기실 지금 봉아가 말하고 있는 내용은 이미 악산산도 조금 전에 들어서 알 고 있었던 것들이어서 별다른 것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악산산은 쉽게 얼 굴을 붉히곤 하는 용아의 얼굴을 바라보며 기이하게 생각하다가 문득 서생 이 자신들의 주인님이라는 봉아의 말을 듣고는 다소 놀란 표정이 되어 생각 했다. (나는 그저 아는 사이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정말로 이들이 주종 관계(主從關係)라는 말인가? 정말로 이와 같은 시종들을 거느리고 있는 사 람이라면 대체 이 서생의 신분은 어떤 것일까?) 그 서생은 원래 겉으로 보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평범한 모습을 하고 있어서 남의 시선을 끌지 못하는 사람이었는데, 계속해서 드러나는 기이한 사실들 로 말미암아 이제는 화의소녀 악산산도 상당한 관심을 느끼고 있었던 터였 다. 악산산은 생각을 하느라고 자신도 모르게 시선을 서생을 향해 보내고 있었 는데, 문득 그 서생은 그녀의 시선을 마주 대하자 안면 가득히 미소를 떠올 리며 정중하게 이렇게 입을 열어 인사하는 것이었다. "화검운(花劍雲)이라고 합니다. 악낭자께서 저의 시종인 봉아의 무례함을 꾸짖지 않으시고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니 뭐라고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 겠습니다." 악산산은 잠시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가 그의 말소리를 듣고 문득 정신을 차리게 되었는데, 일순 무심결에 그의 시선을 마주 보다가 가볍게 놀라게 되었다. 멀리서 보기에는 그저 평범하게만 보이던 그의 시선이 이제 가까이 에서 정면으로 마주 바라보니 기이하게 깊고 부드러우며 고요하게 느껴졌던 것이었다. 그러한 시선은 상대에게 문득 한없이 시원스러운 느낌을 갖게 만드는 것이 었는데, 악산산은 그때까지 봉아의 손을 잡고 있다가 어쩐지 어색한 느낌이 들어서 즉시 슬그머니 그 손을 빼고 안색을 은근히 붉히며 대꾸했다. "원래 화공자(花公子)님이셨군요. 하지만그 말씀은 천만부당한 것이예요. 제가 처음부터 봉아 동생에게 결례를 했었던 것이었죠. 그리고 저의…… 저 의 이름은 악산산이예요." 이 악산산은 기실 강호상에서 자라온 여자로서 평소에는 누구에게도 그다지 양보를 하는 성격이 아니었는데, 오늘은 봉아 등의 모습이 너무나도 귀여워 서 다소 양보를 하고 있는 것이었고, 게다가 화검운이라는 서생의 시선을 마주 대하게 되자 왠지 가슴이 떨려오는 것 같아서 자신도 모르게 약간 말 을 더듬게 되었던 것이었다. 악산산은 그렇게 말을 하고 난 다음에 비로소 자신이 어이없게도 낯선 남자 의 앞에서 말을 더듬은 사실을 알고는 수치심에 더욱 안색을 붉히게 되었 다. 하지만 화검운이라는 서생은 보기보다 낯짝이 두꺼운 듯 그녀의 표정이 변 하는 것을 멀쩡하게 바라보면서도 그저 천역덕스럽고도 태연하게 대꾸하는 것이었다. "악낭자의 방명(芳名)은 익히 들었습니다. 정말로 아름다운 이름이군요," 일반적으로 그러한 태연한 상대의 표정은 일단 마음이 들떠 있는 사람의 마 음을 가라앉혀 줄 수가 있을 것이었지만, 기실 유감스럽게도 지금의 악산산 의 경우에는 전혀 반대의 상황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만일 화검운도 덩달아 얼굴을 붉히며 겸연쩍어 했었다면 악산산은 금새 인사를 아고 핑계김에 뒤 로 물러서서 돌아가 버렸을 것이겠지만, 지금 화검운이 너무나도 천역덕스 럽고 정중한 표정으로 그와 같이 대꾸해 오자 악산산은 불안한 마음에 더욱 당황한 기분이 들어서 이대로 돌아가자니 모양이 좋지 않을 것 같고, 게다 가 뭐라고 얘기를 해서 말을 받아야 할 것 같은데도 쉽게 그런 말이 뇌리에 떠오르지 않아서 잠시 멍하니 상대의 얼굴만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아마 그녀가 이렇게하고 싶은 말을 하기 어려워하고 멍하니 넋을 잃고 있는 경 우는 아직 한 번도 없었을 것이었다. 다행히도 이때 서둘러서 음식들을 장만한 도노대가 다른 요리사 한 명과 함 께 부지런히 음식을 날라와서 탁자 위에 늘어놓았기 때문에 그녀는 잠시 그 들을 바라보며 마음의 여유를 되찾을 수가 있게 되었다. 악산산은 이 순간에 자신이 너무나도 화검운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가 느닷없이 마주보게 되어서 그와 같이 당황해졌던 것 이라고 내심으로 판단을 내리고는 마음을 강하게 먹고는 다시 화검을 대할 준비를 했다. 이에 반해서 화검운은 여전히 자연스럽고 평범한 태도로 행동하고 있었는 데, 이윽고 도노대 등이 탁자 위에 모든 음식들과 술을 차려놓고 물러가자 다시 고개를 들어 악산산을 바라보며 입을 열어 말하는 것이었다. "비록 차려진 것은 별로 없으나 마음에 드신다면 함께 드시지 않으시겠습니 까?" -- 계속 -- #5714 양한우 (hanwoo71) [백상] 종남사부 제1권 제3장 03/21 08:57 298 line 올 린 이 : 양한우 HITEL ID : hanwoo71 제3장. 종남파(終南派) 장문인의 당숙(堂叔) 악산산은 비로소 이 자리를 피할 핑계거리가 생겼으므로 즉시 고개를 가로 저으며 미소와 함께 입을 열어 대답했다. "아니예요. 저는 이미 일행과 함께 식사를 했기 때문에 더 먹고 싶은 생각 은 없어요. 그보다 세 분이서 즐겁게 드시기를 바래요." 용아와 봉아는 이미 악산산과 화검운이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자 화검운의 맞은편의 두 개의 의자에 나란히 앉아서 화검운의 수저를 차려주는 등의 식 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악산 산은 비록 그들 두 명에게도 작별인사를 하고 싶었지만 조금 전에 워 낙에 당황했었던 터라 그저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은 생각에 말을 마 치자마자 즉시 몸을 돌려서 자신의 일행이 있는 자리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런데 마악 그녀가 작정을 하고 신형을 돌리려는 순간에 느닷없이 그녀의 뒤쪽에서 일진의 인기척이 느껴지며 여러 사람의 아름다운 음성이 동시에 들려오는 것이었다. "악동생! 네가 새로 사람들을 사귀었으니 기왕이면 그들을 우리에게도 소개 시켜 주는 것이 어때?" "맞아! 우리도 함께 친하게 되면 얼마나 좋겠어?" "호호, 설마하니 우리에게 질투를 내는 것은 아니겠지?" 다름이 아니라 조금 전까지만 해도 구석진 자리에서 이쪽을 주시하고 있었 던 그 악산산의 일행인 사녀일남(四女一男)이 느닷없이 한꺼번에 우르르 몰 려나와서는 악산산에게 소리치고 있는 것이었다. 기실 비록 악산산처럼 쉽 게 충동적으로 나서지는 못했었지만 아까부터 그들도 서생 화검운 일행에 대해서 강한 호기심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 사실인 모양이었다. 악산산은 실로 뜻밖의 일을 당하자 내심 아연하게 되었지만, 그러나 자신의 당황한 속마음을 그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서 즉시 웃으며 대꾸했다. "물론이예요. 그렇지 않아도 언니들에게 이분들을 소개시켜 주고 싶었는데 제발로 다가와 주니 고맙군요. 그렇게 소개받고 싶은 심정이라면 어서 한 줄로 나란히 서세요!" 악산산이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그녀의 일행들은 저마다 자세히 화검운 등 을 바라보기 위해 대강 옆으로 한 줄로 늘어서 있게 되었다. 화검운 등은 마악 식사를 하려고 하다가 느닷없이 그와 같은 상황에 처하고 는 일제히 그 새로 몰려온 사람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사녀일남은 이미 보았던 대로 하나같이 출중한 용모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 들이었는데, 얼핏 보기에도 그 중에서도 가장 용모가 뛰어나 보이는 소녀는 중간쯤에 위치한 청의소녀(靑衣少女)로서, 엷은 하늘색의 장삼을 걸치고 있 는 그녀는 계란형의 다소 작은 얼굴에 선이 섬세하고 뚜렷한 이목구비(耳目 口鼻)를 가지고 있었으며, 청초(淸楚)하고도 유유(悠悠)한 기운이 전신에 안개처럼 흐르고 있는 듯했는데, 허리춤에는 역시 한 자루의 장검을 멋드러 지게 차고 있었다. 그러나 비록 그 청의소녀가 가장 쉽게 눈에 들어오기는 했지만, 다른 사람 들 역시 결코 그녀에게 미태(美態)가 뒤지는 것이 아니어서 좌측에 서 있는 연남빛의 장삼을 걸치고 있는 남의소녀(藍衣少女)는 다소 마른 듯하였으나 수려(秀麗)한 용모에는 그야말로 깨끗한 기품(氣品)이 느껴져서 그녀의 시 선만 마주 보게 되면 그야말로 세속의 혼탁한 기운을 일시에 씻어 버릴 수 가 있게 될 것 같았고, 또한 우측에 서 있는 일신에 화려한 무늬옷을 걸치 고 있는 채의소녀(彩衣少女)는 비록 체구가 다소 왜소한 듯했으나 그야말로 정교하게 새겨놓은 것 같은 아름다운용모를 지니고 있었고, 게다가 구름같 이 틀어올린 머리에는 갖은 장신구를 달아서 매우 눈부시게 만들었다. 아마도 그들 일행 가운데에서 그래도 가장 미색이 뒤진다고 생각되는 소녀 는 좌측의 남의소녀의 옆에 한 걸음쯤 뒤로 물러서 있는 황의소녀(黃衣少 女)로서, 담황색(淡黃色)의 장삼을 걸치고 있는 그녀는 다른 사람들보다 비 교적 키가 크고 체형이 상당히 길쭉하고 섬세해 보이지만 얼굴은 다소 누렇 게 떠 있어서 약간 음산(陰散)한 기운을 주는 것이 특색이었다. 생각해 보 건대 그녀는 자신의 용모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다소 뒤진다고 생각되자 아예 한 걸음 뒤로 물러서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기실 다시 유심히 살펴 보면 그 화의소녀의 전신에서는 쉽게 간파할 수 없는 기이하고도 신비로운 미태가 무형 중에 흐르고 있는 것 같아서 그녀의 음산해 보이는 얼굴과 어 울려서 기이한 느낌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유일(唯一)하게 청일점(靑一點)이라고 할 수 있는 남자 는 우측의 채의소녀의 옆에 그 눈빛을 의미심장하게 빛내며 서 있었는데, 그는 이목구비가 상당히 영준(英俊)하였고 체격이 헌칠하고 골격이 튼튼해 보였으며, 일신에는 화려한 자색(紫色)의 비단장삼을 걸치고 있었다. 두 손 을 단정하게 앞으로 모으고 있는 모습 등은 제법 예의바른 듯도 하였으나, 안광이 안정되지 않고 자주 흔들리는 것이 다소 흠이라면 흠이었다. 나이별로 말하자면 채의소녀가 대략 스물세 살 정도로 가장 나이가 많아 보 였고, 그 다음이 자삼청년(紫衫靑年)과 청의소녀로서 스물한 살 정도였고, 남의소녀는 줄잡아 스물 정도, 그리고 화의소녀는 그보다 약간 나이가 어려 서 열여덟 정도였고, 보아하니 악산산이 가장 나이가 어려서 열일곱 가량으 로 보였다. 악산산은 일단 그렇게 말을 해 놓고 나서 자신의 일행들을 바라보는 화검운 등을 향해 웃는 얼굴로 일행을 하나하나 소개해 주기 시작했다. "여기에 계신 당옥(唐玉), 당언니는 우리들 가운데 가장 언니이고, 바로 천 하에 그 유명한 사천당문(四川唐門)의 금지옥엽(金枝玉葉)이세요. 따라서 독(毒)을 사용하는 방법과 암기술(暗器術) 등에 일가견을 가지고 있죠." 자신의 내심을 들킨 듯한 일종의 보복심리에서인지는 몰라도 악산산은 아까 자신에 대한 소개는 겨우 이름 석 자에 그쳤으면서도 지금 일행들에 관해서 는 비교적 아주 상세하게 얘기를 늘어놓고 있었다. 원래 가호의 여인들이라고 해도 자신의 이름을 밝히는 것을 꺼리는 것이 일 반적인 모습이었는데, 기왕에 서로 통성명을 하기로 하였으니 그것이야 어 쩔 수가 없다고 해도, 채의소녀 당옥은 자신이 가장 연장자라는 악산산의 소개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듯이 가볍게 그녀의 얼굴을 흘겨본 다음에 화검운을 향해 부드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숙여 보였다. "화검운 화 공자라고 하셨었나요? 이렇게 만나 인연을 맺게 되어 반가워요. 그런데 아까 당신의 시종들이 썼던 무공은 아무래도 태을신수(太乙神手)와 금안공(金雁功)인 것 같던데, 나의 눈이 잘못되었나요?" 서생 화검운은 당옥을 향해 시선을 돌리며 빙그레 미소를 지어 보였다. "바로 그렇소. 실로 낭자의 안목은 훌륭하구려." 당옥은 상대가 자신의 질문의 핵심을 피하려고 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 문에 즉시 다른 말에 신경을 쓰지 않고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혹시 당신은 종남파(終南派)와 관련이 있는 사람인가요?" 화검운은 그 질문에 오히려 다소 놀란 듯한 표정이 되어 되물었다. "아니,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시오?" 당옥은 웃으면서 차분한 어조로 대답했다. "당ㅅ니이 종남파의 무공을 배웠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그러나 당신 의 시종이 그곳의 무공을 배웠으니 역시 당신도 그곳과 모종의 연관이 있는 것이 아니겠어요?" "……" 화검운은 이에 쉽사리 뭐라고 답변하기 곤란한 듯이 그저 멍하니 당옥의 얼 굴을 바라보고 있기만 했다. 그것을 보고 악산산이 옆에서 다시 나서서 다른 사람들을 소개해 주기 시작 했다. "여기 계신 남궁전(南宮筌) 남궁언니는 바로 다름이 아니라 천하의 남궁세 가(南宮世家)의 금지옥엽으로서 역시 얼굴도 아름다우실 뿐만 아니라 일신 에 놀라운 검술(劍術)을 터득하고 계신 분이죠." 악산산이 가리킨 사람은 바로 예의 그 청의소녀였는데, 그 청의소녀 남궁전 은 악산산의 소개를 받자 다소 안색을 붉히는 듯하더니 그저 고개만 끄덕여 인사를 할 뿐 입을 열지는 않았다. 알고 보니 지금 눈앞에 있는 소녀들은 대개가 무림의 오대세가(五大世家)의 여식들인 모양이었다. 무림의 오대세가는 이미 오래 전부터 강호상에 이름 을 떨쳐왔던 가문들이었기 때문에 그곳들 가운데에서 이와 같은 뛰어난 여 인들이 배출된다고 하는 것은 실은 당연한 결과라고 말할 수가 있을 것이었 다. 악산산은 남궁전이 인사를 마치자 다시 그 좌측의 남의소녀를 소개시켜 주 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분 제갈소홍(諸葛素紅) 제갈언니는 역시 훌륭한 양양(襄陽)의 융 중(隆中) 제갈세가(諸葛世家)의 귀한 따님으로서, 특별히 지혜(智慧)가 출 중하신 분이예요. 화공자께서는 만일 강호의 일에 관해서 무슨 의문이 생기 거나 한다면 일단 그녀에게 질문을 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거예요." 남의소녀 제갈소홍은 그러한 소개를 받게 되자 안색을 다소 붉히면서 악산 산을 나무래듯이 흘겨보며 입을 열어 말했다. "악동생, 너는 무슨 뛰어난 점이 없기만 하면 지혜 운운하며 떼우려고 하는 구나. 보아하니 상대방은 내심 속으로 코웃음만 치고 있는 것 같구나. 너는 언제까지나 나를 그런 식으로 소개할 작정이냐?" 악산산은 그저 빙그레 웃으며 대답을 회피하고는 고개를 돌려 이번에는 다 소 떨어져 있는 황의소녀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또 여기에 계신 이 황약화(黃若華) 황언니는 겉모습은 비록 이렇지 만 매우 놀라우신 분이지요. 만일 화공자가 그녀에게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 신다면 아마도 많은 놀라운 점들을 그녀에게서 발견할 수가 있을 거예요."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비교적 상세하게 설명을 했지만, 악산사은 유독 그 황약화라는 황의소녀에 대해서만은 그저 놀랍다는 말로써 어물어물 넘기려 고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황의소녀 황약화는 악산산의 소개를 듣고도 아까와 조금도 달라진 기색이 없이 묵묵히 시선을 앞쪽으로 보내고 있었는데, 이 통성명에 대해서 가장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는 듯 무덤덤한 그녀의 태도를 보고는 문득 화검운 이 가만히 듣고 있을 수가 없다는 듯이 입을 열어 물었다. "그녀도 무림세가(武林世家)의 따님이시오?" 악산산은 화검운이 그렇게 질문해 오자 다소 난처하다는 듯이 황약화를 돌 아보며 주저하다가 짧게 대답했다. "그녀는…… 바로 황산(黃山)의 성수곡(聖手谷)의 사람이예요." 악산산이 워낙에 다소 긴장된 듯이 뜸을 들이다가 말했기 때문인지 일단 그 얘기가 나온 순간 왠지 장내에는 가볍게 굳어진 공기의 파동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 화검운은 악산산의 대답을 듣고 나서 그저 가볍게 눈빛을 한 차례 빛냈을 뿐 그 외에는 별다른 질문을 하지 않았다. 악산산은 이에 다음 사람의 소개로 넘어갔다. 다음 사람은 바로 유일한 남 자인 자삼청년이었는데, 그에 대한 악산산의 소개의 말은 다음과 같았다. "마지막으로 이분 당지상(唐志常) 당소협은 바로 사천당문의 자제분이며, 또한 당언니의 친동생이 되시죠. 사천 지방에서는 이미 인중지룡(人中之龍) 이라고 소문이 나 있다고 하던데, 아마도 화공자가 겪어보시면 그에게 놀라 운 절기(絶技)들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거예요." 자삼청년 당지상은 아까부터 눈앞의 화검운 등에게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 고 다른 소녀들을 향해 시선을 은근히 보내고 있었는데, 지금도 악산산의 소갯말을 듣고 나자 우선 화검운을 향해 건성으로 가볍게 포권의 인사를 해 보인 연후에 이윽고 악산산을 향해 입을 열어 말했다. "인중지룡이라니, 악낭자께서 불초의 얼굴에 금칠을 해주시는군요. 사실 불 초에게는 몇 가지의 암기를 던지는 기술밖에는 없지만, 오히려 악낭자께서 는 태산북두라고 불리우는 구파일방(九派一幇) 중에서도 화산파(華山派)의 촉망을 받는 여제자(女弟子)로서, 실로 대단한 절기들을 지니고 계시는 것 이지요." 그 말은 기실 화검운에게 한 것이라기보다는 그저 상대방의 비위를 맞추어 주려는 악산산을 향한 말대꾸에 불과한 것이었다. 하지만 화검운 등은 그 말을 듣고 나자 자연히 그 악산산이 화산파의 사람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악산산은 이에 다소 안색을 붉히며 말을 받았다. "저는 사실 저의 아버지 때문에 강호상에서 약간의 대접을 받고 있는 상태 이지만, 정작 실력은 별볼일이 없는 편이예요." 그것은 악산산이 스스로 겸손하게 자신의 위치를 낮추어 말한 것이었다. 당지상은 그러나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다시 말했다. "하하, 그렇지는 않소이다. 실제로 그렇게 말하자면 우리들은 모두가 부모 님의 후광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니겠소? 나는 솔직히 그러한 현실은 부끄러 울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편이오. 화산파의 현임 장문인이신 악대협 (岳大俠)께서는 그야말로 천하가 부러워하는 일대의 무학지사(武學之士)가 아니겠소?" 알고보니 이 악산산은 비단 화산파의 여제자일 뿐만 아니라 현임 화산파 장 문인의 여식이기도 한 모양이었다. 만일 그저 화산파의 일반 여제자였다면 이렇게 무림세가의 자제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고 같은 일행이 되어 움직 이지도 못했을 것이었다. 악산산은 당지상이 다시 나서서 자신의 주장을 펴자 이내 반박할 도리가 없 어서 그저 가볍게 안색을 붉히고는 잠자코 있었다. 그것을 보고 처음에 소개받았던 당옥이 다시 화검운을 향해 입을 열어 말했 다. "자, 이제 우리들의 신분 내력에 대해서 소상하게 알게 되었을 것이니, 이 번에는 화공자께서 자신의 신분에 대해서 밝히는 것이 도리가 아닐까요?" 이 당옥은 비단 용모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가장 나이가 많아서인지는 몰 라도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시기적절하게 사태의 흐름을 짚어가는 냉철한 능력이 있었다. 화검운은 묵묵히 이제까지의 얘기들을 듣고 있다가 이윽고 안면에 가벼운 미소를 떠올리며 대답했다. "미안한 얘기지만 나는 여러분들처럼 무슨 특별히 내세울 가문(家門)이 있 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또한 특별히 배운 재간도 별로 없는 상황이니, 따라서 구태여 이름을 붙여가며 소개할 것도 없소이다. 다만 과거에는 제법 부유했었으나 이제는 그러한 영화(榮華)도 거의 사라지고 말아서 쓸모없이 거리를 떠도는 낙방수재(落榜秀才)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오." 당옥은 그의 대답을 눈도 하나 깜빡이지 않고 듣고 있다가 이윽고 가볍게 아미를 찌푸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당신의 저 두 명의 시종들이 종남파의 무공을 지니고 있는 것을 어 떻게 해명하실 생각이죠?" 그녀는 아마도 화검운이 고의적으로 평범한 듯이 꾸며서 자신들을 속이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화검운은 이에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 "사실 용아와 봉아가 종남파의 무공을 익힌 것은 나와 관련이 있는 것이 오." 당옥은 그 말에 눈빛을 가볍게 빛내며 다시 질문했다. "그들의 무공을 당신이 가르쳤나요?" 화검운은 미소하며 대답했다. "무공비급(武功秘 )을 내가 가져다 주었으니 그랬다고 해도 상관이 없을 것이오." 당옥은 눈을 번쩍 빛내며 다시 물었다. "그럼 당신은 대체 종남파와 무슨 관련이 있는 거죠? 일파의 무공비급이라 는 것은 함부로 밖으로 유출시킬 수가 없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을 것인데 요?" 당옥의 질문은 상당히 집요하여 쉽게 그 그물에서 벗어날 수가 없을 것만 같았다. 화검운은 가볍게 숨을 내쉬며 시선을 돌려 그녀의 질문공세에서 벗어나려는 듯한 모습을 보였으나 이내 웃으며 대답했다. "사실 현재의 종남파의 장문인은 나의 오촌 당질(堂姪)이라오. 여러분은 부 디 내가 그곳의 무공비급을 유출시켰다는 얘기를 발설하지 말기를 바라오." 화검운의 느닷없는 놀라운 내용의 대답에 악산산 등은 일시에 크게 놀라서 안색이 변하는 듯했으나, 내심으로는 역시 그럴 수가 있다고 생각했다. 게 다가 처음으로 만나는 자신들에게 중대한 비밀에 대해서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말해주고 나서 비밀을 지켜달라고 말을 하는 것은 상당히 순진한 구석 이 있는 것 같아서 그가 더 이상 무엇을 숨기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고 생 각했다. 당옥은 다소 놀란 표정을 하고 잠시 생각에 잠긴 듯하다가 이윽고 화검운에 게 다시 말했다. "당신이 현임 종남파(終南派)의 장문인(掌門人)인 종남수사(終南秀士) 화정 룡(花廷龍)의 당숙(堂叔)이라니 매우 놀라운 일이로군요. 과연 생각해 보니 화정룡과 당신의 성(姓)도 같고. 이러한 일은 나중에 확인해 보면 자연히 확실해지게 되겠지요. 그런데 당신은 지금 이곳 장안성(長安城) 내에서 살 고 있나요?" 화검운은 조금도 거리낄 것이 없다는 듯이 순순히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원래 과거에는 부유했었지만 이제는 용아와 봉아를 데리고 성내의 한 낡은 장원(莊院)에서 살아가고 있는 중이오." (……) 당옥 등은 그 말을 듣고 다시 유심히 화검운의 용모를 살펴보았다. 처음에 는 매우 평범해 보였고, 이어 점차로 기이하고 신비로운 점이 엿보이는 듯 했으나, 이제 다시 생각해 보니 결국에는 그다지 대수로운 것이 없는 평범 한 낙방수재인 것 같지 않은가! 사람들은 다소 갈피를 잡을 수가 없으면서도 아까 자신들이 그의 신분에 대 해서 지나치게 호기심을 느끼고 흥분하여 몰려들었던 일에 대해서 어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녀들 무림세가의 금지옥엽들과 이 몰락한 집안의 한 낙방수재와는 아무래도 약간 격이 맞지 않아서 이렇게 번거롭게 어울리고 있다는 사실만 해도 어이가 없는 일이라고 말할 수가 있었다. 당옥이 다소 아미를 찌푸리며 입을 다물자 이때 문득 이제까지는 아무런 말 도 하지 않고 있었던 청의소녀 남궁전이 약간 호기심이 깃든 얼굴로 입을 열어 질문을 했다. "그럼 당신도 무공을 가지고 있나요?" 당옥 등은 일순 그 질문하는 말을 듣고는 마음을 경각시켰으나 이내 그것은 터무니없는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용아와 봉아라는 두 명의 시종들은 비록 나이가 어리기는 하지만 두 눈에서 맑고도 예리한 광채가 일어나고 있으니 무공을 지니고 있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이 화검운은 보아하니 체구도 매우 허술할 뿐만 아니라 기운이 없게 마른 몸이어서 무공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 을 알 수가 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눈빛에서도 어떤 신광(神光)을 느낄 수 가 없으니, 영락없는 백면서생(白面書生)이 분명하다고 짐작하고 있었기 때 문이었다. 솔직히 일행 가운데에서 당옥이 매우 냉철하고 여물은 성격을 가지고 있는 반면에 가장 곱상하게 생긴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남궁전은 너무나도 곱게 자라온 나머지 생각이 비교적 여물지 못한 편이어서 이번의 그녀의 질문도 다소 어리숙한 것으로만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설혹 남궁전이 별로 깊은 생각도 없이 아무렇게나 질문한 말이었다 고는 하나 그 결과는 기이하게도 당옥 등의 짐작과는 정반대의 것으로 나타 났다. 화검운은 남궁전의 질문을 받고 나서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이윽고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대답했던 것이었다. "물론이오. 용아와 봉아는 아직 나이가 어려서 무공에 대해서 잘 이해할 수 가 없을 것이므로 일단은 내가 먼저 그 비급들의 무공을 터득한 이후에 그 들에게 가르쳐 주려고 하지 않겠소? 솔직히 그들은 무공비급을 보기는 했지 만 역시 나의 지도를 받은 것이오." 남궁전도 내심으로 자신의 질문이 턱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화검운의 그와 같은 대답을 듣고는 약간 놀라서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당신은 무공은 그들 시종들보다 우위에 있다는 말인가요?" 화검운은 주저없이 천연덕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내가 그들의 주인으로서 무공이 그들보다 못하다고 한다면 어떻게 그들을 가르칠 수가 있겠으며, 또한 무슨 체면이 서겠소?" (……?) 남궁전 등은 화검운이 오히려 그와 같이 쉽게 술술 대답해 주자 더욱 의구 심이 생기게 되었다. "믿을 수가 없군요. 그렇다면 실례지만 화공자의 무공수법 가운데 한 가지 를 우리에게 보여줄 수가 있나요?" 남궁전의 질문에 화검운은 눈앞의 사람들을 천천히 둘러보면서 역시 쉽게 고개를 끄덕여 승낙을 표시했다. "물론이오. 그거야 뭐가 그리 어렵겠소?" 말이 끝나자마자 그는 자신의 앞 탁자 위에 놓여 있는 술병 하나를 들어서 잠시 흔들어 본 다음에 이윽고 그것을 주둥이가 아래로 가게 거꾸로 허공에 세웠다. 그런데 아주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분명히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 술병 속에서는 술이 가득 들어 있었건만 화검운이 술병을 허공에 거꾸로 세 웠는데도 열려 있는 주둥이로 술이 조금도 쏟아져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남궁전 등은 그것을 보고 과연 정말로 화검운이 무공을 지니고 있어서 그가 자신의 내공으로 술병 속의 술이밖으로 흘러나오지 못하게 하고 있는 모양 이라고 생각했다. -- 계속 -- 제4장. 동문서답(東問西答) 그런데 뜻밖에도 다음 순간에는 더욱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분명히 술병 속의 술은 밖으로 나오지 않고 있었건만, 그 술병 위의 허공에는 기이한 백 색의 기류(氣流)가 아른거리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그 기류가 점차로 짙고 강렬해지면서, 마침내 화검운이 술병을 다시 바닥에 원래대로 내려놓자, 허 공에서 백색의 구(球)를 이루며 위맹하게 돌아가고 있던 기류가 느닷없이 퍽! 하는 소리와 함께 흩어져서 무수한 가느다란 줄기로 화해서 이미 텅 비 어 있는 그 술병과 그 옆의 술잔 속으로 다투어 날아 들어가는 것이 아닌 가! (……!) 남궁전 등은 비록 처음부터 끝까지 두 눈을 뜨고서 자세히 보았지만 일순 자신들이 혹시 환각(幻覺)을 겪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 다. 마치 폭죽을 터드리는 것과도 같은 화려(華麗)한 재주를 선보인 화검운 은 여전히 천연덕스러운 태도 그대로였는데, 언제 그와 같은 재간을 펼쳤는 지 조금도 힘들어 하는 기색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남궁전 등은 혹시 화검운이 사술(邪術)을 펼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보 았으나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것은 결코 사술이 아닌 것 같았다. 남궁전과 심지어 당옥까지 느닷없는 화검운의 놀라운 재주를 보게 되자 일 시 자신들의 눈을 의심하며 멍하니 생각이 마비된 것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었으며, 이때 지금까지 다소 뒷전에 물러서서 방관자(傍觀者)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었던 황의소녀도 일순간 그와 같은 광경을 보고 눈빛을 맑게 빛내 보였다. 술병 속의 술은 정확히 한 잔만큼 비워져 있었으며, 그 비워진 한 잔의 술 은 지금 그 옆의 술잔 속에 알맞게 채워져 있었는데, 화검운은 우선 오른손 으로 그 술잔을 들어서 입에 대고 죽엽청(竹葉淸)을 조금 마신 다음에 이윽 고 다시 술잔을 내려놓고 가볍게 웃으며 재차 입을 열어 말했다. "이러헌 재주는 사실 강호상에서 그다지 대수로울 것이 못되는 것이오. 하 지만 나는 당신들이 무엇 때문에 지금 놀라고 있는 것인지 대강 그 이유를 알고 있소. 그것은 바로 내가 처음에는 무공을 전혀 모르고 있는 사람처럼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오?" 남의소녀 제갈소홍(諸葛素紅)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어 대답했다. "그렇기도 하지만 기실 당신이 조금 전에 펼친 그 재주는 결코 당신의 말대 로 대수롭지 않은 것이 아니예요. 우리들의 능력으로는 감히 그렇게 할 수 가 없죠. 아마도 그것은 최절정(最絶頂)의……" 그때 지금까지 말이 없었던 황의소녀 황약화(黃若華)가 느닷없이 불쑥 입을 열어 말을 받았다. "최절정의 수법(手法)으로 종남파의 절기인 선천태을강기(先天太乙 氣)와 은하적성지(銀河摘星指)가 완벽하게 펼쳐진 것이죠." (……?) 제갈소홍은 황약화가 느닷없이 끼어들자 다소 이상하다는 듯이 그녀의 얼굴 을 돌아보다가 이윽고 다시 고개를 돌리며 화검운을 향해 미소하며 말을 이 었다. "그래요. 당신의 무공(武功)은 정말로 최절정의 경지(境地)에 올라 있는 것 이라는 말인가요?" 화검운은 그 역시 황약화의 얼굴을 잠시 돌아보다가 다시 제갈소홍에게 고 개를 돌리면서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다고 할 수가 있소. 이 종남파의 절기들은 이유극강(以柔克剛)의 원리 에 입각해 있는 것이기 때문에 보기와는 달리 일단 그러한 절기들에 익숙해 지게 되면 누구나 그와 같은 재주를 간단히 펼쳐보일 수가 있는 것이오. 나 는 가끔 심심하면 그와 같은 장난들을 생각해 내곤 했었는데, 그것이 지금 여러분들에게 커다란 흥미를 주게 될 줄은 몰랐었소. 사실 나는 그것들은 용아와 봉아아게만 보여주곤 했었는데, 이렇게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기는 처음인 것이오." 화검운은 제갈소홍이 무슨 최절정의 경지 운운하자 대강 그 질문에 얼버무 려 대답을 하고는, 이어 그와 같은 재간이 마치 무슨 장난거리나 되는 것처 럼 애기했다. 사람들은 그제서야 이 화검운이 정말로 놀라운 무공을 터득하고 있는 무림 의 일대고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왠지 그에 대한 의구심은 더욱 커 져가는 기분이었다. 아까 그는 이곳의 주인이게 그와 같은 모멸감이 섞인 욕설과 축객령을 듣고도 마치 어리숙한 낙방수재처럼 전혀 화도 내지 않고 가만히 있었고, 게다가 지금은 그와 같은 놀라운 절기들을 구사하고도 마치 아주 대수롭지 않은 것을 보인 것처럼 말하고 있는 것이니, 어떻게 그의 심 사(心思)를 추측할 수가 있겠는가? 사람들은 일시 이 허름한 용모의 서생이 실은 천하에 드문 숨은 기인(奇人) 이서 깊은 마음의 수양(修養) 속에 자신을 감추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 가 정말로 어리숙하여 우연히 최절정의 무공을 터득하고도 미처 그것의 가 치를 몰라서 그렇게 행동하고 있는 것인지 쉽게 분간을 할 수가 없었다. 당옥이 의구심(疑懼心)이 가득한 표정으로 아미를 깊게 찌푸리며 바라보고 있다가 이윽고 입을 열어 질문을 했다. "나는 일전에 무공을 익힌 사람들에게 있어서 간혹 그 흔적이 전혀 노출되 지 않는 경우도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에 당신의 모습이 평범 하게 보이는 점에 있어서는 사실 별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당신은 아마도 조금 특별한 기질(氣質)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겠죠. 하지만 나는 아 직 종남파의 현임 장문인을 포함해서 그와 같은 절기들을 그와 같은 완벽 (完璧)한 경지에 이르도록 연성(練成)했다고 하는 종남파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당신은 현재의 종남파의 최고 고수 (最高高手)라는 말인가요?" 당옥의 질문은 기실 사리에 맞는 것이고 논리정연한 것이었다. 무릇 무림의 일파(一派)의 최고 무공(最高武功)이라고 하는 것은 워낙에 심오(深奧)한 이치를 담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명문정파(名文正派)의 것일수록 더 욱 완벽하게 터득하기가 어려워서 젊어서 그것들을 완전히 터득하는 사람이 거의 없음은 물론이요, 간혹 인재(人才)가 나타난다고 해도 나이가 고희(古 稀)를 훨씬 지나서야 원숙한 경험과 지식(知識)을 토대로 하여 겨우 대성 (大成)할 수가 있는 것이었으니, 중년(中年)의 나이에 장문인의 직위에 올 라서 아직 종남파의 절기들을 대성하지 못하고 있는 화정룡(花廷龍)이라는 사람에 비교해 보더라도 이 눈앞의 화검운이라는 약관의 서생이 그러한 절 기들을 이미 최고의 경지에까지 터득하고 있다는 것은 확실히 기이하고 신 비로운 일인 것이었다. 화검운은 그 질문에 대해서 이렇게 대답했다. "솔직히 나도 내가 전혀 무공을 익히지 않은 사람처럼 보이는 데 있어서 다 소간의 불편한 일을 겪기도 하는 편이지만, 마음대로 바꿀 수도 없는 형편 이고 하니 대체 어쩌겠소? 실로 조금 전에도 나는 그와 같은 봉변(逢變)을 당했던 것이었지만, 나에게도 문제가 있다고 할 수가 있는 것이었으니 나는 그저 참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오. 내가 전혀 무공을 모르는 사람처럼 보였 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실례가 되었다면 지금 이 순간에 정중하게 사과를 드 리는 바이오. 그리고 그 종남파의 최고 고수냐는 질문은…… 그것은 사실 쉽게 말하기가 곤란한 것인데……" 상대에 대해서 깊은 의구심을 느끼고 수상한 점이 있다면 무엇이든 캐어 보 려고 노리고 있었던 당옥이 이 순간 화검운이 다소 말끝을 흐리는 것을 보 고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그녀는 즉시 눈빛을 번쩍 빛내며 캐물었다. "그건 어째서죠? 거기에 어떤 복잡한 사연(事緣)이라도 있다는 말인가요?" 화검운은 우수를 들어 가볍게 내저으며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말도 하지 마시오. 비록 그다지 복잡하다고는 할 수가 없지만 실로 이상야 릇하고 우스운 사연이 깃들어 있다오?" (……?) 사람들은 눈을 크게 뜨고 듣고 있다가 화검운의 말을 듣고 나자 마치 거기 에서 어떤 단서라도 찾으려는 듯이 칼날 은 시선을 화검운의 얼굴에 퍼붓 기 시작했다. 당옥이 얼른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럼 그 얘기를 지금 우리에게 해주실 수는 없나요?" 화검운은 일순 뜻밖이라는 듯이 눈을 들어 그녀의 얼굴을 정시(正視)하며 되물었다. "아니, 정말로 그 얘기를 지금 여기에서 하라는 말이오?" 당옥은 아미를 살짝 찌푸리며 약간 싸늘한 어조로 대꾸했다. "당신은 혹시 그 얘기를 지금 이곳에서 하지 못할 어떤 특별한 이유라도 있 다는 말인가요?" 화검운은 일순 그녀가 다소 싸늘한 태도로 나오자 다소 겸연쩍은 듯이 시선 을 거두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 얘기는 약간 우스운 것이라 쉽게 말하기가 곤란해서…… 하지만 여러분이 모두 듣기를 원한다면 그까짓 것 한 번 얘기를 해주는 것이 뭐가 그리 어렵겠소? 그 내용인 즉, 실은 이 렇소. 솔직히 나의 나이는 이제 갓 스물이고, 나의 오촌 조카인 화정룡의 나이는 나보다 최소한 배는 더 많을 것이오."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되고 주위에는 바늘 떨어지는 소리 하나 들 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하게 되어 약간의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하는 것을 보 고 화검운은 천천히 그들을 둘러보며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그런데, 하하, 이거 우습게도 그는 필시 나와 비슷하게 어린 나이에 그러 한 무공들을 전수받았을 것인데도 워낙에 자질(資質)이 부족하여, 하하, 나 는 뒤늦게 시작하게 되었지만 오히려 그보다도 먼저 그러한 절기들을 연성 하게 되었소. 이것은 나의 자질이훌륭하기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그의 자 질이 부족하고 어리석기 때문이오. 이른 바 이유극강의 무공이라는 것은 마 음을 써야지 기운(氣運)을 써서는 안되는 것이오. 몸이 허(虛)하다면 기운 은 생겨나는 것이고, 마음이 편안(便安)해지면 그 기운이 부드러워지고 빈 틈이 없어져서 술을 따르는 재주를 보일 때에도 전혀 실수하지 않게 되어 있는 것인데, 그러한 사소한 이치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있더라는 말이오." 사람들은 열심히 그의 말을 듣고 있었는데, 그의 입에서 느닷없이 무학(武 學)의 심오한 이치에 대한얘기가 흘러나오자 저마다 어리둥절한 표정들이 었다. 그것은 그야말로 동굴 속에서 호랑이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중인 데 엉뚱하게도 토끼가 뛰쳐나오는 것을 보는 듯한 심사와 비슷해 보였다. 화검운은 다소 멍해지는 듯한 사람들의 얼굴을 둘러보며 다시 말을 이어 갔 다. "하하, 그런데 그는 어이없게도 이미 일파의 장문인이 되었으니, 그 멍청한 조카…… 여러분은 부디 이 얘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발설하지 말기를 바라 오. 그 멍청한 조카인 장문인이 그래도 체면에 대해서는 알고 있는지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는 제법 근엄한 척하고 있다가 나중에 다른 사람들이 하나도 없을 때가 되자 느닷없이 나의 옷자락을 잡고 늘어지며 무공을 가르 쳐 달라고 떼를 쓰더라는 말이오. 하하하……" 화검운은 말을 하다가 말고 우스워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는 듯이 한 차 례 파안대소를 터뜨리고 나서는 눈앞의 사람들이 전혀 따라서 웃으려는 표 정이 아니고 다소 안색이 찌푸러진 것을 보고는 다시 웃음을 거두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내 그에게 몇 가지의 내용을 가르쳐 주기는 했지만, 빌어먹을, 그 멍청한 조카녀석…… 여러분은 부디 이 얘기가 그 화정룡의 귀에 들어가지 않도록 해주시오. 그도 일파의 장문인으로서 얼굴이 있을 테니 나에게 멍청 한 조카녀석이라는 말을 들었다면 아주 기분이 좋지 않게 될 것이오. 나는 그 녀석을 두려워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여러분은 부디 조심해 주시 오. 내가 여러분에게 이 얘기를 하지 않으려고 했던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 는 것이오. 화정룡 그 멍청한 녀석 하나라면 별로 두려울 것이 없겠지만, 지금 그의 주위에는 실로 그보다 더욱 더 멍청한 녀석들이…… 여러분 이 얘기도 종남파의 사람들의 귀에 들어가지 않도록 주의해 주시오. 아무튼 그 많은 멍청이들이 한꺼번에 나를 원망스러운 듯이 바라보게 된다면 내가 어 떻게 감당할 수가 있겠소? 아니, 아니지. 내 본론으로 다시 넘어가겠소. 그 멍청한 조카녀석은 그 멍청한 조카녀석은 나에게 약간의 무학을 배웠는 데…… 여러분, 내가 주의해야 한다고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겠지요? 어쨌 든 그 멍청한 조카녀석은 십 중 팔구는 잊어버리고, 혹은 뻔하게 드러나 있 는 이치인데도 빙 돌아가서, 어리석게도 십 중 하나도 제대로 배워내지 못 하는 것이 아니겠소? 그는 장문인이나 하면서 그 모양이니 얼마나 이게 우 스운 일이겠소?" (……) "하지만 기실 따지고 보면 나는 그의 아저씨뻘이 되는데, 아저씨가 조카녀 석에게 무공을 가르치는 것이야 당연하다고 말할 수가 있겠지. 하지만……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겉으로 보기에 오히려 그가 나의 아저씨처럼 보이 는데, 이것은 하하, 정말로 이상야릇한 일이 아니겠소? 나는 비록 아저씨로 서의 체면을 차리게 되었지만, 반대로 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해 본다면 그 조카녀석의 심사야말로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어지는 일이겠소? 그는 줄 을 잘못 서서 나의 조카가 되었다는 말조차도 할 수가 없는 형편이 되어 버 렸다는 말이오. 하하하……" 화검운이 다시 한 번 파안대소를 터뜨리고 나서 입을 다물자 이윽고 한참이 나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던 당옥이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입을 열어 다 시 물었다. "당신이 말했던 우습고 이상야릇한 사연이라는 것은 바로 그런 내용이었나 요?" 화검운은 그녀의 얼굴을 마주 바라보다가 천역덕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 답했다. "그렇소. 그 밖에 더 우습고 이상야릇한 사연이 있을 수가 있겠소?" 순간 화검운의 입에서 혹시 보다 중대하고 미묘(微妙)한 얘기를 들을 숙 있 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당옥을 비롯한 사람들은 내심으로 크게 실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화검운이 방금 전에 말했던 그 이상야릇한 사 연이라는 것은 실은 그들에게는 조금도 흥미가 없는 얘기에 불과했기 때문 이었다. 당옥이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입을 열어 그를 향해 말했다. "하지만 당신은 아직 자신이 종남파의 최고 고수라는 말을 하지 않았어요. 정말로 당신은 종남파의 최고 고수인가요?" 화검운은 잠시 생각한 후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아마도 그럴 것이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내가 어떻게 용아와 봉아를 그 와 같은 나이에 일류고수(一流高手)의 수준으로까지 가르칠 수가 있었겠 소?" (……?) 당옥은 이에 잠시 화검운의 얼굴을 주시하다가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아니예요. 당신은 결코 종남파의 최고 고수가 아닐 거예요." 그것은 실로 뜻밖의 말이었다. 이번에는 화검운이 의아하다는 듯이 입을 열 어 그녀에게 물었다. "아니, 어째서 내가 최고가 아니라는 말이오?" 당옥은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대답했다. "내가 잠시 잊고 있었는데, 당금 강호에는 현재 종남파에 한 명의 기인(奇 人)이 나타나서 종남파의 세력을 크게 일으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소문 이 퍼지고 있어요. 그를 가리켜 종남사부(終南師父)라고 부른다고 하던데, 나는 아직 그가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그리고 젊은 사람인지 늙은 사람인지 도 알지 못하지만, 필시 그가 당금의 종남파의 최고 고수일 것이라고 확신 해요." 뭔가 신빙성이 있는 기억을 떠올린 듯 당옥의 어조는 상당히 강한 확신으로 가득차 있는 것 같았다. 화검운은 그 얘기를 듣고 약간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쎄…… 나는 아직 들어보지 못한 얘기인 것 같은데…… 워낙에 요즈음은 종남파에 가보지 않아서…… 음, 그렇게 좋은 일이 생겼다면 역시 좋은 일 이 아니겠소?" 당옥은 화검운이 다소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는 것을 보고 잠시 생각하다가 문득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그를 향해 입을 열어 다시 물었다. "당신은 혹시 지금 다소 한가한 상태가 아닌가요?" 화검운은 그녀의 질문에 의아해하며 되물었다. "아니, 어째서 그렇게 묻는 것이오?" 당옥은 눈빛을 기이하게 빛내며 대답했다. "사실 우리는 황 소저(黃小姐)와 함께 종남파로 영웅첩(英雄帖)을 전달하러 가던 길이었어요. 우리는 조금 전에 식사를 마치고 나서 곧장 종남산(終南 山)으로 가려고 했었는데, 만일 당신이 그곳의 지리에 밝다면 장문인과 안 면이 있는 당신이 우리와 동행(同行)을 하게 된다면 좋지 않겠어요?" 사실 당옥은 다른 이유들도 물론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목적은 이 기이하 게 보이는 화검운의 정체를 보다 확실하게 캐기 위해 그렇게 꾀고 있는 것 이었다. 화검운이 비록 지금은 그럴 듯하게 거짓말을 할 수가 있다고 해도 정말로 종남파의 장문인의 앞에 가게 되면 도저히 거짓말을 할 수 없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화검운은 그러한 그녀의 심계(心界)를 눈치챘는지 혹은 모르고 있는지 잠시 곰곰히 생각을 굴리는 듯하다가 이윽고 소리쳐 말했다. "이상하군, 이상해! 공교롭군, 공교로와!" 화검운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던 당옥은 그 말에 절로 의아해하며 물었다. "뭐가 그리 이상하고 공교롭다는 말이죠?" 화검운은 고개를 들어 그녀의 얼굴을 마주 바라보며 대답했다. "나는 비록 지금 해야 할 일이 있어서 한가한 편은 아니지만, 그러나 결국 낭자의 부탁에는 응할 수 있게 되었소. 그러니 정말로 이상하고 공교롭지 않고 뭐겠소?" 당옥은 더욱 어리둥절해졌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이죠?" 화검운은 자신의 앞 탁자 위에서 이미 차갑게 식어버린 음식들을 한 차례 내려다보면서 천천히 입을 열어 대답했다. "나는 원래 일단 이곳에 들러서 술을 한 잔 하고 나서 곧바로 종남파로 가 서 나의 그 멍청한 조카 장문인을 만나보려고 하던 참이었는데, 뜻밖에도 당신이 그와 같은 부탁을 해주니 어찌 공교롭지 않겠소?' (……?) 사람들은 화검운의 말을 듣자 그 또한 뜻밖의 어이가 없는 얘기였지만, 일 단은 차라리 매우 잘됐다고 생각했다. 화검운과 그렇게 자연스럽게 동행을 하게 되면 우선 그의 신분내력에 대해서 보다 확실하게 알아낼 수가 있을 뿐만 아니라, 처음으로 가는 종남파에 가서도 그들의 행동이 다소 편해지지 않겠는가? 물론 그것은 화검운이 정말로 종남파 장문인의 당숙이라는 것이 사실이어야 한다는 단서가 붙는 것이었지만, 아무튼 이 기이한 서생과 동행 을 하게 되면 앞으로 뭔가 좋은 일이 기다리고 있게 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었다. 당옥은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물었다. "당신은 종남파에 무슨 볼 일이라도 있다는 말인가요?" 화검운은 그 질문에 다소 겸연쩍은 듯이 웃으며 대답했다. "사실 다소 부끄러운 일이지만 나는 아직 생활 능력이 없어서,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은자를 타서 쓰는 형편이오. 이번에도 별로 가고 싶은 생각은 없 지만 은자가 필요하기 때문에 장문인을 만나보려는 것이오." 당옥은 화검운의 초라한 옷차람과 그와는 반대로 화려한 두 명의 시종의 옷 차림을 보면서 일순 그의 말이 사실일 수도 있고 혹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 다고 생각했다. 화검운이 초라한 의복을 걸치고 있는 것이야 당연히 가난하 기 때문이라고 해도, 그렇다면 그가 어떻게 두 명의 시종들에게 값비싼 의 복들을 입힐 수가 있다는 말인가? 모든 일은 결국 종남파에 직접 가서 부딪쳐 보면 저절로 알게 될 것이기 때 문에 당옥은 그러한 문제로 시간을 끌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당신은 지금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서 출발할 수가 있나요?" 화검운은 그 질문을 받고는 잠시 생각하다가 문득 고개를 가로저었다. "잠시 후라면 모르지만 지금은 바로 출발할수가 없게 되었소." 당옥은 의아해져서 물었다. "아니, 그건 어째서죠?" 화검운은 즉시 자신의 앞 탁자 위에 가득하게 차려져 있는 음식들을 손가락 으로 일일이 가리키며 대답했다. "여기에 있는 음식들은 보아하니 제법 맛있어 보이는 것들인데 어찌 이 많 은 음식들을 그냥 버려두고 갈 수가 있겠소? 나는 이런 음식들을 놔두고 간 다면 마음이 편하지 않을 것 같으니 여러분은 잠시 기다리시오. 내 금방 식 사를 끝내도록 하겠소." 당옥은 화검운이 금방 자리를 잡고 식사를 하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내심 약간 짜증이 치밀어서 그만두게 하고 데려가고 싶었지만, 그러나 자신들은 이미 점심식사를 끝냈으나 눈앞의 세 사람은 아직 식사 전이라면 배가 고플 것이기에 차마 강하게 화검운의 행동을 제지할 수가 없었다. 그의 두 명의 시종들인 용아와 봉아는 이제까지 탁자 앞에서 조용히 기다리 고 있다가 화검운이 식사를 하기 시작하자 자신들도 음식을 먹기 시작했는 데, 그들의 식사를 하는 모습들은 아주 산뜻하면서도 정결해 보이는 것이었 다. 오히려 주인인 화검운이 다소 게걸스러운 동작으로 빠르게 음식들을 이 것저것 집어먹었지만, 그들은 단지 젓가락을 들어서 몇 가지의 음식들을 조 금씩 맛을 보는 선에서 식사를 끝내는 것이었다. 그들 주종간의 행색이나 행동들이 워낙에 다른 모습들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에 혹시 화검운이 반대 로 하인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일어날 정도였다. 용아와 봉아는 이미 식사를 마친 듯했으나 화검운이 수저를 놓지 않고 있는 것을 보고는 자신들도 수저를 놓지 않고 그저 이것저것 집어먹는 듯한 모습 을 보이다가 이윽고 화검운이 식사를 끝내고 한 차례의 트림을 한 후에 수 저를 내려놓자 자신들도 수저를 내려놓고는 급히 한쪽에서 엽차를 집어서 그에게 권하는 것이었다. 그러한 그들의 행동은 용아는 다소 굼떠 보였고 대신 봉아가 더욱 빨랐다. 화검운은 식사를 마치고 나서 엽차를 들이킨 후에 아직도 자신들의 앞에서 서서 기다리고 있는 그 여섯 사람들을 바라보며 문득 이렇게 웃으며 말했 다. "여러분은 이상하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 용아와 봉아는 오래 전부터 부 유한 주인을 모셨었기 때문에 화려하게 살아갈 수가 있는 것이지만, 그러나 나는 그러한 주인도 없는 처지에 이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니겠 소?" 그것은 자신의 모습과 용아 봉아의 행색이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을 해명하는 말이었다. 당옥은 그의 말을 곧이 들을 수가 없었지만 다시 얘기를 꺼내서 시간을 끌 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동문서답(東問西答)식으로 재촉했다. "식사를 마쳤으니 이제는 출발할 수가 있나요?" 화검운은 그 말을 듣고 일행을 둘러보다가 되물었다. "아니, 그렇게도 바쁘다는 말이오?" 당옥은 너무나도 느긋한 화검운의 동작에 그만 신물이 나는 것 같아서 즉시 약간 냉랭하게 대꾸했다. "종남파는 이곳에서 그다지 가까운 곳이 아니니 우리가 그곳에 갔다가 다시 되돌아와서 객점을 잡으려면 좀더 서둘러야 하지 않겠어요?" 화검운은 아직도 이해할 수가 없다는 듯이 다시 물었다. "아니, 시간이 늦어지게 되면 그대로 종남파에서 하룻밤을 묵어 오면 되지 않겠소? 종남파에는 재산도 많고 게다가 객청(客廳)들도 제법 훌륭해서 내 가 나서서 말한다면 그들은 여러분들을 결코 소홀하게 대접하지 않을 것이 오." 당옥은 점점 더 귀찮은 생각이 들어서 아미를 살짝 찌푸리며 대꾸했다. "우리는 오늘 저녁에는 반드시 이곳으로 돌아와야 할 일이 있기 때문에 종 남파에서 천금(千金)을 준다고 해도 그곳에서 쉴 수가 없어요." 당옥은 은근히 자신들과 같은 신분의 사람들이 단체로 이 어리숙해 보이는 서생과 마주하여 이제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야 했다는 사실에 문득 매우 불쾌한 생각이 들어서 미처 생각지도 않던 말까지도 토해놓고 말았다. 사실 그녀들이 오늘 저녁에 이곳 장안성으로 되돌아와야 하는 데에는 아주 중요한 이유가 숨겨져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화검운은 미처 그러한 눈치를 전혀 채지 못했는지 천천히 고개를 끄 덕이더니 입을 열면서 몸을 일으켰다. "그렇다면 하는 수 없이 지금 일어나야 하겠군. 사실 그 멍청한 조카녀석에 게 은자를 빌리러 간다는 것은 별로 마음이 내키지 않아서 술이라도 한 잔 하고 나서 갈까 했었는데. 자자! 어쨌든간에 이제는 그만 가도록 합시다!" 화검운이 오히려 앞으로 나서서 서둘기 시작하자 당옥 등의 일행은 다소 어 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 계속 -- #5716 양한우 (hanwoo71) [백상] 종남사부 제1권 제5장 03/22 10:35 330 line 올 린 이 : 양한우 HITEL ID : hanwoo71 제5장. 당금의 무림삼보(武林三寶) 화검운이 미처 주막을 나서기 전에 용아와 봉아가 계산대로 달려가서 먼저 계산을 치르려고 했으나, 도노대는 이미 작정하고 있었던 사람처럼 전혀 음 식값을 받으려고 하지 않았다. 일행은 따라서 화검운의 뒤를 따라서 수월하 게 밖으로 나오게 되었는데, 화검운은 대로상에 나오게 되자 즉시 발길을 종남산(終南山)이 있는 방향인 남쪽으로 돌려서 걷기 시작했다. 이 종남파가 자리잡고 있는 종남산은 장안성의 남쪽 방향으로 백여 리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당옥 등의 소녀들은 일단은 화검운이 방향 을 제대로 잡아서 걸어가는 것을 보고는 그가 종남파와 정말로 인연(因緣) 이 있는 사람이기는 한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들이 비록 일신에 훌륭한 무공과 경신술(輕身術)을 가지고 있고, 또한 익히 그 방향을 들어서 알고 있다고 해도 정작 종남파로 찾아가려면 몇 차 례의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을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 길을 잘 아는 사람의 인도를 받으며 가게 된다면 다소 편리할 것 같았다. 그러나 단지 이 화검운은 아까 보여주었던 그 놀라운 무공 실력이 의심스 러울 정도로 양쪽에 용아와 봉아를 대동하고 대로상을 아주 느릿하게 걸어 가고 있었는데, 이미 시간이 다소 지체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소녀 들은 그것을 보자 일순 화가 나기도 하고 마음이 답답해져서 터져나갈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되었다. 하지만 마치 그러한 그녀들의 심사(心思)를 알아주기라도 하듯이 화검운은 이윽고 성문을 벗어나게 되자 사람들이 별로 다니지 않는 한적한 방향을 잡 아서 경신술을 펼치지 시작했는데, 과연 그의 신법은 아까 보여 주였던 그 무공 수법만큼이나 훌륭해 보이는 것이었다. 비록 그다지 속력을 내는 것은 아니었으나 전혀 힘들지 않게 움직이는 것 같은데도 거의 파공음이 일지 않 고 부드럽게 나아가는 것이었다. 용아와 봉아는 역시 그의 좌우에서 함께 신형을 날려가고 있었는데 마치 기 러기가 땅을 박차고 빠르게 허공을 가로지르며 나아가는 것과도 같은 그들 의 신법은 경쾌하고도 아름답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당옥 등의 여섯 명의 일행들도 이때에는 제작기 신법절기들을 발휘하여 그 뒤를 따르기 시작하고 있었는데, 그들의 경신술은 이미 명문정파의 엄격한 교육하에 체득된 것들이어서 용아와 봉아의 신법에 비해서 나았으면 나았지 못하지 않았다. 당옥 등의 일행은 이제는 화검운이 신법을 펼쳐서 빠르게 나아가 주는 바람 에 기분이 상그지고 아까의 불쾌감이 씻은 듯이 사라지게 되었으며, 저마다 화검운이 지금 펼치고 있는 경신술은 어떤 종류의 것일까 하고 세심하게 살 피게 되었는데, 문득 그 가운데 악산산이 신법의 속도를 더해 앞으로 나서 서 화검운의 옆으로 바싹 붙으며 입을 열어 말했다. "당신의 시종들의 경신술은 정말로 훌륭하군요. 그것은 아마도 금안공(金雁 功)이라는 것이겠죠?" 이 악산산은 원래는 자신이 가장 먼저 화검운 등과 가까워지게 되었는데, 나중에는 당옥이 나서서 화검운과의 대화를 도맡아서 하는 바람에 다소 위 치가 뒤바뀐 것 같았으므로, 이제 다시 나서서 말을 걸어보려는 것이었다. 그녀는 처음에는 화검운의 눈빛을 보고 가슴이 떨렸으나 이제는 익숙해져서 인지 그다지 어색한 느낌이 들지 않고 있었다. 화검운은 이때 묵묵히 전면을 바라보며 신형을 날려가고 있었는데, 문득 악 산산의 말을 듣고 나자 급격하게 신법의 속도를 늦추더니 악산산을 향해 동 문서답식으로 이렇게 되물었다. "참! 그런데 아까 당신들은 무슨 영웅첩(英雄帖)을 돌리기 위해 종남파로 간다고 간다고 했던 것 같은데, 대체 그 영웅첩은 무엇 때문에 돌리는 것이 오?" 화검운이 갑자기 신법의 속도를 늦추었기 때문에 자연히 악산산도 신법의 속도를 늦추게 되었고, 따라서 뒤에 쳐져서 오던 당옥 등의 일행과 금새 가 까워지게 되었다. 악산산은 의식적으로 뒤에 바싹 따라온 일행들을 한 차례 둘러본 이후에 화 검운에게 다시 고개를 돌려서 입을 열어 대답했다. "당신은 아직 그 소문을 듣지 못했나요?" 일반적으로 입을 열어 말을 하게 되면 내식(內息)이 흐트러질 위험이 있기 때문에 대체적으로 무공을 전개하거나 신법을 펼칠 때에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상례였는데, 이 악산산은 그렇게 말을 하고 행동을 하면서도 여유있게 신법을 펼치는 것으로 보아 무공에 상당한 기초가 쌓여져 있는 것이 분명했 다. 화검운은 계속 앞으로 나아가면서도 고개를 전적으로 그녀를 향해 돌린 채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무슨 소문 말이오? 무슨 특별한 사건이라도 생겼다는 말이오?" (……) 악산산은 잠시 물끄러미 그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이어 말했다. "당신은 계속해서 장안성 내에서 살아왔다고 하면서도 아직 그러한 놀라운 소문을 듣지 못했다니 이상한 일이군요." 화검운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아마도 그것은 내가 용아 봉아와 함께 계속해서 장원 내에서만 머물고 외 출을 많이 하지 않았었기 때문일 것이오. 대체 무슨 소문이 퍼졌길래 그러 는 것이오?" 악산산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느닷없이 이렇게 대꾸했다. "당신이 지금 펼치고 있는 신법은 상당히 훌륭해 보이는군요. 그 신법의내 력(來歷)에 대해서 말해 주면 내가 그 소문에 관해서 가르쳐 드리겠어요." 악산산은 가능하면 이 화검운이라는 사람과 밀접하게 움직이고 싶은 충동이 일었기 때문에 쉽게 가르쳐 줄 수가 있는데도 엉뚱한 조건을 걸어 놓는 것 이었다. 화검운은 그녀의 느닷없는 제의에 의아해 하다가 대꾸했다. "이 경신술 말이오? 낭자도 이미 조금 전에 말하지 않았소? 내가 금안공을 펼치지 않으면 또 무슨 다른 신법을 펼치겠소?" "그게 금안공이라고요?" 악산산은 다소 놀라며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을 휘둥그래 떴다. 지금 용아 와 봉아가 펼치고 있는 신법의 모양은 그야말로 날쌘 기러기가 우아하게 땅 을 박차고 날아가는 것 같은 모습들이었지만, 화검운의 모습은 그와는 아주 많이 다르고 전혀 기러기의 모양과 같지 않게 비스듬히 지면 휘를 날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느닷없이 악산산의 뒤에서 묵묵히 지면을 스치듯이 여유있는 신법으로 나아가고 있었던 황약화가 불쑥 입을 열어 이렇게 말했다. "금안공은 최고의 경지에 이르게 되면 마치 기러기가 한 줌의 진기(眞氣)만 을 가지고 유연하게 땅 위를 스치고 나아가듯이 좀처럼 그 흔적(痕迹)을 드 러내지 않는 것이지." (……?) 악산산은 황약화가 다시 그렇게 불쑥 나서서 입을 열어 말하자 다소 어리둥 절해 하는 표정이었으나, 이내 그것은 그녀가 화검운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 을 가르쳐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화검운을 향해 다시 말했다. "좋아요. 그럼 당신에게 그 소문에 대해서 가르쳐 드릴까요?" 이 악산산은 다시 당옥 등에게 대화의 주도권을 빼앗기기가 싫어서 거의 의 도적으로 스스로 화검운에게 소문의 얘기를 해주려는 것이었다. 화검운은 물론 그것을 마다할 리가 없는 것이어서 즉시 고개를 끄덕이며 대 답했다. "그게 대체 무슨 특별한 얘기인지 한 번 말해 보시오." (……) 악산산은 마치 그의 마슴속을 들여다보기라도 하듯이 깊은 시선으로 한 차 례 그의 두 눈을 들여다보다가 이윽고 입을 열어 말하기 시작했다. "당신은 당금의 무림삼보(武林三寶)에 대해서 알고 있나요?" 화검운은 그녀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하다가 웃으며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대답했다. "무림삼보라…… 천하에 신기한 보물들도 많이 있는 것이니 그야말로 뜬구 름 잡기식의 말인 듯하구려. 무림에서 가장 귀중한 세 가지의 보물들이라면 아마도 그것은 소림사의 달마역근경(達磨易筋經)이나, 한 알만 복용하면 능 히 이 갑자(甲子)의 공력(功力)을 얻을 수 있게 해준다는 전설(傳說)의 대 환단(大還丹), 그리고 개방( 幇)의 정형벽록(晶螢碧綠)으로 만들어진 타구 봉(打狗棒), 뭐 그런 정도가 아니겠소?" 악산산은 그 말을 듣고 가볍게 피식 웃더니 대답했다. "그러한 것들은 비록 신비하게 전해지기는 하지만 그러나 당금의 세태(世 態)가 달라져서 그다지 놀라운 보물이 된다고는 말할 수가 없어요. 물론 잘 생각해 본다면 그 외에도 정말로 훌륭한 보물들이 많이 있을 수가 있겠지 만, 나의 얘기는 그러니까 당금에 있어서 강호상에 새롭게 전해지고 있는 무림삼보가 어떤 것이냐 하는 말이예요." 화검운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꾸했다. "그런 것이 다 있었소? 그렇다면 대체 그 무림삼보라는 것은 어떤 것이오?" 다소 시큰둥하니 물어오는 화검운의 태도를 보고는 악산산은 일부러 그의 흥미를 끌기 위해 이렇게 말을 덧붙였다. "그 무림삼보에 대한 얘기가 바로 내가 조금 전에 말했던 그 특별한 소문이 라는 것이예요. 말하자면 그 무림삼보가 느닷없이 장안성 내에 나타났다는 것이죠." 화검운은 그 얘기를 듣자 다소 흥미를 느끼게 되었는 듯 눈을 크게 뜨고 다 시 물었다. "장안성 내에 무림삼보가 나타났다고? 대체 그것들은 무엇이오?" 악산산은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다소 뜸을 들이는 척하다가 이윽고 대답했 다. "그 무림삼보 가운데의 하나는 바로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 는 진시황릉(秦始皇陵)의 장보도(藏寶圖)예요." "……!" 화검운은 그 얘기를 듣고 일단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가 문득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난 또 뭐라구. 겨우 그러한 것이었구려?" 악산산은 이에 오히려 놀라서 되물었다. "당신은 그럼 이미 알고 있었나요?" 화검운은 시큰둥하니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한 얘기야 비록 내가 아니더라도 천하의 사람들은 모두 다 알고 있을 것이오. 진시황릉이 천하에 공개되고 발굴되기 시작한 지 얼마나 오래 지났 는데 이제 와서 그러한 장보도가 무슨 소용이 있겠소?" (……?) 그 말에 악산산은 일순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화검운이 전혀 그 내용을 알고 있지도 못하면서 마치 훤하게 알고 있는 것처럼 대꾸 하고 있는 것을 보고는 금방이라도 다가가 그의 입술을 꿰매고 거기에다 일 정한 수(繡)를 놓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악산산은 다소 화가 난 듯이 말했다. "제가 하려는 얘기는 그런 것이 아니예요. 당신은 정말로 남의 성의(誠意) 를 무시하는 사람이로군요!" 화검운은 그녀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럼 어떤 얘기라는 말이오?" 악산산은 대답했다. "천하에 알려져 있는 진시황릉이야 물론 일반인들에게 공개될 정도로 많이 발굴되었고, 또한 별로 신비할 것도 없지요. 하지만 소문에 의하면 그 진시 황릉에 딸려 있는 어떤 특별한 장보고(藏寶庫)가 있을 것이라는 거예요." 화검운은 다시 물었다. "장보고라니? 그럼 그것은 진시황릉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오?" 악산산은 잠시 기억을 떠올려 보다가 대답했다. "소문에 의하면 과거의 진시황은 분서갱유(焚書坑儒)의 일을 할 때 비록 대 부분의 서책들을 불태워 버리기는 했지만, 그러나 자신에게 필요하다고 인 정되는 몇 가지 종류의 서책들은 애써 다른 곳에 보관해 두고 불태우지 않 았다는 것이예요. 하지만 그는 죽음이 임박했을 때 그 서책들이 발견되는 것이 싫어서 일부러 무덤과가까운 곳에 하나의 장보고를 만들고 거기에 그 서책들을 영구히 보관하게 하였다는군요. 그 서책들을 차라리 자신이 저승 으로 가지고 가겠다는 심보였겠죠." 화검운은 그 얘기를 듣고 있다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아니, 설령 그것이 사실이었다고 해도 그 서책들은 그저 유교(儒敎)의 경 전들이나 아니면 제자백가(諸子百家)의 학술집(學術集)들이 분명할 텐데 대 체 그것들이 무림의 일과 무슨 관계가 있다는 것이오?" 악산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강호의 무학은 근래에 들어서 급격할 발전을 보이게 된 셈이지만, 과거의 상고시대(上古時代)만 해도 전혀 그러한 무학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예요. 아니 오히려 어떤 사람들은 과거의 무학이야말로 가장 순수하여 선학(仙學) 에 가까워졌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죠. 당시 진시황은 이론이 분분한 유학 자(儒學者)들이 미워진 나머지 그와 같은 분서갱유를 저질렀었는데, 그런 그가 오히려 유교경전 등을 숨겨 놓았을 리는 없는 것이죠." 화검운은 그녀를 향해 질문했다. "그럼 진시황이 무슨 무공비급이라도 감추어 놓았었다는 말이오?" 악산산은 미소하며 대답했다. "진시황은 욕심이 대단한 사람이어서 나중에 불로장생(不老長生)을 위한 노 력을 많이 하게 되었는데, 그가 그러한 하나의 방편이 될 수가 있는 무공비 급들이나 희귀영초(稀貴靈草)들을 수집하지 않았었다고는 말할 수가 없는 일이죠. 진시황릉의 장보고에는 바로 그러한 것들이 숨겨져 있다는 것이예 요." 화검운은 다소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럼 장보도는 그 장보고로 들어갈 수 있게 하는 지도라는 말이오?" 악산산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과거에 그 장보고를 만드는 일에 종사했던 한 장인(匠人)이 나중에야 비로 소 진시황이 비밀 유지를 위해 자신들을 모조리 제거하려고 하고 있다는 것 을 간파하고는 자신의 후손들이 발견할 수 있도록 그 비밀지도를 만들어서 몰래 밖으로 유출시켰었나 봐요. 하지만 그 장보도는 그 장인의 의도와는 달리 그의 후손들에게 발견되지 않고 오랫동안 지나오다가 뜻밖에도 근래에 이르러서 누군가에게 발견되었다는 것이죠." 화검운은 눈살을 약간 찌푸리고 생각을 하는 듯하다가 다시 물었다. "그럼 그 장보도는 지금 어디에 있소?" 악산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유독 그 얘기는 아직 안개 속에 가려져 있어요. 장보도를 발견한 사람이 누구인지 혹은 지금 그것이 누구의 손에 쥐어져 있는 것인지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어쨌든 조만간에 그것이 장안성 내에 나타날 것이라는 소문이 떠돌 고 있어요." "음, 그와 같은 장보고를 찾아내어 영약(靈藥)을 복용하고 무공을 익힐 수 가 있다면 누구라도 그것을 탐내지 않을 수가 없겠지." 화검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하다가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뇔에 떠오른 듯 악산산을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당신들이 오늘 저녁에 장안성으로 돌아가려는 이유도 바로 거기 에 있는 것이오?" (……) 악산산은 화검운의 그 질문을 받고 그가 아까 당옥의 얘기를 무심코 듣고 있었던 것 같았으나 사실은 상당히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 었다. 그녀는 뒤에서 묵묵히 따라오고 있는 당옥의 얼굴을 한 차례 돌아본 연후에 화검운을 향해 입을 열어 대꾸했다. "원래 이 영웅첩은 그 소문이 계기가 되어서 발동된 것이겠죠. 원래 이 얘 기는 다른 사람에게 하무로 할 수가 없는 것이지만, 우리가 오늘 저녁에 장 안성으로 돌아가려는 것은 거기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회합(會合)하여 내 일 정오에 열리게 되는 영웅대회(英雄大會)에 참석하는 일을 준비하기 위해 서죠." 화검운은 다시 놀라서 물었다. "아니, 영웅대회가 장안성 내에서 열리게 된다는 말이오?" 악산산은 선선히 웃으며 대답해 주었다. "당신은 종남파의 사람이라니 가르쳐 드리겠어요. 내일 정오에 영웅대회는 장안성 내의 금창보(金槍堡)에서 열리게 되어 있어요. 그리고 이 일은 백의 맹(白衣盟)에서 주관하고 있는 것이죠." 화검운은 아직도 이해할 수가 없다는 듯이 다시 물었다. "하지만 내일 열리는 영웅대회라면 그 영웅첩을 아제 돌려서야 사람들이 그 대회에 모두 참석할 수가 있겠소?" 악산산은 웃으며 대꾸했다. "당신은 정말로 멍청하군요. 이 영웅첩은 이미 천하의 곳곳에 발송되어서 많은 무림인들이 장안성을 향해 몰려들어오고 있는 중이예요. 이번에 우리 의 황언니께서는 여러 곳의 영웅첩을 전달하는 임무를 맡으셨는데, 이미 다 른 곳은 모두 돌리고 마지막으로 종남파로 가고 있는 것이죠. 종남파는 장 안성과 가까운 곳이므로 오늘 저녁에 전달한다고 해도 그들이 충분히 내일 정오의 영웅대회에 참석할 수가 있는 것이 아니겠어요?당신은 아직 장안성 내에 무림인들이 많아진 것을 느끼지 못했나요?" 화검운은 그제서야 지금 이 영웅첩을 돌리는 일의 임무를 맡은 주역은 다름 이 아닌 황약화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외의 다른 사람들은 나중에 그녀 를 따라나선 사람들일 것이라고 짐작하게 되었다. 하긴 이 여섯 명의 남녀 들 가운데 그 황약화의 무공이 가장 두드러지게 뛰어난 것이 사실이었으므 로, 그녀가 비록 나이는 어리나 중대한 임무를 맡은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이었다. 화검운은 황약화의 다소 음산해 보이는 얼굴을한 차례 돌아본 연후에 다시 악산산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어 물었다. "그건 그렇다고 해도 대체 그 영웅대회에서는 무슨 일을 논의(論議)한다는 말이오? 설마하니 그 장보도를 취하기 위해 영웅대회를 개최하는 것이라는 말이오?" 악산산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웃으며 그를 향해 되물었다. "당신은 정말로 당금의 무림 정세(武林情勢)에 대해서는 아직 잘 모르고 있 다는 말인가요?" 화검운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쎄요. 그 무림의 정세가 장보도와 어떤 연관이라도 있다는 말이오?" 악산산은 이에 화검운이 기실은 아직 강호무림(江湖武林)의 정세에 대해서 까맣게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대체 어디에서부터 설명을 해야 할지 엄 두가 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때 문득 그들의 대화 내용을 유심히 들으면서 뒤따르고 있었던 제갈소홍 (諸葛素紅)이 가볍게 앞으로 나서며 미소와 함께 화검운을 향해 이렇게 질 문을 던졌다. "당신은 혹시 지금으로부터 십년 전에 강호 무림의 일백 명의 최절정 고수 들이 한꺼번에 의문의 실종을 당했던 사건(事件)에 대해서 알고 있나요?" 악산산은 그렇지 않아도 다소 난감해 하던 상황이었는데 제갈소홍이 나서서 화검운을 상대하자 핑계김에 그만 뒤로 약간 물러서서 두 사람의 대화 내용 을 듣게 되었다. 화검운은 이 제갈소홍이 뜻밖에도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는 일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대꾸했다. "그 일을 아직 모르고 있는 사람이 천하에 어디 있겠소?" 제갈소홍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는 그럴 거예요. 하지만 당신은 그렇게 일백 명의 최정정의 고수들을 한꺼번에 잃은 이후에 강호 무림의 사정이 어떻게 변해가기 사작했었는지 알고 있나요?" 이 제갈소홍은 비록 그다지 첫눈에 절세미인(絶世美人)이라는 느낌이 들 정 도의 미인은 아니었지만, 그러나 지극히 수려(秀麗)하고 깨끗한 용모와 그 얼굴 가운데의 맑게 비쳐나오는 듯한 두 개의 시선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점 차로 깊은 매력을 느끼도록 만드는 그런 소녀였다. 지금도 제갈소홍이 다소 웃으며 이야기를 하자 화검운은 일시 그녀의 얼굴 이 눈부신 듯한 느낌을 받고 있었다. 화지만 화검운으로서는 그녀의 질문 내용에 대한 흥미가 보다 강렬했기 때문에 즉시 생각나는 대로 대답했다. "당시에 실종된사람들의 대부분이 정파의 명숙(名宿)들이었다고 하니 아마 도 그 이후로는 사마외도(邪魔外道)의 무리들이 득세(得勢)하게 되지 않았 소?" 제갈소홍은 미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래요. 하지만 설령 그 일백 명의 최정정 고수들이 실종되지 않았었 다고 해도 도저히 어쩔 수가 없게 되었을 정도로 그 나중에 나타난 사마외 도의 무리들은 극강(極强)한 힘을 가지고 있었죠. 당신은 그 사마외도의 근 원(根源)이 되는 힘이 무엇인지 알고 있나요?" 화검운은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그건 혹시 흑풍사(黑風社)가 아니오?" 이때 일행 중의 사람들은 그저 부담없이 계속해서 신법을 펼치고 있는 중이 었는데, 느닷없이 화검운의 입에서 흑풍사라는 말이 튀어나오자 저마다 마 치 추위를 타는 것처럼 몸을 움츠리며 주위를 둘러보기까지 했다. 그것은 마치 흑풍사라는 존재가 악령(惡靈)의 괴물(怪物)과도 같아서 생각할수록 몸서리가 쳐지고 게다가 흡사 주위에 이미 그것이 나타나서 자신들을 노리 고 있는 듯한 공포감(恐怖感)을 느끼고 있는 것과 비슷한 것이었다. 제갈소홍도 잠시 길게 숨을 몰아쉬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열어 대답했 다. "바로 그래요. 그들은 당금 무림의 최강(最强)의 여덟 개의 세력인 천상팔 패(天上八覇) 가운데에서 천상사패(天上四覇)가 연합(聯合)하여 이루어진 막강한 단체 흑풍사이지요." 화검운은 문득 그녀를 향해 다시 물었다. "듣자니 백의맹(白衣盟)이라는 것은 그 천상사패의 나머지 사패(四覇)가 힘 을 합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하던데 그것은 사실이오?" 제갈소홍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이예요. 그런 점에 있어서는 아마 황 소저께 물어보시면 보다 정확한 답을 들으실 수가 있을 거예요." 제갈소홍은 말과 함께 은근히 시선을 돌려서 황약화를 바라보았는데, 그것 은 즉 황약화의 출신지(出身地)인 황산의 성수곡(聖手谷)이 천상팔패의 하 나이며 당금에 이르러 백의맹에 가입되어 있는 곳이라는 점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화검운도 제갈소홍의 시선을 따라서 황약화를 바라보았는데, 이때에 도 황약화는 그저 목석과 같은 표정을 한 채 전혀 제갈소홍의 말을 듣지 못 한 듯 아주 무신경한 모습이었다. 화검운은 이에 시선을 다시 제갈소홍에게 돌려서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면 그 흑풍사를 견제하기 위해 백의맹에서 이번에 천하의 명문정파 의 사람들에게 영웅첩을 돌리고 있는 것이라는 말이오?" 제갈소홍은 황약화의 눈치를 가볍게 살피고는 이어 화검운을 향해 미소하며 대답했다. "흑풍사는 그 일백 명의 고수들이 실종되기 전에도 존재하고 있었지만 일단 그들이 실종되고 나자 보다 활발하게 활동하기 시작했었기 때문에 강호상의 많은 사람들이 혹시 그 일백 명의 고수들을 납치해간 자들이 흑풍사가 아닌 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되었죠." 화검운은 즉시 다시 물었다. "그런데 결과는 어떻게 되었소?" --계속 -- #5717 양한우 (hanwoo71) [백상] 종남사부 제1권 제6장 03/22 10:37 315 line 올 린 이 : 양한우 HITEL ID : hanwoo71 제6장. 백의맹(白衣盟)과 흑풍사(黑風社) 제갈소홍은 담담히 웃으며 대답했다. "그 의구심은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어요. 흑풍사는 일단 강호 활동을 시작 하자마자 천하의 사마외도(邪魔外道)의 무리들을 자신들의 휘하로 끌어들이 고는 자신들을 배척하는 명문정파의 사람들을 각처에서 도륙(屠戮)하기 시 작했죠. 그들은 구파일팡과 오대세가 등의 문파에도 침습을 하여 혈겁(血 劫)을 일으키곤 했었는데, 그로 인해서 강호의 명문정파의 세력은 급격히 줄어들게 되었고, 또한 미처 그 일백 명의 고수들의 행방에 대해서 의문을 해결할 여유를 가질 수가 없었던 것이죠." 화검운은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흑풍사가 천상팔패의 네 곳이라면 나먼지 네 곳의 천상팔패 가운데의 세력 으로 이루어졌다는 백의맹은 대체 그때 무엇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오?" 제갈소홍은 미소하며 대답했다. "실은 당시에는 아직 백의맹이라는 것이 생겨나지도 않은 상태였지요. 지금 백의맹의 주축을 이루는 천상팔패 가운데의 네 곳인 천륭무가(天隆武家), 검총(劍塚), 도막(刀幕), 성수곡(聖手谷)의 사람들은 원래 시끄러운 강호사 (江湖事)에 휩쓸리기 싫어해서 깊은 산중이나 오지(奧地)에서 은거(隱居)를 하며 세월을 보내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천하가 흑풍사에 의해 결단이 날 것 같은 상황으로 변하자 하는 수 없이 강호에 나서서 백의맹이라는 연합체 (聯合體)를 조직하고 흑풍사으 힘에 맞서게 되었던 것이예요." 화검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을 하는 듯하다가 이윽고 다시 물었다. "그럼 흑풍사는 백의맹이 나타나자 그 세력을 거두고 물러나게 되었소?" 제갈소홍은 이 화검운이 기실은 강호사에 대해서 거의 아무 것도 모르는 백 면서생이나 다름이 없다는 것을 알고는 웃으며 대답했다. "흑풍사의 네 개의 주된 세력인 일월마교(日月魔敎), 설산성모궁(雪山聖母 宮), 태양마곡(太陽魔谷), 현현각(玄玄閣)은 원래부터가 자체 내에서 세력 을 길러왔었기 때문에 자연히 흑풍사의 힘은 백의맹에 비해서 오히려 월등 하다고 할 수가 있어요. 비록 백의맹이 나타나자마자 기민하게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등의 명문정파의 세력과 엽합세력을 구축하여 방비했기 때문에 흑 풍사의 산하조직(傘下組織)들이 다소 주춤하기는 했지만 지금이라고해도 흑풍사는 능히 천하제패(天下制覇)를 향한 야욕(野慾)의 이빨을 드러낼 만 한 상태예요." 제갈소홍은 말을 하는 가운데 보다 실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야욕의 이빨 이라고 표현했는데, 일단 그런 말을 듣게 되자 사람들은 일시 주위에 마치 거대한 흑풍사의 어둠의 장막(帳幕)이 펼쳐져 있고 그 가운데 악마(惡魔)가 시뻘건 이빨을 드러내고 웃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느끼게 되어 절로 자신 들도 모르게 불안스럽게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화검운은 다시 물었다. "그러니까 이번의 그 영웅대회는 그런 흑풍사의 세력을 쳐부수기 위한 것이 라는 말이오?" 제갈소홍은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상황이 좋지 않은 만큼 반드시 그렇다고는 말할 수가 없을 거예요. 다만 만일 그 진시황의 장보도를 흑풍사의 쪽에서 입수하게 된다면 그들의 세력 이 더욱 증대될 것이고 또한 앞으로의 사황이 더욱 난감해질 것이기 때문 에, 백의맹에서는 이번에 가능하면 그 장보도를 입수하고 또한 흑풍사의 세 력도 쳐부수려고 계획하고 있는 것이죠." 두 개의 세력이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어떤 사소한 일이라도 그 국면에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가 있다는 것을 화검운은 이미 알고 있었 다. 화검운은 잠시 생각한 후에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장안에 나타난다는 무림삼보 가운데의 남은 두 가지는 어떤 것이 오?" 그런데 이때 제갈소홍은 다소 질린 듯이 아미를 살짝 찌푸리며 뒤로 물러나 면서 악산산을 가리키며 대꾸했다. "그 얘기는 악동생도 잘 알고 있으니 이제부터는 그녀에게 물어보도록 하세 요." 원래 생각이 깊은 사람은 비교적 말이 많지 않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이 제 갈소홍도 그다지 말을 많이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악산산은 지금까지 잠깐 동안 뒤에 물러서서 그간의 얘기를 듣고 있었는데, 제갈소홍의 말을 듣고 나자 그다지 싫지 않은 듯이 그녀를 향해 가볍게 눈 을 흘겨 보이고는 다시 화검운의 옆에 이르러 입을 열어 말했다. "그래, 당신은 남은 두 개의 보물에 대해서도 듣고 싶다는 말인가요?" 화검운은 웃으며 대답했다. "내가 이미 무림삼보의 하나를 알게 되었는데, 이제 어찌 남은 두 가지를 알고 싶어 하지 않을 수가 있겠소?" 악산산은 가볍게 웃더니 말했다. "그 두 가지는 바로 한 쌍의 신병이기(神兵利器)와 하나의 신비로운 무공비 급이예요." 화검운은 눈을 크게 떴다. "신병이기와 무공비급? 그런 것들이 다시 장안성 내에 나타난다는 말이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천하에서 그다지 대단한 보물이라고 말할 수가 없는 것 이 아니오?" 비록 강호무림사가 시작된 이후에 신병이기와 무공비급을 둘러싸고 무수한 피비린내가 나는 혈겁들이 이어져 내려오곤 했었지만, 당금에 이르러 강호 인들의 무학에 대한 안목과 그 경지가 상당히 많이 진척되어 비단 신병이기 라는 것도 그다지 대수로울 것이 없어졌을 뿐만 아니라, 배우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노력만 한다면 그다지 어렵지 않게 무공비급을 구할 수가 있을 정도 로 무공절기(武功絶技)들이 많이 보급되어 있는 현실이기 때문에 화검운의 질문의 내용은 당연한 것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악산산은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지 않아요. 우선 신병이기만 해도 이제까지 강호사에 출현했었던 그 어떤 병기들보다 뛰어난 위력을 가지고 있는 신검(神劍)과 보도(寶刀)라는 것이고, 그리고 세 번째의 보물인 이 하나의 무공비급(武功秘 )은 더욱 기 이(奇異)한 것이예요." 화검운은 흥미를 느낀 듯이 물었다. "그 무공비급에 어떤 기이한 점이 있다는 것이오?" 악산산은 미소하며 대답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그 무아진경(無我眞經)이라는 비급은 원래는 하나였 는데 지금은 모두 여덟 개의 비급으로 나뉘어져 있다고 하죠. 그것들은 전 대(前代)의 전설적(傳說的)인 기인(奇人)인 무명도성(無名道聖)의 유작(遺 作)이라고 하는데, 아직 확실히 알려진 바는 거의 없지만, 만일 그 여덟 개 의 비급들을 모두 입수해서 그 내용을 십이성으로 대성(大成)한다면 당금의 최강의 세력들인 천상팔패조차도 우습게 여길 수가 있다는 거예요." 화검운은 그만 절로 눈이 휘둥그래졌다. "그것들이 그렇게 대단하다는 말이오? 으음, 실로 갑자기 장안으로 천하의 무림인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는 이유를 알 만한 것이로군. 진시황의 장보도 와 한 쌍의 가공할 위력의 신병이기들, 그리고 천하를 뒤엎을 만한 내용의 무공비급, 그런 것들이 있으니 영웅대회가 벌어질 만도 한 것이로군. 하지 만 그런데 어째서 그와 같은 놀라운 보물들이 한꺼번에 그것도 장안성 내에 나타나게 되었다는 것이오?" 악산산은 그 질문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살래살래 내저었 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요 근래에 장안성 내에 천기(天機)의 흐름이 교차 (交叉) 중복되어 그러한 일들이 한꺼번에 일어난다고 하기도 하고…… 그 이유에 대해서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화검운은 고개를 끄덕끄덕 하며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이윽고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악산산을 향해 눈빛을 빛내며 다시 물었다. "혹시 그 영웅대회에 나와 같은 사람이 참석해도 되는 것이오?" 악산산은 그 말에 눈빛을 반짝 빛냈다. "당신이 종남파의 사람이라면 그야 물론 그들의 일원으로서 참가할 수가 있 는 것이지요. 이 백의맹의 영웅대회에는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수뇌들이 모조리 참가하게 되니까요." 화검운은 이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나는 그 멍청한 조카녀석과 함께 가고 싶은 것이 아니라 따로 그 대 회에 참석했으면 하는 것이오. 설마하니 영웅첩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그 대회에 참석할 수가 없다는 것은 아니겠지요?" 악산산은 눈빛을 빛내며 그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되물었다. "당신은 대체 무슨 이유로 그 자리에 참석하려는 것이지요?" 화검운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나는 물론 무림의 정의(正義)를 구현하기 위해서요." (……?) 악산산은 무슨 특별한 사연이 있는 것으로 짐작하고 귀를 기울이고 있었으 나 이내 그의 거창하기 짝이 없는 대답을 듣고는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말 았다. "아니, 뭐라구요?" 화검운은 그녀가 느닷없이 웃자 문득 이해할 수가 없다는 표정이 되었다. "내가 무림의 정의를 구현하려고 한다는 말이 이상하다는 것이오?" 악산산은 간신히 웃음을 참으며 대답했다. "물론 그와 같은 말이 이상할 것은 없지만, 당신처럼 거창하게 말을 하는 사람은 처음으로 봐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이유를 말하라면 사문의 원한 이나 가문의 복수를 들먹이게 되는 것이 보통이거든요. 물론 무림 정의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안됐지만 영웅첩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내일 정오에 영웅대회에 참석할 수가 없어요." 그때 제갈소홍이 웃으며 다시 앞으로 나서서 말했다. "악동생, 알고 보니 그는 네가 좋아져서 앞으로 행동을 같이하고 싶어진 모 양인데, 어째서 네가 거기에 데려가겠다고 대답하지 않는 것이지? 그렇다면 내가 대신 데려가 줄까?" 악산산은 비록 눈앞의 이 평범해 보이는 화검운이 싫지는 않았지만, 그러나 전혀 그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는데, 제갈소홍이 느닷없이 그렇게 말해오자 그만 왠지 얼굴색이 붉게 변하고 말았다. 그녀는 급히 고개를 다른 쪽으로 돌리고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했는데, 다행 히도 마침 그 순간에 황약화가 나서서 입을 열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몰리지 않게 되었다. "당신이 만일 영웅대회에 참석하기를 원한다면 내가 특별히 데려갈 수가 있 어요." (……?) 사람들은 이 황약화가 이제까지 묵묵히 거의 말도 없이 있다가 느닷없이 그 와 같은 말을 하는 것을 보고는 다 함께 의아해하고 놀라워했다. 기실 이 황약화는 백의맹의 일원(一員)이고 또한 천상팔패의 하나인 성수곡 의 사람이기 때문에 그녀의 한마디라면 영웅대회에 한 사람 정도 더 데려가 는 것은 일도 아닐 것이었다. 사람들이 다소 놀라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화검운은 이윽고 황약화를 향 해 천연덕스럽게 포권하며 감사의 예를 차렸다. "고맙소! 내 결코 그곳에 가서 말썽을 일으키거나 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겠 소!" "……!" 황약화는 자신이 먼저 얘기를 꺼냈음에도 이번에는 그저 묵묵히 화검운의 얼굴을 주시할 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이 순간 그녀의 눈빛은 마치 아무런 감정(感情)도 없는 보석(寶石)과도 같아서 신비롭고도 음산한 광채 (光彩)를 뿌리고 있는 것 같았다. 화검운은 상대가 대꾸를 하지 않자 공연히 자신의 입장이 어색하게 변해서 이윽고 다시 앞쪽으로 고개를 돌리고는 그때부터는 묵묵히 점차로 신법의 속도를 더해서 나아가기 시작했다. 일행은 이미 오랫동안 경신술을 전개해 왔지만 그것은 천천히 달린 것이나 다름이 없어서 그다지 지친 상태가 아니었고, 이제부터 다시 속력을 내기 시작하자 모두들 입을 열어 말을 꺼내지 않고 내식(內息)을 운기(運氣)하며 경신술의 시전이 순조롭게 되도록 하는 데 정신을 모으기 시작했다. 무공을 터득한 사람이 경신술을 발휘하여 은 거리를 빠르게 나아간다고 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나, 실로 이렇게 백여 리나 되는 거 리를 쉬지 않고 달려간다고 하는 것은 결코 쉬운 노릇이 아니었다. 짧은 거 리를 아주 빠르게 나아갈 수 있는 경공술의 명인(名人)이라고 해도, 일단 먼 거리를 쉬지 않고 달려가게 되면 도중에 내식의 흐름이 원활하지 못하게 되고 진기(眞氣)가 혼탁(混濁)하게 변해서 일정한 거리 이상을 달리게 되면 낙오하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먼 거리를 달려가는 데에는 경공술의 기술(技術)도 필요하겠거니와, 기실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무공기초(武功基礎)와 내공 수련 이 얼마나 충실하게 되어 있는가 하는 점인 것이며, 이렇게 먼 거리를 함께 달려보게 되면 비로소 진정한 무공의 우열이 드러나게 된다고 할 수가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설사 백여 리를 끝까지 달려간다고 해도 내식(內息)의 운 용에 어떤 무리가 오거나 하지 않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화검운의 좌우에서 끊임없이 아까와 비슷한 동작으로 달려가고 있는 용아와 봉아, 그 두 명은 아지 나이가 어려서 내공의 화후(火侯)가 완벽하 지 못해서 도중에 기진할 것으로 생각했었으나, 의외로 그들은 한참의 시간 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아까와 다름이 없이 조용한 신색으로 펀안하게 나아 가기만 잘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악산산 등은 비록 화검운이야 무공이 최절정의 경지에 올라 있는 상 태이기 때문에 그저 여유있게 달릴 수 있는 것이라고는 해도, 용아와 봉아 까지도 조금도 흔들림이 없이 끝까지 함께 달릴 수가 있는 것을 보고는 내 심 그들의 무학기초가 대단히 충실하다는 데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들을 가르친 사람은 자기 자신이라고 화검운이 직접 자신의 입으로 말했 었으므로, 사람들은 실로 그와 같은 인재들을 길러낸 그의 능력에 대해서 다시 기이하게 여기기 시작했고, 종래에는 이 화검운에 대해서 도무지 파악 하기 어려운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무튼 그렇게 사람들의 생각이 격렬하게 오가는 사이에 일행은 이윽고한 참을 지나서 종남산에 도착하게 되었는데, 때는 이제 마악 하늘에 석양(夕 陽)의 노을이 몰려들려고 하는 무렵이었다. 종남파(終南派)는 과거 남송(南宋) 말기(末期) 무렵에 생겨나서 구국(救國) 의 일념(一念)으로 거대한 세력을 형성했었던 전진파(全眞派)가 위치하고 있었던 자리에 형성되어 있었으며, 이미 그 성세(盛勢)는 과거의 전진파에 비견할 정도가 되어 있었다. 이 화검운은 과연 자신의 말대로 종남파와 인연이 있는 것이 틀림이 없어 보였다. 당옥 등은 은근히 뒤에서 그가 꽁무니를 빼고 달아나는 것이 아닌 가 하고 주위깊게 감시를 하고 있었으나, 뜻밖에도 화검운은 익숙하게 종남 산의 산길을 지나서 이윽고 종남파가 위치하고 있는 산중턱의 넓은 분지에 이르렀고, 그리고 그 정문(正門) 앞에서 지키고 있는 종남파의 제자인 청의 무사(靑衣武士) 한 사람에게 다가가서 이렇게 당당하게 말했던 것이었다. "그대는 종남파의 제 몇 대 제자인가? 뭐 제3대 제자라고? 그렇다면 어서 장문인의 정사(精舍)로 가서 장안성의 화 상공(花相公)과 성수곡의 황 소저 등이 영웅첩을 가지고 찾아왔다고 전하도록 하게!" 그 청의무사는 이미 조금 전에 화검운 등의 일행이 빠르게 신법을 날려서 다고오고 있는 광경을 목격하고 다소 긴장하고 있었던 상태였기 때문에 이 내 화검운의 말을 듣자 다른 동료 한 명을 정문에 놔두고 자신은 급히 그 사실을 알리러 갔다. 일행은 따라서 잠시 정문의 주위에 둘러앉아서 다소 혼탁해져 있는 내식(內 息)을 고르며 기다리게 되었는데, 화검운의 표정이 아직도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천연덕스러운 것을 보고는 마침내 이제까지 아무런 말도 없이 관심조 차 보이지 않고 있었던 당지상(唐志常)이 슬그머니 곁으로 다가와서 입을 열어 궁금한 듯이 물었다. "화공자, 정말로 당신은 현임 종남파 장문인의 당숙이라는 말이오?" 화검운은 하나의 널찍한 바위 위에 걸터앉아서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는데, 문득 담담히 웃으며 대꾸했다. "물론이오. 내가 무슨 할 일이 그리 없다고 그와 같은 거짓말을 하겠소? 사 실 이 위치는 피곤하기 짝이 없는 것이라오." "……" 당지상은 일순 화검운의 진면목(眞面目)을 이해할 수가 없다는 듯이 천천히 고개를 흔들어 보였다. "그렇다면 앞으로 소제가 화공자에게 많은 가르침을 받아야 하겠구려?" 화검운은 웃으며 대꾸했다. "내가 화정룡의 당숙이라고 해서 구태여 당신에게 가르침을 내릴 것이 뭐가 있겠소? 실로 이 자리는 유명무실(有名無實)하오. 아마도 그 멍청한 조카녀 석이 다시 나를 보게 되면 그저 빨리 쫓아내려고 수작을 꾸밀지도 모르오. 그때가서 공연히 소생을 나무라지 말기를 바라겠소." 당지상은 이에 쉽게 상대할 수가 없다는 듯이 겸연쩍게 웃으며 말없이 한쪽 으로 물러나 버리고 말았다. 당옥이 그것을 보고 다가와서 물었다. "화공자, 당신은 그와 같은 무공을 지니고 있고 게다가 그와 같은 든든한 배경이 있으니 마음만 먹는다면 무슨 일이든 하지 못하는 일이 거의 없을 텐데 어째서 그렇게 허송세월만 하고 있는 것이죠?" 화검운은 웃으며 오히려 되물었다. "아니, 날더러 어떤 일을 하라는 것이오?" 당옥은 기이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하다못해 지금 당신이 남에게 은자를 구하러 다닌다고 하는 것은 생활 능 력이 없다는 것인데, 앞으로 당신이 원하기만 한다면 그런 은자를 구하는 일이라는 것은 쉽고도 쉬울 것이예요. 정히 방법을 모른다면 내가 한 번 알 아봐 드릴까요?" 당옥은 이제 이 화검운이 종남파와 관련이 있는 아주 기이한 능력의 서생이 라는 것을 확신하고는 가까이 접근하려고 하는 것이었다. 화검운은 그 질문에 웃으며 대답했다. "글쎄요. 나는 사실 무공을 배우느라 장원(莊院)으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금방 다른 사업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군요. 게다가 소문에 의하면 나의 장원에 묻혀져 있는 보물들이 있다고 한던데, 우선 그 보물부 터 찾아보고 난 뒤에 우리의 사업은 다시 거론해 보도록 합시다." 당옥은 화검운의 그러한 대답을 듣고는 다시 권하기가 어려워서 뭔가 곰곰 히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다. 헌데 그때 문득 한쪽에 앉아 있던 황약화가 불쑥 이렇게 입을 열어 말했다. "이봐! 너는 왜 그런 차림을 하고 있는 것이지?" (……?) 사람들은 이 황약화가 워낙에 오랜만에 입을 열었기 때문에 즉시 경각을 하 고는 그녀의 시선이 향한 곳을 바라보았다. 알고 보니 황약화는 화검운의 주위에 앉아 있는 두 명의 시종들 가운데 용아(龍兒)에게 그렇게 묻고 있었 던 것이었다. 용아는 이에 왠지 다소 멈칫하며 되물었다. "나의 차림새가 이상하다는 말인가요?" 황약화는 예의 그 무표정한 얼굴로 다시 입을 열어 말했다. "너는 그 옆의 계집아이와 함께 똑같은 계집아이가 아니냐? 그런데 어째서 그렇게 남장(男裝)을 하고 있느냐는 말이다." 이에 순간 용아의 얼굴은 새빨갛게 붉어졌으며 사람들은 이내 그 황약화가 일부러 입을 열었던 원인에 대해서 알 수가 있었다. 알고보니 이 용아는 봉 아와 같은 계집아이였던 것이다. 생각해 보니 아까 주루에서도 간혹 쉽게 얼굴을 붉히곤 했었던 것은 그녀가 여자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니, 사람들은 이 어린 계집아이가 남장을 하고 있 다가 다른 사람에게 들통이 난 광경을 보게 되자 내심을 우스꽝스럽게 생각 했다. 용아가 얼굴이 붉어져서 아무런 말도 못하고 있는 것을 보고는 이때 봉아가 다소 화난 듯한 음성으로 소리쳐 말했다. "용아는 나와 쌍둥이 자매지간이지만, 남자처럼 행세하는 것을 좋아해서 그 렇게 차리고 다니는 것인데, 대체 무엇 때문에 그렇게 웃고 난리들이죠? 아, 당신들도 그럼 때로는 변장을 하지 않는다는 말인가요?" 이 봉아는 기실 매우 자존심이 강한 소녀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 을 은근히 우스꽝스럽게 여기고 있는 듯하자 대뜸참지 못하고 소리를 지른 것이었다. 그것을 보고 황약화가 문득 다시 입을 열어서 말했다. "그렇다. 변장을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자유이기 때문에 누구도 간섭할 수가 없는 것이지." 말과 더불어 그녀는 왠지 다소 기이해진 시선으로 용아의 얼굴을 바라보았 는데, 이때 용아는 그 시선이 느닷없이 아주 따스하게 느껴진다고 생각했 다. 바로 그 무렵에 문득 저 안쪽에서 많은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오기 시작하 는 것이 일행의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은 이에 분분히 신형을 일으켰는데, 문득 다가오는 그 사람들 가운데에서 한 명의 중년수사(中年秀士)가 먼저 빠르게 달려오더니 이윽고 화검운을 알아보고는 즉시 소리치며 말하는 것이 었다. "아니, 아저씨께서 본파에 오셨으면 그저 안으로 들어오실 일이지 어째서 거기에서 기다리고 계시는 것입니까? 이거 남들이 본다면 이 조카가 아저씨 께 섭섭하게 해드린 것이 아니냐고 말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 당옥 등의 일행은 지금 종남파의 문인들을 대동하고 앞장서서 체면도 따지 지 않고 달려오며 소리치고 있는 그 중년수사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 사람의 전신의 체형(體形)은 그러니까 가장 전형적으로 무공을 연성하기 에 적합한 헌칠하고도 후리후리한 골격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가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그의 장삼을 걸치고 있는 옷 속의 전신에는 한 점의 군살 도 없이 탄력있는 근육질이 알맞게 형성되어 있을 것 같았으며, 오히려 그 럼에도 그의 얼굴은 무인(武人)같지 않고 마치 글을 읽는 선비처럼 부드럽 고 조용한 신색(身色)이 서려 있어서 실로 평범한 인물(人物)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했다. -- 계속 -- #5718 양한우 (hanwoo71) [백상] 종남사부 제1권 제7장 03/22 10:38 283 line 올 린 이 : 양한우 HITEL ID : hanwoo71 제7장. 漸入佳境 중년수사는 분명히 이쪽의 다른 많은 사람들을 보았을 텐데도 전혀 다른 사 람들은 보지 못한 듯이 화검운의 앞에 빠르게 다가오자 그를 향해 허리를 깊이 숙이며 큰절을 하는 것이었다. "그 동안 별고 없으셨습니까, 아저씨!" 사람들은 비록 이 중년수사가 계속해서 아저씨라고 하고 있는 말을 듣고 있 는 중이었지만, 그러나 나이 많은 그가 이제 약관의 나이에 불과한 서생에 게 그처럼 큰절을 올리는 것을 보고는다소 기이하게 생각했다. 간혹 가문에 서의 항렬을 따지는 사람들이 더러 있기는 하지만 실로 이렇게까지 심하게 예의를 갖추는 경우는 매우 드문 일이기 때문이었다. 화검운은 이에 반해서 그저 웃으면서 고개를 두어 번 끄덕였을 뿐이었다. "나는 생활이 다소 곤궁(困窮)해져서 찾아온 것이니 그렇게 알고 있게나." 중년수사는 이에 다시 고개를 숙이며 머리를 조아렸다. "예, 알겠습니다." 당옥 등의 일행은 한쪽에서 다소 멍하니 그런 기이한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 는데, 문득 당지상이 잠시 주저하다가 그 앞을 다가가서 중년수사를 향해 정중하게 물었다. "실례지만 혹시 종남파의 장문인이신 종남수사(終南秀士) 화정룡(花廷龍) 화대협(花大俠)이 아니십니까?" 중년수사는 이제 겨우 화검운에게 인사를 마치고 나서 마악 고개를 들다가 당지상을 바라보고는 다소 의아한 듯이 되물었다. "그렇네만, 나를 알고 있는 자네는 누구인가?" 사람들은 이에 비록 다소간에 그럴 것이라고 추측을 하고 있기는 했지만 하 나같이 크게 놀라서 안색이 변하고 말았다. 화검운과 같은 서생에게 달려와 서 체면불구하고 그토록 큰절을 해대는 사람이 바로 당금의 종남파의 장문 인이었다니 이것은 누구도 믿기 어려운 일일 것이었다. 하긴 조금 전의 그 러한 행동만 없었다면 그 준수하고도 신태비범해 보이는 용모 등으로 미루 어 보아 가히 일파(一派)의 장문인이 되기에 손색이 없을 것 같은 모습이기 는 했다. 당옥 등은 이 사람이 아까 화검운이 주루에서 그토록 멍청한 조카녀석이라 고 말했던 당사자라고 생각하니 실로 믿을 수가 없고 어처구니가 없는 기분 이 들었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이 종남수사 화정룡은 천하의 기재(奇才)는 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최소한 그에 버금가는 인물은 될 것 같았기 때문이 었다. 혹시나 하고 생각하여 다가가서 질문을 했던 당지상은 정작 상대방이 정말 로 화정룡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오히려 그만 꿀먹은 벙어리처럼 할 말을 잊고 말았다. 그것을 보고 화검운이 옆에서 입을 열어 화정룡에게 설명해 주었다. "이 사람은 사천당문(四川唐門)의 당지상이라고 하는데, 다른 동료들과 함 께 성수곡의 황 소저를 모시고 백의맹(白衣盟)의 영웅첩을 전달하러 온 것 이라네." 화검운은 여전히 반쯤은 점잖은 하대였다. 화정룡은 그 말을 듣자 즉시 고개를 조아리며 듣는 둥 마는 둥하더니 이어 화검운의 소매를 잡아 안으로 끌었다. "알겠습니다. 그런 일은 염려하지 마십시오. 우선 본파에 오셨으니 안으로 들어가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럼 그럴까?" 화정룡이 소매를 잡아 끌자 화검운은 마지못한 듯이 따라서 안으로 들어가 기 시작했다. 용아와 봉아가 이내 눈치빠르게 그 뒤를 따르기 시작했는데, 이윽고 그들 네 사람이 느릿하게 걸음을 옮겨서 안으로 사라져 버리자 화정룡의 뒤를 따 라왔던 많은 종남파의 문인들이 일행의 앞에 이르러 조용히 걸음을 멈추었 다. "……!" 당옥 등은조금 전에 화정룡이 자신들은 본 척도 하지 않고 심지어 황약화 에게도 시선 한 번 보내지 않은 채로 화검운 등을 모시고 안으로 들어가 버 리는 것을 보고 실로 어이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이제 느닷없이 다시 종남파의 문인들이 자신들을 영접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길을 막고 지 키고 서 있기만 하는 것을 보고는 더욱 어리둥절한 느낌이 들었다. 설마하니 종남파의 장문인은 자신의 오촌 당숙만 중요하고 당금의 백의맹의 영웅첩 정도는 아무렇게나 대해도 좋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말인가? 당옥 등은 상대쪽에서 그와 같이 괴이(怪異)하게 나오자 스스로 모멸감이 들어서 차라리 돌아가 버리거나 아니면 당장 앞으로 나서서 항의를 하고 싶 었으나, 문득 옆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의외에도 황약화가 묵묵히 참으면서 가만히 서 있는 것을 보고는 그저 침을 꿀꺽 삼키고는 돌아가는 사태의 추 이를 보기로 했다. 당지상도 아까는 경황이 없었으나 다소 물러서서 일행을 돌아보며 대체 무 슨 일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일행 가운데 제갈소홍은 비록 그래도 제법 냉정하게 사리를 분석하는 능력 이 있었으나, 지금 길을 막고 있는 종남파의 문인들이 저마다 굳은 안색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는 스스로 나서 봐야 좋은 일이 없을 것 같아서 장문인 이 다시 나올 때까지 잠시 더 기다리기로 했다. 그런데 일행이 아무리 기다려도 한 번 안으로 들어간 화정룡은 쉽사리 다시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다만 대략 반 시진 정도의 시간이 흐른 이후에 길목 을 막고 있는 종남파의 문인들 가운데의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서더니 일행을 향해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황산에서 오신 황 소저는 어디에 계시오? 장문인께서 객청으로 모시라는 지시를 내리셨으므로 우리를 따라 안으로 들어오시오!" 당옥 등은 내심 그렇지 않아도 화가 치밀어 오르고 있었는데, 그 중년검사 의 무뚝뚝한 말소리를 듣고는 그만 참지 못하고 당장에 나서서 따져 묻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황약화는 그녀들의 심사와는 달리 전혀 화가 나지 않았는 지 즉시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안으로 따라 들어가는 것이었다. 이에 나머지 사람들도 하는 수 없이 묵묵히 그녀의 뒤를 따라서 안으로 걸 음을 옮기는 수밖에 없었다. 예로부터 은거기인(隱居奇人)들이나 이인(異人), 고사(高士)들이 유난히도 많이 찾아들곤 했던 이 종남산의 형세는 지극히 험준(險峻)하면서도 수려 (秀麗)하여 그야말로 천하(天下)의 절경(絶景)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는 데, 지금 그 종남산의 거대한 분지(盆地)를 이루고 있는 어느 한 중턱을 평 탄하게 깎아서 터를 잡고 다시 그 위에 견고하고도 웅장(雄壯)하게 축조해 놓은 종남파의 건축물들은 비단 그 숫자가 헤아릴 수 없이 많을 뿐만 아니 라 고색창연(古色蒼然)한 고아(高雅)한 멋과 거대하고도 화려(華麗)한 멋을 동시에 지니고 있어서 실로 종남파의 오랜 전통(傳統)과 그 명성(名聲)을 느끼게 해주는 것 같았다. 당옥 등의 여섯 명의 일행은 이윽고 그 거대한 분지의 내부로 안내되어 화 려하고도 고풍(古風)스럽게 지어져 있는 무수한 건축물들의 사이를 지나서 이윽고 하나의 넓고 웅대한 객청(客廳)의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기이 하게도 이제는 당연히 장문인인 화정룡이 그곳에서 일행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나 뜻밖에도 그곳도 텅 비어 있었다. 일행을 안내했던 중년검사가 일행을 하나의 커다란 팔선탁(八仙卓)의 주위 에 둘러앉아 기다리게 하고, 이어 두어 명의 도동(道童)들을 시켜서 청차 (淸茶)를 대접하게 하고 나서 물러간 이후에도 다시 한참의 시간이 지나서 야 비로소 객청 안쪽의 문이 열리며 예의 그 화정룡이 일행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이때의 화정룡의 모습은 아까 화검운을 대했을 때의 다소 허둥대던 모습과 는 달리 매우 침착하면서도 차분하여 다소 싸늘한 느낌조차 주고 있었는데, 이윽고 분분히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고 그를 맞이하는 일행의 앞에 이르자 낭랑한 음성으로 이렇게 입을 열어 묻는 것이었다. "어느 분이 황산(黃山)의 성수곡(聖手谷)에서 오신 황 소저(黃小姐)이시 오?" 이 순간 당옥 등은 비록 이 종남파 장문인의 태도가 자신들을 심하게 우롱 하고 푸대접을 하고 있는 것 같아서 기분같아서는 즉시라도 나서서 그것에 관해 한 마디의 말을 하고 싶었으나, 기실 자신들의 지금의 신분상으로는 감히 일파의 주인(主人)인 화정룡에게 그렇게 할 수가 없는 일이어서 하는 수 없이 그저 잠자코 서 있었다. 잠시의 시간이 흐른 후에 황약화가 천천히 앞으로 걸음을 옮겨 나서며 맑은 음성으로 입을 열어 대답했다. "제가 바로 그 사람이예요. 귀하께서는 종남파의 장문인인 화정룡 대협이라 고 말씀을 하시는데, 실례지만 귀하께서는 지금 본인이 종남파의 장문인이 라는 증거를 제게 보여 주실 수가 있나요?" 이 황약화는 비록 평소에는 거의 말이 없었고 태도 또한 매우 무뚝뚝하여 여자다운 면모가 없는 것 같았는데, 지금 업무에 관계된 상황에서는 그야말 로 한 마디의 막힘도 없는 말을 유창하게 쏟아 놓아 실로 그녀의 진면목(眞 面目)이 허술하지 않은 것임을 느낄 수 있게 했다. 게다가 일행 중의 다른 사람들은 비록 자제를 하고 있으나 역시 어쩔 수 없이 내심의 불안하고도 불쾌한 듯한 기색(氣色)들이 다소나마 은연중에 드러나고 있었으나, 오직 이 황약화만은 그 태도가 비교적 시종일관(始終一貫)되게 조용하고도 침착 하기 이를 데가 없어서 실로 그녀의 수양(修養)이 적지 않은 것임을 엿볼 수 있게 했다. 화정룡은 기실 장내의 분위기가 좋지 않은 것을 미리 예상하고 있기는 했지 만, 그러나 그녀가 느닷없이 그와 같은 제의를 해오는 것을 보고는 다소 어 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으나, 이내 담담히 웃으며 말없이 우수를 가볍게 움직 였다. 그것은 다만 한 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화정룡이 우수를 가볍게 움직인다 고 느껴지는 순간에 이미 그의 손아귀에는 전혀 보이지도 않았던 연검(軟 劍) 한 자루가 들려져 있었고, 이내 그것으로 오른쪽의 일장 밖에 떨어져 있는 나무의자 하나를 향해 허공을 격하고 작은 원호(圓弧)를 그린다고 생 각되는 순간 마치 무르스름한 기류(氣流)같은 것이 그 나무의자를 휘감아 버리는 것 같았는데, 다음 순간에 연검은 다시 그의 허리춤으로 들어가 사 라져 버렸으며 화정룡은 이어 우수를 그 쪽으로 가볍게 휘저어 마치 허공에 서 무엇인가를 움켜잡는 듯한 모습을 보였는데, 마치 그 순간에 그 나무의 자의 널찍한 판자 하나가 마치 그린 듯이 둥글게 잘려진 채 살아 있기라도 하듯이 그의 손아귀로 날아드는 것이 아닌가! 둥그런 판자 조각을 손에 쥐게 되자 화정룡은 일단 그것을 한 차례 손바닥 으로 쓰다듬는 척하다가 이윽고 곧장 황약화를 향해 날려보내며 입을 열어 물었다. "이것이라면 증거가 되겠소?" (……?) 당옥 등은 느닷없는 화정룡의 무공 시전 광경을 보게 되자 다소 놀라고 신 기해 하고 있었는데, 문득 천천히 날아오고 있는 그 판자조각의 윗부분을 바라보고는 하나같이 눈을 휘둥그래 떴다. 그 판자조각의 윗부분에는 지금 손바닥 자국이 선명하게 찍혀져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조금 전에 화정룡이 그것을 쓰다듬는 척하면서 펼친 것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반적으로 나무판자에 그와 같은 손자국을 내기라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 이지만, 그렇게 소리없이 가볍게 그리고 주위는 상하게 하지 않고 오직 손 바닥 자국만을 낸다는 것은 실로 쉽지 않은 노릇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판자조각은 허공을 부유하듯이 천천히 날아서 황약화의 면전에 이르렀는데, 이윽고 황약화는 그것을 받아들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십성(十成)의 경지에 도달한 태을무형검(太乙無形劍)에 역시 십성의 경지 에 도달한 태을무형장(太乙無形掌)이로군요. 당금의 종남파에 이러한 절기 (絶技)들을 이러한 수준으로 연　 사람은 장문인 이외에는 거의 없을 것이 니 일단은 그 증거로 인정해 드리겠어요." 말과 동시에 황약화는 품속에서 붉은 빛깔의 종이에 금빛의 글씨로 글자를 새겨넣은 하나의 영웅첩(英雄帖)을 받아들었던 판자조각의 위에 올려놓은 채 다시 허공으로 날려서 화정룡에게 되돌려 보냈는데, 이때 기이하게도 그 판자조각은 아까와는 달리 은은한 황금빛의 기운을 띠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순간 화정룡이 그러한 광경을 바라보더니 갑자기 안색을 크게 변모 시키면서 놀라서 이렇게 소리치는 것이 아닌가! "앗! 성수곡의 반선수(反禪手)! 역시 천상팔패(天上八覇)의 무공은 명불허 전(名不虛傳)이로군!" 화정룡은 이어 자신의 앞에 도달한 판자조각은 그대로 두고 다만 그 위의 영웅첩만을 집어들었는데, 어이없게도 그 순간에 은은한 황금빛의 기운을 띠고 있었던 판자조각이 그대로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부서져서 가루가 되 어 부스스 아래로 떨어져 내리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사실 말하자면 당옥 등은 미처 알아볼 수가 없었지만, 조금 전에 화정룡은 상대의 능력을 시험하기 위해 일단 태을무형장의 수법으로 장인(掌印)을 새 겨 놓은 다음에 다시 약간의 진력을 가하여 판자조각을 부수어 놓았었는데, 그것은 일단 황약화의 면전까지 날아간 이후에는 즉시 먼지처럼 부숴지도록 교묘한 수법을 가한 것이었다. 그러나 황약화가 미리 그와 같은 사실을 알 아차리고 반선수(反禪手)라는 성수곡의 신비로운 장력을 이용하여 다시 판 자조각을 화정료에게 돌려보냄으로써 그것이 화정룡의 앞에서 부숴지도록 만들었던 것이었다. 실로 적당한 내력을 가하여 나무조각이 부숴지는 시기를 조절한 화정룡의 절기도 대단한 것이었지만, 이미 가루로 부숴져 있는 나무조각을 여전히 그 원형을 보존시키면서 나중에야 흩어지게 했던 황약화의 절기는 더욱 놀라운 것이라고 아니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비록 겉으로 쉽게 드러나는 일은 아니었으나 이 짧은 한 순간의 대결에서 두 사람은 서로 예의(禮儀)와 체면(體面)을 다하고 상승(上乘)의 무공수법 (武功手法)들을 보여준 것이었으니, 실로 한 차례의 격전에 비해서 그 흥미 로움이 못하다고 말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화정룡은 우선 영웅첩을 펼쳐서 그 내용을 대강 읽어본 이후에 다시 그것을 접어서 자신의 품속에 갈무리하고 이윽고 황약화를 향해 포권하며 말을 이 었다. "불초가 잠시 바쁜 일이 생겨서 미처 여러분을 정중하게 모시지 못했던 점 에 있어서 먼저 사과의 말씀을 드리는 바이오. 불초는 본파(本派)를 대표하 여 이 영웅첩의 내용에 공감(共感)을 하는 바이며, 또한 내일 정오의 영웅 대회(英雄大會)에 참석할 것을 약속드리겠소!" 황약화는 그 말에 비로소 눈간에 가벼운 미소를 띠었다. 하지만 기실 그녀 의 안색은 여전히 약간 음산해 보이고 무표정하여 더욱 괴이(怪異)한 느낌 을 주는 미소라고 할 수가 있었다. "고마워요. 그럼 우리는 그렇게 알고 이만 물러가도록 하겠어요!" 황약화는 추호도 미련이 없는 듯 그렇게 말하고 나서 이내 신형을 돌려 밖 으로 나가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문득 화정룡이 손을 들어 제지하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잠깐! 여러분들은 원래 불초의 귀빈(貴賓)들이신데도 만부득이 실례를 저 질렀을 뿐만 아니라 게다가 여러분들은 나의 아저씨의 친구분들이 되신다고 하니 불초가 어찌 여러분을 그냥 보내드릴 수가 있겠소이까? 잠시만 기다려 주시오!" 말과 함께 화정룡이 문득 뒤쪽을 향해 가볍게 손을 젓자 느닷없이 뒷문이 열리면서 한 명의 말쑥하게 차린 도동(道童)이 양손에 일백 냥 짜리 황금 대원보(大元寶)가 여러 개 놓여 있는 작은 쟁반 하나를 받들어 들고 나타나 천천히 걸어오는 것이 아닌가! 도동이 쟁반을 받쳐들고 일행의 앞으로 다가가자 화정룡은 미소하며 일행을 향해 다시 입을 열어 말했다. "불초가 이미 저지른 실수야 어차피 만회할 수가 없는 일이고, 또한 여러분 들은 이곳에 오래 붙잡아 둔다고 해도 좋아하실 것 같지 않으니 아무래도 불초는 이러한 선물로 마음을 대신할 수밖에 없겠소이다. 언짢으시지만 않 다면 모쪽록 한 개씩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당옥 등은 비록 무림의 세가에서 자라나서 그다지 돈에 구애를 받지 않고 살아왔지만, 지금 느닷없이 그와 같은 황금 대원보들을보고는 하나같이 크 게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황금 대원보로 말할 것 같으면 은자로 따 지자면 대략 이삼천 냥에 해당되는 것이었는데, 그들은 아직 거의 그와 같 은 큰 돈을 만져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처음으로 대하는 사람들에게 그 와 같은 큰 돈을 선선히 선사할 수 있는 화정룡의 배포와 인심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것이었다. 천하에는 금표(金票)나 은자 따위는 많아도 이러한 황금 대원보는 결코 흔 하지 않을 것이기에 설령 그 액수는 젖혀두고라도 이러한 것이라면 가히 다 른 보석(寶石)들만큼이나 소중하게 간직할 가치가 있을 것이었다. 대개의 사람들이 원하는 바라는 것이 비슷비슷한 것이므로 당옥 등은 비록 처음에는 상대에게 심하게 불쾌한 심정을 느꼈었으나 이제 그와 같은 대원 보들을 보게 되자 절로 마음이 누그러지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누런 황금빛의 말굽 모양을 하고 있는 매우 아름답게 보이는 대원보들을 바 라보다가 문득 악산산이 고개를 돌려 화정룡을 향해 입을 열어 말했다. "우리에게는 이렇게 많은 돈이 필요없으니 구태여 이런 선물을 하시지 않아 도 상관이 없어요. 다만 우리는 이곳으로 오면서 한 가지의 궁금한 점이 있 었는데, 장문께서는 저희들에게 그 궁금증을 풀어주시겠어요?" 화정룡은 미소하며 악산산을 향해 대꾸했다. "알고보니 화산파 악대협의 따님이신 악낭자로군. 그래 무슨 의문이 있는 것이오?" 악산산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어 말했다. "조금 전에 당신을 따라 들어간 그…… 화공자는 정말로 당신의 오촌 당숙 이 틀림이 없나요? 그는 대체 어떤 사람이죠?" 화정룡은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야 오촌 당숙이 틀림이 없지, 그것을 거짓으로 할 수가 있겠소? 나의 아 저씨께서는 원래 천하(天下)의 보기 드문 기재(奇才)라고 할 수가 있는데, 다만 세상의 명리(名利)를 부초처럼 여기고 계시기 때문에 지금 장안성 내 의 한 장원에서 살아가시고 계시는 것이라오." 전에 화검운은 이 화정룡을 가리켜 멍청한 조카녀석이라고 말했는데, 지금 이 화정룡은 오히려 화검운을 천하의 보기 드문 기재라고 설명하고 있은 것 이니, 이러한 대비는 당연한 듯하면서도 기이한 느낌을 주는 것이었다. 악산산은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그가 당신에게 무공을 가르쳤다고 하던데 그게 사실이었나 요?" 대부분 일파의 장문인이 나이 어린 조카에게 무공을 전수받았다고 한다면 창피한 노릇이어서 쉽게 대답을 하지 못하게 될 것인데도, 화정룡은 오히려 웃으며 즉시 이렇게 대답했다. "그것은 너무나도 황송한 말씀이오. 내가 아저씨께 무공을 한두 가지 배우 기는 했지만, 나의 자질이 너무나도 미천하여 그것의 열의 하나도 배우지 못했으니 어찌 감히 전수받았다고 말할 수가 있겠소?" 이것은 실로 점입가경(漸入佳境)이라는 말과도 부합되는 것이었다. 악산산은 이미 일파의 장문인이 되어 무공이 최정정의 경지에 접근해 가고 있는 화정룡이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화검운이 전수해 준 무공의 십의 하나 도 배우지 못했다는 얘기를 듣고는 일순 어이가 없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면 그의 무공은 이미 최절정의 경지조차 이미 벗어나 있는 상태라는 말인가?) 악산산은 이미 무학에 대한 지식을 많이 쌓아서, 절정고수(絶頂高手)와 최 절정의 고수 가운데 비록 내공의 차이가 거의 일갑자(一甲子)에 달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 수법에 있어서는 그다지 막대한 차이를 보이지 않는 다는 것을 역시 알고있었기 때문에 실로 그와 같은 얘기를 듣고는 믿을 수 가 없는 느낌이 들었다. 전에 화검운이 말했었을 때에는 그저 건성으로 들 었었지만, 이제 다시 화정룡에게서 그와 같은 말을 똑같이 듣게 되자 그녀 는 상당히 어리둥절한 기분이 되었다. <제1권 끝> #5738 양한우 (hanwoo71) [백상] 종남사부 제2권 제8장 03/24 10:30 318 line 올 린 이 : 양한우 HITEL ID : hanwoo71 제8장. 종남사부(終南師父)는 신비로운 미청년(美靑年) 악산산은 다소 당황한 듯한 심사가 되어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입을 열어 물었다. "그런데 그는…… 그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거죠?" 화정룡은 미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저씨께서는 지금 한 가지 중요한 볼일이 계셔서 잠시 나오지 못하고 계 시는 것이오. 그러나 다소 시간이 지나게 되면 여러분이 다시 그분을 뵙게 되리라고 확신하고 있소. 그런데…… 악낭자가 나에게 궁금한 점이 있다고 했던 것은 바로나의 아저씨의 일을 두고 말한 것이었소?" 악산산은 이미 화검운에 대해서 거의 노골적으로 관심이 있는 듯이 질문했 던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아차 하는 심정으로 후회하고 있었다. 원래 그녀의 궁금했던 점은 그러한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화정룡의 질문 을 받게 되자 이내 악산산은 다소 안색을 붉히며 대답했다. "아니예요. 그는…… 그의 일은 그저 한 번 생각해 본 것에 지나지 않아요. 그보다 제가 궁금하게 여기는 것은 바로 요 근래 들어서 신비하게 명성을 날리고 있는 종남사부(終南師父)라는 분이 대체 어떤 분일까 하고…… 하주 대단하신 능력(能力)을 지니고 계신다고 하기에 우리는 일단 종남파에 오게 되면 여늬 일을 젖혀두골도 우선 그분을 만나 보기로 했었죠." 일행은 이 순간 유심히 화정룡의 안색을 주시하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악산 산의 말을 듣고도 화정룡은 얼굴에 벼로 특이할 만한 변화나 기색을 드러내 지 않고 있었다. "아, 바로 그분 말이오?" 그렇게 되묻는 그의 어조에는 그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한 평상시의 감정 만이 깃들어 있을 뿐이었다. 사람들은 기실 이 종남사부라는 사람에 대해서 대단히 흥미를 느끼고 있었 던 차였는데, 느닷없이 장문인의 그런 시큰둥한 태도를 대하고는 왠지 다소 맥이 빠지는 기분이 되었다. 악산산은 마음을 가다듬으며 다시 입을 열어 물었다. "그분을 잘 알고 계시나요?" 화정룡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오. 지금 본파에 계시는 분을 장문인인 내가 모르고 있으면 대체 누 가 알 수가 있겠소?" (……?) 악산산은 더욱 마음이 어리둥절해져서 다시 물었다. "그분의 능력은 소문처럼 그렇게 훌륭한 것인가요?" 화정룡은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가 이윽고 입을 열어 대답했다. "음, 그러니까 그분의 능력은 본파의 개파(開派) 이래 나타난 최고(最高)의 것이라고 할 수가 있소." 악산산은 느닷없이 그런 말을 듣게 되자 눈이 휘둥그래져서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그분의 능력은 종남파의 개파조사(開派祖師)보다도 더욱 뛰어난 것이라는 말인가요?" 화정룡은 담담히 웃으며 대답했다. "내가 과장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뛰어난 것은 역시 뛰어나다고 말해야 하는 것이오." (……?) 실로 조금 전까지만 해도 한때 호기심을 느끼고 있었던 종남사부에 관해서 는 관심 밖에 두고 있었던 당옥 등의 일행은 일순 그 말을 듣자 다소 놀라 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일반적으로 일파의 사람들이 제아무리 뛰어나다고 해 도 개파조사에게만은 다소 양보하여 말하는 것이 상식인데, 대체 그 인물이 얼마나 뛰어나길래 개파조사보다도 오히려 능력이 뛰어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인지 일순 그 사람을 만나보고 싶은 강렬한 충동이 이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제갈소홍이 문득 공손히 인사를 하며 물었다. "실례지만 우리를 그분에게 안내해 주실 수는 없나요? 그분의 명성은 워낙 에 신비한 것이기 때문에 만약 우리가 그분을 뵙지 못하고 돌아가게 되면 두고 두고 아쉬움이 남게 될 것 같아서 그래요." 제갈소홍의 그 말은 매우 예의바르고 찬찬한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화정룡은 담담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그분께서 본파에 계시는 상황이므로 그렇게 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소. 다만 내가 우려하는 것은 여러분들께서 심하게 호기심을 느끼신 나머 지 그분께 실례가 되는 행동을 하게 되면 나의 입장이 다소 난처해지지 않 을까 하고 걱정하는 것이오." 악산산이 이에 옆에서 즉시 대꾸해 말했다. "그 점은 염려하지 마세요!우리들은 그저 멀리서라도 그분의 모습을 한 번 보게 되면 그것으로 만족할 것이니까 말이예요." 화정룡은 미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분이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나로서는 전혀 문제될 것이 없는 것이오. 자, 그건 그렇다고 하더라도 지금 불초가 선물로 드리는 것은 모두 하나씩 받아가시기 바라오. 내 금방 사람을 보내서 여러분을 그분이 계시는 곳으로 안내해 드리도록 하겠소." 말이 끝남과 동시에 도동이 즉시 사람들의 앞으로 바싹 다가가서 그들에게 대원보를 하나씩 집어들게 했다. 기실 무림세가의 자제라고 해도 늘상 수중에 은자가 풍족한 것이 아니라 대 체적으로 유명무실(有名無實)한 편이어서 실로 그와 같은 막대한 대원보에 욕심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일행 가운데 먼저 당지상이 은근히 좌우의 눈치를 살피다가 얼른 하나를 집 어들었고, 이어 당옥이 하나를 집었으며, 이후로는 남궁전, 악산산, 제갈소 홍의 순으로 각기 하나씩의 대원보를 받ㅇ들었으며, 이윽고 마지막으로 황 약화가 하나의 대원보를 집어들자 도동은 천천히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화정룡은 이윽고 도동이 자신의 옆으로 물러나자 일행을 향해 정중하게 포 원으로 인사를 하며 말했다. "그럼 불초가 일이 있어서 더 이상 여러분을 모시지 못하는 것을 양해하시 고, 모쪼록 편안하게 노시다가 돌아가시기를 바라겠소이다!" 아까는 그저 멀쩡히 서서 화정룡이 나오는 것을 주시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이미 커다란 선물까지 받은 상태이기 때문에 일행은 그가 작별인사를 하자 저마다 허리를 굽히며 마주 포권의 인사를 했다. 화정룡은 이후 즉시 도동을 데리고 뒷문으로 사라져 버렸는데, 아니나 다를 까, 다시 한 명의 중년무사가 안으로 나타나더니 일행을 향해 이렇게 말하 는 것이었다. "여러분이 종남사부를 뵙고 싶으시다면 저를 따라오시오!" 당지상 등은 이미 커다란 선물을 받아서 막대한 수입을 올린 셈이어서 빠르 게 그 대원보를 품속 깊이 갈무리하고는 말없이 그 중년무사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중년무사는 일행을 이끌고 종남파의 건축물들의 대부분이 들어서 있는 그 거대한 분지를 빠져나와서 이윽고 점차로 신법을 펼쳐서 험준한 암봉(暗峯) 과 계곡들의 사이로 나아가기 시작했는데, 대략 일각 정도 시간이 지나자 그는 다소 평탄해 보이는 지형의 어느 한 계곡에 이르렀고, 이어 그 계곡을 지나가자 그 끝부분에 다시 서너 개의 계곡이 줄을 지어 나타났다. 중년무 사는 그 계곡들 가운데에서 가장 오른쪽에 있는 하나의 계곡의 안으로 들어 서기 시작했는데, 다시 일각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드디어 계곡의 끝부분에 이르렀고, 거기에 비로소 몇 채의 우아하게 지어진 모옥(茅屋)들이 중년무 사의 뒤를 따르는 일행의 눈앞에 들어왔다. 이 부근의 계곡의 경치는 보아하니 상당히 수려하고 또한 늦가을의 메마른 낙엽들이 사방을 가득 뒤덮고 있었는데, 하나의 작은 폭포수를 앞에 두고 자리하고 있는 중앙의 모옥의 마당에서 지금 서로 마주앉아서 바둑을 두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지금의 시각은 황혼의 저녁노을빛도 모두 스러져서 사방으로 어두운 땅거미 가 몰려들어오기 시작하는 어슴푸레한 저녁 무렵이었는데, 거대한 아름드리 나무들의 아래에 각기 앉아서 바둑을 두고 있는 그 두 사람의 모습은 왠지 희미한 어둠 속에서도 훤하게 드러나 보이고, 그야말로 세속(世俗)의 혼탁 (混濁)한 일과는 무관한 듯한 초연(超然)한 사람들처럼 보였다. 일행을 여기까지 안내해 온 중년무사가 모옥이 보이는 모퉁이에 이르러 신 형을 멈춰 세우자 사람들은 곧 그 사람에게 입을 열어 질문을 하려고 했는 데, 그 이전에 문득 일행의 앞에는 느닷없이 한 명의 사천왕상(四天王像)의 체구를 닮은 거구의 철탑(鐵塔)같은 사나이 하나가 나타나서 우레같은 음성 으로 소리쳤다. "너희들은 웬 녀석들인데 이 계곡으로 들어왔느냐?" 사람들은 느닷없이 이 키가 거의 구척(九尺)이나 될 것 같은 우람한 몸집의 사나이 하나가 번개같이 나타나서 소리치자 비록 그가 거대한 방망이와 같 은 무리를 손에 들고 있지는 않지만 일순 그 위세에 눌려서 그만 정신이 멍 해지고 말았다. 세상에 이렇게 몸집이 커다란 사람이 있다는 것도 기이한 일이었지만, 그보 다 더욱 기이한 일은 거의 소리도 없이 일행의 앞에 나타난 사나이의 놀라 운 신법(身法)이라고 말할 수가 있었다. 일반적으로 몸집이 크거나 키가 큰 사람은 몸놀림이 다소 둔해지기 마련이 라고 하는데, 도대체 이 사나이가 그러한 일반적인 상식마저도 초월하여 마 치 정말로 사천왕이나 금강역사(金剛力士)와 같은 괴력(怪力)을 지니고 있 을 것 겉았다. 그 중년무사가 즉시 앞으로 나서서 사나이에게 공손히 읍을 하며 말했다. "이들은 ㅅ부어르신을 뵙고 싶다고 하여 장문인께서 특별히 저에게 모셔다 드리라고 지시를 내리셨던 분들입니다. 그다지 소란을 피우지 않을 것이니 잠시 머물다 가도록 해주십시오!" 중년무사의 어조는 매우 공손하고도 간곡했고, 또한 그 사나이는 이미 그 중년무사를 알고 있는 듯이 그를 대하자 표정이 다소 누그러졌다. 그러나 막상 중년무사의 말을 다 듣고 나자 이내 안면을 험악하게 구기면서 소리치 며 고개를 가로젓는 것이었다. "그거은 안돼! 너희들은 설마하니 갑자기 사는 것이 지겨워졌다는 말이냐? 아니면 목숨이 두 개라도 된다는 말이냐? 저기에 사부님께서 바둑을 두고 계시는 것이 눈에 보이지도 않느냐? 어서 방해하지 말고 사라지도록 해라!" 거구의 사나이가 앞을 가로막고 두 눈에서 무서운 불길같은 안광(眼光)을 발출시키며 그와 같이 소리치자 일행은 그만 그 모습만 보아도 절로 오금이 저려오는 것 같았다. 그러나 사나이의 말 가운데 문득 사부님이라는 말이 들어 있는 것을 알고는 당지상이 즉시 중년무사에게 넌즈시 전음입밀(傳音入密)의 무공으로 물었 다. "저어…… 실례지만 저기에 앉아서 바둑을 두고 계시는 분들 가운데의 하나 가 바로 그 유명한 종남사부(終南師父)라는 말입니까?" 중년검사는 그 질문에 고개를 돌려 당지상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이윽고 다 소 싸늘한 어조로 대꾸했다. "물론이오. 이 계곡에서 저렇게 한가하게 바둑을 두고 계실 수 있는 분이 천하에 그분 이외에 또 누가 있을 수가 있겠소?" 비록 당지상의 전음입밀을 듣지는 못했지만 중년검사의 대답을 통해서 나머 지 사람들도 이내 그 대화 내용을 알아차리게 되었고, 악산산이 다소 놀라 며 물었다. "그, 그렇다면 저기에서 바둑을 두시고 계시는 분 가운데 대체 누가 종남사 부인가요?" "……" 중년검사는 일시 대답을 하지 않고 다소 못마땅하다는 듯이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마치 아직 그런 기초적인 것도 모르면서 종남사부를 만 나보려고 했는냐는 듯한 책망의 기색이 서려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중 년검사는 이윽고 입을 열어 대답했다. "이쪽에서 마주 보이시는 분이 바로 그 어르신이시오." 순간 무심코 그 얘기를 듣고 있던 일행은 저마다 다시 한 번 전면을 바라보 고는 잠시 멍하니 넋나간 듯한 표정이 되고 말았다. 지금 모옥의 마당에서 바둑을 두고 있는 두 사람 가운데 하나는 거의 등을 돌리고 있는 편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이쪽을 향해 비스듬히 앉아 있는 상 태였다. 그런데 바로 그 이쪽을 향해 비스듬히 앉아 있는 사람은 나이가 아 무리 보아도 이제 겨우 약관을 넘었을 것 같은, 용모가 수려(秀麗)하기 짝 이 없는 미청년(未靑年)이 아닌가! 다른 사람의 모습은 뒷모습을 보아서 나이가 많은 노인(老人)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으므로 일행은 당연히 그가 종남사부가 아닐까 하고 추측하고 있 었는데, 오히려 그 준수하기 짝이 없는 미청년이 강호에서 그토록 신비하게 명성을 날리고 있는 종남사부라고 하니 일행이 다 함께 넋을 놓게 되는 것 은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하긴 그렇게 생각하고 보아서 그런지 그 미청년의 용모는 상대편의 노인에 게서는 느낄 수가 없는 신비(神秘)로운 기운이 느껴져서 그의 수려하기 짝 이 없는 용모가 어슴푸레한 분위기 속에서도 은은한 성결(聖潔)스러운 광채 (光彩)를 뿌려대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일행 가운데의 다섯 명의 소녀들은 비단 그 미청년의 노라운 신분에 대해서 도 놀랐을 뿐만 아니라 그 눈부신 절세준미(絶世俊美)한 용모에도 절로 넋 을 잃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 미청년의 용모의 준수함은 이제까지 그녀들이 천하에서 보지 못하던 것이었고, 또한 그 기질의 신비함은 소녀들의 방심 (芳心)을 온통 뒤흔들어 놓기에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제갈소홍이 마음을 가다듬으며 입을 열어 중년검사에게 물었다. "혹시 당신이 잘못 말한 것이 아닌가요? 저렇게 젊은 사람이 어떻게 그와 같은 놀라운 인물이 될 수가 있죠?" (……?) 사람들의 시선이 이에 급히 중년검사를 향해 집중되었다. 혹시나 그 중년검 사가 약간의 착오를 일으켜서 그들에게 말을 잘못했던 것이 아닐까 하고 생 각한 것이었다. 그러나 결국 그 중년검사의 입에서 뒤이어 흘러나온 말은 더욱 더 그러한 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확신시켜 줄 뿐이었다. "뭐라구? 사람의 나이가 무슨 상관이라는 말인가? 나이가 젊은 분이라도 그 분의 성취가 훌륭하다면 가히 높은 어르신의 대접을 받을 만한 것이지. 당 신들은 감히 나의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말이오?" 제갈소홍은 다소 넋나간 듯한 표정이 되어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긴 그래요. 우리의 황 소저만 해도……" 말과 동시에 그녀는 고개를 돌려 황약화의 얼굴을 돌아보았는데 이때 왠지 황약화 그녀의 눈빛이 기이한 광채로 빛나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제갈소홍 은 그것을 보고 황약화도 어린 나이에 아미 놀라운 무학(武學)의 성취(成 就)를 이루었다고 말하려다가 도중에 꾹 눌러 참고 말았다. 당옥이 이때 중년검사에게 입을 열어 질문했다. "그렇다면 저기 종남사부의 맞은편에 앉아서 바둑을 두고 있는 노인은 대체 누구죠?" 중년검사는 주저없이 대답했다. "그는 사부 어르신의 대제자(大弟子)이오." 당옥 등은 더욱 놀랐다. "아니, 대제자라고요? 그런데 어떻게 해서 제자의 나이가 스승보다 훨씬 더 먹은 것이죠?" 중년검사는 그 말에 싸늘한 표정으로 이렇게 힐난하며 대꾸했다. "그게 뭐가 어떻다는 것이오? 실로 스승의 능력이 뛰어나다면 그보다 나이 가 많은 제자들은 수도 없이 많은 법이오. 나는 설령 그분의 제자가 되고 싶어도 되지 못하는 것인데, 정말로 그분의 제자가 될 수만 있다면 그까짓 나이야 무슨 상관이 있겠소? 또한 천하에 그분의 제자가 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겠소?" 당옥 등은 한없이 종남사부를 추켜세우고 있는 중년검사의 말이 곧이 들리 지 않았지만, 그래도 일단 그의 얘기를 듣고 나자 어느 정도 그 미청년이 종남사부가 확실하다는 것은 알 수가 있었다. 이제까지 거의 말이 없던 남궁전이 이윽고 입을 열어 중년검사에게 물었다. "대체 그의 능력이 어떤 것이길래 그토록 뛰어나다는 것이죠?" 중년검사는 그녀의 얼굴을 한 차례 돌아보더니 역시 싸늘하게 코웃음을 쳤 다. "사부 어르신의 능력이 어떤 것이냐구? 만일 내가 그와같은 것을 알고 있 었다면 아마도 지금 이런 자리에 있지는 않았을 것이오." "……" 남궁전이 다소 새침한 표정으로 묵묵히 입을 다물자 이어 중년검사는 다시 예의 그 사나이에게 입을 열어 말했다. "파군(破軍)! 하지만 이들은 결코 소란을 일으키지 않겠다고 이미 약속을 했고, 따라서 안으로 들어가서 조용히 구경만 하다가 나오면 되지 않겠소? 이것은 장문인께서 손수 내리신……" 그러나 파군이라는 그 사나이는 역시 막무가내로 거절을 했다. "설령 장문인이 손수 내린 지시라고 해도 결코 이 자들을 안으로 들여보낼 수는 없다. 너는 사부님께서 일단 바둑을 두기 시작하시면 반드시 한밤을 꼬박 새우신다는 것을 모르느냐? 사부님께서는 필시 내일 아침때까지 바둑 을 두실 것인데, 너희들이 안으로 들어가서 살펴보면 무엇을 어쩌겠다는 것 이냐? 설령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고 해도 일단 너희들이 안으로 들어가 게 되면 소란해질 것이니 결코 안으로 들일 수가 없다!" 