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장(序章) 산정(山頂) 위에 아침이 찾아왔다. 늘상 그러하듯이, 이곳 조양봉(朝陽峰)의 아침 풍경은 오늘도 황량하다. 산세가 유난히 험준(險峻)해서일까? 동쪽 하늘로 떠오르는 아침해의 노을은, 그래서 대비(對比)되어 더욱 아름답고 장엄(莊嚴)하게 보이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화검상(華劍傷). 그는 며칠째 계속해서 그 평평한 바위 위에 앉아 있는 중이었다. 너무나 오랫동안 앉아 있었기 때문에 그의 두 다리와 하체는 이미 감각이 사라지고 뿌리를 내린 석상(石像)이 되어버린 것 같 았다. 하지만 그의 상체와 특히 그 두 눈은 마치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끊임없이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뿌옇게 흐려진 그의 두 눈은 마치 간밤의 그 가득했던 짙은 어 둠 속을 더듬으려고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사위는 이제 밝고 찬란해져가는 햇살들만이 가득할 뿐, 그 짙었던 어둠들은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그 밝은 햇살들이 가득 쏘아져들어와 그의 두 눈을 찔 렀기 때문일까? 그는 문득 눈을 감고 졸리는 표정을 짓더니, 이윽고 마치 영원 히 일어나지 않을 듯하던 자리에서 느릿하게 몸을 일으켰다. 면벽삼년(面壁三年)! 그 고통스럽고 절망스럽게만 느껴졌던 삼 년이라는 세월(歲月) 이, 이제는 끝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도 과연 그러한 느낌에는 변함이 없는 것일 까? 그가 앉아 있던 그 평평한 바위에서 뒤쪽으로 조금만 돌아가면 천연(天然)에 인공(人工)을 가미한 동굴(洞窟)이 하나 나온다. 이른바 면벽동(面壁洞)이라고 하는 곳인데, 말하자면 이 부근이 바로 화산파(華山派)에서 그 유명하다는 사과애(謝過崖)라고 하는 곳이다. ‘사과애…… 대체 무엇을 사과(謝過)하란 말인가?’ 그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그 동굴로 향했다. 그런데 그 면벽동의 입구에 이르러 무심코 그 안으로 들어가려 던 그는 문득 걸음을 멈추고 좌측의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바라 보았다. 그쪽에는 험악하게 치솟은 기암괴석(奇岩怪石)들만 가득하고 간간이 키가 작은 수목(樹木)과 이끼들만이 눈에 띌 뿐 다른 것 들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 기암괴석들이 즐비한 절벽의 보이지 않는 길을 따라 뒤쪽으로 돌아가서, 다시 아래쪽으로 수십 장만 내려가면 약간 완만해진 둔덕이 나타나는데, 바로 그 둔덕의 안쪽, 바위들로 인 해 가려진 구석진 자리로 가면 이른바 그만이 간직하고 있는 어 떤 비밀이라고 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그 이상스런 노인(老人)을 만나게 된 것은 그가 이곳으로 올라온 지 거의 이 년쯤 지난 무렵의 일이었다. 노인은 얼핏 보기에도 대단히 평범해 보였고, 또한 자신 스스 로도 그저 이 부근의 산속에서 홀로 약초(藥草) 따위를 캐며 외 롭게 살아가고 있는 늙은이라고 소개했었다. 당시 그는 도저히 사람을 알아보기 어려운 처지였을 뿐만 아니 라, 마음의 극심한 방황(彷徨)과 몸의 열병(熱病)으로 인해 거의 죽어가고 있던 상황이었다. 어느 날, 잠에서 깨듯 눈을 떠보니 어렴풋이 희미한 의식 속에 서 보았던 그 노인이 앞에 앉아 있었고, 또한 그 노인은 그를 향 해 어떤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에 노인이 그를 향해 어떤 얘기를 했었는지는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노인이 살아온 이야기와 세상의 일에 관한 얘기를 들었던 것 같은데, 그렇게 그 일이 기억나지 않는 것은 나중에는 주로 그가 이야기를 하고 그 자신 또한 자신이 한 그 얘기의 내용에 빠져 들었기 때문이다. 노인의 어디가 그렇게 이상하게 느껴졌느냐고 하면 그것은 설 명하기가 곤란해진다. 왜냐하면 그 자신도 아직도 그 노인의 어디가 이상했던 것인지 분명히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노인은 평범한 듯 이상했고 이상스러운 듯하면서도 평범 했다. 노인에게서 비범한 구석이라곤 찾을 수가 없었지만, 지금 생각 해보면 당시에도 노인에게서 이상스러운 느낌이 들곤 했다. 왜냐하면 그는 이제까지 자신을 진정으로 감복시키는 그러한 노인과 같은 존재를 만나보지 못했었기 때문이다. 그는 무려 지난 십 년 가까운 세월 동안 방황과 혼란을 거듭해 왔었지만, 그 노인을 만난 이후 그의 마음은 맑고 편안해지게 되 었다. 그러한 깨달음은 갑자기 찾아온 것이 아니라 서서히 물이 스며 들 듯 찾아들었고, 나중에는 그러한 깨달음이라는 자체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노인과 함께 했던 시간은 불과 일 년도 되지 않는 짧은 세월이 었지만, 그러나 그는 평생 다시 그런 사람을 만나기 어려울 것이 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노인은 그야말로 진정한 그의 마음속의 스승인 것이다. 노인은 그에게 자신의 이름은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저 너무 오랫동안 잊고 살아오다 보니 이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노인이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 라 그 이름 자체에 의미를 두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따라서 그는 그 노인을 무명노인(無名老人)이라고 부르기로 했 다. 그 노인은 얼마 전에 땅속으로 돌아갔다. 노인은 그의 몸과 마음을 치료해주었지만 정작 자신의 육신(肉 身)은 치료할 생각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그는 지금 절벽을 돌아내려와 자신이 손수 만들었던 그 무덤의 앞에 서 있다. 형식적인 작별의 대례 같은 것은 필요가 없을 것이다. 다만 너무도 초라해 보이는 무덤의 곳곳을 어루만지듯 손질해 보다가 멍하니 생각에 잠기고, 그렇게 몇 번을 거듭하다가 그는 비로소 몸을 일으켰다. 앞으로 그에게 해야 할 일들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돌아와서 본 면벽동의 내부는 여전히 황량하리만큼 단조 로웠다. 눈에 띄는 것은 아무렇게나 깎아 만든 돌침상과 돌탁자, 그리 고 빈 그릇들과 여벌의 수저들, 그리고 다 낡아 떨어진 옷가지 등이 전부였다. 그곳에 있는 것들 중 그의 물건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마치 지난 삼 년 간의 세월을 다시 더듬어보기라도 하듯이 잠 시 동안 가만히 그곳의 내부를 둘러보다가, 이윽고 그는 신형(身 形)을 돌려 밖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화검상(華劍傷). 그는 이제 다시 세상(世上)에 나가게 되는 것이다. 제 1 장 소광생(少狂生) 사과애(謝過崖)가 있는 이 조양봉의 또 다른 이름은 선인봉(仙 人峰)이다. 외부에서는 흔히 그곳을 선인봉이라고 부르지만, 화산파(華山 派) 내부의 사람들은 그곳을 조양봉이라고 부른다. 그렇게 부르게 된 데에는 아무래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 만, 과거 화산파의 선배 고인들 중의 하나가 바로 그 조양봉의 정상에서 자하신공(紫霞神功)의 영감을 얻었다는 말이 전해진다. 그 조양봉의 칼날같이 치솟은 서쪽 절벽을 따라 아래로 한참을 내려가면 바로 이 화산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는 연화봉(蓮花 峰)의 기슭과 접하게 된다. 연화봉은 그 자체로도 구름을 뚫고 하늘에라도 닿을 듯이 높게 치솟아 있는 웅대(雄大)한 기상으로 장관을 이루지만, 그 주위에 마치 시립하듯이 운대(蕓臺), 공주(公主), 모녀(母女)의 세 작은 봉우리들이 떠받들고 있는 형상이어서 또 유명하다. 구파일방(九派一幇)의 하나이며, 당금의 강호무림(江湖武林)에 서 적지 않은 세력을 떨치고 있다는 화산파(華山派), 그 화산파의 본거지는 바로 그 연화봉의 기슭에 폭넓게 위치하고 있다. 본래 화산파의 중심은 누구나 알고 있듯이 연화봉의 정상에 있 는 상궁(上宮)이었다. 하지만 근래에 이르러 그곳 상궁은 단지 정통일파인 화산파의 근원지로서의 상징적인 의미만 가지고 있을 뿐, 과거와 같지는 않다. 세력이 점차로 증대됨에 따라 중심부는 아래로 내려왔고, 장문 인(掌門人)의 처소도 자하궁(紫霞宮)이라는 말로 바뀌었다. 현재 연화봉의 정상에 있는 상궁에는 한 사람이 기거하고 있는 데, 사람들은 그녀를 화산신녀(華山神女)라고 부르고 있다. 삼 년 만에 다시 세상에 나가게 된 화검상(華劍傷)의 기분은 뭐라 형용할 수 없이 복잡하고 미묘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는 처음에는 다소 흥분되는 면이 없지 않았지만 아래로 내려 갈수록 점차로 마음이 서늘하게 잦아들었다. 그것은 과거에 입었던 마음의 상처가 다시 익숙했던 정경들을 대하면서 발작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는 스스로 자신의 마음의 상처가 다 나았다고 생각했지만, 그러나 그것은 오히려 속으로 곪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그것을 확인이라도 해주듯이, 그때 갑자기 사건이 벌어졌 다. 그것은 그가 막 조양봉의 완만해진 기슭에 접어들려고 할 때의 일이었다. 다섯 명의 사람들. 그들은 길 옆의 우거진 숲속에서 느닷없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는 엉뚱하게도 길 한가운데로 달려나와 자리를 깔더니, 서둘러 술상을 차리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술상 위에 술 한 병과 술잔, 그리고 안주로 육포(肉脯) 까지 올려놓더니, 나중에는 그 술상 옆에 다시 하나의 커다란 술 통을 가져다 놓았다. 이어 나란히 서서 화검상을 바라보더니 저마다 입가에 기이한 미소를 짓는 것이었다. 화검상은 물론 그들 다섯 명을 모두 잘 알고 있었다. 바로 화산파의 제자들인 동시에, 그의 동문사형제(同門師兄弟) 와 사질(師姪)들인 것이다. 하지만 지금 대체 이것은 무엇을 하자는 것일까? 삼 년 정도의 세월이 지났다면 그 동안 사람들도 많이 달라졌 을 것이고, 또한 과거의 기억들도 희미해지게 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기이하게도 화검상은 과거의 그 기억들이 희미해지기는 커녕, 오히려 더욱 생생해진 것 같았다. 그들이 낯설게 느껴지기는커녕 바로 엊그제까지 함께 어울렸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느낌은 결코 다정한 것이 아니다. 이윽고 그 다섯 명 중에서 나검송(羅劍松)이 입을 열어 다소 머뭇거리는 어조로 말했다. “화, 화사제(華師弟)! 우리, 오랜만에 만났군. 그 동안 고생했 을 테니까 우선……, 우선 여기에서 술이나 한잔하고 가는 것이 어떻겠나……?” 사형(師兄)인 나검송은 화검상과 같은 배분(輩分)이기는 하나 나이가 매우 많아서 올해 서른여덟이나 되는 중년인(中年人)이다. 그는 대사형(大師兄)인 윤검진(尹劍塵)보다 겨우 한 살이 적을 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화산파의 많은 사형제로부터 별로 대우 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은 그가 나이가 많아서 뒤늦게 입문(入門)한 외부인사인 데다가 무학에 대한 자질 또한 평범하여, 무공(武功)이 다른 사형 제들보다 뒤떨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는 지금 말을 하면서도 어색하고도 반쯤은 주저하는 듯한, 흡사 바보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그것은 그가 이번에도 역 시 다른 사제들에 의해 억지로 이 일에 나서게 되었다는 것을 여 실히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사실, 눈앞의 이 다섯 사람들 중에 오직 그만은 다소 우둔하기 는 하지만 사람은 나쁘지 않다. 아니 오히려 그는 마음이 너무 좋아서 우둔하게 되었는지도 모 른다. 어째서 매번 착한 사람은 멍청해지고 악한 사람들만이 똑똑해 지는 것일까? 세상의 이러한 이치는 정말로 알기 어렵다. 과연 아니나다를까? 나검송의 그러한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 옆에 서 있던 봉검 기(封劍機)가 음험(陰險)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흐흐, 화사형(華師兄)! 지금 나사형이 말하고 있는 그 얘기를 들으셨소? 설마 하니 그의 말을 거절하지는 않겠지? 흐흐! 만일 그렇게 된다면 본문(本門)의 커다란 계율(戒律) 하나를 또 어기게 되는 것일 테니까 말이오.” “하하, 본문의 커다란 계율 하나를 또 어기게 되는 것이라 고?” 화산파에는 흔히 칠조(七條)라고 부르는 일곱 가지의 커다란 계율들이 있는데, ‘스승을 속이고 조사(祖師)를 능멸하며 어른을 공경하지 않는 것’이 바로 그 중의 첫번째 계율이다. 화검상은 이전에도 그러한 칠조(七條) 중에서 어느 하나도 범 하지 않았는데도 면벽삼년(面壁三年)이라는 중벌(重罰)을 받았었 다. 그의 죄목이라는 것은 그저 행동거지가 문란하여 화산파의 명 예를 크게 손상시켰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거기에 다시 칠조 중 하나의 죄(罪)가 첨가된다면 그는 대체 어떠한 벌을 받아야 한다는 말인가? ‘이젠 나더러 목숨을 바치라는 말이로군.’ 화검상은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말을 이었다. “하하, 나는 이미 너무 오랫동안 술을 끊어서 그만 술맛을 잊 어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지금은 술을 마시고 싶지 않구나.” 그 봉검기(封劍機)는 나이는 이제 스물네 살이어서 화검상보다 도 한 살 아래이지만, 무공은 오히려 나이 많은 사형인 나검송보 다도 월등히 높은 경지(耕地)에 올라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물론 화검상의 무공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 다. 현재 화검상의 무공의 경지는 십오 년 전에 비해 조금도 진보 하지 않아서 겨우 반 갑자(半甲子)의 공력에 이류(二流)급에 불과 하지만, 우선 나검송만 해도 이 갑자(二甲子)의 공력에 절정(絶 頂)급에 올라 있는 상태였다. 따라서 실상, 현재의 화산파 내에서 비단 동문사형제들뿐만 아 니라 사질(師姪)들 중에서조차 화검상보다 무공이 높은 사람들은 부지기수인 형편이었다. 화검상의 말에 봉검기의 눈빛은 기이하게 번뜩였다. “흐흐, 정말이오?” 한데 그때의 일이었다. 마치 봉검기의 그 말이 신호가 되기라도 하듯 주위의 다른 세 사람, 피검석(皮劍石)과 윤석평(尹石平), 나석화(羅石和)의 눈빛이 일순 번쩍이더니 거의 동시에 땅을 박차고 화검상의 주위로 달려 들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화산파의 현재 항렬은 몽천귀검석(夢天歸劍石) 등으로 이어지 고 있다. 그러니까 피검석은 화검상의 사제이고 윤석평과 나석화는 화검 상의 사질들이었다. 특히 그 중에서도 윤석평은 바로 대사형 윤검진의 아들이고, 나석화는 눈앞의 나검송의 아들이다. 지금 그 세 사람이 달려들면서 펼치고 있는 신법(身法)은 바로 십단금(十段錦)으로, 화산파의 독문절예이며 마치 비단폭이 펼쳐 지는 듯한 유연함과 흐름이 끊이지 않고 자연스러운 것을 특징으 로 하고 있다. 물론 화검상은 높은 경지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그것을 배운 적 이 있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화검상의 주위로 다가들자, 이내 그들의 손가 락이 난화형(蘭花形)으로 기이하게 벌어지며 화검상의 전신요혈 들을 향해 흔들리며 삼면(三面)에서 어지러이 쇄도해들기 시작하 는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난화불혈수(蘭花拂穴手)라는 것으로, 바로 금나수 법(擒拿手法)의 일종이었다. 하지만 이 금나수법은 중수법(重手法)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그저 잡아채는 기술뿐만 아니라 간단하게 사람을 죽일 수도 있 다. 피검석(皮劍石)은 올해 스물세 살로 화검상의 사제이며 그 무 공은 역시 봉검기에 버금간다고 할 수가 있다. 그의 공력은 이 갑자 반이고 이미 절정경지에 오른 지 오래였 다. 따라서 배분도 아래이며 나이도 열일곱과 열넷으로 어린 윤석 평과 나석화의 공격도 그에 비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 세 사람 중에서 가장 살벌하게 손을 쓰고 있는 사람 은 가장 나이 어린 나석화였다. 그는 무공이 현재의 화검상과 비슷한 경지인 이류급에 도달해 있었는데, 성품은 부친인 나검송을 닮지 않고 오히려 악독했다. 화검상도 만일 지난날 그 거대한 무학상(武學上)의 혼란(混亂) 을 극복하고 주화입마(走火入魔)를 당하지만 않았어도 지금과 같 은 꼴을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그는 지금 나석화와 비슷한 경지이기 때문에 무학이 일 갑자 반의 공력에 일류(一流)의 경지에 있는 윤석평도 당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더군다나 그 세 사람의 합공을 당해낸다는 것은 불 가능해 보였다. ‘빌어먹을!’ 속으로 욕설을 내뱉으며 화검상은 우선 급한 대로 구궁보(九宮 步)를 사용하여 그들의 공격의 예봉(銳鋒)을 피하려고 했다. 난화불혈수의 변화(變化)에 대해 그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기 에 그 뒤에 다시 수단을 강구해보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생각은 느리고 현실은 급박했다. 미처 구궁(九宮)의 방위(方位)를 얼마 밟아보지도 못했는데, 어 느새 전면에서 대여섯 개의 난화형(蘭花形)의 수영(手影)이 마치 물 흐르듯 전신을 에워싸며 어지러이 요혈(要穴)들을 조여온다고 느껴진 순간, 그는 이미 무력하게도 피검석에게 맥문(脈門)을 제 압당하고 있었다. 그것은 사실 당연한 결과이겠지만 화검상 본인에게는 정말로 어이없고도 울화가 치미는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그는 그만 너무나도 마음의 고통을 느낀 나머지 발작적으로 붙 잡혀 있는 손목을 뒤틀었다. 그때, 피검석은 이제 화검상을 완전히 제압했다고 생각하고 득 의의 미소를 지으며 ‘화사형, 그러지말고 자, 어서 저쪽으로 갑 시다!’라고 말하려고 했다. 한데 바로 그 순간의 일이었다. 갑자기 그에게 제압된 화검상의 맥문에서 일순 흡사 춤을 추는 듯한 알 수 없는 반탄력(反彈力)이 일어나더니, 별안간 그의 손목 이 흡사 뼈가 없는 사람처럼 괴이(怪異)한 방향으로 뒤틀리며 그 의 손을 튕겨버리는 것이 아닌가? 일반적으로 맥문이라 함은 인체의 중요한 급소의 하나로서, 일 단 상대에게 그곳을 제압당하고 나면 공력의 차이가 현저하지 않 은 이상은 꼼짝할 수 없게 되는 것이 상식이었다. 지금 화검상의 공력은 오히려 피검석보다 훨씬 뒤떨어지니 그 러한 일이 일어날 리가 만무한 것이고, 만일 그럴 가능성이 있었 다면 피검석이 그렇게 마음을 놓고 득의의 표정을 짓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화산파의 금나수법들인 난화불혈수나 칠십이초응사생사 박(七十二招鷹蛇生死博), 혹은 점의십팔질(點衣十八秩) 등 중에서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괴이한 수법인 듯했다. “어어……?” 피검석은 그만 크게 놀란 나머지 무심결에 잡았던 화검상의 맥 문을 놓쳐버리고도 다시 잡을 생각을 못하고 멍청한 표정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기실 가장 크게 놀란 사람은 그가 아니라 정작 본인인 화검상이었다. 그는 자신이 무의식중에 취한 행동이 그와 같은 결과를 초래할 줄은 전혀 상상도 못하고 있었다. 과거에 그는 여러 차례의 크고 작은 주화입마를 겪으면서 스스 로도 더 이상 무공의 진전을 볼 수 없을 것이라고 낙담하고 있던 처지였다. 그런데 조금 전의 그러한 광경은 그에게 이전과는 다른 어떤 기이한 무학상의 영감(靈感)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그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고나 할까? 따라서, 그는 그 순간의 기회를 이용하여 급히 빠르게 중단했 던 구궁보를 다시 펼치고 이를테면 낙영장(落英掌)이나 죽엽수 (竹葉手)와 같은 수법들을 사용하여 이 위기를 벗어나야 한다는 것조차 잊어버리고, 그저 피검석과 비슷하게 자신의 손목을 바라 보며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바로 그때 갑자기 등뒤에서 화끈하고 묵직한 충격이 전해져왔 다. 나석화가 어느새 뒤로 돌아가 표미각(豹尾脚)의 일초로 그의 등을 후려친 것이다. 한 순간이지만 깊은 생각에 몰두하고 있었기 때문에 화검상은 미처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앞쪽으로 날려갔다. 하지만 그는 미처 바닥에 뒹굴기도 전에 다시 공격을 받아야 했다. 어느새, 윤석평이 그 앞쪽으로 질러가서 날아오는 그의 가슴을 향해 죽엽수(竹葉手)를 적중시킨 것이다. “윽.” 화검상은 그만 단숨에 뒤로 나동그라져서 혼절하고 말았다. 윤석평의 이 죽엽수는 정말로 심한 공격이었다. 나석화가 비록 발로 화검상의 등을 후려치기는 했으나 요해를 적중시키지 못했고 또한 아직 공력도 부족하여 화검상에게 그리 심한 상처를 입힌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윤석평의 이 죽엽수는 소위 말하는 화산파의 내가중수 법(內家重手法)의 대표적인 것이다. 윤석평은 게다가 정확히 화검상의 급소에 적중시켰기에 화검상 은 그만 심각한 내상(內傷)을 입고 혼절하고 만 것이었다. 화검상이 다시 정신을 차린 것은 잠시 후의 일이었다. 의식을 회복하자마자 먼저 느껴지는 것은 가슴의 지독한 통증 이었다. 그리고 불쾌하기 짝이 없는 축축한 느낌과 함께 진동하 는 술 냄새였다. 그는 여전히 그 자리에 누워 있었고 피검석 등의 세 사람은 주 위에 서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나석화는 아까 보았던 그 큰 술통을 들고 있었다. 알고 보니 이 축축한 느낌과 진동하는 술 냄새는 그가 그 술통 속의 술을 그에게 부어버렸기 때문인 모양이었다. 화검상은 그러한 사실을 알자 길게 탄식했다. ‘나는 이러한 꼴로 면벽삼년의 중벌을 받은 것인데, 다시 이 렇게 되었으니 무슨 할말이 있겠는가? 너희들은 어째서 차라리 나를 단번에 죽이지 않는가?’ 그 세 사람은 특이하게 번들거리는 시선으로 화검상의 전신을 두루 훑어보며 괴상한 미소들을 짓고 있었다. 마치 이렇게 다시 살아난 것이 신기하다는 표정 같기도 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나검송과 봉검기는 이미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상황이 험악해지자 그냥 돌아가버린 모양이었다. 화검상이 다시 그 세 사람을 바라보자, 피검석이 득의하게 웃 으며 입을 열었다. “화사형, 이러지마시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나사형이 그렇 게 정중하게 말했는데 그냥 박절하게 거절한다는 것은 정말 너무 한 일이 아니겠소?” 화검상은 가슴속의 지독한 통증 때문에 일어나기도 어렵고 말 을 하기도 어려웠지만, 그래도 간신히 입을 열어 대꾸했다. “너희들은 정말로 사람을 잘 대접하는구나.” “물론이오. 우리는 본래 마음이 너무 좋다는 것을 잊었소?” 말과 동시에, 피검석은 등뒤에 감추고 있던 술병을 앞으로 내 보이더니 누워 있는 화검상에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즉각 지풍(指風)을 날려 그의 아혈(啞穴)을 제압하고 강제로 입을 벌린 뒤에 술병 속의 술을 쏟아붓는 것이었다. “나사형과 봉사형은 바쁜 일이 있어서 먼저 갔소. 흐흐, 하지 만 나사형의 명령이니 내가 화사형을 잘 대접해드리지 않을 수가 있겠소? 흐흐흐, 이건 구하기 어려운 술이오. 그러니 화사형은 우 리의 대접을 약소하다고 생각하지말고 한번 세속에 다시 내려온 기분을 만끽해보도록 하시오.” 그 술은 그야말로 독하디독한 것이어서 처음부터 가슴속까지 불길이 타오르는 것 같았다. 확실히 구하기 어려운 술이라는 것은 틀림없을 것이다. 그 한 병의 술이 뱃속으로 다 들어가자 화검상은 금방 정신이 몽롱해지고 의식이 가물거리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런 그의 귓가로 다시 피검석의 득의한 말소리가 들려왔다. “장문인(掌門人)께서 지금 기다리고 계시오. 그러니 웬만큼 즐 겼으면 빨리 가보는 것이 좋을 것이오. 흐흐흐…….” 그 세 사람의 발소리가 점차로 멀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화검상은 미처 그것도 의식하지 못하고 피검석의 나중 의 그 말을 곰곰이 되씹어보고 있었다. ‘외조부가, 외조부가 그들에게 이 일을 시켰다는 말인가… …?’ 몽롱한 의식 속에서 그만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화검상이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해가 이미 서산으로 기울어 가고 있는 무렵이었다. 술은 뜻밖에도 더러 약이 되기도 한다. 그 독한 술 때문인지 가슴의 통증은 많이 완화된 듯했으나 대 신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왔다. 화검상은 간신히 그 통증을 억누르고 몸을 일으킬 수가 있었 다. 술기운이 아직 남아 있어서 정신이 흐릿했지만 그는 그 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운공조식(運功調息)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 그가 운기(運氣)하고 있는 것은 바로 자하신공(紫 霞神功)이다. 그것은 비록 위력이 우레와 같이 강맹하기는 하지만 그 위력이 강맹한 만큼, 주화입마에 들기 쉬운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화산파에서는 제자들에게 운기행공을 할 때는 반드시 잡념을 제거하고 급한 마음을 가지거나 산만한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고 있었다. 물론 무학이 절정경지에 이르러 내공(內功)이 상승경지(上乘境 地)에 도달하면 그러한 위험도 줄어들게 되는 것이지만, 지금 화 검상의 경지는 겨우 이류급에 불과한 것이 현실이었다. 마음이 혼몽한 탓인지 진기가 사방으로 마구 날뛰려 하고 가슴 의 통증이 더욱 심각해졌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화검상은 운공 조식을 하는 것을 포기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수밖에 없었다. 술에 젖었던 의복들은 이미 말라버렸다. 하지만 술 냄새가 진동하고 의식이 몽롱한 이런 상태로 장문인 을 뵈러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운공조식을 그만두자 가슴의 통증은 다시 가라앉았기 때문에, 그는 다행히 걸음을 옮길 수가 있었다. 아까 술상을 차렸던 장소에는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악랄할 정도로 매사가 철저하여 그런 일을 할 때에는 조금의 흔적도 남겨두지 않는 것이다. 목욕을 할 곳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완만한 산비탈을 따라 조금 더 내려가자 이내 폭포수가 이어지 는 작은 계곡들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지독한 내상을 입은 상태였기 때문에, 화검상은 조심스럽게 그 계곡으로 내려가 옷을 입은 채로 물속에 몸을 담갔다. 초여름의 날씨였지만, 이곳 화산의 지세는 험하고 음기(陰氣)가 강하여 아직도 계곡의 물은 얼음같이 차가웠다. 계곡 물에 몸을 담그자 가슴의 통증은 심해졌지만 정신은 오히 려 맑아졌다. 그는 한참 동안이나 물속에서 몸과 마음을 씻어내다가 이윽고 자하궁(紫霞宮)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강호인들이 특기 중의 하나는 바로 힘이 대단해진다는 점이다. 수천 년의 전통을 가지고 있는 강호무림계(江胡武林界)는 그간 무학상(武學上)의 발전을 거듭해왔다. 여러 가지 단점들이 보완되고 인간(人間)의 한계라고 불리는 경지(境地)들을 수도 없이 초월하게 되었다. 따라서 거기에 맞춰서 여러 가지 명칭들도 계속해서 생겨나게 되었다. 본래 일류(一流)니, 절정(絶頂), 최절정(最絶頂)이니 하는 말들 은 거의가 비슷한 의미를 지닌 것들이었고, 또한 같은 의미로 쓰 이기도 했었다. 하지만 근래에 이르러 그러한 말들은 이미 분명한 차이를 갖게 되었고, 또한 그 차이도 대단히 현격해지게 되었다. 지금에 이르러 일류는 자매판(紫枚瓣)의 최고경지를 의미하는 것이 되어버렸고, 절정은 황화예(黃化 ` )의 상승경지(上乘境地) 를 각기 백연탄(白筵彈)과 대홍락(大弘落)의 경지를 대변하는 말 이 되어버렸다. 공력(功力)이라는 것도 처음에는 일 갑자(一甲子)라는 것이 일 류고수가 육십 년 간 부단히 연마하여 성취할 수 있는 힘을 가리 켰는데, 근래에는 그저 삼류(三流)의 자질을 가진 사람이 삼류의 내공심법(內功心法)으로 그와 같은 기간 동안에 얻을 수 있는 것 으로 되어버렸다. 그것은 강호상의 무학은 장족의 발전을 거듭했는데, 공력의 기 준은 특별히 다시 정할 수가 없어서 옛 것을 계속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본래 사람은 하루 종일 제아무리 열심히 내공(內功)을 연마한 다고 해도 일단 밤에 잠을 자게 되면 그 연마된 내공의 열에 아 홉은 도로 잃어버리게 되었다. 낮에 연마한 공력은 밤이면 다시 본래대로 돌아가 열에 하나밖 에 남지 않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부단한 노력은 마침내 장구한 세월에 걸쳐서 그 러한 한계를 극복하기에 이르렀다. 잠을 자면서도 완벽하고 무리없이 진기를 계속 역(逆)으로 운 행시키는 내공심법이 나타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어떤 것들은 또 본래의 결점을 완전히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이 생겨나게 되었 다. 그리하여 왕왕 어떤 사람들은 남들과 같은 나이에 무려 십 배 나 되는 공력을 쌓게 되기도 하였으니, 그 성취에는 그 사람의 무학에 대한 자질(資質)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 등장하 게 되었다. 본래 무학이 깊은 경지로 들어갈수록 더욱더 민감하고 위험해 지는 것이며, 그런 위기를 잘 이해하고 터득하여 극복해가는 것 은 자질과 커다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화산파에서는 예로부터 무학고수(武學高手)들이 많이 배출되는 것으로 유명했다. 한때는 그 문하수가 천여 명에 달한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들은 그 막강한 힘으로 노동을 하여 이곳 화산의 형태를 여 러 곳이나 바꾸어놓았다. 산과 계곡이던 것이 평탄하게 밀려져서 드넓은 연무장(練武場) 으로 화하고, 다시 그 주위로 무수한 고층 전각들이 들어서게 되 었다. 이미 오래 전의 일이어서 그 고층 전각들에도 이미 색이 변하 고 이끼들이 가득 끼었으나 연무장 쪽으로 걸어가는 화검상은 새 삼 일개 문파(門派)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연무장 쪽으로 걸어가다가 제법 많은 사람들을 대할 수가 있었 지만, 그들은 대부분 왠지 그의 시선을 피하는 것 같았다. 그들이 화검상을 은연중 멀리하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사실 화검상은 삼 년 전에 지나칠 정도로 심한 방황을 하며 돌 아다녀서 그들의 명성에 누를 끼쳤던 것이 틀림없는 일이었기 때 문이다. 오죽했으면 당시 그에게 소광(少狂), 소광생(少狂生)이라는 별 호가 붙었을까? 연무장의 입구에 도달하니,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한눈에 보기에도 육 척의 키에 후리후리한 체구를 하고 냉혹한 인상을 하고 있는 그는 바로 손위 사형인 조검황(趙劍黃)이다. 그의 나이는 이제 스물여덟일 것이고, 보아하니 그간에 무학도 훨씬 증진된 것 같았다. 아까 보았던 봉검기의 무공도 놀랍지만, 조검황의 무공은 더욱 대단하여 당금 화산파의 이대제자(二代弟子)들 가운데에서 후기 지수(後起之秀)의 하나로 꼽히고 있었다. 조검황은 연무장의 입구 한쪽에 있는 바위 위에 걸터앉아서 장 검(長劍)을 닦고 있었는데, 화검상이 다가가자 이내 장검을 거두 고 몸을 일으켰다. “조사형,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이제 오는가? 생각보다 늦었군.” 조검황의 예리한 시선은 마치 비수처럼 화검상의 전신을 헤집 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는 지금까지 이곳에서 화검상이 오기를 기다렸단 말인가? 하긴 지금은 이미 사위에 황혼의 저녁노을이 가득 물들고 있는 때였다. 모두가 저녁식사를 하러 갔을 시각이고, 조검황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은 연무장에서 혼자 남아 검을 손질하고 있다는 자체가 다소 이상한 일인 것이다. 조검황의 전신은 마치 한 자루의 장검으로 변한 듯 예기(銳氣) 를 발하고 있었다. 화검상은 그것을 대하자 가슴의 내상(內傷)이 다시 심하게 발 작하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는 웃으며 조검황에게 다가갔다. “저는 소광(少狂)입니다. 그 소광이 어디 가겠습니까?” 조검황은 한차례 더 화검상의 얼굴을 주시하더니 이내 안쪽을 향해 몸을 돌려 걷기 시작했다. “날 따라오게!” 이 연무장은 일반 저택의 마당과는 판이하게 넓었다. 신법(身法)을 펼칠 수 있을 때는 넓은 줄 모르겠더니, 걷는 것 조차 힘든 상황이고 보니 연무장 전체가 그렇게 넓어 보일 수가 없었다. 조검황은 비록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지만 서둘러 따라가 고 있는 화검상보다 최소한 두 배는 빨랐다. 조검황은 화검상이 뒤에 처지면 한참을 서서 기다렸다가 다시 걸어가곤 했다. 황혼의 노을이 점차로 사라지고 있었다. 그 노을빛이 모두 사라지고 주위가 어둑어둑해져서야 비로소 화검상은 연무장의 뒤편에 있는 거대한 석조건물 앞에 도달할 수 가 있었다. 그 석조건물은 모두 오층으로 되어 있는데, 일층은 거대한 대 청이고 맨 꼭대기의 오층은 장문인의 집무실이 있는 곳이다. 석조건물의 입구 위에는 거대한 현판에 웅장한 글씨체로 뭐라 고 쓰여 있는데, 지금 화검상에게는 잘 보이지도 않고 또한 그 기억도 희미하다. 대신 그 아래쪽 입구에 기대고 서 있는 한 사람의 모습이 보다 뚜렷하게 다가온다. 준수하고 온화한 듯한 외모에 장검을 가슴에 안아들고 있는 중 년검사(中年劍士), 바로 대사형(大師兄)인 윤검진(尹劍塵)이다. “아니 대사형 아니십니까? 한데 지금 저를 기다리시는 것입니 까?” 윤검진은 다소 어색한 듯한 표정으로 입구에 기댔던 몸을 떼고 다가오더니 말했다. “장문인께서는 이미 처소로 돌아가셨네. 자네더러 그쪽으로 오라고 하시더군.” 장문인의 처소라면 바로 다름아닌 자하궁(紫霞宮)이다. 화검상은 웃으며 대꾸했다. “아, 제가 너무 늦은 모양이로군요. 이렇게 대사형께 수고를 끼쳐드리게 되어서 죄송합니다.” 윤검진은 문득 그에게 오른손을 내밀었다. “자! 어쨌든 오랜만에 만났으니 우리 악수나 하세.” “예, 저도 그 동안 대사형을 보고 싶었습니다. 화검상은 웃으며 그의 손을 마주잡았다. 그런데 다음 순간, 화검상의 안색은 갑자기 다소 일그러지며 파리해지고 말았다. 윤검진의 마주잡은 손끝에서 일순 칼날같이 예리한 경기(勁氣) 가 뻗어나와 그의 가슴속으로 파고들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바로 빈손으로 펼친 검기진상(劍氣振傷)으로, 검법이 상 승(上乘)의 경지에 이르러야만 가능한 수법이다. 화검상은 그가 갑자기 자신에게 그와 같은 수법을 사용할 줄은 몰랐기 때문에 놀라고 몸이 고통에 얼어붙는 듯하여 몸을 휘청거 렸다. 그러자 윤검진은 즉시 손을 빼고 휘청거리는 화검상의 몸을 부 축하며 웃으며 다시 말했다. “하하, 자네의 무공은 그 동안에도 조금도 늘지 않았군. 역시 소광생(少狂生)다운 일이네.” 말을 마치자, 윤검진은 조검황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더니 안 쪽으로 사라져버렸다. 화검상은 극심한 내상을 입은 데다가 다시 거기에 새로 심한 내상을 더하게 되어 그야말로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는 치명상을 입게 된 것이며, 이대로 방치할 경우 공력이 소 실당하거나 주화입마로 들어서게 되는 것은 물론이요, 자칫하면 죽음을 당할 위험까지 있었다. 하지만 화검상은 억지로 태연한 척하며 일부러 먼저 안쪽으로 걸음을 떼어놓으며 조검황에게 말했다. “그럼 어서 이만 안으로 들어가도록 하지요. 조사형께서 바쁘 시면 저 혼자서도 갈 수가 있습니다만.” 그런데 문득 조검황은 그의 옆으로 다가오더니 품속에서 한 알 의 검은 단환(丹丸)을 꺼내 그에게 건네주는 것이었다. “이게 뭡니까?” 화검상이 의아해 하며 걸음을 멈추고 쳐다보자, 조검황은 다소 퉁명스런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자네는 지금 심한 내상을 입었네. 그런 몸으로 장문인을 뵐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화검상이 그 단환에 대해서 몰라서 물어본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화산파의 제자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화산파 의 내상약인 구전호심환(九轉護心丸)이라는 것이었다. 무학이 발달하면서 그에 따라서 그 무학을 증진시키는 데 필요 한 보조적인 영약(靈藥)들도 많이 진보를 보이게 되었다. 제 2 장 상궁(上宮)의 화산신녀(華山神女)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반제자들까지도 손쉽게 구할 수 있을 정도로 흔해진 것은 아니다. 그 이유는 영약들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들이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은 아니기 때문이다. 조검황은 외부에서 들어온 인물치고 집안이 매우 부유하여 화 산파에서도 상당히 대우를 받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라면 이러한 영약 몇 개 정도 가지고 다닌다는 것이 하 나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늘상 냉혹하고 차갑기만 하던 그가 갑자기 그런 호의 를 보인다는 것은 예상밖의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화검상은 일시 다소 놀라서 그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문득 미소 하고는 그것을 받아들었다. 구전호심환은 화산파가 자랑하는 내상약의 하나인 만큼, 그 효 과가 상당히 탁월했다. 그것을 복용하고 그 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약기운을 받 아 들이니, 극심했던 내상이 많이 호전되었을 뿐만 아니라 약간 의 운기(運氣)도 가능해졌다. 이미 사방이 어두워져가고 있었기 때문에 마냥 이곳에서 조식 을 하며 시간을 보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화검상은 내상이 다소 호전되자 자리에서 일어나서 조검황에게 포권으로 감사를 대신했다. “덕분에 몸이 많이 좋아지게 되었군요. 뭐라고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조검황은 그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하며 앞서서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화검상은 이번에는 약간의 신법을 구사할 수가 있었기 때문에 그의 뒤에 처지지 않고 잘 따라갈 수가 있었다. 잠시 후, 몇 개의 건물들을 돌아가는데 문득 조검황이 고개를 돌려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화검상에게 말했다. “자네는 그 동안 사람이 많이 변한 것 같군?” 그렇다. 분명히 화검상은 그 동안 달라진 데가 있을 것이다. 사람의 생각은 왕왕 그 사람의 모습을 크게 변화시킬 수도 있 는 법이니까. 조검황의 뒤를 따라가며 화검상은 문득 자신의 삼 년 전의 모 습을 회상해보며 씁쓸하고도 무거운 감회에 젖었다. 자하궁(紫霞宮)은 안쪽의 다소 아늑한 곳에 위치하고 있다. 대리석으로 아름답고 웅장하게 축조된 자하궁의 곳곳에 무수한 등불들이 주위를 환하게 비추고 있을 때, 화검상은 드디어 조검 황과 함께 그곳에 도착했다. 자하궁이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장문인의 처소는 화산파 내부의 건물들 중에서도 가장 훌륭하다고 할 수 있다. 정문도 웅장하여 마치 하나의 작은 객청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화검상과 조검황이 안으로 들어서자 이내 두 명의 노 파(老婆)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모두 팔십대 후반의 나이로 두 눈에서 저마다 섬뜩하리만큼의 날카로운 광채가 폭사되고 있었는데, 그 생김새는 전혀 다르다. 하나는 온통 쭈글쭈글한 주름살이 얼굴을 가득 뒤덮은 깡마른 노파였는데 구부정한 자세로 지팡이를 짚고 앉아 있었고, 다른 하나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피둥피둥한 얼굴에 뚱뚱한 몸집에다 가 허리에 매달린 검자루를 붙잡고 서서 이쪽을 맹렬하게 주시하 고 있었다. 물론 그녀들도 화검상에게는 매우 낯익은 사람들이다. 바로 장문인과 같은 배분인 천(天) 자 항렬의 장로(長老)들인 귀천능(歸天凌)과 왕천파(王天波)였다. 강호에서는 그녀들의 이름을 들으면 잘 몰라도 화산이파파(華 山二婆婆)인 귀파파(歸婆婆)와 왕파파(王婆婆)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귀천능은 조용하고 음산한 모습인데 반해 왕천파는 강하고 다 혈질이어서 두 사람의 성격은 아주 판이하게 달랐다. 귀천능과 왕천파를 보자, 조검황은 걸음을 멈추었고 화검상은 반가운 기색으로 그녀들에게 다가갔다. “두 분 사숙조님들, 그간 별고없으셨습니까?” 화검상이 정중히 읍하며 말하자, 맹렬하게 그를 바라보고 있던 왕천파가 미끄러지듯이 한걸음에 다가와 쏘아보며 입을 열었다. “그간 반성 좀 하라고 올려보냈더니 아직도 별로 반성한 것이 없군그래?” 화검상은 낯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으나 미소로써 속마음을 감추었다. 사실 화산파의 제자들 중 거의 대부분이 그를 미워하고 있으 며, 오히려 그렇지 않은 것이 이상한 노릇인 것이다. “심려를 끼쳐드려서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거듭 주의하여 언 행에 각별히 조심하도록 하겠습니다.” 왕천파는 여전히 화검상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 귀 천능을 바라보더니 다시 말했다. “사자(師姉), 사자가 보기엔 어때요? 정말로 이 녀석이 이전과 달라진 것 같나요?” 귀천능은 여전히 의자에 구부정하게 앉은 채로 이쪽을 바라보 고 있다가 문득 무심한 듯이 대꾸했다. “글쎄, 사매(師妹), 네 생각은 어떠냐?” 왕천파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내가 보기에는 좀 그런 것도 같아요. 게다가 한 가지 알 수 없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이 녀석의 태도가…….” 그때 갑자기 왕천파의 좌수가 미끄러지듯이 움직이며 화검상의 가슴을 쳐왔다. 화검상은 자신도 그녀의 말을 주의 깊게 듣고 있던 터라 미처 그러한 공격을 예상하지 못했다. 아니 만일 미리 예상하고 있었다고 해도 그녀의 공격을 그는 막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눈앞에서 뭔가 번쩍인다고 느낀 순간, 그는 흡사 쇠뭉치로 얻 어 맞은 듯 가슴이 답답해지고 머릿속이 윙하니 울리는 것을 느 끼며 뒤로 날아가고 있었다. 너무도 갑작스런 일이었기 때문에 화검상은 잠시 정신을 못 차 렸다. 문득 다시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는 어느덧 바닥에 길게 쓰러 져 있었고, 입 속에서는 검은 핏물이 줄줄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화검상은 이상하게도 가슴이 오히려 더 후련해진 것을 느꼈다. 그것은 바로 왕천파가 조금 전에 펼친 일장(一掌)이 평범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역시 화산파의 절학(絶學)들 중의 하나로 육합신장(六合神掌)이 라는 것인데, 이른바 조화를 위주로 하는 최상승(最上乘)의 절예 였다. 그것은 조화를 위주로 하는 만큼, 처음에는 부드럽게 뻗어나가 는데 일단 상대가 어떤 방식으로라도 대응을 하게 되면 그것은 삽시간에 점성이 강한 비단폭과 같은 기운으로 돌변하여 상대의 허점으로 파고들게 되는 것이다. 사실 이론은 간단하지만 정말로 그러한 절기를 펼쳐낸다는 것 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화검상이 미리 그러한 공격의 징후를 알 아 차리고 반격을 했더라면 오히려 더욱 커다란 피해를 입었을 것이라는 말인데, 그러나 사실은 그런 것만도 아니다. 육합신장이 만일 정말로 부드럽기만 한 절기라면 그것을 알고 있는 상대에게는 쓸모없는 공격이 되고 말 것이다. 하지만 설사 상대가 반격을 하지 않더라도 그것은 일단 상대의 몸에 부딪치면 우레와 같은 힘을 발휘하게 되어 있었다. 강력한 자하신공(紫霞神功)을 바탕으로 하여 펼쳐지는 무공이 기 때문이다. 왕천파의 무공은 이미 명실공히 최절정(最絶頂)의 경지에 올라 있었다. 그녀의 공력은 이미 칠 갑자(七甲子)를 넘어서고 있으며, 갑자 기 장력을 펼쳤다가 화검상이 멍청하게 가만히 있자 마지막 순간 에 그 장력을 도로 거둔 것이다. 비록 장력을 거두기는 했어도 그 여력은 남아 있었다. 그것은 화검상의 가슴속을 자극했으며, 그것이 오히려 조금 전 에 복용한 내상약의 기운을 촉발시키고 가슴속의 울혈을 움직여 서 입밖으로 흘러나오게 만든 것이다. 비록 우연의 일치이기는 했지만 화검상은 그로 인해 엉뚱하게 도 득을 본 것이다. 