이 파군이라는 거구의 사나이는 일반적으로 거구의 사나이들이 머리가 둔감 하여 말을 잘하지 못한다는 상식을 깨고 오히려 말을 보통 사람들보다 더욱 조리있게 잘하는 것 같았다. 실로 이 한 사람만 보아도 종남사부의 능력이 어떤 정도인가 하는 것을 충 분히 감지할 수가 있을 듯한 일이었다. 중년검사는 단념하지 않고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혹시 당신이 가서 사부 어르신께 허락을 내려주시도록 여쭤보시 지 않으시겠소?" 파군이라는 사나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돼! 사부님께서 일단 바둑을 두시게 되면 누구라도 그분의 일에 방해를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게다가 그분께 말씀을 올린다는 것은 더욱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야!" 이 거구의 사나이 파군은 이제 보니 그 고집 또한 몸집만큼이나 커서 누구 도 감당해 낼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중년검사가 이제 더 이상 어쩔 수가 없다는 듯이 멍한 표정을 보이자 이에 옆에서 듣고 있던 황약화가 입을 열어 불쑥 말했다. "정말로 안된다면 너무 그렇게 조르지 말아요. 우리는 원래 그와 무슨 특별 한 용건이 있어서 온 것이 아니었으니 그저 이렇게 먼발치에서 바라보기만 해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할 수가 있을 거예요." 이미 다소 낙망한 듯한 표정을 보이고 있던 중년검사는 황약화의 그 말을 듣자 마치 은인을 만난 듯이 일순 반가워하며 물었다. "아니, 그게 정말이오? 정말로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그저 이곳에서 바라보 는 것으로 만족할 수가 있겠소?" 황약화는 그가 자신의 책임을 회피할 수 있게 되어 너무나도 기뻐하는 것을 보고는 다소 싸늘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물론이예요. 하지만 눈앞의 이 사람이 우리가 여기에 잠시 머물면서 구경 을 하는 것을 허락할지 모르겠군요." 그때 이윽고 파군이라는 사내가 다시 입을 열어 황약화를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들이 여기에서 다만 조용히 바라보기만 한다면 잠시 동안은 그것을 허 용해 주겠소. 그러나 그것은 오직 잠깐 동안일 뿐이니 당신들은 어서 보고 싶은 것이 있다면 보도록 하시오!" 일행은 사나이의 다소 거만하면서도 고압적인 말투에 상당히 반발심이 솟구 쳤으나 이 일은 어쩔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다만 당옥이 도저히 이렇게 되어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는지 눈빛을 빛내다 가 다시 중년검사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그의 사부가 누구인지 아나요? 그는 누구에게서 어떠한 무공을 배 웠죠? 그리고 그의 출신 내력은 어떤 것이죠?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그는 당신네 종남파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고 하던데 그것들은 구체적으로 어 떤 것들이죠? 그리고 그는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나요?" 기실 이러한 질문의 내용들은 당옥이 미리부터 종남사부를 만나면 직접 물 어보기 위해 준비해 두었던 것들이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종남사부를 직접 대면할 수 없는 상화이 되어 버리자 그녀는 하는 수 없이 아쉬움을 무릅쓰 고 중년검사에게 묻고 있는 것이었다. 그와 같은 여러 개의 질문을 마치 연달아 쏘아지는 화살처럼 연거푸 계속해 서 받게 되자 중년검사는 일시 다소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으나 이내 가볍 게 웃으며 대꾸했다. "보아하니 질문의 내용은 많지만 정작 내가 대답해 줄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군. 대부분은 나도 역시 모르는 내용이고, 게다가 어떤 것은 내가 설령 알고 있다고 해도 당신들에게 가르쳐 줄 수 없는 것들이오. 다만 한 가지 가르쳐 줄 수 있는 것이 있기는 한데……" 중년검사는 이어 말끝을 흐리고 다섯 명의 소녀들을 둘러보았는데, 소녀들 은 그가 갑자기 다소 뜸을 들이자 무슨 내용인가 궁금한 생각이 들어서 그 를 향해 시선을 집중하게 되었는데, 어이없게도 뒤를 이어 그 중년검사의 입 속에서 흘러나온 말의 내용은 그녀들로 하여금 절로 얼굴이 붉어지게 만 드는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다름이 아니라 우리의 저 사부 어르신께서는 아직 미혼이시고 혼인을 약속한 처자가 없으신 만큼 낭자들에게도 사실 기회가 있다는 것이 오." 만일 다른 사람을 두고 그런 말을 했다면 즉시 화를 내며 따지고 들었겠지 만 지금 바라다 보이는 종남사부라는 미청년의 모습이 너무나도 가슴이 뛰 게 하는 절세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그 다섯 명의 소녀들은 감히 입을 열어 대꾸도 하지 못했다. 중년검사는 그녀들을 향해 다소 비웃듯이 바라보다가 이윽고 다시 말했다. "자, 그럼 당신들이야 이곳에서 바라보다가 떠나면 되는 것이고, 따라서 나 의 역할도 끝난 것 같으니 나는 이제 그만 돌아가 봐야 할 것 같소. 여러분 은 나에게 혹시 더 의문나는 사항이라도 있소?" 일행은 즉시 어떤 의문사항이 있나 하고 생각해 보았으나 지금은 정신이 뒤 죽박죽이 되어 있는 것 같아서 쉽게 생각나지 않았다. 황약화가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어 말했다. "아니예요. 우리도 이미 볼 것은 다 본것 같으니 그만 이곳을 떠나도록 해 야겠어요. 당신이 우리들을 다시 종남파의 입구쪽으로 안내해 주신다면 고 맙겠어요." -- 계속 -- #5739 양한우 (hanwoo71) [백상] 종남사부 제2권 제9장 03/24 10:30 278 line 올 린 이 : 양한우 HITEL ID : hanwoo71 제9장. 종남사부(終南師父)의 문하(門下) 무공을 갖추고 있는 일행이 이 종남산을 빠져나가는 것이야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그러나 일단 모든 행동에 있어서의 모양과 체면을 유지하기 위해서 황약화는 중년검사에게 그렇게 말했던 것이었다. 중년검사는 이에 다소 시큰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원하신다면 그렇게 하시오. 나야 원래 그리고 가야 하는 형편이었으 니 힘든 일도 없겠지." 비록 함께 떠난다는 말을 하기는 하였으나 막상 이대로 걸음을옮겨서 떠나 려니 왠지 섭섭하고 미진한 구석이 남아 있는 것 같아서 일행은 잠시 동안 더 전면의 광경을 바라보고 멍하니 서 있었다. 바둑을 두고 있는 그 미청년과 노인은 아직도 처음과 전혀 다르지 않은 자 세로 조용히 정좌한 채 바둑판 위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것은 설사 옆에 서 갑자기 벼락이 떨어진다고 해도 전혀 끄떡하지 않을 것 같은 지극히 안 정된 자세라고 할 수가 있었다. "자! 안 가실 거요?" 중년검사의 재촉하는 소리에 하는 수 없이 일행은 대부분이 가벼운 한숨과 함께 신형을 돌리고는 계곡의 밖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파군이라는 사나이는 여전히 조금 전의 그곳에 석상(石像)처럼 굳건한 자세 로 서 있었고, 일행 중에서 가장 뒤늦게 신형을 돌려서 걷기 시작했던 악산 산은 이대로는 도저히 그냥 갈 수가 없다는 기분이 들어서 자신도 모르게 다시 고개를 돌려 그쪽을 바라보게 되었다. 헌데 그 순간의 일이었다. 마침 우연히도 그 미청년은 이쪽을 향해 고개를 들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그 시선을 받은 악산산의 머리속에서 갑자기 마치 번갯불의 섬광(閃光)이 작렬한 것처럼 아득한 충격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러한 충격은 물론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저 심리적(心理的)인 현상 에 불과한 것이었지만, 그러나 그 순간에 악산산은 마치 전신의 혼백(魂魄) 이 일시에 녹아 내리는 것 같은 황홀감을 맛보았다. 그리고 이어 그녀는 문득 내심 중얼거리게 되었다. (저 눈빛…… 대체…… 대체 저 눈빛을 어디에서 보았더라?) 이상하게도 기이하게도 맑고 고요하며 황홀한 충격을 느끼게 해주는 그 미 청년의 신비로운 눈빛은 그녀가 어디에선가 한 번은 본 적이 있는 것 같은 아주 낯익은 느낌을 주는 것이었던 것이었다. 아직 그녀는 그 미청년과 같 은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대체 어째서 그녀가 그의 눈빛 을 보고 낯익은 느낌을 갖게 되었는지 그것은 알 수가 없는 일이었다. 악산산은 마음이 절로 혼란스러워져서 자신도 모르게 내심으로 그렇게 중얼 거리게 되었지만, 그러나 기실은 미처 그러한 생각을 차분하게 굴려볼 마음 의 여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그 혼란된 마음을 억누르고 급히 다 시 생각을 해보려고 해도 다음 순간에 누군가가 그녀의 손을 잡아서 뒤쪽으 로 끄는 것이었다. "악동생, 대체 뭘 그렇게 계혹해서 열심히 바라보고 있는 것이지? 그래 봤 자 아무런 소용도 없을 것 같으니 이제 어서 가자구!" 악산산에게 다가와서 그렇게 말하며 그녀의 손을 잡아 끄는 사람은 다름이 아니라 바로 제갈소홍이었다. "응, 제갈언니." 악산산은 그만 자신의 내심의 변화(變化)를 다른 사람에게 눈치채인 것 같 아서 다소 안색을 붉히며 엉겁결에 그렇데 대답하고는 끌려가면서도 문득 다시 고개를 뒤로 돌려서 미청년을 바라보았는데, 어느 사이엔가 그 미청년 은 마치 언제 고개를 들었었냐는 듯이 아까처럼 시선을 다소내리깔고는 다 시 바둑판을 바라보기만 하고 있었다. (……!) 악산산은 그러한 광경을 대하게 되자 문득 가슴의 한쪽이 허물어져 내리는 것 같은 허전함을 느끼게 되었지만, 이내 가벼운 한숨을 내쉬고는 하는 수 없이 앞으로 고개를 돌려서 일행과 보조를 맞추어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일행이 이윽고 그 계곡을 멀리 벗어나게 되어 점차로 신형을 빠르게 날리기 시작할 무렵에 황약화는 문득 생각이 난 듯이 입을 열어 그 중년검사에게 물었다. "참, 아까의 그 파군이라는 사람은 대체 어떤 신분의 사람이죠?" 중년검사는 잠시 시선을 힐끗 들어서 자신과 나란히 신법을 펼치고 있으면 서도 전혀 기운을 쓰는 것 같지 않게 행운유수(行雲流水)와도 같은 움직임 을 보여주고 있는 황약화의 모습을 다소 기이하다는 듯한 시선으로 바라보 다가 이윽고 대답했다. "그는 바로 사부 어르신의 막내제자요." 일행은 그 얘기를 듣자 순간 과연 그 미청년의 재주가 놀라울 것이라는 것 을 수긍하게 되었지만,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심지어 막내제자마저 그 스승보다 나이가 많다는 것을 알고는 이는 실로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라고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제갈소홍이 상당히 호기심을 느낀 듯이 입을 열어 질문했다. "그렇다면 종남사부(終南師父)의 문하(門下)에는 대체 몇 명의 제자들이 있 다는 것이지요?" 중년검사는 잠시 머뭇거리며 생각하는 듯하더니 이윽고 그녀를 향해 선선히 입을 열어 대답해 주었다. "그 사부 어르신의 문하에는 지금 모두 일곱 명의 제자들이 있소. 하나같이 그 능력들이 놀라우며, 각기 탐랑(貪狼), 거문(巨文), 녹존(綠存), 문곡(文 曲), 염정(廉貞), 무곡(武曲), 파군(破軍)이라는 칠원성군(七元星君)의 이 름으로 불리우고 있는데, 그 가운데 아까 보셨던 가장 실력이 없는 막내인 파군조차 사실 본파의 장문인보다 무공이 훨씬 뛰어난 편이라는 것이오." (……!) 일행은 그 얘기를 듣게 되자 다시금 크게 놀라고 기이하게 여기게 되었지 만, 그와 동시에 어떤 알 수 없는 의문들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끼지 않 을 수가 없었다. 제갈소홍이 다시 질문했다. "그럼 우리들이 아까 보았던 그 노인의 이름이 바로 탐랑이었다는 말이군 요. 그런데 대체 그들의 능력은 어느 정도이죠? 그리고 나머지 다섯 명의 제자들은 지금 어디에 있길래 우리가 그곳에서 볼 수가 없었던 것이죠?" 중년검사는 그 얘기를 듣고 나더니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나의 보잘것없는 능력으로 어떻게 그들의 능력이 어느 정도의 것인지를 판 가름할 수가 있겠소? 그리고 지금 나머지 다섯 명의 제자들이 어디에 있는 지에 관해서는 나로서는 더더욱 설명할 수가 없구려." 당옥이 이에 문득 입을 열어 질문했다. "당신은 어째서 설명할 수가 없다는 것이죠? 그 종남사부는 가끔씩 종남파 에 들러서 사람들에게 무공을 전수해 주기도 하나요?" 중년검사는 다시 고개를좌우로 가로저었다. "미안하게 되었소. 나는 이제 더 이상의 질문에 대해서 대답해 줄 수가 없 을 것 같소." 일행은 그가 종남파의 기밀에 해당되는 사항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을 알고는 더 이상 무리하게 계속해서 질문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잠시 동안 침묵을 지키고 있는 사이에 어느새 일행은 그들 이 저녁때 앉아서 기다렸던 예의 그 분지의 입구에 거의 도달해 가고 있었 다. 지금은 이미 사방이 어두컴컴한 시각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무의식적으 로 아까 계곡으로 향했었을 때보다도 더욱 빠르게 신법을 펼쳐 달려왔던 것 이었다. 중년검사는 이윽고 일행이 그 입구에 도착하여 신형을 멈춰세우자 이내 자 신도 따라서 신형을 멈춰세운 후에 포권을 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럼 여러분이 편안하게 돌아가시게 되기를 바라겠소이다. 죄송하지만 나 는 더 이상 배웅해 드리지 못하고 돌아가봐야 하겠소이다." 황약화가 이에 마주 포권을 하며 대꾸했다. "천만예요! 돌아가시거든 화(花)장문인께 저희가 오늘 많은 도움을 받게 되 어서 고마웠다고 그렇게 전해 주시기를 부탁드리겠어요." "……" 중년검사는 잠시 일행을 하나하나 돌아보며 뭔가 할 말이 있는 듯한 태도를 보이다가 문득 느닷없이 신형을 다시 움직여 분지의 안쪽으로 사라져 버리 고 말았다. (……) 그 중년검사가 분지의 안쪽으로 사라져 가는 광경을 주시하고 있던 일행은 하나같이 다소 망연한 표정을 지었으나, 이윽고 그 가운데 당옥이 먼저 입 을 열어 말했다. "자, 우리도 이제는 그만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황약화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그래요. 이제 우리도 성 안으로 돌아가도록 해요." 다른 사람들은 비록 더러 흠칫해하는 기색이기는 했으나 원래 예정되어 있 던 순서였기 때문에 누구도 반대하지 않고 다시 신형을 날려서 떠나려고 했 다. 그런데 정작 일행이 마악 신형을 날리려고 하는 순간에 다소 멍한 표정을 하고 있던 악산산이 문득 생각난 듯이 정신을 차리며 이렇게 말했다. "잠깐만요! 그 화검운(花劍雲) 화공자가 오지 않았으니 우리는 좀더 이곳에 서 그를 기다려 봐야 하는 것이 아니겠어요?" 다른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일순 멈칫하며 신법을 펼치기 위해 끌어올렸던 공력을 다시 풀어 버리고 그 가운데 당옥이 다소 눈살을 찌푸리며 대꾸했 다. "그는 이미 종남파의 내부에 깊이 들어가서 앞으로 언제 다시 나오게 될지 알 수가 없는 상태인데, 무엇 때문에 그를 기다려야 하겠어? 그가 길을 몰 라서 헤매는 철부지 어린아이도 아니고 말이야." 기실 이 당옥은 그 화검운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부분이 있을 뿐만 아니라 간혹 왠지 능멸을 당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 게 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더 이상 그와 동행하고 싶지가 않게 된 것이었다. 악산산은 자신의 말에 당옥이 그렇듯 정면으로 반대를 하고 나서자 다소 당 혹스러운 느낌이 들었으나 그래도 아직 뜻을 굽히지 않고 한 마디의 말을 더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우리와 함께 행동하기로 약속까지 한 사람인데, 우리가 이렇게 전혀 그를 기다리지 않고 떠나간다면 그가 나중에 나중에 섭섭하다 고 하지 않을까요?" 이 화검운이라는 사람은 비록 그다지 탐탁스러운 기분이 들게 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해도 일단은 일신의 무공이 이미 최절정의 경지에 올라 있는 기이 한 인물이라고 할 수가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비록 당옥의 말에도 수긍을 하고 있었지만 악산산의 말에도 전혀 무신경할 수가 없었다. 황약화가 옆에서 그러한 사람들의 심리를 살피고 있다가 문득 입을 열어 두 사람의 의견 가운데에서 절충식으로 대안(代案)을 제시해 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곳에서 한 일각 정도의 시간을 기다려본 연후에 떠나도 록 하는 것이 어떻겠어요? 그렇게 한다면 그가 설령 나중에 나타난다고 해 도 결코 우리에게 섭섭하다고는 말할 수가 없을 거예요." "좋아요! 그렇게 하도록 해요!" 평소에 황약화에 대해서 상당히 많은 호의(好意)와 양보를 보내고 있었던 당옥은 그 대안을 듣자마자 즉시 찬성을 했고, 악산산은 비록 속으로는 황 약화가 제시한 대안에서 그 일각이라는 시간이 너무나도 짧은 것이라고 생 각하며 찬성할 수가 없다고 느꼈지만, 그러나 사람들의 분위기를 의식하여 묵묵히 고개를 끄덕여 수긍의 의사(意思)를 표시했다. 일행은 따라서 잠시 성 안으로 돌아가는 시기를 늦추고 고개를 분지의 안쪽 으로 돌려서 화검운이 나타나게 되기를 기다리게 되었는데, 그것은 이미 논 의(論議)된 바와 같이 정말로 화검운이 공교롭게도 이 순간에 나타나게 되 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다만 나중에 당당하게항변할 수 있는 명분(名 分)을 만들어 두자는 데에 있었던 만큼, 기실 누구도 화검운이 이 짧은 일 각이라는 시간 사이에 나타나게 되리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른 바 이 일각이라는 시간은 그렇게 짧다면 짧다고 할 수도 있는 것이었 지만, 그와는 반대로 혹은 길다면 길게 느껴질 수도 있는 시간일 것이었다. 만일 어떤 기대감이라도 가지고 있는 상태라면 기다리는 시간이 빠르게 지 나가게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일행은 지금 거의 나타날 가능성이 없다고 할 수가 있는 사람을 멍청하게 기다리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대략 반각 정도 의 시간이 지나게 되자 대부분이 그만 다소간의 지루함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한 지루함은 아마도 조금 전에 일행이 종남사부(終南師父)라는 거의 완 벽에 가까우리 만큼의 뛰어난 능력과 모습을 지니고 있는 천하(天下)의 기 재(奇才)를 보고 온 이후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이 화검운이라는 다소 기 이한 서생에 대한 호기심이 그만큼 줄어들게 되어 더욱 심하게 되었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렇게 지루하게 반각여의 시간을 보내게 되자 사람들은 대부분 이제는 화 검운이 남은 시간 동안에 결코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짐작하고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떠나서 지루함을 모면하고 싶은 마음에 안달이 나기 시작하고 있었는데, 기이하게도 바로 그 무렵에 마치 사람들의 예상을 보기 좋게 뒤 집어 주기라도 하듯이 예의 그 종남파로 들어가는 입구쪽에서 흡사 환각(幻 覺)처럼 두어 개의 흐릿한 인영(人影)들이 일행의 시야에 홀연히 나타나는 것이었다. (……!) 악산산은 내심으로 자신에게 정면으로 반대 의견을 표시했던 당옥에게 불현 듯 기묘한 경쟁의식을 느끼고 있었는데, 이때 홀연히 나타난 그 두어 개의 인영들의 모습이 그야말로 그녀들이 기다리던 화검운과 용아, 봉아와 매우 비슷해 보였기 때문에 일순 자신도 모르게 그쪽을 향해 소리치게 되었다. "혹시 거기에 오고 있는 분은 화검운, 화공자가 아니신가요?" 입구쪽에서 다가오고 있던 그 인영들은 느닷없이 그러한 소리를 듣게 되자 즉시 속도를 빨리하여 달려오기 시작했으며, 문득 그 가운데의 한 사람이 이렇게 마주 소리치며 대꾸하는 것이었다. "그렇소만…… 혹시 거기에 지금 계시는 분들은 악산산(岳珊珊), 악낭자의 일행이 아니시오?" 아니나 다를까, 실로 공교롭고도 어처구니가 없게도 지금 일행을 향해 다가 오고 있는 사람들은 정말로 생각대로 화검운과 그 일행이었던 것이었다. 사람들은 설마하니 정말로 그가 시간을 맞추어서 나타나게 될지 몰랐었기 때문에 실로 이 화검운이라는 서생은 더욱 엉뚱하고 기이한 인물이라고 생 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악산산은 이 화검운이 정말로 제때에 나타나자 자신이 의견을 꺼 내서 기다리게 한 보람이 있다고 생각되어 일면 반가운 느낌이 들기도 했지 만, 그러나 어이없게도 화검운이 자신의 말을 흉내내어 그녀의 이름을 함부 로 큰소리로 불러대는 것을 보고는 절로 안색을 붉히며 겸연쩍게 생각했다. (나의…… 나의 이름은 결코 함부로 부르라고 지어져 있는 것이 아닌데, 그 는 혹시 나를 우습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기실 비록 이 강호의 여인들은 더러 자신들의 이름을 남에게 밝히는 것을 그다지 꺼려하지 않는 대범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고 하지만 아무리 그 렇다고 해도 지금처럼 그렇게 큰 소리로 불리우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창피 한 느낌이 들게 되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저마다 그와 같은 생각들을 굴리고 있는 사이에 어느덧 화검운은 용아와 봉아를 좌우에 대동하고 드디어 일행의 앞에 도달하여 신형을 멈추 었다. 사람들은 이 화검운이 마치 도깨비로도 되는 것처럼 너무나도 공교로운 순 간에 나타났기 때문에 어리둥절해진 마음이 아직도 다 가시지 않은 시선으 로 그의 모습을 주시하였는데, 실제로 그의 차림새나 모습은 아까 화정룡의 인도를 받아서 천연덕스럽게 안으로 들어가던 때와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 어 보였다. 지금 다시 그의 천연덕스러운 얼굴의 표정과 모습을 대하게 되 자 마치 조금 전에 종남파에서 겪었던 일들이 하나같이 일장춘몽(一場春夢) 이 아니었나 하고 생각되는 것이었다. "어이 여러분! 그간에 볼일들은 다 보시었소?" 다소 수선을 떨며 그렇게 사람들을 향해 소리쳐 묻는 화검운의 모습을 보고 는 악산산은 왠지 그 모습이 심하게 밉상스러운 느낌이 들어서 미처 그의 시선이 자신의 얼굴에 닿기도 전에 슬그머니 다른 사람들의 뒤쪽으로 물러 나 피해 버리고 말았다. (……?) 화검운은 조금 전에 자신에게 가장 먼저 말을 건네왔던 악산산이 뒤로 물러 나 버리는 것을 보고는 다소 어리둥절한기색을 보이다가 이윽고 황약화에 게 입을 열어 다시 물었다. "이제 여러분은 다시 성 안으로 돌아가려는 것이오?" 황약화는 예의 그 맑고 기이한 시선으로 잠시 화검운의 얼굴을 주시하고 있 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요. 당신도 이곳에서 볼일을 다 보았나요?" 화검운은 그 말을 듣고 즉시 크게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이오! 나는 이미 그 멍청한 조카녀석에게 한 밑천을 두둑하게 뜯어냈 으니 앞으로는 전혀 돈걱정을 하지 않고 지낼 수가 있게 될 것이오." 화검운의 말투는 역시 다소 짓궂은 구석이 있는 듯했지만 지금은 그것이 별 로 사람들의 흥미를 자아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의 마음 은 이미 대부분이 다른 쪽으로 쏠려져 있어서 이 다소 괴상하게 느껴지는 화검움의 말에 정말로 귀를 기울이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어 보였다. 문득 화검운도 그러한 사람들의 분위기를 눈치챘는지 이윽고 다소 어색하게 웃으며 빈손을 툭툭 털어내더니 황약화를 향해 이렇게 다시 말하는 것이었 다. "자, 우리는 그러면 이제 어서 출발하는 것이 어떻겠소? 시간이 그리 이른 편이 아닌데." 황약화는 두말할 필요도 없으므로 고개를 끄덕이며 되물었다. "그럼 당신이 앞장을 서서 길을 안내해 주시겠어요?" 지금은 사방이 이미 어두운 시각이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이 부근의 지리를 능숙하게 알고 있는 사람의 인도를 받는다면 돌아가는 시간을 보다 단축시 킬 수가 있을 것 같았기 때무니었다. "그럽시다!" 화검운은 대답을 하고 나서 즉시 용아와 봉아를 좌우에 대동하고서 신법을 펼쳐서 사람들이 서 있던 자리를 떠나 아까 왔던 길로 되돌아 나아가기 시 작했다. 황약화 등의 사람들은 즉시 그의 뒤를 따라서 신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사람이란 으레 주위가 어두운 상황이 되면 마음이 조급하게 변해서 서두르 게 되는 것인지, 아까 이곳으로 올 때보다도 일행은 점차로 더욱 빠르게 신 법을 펼쳐 나아가게 되었는데, 그렇게 계속해서 속도를 내다보니 자연히 일 행 가운데에서 저마다의 수련(修練)한 무공의 차이가 거의 분명하게 드러나 게 되었다. 기실 그렇게 일행이 속도를 내게 된 것은 앞에서 길을 인도하고 있었던 화 검운이 일부러 속도를 높여서 나아갔기 때문이 아니라 일행 가운데의 당옥 이나 남궁전 등의 사람들이 왠지 초조한 듯이 서두르며 신법의 속도를 증가 시켜서 화검운의 좌우로 추월하여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기 때문에 부득이 다른 사람들도 이에 따라서 함께 속도를 내게 되었던 것이었는데, 물론 일 행 가운데에서 가장 공력의 수위가 낮은 사람들은 바로 화검운의 두 명의 시종들인 용아(龍兒)와 봉아(鳳兒)로서 그녀들은 불과 절반도 가지 못해서 기혈(氣穴)의 흐름이 순조롭지 못하게 되고 내식(內息)이 불안해져서 화검 운이 양손으로 각기 그녀들의 손목을 하나씩 잡아서 신법을 펼치는 것을 도 와주게 되었고, 그 밖에도 가장 먼저호흡이 불안해지기 시작하는 사람은 역시 그들 일행 가운데에서 가장 나이가 어리다고 할 수가 있는 악산산이었 고, 남궁전과 당지상의 공력이 그 다음으로 약간의 차이를 두고 수위가 드 러나 서로 비슷한 듯이 보였다. -- 계속 -- #5740 양한우 (hanwoo71) [백상] 종남사부 제2권 제10장 03/24 10:31 290 line 올 린 이 : 양한우 HITEL ID : hanwoo71 제10장. 명문세가(名門世家)의 자제들 그런데 예상 외로 공력이 고강한 것으로 드러난 사람은 나이가 남궁전보다 도 오히려 적어 보이는 제갈소홍(諸葛素紅)으로서, 그녀는 나이가 가장 많 은 당옥과 나란히 달리며 조금도 공력에 있어서 뒤지는 기색이 없어 보이는 것이었다. 물론 이 경공(輕功)의 조예라고 하는 것은 모든 무공의 수위를 나타내는 것 은 아니지만, 아마도 그러한 공력이나 경공술의 차이는 그 사람이 수련한 무공의 기초(基礎)나 혹은 그 사람들의 본래의 성격에서도 원인을 찾을 수 가 있을 것 같았다. 하기는 그들 다섯 명의 남녀들의 무공이 신법에 있어서 비록 다소간의 차이 를 보인다고는 하나 하나같이 일류고수(一流高手)의 수준을 조금씩 웃도는 경지로서 그 차이가 실로 미미한 것이었지만, 그것과는 달리 가장 뚜렷하고 도 심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은 역시 다름이 아니라 황약화(黃若華), 바 로 그녀라고 할 수가 있었는데, 제갈소홍 등의 신법이 비록 다소 노련하다 고는 하나 계속해서 달리다 보니 어딘가 피로해 보이는 기색이 느껴지는 상 태인데, 반면에 그녀의 신색(身色)은 다른 사람들의 그러한 모습과는 아주 다르게 그저 시종일관(始終一貫) 같은 표정으로 조용한 자세를 유지한 채 부드럽게 미끄러지듯이 나아가고 있을 뿐이어서 도무지 그 공력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게 하는 것 같았다. 일행 가운데에서 실로 그것과 가장 비슷하게 처음부터 태연한 신색을 유지 하고 달리고 있는 다른 사람은 역시 용아와 봉아의 손을 각기 하나씩 잡고 서 달리고 있는 화검운이라고 할 수가 있었는데, 달리는 도중에 화검운은 황약화의 옆에 이르게 되자 문득 입을 열어서 그녀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는 것이었다. "황낭자, 나는 아까 당신이 나를 내일 정오의 영웅대회(英雄大會)에 참석시 켜 주겠다고 했던 얘기를 들은 것 같은데, 그 약속은 아직도 유효(有效)한 것이오?" 황약화는 이 화검운이 용아와 봉아를 좌우에 대동하고서도 여전히 조금의 파탄도 보이지 않고 유연하게 신법을 전개하고 있으며, 게다가 내식이 흐트 러짐도 없이 말까지도 수월하게 하고 있는 것을 보고는 다소 기이한 시선으 로 그의 얼굴을 주시하다가 이윽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물론이예요. 당신만 원한다면 나는 틀림없이 당신을 내일의 영웅대회에 참 석할 수 있도록 해드리겠어요. 하지만 당신은 정말로 우리와 함께 그 대회 에 참석하게 되기를 바란다는 말인가요?" 황약화의 그러한 질문은 생각해 보건대 화검운이 그녀에게서 들었던 말 가 운데에서 비교적 가장 내용이 진지해 보이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화검운은 그 말에 다소 미소를 떠올리며 대답했다. "그렇소. 설마하니 내가 장난삼아 당신에게 그러한 부탁을 하겠소? 만일 당 신이 정말로 그 약속을 지켜주기만 한다면 내가 나중에 따로 사례를 하도록 하겠소." 황약화는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일로 나에게 사례(謝禮)를 할 필요는 없어요." 화검운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가 이윽고 다시 말을 받 았다. "사례를 받고 받지 않고는 지금부터 미리 결정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소? 나중에 내가 당신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게 될지도 모르는 것이니. 아무 튼 나는 그렇다면 아예 오늘밤부터 당신들과 함께 행동하도록 하는 것이 좋 겠군." (……?) 황약화는 이 화검운이 다소 의미 깊은 듯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보고는 왠지 특별히 기이한 느낌이 드는 것 같아서 잠시 거기에 관해서 곰곰히 생각에 잠겼으나, 이때 어느새 일행의 눈앞에 장안성(長安城)의 낡은 성곽의 모습 이 나타나기 시작했기 때문에 부득이 그녀는 생각을 중지하고 일행과 함께 서서히 신법의 속도를 늦추면서 성 안으로 걸어 들어가기 시작하는 데 주의 를 기울여야 했다. 대체로 일반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는 되도록 무공절기(武功絶技)들을 드러 내지 않는 것이 강호상의 불문율(不文律)이자 금기사항(禁忌事項) 중의 하 나였는데, 그것은 일단 그렇데 일반인들에게 함부로 묵오절기들을 드러내게 되면 이내 귀찮은 일을 당하게 되기가 일쑤인 데다가 심지어 더러는 아주 난처하고 복잡한 사건(事件)에 휘말리게 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가 있었다. 어둑어둑한 들판을 가로질러 올 때에는 시각이 이미 한밤중이 된 것으로 짐 작하고 있었는데, 마치 불야성(不夜城)을 방불케 하는 장안성 내의 무수한 번화가의 불빛들과 그 사이를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들을 보고는 일 행은 그제서야 아직 시각이 초저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가 있었 다. 일행은 일단 성 밖에서 신법을 펼치는 것을 중단하고 일반인들처럼 그 무리 들에 섞여서 천천히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는데, 여기까지는 외견 상으로 화검운의 인도를 받아서 왔다고 할 수가 있었지만, 그렇게 일단 성 안으로 들어선 이후에는 일행은 당옥 등의 본격적인 주도하에 나아가기 시 작하고 있었다. 화검운과 그의 시종들인 용아와 봉아는 일행의 뒤쪽에 약간 쳐져서 묵묵히 그녀들의 뒤를 따르기 시작하고 있었는데, 보아하니 선두에 서서 일행의 길 을 인도하고 있는 당옥 등은 가장 찾기가 쉽고 드넓은 번화한 대로(大路)만 을 찾아서 나아가고 있는 것 같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윽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녀들은 이 장안성 내의 번화가 중에서도 가장 중심지에 위치하고 있다고 할 수가 있는 하나의 호화로운 누각(樓閣)을 찾아내더니 곧장 그 안 으로 일행을 인도하는 것이었다. 안향반점(安香飯店)이라는 이름이 거대한 정문 위의 현판에 새겨져 있는 그 누각은 모두 삼층으로 되어 있었고, 앞쪽의 일층건물은 주루 겸 반점으로 사용되고 있고, 나머지 건물들은 모두 객점(客店)으로 사용되고 있는 모양 이었는데, 당옥 등이 들어간 곳은 바로 그 주루 겸 반점으로 사용되고 있는 호화로운 장식들이 휘황하게 번쩍이는 앞쪽의 일층건물이었다. 이러한 호화로운 반점들은 비록 그 내부가 그다지 넓은 곳은 아니지만 분위 기가 화려한 만큼 일반적으로 음식값들이 아주 비싸기 마련이었다. 화검운은 이 당옥 등의 여자들이 화려한 것을 선호하여 일부러 그와 같은 곳을 택해서 일행을 인도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가 있는 일이었지만, 그러나 기실 여기까지 오면서도 많은 호화로운 반점이나 객점들을 보고 그냥 지나 쳤으면서도 유독 그 반점을 보자마자즉시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미루어 보 아하니 아마도 그녀들은 사전에 이 안향객점에서 머물기로 계획이 되어 있 었던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어서 오십시오, 손님 여러분! 무엇을 원하십니까? 식사를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객실(客室)에서 주무실 것입니까?" 무려 여덟 아홉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반점의 내부로 들어서자 그 입구에서 의복을 깨끗하게 차려입고 대기하고 있던 점원 청년 하나가 일행 을 보더니 정중히 인사를 하며 그렇게 질문을 던졌다. 이런 고급스러운 반 점에서는 일개 점원들조차 이토록 예절 교육이 잘 되어 있는 상태인 모양이 었다. 일단 그렇게 정중한 대접을 받는 것이야 손님으로서 나쁠 것이 없겠지만, 점원이 앞에서 인도하려고 하자 당옥은 손을 가볍게 내저으며 그것을 물리 쳤다. "아니예요. 우리는 이미 모든 예약이 되어 있는 상태이고, 또한 미리 약속 이 되어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거예요." 그 말쑥하게 차려입은 점원 청년은 이 일행 가운데의 사람들이 대부분 지극 히 아름다운 미모의 소녀(少女)들이었기 때문에 절로 그녀들을 상대해 보고 싶은 미련이 남는 듯한 눈치였으나, 이내 그녀들의 시선에서 실로 감당하기 어려운 기운(氣運)들이 발산되고 있는 것을 보고는 문득 범상치 않은 사람 들이라고 느꼈는지 순순히 공손하게 뒤로 물러서 주고 말았다. 과연 아니나 다를까, 일행이 다시 당옥 등의 인도에 의해 반점의 내부로 들 어서서 호화롭게 장식된 간막이를 몇 번 돌아 들어가자 조용하면서도 우아 한 분위가 감도는 구석진 곳에 위치한 화려하고 넓은 탁자가 있는 쪽에서 느닷없이 손을 쳐들고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나타나는 것이었다. "이쪽이오, 당 소저(唐小姐)! 남궁 소저(南宮小姐)! 아! 황 소저(黃小姐)께 서도 함께 오셨구려! 모두 어서들 오시오!" 지금 그 화려하고 넓은 탁자의 한쪽편에는 모두 네 명의 영기발랄하고 준수 해 보이는 청년들이 자리하고 있다가 일행이 다가가는 것을 보고 저마다 신 형을 일으키고 있었는데, 일행 가운데의 당옥 등의 소녀들도 일순 그들을 보게 되자 저마다 크게 반색하는 표정을 하며 빠르게 다가가는 것이었다. "남궁소협(南宮少俠)! 팽소협(彭少俠)! 당신들은 과연 정확하게 약속을 지 키셨군요. 그래 우리가 조금 늦게 오지는 않았나요?" 그 네 명의 영기발랄하고 준수해 보이는 청년들은 하나는 체격이 다소 가늘 고 호리호리한 편이며, 또 하나는 체격이 후리후리하고 아주 준수한 외모를 지니고 있는 사람이고, 또 다른 한 사람은 체격이 단단하고 우람하며 피부 가 거뭇한 편이며, 마지막의 한 사람은 다소 준수한 외모에 기이하게도 오 른손이 특별히 커서 왼손의 두 배는 될 듯한 모습이었는데, 기실 조금 전에 일행을 향해 먼저 입을 열어 소리쳤던 사람은 그 세 번째의 사람인 체격이 단단하고 우람하며 피부 색깔이 거뭇한 흑의청년(黑衣靑年)으로서, 당옥이 먼저 다가가서 그들을 향해 입을 열자 이내 다시 입을 열어 호쾌해 보이는 태도로 대꾸했다. "비록 시간이 다소 늦어지기는 했지만 그거야 중요한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 인 것이므로 무슨 상관이 있겠소? 당 소저, 우리는 그렇지 앟아도 이미 객 방을 예약해 두고 또한 조금 전에 식사까지 주문해 놓았으니 걱정하지 마시 오!" 그 흑의청년의 나이는 대략 스물다섯 정도로 보였는데, 얼굴은 다소 우락부 락한 인상이었으나 호쾌한 기질(氣質)로 젊은이다운 패기(覇氣)를 느낄 수 가 있게 했고, 다가온 일행에 대해서 상당히 호의적(好意的)인 태도를 보이 고 있는 것 같았으나, 이때 오히려 당옥은 은근히 그의 시선을 피하고 그의 맞은편에 일어나 서 있는 두 번째의 청년인 체격이 후리후리하고 아주 준수 한 외모를 지니고 있는 청삼청년(靑衫靑年)을 주시하고 있는 듯했다. "정말로 수고가 많으셨어요. 그래 당신들은 혹시 이곳으로 오는 도중에 다 른 일들은 겪지 않으셨나요?" 그 청삼청년은 그 네 명의 청년들 가운데에서 가장 용모가 준수할 뿐만 아 니라 두 눈에는 맑은 정기(正氣)가 어려 있어서 수련한 공력(功力)이 심후 하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게 했고, 또한 등뒤에는 푸른 수실이 달려 있는 한 자루의 장검을 매고 있어서 그가 검법을 연마한 사람이라는 것을 파악할 수 있게 하는 것 같았다. 청삼청년은 일단 그 당옥뿐만 아니라 다가온 일행의 대부분의 시선이 자신 에게 쏠려 있는 것을 느끼게 되자 먼저 황약화를 향해 포권을 해보이며 인 사를 한 뒤에 그 준수한 얼굴에 은근한 미소를 떠올리며 천천히 입을 열어 말했다. "우리는 이곳으로 오는 도중에 별다른 일은 겪지 않았소이다. 그러나 다만 강호의 한 분 젊은 영웅(英雄)과 사귀게 되어 지금 이 자리에 동석하게 되 었는데, 원하신다면 여러분께 이분 젊은 영웅을 소개해 드리겠소이다." 청삼청년은 말이 끝나자마자 은근히 시선을 들어 자신의 옆에 서 있는 그 첫 번째의 체격이 다소 가늘고 호리호리하게 생긴 마의청년(麻衣靑年)을 가 리켰는데, 이제 보니 그 마의청년의 의복이 여기저기 기운 흔적이 심히 많 은 것을 보고 문득 남궁전이 입을 열어 친근한 어조로 그 청삼청년에게 물 었다. "대체 저분은 어떤 분이시죠? 오라버니, 어서 가르쳐 주세요!" 이때 하검운과 함께 일행의 뒤쪽에 서서 그러한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용아 와 봉아는 이 순간 청삼청년을 바라보는 남궁전의 안색에 지극히 자랑스럽 고도 득의양양해 하는 기색(氣色)이 서려 있을 뿐만 아니라 친근하고도 익 숙하게 그를 향해 오라버니라고 부르고 있는 것으로 보아 필시 그 두 사람 은 친오누이간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어 그녀가 지나치게 자신의 친 오라버니를 내세우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는 것을 보고는 실로 그녀가 용모 에 비해서 다소 사려깊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그 청삼청년은 남궁전의 말에 입가에 다소 미소를 떠올리는가 싶더니 이윽 고 한쪽에 서 있는 황약화의 시선을 은근히 의식하며 이렇게 말했다. "좋소. 그렇다면 내 가르쳐 드리리다. 이분은 다름이 아니라 바로…… 당금 의 개방( 幇) 총순찰(總巡察)이신 전의방(全義方) 전소협이시오." 청삼청년은 그 호리호리한 마의청년을 보다 강조하여 소개하기 위해 말을 하는 중간에 다소 뜸을 들이기까지 했는데, 그 말을 들은 당옥이나 제갈소 홍 등은 과연 일순 그 마의청년의 용모를 재삼 살피며 상당히 놀랍다는 표 정을 했다. 청삼청년은 사람들의 놀라는 모습을 대강 살피다가 이번에는 고개를 돌려 그 마의청년을 향해 담담히 웃으며 입을 열어 말했다. "전형(全兄)! 개방은 바로 강호상의 소식통이라고 할 수가 있기 때문에 여 기에 계신 몇 분들에 대해서 거의 알고 계시리라 믿고 있소. 자, 이제는 전 형께서 직접 본인을 소개해야 하는 것이 아니오?" 그 마의청년은 나이가 이제 스물일곱 정도로서 청삼청년보다도 대략 서너살 이나 나이가 많아서 그 네 명의 청년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노숙해 보였는 데, 이윽고 청삼청년의 그와 같은 말을 듣고 나자 그때까지 그저 묵묵히 서 있던 태도를 고치고는 다소 어색한 듯이 웃으며 이렇게 입을 열어 말했다. "예로부터 사내녀석이 스스로 명성(名聲)을 얻지 못하고 부모의 덕을 본다 는 것은 가장 사내답지 못한 짓이라고 했는데, 그러나 나는 기실 별다른 명 성을 얻은 것도 없으니 부득이 여러분에게 부친의 덕을 보겠다고 고백해야 하겠소이다. 방금 남궁(南宮)아우가 말했던 대목도 틀리는 말은 아니나 기 실은 이렇게 소개해야 보다 정확할 것이오. 하하, 이 전의방은 부친이신 개 방 방주(幇主) 무영개(無影 ) 전백승(全百勝) 대협의 덕을 보고 총순찰이 라는 직위(職位)에 올라 있는 사람이외다." 전의방이라는 마의청년의 자기 소개는 일면 자괴의식이 있어서 다소 비꼬는 듯한 면이 있는 것 같았으나, 오히려 그것으로 인해 더욱 시원스럽게 해학 (諧謔)스러운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기실 화검운의 좌우에서 이러한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용아와 봉아는 아까 청삼청년이 소개를 했을 때는 미처 개방의 총순찰이라는 직책의 의미(意味) 를 파악하지 못해서 그게 대체 뭐가 그리 놀라운 것인가 하고 의아해하고 있었는데, 지금 막상 당사자의 얘기를 듣고 나서 그전의방이 바로 당금 개 방 방주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고는 과연 당옥 등이 상당히 놀랄 만하다고 느끼게 되었다. 그들은 비록 하나같이 무림세가의 자녀들이지만 개방 방주 의 아들이라는 전의방이라는 사람의 신분도 따지고 보면 그에 결코 못하지 는 않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간단하게 전의방이라는 마의청년의 자기 소개가 끝나고 나자 청삼청 년은 다시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나서더니 문득 뒤쪽에 서 있는 화검운 등 의 일행을 향해 가볍게 눈길을 던지고는 당옥을 바라보며 입을 열어 말했 다. "자, 우리 편의 소개는 대강 이렇게 마친 것 같은데, 보아하니 그쪽에는 우 리가 아직 보지 못하던 분들이 계시는 것 같군요. 당 소저께서 그들을 우리 에게 소개시켜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당옥은 이내 화검운 등의 일행을 가리키는 말임을 알아차리고는 자신을 선 택하여 질문해 준 청삼청년에게 내심으로 기뻐하며 즉시 손짓으로 뒤의 화 검운 일행을 가리키며 대답해 주었다. "그 화검운(花劍雲), 화공자는 원래 이곳 장안성 내에서 살고 계시는 분인 데, 당금 종남파 장문인의 당숙(堂叔)이 되시는 관계로 해서 얼마 전에 우 리와 함께 동행하게 되었던 것이예요. 우리의 황 소저께서는 그에게 내일의 영웅대회에 함께 참석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이미 약속을 하셨지요." (……!) 그 청삼청년 등은 처음에는 뒤에 서 있는 화검운 등을 그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지나가는 말로 물어본 것뿐이었는데, 느닷없이 어처구니가 없게도 그가 현재의 종남파 장문인의 당숙이며 또한 황약화가 내일의 영웅대회에 함께 참석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했다는 말을 듣고는 하나같이 매우 놀라며 기이하게 생각했다. "아! 알고보니 원래 화공자(花公子)이셨구려. 이거 몰라뵈서 죄송합니다." 당옥은 기실 상대방의 기분을 생각해서 일부러 화검운의 무공이 상당히 높 다는 것을 거론하지 않았던 것이었는데, 청삼청년은 비록 겉으로는 태연하 게 말을 받아 화검운을 향해 말하고 있었지만 대체 그엑 무슨 능력이 있는 것일까 하고 내심으로 생각을 굴리고 있었다. 화검운은 이때 거의 무관심한 표정으로 청삼청년 등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가 문득 자신을 향해 그렇게 포권하며 말하는 것을 보고는 이윽고 얼굴에 가벼운 미소를 떠올리며 마주 포권하며 대꾸했다. "천만의 말씀이오. 나는 아직 귀하들을 알지 못하고 있는데, 귀하들이라고 해서 반드시 나를 알고 있어야 한다는 법이 있을 수가 있겠소?" 청삼청년은 그렇지 않아도 상대방을 내심으로 기이하게 생각하고 있던 상태 였는데 오히려 상대방으로부터 문득 그와 같은 대꾸를 듣고는 다소 어리둥 절한 표정을 지었다. (……?) 이것을 보고 한쪽에서 서서 이제까지 묵묵히 있던 제갈소홍이 나서서 화검 운에게 그 나머지 세 명의 청년들의 신상내력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화공자께서는 정말로 아직 이분들에 대해서 모르시는군요. 저기에 계신 저 분은 바로 남궁언니의 친오빠이신 남궁일비(南宮一飛), 남궁소협이시고, 그 리고 그 옆에 계시는 검은 옷을 입으신 분은 역시 무림오대세가(武林五大世 家)의 하나인 하북팽가(河北彭哥)의 자제분이신 팽걸(彭傑), 팽소협이시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팽소협의 옆에 계시는 분은 역시 마찬가지로 무림오대세 가의 하나인 산동(山東) 황보세가(皇甫世家)의 자제분이신 황보뢰(皇甫雷), 황보소협이세요. 당신은 이제 모두 아셨나요?" 제갈소홍의 설명에 의하면 과연 예상했던 대로 그 청삼청년은 남궁세가의 자제인 동시에 남궁전의 친오라비인 남궁일비(南宮一飛)라는 것이었고, 아 까 가장 먼저 입을 열어 말을 꺼냈었던 체구가 우람해 보이고 단단해 보이 는 거뭇한 피부 색깔의 흑의청년은 하북팽가의 자제인 팽걸(彭傑), 그리고 남은 마지막 한 사람인 오른손이 특별히 커서 왼손의 거의 두 배는 될 것 같은 준수한 외모의 스물한 살 정도의 나이의 청년은 황보세가의 자제인 황 보뢰(皇甫雷)라는 것이었는데, 그러니까 알고보니 그 세 명의 청년들은 당 옥, 제갈소홍 등과 마찬가지로 하나같이 무림오대세가라는명문세가(名門世 家)의 자제들이었던 것이었다. 일행 가운데에서 악산산이나 전의방과 같은 사람들이 더러 끼어 있기는 하 지만 원래 구파일방(九派一幇)과 마찬가지로 무림오대세가(武林五大世家)의 사람들은 서로 단합이 잘 되어 있는 것으로 유명했기 때문에 이들 무림오대 세가의 자제들이 서로 함께 어울리는 것은 실로 당연한 일이라고 말할 수가 있었다. 아마도 다시 생각해 보니 이 당옥 등의 소녀들은 일단 장안성 내에 들어와 서 황약화와 종남파에 들러서 영웅첩을 전달하는 등의 일을 마친 다음에 이 들 남궁일비 등과 이곳 안향객점에서 합류하기로 미리 약속하고 있었던 모 양이었다. 화검운은 다소 흥미있는 듯한 표정으로 잠자코 제갈소홍의 설명을 모두 듣 고 나더니 이윽고 얼굴에 담담한 미소를 떠올리며 대답했다. "이제 나는 어느 정도 알 듯하오. 하지만 여러분들이 모이는 자리에 우리와 같은 불청객(不請客)들이 이렇게 끼어들어도 될지 모르겠구려." 청삼청년 남궁일비는 지금 그래도 장내의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화검운의 말을 듣고는 비록 귀에 거슬리 는 부분이 없지 않지만 어색해진 장내의 분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안면에 다 시 웃음을 띄우며 재차 입을 열어 말했다. "물론이오. 자, 여러분! 이제 대강의 수인사가 끝난 것 같으니 모두 함께 자리에 앉아서 식사부터 하도록 하십시다! 음, 마침 저기에 음식들을 가지 고 오는군." 양쪽에 전의방이나 화검운과 같은 사람들이 섞여 있어서 그런지 다소 어색 하게 긴장되었던 장내의 분위기를 의식하고 있었던 사람들은 남궁일비의 말 에 따라 그쪽을 바라보게 되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서너 명의 점원들이 각 기 양손에 음식 그릇들을 들고 탁자 앞으로 빠르게 다가와서는 이윽고 비어 있는 탁자 위에 부지런히 그 음식 그릇들을 내려놓기 시작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에 따라서 남궁일비의 말대로 자연스럽게 탁자의 주위에 둘러앉 게 되었고, 그로 인해서 약간 경직되었던 장내의 분위기는 상당히 부드럽게 풀려가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 계속 -- #5741 양한우 (hanwoo71) [백상] 종남사부 제2권 제11장 03/24 10:32 300 line 올 린 이 : 양한우 HITEL ID : hanwoo71 제11장. 모순(矛盾) 미리 주의를 기울여서 주문했기 때문인지 점원들이 가져다 차려놓는 음식들 의 양은 충분했고 또한 그 맛도 하나같이 훌륭한 것들이었다. 의식적(意識的)인지는 몰라도 당지상은 일단 남궁일비 등에게 다가가서 반 가운 표정으로 인사를 나눈 이후에 그들의 옆에 착석하여 남자들끼리 한 곳 에 모여서 자리하게 되었는데, 화검운은 비교적 그들과 멀리 떨어져서 좌우 에 용아와 봉아를 대동하고 앉게 되었으므로 자연히 악산산 등의 여자들과 도 가깝게 자리하게 되었다. 그의 오른쪽인 용아의 옆에는 황약화와 당옥이 자리하게 되었고, 왼쪽인 봉아의 옆에는 제갈소홍과 악산산, 그리고 남궁전 이 차례로 자리하게 되었다. 비록 조금 전에는 장내의 분위기가 다소 경직된 느낌이 없지 않았으나 지금 이 실내의 풍경이 워낙에 화려하고 우아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는 데다가 거기에 다시 훌륭하고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이 탁자 위에 가득하게 놓이게 되자 그만 그 다소 경직된 듯하던 장내의 분위기는 어느 사이엔가 부드럽게 풀려 버리게 되었고, 남자들은 남자들끼리 소녀들은 소녀들끼리 서로 은밀 하게 전음(傳音)의 수법을 교환하거나 아니면 나직한 음성으로 가만가만 얘 기를 나누곤 하면서 음식들을 들기 시작하여 그런 대로 조용한 가운데 시간 이 흘러가기 시작하고 있었다. 당옥 등의 소녀들은 어느 정도 남자들과 얘기를 나누어 보고 싶은 눈치를 드러내고 있었으나, 아무리 강호의 여인(女人)들이라고 해도 어쨌든 여자는 조신(操身)한 품성을 중요하게 평가한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인지 거의 묵묵 히 정숙한 자세로 음식들만 들고 있었다. 이리저리 전음입밀(傳音入密)의 수법을교환하고 혹은 귓속말을 주고받으며 얘기를 나누는 쪽은 대체로 남자들인 남궁일비 등뿐이라고 할 수가 있었는 데, 이윽고 잠시의 시간이 흘러서 당지상으로부터 그간의 사정 얘기와 화검 운 등에 관한 얘기를 자세하게 듣고 상황 파악을 확실하게 했기 때문인지 남궁일비가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를 중단하고 고개를 들어서 황약화를 향해 입을 열어 말했다. "황 소저께서 이번에 무사히 영웅첩을 전달하는 일을 마치셨다니 그것은 축 하해야 할 일이겠군요. 그런데 정말로 이번의 영웅대회에는 백의맹의 맹주 (盟主)이신 백노가주(白老家主)께서도 오시는 것입니까?" 황약화는 탁자 위에 차려져 있는 온갖 기름진 음식들을 마다하고 그저 소박 해 보이는 몇 가지의 음식들을 젓가락으로 조금씩 집어먹고 있다가 그러한 질문을 받고는 고개를 들어 남궁일비를 바라보며 조용한 음성으로 대꾸했 다. "이번의 영웅대회에 그분께서 처음부터 참석하실지 그것은 알 수가 없지만 어쨌든 이번의 사태가 중대한 만큼 반드시 그분이 나타나시게 되는 것은 틀 림이 없을 것 같아요." 당지상이 옆에서 그 얘기를 듣고 뭔가 생각하는 듯하다가 이윽고 황약화를 바라보며 미소띤 얼굴로 입을 열어 말을 받았다. "백무심(白武心), 백노가주는 그야말로 당금의 천하대세(天下大勢)를 이끌 고 계시고, 또한 그분께서 지니신 일신의 무학의 경지가 가히 신선(神仙)이 나 다름이 없는 위치에 도달해 계신다고 하니, 그야말로 전에도 없고 앞으 로도 나타나지 않을 일세(一世)의 대무성(大武聖)이라고 해야 하지 않겠습 니까? 하하, 비록 근래에 이곳 장안성에 나타날 것이라고 하는 무림삼보(武 林三寶)라는 것이 그토록 대단한 것이라고 해도 정말로 따지다면 그분 백노 가주의 그 위대(偉大)한 능력과 비교할 수가 없을 것이며, 만일 이곳에서 무림삼보를 전혀 구경도 해보지 못하게 된다고 해도 정말로 백노가주의 용 안(龍顔)이라도 한 번 보게 되면 그것으로 진정 가치가 있는 것이며, 이곳 으로 먼 길을 온 것이 전혀 헛걸음을 한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깊은 의미를 남기게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당지상의 그러한 말은 기실 이 황약화가 이곳에 있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욱 깊이 백의맹에 관련되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은근히 백의맹주를 추켜올리 는 말로써 우회적으로 그녀에게 아부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었는 데, 이 순간에 악산산은 다소 멍한 표정을 짓고 다른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 하고 있는 듯한 표정이었고, 제갈소홍은 거의 무심(無心)한 듯한 표정이었 고, 당옥과 남궁전은 당지상의 그 말에 은근히 얼굴에 미소를 떠올리고 있 는 반면에, 용아와 봉아는 그저 그 지겨운 아부하는 소리를 듣게 되자 도저 히 듣지 못하겠다는 듯이 다소 눈살을 찌푸리며 인상들을 쓰고 있었다. 당 지상의 조금 전의 그러한 행동들과 지금의 그러한 말 등은 이제까지 감추고 있었던 그의 비열한 생리(生理)를 여실하게 드러내 준 것이라고 할 수가 있 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인 황약화 그녀는 당지상의 그러한 구역질이 날 정도의 심 한 아부의 말을 듣고도 마치 전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담담하게 웃으며 이렇게 대꾸하는 것이었다. "백노가주께서도 대단히 훌륭하신 분이라고 할 수가 있지만, 기실은 이번의 사태야말로 그에 못지 않게 중대한 것이라고 할 수가 있어요. 우리는 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지만 이번에는 아주 많은 희생자가 나타날 가능성 이 있기 때문에 강호의 동도(同道) 여러분들은 하나같이 자신들의 신변의 안전에 주력(注力)해야 할 거예요." 황약화의 그러한 말은 비록 그다지 힘이 들어 있지 않고 조용하게 울려나온 것이었지만 누구의 말보다도 더욱 강한 설득력(說得力)을 지니고 있는 것인 듯했다. 한 차례의 열띤 말로써 다소나마 칭찬을 말을 들을 줄 알고 있었던 당지상 은 그만 다소 무안해지는 기색이 되었고, 남궁일비가 다시 입을 열어서 황 약화에게 말했다. "하지만 비록 그 흑풍사(黑風社)의 놈들이 대단히 강하기는 하지만 우리 백 의맹의 천룡무가(天龍武家)와 검총(劍塚), 도막(刀幕), 성수곡(聖手谷), 그 리고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등의 전통적인 세력(勢力)들이 이번에 하나로 힘 을 합쳐서 대항하게 된다면 가히 그 사악(邪惡)한 놈들을 일거에 물리쳐 버 리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남궁일비의 어조에 제법 의연(毅然)하고 강인한 기색이 서려 있는 것을 보 고는 황약화는 다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그렇게 된다면 좋겠지요. 이번에 우리가 각처에 영웅첩을 돌리게 된 목적이 바로 그러한 데에 있다고 할 수가 있을 테니까요." 이때 주위의 분위기가 다시 약간 무겁게 변해가기 시작하는 것을 느끼고는 흑의청년 팽걸이 다시 입을 열어 혼자서 생각에 잠겨서 식사만 하고 있는 악산산을 바라보며 말했다. "참! 저 악 소저(岳小姐)는 보아하니 아까부터 계속해서 아무런 말도 없이 앉아만 계시는데, 혹시 무슨 고민이라도 있으신 것 아니오?" 악산산은 한동안 망연히 생각에만 잠겨 있다가 느닷없이 자신의 얘기가 좌 중에 튀어나오게 되자 일순 흠칫 놀란 기색이 되어 고개를 들었다. 아까부터 입을 열고 싶어했던 당옥이 그것을 보자 놓칠세라 즉시 입을 열어 악산산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그녀에게 달리 무슨 고민이 있겠어요? 그녀는 이제 마악 방심(芳心)이 뛰 기 시작한 처녀(處女)의 몸이니 멋진 님을 연모(戀慕)하는 것 이외에 달리 무슨 고민이 있겠어요?" 악산산의 얼굴은 자연히 붉어지게 되었는데 미처 그녀가 입을 열기도 전에 팽걸이 다소 놀랍다는 듯이 다시 입을 열어 물었다. "아니, 악 소저에게 이미 사랑하는 분이라도 생겼다는 말이오?" 당옥은 다소 싸늘한 표정이 되어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 사랑하는 사람도 없이 혼자서 사랑에 빠질 수는 없는 일이 아니겠어 요? 그녀에게 생긴 그 사랑하는 사람은 비단 용모도 지극히 준수(俊秀)할 뿐만 아니라 그 능력도 뛰어나기 짝이 없는 사람이라구요." 악산산은 이내 당옥의 의도를 파악하고 얼굴이 더욱 붉어지게 되었는데, 팽 걸은 이에 마치 어리숙한 척하고 틈을 주지 않고 다시 입을 열어 질문했다. "그 훌륭한 사람이 대체 누구라는 말이오?" 당옥은 은근히 안색이 시뻘겋게 상기되어 있는 악산산을 옆눈으로 슬그머니 건너다보며 대답했다. "종남사부(終南師父)라는 사람이죠. 실로 그 이외에 그녀의 마음에 드는 남 자가 있을수가 있겠어요?" (……!) 악산산은 비록 얼마 전부터 당옥과 자신의 사이가 좋지 않게 되었다고는 하 나 실로 그녀가 지금과 같은 자리에서 악랄하게도 자신을 향해 그와 같은 비웃음이 담긴 독설(毒舌)을 퍼부을 줄 몰랐었기 때문에 일순간 크게 어처 구니가 없는 심정(心情)이 되었다. 대체 무슨 목적으로 당옥이 불현듯 그와 같은 얘기를 꺼내게 되었는지 그것 은 알 수가 없는 일이었지만, 그러나 생각같아서는 당장에라도 몸을 일으켜 서 이 철면피(鐵面皮)하고 음흉(陰兇)한 위선(僞善)의 가면(假面)을 쓰고 있는 남녀들의 따귀를 올려붙여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는 자신의 편이 될 사람들은 매우 적고 당옥의 편이 될 같은 무림세가의 사람들은 많이 자리하고 있는 데다가, 스스로 당옥의 무예를 당할 수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그저 안색만 새빨 갛게 붉힌 채 주저하며 차마 입을 열거나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었다. 원래 이 남녀간의 애정(愛情) 문제에 있어서 함부로 다른 여자에 관해서 그 와 같은 얘기를 늘어놓는 것은 거의 있을 수가 없는 커다란 실례임에도 오 히려 그들이 철면피하게도 태연하게 그러한 대화를 주고받자 피해를 보고 있는 당사자는 도리어 기가 막혀서 말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그저 거기까지만 해도 그런 대로 괜찮을 것이었는데, 게다가 잠시 후에 팽걸은 은근히 눈길을 돌려 장내의 분위기를 살피며 다시 입을 열어 당옥에게 묻는 것이었다. "종남사부라…… 나도 실은 그 얘기를 들은 적이 있기는 하지만, 대체 그 종남사부라는 사람이 그렇게도 대단하다는 말이오? 그의 이름은 뭐고 또한 그의 출신내력(出身來歷)은 어떻게 된다고 하오?" 당옥은 이에 문득 깜짝 놀란 듯이 손뼉을 치며 대꾸했다. "아! 그러고 보니 우리가 미처 그의 이름을 물어보는 것을 잊고 있었군요. 정말 어처구니가 없게도 우리는 그의 모든 것이 지나치게 신비에 가려져 있 는 바람에 어느 것을 물어야 할지 허둥대다가 그만 아무 것도 알아내지 못 하고 돌아오고 말았지요." 팽걸은 음침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수긍의 뜻을 표했다. "매우 현명하신 당 소저께서도 어쩔 수가 없으셨다니 그렇다면 그 종남사부 라는 위인(偉人)이 꽤나 신비로운 척하는 것은 사실인 모양이군요. 내가 알 기로는 실로 그렇게 유난히 신비로운 척하는 사람들은 기실 속알맹이가 보 잘것이 없다고 하던데……. 하지만 악 소저께서 이미 그에게 그토록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시는 것이라면 그에 대해서 보다 확실하게 알고 계실 것이 아닙니까?" 팽걸은 말을 마치고 나서 이어 예의 그 음침하고 기이한 시선을 돌려 악산 산을 바라보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틀림이 없이 악산산에게 어떤 나름대로 의 행명이 있기를 바란다는 추궁과도 비슷한 강압적인 시선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악산산은 이때 결코 팽걸의은근한 수작에 휘말려 들어가서 대답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지만, 그러나 스스로 심하게 안색이 붉어져서 안절부절못 하고 있었는데, 그것으로 인해서 약간 산만해졌던 주위의 분위기가 다소 긴 장되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는 문득 제갈소홍이 귀찮다는 듯이 고개를 옆으 로 돌려서 나직한 음성으로 화검운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 "화공자! 아까 당신은 그 종남파의 입구에서 우리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 을 어떻게 알고 그렇게 때 맞추어 나타났었던 것이었죠? 그것은 혹시 그 중 년검사가 안으로 들어가 당신에게 그렇게 알려 주었기 때문에 그럴 수가 있 었던 것이었나요?" 제갈소홍은 처음에는 거의 경황이 없어서 아까 화검운이 공교롭게도 시기적 절하게 나타났던 것을 단지 기이하게만 여기고 있다가 문득 그 전에 중년검 사가 안으로 들어갔었던 것을 상기해 내고는 거기에는 그와 같은 까닭이 있 었을 것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해 보고 있는 상태였던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화검운은 예의 그 버릇처럼 마음놓고 입 속에 음식들을 계 속해서 집어넣고 두 볼을 실룩거리며 요란스럽게 씹고 있다가 그저 아무렇 지도 않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불분명한 어조로 이렇게 대꾸했다. "물론이오. 나에게 무슨 특별히 다른 재주가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 당연히 그 사람의 전갈을 듣고 나서 서둘러서 종남파를 나오게 되었지. 음, 그러니 까……" 화검운은 입 속에 음식물들이 잔뜩 들어 있어서 말하기가 불편한 듯이 우물 거리다가 이내 그것들을 한꺼번에 꿀꺽 하고 삼켜 버리고는 이번에는 다소 분명한 어조로 말을 계속해서 이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의 말을 들어보니 자기는 무슨 당신들에게 앞으로 내가 나올 것이니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말을 하고 오려다가 혹시 나의 의도를 알 수가 없어서 그만두고 그냥 돌아왔었다고 하더군. 나는 그때 예의 그 멍 청한 조카녀석과 마주 앉아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 멍청한 조카녀석 은 기실 능력은 별볼일이 없어도 재산은 상당히 많은 편이었는데, 내가 일 단 말을 꺼내자마자 즉시 두둑하게 선심(善心)을 썼지요. 하지만 그것도 사 실 속셈이 있는 것이어서 금새 나에게 달라붙어서 무공초식(武功招式) 하나 를 가르쳐 달라고 계속해서 졸라대는 것을, 하하, 나는 다행히도 당신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전갈을 듣고서 핑계삼아 빠져나올 수가 있었던 것 이오." (……?) 제갈소홍은 이 화검운의 다른 얘기들은 대부분이 황당해 보이고 또한 믿기 지 않으며 관심조차 가지 않았지만, 그러나 비로소 역시 자신의 예측대로 이 기이한 서생이 무슨 특이한 재간이 있어서 공교롭게 나타났던 것이 아니 라 그러한 이유가 있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게 되었으며, 그것으로 하나 의 의문이 해결되어 만족한 기분이 되었다. 하지만 하나의 의문을 해결하고 나자 이내 다른 의문이 머릿속에서 생겨나 기 시작하는 것을 알고는 다소 기이한 표정으로 그의 얼굴을 살피며 다시 질문했다. "그러나 당신은 전에 스스로도 종남사부를 만나보고 싶다고 말했으면서도 어째서 정작 우리가 그 사람을 만나러 갔을 때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죠? 만 일 당신이 의문을 정말로 느끼고 있었다면 하다 못해 당신의 그 조카분에게 질문을 해서라도 능히 알 수가 있었을 것인데. 그렇다면 혹시 당신은 미리 부터 그 종남사부에 대해서 알고 있었으면서도 우리에게 시치미를 떼고 있 었던 것이 아닌가요? 당신이 종남파의 장문인과 그렇게 친한 사이라면서 아 직도 그 종남사부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것은 모순이 되는 말이 아닌가 요?" (……!) 느닷없이 제갈소홍이 그처럼 신랄하게 화검운을 향해 질문공세를 퍼부어 대 자 그 옆에 앉아 있던 용아와 봉아의 표정이 어리둥정해졌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거의 흐트러지지 않은 자세로 조용히 식사를 계속하고 있었던 황약 화마저도 다소 의아한 시선이 되어서 제갈소홍과 화검운을 번갈아 바라보게 되었다. 물론 제갈소홍을 바라보는 것은 그녀의 착상이 예리하다는 것을 감 탄하는 것이고, 다시 화검운을 향해 시선을 던지는 것은 제갈소홍의 질문에 대한 그의 대답을 들어보려는 의도인 것이었다. 그러나 다소 강한 의문과 기대감으로 인해 은근히 마음이 긴장되기까지 하 고 있는 그녀들의 예상과는 달리 이어지는 화검운의 표정은 여전히 천연덕 스러울 뿐만 아니라 그의 대답 역시 크게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모순(矛盾)? 모순이라고? 이상한 일이로군. 어째서 그것이 모순이라고 하 는 것일까? 내가 간혹 약간의 편의를 위해서 행동하는 면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엇 때문에 그러한 일에 대해서 당신들을 속이고 거짓위장 을 하겠소? 실로 모르면 모르는 것이고, 알면 아는 것이 아니겠소? 나는 그 때 마침 조카가 선심을 쓰고 있는 것을 받아들이느라고 미처 몸을 뺄 수가 없었던 것이며, 또한 나중에는 조카가 워낙에 무공초식에 관해서 이것저것 을 물어오는 바람에 전혀 다른 생각을 할 시간이 없었던 것이오. 물론 나중 에라도 다시 나의 그 멍청한 조카녀석에게 질문을 할 수가 있는 일이지만. 대체 그것이 그렇게도 중요하오? 내가 반드시 그 사람에 대한 얘기를 알아 서 당신들에게 가르쳐 주어야 한다는 말이오?" 제갈소홍은 뭔가 특이한 대답을 원하고 있다고 알고 보니 화검운의 대답에 전혀 특이한 것이 없는 것 같을 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자신의 얼굴을 정면 으로 바라보며 그와 같이 되묻는 화검운의 얼굴을 보고는 왠지 낯이 뜨거워 지는 것을 느끼고는 즉시 고개를 좌우로 내저으며 대답했다. "나는 단지 그러한 사항들이 의구심을 느끼게 한다는 것이지 구태여 당신에 게 그와 같은 사실들을 알아봐 달라는 말은 아니예요. 그리고 나와 당신과 의 사시에 그러한 부탁을 할 만한 이유도 없는 것이고요." 화검운은 그녀가 도리질을 하며 대꾸하는 것을 보고는 이내 눈을 지그시 내 리감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다. "그렇다면 나로서도 상당히 마음이 편한 일이오. 사실 나는 아까는 부득이 종남파를 찾아가기는 했지만, 그와 같은 많은 선심공세를 받고 나서 이제 다시 그곳으로 가보고 싶은 마음은 일지 않고 있었던 참이었소." 제갈소홍은 사실은 기분대로라면 어떻게 하든간에 이 화검운을 구슬려서 그 종남사부에 관해서 좀더 알아보고 싶은 것이었으나, 자신도 모르게 엉겁결 에 그와 같은 말을 하여 이어 화검운의 그와 같은 대꾸의 말을 듣게 되자 왠지 마음 한쪽이 서운해지고 후회하는 마음이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을 느 끼게 되었다. 기실 이 제갈소홍은 대단히 영리한 여자였기 때문에 이제까지 누구의 앞에 서도 거의 주눅이 들거나 자기의 하고 싶은 말을 다하지 못하는 일이 없는 편이었는데, 대체 조금 전에는 무슨 바람이 불어서 그와 같은 엉뚱한 체면 치레의 말을 하게 되었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하기는 밖으로 내뱉은 말이야 다시 주워 담을 수가 없는 노릇이니 새삼스럽 게 자신의 말을 번복하여 화검운에게 구차스러운 부탁을 할 수도 없는 일이 었으며, 그 종남사부에 관한 것은 그다지 중대해 보이지 않는 것이며, 그저 지나가는 길에 알아보려던 것이었기 때문에 이제 더 이상 파고들지 않더라 도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고 생각되어 크게 신경쓸 일은 아니었지만, 막상 그와 같은 상황을 다시금 종합적으로 정리해서 생각해 보니 문득 이 화검운 이라는 평범해 보이는 기이한 사람에 대해서 더욱 괴이(怪異)하다는 느낌이 치솟는 것을 감당할 수가 없는 기분이 들었다. 처음에는 그저 단순히 기이한 서생(書生)이라는 생각만 들었던 것이었지만, 실로 그러한 기이한면모가 부지불식간에 점차로 누적(累積)되어 나중에 생 각해 보니 거기에 어떤 가공(可恐)스러운 면모(面貌)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疑問)이 새롭게 고개를 들기 시작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때 정작 제갈소홍이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입을 열어 화검운의 정 체(正體)를 파악하기 위한 일련(一連)의 질문공세를 시작하려는 순간에 장 내에 느닷없는 사건이 생겨나서 그 일이 뜻밖에도 무산되게 되었다. "당언니! 대체 나에게 무슨 억하심정(抑何心情)이 있길래 많은 사람들이 있 는 가운데 그와 같은 말을 하고 있는 것이죠? 당신은 내가 가장 만만하게 보이나요? 그러나 만일…… 만일 우리 화산파(華山派)를 생각하기만 해도 언니가 감히 그럴 수는 없을 거예요!" 장내에 느닷없는 예리한 금속성의 고함소리와 함께 악산산이 자리에서 몸을 벌떡 일으키더니 당옥을 향해 한 차례 격렬하게 쏘아붙이고는 이내 요란스 럽게 자리를 벗어나서 반쯤 우는 듯한 표정으로 밖으로 걸어나가 버렸던 것 이었다. 그것은 물론 조금 전부터 시작되었던 당옥과 팽걸의 반쯤 야유가 섞인 농담과 추궁이 갈수록 심해져서 이를 듣고 있던 악산산이 도저히 참아 내지 못하고 그만 소리치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 버린 그러한 상황이었다. 제갈소홍은 비록 조금 전부터 화검운과의 대화에 신경을 모으고 있었기 때 문에 그간의 대화 내용에 대해서는 분면하게 알아듣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 지만, 당옥과 팽걸 등의 얼굴을 바라보니 그들의 안색이 다소 어정쩡한 표 정으로 상기되어 있는 것을 보고는 역시 그들의 행위가 지나친 것이었다는 사실을 간파할 수가 있게 되었다. 기실은 당옥이 점입가경(漸入佳境)으로 아까의 기이한 계곡에서 종남사부를 보았었을 때의 그곳을 떠나기 싫어하던 악산산의 태도 등을 다소 부풀려서 심하게 야유하고 또한 추궁하는 바람에 악산산이 그때까지 참고 있다가 그 만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자리를 박차고 몸을 일으켜서 나가 버렸던 것이었 는데, 비록 이 당옥 등이 실로 강호상의 경험이 상당히 풍부한 편이고 영악 하여 분명한 대책을 생각해 놓고 나서 그와 같은 야유를 퍼부었었을 것인데 도, 막상 악산산이 크게 화를 내며 나가 버리자 다소 당황한 표정이 되어 망연한 기색(氣色)을 보이고 있는 것이었다. 비록 크게 자유스러운 분위기는 아니었다고 해도 그런 대로 괜찮은 분위기 를 유지하고 있었다고 할 수가 있는 장내는 그로 인해서 그나마 살얼음과도 같던 은은한 분위기가 산산이 깨어져서 공기가 급랭하고 지극히 딱딱한 분 위기로 변모하게 되고 말았다. "하하, 확실히 무림오대세가는 대단한 존재들이로군. 무림의 대화산파(大華 山派)마저 두려워하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그 단합된 힘이 어느 정도인가 를 능히 짐작할 수가 있는 일이라고 할 수가 있겠지. 정말로 놀라운 일이 오!" 같은 구파일방의 하나에 소속되어 있는 개방의 총순찰인 전의방의 다소 비 아냥거리는 풍자적인 말을 귓전으로 들으면서 사람들은 갑자기 싸늘해진 공 기가 전신의 솜털을 곤두서게 하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기 시작하고 있는 것 같았다. -- 계속 -- #5742 양한우 (hanwoo71) [백상] 종남사부 제2권 제12장 03/26 14:11 271 line 올 린 이 : 양한우 HITEL ID : hanwoo71 제12장. 뜻밖의 사건(事件) 사람들은 일단 악산산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 버린 이후에 그녀의 모습이 실 내의 온갖 구조물들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게 되자 과연 정말로 그녀가 이 반점을 벗어나 버리려는 것인가를 확인하기 위해 그러한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도 은근히 입구가 바라다보이는 곳으로 고개를 길게 빼서 입구의 광 경을 주시하려고 했다. 그것은 기실 이곳 장안성은 이미 무수한 강호의 무림인(武林人)들이 가득 몰려 들어와 있어서 전례(前例)없이 유난히 거칠고 험악(險惡)해진 복마전 (伏魔殿)을 연상케 하고 있는 상황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비록 이 악산산 의 무예가 일류고수의 수준을 조금 넘어서는 것이라고는 해도 일행을 떠나 서 혼자서 행동하게 될 그녀에 대해서 약간의 우려하는 마음이 일어났기 때 문이기도 했다. 평상시의 강호무림(江湖武林)에서는 비록 사마외도(邪魔外道)의 인물들이라 고 해도 화산파 장문인의 금지옥엽(金枝玉葉)인 그녀에 대해서는 유구한 역 사와 전통(傳統)을 자랑하고 있는 화산파의 위신을 생각해서라도 최소한 어 느 정도는 양보해 주고 심하게 손을 쓰지 않는 편이 된다고 할 수가 있겠지 만, 그러나 지금 이곳 장안성의 분위기는 기실 생각보다도 훨씬 살벌하고 흉흉(兇兇)하게 변모해 있는 상황이라고 할 수가 있었기 때문에 도저히 지 금의 상황에서도 누군가가 화산파의 위신을 생각해서 그녀에게 손을 늦추어 주게 된다는 것을 바랄 수가 없는 일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무림삼보라는 희세기보(稀世奇寶)들을 둘러싸고 한창 극렬해진 흑백양도(黑 白兩道)간의 치열한 격돌 속에서 제아무리 무공에 자신을 갖고 있는 고수 (高手)들이라고 해도그야말로 한 치 앞의 생명의 안전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누가 누구를 봐준다고 하는 마음의 여유가 생겨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 악산산은 비록 종남사부라는 사람을 엉뚱하게도 연모(戀慕)하고 있어서 당옥 등에게 빈축(嚬蹙)을 사고 있는 상태였지만, 그러나 그 꽃다운 나이의 아름다운 소녀(少女)가 미처 그 인생(人生)의 맛을 알기도 전에 스러져 버 리게 된다면 아무래도 다소 아쉬운 일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사람들은 비록 당금의 상황이 지극히 험악하여 악산산이 밖으로 혼 자 떠나게 되면 이후에 그녀가 당하게 될 거칠은 수난에 대해서 우려하고 있는 것이었지만, 뜻밖에도 그러한 거칠은 수난이 이 악산산이 미처 밖으로 사라지기도 전에 벌써부터 느닷없이 펼쳐지게 될 줄은 미처 상상도 못한 일 이었다. 그것은 마치 사람들이 혹시 그렇게 되면 어쩌나 하고 우려하고 있으면 짓궂 게도 반드시 그렇게 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러한 상황이 더욱 앞당겨지게 되는, 말하자면 흡사 얄궂은 마귀(魔鬼)와도 비슷하게 여겨지는 이 좋지 않 은 운명(運命)의 진면목(眞面目)이 한 순간에 드러나 보여지기라도 하는 것 같은 것이었다. 악산산은 과연 아니나 다를까 이내 상당히 격동한 모습으로 그 입구의 앞에 나타나서 곧장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려고 하고 있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그녀가 미처 문고리를 잡기도 전에 그 커다란 입구의 문이 바깥쪽으로 벌컥 열리면서 갑자기 밖으로부터 일단의 사람들이 흡사 미친 듯이 광분(狂奔)하며 안으로 쇄도해 들어오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놓치지 말고 잡아 죽여 버려라----!" 비단 그 자들의 기세(氣勢)가 하나같이 살기등등할 뿐만 아니라 미친 듯이 고함을 지르고 있고, 제각기 서슬이 시퍼런 병장기(兵仗器)들을 위협적으로 휘두르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일순간 그들이 악산산을 해치기 위해 달 려 들어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며 놀랐다. 그러나 기실 상황은 그런 것이 아니라 그저 공교롭게도 사건이 벌어진 시각 이 일치되었던 것이지 악산산과는 무관한 것이었다. 일순간 문을 열고 악산산의 앞으로 짓쳐들어오고 있는 사람들은 거의 한 무 더기가 되어 있는 것 같은 모습들이었으나, 기실은 그들은 자세히 살펴보니 두 개의 무리들로 확연하게 분리되어 있었다. 하나의 무리는 말할 것도 없 이 그렇게 험악하게 기세를 올리며 추격하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었고, 다른 하나의 무리는 그저 무리라고도 말할 수가 없는 오직 한 명의 도망자 였다. --도망자. 얼핏 보기에도 그는 움직이는 모습이 다소 불안해 보이고, 게다가 얼굴은 심하게 일그러져서 형체조차 구분할 수가 없을 지경의 사람이었는데, 그 추 괴인(醜怪人)은 문이 열리자마자 신형을 비틀거리며 거의 간발의 차이로 추 격자들을 따돌리고 안쪽으로 달려 들어오고 있었다. 추괴인의 그 추악한 몰골은 둘째치더라도 그의 전신에서는 지독한 피비린내 가 물씬 풍겨나왔기 때문에 그것만 보더라도 그가 그야말로 얼마나 심하게 쫓기고 있는지를 알 수가 있을 것 같았다. (……?) 악산산은 이때 느닷없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자 다소 넋을 잃은 듯한 표정으 로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는데, 만일 평소였다면 한 순간 깜짝 놀랐었을 것 이지만, 지금은 그녀의 심정이 매우 격동되어 있고 분노(忿怒)와 비감(悲 感)으로 가득차 있어서 그런지 그녀의 얼굴은 별로 놀라와하는 기색도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달려 들어오고 있는 그 추괴인의 앞길을 막고 있는 상 황이었기 때문에 그 추괴인과 맞부딪치지 않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몸을 옆으로 움직여 길을 피해주어야 할 것 같았으므로 악산산은 망연해 있는 표 정 그대로 무의식적으로 신형을 옆으로 움직이게 되었다. 헌데 바로 그 순간의 일이었다. 그저 옆으로 스쳐 지나갈 것으로 생각했던 그 추괴인이 느닷없이 악산산을 적으로 생각했는지 갑자기 오른손을 쭉 내 뻗어 흡사 지팡이의 모양을 한 갈쿠리를 일직선으로 악산산의 가슴팍을 향 해 후려쳐 오는 것이 아닌가! 그 갈쿠리는 원래는 끝이 예리하게 갈라져있어서 시퍼런 광채를 내뿜고 있 었을 것이이지만, 지금은 너무도 많은 피를 보아서인지 날이 많이 무뎌지고 검붉은 색깔로 변모해 있었는데, 비록 다소 날이 무뎌지기는 했다지만 그 악독해 보이는 외문병기(外門兵器)에 맞게 디면 그 추괴인의 후려치는 손아 귀의 힘을 보더라도 금새 악산산의 앞가슴은 피투성이가 될 것 같았다. "앗!" 너무나도 놀랍고도 돌발적인 상황이었기 때문에 일행이 있는 탁자 쪽에서 먼저 경악한 신음소리가 터져나왔는데,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악산산의 태 도는 이 순간에 뜻밖에도 지나치게 놀라지 않고 매우 차분한 표정이 되어 침착한 대응수법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마도 그것은 그녀가 이 순간에 너무 나도 심한 격동 속에 휩싸여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급작스러운 상황을 맞이 하게 되자 오히려 반대로 마음이 차갑게 가라앉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는 일 이었다. 악산산은 우선 자신이 능숙하게 연마한 매화보(梅花步) 가운데에서 한 변화 (變化)를 일으켜서 신형을 옆으로 비키는 듯하면서도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 서 그 추괴인의 갈쿠리의 공격을 피해 버렸으며, 그와 거의 동시에 이미 빠 르게 등뒤의 장검을 뽑아들어 추괴인의 면상을 향해 매화검법(梅花劍法) 가 운데의 하나의 초식(招式)을 발휘하여 적극적인 공격을 감행해가고 있었다. 이것은 그야말로 이른 바 수비 속에 공격을 감행하고 공격 속에 수비를 감 추어 둔다고 하는 상승(上乘)의 무학 이론을 아주 적절하게 실행에 옮기는 것이어서 설사 그보다 더한 고수라고 해도 그것보다 더 나은 대응 수법을 생각해낼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 그 갈쿠리를 휘둘러 오던 추괴인은 이 순간에 뜻밖에도 상대의 임기응변이 능숙하게 빨라서 한 차례 신형을움직이는 순간에 희미한 그림자처럼 화해 서 귀신(鬼神)같이 자신의 갈쿠리의 공격을 피해내고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서 자신을 향해 마치 매화꽃잎이 흐드러지게 피어오르는 듯한 강렬한 검기(劍氣)의 반격을 해오는 것을 보고는 그만 놀란 듯이 다소 신형을 주춤 거리게 되었다. 기실 비록 이 악산산이 어린 나이에 일류고수의 경지에 올라서기는 했지만 그것은 특수한 환경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지, 강호상에 무슨 그러 한 일류고수가 흔하디 흔한 것은 아니어서 지금 눈앞의 그 추괴인만 해도 무공이 아직 일류고수의 경지를 넘어서고 있는 악산산보다 훨씬 미치지 못 하는 상태였던 것이었다. 악산산은 기실 절로 싸늘해 지는 심정 속에서 거의 무의식적으로 그와 같은 임기응변을 발휘하여 반격을 펼쳤던 것이었는데, 이제 곧 거칠은 격돌이 있 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가 뜻밖에도 상대가 멍청하게도 한눈을 파는 것 을 보고 차마 죽일 수는 없다고 생각되어 면상으로 쇄도해 들어가던 검기들 을 급히 거두고는 상대의 이마 부위를 갈라가던 검 끝을 비스듬히 미끄러뜨 려서 아무런 상처도 내지 않고 그 자의 목 부위를 겨냥하게 했다. 기실 그와 같이 빠르게 공격해 들어가던 초식을 중단하고 진기(眞氣)를 회 수하며 검 끝에 변화를 일으킨다고 하는 것은 보기보다 상당히 어려운 것으 로, 이 순간에 악산산의 운기행공(運氣行功)과 검법의 조예(造詣)가 이미 아주 정교한 경지에 접어들어 있다는 것을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 고 할 수가 있었다. 헌데 바로 그 순간에 느닷없이 목 부위에 악산산의 장검이 겨누어진 그 추 괴인의 신형이 갑자기 크게 비틀거리더니 가슴과 복부 등지에서 시뻘건 피 를 내뿜으며 쓰러지는 것이 아닌가! (……?) 악산산은 눈앞의 일만 생각하고 있다가 느닷없이 그와 같은 광경을 보게 되 자 일순 크게 놀랐지만, 그러나 기실 그것은 전혀 이상할 것도 없이 이제 뒤에 바싹 도달한 예의 추격자들이 제각기 손에 들고 있던 병장기들을 휘둘 러서 그 추괴인의 등을 무자비하게 꿰뚫어 버렸던 것이었다. 비록 앞쪽에도 핏줄기가 내비치기는 했지만 뒤를 공격당했으므로 추괴인의 등뒤에서 뿜어지는 피의 양은 그보다도 수배는 더 많아서 추괴인이 바닥에 쓰러져 버리자 그 주변이 온통 핏물에 젖어 버리게 되었는데, 악산산은 그 추괴인이 그와 같이 쓰러져서 죽어가면서도 마치 원망스러운 듯이 자신을 향해 눈을 감지 못하고 부릅뜨고 있는 것을 보고는 문득 내심으로 커다란 분노가 솟아나왔다. 자신은 그저 어이없이 습격을 당하여 반사적으로 움직 였을 뿐이었는데, 그 추괴인은 마치 자신 때문에 죽음을 당하고 있는 것처 럼 생각하고 있는 듯한 광경이 아닌가! 악산산은 비록 이제까지 전혀 사람을 죽여보지 못한 상태는 아니었지만, 그 러나 그와 같은 어처구니가 없는 경우를 당하게 되자 그 억울한 분노감이 이내 그 추괴인을 찔러서 죽여버린 예의 그 무리들에게로 향하게 되었다. 그런데 미처 그녀가 다가든 그 무리들을 향해 분노감을 폭발시키려고 하기 도 전에 느닷없이 싸늘한 한 줄기 고함과 함께 일단의 무리들이 다시 그녀 의 주위에 나타나는 것이었다. "멈춰라!" 기실 그 무리들은 이 반점 내부의 으슥한 구석진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 다가 추괴인이 갑자기 안으로 쫓겨 들어오는 것을 보고 급히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지만 워낙에 거리가 멀어서 이제야 이쪽으로 다가오게 되었던 것이었 다. 그 무리들은 모두 다섯 명 정도로 그들 가운데 세 명은 방금 전에 추괴인을 죽인 그 자들을 향해 다가들고 있었고, 나머지 두 명의 사람은 악산산을 양 쪽에서 포위하며 살벌한 기세로 거리를 좁혀 오고 있었는데, 기이하게도 그 들 다섯 명의 한결같은 특징은 하나같이 다리나 팔이 하나씩 없거나 혹은 안면이 심하게 일그러져 있는 등의 불구(不具)들이라는 사실이었다. 안산산은 내심으로 더더욱 어이가 없어 하면서도 문득 그와 같은 광경을 보 게 되자 무엇인가 뇌리에 떠오르는 것이 있어서 필시 이들 다섯 명과 조금 전에 죽은 그 추괴인과는같은 패거리일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입가에 다소 싸늘한 웃음을 떠올리며 입을 열어 그들에게 말했다. "당신들은 정말로 나와 한 번 싸워 보자는 것인가요?" 악산산을 포위하고 있는 두 명의 사람 가운데 다리가 하나 없는 오십 중반 의 초로의 불구 노인이 수중에 담뱃대와 비슷하게 생긴 무쇠로 만든 병기를 빙글빙글 돌리면서 싸늘한 어조로 대꾸했다. "우리 농아방(聾啞幇)의 규율은 누가 본방의 방도들의 팔과 다리를 자르면 우리도 역시 그 자를 똑같이 만들어 놓는 것이오. 또한 누가 본방의 방도들 의 목숨을 취해 버린다면 우리도 역시 똑같이 그 자의 목숨을 취해야만 하 는 것이다. 흥! 너라고 해서 그와 같은 일에 예외가 될 줄 알았느냐? 설사 당금의 무림황제(武林皇帝)가 나타난다고 해도 그와 같은 일에는 변함이 없 을 것이다!" 악산산은 상대방의 그러한 말을 듣게 되자 그야말로 어처구니가 없는 심정 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외다리의 불구노인과 함께 짝을 이루며 그녀를 포위하고 있는 사람은 역 시 초로의 나이로 팔이 하나가 없는 외팔의 불구노인이었는데, 그 한쪽의 손으로는 기다란 채찍을 들고 있었으며, 비교적 짧은 병기(兵器)를 손에 들 고 있는 외다리 불구노인과 함께 연수 공격을 할 경우에는 아마도 하나는 길고 하나는 짧으며, 하나는 부드럽고 하나는 강맹하여 서로의 단점을 보완 하고 무서운 위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될 것 같았다. 그 두 명의 불구노인과 함께 다가온 다른 세 명의 불구자(不具者)들은 하나 같이 얼굴의 안면이 심하게 일그러졌거나 전신의 골격이 기형(奇形)이었는 데, 제각기 자신들에게 걸맞는 기형의 병기들을 뽑아들고 추괴인을 죽인 무 리들과 한창 살벌하게 피가 튀기는 격전(激戰)을 벌이고 있는 중이었다. 악산산은 일단은 자신의 마음을 가라앉힐 겸해서 주위의 상황을 대강 살핀 연후에 그 외다리 불구노인을 향해 입을 열어 싸늘하게 물었다. "그렇다면 내가 언제 당신들의 방도들을 해쳤다는 것을 본 적이라도 있나 요?" 그 외다리의 불구노인은 입가에 잔혹한 비웃음을 담으며 대꾸했다. "너는 그럼 조금 전에 본방의 방도인 저 사람을 금응방(金鷹幇)의 놈들과 연합해서 죽인 것이 아니라는 말이냐?" 악산산은 여기에 이르러 비로소 아까 죽은 그 추괴인이 이들 불구노인들과 한 패인 농아방의 사람이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그 외 다리 불구노인의 말에 의하면 느닷없이 그 추괴인을 추격하여 죽여 버린 저 무리들은 바로 금응방(金鷹幇)의 사람들이라는 것이었으니, 그 금응방은 바 로 다름이 아니라 불구노인들의 방파인 농아방(聾啞幇)과 함께 이곳 장안성 내에서 이제까지 오래도록 뿌리를 내려오고 있었던 다섯 개의 세력들 가운 데의 하나라는 것은 이미 악산산도 익히 들어서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하지만 악산산은 눈앞의 이 외다리 불구노인이 자신을 향해 그와 같은 어처 구니가 없는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을 보고는 한동안 기가 막혀서 멍하니 서 있다가 이윽고 대꾸했다. "내가 저들과 연합을 해서 당신네 방파의 방도를 죽였다고요? 나는 화산파 의 사람인데 그들이 만일 금응방의 사람들이라면 내가 무엇 때문에 그들과 함께 어울리겠어요?" 기실 이 금응방이라는 단체는 비록 그다지 거대한 것은 아니지만 사악(邪 惡)한 집단으로서, 일찍부터 사마외도의 총본산(總本山)이라고 할 수 있는 흑풍사(黑風社)와 연관을 짓고 있다는 소문이 들리고 있었기 때문에, 화산 파의 사람으로서 그들과 어울릴 리가 없다는 악산산의 말은 이치에 맞는 것 이었다. 화산파는 백의맹과 연관을 짓고 있는 상태이며, 현재 흑풍사와는 마치 철천 지의 원수와도 같은 사이가 아니겠는가! 그 외다리 불구노인은 사실은 아까 악산산의 무공수법을 보구는 그녀가 화 산파의 사람이라는 것을 파악하고는 금응방의 무리와 연합하여 농아방의 방 도를 죽일 리가 없다고 생각하고는 조금 전의 그 행동에 뭔가 다른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고 여겨서 지금까지 포위만 하고 있을 뿐 쉽사리 공격하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작 그와 같은 악산산의 말을 듣고 나자 그 외다리 불구노인은 이 내 입가에 싸늘한 냉소를 떠올리며 음침한 음성으로 이렇게 대꾸하는 것이 었다. "흐흐, 화산파라구? 명실공히 명문대파(名門大派)의 제자라는 말이지? 흐 흐, 그러나 요즘 들어서 그 명문대파의 사람들이라는 것들이 더욱 더럽고 추악(醜惡)한 짓들을 하는 경우가 있더라는 말이야! 설령 네가 화산파의 계 집이라는 것을 믿는다고 해도 너희들 화산파에서 무슨 더러운 음모(陰謀)를 꾸미기 위해 본방의 방도를 살해했을지 누가 알고 너와 같은 계집의 말을 믿어준다는 말이냐?" 악산산은 그 외다리 불구노인의 말을 듣고서 더욱 더 점입가경(漸入佳境)이 라 일순 참을 수가 없어져서 소리쳤다. "뭐라고요? 당신이 감히 본파를 능멸하고 조롱하다니! 당신들이 정히 나의 말이 믿기지 않는다면 어서 손을 쓰면 될 것이 아닌가요? 나는 다른 것은 참을 수가 있어도 당신같은 사람들이 본파를 모욕하는 것은 도저히 참을 수 가 없어요!" 악산산이 그렇게 강하게 대하고 나서자 그 외다리 불구노인은 문득 자신의 조금 전의 말이 다소 과하다고 생각되었는지 은근히 움찔하는 기색이되었 다가 손을 쓰지는 않고 다시 입을 열어 음침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렇다면 너는 어째서 본방의 방도가 급히 우리에게 도망쳐 오려고 하는 것을 가로막고, 게다가 그에게 살수(殺手)를 퍼부었느냐?" 이 농아맹의 사람들은 저마다 독특하고 남들과 쉽게 어울리기를 꺼려하는 편이어서 강호상에서도 특별한 반항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들로 취급받고 있 는 실정이었는데, 그들의 성향(性向)을 보면 정사(正邪)의 어느 곳에도 가 까이 하지 않고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정사중간이라고 할 만한 무리 들이었다. 사실 강호도상에는 이들 농아방의 사람들 이외에도 그들처럼 정사중간의 성 향을 띠고 독자적으로 세력을 구축해 가고 있는 방파들이 제법 많이 있는 편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악산산은 자신이 어이없게도 계속해서 궁지에 몰리며 기막힌 일을 당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점차로 더욱 분노감을 느껴가면서 스스로의 마음을 이기 지 못해서 잠시 동안 숨을 고르며 마음을 가다듬은 후에 대꾸했다. "내가 저 사람에게 살수를 퍼부었다고요? 나는 그저 밖으로 나가려는 길이 었어요. 당신들 같으면 느닷없이 사람이 앞으로달려들어서 공격을 해오는 데 그것에 그냥 당하고만 있을 것이라는 말인가요?" 외다리 불구노인은 음침하고 차가운 시선으로 악산산의 내심을 읽어내기라 도 하듯이 예리하게 그녀의 전신을 훑어보며 다시 추궁했다. "본방의 방도는 아까 워낙에 급하게 쫓기고 있었던 상황이었으므로 네가 앞 을 가로막고 있는 것을 보자 그만 이것저것을 가리지 못하고 공격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네가 만일 나쁜 뜻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면 어째 서 그토록 심하게 쫓기고 있는 그에게 살수를 전개하여 저 금응방의 놈들에 게 죽게 만들었다는 말이냐?" 하기는 생각해 보면 이 외다리 불구노인의 말에도 일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보통 때의 악산산이었다면 그 추괴인이 급하게 쫓기 고 있는 것을 보게 되면 무슨 일인지는 모른다고 해도 우선 머뭇거리지 않 고 빠르게 옆으로 길을 비켜 주었을 것이며, 게다가 설령 추괴인이 그녀를 향해 공격을 해왔다고 해도 일단은 그 자의 상황을 보아서 그렇게 적극적인 반격은 취하지 않았었을 것이었다. 확실히 외다리 불구노인의 말처럼 악산 산의 조금 전의 그 일련의 행동들은충분히 의심을 받을 만큼 기이한 것이 었고 상식(常識)에서 벗어난 것이었다고 말할 수가 있었다. -- 계속 -- #5743 양한우 (hanwoo71) [백상] 종남사부 제2권 제13장 03/26 14:12 271 line 올 린 이 : 양한우 HITEL ID : hanwoo71 제13장. 성수곡(聖手谷)에서 왔어요 그러나 비록 그렇다고는 하나 악산산으로서 어떻게 자신이 그 이전에 같은 일행인 당옥 등에게 그와 같은 악랄한 모욕(侮辱)을 당하고 나서 마음이 온 통 분기(忿氣)로 가득차서 이것저것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는 그러한 얘기 를 자신의 입으로 직접 말할 수가 있겠는가? 당시에 악산산은 기실 너무나도 심한 분노와 자괴(自愧)의 감정에 휩쓸려 있어서 전혀 주위의 돌아가는 상황이나 다른 사람들의 처지를 살펴볼 마음 의 여유가 거의 없는 상태였던 것이었다. 따라서 악산산은 이제 자신이 그러한 해명을 할 수도 없고 또한 하지 않을 수도 없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하에서 자칫 잘못하면 이들 농아 방의 무리들에게 심각한 오해를 부러일으키게 될 것이라는 것을 파악하고는 내심 어처구니가 없어 하며 궁지에 몰려서 곤혹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기다 가 이내 체념한 듯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차가운 음성으로 이렇게 대꾸했 다. "좋아요! 당신들이 정녕 그렇게 나의 결백(潔白)을 의심하여 나를 그와 같 은 흉수(凶手)로 단정하겠다면그것은…… 그것은 나로서는 어쩔 수가 없는 일이죠. 나는 더 이상 변명하지 않을 것이니 당신들은 어서 나에게 살수(殺 手)를 펼쳐서 당신들의 수하가 죽은 원한(怨恨)을 풀도록 해요!" 악산산은 아직 심사가 울분으로 인해 경직되어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그와 같은 곤란한 일을 당하게 되자 그만 이것저것을 돌보지 않고 발악적인 심사 가 되어 극단적으로 그와 같이 소리치게 되었던 것이었다. (……!) 음침하고 차가운 시선(視線)으로 추궁해 오던 그 외다리 불구노인은 그러나 막상 악산산이 일순 그렇게 해명하는 것을 포기하고 극단적으로 강하게 일 전(一戰)이라도 불사(不辭)할 듯한 태도로 나가기 시작하는 것을 보자 이에 응하여 그녀에게 살수를 펼치기는커녕 왠지 오히려 찔끔하여 그 음험(陰險) 했던 기세마저 다소 수그러드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었다. 외다리 불구노인은 손 안에서 지금까지 빙글빙글 휘돌리고 있었던 담뱃대 모양의 기형(奇形)의 병기(兵器)를 잠시 멈춰 세우고 나서 뭔가 깊이 생각 하는 듯하더니 이윽고 그녀를 향해 다시 입을 열어 물었다. "너는 어째서 굳이 변명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냐? 그렇게 한다면 오늘부터 본방과 원수지간이 된다는 것을 모른다는 말이냐? 음음, 혹시 너는 어떤 말 할 수 없는 후안무치(厚顔無恥)한 짓이라도 저지른 상태이기 때문에 그렇게 구태여 변명을 하지 않겠다는 말이냐?" 기실 악산산이 갑자기 그렇게 강한 기세로 나가게 된 것은 특별히 어떤 효 과를 기대한 이성적인 대응수단이었다라기보다는 궁지에 몰린 상태에서 우 발적으로 터져나온 발악적인 행동이라고 할 수가 있었기 때문에 비록 그 외 다리 불구노인의 언사가 음침스럽고 은근히 악랄하여 그녀의 얼굴을 절로 붉어지게 하는 것이었지만 이미 기왕에 그보다 훨씬 더한 최악(最惡)의 사 태까지 의식(意識)하고 있었던 그녀인 만큼 악산산은 그러한 말의 내용에 신경을 쓰지 않고 역시 싸늘하게 대꾸했다. "나에게 이전에 어떤 일이 있었든간에 서로가 일전(一戰)을 피할 수가 없는 상황이라면 그러한 일은 당신들이 상관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강호 도상(江湖途上)에서 밥을 빌어먹고 있는 사람들은 일단 하나라면 하나이지 결코 둘은 아니죠. 즉 서로가 한 가지의 방법으로 매듭을 짓기로 결정했다 면 그것으로 행동에 옮기는것이지 다른 말들은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죠! 자! 나는 이미 싸울 준비가 되어 있으니 당신들은 어서 그만 손을 쓰도록 하세요!" 이 악산산은 비록 한 순간에 경황이 없어서 우발적으로 판단을 내리기는 했 지만 이내 현실을 직시하고 마음을 차분하게 가다듬어 소리치는 그녀의 어 조에는 실로 의연(毅然)하고도 호쾌한 기상마저 실려 있는 듯하여 그야말로 그녀가 일반의 나약하고 수줍어하는 대갓집의 소녀(少女)가 아니라 역시 당 당한 일개 명문대파(名門大派)의 제자(弟子)라는 사실이 이 순간에 절로 드 러나 여실하게 보여지는 것 같았다. 이를 바라보고 있던 사람들은 이제는 악산산이 상대편을 향해 두 번씩이나 거푸 도전장을 내밀은 것이나 다름이 없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에 그 두 명 의 불구노인들이 이번에는 설령 참으려고 한다고 해도 출수를 하지 않을 수 가 없을 것이므로, 이내 그 두 명의 불구노인들과 아리따운 소녀인 악산산 과의 사이에 한 차례의 거칠은 드잡이질이 벌이지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들 두 명의 불구노인들은 악산산의 그러한 노골적인 선 전포고의 말을 듣고는 즉시 크게 노하여 출수하기는커녕 오히려 아까보다도 더욱 의기소침한 태도로 이번에는 악산산을 상대하지도 않고 아예 고개마저 옆으로 돌려서 은근히 그녀의 말을 듣지 못한 것처럼 딴전을 피우기 시작하 는 것이었다. 기실 다름이 아니라 원래 그들 두 명의 불구노인들은 이미 오랫동안 강호도 상에서 굴러먹은 위인(爲人)들이라고 할 수가 있었기 때문에, 마치 늙은 생 강이 더욱 맵고 단단한 것처럼 지극히 심성이 교활(狡猾)하고 노련(老鍊)하 여 비록 처음부터 상대의 눈치를 보아서 악산산이 결코 고의적으로 자신들 의 수하를 가로막았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이 순간 많 은 사람들이 반점의 내부에서 바라보고 있었으므로 일단은 명분을 세우기 위해 그녀에게서 일종의 해명을 들어보겠다는 의도(意圖)로 그녀를 추궁했 었다고 할 수가 있었는데, 느닷없이 악산산이 그처럼 전혀 해명하지도 않고 오히려 완강하게 버티며 나오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는 정작 이 당금의 거대 세력(巨大勢力)들 가운데의 하나인 구파일방 중의 하나인 화산파(華山派)의 제자를 구태여 심하게 건드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저 마주 상대 하지도 않고 물러서지도 않으면서 딴전을 피우며 내심으로는 열심히 앞으로 의 일에 대한 염두(念頭)를 굴리고 있는 것이었다. 만일 그들이 혈기가 넘치는 젊은이들이었다면 이 순간의 주위의 어색하게 짓눌러오는 듯한 시선들을 의식(意識)하여 그렇게 낯두꺼운 짓을 할 수가 없었을 것이지만, 그러나 그들은 이미 강호도상에서 오래도록 잔뼈가 굵어 온 노강호(老江湖)들이라고 할 수가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안면에는 마치 두터운 철판(鐵板)이 깔려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으므로 일단 자신들에게 전혀 이롭지 못한 일이라는 판단이 서게 되면 주위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 고 자신들의 생각대로 태연하게 행동할 수가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순간에 그 불구노인들과 대치하고 있는 악산산이 그와 같은 어린 소녀가 아니라 같은 노련한 노강호다운 사람이었다면 역시 그들과 마찬가지 로 주위의 신선을 아랑곳하지 않을 수가 있었겠지만, 허나 실제로 이 악산 산은 결코 그와 같은 노강호가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의 한창 감정에 휩쓸리 기 쉬운 마음속에 수치스러운 기분이 가득차 있는 방심(芳心)의 소녀였기 때문에 상대방이 느닷없이 엉뚱한 태도로 나오고 그로 인해서 자신들을 바 라보는 실내의 사람들의 시선이 기묘(奇妙)하게 변해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되자 자연히 행동이 상당히 어색해지고, 문득 참을 수가 없는 기분이 들게 되었다. 지금 반점의 입구와 가까운 쪽에서는 그 세 명의 불구자들이 십여 명의 금 응방의 무리들을 상대로 하여 그야말로 시원스럽게 피가 튀기는 격전(激戰) 을 벌여가면서 점차로 그 사상자(死傷者)들이 늘어가기 시작하고 있는 상태 였는데, 정작 그 세 명의 불구자들보다 우두머리인 듯한 이 두 명의 불구노 인들은 그녀 한 사람과 어정쩡하게 서로 얼굴도 마주보지 못하고 어색하게 시간만 보내고 있는 것이니, 이는 실로 우습지도 않으며 답답할 뿐만 아니 라 창피스럽기 그지없는 일이라고 느끼지 않을 수가 없는 일이었으며, 이렇 게 멀쩡하게 포위를 당하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정신적인 고문을 당 하는 것 같은 상황이라면 차라리 한시라도 빨리 서로간의 격전이 벌어져서 시원스러운 결론이 나 버렸으면 하고 생각되기도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마치 그러한 기묘한 대치 상태의 사람들에게 획기적인 해 결 방법을 제시하여 쌍방의 사람들을 모두 다 편안하게 만들어줄 해결사가 한 순간에 나타나기라도 하듯이 느닷없이 반점의 실내에서 한 사람의 흑삼 중년인(黑衫中年人)이 실로 그와 같은 분위기를 풍기면서 천천히 세 사람에 게 걸어 나오더니 문득 입을 열어 이와 같은 말을 하는 것이었다. "불구이괴(不具二怪)! 비록 강호상에서 화산파의 명성이 천하를 뒤덮는다고 해도 귀방에서 이미 당신들뿐만 아니라 불구삼혈(不具三血)까지 나타나 있 는 마당에 그와 같은 어린 계집애의 배경 따위를 두려워할 필요가 있겠소?" 그 흑삼중년인의 체구는 다소 늘씬한 편이었고 용모는 평범하다고 할 수가 있었는데, 기이한 것은 그의 얼굴이나 그 밖의 전신의 피부 색깔이 희다 못 해 그야말로 시체처럼 창백하여 절로 음산(陰散)한 공포심을 상대에게 불러 일으킨다는 사실이었다. 상당히 어두워 보이는 흑삼(黑衫)과 그 시체처럼 창백한 피부 색깔은 실로 극명한 대조를 이루어 흡사 지옥(地獄)의 저승사자(幽冥使者)가 환신(幻身) 한 것과도 같은 으시시한 느낌을 불러일으켰는데, 그 흑삼중년인이 한 손에 마치 사람의 뼈를 조각하여 만든 것 같은 백골선(白骨扇)을 들고 가볍게 부 치면서 미끄러지듯이 다가오자 예의 그 외다리 불구노인이 일순 흠칫 놀라 서 안색이 변하며 입을 열어 대꾸했다. "음산귀서생(陰山鬼書生) 도옥(陶玉)! 당신이 비록 음산백골문(陰山白骨門) 의 문주이고 무공이 높다고는 하나 우리는 결코 당신을 두려워하지 않고 있 소. 당신이 만일 우리의 일을 방해하겠다면 우리는 결코 그 일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오." 원래 이 음산백골문의 문주 음산귀서생 도옥이라는 흑삼중년인은 미리 예상 되었던 대로 쌍방을 위한 해결사의 노릇을 하기위해 나타났던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비록 노골적으로 이 일에 끼어들려는 듯한 태도는 보이지 않고 있었지만, 우선 그의 눈빛이 지극히 음침스러운 데다가 입가에는 아주 의미 심장한 미소를 떠올리고 있어서 실로 그가 좋은 의도로 나선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가 있게 했다. 음산귀서생 도옥은 일단 미끄러지듯이 장내에 다가와서 불구노인들, 즉 불 구이괴(不具二怪)를 향해 시선을 던지고 있다가 그 외다리 불구노인이 미리 선수를 쳐서 그의 신분을 공개한 뒤에 그가 함부로 행동을 하지 못하게 일 침을 가하는 것을 보고는 이내 담담한 미소를 입가에 흘리면서 입을 열어 대꾸했다. "물론 곤괴(棍怪) 호일지(胡逸之) 당신의 말대로 당신네 농아방(聾啞幇)은 하나같이 지독스러운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기 때문에 능히 그렇게 하고 도 남음이 있을 것이오. 하지만 염려하지 마시오. 나는 오히려 당신들의 일 을 도우러 온 것일 뿐인데 무엇 때문에 하필이면 당신들의 일을 방해하겠 소?" 곤괴 호일지라고 불리운 그 외다리 불구노인은 음산귀서생 도옥의 그와 같 은 말을 듣고는 처음에는 대체 그 말이 무슨 뜻일까 하고 다소 의아해하는 것 같았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그가 자신들에게 어떠한 도움도 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음산귀서생 도옥이 마악 자신의 말을 마치자마자 이내 신형을 유령 (幽靈)같이 빠르게 움직여서 옆쪽의 악산산을 향해 급속히 다가가는 것을 보고는 문득 어떤 생각이 뇌리에 떠올랐는지 크게 놀란 표정으로 소리쳤다. "앗, 멈추시오!" 악산산은 이때 자신은 아직까지 눈앞의 이 음산귀서생 도옥을 대면했던 적 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음산귀서생 도옥이 또한 자신에게는 거의 시선조차 주지 않고 다가오는 것을 보고는 그가 필시 불구이괴 등과 연관이 있기 때 문이지 자신에게는 결코 볼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원래 일개 음산백 골문의 문주 정도라면 무학의 수위가 최절정의 경지에 도달해 있을 것이기 때문에 그와 같은 무림고수가 자신과 같은 이제 겨우 일류고수의 경지를 벗 어나고 있는 풋나기를 상대하기 위해 일부러 나설 리가 없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그와 같은 태평스러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가게 되고 어느 새 그 음산귀서생 도옥의 신형이 자신의 곁에 도달했다고 느껴진 순간에 갑 자기 그의 부채를 들지 않은 좌수(左手)가 어지럽게 환영(幻影)을 그리더니 그녀의 정수리를 향해 노골적으로 살수(殺手)를 내뻗어 오는 것이 아닌가! (……?) 악산산은 이미 부친 등으로부터 이 음산백골문의 무학이 실로 음험하고 괴 이악랄하여 상대하기 어렵다는 얘기들을 여러 차례나 들어왔던 터였는데, 보아하니 지금 이 음산귀서생 도옥이 전개하고 있는 것은 그토록 무시무시 하다는 백골마공(白骨魔功)이나 구음백골조(九陰白骨爪)같은 것은 아닌 것 같고, 그저 부채로 펼치는 무공이라는 구유십삼식(九幽十三式)을 부채라는 병기 없이 손으로 펼쳐내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원래 이 병기로 펼쳐내야 하는 무예초식(武藝招式)을 빈손으로 펼쳐내게 되 면 다소간의 위력이 격감되는 것이 당연한 일이겠지만, 기실 최절정의 고수 인 음산귀서생 도옥과 같은 사람에게는 그 차이가 미미할 것이고, 게다가 아직 절정고수(絶頂高手)의 대열에도 오르지 못한 악산산과 같은 풋나기를 상대하는 데는 전혀 그 차이가 없다고도 말할 수가 있을 것이었다. 악산산은 비록 상대가 그와 같이 놀라운 최절정의 고수라고 하더라도 그저 가만히 서서 죽음을 기다릴 수는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음산귀서생 도옥의 손속이 한 무더기의 뿌연 그림자로 화해서 정수리를 향해 눌러오는 것을 감 지한 바로 그 찰나의 순간에 이미 반사적으로 들고 있던 장검(長劍)을 비쾌 하게 내뻗으며 매화삼십육검형(梅花三十六劍形) 가운데의 절초(絶招)를 사 용하여 반격을 개시했고, 또한 역시 매화보(梅花步)를 펼쳐서 상대의 손속 을 피하려고 했다. 악산산의 그러한 임기응변은 상당히 대담하면서도 침착하고 신속하여 실로 그녀가 명문대파의 잘 지도받은 훌륭한 제자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여실하 게 보여주는 듯했다. 그러나 비록 앞서의 강호하류배를 상대하는 데 있어서는 그러한 임기응변이 훌륭하게 통했었지만, 기실 그것이 어느 때나 한결같이 통하는 것은 아니었 다. 이 음산귀서생 도옥의 무예는 최절정의 경지라는 말 그대로 상당히 놀 라운 것이었으며, 그러한 높은 수준의 무학의 고수다운 면모(面貌)는 이내 즉시 드러났다. 눈부신 매화검광(梅花劍光)을 발출시키며 가슴 부위로 악산산의 장검이 파 고드는 바로 그 순간에 음산귀서생 도옥의 신형은 흡사 안개처럼 흔들거리 며 옆으로 한 자나 비켜서서 그 공격을 피해 버렸고, 그러는 가운데에서도 자신의 손격하는 손속은 늦추지 않아서 미처 악산산이 매화보를 펼쳐서 몸 을 피하기도 전에 그의 좌수가 그녀의 정수리 바로 위에 도달하고 있었다. 그 악랄한 살초(殺招)의 노골적인 운용이나 그 빠른 손속 등으로 미루어 보 아 실로 이 음산귀서생 도옥은 정말로 악산산을 제거해 버리기로 작정을 한 모양이었는데, 정수리 바로 위에 도달한 그의 좌수에서는 어느새 푸르스름 한 인광(燐光)이 번쩍이고 있어서 그저 그러한 좌수에 슬쩍 닿기만 해도 악 산산의 아름답게 생긴 머리통이 흡사 진흙더미처럼 부서져 내릴 것은 뻔한 일인 것 같았다. 악산산은 어느 사이에 자신의 반격이나 수비가 완전히 무위로 돌아가고 상 대의 좌수가 이미 자신의 정수리 위에 도달해 있는 것을 느끼고는 그만 절 로 아득해지는 심정이 되어서 자신도 모르게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자신 을 제거해 버리려는 상대의 의도는 이제 의심할 나위가 없는 것이었으며, 게다가 그의 출수가 워낙에 빨랐기 때문에 주위의 누군가가 그녀를 도와주 고 싶어도 도저히 그럴 수가 없는 상황인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의 일이었다. 음산귀서생 도옥의 좌수가 푸르스름한 인 광을 번쩍이며 마악 득의의 호선(弧線)을 그으며 악산산의 두개골을 진흙더 미처럼 부숴뜨리려고 하는 찰나에 문득 느닷없이 음산귀서생 도옥의 좌수와 악산산의 정수리 사이의 얼마 되지 않는 공간에 하나의 아름답고 아주 고결 (高潔)해 보이는 손이 나타나 흡사 용(龍)이 발가락을 내뻗어서 독수리의 발목을 움켜잡듯이 그대로 음산귀서생 도옥의 좌수를 어느 틈엔가 움켜잡더 니 우두둑! 하는 요란한 음향과 함께 부러뜨려 버리는 것이 아닌가! "아!……" 당연히 악산산의 입 속에서 터져나왔어야 할 것 같았던 비명소리가 그것도 낮은 신음소리로 화해서 음산귀서생 도옥의 입 속에서 발작적으로 흘러나왔 다. 그리고 어느 사이엔가 과연 악산산의 곁에는 다소 음산한 얼굴을 하고 있는 황약화(黃若華)가 나타나서 그림자처럼 서 있었다. 곤괴 호일지를 비롯한 불구이괴는 그 순간에 음산귀서생의 출수를 저지하기 위해 그쪽으로 신형을 날리다가 문득 그와 같은 광경을 바라보고는 그만 놀 라서 두 눈이휘둥그래지고 말았다. 비록 강호도상에서 오랫동안 굴러먹은 위인들인 그들이었지만, 실로 조금 전과 같이 기척을 알 수가 없으면서도 환상(幻像)처럼 빠른 신법을 펼치는 사람을 그들은 아직 결코 본 적이 없었 기 때문이었다. 입구가 바라다보이는 곳의 실내에서 이제까지 상황을 주시하며 필시 악산산 이 애석하게도 무참한 죽음을 당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사람들도 일순 간 느닷없이 사태가 반전되고 마치 환각처럼 나타나서 악산산의 목숨을 구 한 황약화의 믿을 수 없는 무예를 상기해 보고는 한 순간 경악하여 저마다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음산귀서생 도옥은 한동안 거의 멍하니 자신의 힘없이 늘어진 좌수를 바라 보며 생각을 굴리는 듯하다가 이윽고 황약화를 향해 고개를 들어 주시하며 입을 열어 말했다. "이와 같은 위력의 용조수(龍爪手)를 펼칠 수 있는 사람은 결코 소림사(少 林寺)의 문하일 리가 없는데…… 실례지만 귀하는 혹시 천상팔패 가운데의 어느 한 곳에서 오시지 않으셨소?" 비록 좌수의 손목이 끊어져 버린 것이 고통스럽기는 하겠지만, 그러나 음산 귀서생 도옥은 자신의 무공초식이 그처럼 허망하게 파해(破解)당해 버렸다 는 사실에 대해서 더욱더 고통을 느끼고 있는 듯이 입을 열어 질문하는 그 의 어조에는 은근한 떨림마저 일고 있었다. 황약화는 거의 무표정한 눈빛으로 상대를 바라보다가 이윽고 고개를 끄덕이 며 그저 간단하게 대꾸했다. "그래요. 나는 성수곡(聖手谷)에서 왔어요." (……!) 비록 어느 정도의 예상을 하기는 했지만 사람들은 그녀가 스스로 성수곡에 서 왔다고 하는 말을 듣고는 오히려 조금 전보다도 더욱 놀라서 눈을 부릅 뜨게 되었다. 음산귀서생 도옥도 일순간 크게 놀란 듯이 망연한 기색으로 황약화의 얼굴 을 바라보다가 이윽고 길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랬었군. 나의 구유십삼식이 먹혀 들어가지가 않은 것은 당연한 일 이었어." 곤괴 호일지와 함께 음산귀서생 도옥을 좌우에서 포위하고 있었던 외팔의 불구노인은 문득 그 음산귀서생이 그렇게 혼자서 중얼거리면서 슬그머니 자 리를 피해 물러나려고 하는 것을 보고는 즉시 소리쳐 말했다. "도옥! 당신은 조금 전에 그와 같은 비열한 수법을 써서 우리에게 화를 전 가하려고 했었으면서도 어째서 지금은 그냥 돌아가려는 것이오?" 기실 음산귀서생 도옥은 무슨 이유에선지 몰라도 불구이괴를 돕겠다는 핑계 삼아 악산산을 제거하여 그 화를 불구이괴에게로 전가시킬 속셈이었던 것이 니, 외팔의 불구노인이 일순간에 그와 같은 속셈을 꿰뚫어보고 그와 같이 소리치자 정말로 마악 슬그머니 신형을 빼서 자리를 피하려던 음산귀서생 도옥은 이내 신형을 멈칫하며 그 외팔의 불구노인을 향해 안색을 고치고 싸 늘한 기색으로 이렇게 대꾸했다. "편괴(鞭怪) 손사극(孫思克)! 그렇다면 네가 감히 나서서 이번에는 나의 죄 를 추궁하겠다는 말이냐?" -- 계속 -- #5744 양한우 (hanwoo71) [백상] 종남사부 제2권 제14장 03/26 14:13 433 line 올 린 이 : 양한우 HITEL ID : hanwoo71 제14장. 공포(恐怖)의 수라문주(修羅門主) 편괴(鞭怪) 손사극(孫思克)이라는 그 외팔이 불구노인은 정작 음산귀서생 도옥이 자리를 피하려고 하는 것을 보고도 그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아무 런 말도 없이 방관하며 바라보고 있는 황약화 등을 향해 시선을 한 차례 보 낸 이후에 이빨을 깨물며 음산귀서생 도옥을 향해 대꾸했다. "당신이 만약 우리에게 죄(罪)를 짓지 않았다면 모르지만 기왕에 일단 그와 같은 죄를 진 이상은 결코 이 일을 어물쩡하니 넘겨 버릴 수는 없을 것이 오." 편괴 손사극은 아직도 도옥의 무공이 대단할 것이라는 생각에 감히 직접적 인 말은 하지 못하고 그저 둘러대는 식으로 대꾸를 한 것이었다. 도옥은 그러한 손사극의 대꾸를 듣고는 일순간 지극히 음산한 표정으로 그 를 쏘아보고는 이어 다소 비아냥거리는 아투로 다시 입을 열어 물었다. "이 일을 그냥 넘겨 버릴 수가 없다고? 그럼 너희들 두 사람에게 정말로 그 와 같은 능력들이 있을까? 내가 벌써 종이호랑이가 된 줄로 아는가?" 손사극은 자신은 그저 체면치레로 한 마디를 했을 뿐이었는데 도옥이 그것 을 그냥 흘려듣지 않고 그와 같이 꼬치꼬치 캐물어 오는 것을 보고는 다소 난감한 표정이 되어 쉽게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문득 그의 반대편에 서 있던 곤괴 호일지가 느닷없이 도옥을 향해 냉랭한 음성으로 이렇게 입을 열어 말하는 것이었다. "당신의 무공이 비록 높고 또한 연극도 훌륭하지만, 그러나 그것으로 모든 사람들을 다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잘못이오. 나는 이미 당신 의 무예가 최소한 삼할 이상은 감축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소." 호일지의 그러한 말은 실로 의외(意外)의 것이었기 때문에 도옥은 한 순간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망연한 표정으로 그의 얼굴을 돌아보다가 이윽고 자신 의 좌수를 눈짓으로 가리키며 웃으며 그에게 물었다. "너는 나의 왼손이 이렇게 되었다고 해서 나의 무예가 감축되었다고 생각하 느냐? 너는 내가 오른손으로 무예를 펼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이 냐?" 호일지는 그 말을 듣고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꾸했다. "당신의 무예는 대부분이 오른손으로 펼치는 것이므로 설사 왼손이 파괴되 었다고 해도 그것으로 인해 당신의 무예가 감축되지는 않을 것이오. 그러나 나는 속직히 저기에 계시는 성수곡(聖手谷)에서 오셨다는 소저께서 당신을 그저 손목만 부러뜨리는 정도만으로 그냥 두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오." 도옥은 호일지의 그러한 말에 일순 어이가 없다는 듯이 그를 쏘아보며 다시 물었다. "뭐라구? 그래서 대체 어떻게 되었을 것이라는 말이냐?" 도옥의 표정이 점차로 빠른 변화를 일으켜가는 반면에 그와는 반대로 이 호 일지의 얼굴 표정은 아까와 거의 달라진 기색이 없이 여전히 냉랭해 보였 다. 그는 역시 싸늘한 음성으로 대꾸했다. "내가 듣기로 성수곡에는 여러 가지의 신비스러운 절기(絶技)들이 있는데, 그것들 가운데의 하나는 만병(萬病)을 치유할 수가 있고 사악(邪惡)한 기운 을 극제할 수가 있는 황금빛의 장력(掌力)으로, 그 이름은 반선수(反禪手) 라고 불리운다고 했소. 만일 당신이 저 화산파의 처자(妻子)에게 살수를 전 개할 때에 손속에 공력을 돋구고 있었다면 아마도 성수곡에서 오셨다는 그 소저께서는 한 순간에 당신의 그 백골마공(白骨魔功)의 공력을 해소시켜 버 리기 위해 바로 그 반선수를 사용하셨을지도 모르는 일이니, 만일 당신이 그러한 절기에 내상(內傷)을 입게 되었던 것이라면 최소한 백골마공이 삼할 이상은 손실을 보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하는 것이오." 이 호일지의 어조는 비록 무뚝뚝하고 냉정해 보였지만, 그러나 그 내용에는 실로 놀라운 바가 있었다. 아까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대부분이 시선을 악산산이 있는 쪽으로 집중시키 고 있었는데, 당시의 상황의 전개가 너무나도 빨랐었기 때문에 미저 그 황 약화가 무슨 수법을 써서 도옥의 구유십삼식을 무산(霧散)시켜 버린 것인지 에 대해서 알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당시에 도옥이좌수에 백골마 공을 일으키고 있었다는 사실조차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사람들이 드물었으 므로, 이 호일지의 말대로 정말로 그 순간에 어떤 황금빛의 장력이 일어났 었던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그것의 진위(眞僞)를 정확하게 판별할 수 있 는 사람이 거의 없는 상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 호일지는 무공이 관전하고 있던 사람들보다 월등하게 높아서 그와 같은 광경을 능히 꿰뚫어 볼 수가 있었기 때문에 그와 같은 말을 하고 있는 것인가 하면, 기실은 전혀 그렇지 않고 오히려 지금 장내의 관전자들 가운데에는 호일지보다도 무공이 더욱 뛰어난 사람들도 제　 있다고 할 수 가 있는 상황이었으므로 호일지 역시 그러한 광경을 직접 눈으로 목격한 것 이 아니며, 오직 그와 같은 말을 하고 있는 것은 그 자신의 오랜 강호 경험 에 비추어진 추리력(推理力)에 의존하고 있는 것일 것이었다. 비록 도옥의 행동에서 어떤 파탄의 기색도 느껴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당시 에 어느 누구도 그와 같은 황금빛의 장력의 기운을 느끼지 못했었다고 해 도, 사람들은 거의 그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그와 같 은 호일지의 얘기를 듣게 되자 문득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느끼게 되었고, 또한 도옥의 지나치게 태연히 보이는 태도에 대해 일말의 의문을 느끼기 시작하게 되었다. 본시 이 진정한 무학의 고수(高手)라고 하는 사람들의 무공은 대개가 그 흔 적(痕迹)을 쉽게 노출시키지 않을 뿐만 아니라 겉보기에는 그저 평범한 초 식(招式)으로만 보이는 경우가 허다한 것이기 때문에 호일지의 추리는 결코 과한 것이 아니었으며, 게다가 비록 도옥의 안색은 원래가 시체처럼 창백했 기 때문에 거기에서 어떤 내상의흔적을 발견할 수가 없었으나 무심코 시선 을 집중시킨 그는 꺾여진 좌수의 손목 부위에는 다른 곳과는 달리 왠지 다 소 누르스름한 기운(氣運)이 감돌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 아닌 가! 따라서 사람들은 점차로 이 호일지의 얘기가 진실일 가능성이 높다고 인정 하면서도 내심 그의 치밀한 추리력에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고, 아울러 그 와 동시에 뜻밖에도 크게 달라질지도 모르는 장내의 상황에 대해서 경악감 과 깊은 흥분감을 함께 느끼게 되었다. 도옥은 호일지의 말을 듣고 나서 잠시 동안 가볍게 안색을 변모시키다가 이 윽고 다시 두 눈에 싸늘한 냉광(冷光)을 뿌리며 대꾸했다. "정말로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로군. 그래 너는 정말로 내가 그와 같은 일을 당했다고 확신할 수가 있다는 말이냐?" 호일지는 그의 안광이 시퍼렇게 일어나는 것을 보고는 다소 움찔하는 기색 이었으나 이내 예의그 냉정한 기색으로 돌아가며 싸늘하게 대꾸했다. "아마도 평소의 당신이었다면 내가 이러한 말을 할 수 있도록 그냥 놔두지 않았을 것이오. 즉 지금 당신이 애써서 자신의 건재함을 보이려고 하는 것 은 그와 반대로 기실은 정말로 내상을 입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 이기에 나는 확신할 수가 있는 것이오." 말과 동시에 호일지의 두 눈에서도 마치 번갯불과도 같은 안광이 일어나서 도옥의 안광에 대항해가기 시작했으며, 그러한 그의 태도는 그 자신의 생각 이 이미 확고부동한 것이란ㄴ 점을 알 수 있게 했다. 도옥은 이에 한참 동안 호일지를 무섭게 노려보는 듯하다가 일순 어이없다 는 듯이 고개를 쳐들며 앙천광소를 터뜨렸다. "핫핫핫, 이거야말로 호랑이가 발톱이 빠지니 그만 사냥개들에게 회롱을 당 하는 꼴이로군. 그래 설령 나의 무공이 삼할 가량 줄어들었다고 하더라도 감히 너희들이 나를 어떻게 할 수가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는 말이냐?" 사람들은 내심으로 혹시나 하고 있다가 드디어 도옥의 입에서 자신이 내상 을 입은 것을 거의 시인하고 있는 것 같은 말이 터져나오는 것을 보고는 하 나같이 더욱 놀라서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호일지와 편괴 손사극은 도옥의 그러한 말이 떨어진 직후에 마치 약 속이라도 한 듯이 번쩍 신형을 날려서 좌우로 도옥을 완전히 포위해 버렸으 며, 각기 수중에 들려 있는 병기들을 휘둘러 초식들을 전개하여 주위를 엄 밀한 병기의 그림자로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비단 당사자인 도옥뿐만 아니라 악산산과 황약화까지도 그로 인해서 불구이 괴(不具二怪)의 거대한 포위망에 갇히게 되었는데, 하나의 기형(奇形)의 철 곤(鐵棍)과 하나의 기다란 채찍이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 주위에 엄밀하기 짝이 없는 강기( 氣)들로 가득 채워가는 것을 보고는 악산산은 실로 그들 의 무예가 이미 절정의 경지에 올라 있는 것임을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도옥이 만약 전혀 내상을 입지 않은 상황이었다면 절정급의 고수들인 불구 이괴와 같은 사람들이 세 명이나 합공을 한다고 해도 두려울 것이 없겠지 만, 그러나 이미 삼할 이상의 공력이 감축된 지금의 상황에서 그들 두 사람 의 엄밀한 조화를 이룬 합공은 그에게 확실히 위협적인 것이라고 아니할 수 가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물론 그렇다고 해서 불구이괴가 지금의 도옥을 쉽게 이길 수는 없는 일이어서, 아마도 그들은 지금과 같은 위협적인 공격을 퍼부어서 도옥으로 하여금 자신들에게 어떤 예의를 갖추도록 핍박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 같았 다. 악산산과도 그저 어정쩡하게 끝나 버린 상황에서 불구이괴는 아마도 자 신들이 이대로 그냥 물러가 버릴 수는 없는 일이라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일단 그렇게 불구이괴의 살벌한 공세가 시작되자 불과 조금 전까지만 해도 어느 정도는 조용하고 우아한 분위기를 풍기던 이 화려한 반점의 내부에는 온갖 살벌한 파공성과 함께 무수한 구조물 등의 파편들이 어지러이 휘날리 기 시작하여 그야말로 끔찍스러운 아수라장(阿修羅場)을 연상시키기 시작했 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의 일이었다. 느닷없이 잠잠하던 실내의 안쪽에서 두 사람의 흑의인(黑衣人)들이 번쩍 신형을 날려 입구쪽으로 나오더니 그 가운 데의 하나의 흑의중년인(黑衣中年人)은 곧장 가까운 곳에서 철곤을 휘두르 고 있는 곤괴 호일지에게 귀두도(鬼頭刀)를 휘두르며 달려들었고, 다른 하 나의 흑의복면인(黑衣覆面人)은 한창 금응방의 무리들과 격전을 벌이면서 그들 가운데의 서너 명의 사람들을 이미 살상해 버리고 있는 불구삼혈(不具 三血)에게로 달려가서 이내 퍽퍽퍽! 하는 가벼운 소리와 함께 흡사 허깨비 처럼 환상적(幻想的)인 몸놀림으로 그 불구삼혈의 정수리를 하나씩 모조리 부숴 버리는 것이 아닌가! 사람들은 비록 조금 전의 도옥의 내상에 대해서 심하게 놀랐었던 바가 있었 지만, 지금은 그와 같은 광경을 보고는 더더욱 크게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 다. 기실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던 바와 같이 그 불구삼혈은 비록 불구이괴와 같은 절정고수는 아닐지라도 그래도 강호상에서 행세할 수가 있을 정도인 일류고수들이라고 할 수가 있었는데, 느닷없이 등장한 흑의복면인에 의해 너무나도 간단하게 마치 장난처럼 죽어 버리게 되자 그야말로 너무나도 놀 라서 자신들의 눈을 의심하고 싶은 상황에 놓이게 되었던 것이었다. 조금 전의 상황을 다시 상기해 본다면 그것은 마치 불구삼혈이 그저 멍청하 게 서 있고 그 흑의복면인이 그들의 앞으로 다가가서 간단하게 손을 휘둘러 그들의 정수리를 부숴 버린 것 같은 광경이라고 할 수가 있었는데, 기실 불 구삼혈이 하나같이 멍청한 바보가 아니었던 다음에야 필시 그 흑의복면인의 그저 간단하고 평범해 보이는 손속에 무시무시한 위력이 있었을 것이라고 짐작이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불구이괴는 일순 그와 같은 광경을 바라보고는 하나같이 망연한 표정이 되 어 손을 거두었으며, 곤괴 호일지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흑의중년인의 귀 두도를 물리친 후에 그쪽을 다시 바라보며 마치 넋을 잃은 듯이 중얼거렸 다. "수라몽몽(修羅蒙蒙)의 신법(身法)에 수라마장(修羅魔掌)이라…… 그것을 최절정의 경지로 펼칠 수가 있다니, 설마하니 수라문(修羅門)의 문주인 수 라존자(修羅尊子)라는 말인가?" 사람들은 호일지의 말을 듣고서 다시 한 번 바닥에 시신이 되어 쓰러진 불 구삼혈으 몸뚱이를 바라보다가 일순 그들의 시신이 하나같이 점차로 검은 흑수(黑水)를 흘려내면서 작게 오그라들고 있는 것을 보고는 크게 경악했 다. 그러한 현상이야말로 수라문의 수법인 수라마장(修羅魔掌)에 당한 흔적 과 매우 흡사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원래 그 입구 쪽에는 제법 오랫동안 격전이 벌어져서 피가 튀기고 끔찍한 참혹상이 벌어져 있었지만, 거기에 다시 세 구의 시신들이 오그라들기 시작 하는 으시시한 광경이 나타나게 되자 여태까지 격전을 벌이느라 참혹한 광 경에도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던 금응방의 사람들도 일순 공포감에 질려 서 하나 둘씩 뒤로 물러서기 시작하는 모습들이었다. 곤괴 호일지는 일단 그와 같은 넋을 잃은 듯이 중얼거린 다음에 마치 약속 이라도 한 듯이 편괴 손사극과 함께 그쪽을 향해 번쩍 신형을 날렸는데, 그 러나 미처 흑의복면인을 향해 다가가기도 전에 그들은 어느 사이엔가 신형 을 날려서 그들의 앞을 가로막은 도옥과 예의 그 흑의중년인을 마주 대해야 했다. 지금 보이는 것과도 같이 새로 나타난 흑의복면인과 흑의중년인이 모두 다 도옥과 같은 편이라면 아무래도 상황이 다소 달라져 버린 것 같은 느낌이었 다. 곤괴 호일지는 이내 두 눈에서 원독(怨毒)의 광망을 발하면서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귀두도를 들고 있는 흑의중년인을 주시하며 소리쳤다. "삼두교(三頭蛟) 갈통(葛通)! 너희 무산방(巫山幇)과 본방과는 아직 이렇다 할 원한 관계가 없었는데, 대체 무엇 때문에 우리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것 이냐?" 사람들은 그제서야 비로소 이 귀두도를 들고 있는 흑의중년인이 나름대로의 도법(刀法)으로 무학이 절정의 경지에 이르러 무산방(巫山幇)이라는 방파를 조직하여 거느리고 있는 흑도의 괴수(魁首) 무산방주(巫山幇主) 삼두교(三 頭蛟) 갈통(葛通)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가 있게 되었다. 본래가 은원의 청산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농아방의 불구이괴가 느닷없이 자 신들의 수하들인 불구삼혈이 비명횡사를 하는 것을 보고, 게다가 다시 삼두 교 갈통과 음산귀서생 도옥이 자신들의 앞을 가로막는 것을 보자 원한이 사 무쳐서 그와 같이 악독하게 소리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가 있었 다. 귀두도를 전면에 비스듬히 세워서 호일지가 달려드는 것을 경계하고 있던 삼두교 갈통은 문득 그 말을 듣자 수중에 들고 있던 귀두도를 슬그머니 약 간 밑으로 내리면서 험상궂은 안면에 차가운 조소의 빛을 떠올리며 대꾸했 다. "흐흐, 호일지! 비록 원한 관계가 없다고 해도 능히 서로간의 의견이 맞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가능하면 얌전히 있는 것이 어떠냐?" 지금 도옥과 마주서고 있는 손사극은 몰라도 이 호일지는 무공에 있어서 자 신이 결코 눈앞의 이 삼두교 갈통에 비해 뒤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 지고 있었기 때문에 다소 여유를 가지고 생각한 다음에 다시 입을 열어 말 했다. "그렇다면 네놈들은 모두 한 패라는 말이군. 설마하니 너와 도옥은 저 수라 존자의 종복이라도 된다는 말이냐?" 갈통은 잠시 뒤를 돌아보며 흑의복면인을 주시한 후에 이윽고 잠시 머뭇거 리다가 호일지를 향해 입을 열어 대꾸했다. "나와 도형(陶兄)은 비록 그의 종복(終僕)은 아니지만 그저 친구 사이라고 할 수가 있지. 흐흐, 네가 정말로 그의 앞에 다가간다고 해도 그를 해칠 수 는 없지만 우리는 그저 우정을 생각해서 이렇게 나서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호일지가 흑의복면인의 신분을 알기 위해 우회적으로 물어본 말에 대해 갈통이 그가 수라존자가 틀림이 없다는 것을 반쯤은 시인하고 있는 것 을 보고는 그러한 사실을 상당히 기이하게 생각했다. 지금 이러한 장소에 음산귀서생이나 삼두교 갈통 등이 나타난 것은 별로 이상할 것도 없다고 해 도 평상시에는 거의 강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신비로운 수라문의 문 주 수라존자(修羅尊子)가 여기에 다시 모습을 모습을 드러냈다고 하는 것은 상당히 뜻밖의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더욱 이상한 것은 느닷없이 나타나자마자 불구삼혈을 한꺼번에 제거 해 버린 수라존자의 행동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대체 그는 무엇 때문에 느 닷없이 살수를 전개하여 불구삼혈을 한꺼번에 죽여 버렸던 것이었을까? 헌데 이때 호일지가다시 갑작스럽게 신형을 날리면서 철곤을 휘둘러 무수 한 환영(幻影)들을 자아내며 공격해 갔기 때문에 갈통은 급급히 자세를 바 로잡고 이에 대응하여 자신의 성명절기(盛名絶技)인 도법을 전개했고, 이내 그들 두 사람의 사이에는 창창창! 하는 요란한 쇳소리와 함께 무수한 철곤 의 그림자와 도광(刀光)이 난무(亂舞)하면서 살벌하기 짝이 없는 광경을 이 루어냈다. 갑자기 태풍이 휘몰아치는 듯한 기세로 벌어진 그러한 광경에서 호일지의 무공은 대체적으로 변화무쌍하여 예측을 불허하고, 갈통의 도법은 강맹(剛 猛)하고 악랄한 면모가 있어서 이 두 사람의 일전(一戰)은 서로간에 우열을 가리기가 어려워서 싸움이 오래갈 것 같았다. 날이 예리한 병기상의 이점이 있어서 갈통이 강맹하게 쇄도해 들어가기 시 작하면 호일지의 철곤은 무수한 변화를 일으켜서 수비를 하고 뒤로 다시 물 러나는 듯했으나, 다음 순간에는 어느새 다리가 하나뿐인 호일지의 신형이 괴이(怪異)한 변화를 일으켜서 갈통의 면전(面前)을 엄습해 들어서 그로 하 여금 다시 뒤로 물러서게 만드는 것이었다. 갈통은 상대방의 변화무쌍한 수법과 신법에 상당히 당혹스러워하는 눈치였 고, 호일지는 역시 나름대로의 생각에는 빨리 갈통을 물리치고 나서 손사극 과 함께 수라존자에게 달려가려고 하는 모양이었으나 역시 그것이 잘 되지 않는 눈치였다. 그런데 바로 그때 느닷없이 조금 전에 불구삼혈을 제거해 버린 수라존자가 장내로 느릿하게 다가오더니 이윽고 도옥과 대치하고 있는 편괴 손사극의 앞에 이르러 그를 향해 다소 투박하고 불투명한 음색으로 이렇게 입을 열어 말하는 것이었다. "솔직히 말해라! 장보도(藏寶圖)는 어디에 있느냐?" --장보도(藏寶圖). 당금의상황에서 장보도라고 하면 그것은 무림삼보(武林 三寶)의 하날는 진시황의 그 장보도를 말하는 것일 것이었다. 당연히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크게 놀랐을 뿐만 아니라 그제서야 아까 농아방의 한 명의 불구자가 안으로 도망쳐 들어오다가 금응방의 무리 들에게 당했던 일이나, 수라존자가 느닷없이 불구삼혈을 제거해 버린 일 등 에 대해서 그 원인을 한 순간에 알 수가 있을 것 같았다. 실로 그 무림삼보 는 강호상의 거의 모든 무림인들이 노리는 것으로서, 결코 그 가치가 작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이 무림삼보는 이미 장안성 내에서 소문이 자자해게 퍼져 있는 상태였지만 아직 그 분명한 출처가 밝혀지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공교롭게도 느닷없이 이 반점의 내부에서 그러한 출처에 대한 얘기가 튀어나오게 될 줄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었을 것이었다. 수라존자의 그와 같은 질문을 받은 편괴 손사극은 일순 크게 어리둥절한 표 정을 짓고 있다가 상대를 향해 대꾸했다. "뭐라고? 지금 나에게 그렇게 묻고 있는 것이냐?" 손사극은 비록 눈앞의 이 수라존자의 무공이 자신들의 무공보다 훨씬 뛰어 난 것이라는 사실을 이미 파악하고 있었지만, 그러나 그가 자신들의 수하들 인 불구삼혈을 그토록 무참하게 죽여 버린 후였기 때문에 자연히 수라존자 를 대하는 그의 어조가 거칠지 않을 수가 없었다. 수라존자는 손사극의 그와 같은 거칠은 대꾸의 말을 듣고는 처음에는 두 눈 에서 안광을 불길처름 내뿜으며 노화를 터뜨리는 듯하더니 이윽고 잠시 후 에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뒤쪽으로 손짓을 하며 누군가를 불렀다. "이리 오너라!" 사람들은 모두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는데, 그때 문득 한쪽에 물러나 있 던 금응방의 무리들 가운데에서 한 사람의 삼십대의 장한(壯漢)이 빠르게 걸어나오더니 수라존자를 향해 공손히 허리를 굽히며 예를 올리는 것이었 다. "부르셨습니까, 나으리?" 사람들은 아까는 대부분 그 자에 대해서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었 는데, 이제 특별히 수라존자의 지시를 받고 나타나는 것을 보자 시선을 집 중하여 그 자의 행색을 살폈는데, 비록 눈매가 날카롭고 발걸음이 가벼운 것이 무공이 하류배의 것은 아닌 것 같았으나 그 외의 용모는 평범한 편이 었는데, 유독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 장한의 가슴에 커다 랗게 새겨져 있는 남색(藍色)의 독수리의 형상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그 독수리의 형상은 그저 붓으로 그린 것이 아니라 제법 정성을 하다여 하나하 나 수를 놓아서 만들어 놓은 것이었는데, 한눈에 보기에도 형상이 상당히 정교하여 흡사 한 마리의 남색의 독수리가 용맹스럽게 금방이라도 날개짓을 하며 하늘로 솟구쳐 오를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이었다. 대체 이 금응방의 장한이 무엇 때문에 앞으로 나서게 되었을까 하고 사람들 이 생각하고 있는 가운데, 수라존자는 잠시 시선을 들어서 그 장한의 얼굴 을 바라보더니 이윽고 다시 입을 열어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어서 너의 신분내력을 말해 보아라!" (……?) 도무지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 수라존자의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지시에 그 장한은 다소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으나 이내 지체하지 않고 공손하게 입 을 열어 대답했다. "예, 소인(小人)은 바로 금응방(金鷹幇)의 방주(幇主) 휘하에 있는 십이응 조수(十二鷹爪手) 가운데의 하나인 남응(藍鷹) 장도(蔣濤)이옵니다." 그러고 보니 장한의 가슴에 새겨져 있는 그 남색의 독수리의 형상(形象)은 바로 그가 금응방의 십이응조수(十二鷹爪手) 가운데의 하나인 남응(藍鷹)이 라는 것을 나타내 주고 있는 표시인 것 같았다. 기실 이미 장안성 내에서 널리 알려져 있는 소문에 의하면 그 금응방은 시 정잡배들이나 무뢰한들이 주축으로 되어 있는 지하무림의 단체로서, 그 가 운데의 방주 응왕(鷹王) 방랍(方臘)의 제자들로 알려져 있는 이 십이응조수 들은 하나같이 응조공(鷹爪功)을 정묘한 경지에까지 터득한 일류고수들이라 는 것이었다. 원래 장안성 내의 다섯 개의 세력들 가운데 이 금응방은 가장 방도들의 숫 자가 많고 또한 세력이 막강했는데, 그것은 실로 이 금응방이 지하의 무림 계를 장악하고 있는 세력이 주축이 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사람들은 대부분이 어째서 이 수라존자가 갑자기 그와 같은 장한을 불러서 신분내력을 묻고 있는 것일까 하고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수라존자 는 남응이라는 장한의 대답을 듣고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이번에는 다 시 금응방의 무리들을 바라보며 그 가운데 한 명의 기생오라비와 같이 미끈 하게 잘생긴 삼십대의 화복청년(華服靑年)을 가리키며 다시 지시를 내리는 것이었다. 그 화복청년은 기실 조금 전에도 불구삼혈과 싸울 때에 거의 앞으로 나서지 않았었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무리들의 뒤쪽에 다소 물러나 있는 상태였는 데, 허리춤에는 한 자루의 보도(寶刀)를 차고 있었고 안색이 허여멀건한 것 이 흡사 귀공자(貴公子)를 연상시키는 인물이었다. 일반적으로 귀공자라고 하면 백면서생(白面書生)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지 만, 그는 눈빛이 예리하게 번쩍이는 것이 무공도 상당한 모양이었는데, 일 단 수라존자의 그와 같은 지시를 받게 되자 조금 전의 남응 장도와는 달리 금방 나설 생각은 하지 않고 다소 머뭇거리는 듯하다가 이윽고 하는 수 없 다는 듯이 천천히 걸어나와서 수라존자의 앞에 섰다. "부르셨습니까?" 수라존자는 이윽고 자신의 앞에 엉거주춤하니 예를 올리면서 바라보고 있는 화복청년의 얼굴을 복면 속의 두 눈으로 예리하게 한 차례 주시한 후에 그 를 향해 다시 말했다. "너의 신분내력은 뭐냐?" 화복청년은 막상 수라존자의 앞에 서게 되자 왠지 크게 위축감이 들어서 이 제는 감히 머뭇거릴 수가 없다고 생각한 듯이 즉시 공손히 고개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저는 방우량(方友諒)이라고 하옵고, 남들은 저에게 미도랑(美刀郞)이라는 별호(別號)를 붙여 주고 있습니다." 수라존자는 그 말을 듣자 문득 복면 속에서 눈빛을 가볍게 빛내며 다시 물 었다. "그럼 네가 바로 금응방주(金鷹幇主)인 방랍(方臘)의 아들이라는 말이냐?" 화복청년 미도랑(美刀郎) 방우량(方友諒)은 그러한 수라존자의 시선을 받게 되자 문득 자신의 신분내력이 크게 자랑스러운 듯이 고개를 쳐들고 허리를 펴면서 대답했다. "예, 불초는 미거하지만 부친을 잘 둔 덕에 남들이 저를 금응방의 소방주 (小幇主)라고도 불러주고있습니다." 수라존자는 처음보다 다소 오만하게 느껴지는 방우량의 그러한 대답을 듣고 는 약간 못마땅한 듯이 바라보다가 이윽고 문득 고개를 돌려 다시 편괴 손 사극을 가리키며 방우량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럼 네가 어서 그에게 설명을 해주어라!" (……?) 느닷없는 엉뚱한 지시에 방우량은 다소 어리둥절해 하는 눈치였으나 이내 생각을 굴려보고는 무슨 의미인지 알게 되었는지 한 차례 길게 심호흡을 한 다음에 낭랑한 어조로 손사극을 바로보며 입을 열기 시작했다. "불초 등은 오늘낮에 우연히 저기에 있는 불구이괴 등이 그 진시황의 장보 도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내고 그때부터 은밀히 저들의 동태를 감시 하기 시작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다름이 아니라 저들의 수하들 가운데의 하나인 농아방의 방도 하나를 제압해서 고문해 본 결과 저들 불구이괴가 바 로 이 부근에서 장보도와 가장 관련이 깊은 사람과 만나기로 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은밀하게 이 부근을 감시하고 있던 도중 아까의 그 농아방의 방도 하나가 조심스럽게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추격하다가문득 그 자는 우리들이 추격하는 것을 눈치 챘는지 얼른 다시 이곳으로 도망쳐 왔으므로 우리들도 자연 그 자를 추격하 여 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갑자기 그와 같은 얘기를 듣게 되자 조금 전부터 벌어졌던 일의 근원을 알게 되었고 의문이 다소 해소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으나, 이내 그 방우량의 얘기에는 허점들이 상당히 많이 들어 있는 것 같아서 다시 어리둥 절한 느낌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는 장보도의 행방을 우연히 알게 되 어 농아방의 방도 하나를 고문해서 그것을 확인하게 되었다고 했는데,실제 로 장보도의 출처는 지금 장안성 내에 몰려들어 있는 거의 모든 무림인들이 추적하고 있는 것이고, 실로 그러한 것이 그토록 쉽사리 알게 될 리가 만무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농아방도 하나를 추격해서 들어왔다는 얘기 도 다소 이상했다. 만일 이 불구이괴가 정말로 장보도의 출처에 관해서 알 고 있는 것이라면 그들이 그와 같은 중대한 기밀사항을 함부로 수하들에게 발설했을 리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방우량의 그와 같은 말을 들은 손사극은 일순간 크게 어처 구니가 없다는 듯이 웃으며 아직도 갈통과 치열하게 격전(激戰)을 벌이고 있는 호일지의 쪽을 바라본 다음에 냉랭하게 입을 열어 대꾸했다. "뭐라고? 우리가 그 장보도의 행방에 대해서 알고 있다고? 하하하, 만일 우 리가 그것의 행방을 알고 있다면 당장에라도 보물(寶物)들을 찾으러 떠날 것이지 이러한 곳에서 이렇게 죽치고 앉아 있겠느냐?" 방우량은 그 말을 듣고 나자 왠지 안색을 다소 붉히더니 화가 난 듯이 손사 극을 향해 직접 캐물었다. "그럼 우리들에게 고문을 당했던 당신들의 그 수하는 거짓말을 하고 죽었다 는 것이오?" 손사극은 이제 나이가 서른두어 살밖에 되지 않은 것 같은 풋나기가 자신과 마주 따지고 들려고 하는 것을 보자 다소 어이가 없는 듯이 웃으며 대꾸했 다. "만일 우리가 그 중대한 기밀사항을 알고 있었다면 그러한 얘기를 함부로 누구에게든지 하지 않았을 것이고, 또한 본방의 그 제자도 설령 죽을지언정 그러한 얘기는 발설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그러한 얘기를 하고 죽은 것이니, 과연 너희들은 그 얘기가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한다는 말이 냐?" 기실 이 농아방의 방도들은 농아방이라는 이름처럼 오직 불구자들만이 가입 할 수가 있는 단체였기 때문에, 그 방도들은 하나같이 다른 문파의 사람들 보다 악착같은 심성들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가 있었는데, 그러한 면에 비 추어 볼 때 손사극의 말은 상당히 일리가 있는 것이어서 방우량은 그러한 말을 듣고 나자 이내 대꾸를 하지 못했다. 그는 대신 자신이 혹시 어떤 잘못을 범한 것이 아닌가 하고 우려하는 표정 으로 옆의 수라존자를 향해 은근히 시선을 던져 보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때 뜻밖에도 수라존자의 두 눈에는 실망한 기색은 보이지 않고 오 히려 두 눈가득 기이한 빛을 발하고 있다가 손사극에게 싸늘하게 말했다. "물론 신빙성은 없지. 나도 원래 그 말을 믿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제 보니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닌 것이로군!" 손사극은 수라존자의 엉뚱한 말에 다소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그를 바라 보며 냉랭한 어조로 대꾸했다. "그건 어째서냐?" 수라존자는 내심으로는 손사극의 반말이 다소 귀에 거슬렸지만 이내 그러한 것은 상관하지 않고 즉시 득의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원래 너희가 정말로 장보도와 관련이 없는 것이라면, 조금 전과 같이 그처 럼 애써서 변명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너는 마치 자신들이 전혀 장보도와는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서 안달이 나 있는 사람들 처럼 줄줄이 변명을 해댔으니, 어찌 의심스럽지 않겠느냐? 너희들은 이제 순순히 바른 말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손사극은 이에 크게 어이없다는 듯이 다시 대꾸했다. "뭐라구? 정말로 이치를 따질 줄을 모르는군! 지금 장안성 내에는 그 장보 도 등을 구하기 위해 수많은 무림인들이 벌떼처럼 몰려들어 있는 상황인데, 만일 네가 그와 같은 오해를 받는다면 너는 과연 태연하게 가만히 있을 수 가 있겠느냐? 그와 같은 액겁(厄劫)을 벗어나기 위해 변명을 했다고 해서 오히려 장보도와 관련이 있는 것이라니…… 이는 실로 웃기지도 않는 일이 로군!" 그러나 손사극의 그러한 말에도 불구하고 수라존자의 득의한 기세는 줄어들 지 않고 오히려 더욱 강렬한 빛을 발하며 이렇게 말을 받는 것이었다. "물론 너희들이 다른 평범한 무림인이었다면 그와 같은 변명을 하는 것이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들은 바로 그 유명하고 고집 에 세기로 천하에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농아방의 사람들이 아니냐? 그와 같 은 너희들이 오히려 순순히 변명을 해대는 것은 정말로 의미심장한 일인 것 이다." "……!" 손사극은 일순 어처구니가 없어서 더 이상 대꾸할 수가 없다는 듯이 입을 다물어 버렸다. 수라존자는 이윽고 그러한 모습을 보자 서서히 신형을 움직여 그의 앞으로 다가들려는 자세를 취해 보이는 것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다음 순간의 일이었다. "멈춰라!" <제2권 끝> -- 계속 -- #5745 양한우 (hanwoo71) [백상] 종남사부 제3권 제15장 03/28 12:13 127 line 올 린 이 : 양한우 HITEL ID : hanwoo71 제15장. 장보도(藏寶圖)는 어디에? 반점의 실내쪽에서 한 차례의 요란스러운 음성들이 합창처럼 울려퍼지더니 이윽고 수라존자의 전면 손사극의 주변에 다시 세 명의 장검을 매고 있는 중년인들이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그 세 명의 중년인들은 하나같이 일신에 푸른 도복을 걸치고 있었는데, 수 라존자가 신형을 멈칫하는 것을 보자 그 가운데의 한 중년인이 싸늘한 음성 으로 이렇게 다시 소리치는 것이었다. "멈춰라! 강한 자들이 약한 자를 향해 한 무더기가 되어 공격하려는 것은 합당치 못한 것이다. 만일 그와 같은 짓들을 한다면 우리 청해삼검(靑海三 劍)은 결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기실 수라존자는 조금 전부터 그 세 명의 중년검객(中年劍客)들이 실내의 한쪽 구석진 탁자가 있는 곳에서 다소 조급한 모습을 보이며 앞으로 나서서 이 일에 끼어들려고 하고 있는 것을 은근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제 정말 로 그들이 자신들을 자칭 청해삼검이라고 말하며 그곳으로부터 신형을 날려 서 장내에 내려서서 일에 끼어들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는 문득 두 눈에 싸 늘한 조소의 기색을 드러내며 그들을 향해 마주 대꾸했다. "뭐라구? 겨우 무공이 그 정도에 불과한 너희들이 감히 나서서 나를 가로막 겠다는 말이냐? 목숨이 아깝지 않느냐?" 자신들의 위세를 믿고 있는 듯이 조금 전의 그 중년인은 수라존자의 말을 듣자 다시 즉시 입을 열어 대꾸했다. "우리는 지금 강호상의 공도(公道)를 주재하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명예 로운 것이고 목숨조차 아깝지 않은 것이다!" 수라존자는 그 말을 듣고 문득 어이가 없다는 듯이 그들 세 사람을 주시하 고 있다가 이윽고 그들을 향해 다시 말했다. "너희들은 정말로 분수를 모르는구나! 나는 사실 너희들의 신분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너희들은 바로 청해파(靑海派)의 소속인데, 그 가운데 너는 천검(天劍) 해천파(海天波)이고, 너는 지검(地劍) 막굉(幕宏)이며, 마지막 으로 너는 인검(人劍) 진소유(秦少游)가 아니냐? 나는 원래 너희들의 스승 인 청해파의 무주 청해검학(靑海劍鶴) 교홍(喬虹)마저 안중에 두지 않고 있 는 사람인데, 불과 절정의 무공을 터득하고 있는 너희들 세 사람이 감히 나 를 어쩔 수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말이냐?" "……!" 자칭 청해삼검이라고 했던 그 세 명의 중년검객들은 일순 상대가 자신들의 신분내력에 대해서 소상하게 말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자신들의 사부이며 청해파 최고의 고수인 청해검학(靑海劍鶴) 교홍(喬虹)마저 안중에 두지 않 고 있다고 하는 말을 듣고 저마다 어안이 벙벙해지며 크게 놀라는 표정들을 지었다. 사실 이 청해파의 사람들은 거의 중원에 나타나지 않아서 중원에서 그들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거의 없는 실정이었는데, 느닷없이 자신들에 대 해서 그토록 소상하게 알고 있는 사람을 만나게 되자 다소 놀란 것이었다. 그러나 제아무리 상대방이 말로써 이득을 취하려고 해도 이에 쉽게 넘어갈 사람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가장 먼저 입을 연 천검(天劍) 해천파(海天波)가 다시 입을 열어 말했다. "네가 어쩌다가 우리들의 신분내력에 대해서 알게 된 모양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러한 말 한 마디로 그냥 물러설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이 냐? 그것은 어림도 없는 일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오늘 반드시 강호상의 공 도(公道)가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말 것이다!" 해천파의 그와 같은 말에 그의 좌우에 서 있는 지검(地劍) 막굉(幕宏)과인 검(人劍) 진소유(秦少游)도 내심으로 수긍을 하는지 무심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수라존자는 그러한 광경을 보자 더욱더 어이가 없는 듯이 그들 세 사람을 바라보다가 이윽고 두 눈에서 싸늘한 광채를 발산시키며 말했다. "어리석은 놈들! 네놈들이 불을 봐야 그 뜨거운 맛을 알게 되는 놈들이라면 내가 다시 더 얘기할 필요는 없겠지!" 말과 동시에 과연 수라존자는 청해삼검을 향해 신형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청해삼검은 그것을 보자 일제히 신형을 움직여서 세 사람이 하나의 진법(陣 法)을 형성한 채 등뒤에서 각기 날이 시퍼런 장검(長劍)을 뽑아들었는데, 진법의 형상이 품자(品字)형인 것으로 보아 아마도 그들이 펼치려는 진법의 종류가 삼재검진(三才劍陣)과 비슷한 것일 것 같았다. 일단 진법을 형성하고 빠르게 장검을 손에 뽑아든 청해삼검은 이어 입으로 뭔가 사투리와 같은 알아듣기 어려운 말들을 중얼거리며 장검에 검기(劍氣) 들을 일으켜서 검진의 위세를 점차로 강하게 만들어 가기 시작하고 있었는 데, 수라존자가 신형을 움직이기 시작하여 미처 그들의 곁에 도달하기 전에 이미 그러한 형세를 이루어내는 순발력 등으로 미루어 보아 그들은 이미 그 러한 검진의 운용이 상당히 익숙해져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수라존자는 그들의 앞에 이르자 그들의 검진의 위세가 대단한 것을 보고는 다소 멈칫하는 듯하다가 문득 한 번 시험이라도 해보는 듯이 가볍게 우수를 휘저었다. 그의 우수에서는 이내 왠지 사악(邪惡)한 느낌을 풍겨주는 검은 기운이 그 림자처럼 소리없이 앞쪽에 있는 인검 진소유를 향해 뻗어나갔는데, 그것을 본 진소유는 즉각 다음과 같이 소리치며 자신의 손에 들려 있는 장검을 앞 으로 내밀며 수라존자의 장력에 마주쳐 갔다. "정말로 수라문의 수라장(修羅掌)이로군!" 사람들은 일순 진소유가 고작 장검의 끝으로 수라존자의 장력을 마주쳐 가 는 것을 보고는 뭔가 그 가운데 대응 수단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기이하게 생각했다. 진소유와 수라존자의 사이에는 아직 공간이 다소 있어 서 그의 장검으로 수라존자를 직접적으로 위협할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와 같은 날카로운 장검으로는 마치 형체도 없는 듯이 날아오고 있는 수라장 을 모두 막아낼 수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과연 아니나 다를까, 마악 수라존자의 장력이 도달한 순간에 진소유 의 검 끝에서는 흡사 뱀의 혓바닥과도 같은 시퍼렇고도 길쭉한 검망(劍芒) 이 나타나더니 그것이 한 순간에 둥그런 방패와도 같은 막(幕)을 형성하여 수라존자의 장력을 튕겨내는 것이 아닌가! 사람들은 비록 절정의 경지에 도달한 검객들이 자유로이 검망이라는 것을 발출할 수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러나 지금과 같은 검진에 의한 합격으로 마음과 진기(眞氣)를 더하여 그와 같은 검망을 신기(神機)하게 부 리는 것은 처음으로 보았기 때문에 저마다 눈을 휘둥그래 뜨게 되었다. 쾅! 하나의 장력과 검망의 방패가 부딪친 순간에 흡사 거대한 폭죽이 터져 버린 것 같은 요란한 폭음이 울려나오면서 장내의 공기가 격렬하게 유동했다. 주위의 사람들은 장내의 공기가 그와 같이 격렬하게 유동하는 것을 보고는 실로 그 격돌이 굉장한 것이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장력과 검망이 부딪친 순간에 청해삼검은 한 차례 거의 동시에 신형을 흔들 거린 반면에 수라존자는 도저히 그러한 검진의 기운을 당해낼 수가 없는 듯 이 신형을 심하게 비틀거리다가 뒤로 세걸음이나 물러나고 뒤를 이어 그렇 게 물러나고서도 여전히 신형의 중심을 잡지 못한 듯이 다시 또 서너 걸음 이나 비척거리며 뒤로 물러나는 것이 아닌가! 헌데 바로 그 순간의 일이었다. 공교로운 우연의 일치였는지는 몰라도 수라 존자가 그렇게 비척거리며 뒤로 물러난 자리가 바로 도옥과 아직도 대치하 고 있는 손사극이 서 있는 부근이었는데, 손사극이 자신을 향해 내상을 입 은 듯이 비틀거리며 물러나고 있는 수라존자에게 손을 써야 할지 다시 망설 이고 있는 사이에 느닷없이 심하게 비틀거리던 수라존자가 그를 향해 눈을 번쩍 뜨더니 신형을 환상(幻像)처럼 흐릿하게 움직이며 갑자기 우수를 날벼 락처럼 내뻗어 오는 것이었다. (……!) 지금 장내의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던 사람들은 그와 같은 놀라운 사태의 변화를 보자 다같이 크게 경악했으며, 당연하게도 당사자인 손사극은 더더 욱 심하게 놀라서 즉시 일신(一身)의 무공을 전개하여 이에 맞서려고 했다. 그러나 막상 손사극이 공력을 일으켜서 손을 쓰려고 하는 찰나에 어느새 가 슴 부위가 뻣뻣하게 굳어져 오면서 그의 의식(意識)이 아득해져 오는 것이 아닌가! 수라존자는 그를 향해 손을 쓰기에 앞서서 그 유명한 수라일점혈(修羅一點 血)이라고 하는 지력(指力)을 발출한 모양이었는데, 손사극은 처음에 방심 했던 나머지 그만 그 지력에 가슴의 요혈(要穴)이 제압당하고 말았던 것이 었다. 수라존자는 손사극의 전신이 뻣뻣하게 굳어져 버리자 이내 자신이 뒤를 이 어 펼치던 장력을 회수해 버리고는 우수를 곧바로 상대의 뒷덜미로 옮겨서 는 그의 목덜미를 움켜잡고는 싸늘한 기색으로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네가 감히 나에게 거짓말을 할 수가 없겠지? 나는 지금 너에게서 어떤 대답이 나오게 될지 직접 들어봐야 하겠다!" -- 계속 -- #5746 양한우 (hanwoo71) [백상] 종남사부 제3권 제16장 03/28 12:13 275 line 올 린 이 : 양한우 HITEL ID : hanwoo71 제16장. 섭혼마공(攝魂魔功)의 위력(威力) 느닷없이 수라존자가 간단하게 손사극을 제압해 버리자 이미 그의 갑작스러 운 변신(變身)에 경악하고 있었던 사람들은 더더욱 크게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이 수라존자가 청해삼검과 맞부딪쳐서 정말로 낭패를 당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물론 그러한 모든 행동들이 기실은 처음부터 수라존자의 철저하게 계산된 행동이었다는 것이 명백하게 드러난 셈이었다. 일단 청해삼검의 반격을 받아서 그렇게 형 편없이 뒤로 밀릴 정도라면 그 다음의 순간에 그처럼 신속하고 영활한 수법 으로 손사극을 제압할 수가 없을 것이기 때무니었다. 손사극이 그렇게 수라존자에게 완전히 제압을 당하자 한쪽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서 갈통과 격전을 벌이고 있었던 호일지는 크게 놀라운 기색이었고, 삼 재검진을 펼치고 있었던 청해삼검은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는 듯한 표정들 을 짓고서 다소 멍한 기색들이었으며, 다른 사람들이 격전을 벌이기 시작하 는 통에 무의식중에 한옆으로 물러나 있었던 악산산과 황약화는 그와는 달 리 다소 무표정한 안색들이었다. 아무튼 이제 수라존자가 정말로 손사극을 수중에 넣게 되어 상황은 크게 돌 변하게 된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할 수가 있었는데, 실내에서 관전하는 사 람들이 놀라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수라존자는 이어 손사극을 정면으로 바라보더니 이윽고 두 눈에서 각기 맑고 투명하며 사악한 기운으로 충만해 보이는 안광(眼光)을 발출하기 시작했다. (……!) 손사극은 이때 전신의 기혈이 제압을 당하여 정신력이 흐릿해져 있는 상황 에서 무심코 앞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수라존자의 그 맑고 사악해 보이는 시선을 대한 순간 마치 자신의 영혼(靈魂)이 그 한 쌍의 눈 속으로 빨려 들 어가는 것 같은 강렬한 마력(魔力)을 느끼고는 내심으로 대경실색하여 즉시 눈을 감으려고 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히 그의 의식은 눈을 감아야 하겠다고 생각하 고 있는 상태이건만 도무지 그의 두 눈은 그의 말을 듣지 않고 여전히 멍청 하게 수라존자의 두 눈만을 멍청하게 바라보기만 하는 것이 아닌가! 뿐만 아니라 이후로 점차로 그 자신의 의식도 흐려져서 몽롱한 상태로 접어들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바로 그때 수라존자가 느닷없이 아주 사악하게 느껴지는 기이한 음성으로 입을 열어 손사극에게 말했다. "어서 말해라. 너는 누구냐?" 이러한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은 이 순간의 수라존자의 음성이 듣는 사람들의 심혼(心魂)을 뒤흔들만큼 음산하고 사악하게 느껴질 뿐만 아니라, 수라존자의 그러한 지시를 받은 손사극이 다음 순간에 마치 그의 명령이라 면 무엇이든 따르는 종복이라도 되는 듯이 즉시 입을 열어 줄줄이 대답하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하나같이 흠칫하며 크게 놀랐다. 그들은 이러한 수법이 바로 섭혼마공(攝魂魔功)의 일종이라고 생각하고 있 었지만, 실로 이렇게 위력이 강하게 느껴지는 것은 처음 보는 것이라고 생 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손사극의 입에서 흘러나온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나는…… 나는 손사극…… 아니 손아우(孫阿牛)이오. 나는 강남 손가장원 (孫家莊院)의 하녀인 호미(胡美)라는 여자에게서 태어났는데, 그녀는 나를 갖기 전에 그 장원의 주인나리인 손노대(孫老大)와 몰래 관계를 맺었었기 때문에 나는 즉 그 손노대의 자식이었던 것이오. 그러나 나의 어머니인 호 미가 어느날 갑자기 죽음을 당하게 되자 나는 그 장원에서 아우(阿牛)라는 이름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었는데, 그 손가의 자식들이 너무나도 심�耽� 나 를 다루었고, 게다가 나의 한쪽 팔마저 끊어 놓았기 때문에 나는 어느날 몰 래 장원을 벗어나 도망치게 되었소. 그리고 거렁뱅이 행세를 하면서 강호를 떠돌다가 어느날 우연히 독룡비급(毒 秘 )이라는 무공비급을 입수하게 되 어 그 비급상의 독룡편법(毒龍鞭法)을 연성하게 되었는데, 나는 일단 무공 을 어느 정도 연성한 다음에 즉시 그 강남의 손가장원으로 달려가서 그 손 노대는 물론이고 그 손가의 자식들을 모조리 쳐죽이고 복수를 한 다음에 그 곳의 재산(財産)을 거두어서 강호 생활을 하는 데 사용하게 되었던 것이오. 나는 자연히 무공이 높아짐에 따라서 아우라는 이름이 좋지 않다고 생각되 어 손사극(孫思克)이라는 이름을 지어서 그것으로 사용하게 되었던 것이오. 나는 비록 나의 그러한 행위들이 좋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러나 후회 하는 것은 아니오. 얼마 전부터 나는 호일지 호형(胡兄)과 함께 의기투합하 여 농아방에 들어서……" 사람들은 손사극이 수라존자의 섭혼마공에 걸려들어서 평소라면 죽어도 하 지 않을 듯한 자신의 평생의 수치스러운 과거와 죄악(罪惡)에 대해서 열심 히 자세하게 늘어놓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는 하나같이 섭혼마공의 위력에 경악스러워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정말로 어처구니가 없다는 생각들을 하기 시작했다. 만일 지금 손사극이 섭혼마공에 걸려들어서 자신의 입으로 그와 같은 말을 하지 않았다면 누구도 그에게 그러한 과거가 있었다는 것을 몰랐을 것이었 다. 일반적으로 농아방의 방도들은 하나같이 처절한 과거가 있거나 고통스러운 환경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와 같이 성격들이 악질적이라고들 하는데, 겉으로는 다른 사람들과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 손사극에게 기실은 어려서부터 그와 같은 고통스러운 과거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는 은 근히 그의 처지를 동정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그 수라존자는 별로 손사극의 그러한 얘기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듯 잠시 동안 듣고 있다가 이내 다소 눈살을 찌푸리 며 입을 열어 그의 말을 잘랐다. "좋아. 그만하면 됐다. 그건 그렇고 어서 장보도(藏寶圖)의 행방이나 밝혀 라!" 손사극은 그 말을 듣자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윽고 예의 그 멍청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장보도…… 장보도는 근래 들어서 장안성 내에 나타난다고 해서 나는 호형 과 함께 방도들을 동원해서 알아보려고 했으나 기실…… 기실 그 장보도는 모든 무림인들이 노리고 있는 것이라서 쉽게 발견하기가 어려우므로 그래 서……" 내심 깊은 관심을 가지고 손사극의 말을 듣고 있었던 수라존자는 어이없게 도 그러한 말이 그의입에서 흘러나오는 것을 보고는 망연한 기색이 되어서 소리쳐 다시 물었다. "아니, 뭐라구? 그렇다면 너희들은 어째서 이 반점에 들어와 있었다는 말이 냐?" 손사극은 주저하지 않고 즉시 대답했다. "우리는 이번에 본방의 방주이신 농아두타(聾啞頭陀)께서 폐관(閉關)에 드 셨다가 출관을 하셨으므로 모처럼 이곳에서 호화로운 음식들을 대접해 드리 기 위해 그분이 이곳에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오. 그런데…… 그런 데 이상하게도 사람들이 오해를 하는 바람에 방주의 소식을 알아보러 갔던 제자나 삼혈(三血) 등이 죽고……" "됐다. 그만해라!" 수라존자는 손사극의 입에서 자신이 죽여 버린 불구삼혈 등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거의 신경질적으로 입을 열어 손사극의 말을 자른 다음에 이윽고 고 개를 들어 망연한 기색으로 다시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그렇다면 결국 내가 잘못 짚은 것이었다는 말인가?" 헌데 바로 그 순간의 일이었다. 쉭! 느닷없이 등쪽에서 가벼운 파공음이 들려나옴과 동시에 한 사람이 길쭉한 병기를 휘두르며 수라존자의 등줄기를 후려쳐 오는 것이 아닌가! 기실 조금 전에 수라존자가 섭혼마공으로 손사극에게 얘기를 듣고 있을 때 그의 주위에는 도옥과 금응방의 두 명의 일류고수들이 은연중 호위하고 있 는 상태였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감히 그의 곁으로 다가갈 생각을 하지 못했고, 또한 한쪽에 서 있던 청해삼검 역시 이미 놀라운 수라존자의 능력 을 실감했기 때문인지 감히 경거망동하지 못했으므로 손사극의 얘기를 다 들을 수가 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대강 손사극의 얘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에 한쪽에서 치열하게 격전 을 벌이고 있었던 호일지가 느닷없이 갈통을 물리치고 급작스럽게 이쪽으로 다가왔던 것이니, 이 순간 호일지의 상체에는 핏물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그가 일부러 몸을 빼내기 위해 무리하게 갈통에게 달려 들었던 모양이었다. 이 호일지가 느닷없이 그쪽에서 몸을 빼내서 이쪽으로 달려올 줄을 모르고 있었던 도옥 등은 미처 그를 막아내지 못했고, 한 순간에 적의와 원한(怨 恨)에 가득찬 독기(毒氣) 서린 호일지의 기형의 철곤이 바야흐로 수라존자 의 등줄기를 후려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실로 이 수라존자의 무공은 정말로 막강하기 짝이 없는 것이어서 그 와 같은 급작스러운 기습을 당하고도 전혀 놀라거나 당황해하는 기색이 없 이 그저 두 눈에서 싸늘한 안광을 번쩍 발출시키더니 그와 동시에 우수를 뒤쪽으로 가볍게 휘젓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수라존자가 거의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마치 장난하듯이 뒤쪽으로 손을 내젓는 것을 보고는 이번에는 그가 지나치게 상대를 가볍게 여기고 있 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지금 이 순간에 호일지는 전신의 공력(功力)을 최대한으로 발출시켜서 철곤 (鐵棍)에 주입시키고 있었으므로, 비단 그 차가운 쇠붙이의 위력뿐만 아니 라 그 쇠붙이의 끝에서 놀랍게도 마치 검망(劍芒)처럼 무려 한 자나 되는 강렬한 기운이 내뻗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한 기운은 실로 병기 그 자 체나 다름이 없는 것이어서 수라존자가 비록 철곤에 직접 맞지 않는다고 해 도 그 기운에 맞게 되면 역시 심한 부상을 당할 것이 명백해 보였다. 그런데 다음 순간에 실로 사람들의 예상을 벗어나는 놀랍고도 신비로운 현 상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수라존자가 그저 간단하게 장난처럼 휘저은 듯한 손속이 느닷없이 거무스레한 기운을 일으키는 듯하더니 그 기운에 휩싸여서 흡사 환영처럼 사라졌으며, 이윽고 다음 순간에는 어느새 놀랍게도 상대방 호일지의 병기인 철곤의 끝부분을 우수로 가볍게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닌가! 대체 조금 전에 철곤의 끝부분에서 그토록 맹위를 떨치던 한 자나 되는 기 운은 갑자기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인지 쉽게 납득이 되지 않았다. 수라존자는 단지 엄지와 식지의 두 손가락으로 가볍게 철곤의 끝부분을 잡 고 있었는데, 그것은 마치 두 사람이 미리 약속을 하고 장난을 하고 있는 듯이 태평스럽기까지 한 광경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그러한 광경이 장난만은 아니라는 것은 이내 수라존자가 서 서히 뒤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에 벌어졌다. "우웩!" 철곤의 한쪽 끝을 잡고 있었던 호일지가 느닷없이 안색이 시꺼멓게 변하더 니 입 속에서 무려 한 사발이나 되는 시뻘건 선혈을 내뿜으며 뒤로 벌렁 나 동그라졌던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심한 중상을 당해도 그처럼 뒤로 벌렁 넘어가는 경우는 거의 없 는 법인데, 지금 호일지가 그와 같이 뒤로 넘어가는 것을 보니 조금 전의 가볍게 손을 쓰는 듯했던 수라존자의 손속이 얼마나 그에게 극심한 충격을 주었던 것인가를 알 수가 있을 것 같았다. 호일지는 그렇게 뒤로 벌렁 넘어간 다음에뒤통수가 바닥에 부디진 충격으 로 인해 금새 다시 정신을 차리는 모양이었는데, 그러나 조금 전에 입은 내 상이 너무나도 극심했던 것인지 쉽게 다시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수라존자는 그것을 보고는 복면 속의 두 눈을 차갑게 빛내며 우수에 들고 있던 철곤을 가볍게 좌수와 맞잡으며 둥글게 휘어 버린 다음에 그것을 뒤로 쓰러져서 아직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 호일지를 향해 날리려고 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에 다시 수라존자의 등뒤에서 미미한 기척이 느껴지며 누군가가 그를 향해 장력을 퍼부었다. 수라존자는 그 장력의 임자가 아무래도 이제까지 잠자코 있었던 청해삼검 가운데의 하나가 아닐까 하고 무심코 생각하고는 호일지를 향해 날리려던 철곤을 그대로 우수에 잡고 있는 채로 이번에는 좌수를 뒤로 휘저었다. 기실 이번에 그가 비록 우수가 아닌 좌수를 쓰기는 했지만 그것은 다만 우 수에 물건이 들려 있었기 때문이었지 상대를 경시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수라존자는 다시 느닷없는 기습을 당하게 되어 은근히 불쾌한 느낌이 들었 기 때문에 내심으로는 크게 혼을 내주기 위해 아까 호일지를 상대할 때보다 더욱 무섭게 손을 썼던 것이었다. 수라존자는 필시 자신의 그 한 수로 분수를 모르고 덤벼드는 청해삼검 가운 데의 그 한 녀석이 피떡이 되어 나뒹굴게 될 것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헌데 그때의 일이었다. 꽝! 흡사 벽력탄(霹靂彈)이라도 터져 버린 듯이 거대한 폭음이 굉렬하게 진동하 면서 두 개의 장력이 서로 부딪친 순간에 수라존자의 신형이 크게 충격을 느끼며 앞쪽으로 비척거리며 나아가는 것이 아닌가! (……?) 수라존자는 일순 크게 경악하여 앞으로 나아가려는 신형을 반탄력을 이용하 여 그 압력을 제거하고 마치 구름에 떠다니듯이 비스듬히 돌아서 황급히 느 닷없는 그 상대를 향해 모을 세웠다. 비록 그 순간의 수라존자의 임기응변의 신법은 멋들어지도록 훌륭한 것이어 서 절로 경탄사가 터져나올 만한 것이었지만, 일단 상대를 향해 몸을 돌려 세운 후의 수라존자의 두 눈에는 실로 처음으로 상당히 놀란 듯한 기색이 서려 있었다. (……!) 과연 아니나 다를까, 그저 무심코 청해삼검 가운데의 하나일 것이라고 생각 했던 수라존자의 추측은 틀린 것이어서 그 청해삼검은 지금 아직도 아까의 그 자리에 서서 다소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이쪽을 멍하게 바라보고 있을 뿐 이었다. 지금 수라존자의 눈앞에는 한 사람의 낯설어 보이는 약관의 서생(書生)이 다소 멀뚱한 기색으로 서 있었는데, 한눈에 보기에도 그 서생의 모습은 너 무나도 평범하고 초라하여 그다지 뛰어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특이했다. 바로 그는 다름이 아니라 화검운(花劍雲)이었던 것이었다. 화검운은 지금 한 손에 예의 그 더러운 부채를 잡고 가볍게 부치고 있었는 데, 수라존자는 바로 그가 자신의 수라장(修羅掌)을 그토록 쉽게 격파한 사 람이라는 것을 알고는 매우 놀란 기색이 되어 입을 열어 물었다. "너는 누구냐?" 화검운은 이 순간에 자신이 하는 수 없이 장내에 나서게 되어 상당히 쑥스 러운 기분이 되어 버린 듯이 어색하게 웃으며 주위를 기웃거리더니 웃으며 대꾸했다. "나…… 나 말이오? 하하, 그 얘기를 꼭 해야만 하겠소?" 수라존자는 잠시 그의 얼굴을 예리하게 주시하더니 이윽고 다시 말했다. "물론이다. 네가 만일 어떤 목적이 있어서 나선 것이라면 일단은 자신의 정 체를 밝혀야 할 것이 아니냐?" 수라존자는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상대방 서생의 얼굴에 전혀 조금 전의 격 돌의 파탄이 느껴지지 않는 것을 보고는 더욱 믿을 수가 없어 하는 눈치였 다. 화검운은 이에 그만 어쩔 수가 없다는 듯이 입을 열어 대답했다. "내 이름은 화검운이고 그리고 음, 이 장안성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의 한 사람이라오." 수라존자는 화검운의 너무나도 태연자약한 태도에 왠지 상대적으로 의심이 가중되는 듯이 눈빛을 괴이하게 빛내며 다시 물었다. "너의 목적은 뭐냐?" 화검운은 즉시 대답했다. "내 목적이야 다른 것이 있겠소? 그저 당신이 넘어진 사람에게 잔인(殘忍) 한 독수를 쓰려는 것 같아서 말리려는 것이오." 이어 화검운은 수라존자가 엄연히 앞에 서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가 전혀 두 렵지 않다는 듯이 고개를 안쪽의 일행이 있는 쪽으로 돌리면서 소리쳐 말을 이었다. "용아! 봉아! 너희들은 어서 이리 와서 이 사람들을 좀 돌봐주도록 해라!"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일행들이 있는 탁자에서 용아와 봉아가 날렵한 신법을 발휘하여 이쪽으로 날아와서 화검운의 곁에 이르렀다. 이때 수라존자는 뒤로 물러서는 바람에 자연히 아까 제압했었던 손사극과 멀어지게 되었는데, 화검운은 일단 그의 앞으로 걸어가서 가볍게 지력을 발 출하여 가슴팍의 혈도를 풀어준 다음에 용아와 봉아에게 말을 이었다. "음, 이 사람은 그저 잠시 휴식을 취하면 다시 정상으로 회복될 것이니 그 냥 놔두고, 너희들은 저기에 누워 있는 사람을 일으켜서 간호해 주도록 해 라!" "예, 화 상공님!" 용아와 봉아는 거의 동시에 대답을 하며 즉시 호일지에게 달려가서 그의 몸 을 일으키고 지풍을 날려서 그의 가슴의 막힌 기혈을 통하게 해주는 등의 간호를 해주기 시작했다. (……!) 이 순간에 수라존자는 두 눈에서 연신 괴이쩍은시선을 발출하고 제자리에 서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가 갑자기 아주 얌전한 사람이 된 것 같아서 실로 이를 기이하게 생각했다. 일반적으로 지금의 화검운처럼 상대를 앞에 두고 도 시선을 돌리거나 심지어 고개를 돌려 몸을 움직이는 등의 행동을 한다면 그것은 마치 상대에게 자신을 공격해 달라고 하는 주문이나 다름이 없는 것 이어서 감히 상대를 가볍게 여긴 대가를 치루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이 수라존자가 아까는 청해삼검 등을 이용하여 손사극을 제압했을 정도로 주도면밀하고 생각이 치밀하여 전혀 허술한 점이 없어 보였는데, 지 금은 느닷없이 그저 가볍게 손을 쓰기만 해도 등을 돌린 화검운의 등짝을 박살낼 수 있을 것 같은데도 여전히 새색시처럼 얌전하게 제자리에 서 있기 만 하는 것을 보고는 실로 어리둥절한 느낌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마도 수라존자와 같은 상대를 앞에 두고 함부로 등을 돌리는 따위의 행동 을 하는 사람은 화검운이 처음일 것이며, 그러한 상대를 보면서도 그저 가 만히 서 있는 수라존자의 행동도 아주 보기 드문 일이 될 것이었다. 지금 금응방의 방우량이나 마악 이쪽으로 다가온 갈통 등은 내심으로는 자 신들이 나서서 손을 써서 용아와 봉아라는 두 명의 시동들을 제지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으나, ㅈㅇ작 수라존자가 그와 같이 멍청한 기색을 한 채 가만 히 서 있는 것을 보고는 감히 자신들이 먼저 나서기가 곤란하다는 생각에 참고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렇다면 대체 지금 수라존자는 무엇 때문에 화검운을 보고 가만히 서 있기 만 하는 것일까? 기실 그것은 조금 전에 화검운이 손사극의 혈도를 가볍게 풀어 주었던 일에 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원래 그저 가볍게 제압했던 것 같 았지만, 실제로는 수라존자는 손사극의 혈도를 자신의 독문의 수법(手法)으 로 제압했던 것이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그의 혈도를 거의 풀 수가 없 는 상태였다. 그런데 느닷없이 화검운이 마치 장난하듯이 나서더니 가볍게 손사극의 혈도를 풀어버리는 것을 보고는 수라존자는 오히려 아까보다도 더 욱더 놀라게 되어 그만 감히 상대의 등을 보고서도 출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비록 이 점혈수법(點穴手法)이나 해혈수법(解穴手法) 따위가 그 사람의 무 공의 경지를 완전히 나타내어 주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이 난해(難解)하 기 짝이 없는 수라문의 점혈수법을 그렇게 쉽게 해혈하기 위해서는 기본적 으로 다른 무학(武學)들 역시 함께 갖추어져 있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 계속 -- #5747 양한우 (hanwoo71) [백상] 종남사부 제3권 제17장 03/28 12:14 325 line 올 린 이 : 양한우 HITEL ID : hanwoo71 제17장. 천상팔패(天上八覇)의 무학(武學) 용아와 봉아가 간호를 해주자 호일지는 이내 그 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서 운기조식을 하기 시작하고 있었는데, 기실 아까 그가 넘어졌던 것은 그 의 다리가 하나밖에 없기 때문이기도 했던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그의 내 상이 치명적인 것은 아닌 듯이 그의 안색이 점차로 원상태로 회복되기 시작 하는 것이었다. 화검운은 그러한 광경을 바라보고는 이윽고 다시 수라존자를 바라보며 능청 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어 물었다. "당신은 아직도 더 볼일이 있다는 것이오?" 수라존자는 이 순간에 예리하기 짝이 없는 시선으로 상대의 가슴을 꿰뚫어 버릴 듯이 화검운을 노려보다가 이윽고 입을 열어 되물었다. "너의 정체(正體)는 뭐냐?" 화검운은 그 질문을 받고는 다소 어리둥절한 듯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대 꾸했다. "뭐라고? 나에게도 무슨 정체라는 것이 있었던가? 하지만 만약 그런 것이 있다고 해도 내가 당신과 같이 얼굴을 숨기고 다니는 사람에게 어떻게 그런 것을 가르쳐 줄 것 같소?" 그렇다. 사람들은 그 말을 듣자 화검운의 말은 이치에 닿는 것이며, 수라존 자가 만일 정말로 상대의 정체를 알기를 바란다면 자신이 먼저 복면(覆面) 을 벗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 수라존자는 잠시 묵묵하게 화검운의 얼굴을 노려보고 있다가 이윽고 고개를 돌리더니 느닷없이 밖을 향해 신형을 번쩍 날리면서 소리쳐 말했다. "가자!" 확실히 사람들이 아까 예측했던 대로 도옥이나 갈통 등은 수라존자와 한 패 인 것이 분명해 보였다. 수라존자가 그렇게 느닷없이 밖으로 사라져 버리자 음산귀서생 도옥을 비롯하여 갈통이나 심지어 금응방의 인물들까지 마치 썰 물이 빠져나가듯이 뒤를 따라 사라져 버리는 것이었다. 수라존자가 그와 같이 갑작스럽게 사라져 버리자 사람들은 저마다 일순 어 리둥절한 표정들을 지었으나, 이어 금응방도들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까지 와르르 사라져 버리자 내심으로 왠지 편안해 하는 기색들이 되었다. 다만 가장 불편한 기색들을 보이는 사람들은 이 반점의 점원들이라고 할 수 가 있었는데, 그들은 수라존자의 일행들이 하나같이 음식값을 계산하지 않 고 나가 버리자 감히 앞을 가로막고 음식값을 요구할 수도 없고 하여 울상 들을 짓고 있었다. 이윽고 잠시의 시간이 지나자 용아와 봉아의 간호를 받던 호일지가 다소 기 운이 호복된 듯한 기색으로 몸을 일으켜서 아직도 정신이 하나도 없어 보이 는 손사극의 손을 잡고는 화검운을 향해 포권하며 감사의 인사를 했다. "화공자! 우리 두 사람의 목숨을 구해 주신 은헤를 우리 두 사람뿐만 아니 라 본방의 사람들은 결코 잊지 않을 것이오. 자, 그럼 나중에 다시 뵙기로 하고 우리는 이만 가 보겠소이다." 불구이괴는 그렇게 말하고 나서 왠자 바쁜 일이 있는 듯이 총총히 밖으로 사라져 버렸다. 화검운은 그들의 사례를 받는 둥 마는 둥하고 있다가 그들이 표연하게 사라 져 가는 광경을 멍하니 지켜보았다. 그런데 바로 그 무렵에 매우 낯익은 사람 하나가 역시 빠르게 신형을 움직 여서 불구이괴의 뒤를 이어 밖으로 사라져 가는 것이었다. 그 사람은 다름 이 아니라 바로 악산산이었다. 그녀는 원래 아까 밖으로 나가려고 했었으나 여태까지 그럴 기회를 찾지 못하고 있다가 이윽고 실내의 상황이 대강 정리 되자 즉시 밖으로 향한 것이었다. "악동생!" 황약화가 다소 놀라서 악산산을 소리쳐 부르며 그녀의 뒤를 따라 역시 밖으 로 빠르게 사라져 가고 있었다. (……?) 화검운이 잠시 그쪽을 바로보고 서 있는데, 문득 뒤에서 한 사람의 맑고 부 드러운 음성이 들려와서 그의 귀를 간지럽혔다. "당신도 그녀들을 따라서 밖으로 나갈 건가요, 아니면 우리와 함께 이곳에 서 묵을 것인가요? 만일 당신이 이곳에서 묵겠다면 우리가 객방을 마련해 드릴 용의(用意)가 있어요." 바로 다름이 아닌 제갈소홍이었다. 그녀는 다른 일행들과 함께 탁자를 벗어 나서 이곳으로 나와 있었는데, 알고 보니 악산산이 조금 전에 그렇게 급하 게 이곳을 나가 버린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 같았다. 당옥 등이 장내로 나 오게 되자 그녀는 도저히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수가 없는 심정이 되었을 것 이었다. 화검운은 고개를 돌려서 제갈소홍을 바라보며 미소와 함께 대꾸했다. "내가 지금 뒤따라 밖으로 나간다고 해서 반드시 그녀들을 찾을 수가 있을 것 같지가 않고…… 혹시 황낭자는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이 아니 오?" 제갈소홍은 잠시 생각해 보는 듯하더니 대답했다. "그녀는 이미 내일 정오까지 우리와 함께 행동하기로 약속했었으니 아마도 잠시 후면 우리에게로 되돌아오게 될 거예요." 화검운은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나는 당연히 당신들과 함께 어울려야겠군. 하지만 객방을 구해주 겠다는 소리는 하지 마시오. 사실 나도 이제는 상당히 부자에 속하는 사람 이 되었으니까." (……?) 고개를 돌려보니 실내의 사람들은 이미 대부분이 다른 곳으로 사라져 버리 거나 하고 있었고, 당옥 등의 일행도 남궁일비 등이 미리 예약해 놓았다는 객방으로 점원의 안내를 받아서 가기 시작하고 있었다. 화검운은 이내 용아와 봉아를 대동하고 점원 하나를 불러서 객방이 남은 것 이 있느냐고 물었는데, 그 점원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예, 나으리. 이미 대부분의 객방(客房)들이 예약이 되었고, 이제 남은 것 이라고는 아마도 특실(特室) 몇 개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저희 반점에는 별 채가 없으니까 말입니다요, 나으리!" 점원은 말을 하는 도중에 쉴새없이 고개를 조아리며 깍듯하게 나으리라는 호칭을 붙였는데, 그것은 아무래도 그가 조금 전에 화검운이 그 악랄하고도 무서운 수라존자를 간단하게 상대하는 광경을 보았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이 커다란 반점의 깔끔하게 차려입은 점원이 무엇 때 문에 꾀죄죄한 행색을 하고 있는 화검운에게 그토록 깍듯하게 대해 주겠는 가? 화검운은 그래도 특실이라도 남아 있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는지 그 점 원을 향해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를 그 특실 가운데의 한 곳으로 안내해 주겠소?" 원래 이 특실이라고 하는 곳은 반점에서 일반적인 손님을 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주로 대외적으로 시위할 목적으로 가장 화려하게 만들어 놓은 객방 으로, 그 숙박료가 워낙에 다른 객방들보다 값비쌌기 때문에 보통은 아주 돈이 많은 부자들이나 지체높은 사람들, 혹은 가끔씩 반점의 주인 가족들이 머물곤 하는 곳일 뿐이었다. 비록 이 반점의 객방들이 고급스러운 곳이기는 해도 근래 들어 갑자기 몰려 든 무림인들은 대개가 검소한 생활에 습관이 되어 있어서 일반의 객방은 이 미 거의 예약이 되어 있는 사애였지만, 그러한 값비싼 특실들만은 사용하지 않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점원은 화검운의 주위에서 아직 떠나지 않고 있는 제갈소홍과 그의 좌우에 마치 분신(分身)처럼 서 있는 용아와 봉아를 한 차례 돌아본 연후에 이윽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나으리. 소인이 우선 가서 알아본 후에 직접 안내해 드리도록 하겠습 니다." 말과 함께 그 점원은 빠르게 걸음을 옮겨서 안쪽으로 사라졌는데, 이윽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시 나타나서 웃으며 화검운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다행히 가장 좋은 특실이 하나 남아 있다고 하는군요. 그 특실의 요금은 원래는 오십냥이었는데, 소인이 특별히 부탁을 해서 사십냥만 받도록 했습 니다요." 화검운은 그 오십냥이라는 말에 다소 놀라서 물었다. "아니, 엽전(葉錢) 오십냥이 아니라 은자(銀子) 오십냥을 말하는 것이오?" 점원은웃으며 대답했다. "예, 물론 은자 오십냥이지요. 원래 다른 일반실은 요금이 다섯냥 정도인 데 반해서 그곳에 하룻밤 묵는 요금은 오십냥이니 상당히 비싼 편이징. 그 러나 사실 그곳은 아주 넓어서 여러분이 모두 주무신다고 해도 좋을 것이 고, 또한 최고급의 시설들이 갖추어져 있으며, 전망 또한 아주 좋아서 결코 후회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화검운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끄덕 하다가 문득 상당히 고민이 된다는 듯이 옆으로 시선을 돌려서 용아와 봉아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거 정말로 내가 그와 같이 값비싼 객실에서 묵어도 되는 것일까? 혹시 이거 그렇게 되면 너무 무리하는 것이 아닐까?" 그 말에 이제까지 묵묵히 잠자코 있었던 봉아가 마침내 제세상을 만났다는 듯이 그를 바라보며 입을 열어 말했다. "결코 그렇지 않아요. 화 상공님의 재산은 이제 무려 황금 이백만 냥이나 되는데, 그까짓 몇백 냥의 은자 정도를 쓴다고 해서 설마 무슨 일이 있겠어 요? 저는 솔직히 화 상공님의 그와 같은 복장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차라리 이번에 새옷으로 갈아입고 또한……" 화검운은 봉아가 계속해서 잔소리를 늘어놓을것 같자 이내 웃으며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말했다. "알겠다, 알겠다! 내가 너희들의 뜻대로 하면 되지 않겠느냐?" 이때 제갈소홍은 아직 화검운에 대해서 의구심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동료 들에게로 가지 않고 계속해서 그 자리에 남아 있는 상태였는데, 느닷없이 화검운의 재산이 무려 황금 이백만냥이나 된다는 말을 듣고는 문득 크게 어 처구니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내심 중얼거렸다. (정말로 종남파의 장문인이 그 많은 재산을 화 상공에게 주었던 것이었을 까? 나는 그가 돈자랑을 하길래 무슨 은자 몇만 냥정도쯤 되는 것으로 알 았지, 설마하니 황금 이백만냥이나 되는 것일 줄이야!) 제갈소홍은 비록 은자에 대해서 별로 욕심을 내지 않는 강호의 사람이기는 해도 워낙에 그 액수가 은자로 치면 무려 오천만냥이나 되는 거금이었기 때 문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화검운은 아까부터 자신이 부자가 되었다는 점을 강조하곤 했었는데, 아닌 게 아니라 설사 이곳 장안성 내에 부자가 많다고 해도 그와 같은 많은 돈을 가지고 있는 부자는 아주 드물것이었다. 제갈소홍이 바라보니 그 점원은 화검운이 그렇게 돈이많다는 말을 믿지 않 고 있는 모양이었다. 화검운은 문득 그 점원이 자신들을 위해 애를 써 주었다는 것을 생각하고는 다음과 같이 말했는데, 점원은 그저 은근히 웃으며 고개를 가로젓는 것이었 다. "당신에게 내가 혹시 수고비를 주어야 하는 것이 아니오?" "아닙니다, 나으리. 저는 사실 나으리가 존경스러워서 그저 시중을 들어드 리고 있는 것이니 나으리께서 소인에게 따로 돈을 주실 필요는 없습니다." 이윽고 일행이 점원의 뒤를 따라서 안쪽으로 향하여 나아가기 시작했을 때 제갈소홍은 문득 화검운의 옆으로 다가들며 입을 열어 물었다. "나는 지금 당신의 숙소를 알아두기 위해 함께 가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당신은 그렇게 따로 행동하게 되면 아까의 그 사람들이 다시 나타나서 해칠 까 봐 두렵지는 않나요?" 화검운은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려 웃으며 대답했다. "솔직히 나의 무공도 상당히 쓸모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최소한 나의 한 몸 정도는 능히 보호할 수가 있다고 생각하오. 낭자는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 도 될 것이오." (……?) 제갈소홍은 도무지 이 화검운이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알 듯도 하다가도 모 르겠다는 듯이 잠시 그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다시 물었다. "대체 아까 그 수라존자의 무공은 어느 정도였죠?" 화검운은 한편으로는 부지런히 점원의 뒤를 따라가면서도 가끔씩 고개를 돌 려서 제갈소홍의 얼굴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낭자도 아까 함께 보지 않았소? 아무래도 그의 무공은 최절정(最絶頂)의 경지를 넘어서는 것이 아니겠소?" 제갈소홍은 다소 의외라는 듯이 다시 물었다. "아니, 그렇다면 당신의 무공도 이미 최절정의 경지를 벗어나 있다는 것인 가요?" 화검운은 그 질문을 받고는 다소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얘기가 그럼 그렇게 되나? 나도 잘 모르지만 가끔씩 그럴 수도 있다는 생 각이 들기도 하오." 제갈소홍은 그의 모호하게 대답하는 모습으로 보아 그가 의도적으로 자신의 정체를 숨기려고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눈빛을 빛내며 다시 물었다. "대체 당신의 그 정체는 뭐죠? 나는 지금 복면도 하지 않았으니 나에게는 말할 수가 있는 것이 아니겠어요?" 화검운은 그녀를 돌아보며 웃었다. "글쎄…… 내가 이미 말하지 않았소? 나는 바로 종남파 장문인의 당숙이 되 는 사람이라고. 그것으로도 부족하다는 말이오?" 제갈소홍은 재차 눈빛을 빛내며 물었다. "하지만 당신은 무엇 때문에 이 험악한 상황에서 구태여 내일 정오의 영웅 대회(英雄大會)에 반드시 참석ㅎ려는 거죠? 그러한 위험스러운 일에 끼어들 려고 적극적으로 노력한다는 자체가 조금 이상한 일이 아닌가요? 대체 당신 은 무슨 의도로 그렇게 하려는 거죠?" 화검운은 미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것은 그저 말하자면 흥미가 있어서라고나 할까…… 아무튼 그 이유에 대 해서는 부득이 지금 말해 줄 수가 없구려." (……?) 제갈소홍은 즉시 어째서 대답해 줄 수가 없느냐고 다시 물으려다가 문득 다 소 흠칫한 표정이 되어서 말을 도로 입 속으로 삼켰다. 이미 점원이 예의 그 특실의 앞에 이르렀기 때문이었다. "그럼 여러분께서 편안한 하룻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소인은 이제 그만 물러가옵고, 나중에 시키실 일이 계시다면 실내의 방울 달린 줄을 잡아당겨 주시면 다른 점원들이 모시러 올 것입니다." 점원이 그렇게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나서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화검 운은 특실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려다가 문득 고개를 돌려 제갈소홍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직도 질문이 남아 있소?" 기실 제갈소홍의 뇌리에는 아직도 적지 않은 질문사항들이 남아 있는 상태 였다. 그러나 지금은 이미 밤이 이슥한 상황이기 때문에 처녀의 몸으로 다 른 남자와 함께 객방으로 들어갈 수가 없는 일이었으므로 제갈소홍은 이내 안색을 다소 붉히며 대답했다. "아니예요. 이렇게 숙솔ㄹ 알아놓았으니 저는 이제 그만 내려가 보아야 하 겠어요." 화검운은 그 말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그렇게 하시오. 자, 나는 배웅하지 않겠으니 조심해서 내려가도 록 하고 편안하게 주무시기를 바라겠소." 말과 동시에 화검운은 무심(無心)하게도 용아와 봉아와 함께 주저없이 특실 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더니 이내 문을 닫아 버리는 것이었다. "……?" 제갈소홍은 잠시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으나, 이내 씁쓰레한 표 정으로 신형을 돌리고는 천천히 아래층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 특실은 삼층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정말로 그 내부가 지극히 화려(華麗) 할 뿐만 아니라 또한 전망이 좋았고, 게다가 넓었다. 이 특실은 하나의 침실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침실이 하나이고, 호화로 운 거실이 하나, 그리고 욕실 등이 각기 훌륭한 시설들을 갖춘 채 마련되어 있었는데, 그야말로 사람이 호사스러움을 누리기에는 적합하도록 완벽하게 잘 꾸며져 있다고 말할 수가 있었다. 용아와 봉아는 일단 특실의 내부로 들어서자마자 자신들의 위치를 되찾게 되어서인지 아연 활기를 띠며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우선 그녀들은 침실로 들어가서 화검운의 잠자리를 차분하게 손질한 다음에 마실 물 등을 준비해 서 떠다 놓고는, 이윽고 거실의 의자 위에 앉아서 창 밖의 풍경들을 바라보 고 있는 화검운의 앞에 와서 말했다. "화 상공님, 저희들은 지금 곧 밖으로 나가봐야 하겠어요. 우선 화 상공님 의 의복 등을 준비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그 밖의 물건들을 구입해야 하기 때 문에……" 봉아의 말에 화검운은 고개를 들어 그녀들을 바라보며 미소하며 입을 열어 말했다. "너희들에게 맡긴 돈으로 그러한 일들은 능히 할 수가 있을 것이니 생각나 는 대로 해도 상관이 없다. 그러나 너희들은 밖으로 나가는 것이 두렵지는 않느냐?" 용아가 대답했다. "저희들은 비록 밖에서 무슨 일을 당한다고 해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을 거 예요." 기실 이 용아는 계집애이기는 하지만 스스로 사내자식의 행세를 하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차림새나 행색이 사내자식과 비슷했다. 화검운은 미소하며 다시 말했다.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야 너희들의 마음이지만, 그러나 너희들이 밖으로 나 가서 변을 당하게 되면 되겠느냐? 그러지 말고 이곳에서 점원들을 시켜서 필요한 물건들을 사오라고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 용아는 입을 다물었고, 봉아는 그것이 좋겠다고 수긍한 듯이 눈빛을 반짝이 다가 이윽고 화검운에게 입을 열어 화제를 바꾸어 물었다. "그런데 아까 그 황낭자는 정말로 무공이 대단한 것 같던데요. 대체 그녀의 무공은 어느 정도이지요? 그 수라존자보다 강한 것인가요?" 화검운은 미소하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글쎄…… 쉽게 말하기가 어렵구나." 이번에는 용아가 다시 물었다. "호일지라는 사람의 말에 의하면 황낭자가 순식간에 반선수(反禪手)라는 무 공을 사용하여 그 음산백골문의 문주를 격상시켰다고 했었는데, 그것은 정 말이었나요?" 이 거실의 창문으로 내려다 보이는 풍경은 바로 다름이 아니라 번화한 거리 의 풍경과 그 주변의 시원하게 터져 있는 풍경들이었는데, 이곳의 창문은 창호지를 붙여서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니라 특수한 검은색의 유리를 사용하 여 만들어 놓은 것이었기 때문에 비록 안에서는 밖의 풍경을 시원하게 다 볼 수가 있었지만 밖에서는 결코 안의 정경이 보이지 않게 되어 있었다. 화검운은 아직도 매우 번화한 장안성 내의 대로변을 느긋한 표정으로 내려 다 보면서 용아의 질문에 대해 대답해 주었다. "내 미처 너희들에게 천상팔패의 무공에 대해서 설명해 주지 못했다만 이제 마침 시간이 있으니 거기에 대해서 얘기해 주마. 아니 너희들도 금방 바쁘 게 움직이고 또한 쉬어야 할 것이니 우선 그 가운데의 성수곡(聖手谷)의 무 예에 대해서 얘기해 주도록 하지. 원래는 너희들의 무예가 너무나도 부족하 기 때문에 그들의 무학에 대해서까지 알 필요는 없는 것이지만, 당금의 상 황이 심히 험악한 상태이기 때문에 일단 유사시에 너희들에게 어떤 도움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기에 얘기해 주려는 것이다." "……" 용아와 봉아는 화검운이 그렇게 서두를 꺼내자 이내 매우 공손한 자세를 하 고는 그의 말을 듣기 시작했다. 화검운은 다시 말을 이었다. "내가 이러한 얘기를 하는 주된 목적은 바로 이것이다. 그러니까 너희들이 만약 이와 흡사한 무공을 사용하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가급적이면 그 자 리를 피해서 달아나도록 하고, 만일 그렇게 할 수가 없는 상황이라면 그저 잠자코 있어서 그들의 독수(毒手)에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것이다. 나 는 앞으로 사태가 급박해지면 혹시 너희들을 돌볼 수가 없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미리 그와 같이 일러두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천상팔패(天上八覇) 의 무공은 이미 소문이 나 있는 바와 같이 진실로 초절정(超絶頂)의 무학들 인 것이다. 그 초절정의 무학들이 어떤 것인가 하면, 과거 불과 얼마 전까 지만 해도 강호상의 태산북두(泰山北斗)는 구파일방(九派一幇)이나 오대세 가(五大世家)였었는데, 지금은 완연히 그러한 판도가 달라졌다. 그것은 바 로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의 절기(絶技)들이 대부분 최절정의 무공수법들이 고 게다가 그 진전도 매우 느린 것이었던 점에 반해서, 새로 등장한 천상팔 패의 무학들은 하나같이 초절정의 무학들이기 때문이었다." 용아가 다시 입을 열어서 물었다. "그 최절정(最絶頂)의 무학과 초절정(超絶頂)의 무학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이죠?" 화검운은 미소하며 대답했다. "사실은 원래는 그 최절정이니 초절정이니 하는 말들은 없는 것이다. 그러 한 말들은 기실 과거에 무학들이 많이 전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무림 최고수 들을 일류고수(一流高手)라고 부르던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가 있는데, 당시에는 공력을 증가시키는 방법이나 무공을 빠르게 연성하게 하는 편법들 이 확실하게 개발되지 않아서 그저 말 그대로 육십여년 동안 내공을 꾸준히 닦아서 일갑자(一甲子)의 공력을 성취한 사람은 무림의 최고수(最高手)가 될 수가 있었는데, 그 일류고수라는 말은 원래는 그렇게 무림의 최고수라는 의미(意味)였다." 봉아가 웃으며 말을 받았다. "그렇다면 용아와 저는 그 당시에 태어났었다면 이미 무림의 최고수가 되어 있었겠군요?" 흡사 아름다운 꽃봉오리가 화사하게 피어나는 것 같은 봉아의 얼굴을 돌아 보며 화검운은 미소했다. "이를 테면 그런 셈이다. 그런데 점차로 시일이 흘러서 무공비급이 강호상 에 널리 유포되기 시작하면서부터 온갖 방법들이 동원되어 내공을 높이고 보다 쉽고 무공을 높이는 수법들이 널리 연구되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의 무 학에 대한 근복적인 지식(知識) 또한 높아지게 되었고, 따라서 일류고수보 다 더욱 뛰어난 무림고수들이 생겨나게 되었으니, 사람들은 그 얼마 되지 않는 최고수들을 절정고수(絶頂高手)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물론 누 군가가 특별히 지어낸 이름이 아니라 강호상에서 여러 가지의 이름으로 불 리워지게 되다가 나중에 거의 하나로 통일되게 된 이름이 바로 그 절정고수 라는 것이었지. 실로 당시만 해도 그러한 절정고수의 대열에 들어서기가 하 늘의 별을 따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것이었는데, 사람들은 일단은 그러한 경 지에 도달하기 위해 아직 완전하게 밝혀지지 않은 경지를 향해 무리하게 도 전하는 바람에 많은 고초를 겪기도 했고, 또한 주화입마(走火入魔)를 당하 기도 했지." -- 계속 -- #5748 양한우 (hanwoo71) [백상] 종남사부 제3권 제18장 03/28 12:15 402 line 올 린 이 : 양한우 HITEL ID : hanwoo71 제18장. 생사현관(生死玄關) 용아와 봉아는 마치 무림의 옛날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과도 같아서 저마다 눈을 가늘게 뜨고서 간혹 당시의 상황을 눈앞에 그려보면서 묵묵히 듣고 있 었다. 화검운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다시 얼마간의 세월이 흐르게 되자 무공을 높이는 방법이 더욱 정교해지게 되고, 또한 절정고수의 경지에 도달하는 데에도 시행착오 가 줄어들게 되었는데, 바로 그러할 즈음에 강호상에는 이른 바 대종사(大 宗師)라고 하는 무학지사(武學之士)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제까 지의 강호상에 전해져 내려온 무학들을 바탕으로 저마다의 개성을 살려서 당시로 말하자면 극한의 경지까지 무공을 성취하게 되었는데, 그들을 가리 켜서 사람들은 절정고수보다 더욱 고강한 최강의 고수들, 즉 최절정의 고수 들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당시의 그 최절정의 고수들은 일단 등장하자마자 스스로 한 방면의 무학의 대종사임을 강조하면서 각기 문하(門下)를 열어서 제자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는데, 실로 당금의 구파일방(九派一幇)이나 무 림오대세가 등도 그와 같은 연원에서 생겨나게 되었다고도 말할 수가 있는 것이었지. 실로 그렇게 강호상의 방파(幇派)들이 우후죽순(雨後竹筍)처럼 생겨나게 되고 나서 그만큼 강호상의 무학에 대한 인식도 새로워지게 되고, 또한 무학들이 점차로 대중화되기 시작했으니, 아마도 강호의 진정한 역사 는 그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용아가 다시 물었다. "그럼 그렇게 일단 최절정의 고수들이 등장한 이후에 다시 세월이 흐르게 되어 그러한 경지를 터득하게 되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되었나요?" 화검운은미소하며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른 바 무공이라고 하는 것은 끝없이 물 흐르듯이 높아지게 되어 있는 것 이 아니라 실은 그 가운데 간혹 넘기 어려운 벽(壁)을 만나게 되어 있는 것 이다. 그 벽의 하나가 바로 절정고수가 되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최절정의 고수가 되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었는데, 실로 이 인간(人間)의 자질과 능 력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한계를 만나게 되기 마련이어서, 비록 절정고수가 탄생하고 그러한 고수들이 많아지게 되는 데에는 그다지 많은 세월이 소요 되지 않았지만 이 최절정의 고수들이 탄생하고 나서 그러한 고수들이 많아 지게 되기까지는 실로 장구(長久)한 세월이 필요하게 되었다. 쉽게 말하자 면 이 최절정의 무학이라고 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진기(眞氣)를 운용하는 최상의 경지라고 할 수가 있었는데,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우선은 훌륭한 육체적인 자질과 정신적인 자질 이외에도 충분한 무학에 대한 지식들이 축 적이 되어 있어야만 했고, 게다가 내공 방면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실 로 무공이 높아질수록 주화입마(走火入魔)를 당할 가능성이 점차로 증대되 는 것이며, 그 위험성도 또한 높아지는 것이므로, 이른 바 진기무학(眞氣武 學)의 최고봉(最高峰)이라고 하는 음양(陰陽)의 기운(氣運)이 서로 돕고 강 유(剛柔)의 기운이 서로 조화(造化)를 이루어 완벽한 경지인 최절정의 경지 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그와 같은 난관(難關)들을 돌파해야 했던 것이었다." "……" "따라서 당시에 무학종사(武學宗師)들이 개파를 하고 제자들을 받아들여 절 학(絶學)들이 전해져 내려왔었지만, 심지어는 그 무학들을 제대로 연성해 내는 기재(奇才)들을 만나지 못해서 최절정의 고수들이 감소되기도 하고, 또한 어떤 문파들은 그 때문에 멸문을 당하기도 했었지. 당금의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등의 대부분이 이미 천년 가까이나 이어져 내려오고 있어도 기실 그들 방파의 내부에 최절정의 고수들이 많지 않은 것은 그러한 난관들을 여 실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다. 사실 내가 너희들의 무공을 좀더 높여주고 싶다고 해도 그럴 수가 없는 것은 너희들의 재목이 아직 성 숙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가 있는데, 그것은 서로 비슷한 이치가 아 니겠느냐?" 봉아가 웃으며 대답했다. "저희들은 이미 화 상공님께서 깊이 마음을 쓰고 계시다는 것을 잘 알고 있 어요." 화검운은 미소하며 다시 말을 이었다. "아직 천상팔패가 나타나기 전에는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 등의 문파의 사 람들은 오랫동안 최절정의 무학이 그야말로 인간(人間) 최상(最上)의 무학 이라고 믿고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개파조사들은 신성시(神聖視)되 어 왔으며, 그 가운데 가장 확실해 보이는 무학들을 정통무학(正統武學)이 라고 부르게 되었다. 일단 무학을 배우기 시작하는 사람들은 누구라도 그와 같은 최절정의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 꿈이었지. 물론 지금이라도 크게 다를 것은 없겠지만 말이다." 용아가 입을 열어 다시 물었다. "그 뒤를 이어서 이번에는 초절정의 무학고수들이 나타나게 되었나요?" 화검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다. 그러나 기실 이전의 사람들의 생각대로 보통의 노력으로 도달할 수 있는 무학의 경지는 역시 최절정의 경지가 최상이었기 때문에 초절정의 고수들이 나타나게 되었던 것은 자연적인 흐름이었다기보다는 약간 기이한 인연(因緣)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가 있다." 봉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그기이(奇異)한 인연이라는 것은 무엇이죠?" 화검운은 담담히 미소하며 대답했다. "원래 천지(天地)간의 역리(易理)의 흐름이라고 하는 것은 거의 비슷비슷한 것이 대부분이지만, 간혹 그 가운데 어떤 불가사의(不可思議)한 흐름이 섞 이기도 하는 것이다. 과거 수백 년 전에 천하에는 모두 여덟 사람의 초인적 (超人的)인 자질(資質)들을 지닌 사람들이 거의 비슷한 시대에 태어났다. 그들은 각기 천지간의 신비(神秘)로운 영기(靈氣)들을 흡수하여 비단 그 자 질들이 놀라울 뿐만 아니라 두뇌(頭腦) 또한 명석하기 짝이 없어서 그야말 로 하나를 들으면 백 가지의 이치를 추측해 낼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원래 그렇게 초인적인 자질들을 가진 사람이 태어나는 것은 거의 수만년에 한두 번 정도나 가능한 일이었는데, 당시에는 그러한 불가사의한 현상들이 겹치 게 되어 한 시대에 무려 여덟 명의 초인들이 태어나게 되었던 것이다." 용아가 급히 물었다. "그들은 모두 무공을 배우게 되었나요?" 화검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공교롭게도 그들은 하나같이 무공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 온갖 천 하의 학문들을 섭렵하면서도 그 가운데 무학 방면에 가장 몰두하게 되어 그 결과는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이후에 나타났다. 그들은 당시에 이미 놀 라운 초인적(超人的)인 무학을 터득하여 자신들의 그 뛰어난 능력(能力)을 발판으로 하여 천하를 지배하려고 했던 것이다." 봉아가 놀란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열어 물었다. "그럼 당시에는 그들을 상대할 만한 무학의 고수들이 전혀 없었나요?" 화검운은 미소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지 않았다. 당시에는 오히려 그들보다 훨씬 무학이 뛰어난 사람이 하 나 있었다." 봉아가 의아해하며 다시 물었다. "아니, 그럼 그 놀라운 무학을 터득한 사람은 그럼 그 여덟 명의 초인들보 다 훨씬 더한 기연(奇緣)을 받아서 태어난 것이었나요?" 화검운은 웃으며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다. 오히려 그 사람의 출생은 일반 사람들에 비해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기이하게도 아주 놀라운 무학의 경지를 터득하게 되 었는데, 그러한 경지는 오히려 그 여덟 명의 초인들조차 감히 상상할 수조 차 없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너희들도 이러한 이치를 잘 알고 있는 것이 유 리한 법인데…… 말하자면 출생이지극히 훌륭하다고 해서 그것이 모든 것 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출생이 비록 초라하다고 해도 그 사람 의 진정(眞正)한 노력(勞力) 여하에 따라서 그의 성취가 놀랍게 될 수가 있 는 것이고, 또한 그와 반대로 출생이 훌륭하다고 해도 그러한 지나치게 특 출난 점이 오히려 장애(障碍)로 작용하게 되어 성취(成就)가 작아지게 될 수가 있다는 것이다. 기실은 그러한 이치야말로 진정으로 불가사의(不可思 議)한 모습인 것이다." 용아가 길게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하지만 그러한 경우는 아주 보기 드문 일이 아닌가요?" 화검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했다. "비록 아주 드물기는 하지만 그러나 그 사람이 진정으로 노력한다면 반드시 어떤 결과는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러한 결과가 아주 드물다고 해서 '나는 반드시 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는 말은 어리석은 생각인 것이다." 봉아가 다시 입을 열어 물었다. "그럼 당시의 그 여덟 명의 초인들은 천하를 지배하려던 계획이 모두 실패 하게 되었나요?" 화검운은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시 그 여덟 명의 초인들은 잘못된 생각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그 놀라운 능력의 고수로부터 제지를 당했다. 따라서 초인들은 그 능력자(能力者)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다시 강호에 발을 들여놓을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하 는 수 없이 그 여덟 명의 초인들은 오랫동안 심산유곡(深山幽谷)이나 해외 (海外), 혹은 황야(荒野)의 오지(奧地) 속에 숨어 살면서 더욱 높은 경지의 무학을 연마해 가는 한편으로 자신들의 세력들을 키우기 시작했다. 바로 그 것이 천상팔패가 생겨나게 된 유래(由來)인 것이다." 봉아가 다시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 능력있는 사람이 죽을 때까지도 그 초인들이 죽지 않았다니 그럼 그들 은 그토록 오래 살았나요? 그렇다면 결국에는 그 능력자보다 무공이 더욱 뛰어났던 것이 아니었나요?" 화검운은 대답했다. "그 여덟 명의 초인들은 나중에 무학이 가히 선인(仙人)의 경지에 도달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들은 오랫동안 절지(絶地)에서 폐관수련(閉關修練)하여 원영(元孀)이라는 것을 키웠으며, 그것이 자신들의 신체의 크기와 같아지게 되자 자신들의 육신이 불로장생(不老長生)하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 능력자는 그들보다 훨씬 짧은 생애를 살다간 편이었지만, 피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한 이치 등을 바르게 살핀다면 기실 이 좀더 오래 살고 하는 것은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닌 것이다." 용아가 다시 물었다. "그럼 그 여덟 명의 초인들은 이미 죽었나요?" 화검운은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가 대답했다. "글쎄. 이전에 그들이 죽음을 당했다는 얘기가 있기는 했지만, 나는 왠지 그들이 살아 있을 가능성(可能性)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구나." 용아가 다소 망연한 기색으로 생각하는 듯하다가 이어 다시 물었다. "그럼 그들이 키웠다는 세력들은 어떤 것이었죠?" 화검운은 대답했다. "그들은 일단 자신들이 터득한 무학들은 가장 기본적인 것이라도 최소한 초 인적인 자질을 필요로 하는 것들이라는 것을 자각하게 되었다. 따라서 그들 은 우선 자신들의 무학(武學)들을 후손(後孫)들에게 물려주기 이전에 먼저 그 사람들의 자질(資質)을 초인적인 것으로 바꾸어 놓는 일에 주력하게 되 었는데, 결국 그들은 그러한 작업(作業)에 성공하게 되어 그들의 직계후손 (直系後孫)이나 혹은 제자(弟子)들은 태어나면서부터 특이한 자질들을 가지 게 되었다. 물론 그러한 자질들은 그 여덟 명의 초인들의 자질과는 많은 차 이를 보이는 것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단지 그것만으로도 강호상에 서 실로 놀라운 능력들을 발휘할 수 있는 신비로운 고수(高手)들을 배출해 내게 되었다. 그 여덟 개의 세력들이 바로 다름이 아닌 당금의 천상팔패(天 上八覇)인 것이다." 용아가 입을 열어 물었다. "그들의 무학이 바로 초절정의 무학인가요?" 화검운은 미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런 셈이다. 원래 강호상에서는 최절정의 무학을 그야말로 인간의 최상의 무학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그것을 훨씬 초월하는 신 비로운 무학을 지닌 사람들이 등장하게 되자 사람들은 한결같이 심하게 놀 라게 되었고, 그 경지를 일컬어 최절정의 경지마저 초월(超越)하는 무학의 경지, 즉 초절정(超絶頂)의 무학경지라고 부르게 되었던 것이다." 봉아가 물었다. "그럼 최절정의 무학을 터득한 사람들 가운데 다시 초절정의 경지로 나아가 는 사람들은 없었나요?" 화검운은 대답했다. "원래 이 초절정의 무학이라고 하는 것은 기실은 일반인들도 바르게 노력하 기만 하면 충분히 터득할 수가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비단 그러한 바른 길 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아주 드물었을 뿐만 아니라 진정으로 노력 (勞力)하는 사람들 또한 매우 드물었기 때문에 강호상에는 일반인으로서 그 와 같은 경지에 오르게 되는 사람들이 아주 적었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이 천상팔패의 무학들이라고 하는 것들은 비록 초절정의 무학들이기는 해도 우 선 특수한 자질들을 반드시 갖추어야 연성이 가능한 것들이었고, 게다가 그 러한 자질들의 특성에 맞추어 개발해 놓은 무학의 편법(便法)이라고 할 수 가 있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그러한 무학들을 도저히 따라서 익힐 수가 없었 던 것이다. 비록 간혹 그러한 무학을 비스듬히 흉내를 내다가 거의 비슷하 게 그러한 경지에 도달한 사람들이 있기는 했지만, 그것은 실로 드문 일이 었다." 봉아가 다시 물었다. "천상팔패의 무학들은 하나같이 어떤 편법이라면 그 무학들에는 어떤 부작 용이 있는 것은 아닌가요?" 화검운은 미소하며 대답했다. "원래 그 무학들을 창안한 그 여덟 명의 초인들은 세상에 다시 나타나기 어 려울 정도의 천재적(天才的)인 두뇌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일단 그와 같이 편법을 개발하고 나서 그 편법이 가져오게 될 어떤 부작용 을 해소하는 데 노력했는데, 그러한 의도는 거의 그들의 뜻대로 되었다. 그 들의 무학들 가운데에는 어떤 것들은 거의 정통무학(正統武學)과 흡사한 면 모를 보이기도 하는데, 실로 천상팔패의 사람들로서 열심히 노력하면 그러 한 무학들에 의해서 그 여덟 명의 초인들이 성취한 경지에까지도 도달할 수 가 있을 것이다. 다만 그 이상의 경지에는 도달하기가 어려운데 그것은 바 로 그 편법의 한계(限界)라고 할 수가 있다." 봉아가 재차 입을 열어 물었다. "그렇다면 그 여덟 명의초인들의 무학과 초절정이라는 무학과는 서로 다른 것인가요?" 화검운은 담담히 미소하며 대답했다. "원래 그 초절정의 무학들은 여덟 명의 초인들이 자신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창안한 것이기 때문에 본질적인 면에 있어서는 그다지 다르지 않을 것 이다. 그러나 기실 그 초인들의 무학은 바로 초인(超人)의 경지(境地)라고 하는 것으로서 초절정의 무학 경지와 크게 다른 것이고, 아마도 너희들은 설명을 해준다고 해도 쉽게 상상이 가지 않는 것일 것이다." 용아가 묵묵히 생각에 잠겨 있다가 이윽고 다시 입을열어 물었다. "천상팔패의 무학들이 그토록 특별한 것들이라면 당금의 구파일방이나 오대 세가 등이 점차로 쇠퇴하고 있는 것도 실로 당연한 일이겠군요?" 화검운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초절정의 무학이 있기 때문에 다른 문파들이 퇴색하는 것은 아니다. 요 는 천상팔패가 당금에 이르러 왕성하게 활동을 개시했기 때문에 다른 문파 들의 세력이 거기에 밀려서 허약해 보이는 것이다. 그 실례로 현재의 구파 일방이나 오대세가 등의 문파에서 동일한 세대로 따져본다면 과거에 비해서 고수자들이 줄어든 것이 아닌데,그것은 기실 천상팔패의 무학은 일반인으 로서는 연성할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 등의 문파 의 제자들이 줄어들지 않고 있는 것이다." "……" "따라서 당금의 강호에는 초절정의 강호인들과 최절정의 강호인들이 엄격하 게 서로 분리되어 있는데, 그것은 실로 초절정의 무학들이 나타나서 강호의 무학을 높여준 것이 아니라 그저 초절정의 고수들이 새로 더 생겨난 것일 뿐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더러 그 때문에 크게 분발하 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지만, 이 초절정의 무학은 강호의 추세가 아니라 그저 특이한 무학의 한 부류에 불과한 것이다." 봉아가 의아한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강호상의 무학은 세월이 지날수록 점차로 발전을 거듭 하여 온 것이 아닐까요?" 화검운은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아마도 너는 일류고수 에서 최절정의 고수로 달라져 온 상황을 두고 얘기하는 것이겠지?" 봉아는 얼굴색이 약간 빨개졌다. "그럼 그렇지 않다면 하나도 발전하지 않았다는 말인가요?" 화검운은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가 이윽고 음성을 부드럽게 가다듬어서 입을 열어 설명해 주었다. "예를 들어서 거칠은 황야(荒野)를 지나서 드디어 도달하게 되는 하나의 오 래된 고성(古城)이 있다고 하자. 과거에 한 명의 나그네가 꾸준히 그 길을 걸어서 마침내 고성에 도달했고, 후대에도 다시 한 사람이 나타나서 옛 선 인(先人)이 밟아간 길을 걸어서 다시 그 고성에 이르렀다. 마치 그와 같이 이 바른 길이라고 하는 것은 누구에 의해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며, 그리고 누구에 의해 발전하는 것도 아니어서, 항상 그렇게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무학(武學)의 경우에서도 과거 상고시대(上古時代)에도 바른 길을 밟아서 마침내 높은 경지의 무학을 터득한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그리고 당금에 이르러서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러니까 그 무학은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강호의 무학에 대한 인식이 증대되고 무학을 깨우치는 사람들이 늘어 나고 있는 것일 뿐이다. 즉 바른 무학의 도리라고 하는 것은 변화하지 않는 것이다." 용아가 잠시 망연하게 생각에 잠기는 듯하다가 이윽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 했다. "알겠어요. 사람들은 시대에 따라서 정통무학(正統武學)의 개념이 변화한다 고들 하지만 저는 이제야 비로소 그러한 얘기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분명히 알겠어요. 정통무학은 바른 무학이고, 바른 무학은 변화하지 않는 것이죠." 봉아도 눈빛을 빛내다가 한 마디를 했다. "아마도 정통무학이 변화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아직 바른 무학을 알지 못 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일 거예요. 즉 바른 길은 이렇게 앞에 놓여 있는데, 그 사람들은 계속해서 엉뚱한 길로 방황(彷徨)을 거듭하 고 있는 것이죠." 화검운은 미소하며 그녀들의 말을 듣더니 이윽고 다시 말을 이었다. "초절정이라는 말에 대한 개념을 이야기하다가 그만 얘기가 길어지게 되었 는데, 아마도 그러한 얘기들은 들어서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자! 그럼 그 러한 얘기는 여기에서 중단하고 아까 시작했던 대로 성수곡의 무학에 대해 서 얘기해 보기로 하자. 이 성수곡의 대표적인 무공에는 모두 일곱 가지가 있는데, 그것들은 바로 단서철권(丹書鐵拳)상의 선천공(先天功)과 반선수 (反禪手), 대운추(大雲 ), 선천일양지(先天一陽指), 천리호정(千里戶庭), 오행미리보(五行微理步), 육맥신기검(六脈神氣劍)이다." 봉아가 다시 입을 열어 물었다. "아까 그 황낭자는 반선수를 사용했었나요?" 화검운은 미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그 음산귀서생 도옥이 그토록 순순하게 물러서게 되었겠느냐? 자! 바로 이 성수곡의 일곱 가지 무학들은 각 방면의 무학들을 대표한다고 말할 수가 있는 것들이기 때문에 우리는 처음부터 간 략하게 생각해 보도록 하자. 아마도 그러한 무학들의 특질들을 알게 되면 나중에 다른 천상필패의 무학들을 만났을 때에도 분간하는 것이 그다지 어 렵지 않을 것이다. 우선 이 단서철권상의 선천공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내 공심법(內功心法)을 말하는 것인데, 원래 이 성수곡의 무학의 중심은 내공 의 우수성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 선천공은 비록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으 나 상당히 우수한 것이다. 그 요체(要體)는 선천(先天)의 오행지기(五行之 氣)를 하나로 화합(和合)하게 하여 금단(金丹)을 이룬다는 것인데, 너희들 로서는 아직 그러한 이치에 대해서 상세하게 알 필요가 없다. 그리고 두 번 째는 아까 말했던 반선수라는 것인데……" 봉아가 급히 끼어들어 물었다. "그것은 장법(掌法)인가요?" 화검운은 미소하며 대답했다. "그것은 어떤 초식을 위주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장법이라기보다는 장 력(掌力)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그 장력은 바로 선천공의 금단지기(金丹 之氣)를 발출하는 것인데, 사악한 기운(氣運)들을 극제하는 능력이 있고, 또한 기운이 흐트러져 있는 환자를 치유하는 데 효과가 있기 때문에 의술용 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다만 그 장력은 내부의 진원지기(眞元之 氣)를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에 공력의 소모가 많아서 싸움을 할 때에는 사 용하기가 부적합한 것이라고 할 수가 있다." 용아가 입을 열어 물었다. "그럼 다음의 대운추는 그와는 다른 것인가요?" 화검운은 대답했다. "대운추(大雲 )는 바로 권력(拳力)이며 권법(拳法)이다. 무형무색(無形無 色)의 기운으로 발출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종의 무형권(無形拳)이라고 할 수가 있는데, 그 위력은 상당한 것이고, 전적으로 싸움을 위해서 고안된 무 학이다. 그리고 다음으로 선천일양지(先天一陽指)라는 것은, 이것은 그저 일양지(一陽指)라고도 하는데, 그것은 무학과 의술의 두 가지의 효용이 있 는 것이지만, 역시 의술에 보다 많이 사용되는 것이다. 이 일양지는 아주 보기 드물 정도로 정묘하고도 변화막측한 초식과 점혈수법을 내포하고 있는 데, 그것으로 싸움에 이용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반선수와 함께 환자를 치 료하는 데 많이 사용되고 있다. 말하자면 반선수는 홙를 치료하는 데 훌륭 한 효과가 있는 대신에 공력의 소모가 많은 것이므로 거기에 일양지의 수법 이 보조역할을 담당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두 가지 무학의 기운은 오로 지 동일한 것이라는 말이다." 봉아가 눈빛을 빛내며 물었다. "그럼 그 천리호정이라는 것은 무엇인가요?" 화검운은 미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 천리호정(千里戶庭)은 바로 신법(身法)을 말하는 것이다. 경공술(輕空 術)이라는 것인데, 이를 테면 능공허도(凌空虛渡)나 어풍비행술(御風飛行 術) 따위의 신법이나 비슷한 것이다." 봉아가 다소 놀라서 말했다. "능공허도의 경공이나 어풍비행술 등은 바로 전설(傳說)에서나 나오는 경공 술이 아닌가요? 그게 가능하다는 말인가요?" 화검운은 미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이어 오행미리보(五行微理步)는 오행의 미치에서 창안된 보법(步 法)을말하는 것이고, 마지막으로 육맥신기검(六脈神氣劍)은 일종의 무형기 검(無形氣劍)으로 무형지력(無形指力)이라고도 볼 수가 있는데, 변화가 막 측하고 위력이 실로 무서운 것이어서 전적으로 싸움을 위해 창안된 무학이 다. 그것을 일명 육맥신검(六脈神劍)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여기에서 육 맥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인체의 여섯 가지의 손끝으로 통하는 경맥(經脈) 으로 진기(眞氣)를 칼날같이 예리하게 만들어서 쏘아낸다는 것이다. 이 여 섯 개의 경맥에는 서로 다른 각각의 특성이 있어서 그 여섯 가지의 유형(類 型)의 검법이 모두 합쳐지게 되면 실로 경천동지(驚天動地)하다고 할 수가 있는 위력을 낳게 되는 것이다." (……) 용아와 봉아는 이 성수곡의 무학에 관해서 얘기를 들을수록 놀라운지 잠시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었다. 화검운은 그녀들을 돌아보며 미소와 함께 문득 입을 열어 물었다. "너희들은 이 초절정의 무학이 대강 어느 정도의 위력을 낳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봉아가 먼저 입을 열어 대답했다. "최절정의 무학보다도 고강하다고 하니 아마도 그러한 사람들을 세 명 정도 상대할 수 있는 위력이 아닐까요?" 화검운이 용아를 바라보자 이번에는 용아가 대답했다. "저는 아마도 그보다 더한 위력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화검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렇다. 우선 그 이유에 대해서 설명해 주지. 원래 이 초절정의 무학 들을 연성하기 위해서는 먼저 일정한 내공(內功)이 수련되어 있어야만 하는 데, 그 내공의 수위는 대략 육갑자(六甲子)에 달하는 것이다." 봉아가 크게 놀라서 소리쳐 말했다. "육갑자라고요? 저는 일류고수의 내공은 일갑자요, 절정고수의 내용은 이갑 자이고, 최절정고수의 내공은 보통 삼갑자에 달한다고 듣고 있었는데, 육갑 자라면…… 그렇다면 그 어마어마한 내공을 수련하기 위해서라도 역시 그러 한 무학들은 배우기가 쉽지 않겠군요?" 화검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너의 생각대로이다. 강호상에는 비록 더러 무학의 조예(造詣)가 최절정의 경지에 도달한 다음에 기연(奇緣)을 만나거나 편법을 사용하여 공력이 그와 같이 높아지는 사람들이 더러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옛날에는 그저 일갑자 의 공력이 한계였던 것을 생각하면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공력의 수위라고 할 수가 있겠지. 하지만 당금의 천상팔패의 사람들은 이미 오랜 세월에 걸 쳐서 공력을 높이는 방법이 강구되어 왔고, 그것이 그 사람들의 특수한 자 질들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전혀 외부의 시선들을 의식하지 않고서도 능 히 그러한 공력을 키울 수가 있는 것이다. 일반 사람들에게는 그러한 방법 들이 전혀 효과가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그러한 방법에 욕심을 낼 수 가 없는 것이다. 다만 여기에 보다 어려운 난관(難關)이 있는데, 그것은 소 위 말하자면 생사현관(生死玄關)이라는 것이다." 용아가 어디선가 얘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는 듯이 눈을 휘둥그래 뜨며 말했 다. "생사현관이라고요?" 화검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계속했다. "그것은 아주 성취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생사현관(生死玄關)이라고 한다. 그리고 또한 일단 그 관문을 넘게 되면 가히 불로장생(不老長生)의 길을 열 어 탈인간(脫人間)의 초인이 될 수가 있다고 하기 때문에 생사현관이라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비단 이 생사현관을 넘어서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뿐 만 아니라 일단 그것을 넘어서게 되면 바로 초절정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고 할 수가 있다. 말하자면 비록 똑같은 육갑자의 공력을성취하고 있다고 해 도 생사현관을 돌파하지 못하면 그 사람은 그저 아직 최절정의 수준에 머물 고 있는 것일 뿐인 것이다." 봉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대체 그 생사현관이라는 것은 무엇이죠?" 화검운은 미소하며 대답했다. "내력이 일단 육갑자에 도달한 사람이 내공심법의 힘을 받아서 이전에는 길 이 아니었던 전신의 미세한 경락(經絡)까지도 모조리 개통시켜서 전신의 기 운이 하나의 흐름으로 완전히 통일(統一)되게 되는 전신주천(全身周天)을 먼저 완성한 뒤에, 그러한 통일된 기운을 일심(一心)으로 수련하여 마음과 하나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실 천상팔패의 생사현관이라는 개념 은 이와는 조금 달라서 일단 전신주천을 완성한 이후에 그 통일된 기운으로 두정(頭頂)을 여는 대주천(大周天)을 완성하고 마음장상(馬陰藏相)이 되는 것이다. 만일 그렇게 되면 역시 마음으로 진기를 사용할 수가 있다." 봉아는 그 얘기를 듣고 곰곰히 생각하다가 문득 안색을 다소 붉히면서 화검 운을 향해 입을 열어 질문했다. "마음장상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남자나 여자나 그 구실을 하지 못하게 되 는 것이 아닌가요?" 화검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남자의 경우는 음부(陰部)가 퇴화되어 숨어 버린다는 것이고, 여자의 경우 는 적룡(赤龍)이 끊어진다고도 하는데, 그 두 가지는 내용이 비슷한 것이 다. 일반적으로 공력이 고강한 사람일수록 음욕(陰慾)이 왕성해져서 마음으 로 억제하기가 어렵게 되고, 누정(漏精)을 하게 되면 공력의 손실을 보게 되는 것인데, 일단 그렇게 마음장상이 되고 나면 다시 누정을 하게 되는 일 은 없다고 할 수가 있다. 일단 초절정의 무학을 성취한 이후에 누정을 하게 되면 더더욱 공력이 빠져나가기가 쉬울 것이므로 그와 같이 자연스럽게 마 음장상이 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용아가 잠시 생각한 후에 다시 입을 열어 물었다. "그럼 바른 의미의 생사현관과 천상팔패의 생사현관과의 사이에는 어떤 다 른 점이 있는 거죠? 그리고 어떤 것이 더욱 훌륭한 것인가요?" -- 계속 -- #5749 양한우 (hanwoo71) [백상] 종남사부 제3권 제19장 03/28 12:15 321 line 올 린 이 : 양한우 HITEL ID : hanwoo71 제19장. 암습자(暗襲者)들 화검운은 담담히 웃으며 시선을 다시 창 밖으로 돌리면서 입을 열어 말했 다. "아무래도 바른 의미의 생사현관이 수승한 것이고 그 부작용도 없는 것이 다. 그것은 그야말로 가장 자연스럽게 되는 길인 것이다. 그러나 기실 그러 한 밥법은 그 여덟 명의 초인들도 하지 못한 것이어서 역시 다소 어렵다는 느낌이 드는구나. 왜냐하면 그 바른 의미의 생사현관에서 마음과 기운을 하 나로 한다는 것은 전적으로 마음의 공부(工夫)에 달려 있는 것인데, 기실은 무학을 배우는 것보다도 이 마음의 공부를 한다는 것이 더욱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원래 마음의 공부에서 바라보면 이 무학의 수련은 그저 하나의 지엽(枝葉)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봉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하다가 알 수 없다는 듯이 다시 입을 열어 물었다. "그럼 천상팔패의 생사현관은 마음의 공부와는 다른 것인가요?" 화검운은 일단 고개를 가볍게 끄덕인 다음에 이어 말했다. "원래 이 상승(上乘)의 무학을 연성하는 과정에서 가장 두려워해야 하는 것 의 하나는 바로 음욕(陰慾)이라고 할 수가 있다. 실로 사람은 체내의 진기 가 강해질수록 더욱 강력한 음욕의 충동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기실은 그 러한 현상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할 수가 있는데, 만일 바르게 마음의 공부를 해온 사람이라면 그저 바른 마음으로 다스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천상팔패의 무학은 그렇게 바른 마음을 깨우치는 것이 쉽지 않은 것 이기 때문에 우선 기운을 두정으로 올려서 마음과 기운을 하나가 되게 하도 록 유도하고, 이어서 마음장상이 되게 함으로써 마음과 하나가 된 진기(眞 氣)가 음욕이 일어날 경우에 더욱 빠르게 밖으로 빠져나가게 되는 것을 방 지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것은 일단 마음의 공부가 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 서는 아무래도 어쩔 수가 없는 일일 것이다." 용아가 다시 물었다. "그럼 그렇게 대주천(大周天)을 이루고 마음장상이 되게 하는 데에는 문제 점이 없나요?" 화검운은 미소하며 대답했다. "바르지 못한 편법의 하나이므로 역시 아무래도 부작용은 남게 되는 것이 고, 도처에 위험이 도사리게 되는 것이다. 기실 천상팔패의 무학에는 그 부 작용을 해소할 수 있는 많은 방안들이 마련되어 있는것이지만, 역시 많은 사람들이 그 관문을 지나려다가 부작용 때문에 목숨을 잃게 되고 있는 것이 다. 문제는 대주천의 두정을 여는 과정에서 자칫 그 진기를 억제하지 못하 고 주화입마(走火入魔)에 드는 것이며, 마음장상은 저절로 되어 가는 것이 니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봉아가 다시 물었다. "그럼 천상팔패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마음장상이 되어 있는 것인가요?" 화검운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천상팔패 가운데 마음장상이 되는 것이 좋지 않다고 생각하여 다른 편법을 쓰는 경우도 있으므로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다만 대주천을 이루는 것 은 거의 동일할 것이다." 용아가 묵묵히 생각에 잠겨 있다가 다시 물었다. "그럼 그렇게 육갑자의 내공을 바탕으로 하여 생사현관을 통과하게 되면 정 식으로 초절정의 고수가 되는 것인가요?" 화검운은 대답했다. "일단 생사현관을 타동하게 되면 그 능력은 일반의 고수들과 같지 않게 된 다. 그는 마음으로 지극히 정련(精練)된 기운을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에 공 력은 비록 육갑자일지라도 능력은 십갑자의 공력을 터득한 사람의 능력과 비슷한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초절정의 고수라고 불리우는 것이며, 천상팔패의 무학들은 바로 그렇게 마음의 무예를 사용하는 비결들을 적은 것이다. 일단 그렇게 생사현관을 통과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 무학을 사용할 수가 없는 것이니 일반인들이 어떻게 그들의 무학을 배울 수가 있겠느냐?" 용아와 봉아는 이미 육갑자라는 공력에 대해서 크게 놀랐었는데, 이제 다시 무려 십갑자의 공력의 능력을 발휘할 수가 있게 된다는 얘기를 듣게 되자 너무나도 크게 놀라서 어안이 벙벙하게 되었다. 특히 생각이 빠른 봉아가 내심으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아까 보기에는 황낭자의 무학이 그렇게 뛰어나게 보이지는 않던데, 실제로 는 무려 십갑자의 공력과 같은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는 말인가? 실로 다른 사람들이 그녀의 앞에서 쩔쩔매는 것이 당연한 일이겠구나. 그야말로 나같 은 능력으로는 도저히……. 헌데 그녀는 혹시 적룡(赤龍)이 끊어져 있는 것 이 아닐까?) 봉아는 마지막으로 묘한 생각을 하였으나 그 생각을 입을 열어 화검운에게 말하지는 않았다. 화검운은 그러한 그녀들의 심리를 알고 있는 것인지 모르고 있는 것인지 그 저 담담히 웃으며 다시 입을 열어물었다. "이제 너희들은 그 초절정의 고수들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들인가를 알겠느 냐?" 용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예, 저희들은 이제 그들이 나타나기만 하면 결코 나서지 않고 피할 생각을 하도록 하겠어요. 저는 기실 구파일방 등이 이미 오랫동안 차지하고 있던 태산북두(泰山北斗)의 자리를 천상팔패에게 쉽게 양보한 것이 무슨 까닭일 까 하고 의아해하고 있었는데, 실로 그들에게 그러한 막강한 힘이 있기 때 문에 소수(小數)의 인원들로도 천하의 태산북두가 될 수가 있었던 것이었군 요?" 화검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렇다. 그러나 아직은 구파일방 등의 세력과 그 전통을 무시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것이다." 봉아가 문득 고개를 들고 다시 물었다. "혹시 천상팔패 이외의 문파에는 초절정의 무학들이 없나요?" 화검운은 미소하며 대답했다. "강호의 방파들 가운데 더러 그러한 비슷한 무학들이 있는 경우가 있기도 하다. 예를 들어 소림사의 달마역근경(達磨易筋經)이나 무당파의 태극혜검 (太極慧劍) 등은 그러한 종류들이라고 할 수가 있지. 다만 그것들을 터득하 는 일이 너무나도 난해(難解)하여 대성하는 사람들이 아주 드문 것인데, 거 기에서 특히 달마역근경은 오히려 천상팔패의 무학들보다 훌륭하고 완벽한 무학(武學)이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이다." 봉아는 웃으며 다시 말했다. "하지만 저희는 강호상에서 이미 소림사의 무학들을 너무나도 고지식한 것 이라고 우습게 여기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화검운은 대꾸했다. "그것은 바로 당금의 강호에 바르게 수련하려는 풍토가 사라지고 쉽고 빠르 게 성취하려는 편법이 성행하게 되어 그러한 의식들이 일고 있는 것이다. 만일 바르게 무학을 배우려고 한다면 필시 그 달마역근경과 같은 무학들을 배워야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너희들이 익히고 있는 무공들도 그러한 관점에서 내가 다소 보완한 것들인 것이다." 봉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에 수긍을 하더니 이어 문득 이렇게 질문했 다. "그 황낭자의 무학은 이미 정말로 초절정의 경지에 들어선 것인가요?" 화검운은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반선수라는 무공은 연성하기도 어렵지만 시전하기도 어려운 무공인 것이 다. 그와 같은 무공을 빠르고 간단하게 시전할 수가 있다는 것은 이미 그녀 가 초절정의 경지에 들어서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봉아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입을 열어 물었다. "화 상공님께서는 아직 그들에게 자신의 목적에 대해서 말씀하시지 않았었 는데, 앞으로 언제까지라도 그렇게 하실 것인가요?" 화검운은 담담히 웃으며 대답했다. "만일 그럴 만한 상황이 되면 나의 목적을 밝히는 것이야 뭐가 그리 어렵겠 느냐? 사람들이 나의 신분내력에 대해서 알게 된다면 역시 나의 목적에 대 해서도 이해할 수가 있게 될 것이다." 봉아는 재차 물었다. "아까 사람들이 종남사부(終南師父)에 대해서 알고 싶어하던 눈치던데, 화 상공님께서는 어째서 그에게 그렇게 관심이 없으신 거죠?" 화검운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대답했다. "그는 그이고 나는 또한 나인 것이다. 지금 나의 앞에 해야 할 일이 산적해 있는데 어찌 쓸데없는 일로 시간을 낭비할 수가 있겠느냐?" 봉아는 다시 말했다. "하지만 사실 그 종남사부가 제아무리 잘생기고 훌륭한 인물(人物)이라고 해도 화 상공님께서도 결코 그보다 못하지 않은 잘생기고…… 그리고 또한 능력이 뛰어나신 분이신데 어째서 그렇게 진면목(眞面目)을 가리시고 다니 시는 거죠?" 화검운은 웃으며 대꾸했다. "나는 그저 행동하기가 편해서 이렇게 하고 다니는 것이다. 사실 사람의 얼 굴이야 껍데기에 불과한 것인데 아무려면 어떻겠느냐? 혹시 너희들은 내가 얼굴을 드러내 놓고 다니면서 많은 여자(女子)들의 숲 속에 들게 되는 것을 바라고 있다는 말이냐?" 봉아는 즉시 안색을 새빨갛게 붉히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예요, 아니예요! 우리는 그런 것을 바라지 않아요! 저는 차라리 지금 의 화 상공님의 모습이 더욱 좋다고 생각해요!" 봉아는 대답을 하고 나자 왠지 두 눈을 내려뜨고는 가늘고 흰 목덜미까지 사르르 붉어지는 것이었다. 화검운은 이내 봉아가 또다시 엉뚱한 생각들을 하고 있는 것을 알고는 즉시 몸을 일으키면서 말했다. "자! 나는 이제 그만 안으로 들어가서 쉬어야 하겠으니 너희들도 하려던 일 을 하도록 하고 잠은 이곳의 저기에 있는 넓은 의자들을 붙여 놓고 자도록 하는 것이 좋겠구나." 용아와 봉아는 즉시 몸을 일으키며 공손히 허리를 굽혀 대답했다. "예, 화 상공님. 지시대로 거행하도록 하겠어요!" 화검운은 천천히 걸어서 침실의 안으로 들어갔고, 이내 방문을 닫아 버렸 다. 용아와 봉아는 이제 제세상을 만난 듯이 신이 나서 빠르게 행동을 개시하기 시작했다. 화검운은 일단 침실로 들어가서 방문을 닫은 뒤에 정말로 겉옷을 벗고는 침 상 위에 옆으로 비스듬히 눕고는 잠에 빠져들었는데, 이윽고 그가 잠에서 다시 깨어난 때는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아직 한밤중인 자정 무렵이었 다. 느닷없이 창 밖에서 심야의 정적을 꿰뚫는 처절한 비명 소리가 들려왔 던 것이었다. (……?) 초저녁에 그렇게 신이 나서 돌아다니던 용아와 봉아는 이미 거실에서 잠이 들었는지 조용하게 움직이는 기척이 없었고, 뒤를 이어 비명소리뿐만 아니 라 다소 시끄러운 병장기의 부딪치는 소리들까지 들려왔기 때문에 화검운은 그만 다시 잠을 청할 생각을 하지 않고 조용히 일어나서 창문을 열었다. 창문을 열자마자 시원스러운 밤바람과 함께 시끄러운 사람들의 기척들이 그 의 귓전에 분명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는데, 원래는 조용한 편이었던 이곳 장 안성의 일대가 갑자기 거대한 아수라장(阿修羅場)이라도 된 것처럼 왠지 짙 은 피비린내가 물씬 풍겨오는 듯한 것이었다. 화검운은 따라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가볍게 신형 을 창 밖으로 날려서 마치 한 덩어리의 구름이 나아가듯이 부드럽게 미끄러 지며 위로 솟아올라 거대한 반점의 지붕 위로 서서히 떨어져 내렸다. 본래 화검운이 숙박하고 있는 특실의 위치가 이 반점의 최고층에 해당되는 삼층이었기 때문에 그가 그와 같이 신형을 솟구치며 지붕 위에 내려앉는 것 은 간단한 일이었고, 화려한 곡선(曲線)을 그리며 거대하게 지어져 있는 이 지붕 위에 올라서서 주위를 바라보니 마치 장안성의 모든 상황이 한눈에 들 어오는 것 같았다. 화검운은 일단 그렇게 지붕 위에 조용히 내려서서 사위를 둘러보았는데, 왠 지 갑자기 주위가 조용해진 느낌이 들 정도로 조금 전까지만 해도 요란스럽 게 들려오던 시끄러운 소음들이 들리지 않고 있었다. 화검운은 이미 모든 상황이 끝난 상태이기 때문에 이렇게 조용해진 것이 아 닌가 하고 생각하다가 문득 눈빛을 다소 빛내며 한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갑자기 조용하던 지붕의 저쪽 건너편에서 한 명의 검은 인영(人影)이 나타 나더니 마악 이쪽으로 다가오려다가 일순 화검운이 서 있는 것을 발견했는 지 신형을 다소 멈칫하는것이었다. 헌데 그 순간의 일이었다. 그 검은 인영이 나타났던 쪽에서 다시 두어 명의 인영들이 나타나더니 검은 인영을 보자마자 아무런 소리도 하지 않고 다짜 고짜로 병기를 휘두르며 공격을 퍼붓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검은 인영은 그것을 보자 일순 매우 당황해하는 듯하더니 그 뒤따라온 두 명의 인영을 상대하지 않고 빠르게 옆으로 신형을 날렸다. 검은 인영의 신 법(身法)은 상당히 유려한 것이어서 경사진 지붕의 면을 따라서 빠르게 내 려가더니 이윽고 처마 끝에 이르자 신형을 빠르게 움직여서 아래쪽으로 모 습을 감추었다. 검은 인영을 뒤쫓던 두 명의 인영들은 그와 같은 광경을 보자 일순 다소 주 저하는 듯하더니 자신들도 검은 인영의 뒤를 따라서 처마 밑으로 신형을 날 렸다. 그런데 느닷없이 바로 그 순간에 처마 밑에서 한 줄기의 검광(劍光)이 마치 푸른 뱀의 혓바닥처럼 솟아나오더니 그대로 그 뒤를 따르던 두 명의 인영을 향해 엄습해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그 두 명의 인영들은 비록 무공이 약하지는 않아 보였으나, 일순간 그와 같 은 검세(劍勢)를 보게 되자 절로 앗! 하는 경악성을 발하게 되었다. 경악성을 발함과 거의 동시에 두 사람은 번쩍 신형을 뽑아올리면서 각자의 병기로 상대방을 향해 반격을 퍼붓기 시작했는데, 비록 순식간에 암습을 당 했어도 빠른 임기응변으로 그것을 피해내고 동시에 반격까지 퍼부을 줄 아 는 것으로 보아 강호의 경험 역시 풍부해 보였다. 처마의 아래쪽에서 갑자기 암습을 퍼부었던 사람은 아마도 예의 그 검은 인 영이었던 것 같았는데, 그는 자신의 첫 번째 기습이 수포로 돌아가게 되자 즉시 검법을 더욱 살벌하고 악독한 것으로 바꾸어 허공 가득히 검푸른 검광 을 수놓기 시작했다. 실로 그와 같은 검법은 자신의 목숨마저도 돌보지 않는 동귀어진의 수법으 로, 그저 그 사람의 검법만 보더라도 능히 그 사람의 악착같은 심성을 알 수가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의 일이었다. 한 번의 암습을 겨우 피해내고 나서 이제 는 다소 여유있게 상대를 공격해 나갈 것 같았던 그 두 명의 인영들이 갑자 기 허공에서 공격을 퍼붓다가 말고 느닷없이 억! 하는 소리와 함께 하나같 이 아래로 떨어져 버리는 것이 아닌가! 쭈왁! 검은 인영은 그야말로 혼신의 힘을 다하여 공격을 펼치고 있다가 느닷없이 상대들이 맥없이 아래로 떨어져 내리는 것을 보고 미처 장검을 회수하지 못 해서 그만 장검으로 두 사람의 허리를 베게 되었고, 그로 인해서 한 순간 두 사람의 내장과 핏물이 사방으로 자욱하게 비산되는 바람에 사위에는 짙 은 피비린내가 흐르기 시작했다. 그 검은 인영은 일순 자신이 그 두 명을 죽일 수 있었던 일에 대해서 크게 의심스러운지 자신의 몸 위에 핏물이 자욱하게 뒤덮이는 데도 그저 멍하니 생각에만 잠겼다. 헌데 이때 다른 쪽의 지붕 위에서 다시 한 명의 검은 인영이 빠르게 나타났 으므로 그 검은 인영은 흠칫하다가 크게 반가운 기색이 되어서 낮은 음성으 로 소리쳤다. "아! 전향주(錢香主)님께서 소인(小人)을 도와주셨군요!" 그렇다. 기실 화검운은 거기에서 별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바라보고 있었는데, 아까의 그 두 명의 인영들은 한창 정신을 모아서 검은 인영에게 반격을 퍼부으려는 찰나에 느닷없이 다른 쪽의 지붕 위에서 새로 나타난 검 은 인영이 별빛과도 같은 암기(暗器)를 내던져서 요혈(要穴)을 격중시키는 바람에 그만 어이없게도 맥도 추지 못하고 죽음을 당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원래 그들은 조금 전에 그 흑의인영에게 암습을 당해서 정신이 혼란스러워 져 있지 않았다면 그렇게 쉽사리 당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흑의인영이 장검을 갈무리하고 지붕 위로 뛰어오르자 예의 그 새로 나타난 검은 인영이 빠르게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전향주님을 뵈옵니다!" 먼저의 검은 인영이 공손하게 나중의 검은 인영에게 예의를 표하자 그 나중 의 검은 인영은 즉시 손을 내저으며 나직하게 말했다. "인사는 생략해라. 지금이 어떤 때인데 인사나 하고 있겠느냐? 자, 어서 나 를 따라가자!" "알겠습니다." 먼저 검은 인영이 그렇게 공손히 대답하고는 문득 시선을 옆쪽으로 돌려서 주위를 찬찬히 살폈다. 그리고는 다소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원래 그 곳에는 화검운이 서 있었는데, 지금은 그의 모습이 갑자기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버린 뒤였기 때문이었다. "왜 그러느냐?" 나중의 검은 인영이 그것을 보고 의아해하며 묻자 먼저의 검은 인영은 다시 그를 바라보더니 뭐라고 전음입밀(傳音入密)로 얘기하는 모양이었다. 나중의 검은 인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 얘기를 듣고 있더니 이윽고 다시 입을 열어 말하며 신형을 날렸다. "어서 가자!" 먼저의 검은 인영은 즉시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그 뒤를 따라서 신형을 날렸다. 그 두 명의 신형이 마악 건너편의 지붕 아래로 사라져 갈 무렵에 화검운이 아까의 그 자리에 나타났다. 기실 화검운은 조금 전에 두 번째의 검은 인영 이 나타나는 순간에 급히 신형을 움직여서 으슥한 곳에 숨어 있었던 것이었 다. 화검운은 이미 그 두 명의 검은 인영들을 뒤따라가 보기로 생각하고 있었 다. 원래 그는 그 두 사람 가운데 첫 번째는 다리를 약간 저는 사람이고 두 번째는말의 발음이 불분명한 반벙어리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기 때문에, 필시 그들이 농아방(聾啞幇)의 무리들일 것이라고 짐작하고는 지금 그들을 뒤쫓아가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화검운은 즉시 신형을 움직여서 그 두 명의 농아방도들의 뒤를 따라서 예의 건너편의 지붕 끝 부분에 이르렀는데, 바라보니 그 두 명의 농아방도들은 이미 십여 장 밖의 지붕 위를 으슥한 곳만을 골라서 빠르게 신법을 펼쳐서 나아가고 있었다. 화검운은 그들의 뒤를 천천히 뒤쫓으리라고 마음을 먹고 다시 부드럽게 신 형을 움직였다. 헌데 그 순간의 일이었다. 갑자기 화검운이 뛰어내린 처마의 밑에서 소리없 이 하나의 예리한 검날이 솟아나와 그의 등줄기를 파고들어오는 것이 아닌 가! 화검운은 이때 다소 느긋한 태도였기 때문에 벌써 그의 겉옷을 꿰뚫으려고 하고 있는 그 검날은 이내 그의 육신도 관통할 수가 있을 것 같았다. 실로 이러한 암습(暗襲)은 아까 그 절름발이 농아방도가 취했던 암습보다도 몇 배나 고명한 것이었고, 시기적절할 뿐만 아니라 거의 기척도 일지 않는 것이어서 무섭기 이를 데 없는 것이었다. 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이토록 급작스럽게 화검운을 향해 암습을 펼치고 있 는 것일까? 화검운의 신형은 원래 비스듬히 원호를 그리며 아래쪽의 다른 지붕 위에 내 려서기 위해 나아가고 있었는데, 거의 상대방의 검날이 겉옷에 닿을 무렵에 화검운의 신형(身形)은 갑자기 밑으로 떨어지던 움직임을 정지시키고 그대 로 앞쪽으로 수평으로 이동했다. 그 바람에 금방이라도 검날에 의해 관통될 듯하던 그의 신형은 완전히 검날의 공격권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바로 그 순간에 뒤쪽에서 어? 하는 신음 섞인 경악성이 터져나오는 것같았다. 기실 조금 전의 그 암습자(暗襲者)는 화검운을 거의 기척없이 제거하기 위 해 일부러 장검에 검기(劍氣)를 일으키지 않았었던 것이었는데, 그것은 일 단 검기 따위를 일으키게 되면 비록 심한 파공음이 일지는 않는다고 해도 그 서늘한 기운이 느껴지게 되어 상대가 쉽게 암습을 알아차릴 것을 염려한 착상이었는데, 차라리 그가 만일 장검에 검기를 일으켜서 공격했던 것이라 면 미처 그의 검날이 화검운의 겉옷에 닿기 전이라도 다만 검기로써 그를 진상(震傷)시킬 수가 있었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암습자는 일단 첫 번째의 공격이 실패하자 이어 계속해서 공격을 펼쳐나오 지 않고 빠르게 뒤로 물러나 버렸는데, 그것은 화검운이 순간적으로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신법을 펼쳤었기 때문에 너무나도 놀란 나머지 몸을 움츠 린 것이 아니라 기실은 보다 지략적인 행동이었다고 말할 수가 있었다. 일 반적으로 첫 번째의 암습이 실패하게 되면 그 뒤로는 그만큼 살기(殺氣)가 감소될 것이고, 계속해서 공격을 퍼붓는다고 해도 결국에는 상대를 죽일 수 가 없을 것이므로, 한 순간에 그러한 사실을 파악하고는 일찌감치 미리 준 비해 둔 후속타를 전개시키기 위해 뒤로 물러선 것이었다. 실로 그러한 점만 보더라도 이 암습자는 상당한 무공에 침착한 기질마저 겸 비하고 있어서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가 있을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앞으로 쭈욱 밀려나간 화검운의 신형이 마악 중심을 잡아서 고개를 돌려보기도 전에 이미 그의 뒤쪽뿐만 아니라 좌우와 심지어 앞쪽의 으슥한 그늘진 곳에서도 무수한 쇠털과도 같은 암기들이 비오듯이 날아오기 시작하여 순식간에 어두운 하늘을 온통 뒤덮는 것이었다. 기실 이 쇠털같이 가느다란 암기는 대부분의 수많은 암기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사용하기가 어려운 것에 속하고 있는 것이었으며, 그것들은 너무나도 가느다란 것들이므로 암기무예(暗器武藝)에 숙련된 고수(高手)들이 아니면 사용할 수가 없다는 단점이 있는 반면에, 일단 그것을 사용할 수만 있다면 그것들은 거의 소리도 없이 상대방의 신체 속으로 스며들어가 혈관을 따라 돌다가 심장(心臟)을 파괴하기도 하고, 혹은 그렇게 되기도 전에 이미 그 암기의 앞 부분에 칠해져 있는 극독(極毒)들이 효과를 발휘하여 상대방을 일거에 살해해 버릴 수 있는 놀라운 위력들을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화검운은 이미 일전에 산동성(山東城)에서 이름을 떨치고 있는 봉래파(蓬來 派)라는 곳에 그와 비슷한 암기인 탈혼마우(奪魂魔牛)라는 것이 있어서 심 히 악독하고 위력적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이제 자신이 직접 그 와 같은 가공스러운 암기의 공세 속에 놓이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었을 것 이었다. 화검운은 비록 조금 전에 놀라운 위력적인 암습을 받기는 했었지만, 지금의 이와 같은 가공스러운 공세에 비하면 그것은 다만 시작에 불과한 것이었던 것 같았다. -- 계속 -- #5750 양한우 (hanwoo71) [백상] 종남사부 제3권 제20장 03/28 12:16 254 line 올 린 이 : 양한우 HITEL ID : hanwoo71 제20장. 대격전(大激戰)의 아수라장(阿修羅場) 실로 이와 같은 소리없는 공포스러운 암기들은 비록 훤한 대낮이었다고 해 도 쉽게 피할 수가 없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사방에서 한꺼번에 발출되어 날아오고 있는 암기들은 교묘하게 도 화검운이 신형을 날려 피할 수 있는 자리들을 완벽하게 차단하며 날아오 고 있었다. 아마도 생각해 보니 지금 화검운에게 이와 같은 암기들을 발출 하고 있는 암격자들은 이미 사전에 철저하게 완벽한 준비를 해놓고 화검운 을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화검운이 아무리 빠르게 신법을 펼친다고 해도 이 치밀하게 꾸며 놓은 암기 들의 그물을 벗어날 수가 없을 것이며, 장력(掌力)을 펼쳐서 막으려고 하면 그것들은 장력을 거슬러서 날아와 손바닥에 꽂힐 것이고, 병기를 휘둘러서 막으려고 해도 잘 되지 않을 것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 화검운이 이 암기들을 무사히 피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 은 오로지 신형을 급히 하늘 높이 솟구쳐서 그러한 그물에서 벗어나는 것뿐 인 것 같았다. 하지만 한 차례의 놀라운 신법으로 첫 번째의 공격을 피해내 는것도 어려운 일이거늘 아직 지면을 밟지도 못한 상태에서 그대로 빠르게 위로 솟구친다는 것이 어찌 가능이나 한 일이겠는가? 마치 그것이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라도 한 듯이 이미 한쪽에서 는 이제 금방 고슴도치처럼 되어서 아래로 추락하게 될 화검운의 신형을 상 상하고는 음침하게 웃는 소리도 일어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믿을 수 없게도 바로 그 순간에 전혀 있을 수 없을 것 같았던 상황 이 벌어졌다. 화검운의 신형이 잠시 허공에서 멈칫하는 듯하더니 다음 순간 에 흡사 쏜살처럼 허공으로 솟구치며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닌가! "앗!" 누군가의 입 속에서 경악성이 절로 튀어나왔고, 이미 주위에서 매복하고 있 던 수많은 사람들은 한 순간에 어두운 하늘 위로 사라져 버린 화검운의 환 영(幻影)을 보는 듯이 다함께 멍청한 기색들을 보이기 시작했다. "믿을 수 없는 일이로군!" 누군가의 입 속에서 다시 나직한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화검운은 일단 어두운 허공 높이 솟구친 다음에 이윽고 서서히 아래쪽을 바 라보며 신형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지금 이미 저만큼 멀어져 버린 아 까의 그 두 명의 농아방도들의 뒤를 계속해서 쫓기 시작하고 있는 것이었 다. 기실 원래 그는 처음에 침실에서 나올 때부터 누군가 자신을 노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고, 그리고 또한 그 암격자들의 암습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그는 기척을 듣고 누군가가 매복하고 있다는 것 을 능히 알 수가 있었다. 따라서 실제로 그의 움직임은 순간적인 임기응변 이 아니라 대체적으로 미리부터 생각하고 있었던 대로 움직인 것에 불과했 다. 지금 화검운은 서서히 커다란 원호를 그리면서 아래쪽으로 떨어져 내리고 있는 중이었지만, 아까 그가 그 암격자들의 공격을 피하는 일은 그다지 어 려운 일은 아니었다. 처음부터 그는 그 자들의 암습을 예견하고 있었고, 또 한 그 자들의 무공은 그의 상대가 되지 못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화검 운은 따라서 보다 다른 방법을 택해서 그들을 상대할 수도 있는 일이었으나 일단은 그 두 명의 농아방도들을 놓칠 수가 없다고 판단되어 그와 같은 신 법을 펼쳐서 암격자들을 벗어나서 나아가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화검운은 그 암격자들에 대해서 궁금하지도 않은 것일까? 그렇다. 만일 화검운이 그들에 대해서 일말이라도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다 면 그렇게 쉽게 그곳을 벗어나올 수가 없었을 것이지만, 실제로 그는 대강 그 암격자들의 목적과 신분들에 대해서 생각되는 바가 있었던 것이었다. 다 름이 아니라, 그것은 바로 아까 반점의 내부에서 그가 수라존자 등의 행위 를 방해했던 일 등에 원인이 있는 것일 것이었다. 화검운은 실로 그 암격자들의 무공이 낮은 것들이기 때문에 자신이 구태여 그들을 상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었다. 만일 누군가 강적 (强敵)이 있다면 나중에 그의 앞에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게 될 것이었다. 다만 한 가지 우려되는 바는 그 암격자들이 이번에는 용아와 봉아가 있는 특실로 쳐들어가서 어떤 난폭한 짓들을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는데, 실상 은 그러한 암격자들은 일단 상대를 암습하는 데 실패하게 되면 재빨리 모습 을 감추고 싶어지는 것이지 감히 화검운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면서 그처 럼 대담한 짓거리를 할 리가 없다고 생각하고는 그러한 우려감을 떨칠 수가 있었다. 화검운은 이제는 거의 지면에 내려서서 지붕들을 타고 나아가면서 예의 그 두 사람의 뒤를 미행해 가고 있는 상태였는데, 두 사람의 뒤를 따라가면서 주위를 둘러보니 사방에는 이미 격렬한 싸움이 벌어진 흔적들이 수없이 생 겨나 있었으며, 간혹 곳곳에서는 아직도 살벌한 격전(激戰)이 전개되고 있 었으므로, 마치 생각건대 이 장안성의 내부 전체가 모조리 격전의 아수라장 (阿修羅場)으로 화한 것 같은 느낌이 들기까지 했다. 농아방의 두 명의 방도들은 일단 신형을 날리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단 한 번도 뒤로 고개를 돌려보지 않고 계속해서 은밀하게 움직이며 빠르게 나아 가고 있었다. 그들은 가능하면 싸움을 피할 생각인지 사람들이 거의 없는 쪽을 택해서 나 아가고 있었는데, 화검운은 거의 무심코 그들의 뒤를 따라가다가 이윽고 금 방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알고보니 그들 두 사람은 성 안의 변두리를 택해서 일직선으로 나아가지 않고 계속해서 커다란 원(圓)을 그리 며 나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마치 그들에게 특별한 목적지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화검운이 자 신들을 미행하고 있는 것을 눈치채고 그를 따돌리기 위해 일부러 시간을 끌 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만일 화검운이 이미 장안성의지리에 대해서 소상하게 알고 있지 않았다면 은밀한 구석을 골라서 이리저리 나아가고 있는 그들을 추격하는 동안에 방 향감각마저 잃게 되어서 설마하니 그들이 의도적으로 이상하게 나아가고 있 다는 것을 몰랐었을 것이었다. 그런데 화검운이 마악 농아방도들의 행동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고 나서 다 른 행동을 취하려고 하는 순간에 느닷없이 앞쪽에서 다시 격렬한 소음이 들 려오기 시작했다. (……?) 그 소음의 대부분은 병장기가 부딪치는 소리들이었고, 거기에 사람들의 단 말마적인 비명 소리 등이 뒤섞여 있었기 때문에 마치 금방 무슨 난리라도 난 것 같았다. 화검운은 그러한 소리를 듣게 되자 이내 크게 궁금한 마음이 일었는데, 때 마침 그 두 명의 농아방도들은 그러한 그의 심정을 알아주기라도 하듯이 이 번에는 그쪽으로 일직선(一直線)으로 나아가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화검운은 내심으로 이제 곧 자신의 앞에 뭔가 놀라운 일이 펼쳐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으므로 좀더 신법을 빨리하여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고, 과연 아니나 다를까 잠시 후에는 그의 앞에 한바탕의 놀라운 광경이 드러나게 되 었다. 하나의 광장(廣場). 기실은 그저 광장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빈민가(貧民街) 의 작은 공터였는데, 지금 그곳에는 한밤중인데도 불구하고 무려 수십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심하게 치열한 격전(激戰)을 벌이고 있었으며, 어두운 밤 하늘에는 시퍼런 검광(劍光)과 살기(殺氣)들이 난무하고 요란스러운 병장기 들의 부딪치는 소리와 사람들이 죽어가는 단말마적인 비명소리로 인해서 흡 사 아수라장(阿修羅場)을 그대로 연상시키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두 명의 농아방의 방도들이 그쪽으로 달려갔기 때문에 화검운은 자연스 럽게 그 부근에 이르러서 상황을 살펴보게 되었는데, 대체 어째서 이와 같 은 대격전(大激戰)이 한밤중에 이런 곳에서 벌어지게 되었는가 하고 바라보 니, 그 이유를 금방 알기는 어려웠고, 다만 수십 명의 사람들이 소용돌이를 일으키듯이 벌떼처럼 움직이고 있는 그 중심부에 문득 아주 낯익은 사람들 의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다. 다름이 아니라 바로 아까 초저녁에 반점의 내부에서 마치 정의의 사자(使 者)라도 되는 듯이 나타나서 설쳐댔었던 청해파(靑海派)의 고수들인 청해삼 검(靑海三劍)이었는데, 지금 그들은 예의 그 삼재검진(三才劍陣)을 발동하 여 중앙에 서서 그들을 향해 사방에서 덮쳐들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무참 하게 살상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이 마치 이 청해삼검이 그 많은 사람들의 철천지의 원수와도 같아서 그 들이 모두가 하나같이 죽음을 무릅쓰고 달려들고 있는 것과도 흡사하였으므 로, 화검운은 일시 너무나도 이상하게 생각되어 그쪽을 다시 유심히 살피다 가 문득 청해삼검이 삼재검진을 펼치고 있는 그 중앙에 한 사람의 칠십여 세 정도 되는 나이의 아주 왜소해 보이는 노인(老人)이 서 있는 것을 발견 하게 되었다. 화검운은 그 노인이 비록 키가 작고 왜소한 몸집이어서 쉽게 눈에 띄지 않 았지만, 우선은 청해삼검이 적극적으로 그 노인의 신변을 보고하려고 하는 것 같을 뿐만 아니라 왜소해 보이는 그 노인의 신체에서는 마치 일대종사 (一代宗師)와도 같은 근엄한 기상이 우러나고 있는 듯했기 때문에, 문득 다 음과 같은 생각을 했다. (듣기로 청해파에서는 청해삼검의 사부(師父)라는 청해검학(靑海劍鶴) 교홍 (喬虹)이 있다고 하던데 혹시 그가 청해파의 문주인 교홍이 아닐까?) 화검운은 비록 왜소한 체격이지만 도리어 다소 길어 보이는 고색창연(古色 蒼然)한 자엄을 등뒤에 매어 길게 늘어뜨리고 있는 노인의 행색을 바라보며 자신의 추측이 아마도 틀림이 없을 것이라고 다시 생각했다. 그런데 화검운은 이번에는 대체 무엇 때문에 그토록 수많은 사람들이 한 패 가 되어 저 청해파의 사람들을 공격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을 풀어 보 기 위해 상황을 다시 면밀하게 검토하려다가 갑자기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 어서 안색을 변화시키며 고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다름이 아니라 그는 이 순간에 너무나도 기이한 광경에 접했던 나머지 그만 농아방도들을 뒤쫓 고 있었던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깜빡 잊고 있었던 것이었다. 과연 아니나 다를까 화검운이 급히 주위를 자세하게 둘러보니 실로 조금 전 까지만 해도 그 수십 명의 무리들 가운데로 스며들 것 같았던 예의 그 두 명의 농아방도들이 이 순간은 전혀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 아닌가! 화검운은 일순간 크게 어처구니가 없어 하며 급히 그 자리에서 신형을 날려 서 어두운 하늘로 높이 올라가서 주위를 빠르게 살폈지만, 그러나 그 농아 방도들은 역시 그의 시야에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실상 화검운이 장내의 무리들을 향해 한눈을 팔았던 시간은 그다지 긴 시간 이었다고 말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지금 그 농아방도들이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은 필시 그들이 아직 멀리 달아나지 않고 이 주위에 숨어 있다 는 말이었다. 틀림없이 그들은 자신들이 아무리 빠르게 달아난다고 해도 결 국은 화검운의 시야에 잡히게 될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에 일단은 빠르게 자 신들의 몸을 어지러운 장내 속으로 숨겨 버린 것일 것이었다. 화검운은 처음에는 즉시 신형을 움직여서 빠르게 그들을 찾아내려고 했지 만, 이내 씁쓰레하니 웃으며 그것을 포기하고 말았다. 실제로 이러한 어지 럽고 소란스러운 장내와 또한 무수히 들어서 있는 빈민가의 내부에서 한 번 숨어 버린 그들을 찾아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제 아무리 화검운의 눈이 좋다고 해도 이 많은 빈민가의 가옥들을 모조리 꿰뚫 어 볼 수는 없는 일이었으며, 다만 청각에 의존해야 할 것인데 지금 장내의 소란스러운 분위기는 그러한 여지를 완전히 무산시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화검운은 일단 그와 같은 사실을 파악하자 이내 그 두 명의 농아방도들이 실로세심하고 치밀한 면모가 있었다는 것을 알고 다소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혹시 그들은 그러한 상황들을 이용하기 위해 이루러 화검운을 이쪽으로 유 인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대체 그들이 그렇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되었을 만큼 중대한 사안이 그들에게 있었기라도 했다는 말일까? 화검운은 실로 낭패를 당하여 그러한 이치들을 생각해 볼수록 더욱더 낭패 감이 드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 다행히 그는 원래 그 두 명의 농아방도들을 추격했을 때부터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으므로 일단 포기하기로 작정하자면 그다지 미련 을 두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화검운은 이에 이르러 그만 그 두 명의 농아방도들의 뒤를 밟는 것을 중지 하고 본격적으로 장내의 상황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아까 조금 전에는 은근히 신경이 분산되어 있었기 때문에 차분하게 장내의 상황을 살필 수가 없었으나, 이제는 그 농아방도들에 대해서 미련을 버리기 로 작정했기 때문에 신경이 분산될 이유가 하나도 없는 상태였으므로, 더욱 세밀하게 장내의 상황을 바라볼 수가 있게 되었다. 청해삼검의 삼재검진에서 발출되어 나오는 무수한 무형(無形), 유형(有形) 의 검기(劍氣)들은 마치 거대한 태풍이 가랑잎을 뒤흔들고 있는 것 같았다. 마치 은빛의 날카로운 채찍들이 난무(亂舞)하듯이 무수한 검기들이 종횡(縱 橫)으로 그물망처럼 얽혀서 뱀의 혓바닥과도 같은 검망(劍芒)들을 날름거리 면 그 사이로 춤추듯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수많은 공격자들의 신형에서 는 간간이 붉은 선혈들이 비오듯이 사방으로 뿌려지는 것이었다. "아악!" 누군가의 목줄기가 그 검망의 혓바닥에 감겨서 그대로 베어져 나가면서 단 말마의 비명 소리가 사위를 예리하게 찢었는데, 비록 그러한 혼전 속에서도 청해삼검의 삼재검진의 위력은 놀라우리 만큼의 위력을 발휘하여 한꺼번에 벌떼처럼 달려들고 있는 무리들을 이리저리 베어넘기고 있었지만, 그러나 왠지 그 청해삼검의 표정은 다소 지친 듯해 보였고, 게다가 어느 정도 초조 해 하고 두려워 하는 기색이 있는 것 같았다. 청해삼검의 삼재검진의 중앙에서 그들에게 보호를 받고 있는 예의 예소한 노검객(老劍客)도 겉으로는 태연한 듯했지만 왠지 난감한 기색이 있는 것 같았다. 바로 그때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벌어지는 혼전(混戰)의 아수라장(阿修羅場) 과 조금 떨어져 있는 곳에서 문득 한 사람이 진기(眞氣)를 일으켜서 커다란 목소리로 소리쳤다. "청해검학 교홍! 이제는 대세(大勢)가 기울었음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웬 만하면 그 장보도(藏寶圖)를 우리에게 넘기는 것이 어떠냐?" 그런데 그 사람은 화검운의 눈에 매우 낯익은 사람이었다. 바로 다름이 아 니라 초저녁에 반점의 내부에서 호일지와 격전을 벌이던 예의 그 무산방(巫 山幇)의 방주 삼두교(三頭蛟) 갈통(葛通)이 아닌가! 그리고 조금 전에 화검운이 예상했던 대로 그 청해파의 노검객은 정말로 청 해검학(靑海劍鶴) 교홍(喬虹)이 분명한 것 같았다. 아마도 지금 이 광장에는 무산방의 방도(幇徒)들이나 그 밖의 녹림흑도(綠 林黑道)의 무리들이 서로 연합을 하여 청해파의 장문인과 청해삼검을 공격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헌데 화검운은 느닷없이 그 갈통의 입 속에서 터져나온 장보도(藏寶圖)라는 말에 절로 어안이 벙벙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면 벌써 장내에 무림삼보의 하나인 진시황(秦始皇)의 장보도가 출현했다는 말인가? 화검운은 사실상 그 장보도에 대한 욕심은 거의 없는 상태였지만, 그러나 그것이 무림의 상황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자연히 관심을 두지 않을 수가 없었다. 원리 이 무림삼보(武林三寶)는 하나같이 중대한 기보들과 연관이 되어 있는 것들이고, 또한 출처가 분명하지 않아서 쉽게 발견되기 어려운 것이었는데, 그러나 지금의 상황을 보면 틀림없이 청해파의 장문인인 청해검학 교홍이 그것을 얻었기 때문에 다른 녹림흑도의 무리들이 연합해서 공격하고 있는 것이 틀림이 없어 보였다. 대체 그렇지 않았다면 무엇 때문에 한밤중에 이 와 같은 엄청난 소란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겠는가? 화검운은 거의 무심코 농아방도들의 뒤를 쫓아왔다가 그와 같은 무림삼보의 하나가 나타난 것을 보게 되어 절로 공교롭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아무튼 크게 흥미가 치밀었다. 화검운은 일단은 장내에 끼어들지는 않고 정말로 장보도가 나타난 것인지 확인하고 난 후에 다시 행동을 결정하기로 했다. 그때 다시 그 청해삼검 등을 에워싼 무리들 가운데에서 한 명의 키가 크고 삐쩍 말라 보이는 칠십대의 노인(老人)이 큰 소리로 입을 열어 소리쳤다. "교홍! 보아하니 너희들은 이제 불과 일각(一刻)도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목숨은 가장 귀중한 것인데, 설마하니 그 장보도 한 장으로 목숨을 버리고 청해파의 명맥마저 끊어 버릴 생각이라는 말인가?" 청해검학 교홍은 아까 갈통이 소리쳤을 때에는 전혀 대꾸도 하지 않더니 일 순 그 노인이 그와 같이 소리치자 왠지 마음이 동하는지 고개를 쳐들어 그 노인을 바라보며 물었다. "철각선(鐵脚仙) 허력(許歷)! 너희 성숙파(星宿派)와 우리 청해파는 항상 가까이에 있으면서 서로 원한을 맺지 않았었는데, 어째서 오늘은 이렇게 우 리를 핍박한다는 말이냐?" (철각선 허력? 그가 성숙파의 장문인이라는 그 사람인가?) 화검운은 이 철각선 허력이라는 사람이 성숙파의 장문인이라는 얘기를 이미 듣고 있었으므로 여기에 성숙파의 문인(門人)들까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는 사태가 실로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실로 이 성숙파의 제자들까지 있는 것이라면 다른 동정십팔채(洞庭十八寨)나 산동봉래파(山東 蓬來派) 등의 녹림흑도의 무리들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 분명할 것이기 때문 이었다. 실제로 화검운은 이 순간에도 마치 미친 벌떼처럼 죽음도 불사하고 청해삼 검의 삼재검진을 향해 달려들고 있는 무리들 가운데 분수자(分水刺) 따위의 수공(水功)에 사용되는 병기들을 든 사람들과 또한 전문적으로 암기(暗器) 들을 사용하는 무리들이 섞여 있는 것을 분간할 수가 있었다. 