내상약의 기운이 촉발되고 가득 찼던 죽은 울혈이 빠져나가고 나자 비단 가슴속이 시원해졌을 뿐만 아니라 그 내상이 급격히 호전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쓴맛을 본 처지이기에 화검상은 금방 일어나지 않 고 쓰러진 채로 은근히 그녀들의 눈치를 살폈다. 왕천파는 한차례 급습을 가했으면서도 시선은 계속 귀천능을 향하고 있었다. “더욱 건방져졌다는 말이에요. 사자는 이에 대한 특별한 대책 이라도 있나요?” 귀천능은 힐끗 쓰러져 있는 화검상을 바라보더니 여전히 무심 한 듯이 대꾸했다. “무슨 특별한 대책이 있겠느냐? 그저 스스로 한 일에 대한 죄 값을 받도록 하는 수밖에 없지.” 왕천파는 두어 번 고개를 끄덕이더니 한쪽에 우두커니 서 있는 조검황에게 말했다. “너는 그만 돌아가 쉬도록 해라.” “예, 사숙조.” 조검황은 약간 멈칫하는 듯하다가 이내 읍하며 예를 올리고는 신형을 돌려 밖으로 사라졌다. 화검상은 그녀들이 이미 자신의 상태를 알고 있는 것 같아서 감히 더 이상 누워 있지 못하고 천천히 바닥에서 일어났다. 왕천파는 그를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다시 말했다. “너는 네 죄가 무엇인지 알고 있느냐?” 강호에서는 이 두 노파는 성격이 괴팍하기로 소문나 있었다. 화검상은 느닷없는 일을 당하고 나서 영문을 잘 알 수 없었지 만 이내 생각나는 대로 대답했다. “예,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다고? 그렇다면 네놈이, 이렇게 건방져서야 되겠느냔 말이다!” 소리침과 동시에 왕천파는 즉각 달려들어 화검상의 멱살을 잡 아 들어올렸고, 이내 맹렬히 노려보았다. 화검상은 사실 지금 죄값을 모두 치르고 내려온 상태이기 때문 에 자신이 또 무슨 죄를 지었다는 것인지 잘 알지 못하고 있었 다. 그는 다만 자신의 입에서 술 냄새가 난다는 사실 정도가 죄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대체 건방진 것과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인가? 화검상이 우스꽝스런 상태로 어리둥절해 하고 있을 때, 문득 비교적 말이 없던 귀천능이 음산한 음성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사매, 내가 보기에 그 아이는 지금도 자신의 죄를 알지 못하 고 있는 것 같네. 그러니 그렇게 닥달해본들 무슨 효과가 있겠는 가?” 왕천파는 화검상을 잡아 죽일 듯이 노려보다가 문득 귀천능의 말을 듣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로 네가 자신의 죄를 모르고 있다는 말이냐?” 화검상은 우스꽝스런 상황이 되었지만 억지로 웃으며 대답했다. “저는 제가 이렇게 늦장을 부린 잘못에 대해 시인합니다.” 순간 왕천파의 우수가 번개처럼 날아와서 삽시간에 철썩, 철썩, 철썩, 하고 좌우로 세 차례나 화검상의 뺨을 후려쳤다. 그렇나 손속 역시 화검상이 미리 알고 있었다고 해도 피하거나 막지 못했을 것이다. 화검상은 대번에 정신이 아득해지고 양 뺨이 불덩이처럼 뜨거 워지고 머리가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그의 입술과 양 뺨의 안쪽이 터져나가서 입으로 핏물이 흘러나 왔고 하마터면 이빨도 부러질 뻔했다. “뭐라고? 네놈은 그래도 헛소리를 늘어놓을 작정이냐?” ‘윽, 대체 무슨 일로 나를 이렇듯 닥달하는 거지? 그렇게 답 답하면 직접 그 죄목을 가르쳐주면 될 일이 아니오?’ 그때 다시 귀천능이 음산한 어조로 입을 열어 말했다. “네놈은 지금 자신의 처지를 망각하고 있다. 네놈의 아비와 할애비의 죄값을 네놈이 치러야만 한다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겠 지?” 순간 화검상은 느끼는 바가 있었다. 그의 할아버지는 한때 화산파의 장문이기도 했지만 큰 죄를 지 어서 물러나게 되었고, 그의 아버지는 흡사 미친 듯한 생을 살아 서 만인의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화검상의 별호인 소광(少狂)이 부친인 화귀농(華歸農)의 노광 (老狂)이란 별호에서 나왔다는 것만 보더라도 알 수 있는 일이다. 그 두 사람은 지금은 이미 죽고 없기에 화검상이 대신 그 대가 를 치러야만 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조상을 잘못 둔 죄라고나 할까? 화검상은 안색이 무거워져서 입을 열었다. “그러면 저는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 왜 좀더 매사에 겸손하지 않느냐는 말이다!” 왕천파는 울화가 크게 치민 듯 소리치며 화검상을 바닥에 내던 져버렸는데, 화검상은 이번에는 전신의 뼈가 모조리 탈골하는 듯 한 고통을 맛보았다. 이들 화산이파파의 무공은 이미 최상승의 경지에 올라 있어서 그저 가벼운 손속이라고 해도 강기(강氣)가 작용하여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기 쉬운 것이다. 하지만 화검상은 이때 육신의 고통보다는 마음이 더욱 괴로워 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이들 화산이파파의 요구사항은 이제 명백하게 알 수가 있었다. 그는 오늘도 너무나도 당당하게 행동했다. 그것은 죄인의 자식이라는 점을 두고 볼 때 너무나도 건방지다 는 것이다. ‘죄인(罪人)의 자식…… 그럼 이제부터 개처럼 네 발로 기며 그들의 발바닥이라도 핥으라는 말인가……?’ 이윽고 화검상은 느릿하게 바닥에서 일어나 그녀들에게 공손히 사죄의 인사를 했다. “제자가 너무 분수를 모르고 행동했습니다. 앞으로는 주의할 테니 두 분께선 너그러이 용서해주십시오.” 귀천능은 무심히 그를 바라볼 뿐이고, 왕천파는 냉랭한 시선으 로 퉁명스럽게 한마디를 내뱉었다. “흥, 이제야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는 모양이군?” 화검상은 다시 그들에게 공손히 인사를 했다. “그럼 제자는 이만 일이 있어서 물러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화검상이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왕천파가 다시 걸음 을 옮겨 그의 앞을 막아섰다. “너는 어디로 가느냐?” “저는 장문인의 부르심을 받고 뵈러 가는 길입니다.” 왕천파는 냉랭한 표정으로 잘라 말했다. “너는 그곳으로 갈 필요 없다.” 화검상은 약간 의아해졌다. “저는 오늘 면벽삼년을 마치고 보고를 드리러 가는 길입니 다.” “갈 필요 없다니까 무슨 잔말이 많으냐? 너는 그냥 너의 처소 로 돌아가도록 해라.” 화를 벌컥 내는 왕천파를 보고도 화검상은 쉽게 발길을 돌릴 수가 없어서 머뭇거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제가 어찌 장문인의 명을 거역할 수가 있겠습니까?” 순간 화검상은 한 줄기 섬광(閃光)과 함께 목 밑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왕천파가 어느 틈엔가 장검을 뽑아들어 검날을 그의 목덜미에 들이댄 것이다. 이번에는 왕천파가 정말로 대노하여 검을 뽑은 것이기 때문에 그녀의 실력이 그대로 드러나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비단 목덜미에 닿아 작은 혈흔을 만들고 있는 푸른 검날의 기 세뿐만 아니라 그녀의 부릅뜬 두 눈에도 한 쌍의 살검이 들어 있 는 것 같아서, 화검상은 문득 등골이 오싹해짐을 느꼈다. 그때 귀천능이 앉은 채로 다시 입을 열어 말했다. “네가 장문인의 명을 거역한 것이라고 해도 그 책임은 우리가 지도록 하겠다. 너는 벌써 조금 전 우리의 말을 잊은 것이냐?” 그렇다. 화검상은 문득 전신의 맥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일반제자라면 장문인의 명이 있을 경우 그를 만날 수 있으며 당연히 또한 만나야 한다. 하지만 그와 비슷한 상황이라고 해도 죄인이나 다름없는 사람 이 어찌 감히 장문인을 떳떳하게 뵈올 수가 있겠는가? 그녀들의 말은 바로 그런 의미였다. ‘그렇다면 나는 과연 화산파의 제자인가, 아닌가?’ 그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죄인의 자식이라는 낙인은 평생 토록 지워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화검상이 낙담하며 아무런 말도 못하고 있을 때, 문득 안쪽에 서 가벼운 기척과 함께 한 사람이 나타났다. 그는 체구가 헌칠하고 풍신(風神)이 수려해 보이는 중년인(中 年人)이었는데, 등에 한 자루의 장검을 메고 있었다. 화검상은 하마터면 장문인이 나타난 줄로 착각할 뻔했다. 하지만 장문인이라면 그렇게 젊어 보일 리가 없는 것이며, 그 는 바로 장문인의 아들이자 화검상의 외삼촌이 되는 화산신수(華 山神手) 풍귀엽(馮歸葉)이었다. 풍귀엽은 올해 쉰여덟인데, 무공이 일대제자들 중 최고이고 명 실공히 차기 장문인으로 내정되어 있는 인물이었다. 풍귀엽이 나타나자 왕천파는 장검을 거두었고, 화검상은 그에 게 공손히 인사를 했다. “외삼촌, 그간 별고없으셨습니까?” 풍귀엽은 먼저 포권으로 귀천능과 왕천파에게 예를 취해 보인 후에 이윽고 화검상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너에 관한 얘기는 들었다. 너는 그 동안 사마외도(邪魔外道) 의 무공을 배웠다고 하던데, 그게 사실이냐?” ‘사마외도의 무공이라니?’ 화검상은 일순 크게 어리둥절해져서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다 가 말했다. “그건 당치도 않은 말씀입니다. 제가 어찌 그런 무공을 배우 겠습니까?” 풍귀엽은 매우 못마땅한 듯 눈살을 찌푸렸다. “아니라면 됐다. 그건 그렇고, 시간이 늦었으니 너는 두 분의 말씀대로 그냥 돌아가도록 해라.” 화검상은 주위의 화산이파파를 바라보았다. 그녀들은 몹시 차가운 시선으로 그들을 쏘아보고 있는 중이었 다. 화검상은 이에 감히 더 이상 장문인을 만나겠다고 고집을 부리 지 못했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윽고 그들에게 작별을 고했다. “그럼 저는 이만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풍귀엽과 화산이파파는 그저 차갑게 쏘아보기만 할 뿐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다. 다만 그가 정문을 빠져나오려고 할 때, 문득 왕천파가 다음과 같은 한마디를 던졌을 뿐이었다. “저 녀석은 정말로 멍청하군. 자기 어미 덕분에 아직도 생명 을 부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모양이지?” ‘어머니 덕분에 내가 아직도 살아 있는 것이라고?’ 자하궁의 정문에서 돌아나와 처소 쪽으로 걸어가며 화검상은 내내 그와 같은 생각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그는 어제까지 그러한 것을 전혀 몰랐던 것이었을까? 그는 새삼스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기실, 그는 삼 년 전만 해도 주변의 이상한 시선들을 의식하기 는 했지만 미처 그러한 일들을 분명하게 생각해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런 현실적인 생각을 하기에 앞서서 온갖 근원적인 번뇌와 혼 란들이 엄습해와 항상 그를 무기력하고 방탕하게 만들었던 것이 다. 의식이 늘상 몽롱하고 마음이 어지러운 상황에서는 누구라도 분명한 판단을 내리기가 어렵게 된다. 그는 외부의 문제를 생각하기에 앞서서 먼저 내부의 문제를 해 결하려고 몰두했고, 그리고 모든 악조건들은 자신의 탓이라고만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 그의 심리는 너무나도 순진했던 것일까? 일단 내부의 문제를 대강 해결하고 나자 이번에는 외부의 압박 을 받게 된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압박은 나무나도 막강하여 화검상 혼자의 힘으로는 도무지 벗어날 수 없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이 화산파 내부에는 당연히 수백 명의 사람들이 머물고 있는데 오늘따라 주위가 이상할 정도로 조용한 것 같았다. 화검상이 다시 아까의 그 상황을 생각해보며 건물의 모퉁이를 돌아가는데 문득 무엇엔가 걸린 듯 뒤로 벌렁 넘어졌다. 돌부리에 걸린 것 같지는 않았다. 그가 아무리 무공이 형편없어도 반 갑자의 공력에 이류급의 무 공을 지닌 자이다. 과거 무학의 초창기 때만 하더라도 중년의 검사들이 자랑하며 강호를 활보했을 정도의 수준이다. 그래도 그는 그 공력에 의거하며 이 장(二丈)의 거리를 한걸음 에 나아갈 수가 있고 육 척(六尺)의 높이를 도약할 수가 있으며 두 개의 변환(變換)을 동시에 일으킬 수가 있다. 몸놀림이 일반사람들과도 달리 가벼워서 웬만한 험지는 가볍게 나아갈 수가 있으며,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그 험한 조양봉의 암 벽을 타고 내려오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지금 약간의 내상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그가 그저 멍청하게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정도는 아니다. 만일 그것이 그냥 돌부리였다면 그는 넘어지는 순간 가볍게 도 약하여 회전하므로써 낭패를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과연 몸을 일으키고 보니, 골목의 안쪽에 피검석이 교묘하게 숨어 있다가 득의하게 웃으며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는 안쪽에 숨어 있다가 교묘하게 발을 내밀어 화검상을 넘어 뜨린 것이다. 지금 그의 뒤에는 두 사람이 서 있었는데, 바로 나석화와 우검 금(于劍金)이었다. 우검금은 사매(師妹)로서 나이는 현재 방년의 꽃다운 스물세 살이고 무공은 일류수준이었다. 그녀의 용모는 그간 더욱 갸름해진 것 같았는데, 어두운 편이 라 웃는 듯하는 그녀의 표정을 자세히 보기는 어려웠다. “왜, 또 나에게 술을 대접하고 싶으냐?” 피검석은 낮에 자신이 조금 지나쳤다고 생각이 드는지 비실비 실 웃으면서도 대꾸했다. “아니 나는 사형이 장문인께 맞아 죽은 것이 아닌가 하여 와 봤을 뿐이오.” 나석화는 그저 차갑게 노려보고 있었고 우검금은 말이 없었다. 화검상은 우스꽝스런 자신의 모습을 감추기라도 하듯이 툭툭, 등뒤의 먼지를 털며 말했다. “나는 그 전에 이미 목욕을 하고 술 냄새도 제거했다. 네가 장문인께 고해 바치지 않은 이상 내가 왜 맞아 죽겠느냐?” 피검석은 다소 궁금한 듯 음험한 눈빛을 굴렸다. “그럼 장문인께선 사형을 그냥 순순히 보내주셨다는 말이오?” 화검상은 말했다. “그럼 너는 내가 정말로 맞아 죽기를 바랬다는 말이냐?” 피검석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그야 사형이 맞아 죽었다면 그건 당연한 이유가 있는 것이겠 지.” 화검상은 고개를 돌려 우검금에게 말했다. “사매는 그간 잘 지냈나? 보아하니 무공도 더 높아진 것 같은 데?” 우검금은 다소 머뭇거리다가 간단하게 대꾸했다. “나는 뭐, 그저 그렇게 지냈어요.” 우검금이 쌀쌀맞게 그를 대했지만 그것은 이미 그가 늘 겪어오 던 일이었다. “그럼 그다지 잘 지내지는 못한 모양이군. 사실 나도 그 동안 그저 허송세월만 한 셈이지.” 그때 갑자기 나석화가 말도 없이 장검을 뽑아들어 그를 공격해 왔다. 낮에는 검이 없었지만 이번에는 장검을 가져온 모양이었다. 그것은 낙영검법(洛英劍法)으로 화산파의 여러 검법들 중의 하 나이다. 마치 검화(劍花)의 꽃이 흩날리듯이 일어나며 삽시간에 화검상 의 몸을 뒤덮었다. 검광은 사방에서 몸을 뒤덮어왔지만 검화는 두 송이씩 일어나 고 있다. 그것은 아주 짧은 순간에 두 개의 변환을 일으키고 있다는 말 이었다. 사람의 눈은 그다지 빠르게 적응하지 못하여 빨리 움직이는 물 체를 그대로 볼 수 없게 된다. 이미 물체가 사라지고 없는데도 눈은 여전히 그것이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느끼게 되는 것인데, 두 송이의 검화가 일어나고 있 다는 것은 바로 그 짧은 순간에 두 개의 변환을 이루고 있다는 말이다. 검을 그대로 베거나 찔러가는 것은 변환이라고 말할 수가 없 다. 변환이란 그대로 베어가다가 갑자기 방향이나 흐름을 바꾸는 것을 말한다. 그 짧은 순간에 두 개의 변환을 일으킬 수가 있으니 장검의 빠 르기는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것이며 검광이 일시에 몸을 뒤덮 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화검상은 갑자기 공격을 당했기 때문에 말을 할 여유도 없이 황급히 몸을 좌우전후로 뒤집어 마치 곡예를 하듯 나석화의 공격 을 피해내고 있었다. “이게 무슨 짓이냐? 당장 멈추지 못하겠느냐?” 무공을 펼치는 도중에 말을 하게 되면 자연히 기(氣)가 산란해 지게 되고 행동도 그만큼 더뎌지게 된다. 화검상은 가까스로 입을 열어 말을 하면서도 그 사이에 이미 서너 곳이나 상처를 입게 되었다. 비록 상처가 깊지 않고 그저 가볍게 스치는 정도에 불과했지만 아래 배분의 녀석에게 이런 낭패를 당한다는 것은 정말로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다. 피검석은 득의한 표정으로 뒤로 약간 물러나 팔짱까지 끼며 말 했다. “그 녀석이 사형에게 한 수 배우고 싶은 모양이니 그렇게 빼 지만 말고 한 수 가르쳐주시구려, 흐흐흐!” 화검상은 일이 매우 난감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하긴 난감한 일이라는 것은 그가 늘상 겪어오던 것이기도 했 다. 이 나이 어린 나석화의 무공은 화검상과 비슷한 수준이고 게다 가 녀석은 장검을 가지고 있다. 손에 병기(兵器)가 없어도 있는 것과 다름없다는 말이 있지만 그것은 무공이 지고(至高)한 경지에 이르렀을 때의 일이고, 화검 상과 같은 경지에서는 도저히 빈손으로 병장기를 가진 자를 처리 하기란 어려운 노릇이었다. 변환의 숫자가 많아지게 되면 그 검화들이 마치 환상(幻想)과 같은 모습을 보이게 되기도 하는데 그것을 바로 환검(幻劍)이라 고 부른다. 그것은 마치 마술을 부리듯 나타난 여러 개의 환영 중에서 진 짜를 찾아야만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하지만 만일 검강(劍岡)과 같은 강기(岡氣)를 발산하게 되면 그 환영들도 비록 진짜가 아니더라도 위력을 발휘하게 되며 그때는 그 환영 모두를 막아내야 한다. 물론 그 변환의 숫자는 환검과 같을 수가 없겠지만 위력이 막 강하다는 점에서 이것을 변검(變劍)이라고 부른다. 화검상으로서는 지금 그런 무학의 원리를 생각하고 있을 상황 이 아니었다. 그는 아무래도 다소의 피해를 감수하더라도 이 상황을 빨리 끝 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이내 그것을 행동으로 옮겼다. 구궁보(九宮步)를 펼쳐서 가까스로 나석화의 검법을 피해내고 있던 화검상은 느닷없이 그 보법(步法)을 멈추고 나석화의 전면 으로 다가들었다. 만일 화검상이 끝까지 보법에 의지하여 그 검공을 피하려고 했 다면 그는 곤욕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그의 호전되어가던 내상이 무리한 진기의 운용으로 다시금 발 작하려고 하던 단계였기 때문이다. 나석화는 비록 나이에 걸맞지 않게 교활하고 간악스러웠지만 아직 대담하지는 못했다. 화검상이 피하는 것을 멈추고 곧장 다가가자 당연히 이미 노리 고 찔러들어갔던 장검이 그의 왼쪽 어깨에 박혔다. 하지만 나석화는 이내 놀라서 손에 힘이 빠지고 말았다. 그는 화검상이 설마 하니 이렇게 부상을 무릅쓰고 다가들 줄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에 화검상은 어느새 난화불혈수(蘭花拂穴手)를 사용하 여 그의 맥문을 잡아버렸고, 이어 연거푸 지풍(指風)을 날려 그의 마혈(麻穴)까지 제압해버렸다. 화검상은 그러고 나서 어깨에 박힌 장검을 뽑아내고 부근의 혈 도를 눌러 지혈을 시켰다. 피검석은 상황이 이렇게 갑자기 변할 줄은 미처 예상 못한 모 양이었다. 멍청하게 서서 놀란 표정을 하고 있는 나석화와 태연한 기색을 보이고 있는 화검상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그는 가벼운 냉소와 함 께 말했다. “사형의 무공은 그간에 다소 향상된 모양이오? 나사질을 다 이기다니 놀라운 일이요.” 비아냥거리는 피검석의 말을 들어면서 화검상은 여전히 태연한 기색으로 대꾸했다. “그래, 자네도 어디 나와 한판 붙어보겠는가?” 문득 피검석의 두 눈에서 악독한 살광(殺光)이 번뜩였으나, 그 는 이내 교활하게 눈빛을 굴리며 말했다. “그건 나중에 하도록 하겠소. 흐흐, 사형이 그 훌륭한 어머니 를 뵙지도 못하고 죽는다면 두고두고 나를 원망하게 될 테니까 말이오.” 말이 끝나자 피검석은 즉각 지풍을 날려 나석화의 마혈을 풀어 주고는 골목 안쪽으로 사라져버렸다. “네가 그렇게 다정하게 나오다니 정말 뜻밖의 일이로구나.” 우검금은 특이한 시선으로 화검상을 바라보더니 피검석의 뒤를 따라갔고, 나석화도 원독에 가득 찬 표정으로 화검상을 노려보면 서 장검을 주워들고는 그 뒤를 따라 사라져버렸다. 일단 위기를 넘기고 그렇게 다시 혼자 남게 되자 화검상은 장 검이 박혔던 부위가 그제서야 심하게 쑤셔오는 것을 느꼈다. 자세히 상처 부위를 들여다보니, 다행히도 살갗과 피부만 다소 깊게 찢어졌을 뿐 근골은 다치지 않았다. 간단히 의복을 찢어서 상처 부위를 싸매고 나서 화검상은 문득 피검석이 나중에 했던 말을 뇌리에 떠올렸다. ‘어머니, 훌륭한 어머니라…….’ 갑자기 그런 생각을 하고 나자 그는 자신이 아직 모친을 뵈러 가지 않았다는 것을 상기했다. 과거 그가 한창 심하게 방황할 때 모친은 더없이 엄격하고 두 려운 존재였고 또한 냉정했다. 그가 미처 모친을 뵈러 갈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은 과거, 모 친을 피해 다니던 습성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발길을 돌렸다. 과거에 화산파의 중심지로 쓰였던 연화봉(蓮花峰)의 정상에 있 는 상궁(上宮)에는 지금 한 명의 고독하고 신비로운 여인이 기거 하고 있는데 바로 화산신녀(華山神女)이다. 하지만 강호에서 그녀가 바로 소광 화검상의 모친인 풍귀월(馮 鬼月)임을 아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그리고 또한 그간의 사정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도 그 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홀로 연화봉의 정상에서 고고하고 쓸쓸하게 살아가고 있는 그 녀는 대체 무슨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것일까? 제 3 장 영웅(英雄)의 논리(論理) 연화봉의 정상은 조양봉만큼이나 높다. 비록 험준한 것은 다소 덜하지만 부상을 입은 화검상으로서는 그곳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일단 휴식을 취하고 조식(調息)을 해야만 했다. 외상은 생겼지만 다행히 내상은 더 깊어지진 않았다. 대략 반 시진(半時辰) 가량 으슥한 곳에 몸을 숨기고 운기조식 을 하고 나자 내상은 거의 절반 이상이나 치료되었고 이제는 연 화봉에 오르는 것도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어머니는 그간 무사하게 잘 계셨을까?’ 오랜만에 모친을 뵙는 것이기 때문에 화검상은 세수를 하고 머 리와 의복을 다소 정리한 다음에 연화봉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한밤중이어서 주위가 잘 보이지는 않았으나 옛 기억을 더듬어 서 올라가니 곤란한 점은 없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내상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산을 오르는 것이 쉽지 않아서 그는 도중에 서너 번이나 쉬면서 올라가야 했다. 연화봉의 정상에는 상궁 이외에도 전설에 하늘의 옥녀가 달 밝 은 밤이면 내려와 머리를 감았다고 하는 옥녀지(玉女池)가 있다. 화산옥녀라는 말은 바로 거기에서 유래된 것이다. 이 옥녀지는 한여름에도 손이 시릴 정도로 차가운 한담(寒潭) 인데, 그 물이 어찌나 맑고 깊은지 땅속을 통해 황하(黃河)와 이 어져 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화검상이 연화봉의 정상에 올랐을 때는 어느새 만월에 가까운 둥그스레한 달이 암천(暗天)에 둥실 떠올라서 사위를 비추고 있 었다. 바람 한 점 없는 밤에 달이 밝게 비추니 옥녀지는 정말로 맑은 은빛의 광채를 물결치고 있어 그야말로 금방이라도 하늘에서 옥 녀가 내려올 것 같은 아름다운 정취를 풍겼다. 누구라도 이런 곳에서 사는 사람은 범상하지 않다고 생각할 것 이다. 주위는 더할 나위 없이 조용한데, 이윽고 그 옥녀지를 지나 하 나의 오래된 전각(殿閣) 앞에 이르자 문득 한 아름다운 낭자가 나타나 그를 맞이했다. 나이는 이제 겨우 방년(芳年)에 이른 듯한데 아름다운 용모는 말할 것도 없고 눈매와 안색이 무척이나 차분했다. 화검상은 그녀를 보자 문득 반가운 느낌이 들었다. 과거 삼 년 전만 해도 그녀는 겨우 열일곱의 앳된 소녀였던 것 이다. “여사매(余師妹), 그간 잘 있었어?” 여검월(余劍月). 그것이 그녀의 이름이었다. 바로 그의 모친인 풍귀월의 유일한 제자인데, 풍귀월은 뒤늦게 여제자 하나를 받아들이고 이름도 그녀와 같은 월(月) 자를 지어 준 것이다. 은은하고 해맑은 광채가 빛나는 그녀의 눈빛을 보건대, 벌써 그녀의 무공이 상승경지(上昇境地)로 접어들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상승경지란 흔히 유실반허(由實返虛) 자진귀박(自眞歸樸)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것은 내공이 날카로움에서 부드럽고 원만한 경지로 접어들었 다는 말인데, 따라서 안광(眼光)이 강렬함에서 은은한 맑은 기운 을 띠게 되는 것이다. 강호에서는 그러한 모습만 보고도 상대의 무공경지를 파악할 수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그러한 것이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 사람도 많아서 안목 에 확신을 가질 수는 없는 일이고, 게다가 무공경지를 분명히 알 게 된다고 해도 강호는 그저 무공만으로 통하는 곳이 아니다. 온갖 음모와 권모술수, 그리고 독계(毒計) 등이 판을 치는 것이 다. 강호에서 무공은 삼(三), 경험은 칠(七)이라고 했으니, 실로 세 상을 살아나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여검월은 잠시 물끄러미 화검상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화사형이 오늘 내려온다는 얘기는 저도 들었어요. 어쩐지 그 간 더 침착해지신 것 같네요?” 화검상은 미소를 지었다. “더 침착해진 건 바로 너다, 여사매. 한데 어머니는 지금 안에 계시냐?” 여검월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사부님은 그간 이곳을 거의 떠나지 않으셨죠. 아마 화사 형이 내려오는 것을 알고 계실 거예요. 한데, 왜 그리 많이 다치 셨죠?” 솔직히 화검상의 지금 몰골은 세수를 했다고는 해도 말이 아니 었다. 양 뺨이 시퍼렇게 멍이 들고 부어올라서 울긋불긋한 데다가 의 복은 낡고 여기저기 찢어지고, 또한 전신의 곳곳에 상처를 입었 으며 어깨에서는 아직도 피가 배어나오고 있는 중이었다. “너도 알다시피 이 산중에는 사나운 짐승들이 적지 않다. 나 는 우연히 그 중 표범 한 마리와 싸우다가 이렇게 됐지.” 여검월은 미소를 지으며 다시 물었다. “그래 그 표범은 잡으셨나요?” 화검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빈손이었는데 어떻게 놈을 당할 수가 있겠느냐? 녀석은 제법 잽싸고 힘도 세었으므로 나는 놈의 밑에 깔리게 되었지. 그 래서 나는 사정을 해보려고 했단다.” 여검월은 다시 물었다. “그래서 그 표범이 사정을 들어주던가요?” 화검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놈은 내 말은 들은 척도 않고 나의 목을 물어버리려고 했단 다. 그런데 바로 그때 다른 표범 한 마리가 나타났지.” “그 표범은 암놈이었나요?” 화검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쎄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미처 놈을 조사해볼 여유가 없 었거든. 한데 그 나중 놈이 먼저 달려든 놈에게 이렇게 말하는 거야. 그 화검상이란 녀석의 고기는 더럽고 질겨서 만일 먹는다 면 적어도 삼 년은 재수가 없을 것이라고 말야. 그래서 그놈은 할 수 없이 나를 놓아주고 가버리고 말았지.” “호호호…….” 여검월은 그만 우스운지 입을 가리고 크게 웃고 말았다. 사실 그녀도 무학에 대한 조예가 이미 대단하기에 화검상의 부 상이 결코 짐승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사실 화검상이 이곳까지 오는 동안에도 온갖 고초를 겪 어서 도중에 죽을 수도 있었다는 것을 그녀가 어찌 자세히 알 수 있겠는가? “화사형의 얘기는 언제 들어도 재미있어요. 남들은 화사형을 우둔하다고 놀리지만 나는 화사형이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고 있어요.” 여검월은 웃다가 돌연 정색을 하고 그렇게 말했다. 달빛에 그녀의 눈동자가 찬란하게 빛나자 화검상은 왠지 당혹 감을 느끼게 되었다. “아니 그럼 나는 뭐란 말인가?” “화사형은 그야말로 인중지룡(人中之龍)이죠. 다만 지금은 아 직 허물을 벗지 못하여 이무기처럼 보이고 있는 거예요.” 여검월은 어려서부터 화검상을 가장 잘 따랐던 사람들 중의 하 나였다. 지금으로부터 십일 년 전에 선친이 방탕한 생활 끝에 숨을 거 두자 모친은 바로 여제자 하나를 거두어 이곳으로 올라왔는데 그 여제자가 바로 그녀이다. 그로부터 다시 삼 년 전인 화검상이 열한 살 되던 해 그의 조 부가 운명했는데, 그 이전에는 장문인인 조부가 살아 있었으므로 화검상도 매우 유복하게 자랐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때의 기억이 지금은 희미해져서 그저 가끔씩 놀던 장 면들만 떠오를 뿐 알 수가 없다. 모친이 이곳에서 살게 되자 화검상은 자연히 이곳을 자주 오르 내리게 되었다. 그런 가운데 여검월은 변함없이 그를 따르고 위 해주었는데 그것은 가끔씩 부담이 되기도 했다. 모든 사람들이 화검상을 미워하다시피 하고 있는데 그녀가 그 렇게 그를 위해 나선다는 것은 그녀도 다른 사람들을 적으로 돌 리는 것과 같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그녀는 꾸준히 그의 편이 되어주었고, 또한 지 금도 마찬가지였다. 단지 지금은 이전보다 훨씬 차분해진 모습이 다소 걱정을 덜게 했다. “하하, 그런 헛소리는 그만 하고 이제 나를 어머니께 안내해 다오. 우리가 이러고 있는 것을 알면 어머니가 화를 내실지도 모 르니.” 여검월은 미소하며 말했다. “좋아요. 하지만 그 전에 사형께 한 가지 물어볼 게 있어요. 오늘 유사자(劉師姉)는 만났나요?” “유사자?” “예, 그녀는 요새 풍사형(馮師兄)과 매우 친하다고 하던데 요?” 화검상은 안색이 가볍게 변했으나 이내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대꾸했다. “하하, 그녀가 풍사형과 친한 것이 어디 어제오늘의 일이냐? 사실 그녀는 풍사형과 더욱 잘 어울릴 것이다.” 유검하(劉劍霞). 화산일봉(華山一鳳)이라는 별호를 가지고 있는 그녀는 바로 어 렸을 적에 부모들이 맺어준 화검상의 정혼녀(定婚女)였다. 하지만 화산파에서의 찬란했던 그 화씨일족(華氏一族)이 몰락 하고 나자 그 정혼은 유명무실해지고 말았다. 풍검진(馮劍眞). 그는 외삼촌인 풍귀엽의 아들이며 화검상과는 외사촌 지간이 된다. 현재 그는 이대제자(二代弟子)들 중의 최고의 후기지수(後起之 秀)로 꼽히며 화산일룡(華山一龍)이라는 별호까지 가지고 있었다. “말로만 용과 봉황이라고 해서 정말로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 죠. 저는 신의가 없이 그렇게 쉽게 태도를 바꾸는 사람을 가장 싫어해요.” 여검월은 심각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고는 이내 몸을 돌려 화 검상을 안으로 인도하기 시작했다. 과거에 축조한 이 상궁(上宮)의 전각들은 모두 돌을 깎아서 견 고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웅장한 골격을 그 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화산신녀(華山神女) 풍귀월(馮鬼月)은 굳이 그 화려한 전각에서 사는 것을 마다하고 옥녀지가 바라다보이는 넓은 마당 에 모옥을 짓고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워낙 검소하고 조용한 것을 좋아했기에 시중드는 사람도 여검 월 이외에는 거의 없었다. 여검월은 우선 화검상을 마당에서 기다리게 한 다음에 모옥의 안으로 들어가서 풍귀월에게 화검상이 왔음을 알렸다. 모옥은 다소 낡았지만 옛날 모습 그대로였고 우아하고도 그윽 한 정취를 풍기고 있었다. 집과 세간들은 그 사람의 성품을 닮는다는 말이 있다. 그러한 정취를 느끼고 또한 그러한 정취의 주인인 모친의 모습 을 상상하며 화검상은 잠시 기다렸다. 이윽고 모옥의 문이 다시 열리며 눈부신 백의(白衣)를 걸친 여 인이 나타났다. 하지만 그 백의여인은 모친인 풍귀월이 아니라 조금 전에 들어 갔던 여검월, 그녀였다. 화검상은 모친이 나오는 줄 알고 기뻐했으나 이내 실망한 모습 이 되고 말았다. 여검월은 다가와서 속삭이듯 말했다. “사부님께선 만나시지 않겠데요. 그러니 그만 돌아가시는 게 좋겠어요.” 화검상은 고개를 저었다. “나는 이대로 돌아가지는 않겠어. 반드시 어머님을 만나뵈어 야 하겠다.” 그때 갑자기 모옥의 안에서 싸늘한 여인의 음성이 들려왔다. ━━━━━━━━━━━━━━━━━━━━━━━━━━━━━━━ TO BE CONTINUE.... <<무림 YAG 야그>> ━━━━━━━━━━━━━━━━━━━━━━━━━━━━━━━ ━━ 야그 출력일 :: 98/10/16 ───────────────────────────────────── 제 목 : [화산문하] 1 권 제 3 장 - 2 “대체 나를 만나서 네가 뭘 어쩌겠다는 말이냐? 나는 더 이상 너를 만날 일이 없다. 나는 너와 모자지간의 인연을 끊었다는 말 을 너는 잊었느냐?” 화검상은 그 자리에 털썩 무릎을 꿇으며 애원하듯 말했다. “어머니, 그건 제가 지난 세월 동안 철없을 때의 일이었지요. 저는 이제 마음의 정리를 끝내고 앞으로 성실하게 살려고 노력하 고 있습니다. 다시는 어머니의 속을 썩여드리지 않을 것입니다.” 풍귀월은 모옥 안에서 냉소를 터뜨렸다. “흥! 앞으로는 성실하게 살겠다고? 그래, 그런 녀석이 벌을 받 는 동안에도 외부의 사람을 만난단 말이냐? 대체 그 늙은이는 무 슨 일로 만났느냐? 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이지?” 화검상은 문득 자신이 면벽삼년의 기간 동안 만난 무명노인의 얘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그 노인과 만나서 무슨 짓을 했던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 노인은 그가 방황을 끝내게 도와준 사람이고 만일 노인을 만나지 못했다면 그는 아직도 깊은 방황 속에 빠져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이치를 무슨 수로 설명하여 모친을 납득시킨다는 말인가? 그것은 자신에게도 말로는 설명할 수가 없는 것이다. 당시 노인은 은연중 펼쳐져 있는 화산파의 감시망을 용케도 피 해가며 그에게 나타났었다. 무공도 없는 듯한 노인이 그런 신기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화검상은 당시도 기이하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는 그 일에 대해서 노인에게 묻지 않았다. 당시는 그런 질문을 할 분위기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노인을 만나고 있다는 것이 발각된 것은 노인이 죽어 그 가 무덤을 만들어줄 때의 일이었을 것이다. 당시 그는 미처 주의를 하지 못했고, 그리하여 감시하는 사람 들의 분위기가 이상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노인은 죽어 땅속에 묻힌 것이기에 그 일은 그저 그 렇게 지나가고 말았었다. 화검상은 속으로 당혹해 하면서도 한편으로 다소의 위안감을 느꼈다. 그것은 무심한 듯한 모친이 계속해서 그를 지켜보며 관심을 보 이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화검상은 속으로 급히 궁리하다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그 노인은 제가 사과애에서 심한 중병에 들어 죽어가고 있을 때 우연히 저의 목숨을 구해준 사람입니다. 희귀한 약초를 구한 다고 간혹 산에 올라오기에 약간의 대화를 나누었고, 나중에 저 의 곁에서 숨을 거두었기에 무덤을 만들어드린 것입니다.” 그 말에 풍귀월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사실 화검상이 사과애에서 거의 다 죽어가고 있었다는 것을 그 녀도 당시 들어서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이윽고 다소 누그러진 음색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노인에게 뭔가 배운 것은 없느냐? 그리고 그 노인은 친척이 나 자손도 없다더냐?” 화검상은 공연히 사실대로 말하면 문제가 엉뚱한 방향으로 흐 를 소지가 있기 때문에 요령껏 둘러댔다. “노인은 혼자서 산속에서 살아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저 대화를 나누었을 뿐 제가 노인에게 무공을 배운 것도 없고요. 그 노인은 무공도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풍귀월은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이어 목소리를 가다듬어 서늘 한 음성으로 다시 말했다. “내가 당시 왜 너를 구하지 않은 줄 아느냐? 나는 차라리 네 가 그 사과애에서 열병으로 죽기를 바랬던 것이다. 차라리 죽는 것이 낫지, 왜 또 살아 돌아왔느냐? 네가 죄인의 자손이라는 것 을 벌써 잊었느냐? 너같이 산다는 것은 차라리 죽는 것만도 못할 것이다.” 화검상은 가슴속에 기혈이 솟구치고 두 눈이 축축해졌다. “그렇죠. 제가 살아 있다면 그것은 모든 사람에게 해가 되는 일일 것입니다.” “그걸 안다면 왜 또 나를 만나고자 한단 말이냐?” “어머니를 뵙고 친히 여쭤볼 말이 있습니다.” “대체 뭘 물어보겠다는 것이냐?” “저의 할아버지가 어째서 그런 죄인이 되었는지 듣고 싶습니 다.” 문득 풍귀월의 음성이 날카로워졌다. “그것에 대해서는 이미 말하지 않았느냐? 너의 조부는 한마디 로 인면수심(人面獸心)이요, 악마(惡魔)였다. 그는 온갖 사악한 계 략과 음모를 꾸며 본파(本派)에 들어와 장문인의 직위를 찬탈했 고, 나중에는 온갖 만행을 자행하면서 본파의 뿌리마저 제거하고 마도(魔道)에 넘기려고 했다.” “그러니까 본파의 역사상 다시없는 악인이고, 그래서 외조부 님과 사람들이 힘을 모아 조부를 제거하고 본파의 정기(正氣)를 바로 세운 것이로군요?” “믿지 못하겠다는 말이냐?” 화검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닙니다. 저는 다른 명문정파(名門正派)의 사람들도 그런 얘 기를 하는 것을 이전에도 들었습니다.” “그럼 새삼스럽게 무엇을 더 물어보겠다는 것이냐?” 화검상은 다소 머뭇거렸다.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이어 말했다. “사람들은 제게 죄인의 자식으로 평생을 살라고 강요하고 있 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고 있습니 다.” 풍귀월의 음성은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건 네가 알고 있을 것이다.” 화검상은 전신의 피가 끓어오르고 머리가 불덩이처럼 달아오르 는 것 같았다. 그는 가슴속의 격정을 견디다 못해 소리쳤다. “저는 어머니를 뵙고 싶습니다! 제발 얼굴을 뵙게 해주십시 오!” 풍귀월의 음성은 냉랭했다. “이 죄 많은 얼굴을 봐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이냐? 그만 내려 가고 다시는 나를 만날 생각을 하지말아라. 만일 네가 계속 고집 을 부린다면 내가 떠날 것이다.” 화검상은 온몸의 피가 끊어 가슴이 터져나가는 듯했으나 더 이 상 말을 하지 못했다. 그와 모친의 이러한 대화는 사실 한두 번 있었던 것이 아니다. 화검상은 또한 이전에도 무수한 좌절과 방황을 겪어왔으며 이 제는 마치 그것이 생활의 일부처럼 되어버렸다. 한데 그는 또 무엇에 이렇게 집착하는 것일까? 화검상은 땅바닥에 엎드린 채 한동안 생각에 잠긴 듯 가만히 있었다. 여검월이 문득 다가와 조심스럽게 그의 손을 잡아끌었다. “사형, 그만 일어나요. 다음에도 기회는 있을 테니까 말이에 요.” 그것은 전음입밀(傳音入密)이었다. 화검상은 실로 오랜만에 그런 전음입밀의 말을 듣는 것 같았 다. 언제부터인가 그에게 전음으로 은밀히 말해주는 사람들이 보기 드물게 되었기 때문이다. 화검상은 잠시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몸을 일으켰다. 다시 한번 모옥의 창문을 바라보았으나 모친은 내다보지도 않 는 것 같았다. 그는 다소 우울한 눈빛이 되어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는 죄인인 조부를 두었지만 또한 현재의 정인군자(正人君子) 로 칭송이 자자한 외조부를 두었다. 한 사람에게 있어서 모친보다 부친의 영향이 그렇게도 막대하 단 말인가? 설령 그렇다고 해도 선량한 부모에게서 간악한 자식이 태어날 수도 있고 간악한 부모에게서 선량한 자식이 태어날 수도 있는 것이다. 만일 그 자식이 또다시 사악함에 물들 가능성이 있다고 해도 적어도 정인군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이라면, 무조건 사람을 매장 하지 말고 최소한 교화시키려는 노력이라도 보여야 할 것이 아닌 가? ‘너무 어렸을 적의 일이라 기억이 잘 나지 않는 것이 유감이 로군. 나의 그 악마와 같았다는 인면수심의 할아버지는 어떤 모 습이셨을까?’ 여검월은 화검상을 상궁의 낡은 전각 안으로 이끌었다. 그쪽의 한 대전(大殿)은 말끔히 청소되어 있었는데 평소에 그 녀가 자주 이용하던 것인 듯했다. 화검상을 의자에 앉혀놓고 나서 그녀는 옆 방으로 들어가더니 작은 보따리를 하나 들고 왔다. 굵은 촛불 하나가 은은한 빛을 발하고 있는 가운데 그녀는 다 소 상기된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게 뭔지 한번 풀어보세요.” 여검월이 내미는 보따리를 풀어보니 거기에는 세 가지 물건이 나타났다. 의복 한 벌과 비급 하나, 그리고 금원보(金元寶) 하나였다. 비급은 매화검보(梅花劍譜)의 사본이었는데 그녀가 손수 만든 듯한 의복과 작은 금원보가 그 옆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장검도 하나 준비하려고 했는데 그건 아무래도 사형에게 맞 는 것을 찾아야 할 것 같아서요.” 화검상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니 이것들이 다 뭐지?” 여검월은 웃으며 대답했다. “제가 그 동안 틈틈이 만들어둔 거예요. 아무래도 사형은 본 파에서는 제대로 그 능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 같아요. 그래서 일 단은 밖으로 나가 혼자 독립해야 한다고 생각한 거죠.” “나더러 이것들을 가지고 본파를 떠나라는 말인가?” 여검월은 차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무당파의 조사도 원래는 소림사의 중이었다가 혼자 독립했다 고 들었어요. 그런 일에 너무 구애받지말아요. 그리고, 사형이 일 단 독립해서 기반을 잡고 소식을 전하면 저는 물론 즉시 사형께 달려갈 거예요.” 화검상은 가볍게 웃으며 그 보따리를 도로 그녀의 앞으로 내밀 었다. “나는 비단 이런 것들이 필요없을 뿐만 아니라 본파를 떠나지 도 않을 거야.” 여검월은 가볍게 안색이 변했다. “그럼 사형은 끝까지 그런 수모를 당하며 살겠다는 거예요?” 화검상은 다소 씁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 TO BE CONTINUE.... <<무림 YAG 야그>> ━━━━━━━━━━━━━━━━━━━━━━━━━━━━━━━ 釉 야그 출력일 :: 98/10/16 ───────────────────────────────────── 제 목 : [화산문하] 1 권 제 3 장 - 3 “나의 조부는 본파의 역사상 다시없는 죄인이셨지. 하지만 만 일 내가 앞으로 본파를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한다면 그런 죄를 다소나마 씻을 수 있을 거야. 나는 그런 일이 불가능하다고 믿고 싶지 않아.” “하지만 세상에는 불가능한 일도 많아요.” 화검상은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내가 다른 곳으로 가서 적응을 못하면 그때는 어떻게 할까? 계속해서 강호를 떠돌아야 할까?” “하지만 최소한 이곳보다는 상황이 나을 거예요. 그 사람들은 사형을 차별하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에요.” “사매는 아까 내가 영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는데, 이런 어려 움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 과연 영웅이 될 수 있을까?” 여검월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영웅도 때로는 할 수 없는 것이 있어요. 게다가 차라리 저는 고통스런 영웅보다는 행복한 범부를 더 원하는지도 몰라요.” 화검상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곳은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야. 비록 악명이 남아 있기 는 하지만 나의 선친과 조부의 숨결이 깃들어 있는 곳이기도 해, 나는 이곳에서 한번 도전을 해보겠어. 하지만 설령 떠난다고 해 도 사매의 그런 도움을 받지는 않을 거야.” 여검월은 문득 안색이 딱딱해졌다. “그건 제가 사형의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인가요?” 화검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와 사매는 동문사형제인데 무슨 마음에 들고 말고가 있겠 어? 단지 부담이 느껴지기는 해. 사매는 이곳에 든든한 배경도 있고 무공도 훌륭한데 무엇 때문에 나로 인해서 곤란을 자초하 지?” 여검월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나는…… 나는 곤란을 자초해도 좋아요.” “그건 사매의 생각이지 사매의 부모의 의견은 아닐 거야. 그 분들에게 피해를 끼쳐드릴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화검상은 몸을 일으키며 다시 말을 이었다. “나는 사매가 편하게 대해주는 듯해서 고맙게 찾아왔던 거야. 하지만 이렇게 부담을 준다면 이곳을 다시 찾아오기도 어렵겠 어.” 