아까 화검운이 이 반점의 지붕 위에서 당했던 암습은 기실 틀림이 없는 산 동봉래파의 탈혼마우(奪魂魔牛)라고 할 수가 있었는데, 하지만 맨 처으믕로 그 매섭고도 기척이 없는 장검의 기습은 산동봉래파의 것이 아니었으므로, 이제 바라보니 그들 무리들은 하나로 연합(聯合)되어 그쪽과 이쪽으로 갈라 지게 되었던 것이 틀림이 없어 보였다. -- 계속 -- #5751 양한우 (hanwoo71) [백상] 종남사부 제3권 제21장 03/28 12:17 454 line 올 린 이 : 양한우 HITEL ID : hanwoo71 제21장. 악마적(惡魔的)인 무공(武功) 아마도 아까 그 반점의 지붕 위에서 첫 번째로 암습을 펼쳤었던 사람이 동 정십팔채(洞庭十八寨)의 채주(寨主)인 귀문용왕(鬼門龍王) 도태(圖台)였었 다면, 역시 탈혼마우(奪魂魔牛)를 사용하는 데 있어서 산동봉래파(山東蓬來 派)의 장문인인 탈혼선인(奪魂仙人) 나귀(羅貴)가 포함되어 있지 않을 수가 없었으므로, 틀림없이 지금 이곳에 있는 그 두 방파의 제자들은 성숙파나 무산방의 주인들인 철각선 허력이나 삼두교 갈통 등의 지시를 받고 있는 것 같았다. 화검운은 뒤를 이어 금응방의 인물돌도 더러 보이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 으므로 문득 아까 반점의 내부에서 그들과 함께 어울리던 두 인물 음산백골 문의 문주인 음산귀서생(陰山鬼書生) 도옥(陶玉)과 수라존자(修羅尊子)가 이곳에 있는가 하고 생각되어 재차 살펴보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수라존자 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 음산귀서생 도옥은 혼전이 벌어지고 있는 중앙에서 다소 떨어진 으슥한 자리에 서서 예의 그 음침한 시선으로 장내의 상황을 관전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의 안색을 유심히 살펴보니 그의 눈빛이 맑게 비치고 있고 예리한 기운이 느껴지는 것이 아마도 이미 내상(內傷)을 누군가의 도움으로 회복하게 된 것 같았다. 화검운은 따라서 아마도 이 주위에 수라존자도 숨어 있을지 모르는 일이라 고 생각했으며, 실로 이 작은 공지의 주변에는 그야말로 흑도인들의 천지라 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만약 그 장보도가 진짜라면 이렇게 흑도의 무리들이 한꺼번에 나서서 난리 를 치르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었다. 지금 절정고수(絶頂高手)들인 청해삼검이 삼재검진에 의해서 추풍낙엽(秋風 落葉)처럼 적들을 물리치고 있었지만, 그것은 기실 이삼류의 흑도인들을 상 대하고 있기 때문이었지, 만약에 보다 무공이 높은 사람들이 나서게 되면 상황은 크게 달라질 것이 뻔한 일이었다. 이때 철각선(鐵脚仙) 허력(許歷)이 다소 안색을 붉히며 대꾸했다. "교홍! 너희들은 비록 이제까지는 본파에 대해서 형님의 행세를 해왔었지 만, 앞으로는 상황이 달라졌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만일 너희들이 끝 까지 고집을 부리겠다면 우리들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이 잔인(殘忍)하게 손을 쓰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기실 이 청해파와 성숙파는 같은 청해성(靑海省)에 위칳고 있는 문파들로 서, 성숙파가 다소 사악(邪惡)하고 괴이(怪異)한 무학을 추구하는 반면에 청해파는 비록 명문정파는 아닐지라도 뚜렷한 신념들을 가지고 있는 정사 중간의 문파였다. 그들은 비록 강호상의 백도무림인(白道武林人)들의 속에 끼어들지는 않고 있었지만 나름대로의 규정을 정해서 협행(俠行)을 해오기 도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만일 이 성숙파가 청해파보다 세력이 막강한 편이었다면 좋지 못한 생각을 품고 있는 성숙파에 의해서 청해파는 일찌감치 멸문지화(滅門之禍) 를 당하고 말았었을 것이었지만, 그러나 다행스러게도 이 청해파는 전통(傳 統)에서나 무학에서나 성숙파보다도 훨씬 훌륭했고 또한 세력(勢力)도 막강 했다. 지금 장내에 있는 두 사람인 두 파의 장문인들의 무공을 보더라도 청해검학 (靑海劍鶴) 교홍(喬虹)의 무하게 경지가 최절정의 경지에 있는 것이고, 철 각선 허력의 무하게 경지가 겨우 청해삼검의 경지와 비슷한 절정급의 경지 라는 점만 보더라도 능히 그 두 문파의 차이를 알 수가 있을 것이었다. 물론 이 성숙파는 괴이한 무학과 괴이한 술법(術法) 따위를 연구해와서 그 것으로 약간의 이득을 볼 수도 있을 것이었지만, 진실(眞實)한 무학이라고 하는 것은 역시 무시할 수가 없는 것이어서 이제까지 성숙파가 감히 청해파 사람들의 비위를 거슬릴 수가 없었다는 것이 사실이었다. 지금 성숙파는 자신들의 패거리가 막강해지자 그것을 믿고 이제까지 위압적 인 느낌을 받아왔던 청해파에 대해서 일종의 화풀이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비록 지금 공격하고 있는 무리들이 청해검학을 다치게 할 수가 없을 것이지 만, 한쪽에 서 있는 음산귀서생 도옥의 무공이 그에 못지 않은 것이었기 때 문에 청해검학으로서는 상당히 위협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청해검학 교홍은 잠시 철각선 허력의 얼굴을 노려보더니 이윽고 대꾸하지 않고 묵묵히 고개를 다른 곳으로 돌려서 뭔가 깊은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여전히 수십 명의 녹림흑도의 무리들은 병장기를 휘두르며 불나비처럼 날아들고 있었으며, 더러는 피를 뿌리고 더러는 단말마의 비명 성을 토하며 목숨을 잃기도 했으며, 혹은 더러는 운좋게도 청해삼검 가운데 의 한 사람의 육신에 칼자국을 남기기도 했다. 장내의 상황은 갈수록 더욱 더 격렬해지고 잔혹(殘酷)해지고 있는 것 같았 으며, 바야흐로 어떤 결단의 시기가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았다. (……!) 화검운은 이러한 무리들이 연합하게 된 배경에는 수라존자와 같은 거물(巨 物)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필시 이 부근에 수라존자가 은신 하고 있을 것이라고 보고 우선 그 자의 위치를 찾아내기로 했다. 그는 은밀 하게 신형을 움직이며 느릿하게 장내의 후미진 곳을 골라서 차분하게 주위 를 살피며 움직였다. 그런데 실로 뜻밖에도 화검운은 불과 얼마 가지 않아서 장내가 내려다 보이 는 골목 어귀의 커다란 나무의 위에 아주 낯익은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실로 뜻밖에도 그들은 바로 황약화와 악산산, 그 두 명의 여자들이었다. 원래 아까 악산산이 먼저 반점을 떠나가고 나서 황약화도 즉시 그녀의 뒤를 따라서 나갔었던 것이었는데, 어이가 없게도 그녀들을 여기에서 만나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화검운은 그녀들의 모습을 보자 이내 그쪽으로 신형을 날려 다가갔는데, 황 약화와 악산산은 각기 그 커다란 나무의 앙상하게 메마른 가지들의 뒤에 숨 어서 장내의 상황을 내려다 보고 있다가 드디어 다가오는 화검운을 발견하 고는 다소 반색을 하는 표정들을 지어 보였다. "아! 화공자 당신이었군요." 화검운은 악산산의 얼굴에 왠지 수심이 어려 있는 것 같으면서도 전보다는 다소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는 신색인 것을 알아보고는 웃으며 대꾸했다. "하하, 당신들을 여기에서 보게 될 줄은 몰랐소." 말과 함께 화검운은 자신도 그녀들이 앉아 있는 가지의 옆에 가볍게 내려서 게 되었는데, 문득 그녀들의 곁에 가까이 있자니 그윽한 처녀의 방향(芳香) 들이 짙게 느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황약화도 장내에서 시선(視線)을 돌려서 화검운의 얼굴을 바라보며 입을 열 어 말했다. "당신도 장보도에 욕심을 가지고 온 것인가요?" 화검운은 악산산의 신색을 은근히 살피고 있다가 황약화의 그러한 질문을 받고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아니 나는 그저 우연히 이곳에 오게 되었던 것이오. 그런데 대체 이것은 어찌된 일이오?" 황약화는 담담히 웃으며 대답해 주었다. "우리도 실은 조금 전에야 와서 잘은 모르지만 아마도 저들이 무림삼보의 첫 번째인 진시황의 장보도를 입수하게 되었나 봐요." 황약화가 가리킨 사람들은 바로 다름아닌 청해파의 사람들이었다. 화검운은 의아해하며 다시 물었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되어서 저 사람들이 그것을 알고 한꺼번에 공격을 퍼 붓고 있는 것이란ㄴ 말이오?" 황약화는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리도 잘은 모르겠어요." 화검운이 이번에는 악산산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악산산은 문득 다소 안색 을 붉히면서 입을 열어 말했다. "우리는 사실 아까 반점을 나와서 다시 종남산(終南山)으로 가 보았었어요. 그것은 바로 종남사부(終南師父)의 정체(正體)를 몰래 알아보려는 것이었어 요. 그런…… 화공자께서 생각하시기에 그 결과가 어땠었을 것 같아요?" (……) 화검운은 기실 이 악산산이 종남사부에 대해서 한 순간에 연정(戀情)을 느 끼게 되어서 겸사겸사 황약화와 함께 그곳을 찾아갔던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글쎄요. 그래 그 종남사부는 만나 보았소?" 악산산은 왠지 다소 처연해 보이는 기색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계곡에 종남사부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 제자들도 하나도 보이지 않 았어요. 그들은 모두 다른 곳으로 가 버린 모양이예요. 그럴 줄 알았다면 좀더 거기에서 기다렸다가 그 사람을 만나보고 오는 건데 그랬었나 봐요." 화검운은 이 악산산이 처음에 계곡을 찾아갔었을 때 좀더 기다리지 못했던 일을 후회하고 있는 것임을 알 수가 있었다. 당시에 종남사부는 내일 아침 까지 바둑을 둘 것이라고 그 제자가 말을 했었으나 기실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자리를 떴던 모양이었다. 화검운은 다시 물었다. "그래 종남파의 다른 곳들은 찾아 보지 않았소? 악산산은 그를바라보며 대답했다. "물론 황언니와 저는 그 뒤로 종남사부의 위치를 찾아내기 위해 종남파는 물론이고 종남산의 의심나는 지역은 거의 다 찾아보았어요. 하지만 결과는 실망적이었어요. 그래서 우리는 조금 전에야 다시 입성(入城)하게 되었는 데, 이내 이와 같은 광경을 대하게 된 것이죠." 화검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랬었군요." 악산산은 다시 그의 얼굴을 기이(奇異)한 시선(視線)으로 바라보면서 물기 젖은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화공자께서 아직 잠을 자지 않고 계시는 것을 알았다면 차라리 종남산으로 함께 가자고 부탁을 드릴 것을 그랬어요." 화검운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렇군요." 악산산은 화검운이 장내쪽으로 시선을 던지고 있는 것을 보고는 잠시 머뭇 거리다가 다시 입을 열어 말했다. "정말로 저기에 그 장보도가 나타난 것일까요?" 화검운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쎄요. 그런데 만일 정말로 저기에 나타난 것이 진짜 장보도라면 어떻게 할 작정이오?" 이 질문은 황약화를 향해 돌아보며 한 것이었다. 그런데 악산산은 다시 말 을 받아서 대답했다. "황언니는 아직 우리의 주력이 성 안으로진입한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일 단은 진짜 장보도가 나타났다고 해도 관망을 하는 수밖에 없다고 그랬어요. 지금 우리가 나선다고 해도 정말로 장보도를 얻게 될지는 모르는 일이니까 요." 악산산이 대답을 했기 때문에 화검운은 다시 그녀를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 였다. 이에 악산산은 다시 물기젖은 눈빛으로 그의 두 눈을 빤히 바라보다 가 문득 기이하게 웃으며 입을 열어 말했다. "이상한 얘기지만…… 호호, 화공자 당신의 눈빛은 아주 낯익고 친근한 느 낌이 들어요. 그래서 생각해 보니 종남사부의 눈빛과 닮은 점이 있는 것 같 아요. 비록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니지만…… 일단 그 느낌이 비슷하기 때문 에 왠지 당신을 대하게 되면 친근하게 느껴지는군요." 악산산은 화검운의 얼굴을 다시 바라보며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당신에게 청혼을 하려는 것은 아니니 염려하지 마세 요. 당신은…… 아마도 나 같은 여자는 지겨운 생각이 들겠죠?" 이 악산산은 오늘 밤에 보고 싶어 하던 종남사부를 만나지 못하게 되자 그 만 자기비하(自己卑下)적인 생각이 들게 되었던 모양이었다. 화검운은 즉시 포권하며 말했다. "천만의 말씀이오. 아마도 내가 낭자의 청혼을 받게 된다면 오히려 마음이 즐거워서 어쩔 줄을 모르게 될 것이오." 악산산은 그 말에 다소 안색을 붉히는 듯하다가 이윽고 다시 말했다. "하지만 내가 당신에게 청혼을 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니 그런 생각은 하 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이어 그녀는 왠지 상기된 안색으로 멍하니 다른 쪽의 어두운 밤하늘을 바라 보는 것이었다. 아마도 그녀는 지금 내심으로 저녁때에 보았었던 종남사부 의 얼굴을 은근히 그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는 그녀의 옆얼굴은 왠지 청 초해보이면서도 처연한 느낌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화검운은 악산산이 입을 다물자 이내 시선을 다시 장내로 돌리게 되었는데, 이 무렵에 장내에서는 느닷없이 커다란 변화(變化)가 일어나기 시작하고 있 었다. (……!) 청해검학 교홍이 느닷없이 품속에서 세 장의 양피지(羊皮紙) 두루마리와 같 은 것을 꺼내더니 재빠르게 청해삼검의 품속에 각기 하나씩 쑤셔넣고는 몸 소 등뒤의 장검을 뽑아 들고는 검진을 벗어나서 상대 무리들을 향해 무섭게 짓쳐나가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사람들은 교홍이 느닷없이양피지 두루마리를 제자들에게 건네주는 것을 보 고는 혹시 그것이 바로 장보도(藏寶圖)가 아닌가 하고 생각했으므로 한 차 례 커다란 동요를 일으켰다. 교홍의 검술(劍術)은 과연 놀라운 것이었는데, 그가 일단 장검을 뽑아 들어 크게 휘두르자 이내 그 유난히 기다란 장검의 끝에서 무려 한 자 반이나 되 는 눈부신 검망이 시퍼렇게 일어나더니 마치 살아 있는 병기(兵器)라도 되 는 듯이 무서운 위력으로 흑도의 무리들을 베어 가는 것이 아닌가! 일찍이 반점의 내부에서 청해삼검 등이 검망을 펼치는 것을 화검운 등은 목 격하기는 했지만 지금 교홍이 펼치고 있는 검망은 비록 무척 길기도 했지만 두터운 위력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흡사 신병이기(神兵利器)라도 되는 듯이 적들의 병기들을 일시에 베어 버리는 것이었다. "으악!" 교홍의 신형이 환영처럼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하며 그의 장검이 눈부신 검 망을 뿌리면서 번개처럼 휘둘러지기 시작하자 이내 그의 면전의 적들의 육 신이 무수하게 절단되면서 단말마의 비명 소리가 줄을 잇기 시작했다. 교홍의 검술은 지극히 빨라서 이내 그의 장검이 보이지 않았고, 그저 눈부 신 검망만이 어두운 공간 속에서 거대한 원호(圓弧)의 막(幕)을 형성하며 빛을 뿌려가고 있었는데, 그가 앞으로 한 걸음씩 나아갈 때마다 무려 일 장 정도의 길이 생겨났고, 그 가운데 대여섯 명의 적들이 한꺼번에 육신이 절 단나서 피를 뿌려대며 쓰러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실로 이 청해검학 교홍의 검술은 신기(神技)와도 같아서 그의 작은 신형이 검기의 흐름을 따라서 허공을 날으는 것 같았는데, 이 순간에 뿌려지기 시 작하는 핏줄기들은 아마도 이제까지 바닥에 쏟아졌던 사람들의 핏불보다도 훨씬 많은 것 같았다. 불과 잠깐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에 무려 삼십여 명의 적들이 피바다 속에 목숨을 잃게 되자 마치 벌떼처럼 달려들던 적들은 일시 공포심(恐怖心)에 크게 주춤하는 눈치였고, 청해삼검 역시 이에 호응하여 진세를 크게 일으켰 으므로 일시에 중앙에는 커다란 공지가 형성되게 되었다. 철각선 허력이나 삼두교 갈통 등은 그와 같은 광경을 보고 일순 어찌할 바 를 몰라 하며 급히 신형을 날려서 몸소 청해검학 교홍을 막으려고 했고, 한 쪽에 이제까지 묵묵히 서서 관전하고 있었던 음산귀서생 도옥도 즉시 장내 에 끼어들려는 태도를 보였다. 헌데 바로 그 순간에 청해검학 교홍이 느닷없이 신형을 안쪽으로 돌리더니 다음과 같이 소리치는 것이었다. "어서 날아라!" 그 순간이었다. 교홍의 말이 떨어진 순간에 이미 약속이 되어 있었는지 교 홍의 주위에 있었던 청해삼검이 일제히 검진을 풀고 사방을 향해 번쩍 신형 을 날리는 것이 아닌가! 교홍은 그것을 보자 즉시 사방으로 몸을 날리는 자신의 제자들을 향해 부드 럽고 강한 기운이 실린 장력(掌力)을 각기 일장씩 밀어주는 것이었다. 그것 은 다름아닌 청해삼검이 보다 멀리 날아갈 수 있도록 뒤에서 힘을 보태준 것이었는데, 이윽고 청해삼검이 교홍의 힘을 받아서 무려 이십여 장을 넘게 날아가고 있는 것을 보고는 교홍도 즉시 남은 하나의 방향으로 빠르게 신형 을 날리기 시작했다. 기실 이것은 청해검학 교홍의 일종의 어쩔 수 없는 고육지계(苦肉之計)였다 고 할 수가 있었다. 사람들은 이 청해검학과 청해삼검이 그와 같이 사방으로 일시간에 허공을 날아서 달아니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는 일순 어안이 벙벙한 듯했다. 이 빈 민가의 공지는 아주 작아서 일단 그들이 이십여 장을 넘게 날아가자 이내 빈민가의 골목에 내려서게 되었고, 그렇게 되면 그들은 하나가이 닭 쫓던 개가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숫자가 많다고 해 도 실로 그와 같이 밀집된 장소에서는 제대로 그 힘을 발휘할 수가 없을 것 이며, 게다가 대체 누구에게 장보도가 있는 것인지 그것조차 불분명한 상황 이 아닌가! 화검운 등은 이때 마침 높은 나무가지 위에서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비록 빈민가의 골목 안이라고 해도 비교적 뚜렷하게 내려다 볼 수가 있었다. 우선 그들은 이 교홍이 비교적 머리를 잘 굴린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 는데, 그러나 다음 순간에 교홍이 마악 공지를 벗어나려는 찰나에 문득 그 전면 허공에 하나의 검은 인영이 유령(幽靈)같이 나타나는 것이었다. 악산산은 문득 그 느닷없이 허공에 나타나서 교홍의 앞을 가로막은 사람의 얼굴을 알아보고는 일순 내심으로 비명을 내질렀다. 그는 다름이 아니라 바 로 수라존자(修羅尊子)였던 것이었다. 비록 복면(覆面)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어서 그 얼굴을 알아보지는 못했지만, 그 특유하게 풍기는 기질(氣質) 등 으로 미루어보아 수라존자가 분명했다. 악산산은 더불어 전에 수라존자가 이 교홍을 안중에 두지 않고 있다고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과연 두 사람이 이제 마주쳐서 승부가 어떻게 날 것인가 하는 궁금증이 치밀었다. (……!) 교홍은 이 순간에 이미 거의 이십여 장의 허공을 가로질러 와서 마악 빈민 가의 골목 안으로 숨어 들려는 찰나에 웬 흑의복면인(黑衣覆面人) 하나가 앞을 가로막는 것을 보고, 게다가 그가 자신과 같은 높이인 삼장 정도의 허 공에 솟아 올라서 막아서는 것을 보고는 실로 보통이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크게 안색이 변하여 즉시 수중에 들고 있던 장검을 휘둘러서 상대방의 가슴 팍을 공격해 들어갔다. 교홍의 장검에서는 일순간 다시 한 자 반이나 되는 검망이 눈부시게 일어나 서 환상같은 초식(招式)을 펼치며 상대방 수라존자의 정면을 완전하게 에워 싸 버리는 것 같았다. 헌데 그 순간의 일이었다. 수라존자의 신형이 마치 자신의 앞으로 쇄도해 들어오고 있는 검망의 환상과도 같은 구름덩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듯 이 그대로 다가오면서 우수를 앞으로 내뻗는 것이 아닌가! (……?) 사람들은 대체 그러한 빈손이 무슨 위력을 발휘할수 있을까 하는 의문(疑 問)이 뇌리 속에서 물결쳤다. 그들은 모두 조금 전에 청해검학의 검망의 위 력을 너무나도 공포스럽게 경험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었다. 헌데 다음 순간의 일이었다. 번쩍! 교홍의 검망이 완전히 수라존자의 육신을 에워싸서 흡사 갈가리 찢어 놓으 려는 듯한 순간에 느닷없이 어둡고도 강렬한 한 줄기의 빛이 그 사이에서 번쩍이다가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윽고 교홍의 검망이 사라졌는데, 그와 동시에 교홍의 손에 들려 있던 장검이 허공으로 날려가며 그의 정수리 에서 시뻘건 선혈이 분수처럼 내뿜어지는 것이었다. 교홍은 아무런 비명 소 리도 내지 못하고 죽음을 당한 것이었다. 실로 이 수라존자의 무공(武功)은 악마적(惡魔的)이면서도 가공스러운 것이 아닐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 누가 교홍이 그의 단 한 수에 의해 목숨을 잃 게 되리라고 짐작이나 했겠는가? 그가 떨어져 내리는 부근에 철각선 허력이 지극히 경악스러운 듯한 표정을 하고 서 있었는데, 수라존자는 바닥에 서서히 내려서며 즉시 그를 향해 지 시했다. "어서 그의 몸을 수색하여 장보도를 찾아라!" 허력은 잠시 머뭇거리닥 즉시 앞으로 다가와서 피가 질펀하게 고여 있는 교 홍의 시신을 뒤적이며 그의 옷가지에서 장보도를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시신의 옷가지를 하나하나 세밀하게 뒤져보고 또한 갈가 리 찢어 보았는데도 그 기다리던 장보도는 나타나지 않는 것이 아닌가! 기실 수라존자는 교홍이 제자들에게 세 장의 양피지를 나누어 주는 것을 보 고는 그것은 필시 눈속임일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먼저 교홍의 앞을 막아섰 던 것이었다. "자, 장보도가 없는데요?" 허력의 어정쩡한 말에 수라존자는 일순 어이가 없다는 듯이 눈빛을 번쩍 빛 내더니 이윽고 즉각 신형을 날려서 어둠 속으로 날아갔다. 이미 사라져 버 린 청해검학의 세 명의 제자들을 찾아가는 것이었다. 그보다 조금 앞서서 기실 수라존자가 교홍의 앞을 막아서는 그 시각에 음산 귀서생 도옥은 눈치가 빨라서 자신의 해야 할 일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는 수라존자가 당연히 교홍의 앞을 막아서리라는 것을 예측하고 자신은 교홍은 전혀 신경쓰지 않고 오로지 그의 첫째 제자인 청해삼검 중의 천검(天劍) 해 천파(海天波)의 뒤를 추적해 갔던 것이었다. 이 천검 해천파가 달아난 쪽은 동쪽이었는데, 그는 공교롭게도 하나의 작은 흑벽으로 지어진 빈민가옥의 지붕 위에 떨어져 내리게 되었다. 원래 평소의 그였다면 어떠한 지붕 위에 떨어져 내리더라도 전혀 문제가 없 이 미끄러지듯이 나아갈 수가 있었을 것이겠지만, 그는 이미 거의 삼십 장 에 달하는 먼 거리를 다른 사람의 장력의 도움을 받아서 날아왔기 때문에 호흡이 다소 거칠어졌고, 그만 빨리 달아나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젖어서 그 만 진기의 운용(運用)이 고르지 못하게 되어 발에 너무 힘이 들어가게 되었 고, 그로 인해서 그가 밟은 지붕이 우두둑! 하는 소리와 함께 무너져 버리 고 말았다. "아아악!" 지붕의 아래쪽에서는 그렇지 않아도 공포스러운 주위의 상황 때문에 두려워 서 떨고 있었던 집 안 사람들이 비명을 내지르게 되었는데, 천검 해천파는 그러한 자신의 실수에 대해서 절로 흠칫해 하다가 그만 뒤에 추격해 온 도 옥에게 덜미를 잡히게 되고 말았다. 도옥의 무공은 최절정의 경지였기 때문에 비록 나중에 신법을 날렸으나 벌 써 그의 뒤에 바싹 쫓아오고 있었던 것이었다. 뒤쪽의 기척이 이상해서 문득 뒤르 돌아보니 이미 도옥이 수중의 백골선(白 骨扇)을 휘둘러서 하늘을 가득 뒤덮으면서 내려오고 있었기 때문에, 해천파 는 그만 안색이 크게 변해서 감히 대항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임기응변을 발휘하여 조금 전에 그가 부수었던 지붕의 옆부분을 다리에 힘을 주어서 마 저 부순 다음에 자신의 몸을 그 넓어진 공간 속으로 떨어뜨렸다. 비록 훤하 게 트인 상황에서는 도옥을 상대할 수가 없을지 몰라도 그렇게 방 안으로 들어가서 요리조리 피하게 된다면 능히 도옥의 추적을 따돌릴 수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일단 해천파가 지붕으로 해서 방 안으로 들어가자 다음 순간 그의 시야에는 공포감에 떨고 있는 일가족(一家族)의 모습들이 보였다. 이제 삼십대 초반 이나 되었을 듯한 부부(夫婦)와 세 명의 아이들이었는데, 그들은 느닷없이 지붕 위에서 떨어져 내린, 피에 온통 젖어 있는 해천파의 모습을 보게 되자 일시 너무나도 놀란 나머지 눈이 휘둥그래졌다. 해천파는 그들을 보자 우선 염려하지 말라는 말을 하고 나서 다른 곳으로 피하려고 했다. 그런데 다음 순간의 일이었다. 일순 거대한 압력이 하늘을 휩쓰는 것 같은 느낌이 들더니 그대로 지붕 전체가 태풍이 휩쓸린 듯이 날아가는 것이 아닌 가!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음산귀서생 도옥이 아예 장력으로 지붕을 날려버 리고 말았던 것이었다. "으아악!" 이제까지 겨우 공포감을 참고 있었던 아이들이 그것을 보자 연신 비명을 지 르며 자신들의 부모 곁으로 달려들었다. 해천파는 이때 다른 곳으로 달아나려고 했으나 이미 그것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도옥은 이미 어느새 그의 면전에 소리없이 내려서 있는 것이 아닌가! 해천파는 이에 체념하고는 즉시 그를 향해 장검을 세워서 겨누었 다. 도옥은 그것을 보자 말했다. "어서 장보도를 내놓아라!" 해천파는 그 말을 듣자 잠시 머뭇거리는 듯하더니 이윽고 자신의 품속에서 하나의 양피지 두루마리를 꺼내들더니 차갑게 대꾸했다. "흥! 내가 순순히 네놈에게 이것을 줄 것 같으냐?" 말과 동시에 해천파는 양피지 두루마리를 쥐고 있는 손에 은근히 공력을 끌 어올렸다. 만일 강제로 빼앗으려고 한다면 한 순간에 공력을 이용해서 없애 버리겠다는 것이 해천파의 뜻이었다. 해천파는 도옥의 말을 듣는 순간 실로 그와 같은 무기가 있기 때문에 자신이 위기에서 탈출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과연 아니나 다를까, 도옥은 해천파가 양피지를 들고 있는 것을 보고는 다 소 멈칫하여 머뭇거리는 듯했는데, 바로 그 순간에 느닷없이 부모의 곁에서 오돌오돌 떨고 있던 아이들 가운데 둘째 아이쯤 되어 보이는 사내녀석이 갑 자기 빠르게 앞으로 달려나가서 도옥의 옷자락을 잡으면서 소리치는 것이었 다. "빨리 가 버려, 이 나쁜 새끼들아!" 원래 이러한 빈민가의 아이들은 배운 것도 별로 없고 또한 거칠게 자라나서 자연히 입이 험하기 마련이었다. 해천파는 그것을 보자 문득 급히 그 아이의 행동을 말리고 싶어졌다. 하지 만 이미 때는 늦었다. 그 아이가 소리친 이후에 다시 도옥을 향해 발길질을 하려는 순간에 느닷없이 도옥의 좌수가 번쩍이더니 다가드는 아이의 정수리 를 곧장 꿰뚫어 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마치 한 순간에 백광(白光)이 번쩍인 것 같았기 때문에 환상(幻像) 인 것 같았으나, 결코 환상은 아니었다. 아이는 그만 벼락맞은 듯이 그 자 리에서 멈춰서더니 조금의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황천(黃天)길로 줄달음을 쳐서 가 버렸다. "으악, 아녹(阿祿)아!" 그 사내아이가 정수리에 시뻘건 핏물을 흘리면서 쿵! 하고 바닥으로 쓰러져 버리는 것을 보고는 이제까지 새파랗게 질린 안색으로 남편의 손을 붙잡고 있었던 부인(婦人)이 비명 섞인 소리를 내지르며 앞으로 달려나와서 사내아 이의 시신을 끌어안았다. 사내아이의 시신은 아직 따뜻한 온기(溫氣)가 감돌고 있었지만, 그러나 정 수리가 그토록 완전히 파괴된 상태에서 살아 있을 리가 만무한 일이었다. 부인은 그만 그 광경을 보자 눈이 뒤집혀서 공포심(恐怖心)마저 잃고 몸을 일으켜서 도옥을 향해 양팔을 휘두르며 악을 썼다. "내 아들을 살려내라, 이 미친 녀석들아!" 어린 자식이 그처럼 무차하게 죽음을 당한 것을 보고 눈이 뒤집혀서 그렇게 아우성을 치는 부인의 표정은 몹시 처절해 보였다. 그러나 역시 그녀도 차라리 가만히 있는 것이 더 좋을 뻔했을 것이다. 해천파는 지금 자신이 그들을 도울 수가 없는 형편이라는 것을 알고 안타까 운 느낌이 들었으며, 자신이 조금 전에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이와 같 은 집 안의 내부로 들어온 것을 후회하는 마음이 일기 시작했다. 어차피 자 신이 이 위기를 피하지 못할 상황이라면 이 집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면 다른 사람들은 죽지 않았을 것이 아닌가! 강호상에서 거칠게 목숨을 내걸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죽음이야 당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할 수가 있는 일이었 지만, 실로 이런 가난한 집의 무고한 사람들이 죽음을 당하는 것은 불쌍한 노릇이었다. "아악!" 다시 피가 튀기며 부인의 육신이 방바닥에 뒤로 벌렁 나동그라졌다. 부인의 정수리는 조금 전에 죽은 그 사내아이의 정수리와 마찬가지로 섬뜩하게 파 괴되어 있었고, 눈은 공포감(恐怖感)으로 인해 험악하게 돌아가 있었으며, 그러한 가운데에도 이미 죽은 사내아이의 시신을 놓지 않고 손으로 끌어안 고 황천길로 뒤따라간 것이었다. 실로 이 눈에 보이지도 않을 듯이 빠른 환상적(幻像的)인 도옥의 무예는 바 로 그 유명한 음산백골문의 구음백골조(九陰白骨爪)라는 것이었는데, 이미 피가 시뻘겋게 묻어 있는 좌수의 손가락을 이미 시신이 되어 버린 부인의 옷자락에 가볍게 문질러서 닦으면서 도옥은 해천파를 향해 다시 음산하게 말했다. "만일 그 양피지를 건네주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 어떠냐?" 이때 아버지의 곁에서 와들와들 떨고 있었던 두 명의 아이들이 어머니가 죽 은 것을 알고는 크게 울부짖으며 죽은 어머니의 시신 곁으로 다가가려고 하 고 있었으나, 그 아버지가 가까스로 그 아이들을 잡고 있는 중이었다. 해천파는 그러한 장내의 광경을 바라보고는 내심 지극히 딱한 생각이 들어 서 장탄식을 하며 도옥을 향해 대꾸했다. "내가 이미 당신들의 손아귀에 걸려들었으니 곱게 살아나기는 어려울 것이 오. 그러나 차라리…… 여기에 있는 무고한 이 사람들이나 해치지 않는 것 이 어떻겠소?" 도옥은 아직도 피가 완전히 닦여지지 않은 좌수의 손가락을 자신의 백골선 에 문지르다가 문득 그와 같은 해천파의 말을 듣고는 실로 뜻밖이라는 듯이 기묘(奇妙)한 조소를 흘렸다. "아, 그래? 그렇게 하겠다면 그거야 어려운 일이 아니지." 도옥은 자신이 이 사람들의 목숨에 대해서 전혀 신경쓰지 않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그들에게 자비심(慈悲心)을 베풀려고 하는 해천파의 마음이 엉뚱 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해천파는 이 순간에 상대방의 생각이 어떻든간에 신경쓸 상황이 아니었으므 로 잠시 머뭇거리다가 마음을 강하게 먹고 자신의 손에 들려 있던 양피지 두루마리를 도옥의 면전을 향해 날려보내 주었다. 지금의 상황에서 그가 아 무리 양피지를 가지고 협박을 한다고 해도 도옥의 앞에서 살아날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마악 양피지를 날리고 나서 스스로 자결을 하기 위해 자신의 우수를 천령개(天靈蓋)가 있는 곳으로 올리려는 순간에 도옥이 문득 느닷없이 신형 을 번쩍 날리더니 앞으로 다가들어서 그 아버지의 양손에 잡혀 있는 두 아 이들의 정수리를 다시 좌수를 번개처럼 움직여서 거의 동시에 쪼개버리는 것이었다. "악……!" 도옥의 이 환상적인 빠르고 절묘(絶妙)한 구음백골조의 수법은 이미 신기 (神技)라고 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러 있어서 그저 단 한 번 백광(白光)이 번쩍인 것 같았는데 그 두 명의 아이들의 정수리가 똑같이 다섯 개의 구멍 이 뚫어지며 파괴되어 버리는 것이었다. 그 두 명의 아이들은 하나는 사내아이였고, 작은 아이는 계집아이였는데, 그렇지 않아도 도옥이 다가오는 느낌을 받고 공포에 질려 있다가 그러한 표 정 그대로 파괴된 정수리에서 피를 철철 흘려내기 시작하고 있었다. 물론 그 두 명의 아이들도 이미 황천길로 뒤따라간 것이었으며, 그 아버지 는 잠시 망연하게 두 아이들의 시신을 잡고 있다가 그만 놓아 버리고 말았 다. 두 아이들의 시신이 쿵쿵! 하고 바닥에 거칠게 쓰러지는 것을 보고 해천파 는 비로소 망연해진 의식에서 깨어난 듯이 분노하며 도옥을 향해 소리쳐 말 했다. "아니 당신은 한 입에 두 말을 할 작정이오? 내가 양피지를 주면 그들을 죽 이지 않겠다고 하고서는 어째서 그들을 그렇게 무참하게 또 죽이는 것이 오?" 도옥은 이에 고개를 해천파를 향해 돌리더니 음산하게 웃으며 자신이 그에 게서 받았던 양피지 두루마리를 내던졌다. "내가 약속한 것은 네가 장보도를 나에게 줄 경우에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 었지, 겨우 이런 쓸모가 없는 종이를 가지고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니었다. 흐흐흐, 감히 나를 희롱하다니! 그러나 만일 네가 장보다가 누구에게 있는 지에 대해서 나에게 말해 준다면 이 한 녀석은 죽이지 않도록 하지." <제3권 끝> -- 계속 -- #5757 양한우 (hanwoo71) [백상] 종남사부 제4권 제22장 03/31 14:47 100 line 올 린 이 : 양한우 HITEL ID : hanwoo71 제22장. 살려주시면 사례(謝禮)하겠소! 해천파는 그 말을 듣자 일순 기가 막혔다. 기실 그가 도옥과 같은 사람의 말을 믿었던 것이 잘못된 것이 잘못이라면 잘못이었을 것이었다. 옆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그 아버지는 이미 가족들이 그렇게 무참하게 죽음 을 당한 것을 보고 절반쯤은 분노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감히 반항할 용기(勇氣)를 내지도 못하고 공포심(恐怖心)에 질려서 전신을 덜덜 떨면서 어쩔 줄을 몰라하는 모습이었다. 아마도 그는 해천파를 향해 자신의 목숨을 살려주십사 하고 애원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해천파는 이에 내심으로 길게 탄식을 불어내며 도옥을 향해 대꾸했다. "안됐지만 나도 그것이 그저 빈 종이라는 것을 조금 전에야 알게 되었소. 사부님께서는 우리들에게 하나씩의 종이를 주셨는데 대체 그 장보도가 누구 에게 가 있는 것인지를 나도 모르겠소. 당신은 마음대로 하시오." 기실 해천파가 받은 그 양피지 두루마리는 그저 평범한 종이에 불과했고, 거기에 어떤 비밀이 들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아마도 교홍은 늘상 가지고 다니던 양피지 두루마리를 가지고 마침 사람들의 눈을 교란시키기 위해 그 것을 장보도와 함께 나누어 주었던 모양이었다. 퍽! 해천파의 천령개가 자신의 손에 의해서 파괴되고 그의 신형이 털썩 그 자리 에 쓰러지게 되자 도옥은 다소 눈살을 찌푸리며 생각하다가 다시 바닥에 떨 어져 있는 양피지 두루마리를 집어들어서 갈가리 찢어 보고는 역시 평범한 종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파악하자 이내 그것을 던져 버리고는 이제 남은 그 집주인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 주인사내는 이제 해천파마저 자결하여 죽음을 당하는 것을 보고는 너무 나도 공포감에 젖어서 식은땀을 흘리면서 도옥을 향해 간신히 웃으며 이렇 게 말했다. "사, 살려 주시오! 살려 주시면 사례(謝禮)하겠소!" 순간 도옥의 두 눈에서 싸늘한 냉광(冷光)이 번쩍이는가 싶더니 그와 동시 에 그의 좌수가 다시 번개같이 움직이며 퍽! 하는 소리를 냈다. 그 주인 사 내는 이미 공포감에 젖어 있는 얼굴로 정수리가 파괴되어 죽음을 당했고, 이어 그의 시신이 바닥에 쓰러지기도 전에 도옥은 그의 옷자락에 좌수를 닦 고는 빠르게 밖으로 신형을 날려가고 있었다. 지검(地劍) 막굉(莫宏)의 뒤를 쫓아간 사람은 바로 다름이 아닌 무산방(巫 山幇)의 방주인 삼두교(三頭蛟) 갈통(葛通)이었다. 이 지검 막굉은 비교적 운이 좋아서 신형을 날린 이후에 으슥한 골목길에 떨어져 내렸는데, 그 빈민가의 골목길은 아주 비좁고 이리저리 마구 구불구 불하여 뒤를 쫓는 흑도의 무리들이 결코 쉽게 그의 뒤를 따를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지금 막굉은 따라서 일단 아무도 없어 보이는 조용한 골목길에 내려서게 되 자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되었고, 혹시나 그의 뒤를 따라오는 사람이 없나 하고 뒤를 한 차례 바라보았다. 다행히도 아직 그의 뒤를 따라오는 사 람이 없어서 막굉은 마치 자신이 이미 그들의 추적을 따돌린 것 같은 착각 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기실 그의 그러한 생각은 말 그대로 착각에 불과했다. 이 빈민가의 골목길은 워낙에 사방팔방으로 구불구불하게 이루어져 있어서 이 한밤중에 추적(追跡)하는 것도 어려울 것이지만, 사실은 방향(方向)을 제대로 잡아서 달아나는 것 역시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만큼 어려운 일이었 던 것이었다. 본래 이 청해삼검은 하나같이 정직하게 무학 수련에 몰두해 온 사람들이어 서 강호의 경험이 많지 않았으므로 실로 이와 같은 구불구불한 장소에서 방 향을 제대로 찾는다는 것이 실로 쉽지가 않았다. 지검 막굉은 이내 정신이 혼란스러워졌으나 그렇다고 이곳에서 계속 있는다 면 마침내 추적자들이 뒤따라 올 것이므로 하는 수 없이 일단 하나의 방향 을 잡아서 무작정 나아가기 시작했다. 막굉은 일단 자신이 날아온 곳과는 반대되는 방향으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런데 과연 예상했던 대로 그 길은 곧바로 뻗어 있는 것이 아니었으며, 앞 으로 나아가다 보니 좌우로 휘어지거나 아니면 마구 꺾이는 바람에 나중에 는 자신이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인지 전혀 분간이 가지 않게 되 었다. 기실 그의 무공으로 이 빈민가의 지붕 위에 올라가서 지붕에서 지붕 위로 신형을 날려 가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나, 일단 그렇게 하면 필시 추적하는 적들의 눈에 뜨일 것이 분명할 것이므로 함부로 그렇게 모습 을 드러낼 수도 없는 일이었다. 일단 이렇게 빠르게 나아가다 보면 재수가 좋아서 무사히 적들의 추적을 따 돌릴 수도 있는 일이었으므로 막굉은 그저 부지런히 골목길을 달려가기 시 작했다. 그러나 내심으로 좋은 재수를 바라고 있었던 막굉의 재수는 실상은 그다지 좋은 것은 아니라고 할 수가 있었다. 그가 마악 신형을 날려서 빈민가의 골 목길을 벗어나서 대로(大路)가 있는 쪽으로 나아가려는 순간에 문득 전면의 골목길의 끝부분에 아주 눈에 익은 흉악(凶惡)한 인상의 장한들이 날이 시 퍼런 방편산이나 귀두도(鬼頭刀) 등의 병장기를 들고 지키고 있는 광경이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막굉은 그러한 광경을 본 순간에 일순 정신이 아득해져 오는 것을 느끼며 자신도 모르게 급히 신형을 돌려 다른 쪽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 흉악 한 인사의 장한들은 바로 무산방의 방도들로서 어느새 그의 앞길을 막고 있 었던 것이었다. 실상 막굉은 골목길을 따라서 달리다 보니 그만 이리저리 휘어지며 나아가 는 바람에 자연히 속도도 느려지게 되었고, 게다가 방향도 기역자로 구부러 지게 되었던 것이었다. 이 무산방의 방도들은 기실 강호의 경험이 많은 녹림의 도적들이라고 할 수 가 있었는데, 이러한 빈민가의 방향을 알고 추적하는 데는 막굉보다 훨씬 능력이 뛰어나다고 할 수가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이미 그 골목길을 미리 막아서고 있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앗! 저기에 있다! 쫓아라!" 무산방의 방도들이 일순 막굉을 발견하고 추적하기 시작하는 소리를 들으면 서 막굉은 내심 재수가 더럽게 되었다고 욕을 내뱉으면서 빠르게 자신이 왔 던 길을 되돌아서 달리다가 이윽고 갈라지는 길목에서 좌측으로 구부러졌 다. 그 길은 기실 막굉이 방향을 잘 잡은 것으로 아까 그 살겁(殺劫)이 벌어졌 었던 광장과는 반대쪽인 탈출구였다. 그러나 비록 그가 이제서야 방향을 잘 잡았다고는 하나 시간이 많이 지체되 어 있었으므로 상황은 역시 마음대로 잘 되지 않았다. -- 계속 -- #5758 양한우 (hanwoo71) [백상] 종남사부 제4권 제23장 03/31 14:47 265 line 올 린 이 : 양한우 HITEL ID : hanwoo71 제23장. 삼두교(三頭蛟) --한 사람. 골목길이 끝나는 지점에 지금 한 명의 흑의중년인(黑衣中年人) 이 날이 시퍼런 귀두도(鬼頭刀)를 가슴에 안듯이 하고 이쪽을 주시하며 서 있었던 것이었다. 바로 그는 삼두교(三頭蛟) 갈통(葛通)이었던 것이었다. 다름이 아니라 삼두교 갈통은 이러한 강호상의 격전(激戰)에 대해 경험이 아주 풍부하였으므로 막굉의 신형을 쉽게 찾을 수가 없게 되자, 일단은 그 가 금방 골목길을 빠져나갈 수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수하들에게 좌 우의 골목길을 감시하게 하고는 자신은 빠르게 신법을 펼쳐서 먼저 골목길 의 이 출구(出口)에 와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물론 이 갈통과 막굉의 무예는 서로 비슷비슷하여 신법의 속도로 따지자면 막굉이 뒤질 것이 없겠으나, 갈통은 이미 방향을 정하여 지름길로 달려왔던 것이었고 막굉은 골목길 속에서 이리저리 헤매었던 것이었으므로 이렇게 늦 어지게 되었던 것이었다. 막굉은 일단 그렇게 갈통을 발견한 순간에 이미 자신은 무사히 그들의 추적 을 벗어날 수가 없다는 것을 간파하고는 길게 한숨을 내쉬면서 천천히 앞으 로 걸어나갔다. 갈통 역시 일찍부터 막굉이 나타난 것을 발견하였으며 입가에 싸늘한 살소 (殺笑)를 머금으며 자세를 고치지 않고 다가오기 시작했다. 막굉은 내심 심리적(心理的)으로 궁지에 몰려 있던 판이었으므로 지금 상대 가 오직 갈통 하나밖에 없는 것을 보고는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에 일전(一 戰)을 벌일 각오를 하고 즉시 손에 들려 있는 장검(장檢)을 한 차례 의식적 (意識的)으로 고쳐잡으며 두 눈에서 살기(殺氣)를 내뿜기 시작했다. 이 막 굉이 배운 청해파의 검법은 그야말로 정통적(正統的)인 이론(理論)에 근거 한 것이었으며, 그것으로 갈통과 같은 방문좌도(傍門左道)의 무학을 배운 자와 겨룬다면 승산은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막굉이 그러한 생각으로 공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려서 두 눈에서 섬전(閃 電)과도 같은 신들린 안광(眼光)을 발출하기 시작하자, 맞은편에서 다가오 는 갈통 역시 두 눈에서 새파랗고 사이(邪異)한 안광을 발출시키기 시작했 다. 상대방이 고지식하게 정통검법을 배운 편이라면 자신은 강호 경험이 풍 부하고 임기응변이 능하기 때문에 오히려 그보다는 자신이 승산이 있다고 갈통은 역시 나름대로 생각을 굴리고 있는 것이었다. 바로 그와 같이 두 사람의 호적수(好敵手)가 각기 자신의 승리(勝利)를 장 담하며 점차로 거리를 좁혀 가기 시작하자 이 좁은 골목길에는 일순간 무서 운 격풍(激風)이 일어날 것 같은 팽팽한 긴장감이 깔리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거리는 십여 장에서 이내 사오 장의 거리로 빠르게 좁혀졌으며, 보지 않아도 이 두 사람의 건곤일척(乾坤一擲)의 격돌이 단 한 번의 싸움으 로 승부가 갈리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을 것 같았다. 실로 강호상에서 무수한 격전을 치러 본 두 사람이었지만, 그러나 이와 같 은 필사적(必死的)인 두 사람만의 건곤일척의 싸움은 처음으로 치러 보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었으므로 자연 은근히 손아귀에 식은땀이 배어나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한 땀방울에 의해 병기를 잡은 손이 미 끄러지기라도 한다면 그것은 승부에 커다란 영향을 줄 수가 있을 것이므로 두 사람의 안색은 더욱 딱딱하게 경색되어 가기 시작했다. 마치 두 개의 딱딱한 나무토막들이 서서히 다가가기 시작하고, 그 나무토막 의 두 눈에서만이 시뻘건 불길을 토하고 있는 것과도 같았다. 강호상의 무수한 혈전(血戰)들이 살벌하다고는 하나 이러한 종류의 격투(激 鬪) 역시 살벌하기는 어느 것에 못지 않았을 것이었다. 필시 이 두 사람 가 운데 하나는 살아날 것이고, 하나는 죽게 되는 생사(生死)의 갈림길에 들어 선 긴박한 순간이기 때문이었다. 대체 이 두 사람의 가운데 누가 승리할 것인가? 정통적인 청해검법(靑海劍 法)이 승리를 만들어 낼 것인가, 아니면 경험이 풍부한 임기응변이 승리를 자아낼 것인가? 그런데 두 사람의 신형(身形)이 마악 삼장 정도의 거리로 좁혀져서 두 사람 이 드디어 지면을 박차고 신형을 날려 상대에게 짓쳐들려고 하는 순간에 문 득 장내에 느닷없는 일이 벌어졌다. 쿵! 느닷없이 두 사람의 중앙 부위에 골목길 토담 옆에서 한 사람이 휘청거리며 앞으로 넘어지면서 이리저리 꿈틀거리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그 사람은 다름아닌 취객(醉客)이었다. 그 술주정뱅이는 실로 얼마나 많은 술을 마신 것인지 전신에 술냄새가 가득하게 배어 있을 뿐만 아니라 너무나 도 많은 술을 마셔대서 그것을 다시 토하게 되었는지 앞가슴에는 오물들이 잔뜩 묻어 있었고, 게다가 지금도 바닥에 엎드려서 연신 꿈틀거리며 웩웩거 리며 토하고 있었다. 실로 세상에는 빈부의 차이가 심하여 이런 빈민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평 소에는 술을 마실 돈도 넉넉하지 못하며, 일단 마음이 괴로워서 술을 마시 기 시작하면 반드시 저렇게 정신없이 취할 때까지 마시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는 것을 막굉은 몰라도 갈통만은 풍부한 인생 경험(人生經驗)으로 알고 있었다. 실로 그 술주정뱅이는 그들에 비하면 마치 벌레만도 못하게 보이는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지금의 상황에서 그 두 사람 역시 일종(一種)의 취기(醉氣) 에 물들어 있는 것이 아닐까? 그것은 바로 욕망(慾望)과 강렬한 야망(野望) 에 취해 있는 것이리라. 두 사람은 마악 일대격전을 벌이려고 하는 순간에 느닷없이 중간에 방해자 가 나타나자 일순 다같이 눈살을 조금씩 찌푸렸으나, 이것은 어쩔 수도 없 는 일이었고 또한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평소라면 이미 많은 음식들과 술을 한꺼번에 게워놓고 다시 그 오물들 위에 서 냄새가 나는 줄도 모르고 고개를 쳐박고 있는 그 술주정뱅이의 모습이 보기 싫어서 그저 한 차례 발길로 대갈통을 밟아 주려고 했었을 것이었지 만, 지금은 서로 상대방을 의식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결코 그렇게 할 수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조금이라도 신경을 그쪽으로 돌릴 수가 없는 상태였다. 하필이면 이러한 격돌의 장소에 인사불성이 된 술주정뱅이가 나타난 것과 또한 이러한 장소에서 두 사람이 격돌하게 된 인연(因緣)이 어처구니가 없 는 것이었지만, 그러한 공교로운 상황은 어쩔 수가 없는 운명(運命)이라고 할 수가 있었고 어느 누구를 원망할 수가 없는 일이었으므로 역시 신경쓸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다만 중앙에 하나의 장애물(障碍物)이 나타나게 되어 그것이 두 사람의 능 력(能力)과 어울려서 하나의 변수(變數)로 작용하게 되었으므로 대체 승부 가 어떻게 날 것인가는 미지수였다. 두 사람은 느닷없이 그렇게 장애물이 나타나게 되자 더욱 마음이 경직되었 고 긴장했다. "춘월(春月)아, 이 더러운 년아! 내가 그 동안 네년에게 갖다바친 돈이 얼 마인데 빌어먹을…… 네년…… 네년 때문에 처자식도 다 버리고…… 빌어먹 을 내가 미친 놈이었지. 끄윽……" 알고 보니 이 술주정뱅이는 한 기녀(妓女)를 죽자 사자 하고 모든 것을 바 쳐가면서 쫓아다니다가 나중에 무참하게 버림을 받게 되었던 모양이었다. 실로 세상에는 그처럼 결코 미련을 두어서는 안되는 일들이 많고도 많은 것 인 것이었다. 지금 두 명의 강호상의 절정고수(絶頂高手)들이 건곤일척의 대결을 벌이려 고 하는 순간에 느닷없이 인사불성이 되어 그렇게 오물 속에 머리를 쳐박고 중얼거리는 술주정뱅이가 나타난 것은 실로 풍자적(諷刺的)인 현실의 모습 이라고 아니할 수가 없었다. 만일 이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죽음을 당하게 되면그 죽음을 당한 사 람의 수급이 굴러 떨어져서 지금 술주정뱅이가 게워 놓은 오물 속으로 정말 로 쳐박히게 되지 않을까? 실로 강호의 무림고수로서 그러한 결말을 맞게 되는 것은 원하지 않는 바였지만 두 사람은 전혀 그러한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술주정뱅이가 나타났기 때문에 잠시 머뭇거리던 두 사람은 이내 약속이라도 한 듯이 병장기를 휘두르며 서로를 향해 신형을 날려갔다. 번쩍----! 일순간에 어두운 골목길에 강렬한 번갯불이 번쩍하고 피어나는 것 같았다. 비록 진짜 번갯불처럼 무서운 소음은 들리지 않고 있었지만, 분명히 그러한 소음이 들려오는 것 같은 강렬한 충격파가 주위를 일시에 헤집었다. 막굉의 검끝에서 피어오른 청해검법상의 검망(劍芒)이 시퍼런 불줄기를 이 루면서 구름같은 기세(氣勢)로 갈통의 전신을 향해 일직선으로 파고들었고, 갈통의 귀두도(鬼頭刀) 역시 한 순간에 귀화(鬼火)를 연상케 하는 검강(劍 )을 발출시키며 안개와도 같은 초식을 일으키며 그에 맞서갔다. 한 순간의 초식이 교차되는 건곤일척(乾坤一擲)의 순간이었다. 두 사람이 일으킨 검망과 검강의 기운에 의해 주위가 갑자기 번쩍 밝아진 듯한 가운 데, 아주 빠르고도 미세한 상황의 변화가 그림처럼 진행되었다. 막굉의 정통검법인 청해검법은 확실히 갈통이 스스로 연마(練磨)하여 터득 한 방문좌도의 도법(刀法)보다 우수한 점이 있었다. 두 개의 병기가 초식 (招式)들을 형성하고 서로 맞부딪친 찰나의 순간 두 개의 기운(氣運)은 서 로간의 초식들을 상쇄(相殺)시키면서 소리없이 어울리다가 교차되었는데, 기이하게도 그 기운들이 어울리는 흡착력(吸着力)에 의해 막굉의 장검은 바 르게 찔러가고 있는 중이었지만 갈통의 귀두도는방향이 바깥쪽으로 약간 비틀어져 있었다. 비록 약간의 차이에 불과한 것이었지만 그 약간의 차이야말로 이러한 건곤 일척의 격돌에서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었다. 갈통이 귀두도의 방향을 바르게 바꾸는 데에는 이미 시간적으로 늦어 있었 다. 그렇다고 상대방의 요해(要骸)를 찌르지 못하고 빗나가서 엉뚱한 곳만 베게 된다면 오히려 그때는 자신의 가슴이 꿰뚫려 있을 것이 아닌가! 그러한 사실을 간파했기 때문인지 갈통의 안색이 다소 경악으로 물들어 버 리는 것 같았다. 기실 이 두 사람은 지금 필살(必殺)의 격돌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상 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었지, 만일 수비와 공격이 잘 어우러진 싸움을 펼 치고 있는 상황이었다면 그렇게 쉽게 승부의 명암(明暗)이 엇갈리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막굉은 일단 자신의 예상이 들어맞고 상대방의 안색에 경악의 빛이 떠오르 는 것 같은 것을 보고는 안면에 득의의 빛을 발하며 계속해서 찔러갔다. 실상 이 초식은 그의 최강(最强)의 검초(劍招)였지만, 이미 마르고 닳도록 수련을 거듭하여 조금이라도 착오가 생길 리가 없는 것이었다. 갈통의 귀두도가 막굉의 어깻죽지를 스치며 지나가는 순간에 막굉의 장검은 정확하게 푹! 하는 음향과 함께 갈통의 가슴 심장(心臟) 부위를 관통시켜 버렸다. 막굉은 그리하여 손끝에 상대의 육신을 관통시킨 감촉이 느껴지자 두 눈에서 기쁜 빛을 발했고, 이 싸움은 자신이 이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상황은 그때부터 실로 기이(奇異)하게 변해 갔다. 당연히 심장이 정 확하게 꿰뚫린 갈통의 가슴에서는 피가 분수처럼 솟구쳐 나와야만 할 것이 었는데, 그의 가슴에서는 그저 약간의 핏방울만이 비칠 뿐이었고, 게다가 지극히 고통스러워 해야 할 갈통의 얼굴에는 이 순간 어처구니가 없게도 득 의(得意)에 가득찬 빛이 떠올라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한 안색은 마치 도리어 갈통 자신이 이겼다고 소리치는 것과도 같은 것 이었는데, 그것을 본 막굉은 내심으로 크게 불길한 예감을 느끼면서 그게 웬 미친 소리냐고 생각했다. 헌데 기실 그 불길한 예감은 사실로 나타나게 되었으며, 갈통의 표정은 미 쳐서 그렇게 되었던 것이 결코 아니었다. "으악!" 이미 죽음을 맞이하고 있을 줄로 알고 있었던 갈통의 귀두도가 다시 빠르게 허공을 선회하며 그대로 막굉의 수급을 날려 버렸던 것이었다. 막굉은 한 순간에 불길한 예감을 느끼고 다시 장검을 적의 가슴에서 뽑아내 려고 했었으나, 일단 승리를 확인한 이후에 진기(眞氣)가 다시 느슨하게 풀 려 있었으므로 그것이 빠르게 잘 되지 않았던 것이었다. 경악어린 비명성이 터져나오면서 허공으로 훌훌 나려가는 막굉의 수급에는 아직도 믿을 수가 없다는 불신(不信)의 기색이 박혀 있는 채로 자신의 목구 멍에서 솟아나오는 핏물에 젖어들고 있었다. 쿵! 막굉의 시신이 갈통의 가슴에서 뽑아낸 장검을 손에서 놓지 않고 그대로 쓰 러져 버리자, 갈통은 일단 자신의 가슴팍의 혈도를 십여 차례나 눌러서 지 혈(止血)을 시킨 다음에 음산하게 웃으며 시신의 앞으로 다가와서 시신의 옷자락을 헤치기 시작했다. "흐흐…… 나의 별호가 어째서 삼두교(三頭蛟)인지 아느냐? 으흐흐…… 어 리석은 놈!" 패자는 말이 없는 법이고 오직 승자(勝者)만이 그렇게 마음놓고 기분좋게 웃을 수가 있는 것이었다. 결국 제아무리 무공이 뛰어나다고 해도 강호상의 경험이 뛰어난 사람에게는 당할 수가 없다는 이치가 드러나게 되었던 것이었다. 실로 이를 두고 경험 은 칠푼이요, 무공은 삼푼이라는 말이 나온 것이었을까? 갈통은 잠시 동안 빠르게 막굉의 가슴속을 샅샅이 뒤져서 마침내 그의 품속 에서 하나의 양피지 두루마리를 꺼내서 자세히 주시하며 나직하고도 득의하 게 소리쳤다. "바로 이것이었군! 내가 장보도를 찾았다!" 아까 교홍은 너무나도 급하게 서두르는 바람에 자신마저도 누구에게 진짜 장보도가 가게 되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이 장보도가 전해진 쪽은 미궁 (迷宮)에 빠져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 장보도는 바로 둘째인 막굉에게 전 해졌던 모양이었다. 갈통은 두 눈에 공력(功力)을 돋우어서 분명하게 어둠 속에서도 양피지 위 에 지도의 형상이 그려져 있는 것을 재삼 확인하고 나서 이윽고 그 장보도 를 품속에 갈무리하며, 이미 죽은 막굉의 시신을 다시 한 번 내려다 보았 다. 그의 얼굴에는 조소의 빛이 어리고 있었다. 기실 이 갈통이 삼두교라는 별호(別號)를 얻게 된 것은 유달리 그의 두뇌가 교활한 점이 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다른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보통의 사람들은 심장이 대개가 왼쪽에서 자리하고 있는 법이었지 만, 그의 심장은 그쪽이 아니라 다소 오른쪽으로 치우쳐 있었기 때문에 그 는 실로 조금 전과 같은 일을 많이 당하고 목숨을 부지해 올 수가 있었던 것이었다. 즉 여기에서 삼두교라는 별호는 그러니까 머리가 세 개라는 말이 아니라 바로 목숨을 대표하는 수급이 세 개라는 의미(意味)였으니, 바로 불 사신(不死身)이라는 말과도 통하는 것이었다. 원래 이 갈통은 운이 좋아서인지 무수하게 좌측의 심장이 없는 부위에 당하 게 되어 일단 죽었다고 생각되었으나 이내 불사신처럼 되살아나곤 했었으므 로, 자연히 그의 경험이나 무예가 늘게 되었고, 또한 녹림흑도의 무리들 가 운데에서 영웅적(英雄的)인 대접을 받게 되었던 것이었다. 갈통이 터득한 이 도법은 실로 그러한 우여곡절 끝에 스스로 터득하게 된 것이었으며, 따라서 그가 처음부터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당연한 일 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지검 막굉은 비록 나이가 많아서 강호상의 경험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가 없었으나, 그가 어찌 상대의 심장이 왼쪽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가 있겠 으며, 또한 갈통이 미리부터 그러한 것을 이용하려고 했었다는 사실을 알아 낼 수가 있었겠는가? 실로 일반 사람이라면 심장이 아닌 곳이라도 일단 관통이 되면 살아나기 어 려운 것이겠으나, 이 갈통의 경우는 그렇지 않아서 그렇게 되는 것이 목숨 과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었다. 갈통은 한 순간에 빠르게 그와 같은 생각을 굴리면서 다시 한 번 자신의 왼 쪽 가슴을 살펴보고는 마악 신형을 옮기려고 했다. 그런데 바로 그 다음 순간의 일이었다. 무심코 왠지 뒤의 기척이 이상하다 고 생각했는데, 느닷없이 그의 오른쪽 가슴 부위에 마치 불칼이 스며들어온 것처럼 격렬한 고통이 일어나더니 하나의 칼끝이 불쑥 드러나 고개를 내미 는 것이 아닌가! "윽……!" 갈통은 칼끝이 가슴을 관통한 순간에 마치 전신에 벼락에라도 감전된 듯한 전율을 느끼고는 무너지듯이 쓰러지면 발작적으로 뒤로 고개를 돌렸다. "당신이……?" 갈통은 아득해져 오는 의식(意識) 속에서 자신의 뒤에 한 사람이 자신의 가 슴에 박혀 있는 폭이 좁은 칼의 자루를 잡고 있으며, 다름이 아니라 그 사 람이 바로 조금 전에 술에 취해서 바닥에 뒹굴던 술주정뱅이라는 것을 알고 는 너무나도 놀란 나머지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렇다! 실로 어처구니가 없게도 공교로운 순간에 나타나서 뭐라고 헛소리 를 중얼거리던 그 술주정뱅이는 이 순간에 두 눈에서 취기(醉氣)가 하나도 없는 무서운 신광(神光)을 발출시키고 있었던 것이었으니, 조금 전에 술에 취한 척했던 것 등은 모두가 그의 연극일 뿐이었고, 기실은 그는 조금도 취 하지 않은 무림고수(武林高手)였던 것이었다. 실로 이러한 무림고수가 그러한 순간에 나타나서 그러한 연극을 했었을 줄 은 미처 짐작하지 못했었기 때문에 갈통은 바닥에 쓰러져서 몸이 딱딱하게 굳어지면서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는 듯이 상대를 바라보는 눈을 감지 못 하고 있었다. 그 술주정뱅이는 잠시 동안 쓰러져 누운 갈통의 얼굴을 주시하다가 이윽고 그가 숨이 끊어진 것을 확인했는지 가볍게 손을 움직여 갈통의 가슴에 박혀 있는 예의 그 폭이 좁은 칼을 뽑아드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때 그렇게 가볍게 칼을 회수하는 동작은 지극히 숙련되어 있을 뿐 만 아니라 빠르고 단순하기 짝이 없었다. 원래 그 술주정뱅이는 가슴의 옷 자락 속에 한 자루의 칼을 칼집째 숨기고 있었던 것이었는데, 지금 그저 번 쩍 하는 느낌이 들었을 뿐이었는데 벌써 그 칼날이 세워져 있는 칼집 속에 신기하게도 들어가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마치 그 칼이 그 사람의 몸의 일부분이나 마찬가지인 듯한 기이(奇 異)일 일체감(一體感)을 느끼게 해주었는데, 실로 그와 같이 병기와 몸이 하나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조금 전에 갈통 등이 미처 그에게 병기가 숨겨 져 있었던 것을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었고, 게다가 뒤를 이어 그처럼 거의 기척도 없는 빠른 도법으로 갈통의 가슴을 뒤에서 꿰뚫을 수가 있었던 것이 리라. 그 술주정뱅이는 이어 우수를 움직여서 갈통의 시신에서 예의 그 장보도인 양피지 두루마리를 꺼내들고 확인을 하더니, 이윽고 다소 망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쳐들어 어두운 밤하늘을 우러러 보더니 서서히 밖을 향해 걸음을 옮 기기 시작했다. 여전히 그의 전신에서는 심한 오물의 악취와 술냄새가 풍기고 있었고, 또한 그의 신형도 심하게 비틀거리고 있었기 때문에 누구라도 그가 이곳에서 어 떤 일을 벌였는지 알지 못하게 될 것 같았다. -- 계속 -- #5759 양한우 (hanwoo71) [백상] 종남사부 제4권 제24장 03/31 14:48 326 line 올 린 이 : 양한우 HITEL ID : hanwoo71 제24장. 쾌도술(快刀術)의 달인(達人) 실로 이 세상의 일이라는 것은 가히 나중을 예측하기가 어려운 것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이었다. 갈통이 미처 그 술주정뱅이를 의식하지 못해서 그와 같은 변을 당한 것이었 지만, 그러나 만일 정말로 일이 그렇게 해서 끝났더라면 사태가 보다 기이 하게 돌아가게 되었을 것이었는데, 실제의 상황은 그렇지 않았다. 유감(有感)스럽게도 이 갈통은 기실 정말로 죽은 것이 아니었다. 그 술주정 뱅이가 그렇게 비틀거리며 사라진 그 순간에 마치 시체처럼 뻣뻣하게 굳어 져 있었던 갈통의 육신이 부드럽게 풀리는 듯하더니 이윽고 부릅떠져 있던 그의 눈동자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비록 아직 그의 안면에는 고통의 흔적(痕迹)이 남아 있다고 하나 분명히 그 는 결코 죽은 것이 아니었다. 마치 그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이 그 술주정 뱅이가 다시 나타나지 않자 갈통은 문득 신형을 움직여서 오뚝이처럼 벌떡 일어섰다. 그야말로 이 삼두교 갈통은 그의 별호대로 목숨이 여러 개나 되는 것처럼 목숨이 질기기 짝이 없는 사람이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들의 목숨은 그저 가벼운 운동을 하다가도 느닷없이 끊 어져 버리기도 하지만, 이렇게 목숨이 질긴 사람들은 아무리 누가 죽이려고 해도 다시 살아나는 일종의 괴력(怪力)을 발휘하기도 하는 것이니, 세상의 이치가 이렇게 다양한 면모가 있다는 것은 가히 재미있는 일이라고도 말할 수가 있을 것이었다. 기실 조금 전에 그 술주정뱅이가 일부러 갈통의 오른쪽의 가슴을 찔렀던 것 은 역시 그의 비밀을 약간 눈치채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말할 수가 있을 것이었는데, 실제로 그 술주정뱅이는 당시 너무나도 깊은 감상(感想)에 빠 져 있었기 때문에 설마하니 이 갈통의 심장이 오른쪽에도 있지 않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만일 그 술주정뱅이가 감상에 젖어 있지 않았다면 그는 역시 피가 많이 나 오지 않는 갈통의 가슴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했었을 것이었지만, 일단 갈통 의 육신이 딱딱하게 굳어져 가는 것을 보고는 필시 그가 죽은 것이라고 짐 작하고는 그대로 가 버렸던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무공이 일정한 수위에 도달하게 되면 저절로 가지게 되는 일종의 자만심이라고 할 수도 있는 것이 었다. 실제의 갈통의 심장은 좌측에 있는 편이었지만 그저 오른쪽으로 약간 치우 쳐져 있는 것이었으므로 중앙에 있다고도 말할 수가 있었지만, 그러나 결코 오른쪽에 있는 것은 아니었다. 확실히 갈통의 오른쪽 가슴에서는 왼쪽보다 많은 피가 흘러나왔지만, 그것 은 심장이 꿰뚫렸기 때문이 아니었고 일종의 갈통의 연극이었다. 갈통은 자 신의 그러한 특이한 점이 긴박한 순간에 최후의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미리부터 간파하고 거기에 죽음을 가장할 수 있는 일종의 사법(邪法)을 하 나 배워 두었었던 것이었다. 그 술주정뱅이는 그 사법에 속아서 그냥 가 버린 것이었으며, 일단 그가 사 라지자 갈통은 다시 몸을 일으켜서 일단은 우측의 가슴의 상처 부위의 혈도 를 눌러서 지혈(止血)을 시킨 다음에 원독(怨毒)이 가득찬 시선(視線)으로 술주정뱅이가 사라져 간 쪽을 노려보며 이렇게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쾌도번천(快刀蒜天) 도백세(陶百歲)…… 과연 그라는 말인가? 하지만 놈의 의도가 결코 뜻대로는 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 바로 그 술주정뱅이는 과거 강호상에서 한창 이름을 떨치고 있었던 일대(一代)의 쾌도술(快刀術)의 명인(名人)이었던 것이었다. 아까 그가 얼 핏 보여 주었던 그 칼과 몸이 하나가 된 듯한 움직임과 그 빠르고 숙련된 듯한 환상적인 칼을 회수하는 동작 등은 능히 그러한 것을 느끼게 해주고도 남음이 있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그는 과거의 쾌도술의 명인이었으니 이제 그 쾌도술의 무예가 더욱 노화순청(爐火純淸)의 경지에 도달했을 것이 었다. 그러나 기이한 것은 어째서 그가 느닷없이 그와 같은 변장을 하게 되었느냐 는 것이었다. 깊은 감상에 어려 있는 태도로 보아하니 그러한 그의 모습은 결코 일시적인 변장이 아닌 것 같았으며, 기실 그보다 더더욱 이상한 일은 바로 그가 다름 이 아니라 이 빈민가와는 다소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 태백거(太白居) 라는 술집의 주인인 도노대(陶老大)였다는 사실이었다. 그러한 사실은 지금 이 순간에 멀리 커다란 나무 위에서 어둠을 꿰뚫고 건 너다보고 있는 화검운과 황약화 등만이 알 수가 있는 일이었고, 갈통은 아 직 알지 못하는 사실이기는 했지만, 아무튼 그는 일단 그와 같이 원독에 충 만한 음성으로 나직하게 중얼거린 다음에 언제 상처를 입었냐는 듯이 즉시 빠르게 신형을 날리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힘으로는 그 쾌도번천 도백세를 이길 수가 없다는 것을 직감하 고 급히 도와줄 사람들을 찾아나서는 것이었다. 비록 악산산은 공력이 아직 부족하여 그 짙은 어둠을 꿰뚫고 멀리까지 바라 볼 수가 없었지만, 화검운은 이미 그러한 것들을 훤하게 바라보고는 옆으로 고개를 돌려서 황약화에게 입을 열어 말했다. "나는 그가 원래 무공을 지닌 최절정(最絶頂)의 고수(高手)였다는 것을 알 고 있기는 했지만, 실제로 그가 그와 같은 쾌도술의 달인(達人)이었을 줄은 몰랐었소. 정말로 뜻밖의 일이 아니오?" 황약화는 이에 다소 의미깊은 시선으로 옆의 화검운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간단하게 대답했다. "그래요." 이때 악산산은 이미 종남사부에 대해서 공상(空想)을 하기도 지쳐 버린 듯 이 두 사람의 얼굴을 보고 있다가 이윽고 매우 의아해하며 화검운에게 말했 다. "두 분은 지금 무엇을 보고 그렇게 말씀을 나누고 계시는 거죠? 저의 눈에 는 지금 하나도 보이지 않는데요?" 화검운은 그녀의 말에 웃으며 고개를 돌려 대답해 주었다. "저쪽의 앞에 한 사람이 나타나서 장보도를 입수했는데, 그 사람이 바로 우 리들이 어제 낮에 묵었었던 태백거의 도노대였다는 사실이오. 그는 원래의 정체가 쾌도번천 도백세였다는 것이구려." 악산산은 그 말에 다소 놀라서 안색이 변했다. "아! 바로 어제 낮에 당신에게 그토록 무례하게 대하던 그 술집의 주인 말 이군요? 맙소사! 그런 그가 사실은 쾌도번천 도백세였다니……. 저도 과거 에 얼핏 들은 적이 있어요. 그는 십 년 전에 갑지기 실종된 일백 명의 고수 들과 거의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무공이 높은 사람이었는데, 어느날 갑 지기 사라졌다고 하더군요. 헌데 그런 그가 어째서 이런 곳에서 술집의 주 인(主人)이 되어 있었을까요?" 화검운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마도 그는 당시 자신마저도 누군가에게 납치를 당할까 봐 걱정했었을 수 도 있는 것이고…… 게다가 다른 이유도 있었을 것이지만 그러한 것들은 오 직 그 혼자만이 알고 있을 것이오." 악산산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다시 고개를 들며 물었다. "그렇겠군요. 하지만 대체 그는 오늘밤에 어째서 갑자기 나타나서 행동을 개시한 것이었을까요?" 화검운은 고개를 설레설레 가로저었다. "글쎄요. 그것은 아마도 장보도(藏寶圖)라는 것이 너무나도 커다란 유혹(誘 惑)을 주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악산산은 다소 망연한 기색을 보였다. "짐승은 먹이 때문에 죽음을 당하고 사람은 욕심(慾心) 때문에 그물에 걸린 다고 하더니 바로 그런 이치로군요. 만일 도백세가 오늘밤에 나타나지 않았 다면 누구도 그의 진정한 신분을 알지 못했을 것이……" 그때 갑자기 황약화가 가볍게 손을 내저어 악산산의 말을 제지하는 바람에 악산산은 도중에 급히 말을 중단했다. "잠깐! 조용히 해봐! 저기에 문제가 발생했어. 누군가가 도백세의 앞을 가 로막아 서기 시작하는군." (……?) 악산산은 그 말을 듣고 일순 어리둥절해졌는데, 황약화가 이어 멀리까지 잘 보이지 않는 그녀를 위해 나직한 음성으로 그곳의 상황을 상세하게 설명해 주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 술주정뱅이 행세를 하고 있는 쾌도번천 도백세는 골목길을 벗어나서 여 전히 짐짓 술에 취한 듯이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지금 그가 걸어가고 있는 방향(方向)은 바로 태백거가 있는 쪽이 아니라 성 밖으로 향하는 쪽이었다. 그것으로 미루어 도백세는 이제는 태백거의 술집 일을 그만두고 장보도의 비밀을 풀어보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막상 그의 신형(身形)이 인적이 매우 드문 으슥한 골목길만을 골라 서 나아가고 있는데, 문득 느닷없이 아악! 하는 비명 소리와 함께 좁은 골 목길에서 한 명의 나이 어린 여자가 달려오더니 공교롭게도 그의 앞에서 벌 렁 넘어지며 치마가 위로 올라가며 허연 허벅지가 드러나는 것이었다. 실상 공교로운 일이었다고는 하나 이미 도백세가 살심(殺心)을 일으켰었기 때문에 그 여자는 자신도 모르게 그의 앞에 이르게 되자 그만 가슴이 진탕 되어 절로 발을 헛디디고 넘어지고 말았던 것이었다. 비록 정작 그렇게 넘어진 여자는 그러한 이치를 알지 못했지만 도백세는 이 내 그러한 것을 깨닫게 되어 절로 마음이 흠칫해지고 말았다. 기실 그는 무려 십여 년간이나 무공을 사용하지 않았었는데, 오늘밤에 실로 오랜만에 살인을 하게 되어서 다소 마음이 흥분되어 있었던 데다가, 거기에 지금 자신의 품속에 장보다가 있다는 의식(意識)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느닷없이 다가온 여자를 보게 되자 절로 그와 같은 무형의 기운(氣 運)이 일게 되었던 것이었다. 따라서 도백세는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리고 즉시 더운 기운을 갈무리하며 술취한 사람과 같은 행세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눈앞의 이 치마가 위로 치켜올라간 여자는 자신의 허벅 지가 보이고 있는 것도 모르는지 눈앞에 웬 사람이 하나 있는 것을 보고는 간절하게 소리치는 것이었다. "도와주세요, 제발……. 나쁜 사람들이 저를 해치려고 하고 있어요. 제발 저를 좀 살려주세요!" 알고 보니 이 넘어진 여자는 마침 그 넘어지는 순간에 발목을 심하게 삐어 서 전혀 일어날 수가 없는 상황이 되어 있었으며,뒤를 이어 저쪽 골목길의 앞쪽에서 달려오기 시작하는 사람들을 보고는 사색(死色)이 되어 바들바들 떨며 그렇게 소리치는 것이었다. 비단 이 강호도상뿐만 아니라 이러한 음산한 빈민간의 골목길에서는 더러 여자를 폭행하거나 인신매매(人身賣買)단에 팔아먹는 등의 일이 비일비재하 게 일어나는 법이었음로, 기실 이러한 일은 그다지 도백세에게 있어서 놀라 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지난 십여 년간 실로 인내력(忍耐力)을 발휘하여 모든 어려운 순간에 서도 무공을 발휘하지 않고 참으면서 살아왔으며, 그렇게 오래도록 살아오 다 보니 이러한 심한 일들을 많이 보고 겪게 되어서 지금의 일은 그에게 별 로 충격을 느끼게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마도 이것도 이 부근의 지하세력 가운데의 시정잡배 녀석들이 지나가는 여자 하나를 납치해서 폭행하고 있는 것이리라고 생각하고는 얼른 이 자리 를 피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미 전면에서 사람들이 오고 있는 상태였는 데다가 그 여자가 이미 상대가 몸을 피할 것을 예측했는지 결사적으로 빠르게 다가와서 그의 냄새 나는 바지가랑이를 힘껏 잡고 늘어지는 바람에 도백세는 도무지 뒤로 달아 날 수가 없는 입장이 되었다. 여기에서 무공을 발휘하여 달아났다가는 전면에서 다가오는 사람들이 알게 되어서 모든 일이 들통날 염려가 있겠기 때문이었다. 하는 수 없이 도백세는 더욱 술취한 연극을 하리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드 디어 그 여자를 뒤쫓는 무리들이 빠르게 다가와서 두 사람의 주위를 에워싸 기 시작했다. 지금 나타난 그 무리들은 한눈에 보기에도 흉악하게 생긴 장한들이었는데, 그 숫자는 대략 십여 명이나 되는 것이었고, 실로 기이하게도 그들 가운데 에는 이를 멀리서 바라보고 있는 화검운 등의 눈에 매우 익은 사람들의 모 습도 보였다. 바로 다름이 아니라 그들 가운데에 저녁 무렵에 안향반점이 나타났었던 금응방의 소방주 미도랑(美刀郞) 방우량(方友諒)과 십이응조수 (十二鷹爪手) 가운데의 남응(藍鷹) 장도(莊濤)가 섞여 있었던 것이었다. 그 러니까 이들의 무리는 다름이 아니라 금응방도들인 것이 분명했다. 미도랑 방우량과 남응 장도뿐만 아니라 그들의 곁에는 푸른 독수리의 문양 을 새긴 장한과 자색(紫色)의 독수리의 문양(文樣)을 새긴 장한이 더 있었 고, 나머지 장한들은 하나같이 그들 네 명에게 공손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모습들이었는데, 소문대로라면 그 나머지 두 명의 장한들은 역시 십이응조 수 가운데의 청응(靑鷹)과 자응(紫鷹)이 분명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도백세는 다소 어정쩡한 모습으로 여자에게 바지가랑이를 잡힌 채로 술에 취한 듯이 몸을 비스듬히 흙벽에 기대로 끊임없이 신형을 흔들거리고 있었 는데, 이윽고 수하들이 두 사람의 주위를 둘러싸자 방우량은 다소 눈살을 심하게 찌푸리며 이렇게 짜증 섞인 음성으로 말하는 것이었다. "대체 저 놈은 웬 녀석이냐?" 남응 장도가 그 말을 듣고 내심 소방주에게 충성이라도 바치려는 듯이 즉시 앞으로 다가서며 험악하게 소리치며 물었다. "이봐! 네놈은 대체 어디서 굴러먹다 온 놈이길래 여기에 서 있는 거냐? 네 놈이 감히 우리의 일을 방해하겠다는 말이냐?" 도백세는 비록 계속해서 술취한 듯이 신형을 비틀거리고 있었으나 상대방이 험악한 기세로 금방이라도 손을 쓸 듯이 양손에 공력을 일으키는 것을 보고 는 역시 대꾸를 하지 않을 수가 없겠다고 생각하고는 술취한 음성으로 입을 열어 간신히 대꾸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 그럴 리가 있겟소. 나으리들…… 나는 지금 집으로…… 가려던 참 이었소. 나를…… 나를 보내주시오……" 도백세의 이러한 연극은 실로 이미 십년 가까이나 해온 것이어서 지극히 숙 달되어 있었고, 정말로 술취한 사람보다도 더욱 술취한 것 같은 모습이었 다. 장도는 그러한 모습을 보고는 일순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싱긋 웃으며 손 아귀에 끌어올렸던 공력을 풀어 버리고 말했다. "뭐라구? 그래? 하하, 이거 정말로 술취한 녀석이었군 그래. 세상에 이렇게 미련스럽게 술을 많이 쳐먹은 녀석이 있었을 줄이야……. 야, 이 미친 자식 아! 지금 우리 소방주 나으리께서는 어제 저녁에 기분이 좋지 않으셔서 한 번 즐기시려고 하시는 것이니 그냥 모른 척하고 꺼져 버려!" 이어 장도는 방우량을 돌아보며 웃으며 말을 이었다. "실제로 이런 녀석은 방금 전에 제가 한 말도 나중에 전혀 기억하지 못할 것입니다. 사실 저도 일전에 한 번 대취한 경험이 있었는데, 헤헤, 대체 그 날 제가 무슨 짓을 했는지 술이 깨고나서는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방우량은 그 말을 드고서 매우 귀찮은 듯이 대꾸했다. "어서 그 더러운 녀석을 보내기나 해! 빌어먹을, 이건 사람의 냄새가 아니 군 그래." "알겠습니다." 장도는 급히 허리를 굽혀서 대답한 다음에 다시 도백세를 향해 고개를 돌리 며 호통을 쳤다. "야 이 자식, 아직도 꺼지지 않고 있는 것이 한 번 맛을 봐야 하겠다는 말 이냐?" 도백세는 내심 그러한 때를 노리고 있었으므로 즉시 술취한 사람처럼 크게 고개를 조아리며 휘청휘청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때 다소의 문제가 다시 발생했다. 도백세의 바지가랑이를 잡고 있 었던 여인이 사색이 되어 있다가 느닷없이 도백세가 떠나려고 하자 이내 다 시 죽어라 하고 그의 바지가랑이를 잡고서 놓아주지 않는 것이었다. "나으리, 살려주세요! 제발 저를 이 사람들에게서 살려주세요! 저는 어머니 의 약을 사러 가던 길이었는데 이 사람들이 저를 잡아서 죽이려고 하고 있 어요!" 실로 이 사람의 삶에의 욕구(慾求)라고 하는 것은 무서운 것이어서 도백세 는 아무리 해도 무공을 펼치지 않은 상황에서는 그녀의 손길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지금 상대의 신분도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물에 빠진 사람 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듯한 심정으로 그에게 매달리고 있는 것이었다. 실상 다소 냄새가 심하게 나기는 했지만 그녀의 눈에는 이 도백세의 술취한 모습 이 어둠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던 것이 그 원인의 하나이기도 했다. 도백세의 신형이 심하게 비틀거리면서 여자의 손에 의해 가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고는 문득, "아니, 이 계집이 지랄을 하고 있네!" 장도가 그렇게 험악하게 소리치며 앞으로 나서서 여자의 혈도를 제압해 버 렸다. 그러자 여자는 그만 손에 힘을 잃게 되었고, 도백세는 자유로운 몸이 되어서 무사히 앞으로 걸어갈 수가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 골목길은 상당히 길고 반듯했고, 또한 자신이 술취한 사람이기 때문에 빨리 갈 수가 없었으므로 도백세는 계속해서 비틀거리며 나아가는 동안에 여러 가지의 상황을 귀로 들어야만 했다. 거칠게 여자의 옷을 찢어 버리고 따귀를 심하게 몇 차례 후려치는 듯하더니 이윽고 그 장도가 방우량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소방주님, 지금도 생각이 있으십니까?" 그 여자는 이미 울며 불며 거의 지쳐 있는 상태였다. 방우량은 다소 귀찮다는 듯이 대꾸했다. "아냐. 빌어먹을! 내가 이 계집의 고의를 벗기고 나서 재미가 없을 것같아 서 혈도를 풀어 주었더니 제기랄! 이 계집이 감히 나의 손목을 물어뜯을 줄 이야 어찌 알았겠나? 나는 이제 재미가 시들해졌으니 자네가 한 번 여기에 서 즐겨 보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장도는 그 말을 듣자 매우 감사하다는 듯이 즉시 대답하고는 이어 뭔가 행 동에 옮기기 시작했고, 여자의 찢어지는 듯한 비명 소리가 다시 간헐적으로 울려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고 주위의 장한들이 음탕하게 가끔씩 웃음을 터뜨렸으며, 다른 한 사람이 방우량을 향해 문득 다시 입을 열어 말했다. "소방주님, 그들의 세력은 정말로 놀라운 것입니다. 소방주님께서 다소 괴 로우실 것이지만 지금만큼은 감정을 조금 죽이시고 순순히 그들의 지시를 따르시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아마도 십이응조수 중의 한 명의 말인 것 같았다. 뒤를 이어서 숨가쁜 호흡 소리와 함께 다소 짜증이 섞인 듯한 방우량의 음 성이 다시 들려왔다. "빌어먹을! 나도 웬만큼은 다 알고 있으니 그 얘기는 이제 그만해! 그래서 그들이 오늘밤에 어떤 놈들이 달아날지 모르니 이곳을 지키고 있으라고 해 서 내가 이런 곳에 와 있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어떤 놈들은 오늘밤에 나 를 찾아오겠다고 했으니…… 그야말로 재수에 옴 붙은 격이 아닌가! 자, 이 제 그런 얘기는 그만하고 주타주(朱舵主)! 자네도 웬만하면 지금 한 번 즐 겨 보는 것이 어때? 실로 이런 계집이 생각보다 싱싱하고 맛을 느끼게 한다 니까." 이 순간 장도의 호흡 소리가 점차로 격해지면서 실로 그의 짓거리가 머지 않아서 끝나게 되리라는 것을 알 수가 있을 것 같았다. 여자는 오히려 전보 다도 더욱 심하게 자지러진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고, 그러한 비명 소리가 울리는 가운데에서도 이 부근의 집에서는 누구도 나와 보거나 하지 않아서 조용했다. 그 주타주라는 사람이 대답했다. "아니 저는 그만두겠습니다." 방우량이 즉시 말을 받았다. "왜 자네에게는 그 꽃처럼 아름다운 마누라가 있기 때문인가? 하하, 이거 정말로 궁금해지는걸! 대체 어떤 여자이길래 그렇게 푹 빠져 있는지 나중에 내가 한 번 맛을 봐야 하겠는걸!" 주타주라는 사람이 태연하게 대답했다. "소방주께서 원하신다면 저의 마누라는 얼마든지 빌려드릴 수가 있습니다. 소인(小人)은 지금 몸과 마음을 다 바쳐서 충성(忠誠)을 하고 있는데 그까 짓 마누라를 아끼겠습니까?" "그래? 하하하, 주타주는 항상 이렇게 시원시원한 사람이니까!" 방우량의 득의한 웃음 소리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장도의 호흡 소리와 여자 의 신음 소리는 더욱 더 심해지고 있었다. (……) 도백세는 비록 마음에 그다지 가책이 이는 것은 아니었으나 아무래도 그러 한 소리를 계속해서 듣는다는 것은 불안한 심정이 일어나기 때문에 가능하 면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어졌다. 다행히 골목길이 구부러지는 지점이 바로 눈앞에 와 있었기 때문에 차라리 이 지점에서 약간의 신법(身法)을 발 휘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에 느닷없이 방우량이 이렇게 말을 하는 것이었다. "아참! 바로 그렇게 하면 되겠군. 이봐 최타주(崔舵主)! 어서 저 술주정뱅 이를 다시 불러봐!" 도백세는 그 소리를 듣자 일순 가슴이 크게 뜨끔한 기분이 들었으나 다시 모른 척하고 신형을 움직여서 이 자리를 빠져나가려고 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에 이미 그의 뒤에서 한 사람이 빠르게 다가와서 소리치는 것이었다. "이봐, 거기 서 봐! 우리 소방주께서 부르신다!" 도백세는 모른 척하고 이 자리를 벗어날 수가 없다는 것을 알고는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돌려보았는데, 최타주라는 그 사람은 바로 자색의 독수리 문양 을 가슴에 새긴 사람이었다. 그가 날렵하게 신법을 날려서 금방 도백세의 뒤에 이르렀기 때문에 도백세는 이내 그의 무공이 일류고수의 수준에 있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도백세는 이들의 지시를 어길 수가 없을 것을 알고는 우선 신형을 비틀거리 며 최타주라는 사람의 뒤를 따라서 되돌아갔다. 내심으로는 만약의 경우에 는 이 십여 명의 사람들을 일거에 죽여 버릴 결심을 했다. 도백세로서는 일단 무공을 드러내면 이들을 모조리 죽이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마음을 긴장시켰는데, 정작 그가 다시 그곳에 돌아와 보니 실로 참혹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고, 방우량이 그를 향해 이렇게 말하는 것 이었다. "이봐, 주정뱅이! 네놈도 어서 옷을 벗어!" 이때 장도는 마악 일을 끝내고 나서 몸을 일으키며 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그 여자는 이미 옷이 완전히 찢어져서 발가벗겨진 채로 사지를 맥없이 벌리 고 멍한 눈을 하고 있었다. 한껏 벌려진 그녀의 허벅지 사이에는 피가 심하 게 흘러나오고 있었고, 그 외에도 그녀의 가슴 부위에도 시퍼런 멍자국이 가득했다. 아마도 이 장도라는 녀석은 소방주에게 잘 보이기 위해 그를 즐 겁게 하려고 온갖 더럽고 잔혹스러운 짓거리를 다한 모양이었다. 여자의 입 에서는 핏물이 배어나오고 있었고, 보아하니 그녀는 이미 거의 실신(失神) 할 지경인 것 같았다. -- 계속 -- #5760 양한우 (hanwoo71) [백상] 종남사부 제4권 제25장 03/31 14:48 292 line 올 린 이 : 양한우 HITEL ID : hanwoo71 제25장. 천적(天敵) 장도가 바지를 입으면서 물었다. "소방주님, 무엇을 하시려고 하십니까?" 방우량은 음탕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그나저나 장타주(藏舵主) 자네의 그 물건은 갈수록 커져가는 것이 아니야? 저 여자가 저렇게 실신할 정도가 되다니…… 그야말로 자네는 그 동안 무공 은 배우지 않고 오로지 그 기술만 늘은 것 같군." 장도는 역시 음침하게 웃으며 말을 받았다. "그야 소방주님께서 그 방면에서는 제일인자가 아니십니까? 소인이야 그저 매일 소방주님을따라다니다 보니 서당개가 풍월을 읊는 격으로 이제 겨우 약간 기술을 배우게 되었을 뿐입니다." 방우량은 장도의 그러한 말이 매우 기분좋은 듯이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나는 오늘은 그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왠지 일지 않는군. 따라서 이번에는 저 주정뱅이에게 한 번 그 짓을 시켜 보려고 하는 것이야." 장도는 다소 놀란 듯이 물었다. "아니, 저 술취한 녀석이 그 짓을 해낼 수가 있을까요?" 방우량은 음탕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자네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군. 세상의 어떤 녀석들은 저렇게 만취(滿 醉)가 되었어도 오히려 그 기능만큼은 더욱 강해져서 미친 것 같이 방사(房 事)를 치르게 된다고 하더군. 물론 그렇지 않더라도 일단 저녀석이 나중에 술이 깨어서 지금의 일을 기억하고 있다고 해도 자신도 그런 짓을 한 것이 니 감히 이 일을 떠벌릴 리가 없지 않겠는가?" 장도는 그 얘기를 듣자 일순 매우 감탄한 듯이 감정을 섞어 가며 대답했다. "아! 역시 소방주님의 현명(賢明)하심은 남다른 것이로군요. 소인(小人)들 은 감히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옆에서 그 말을 듣고 있는 도백세는 지금 방우량이 자신이 여자에게 그와 같은 꼴을 당하고 나서 실로 괴상한 일을 벌이게 하여 기분을 풀려고 하는 것임을 알고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놈은 바로 그 일 때문에 오늘 죽는 것이다!) 도백세로서는 다른 일들은 몰라도 방우량이 지금 시키려는 그 일은 도저히 할 수가 없는 것이었으므로 일단은 이들 모두를 제거해 버리기로 마음을 정 했다. 설령 그와 같은 추잡한 일을 하는 것을 견디어 낸다고 해도 그의 품 속에 지금 들어 있는 칼과 장보도가 드러날 위험이 있는 것이기에 그것은 어쩔 수가 없는 결정이었다. 방우량은 어정쩡하게 서 있는 도백세를 돌아보며 다소 짜증서린 음성으로 재촉했다. "아니, 저 녀석이 어째서 나의 말대로 하지 않지? 장타주, 자네가 어서 빨 리 그 녀석에게 그 짓을 하도록 시켜 봐!" "예, 소방주님!" 장도는 즉시 공손히 대답하고는 도백세의 앞으로 나섰다. 도백세는 그것을 보고 일순 자신의 도법을 전개하기로 결심하고 공력을 전 신으로 두루 유포시키기 시작했다. 헌데 그 순간의 일이었다. "앗! 저기 누가 오는군요!" 최타주의 다소 놀람이 섞인 듯한 음성과 함께 다시 주타주의음성이 뒤를 잇는 것이었다. "그들은 바로 산동봉래파(山東蓬來派)와 동정십팔채의 주요인물들입니다. 낮에 볼 일을 끝내고 찾아오겠다고 말하던 바로 그 사람들입니다!" 도백세는 실로 오랜만에 다시 살인(殺人)을 하려고 생각하고 전신을 긴장시 키고 있었는데, 그 얘기를 듣자 실로 자신이 너무나도 긴장하여 주위에 신 경쓰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경각하고는 급히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 순간에 다소 그의 눈빛이 번쩍 빛났으나 장도 등은 이미 하나같이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었으므로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도백세가 바라보니 아까 자신이 나가려던 그쪽의 골목길로 무려 다시 십여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다가오고 있었으며, 놀랍게도 그들의 대다수는 무공 이 일류급에 달하는 사람들이었고, 게다가 그 가운데의 두 사람은 무예가 절정급에 달하는 사람들로서 신법이 아주 유연해 보였다. 도백세는 그들을 보게 되자 문득 자신이 좀더 일찌감치 단안을 내려서 방우 량 등을 제거해 버리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마음이 일기 시작했다. "아! 모두 알고 보니 저기에 있었군!" 저쪽에서 다가오는 사람들도 이쪽에 있는방우량 등을 발견하고 기쁜지 소 리치며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의 앞에서 다가오고 있는 사람들은 한 명의 음침하게 보이는 도관(道 冠)을 쓴 오십대의 중년인(中年人)과 한 명의 허리에 장검을 차고 있는 칠 십여 세의 검은 도포(道袍)를 입은 노인(老人)이었는데, 바로 그들 가운데 의 절정급의 인물들이었고, 또한 우두머리가 분명했다. 도백세는 물론 그들의 신분에 대해서 훤하게 알고 있었다. 음침하게 보이는 오십대의 중년도사(中年道士)는 바로 산동봉래파의 현임 장문인인 탈혼선인 (奪魂仙人) 나귀(羅貴)라는 사람이었고, 칠십여 세의 흑포노인(黑袍老人)은 동정십팔채(洞庭十八寨)의 오랜 두목인 귀문용왕(貴門龍王) 도태(陶台)라는 사람이었으며, 나머지 십여 명의 일류고수들은 보아하니 하나같이 산동봉래 파의 제자들인 것 같았다. 도백세는 이 두 문파의 장문인들과 제자들이 함께 모여 있는 것을 기이하게 생각했지만 내심으로는 역시 재수에 옴 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윽고 그 십여 명의 사람들이 빠르게 이쪽으로 다가오자 방우량은 마지못 하여 즉시 그쪽으로 다소 나가서 공손하게 인사하며 그들을 맞이했다. "여러분들께서 오셨군요. 소인(小人)은 이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새로 나타난 무리들 가운데 산동봉래파의 이 탈혼선인 나귀라는 사람은 아 주 음침하고 심성이 악독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나타나자마자 주 위를 한 차례 훑어보더니 다소 싸늘한 음성으로 이렇게 대꾸했다. "기다리고 있었다고? 이런 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말인가?" 방우량은 나귀가 이 벌거벗고 사지를 벌리고 있는 여자를 바라보고 있는 것 을 보고는 절로 안색이 붉어져서 감히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것을 보고 귀문용왕 도태가 일순 너털웃음을 흘리며 끼어들었다. "하하, 나장문인! 이 방소제(方少弟)는 보아 하니 이러한 일에 흥미를 가지 고 있는 모양이구려. 원래 이러한 일은 젊은 시절에는 누구나 흥미를 가지 게 되는 것이니 너무 나무라지 마시오." 이어 방우량을 향해 이렇게 말을 잇는 것이었다. "방소제, 사실 우리는 오늘밤에 계획하던 일이 잘 되지 않아서 기분들이 좋 지 않다네. 그러한 나장문인의 심정을 이해해 주고 이제 자네가 우리를 좀 쉴 수 있는 곳으로 안내해 주었으면 좋겠네." 방우량은 이미 이들을 접대해야 하는 일을예상하고 있었는데다가 그가 그 처럼 이해해 주는 것을 보고는 즉시 포권하며 대답했다. "도선배님의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그럼 지금 어서 함께 가시지요." 귀문용왕 도태가 그것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어 다시 여자를 향해 시 선을 던지면서 말을 이었다. "하지만 먼저 저러한 것들을 처리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장도가 옆에서 듣고 있다가 그 말에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나서서 우수 를 휘둘러서 거의 실신지경에 있는 여자의 머리를 향해 휘둘렀다. 순간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여자는 짧은 단말마의 비명소리를 내뱉으며 그 자리에서 머리가 터져서 죽음을 당하는 것이었다. 이미 아랫도리가 만신창이가 된 데 다가 머리까지 그렇게 박살이 나 있으니 그야말로 귀신(鬼神)이 놀라서 달 아날 정도로 참혹한 모양이 되어 있었다. "핫핫, 금응방(金鷹幇)의 응조공(鷹爪功)은 과연 명불허전(名不虛傳)이었 군!" 박살난 여자의 머리에 독수리의 발톱과도 같은 자국이 나 있는 것을 보고 도태가 그처럼 말하자 여자를 처리하여 다소 득의한 표정으로 몸을 일으키 던 장도는 다소 놀라서 다시 장력을 날려서 여자의 머리에 새겨져 있는 그 응조공의 흔적(痕迹)을 완전히 지워 버렸다. 그것을 보고 도태가 다시 말했다. "암 그래야지. 만사(萬事)는 그렇게 완벽(完璧)하게 해 놓아야 비로소 편안 (便安)해지는 법이라네." 장도는 그 말에 즉시 사례하며 말했다. "선배님께서 가르침을 내려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도태는 웃으며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야. 그런 일이야 당연한 일이 아니겠나?" 이윽고 그들 일행이 밖으로 함께 나아가려고 하는 순간에 문득 나귀가 이미 저만큼 비틀거리며 멀어져 가고 있는 도백세를 발견하고는 눈살을 찌푸리며 방우량에게 물었다. "잠깐! 저 사람은 누구인가?" 방우량은 그제서야 도백세가 떠나가는 것을 경각하고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저 지나가는 주정뱅이입니다. 나선배님께서는 신경쓰지 마십시오." 방우량은 자신이 조금 전에 그 술주정뱅이에게 엉뚱한 짓을 시키려고 했었 기 때문에 자세하게 설명하는 것을 회피(回避)하고 그저 얼버무리려고 했 다. 그런데 나귀는 그 말에 왠지 더욱 눈살을 강하게 찌푸리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뭐라고? 신경쓰지 말라고? 그는 결코 평범한 주정뱅이가 아니야. 조금 전 에 나는 그에게서 무형(無形)의 기운(氣運)이 뻗치는 것을 보았는데, 어찌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 일단 나귀의 그러한 말이 떨어진 순간에 장내에 모여 있었던 거의 삼십 명 에 가까운 사람들은 하나같이 경악한 표정들을 지었고, 이내 신형(身形)을 날려서 빠르게 도백세의 주위를 포위하기 시작했다. 도백세는 이에 다소 멈칫하는 듯하더니 이어 여전히 다소 비틀거리는 듯한 태도로 흐릿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무, 무슨…… 일이오?" 그의 음성은 아직도 완벽하게 주정뱅이의 흉내를 내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그가 정말로 무림고수일까 하는 의문이 생길 정도였다. 장도가 약간 주저하다가 즉시 앞으로 나서며 도백세를 향해 소리쳤다. "이…… 미친 놈! 어서 네놈의 정체를 밝혀라!" 말과 동시에 장도는 예의 그 응조공을 발휘하여 우수를 흡사 매의 발가락처 럼 네 손가락을 모으되 엄지손가락만 벌리고 둘째와 셋째 손가락이 손바닥 쪽으로 구부러지게 하여 흔들거리고 있는 도백세의 한쪽 어깨를 향해 후려 쳐 갔다. 이 장도의 손속은 비록 그다지 빠른 기미는 보이지 않았으나 이미 응조공의 정교한 경지에 들어서 있어서 손가락에서는 강한 암경(暗勁)이 뻗어나오고 있었으므로 만일 도백세가 그 일격에 당한다면 결코 다시 연극을 할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기실 이 장도는 상당히 눈치가 빠르고 기민한 사나이여서 매사에 있어서 막 히는 바가 없었고, 그로 인해서 금응방에서 소방주 등의 신임을 두텁게 받 아왔던 터였다. 지금도 그는 그 기지(機智)를 발휘하여 부근에 이미 탈혼선 인 나귀나 귀문용왕 도태와 같은 절정고수(絶頂高手)들이 있다는 것을 믿고 서 설마 어떻게 되랴 하고 한 번 나서 보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로 그렇게 기민한 사나이라고 해도 이번의 판단은 아주 틀린 것이 어서 그것이 바로 그의 운명(運命)을 결정짓는 계기가 될 줄은 자신도 몰랐 던 일이었다. 장도의 응조공이 마악 도백세의 한쪽 어깨에 닿으려는 순간에 문득 가늘게 움직이던 그의 신형이 한 순간 가볍게 정지되는 듯하더니 느닷없이 검푸른 도광(刀光)이 흡사 환상(幻像)처럼 주위를 밝혔다가 사라지더니 장도의 입 속에서 어정쩡한 비명 소리가 흘러나왔다. "어……!" 사람들은 처음에는 이 주정뱅이에게서 그와 같은 놀라운 쾌도술(快刀術)이 나오게 될 줄은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었기 때문에 갑자기 그와 같은 환상 과도 같은 광채가 번쩍이고 나서 장도가 뻗어가던 우수를 뻗어대며 비명을 지르자 이게 웬일인가 하고 의아해 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에 장도의 목줄기가 끊어져서 그의 수급이 쿵! 하고 바닥 으로 굴러떨어지는 것을 보고는 놀라서 눈이 휘둥그래지는 가운데 이미 그 원인을 파악했다. 사람들은 이 주정뱅이에게서 놀라운 무예가 나온다는 것을 알고 경악하여 하나같이 뒤로 물러섰으나 이내 그것을보고 탈혼선인 나귀가 싸늘하게 소 리쳤다. "모두 함께 공격해라!" 산동봉래파의 문인들과 금응방의 인원들은 그 소리를 듣자 이내 정신을 번 쩍 차리고 도백세를 향해 다가들기 시작했으며, 그 가운데의 산동봉래파의 문인들은 이미 자신들이 소유하고 있었던 치명적인 암기(暗器)를 적을 향해 발사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실로 그 순간에 있어서 가장 빠르게 움직이는 사람은 바로 다름이 아니라 도백세였다. 기실 도백세는 이미 상황 판단을 끝낸 뒤였고 자신이 손을 써야 할 것이라는 결심을 굳힌 후였기 때문에 일단 장도가 나서서 손 을 쓰기 시작한 이후에는 이내 거푸 손을 쓰기 시작하고 있었다. 쑤왕! 어느 틈엔가 도백세의 흔들거리던 신형이 마치 유령(幽靈)과도 같이 빠르게 움직이며 품속에서 한 자루의 칼을 발출하여 사람들을 향해 휘두르기 시작 하고 있었다. 도백세의 신형은 이미 사람들의 속으로 파고들어서 산동봉래 파의 제자들은 자신들의 동료가 다칠 것을 우려하여 차마 손을 쓸 수가 없 었다. "아아악!" 아니 도백세의 신형이 너무나도 표홀하게 움직이는 바람에 도저히 그의 모 습을 포착하기가 어렵다는 표현이 옳을 것이었다. 거의 단숨에 서너 명의 수급이 허공으로 날려가고 단말마의 비명 소리와 함 께 주위에 시뻘건 피가 흩뿌려지자 사람들은 실로 크게 당황해했다. 이 도백세의 모습은 마치 작은 이리떼들 속에 파고든 거대한 한 마리의 호 랑이와도 같아서 그야말로 거침없이 살수(殺手)를 전개하고 있었고 아예 상 대가 되지 않는 것 같았다. 뒤를 이어 어느새 빠르게 십여 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게 되자 장내는 일 시 피로 가득하게 얼룩지는 것 같았고, 그것을 본 탈혼선인 나귀가 도태와 함께 빠르게 전면으로 다가들었다. 그들은 비록 설마하니 도백세(陶百歲)의 무공이 이러한 경지에 있는 것인지는 미처 몰랐었으므로 한 순간에 크게 경 악했으나, 이미 오랫동안 강호상에서 산전수전(山戰水戰)을 다 겪은 백전노 장들이라고 할 수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비록 이 도백세의 무공이 가공스러 울 정도인 것이라고 해도 자신들과 제자들이 한꺼번에 합공을 펼치게 되면 승산이 없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는 즉각적으로 마음을 모아서 공격을 개시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 탈혼선인 나귀의 무공은 바로 이름 그대로 탈혼마우(奪魂魔牛)라는 암기 (暗器)를 사용하는 것이었고, 도태(圖台)의 무공은 괴이(怪異)하고 사악한 냄새를 풍기는 검법이었다. 나귀의 탈혼마우는 즉각적으로 자신들의 수하들을 돌보지 않고 도백세를 향 해 날아갔는데, 도백세는 이내 그 암기가 위력적이라는 것을 파악하고는 사 람들을 향해 휘둘러가던 칼을 움직여서 자신의 앞을 방어하기 시작했다. 그 탈혼마우라는 가느다란 암기는 비록 머리카락보다도 가느다란 것이었지만 이미 경력(勁力)이 실려 있는 것이었으므로 도백세의 칼과 부딪치자 이내 쩡쩡! 하는 소리를 냈다. 도태의 장검이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빠르게 도백세의 옆구리를 향해 뿌연 안개와도 같은 검기(劍氣)를 발출시키며 찔러갔는데, 그것은 이른 바 거의 형체가 보이지 않으나 상대의 신체에 능히 치명적인 결과를 일으킬 수가 있 는 사살검기(死殺劍氣)라는 것이었다. 이 귀문용왕 도태는 이 한 가지의 검법으로 지난 수십 년 동안 동정십팔채 (洞庭十八寨)라는 수적(水賊)들의 두목 역할을 해왔으니 그의 그 검술의 경 지는 이미 숙련되고도 남음이 있는 것이었다. 도백세는 이에 즉시 도법을 더욱 빠르게운용하여 암기와 검기를 상대하게 되었으나, 뒤를 이어 다른 사람들도 정신을 수습하여 좌우와 후미에서 각기 암기와 장력(掌力)으로 공격해 오는 것을 보고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만일 이들이 그저 병기를 가지고 사용하는 무리들이라면 능히 모두 해치울 수가 있을 것이었지만, 그러나 이른 바 쾌도술의 천적(天敵)이라고 할 수가 있는 실처럼 가느다란 암기를 사용하고 있는 무리들이었기 때문에 도백세는 자신의 몸을 희생시키지 않는 한은 이들을 제거할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았 다. 특히 그에게 있어서 탈혼선인 나귀의 탈혼마우는 그야말로 두려운 것이 아 닐 수가 없었다. 그것은 거의 소리도 없이 날아올 뿐만 아니라 한꺼번에 수 십 혹은 수백 개나 날릴 수가 있어서 도백세의 행동을 차단하고 도무지 움 직일 수가 앖게 하는 것이었다. 도백세는 이미 그 탈혼마우들 가운데의 하나만 맞아도 능히 치명적이 된다 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감히 모험을 할 수가 없었다. 따라서 도백세는 일 단 이 자리를 피하고 나서 좋은 상황을 만들기 위해 신형을 움직여서 뒤로 빠르게 나아갔다. 나귀의 탈혼마우는 여전히 무선운 기세(氣勢)로서 발출되고 있었지만, 이미 전신이 하나의 둥그런 도광(刀光)처럼 화하여 뒤로 미끄러지듯이 멀어져가 고 있는 도백세의 신형은 실로 믿기지 않을 만큼 경이적인 것이었다. 나귀와 도태 등은 감히 그 뒤를 따라 추격(追擊)할 수가 없어서 가만히 서 있었지만, 이미 그들 가운데의 절반 이상이 목숨을 잃고 피바다 속에 누워 있는 상태였다. 이윽고 도백세의 신형이 골목길로 빠르게 사라져 버리자 멍하니 서서 바라 보고 있던 방우량은 문득 넋을 잃고 중얼거렸다. "빌어먹을! 저놈이 저런 놈이었을 줄이야!" 다른 사람들이 제자들의 시신(屍身)들을 수습하는 것을 바라보며 자색의 독 수리 문양이 새겨져 있는 최타주(崔舵主)라는 사람이 방우량을 향해 말했 다. "소방주님, 저놈이 다시 나타날지 알 수가 없으니 경거망동을 하시면 안됩 니다." 방우량은 다소 눈살을 찌푸리며 슬쩍 나귀와 도태의 안색을 살핀 연후에 입 을 열어 대꾸했다. "그건 나도 알고 있소." 이때 도태가 안색이 검게 변한 얼굴로 나귀를 향해 입을 열어 말했다. "대체 놈은 누구일까? 실로 그처럼 놀라운 쾌도술을 가지고 있는 자라면 필 시 이름이 있었을 것인데? 빌어먹을! 나는 오늘 두 번째나 실패를 경험하는 군." 나귀가 냉랭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이오. 그 화검운(花劍雲)이라는 녀석에게서 당한 이 후에 나의 이 탈혼마우가 듣지 않으니 그야말로 유명무실(有名無實)한 것이 로군." 도태도 쓰게 웃으며 대꾸했다. "오늘 그 화검운이라는 작자를 죽이지 못한 것은 원래 그 자의 무공이 상상 외로 뛰어났었기 때문이니 이상할 것이 없겠지만, 그러나 느닷없이 방금 전 과 같은 그런 자를 만나게 된 것은 아무래도 이상한 점이 있소. 우리는 이 일을 빨리 윗사람들에게 보고하는 것이 좋지 않겠소이까?" 나귀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럽시다." 이어 남은 십여 명의 일행들은 서서히 방향을 잡아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 다. --도백세. 그는 사실 일단 장소를 피한 다음에 다시 움직여서 나귀 등을 모 조리 제거해 버릴 생각을 가지고 있었었다. 그러나 막상 그 장소를 떠나게 되자 그의 생각은 약간 달라졌다. 생각해 보니 그들 나귀 등의 무리는 상당 히 교활하여 쉽게 흩어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어 어렵게 그들을 죽인다 고 해도 여전히 어떤 문제가 따를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이제는 그저 빨리 이 부근을 벗어나는 것이 상책(上策)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따라서 도백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거의 본격적으로 신법을 펼쳐서 빠르게 골목길을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야말로 호사다마(好事多魔)라는 것일까? 불과 그가 얼마 나아가지 않았을 때 느닷없이 어두운 골목길의 안에 한 사람이 이미 싸늘한 신색(身 色)을 하고 그를 막아서고 있는 것이었다. -- 계속 -- #5761 양한우 (hanwoo71) [백상] 종남사부 제4권 제26장 03/31 14:49 285 line 올 린 이 : 양한우 HITEL ID : hanwoo71 제26장. 최대절기(最大絶技) 음산귀서생 도옥. 바로 그였다. 도백세는 느닷없이 골목길의 중앙에 서서 자신의 앞을 막아서고 있는 도옥 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이윽고 신형을 완전히 멈춰서고는 입을 열어 말했다. "무슨 일이오?" 그때 도옥이 미처 입을 열기도 전에 도옥의 뒤편 골목길이 좌측으로 꺾여져 있는 지점에서 한 사람이 이쪽을 향해 고개를 내밀더니 입을 열어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쾌도번천(快刀蒜天) 도백세(陶百歲)! 당신이 설마하니 나를 보고도 무슨 일이냐고 묻지는 않겠지?" (……!) 바로 다름이 아니라 지금 나타난 그 사람은 삼두교(三頭蛟) 갈통(葛通)이었 다. 거의 불사신(不死身)이나 다름이 없을 정도의 회생력(回生力)을 십분 발휘 해낸 이 갈통이 나타나서 그와 같이 말하자 도백세는 그만 놀라지 않을 수 가 없었고, 마치 취한 것처럼 희미하게 뜨고 있었던 두 눈마저 크게 떠서 강렬한 안광(眼光)을 발출시켰다. "빌어먹을! 네가 살아 있었군!" 갈통은 도백세가 드디어 마각(魔角)을 드러내는 것을 보고는 득의하게 웃으 며 음침한 음성으로 대꾸했다. "그렇다. 흐흐흐, 네놈은 이 일이 전혀 뜻밖이겠지?" 갈통의 육신은 아직 피에 젖은 모습이었으나 비교적 운신(運身)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을 정도로 회복되어 있었다. (……) 도백세는 잠시 무엇인가 깊이 생각하는 듯하더니 이어 갈통에게서 시선을 돌려서 눈앞의 도옥을 향해 입을 열어 말했다. "당신이 원하는 것은 물론 장보도(藏寶圖)이겠지?" 도옥은 은근히 그의 쾌도술(快刀術)을 의식하는 듯이 슬쩍 그의 가슴 부위 를 바라보며 입을 열어 대꾸했다. "물론! 하지만 이제는 당신의 목숨도 바쳐야 할 것이다." 도백세는 그 말에 문득 싸늘하게 대꾸했다. "뭣이? 과연 당신의 능력으로 그것이 가능할 것인가?" 도옥은 다시 한 번 그의 가슴 속에 숨겨져 있을 칼을 의식하여 곁눈질을 하 며 음산한 어조로 대꾸했다. "당신은 아마도 계속해서 술집주인의 행세를 하며 마각을 드러내지 말았어 야 했을 것이다. 만일 그랬었다면 당신은 좀더 오래 살게 되었을 것인 데…… 나는 사실 나와 동성(同姓)인 당신이 나의 손에 의해 허무(虛無)하 게 죽어가게 되는 것을 바라지는 않소." 도백세는 도옥의 말에 두 눈에서 전광(電光)과도같은 안광을 발출시키면서 바라보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혼자서 중얼거리듯이 입을 열어 말했다. "마각을 드러내지 않았었다면 좀더 오래 살게 되었을 것이라고? 하지만 너 희들이 그간의 나의 고충을 알기나 하느냐? 당시 십년 전에 나와 비슷하게 명성을 날리던 사람들은 대부분이 모두가 실종(失踪)되었다. 나는 따라서 일단은 몸을 숨기고 사태의 추이를 검토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빌어먹을! 그렇게 시작되었던 것이 설마하니 이렇게 십년간이나 그와 같은 술집 주인 의 노릇을 하게 될 줄은 미처 몰랐던 일이었지. 나는 차라리 이 장보도의 무학(武學)을 배우게 되면 그와 같은 공포감(恐怖感)에서 벗어날 수가 있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너는 아느냐? 그와 같은 십년간의 생활은 차 라리 죽는 것보다도 못한 것이었다." 도옥은 그 말을 듣고 나더니 다시 음침하게 입을 열어 말했다. "나는 물론 너의 그와 같은 고충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다만 네 가 나의 손에 의해 끝장을 보게 된 것을 아쉽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도백세는 그 말에 냉랭한 시선으로 도옥의 얼굴을 직시(直視)했다. "너는 정말로 그와같은 일을 자신하느냐?" 도옥은 수중에 들고 있던 백골선(白骨扇)을 가볍게 부치면서 아무렇지도 않 다는 듯이 대답했다. "물론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나서지도 않았었을 것이다." 도백세는 잠시 상대의 얼굴을 노려보는 듯하다가 이윽고 차가운 어조로 다 시 말했다. "나는 시간이 없으므로 보다 빨리 손을 쓰도록 하겠다." 도옥은 그의 가슴 속을 다시 응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대로." 도백세는 다시 말했다. "그럼 이것이 시작이다!" 말과 동시에 정말로 도백세는 앞으로 유령처럼 다가들면서 품속에 안고 있 었던 칼집에서 칼을 발출함과 동시에 도옥의 면전을 향해 내뻗었는데, 이미 도옥은 그것을 기다리고 있었으므로 그와 거의 동시에 신형을 뒤로 약간 후 퇴하며 백골선을 접어든 채로 전면에 마치 안개와도 같은 두터운 막을 형성 하였다. 상대인 도백세의 무공은 빠른 것을 특기로 하는 쾌도술이었기 때문에 일단 은 그의 첫 번째 공격을 무산(霧散)시킨 다음에 반격의 기회를 노리겠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과연 도옥의 전면에는 실로 금석만큼이나 단단한 백골선에 의해서 형성된 두터운 막(幕)과도 같은 것이 이루어져서 설사 바늘 하나도 통과할 수가 없 을 것 같았다. 도옥의 이 구유십삼식(九幽十三式)은 실로 유연한 가운데 변화막측한 살기 (殺氣)가 내포된 것으로서, 게다가 지금 그가 펼친 초식은 무서운 반격의 초식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었으므로 일단 도백세의 공세가 그 막에 가로막 혀 무산된 다음에는 반드시 도옥의 반격이 주효하게 되어 있었다. 왜냐하면 이 쾌도술이라고 하는 것은 거의 쾌속한 것을 위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변화가 단순하고, 일단 첫 번째의 발도(拔刀)가 끝난 다음에는 재차 쾌도술 을 전개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시간이 걸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 쾌 도술이라고 하는 것은 단순한 변화에 의해서 그 속도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기(氣)와 의식(意識)이 하나로 합쳐져야 비로소 그 속도가 나오게 되는 것 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실로 이 순간에는 도옥이 약간의 착오를 범한 것이었다. 도백세의 칼날이 마악 도옥의 백골선의 막에 차단당해서 그 두 개의 병기(兵器)가 서 로 부딪치는 순간에 어이없게도 우두둑! 하는 소리와 함께 도옥의 철골(鐵 骨)과도 같이 단단했던 백골선이 여지없이 부러져 나가며 도백세의 칼날에 서 일순 무서운 도기(刀氣)가 일직선으로 도옥의 가슴을 향해 폭사되는 것 이 아닌가! (……!) 도옥은 그 순간에 실로 정신이 아득한 느낌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는 이 도백세의 쾌도술이 이미 신화경(神化境)에 이르러서 그 도기가 무엇이라 도 파괴할 수가 있는 신기(神技)의 경지에 도달해 있었을 줄은 미처 생각지 도 못했던 것이었다. 사실 도옥은 이미 십년 전에 이름을 날리고 있었던 이 도백세의 무공이 대 단하리라고는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러나 그의 무공이 지난 십년 동안 술집 주인으로 은둔하고 있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수련을 거듭하여 과거보다 더욱 진보한 상태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도백세의 이 무서운 도기는 실로 미처 칼날이 와 닿기 전에 능히 도옥의 가 슴을 깊숙히 쪼개 놓을 수가 있을 것 같았다. 순간 도옥의 두 눈에서 당혹하고도 급박한 빛이 떠오르며 그의 신형이 마치 환상(幻像)처럼 흔들리며 기이하게 빠른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도백세 의 칼날은 그야말로 찰나지간에 이미 그의 가슴 부위에 다가갔는데, 그 순 간에 도옥의 신형은 어느새 환상처럼 흔들리며 좌측으로 한 자나 물러가 있 는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음산백골문의 가장 심오한 무공의 하나인 유령보(幽靈步)라는 것이었는데, 도백세의 두 눈에도 그것을 보며 다소 놀란 빛이 떠올랐다. 도백세의 도기는 미처 칼날이 닿기도 전에 도옥의 한쪽 팔이 있는 부위를 가격했으며, 그 자리에서 흡사 쇠붙이가 서로 맞부딪치는 듯한 칙칙! 하는 소리가 울려나왔다. 도백세는 여기에서 다시 한 번 놀라워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도옥의 한쪽 팔이 갑자기 그와 같이 단단해진 것은 바로 이른 바 음산백골문의 진산절예 (鎭山絶藝)라는 백골마공(白骨魔功)이라는 것으로서, 백골선도 파괴할 수가 있었던 그 신기(神技)와도 같은 도기가 그 팔에 닿자 그저 겉으로 가느다란 혈선(血線)만을 그으며 옆으로 미끄러져서 오직 살갗에만 상처를 입히고 있 었던 것이었다. 그것은 도기가 아니라 진짜 칼날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칼날이 그의 팔 에 닿았을 때는 이미 도옥의 팔은 절반 이상이나 밖으로 미끄러져 있었으 며, 따라서 칼날은 그저 그의 살갗을 가볍게 긋고는 옆으로 스쳐 지나가고 말았던 것이었다. 실로 여기까지의 설명은 길었으나 실제의 시간은 아주 짧은 것이어서 눈 한 번 깜짝이는 시간보다도 훨씬 짧은 것이었다. 도백세의 그 놀라운 쾌도술에 이은 신화경에 도달한 도기(刀氣)의 위력도 놀라운 것이었지만, 그에 맞서는 도옥의 그러한 임기응변 역시 대단한 것이 아닐 수가 없었다. 도백세가 자신의 일도(一刀)가 빗나가자 다소 주춤하는 순간에 도옥의 신형 이 옆으로 돌아가던 탄력을 받아서 환상(幻像)처럼 회전하며 도백세의 허리 를 향해 부러진 백골선으로 후려쳐 왔다. 도백세는 이 순간에 미처 이에 대응할 수가 없었으며, 급급히 그 공격을 막 는다면 선기를 제압당하게 되어서 앞으로 아까와 같은 그 놀라운 쾌도술은 펼치기가 곤란할 것이었다. 하지만 도백세는 자신의 허리가 상대에게 격중되는 것은 상관하지 않고 칼 을 방향을 돌려서 여전히 비스듬하게 도옥의 가슴 부위로 베어 가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이 일도(一刀)는 아주 특이한 것이었다. 상식대로라면 일단은 도옥 의 출수(出手)가 빨랐기 때문에 일단 그의 부채가 상대의 허리를 가격한 이 후에 도백세의 칼날이 도옥의 가슴에 도달할 것이며, 도옥은 그런 상태라면 도백세의 진기(眞氣)가 끊어져 있을 것이므로 자신의 백골마공에는 아무런 영향을 줄 수가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처음에는 다소 느린 듯하던 도백세의 칼날이 어느 한 순간에 희미하 게 사라지는 듯하더니 느닷없이 도옥의 가슴 부위에서 불쑥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마치 이 기이한 칼이 한 순간에 공간을 초월하여 도옥의 앞 에 도달한 것과 같은 놀라운 면모를 보여 주었다. 실상 이 기이한 쾌도술은 도백세가 그간 십년 동안에 두문불출하고 연마한 쾌도술의 정화(精華)로서 가공스러운 속도가 깃들어 있는 것이었다. 도백세는 상대의 임기응변이 놀라운 것을 보고는 시간이 없다는 것을 의식 하여 두 번째의 공격에는 자신의 최대절기(最大絶技)를 구사하였던 것이었 다. 도옥은 그렇지 않아도 한 번 당하여 마음을 졸이고 있는 상태였는데, 느닷 없이 그와 같은 놀라운 광경을 보고는 그만 혼비백산했다. 아까는 그래도 어느 정도 상대의 공격에 대해서 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피할 수가 있 었지만, 지금은 상대이 공격을 무시하고 자신도 공격하고 있던 상황에서 그 와 같이 놀라운 광경을 당하게 된 것이었으므로 도저히 그것을 피할 엄두조 차 나지 않았다. 도옥은 이에 그만 도백세를 후려쳐 가던 손길마저 늦춰 버 리고 아연실색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에 다시 놀라운 반전(反轉)이 일어났다. 마악 금방이라 도 도옥의 가슴을 꿰뚫을 듯하던 도백세의 칼날이 느닷없이 그의 가슴에 도 달한 상태로 맥없이 손길을 멈추는 것이 아닌가! 어느새 그 미간의 중앙에 는 언제 생겨났는지 한 점이 선혈이 피어올라서 야릇한 느낌을 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쨍그랑! 도백세의 칼이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는 것을 보고 이어 그의 신형도 아득하게 뒤집혀진 시선(視線)과 함께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쳐지는 것을 보 고는 도옥은 나직한 탄성과 함께 입을 열어 말했다. "수라일점혈(修羅一點血)! 정말로 놀라운 무공이로군요!" 지금 그의 앞에는 느닷없이 한 사람이 흡사 땅 속에서 솟아나온 것처럼 서 있었는데, 그는 다름이 아니라 바로 그 수라존자(修羅尊子)였다. 기실 수라존자는 이 부근에서 있다가 도옥이 위기를 당하게 되자 자신의 무 공 가운데의 하나인 수라일점혈이라는 지력(指力)을 발출하여 도백세를 죽 이고 도옥의 목숨을 구해주었던 것이었다. 수라일점혈이라고 하는 이 지력 은 역시 수라문의 절기(絶技) 가운데의 하나로서 그 파괴력과 정확성 등은 이미 정평이 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실로 그러한 수라일점혈이라고 해도 그러첨 빠른 속도로 전혀 기척 을 내지 않고 도백세와 같은 사람을 숙식간에 죽여 버릴 수가 있다고 하는 것은 기문(奇聞)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수라존자는 도옥이 자신을 향해 예를 갖추며 찬사를 늘어놓는 것을 보며 대 단치 않다는 듯이 다소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어서 장보도를 취하기나 하게." 도옥은 상대방의 하대에도 불구하고 전혀 싫은 기색을 드러내지 않고 웃으 며 금새 허리를 굽혀서 이미 시신이 되어 버린 도백세의 품속을 뒤져서 예 의 그 장보도 두루마리를 꺼내서 자신은 보지 않고 직접 눈앞의 수라존자에 게 건네주었다. 수라존자는 마치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듯이 장보도를 집어들고는 펼쳐 서 유심히 그 안에 그려져 있는 도면(圖面)을 살펴보았는데, 그 순간에 수 라존자의 안광이 왠지 시뻘겋게 충혈되는 듯하더니 소리치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이 장보도는 가짜다!" 도옥을 비롯하여 한쪽에 서 있던 갈통 역시 그와 같은 광경을 바라보고는 크게 놀라서 안색이 대변했다. 만약 그것이 가짜라면 이 일은 어딘가 크게 잘못된 일일 것이겠기 때문이었다. 그야말로 간신히 입수한 장보도가 수라존자의 수중에서 구겨진 채로 한 순 간에 재로 화해서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며 도옥이 다소 놀란 음성으로 이렇 게 말했다. "그럼 인검(人劍) 진소유(秦少游)에게 그것이 있는 것이 아닐까요?" (……) 수라존자는 잠자코 생각에 잠기는 듯하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어 대 꾸했다. "좋다! 그럼 우리는 그곳으로 가보도록 하자!" 그렇다면 청해파의 사람들 가운데 청해삼검의 막내인 인검(人劍) 진소유(秦 少游)는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해 본다면 이 인검 진소유에게는 비교적 달아날 수가 있는 시간이 많이 제공되었을 듯했지만, 기실은 그는 자신의 두 명의 사형들보다 더욱 난처한 상황에 처해 있는 상태였다. 그는 다소 복잡하지 않은 지역으로 달아나게 되었는데, 막상 그가 대로를 향해 나아가려고 하는 순간에 어느새 그의 앞 으로는 수십 명의 사람들이 막아서고 있었던 것이었다. 실상 그 사람들은 성숙파나 무산방 등과는 달리 강호상에서 정사 중간(正邪 中間)의 성격을 띠고 있거나, 혹은 독자적인 노선을 채택하고 있는 방파의 사람들이었는데, 그들은 주위에 숨어서 사태를 주시하고 있다가 일단 심한 추격을 받지 않고 있는 진소유의 앞을 막아서게 되었던 것이었다. 진소유는 느닷없이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히게 되자 자연히 아득한 심정이 되었지만, 만일 자신이 이렇게 계속해서 자리를 지키게 되면 다른 두 사형 과 사부에게 어떤 간접적인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고는 그 무리들 과 싸우지 않고 대치했다. 그가 사람들과 싸우지 않고대치하는 방법은 실로 간단한 것이었다. 사부인 청해검학이 그에게 건네준 양피지 두루마리를 둘둘 말아서 안의 내용이 보 이지 않도록 하고 그것을 앞으로 내보인 다음에 누구라도 달려든다면 없애 버리겠다고 공언하니 누구도 감히 그를 향해 달려드는 사람이 없었다. 사람들은 그를 달아나지 못하도록 둥글게 포위하고 있었으며 그런 가운데 아주 지루한 시간들이 흘러갔다. 진소유는 이미 사부와 사형들이 죽음을 당한 것을 모르고 오직 그들이 달아 났을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이제 자신도 이곳을 벗어날 생각을 굴리기 시작 했다. 그때 그를 둘러싸고 있는 군웅들 가운데에서 한 사람이 나서며 입을 열어 큰소리로 이렇게 외쳤다. "진소유! 네가 아무리 그렇게 고집을 부린다고 해도 결국 그 장보도는 청해 파에 넘어가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순순히 우리들에게 그것을 내 놓는 것이 어떻겠느냐? 네가 그것을 넘긴다면 너의 목숨만은 누구도 건드리 지 않을 것이다." 진소유는 이미 그렇지 않아도 결단의 시기를 노리고 있다가 그와 같은 말을 듣고는 냉소하며 차갑게 대꾸했다. "천래검(天來劍) 가곤(嘉坤)! 당신의 그 복우파(伏牛派)의 세력이 비록 막 강하다고 해도 본인은 결코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설마하니 우리 청해 파에서 얻지 못하는 것을 당신네 복우파에서 얻을 수가 있다는 말인가?" 천래검 가곤이라는 복우파의 장문인(掌門人)은 그 말에 다소 무안한지 수중 의 장검을 좌우로 휘두른 채 뒤로 약간 물러섰다. 그러자 이번에는 우측에서 흡사 황소와 같이 우람하고 거칠게 생긴 대한(大 漢) 하나가 눈알을 부라리며 나서서 소리쳤다. "보나마나 너희 청해파의 사람들은 모조리 지옥으로 간 것이 분명하다. 지 금 이러한 상황에서도 그 장보도를 내놓지 않겠다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손을 쓰게 될 것이다!" 진소유는 먼저 자신의 손에 들려 있는 피묻은 장검을 가볍게 응시한 뒤에 그 대한을 향해 시선을 던지며 다시 대꾸했다. "장백일살(長白一煞) 마우(馬友)! 만약 내가 이것을 너에게 건네준다면 네 가 감히 이것을 지킬 능력이라도 있다는 말이냐? 너희 장백파(長白派)의 힘 으로는 되지 않을 것이니 일찌감치 물러서는 것이 어떠냐?" 장백파의 장문인인 장백일살 마우라고 불리운 그 대한은 그와 같은 소리를 듣고 나자 매우 발끈하여 앞으로 나서려고 했으나 문득 그의 주위에 있던 수하 하나가 소맷자락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잠깐 기다리십시오. 우리가 먼저 손을 쓰게 되면 손해입니다." 장백일살 마우는 그 소리를 듣고 나서 이내 수긍을 했는지 잠시 머뭇거리다 가 고개를 끄덕이며 뒤로 물러나 버렸다. 그때 문득 장내에서 한 줄기의 아주 맑아 보이는 음성이 흘러나와 주위에 둘러서 있는 사람들의 귀를 간지럽혔다. "이것 좀 봐요! 아무래도 여기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 누구도 그 장보도를 취할 능력이 없을 것 같으니, 그렇다면 우리가 함께 연합하여 장보도를 공 개하고 그 지도를 따라서 보물을 찾으러 가는 것이 어떻겠어요?" 느닷없이 터져나온 맑은 음성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시선은 자연히 그쪽으 로 향하게 되었는데, 그 사람은 바로 한 명의 나이 어린 소녀(少女)였다. 지금은 한밤중임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입고 있는 옷은 아주 깨끗해 보이는 백의(白衣)였기 때문에 유난히 그녀의 다소 창백해 보이는 아름다운 얼굴이 훤하게 드러나 보였다. 나이는 열아홉 정도였고, 등에 한 자루의 장검을 매 고 있는 것을 보니 역시 그녀도 강호의 사람인 것 같았다. 진소유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무산신녀문(巫山神女門)의 소문주(少門主)이신 병미인(病美人) 이문수(李 文秀) 소저! 지금과 같은 장소에서 소저를 보게 되니 그다지 좋은 일은 아 니군요. 하지만 소저가 말한 내용에 대해서 생각해 보니 나로서는 반대할 이유가 없는 것 같소." 진소유의 생각으로는 자신이 보기에도 자신이 들고 있는 두루마리가 장보도 는 아닌 것 같았기 때문에 일단은 그와 같이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어차피 소용이 없는 물건이라면 그렇게 순순히 내주는 것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에 서였다. 이 순간에 장내에서는 진소유의 말을 듣고 한 차례의 미미한 소동이 일어났 다. 만일 진소유가 장보도를 내놓아서 사람들이 공동으로 그것을 대할 수가 있게 된다면 상상하지 못했던 결과가 나타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 계속 -- #5762 양한우 (hanwoo71) [백상] 종남사부 제4권 제27장 03/31 14:49 306 line 올 린 이 : 양한우 HITEL ID : hanwoo71 제27장. 염세주의자(厭世主義者) 바로 그때 장내에서 한 사람의 음침한 음성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먼저 그 장보도의 진위(眞僞) 여부를 가려야 할 것이 다. 그리고 설령 그것이 진짜 장보도라고 해도 우리 모두가 그 보물을 얻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 말한 사람은 키가 유난히도 크고 안색이 험상궂으며 양팔이 길게 늘어져 있는 용모를 가지고 있었는데, 일순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다시 그 무산신녀문의 소문주 병미인(病美人) 이문수(李文秀)라는 백의소녀의 등뒤 에서 한 차례의 싸늘한 코웃음과 함께 마치 까마귀가 울부짖는 듯한 노파의 음성이 터져 나왔다. "혼원벽력수(混元霹靂手) 상경지(常敬之)! 흥! 네놈의 혼원보(混元堡)가 이 곳 장안성에서 제법 세력을 떨치고 있다고 해도 감히 본문의 소문주께서 하 시려는 일에 감히 반대할 수가 있단 말이냐? 네놈은 근래에 그 금응방(金鷹 幇)과 함께 흑풍사(黑風社)의 주구가 되었다고 하던데, 그것을 믿고 떠들고 있는 것이라는 말이냐?" 그 키가 크고 안색이 험상궂으며 양팔이 길게 늘어져 있는 칠십여 세의 노 인은 바로 다름이 아니라 당금 장안성 내에서 세력을 떨치고 있는 다섯 개 의 강호 세력들 가운데의 하나인 혼원보의 보주인 혼원벽력수 상경지였다. 방금 전에 병미인 이문수의 뒤에서 그와 같이 까마귀가 울부짖는 듯한 음성 으로 소리친 사람은 바로 병미인 이문수의 뒤에 서 있는 흑백(黑白)의 두 노파(老婆)들 가운데 흑의노파(黑衣老婆)였는데, 혼원벽력수 상경지는 일순 그 소리를 듣고 나자 안색을 다소 붉히더니 그 흑의노파를 향해 시선을 던 지며 다시 입을 열어 말했다. "흑파파(黑婆婆)! 당신네들 흑백이파파가 무공이 이미 절정(絶頂)의 경지에 올라 있고, 또한 당신네들이 소속되어 있는 무산신녀문의 명성이 가히 구파 일방(九派一幇)에 견줄 만하다고 해도 너무 그렇게 뻐기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오. 사람들은 원래 대세(大勢)를 따르게 되어 있는 것인데, 나중에 음 지(陰地)가 양지(陽地)로 변하게 될지 누가 알겠소?" 무산신녀문의 흑백이파파(黑白二婆婆) 가운데의 흑파파라고 불리운 그 흑의 노파는 옆에 함께 자리하고 있는 뚱뚱하고 키가 작은 백의노파(白衣老婆)와 는 달리 다소 키가 크고 깡말랐으며, 수중에는 하나의 괴장(怪杖)을 짚고 있었는데, 혼원벽력수 상경지의 말이 끝나자마자 두 눈에서 섬뜩한 안광을 발출시키더니 곧장 달려들지는 않고 입을 열어 말했다. "흥! 네놈이 결국에는 흑풍사 놈들을 믿고 그러는 모양인데, 사불승정(邪不 勝正)이라는 말을 모르느냐? 장차 뜨거운 맛을 보고 후회하게 될 것이다!" 혼원벽력수 상경지는 비록 다소 못마땅한 점이 없지 않았으나 그 흑파파 등 을 상대하기가 곤란한 모양인지 이내 잠자코 입을 다물며 대꾸하지 않았다. 그것을 보고 장내에서 다시 한 사람이 나서서 소리치며 말했다. "어차피 우리는 힘이 강하지 못하여 당금의 현실에서 강한 발언(發言)을 할 수가 없는 처지이니 우선 이 소저(李小姐)의 말대로 하기로 하고 일단은 그 장보도를 모두가 확인하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소?" 그 사람은 남방의 특색있는 복장을 하고 있는 육십대의 노인이었는데, 아마 도 이문수의 제안에는 흥미가 없고 오직 장보도의 진위 여부에 더욱 관심이 있는 것 같았다. 기실 이들 장내에 모여든 사람들은 아까의 그 살벌했던 혈전(血戰)의 광경 을 다 보았었으므로 수라존자 등이 뒤를 쫓지 않은 이 진소유에게 진짜 장 보도가 있으리라는 생각은 거의 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었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그들은 결코 이렇게 무덤덤하게 서로의 자리를 지키며 점잔만 빼 고 있지는 않았었을 것이었다. 다만 그들은 만에 하나 이 진소유에게 장보 도가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에 미련을 떨치지 못하고 그저 그를 포위 하고 있는 상태였던 것이었다. 실제로 그 남방 복색의 노인의 말은 이곳에 있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진소유는 내심 그러한 것을 파악하고는 다소 씁쓸한 웃음을 흘리면서 생각 한 후에 말했다. "사해용왕(四海龍王) 주무(朱武), 주방주(朱幇主)! 당신네 사해방(四海幇) 이 비록 바다에서 세력을 떨치고 있다고 하지만, 나는 과히 두려워하지 않 소. 이 장보도는 지금 나의 손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당신들이 아무리 논의 를 한다고 해도 내가 하지 않겠다고 하면 그만인 것이오. 그러나 나는 이미 결정을 하였으니 여러분들 가운데 책임자들이 몇 명 모여서 이쪽으로 와 주 었으면 좋겠소. 이것은 원래 나의 것이었으니 우선 누구에게 줄 수도 없는 일이 아니겠소?" 그러자 장내에서 다시 한 사람이 나서서 말했다. "진소유! 당신은 지금 흑풍사로부터 쫓기는 입장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계속 해서 그것을 가지고 있는다는 것은 어울리지 않소. 저기에 계시는 이문수 이 소저는 원래 무산신녀문의 소문주로서 비록 무공은 그다지 높은 것은 아 니지만 명문정파를 대표할 수 있는 신분의 사람이기 때문에 당신은 그 장보 도를 그녀에게 맡기는 것이 어떻겠소?" 진소유가 고개를 그쪽으로 돌려보니 그는 나이가 지긋하고 얼굴은 평범해 보이는 노검객(老劍客)이었다. 진소유는 그를 향해 대꾸하여 말했다. "육지검(六指劍) 담조령(譚照靈)! 당신네 왕옥파(王屋派)의 사람들이 비록 좋은 일들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지금의 상황에 서 나를 너무나도 업신여기고 있는 것이구려. 나는 원래 이 장보도의 주인 이었으니 당연히 우리들이 연합을 하는 데 있어서도 주도권을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니겠소? 흐흐…… 그러나 나는 기왕에 이 장보도를 내놓기로 작정을 하였으니, 좋소! 내 이것을 저기에 있는 무산신녀문의 이 소저에게 건네주 도록 하겠소. 자, 여기에 이의(異意)가 있는 분은 안 계시오?" 이 장보도의 쟁탈전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장내의 상황은 이렇게 되어 가면 서 점차로 기이(奇異)한 정경을 이루어 가고 있었다. 이에 조금 전에 말을 꺼냈었던 그 혼원벽력수 상경지가 다시 입을 열어 말 했다. "그 무산신녀문의 이 소저가 비록 그 문파를 대표할 수가 있다고는 하지만, 그러나 우선은 그 장보도가 진짜인지 그것을 알아보는 것이 좋겠소. 진소 유, 당신은 먼저 그 장보도를 펼쳐서 우리에게 보여주지 않겠소?" 지금 장내는 비록 어두운 밤중이었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의 무공이 일류급의 경지를 넘어서고 있는 상황이어서 일단 진소유가 장보도를 펼쳐 보이기만 하면 금방 그 진위를 판가름할 수가 있을 것이었다. 진소유는 그 말에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꾸했다. "사실은 나도 자세히는 모르고 있는 것이므로 뭐라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 오. 하지만 내가 손수 그것을 펼쳐 보여 줄 수는 없는 일이니, 만일 저기에 계신 이 소저에게 주는 것이 타당하지 않다면 여러분들 가운데 몇 사람이 나의 앞으로 와서 이것을 받아가기를 바라오." 진소유로서는 그렇게 시간을 끌면서 자신은 무사히 빠져나가는 방도를 찾으 려고 하는 속셈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사람들은 이에 다소 머뭇거렸고, 이내 어떤 사람들은 천천히 앞으로 걸어나 서려고 하기도 했다. 헌데 그때의 일이었다. 장내에 일진의 어두운 찬바람이 일어나는 듯하더니 문득 앞으로 나서려던 사람들이 하나같이 크게 멈칫하며 안색이 변하여 뒤 로 물러서는 것이었다. 다름이 아니라 이 순간에 장내에서는 다시 몇 명의 사람들이 나타났는데, 그들은 바로 음산귀서생 도옥이나 삼두교 갈통, 그리고 철각선 허력 등을 대동하고 있는 수라존자였던 것이었다. 그들 몇 사람은 한 순간에 허공으로 신형을 날려서 장내에 내려섰는데, 물 론 그들이 다가간 쪽은 인검 진소유가 서 있는 곳이었다. 이제까지 말이 많았던 사람들은 정작 그들이 나타나자 좀더 뒤로 물러서지 못해서 안달하는 기색이었고, 감히 아까처럼 앞으로 나서서 그들을 제지하 지 못했다. (……!) 진소유는 일순간에 그들이 하나같이 나타나자 금새 무슨 낌새를 눈치챘는지 안색이 변하여 달아날 생각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다가 입을 열어 말했다. "나의…… 사부님과 사형들은 이미 돌아가시었소?" 철각선 허력이 음산하게 웃으며 입을 열어 대꾸했다. "그렇다. 그들은 감히 말을 듣지 않았으니 지옥(地獄)으로 가는 것이 당연 한 일이었지. 자, 너도 이제는 순순히 그 장보도를 바치는 것이 어떠냐?" "장보도…… 장보도라고?" 진소유는 잠시 망연하게 중얼거리다가 다시 물었다. "그럼 장보도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는 말이오?" 철각선 허력은 차갑게 대꾸했다. "그 장보도는 너에게 있을 것인데 어떻게 벌써 드러났겠느냐? 실로 우리는 그 청해검학 교홍이라는 늙은이가 그와 같이 고단수의 술책(術策)을 펼쳤었 을 줄은미처 생각지도 못했다." "……!" 이 철각선 허력은 이제 청해파에 인검 진소유밖에 남지 않은 것을 보고는 기세가 등등해져서 그와 같이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기실 과거에 이 철각 선 허력은 청해검학 교홍에게 음으로 양으로 제법 많은 도움을 받아왔던 것 이 사실이었는데도, 허력은 지금과 같은 상황이 되자 그만 죽은 교홍을 그 처럼 심하게 매도하고 있는 것이었다. 진소유는 그 얘기를 듣고 나자 잠시 생각하더니 구태여 허력에게 대꾸하지 않고 수라존자를 향해 말했다. "당신들은 정말로 나에게 그 장보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오?" 음산귀서생 도옥이 그 질문에 차갑게 대꾸했다. "그 사실은 네가 더욱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진소유는 그 말에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물었다. "당신들은 이제 어떻게 할 참이오?" 그러니까 그의 말은 이제 자신은 대항할 힘이 없으니 당신들이 어떤 짓이든 간에 할 테면 해보라는 식의 말이었다. 음산귀서생 도옥은 그 질문에 대꾸하지 않고 음산하게 웃으며 천천히 진소 유의 앞으로 다가들었다. 진소유는 그것을 보면서도 여전히 장검을 든 손을 늘어뜨린 채로 전혀 대항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서 있는 그의 모습은 이미 생을 포기하고 있는 것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음산귀서생 도옥이 마악 공력을 끌어올려서 진소유에게 살수를 펼치 기 위해 다가가려는 순간에 느닷없이 장내에서 한 줄기의 짧은 음성이 들려 오는 것이었다. "잠깐 멈추시오!" (……?) 장내의 사람들은 이때 웬 대담한 작자가 흑풍사의 세력들이라고 할 수가 있 는 수라존자 등의 손속을 방해하는 것일까 하고 궁금해져서 즉시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정작 시선을 그쪽으로 돌렸을 때 사람들의 안색은 조금 전보다도 더욱 놀라는 기색이 되었고, 어리둥절해 하는 눈치가 되었 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어느 사이엔가 장내에는 세 명의 사람들이 더 늘어나 있었고, 바로 그들 가운데의 하나가 조금 전에 말을 했던 사람이었던 것이 었다. 그 느닷없이 나타난 사람들은 바로 화검운과 황약화, 그리고 악산산 이었고, 물론 입을 열어서 음산귀서생 도옥의 행동을 저지시킨 사람은 화검 운(花劍雲)이었다. 도옥 등은 잠시 옆으로 시선을 옮겨서 악산산의 한 손을 잡고 있는 황약화 의 얼굴을 바라본 다음에 다시 시선을 돌려 화검운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시선에는 마치 화검운이 별안간 나타나게 된 사실이 매우 의아스러운 듯한 기색이 감돌았으나, 정작 입을 열어 대꾸하지는 않았다. 대신 이때 다소 뒤로 물러서 있었던 수라존자가 두 눈에서 마치 불길같은 광망(光芒)을 토하며 입을 열어 말했다. "무슨 뜻이냐?" 화검운은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되자 다소 어색한 듯이 가볍게 어 깨를 으쓱해 보이고는 대답했다. "물론 나의 뜻은 잠깐 멈추라는 것이오. 설마하니 당신들은 그러한 나의 말 뜻이 너무 어렵다는 것은 아니겠지?" 그때 어디선가 킥! 하고 가볍게 웃는 소리가 들려왔는데, 그것은 조용해진 장내에서 유난히 크게 울렸다. 그것은 바로 무산신녀문의 소문주인 병미인 이무수가 자신도 모르게 웃고 말았던 것이었는데, 일순간에 자신의 어이없 는 실수를 깨닫은 그녀는 이내 창피한 생각이 들어서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 이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모두가 그녀의 실수를 알아차렸지만, 그러나 누구도 그쪽으로 시 선을 돌리지 않았다. 이제 이어지게 될 수라존자의 말대꾸나 행동 따위가 지극히 무거운 긴장감을불러일으켰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정작 수라존자는 전혀 화를 내지 않고 잠시 화검운을 쏘아보더니 이렇게 대꾸했다. "너는 이 일에 참견하겠다는 말이냐?" 화검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수라존자의 두 눈에서 다시 한 번 시뻘건 광망이 용솟음쳤다. "그렇다면 너 역시 장보도를 노리고 있다는 얘긴데…… 흐흐, 천하에서 감 히 나를 우습게 생각하는 사람은 처음 보는군!" 화검운은 이에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당신의 생각은 틀렸소. 하하, 나는 천하에서 자신의 생각만 옳다고 여기고 서 제멋대로 상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바로 당신이 그런 사람이었군. 나는 장보도 때문이 아니라 바로 저 사람 때문에 온 것이 오." 화검운은 말과 함께 진소유를 가리켰다. 기실 그의 말은 사사건건 상대방의 비위를 거슬리게 하는 것이었고, 그것을 보고 사람들은 수라존자가 즉시 손을 쓰지 않는 것을 기이하게 생각했다. 특히 악산산 등은 이미 이전에 반점에서 한 차례 가벼운 손속을 교환했던 적이 있었으므로 두 사람의 행동에 대해서 기이하게 생각했다. 수라존자는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화검운의 그와 같은 비아냥거리는 어투 에도 화를 내지 않고 눈빛을 다시 차분하게 빛내며 이렇게 물었다. "그것은 무슨 뜻이냐?" 화검운은 웃으며 대답했다. "무슨 뜻은 무슨 뜻이겠소? 나는 그저 저 사람의 목숨을 구해 주려는 것이 지. 저기에 있는 두루마리는 그저 당신이 가지는 것이 좋겠소." (……) 수라존자는 그 말을 듣더니 잠시 묵묵히 생각에 잠겨서 말하지 않았다. 진소유가 이때 화검운을 향해 말했다. "내가 기억하기로 당신은 바로 화공자(花公子)라고 하던데, 나에 대해서 그 와 같은 신경을 써주어서 고맙소. 그러나 사실 나는 당신의 그러한 도움이 필요없는 실정이오." 화검운은 진소유를 향해 입을 열어 물었다. "아니, 그럼 당신은 혼자서도 저들을 능히 상대해 낼 수가 있다는 말이오?" 진소유는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며 대답했다. "나의 사부님과 사형들조차 이미 저들의 손에 의해 돌아가셨는데 나에게 무 슨 특별한 능력이 있어서 저들을 상대할 수가 있겠소? 다만 나는 지금에 이 르러 아무런 미련도 없고 하여 사부님과 사형들의 뒤를 따르려는 것이오." 화검운은 다소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아니, 죽음을 자촐하겠다는 말이오? 당신은 아마도 그 죽는다는 것을 무슨 달구경이라도 가는 것처럼 생각하는 모양인데, 실로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 오. 당신은 지금 다시 한 번 재고해 보는 것이 어떻겠소?" 진소유는 그런 말을 듣게 되어 한심스럽다는 듯이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그렇게 죽음을 갈망하는 염세주의자(厭世主義者)가 아니오. 나도 사 실은 살아가는 것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오. 세상에 죽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소? 하지만 나는 지금 이렇게 혼자 남게 되었으니 다시 살아간 들 무슨 소용이 있겠소? 화공자는 구태여 쓸데없이 나서지 말고 그만 물러 서 주었으면 좋겠소." 화검운은 이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꾸했다. "아니,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자신의 원수가 되는 사람들에게 죽고 싶어하 는 것은 또 이상한 취미(趣味)가 아닌가! 그리고 이제 청해파를 이끌고 가 야 할 위치에 놓여 있을 것인데도 반드시 죽어야 하겠다니…… 혹시 청해파 에 미리 남겨 놓은 후계자라도 있는 것은 아니오?" 진소유는 그 말에 문득 이제까지와는 달리 안색이 급변하여 마치 화살을 맞 은 사람처럼 전신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 "아, 그렇군! 나는 미처 본파(本派)의 일에 대해서 생각하지 못했구나! 아 아, 나는 왜 그리도 어리석은 것일까? 만일 지하에서 사부님과 사형들을 뵙 게 된다면 그 일로 인해 나는 무슨 말을 할 수가 있었을까?" 이어 진소유는 이제까지와는 달리 표정을 정중하게 바꾸어서 화검운을 향해 예를 올리면서 입을 열어 말을 이었다. "화공자, 고맙소! 알고 보니 당신이 이 우매한 불초를 깨우쳐 주셨구려. 정 말로 당신이 나를 구해 주실 생각이오?" 화검운은미소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럴 생각이기는 한데, 아직 저 사람의 의견을 들어보지 않았소. 만일 그 가 당신을 해치려고 하지 않는다면 나도 구태여 당신을 구할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니겠소?" 그때 다시 장내에서 킥! 하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물론 그것은 역시 무산 신녀문의 소문주인 이문수의 웃음소리였는데, 그녀는 아무리 참으려고 해도 그만 터져 나오고 만 웃음 소리에 너무나도 창피스러워서 고개를 숙여 버리 고 있었다. 지금의 상황은 그다지 긴장된 순간이 아니라고 할 수가 있었으므로 자연히 사람들의 시선은 그쪽으로 옮겨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당사자인 이무누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으므로 그것을 알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지 알 수가 없는 형편이었지만, 다소 난처한 기색인 것은 그녀의 뒤에 호위(護衛)하듯이 서 있는 예의 그 흑백이파파라는 노파들이었다. 그 가운데 키카 크고 깡마른 흑파파(黑婆婆)는 한 손에 괴장을 짚고 선 채 로 약간 눈살을 찌푸리고 있는 듯했고, 다른 노파인 키가 약간 작은 듯하고 몸이 뚱뚱한 백파파(白婆婆)는 사람들의 시선이 와닿자 지극히 불쾌한 듯이 눈을 부라리며 수중에서 뭔가를 던져 올려서 허공에 휙휙휙! 하고 빠르게 휘돌리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것들은 대여섯 개의 단검(短劍)들로서 워 낙에 빠르게 허공에서 회전하고 있었기 때문에 마치 어둠 속에서 두 덩어리 의 빛무리가 일어나는 것 같은 광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보아하니 그 백파파의 병기는 흑파파의 병기가 괴장인 것처럼 그와 같은 단 검들을 사용하고 있는 모양이었는데, 한 순간에 단검들을 그처럼 빠르게 일 사불란하게 회전시키면서도 조금도 흐트러진 기색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 놀라운 단검술이 그 안에 숨겨져 있을 것 같았고, 게다가 그것은 사람들이 자신들을 쳐다보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식의 시위라고도 해석할 수가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원래 그들에게 관심이 없었으므로 이내 시선을 다시 화검 운 등이 있는 쪽으로 옮겼고, 백파파는 즉시 수중의 단검들을 거두어들였는 데, 화검운이 다시 수라존자를 향해 입을 열어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정말로 그를 해치지 않을 생각이오?" 수라존자는 음침한 시선으로 그의 얼굴을 주시하다가 이윽고 대답했다. "너는 내가 정말로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화검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보다시피 그는 그 두루마리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으니 만일 그가 두루마 리를 그냥 건네준다면 당신도 양심(良心)이 있는 사람이라면 구태여 그를 해치지는 않을 것 같소." 수라존자는 음산하게 그를 주시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이어 수라존자는 고개를 돌려서 진소유의 앞으로 다가갔다. (……!) 진소유는 옆에서 이제까지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을 들었기 때문에 먼저 화검 운의 얼굴을 바라보고는 안심을 하고 수라존자를 향해 말했다. "두루마리는 여기에 있소. 당신은 어서 가져가도록 하시오." 말과 함께 진소유는 미련이 없다는 듯이 수중의 두루마리를 수라존자의 면 전을 향해 내던졌다. 그것은 기실 진기(眞氣)를 사용하여 던진 것이었는데, 이윽고 빠르게 날아가더니 수라존자의 앞에 이르러 거짓말처럼 속도를 늦추 면서 떨어져 내렸다. 그것은 전혀 이번의 일에 원한을 갖지 않고 정식으로 대하겠다는 진소유의 의도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고도 할 수가 있었다. 수라존자는 과연 자신의 앞으로 날아온 그 두루마리를 집어들더니 그 자리 에서 펼쳐서 앞뒤를 살펴보았다. 과연 아니나 다를까, 그 두루마리는 그저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평범한 빈 양피지 두루마리에 불과하여 장보도와 는 거리가 먼 것임을 사람들은 두 눈으로 똑똑하게 불 수가 있었다. 헌데 바로 그때였다. 수라존자의 신형이 갑자기 흔들거리는 듯하더니 어느 새 진소유의 면전에 이르러서 그의 정수리를 장력(掌力)으로 내려쳐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으악!" 이 수라존자의 신형이 실로 너무나도 빨랐기 때문에 전혀 이를 예상하지 못 하고 있었던 진소유는 엉겁결에 단말마의 비명을 터뜨리며 그 자리에서 머 리가 부서져 피를 사방으로 뿌리며 즉사를 하고 말았다. 그것은 실로 어이없고도 느닷없는 죽음이었으며, 일시에 쿵! 하고 진소유의 시신(屍身)이 바닥에 피를 뿌리고 쓰러지는 것을 보고 장내의 사람들은 마 치 자신들의 육신이 그와 같이 된 것처럼 심장이 놀라서 등골이 오싹해져 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 계속 -- #5763 양한우 (hanwoo71) [백상] 종남사부 제4권 제28장 03/31 14:50 307 line 올 린 이 : 양한우 HITEL ID : hanwoo71 제28장. 월영인(月影印) 수라존자의 손속은 정말로 잔인악랄(殘忍惡辣)할 뿐만 아니라 가공(可恐)스 러운 것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이윽고 수라존자가 그와 같이 진소유를 단숨에 처치하고 나서 느릿하게 신 형을 돌리려는 순간에 문득 그의 앞으로 한 사람이 빠르게 다가서며 소리쳤 다. "멈추시오!" 그 사람은 다름아닌 화검운이었다. 아마도 그는 조금 전에 미처 수라존자가 그와 같은 거짓말을 하고 나서 너무나도 빠르게 손을 썼기 때문에 그것을 막지 못하고 있다가 이제서야 나서게 된 것 같았다. 화검운이 수라존자의 앞으로 다가서게 되자 일순 장내의 분위기는 차갑고 싸늘하게 동결(凍結)되어 버리는 것 같았다. (……!) 수라존자는 다소 냉랭하고 득의(得意)한 시선으로 화검운을 주시하다가 이 윽고 입을 열어 질문을 던졌다. "무슨 일이냐?" 화검운은 이에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망연한 표정을 지으며 손짓으로 이미 죽 어서 바닥에 쓰러져 있는 진소유의 참혹한 시신(屍身)을 가리키며 말했다. "당신은 그를 죽이지 않겠다고 하고서 어째서 그렇게 잔혹(殘酷)한 살수(殺 手)를 전개한 것이오?" 수라존자가 음침하게 그를 마주 바라보며 대꾸했다. "내가 언제 그를 죽이지 않겠다고 했다는 마리냐? 내가 너와 같은 녀석의 말을 듣고 고분고분히 따라서 하는 사람으로 생각했더라는 말이냐? 흐흐 흐…… 내가 그를 죽인 것은 보다 일을 철저(徹底)하게 하기 위한 나의 수 단이었다. 너는 혹시 나의 이 일에 어떤 이의라도 있다는 말이냐?" 화검운은 잠시 어리둥절해 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기는 수라존자의 말에도 일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어서 비단 조금 전에 그가 확실한 대답을 했던 것은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누구도 그의 일에 간섭할 수는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화검운은 다소 안색을 굳히면서 이어 말했다. "나는 이미 그 사람의 목숨을 보호하겠다고 말을 했었고, 당신도 그러한 사 정을 알고 있었던 상황하에서 그와 같은 짓을 저질렀으니 필시 어떤 각오가 되어 있을 것이오. 당신의 행동이야 자유라고 할 수가 있지만, 나 역시 일 단 말을 입 밖으로 내뱉은 이상은 이 일을 여기에서 그만둘 수는 없는 노릇 이오." 수라존자는 그 말에 눈빛을 기이하게 빛냈다. "그렇다면 너는 정말로 나와 일전(一戰)을 겨루어 보겠다는 것이냐?" 화검운은 다시 태평한 신색(身色)으로 돌아가며 고개를 끄덕였다. "유감(有感)스럽지만…… 바로 그렇소." 수라존자는 냉랭하게 웃었다. "흐흐, 너는 정말로 나를 상대할 수가 있다고 믿는다는 말이냐?" 일전에 반점의 내부에서는 수라존자가 다분히 화검운에게 양보한 점이 있었 지만, 수라존자는 지금 그것이 자신의 진정한 실력이 아니라는 것을 은연중 에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화검운은 그러나 상대방의 그러한 의중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아주 태 평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물론이오." (……!) 일순간에 장내에 다시 살벌한 전운(戰雲)이 감돌기 시작하자 장내의 사람 들, 심지어는 음산귀서생 도옥과 같은 사람들도 은근히 신형을 옮겨 두 사 람의 사이에 공간(空間)을 만들어 주기 시작했다. 수라존자는 두 눈에서 마치 칼날과도 같이 예리한 광망(光芒)을 토하면서 화검운을 직시하며 다시 말했다. "그렇다면 너는 어서 출수(出手)하는 것이 어떠냐?" 화검운은 상대방의 태도가 어떻게 달라지든간에 여전히 태평무사한 표정이 었다. 그는 우수를 가볍게 휘저으며 대꾸했다. "천만의 말씀……" 바로 그 순간에 수라존자는 느닷없이 행동을 개시하였으며, 그의 신형(身 形)은 어느새 화검운의 앞에 도달하고 있었다. 화검운은 따라서 태평하게 말을 하고 있다가 도중에 중단하고 눈을 휘둥그래 뜨게 되었는데, 느닷없이 다가온 수라존자의 신형은 지금 얼마나 빠른 것인지, 비단 그의 출수하는 동작(動作)을 전혀 볼 수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그의 신형까지 파악 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그의 전신은 마치 하나의 흐릿한 환상(幻像)처럼 한 덩어리의 검은 구름으로 화해 있는것 같았다. 이 순간에 수라존자는 이미 화검운을 제거하기로 결심한 듯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마음껏 실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 같았는데, 하기는 누구도 그의 신형이 너무나도 빨라서 그의 무공 내력에 대해서 알 수가 없 을 것 같았다. 지금 수라존자의 수중에는 병기가 하나도 없었다. 사람들은 비록 자세히 볼 수가 없었지만, 아마도 그가 어떤 장력(掌力)의 일종인 무공을 사용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만약에 그가 장력을 사용한다면 수라문(修羅門) 의 진산절예(鎭山絶藝)인 수라마공(修羅魔功)이 실려 있는 수라장(修羅掌) 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기실 그 순간에 수라존자의 손에서 펼쳐지고 있는 무공은 결코 이전 의 그 수라장과 같은 것이 아니었고, 전혀 기척이 일지 않는 가운데 마치 달그림자와 같은 음영(陰影)이 그물처럼 일어나서 확산되며 일순간에 전면 을 죄어가는 듯한 그런 무공이었다. 그 무공은 비단 너무나도 빨라서 보통 사람들의 눈에는 전혀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찰나지간에 펼쳐지는 거대 한 환상의 막(幕)과도 같아서 마치 악마(惡魔)의 소리없는 입김이 사람의 전신으로 엄습해 들어오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느끼게 만들었다. 믿을 수 없게도 일순지간에 그러한 거대하고 소리없는 환상의 그물 속에 천 지(天地)가 뒤덮인 것 같은 착각이 일어났으며, 칠흑같은 어둠마저 차갑게 얼어붙는 것 같았다. 그런데 화검운은 바로 그 순간에 마치 장난을 하듯이 우수를 가볍게 휘저었 는데, 그의 우수가 어느새 새하얀 백색(白色)으로 물드는가 싶더니 자신을 향해 밀려드는 수라존자의 그 기이한 장력(掌力)을 해소해 버렸고, 그와 동 시에 그의 우수 역시 제 빛깔을 되찾아 버렸다. 실로 그러한 광경은 지극히 찰나지간에 벌어진 일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두 눈을 찢어져라 하고 크게 부릅뜨고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 안의 상황을 제 대로 파악하기란 지극히 어려웠다. "윽!" 두 사람의 신형이 순간적으로 엇갈리는 듯한 순간에 느닷없이 그와 같은 경 악성이 섞인 신음 소리가 터져나왔고, 이내 사람들은 다시 눈을 껌뻑이며 자신들의 눈을 의심해야 했다. 지금 장내에 남아 있는 사람은 오직 화검운밖에 없었다. 그의 전면의 땅바 닥에는 거의 한 사발이나 됨직한 핏물이 쏟아져 있었는데, 보아하니 그것은 그가 토해낸 피는 아닌 것 같았다. 대체 그렇다면 그것은 누구의 피일까? 그리고 이 수라존자는 느닷없이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일까? 사람들이 크게 의구심을 느끼며 화검운을 다시 바라보니 그의 우수에는 어 느새 하나의 복면을 하는 데 사용되는 검은 천이 들려져 있었고, 그는 약간 웃는 듯한 표정이었다. 하기는 어느새 음산귀서생 도옥 등의 무리들은 순식간에 사라져서 보이지 않고 있었는데, 그렇다면 지금 수라존자가 패하여 수하들과 함께 도주해 버 린 것이라는 말인가? 상황으로 미루어 보아 그와 같은 추측이 옳은 듯했는데, 이윽고 악산산이 먼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앞으로 달려나와 화검운에게 말했다. "화공자(花公子)! 당신의 무공은 정말로 놀라운 것이로군요. 그 수라존자를 물리치다니……. 그래 그 천조각은 수라존자가 쓰던 것인가요?" 화검운은 안색이 다소 굳어진 듯하기도 했지만, 이내 어떠한 우려도 불식시 켜 주기라도 하듯이 악산산을 향해 훤하게 웃어 보였다. "물론이오. 이것이 마음에 드시오?" 화검운이 그 천조각을 그녀를 향해 내던지자 악산산은 다소 놀라면서도 신 형을 부드럽게 놀려서 그 날아오는 천조각을 피해내며 웃으며 대꾸했다. "나는 이런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아니 차라리 그 수라존자를 생각하면 온 몸에 소름이 끼칠 것만 같아요. 헌데 당신은 수라존자의 얼굴을 보았나요?" 화검운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쎄…… 보기는 본 것 같은데 왠지 낯설은 얼굴이었소." 악산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작 화검운은 당사자이면서도 여전히 태평한 모습인 데 반해서 그녀는 마치 자신이 조금 전에 일전(一戰)을 치른 것처럼 가슴이 심하게 두근두근한 모양인지 겨우 숨을 고르며 입을 열어 재차 물었 다. "그는…… 그 수라존자는 어떻게 된 거죠? 그는 죽었나요, 아니면 살아서 달아난 것인가요? 나는 무공이 부족하여 전혀 그것을 알지 못하겠어요." 화검운은 대답했다. "물론 그는 다소의 내상(內傷)을 입기는 했지만 죽지는않았소. 그는 마지막 순간에 몸을 피해서 달아나고 말았는데…… 악낭자는 정말로 그가 달아나는 것을 보지 못했소?" 악산산은 고개를 흔들었다. "나는 보지 못했어요." 이어 왠지 부끄러운 표정으로 다시 말을 이었다. "그가 달아난 것이라면 잘된 일이군요. 당신의 무공이 그렇게 놀랍다니 ……" 그때 느닷없이 조용하던 장내에서 소란스러운 소음이 일어나면서 누군가의 요란한 일갈(一喝)이 터져나왔다. "상경지(常敬之)! 네놈이 그대로 달아날 성싶으냐?"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혼원보의 보주 혼원벽력수 상경지가 상황을 보고는 은근히 달아나려고 하자 이를 본 무산신녀문의 흑백이파파가 일제히 신형을 날려서 그 자의 뒤를 쫓고 있는 것이었다. 장내의 사람들은 이에 이제까지는 화검운 등에게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으 나, 상황이 종료된 것이나 다름이 없으므로 서서히 각자의 처소(處所)를 향 해 신형을 옮겨가기 시작했다. 비교적 오랫동안 혼란스러웠던 상황이 그렇게 끝나 버리자 사람들의 모습이 사라져 가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이윽고 황약화가 앞으로 다가와서 바닥에 떨어져서 뒹굴고 있는 양피지 두루마리를 집어들고는 화검운의 앞으로 와서 입을 열어 말했다. "이 두루마리는 정말로 장보도가 아니로군요. 그렇다면 대체 그 장보도는 어디에 간 것일까요?" 화검운은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그것은 아마도 저 사람들이 더 잘 알고 있지 않겠소?" 화검운이 가리킨 사람은 바로 이미 죽어서 시신이 되어 바닥에 쓰러져 있는 진소유였다. 악산산이 이제까지 숙이고 있었던 고개를 들며 화검운을 향해 다시 말했다. "그럼 그 장보도는 그들이 저승으로 가져가 버렸다는 말인가요?" 화검운은 미소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장보도가 무슨 영혼이 깃든 것이 아닌 바에야 어떻게 그들이 저승까지 가져갈 수가 있겠소? 다만 내 말은 그들이 가장 그 내력을 잘 알고 있을 것 이라는 말이오." "……?" 황약화가 다시 입을 열어 물었다. "그렇다면 결국 그 장보도는 하나도 진짜가 없이 모두가 다 가짜였다는 말 이로군요? 오직 가짜이기 때문에 그들이 잘 알고 있다는 것이 아니가요?" 화검운은 웃으며 대답했다. "아마도 어쩌면 그들도 죽는 순간까지도 그것이 가짜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 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오. 하지만 지금 나타났던 것이 가짜가 아니었다면 그 수라존자가 그와 같이 일을 감정적으로 쉽게 처리하지는 않았었을 것이오." 황약화는 손에 약간 힘을 주어 그 양피지를 가루로 태워 버리고 나서 그것 을 바닥에 버렸는데, 이윽고 화검운, 악산산과 함께 예의 그 안향반점을 향 해 신형을 옮겨가면서 다시 입을 열어 말했다. "그러니까 결국은 청해검학이 가지고 있었던 장보도는 둘째인 지검 막굉에 게 넘겨졌던 것이로군요. 그것으로 인해 쾌도번천 도백세가 죽음을 당하 고…… 그렇다면 대체 그 가짜 장보도는 청해검학이 어떻게 하여 입수하게 되었던 것이었을까요?" 화검운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마도 그 얘기는 청해검학만이 알고 있을 뿐일 것이오." 말하자면 청해검학은 이미 죽어서 사라져 버렸으니 천하에 누구도 그 과정 을 알지 못할 것이라는 말이었다. 화검운은 문득 신형을 안향반점으로 옮겨가면서 과연 그의 두 명의 시종들 인 용아와 봉아가 아직도 무사할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그들은 사람들의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는 인적이 끊어진 골목길을 돌아서 서서히 반점이 있는 쪽으로 나아갔다. 화검운으로서는 그다지 바쁠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실정이었지만, 황 약화와 악산산도 역시 크게 바쁠 것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녀들은 강호의 무림인들이고 또한 내공(內功)의 수련이 정밀한 수위에 올라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이렇게 그저 하룻밤을 새는 정도는 평상시의 행동이나 용모에 전혀 지장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었다. 악산산이 문득 다시 입을 열어 화검운에게 질문을 던졌다. "생각해 보니 아까 그 골목길에서 금응방의 놈들에게 당하고 죽음을 당한 그 여자가 불쌍한 생각이 들어요. 당신의 무공은 대단하던데 아까 그 여자 를 구할 수는 없었을까요?" 기실 아까 그녀는 황약화가 간혹 전음으로 혹은 육성으로 들려주는 얘기를 듣고 골목길의 상황을 알 수가 있었지만, 같은 여자의 입장에서 느닷없이 폭행을 당하여 죽어간 그 여자의 운명이 기구하다고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 다. 화검운은 이에 고개를 돌려 웃으며 말했다. "내가 무슨 일에도 만능(萬能)이라고 생각하시오?" 하기는 아까 악산산 등이 올라가 있었던 나무 위와 그 골목길의 사이는 너 무나도 멀어서 도저히 그 긴박한 순간에는 황약화라고 해도 그 여자를 구할 수가 없는 상태였다. 악산산은 화제를 돌려서 다시 물었다. "참! 당신이 아까 펼쳤던 그 무공은 내가 보기에는 종남파의 태을신수(太乙 神手)와 매우 흡사해 보이던데 그것은 정말로 태을신수였나요?" 화검운은 미소하며 대답해 주었다. "정확하게 뭐라고 말할 수는 없으나 아마도 그것의 변형(變形)이라고 말할 수가 있을 것이오." 악산산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다시 물었다. "그럼 그 수라존자가 썼던 무공은 어떤 것이었죠?" 화검운은 우선 옆으로 고개를 돌려서 황약화의 얼굴을 슬쩍 바라본 이후에 다시 악산산을 향해 고개를 돌리면서 대답했다. "그것은 아마도 월영인(月影印)이라는 무공이었소." (……?) 악산산은 그 말에 다소 의아해 하는 눈치였지만 오히려 황약화는 무심코 그 얘기를 듣고는 다소 경악하여 화검운을 돌아보는 모습이었다. 악산산이 미처 황약화의 그러한 눈치를 알아 차리지 못하고 입을 열어 화검 운에게 물었다. "월영인이라고요? 대체 그 무공은 어떤 거죠?" 화검운은 자신의 얼굴을 예리하게 주시하고 있는 황약화의 시선(視線)을 반 쯤 무시한 채로 태평하게 대답했다. "악낭자의 견신이 비교적 짧구려. 그것은 당금의 천상팔패(天上八覇)의 하 나이자 흑풍사(黑風社)의 주역이라는 일월마교(日月魔敎)의 두 가지의 장력 (掌力) 가운데의 하나가 아니오? 하나는 일광수(日光手)라고 하는 것이고, 한 순간에 빛이 번쩍하는 것 같은 그 일광수에 비해서 형체를 알 수가 없는 음유(陰柔)한 수법은 바로 그 월영인(月影印)이라고 하는 것이오." (……!) 악산산은 그 얘기를 듣고는 일순 너무나도 놀라서 어리둥절해 하다가 이윽 고 다시 물었다. "일월마교의 무공이었다고요? 그렇다면 그 수라존자가 아까 그 청해검학 교 홍을 제거할 때 사용했던 무공이 바로 일광수였다는 말이로군요? 어쩐지 천 하의 최절정고수로 이름이 알려져 있던 청해검학이 단 한 수에 맥없이 죽음 을 당하는 것이 이상하게 생각되더라니……. 하지만 당신은 오히려 그 월영 인을 제압했다고 하니 더욱 놀라운 일이로군요?" 화검운은 옆으로 다시 힐끗 황약화의 얼굴을 돌아보면서 웃으며 대답했다. "일단 어느 정도의 무공을 터득한 사람이 있다면, 그보다 더욱 무공이 뛰어 난 사람도 생기게 되는 것이 아니겠소?" (……?) 악산산은 화검운의 태평스러운 얼굴을 바라보면서 일순 더더욱 알 수가 없 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기실 이 화검운은 간혹 지극히 평범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그러다가 평범하 게 생각하면 오히려 아주 비범하게 보이기도 하는데, 그렇다고 계속해서 비 범하게 보고 있자니 어느새 다시 평범하게 느껴지기 시작하는 그런 기이(奇 異)한 성품(性品)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었다. 악산산은 잠시 동안 화검운에 대해서 생각해 보다가 다시 화제를 바꾸어서 물었다. "하지만 그 수라존자는 수라문의 문주(門主)라고 하던데 어떻게 해서 그와 같은 일월마교의 무공을 터득하게 되었을까요? 어쩐지 음산귀서생 도옥 같 은 무리들이 그에게 공손하게 구는 것이 이상하게 생각되기도 했어요." 화검운은 그 질문에 느닷없이 고개를 옆으로 돌리면서 말했다. "그 얘기는 이 황낭자에게 물어보면 잘 알게 될 것이오." (……?) 악산산이 더욱 괴이(怪異)하게 여겨서 황약화를 향해 고개를 돌리니 그녀는 왠지 기이한 표정으로 화검운을 바라보고 있다가 이윽고 가볍게 한숨을 내 쉬면서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맞아요. 그 수라존자는 수라문의 문주이기도 하지만 원래는 일월마교의 사 람이죠. 일월마혼(日月魔魂) 곡천괴(曲天魁), 그것이 바로 그의 명호(名號) 예요." 황약화의 그 말은 화검운의 질문에 대답한 것 같기도 했고, 혹은 악산산의 질문에 대답한 것 같기도 했다. (……?) 악산산은 엉뚱하게 황약화의 입에서 그와 같은 말이 튀어나오자 상당히 어 리둥절해 하여 생각에 잠기다가 이윽고 황약화를 향해 입을 열어 물었다. "언니, 대체 그 일월마혼 곡천괴라는 사람은 누구죠?" 황약화는 악산산을 향해 웃으며 대답해 주었다. "그는 바로 당금의 흑풍사(黑風社)의 사주(社主)인 일월마교주(日月魔敎主) 일월악마자(日月惡魔子) 곡무양(曲武陽)의 친아들이고, 또한 일월마교의 소 교주(小敎主)이기도 하지. 원래 그와 나는 벌써부터 서로의 신분을 알고 있 었지만, 나로서는 그를 당할 수가 없는 일이었지만, 그 역시 나를 해치지 못하는 형편이었기 때문에 그저 모른 척하고 있었던 것이었지." (세상에……!) 악산산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와 같은 엄청난 사실이 배후에 깔려 있었 다는 얘기를 듣고는 정신이 일순 망연해지며 아득한 기분까지 들었다. 하지 만 다시 한 가지의 기이한 사실을 알아내고는 다소 충격을 느낀 듯이 화검 운을 가리키며 입을 열어 황약화에게 물었다. "헌데 저 화공자는 그 수라…… 일월마혼 곡천괴를 단숨에 물리쳤으니 그렇 다면 화공자의 무공이 혹시 언니보다 더욱 높다는 말인가요?" 황약화는 그 말에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 "악동생은 아마도 나의 무공을 너무나도 대단하게 생각하는 모양인데, 기실 천하에 나보다 무공이 고강한 사람들은 아주 많이 있는 실정이야. 저 화공 자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는 없는 일이겠지." 악산산은 이제까지 화검운의 무공 경지를 그저 최절정의 경지 정도로만 생 각하고 있었는데, 일순 황약화의 얘기를 듣고는 자신의 추측이 옳았다는 알 고는 내심 놀라서 생각했다. (그렇다면 저 화공자의 무공은 이미 초절정(超絶頂)의 경지에 올라 있다는 말인가? 믿을 수가 없어. 어떻게 일개 종남파의 무공으로……. 하지만 그것 은 사실이지 않은가! 그가 그 수라…… 일월마혼 곡천괴를 격퇴시켰다는 것 은 누구나 인정하고 있는 일이고. 어쨌든 이 화공자는 실로 겉보기와는 달 리 대단한 사람임에 분명해. 세상에 천상팔패의 사람도 아닌데 벌써부터 초 절정 경지의 무공을 가지고 있다니……) 악산산은 이어서 그녀가 처음으로 화검운을 만나던 때에 그가 다소 과장스 럽게 웃기면서 종남파의 장문인을 멍청한 조카녀석 운운했던 것을 상기해 보면서 실로 지금의 그와 같은 능력이라면 가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 일이라고 느꼈다. 거의 어떤 특별한 배경이나 누구의 도움도 없이 그와 같 은 약관의 나이에 벌써부터 그와 같은 초절정의 무공 경지에 올라 있다는 것은 그의 자질(資質)이 실로 상상할 수도 없다는 것이겠으며, 아마도 그런 사람의 눈으로 보게 되면 천하의 수재(秀才)라고 해도 여지없이 멍청한 바 보녀석쯤으로 보이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악산산은 이 순간에 머리속으로 이리저리 치솟는 의문과 의혹들이 무수하게 많았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이 황약화가 다소간의 비밀이 있는 여자이고, 또한 자신의 그러한 비밀사항에 대해서 캐묻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 라는 것을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부득이 나중으로 의문을 푸는 것을 미루 고 화제를 그만 다른 것으로 돌려야 했다. -- 계속 -- #5764 양한우 (hanwoo71) [백상] 종남사부 제4권 제29장 03/31 14:50 203 line 올 린 이 : 양한우 HITEL ID : hanwoo71 제29장. 강호십대용봉(江湖十大龍鳳) 악산산은 다시 화검운을 향해 입을 열어 질문했다. "당신의 무공은 정말로 이미 초절정의 경지에 도달해 있는 것인가요? 그렇 다면 당신에 대해서는 내가 아직 잘 모르고 있었던 것이었군요?" 화검운은 그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웃으며 대답했다. "천만의 말씀이오." 악산산은 잠시 시선을 들어 허공을 바라보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아마도 당신과 같은 사람은…… 바로 황언니와 같은 사람과 잘 어울릴 거 예요. 나는 왠지 당신이 매우 친근하게 느껴지고 또한 정이 가기는하지만, 그러나…… 그러나 나에게는 따로 마음에 둔 사람이 있으니 당신과 가까워 질 수는 없어요." 악산산의 그 말은 바로 다름이 아니라 종남사부(終南師父)를 읫기하고 말하 고 있는 것이었다. 화검운은 다소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하하, 악낭자가 따로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이 있다니, 나로서는 매우 서 운하지만 어쩔 수가 없는 일이군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 황낭자 와 어울릴 것이라는 말은 약간 잘못된 일인 듯하오." (……!) 악산산은 화검운의그 말에 문득 깨달은 듯이 고개를 돌려서 화검운의 얼굴 을 직시(直視)하며 입을 열어 다시 물었다. "잘못된 일이라고요? 당신의 그 말은 바로 황언니의 외모(外貌)를 보고 그 러는 것일 테죠?" 화검운은 다소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글쎄…… 사람의 얼굴이야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라고들 하니 대단한 것이 없을 것이나, 중요한 것은 그 심성(心性)이 아니겠소?" 악산산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를 향해 다시 말했다. "황언니의 무공 실력은 아마도 내가 보기에는 당신과 그리 많은 차이가 나 지는 않는다고 봐요. 그리고 황언니의 성품(性品)이야 제가 보증할 수가 있 는 것이고요. 역시 당신은 황언니의 외모를 보고 그런 말을 하는 것이 틀림 이 없어요." 이어 다소 겸연쩍은 듯한 시선을 하고 있는 황약화의 얼굴을 슬쩍 돌아보면 서 악산산은 다시 말을 계속했다. "이런 사실이야 결국에는 드러나게 될 것이니까 지금 말해 드려도 상관이 없겠지요. 사실 황언니의 얼굴은 저희들보다 훨씬 아름다운 것이예요. 다만 지금 황언니는 평소의 습관이 되어서 얼굴에 인피면구(人皮面具)를 쓰시고 계시는 거죠." (……!) 아니나 다를까, 황약화의 얼굴이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왠지 음산한 느낌을 주고 있어서 이상하게 생각되었는데, 알고보니 그녀는 얼굴에 어떤 면구를 쓰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황약화는 악산산의 입으로 그러한 사실이 밝혀지게 되자 왠지 어색한 기분 이 드는 듯이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듣는 당사잔인 화검운은 그러한 악산산의 얘기를 듣고는 전혀 놀라는 기색이나 희안한 느낌도 없는 듯이 여전히 태평한 신색 그대로였다. "아! 그랬었소?" (……?) 악산산은 그가 당연히 놀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히려 그가 그처 럼 태연하게 대꾸하자 그녀 자신이 어이가 없는 느낌이 들어서 미처 생각지 도 않던 얘기까지 다시 꺼내게 되었다. "당신은 지금 내 얘기를 전혀 믿지 않고 있는 모양이로군요? 그렇다면 내가 황언니의 용모에 대해서 얼마나 대단한지 가르쳐 드리도록 하죠. 당신은 강 호의 십대용봉(十大龍鳳)에 대해서 알고 있나요?" 화검운은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리면서 물었다. "강호십대용봉(江湖十大龍鳳)이라는 게 또 뭐요?" 화검운은 마치 그러한 일에는 전혀 모르고 있는 사람처럼 되물어왔다. 악산산은 그만 피식 웃으면서 대답해 주었다. "그건 바로 당금의 강호상에서 가장 훌륭하다고 공인되어 온 열 명의 천하 기재(天下奇才)들을 말하는 거죠. 당금의 강호상에서 아직 혼인을 하지 않 은 젊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러한 일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또한 훤하게 알고 있는데, 유독 당신은 그러한 일을 모른다고 하니 우습군요." 화검운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이제야 알겠다는 듯한 표정을 짓다가 다 시 지나가는 듯한 어조로 물었다. "아, 그러한 것이었군. 그렇다면 악낭자는 그 십대용봉 가운데의 몇 번째로 되어 있는 것이오?" 악산산은 그가 그저 지나가는 어투로 물어보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왠 지 은근히 얼굴이 붉어지며 대답했다. "나 같은 것이 어떻게 감히 그 십대용봉의 일원이 될 수가 있겠어요? 그 십 대용봉은 장차의 무림을 이끌고 나갈 최고의 후기지수(後起之秀)들을 말하 는 것인데, 제가 포함될 수가 있겠어요?" 화검운은 이에 다소 관심을 느낀 듯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 "그럼 저 황낭자는 그 십대용봉의 하나에 속해 있는 상태라는 말이오?" 악산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요. 그 십대용봉은 다시 오룡(五龍)과 오봉(五鳳)으로 나뉘어 지는데, 황언니는 그 가운데 강호오봉의 하나로 되어 있죠." 화검운은 그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랬었군." 하지만 여전히 놀라는 기색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악산산은 그의 얼굴 표 정을 살피면서 다시 입을 열어 말했다. "당신은 무림 최고의 후기지수라고 하니까 그저 무공만 높은 사람들로 생각 하는 모양이로군요? 하지만 비록 강호오룡은 무공이 높은 남자들로 이루어 져 있는 것이지만, 이 강호오봉은 여자들로 되어 있는 것인 만큼 무공보다 는 오히려 그 미모(美貌)로서 순서가 매겨져 있는 것이예요. 즉 강호오봉의 일원이라고 해서 다 무공이 높은 여자는 아니라는 말이죠." 화검운은 이에 다소 뜻밖이라는 듯한 표정을 하고는 황약화의 얼굴을 힐끗 돌아본 이후에 악산산을 향해 말했다. "그럼 저 황낭자는 그 강호오봉 가운데의 몇 번째로 되어 있다는 말이오?" 악산산은 웃으며 자랑스럽다는 듯이 대답했다. "황언니는 자의성수(紫衣聖手)라는 별호(別號)가 붙어 있어요. 강호오봉 가 운데의 세 번째인데, 게다가 무공까지 이미 초절정의 경지에이르러 있으니 가히 천하에 다시 찾아보기 어려운 재색(才色)을 갖춘 사람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죠." 화검운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황약화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황낭자, 악낭자의 그 말들이 모두 사실이오?" 황약화는 다소 겸연쩍은 듯한 눈빛으로 그의 시선을 피하며 대답했다. "사실이기는 하지만 그다지 대수로운 것은 없으니 당신은 신경쓰지 않는 것 이 좋을 거예요. 당신의 능력이 그렇게 대단하니 천하의 기재들이라고 해도 눈에 들어오겠어요?" (……?) 화검운은 문득 황약화의 그러한 풍자적인 말에 다소 자극을 받은 듯이 이번 에는 다시 악산산을 돌아보며 물었다. "대체 그 강호오봉에는 어떤 사람들이 속해 있는 것이오?" 악산산은 빙그레 웃으면서 대답해 주었다. "당신은 이제서야 그 일에 관심을 가가는군요. 사실 천하의 보통 남자들은 그녀들과 같은 천하절색(天下絶色)의 여인들에게 감히 욕심을 가질 수가 없 는 일이지만, 내가 보기에는 화공자 당신의 무공은 가히 강홍룡의 수준에 들 수가 있을 것 같으니, 이제부터라도 그 다섯 명의 천하최고의 미녀(美 女)들에게 관심을 가져서 장가를 가는 방도를 생각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 을 거예요." 화검운은 새삼스럽다는 듯이 다시 물었다. "아니, 그 다섯 명의 여자들이 모두 시집을 가지 않았다는 말이오?" 악산산은 웃으며 대답했다. "이 열 명의 후기지수들은 하나같이 처녀 총각들이니 무슨 시집을 가고 장 가를 갔겠어요? 그 강호오봉의 가운데에는 우리 황언니처럼 나이가 실팔세 인 사람도 있고, 또한 당신과 비슷한 나이의 여자들도 있으니, 당신이 한 번 깊이 생각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예요." "……" 악산산은 그 시원스러운 시선으로 곱게 화검운의 얼굴을 향해 의미심장하게 흘겨보인 다음에 말을 계속했다. "강호오봉의 첫째는 당신도 잘 알고 있겠지만, 당금의 백의맹(白衣盟)의 맹 주인 백의무성(白衣武聖) 백무심(白無心)의 손녀딸인 천상옥녀(天上玉女) 백유(白柔), 백 소저이지요. 그녀는 나이가 우리 황언니와 같은 십팔세인 데, 용모는 그야말로 하늘의 선녀들도 시샘할 정도라고 해요. 물론 나도 보 았지만 정말로 그녀는…… 아름다웠어요." 화검운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백의맹의 맹주라면 그럼 천륭무가(天隆武家)의 노가주(老家主) 말이오?" 악산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원래 그 천륭무가의 자손들은 하나같이 백화신골(白華神骨)이라는 놀라운 신체를 타고난다고 하니, 그와 같은 영재(英才)들과 미인(美人)들이 계속해서 나타나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가 있죠. 강호 오봉 가운데의 둘째는 바로 역시 천상팔패의 하나인 설산성모궁(雪山聖母 宮)의 소궁주(小宮主)인 설산성녀(雪山聖女) 운지(雲芝)라는 여자예요." 화검운은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물었다. "설산성모궁 하면 바로 흑풍사의 일원이 아니오?" 악산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맞아요. 그러나 원래 이 여자라고 하는 존재는 사랑하는 남자의 신분 을 따라가게 되어 있기 때문에 당신이 만약 그런 여자에게 마음을 두고 있 는 것이라면 구태여 그런 신분을 따질 필요는 없는 것이죠." 악산산은 말을 하다가 말고 문득 얼굴에 다소간의 우수에 젖은 듯한 표정을 보였다. 아마도 그녀는 이 순간에 느닷없이 다시 종남사부의 일을 떠올리게 되어서 자신은 누구를 애타게 사랑하고 있는 상황이면서도 그 사람의 여자 가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을 실로 안타깝게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이머말을 계속했다. "그 설산성녀 운지라는 여자는 비록 나이는 스물세 살이나 된다고 하지만 대대로 꽃보다도 아름다운 여인(女人)들만의 낙원이라는 설산성모궁의 최고 미녀로 발탁이 되었다고 하는 만큼 그야말로 하나의 정교하고 수려하게 조 각한 빙옥(氷玉)과도 같은 아름다움을 지녔다고 해요. 당신이 만약 이 여자 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역시 다른 여자를 선택해도 무방해요." 악산산은 이미 그러한 얘기를 하는 데 열이 올라서 마치 많은 흥미로운 얘 기보따리를 가슴에 품고 있는 사람처럼 약간 흥분한 빛이 되었다. 화검운은 거의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물었다. "그럼 세 번째는 바로 이 황낭자라는 말이오?" 악산산은 힐끗 황약화를 향해 시선을 던진 다음에 웃으며 대답했다. "자의성수(紫衣聖手) 황약화(黃若華), 황낭자께서는 바로 그 세 번째이며 당금의 성수곡의 소군주(小郡主)이시죠. 사실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여자들 도 아름답기는 하지만 우리 황언니는 평소에 늘상 이렇게 인피면구를 쓰고 다니기 때문에 세 번째로 밀려난 것이었지 결코 그녀들의 미모에 뒤지지 않 는다고 나는 자신할 수가 있어요. 하기는 이 강호오봉의 순서는 많은 사람 들이 인정하기는 했지만 전적으로 옳다고만 할 수가 없는 것이어서 아무래 도 거기에 약간의 배경이 작용하고 있다고 해야 하겠죠. 예를 들어서 그 네 번째와 다섯 번째의 여자들도 역시 다른 세 명의 여자들의 미모에 못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나을 수도 있다는 거예요." 화검운은 이에 다소 호기심이 동하는 듯 물었다. "그럼 그 네 번째와 다섯 번째는 어떤 여자들이오? 그녀들 역시 천상팔패의 사람들이오?" 악산산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강호오룡의 경우에는 아무래도 천상팔패의 사람들이 모두 차지하고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할 수가 있지만, 이 여자의 미모라고 하는 것은 반드시 무 공과 연관되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강호오봉은 그렇지 않아요. 그 네 번째와 다섯 번째의 여자들은 바로 그런 경우인데, 네 번째의 여자는 옥관 음(玉觀音) 단목소소(端木小昭)라는 스물한 살의 여자로서, 거의 전설로 전 해지고 있던 남해(南海) 보타도(菩陀島)의 도주(島主)라고 해요. 그녀의 용 모는 그야말로 대단한 것이라고 하는데, 게다가 무공도 이미 높은 경지에 올라 있다고 하지만, 천상팔패의 배경에 밀려서 네 번째의 서열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죠." 화검운은 다시 물었다. "남해 보타도라면 혹시 그 남해신니(南海神尼)라고 불리우던 그 노비구니가 살던 곳이 아니오?" 악산산은 그의 말에 반가운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맞아요. 그 남해신니는 이미 입적(入寂)을 하고 말았는데, 그 전설적인 기 인(奇人)인 남해신니의 절학(絶學)들이 이미 고스란히 도주인 옥관음 단목 소소에게 전해졌다는 거예요. 아마도…… 그녀 역시 이번에 장안성으로 오 게 될지도 몰라요." 말과 함께 악산산은 시선을 들어 화검운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화검운은 이에 그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물었다. "그럼 마지막 다섯 번째는 어떤 여자요?" 악산산은 미소하며 대답했다. "그 마지막의 여자는 기실 더욱 기이한 점이 있는 여자예요. 그녀는 사실 출신내력도 좋지 못하고 또한 무공도 그다지 높은 것은 아니라고 해요. 하 지만 지금 그녀는 강호용봉의 하나에 들어 있는 게예요. 놀랍지 않아요? 그 것은 바로 그녀의 용모가 너무나도 아름다운 것이기 때문이죠." 화검운은 악산산의 얼굴을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 "그여자의 외모가 악낭자 당신의 얼굴보다 더 아름답다는 말이오?" <제4권 끝> -- 계속 -- 올 린 이 : 양한우 HITEL ID : hanwoo71 제30장.(1) 영웅대회(英雄大會) 악산산은 자신의 얼굴이 아름답다고 말하고 있는 화검운의 말에 금새 안색 이 붉어지며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면서 대답했다. "나를 놀리시는군요. 나 같은 여자는 그저 세상에 흔히 볼 수가 있는 것이 죠. 다만 그 마지막의 여자는 용모에서는 천하에서 그 짝을 찾아 볼 수가 없을 지경이라고 하는데…… 다만 그 신분이 천한 것이 흠일 따름이예요. 당신은 결코 그 여자만큼은 마음에 두지 않는 것이 좋을 거예요." 화검운은 물었다. "그럼 혹시 그녀는 유곽의 여자라도 된다는 말이오?" 악산산은 웃으며 대답했다. "바로 맞았어요. 그녀는 바로 유곽에서 살고 있는 여자이지요. 명호는 화중 화(花中花) 음희아(陰喜兒)라고 하는데, 다름이 아니라 바로 유곽의 여자들 로 집단을 이루고 있는 백화방(百花幇)의 소방주이고, 지금 이 장안성 내에 자리하고 있는 백화방의 지부(支部)인 백화루(百花樓)의 루주(樓主)이기도 하죠. 나이는 스물다섯이고…… 아마도 당신도 머지 않아서 그녀의 얼굴을 보게 될지도 모르겠군요. 하지만 일단 보게 되더라도 그녀를사랑하거나 하 지는 마세요.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그녀의 얼굴에는 일종의 마력(魔力)이 걸려 있어서 그녀의 얼굴을 한 번 본 남자는 여지없이 사랑을 느끼게 되고 목숨까지 바치게 된다고 하더군요. 따라서 그녀의 치마폭에 의해 덧없이 사 라져간 젊은 영재들의 숫자가 이루 헤아릴 수도 없다고 하니 당신도 그렇게 되고 싶지 않으면 조심하라는 말이예요." 악산산이 눈빛을 반짝이며 그렇게 충고까지 해주자 화검운은 웃으며 그녀를 향해 짐짓 포권까지 해 보였다. "고마운 말이오. 그런데 그렇다면 그 강호오룡은 대체 어떤 사람들이오?" 악산산은 마악 계속해서 말해 주려고 했으나 이미 자신들이 거의 반점에 도 달해 있는 것을 알고는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은 안되겠군요. 내일이나 아니면 좀더 시간이 나는 때가 되면 그때에 강호오룡에 대해서 상세하게 가르쳐 드리기로 하죠. 오늘은 피곤하니 그만 들어가서 쉬어야 하겠어요." 화검운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물었다. "마침 내가 빌린 방이 넓고 조용한데 기왕이면 모두 함께 그리로 가서 쉬면 서 얘기를 마저 하는 것이 어떻겠소?" 악산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안돼요. 우리가 만약 당신과 한 방에서 밤을 지샜다고 한다면 남들이 의심하게 될지 누가 알겠어요? 게다가 우리는 다소 피곤하니 저는 그만 황 언니의 방에 가서 함께 쉬어야 하겠어요." 말과 함께 그녀는 황약화와 함께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해보인 연후에 함께 빠르게 반점의 내부로 들어가 버리는 것이었다. 비록 악산산의 방은 따로 배정되어 있지 않겠지만 황약화의 방은 배정되어 있을 것이므로 그녀들은 그 방으로 가서 함께 쉬려는 모양이었다. 화검운은 그렇게 두 소녀들과 헤어지게 되자 이윽고 으슥한지역으로 가서 반점의 삼층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화검운은 곧장 반점의 삼층으로 신형을 날려서 자신이 들어 있는 특실의 침 실 창문을 연 다음에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그리고 나서 일단 창문을 안으 로 잠근 다음에 혹시 거실에서 자고 있을 용아와 봉아가 잘 있는가 하고 궁 금해져서 침실의 문을 살짝 열고 내다보니 그녀들은 모두가 거실의 기다란 의자 위에서 곤하게 잠들어 있는 중이었다. 화검운은 이에 안심을 하고 웃으며 다시 옷을 벗고 침상 위로 올라가 잠을 청하기 시작했다. 이미 새벽이 가까워지고 있는 시각이었으나 그렇다고는 해도 아침이 되려면 아직은 다소 먼 것 같았다. 화검운은 침상 위에 눕자마 자 이내 깊은 잠 속으로 들어갔다. 다음날 아침에 화검운의 잠을 깨운 것은 역시 용아와 봉아의 짤랑거리는 맑 은 음성이었는데, 화검운이 일어나 보니 이미 창 밖으로 훤한 햇살이 비춰 들고 있는 중이었다. "아니, 벌써 이렇게 되었나?" 화검운이 다소 놀라는 듯한 표정으로 몸을 일으키자 한쪽에 서서 그의 잠을 깨우던 봉아가 다시 재촉하며 말했다. "화 상공님! 어서 일어나셔서 옷을 갈아입으세요. 아니세수부터 하셔야 하 겠군요. 남들은 일찍부터 와서 진을 치고 있는데 우리의 화 상공님은 그저 이렇게 늦잠만 주무신다니까." 화검운은 봉아와 용아의 손에 각기 화려한 자신의 새로 맞춘 듯한 의복(衣 服)들이 들려져 있는 것을 보고는 아마도 어젯밤에 시켰던 것이 벌써 도착 했나 보다 생각하며 물었다. "아니, 누가 와 있다는 말이냐? 그리고 왜 이제야 깨우는 것이지? 어제 저 녁에 우리와 함께 식사하던 사람들에게서는 달리 무슨 소식이라도 없었느 냐?" 봉아가 대답했다. "흥! 화 상공님께서는 우리가 이렇게 깨워 드려도 결국은 투박을 하신다니 까. 아직은 늦은 것은 아니예요. 지금 바로 어제 저녁때 보았던 그 여자들 이 밖의 거실에 와서 기다리고 있는 상태라니까요. 그러니까 어서 세수를 하시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에 거실로 나가셔서 그녀들과 함께 식사를 하도 록 하세요." "뭐라고?" 화검운은 대체 누가 거실에 왔는지 알 수가 없었으나 일단은 용아의 말을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이 침실에는 따로 옆에 작고 훌륭한 욕실이 붙어 있었기 때문에 화검운이 세수를 하는 것에는 지장이 없었으나, 일단 그가 세수를 하고 양치질을 하 고 나서 침실로 다시 돌아오자 봉아와 용아는 아직도 그 잘예 서서 의복을 들고 있었다. 그 의복은 푸르고 엷은 하늘색의 고급의 비단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는데, 그 가운데 아름다운 문양을 수놓아서 흡사 선비들이 입는 문사 옷을 연상시켰다. 화검운은 이에 그녀들을 향해 말했다. "아니, 너희들은 좀 밖으로 나갈 수가 없느냐? 내가 옷을 갈아입으려면 너 희들이 있으면 꼴이 우습지 않겠느냐?" 용아와 봉아는 그 말을 듣자 문득 안색이 다소 붉어지더니 하는 수 없이 의 복들을 침상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고는 물러갔다. 하지만 밖으로 나가면서 봉아의 입은 쉬지 않고 재잘거렸다. "화 상공님은 정말로 너무해. 우리가 뭐 남인가 뭐? 설사 화 상공님의 옷을 입는 시중을 들어드린다고 해서 대체 그게 안될 것이 뭐람?" (……) 화검운은 봉아의 그와 같은 말을 듣고는 내심으로 가볍게 고소(苦笑)하며 이어 속옷에서부터 겉옷까지 완전히 갖추어진 한 벌의 옷을 하나씩 걸치기 시작했다. 이 의복들은 정말로 화검운에게 치수가 맞고 입고 난 뒤에도 맵시가 있어 보이는 것이 용아와 봉아가 매우 신경을써서 주문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가 있게 했다. 일단 의복들을 모조리 갖추어 입고 나선 전신을 한쪽에 마련되어 있는 커다 란 동경(銅鏡)에 비추어 보자 화검운은 이미 새로운 백우선(白羽扇)을 들고 있는 고아한 풍모의 청삼문사(靑衫文士)처럼 되어 있었다. 비록 용모는 전 과 거의 달라진 것이 없지만 일단은 고급스러운 의복에서 풍겨나오는 우아 한 느낌에 그의 외모가 훨씬 훌륭해ㅈ 버린 듯한 모습이었다. 화검운은 문득 동경에 비추어진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음, 나는 비교적 마르고 키가 큰편이니 이와 같은 품이 넓은 옷이 잘 맞 는군. 그나저나 내가 갑자기 이와 같은 호강을 해도 괜찮을지 모르겠군." 화검운이 이윽고 침실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자 먼저 그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이미 새롭게 아름다운 의복들로 단장을 하고 의자 위에 앉아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두 명의 소녀(少女)들이었다. 바로 다름이 아니라 불과 얼마 전에 헤어졌던 황약화와 악산산이었다. 알고 보니 그녀들이 먼저 잠을 깨서 화검운을 찾아온 모양이었다. 황약화의 신색은 전날과 거의 달라진 것이 없어 보였고, 악산산의 얼굴 또 한 하룻밤을 지샌 것 같은 피로감을 전혀 찾을 수가 없어 생생하고 해맑은 미모를 발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거실의 한쪽에는 이미 용아와 봉아가 시켜 놓았는지 훌륭한 음식들이 한 상 가득히 차려져 있었고, 또한 용아와 봉아는 그 주변에 서서 밖으로 나오는 그를 향해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화검운은 우선 그녀들을 향해 가벼운 미소를 보낸 다음에 이윽고 황약화와 악산산을 향해 고개를 돌리면서 말했다. "두 분께서 이렇게 직접 소생을 찾아오실 줄은 몰랐소이다. 이거 오늘은 내 가 너무 늦은 것이 아니오?" 황약화는 그저 담담히 웃는 시선이었고, 악산산이 유난히 쾌활해 보이는 표 정으로 웃으며 대꾸했다. "다소 늦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너무 지체된 것은 아니예요. 우리가 만 일 잠시 후에 떠난다면 영웅대회(英雄大會)에 때맞춰 도착하게 될 수가 있 을 거예요." "아! 오늘 낮에 금창보(金槍堡)로 가서 영웅대회에 참석하기로 되어 있었 지!" 화검운은 짐짓 까맣게 잊고 있었다는 듯이 중얼거리고는 다시 입을 열어 그 두 명의 소녀들에게 말했다. "만일 두 분께서 아직 식사를 하지 않으셨다면 소생과 함께 식사를 하지 않 겠소?" 악산산이 다소 안색을 붉히면서 대답했다. "사실은 우리는 잠을 자지 않고 있다가 아침 일찍이 이곳으로 오는 바람에 미처 식사를 하지 못했어요. 당신이 양해를 한다면 그럼 함께 식사를 하도 록 하지요." 어제 저녁에 악산산은 당옥 등과 사이가 지극히 나빠져 있었고, 그로 인해 서 아마도 그녀들은 일행의 아침식사에 참석하지 않고, 오히려 일행 가운데 의 사람들이 자신들을 데리러 올까 봐 이렇게 미리 피해서 화검운의 객실로 와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가히 미리부터 손님을 치러야했던 용아와 봉아의 곤란했던 심정을 알만할 것 같았다. 악산산이 그렇게 말을 하면서 몸을 일으키자 황약화 역시 미소하며 뒤를 따 라서 식탁으로 다가왔고, 그리하여 다섯 명의 사람들은 모두가 하나의 커다 란 식탁의 앞에 둘러앉게 되었다. 식탁에 앉게 되자 평소에 재잘거리던 습관이 있었던 용아와 봉아는 전혀 아 무런 말도 하지 않고 얌전을 떨고 있었고, 황약화도 묵묵한 표정이었으며, 다만 악산산만이 다소 명랑한 표정이 되어 입을 열어 다시 말을 꺼냈다. "아! 이곳은 정말로 호화롭기 짝이 없는 곳이로군요.이 식탁도 상당히 넓 고 또한 화려(華麗)하고…… 대체 이곳에서 하룻밤을 묵는 비용은 얼마나 되나요?" 화검운은 용아와 봉아가 여전히 침묵하고 있는 것을 보며 어쩔 수 없이 자 신이 직접 입을 열어 대답해 주었다. "은자 오십 냥이오. 그런데 우리에게는 특별히 생각해서 사십 냥으로 해주 겠다고 하는군요." 악산산은 그만 놀라서 눈을 휘둥그래 떴다. "어마, 은자 오십 냥이라고요? 세상에……! 채석장에서 노동일을 하는 사람 들의 하루 품삯이 은자 반냥이라고 하니, 그들은 쉬지 않고 일백 일을 벌어 야 비로소 이런 곳에 와서 하룻밤을 묵을 수가 있겠군요. 게다가 그들은 그 렇게 일하는 동안에 아무 것도 먹어서는 안되는 것이고요." "……" 악산산은 다시 화검운을 향해 물었다. "아마 그렇다면 이 식탁 위에 지금 차려져 있는 음식들의 값도 대단하겠 죠?" 화검운은 담담하게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 "그보다 우리는 오늘 새벽녘에 하려고 했었던 그 얘기를 마저 해보는 것이 어떻겠소?" 식탁 주위에 모여 앉은 사람들이 저마다 묵묵히 식사를 하기 시작하자 실내 에는 은은하고도 조용한 분위기만이 흘렀다. 악산산이 식탁 위에 차려져 있는 음식을 젓가락으로 집어먹으면서 되물었 다. "아, 바로 그 강호오룡(江湖五龍)의 얘기 말인가요?" 일반적으로 아무리 강호상에서 거칠게 살아가는 여자들이라고 해도 최소한 의 여자다운 조신한 예절을 지키기 마련이었는데, 이 악산산은 이미 화검운 에 대해서 거의 아무런 격의가 없어져 버렸는지 음식을 입 속에 넣고 씹으 면서도 말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그녀의 모습은 보기 싫은 것이 아 니라 오히려 더욱 산뜻하면서도 발랄하며 싱그러운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것 이었다. "그렇소. 이제 잠시 후면 금창보에 가서 강호의 영웅호걸(英雄豪傑)들과 만 나게 될 것 같은데, 내가 미처 대강의 사람들에 대해서 모르고 있다면 난처 해지지 않겠소?" 악산산은 입 속의 음식을 꿀꺽 삼키고는 웃으면서 대꾸했다. "당신은 아마도 정말로 그러한 일을 모르고 있는 모양이로군요? 좋아요! 지 금 나는 기왕에 식사를 얻어먹고 있는 실정이니 그러한 얘기를 해주는 것이 당연한 노릇이겠지요." 이어 화검운을 향해 말을 계속했다. "강호오룡에는 그야말로 당금의 최고 후기지수들이 모두 모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예요. 당금의 강호상에 비록 젊은 인재들이 많이 있지만 정 작 그 다섯 명의 안에 들기라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와도 같은 것이예요. 물론 화공자 당신이라면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는 것이겠지만. 아무튼 이제 본격적으로 설명해 드리기로 하죠. 우선 그 첫 번째는 천상신룡(天上神龍) 백능풍(白凌風)이예요." 화검운은 알맞게 튀겨서 조린 쇠고기 조각을 입 속에 넣고 우물거리다가 문 득 물었다. "그 사람도 천륭무가(天隆武家)의 사람이오?" 악산산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금의 무림에 백씨(白氏) 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가장 유명한 사람들은 아무래도 그 천륭무가의 사람들이죠. 게다가 이 대공 자(大公子)는 장차의 천륭무가를 이끌어 나갈 재목이므로 천하에서 가장 손 꼽히는 것도 무리가 아니겠죠. 그의 나이는 스물세 살인데, 아주 잘생긴 천 재(天才)라고 할 수가 있죠." 화검운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다시 물었다. "그럼 두 번째는 어떤 사람이오?" 악산산은 미소하며 대답했다. "이 강호오룡은 어쩔 수가 없이 당금의 천상팔패의 후손들이 다 차지하고 있는 것이니 당신은 아마도 감안해서 들어야 할 거예요. 예를 들어서 천륭 무가에는 그 대공자 이외에도 이공자(二公子)인 천상운룡(天上雲龍) 백승풍 (白乘風)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는 비록 이 강호오룡의 순위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었지만, 일단은 고루 배경의 안배가 되어지는 바람에 전혀 거기 에 속하지 못하게 되었죠. 그러나 이 강호오룡의 이름이 전혀 헛된 것만은 아니어서 그러니까 천상팔패의 사람들의 무학은 이미 어느 한계를 벗어나서 비슷비슷하다고 해야 할 것이예요." 악산산은 한 번 주위의 사람들의 얼굴을 둘러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 "두번째의 사람은 일검귀견수(一劍鬼見愁) 상원웅장(桑原雄藏)이란 사람이 예요." 화검운은 마악 밥을 퍼서 입으로 가져가려다가 고개를 쳐들고 물었다. "아니, 그 사람은 그럼 중원의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오?" 악산산은 웃으며 대답했다. "이 강호라는 호칭은 비단 중원(中原)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설 령 중원인이 아니라고 해도 이상할 것은 전혀 없는 것이죠. 그 일검귀견수 상원웅장은 바로 동영(東瀛) 부상국(扶桑國)의 사람으로 검총(劍塚)의 후계 자예요. 이 동영의 검총이 역시 천상팔패의 하나라는 사실은 당신도 잘 알 고 있겠죠? 그의 나이는 스물다섯인데 나는 아직 그의 얼굴을 보지 못했어 요." 화검운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밥을 퍼먹기 시작했다. 악산산은 말을 이었다. "세번째의 사람은 호면패도(虎面覇刀) 늑가의(勒可喜)라는 사람으로 역시 천상팔패의 하나인 도막(刀幕)의 소막주(小幕主)예요. 그는 나이가 가장 많 아서 스물일곱인데, 막북(幕北)의 사람들답게 거칠은 구석이 있고 또한 체 구도 매우 크다고 해요. 그리고 네 번째의 사람은 바로 삼절서생(三絶書生) 황안(黃安)이예요." 말과 함께 악산산은 황약화의 얼굴을 한 차례 훔쳐보는 것이었다. 이 악산산은 아무래도 아직 시집을 가지 않은 처녀의 몸이어서 그런지 유달 리 강호오룡에 대해서 상세한 정보를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지금 화검운에 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었다. ─────────────────────────────────────── 일반연재 [백상] 종남사부 5권 제30장 -b- 총 Page : 17 -------------------------------------------------------------------------- ---- 게 시 자 : tohana(박성호) 게 시 일 : 97/04/13 01:51:18 수 정 일 : 크 기 : 12.3K 조회횟수 : 46 [백상] 종남사부 제5권 30장 -b- 04/04 07:27 467 line 올 린 이 : 양한우 HITEL ID : hanwoo71 제30장.(2) 영웅대회(英雄大會) 화검운은 악산산의 눈치를 알아차리고 웃으며 말했다. "그럼 그 삼절서생은 황낭자의 친척이라도 되겠군요?" 악산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바로 우리 황언니의 친오빠이시죠. 성수곡의 대공자(大公子)이시 고, 나이는 스물다섯이며, 스스로 무공과 의술(醫術), 그리고 바둑에 능하 다고 해서 그와 같은 별호를 붙였다고 해요. 그분의 바로 아래에는 소화타 (小華 ) 황오(黃梧)라는 남동생이 계신데, 그분은 역시 강호오룡에 포함되 어 있지 않아요." 악산산은 길게 한숨을 내쉰 다음에 말을 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의 사람은 현현낭심호리(玄玄狼心狐狸) 마륵 길(麻勒吉)이라는 사람이예요." 화검운은 고개를 들고 물었다. "그도 중원 사람이 아니오?" 악산산은 미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천상팔패의 하나인 북해(北海)의 현현각(玄玄閣)의 소공자(小公子)인 데, 그 명호는 바로 중원식으로 부르고 있는 것이죠. 그는 나이가 스물넷이 고, 소문에 의하면 지략(智略)과 모계(謀計)가 뛰어나다고 하는데, 아직 중 원에는 나타나지 않았었나 봐요." 화검운은 다시 물었다. "그게 전부요?" 악산산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강호오룡이라고 해도 무슨 삼두육비(三頭六臂)의 괴물이나 신선 (神仙)들쯤 되는 줄로 알았나요? 오히려 화공자는 나이가 그들보다도 더욱 어려 보이니 장차 강호오룡의 수위가 될지도 모를 일이겠군요." 말과 함께 악산산은 왠지 안타까운 듯한 그윽한 시선(視線)으로 화검운의 얼굴을 다시 한 번 주시해 보는 것이었다. 이 무렵에 이미 사람들은 대부분이 식사가 끝이 나서 몸을 일으키고 있었 다. 화검운은 이에 용아와 봉아를 재촉하여 떠날 준비를 서두르고, 황약화, 악산산과 함께 모두가 밖으로 향했다. 그들이 계산을 하기 위해 일층에 내려왔을 때 그 반점의 내부에는 예상했던 대로 당옥 등의 일행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아마도 그들은 벌써 금 창보를 향해 출발한 모양이었다. 일행은 이내 그 안향반점을 나서서 대로변을 따라서 걸어가기 시작했는데, 이미 시각은 거의 정오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무렵이었다. 번화한 대로를 따라서 남쪽으로 내려가다 보니 이내 작은 야산들이 눈에 들 어왔고, 그 야산(野山)들의 기슭에 무수하게 늘어서 있는 수많은 크고 작은 호화로운 장원(莊園)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 장원들은 대부분이 장안성 내 의 부호(富豪)들의 저택들이었는데, 다름이 아니라 바로 그 부근에 금창보 (金槍堡)는 자리하고 있었다. 화검운이 악산산 등의 안내를 받아가며 그곳에 이르자 이내 거대한 돌사자 를 좌우에 거느린 하나의 장원의 정문이 나타났는데, 그 정문의 처마 아래 에 매달아 놓은 현판 위에 금빛의 글씨로 새겨 놓은 글자는 <무적금창세가 (無敵金槍世家)>라는 것이었다. 이 금창보는 기실 주변의 다른 장원들에 비해 그다지 호화롭지도 않았고 또 한 규모면에서도 그다지 거대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이 부근의 호화로운 저택들에 비해서 약간 뒤지는 감이 있는 약간 오래된 장원이었고, 다만 정문의 좌우에 용맹(勇猛)한 모습으로 늘어서 있는 금창보 제자(弟子) 들의 위세가 다소 돋보일 뿐이었다. 오늘 정오에 이곳에서 강호의 영웅대회(英雄大會)를 개최하기 때문인지 정 문의 주위는 제법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고, 정문의 좌우에 사나운 기 세로 늘어서 있는 금창보의 제자들은 기다란 철창(鐵槍)들을 휴대하고서 주 위로 몰려들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일일이 정광어린 시선으로 주시하곤 하 는 것이었다. 화검운과 그 일행은 황약화를 선두로 해서 천천히 정문 앞으로 다가갔다. 지금 정문의 좌측에는 하나의 탁자가 차려져 있었고, 수하들을 대동하고 한 명의 삼십대의 대한(大漢)이 일일이 안으로 들어서는 사람들의 영웅첩(英雄 帖)을 확인하거나 방명록(芳名錄)에 서명을 시키고 있었는데, 일행이 다가 가자 역시 그가 앞으로 나서서 포권하며 이렇게 말했다. "아, 실례지만 영웅첩을 한 번 보여 주시겠소?" 이 영웅대회에는 정말로 영웅첩이 없으면 참석할 수가 없도록 되어 있는 모 양이었다. 아마도 그것은 이미 장안성 내에 깊이 들어와 있을 흑풍사의 세 력이 암해(暗害)를 하는 것을 방비하기 위함일 것이었다. 화검운이 고개를 들어 그 대한을 바라보니 제법 두 눈에서 매서운 안광이 번쩍거리고 어깨가 딱 벌어졌으며 튼튼한 골격을 소유하고 있는 전형적인 무인(武人)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화검운은 내심 이 사람의 무공이 제법 상당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또한 그는 장안성 내에서 밖으로 거의 나가지 않아서 이 황낭자를 아직 모르고 있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황약화는 그 대한의 말에 주저하지 않고 묵묵히 품속에서 한 장의 영웅첩을 꺼내서 대한에게 내밀었다. 황약화의 영웅첩을 확인한 그 대한은 일순 안색이 일변(一變)하더니 매우 놀란 기색이 되어서 다시 한 번 그녀의 얼굴을 확인하면서 허리를 굽신거렸 다. "아! 이거…… 바로 성수곡(聖手谷)의 황 소저이셨구려. 소인(小人)이 몰라 뵈어서 죄송합니다." 황약화는 자신의 영웅첩을 다시 받아서 품속에 갈무리하며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죄송할 것은 없어요." 이어 그녀는 악산산을 비롯하여 화검운과 용아와 봉아를 가리키며 말을 계 속했다. "그녀는 화산파의 옥매화(玉梅花) 악산산(岳珊珊) 악낭자이고, 저분은 화검 운(花劍雲)이라는 분이세요. 모두가 나의 일행이니 의심할 사람은 없어요." 화검운은 이 악산산의 별호가 옥매화였다는 사실을 지금에서야 알게 되었 다. 대한은 황약화의 말에 일행을 한 차례 돌아보았으나 이내 전혀 의심할 여지 가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야 여부가 있겠습니까? 다만 여러분들께서는 기념으로 본가(本家)의 방 명록에 서명을 한 연후에 들어가 주시기 바랍니다." 황약화는 가볍게 웃으며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양(楊)대협!" (……?) 그 대한은 황약화의 느닷없는 호칭에 다소 놀라는 듯하더니 다시 한 번 허 리를 굽신거리며 겸양의 말을 했다. "소인에게 대협이라니 실로 당치도 않은 말씀입니다." 황약화가 서명을 하고 나자 뒤를 이어서 악산산이 서명을 하고 화검운과 용 아 등이 뒤따라서 서명을 한 후에 일행은 대한의 인사를 받으면서 정문의 안으로 들어섰다. 정문의 안쪽에는 약간 길게 안으로 뻗어 있는 길이 있었는데, 비록 그 길은 좌우로 가로수들을 심어서 평온해 보였지만, 그러나 이 부근에는 실로 간단 하지 않은 살기(殺氣)가 넘쳐 있어서 실로 이번에 금창보가 영웅대회를 개 최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알게 했다. 틀림없이 이 길 의 좌우에는 많은 무림인들이 매복해 있을 것이었다. 화검운은 문득 생각난 듯이 악산산에게 걸음을 옮기면서 물었다. "아니, 그는 무슨 양대협이라고 하던데 대체 어떤 사람이오?" 화검운이 물은 사람은 물론 조금 전에 그들을 맞이하던 그 대한을 말하는 것이었다. 악산산은 가볍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당신은 이 금창보의 보주인 신창(神槍) 양승조(楊承祖)의 휘하에 세 명의 용호(龍虎)와 같은 자식들이 있다는 얘기를 들어 보지 못했나요?" 화검운은 다소 의아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신창 양승조? 세 명의 아들들이 있다는 말이오?" 악산산은 웃으며 말했다. "당신이 그렇게 장안성 내의 일을 모르고 있으니 누가 당신을 이곳에서 사 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겠어요?" 화검운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오. 나는 무공을 배우다가 장안성으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 이고, 또한 이 장안성은 워낙에 넓어서 그러한 모든 사항까지 자세히 알 수 는 없는 일이라오." 악산산은 그 말에 다소 이해가 간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정색을 하며 대답해 주었다. "원래 이 금창보가 비록 그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세력면에 있어서는 장안 성 내에서는 제일로 가는 것은 모두가 그 세 명의 아들들이 능력을 발휘하 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가 있어요. 그러니까 이 금창보는 이곳의 다섯 개 의 세력들 가운데 거의 유일(唯一)하게 강호상에서 명문세가로 인정을 받고 있는 곳이죠. 그 아들들은 우선 첫째가 무영창(無影槍) 양곤(楊坤)이고, 둘 째가 철창(鐵槍) 양중보(楊重寶), 그리고 셋째가 섬전창(閃電槍) 양문표(楊 文豹)인데, 하나같이 칠십이로양가창법(七十二路楊家槍法)이라는 전통적인 창법뿐만 아니라 부친인 양승조가 창안한 무적금창십이세(無敵金槍十二勢) 에도 통하고 있다는 것이예요." 이 악산산은 기실 이곳으로 오면서 사전의 지식을 많이 확보한 모양이었다. 화검운은 그녀의 말을 듣고서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조금 전의그 사람은 그 첫째인 무영창(無影槍) 양곤(楊坤)이었다 는 말이오, 아니면……" 악산산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맞아요. 그 무영창 양곤은 이 금창보의 후계자이니 이러한 중대사를 치르 는 데 있어서 앞장서서 움직이는 것은 당연하죠. 듣기로 그의 무공은 이미 절정급의 수준에 올라 있다고 해요." 화검운은 수긍을 하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을 했었소." 일행은 이때 거의 길이 끝나가는 지점에 도달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히 대 화를 중단하게 되었고, 갑자기 시원스럽게 트인 앞쪽의 상황을 살펴보게 되 었다. 이 길이 끝나는 지점은 바로 널찍한 연무장(練武場)과 이어지고 있었는데, 그 연무장에는 지금 여러 가지 시설물들이 가득하게 설치되어 있었고 또한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이미 시간이 거의 다되어서인지 연무장의 안쪽에 만들어 놓은 널찍한 단 위 뿐만 아니라 아래쪽에도 많은 자리들을 마련하여 음식물들을 차려두고 있었 는데, 거의 수백 명에 달하는 무림인(武林人)들이 각기 자리에 앉거나 혹은 한쪽으로 몰려서 웅성거리고 있는 가운데 문득 일행은 일단의 사람들과 바 로 마주치게 되었다. "아니, 산산(珊珊)아, 너는 어째서 이제야 오느냐? 그리고…… 아! 이분은 바로 황 소저이셨구려!" 느닷없이 그렇게 말하면서 다가오는 사람은 일신에 매화 무늬의 장삼(長衫) 을 걸치고 허리에 한 자루의 장검(長劍)을 차고 있는 오십대의 온화한 인상 의 중년인(中年人)이었다. 악산산은 이제까지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는데, 문득 그 중년인을 알아 보게 되자 그만 두 눈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그대로 달력서 그 중년인 의 품속에 안겨 버렸다. "아, 아버지!" 알고보니 그 중년인은 바로 다름이 아니라 당금의 화산파(華山派)의 장문인 화산일협(華山一俠) 악소천(岳簫天)이었던 것이었다. 이 화산일협 악소천은 혼자서 자신의 딸을 반기러 나온 것을 보니 아마도 이제까지 악산산을 찾고 있었던 모양이었는데, 막상 악산산이 자신을 알아 보고 울면서 품속에 안겨 버리자 다소 겸연쩍은 기색이 되어서 악산산의 어 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허허, 너는 집에서는 말괄량이같이 날뛰더니 정작 이런 곳에 와서는 이처 럼 철없이 구는구나. 이제 곧 시집을 가야 할 말만한 계집아이가 이래서야 되겠느냐?" 하지만 화산일협 악소천의 표정에는 전혀 서운한 기색이나 화난 기색이 없 었고, 오히려 지극히 자애로운 기색이 가득했다. 악산산은 부친의 말을 듣고서 간신히 고개를 들며 다소 떨어졌는데, 아직도 두 눈에는 눈물이그렁그렁하여 울다가 만 표정이었다. "죄송해요, 아버지." 기실 이 악산산은 바로 어제 저녁에 당옥 등으로부터 크게 놀림을 당하여 그 서러움을 이제까지 참으면서 내색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만 부친을 보 게 되자 쌓였던 설움이 폭발하고 말았던 것이었다. 실로 그와 같은 일은 악 산산 자신도 흔이 있었던 일이 아니어서 스스로 부끄럽기도 하여 얼른 눈의 눈물을 훔쳐낸 다음에 화제를 돌려 그 어색함을 모면하려고 했다. "이분 황언니는 이미 아실 것이고, 여기에 계신 이분은 바로 화검운(花劍 雲)이라는 분으로, 현 종남파 장문인의 당숙이시고 또한 무공도 아주 높으 신 분이세요." 악소천은 아무래도 오랜만에 보게 되는 딸자식의 태도가 심상치 않은 것 같 아서 마음이 편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그러한 생각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이 었기 때문에 악산산이 가리키는 대로 시선을 돌려 화검운을 바라보았다. 처음에 그는 웬 허약해 보이는 서생(書生)과 동행을 하고 있는 것인가 하고 생각을 했는데, 악산산의 말에 그가 종남파의 장문인인 종남수사(終南秀士) 화정룡(花庭龍)의 당숙이라는 얘기를 듣고는 내심 다소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는 게다가 자신의 딸자식의 안목이 제법 높다는 것을 알고 있었 기 때문에 이 겉으로는 허약해 보이는 화검운이 실은 제법 대단한 능력(能 力)이 있는 인물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처음 뵙게 되는군요. 화검운이라고 합니다." 화검운이 먼저 그렇게 인사를 하자 악소천은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마주 예 의를 차렸다. "아, 화소협(花少俠)이셨구려. 이런 자리에서 상면하게 되어서 반갑소." 이어 용아와 봉아의 얼굴을 한 차례씩 일별한 후에 악소천은 가장 중요한 신분으로 여겨지는 항약화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황 소저, 마침 저쪽에 우리 청풍회(淸風會)의 회주(會主)께서 와 계시니 기왕이면 함께 가셔서 만나보지 않으시겠소?" 황약화는 왠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예요. 사실은 저는 달리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에 가지 못하겠어요. 그리고 한 가지 부탁이 있는데…… 이분 화공자는 제가 특별히 모시고 온 분이므로 악대협(岳大俠)께서 잠시 함께 데리고 계셔 주셨으면 해요." 느닷없는 황약화의 그와 같은 말은 화검운으로서도 의외의 것이었다. (흥! 우리 화 상공님께서 무슨 짐짝이나 되는 줄 아는 모양이지? 귀찮은 느 낌이 들면 아무에게나 맡겨 버리게!) 용아와 봉아가 내심으로 그와 같이 불만이 섞인 투로 투덜거렸으나 화검운 도 가만히 있는데 그녀들이 감히 나서서 뭐라고 말할 수가 없는 일이었으므 로 잠자코 있었다. 악소천은 황약화의 그 말이 다소 의외이기는 했으나 그녀의 부탁이 그다지 부담을 주는 일은 아닌 듯하여 즉석에서 고개를 끄덕여 승낙의 뜻을 표했 다. "그거야 어렵지 않은 일이지요. 하하, 황 소저가 함께 가준다면 더욱 좋겠 지만, 바쁜 일이 있으시다고 하니 어쩔 수가 없는 일이지요." "그럼……" 황약화는 악소천에게 인사를 한 다음에 이어 화검운에게도 간단하게 인사만 한 후에 주저없이 많은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있는 가운데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이 황약화는 평소에는 거의 말이 없지만 일단 행동에 임하게 되면 조금도 미련을 두지 않는 면이 있을 뿐만 아니라 너무나도 자기 위주로 행동을 하 여 마치 무심(無心)해 보이기까지 했다. 심지어 악산산까지도 느닷없는 황약화의 행동에 대해서 다소 어리둥절한 표 정이었다. (……?) -- 계속 -- ─────────────────────────────────────── 일반연재 [백상] 종남사부 5권 제31장 -a- 총 Page : 14 -------------------------------------------------------------------------- ---- 게 시 자 : tohana(박성호) 게 시 일 : 97/04/13 01:53:17 수 정 일 : 크 기 : 10.8K 조회횟수 : 46 [백상] 종남사부 제5권 31장 -a- 04/04 07:27 307 line 올 린 이 : 양한우 HITEL ID : hanwoo71 제31장.(1) 군계일학(群鷄一鶴) 화검운은 악산산과 악소천이 다소 멈칫하며 황약화가 사라져 간 방향을 바 라보고 있는 것을 보고는 다시 악소천을 향해 포권하며 말했다. "그럼 염치불구하고 폐를 끼치도록 하겠습니다." 악소천은 다시 고개를 돌려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으며, 이내 자신과 마찬가 지로 구파일방의 하나인 종남파와 연관되어 있는 사람이라는 말을 상기하고 는 웃으며 말했다. "음, 마침 저쪽에 청풍회(淸風會)의 회주께서 와 계시니 자네도 한 번 만나 뵈면 나쁘지 않을 것이네. 함께 가도록 하지." 이 청풍회라고 하는 것은 역시 당금의 하나의 커다란 세력으로, 다름이 아 니라 구파일방(九派一幇)이 근래에 흑풍사의 혈겁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결성한 연합체(聯合體)로서, 역시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는 무림오대 세가의 연합체인 와룡회(臥龍會)와 함께 백의맹에 귀속되어 있지는 않지만 독자적으로 무림 정파의 맥을 지켜가고 있는 세력이었다. 악소천이 우선 그렇게 말하고 나서 아까 자신이 왔던 길을 돌아서 그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하자, 악산산은 부지런히 부친의 곁에 따라가면서 전음(傳音) 으로 그간의 대략의 사정을 설명하고, 또한 화검운의 능력에 대해서도 간간 히 얘기하는 듯 악소천은 가끔씩 놀라면서 뒤를 따르고 있는 화검운의 얼굴 을 바라보곤 하는 것이었다. 이 연무장에 마련되어 있는 거대한 대회장(大會場)은 일시에 거의 일천 명 정도는 앉을 수 있을 만큼 많은 탁자들을 줄줄이 이어놓았고, 그것들은 안 쪽에 마련되어 있는 단 위의 자리를 향하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지금 장내에는 워낙 많은 무림인들이 무리를 지어 앉아서 떠들어 대거나 하 고 있었기 때문에악소천 등이 안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고도 누구 하나 특 별히 관심을 갖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거의 수백 명에 달하는 군웅(群雄)들이 소란스럽게 왔다갔다하는 가운데 일 행은 드디어 단 위에 가까이 도달하게 되었다. 이 안쪽에 마련되어 있는 단 위에 있는 수십 개의 자리에는 비교적 강호의 명성 있는 사람들이 자리하게 되어 있는 모양이었는데, 화검운은 악싸 부녀 를 따라서 단 위로 올라가다가 문득 어제 저녁때 반점에서 헤어졌던 남궁일 비, 당옥 등의 젊은이들을 보게 되었다. 악산산 역시 그들을 알아보는 눈치 였으나 전혀 아는 체를 하지 않았고, 그래서 그런지 그쪽에서도 이쪽을 향 해 아는 체를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다만 그 가운데 제갈소홍이 화검운을 만나보기 위해 와보고 싶은 눈치를 보이기는 했으나 왠지 다시 모른 척하고 있었다. 원래 이 무림오대세가는 와룡회(臥龍會)라는 연합체를 결성하여 구파일방의 연합체인 청풍회(淸風會)와 비교적 우호 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기는 하지만 은연중 경쟁의식이 붙어서 서로간의 알력이 있는 관계로, 지금도 그 소속의 자제들도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었다. 남궁일비 등이 있는 곳의 무림인들은 대부분이 무림오대세가와 관련되어 있 는 사람들이 분명해 보였다. 이윽고 악소천은 승도속(僧道俗) 등의 갖가지 옷차림을 하고 있는 무림 명 숙들의 앞에 이르렀는데, 그 가운데 청포(靑袍)를 걸치고 있는 중후(重厚) 하고 준수한 외모에 비범한 인상을 주는 중년인(中年人)의 정면에 다가가서 화검운을 돌아보며 말했다. "화공자, 여기에 계신 이분은 바로 우리 청풍회의 회주이신 만운룡(萬雲龍) 육립정(陸立鼎) 육대협이시라네." 알고보니 이 부근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바로 구파일방에 소속되어 있는 사 람들인 모양이었다. 그 만운룡 육립정이라는 사람은 악소천이 자신에게 웬 젊은이를 데려다가 소개시켜 주는 것을 보고 다소 의아해 하다가 웃으며 화검운을 바라보았다. 화검운도 기실은 이 청풍회의 회주라는 사람에 대해서 대강 들은 바가 있었 는데, 그는 바로 소림사의 속가제자(俗家弟子)로서, 강남 육가장(陸家莊)의 장주(莊主)였는데, 과거에 어떤 기연(奇緣)을 만나서 무공이 가히 초절정의 경지에까지 올라 있는 사람이었다. 실로 천상팔패의 사람들이 아닌 상태에서 그렇게 초절정의 경지에 오른다는 것은 결코 흔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번에 청풍회의 회주로서 옹립되게 된 모양이었다. "처음으로 뵙겠습니다. 화검운(花劍雲)이라고 합니다." 화검운은 그저 담담한 표정으로 그를 향해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그런데 이때 이미 악소천이 전음으로 화검운의 내력에 대해서 청풍회주 육 립정에게 상세하게 가르쳐 준 모양이었다. 화검운이 인사를 하자 마악 답례 를 하려다가 말고 그는 다시 한 번 놀라운 시선으로 그의 얼굴을 바라보더 니 이렇게 말했다. "아, 화공자였군. 그런데 종남파와 연관이 있다면 대체 부친께선 어떤 분이 시오?" 아마도 그는 화검운이 종남수사 화정룡의 당숙이라는 말을 듣자 이내 뭔가 다른 일을 생각해낸 모양이었다. 지금 이 자리에는 아직 종남수사 화정룡이 도착하지 않고 있었다. 화검운은 다소 미소하며 대답했다. "선친께서는 청자(靑字), 우자(牛字)의 함자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화검운이 선친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미 그의 부친이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헌데 화검운의 말을 들은 육립정은 문득 눈빛을 번쩍이며 매우 놀란 표정을 짓는 것이었다. "아! 그럼 자네가 바로 종남파의 전대 장문인이셨던 천하대협(天下大俠) 화 청우(花靑牛) 대협의 아들이라는 말인가?" 육립정의 그러한 말에 비단 악산산뿐만 아니라 악소천과 주위의 많은 사람 들도 다 함께 크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화검운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습니다." 육립정은 다시 한 번 새삼스럽게 화검운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말을 이었다. "과거 천하대협 화청우 대협께서는 종남파의 절학 가운데의 하나인 천하삼 십육검(天下三十六劍)을 스스로 창안하셨을 정도로 뛰어난 분이셨지. 그런 데 안타깝게도 십년 전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 실종이 되셔서 누구라도 아쉬 워하지 않을 수가 없었는데, 과연 자네가 그분의 아들이었군 그래. 나는 자 네가 현 장문인의 당숙이라는 말을 듣고 혹시나 하고 물어보았던 것이네." 이어 육립정은 매우 관심이 깊은 시선으로 다시 묻는 것이었다. "자네는 혹시 그 일을 규명하기 위해 이번의 영웅대회에 참석하고 있는 것 이 아닌가?" 화검운은 이에 정중하게 포권하며 대답했다. "선친의 일을 자식이 규명해 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요. 하지만 제가 워 낙에 능력이 부족하여 제대로 할 수가 있을지모르겠습니다." 육립정은 화검운의 안색을 살피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내가 보니 자네의 능력은 상당한 경지에 있는 것 같으이. 게다가 우리가 모두 힘을 합하여 그러한 사건들을 풀어 나간다면 해결되지 않는 일 이 어디에 있겠는가?" 화검운은 다시 포권하며 대답했다. "고마우신 말씀입니다." 육립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한 번 그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한쪽의 자리 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그럼 우선은 저기에 있는 자리로 가서 앉도록 하고 우리 나중에 다시 시간 을 내어서 마저 얘기를 하도록 하세." "예, 그렇게 하지요." 화검운은 인사를 한 뒤에 즉시 그쪽의 비어 있는 자리로 걸음을 옮겼고, 육 림정 등은 용아와 봉아가 그의 뒤를 따라가는 것을 보고 더욱 기이한 표정 으로 살펴보았다. 화검운이 일단 자리에 앉자 악산산이 어느새 다가와서 그의 옆자리에 앉으 면서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당신은 정말로 나쁘군요. 어째서 저에게는 그런 얘기를 하지 않았죠?" 화검운은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되물었다. "아니, 무슨 얘기 말이오?" 악산산은 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이 바로 전대 종남파 장문인의 아들이라는 얘기 말이예요. 그렇게 얘 기해 주었더라면 좀더 이해가 빨랐었을 것이 아닌가요? 나는 당신이 그저 당금 장문인의 당숙이라고 해서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고 요. 알고 보니 당신은 선친의 일을 알아보기 위해 그토록 이 대회에 참석하 려고 했었던 것이었군요?" 화검운은 미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할 수가 있소." 악산산은 그만 입을 삐죽하니 내밀었다. "그러면 그런 거지 그렇다고 할 수 있다는 말은 또 뭔가요? 가만히 생각해 보면 당신의 말은도무지 정확하지가 않아서 아주 사람을 헷갈리게 하는 수 가 많은 것 같아요. 헌데 당신은 선친이라는 말을 쓰고 있는데, 정말로 당 신의 부친이 이미 돌아가셨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인가요?" 화검운은 다소 고소(苦笑)를 지으며 대답했다. "나도 그분께서 살아계신다면 좋을 것이오." 악산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는 이미 그 일이 십년이나 지났고 미궁(迷宮)에 빠져서, 듣기로는 대 부분의 실종된 사람들의 가족들이 그분들의 제사를 지내고 있다고 하더군 요. 그건 그렇고 당신이 그와 같은 신분을 나에게 감춘 것은 정말로 유감이 예요." 화검운은 웃으며 말했다. "그러한 얘기를 하는 것이 뭐가 즐거운 일이라고 일부러 말을 하겠소? 만일 악낭자가 그런 질문을 했었다면 나도 거짓없이 얘기해 주었을 것이오." 악산산은 화검운의 대답을 듣고는 그 말에 수긍을 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 이다가 이윽고 문득 고개를 숙이며 장탄식을 터뜨렸다. "사실 말이지, 과거 십년 전의 그 실종 사건과 당금의 현실에서 정말로 안 타까운 점이 많은 것 같아요. 당신도 그렇게 본다면 우리 청풍회의 일원이 라고도 말할 수가 있을 것이니 우리는 서로 뜻이 통한다고 할 수도 있지 않 겠어요?" 화검운은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소. 우리는 제법 뜻이 맞는 지기(知己)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이오." 악산산은 화검운으로부터 그와 같은 얘기를 듣자 왠지 기분이 좋아져서 안 색이 다소 상기되더니 화제를 돌릴 목적이었는지 주변의 사람들의 소개를 해주기 시작했다. 그녀가 나직한 음성으로 가르쳐준 사람들은 모두가 구파 일방의 사람들이었는데, 그녀의 설명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사람들이었다. 우선 구파일방의 중추격이라고 할 수가 있는 소림사(少林寺)의 방장(方丈) 인 혜진대사(慧眞大師)와 혜관(慧觀), 혜정(慧淨), 혜방(慧方) 등의 장로 들, 그리고 무당파(武當派)의 장문인인 현송도장(玄松道長)과 송운진(松雲 眞)의 배분에 따른 제자들과, 아미파(峨嵋派)의 방장사태인 도일사태(道一 師太)와 정현(靜賢), 지청(智淸) 등의 비구니 스님들, 그리고 곤륜파(崑崙 派)에서 온 장문인 단양자(丹陽子)와 담화(曇華), 관심(觀心) 등의 제자들, 거기에 점창파(點蒼派)의 장문인인 점창쾌검(點蒼快劍) 서문유(西門柔)와 청성파(靑城派)의 장문인인 청성수사(靑城秀士) 여운익(呂韻翼), 공동파( 派)의 장문인인 백록자(白鹿子)와 개방( 幇)의 방주(幇主)인 무영개(無 影 ) 전백승(全百勝) 등이었는데, 단상 위에 앉아 있는 주요 인물들 이외 에도 주변에서 호위를 하고 있는 무리들까지 치자면 가히 백여 명에 달하는 인원들이었다. 비록 청풍회주인 육립정의 무에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이 많고 거대한 세력 앞에서는 자연히 주눅이 들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이미 자신들과 한 편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악산산의 설명하는 어조에는 신이 나 있었고 간간히 홍조가 떠오르기도 했다. 다만 그녀는 의식적인지 다른 쪽에 자리하고 있는 오대세가의 연합체인 와 룡회의 무리들은 바라보지 않았고, 따라서 그들에 대해서 화검운에게 가르 쳐 주지도 않았다. 헌데 악산산의 자세한 설명이 거의 끝나가는 무렵의 일이었다. 느닷없이 단 상의 중앙에 한 명의 다소 초라하고 왜소해 보이는 노인이 나타나더니 생긴 것 같지 않게 주위가 울리는 쩌렁쩌렁한 음성으로 소리쳐 말하는 것이었다. "여러분! 잠시 조용히 해주시오! 백 대협(白大俠)께서 나오시고 계십니다!" 그 말에 주위는 잠시 크게 술렁거리는 움직임을 보였고, 악산산은 별로 대 수롭지 않다는 듯이 화검운을 향해 그 사람에 대해서 가르쳐 주었다. "당신은 그가 누구인지 모르죠? 그는 바로 다름아닌 이 금창보의 주인인 신 창(神槍) 양승조(楊承祖)예요. 그의 용모는 비록 보잘것이 없지만 그의 손 에서 펼쳐지는 창술(槍術)만은 가히 신기(神技)의 경지에 으러 있다고들 하 죠." 그러나 화검운의 관심은 그 평범해 보이는 무림고수 신창 양승조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마악 그의 소개를 받으며 단상 위로 나타나고 있는 일단 의 무리들에게 있었다. --백의인(白衣人). 새로 나타나는 십여 명의 무리들 가운데에서 유독 눈에 띄고 앞장서서 걸어 오고 있는 그 백의인은 중년의 나이로 보였으며, 용모는 그야말로 준수하고 고아한 기품(氣品)으로 가득차 있는 것 같은 인상이었다. 일순 주위의 사람들의 시선(視線)이 그를 향해 집중되었으나, 그는 외히려 더욱 담담한 듯한 모습으로 군웅들 가운데 흡사 군계일학(群鷄一鶴)처럼 밝 게 빛나는 것 같았다. 화검운은 그 백의중년인의 뒤로 서너 명의 특이한 인물들이 뒤를 따르고 있 고, 다시 그 뒤로 황약화의 낯익은 얼굴도 보이는 것을 보고는 즉시 고개를 돌려 악산산에게 물었다. ─────────────────────────────────────── 일반연재 [백상] 종남사부 5권 제31장 -b- 총 Page : 9 -------------------------------------------------------------------------- ---- 게 시 자 : tohana(박성호) 게 시 일 : 97/04/13 01:54:41 수 정 일 : 크 기 : 6.6K 조회횟수 : 46 [백상] 종남사부 제5권 31장 -b- 04/04 07:27 307 line 올 린 이 : 양한우 HITEL ID : hanwoo71 제31장.(2) 군계일학(群鷄一鶴) "그가 바로 천륭무가의 노가주인 백무심(白無心)이오?" 악산산은 화검운이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그녀 자신도 그쪽을 향해 바라 보고 있었는데, 문득 그와 같은 화검운의 질문을 받고는 어이가 없다는 듯 이 웃으며 대답했다. "뭐라고요? 그는 노가주가 아니라 소가주(小家主)인 무적군자(無敵君子) 백 룡성(白龍城) 대협이예요. 즉 노가주인 백의무성 백무심의 아들이죠. 오늘 은 조금 전에 들으니 백무심이 직접 오지 않고 그의 아들인 저 백룡성 백 대협이 영웅대회를 주관한다고 해요. 하긴 저 백 대협만 해도 천하의 누구 도 감히 쉽게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인물(人物)이죠." 화검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랬었군." 이때 무적군자 백룡성은 단상의 중앙에 이르러 먼저 단 아래의 군웅들을 향 해 가볍게 손을 모아 포권해 보인 다음에 단 위에 있는 여러 인물들을 만나 고 있었다. 단 위에 있는 사람들은 구파일방의 수뇌들을 비롯하여 오대세가 의 수뇌들, 그리고 청풍회주와 와룡회주 등이었는데, 삽시간에 그들과 새로 나타난 무리들과 서로 어울려 인사를 교환하느라 장내는 다소 소란스러워졌 다. 백룡성이 우선 청풍회주인 육립정과 인사를 교환한 다음에 다시 반대편의 한 명의 중년검사(中年劍士)와 인사를 나누고 있는 것을 보고는 악산산이 마지못해서 한 마디를 더 했다. "그는 바로 와룡회주(臥龍會主)이며 남궁세가(南宮世家)의 가주인 일검무적 수(一劍無敵手) 남궁백천(南宮百川)이예요. 그의 무공은 다른 사대세가의 가주들과는 다른 것이어서 우리의 육립정 육대협의 무공에 필적한다고들 하 는데, 가히 남궁세가의 역사상 불세출(不世出)의 기재(奇才)로알려지고 있 는 사람이예요." 화검운이 바라보니 그 일검무적수 남궁백천의 용모는 상당히 기백(氣魄)이 넘쳐 보였고 심히 예리한 무형의 기운(氣運)이 느껴져서 실로 그의 무공의 경지가 높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악산산은 이어 백룡성과 함께 나타난 사람들에 대해서 아는 대로 설명해 주 었는데, 그들 가운데에는 황약화뿐만 아니라 강호십대용봉 가운데의 사람들 인 천상신룡(天上神龍) 백능풍(白凌風)과 일검귀견수(一劍鬼見愁) 상원웅장 (桑原雄藏), 그리고 호면패도(虎面覇刀) 늑가희(勒可喜)와 삼절서생(三絶書 生) 황안(黃安), 천상옥녀(天上玉女) 백유(白柔) 등이 있다는 것이었다. 악산산은 그들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하고 싶어했지만, 그러나 사람들이 그들의 좌우로 부산하게 움직이는 바람에 그럴 수가 없었다. 다만 그녀는 비교적 사람들 가운데에서 움직이지 않고 환영을 적게 받으면서도 한 곳에 가만히 있는 낯설은 사람들에 대해서 보다 자세히 말했다. "그런데 저기에 있는 사람들의 신분에 대해서는 저도 잘 모르겠군요. 대체 그들은 누굴까요?" 그런데 거기에 대해서 오히려 화검운이 이렇게 불쑥 말했다. "그 사람들에 관해서는 내가 조금 들은 바가 있는 것 같소. 그들은 바로 포 달랍궁(布達拉宮)과 자부문(紫府門), 그리고 청조각(淸朝閣)에서 온 사람들 이오." 악산산은 뜻밖에도 아는 척을 하는 화검운을 바라보며 다소 기이(奇異)하다 는 표정을 지었으나 이렇게 말했다. "하긴 그 포달랍궁과 자부문, 그리고 청조각 등이 백의맹(白衣盟)에 소속되 어 있다는 얘기를 저도 들은 적이 있는 것 같아요. 헌데 화공자는 저 사람 들의 신분에 대해서 알 수가 있나요?" 화검운은 주저없이 대답했다. "저기에 홍포(紅袍)를 걸치고있는 라마승(喇麻僧)들은 포달랍궁의 호법존 자(護法尊者)들이고, 그 아홉 명의 호법존자들의 중앙에 서 있는 노라마(老 喇麻)는 바로 현재의 달뢰라마(達賴喇麻)이오. 그리고 그 옆으로 자색의 도 포(道袍)를 걸치고 있는 노도사(老道士)는 바로 자부문의 문주라는 자부신 군(紫府神君)이고, 그리고 다시 그 옆으로 세 명의 수하들을 거느리고 서 있는 늙은 어부(漁夫)와 같은 차림의 노인은 해로공(海老公)이라는 사람으 로 청조각(淸朝覺)의 주인(主人)이라는 것이오. 그 해로공의 세 명의 수하 들은 각기 별호가 검치(劍痴), 도광(刀狂), 화미(花迷)라고 불리우는 사람 들로, 대단한 능력들을 지니고 있다고들 하는데, 어쨌든 저들의 능력들은 모두 무시할 수가 없는 것들이오." (……?) 악산산은 화검운이 정말로 그처럼 자세하게 말하는 것을 보고는 정말로 사 실인지 믿기지 않기도 하고 의아스럽기도 하여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당신은 그런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되었죠?" 화검운은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무공을 배우는 동안 장안성을 떠나 있는 때가 많았는데 그러는 도중 에 저 사람들에 대해서 알게 되었소." 악산산은 다시 그들의 무공 등에 대해서 물어 보려고 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갑자기 눈앞에 훤해지는 느낌이 들더니 일단의 준수하고 아름답기 짝이 없는 젊은이들이 두 사람의 앞으로 일제히 걸어오는 것이었 다. (……!) 화검운과 악산산이 다소 놀라서 고개를 들고 바라보니 그들은 다름이 아니 라 조금 전에 악산산이 미처 자세하게 소개하지 못했던 그 십대용봉 가운데 의 젊은이들이었다. 느닷없이 그들 여섯 명의 젊은이들이 두 사람에게 다가오자 주위의 시선(視 線)들도 이쪽으로 집중되었고, 악산산도 모르게 몸을 일으키게 되었다. 그러나 화검운이 여전히 자리에 앉아서 다가오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는 데, 이윽고 그 여섯 명의 후미에 서 있던 황약화가 화검운을 향해 말했다. "화공자, 내가 훌륭한 친구가 되실 분들을 모셔 왔으니 함께 인사를 나누는 것이 어때요?" 화검운은 그제서야 몸을 일으키면서 포권하며 말했다. "아, 그렇다면 제가 마다할 수가 없는 일이지요." 이때 악산산은 다소 옆으로 물러나서 그들 여섯 명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이미 그녀가 대강 그들에 대해서 가르쳐 주었었기 때문에 화검운은 시선을 들어서 그들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역시 그들 가운데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사람들은 천륭무가의 두 남매였는 데, 천상신룡(天上神龍) 백능풍(白凌風)은 나이가 스물세 살 정도였고, 부 친인 무적군자 백룡성의 얼굴을 닮아서 그야말로 빼어난 준수함을 느끼게 해주고 있었다. 특히 백능풍의 전신에서는 흡사 뿌연 백색(白色)의 안개와 같은 기운이 일어나는 듯하여 분명히 주위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 었고, 심지어 한쪽에 물러서 있는 악산산조차도 다소 넋나간 듯한 시선으로 그 조각한 듯한 수려한 백능풍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천상옥녀(天上玉女) 백유(白柔)는 그와는 반대의 의미에서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고 있었는데, 그것은 말하자면 그녀는 여자이므로 많은 남자들 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녀의 얼굴은 그야말로 세속의 때가 하나도 묻어 있지 않은 것 같이 청수절속(淸秀絶俗)하여 비록 그 이목 구비가 절묘한 조화(造化)를 이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그녀는 한 덩 어리의 고결(高潔)한 백화(白花)와 같은 느낌을 주었다. 실로 그러한 느낌 은 그다지 화려하다기보다는 다소 평범하고 친근한 느낌을 주는 것이었지 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는 이들의 시선을 압도하고 절로 빨려들게 하는 매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었다. 그녀는 바로 강호오봉(江湖五鳳)의 첫 번째를 차지하고 있는 소녀(少女)였 는데, 그것이 과연 조금도 과장됨이 없다는 것을 역력하게 느낄 수가 있게 했다. 그녀가 한번 손을 대면 어떠한 물건이든 백색(白色)으로 변해 버릴 것 같 고, 한 번 입을 열면 세계가 깨끗해질 것 같으며, 그녀의 두 눈에서는 실로 맑고도 투명한 광채가 발산되고 있으니 그 누가 감히 그녀의 시선을 마주 바라볼 수가 있을 것인가? 솔직히 이 백의소녀(白衣少女)를 향한 시선은 그녀의 오빠인 백능풍보다도 더욱 열렬한 것이라고 말할 수가 있었다. 제32장.(1) 옥관음(玉觀音) 일검귀견수(一劍鬼見愁) 상원웅장(桑原웅장)의 용모는 전통적인 동영인(東 瀛人)들의 복색을 하고 있었으나, 역시 준수(俊秀)하고 뛰어난 귀골(貴骨) 을 연상케 하는 모습이었다. 그는 등뒤에 한 자루의 장검을 매고 있었으며, 나이는 스물다섯 정도였는데, 그 눈빛은 흡사 차가운 바다처럼 싸늘하게 빛 나고 있었다. 그리고 호면패도(虎面覇刀) 늑가희(勒可喜)는 체구가 크고 우람하며 거칠은 인상의 흡사 대호(大虎)를 연상케 하는 모습이었는데,그의 두 눈에서는 흡 사 화광(火光)과도 같은 기운이 은근히 맴돌고 있는 듯했으며, 마지막으로 황약화의 오빠라는 삼절서생(三絶書生) 황안(黃安)은 체구가 비교적 헌칠하 면서도 준수한 외모에 비해서 다소 평범한 느낌을 주는 서생 타입이었다. 하지만 그 평범하게 보이는 모습 가운데 실로 비범한 점이 있다는 것을 화 검운은 능히 알 수가 있을 것 같았다. 그들 다섯 명은 황약화의 소개에 따라서 조용한 시선으로 화검운의 전신을 구석구석 주시하고 있었는데, 이윽고 그 가운데에서 천상신룡 백능풍이 입 을 열어 말했다. "우리에 대해서는 이미 귀하도 잘 알고 있으리라고 믿고 있소. 그러나 나는 설마하니 종남파에 귀하와 같은 인재(人才)가 있을 줄은 몰랐는데, 당신이 전대의 장문인 천하대협 화청우의 아들이 맞소?" 아마도 황약화가 미리 그와 같은 사실을 추측해 내고 나서 그들 다섯 명에 게 가르쳐 주었던 모양이었다. 화검운은 미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하지만 여러분들이 나에게 이렇게 관심을 가져 주실 줄은 몰랐었 소." 일검귀견수 상원웅장이 다소 서투른 중원어로 즉시 이렇게 말을 받았다. "제기랄! 정말로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인간(人間)이군." 옆에서 그 얘기를 듣고 있던 황약화와 악산산 등은 일제히 안색이 다소 변 했으나 오히려 화검운은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고 대꾸했다. "여러분들에게 나라는 존재가 눈에 거슬리는 것이라면 미안한 일이오. 하지 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서로 반목할 필요는 없는 일이 아니겠소?" "……!" 일검귀견수 상원웅장은 다소 급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듯이 금새 우수를 자 신의 어깨 위로 드러난 장검의 손잡이가 있는 쪽으로 가져갔으나, 문득 무 슨 생각을 했는지 장검을 뽑지는 않았다. 잠시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문득 삼절서생 황안이 입을 열어 화검운에게 말 했다. "나의 누이에게 듣자니 당신의 무공이 이미 초절정의 경지에 올라 있다고 하던데, 우리는 아직 그러한 사실을 믿을 수가 없어서 그러는 것이오. 그대 의 무공은 정말로 그와 같은 경지에 올라 있는 것이오?" 화검운은 미소하며 대꾸했다. "나의 무공이 어느 정도인가는 나중에 저절로 드러나게 될 것이오. 설마하 니 내가 이 자리에 참석하기 위해서는 그런 것까지 말해 주어야 한다는 말 이오?" 호면패도 늑가희가 역시 불분명하지만 거칠은 음성으로 입을 열어 말했다. "그렇다면 당신은 무엇 때문에 이 영웅대회에 구태여 참석하려고 했는가? 그것은 오로지 부친의 원한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는 말인가?" 화검운은 은근히 웃으며 대꾸했다. "그것도 당신들의 뜻대로 생각하시오." (……!) 화검운과 이 다섯 명의 강호의 후기지수들과의 만남은 실로 긴장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어색하고 심지어 거칠은 느낌까지 주고 있었다. 황약화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는 듯이 다소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그 다섯 명의 사람들은 화검운을 쉽게 놓아 주려고 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런데 바로 그 무렵에 이미 장내의 소요가 진정되어 무적군자 백룡성이 단 상의 중앙에 나서서 연설을 하기 시작했으므로 그들의 대치 상태는 자연스 럽게 해소되고 말았다. 화검운은 즉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자신의 자리에 다시 앉았고, 악산산 은 그의 곁에 어정쩡하게 섰으며, 백능풍 등은 마지못해서 약간 한쪽으로 물러나 버리고 말았다. 이 백룡성의 음성은 부드러운 가운데 힘찬 기백(氣魄)이 넘쳐흐르고 있었 고, 실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있는 것 같았다. "……그리하여 당금의 천하는 혼란(混亂)의 극(極)한 상황에 이르게 되었으 므로 본 백의맹(白衣盟)에서는 이번에 부득이 천하의 영웅호걸(英雄豪傑)들 의 중지(衆志)를 모아서 혈겁(血劫)의 주역인 흑풍사(黑風社)의 만행을 사 전에 분쇄하고, 나아가서 이 천하에 항구적인 평화(平和)를 이루어 내자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몇 가지의 사항들이 선행되어야 할 것인 데, 첫 번째로는 당금 강호의 관심거리가 되고 있는 무림삼보(武林三寶)들 을 결코 놈들에게 넘어가지 않게 해야 하는 것이며, 아울러서적들의 동태 를 예의주시하여 이번에 놈들의 세력을 완전히 타도해 내자는 것입니다 ……" 무공이 이미 상상할 수도 없는 경지에 이르다는 이 백룡성의 언변은 역시 무공만큼이나 유창하여 막히는 데가 없어 보였다. 사람들은 그의 얘기를 듣 고 있자니 무슨 시원스러운 햇살을 받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의 얘기보다도 그의 모습을 바라보는 데 더욱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 같았다. 실로 이 백룡성과 같은 사람은 지금의 이러한 자리가 아니 고는 평생을 가더라도 한 번 만나 보기가 어려울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백룡성의 말은 이어졌다. "이미 이 숭고한 의거(義擧)에 동참하기 위해 많은 강호의 군웅들께서 움직 여 주셨고, 게다가 오늘 이 금창보의 보주이신 신창 양승조 대협께서 몸소 수고로움을 무릅쓰고 지금과 같은 자리를 마련해 주셨습니다. 이에 심심(深 深)한 감사의 뜻을 전하는 바이며, 오늘은 우리 백의맹만의 작전회의가 아 닌 강호동도(江湖同道) 여러분의 영웅대회(英雄大會)가 될 수 있도록 하려 고 하는 것이니 아무쪼록 동도 여러분들의 거침없는 의견 제시가 있기를 바 라는 바이올시다!" 백룡성이 그와 같은 말을 마치고 나서 중앙의 단상에 마련되어 있는 자리에 앉자 이윽고 단 아래에서 한 사람이 손을 번쩍 들고 일어나더니 질문했다. "백 대협께서는 지금 백의맹의 대리맹주의 자격으로 오신 것입니까? 그렇다 면 현임 백의맹주께서는 어째서 오시지 않고 있는 것인지, 그리고 앞으로 오시게 된다면 그 시기가 언제쯤 되는 것인지 그 얘기 좀 들려 주십시오!" 백룡성은 그 사람이 다시 자리에 앉자 주위를 한 차례 둘러본 다음에 입을 열어 대답했다. "나는 오늘 물론 백의맹의 대리맹주의 자격으로 이곳에 온 것이오. 그리고 나의 부친이자 현재의 백의맹주이신 그분은 얼마 후에 오신다고 했으니 정 확하게 그 시기를 말할 수는 없지만 여러분들은 조만간 그분을 뵙게 될 것 이오." 백룡성은 비록 자리에 앉아서 조용한 음성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었지만 그 의 조용한 어조는 주위에 맑고 시원하게 울려퍼지고 있어서 은연중 장내(場 內)의 분위기를 압도하고 있는 듯했다. 장내에서 다시 한 사람이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현재 그 무림삼보(武林三寶)는 이곳 장안성 내에서 엄청난 소요를 불러일 으키며 곳곳에 혈겁(血劫)을 야기시키고 있습니다. 백의맹에서는 그 혈겁을 종식시키고 무림삼보를 취할 수 있는 방도라도 있는 것입니까?" 백룡성은 그의 얼굴을 힐끗 바라본 다음에 대답했다. "아직 그 무림삼보가 확실하게 나타난 것은 아니고, 게다가 우리의 적(敵) 인 흑풍사의 능력 또한 무시할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으로서는 뭐라 고 확실하게 대답할 수가 없는 입장이오. 그러나 다만 우리 백의맹의 소속 인원 모두는 이번의 일에 모두의 사활(死活)을 걸고 최선을 다하기로 다짐 하고 있기 때문에 필시 이번에 우리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가 있다고 말할 수가 있는 것이오." 다시 다른 한 사람이 몸을 일으켜서 소리쳐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는 아직 그 무림삼보의 진정한 정체(正體)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오. 백 대협께서는 우리 모두를 위해 그 무림삼보 에 대해서 보다 상세하게 가르쳐 주시겠소?" 백룡성은 이에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여러분의 과찬이 심하군요. 사실 우리들이라고 해서 무슨 특별히 다른 초 인적(超人的)인 천리안(千里眼)이 있는 것은 아니어서 역시 다른 사람들이 전해 오는 소식에 의존하고 있는 것일 뿐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들이 알고 있는 사항도 그저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 며, 내가 보기에 그러한 사실들은 앞으로 저절로 분명해지리라고 생각합니 다." 다시 한 사람이 손을 쳐들며 말했다. "백 대협께서는 방금 전에 흑풍사의 무리들을 제거하시겠다고 했는데, 그렇 다면 거기에 무슨 특별한 방안이라도 있다는 것입니까?" 백룡성은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세상에 완전한 일은 없습니다. 모사재인(謀事在人) 성사재천(成事在天)이 라고 했는데, 마치 그처럼 우리가 제아무리 훌륭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시기적절하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번에 따로 특별한 계획을 세우지 않았습니다. 오직 제마멸사(制魔滅邪)라는 기치 를 높이 세우고 강호동도(江湖同道) 여러분의 뜨거운 정의심(正義心)에 의 존하여 일심(一心)으로 사악한 집단들을 제거해 나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불승정(邪不勝正)이라, 우리는 반드시 이번에 승리를 거둘 수가 있을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지금부터 여러분들의 의견 을 차례대로 듣기로 하겠습니다. 여러분들께 특별한 고견(高見)이 계신다면 주저하지 마시고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 말에 장내에서 또 한 사람이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백 대협께서 계시는데 감히 우리들의 의견을 말한다는 것은 실례가 되는 일이겠지만 어쨌든 이 자리는 공석(公席)이니 우선 한 말씀을 드리고자 합 니다. 옛말에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불태(百戰不殆)라고 했듯이 우리들 이 어떤 계획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적도들의 세력에 대해서 좀더 소상하 게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불초는 백 대협께서 친히 그 흑풍사의 조직과 그 세력 등에 대해서 가르쳐 주셨으면 하는 것입니다." 백룡성은 이에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사실은 나도 먼저 그 얘기를 하려고 했었으나 이미 여 러분들께서 상세하게 알고 계시는 일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생략했었던 것입 니다. 그럼 그 흑풍사의 조직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그들의 주된 세력은 일월마교(日月魔敎)와 태양마곡(太陽魔谷), 설산 성모궁(雪山聖母宮), 현현각(玄玄閣)인데, 그 주된 세력에 다시 묘강독문 (苗疆毒門), 수라문(修羅門), 음산백골문(陰山白骨門), 혈혈루(血血樓), 만 수문(萬獸門), 혈붕도(血鵬島), 백화방(百花幇), 산동봉래파(山東蓬來派), 성숙파(星宿派), 무산방(巫山幇), 동정십팔채(洞庭十八寨) 등이 가세를 하 여……" 백룡성은 일단 흑풍사의 세력에 대해서 얘기를 시작하자 마치 자기 집의 얘 기를 하듯이 유창학 술술 말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바로 그 무렵에 장내에 느닷없이 기이한 일이 발생하여 백룡성의 얘 기가 도중에 끊어졌다. "앗! 무슨 짓이냐?" 정문이 있는 쪽에서 갑자기 크게 소리치는 음성이 들려오더니 그곳으로부터 한 명의 중년대한이 다소 비틀거리는 신형으로 빠르게 달려와서 단상을 향 해 뛰어들었던 것이었다. 따라서 백룡성은 자연히 말을 중단하게 되었고, 그것을 바라보던 사람들은 이 백룡성이 무공이 대단히 높아 누구도 해칠 수가 없을 지경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자연히 놀라게 되어 그만 신형을 벌떡 일으키게 되었다. 심 지어 단 주위에 있던 사람들 가운데에는 자신의 몸으로써 백룡성을 보호하 기 위해 다가오는 자를 막아서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그것들은 모두가 이 백룡성의 신망이 그만큼 두텁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 같기 도 했다. 그러나 정작 백룡성 자신은 그 사람을 본 순간 자신의 앞을 보호하기 위해 막아선 사람들을 손짓으로 물리쳤고, 이내 그 사람을 향해 말했다. "무슨 일이냐?" 다름이 아니라 바로 그 비틀거리며 다가온 중년대한은 백룡성에게 전할 얘 기가 있어서 급히 달려온 것이었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 중년대한은 이윽고 백룡성의 앞에 도착하자 그 즉시 무릎을 꿇고 절을 하며 이렇게 소 리쳤던 것이었다. "큰일났습니다. 무림삼보 중의 하나인 신병이기(神兵利器) 하나가 출현했다 고 합니다!" (……!) 신병이기의 출현(出現)! 비록 이 중년대한의 느닷없는 등장도 놀라운 것이 었지만, 기실은 그보다 더욱 놀라운 것은 바로 그가 말한 그 내용이었다. 백룡성은 크게 놀라서 입을 딱 벌리는 사람들의 얼굴을 돌아보며 그 중년대 한에게 다시 입을 열어 물었다. "뭐라고? 그것은 정확한 사실이냐?" 중년대한은 즉시 고개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소인이 어느 안전이라고 감히 거짓말을 아뢰겠습니까? 소인이 우연히 성내 의 북쪽을 감시하고 있다가 그곳의 길상루(吉祥樓) 부근에서 그 신검(神劍) 이 나타난 것을 목격하고 달려오는 길입니다!" --길상루. 이미 이곳의 지리에 밝은 사람들은 아는 사실이지만, 그 길상루 는 성내의 북쪽에서도 알려져 있는 제법 호화로운 주루였다. 백룡성은 그 중년대한의 말을 듣고서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이윽고 몸을 일으켜서 장내의 군웅들을 향해 포권하며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 "여러분! 상황이 이렇게 급하게 일어나니 여러분과 마음놓고 의논할 시간도 갖지 못하게 되는군요. 비록 그 신병이기는 대단한 것은 못되지만 이번에 흑풍사와의 일전(一戰)의 서막을 장식할 수 있는 상징적(象徵的)인 것이라 고 할 수가 있을 것이기 때문에 부득이 본인이 직접 가서 확인해야만 하겠 소이다. 여러분! 여러분들 가운데 경공술(輕空術)이 뛰어나고 함께 가고 싶 으신 분들은 지금 즉시 본인의 뒤를 따라오기 바랍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백룡성은 정말로 그 자리에서 신형을 날려서 허공으로 일 장 정도 떠오르더니 그대로 거의 일직선(一直線)을 긋듯이 빠르게 정문쪽으 로 날아갔다. ……! 사람들은 그 백룡성이 그토록 빠르게 행동을 취할 줄은 몰랐기때문에 다소 어리둥절해 하고, 게다가 그의 그 놀라운 경공술에 눈을 휘둥그래 뜨면서 바라보다가 이윽고 거의 동시에 우르르 그쪽으로 뒤따라 신형을 날리기 시 작했다. 실로 그러한 광경은 거대한 메뚜기떼가 일시에 하늘을 향해 비상하 는 것 같기도 하고, 혹은 요란스러운 음향을 내며 벌떼들이 한꺼번에 움직 이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이 군웅들의 백룡성에 대한 신뢰감은 거의 절대적(絶對的)인 것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신병이기에 대한 호기심은 둘째치더라도 하물며 그 백룡성이 이미 앞장을 섰는데 누군들 그의 뒤를 따르지 않겠는가? 그리하여 금창보에 서 모처럼 마련된 무림의 영웅대회는 그렇게 느닷없이 풍지박산이 되어 버 리고 말았다. ─────────────────────────────────────── 일반연재 [백상] 종남사부 5권 제32장 -b- 총 Page : 8 -------------------------------------------------------------------------- ---- 게 시 자 : tohana(박성호) 게 시 일 : 97/04/13 01:57:47 수 정 일 : 크 기 : 6.0K 조회횟수 : 44 [백상] 종남사부 제5권 32장 -b- 04/04 07:28 316 line 올 린 이 : 양한우 HITEL ID : hanwoo71 제32장.(2) 옥관음(玉觀音) 화검운은 이때 구파일방의 연합체인 청풍회(淸風會)의 사람들과 뒤섞여서 좌우에 각기 용아와 봉아의 손을 잡고서 신형을 날리고 있었는데, 역시 그 의 곁에는 악산산이 아직 그에 대한 호기심을 떨치지 못하고 바싹 뒤따르고 있는 상태였다. 애초에 백룡성은 군웅들이 뒤따를 것을 예상해서 그다지 빠르지 않게 나아 갔었고, 게다가 워낙에 많은 인원들이 꼬리를 물고 달려가고 있는 상황이었 기 때문에 악산산과 같은 정도의 무공을 지닌 사람들도 능히 그 대열의 뒤 를 따라갈 수가 있었다. 지금은 기실 훤한 대낮이어서 그와 같이 신법을 펼쳐서 나아간다는 자체가 좋지 않은 일이겠으나, 군웅들은 지금의 상황이 이것저것을 가릴 시기가 아 니라는 것을 알고는 주저없이 신법을 펼쳐서 대로를 가로지르고 지붕과 지 붕 사이를 날아넘어서 성내의 북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이 금창보가 있는 성내의 남쪽과 그 길상루가 있는 성내의 북쪽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기 때문에 장애물들을 피해서 대열을 따라 신형을 날리다 보니 마침내 한 시진 정도의 시간이 흘러서야 비로소 그 목적지에 당도할 수가 있었다. …… 목적지에 당도해 보니 아니나 다를까, 사건이 벌어져 있는 곳은 바로 그 길 상루(吉祥樓)라는 호화로운 주루의 내부였는데, 그곳에는 원래부터 있었던 사람들과 이미 먼저 도착했던 사람들이 한데 어울려서 대치하고 있는 상태 였다. 그런데 왠지 가장 먼저 도착했었을 백룡성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 있었고, 무심코 중앙을 바라보다가 그 자리에 매우 낯익은 얼굴들이 있는 것을 보고는 화검운은 다소 놀랐다. 기실 이 길상루는 하나의 주루이기는 하지만 마치 넓은 기루(妓樓)처럼 방 대한 지역에 걸쳐서 누각들이 세워져 있고 또한 그 중앙에는 넓고 아름다운 정원이 갖추어져 있어서 은근히 취흥을 느끼게 해주는 곳이었는데, 다름이 아니라 지금 사건이 벌어져 있는 곳은 그 넓은 정원의 가운데로서, 그 주위 로는 실로 무수한 거칠은 무림인들이 에워싸고 있는 모습들이 보였다. 그 무림인들이 포위하고 있는 중앙에 서 있는 낯익은 얼굴들은 바로 다름이 아니라 오늘 새벽에 서쪽의 빈민가에서 보았던 무산신녀문의 소문주라는 병 미인(病美人) 이문수(李文秀)와 흑백이파파(黑白二婆婆) 등이었는데, 특히 그들 가운데 병미인 이문수는 지금 전에 보이지 않던 한 자루의 기이(奇異) 한 느낌을 주는 장검을 손에 뽑아들고서 초조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고 있는 모습이었다. "바로 저 여자가 가지고 있는 장검이 그 신병이기라는 말인가요?" 화검운이 근처의 지붕 위에 내려서자 그 뒤를 따라 옆으로 내려서던 악산산 이 그의 옆으로 다가오며 장내의 중앙에 표적이 되어 서 있는 이문수를 가 리키며 물었다. "아마도 그런 것 같소." 화검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심 다소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 무산신녀문의 사람들은 오늘 새벽녘에 헌원보의 보주를 뒤쫓아 갔었는데, 대체 어디에서 저와 같은 병기를 구하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지금 장내의 한쪽에는 예의 그 금응방(金鷹幇)이나 산동봉래파(山東蓬來 派), 성숙파(星宿派) 따위의 흑도의 세력들이 포진을 하고 각기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 있었으며, 그 반대쪽에는 이미 도착한 백의맹의 사람들이 다 소 어리둥절해 보이는 시선으로 이문수의 손 안에 들려 있는 장검을 주시하 고 있었다. 실로 지금의 상황은 비록 아직 싸움은 벌어지지 않고 있었지만, 일단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거대한 혈겁(血劫)이 벌어질 것 같은 일 촉즉발(一觸卽發)의 태세라고 할 수가 있었다. "흑파파(黑婆婆)! 당신들이 감히 그 신검(神劍)을 지킬 수가 있을 것 같은 가? 공연히 고집을 부리지 말고 어서 그 신검을 우리에게 넘기는 것이 어떤 가?" 느닷없이 한 사람이 유난히 큰 목소리로 떠들어 댔는데, 알고 보니 그는 아 까 흑뎌이파파 등에게 형편없이 쫓겨갔었던 혼원보주 혼원벽력수(混元霹靂 手) 상경지(常敬之)라는 사람이었다. 이미 화검운에게 내상을 입은 것이 가볍지 않았는지 수라존자는 모습을 보 이지 않고 있는 상태였고, 흑백이파파는 구태여 혼원벽력수 상경지의 그러 한 말에 모른 척하려고 했으나, 실로 지금은 위태위태한 상황인 모양이었 다. 사실 그들 세 명의 힘이 제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결코 이 많은 흑백양 도(黑白兩道)의 무리들 가운데에서 신병이기를 들고 빠져나갈 수는 없을 것 으로 보였다. 헌데 바로 그때의 일이었다. 장내를 가득 메우고 있었던 강호인들의 중앙이 크게 허물어지는 듯하더니 일단의 무리가 나타나서 점차로 빠르게 이문수 등의 곁으로 다가가는 것이 아닌가! 이문수 등은 즉시 이것을 보자 얼굴 가득히 희색(喜色)을 떠올리며 소리쳤 다. "사부님!" 지금 나타난 사람들의 숫자는 실로 적지 않아서 무려 수십 명이나 되는 것 같았는데, 그 중에서 백의(白衣)를 입은 여인(女人)들을 거느리고 있는 한 명의 면사(綿絲) 여인을 향해 이문수는 그렇게 소리친 것이었다. 악산산이 옆에서 바라보고 있다가 다소 놀란 듯이 소리쳤다. "아, 바로 무산신녀문의 문주인 무산신모(巫山神母) 이추수(李秋水)가 자신 의 제자를 돕기 위해 칠향선자(七香仙子)들을 거느리고 나타났군요!" 그렇다. 지금 나타난 무리들의 가운데 백의면사여인은 바로 다름이 아닌 무 산신녀문의 문주인 무산신모 이추수였고, 나머지 백의여인들 가운데 각기 소매에 서로 다른 색깔의 꽃무늬를 수놓은 옷을 걸친 사람들은 무산신녀문 의 그 유명하다는 칠향선자들이었던 것이었다. 그 칠향선자는 바로 무산신 녀문의 문주 다음가는 직위인 당주(堂主)급의 여자들로서, 그들의 무공이라 면 이러한 위기에서 이문수 등을 구하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그러나 기실 방금 나타난 무리들 가운데에서 주역은 그 무산신모 이추수가 아니라 다른 한 명의 소녀(少女)였다. 화검운은 악산산의 말을 들으면서도 시선을 계속해서 그 소녀에게 주고 있었는데, 바로 그 소녀는 은근히 그 수 십 명의 무리들의 호위(護衛)와 인도를 받아 가면서 그들을 이끌고 이문수 등이 서 있는 중앙으로 나아가고 있었고, 실로 한눈에 보기에도 그 자질(資 質)이 아주 범상하지 않은 것이었다. 나이는 대략 스물한 살 정도였는데, 일신에는 회색의 승포를 걸치고 있었으 나 머리는 삭발하지 않아서 구름같은 머리를 아래로 드리우고 있었고, 게다 가 그 용모(容貌)가 어찌나 아름다운지 마치 속세의 더러운 먼지 속에 있더 라도 조금도 때가 묻지 않는 연꽃을 연상시키는 절세미소녀(絶世美少女)였 다. 화검운은 그 회색승포의 미소녀를 보는 순간에 즉시 조금 전에 보았었던 강 호오봉 가운데의 첫 번째인 천상옥녀 백유의 얼굴을 떠올렸고, 이어 그 두 명의 소녀들의 용모는 도저히 우열을 가릴 수가 없을 지경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천상옥녀 백유의 얼굴이 마치 천계(天界)의 신녀(神女) 를 연상케 한다면, 지금 이 희색승포를 걸치고 있는 소녀의 모습은 마치 속 세에 하강한 관음보살(觀音菩薩)의 모습과도 같다고나 할까. -- 계속 -- ─────────────────────────────────────── 일반연재 [백상] 종남사부 5권 제33장 -a- 총 Page : 14 -------------------------------------------------------------------------- ---- 게 시 자 : tohana(박성호) 게 시 일 : 97/04/13 01:59:18 수 정 일 : 크 기 : 10.8K 조회횟수 : 46 [백상] 종남사부 제5권 33장 -a- 04/04 07:19 302 line 올 린 이 : 양한우 HITEL ID : hanwoo71 제33장.(1) 두 자루의 이기(利器) 악산산도 뒤늦게 그 무리들의 지도자겪인 그 회색승포를 걸친 미소녀(美少 女)를 보았는지 다소 놀라는 표정이 되어서 물었다. "아니, 저 여자는 대체 누구죠? 어째서 무산신모 이추수 등이 저토록 공손 하게 길을 안내하고 있을까요?" "……" 화검운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 순간에 이미 장내의 상황이 그의 대답을 대 신해 주기 시작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산신모 이추수는 앞장서서 이문수의 앞에 이르러서 그녀가 들고 있는 백 색(白色)의 서광(瑞光)이 빛나고 있는 장검을 주시하더니 아직 그것을 받아 들기도 전에 이문수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수아(秀兒)야! 어서 이분께 인사를 올리거라. 이분은 바로 남해 보타도(南 海菩陀島)의 도주이신 옥관음(玉觀音) 단목소소(端木小昭) 단목 도주이시 다." ……! 이문수는 자신의 사부가 장검을 받아들지 않는 것을 기이하게 생각하다가 이윽고 그 무리들의 중앙에서 앞으로 나서고 있는 회색 승포를 걸치고 있는 미소녀를 바라보고는 일순 매우 놀란 표정이 되어서 말했다. "어마! 그…… 그렇다면 저분이 바로 강호오봉(江湖五鳳) 가운데의 하나인 그 옥관음이라는 말인가요?" 이추수는 대답하지 않고 다소 노한 눈초리로 이문수를 바라보며 어서 그녀 를 향해 인사를 올릴 것을 지시했다. 이 옥관음 단목소소의 나이는 그저 스물한 살 정도로서 이문수에 비해서 겨 우 두어 살 정도의 차이밖에 나지 않았지만, 그러나 옥관음 단목소소의 명 성이나 위치는 감히 그녀와 견줄 수가 없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문수는 즉시 두말하지 않고 공손히 그녀를 향해 예를 올렸다. "소녀 이문수가 높으신 남해 보타도의 단목 도주님께 인사를 올려요!" 옥관음 단목소소는 이제까지 기품(氣品)이 넘치는 듯한 표정으로 조용한 상 황을 주시하고 있다가 이문수의 그와 같은 인사말을 듣고는 그 고운 얼굴에 화사한 미소를 떠올리며 답례했다. "과찬의 말씀을 하는군요. 이 낭자와 나는 나이 차이도 얼마 되지 않으니 그저 나를 언니라고 부르고 따라 주었으면 좋겠어요." 이문수는 한눈에 이 단목소소가 아주 마음에 들었었기 때문에 그와 같은 그 녀의 말을 듣자 대뜸 반색을 하며 물었다. "아, 제가 정말로 그렇게 불러도 되나요?" 단목소소는 가볍게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예요." 이때 이추수는 이미 이문수로부터 예의 그 백색의 신검(神劍)이라는 장검을 받아들어서 즉시 단목소소에게 건네주고 있었다. 단목소소는 이에 시선을 그 장검에 두고서 일단 이추수로부터 장검을 받아든 다음에 잠시 그 장검을 이모저모 살펴보다가 눈빛을 기이(奇異)하게 빛내면서 말했다. "백홍검(白虹劍)이라…… 이것이 바로 그 소문에 들리던 신검이란 말인가 요? 대체 이것을 여러분은 어디에서 구했죠?" 단목소소의 시선이 이추수에서 다시 이문수를 향해 옮겨지는 것을보고 이 문수가 다소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어서 말했다. "우리들은 혼원벽력수 상경지를 뒤쫓다가 우연히 웬 흑도의 무리들이 그 백 홍검을 가지고 쟁탈전을 벌이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그4것을 빼앗아 왔던 것이예요. 그런데 설마하니 그 소문이 금방 이렇게 삽시간에 퍼질 줄은 생 각도 못했어요." 단목소소는 이문수를 향해 다시 물었다. "흑도의 무리들이었다니, 아는 사람들이었는가?" 이무수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예요. 그들의 무공은 그저 하류급에 불과했고 또한 얼굴들도 알려지지 않은 것들이어서 저는 그저 이곳 장안성 내의 시정잡배들이 아닐까 하고 생 각했었어요." 이문수가 뒤로 고개를 돌리자 그 흑백이파파 역시 동감이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 무렵 새로 나타난 무리들은 이문수 등을 완전히 에워싸서 보호하고 있었 고, 그 가운데에서 한 사람의 중년인이 근처에서 장검 하나를 주워 들어서 단목소소에게 건네주면서 말했다. "단목 소저(端木小姐), 우선 이것으로 시험해 보는 것이 어떻겠소?" "고마워요." 단목소소는 그 중년인을 향해 미소하며 예를 보낸 다음에 이윽고 그 정강 (精鋼)으로 이루어진 장검을 백홍검과 가볍게 부딪쳐 보았다. 그러자 싸악! 하는 기이한 소음과 함께 정말로 그 장검이 백홍검의 검날에 의해 여지없이 잘려 나가는 것이 아닌가! 단목소소를 뒤따르던 무리들은 그러한 광경을 보고는 과연 신검이 틀림이 없다고 생각되어 자신도 모르게 감탄의 신음을 발했고, 나머지 주위에서 그 들을 에워싸고 있던 많은 사람들은 이제까지 다소 침묵을 유지하고 있다가 다시 욕심이 발동하여 저마다 커다란 소음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했다. 단목소소는 비록 어린나이의 소녀였지만 그 행동거지는 전혀 나이 어린 기 색이 보이지 않았고, 지극히 태연하면서도 기품이 있어서 은연중 많은 사람 들의 주의를 끌었고, 게다가 모든 사람들을 압도하는 면모가 있었다. 그녀 는 잠시 백홍검의 검날을 살펴보고 나서 그것의 검날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 는 것을 확인하고는 미소하며 그것을 이추수에게 내밀며 말했다. "축하드려야 하겠어요, 이 장문인!" 이추수는 그것을 보자 즉시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아니예요. 내가 어떻게 그런 것을 받을 수가 있겠어요? 그것은 단목 도주 님께서 보관해 주세요." 단목소소는 잠시 이추수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녀의 의중(意中)을 탐색하는 듯하다가 웃으면서 다시 말했다. "그럼 잠시 제가 보관하도록 할까요?" 이추수는 환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잠시 보관할 것 없이 아예 그것을 단목 도주께서 가지시도록 하세요. 기실 우리들이 그런 것을 갖는다고 해도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 히려 화를 당하게 되기가 십상일 테니까요." …… 악산산은 화검운과 용아 봉아 등과 함께 지붕 위에서 그쪽으로 귀를 기울여 서 그와 같은 대화를 듣고는 일순 알 수가 없다는 듯이 화검운을 향해 물었 다. "저 옥관음 단목소소의 무공이 정말로 무산신모(巫山神母) 이추수의 무공보 다 더욱 높다는 것일까요?" 화검운은 고개를 그녀에게 돌려서 가볍게 끄덕여 보였다. "아마도 그런 모양이오. 이를 두고 아마도 장강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 내는 것이라고들 하는 모양이오." 악산산은 그 말에 환하게 웃었다. "흥! 실로 당신의 재주는 비상한 데가 있기 때문에 그러한 비유는 오히려 당신에게 어울리는 것일 거예요." "……" 화검운은 대꾸하지 않고 가볍게 미소하며 다시 장내로 시선을 옮겼다. 이때의 상황은 비교적 짧은 시간이 흘렀지만 상당히 변해 있었다. 단목소소 는 일단 예의 그 백홍검을 한 손에 들고는 무산신모 이추수 등의 호위(護 衛)를 받아 가며 이 자리를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보였고, 그 반면에 주위에 서 포위를 하고 있던 많은 무리들은 서로간에 눈치를 보면서 바싹 긴장을 하고서 결코 그냥 보내지 않으려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한 움 직임은 확실히 정파의 사람들보다는 사마외도의 인물들이 더욱 강렬해 보였 다. 악산산은 그것을 보고 다소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대체 저러한 신검이라는 것이 무엇이길래 불과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제마멸 사(制魔滅邪)를 외치면서 사마외도를 타도할 것을 결의하던 사람들이 그들 과 한통속이 되어서 나서려는 것일까요? 저의 생각대로라면 그저 지금 아예 저 나쁜 사람들을 모조리 쓸어 버렸으면 좋을 것 같은데요?" 화검운은 미소하며 고개를 그녀에게 돌린 다음에 웃으며 말했다. "하긴 그럴 듯한 얘기요." 바로 그 순간에 장내에서 흑백이파파 가운데의 백파파(白婆婆)가 요란스럽 게 소리치는 음성이 들려왔다. "흥! 보물을 보더니 그야말로 정파와 사파의 구분이 없구나. 팔수선후(八手 仙 ) 당유양(唐維陽)! 당신네 사천당문(四川唐門)이 강히 우리에게 이럴 수가 있다는 말이오?" -- 팔수선후(八手仙 ) 당유양(唐維陽). 이른바 사천당문의 문주(門主)로 알려져 있는 그 다소 왜소한 체구의 중년인은 일순 대답을 하지 않고 슬쩍 고개를 돌려 버렸다. 헌데 그때 갑자기 느닷없이 사람들의 머리 위에서 한 줄기의 온화하면서도 맑은 음성이 울려 와서 사람들의 정신을 번쩍 차리게 만들었다. "우리들이 이곳에 나타난 이유는 그런 욕심을 부리자는 데에있는 것이 아 니라 바로 강호의 평화(平和)를 가져오기 위함이니 양해해 주시기 바라오." ……! 사람들은 느닷없이 공중에서 그와 같은 소리가 들렸기 때문에 저마다 크게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느닷없이 허공에 나타나서 마치 땅 위를 걷는 것처럼 허공을 유유자적(悠悠自適)하게 걸어오고 있는 한 명의 백의중 년인(白衣中年人)을 발견하고는 놀라서 저마다 소리쳤다. "앗! 무적군자 백룡성 백 대협(白大俠)이시다! 저게 바로 말로만 듣던 능공 허도(凌空虛渡)라는 경공술이로구나!" 그렇다! 가장 먼저 이곳에 도착하여 어디로 간 것인가 하고 모두들 궁금해 하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 백룡성은 다른 곳에 볼일이 있어서 갔다가 다 시 돌아온 모양이었다. 백룡성은 천천히 허공을 걸어서 이윽고 지면에 내려섰는데, 그 부근은 비록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심지어 사마외도의 사람들이라고 해도 저절로 뒤로 물러나서 공간을 확보해 주는 바람에 백룡성은 아주 자연스럽게 단목소소 등의 앞에 내려설 수가 있게 되었다. ……! 백룡성은 이어 자신을 향해 시선(視線)을 보내고 있는 단목소소 등을 향해 가볍게 웃으며 입을 열어 말했다. "단목 도주! 듣던 대로 과연 뛰어난 능력(能力)을 가지고 있는 분이구려. 하지만 본인이 처음으로 만나자마자 한 가지의 부탁을 드려야 하겠는데 들 어주시겠소?" 단목소소는 백룡성의 말에 눈빛을 반짝 빛내며 듣고 있다가 되물었다. "무슨 부탁을 할 셈인가요?" 백룡성은 가볍게 웃으며 다시 말했다. "당신네들이 우리 백의맹(白衣盟)에 대해서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고 있다 는 것을 잘 알고 있소. 그러나 지금의 나의 취지는 강호의 혈겁(血劫)을 방 지하고자 하는 데 있는 것이니 실례지만 도주의 손에 지금 들려 있는 그 장 검을 나에게 잠시 건네달라는 것이오. 나는 잠시 그 진위(眞僞) 여부를 판 가름해 본 다음에 다시 돌려드리겠소이다." 단목소소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가 백룡성을 주시하며 다시 물었다. "만일 이것이 정말로 그 소문의 신검이라면 어떻게 하실 생각이죠?" 백룡성은 이에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물론 그것이 진짜라고 해도 다시 돌려드릴 것을 약속하겠소." 그 말에 문득 흑백이파파 가운데의 백파파가 노한 음성으로 소리쳤다. "흥! 당신네 백의맹의 위선자(僞善者)들을 우리가 어떻게 믿을 수가 있다는 말인가? 당신의 말을 누가 믿기라도 한다는 말인가?" 