여검월은 즉시 그의 옷자락을 잡고 매달리며 말했다. “그럼 이 의복만이라도 가져가요. 이건 제가 며칠 밤을 새워 가며 만든 거예요.” 화검상은 고개를 저으며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건 더욱더 나에게 필요하지 않아. 나와 같은 죄인에게 어 찌 그런 화려한 의복이 어울리겠는가?” 여검월은 의복을 집어들고서 멍하니 멀어져가는 화검상을 바라 보고 있었다. 일단 선물을 준 다음에는 상처를 치료해줄 생각이었는데, 그녀 는 이 순간 그러한 것마저 잊고 있었다. 화검상은 옥녀지를 돌아 힘없이 홀로 연화봉을 내려갔다. 이미 달도 서산으로 기울어 달빛도 희미하고 사방은 어두운 암 흑(暗黑)의 안개 속에 뒤덮인 것 같았다. 깊은 상념과 우울함에 젖어서 천천히 아래쪽으로 내려가다 보 니 내상이 또 발작했다. 그는 도중에 여러 번이나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마음을 가라앉 히고 운기조식을 하여 내상을 치료했다. 하긴 서둘러 내려간다고 해도 아래쪽에서 그를 반겨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왼쪽 어깨에 입은 검상은 비록 근골은 다치지 않았으나 덧나기 시작한 듯 심하게 쑤셔왔다. 하지만 그러한 고통은 그에겐 지금 위안이 되었다. 현실의 고통에 대해 자학적인 방법으로라도 위안을 얻으려고 하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어느덧 아래쪽의 평지에 거의 다 내려오니 새벽녘이 되었다. 그때 그는 울창하게 가지를 뻗은 커다란 소나무 아래에서 자신 을 기다리며 앉아 있는 한 사람을 보게 되었다. 그 사람의 느낌은 어딘가 아까 보았던 조검황과 비슷한 것 같 았다. 하지만 그의 기질은 물같이 더욱 차갑게 정제되어 있으며, 용 모 또한 더욱 준수했다. 풍검진(馮劍眞). 바로 풍귀엽의 아들이자 화산파가 자랑하는 이대(二代)의 후기 제일지수(後起第一之秀), 화산일룡(華山一龍) 풍검진이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그는 무공이 이미 화산파의 이대제자 중 유일하게 최절정의 경지에 올라 있다고 했다. 최절정이라면 바로 백연탄(白筵彈)의 최상승(最上昇) 경지를 말 하는 것이며, 적어도 공력이 사 갑자(四甲子) 이상이어야 한다. 이제 겨우 스물일곱의 나이에 그러한 경지에 올랐다는 것은 놀 라운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는 또한 화검상의 외사촌형이다. 많은 사람들, 특히 대사형인 윤검진이나 사숙, 사백들까지도 모 두 은근히 그를 두려워한다고들 하지만, 화검상으로서는 그를 두 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화검상이 그 앞으로 가까이 다가가자 풍검진이 잠시 예리하게 그의 전신을 훑어보더니 이내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이제야 오는군. 그래 고모님은 잘 만나보았나?” 화검상은 오랜만에 다시 만나는 것이기에 반가운 기색으로 대 꾸했다. “예, 어머니께서는 사형이 매우 훌륭한 인재라고 칭찬을 하시 더군요.” 풍검진은 입가에 가벼운 냉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그런 얘기를 듣자고 내가 여기에서 널 기다린 것은 아니다. 본론만 간단하게 말하지. 너도 얘기를 들어서 잘 알고 있겠지만 앞으로 그녀와의 일을 모두 정리해라!” 화검상은 희미하게 입가에 미소를 떠올렸다. “유사자의 일 말입니까?” 풍검진은 싸늘한 기색으로 그를 주시했다. “그렇다. 너는 내가 왜 여기에서 널 기다렸는지 아느냐?” 화검상은 풍검진의 손에 들려 있는 장검을 바라보며 말했다. “제가 만약 말을 듣지 않는다면 저를 죽일 수도 있다는 말입 니까?” 풍검진은 싸늘히 화검상을 주시할 뿐 말이 없었다. 무언(無言)은 곧 긍정이나 다를 바 없다. 화검상은 어색한 듯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저를 너무 과소평가하시는군요. 저는 고작 한 여자 때문에 형제간의 의리를 상하며 결투를 벌일 사람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형제간의 우애가 훨씬 더 중요한 법이죠.” 풍검진은 싸늘하게 냉소했다. “제발 너의 말이 사실이길 바라겠다.” 화검상은 웃으며 말했다. “혼인식은 언제 올릴 겁니까?” 풍검진은 차갑게 말했다. “너는 그런 일을 알 필요가 없다. 그냥 그녀와의 일을 정리하 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하하, 그러죠. 저도 사실 그녀에 대해서 환멸을 느끼고 있던 중이니까요.” 문득 풍검진의 손끝에서 백광(白光)이 번뜩이는 듯하더니 어느 새 검날이 화검상의 목에 닿아 있었다. 정말 눈부시도록 빠른 출수였다. 하지만 아직 그다지 정확하지는 못한 듯 그 검날이 살 속으로 약간 파고들어 실낱 같은 핏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네가 감히 그녀에 대해서 함부로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 냐? 만일 내가 한 말이 그대로 지켜지지 않을 경우, 그때는 내 검이 너의 목에 박힐 것이니 명심해야 할 것이다.” 풍검진의 그 검은 보검(寶劍)이었다. 그래서인지 일시에 그 검의 한기(寒氣)에 의해 목 전체가 얼어 붙는 것 같았다. 화검상은 어색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그 점은 염려하지마시오.” 풍검진은 잠시 더 화검상의 얼굴을 주시하다가 이내 장검을 거 두고는 몸을 날려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이 수난은 언제 끝날지 알 수가 없군…….” 화검상은 새로 생긴 목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그렇게 중얼거리 다가 다시 걸음을 옮겼다. 제자들의 처소는 그 커다란 연무장을 사이에 두고 바깥쪽에 좌 우로 위치하고 있었다. 화검상의 처소는 안쪽에서 보기에 좌측 바깥쪽에 위치하고 있 었다. 화산파는 이삼대의 제자들만 해도 모두 사백여 명이나 된다. 그러니까 비록 건물들은 가장 초라해도 그쪽에 가장 많은 사람 들이 있는 셈이었다. 화검상이 그쪽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임무를 맡은 사람들을 제 외한 대부분의 제자들이 연무장으로 나와 한창 비지땀을 흘리며 연무(練武)에 몰두하고 있었다. 화산파 제자들의 일과는 대개 아직 동이 트지 않은 이른 새벽 부터 행해진다. 새벽과 오전에는 주로 무공연마에 시간을 보내고 오후에는 각자의 할 일을 하거나 배당된 노동일을 하게 되는 것 이다. 수백 명이나 되는 제자들의 과반수가 이미 무학이 절정급이다. 그들 수백 명이 한꺼번에 지면을 박차고 허공으로 떠오르며 연 무하는 광경은 마치 수백 마리의 맹수들이 무리를 지어 움직이며 포효하는 것과 흡사했다. 지금 그들은 각기 무학의 경지에 차이를 보이는 만큼 똑같은 무공을 연마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삼대제자들이 연마하고 있는 것은 낙영장법(落英掌法)이나 낙 영검법(落英劍法) 같은 것들이고, 이대제자들이 연마하고 있는 것 은 주로 백팔식광풍쾌검(百八式狂風快劍)이나 구궁검법(九宮劍 法), 매화검법(梅花劍法) 같은 것들이다. 그러나 화산파에서 무공의 격차를 각자가 연마한 무공절기의 이름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비록 과거에는 초보적인 무공이라고 생각하던 절기들도 나날이 연구를 거듭하여 그 나름대로 경지에 오를 수 있는 길들이 열리 게 되었고, 그 내부의 숨은 위력도 해마다 개발되고 있다. 따라서 화산파에서는 무공절기의 품계(品階)로써 그 경지를 가 름하게 되었다. 그것을 보는 시각에도 다소의 견해 차이가 있겠지만, 오품(五 品)은 일류, 사품(四品)은 절정, 삼품(三品)은 최절정이다. 그런데 일품(一品)의 경지에 이르러서는 그것을 분명히 말하기 가 곤란해진다. 흔히들 대홍락의 심검(心劍)의 경지를 말한다고들 하지만, 아직 그러한 경지에 오른 사람이 화산파의 역사에서도 거의 없었기 때 문이다. ━━━━━━━━━━━━━━━━━━━━━━━━━━━━━━━ TO BE CONTINUE.... <<무림 YAG 야그>> ━━━━━━━━━━━━━━━━━━━━━━━━━━━━━━━ 졀岷 야그 출력일 :: 98/10/16 ───────────────────────────────────── 제 목 : [화산문하] 1 부 1 권 제 4 장 기재(奇才)가 둔재(鈍才)로 제 4 장 기재(奇才)가 둔재(鈍才)로 심검의 경지에 오르려면 우선 공력만 해도 최소한 십육 갑자(十六甲 子) 이상이어야 한다고 한다. 인간이 수백 년이나 살지 않는 한 과연 그렇게 될 수 있을까? 현재 화산파 내에서 무학이 이품의 경지에 올라 있는 사람은 모두 네 명이라고 한다. 장문인 화산검존(華山劍尊) 풍천비(馮天飛)와 두 명의 원로(元老), 그 리고 수석장로인 성천익(成天翌)이다. 비록 높은 경지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화검상도 그러한 무공절기들을 배우지 않은 것은 아니다. 잠시 서서 그러한 광경을 바라보고 있자니 화검상은 왠지 손발이 다소 근질근질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전과는 달리 이번에는 왠지 무학의 연마가 잘될 것 같은 기분이다. 한데 그때 갑자기 그의 등뒤를 툭 치는 손질이 있었다. 명문정파는 말할 것도 없고, 강호의 독문절기들을 가진 문파라면 어디 나 외부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무학을 연마하는 광경을 바라보는 것을 금기시한다. 화검상은 비록 외부의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마치 나쁜 짓을 하다 가 들킨 사람처럼 경황없는 모습이 되었다. "왜, 또 갑자기 무공이 또 배우고 싶어졌느냐?" 그는 왕귀진(王歸塵)이었다. 일대제자들 중에서 이삼대 제자들의 무공연마를 담당하는 사람이 다섯 이 있는데, 그는 바로 그 중의 하나였다. 과연 돌아보니 귀귀허(歸歸虛)와 피귀석(皮歸石), 악귀성(岳歸星)과 구 귀광(丘歸光)은 지금 연무장에 있는데, 왕귀진의 모습만 없었다. 화검상은 자신이 잠시 넋을 놓고 있다가 누가 다가오는지도 몰랐다는 사실에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 안색이 붉어졌다. "왕사백을 뵈옵니다." 화검상이 공손히 읍하며 인사하자, 그는 잠시 화검상의 얼굴을 바라보 더니 손을 들어 다시 어깨를 툭툭 쳤다. "네가 달라져서 내려왔다고 하더니 그게 거짓말은 아니군. 언제든지 무공을 배우고 싶으면 얘기해라. 네가 무공을 배우는 것까지 막을 본 파는 아니다." 이어 왕귀진은 걸음을 옮겨 다시 연무장으로 가버렸다. '내가 달라졌다고? 대체 뭐가 달라졌다는 말인가? 아마도 마음의 안정 을 찾은 모습이 남들에게 다르게 보이는 모양이군.' 화산파의 제자라면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무공수련에 참가하는 것은 권리라기보다는 의무이다. 그런데 그것이 유독 화검상에게는 마치 권리처럼 되어버렸다. 그것은 그가 워낙 과거에 무학수련 도중 운공 시에 주화입마에 잘 빠 지고 혼란을 거듭하여, 그만 그를 제쳐놓게 되었던 것이다. 아주 어렸을 적에 그는 총명한 인재로서 주위의 칭찬이 자자했었지만, 나중에는 도리어 화산파의 역사에서도 다시없을 둔재(鈍才)가 되어버 렸다. 그리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마치 그 당연한 무공수련의 권리마저 그에 게는 사라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수석사범인 왕귀진은 본래 도량이 넓은 사람이고 과거에도 그에게 잘 대해주는 편이었다. 화검상은 잠시 그가 다시 제자들과 어울리는 것을 바라보다가 이내 신 형을 돌려 걷기 시작했다. 처소 쪽으로 들어서자 밥을 짓는 냄새가 구수하게 진동하고 있었다. 벌써 식사를 할 시간이 가까워진 것이다. 화검상의 위장은 그 냄새를 맡자 이내 아우성을 치기 시작했다. 그는 지난 며칠간 거의 아무것도 먹지 않은 것이다. 어제 낮에 술 한 병 들이킨 것만 빼고... 이쪽에 이삼대의 제자들이 거주하는 건물들이 열 개가 있는데, 그 중 안쪽의 세 건물은 여자제자들이 사용하는 것이다. 그 건물들의 옆을 차례대로 지나 화검상은 가장 바깥쪽에 있는 건물로 들어섰다. 신기하게도 삼 년 전의 모습과 거의 달라진 것이 없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고작 새로운 제자들이 들어온 정도일 것이다. 이 건물들은 비록 화려하지는 않지만 무척 쓸모있고 견고하게 지어져 서 그간 고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안으로 들어서다가 문득 밖으로 나오는 한 사람과 마주치게 되었다. 한데 이 녀석은 처음 보는 녀석으로 낯설다. 나이도 고작 열 살 정도로 어려 보이는 것을 보니, 그 사이에 들어온 녀석인 모양이었다. "네 이름이 뭐냐?" 눈빛이 유난히 번들거리는 이 꼬마 녀석은 잠시 멍하니 화검상의 얼굴 을 바라보다가 이내 대답도 하지 않고 도로 안으로 달려들어가버렸다.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모든 일이 낯설은 모양이군.' 안으로 들어가면 복도를 사이에 두고 좌우로 각기 다섯 개의 작은 방 들이 있고, 대개 그 하나의 방에 두 명이 함께 거주하게 되어 있었다. 화검상의 방은 좌측에서 두번째의 방인데 그는 가검통(賈劍通)이라는 사제와 함께 지냈었다. 그 가검통은 비록 사제이긴 하지만 나이는 무려 서른네 살이나 되는 장년인이었는데, 성격도 매우 소심한 편이어서 남들에게 많은 놀림거 리가 되곤 했다. 물론 당시 화검상은 워낙에 심한 방황을 하던 터라 그와 변변히 대화 도 나누지 못했지만, 지금 그 방문들은 모조리 훤하게 열려 있었다. 누군가 아침청소를 하며 남아 있는 모양이다. 과연 아니나다를까? 화검상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막 자신의 방안으로 들어가려는데 문득 아까 달아났던 꼬마 녀석이 한 사람을 데리고 나타났다. 후검암(侯劍岩), 이제 서른여섯 살로 장년인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이 작은 건물의 우두머리 격인 사람이다. "사제, 드디어 다시 돌아왔군. 그간 고생이 심하지는 않았나?" 가장 바깥쪽에 있는 이 건물은 외부에서 들어온 사람들을 주로 모아 놓은 곳이기 때문에 이런 나이 많은 사람이 많다는 것은 하나도 이상 한 일이 아니다. 화검상은 마주 그의 손을 잡으며 미소와 함께 말했다. "고생스럽기는, 그저 한동안 편히 놀다 온 셈이죠. 후사형, 그간 다른 사람들은 별고없었습니까?" 후검암은 다소 어색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별일없었네. 다만 한번 자네를 보러 가지 못한 것이 미안할 따 름이지." 화검상은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 "그건 그렇고, 그 동안 식구가 늘어난 모양이로군요?" 후검암은 그제서야 뒤에 있던 그 꼬마 녀석을 앞으로 내세우며 말했 다. "아, 이 아이는 이름이 단석광(簞石光)이고 재작년에 입문했지. 요사이 내가 약간 지도하고 있는 중이네. 석광(石光)아, 어서 화사숙께 인사를 올려라!" 단석광이라는 그 녀석은 아까는 그저 달아나기에 바쁘더니 이제는 눈 빛을 기이하게 굴리며 입을 열곤 고개를 한번 끄덕했다. "당신이 바로 화사숙이로군요. 아까 난 어떤 못된 녀석이 들어온 줄 알고 놀랐던 거예요. 당신에 관한 얘기는 많이 들었어요." 다소 어수룩한 줄로 알았더니 영악하기 짝이 없는 녀석이다. 화검상은 오히려 이런 사람들을 대하는 일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약간 어이가 없었지만 그저 미소하며 말했다. "내가 그 못된 녀석이 아니어서 미안하다. 그래 본파에서의 생활은 재 미있느냐?" 단석광은 눈빛을 교활하게 굴리더니 대꾸했다. "물론 재미있지요. 나는 본래 이름이 단소엽(簞少葉)이었는데 여기에 들어오자 단석광이란 이름을 지어주었지요. 난 이 이름이 더욱 마음에 들어요. 소엽이란 이름은 왠지 너무 나약한 것 같지 않아요?" "그렇구나." "난 이곳의 생활을 잘해나갈 자신이 있어요. 최소한 화사숙보다는 낫 지 않겠어요?" "그렇겠지." 꼬마 녀석이 어이없는 말들을 쏟아내고 있었지만 화검상은 그저 미소 하며 그 말을 넘겼다. "저는 벌써 무공도 많이 배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남들은 아직도 절 어린애 취급만 해요. 앞으로 시간이 나면 저를 좀 지도해주시겠어요?" "그러지." 후검암도 다소 무안한지 이내 나서서 화제를 돌렸다. "우리는 자네가 어제 저녁쯤 오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네. 그런데 좀 늦 었군." 화검상은 그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되었습니다." 후검암은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며 다소 어색한 듯 서둘러 자리를 피 했다. "그럼 먼저 좀 쉬도록 하게. 자네 물건들은 내가 이미 다 정리를 시켜 놓았네." "고맙습니다." 후검암이 단석광을 잡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려고 하자, 단석광은 화 검상의 소맷자락을 붙잡고 다시 말했다. "내 나이는 이제 아홉 살이에요. 그러나 사내대장부라면 결코 나이를 따질 필요는 없지 않겠어요?" 화검상은 미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단석광은 이에 득의한 표정을 지으며 후검암을 따라 물러갔다. 화검상은 그들 두 사람이 들어간 곳을 향해 가벼운 고소(苦笑)를 짓다 가 이내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후검암의 말대로 그의 물건들은 제법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었다. 방안으로 들어서면 좌우의 벽에 각기 하나씩 나무침상이 있고 사물함 이 있는데, 그의 침상은 좌측의 것이었다. 새로 빨아놓은 듯한 이불이 침상의 머리맡에 개어져 있고, 사물함에는 그의 장검과 잡다한 물건들이 있을 것이다. 과거 그는 제대로 편한 마음으로 이곳에서 잠을 자본 적이 드물었다. 그저 방탕하게 밖으로 돌아다니기에 바빴을 뿐이었다. 그래서인지 기이하게도 이곳은 그저 생소한 기분만 들 뿐이었다. 화검상은 침상 위에 걸터앉은 다음에 사물함을 열어보았다. 거기에는 그저 장검(長劍)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이었다. 화검상은 다소 어리둥절해졌다. 이곳에는 본래 온갖 옷가지들은 제쳐두고라도 약간의 금은과 약통들, 그리고 몇 권의 비급들과 한 자루의 잘 드는 단검(短劍)이 들어 있어 야만 했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 외에도 많은 종류의 잡다한 물건들이 있었 을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여기에는 오직 저 녹슨 장검 하나만 덩그러니 남아 있 단 말인가? 그 물건들은 비록 대단한 애착을 가졌던 것은 없지만 그래도 생활을 하는 데는 요긴한 것들이고, 또한 그 중에서도 단검은 그래도 나름대 로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과거 선친이 살아 있을 때, 아니 그보다 그가 아주 어렸을 때 기재라고 칭찬을 받던 당시 선친이 선물로 주었던 유일한 것이었다. 아마도 그가 일곱 살 정도였을 때의 일이었을 것이다. 선친은 그것을 어디선가 가져와서 건네주고는 많은 기대를 거는 말을 했던 것으로 기억이 되었다. 비록 나중에는 실망한 나머지 그에게 심하게 대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선친은 그에게는 상당히 너그럽고 잘 대해준 분이었다. 그런데 그런 연고가 있는 물건마저 사라졌다고 생각을 하니 왠지 아득 한 허탈감마저 밀려드는 것 같았다. ━━━━━━━━━━━━━━━━━━━━━━━━━━━━━━━ TO BE CONTINUE.... <<무림 YAG 야그>> ━━━━━━━━━━━━━━━━━━━━━━━━━━━━━━━ ━━ 야그 출력일 :: 98/10/16 ───────────────────────────────────── 제 목 : [화산문하] 1 부 1 권 제 4 장 - 1 모두들 조부와 선친을 온갖 악랄한 표현으로 매도하고 있지만 그는 자 신마저 그분들을 매도할 생각은 없었다. 그는 심하게 방황하던 시절에도 그 단검만큼은 버리지 않고 늘상 간직 했던 것이다. '후후, 무려 삼 년이나 지났으니 그 물건들이 그대로 남아 있을 리는 없겠지.' 화검상은 잠시 씁쓸하게 웃고 나서 남아 있는 그 장검을 집어들었다. 그것은 그가 마치 그 장검의 모습과 흡사한 것 같아서 오래도록 사용 해오던 것이었는데, 실상 별로 검법을 펼쳐본 적도 없지만, 녹이 슬고 형편없이 낡은 고검(古劍)이어서 그런지 유일하게 아직도 남아 있었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 장검은 그 동안 누구도 한번 손질을 해주지 않 았다. 검집에서 검날이 벗어나자 이내 우수수 녹가루가 떨어져내리며 그 흉 측한 몰골을 드러냈다. 아직도 검날이 부러지지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화검상은 장검을 완전히 뽑아서 들고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탄식하듯이 도로 검집 속에 넣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과거에는 어떤 명검이나 보검이었을지도 모르지. 그러나 지금은 몰골 이 흉측하게 되었다. 과연 나의 이 모습도 그러한가?' 갑자기 검상을 입은 좌측 어깨의 상처가 심하게 쑤셔오기 시작했다. 화검상은 단석광을 불러 금창약이라도 가져오라고 시킬까 하고 생각했 다. 하지만 그는 이내 가벼운 탄식과 함께 고개를 젓고 그 자리에 가부좌 를 틀고 정좌하여 운공조식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다행히 구전호심환을 복용한 데다가 여러 번 운기조식을 거듭하여 가 슴속의 내상은 거의 다 나아가고 있었다. 그 외의 상처들도 또한 다행히도 근골을 망가뜨리지는 않았다. '아직은 내가 아예 죽일 녀석은 아닌 모양이군.' 마음이 불안정한 상태로 운공조식을 하면 위험하지만, 의외로 그런 상 태로 운공조식이 잘만 된다면 거꾸로 마음을 안정시키는 데는 효과가 있는 법이다. 배고픔도 잊은 채, 화검상은 일단 운공조식에 들어가자 이내 무아지경 으로 빠져들었다. 이것은 별로 이상할 것도 없을 듯하지만 사실은 그에게는 아주 이상한 일이었다. 화검상의 무공진전이 갑자기 중단된 것은 아마도 아홉 살 전후의 일이 었던 것으로 기억되었다. 그와 같은 주화입마의 조짐은 물론 갑자기 찾아오지는 않는다. 그는 이전부터 뭔가 잘못되어가는 것을 느끼고 있었지만 위험한 상황 은 갑자기 그를 찾아왔다. 명문정파의 내공(內功)이라는 것이 으레 그러하듯이, 화산파의 이 자하 신공(紫霞神功)도 분명히 정해진 경로를 통해서만 운기를 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런 정해진 운기행공의 조식에 싫증을 느낀 것인지, 화검상의 마음속에 자꾸만 다른 길로 나아가고자 하는 생각이 꿈틀거리기 시작 했다. 그것은 바로 위험한 조짐이었다. 당시 조부나 부친 등에게 이 얘기를 해보았지만 그들은 하나같이 위험 하니 마음을 바로잡으라는 지시뿐이었다. 하지만 위험한 장난감을 가진 어린아이가 오히려 더욱 그런 것에 매력 을 느끼듯이, 아니 그는 본래가 그런 자유분방한 기질을 가지고 있었 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무리 마음을 바로잡아 바른 경로로만 진기를 움직이려고 해도, 이상 하게도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자 하는 마음은 나날이 강해지는 것이었 다. 그러다가 어느 날 운기 도중 정말로 진기가 제멋대로 움직이게 되었고 그는 주화입마에 빠지게 되었다. 비록 조부 등의 노력에 의해 겨우 주화입마에서 벗어나기는 했지만, 막 일류경지에 오르려던 그의 공력은 태반이나 사라지게 되었고 모든 무학진보에 대한 기대가 허사가 되고 말았다. 일단 주화입마에서 벗어나기는 했지만 진기는 계속해서 제멋대로 흐르 려 했고, 그것은 조부 등이 특별히 운기를 도와줘도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그의 사고방식이 지나치게 불순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뒤로 화검상의 무학의 진보는 사라지게 되었다. 그렇다고 공력이 아닌 초식(招式)의 방면에서는 진보를 보였는가 하면 그런 것도 아니었다. 공력에서와 마찬가지로 초식에서도 그는 왠지 그러한 모든 정해진 변 화들이 답답하게 느껴지게 되고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하 는 것이다. 따라서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기재(奇才)는 어느 날 갑자기 다시없을 둔재가 되어버렸고, 거기에서 또한 모든 사항에 대한 거대한 혼란과 방황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물론 그 뒤로는 보다 깊고 근원적인 문제로 파고들게 된 것이지만, 만 일 운기가 제대로 된다고 하면 화검상의 무학이 그렇게 중단되지도 않 았을 것이다. 화검상이 갑자기 운기행공(運氣行功)이 가능해졌다는 것을 알게 된 것 은 사과애에서 무명노인을 묻고 난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의 일 이었다. 그는 자신의 마음을 어느 정도 다스릴 수 있다는 것을 간파했고 이내 운기조식이 가능해졌던 것이다. 물론 아직도 그의 운공조식은 완전한 자하신공 그대로라고는 말하기 어려웠다. 마치 영원히 고치지 못할 천성처럼 그의 체내의 진기는 여전히 주위로 마구 날뛰고 있었다. 하지만 일단 그런 것들로 인해 주화입마를 초래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 라, 대강 본래의 경로대로 일주천(一周天)이 가능하게 되었다. 만일 이러한 사실까지 사람들이 지금 눈치채고 있는 것이라면 확실히 화검상이 변모한 것을 잘 간파한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들이 쉽게 그러한 것을 알아차릴 수가 있을까? 진기를 십이주천(十二周天)하고 났을 때 문득 방문이 열리며 한 사람 이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왔다. 운기를 중단하고 눈을 떠보니 매우 낯익은 사람이었다. 왜소한 체구에 보잘것없는 용모, 항상 불안한 듯이 보이는 눈빛의 장 년인, 바로 가검통(賈劍通)이었다. 가검통은 지금 손에 하나의 쟁반을 들고 있었는데, 보자기가 덮혀져 있는 것으로 보아 음식을 가져온 모양이었다. 그러잖아도 매우 시장하던 참이었는데 그 음식 냄새는 화검상의 뱃속 을 뒤집어놓을 만했다. "화사형, 이미 와 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그래서 이렇게 밥을 가지고 왔죠." 나이는 비록 열 살 가까이나 많아도 사형이 되기 때문에 공손히 대하 는 가검통의 태도는 다소 불쌍해 보이기도 했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되었나?' 운기조식을 하느라 이미 제자들이 새벽수련을 마치고 식사까지 마친 것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창 밖을 보니 벌써 태양(太陽)이 떠올라 주위를 훤하게 비추고 있었다. "고맙네, 그 동안 잘 지냈는가?" 화검상은 두말없이 쟁반을 받아들고 식사를 하며 말했다. 가검통은 흐뭇하고도 불안한 표정으로 화검상이 식사를 하는 광경을 바라보다가 얼른 대답했다. "예, 저는 물론 잘 지냈지요. 저번날 사형이 몹시 아프다고 할 때 저와 몇 사람은 문병이라도 가보려고 했었지요. 그런데 이곳의 사정이..." "됐네, 그건 나도 알고 있지." 화검상은 그의 말을 자르고는 화제를 돌렸다. "아까 보니까 단석광이란 녀석이 들어와 있던데, 그 외에도 새로 들어 온 사람이 또 있는가?" 가검통은 말했다. "예, 사형. 장석중(張石重)이라고 하는 녀석이 있는데, 단석광보다 한 달 앞서서 들어왔지요. 하지만 단석광보다 재질이 훨씬 우수한 편입니 다. 우리 건물에는 그 두 명 외에는 더 들어온 사람은 없어요." "내 사물함을 열어보니 의복이나 금창약 등 아무것도 없더군. 수고스 럽지만 자네가 그것들을 좀 구해주겠나?" 가검통은 그 말에 어깨를 펴고 환하게 웃었다. "그건 그렇지 않아도 제가 미리 다른 곳에 준비해두고 있었어요. 금방 가서 가져올 테니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말과 함께 가검통은 즉시 밖으로 달려나갔다. 내상도 거의 치료가 되었고 밥을 먹어 배를 채우니 이제 기운이 절로 생겨나는 것 같았다. 화검상은 식사를 마치고 나자 오늘 해야 할 일들을 곰곰이 생각해보며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보았다. 어깨의 상처가 여전히 쑤셔왔지만 그래도 견딜 만했고 그다지 덧나는 것 같지도 않았다. 잠시 후 가검통이 의복과 물건들을 한아름 들고서 돌아왔다. 그는 뭐가 그리 자랑스러운지 연신 싱글벙글한 모습이었다. "바로 이것들입니다요. 사형께선 옷부터 갈아입으십시오." 가검통은 두 벌의 의복과 신발, 약병 등등을 가져왔는데, 모두 필요하 던 것들이었다. 두 벌의 속옷과 겉옷들도 모두 투박하기는 해도 새옷들이어서 지금 화 검상이 입고 있는 것에 비하면 비단옷이나 다름이 없을 것이다. 가검통은 나이에 걸맞지 않게 히히거리며 웃다가 이내 화검상이 옷을 갈아입도록 밖으로 나가주었다. 화검상은 새옷으로 속옷과 겉옷을 모두 갈아입고 나서 깨끗하게 면도 까지 했다. 이어 어깨의 상처 부위에 금창약을 바르고 신발을 신고 장검까지 착용 하자 아까보다 훨씬 준수해진 것 같았다. 그가 남은 물건들을 모두 사물함에 정리하고 났을 때, 가검통은 그제 서야 안으로 다시 들어왔다. 가검통은 들어와서 화검상의 모습을 보고는 일순 과장되게 놀란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나의 이런 모습을 처음 보나? 왜 그리 놀라고 있지?" 가검통은 고개를 살레살레 저어 보였다. "그게 아니에요, 사형. 사형의 이런 차림은 그 전에도 많이 보았지만 그러나 이제는 왠지 옛날과는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가검통은 그 동안 아부하는 것만 더 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화검상은 나름대로 남들의 시선에 의문점이 있기에 웃으며 질 문했다. "대체 나의 어디가 옛날과 다르다는 거지?" 가검통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그게... 뭐랄까? 옛날의 사형의 모습은 멋있기는 했지만 위엄이 있다 고는 말할 수가 없었지요. 그런데 지금은 비단 멋있을 뿐만 아니라 보 다 위엄이 있고 어른스러워진 것 같아요." 어젯밤에 여검월도 그와 비슷한 얘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사실 사람의 마음 자세는 외모보다도 더 그 사람을 다르게 보이도록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결국 나의 기질(氣質)이 과거와 다르게 보인다는 말이로군.' 화검상은 화제를 돌리기 위해 마침 생각하고 있던 말을 했다. "아마도 자네의 눈이 갑자기 이상해진 것이겠지. 그건 그렇고. 참, 내 사물함에 단검이 하나 있었는데 자네 그것을 보지 못했나?" 가검통은 그 말에 갑자기 안색이 급변했다. 그는 마치 오줌이라도 쌀 듯한 표정으로 주저하다가 이윽고 그 자리에 털썩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사형, 소제의 죄를 용서해주십시오. 소제가 그만 일시에 눈이 어두어 져서 그것을 가지고 다니다가 잃어버리고 말았지 뭡니까? 그것은 중요 한 물건인 것 같던데. 부디 소제를 일초(一招)에 죽여주십시오." 알고 보니 가검통이 그 단검을 슬쩍해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비록 못난이로 놀림을 받고 있지만 그래도 무공은 화검상 보다도 훨씬 높아서 일류의 경지에다 공력을 일 갑자 반에 도달해 있 을 것인데 화검상이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도 어떻게 일초에 죽일 수가 있겠는가. 사실 가검통은 정말로 화검상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며 이러한 행동 은 그 나름대로의 처세술인 것이다. 겉으로는 몹시 두려워하는 듯하지만 기실 엎드린 그의 두 눈이 쉴새없 이 구르고 있다는 것을 화검상은 알고 있었다. 화검상은 그저 웃으며 말했다. ━━━━━━━━━━━━━━━━━━━━━━━━━━━━━━━ TO BE CONTINUE.... <<무림 YAG 야그>> ━━━━━━━━━━━━━━━━━━━━━━━━━━━━━━━ 야그 출력일 :: 98/10/16 ───────────────────────────────────── 제 목 : [화산문하] 1 부 1 권 제 4 장 - 2 "이미 잃어버렸다면 할 수 없는 일이지. 뭐 별로 중요한 물건도 아니 었네. 한데 자네는 또한 내 사물함에서 약간의 금은이나 비급을 보지 못했나? 아무래도 이제는 그런 것들이 필요하게 되겠지. 자네가 그것 들을 보관하고 있었다면 고마운 일이지." 가검통은 다소 주저하며 눈빛을 굴리다가 이내 헤벌쭉이 웃으며 일어 나 자신의 사물함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예, 사실은 소제가 걱정되어서 그런 것들을 미리 보관하고 있었지요. 금은은 모두 합쳐 은자 백오십 냥 정도였고 비급은 세 권이었습니다." 말과 함께 가검통은 자신의 사물함에서 작은 은원보(銀元寶) 열다섯 개와 세 권의 비급을 꺼내놓았다. 은원보는 말굽 모양으로 생긴 작은 것이 바로 열 냥짜리이니 열다섯 개면 바로 백오십 냥이다. 세 권의 비급은 분명히 화검상에게 눈에 익은 것들이었다. 과거 화검상은 조부가 장문인이었으니 다른 제자들보다도 물건들을 손 에 넣기가 수월한 편이었다. 게다가 별로 보잘것없는 것들이어서 그런지 그것들을 빼앗기지도 않았 다. 그 세 권의 비급은 자하신공(紫霞神功)의 사본과 매화검보(梅花劍譜) 의 사본, 그리고 난화불혈수(蘭花拂穴手)의 사본이었다. 비록 사본들이라고는 해도 제자들이 쉽게 가질 수 없는 것들이고 또한 외부로 유출되어서는 안 될 것들이었다. 하지만 비급은 모두 틀림이 없다고 해도 그 은은 액수가 약간 달랐다. 조부로부터 물려받은 재물들이 상당히 많았기 때문에 화검상이 오래도 록 그것들을 팔아 방탕한 생활을 해왔어도 적어도 삼백 냥 이상은 남 아 있어야 했다. 하지만 겨우 백오십 냥이라니. 이것은 뻔히 눈앞에 두고도 수작을 부리자는 말과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화검상은 굳이 그런 일로 문제를 일으킬 필요가 없겠다고 생각 했다. 그나마 백오십 냥이라도 찾은 것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채석장에서 일하는 사람의 한 달 임금이 겨우 은자 열 냥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그것도 적지 않은 금액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화검상은 그런 것들을 거두어 일부는 사물함에 보관하고 은자 등은 품 속에 잘 갈무리하며 말했다. "고맙네. 내 나중에 성의 표시를 하도록 하지." 가검통은 아부하는 듯한 표정으로 웃었다. "헤헤헤, 괜찮습니다요, 사형. 오히려 소제가 사형께 좀더 도움을 드리 지 못하는 게 죄스러울 따름이죠." "그런가?" 화검상은 밖으로 나가기 위해 다시 몸을 일으켰다. 한데 그때 방문이 갑자기 열리며 한 사람이 안으로 들어섰다. 중년인(中年人)으로 나이가 쉰일곱이나 먹은 냉혹한 인상의 사람이다. 바로 녹귀보(鹿歸寶), 녹사백이었다. 무공을 연마하지 않은 일반 사람들은 나이가 쉰 살만 넘어서면 주름살 이 많아지고 머리카락이 허옇게 변하게 되는 것이지만, 실로 이런 사 람들은 나이를 환갑이 가깝도록 먹어도 피부는 윤택하고 머리카락도 검은빛 그대로여서 마치 이십 년은 젊게 보이는 것이다. 단지 그의 귀밑머리만은 희끗희끗했는데, 그것은 바로 그의 무공이 이 미 최상승(最上昇)의 경지에 이르러 반박귀진(返撲歸眞)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녹사백, 그간 별고없으셨습니까?" 화검상이 놀라 급히 읍하며 예의를 갖추자, 녹귀보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차갑게 말했다. "장문인께서 지금 너를 만나고자 하시니 어서 나와 함께 가자!" '장문인께서?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되었나?' 창밖을 보니 벌써 사시경에 이르고 있는 것 같았다. "예, 녹사백." 화검상이 대답하자, 녹귀보는 즉각 밖을 향해 신형을 돌려 걷기 시작 했다. 화검상은 얼른 그 뒤를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복도에는 어느새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서 그를 기이한 눈초리로 주시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들 중 거의 대부분은 화검상과 상당한 안면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모두들 이 건물 안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그 괴이쩍은 시선들은 어딘가 몹시 생경하게 느껴졌다. 처소를 나서게 되면 이내 연무장과 접하게 된다. 연무장에는 아직도 비지땀을 흘리며 무공수련에 여념이 없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 숫자가 새벽보다 훨씬 적은 것은, 새벽수련은 거의 누구나 참가해야 하는 것이지만 오전의 수련은 임의로 빠질 수도 있기 때문이 다. 무학이란 근본이 기(氣)의 축적과 운용에서 시작되며, 맑은 정기(精氣) 를 배양한다는 점에 있어서 무림각파가 대부분 새벽수련을 중시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라고 해야 할 것이었다. 연무장을 돌아가는 길에 화검상은 비교적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었지 만, 녹귀보의 차가운 인상 탓인지 누구도 그에게 아는 척을 하지 않았 고 화검상도 감히 한눈을 팔지 못했다. 화검상은 다만 간간이 흡사 맹수가 날쌔게 움직이고 포효하며 독수리 가 날갯짓을 하는 듯한 사람들의 동작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릴 뿐 이었다. 연무장의 안쪽에 자리한 그 거대한 오층 석조전각의 전면 현판에 새겨 져 있는 글귀는 '이기어검(以氣御劍) 검기충소(劍氣沖宵)'라는 것이었 다. 화검상은 이제서야 그 글귀를 알아보고는 속으로 생각했다. '본파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병기는 검(劍)이니 당연히 저런 문구가 걸 리는 것이겠지.' 녹귀보는 곧장 그 석조전각의 위층으로 향했다. 위층으로 오르는 계단의 입구에는 어제 본 화산이파파가 앉아 있었는 데, 과연 아니나다를까, 왕천파가 그를 보더니 즉각 입을 열어 말했다. "멍청한 꼬마 녀석아, 설마 하니 벌써 내가 어제 말해준 것을 잊지는 않았겠지?" "예, 두 분 사숙조께서는 편안하십니까?" 귀천능은 시선을 돌려버렸고 왕천파가 다시 입을 열어 말했다. "우리가 편안한지는 상관하지말고 네 녀석의 일이나 신경 쓰는 것이 좋을 것이다." 녹귀보를 따라 오층에 오르니, 장문인의 집무실 입구에 두 명의 낯익 은 사람들이 서 있다가 화검상을 주시했다. 담귀운(膽歸雲)과 성귀애(成歸崖), 바로 일대제자들 중의 대제자(大弟 子)와 두번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두 분 사백을 뵈옵니다." 화검상이 깍듯이 읍하며 절하자, 그들은 이내 녹귀보를 향해 시선을 돌리더니 담귀운이 말했다. "수고했네." 녹귀보는 안쪽을 주시하며 말했다. "장문인께선 지금도 안에 계십니까?" 성귀애가 말했다. "지금 두 분의 사숙조와 대책을 논의하고 있는 중이시네." '대책을? 본파에 무슨 일이라도 생겼다는 말인가?' 화검상이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담귀운이 다시 말했다. "내가 들어가서 여쭤보고 오겠네." 담귀운이 안으로 들어가자 녹귀보는 슬쩍 화검상을 의식하는 듯하더니 말했다. "사형, 그 집마부(集魔府)의 놈들이 정말로 대담하군요. 감히 개방( 幇) 을 건드리다니." ━━━━━━━━━━━━━━━━━━━━━━━━━━━━━━━ TO BE CONTINUE.... <<무림 YAG 야그>> ━━━━━━━━━━━━━━━━━━━━━━━━━━━━━━━ 李 야그 출력일 :: 98/10/16 ───────────────────────────────────── 제 목 : [화산문하] 1 부 1 권 제 5 장 다정(多情)은 한(恨)을 남긴다 제 5 장 다정(多情)은 한(恨)을 남긴다 성귀애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놈들은 비단 대담할 뿐만 아니라 해외팔세(海外八勢)와 교통하고 있 어서 그 세력도 만만치 않네." 녹귀보는 다시 말했다. "하지만 놈들은 이번에 실수한 겁니다. 어차피 우리 무림맹(武林盟)은 준비하고 있었는데 놈들이 그 계기를 만들어준 셈이니까요." '무림맹? 집마부...?' 성귀애는 다소 의아해 하는 화검상의 얼굴을 슬쩍 건너다본 후 말했 다. "지루하고도 힘겨운 싸움이 되겠지. 하지만 나도 자네처럼 우리가 승 리할 것을 믿네." 화검상은 지난날 오직 자신의 일에만 몰두하느라 강호의 사정에 대해 서는 아직 잘 몰랐다. 강호는 현재 무림맹(武林盟)과 집마부(集魔府), 그리고 동심맹(同心盟) 의 세 세력으로 크게 나뉘어져 있으며, 무림맹은 명문정파들의 연합체 이고, 일명 군림맹(君臨盟)이라고도 불리는 집마부는 사파무림의, 그리 고 동심맹은 정사 중간의 무리들의 연합체라는 지식 정도뿐이었다. 화검상은 당시 너무나도 자신의 혼란 속에서만 묻혀 있어서 그러한 외 부의 일을 알기도 싫었고 또한 그럴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무림맹에서는 군림맹을 반드시 집마부라고 부르지만, 또한 군림맹도 무림맹을 정무맹(正武盟)이라고 풍자 섞인 말로 표현한다. 미처 신경을 쓰지는 못했지만 삼 년 전에도 무림맹과 군림맹은 서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는 말을 들은 것 같았다. 다시 삼 년이 흐른 지금, 아마도 양쪽 간에는 벌써 일촉즉발의 위기감 이 조성되고 있는 모양이었다. 만일 삼 년 전의 그 상황이라면 화검상은 이런 대화 내용도 그냥 흘려 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부터 좀더 적극적으로 최선을 다해 살아가기로 한 이상, 일단은 그런 얘기도 결코 흘려보낼 수가 없었다. 물론 지금으로선 외부의 전체적인 무림 정세보다는 우선 자신이 화산 파의 한 사람으로 인정받을 만큼 노력하고 실력을 쌓는 것이 시급한 일이기는 하지만... 담귀운은 이내 돌아와 화검상에게 말했다. "어서 들어가봐라. 장문인께서 기다리고 계신다." "예, 사백." 화검상은 공손히 읍하고 나서 안으로 들어갔다. 이 장문인의 집무실은 화산파의 거대한 위명답게 매우 넓고 화려했다. 주위에 많은 기물들이 있지만 그 내부는 너무도 넓어서 오히려 텅 빈 공간처럼 썰렁한 감이 있었고, 최고급 융단을 따라 앞쪽으로 시선을 옮기면 역시 고급스런 팔선탁(八仙卓)과 태사의에 앉아 있는 장문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화산장문인(華山掌門人) 화산검존(華山劍尊) 풍천비(馮天飛). 화산파 제자이면서 새삼스럽게 그에 대해 얘기한다는 자체가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나이가 벌써 여든여섯 살이면서도 그는 거꾸로 나이를 먹는 듯 오히려 젊어져가는 것 같았다. 한마디로 단단하고 강인한 인상을 주는 그의 어깨와 허리, 팔다리의 근육은 더욱 깊고 예리해졌다. 당연히 백발의 머리일 듯했지만 그의 머리카락은 귀밑머리까지 오히려 검게 윤기가 흐르고 있으니, 그것은 그의 무학이 이미 초절정(超絶頂) 의 경지에 이르러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초절정을 백연탄과 대홍락(大紅落)의 중간 지점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 지만 그보다는 그 자체를 대홍락의 초입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초절정, 즉 초상승(招上昇)이라고 불리는 이 경지는 이미 백맥(百脈)을 융통하고 세맥(細脈)들을 타통해가기 시작함에 따라 무형지기(無形之 氣)를 사용하게 되었으므로, 백연탄과는 또 다른 능력을 보이며 물위 를 걸어다니는 등의 탈인간(脫人間)의 능력을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었 다. 풍천비는 화검상의 외조부이다. 하지만 화검상은 감히 그를 외할아버지라고 부를 수가 없었다. 풍천비의 싸늘하고 예리한 시선을 의식하며 화검상은 즉시 그 자리에 엎드려 오체복지하고 대례를 올렸다. "제자 화검상이 삼가 장문인께 문안 올리옵니다." 화검상이 고개를 들고 풍천비를 바라보자, 그는 부드럽게 입가에 미소 를 띠고 있었다. "그래, 그 동안 고생이 많았지? 내가 그 동안 바쁘게 움직이느라 미처 너를 신경 써주지 못했구나. 지금 어디 불편한 곳은 없겠지?" 화검상은 풍천비가 이렇게 자신에게 부드럽게 대해줄지 몰랐기 때문에 그만 어리둥절한 기분이 되었다. "예, 불편한 곳은 없습니다." 풍천비는 미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내 이미 너에 관한 얘기는 들었다." '나에 관한 무슨 얘기를 들었다는 말일까?' 지금 풍친비의 좌우에는 화산파의 최고연배인 이대원로(二大元老) 곡 몽현(谷夢玄)과 목몽양(穆夢陽)이 앉아 있었다. 화검상에게는 태사숙조(太師叔祖)들이 되는 셈인데, 나이가 백이십 세 에 가까운 사람들이어서 그런지 그들의 머리카락은 검은빛이었어도 얼 굴엔 주름살이 많았다. 주름살이 가득한 두 눈의 동공에서는 흡사 바늘처럼 예리한 안광이 음 험하게 쏘아져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 세 명뿐인 줄 알았는데 팔선탁의 주위에는 지금 한 명의 사람이 더 있었다. 나이는 환갑이 거의 다 되었지만 외모는 중년문사(中年文士)의 모습을 하고 있는 청수한 인상의 사람. 화검상은 그를 보자 일순 놀라 뜨끔해지고 말았다. 바로 유귀생(劉歸生)이었기 때문이었다. 유귀생은 오래 전부터 수석장로인 성천익(成天翼), 사자인 희귀화(姬歸 花)와 함께 제자들을 거느리고 무림맹(武林盟)에 나가 있던 사람이었 다. 게다가 화검상이 정작 놀라는 것은 그가 바로 그의 정혼녀였던 유검하 의 부친이기 때문이다. 유귀생은 그저 무심한 듯이 그를 바라보고 있지만, 그를 대하는 화검 상의 뇌리에서는 지나간 세월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고 있었 다. 유귀생, 그는 무엇 때문에 돌아와 있는 것일까? 풍천비의 말은 다시 이어지고 있었다. "나에게 특별히 바라는 것이라도 있느냐?" 화검상은 얼른 시선을 풍천비에게 옮기며 말했다. "실은 한 가지 부탁드릴 일이 있습니다." 풍천비의 시선이 기이하게 변했다. "부탁이 있다고?" "예, 저는 이번에 많은 반성을 하였고 또한 저의 오류가 많았었다는 것을 통감했습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저는 이번에 아예 밑바닥 부터 인생을 다시 배우고 싶습니다." 