하지만 백룡성은 그저 백파파의 그러한 얘기를 전혀 듣지 못한 사람처럼 담 담히 웃으면서 계속해서 단목소소의 얼굴을 주시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이 백룡성의 명성이 비록 높다고는 하나 단목소소가 그 신검을 쉽게 넘겨줄 리는 없는 일이기 때문에 여기에서 어쩌면 두 사람 간의 일장의 격투(激鬪)가 벌어지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강호상에서 거의 전설(傳說)처럼 전해져 내려오던 두 사람의 능력과 무공에 대해서 은근히 호기심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다소 긴장하는 표정들이었 다. 그런데 뜻밖에도 사람들의 생각을 벗어나는 일이 일어났다. 단목소소는 잠 시 미소하며 생각하는 듯하다가 어이없게도 그저 자신의 손에 들려 있는 예 의 그 백홍검을 너무나도 간단하게 앞쪽으로 던져주는 것이었다. 백홍검은 따라서 마치 실에 매달린 것처럼 비스듬하게 날아가 백룡성의 몸 앞에 이르 러 일순 정지했다. 실로 이러한 단목소소의 행동은 주위의 많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심지어 이 제까지 거의 신검에 대해서 담담한 표정을 보이고 있던 무산신모 이추수까 지도 매우 놀라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백룡성은 으레 그렇게 될 줄 알았다는 듯이 자신의 앞에 마치 탁자 위에 올려져 있는 것처럼 정지하고 있는 백홍검을 가볍게 집어들고는 단목소소를 향해 다소 놀랍다는 표정으로 눈짓을 보낸 다음에 이윽고 다른 손으로는 품속에서 한 자루의 비수처럼 작은 단도(短刀)를 꺼 내 들었다. ……? 사람들의 시선은 이제 백룡성의 행동이 어떻게 변해 갈 것인가에 대해서 대 단한 관심을 가지고 집중하게 되었는데, 백룡성은 품속에서 꺼낸 단도의 칼 집을 손끝으로 퉁겨내자 이윽고 그 속에서도 단도의 시퍼런 날이 드러나는 것이었다. 그 단도의 날은 기이(奇異)하게도 투명한 푸른 빛을 띠고 있었는 데, 그러나 별로 광채를 발산시키는 것 같지는 않았다. 백룡성의 행동거지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던 사람들은 그 순간에 백룡성의 손에 들린 단도의 손잡이 부분에 마치 북두칠성(北斗七星)을 연상케 하는 일곱 개의 검은 보석(寶石)과도 같은 것들이 박혀 있는 것을 알 수가 있었 는데, 이윽고 백룡성이 가볍게 손짓을 하자 무려 삼 장 밖에 있던 부러진 장검 하나가 그의 손으로 마치 살아 있기라도 하듯이 날아서 들어가는 것이 었다. ─────────────────────────────────────── 일반연재 [백상] 종남사부 5권 제33장 -b- 총 Page : 8 -------------------------------------------------------------------------- ---- 게 시 자 : tohana(박성호) 게 시 일 : 97/04/13 02:00:45 수 정 일 : 크 기 : 5.8K 조회횟수 : 52 [백상] 종남사부 제5권 33장 -b- 04/04 07:19 302 line 올 린 이 : 양한우 HITEL ID : hanwoo71 제33장.(2) 두 자루의 이기(利器) 그것은 바로 강호상에서 널리 알려져 있는 이른바 격공섭물(隔空攝物)의 절 기(絶技)라고 하는 것이었는데, 비록 알려져 있는 같은 절기라고 해도 막상 이 백룡성이 시전을 하자 뭔가 달라도 크게 다른 것 같았다. 우선 그 거리 면에서 일반적으로 설령 최절정의 고수라고 해도 겨우 열다섯 자 이내의 거 리에서 그와 같은 절기를 발휘할 수가 있을 뿐이었는데 백룡성은 그 두 배 가 넘는 거리에서 절기를 구사했고, 둘째는 게다가 그 절기가 너무나도 자 연스러워서 마치 그가 공력을 쓰지 않고 장검이 저절로 움직인 것 같다는 사실이었다. 왜냐하면 장검의 주위에는 여러 가지 잡다한 물체들이 많았지 만 다른 것들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오직 장검만이 스르르 허공으로 날아 올라서 그의 손 안에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백룡성은 그 부러진 장검을 일순 손끝으로 가볍게 퉁겨내더니 그것이 허공 에 떠오르자 이내 자신의 그 단도를 가볍게 휘둘러서 부러진 장검의 날을 베어 갔다. ……! 사람들은 지금 백룡성이 무슨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인지 쉽게 이해할 수가 없었지만, 그러나 모두들 거의 숨을 죽이고 그와 같은 광경을 주시하고 있 는 중이었다. 그런데 이때 다시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백룡성의 단도와 예의 그 부러진 장검의 날이 서로 부딪쳤는데도 전혀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고 부러진 장검 의 날만 두 동강이가 되어 바닥에 떨어져 버리는 것이 아닌가! 쨍그랑! 사람들은 저마다 크게 놀라서 다시 그 단도의 날을 주시했는데, 역시 그 단 도의 날은 투명한 푸른 광채를 머금고 있을 뿐 조금도 손상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실로 조금 전에 사람들은 백홍검이 정강장검을 베는 것을 보았었지만 그때 에는 그래도 약간의 싸악! 하는 소리라도 들렸었는데, 지금 이 단도는 전혀 소리도 없이 장검의 날을 베어 버렸으니 실은 그 단도가 더욱 훌륭한 이기 (利器)라는 말일까? 사람들은 실로 의아한 생각이 들어서 바닥에 떨어져 있는 두 동강 난 부러 진 장검이 혹이 녹슬고 터무니없이 약한 재질로 되어 있는 장검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보았으나 기실은 그것도 아닌 것 같았다. 왜냐하면 그 장검은 비록 부러진 것일지라도 원래는 상당한 명검(名劍)이었던 모양인지 아직 은 은한 검광(劍光)을 발출시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금 전에 백룡성은 구 태어 자신의 앞쪽에 떨어져 있는 다른 장검들을 마다하고 그 부러진 장검을 집어들었었는데, 그것은 바로 그 장검이 보다 우수한 것이기 때문일 것이었 다. 이 장검이라고 하는 것은 일단 무공을 어느 정도 성취한 사람들에게는 금방 식별이 가능한 것이어서 그와 같은 검광을 발출시키는 장검이라면 틀 림없이 백련정강(白練精鋼)에 현철(玄鐵)을 섞어서 오랫동안 주조하여 만든 것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앗, 저것은 바로 그 칠성보도(七星寶刀)라는 것이다!" 사람들 가운데에서 돌연 놀란 듯한 음서이 하나 터져 나왔다. 그렇다. 결국 그 단도가 쉽게 장검을 베어 버릴 수 있었던 것은 틀림없이 평범한 병기가 아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었다. 백룡성은 이에 가볍게 웃으며 단목소소를 향해 말했다. "보다시피 이 칠성보도는 제법 이기(利器)의 대열에 들어간다고 할 수가 있 는 것이오. 그러나 기실 정확히 말한자면 이기라고는 할 수가 없는 것이어 서 그저 거기에 버금가는 것이라고나 할까?" 단목소소는 이에 대꾸했다. "나도 그칠성보도에 대한 얘기는 들었어요. 당신은 그래 어떻게 하실 생각 이죠?" 백룡성은 미소하며 대답했다. "나는 만일 이 신검이 가짜일 경우에는 헛되이 목숨을 잃게 될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해서 먼저 이 칠성보도로 시험해 보려고 하는 것이오. 만일 이 신검이 진짜라면 결코 칠성보도에 상하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칠성 보도를 베어 버릴 것이 분명하오. 하지만 가짜라면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는 일이 아니겠소?" 단목소소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군요." 백룡성은 미소하며 다시 말했다. "그렇다면 한번 이 자리에서 시험해 보도록 합시다!" 말과 동시에 그는 좌우의 손에 각기 들려 있는 두 자루의 이기들을 자신의 가슴 앞에서 가볍게 부딪쳐 보았다. 비록 그가 그렇게 가볍게 부딪치는 것 이라고 해도 그의 공력이 은근히 실려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두 개의 이 기가 부딪치면 어느 하나는 부러지게 될 것 같았다. …… 장내의 모든 사람들은 그 결과를 제대로 보기 위해 하나같이 눈을 크게 뜨 고 바라보았다. 그들은 이문수가 들고 있었던 그 신검이 진짜였다면 틀림없 이 칠성보도가 절단될 것이겠지만, 조금 전에 보았듯이 그 칠성보도의 위력 또한 대단한 것이었으므로 과연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 궁금하기 짝이 없었 다. 그런데 다음 순간에 두 개의 이기가 서로 부딪치는 순간에 쨍! 하는 요란한 음향과 함께 예의 그 백홍검이 그만 맥없이 중간 부위가 잘려져 나가는 것 이 아닌가! 반면에 칠성보도는 아무리 살펴봐도 조금 전과 다름이 없이 조 금의 흠집도 없었고 여전히 투명한 푸른 광채를 머금고 있는 모습이었다. 사람들은 일순간 신검이라고 생각했던 그 백홍검이 그처럼 허무(虛無)하게 잘려져 나가는 것을 보게 되자 절로 멍청한 표정들이 되었다. 흑백이파파 가운데의 흑파파(黑婆婆)가 그것을 보고 일순 참을 수가 없는 듯이 소리쳐서 말했다. "백 대협! 당신은 당신의 무공을 이용하여 그토록 교묘하게 신검을 파괴할 수가 있나요? 만일 당신이 마음만 먹는다면 설령 썩어빠진 장검이라고 해도 신검을 베어 버릴 수가 있었을 것이오!" 그렇다. 지금 흑파파가 하는 말은 상당히 일리가 있는 것이어서 사람들은 혹시 백룡성이 무슨 수작을 부렸던 것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백룡성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단목소소를 향해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도주도 내가 어떤 술수(術數)를 부렸을 것이라고 생각하시오?" 단목소소는 그 말에 일순 고개를 가로젓는 것이었다. "아니예요. 제가 분명히 보았으니 당신이 그 가운데 전혀 어떤 수작도 부리 지 않았다는 것을 확신할 수가 있어요." ……? 이것은 또 무슨 말일까? 사람들이 단목소소의 그러한 말에 다소 의아해 하고 있는데, 그 말에 백룡 성이 일순 웃으면서 대꾸했다. "훌륭하오. 실로 그 나이에 많은 사람들의 공경을 받는다는 것을 기이하게 생각했더니 과연 남다른 점이 있었구려." 말과 함께 백룡성은 문득 자신의 두 손에 들려 있는 부러진 백홍검과 그 칠 성보도를 칼집째 동시에 단목소소를 향해 던져 주었다. 그것은 역시 단목소 소의 앞에 이르러서 마치 귀신이라도 들린 것처럼 갑자기 움직임을 멈추고 허공에 고정되어 있었는데, 그것을 바라본 단목소소가 의아해 하며 물었다. "이 칠성보도는 어째서 저에게 주는 거죠?" -- 계속 -- ─────────────────────────────────────── 일반연재 [백상] 종남사부 5권 제34장 -a- 총 Page : 12 -------------------------------------------------------------------------- ---- 게 시 자 : tohana(박성호) 게 시 일 : 97/04/13 21:20:27 수 정 일 : 크 기 : 9.1K 조회횟수 : 38 [백상] 종남사부 제5권 34장 -a- 04/04 07:20 320 line 올 린 이 : 양한우 HITEL ID : hanwoo71 제34장.(1) 황혼(黃昏)의 여심(女心) 백룡성은 미소하며 대꾸했다. "내가 이미 당신의 이기를 망가뜨렸으니 그것으로 대신 보상해 주는 것이 도리가 아니겠소?"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이 백룡성의 대범하고 호탕한 기백에 놀라움을 금하 지 못했다. 원래 조금 전에도 모두가 보았지만 그 칠성보도는 비단 그 손잡 이에 달려 있는 일곱 개의 검은 보석에 각각의 묘용(妙用)이 있을 뿐만 아 니라 지극히 놀라운 보검으로서 강호상에 알려져 왔던 것이었는데, 실로 그 러한 보검을 쉽사리 남에게 선사한다는 것은 역시 쉽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 이었다. 그러나 오히려 단목소소는 그 말을 듣자 매우 못마땅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나는 이런 것을 원하지 않아요. 그러니 어서 이것을 다시 가져가도록 하세 요!" 사람들은 단목소소가 갑자기 앞에 서 있는 백룡성에게 말하지 않고 엉뚱한 먼 곳을 향해 소리치는 것을 보고는 다소 의아해 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의 일이었다. 느닷없이 조용히 서 있는 듯하던 백룡성의 신형이 흡사 안개처럼 흐려지더니 그 자리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앗! 천룡무가(天龍武家)의 팔대절학 중의 하나인 부동신보(不動神步)로구 나!" 그렇다. 기실 조금 전에 백룡성은 먼저 칠성보도를 건네주고 바로 신형을 움직여 사라졌던 것이었는데, 그 당시에 부동신보라는 것을 펼쳤으므로 그 환상(幻像)이 조금 전까지 남아서 사람들의 눈을 미혹시켰던 것이었다. 사람들은 다시 그러한 부동신보를 단숨에 간파한 단목소소의 놀라운 안목에 대해서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단목소소가 그렇게 빠르게 소리쳤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백룡성은 사 라져 버린 것인지 대꾸가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단목소소의 앞에 정지되어 있던 두 자루의 병기가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고 옆에 서 있던 이문수가 엉겁결에 손을 내뻗어서 모두 네 개가 되어 있는 그것들을 받아들고는 이어 칠성ㅂ도를 칼집에 넣어서 단목소소에 게 내밀었다. "자, 이것을 받으세요." 허나 단목소소는 여전히 분한 모양인지 백룡성이 사라져 간 쪽을 바라보다 가 그녀를 돌아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그것은 이 낭자가 갖도록 해요." (……?) 이문수는 기실 이 칠성보도는 단목소소에게 주고 자신은 부러진 백홍검을 가졌다가 나중에 대장장이에게 붙여 달라고 해서 사용하려고 했던 것이었는 데 일순 그 말을 듣고 놀랐다. "제가요?" 단목소소는 미소하며 대답했다. "나는 그와 같은 병기를 쓰지 않으니 이 낭자가 갖도록 해요. 게다가 그 칠 성보도는 백룡성이 친히 준 것으로 누구라도 감히 낭자에게서 그것을 빼앗 으려고 하지 않을 거예요." 그렇다. 기실 조금 전에 백홍검을 단목소소에게 주었던 것은 나중에 사람들 이 탐욕을 일으켜서 달려들 경우에 오히려 화를 입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 었는데, 이제 그 백홍검은 두 동강이 나서 거의 폐물이나 다름이 없게 되었 고 게다가 가짜라는 판단이 내려졌으며, 또한 칠성보도는 백룡성이 친히 준 것이었기 때문에 누가 감히 천룡무가의 위세를 거스르며 그것을 빼앗으려고 할 리가 만무한 것이었다. 과연 아니나 다를까, 주위의 사람들은 이내 생각해 보고 더 이상 신검에 미 련을 둘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일제히 신형을 날려 떠나가기 시작하고 있었다. 이문수는 이에 어정쩡한 표정이 되어서 이번에는 사부인 무산신모 이추수에 게 물었다. "사부님, 그럼 이것을 사부님께서 가지도록 하세요." 그러나 이추수는 그녀의 그러한 말을 들은 척 만 척했다. "그것은 네가 받은 것이니 네가 가져야지 왜 나에게 주느냐? 그건 그렇고 이제 우리도 오늘 묵을 객점을 구해야 하지 않겠느냐?" "……!" 단목소소는 다시 다소 심각한 표정으로 조금 전의 일을 곰곰히 생각해 보는 눈치였고, 이문수는 졸지에 두 자루의 이기를 소유하게 되어서 너무나도 기 쁜 나머지 이를 좋아해야 할지 혹은 마다해야 할지를 판단하지 못해서 안색 을 여러번 변화시키며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 이때 장내의 사람들 가운데에서 사마외도의 무리들은 비교적 서둘러서 떠나 버리고 백의맹의 영웅대회에 참석했었던 사람들만이 다소 느릿하게 걸음을 옮겨 가고 있는 상태였는데, 그와 같은 광경들을 바라본 악산산이 다시 고 개를 돌려 화검운에게 입을 열어 말했다. "결국 사건이 어이없게 끝나 버리고 말았군요. 하지만 나는 그래도 한 가지 정도의 수확은 있었다고 생각해요." 악산산의 말투로 보면 필시 화검운의 대꾸를 바라고 있는 것 같았다. 화검운은 고개를 돌리며 그녀를 향해 물었다. "무슨 수확이 있었다는 것이오?" 악산산은눈빛을 반짝거리며 일순 장내에서 아직 떠나지 않고 있는 단목소 소와 이추수 등의 무리들을 천천히 둘러보면서 다시 고개를 돌려서 대답했 다. "지금 생각해 보니 저기에 있는 무산신녀문의 문주 이추수나 저쪽에 서 있 는 천산검문(天山劍門)의 사람들과 해남검파(海南劍派)의 사람들, 그리고 왕옥파(王屋派)와 형산파(衡山派), 천대파(天臺派) 등의 사람들은 기실 백 의맹의 소속도 아니고, 그렇다고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 등에도 동조하지 않는 제삼의 세력이라고 할 수가 있는 사람들예요. 원래 그들은 비록 제법 많은 문파들이 뭉치기는 했지만 무학의 고수(高手)가 없어서 항상 흑풍사의 무리들에게 쫓기는 형상이었는데, 알고 보니 이번에는 남해 보타도의 그 유 명한 옥관음 단목 소저를 모시고 온 것이로군ㅇ. 그렇다면 그들은 가히 당 금의 장안성 내의 세력들 가운데에서 제법 힘을 쓸 수가 있게 되었다고 할 수가 있죠." 화검운은 그녀를 다시 돌아보며 물었다. "그런 사실을 알게 된 것이 수확이라는 말이오?" 악산산은 태연하게 대답했다. "물론이예요. 원래 강호도상에서는 무공보다도 경험이 중요시되어 무학은 삼 푼 경험은 칠 푼이라고 했듯이 그와 같은 강호사정에 밝게 되면 어떠한 위기에서도 쉽게 몸을 보호할 수가 있는 법이죠." 이때 문득 이제까지 전혀 입을 열지 않고 있던 용아(龍兒)가 입을 열어 악 산산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럼 장안성 내에는 그렇게 모두 세 종류의 세력들이 있다는 말인가요?" (……!) 악산산은 느닷없이 용아가 자신을 향해 그와 같은 질문을 던져 오자 그간에 다소 경직되었던 분위기가 무척 풀리는 것을 느끼며 내심으로 못내 반가워 서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야. 사실 나로서는 아직 잘 알 수가 없는 일이지만, 내가 아는 바에 따르기만 해도 아마도 지금 장안성 내에는 적어도 다섯 개 이상의 세력들이 있다고 할 수가 있어." "……!" 용아는 그러한 세력들이 무려 다섯 개나 된다는 얘기를 듣고는 다소 놀란 듯이 눈을 크게 떴다. 악산산은 그녀가 자신의 더욱 상세한 얘기를 듣고 싶어 한다는 것을 눈치채 고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우선 세 개의 세력에 대해서는 아마 용아 동생도 잘 알고 있을 것이고, 나 머지 두 개의 세력이라는 것은, 그러니까 비록 아직 백의맹이나 흑풍사 가 운데 어느 한 편이 되어 있지도 않고, 게다가 무산신녀문 등의 세력에 포함 되지도 않고 있는 중도의 방관세력들이 있는데, 그들은 대략 청해파(靑海 派)나 복우파(伏牛派), 장백파(長白波), 공래파( 崍派), 사해방(四海幇), 삼강방(三江幇), 오봉도파(五鳳刀派), 단혼창파(斷魂槍派) 등이고, 이어 마 지막으로 또 하나의 세력이라는 것은 말하자면 농아방(聾啞幇)과 같은 장안 성 본래의 토박이 세력들을 말하고 있는 것이야. 음…… 사실 말하자면 우 리 구파일방의 청풍회나 오대세가의 와룡회 역시 백의맹에 예속되어 있는 것은 아니니 다른 두 개의 세력으로 본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지." (……!) 용아는 악산산의 말을 듣고 나서 실로 그토록 복잡하게 얽혀 있는 세력들의 각축장으로 변한 당금의 장안성의 현실에 대해서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 무서운 흑풍사나 백의맹의 격돌만으로도 흡사 아수라장 을 연상시킬 것인데, 이제 앞으로 어떤 가공할 혈겁이 벌어지게 될지 알 수 가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때 봉아가 역시 불쑥 입을 열어 말했다. "나는 또 하나의 세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악산산은 봉아마저 자신을 향해 입을 연 것을 매우 기특하게 생각하면서도 역시 속으로 그 말뜻을 생각해 보고는 은근히 안색을 붉히며 중얼거렸다. (하긴 그 종남사부와 그 제자들도 역시 이곳에서 멀지 않으니 또 하나의 세 력이라고 할 수가 있지.) 일순간 종남사부의 그 미려(美麗)한 모습을 눈앞에 떠올리는 듯이 그녀의 안색이 다소 우울해졌다. 헌데 막상 다시 들려 온 봉아의 말은 다소 의외였다. "우리 화 상공님이야말로 하나의 세력이라고 할 수가 있지 않겠어요? 나와 용아가 옆에서 보좌하고 있으니 결코 한 사람은 아니라고요." 악산산은 문득 그 말에 실소하고 말았다. "하긴 그렇구나. 화 공자도 역시 하나의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고 할 수가 있겠지." 이어 악산산은 장내의 무리들도 거의 떠나가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화검운 에게 다시 물었다. "당신은 이제 다시 금창보로 다른 사람들을 따라서 갈 것인가요?" 화검운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오. 생각해 보니 내가 다시 그곳으로 갈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 아무래도 이제 그만 집으로 가서 잠시 쉬어야 하겠소." 악산산은 그 대답을 다소 의외로 생각하면서도 내심으로 그럴 법도 하다고 수긍을 하다가 문득 다시 물었다. "아, 그렇겠군요. 헌데 대체 당신의 집은 어디에 있는 거죠?" 화검운은 가볍게 웃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대답했다. "사실 우리집은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오래된 장원 (莊園)이오. 즉, 장안성 내의 북쪽 지역인데, 만약 낭자가 나중에 찾아오고 싶다면 장원을 찾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이오." 화검운은 이어서 악산산에게 대강의 장원의 위치를 가르쳐 주었는데, 정말 로 그의 설명대로라면 어렵지 않게 장원으로 찾아갈 수가 있을 것 같았다. 화검운은 이윽고 장원의 위치를 가르쳐 주고 나서 몸을 일으켰다. "악 낭자는 다시 금창보로 되돌아갈 생각이오?" 악산산은 미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해서 화 공자와 대화를 나누어 보고 싶지만 지금의 상황이 나 혼자서 행동할 수가 없는 입장이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돌아가 봐야 하겠어요. 그 럼…… 다시 만날 때까지 무운을 빌어요." 화검운은 미소했다. "나 역시 낭자의 무운을 비는 바이오." …… 악산산은 잠시 물끄러미 화검운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이윽고 미련없이 뒤로 훌쩍 신형을 날려서 성의 남쪽을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그녀가 한꺼번에 칠팔 장씩 날아서 지붕들을 박차며 나아가는 광경은 마치 아름다운 화조(花 鳥)가 물을 박차고 날아가는 것과 흡사해 보였다. 화검운은 그렇게 악산산의 신형이 아득하게 사라져 버리자 이윽고 신형을 돌려 용아와 봉아의 손을 각각 잡고서 신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 일반연재 [백상] 종남사부 5권 제34장 -b- 총 Page : 11 -------------------------------------------------------------------------- ---- 게 시 자 : tohana(박성호) 게 시 일 : 97/04/13 21:21:48 수 정 일 : 크 기 : 7.8K 조회횟수 : 32 [백상] 종남사부 제5권 34장 -b- 04/04 07:20 320 line 올 린 이 : 양한우 HITEL ID : hanwoo71 제34장.(2) 황혼(黃昏)의 여심(女心) 오래된 장원(莊園). 이 장원은 비단 사방이 심하게 낡아서 고색창연한 기운 이 가득차 있을 뿐만 아니라 게다가 구석구석에 낙엽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 어서 마치 전혀 사람이 살지 않고 있는 폐가를 연상시켰다. 그러나 이 폐가(廢家)로 보이는 장원의 규모는 상당히 큰 것이었고, 게다가 그 장원의 정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는 낡은 현판도 하나 걸려 있었다. <화가장원(<花家莊園)> 그러니까 말하자면 화씨 집안의 사람들이 살던 장원이라는 것이었는데, 바 로 이곳이 화검운의 집이었다. 화검운은 기실 오랫동안 집을 비우고 있었고 다만 용아와 봉아가 이곳의 몇 개의 건물들을 사용하여 살고 있었는데, 화검운은 집에 돌아왔었어도 그 기 간이 오래되지 못해서 아직 장원의 수리를 못했고 청소도 변변하게 하지 못 했다. 기실 이 장안성은 옛날에는 크게 번성하였으나 이제 퇴조를 보이기 시작하 고 있는 고도(古都)로서, 특히 성내의 북쪽에는 화가장원처럼 거의 폐가가 되어 버린 넓은 장원들이 많은 편이었다. 다만 이 화가장원은 비록 오랫동안 돌보지 않아서 단청들이 빛이 바래서 누 렇게 보이고 게다가 문짝들이 썩어 버린 곳도 있기는 했지만, 아직 그 골격 만은 튼튼하여 다시 사용하는 데는 전혀 불편한 점이 없었다. 이 장원은 화검운의 부친이었던 화청우가 옛날의 고가(古家)에 손을 보아서 새로 증축한 것으로, 가장 중요하게 취급되고있는 곳은 바로 그 자신의 이 름자를 따서 청우헌(靑牛軒)이라고 이름을 붙여 놓았었는데, 용아와 봉아는 이미 그 청우헌을 깨끗하게 치워놓아 화검운으로 하여금 사용하도록 하고 있는 중이었다. 화검운은 용아와 봉아를 데리고 즉시 이곳으로 돌아와서 느지감치 점심 겸 저녁을 해서 먹은 다음에 청우헌에 딸려 있는 서재에 들어가서 잠시 서책들 을 읽으면서 휴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이때의 시각은 벌써 황혼(黃昏)으로 치닫고 있는 중이었고, 서재는 마침 서 쪽으로 저물어 가는 노을빛을 감상하기에 적당한 위치에 자리하고 있어서 그야말로 그림과도 같은 풍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기실 원래는 그 서재의 앞에는 작으면서도 맑은 연못이 하나 있어서 저녁노 을을 투명하게 반사시켜 주곤 했었는데, 지금 그 작은 연못은 이미 말라 버 렸고 거기에는 수북하게 낙엽(落葉)들만이 쌓여져 썩어 가고 있는 중이었 고, 게다가 주위의 정원수나 기암괴석(奇岩怪石)들은 하나도 형체가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나 기실 화검운은 서책을 읽으면서 간간히 아름다운 저녁노을을 감상하 기 위해 고개를 들었고, 이어 창 밖의 광경이 아직은 그런 대로 운치가 전 혀 없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헌데 바로 그 무렵에 느닷없이 그를 찾아온 불청객이 하나 있었다. 아마도 그것은 그나마의 그러한 휴식을 질투하는 운명(運命)의 시샘이었는지는 몰 라도 어쨌든 느닷없이 찾아온 한 명의 불청객으로 인해서 화검운의 조용한 시간은 산산히 부서지게 되었고, 게다가 그는 놀라게 되었다. 다름이 아니 라 지금 그를 찾아온 사람은 바로 제갈소홍(諸葛素紅), 그녀였던 것이었다. 창 밖의 노을을 구경하며 조용한 한 때를 보내고 있었던 화검운이 어떻게 그녀가자신을 찾아오리라고 예측할 수가 있었겠는가? "아니, 당신이 여기에는 웬일이오?" 다소 놀란 표정으로 몸을 일으키는 화검운을 향해 제갈소홍은 다소 화사해 진 복장을 하고서 웃으며 안으로 들어섰다. "왜요? 전혀 뜻밖이었나요?" 화검운은 다소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물론이오. 나는 조금 전에 인기척이 들리길래 그저 시장에 나갔던 용아와 봉아가 돌아온 것인가 하고 생각했었을 뿐이었지. 이것 참으로 뜻밖이오." 제갈소홍은 가볍게 미소를 지으면서 웃어 보이더니 이윽고 딴전을 피우며 화제를 돌렸다. "아! 이곳은 정말로 운치가 있다고 할 수가 있군요. 오래된 장원의 낡은 서 재 속에서 저녁노을을 구경하는 운치라…… 아마도 저기 뒹굴고 있는 많은 낙엽들과 같은 처량한 심사도 느껴지겠죠?" "……" 화검운은 잠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대꾸하지 않았다. 제갈소홍은 이에 다시 고개를 화검운에게 돌리면서 물었다. "당신은 내가 이곳에 온 것이 전혀 반갑지 않나요? 어째서 나에게 앉으라는 한 마디의 마도 하지 않는 것이죠?" 화검운은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 "당신은 구태여 그런 말을 하지 않아도 앉을 사람이 아니오?" 제갈소홍은 이에 고소(苦笑)를 지었다. "하긴…… 나는 미리 예고하지 않은 불청객(不請客)이니 이와 같은 대접을 받아도 싼 편이라고 할 수가 있겠지요." 이어 제갈소홍이 서재 안의 의자 하나를 차지하고 앉자 화검운은 이내 그녀 의 맞은편의 의자에 탁자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앉으면서 물었다. "대체 오늘 무슨 바람이 불어서 당신이 내 집까지 찾아온 것이오?" 제갈소홍은 그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되물었다. "제가 무슨 이유도 없이 이곳을 찾아오면 안된다는 법이라도 있나요? 솔직 히 나는 아무런 이유도 없이 이곳을 찾아온 것이예요. 음…… 구태여 이유 를 찾는다면 화검운이라는 한 사람의 집이 어떻게 생겼을까 하고 궁금해져 서라고나 할까?" 화검운은 내심 씁쓸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그렇다면 영광이라고 할 수가 있겠지만 불행히도 용아와 봉아가 아직 시장 에서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미처 차를 대접할 수도 없게 되었구려." 제갈소홍은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는 청하지 않은 사람이니 그와 같은 차는 마시지 않아도 상관이 없어 요." 화검운은 다시 물었다. "그럼 대체 무엇을 원하고 있다는 말이오?" 제갈소홍은 이에 되물었다. "당신은 반드시 내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이곳으로 온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인가요? 당신은 내게는 어떤 순수한 감정(感情)이 없으리라고 생각 하나요?" 화검운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순수한 감정?" 제갈소홍은 미소하며 대답했다. "그래요. 당신은 악산산이 당신에게 어떤 감정을 품고 있는 줄 알고 있나 요? 그녀는 당신을 사랑하고 있어요. 나라고 해서 그런 감정을 가지지 말라 는 법이라도 있나요?" "사랑? 나를 사랑한다고?" 화검운은 일순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우스운 일이로군!" 제갈소홍은 이에 다소 안색이 변해서 물었다. "어째서 제가 우습다는 거죠?" 화검운은 미소하며 대답했다. "실로 나와 같은 사람을 사랑한다는 자체가 우습다는 것이오. 대체 말도 되 지 않는 그러한 말들을…… 악 낭자가 나에게 사랑을 느끼고 있다고? 그것 은 잘못된 생각이오. 그녀는 직접 자신의 입으로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을 했었으며 다른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그랬소. 그런데 내가 당신의 말을 듣고 웃지 않을 수가 있겠소?" 제갈소홍은 다소 어색한 표정으로 다시 말했다. "하지만 설령 악산산이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서 나마저 그럴 것이라 는 확신은 내릴 수가 없는 일이 아닐까요?" 화검운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당신이 실로 나와 같이 평범하게 생긴 사람을 사랑할 리가 없소. 당신처럼 유난히 자존심이 강하고 의지가 깊은 여자는 더욱이…… 게다가 당신이 만 약 나를 진정(眞情)으로 사랑하고 있다고 하면 그처럼 그와 같은 고백을 간 단하게 할 수가 없었을 것이오." 제갈소홍은 이에 그만 웃으며 다시 물었다. "그럼 대체 내가 무엇 때문에 이곳으로 찾아왔을 것이라고 생각하나요?" 화검운은 적반하장격으로 질문을 당하는 입장이 되어서 어이가 없다는 표정 을 짓다가 이윽고 웃으며 대답했다. "아마도 당신이 나를 찾아온 용건은 오직 그 하나밖에는 없을 것이오." 제갈소홍은 눈살을 다소 찌푸리며 물었다. "내가 당신의 능력(能力)에 대해서 알아보기 위해 찾아왔다는 말인가요?" 화검운은 그녀를 향해 직시하며 되물었다. "그런 이유밖에 더 있겠소?" (……) 제갈소홍은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가 웃으며 다시 말했다. "음…… 당신은 비록 그 한 가지는 맞추었다고 할 수가 있지만 다른 한 가 지는 아직 알아내지 못했어요." 화검운은 다소 어리둥절해 하며 물었다. "그럼 정말로 당신은 내가 보고 싶어서 찾아온 것이라는 말이오?" 제갈소홍은 그만 피안대소를 터뜨리며 대답했다. "호호, 그것은 아까 내가 했던 거짓말이었고 진실은 아니예요. 내가 찾아온 두 가지의 용건은…… 그러니까 그 한 가지는 당신이 맞춘 대로 당신의 정 체(正體)에 대해서 좀더 파악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예요." 화검운은 다소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럼 그 두 번째의 이유는 무엇이오?" 제갈소홍은 마악 대답을 하려다가 문득 입을 다물고 고개를 들어 다른쪽을 바라보았다. 다름이 아니라, 바로 그 순간에 서재의 문이 버럭 열리며 용아 와 봉아가 황급히 안으로 달려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그와 동시에 그녀들의 입 속에서 터져 나온 말은 화검운을 다소 놀라게 만들었다. "화 상공님! 큰일났어요! 지금 장안성 내의 모든 무림인들이 우리 장원으로 한꺼번에 몰려든 것 같아요! 지금 우리 장원의 주변에는 수많은 무림인들로 가득차고 있어요!" 이 청우헌이 있는 곳은 장원의 중심부였기 때문에 화검운은 미처 사람들이 나타났던 것을몰랐던 모양이었다. 화검운은 놀라서 그녀들에게 물었다. "아니, 뭐라구? 대체 무슨 일이 있길래 그들이 그렇게 갑자기 나의 집으로 몰려들어왔다는 말이냐?" -- 계속 -- ─────────────────────────────────────── 일반연재 [백상] 종남사부 5권 제35장 -a- 총 Page : 12 -------------------------------------------------------------------------- ---- 게 시 자 : tohana(박성호) 게 시 일 : 97/04/13 21:23:31 수 정 일 : 크 기 : 8.7K 조회횟수 : 38 [백상] 종남사부 제5권 35장 -a- 04/04 07:20 322 line 올 린 이 : 양한우 HITEL ID : hanwoo71 제35장.(1) 귀면(鬼面)탈의 노인(老人) 봉아가 빠른 어조로 대답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우리 장원에 무슨 희세의 보물(寶物)들이 있다고들 그 러나 봐요." (……?) 화검운은 잠시 크게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다가 이윽고 길게 한숨을 내쉬며 웃었다. "그렇다면 다행이군. 난 또 무슨 내가 어떤 못할 짓을 저질러서 그들이 한 꺼번에 나를 잡으러 온 줄로만 알았지." 제갈소홍은 옆에서 듣고 있다가 그만 웃으며 입을 열어 물었다. "당신은 알고 보니 은근히 남들에게 지은 죄(罪)가 많은 사람인 모양이군 요. 그런데 대체 어째서 다행이라는 것이죠?" 화검운은 그녀를 돌아보며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거야 내가 이곳에서 십수 년을 살아 왔지만 결코 그러한 보물이 있다는 얘기를 들어 보지 못했었으니 자연 그러한 소문은 낭설이 아니겠소? 따라서 나로서는 그런 일에 구태여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는 것이오." (……?) 제갈소홍은 일시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화검운의 태연자약한 표정을 살피 다가 이윽고 다시 물었다. "하지만 당신은 정말로 이 장원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는말인가요? 듣자니 당신의 부친인 화청우는 당시에 아주 오래된 고가(古家)를 헐값에 사들여서 대강 수리를 하고 살았다고 하던데, 당신은 혹시 이 장원의 내부에 전대(前 代)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어떤 보물이 없을 것이라고 어떻게 장담하는 거 죠? 당신은 설마하니 장원 내부의 구조물들에 대해서 속속들이 잘 알고 있 다는 말인가요?" 화검운은 그 말에 다소 움찔한 기색을 보였다. 아마도 어찌된 일인지 그의 출신내력(出身來歷)에 대한 사실이 이미 강호인 들의 사이에 훤하게 퍼져 버린 모양이었다. 물론 그가 아까 금창보에서 그 얘기를 하기는 했지만 그런 얘기가 일순간에 모든 강호인들에게로 퍼져 나 가고 게다가 거기에 장원의 역사까지 드러나게 되었다는 것은 괴이(怪異)한 일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하긴 당신의 말대로 이 장원에는 몇 개의 오래된 폐정(廢井)들이 있어서 누구도 그 아래로 내려가 보지 않았기 때문에…… 아니지! 그 밖에도 너무 나도 낡아서 사용하지 않고 있는 건물들인 지하창고 등도 있는데…… 대체 그 소문이 그럼 사실이라는 말이오? 당신은 그러니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나를 찾아온 것이란 말이오?" 제갈소홍은 웃으며 대답했다. "바로 그래요. 그것이 바로 내가 당신을 찾아온 두 번째의 이유였죠. 나는 비교적 생각이 빠른 편이어서 다른 사람들보다 약간 앞서서 당신을 찾아온 것뿐이예요. 그리고 거기에 다른 이유를 첨가한다면 당신에게 호감(好感)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죠." 화검운은 그 봄불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다가 제갈소홍의 나중의 말을 듣고 는 문득 그만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당신은 또 장난을 치는군." 제갈소홍은 이에 아미(蛾眉)를 가볍게 치켜올리며 물었다. "당신은 나와 같은 여자는 못생겼기 때문에 싫다는 말인가요?" 화검운은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럴 리가 있겠소? 실로 당신과 같은 미인(美人)은 비록 천하절색(天下絶 色)이라고는 할 수가 없지만 최소한 거기에 버금가는 것은 분명한데 나와 같은 사람이 감히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겠소?" 제갈소홍은 이에 문득 옆에 서 있는 용아와 봉아의 얼굴을 한 차례씩 돌아 본 다음에 뭔가 말을 하려다가 왠지 다시 입을 다물고 있었다. 화검운은 그녀를 향해 다시 물었다. "당신은 그러니까…… 나에게 그 보물이 있는 곳을 물어 보기 위해 온 것이 오?" 제갈소홍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셈이예요. 하지만 당신이 그 보물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 같지가 않 으니 하는 수 없이 다른 것이나 물어 봐야 하겠어요." 화검운은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무엇을 물어 보겠다는 것이오?" 제갈소홍은 미소하며 말했다. "듣자니 당신은 바로 어젯밤에 밖으로 나가서 돌아다녔다죠?" 화검운은 담담히 웃으며 대꾸했다. "당신은 그것을 어떻게 알게 되었소?" 제갈소홍은 약간 싸늘해진 표정으로 말했다. "비록 거기에 함께 가지 않았다고 해서 귀까진 먼 줄로 아나요? 듣자니 당 신은 수라존자와 격투를 벌여서 그를 물리쳤다고 하더군요?" 화검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만, 거기에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소?" 제갈소홍은 잠시 화검운의 얼굴을 예리하게 주시하다가 말했다. "아니예요. 나는 당신이 대체 무슨 능력으로 그 수라존자를 물리칠 수가 있 었는가 하고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죠. 당신의 무공은 대체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이죠?" 화검운은 담담히 웃으며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내가 그런 얘기까지 당신에게 말해 주어야 한다는 말이오?" 제갈소홍은 웃으며 대답했다. "만약 양심에 꺼리는 일이 없다면 구태여 말하지 못할 것도 없지 않겠어 요?" 화검운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나는 비록 양심(良心)에 꺼리는 일은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신에게 말해 야 할 필요성도 느끼지 모사고 있소. 나는 출신내력(出身來歷)도 이미 확실 하게 밝혀져 있는 상태인데 구태여 그런 얘기까지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소?" 제갈소홍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렇네요. 당신이 바로 전대 종남파 장문인의 아들이라는 얘기는 저 도 이미 들었어요. 아마 틀림없이 당신의 무공도 그 종남파에서 얻어진 것 이겠죠." 화검운은 그녀를 향해 다시 물었다. "이제 의문은 모두 풀렸소?" 제갈소홍은 웃으며 대답했다. "비록 의문이 모두 풀린 것은 아니지만 이제 더 이상 질문할 것은 없어요. 헌데…… 당신은 계속 여기에 있을 것인가요?" 화검운은 물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이오?" 제갈소홍은 말했다. "당신의 장원에서 혹시 보물이 나올지도 모른다는데 이렇게 계속 방관만 하 고 앉아 있겠느냐는 것이예요." 화검운은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신형을 일으켰다. "하긴 그렇군. 나도 일단은 나가 봐야 하겠소." 화검운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은밀하게 자신의 장원으로 숨어 들어와서 사 방에 인기척이 들리기 시작하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화검운이 신형을 일으키자 제갈소홍도 몸을 일으켰고 두 사람은 이내 용아 와 봉아와 함께 밖으로 나가기 위해 신형을 움직였다. 헌데 그때의 일이었다. 두 사람이 마악 걸음을 옮겨서 서재의 밖으로 나가 려는 순간에 제갈소홍 등은 왠지 기이한 느낌이 들어서 다시 한 번 서재의 안쪽을 둘러보게 되었다. 그런데제갈소홍의 시선이 마악 서재의 창 밖에 바라보이는 예의 그 마른 연못으로 향하는 순간에 느닷없이 그 속에서 하나 의 시꺼먼 인영(人影)이 흡사 귀신(鬼神)처럼 솟구쳐 나오는 것이 아닌가! "악!……" 그렇지 않아도 내심으로 기이한 분위기를 느끼고 있었던 제갈소홍은 비록 담대한 편이라고는 하나 저도 모르게 짧은 경악성을 지르고 말았다. 왜냐하 면 그 연못 속에서 느닷없이 나타난 인영은 허연 머리결을 풀어 헤치고서 얼굴의 형상은 마치 귀신(鬼神)을 연상케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게다 가 그 인영의 움직임은 비단 빠르기 짝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마치 전혀 무 게가 없는 혼백(魂魄)처럼 허공을 자유로이 흐느적거리고 있어서 마치 귀신 그대로인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대체 대낮에도 귀신이 나타날 수가 있는 것일까? 아직 저녁노을의 잔광(殘 光)이 사위를 밝히고 있는 상황이었으므로 그 괴이(怪異)한 인영의 모습은 그 붉은 노을빛 속에서 한층 공포(恐怖)스럽게 부각되었다. ……! 제갈소홍이 놀란 것처럼 화검운 등도 그쪽을 보고 놀라서 용아와 봉아가 절 로 신음을 발했으며, 이어 사방에서 수색을 하고 있던 많은 사람들의 경악 성이 도처에서 터져나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 제갈소홍은 잠시 동안 몽롱한 의식(意識) 속에서 헤매다가 이윽고 정신을 차려서 둘러보니 화검운이 자신을 보고 있으므로 그를 향해 물었다. "대체 아까 그 귀신은 어디로 갔죠?" 화검운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꾸했다. "글쎄…… 아마도 저기 앞마당 쪽으로 간 것 같소." 느닷없이 귀신처럼 나타난 인영의 모습은 이미 보이지 않았고, 용아와 봉아 역시 한 동안 놀라서 핼쑥한 안색이 되어 있었다. 제갈소홍은 잠시 생각하다가 눈빛을강렬하게 빛내며 말했다. "그럼 우리도 그쪽으로 가요!" 과연 아니나 다를까, 앞마당이 있는 쪽에서 갑자기 요란한 소음이 들려오기 시작하고 있었다. 화검운은 다소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당신은 그 귀신이 무섭지도 않소?" 제갈소홍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당신은 조금 전의 그 인영(人影)이 정말로 귀신이었다고 생각하나요?" 화검운은 어리둥절해진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 연못은 원래 물이 차 있었지만ㅌ 근래 들어서 물도 말라 버리고 낙엽들 만 쌓여 있었던 곳이오. 그런데 그곳에서 사람이 나타났으니…… 그것은 바 로 옛날에 그 연못에 빠져 죽은 시체의 귀신이 나타난 것이 아니고 무엇이 겠소?" 제갈소홍은 다소 야릇해진 시선으로 화검운의 안색을 살피더니 말했다. "제가 보기에는 그 인영은 결코 귀신이 아니예요." 화검운은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아니, 어째서 귀신이 아니라는 말이오? 하기는 나도 내 집에서 귀신이 나 온다는 것은 반갑지 않은 일이지만……" 제갈소홍은 화검운의 얼굴을 바라보며 되물었다. "당신은 그럼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는 말인가요?" 화검운은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는 듯하다가 이내 뭔가 생각난 듯이 다소 놀 란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아니, 그렇다면…… 방금 전의 그 귀신…… 사람이 보물을 가지고 우리집 에 숨어 있었던 사람이라는 말이오?" 제갈소홍은 즉시 고개를 끄덕이며 강하게 말했다. "틀림이 없어요. 비록 그 신법이 놀라워서 마치 귀신 같은 점이 없지는 않 았지만, 그는 아마도 이곳에서 보물을 발견한 사람이거나 아니면 원래는 보 물을 이곳으로 가지고 와서 은신하고 있는 사람일지도 몰라요. 사람들이 몰 려들고 나서 갑자기 그런 사람이 나타났으니…… 이는 틀림이 없을 거예 요!" 제갈소홍은 일단 그렇게 말하고 나서 더욱 신념(信念)이 굳어졌는지 즉시 밖을 향해 걸음을 옮기려다가 문득 다시 화검운을 바라보며 물었다. "당신은 나가지 않을 것인가요?" 화검운은 잠시 머뭇거리는 듯하다가 대답했다. "하긴 나도 내 집 안에서 일어난 일을 모른 척할 수야 없는 일이지." 그리하여 네 사람은 즉시 서재의 밖으로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 일반연재 [백상] 종남사부 5권 제35장 -b- 총 Page : 11 -------------------------------------------------------------------------- ---- 게 시 자 : tohana(박성호) 게 시 일 : 97/04/13 21:24:45 수 정 일 : 크 기 : 8.1K 조회횟수 : 34 [백상] 종남사부 제5권 35장 -b- 04/04 07:20 322 line 올 린 이 : 양한우 HITEL ID : hanwoo71 제35장.(2) 귀면(鬼面)탈의 노인(老人) 서재를 벗어나면 비교적 넓고 잘 정돈되어 있는 거실이 나타나며, 그곳을 지나서 현관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면 바로 예의 그 앞마당에 이르게 되 어 있었다. 화검운 등의 네 사람이 빠르게 청우헌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자 이내 밖 에서는 희한한 광경이 평쳐지고 있는 중이었다. -- 한 사람. 아니나 다를까, 제갈 소홍이 귀인이 아니라고 했던 그 인영은 정마로 귀신 이 아닌 사람이었고, 다만 얼굴에 하나의 귀면(鬼面)탈의 가면을 쓰고 있는 노인(老人)일 뿐이었다. 대체 그 노인이 어떤 사람인지는 귀면탈을 쓰고 있 기 때문에 알 수가 없었지만, 기실 그 귀면탈은 시중에서는 아주 흔한 것이 어서 겨우 은자 몇 푼만 주면 살 수가 있는 것이었다. 이 귀면탈의 노인은 지금 마당의 중앙에 우뚝 서 있었는데, 현재 그의 전면 을 가로막고 있는 사람들은 비교적 눈에 익은 사람들이었다. 바로 얼마 전 에 금창보의 영웅대호에 나타났었던 천상신룡 백능풍과 일검귀견수 상원웅 장, 그리고 호면패도 늑가희 등의 강호십대용봉 가운데 들어 있는 여섯 명 의 젊은이들이었고, 게다가 귀면탈의 노인의 우측과 뒤쪽에는 다시 포달랍 궁(布達拉宮)에서 온 라마승(喇 僧)들과 자부문(紫府門), 청조각(淸朝閣) 에서 온 사람들이 각기 포위하고 있는 상태였다. 실로 그들의 무공은 하나 같이 놀라운 것들이었으므로 지금 포위를 당하고 있는 귀면탈의 노인은 무 공이 하늘을 꿰뚫는다고 해도 달아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비록 가장 무공 이 고강하다고 생각되는 백룡성은 보이지 않고 있었지만 그러한 사실에는 변함이 없을 것 같았다. 제갈소홍은 일단 마당으로 나서서 백능풍 등이 귀면의 노인을 포위하고 있 는 것을 보더니 다소 망설이는 듯하다가 이윽고 그 잘예 멈춰서 버리고 말 았다. 화검운도 역시 그녀의 옆에 이르러 더 나아가지 않고 장내의 상황으로 시선 을 집중했다. …… 문득 백능풍이 다소 싸늘한 음성으로 입을 열고 있었다. "당신은 대체 누구요? 정체(正體)를 밝히시오!" 귀면탈의 노인은 잠시 묵묵하는 듯하다가 이윽고 다소 불투명한 거칠은 음 성으로 이렇게 대꾸했다. "나는 그저 이름 없는 한 명의 늙은이일 뿐이다. 너희들은 어째서 이렇게 몰려들어와서 나의 일을 방해하고 있는 것이냐?" "흥, 당신이 그저 이름 없는 늙은이에 불과하다고?" 백능풍은 한 차례 코웃음을 치며 힐끗 제갈소홍이 있는 쪽을 주시한 후에 다시 귀면탈의 노인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당신같은 무공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 강호의 이름 없는 늙은이에 불과하다 면 아마도 당금의 강호상에서 이름을 날릴 수가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 이오." 백능풍의 그 말은 다소 상대방의 말을 비꼰 것에 불과했다. 그런데 기이하 게도 그 귀면탈의 노인은 즉시 이렇게 대꾸하는 것이었다. "흐흐흐, 하기는 당금의 강호상에는 인재(人才)가 없는 것이 확실하지. 간 혹 무공도 별로 신통치 않은 것들이 그저 가문의 전통이나 세력을 믿고서 천둥벌거숭이처럼 날뛰는 경우가 많으니까." ……! 백능풍은 그 말에 다소 안색이 변했다. 비단 그뿐만이 아니라 다른 다섯 명 의 기재들도 다함께 안색이 변했는데, 방금 전의 노인의 말은 바로 다름이 아니라 자신들을 가리키는 비아냥거림인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강호상에 천상팔패(天上八覇)가 등장한 이래로 누가 감히 그들을 이렇게 앞에 대놓고 비웃을 수가 있었던가? 백능풍은 문득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흥! 그렇다면 귀하의 무공(武功)은 그야말로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정도의 것이겠군?" 귀면탈의 노인은 다소 음산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비록 경천동지할 정도는 아닐지라도 최소한 그 천둥벌거숭이들보다는 낫다 고 할 수가 있다." ……! 이 귀면탈의 노인은 비록 조금 전에 그 신기한 몸놀림을 보여 주기는 했지 만 너무나도 대범하여 전혀 자신을 포위하고 있는 사람들을 안중에 두지 않 고 있는 것 같았다. 백능풍은 잠시 어이가 없는 듯이 상대를 주시하다가 이윽고 앙천광소(仰天 狂笑)를 터뜨리며 말했다. "핫핫, 좋소! 그렇다면 얘기가 비교적 간단하게 되겠군. 우리는 두말할 필 요가 없이 서로 손을 쓰도록 합시다!" 귀면탈의 노인은 노인은 잠시 주저하는 듯하다가 물었다. "너는 어째서 나를 이렇게 핍박하느냐?" 백능풍은 싸늘하게 웃으며 되물었다. "당신은 그래 아직도 그 이유를 모른다는 말이오?" 귀면탈의 노인은 음산하게 대꾸했다. "내가 너와 같은 소인배가 아닌 바에야 너의 그러한 심리를 어떻게 잘 알 수가 있겠느냐?" 아마도 이 귀면탈의 노인은 은근히 백능풍을 자극시키려는 모양이었다. 하 기는 특별한 이유가 없어도 강호상에서는 우선 상대의 심리를 흐트러뜨려서 무공을 약화시키려고 상대를 격분시키는 수법을 곧잘 쓰곤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과연 이 백능풍은 무림의 인재답게 쉽게 상대의 충동질에 넘어가지 않고 싸늘하게 말했다. "하지만 당신은 지금 당신에게 무림삼보(武林三寶)가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도 잘 알고 있을 것이오." 그렇다. 기실 알고 보니 이 귀면탈의 노인에게 그 무림삼보가 있었기 때문 에 지금과 같은 많은 사람들이 장원으로 몰려들었던 모양이었다. 사람들은 백능풍의 말을 듣는 순간에 필시 그 귀면탈의 노인은 전혀 모른다 고 잡아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예상 외로 귀면탈의 노인은 전혀 잡 아떼는 개색은 없고 다소 놀란 표정으로 이렇게 되묻는 것이었다. "아니, 너는 그것을어떻게 알게 되었느냐?" 백능풍은 사실 자신이 말한 얘기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긴가민가 하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귀면탈의 노인의 그와 같은 질문을 받고는 내심으 로 상당히 기쁜 표정을 지었다. "우리가 어떻게 그 사실을 알게 되었느냐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고, 이제 당신이 그 무림삼보를 우리에게 바치는 것이 더욱 중요한 일인 것이오." 백능풍의 대꾸에 노인은 잠시 그의 얼굴을 주시하다가 다시 물었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군. 어째서 너는 계속해서 세 가지의 보물이라고 하느 냐? 나에게는 그저 두 가지가 있을 뿐인데. 너희는 혹시 무슨 착각을 한 것 이 아니냐?" ……! 사람들은 기실 노인에게 무림삼보의 하나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 고 있었는데, 이제 그가 자신의 입으로 그 가운데의 두 개나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을 보고는 내심으로 저마다 어이가 없다고 생각했다. 알고 보니 이 귀면의 노인은 비록 무공은 높지만 너무나도 속세와 담을 쌓고 무 공 연마에만 몰두하다가 그만 멍청해진 모양이었다. 백능풍은 다소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으나 이내 노인의 얼굴을 주시하며 말했다. "우리가 착각을 한 것인지 아닌 것인지는 당신이 그 두 가지의 보물들을 보 여 준다면 알게 될 것이오." 귀면탈의 노인은 알 수가 없다는 듯이 물었다. "내가 왜 너희들에게 이 보물들을 보여 줘야 한다는 말이냐?" 백능풍은 냉랭하게 대꾸했다. "당신은 어차피 그 두 가지의 보물들을 보여 주지 않고는 배겨날 수가 없을 것이오." 귀면탈의 노인은 다시 물었다. "그럼 너희들은 내가 만약 그렇게 해준다면 나를 놓아주겠느냐?" 백능풍은 음침하게 웃더니 말했다. "물론이오." 그러자 귀면탈의 노인은 이내 품속에서 두 가지의 물건들을 꺼내서 각기 자 신의 양손에 들고는 사람들에게 보여 주는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하나의 양피지(羊皮紙)로 묶여진 얇은 책자(冊子)와 한 자루의 장검(長劍)이었는 데, 사람들은 그 두 가지의 물건을 보는 순간 저마다 눈이 휘둥그래지고 말 았다. 사람들은 그래도 설마하니 그 귀면탈의 노인이 사람들에게 두 가지의 물건을 직접 보여 줄 줄은 생각지도 못했었기 때문이었다. ……! 사람들이 바라보니 그 두 가지의 물건 가운데에서 양피지의 책자는 대체 무 슨 대단한 점이 느껴지지 않았으나, 한 자루의장검만은 왠지 기이(奇異)한 느낌이 드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그 장검은 검집과 자루가 모두 거뭇한 색깔이면서도 흡사 햇빛을 흡수하고 있는 듯이 음산한 느낌을 불러일으켰던 것이었다. 백능풍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노인을 향해 다시 말했다. "그 두 가지가 바로 무림삼보의 두 가지라는 말이오?" 귀면탈의 노인은 다소 퉁명스러운 어조로 대꾸했다. "물론이다. 이것들은 바로 하나는 무아진경(無我眞經) 가운데의 여덟 개의 비급들 중의 하나이며, 다른 하나는 한 쌍의 신병이기(神兵利器) 가운데 신 검에 속하는 지존검(至尊劍)이라는 것인데 어찌 보물들이 아니겠느냐?" (……?) 이 무아진경(無我眞經)이라는 것은 역시 무림삼보의 하나로서 일명 무명도 성(無名道聖)이라는 전설적인 기인(奇人)이 만들었다는 여덟 권의 비급이라 고 했는데, 사람들은 지금 그와 같은 얘기를 듣고 나자 절로 가슴이 심하게 격동되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비록 그 책자(冊子)가 겉으로는 그다지 특이하게 보이지 않는 것이었지만 만일 정말로 무아진경 가운데의 한 비급 이라면 대단한 것이고, 게다가 불과 얼마 전가지만 해도 가짜 신검으로 인 해서 한 차례의 소란이 있었기 때문에 노인이 지존검(至尊劍)이라고 말한 것이 진짜 신검일까 하고 의구심이 앞섰다. 실로 이제까지는 그저 소문만 무성하던 무림삼보의 실체가 비로소 처음으로 사람들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려고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따라서 사람들의 시선(視線)은 하나같이 그 두 가지의 물건에 뿌리를 내린 듯이 집중되었고 탐욕의 빛이 일렁거렸으며, 이어 백능풍이 마치 그들의 심 사를 대변하기라도 하듯이 입을 열어 이렇게 말했다. "좋소! 그렇다면 어서 그 두 가지를 우리에게 바치시오!" -- 계속 -- ─────────────────────────────────────── 일반연재 [백상] 종남사부 5권 제36장 총 Page : 15 -------------------------------------------------------------------------- ---- 게 시 자 : tohana(박성호) 게 시 일 : 97/04/13 21:26:07 수 정 일 : 크 기 : 12.2K 조회횟수 : 33 [백상] 종남사부 제5권 36장 04/04 07:21 202 line 올 린 이 : 양한우 HITEL ID : hanwoo71 제36장. 무아일장(無我一掌) 귀면탈의 노인은 그 두 가지의 보물들을 마치 자랑스러운 듯이 사람들에게 보여 주고 있다가 문득 다소 놀란 듯이 백능풍을 향해 물었다. "아니, 너는 나를 그냥 놓아주겠다고 하지 않았느냐?" 백능풍은 싸늘하게 냉소하며 말했다. "내가 언제 그냥 놓아주겠다고 했소? 나는 그저 당신을 죽이지 않고 보내 주겠다고 했던 것이니 당신은 목숨을 잃기 싫거든 어서 그 두 가지의 보물 들을 우리에게 넘기도록 하시오!" …… 귀면탈의 노인은 그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이 얼른 두 팔을 내리고는 코웃 음을 쳤다. "내가 그 말에 따를 것 같으냐?" 헌데 그 순간의 일이었다. 백능풍이 어느새 소리없이 귀면탈 노인의 면전 (面前)에 이르러서 우장을 뒤집어서 노인의 가슴을 후려쳐 가는 것이 아닌 가! 그것은 이른바 천룡무가의 이름난 절학 가운데의 하나인 부동신보(不動 神步)라는 것과 역시 같은 계통인 금삽수(金揷手)라는 절기를 펼치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백능풍은 느닷없이 그 자리에서 사라져서 어느새 흔적도 없이 노인의 앞에 이르러 있었고, 그와 동시에 강렬한 금(金)빛의 장력(掌 力)이 노인의 전신을 덮어 가고 있는 것을 보고는 역시 명불허전(名不虛傳) 이라는 말을 실감하게 되었다. 이 백능풍은 비록 아직 나이는 많지 않지만 그 무공에 있어서 강호십대용봉 의 첫째라는 것이 공인되어 있는 상태였다. 비록 그 귀면탈의 노인의 신법 이 귀신을 방불케 하는 것이기는 했었으나 지금 그러한 백능풍의 공격에는 당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실로 뜻밖의 변화(變化)가 일어났다. 귀면탈의 노인은 백능풍의 공 세가 순식간에 자신의 앞에 도달한 것을 보고는 책자를 장검과 함께 좌수에 옮겨쥐고는 우수를 가볍게 휘저어 보였는데, 이내 그 순간에 믿을 수 없게 도 백능풍이 일으킨 금삽수라는 장력의 기운이 씻은 듯이 사라져 버리는 것 이 아닌가! 백능풍은 금세 노인을 제압할 듯이 덮쳐 갔었으나 이내 앗! 하는 신음 섞인 음성을 발하고는 급히 제자리로 물러나 버리고 말았다. 비록 뒤로 후퇴를 했다고는 하나 역시 부동신보를 발휘했던 것이어서 백능풍의 신형은 마치 허깨비가 공간을 이동하는 것 같기도 한 모습이었다. "이것은 무슨 무공이오?" 백능풍이 놀란 기색(氣色)으로 소리쳐 묻자 귀면탈의 노인은 귀면탈 속에서 음침하게 웃으면서 대꾸했다. "흐흐, 너희 천룡무가(天龍武家)의 절학만이 천하제일(天下第一)이라고 생 각한다면 그것은 오산이다. 실로 그것이야말로 바로 이 비급에 적혀 있는 무아일장(無我一掌)이라는 절학인 것이다!" -- 무아일장(無我一掌). 그것은 무아(無我)라는 이름이 말해 주고 있듯이 바로 무아진경(無我眞經)상의 무공이 틀림이 없는 것 같았다. 기실 이 천룡무가의 팔대절학(八大絶學)들은 이제까지 거의 무적(無敵)의 위치를 차지하며 강호상에서 군림해 온 절학들이었는데, 비록 과거의 전설 적인 기인인 무명도성의 절학이 대단할 것이라는 예상을 하기는 했어도 그 것이 천룡무가의 절학을 격퇴시키는 것을 보고서 사람들은 크게 놀라지 않 을 수가 없었다. 물론 무공이라는 것은 단순히 그 절학만으로 승부가 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 을 연성한 사람의 화후(火侯) 정도에 따라서 승패가 가려지기도 하는 것이 지만, 왠지 이 귀면탈의 노인의 출현과 그의 무공은 심상치 안은 구석을 내 포하고 있는 것 같았다. 백능풍은 노인의 그 말을 듣는 순간에 어느새 다시 신형(身形)을 날려서 그 노인의 면전으로 공격해 들어가고 있었다. 일순 그의 쌍권(雙拳)이 허공 가 득 거대한 광막을 형성하며 황금빛이 춤을 추듯이 노인의 면상을 향해 덮쳐 갔는데, 그것은 바로 다름 아닌 천룡무가의 팔대절학 가운데의 하나인 쌍류 금(雙流金)이라는 절기였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에 비단 백능풍뿐만 아니라 마치 사전에 미리 약속이라 도 한 듯이 그의 좌우에 서 있던 일검귀견수 상원웅장과 호면패도 늑가희, 그리고 삼절서생 황안(黃安) 등이 각기 자신들의 절학을 발휘하며 노인을 향해 공격해 들어가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비록 한쪽에 서 있는 황약호와 백유(白柔) 등의 여자들은 합공에 참가하지 않고 있었지만, 단지 그들만이 라고 해도 지극히 위력적이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는 것이었다. 원래 강호오룡(江湖五龍)의 순서를 매길 때 서로간의 무공의 순서를 고려하 기는 했지만, 기실은 그보다는 세력의 배경을 먼저 생각한 면이 많았었다. 왜냐하면 그들의 무공은 다소 차이가 난다고 해도 거의 같은 수준이어서 우 열을 논한다는 것이 난해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마치 그러한 사실을 보여 주기라도 하듯이 그들 삼 인(三人)의 합세는 가히 경천동지할 정도의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동영 출신인 일검귀견수 상원웅장은 이미 ㅇ느새 등뒤의 장검을 뽑아 들고 노인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는데, 그 상원웅장의 장검이 가볍게 움직이는 순 간에 마치 하늘에서 날벼락이 떨어지는 것 같은 거대한 우레 소리가 진동했 다. 물론 그것은 다만 소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검공(劍功)으로, 설사 집채만한 바위라도 단숨에 파괴할 수가 있다는 압력 으로 상대를 공격해 가는 붕검(崩劍)이라는 일종의 심오한 검학(劍學)이라 는 것이었다. 물론 그것은 동영의 검총(劍塚)의 검학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가 있는 북두제검대구식(北斗帝劍大九式)에서 가장 위력적인 삼대검학(三代 劍學) 가운데의 하나인 붕식(崩式)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기실 이 붕검이라고 하는 절학은 결코 사람의 육신으로 받을 수가 없는 것 이었기 때문에 귀면의 노인이 장검을 마주 뽑아들고 반격하지 않는 한은 대 항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게다가 그와 함께 공격을 하고 있는 호면패도 늑가희는 어느새 뽑아들었는 지 한 자루의 날이 두터운 도(刀)를 전혀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휘두 르며 허공 가득히 마치 수십 개의 무지개가 빛나는 것 같은 무시무시한 도 광(刀光)을 발출시키고 있었는데, 그것은 역시 도막(刀幕)의 절학 가운데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이^ㅆ는 우주조화도법(宇宙造化刀法)이라고 하는 것이 었다. 그들 두 명에 비해서 가장 온건한 공격을 퍼붓고 있는 사람은 바로 삼절서 생 황안이었는데, 그러나 기실 그가 빠르게 신형을 움직이며 양손을 교차시 키며 움직이고 있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성수곡(聖手谷)의 최고절학의 하나 인 육맥신기검(六脈神氣劍)이라는 무형기검(無形氣劍)을 발출하고 있는 것 이었으므로, 겉으로는 거의 표시가 나지 않는 것이어도 기실 그 무형기검은 다른 어떤 절학들에 못지 않게 위험하고 변화막측한 신공절예(神功絶藝)라 고 할 수가 있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삽시간에 그 괴이(怪異)한 귀면탈의 노인의 신형은 금세 그 네 가 지의 어마어마한 공세 속에 파묻히게 되었고, 따라서 사람들이 보기에는 금 방이라도 노인의 육신이 거대한 해일처럼 몰아닥치고 있는 가공할 힘에 의 해서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버릴 것 같은 착각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역시 그 노인은 정말로 괴이한 힘을 지니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노 인은 네 사람의 공세 속에 마악 파묻히려는 순간에 다시 그 예의 그 우장을 휘저어서 무아일장(無我一掌)이라는 것을 발출하였는데,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고 다만 장난과 흡사해 보이는 그 장력이 일단 펼쳐지자 이내 네 사람의 공세가 크게 주춤하는 듯하더니 꽈꽝! 하는 거대한 폭음이 그 와중에서 일어나 사위를 휩쓰는 것이 아닌가! 거대한 폭음이 사위를 헤집는 순간에 그와 동시에 역시 거대한 압력이 주위 를 휩쓸었으며, 따라서 주위에서 다소 넋을 놓고 관전을 하던 몇몇의 사람 들은 더러 자신들의 공력(功力)을 시험당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비록 공 력의 수준이 높은 사람들은 느닷없는 일을 당하여 다만 옷자락만 휘날렸을 뿐 그저 제자리에 서 있었는데, 비교적 공력이 허약한 사람들은 더러는 뒤 로 비척거리거나 쓰러지기도 했고, 심지어는 마치 태풍(颱風)에 휩쓸린 사 람처럼 십여 장이나 날아가기도 했던 것이다. 장내는 그렇게 금세 아수라장처럼 혼란스럽게 변모했다. ……! 그러나 비록 뜻밖에도 그와 같은 놀라운 상황을 겪은 사람들이었지만 여전 히 관심은 중앙의 그 일 대 사(一對四)의 격돌의 결과에 집중하고 있었고, 그리하여 이내 그 노인이 다소 비틀거리며 네 사람의 공격에 밀려서 뒤로 물러나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그러나 비록 그 노인이 약간 패색의 기운을 보이기는 했어도 전혀 내상을 입은 기미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게다가 그를 합공하던 그 백능풍 등의 네 명조차도 뒤로 약간씩 밀려나면서 다소 눈살을 찌푸리는 것이 내장의 진동을 느껴서 금세 다시 출수(出手)할 수가 없는 모 양이었다. 실로 그러한 사실은 경악할 만한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었 다. 사람들은 원래 이곳으로 올 때에는 그저 보물이 나타났다는 얘기를 전해 듣 고는 보물을 생각하며 온 것이었지 이곳에 어떤 무림고수(武林高手)가 숨어 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었는데, 정작 이와 같은 능력이 있는 사람일 줄 은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비록 백능풍 등이 내장의 진동을 받아서 출수하지 못하고 있고 또한 귀면탈의 노인 역시 아직 신형을 안정시키지 못하고 있는 순간에 이미 그러 한 찰나의 기회를 노리고 있던 다른 세 곳의 무림고수들이 지극히 빠르고도 날카로운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그들은 다름이 아닌 달라이라마를 비롯 한 서장(西藏) 포달랍궁의 고수들 아홉 명의 호법존자(護法尊者)들과 자부 문의 문주인 자부신군(紫府神君), 그리고 청조각의 각주(閣主)인 해로공과 그의 세 명의 수하들인 검치(劍痴), 도광(刀狂), 화미(花迷) 등이었는데, 그 가운데의 포달랍궁의 열 명의 라마승들은 전통적인 유가비술(瑜加秘術) 에서 창출된 대나이신법(大 移身法)과 대수인(大數印)의 장력을 비롯한 천 룡대라삼식(天龍大羅三式) 등의 절학을 펼쳤고, 자부문의 자부신군은 자부 무상강기(紫府無上 氣)라고 불리우는 자색(紫色)의 짙은 안개와도 같은 기 운을 일으켜 노인의 전신을 휘감아 버렸으며, 청조각의 해로공과 그의 세 명의 수하들은 또한 지극히 실전적(實戰的)인 방법으로 각 방면에서 노인의 허를 틈타고 자신의 안전마저 돌보지 않고 쇄도해 들어갔다. 그야말로 이러 한 경우를 두고 산 너머 산이요, 하나의 파도를 넘으니 이제는 해일이 덮치 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조금 전에 이미 네 명의 기재들에게 공격을 당하여 다소 심한 충격을 받았 었을 듯한 그 노인이 이번에 다시 그와 같은 허를 찌르는 가공할 공세에 대 해서 쉽게 피해낼 수가 있을지는 실로 의문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상황은 다시 사람들의 예상을 벗어나가기 시작했다. 노인의 신형이 다소 기우뚱하는 순간에 그들의 공세가 밀려들었으나 미처 그의 신형이 완 전히 포위되기도 전에 가볍게 흔들리는 듯하더니 어느새 공간을 뛰어넘어 버린 듯이 삼 장이나 비켜서 있는 것이 아닌가! 비록 한 순간에 십 장의거 리를 넘나드는 초절정의 고수들이라고 해도 실로 긴박한 순간에서의 그러한 삼 장의 거리 차이는 실로 전혀 다른 결과를 낳기 마련인 것이었다. 노인의 신형이 일단 움직인 순간에 어느새 그들의 합공 속에서 벗어나서 이 제는 한숨을 돌리는가 싶었는데, 마침 그 자리는 해로공을 비롯하여 그의 수하들이 가까이에 있는 자리였으므로 다음 순간에 노인은 다시 놀라운 공 격을 맛보아야 했다. 원래 이 해로공(海老公)이라는 사람의 무기는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으나 지극히 가늘고 질긴 실로 만들어진 낚시줄이라는 것이었는데, 그것은 비단 여러 가지의 묘용(妙用)이 있기도 하는 것이었지만 지극히 임기응변에 강한 것이어서 순간적으로 무한에 가까운 변화(變化)를 일으킬 수가 있고, 또한 원근을 자유로이 조절할 수가 있으며, 게다가 갑자기 상황이 변화해도 능히 그것을 따를 수가 있는 놀라운 것이었으므로 어느새 노인의 뒷덜미를 향해 소리없이 낚시줄이 날아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기실 강호상에서 아주 기다란 십 장에 달하는 채찍을 쓰는 사람들이 있기도 하지만 이처럼 끝에 아무 것도 매달지 않은 기다란 실을 무기(武器)로 삼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었다. 실제로 그와 같은 병기는 비단 공력이 지극히 순후(純厚)하지 않으면 사용할 수조차 없을 뿐만 아니 라 게다가 특별히 묘용에 대해서 장세히 배우지 않으면 역시 제능력을 발휘 할 수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 가느다란 낚시줄은 때로는 기다란 창(槍)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장검처 럼 곧추세워서 사람의 목을 베어 버릴 수가 있으며, 때로는 소리없이 빠르 게 날아가는 암기(暗器)의 구실을 할 수가 있고, 물론 때로는 기다란 채찍 처럼 자유자재로흡사 살아 있는 신룡(神龍)처럼 움직이며 상대를 공격하거 나 포획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지금도 물론 해로공의 그 낚시줄은 전혀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노인의 뒷덜미를 향해 빠르게 찔러 가고 있는 상태였는데, 그러나 불행히도 이 순 간에는 노인이 그러한 낌새를 어떻게 알았는지 다시 신형을 흔들거리며 피 하는 바람에 그러한 공격은 일단 수포로 돌아가게 되었고, 해로공의 그 신 룡과도 같은 낚시줄은 이번에는 마치 살아 있기라도 하듯이 도중에 방향을 바꾸어서 하나의 거대한 칼날처럼 노인의 목을 향해 옆에서 후려쳐 가기 시 작했다. 노인은 그것을 보고는 일순 멈칫하며 손으로 그 낚시줄을 잡아챌까 하고 망 설이는 듯했는데, 문득 다시 옆쪽에서 세 방향으로 매서운 공세가 들이닥치 는 것을 보고는 그러한 생각을 그만두게 되었다. 다름이 아니라 해로공의 세 명의 수하들이 역시 실전적인 수련을 거듭해 온 사람들답게 어느새 다시 방향을 잡아서 몸을 돌려 노인을 공격해 오기 시작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말하자면 검치(劍痴)라고 불리운 사내는 마치 한 자루의 검에 목숨을 건 정 도가 아니라 아예 자신이 신기(神機)어린 한 자루의 검이 되어 버린 듯이 무아지경(無我之境)이었고, 도광(刀狂)이라는 사내는 전혀 도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처럼 이리저리 광분(狂奔)하여 자신의 생명도 돌보지 않고 미친 듯이 달려들고 있었으며, 화미(花迷)라는 그 멍청해 보이는 여자는 어느 한 순간에 평범해 보이던 용모에서 기이한 미태(美態)를 발산시키며 노인의 앞 에 다가와서 눈짓 하나 혹은 손길 하나에서도 고혹적이고 그러한 가운데 가 공할 암기(暗器)의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제5권 끝> -- 계속 -- ─────────────────────────────────────── 일반연재 [백상] 종남사부 6권 제37장 -a- 총 Page : 14 -------------------------------------------------------------------------- ---- 게 시 자 : tohana(박성호) 게 시 일 : 97/04/13 21:28:41 수 정 일 : 크 기 : 11.2K 조회횟수 : 33 [백상] 종남사부 제6권 37장 -a- 04/07 18:13 375 line 올 린 이 : 양한우 HITEL ID : hanwoo71 제37장.(1) 저의(底意) ……! 노인은 실로 제아무리 강호상에서 오랫동안 살아 왔다고 하더라도 이와 같 이 미친 사람들을 대하는 것은 처음이었을 것이었다. 노인의 무학은 기실 대단히 높은 수준의 것이어서 그들의 그러한 미친 듯한 무학이 통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일단은 매우 귀찮고 어처구니가 없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러나 정작 노인이 그들 모두의 공격을 무산(霧散)시키 려고 생각할 즈음에는 다시 다른 곳에서 보다 가공할 공세가 시작되고 있었 다. 다름이아니라 바로 조금 전에 노인과의 격돌에서 입은 충격을 겨우 해 소한 백능풍 등의 네 명이 다시 가공할 공세를 퍼붓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기실 뭐니뭐내해도 가장 위력적이고 무서운 공세는 그들 네 명의 공격이라 고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노인은 그들의 공격마저 급작스럽게 닥쳐드는 것을 보고는 그만 이에 질리 고 말았는지 신형을 움직여서 피하려고 했다. 실로 이 노인의 신형은 그야 말로 귀신(鬼神)이 전혀 무게도 없이 허깨비처럼 움직이는 것과도 흡사해 보이는 것이었는데, 일단 그의 신형이 가볍게 흔들리는 듯하자 어느새 그의 신형은 허공 삼 장 위에 떠올라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비록 무공이 거기에 다소 미치지 못한다고 해도 백능풍 등의 무학도 허수아비의 형세는 아니었다. 노인의 신형이 허공에 떠오른 순간에 비록 해 로공 등은 미처 그의 뒤를 따르지 못했지만 어느새 백능풍 등의 네 명의 신 형은 노인의 사방을 에워싸며 거의 동시에 허공으로 솟아오르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처음부터 그겋게 그와 같은 순간에 함께 신형을 솟구 치기로 약속을 해놓고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빠르게 신속하게 변화되고 있 는 것이었다. 노인은 일단 허공에 먼저 솟아올라서 뒤늦게 따라올라오는 네 명의 기재들 을 향해 양손을 마치 날개짓을 하듯이 휘저었다. 그러자 마치 구름과도 같 은 무형(無形)의 기운이 거짓말처럼 생겨나면서 네 명의 기재들의 전신을 압박해 가는 것이었다. 비록 신법에 있어서는 것의 뒤질 것이 없다고 해도 일단 그와 같은 공격을 받고나자 백능풍 등은 이제는 도저히 노인의 뒤를 쫓을 수가 없었다. 따라서 노인은 이제는 계속해서 위로 솟구치면서 이 위 기를 벗어날 수가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에 다시 하나의 마력(魔力)이 노인의 허공 위에서 작용 했다. 이때 놀랍게도 어느새 한 사람이 노인의 위쪽에서 먼저 도달해 있었 는데, 다름이 아니라 그는 바로 조금 전에 자부무상강기로써 노인을 휘감으 려고 했었던 그 자부신군(紫府神軍)이었다. 이 자부신군은 자부문의 문주라 고 하면서 혼자서 움직이고 있는 사람이었는데 기실은 그의 무학은 다른 해 로공이나 포달랍궁의 달라이라마 등보다 훨씬 월등한 듯이 보였다. 노인이 마악 위로 벗어나려는 순간 자부신군의 우수에서 그야말로 햇살과도 같이 무한한 변화(變化)와 힘이 내포되어 있는 무형검기(無形劍氣)인 자부 검해(紫府劍解)가 펼쳐져서 노인의 전신을 압박해 오는 것이었다. 노인은 이에 다소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저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던 이 자부 신군이라는 사람의 무학이 설마 이러한 경지에 올라 있을 줄은 미처 생각지 도 못했었기 때문이었다. 노인은 이 상황에서 아까처럼 그렇게 피할 수는 없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 다. 비록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달아날 수 있는 호기(好機)를 놓치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그러나 이 자부신군의 무형의 검학( 學)은 상당히 위력적인 초절정의 무학이어서 결코 경솔하게 대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노인은 하는 수 없이 다시 우수를 휘저어서 자부신군의 공격과 마주 상대했 는데, 그 순간에 꽈르릉! 하는 굉장한 폭음이 들려 오면서 자부신군의 신형 은 하늘 높이 솟아 올라갔고 노인의 신형은 다소 주춤하더니 아래로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비록 자부신군이 다소의 쓴맛을 보기는 했지만 그 대가로 노인은 다시 백능풍 등의 합공 하에 놓이게 되어서 실로 어이없는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지금은 아까보다도 더욱 백능풍 등의 세력이 증가된 상황이 아닌가? 따라서 노인은 내심으로 제기랄! 하고 외치면서 수중에 들고 있던 두 개의 보물 가운데에서 한 가지를 한쪽으로 내던져 버렸다. "자! 그럼 이것이나 가져라!" 기실 지금은 백능풍 등도 아래쪽에서 대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해로공 등 이나 포달랍궁의 라마승들도 체내의 공력(功力)을 한창 돋구고서 대기하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그 귀면탈의 노인으로서는 그렇게 하는 것이 어쩔 수 가 없는 상태였다고도 할 수가 있었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노인은 이번 에는 요행을 바랄 수가 없게 되어서 내상을 입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고, 또한 일단 그렇게 되면 계속해서 몰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 노인이 던진 물건은 다름이 아니라 바로 무아진경(無我眞經)의 하나라는 비급이었고, 그것은 공교롭게도 화검운이 서 있는 쪽으로 빠르게 날려갔다. 아마도 노인은 워낙에 급한 나머지 그 비급도 마치 암기처럼 빠르게 던지지 않을 수가 없었던 모양이었다. 제갈소홍도 화검운의 옆에서 그러한 광경을 지켜보았는데 일순간 마치 기왓 장과도 같이 넓적한 물건이 화검운을 향해 보이지도 않는 빠르기로 날아가 는 것을 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아! 하는 경악성을 발했다. 만일 그녀에게 그러한 암기가 날려 왔었다면 그녀는 결코 그것을 막을 수가 없었을 것이었 고 마침내는 허무하게 죽음을 당하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상대는 제갈소홍이 아니라 화검운이었고 그 화검운은 비급 이 자신에게 날아오자 그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손을 뻗어서 그것을 받아 버렸다. 그는 이내 비급을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았는데, 그 순간에 장내의 사람들의 심리적인 변화는 이루 헤아릴 수가 없을 지경으로 복잡했다. 원래 그 귀면탈의 노인이 비급을 던져 버린 것은 자신의 손에 들려 있는 지 존검을 사용하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사람들의 마음을 흐트러 뜨리자는 생각에서였다. 그는 이때 따라서 두 손을 동시에 사용할 수가 있 게 되었고, 또한 달라이라마 등의 마라승 등의 정신이 비급족으로 다소 분 산된 틈을 이용하여 번쩍! 하고 빠르게 손을 썼다. 노인의 손속은 사람들의 눈에 마치 번갯불이 번쩍 한 것 같은 느낌을 줄 정도로 빨랐지만, 대체 그 것이 어떤 무공인지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노인의 무공은 마치 장난을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그 다 음 순간에는 효과가 드러나고 있었으니, 거의 동시에 다시 노인을 향해 공 격을 퍼붓던 해로공 등과 백능풍 등의 신형이 일순간 마치 태풍이라도 만난 듯이 거세게 뒤로 흔들려서 주춤거렸다. 특히 해로공의 그 세 명의 수하들 은 가장 공력(功力)이 부족한 편이어서 이내 무려 사오 장이나 뒤로 날려서 피를 토하는 것이었다. "으웩!" 바로 그 순간에 그 귀면탈의 노인은 지존검을 휘두르며 허공을 가르며 달아 나기 시작했으며, 뒤를 이어 해로공이나 자부신군 등이 뒤를 추적하기 시작 했으나 이제는 도저히 그 노인을 잡을 수가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 포달랍궁의 라마승들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이 신형을 날려서 그 귀면 탈의 노인의 뒤를 뒤쫓아간 다음에 이윽고 이 앞마당에는 잠시 정적이 감돌 았다. 그러나 아직 태풍의 불씨는 남아 있는 상태여서 그것은 백능풍 등의 기재들이 아직 가지 않았고, 또한 화검운에게 지금 그 비급이 있다는 것으 로 능히 느낄 수가 있을 것 같은 살벌한 분위기였다. 백능풍은 일순간에 그 귀면탈의 노인을 놓치고 나서 다소 망연한 기색(氣 色)으로 생각에 잠기는 듯하더니 이윽고 고개를 돌려서 화검운을 바라보며 입을 열어 말했다. "그야말로 재주는 곰이 부리고 소득은 엉뚱한 녀석이 가져가는 격이로군. 그래 당신은 감히 자신이 그 비급을 가지고 있을 자신이 있다고 생각하시 오?" 화검운은 이 순간에 아직 장내에 남아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한꺼 번에 집중되고 있는 것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듯이 태연자약하게 웃 으며 대꾸했다. "물론이오. 당신은 그래 내가 이런 비급 하나 가지지 못할 사람이라고 생각 한다는 말이오?" 백능풍은 눈살을 다소 찌푸리며 생각하다가 다시 말했다. "내 말은 그러니까 그 비급은 무림의 중요한 물건이므로 만일 당신이 가지 고 있게 되면 무수한 곤란을 당하게 될 것인데 차라리 우리 백의맹에 헌납 하라는 것이오." 화검운은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헌납하라니 그건 말도 되지 않는 말이군. 그래 당신들에게는 이러한 비급 이 있어도 되는 것이고 나에게는 이러한 비급이 있으면 안된다는 법이 또 어디에 있단 말이오? 설마하니 당신들은 자신들만이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 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 백능풍은 잠시 싸늘한 시선으로 화검운의 얼굴을 주시하고 있다가 이윽고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좋소! 그것은 기왕에 당신의 손에 굴러들어간 것이니 일단은 당신의 소유 라고 해주겠소. 그것은 물론 당신이 종남파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 때문이 므로 만약 나중에 일이 생긴다면 우리는 종남파의 사람들에게 그 책임을 물 을 것이오." 말과 함께 백능풍은 천천히 걸음을 옮겨서 장원의 밖으로 사라지기 시작했 다. 화검운은 미소하고 있다가 이윽고 하나씩 사라져 가는 사람들을 향해 짐짓 포권을 하며 말했다. "안녕히들 가시오! 모두 모처럼 오셨는데 대접을 해드리지 못하고 보내는 것을 죄송스럽게 생각하는 바이오!" 이윽고 비록 완전히 떠나갔는지는 알 수가 없으나 최소한 장내에 있던 사람 들이 모두 떠나간 것을 확인하고 나서 화검운은 그제서야 비로소 천천히 신 형을 돌렸다. 그러다가 그는 문득 다소 의아한 듯이 입을 열어 말했다. "아니, 당신은 어째서 아직도 가지 않고 있느 것이오?" 제갈소홍이 아직 떠나지 않고 아까의 그 자리에 남아 있었던 것이었다. 심 지어 아까 백능풍 등과 함께 있었던 황약화도 아무런 말도 없이 일행들과 함께 사라져 버렸는데, 이 제갈소홍이 아직 떠나지 않고 있다는 것은 뭔가 다른 의미(意味)가 있을 것 같았다. 화검운의 질문에 제갈소홍은 가볍게 웃으며 대꾸했다. "당신은 나를 마치 귀찮은 짐작 보듯이 하는군요. 내가 그렇게도 보기 싫은 사람인가요?" 화검운은 잠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는 듯하다가 웃으며 고 개를 천천히 가로저었다. "그럴 리가 있겠소? 나는 다만 당신이 아직 떠나지 않고 있는 것은 뭔가 다 른 저의가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오." "저의(底意)라고요?" 제갈소홍은 왠지 다소 붉어진 안색으로 화검운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당신은 아마도 내가 그 비급에 욕심을 내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사 실 나는 그 비급을 갖게 된다고 해도 위험하기 때문에 남에게 줘야 할 형편 의 사람이예요. 내가 그런 비급을 무엇 때문에 갖고자 하겠어요?" 화검운은 알 수 없다는 듯이 다시 물었다. "그럼 당신은 이 비급 때문에 남은 것이 아니라는 말이오?" 제갈소홍은 웃으며 고개를 천천히 가로저었다. "저는 당신에 대한 조사가 아직 끝나지 않았고 또한 궁금증이 풀리지 않았 기 때문에 좀더 남아서 당신을 관찰하려는 것이예요. 설마하니 제가 이렇게 하려고 하는 데 대해서 당신은 구태여 귀찮은 내색을 하지는 않으시겠죠?" 화검운은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물론이오. 만약 당ㅅ니이 나를 귀찮게 하지 않는다면 실로 당신과 같은 미 인(美人)이 옆에 있어 준다는 자체가 나에게는 즐거운 일일 것이오." 제갈소홍은 그 말에 왠지 눈빛을 반짝거렸다. "내가…… 정말로 그렇게 미인인가요?" 화검운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대꾸했다. "아니, 그럼 자신이 미인이라는 사실을 아직도 모르고 있었다는 말이오?" 제갈소홍은 이에 은근히 붉어진 안색을 보이지 않으려는 듯이 시선을 안쪽 으로 돌리면서 화제를 바꾸었다. "이곳에는 아직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남아 있을지도 모르니 우리는 일단 안으로 들어가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어떻겠어요?" 화검운은 그녀의 의도를 알 수가 없다는 듯이 고개를 다소 갸웃거리다가 이 윽고 고개를 끄덕이며 먼저 안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럽시다." 화검운이 먼저 안으로 걸어가기 시작하자 용아와 봉아가 즉시 그의 좌우에 서 뒤를 따라갔고, 제갈소홍은 왠지 화검운이 손에 들고 있는 예의 그 비급 을 눈여겨보면서 이어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화검운과 제갈소홍 등은 다시 아까의 그 서재로 들어섰다. 그런데 문득 제 갈소홍은 미처 자리에 앉기도 전에 화검운을 향해 전음입밀(傳音入密)의 수 법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한 가지 중요한 일이 있어요. 잠시 당신의 두 명의 시종들을 밖으로 내보 내 줄 수는 없나요?" (……?) 화검운은 제갈소홍의 그러한 말에 다소 어리둥절한 표정이었지만 이내 두말 하지 않고 용아와 봉아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잠시 거실의 의자에 가서 쉬도록 해라. 단 내가 다른 지시를 내 릴 때까지는 다른 곳으로 가지도 말로 마당으로 나가지도 말아라." 용아와 봉아는 이미 이 화검운을 거의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는 소녀들이었다. 그녀들은 모슨 일인가 하고 의아해 하는 눈치였으나 즉 시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공손히 예를 올린 다음에 서재의 방문을 열고 밖으로 걸어 나가고 말았다. ……! ─────────────────────────────────────── 일반연재 [백상] 종남사부 6권 제37장 -b- 총 Page : 13 -------------------------------------------------------------------------- ---- 게 시 자 : tohana(박성호) 게 시 일 : 97/04/13 21:30:06 수 정 일 : 97/04/13 21:36:49 크 기 : 9.7K 조회횟수 : 35 [백상] 종남사부 제6권 37장 -b- 04/07 18:13 375 line 올 린 이 : 양한우 HITEL ID : hanwoo71 제37장.(2) 저의(底意) 용아와 봉아가 나가고 나서 제갈소홍은 일단 서재의 방문을 닫은 다음에 이 어서 다른쪽의 창문마저 닫아 버리고는 다소 어두워진 실내로 돌아와서 하 나의 의자 위에 앉으면서 입을 열어 말했다. "당신의 두 시종은 정말로 총명하고 하나같이 귀여울 뿐만 아니라 그야말로 앞으로 천하절색(天下絶色)들이 될 자질들을 타고나고 있어요. 아니 그녀들 은 지금이라도 충분히 한 명의 소녀(少女)라고 볼 만큼 아름다운 것이 현실 이죠." 화검운은 그녀가 다소 엉뚱한 얘기를 꺼내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는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당신은 그래 그런 얘기를 하기 위해 나와 조용히 보자고 했던 것이오?" 제갈소홍은 화검운이 좋아하지 않는 기색을 보고는 웃으며 즉시 화제를 돌 렸다. "아니예요. 호호…… 당신은 과연 내가 무엇 때문에 당신을 조용히 보자고 했을 것인지 알고 있나요?" 화검운은 그녀를 주시하며 대꾸했다. "아마도 그것은 당신이 나에게 뭔가 부탁할 일이 있기 때문일 것이오." (……!) 제갈소홍은 그 말에 왠지 다소 우수(憂愁)에 가득차 있는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당신은 역시 계속해서 저를 그런 여자로 생각하는군요. 내가 당신에게 그 비급을 달라고 염치없는 부탁을 할 것 같은가요?하기는…… 지금의 상황이 아무래도 당신이 그런 오해를 할 만큼의 여건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 기는 하죠." 화검운은 그녀를 향해 다시 물었다. "그럼 아니라는 말이오?" 제갈소홍은 이에 입술을 가볍게 깨물며 신형을 의자 위에서 일으켰다. 그녀 는 이어 신형을 가볍게 박차올려서 화검운이 앉아 있는 의자의 앞에 놓여 있는 탁자 위에 신발을 벗고 올라섰는데, 다소 상기되고 기이(奇異)한 열기 가 감도는 듯한 시선으로 대꾸했다. "그래요. 내가 구태여 당신을 보자고 했던 것은 바로 이것 때문이예요." 말과 함께 제갈소홍은 손길을 가볍게 움직여서 하나씩 겉옷을 벗기 시작했 는데, 이어서 나중에 속옷과 젖가리개, 그리고 심지어는 작은 고의까지 완 전히 벗어 버리는 것이었다. ……? 화검운은 잠시 멍하니 그녀의 행동을 보고 있다가 그만 절로 안색이 붉어지 며 약간 외면을 한 상태로 말했다. "아니, 이게 무슨 짓이오? 대체…… 무슨 다른 부탁이 있다면 말로 하면 되 는 것이 아니오? 구태여 이렇게까지 할 거야……" 그런데 정작 제갈소홍의 한숨 소리가 그 뒤를 이었다. "나는 그래도 당신만은 말에 책임을 지고 또한진실(眞實)한 사람이라고 생 각하고 있었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로군요." (……?) 화검운은 제갈소홍이 그와 같은 뜻밖의 말을 하자 자연히 의아해져서 다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게 되었다. 아니 이번에도 그는 시선이 자연히 그녀의 화려한 나신에 가게 되어서 절로 안색을 붉히면서 얼굴로 황급히 시선을 옮 겨야만 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이오?" 화검운이 붉어진 안색으로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반면에 오히려 옷을 완전히 벗고서 탁자 위에 나신으로 서 있는 제갈소홍은 비교적 냉정한 표정이었다. "당신은 아까 나를 보기 드문 미인이요, 함께 있을 수가 있다면 기쁠 것이 라고 얘기하지 않았었나요?" 화검운은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꾸했 다. "그러기는 했소만 이게 대체 그것과 무슨 연관이 있다는 말이오?" 제갈소홍은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당신은 내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하는 것 같아요?" 화검운은 다소 붉어진 얼굴로 대답했다. "나는 가능하면 당신의 부탁을 들어 줄 것이니 이제 그만 옷을 입는 것이 좋겠소." 그런데 제갈소홍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예요. 나는 당신에게 나의 이 알몸을 보여 주고 싶어서 이러고 있는 것이예요. 왜냐하면 당신은 내가 아름답다고 말해 주었고 또한 기쁠 것이라 고 했기 때문에…… 따라서 나는 당신에게 나의 알몸을 보여 주려는 것이예 요. 그러나 당신은 오히려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군요. 정말로 그렇게 나의 몸이 보기가 싫은가요?" 화검운은 어이가 없어서 웃으며 대꾸했다. "그럴 리가 있겠소? 아마도 천하의 남자들 중에 낭자의 그러한 몸을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오. 하지만 대체 무슨 이유로 구태여 나 에게 이렇게 대하는지 나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소." 제갈소홍은 물었다. "당신은 그 이유를 알고 싶나요?" 화검운은 웃으며 대답했다. "기왕에 이렇게 되었으니 만일 알 수만 있다면 무슨 이유이든간에 듣고 싶 소." 제갈소홍은 다시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사실은…… 거의 모든 강호인들이 그렇겠지만 사실 나는 요즈음 생명에 대 한 위협을 강하게 느끼고 있는 편이예요. 왜냐하면 그것은 당금의 현실이 나에게 아주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죠. 물론 보다 직접적인 원인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에 대한 얘기는 당신에게 해드릴 수가 없어요. 당신도 듣지 않는 편이 이로울 것이고……" 화검운은 알 수 없다는 듯이 다시 물었다. "그런데 그 일과 이 일과는 무슨 관련이 있다는 말이오?" 제갈소홍은 대답했다. "나는 어차피 요절(夭折)을 하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기왕에 젊은 청춘으로 죽어 갈 것이라면 이것을 기뻐하는 사람에게 한 번 보여 주는 것도 의미가 있는 일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죠. 당신은 혹시 처녀귀신이라는 얘 기를 들어 보았나요?" 화검운은 웃으며 대꾸했다. "당신은 처녀귀신이 될까 봐 걱정하고 있다는 말이오?" 제갈소홍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는 나중에 무슨 처녀귀신이 되든 아니든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어요. 다 만 내가 이 청춘의 아름다움 몸을 제대로 꽃피우지 못하고 죽어 가게 된다 면 만일 영혼(靈魂)이 남게 되었을 때 매우 섭섭한 기분이 들지 않겠어요? 따라서 나는 미리 당신에게 나의 알몸을 보여 주게 되면 최소한 그런 섭섭 한 느낌은 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화검운은 이에 다소 마음이 편해졌는지 웃으며 말했다. "아니, 그럼 당신은 나를 신랑감으로 생각하겠다는 말이오?" 제갈소홍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예요. 하지만 만약의 경우에는 그렇게 될 수도 있겠죠. 당신이야말로 나의 알몸을 본 첫 번째의 남자이니까요. 여자의 순결(純潔)은 바로 그런 의미가 아니겠어요? 그러나 나는 달리 생각해 둔 남자가 있기 때문에 당신 에게 정말로 나의 몸을 바칠 수는 없어요." 화검운은 제갈소홍의 말을 들을수록 더욱더 기묘한 느낌이 들어서 말했다. "아니, 만일 내가 나중에 생각이 변해서 당신을 강제로 탐하려고 한다면 그 때는 어떻게 하려고 그러는 것이오?" 제갈소홍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는 그래도 제법 사람을 보는 눈이 있기 때문에 당신이 결코 그와 같은 짓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믿고 있는 거죠. 하지만 만일 당신이 나의 그러한 믿음을 저버리고 좋지 못한 행동을 한다면 나중에 나의 원한(怨恨) 이 바다보다 깊다는 것을 실감하게 될 것이예요." 화검운은 그만 등골이 오싹한 기분이 든다는 듯이 말했다. "그렇다면 나는 결코 그런 좋지 못한 생각을 할 수가 없겠군." 제갈소홍은 미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는 당신을 상당히 호감있게 보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짐금과 같은 행동 을 하고 있는 것이예요. 그러니 아주 나쁜 의도가 아니라면 어느 정도는 상 관이 없어니 그렇게 마음의 부담을 가질 필요가 없어요. 나는 당ㅅ니이 보 다 편안(便安)한 마음으로 나의 몸을 감상해 주기를 바래요." 화검운은 다시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정말로 여기에는 다른 조건이 없다는 말이오?" 제갈소홍은 눈빛을 기이하게 빛내며 대꾸했다. "그래요. 그야말로 나의 이 알몸은 당신이 보기에는 굴러들어온 떡이나 다 름이 없는 것이죠. 비록 직접 정복할 수야 없는 일이지만 나는 당신에게 그 밖의 선에서는 무엇이든 허용할 것이니 당신은 아주 즐겁지 않겠어요? 사실 여자의 이런 알몸을 제대로 감상할 줄 아는 사람은 구태여 정복해야 할 필 요를 느끼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하더군요. 당신은 과연 나의 이러한 알몸을 직시(直視)할 용기가 있나요?" 화검운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그런 일에도 용기가 필요하오?" 제갈소홍은 대답했다. "물론이예요. 만일 그 사람이 겉으로만 선한 체하는 위선자(僞善者)이거나 위군자(僞君子)라면 속으로는 매우 보고 싶어 하면서도 겉으로는 정작 정인 군자(正人君子)인 것처럼 점잖은 척하겠죠. 그리고 용기가 없는 소인배라면 감히 바른 마음으로 나의 이 몸을 주시하지 못할 거예요. 그러니까 용기가 있는 장부(丈夫)만이 부담없이 즐길 수가 있는 것이 아니겠어요?" 화검운은 가볍게 웃었다. "하하, 일리가 있는 얘기요." 이어, "그럼 실례를 범하도록 하겠소." 말과 동시에 시선을그녀의 전신으로 옮겨가기 시작하자 제갈소홍은 아까의 대담했던 태도와는 달리 신형을다소 움츠리는 듯하더니 이내 정말로 나신을 가볍게 움직이며 화검운이 자세히 충분하게 감상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었다. 실로 여자의 몸이라고 하는 것은 아름답다고들 말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 가 운데 정작 실제로 여자답게 훌륭한 아름다움을 소유하고 있는 여자라는 것 은 그다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이었다. 왜냐하면 비 록 여자들이라고 해서 하나같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아름답지 않은 여자 가 아름다운 여자에 비해서 훨씬 더 많은 것이기 때문이었다. 아니 보다 심 하게 말하자면 정말로 아름다운 여자는 세상에 그다지 많지 않다고나 할까? 그런데 화검운이 바라보는 바에 의하면 이 제갈소홍의 전신은 그야말로 아 름다운 여자의 미(美)를 충분하게 갖추었다고 말할 수가 있는 몸매였다. 일 반적으로 간혹 세상에 널리 알려지곤 하는 요조숙녀들이나 미인들이라고 해 도 실상 그 몸매는 탄력이 적거나 혹은 지나치게 살이 쪄서 늘어져 있는 경 우가 있기 마련인 법인데, 이 제갈소홍의 몸매는 비단 적당하게 살이 찌고 또한 전신의 곡선이 그야말로 자연스럽고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백옥(白玉) 같은 빛을 뿌리면서 탄력있게 생동하고 게다가 전신의 균형미를 완벽하게 갖추고 있는 상태였다. 흡사 학(鶴)처럼 가느다란 하얀 목과 거기에서 이어지는 어깨와의 곡선(曲 線), 그리고 아주 가녀린 듯하지만 그러나 산뜻하고 왠지 탄력이 엿보이는 작은 어깨와 아름다운 꽃봉우리를 연상케 하는 절묘한 아름다움을 자아내는 두 개의 젖가슴의 생생한 유혹(誘惑)! 그리고 마치 버들가지를 연상케 하는 부드럽고 가느다란 날씬한 허리의 선과 그 아래로 급격히 우아한 곡선을 그 리며 확산되는 둔부의 선(線) 등은 그야말로 더 이상 아름다울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실로 이 제갈소홍은 얼굴에서는 그다지 완벽한 미인(美人)이라 고는 말할 수가 없을 것이겠지만, 이 나신에 있어서는 그야말로 완벽한 여 자의 아름다움을 소유하고 있는 것 같았다. 실로 그녀는 자신의 알몸을 자 랑스럽게 남에게 보여 줄 만한 여자였다. 기실 한 사람의 체형이 이처럼 늘씬하고 균형있게 자란다고 하는 것은 어떤 인연이 닿아야 하는 것이겠지만, 지금처럼 전혀 조금의 군살도 없이 적당하 게 탄력있는 눈부신 아름다운 몸매를 이루게 되기 위해서는 특별한 조건이 필요한 법이었다. 그 특별한 조건이라는 것은 양가(良家)의 숙녀(淑女)들은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바로 다름이 아니라 그녀가 강호인으로 항상 무 공을 연마(鍊磨)해 왔다는 사실이었다. 따라서 비록 겉으로는 다소 수척해 보이는 몸매이지만 기실 벗어 놓고 보면 그녀의 몸은 늘씬하면서도 하체는 풍만하여 그야말로 훌륭한 미태(美態)를 보여 주고 있는 것이었다. -- 계속 -- ─────────────────────────────────────── 일반연재 [백상] 종남사부 6권 제38장 -a- 총 Page : 13 -------------------------------------------------------------------------- ---- 게 시 자 : tohana(박성호) 게 시 일 : 97/04/13 21:32:43 수 정 일 : 97/04/13 21:37:24 크 기 : 9.9K 조회횟수 : 31 [백상] 종남사부 제6권 38장 -a- 04/07 18:13 277 line 올 린 이 : 양한우 HITEL ID : hanwoo71 제38장.(1) 가능성(可能性) 제갈소홍은 처음에는 다소 굳어진 듯한 태도였으나 이내 마음을 강하게 먹 었는지 오히려 화검운의 시선이 닿는 곳을 잘 볼 수 있도록 신형을 돌려 주 거나 혹은 다리를 벌려 주기도 했다. 만일 다른 여자들이라면 도저히 할 수 가 없을 일을 그녀는 대담하게도 거의 태연하게 해내고 있는 것이었다. 지금 그녀의 안색은 다소 창백하게 파리해진 듯이 보였으나 시간이 갈수록 그녀의 전신에서는 열기(熱氣)가 솟아나오는 듯 오히려 더욱 도발적이고 적 극적이었다. 처음에 그녀는 자신의 미태를 보여 주는 일에 중점을 두고 움 직였지만 이내 시간이 지나자 말하자면 남자들이 가장 관심을 느끼고 있는 부분들, 절묘한 선을 이루고 있는 젖가슴의 모습이나 허벅지 사이의 은밀한 부위 등을 일부러 노골적으로 화검운에게 보여 주려고 시도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기실 그녀의 내심과는 반대되는 행동이었고 또한 반발적인 행동이기 도 했다. 그녀는 스스로 왠지 위축되는 듯한 자신의 모습이 싫었기 때문에 오히려 대담한 듯한 행동을 도발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 것이었다. 지금 화검운은 그저 의자 위에 앉아서 탁자 위에 서 있는 그녀의 나신을 아 주 가까이서 올려다보고 있는 상황이었으므로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그녀의 전신의 털끝 하나까지 자세하게 관찰할 수가 있을 것 같았다. 이윽고 일부러 자신의 다리를 벌려 주고 이어서 뒤로 돌아서서 둔부의 곡선 등을 보여 주곤 하던 제갈소홍이 문득 입을 열어 화검운에게 물었다. "당신은 이제 다 보았나요?" 화검운은 이때 이미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는 고개 를 끄덕였다. "그렇소." 이에 제갈소홍은 다소 망설이는 듯하다가 다시 말했다. "만일…… 만일 당신이 원한다면 나의 몸을 만져 보아도 괜찮아요. 당신이 만약 그 최후의 선(線)만 넘지 않는다면 나는 어떤 요구라도 들어 줄 수가 있어요." 이미 제갈소홍은 자신의 온갖 비밀스러운 부위까지 적나라하게 보여 주었으 니 기왕이면 모든 것을 베풀어 주려는 모양이었다. 사실 그러한 얘기를 듣 고 가슴이 뛰지 않는 남자는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화검운은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제 충분히 보았으니 구태여 그럴 필요까지는 없소. 당신의 몸은 정말로 아름다운 것임을 인정하겠소." (……) 제갈소홍은 문득 그렇게 선 자세로 곰곰히 생각에 잠기다가 이윽고 입술을 깨물고 느릿하게 주위에 떨어져 있는 의복들을 하나씩 걸치면서 말을 이었 다. "당신은 보기보다 훨씬 자제력이 강하고 또한 욕심(慾心)이 없군요. 나는 일면으로는 감탄하는 느낌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다소 섭섭한 생각이 드는 군요." 화검운은 그녀가 비로소 고의와 젖가리개를 걸치고 다시 속옷을 입기 시작 하자 시선을 그녀에게 보내며 물었다. "아니, 어째서 섭섭하다는 것이오?" 제갈소홍은 다시 고소(苦笑)를 흘리면서 대답했다. "나는 아까도 말했지만 이대로 덧없이 죽음을 당해서 시체가 되어 썩어 가 게 될지도 모르는 사람이예요. 사실 그러한 가능성(可能性)은 매우 강한 편 이라고 할 수가 있어요. 따라서 나는 기왕에 당신에게 모든 것으 ㄹ보이는 바에야 차라리 당신이 나의 순결을 파괴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모든 일을 즐 겨 주기를 바랬어요. 그런데 당신은 그와 같이 체면을 지키는 사람이니 나 는 그렇게 원한다고 해도 어쩔 수가 없는 일이로군요." 제갈소홍은 손놀림이 점차로 빨라져서 벌써 옷을 다 입은 후였다. 그녀는 이어 빠르게 탁자에서 내려서서 신발을 신고 화검운의 맞은편의 의자 위에 걸터앉으며 다소 상기된 듯한 표정으로 말을 계속했다. "당신은 혹시 지금이라도 아쉬운 생각은 없나요? 만약 당신이 지금 말한다 면 나는 다시 한 번 벗어 줄 용의가 있어요." 화검운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나는 이미 충분히 만족했소. 지금 당신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당신의 모습 이 아직도 벗고 있는 것 같을 정도라오." 제갈소홍은 그 말에 왠지 갑자기 수치심을 느끼는 듯이 다리 사이를 좁히다 가 가볍게 웃으면서 대꾸했다. "당신은…… 알고 보니 짖i옹e 사람이로군요." 화검운은 미소하며 말했다. "그건 그렇고 이제 우리는 다른 얘기를 해보는 것이 어떻겠소?" 제갈소홍은 물었다. "무슨 얘기를 하자는 거죠?" 이미 실내는 불을 밝혀 놓지 않아서 상당히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화검운은 대합했다. "그러니까 당금의 무림의 얘기도 좋고…… 아! 그러고 보니 우리가 아직 그 비급을 보지 않았군. 먼저 이것을 보도록 합시다!" 말과 함께 화검운은 즉시 한쪽에 놓여 있던 예의 그 무아진경상의 한 권의 비급이라는 책자를 집어들어서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 제갈소홍은 문득 눈빛을 기이하게 빛내면서 화검운의 얼굴을 건너다 보다가 다소 주저하면서 입을 열었다. "당신은 혹시…… 천룡무가(天龍武家)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죠?" 화검운은 마악 책자를 살펴보려다가 고개를 들며 대꾸했다. "천룡무가는 바로 당금의 백의맹의 주축이 아니오?" 제갈소홍은 눈빛을 빛내면서 다시 말했다. "제 말은 그러니까 그곳의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는 것이예요. 예 를 들자면 천상신룡(天上神龍) 백능풍(白凌風)과 같은……" 제갈소홍이 말을 길게 끄는 것을 보고 화검운은 즉시 대답했다. "백능풍은 바로 강호오룡 가운데의 첫 번째가 아니오? 그는 필시 대단한 점 이 있을 것이오. 강호의 여인(女人)들이 대부분이 그를 사모하고 있는 것이 아니오?" 제갈소홍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렇군요. 그럼 그 얘기는 이제 그만하고 어서 그 책자나 한 번 보여 줘요. 나도 매우 궁금하군요." "그럽시다." 화검운과 제갈소홍은 그리하여 함께 의자를 나란히 놓고 그 비급을 살펴보 기 시작했다. 비록 이 서재의 실내에는 불빛이 없기는 해도 두 사람의 공력 이 정심한 편이어서 모두 환하게 바라볼 수가 있었다. 비급의 표지에 적혀 있는 전자체의 글자는 바로 무아일장(無我一掌)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아까 그 귀면탈의 노인의 말과도 부합되는 것 이었기 때문에 두 사람은 동시에 호기심이 드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 었다. 화검운은 즉시 겉표지를 넘겼고 이내 그 내용이 두 사람의 앞에 드러났다. -- 무아일장. 그것은 정말로 전설적인 기인이었던 무명도성(無名道聖)의 유 작(遺作)이었는지는 몰라도 최소한 대단한 절기(絶技)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 같았다. 그 무아일장의 구결의 내용은 지극히 심오한 것이었을 뿐만 아 니라 변화(變化)가 많았고 게다가 그것은 모두 십삽 개의 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말하자면 모두 십삼 개의 층을 연마해야만 비로소 대성(大成)할 수 가 있다는 것인데, 물론 그 각각의 층은 마치 계단처럼 처음부터 밟아 올라 가야 하는 것이었다. 헌데 한 가지 특이한 사실은 구결과 더불어서 도해(圖 解)에 따른 동작의 설명이 복잡하였는데, 알고 보니 낮은 층에서는 오히려 변화가 정밀하고 복잡한 데 비해서 위로 올라갈수록 구결의 내용도 적어지 고 동작의 변화도 적어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제갈소홍으로서는 낮은 무학이 오히려 더욱 변화가 심하고 높은 무학일수록 더욱 변화가 간단한 무학의 상식과는 어긋나는 것 같은 그러한 이론에 대해 서는 쉽게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마치 아까의 그 귀면탈의 노 인의 손속이 그저 장난하는 듯한 것이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가는 면이 없지도 않을 것 같았다. 비록 그 책자는 그다지 두꺼운 것은 아니었지만 화검운이 천천히 넘기면서 함께 보고 있는 동안에 제갈소홍은 그 가운데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 적어 서 오히려 정신만 어지러워지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제갈소홍은 문득 책자 의 뒷표지를 덮는 화검운을 향해 물었다. "당신은 이 무공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죠?" 화검운은 미소하며 대답했다. "꽤나 쓸모가 있는 책자인 것 같소." 제갈소홍은 두 눈을 다소 크게 떴다. "쓸모가 있다고요? 당신은 그럼 이미 그 내용을 이해하고 있는 점이 있다는 말인가요?" 화검운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쎄…… 당신은 너무 어렵소?" (……?) 제갈소홍은 그 말에 다소 놀라서 입을 열어 다시 질문하려고 했다. 헌데 바로 그 순간의 일이었다. "으악!" 느닷없이 찢어지는 듯한 봉아의 비명소리가 들려 오는 가운데 서재의 문이 벌컥 열리면서 용아와 봉아가 안으로 뛰어드는 것이었다. ……! 화검운과 제갈소홍은 일순 그러한 광경을 보고는 내심으로 크게 놀라지 않 을 수가 없었다. 특히 화검운은 이 용아와 봉아가 비록 나이 어린 계집아이 들이기는 해도 그다지 두려움이 없는 편이었는데 지금은 어이없게도 거의 넋이 나간 듯이 안색이 파리하게 질려서 자신의 옷자락을 잡고 늘어지거나 아니면 자신의 뒤로 숨어 버리는 것을 보고는 이를 매우 기이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화검운은 이는 필시 거실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리 라고 생각하고는 이미 열려져 있는 서재의 문 밖을 바라보며 용아와 봉아에 게 차분한 어조로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인데 그러느냐?" 봉아는 아직도 전신이 벌벌 떨리는지 대답을 못하고 있었고 다행히 용아가 그래도 조금 상태가 나은지 간신히 입을 열어 대답했다. "배, 뱀이 있어요!" 그 말을 듣고 화검운은 일순 다소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실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핫핫, 뭐라고?……" 알고 보니 비록 이 두 명의 어린 계집아이들은 무공을 연성하고 있기는 해 도 역시 계집아디르이어서 마치 작은 쥐새끼를 보고도 질겁을 하며 놀라는 것처럼 두 사람이 거실에 앉아서 놀고 있다가 갑자기 거실의 안으로 스며들 어온 뱀 한 마리를 보고 그만 놀라서 서재로 도망쳐 오고 말았던 것이리라. 다행히도 그가 제갈소홍의 알몸을 감상하는 일이 이미 끝났으니 망정이지 실로 조금 전에만 이런 일이 벌어졌어도 그는 스스로 크게 낭패할 뻔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화검운은 아직도 손끝을 덜덜 떨고 있는 용아와 봉아를 바라보며 어이가 없 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용아, 봉아, 그러한 뱀이라면 그저 너희들이 가볍게 지풍을 날려서라도 제 거할 수가 있을 것인데 어째서 그렇게 경망하게 도망쳐 온다는 말이냐? 실 로 너희드은 초절한 무학을 터득하게 된다고 해도 여전히 작은 쥐새끼를 무 서워할 생각이라는 말이냐?" 화검운은 비록 평소에는 그녀들을 거의 나무라지 않는 편이었으나 지금은 제갈소홍이 앞에 앉아 있는 상태였으므로 의식적으로 그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만일 평상시라면 용아와 봉아는 자존심이 강한나머지 그런 얘기를 들으면 이내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숙이고 있었을 것이었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그녀들의 태도는 조금 전과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그, 그런 것이 아니라……" 화검운은 용아가 쉽게 자신의 말을 수긍자히 않고 여전히 몸을 덜덜 떨면서 약간 더듬거리는 것을 보며 내심으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하고 의아 해 하게 되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의 일이었다. 무심코 다시 전면으로 시선을 돌리는데 서재의 문 밖에서 느닷없이 뭔가 기다란 물체가 빠르게 날아오는 것을 보고 가볍게 손을 휘저어서 떨어뜨려 놓고 보니 그것은 바로 한 마리의 기다란 뱀이 아닌가! "악!……" 비명 소리는 용아와 봉아가 다시지른 것이었지만 화검운을 비롯하여 제갈소 홍 역시 그 순간에 그에 못하지 않을 정도로 놀랐다. 다름이 아니라 화검운 의 손짓에 의해 바닥에 떨어진 그 기다란 뱀은 전신에 기이한 무늬가 이루 어져 있는 청복사(靑 蛇)였는데, 마악 바닥에 떨어지는 순간에 다시 번쩍 날아서 화검운의 면전으로 달려들었고, 게다가 뒤를 이어서 거실쪽에서 열 려진 문으로 수십 개의 그와 같은 뱀들이 날아 들어오기 시작했던 것이었 다. 화검운은 일순 어처구니가 없는 심정이 되었고 대체 이게 어찌된 영문인가 하고 곤혹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 일반연재 [백상] 종남사부 6권 제38장 -b- 총 Page : 7 -------------------------------------------------------------------------- ---- 게 시 자 : tohana(박성호) 게 시 일 : 97/04/13 21:34:15 수 정 일 : 97/04/13 21:37:57 크 기 : 5.6K 조회횟수 : 33 [백상] 종남사부 제6권 38장 -b- 04/07 18:13 277 line 올 린 이 : 양한우 HITEL ID : hanwoo71 제38장.(2) 가능성(可能性) 일반적으로 여자들은 뱀이나 쥐 등을 무서워하기 마련이었는데, 역시 용아 와 봉아와 마찬가지로 제갈소홍도 한 순간에 안색이 새파랗게 변해서 어느 새 다시 탁자 위로 올라가서 반쯤은 떨고 있는 것 같이 보였다. 화검운은 즉시 몸을 일으키며 날아들고 있는 청복사들을 가볍게 물리쳐 버 렸지만 내심으로 괴이(怪異)하게 생각했다. 기실 그의 장원이 다소 오래된 것이기 때문에 간혹 집 안에서 지네가 나오 기도 하고 또한 뱀이나 쥐들이 나오기도 하는 것이 다반사였다. 하지만 아 무리 생각해도 그의 집에 이렇게 많은 뱀들이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 다. 마치 이것은 그 많은 뱀들이 하나같이 단결하여 주인을 몰아내기 위해 투쟁을 벌이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단연코 그이 이 장원에는 비단 그와 같이 많은 뱀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게다가 이처럼 지독한 맹독 을 풍기고 있는 날아다니는 뱀은 더더욱 있을 수가 없었다. 천하에는 천생 적으로 날아다니게 되어 있는 뱀들이 있다고들 하지만 기실 이 청복사들은 그저 특이한 면이 없어 보였으므로 그들이 지금 날아서 공격하고 있는 것은 분명히 누구에게 특별한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 되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장원으로 누군가가 악랄하게도 뱀을 풀어서 공격 을 해 오고 있다는 말일까? 아니나 다를까, 화검운이 손을 휘저어서 쳐내자 청복사들은 날아오던 동작 들을 멈추고 주위에 도사리게 되었지만, 그와 거의 동시에 거실쪽에서 다시 은은한 회색빛을 발하는 흑사(黑蛇)와 백사(白蛇), 그리고 금사(金蛇) 등이 무려 수십 수백 마리나 빠르게 안으로 기어 들어오기 시작했던 것이며, 또 한 그러한 뱀들은 거실쪽에서뿐만 아니라 심지어 천장이나 창문을 통해서도 들어오기 시작하고 있어서 사방이 온통 구불구불하며 한없이 흐느적거리는 뱀들로 가득차게 되는 것 같았다. 따라서 일순간에 이제까지는 고아(高雅) 한 정취마저 풍기고 있었던 이곳 서재는 이내 지독한 비린내와 독기(毒氣) 들로 가득차게 되었고, 실로 용아와 봉아가 그렇게 놀라고 두려워하는 것이 당연할 정도의 상황이 되어 있었다. "아악!……" 봉아는 무심코 뒤를 돌아보았다가 자신의 뒤쪽에서도 뱀들이 나타나기 시작 하는 것을 보고는 다시 놀람에 찬 비명 소리를 내지르며 용아와 함께 제갈 소홍이 올라서 있는 탁자 위로 얼른 올라가 버리고 말았다. ……! 대체 이게 갑자기 무슨 변고인가? 화검운은 그야말로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문득 생각나는 바가 있어서 잠시 후에 입을 열어 말했다. "혈독신(血毒神) 호파음(呼巴音)! 당신이오?" …… 화검운은 자신의 말이 흘러나갔음에도 전혀 다른 사람의 대꾸가 없는 것을 보고 이내 미소하며 말을 이었다. "나는 이미 당신들이 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소. 그러나 만약 지금도 대 꾸하지 않는 다면 당신들이 애써서 기른 이 뱀들은 모조리 화를 당하게 될 것이오. 비록 묘강독문(苗疆毒門)의 독물들이 상대하기 어렵다고는 하나 그 것이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오." 순간 아니나 다를까, 이미 어두워진 사방에서 한 사람의 거칠고 탁하면서 왠지 서투르게 들리는 음성이 음침스럽게 들려 왔다. "흐흐, 감히 본좌의 이름을 알고 있다니 대단한 놈이로군. 그러나 네가 과 연 그렇게 나의 사랑스러운 자식들을 상대할 만한 능력이 있을까?" 그것은 바로 지금 나타난 뱀들이 말로만 듣던 독물(毒物)들의 천국 묘강독 문에서 온 것이며, 바로 그 묘강독문의 문주인 혈독신 호파음이라는 사람이 직접 나타났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었다. 실로 예로부터 무공이 고강한 사람들이라고 해도 이 독(毒)에만은 강하지 못하여 거기에 의해 목숨을 잃는 예가 많았는데, 제갈소홍과 용아와 봉아 등은 그 얘기를 듣고는 저마다 안색이 크게 변했다. 그러나 화검운은 눈앞에서 천천히 다가들고 있는 무수한 뱀들을 바라보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태연하게 대꾸하는 것이었다. "만일 당신이 그 의문을 풀고 싶다면 나로서는 하지 못할 것도 없겠지만 나 중에 당신이 후회하지 않기를 바라겠소." 그 혈독신 호파음이라는 사람의 음성이 다시 들려 왔다. "흐흐흐! 본좌에게는 그 뱀들 이외에도 오독(五毒)이라고 하여 나머지 네 종류의 사랑하는 자식들이 또 있지. 물론 그 지네(蜈蚣)나 전갈(全 ), 거 미(蜘蛛) 등을 지금 풀어놓을 수도 있지만, 우선은 네놈이 그 뱀들을 물리 칠 수만 있다면 내가 진 것으로 하겠다. 어떠냐? 흐흐흐, 만약 당하지 못하 겠다면 일찌감치 항복을 하고 그 비급을 나에게 공손히 바치는 것이." 사람들은 그제서야 이 묘강독문의 문주가 바로 그 무아진경에 욕심을 품고 나타났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기실 천하에 여러 가지의 독술(毒術)을 연구하는 문파들이 있지만 그것은 크게 두 가지의 부류로 나눌 수가 있는 것이며, 그 두 가지의 부류라는 것 은 바로 하나는 초목(草木)에서 독을 채취하는 것과 뱀과 같은 독물들에서 독을 채취하는 것이 그 두 번째이다. 현재 중원의 지압에서 더러 독을 사용 하는 문파들이 있기는 해도 그 대부분이 초목에서 이용하는 독술인 데 반해 서 이 묘강독문의 독술은 대부분이 그와는 반대로 살아 있는 독물들을 이용 하여 독술을 펼치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물론 전자의 경우는 여러 가 지의 술수를 내포하여 상대하기가 곤란한 점도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 묘강독문의 용독술(用毒術)은 워낙에 그 독물들의 독성이 지독하기 때문에 비록 그 독을 쓰는 사람들의 심리가 비교적 단순하다고는 해도 미처 그 독 에 대응할 수가 없게 하는 점이 다반사로 있었다. 즉, 거꾸로 말하자면 이 묘강의 독술은 워낙에 지독한 독을 사용하기 때문에 다른 음모술수를 필요 로 하지 않을 정도라고도 할 수가 있는 것이었는데, 당연히 그런 것을 생각 해 보더라도 지금 서재의 안으로 가득하게 들어오고 있는 수많은 뱀들은 하 나같이 맹독성을 지니고 있어서 그저 한 번만 물리게 되면 그 자리에서 즉 사를 면치 못하게 하는 것임을 실감나게 만들었다. 실로 제갈소홍이나 용아와 봉아가 놀라며 두려워하는 이면에는 그러한 이유 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었다. 실로 이러한 맹독들은 무림의 최절정의 고수라 고 해도 단번에 죽음으로 이끌어갈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화검운은 여전히 태연자약하게 대꾸했다. "나는 다시 한 번 경고하겠소. 만약에 당신이 나의 이 말이 끝나는 순간까 지 뱀들을 거두어 가지 않는다면 나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오." -- 계속 -- ─────────────────────────────────────── 일반연재 [백상] 종남사부 6권 제39장 -a- 총 Page : 12 -------------------------------------------------------------------------- ---- 게 시 자 : tohana(박성호) 게 시 일 : 97/04/13 21:36:16 수 정 일 : 97/04/13 21:39:02 크 기 : 9.6K 조회횟수 : 31 [백상] 종남사부 제6권 39장 -a- 04/07 18:14 271 line 올 린 이 : 양한우 HITEL ID : hanwoo71 제39장.(1) 신검(神劍) 지존검(至尊劍) 혈독신 호파음은 그 말에 문득 크게 화가 나는 듯이 소리쳤다. "뭐라구? 얘들아, 어서 그놈들을 꽉꽉 물어 죽여라!" 이어 그는 뭔가 이상한 소리를 냈는데 그 순간에 사방에서 몰려든 뱀들이 크게 발작을 일으키며 화검운 등을 향해 급히 달려들려고 하는 것이었다. 헌데 바로 그 순간의 일이었다. 느닷없이 화검운이 가볍게 손짓을 하자 믿 을 수 없게도 그의 손짓에 따라서 이제까지 거칠게 발작을 일으키던 뱀들이 급히 다시 조용해지면서 각기 한 줄로 늘어서서 서재의 밖으로 기어 나가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 제갈소홍 등은 그것을 보자 크게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는데 기실 그녀들보 다는 당사자인 혈독신 호파음이 더욱더 놀란 모양이었다. 그는 연속해서 더 욱 커다란 음향으로 소리를 냈으나 뱀들이 전혀 자신의 말을 따르지 않는 것을 보고는 그만 놀라서 자신도 모르게 신형을 거실에 나타내고 말았다. -- 혈독신 호파음. 그는 체구가 약간 기형(奇形)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키가 작았으며 그와는 달리 배는 뚱뚱하였고 또한 안색은 거뭇했으며 두 눈에서 는 자색의 광채가 흐르고 있는 칠십여 세의 노인(老人)이었다. 그는 거실에 일단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경악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소리 쳐서 물었다. "너, 너는 대체 나의 뱀들에게 무슨 짓을 했느냐?" 화검운은 이미 그 많은 뱀들이 모조리 밖으로 사라져 버린 것을 확인하고는 미소하며 그 호파음을 향해 대꾸했다. "그것들은 좋지 않은 물건들이기 때문에 갈 길을 간 것이오. 내가 이미 당 신에게 두 번이나 경고하지 않았소?" 호파음은 그 말에 일순 크게 이빨을 갈면서 소리쳤다. "네, 네놈이 감히!…… 나의 사랑하는 자 들을 죽이다니……" 화검운은 그를 향해 다시 미소하며 말했다. "나는 당신에게 그다지 감정이 좋지 않소. 비단 뱀들을 제거해 버린 것은 둘째치더라도 당신이 나의 집을 엉망으로 만들었으니 이 말이 끝나는 순간 까지 가지 않는다면 당신도 그 뱀들의 뒤를 따라가게 하고 말겠소." (……!) 호파음은 상당히 노한 모습이었으나 여유있는 화검운의 태도와 그의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커다란 공포심(恐怖心)을 느끼게 되었는지 안색이 일변 (一變)해서 즉시 신형을 솟구치며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는 마지 막으로 독기 서린 한 마디의 말을 더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화검운(花劍雲)! 내 반드시 네놈이 죽는 것을 보고야 말겠다!" …… 그렇게 하여 느닷없이 들이닥친 변고는 겨우 수습이 되고 말았다. 잠시 후에 겨우 마음을 가다듬은 제갈소홍은 으윽고 한숨을 내쉬며 화검운 에게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대체 당신은 어떻게 한 거죠?" 화검운은 용아와 봉아가 아직도 표정이 굳어져서 탁자 위에서 감히 바닥으 로 내려오지 못하는 것을 보고는 미소하며 말했다. "나도 우연히 그런 독물(毒物)들을 부리는 법을 알게 되었는데 워낙 상황이 좋지 않아서 한 번 써 본 것뿐이오." (……?) 제갈소홍은 생각할수록 이 화검운의 기이한 능력(能力)에 대해서 알 수가 없다는 듯이 다소 망연한 기색으로 그이 얼굴을 바라보았다. 묘강독문의 문주 혈독신 호파음이 몰고 왔던 그 무수한 독사(毒蛇)들은 알 고 보니 장원 내의 어느 한 폐정의 안으로 모조리 들어가서 죽어 있었다. 화검운이 대체 무슨 수단을 써서 그와 같이 만들었는지 알 도리가 없는 일 이었다. 이미 시각은 초저녁을 지나고 있어서 사방이 어두웠다. 그러나 비록 시간이 늦었고 또한 식사할 때가 되었기는 했지만 화검운과 용 아 봉아는 일단 제갈소홍을 보낸 뒤에 다시 집을 나서야 했다. 이미 집 안 전체가 그 독사들의 맹독으로 가득차 있어서 철저하게 제독을 하지 않고서 는 살 수가 없는 상태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화검운이 잠시 마당에서 거니는 사이에 용아와 봉아는 빠르게 신형을 움직 여서 마땅히 묵을 만한 객점이 비워져 있는가를 수소문했다. 이 장안성 북쪽 지역의 객점들은 대부분이 오래된 것들이 많았고 또한 그다 지 화려하지 않은 편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알고 보니 그러한 값싼 객점들은 이미 많은 손님들로 가득 만원이 되어 있었고 빈 방은 하나도 남 아 있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강호의 무림인들은 거칠은 생활에 익숙해져 있 을 뿐만 아니라 구태여 돈이 많이 들어가는 화려한 생활을 원하지 않고 있 었기 때문에 그들이 비교적 값싼 객점들을 모조리 차지해 버린 모양이었다. 용아와 봉아는 따라서 신법을 펼쳐서 어둠 속을 내달리며 간신히 비워져 있 는 객점 하나를 찾을 수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길상루(吉祥樓)와는 가까 운 거리에 위치하고 있는 그래도 이 북쪽 지역에서 가장 좋다고 할 수가 있 는 객점인 여귀객잔(如歸客棧)이라는 곳이었다. 그 여귀객잔은 말하자면 중 상급의 객점으로서 주루는 취급하지 않고 오로지 숙박업만을 취급하고 있는 곳이었는데, 건물들은 이층의 누각(樓閣)으로 되어 있으나 지대가 넓고 별 채들이 많아서 거주하기에 편리한 곳이었다. 용아와 봉아가 간신히 그 여귀객잔의 남아 있는 작은 별채 하나를 예약해 놓고 나서 장원으로 돌아오자 화검운은 그녀들에게 간단한 짐을 챙길 것을 지시하고는 곧장 함께 그곳으로 향했다. 여귀객잔은 길상루와는 큰 거리를 사이에 두고 맞은편에 위치하고 있었다. 화검운은 여귀객잔의 근처에 도착하여 우선 저녁식사를 할 목적으로 용아 봉아와 함께 가까운 허름한 반점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시오!" 한 늙수그레한 주인의 인사말을 들으며 계산대를 지나서 안으로 들어서자 대략 십여 개의 작은 탁자들이 눈에 들어왔고 이미 이곳의 대부분이 많은 손님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화검운은 그 손님들의 대부분이 무림인들이 라는 것을 보고 다소 귀찮은 느낌이 들었으나 기왕에 인사를 받으며 들어섰 으니 다시 나간다는 것은 더욱 귀찮은 일일 것이라고 생각되어 주위를 둘러 보다가 이윽고 비어 있는 구석진 탁자 하나를 차지하고 앉게 되었다. 이곳의 탁자들은 비록 그 숫자는 많지만 손님들을 많이 유치할 목적으로 그 랬는지 한 탁자에 겨우 네 명의 손님이 앉을 수 있을 정도로 규모가 작았 다. 비록 화검운 등은 세 명이어서 한 탁자를 차지하고 앉는 데는 무리가 없었지만 그러나 용아와 봉아는 이곳이 지저분하고 너무 좁다고 연신 눈살 을 찌푸리는 눈치였다. 그녀들은 원래 사치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 제 재산도 많아지게 되었고 또한 자신들의 주인인 화검운이 화려하게 생활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곳으로 그가 들어가자 내심 불 만을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화검운은 그러한 용아와 봉아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태연 한 표정이었고, 이어 늙은 주인이 옆자리에 뜨끈뜨끈한 김이 피어오르는 만 두와 닭고기를 넣은 국수를 날라다 주는 것을 보며 대단히 군침이 돈다는 듯이 코를 벌름거려 보였다. 확실히 시장한 지금에 있어서 이곳의 음식 냄 새는 구수하여 가히 침이 절로 넘어가게 만드는 점이 있었다. 그러나 봉아 는 화검운이 다시 체신없이 행동한다고 내심으로 눈살을 다소 찌푸렸다. 그 늙은 주인이 화검운에게 다가와서 물었다. "손님들께서는 뭘 드실 거유?" 봉아가 즉시 입을 열어 말하려고 하는데 화검운이 먼저 입을 열어서 그 늙 은 주인에게 말했다. "여기에 계사면(鷄絲麵) 세 그릇과 고기를 넣은 만두 한 접시, 그리고 돼지 고기 한 접시와 죽엽청(竹葉淸)을 갖다주시오." "알겠소." 늙은 주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가자 봉아가 다소 입술을 삐죽이며 말했 다. "화 상공님께서는 너무도 주책이세요. 하필이면 왜 이런 싸구려 반점으로 오자고 했죠? 이런 곳의 음식들은 보나마나 지저분하고 또한 맛도 없을 거 예요." 화검운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건 너의 잘못된 생각이다. 실로 이런 곳에서 음식을 먹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 않느냐? 나도 실은 과거에 이런 곳을 즐겨 찾곤 했었는데 실로 이런 곳은 음식도 푸짐하고 또한 구수한 분위기를 느낄 수가 있는 곳이란 다." 봉아는 어쩔 수가 없다는 듯이 입을 다물었으나 못내 불만인 표정이었다. 이때 늙은 주인이 어느새 쟁반에 음식들을 가득 담아 들고서 일행이 있는 곳으로 걸어왔다. 아마도 지금은 한창 손님들이 몰리는 시각이었기 때문에 주인은 이미 많은 음식들을 준비해 놓았다가 손님이 주문을 하면 즉시 가져 올 수가 있는 모양이었다. 주인이 쟁반에 뜨거운 김이 나는 만두와 국수그릇 등을 담아 가지고 다가오 는 것을 보고 화검운은 그야말로 절로 입맛이 당긴다는 듯이 군침을 꿀꺽 삼켰다. 그런데 그 늙은 주인이 미처 화검운이 앉아 있는 탁자의 앞에 이르기도 전 에 화검운과 가까운 곳에서 식사를 하고 있던 사람 하나가 느닷없이 몸을 일으켜서 바삐 밖으로 나가려고 허둥대더니 그만 어찌된 셈인지 몸의 균형 을 잃고서 늙은 주인과 부딪쳐서 옆으로 쿵! 하고 나가떨어지는 것이었다. ……? 늙은 주인은 느닷없이 그와 같은 일을 당하는 바람에 자신도 모르게 쟁반을 놓치게 되었는데, 따라서 그 쟁반 위에 담겨져 있던 뜨거운 국수그릇과 만 두들이 와르르 옆자리에 쏟아지게 되었고, 자연히 그 뜨거운 국물들을 온몸 에 뒤집어쓰게 된 그 자리의 장한 하나가 그만 화를 참지 못하고 몸을 벌떡 일으켜서 늙은 주인의 뺨을 보기 좋게 후려갈겼다. 철썩! 요란한 소리가 울려나오는 가운데 심하게 따귀를 얻어맞은 늙은 주인은 그 만 정신이 하나도 없는지 안면 근육을 떨면서 자신도 모르게 부르짖었다. "아! 이럴 수가!" 장한은 주인 늙은이가 비록 자신의 따귀를 세게 얻어맞기는 했지만 왠지 엄 살이 심하다고 생각하여 다시 안면을 구기면서 소리치려고 했다. 그런데 무 심코 주인 늙은이가 바라보는 곳으로 시선을 돌리다가 그 장한은 그만 자신 도 모르게 눈이 휘둥그래지고 말았다. 지금 바닥에는 물기가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그러나 그 물기는 조금 전에 국수국물이 쏟아져서 생긴 것이 아니 라 그 빛깔이 붉은 것이 바로 핏물이었던 것이었다. 바로 조금 전에 주인 늙은이와 부딪쳤던 그 사람이 아직도 바닥에 쓰러져 있었는데 어찌된 셈인 지 그이 둥줄기에는 하나의 비수가 깊숙히 꽂혀서 피를 흘러내고 있었던 것 이었다. (사, 사람이 죽었다!) 장한은 너무나도 놀란 나머지 눈을 있는 대로 부릅뜨다가 이윽고 이것이 주 인 늙은이의 소행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여 그쪽으로 시선을 보냈는데, 이때 주인 늙은이의 시선(視線)이 왠지 자신의 뒤쪽으 ㄹ바라보며 경악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었다. (이게 또 무슨……?) 장한은 다소 경황 없는 가운데에서도 어리둥절하여 마악 뒤로 고개를 돌려 보려고 했는데, 그 순간에 실로 섬뜩한 고통이 전율처럼 전신으로 느껴졌 다. "악!" 장한이 단말마의 비명을 토하며 목이 떨어진 몸뚱이에서 피를 철철 쏟아내 며 바닥으로 쓰러져 버리자 이내 그 자리에 한 명의 음산한 표정을 하고 있 는 늙은이가 피 묻은 장검(長劍)을 들고 나타났다. 틀림없이 조금 전에 그 가 장하느이 목을 날려 버린 것 같았는데 알고 보니 그는 이제까지 한쪽에 서 무리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고, 지금도 그의 뒤에는 험상궂은 인상 의 장한들이 기세등등하게 뒤따르고 있는 형편이었다. 주인 늙은이는 눈치가 빠른 사람이었는지 그 순간에 이미 황급히 뒤로 달아 나 버린 후였고 그 장검을 들고 있는 늙은이는 살벌한 기색으로 다가와서 시신이 되어 쓰러져 있는 장한의 몸뚱이를 치워 버리고 처음에 죽은 사람의 몸을 뒤지려고 했다. ─────────────────────────────────────── 일반연재 [백상] 종남사부 6권 제39장 -b- 총 Page : 8 -------------------------------------------------------------------------- ---- 게 시 자 : tohana(박성호) 게 시 일 : 97/04/13 21:40:27 수 정 일 : 크 기 : 5.8K 조회횟수 : 45 [백상] 종남사부 제6권 39장 -b- 04/07 18:14 271 line 올 린 이 : 양한우 HITEL ID : hanwoo71 제39장.(2) 신검(神劍) 지존검(至尊劍) 헌데 바로 그 순간에 실내에서 한 사람이 몸을 벌떡 일으키더니 다음과 같 이 소리쳤다. "천래검(天來劍) 가곤(嘉坤!) 당신이 혼자서 그 보물을 가로챌 수가 있다고 생각하시오?" 그 사람의 음성은 굉장히 커서 한 순간에 마치 이 반점 전체를 들었다 놓는 것 같았는데, 실은 체구는 그보다 더욱 웅장한 것 같았다. 화검운은 기실 이 두 사람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바로 전날 밤중에 가짜 장보도(藏寶圖)를 차지하려고 나타났었던 복우파(伏牛派)의 장 문인인 천래검 가곤과 장백파(長白派)의 장문인인 장백일살(長白一殺) 마우 (馬友)였다. 물론 지금 이 작은 반점의 내부에는 그들 외에도 많은 무림인들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천래검 가곤은 장백일살 마우의 음성을 듣자 시신의 몸을 뒤지려 던 동작을 잠시 멈추고는 그쪽을 노려보면서 말했다. "무슨 보물 말인가?" 장백일살 마우는 음침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무슨 보물이라니? 흐흐, 당연히 지존검(至尊劍)이 아니겠소? 우리는 이미 저기에 있는 오봉도파(五鳳刀派)의 제자 하나가 우연히 지존검을 얻어가지 고 이곳으로 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소." ……! 화검운과 용아 봉아를 비롯하여 장내의 많은 사람들은 장백일살 마우의 그 와 같은 얘기를 듣고는 저마다 크게 경악했다. 알고 보니 처음에 죽은 그 사람은 주인 늙은이와 부딪쳐서 죽은 것이 아니라 바로 보물을 몸에 지니고 있다가 암살(暗殺)을 당했었던 것이었다. 용아와 봉아 등은 실로 공교롭게도 이곳에서 다시 예의 그 귀면탈의 노인이 가지고 있었던 지존검을 보게 되어서 그야말로 어리둥절한 느낌이 들었다. 천래검 가곤은 일순 실내의 사람들의 시선이 탐욕으로 크게 물드는 것을 의 식했는지 두 눈에서 매서운 살광(殺光)을 발출시키며 말했다. "흐흐흐! 그래서 어쨌다는 말이냐? 네놈이 감히 나의 일을 방해할 작정이라 는 말이냐?" 이 장백일살 마우는 비록 무공이 천래검 가곤과 비슷한 수준인 절정급에 올 라 있었지만 그러나 왠지 상대를 두려워하는 듯 쉽게 나서지 못했다. 가곤 은 그러한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이 급히 허리를 숙여서 시신의 품속에 서 있는 지존검을 집어들려고 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에 어디선가 하나의 단도(短刀)가 날아와서 마악 시신 의 몸에 손을 대려는 가곤의 발 앞에 퍽! 하는 소리를 내며 박혀 버렸다. 지금 이 반점의 바닥은 비록 흙으로 되어 있기는 하지만 너무나도 오랫동안 사람들이 밟고 다녀서 그야말로 돌바닥이나 다름이 없는 상태였는데, 느닷 없이 날아온 그 단도는 지극히 기세가 강할 뿐만 아니라 이내 바닥으로 깊 숙이 파고들어가는 것으로 보아 필시 범상한 인물(人物)이 던진 것은 아니 었다. (……!) 가곤은 이에 급히 고개를 들어 전면을 주시하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이미 반점의 입구에는 커다란 기형(奇形)의 칼을 들고 서 있는 칠십여 세의 거구 의 노인이 나타나 있는 것을 보고는 안색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가곤! 당신이 나의 제자를 무참하게 살해하다니, 감히 그럴 수가 있소?" 바로 다름이 아니라 이미 시신이 되어 버린,지존검을 가지고 있는 자의 사 부인 오봉도파(五鳳刀派)의 장문인 천봉도(天鳳刀) 악사선(樂士宣)이 제자 들과 함께 나타났던 것이었다. 기실 가곤은 그 오봉도파의 제자를 은밀히 비수를 던져서 살해하기는 했지 만 그것은 단순히 욕심 때문이었는데, 이제는 그만 오봉도파와 어쩔 수 없 는 원수지간이 되어 버린 것을 알고는 눈알을 굴리다가 좌우를 둘러보며 소 리쳤다. "볼 것 없다. 놈들을 쳐라!" 천래검 가곤의 좌우에서 대기하고 있던 그의 제자들은 그렇지 않아도 내심 으로 긴장하며 공력을 은근히 끌어올리고 있었는데 가곤의 지시가 떨어지는 순간에 그야말로 기다렸다는 듯이 번쩍 신형을 날려서 벌떼처럼 문 앞에 서 있는 오봉도파의 제자들을 공격해 들어가기 시작했다. "와아 죽어랏!" 이리하여 삽시간에 실내는 그만 아수라장(阿修羅場)이 되어 버렸고 살벌한 병장기들의 파공성과 악에 바친 기합성, 그리고 비명 소리 등으로 인해서 피에 가득하게 잠긴 듯 보였다. 오봉도파의 제자들은 그래도 설마하니 가곤이 그렇게 즉시 대결의 태도로 나올 줄은 모르고 있었다가 엉겁결에 마주 붙어서 싸우기 시작했고, 오봉도 파의 장문인인 천봉도 악사선은 일순 크게 분노한 듯이 커다란 기형도(奇形 刀)를 휘두르며 자신의 앞으로 덮쳐든 복우파의 제자들을 서너 명이나 베어 버린 후에 즉시 가곤의 앞으로 다가가려고 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천래검 가곤은 이미 수중에 시신에서 한 자루의 장검을 집어들고 있었는데 과연 아니나 다를까 그 장검은 바로 아까 귀면타르이 노 인이 들고 사라졌었던 예의 그 지존검(至尊劍)이 아닌가! 대체 그 지존검이 어떻게 해서 일개 오봉도파의 제자에게 넘어가게 되었는 지는 알 수가 없는 노릇이었지만 미처 그러한 것을 생각해 볼 여유도 없이 상황의 전개는 빠르게 이어져 갔다. 가곤은 일단 지존검을 수중에 넣자 자신의 장검은 검집 속에 넣고 왼손으로 지존검의 검집을 잡고서 오른손으로 검을 뽑아 들었다. -- 지존검. 헌하의 신검(神劍)이라고 떠들썩하게 소문이 나 있었던 그 지존 검은 막상 뽑아들고 보자 그저 완전히 거무튀튀한 한 자루의 장검에 불과해 보였으며 무슨 특별한 점은 없는 듯했다. 다만 일반적으로 아무리 형편없이 만든 장검이라고 해도 최소한 약간의 광채를 발하기 마련이었는데, 기이하 게도 그 지존검은 검신이 그야말로 조금도 광채를 발하지 않고 마치 숯덩어 리처럼 검어서 일면 다소 둔중한 느낌이 들게 만들었다. 천봉도 악사선은 처음에는 가곤이 지존검을 뽑아 든 것을 보고 다소 놀라는 눈치였으나 이내 그것의 모양이 별로 뛰어나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는 자신 감이 붙어서 두 눈에서 형형한 안광을 발출하며 특유의 도법(刀法)을 발출 하여 태산과 같은 기세(氣勢)로 가곤을 향해 덮쳐갔다. 이미 그 기형도에는 복우파 제자들의 핏물이 배어 있었기 때문에 무서운 기세로 덮쳐드는 악사 선의 기형도에는사악한 혈광(血光)이 가득한 듯이 보였다. 가곤은 그것을 보자 다소 머뭇거리다가 하는 수 없이 지존검을 휘두르며 거 기에 맞서 가기 시작했다. 악사선의 기형도는 날이 두텁고 크고 길어서 대도(大刀)에 속하는 것이었는 데 거기에 비하니 가곤의 손에 들려 있는 지존검은 아무런 검광(劍光)도 발 출하지 못하고 있어서 금방이라도 부러질 듯이 약해 보였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 결과가 반대로 나타났다. 가곤의 손에 들려 있는 지존 검이 한 순간에 악사선의 기형도와 부딪치는 순간에 거의 아무런 소리도 들 리지 않았는데 기형도가 멈칫하는 듯하더니 어이없게도 반듯하게 무우처럼 잘려 나가면서 아악! 하는 비명 소리가 주위를 진동하는 것이 아닌가! 제40장.(1) 흉악(兇惡)한 술책(術策) 사람들은 느닷없이 악사선의 가슴이 쩌억 벌어져 나가며 그 자리에서 피가 분수처럼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는 너무나도 놀라서 피아간에 싸움을 멈추고 넋나간 듯한 표정을 지었다. 심지어 그것은 정작 본인인 가 곤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왜냐하면 그는 결코 악사선을 죽이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고 따라서 지존검과 기형도가 서로 부딪치는 순간에 두 사람의 사이 에는 일 장 이상의 거리가 남아 있었는데도 갑자기 악사선은 가슴이 거짓말 처럼 갈라지면서 죽음을 당했던 것이었다. ……! 가곤은 처음에는 혹시나 다른 누가 악사선을 암습해서 죽인 것이 아닌가 하 고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그런 사람은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게다가 이미 시선이 되어서 피를 뿌리며 쓰러져 버린 악사선의 가슴 부위를 보니 그것은 바로 자신의 검초식에 의해 당한 상처 자국이 아닌가! 이에 가곤은 문득 크게 깨우치는 바가 있어서 얼굴 가득히 득의 만면한 희 색을 떠올렸고 이내 커다랗게 앙천광소를 터뜨렸다. "핫핫핫핫! 그야말로 천하에 둘도 없는 신검(神劍)이로구나! 설마하니 무형 (無形)의 검기(劍氣)가 저절로 발출되는 검이 있을 줄이야!" 그렇다. 기실 알고 보니 악사선은 누구의 암습에 의해 죽은 것이 아니라 바 로 지존검의 검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무형의 검기에 의해 가슴이 갈라져서 죽고 말았던 것이었다. 지존검과 그 악사선과의 사이에는 무려 일 장여의 거리가 남아 있었는데도 그렇게 되었다는 것은 실로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 고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일이기도 했다. -- 지존검. 그것은 정말로 만병(萬兵)의 제왕(帝王)이어서 추호의 피도 묻 히지않고 상대를 제거할 수가 있는 것이라는 말인가? 가곤은 일단 그렇게 앙천광소를 터뜨린 다음에 이내 빠르게 신형을 날려서 아직 죽지 않고 있는 오봉도파의 제자들을 향해 멀찍이서 지존검을 휘둘렀 다. 오봉도파의 제자들은 비단 가곤의 신법을 따를 수가 없었을 뿐만 아니 라 그가 일 장 정도나 떨어져서 공격하는 것을 보고 대항할 엄두도 내지 못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내 조금 전과 같이 그들의 육신이 거짓말처럼 피 를 분수처럼 뿜어내고 죽음을 당하는 것이 아닌가! "아악!" 비록 조금 전의 가곤의 말소리를듣고서 긴가민가하고 있었던 사람들은 그 러한 광경을 보자 그제서야 지존검의 진정(眞正)한 무서움을 실감하는 눈치 였고 하나같이 경악해 하고 더욱 강한 탐욕을 불러일으켰다. 실로 천하에 무수한 신병이기들이 있다고 해도 이처럼 스스로 검신에서 무형의 검기를 발출하는 장검이 있다는 소리는 아칙 들어 보지 못했었기 때문에 모든 사람 들의 경악은 더욱 컸고 또한 그것을 갖고 싶다는 욕심은 더욱 증대되는 것 이었다. 그러나 가곤은 일단 오봉도파의 제자들을 모조리 일순간에 도살(屠殺)시켜 버린 이후에전혀 피 한 방울도 묻어 있지 않은 지존검을 바라보며 자신에 찬 표정을 지었다. 실로 이 지존검의 위력이 상상 외로 대단하여 그의 현재 의 무공으로도 천하에 거의 두려울 것이 없겠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 다. 실제로 그의 무공은 절정급이지만 지존검을 사용하게 되자 악사선과 같 은 자를 일검에 죽여 버릴 수가 있었던 것이니 말하자면 초절정의 경지에 있는 사람의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것이었다. 가곤은 이에 득의한 웃음을 흘리면서 제자들과 함께 반점의 밖으로 나가려 고 했다. 그런데 문득 그의 앞을 장백일살 마우가 다소 어정쩡할 모습으로 막아섰는데, 그것을 보고 가곤이 일순 두 눈에서 살광(殺光)을 발출시키며 말했다. "마우! 네가 감히 이 지존검에 욕심을 품고 나의 앞을 막아서느냐?" 불과 조금 전까지만 해도 가곤의 능력은 마우와 거의 다를 것이 없었지만 지금은 손에 지존검을 들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상당히 고압적(高壓的)이 되고 있는 것이었다. 실로 가곤이 그저 마음만 먹으면 마우를 죽이는 일은 쉬울 것이기 때문이었다. 마우는 그것을 의식했는지 이내 그 커다란 험상궂은 얼굴 가득히 간사스러 운 웃음을 흘리면서 손을 좌우로 내저었다. "하하, 소, 소제(小弟)가 감히 그럴 수가 있겠습니까? 소제는 그저 형님께 서 그와 같은 신검을 얻으신 것을 축하드리기 위해서…… 하하하, 정말로 다른 뜻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가곤은 그 말을 듣자 다소 눈살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옆으로 내저었다. "그럼 어째서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냐? 어서 비켜라!" "예예, 물론입죠." 마우는 즉시 신형을 옆으로 움직였는데 그것을 보고 가곤은 즉시 제자들을 이끌고 밖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러자 마우는 이내 자신의 수하들을 돌아보더니 악독한 표정으로 이렇게 소리치는 것이었다. "자, 모두 그놈의 뒤를 쫓아라!" …… 마우와 그 수하들이 가곤의 뒤를 쫓아서 밖으로 달려 나가자 이내 반점의 곳곳에서 식사를 하던 많은 무림인들이 역시 앞을 다투어 그 뒤를 쫓아서 사라져 갔다. 일반인들은 이미 공포감에 질려서 달아나 버린 뒤였고 주인도 달아났으며 이제 반점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화검운과 용아 봉아의 세 사람뿐이었다. 화검운과 용아 봉아는 이곳에서 식사를 할 생각을 버려야 했으므로 함께 몸 을 일으키며 완전히 아수라장이 되어서 피가 흥건한 반점을 나서서 여귀객 잔으로 곧장 향하기로 했다. "오늘밤에 우리가 편안히 식사를 할 복은 없는 모양이로구나. 일단은 객점 에 들어가서 그곳에서 식사를 할 수 있는지를 물어보고 나서 그것도 안된다 면 다른 곳으로 식사하러 가도록 하자꾸나. 그런 객방을 너무 오래 찾아가 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을 받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 아니겠느냐?" 용아가 걸음을 옮기면서 이제는 거의 조용해진 주위를 둘러보다가 입을 열 어 화검운에게 문득 물었다. "대체 그 지존검은 천하에 몇 개나 되는 거죠?" 화검운은 그게 무슨 뚱딴지 같은 말이냐는 듯이 그녀의 얼굴을 마주 바라보 다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와 같은 신검이 어찌 천하에 두 개가 있을 수가 있겠느냐?" 용아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하지만저는 이번에 나타난 무림삼보 그운데에서 병기는 그 신검과 또 하나 의 이기(利器)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그렇다면 지존검도 다시 하나 더 있지 말라는 보장이 없는 것이 아니겠어요?" 화검운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럴 리는 없다. 내가 지금 생각해 보니 그 지존검은 틀림없이 아까 그 귀 면탈의 노인이 들고 있었던 것인데, 그가 무슨 사정이 있어서 지존검을 남 에게 주어 버린 것 같구나." 이때 옆에서 봉아가 듣고 있다가 눈빛을 반짝이며 물었다. "참! 아까의 그 지존검이 정말로 이번에 나타난 신병이기 가운데의 하나인 신검일까요?" 화검운은 미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지금의 상황이 워낙에 복잡하여 쉽게 분간할 수가 없겠지만 실로 그와 같 은 병기는 천하에 두 개가 나타날 수가 없는 것이니 틀림없이 신병이기 중 의 하나일 것이다. 그리고 내가 듣기에 다른 하나의 이기는 일명(一名) 천 황도(天皇刀)라는 칼이라고 했다." "천황도라고요?" 봉아가 다소 놀란 듯이 눈을 휘둥그래 뜨고 있다가 다시 물었다. "그럼 그 천황도의 위력도 지존검과 마찬가지로 대단한 것인가요?" 화검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천황도는 비록 지존검과 그 형상(形狀)이 다른 것이겠지만 일단은 함께 명 성을 날리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보아 틀림없이 위력이 비슷할 것이다. 따라 서 내 너희들에게 미리 말해 두는데, 앞으로 그런 신병이기를 가까이에서 볼 수가 있게 된다고 해도 결코 욕심을 내서 취하려고 하지말아라. 너희들 도 조금 전에 그러한 보물을 노리다가 죽음을 당하는 사람들을 보지 않았느 냐?" 이에 용아는 고개를 끄덕였고 봉아는 눈빛을 다소 빛내다가 기이한 눈빛으 로 화검운을 향해 다시 물었다. "하지만 화 상공님께 그 물건이 오게 된다면 얘기는 달라지지 않겠어요? 헌 데 아까 왜 화 상공님께서는 나서서 그 신검을 빼앗지 않으셨죠?" 화검운은 미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만일 우연히 그것이 내 손에 들어오게 된다면 모르지만 내가 구태여 그런 것을 차지해서 귀찮은 일을 자초할 필요가 있겠느냐? 너희는 어떤 사람이라 도 일단 그것을 차지하게 되면 무적(無敵)이라도 되는 줄로 아느냐? 그렇지 않다. 제아무리 신묘한 위력을 가지고 있는 병장기라고 해도 그것은 역시 병장기에 불과한 것이지 무슨 불가사의한 것은 아니다. 말하자면 진정한 고 수(高手)에게는 통하지 않는 것이며 오히려 그것으로 인해 자신의 수명을 단축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봉아가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아까의 그 지존검을 빼앗은 사람들은 반드시 죽음을 당하게 되어 있다는 말인가요? 그리고 그 사람의 뒤를 쫓아간 사람들도……" 화검운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 말은 그저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지 어찌 사람의 운명(運命)을 일 률적으로 논할 수야 있겠느냐?" 그때 일행은 드디어 여귀객잔(如歸客棧)의 앞에 이르렀으므로 대화를 멈추 었다. 여귀객잔의 앞에서는 한 명의 점원이 나와서 일행을 기다리고 있다가 다가 와서는 공손히 입을 열어 물었다. "저 저희 객잔에 드실 손님이십니까?" 봉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요. 우리는 조금 전에 작은 별채를 미리 예약해 놓았어요." 점원은 다소 반색을 하더니 말했다. "아, 바로 그 별채를 예약하신 분들이시군요. 그럼 소인(小人)을 따라오십 시오. 그렇지 않아도 여러분들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 점원의 나이는 대략 삼십대로 보였는데 용모가 어찌나 깔끔하고 잘생겼 는지 마치 기생오라비를 연상케 했으며 옷차림도 단정하고 예절바르게 느껴 지는 것이 이런 곳에서 일할 사람 같은 기질이 없었다. 용아와 봉아는 그와 같은 미남 점원의 안내를 받게 되자 왠지 기분이 나쁘 지 않아서 그 점원의 뒤를 따라서 화검운보다 앞서서 나아갔다. 점원은 일행을 이내 후원의 별채가 있는 곳으로 안내를 했는데후원(後園) 은 이미 예상했던 대로 드넓은 정원이 마련되어 있었고 곳곳에 화려하고 운 치가 있는 작은 누각(樓閣)들이 위치하고 있는 상태였다. 실로 이러한 별채 에서 묵게 된다면 마치 일반의 장원에서 묵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 것이었 다. 그 누각은 이미 부리 켜져 있었고 호화로운 궁등의 불빛 아래 현란한 무늬의 단청과 날아갈 듯한 누각의 처마등이 거의 환상적인 멋을 자아내고 있었다. 점원이 곧장 현관의 안으로 안내하는 것을 보고 봉아가 문득 입을 열어 물 었다. "저어 혹시 여기에서 식사를 주문할 수도 있나요?" 점원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돌리더니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하하하하, 잠시 기다리시면 이내 최고급의 요리를 대접해 드 리겠습니다." 봉아는 힐끔 화검운을 돌아보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게 하실 것은 없어요. 우리 화 상공님께서는 오직 값싼 요리만을 드시 기를 원하시니까요." 점원은 무심코 화검운의 얼굴을 돌아보면서 웃으며 대꾸했다. "하하, 그러시다면 소인은 그저 분부대로 합죠." 일행은 이윽고 화려한 촛불들이 가득 빛을 발하고 있는 거실의 내부로 들어 서서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 별채는 일행이 통째로 빌린 것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있을 리가 없는 것이므로 당연히 조용했다. 아니 당연히 조용했어야만 했다. 그런데 느닷없 이 그 순간에 어디선가 커다란 음성의 욕지거리가 들려 오더니 어처구니가 없게도 침실이 있는 쪽의 방문이 벌컥 열리더니 한 사람이 빠르게 밖으로 뛰쳐나오는 것이 아닌가! "미친 놈아! 잘 먹고 잘 살아라!" 용아 등은 느닷없이 그와 같은 소리를 지르며 밖으로 달려 나오고 있는 사 람의 모습을 보고는 일순 어안이 벙벙해졌다. 느닷없이 침실의안에서 뛰쳐 나온 사람은 다름이 아니라 한 명의 매우 아름다운 용모를 지니고 있는 여 자였는데, 그 홍의여인(紅衣女人)은 대체 침실의 안에서 무슨 일을 당했는 지 웃이 거의 다 찢어져서 앞가슴이 훤하게 드러나 보이고 게다가 아랫도리 마저 아슬아슬하게 허벅지가 드러나 있는 상태였던 것이었다. 홍의여인은 그저 침실쪽을 바라보며 거침없이 밖으로 달려 나오다가 역시 일행이 밖에 서 있는 것을 보고는 다소 놀란 표정이되어 자신의 앞가슴을 두 손으로 가리면서 멍한 표정이 되었다. ……! 점원은 너무나도어이가 없다는 듯이 놀란 표정이었고, 그 홍의여자는 지금 의 상황에서 이를 대체 어떻게 해명해야 할지를 모르겠다는 식의 표정이었 다. 그때, "빌어먹을, 뭐라구? 네년이감히 나를 버리고 도망가? 흐흐흐! 감히…… 내 가 그 사실을 만인(萬人)의 앞에 공개하지 않는지 두고 보아라!" 한 명의 대한이 흉측한 몰골로 침실의 밖으로 벌거벗은 채 걸어 나오다가 역시 거실에 사람들이 서 있는 것을 보고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 벌거벗은 대한은 체구가 상당히 크고 우람했을 뿐만 아니라 밖에 사람이 없 을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전신에 옷을 하나도 걸치지 않아서 아랫도리의 어 떤 물건이 흉측스럽게 덜렁거리고 있었는데, 지금 이 순간에도 미처 자신의 그러한 몰골을 의식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 일반연재 [백상] 종남사부 6권 제40장 -b- 총 Page : 8 -------------------------------------------------------------------------- ---- 게 시 자 : tohana(박성호) 게 시 일 : 97/04/15 00:58:18 수 정 일 : 크 기 : 5.5K 조회횟수 : 41 [백상] 종남사부 제6권 40장 -b- 04/07 18:15 292 line 올 린 이 : 양한우 HITEL ID : hanwoo71 제40장.(2) 흉악(兇惡)한 술책(術策) 용아와 봉아는 자신도 모르게 그자의 몸으로 시선을 보냈었으나 이내 그 흉 측한 물건을 보고는 저도 모르게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말았다. 그녀들 은 사실 남자의 물건을 본 것은 태어나서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할 수가 있 는 상태였으므로 내심으로는 크게 어이가 없으면서도 얼굴은 새빨갛게 달아 오르고 가슴은 심하게 뛰기시작했던 것이었다. 그것을 보고 점원이 보다 못한 듯이 소리쳐서 말했다. "이게 대체 무슨 짓들이오? 당신들은 어째서 이 별채에 들어와서 난리를 치 고 있는 것이라는 말이오?" 그러자 흉측한 몰골의 대한은 보아하니 크게 힘을 쓸 사람이 없는 듯하자 적반하장겪으로 그 점원을 향해 소리치는 것이었다. "뭐라구? 아니, 이 쥐방울만한 녀석이 간뎅이가 부었나? 이 나으리께서 잠 시 쉬어 가겠다는데 감히 뭐라구?" 말과 동시에 대한은 곧장 앞으로 달려들어서 점원의 멱살을 잡아 올렸는데 과연 그 체구에 걸맞게 한 손으로 점원을 들어올리는 것이 힘이 장사였고 또한 은연중 신법(身法)을 펼치는 것이 무공 꽤나 익힌 모양이었다. 그러나 어쨌든 파락호 정도일 것이다. 강호상에서는 이렇게 놀아나는 남녀(男女)들이 수두룩하다고 할 수가 있었 으므로 구태여 일일이 신경쓸 것은 아니었지만, 용아와 봉아는 자신들이 나 서려고 해도 대한이 벌거벗고 있는 바람에 도저히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 다. 이제는 오직 화검운이 나서서 일을 처리해야 할 것이었다. 점원은 겉모양만 멀쩡할 뿐이지 전혀 무공을 모르고 있는 것 같았고, 게다 가 이내 공포감에 휩싸이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 이게 무슨 짓이냐? 어…… 어서 손을 놓아 주시오……" 점원의 목소리가 점차로 기어들어가는 것을 보고 그 대한은 마치 자신의 힘 을 자랑하기라도 하듯이 고개를 쳐들며 호탕하게 웃어젖혔다. 아직 자신이 벌거벗고 있는 것도 모르고 고개를 젖히고 웃고 있는 광경은 마치 흉악(兇 惡)하기 짝이 없는 악귀의 형상과도 같았다. 알고 보니 대한의 용모 역시 흉측스럽기 그지없어서 두 개의 팔과 하나의 다리가 쇳덩어리를 만들어서 붙인 것이었고, 한쪽의 눈은 가짜의 눈을 박아 서 희번득거렸으며, 또한 양쪽의 귀 또한 바퀴가 전혀 없었다. 실로 조금 전에 홍의여인이 모든 것을 감수하고서라도 침실의 문을 박차고 나온 것이 이해가 되는 광경이었다. 홍의여인은 이때 밖으로 달아날까 하고 망설이는 모습이었는데 이윽고 포기 한 듯이 대한을 향해 소리쳤다. "이봐요! 그 사람을 공연히 괴롭히지 말아요. 내가 다시 당신의 말을 들으 면 될 것이 아닌가요?" 말과 함께 홍의여인이 가까이 다가가자 대한은 지극히 득의한 흉광(兇光)을 외눈에서 발출하더니 오히려 점원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아니, 뭐라구? 그럼 이 기생오라비 같은 녀석과 저년이 혹시 정분이 미리 나 있는 상태가 아니냐?" 대한이 금방이라도 점원을 멀리 내던질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을 보고는 홍 의여인은 공연히 점원이 불쌍하게 생각된 듯이 얼른 가서 대한의 팔에 매달 렸다. "그러지 말아요. 이런 죄 없는 사람을 해치지 말고 어서 나를 데리고 놀면 되지 않나요? 오늘…… 밤새도록 상대해 드리겠어요!" 그런데 대한은 그러한 말이 오히려 크게 못마땅한 듯이 점원을 한쪽의 벽에 다가 기어코 내던져 버리고는 점원이 억!하는 소리와 함께 심하게 다쳐서 뒹굴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는 이내 음탕하게 홍의여인의 드러난 한쪽의 젖 가슴을 잡아서 비틀면서 소리쳤다. "뭐라구? 미친 년! 그래 네년이 갑자기 그렇게 마음을 변화시킨 이유가 뭐 지? 저 기생오라비 같은 녀석이 죽을까 봐 그러는 것이냐? 흐흐흐…… 네년 이 감히 그러고도 저놈과 정분이 나지 않았다고 할 수가 있느냐?" 홍의여인은 대한이 너무나도 세게 젖가슴을 잡고 비틀자 고통이 심한 듯이 얼굴을 찌푸리며 대꾸했다. "그, 그게 대체 무슨 말이예요?" 대한은 이번에는 홍의여인의 옷을 그나마 남아 있던 것을 모조리 갈가리 찢 어 버리더니 완전히 발가벗겨서는 두 다리를 거꾸로 들어서 벌려 보이고는 그 은밀한 비소(秘所)를 드러내 보이며 음탕하게 웃었다. "자, 이 더러운 물건을 가지고 저 기생오라비와 같은 녀석과 내 앞에서 한 바탕 어울려 보는 것이 어때?" 여인의 얼굴은 이때 부끄러움인지 아니면 고통에서인지 새빨갛게 변해 있었 다. 용아와 봉아는 비록 이때 손으로 눈을 가리고 있기는 했지만 눈앞의 그러한 광경을 다 보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어서 내심으로는 너무나도 분노하여 창피한 느낌도 잊을 정도였다. 그녀들은 마침내 대한의 그러한 행동을 보고 는 모든 것을 생각하지 않고 나서서 대한을 죽여 버리려고 생각했다. 그런데 게다가 대한은 보라는 듯이 여자를 그대로 팽개쳐 놓고는 달려가서 그 무쇠가 달려 있는 주먹으로 점원의 앞가슴을 후려쳐 버리는 것이 아닌 가! "흐흐! 그렇게 할 수는 없지. 내가 손해니까. 일단 이렇게 죽여 놓아야 년 놈들이 감히 입을 맞추지 못할 것이 아닌가!" 대한은 그야말로 온통 저주와 원한에 가득차 있는 악귀(惡鬼)처럼 보였다. 생각보다 대한의 일 장이 강력했는지 점원의 가슴은 우두둑! 하는 소리와 함께 절반쯤이 안으로 꺼져 들어갔고 이내 비명 소리와 함께 그의 입 속에 서 검붉은 핏물이 줄줄이 흘러나오면서 눈동자가 허옇게 돌아갔다. 마침내 죽은 것이었다. 용아와 봉아는 흉악하기 짝이 없는 대한이 느닷없이 잘생긴 남자를 그 지경 으로 죽여 버리는 것을 보자 그야말로 이제까지 참고 참았던 분노가 터져나 왔다. 게다가 바로 그 순간에 여인이 마침 그녀들을 향해 달려들면서 애처 로운 표정으로 소리쳐서 도움을 청하고 있었으므로 자연히 그녀들은 앞으로 나서지 않을 수가 없었다. 비록 대한의 그 물건이 얼굴을 붉어지게 하기는 했지만 지금은 결코 그러한 것을 생각할 여지가 없었다. 용아와 봉아 중에서 그래도 비교적 용아가 의협심(義俠心)이 강한 편이었으 며 따라서 그녀가 먼저 앞으로 나섰으므로 여인은 급히 그녀의 주위로 바싹 다가들면서 말했다. "제발 살려 주세요. 그가 나를 죽이려고 해요!" 용아는 그 말을 듣고 실로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이 흉악한 도적의 목숨을 끊어 버려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의 일이었다. 용아가 마악 공력을 돋구어서 앞으로 나 서려고 하는데 문득 손목이 뜨끔하는 듯하더니 전신의 힘이 하나도 남지 않 고 빠져 버리는 것이 아닌가! -- 계속 -- ─────────────────────────────────────── 일반연재 [백상] 종남사부 6권 제41장 -a- 총 Page : 14 -------------------------------------------------------------------------- ---- 게 시 자 : tohana(박성호) 게 시 일 : 97/04/15 01:00:21 수 정 일 : 크 기 : 10.3K 조회횟수 : 44 [백상] 종남사부 제6권 41장 -a- 04/07 18:15 300 line 올 린 이 : 양한우 HITEL ID : hanwoo71 제41장.(1) 신통광대(神通廣大) (……!) 믿을 수 없게도 그 여인은 용아의 손목의 맥문을 움켜쥐고는 단숨에 제압해 버린 것이었다. 실로 어처구니가 없다고 생각될 일이었고 용아는 이미 당한 것을 알게 되었지만 도대체 어찌된 영문인지 알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용아보다는 봉아가 그래도 다소 냉정한 편이었는데 그녀는 나중에야 비로소 용아가 저들의 계획적인 연극에 의해서 사로잡히게 되었다는 것을 알고는 놀라서 소리쳤다. "무슨 짓이냐? 어서 용아를 놓아라!" 그러나 용아를 사로잡은 여자는 잣니이 벌거벗은 몸이라는 것을 알고서도 전혀 개의치 않는 듯이 요염하게 웃으면서 이렇게 대꾸했다. "호호, 너도 한 번 여자의 재미를 보겠다는 말이냐? 아직 나이는 어리기는 해도 전혀 하지 못하는 나이는 아니지." 봉아는 여자의 뻔뻔스러운 그러한 말을 듣고는 그만 얼굴이 새빨갛게 붉어 졌고, 또한 예의 그 대한이 슬그머니 자신의 앞으로 다가오는 것을 보고는 놀라서 화검운의 뒤쪽에 숨었다. 그러자 그 두 명의 남녀는 자연히 화검운 과 마주 대하게 되었다. 화검운은 이때 기이한 표정으로 그 두 명의 남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당신들은 이게 무슨 짓들이오?" 대한은 잠시 움찔하는 기색이었고 여자가 고혹적으로 음탕하게 알몸을 흔들 면서 대꾸했다. "너는 그 이유를 모르겠다는 말이냐?" 화검운은 잠시 그녀와 그녀의 한쪽 손에 제압당한 용아의 얼굴을 바라보고 는 미미하게 웃으며 되물었다. "당신들은 비급(秘 ) 때문에 나를 찾아온 것이라는 말이오?" 여자는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만일 당신이 그 비급을 우리에게 건네준다면 우리는 즉시 이 작고 귀여운 계집아이를 돌려드리기로 하겠어요." 이때 용아는 비단 자신의 실수에 대해서도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눈 앞의 여자가 알몸으로 조금도 부끄럽지 않은 듯이 오히려 지극히 자극적으 로 몸을 움직이며 비소를 보여 주고 있는 것 등을 보고는 저절로 안색이 새 빨개져 있었다. 기실 용아와 봉아는 아직 사춘기의 초입에 들어서 있는 소녀들로서 그와 같 은 자들에게는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용아와 봉아는 내심으로 빨리 화검운이 비급을 주어 버려서 이 위기를 벗어 나 버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런데 이때 뜻밖에도 화검운은 이렇게 대합하는 것이었다. "내가 당신들의 말에 따를 것이라고 믿고 있소?" 여인은 두 눈에 다소 기이한 빛을 발하면서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당신은 그 비급보다도 이 귀여운 계집아이가 더욱 소중하지 않다 는 말인가요?" 화검운은 이에 들은 척 만 척하고는 말했다. "나는 비록 강호상의 견문(見聞)이 그리 넓은 것은 아니지만 당금의 무림에 혈혈루(血血樓)라는 전문 살수 집단이 있어서 루주(樓主)인 혈혈광생자(血 血狂生子)의 휘하에 삼대혈살수(三大血殺手)인 혈마(血魔), 혈잔(血殘), 혈 화(血花)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듣고 있었소. 보아하니 당신들은 그들 과 매우 닮은 구석이 있는 듯한데……" 그때 느닷없이 장내의 상황이 크게 돌변했다. 화검운의 입에서 혈혈루(血血 樓)라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여인과 대한의 표정이 급변했으며, 봉아는 이때 화검운의 뒤에 숨어 있다가 느닷없는 변을 당하게 되었다. 갑자기 서늘한 느낌이 전해져서 돌아보니 어처구니가 없게도 그녀의 손은 이미 한 사람에 게 제압되어 있었는데, 그 사람은 바로 조금 전에 죽은 줄로 알았던 예의 점원이 아닌가! 그 점원은 지금 아까와는 달리 가슴도 다시 회복되어 있었 고 두 눈에서 형형한 안광(眼光)까지 발출되고 있어서 실로 지금까지의 그 의 행동은 연극이었다는 것을 알게 했다. 봉아는 비록 신경을 앞으로 기울 이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 점원이 몸을 일으키는 것을 전혀 느끼지 못했었 는데 그것으로 미루어 보아 그의 무공이 상상 외로 높은 것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을 것 같았다. 봉아가 점원에게 제압을 당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아악! 하는 비명 소리를 발하자 그제서야 화검운은 점원이 있는 쪽을 향해 시선을 돌리면서 입을 열 어 물었다. "당신이 바로 혈마(血魔)요?" (……!) 점원은 화검운이 조금도 놀라지 않고 있는 것을 보고는 오히려 더욱 놀란 듯이 눈을 크게 뜨며 차갑게 대꾸했다. "그렇다. 네가 알고 있다니 일이 더욱 쉬워지겠군." 화검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들이 노리고 있는 것은 역시 그 비급에 한하고 있는 것이오?" 혈마는 이에 음침하게 웃으며 되물었다. "흐흐, 너는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화검운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소. 원래 이 혈혈루의 삼대혈살수들은 이제까지 살인(殺人)을 하는 일 이외에는 나서 보지 않았었는데 지금 겨우 비급 하나 를 위해서 이렇게 거창한 연극을 했었을 리는 없는 것이오." 혈마는 사악(邪惡)한 안광을 번쩍 발출시키며 대꾸했다. "그렇다. 우리는 바로 너를 제거하기 위해 온 것이다." 화검운은 가볍게 웃으며 다시 물었다. "당신들은 그것이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시오?" 혈마는 자신의 두 명의 시종들이 모두 다 제압되어 있는 상황인데도 아직도 여전히 태연자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화검운에 대해서 일종(一種)의 불가 사의한 느낌을 느끼고 있는 듯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최소한 너는 이 두 명의 시종들의 목숨을 안전하게 살릴 수는 없을 것이 다." 화검운은 다시 물었다. "당신들의 목숨을 그 두 명의 아이들과 바꾼다는 것은 당신들에게 있어서 혹시 손해되는 일이 아니겠소?" 혈마는 이 화검운이 궁지에 몰려 있는 상태인데도 오히려 너무나도 태연하 여 어이가 없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는 이제 더 이상 시간을 끌 필요 가 없다는 것을 의식한 듯이 소리치며 신형을 앞으로 날렸다. "쳐랏!" 바로 그 순간의 일이었다. 소리를 지른 혈마의 신형이 일순간 안개처럼 붉 게 변하여 사라지더니 마치 봉아의 몸과 하나가 된 듯이 함께 화검운을 향 해 덮쳐 들었고, 또한 혈잔(血殘)이라는 대한과 혈화(血花)라는 여인도 함 께 나체의 몸으로 화검운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덮쳐드는 것이 아닌가! 혈화의 신형이 가까이에 도달했을 때 그녀의 머리카락과 음부 등의 터럭들 이 한꺼번에 마치 암기(暗器)처럼 화검운의 전신을 향해 날아왔으며, 또한 그녀의 입 속에서 하나의 미세한 바늘과도 같은 암기들이 무수하게 화검운 의 전신을 향해 폭사(暴射)되었으며, 혈잔의 몸에서는 이른바 의수나 의족 같은 쇠뭉치로 만들어진 것들이 한꺼번에 화검운을 향해 폭사되었고, 그리 고 그는 남은 한 손으로 흉악하게 웃으며 화검운의 몸을 껴안으려고 했다. 그렇게 본다면 이 혈잔의 전신은 마치 하나의 작은 폭탄처럼 생각되었고, 혈화의 전신에서는 짙은 독향(毒香)이 느겼졌으며, 그리고 혈마의 육신은 이미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조차 않았다. 혈마는 마치 이 순간에 보이지 않는 악마(惡魔)가 되어서 상대의 숨통을 노리려고 하는 것 같았다. 실로 그러한 변화(變化)는 갑자기 벌어진 것이었으며 마치 한꺼번에 태풍이 휘몰아치고 천지간의 혼돈(混沌)이 재현되고 있는 것 같은 무시무시한 광경 이었다. 그러나 기이하게도 화검운의 모습은 그러한 순간에서조차 태연자약하기 그 지없었다. 혈화의 육신은 이미 독기를 강렬하게 내뿜어서 한 손에 잡고 있 는 봉아의 몸과 함께 그대로 독물이 되어 화검운을 덮치려고 하고 있는데도 그에게는 다른 대책이라고 있다는 말인가? 용아와 봉아도 이 순간만큼은 아무래도 죽음을 면할 수가 없을 것이라고 생 각하고 있는데, 문득 느닷없이 장내에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화검운의 몸 에서 일순 기이한 빛이 일어나는 듯하더니, 물론 그것은 단순한 착각이었는 지도 모르는 일이었지만, 이내 혈잔과 혈화의 얼굴에 지극히 경악한 표정이 떠오르며 그들의 신형이 마치 느닷없이 완전히 기력(氣力)을 상실한 사람들 처럼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져서 고꾸라지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바로 혈마 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혈마의 신형은 이 순간에 화검운이 내려다보이는 거실의 천장 위에 달라붙어 있는 상태였는데, 그의 은신술(隱身術)은 완전 히 실패하고 그의 신형도 역시 맥없이 바닥으로 굴러떨어져 버리는 것이었 다. 실로 이 혈혈루의 삼대혈살수들은 이제까지 비록 더러 싸움에서 패배를 당하기도 했었으나 지금처럼 믿을 수 없는 낭패를 당하기는 처음이었다. 용아와 봉아는 그때 이미 자신들의 몸이 정상으로 돌아와 있으며 전현 다치 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는 내심으로 크게 안도감을 느끼며 비록 자신들이 오 랫동안 모셔 온 주인이었지만 화검운의 능력(能力)에 대해서 기이하게 생각 했다. 조금 전에 화검운의 몸을 향해 무수한 암기들과 쇠뭉치 같은 것들이 날아갔 었는데 지금 대체 그것들은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보이지 않았다. 용아와 봉아는 한편으로는 그녀들의 주인의 능력에 대해서 감탄과 존경의 마음을 금하지 못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지금 바닥에 떨어진 세 명의 혈 살수(血殺手)들을 경계하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웠다. 혈마를 제외하고는 혈잔과 혈화는 지금 완전히 나체였기 때문에 두 사람은 거실의 바닥에 지저분하게 널브러져 있었는데, 이윽고 화검운이 그들을 향 해 이렇게 입을 열어 말했다. "당신들은 어서 그만 가시오!" (……?) 비단 혈마 등뿐만 아니라 옆에서 그 얘기를 듣고 있던 용아와 봉아도 매우 놀랐다. 혈마가 다소 놀란 듯이 고개를 쳐들고 물었다. "어째서 우리를 그냥 보내 주겠다는 것이오?" 화검운은 웃으며 대답했다. "당신들이 과연 나의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시오? 따라서 나는 당신들 을 귀찮게 생각하기 때문에 그냥 보내 버리려는 것이오." "핫핫, 정말로 광오하군." 혈마는 앙천광소를 터뜨리며 겨우 신형을 일으켜서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 다. 혈잔과 혈화는 역시 간신히 몸을 일으켜서 그 뒤를 따랐고, 이윽고 그 들의 신형은 거실의 현관문을 통해서 밖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 용아와 봉아는 잠시 동안 침묵으 ㄹ지키며 삼대혈살수들이 사라지기를 가다 렸다가 이윽고 궁금한 점을 화검운에게 물어 보려고 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의 일이었다. "아악!" 일진의 단말마의 비명 소리가 들려 오면서 누군가가 밖에서 쓰러지는 기척 이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용아와 봉아는 기이한 느낌이 들어서 급히 밖으로 달려나갔다가 이윽고 다 름이 아니라 삼대혈살수들이 넓은 정원의 한쪽에서 하나같이 극독(極毒)에 중독되어 급격하게 죽어 가고 있는 것을 보고는 경악하여 그만 눈을 크게 떴다. 바로그녀들의 곁에 어느 사이엔가 화검운이 내려서 있었다. "너희들은 내가 왜 이들을 보내 주었는지 궁금하게 생각했겠지?" 용아가 놀라서 물었다. "그럼 화 상공님께서는 벌써 이들이 죽음을 당할 것을 알고 있었다는 말인 가요?" 화검운은 미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의 운명(運命)은 이미 그렇게 정해져 있는 것이었다. 내가 비록 그들 의 무공(武功)을 완전히 폐쇄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은 일단 나를 제거하 지를 못했으므로 말하자면 그들의 가치는 거기에서 이미 끝난 셈이다. 적들 은 아주 무서운 집단으로서 그와 같은 고수들이 즐비한데 하물며 이러한 사 람들에게 구태여 미련을 두겠느냐?" "……!" 봉아가 물었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하죠?" 화검운은 미소하며 대답했다. "어서 이곳의 점원들에게 알려서 우리가 쉬어 갈 별채를 따로 준비하라고 하고 또한 이 시신들을 치우도록 해라." "예……" 용아와 봉아는 일순 화검운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즉시 신형을 날려서 바깥 쪽으로 날아갔으며 이내 몇 명의 점원들을 잡아와서는 이곳의 사정을 보여 주고는 혼쭐을 내주고 있는 모양이었다. 원래 점원들은 아까 그 혈마 등의 협박에 못 이겨서 그만 그가 점원의 행세를 하는 것을 방조해 주었던 것이 었으므로 따라서 용아와 봉아가 지시하는 것을 감히 거역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화검운 등은 점원들이 새로 마련해 준 하나의 다른 작은 별채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내부에 촛불을 훤하게 밝힌 채 편하게 쉴 수가 있게 되었다. 비록 그 객잔에서는 식사를 할 수가 없는 것이었지만 용아와 봉아가 반쯤은 협박을 하는 바람에 점원들은 각기 성의를 다해서 음식들을 장만해 왔으므로 간신히 세 사람은 식사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수가 있었 다. ─────────────────────────────────────── 일반연재 [백상] 종남사부 6권 제41장 -b- 총 Page : 9 -------------------------------------------------------------------------- ---- 게 시 자 : tohana(박성호) 게 시 일 : 97/04/15 01:01:43 수 정 일 : 크 기 : 5.7K 조회횟수 : 39 [백상] 종남사부 제6권 41장 -b- 04/07 18:15 300 line 올 린 이 : 양한우 HITEL ID : hanwoo71 제41장.(2) 신통광대(神通廣大) 다음날 화검운은 비교적 일찌감치 자리에서 일어나서 천천히 주위의 정원을 산책했는데, 이윽고 세수를 마치고 나자 할 수 없이 용아 봉아를 대동하고 식사를 하러 가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용아와 봉아는 이미 준비하고 있 었다는 듯이 한사코 맞은편에 있는 길상루(吉祥樓)로 가자고 우겼으므로 세 사람은 결국 그곳으로 향하게 되었다. -- 길상루. 그곳은 상당히 화려한 주루였는데도 이른 아침부터 많은 손님들 로 붐비고 있는 상태였다. 일반적으로 강호인들은 비록 생활은 거칠게 하더라도 명예만큼은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경향이 있으므로 비록 객점은 다소 허술한 곳을 이용하더라 도 먹고 마시는 주루만큼은 이런 화려한 곳을 선호하는 모양이었다. 세 사람이 길상루의 안으로 들어가자 여러 개의 누각 가운데의 가장 커다란 그 누락은 이미 거의 대부분의 자리가 손님들로 들어차 있는 상태였다. 용 아와 봉아는 다른 누각으로 가 보자고 했지만 다른 누각들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일단은 그 누각의 안으로 들어가서 자리를 찾기로 했 다. 그런데 밖에서 생각하던 것과는 달리 누각의 안쪽의 구석진 자리들은 상당 히 비워져 있었고, 사람들은 대부분이 바깥쪽으로 자리를 정하고서 계속해 서 밖의 상황을 살피는 것이 아무래도 무엇인가를 기다리는 모양이었다. 화검운과 용아 등은 그런 것들을 상관하지 않고 곧장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 서 하나의 탁자를 차지하였고 점원을 불러서 음식들을 시켰다. 봉아는 이미 작정을 하고 있었던 것처럼 아주 푸짐하게 음식을 시켰는데 화검운은 이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을 하지 않았다. 봉아가 이에 화검운에게 물었다. "화 상공님, 어제 그 지존검은 지금쯤 누구에게 돌아가 있을까요?" 화검운은 가볍게 웃어 보였다. "글쎄……" 봉아는 다시 물었다. "어제의 그 늙은이가 계속해서 지존검을 지키고 있을까요?" "글쎄……" 봉아는 화검운이 계속해서 글쎄라고만 말하자 다소 못마땅한지 아미를 찌푸 리며 다시 입을 열어 질문했다. "당금의 무림(武林) 상황은 아주 혼란스럽게 보여요. 대체 앞으로 어떻게 되어 갈까요?" 화검운은 그 질문에는 글쎄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아마도 머지 않아서 어떤 결말이 있을 것이다." 헌데 그때 일행의 탁자에 한 명의 낯익은 사람이 다가오더니 단정하게 포권 하며 입을 열어 말했다. "저어…… 실례 좀 해도 될까요?" 화검운이 고개를 돌려보니 뜻밖에도 그 사람은 바로 다름이 아닌 무산신녀 문의 소문주인 병미인(病美人) 이문수(李文秀)였다. 화검운은 불과 며칠 전 에 한밤중에 그녀를 본 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아침이라 그때보다 훨씬 자태 (姿態)가 수려(秀麗)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녀의 얼굴은 병미인이라는 별 호 그대로 다소 창백한 느낌이 있고 혈색이 없어 보였지만, 그러나 그러한 하얀 얼굴은 백색의 의복과 어울려서 그야말로 청백(淸白)하고 순결한 듯한 인상을 자아내는 것이었다. 화검운은 이미 이 소녀의 심성이 상당히 순수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지체하지 않고 대답했다. "물론이오, 무산신녀문의 병미인 이 낭자!" 이문수는 화검운의 그러한 말을 듣고는 일순 다소 놀란 듯하다가 반색을 하 고 웃으며 다시 말했다. "어마! 이미 저를 알고 계셨군요?" 화검운은 미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오. 우리는 이미 며칠 전에 서로 대면하지 않았소?" 이문수는 그 날 새벽녘에 있었던 일을 말하는 것을 알고는 자신도 모르게 그 당시의 주착이 없었던 일을 상기하고는 안색을 은근히 붉혔다. 그녀는 원래 병색이 짙었었는데 지금 그렇게 안색을 살짝 붉히자 매우 활발하게 느 껴졌다. "맞아요. 그랬었죠. 실은 오늘은 제가 한 사람을 소개시켜 드리기 위해 이 곳에 온 것인데…… 그가 누군지 아시나요?" 이문수는 한 순간에 마음이 다소 흔들리는 바람에 그만 말이 대중없이 흘러 나오고 말았다. 누구라도 그녀의 그러한 말뜻을 쉽게 파악하기 어려울 것이 었다. 그러나 화검운은 담담히 웃으며 그녀를 향해 물었다. "아무래도 이 낭자가 나에게 소개해 주려는 사람이라면역시 당금의 무림의 상황에 중요한 사람일 것이고…… 혹시 귀파(貴派)의 장문인이 아니시오?" 이문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예요. 저의 사부님은 비록 저쪽에 계시지만 제가 지금 소개해 드리려 는 ㅅ람은 그분이 아니예요. 말하자면 제가 소개해 드리려는 분과 화 공자 (花公子)가 대면해서 알게 되면 당금의 무림이 더욱 편안해지게 될 것이예 요." 역시 이문수는 자신의 나름대로 이유를 가지고 다가온 것이었다. 화검운은 미소하며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혹시 이 낭자와 친구 되시는 분을 소개시켜 주려는 것이 아니오? 그러니까 말하자면 옥관음(玉觀音) 같은……?" 이문수는 일순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어마! 제가 그 단목 언니를 소개시켜 주려는 것을 어떻게 알게 되었죠?" 아마도 이문수는 이미 그 옥관음 단목소소(端木小昭)에게 화검운에 대해서 비교적 상세하게 설명해 주었을 것이고 이제 다시 화검운에게 찾아왔던 것 이리라. 화검운은 담담히 미소하며 말했다. "나는 그저 그렇게 추측해 본 것일 뿐이오." 이문수는 반색을 하며 말했다. "당신의 추측은 그야말로 신통광대(神通廣大)하군요. 하지만 사실 그 단목 언니는 나의 친구가 아니라우리 여러 문파들의 지도자가 되시는 분으로서 저의 사부님도 일단은 그 언니의 계획에 따르고 계시는 것이지요. 제가 보 기에 화 공자님의 능력도 놀라우신 것 같으니 저희 단목 언니와 서로 힘을 합치게 되면 장차의 무림을 위해서 좋은 일이 있을 거예요." 화검운은 얼굴 가득히 미소를 띄며 다시 물었다. "하지만 나와 같은 사람이 그런 분과 만날 자격이 있겠소?" 이문수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런 것은 걱정하지 마세요. 자, 여기에서 잠시 기다리시면 제가 잠시 후 에 그 단목 언니를 데려오도록 하겠어요." 이문수는 차분학 생긴 것 같지 않게 성격이 활달해 보이는 편이었다. 그녀 의 그러한 행동에는 거의 세속의 때가 묻지 않은 솔직하고 진실해 보이는 면모를 찾을 수가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알고 보니 지금 이 누각의 앞쪽에서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 람들은 다름이 아니라 전날에 이 누각의 앞 광장에서 무리를 지어서 나타났 던 무산신녀문 등의 문파들의 사람들이었던 것이었다. 봉아가 다소 못마땅한 듯이 말했다. "그녀는 어째서 느닷없이 쓸데없는 일을 하려고 하는 거죠?" 화검운은 웃으며 말을 받았다. "그녀는 결코 쓸데없는 일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앞으로 그녀의 이러한 일 에 의해서 강호는 좋은 결과를 맞이하게 될 것이니 봉아, 너는 공연히 그들 에게 앞으로 심통을 부리면 안된다." -- 계속 -- ─────────────────────────────────────── 일반연재 [백상] 종남사부 6권 제42장 -a- 총 Page : 13 -------------------------------------------------------------------------- ---- 게 시 자 : tohana(박성호) 게 시 일 : 97/04/15 01:03:30 수 정 일 : 크 기 : 10.3K 조회횟수 : 41 [백상] 종남사부 제6권 42장 -a- 04/07 18:16 308 line 올 린 이 : 양한우 HITEL ID : hanwoo71 제42장.(1) 서광(瑞光) 이윽고 잠시의 시간이 흘러가자 이문수는 정말로 예의 그 회색 승포를 걸친 흡사 세속에 하강한 관음보살(觀音菩薩)을 연상케 하는 절세적인 미소녀(美 少女) 옥관음 단목소소를 데리고 화검운 등이 앉아 있는 탁자로 다가왔다. -- 옥관음 단목소소. 그녀는 비단 그린 듯이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녀의 전ㅅ니에서는 신비롭고도 고아(高雅)한 분위기가 흘러 넘치고 있어서 거의 일반 사람들은 감히 그녀의 용모를 정면에서 마주보기 가 어려울 정도였다. 그러니까 굳이 구분을 하자면 이문수와 같은 소녀는 상대하기 편안한 미소녀이고 이 단목소소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숭고(崇 高)한 느낌을 지니고 있는 소녀라고 해야 할 것이었다. 옥관음 단목소소는 비록 회색 승포를 걸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머리를 깎 지 않고 있어서 일반의 소녀나 다름이 없었다. 그리고 단목소소는 생각 외 로 상당히 행동에 격의가 없고 겸손한 편이었는데, 화검운 등이 앉아 있는 자리에 다가와서는 먼저 정중하게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실례지만 제가 함께 자리를 해도 괜찮을까요?" 화검운은 상대가 그렇게 예의를 갖추어 말하자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서 역 시 정중하게 자신의 맞은편의 자리를 권했다. 그때 점원들이 부지런히 음식들을 날라와서는 넓은 탁자 위에 가지런히 늘 어놓았으므로 화검운은 뒤를 따라서 자리하는 이문수와 단목소소에게 말했 다. "식사를 함께 하시는 것이 어떻겠소?" 단목소소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입을 열었다. "아니예요. 우리는 조금 전에 이미 식사를 했으니 저는 여기에 있는 차나 손수 따라서 마시도록 하겠어요." 화검운과 이문수 등의 사람들이 모두 자리를 정하고 앉자 그녀는 정말로 자 신의 앞에 놓여 있는 차주전자를 들어서 찻잔에 차를 따라서는 들고 조용히 마시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비록 그 옆의 이문수가 아름답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 두 명의 소녀 들을 두고 비교를 해 보니 이 단목소소의 모습은 그야말로 회색 승포를 걸 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신에서 맑은 물빛의 기운이 번져 나와 투명하고 밝은 서광(瑞光)을 은은하게 발산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실로 그러한 모습은 속세의 사람들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었으며, 대개의 사람들에게는 범접하기 어려운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화검운의 태도는 거의 평상시와 다를 것이 없었다. 그는 상대가 차 를 마시는 것을 바라보고 미소하더니 이윽고 자신도 앞에 놓인 음식들을 천 천히 먹고 마시기 시작했다. 이문수는 두 사람을 소개해 주려다가 가만히 있었고, 용아와 봉아는 왠지 긴장되는 기분이 들어서 역시 거의 음식을 먹지 않았다. 이윽고 단목소소는 차를 반쯤 마시고 나서 찻잔을 탁자 위에 조용히 내려놓 더니 화검운을 향해 입을 열어 말했다. "저는 당신의 얘기에 대해서 이미 들은 바가 있어요. 근래 들어서 정사간 (正邪間)에 당신의 소문은 매우 크게 퍼져 있더군요." 단목소소는 그러한 말을 함으로써 자신이 화검운을 알게 된 것이 단순히 이 문수의 말을 빌어서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은근히 시사했다. 화검운은 역시 음식을 먹다 말고 미소하며 대꾸했다. "나도 사실 당신에 관한 얘기를 수차례 들었고, 또한 솔직히 저번에는 당신 의 솜씨를 보기도 했었소. 나는 기실 감탄하였었소." 단목소소는 이에 단정한 태로로 포권을 해 보였다. "칭찬이 과하시군요." 화검운은 미소하며 대답했다. "과한 것은 절대 아니오. 당금의 강호에서 천상팔패의 사람이 아니면서 강 호오봉(江湖五鳳)에 들어 있다는 자체가 이미 놀라운 능력이 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 아니겠소?" 단목소소는 그 말에 다소 안색을 붉히면서 대꾸했다. "강호오봉에 제가 들어 있다는 것은 세상의 사람들이 저를 너무나도 과분하 게 보아 주신 것이지요. 그러나 제가 보기에는 화 공자(花公子)께서는 오히 려 그 강호십대용봉조차 미칠 수 없을 만큼의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들 하던 데 스스로 생각하시기에는 어떻게 보시나요?" 화검운은 역시 미소하며 대답했다. "그들은 대부분이 명가(名家)의 전통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그들과 견줄 수 있다는 말을 할 수가 있겠소?" (……?) 단목소소는 화검운의 말이 다소 기묘(奇妙)한 여운을 풍기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잠시 그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미소하며 다시 말했다. "우리는 그럼 일을 논의(論議)하기 위해 만난 것이니 본격적으로 당금의 무 림의 상황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도록 하죠. 허나 그보다 우선 서로의 무림 관(武林觀)에 대해서 털어놓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화검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것이오." 단목소소는 그의 얼굴을 직시(直視)하며 다시 말했다. "나는 강호는 어떤 강력한 힘에 의해서 지배되는 것을 반대하는 입장이예 요. 즉, 강호는 저절로 정화(淨化)되는 것이며, 그러한 자연적인 정화력에 맡겨 놓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말이예요. 그 속에는 다소간의 혈겁(血劫)들 이 벌어지게 되겠지만, 실로 그러한 것이 진정한 강호(江湖)의 모습이 아닌 가 하고 생각해요." 화검운은 미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역시 그렇게 생각하오." 단목소소는 다소 아미를 찌푸리며 말했다. "한 가지 묻겠는데 당신은 현재의 백의맹(白衣盟)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 고 있죠? 그들을 강호에 필요한 존재(存在)라고 생각하고 있나요, 아니면 불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나요? 물론 그러한 질문은 그 반대의 적(適) 들이라고들 하는 흑풍사(黑風社)에 대해서도 마차나지예요. 당신은 대체 어 떤 생각을 하고 있죠?" 화검운은 차를 한 찬 마시며 대답했다. "나는 그들을 모두 필요악(必要惡)이라고 생각하고 있소." 단목소소는 다소 놀란 듯이 아름다운 눈을 크게 떴다. "필요악이라고요? 그럼 당신은 백의맹이 정의(正義)로운 집단이라고 말하는 대중의 생각을 반대하는 것인가요?" 화검운은 미소하며 대답했다. "사실 어떤 것이 진실(眞實)인가 하는 문제는 아직 뚜껑이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는 잘 알기가 어려운 것이오. 그러나 나는 이를 테면 어떤 나쁜 경 우라고 해도 그것이 더러는 필요한 경우가 있는 법이고, 혹은 어떤 좋은 경 우라고 해도 그것이 더러는 불필요한 경우가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소. 여 기에서 나쁘고 좋은 경우라는 것은 물론 어떤 절대적인 기준은 물론 아니 오." (……) 단목소소는 잠시 깊이 생각하는 듯하다가 말을 받았다. "나는 당금의 강호의 현실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감을 잡고 있어요. 그러니 까 이 백의맹은 흑풍사와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죠. 예를 들면 흑풍사가 생 겨난 이후에 백의맹도 뒤따라서 마치 자연스러운 듯이 생겨나게 되었는데, 그 원래의 목적과는 달리 이제까지 흑풍사와 백의맹은 거의 정면으로 격돌 하지 않았어요. 당신은 그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보시나요?" 화검운은 담담히 그녀의 얼굴을 정시(正視)하며 대답했다. "그것은 혹시 어떤 인연(因緣)이 닿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오?" 단목소소는 말했다. "인연이라고 하는 것은 포괄적으로 생각할 수가 있는 것이지요. 원래 이 백 의맹은 흑풍사를 타도하기 위해 창설되었었기 때문에 일단 그 목적을 위해 서는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들과 부딪쳐서 최소한 그들의 세력 을 제거하거나 약화시켰어야 옳았어요. 그러나 당금의 상황을 보면 백의맹 은 그들 나름대로 여전히 세력을 유지하고 있어요. 흑풍사 역시 마찬가지로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어요." 화검운은 문득 물었다. "당신은 그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시오?" 단목소소는 대답했다. "그것은 말하자면 너무나도 공교로운 두 세력의 움직임에 있었던 것이죠. 그러니까 만약 흑풍사에서 남쪽으로 움직이면 백의맹은 복쪽으로 움직이고, 백의맹이 남쪽으로 움직이면 흑풍사는 다시 북쪽으로 움직이는 등의 서로 엇갈리는 움직임을 보여서 이제까지 어쩔 수 없이 서로간에 격돌을 하지 못 했다고 말하고들 있으나 기실은 그러한 우연의 중복은 말하자면 있을 수가 없으며, 즉 필연(必然)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죠. 그들은 결국 서로가 서 로를 만나지 못해서 흑풍사는 백도(白道)의 무림인들을 추살해 오고 백의맹 은 다른 흑도(黑道)의 무리들을 추살해 왔으므로 그저 강호상의 무림인들의 숫자를 줄여 오기만 했던 것이죠. 만일 이대로 계속 나간다면 강호상에는 백의맹과 흑풍사 이외에는 하나도 남아나지 않게 될 거예요. 당신은 그 사 이에 어떤 가공함이 있다는 것을 느끼지 않나요?" 화검운은 물었다. "그럼 흑풍사와 백의맹이 은밀하게 서로 연합(聯合)이라도 했다는 말이오?" 단목소소는 대답했다. "물론 그러한 일이 정말로 있는 것이라면 강호무림은 커다란 비극을 맞이하 게 되는 것이겠죠. 나는 그러한 일이 있지 않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지만 당 금의 상황으로 보아서 그러한 추측은 현실일 가능성이 너무나도 큰 것이예 요." 화검운은 그녀의 얼굴을 주시하며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그것은 오직 추측에 불과하다는 말이오?" 단목소소는 대답했다. "기실 백의맹과 흑풍사의 조직을 이루고 있는 무리들은 천상팔패의 사람들 이기 때문에 일반의 무림인들로는 당해낼 수가 없는 것이 사실이예요. 저로 서는 그러한 추측만을 할 수가 있을 뿐이지 감히 확증을 잡을 수가 없는 단 계예요. 하지만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고 할 때에는 그것이 확실하게 드러날 때까지 기다리다가는 아마도 그때쯤이면 강호무림은 영락없이 그들의 손아 귀에 들어가서 암흑세계(暗黑世界)가 되어 있을 거예요." 화검운은 미소하며 물었다. "낭자가 나와 제휴를 하자고 하는 이유는 바로 그러한 데에 있는 것이오?" 단목소소는 역시 함께 웃으며 대답했다. "그런 셈이예요. 하지만 저는 무엇보다도 우리가 역시 같은 강호의 동도(同 道)라는 생각이 들고 있어요." "강호의 동도라……" 화검운은 잠시 눈길을 천장으로 옮기며 혼자서 중얼거리는 듯하다가 다시 시선을 내려서 단목소소의 두 눈을 마주 대하며 입을 열어 물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명백한 강호상의 동도라고 합시다. 그렇다면 우선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는 것이 좋을 것인데…… 역시 아까 먼저 얘기를 꺼내신 당금 의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를 시작해 보는 것이 좋겠소." 단목소소는 고개를 끄덕였다. "동감이예요. 그럼 제가 먼저 얘기를 시작하도록 하죠. 당금의 강호무림은 그야말로 한 치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안개 정국일 뿐만 아니라 게다가 온 갖 혈겁(血劫)들에 시달리고 있어서 하룻밤에도 수십 혹은 수백 명의 무림 인들이 목숨을 잃어 가고 있어요." 화검운은 말했다. "당금의 강호가 안개 속과 같다는 말은 나도 동감을 하고 있는 바이지만 그 러나 아직 그와 같은 혈겁들은 일어나지 않은 것이 아니오?" 단목소소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아니예요. 당신은 아직 어젯밤의 소식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모양이로군 요. 현재 당금의 무림삼보(武林三寶) 가운데에서 두 가지가 장안성 내에 나 타났어요." 화검운은 말했다. "아, 그 두 가지의 일이라면 나도 이미 알고 있소. 그것들은 바로 공교롭게 도 나의 장원에서 나타났으며 게다가 나는 이미……" 단목소소는 미소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역시 당신은 아직 모르고 있군요. 제가 지금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 한 권 의 비급과 한 자루의 장검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다른 한 권의 비급과 다른 하나의 이기(利器)를 포함하는 두 종류의 보물들, 그러니까 숫 자로 치자면 모두 네 개의 보물들을 말하고 있는 것이예요." 화검운은 그 말에 다소 놀란 듯이 입을 열어 다시 물었다. "아니, 그럼 무아진경상의 두 번째의 비급이 이미 나타났다는 말이오? 그리 고 다른 하나의 이기라면 바로 천황도(天皇刀)가 출현했다는 말이오?" 단목소소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지금 알고 있는 바에 의하면 두 번째의 비급은 무아일수(無我一手)라 는 것인데 여러 사람들 사이로 떠돌고 있는 중이고, 또한 천황도는 이곳에 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서 흑도무림인들의 수중에 있는 상태예요. 아마도 당신이 받았던 비급의 이름은 무아일장(無我一掌)이라는 것이었겠죠?" 화검운은 포권하며 대답했다. "단목 낭자에게 무엇을 더 숨기겠소? 확실히 내가 얻었던 비급은 바로 무아 일장이라는 것이었소." ─────────────────────────────────────── 일반연재 [백상] 종남사부 6권 제42장 -b- 총 Page : 9 -------------------------------------------------------------------------- ---- 게 시 자 : tohana(박성호) 게 시 일 : 97/04/15 01:04:42 수 정 일 : 크 기 : 6.8K 조회횟수 : 70 [백상] 종남사부 제6권 42장 -b- 04/07 18:16 308 line 올 린 이 : 양한우 HITEL ID : hanwoo71 제42장.(2) 서광(瑞光) 단목소소는 미소하며 대답했다. "지금 바로 그 네 가지의 보물들 때문에 장안성 내의 거의 대부분의 무림인 들이 탐욕을 당하기도 했죠." 화검운은 다시 물었다. "그런데도 아직 그 임자가 정해지지 않았다는 말이오?" 단목소소는 대답했다. "아직 제대로 임자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겠죠. 만일 천상팔패 의 사람들이나 화 공자와 같은 사람이 그것을 취득하게 된다면 문제는 달라 지게 되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아직은 그저 능력(能力)도 없으면서 탐욕이 앞서는 무리들에게로 그러한 보물들이 왔다갔다하고 있는 중이예요." 화검운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다시 물었다. "그런데 당신들은 어째서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런 보물들을 차 지할 생각을 하지 않소?" 단목소소는 다소 고소(苦笑)를 지으며 대답했다. "우리는 지금 우리들의 분수를 알고 있는 셈이죠. 만약 우리가 전력을 다해 서 움직인다면 그러한 보물들의 한두 개 정도는 얻을 수가 있을지도 모르지 만, 그러나 그것은 우리들의 힘이 아직 미약한 상태이기 때문에 얻는 것보 다는 잃는 것이 더욱 많을 것이예요. 우리는 일단 자제하기로 했어요." 화검운은 지금 단목소소의 맑고 아름다운 두 눈에서 실로 조용하고 밝은 지 혜(智慧)의 빛이 일렁거리고 있는 것을 보고는 실로 그녀는 세상에서 평가 하고 있는 수준보다 훨씬 대단한 여자라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만일 그 렇지 않았다면 결코 무산신녀문의 문주와 같은 사람이 그녀에게 윗자리를 양보하지 않았을 것이며, 게다가 당금의 두 개의 거대한 축(軸)이라고 할 수 있는 백의맹과 흑풍사에 지혜롭게 대적할 수 있는 무거운 짐을 맡을 수 가 없었을 것이었다. 화검운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기는 그러한 방향이 지금으로서는 최선(最善)일 것이오." 단목소소는 이에 다시 말했다. "하지만 우리라고 해서 전혀 어떤 일에 대해서 호기심을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니예요. 그래서 말인데…… 화 공자께서 가능하시면 우리에게 잠시 동안 그 비급을 빌려 주실 수가 없나요?" (……) 화검운은 이에 다소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사실 그 비급은 지금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므로 빌려드릴 수가 없소." 단목소소는 다소 놀라서 다시 물었다. "아니, 그럼 그 비급은 이미 누구를 주었나요?" 화검운은 은근히 대답을 회ㅣ했다. "지금으로서는 그 일에 대해서 뭐라고 말할 수가 없는 상황이므로 대답할 수가 없구려." "……?" 단목소소는 잠시 화검운의 얼굴을 주시하다가 이윽고 가벼운 한숨을 불어쉬 며 천천히 몸을 이르켰다. "그렇다면 할 수가 없군요. 우리는 이만 헤어지기로 하고 나중에 다시 얘기 를 나누도록 하죠. 공연히 식사를 하시는 데 방해를 해드려서 미안……" 그때 느닷없이 바깥쪽에서 거의 아수라장이나 다름이 없을 듯한 요란한 소 음과 함께 찢어지는듯한 비명소리가 줄을 이었기 때문에 단목소소는 미처 말을 다 끝내지도 못하고 급히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 이게 대체 어찌된 일일까 하고 의아해 하며 고개를 앞쪽으로 길게 빼서 바 라보려는 순간에 이미 그 괴이(怪異)한 소란은 어느 사이엔가 누각의 내부 에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이문수는 갑자기 안색이 급변했다. 느닷없이 그 소란 소에서 자신의 문파 사람들의 음성이 섞여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사부인 이추수의 급박한 음 성까지 들려 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막아랏! 놈을 안으로 들어가게 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일이 잘 되지 ㅇㄴㅎ는지 뒤를 이어서 남자와 여자들의 비명 소리가 터져나왔고 그 소음은 공료롭게도 화검운 등이 있는 쪽으로 급격하게 다가 왔다. 이문수는 이에 단목소소보다도 먼저 장검을 뽑아 들고 밖을 향해 달려나갔 으며 이내 마악 뒤로 들어서고 있는 일단의 무리들과 마주치게 되었다. 아 니 기실 말하자면 뒤로 달려오고 있는 것은 무리라고 할 수가 있었지만 그 중심은 맨 앞에 있는 한 사람이었다. 화검운의 좌우에서 식사를 하고 있던 용아와 봉아는 일순 그 안으로 들어서 는 사람을 보게 되자 자신들도 모르게 놀라서 헛바람을 들이켰다. 알고 보 니 그 사람은 바로매우 낯익은 사람이었던 것이었다. 다름이 아니라 바로 어제 저녁때에 근처의 허름한 반점에서 지존검을 얻기 위해 광분하던 사람 들 가운데 장백파(長白派)의 장문인이었던 장백일살(長白一殺) 마우(馬牛) 라는 사나이였다. 원래 당시 그에게는 상당한 숫자의 수하들이 있었으나 지금은 왠지 곁에 한 명의 수하들도 보이지 않고 있었고, 게다가 온통 피로 목욕을 한 듯한 그의 전신에는 살기(殺氣)와 광기(狂氣)가 넘쳐흐르고 있었으며, 놀랍게도 또한 수중에는 예의 그 지존검을 들고 있었다. -- 지존검! 그렇다면과연 그 장백일살이라는 사나이는 그 지존검을 빼앗기 위해 자신 의 수하들도 모두 희생하고 다른 사람들을 제거해 냈다는 말인가? 그런데 더욱 기이(奇異)한 것은 그 장백일살 마우라는 사람의 눈빛이 이 순 간에 정상적인 것이 아니라 바로 악마적(惡魔的)인 살의(殺意)에 가득차고 있었던 것이었다. 마치 그것은 살인을 하고 싶어서 미친 사람과도 같았다. 사람들은 즉시 그의 모습을 보는 순간에 아까 조금 전에 어째서 밖에서 그 와 같은 소란이 벌어지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가 있었다. 원래 이 장백일살 마우라는 사람은 너무나도 지존검에 집착했던 나머지 크 게 살의를 일으켜서 심마(心魔)에 빠져들게 되었고 또한 밤새도록 자신의 의지마저 상실하여 마구 돌아다니던 중에 이곳에 이르러 지존검을 보고 달 려드는 사람들을 향해 끔찍한 살겁(殺劫)을 낳게 되었던 것이었다. 기실 이 장백일살 마우의 무공은 그저 절정급으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그다 지 공포스러울 정도는 아니라고 할 수가 있었는데 막상 지존검이라는 신병 이기(神兵利器)를 잡게 되자 그만 호랑이가 날개를 달고 용(龍)이 여의주를 얻은 듯이 금세 초절정급의 고수르 변신하게 되어서 누구도 그의 지존검의 서슬 아래 당해내지 못했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이때 이문수는 약간 생각이 모자랐었으므로 미처 그러한 생각을 하 지 못했고 지금 마우의 뒤를 이추수 등이 급히 쫓아오고 있는 것을 보고 이 를 자신이 막아야 하겠다는 생각만을 했다. 그리하여 그녀는 즉시 뽑아든 장검을 버리고 품속에서 하나의 예리한 단도(短刀)를 꺼내 들었는데, 그것 은 다름이 아닌 바로 어제 백룡성이 주었던 예의 그 칠성보도(七星寶刀)라 는 것이었다. 이문수는 실상 아직 지존검을 보지 못한상태였다. 다만 그녀는 이추수 등 이 매우 두려운 안색을 하고 있고 또한 마우가 들고 있는 장검이 기이한 느 낌을 주고 있는 것을 알고는 즉시 자신이 믿을 만한 보도인 칠성보도를 뽑 아 들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것은 그녀의 하나의 오류였다. 그로 인해서 무림사(武 林史)에서 오랫동안 이름을 날리던 이기(利器) 중의 하나인 칠성보도의 예 리함이 영원히 사라지게 되었다. 마우가 자신을 향해 지존검을 휘둘러 오는 것을 보고 이문수는 자신의 병기 는 짧은 것이므로 그 예봉을 피하리라 생각하고는 일단 신형을 급히 좌측으 로 피해서 칠성보를 휘둘러 갔는데 그 순간에 마우의 지존검 역시 비스듬히 곡선을 그리면서 변화(變化)했으므로, 비록 그로 인해서 심기(心氣)가 다소 흐트러져서 무형의 검기(劍氣)는 발출되지 않았으나 자연히 두 개의 병기가 서로 마주치게 되었다. 지금 이 두 개의 병기의 내력을 알고 있는 용아와 봉아를 비롯하여 많은 다 가오는 사람들은 일순 그와 같은 광경을 ㅂ고는 과연 어느 것이 더욱 훌륭 한 것인가를 판가름하는 계기가 될 것이었기에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보면서 마음 속으로 전율을 느꼈다. 그것은 무림인 특유의 강렬한 호기심을 의미하 고 있는 것이었다. 게다가 당사자인 이문수는 정작 결코 자신의 병기인 칠 성보도가 당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상태였다. 헌데 그 순간의 일이었다. 이문수의 그러한 굳건한 믿음에도 불구하고 그녀 의 칠성보도는 지존검에 닿자마자 싹! 하는 싸늘한 음향과 함께 그만 도신 (刀身)이 두 동강이가 나 버리는 것이 아닌가! 제43장.(1) 사인(死因)은 어디에 있는가? (……!) 이문수는 한 순간에 그러한 광경을 대하게 되자 그만 저절로 넋이 나가서 더 이상 손을 쓰지 못하고 망연한 표정으로 지존검을 바로보게 되었다. 그 녀는 실로 그 거무튀튀한 장검의 위력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아니 기실 그녀가 조금 전에 우연히 신형을 비틀어서 예봉을 피하지 않았다면 먼저 무 형 검기에 당했었을 것이라는 점을 아직 모르고 있는 상황에서도 그녀는 경 악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 지존검은 그 검날이 전혀 손상되지도 않고 멀쩡했으며 그것은 마치 무엇 이라도 먹어치운다는 불가사리처럼 칠성보도라는 이기(利器)를 단숨에 파괴 하고 계속해서 이문수의 목숨을 노리기 위해서 계속해서 떨어져 내려왔다. 지금 마우는 실로 살인에 미쳐 있어서 제정신이 아니었으므로 그렇게 빠르 게 휘두르는 지존검에 의해 이문수의 가녀린 육신은 금세 두 동강이가 되고 말 것 같았다. 게다가 이미 그 지존검에서는 순간적으로 무형의 검기가 거 의 한 자나 뻗어나오기 시작하고 있었으니 실제로 이문수의 위험은 보기보 다 더했다. 헌데 그 순간의 일이었다. 어디선가 느닷없이 하나의 백색 투명한 장영(掌 影)이 나타나더니 어느새 이문수의 바로 앞에 도달한 지존검의 무형 검기를 막아 가는 것이 아닌가! 쩌러렁! 사람들은 느닷없이 지존검이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앞쪽에서 그와 같은 예리 한 금속성의 소음이 들려 오는 것을 보고는 다함께 크게 경악하지 않을 수 가 없었다. 그렇다면 대체 느닷없이 나타난 그 백색의 투명한 장영의 정체(正體)는 무 엇일까? 다름이 아니라 그것은 바로 옥관음 단목소소의 절기 가운데의 하나 인 옥불수(玉佛手)라는 것으로서, 역시 단목소소 그녀가 일순간에 자신의 절기(絶技)를 발휘하여 이문수의 목숨을 구한 것이었다. 확실히 그 옥불수라는 절기는 능력이 탁월하여 어떠한 장력이라도 꿰뚫는다 고 하는 지존검의 무형 검기(無形劍氣)를 완전히 봉쇄해 버렸으며, 두 개의 기운이 중간(中間)에서 서로 부딪치는 순간에 단목소소는 가만히 서 있었으 나 정작 마우는 말할 것도 없고 이문수까지 그 압력의 진동을 강하게 느끼 며 각기 비척거리며 좌우로 물러나게 되었다. 그런데 이문수가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고 생각되는 순간에 마우는 더욱 더 광성(狂性)이 흉폭해져서 이번에는 자신의 앞에 있는 용아와 봉아를 향해 역시 지존검을 휘둘러 가는 것이었다. 이미 그 지존검의 막대한 위력을 알고 있는 용아와 봉아였기 때문에 그녀들 은 한 순간에 거의 대항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저 망연한 기색(氣色)을 보였다. 헌데 그 순간의 일이었다. 사람들의 눈앞에서 갑자기 뭔가가 환각(幻覺)처 럼 어른거리는 것 같았는데 용아와 봉아를 향해 가공(可恐)할 기세로 휘둘 러가던 그 지존검은 어느새 마우의 손아귀에서 사라지더니 다른 한 사람의 손 안에 들려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사람은 물론 용아와 봉아를 좌우에 거 느리고 앉아 있었던 화검운이었다. ……! 사람들은 화검운이 느닷없이 너무나도 빠른 손속을 펼쳐서 지존검을 빼앗아 버렸기 때문에 도무지 그 과정을 알아볼 수가 없었고, 그리하여 저마다 지 금의 현실에 대해서 그만 놀라고 불신(不信)에 차서 눈을 절로 휘둥그래 뜨 게 되었다. 이 마우가 휘두르는 지존검의 위력은 실로 가공스러워서 단목소소조차도 그 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절기(絶技)를 발휘하여 그것을 막아내었었던 것이 었는데, 그와는 달리 화검운은 마치 장난하듯이 손쉽게 지존검을 탈취해 버 렸으니 어찌 이것을 쉽게 이해할 수가 있을 것인가? (……?) 마우는 일순 자신의 손에 들려 있던 지존검이 없어졌다는 것을 뒤늦게야 알 고는 잠시 어리둥절해 하는 표정을 짓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게 되었는지 경 악한 안색으로 괴성을 지르며 밖으로 미친 듯이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마우에 의해서 실로 무수한 사람들이 죽었 갔 다. 그러나 아직은 그를 막는 사람은 없었다. 왜냐하면 느닷없이 신기(神 技)하게도 지존검을 손쉽게 빼앗은 화검운을 자세히 보기 위해 사람들의 시 선이 모두 그쪽으로 쏠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화검운은 그러한 현실을 파악하고는 다소 고소(苦笑)하며 자신의 손에 들려 져 있는 지존검으 ㄹ다소 멍청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이문수에 게 건넸다. "자, 이것은 이 낭자가 가지도록 하시오." 그런데 이문수는 잠시 흠칫 놀라는 듯하다가 이내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것 을 받지 않았다. "아니예요. 저는 그것을 받을 수가 없어요. 만일 제가 그것을 받는다면 불 과 하루도 가지 못해서 죽음을 당하고 말 거예요." 이문수는 자신의 손에 들려 있는 토막이 나 있는 칠성보도를 내려다보며 그 렇게 말했다. 그렇다. 기실 필부(匹夫)는 죄가 없으나 보물을 가진 것이 죄(罪)라고 하는 말이 있는 것처럼 그녀와 같은 사람이 지존검을 가지게 되면 불과 얼마 가 지 못해서 다른 탐욕에 젖어 있는 무리들에게 살해될 것이 뻔한 일이었다. 화검운은 이에 하는 수 없다는 듯이 이번에는 그것을 단목소소에게 건네주 었다. "그럼 단목 낭자 당신이 이것을 가지도록 하시오." 단목소소는 그 조용한 얼굴에 가벼운 미소를 떠올렸다. "제가 왜 그것을 가져야만 하는 거죠? 그것의 임자는 바로 당신이 아닌가 요? 우선 당신의 손에 들어온 것이고 게다가 당신과 같은 사람의 수중에 들 어가게 되면 다시 난리가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니 역시 당신이 가지도록 하 는 것이 좋겠어요." "하하, 이러면 내가 미안한 노릇인데……" 화검운은 은은하게 미소하며 하는 수 없다는 듯이 그 지존검을 옆에 있는 용아와 봉아에게 건네주었다. 그런데 용아와 봉아는 문득 무심코 그것을 한 번 들어 보려다가 안색이 빨 갛게 변했다. 알고 보니 이 지존검은 겉으로는 그렇게 보이지 않으나 실제 의 무게는 실로 거의 백 근이나 나가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화검운은 용아와 봉아가 그것을 가지고는 행동이 불편할 것 같아서 이내 다 시 그것을 자신의 손에 들었다. 그때 문득 사람들 가운데에서 급히 한 사람이 달려나오며 단목소소를 향해 소리쳤다. 그는 등에 한 자루의 다소 길쭉해 보이는 장검을 매었는데 다름 이 아니라 바로 해남검파(海南劍派)의 문주(門主)인 환상일검(幻像一劍) 설 강(薛剛)이라는 중년인이었다. "단목 소저! 지금 금창보에 백의맹주(白衣盟主)가 나타났다고 하오." -- 백의맹주. 그 얘기는 당금과 같은 상황에서도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기에 충분한 것이 었다. 사람들의 관심은 이내 화검운이 들고 있는 지존검에서 급격하게 그 백의맹주에게로 향했는데, 그것은 그가 당금의 강호상에서 그만큼 중요한 몫을 차지하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었다. "백의무성(白衣武聖) 백무심(白武心)이 나타났다는 말인가요?" 환상일검 설강은 한쪽에 서 있는 화검운 등을 다소 의식하는 듯이 바라보면 서 고개를 끄덕여서 대답했다. "백무심뿐만 아니라 강호성수(江湖聖手) 황순양(黃純陽)과 신주검왕(神州劍 王) 정상송화(井上松和), 그리고 도황(刀皇) 늑덕홍(勒德洪)도 함께 나타났 다고 하오." 이 강호성수 황순양이나 신주검왕 정상송화, 그리고 도황 늑덕홍 등은 각기 성수곡(聖手谷)과 검총(劍塚), 그리고 도막(刀幕)의 당금의 주인들이었다. 그들의 신분은 백의무성 백무심과 거의 다르지 않으며 당금의 백의맹의 주 축을 이루고 있는 상태였다. 사람들은 그와 같은 얘기를 듣고는 하나같이 흠칫하고 놀랐다. 게다가 환상일검 설강은 다시 전음으로 단목소소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 다. "그 무아일수(無我一手)라는 비급은 성수곡의 소군주인 황 소저(黃小姐)에 게 넘어갔다고 하오." 성수곡의 소군주 황 소저라면 바로 황약화(黃若華)를 가리키는 말이다. 화검운은 이미 거의 식사를마친 데다가 이들이 나름대로의 논의할 사항들이 있는 것을 보고는 이윽고 인사를 하며 자리를 떴다.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화검운의 일거수 일투족을 주시하며 그에게 쉽게 눈 길을 떼지 못했으나 이윽고 화검운과 용아 봉아가 여귀객잔으로 돌아가 버 리자 거기까지 따라오는 사람들은 하나도 없었다. 비록 지존검에 대한 탐욕 이 강하기는 해도 신비스러울 정도로 고강한 화검운의 무공을 보고는 하나 같이 그 욕심을 포기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세 사람이 마악 여귀객잔에 이르렀을 때 마침 그들을 찾아온 손님이 하나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그는 바로 종남파의 현임 장문인 종남수사(終 南秀士) 화정룡(花廷龍)이라는 사람이었다. "아니, 무슨 일로 그렇게 항상 바쁜 장문인이 직접 나를 찾아 오셨는가?" 화정룡은 다소 안색을 붉히면서 대답했다. "저를 놀리시는군요. 저는 항상 노력을 하지만 아무래도 늘 부족한 형편이 어서 아저씨께 늘상 죄송스러운 마음뿐입니다." 화검운은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그런 얘기는 하지 말도록 하세. 그래 무슨 일로 오셨는가?" 화정룡은 대답했다. "금창보에서 이제 본격적인 영웅대회가 열리게 되어 있습니다. 거기에서 백 의맹주가 실제적인 선전포고(宣戰布告)를 할 것이라고 하는데, 기왕이면 아 저씨께서도 그곳에 참석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화검운은 미소했다. "자네는 알고 보니 그들이 부탁을 받고 왔군. 하지만 나도 실은 그곳으로 한 번 가 보고 싶었으니 함께 가기로 하세." 네 사람은 그리하여 남쪽 지역에 있는 금창보로 향하게 되었는데, 그렇게 길을 가는 도중에 느닷없이 한 가지의 기이한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대로(大路)변에 다소 낯익은 사람들이 둘러서 있었는데 그들은 바로 와룡회 (臥龍會)의 소속인원들인 제갈세가의 신산자(神算子) 제갈현상(諸葛玄相) 등이었으며 하북팽가의 가주 철혈탈백도(鐵血奪魄刀) 팽원산(彭遠山)도 함 께 있었는데, 그들은 각기 다소 비탄에 빠진 표정으로 뭔가 숙의하는 모습 들이었다. 화검운 등은 그 옆을 지나면서 그들의 가운데를 바라보았는데 뜻밖에도 그 들의 중앙에 시신(屍身)이 되어서 길게 누워 있는 사람은 바로 제갈소홍(諸 葛素紅)이 아닌가! 불과 어제 저녁만 해도 장원에 나타나서 화검운에게 눈부신 알몸을 보였었 던 그 아리따운 소녀가 이제는 차가운 시신이 되어서 바닥에 길게 누워 있 는 것이었다. ……! 그러한 사실에 비단 화검운뿐만 아니라 용아와 봉아도 마치 기절할 듯이 놀 라서 하나같이 안색이 변했다. 그 무렵에 문득 그들에게 두 명의 소녀들이 다소 반색을 하며 다가왔다. "화 공자(花公子), 당신이었군요. 대체 어디를 그렇게 가시는 거죠?" 다름이 아니라 그녀들은 화검운에게도 매우 낯익은 황약화와 악산산이었다. "우리는 지금 금창보의 영웅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가는 것이오." 말과 함께 앞에서 길을 안내하고 있는 화정룡을 가리키자 악산산 등은 이내 화정룡에게 인사를 했다. "우리도 마침 그쪽으로 가고 있었던 참이었는데 잘 됐군요." 이어 악산산은 문득 생각난 듯이 화정룡에게 입을 열어 물었다. "참! 화 대협께서는 얼마 전에 저 화 공자에게 많은 재산을 주셨다고 그러 던데 그것은 사실이었나요?" 화정룡은 헌데 그 말에 다소 어리둥절해 하는 표정이었다. 그는 다소 어리 둥절해 하다가 이내 웃으며 대답했다. "우리 아저씨의 재산은 아주 많은데 왜 하필이면 나에게 재산을 구하겠소?" ……? 악산산은 그 대답에 일순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화검운을 돌아보았다. "그럼 당신의 말은 거짓말이었나요?" 화검운은 담담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원래 우리 가문의 재산은 저 조카가 관리하고 있었는데 내가 돈이 필요하 게 되어서 달라고 했던 것이니 그 말이 그 말이 아니겠소?" 악산사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물었다. "저 제갈 낭자는 어제 저녁에 당신과 함께 있었다고 들었는데 그녀의 죽음 은혹시 당신과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닌가요?" 화검운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와는 하등의 관계가 없는 일이오. 원래 그녀는 어제 저녁때에 이미 나와 헤어져서 금창보가 있는 곳으로 되돌아갔었던 것이오." 이때 용아가 악산산에게 물었다. "그 제갈 낭자의 사인(死因)은 무엇이죠?" 악산산은 용아를 돌아보며 대답했다. "그녀는 비수에 심장을 관통당했어. 그와 같은 수법은 누구나 할 수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쉽게 누구의 짓이라고는 말할 수가 없을 거야." 봉아가 말했다. "아니예요. 실로 그와 같은 사람의 심장에 쉽게 비수를 꽂을 수 있는 사람 은 그다지 많지 않을 거예요." 그렇다. 기실 제갈소홍과 같은 사람의 심장에 그처럼 간단하게 비수를 박아 넣을 수 있는 사람은 아주 가까운 사람이거나 아니면 무공이 고강하여 그녀 가 전혀 손을 쓰지 못할 정도의 사람일 것이었다. 아니 어쩌면 그 두 가지 의 요건을 전부 갖춘 사람이 흉수(兇手)일 수가 있는 것이며, 대체 그녀가 왜 그와 같은 흉수에게 죽음을 당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 보면 흉 수가 누구인지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니까 봉아의 말은 실로 당연한 듯이 보이면서도 사태의 핵심을 찌르는 말이라고 할 수가 있었 다. 화검운은 문득 황약화를 향해 물었다. "듣자니 당신에게 이미 그 한 권의 비급이 돌아갔다고 하던데 그게 사실이 오?" 황약화는 가볍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어요. 그런데…… 당신의 그 비급은 이미 저 제갈 낭자에게 주었던 것이 아닌가요?" (……) 화검운은 문득 황약화의 분석력이 상당히 뛰어난 것을 보고는 웃으면서 대 답했다. "그렇소. 사실 나는 어제 저녁때에 그 비급을 주어서 그녀를 보냈던 것이 오. 헌데 지금은 절허게 될 줄이야…… 혹시 그녀에게서 비급이 발견되었 소?" 황약화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녀에게서 비급은 발견되지 않았어요." 악산산과 용아 봉아 등은 제갈소홍에게 그 비급이 있었다는 말을 듣고 매우 놀라다가 이윽고 악산산이 물었다. "그렇다면 그녀는 바로 그 비급 때문에 죽음을 당했다는 말인가요?" 화검운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반드시 그렇다고만은 말할 수가 없겠지만 아무튼 그것과 관련이 없는 것도 아닐 것이오." 봉아가 말했다. "어쨌든 그 비급이 있는 곳에 흉수가 있을 것이 아닌가요?" …… 사람들은 그 무렵에 거의 금창보에 다가가고 있었는데 금창보에 거의 다다 를 무렵에 문득 한 가지 기이한 광경을 보게 되었다. 하나의 광장(廣場)이 있는 곳에 수십 명의 무림고수들이 가운데를 에워싸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 아주 눈에 익은 사람인 천상신룡(天上神龍) 백능풍 (白凌風)이 한 자루의 기이(奇異)한 도(刀)를 높이 쳐들고는 이렇게 소리치 고 있었던 것이었다. ─────────────────────────────────────── 일반연재 [백상] 종남사부 6권 제43장 -b- 총 Page : 13 -------------------------------------------------------------------------- ---- 게 시 자 : tohana(박성호) 게 시 일 : 97/04/16 13:56:43 수 정 일 : 크 기 : 9.5K 조회횟수 : 33 [백상] 종남사부 제6권 43장 -b- 04/07 18:16 401 line 올 린 이 : 양한우 HITEL ID : hanwoo71 제43장.(2) 사인(死因)은 어디에 있는가? "여러분! 보다시피 이 천황도(天皇刀)는 무림의 이기(利器)지만 무수한 피 를 부르는 마물(魔物)이기도 한 것이오. 따라서본인은 이것을 거두어 백의 맹(白衣盟)의 총단에 보관할 것이니 여러분들 가운데 이의가 있으신 분은 지금 말씀해 주시오!" "저것이 바로 그 천황도라고?……" 길을 가다가 우연히 그와 같은 광경을 목격한 일행은 하나같이 놀랐다. 천 황도라고 하면 바로 지존검과 함께 당금의 무림삼보의 하나인 이대 신병이 기(神兵利器)의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일행이 다시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니 그 천황도는 약간 날이 굽어져 있는 칼이었는데, 지존검과는 달리 도신(刀身)에서 눈부신 백광(白光)을 줄기줄 기 내뿜고 있어서 가히 천하의 신병이기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가 있을 것 같았다. 햇빛에 반사되어 번쩍이는 그 도광(刀光)은 주위를 훤하게 밝히고 있어서 시력이 낮은 사람은 감히 쳐다보기도 어려울 지경이었는데, 주위의 사람들이 천상신룡 백능풍의 그러한 말에 대해서 저마다 분분히 외치고 있 는 모습들이 이어서 눈에 들어왔다. 악산산이 잠시 망연한 기색으로 그쪽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가볍게 한 숨을 내쉬며 화검운에게 말했다. "결국 두 개의 신병이기 가운데 남은 하나는 저 백능풍에게로 돌아가 버렸 군요. 실로 그가 이미 그것을 차지하였는데 누가 감히 그것에 욕심을 품을 수가 있겠어요?" 그렇다. 하기는 당금의 천하에서 공공연하게 천룡무가의 대공자(大公子)에 게 도전할 사람은 없을 것이니 이제 무림삼보 가운데 한 가지인 신병이기는 행결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었다. 일행은 그렇게 생각하며 발길을 계속하여 다시 금창보에 이르렀다. 금창보의 모습은 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백의맹주가 직접 나타났기 때문인지 더욱 많은 사람들이 장원의 주위에 가득 어슬렁거리고 있었는데, 정문을 지키고 있던 그 무영창(無影槍) 양곤(楊坤)도 이번에는 그저 웃으며 인사를 할 뿐으로 다시 방명록에 서명을 하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일행은 곧장 금창보의 내부로 들어가서 넓은 연무장에 가득 차 있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게 되었는데, 종남수사 화정룡은 역시 같은 구파일방 의 장문인들과 어울리기 위해 그들이 있는 쪽으로 가고 화검운은 여전히 악 산산 황약화와 함께 어울렸다. 장원 내에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었고, 나타난다는 백무심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었으므로 일행은 한참 동안 주위를 거닐다가 이윽고 한쪽에 주저앉아서 시간을 보내게 되었는데, 문득 화검운이 입을 열어 황약 화에게 물었다. "황낭자, 아까 그 무아일수라는 비급을 갖게 되었다고 했는데 우리 기왕이 면 그것을 서로 바꾸어 보는 것이 어떻겠소?" 악산산은 그러한 말을 듣자 이내 다소 반색하는 기분이었다. 왜냐하면 만일 두 사람이 비급을 서로 바꿔 보게 되면 옆에 있는 그녀도 뭔가 한 가지는 얻을 것이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황약화는 왠지 회의적인 표정이었다. "당신은 이미 그 비급을 남에게 주어 버렸다고 하지않았나요?" 화검운은 웃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이미 그 내용은 나의 이 머리 속에 담겨져 있는 것이므로 아무런 상관이 없소." ……! 사람들은 화검운의 말을 듣고 다시 한 번 놀랐다. 한 권의 비급을 그대로 암기한다고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용아와 봉아도 아직 화검운이 어떤 비급을 암기하는 것을 보지 못했는데 대체 언제 그랬을까 하고 의아해 하는 기색이었다. 황약화도 다소 놀라는 기색으로 화검운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웃으며 말했 다. "놀라운 일이로군요. 하지만 나는 당신처럼 그런 능력(能力)이 없을 뿐만 아니라 비급을 다른 사람에게 주어 버렸으니 그럴 수가 없군요." 이번에는 화검운 등이 놀랐다. "아니, 당신도 이미 그 비급을 누구에게 주어 버렸다는 말이오?" 악산산도 그 말을 듣고 내심으로 생각했다.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로구나. 알고 보니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와 같은 비급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 같잖아?) 화검운은 다시 물었다. "대체 누구에게 그것을 주었다는 말이오?" 황약화는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당신이 그 비급을 제갈 낭자에게 무슨목적으로 주었는지 말할 수가 없는 것처럼 저도 누구에게 그것을 주었는지 밝혀 드릴 수가 없네요." 화검운은 다소 고소(苦笑)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는 피장파장이로군." …… 그 무렵에 단상에서 커다란 소리가 들려 왔다. "지금 곧 맹주(盟主)님께서 나오시니 여러분들은 어서 이곳으로 모여 주시 기를 바라겠소이다." 그것은 역시 이 금창보의 주인인 신창(神槍) 양승조(楊承祖)의 말이었는데 사람들은 그 소리를 듣자 저마다 급하게 신법(身法)까지 발휘하여 단상이 있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화검운의 일행도 즉시 그쪽으로 다가갔다.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화검운의 일행은 다소 천천히 그쪽으로 걸어갔는데 이윽고 그들이 단상의 앞에 도착 했을 때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구름처럼 단상의 주변에 몰려들어 있는 상 태였고 또한 단상에는 이미 낯이 익은 사람들 이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새로 나타나 있었다. 그러니까 역시 아니나 다를까 백의맹주 등이 이미 나타나서 사람들을 향해 연설을 하고 있는 중이었던 것이었다. 악산산은 즉시 화검운을 향해 새로 나타난 그 네 명의 인물들에 대해서 비 교적 소상하게 가르쳐 주기 시작했는데 기실은 화검운도 그들 네 명에 대해 서는 잘 알고 있는 상태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당금의 세상에서 너무나도 유명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었다. -- 백의무성(白衣武聖) 백무심(白武心) 그는 지금의 나이가 거의 백여 세에 달할 것인데도 그 용모는 그저 중년인 (中年人)처럼 보였고 다만 머리가 이미 완전히 백발(白髮)이어서 그 나이를 짐작할 수 있게 할 뿐이었다. 그의 용모는 전에 보았던 그의 아들인 무적군 자 백룡성과 많이 닮아 있었으나 그보다 훨씬 숭고(崇高)한 기상이 어려 있 는 것 같았고 게다가 훨씬 잘생긴 얼굴이었다. 그의 전신에서는 흡사 광채(光彩)가 서광(瑞光)처럼 줄기줄기 흘러나오고 있는 것 같았는데, 지금 연설을 하고 있는 그의 음성은 일면 조용하고 은은 하게 들려 오고 있었으나 기실은 넓은 연무장 내의 많은 사람들의 귓전에 너무나도 분명하게 들리고 있었다. -- 강호성수(江湖聖手) 황순양(黃純陽) 바로 성수곡의 주인(主人)인 그는 나이는 백무심에 비해 약간 적어서 팔십 여 세였으나 용모는 평범한 느낌을 주는 편이었다. 대략의 얼굴의 형상은 상당히 준수한 편인데도 그사람의 성품이 초탈한 것이어서 그런지 그의 모 습은 사람들 가운데에서 그다지 두드러지게 보이지 않았다. 말하자면 강호 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상한 늙은 의원(醫員)과도 같은 인상을 주고 있 었는데, 실로 그와 같은 사람을 강호상에서 만나게 되면 그가 그토록 유명 한 사람이라는 것을 상상도 하지 못할 것이었다. -- 신주검왕(神州劍王) 정상송화(井上松和) 그는 역시 동영의 부상국(扶桑國)에서 온 사람인데 용모는 그다지 잘생긴 편은 아니었으나 실로 예리한 기운이 한눈에 느껴지는 인물(人物)로서 나이 는 팔십여 세 정도였다. 그는 당금의 검총(劍塚)의 주인이며 또한 강호십대 용봉의 하나인 일검귀견수 상원웅장의 사부격인 인물이었다. -- 도황(刀皇) 늑덕홍(勒德洪) 막북의 인물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 사람은 상당히 체격이 크고 우 람한 편이었다. 나이가 역시 팔십여 세에 달하고 있지만 골격이 워낙에 장 대한 바람에 중년의 한창때와 같은 건장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으며, 체 구가 큰 만큼 그 인물됨이 거대하다는 느낌을 심어주고 있었다. 물론 그는 당금의 도막(刀幕)의 주인이며 또한 호면패도 늑가희의 사부격인 사람인 것 이었다. 지금 단상 위에는 백무심이 앞으로 나서서 한창 연설을 하고 있었고 나머지 세 명의 최강자(最强者)들은 그저 뒷자리에 나란히 앉아서 듣고 있었다. 사위는 아주 조용했고 바늘 떨어지는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으며 백무심의 음성은 멀리까지 울려퍼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당금의 현실에서 어차피 불가피한 혈겁(血劫)이 예고되는 만 큼 우리는 가능하면 그 혈겁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이제까지 움직여 왔던 것 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도저히 어쩔 수가 없는 국면이 되었고 우리는 더 이 상 좌시(坐視)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우리의 적들과 대대적인 전 면전을 벌이기로 결정했던 것입니다." 그때 문득 장내에서 한 사람이 몸을 일으키며 소리쳐서 말했다. "그렇다면 백 맹주께서는 이미 적들의 소재에 대해서 파악하고 계시단 말씀 입니까?" 그 사람은 거지 차림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개방의 제자인 모양이었는 데, 나이가 많은 것으로 보아 아마도 개방의 장로(長老)급의 인물인 모양이 었다. 백무심은 그를 향해 대꾸했다. "아직은 발표할 단계는 아니지만 우리는 이미 충분히 적도들의 정보를 알고 있는 상태이오. 다만 좀더 시기를 노렸다가 적들의 숨통을 죄일 것이며, 지 금부터는 강호상에 백의맹과 흑풍사가 서로 공존(共存)하지 않겠다는 선전 포고(宣戰布告)를 하겠다는 것이오. 실로 지금부터 강호의 역사는 달라져 갈 것이오." 단상 위에 앉아 있던 사람들 가운데에서 한 사람이 몸을 일으켜서 말했다. "그렇다면 백 맹주께서는 이미 모든 일에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까?" 그 사람은 바로 다름이 아니라 청풍회의 회주인 만운룡(萬雲龍) 육립정(陸 立鼎)이었다. 백무심은 육립정을 한 차례 돌아본 연후에 장내의 사람들을 바라보며 대꾸 했다. "우리는 이미 충분한 계획을 세워 놓았습니다. 그러나 적도들의 이목을 생 각해서 아직은 그것을 발표할 수가 없는 단계히고, 다만 여러분들에게 지금 해야 할 일들에 대해서 제시할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적들의 소재를 파악하고 탐색하며 제거해 나가는 것입니다." 장내에서 다시 한 사람이 입을 열어 말했다. "그런 파상적인 공격이 효과가 있을까요?" 백무심은 그 소리를 듣자마자 이내 그쪽으로 시선(視線)을 돌렸으며 다소 눈빛을 기이하게 빛냈다. 악산산과 용아 등도 다소 기이한 표정들이었다. 다름이 아니라 방 금 전에 입을 열어 말한 사람은 바로 화검운이었기 때문 이었다. 백무심은 화검운의 얼굴을 잠시 주시하다가 입을 열어 대꾸했다. "아직은 뭐라고 효과를 기대할 수가 없겠지만 일단 격전이 시작되면 나는 우리 강호동도 여러분들의 정의감(正義感)이 한꺼번에 격발되어서 기필코 적도들을 이 땅 위에서 몰아내고 평화를 가져 올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 는 것이오." ……! 이어 백무심은 보다 구체적인 흑풍사 세력의 소재에 대해서 거론하기 시작 했다. 화검운은 묵묵히 그 얘기를 들었으며, 이윽고 백무심이 물러가자 많은 사람 들이 여러 가지의 패로 나뉘어지기 시작했다. 흑풍사의 세력들이 곳곳에 흩 어져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백의맹에서도 각기 무리를 지어서 그들을 응징 하겠다는 것이었다. 화검운 등은 미처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를 결정하지 못해서 망설이고 있는 데 문득 그들의 앞으로 매우 낯익은 사람들이 다가오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제6권 끝> 제44장. 화중화(花中花) 바로 천상신룡 백능풍 등의 다섯 명의 천하기재들이었다. "우리는 지금 백화방(百花幇)의 소속인 백화루(百花樓)로 가려고 하고 있는 중이오. 마침 그곳에는 무아진경의 하나가 있다고 하는 소문이 있는데 모두 함께 가지 않겠소?" 그 말은 백능풍이 황약화를 향해 한 말이었으나 은연중에 화검운을 겨냥하 고 있다는 것을 능히 짐작할 수가 있었다. 악산산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저는 저쪽에서 아버님이 부르시므로 가 봐야 하겠어요." 악산산은 그렇게 말하고 사라졌으며 화검운은 잠시 생각하다가 황약화를 바 라보니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것을 보고는 역시 웃으며 말했다. "나는 기생집을 그다지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은 흥미가 있을 것 같 으므로 한 번 따라가 보기로 하겠소." 그리하여 화검운과 용아 봉아를 비롯하여 강호십대용봉의 속에 들어가는 여 섯 명의 기재들은 일제히 백화루를 향해 곧장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백화루(百花樓)는 역시 부호(富豪)들이 많이 살고 있는 남쪽의 지역에 위치 하고 있었으나, 비록 같은 남쪽 지역이라고 해도 워낙에 지역이 방대하여 금창보에서 한참이나 걸어가서야 비로소 일행은 그 호화로운 누각의 입구에 도달할 수가 있었다. 그 백화루는 일면 길상루와 비슷하게 방대한 지역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 나 기실 이 남쪽의 지역은 땅값이 비쌀 뿐만 아니라 또한 백화루는 주루가 아닌 여러 가지를 겸하고 있는 기루(妓樓)이기 때문에 형상은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말하자면 거대한 누각들이 대부분이 삼층 이상으로 지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지극히 호화롭고 또한 요염하게 단장한 기녀(妓女)들이 어디에 서나 쉽게 볼 수가 있어서 일단 안으로 들어서기만 하면 그야말로 이곳이 지상(地上)의 낙원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 백화루의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그다지 어려움이 없었다. 아주 잘생기고 한눈에 번쩍 뜨이는 젊은이들이 한꺼번에 들이닥치자 정문에서 대기하고 있 던 기녀들이 그들을 자연스럽게 반겼고 백능풍 등은 마치 손님이라도 되는 것처럼 기녀들의 뒤를 따라서 안으로 들어갔다. 일행에는 용아와 봉아를 제 외하고서라도 황약화와 백유 등의 여자들이 있었는데, 그녀들은 자신들의 목적을 의식한 듯이 별다른 거부감도 없이 남자들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이 넓은 백화루의 대지와 곳곳에 늘어서 있는 화려한 누각들, 그리고 그것 들을 조화있게 연결시킨 거대하고 웅장한 인공가산이나 정원들 등은 실로 보는 이들의 눈을 현란하게 하기에 족한 모습들이었다. 백능풍 등은 기녀들에게 명해서 백화루에서도 가장 화려하고 거대한 건물로 서 거대한 오층의 전각으로 이루어져 있는 백화전(百花展)으로 안내할 것을 지시했다. -- 백화전. 그것은 말하자면 대여섯 개의 누각들을 하나로 모아서 지어 놓 은 것 같은 거대하고 웅장한 건물이었는데, 일층은 거대한 주루로 사용되고 있었고, 이층과 삼층 사층은 기루(妓樓)들이었으며, 오층은 백화루주(百花 樓主)의 거처로 이용되고 있었고, 또한 지하는 도박장으로 사용되고 있었 다. 백능풍은 일단 백화루에 도착하자 먼저 지하에 있는 도박장으로 향했다. 도박장. 그곳에는 이미 수십 명의 사람들이 화려한 의복을 걸치고 둘러앉아 서 한창 도박에 몰두하고 있었는데, 그들이 사용하고 있는 도박의 기구에는 실로 여러 가지가 있었다. 백능풍은 일행을 이끌고 우선 주사위를 사용하고 있는 곳으로 갔는데, 마침 그곳에는 제법 커다란 판이 벌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도박을 하고 있던 사 람들은 일행이 들이닥치자 다소 놀라는 표정이었으나 이내 역시 손님일 것 이라고 생각하였는지 자신들의 패를 보는 일에 열중했다. 백능풍은 일단 그 주사위 놀음을 하고 있는 곳으로 가서 이렇게 물었다. "누가 이곳의 주인이오?" 다른 사람들과 한창 그 놀음을 하고 있던 사람들 가운데에서 하나가 다소 퉁명스러운 태도로 대꾸했다. "내가 바로 이곳의 책임자이고 물주요." 백능풍은 그 중년 사내를 향해 다시 말했다. "나는 당신과 단둘이 놀고 싶은데 그렇게 할 수가 있겠소?" 그 중년 사내는 백능풍과 일행의 차림새를 한 차례 바라본 다음에 음침하게 눈알을 굴리면서 대꾸했다. "흐흐흐, 이곳에는 너무 돈이 많아서 도박을 하지 못했던 사람은 없소이다. 손님들이 도박을 하고자 하신다면 못할 것이야 없겠지만 우선은 돈을 보여 주셔야 할 것이 아니겠소이까?" 그러자 백능풍은 즉시 자신의 허리춤에서 한 자루의 칼을 꺼내서 대 위에 올려 놓았다. "내가 걸려고 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오." 그 칼은 다름이 아닌 천황도(天皇刀)였는데 일단 백능풍이 칼집에서 칼을 뽑아내자 거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도광(刀光)이 일시에 도박장을 훤하게 만 드는 것 같았다. 그것은 마치 그 천황도는 직접 사용하지 않아도 그 가공할 기세로써 상대를 제압할 수가 있다고 하는 것 같았다. 그 중년 사내는 처음에는 웬 칼인가 하고 의아해 하는 눈치였으나 이내 그 칼의 정체를 알아차렸는지 놀란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우리에게는 그러한 신병이기가 없으므로 나는 할 수가 없겠소이다." 백능풍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이런 신병이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돈도 아닌 것이오. 나 는 다만 이곳 백화루의 주인이 우리 앞에 한 번 나타나 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오." 이에 중년 사내는 더욱 놀라서 말했다. "그런 일이라면 나로서는 결정할 수가 없는 일이니 일단 위에 올라가서 허 락을 받은 다음에 알려드려야 하겠소이다." 백능풍은 그다지 다그치는 기색이 없었다. "그렇게 하시오." 그가 다시 예의 그 천황도를 집어들자 중년 사내는 급히 뒷문으로 해서 위 층으로 사라져 버렸다. 이윽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일행이 주위를 둘러보며 기다리고 있는데 문득 도박장의 뒷문이 열리면서 한 명의 얼굴에 면사(綿絲)를 드리운 요염 하고 가냘픈 체구의 화의여인(花衣女人)이 나타났다. 일행은 은연중 그쪽으로 시선을 보내고 있던 참이었는데 그녀가 나타나는 것을 보고는 시선을 집중했으며, 이어 그녀의 뒤를 이어서 예의 그 중년 사 내가 공손한 태도로 나타나는 것을 보고는 일순 그녀가 혹시 이 백화루의 주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이 백화루의 루주는 바로 백화방(百花幇)의 소방주로 서 나이는 스물다섯이고 용모는 그야말로 하늘 아래에서둘도 없을 정도로 아름답고 요염하여 일명 화중화(花中花)라는 별호를 가지게 된 음희아(陰喜 兒)라는 여자였다. 그녀는 강호오봉의 하나가 되어 있는 상태였는데 무공이 그다지 뛰어나지도 않으면서도 그처럼 높은 인정을 받고 있다는 것은 확실 히 범상한 일은 아닐 것이었다. 백능풍이 먼저 그 화의여인에게 질문을 던졌다. "당신이 바로 이곳의 루주이오?" 화의여인은 잠시 사람들을 둘러보더니 대꾸했다. "그래요. 내가 바로 루주인 음희아예요." 그녀의 그러한 음성은 비단 지극히 감미롭고 아름답기 그지없었을 뿐만 아 니라 가히 충격적인 내용이어서 이제까지 도박에만 열중하고 있던 많은 사 람들의 시선을 모으기에 충분했다. 음희아(陰喜兒)는 좌중의 시선이 자신에게 강렬하게 집중되어 있는 것을 보 고는 다시 백능풍을 향해 물었다. "여기에서 나를 보고자 한 사람들은 바로 당신들인가요?" 백능풍은 잠시 그녀의 전신을 훑어보는 듯하다가 담담한 태도로 대꾸했다. "그렇소. 하지만 생각보다 쉽게 만나게 되니 다소 실망스러운 점이 없는 것 이 아니로군. 나는 그래도 상당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했었소." 음희아는 그 말에 문득 파뿌리처럼 희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면사 속의 입 을 가리며 고혹적으로 웃었다. "그것은 당신의 잘못된 생각이예요. 당신이 내놓은 천황도는 실로 그 가치 가 헤아릴 수가 없는 것인데 제가 감히 즉시 나타나지 않을 수가 있겠나 요?" ……! 확실히 이 음희아라는 여자는 지극히 가냘픈 듯하면서도 전신에서 유연하고 도 가히 완벽에 가까운 미태(美態)가 파도처럼 일고 있어서 비록 얼굴은 보 지 못했지만 그야말로 모든 사람들은 실로 그녀의 아름다움을 실감할 수가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이 자리에함께 온 백유와 같은 여자의 용모는 지극히 아름다운 것이 었지만 그것은 다만 보통 사람들은 감당하기 어려운 고결(高潔)한 아름다움 이었지만, 이 음희아라는 여자의 아름다움은 실로 세속적(世俗的)이면서도 끝없이 부드럽고 달콤하며 마치 대지(大地)와도 같이 안온함을 주는 그런 형용할 수 없는 요염함이 깃든 아름다움이었다. 그러한 자태는 마치 어머니 의 한없이 아늑한 품속 같기도 하고 혹은 끝없는 열락(悅樂)이 숨겨져 있는 것 같았다. 실로 이 음침스럽고 혼탁해 보이는 도박장에서도 그러한 미태를 발휘할 수 있는 여자라면, 만일 그녀가 얼굴의 면사를 벗고 아름다운 방 안에 서 있는 상태라고 하면 상대는 그저 그녀의 얼굴을 보기만 하는 것으로도 이에 매혹 될 것 같았다. 기실 강호상에 요염한 여자들이 많다고는 하나 그녀들의 용모는 다소 어두 운 느낌을 주거나 환락적인 느낌을 주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 화중화(花中 花) 음희아의 자태는 요염하면서도 기이하게도 밝은 기운이 깃들어 있고 또 한 지극히 안온한 느낌을 주면서도 무한한 황홀감으로 유혹하고 있는 것이 어서 실로 세상에 둘도 없을 여자라는 것이맞을 것 같았다. 사람들은 일순 음희아가 그와 같은 동작을 한 차례 하는 것을 보고서 저절 로 멍한 표정이 되고 말았으며 실로 그러할진대 그녀가 이 백화루의 루주라 는 사실은 구태여 확인할 필요조차 없을 것 같았다. 많은 사람들은 다만 그 녀의 얼굴에 씌여져 있는 면사를 벗겨 보고 싶은 욕구만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었다. 백능풍은 다소 기이한 표정으로 음희아의 시선을 마주 대하면서 물었다. "그렇다면 당신은 매사에 그렇게 자신감이 있다는 말이오?" 음희아는 웃으며 대답했다. "이 백화루주라는 직책도 기실은 저절로 얻어지는 것은 아니예요. 게다가 그 천황도라는 유혹은 저로서는 감히 거절할 수가 없는 것이기도 하죠." 백능풍은 그녀의 시선을 마주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 "당신은 우리가 무엇 때문에 이곳에 나타나게 되었는지 아시오?" 음희아는 웃으며 대꾸했다. "그것은 혹시 그 천황도를 저희에게 주려는 것은 아니겠지요?" 백능풍은 음침하게 웃으며 말했다. "물론 그런 것은 아니오. 우리는 다만 한 가지 사실을 알고자 해서 왔던 것 이오. 이곳에는 그 무아진경의 비급이 하나 있다고 하던데 그게 사실이오?" 음희아는 그 말을 듣자 문득 눈빛을 반짝였다. "바로 그 일 때문에 오셨군요. 나는 사실 여러분들이 평범하지 않은 일로 오셨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러나…… 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는 말씀드릴 수가 없군요." 백능풍은 그 말에 다소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니, 무엇 때문에 이 자리에서는 말할 수가 없다는 것이오?" 음희아는 대답했다. "여러분들도 아다시피 나의 이 루주라는 직책은 사실 주인이라는 이름만 있 을 뿐이지 어떤 일에도 주인의 역할을 할 수가 없는 것이죠. 비록 그러한 것이 있기는 하지만 어떤 대가가 없는 한은 말씀드릴 수가 없어요. 그것은 여러분이 강요를 한다고 해도 마찬가지예요. 내가 함부로 그 얘기를 가르쳐 두린다면 나는 반드시 위의 분들에게 혹독하게 당하게 되어 있는 것인데 그 것은 차라리 당신들에게 그대로 당하는 편이 낫지 않겠어요?" (……?) 실로 이 음희아라는 여자의 말하는 태도나 접근 방식은 다소 남다른 점이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우선 특이하게도 매우 솔직해 보였는데 그러한 솔 직한 품성은 이런 유곽의 여자들에게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으면서도 오히 려 더욱어울려서 아름다움을 더하게 하는 것 같았다. 확실히 그녀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따라서 백능풍은 강요하지 않고 잠시 생각한 뒤에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 대가를 바란다는 말이오?" 음희아는 웃으며 대답했다. "본래 어떤 특별한 손님이 이곳에 오셔서 청탁을 한다면 저희들은 우선은 도박으로써 그 손님의 운을 시험해 보곤 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여러분들의 무공은 지극히 높은 것이어서 감히 그 어떤 도박사들도 당신들의 눈을 속일 수는 없을 거예요. 따라서 저는 보다 솔직한 방법을 쓰도록 하겠어요." 백능풍은 물었다. "그 솔직한 방법이란 무엇이오?" 음희아는 잠시 생각한 후에 대답했다. "만일 ㅈ가 그 비급을 잃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면 저는 대단히 혹독한 벌을 받게 되겠지만 그러나 제가 만일 그에 상응하는 어떤 물건을 얻게 하였다면 그러한 벌을 받지는 않게 되겠지요." 백능풍은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당신은 우리에게 어떤 것을 요구할 생각이오?" 음희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러나 저는 자신의 위치를 알고 있는 편이예요. 제가 아무리 그에 상응하 는 대가를 원한다고 해도 그것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저에게 있어서는 화를 자초할 뿐이겠죠. 따라서…… 저는 하는 수 없이 최 후의 방법을 선택하는 수밖에는 없어요." 백능풍은 웃으며 다시 물었다. "아니, 어떤 방법을 선택하겠다는 말이오?" 음희아는 되물었다. "당신은 여자가 어떤 일에 실패를 하고 나서 최후로 할 수 있는 일이 뭐라 고 생각하지요? 이를 테면 최후의 도피처 같은 것 말이예요." 백능풍은 잠시 생각하다가 대꾸했다. "그것은 혹시 은퇴하는 것이 아니오?" -- 계속 -- ─────────────────────────────────────── 일반연재 [백상] 종남사부 7권 제45장 -a- 총 Page : 15 -------------------------------------------------------------------------- ---- 게 시 자 : tohana(박성호) 게 시 일 : 97/04/16 13:59:16 수 정 일 : 크 기 : 10.9K 조회횟수 : 40 [백상] 종남사부 제7권 제45장 -a- 04/12 03:46 347 line 올 린 이 : 양한우 HITEL ID : hanwoo71 제45장.(1) 고소(苦笑), 그리고 미소(微笑) 음희아는 고혹적으로 소리내어 웃으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당신은 저희들을 너무나도 과대평가하는군요. 일반적으로 강호의 사람들은 저희들을 높게 평가할 수는 있어도 결국 저희들은 당신들에게 비한다면 별 볼 일이 없는 존재이지요. 제가 감히 윗분들의 눈을 피해서 은퇴를 할 수가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백능풍은 다소 의아한 기색으로 물었다. "그럼 대체 무엇이오?" 음희아는 담담히 웃으면서 대답했다. "호호, 당신은 그저 특별하게만 생각하니 쉬운 문제도 풀지 못하시는군요. 저는 여자이므로 마땅히 시집을 가야 하지 않겠어요?" 백능풍은 잠시 멈칫하다가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핫핫핫, 과연 그렇군. 당신은 나이가 이미 적당하게 되었으니 시집을 가는 것도 좋은 일이겠지!" 음희아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제가 시집을 갈 수 있는 남자는 거의 한정되어 있어요. 윗분들의 엄한 질책을 능히 견뎌낼 수가 있을 만큼 능력이 있는 사람이어야 하고 게 다가 저와 같은 사람과 혼인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신분이 훌륭한 것이 아니 어야 하며 또한 나이도 많지 않고 총각이어야만 하는 것이죠." 백능풍은 다소 음침하게 웃으며 물었다. 하지만 과연 당신이 일부러 그렇게까지 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일까?" 음희아는 다소 고소(苦笑)하며 대답했다. "저도 사실은 당금의 상황의 흐름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파악하고 있는 실 정이예요. 보아하니 앞으로 어떤 상황이 되든간에 제가 이와 같은 위치를 계속해서 고수할 수는 없게 될 것이 뻔하므로 오직 그 길만이 최선이라고 보는 것이예요." 백능풍은 다시 물었다. "그럼 과연 그와 같은 조건을 갖춘 남자가 이 세상에 있을까?" 음희아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와 같은 조건은 비록 다소 까다롭다고 할 수는 있으므로 거기에 해당되 는 사람이 많을 수야 없지만 그러나 세상은 넓고 인재는 많아서 그다지 사 람이 없는 것도 아니예요. 사실 이 자리에도 이미 그러한 조건을 완벽하게 갖춘 사람이 하나 있는 셈이니까요." ……? 사람들은 음희아의 말을 듣고서 일시 깜짝 놀란 빛으로 서로의 얼굴을 바라 보았다. 혹시 자신들 가운데의 누군가를 향해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닌가 하 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백능풍도 한 차례 고개를 돌려서 주위를 살펴보며 다시 물었다. "당신의 남편이 될 사람은 당연히 얼굴이 잘생겨야 하지 않겠소?" 음희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지는 않아요. 저의 신분이 비천한 편이고 또한 지금 저의 위치 또한 광명정대하다고 말할 수가 없는 입장이므로 저도 그렇게까지 까다롭게 주문 을 할 수가 없는 입장이지요. 저는 그저 아까 말한 그 조건에 부합되는 사 람이라면 만족해요." (……?) 백능풍은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가 문득 뭔가 생각이 떠올랐는지 웃으며 말 했다. "아! 나는 생각났소. 그 사람은 바로 저 사람이 아니오?" ……! 사람들의 시선(視線)은 일제히 백능풍이 가리키는 그 사람을 향해 못박히듯 이 강렬하게 집중되었다. 더러의 시선에는 매우 섭섭해 하거나 아니면 시기 하는 듯한 기색이 들어 있기도 했다. 그러나 실제로 용아와 봉아 등의 마음 속에는 그야말로 이 일은 황당무계하 고 있을 수가 없는 일이라고 생각되고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백능풍이 방 금 전에 가리킨 사람은 바로 화검운(花劍雲), 그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이곳 도박장에 있었던 사람들은 대체 어째서 화검운이 그 조건에 아주 부합 되는 사람인지 알 수가 없었지만 음희아는 일순 그를 향해 기이한 시선을 던지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 같기도 했다. 백능풍은 문득 이를 보고 통쾌한 듯이 웃어젖혔다. "핫핫핫, 이거야말로 축하할 일이로군!" 화검운은 이제까지 잠자코 침묵을 지키고 있다가 그만 좌중의 분위기가 이 상하게 흘러가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는 즉시 입을 열어 어색한 표정으로 음 희아를 향해 말했다. "아니, 설마하니 그 조건을 갖춘 사람이 바로 나라는 말이오?" 음희아는 화검운의 눈을 직시(直視)하며 기이한 시선으로 주시하다가 이윽 고 다소 미소하는 시선으로 되물었다. "혹시 당신은 이미 장가를 가셨다는 말인가요?" 화검운은 어이가 없어 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오. 내가 장가를 가고 안 간 것이 그렇게 문제가 된다는 말이오?" 음희아는 약간 기이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 그것이 결정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예요. 한 명의 남자가 여러 명의 여자를 거느리는 것은 결함이라고 할 수가 없는 일이니까요. 오히려 영웅(英雄)들일수록 더욱 많은 여자들을 거느린다고 하죠. 저는 그러한 사 람의 처첩이 된다고 해도 만족해요." 화검운은 더욱 어리둥절해 하며 물었다. "아니, 이거 정말로 나를 두고 그런 말을 했다는 말이오? 우리는 이제 겨우 처음 만나는 사이가 아니오? 나에 대해서 어떻게 알고 있다는 말이오?" 음희아는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도 비록 이런 기루를 운영하고 있기는 하지만 강호상의 일에 관심이 없 는 것은 아니랍니다. 게다가 당금에는 이곳에서 커다란 일들이 계속해서 터 지고 있는 실정이니 제가 그러한 사태의 추이를 관찰하지 않는다는 것은 오 히려 이상한 일이죠. 저는 요 며칠 동안에 갑자기 능력자(能力者)로 부상한 화검운(花劍雲), 화 공자에 대한 얘기를 이미 귀가 아프도록 듣고 있었어 요." ……! 화검운은 상대가 심지어 자신의 이름까지 들고 나오자 이제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서 그만 망연한 표정이 되고 말았다. 기실 그는 여자들과 잘 어울 리는 편이었으며 게다가 아직 누구에게서 그와 같은 적극적인 청혼과같은 얘기를 들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다소 당황해 하는 심정이었다. 화검운은 얼떨결에 다시 물었다. "나, 나와 함께 살고 싶다는 말이오?" 음희아는 일순 그의 좌우에 서 있는 용아와 봉아를바라보더니 미미하게 웃 으면서 오히려 되물었다. "나는 아직 당신의 신분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고 있으니 거기에 어떤 착오 가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군요. 혹시 당신은 나와 같은 여자를 싫어하는 것 은 아닌가요?" 화검운은 역시 엉겁결에 대답했다. "아니 사람이야 그 마음이 더욱 중요한 것이니 지금의 처지가 어떻다고 해 도 그 마음이 아름답고 성의(誠意)가 있다고 하면 되는 것이오." 음희아는 그 말에 즉시 그를 향해 허리를 굽히면서 예를 올렸다. "화 공자께서 저를 그렇게 보아 주시니 저로서는 감개무량이예요." 화검운은 그 인사를 받고 나서 더욱 당황해졌다. "아! 그렇다고 해서 내가 혼인(婚姻)하자고 하는 것은 아니오. 아! 이걸 어 떻게 하지?" 이어 그는 다소 초조한 기색으로 옆의 황약화에게 물었다. "황 낭자는 이를 어쩌면 좋겠소?" 백능풍이 대신 대꾸했다. "어쩌긴 뭐가 어떻다는 말이오? 사실 여기에 있는 사람들이 모습을 보면 알 수가 있겠지만 저 화중화(花中花)는 비록 이런 곳에 주인으로 있어도 행실 이 순결하여 아직 누구에게도 몸을 허락하지 않았다는 것이오. 게다가 그녀 는 당금의 강호오봉 가운데의 하나인데 무엇이 부족하다고 하는 것이오? 오 히려 이는 축하해야 할 일이 아니겠소?" "그…… 그럴까?" 화검운이 얼굴이 붉어져서 당황해 하는 것을 보고 백능풍은 이제 다시 음희 아를 향해 이렇게 물었다. "만일 내가 이 혼인이 성사되도록 주선해 준다면 당신은 그 비급이 있는 장 소를 나에게 가르쳐 주겠소?" 음희아는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예요.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은 쉽게 변할 수가 있는 것이니 일단은 예식을 거행한 다음에야 제가 믿을 수가 있으므로 그때에 가르쳐 드 리도록 하겠어요. 물론 그 예식은 간단하게 치룰 것이며 시간이 걸리지도 않을 거예요." 백능풍은 그 얘기를 듣고 수긍할 수가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이윽 고 화검운을 돌아보며 입을 열어 물었다. "자, 어떻게 생각하시오? 만일 당금의 강호 상황을 생각한다면 당신이 좀더 마음을 넓게 가지는 것이 어떻겠소? 그녀는 처첩이 돼도 상관이 없다고 하 니 그저 당신에게는 처첩이 하나 늘어난 셈이라고 치면 되지 않겠소?" 화검운은 그 말에 대답할 수가 없어서 얼굴이 시뻘개졌다. "아니 이거야…… 허허, 안된다고 할 수도 없고…… 사실 이렇게 할 필요도 없이 그저 그녀를 추궁해서 물어보면 되는 것이 아니오?" 그 말에 음희아는 일순 안색이 냉랭해지면서 말했다. "나는 그와 같은 방법을 쓴다면 결코 죽는 한이 있더라도 대답하지 않겠어 요!" 백능풍은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긴 그렇소. 그녀가 그와 같이 모질은 방법을 쓰지 말라는 보장이 없는 것이고, 또한 그렇게 된다면 앞으로의 우리의 행로(行路)에 지장이 생길지 도 모르는 일이오." 이어 백능풍은 태연하게 전음으로 이렇게 말을 보태었다. "화 공자! 이들은 그저 사마외도의 사람들에 불과하니 그저 예식을 치루는 척하다가 그녀가 대답을 하고 나면 모른 척하면 될 것이 아니오?" 화검운은 안팎으로 그와 같은 얘기를 듣게 되자 더욱 혼란스러운지 고개를 휘휘 내젓다가 다시 말했다. "아니야, 아니야! 나는 이 용아와 봉아를 보살펴야 하기 때문에 결코 그와 같은……" 그런데 화검운이 할 수 없다는 얘기를 하기도 전에 다시 백능풍이 빠르게 가로채서 말했다. "그녀들에 관한 얘기라면 염려하지 마시오. 우리들이 알아서 잘 보호해 드 리도록 하겠소. 아니 당신이 믿고 있는 이 황 소저(黃小姐)에게 맡긴다면 되지 않겠소? 안 그렇소, 황 소저?" 황약화는 이에 주저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그래요. 용아와 봉아는 내가 책임지고 보살펴 줄 것이니 걱정하지 말아 요." ……! 화검운은 그녀가 그렇게까지 말하자 그만 더 이상 핑계를 댈 것이 없었다. 따라서 하는 수 없이 그는 말했다. "내 솔직히 말하겠소. 나는 사실 지금 누구와 혼인을 하고 싶은 생각이 없 소이다. 게다가 어떤 상황 때문에 혼인을 하지는 않을 것이며 그저 솔직한 나의 감정대로 살겠소. 나는 혼인을 어떤 목적에 이용하지는 않을 것이며 그러므로 저분 낭자와는 그저 초면인 셈이므로 지금 그와 같은 얘기를 수락 할 수는 없는 일이오." 화검운은 그러한 얘기를 어렵게 했으나 이윽고 얘기를 끝내고 나자 마음이 비로소 편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역시 그렇게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은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헌데 그때였다. 음희아가 갑자기 화검운의 그러한 모습을 주시하더니 이렇 게 말하는 것이었다. "아! 그러시다면 어쩔 수가 없는 일이군요. 죄송해요, 화 공자!" 바로 그 순간에 그녀의 우수가 그야말로 쾌속무비하게 움직였고 그것이 마 치 빈손처럼 가슴으로 향했다. 그 순간에는 모두들 그녀의 행동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었기 때문에 그녀 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를 몰랐고 그것은 백능풍 등도 거의 마찬가지였 다. 음희아의 손속은 실로 기다렸다는 듯이 너무나도 빨랐고 또한 그녀가 들고 있었던 비수 또한 전혀 빛을 발출하지 않는 기이(奇異)한 물건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화검운은 이미 그 순간에 그녀가 투명한 빛깔의 비수를 전신의 공력 을 다해서 자신의 심장으로 찔러 가고 있는 것을 보았고 이미 보는 즉시로 그의 신형은 마치 거짓말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화검운의 신형은 거의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공간을 가로질러서 이미 어느새 음희아의 그 특이한 비수를 쥐고 있는 오른손목을 잡고 있었다. 이 음희아의 무공은 얼마 전에 지존검을 빼앗겼던 마우의 무공과 비슷하게 절정의 경지여서 게다가 자신의 심장을 향해 전력을 다해서 찔러 가고 있었 으므로 그것이 완전하게 제지되지는 못했다. 화검운이 음희아의 손목을 쥐 고 있는 순간에 이미 그녀의 심장이 있는 부위에서는 어렴풋이 선혈이 내비 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이 음희아의 행동이 결코 시위적인 거짓이 아니 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는 것 같았다. 음희아는 다소 눈을 가늘게 감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자신의 손길이 화검운 에게 가로막힌 것을 알고는 왠지 눈빛을 불그레하니 물들이며 물었다. "당신은 왜 나의 행동을 방해하지요? 당신은 나를 고문하려고 하나요? 하지 만 나에게서 어떠한 대답도 들을 수가 없을 거예요." 화검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당신은 결코 어떠한 말도 하지 않을 것이오. 하지만 이제는 구태 여 이런 방법을 쓸 필요가없소. 내가 이미 당신의 남편이 되기로 작정했기 때문이오." (……?) 음희아는 잠시 망연하게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화검운은 이에 다소 어색하게 고개를 돌려서 자신의 손에 들려 있던 지존검 을 황약화에게 넘겨주며 말했다. "황 낭자, 내가 찾으러 갈 때까지 용아와 봉아를 맡아서 보호해 주시오. 그 리고 이 지존검은 그 대가로 가지도록 하시오." 황약화는 그 말에 지존검을 받으면서 기이한 시선으로 대꾸했다. "하지만 이 지존검은 내가 갖지는 않겠어요. 당신은 나중에 이 지존검도 함 께 찾아가도록 해요." 화검운은 일순 다시 몸을 돌려서 가슴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음희아의 몸을 가볍게 안아 든 다음에 뒷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버렸다. ─────────────────────────────────────── 일반연재 [백상] 종남사부 7권 제45장 -b- 총 Page : 11 -------------------------------------------------------------------------- ---- 게 시 자 : tohana(박성호) 게 시 일 : 97/04/16 14:00:31 수 정 일 : 크 기 : 7.3K 조회횟수 : 36 [백상] 종남사부 제7권 제45장 -b- 04/12 03:46 347 line 올 린 이 : 양한우 HITEL ID : hanwoo71 제45장.(2) 고소(苦笑), 그리고 미소(微笑) ……! 음희아의 가슴의 상처는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녀가 지풍을 날려서 몇 군데의 혈도를 짚자 이내 지혈(止血)이 되고 말았는데, 다만 그 녀는 화검운의 품속에 안긴 채로 계속 상기된 시선이었다. 화검운은 도박장을 나서서 통로에 이르자 그녀에게 물었다. "어디로 가야 하오?" 음희아는 즉시 그의 품속에 깊이 파고들며 속삭이듯 대답했다. "오층으로올라가세요. 그곳에 이미 모든 준비가 되어 있어요." 화검운은 이내 주저하지 않고 비스듬한 경사지를 따라서 위층으로 그녀를 안고 올라갔다. 이 통로는 특별하게 만들어진 것이었으며 또한 특별한 경우 이외에는 사용 하지 않는 것이었으므로 오가는 사람이 전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아주 조용 했다. 화검운은 위로 신형을 날리는 동안에도 전혀 그녀를 내려 줄 생각을 하지 않았고 음희아 역시 그의 품속에서 깊이 안겨서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다. 비스듬한 경사지로 되어 있는 통로는 작은 원을 그리면서 위로 올라가게 되 어 있었는데, 화검운은 그 경사지를 이용하지 않고 곧장 그녀의 몸을 안고 허공으로 솟아올라가서 이내 오층의 통로 입구에 이르렀다. 이 오층은 일절 손님을 받지 않고 루주의 전용으로 사용되고 있는 곳이었으 므로 비단 아래층에서 손님들이 올라올 수 있는 길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지시하는 사람 이외에는 나타날 수가 없어서 아주 조용했다. 화검운은 통로를 벗어나서 이윽고 오층의 넓고 화려하며 조용한 분위기가 감도는 거실에 이르렀고 이내 신형을 멈추었다. …… 음희아는 잠시 동안 계속해서 화검운의 품속에 깊이 안겨 있었으나 이내 다 소 섭섭한 듯이 벗어나서 웃으며 입을 열어 말했다. "고마워요. 당신은 정말로 저의 체면을 세워 주셨군요." 화검운은 미소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것을 체면 때문이라고 생각하시오?" 음희아는 그의 얼굴을 직시하며 다시 물었다. "그럼 다른 이유가 있었다는 말인가요?" 화검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오." 음희아는 즉시 물었다. "그 이유는 뭐죠?" 화검운은 담담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으로서는 확실히 모르겠으니 나중에 그 얘기를 해주겠소." 음희아는 다소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다시 물었다. "그럼…… 당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이 행동은 진실이라는 말인가요?" 화검운은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 진실(眞實)이오. 나는 실언(失言)을 하지 않소. 당신은 내가 장난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말이오?" 음희아는 다소 망연한 표정이 되어서 물었다. "왜…… 당신은 나와 혼인을 하겠다는 것이죠?" 화검운은 다소 웃으며 고개를 흔들더니 이윽고 거실의 한쪽에 있는 하나의 의자 위에 털썩 주저앉아 버리고 말았다. "그건 나도 잘 모르겠소?" ……? 음희아는 이윽고 다시그의 옆에 있는 의자의 손잡이 부분에 걸터앉으며 깊 은 한숨과 함께 입을 열기 시작했다. "저는 일찍이 가난한 집안의 딸로서 태어났죠. 아주 어렸을 적에 저의 집은 너무나도 가난하여 그만 아버지 어머니가 병에 걸리게 되었고 또한 돌아가 시게 되었죠. 저는 그 병명이 무엇이었던지 지금은 기억하지 못해요. 당시 저는 겨우 다섯 살이었는데 운이 좋게도 지나가는 한 사람의 부자 상인을 만나게 되어서 그 사람의 집으로 들어갈 수가 있게 되었죠. 저는 이후에 거 기에서 자라나게 되었어요. 제가 거기에 들어가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아시나요?" …… 화검운이 대답하지 않았으므로 음희아는 다시 입을 열어 말했다. "저는 당시에도 매우 얼굴이 예뻤었나 봐요. 제가 나이가 열두 살이 되었을 때 그 장원의 주인은 어느날 저를 자신의 침실로 불렀죠. 저는 그 날 처음 으로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되었어요. 저는 아프기만 했지 그것에 대한 이유 를 몰랐었는데 어쨌든 그 이후로 가끔씩 저는 주인의 침실로 끌려가서 그런 일을 겪어야만 했었는데 나중에는 주인이 거의 한달 내내 저만 데리고 자려 고 하자 주인마님이 그만 저를 주인 모르게 내쫓아 버리고 말았죠. 그때가 열세 살의 일이었어요." "……" 화검운은 조용한 신색(身色)으로 말이 없었고 음희아는 조심스럽게 그의 표 정을 살핀 다음에 말을 계속했다. "저는 하룻밤 사이에 아주 머나먼 지역에 가게 되자 그만 방황을 하여 떠돌 게 되었는데 어쩔 수 없이 이런 기루(妓樓)를 전전하다가 지금의 백화방주 (百花幇主)인 의모(義母)를 만나게 되었죠. 이 음희아라는 이름도 실은 저 희 그 의모께서 지어 주신 이름이었어요. 저의 그 뒤의 행로는 매우 순탄한 편이었어요. 저는 무학을 배우게 되었고 의모께서는 저의 자질이 매우 훌륭 하다고 여러 번 칭찬하시곤 했죠. 저는 여러 명의 후보들 가운데에서 선출 되어 마침내 백화방의 소방주가 되었고 그리하여 지금에 이르렀어요. 저는 이제까지 전혀 남자들을 상대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실은 그와 같은 과거가 있었던 거예요. 당신은 이제 저를 택하신 것을 후회하시겠죠? 지금이라도 늦은 것은 아니예요." 화검운은 담담히 웃으며 대꾸했다. "나는 후회하지 않소." 음희아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 "당신은 대체 무슨 목적으로 그러는 거죠? 혹시 당신은 나에게 어떤 적선이 라도 하려는 것인가요?" 화검운은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그렇소. 나는 당신에게 나의 마음을 주기로 작정했던 것이오. 그리고 나 역시 당신과같은 여자의 사랑을 적선받고 싶소." (……?) 음희아는 잠시 그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이윽고 길게 한숨을 내쉬더니 즉시 그 자리에서 바닥에 엎드려서 대례를 올리면서 말했다. "저는 결코 누구에게 마음을 줄 형편은 되지 못해요. 다만 당신의 그 마음 을 얻고 싶을 뿐이예요. 당신이 이미 공표를 했으니 저는 당신의 처첩이나 마찬가지예요. 천첩이 상공(相公)께 삼가 인사를 올리는 바입니다." 화검운은 이에 손수 몸을 일으켜서 그녀의 손을 잡아서 일으키며 말했다. "당신은 아름다운 여인이오. 결코 다른 생각을 하지 말기를 바라겠소." (……) 음희아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저는 이미 당신의 소유이니 이제 저의 얼굴을 보여 드려야 하겠군요. 