풍천비의 시선이 문득 음침하게 변했다. "그럼 대체 무슨 부탁을 하겠다는 말이냐?" 화검상은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앞으로 저를 채석장의 인부들과 함께 생활하게 해주십시오." 풍천비는 눈살을 찌푸렸다. "무공은 배우지 않고 그런 노동이나 하겠다는 말이냐?" 화검상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부디 허락해주시기를 간청드리옵니다." 풍천비는 잠시 표정이 복잡하게 변하는 듯했다. 그는 잠시 묵묵히 생 각에 잠기는 듯하다가 가벼운 탄식과 함께 말했다. "네가 가문의 죄를 속죄하려는 뜻은 잘 알겠다. 그러나 그런 쓸데없는 노동이나 해서 대체 무엇이 되겠다는 말이냐? 그 얘기는 안들은 것으 로 하겠다." 화검상은 재차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저는 지금 무공을 배우기에도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럴 바 에는 차라리 고생이 되더라도 직접 몸으로 부딪치며 성실한 삶의 자세 를 배워 볼까 합니다." 풍천비는 다시 눈살을 찌푸렸다. "네가 지금 감히 나의 명을 거역하겠다는 말이냐?" 화검상은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네가 진정으로 원한다면 그 쓰레기와도 같은 무리들의 속에 넣어줄 수도 있지, 그러나." 풍천비는 두 눈을 음험하게 빛내며 말을 이었다. "나는 앞으로 머지않아 네게 다시 무공을 가르치게 하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니 너는 그곳에서 잠시 더 마음의 수양을 하고 있도록 해라. 이건 내가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다." 화검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를 위해주시는 마음은 뼈에 새기겠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저는 스 스로 죄인의 몸으로 무공을 배우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부디 제가 그곳으로 가서 일을 하는 것을 허락해주십시오." 순간 풍천비의 두 눈에서 무시무시한 냉기가 번쩍 피어올랐다가 사라 졌다. 그는 잠시 화검상을 주시하더니 이내 가볍게 미소하며 말했다. "정말로 네가 속죄하는 뜻으로 그렇게 하겠다면 말리지는 않겠다. 그 러나 너는 마냥 그곳에서 네멋대로 지낼 수는 없다. 앞으로 보름 후면 본파는 사마외도(邪魔外道)를 타도하기 위해 출정(出征)을 하게 되어 있다. 너도 엄연한 본파의 인원이니만큼 그런 어려운 일은 함께 해야 하지 않겠느냐?" '보름 후에 출정을...?' 화검상은 다소 어리둥절해졌지만 이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풍천비는 싸늘한 표정으로 말하며 시선을 돌렸다. "그럼 이만 나가봐라." 화검상은 이에 대례를 올리고 그곳을 물러나왔다. 입구에는 여전히 담귀운과 성귀애가 서 있었으나 그를 차갑게 주시할 뿐 아무런 말도 없었다. 화검상은 그들에게 읍한 뒤에 아래층으로 향했다. 녹귀보는 어디로 갔을까? 일층의 입구에 있던 이파파는 어느새 보이지 않았다. 화검상이 연무장 쪽으로 나가려고 하는데, 문득 뒤에서 누군가가 그를 불렀다. "잠깐, 거기 서라." 고개를 돌리고 보니 바로 조금 전에 장문인의 집무실에서 보았던 유귀 생(劉歸生)이었다. 화검상은 반가운 마음에 즉시 읍하며 인사를 올렸다. "유사백, 그간 별고없으셨습니까?" ━━━━━━━━━━━━━━━━━━━━━━━━━━━━━━━ TO BE CONTINUE.... <<무림 YAG 야그>> ━━━━━━━━━━━━━━━━━━━━━━━━━━━━━━━ " 야그 출력일 :: 98/10/16 ───────────────────────────────────── 제 목 : [화산문하] 1 부 1 권 제 5 장 - 1 과거에 화검상은 그를 유백부, 즉 유큰아버님이라고 불렀었다. 그것은 그와 유검하가 정혼이 되어 있는 상황이었고 또한 유귀생과 화 귀농과의 우애도 특별하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감히 그렇게 부를 수가 없다. 유귀생은 그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싸늘한 안색으로 말했다. "너는 요즘도 그 아이와 만나느냐?" 화검상은 내심 씁쓸한 마음이 되었지만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유사자 말입니까? 저는 내려온 지도 얼마 안 되었지만 이제는 그녀와 만날 일도 없습니다. 그녀와는 아직 만나지도 않았지만 앞으로도 만나 지 않게 될 것입니다." 유귀생은 안색이 다소 누그러지는 듯하더니 다시 말했다. "음, 네가 정말로 그런 생각이라면 나는 걱정을 하지 않아도 좋을 것 이다. 하지만 기왕에 보게 되었으니 내 한마디 충고를 하도록 하지. 너 는 그 동안 사람이 많이 달라진 듯하구나. 오늘의 너는 제법 침착하고 똑똑해 보였다. 하지만 너는 차라리 변하지 않은 것만 못하게 되었다." 말을 끝내자, 유귀생은 이내 신법을 일으켜 훌쩍 위쪽으로 사라져버리 고 말았다. '변하지 않은 것만 못하게 되었다고? 그럼 내가 바보로 계속 지냈어야 만 옳았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죄인의 자식은 똑똑해서는 안 된다는 말인가?' 화검상은 일순 둔기에라도 얻어맞은 듯 멍하니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러다가 그는 가볍게 쓴웃음을 지으며 밖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거의 정오가 가까워졌다. 연무장의 연무(鍊武)도 이제는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정오에 수련을 마치게 되면 식사 시간까지 반 시진 정도의 여유가 남 는다. 제자들은 그 시간 동안에 더러 미진한 수련을 좀더 해보기도 하고 각 자의 개인적인 시간을 갖는 것이다. 무공이 높은 어떤 사람들은 그 짧은 시간에 산 아래의 현성(懸城)으로 내려가 식사를 하고 술까지 한잔 걸치고 오기도 했다. 연무가 거의 파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범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고 연무 장 주위로 오가는 사람들의 숫자도 많았다. 그러나 그들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을 화검상에 대해 일부는 그저 모 른 척하고 지나쳐버리고, 또 일부는 혐오스런 눈길로 경멸하듯이 주시 할 뿐, 그와 대화하려는 사람은 없었다. 그가 지나치며 인사를 하는 사형들은 말할 것도 없고, 사제들이나, 심 지어 갓 화산파에 입문한 삼대제자들까지도 그에게 인사를 하지 않았 다. 실로 이런 분위기 속에 있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화검상은 다만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고 그들에게 그 무엇도 바라 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잘 안되는 사람에게는 온갖 액운이 몰려오게 되는 것인지, 그 나마 체념의 평온에라도 안주하려고 했던 화검상의 의도는 이내 다시 틀어지고 말았다. 마악 연무장의 옆길을 중간 정도 지나가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휘리리릭 하고 옷자락이 거세게 휘날리는 소리가 그의 등뒤를 엄습하더니 이내 한 사람이 서너 번이나 공중회전을 하며 그의 앞을 막아서는 것이다. 바로 사형인 귀검철(歸劍鐵)이었다. 이 귀검철은 나이가 스물일곱이고 체격이 비록 호리호리한 면이 있으 나 의외로 강인한 면모가 있는 사람이었다. "흐흐, 어디로 가는가? 나와 연무(鍊武)를 좀 해보세." 말과 함께 갑자기 그의 오른손에 들려 있던 장검이 화검상의 미간을 찔러왔다. 만일 그 속도가 조금이라도 빠르거나 느리거나 했더라면 화검상은 전 혀 피하지도 못하거나 무시해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일초(一招)의 속도는 실로 교묘했다. 반드시 화검상이 피할 여지가 있게 했고 또한 피하지 않을 수 없게 했 다. 화검상은 스스로도 화산검법을 배운 탓에 그 흐름을 대강 파악하고 있 었다. 화산검법은 대개 화려(華麗)하고 변화무쌍하다. 만일 화산검법으로 미간을 찔러온다면 거기에는 이미 그 사람이 좌우 나 상하(上下), 어느쪽으로 피하더리도 제압해갈 수 있도록 변초(變招) 가 미리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멀쩡히 예리한 검날이 찔러오는데 앞으로 나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화검상은 할 수 없이 즉각 몸을 뒤로 젖혀 피하는 도리밖에 없었다. 흔히들 철판교(鐵板橋)라고 강호에서 불리는 모양처럼 그의 신형이 허 리 부분에서 뒤로 젖혀져 미끄러지듯 주르르 삼 척이나 물러났다. 귀검철은 화검상이 몸을 뒤로 젖힐 것이라는 예상은 했지만 그와 동시 에 뒤로 삼 척이나 물러날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다. "어쭈, 제법인데?" 귀검철이 발로 땅을 박차는 순간 이미 그는 화검상의 지척으로 다가들 어 장검으로 하체를 베어가고 있었다. 이 변화의 속도를 화검상은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었다. 귀검철은 이미 무학이 상승경지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상승경지라는 것은 말 그대로 무학의 또 다른 경지이며 진기의 흐름이 하나로 완전히 융통되어 흡사 물 흐르는 것 같다는 것이며, 그것은 당 연히 초식(招式)의 경우에도 적용된다. 화검상은 귀검철처럼 그렇게 물 흐르는 듯 자연스런 변화를 이룰 수가 없었다. 첫번째의 공격은 잘 피했지만 이번 공격은 허리가 아직 펴지지 않은 상황이라 잘 피할 수가 없었다. 다급한 나머지 황급히 구궁보(九宮步)를 펼쳐 피하려고 했으나 그가 미처 다섯 걸음을 내딛기도 전에 상대의 장검은 일곱 번의 변식(變式) 을 이루고 있었으며 오히려 그의 보법에 앞서가고 있었다. 물론 그 정도라면 마음만 있었으면 화검상을 죽이고도 남음이 있었을 것이다. 자신이 밟아야 할 방위(方位)에 상대방의 장검이 먼저 변화하고 있으 니 마치 그의 하체가 검망(劍網) 속에 갇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멀쩡히 장검이 눈앞에 있는데 그 길로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것은 비단 위험할 뿐만 아니라 치욕적인 일인 것이다. 그렇다고 화검상이 도중에 보법을 변화시킨다고 해도 이미 제압을 당 하고 있는 상황이므로 반드시 같은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마치 독 안에 든 쥐와 같은 꼴이라고나 할까? 결과적으로 두 사람의 무학의 차이가 너무나도 심하기에 이런 광경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화검상은 하는 수 없이 몸을 위로 솟구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솟구치는 동작에는 더욱 허점을 노출시키게 되기 때문에 위험 하다. 게다가 일단 몸을 공중에 띄운 상태에서는 운신(運身)이 자유로울 수 가 없기 때문에 더욱 불리한 상황을 초래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당장에 급한 상황이라 그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몸을 공중에 띄우기 위해 보법을 변화시키는 순간, 귀검철의 장검은 비수처럼 그의 허벅지로 파고들었다. 하지만 그의 장검은 이내 옆으로 흐르며 다만 화검상의 살가죽만 베어 버렸다. 그것은 그가 화검상을 해칠 의사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다음 순간 화검상의 하체는 공중으로 치솟고 그의 허리는 그제서야 반 듯하게 펴졌다. 최선의 수비는 바로 공격이기 때문에 화검상은 그 즉시 쌍장(雙掌)을 연거푸 세 번이나 날려 귀검철의 안면을 공격했다. 그러나 귀검철은 그가 이미 허공으로 몸을 솟구칠 줄을 예상하고 있었 다. 화검상의 장력(掌力)이 막 그의 몸에 적중되려는 순간, 그의 신형은 환 상처럼 사라졌다. 그리고 이어 화검상의 머리를 노리고 아래쪽으로부터 떠오르는 여덟 개의 매화송이들. 화검상의 몸은 지금 허공에 거꾸로 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저 고 스란히 그의 머리가 검화(劍花)들 속에 노출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그 여덟 개의 검화는 교묘하게도 여덟 곳의 방위를 제압하고 있었다. 틈이 있다면 오직 하나 가운데일 뿐이었다. 사실 겨우 육 척 정도밖에 도약하지 못한 화검상은 허공에서 운신을 하여 변화하기도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화검상의 몸은 마치 여덟 송이의 검화에 둘러싸인 듯이 그대로 거꾸로 떨어져내렸다. 바로 그때 귀검철의 좌수가 돌연 화검상의 두 눈을 노리고 파고 들었 다. 그러한 일련의 수순은 정말로 시기적절하다고 할 수가 있었다. 화검상은 도저히 몸을 움직여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손으로 그 공격을 막아내는 수밖에 없었다. 귀검철의 수법도 난화불혈수(蘭花拂穴手)였지만 화검상의 수법도 난화 불혈수였다. 하지만 한 손으로 시전하는 귀검철의 공격은 화검상의 두 손의 수법을 훨씬 능가했다. 화검상이 황급히 눈을 보호하려는 순간 귀검철의 손은 갑자기 십여 개 로 변했다. 그 모두가 실초(實招)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화검상은 미처 그런 것을 알아차릴 겨를도 없이 오른손의 맥문 을 상대에게 제압당하고 말았다. 그 순간 화검상의 낙하 동작은 주춤했고, 이어 귀검철의 오른발이 그 의 왼쪽 눈을 향해 날아들었다. 상대의 무공이 설령 상승경지가 아닌 평범한 사람이라고 해도 일단 눈 을 가격당하면 위험해질 것이다. 게다가 그 수법은 화산파의 소엽퇴법(掃葉腿法) 중의 반식(半式)이었 다. 사람이란 눈의 방어에만 민감해지기 마련이어서 화검상은 순간 아찔해 지고 말았다. 한데 맹렬하게 날아들던 귀검철의 오른발은 거의 실낱 같은 차이를 두 고 화검상의 눈앞에서 돌연 멈춰서고 말았다. 화검상은 맥문을 잡은 상대의 손의 힘이 풀어지자 떨어지는 몸을 약간 뒤틀어 가볍게 지면에 착지할 수가 있었다. 귀검철은 어느새 장검도 거두었고 서서 화검상을 향해 눈살을 찌푸리 며 주시하고 있었다. "피사제의 말이 잘못된 것이었나?" 혼자 독백을 하듯 중얼거리는 귀검철의 표정에는 다소의 의문이 깔려 있는 것 같았다. 화검상은 십년감수를 한 셈이지만 표정은 여전히 태연해 보였다. 그는 사실 이미 귀검철의 행동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었다. 전날 그는 조양봉을 내려오면서 맞부딪친 피검석에게 괴이한 수법을 써서 그를 당황케 했던 적이 있었다. 귀검철은 지금 피검석에게 들은 그 사실을 확인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비단 귀검철뿐만 아니라 화검상 본인도 그것에 관해서는 역시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조금 전에 귀검철이 그저 약간이라도 실수를 하거나 실수를 하는 척한 다고 하더라도 화검상은 한쪽 눈을 실명하게 되었을 것이다. 지금의 상황에서 화검상에게 가하는 그런 정도의 피해는 죄가 될 수 없었고, 또는 귀검철이 일부러 그렇게 할 수도 있는 일이다. 자신의 소중한 눈을 가지고 도박을 할 수는 없는 일이기에 화검상도 실은 그 순간에 은연중 그 괴수법을 연상하며 귀검철의 손을 뿌리치고 자신의 눈을 보호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은 전혀 되지 않았다. 거기에는 대체 어떤 이유가 있는 것일까? 피검석과 귀검철의 무공경지가 많은 차이가 있다면 또 모르지만, 실상 은 그렇지도 않은 것이다. 이미 그들 주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서 두 사람을 주시하고 있 었다. 조금 전에는 아는 척도 안 하던 삼대제자들의 입가에도 괴이쩍은 미소 들이 떠올라 있었다. 사람들 틈에서 한 사람이 나서서 말했다. 그는 화검상에게는 사제가 되는 성검양(成劍陽)이었다. "그건 사형이 너무 많이 봐주었기 때문이야. 그는 그토록 교활한데 쉽 게 자신의 마각을 드러내려고 하겠어?" 화검상은 이런 상황에서는 그만 꿀먹은 벙어리가 되는 수밖에 없었다. 이들의 의식은 너무도 뿌리 깊어서 그저 한두 마디로 변명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닌 것이다. 귀검철이 그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 웃으며 말했다. "정말 그럴까?" 성검양은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렇다니까. 사형이 만일 그 매화빈분(梅花頻紛)을 펼칠 때 조금도 사 정을 두지 않고 머리카락이라도 잘랐다면 그렇지 않았을걸?" 그때 다른 한 사람이 나섰다. "그럼 이번엔 내가 한번 해볼까?" ━━━━━━━━━━━━━━━━━━━━━━━━━━━━━━━ TO BE CONTINUE.... <<무림 YAG 야그>> ━━━━━━━━━━━━━━━━━━━━━━━━━━━━━━━ 황이 야그 출력일 :: 98/10/16 ───────────────────────────────────── 제 목 : [화산문하] 1 부 1 권 제 5 장 - 2 그는 사형인 곡검성(谷劍星)이었다. 곡검성은 나이가 이제 서른인데 성격도 침착하고 무공도 높아서 주목 받고 있는 후기지수의 한 사람이었다. 만일 그가 이번에 마음먹고 화검상에게 손을 쓴다면 십중팔구는 화검 상도 액운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화검상은 이에 아무래도 어떤 해명을 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한데 그가 막 마음먹고 사람들에게 입을 열려고 하는데, 문득 좌측에 서 누군가가 귀에 익은 음성으로 소리쳤다. "그만들 둬요! 당신들은 그렇게 궁지에 몰려 있는 사람을 괴롭혀야만 속이 시원하겠나요?" 화검상은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마치 둔기로 얻어맞는 듯이 정신이 멍 해졌다. 너무나도 귀에 익은 음성이었기 때문이었다. 과연 아니나다를까? 그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늘씬한 자태의 우아하고도 품위있는 한 여 자가 눈살을 찌푸리며 서 있었다. 바로 유검하(劉劍霞), 그녀였다. 그녀는 아름다웠다. 여러 사람들 속에 있더라도 금방 드러날 것 같은 특출난 미모였다. 만일 그녀가 그렇게 아름답지 않았다면 화산일봉(華山一鳳)이라는 별 호는 붙여지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그녀는 하마터면 장래의 화검상의 부인이 될 뻔한 여자이기도 했다. 솔직히 화검상은 아까부터 은근히 그녀가 있는지 찾고 있었다. 한데 아무리 봐도 보이지 않던 그녀가 어디서 갑자기 이렇게 나타난 것일까? 유검하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화검상과 마주쳤지만, 이내 그녀는 시선 을 외면해버렸다. 성검양이 그녀에게 걸어가며 말했다. "유사자, 우리는 누구를 괴롭히려는 것이 아니라 사실 여부를 밝히자 는 것이오. 만일 그가 사마외도(邪魔外道)의 첩자여서 어떤 흑심을 품 고 본파에 잠입한 것이라면 본파의 앞날은 어떻게 되겠소?" 유검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가 사마외도의 첩자가 아니라는 것은 내가 보증해요. 만일 사마외 도가 그처럼 어리숙하다면 아마도 강호무림에는 벌써 마도가 멸망하고 말았을 거예요." 옆에서 다시 다른 사람이 나서서 말했다. "유사매, 그건 피사제가 직접 당한 일이고 또한 다른 사람들도 목격한 일이야. 설마 하니 그가 하늘에서 그런 마공(魔功)을 배워왔다고는 생 각하지 않겠지?" 그는 바로 대사형인 윤검진이었다. 윤검진은 나이도 많았지만 대사형답게 약간의 무게도 있었다. 그는 항상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그런 탓인지 그가 하는 말이 모두 정당한 듯이 믿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유검하는 대사형인 윤검진까지 나서자 그만 아미를 깊게 찌푸렸다. "그럼 대사형은 그를 지금 죽이기라도 하자는 말인가요?" 윤검진은 다소 어색한 듯이 웃으며 대꾸했다. "그야, 저 녀석이 하기에 달린 것이지. 저 녀석이 끝까지 교활하게 본 색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저 바라보기만 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성검양이 동조하며 말했다. "맞는 말이오. 자, 곡사형 한번 시작해보시오?" 그때였다. 갑자기 다른 한쪽에서 한 사람의 음성이 들려왔다. "모두 그만두시오. 그를 놔주시오." 그의 음성은 그다지 크다고는 말할 수가 없었으나 은연중 사람들을 굴 복시키는 힘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쪽을 보고는 저마다 어리둥절하고 어색한 듯한 표정을 지 었다. 특히 유검하는 안색이 약간 창백해지는 듯했다. 바로 풍검진(馮劍眞)이었다. 그는 비단 무공도 사형제들 중에서 가장 뛰어날 뿐만 아니라, 장문인 을 조부로 두고 있는 화산파의 막강한 실력자였기 때문에 누구도 감히 그에게 말대꾸하는 사람은 없었다. 화검상은 상황이 더욱 난처하게 흐르는 것 같아서 그제서야 입을 열어 말했다. "여러분이 나에게 무슨 오해가 있는 모양인데, 나는 그야말로 바보 천 치일 뿐이지 여러분이 경계해야 할 대상은 아니오. 그래서 소광(少狂) 이라고들 하지 않소? 나는 또한 삼 년 동안 사과애에만 있었는데 무슨 마공을 배울 시간이 있었겠소? 사실, 내가 전날 피사제에게 펼쳤던 그 괴이한 수법은 나도 지금 무슨 영문인지 모르고 있소. 아마도 어쩌다 보니 공교롭게도 그와 같은 일이 벌어졌던 것 같소. 만일 내가 그 이 유를 분명히 알아낸다면 나중에 여러분에게 해명해드리도록 하겠소." 그런데 막 이야기를 끝내고 났을 때 화검상의 목에는 한 자루의 장검 이 닿아 있었다. 풍검진이 어느새 그의 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풍검진의 보검은 햇살을 받아 시퍼런 광채를 뿌리고 있어서 금방이라 도 화검상의 목을 베어버릴 듯했다. 풍검진은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 "누가 네 녀석이 정당해 보여서 풀어주려는 것인 줄 아느냐? 장문인께 서 그와 같은 지시를 내렸기 때문에 이러는 것이다. 지금은 무사하다 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네 녀석은 결코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오래가지 못한다고? 머지않아 마각이 드러날 것이라는 말인가, 아니 면...?' 풍검진은 이어 장검을 거두더니 주위의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자, 여러분! 이 녀석은 윗분들이 적절한 조취를 내리실 것이오. 그러 니 우리는 식사나 하러 갑시다!" 그의 지시를 어기는 사람은 없었다. 풍검진의 말을 듣자 모두들 화검상을 향해 음험하게 웃고는 식사를 하 는 곳으로 몰려가기 시작했다. 풍검진도 재차 화검상을 험악하게 노려보고는 그들의 뒤를 따르기 시 작했다. 이제 그토록 험악하게 으르렁거리던 사람들도 사라져가고 위기는 무사 히 넘겼다. 하나 화검상은 흡사 어떤 치명적인 내상(內傷)이라도 입은 듯이 마음 이 무겁고 고통스러웠다. 만일 삼 년 전과 같았으면 어디 가서 술이나 마시며 한번 대성통곡이 라도 해댔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그가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은 약속 아닌 약속, 무명노인과의 일종의 묵계와도 같은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그 무명노인은 정말 평범해 보여도 대단한 노인이 아닌 가? 화검상도 막 걸음을 옮기려고 하는데 문득 뒤에서 누군가가 다시 그를 불렀다. "얘기 좀 해요." 유검하였다. 그녀는 가지 않고 홀로 남아서 화검상을 주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화검상이 몸을 돌리자 그녀는 즉시 말을 이었다. "당신이 달라져서 돌아왔다는 얘기는 저도 들었어요. 과연 오늘, 당신 은 그래도 매우 침착하더군요. 그러나... 그렇다고 상황이 달라지지는 않아요. 나는 머지않아 풍사형과 혼인하게 돼요. 그러니 당신의 일은 이제 나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어요." 화검상은 웃었다. "정식으로 파혼을 하는 것이오?" 유검하는 나이도 화검상보다 두 살이나 많은 데다가 또한 사자(師姉) 이고 무공도 말할 것 없이 월등했다. 그런데도 아직도 그녀는 화검상에게 일종의 존칭을 쓰고 있었다. 그것은 물론 화검상이 어려서부터 그녀의 정혼자였기 때문이었다. 유검하는 다소 머뭇거리는 듯하다가 안색을 바로 하며 말했다. "사실 우리는 굳이 정혼을 한 처지라고 말할 수가 없어요. 당신의 가 문이 그렇게 된 이상에는 그 정혼은 당연히 무효가 되기 때문이죠." ━━━━━━━━━━━━━━━━━━━━━━━━━━━━━━━ TO BE CONTINUE.... <<무림 YAG 야그>> ━━━━━━━━━━━━━━━━━━━━━━━━━━━━━━━ 있 야그 출력일 :: 98/10/16 ───────────────────────────────────── 제 목 : [화산문하] 1 부 1 권 제 6 장 채석장의 전노인(餞老人) 제 6 장 채석장의 전노인(餞老人) 화검상은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무슨 할말이 더 있겠소?" 유검하는 다소 주저하는 듯하다가 말을 이었다. "만일 화, 화사제가 내게 부탁할 말이 있다면 말해도 좋아. 나도 가능 한 일이라면 한 가지쯤은 들어주겠어." '그렇지. 그렇게 말해야 정상이지.' 유검하는 두 사람 사이를 분명하게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갑자기 말투 를 바꾸었다. 그것이 너무도 간단하게 이루어져서 다소 어이없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화검상은 내색하지 않고 대꾸했다. "부탁이 한 가지 정도 있기는 하오. 그건 바로 나를 감싸고 돌지말라 는 거요. 만일 그런다면 사자의 부친이 나를 잡아먹으려고 할 테니까." 유검하는 약간 안색이 붉어졌다. "화사제, 나도 그대에게 가능하면 잘 대해주고 싶었어. 그러나 이건 불 가항력이야. 나는 화사제가 그러한 나의 고충을 이해해줬으면 해." 화검상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이해하오." 이어 그는 곧장 신형을 돌려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유검하는 그래도 다정다감한 면모가 있는 여자다. 화검상은 그녀가 스스로 떠나지 못할까봐 먼저 자리를 비켜주는 것이 었다. 한참 걸어도 뒤에 기척이 없는 것을 보니 그녀는 따라오지 않는 모양 이다. 문득 고개를 돌려보니 과연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한낮의 태양은 뜨겁고 날씨는 점점 더 더워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엔 왠지 때아닌 찬바람이 불고 있는 것 같았다. 이런 때에 굳이 밥을 먹으러 가고 싶지는 않았다. 화검상은 잠이나 자두기 위해 자신의 처소로 향했다. 아직 한가한 시간이므로 주위에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아무도 그를 아는 척하지 않았고 인사도 받지 않았다. 화검상은 아예 나중에는 인사하는 것도 그만두고 그저 묵묵히 모르는 척 걷기로 했다. 처소가 있는 건물 앞에 이르자 마침 건물 안의 사람들이 더러 나와서 뭔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까도 본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 가운데는 나검송(羅劍松)도 있었는데 화검상을 보자 이내 슬그머니 자리를 피해 사라지고 말았다. 후검암 등은 이야기를 중지하고 일제히 다가오는 화검상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화검상이 묵묵히 그들에게 다가서는데 문득 갑자기 그의 어깨를 툭 치 는 손길이 있었다. "이봐, 화사제! 그 동안 많이 남자다워졌군!" 고개를 돌려 보니 느닷없이 칠척거구의 우람한 사내가 호방한 태도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홍검백(洪劍白)이다. 나이는 서른다섯인데 무학은 삼 갑자의 절정경지에 올라 있고, 무엇보 다도 영웅적(英雄的)인 기개가 있어 보이는 것이 그의 특징이었다. 그도 외부에서 들어온 사람으로 같은 건물에 거처하고 있는데, 서열은 바로 후검암의 다음이었다. 과거 화검상은 너무 자신의 번뇌 속에만 묻혀 살다가 미처 그를 사귈 기회를 갖지 못했다. "홍사형, 그간 안녕하셨소?" 홍검백은 약간 어색한 듯이 웃으며 자신의 뒤쪽을 가리켰다. "나야 뭐 그렇네. 그 동안 내가 제자를 하나 받았지. 자, 서로 인사나 나누도록 하게." 홍검백의 뒤쪽을 바라보니 거기에도 또 한 명 거구의 사람이 서 있었 다. 키는 육 척 정도인데 체구가 아주 우람하고, 무엇보다도 그 사람의 나 이가 이제 겨우 십여 세에 불과하다는 점이 놀라웠다. 짙은 눈썹에 강렬한 눈빛을 가지고 있었는데 화검상을 보자 약간 예를 갖추어 인사하는 듯했다. "장석중(張石重)입니다. 화사숙이시죠?" 가검통은 단석광 이외에도 다른 한 명이 더 들어와 있다고 했는데 바 로 이 녀석인 모양이었다. '근골도 훌륭하고, 그만하면 제법 쓸 만은 하겠군.' 화검상은 나름대로 처음 보는 인물에 대한 평가를 내리면서 입을 열었 다. "가사제가 칭찬이 대단하던 아이가 바로 너였구나. 정말로 튼튼하게 생겼구나." 장석중이란 녀석은 그 말에 뭐가 못마땅한지 그 검고 짙은 눈썹을 한 번 꿈틀했다. 혼검백이 나서서 다시 말했다. "이 아이는 비단 몸도 건강할 뿐만 아니라 머리도 대단히 좋아서 한번 들으면 잘 잊어먹지도 않는다네. 자네도 한번 기회가 있으면 그를 가 르쳐 보게." 화검상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에 대해서 잘 아시면서 그런 소리를 하시는군요. 보아하니 벌써 무 공이 저보다도 나은 것 같은데 제가 무엇을 가르치겠습니까? 나를 우 습게 알지 않으면 그걸로 다행한 일이지요." 홍검백은 그 말에 입을 다물고 입가에 은근한 미소를 떠올렸다. 장석중의 얼굴에도 돌연 득의한 미소가 떠오르는 것 같았다. 문득 한 꼬마 녀석이 다가오며 말했다. "당신은 조금 전에 귀사숙과 비무(比武)를 했다면서요? 대체 어땠죠? 서로 비겼나요, 아니면 귀사숙이 많이 사정을 봐줬나요?" 바로 단석광이었다. 화검상은 눈빛이 영악스럽게 빛나는 이 꼬마 녀석을 볼 때마다 그만 사람이 싫어지는 것 같았다. 모든 사람들이 주시하고 있으므로 화검상은 대꾸하지 않을 수가 없었 다. "그야 물론 그 귀사형이 사정을 봐준 것이지. 실로 나와 같은 사람은 열 명이 있어도 그를 당해낼 수가 없기 때문에 나는 간신히 빌어서 무 사히 빠져나올 수가 있었지." 단석광은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요? 그럴 리가? 당신은 그 유사고(劉師姑)가 나서는 바람에 겨우 목숨을 건졌다면서요? 그렇지 않나요?" '이 녀석아, 나는 그래도 너의 사숙인데 당신이라니? 정말 어이가 없 는 녀석이로군!' 화검상은 가볍게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사실은 그렇기도 하다. 모두 내가 못난 탓이지." 문득 단석광은 뒤에 감추고 있던 단검(短劍)으로 화검상을 찌르며 소 리쳤다. "그럼 어디 내 공격도 받아봐요!" 화검상은 놀랐다. 비단 이 꼬마 녀석이 느닷없는 공격을 가해오는 사실에 놀랐을 뿐만 아니라, 더욱 놀라운 것은 그 단검이 바로 매우 눈에 익은 것이라는 점이었다. 화검상은 미처 준비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하마터면 단석광의 단검에 옆구리를 베일 뻔했다. 비단 화산파의 검법뿐만 아니라 중원의 검법은 그냥 찌르는 것만이 전 부는 아니다. 직선적(直線的)인 것보다는 간접적인 것이다. 그것은 말하자면 공격과 수비의 비중을 분배하여 다음에 이어지는 공 격에 대비하는 것이다. 그래서 초식(招式)이라는 일종의 정해진 틀이 생겨나게 된 것인데, 물 론 강호의 어떤 자들은 수비가 없는 무모한 공격일변도의 검법을 펼치 기도 한다. 흔히들 구상검법(俱傷劍法)이라고 불리는 것이 바로 그런 것이다. 단석광도 물론 화산검법을 배웠으니 약간의 정통적(正統的)인 검법의 묘용(妙用)은 알고 있었다. 아직 변환(變幻)은 일으키지 못했으나 화검상이 대응하려고 하는 순간 그는 이미 다섯 번이나 단검을 찌르고 베고 휘두르고 있었다. 게다가 그 단검은 다른 보통의 병기와는 달리 매우 예리하여 검기(劍 氣)를 일으키고 있었다. 화검상은 분명 무공이 단석광보다는 우위에 있었지만 워낙 기습을 당 한 데다가 병기를 들고 있지 않아서 상대하기가 곤란했다. 그도 물론 장검을 착용하고 있지만 실상 그것은 멋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다. 그 녹슨 고철장검이 저 예리한 단검과 부딪치면 그대로 잘려 나가고 그는 웃음거리만 되지 않겠는가? 화검상이 그렇게 딴생각을 굴리고 있는 사이에 단석광은 더욱 미친 듯 이 날뛰었다. 그는 이번에는 초식을 마구 변형시켜 공격 위주로만 검법을 펼치고 있 었다. 단석광의 단검이 푸른 검광을 발하며 화검상을 가두고 금방이라도 화 검상의 몸을 도륙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화검상은 그 미친 듯한 검광의 속에서도 흡사 흔들리는 그림자 처럼 무사히 그 공격을 피해내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위험해 보였지만, 화검상은 점차로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단석광의 그런 미친 듯한 공격은 오히려 자신의 허점만 노출시키는 작 용을 하는 것이다. 그때 갑자기 한 사람이 그 푸른 검광의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는 바로 단석광의 사부격인 후검암이었다. 후검암의 공력은 이미 삼 갑자에 이르러 있었기 때문에 이런 일을 하 는 것은 조금도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의 신형이 안으로 뛰어든다고 느껴진 순간, 그는 이미 단석광의 오 른손을 잡고 왼손으로는 따귀를 후려치고 있었다. "이게 무슨 짓이냐? 정도가 지나치면 무례가 된다는 것을 모르느냐?" 그 따귀는 그저 소리만 요란할 뿐 거의 충격을 주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단석광은 몹시 억울하고 괴로운 듯 눈물부터 글썽거리며 소리 쳤다. "저자가 너무 나를 깔보잖아요! 그는 심지어 나와 대련하면서 검을 뽑 지도 않았어요!" "그렇다고 해도 그를 그렇게 불러서는 안 된다. 어쨌든 그는 너의 사 숙이니까." 이어 후검암은 웃으며 화검상에게 말했다. "화사제, 자네가 이해하게. 이 아이는 한창 자라고 있는 시기여서 호기 심이 약간 있는 편이지." 단석광도 그제서야 방긋 웃으며 화검상에게 꾸벅 인사하며 말했다. "내가 약간 미안한 점이 있었다면 이해하세요, 화사숙." 화검상은 안색이 다소 딱딱해져 있었다. 그는 단석광의 오른손에 들려 있는 단검을 주시하며 말했다. "그 단검은 어디서 난 것이냐?" 단석광은 약간 어리둥절해 하다가 대꾸했다. "이건 바로 가사숙에게서 빌린 거예요. 당신은 이것을 내게서 빼앗을 생각인가요?" 그때 한 사람이 어정쩡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그는 바로 가검통이었다. 가검통은 안색이 벌게진 채 약간 떨리는 어조로 변명하듯 화검상에게 말했다. 제 목 : [화산문하] 1 부 1 권 제 6 장 - 1 "화사형, 실은 그게 내가 잃어버린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어요. 그래서 화사형께 금방 돌려주려고 생각하고 있었는 데 단사질이 잠시 빌려달라고 하는 바람에..." 가검통은 나이도 삼십대 중반이면서도 그렇게 어쩔 줄 몰라 하는 광경 이 몹시 우스꽝스럽게 여겨졌다. 화검상은 사실 그런 것을 짐작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가능한 좋게 생각하려는 무의식적인 작용 때문에 오히려 지금 과 같은 상황에서는 감정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러면 나에게 진작 말을 했어야 할 것이 아닌가?" "내가 정말이지, 정말이지 이걸 사형에게서 훔칠 생각은 없었어요." 이어 가검통은 다소 어리둥절해 하는 단석광의 손에서 얼른 단검을 빼 앗아서 화검상에게 검집과 함께 건네주었다. "제발 그것은 믿어주세요." '차라리 이런 때에는 시인을 하고 배짱 좋게 나가는 것이 낫지 않은 가?' 화검상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으며 그것들을 받아들었다. 그리고는 다소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화 검상은 묵묵히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화검상이 자신의 방안으로 들어가서 침상 위에 누우려고 하는데 가검 통이 거기까지 따라들어와서 빌었다. "사형, 솔직히 제가 그 단검에 욕심이 났던 것은 사실이에요. 그러나 맹세코 다른 것을 빼돌린 적은 없어요. 그러니 나를 한번만 용서해줘 요." 화검상은 그저 담담한 미소를 보이며 대꾸했다. "내가 뭐라고 그랬는가?" 가검통은 일순 두 눈에서 차가운 섬광을 번뜩였다. 그는 지금 이 순간 차라리 화검상을 제거해버릴까 하고 생각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이내 눈빛을 애절하게 변모시키며 말을 이었다. "그, 그렇게 용서해주시니 저는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어요. 그럼 이렇 게 하면 어떨까요? 앞으로 한 달 간은 제가 화사형의 식사를 갖다 주 기로 하는 것이?" '내 음식에 독(毒)이라도 타겠다는 말인가?' 화검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럴 필요는 없네." 가검통은 빙긋 웃으며 화검상의 어깨를 툭 치고는 말했다. "그렇게 사양하실 것은 없어요. 다 제가 죄송스러워서 그러는 것인걸 요. 그럼 빨리 갔다 올게요." 말을 마치자 가검통은 이내 대답도 듣지 않고 방을 나가버렸다. 화검상은 다소 어이없어 하며 그가 나간 방문 쪽을 바라보다가 헛웃음 을 지었다. '다들 가검통을 바보라고 하지만 그는 바보는 아니다. 다만 좀 더 현 명하지 못할 뿐이지.' 방금 전에도 귀찮은 일을 겪었기 때문인지 누워서 잠을 청하려고 해도 쉽사리 잠은 오지 않았다. 그는 잠시 가검통에게서 돌려받은 단검을 집어들고 바라보다가, 이내 웃옷을 벗고 어깨의 상처를 살피기 시작했다. 상처는 통증이 많이 사라졌고 어느새 아물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일반적으로 무공을 연마하는 사람들은 체력이 좋아서 상처도 쉽게 아 물 뿐만 아니라, 이곳 화산파의 금창약은 또한 효능이 좋기로 유명한 것이다. 비록 그 유명한 옥령산(玉靈散)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이 약의 효능 역 시 좋았다. 그것은 화산파가 검파(劍派)이고 제자들이 대련 도중에 상처가 많이 생길 것을 대비해서 금창약도 꾸준히 개발되어왔기 때문이다. 화검상이 상처에 약을 다시 갈아 붙이고 옷을 입고 나서 운공조식을 하고 있는데, 문이 열리며 정말로 가검통이 음식그릇이 놓여있는 쟁반 을 들고 들어왔다. 그가 이렇게 빨리 식사를 가져오다니 아마 자신이 식사하는 것보다도 이 일이 더욱 중요한 모양이다. 가검통은 그의 침상 위에 쟁반을 올려놓으며 웃으며 말했다. "제가 화사형을 생각해서 먼저 이 음식들을 가져왔지요. 어서 식사하 세요." 정말로 빨리 가져오려고 노력한 듯 그의 이마에는 작은 땀방울까지 맺 혀 있었다. "이렇게 하지 않아도 되는데." 화검상은 쟁반 앞에 앉으며 손짓을 하며 말을 이었다. "자네는 이만 가보게." 가검통은 다소 어리둥절해 하며 말했다. "아니에요. 저는 급하지 않으니 우선 사형이 식사를 마치면 그릇들을 가지고 가서 식사하겠어요." 화검상은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누가 옆에서 그렇게 보고 있으면 음식이 잘 넘어가지 않는다네. 아까도 사실은 억지로 먹은 것이지. 자네는 보람도 없이 내가 음식을 못 먹게 만들 셈인가?" 거검통은 다소 주저하다가 웃으며 말했다. "아, 그렇군요. 그럼 저도 이만 가서 식사를 하겠습니다. 사형은 많이 드십시오." 이어 가검통은 어색한 듯한 미소를 남기면서 방문을 열고 밖으로 사라 졌다. 가검통이 완전히 밖으로 사라진 것을 확인한 화검상은 이내 단검을 검 집에서 뽑아 몇 차례 닦은 다음 검날을 음식들에 대어보았다. 밥이나 반찬에서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그가 국물에 검날을 넣었을 때, 갑자기 검날이 검은빛으로 물 드는 것이었다. 화검상은 그것을 보자 일순 놀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가사제는 한동안 이 단검을 가지고 다녔을 텐데도 미처 이것에 독을 발견하는 효능이 있는 줄은 모르고 있는 모양이지...?' 그렇다. 실로 이는 그가 우려하던 일이 사실로 드러나고 만 것이었다. 그 단검에는 기이하게도 예리하다는 점 이외에도 독을 식별하는 특이 한 기능이 있었다. 마치 은수저를 독에 대면 검게 변하듯이 푸릇한 검날은 독을 만나면 검은빛으로 물들게 되는 것이다. '어째서 세상의 일은 반드시 좋은 방향은 맞지 않고 어림없이 나쁜 쪽 으로만 예상이 들어맞는 것일까?' 화검상은 어린 시절에 조부 등의 권유에 의해 온갖 잡학들과 암기(暗 器), 독(毒) 등에 관해서도 배웠다. 비록 그 역시 깊은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그래도 전혀 모르는 사 람들보다는 훨씬 나은 편이었다. 세상의 독은 크게 다음의 두 가지로도 나눌 수가 있다. 하나는 중독(中毒)되면 금방 발작하는 종류이고 다른 하나는 중독되어 도 그 발작이 서서히 진행되는 종류이다. 으레 생각하기로 중독되어 금방 발작하는 독이 더욱 무서운 것 같지 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그 만성독약은 비록 발작하는 시기는 늦지만 서서히 계속적으로 침투 하고 맛이나 냄새가 없으며 나중에 발작했을 때는 그저 보통의 해독약 (解毒藥)으로는 도저히 해독시킬 수가 없다는 점이 무섭다. 그런 은밀한 작용이 있기 때문에 강호에서는 흔히들 만성독약을 사용 하게 되는 것이다. 화검상은 비록 그 독의 종류를 알아낼 수는 없었지만 대체적인 상황이 나 형태로 보아 그것이 부음(腐陰)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부음지독은 이렇게 물에 타서 상용하는 것이 간편할 뿐만 아니라 그다 지 귀한 물건도 아니어서 가검통이 마음만 먹으면 구할 수 있을 것이 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일단 독이 들어 있는 것을 알았으니 그것을 먹을 수는 없는 노 릇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일부러 이쪽에서 간파한 것을 드러낼 필요도 없다. 화검상은 일단 독이 묻은 단검을 잘 닦아서 검집에 넣은 다음에, 바닥 의 돌 하나를 들어내고 국물을 그곳에 쏟아버린 다음 감쪽같이 바닥을 복구시켜놓았다. 기분 나쁜 노릇이지만 그래도 그는 밥과 반찬으로 식사를 했다. 어쨌든 앞으로 얼마간은 그가 많은 사람들과 함께 식사하지 않아도 되 었으니 잘된 일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식사를 하고 나자 비로소 졸음이 쏟아졌다. 화검상은 그대로 곯아떨어져서 한참을 잤다. 얼마나 잤는지 알 수가 없는데, 문득 가검통이 그를 흔들어 깨우는 소 리가 들려왔다. "화사형, 녹사백이 오셨어요. 녹사백이 오셨다니까요!" 화검상이 급히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키니 시각은 어느덧 저녁무렵 이었다. 가검통이 그를 보고 서서 다소 기이하게 웃고 있었고, 열려진 문밖에 는 녹귀보가 예의 그 냉막한 안색으로 서서 그를 주시하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화검상이 황급히 일어나 예의를 갖추니 녹귀보는 싸늘한 음성으로 말 했다. "간단한 짐만 챙겨가지고 어서 나와라!" 화검상은 순간, 낮에 장문인에게 했던 말이 생각나서 녹귀보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차렸다. 그가 챙겨야 할 물건들이라는 것은 별로 없었다. 즉시 사물함에 있는 물건들을 모두 챙겨가지고 나가자 녹귀보는 이전 처럼 역시 차갑게 앞으로 나가며 말했다. "따라와라!" 화산의 동쪽에는 조양봉이 있지만 남쪽에는 낙안봉(落雁峰)이 있다. 그 낙안봉은 비단 그 높이가 조양봉에 못지않을 뿐만 아니라 깎아지를 듯한 기암절벽들로 이루어져 있어서 험준하기로는 오히려 조양봉보다 더하다. 산굽이를 몇 번 돌아 그 낙안봉의 기슭에 이르면 그곳에 공사가 벌어 지고 있는데, 바로 건물들을 축조하기 위한 재료인 암석들을 쪼개고 다듬고 있었다. 이곳이 바로 채석장이다. 해가 저물고 있어서 아직도 공사를 하고 있는 인부들은 얼마 되지 않 으나 그 주위에는 흩어진 돌가루들의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인부들은 대부분 외지에서 들어온 사람들로 그 숫자가 삼십여 명이며, 그 중 절반 이상은 해가 지기 전에 산을 내려가버리고 임시숙소에서 기거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십여 명이라고 했다. 화산파의 이름 높은 일대제자인 녹귀보가 나타나도 그들은 거의 아는 척도 하지 않고 그저 하던 일이나 계속할 뿐이었다. 인부들이 거주하는 임시숙소는 채석장의 오른쪽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말이 임시숙소지 그것은 돌로 만들어져 있고 또한 연대도 매우 오래된 것이었다. 나날이 발전하는 화산파는 오래된 건물들을 끊임없이 보수하고 새로운 건물들을 축조하느라 근래에는 계속 그것을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임시숙소는 건물이 그다지 크지도 않고 내부의 구조도 초라하기 그지 없다. 그저 널찍한 방 하나에 십여 개의 나무침상들이 무질서하게 늘어져 있 고 한쪽에는 주방기구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을 뿐이었다. "전(餞)노인은 어디 있나?" 녹귀보는 안으로 들어서자 전(餞)노인부터 찾았다. 전노인은 오래 전부터 이곳에서 일을 해온 기술자로 지금은 공사감독 의 일을 맡고 있었다. 인부들에 의해 소식이 전해졌는지 전노인은 금방 나타났다. 화검상도 이 전노인을 이전에 두어 번 본 적이 있는 것 같았다. ━━━━━━━━━━━━━━━━━━━━━━━━━━━━━━━ TO BE CONTINUE.... <<무림 YAG 야그>> ━━━━━━━━━━━━━━━━━━━━━━━━━━━━━━━ 笭쳬 야그 출력일 :: 98/10/16 ───────────────────────────────────── 제 목 : [화산문하] 1 부 1 권 제 6 장 - 2 키도 그다지 크지 않고 체구는 다소 마른 편이었는데 약간 구부정한 듯한 그의 전신은 오랫동안 험한 일을 해온 사람답게 단단했고 힘줄이 불거져나와 있었다. 이곳에서 거주하고 있는 십여 명의 사람들은 대부분이 가족들이 없는 사람들, 이를테면 인생에서 실패한 외로운 사람들이라고 했으나, 화검 상은 이 전노인에 대해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가 없었다. 다소 험하고 거칠어 보이기는 했으나 그래도 젊었을 때는 꽤 잘생겼을 듯한 윤곽이고 게다가 인상은 인간미가 느껴져서 그리 나쁘지도 않았 다. "무슨 일이우?" 제법 카랑카랑한 음색을 보니 그는 앞으로도 십 년은 더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녹귀보는 다소 못마땅한 듯이 전노인을 바라보다가 손짓으로 화검상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는 앞으로 이곳에서 먹고 자고 일을 할 것이니 전노인이 우선 그의 자리를 정해주게." 전노인은 그제서야 시선을 화검상에게 옮기는 듯했다. 화검상은 이에 즉시 웃으며 아는 척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전노인은 이내 다시 냉랭한 표정으로 녹귀보에게 시선을 돌리 더니 말하는 것이었다. "자리를 정하는 것은 좋지만 일단 한 사람이 더 들어오면 그쪽에서 비 용을 좀더 생각해주셔야 할 것이우." 녹귀보는 눈살을 짙게 찌푸렸다. "그저 녀석의 자리 하나 만들어주고 밥 먹는데 수저 하나 더 놓으면 되지 무슨 비용을 더 달라는 말인가? 아무튼 내 그 문제는 돌아가서 상의해보도록 하겠네." 이어 녹귀보는 한차례 다시 실내를 둘러본 후에 그대로 훌쩍 돌아가버 리고 말았다. 화검상이 녹귀보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는데, 문득 그의 등을 툭 치 는 손길이 있었다. 전노인은 차가운 표정으로 그를 보며 말했다. "이쪽으로 와보시오. 혹시 이전에 쓰던 침상이 아직 쓸 만한지 모르 니." 전노인은 그를 안쪽으로 데리고 갔다. 그 안쪽에는 알고 보니 창고로 쓰이는 작은 방이 하나 더 있었는데, 그 문을 열자 온갖 잡동사니들이 가득 차 있는 것이 한눈에 들어왔다. 대부분이 작업에 필요한 공구들이고 헌옷가지나 망가진 침상들도 있었 다. 전노인은 곧장 그 안에 들어가 가장 괜찮은 침상 하나를 골라내어 부 서진 부분에 못을 박고 수선하기 시작했다. 화검상은 어려서 부유하게 자라나 아직 그와 같은 일을 별로 해본 적 이 없었다. 가문이 몰락하고 나서 심하게 방황하며 굴러나니기는 했어도 그런 일 을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전노인이 익숙한 솜씨로 침상을 고치는 것을 바라보면서 입을 열 었다. "이미 저에 대해서는 알고 계시지요? 저는 화검상이라고 합니다. 남들 은 소광(少狂)이라고 하기도 하지요." 전노인은 망치질을 멈추지 않고 시선도 그대로 둔 채 심드렁하게 대꾸 했다. "내가 이곳에서 살아온 지 벌써 수십 년이나 되는데 왜 그걸 모르겠 소?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했는데, 우리라고 그저 두 눈 과 귀를 막고 사는 줄 아시오?" 화검상은 그가 이미 자신을 알고 있다고 하자 오히려 반가운 느낌이 들었다. "노인장께서 이곳에서 가장 오래 일해온 사람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리 고 솜씨가 뛰어나다는 얘기도 많이 듣고요." 전노인은 고개를 들어 화검상의 얼굴을 힐끗 바라보고는 다시 자신의 일을 계속하며 말했다. "솔직히 내가 자랑은 아니지만 그쪽의 건물들 중에서 내 손길이 가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지요. 아, 그건 그렇고 앞으로는 그냥 전노인이라 고 불러주시오. 남들이 들으면 오해를 할지도 모르니." 화검상은 웃으며 말했다. "남들이 무슨 오해를 하겠습니까? 저는 앞으로 노인장 밑에서 일을 배 울 것이니 계속 노인장이라고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이곳에서 오래 계실 작정이우?" 화검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원래는 그렇게 하려고 했지만 앞으로 보름 후에는 출정을 떠난다고 하니 일단은 그때까지밖에 기약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또 만일 이번 의 출정에서 내가 다시 살아 돌아온다면 아마도 그때는 또 오게 될지 도 모르겠습니다." 화검상은 스스로도 자신의 입 밖으로 무의식중에 튀어나온 말을 생각 해보고는 놀랐다. 그는 사실 이번의 출정(出征)에 대해서 그리 깊이 생각해보지도 않았 었다. 그런데 그런 말이 무의식중에 나왔다는 것은, 그럼 그의 육감(六感)은 이번의 출정이 그에게 몹시 위험하다는 것을 감지하고 있다는 말인가? 문득 그의 뇌리에는 장문인 풍천비의 그 섬뜩했던 눈빛이 생생하게 떠 올랐다. "보름이라, 그럼 이만하면 그때까지는 무난하게 사용할 수가 있겠군." 전노인은 솜씨가 좋아서 어느새 침상을 거의 원래대로 복구시켜 놓았 다. 화검상은 그가 침상을 옮기려는 것을 보고 얼른 다가가 마주들고 옮기 기 시작했다. 전노인은 문득 다시 입을 열었다. "화씨가문의 일에 대해서는 나도 알고 있소. 소광생(少狂生)은 미쳤다 고들 하더니 원래는 미친 것이 아니었군?" 화검상은 그의 입가에 웃음이 떠오르는 것을 보고 자신도 마주 미소를 머금었다. "저는 앞으로 노인장께 폐를 끼치는 일은 절대 하지 않겠습니다." 전노인은 화검상의 자리를 좌측 안쪽에 마련해주었다. 전노인의 자리는 그 반대편이었다. 벌써 해가 저물어 이 작은 건물의 내부에도 촛불과 등불을 밝혔다. 한쪽에서는 구수하게 밥 짓는 냄새가 코를 찌르고 있었고 사람들은 제 각기 할 일을 했다. 화검상은 그들에게 인사를 하려고 했으나 전노인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하며 그냥 지내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인부들도 역시 그를 간혹 주시할 뿐 별로 상관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그들은 대개 험악하게 생기고 성질이 좋지 않기는 하나 그래도 이곳에 서는 서로간의 일은 침범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곧이어 밥이 다되었다. 이곳의 반찬은 간이 잘 맞지도 않고 형편없는 것이었으나 그래도 화검 상은 사형제들과 식사할 때보다 훨씬 더 맛있는 것 같았다. 화검상의 옆 자리에는 얼굴에 칼자국이 나 있는 사내가 앉아 있었는 데, 문득 식사 도중 거친 음성으로 말을 걸어왔다. "이보쇼! 당신은 화산파의 제자라고 하던데. 그래, 무공은 얼마나 배웠 수?" 화검상은 그러잖아도 인사를 하지 않아 미안하던 차에 웃으며 대꾸했 다. "나는 그저 겉핥기로만 배웠을 뿐, 무공을 배웠다고 할 정도는 못 됩 니다." 칼자국이 있는 사내는 안면을 묘하게 실룩거렸다. "그럼 당신은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곳에 왔소?" 화검상은 일시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다소 망설였다. 그것을 보고 전노인이 입을 열어 말했다. "밥을 먹는 데 무슨 말이 그리 많나? 밥 먹을 땐 그저 밥이나 먹으라 고! 공연히 이것저것 따지고 묻는다면 그나마 이런 일자리도 잃어버리 게 된다는 걸 잊었나? 밥이나 먹으라구!" "이런 빌어먹을!" 칼자국의 사내는 그대로 아직 밥이 남아 있는 밥그릇을 부엌 쪽으로 던져버리고 나가버렸다. 전노인은 웃으며 화검상에게 말을 이었다. "이런 곳에서 있으려면 이런 일들은 감수해야 하오. 그리고 다들 손버 릇이 별로 좋지 않으니 자신의 물건은 자신이 잘 보관하도록 하고." 이곳에 있는 사람들 중에 노인은 오직 전노인뿐이다. 나머지는 나이가 대개 삼사십대인데 화검상처럼 젊은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방금 전에 자리를 박차고 나간 칼자국의 사내 외에도 얼핏 보니 용모 가 특별한 사람이 네 사람이나 더 있었는데, 하나는 얼굴이 곰보이고, 또 하나는 얼굴이 솥밑처럼 검었으며, 또 하나는 코가 주독이 오른 듯 불그레했고, 마지막으로 하나는 왼쪽 턱밑에 제법 커다란 혹이 하나 달려 있었다. 그 외에는 온갖 험한 세상을 살아오느라 얼굴이 다들 험상궂고 눈빛이 음험했으나 대체로 평범한 얼굴들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자 전노인은 화검상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이미 어두워진 작업장 쪽으로 데려가는 것으로 보아 화검상에게 내일 부터 해야 할 일을 가르쳐줄 모양이었다. "보아하니 내일은 비가 오겠군. 비가 오면 우리는 일을 못하오. 그대도 아마 내일은 쉬게 되겠군." 밤하늘에는 어느새 구름이 가득하고 별빛도 별로 보이지 않았다. ━━━━━━━━━━━━━━━━━━━━━━━━━━━━━━━ TO BE CONTINUE.... <<무림 YAG 야그>> ━━━━━━━━━━━━━━━━━━━━━━━━━━━━━━━ 옳構 야그 출력일 :: 98/10/16 ───────────────────────────────────── 제 목 : [화산문하] 1 부 1 권 제 7 장 곡선적(曲線的)인 무공(武功) 제 7 장 곡선적(曲線的)인 무공(武功) 노인이 밤하늘을 보고 내일의 날씨를 점치는 것은 아마도 오랜 경험이 쌓여서 그런 것일 것이다. 화검상은 만일 내일 비가 와서 일을 못하게 될 경우를 생각해보았다. 이런 곳에서 그저 답답하고 무료하게 하루를 보낸다는 것은 정말 견디 기 어려운 일이다. 화검상은 문득 자신의 할 일을 생각해냈다. 그건 무공을 닦는 일이다. 그는 미처 자신의 괴무공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보지 못하지 않았는가? 노인은 작업장에 이르러서 다시 입을 열었다. “여기서 그대가 할 일은 별로 어려운 것은 아니오. 무공을 어느 정도 닦았을 테니, 그저 돌을 운반하는 일을 거들어주면 될 것이오. 만일 이 기술을 배우고 싶다면 문제가 달라질 테지만 말이오.” 화검상은 웃으며 말했다. “저는 그저 시키는 대로만 하겠습니다.” 전노인은 화검상을 주시하며 말을 이었다. “보아하니 수중에 금은이나 제법 가지고 있겠군. 아까도 말했지만 그 런 것들이 있다면 일찌감치 잘 숨겨두도록 하시오. 여기에 있는 녀석 들은 솔직히 나도 다루기 힘든 녀석들이라오.” 화검상은 미소하며 말을 받았다. “이곳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살아오셨는데 힘들지도 않으십니까?” 전노인은 가볍게 웃었다. “힘이 들지만 어쩌겠소? 이것도 다 천직이라고 생각하고 사는 수밖 에. 단지 세상 인심이 갈수록 각박해지니 그게 걱정이지.” “전에는 이곳의 분위기가 좋았습니까?” 전노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런 곳의 분위기는 원래 이런 법이오. 사람이 험하게 살다 보면 성 질도 나빠지게 되는 게지. 다만 그렇지 않은 쪽에서는 좀더 잘해줄 수 도 있을 텐데, 그래서 내 하는 말이오.” 화검상은 말했다. “우리 화산파 사람들 말입니까?” “그럼 여기에 다른 사람들이 또 있겠소?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요새는 마음대로 돌아다니지도 못하고 비용도 적게 나와서 우리가 제 돈 내고 쌀을 사먹어야 할 입장이오.” 화검상은 가볍게 웃었다. “그럼 제가 나중에 장문인께 말씀을 드려보도록 하지요.” “정말 그럴 생각이오?” 전노인은 화검상을 주시하며 말을 이었다. “그러지 않는 게 좋을 거요. 사실 우리는 비용뿐만 아니라 전혀 인간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소. 여기서 말 한번 잘못했다가 죽어 나간 사람 도 몇몇은 되지. 하긴 나야 이미 인생을 살 만큼 살았으니 죽어도 미 련은 없겠지만 말이오.” 화검상은 웃으며 말했다. “그럼 옛날에는 좋았습니까?” 전노인은 주위를 한번 둘러보더니 목소리를 낮추어서 속삭이듯 말했 다. “물론 좋았지. 그 전대장문이었던 화산검신(華山劍神) 화천괴(華天魁) 는 정말 좋은 분이었소. 내가 이곳에서 뿌리를 내리게 된 것도 그 때 문이지. 그는 정말 사람들에게 잘 대해주었고, 그땐 사는 것 같았소. 허허, 이런 얘기는 절대 남에게 해서는 안 되오. 내, 그대가 그분의 손 자이기에 하는 말이오.” 말이 끝나자 전노인은 짐짓 큰 소리로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러니 그대도 만일 높은 임금을 받고 싶다면 열심히 일하시오. 아 니면 말고, 헛험! 그럼 나는 이만 들어가 자야겠소. 늙은이는 초저녁잠 이 많은 법이지. 그대도 천천히 들어오도록 하시오.” 화검상은 일시 정신이 아득해지고 무슨 소린지 알 수 없다는 기분이 되었다. 전노인은 정말로 저만큼 앞서서 숙소로 돌아가고 있었다. 화산검신(華山劍神) 화천괴(華天魁). 그의 조부인 그가 그렇게 사람을 잘 대해준 좋은 사람이었다는 말인 가? 그의 조부인 화천괴는 이미 천하에 다시없을 인면수심 대마두로 공인 되어 있는 사람이었다. 대체 그런 사람이 그렇게 인부들에게는 잘 대해주는 좋은 행동을 할 수가 있단 말인가? 그렇게 철저한 대악마가 누구에게라도 좋은 사람이었다는 말을 들을 수가 있다는 말인가? ‘하기는 완벽히 착한 사람이 없듯이 완벽히 악한 사람도 없다고 하는 말처럼, 할아버지는 유독 인부들에게만은 잘 대해주었을지도 모르 지!’ 어쩌면 화검상은 가문에 대한 악평 속에 너무나도 시달리다 보니 한번 쯤은 누구에게라도 그런 얘기를 들었으면 하고 내심 바라고 있었는지 도 모른다. 하지만 막상 그런 얘기를 듣고 나니 너무나도 이치에 맞지도 않고 어 이가 없어서 웃음만 나오는 것이었다. 화검상은 가볍게 웃으며 속으로 다시 중얼거렸다. ‘고작 채석장의 이름없는 노인의 근거없는 말 한마디를 듣고 이렇게 넋이 나가다니, 정말 아직도 수양이 너무 부족하구나. 조금 전의 나는 그야말로 멍청하고 어리숙한 애숭이로 보였을 것이 아닌가?’ 화검상은 그런 쓸데없는 감상을 떨치기라도 하듯이 고개를 저으며 깊 이 밤공기를 들이마셨다. 바로 그때 갑자기 어둠 속에서 한 사람이 나타나 그에게로 다가왔다. 가검통(賈劍通)이었다. “사형, 이곳에서의 생활은 지낼 만합니까?” 가검통은 다소 어색한 듯이 웃으며 열심히 화검상의 안색을 살피고 있 었다. 화검상은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자네가 지금 여기에 웬일인가?” 가검통은 두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그야 사형이 잘 지내나 한번 보러 온 거죠. 저는 사형이 이곳으로 왔다기에 걱정이 되어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어요.” ‘걱정이 되어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고? 너는 내가 중독이 되었는 지 궁금해서 잠이 오지 않았겠지.’ “나는 이곳에 온 지 이제 겨우 한 시진 정도 지났을 뿐인데 무슨 걱 정인가?” 가검통은 화검상의 얼굴을 은근히 주시하며 말했다. “그럼 사형은 지금 아무런 불편도 없다는 말입니까?” 화검상은 짐짓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꾸했다. “글쎄, 아까 먹은 음식이 체했는지 속이 좀 답답하기는 하지만 다른 불편한 점은 별로 없네.” 문득 가검통의 시선에 득의한 기광(奇光)이 스쳐지나가는 것을 화검상 은 놓치지 않았다. “그건 아마도 사형이 너무 급하게 식사를 했기 때문이겠죠.” 화검상은 미소하며 대꾸했다. “그런가?” 가검통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지금 제게 뭐 부탁하실 일이라도 있습니까?” ‘지금 내 부탁은 앞으로 자네를 보지 않았으면 하는 거네!’ 화검상은 웃으며 말했다. “별로 없네. 내 나중에 부탁할 일이 있으면 말하도록 하지.” “그럼 저는 이만 가서 잘게요. 사형은 내일 일을 해야 할 테니 어서 들어가서 주무세요.” 가검통은 그렇게 말하고 마악 발길을 돌리려다가 문득 무슨 생각이 들 었는지 눈빛을 기이하게 빛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참, 이곳 사람들과는 어울리지마세요. 이곳 사람들 중에는 사 마외도(邪魔外道)의 첩자가 있다는 말이 있으니.” “알겠네.” 가검통은 다시 한번 화검상에게 친근한 듯한 웃음을 보인 후에 발길을 옮겨 사라져버렸다. 화검상은 다소 마음이 착찹해져 버렸다. 실상 가검통과 같은 자를 만났다는 일 정도는 그에게 별로 대수로운 것이 아니라고 할 수가 있었다. 화산파의 내부에는 그런 사람들이 수두룩하니 말이다. 다만 지금 그의 마음을 무겁게 만든 것은 아까 들은 전노인의 말이었 다. 지금으로부터 십사 년 전, 그러니까 그가 열한 살이 되던 해의 일이었 다. 그는 부모와 함께 모처럼의 강호유람길에 올랐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당시 그의 모친은 유난히 그와 부친에게 잘 대해주고 기쁘게 해주었던 것 같았다. 그런데 갑자기 그 즐겁던 강호유람의 길은 도중에 취소되고 세 사람은 화산파로 돌아오게 되었다. 화산파로 돌아오니 어이없게도 그의 조부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있었고 조용하던 화산파가 흡사 아수라장(阿修羅場)으로 변해버 린 것 같았다. 조부는 육신이 흡사 걸레쪽처럼 변해 있었고 머리는 연무장(鍊武場)에 세워진 나무기둥에 효수되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모든 것이 변해버리고 말았다. 화검상이 그 전의 조부 등에 관해서 전혀 기억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조부는 그에게 매우 잘 대해주었고 화검상도 은근히 조부를 좋아 했었 다. 사건도 별로 없이 늘상 조용했기에 화검상은 외부의 일에는 거의 신경 을 쓰지 않고 자신이 해야 할 일들에 관해서만 생각을 했다. 그 당시, 조부의 평판이 어땠는지는 유감스럽게도 분명하게 기억되는 것이 거의 없다. 다만 당연히 남들도 조부를 좋아할 것이라고만 생각했을 것이다. 화검상은, 말하자면 걱정 근심도 없이 곱게 자라난 귀문(貴門)의 도련 님이나 다름이 없었다. 게다가 아홉 살 무렵부터 시작된 그의 무학상의 장애 때문에 그는 외 부의 일은 더욱 신경을 쓸 수가 없지 않았던가? 갑자기 그렇게 세상이 바뀌고 나서 화검상은 완전히 달라진 조부의 평 판에 대해서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뿐만 아니라 심지어 그의 모친까지도 그렇게 조부 를 평가하고 있고, 그의 선친은 당시부터 미친 듯한 괴행(怪行)을 일삼 기 시작했다. 나날이 달라져가는 선친의 모습을 보면서, 화검상은 주위사람들의 평 판에 점차로 무력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의 선친은 그로부터 삼 년 후에 그야말로 광인(狂人)의 모습으로 숨 을 거두었다. 화검상은 어째서 일찍이 그 평판에 대해서 정면으로 반박하지 못했던 것일까? 그것은 그 역시 그의 선친 못지않게 심한 혼란과 방황을 시작하게 되 었었고 그로 말미암아 그는 더욱 바보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소광(少狂)이란 별호는 그래서 붙여졌다. 그러던 도중 그는 더러 외부에 나가 다른 명문정파의 사람들을 만나보 기도 했었다. ━━━━━━━━━━━━━━━━━━━━━━━━━━━━━━━ TO BE CONTINUE.... <<무림 YAG 야그>> ━━━━━━━━━━━━━━━━━━━━━━━━━━━━━━━ 이곳 야그 출력일 :: 98/10/16 ───────────────────────────────────── 제 목 : [화산문하] 1 부 1 권 제 7 장 - 1 하지만 그들의 평판은 한결같이 그의 조부가 대마두라는 것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한 사람에 대한 평판이 한결같을 수가 있을까? 화검상은 마침내 그의 조부가 최소한 어떤 잘못이 있었고 그것이 모든 사람들의 공분을 샀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러나 화검상은 지금도 조부를 미워하거나 원망하지는 않는다. 최소한 조부는 그에게만은 정말 잘 대해주었고, 아마도 그런 따뜻한 기억들이 그로 하여금 이렇게 화산파에 대해 미련을 갖게 하는지도 모 르는 일이었다. 조금 전의 전노인의 그러한 말들은 억눌려 있었던 그의 그러한 감정들 을 뒤집어놓았다. 하지만 화검상은 혼란스러워진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며 하늘을 올려다 보고 문득 속으로 중얼거렸다. ‘할아버지, 나는 할아버지를 좋아하기는 했지만 존경하지는 않습니다. 당신께서 만일 그토록 훌륭한 사람이었다면 최소한 이런 꼴은 당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어두운 밤하늘의 구름은 더욱 짙어지는 것 같았다. 주위는 더욱 어둡고 스산해졌다. 정말로 전노인의 말대로 내일은 모처럼 비가 오기라도 할 모양이다. 화검상은 천천히 숙소를 향해 걸어갔다. 숙소에 있는 사람들은 아직 대부분이 잠을 자지 않고 있었다. 그들은 더러 과거의 일들이 생각나기도 하는 모양이다. 등불은 아직 빛을 발하고 있었고 몇 사람이 묵묵히 드러누워 있거나 술을 마시고 있었다. 전노인은 이미 깊은 잠에 빠진 듯 코고는 소리가 요란했다. 그들은 화검상이 들어섰는데도 그저 힐끗 음험한 시선으로 바라볼 뿐 여전히 말을 걸지 않았다. 그들은 또한 이쪽에서 말을 걸기도 어려운 사람들이다. 화검상은 장검은 자리에 그냥 두었지만 중요한 물건들은 모두 몸에 지 니고 있었다. 그는 자리에 누워 잠을 청하려고 했다. 그러나 낮에 너무도 달게 잔 탓인지 누워 잠을 청해도 눈빛만 더 맑아 질 뿐,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화검상은 이에 문득 어깨의 상처를 상기하고 몸을 일으켜 약을 갈아 붙이기 시작했다. 어깨의 상처는 이제 거의 통증을 느끼지 않을 만큼 좋아졌다. 이제는 굳이 약을 갈아 붙이지 않더라도 덧나는 일 없이 저절로 낫게 될 것이다. 화검상이 금창약을 상처에 고르게 바르고 있을 때, 문득 그 딸기코의 사내가 마시던 술병을 들고 그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이보슈, 당신이 정말로 무공을 배우기는 한 거유?” 딸기코의 사내는 이미 약간 취기가 오른 듯 음색이 꼬부라지고 있었 다. 화검상은 금창약을 챙기고 옷을 다시 걸치며 웃으며 대꾸했다. “저에 대해서 의심이 가십니까?” 딸기코의 사내는 충혈된 시선으로 화검상을 노려보는 듯하다가 다시 말했다. “나는 당신이 정말로 무공을 펼치는 것을 한번 봤으면 해서 그렇 소.” 화검상은 옷차림을 다 챙기고 다시 누우려고 침상에 몸을 기대며 말했 다. “아까도 말했지만 저의 무공은 보잘것없어서 보여드릴 것이 못됩니 다.” 딸기코의 사내는 한동안 화검상의 얼굴을 노려보더니 돌연 고개를 옆 으로 돌려 바닥에 누런 가래침을 탁 뱉으며 몸을 일으켰다. “우라질! 이거 칼 한번 잡아보지 못한 사람은 서러워 살겠나? 빌어먹 을, 아무거나 칼이라고 차고 다니면 다 무공을 배웠다고 거들먹거린다 니까?” 화검상은 다소 어이가 없었다. 그는 이들이 자신에게 다소의 적대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 지만 대체 지금 무슨 이유로 그러는 것인지 짐작하지 못했다. ‘이들이 혹시 내 장검을 조사해본 것이 아닐까?’ 화검상이 가만히 장검을 바라보며 생각을 굴리고 있는데, 문득 이번에 는 곰보사내가 천천히 다가와 그의 옆에 앉으며 말했다. “솔직히 우리가 조금 전에 댁의 장검을 보기는 봤소. 그런데 그 장검 에 혹시 어떤 신비로운 내력이라도 있는 것이 아니오?” ‘역시 그랬군!’ 이들은 조금 전에 화검상의 물건에 욕심을 내고 장검을 빼보았다가 크 게 실망한 것이다. 화검상은 장검을 집어들고 손수 검집에서 뽑아 그 볼품없는 모습을 보 여주면서 말했다. “이것은 사실 내력이 있긴 하지만 그리 신비로울 것까지는 아니오. 나의 조부가 살아 계셨을 때 어느 날 나를 병기고로 데려가서 어느것 을 고르겠느냐고 하셨소. 나는 그때 정신이 산란하여 제정신이 아니었 소. 그래서 바닥에 아무렇게나 쌓여 있는 고철장검들 중에서 아무거나 집어들었소. 그러자 나의 조부는 한번 크게 웃고 말았지... 나는 이것이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간혹 조부의 생각이 나는 것 같기도 해서 가지고 다니는 것이오.” 곰보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당신은 제정신이 아닌 것 같기도 하군. 나라면 최소한 보검은 아니더라도 백련정강(百鍊精鋼)의 장검은 집어들었을 텐데.” 이 얼굴이 가득 얽은 사내는 눈빛이 연신 음흉하게 굴리는 것이 그다 지 좋은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그는 지금 무슨 속셈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화검상은 장검을 다시 검집에 집어넣었다. “당시 그 병기고에는 제법 명검(名劍)들이 더러 있었소. 아마도 나는 공연히 바보 짓을 한 모양이오.” 곰보사내는 불쑥 다시 물었다. “그 장검으로 사람을 벨 수 있겠소?” 화검상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 별로 사용해본 적은 없소. 아마 이제는 녹이 너무 슬어서 금방 부러지고 말 것이오.” 곰보사내는 손을 불쑥 내밀었다. “그럼 그 쓸모없는 장검은 내가 가져야 하겠구먼!” 화검상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미 말했다시피 이건 비록 쓸모없지만 내겐 추억이 깃든 것이오. 당신에게 줄 수는 없소.” 곰보사내는 손을 거두고 입가에 능글맞은 웃음을 머금었다. “그럼 당신은 무엇을 내게 줄 거요?” 화검상은 이미 이 사내가 자신에게 좋지 않은 욕심을 품고 있다는 것 을 알고 있었다. 그는 필시 장검이나 다른 어떤 물건만이 목적이 아닌 것이다. 강호무림(江湖武林)은 철저한 약육강식의 세상이며 그 험한 세파를 뚫 고 살아온 이들은 비록 무공을 배우지는 못했다고 해도 그런 이치에는 길들어져 있는 것이다. 화검상은 이렇게 된 이상, 보잘것없지만 자신의 능력을 한번 보여주는 도리밖에 없겠다고 생각했다. “당신에게 줄 것은 없지만, 정 그렇다면 내가 당신에게 무공을 한 수 보여주도록 하겠소. 이것은 가르치는 것도 아니니 자세히 보고 싶다면 잘 보아야 할 것이오.” 화검상은 말이 끝나자 장검을 다시 뽑아서 진기를 운용(運用)한 다음 허공을 향해 가볍게 휘둘렀다. 그것은 바로 화산파의 매화검법(梅花劍法) 가운데 제일초인 매화점점 (梅花點點)이었다. 이 매화검법에는 모두 서른여섯 개의 초식이 있는데 각각의 초식은 모 두 특색을 가지고 있고 그 흐름들이 순서를 따르면 하나로 연결되게 되어 있다. 그의 무공은 겨우 이류의 경지이기 때문에 두 개의 변환(變換), 즉 두 개의 매화송이밖에 만들 수가 없지만, 만일 절정의 고수가 이 초식을 펼치면 최소한 열두 개의 매화송이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으레 명문정파의 무공들은 하나의 절기라도 평생을 두고 연마해도 최 고의 경지에 오르기 어렵다는 말이 바로 그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었 다. 변환이 많이 일어난다는 것은 그만큼 빠르게 운용할 수 있다는 뜻이 며, 빠른 것은 공력의 힘에 의존하게 된다. 그리고 공력을 증가시키려면 그만큼 변환에 능숙해져야 하는 것이다. 만일 제일초인 매화점점과 제이초인 매화빈분(梅花嬪紛)을 펼쳐 둘 다 두 개의 매화송이를 만들어냈다고 해도 그 두 가지는 물론 같지 않다. 모양이나 방향, 성질과 변화하는 길이 다르며 각각의 무궁무진한 특색 과 위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대개 나타나는 매화송이가 많을수록 그 초식에 깊이 들어갔다고들 말 하는데, 아마도 그건 그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초식은 뒤로 나아갈수록 어렵다고 말하는데 화검상은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언젠가 화검상이 외부에 나갔을 때 한 꼬마는 매화검법에서 제일초는 매화 한 송이를, 제이초는 매화 두 송이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냐고 말했다. 물론 그것은 천만의 말씀이다. 만일 그런 식이라면 명문정파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이 매화검법 은 경지가 좀더 나아가면 전혀 쓸모없는 것이 되고 말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 명문정파의 무공들은 각기 특성은 다르지만 대개 대자 연(大自然)의 모습을 닮고 있다. 초식이 후반부로 나아갈수록 그 변화(變化)는 다양해지게 된다. 만일 변화를 어려워하는 사람이라면 초식이 후반부로 갈수록, 이를테 면 매화검법의 마지막 초식인 매화만리향(梅花萬里香)에서는 어렵게 생각될 것이다. 하지만 변화에 치중하면 힘이나 빠르기에 그만큼 소홀하게 되는 것이 고, 힘이나 빠르기에 있어서도 그것은 마찬가지다. 이를테면 매화검법의 전반부는 힘에 치중되고 중반부는 빠르기에 중점 을 두며 후반부는 변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만일 그래서 힘과 변화, 빠르기에 고르게 치중한다면 그것은 결국 어 느 하나도 치중하지 못한 결과가 될 것이다. 마치 일 년을 사계절로 나눌 때, 봄에는 봄 나름대로 오묘함이 있고 여름에는 여름, 가을에는 가을, 겨울에는 겨울 나름대로의 오묘함이 있 는 것과 같다. 사계절은 다시 돌아 순환하는 것처럼, 매화검법의 초식도 그와 같이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순환되는 것이며, 그리하여 자연스럽게 위력도 증대된다. 변환(變幻)의 숫자란 눈에 보이는 것이며 그것은 변화와는 다르다. 변환은 힘과 빠르기, 변화가 함께 어우러질 때 나타나는 것이며, 단지 변화가 늘어난다고 해서 변환의 숫자, 즉 매화송이 모양의 검화(劍花) 가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화검상은 어렸을 때 이미 공력이 일 갑자의 일류경지에 거의 접근하고 있었으나 갑자기 주화입마에 든 이후 공력이 반 갑자로 줄어버렸다. 하지만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얼마 전부터는 변화에도 아주 능해져서 제일초인 매화점점에서부터 제삼십육초인 매화만리향에 이르기까지 어 떤 초식에도 무난하게 두 송이의 매화검환을 만들어낼 수가 있었다. 초식이 뒤로 갈수록 어려운 것은 아니라는 생각은 바로 그 때문이었 다. 일순 검붉은 녹가루가 우수수 떨어지며 허공 중에 두 개의 매화송이가 나타났다. 그 매화송이들은 물론 허상과도 같아서 나타났다가는 금방 사라지고 마치 허공의 여기저기서 그와 같은 환상(幻想)들이 불쑥불쑥 나타나는 것과도 같았다. 화검상은 그저 허공에 가볍게 시범을 보이는 것이기 때문에 관전하기 에는 좋은 모양이었다. 그는 매화 세 송이는 아직 안 되지만 두 송이는 언제라도 쉽게 펼칠 수가 있기에 그런 일이 가능한 것이다. 곰보사내를 비롯한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일시 눈이 휘둥그래졌다. 그 녹슬고 고철 같은 장검이 갑자기 그와 같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매 화송이들을 만들어낼 줄을 그들이 어떻게 알았겠는가? 이 매화검법의 일초인 매화점점도 역시 다른 초식들과 마찬가지로 서 른여섯 개의 변식(變式)을 가지고 있고, 만일 그 검의(劍意)에만 통한 다면 그 외에도 무한한 변식을 만들어낼 수가 있다. 화검상은 밤새도록이라도 그 일초를 펼쳐보일 수가 있었다. 화검상은 잠시 초식을 전개하다가 거두며 미소와 함께 그 곰보사내에 게 말했다. ━━━━━━━━━━━━━━━━━━━━━━━━━━━━━━━ TO BE CONTINUE.... <<무림 YAG 야그>> ━━━━━━━━━━━━━━━━━━━━━━━━━━━━━━━ BE C 야그 출력일 :: 98/10/16 ───────────────────────────────────── 제 목 : [화산문하] 1 부 1 권 제 7 장 - 2 “자, 이만하면 만족하겠소?” 화검상의 무공경지가 비록 이류에 불과하지만 그것은 명문정파이기 때 문에 하수취급을 받는 것이지 이런 시정잡배들과 비교될 수준은 아니 다. 공력이 삼십 년이라면 역시 그들에게는 수십 년 간 노력을 해야 얻을 가망이 있는 경지인 것이다. 그 곰보사내는 그만 반쯤 떫은 표정이 되어서 우물우물 뒤로 물러났 다. “만족합니다, 헤헤헤! 소인이 뭐라고 했습니까?” 곰보사내를 그렇게 혼내주고 나자 주위에서는 다시 그에게 접근하는 사람이 없었다. 물론 무공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는 것처럼 그들이 등뒤에서 그 를 음해하고 암습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최소한 앞으로는 정면으로 무례하게 나오지는 못할 것이다. 한데 마악 장검을 다시 검집에 넣으려던 화검상은 문득 가볍게 놀라서 멈칫하고 말았다. 그것은 바로 녹이 많이 벗겨진 검신(劍身)에 있었다. 그는 조금 전에 검법을 펼치느라 자연히 장검에 진기(眞氣)를 주입하 고 운용하게 되었다. 그래서 오랫동안 삭아서 붙어 있었던 녹들이 먼저 우수수 떨어지게 되 었던 것이다. 한데 기이하게도 검신의 중앙 부분에 흡사 부러졌던 것을 다시 땜질을 하여 이어놓은 것과도 같은 자국이 드러난 것이다. 만일 정말로 부러진 장검을 땜질로 잇는다면 이렇게 엉성하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마치 누군가가 교묘하게 장난을 쳐놓은 것과도 같았다. 대체 이것은 어찌 된 일일까? 만일 이대로라면 그의 이 고철 장검은 더욱 오래가지 못하고 부러질 것이 뻔하다. 화검상은 자신의 장검에 수작을 부려놓았을 만한 사람에 대해서 생각 해보았다. 하지만 이내 그는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았다. 이 땜질 자국은 녹이 완전히 벗겨진 다음에야 드러난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본래 장검이 만들어졌던 당시부터 부러진 것을 이었 을 가능성이 높지 않겠는가? 새로 땜질을 하여 붙이고 위를 덮었다면 그 부분이 다른 부분과 똑같 이 녹이 슬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동안 누가 건들지는 않은 것이로군. 아무튼 정말 문제 가 많은 녀석이로군.’ 본래가 녹이 잔뜩 슬어 있는 장검이 그 속까지 엉성하니 그 얼마나 우 수운 꼴인가? 화검상은 내심 고소하며 그 땜질 자국을 매만지다가 도로 검집에 넣고 침상 위에 드러누워버렸다. 아까부터 그를 주시하며 술을 마시던 사람들도 이제는 그만 다들 자리 에 눕고 있었다. 누군가가 등불을 껐다. 등불을 끄자 실내는 칠흑같이 어두워지고 코고는 소리만이 요란해지기 시작했다. 화검상은 다시 잠을 청하려고 했지만 그러나 역시 잠이 오지 않았다. 이런 때는 대개 일어나 앉아서 운기행공이라도 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 우였다. 그러나 이런 곳에서 운기행공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화검상은 생각다 못해 그가 그간 미루어오던 무공에 대해서 생각해보 기로 했다. 잠이 오지 않을 때 어려운 문제를 생각하다 보면 더러 자신도 모르게 잠드는 수도 있으니까. 그가 지금 가장 의문시하고 있는 것은 역시 피검석과의 일전(一戰) 때 보였던 그 괴이한 무공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괴이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그는 더욱 어리둥절한 느낌 이 들었다. 그는 이전에 그와 같은 괴이한 무공을 배운 적도 없을 뿐만 아니라 생 각한 적도 없었다. 그런데 그 괴상한 무공은 도대체 어디서 갑자기 불거져나온 것일까? 게다가 나중에 다시 그 무공을 사용하려고 했을 때는 왜 그것이 전혀 되지 않았던 것일까? 만일 그가 그 문제의 해답을 풀고 그 괴력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만 있 다면 그의 무공은 훨씬 높아질지도 모른다. 그러한 기대가 들자, 화검상은 잠을 청하려던 본래의 생각은 버리고 열심히 그 문제에 대해서 파고들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서 시간이 흐르고, 옆에서는 코고는 소리가 더욱 맹렬해지고 있었건만 화검상은 그 생각에 몰입하여 거의 무아지경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일단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근본을 생각해보고 그 문제를 거 꾸로 되짚어가야 한다. 화엄상이 먼저 생각한 것은 도대체 그 괴력(怪力)의 정체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었다. 우선 그의 무공은 내공(內功)이라는 근본 문제에서부터 다른 사람들과 차이를 보이고 있다. 다른 사람들의 내공이 정해진 틀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라면 그의 내공 은 간신히 그 틀을 따르기는 하지만 제멋대로인 것이 많다. 만일 과거와 같았다면 당장에 주화입마에 걸리고 말았겠지만 이제는 다행히도 그런 위험성은 없어졌다. 그럼 그 괴력은 그런 제멋대로인 내공이 어느 한 순간에 작용한 것이 라는 말인가? 결론은 아마도 그러하겠지만 거기에는 실상 많은 의문점이 있다. 우선 제멋대로라는 말은 통제력을 상실했다는 말이 되는데, 당시 그 괴력은 분명히 피검석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도록 그의 뜻에 맞게 작용 한 것이 아닌가? 그럼 그 괴력은 제멋대로이면서도 또한 제멋대로가 아니라는 말인가? 게다가 본래 화검상의 내공은 피검석의 내공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것인데도 오히려 맥문을 제압한 그를 놀라게 할 수 있었다. 제멋대로라는 말은 산만하다는 말도 되는데, 어떻게 본류(本流)도 아닌 그런 힘이 본류보다 엄청나게 강한 힘을 발휘할 수가 있었다는 말인 가? 그렇다면 그 제멋대로의 힘은 본류는 아니더라도 본류보다도 강한 힘 을 가지고 있는 지류라는 말인가? 그렇다면 연마하지도 않은 강한 지류는 대체 어디에서 생겨난 것이며, 그것이 지류라면 어떻게 그보다 약한 것을 본류라고 말할 수가 있겠는 가? 게다가 그 지류가 본류였다고 한다면 그 본류는 마땅히 그가 중점으로 연마했던 것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만일 그 지류가 어떤 특수한 심리적인 억압에서 우연히 생겨난 미친 망아지처럼 돌발적인 기운이었다면 그의 뜻에 따르지도 않았을 것이 다. 화검상의 생각은 마치 때로는 그물망처럼, 때로는 실타래처럼 끊임없 이 이어졌다. 이러한 복잡하고 어려운 생각은 골치를 아프게 할 것이지만, 그는 마 치 관전하는 사람처럼 무아지경에 빠져 있는 듯했기 때문에 미처 그러 한 것도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을 때, 그는 점차로 그물망처럼 얽혀 있 던 문제들을 하나씩 정리해갈 수가 있었다. 그가 맨 먼저 느낀 것은 그 무명노인을 만난 이후에 그는 비단 내공뿐 만 아니라 초식에 있어서도 변화가 생겼다는 것이다. 내공에 있어서는 운기행공이 불가능하던 것이 가능하게 된 것이고, 초 식에 있어서는 변화에 보다 능숙하게 된 것이었다. 그 두 가지의 공통점은 물론 변화에 장애를 느끼지 않게 되었다는 것 이다. 갑자기 변화에 장애를 느끼지 않게 된 것은 바로 마음의 작용이다. 그는 무명노인을 만난 이후 온갖 혼란과 방황을 극복하고 마음의 장애 에서 벗어나게 되자 내공의 변화에도 장애를 극복하게 된 것이었다. 왜냐하면 바로 이 기(氣)라는 것은 마음으로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이 다. 그럼 그 괴력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그가 변화에 장애 없는 것에 의해 이룩한 폭넓은 힘의 본 모습이었다. 그것을 하나의 성시(城市)의 복잡한 길에 비유해보자. 하나의 지점에서 하나의 지점까지 가는 가장 효과적인 길이 있다면 그 건 바른 길이다. 명문정파의 초식이나 내공의 운행경로(運行經路)는 바로 그 바른 길에 비유할 수가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제자들은 오직 그 길만 배우고 연마하기 때문에 그저 그 하나의 길만 알게 되는 것이다. 항상 그 길만 무사히 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만일 도중에 어떤 변고를 당했을 경우 그들은 그 경로를 벗어나게 되고 길을 잃게 되는 것이며, 무공으로 말하자면 주화입마에 걸리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설령 항상 제 길만 가더라도 주변의 길을 모르므로 그 것들을 이용하여 유용한 일을 할 수가 없다. ━━━━━━━━━━━━━━━━━━━━━━━━━━━━━━━ TO BE CONTINUE.... <<무림 YAG 야그>> ━━━━━━━━━━━━━━━━━━━━━━━━━━━━━━━ 然) 야그 출력일 :: 98/10/16 ───────────────────────────────────── 제 목 : [화산문하] 1 부 1 권 제 8 장 내 선물을 받고 싶으면... 제 8 장 내 선물을 받고 싶으면... 유용한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은 곧 변화에 능숙하지 못하다는 말과도 같다. 무공에서 사량발천근(四兩撥千斤)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곧 변화 에 능숙하면 넉 냥의 미미한 힘으로도 능히 천 근의 힘을 제어할 수가 있다는 말이니 변화에 능숙하면 그것이 곧 능력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시의 길에서는 간혹 주변의 길을 돌아볼 수도 있겠지만 이 무공에서는 일반인은 그렇게 할 수가 없다. 그것은 진기가 일단 제 길을 벗어나게 되면 제어하기가 곤란하고 이내 주화입마에 빠져버리기 때문이다. 화검상이 무명노인을 만나기 전에는 주화입마에 빠지곤 했던 것도 바 로 그런 이유에서이다. 그러나 만일 뜻대로 변화를 구사하며 제어할 수 있다면 보다 폭넓은 변화에 대해서 알게 되고 또한 그 힘을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나의 지점에서 다른 지점까지 가는 가장 효율적인 길을 이를테면 직 선적(直線的)이라고 하자. 물론 그것은 직선이 아니겠지만. 그리고 효율적인 길 이외에는 무수한 길이 있겠는데, 마치 두 지점 사 이의 직선이 아닌 무수한 곡선이 존재하고 있는 것과도 흡사하므로 그 것을 곡선적(曲線的)이라고 하자. 물론 그것도 곡선 그대로는 아니다. 직선적이라는 것은 가장 효율적인 곡선적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 직선 적인 것은 곡선적인 것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만일 곡선적인 무공(武功)을 모두 알게 되면 자연히 가장 효율적인 곡 선적인 무공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그것이 정도무공(正道武功)의 바 른 이해이다. 그런 사람에게는 그 가장 효율적인 무공을 제외한 다른 것들이 마(魔) 로 작용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근본적으로 그러한 장애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은 정도무공의 변화에 대해 깊이 그 이치를 알고 있으므로 진정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직선적(直線的)인 무공만을 아는 사람은 그 이외의 다른 무공 들이 마(魔)로 작용한다. 강호상의 사마외도의 무공들은 대부분 그러한 길로 가며 나름대로의 안전책을 구한 것들이다. 명문정파의 제자들이 사마외도의 무공을 배워서는 안 되는 것은 바로 그런 이치이다. 게다가 직선적인 무공을 배운 사람들은 그 깊은 무리(武理)를 알고 있 지 못하므로 말하자면 알맹이가 없는 무공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곡선적인 무공을 배우는 사람은 좀더 주위의 변화를 폭넓게 알 아야 하는 것이므로 직선적인 무공을 배우는 사람보다 진전이 늦을 수 밖에 없는 일이다. 당연히 같은 경지라면 그 위력은 비교할 수가 없겠지만. 그리고 또한 곡선적인 무공을 펼치는 사람은 보다 안전한 것이다. 그러니까 화검상이 피검석에게 펼쳤던 그 괴력은 바로 그가 연마해놓 았던 곡선적(曲線的)인 무공이었다. 파검석이 그것을 마공(魔功)이라고 단정한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 괴력은 곡선적인 무공의 실체이되 가장 효율적인 곡선적 무예는 아 니었기 때문이다. 화검상은 오랫동안 무의식적으로 그런 곡선적인 무공을 연마해 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 자신은 아직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당시 파검석과의 일전 때 다급한 순간, 그것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 사용하긴 했지만, 나중에 정작 사용하려고 했을 때 그것이 잘 되 지 않은 것이다. 그는 괴력이 곡선적인 무공이었다는 것을 모르고 직선적인 것으로만 생각하여 화산파에서 배웠던 그 습관대로 사용하려고 했으니 되지 않 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직선적인 무공에서는 곡선적인 무공을 찾을 수가 없는 것이므로, 마땅 히 곡선적인 무공에서 그 괴력을 찾으려고 했어야 했던 것이다. 하긴 그는 앞으로는 그런 괴력을 사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보다 더욱 효율적인 바른 무공을 사용하게 될 것이므로. 그가 본류라고 생각했던 것은 화산파에서 배웠던 흐름으로, 말하자면 직선적인 무공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괴력보다도 힘이 못했던 것이다. 화검상은 그러한 사실을 모두 알아차리게 되자, 마음속에 기쁜 감정이 물결처럼 일어났다. 그는 무엇보다도 고민하던 무력감에서 해방되었다는 사실에 매우 기뻤 다. 어느덧 주위는 희미하게 먼동이 터오고 있었다. 그는 밤새도록 생각에 골몰했던 것이다. 한데 이때 주위에는 코고는 소리 이외에도 다른 소음이 섞여서 들려오 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밖에서 비 오는 소리였다. 비록 소나기는 아니라고 해도 제법 빗줄기가 요란하게 쏟아지고 있었 다. ‘전노인의 말대로 오늘은 비가 오는군!’ 화검상은 그대로 깊은 잠속으로 곯아떨어졌다. 화검상은 거의 정오 무렵이 되어서야 잠에서 깨어났다. 비는 이미 그치고 하늘도 훤하게 개어가고 있었지만 아직 빗물이 다 마르지 않아서 아무래도 오늘은 쉬어야겠다는 것이 전노인의 말이었 다. 화검상은 자신이 어떻게 늦잠을 잔 것에 대해 쑥스러운 심정이 되었지 만, 이내 남아 있는 밥과 반찬으로 식사를 하고 장검을 들고 숙소를 나섰다. 