사실 저의 얼굴은 의모께서 가급적이며 가리고 다니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하셨 기 때문에 가리고 다녔던 것이예요." 말과 동시에 그녀는 얼굴에 쓰고 있는 면사(綿絲)를 벗었는데 실로 그 순간 에 화검운은 눈앞이 환하게 밝아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실로 피와 살로 이루어진 사람의 몸이 이러한 우아한 아름다움과 매혹적인 아름다움을 동시에 간직하면서 부드러움과 요염함의 극치를 동시에 느끼게 해줄 수 있으리라고는 그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었다. 실로 화검운은 이제까 지 천하의 미인들이라는 강호오봉 가운데의 여러 미소녀(美少女)들을 보아 왔었지만 그러나 그녀들의 미모는 그저 특이한 기질(氣質)과 연관된 것이었 지 이렇게 완벽한 여성다운 아름다움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 음희아의 얼굴에는 실로 대지(大地)와 같은 편안함이 있는가 하면 또한 청춘을 절절이 끓어오르게 하는 처절하리 만큼의 유혹이 있었다. 조금 전에 그녀의 몸을 보고도 그러한 느낌을 받았지만 그러나 지금 그녀의 얼굴에서 느끼는 감각은 조금 전에 비하면 수십 배나 더한 것 같았다. 그녀의 눈빛이나 코, 그리고 입술 등의 윤곽은 그 자체가 사람의 육신이 아 닌 것 같은 모습이었고, 일반 사람들이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면 누구라도 혼백(魂魄)이 다 빠져나갈 것 같은 충격을 느꼈을 것이었다. 그야말로 그녀 가 얼굴을 가리고 다니는 것이 충분히 이해되고도 남음이 있는 것이라는 사 실을 알 수가 있었다. 음희아는 화검운을 향해 약간 웃으며 물었다. "저의 얼굴은 제법 볼 만한가요?" 화검운은 미소하며 대답했다. "물론이오. 만일 당신의 얼굴이 못생겼다고 하면 세상의 모든 여자들의 얼 굴은 하나같이 원숭이보다 못한 것일 것이오." 음희아는 일순 가볍게 웃더니 걸음을 옮겨서 욕실을 향해 가려고 했다. 그런데 문득 화검운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 "나의 얼굴도 보아야 할 것이 아니오?" 음희아는 다소 의아한 기색이 되었다. "어마! 당신도 그럼 가며을 쓰고 있었다는 말인가요?" 화검운은 미소했다. "당신도 가면(假面)을 쓰고 있는데 나라고 해서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는 법 이라도 있겠소?" 말과 동시에 화검운의 그 평범한 서생의 모습이었던 얼굴이 서서히 혹은 급 격하게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으며 다른 형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하나의 형상이 물결치듯이 사라지고 나서 다시 형상이 나타나는 것 같 은 신비로운 광경이었는데, 이윽고 그러한 변화(變化)가 멈춰지자 화검운이 물었다. "나의 얼굴은 볼 만하오?" -- 계속 -- ─────────────────────────────────────── 일반연재 [백상] 종남사부 7권 제46장 -a- 총 Page : 15 -------------------------------------------------------------------------- ---- 게 시 자 : tohana(박성호) 게 시 일 : 97/04/16 14:02:05 수 정 일 : 크 기 : 11.6K 조회횟수 : 35 [백상] 종남사부 제7권 제46장 -a- 04/12 03:46 282 line 올 린 이 : 양한우 HITEL ID : hanwoo71 제46장.(1) 무림말살지계(武林抹殺之計) (……!) 음희아는 화검운의 그 잘생긴 얼굴을 바라보면서 한동안 넋 나간 듯한 표정 을 짓다가 이윽고 깊게 한숨을 내쉬면서 대답했다. "당신의 얼굴은 제가 이제까지 보아 온 어떤 사람들보다 훨씬 훌륭한 모습 이세요. 만약 당신이 이런 분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제가 결코 청혼(請婚)을 하지는 못했었을 거예요." 화검운은 가볍게 웃었다. "하지만 이미 당신은 나의 여자가 되지 않았소?" 그렇게 말하는 가운데 다시 그의 얼굴은 처음의 그 평범한 서생의 얼굴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음희아는 망연하게 그러한 변화를 바라보다가 이윽고 그의 품속에 다시 안 기면서 말했다. "고마워요, 당신은…… 당신은 저의 은인(恩人)이세요." 화검운은 미소하며 그녀의 몸을 안아 주었다. "그것은 당신도 마찬가지이오." 화검운이 거실에서 기다리는 동안에 음희아는 욕실에 들어가서 잠시 몸을 씻었고 이내 다시 옷을 갈아입고 나와서는 화검운을 거실과 연결되어 있는 작은 침실로 안내했다. 그 침실에는 이미 탁자 위에 제법 훌륭한 술과 안주 등이 마련되어 있었으나 화검운은 곧장 그녀를 안고 침상에 올라갔다. 음희아는 다소 상기된 안색이었다. "보아하니 당신은 처음이신 모양이로군요. 혹시 후회하시지는 않나요?" 화검운은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즐거운 기분이오. 당신은 혹시 후회하지는 않소?" 음희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는 이미 숫처녀가 아니예요." 화검운은 가볍게 웃었다. "그렇다면 이 일에 있어서는 당신이 나의 선생(先生)이 될 수가 있겠군." 음희아는 역시 웃으며 그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당신은…… 정말로 짖i옹a시군요." 음의아의 알몸은 정말로 훌륭했다. 어느 것이 얼마나 훌륭한 것인지는 구체 적으로 말할 수가 없는 일이었지만 어쨌든 화검운은 처음으로 그와 같은 쾌 감을 맛보았고, 그리고 두 사람은 아주 오랫동안 침상 위에서 함께 뒹굴면 서 시간을 보냈다. 한창 젊음의 열정으로 가득 차 있는 그들의 육신은 끝없 이 타올랐으며 그렇게 영원히 붙어서 떨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어쨌든 끝은 결국 있었으며 한밤중에 음희아는 몸을 일으켜서 옷을 가지런히 갈아입었다. "아니, 뭘 하는 거요?" 화검운이 다소 졸리는 듯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음희아는 가볍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상공께선 식사를 해야 하지 않나요?" 화검운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쎄…… 하기는 그래야 할 것 같기도 하고." 음희아는 문득 옷을 다 갈아입은 후에 아직도 알몸이 되어 있는 화검운의 품속으로 와락 뛰어들면서 속삭이듯이 말했다. "저는 과거에 많은 경험을 했었지만 그러나 그것이 무슨 즐거움이 있는 것 인지 몰랐어요. 그러나 오늘은 저는 그야말로 최고(最高)의 즐거움을 맛보 았어요. 저는 정말로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어요." 화검운은 웃으며 대꾸했다.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이오. 그건 그렇고 우리 조금 더 놀기로 할까?" 음희아는 다소 얼굴을 붉히면서 얼른 그의 품속에서 빠져나갔다. "당신은 어서 옷을 입으세요. 저는 거실에 나가 있도록 하겠어요. 만일 옷 을 다 입으시면…… 저를 부르세요." 음희아는 이어 화검운의 얼굴을 향해 가볍게 미소를 보낸 다음에 거실로 나 갔다. 화검운은 이에 하는 수 없다는 듯이 몸을 일으켜서 옷을 입기 시작했다. 그 리고 옷을 입은 다음에 즉시 음희아를 불렀다. "음 낭자…… 아니 희아(喜兒)라고 불러야 하나? 아니 그것도 좋지 않 고…… 아무튼 그런 것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지. 어쨌든 식사를 해야 할 것이니 이제 그만 들어오는 것이 어떻겠소?" …… 화검운은 거실에서 대답이 없는 것을 보고 즉시 문을 열고 거실로 나가다가 일순 안색이 변하고 말았다. -- 음희아, 그녀는 거실의 의자 위에 단정하게 앉은 채로 그를 바라보며 웃 고 있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러나 기실 그녀는 웃고 있는 것이 아니었 다. 이미 목숨이 다하여 다른 곳으로 가 버렸는데 어떻게 웃을 수가 있겠는 가? 이 순간에 그녀의 가슴에서는 비수가 꽂혀 있는 자리에서 붉은 핏물이 마치 폭포수처럼 흘러내리고 있었으며 아직 그 피는 뜨거웠다. 피는 비록 뜨거우 나 이미 죽은 그녀의 목숨을 되살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죽음의 모진 고통을 조금 전의 쾌락으로 감내한 듯이 그녀의 얼굴에는 조금 의 고통의 빛도 없었고 그저 온화한 사랑의 기운만이 흐르고 있을 뿐이었 다. 그녀의 얼굴은 침실쪽으로 향하고 있었으며 화검운은 그것이 바로 자신 을 향한 시선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 화검운은 잠시 망연히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이윽고 붉은 피가 아직도 선연하게 흘러내리는 그녀의 육신을 자신의 품속에 끌어안았다. 그리고 밖 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화검운은 일단 음희아의 시신을 안고 밖으로 나가서 장안성의 외부로 나가 그녀의 시신을 불태우고 그 유골을 땅에 묻어 주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토록 아름다웠던 음의아의 모습은 이제 세상의 그 어디에도 없는 것 이었다. 화검운은 잠시 장안성의 부근을 떠돌면서 마치 어두운 밤하늘을 산책하는 것 같은 모습을 보였다. 그러는 가운데 성내의 상황을 살폈는데 지금 성 안 의 곳곳에는 무수한 격전이 벌어져서 그야말로 거대한 아수라장을 방불케 하고 있었다. 그 아수라장은 마치 거대한 불길과도 같았다. 원한(怨恨)과 분노(忿怒)와 야욕(野慾)의 끝없는 불길이었다. 화검운은 깊은시선으로 성 안의 형세를 살폈는데 지금 그 안에서 백의맹과 흑풍사가 싸우는 경우는 그다지 드물었다. 다만 백의맹에서는 흑풍사의 산 하단체인 동정십팔채(洞庭十八寨)나 성숙파(星宿派) 등의 문파를 추격하고, 그리고 흑풍사에서는 백의맹의 세력이 없는 곳이나 혹은 청풍회(淸風會), 와룡회(臥龍會) 등의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남해보타도의 단목소소 등의 무 리들을 점차로 공격해 들어가고 있었다. 말하자면 이 흑풍사나 백의맹의 주 력들은 하나같이 그 무공들이 극강하여 다른 방파들은 아예 적수가 되지 못 했고 점차로 그들에 의해 시신이 늘어 가는 추세였다. 그렇다면 과연 단목소소의 말대로 흑풍사와 백의맹의 세력은 서로 결탁을 하고 무림말살지계(武林抹殺之計)를 실행에 옮기고 있는 것이라는 말인가? 화검운은 한참 동안 성 안의 광경을 주시하다가 문득 한 곳을 바라보고는 즉시 그쪽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성의 동남쪽에 청풍회의 사람들이 흑풍사 의 주력과 크게 맞붙어 있었는데 그 가운데 바로 악산산이 실로 위기에 처 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헉, 헉, 헉…… 악산산은 부지런히 골목길을 내달리며 그야말로 목숨을 건 사투(死鬪)를 벌 이고 있는 중이었는데, 그것은 사실 어떤 싸움이 아니라 도주를 하고 있는 셈이었다. 적도의 무공은 실로 가공스러워서 그녀가 감당할 바가 아니었으 며 게다가 그 적도가 노리고 있는 바는 바로 그녀의 목숨 정도가 아니었다. 원래 그녀는 다른 사람들처럼 최선을 다해서 싸우다가 목숨을 잃게 되면 그 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싸움이 시작되자 그녀의 동료들은 서로 갈라지게 되었고 그녀는 부친과도 헤어지게 되었는데 느닷없이 나타난 그 흉악한 악적(惡敵)이 끈질기게 그녀를 범하기 위해 쫓아오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기실 악산산은 이미 그 적도가 마음만 먹었더라면 능히 자신을 따라잡고도 남음이 있었을 것이라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그자가 금방 추격하지 않고 있는 것은 좀더 그녀를 놀려먹자는 속셈일 것이었고 게다가 그자는 지 금 좀더 그녀를 농락하기에 알맞은 장소를 찾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허나 아무튼간에 그녀는 일단은 달리지 않을 수가 없는 일이었고 그러다 보 니 일행과도 멀리 떨어져서 주택지의 골목과 골목길을 돌아다니며 힘을 다 해서 신법을 펼쳐 가고 있었다. 지금 그 추격자가 그녀의 뒤를 쫓고 있는 것인지도 알 수가 없었다. 다만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되기에 그녀는 우선은 상대가 추격하기가 곤란하 게 느껴지는 후미진 골목길을 골라서 내달렸다. 그러나 기실 그러한 것이 바로 그 추격자의 의도였을 줄이야…… 악산산은 거의 막다른 골목길의 으슥한 곳에도착하여 이제는 추격하지 않 는 것이 아닐까 하고 뒤를 돌아보다가 문득 자신의 앞에 뭔가 나타난 것을 보고 기겁을 하고 말았다. (……!) 지금 그녀의 앞에 나타난 사람은 바로 다름이 아닌 그 추격자였던 것이었 다. 나이는 대략 스물넷 정도 되었을까 하는 현의청년(玄衣靑年)인 그자는 상당 히 키가 큰 편이었으나 체구는 마른 편이었고, 두 눈에서는 그야말로 음욕 (陰慾)에 가득 찬 광망을 발출시키고 있는 상태였다. 그것은 마치 이제 맛 좋은 먹이를 눈앞에 두고 있는 하이에나의 눈빛이나 다를 것이 없게 느껴졌 다. 악산산이 기겁을 하고 그만 달아날 생각을 하지 못한 채 몸이 경직되자 그 현의청년은 음침한 음성으로 발음이 불분명하게 중원말을 했다. "흐흐…… 귀여운 것, 너는 이제 겨우 여기밖에 도망오지 못했다는 말이냐? 순순히 말을 듣는다면 내가 나중에 북해(北海)로 데려가서 너를 나의 첩으 로 삼을 것을 약속하겠다." 악산산은 그 말을 듣자 내심 비위가 크게 상하면서 구역질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렇다. 이 현의 청년은 바로 흑풍사의 무리들 가운데의 하나이며 그 주축 인 현현각(玄玄閣)의 소속으로 천상신룡 백능풍 등과 함께 강호오룡에 속해 있는 사람인 현현낭심호리(玄玄狼心狐狸) 마륵길(麻勒吉)이라는 자였다. 악산산은 비록 강호오룡에 대해서 은근히 동경을 하고 있었고 또한 간혹 그 들을 만나게 되면 가슴이 떨리기도 했었지만 그러나 이런 자는 그 가운데에 서도 예외였다. 이 현현낭심호리 마륵길이라는 자는 비단 그 심성(心性)이 흉측스러울 뿐만 아니라 게다가 흑풍사의 주구라는 점이 그녀의 마음에 들 지 않았다. 게다가 이렇게 후미지고 사람들이 오지 않는 막다른 골목에서 일을 당하게 된다면 악산산은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리는 수밖에 없을 것이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비록 상황이 험악해도 아직 목숨을 끊어 버리기에는 그녀의 인생이 너무나도 젊고 발랄하며 게다가 미련이 남는 일들도 많았다. 특히 미련이 남는 일들 가운데 부친의 얼굴과 또한 이곳 장안성에 와서 연모(戀慕)의 감 정을 품게 되었던 정체불명의 종남사부(終南師父), 그리고 그 밖의 친구들 의 얼굴이 뇌리에 스쳐 지나가는 것 같았다. 악산산은 가능하면 일을 당하기 전에 목숨을 끊어서 욕을 보이는 것을 면하 고 싶었지만 실로 그러한 일은 잘 되지 않았다. 악산산은 일단 목숨을 끊으 려고 생각하니 우선 울음부터 터져나오는 것을 의식해야만 했다. 실로 울음 부터 터져나오게 되니 죽으려던 마음도 약해져 가기 시작했고, 그것은 바로 그녀가 아직 때가 묻지 않아서 순수하다는 의미(意味)가 되기도 했다. 현현낭심호리 마륵길은 악산산이 그저 멍하니 선 채로 대꾸도 하지 않고 있 는 것을 보고는 잠시 주위를 둘러보다가 이윽고 빠르게 손을 썼다. 그자의 무공은 과연 고강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그저 신형을 가볍게 움직 인 것 같은데 어느새 그녀의 면전에 이르러 있었고, 또한 다음 순간에는 그 녀를 제압해서 근처의 제법 평평한 바닥에 뉘어 놓고 있었다. 악산산은 그 순간에 비로소 자신이 이를 악물고 일찍 자결하지 못한 것을 한탄해야만 했다. 악산산의 신형은 이미 완전히 제압되어 있어서 조금도 움 직이지 못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자결을 할 수도 없게 되어 있었다. "흐흐흐……" 마륵길의 두 눈에서 마치 하이에나와 같은 흉악한 안광이 발출되면서 서서 히 그녀의 전신을 한 차례 훑어보는 듯하더니 이윽고 천천히 손을 뻗어서 그녀의 옷을 벗기려고 했다. 악산산은 그 순간에 그만 어쩔 수가 없어서 눈을 감아 버렸으며, 왠지 이상 하게도 그 순간에는 다른 한 사람의 얼굴이 뇌리에 떠오르는 것이었다. 그 는 바로 다름이 아니라 화검운이라는 평범하고도 기이해 보이는 서생(書生) 이었다. 헌데 그 무렵에 실로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마륵길은 마악 악산산의 옷을 벗기기 위해 손을 내밀려고 하는 순간에 느닷 없이 왠지 뒷머리가 근질거리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만일 보통의 사람들이 그런 느낌을 받게 되었다면 그저 평소의 근질거리는 느낌이겠거니 하고 흘 려보냈을 것이겠지만 기실 마륵길의 경우는 달랐다. 마륵길은 순간적으로 그 근질거리게 하는 것이 바로 다름 아닌 다른 어떤 사람의 기운인 것이며, 놀랍게도 그 기운은 이미 그의 지척에 도착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아니나 다를까, 마륵길이 미처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이미 하나의 손길이 전혀 기척도 없이 그의 뒷머리를 향해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그러한 손길은 그야말로 기척이 없는 것이어서 마륵길과 같은 초절정의 고 수들만이 느낄 수가 있는 것이었지만, 그러나 일단 상대의 공격이 너무나도 빠르고 정확하여 전혀 피하거나 고개를 돌릴 여지를 주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는 마륵길은 그만 하는 수 없이 급히 앞으로 내뻗으려던 우수를 뒤로 돌려서 그 공격에 대비했다. 순간 마치 일순간에 수십 개의 폭죽이 터져나가는 것 같은 찰나적인 공격과 방어가 이루어졌으며, 그러한 광경은 비록 어둠 속이었지만 일시에 수많은 번갯불이 번쩍이는 것 같은 아찔한 느낌을 불러일으켰다. 그 현현낭심호리 마륵길은 기실 순간적으로 현현각의 절정무학인 투골침(透 骨針)의 무형지력(無形指力)과 현현만절풍(玄玄萬絶風)이라고 하는 극상승 의 절학을 펼쳤던 것이었는데, 원래는 그러한 것을 펼치게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현현각의 특기인 지력(指力)의 위력에 밀리게 되어서 상처를 입게 되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어처구니가 없게도 지금은 오히려 순간적으로 자 신의 손가락이 찌르르 하고 울려 오면서 전신의 기혈(氣穴)이 흡사 녹아 버 리는 것 같이 경직되는 것이 아닌가! ─────────────────────────────────────── 일반연재 [백상] 종남사부 7권 제46장 -b- 총 Page : 6 -------------------------------------------------------------------------- ---- 게 시 자 : tohana(박성호) 게 시 일 : 97/04/16 14:03:25 수 정 일 : 크 기 : 4.0K 조회횟수 : 32 [백상] 종남사부 제7권 제46장 -b- 04/12 03:46 282 line 올 린 이 : 양한우 HITEL ID : hanwoo71 제46장.(2) 무림말살지계(武林抹殺之計) (……?) 마륵길은 그야말로 한 순간에 기절할 것 같이 놀라게 되었고 따라서 급히 남은 진력을 끌어올려서 급히 신형을 피해 날아갔다. 그러나 기실 상대의 그 지력은 무시무시한 것이어서 그가 일단 신형을 날려 이를 피한 뒤에도 계속해서 위력을 발휘하여 마침내 그는 전신의 대혈이 완 전 마비된 채로 날아가다가 바닥에 세차게 부딪치게 되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그렇게 세차게 부딪친 것이 오히려 전화위복(轉禍爲福) 이 되었다고나 할까, 그는 순간적으로 경직되었던 기혈(氣穴)이이 다시 유 통되기 시작하는 것을 알고 급히 신형을 날려 몸을 일으켜 세웠다. ……! 악산산이 있는 자리 옆에는 지금 한 사람이 나타나 있었는데 그는 바로 화 검운이었다. 순간적으로 악산산은 자신의 뇌리 속에 떠올랐던 것 같은 것이 사실이었다 는 것을 아고는 다음 순간에 자신의 혈도가 풀어지는 것을 느끼고 얼른 몸 을 일으켜서 자신도 모르게 너무나도 반가운 나머지 화검운의 품속에 덥썩 안겨들고 말았다. (……!) 악산산은 뒤늦게야 자신의 성급한 실수를 느꼈으나 이미 어쩔 수가 없는 일 이었고 또한 지금은 누구도 보고 있지 않은 밤중이라는 것을 생각하고는 그 대로 있었다. 마륵길은 이때 화검운을 주시하며 매우 놀란 표정으로 이렇게 소리쳐 묻고 있었다. "너, 너는 대체 누구냐?" 화검운은 다소 싸늘한 음성으로 대꾸했다. "현현낭심호리 마륵길! 나에 대해서 물어볼 필요는 없다. 네가 만약 이 말 이 끝나는 순간까지 사라지지 않는다면 나는 너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마륵길은 이미 한 순간의 격돌에서 크게 혼이 나 있었고 그의 무학이 자신 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으므로 크게 울화가 치밀어 올랐지 만 이내 신형을 날려 도주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는 발아적으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는 것을 잊지 않았다. "화검운! 나는 너를 알고 있다. 너는 앞으로 반드시 우리의 손에 의해 죽음 을 당하게 될 것이다!" 화검운은 마륵길이 사라지는 것을 보고는 그 말에 개의하지 않고 다시 자신 의 품속에 깊이 안겨져 있는 악산산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제 그는 갔으니 안심해도 되오." 악산산은 그제서야 핑계김에 그의 품속에서 벗어날 수가 있게 되었다. 한 순간에 공포스러운 위기에서 벗어나게 되어서 그의 품속으로 달려들게 되었 었고 또한 그곳에서 실로 아늑한 기분을 맛보았던 악산산은 다소 붉어진 안 색으로 대꾸했다. "고마워요. 당신이 나를 구했군요." 화검운은 그녀가 무안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미소하며 말했다. "우리는 친구이니 서로 돕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소?" 악산산도 이에 다시 활발해졌다. "맞아요. 우리는 서로 친구이니 서로를 의지하는 것이 당연하겠지요. 자! 우리 이제 함께 가기로 해요!" 악산산은 말과 함께 의식적으로 화검운의 손을 잡았는데 그러는 그녀의 표 정은 아주 해맑아서 아까의 그러한 극단적인 상황에 몰렸던 표정은 눈을 씻 고 찾아 봐도 찾을 길이 없었다. 화검운은 구태여 그녀가 손을 잡아 오는 것을 피하지 않았다. 만일 그것을 피한다면 그녀가 다시 무안해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단지 그는 그저 평상 시의 어조로 이렇게 물었다. "그대의 부친께서도 아직 무사하시오?" 악산산은 자신의 부친을 생각하자 다소 우울해지는 기분이었으나 이내 용기 를 내어서 그를 향해 대답했다. "아직 알 수가 없지만 아마도 지금쯤 곤란을 당하고 계실 것만 같군요. 만 일 당신에게 다른 할 일이 없다면 지금 우리 아버지를 구하러 가 주세요. 만일 그렇게 해준다면 나는 당신의 어떤 부탁이라도 들어 드릴 용의가 있어 요." 말과 함께 악산산은 내심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하긴 이 화 공자는 인품(人品)도 그만하면 훌륭하고 또한 무공도 범상하지 않으며 신분도 제법 갖추어져 있는 셈이니 비록 용모가 다소 평범하다고는 해도 그와 혼인을 하게 되면 나에게 손해는 없겠지.) 기실 원래 악산산은 종남사부만을 오매불망하며 그려 왔었는데 조금 전에 화검운의 품속에 느닷없이 안겨 보고는 그 생각이 조금 바뀌어져 있었다. 조금 전에 그의 품속에 안겼을 때에는 문득 뇌리 속의 종남사부에 대한 생 각은 까맣게 사라지고 그러한 아득한 순간이 끝없이 계속되었으면 하는 마 음이 들었던 것이었다. 악산산은 실로 이 화검운의 품속이 그처럼 안온하고 편안하며 황홀한 기분을 주는 것인지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던 것이었다. 게 다가 설령 화검운이 그녀의 몸을 요구한다고 해도 그것은 아까의 그 흉악한 도적에게 욕을 보이는 것보다도 훨씬 나은 일이 아니겠는가? -- 계속 -- ─────────────────────────────────────── 일반연재 [백상] 종남사부 7권 제47장 -a- 총 Page : 14 -------------------------------------------------------------------------- ---- 게 시 자 : tohana(박성호) 게 시 일 : 97/04/16 14:05:07 수 정 일 : 크 기 : 10.6K 조회횟수 : 38 [백상] 종남사부 제7권 제47장 -a- 04/12 03:47 301 line 올 린 이 : 양한우 HITEL ID : hanwoo71 제47장.(1) 낭군(郞君)과 시신(屍身) 화검운은 마침 그럴 생각이었기 때문에 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도록 합시다. 그러나 이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니 구태여 너무 심한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소." 이에 악산산은 다소 불복하는 자세로 내심 다시 생각했다.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요? 하긴 당신의 입장에서 보면 그렇겠지만 우리들의 입장에서는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판국이니 어찌 중대하지 않겠어요?) 악산산은 처음에 그의 손을 잡았을 때에는 그래도 상당히 어색하고 손바닥 에서 땀이 솟아나는 것 같았으며 절로 얼굴이 붉어지고 몸을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애써서 태연한 척하고 있노라니 그러한 감각도 점차로 견딜 만하게 느껴졌는데 이윽고 그와 같이 마음을 정하게 되자 마치 그가 자신의 낭군(郞君)이라도 되는 것처럼 생각되어 손을 놓기가 싫어졌다. 화검운이 자신의 손을 잡고 신법을 펼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는데 아니 나 다를까 과연 그는 그녀의 손을 잡은 채로 즉시 신법을 펼쳐서 허공으로 떠오르는 것이 아닌가! (어마!……) 악산산은 그만 놀라서 눈이 휘둥그래졌고 또한 그것을 핑계삼아서 다시 화 검운의 품속으로 안겨들고 말았다. 악산산은 이제 화검운과 떨어지지 않고 싶어졌고 그러는 가운데 화검운의 신형은 그녀의 신형과 함께 어두운 하늘 을 빠르게 가로질렀다. "아! 바로 저기에 있군!" 화검운은 악산산이 무안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일부러 목소리를 높여서 그녀에게 말해 주었다. 그것은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사람들의 앞에 나타나 게 되면 많은 사람들에게 창피스러운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악산산은 이미 그의 품속에 안겨서 잠이 들어 버렸는지 숨만 쌔악쌔 액 하고 몰아쉬며 쉽게 품속에서 벗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것을 보고 화검운은 다시 말했다. "아! 위험하군!" 악산산은 문득 그 소리를 듣자 자신의 부친이 위험하다는 말인 줄로 알고 즉시 고개를 들면서 물었다. "저의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요?" "……" 바로 그 순간에 이미 악산산은 지면에 내려서서 어느 작은 광장을 바라보게 되었고 그 광장의 중앙에 거의 쓰러질 듯이 비척거리는 자신의 부친의 모습 과 그쪽을 향해 환상적(幻像的)인 신법으로 다가가는 화검운의 모습을 발견 할 수가 있게 되었다. 지금 악소천(岳嘯天)의 몸을 향해 공격해 들어가고 있는 사람은 얼핏 보기 에도 그다지 나이가 많아 보이지 않는 아름답기 짝이 없는 소녀(少女)였다. 일신(一身)에는 순백색(純白色)의 투명한 백의나삼(白衣羅衫)을 걸쳤으며 흡사 빙옥(氷玉)을 연상케 하는 그녀의 전신 피부에는 마치 눈처럼 시린 광 채가 눈부시게 일어나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나이는 대략 스물세 살 정도였으니 그러한 그녀의 용모는 지극히 수려(秀麗)하고 아름다워서 결코 천상옥녀 백유 등에 비해 못하지않은 것 같았다. 단지 약간의 흠이 있다면 그 눈빛에 강한 오만한 기색이 들어 있다는 것이었는데, 그것은 한편으로는 오히려 일파(一派)의 지도자와 같은 고귀한 위엄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기도 했다. 대체 이 여자는 또 누구일까? 백색나삼의 소녀는 순간적으로 마치 환상(幻像)과도 같은 강렬한 백광(白 光)을 발출시키는 장력을 발출하여 화산일협(華山一俠) 악소천(岳嘯天)의 정수리를 쪼개 가고 있었는데, 악소천은 마침 신형이 크게 흔들리고 있던 참이라 이를 피하지 못하고 위기에 봉착하고 있는 중이었다. 하기는 그 백 색나삼의 소녀의 무공은 쉽게 보아도 가공지경이어서 악소천이 좋은 상태라 고 해도 감당할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백색나삼의 소녀의 백색의 장력이 마악 악소천의 정수리를 가격하려는 순간 에 문득 옆에서 날아온 무형의 장력(掌力)에 의해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면 서 그 여력으로 악소천이 옆으로 일 장여나 날려가 난을 피했다. "아버지!" 악산산이 뒤늦게 황급히 소리치며 달려가서 부친의 몸을 부축했고 화검운은 이내 그의 앞을 막아섰다. ……! 백색나삼의 소녀는 일순간 매우 경악한 표정을 하고 있다가 이윽고 화검운 의 얼굴을 보았는데 문득 생각나는 바가 있는지 눈빛을 반짝이며 입을 열어 말했다. "당신은 누구죠? 당신은 혹시 화검운이라는 사람이 아닌가요?" 화검운은 자신의 정체를 알아차리는 이 눈치빠른 백색나삼의 소녀를 향해 의미있게 미소를 보인 다음에 대꾸했다. "당신은 혹시 설산성모궁(雪山聖母宮)에서 온 운지(雲芝)라는 아가씨가 아 니오?" 그 말에 백색나삼의 소녀는 일순 안색을 가볍게 붉히면서 대꾸했다. "소문에만 듣고 있었는데 과연 당신은 여간내기가 아니군요. 어떻게 나의 이름을 알게 되었죠." 그렇다. 이 백색나삼의 소녀는 바로 다름 아닌 설산성모궁의 소궁주(小宮 主)이며 강호호봉의 두 번째인 설산성녀(雪山聖女) 운지(雲芝)였던 것이었 다. 화검운은 그 말을 듣고 담담히 웃으며 대꾸했다. "당금 강호에 당신들 다섯 명의 이름이 진동하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모를 수가 있겠소? 그건 그렇고…… 우리는 지금 적으로 만난 것이니 서로 싸워 야 하지 않겠소?" 설산성녀 운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나는 당신과 같은 사람과 싸우고 싶지는 않아요. 다만 한 가지 궁금한 것 이 있는데 대체 조금 전에 나의 그 소수마인(素手魔印)을 무산(霧散)시킨 당신의 그 장력의 이름은 뭐죠?" 화검운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비록 당신이 원하지 않는다고 해도 나는 어쩔 수가 없이 손을 써야 하겠구 려. 지금 한가하게 그런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입장이 아니오." 이어 화검운은 마악 손을 쓰려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 그것을 보고 운지가 다소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는데 문득 한쪽에 서 있던 음산백골문(陰山白骨門)의 문주 음산귀서생(陰山鬼書生) 도옥(陶玉)이 즉시 다가와서 그녀에게 전음으로 이렇게급히 말했다. (그는 곡 소교주(曲小敎主)를 이겨서 그렇게 만든 장본인입니다. 지금은 물 러가는 것이 상책(上策)일 것입니다.) 운지는 이에 하는 수 없다는 듯이 화검운을 향해 포권하며 기이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저는 이만 물러가도록 하겠어요. 사실 저는 당금의 강호 사정이나 모 슨 대의(大義)라는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으므로 앞으로 우리는 다시 만나 서 얘기를 나누어 보도록 해요." 말과 동시에 운지는 사라져 갔으며 도옥 역시 그 뒤를 따라서 어둠 속의 골 목길로 빠르게 사라져 버렸다. 이때 부근에서한창 힘겹게 싸우고 있던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사라지는 것 을 보자 저마다 그 뒤를 따라서 사라지거나 머물거나 하고 있었다. 사라지 는 쪽은 흑풍사의 무리들인 것이고, 머무는 쪽은 청풍회(淸風會)의 사람들 일 것이었다. 악소천의 부상은 비록 심했지만 생명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어서 악산산 이 지혈을 시켜 주고 이어 부축해 주자 제법 걸을 수가 있을 정도가 되었 다. 청풍회의 사람들이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을 보고 화검운은 이제 자신이 이 자리를 떠나도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들 부녀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상처가 심하지는 않습니까?" 악소천은 이미 악산산으로부터 화검운이 그들 부녀의 생명과 순결을 지켜 주었다는 얘기를 들었으므로 내심으로 매우 고마워했다. "나는 이제 괜찮네만 자네의 은혜(恩惠)를 감당할 수가 없으니 그게 걱정일 세." 화검운은 미소하며 대꾸했다. "저는 그저 무림인으로서의 해야 할 바를 다한 것뿐이니 너무 부담을 느끼 시지 마십시오. 그보다 여러분들이 모두 하루 빨리 쾌차하시기를 바랄 뿐입 니다." 악소천은 그의 말을 듣고는 너무나도 고마운 나머지 더 이상 할 말이 없는 모양이었다. 화검운은 이어 악산산에게 말했다. "악 낭자, 나는 또 다른 곳을 가 봐야 할 것 같아서 이만 떠나겠소. 영존 (令尊)의 상처는 낭자가 보살피면 쾌유될 것으로 생각하오." 악산산은 지금까지 그와 헤어지게 되면 어쩌나 하고 내심으로 조바심을 느 끼고 있었는데 막상 그와 같은 얘기를 듣자 그만 두 눈에서 눈물이 핑그르 르 돌았다. 하지만 심한 중상을 입고 있는 부친의 앞에서 그와 같은 내색을 할 수가 없는 노릇이어서 그저 한숨을 내쉬며 작별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럼 다음에 다시 만나 뵙게 되기를 바라겠어요." 화검운은 그녀의 두 눈에서 간절한 상념이 깃들어 있는 것을 보고는 문득 전음으로 한 마디의 말을 했다. "나는 내일 아침에 황 낭자가 있는 곳으로 가서 용아와 봉아를 찾을 것인데 낭자가 가능하다면 그쪽으로 가서 그녀에게 가르쳐 주겠소?" 악산산은 내심으로 이제 가만히 보니 이 화검운이라는 존재는 자신으로서는 엄두도 낼 수 없는 커다란 인물(人物)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문득 그와 같은 말을 듣고는 크게 마음이 기뻤다. 그것은 바로 그녀에게 내 일 황약화가 있는 곳에서 다시 만나자는 말과도 같은 것이었으니 그렇다면 실로 화검운이 그녀의 마음을 헤아려 주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었다. "그럼 다음에 뵙겠소." 화검운은 즉시 신형을 날려서 빠르게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다. 뒤에 가까 이 다가온 청풍회의 사람들이 저마다 그를 보려고 했으나 이미 그의 신형은 어둠 속으로 아득하게 사라져 간 뒤였다. 화검운은 일단 그곳을 떠난 뒤에 하늘 높이 올라가서 다시 성내의 상황을 살폈는데, 문득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한쪽의 상황을 바라보고는 급히 신형을 그쪽으로 날렸다. 한 사내, 그는 일신에 온통 붉은 색깔의 의복을 걸쳤는데 그의 생김새로 보 아 중원 사람이 아닌 것은 틀림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런데 지금 그의 요란 스럽게 움직이는 몸뚱이 아래로는 두 명의 벌거벗은 여자들이 반듯하게 누 워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자는 지금 두 명의 여자를 동시에 소유하고 있는 것이었다. 기실 지금 그들의 주위에는 거의 십여 명에 달하는 많은 홍의 여인(紅衣女 人)들이 둘러서서 호위하고 있었는데, 당당하고 싸늘한 그녀들의 기색과는 달리 용모도 다른 그 사내의 아래쪽에 깔려 있는 두 명의 여자들은 아무리 보아도 다른 여자들과는 달랐다. 헌데 알고 보니 놀랍게도 그녀들은 다름이 아니라 바로 남궁세가의 화옥검 (華玉劍) 남궁전(南宮全)과 사천당문의 혈호접(血蝴蝶) 당옥(唐玉)이 아닌 가! 화검운과 그녀들은 서로 안면이 있는 상태였으므로 설마하니 그녀들이 그러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을 줄은 몰랐다. 하기는 변방의 오랑캐들은 가끔 중원의 여자들을 상대하고 싶어서 납치를 하기도 하는 편인 만큼 이번에 싸움이 벌어지게 되자 남궁전과 당옥의 미모 (美貌)가 대단한 것을 보고 드디어는 몰래 빼돌려서 그와 같은 짓을 자행하 고 있는 것이리라. 화검운은 급히 그곳으로 도착했는데, 이미 남궁전은 벌거벗은 상태로 하체 가 혈흔(血痕)이 가득한 상태였고 또한 당옥은 지금 사내의 몸뚱이 아래에 서 비명을 지르며 당하고 있는 것이니 화검운이 나타난다고 해도 이미 때가 늦은 상태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자리를 피할 수도 없고 하여 화검운은 나타나는 즉시 소리쳐서 말했다. "멈춰라! 어디에서 온 녀석들인데 양가(良家)의 규수들을 농락하고 있는 것 이냐? 어서 썩 물러서라!" 화검운은 자신이 남궁전과 당옥의 그와 같은 참혹한 광경을 보지 않았다는 것을 일부러 말해 주려고 하는 것이었다. 기실 지금은 짙은 어둠이 깔려 있 는 상황이어서 절정고수들이라고 해도 자세히 보지 않는다면 그녀들의 용모 를 파악할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 붉은 옷을 입은 사내는 일순 그 말을 듣자 깜짝 놀라서 한창 요란하게 움직이던 몸뚱이를 정지시켰는데, 그것은 마치 마악 고개를 넘으려고 하다 가 다시 주춤하고 뒤로 물러서게 되어서 대단히 불쾌한 듯한 모습이었다. "웬놈이냐?" 그 사내는 아직 몸을 일으키지도 않고 화검운 쪽을 향해 소리쳤다. 그는 아 무래도 거의 막바지에 도달한 쾌락을 거두기에 아쉬움이 남는 모양이었다. 사내가 소리치자 일순 그의 주위를 호위하고 있던 십여 명의 홍의 여인들이 일제히 신형을 날려서 붉은 나비처럼 날아와 화검운의 주위를 에워쌌다. 화검운은 이 순간에 비록 당옥 등이 있는 쪽을 보지 않고 다른 쪽을 향하고 있었으나 능히 모든 상황을 알아보고는 즉시 능력을 발휘하지 않으면 사내 가 다시 그 짓을 계속할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가볍게 손을 내저었다. "불을 봐야 비로소 정신을 차리겠다는 말이로구나! 물러가라!" 순간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신법(身法)으로 보아하니 최소한 하나같이 절 정급에 도달한 것 같은 홍의 여인들이 느닷없이 화검운이 가볍게 내저은 손 짓에 의해 으악! 하고 비명들을 내지르며 사방으로 날아갔으며, 그 가운데 몇 명은 의복이 완전히 벗겨져서 그것들이 공교롭게도 당옥과 남궁전이 있 는 쪽으로 날아갔던 것이었다. ─────────────────────────────────────── 일반연재 [백상] 종남사부 7권 제47장 -b- 총 Page : 9 -------------------------------------------------------------------------- ---- 게 시 자 : tohana(박성호) 게 시 일 : 97/04/16 14:06:14 수 정 일 : 97/04/16 14:09:17 크 기 : 5.9K 조회횟수 : 28 [백상] 종남사부 제7권 제47장 -b- 04/12 03:47 301 line 올 린 이 : 양한우 HITEL ID : hanwoo71 제47장.(2) 낭군(郞君)과 시신(屍身) 사내는 마악 다시 몸을 움직이려다가 문득 그와 같은 광경을 보고는 경악하 여 급히 바지도 추스리지 않고 몸을 일으켰으며 이내 화검운의 앞에 다가와 서 소리쳐 물었다. "너는 대체 누구냐?" 화검운은 과히 시간을 끄는 것이 좋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그쪽을 바라 보지도 않고 말했다. "나는 너희와 같은 무리들에게는 이름을 말하지 않는 편이다!" 말과 함께 화검운은 그 사내를 향해 일 장을 날렸다. 기실 화검운은 그 사내의 정체를 알고 있었는데, 그는 다름이 아니라 태양 마곡(太陽魔谷)의 소곡주인 화신룡(火神龍) 홍보(紅寶)라는 자로서, 곡주인 축융단사(祝融丹士) 화찰박(和察博)의 제자였다. 그들은 남황(南荒)의 뜨거 운 활화산(活火山) 지대에서 열양공(熱陽功)을 연성하며 생활해 왔으므로 자연히 의복들을 그처럼 붉은 것으로 입고 다니는 것이었다. 화신룡 홍보는 화검운이 자신을 향해 손짓을 하며 말을 하는 것을 보고는 다소 울화를 일으키는 듯하다가 뒤늦게야 비로소 그의 장력이 엄습해 오고 있는 것을 의식하고는 급히 마주 장력을 발출했으나 이내 뒤로 십여 장이나 날려가며 괴성을 질렀다. "으아악! 네, 네놈이……" 그런데 화신룡 홍보가 급히 신형을 바로 세우고 나서 화검운을 상대하려고 하니 어느새 그는 자신의 바로 앞에 도착해 있는 것이 아닌가! 홍보는 이제 그만 기겁을 하고 뒤도 돌아보지 못하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두, 두고보자!……" 홍보의 뒤를 이어서 십여 명의 홍의 여인들이 사라져 가자 이내 화검운은 허공을 격하고 남궁전과 당옥의 혈도를 풀어 주고는 즉시 신법을 펼쳐서 그 자리를 떠나려고 했다. 그런데 순간의 일이었다. 당연히 그곳에 남겨 놓은 홍의 여인들의 의복을 걸치고서 떠나갈 것으로 생각했던 당옥과 남궁전이 천천히 몸을 일으키더니 이윽고 멀리 사라지려는 화검운을 향해 이렇게 입을 열어 말하는 것이 아닌 가! "화 공자, 화 공자! 우리를 모른 척하지 마세요!" 이에 화검운은 다소 탄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러한 일은 그렇게 모른 척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일 것인데도 그녀들이 그를 불러 세우는 데에는 뭔 가 피치 못할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화검운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허공에서 가볍게 선회하며 천천히 그녀들의 앞 으로 다가가서 내려섰다. 당옥과 남궁전은 근처에 놓아둔 홍의 여인들의 옷을 하나도 입지 않은 상태 였는데 어둠 속에서 그녀들의 아름다운 나신(裸身)들이 흡사 허깨비처럼 음 산(陰散)하게 빛나고 있었다. 화검운은그녀들의 몸을 보지 않으려고 하며 포권하며 말했다. "두 분은 소생에게 분부하실 바라도 있소?" 남궁전은 망연한 기색(氣色)이었으나 당옥은 입술을 피나게 깨물면서 대꾸 했다. "그래요. 당신은 우리들의 가문에 우리들의 원수가 누구인지를 가르쳐 주시 기를 바래요." 화검운은 그녀들의 표정을 보고는 이내 그녀들이 자신들의 목숨을 버리려고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여러분의 생각을 알겠소이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생각에는 동의(同意)할 수가 없소이다." 당옥은 눈살을 다소 찌푸리며 물었다. "어째서 동의할 수가 없다는 거죠? 이 일을 하기가 싫다는 것인가요? 그렇 다면 구태여 그런 일을 하지 않아도 될 거예요. 어차피 그들은 우리들의 적 (敵)이었으니까 말이예요." …… 화검운은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말했다. "나에게 비교적 좋은 비유가 떠올랐소이다. 얼마 전에 강호상에서 강호오봉 의 하나로 불리우던 여자가 하나 있었소. 그러나 그녀는 윗사람들의 강요에 못 이겨서 한 사람을 자신의 육체를 제공하고 계략으로써 죽이기로 하였는 데, 기실 그녀는 그다지 심성(心性)이 나쁜 사람이 아니어서 그러한 일을 하지 않으려고 했었으나 이내 그 사람이 마음에 들게 되었소. 그리하여 그 녀는 일단은 그 사람에게 사랑을 바치고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서 생을 하직 하게 되었소." 당옥은 눈살을 찌푸리며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 얘기는 아마도 화중화(花中花) 음희아(陰喜兒)를 말하는 모양이로군요. 그녀에 관한 얘기는 대략 들었어요. 그녀가 죽었다니 안됐다는 생각이 드는 군요. 하지만 대체 그게 어쨌다는 거죠?" 화검운은 다시 말했다. "지금 성내에는 무수한 사람들이 죽음을 당하고 있는 것이며 마음의 상처를 입고 있는 사람들 역시 부지기수인 것이오. 게다가 유독 오늘밤의 혈겁(血 劫)을 염두에 두지 않더라도 과거 십 년 전에는 강호상에서 별처럼 이름을 떨치던 일백 명의 무림 고수들이 한꺼번에 비운의 일을 당하게 되었었소." 이제까지 말이 없이 망연하게 바라보고 있던 남궁전이 입을 열어 물었다. "당신은 우리더러 지금 죽지 말고 살아 가라는 말인가요?" 화검운은 말했다. "그 화중화 음희아는 기실 나와 사랑을 나누었고 얼마 전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소. 그녀는 그 전에 자신이 어째서 그와 같은 화류계로 들어서게 되었 는지에 대해서 나에게 말해 주었는데, 그녀는 어려서부터 많은 남자들로부 터 노리개가 되었다는 것이었소. 하지만 만약에 어떤 상부의 지시가 없었다 면 그녀는 결코 그러한 이유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지는 않았을 것이오. 마지막의 순간에 그녀의 표정은 웃고 있었으나 내심 그 마음은 울고 있었다 는 것을 나는 보았소." …… "나도 왜 일찍이 그와 같은 상부의 지시를 무시하라는 말을 해주지 않았는 지 후회가 되기도 했고 또한 화가 나기도 했소. 그러나 기왕에 지나간 일이 니 어쩔 수가 없는 이리오. 나는 얼마 전에 그녀의 몸을 태우고 묻어 주고 왔지만 이미 그렇게 되면 그녀는 이 세상에 없게 되는 것이오. 그렇게 되면 때는 이미 늦소. 하지만 당신들은 아직 재기할 가능성이 무한한 것이 아니 오? 당금의 천하는 어지럽고 잔혹스러우며 화를 당한 사람들이 부지기수인 데 그들이 모두 당신들처럼 자결을 하려고 한다면 아마도 제대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오." 당옥은 그러한 화검운의 간곡한 말에 다소 마음이 움직이게 되었는지 처연 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당신의 말뜻은 이해할 수가 있어요. 그리고 당신이 나타나서 그들을 물리 쳐 준 일에 대해서 저희들은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나 이 여자의 순결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상 목숨보다도 소중한 것이예요. 당신은 설마하 니 우리가 그 화중화처럼 화류계에서 살아가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 겠지요?" 화검운은 대꾸했다. "지금 성내의 무수한 희생자들 가운데 아마도 당신들처럼 순결을 잃은 사람 들도 있을 것이고 또한 순결한 몸으로 죽음을 당한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 오. 그러나 내가 생각해 보니 그 두 종류의 시신(屍身)은 다같이 흙으로 돌 아가게 되어 있는 것이오. 그렇게 흙으로 돌아가게 되면 거기에 무슨 더럽 고 깨끗한 것의 구분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시오? 더럽게 생각하는 것은 마음이오. 나는 마음이 깨끗하면 그 사람은 훌륭한 사람이라고 보오." -- 계속 -- ─────────────────────────────────────── 일반연재 [백상] 종남사부 7권 제48장 -a- 총 Page : 14 -------------------------------------------------------------------------- ---- 게 시 자 : tohana(박성호) 게 시 일 : 97/04/16 14:07:29 수 정 일 : 크 기 : 10.1K 조회횟수 : 30 [백상] 종남사부 제7권 제48장 -a- 04/12 03:47 315 line 올 린 이 : 양한우 HITEL ID : hanwoo71 제48장.(1) 신선(神仙)들의 감로주(甘露酒) 남궁전이 문득 물었다. "당신은 그래서 그 화중화를 사랑했었다는 말인가요?" 화검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비록 과거의 뼈아픈 기억이 있었으나 거기에 굴하지 않고 원만한 품성(品性)을 기르고 널리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배웠던 것이오. 그녀는 실로 사랑할 만한 사람이었고 나는 그녀가 죽은 것에 대해서 실로 애석하게 생각하고 있는 중이오. 따라서 당신들이 죽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기도 하 오." 당옥은 길게 탄식을 하며 다시 말했다. "하지만 역시 우리는 죽지 않을 수가 없어요. 우리들은 명문세가의 자손들 이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욕을 당할 수는 없어요. 그리고 당신이 우리를 그 화중화처럼 사랑해 줄 리도 없고 또한 우리에게는 그녀와 같은 아름다움이 없는 것이 사실이예요. 당신의 뜻은 고마우나 공연히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떠나 주셨으면 좋겠군요." 화검운은 그 말에 하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돌려서 걸음을 옮기면서 말 했다. "그렇다면 하는 수가 없군요. 내가 잠시 후에 사람들에게 알릴 것이니 당신 들은 그렇게 벌거벗은 차림새로 자결하도록 하시오. 아마도 사람들은 당신 들의 더러운 일면을 보게 될 것이며 또한 당신들이 스스로 나약하여 원한을 갚고 천하를 위해 정의(正義)를 바로세우는 일을 하지 않고 어리석게도 적 들에게 굴복하고 말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오." …… 당옥은 이에 잠시 충격을 받은 듯이 나신을 부르르 떨면서 생각하다가 이윽 고 멀어져 가는 화검운을 다시 불렀다. "화 공자! 화공자, 그렇다면 대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죠?" 화검운은 이에 어느새 다시 그녀들의 앞에 이르러 있었다. "지금 이 순간부터 조금 전에 있었던 일들은 모두가 잊는 것이오. 그러한 일은 사실 있었던 것은 아니오. 게다가 우리는 설령 그러한 것이 생각난다 고 해도 마음을 강하게 먹고 많은 다른 사람들이 그와 같은 일을 당하지 않 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의 할 일을 하도록 합시다. 만일 우리가 어떤 의미 (意味) 있는 일을 할 수가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오히려 인생의 커다란 보 람이고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는 것이 아니겠소?" 당옥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리는 그와 같은 어려운 얘기는 잘 몰라요. 다만 현재의 세상에서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좋을까 하는 문제를 듣고 싶은 거예요." 화검운은 대답했다. "당신들은 이제부터 자신의 행복을 위해,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위 하는 일을 하도록 하시오. 이미 죽을 결심이었다면 무슨 일인들 하지 못하 겠소?" 당옥은 장탄식을 터뜨렸다. "당신은 쉽게 얘기를 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말도 제대로 실천할 수가 없을 거예요. 간혹 마음이 약해지는 날에는 번뇌만 늘어나지 않겠어요?" 화검운은 대답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죽음을 잠시 유보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시오. 어차피 죽을 결심이라면 그러한 죽음을 잠시 유보하는 것도 좋은 일이 아니겠소? 그러다가 나중에 정말로 죽고 싶은 마음이 일게 되거든 다시 죽는 것이 좋 지 않겠소? 사람들이란 어차피 죽게 되는 것이니 말이오." …… 당옥은 잠시 묵묵히 생각에 잠겨서 입을 다물었고 대신 남궁전이 입을 열어 말했다. "우리는 앞으로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할지도 몰라요. 어떻게 세상을 살아 갈 수가 있겠어요?" 화검운은 웃으며 대꾸했다. "그렇다면 정말로 그렇게 얼굴을 들지 못하는 날이 올 때에 다시 죽음을 생 각해 보는 것이 좋지 않겠소?" …… 남궁전은 이내 잠자코 생각에 잠기는 듯했다. 화검운은 그것을 보고 신형을 날려서 다른 곳으로 향했으며, 그는 그 두 명 의 소녀들이 고통을 딛고 살아가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화검운이 이윽고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 있 을 무렵에 느닷없이 그의 앞에 한 명의 노인(老人)이 나타나서 이렇게 말하 는 것이었다. "강호는 흐르고 흘러서 마침내 바다(海)로 가게 되는 것인데 구태여 그것을 막아내기 위해 노심초사(勞心焦思)할 필요가 있겠는가? 강물은 흐르는 것이 고 인간사(人間事) 또한 변해 가는 것이거늘 지자(知者)는 그저 초연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랴!" 화검운은 느닷없이 나타난 백발(白髮)의 노인이 그와 같은 말을 하는 것을 보고 문득 마음속에 와 닿는 생각이 있어서 대꾸했다. "강호(江湖)는 강물이 아니고 바다 또한 어떤 의식(意識)이 있는 것이 아니 네. 이 의식이 없는 것이므로 해서 모든 것을 포용하게 되는 것이니 거기에 는 포용한다는 생각도 없고 또한 그 자체가 어떤 변화(變化)를 나타내는 것 은 아니네. 따라서 그 가운데의 변화도 없으니 나의 노심초사도 없는 것이 네." "……!" 노인은 그 말에 일순 기이한 시선으로 화검운의 얼굴을 쏘아보더니 이어 말 했다. "지금 나의 친구가 술상을 하나 보아 놓고 있네. 자네는 함께 가지 않겠는 가?" 화검운은 포권하며 대답했다. "저는 마침 새벽까지 시간이 있으니 아침에 돌아올 수가 있다면 무방합니 다." 노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리는 잠시 낚시질이나 하려는 것이니 그다지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것이 네." 이어 노인은 등에 짊어진 약초를 담는 듯한 바랑이를 가볍게 옆으로 넘기더 니 홀연히 허공을 밟고 어둠 속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실로 그와 같은 평 범한 노의원(老醫員)가 같은 노인에게 그와 같은 신통한 능력이 있었을 줄 은 누구도 생각 못할 일이었다. 화검운은 즉시 그 뒤를 따라갔다. 두 사람은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해서 신법을 펼쳐서 이윽고 성 밖의 어 느 작은 호수의 앞에 자리하고 있는 정자(亭子)에 이르렀다. 그 정자에는 정말로 노인이 말한 그 친구라는 사람이 삿갓과 도롱이를 쓰고 앉아서 낚시 질을 하고 있었으며, 그의 주위에는 그윽한 주향(酒香)이 코를 찌르고 있었 다. 다른 것은 몰라도 그술만큼은 결코 평범한 것이 아닌 것 같았다. 노의원과 화검운이 정자의 안에 들어서자 이윽고 그 낚시꾼은 천천히 고개 를 돌려서 화검운을 바라보았는데, 기이(奇異)하게도 그의 용모는 투명하리 만큼의 맑은 빛을 뿌리고 있었다. 마치 그 사람 자체가 마치 하나의 광채 덩어리인 것 같기도 했다. "이 사람이 바로 나의 친구요." 노의원이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들으며 화검운은 즉시 낚시꾼에게 포권하며 말했다. "저는 화검운이라고 합니다. 처음으로 뵙게 되는군요." 낚시꾼은 이에 노의원에게 시선을 돌렸으나 이내 노의원이 고개를 은근히 끄덕이는 것을 보고는 화검운을 향해 물었다. "당신은 혹시 생선을 좋아하시오?" 화검운은 그 질문이 상당히 기이하다고 판단하였으며 그러나 담담하게 대꾸 했다. "가려서 먹지는 않습니다." 보아하니 그 낚시꾼의 옆에는 아직 잡아놓은 생선이 한 마리도 보이지 않고 있는 상태였다. 낚시꾼은 잠시 화검운의 얼굴을 힐끗 바라보더니 다시 전면으로 고개를 돌 리면서 말을 이었다. "어쨌든 이곳에는 다른 안주가 없는 형편이므로 생선으로 대신하는 것을 양 해해 주시기 바라오." 말과 함께 문득 그가 호수 속에 드리우고 있던 낚시줄을 잡아당기자 문득 느닷없이 팔뚝만한 잉어(鯉魚) 한 마리가 낚시줄에 걸려서 올라오는 것이었 다. 그런데 기이한 것은 그 낚시줄은 바늘이 없었고 그럼에도 능히 커다란 잉어를 낚아서 올리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이 사람들은 혹시 신선(神仙)들이 아닐까? 낚시꾼이 금방 잡아서 퍼덕이는 잉어를 정자 위로 건져올리는 동안에 노의 원은 한쪽에 있는 술통에서 예의 그 주향이 진동하는 술을 따라서 화검운에 게 권하고 있었다. "박주이지만 한 잔 하시오." 그 술은 기이하게도 빛깔이 황금빛이었으며 거기에서는 실로 사람을 취하게 만드는 진한 술냄새가 가득하게 풍겨 나왔다. 화검운은 담담히 웃으며 그것을 받았다. "이러한 귀한 감로주(甘露酒)를 나에게 주다니 실로 고마운 일이로군요." 화검운이 술잔을 받아서 천천히 음미하듯이 마시기 시작하자 이내 노의원은 그 퍼덕이는 잉어의 배를 가록 내장을 꺼내서 화검운에게 다시 권했다. "이 잉어는 오래된 녀석이므로 그 맛이 특별할 테니 한 번 드셔 보시오." 그런데 기이하게도 지금 노의원이 그렇게 잉어의 배를 가르고 내장과 껍질 을 벗겨내는 등의 일을 하는 동작은 실로 기이(奇異)하기 이를 데가 없었 다. 그는 그저 잉어를 허공에 띄워 놓고는 손끝으로 허공을 향해 몇 차례 긋는가 싶었는데 그 순간에 이미 잉어는 저절로 살가 내장 등이 적당하게 분리되어 먹음직한 살점만이 여전히 허공에 떠 있고 나머지는 어느새 한 점 의 연기로 화해서 사라지는 것이었다. 그러한 광경은 마치 환상(幻像)을 보 고 있는 것 같아서 신기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화검운은 천천히 수중에 들려 있는 술잔 속의 감로주를 한 모금씩 마셔 가면서 그저 담담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가 이윽고 고개를 가로저 었다. "나는 마침 맛좋은 술을 만난 것이니 구태여 그런 것을 먹고서 입맛을 변하 게 하고 싶지가 않구려." "……" 노의원은 화검운이 그렇게 말하자 구태여 더 이상 권하지 않고 자신이 혼자 서 그 잉어의 살점과 술을 조금씩 마셨다. 이 부근에는 어둠이 짙게 내리깔려 있었으나 그것이 이 세 사람의 눈을 가 로막을 수는 없는 것 같았고, 게다가 조용한 적막(寂寞)이 흐르는 가운데 세 사람의 행동은 거의 정지된 것처럼 조금씩 움직였다. 화검운은 그저 술잔을 약간씩 기울여서 술을 마셨고, 이따금씩 노의원이 따 라 주는 술을 받았으며, 그리고 노의원은 스스로 술을 따라서 잉어의 안주 와 함께 천천히 먹고 마셨다. 다만 그 낚시꾼은 계속해서 호수를 바라볼 뿐 으로 천혀 술이나 안주를 먹지 않았는데, 그러한 가운데 점차로 시간이 지 루하게 흘러 갔다. 이 세 사람들의 표정은 지극히 고요하여 마치 그러한 시간의 흐름을 조금도 지루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는 것 같았는데, 그러는 중에 이윽고 사방이 서 서히 밝아 오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점차로 새벽의 여명이 비춰 오기 시작하자 이 호수의 주변은 짙은 안개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은 광경을 자아냈다. 헌데 그 순간의 일이었다. 갑자기 이제까지 묵묵히 호수만을 바라보고 있던 낚시꾼이 문득 가볍게 몸을 경직시키는 듯하더니 낚시줄을 급하게 잡아당겼 다. 그런데 다음 순간에 호수의 깊은 물 속에서 느닷없이 황금빛이 번쩍이 더니 이윽고 거기에서 한 마리의 황금빛 거북이가 낚시줄에 걸려서 나타나 는 것이 아닌가! …… 실로 이것은 기이(奇異)한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세상에 이러한 금구(金 龜)가 있다는 것이 믿기지않을 뿐만 아니라 고작 하나의 평범하기 짝이 없 는 바늘이 없는 없는 낚시줄로 그것을 잡아올리고 있다고 하는 것은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그 금거북이는 크기가 그다지 큰 것은 아니어서 등판의 크기가 대략 한 자 정도나 되었는데 전신이 마치 완전히 황금으로 빚어진 듯이 찬란하게 새벽 의 여명 속에서 빛나고 있었다. 금거북이의 두 눈은 선홍색을 띠고 있었는데 낚시꾼이 잡아당기는 대로 맥 없이 끌려나오며 거의 애원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이윽고 낚시꾼은 그 금거북이를 잡아서 화검운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자! 이 선물을 받아 주시겠소?" 화검운은 이에 가볍게 반색을 하며 대답했다. "그래 주신다면 고마운 일이오." 이어 그는 그 금거북이를 받아서는 즉시 호수 속으로 도로 던져 넣는 것이 었다. ……! 금거북이는 다시 호수 속에 들어가게 되자 자유를 얻게 되어서 매우 기쁜지 이리저리 헤엄을 치다가 이내 사라져 버렸고, 화검운은 그것을 보고 이어 두 명의 노인들에게 포권하며 작별의 인사를 했다. "두 분의 호의(好意)는 고마웠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에 먼저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화검운이 그렇게 작별인사를 하자 그 두 명의 노인(老人)들은 저마다 약간 씩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들은 아무도 그렇게 이렵게 잡은 희귀한 금거 북이를 어째서 그토록 쉽게 놓아 주어 버렸는지 그러한 의문에 대해서는 질 문하지 않았다. 화검운은 이내 서서히 걸음을 옮겨서 정자를 벗어났고 이내 신법을 펼쳐서 장안성 내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 일반연재 [백상] 종남사부 7권 제48장 -b- 총 Page : 9 -------------------------------------------------------------------------- ---- 게 시 자 : tohana(박성호) 게 시 일 : 97/04/16 14:08:47 수 정 일 : 97/04/16 14:09:55 크 기 : 5.9K 조회횟수 : 28 [백상] 종남사부 제7권 제48장 -b- 04/12 03:47 315 line 올 린 이 : 양한우 HITEL ID : hanwoo71 제48장.(2) 신선(神仙)들의 감로주(甘露酒) 화검운은 이내 새벽녘에 곧장 금창보로 향했는데 과연 아니나 다를까 악산 산은 미리부터 그곳에서 황약화와 함께 화검운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 다. 그리고 게다가 그 금창보는 웬일인지 거의 텅 비어 있어서 사람들이 별 로 없었다. "화 상공님!" 화검운이 나타나자 가장 반가워하는 사람은 용아와 봉아인 것 같았다. 그녀 들은 즉시 두 눈에서 눈물을 뚝뚝 떨구며 다가와서 그의 품속에 깊숙히 안 겼는데 아마도 화검운과 떨어져 있는 동안 다소간의 외로움을 느꼈었던 모 양이었다. "그래, 모두 잘 있었느냐?" 용아와 봉아는 한참 동안이나 그의 품속을 떠나지 않다가 이윽고 겨우 뒤로 물러나서 화검운이 악산산 등과 얘기를 나눌 수 있게 했다. "악 낭자가 이렇게 수고를 해주어서 고맙소!" 화검운이 새삼스럽게 포권하며 인사를 하자 악산산은 그만 내심의 마음을 들킨 것 같아서 안색을 붉히면서 고개를 숙였다. "당신…… 당신도 무사하군요." 화검운은 다시 미소하며 물었다. "영존께서는 조금 차도 있으셨소?" 악산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의 아버지는 이제 혼자서 거동하실 정도가 되셨어요." "다행한 일이오." 화검운은 미소하며 이어서 한쪽에 무심(無心)한 듯이 서 있는 황약화를 향 해 입을 열어 말했다. "나의 부탁을 들어 주어서 고맙소." 황약화는 이에즉시 손에 들고 있던 한 자루의 장검 지존검(至尊劍)을 그에 게 내밀었다. "이것을 돌려드리겠어요." 화검운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내가 이미 그것을 당신에게 드리겠다고 하지 않았소?" (……?) 황약화는 그와 같은 지존검을 받게 되었는데도 그다지 기뻐하는 기색이 아 니었다. 그녀는 잠시 화검운의 의복을 살피다가 다시 입을 열어 말했다. "그 화중화 음희아가 이미 죽었다는 얘기를 우리도 이미 알고 있어요." 화검운은 고소(苦笑)했다. "실로 백의맹의 정보는 빠르기도 하구려. 하기는 내 몸에 피가 묻어있는 상태이니 그렇게 보는 것도 무리가 아니겠지." 황약화는 문득 다시 물었다. "당신이 그녀를 죽였나요?" 화검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그녀는 나 때문에 죽은 것이오." "……" 황약화는 잠시 망연한 기색이 되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때 봉아가 화검운에게 다가와서 이제는 밝아진 안색으로 말했다. "화 상공님! 지금 이 장원에 왜 사람이 거의 없는지 아세요?" 화검운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쎄…… 그간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느냐?" 봉아는 웃으며 대답했다. "무슨 일이 있기는 있었지요. 많은사람들이 거기에 휩쓸리게 되었는데 다 행히도 우리들은 거기에 휩쓸리지 않았어요." 화검운은 봉아가 문득 농담을 하려고 하는 것을 보고 웃으며 다시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이기에 그러느냐?" 봉아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하는 수 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불과 얼마 전에 진짜 장보도(藏寶圖)가 나타났대요. 그것은 바로 농아방 (聾啞幇)의 방주의 손에 있었는데 그는 가문(家門)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장 보도의 비밀을 풀기 위해 스스로 농아방을 결성하고 병신이 되어서 수십 년 간이나 연구해 왔었는데, 근래에 들어서 비로소 그 비밀을 파악하고 장보고 (藏寶庫)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거예요." ……! 화검운은 이에 다소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하기는 전날의 그 농아방도들의 기이한 행동과 수라존자 등의 그 집요한 추 적 등은 결코 쉽게 볼 수가 없는 것이었다. 게다가 전날에 그를 유인했던 그 두 명의 농아방도들은 일부러 그를 청해삼검 등이 싸우는 곳으로 유인했 던 것이었으니 실로 그들이 가짜 장보도를 만들어서 유포시켰을 가능성이 컸다. 왜냐하면 진짜를 알지 못하면 역시 그럴 듯한 가짜를 만들기에 적합 하지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제 그 장보도가 정말로 나타났다면 이 금창보의 수많은 사람들이 한꺼번 에 그쪽으로 몰려가게 된 것은 실로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실로 이렇게 된다면 신병이기에 이어서 신병이기에 이어서 무공비급과 장보 도가 나타났으니 무림삼보는 대부분 다 나타났다고 말할 수가 있을 것이었 다. 또한 이 장보도에 거는 기대는 은연중 가장 큰 것이라고 할 수가 있었 으므로 전체의 무림인들이 몰려간 것이 분명했다. 이곳에 남아 있는 사람들 은 그저 심한 부상자와 그 부상자를 치료하는 사람들 정도일 것이었다. 화검운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악산산에게 물었다. "악 낭자도 혹시 그 장보고 있는 곳으로 가 볼 생각이오?" 악산산은 그의 얼굴을 다소 수줍은 듯이 훔쳐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예요. 저는…… 아버지 때문에 갈 수가 없어요." 악산산의 어조는 달콤하면서도 부드러운 애교가 깃들어 있어서 그녀의 연심 (戀心)을 대변하고 있는 것 같았고 또한 간절한 여운이 깔려 있었다. 화검운은 그녀를 향해 다시 말했다. "그렇다면 한 가지 부탁이 있는데 들어 주시겠소?" 악산산은 그가 자신에게 부탁을 하겠다고 하자 그만 정신이 번쩍 들어서 눈 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무엇이죠? 어서 말씀만 하세요." 기실 악산산이 가장 두려워 하는 바로 화검운이 혹시 자신에게 거리를 두게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었는데, 느닷없이 그가 자신에게 보 기 드문 부탁을 하겠다고 하자 그만 절로 기쁜 마음이 들어서 정면으로 그 의 얼굴을 바라보게 되었던 것이었다. 화검운은 담담히 웃으며 용와와 봉아를 가리켰다. "그것은 바로 내가 장보고에 다녀올 때까지 저 두 아이들을 당분간 맡아 달 라는 것이오. 그렇게 해주시면 내가 금방 찾으러 오리다." 악산산은 그 말을 듣고 내심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당신은 찾으러 오지 마세요. 차라리 제가 영원히 당신에게 가고 싶어요!) "알겠어요." 악산산이 대답하자 용아와 봉아는 일순간 마치 날벼락이라도 맞은 사람들처 럼 안색이 제모양들이 아니었다. "화 상공님, 그건 안돼요. 우리들을 어째서 이곳에 남겨 두시려는 거죠?" 화검운은 봉아의 말에 웃으며 대답했다. "사실 그 장보고는 너무나도 위험한 곳이기 때문에 나는 어쩔 수가 없이 너 희들을 데려갈 수가 없는 것이다. 내가 반드시 돌아와서 너희들을 찾을 것 이니 너무 섭섭해 하지 말아라." …… 용아와 봉아는 여전히 불만인 듯이 입술을 삐죽거렸으나 이내 하는 수 없다 는 듯이 시무룩한 표정들이었다. 왜냐하면 화검운은 평소에는 늘상 관대한 편이지만 일단 그가 결정을 내린 일에 대해서는 거의 번복하지 않는 성격이 라는 것을 그녀들이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 함께 가지 않겠소?" 화검운의 말에 황약화는 고개를 끄덕이며 가볍게 미소를 보였다. "그렇지 않아도 실은 지금 떠나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 화검운은 이어 용아와 봉아가 부득불 우겨서 갈아입히는 새로운 의복으로 갈아입고 세수를 마친 다음에 식사를 할 겨를도 없이 황약화와 함께 바삐 성의 동쪽으로 향해 날아갔다. 농아방과 진시황의 무덤은 그 장안성 내의 동쪽 부위에 위치하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 계속 -- ─────────────────────────────────────── 일반연재 [백상] 종남사부 7권 제49장 -a- 총 Page : 12 -------------------------------------------------------------------------- ---- 게 시 자 : tohana(박성호) 게 시 일 : 97/04/16 14:11:45 수 정 일 : 크 기 : 10.0K 조회횟수 : 28 [백상] 종남사부 제7권 제49장 -a- 04/12 03:48 275 line 올 린 이 : 양한우 HITEL ID : hanwoo71 제49장.(1) 지옥(地獄)으로 가는 복마전(伏魔殿) 진시황의 장보고(藏寶庫). 그것은 생각 외로 진시황릉과 상당히 멀리 떨어 진 하나의 깊은 절곡(絶谷) 속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화검운과 황약화가 그 곳에 이르렀을 때에는 이미 무수한 사람들이 그 주변에 모여 있어서 그들의 숨소리가 마치 태풍이 불어닥치는 것처럼 들려 오고 있는 중이었다. 가히 지금의 이러한 상황은 태풍전야라고 말할 수가 있을 것이었다. 무수한 무림인들이 간밤에 언제 그와 같은 치열한 격전이 있었냐는 듯이 곳 곳에 모습을 감추고 숨어 있었고, 거대한 절곡의 아래쪽에는 다소 낯익은 듯한 무리들이 조심스러운 동작으로 서서히 움직이고 있었다. 바로 그들은 농아방(聾啞幇)의 무리들이었던 것이었다. 비록 그들은 주위에 많은 사람들 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미 장보도의 위치가 탄로난 만큼 개의 치 않는 표정들이었다. 하기는 이 진시황의 장보도는 오랫동안 그 의문을 풀지 못했을 정도로 복잡 하고 정교한 것이었으므로 거기에 설치되어 있는 기관창치 등은 무서운 수 준일 것이었다. 만일 누군가가 욕심을 내어 함부로 농아방의 무리의 뒤를 따른다고 하면 그 사람은 쉽게 안에서 목숨을 잃게 되기가 십상인 것이었 다. 주위에서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의 시선에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그들 농 아방의 무리와 방주인 농아두타(聾啞頭陀) 피득(彼得)은 조심스럽게 주위의 지형(地形)을 살피면서 절곡의 아래를 걸어가다가 이윽고 하나의 거대한 바 위 앞에 이르렀다. 그 바위는 크기가 집채만하며 특이하게도 마치 작은 야산처럼 단단하게 생 겼는데 검은색이었고 오랜 세월 동안 풍화에 시달린 흔적이 엿보였다. 그런데 농아방주인 농아두타 피득은 그 바위를 보고 한참 동안 면밀하게 검 토를 하고 나자 이내 희색(喜色)을 크게 일으키는 것이었다. 아마도 자신이 해석한 내용과 현실이 맞아떨어지는 모양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윽고 농아두타는 잠시 동안 그 커다란 바위의 앞에서 숙고 를 거듭하는 듯하더니 바위의 사방에 막대기를 가지고서 원이나 호(弧), 그 리고 직선이나 어떤 그림과도 같은 것을 그려 가기 시작했다. 그와 같은 광 경은 얼핏 보기에는 마치 어린 아이들이 장난을 하고 있는 광경과 흡사해 보였으나, 왠지 그 기이한 그림에는 현기(玄機) 가 가득하게 들어 있는 것 같았다. 화검운은 이내 그 농아두타 피득이 그리고 있는 것이 한 가지의 심오하기 짝이 없는 진법(陣法)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기실 당시 진시황이 있었을 적에 실로 그러한 진법이라는 것이 있었을지는 알 수가 없지만 아무튼 그렇게 복잡하기 짝이 없는 진법을 사용하는 것으로 보아 이 장보고는 상당히 난해한 기관장치로 만들어져 있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을 것 같았다. 농아두타 피득은 이내 수하들에게 자신이 그린 그림에 각기 돌덩어리나 흙 을 날라다가 똑같이 쌓을 것을 명령했는데 농아방도들의 신형은 아주 빠르 게 움직였다. 그들은 방주가 다시 지시하지 않아도 애써서 움직여서 진법을 완벽하게 만들기에 주력했는데, 그러한 광경은 앞으로 그들의 앞에 나타나 게 될 장보고의 보물들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은 모습들이 었다. 어느덧 아침의 햇살이 중천에 떠오른 해의 기운을 강렬하게 퍼붓기 시작하 고 있었고 사람들이 움직이는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때 문득 기이한 일이 하나 벌어졌는데, 놀랍게도 진법이 서서히 완성되어 감에 따라서 그 바위의 전체가 완전히 안개와 같은 기류(氣流)로 뒤덮이더 니 이윽고는 그 진법의 내부에서 햇살이 한곳으로 집중되어 반사되기 시작 하는 것이었다. 그러한 현상은 갈수록 심화되어서 뚜렷해졌고 이내 어찌나 강렬한 빛이 반사되는지 눈이 부실 것 같았는데, 그 빛이 바로 그 커다란 바위가 있는 절벽의 윗부분을 강렬하게 파고드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그 빛이 너무나도 강렬해서 마치 그 절벽면이 일시에 녹아 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에 농아방도들 가운데에서 비교적 낯익은 불구이괴(不 具二怪) 가운데의 곤괴(坤怪) 호일지(胡逸之)가 번쩍 신형으 ㄹ날리더니 이 윽고 그 빛이 비춰진 부분을 장력으로 후려갈기는 것이 아닌가! 그 절벽면은 물론 암벽으로 되어 있었고 따라서 호일지의 무공이 제아무리 높다고 해도 그가 장력으로 후려치는 힘은 겨우 그곳에서 약간의 돌가루를 일어나게 할 뿐이었다. 헌데 바로 그 순간의 일이었다. 놀랍게도 구구구궁! 하는 거대한 음향이 들 려 오기 시작하더니 진법의 안개가 일시적으로 사라지면서 그 커다란 바위 가 통째로 서서히앞으로 밀려나오면서 그 뒤로 하나의 커다란 동굴이 시꺼 멓게 입을 벌리는 것이었다. ……! 사람들은 그러한 광경을 보자 하나같이 경악한 표정들을 지었으며 농아방도 들은 매우 기뻐하는 모습들이었다. "앗! 장보고(藏寶庫)다!" 미리부터 그렇게 소리치며 그쪽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도 상당수가 나타났 다. 농아방도들은 이미 그러한 것들을 예측한 모양인지 이내 질서정연하게 즉시 그 동굴의 안으로 들어간 다음에 즉시 기관을 움직여서 동굴의 입구를 닫으 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예상 외로 그것이 잘 안되는 모양으로 농아두 타는 크게 당황해 하는 눈치였으나 그 순간에 이미 성급한 무림인들이 그들 의 뒤를 따라서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처음에 농아방도들은 그들과 대적을 해서 물리치려고 했다. 하지만 결국 그 것이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자 이내 사람들이 들어오는 것을 막지 않고 자 신들이 먼저 동굴의 안쪽으로 빠르게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것은 대체 어떤 착오가 있었던 것이었을까? 아마도 그거은 이 장보고의 기관장치가 너무나도 오래된 것이어서 문이 닫히는 기관이 잘 작동되지 않 은 모양이었다. 일단 그렇게 장보고의 동굴의 입구가 훤하게 개방되고 나자 다소 신중한 성 격의 무림인들도 잇달아서 그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고, 마침내는 이곳에 모여든 수많은 무림인들이 한꺼번에 떼를 지어서 그 안으로 들어가는 광경 을 자아내게 되었다. ……! 화검운은 늦게까지 그러한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가 이윽고 황약화를 향해 입을 열어 다음과 같이 물었다. "어떻게 하겠소? 황 낭자도 그들을 따라서 안으로 들어갈 생각이오?" 황약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그렇게 하는 것이 좋으리라고 생각해요." 화검운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신형을 일으켰다. "그렇다면 우리는 함께 안으로 들어가 보도록 합시다!" 이어 화검운이 먼저 신형을 날리자 황약화도 역시 그의 뒤를 따랐으며, 두 사람의 신형은 마치 비조(飛鳥)가 빠르게 하강하는 것처럼 날아서 그 동굴 의 입구에 이르렀다. 그때에는 이미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은 끊어져 있어서 이미 대부분의 사 람들이 안으로 들어가 버린 모양이었다. 화검운과 황약화는 잠시 동굴의 입구에 널려 있는 진법의 모양이나 그 잔해 들을 살펴보면서 서서히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 동굴은 실로 거대하기 짝이 없는 모양이었다. 거의 수백 명에 달하는 그 많은 사람들을 모조리 받아드리고도 전혀 성이 차지 않는 거대한 괴물처럼 화검운 등이 안으로 들어섰을 때에는 이미 그들의 앞에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고 있었다. 화검운과 황약화는 이윽고 한참을 나아가다가 하나의 갈림길에 도달하게 되 었다. 그 두 개의 갈림길에는 각기 수많은 사람들의 발자국이 있어서 대체 어떤 길로 가는 것이 옳은 것인지 찾아내기가 곤란해졌다. 만일 첫 번째로 안으로 들어선 농아방의 방도들이 들어간길을 찾을 수가 있다면 좋겠지만, 그러나 그것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이겠는가? 그런데 바로 그때의 일이었다. 화검운과 황약화가 잠시 두 개의 길을 놓고 망설이고 있는 도중에 문득 동굴의 입구 쪽에서 거대하기 짝이 없는 굉음 (轟音)이 들려 오더니 일순간에 주위가 암흑(暗黑)처럼 변해 버리는 것이 아닌가! 물론 화검운이나 황약화와 같은 초절정의 경지 이상의 고수들은 칠흑의 어 둠을 밝게 꿰뚫어볼 수가 있는 눈을 가지는 것이어서 그다지 행동을 하는 데에는 지장이 없었으나, 실로 그 조금 전에 일어난굉음은 뭔가 불길한 일 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은 예감을 느끼게 해주고 있었기 때문에 두 사람은 일시에 안색이 변해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 아니 두 사람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는 그 순간에 이미 약속이라도 한 듯 이 거의 동시에 밖을 향해 빠르게 다시 신형을 날려 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자신들의 불길(不吉)한 예감을 확인해 보고자 하는 심정에서 행하고 있는 일이었다. 지금 그들의 신법은 가히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빠른 것이어서 비록 아 까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러서 지나온 길이었지만 이제는 단 한 순간에 그 거리를 지나서 동굴의 입구에 도달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단 동굴의 입구에 도달한 그 두 사람은 그만 허탈해진 마음을 가 눌 수가 없어서 절로 멍한 표정들이 되고 말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이 안 으로 들어왔던 그 동굴의 입구는 이미 거의 백여 장이나 허물어져서 완전히 길이 사라져 버린 뒤였던 것이었다. (……!) 이것은 실로 기이한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전시황의 장보고에 어째서 느닷없이 이러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이러한 결과를 단순히 기관의 고장이라고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많았다. 실 로 이렇게 백여 장에 가까운 동굴이 일시에 허물어지기 위해서는 철저한 계 획 아래 누군가의 음모(陰謀)가 진행되었을 것이 분명했다. 간간히 부근에 서 지독한 화약(火藥)의 냄새를 느낄 수가 있는 것이 그 대표적인 이유라고 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한 가지 알 수가 없는 사실이 있었다. 원래 이 장보도는 오랫동안 비밀 속에 묻혀 있다가 이제서야 농아두타의 노력으로 개방되게 되었던 것 이었다. 그런데 누가 어떻게 그 짧은 시간 동안에 이러한 짓을 해낼 수가 있었던 것이었을까. 아니 구태여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문제였다. 그렇다면 결국 결론은 하나로 집약되는 것이었다. 이 동굴은 그럼 실로 수 천 년만에 처음으로 지금 개방되었던 것이 아니고 미리부터 개방되어 있었 으며, 그것이 흉수에 의해 이용되었을까? 화검운은 지금 스스로 그럴 가능성이 아주 농후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 다. 우선 그 장보도라는 것이 그렇게 심오(深奧)하여 농아두타가 무려 수십 년간이나 각고 노력한 끝에야 비로소 그 열쇠를 풀 수가 있었다고 하는 것 은 미심쩍은 부분이 있었다. 당시 진시황의 시절에 그와 같은 진법(陣法)에 대한 지식이나 기관장치에 대한 지식이 있었다고는 해도 실로 은밀하게 빼 돌렸던 장보도에 그러한 심오한 내용이 담겨져 있었을 것인가 하는 문제였 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그 장보도는 그곳을 만든 장인(匠人)의 하나가 일 부러 자손들을 위해 밖으로 유출시켰다고 했는데, 그 장보고에서 죽어 간 장인이 비록 토목건축학에 능력이 있었다고는 해도 그처럼 진법이나 모든 기관장치의 학문에마저 능통하고 있어서 그 한 장의 장보도에 그 모든 것들 을 실을 수가 있었다고 하는 자체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점이었다. 게다 가 아까 보았다시피 그 진법에 의해 열리게 되어 있는 동굴의 입구가 비록 그럴 듯하게 되어 있기는 했지만 한눈에 보기에도 그다지 오랜 세월 동안 지내 온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가 없을 정도로 너무나도 정교했으며, 게다가 또한 그렇게 문을 여는 방법이 정교했으면서 오히려 문을 닫는 방법이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은 쉽게 납득할 수가 없는 문제였다. 그러니까 결국에 는 이 장보고의 사건은 누군가가 허위(虛僞)로써 사람들을 현혹시키기 위해 일부러 이와 같은 장소를 만들어서사람들에게 유포시킨 것이라는 말일까? 그러한 생각을 쉽게 할 수는 없는 일이었지만, 그러나 만일 동굴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능히 그러한 모든 얘기를 꾸며내는 것은 가히 어렵지 않 은 일이었을 것이었다. ─────────────────────────────────────── 일반연재 [백상] 종남사부 7권 제49장 -b- 총 Page : 8 -------------------------------------------------------------------------- ---- 게 시 자 : tohana(박성호) 게 시 일 : 97/04/16 14:13:23 수 정 일 : 크 기 : 5.4K 조회횟수 : 30 [백상] 종남사부 제7권 제49장 -b- 04/12 03:48 275 line 올 린 이 : 양한우 HITEL ID : hanwoo71 제49장.(2) 지옥(地獄)으로 가는 복마전(伏魔殿) 만일 그렇게 정말로 장보고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대체 어째서 그러 한 것이 만들어졌으며 또한 어떠한 것들이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아마도 그러한 것들은 이제 앞으로 기다려 보면 그들의 앞에 자연스럽게 나 타나게 될 것이었다. 흉수(兇手)는 이제 거의 목적대로 되었을 것이므로 이 제야말로 자신의 흉심(兇心)을 노골적으로 드러낼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생각해 보니 실로 이 동굴은 길고도 길어서 이제까지 안으로 들어간 사람들 은 미처 이 입구가 무너진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이거나 혹은 이미 그 많은 사람들이 모조리 죽음을 당했을 가능성(可能性)도 있는 것이었다. (……) 황약화가 잠시 묵묵히 생각에 잠겨 있었는데 화검운이를 그녀를 향해 말했 다. "우리는 기왕에 들어왔으니 함께 다시 들어가 보는 것이 어떻겠소?" (……?) 황약화는 화검운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다가 문득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아무래도 이곳으로는 나갈 수가 없을 것 같아요." 화검운은 웃으며 말을 받았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 동굴이 그다지 작은 것 같지가 않아서 공기가 많아 서 쉽게 질식하지 않을 것 같다는 사실이오." "……" 황약화는 그 말을 듣고 묵묵히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다가 문득 이렇게 물었 다. "그 여자는 정말로 그렇게 아름다웠나요?" 화검운은 느닷없는 그녀의 질문에 다소 어리둥절해졌다. "아니, 누구 말이오?" 황약화는 다소 안색을 붉히는 듯하면서 대답했다. "화중화 말이예요." 화검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 음희아 말이로군." 하지만 화검운은 느닷없이 지금과 같은 긴박한 상황에 황약화가 그러한 얘 기를 꺼내는 것을 보고는 어리둥절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대체 여자의 관심사라는 것은 아주 엉뚱한 경우가 많은 것이다. 실제로 지 금과 같은 상황에서도 그녀는 목전의 생사 문제보다도 그런 남녀 사이의 관 계에 대해서 더욱 관심이 많은 모양이었다. 기실 그것은 여자이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이었다. 물론 남자이면서도 여성적인 성향을 띠고 있는 사람들이 더러 있기도 하지만 그런 것을 일부러 기이(奇異)하게 생각 할 것은 하나도 없는 것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여자의 마음이야말로 실로 알 수가 없는 것이라고들 하는데 기실은 그러한 얘기는 전적으로 옳은 얘기가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기 실은 그렇게 되어 있는 여자들의 마음이야말로 상당히 유치하고 감정이 복 잡하게 얽혀 있는 것이어서 오히려 그 근본을 알고 나면 그 심리(心理)를 이해하는 것은 쉬운 일인 것이었다. 다만 천하에는 실로 그 마음을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있는데 그러한 사 람들은 쉽게 만날 수도 없고 또한 그렇게 되기도 쉽지 않다. 그것은 그러한 사람의 마음은 깊은 수양(修養)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며 기실은 그렇게 이루어지는 것도 없다고 한다. 화검운은 다시 물었다. "아니, 그 얘기가 궁금하다는 말이오?" 황약화는 다소 어색한 듯이 동문서답식의 말을 했다. "당신은 그녀를 사랑했었나요?" 화검운은 잠시 생각하다가 계속해서 걸어가면서 그녀를 향해 대답했다. "사실 그녀는 아름다운 여자였소. 아마도 세상에서 그렇게 아름다운 여자를 찾는 것은 쉽지가 않을 것이오." 황약화는 다시 물었다. "당신은 그녀를 사랑했었나요?" 화검운은 대답했다. "나는 이미 그녀를 나의 처로 인정하였소. 나는 물론 그녀를 사랑했고 그녀 역시 나를 사랑했기 때문에 죽어 간 것이오." 황약화는 그 말에 다소 놀라며 눈빛을 빛내며 다시 물었다. "아니, 당신은 그녀가 당신 때문에 죽은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나요? 그럼 그녀는…… 스스로 자결을 한 것이었나요?" 화검운은 대답했다. "그녀는 내가 자결을 하는 것을 방해할까 봐 그저 태연하게 거실에 나가서 나를 기다리는 척하고는 이내 비수로 자결을 하고 말았던 것이오." (……) 황약화는 잠시 묵묵히 생각에 잠긴 표정이었다. 그러한 표정을 보고 있자니 마치 그녀는 지금의 현실을 아예 망각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 다. 사실 같은 여자의 마음이라고 해도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그 수양의 깊이에 따라서 천방지축으로 쉴새없이 흔들리는 마음이 있는가 하면, 역시 조용하 고 맑아서 알기 어려운 마음을 가진 여자도 있다. 생각해 보면 이 황약화의 경우는 약간 후자에 속한다고 할 수가 있었다. 지금 그녀가 느닷없이 음희 아의 얘기를 꺼낸 것은 마치 원숭이처럼 어지럽게 흔들리는 그러한 마음에 서가 아니라 뭔가 분명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그러한 질문을 하고 있는 것 이었다. 화검운은 황약화가 갑자기 말문을 닫고 생각에만 잠기자 자신도 역시 앞으 로 나아가는 일에만 주력(注力)하여 어느새 두 사람은 다시 예의그 갈림길 에 도달하게 되었다. "어떤 길로 가고 싶소?" 화검운이 그렇게 묻자 황약화는 문득 고개를 돌려 그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갑벼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저는 당신과 함께 가도록 하겠어요." (……) 화검운은 그렇게 말해 주는 황약화의 태도에 왠지 다정함을 느끼게 되어서 미소하다가 하는 수 없이 우선 좌측의 길을 잡아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 동굴은 역시 이리저리 구불구불하게 앞으로 뻗어 있었는데 기이하게도 위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아래쪽으로 한없이 내려가고 있었으며, 게다가 잠 시 후에는 두 사람의 앞에 다시 하나의 갈림길이 나타나 있는 것이었다. 화검운은 그 갈림길에 역시 많은 사람들이 나뉘어져서 나아간 것을 보고는 내심 한 가지 느껴지는 바가 있었다. 그러니까 이 동굴은 끝도 없이 계속해 서 두 개로 갈라지게 되며 나중에는 흡사 미로와도 같은 형상을 유지하게 되어 있으므로 그 많은 사람들이 아느로 들어갔지만 각기 미로(迷路)에 갇 혀서 헤매고 있는 것인 것 같았다. 게다가 이 동굴은 계속해서 아래쪽으로 내려가고 있었으므로 화검운은 내심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이 동굴 속은 그야말로 복마전(伏魔殿)이라고 할 수가 있겠군. 그야말로 지옥(地獄)으로 내려가는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일단은 나아가지 않을 수 가 없겠군!) 다행히 화검운으로서는 이러한 암흑이 전혀 장애가 되지 않는 것이어서 다 른 사람들과는 같지 않을 것이었다. 화검운은 이내 역시 좌측으로 나아갔고 황약화는 여전히 묵묵히 생각에 잠 긴 표정으로 그의 뒤를 따랐다. -- 계속 -- ─────────────────────────────────────── 일반연재 [백상] 종남사부 7권 제50장 -a- 총 Page : 14 -------------------------------------------------------------------------- ---- 게 시 자 : tohana(박성호) 게 시 일 : 97/04/16 14:15:21 수 정 일 : 크 기 : 10.6K 조회횟수 : 31 [백상] 종남사부 제7권 제50장 -a- 04/12 03:49 298 line 올 린 이 : 양한우 HITEL ID : hanwoo71 제50장.(1) 내가 바로 종남사부(終南師父)요 길은 계속해서 두 갈래로 눈앞에 나타났고 화검운은 더러는 왼쪽으로 더러 는 오른쪽으로 나아가기도 했다. 화검운은 지금 비교적 많은 사람들이 지나 간 쪽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었으며 과연 그 끝이 어떤 것일까 하고 알아 보려고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길이 미로처럼 계속해서 갈라지는 것은 맞는 말이었지만 뜻밖에도 그 모든 미로가 나중에는 하나로 모이게 되는 것인 줄은 미처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 광장! 화검운과 황약화는 얼마 후에 이윽고 이 거대한 지하광장에 이르게 되었다. 그 지하광장에는 실로 수백 명의 무림인들이 각기 모여 앉아 있었으며 그들 은 하나같이 중앙을 주시하고 있었으며 사람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미리 준비한 횃불 등으로 주위를 밝히고 있었지만, 그보다는 지하광장의 중앙에 있는 커다란 지하통로 속에서 아주 강렬하고도 시뻘건 불빛이 흘러나와 주 위를 훤하게 밝혀 주고 있는 상태였다. 화검운은 처음에는 거의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으나 이내 이 거대한 지하 세계가 실로 기이(奇異)하고 오묘하게 만들어졌다는 것을 느끼고 감탄하게 되었다. 그는 이미 이 동굴과 광장들이 천연의 모습에 인공을 더한 것이라 는 점을 파악하고 있었고, 비록 천연적(天然的)으로 이와 같은 모습을 갖추 고 있었다고 해도 이러한 지하세계를 이처럼 완벽하게 갖추어 놓을 수가 있 었던 사람의 능력(能力)에 대해서는 자연히 경외감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 다. 따라서 화검운은 즉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과연 이 거대한 지하세계를 만들어 놓은 사람과 그 흉수(兇手)는 동일한 사 람이었을까? 대체 동일한 사람이었다면 그 흉수는 가공할 능력으로 무엇 때 문에 이와 같은 짓을 한 것이었으며, 혹은 다른 사람이라면 그 두 사람의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화검운의 그러한 의문은 쉽게 풀리지 않는 것이었다. 대신 눈앞의 상황이 한창 숨가쁘게 펼쳐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황약화와 함께 광장의 입구에 서서 광장의 중앙 쪽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 지금 광장의 중앙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나타나서 장내의 사람들을 향해 제각기 말을 하고 있었는데, 그들의 말은 대부분이 이러한 것이었다. 즉, 당금의 무림에 만상회(萬象會)라는 거대한 단체가 있는데 지금 그 단체에는 흑풍사나 백의맹이 동시에 가입하고 있고 천하를 머지 않아서 제패(制覇)할 것이라는 말이었다. -- 만상히! 화검운은 느닷없이 그와 같은 엉뚱한 이름을 뜨게 되자 금세 단목소소의 얼 굴이 떠오르지 않을 수가 없었고, 마치 그녀가 이러한 일을 미리 예견하고 얘기를 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단목소소는 당금의 천하에서 백의맹과 흑풍사가 결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었는데, 그렇다면 그 결탁을 하고 있는 원형은 바로 만상회(萬象會)라는 것이란 말인가? 화검운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은 기실 그와 같은 느닷없는 얘기를 믿고 싶 은 기분이 전혀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 기이하게도 중앙에 나타나서 그러한 얘기를 하고 있는 사람들은 바로 백의맹과 흑풍사의 중요한 역할들을 차지 하고 있는 천상신룡(天上神龍) 백능풍이나 일월마혼(日月魔魂) 곡천괴(曲天 魁), 그리고 그 밖의 강호십대용봉의 대다수가 끼어 있었으며, 그들이 직접 자신들의 입으로 그러한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니 놀랍고 믿지 않을 수가 없지 않겠는가! 화검운과 모든 사람들은 이 순간에 수라존자의 행세를 했던 곡천괴와 천상 신룡 백능풍 등이 모두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 그와 같은 얘기를 하고 있 는 것을 보고는 처음에는 혹시 그들이 가짜이거나 혹은 정신이 어떻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앞섰다. 그러나 계속해서 보면 볼수록 그들의 정신은 멀쩡한 것 같았고 또한 탁월한 무학 실력이 말해 주고 있는 그들은 가짜가 아니었다. 이 순간에 백능풍은 장내의 사람들을 향해 이렇게 소리치고 있었다. "여러분! 지금 여기에 유일(唯一)의 기회가 있는 것이오. 만일 여러분들이 우리 만상회에가입을 하여 몸과 마음을 다 바친다면 앞으로 영원한 명예와 행복이 주어지게 될 것이오. 그러나 만일 그렇게 하는 것을 거역하는 날에 는 저기에 있는 지옥의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오." 장내의 사람들은 그러한 얘기를 듣고 더러는 몸을 일으켜서 거세게 항의를 했고, 혹은 앞으로 나서서 그들에게 공격을 하려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 나 기이하게도 그 다음 순간에는 그들의 육신은 하나같이 벼락맞은 사람처 럼 느닷없이 시신으로 화해서 정말로 뒤쪽의 거대한 구멍 속으로 떨어지게 되는 것이었다. 기실 그 구멍 속에는 그야말로 지하의 심층에서 자리하고 있는 용암이 흐르 고 있는 상태였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그자들은 그러한 현실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말하자면 지금의 장내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극도 의 공포(恐怖)와 긴장감 등으로 짓눌려져 있는 상태였는데, 백능풍 등은 각 기 사방으로 거대한 구명을 등지고 둘러서서 장내의 사람들을 향해 각기 목 소리에 진기(眞氣)를 실어서 계속해서 소리치고 있는 것이었다. "여러분! 지금 이 자리는 그야말로 여러분들의 중요한 시험대인 것이오. 앞 으로 여러분들의 결정에 따라서 행복과 불행의 갈림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 인데, 만일 지금이라도 저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면 말을 하도록 하시오!" 화검운은 그러한 얘기들을 듣고는 그만 참을 수가 없는 심정이 되어서 질문 을 하고 말았다. "그렇다면 만일 만상회에 모두가 가입을 한다면 이곳을 벗어날 수 있게 해 주겠다는 말이오?" 백능풍이 그의 얼굴을 바라보고 다소 눈살을 찌푸렸는데 이내 대꾸했다. "물론이다. 우리가 설마하니 실언(失言)을 할 것으로 생각하는가?" 화검운은 담담히 웃으며 대꾸했다. "당신들은 이제까지 정의를 부르짖고 나서 그와 같은 말을 하고 있으니 어 찌 당신들의 말을 믿을 수가 있겠소? 게다가 지금 이 동굴의 입구는 막혀 있는 것인데 우리가 어떻게 나갈 수가 있다는 말이오?" 사람들은 일순 그러한 말을 듣고는 화검운을 아는 사람들은 저마다 크게 경 악하여 소리차고 아우성을 쳤다. 백능풍은 다소 곤혹한 표정을 짓더니 냉랭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너는 말도 되지 않는 소리를 하지 말아라! 지금 만상회의 회주(會主)는 바 로 우리 할아버님이시므로 나를 이런 곳에서 죽이실 리가 없지 않느냐?" 화검운은 역시 미소하며 대꾸했다. "하지만 당신이 밖으로 나가 봐도 역시 입구가 막혀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 이 없을 것이니 아마도 당신의 조부가 당신을 버린 모양이오. 당신에게는 동생이 하나 있으니 만일 천하를 얻는 목적이라면 당신과 같은 아들 하나는 버릴 수가 있는 사람들이겠지." "……" 백능풍은 화검운의 그 말에 드디어 다소 당황해 하는 기색을 지었으나 이내 그럴 리가 없다는 듯이 냉소하고 말했다. "흐흐! 나는 이미 다음 다음 대의 만상회주의 후계자로 내정되어 있는 사람 이므로 그럴 리가 없는 것이다. 만일 정말로 입구를 막은 것이라면 거기에 는 어떤 뜻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결코 이곳에서 죽지 않으며, 만일 나를 따르는 사람들이 있다면 나는 그들을 이곳에서 이끌고 나갈 것이 다!" 이 백능풍의 어조는 상당히 강한 신념(信念)으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았다. 하기는 백능풍의 조부가 당금의 만상회의 회주인 것을 생각한다면 그 만상 회주가 결코 자신의 장손(長孫)을 이렇게 제거할 리는 없는 것이라는 백능 풍의 말에도 일리가 있는 것이어서 화검운은 혹시 자신의 생각이 도리어 틀 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믿을 수가 없다. 이미 입구는 백여 장이나 완전히 무너져 버렸는데 어떻게 이곳에서 나간다는 말이냐? 만일 그 백여 장이나 되는 입구를 다시 뚫고 나가려고 한다면 아마도 모두가 이곳에서 숨이 막혀서 죽게 될 것이 다." 화검운의 말에 백능풍은 다소 짜증스러운 기색을 짓더니 문득 화검운의 옆 을 향해 이렇게 입을 열어 말했다. "황 소저! 당신도 한 번 말해 보시오. 당신의 말이라면 그가 믿지 않을 수 가 없겠지. 당신도 만상회(萬象會)의 회원이 아니오?" ……? 화검운은 설마하니 백능풍이 황약화를 향해 그렇게 질문할 줄은 몰랐었기 때문에 다소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어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황약화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그를 더욱 더 놀라게 만들었다. "나는 물론 만상회의 회원이고 일백 명의 만상회원들 가운데의 만상팔십일 호(萬象八十一號)이지요." -- 만상팔십일호! 그 엄청난 얘기를 들으면서 화검운은 일순 정신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비단 그뿐만 아니라 이곳의 많은 사람들도 아직 설마하고 있다가 가장 믿을 만하다는 황약화조차 그와 같은 말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는 경악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만상회라는 말은 밖에서는 전혀 소문도 듣지 못했었는데 이곳에 들어오자마자 도깨비처럼 느닷없이 나타나게 되었던 것이었는데, 아 직 누구도 그러한 것을 확실히 믿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그러한 얘기가 사실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 인식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화검운은 항상 함께 다니곤 하던 황약화가 마치 한 순간에 다른 사람 이 된 것 같이 냉랭한 표정으로 그렇게 대꾸하는 것을 보고는 어이가 없어 서 생각했다. (이것은 정말로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꿈은 결코 아닐 것이 다. 원래 그녀는 다른 수라존자 등의 사람들을 만났어도 결코 싸우려고 하 지 않았었다. 아니 그들은 의도적으로 서로를 피하고 있었던 것이었는데, 만일 그들이 한통속이 아니고 정말로 정사지간의 원수 사이였다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겠는가? 게다가 다른 천상팔패의 사람들 역시 아직 한 번도 본격적으로 싸웠다는 소리를 들어 보지 못한 것이 아닌가! 그리고 단목소소 의 얘기도 이에 부합되는 것이고. 다만 이 황 낭자가 그와 같은 신분의 사 람이었다니 이는 실로 애석한 일이 아닌가!) 화검운 등이 크게 경악하는 것을 바라보며 백능풍은 다시 득의한 기색으로 황약화를 향해 물었다. "당신은 이번에는 나에 대해서 말해 보시오!" 황약하는 주저없이 대꾸했다. "당신은 틀림없이 당신의 부친의 뒤를 이어서 만상회의 회주가 되실 분이예 요." 백능풍은 크게 득의하여 다시 물었다. "지금의 상황을 당신도 저 화검운과 함께 보았었을 것이지만 과연 우리가 이곳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시오?" 화검운은 문득 그 소리를 듣는 순간에 한 가지의 기이한 느낌이 떠올라서 생각했다. (아니지! 가마히 보니 이 황 낭자는 아까 그 무너진 입구를 보고서도 전혀 딴전만을 피웠던 것이 아닌가! 정말로 금방 죽을 사람이 그와 같은 여유를 부릴 수가 있을까? 그렇다면 혹시 내가 당시의 상황을 잘못 본 것이 아닐 까?) 화검운은 왠지 더욱 괴이쩍은 느낌이 들었다. 자신이 왠지 귀신(鬼神)에 홀 리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황약화는 백능풍을 향해 곧장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지는 않아요. 비록 입구가 다소 막혀 있는 것은 틀림이 없지만 그거은 어떤 방편일 뿐이지 영원히 우리를 버린다는 의미는 아니예요." ……? 이때 화검운 등도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정작 입구가 막혔다는 얘기 를 듣고 나자 백능풍도 일시 믿을 수가 없다는 듯이 곤혹스러운 기색이 되 어 물었다. "아니, 정말로 입구가 막혀 있다는 것이오?" 황약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래요." 백능풍은 더욱 이상한지 다시 물었다. "그것은 대체 어떤 것을 위해서 그렇게 만든 것인지 알고 있는 바라도 있 소?" 황약화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꾸했다. "그것은 바로 우리들이 여기에 있는 많은 무림인들을 몰살시켜 주기를 바라 고 있기 때문이지요. 만일 우리가 그 일을 완수하게 되면 입구는 다시 자동 적으로 열리게 될 거예요." 화검운은 입구가 다시 자동적으로 열리게 된다는 말도 믿을 수가 없어서 어 처구니가 없는 기분이었다. 백능풍은 그러나 그제서야 매우 흡족한 듯이 수긍하는 표정이었다. "하기는 여기에 있는 이 많은 사람들을 모두 만상회에 가입시킬 수는 없는 일이지. 원래 만상회는 모두 일백 명의 초절정 고수들로 되어 있는 것이 아 닌가! 그것은 바로 앞으로 영원히 이어지게 될 신화제국(神話帝國)의 탄생 을 의미하는 것이니…… 흐흐흐, 어리석은 자들을 제거하지 않고는 그와 같 은 신화제국은 이루어지지 않는 법이지. 신(神)들의 세상이라는 것은 결코 때가 묻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체 무슨 방법으로 이 많은 사람 을 제거한다는 말인가?" ─────────────────────────────────────── 일반연재 [백상] 종남사부 7권 제50장 -b- 총 Page : 9 -------------------------------------------------------------------------- ---- 게 시 자 : tohana(박성호) 게 시 일 : 97/04/16 14:16:45 수 정 일 : 크 기 : 6.1K 조회횟수 : 29 [백상] 종남사부 제7권 제50장 -b- 04/12 03:49 298 line 올 린 이 : 양한우 HITEL ID : hanwoo71 제50장.(2) 내가 바로 종남사부(終南師父)요 ……? 사람들은 실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의(正義)와 협의(俠義)를 부르짖던 백 능풍의 입에서 그와 같은 악랄한 소리가 태연하게 흘러나오고 있는 것을 보 고는 그만 어처구니가 없어서 아무도먼저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에 마치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한 사람이 입을 열어 서 이렇게 소리치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 방법을 알고 있다. 그거은 바로 이와 같이 하면 되는 것이다!" 지금 말한 사람은 바로 태양마곡의 소곡주 화신룡(火神龍) 홍보(紅寶)였다. 그는 원래 얼마 전에 화검운에게 무섭게 당한 이후에 다시 내상을 치료하고 있었고, 게다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천상팔패의 인물들 가운데에서 그래도 나이가 많은 편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사람들은 그 화신룡 홍보가 무슨 커다란 덩어리와 같은 물건을 뒤쪽의 거대 한 구멍 속으로 내던지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일견하기로도 마치 사람의 머리통만한 것이었는데, 홍보는 이미 누구를 의식하고 있었는지 아주 빠른 속도로 거대한 구멍 속으로 내던져 버리는 것이었다. ……!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가 갑자기 무슨 물건을 그 구멍 속으로 내던지는 것을 보고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으나 그 가운데의 일부는 그 정체를 파악하고는 저마다 크게 경악하여 눈을 부릅떴다. 기실 원래 그 구멍 속에는 용암이 휘로 치솟지 못하게 거대한 옥석(玉石)이 짓누르고 있었는데, 지금 화신룡 홍보가 내던진 사람의 머리만한 물건은 바 로 작은 한 알이면 집채라도 부술 수가 있다는 벽력뇌화탄(霹靂雷火彈)이라 는 것으로, 말하자면 용암을 억제하고 있는 옥석을 파괴하려고 하는 것이었 다. 기실 그러한 분량의 벽력뇌화탄이라면 그러한 옥석뿐만 아니라 심지어 이 동굴 전체가 한꺼번에 날려가 버릴 가능성이 아주 높은 것이었다. 화검운은 이미 그러한 광경을 보았다. 그러나 홍보는 미리부터 그를 의식하 고 있었는 듯 가장 강하게 그 벽력뇌화탄을 아래쪽으로 내던졌기 때문에 도 저히 그것을 주격해서 잡아낼 수가 없었다. 과연 아니나 다를까 잠시 후에 우르르르르르! 하는 거대한 굉음이 광장을 뒤흔들더니 이윽고 꽈꽝! 하는 거대한 폭음과 함께 구멍 속에서 거대한 용 암이 강렬한 기세로 분출되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아악!" 사람들은 그러한 광경을 보자 어마 뜨거워라 하고 크게 경악하여 신법을 펼 쳐서 이를 피하기에 여념이 없었고, 마치 거대한 물줄기처럼 분출된 용암의 시뻘건 줄기는 이내 수백 명의 군웅들의 머리 위에 떨어져서 생지옥을 일으 킬 것 같았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의 일이었다. 장내에서 한 사람이 바로 그 순간에 번쩍 신형(身形)을 날려서 이미 그 솟아오르는 뜨거운 용암의 중심부에 올라가서 서서히 그 용암을 도로 아래로 내리는 것이 아닌가! ……? 사람들은 죽음의 공포(恐怖)를 느끼면서 그러한 광경을 바라보았는데, 일순 그만 믿을 수가 없어서 눈을 부릅뜨고 말았다. 그 사람은 바로 다름이 아닌 화검운이었던 것이었다. 이미 그 순간에 백능풍 등의 사람들은 광장의 밖으로 빠르게 달아나고 있는 중이었고 장내의 사람들도 그 뒤를 분분히 따르고 있는 중이었다. 단지더 러의 사람들만이 기이(奇異)한 능력을 발휘하고 있는 화검운의 모습을 지켜 보고 있었는데, 화검운은 그들을 향해 문득 이렇게 소리치는 것이었다. "여러분! 지금 곧 입구가 열리게 될 것이오. 내가 이 용암을 막고 있을 것 이니 여러분들은 즉시 빠르게 밖으로 나가서 그 천상팔패의 사람들과 함께 이 지하세계를 벗어나도록 하시오! 그들의 능력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여 러분들이 합세하면 결코 이겨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오!" 그 말을 듣고 이제까지 비교적 머뭇거리고 있던 장내의 사람들은 제각기 빠 르게 신법을 펼쳐서 밖을 향해 달아나기 시작했다. 이미 이 광장으로 통하는 통로들은 하나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들 수백 명의 사람들의 모습은 이내 흡사 썰물이 일시에 빠져나가는 것처럼 사라져 버리 고 말았다. 그리하여 실로 조금 전까지만 해도 수백 명의 사람들로 인해서 소란스럽던 이 지하광장에는 이제 화검운 한 사람밖에 남아 있지 않게 되었 다. 아니 정확히 따지자면 화검운 이외에도 아직 한 사람이 남아서 가지 않 고 있었는데 그 사람은 바로 황약화였다. 황약화는 이 순간에 이미 그 뜨거운 열기(熱氣)를 감당하지 못해서 거의 녹 아들고 있는 화검운의 새로 입은 의복들을 망연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화검운은 그것을 보고 문득 땀을 비오듯이 흘리는 가운데 말했다. "황 낭자, 당신은 어째서 가지 않는 것이오?" 황약화는 가볍게 웃으며 대꾸했다. "나더러 가라고요? 대체 당신이 왜 나를 위해 이렇게 신경을 써 줘야 하는 거죠?" 화검운은 다소 고소(苦笑)하며 대꾸했다. "이미 다른 사람들도 다 보냈는데 어찌 당신을 구하지 않을 수가 있겠소? 나는 사실 당신을 좋아하고 있는 상태인데 어찌 당신을 위험에 처하게 할 수가 있겠소?" 이에 황약화는 문득 다시 물었다. "정말로 당신이 나를 좋아하고 있는 것인가요?" 화검운은 이때 그의 머리카락까지 완전히 그을려서 그야말로 기이한 몰골이 되어 가고 있었다. 이 용암의 열기와 분출력은 가공(可恐)할 정도여서 이제 그의 모습은 그저 한 덩어리의 통구이가 되는 것이 남아 있을 뿐인 것 같았 는데 그러나 그의 얼굴 표정은 아직도 웃고 있었다. "물론이오. 사실 나는 이제까지 당신을 좋아하고 있었지만 내색하지 않고 있었을 뿐이오. 당신은 항상 그렇게 차가운 편이니…… 하하, 그러나 비록 그렇다고는 하나 당신이 어떻든간에 나는 역시 당신을 좋아하는 편이고 또 한 나로서는 유감(有感)이 없소." …… 황약화는 이에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가 오히려 밖으로 나가기는커녕 천천히 걸어서 화검운의 앞으로 다가갔다. 이 순간에 화검운은 용암의 분출을 억제하기 위해서 전신의 힘을 거의 다 쓰고 있는 형편이었는데, 그러노라니 그만 자신의 얼굴을 변화(變化)시키는 것을 잊고 있었다. 기실 그것은 오로지 이 용암의 열기가 너무나도 강렬했 기 때문에 도무지 다른 생각을 할 여유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황약화는 천천히 그의 앞에 이르러서 그를 바라보다가 문득 가볍게 놀라서 전신을 떨면서 말했다. "당신은 바로…… 바로 종남사부(終南師父), 그 사람이었군요!" 그렇다. 화검운은 종남사부였고 또한 그의 준미수려한 용모는 이 순간에도 거의 변함이 없이 빛나는 것이었다. 화검운은 이내 자신의 처지를 알아채고는 고소(苦笑)하며 말했다. "그렇소. 실은 내가 그 종남사부인 것이오. 나는 원래 강호의 혈겁을 종식 시키기 위해서 심지어 용아와 봉아에게까지 이러한 사실을 숨기고 말하지 않았던 것이오. 내가 이렇게 한 일에 대해서 당신에게는 미안하게 생각하 오." 황약화는 이에 다시 앞으로 다가갔다. 화검운은 그것을 보고 다소 놀라서 물었다. "아니, 어째서 당신은 그만 가지 않고 계속 다가오는 것이오? 내가 지금은 이렇게 잘 버티고 있는 것이지만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는 일이 므로 당신은 어서 지금 떠나도록 하는 것이 좋겠소." 그런데 황약화는 고개를 가로젓는 것이었다. "아니예요. 저는 떠나지 않겠어요." -- 계속 -- ─────────────────────────────────────── 일반연재 [백상] 종남사부 7권 제51장 <대미-a> ... 총 Page : 13 -------------------------------------------------------------------------- ---- 게 시 자 : tohana(박성호) 게 시 일 : 97/04/16 14:18:31 수 정 일 : 97/04/16 14:21:48 크 기 : 10.1K 조회횟수 : 28 [백상] 종남사부 제7권 제51장 <대미> -a- 04/12 03:49 307 line 올 린 이 : 양한우 HITEL ID : hanwoo71 제51장.(1) 아수라파천황(阿修羅破天荒) 화검운은 즉시 물었다. "아니, 왜 떠나지 않겠다는 것이오?" 황약화는 태연하게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나도 당신과 함께 있고 싶어요. 왜냐하면 구태여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면 우선은 나의 이 가면을 벗어 보여야 하겠군요." 말과 동시에 그녀는 손을 들어서 자신의 얼굴에 쓰어져 있는 인피면구를 벗 어 버렸는데, 순간 화검운은 눈앞이 시원해지는 듯한 느낌을 맛보았다. 실 로 이 황약화의 용모는 지극히 아름다운 음희아나 혹은 고결하기 짝이 없는 백유 등의 용모에 비해서 그다지 특별한 구석이 없다고도 말할 수가 있었 다. 그러나 기실 화검운은 그녀의 선명한 아름다운 얼굴에서 그야말로 가슴 이 시원해지는 것 같은 감동과 함께 깊은 친밀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오래 전에 잊고 있었던 제 짝을 이제야 다시 찾은 듯한 기분이었다. 아마도 강호오봉 가운데의 하나로서의 특징을 든다면 이 황약화의 아름다운 의 특징은 바로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라고 해야 할 것이었다. 거기에는 어 떤 특별한 요소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얼굴의 곳곳에 수려한 모습이 없는 것이 아니며, 요컨대 전혀 눈에 어긋나지 않는 조화있는 자연 스러움으로 그녀의 용모는 시원스러운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화검운은 실로 강호오봉 가운데에서 단목소소나 음희아, 그리고 세 번째로 커다란 호감을 느끼는 얼굴을 대하고 있는 것이었지만 기실은 그의 주관적 인 기분에 의하면 이 세 번째의 얼굴이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이었다. "핫핫, 당신은 정말로 원래 그렇게 생겼었군. 나는 이미 그럴 것이라고 생 각하고 있었소." 화검운의 말에 황약화는 다소 머뭇거리다가 다시 그의 앞으로 다가가기 시 작했다. 너무나도 뜨거운 열기가 진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따라서 그녀의 옷자락에 불이 붙으려고 하는 것을 보고는 화검운은 놀라서 다시 소리쳤다. "아니, 그만 오시오! 어째서 그렇게 자꾸만 다가오는 것이오?" 그런데 황약화는 아주 태연했다. "당신은 보아하니 이제 그곳에서 죽음을 당하게 될 것 같아요. 나는 그렇다 면 구태여 지겨운 삶을 살고 싶지 않아요. 당신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 라…… 이건 나의 고집이예요. 나는 당신을 좋아하지 않지만 당신이 이렇게 죽는 것을 볼 수가 없기 때문에 나도 함께 죽어 주려는 것이예요. 당신은 아무 말도 하지 마세요!" 말과 함께 황약화는 돌연 태연하게 뜨거운 용암이 넘실거리는 화검운의 곁 으로 빠르게 신형을 날리는 것이었다. 황약화는 이내 손을 움직여서 화검운 의 몸을 껴안았으며 눈을 감아 버렸다. 뒤를 이어서 뜨겁기 짝이 없는 불길이 자신들을 덮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 는데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갑자기 일신에 뜨거운 열기 대신에 서늘한 기 운이 느껴지기 시작하더니 문득 아주 부드러운 화검운의 음성이 그녀의 귓 전을 간지럽히는 것이 아닌가! "당신은 그야말로 고집불통이군. 사랑하는 남자를 향히 좋아한다는 말 한 마디도 하지 않으려고 하다니…… 하지만 당신의 그러한 점이 좋은 것이니 어쩌겠소?" ……? 실로 기이한 일이었다. 황약화가 눈을 떠 보니 어느새 두 사람은 지극히 빠 른 속도로 용암의 불길 속을 벗어나서 동굴 속을 빠르게 나아가고 있는 것 이 아닌가! 콰르르르르……! 거대한 용암의 기운이 지축(地軸)을 뒤흔들며 무섭게 뒤따르고 있는 것이 흡사 환각(幻覺)처럼 느껴지면서 두 사람의 신형은 어느새 입구에 거의 다 와 가고 있는 상태였다. 황약화는 그제서야 자신들이 많은 사람들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게 될 것임 을 알고는 급히 자신의 옷차림을 살폈는데, 다행히도 그녀의 옷은 전혀 불 타지 않았고, 다만 화검운만이 의복이 거의 불타서 간신히 치부만을 가린 형상(形象)이 되어 있었다. 황약화는 그것을 보고 그만 자신도 모르게 웃음 이 터져 나왔으나 이내 주위가 훤하게 밝아지는 것을 보고는 급히 정색을 했다. 기실 이 입구는 원래 전부가 허물어진 것이 아니라 그저 안으로 백여 장 정 도 들어간 부분만을 약간 허물어서 마치 입구 전체가 허물어진 것 같은 느 낌을 주도록 했던 것이었다. 실상 안에 갇혀 있는 사람들의 마음은 답답해 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작은 속임수에도 영락없이 속아 넘어가게 되어 있는 것이었다. 꽈르릉……! 꽝! 꽝……! 화검운과 황약화의 신형이 마악 입구를 벗어나서 허공에 높이 떠오르게 되 자 그 순간에 동굴의 입구가 일제히 터져나가며 거대한 용암의 액체가 마치 봇물처럼 흘러나왔다. 그것은 마치 하나의 거대한 지진과도 흡사했다. 하지만 처음만 그렇게 대단한 소리를 내었을 뿐 동굴의 입구가 좁았기 때문 인지 용암의 분출은 계속 이어지지 않았고 이내 그 거대한 지진과도 같은 울림도 멎어 갔다. ……! 화검운과 황약화는 다시 부끄러운 모습으로 함께 껴안은 채로 허공에 떠 있 었는데, 황약화는 그렇다고 해서 그의 품속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일지 않아서 그대로 있었다. (……?) 지금 그 절곡의 아래쪽에는 그야말로 가공스러운 광경이 펼쳐져 있었는데, 조금 전에 이미 그 무서운 용암을 경험하고 나온 화검운 등도 그러한 광경 을 보고는 일순 놀라서 안색이 변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수백 명의 군웅(群雄)들! 화검운이 밖으로 달아나게 했던 그 많은 군웅들은 지금 모조리 절곡의 중앙에 포위되어 꼼짝도 못하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그 들을 포위하고 있는 사람들은 일신에 백색의 의복과 복면을 하고 있는 사이 (邪異)한 기질을 물씬 풍기는 일백 명의 사람들이었다. 일견하기로도 놀라 운 무예가 엿보이는 그들의 뒤편에는 다시 예의 그 천상파래의 주인들이 제 자들을 거느리고 서 있었는데, 화검운은 그들 가운데에서 만상회(萬象會)의 주인이라는 백무심이 서 있는것을 보고는 즉시 그쪽으로 날아갔다. "당신은 지금 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이오?" 백무심은 화검운의 말을 듣고 그의 행색을 살피더니 안면에 기이(奇異)한 웃음을 떠올리며 대꾸했다. "보다시피 우리는 이제 대업(大業)을 이룰고 하는 것이다!" 화검운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렇다면 당신도 만상회를 인정하는 것이오?" 백무심은 웃으며 대꾸했다. "만상회를 인정하고 안 하고가 없다. 원래 우리 천상팔패의 사람들은 만상 회라는 이름으로 뭉쳐져 있는 것이었지. 다만 그것을 필요에 따라서 백의맹 가 흑풍사로 나누었을 뿐이었다." 화검운은 다시 물었다. "당신이 바로 만상회주(萬象會主)요?" 백무심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내가 바로 만상회주이고 또한 만상제일호(萬象第一號)이다!" 화검운은 눈살을 찌푸리고 있다가 이어 수백 명의 군웅들을 포위하고 있는 기이한 행색의 백포인(白袍人)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제 저들에 대한 해명이 있을 것이 아니오?" "핫핫핫……" 백무심은 일순 앙천광소를 터뜨리더니 대꾸했다. "너는 과연 똑똑한 녀석이로구나. 그렇다. 바로 저들 십 년 전에 실종되었 던 강호의 일백 명의 최절정의 고수들로서 그 가운데에는 너의 아버지였던 화청우도 포함되어 있지. 물론 네가 이렇게 자라날 것을 알고 있었다면 당 시에 너도 저렇게 만들었을 것이지만…… 지금 그들은 강시마인( 屍魔人) 들이 되어서 도검불침의 살인병기(殺人兵器)가 되어 있는 것이다. 설사 초 절정의 고수들이라고 해도 쉽게 저들을 죽일 수가 없다.이미 저들은 십 년 전에 죽었으니 다시 죽을 리도 없는 것이지만 말이다!" ……! 수백 명의 군웅들은 그 순간 그와 같은 얘기를 듣고 나무나도 놀라고 경악 한 나머지 일제히 심장들이 밖으로 뛰쳐나올 것 같은 충격을 느꼈다. 백의 맹과 흑풍사가 만상회라는 하나의 단체에서 출발한 것이었다는 점은 그렇다 고 해도 이미 십 년 전부터 무수히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던 그 실종 된 강호상의 백 명의 최절정의 고수들이 저렇게 하나같이 강시마인( 屍魔 人)들이 되어 있다는 말인가! 그것은 기실 믿기지 않는 일이었지만 사실이 었다. 이 강시마인들은 말 그대로 이미 죽은 시체를 그야말로 고도의 조건에서 배 양시켜서 따르게 하는 것으로 사악(邪惡)한 술법이었다. 즉, 강시마인이 되 는 사람들은 이미 죽은 것이며 육신만이 남게 되는 것이었다. 기실 이 수백 명의 군웅들 가운데에는 백 명의 강시마인들이 부친이나 친척 이 되는 사람들도 있었고, 혹은 그 가운데에서 사부를 두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따라서 그것을 보는 사람들의 안색은 그야말로 허옇게 뒤집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직 그 소재가 밝혀지지 않았을 때에는 그래도 한 가닥 희망을 가지고 아직 제사조차 지내지 않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었는데, 이렇 게 허망하게 모두가 강시마인들이 되어 있다니 이는 하늘을 원망하고 땅을 치며 통곡해도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사람들은 그렇게 천인공로 (天人共怒)할 만행을 저질러 놓고도 이제 와서 태연하게 말하고 있는 백무 심의 이중성에 대허서 그야말로 살기가 돋고 소름이 일어나는 것을 막을 수 가 없었다. 그러나 화검운은 비교적 담담한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어 물었다. "당신은 보아하니 이미 만반의 준비를 다하고 온 모양인데 그러한 얘기를 나에게 해줄 수가 있겠소?" 화검운이 그러한 말을 한 것은 바로 수백 명의 군웅들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서였는데, 그러나 백무심은 개의하지 않는 듯이 웃으며 대꾸했다. "물론이다! 기실 이 절곡의 주변에는 거대한 폭약들을 장치하여 유사시에는 언제라도 터질 수가 있게 되어 있는 상태이고 또한 저 백 인의 강시마인들 은 능히 저 어리석은 자들을 제거할 수가 있는 것이니 무슨 사고가 일어나 겠느냐? 너는 결코 우리들 천상팔패의 주인들의 합공을 이겨낼 수가 없을 것이다!" 헌데 그 순간의 일이었다. "폭약은 이미 내가 제거했다!" 장내를 울리는 아주 신비로운 음성과 함께 허공에서 돌연 여덟 명의 신선 (神仙)과도 같은 노인들이 장내에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방금 입을 연 사 람은 바로 다름이 아니라 화검운이 얼마 전에 호숫가의 정자에서 보았던 낚 시꾼들이었는데, 그 밖에 물론 예의 그 노의원도 함께 나나타 있었다. …… 그 여덟 명의 노인들은 일순간 나타나더니 허공에 둥둥 떠 있는 상태로 화 검운을 향해 가벼운 미소를 보낸 다음에 돌연 백무심을 향해 호통을 쳤다. "네 이놈! 감히 이와 같은 일을 저지르다니…… 어서 모든 사람들에게 사죄 (謝罪)하지 못하겠느냐?" 이것은 실로 괴이쩍은 일이었다. 그 낚시꾼을 비롯한 사람들이 기실은 천상 팔패의 주인들과 연관되어 있는 상태인 줄은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 다. 백무심은 한 순간에 매우 불복하는 듯한 기색을 나타냈으나 이어 하는 수 없다는 듯이 수백 명의 군웅들과 화검운 등을 향해 대례를 올리는 것이었 다. "여러분, 정말로 미안하오. 정히 화가 나시면 이 백모(白某)의 목을 쳐 주 시오!" ……? 사람들은 느닷없이 웬 전혀 보지도 못하던 신선과도 같은 노인들이 나타남 과 동시에 느닷없이 상황이 엉뚱하게 변모해 가기 시작하자 저마다 크게 어 리둥절한 기분이 되었다. 그것을 보고 그 여덟 명의신선같은 노인들은 이내 백 인의 강시마인들의 옆으로 다가가서 손을 휘저었는데, 기이하게도 그 순간에 그토록 무적(無 敵)이라고 자랑하던 강시마인들이 마치 허깨비처럼 그저 가루로 화해서 사 라져 버리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그 육신이 이제야 영원히 안식을 찾게 되었다고 말할 수가 있는 것이었는데, 그 여덟 명의 신선같은 노인들 은 이어 화검운의 앞으로 와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이미 우리가 그 많은 폭약(爆藥)들을 제거해 버렸네. 그리고 이제 강시마 인들도 제거해 버렸으니 부디 천상팔패의 처리를 우리에게 맡겨 주었으면 하네. 필시 엄벌에 처할 것을 맹세하겠네." 장내에서 더러 불복하는 기류가 일기는 했으나 이내 그들의 무공이 놀라운 데다가 하기 어려운 일을 해냈었기 때문에 누구나 잠자코 있었다. 화검운도 그러한 군웅들의 뜻을 알만하다는 듯이 그저 가볍게 고개를 끄덕 일 뿐이었다. "마음대로 하시오!" ─────────────────────────────────────── 일반연재 [백상] 종남사부 7권 제51장 <대미-b> 총 Page : 10 -------------------------------------------------------------------------- ---- 게 시 자 : tohana(박성호) 게 시 일 : 97/04/16 14:20:37 수 정 일 : 97/04/16 14:22:11 크 기 : 7.7K 조회횟수 : 40 [백상] 종남사부 제7권 제51장 <대미> -b- 04/12 03:49 307 line 올 린 이 : 양한우 HITEL ID : hanwoo71 제51장.(2) 아수라파천황(阿修羅破天荒) 강호상에는 드디어 평화(平和)가 찾아오는 것 같았다. 모든 혈겁의 원흉이 었던 만상회(萬象會)가 전격적으로 해체되고 또한 강호상에는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 등의 명문세가들이 더욱 뿌리를 넓혀 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기실은 누구라도 작금의 평화가 왠지 불안하고 또한 시원하게 해결 되지 않은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있었다. 화검운은 이후에 이내 황약화와 혼인식을 올리고 나서 가정을 꾸리게 되었 는데, 그 즈음의 의문이 과연 황약화가 적룡이 끊어진 상태에서 다시 남자 와 관계를 갖게 되면 무공을 상실하게 되는가 하는 점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일로 화제를 삼기도 했고 또한 즐거움으로 삼기도 했 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성수곡의 무공에서 적룡(赤龍)이 끊어진 사람이 남자와 관계를 갖게 되면 무공을 상실하게 되어 있는 것이었는데, 그러나 그 상대자인 화검운의 능력(能力)이 워낙에 놀라운 것이기 때문에 혹시 그 러한 장애가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두 사람이 혼인식을 치루는 동안에 많은 사람들은 그러한 여부를 알기 위해서 철저하게 두 사람을 감시했고 또한 분명하게 관계를 갖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 그 황약화는 그야말로 태연한 척하면서도 첫관계를 가지 는 공포감에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고 했는데 나중에는 그녀의 쾌락에 겨운 신음 소리가 방밖으로 메아리를 일으켰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과연 이 화 검운의 능력은 신통한 바가 있어서 황약화는 순결이 파괴되었고 또한 적룡 이 이어지게 되었는데도 전혀 그 무공이 손상되지 않고 있었다. 사람들은 근래에도 이 부부의 얘기를 곧잘 화제에 올리곤 했었고 또한 그들 을 숭상하는 사람들이 늘어 가기 시작했는데, 기실 화검운은 요 근래 들어 서 한 가지의 고민에 시달리게 되었다. 이 항약화는 일단 그의 부인이 된 이후에 고집을 부려서 자신의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와서 모두가 함께 살도 록 하자고 했던 것이었다. 그녀들은 물론 단목소소(端木小昭)와 악산산이었 는데, 황약화의 그러한 고집에는 용아와 봉아도 한몫을 거들어서 화검운으 로 하여금 난처하게 만들었다. 화검운은 솔직히 그 많은 부인들을 두고 살 아가기가 다소 곤란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정작 가장 문제는 오늘 아침 나절에 발생했다. 황약하가 용아와 봉 아를 대동하고 나가서 단목소소와 악산산(岳珊珊)을 데여오려고 한다고 했 었는데, 정작 잠시 후 나타난 사람들은 여자가 아니라 바로 여덟 명의 늙은 신선들이었다. 그들은 화검운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들은 기실 세외팔선(世外八仙)이라고 한다. 과거 삼백여 년 전에 무명 도성(無名道聖)에게 제압당했었으나 소멸되지 않고 간신히 원영(元孀)을 움 직여서 부활할 수가 있었던 것이었다. 물론 이제까지의 혈겁은 우리들이 배 우에서 조종한 것으로서 설마하니 그 무명도성이 후계자를 남겨 두었을 줄 은 몰랐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어쨌든 우리는 삼백 년이라는 시간을 초월 하여 다른 인간들의 몸을 빌려서 인간세상(人間世上)에 다시 나타난 것이니 이제야말로 진정한 야망을 성취하지 않으면 안되게 된 것이다." 화검운은 이에 전혀 놀라지 않고 웃으며 대꾸했다. "나는 이미 그러한 것들을 알고 있었소. 그리고 나의 일곱 명의 제자들에게 당신들의 동태를 파악하라고 하였더니 오늘부터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하기 에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오." 그렇다. 기실 화검운은 이들 지상신선(地上神仙)들이라고 할 수가 있는 사 람들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원래 그들은 천상팔패의 시조가 되었던 그 여덟 명의 초인(超人)들이었다. 천룡무가의 시조는 천수자(天隨子)라는 사 람으로서 전에 낚시꾼으로 나타났었던 사람이고, 또한 일월마교의 시조인 일월마성(日月魔聖), 그리고 성수곡의 시조이며 전에 노의원의 형상으로 나 타났었던 강호산인(江湖山人), 이어 설산성모궁의 시조인 설산성모(雪山聖 母)와 검총의 시조인 천검성자(天劍聖子), 그리고 도막의 시조가 되는 도조 종(刀祖宗), 태양마곡의 시조가 되는 태양노선(太陽老仙)과 마지막으로 현 현각의 시조가 되는 현현상인(玄玄上人) 등이었다. 천수자는 화검운의 대꾸를 듣고는 다소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하지만 너는 아마도 우리에게 두 가지의 새로운 무기(武器)가 생겼다는 것 을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화검운은 문득 황약화 등이 아직 오지 않고 있는 것을 상기하며 왠지 불길 한 생각이 들게 되었다. 마치 그러한 그의 심리를 알아보고 있기라도 하듯 이 천수자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 두 가지의 새로운 무기라는 것은 하나는 네가 우리의 제의에 꼼짝없이 따라ㅅ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새로운 경지의 무학(武學)이다." 화검운은 이에 물었다. "그럼 나의 내자(內子) 등이 당신들에게 잡혀 있다는 말이오?" 천수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하지만 네가 만일 우리를 이길 수가 있다면그녀들은 이내 무사히 너의 품속으로 돌아갈 수가 있게 될 것이다." 화검운은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그 두 번째의 무기인 새로운 무학이라는 것은 어떤 것이오?" 천수자는 그의 얼굴을 주시한 후에 대답했다. "우리는 사실 일단 네가 나타난 것을 알고 난 이후에는 너를 시험해 보고 나서 우리들이 이전에 세웠던 계획들이 하나도 소용이 없을 것이라는 사실 을 깨달았다. 그래서 바로 그렇게 나서서 손을 쓰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가운데 너의 무학의 경지를 짐작하게 되었고 또한 그것을 이 길 수 있는 새로운 경지의 무학을 창안하게 되었다. 이것은 바로 아수라파 천황(阿修羅破天荒)이라고 불리우는 절학인데, 네가 만일 너의 사부인 무명 도성보다 나은 경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면 결코 이 연수합공의 절학을 당해 낼 수가 없을 것이다." 화검운은 이에 말했다. "확실히 나는 선사(先師)에 비해 나은 편은 아니오." "흐흐흐! 그렇다면 어서 죽어라!" 세외팔선은 이미 너무나도 오랫동안 참아 왔고 또한 기다림에 지쳐 있었기 때문에 일단 자신감이 들게 되자 즉시 화검운을 제거하기 위해 움직였다. 화검운을 중심으로 이내 여덟 명의 노인들이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고, 그 렇게 돌아가는 가운데 허공에 거대한 환상(幻像)과도 같은 물체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다름이 아니라 삼두육비(三頭六臂)를 가지고 있는 아수라의 거대한 모습이었는데, 이윽고 그것은 하나의 완벽한 형체를 갖추어서 황금빛을 뿌리면서 완전히 화검운의 작은 몸을 향해 거대한 주먹 으로 박살을 내려고 하는 것이었다. 실로 그 위력은 결코 세외팔선이 과장한 것이 아니어서 그저 한 차례 가볍 게 손을 휘저었을 뿐이었는데 부근의 작은야산 하나가 통째로 날아가고 있 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따라서 아수라상이 전력을 다하고 있는 화검운을 공격하는 것에 의해서 화검운의 작은 육신은 이내 흔적도 없이 스러져 버릴 것이 뻔해 보였다. 그런데 이때 실로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여섯 개나 되는 아수라의 거대한 주먹들이 사방을 에워싸며 비로소 화검운의 몸을 후려치는 순간에 느닷없이 억! 하는 소리와 함께 아수라상이 저절로 흔적도 없이 무너지면서 세외팔선 의 모습도 경악한 표정으로 소멸되어 가는 것이 아닌가! …… 잠시 후에 나타난 황약화가 기이한 듯이 물었다. "운랑(雲郞)! 당신의 무공은 그럼 선사보다 더욱 고강한 것인가요?" 화검운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오. 기실은 그 세외팔선은 너무나도 야망에 집착했던 나머지 그만 마 경(魔境)에 빠지고 말아서 원래의 무학 경지에서 오히려 퇴보하게 되었던 것이오. 그들이 오늘 완전히 소멸된 것은 그러한 스스로의 자멸(自滅)이었 던 것이오." 문득 저쪽에서 단목소소와 악산산 등이 아주 수줍은 듯한 표정으로 다가오 고 있었다. 이상으로 종남사부를 마칩니다. <대미(大尾)> ♣♣♣ 지금까지 백상 님의 종남사부를 애독해 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 다. 끝부분에 가서 역시 다소 허무하게 끝나기는 했지만, 그래도 역시 백상 님의 작품은 훌륭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도 아주 수작이라는 생각 이 드는군요. 전에 어느 분이 말씀하셨는데, 역시 이 작품에서도 주인공인 화검운이 사람을 죽이는 것은 나오지 않는군요.(맨 마지막 세외팔선 죽이는 것은 제외) 다음 작품도 역시 백상님의 작품을 올릴 예정입니다. 뭘 올릴지는 아직 결 정하지 않았구요. 역시 구대문파 시지즈 중의 하나가 될 것입니다. 좀 쉬었 다가요. 기다려 주십시오. 그럼…… 양한우(hanwoo71)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