그는 한가한 시간을 이용하여 어젯밤에 알게 된 그 곡선적인 무학(武 學)을 연마해볼 생각이었다. 인부들이 보는 앞에서 무공을 연마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다시 연무장으로 갈 수도 없으므로 그는 그대로 낙안봉(落雁 峰)의 위로 천천히 오르기 시작했다. 일전에 왕귀진이 그에게 무공을 가르쳐주겠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주위의 평판 때문에 감히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얼마나 무력감을 느꼈던가? 한데 그는 이제 누구의 도움이나 가르침도 필요없이 스스로 일어서게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만일 생각한 대로 잘되기만 한다면 그는 장차 가문의 커다란 죄를 씻 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천천히 산 위로 오르면서 경사가 비교적 완만한 지형에 이르러서는 우 선 곡선적인 무예를 신법(身法)으로 전개해보았다. 직선적인 무예는 말하자면 곡선적인 것이 전혀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이 다. 그것은 곡선적인 무예에 비해 깊이가 없고 껍데기뿐인 무학이며 죽어 있는 무학이다. 마도의 무공은 곡선적으로 흐르는 듯하나 그것 역시 그 길만을 고집하 므로 깊이가 없으며 직선적인 무예나 다름이 없다. 이에 반해 곡선적인 무예는 가장 정도(正道)의 무학으로 그 깊은 무학 의 이치가 들어 있으며 살아 있는 무학이다. 곡선적인 무예는 그 흐르는 방향이 직선적인 무학과 비슷하다고 해도 그 깊은 이치가 살아 있기에 그것은 마치 껍데기와 내용,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만큼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당금 무림에 있어서 과연 누가 이 살아 있는 곡선적인 무예를 사용할 수가 있겠는가? 근본적으로 마음의 장애가 없어지기 전에는 그것은 사용하는 것은 물 론이요, 연마하는 것조차 거의 불가능하다. 그럼 곡선적인 무예를 사용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앞서나가지 않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총명한 사람들은 무공을 쉽게 배우고 쉽게 사용한다. 하지만 그것은 직선적으로 되는 길이다. 그 사람은 그 무공의 근본 이치와 변화, 그리고 초식의 의미 등을 완 전히 알지 못하고 그저 겉핥기로만 흉내를 내는 것이다. 따라서 그 무공을 창안한 자의 무공과 배운 자의 무공이 위력이 달라 진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곡선적인 무공의 사용법이란 이미 모든 이치와 변화, 의미 등을 터득 한 무공만을 사용하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단순히 생각만은 아니어야 함은 물론이고, 현학적인 무공 에 둔감해져야 하는 것이다. 화검상은 이미 의식적으로는 직선적인 무공에 습관이 되어 있었다. 따라서 지금 분명히 그 실체를 감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곡선적인 무공 을 펼쳐내는 것은 처음이라 쉽지는 않았다. 그의 신형은 처음에는 겨우 일 장을 전진했다. 그것은 오히려 직선적인 무공을 사용할 때보다 못한 것이다. 삼십 년의 공력에 이류급이라면 직선적인 무공을 사용해도 이 장은 나 아갔을 것이다. 하지만 두번째 신법을 펼쳤을 때, 비로소 곡선적인 내공(內功)이 제대 로 작용하기 시작했으므로 그는 삼 장을 미끄러지듯 나아갈 수가 있었 다. 그리고 세번째의 신법을 펼쳤을 때, 이때는 화검상은 그 내공이 거의 다 이어지는 것을 느꼈다. 한데 화검상은 일순 깜짝 놀랐다. 그의 신형이 느닷없이 오 장도 훨씬 지나고 눈앞에 있는 칼날 같은 바 위에 부딪치려는 것이 아닌가? 화검상은 황급히 몸을 뒤집어서 앞으로 발로 그 바위를 걷어차며 위기 를 모면했다. 하지만 화검상은 바닥에 내려서며 고개를 좌우로 내저었다. 위험하고 당황하던 순간이라 그는 그만 다시 직선적인 무예를 쓰고 말 았던 것이다. 만일 정말로 비무시에 이런 결과가 생긴다면 곡선적인 무예를 배웠다 고 한들 무슨 효과가 있겠는가? 이것은 오직 오래도록 곡선적인 무예를 연마하여 그것이 무의식중에도 펼쳐지도록 습관화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어 다시 신법을 펼쳐보려던 화검상은 이번에는 자신이 건너온 자리 를 보고 문득 입가에 미소를 떠올렸다. ‘역시 그렇군!’ 그것은 그가 어젯밤에 생각하던 한 가지 문제가 사실로 입증되었기 때 문이었다. 기실 그가 아무리 재능이 있다고 해도 곡선적인 무예를 단지 세 번 사 용하여 이렇게 빠른 진전을 보일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내공의 힘이 곡선적으로 변했다고 해도 그 능력을 완전히 발휘하려면 부단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과거 어렸을 때 그의 공력은 거의 일류급에 접근하여 일 갑자(一甲子) 정도였다. 당시, 혹은 불과 어제까지도 그는 주화입마를 당한 뒤로 그 내공의 절 반인 삼십 년의 공력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뒤로도 주화입마를 당한 적이 많았었는데 어째서 그 뒤로는 공력이 거의 줄어들지 않았던 것일까? 그것은 그 잃어버린 줄 알았던 공력이 그의 체내에 경로(經路)의 주위 에 폭넓게 잠재되어버렸던 것이다. 일단 그런 경로에 공력이 들어가자 더 이상의 공력은 필요하지 않아서 공력이 줄어들지 않았던 것이고, 직선적인 무공을 사용하는 것으로는 그 잠재된 공력을 움직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곡선적인 무공을 사용하자 잃어버린 줄로 알았던 그 공력 들은 다시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화검상은 세번째의 신법 직전에서 그것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고, 그 결과로 그는 그만 당황할 정도로 진전을 보이게 된 것이다. 말하자면 그는 무공이 현재 이류급이지만 공력은 일 갑자인 것이다. 한데 그렇다면 여기에서 한 가지의 곤란한 점이 발생한다. 경로 이외의 주변에도 반 갑자의 공력이 필요했다는 것은, 그렇다면 그는 같은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는 직선적 무공을 배우는 사람보다 거 의 두 배 이상의 공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하긴, 그런 점은 아무래도 감수해야만 할 것이다. 이 곡선적 무예라는 것은 주변의 변화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알고 넘어 간다고 하는 것이다. 단순히 그 정해진 운항경로만을 운행시키는 직선적인 내공의 경우라면 단지 그 공력만 필요하겠지만 곡선적인 내공(內功)의 경우, 주위의 경 로로도 움직이는 공력이 필요하고 폭넓은 운기행공(運氣行功)이 이루 어지는 것이므로 거의 두 배의 공력이 필요한 것은 당연한 일인 것이 다. 그것은 그 쓰이는 분야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화검상은 일 갑자의 공력을 가지고 있어도 경지는 아직 이류 급(二流及)이고, 그가 일류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는 이 갑자(二甲子) 의 공력이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비록 모든 것을 살피면서 나아간다고 해서 그 공력이나 무공의 증진 속도마저 직선적인 무공보다 늦어지는 것은 아니다. 곡선적인 내공(內功)은 살아 있으며 각기 스스로 발전해 나아갈 수 있 는 것이다. ━━━━━━━━━━━━━━━━━━━━━━━━━━━━━━━ TO BE CONTINUE.... <<무림 YAG 야그>> ━━━━━━━━━━━━━━━━━━━━━━━━━━━━━━━ 황이 야그 출력일 :: 98/10/16 ───────────────────────────────────── 제 목 : [화산문하] 1 부 1 권 제 8 장 - 1 죽어 있는 내공인 직선적인 내공보다도 공력의 차이를 생각하더라도 오히려 그 진전이 더욱 빠르게 될 것이다. 그것은 비단 내공뿐만이 아니라 다른 무공이나 초식(招式)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화검상은 이제까지는 그저 무의식중에만 그 내공을 운용하여 진전이 없었으나, 앞으로 본격적으로 그것을 연마하게 되면 빠른 진전을 보게 될 것이다. 지금 화검상이 내심 기뻐하고 있는 것은 그저 잃어버린 줄로 알았던 공력을 되찾은 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생각한 일들이 사실로 드러나자 그것을 기뻐하고 있는 것 이다. 화검상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신법을 펼쳐보았다. 이제 신법은 그 정도에서 더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앞으로 그 내공에 대해서 부단히 연마해야 할 것이다. 겨우 이 장을 건너뛸 수 있던 사람이 그것의 세 배나 나아가게 되었다 는 것은 그를 마치 구름 위에 탄 듯한 느낌이 들게 할 것이다. 그는 이번에는 운기행공을 해보기 위해 자리를 옮겨 은밀한 동굴을 찾 았다. 이 낙안봉에는 동굴들이 많다. 한두 시진 동안 운기행공을 할 동굴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화검상은 하나의 은밀한 동굴을 찾아들어가 정좌한 후, 곡선적인 내공 으로 운기행공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역시 곡선적인 무공 중에서도 이 내공 분야는 가장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화검상은 이미 십수 년 간이나 무의식중에 그런 터전을 닦아왔 다고 할 수 있으므로 그런 난관은 이제는 쉽게 넘어갈 수 가 있었다. 한 시진 가까운 시간 동안 그는 자신의 내공이 이미 곡선적인 것이 되 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는 자신의 생각이 맞는지 알아보기 위해 이어 대주천(大周天)의 타 통에 들어갔다. 대개 무학에 처음 입문(入門)하게 되면 소주천(小周天)의 타통으로부 터 시작한다. 소주천은 여러 갈래가 있지만 대개는 임독양맥(任督兩脈)을 위주로 하 는 것이고, 타통이라고 함은 길을 튼다는 의미이다. 소주천의 타통은 빠른 사람은 금방이라도 될 수 있는 것이고 느린 사 람은 일 년 정도가 걸리기도 한다. 하지만 소주천의 타통이 늦어진다고 해서 그 사람의 무학상의 자질이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소주천의 타통이 이루어진 사람은 이어 소주천의 융통에 들어가게 되 는데, 여기에서 융통이라 함은 조금의 장애도 없이 완전히 트인다는 의미이다. 소주천의 융통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최소한 삼십 년의 공력이 필요 하게 되는데, 물론 곡선적 내공의 경우는 일 갑자이다. 소주천의 융통이 이루어진 사람을 일컬어 이류(二流)의 경지에 이르렀 다고 말한다. 같은 공력이라고 해도 이 소주천의 융통이 이루어지지 않고는 무공의 능력상 상당한 차이를 보이게 되는데, 그래서 입문한 많은 제자들은 그 관문을 지나기 위해 도인술(導引術) 등의 여러 가지 방법을 겸해서 수련하는 것이다. 만일 아직 소주천이 융통되지 않았다면 비록 공력이 사십 년이라고 해 도 그는 삼류(三流)이다. 일단 소주천이 융통되었다면 이번에는 대주천(大周天)의 타통에 들어 가게 되는데, 바로 지금의 화검상과 같은 위치가 그런 경우이다. 대주천은 일명 대주천반운(大周天瘢運)이라고도 말하며, 신체의 십이정 경(十二正經)과 십오락맥(十五絡脈), 기경팔맥(奇經八脈)을 하나로 포 괄하는 전신주천(全身周天)으로, 그것을 타통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 다. 공력도 일 갑자 이상이 필요하며, 그것을 타통하였을 경우 그를 일류 (一流)라고 말한다. 그리고 다시 이 갑자의 공력에 이르러 대주천을 두루 융통하게 되면 상승(上昇) 경지인 절정(絶頂)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곡선적인 무공의 경우, 본래 대주천을 타통하기 위해 필요한 공력은 이 갑자로 계산된다. 화검상은 시험삼아 한번 그것을 시도해보았으나 역시 얼마 가지 못해 서 도중에 공력이 부족했다. 역시 그의 생각대로인 것이다. 화검상은 이에 그만 운기행공을 중단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록 아직 이류급에 불과하기는 하지만 곡선적인 내공의 힘은 그의 몸 에 활력을 느끼게 하기에 흥분했다. 다만 흡사 약간의 내상을 입은 듯이 온몸이 뻐근하게 쑤셔오는 것은 아마도 그의 곡선적인 내공이 아직 시작 단계이기 때문일 것이다. 시각은 이제 신시 초쯤 된 것 같았다. 이곳에서 오래 있었기 때문에 시각에 적응이 된 탓인지 그다지 어둡지 않았으므로 화검상은 이내 검법의 수련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는 장검을 뽑아들고서 운기하여 곡선적인 초식을 생각하면서 천천히 매화검법(梅花劍法)을 전개해가기 시작했다. 곡선적인 내공이 운기되고 있었으므로 곡선적인 초식으로의 전환은 그 리 어렵지 않았다. 흡사 썩은 고목에서 새순이 돋아나듯, 녹슬은 고철장검에서 찬란한 검 기(劍氣)가 쏟아져나오며 허공 중에 두 개의 매화송이를 그려냈다. 이상하게도 그 매화송이의 숫자, 즉 변환의 숫자는 늘어나지 않았다. 다만 그 매화송이가 어젯밤보다도 더욱 자세하게 나타나서 흡사 살아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 다를 뿐이다. 화검상은 자신이 그려낸 그 매화변환에 스스로 도취된 듯했다. 그는 한참을 초식을 전개하다가 익숙해지자 이번에는 좀더 빠르게 전 개해보기로 했다. 한데 그가 빠르게 몇 번 장검을 휘두르지 않아 그 장검이 돌연 중간 부위가 뚝 부러져나가는 것이 아닌가? 쨍그렁, 하는 쇳소리는 한창 자신의 성취감에 도취되어 있던 화검상을 정신이 들게 했다. ‘아이구, 이런...?’ 그 장검은 역시 땜질된 부위가 부러져나가 있었다. 화검상은 그 장검이 비록 그와 같기는 해도 실로 그처럼 약할 줄은 몰 랐다. 그는 장검을 부러뜨리지 않기 위해 그저 허공에만 초식을 전개해 본 것이었고, 그 정도라면 쇳조각이라 견뎌낼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한데 이런 어이없는 일이 발생할 줄이야. 화검상은 사실 이 고철장검에도 나름대로의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조부와의 따뜻했던 기억들도 일깨우기 때문에 화검상은 그것을 버리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이렇게 중간이 부러져버렸으니 다시 땜질해서 가지고 다 닐 수도 없는 일이 아닌가? 만일 땜질을 하게 되면 그것은 그 의미가 많이 퇴색하게 될 것이므로. 화검상은 내심 아타까워서 한숨을 내쉬며 바닥에 떨어진 검조각을 집 어들기 위해 허리를 숙였다. 한데 그때 갑자기 그가 들고 있던 검조각의 부러진 부분에서 뭔가 툭 떨어져나오는 것이었다. 그것은 무슨 작은 천조각이나 종이 같기도 했다. 집어들어 펴보니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혀 있었다. 내 선물을 받고 싶으면 내 무덤으로 와서 수염을 당겨라. ‘누가 여기에다 장난을 쳤군.’ 화검상은 그것을 대강 품속에 집어넣고는 부러진 검조각의 잘려나간 부분을 살폈다. 그 두 개의 부러진 부분의 안쪽은 누군가가 교묘하게 파내어 텅 빈 공 간이 있었다. 화검상은 그래도 안쪽도 붙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지, 이런 꼴이 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렇게 안쪽이 비어 있고 밖은 허술하게 땜질되어 있으니 가볍게 휘둘 러도 부러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대체 이걸 땜질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군.’ 화검상이 그 두 개의 검조각을 들고 망설이고 있을 때, 문득 동굴의 내부가 약간 어두어지며 인기척이 들렸다. “화사형! 화사형! 여기 계세요?” 가검통의 목소리였다. ‘이 녀석이 또 왜 왔지?’ 화검상은 마침 검법수련도 대강 끝난 상태였으므로 부러진 검조각들을 든 채 밖으로 나갔다. 시각은 신시 무렵이었고 주위의 빗물은 이미 거의 다 말라가고 있었 다. “무슨 일로 나를 찾나?” 화검상이 밖으로 나오자, 가검통은 기이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야 화사형이 보이지 않으니까 그러죠. 그래 그 안에서 혹시 너구 리라도 잡으셨나요?” 화검상은 약간 생각을 해본 후에 대답했다. “몸이 좀 안 좋은 것 같아서 무공수련을 해보았다. 무슨 특별한 일이 라도 있는가?” 가검통은 새삼 화검상의 안색을 살피고는 다소 득의하게 웃으며 말했 다. “저야 무슨 특별한 일이 있겠어요? 다만 방(方)사숙께서 화사형을 좀 보자고 하시는 거죠.” “방사숙이?” 화검상은 다소 놀랐다. 가검통이 가리키는 쪽을 보니 거기에는 어느새 그 사람이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방귀춘(方歸春), 그는 올해 마흔아홉의 나이에 사 갑자 반의 공력을 가 지고 있는 인물이다. 물론 그는 최상승(最上昇)의 경지에 올라 있다. ‘어쩐지, 가검통이 너무도 쉽게 나를 찾아내더라니. 알고 보니 방사숙 이 나를 발견해내고 그에게 불러내게 한 것이로군. 한데 대체 무슨 일 로 이 두 사람이 나를 찾아온 것이지?’ 화검상은 다소 당황하는 듯했으나 이내 그쪽으로 다가가서 방귀춘에게 예를 올렸다. “방사숙,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방귀춘은 차가운 신색으로 화검상의 얼굴을 주시하다가 이내 말했다. “너는 대체 어딜 그렇게 쏘다니는 것이냐?” 화검상은 미소하며 대답했다. “조금 전에 말한 바와 같이, 저는 속이 좀 좋지 않아서 이곳에서 무 공수련을 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특별히 해야 할 일이라도 있습니 까?” 방귀춘은 매우 못마땅한 듯 눈살을 찌푸렸다. “너 같은 녀석에게 무슨 할 일이 있겠느냐? 너는 천고(千古)에 다시 없을 죄인임을 잊었느냐? 어딜 함부로 말도 하지 않고 돌아다니느냐? 앞으로는 어딜 가더라도 반드시 말을 하고 다니도록 해라.” ‘천고에 다시없을 죄인이라고? 하하... 하지만 나는 이미 죄값을 치렀 고 이렇게 마음대로 돌아다닐 자유는 있다는 것을 당신은 잊었소?’ 그러나 화검상은 미소하며 이내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방사숙.” 방귀춘은 일장(一掌)을 휘둘러 작은 암석 하나를 박살내며 다시 말했 다. “내가 여태까지 누차 참아왔지만 네가 다시 한번 나를 성가시게 한다 면 즉시 요절낼 것이니 그리 알아라! 어서 지금 즉시 숙소로 돌아가 라.” 화검상은 문득 뇌리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누차 참아왔다고? 누차 당신을 성가시게 해왔다고? 하하, 그럼 당신 이 바로 그 나의 보이지 않는 감시자였던 모양이군!’ 지금 화검상의 생각이 맞는 것일지도 모른다. 방귀춘의 시선은 그를 수년 만에 만난 사람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 다. 방귀춘은 이내 훌쩍 신형을 날려 사라졌고, 화검상은 곧장 아래쪽의 숙소로 향했다. 그래서 뒤를 돌아보니 가검통이 그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아니 자네는 가지 않고 왜 나를 따라오나?” ━━━━━━━━━━━━━━━━━━━━━━━━━━━━━━━ TO BE CONTINUE.... <<무림 YAG 야그>> ━━━━━━━━━━━━━━━━━━━━━━━━━━━━━━━ 야그 출력일 :: 98/10/16 ───────────────────────────────────── 제 목 : [화산문하] 1 부 1 권 제 8 장 - 2 가검통은 다소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가다뇨? 저는 앞으로 화사형과 함께 지내면서 화사형을 돌봐드리라 는 지시를 받았는걸요.” ‘뭐라고?’ 화검상은 일순 다소 놀라며 어이없다는 기분이 들었다. 말이 돌봐주는 것이지 사실은 그를 감시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 다. 그런데 어째서 하필이면 이 가검통인가? 화검상은 이제까지 그를 단지 어리숙한 척하면서도 교활한, 나이 많은 사제 정도로만 생각을 해왔었다. 그가 자신에게 만성독약을 먹이려고 했을 때도 그저 단순히 그 자신의 감정이나 안위 때문인 줄로만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이제 또다시 그를 화검상의 곁에 붙여놓은 것을 보면 이것은 뭔가 좀 이상하지 않은가? 사실 화검상은 처음에 나이 많고 교활한 사제인 그를 자신과 방을 함 께 쓰도록 했을 때부터 알아봤어야만 했다. 이 화산파에는 오래 전부터 그를 감시해오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것은 물론 장문인인 풍천비의 지시일 것이다. 화검상은 가검통이 처음부터 몹시 어수룩해 보였기에 그가 자신의 감 시자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 만성독약을 쓰라고 지시한 것도 설마 하니 외조부였던 말인가?’ 그런 가정은 생각하기도 싫다. 하지만 현실에는 그런 생각하기조차 싫은 가정도 사실일 때가 많은 것 이다. 가검통은 은근히 그의 눈치를 살피며 다시 말을 이었다. “실은 조금 전에 인부들 중에서 화사형을 해치려는 자가 있다는 얘기 가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앞으로 그들로부터 화사형을 지켜드리게 된 거죠.” 흔히 몹시 교활하고 간악스러운 자들은 총명하여 무공에도 남다른 진 척이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현실은 오히려 다소 바보스럽고 우직한 사람들이 높은 성취를 이루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그런 면을 본다면 이 가검통은 그야말로 이 현실을 한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네가 나를 지켜준다고? 나를 그냥 내버려두기만 해도 좋을 것이 다.’ “그럼 나는 앞으로 자네에게 모든 행동에 대해서 일일이 보고를 해야 하겠군?” 가검통은 그 말에 다소 안색이 붉어졌다. “그, 그야 제가 늘 보호해드릴 테니까 사형은 그럴 필요가 없죠.” 그러니까 앞으로 항상 그를 따라다니겠다는 말이다. ‘네 녀석은 나중에 측간까지 따라오려고 할지도 모르겠군.’ 현재 화검상은 반 갑자에 이류급으로 알려져 있고, 가검통은 일 갑자 반의 공력에 일류급이다. 화산파에서는 지금 가검통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화검상을 감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무공이란 결코 하루아침에 달라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적어도 직선적인 무공의 경우에는 말이다. 강호에 나가보면 천하의 희귀영약이나 각파의 영단(靈丹) 등을 복용하 면 공력이 증가하여 금방 무공이 급증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데, 그것은 잘못이다. 공력이란 설령 그와 같은 희귀영단이 있다고 해도 일단은 그 경지에서 충분히 공력을 조절할 수 있고 자유로이 운용할 수가 있어야 비로소 증가시킬 수가 있는 것이다. 공력을 크게 증가시킬 수 있는 영단이란 그렇게 본다면 극약(劇藥)에 비유될 수가 있다. 그것은 그 사람의 능력에 맞게 적당한 양이라면 도움을 주지만, 그러 나 지나치게 많은 양이라면 사람을 죽이는 독약이나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명문정파에서는 일단 공력을 다소 증가시킨 이후에는 부단히 내공이나 무공초식 등을 연마하여 반드시 그 공력을 소화할 수 있도록 단련시키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만일 그러한 이치를 무시하고 욕심껏 많은 공력을 증가시키려 고 한다면 그 사람은 십중팔구는 죽거나 주화입마를 당하고 말며, 설 령 그 중에서도 운좋게 살아난다고 해도 결국에는 열심히 수련을 하여 그 공력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게다가 그런 식으로 된다고 해도 공력의 증가 속도는 반드시 정상적인 경우에 비해 낫다고 할 수가 없다. 이 직선적인 무공이란 간신히 곡예를 하는 것과도 같아서, 그런 의외 의 변수를 만나게 되면 이내 커다란 위험을 초래하는 것이다. 강호에는 남의 공력을 흡수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흡성마공(吸星 魔功)이라고 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의 경우는 이것과는 조금 내용이 다르다. 하지만 그 역시 어려운 공중곡예를 하는 것과도 같기 때문에 반드시 위험에 봉착하여 화를 당할 날이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화산파에서는 화검상이 반 갑자의 공력을 되찾았을 뿐만 아니 라 무공도 곡선적으로 되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만일 화검상이 이제는 무공이 가검통에 못지않게 되었다는 것을 알았 다면 결코 이런 실수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 나는 당연히 너의 보호를 받아야만 하겠구나.” 가검통은 그 말에 그저 어색한 듯이 웃으며 대답을 회피해버렸다. 화검상은 다시 신형을 돌려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가검통은 말없이 계속 그의 뒤를 따라왔다. 그런데 화검상은 웬일인지 아까 느꼈던 허전한 느낌이 산 아래쪽으로 내려갈수록 더욱 심해지는 것이었다. 마치 그것은 무엇인가 잃어버리고 온 것 같은 느낌인데, 게다가 아주 중요한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화검상은 대체 그 산 위에서 무엇을 잃어버리고 온 것일까? 느낌이 너무나도 강렬했기에 화검상은 아래쪽으로 내려가면서 계속 그 생각만 했다. 그는 답답한 심정에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기도 했고, 혹은 잠시 멈 추어서서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 허전한 듯한 느낌의 정체는 금방 떠오를 듯 입가에 맴돌면 서도 도무지 분명해지지 않는 것이었다. 뒤에서 따라가던 가검통은 화검상의 그와 같은 괴이한 행동을 보고는 다소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화검상이 자신을 의심하고 있다는 것을 간파했기 때문인지 그 는 속으로 이상하게 생각하면서도 입을 열어 물어보지는 않았다. 또 하루 해가 지고 있었다. 가검통은 임시숙소로 오자 온갖 오만을 떨며 주위 사람들을 들볶았다. 그는 자신의 무공을 과시라도 하듯이 장력을 날려 인부들의 침상 두 개나 부러뜨렸고, 이어 전노인에게 자신의 잠자리를 빨리 만들어내라 고 성화를 부렸으며, 인부들을 집합시켜놓고 그 중의 항변하는 혹부리 사내의 뺨을 갈겨 이빨을 부러뜨려놓았다. ━━━━━━━━━━━━━━━━━━━━━━━━━━━━━━━ TO BE CONTINUE.... <<무림 YAG 야그>> ━━━━━━━━━━━━━━━━━━━━━━━━━━━━━━━ 쳄 야그 출력일 :: 98/10/16 ───────────────────────────────────── 제 목 : [화산문하] 1 부 1 권 제 9 장 감시자(監視者)들 제 9 장 감시자(監視者)들 화검상은 굳이 가검통의 그러한 행위를 만류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 았다. 만일 그럴 경우 그는 자칫하면 자신의 무공실력을 드러내는 실수를 범 할 우려가 있는 것이다. 가검통이 난리를 치는 동안 그는 계속 그 허전한 느낌의 정체를 알아 내기 위해 골몰했으며, 주위가 더욱 소란스러워지자 그는 나중에 혼자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그가 임시숙소의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다시 생각에 골몰하고 있는데, 문득 전노인이 다가와 그의 옆에 앉았다. 화검상은 왠지 이 전노인에게만은 소홀히 대할 수가 없다는 느낌이 있 었기에 생각을 중단하고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저의 가사제가 저런 난동을 부려서 마음이 불편하시 죠?” 전노인은 문득 손으로 바닥에 글씨를 쓰면서 입을 열었다. “나는 이미 오래 살아서 그런 것은 수도 없이 보았다오. 하지만 이제 는 참을 수가 없어지는 것을 보니 그만 살아야 할까보오.” 바닥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그대의 조부는 정말로 훌륭한 분이셨소. 만일 그대가 보다 자세한 것 을 알고 싶다면 여귀기(余歸機)란 사람을 만나보시오. 아마 그라면 그 대에게 거짓없이 가르쳐줄 것이오. 전노인은 글을 다 쓰자마자 이내 지워 완전히 그 흔적을 없애버렸다. 하지만 그것을 본 화검상의 뇌리 속에는 흡사 낙인이라도 찍어놓은 듯 결코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여귀기는 바로 화산파의 일대제자들 중의 하나로 화검상에게는 사숙이 되는 사람이었다. 화검상은 마음이 크게 당혹스럽고 황당하다는 느낌까지 들었다. 이 전노인이 자신의 조부를 좋게 평가한다는 것은 그로서는 기분좋은 일이요, 마땅히 감사해야 할 것이다. 그는 그래서 일부러 이 전노인에게 의식적으로 소홀하지 않게 대해주 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글귀까지 써주다니. 화검상은 놀라고 어리둥절해 자신이 그만 놀림을 받고 있는 듯한 느낌 이 들었다. 하지만 이 전노인이 이런 글을 자신에게 써주는 것은 것은 목숨을 거 는 것이나 다름이 없기 때문에 결코 장난은 아닐 것이다. 그럼 대체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한단 말인가? 화검상은 가슴이 크게 답답해지는 것 같아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저는 이런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저를 괴롭히지 마십시오.” 전노인은 미소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대가 만일 내 물건들을 사지 않겠다면 그만두시오.” 말과 함께 전노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숙소로 들어가버렸다. 그때 문득 가검통이 급히 그에게 다가와 물었다. “화사형, 그 늙은이가 사형께 대체 뭐라는 것입니까?” 화검상은 다소 마음을 가라앉히고 대답했다. “그는 내게 물건들을 사라는군.” “물건들을요?” 가검통은 어리둥절해져서 다시 물었다. “대체 무슨 물건들을 사라는 거죠? 그 늙은이가 갑자기 망령이 났 나? 게다가 또 사형을 괴롭힌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알고 보니 가검통은 숙소 안에서 이미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들은 모양 이었다. 화검상은 신중히 생각하며 대답했다. “그런 것이 있네. 자네가 관여할 일이 아니지.” 문득 그 말에 가검통의 두 눈에서 악독한 광망이 번쩍 피어났다가 사 라졌다. 그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가 말했다. “어쨌든 앞으로는 그런 노망난 늙은이의 말을 듣지마십시오. 그리고 만일 그 늙은이가 이상한 말을 하거나 하면 즉각 저에게 말해 줘야 합 니다.” ‘이 녀석이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하는군!’ 화검상은 그를 바라보며 대꾸했다. “알겠으니 그만 들어가보게. 나는 잠시 생각할 일이 있으니.” 가검통은 자신이 일단 강하게 나간 것에 어느 정도 부담을 느끼고 있 던 터라 갑자기 거기에서 더 전진할 수가 없었다. 그는 다소 멍하니 화검상을 바라보다가 이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흐흐, 그러죠. 화사형이 생각하는 것까지 방해할 생각은 아니니까 요.” ‘그렇게 좀더 솔직해지니 고맙군!’ 가검통이 안으로 들어가고 나자, 화검상은 다시 생각을 정리해보기 시 작했다. 그는 우선 전노인이 그에게 한 말을 정리해놔야 했다. 이미 주위에 어둠이 몰려오기 시작하고 있었다. 전노인이 글씨를 썼던 자국은 이미 흙을 완전히 뒤집어놓아서 천하의 누구라도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 전노인은 어째서 위험도 무릅쓰고 그에게 그런 말을 해주었던 것일까? 정말로 그의 조부가 전노인에게 그렇게 잘 대해주었던 것일까? ‘어쨌든 지금으로서는 그런 말에 혼란을 일으킬 시기가 아니다. 혼란 을 일으킨다면 나는 전혀 가망도 없이 누구에겐가 당하고 말 것이다. 게다가 그렇게 훌륭한, 훌륭한 사람이었다면 어째서 그렇게 자신의 사 제에게 당하고 온갖 오명을 뒤집어쓸 수가 있겠느냐는 말이다.’ 화검상은 일단 그렇게 마음을 정리하고 나서, 이내 자리를 옮기기 위 해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한데 그의 시선이 무심코 다시 그 전노인이 글을 썼던 자리에 닿았을 때의 일이었다. 갑자기 그는 혼미하고 답답했던 머릿속이 시원하게 뚫리는 것 같고 깜 짝 놀라서 입을 딱 벌리게 되었다. ‘그, 그럴 리가!’ 그는 마침내 갑자기 그 허전한 느낌의 정체를 알아차리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저 단순히 어려운 문제를 풀었다고 하기엔 그 내용은 너무나 도 황당하여 화검상 자신도 쉽게 믿기지가 않을 정도였다. 과거 그는 조부에게 글씨를 잘 쓴다고 칭찬을 받은 적이 많았다. 화검상도 은근히 조부의 웅건한 기상이 감도는 필체를 멋있다고 생각 한 적이 있었다. 이제 세월이 십사 년이나 흘러 어렸을 때의 그러한 기억들은 가물가물 잘 생각이 나지 않지만, 그러나 그러한 감각의 여운들은 아직 남아 있 는 모양이었다. 화검상의 의식은 비록 그 필체를 간파해내지 못했지만, 그의 무의식 속의 감각은 그것이 어딘가 눈에 익다는 여운을 그에게 던져준 것이 다. 그렇다. 그의 지금의 생각이 틀리지 않는다면 그 부러진 검 속에 들어 있던 종 이 위에 씌여져 있던 글귀는 바로 조부인 화천괴(華天魁)의 필체였던 것이다. 화검상은 그것을 그저 단순히 흘려버리고 말았기에 그의 한쪽 마음에 는 괴이한 아쉬움이 강렬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그게 가능이나 한 일일까? 화검상이 그 종이 위의 글귀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은 녹슨 정 도로 보아 그 종이가 아주 오래 전에 넣어졌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이다. 그렇다면, 화천괴는 어느 날 그가 장검을 두고 간 사이에 일부러 장검 속에 종이를 넣어두고 그와 같이 쉽게 녹슬도록 만들었단 말인가? 만일 그게 사실이라면 화검상은 좀더 일찍 그 종이를 볼 수 있었을지 도 모른다. 그는 일부러 장검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었고, 게다가 방황을 하던 중 에는 더욱 말할 것도 없었다. 실상 그렇게 된 것으로 보아 화천괴는 좀더 일찍 화검상이 그 종이를 보게 되기를 바랬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화천괴는 어째서 일부러 그와 같은 일을 한 것일까? 그것은 종이에 적혀 있는 내용을 보면 알게 될 것이다. 화검상은 얼른 그 필체를 확인하기 위해 품속에 넣어둔 종이를 꺼내려 다가 문득 참고 딴전을 피웠다. 지금은 가검통이 그를 주시하고 있을 것이므로 그는 수상한 행동을 할 수가 없었다. 만일 그가 몰래 종이쪽지라도 꺼내서 보는 것을 들키는 날에는 전노인 에게 그 화가 돌아갈 것이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화검상은 물론 아까 보았던 종이 위의 글귀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저 지나치기는 했지만 그래도 소중하게 생각하던 물건에서 나온 것 이라 유심히 글귀를 보았고, 또한 그 종이도 버리지 않은 것이다. 내 선물을 받고 싶으면 내 무덤으로 와서 수염을 당겨라. 그 종이 위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 지금 그렇게 생각하고 나서 그런지 그 필체의 기억되는 움직임 하나하 나가 바로 조부의 필체와 몹시 부합되는 것 같이 느껴졌다. 그 말은 대체 무슨 의미일까? 앞 부분에 대해서는 화검상도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내 무덤’이라는 대목에 이르러 문득 뇌리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그저 내 무덤이라고 한다면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상스럽게 여겨질 것 이다. 이미 죽어서 무덤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글귀를 남길 수가 없는 것이고,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먼저 무덤을 만들 리가 있겠는가? ‘일단 확인해보는 수밖에 없겠다!’ 화검상이 내심 그렇게 작정하고 있는데, 문득 다시 가검통이 다가왔다. “화사형, 밥이 다 되었는데 그만 들어가서 식사하도록 하지요.” 화검상은 그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아냐, 내 방금 생각해냈는데 아까 그곳에 가서 가져올 것이 있네.” 가검통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건 내일 낮에 가져오면 안 됩니까?” 화검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 되네. 그건 중요한 물건이기 때문에 지금 즉시 가야 하네. 만일 자네가 귀찮다면 내 혼자 다녀오도록 하지.” 가검통은 눈살을 찌푸리며 속으로 곰곰이 생각을 굴리는 듯하더니 이 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나도 함께 갔다 오기로 하지요. 하지만 갔다가 금방 돌아 와야 합니다.” 화검상은 먼저 그쪽으로 신형을 옮기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네. 나도 벌써 배가 고프니까.” 이미 주위가 완전히 어두워져서 산 위로 올라가는 것이 간단하지는 않 았다. 화검산은 일부러 몇 번이나 길을 잃은 척했는데, 가검통은 간혹 악독 한 표정으로 바라보면서도 금방 길을 찾아주었다. 그것은 그가 이미 낮에 화검상을 찾기 위해 이 주변을 샅샅이 살펴보 았다는 증거이다. 화검상은 드디어 그 동굴 속으로 걸어들어가며 가검통에게 말했다. “그 물건이 아직도 그 자리에 있는지 모르겠군. 누가 와서 가져갔으 면 곤란한데?” 가검통은 안으로 들어갈수록 주위가 더욱 어두워지자 눈살을 찌푸리며 대꾸했다. “가져가긴 누가 와서 가져가겠어요? 대체 그 물건이 뭔데 그래요?” “이제 곧 보게 될 것이네. 보면 자네도 금방 알게 될 거야.” 가검통은 계속 화검상을 주시하면서도 입가에 냉소를 떠올렸다. ━━━━━━━━━━━━━━━━━━━━━━━━━━━━━━━ TO BE CONTINUE.... <<무림 YAG 야그>> ━━━━━━━━━━━━━━━━━━━━━━━━━━━━━━━ 가 야그 출력일 :: 98/10/16 ───────────────────────────────────── 제 목 : [화산문하] 1 부 1 권 제 9 장 - 1 “제발 쓸 만한 물건이길 바라겠습니다.” 화검상은 문득 걸음을 멈추며 우측을 가리켰다. “아, 바로 저거네. 역시 아직도 그대로 있군.” 가검통은 비록 입가에 냉소를 떠올린 채 화검상만 감시하려고 했으나 문득 그게 그렇게 되지 않았다. 사람의 호기심은 간혹 의지와는 반대로 몸을 이끄는 것이다. 가검통이 그쪽으로 고개를 돌린 것은 그저 아주 짧은 시간에 불과했 다. 하지만 그것으로도 화검상이 일을 마치기에는 충분했다. 화검상이 가리킨 곳에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가검통이 미처 다시 화검상을 보기도 전에 그 장력(掌力)은 날아왔다. 가검통은 순간 ‘빌어먹을!’이라고 소리치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미처 그런 소리를 지를 수 없을 만큼 화검상의 공격은 빨 랐고 또한 기이했다. 가검통은 비단 기습을 당했을 뿐만 아니라 상대를 너무 과소평가 했 다. 그는 화검상을 죽일 수는 없다는 생각에 그저 오 성(五成)의 공력으로 가볍게 맞부딪쳤던 것인데, 화검상의 장력과 부딪친 순간 흡사 자신의 장력이 빨려드는 듯한 느낌이 듦과 동시에 가슴에 커다란 통증이 느껴 지고 입으로 피를 내뿜으며 뒤로 벌렁 나가떨어졌다. 가검통은 이미 심각한 내상을 입어 반격을 한다는 것은 무리였다. 게다가 어느새 화검상이 달려들어 재차 지풍(指風)을 날려 그의 마혈 과 아혈, 혼혈(昏穴)을 제압해버리니 그는 꼼짝없이 그 자리에서 의식 을 잃는 수밖에 없었다. 화검상은 그를 그렇게 성공적으로 제압하고 나자 숨을 고르고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았다. 기실 그가 이번에 장력으로 가검통을 가격한 것은 모험이나 다름이 없 었다. 그는 곡선적 무예를 연마하면서 아직 장풍이나 지풍 등은 연습해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상대방이 눈치챌 수 있는 병장기를 사용할 수도 없는 일이기도 하여 그는 가능한 연습한 것과 유사한 흐름이 있는 매화장 (梅花掌)을 펼친 것이었다. 흔히들 장법은 도법(刀法)과 비슷하다고 하고 권법(拳法)은 검법에 비 유된다. 그와 흐름을 같이하는 것으로, 매화장은 매화검법과 유사한 점이 있기 는 하지만 힘과 변화에 좀더 역점을 두고 있는 듯이 보인다. 초식의 숫자도 서른여섯이고, 그 이름도 비슷하여 혹시 매화장법(梅花 掌法)을 만든 사람이 나중에 다시 매화검법을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두번째 펼친 지풍은 바로 자하지(紫霞指)인데, 그것은 다급한 나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렇게 한 것이었다. 다행히도 그가 전심전력을 다한 탓인지 모험에 성공하여 가검통을 이 렇게 만들 수가 있었다. 만일 그가 전력을 다했다고 해도 가검통이 방심하지 않고 마주 전력을 다했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가검통은 아직은 그의 하수가 아니다. 최소한 가검통이 그를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여 가볍게 대항하지만 않 았어도, 십중팔구 화검상은 그를 대적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가검통은 마치 자신의 장력이 빨려들어가는 것 같다고 느꼈는데 그것 은 화검상이 펼친 매화장법이 곡선적인 변화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화검상은 이윽고 가검통을 그대로 내버려두고 서서히 동굴의 입구까지 걸어나왔다. 하지만 그는 경솔하게 몸을 날리지는 않았다. 이 화산파에는 실로 그의 적들이 가득하여 자칫하면 모든 의도가 수포 로 돌아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는 참을성있게 그 동굴의 입구에서 누군가 또 다른 감시자가 나타나 길 기다렸다. 잠시 후에 동쪽 하늘이 훤하게 밝아오더니 어두운 밤하늘에 둥글고 밝 은 달이 둥실 떠오르기 시작했다. ‘오늘이 보름인가?’ 달이 떠올라 사방이 비추기 시작함에 따라 화검상은 주위를 살피기가 한결 수월해졌다. 화검상은 어둠 속에 숨어서 누군가 숨어 있을 만한 곳들을 세밀하게 살폈다. 한참을 기다려도 아무도 나타나지 않는 것을 보니 그를 감시하는 사람 은 더 이상은 없는 모양이었다. 우선 화검상의 무공을 그들은 과소평가했고, 게다가 앞으로 출정을 나 갈 일에 바빠서 그들은 가검통에게 대부분의 감시를 맡겨버린 모양이 었다. 화검상은 이윽고 달빛의 그늘을 이용해서 서서히 신법을 날리기 시작 했다. 그때가 언제였던가? 한번은 그의 조부가 이 낙안봉의 남쪽에 있는 어느 은밀한 동굴로 그 를 데려왔던 적이 있었다. 사람은 죽기 전에 더러 그것을 감지하는 능력을 보이기도 한다고 했 다. 그의 조부도 혹시 그런 느낌이 들어서 그랬던 것이었을까? 그 은밀한 동굴은 비단 발견하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내부의 생김새 도 기묘했는데, 조부는 그 동굴로 데려가서 이런 말을 했던 것 같았다. -이 동굴은 자리도 좋고 생긴 것 또한 그럴싸하다. 너는 만약 내가 죽 으면 나를 이곳에 안장(安葬)해다오. 이건 오직 너와 나만이 알고 있는 비밀이다. 약속해줄 수 있겠느냐? 너의 아비는 비록 자질은 쓸 만해도 감상이 너무 많아서 믿을 수가 있어야지... 기억이 희미해서 이 말 그대로인지는 몰라도 아마도 대강 그러했던 것 같다. 화검상은 조부가 왜 갑자기 이런 으시시한 곳으로 데려와서 죽는 얘기 를 할까, 하고 기이하게 여겨 특별히 그 상황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것이 그야말로 ‘내 무덤’의 화검상이 생각하는 의미였다. 화검상은 도중에 몇 번이고 종이를 꺼내 달빛에 비춰 그 필체를 확인 해보았다. 그는 마음껏 볼 수 있었기 때문에 몇 번이고 확인할 수 있었고, 이내 자신의 생각이 틀림없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럼 ‘내 선물’이라는 말은 무엇이고 또한 ‘수염을 당겨라’라는 말은 또한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이제 그곳에 가서 보면 알게 될 것이다. 화검상은 일단 그렇게 마음을 정하고 나자 신법에 더욱 박차를 가했 다. 조부의 시신은, 과거 십사 년 전에 효수되고 난 뒤에 이윽고 들개들의 먹이로 벌판에 버려졌다. 화검상은 물론 그것을 막을 힘도 없었고 감시망을 벗어날 길도 막막했 다. 하지만 그는 이윽고 열흘 후에 간신히 감시망을 벗어나서 겨우 뼈와 형체만 남은 조부의 시신을 몰래 묻을 수가 있었다. 그때가 그가 열한 살 되던 때의 일이었다. 당시 조부의 얼굴은 기이하게도 개들이 물어뜯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화검상은 하마터면 조부의 시신을 알아보지도 못할 뻔했다. 하지만 이제 만일 그 시신들을 거두어 다시 원하던 그 무덤으로 옮길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낙안봉은 그 높이 만큼이나 넓이도 몹시 넓었다. 화검상이 그 동굴의 입구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둥근 달이 중천에 떠 있는 상태였다. 비록 달이 훤하게 비치고 있었다곤 하나 그가 이곳까지 이렇게 빠르고 무사히 올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곡선적 신법의 덕택이다. 그것은 비단 그 위력도 증가시키지만 완전한 변화를 이루기 때문에 훨 씬 더 안전하게 사람을 이동시키는 것이다. 화검상은 이곳까지 오면서 그 신법의 공부를 톡톡히 했다고 할 수도 있었다. 그곳은 거의 백 장에 달하는 거대한 물줄기가 쏟아져내리는 폭포수의 앞이었다. 그 거대한 폭포수의 줄기가 동굴의 입구를 가로막아주는 요인이라고 할 수 있었다. 화검상은 잠시 주저하는 듯하다가 이내 지면을 박차고 신법을 일으켜 위로 솟구쳤다. 그 폭포수가 떨어지는 절벽면은 매끄러웠지만 그래도 발을 딛고 힘을 의지할 돌출 부위들이 있었다. 화검상은 일 장 반 가량 솟구쳤다가 돌출 부위를 밟고 계속 솟구쳤으 며 그런 것을 수차례나 계속했다. 그리하여 십여 장 가량 올라갔을 때 그는 폭포수의 옆으로 접근하여 뒤쪽의 움푹 들어간 동굴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그 동굴은 폭포수의 뒤에 위치하고 있어서 전면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 으나, 옆으로 돌아 들어가 보니 마치 밖에 은빛의 거대한 발을 드리운 것 같았다. 달빛은 은빛의 폭포수를 투과하여 동굴의 내부에도 다소 비치고 있었 다. 화검상은 그 안으로 전진했다. 폭포수가 워낙 거대하여 진동음도 심하고 동굴의 입구에는 습기가 가 득했으나 안쪽은 의외로 건조했다. 그 동굴은 그다지 깊지 않았다. 겨우 십여 장을 들어가자 동굴이 끝나 있었고 화검상은 거의 더듬다시 피 하여 바닥의 널찍한 돌을 찾아낼 수 있었다. 사실은 이 부근은 천연에 인공을 가미한 것으로 그 널찍한 돌은 그 안 쪽으로 들어가는 문인 셈이다. 이 문을 열고 아래로 내려가서 점차 나아가면 동굴 속 미로(迷路)에 접하게 되고, 그 미로를 벗어나면 바로 그 위치에 도착하게 되는 것이 다. 이 낙안봉에는 동굴이 많고 또한 그러한 동굴들이 무수하게 얽혀진 미 로도 많다. 아마도 그런 것들 때문에 그 위치는 그 동안 사람들에게 잘 발견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당시 화검상은 조부에게서 미로를 지나는 길을 자세하게 들은 것 같은 데 지금은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아무래도 이 일은 부딪쳐보면 효과가 있을 것이다. 그 널찍한 돌은 제법 무거워서 옆으로 옮기는 데 힘이 들었다. 화검상은 공력을 운기하여 겨우 그것을 옆으로 밀어놓을 수가 있었다. 이제부터는 내려가려면 횃불이나 화섭자가 필요한 것이다. 화검상은 마악 품속에서 화섭자를 꺼내 불을 밝히려다가 문득 주춤했 다. 그는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그는 이번의 일이 혹시 매우 중요한 일이 아닐까 하여 이곳까지 오는 동안 철저히 신중을 기했다. 하지만 그것이 완전하다고는 말할 수가 없는 것이며, 혹시 그 사이에 어떤 틈이 있어서 이것이 발각되기라도 한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낭패 가 아니겠는가? 그는 얼른 그런 생각이 들자 화섭자를 도로 넣고 동굴의 안쪽에 있는 오목한 부분 속으로 숨어들어갔다. 이것은 이를테면 마지막으로 그를 따라온 사람이 있는지의 여부를 확 인하는 일이다. 만일 아무도 없다면 그건 그야말로 다행스런 일이겠지만, 그러나 만일 누군가 은밀히 그를 끈질기게 따라붙고 있었다면 이번은 그런 자를 따 돌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것이다. 이미 그가 안으로 들어온 이상, 그 감시자는 궁금해져서 도저히 오래 기다리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쓸데없는 시간낭비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이것은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는 발판이 될 것이며, 앞으로의 그의 앞날을 보다 순탄하게 만들어줄 수 있을 것이 다. 화검상의 생각은 어쨌든 아무도 나타나지 않아서 그가 이곳으로 온 사 실을 아무도 몰랐으면 하는 것이었다. 한데 그의 그러한 예상은 적중되었고 기대는 빗나갔다. 갑자기 동굴의 입구가 어두워지는 듯하더니 한 사람이 흡사 유령처럼 안으로 들어선 것이었다. 그는 다름아닌 방귀춘(方歸春)이었다. 화검상은 그가 갑자기 나타나는 바람에 비단 놀랐을 뿐만 아니라 가슴 이 다 떨려왔다. 만일 그가 이렇게 마지막으로 한번 더 신중을 기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것을 생각하니 정신이 아득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로써 한 가지 강호의 경험을 배운 것이다. 세상일은 좋은 가능성은 실현되기 어렵지만 나쁜 가능성은 비록 의심 스럽더라도 실현될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것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매사에 사려 깊고 신중하게 행동하는 도리 밖에 없다. 화검상은 즉시 마음을 진정시키고 숨소리도 내지 않기 위해 귀식대법 (龜息大法)을 펼치고 축골공(縮骨功)을 시전하여 몸을 더욱 안쪽으로 오므렸다. 겨우 이류의 경지에서 그런 무공들을 펼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 고, 또한 오래 수법을 지속시킬 수가 없기 때문에 화검상은 가능한 한 그 방귀춘이 빨리 나가기를 바랬다. ━━━━━━━━━━━━━━━━━━━━━━━━━━━━━━━ TO BE CONTINUE.... <<무림 YAG 야그>> ━━━━━━━━━━━━━━━━━━━━━━━━━━━━━━━ 황이 야그 출력일 :: 98/10/16 ───────────────────────────────────── 제 목 : [화산문하] 1 부 1 권 제 9 장 - 2 그는 방귀춘이 그 동안 멀리서 끈질기게 그를 지켜보며 모든 것을 알 고 있었을 것을 생각하니 소름이 오싹 돋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축골공은 그렇다고 해도 귀식대법은 이곳의 폭포수의 소리가 워낙 강하므로 굳이 하지 않아도 좋을 뻔했다. 방귀춘은 워낙에 끈질긴 자여서 쉽게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이 순간 방귀춘의 두 눈은 마치 한 쌍의 작은 횃불처럼 번쩍이고 있었 다. 그는 안으로 들어서면서 내부를 자세히 살폈다. 하지만 이 동굴은 원래는 천연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안쪽의 움푹 패인 부분에 숨어 있는 화검상을 발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제발 불을 밝히지 말아라!’ 방귀춘은 아마도 은밀히 화검상을 추적할 생각이었던 모양이었다. 그는 조용히 불도 밝히지 않은 채 동굴의 패인 부분들을 주시하다가 문득 바닥에 밀려나 있는 돌과 드러난 통로를 발견했다. 그는 아마도 화검상이 그 아래로 내려갔으리라고 생각한 것이리라. 만일 그가 처음부터 불을 밝혔다면 화검상이 그 통로로 내려가지 않았 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고, 또한 한쪽 구석에 숨어 있는 화검상을 발견 할 수가 있었으리라. 그것은 이를테면 너무도 치밀한 자의 오류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는 대체 화검상이 무엇을 찾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인지를 알아내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방귀춘은 그래도 금방 아래로 내려가지 않고 다소 머뭇거리다가 주위 를 두어 번이나 더 살폈다. 화검상은 금방 그에게 발각될 것 같았을 뿐만 아니라 진기가 더이상 이어지지 않을 것 같아서 그야말로 간이 바짝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다행히도 지금은 밤중이고 게다가 이곳은 동굴의 내부였다. 시력이 좋은 방귀춘도 마침내 화검상을 발견하지 못하고 통로의 아래 로 내려갔다. 화검상은 방귀춘이 사라졌어도 감히 금방 그 자리에서 나오지 못했다. 진기가 이어지지 않아 축골공이 풀려가고 숨이 막혀 질식할 것 같은데 도 그는 잠시 이를 악물고 참았다. 그러다가 이윽고 그 동굴의 구조상 방귀춘이 거의 미로에 접근했을 것 이라고 생각될 때 그는 재빨리 소리없이 그 자리를 빠져나와 동굴을 나왔다. 비록 그러는 과정에서 약간의 인기척이 났다고 해도 폭포수가 떨어지 는 굉음 때문에 그 소리는 지워졌을 것이고, 어두워서 그의 모습이 잘 보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화검상은 일단 동굴을 벗어나자 숨을 쉴 수가 있었고 이제 살 것 같았 다. 하지만 그는 이미 방귀춘을 본 이상, 더욱 조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고 더욱 신중을 기했다. 그는 조심스럽게 동굴의 아래쪽으로 절벽을 따라내려갔고, 칠팔 장 정 도의 아래에 있는 동굴 속으로 쑥 기어들어갔다. 그는 그곳에서 잠시 기다렸다. 방귀춘이 언제 나와서 그를 다시 추적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미 미로의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버렸는지 밖으로 나올 기미가 없었다. 이에 화검상은 드디어 안심을 하고 동굴의 안쪽으로 내려가기 시작했 다. 화검상의 조부는 당시 상황이 어려울 것을 대비하여 다소 불편하기는 하지만 미로를 통과하지 않고 그곳에 이르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것은 폭포수의 아래쪽에 있는 지하수로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그쪽으로 가면 의복이 많이 젖고 질척거리기는 하지만, 그래도 무공이 약한 사람들이 가기에는 적당하다. 화검상은 그 동안 지하수로가 변했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지하수로는 다행히도 그대로였으며 다만 그 동안 물이 좀 줄어 들었을 뿐이었다. 화검상은 동굴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서 지하수로에 닿은 다음에 옛날 의 기억을 간신히 더듬어 물이 허벅지까지 차오는 지하수로를 따라 걸 었다. 그는 가능하면 화섭자를 아껴야 했을 뿐만 아니라 방귀춘을 의식하여 감히 화섭자를 계속 켤 수가 없었다. 주변의 지형을 확인해야 할 때만 화섭자를 잠깐 켰고, 이어 그는 어둠 속을 빠르게 나아갔다. 점차로 물의 깊이가 얕아졌으므로 그는 더욱 속도를 낼 수가 있었다. 이 지하수로도 비록 단순하기는 하지만 미로나 다름이 없다. 지하수로가 바로 그 안쪽까지 연결되어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한참을 더듬어 나아가다가 몇 번을 확인한 끝에 그 갈라진 틈을 발견 할 수가 있었다. 그 지하수로 옆의 갈라진 벽틈을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움푹 패인 것 으로만 보일 뿐이었다. 하지만 허리까지 빠지는 물을 건너서 그 안으로 들어가면 사람이 하나 드나들 만큼의 통로가 입을 벌리고 있었다. 이것은 물론 천연적으로 이렇게 된 것이다. 화검상은 그 통로의 안쪽으로 들어간 다음에 아직도 기억이 모호하여 다시 한번 확인할 생각으로 고개를 밖으로 내밀어 주위를 살피며 화섭 자를 켜려고 했다. 한데 바로 그때였다. 갑자기 그가 들어온 지하수로 쪽에서 환한 불빛이 나타나 이쪽으로 빠 르게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화검상은 그만 깜짝 놀라 화섭자를 다시 품속에 집어넣고 말았다. 횃불을 하나 들고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사람은 바로 다름아닌 방귀 춘이었다. 횃불을 높이 쳐들고 있었기 때문에 어둠 속에서 그의 모습이 환히 드 러났고 화검상은 그의 표정까지도 자세히 살필 수가 있었다. 그는 대단히 분노하고 낭패를 당한 듯 두 눈에 살광(殺光)을 번뜩이며 오만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화검상은 그를 보자 대번에 간담이 다 떨어져나가는 것 같았다. 그는 또 어떻게 화검상이 이쪽으로 온 것을 알고 추적해온 것일까? 기실 방귀춘이 그 미로에서 안쪽의 그 위치까지 들어가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비단 미로도 복잡할 뿐만 아니라 그 안쪽으로 들어가는 길은 이곳보다 더 찾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낙안봉에는 그런 미로가 많이 있기 때문에 방귀춘은 아마도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고 되돌아온 모양이었다. 화검상이 가슴을 조이는 사이에 방귀춘은 그를 지나쳐 안쪽으로 사라 졌고, 뒤이어 그가 천리전성(千里傳聲)의 수법으로 말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화사질! 나를 이렇게 놀리면 못 써! 화사질이 만일 따로 개인적인 시간을 갖고 싶다면 그야 말릴 내가 아니지. 하지만 일부러 나를 따돌 릴 필요는 없는 일이 아니겠어?” 천리전성의 목소리가 사방으로 울리고 있는데 방귀춘은 벌써 화검상의 눈앞까지 되돌아왔다. 그는 매섭게 연신 주위를 살피면서 계속 천리전성의 수법으로 말했다. “좋아, 화사질이 시끄러운 것을 싫어한다면 나도 방해하고 싶은 생각 은 없어. 그럼 나는 이만 돌아갈 테니까 반드시 아침까지는 숙소로 돌 아와야 하네. 알겠나, 화사질?” 방귀춘의 신법은 매우 빨라서 마치 물위를 밟고 나아가는 것 같은 모 습이었다. 그는 말이 끝날 때 벌써 지하수도의 바깥쪽으로 나가버린 것 같았다. 화검상은 그제서야 다소 안심을 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방귀춘과 같은 사람을 볼 때, 확실히 화산파가 무림에서 제법 높은 위 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당연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TO BE CONTINUE.... <<무림 YAG 야그>> ━━━━━━━━━━━━━━━━━━━━━━━━━━━━━━━ 야그 출력일 :: 98/10/16 ───────────────────────────────────── 제 목 : [화산문하] 1 부 1 권 제 10 장 수염을 당겨라 제 10 장 수염을 당겨라 화검상은 본격적으로 안으로 진입하기 위해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데 그가 마악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문득 뒤쪽에서 무슨 이상한 소리 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그냥 물 흘러가는 소리 같기도 했고, 혹은 무엇인가 떨어져 내리는 소리 같기도 했다. 화검상은 궁금해서 다시 수로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았다. 그 소리를 내는 물체는 어딘가 눈에 익은 듯하면서도 제법 컸으며 어 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다. 마침 그 물체가 다가오고 있으므로 화검상은 시력을 집중해서 보았다. 이런 어둠 속이라고 해도 공력을 집중하면 시력도 증대되는 것이다. 한데 사오 장까지 다가온 그 물체를 보니 다름아닌 바로 방귀춘이 아 닌가? 화검상은 그만 놀라서 심장이 다 내려앉는 것 같았다. 황급히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으나 도저히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었 다. 방귀춘과 같은 자는 청각도 대단히 예민해서 이런 상황이라면 인기척 을 감지해낼 수도 있는 일이었다. 방귀춘은 비록 말로는 떠난다고 했지만 사실은 이렇게 돌아와서 다시 수색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지형을 거의 익혔는지 그는 손에 횃불도 들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 넓은 수로의 미로를 다 돌아야 하고, 또한 그 사이에 화검상이 다른 곳으로 가버리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역시 세밀하게 살필 수는 없었다. 화검상이 바로 앞에 있는 것도 모르고 그는 그저 한두 번 바라보고는 지나쳤으며 이내 안쪽으로 바삐 사라지고 말았다. 화검상은 그가 사라지자 이제는 더 이상 지체할 수가 없었다. 그는 약간의 기척이 나는 것도 불사하고 황급히 안쪽으로 내닫기 시작 했다. 그 통로는 천연적인 것이라 매우 구불구불하고 튀어나온 것도 많아서 화검상은 의복이 여기저기 찢어지고 살갗도 멍이 들거나 긁히는 것을 감수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십여 장 정도 나아갔을 때 다시 그 수로 쪽에서 예의 그 천리 전성이 들려왔다. “내 잠깐 자네에게 알려줄 말이 있어서 돌아왔네. 자네의 모친이 말 이야..., 갑자기 자네와 상의해야 할 일이 생겼다고 하더군. 그것은 아 주 중요하고 시급한 일이라고 하니 어서 나와서 나의 얘기를 듣게.” ‘어머니가...? 아니야, 어머니는 무슨 일이 있으면 여사매를 보내지 저 런 자를 통하지는 않을 거야. 그리고 어머니는 결코 나와 어떤 일을 상의하는 분도 아니시지.’ 화검상은 그 거짓말에 유혹당하지 않기 위해 눈살을 찌푸리며 마음을 바로잡았다. 방귀춘의 천리전성은 멀었다가 가까워지고 가까웠다가 다시 멀어지곤 했다. 화검상은 그가 계속 이곳을 수색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서 둘러 앞으로 향했다. 좀더 앞으로 나아가니 작은 미로와 같은 동굴들이 나타났다. 화검상은 화섭자로 불을 켤 수도 없어서 생각한 후에 그 중의 한 동굴 로 들어섰다. 그리고 구불구불한 길을 십여 장 정도 동굴을 따라 나아가다가 돌연 몸을 솟구치며 위쪽의 움푹 들어간 자리로 들어갔다. 그 부분은 아마도 그의 조부가 약간의 수단을 부려 만들어놓은 모양이 었다. 그쪽의 벽을 그냥 밀면 끄떡도 하지 않지만 위쪽의 돌출된 부분을 밀 고 이어 아래쪽을 밀면 그것은 벽이 아니라 하나의 문이 된다. 화검상은 얼른 그 안으로 들어가서 문을 닫아버렸다. 방귀춘의 천리전성은 그 뒤로도 계속 간헐적으로 들려왔으나 이내 멀 어져 들리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화검상은 아직도 안심이 되지 않아서 서둘러 나아갔다. 그 동굴은 위쪽으로만 향하게 되어 있었다. 한참을 오르다 보니 드디어 그 우측으로 꺾어지는 부분이 느껴졌다. 그는 손으로 모양을 더듬어서 손으로 좌측 벽을 밀었다. 좌측 벽은 간단히 열렸다. 그것도 일종의 벽으로 위장한 돌문인 것이다. 화검상은 안으로 들어가는 즉시 그 문을 닫고 안에서 단단하게 잠가버 렸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아도 이 정도면 더 이상 그를 추적하지 못할 것이 다. 하지만 화검상은 너무나도 놀랐기 때문에 도무지 확신을 할 수가 없어 서 여전히 서둘렀다. 그 내부는 바로 하나의 제법 넓은 방과도 같은 동굴이었다. 화검상은 옆으로 해서 들어온 것이고 정면으로 나가면 그 방귀춘이 들 어갔던 미로와 접하게 된다. 그 동굴은 비록 폭이 넓고 높으나 길이는 길지 않았다. 그 안쪽에 문턱과 같은 것이 있고 그 문턱의 안에는 작은 방과도 같은 공간이 있었는데, 그의 조부는 바로 그곳을 두고 그럴싸하다고 했던 것이다. 이곳의 위치가 무덤으로 좋은지는 화검상으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어딘가 따뜻한 느낌이 들고 퀴퀴한 기분이 드는 것이 무덤으로 여겨질 만하다고도 생각되었다. 당시 이곳에 왔을 때 화검상은 왠지 으시시한 느낌이 들기도 하여 다 시 오고 싶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제 이곳에 와보니 문득 과거의 정이 되살아나 어딘가 푸근한 정감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화검상은 이제는 화섭자를 켜서 주위를 살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야만 목적했던 선물과 수염이라는 것에 대해서 알게 될 것이기 때 문이었다. 화검상은 화섭자를 밝히기에 앞서 그래도 망설였다. 그 선물이라는 말은 아마도 당시 조부가 위급한 상황을 맞이하여 특별 히 화검상에게 무엇인가 전하려고 했고, 그것을 위장하기 위해 선물이 라는 표현을 쓴 것 같았다. 생각해보면 역시 그의 장검에 종이를 넣은 것은 그가 조부가 돌아가시 기 직전에 부모와 강호유람을 떠나 화산파에 없을 때 그랬던 것 같았 다. 당시 그는 그 장검을 가져가려 했으나 볼품이 없다는 이유로 선친이 다른 것을 가져가라고 권했기 때문에 두고 갔던 것으로 기억되었다. 그렇게 본다면 당시의 상황과 시기는 그의 추리와 기묘하게 맞아 떨어 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화검상은 일단 그렇게 선물이라는 말에 대해서 생각을 정리한 다음에 드디어 수염이라는 말에 대해서 알아보기 위해 화섭자로 불을 밝혔다. 대체 어떤 곳에 무슨 수염과 같은 것이 있다고 당기라는 말인가? 내부에 불이 밝혀지자 모든 것들이 훤히 드러났다. 옛날의 기억에 비해 달라진 것이 있는 것 같기도 했고 혹은 그렇지 않 은 것 같기도 했다. 이런 곳에 수염 따위가 있을 리가 없다. 그런데 문득 화검상은 천장을 바라보다가 가볍게 놀라며 탄성을 발하 고 말았다. 그 작은 방으로 건너가는 문턱의 위에 마치 발을 드리운 듯이 종유석 들이 흡사 고드름처럼 나란히 매달려 있는 기묘한 모양이 눈에 들어왔 기 때문이었다. 당시에도 당연히 그 이상한 종유석들을 보고 조손간에 대화가 있었다. -아, 이건 마치 이빨 위에 수염이 달려 있는 것 같네요? -그렇구나. 너는 그 수염마저도 뽑고 싶으냐? -왜, 그럼 안 되나요? -안 될 것은 없지만, 그러나 쉽지 않을 텐데? -그럼 잡아서 비틀죠 뭐. 기억이 그렇게 분명한 것은 아니지만 아마도 그런 흐름의 대화였을 것 같은 흐름이 뇌리에 스치듯 지나갔다. ‘바로 저것이로구나!’ 세월이 그 동안 너무 많이 흘러서 화검상은 이곳에 와서야 그 수염의 정체를 간신히 기억해내게 된 것이다. 화검상은 그런 분명한 판단이 서자 즉시 화섭자를 든 채 천장으로 솟 구쳐올랐다. 종유석들의 숫자는 제법 많았지만 그것들을 하나씩 당겨보는 것은 어 렵지 않았다. 그러나 역시 모두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는 이번에는 하나씩 잡고 돌려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문득 그 가운데의 하나가 뻑뻑하게 돌아가며 기관이 작동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그긍-! 하는 소음과 함께 바깥쪽의 벽면 하나가 먼지를 일으키며 밀 려나고 그 자리에는 하나의 또 다른 작은 방이 드러났다. ‘틀림없구나! 틀림없이 할아버지의 유물을 찾게 되었구나!’ 화검상은 일순 너무나도 기뻐서 손의 화섭자가 꺼져가는 것도 몰랐다. 주위가 다시 어두워지자, 그는 얼른 그 방안으로 들어가며 다시 불을 밝혔다. 방안에는 돌침상과 돌탁자가 각기 하나씩 있고 돌탁자에는 여러가지 물건들이 먼지로 뒤덮인 채 놓여 있었다. 화검상은 즉시 문을 다시 닫고 나서 우선 한쪽에 놓여 있는 오래된 서 찰을 들고 읽기 시작했다. 과연 아니나다를까? 그 서찰의 필체는 장검에서 나온 종이 위의 필체와 동일했다. 상(傷)아, 갑자기 조금 놀랐겠지? 이 할애비는 앞날이 촉망되던 네가 그렇게 된 이후 속으로 고민을 해왔단다. 하지만 너에 대한 기대를 아 직 버리지는 않았지. 그래서 온갖 방법을 강구해보다가 네가 그렇게 생각이 혼란스러워진 것은 진원지기(眞元之氣)가 허(虛)해져서 그렇다 고 결론을 내렸다. 따라서 만년옥장(萬年玉漿)이란 것을 구해보았다. 그것은 진원지기를 보완하고 네가 다시 정상적으로 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상아, 이 할애비는 네가 다시 이전의 재능을 발휘해서 모든 사 람들을 놀라게 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직접 네게 전해주고 싶 었지만 나는 갑자기 일이 생겨 밖에 나가야 하기에 네 장검 속에 글을 남겨놓았다. 이 할애비가 돌아왔을 때 너의 좋아진 모습을 보고 싶구 나. 나를 한번 더 놀라게 해다오. 여기에 만년옥장 이외에도 생각난 김 에 몇 가지의 물건들을 더 갖다 놓았다. 이제부터 그것들은 모두 다 너의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너와 이 할애비만의 비밀이니 다른 사람들에게는 말하지말아라. 무슨 과거 사건의 단서를 말해주는 중요한 내용인 줄로 기대했었는데 알고 보니 엉뚱하게도 선물이란 말은 정말로 선물을 의미하는 것이다. 화검상은 처음에는 다소 어리둥절해 하고 실망하기도 했지만, 이내 과 거 조부가 그에게 대해주었던 다정함에 젖어들면서 문득 눈물이 글썽 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 서신의 내용을 보면 조부는 당시 외부로 나갔다가 변을 당 했을 가능성이 많다. 게다가 진원지기가 허해져서 그럴 것이라는 조부의 판단도 틀린 것이 었다. 하나 화검상이 어찌 그 다정한 선물을 받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비록 간단하게 적혀 있기는 하지만 그 만년옥장(萬年玉漿)이라는 것은 도가의 희세기보로서 정말로 귀중할 뿐만 아니라 구하기가 무척 어려 운 것이다. 전설에 의하면 만년옥정(萬年玉晶)의 정수가 고여서 그렇게 된 것이라 고 하니, 그의 조부는 그것을 구하기 위해 정말 고생깨나 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해도 저는 할아버지를 미워하지는 않습니다. 할아버지는 제게 정말 잘 대해주셨죠. 하지만 저도 지금은 할아버지의 편이 되어드릴 수가 없군요...’ 그렇게 잘 대해주던 조부의 시신이 벌판에서 들개들의 먹이로 나뒹굴 던 것을 상기하니 화검상의 가슴은 문득 미어지는 것 같았다. 비록 과거의 일을 자세하게 알 수 있는 기대가 허망하게 무너지긴 했 지만, 그러나 어쨌든 여기에서 조부를 다시 뵈었으니 헛걸음을 한 것 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화검상은 서찰을 내려놓고 다른 물건들을 살폈다. 그 외의 물건들은 모두 다섯 개였는데 각기 설명을 해놓은 꼬리표가 붙어 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길쭉한 장검(長劍)이다. 먼지를 털어내고 검집에서 뽑아보니, 검신이 구리로 만들어진 듯 누렇 고 검날이 없으며 장생지존(長生至尊)이라는 글씨가 전자체로 음각되 어 있었다. 이 장검은 내력(來歷)이 있는 것이다. 화검상의 증조부는 화몽추(華夢秋)란 사람으로 멸망한 동방(東方) 왕 족(王族)의 후예라고 하는데, 이 장검을 가지고 중원으로 흘러들어와 화산파에 입문(入門)하게 되었다고 했다. 지금은 그 화몽추에 대한 평판도 몹시 나쁘지만, 그러나 화검상은 그 의 증조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그 장생검(長生劍)을 귀중하게 보관했 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꼬리표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혀 있었다. ━━━━━━━━━━━━━━━━━━━━━━━━━━━━━━━ TO BE CONTINUE.... <<무림 YAG 야그>> ━━━━━━━━━━━━━━━━━━━━━━━━━━━━━━━ 황이 야그 출력일 :: 98/10/16 ───────────────────────────────────── 제 목 : [화산문하] 1 부 1 권 제 10 장 - 1 네가 스스로를 비관하여 그런 쓸모없는 고철장검을 선택했을 때 이 할 애비의 마음은 아팠단다. 내가 보기에 너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앞으 로는 그 고철장검은 버리고 대신 이 장생보검(長生寶劍)을 네가 보관 하도록 해라. 이것은 너에 대한 이 할애비의 믿음이다. ‘나는 아직 능력이 부족하고 세상의 평판은 우리 가문을 죄인으로 취 급하고 있다. 어째서 할아버지는 내게 이런 많은 부담을 주시는 걸 까?’ 화검상은 장검을 검집에 넣어 내려놓은 다음에 이번엔 작은 주머니 같 은 것을 집어들었다. 주머니를 열어보니 거기에는 거의 백 개에 달하는 명주(明珠)가 가득 하게 들어 있었다. 이 명주들은 하나같이 흠이 없고 광채가 밝아서 각기 황금 열 냥 정도 의 가치가 있는 최고품들임을 알 수 있었다. 꼬리표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혀 있었다. 만년옥장을 구하는 도중에 우연히 이것을 얻게 되었다. 이것을 네가 갖고 사용하도록 해라. 사내대장부는 호쾌한 기상이 있어야 하는 것이 다. 너는 다만 기질이 너무 소심해 보이는 것이 탈이다. 그래서 진원지 기도 허해지게 되었을 것이다. 이것을 가지고 강호에 나가면 한번 호 쾌하게 써보도록 해라. 때로는 손해도 보고 실수도 너그럽게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면 네 성격도 조금 바뀌게 될 것이다. ‘호쾌한 기상이라? 하지만 그러기엔 할아버지는 너무 많이 신경 써주 셨고 또한 너무 많은 금액이로구나.’ 그 외에는 세 개의 옥병들이 있었는데 그 중 가장 큰 것을 열어 보았 다. 그것은 음식 대용으로 사용하는 벽곡단이라는 것이었다. 모두 스무 알 정도가 들어 있었는데 하루에 한 알을 사용하는 것이다. 만년옥장을 밖으로 가지고 나간다면 문제가 생길 것이니, 너는 이곳에 온 김에 그냥 여기에서 그것을 복용하고 수련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 다. 다시 말하지만 이 일은 본파(本派)의 사람들에게도 들키면 곤란한 것이다. 두번째 옥병에 들어 있는 것은 화검상도 드물게 본 화산파의 신단(神 丹)인 자하신단(紫霞神丹)이었다. 누런 금박으로 입혀진 것이 세 알이나 들어 있었는데, 그것은 각기 일 갑자의 공력을 증진시켜줄 수 있는 것들이다. 만년옥장을 모두 복용하고도 부족하다면 이것을 한번 써보도록 해라. 하지만 주의해야 한다. 공력이 안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복용하면 큰 화를 입을 수가 있으니 가능하면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만일 하 나를 사용했다면 나머지 두 개는 강호에 나가서 위급할 때 사용하도록 해라. 그의 조부는 필시 화검상이 강호에 나갔을 때 이 글을 남겼을 것이다. 그렇다면 조부는 아마도 화검상을 다시 한번 더 강호에 내보낼 생각이 있었던 모양이다. 마지막 옥병은 매우 작아서 앙증맞게 느껴질 뿐만 아니라 재질도 매우 귀한 것 같았다. 꼬리표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혀 있었다. 이것은 바로 만년옥장이다. 모두 세 방울이 될 것이다. 이것은 다른 것 들과는 달리 진원지기, 즉 선천(先天)의 기운을 함유하고 있어서 때가 아닌 때에 복용한다고 해도 몸을 해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 한 방울이면 능히 삼 갑자(三甲子)의 공력을 얻을 수가 있다고 하니, 너는 조심해서 복용하도록 해라. 혹시 너를 해치게 될지도 모른다. 내 기(內氣)를 안정시키고 마음을 평안히 한 후에 우선 한 방울을 복용하 고, 그것으로 충분하다면 나머지 두 방울은 이곳에 그냥 두도록 해라. 너의 행운을 빈다. 화천괴는 다시 화검상을 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 글을 남긴 것 같았지만, 그러나 그것이 마지막 선물이 될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확실히 적혀 있는 그대로 이 만년옥장은 많이 복용해도 사람의 몸을 해치지 않는, 이른바 선천지기(先天之氣)가 함유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도가에서는 이것을 희세기보, 혹은 성약(聖藥)이라고까지 부르 는 것이다. 화검상도 아직 말로만 들었을 뿐 정말로 그것을 본 적은 없었다. 만일 그가 볼 수가 있었다면 희세기보라고 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뚜껑을 열자 그 속이 금박으로 봉인되어 있었는데, 그 금박마저 벗겨 내자 들어 있는 내용물이 눈에 들어왔다. 푸르고 누런 빛이었는데 향기는 없었고 흡사 꿀 같은 액체가 은은한 광채를 발하고 있었다. 화검상은 그것의 뚜껑을 닫고 잠시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이것들을 두고 간다면 다시 찾아오기 어려울 것이고, 또한 갖고 나 가기도 어렵다. 그럼 지금 복용해야 할까?’ 사실 화검상으로서는 지금 해야 할 일에 비해 무공이 턱없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것을 지금 복용한다고 해도 당장 공력이 급증하지는 않겠지만, 그러 나 안전한 것이라면 일단은 몸 속에 집어넣고 다니며 공력을 증가시키 는 것이 낫지 않을까? 이것이 계기가 되어 그의 능력이 증대되고 상황이 좋은 쪽으로 반전될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긴 화검상의 지금 상황으로서는 상황을 호전시킬 수만 있다면 그 어 떤 모험이라도 해야 할 처지이기도 했다. 곡선적인 무공을 체득했기에 과거의 그와 같은 병을 치료할 필요는 없 고, 오히려 그러하기 때문에 운공은 좀더 안전할 것이다. 화검상은 많은 심사숙고를 한 끝에 지금 그 만년옥장을 모두 복용하기 로 했다. 그는 먼저 자하신단을 하나 복용하여 내력을 증강시킨 다음에 복용할 까도 생각해보았으나, 그것은 하책이고 또한 그다지 필요한 것 같지도 않았다. 만년옥장의 성분은 선천지기이기 때문에 체내에 들어가면 함부로 일어 나지 않고 그저 잠재하게 된다. 그 사람이 어느 경지에 도달하여 내기(內氣)가 맑아지면 그때에 능력 만큼의 기운을 흡수할 수 있으며, 게다가 처음에 만일 운행이 잘못되 기라도 하여 내기가 혼란스러워지면 그 일어났던 기운은 다시 본래의 근원으로 되돌아가버리고 마는 것이다. 적절하게 일어나기 때문에 주화입마의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것이 바로 이 만년옥장이었다. 화검상은 우선 한 방울만 복용하는 것도 생각해보았으나, 일단 이곳에 남겨둘 수도, 가지고 나갈 수도 없는 일이기 때문에 한꺼번에 모두 복 용해버리기로 했다. 이런 경우는 몸 속에 보관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인 것이다. 시기적으로 볼 때도 지금이 운공하기에 적절한 상황이기도 했다. 그가 가검통을 제압하고 달아나 행방을 감춘 일에 대해서는 나중에 수 단을 강구하여 장문인 등에게 해명하면 될 것이다. 게다가 시간이 지났어도 방귀춘의 기척이 없는 것을 보니, 그는 아마 도 이곳을 전혀 발견하지 못한 모양이므로 안심하고 운공할 수가 있는 것이다. 화검상은 잠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자리를 정한 다음에 그 만년옥장 세 방울을 모두 깨끗이 복용했다. 그것의 맛은 물 같고 향기는 없는데 꿀같이 끈끈하고 뱃속으로 들어가 자 청량한 기운이 전신으로 퍼져나가 가득 차는 것 같았다. 마침 화검상은 속이 텅텅 비어 있어서 그 액체는 흡수가 빨랐다. 화검상은 화섭자를 꺼버린 다음에 드디어 운기행공(運氣行功)에 들어 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때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그는 당연히 만년옥장의 기운이 조금씩 서서히 발동할 것이라고 생각 했는데, 느닷없이 운기에 들어가자마자 전신에서 그 기운들이 한꺼번 에 일어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화검상은 이에 당황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과거에 워낙 주화입마의 고통과 공포를 많이 경험했던 그였기 때문에 놀라움은 더 컸다. ‘아니 그럼 이게 만년옥장이 아닌 다른 것이란 말인가?’ 그가 당황하여 운공을 중단하자 그 밀물같이 일어나던 기운들은 이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도로 가라앉아버렸다. 화검상은 어둠 속에서 잠시 생각에 빠졌다. 그는 감히 조부의 말을 의심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게다가 운공을 중단하자 그 기운들이 도로 가라앉는 다는 것은 선천지 기라는 의미에 걸맞는 것이었다. 만일 그것이 선천지기가 아닐 경우, 불안정한 기질로 인해 그 자리에 부유하거나 다른 쪽으로 흐르게 되는데, 그것을 제어하지 못한다면 혼 란에 빠지게 되고 나중에는 주화입마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화검상은 주화입마의 가능성은 적어졌지만 그러나 갑자기 일어나는 기 운들은 매우 부담스러워서 일단 정체를 알지 않고는 운공을 진행시킬 수가 없었다. 대체 갑자기 그렇게 많은 양의 기운이 한꺼번에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 일까? 화검상은 일단 가만히 내기를 주시하면서 운기를 진행시켜보았다. 기운들이 다시 전신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는데, 그가 아는 한 그것들은 선천지기의 분명한 성질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것이 만년옥장임에는 틀림이 없다는 결론이다. 그럼 대체 갑자기 이상현상이 벌어지는 데는 무슨 원인이 있는 것일 까? 꾸준히 내기의 흐름을 주시해본 결과, 그것은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화검상은 발견했다. 지금 그의 곡선적인 내공은 마치 허기가 져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은 그가 이미 십수년 간이나 무의식중에 그것을 운기해오면서 공 력은 거의 증가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비록 그것을 사용하는 데는 아직 미숙하지만, 무의식적인 그 내 공의 흐름은 연마될 대로 연마되어 더욱 많은 공력을 요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바로 의식과 무의식의 부조화에서 생겨난 기현상이다. 사실 그가 처음부터 곡선적인 내공을 의식적으로 연마하여 십수년이나 지났다면 무공이 결코 지금과 같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아홉 살에 공력이 벌써 일 갑자에 달했었으니, 직선적인 내공이 순조롭게 닦였다고 해도 최소한 사 갑자의 내공은 갖게 되었을 것이 다. 공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그 경지에 걸맞는 변화(變化)의 능력이 필요 하다. 만일 이 갑자의 공력을 갖고 싶다면 그만큼의 공력을 다룰 수 있는 변 화의 능력이 요구되는 것이다. 일반제자들은 그 능력을 무공절기를 연마하거나 내공을 운행하여 터득 해간다. 그러나 화검상의 내공은 이미 그러한 변화의 능력이 연마될 대로 연마 되어 많은 기운을 보자 그 능력이 한꺼번에 일어난 것이다. 게다가 지금 그의 내공은 곡선적이다. 그것은 자체로 살아 있다고 해야 할 만큼 각기 변화를 증폭해가는 성 질이 있어서 직선적 내공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곡선적인 내공은 가장 안정되고 충실한 무공이기 때문에 위험이 거의 없고, 직선적인 내공과는 달리 많은 양의 공력을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으며 당연히 그 진척도 훨씬 빠른 것이다. ‘본래 이런 것들은 미리 알고 있었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으니 놀랐던 것이로군. 나의 내공은 곡선적이니 직선적인 내공들 과 같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 모든 의문을 제거하고 나자 화검상은 드디어 입가에 다소 미소를 떠올 렸다. 그 정체를 알고 나면 두려움이나 위험성은 적어지는 법이다. 그는 다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운기행공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다시 전신의 기운이 크게 일어나며 마치 뜨거운 불길 속에 휩싸이는 듯한 감각이 들기 시작했다. 화검상은 이번에는 당황하지 않고 진기를 소주천의 운행경로로 돌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진기의 양이 너무 많아져서 그 소주천의 경로로는 도저히 당해낼 수가 없었다. 이에 화검상은 자연스럽게 진기를 대주천(大周天)의 타통으로 유도했 다. 곡선적인 내공은 본래 안정되어 있는 데다가 거기에 강력한 진기의 양 이 더해지자 대주천의 경로들은 그야말로 쉽게 일사천리로 뚫리기 시 작했다. 이것은 이미 화검상의 체내에 적어도 일 갑자 이상의 진기가 증가되어 활약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직선적인 내공의 경우 이러한 혼란된 상황에서 다른 경지로의 진입을 시도한다는 것은 대단한 무리이며 모험이고, 자살행위나 다름이 없다. 그러나 화검상의 곡선적인 내공은 그 기초가 거의 완전하고 튼튼하여 그러한 상황에 크게 영향을 받지는 않았다. 비록 경지가 높아지는 데 걸리는 시간이나 공력의 양은 많을지라도 모 든 변화를 모두 알고 나아가는 곡선적 내공은 바로 그러한 이점이 있 었다. 드디어 삽시간에 대주천이 완전히 타통되고 나자, 어두워서 비록 보이 지는 않지만 그의 코에서 점차 아지랑이와 같은 기운이 흘러나와 짙어 지며 호흡에 따라 오르락내리락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그의 내공이 이제 일류(一流)의 경지에 접어들었다는 증 거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함에도 쏟아져나오는 진기의 양은 별로 줄어들지 않아서 온갖 경로들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기실 그것은 화검상도 미리 예측하고 있었다. 직선적인 내공의 경우, 잘 단련되었다면 일 갑자나 이 갑자 정도의 진 기를 일으킬 수가 있을 것이다 곡선적인 내공의 경우는 잘 단련되었다면 그보다 훨씬 많은 삼 갑자의 정도의 진기를 일으킬 수 있다. ━━━━━━━━━━━━━━━━━━━━━━━━━━━━━━━ TO BE CONTINUE.... <<무림 YAG 야그>> ━━━━━━━━━━━━━━━━━━━━━━━━━━━━━━━ 야그 출력일 :: 98/10/16 ───────────────────────────────────── 제 목 : [화산문하] 1 부 1 권 제 10 장 - 2 그것은 그만큼 처리할 능력과 변화가 있기 때문인데, 바로 이 부분이 화검상이 조금 전에 착각을 일으켰던 점이었다. 그는 아직 곡선적인 내공에 익숙하지 못하여 그 모습을 잘 알지는 못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화검상의 내공은 이전에 공력의 증가가 없어서 지나칠 정도로 영민해져 있었다. 그것은 의식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무공의 수준과는 또 다른 내용인 것이다. 그래서 이른바 허기졌다는 것이고, 대체 얼마만큼의 진기를 일 으킬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것이다. 화검상은 그래도 전신이 답답하게 되자 계속 그 진기를 타통된 대주천 의 경로를 따라 돌리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서 그의 코로 흘러나오는 아지랑이 같은 기운은 점차 짙어져 서 흡사 안개같이 변했다. 그 안개, 혹은 구름 같은 기운은 폭넓게 그의 주위를 에워싸기 시작했 는데, 그것은 바로 그의 내공이 곡선적이라는 또 다른 증거이다. 아무리 곡선적인 내공이라고 해도 무리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기실 무리를 한다면 직선적인 내공으로 변하는 것이고 곡선적인 취지 에도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비록 답답한 느낌이 계속되기는 했지만 화검상은 자연스럽고 느릿하게 운기행공을 계속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속도도 조금씩 빨라지기 시작했다. 그와 같은 모습은 다음의 경지인 대주천의 융통을 향해 나아가는 폭넓 은 변화의 움직임이다. 본래 특히 곡선적 내공의 경우, 하루아침에 경지를 몇 단계나 뛰어 넘 는다는 일은 없다. 그것은 공력에 관계없이 그와 같은 변화에 대해 모두 섭렵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화검상은 공력보다도 훨씬 그 변화에 대한 이해도가 몇 단계나 앞서 있었다. 그의 능력은 다른 경지로 충분히 나아갈 수가 있는데 공력이 부족하 다. 그것은 바로 허기졌다는 의미로 말하는 것이다. 하나 그렇다고 해도 아무래도 이론과 실제는 조금 차이를 보이게 되는 것이다. 어쨌든 생각해왔던 것들도 모두 실행을 해봐야 하기에 화검상은 참고 묵묵히 운기행공을 계속하는 수밖에 없었다. 본래 그런 상태로 장시간에 걸쳐 운기행공을 계속한다는 것은 고행이 나 다를 바가 없지만 곡선적인 내공은 또한 그런 버티는 힘을 길러주 기에 가능한 것이다. 화검상은 중간에 체력이 다소 떨어지고 배가 많이 고파지면 벽곡단을 한 알 복용했다. 그가 벽곡단을 네 알 복용하고 이어 다시 배가 고파올 무렵에 그는 문 득 전신에서 이상한 징후를 느끼기 시작했다. 드디어 다음 단계로 상달(上達)할 조짐이 보이는 것이다. 갑자기 엷어져가던 전신의 수십 개의 현관(玄關)들이 하나씩 가볍게 터져나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대단한 작업이 아니라 평소에 늘상 해왔던 운기행공처럼 평범 해 보였다. 그것은 이 곡선적인 내공은 서서히 원만하게 진행되어 마치 꽃이 개화 하여 꽃망울을 터뜨리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자연스러움만 있을 뿐 무리함이란 없다. 대주천의 타통시 약간 거친 모습을 보였던 것은 이미 익을 대로 익어 서 그런 변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곡선적 내공에는 무리함이 없기 때문에 어떤 관문을 돌파하 는 위험도 있을 수가 없다. 갑자기 수십 개의 현관이 하나씩 터져나가자 화검상은 전신이 그야말 로 시원하고 쾌적해지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대주천반운이 융통된다는 것은 전신의 기운들을 하나로 연결하는 넓고 시원스런 길이 열리는 것과 같기 때문에 편안해지지 않을 수가 없었 다. 그것이 바로 상승내공(上昇內功)이요, 절정경지(絶頂境地)인 것이다. 게다가 자연스럽고 완전하게 이루어지는 그 길은, 무리하게 열리는 직 선적인 내공의 경우와는 달리 훨씬 폭넓고 완전하여 훨씬 더 많은 내 공을 포용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일단 현관들이 터져나가자 거기에 관련된 모든 현관들은 조금도 버틸 수가 없어서 이내 화검상은 곡선적인 절정경지(絶頂境地)의 내공을 달 성했다. 그것은 지금 그의 공력이 최소한 사 갑자 이상이라는 말이다. 겨우 일 갑자의 공력에서 허덕이던 이전과 비교하면 실로 엄청난 진전 이라고 아니할 수가 없었다. 이때 그의 전신의 기운은 하나로 융화관통(融和貫通)되었고 그 기질은 허(虛)해진 듯 느껴졌으며, 뭉쳐지고 끊어지는 일이 없이 원만하게 고 루 미치는 모양이 마치 수레바퀴와도 같았다. 코에서 흘러나오는 안개 기운도 더욱 짙게 그를 에워싸고 있었다. ━━━━━━━━━━━━━━━━━━━━━━━━━━━━━━━ TO BE CONTINUE.... <<무림 YAG 야그>> ━━━━━━━━━━━━━━━━━━━━━━━━━━━━━━━ 그 의 야그 출력일 :: 98/10/16 ───────────────────────────────────── 제 목 : [화산문하] 1 부 1 권 제 11 장 해명(解明) 제 11 장해명(解明) 그런데 그토록 넓고 시원스럽게 느껴졌던 대주천반운의 경로도 이내 전신에서 흘러나온 기운들로 가득하게 채워지는 것이었다. 화검상은 그만 어리둥절해질 지경이었다. ‘대체 얼마나 많은 양의 공력이 증가된 것인지 모르겠군.’ 그렇게 가득 찬 기운을 그대로 둘 수는 없었다. 그는 벽곡단 한 알을 복용하고 이내 다시 운공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대주천반운이 융통되고 나면 이번에 하게 되는 일은 바로 백맥(百脈) 을 타통해가는 것으로, 그것은 생사현관(生死玄關)의 타통과 이어지게 한다. 만일 생사현관을 타통하고 천인합일(天人合一), 반박귀진(返撲歸眞), 백 맥(百脈)을 타통하게 되면 지기가 선천진기(先天眞氣)로 변하게 되는 데, 그것이 바로 최절정(最絶頂), 최상승(最上昇)의 내공이라고 하는 것 이다. 곡선적인 내공의 경우, 최상승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는 팔 갑자(八 甲子) 이상의 내공이 필요한데, 화검상은 자신의 공력이 아직 거기에 는 부족하다는 것을 도중에 알았다. 현재 그의 내공은 칠 갑자 정도였다. 그 칠 갑자의 내공은 단련되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더 이상 만년옥장 의 선천지기를 흡수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미 만년옥장의 약력을 삼분지 이나 흡수한 것이며, 공 력이 무려 일곱 배로 늘어나버린 것이니 그 어찌 놀랍지 않겠는가? 화검상 본인조차도 지금 스스로 자신의 경이적인 성취를 믿지 못할 정 도였다. 하지만 그런 갑작스런 변화는 그가 이전에 얻었어야 할 성취를 나중에 한꺼번에 얻었기 때문에 느껴지는 것이었다. 화검상은 지금의 공력과 능력으로는 다음 경지에 오르지 못한다는 것 을 알자, 그대로 진기를 십이주천(十二周天)하여 드디어 운기행공을 끝 냈다. 나중에 십이주천을 한 탓인지 답답한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으며, 이 미 몸은 날아갈 듯이 가벼워져 있었다. 안력(眼力)도 매우 좋아져서 주위의 사물들을 희미하게 분간할 수 있 게 되었으며, 두 눈에는 그저 부드럽고 맑은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바로 유실반허(由實返虛) 자진귀박(自眞歸樸)이다. 화검상은 바로 일어나서 무공초식을 연마해보려고 하였으나, 문득 한 숨을 내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섯 개의 벽곡단을 복용했으니 벌써 닷새는 흘렀을 것이다. 마냥 이곳에만 있을 수는 없다. 초식이나 신법(身法) 등은 이곳을 나가서도 충분히 몰래 연마할 수가 있을 것이다.’ 사실 이곳은 너무 어두워서 초식이나 신법 따위를 연마하기에 적당하 지 않았고, 게다가 너무 오래 지나면 장문인 등에게 해명하기 곤란해 지니 그런 점 때문에라도 지금은 나가야만 했다. 화검상은 마치 오래 정이라도 든 듯 어두운 주위를 둘러보다가 이윽고 화섭자를 켜고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조부에게서 받은 서찰이나 꼬리표 등은 남겨둘 필요가 없으니 모두 소 각시켰고, 만년옥장의 빈 병과 부러진 고철장검은 이곳에 두기로 했다. 만년옥장의 빈 병이야 말할 나위도 없지만 고철장검은 차라리 이곳에 두는 것이 더욱 마음에 남으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두 개의 새로 얻은 옥병과 보석주머니를 품속에 잘 갈무리하고 장생보 검을 손에 들자 이제 이곳을 떠날 준비가 되었다. 화검상은 뭔가 깊은 상념에 잠겼다가 이윽고 밖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 작은 밀실의 문은 다시 닫아두고 주위를 다시 한번 검토해본 다음 에 그는 화섭자의 불빛에 의지하며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는 이번에는 미로 쪽으로 나가기로 했다. 나가는 길이라면 아무래도 그쪽이 안전하리라는 생각이었다. 게다가 그는 이곳 동굴에서의 일을 누구에게도 알릴 수가 없다는 생각 이 들었다. 그렇다면 그는 결코 이곳에서 화산파의 제자들에게 잡혀가게 되어서는 안 된다. 상황이 비정상적이고 어려운 입장이라면 그도 약간의 방법을 사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방법은 무엇일까? 화검상에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바로 모친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역시 그를 위해 나서줄 수 있는 사람은 모친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비록 그로서는 죄송스런 마음이지만 이번의 고비만 잘 넘기면 앞으로 는 그런 부탁을 드릴 일이 없게 될 것이다. 바깥쪽으로 곧장 나아가서 문을 열고 나가자 그는 동굴에 들어섰다. 그리고 통로를 따라 좀더 나아가다가 다시 석벽의 문을 열고 다른 동 굴로 들어섰고, 그 동굴의 아래쪽이 바로 미로와 같은 동굴들이었다. 화검상은 일단 화섭자의 불을 끈 다음에 석벽의 문을 열고 다음 통로 에 들어섰고, 그 통로에 따라 아래쪽의 미로에 들어섰다. 이 미로는 유명하여 일단 모르는 사람이 안으로 들어서면 평생 나가지 못할 수도 있다. 화검상은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수색하는 자들이 있을까봐 화섭자의 불을 끄기는 했지만 이곳은 그래 도 빛이 조금은 스며들고 있어서 동굴의 안쪽보다는 나았다. 이곳을 나가는 방법은 그의 조부가 표시해놓은 길을 따라 나아가는 것 이다. 그리고 그 무덤으로 가는 것보다 나가는 것이 더 쉬웠다. 화검상이 인기척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나아가는 사이에 어느새 주위가 더 밝아졌다. 드디어 입구에 가까이 온 것이다. 입구가 가까워지자 화검상은 더욱 마음이 긴장되었다. 이번의 일로 장문인 등이 그를 아예 파문축출(破門逐出)하려고 할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전날 그에게 당한 가검통은 이미 방귀춘이 보았으니 데려다가 치료를 했을 것이다. 완만하게 경사진 동굴로 지나가자 드디어 입구가 나타났다. 그 널찍한 석판은 치워져 있었고 눈부신 햇살이 쏟아져 들어와 그를 어지럽게 했다. ‘대낮인가?’ 화검상은 그 석판이 열려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극히 주위하여 밖의 인기척을 살피다가 가볍게 몸을 솟구쳐올렸다. 이것은 공력을 연마한 이후 그가 처음으로 펼치는 신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의 몸은 깃털과도 같이 가볍게 허공으로 떠올랐다. 화검상은 자신의 몸이 그 동굴의 천장까지 불쑥 치솟는 것을 보고 그 만 당황했다. 신법은 그의 기대 이상으로 잘 펼쳐지고 있었다. 그것은 비록 내공만 연마했어도 지난 며칠 동안 의식과 무의식이 많은 조화를 이루어 무공을 펼치는 데도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화검상은 당황하여 천장의 돌을 잡고 신형을 안정시켰다. 그러나 신법 의 운용이 자유로워서 거의 소음이 일지 않았다. 마치 그가 처음부터 그렇게 하려고 한 듯한 안정된 모습이었다. 화검상은 자신의 무공에 도취되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폭포수의 사이로 은빛의 뿌연 여명이 밀려들고 있었다. 그는 오랜만에 햇빛을 보게 되어 대낮인 줄 알았으나, 지금은 새벽인 것이다. 처음에는 심하게 눈이 부셨으나 이내 적응이 되었고 모든 시력이 정상 적으로 돌아갔다. 아니 그의 시력은 훨씬 좋아졌다. 동굴의 입구와 가까운 쪽에는 한 사람이 비스듬히 쓰러져 잠을 자고 있는 것 같았는데, 바로 다름아닌 가검통이었다. 화검상은 나오자마자 그를 다시 보게 되어 놀랐으나, 이제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생각하고 입가에 미소를 떠올렸다. 가검통은 오만상을 찌푸린 채였고 잠을 자면서도 허리에 차고 있는 검 자루를 꽉 잡고 있었다. 필시 화검상에 대한 원한이 골수에 맺힌 모양이었다. 화검상은 그러한 사실에 대해 별로 민감하게 반응하고 싶지는 않았다. 가검통은 피로에 지쳤는지 가끔 코도 골고 있었는데, 아마 화검상이 그것을 듣지 못한 것은 폭포수의 굉음이 너무나도 크기 때문일 것이 다. 과거 화검상은 그 소리 덕분에 방귀춘을 피할 수가 있었지만, 이제는 자신이 놀라고 만 것이다. 화검상은 굳이 가검통과 부딪칠 필요가 없으므로 그냥 소리없이 빠져 나가려고 했다. 신법을 일으키자 그의 신형은 바닥에 사뿐히 내려서서 흔적을 조금도 남기지 않고 미끄러지듯 나아갔다. 이것은 일류경지의 초상비(草上飛)의 경공보다 월등한 절정경지의 답 설무흔(踏雪無痕)이다. 그는 이류에서 갑자기 일류경지를 뛰어넘어 절정에 이르렀기 때문에 자신의 신법과 모든 무공의 변화에 놀라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직선적인 답설무흔의 경공과 곡선적인 답설무흔의 경공은 그 세밀함과 안정성, 변화에 있어서 훨씬 다른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의 공력은 이미 칠 갑자(七甲子)인데, 그런 경공이 다른 절정경지와 비슷하다면 엄청난 손해가 되지 않겠는가? 같은 답설무흔이라도 차이가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가검통은 잠을 자면서도 검자루를 쥐고 화검상을 노리는 듯했으나 화 검상이 멀쩡히 앞으로 지나가도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화검상은 일단 동굴을 나와서 아래쪽의 절벽에 몸을 붙였고 폭포수의 밖을 내다보았다. 여기에 가검통이 지키고 있으니 당연히 밖에도 지키는 사람이 있을 것 이라는 생각이었다. 과연 아니나다를까? 문득 밖에서 하나의 인영(人影)이 이쪽으로 달려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화검상은 일순 놀라서 신형을 뒤집었고, 몸을 옆으로 날리다가 허공에 서 한번 방향을 바꾸어 바위들 사이의 움푹한 곳에 몸을 숨겼다. 그는 당황한 나머지 무의식중에 그렇게 한 것이었으나 신법은 오히려 생각보다 더욱 잘되었다. 비록 다소 무리한 행동인 듯하지만 허공에서 방향을 전환한 그 수법은 그가 지금 생각해도 신기할 지경이었다. 이내 동굴의 앞으로 날아온 사람은 바로 다름아닌 방귀춘이었다. 며칠 못 본 사이에 그의 안색이 약간 초췌해진 것 같았다. 화검상은 다시 그를 보자 마치 귀신을 본 듯 크게 놀랐지만 이내 마음 을 진정시켰다. 이제는 왠지 그와 싸워도 될 것 같은 자신감이 체내에서 뭉클거리는 것이었다. 화검상이 적절히 몸을 숨긴 탓인지 방귀춘은 전혀 그를 발견하지 못했 으며 곧장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화검상은 그 안의 일이 궁금하기도 하여 즉시 청각을 그쪽으로 집중했 다. 이런 폭포수의 굉음 속에서도 그쪽의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면 그의 청각 역시 대단히 향상된 모양이었다. 방귀춘이 자고 있는 가검통의 따귀를 후려치며 호통을 지르는 것 같았 다. “이 빌어먹을 녀석아! 네 녀석이 여기서 자고 있으면 그 녀석이 그냥 달아날 게 아니냐?” 가검통의 다소 역정이 난 듯한 음성이 뒤를 이었다. “나도 무쇠는 아니라고요! 우라질, 열흘이나 지나도 안 나오는 것을 보면 필시 그 녀석이 이 안에는 없는 게 분명해요!” ‘열흘? 이미 열흘이나 지났다고?’ 화검상은 그 소리를 듣고 그만 황당해졌다. 그는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일 열흘이나 지났다면 이건 대단히 상황이 심각해질 수가 있는 것이 다. 그는 동굴 속에서 운기행공을 하며 벽곡단의 소모 개수로 날짜를 헤아 렸으나, 아마도 무아지경에 이른 때가 많아서 시일이 그렇게 흐른 모 양이었다. 그 뒤로도 두 사람의 말소리가 계속되는 듯했으나 화검상은 정신이 혼 란스러워져서 청각이 집중되지 않아 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그건 확인할 수가 있겠지.’ 화검상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즉시 다시 신형을 움직 이기 시작했다. 폭포수의 물기에 항상 젖어 있어서 이 절벽은 매우 미끄럽고 위험했으 나 그는 자신이 생각해도 신기할 정도로 쉽게 몸을 이동시킬 수가 있 었다. 폭포수의 옆으로 나와 슬쩍 앞쪽을 둘러보니 다행히도 앞에서 지키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주위를 살피며 빠르게 옆으로 이동하여 맞은편의 숲속으로 들어 갔다. 그곳에서 다시 확인해보니 방귀춘이 동굴을 나오는 기척은 아직 없었 다. 일단 탈출에 성공한 셈이다. 화검상은 가능하면 지형이 험하고 잘 눈에 띄지 않는 방향을 골라 빠 르게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의 신법은 이미 무섭게 증진되어 있었다. 그저 가볍게 도약해도 십여 장이나 솟구칠 수 있었고, 한번 지면을 박 차면 수십 장은 쉽게 나아갈 수가 있었다. 처음에 화검상은 너무나도 빨라진 몸놀림에 적응하지 못해서 현기증을 느낄 지경이었으나, 그래도 신법이 모든 변화를 갖추고 있어서 위험은 조금도 없었다. 게다가 그는 일 각 정도 신법을 펼치는 가운데 이미 그러한 속도감과 변화에 능숙해지기 시작했다. 지금 그가 있는 낙안봉은 화산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도중에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연화봉의 정상으로 올라가려면 아무래도 동쪽의 조양봉의 기슭을 타고 가야 할 것 같다. 이전과 같은 경우였다면 그런 험준한 산벽을 타고 가는 것은 위험한 방법이었으나 지금은 전혀 그런 정도가 위험이 되지 않았다. 화검상은 가능한 한 안전을 기하기 위해서 일부러 더욱 먼 조양봉의 동쪽 기슭을 타고 돌았으며 이윽고 연화봉의 북쪽 기슭을 통해 연화봉 의 위로 올라갈 수가 있었다. 그러는 동안에 더러 사람들을 만나기는 했으나 그는 요령껏 들키지 않 을 수가 있었고, 또한 신법의 연습을 많이 해본 결과가 되기도 했다. 그가 연화봉의 정상에 올랐을 때는 이미 태양이 하늘로 둥실 떠오르고 있었다. 이 연화봉의 아침의 풍경은 결코 조양봉의 일출광경에 못지않다. 오히려 옥녀지(玉女池)의 차가운 물에 찬란한 아침햇살이 비치니 더욱 우아한 장관을 이룬다고 해야 할 것이었다. 하지만 화검상은 미처 그런 우아한 운치를 즐길 입장이 못되었다. 어느새 이 상궁의 주위에는 제법 많은 화산파의 제자들이 매복하여 지 키고 있었던 것이다. 이 연화봉의 정상에는 은폐물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의 이목 을 속이고 안으로 들어가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화검상이 매복하고 있는 제자들을 쉽게 발견한 것은 그의 이목이 훨씬 좋아진 탓이기도 했지만, 지금 이 상황은 현재의 그의 그러한 능력으 로도 어려웠다. 한참 숨어서 궁리를 하던 끝에 화검상은 한 가지 술수를 쓰기로 했다. 비록 상궁에도 옛날에 쓰이던 비밀통로들이 없지는 않지만, 그가 알고 있는 길이라면 이미 모두 지키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강호상에서 흔히 쓰이는 수법이다. 화검상은 돌멩이를 하나 집어들고 가볍게 던져 가까운 곳에 있는 한 사람의 다리를 맞추었다. “어이쿠.” 멀쩡히 서 있던 그 사람이 갑자기 옆으로 벌렁 넘어가자 사람들의 시 선은 일제히 그쪽으로 집중되었다. “거 뭐야? 화가 녀석이 나타났나?” 사람들은 아직 화검상의 무공이 겨우 이류쯤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 다. 그것이 잘못이었다. 그들이 일제히 신법을 펼쳐서 폭넓게 그쪽으로 쇄도해들었지만, 그사 이에 화검상은 이미 우측으로 돌아 소리없이 상궁의 내부로 진입하고 있었다. 일단 상궁의 안으로 들어서기만 하면 은폐물이 많아서 들킬 염려는 적 어진다. 화검상은 일단 상궁의 안에 들어서자 여검월(余劍月)을 찾았다. 그녀부터 찾는 것이 모친을 뵙는 가장 손쉬운 길일 것이기 때문이었 다. 다행히도 여검월은 그 대전에서 손쉽게 찾을 수가 있었다. 그녀는 식사를 마치고 막 운기조식을 하고 났는지 다소 상기된 안색으 로 앉아 뭔가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었다. 화검상이 다가가자 그녀는 놀란 표정을 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화, 화사형!” 화검상은 미소하며 말했다. “그간 잘 있었느냐? 어머니께선 지금 계시겠지?” 화검상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던 그녀는 일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 했다. “예, 한데 대체 그 동안 어디에 계셨었죠? 여기에도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고 또..., 한데 여긴 어떻게 들어온 거죠?” 화검상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그런 말을 하고 있을 사이가 없다. 나를 어머니가 계신 곳으 로 빨리 데려다다오.” 여검월은 다시 화검상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런데... 화사형은 이번엔 정말로 많이 달라져 보여요.” ‘이전엔 가짜로 달라졌단 말인가?’ 여검월은 화검상이 재촉하는 태도를 보이자 발길을 옮기기 시작했다. 화검상은 그녀의 뒤를 따르며 다시 말했다. “여사매, 오늘이 며칠인지는 알고 있겠지?” 여검월은 발길을 옮기며 고개를 돌려 대답했다. “예, 오늘은 스물닷새죠. 한데 무슨 특별한 일이라도 있나요?” “아니야. 그냥 한번 물어본 것일 뿐이야.” 화검상은 그렇게 날짜까지 확인하고 나자 내심 커다란 충격을 느꼈다. 정말로 열흘이나 지난 것이 판명되었으니 이는 실로 심각한 상황인 것 이다. 그가 무단 이탈하여 열흘간이나 잠적해 있었으니 장문인 등이 그를 내 버려두려고 하겠는가? 화검상의 표정이 무겁게 굳어지는 것을 보며 여검월은 의아하게 바라 보다가 다시 발길을 재촉했다. 여검월이 화검상을 데려간 곳은 바로 그 모옥이었다. 화산파에서는 이 화산신녀(華山神女)를 예우해서인지 이 부근에는 제 자들을 배치하지 않고 있었다. 화검상이 모옥 앞에서 잠시 기다리자 여검월이 안으로 들어갔다. 여검월이 안으로 들어간 지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의 모친 풍귀 월의 싸늘한 음성이 들려왔다. “대체 이제 나를 또 만나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거냐?” 화검상은 그 자리에 엎드려서 말했다. “어머니, 저를 좀 살려주십시오. 사람들이 저를 죽이려고 하고 있습니 다.” 풍귀월은 냉소했다. “그런 녀석이 열흘간이나 잠적하여 소식을 끊는다는 말이냐?” 화검상은 이미 생각해둔 말이 있기에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그건 그들이 제게 독을 복용시켰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제게 만성독 약을 복용시켜 서서히 폐인이 되어 살다 죽게 하려고 했습니다. 제가 그런 사실을 간파했을 때는 주위의 감시가 너무도 심한 때여서 하는 수 없이 죽을 힘을 다해 달아나 이제까지 동굴에 숨어서 독을 치료하 고 있었던 겁니다.” 기실 그 만성독약을 그에게 펼친 사람이 가검통이 아닌 배후인물들인 지도 확실히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그 말들은 모험이라고 아니할 수가 없었다. “내가 그 거짓말을 믿을 것 같으냐?” 화검상은 말했다. “거짓말이 아닙니다. 자세한 것은 그 가검통, 가사제를 불러 물어보시 면 아시게 될 겁니다. 그가 직접 제게 갖다 준 국에 부음(腐陰)을 놓았 으니까요.” “그럼 그 독은 아직 너의 몸 속에 남아 있느냐?” 풍귀월의 음성이 약간 누그러지는 듯했다. 아무리 그래도 근원적인 모성애는 감출 수가 없는 모양이다. 화검상은 거짓말을 해야 하는 자신이 다소 고통스러웠다. “일전에 우연히 약초(藥草)로 그 독을 푸는 법을 알게 되어 간신히 모두 해독할 수가 있었습니다.” 풍귀월의 음성은 다시 싸늘해졌다. “그렇다면 얼른 돌아가서 장문인께 복명할 일이지 나는 왜 찾아 왔느 냐? 나는 이미 너와 인연을 끊었다는 말을 잊었느냐?” 화검상은 마악 입을 열어 말하려다가 가볍게 흠칫했다. 문득 자신의 옆으로 다가오는 인기척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사실 이 주변에 보이지 않을 뿐이지 사람이 전혀 없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무심코 고개를 돌려보려던 화검상은 일순 현실을 파악하고 그냥 그대 로 있었다. 그가 만일 고개를 돌리게 되면 이목이 증진되었다는 표시이니 그렇게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지금은 그는 자신의 증진된 무공을 드러낼 수가 없는 입장이었다. 그 사람은 화검상의 옆에 와서 멈추어섰고, 이어 그에게 말했다. “정말 교활한 녀석이로구나. 어서 가자!”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다름아닌 풍귀엽(馮歸葉)이었다. 이렇게 빨리 나타난 것을 보니 아마도 그가 이 근처에서 화검상이 나 타나기를 기다렸던 모양이었다. 화검상은 크게 놀란 표정으로 급히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외, 외삼촌!” 풍귀엽의 표정은 이전보다 더욱 냉랭했다. “너는 정말로 나를 외삼촌이라고 생각하기나 하느냐?” “그, 그건...” 화검상이 당황해 할 때, 모옥에서 다시 풍귀월의 음성이 들려왔다. “오라버니, 저는 이제까지 자식을 둔 적이 없고 저 녀석이 누군지도 몰라요. 그러니 알아서 처리하세요.” 참으로 차갑고 비정한 한마디라고 아니할 수 없었다. 풍귀엽은 잠시 모옥 쪽을 바라보다가 먼저 밖으로 걸음을 옮기며 말했 다. “어서 가자!” 화검상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하는 수 없이 그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 다. 화검상이 풍귀엽에게 끌려가게 되자 연화봉의 정상을 지키던 제자들도 이내 모두 철수했다. 풍귀엽은 연화봉을 다 내려갈 때까지 전혀 말이 없다가 연무장이 가까 워지자 문득 고개를 돌리고 차갑게 입을 열어 말했다. “가검통이 네게 당했다고 하던데 그게 사실이냐?” 화검상은 내심 뜨끔하는 기분이었으나 이미 생각해둔 바가 있어서 즉 각 대답했다. “예, 저는 그에게 당했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빠져나가려고 온갖 수단 을 강구했지요. 저는 일단 그를 안심시킨 다음에 일장을 가격하고 혈 도를 제압했었습니다.” “고작 반 갑자의 공력으로 그게 가능하다고 보느냐?” 화검상은 일순 풍귀엽의 두 눈에서 살광(殺光)이 번쩍이는 것을 보았 다. 하지만 화검상은 모르는 척 대답했다. “예, 그건 저도 이내 말씀드리려고 했던 부분입니다. 저는 제가 저번 에 펼쳤던 그 괴공(怪功)에 대해서 연구를 해보다가 뜻밖의 능력을 발 견하게 된 것입니다. 저는 잃어버린 줄로 알았던 반 갑자의 공력을 되 찾았을 뿐만 아니라 무공 또한 훨씬 증진되게 되었습니다.” 풍귀엽은 화검상의 얼굴을 주시하다가 냉소하듯 말했다. “너는 정말 교활한 녀석이구나. 하지만 오히려 그 교활함이 더욱 너 의 명을 단축시키게 될 것이다.” 화검상은 그 말에 속으로 크게 움찔했다. ━━━━━━━━━━━━━━━━━━━━━━━━━━━━━━━ TO BE CONTINUE.... <<무림 YAG 야그>> ━━━━━━━━━━━━━━━━━━━━━━━━━━━━━━━ 며 야그 출력일 :: 98/10/16 ───────────────────────────────────── 제 목 : [화산문하] 1 부 1 권 제 11 장 - 2 ‘그럼 지금 곧 데려가서 나를 처단하겠다는 말인가?’ 만일 그렇다면 지금 달아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상황은 그렇게 비관적인 것이 아니고 아직 속단하기에는 이른 것이다. 그저 사제 하나를 상처 입히고 열흘간 잠적했다고 해서 화검상을 처단 할 명분은 없는 것이다. 이에 화검상은 기왕에 참아온 일이니 좀더 버텨보면서 그때그때의 상 황에 따라서 행동하기로 했다. 연무장의 옆으로 지나가자 수많은 제자들이 잠시 쉬고 있다가 우르르 몰려들어 화검상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화검상은 겉으로는 매우 걱정스러운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었지만 속 으로는 태연했다. 무공이 높아지자 자신감도 늘어났고 이제는 과거와 같지는 않다는 생 각이 든 것이다. 석조전각에 가까워지자, 문득 저쪽에서 눈에 익은 두 노파(老婆)들이 다가왔다. 바로 귀파파와 왕파파였다. 왕파파 왕천파는 화검상의 앞에 다가서자마자 다짜고짜 따귀부터 서너 차례 후려갈겼다. “이 더러운 종자 같으니! 네놈이 감히 그렇게 우리를 고생시켜야만 하겠는냐?” 왕천파의 따귀를 서너 차례나 맞자 화검상은 양 뺨이 벌겋게 부어올랐 다. 그는 사실 공력을 감추기 위해 전혀 방어하지 않은 것이다. 화검상은 가만히 있어도 반탄력이 일어날 것을 대비하여 그 부위의 공 력을 잠시 비워버렸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도 중독(中毒)을 해소하기 위해 어쩔 수가 없 었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자칫 끝까지 몰릴 수가 있기 때문에 화검상은 많은 사 람들이 보는 앞에서 일부러 항변했다. 왕천파는 눈알을 크게 부라렸다. “뭐라고 네놈이, 어쩔 수가 없었다고? 그래 무슨 중독을 해소한단 말 이냐?” 화검상은 짐짓 송구한 표정으로 공손히 말했다. “가검통, 가사제가 제게 부음지독을 국속에 몰래 타서 먹였기 때문에 그것을 알고 나자 즉시 해독시키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 금까지 낙안봉의 남쪽 동굴 속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즉시 왕천파의 오른쪽 다리가 화검상의 가슴으로 날아왔다. 화검상은 이 공격에는 대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일 갑자 정도의 공력을 사용하여 가슴의 충격을 완화시켰다. 화검상이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저만큼 뒤로 날아가 뒹굴자, 왕천파는 크게 노한 듯이 소리쳤다. “뭐라고, 이 더러운 종자 녀석이! 내가 그 거짓말을 믿을 줄로 아느 냐?” 옆에 있던 귀천능이 음산하게 눈빛을 빛내며 그녀를 말렸다. “사매, 그만하고 어서 가세. 저런 놈을 상대해봐야 좋을 게 없어.” 왕천파는 고개를 끄덕이며 화검상을 노려보다가 이윽고 귀천능과 함께 다시 사라졌다. 화검상이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먼지를 털어내며 몸을 일으키자, 풍귀 엽이 냉랭한 어조로 다시 말했다. “어서 그만 가자!” 이윽고 풍귀엽은 화검상을 석조전각의 위로 이끌었다. 이른 아침인데도 풍천비는 출정하는 일 등으로 벌써부터 집무실에 나 와 있는 모양이었다. 오층으로 오르자 담귀운이 서 있다가 풍귀엽을 바라보며 말했다. “장문인께서 기다리고 계시네.” 풍귀엽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화검상을 돌아보며 말했다. “넌 잠시 여기에 있거라.” 풍귀엽이 안으로 들어가고 나자, 담귀운은 화검상을 힐끗 바라보더니 말했다. “정말 대담한 놈이로군그래, 죽지 못해 환장을 했다는 말이냐?” ‘나는 너희들의 속셈을 알고 있다. 내가 아무리 고분고분하게 대한다 고 해도 너희들이 나를 귀엽게 봐줄 것 같은가?’ 화검상은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겉으로는 공손하게 예를 올렸다. “담사백께서는 그간 무고하셨습니까?” 담귀운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화검상의 아래위를 훑어보며 대꾸했다. “정말 교활한지 멍청한지 알 수가 없군. 그래 지금은 그렇게 똑똑한 척하는 녀석이 전에는 어떻게 멍청한 짓만 골라서 했단 말이냐?” 화검상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그것은 제가 아직 어리석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담사백께서 많은 가 르치심을 내려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담귀운은 크게 노한 듯 화검상을 한차례 노려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려 외면해버리고 말았다. 그들은 화검상이 이렇게 당당하게 나가는 것이 싫은 것인가, 아니면 본래부터 화검상에게 악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화검상도 굳이 더 이상 말을 계속할 필요가 없기에 그냥 묵묵히 서 있 었다. 그런 어색하고 차가운 분위기가 계속되고 있던 중, 문득 담귀운이 침 묵을 깨고 다시 화검상을 향해 입을 열었다. “장문인께서 기다리고 계시니 어서 들어가봐라.” 아마도 장문인 풍천비가 전음으로 담귀운에게 지시를 내린 모양이었 다. 화검상은 그에게 가볍게 읍을 해보인 다음에 안으로 들어갔다. 집무실의 안에는 뜻밖에도 풍천비(馮天飛)가 혼자 앉아 있었다. 풍귀엽은 이미 돌아가버린 모양이었다. “장문인을 뵈옵니다.” 풍천비는 입가에 미소를 떠올리고 있었다. 화검상이 대례를 올리자, 그는 미소하며 말했다. “그 동안 혼자 동굴 속에서 해독을 하고 있었다고? 고생이 많았겠구 나?” 이미 풍귀엽에게 모든 사항을 전해받은 모양이었다. 그렇더라도 이렇게 너무 다정하게 나오는 것은 어딘지 수상하다. 화검상은 상황을 지켜보기로 하고 공손히 대답했다. “고생스럽기는 했어도 많은 분들을 걱정시켜드린 일을 생각하면 면목 이 없는 일이옵니다.” “면목이 없다는 것을 알기는 아는구나?” 풍천비의 어조는 여전한 듯하나 그 안색은 다소 차가워진 것 같았다. 화검상은 말했다 “하지만 저는 제게 무단히 독을 전개한 가검통도 함께 처벌받아야 한 다고 행각합니다.” 풍천비의 표정이 차가워지는 듯하더니 다시 미소를 떠올렸다. “그 가검통이란 아이는 네게 공격을 받았다면서?” 화검상은 말했다. “예, 그 가사제는 제게 악질적으로 독을 전개하고 못 살게 굴었으므 로 저는 갖은 방법을 다 짜내어 겨우 그를 제압할 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처벌은 장문인께서 하실 일이라고 생각하고 유보해두었습니 다.” 풍천비의 두 눈에서 섬광(閃光)이 번뜩이더니 목소리가 차가워 졌다. “그런 아이들의 처벌까지 내가 관여하는 것은 아니다. 너는 처벌을 받고 돌아온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그런 물의를 일으키니 내가 직접 심문하는 것이다. 너는 정녕 처벌을 받기를 원하느냐?” ‘처벌을 받기를 원하느냐고?’ 화검상은 일시 풍천비의 그런 말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처벌받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그럼 처벌하지 않겠다는 말인가? ━━━━━━━━━━━━━━━━━━━━━━━━━━━━━━━ TO BE CONTINUE.... <<무림 YAG 야그>> ━━━━━━━━━━━━━━━━━━━━━━━━━━━━━━━ 便 야그 출력일 :: 98/10/16 ───────────────────────────────────── 제 목 : [화산문하] 1 부 1 권 제 12 장 알 수 없는 그림자 제 12 장 알 수 없는 그림자 화검상은 잠시 생각해보는 듯하다가 말했다. “저는 사실 삼 년 전에도 간혹 본파를 떠나 며칠 지내다가 오기도 했 습니다. 당시 저는 본파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죄를 범하기는 했지만 단순히 잠시 뜻대로 행동하는 것이 죄가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비록 처벌을 받은 직후이기는 하나, 분명한 이유도 있었으므로 며칠 임의대로 행동한 것이 물의를 일으켰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풍천비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너는 죄가 없다는 말이냐?” 화검상은 그의 안색을 살피며 대답했다. “제가 그곳에서 일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이 죄가 된다면 달 게 받겠습니다. 그러나 이미 말씀드렸듯이, 저는 당시 피치 못할 사정 이 있어서 그랬던 것입니다. 만일 특별한 일이 있어서 그리 중요하지 않은 책무를 잠시 제쳐놓은 것 자체가 물의를 일으키는 것이라면, 그 사람은 자유도 없이 중요한 감시를 받는 상황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결코 아직 그와 같은 감시를 받을 커다란 죄는 짓지 않았 다고 생각합니다.” 풍천비는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그럼 너는 지금 이곳에 처벌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해명을 하러 온 것이라는 말이냐?” 화검상은 대답했다. “책무가 중요하지 않을 때, 그 사람은 다른 특별한 일이 있을 경우에 는 우선 임의로 행동하고 나서 나중에 말씀드릴 수가 있습니다. 저는 해명하러 온 것입니다.” 이러한 경우에 자신이 죄를 인정하면 죄가 되지만 분명한 근거를 들어 죄가 아님을 증명한다면 그것은 죄가 안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화검상은 이제까지 거의 소극적으로 살아왔다. 그것이 지금의 상황에서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 는 갑자기 달라진 사람처럼 강하게 대처해 보이고 있는 것이다. 풍천비는 잠시 화검상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그럼 너는 왜 둘 다 처벌해야 한다고 했느냐?” 화검상이 대답했다. “저는 제가 처벌될 경우 둘 다 처벌되어야 형평에 맞을 것이라고 말 씀드린 것뿐입니다. 하지만 저는 사실 둘 다 처벌되지 않기를 바랍니 다.” “정말이냐?” “그렇습니다.” “좋다. 그렇게 되어야지. 모든 일은 그렇게 아무 탈 없이 풀어가야 좋 은 것이다. 네 말대로 이번 일은 없었던 것으로 하겠다. 한데, 너는 갑 자기 똑똑해졌구나?” 화검상은 자신의 얼굴을 주시하는 풍천비의 시선에 비수같이 번뜩이는 것을 보았다. 그는 일순 가슴이 섬뜩한 기분이었으나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당신들이 나를 잘못 본 것이지 내가 달라진 것은 아니다. 내가 조용 히 지낼 때는 바보 취급을 하다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서니 당신들은 당황해 하는 것이 아닌가? 당신들이 만일 정말로 떳떳하다면 당황해 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풍천비의 시선은 화검상이 들고 있는 장검에 집중되었다. “너의 그 검은 이번에 얻은 것이냐?” 그 말을 듣는 순간 화검상의 가슴은 왠지 철렁했다. ‘그는 혹시 이 장생검에 대해서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미 모든 사항을 짐작하고 있다는 말인가?’ 그러나 역시 화검상은 그것에 대해서도 생각해둔 말이 있어서 태연하 게 대답했다. “이번에 얻은 것이 아니라 제가 오래 전에 물려받은 것을 숨겨두었던 것입니다. 저는 그 동안 녹슨 장검을 일부러 사용해왔었는데 이번에 그것이 부러지자 할 수 없이 이것을 대신 가지고 다니게 된 것입니 다.” 풍천비는 기이한 눈빛으로 그 장생검에서 시선을 떼지 않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다면 내가 상관할 일이 아니겠구나. 한데 너는 앞으로 며 칠간 어디에서 지낼 작정이냐?” 화검상은 그가 자신의 장검을 계속 주시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으나 역 시 태연히 대꾸했다. “제가 비록 해명을 했고 장문인께서 그것을 용납하셨다고 해도 많은 사형제들은 저로 인해 많은 수고를 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사죄 하는 심정으로 역시 며칠간 그 채석장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이번엔 달아나는 일이 없겠지?” “특별한 일이 있다면 또 자리를 뜰 수도 있겠지만 저는 본파에서 태 어나고 자란 본파의 사람입니다. 어디로 달아나겠습니까?” 풍천비는 미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그만 돌아가도록 해라.” 장문인의 집무실을 나오니 담귀운이 냉랭한 시선으로 그를 주시하고 있었다. 화검상이 읍하며 인사를 했으나 그는 본 척도 하지 않았다. 화검상은 이에 천천히 전각을 걸어내려오며 생각에 잠겼다. 이번의 일은 정말로 이상한 점이 있었다. 필시 악착같이 그를 처벌하려고 할 것 같았는데 처벌하기는커녕 아예 없던 것으로 묻어버리고 말았다. 그것은 화검상에게 죄가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며, 화검상이 또한 계속 채석장에서 일할 수 있게 했다. 그것은 이전에는 전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변화였다. 혹시 화검상이 갑자기 강하게 달려드니 당황해서 그만 모든 것을 덮어 버리고 만 것일까? 실로 그럴 리는 없는 것이다. 풍천비는 결코 그렇게 나약한 사람은 아니다. 그렇다면 대체 그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띠게 한 것일까? 그리고, 풍천비가 이번에 내린 결정의 의미는 무엇이며 또한 그의 부 드러운 미소에 담겨 있는 생각이란 어떤 것일까? 화검상은 비록 이번에 완승을 했다고 할 수 있으나, 왠지 마음이 꺼림 칙하고 오히려 알 수 없는 그림자에 덮어씌워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 이것은 아직 화검상 자신이 풍천비 등에 대해서 모르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모른다는 것은 이미 지고 있다는 것이다. 알 수 없는 팽팽한 긴장감과 살기(殺氣)를 느끼면서, 화검상은 문득 가 볍게 웃었다. ‘나는 그 동안 너무나도 태만했었다. 이제부터는 좀더 그들에 대해 알아야 하겠군.’ 점차 하늘의 태양이 높이 솟아오르면서 열기를 뿌리기 시작하고 있었 다. 이윽고 연무장으로 내려오자, 문득 많은 사람들이 주시하는 가운데 그 의 앞을 막아서는 한 사람이 있었다. 아름다운 비단옷을 경장으로 걸치고 흡사 인형(人形)으로 섬세하게 조 각해놓은 듯한 용모를 지닌 미모의 낭자(娘子). 일면 귀엽게도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차가운 기질(氣質)이 다분해 보이 는 올해 스물여섯의 나이, 풍검심(馮劍心) 바로 그녀였다. 풍귀엽의 딸이며, 풍검진의 여동생이고 화산옥녀(華山玉女)라는 별호를 가지고 있는 그녀는 화검상에게는 외사촌누이가 된다. 풍검심은 다소 오만한 듯한 자세로 양손을 잘룩한 허리에 걸친 채 화 검상에게 이렇게 말했다. “화사제, 너는 정말 뻔뻔스럽구나. 그러고도 죽지 않고 살아 돌아와 감히 이곳을 돌아다닐 수 있다고 생각하는냐?” 장문인 풍천비의 손녀가 되는 그녀는 그야말로 이곳 화산파의 공주라 고도 할 수 있는 귀한 신분의 여자였다. 화검상은 사과애에서 내려온 이후 감히 그녀를 만나볼 수가 없었고, 그녀 또한 쓰레기 같은 취급을 받는 화검상을 구태여 찾지 않았다. 하지만 기실 과거 어렸을 때만 해도 그녀는 화검상과 제법 친하게 잘 놀았었다. 시대가 바뀌면 이렇게 사람의 신분도 달라지는 법이다. 화검상은 달라진 신분의 차이를 거부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그러나 내심 씁쓸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풍사자, 정말 오랜만이오. 그 동안 풍사자는 더욱 아름다워진 것 같 소.” 출정을 며칠 앞두고 있어서인지 화산파 제자들의 연무는 더욱 열심이 었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의 시선은 모두 이 흥미로운 광경으로 집중되어 있 는 것 같았다. 풍검심은 그런 것을 의식하고 있는 듯 일순 아미를 찌푸리더니 허리춤 에서 장검을 뽑아들어 화검상의 목에 들이대며 차갑게 소리쳤다. “누가 네 녀석더러 그런 것을 상관하라고 했느냐?” 앙칼지게 보이는 그녀의 모습은 누가 보기에도 오히려 더욱 매력적일 것 같았다. 화검상은 자신의 목에 닿아 있는 검날의 서늘한 감촉을 느끼면서 내심 고소했다. ‘이 목덜미는 도무지 성할 날이 없군. 그러다가 나중에는 정말로 목 이 잘려나가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지.’ 화검상은 미안한 듯이 웃으며 말했다. “내가 좀 경솔했던 것 같소. 내가 잘못했다면 용서하시오.” 풍검심의 무공은 지금 그녀의 맑게 빛나는 눈동자를 보더라도 삼 갑자 (三甲子)의 공력에 절정경지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화검상은 이미 자신이 곡선적인 절정경지에 들어서 있기 때문 에 그녀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었다. 다만 지금은 자신의 무공을 드러낼 시기가 아닌 것이다. 풍검심은 붉은 입술을 야릇하게 찡그리며 뭔가 궁리하는 듯하다가 계 속 검날을 들이댄 채로 말했다. “그럼 너는 이 자리에서 자결을 해라! 아니면 개처럼 기면서 살려달 라고 빌든지.” 화검상은 약간 어이없어 하며 말했다. “내가 만일 그럴 만한 큰 죄를 저질렀다면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할 것 이오. 하지만 대체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이러는 것이오?” 풍검심의 두 눈에서 문득 강한 기운이 번뜩이며 그 기운은 검날에 이 어서 화검상의 목에 상처를 내며 피가 주르르 흐르게 했다. 비록 피가 흘러 바닥에 떨어질 정도는 아니지만 검날의 일부는 붉게 물들어서 혈기(血氣)를 일으켰다. “네놈은 철면피처럼 아직도 죄를 인정하지 않는구나. 내가 하라면 해 라!” 보아하니 지금 이 풍검심은 결코 장난으로 그러는 것이 아니었다. 미 간에는 악랄한 살기마저 어려 있었다. 화검상은 비록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이런 상황에서 굳이 정면으로 부 딪칠 필요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풍검심은 정말로 그의 목을 베려고 할지 모르며 설령 화검상이 무공을 펼쳐 그 살수에서 벗어난다고 해도 결코 좋은 일은 아닌 것이다. ‘나는 이미 온갖 욕이라는 것은 다 들어왔다. 이제 더 이상 지킬 체 면이라는 것이 뭐가 있겠는가?’ 화검상은 웃으며 말했다. “풍사자는 옛날부터 내가 존경해오던 사람이고 또한 나는 어리석기로 소문난 사람이니 풍사자가 시킨다면 나는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할 것이 오. 하지만 이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는 마당이니 나에게 우선 그 이 유라도 말해줘야 할 게 아니오?” 풍검심은 여전히 장검을 들어댄 채 노려보며 앙칼지게 소리쳤다. ━━━━━━━━━━━━━━━━━━━━━━━━━━━━━━━ TO BE CONTINUE.... <<무림 YAG 야그>> ━━━━━━━━━━━━━━━━━━━━━━━━━━━━━━━ 像 야그 출력일 :: 98/10/16 ───────────────────────────────────── 제 목 : [화산문하] 1 부 1 권 제 12 장 - 1 “네놈은 정녕 아직도 자신의 죄를 시인하지 않는다는 말이냐?” 화검상은 말했다. “풍사자가 이러는 데는 분명 그 이유가 있을 것이오. 하지만 나는 이 미 조금 전에 장문인을 뵙고 오는 길이오. 나에게 죄가 있어 처벌을 받아야 한다면 틀림없이 장문인께서 그렇게 하셨을 것이오. 하지만 장 문인께선 이번 일을 모두 없었던 것으로 하겠다고 말씀하셨소. 장문인 께서 그런 결정을 내리신 데는 당연히 나에게 죄가 있다고 해도 당신 께서 따로 구상하는 바가 있었을 것이오. 풍사자가 나에게 이렇게 하 는 것이 혹시 장문인의 그런 구상에 누가 되지는 않겠소?” 풍검심의 안색이 가볍게 변했으나 여전히 차갑게 말했다. “네놈은 그새 입만 살았구나. 그런 말을 한다고 내가 너를 그냥 놔둘 줄 아느냐?” 화검상은 웃으며 말했다. “물론 풍사자는 결코 빈 소리를 하는 사람이 아니오. 그래서 내가 이 자리에서 풍사자에게 큰절을 세 번 할까 하는데 그 정도로 용서해주지 않겠소?” 풍검심은 눈빛을 여러 차례 변화시키면서 갈등을 일으키는 듯하다가 이윽고 화검상을 가증스러운 듯이 노려보며 서서히 검을 거두면서 말 했다. “네놈을 언젠가는 내가 죽여버리고 말 것이다. 지금은 내가 그것을 경고하려고 온 것이다. 네놈 같은 인간 쓰레기는 반드시 죽어야 해!” 화검상은 그녀가 검을 거두어 검집에 도로 넣고 몸을 돌리자, 자신의 목에 새로 난 상처를 매만지며 웃으며 말했다. “만일 내가 정말로 그런 사람이라면 죽어야 할 것이오. 앞으로 풍사 자의 손속을 기대하도록 하겠소.” 풍검심은 다시 고개를 돌려 화검상을 차갑게 노려보다가 이내 그냥 걸 음을 옮겨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나는 정말로 그런 커다란 죄를 지은 것일까?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 만 어째서 사람들은 단 한번의 기회도 주지 않으려는 것일까?’ 화검상은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미소를 띤 채 연무장의 옆으로 걷 기 시작했다. 마침 연무를 하는 시간이어서인지 사람들은 그를 주시할 뿐, 나서서 막는 사람은 없었다. 화검상은 그들의 가증스럽게 보는 듯한 시선을 받기가 거북했으나, 다 행히도 그 이후로는 연무장을 쉽게 벗어날 수가 있었다. 그런데 그가 연무장을 벗어나서 채석장으로 향하는 골목을 마악 돌아 가고 있을 때의 일이었다. 느닷없이 한 사람이 손에 장검을 뽑아들고 살벌한 기세로 그의 앞을 막아섰다. 바로 다름아닌 가검통이었다. 그의 장검은 햇살에 시퍼런 광채를 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두 눈에도 원독의 살광(殺光)이 충만하고 있었다. “흐흐흐, 벌써 나를 잊은 것은 아니겠지?” 화검상은 다소 흠칫했으나, 이내 태연하게 웃으며 말했다. “잊다니? 자네는 바로 그렇게도 다정한 가사제가 아닌가?” 가검통의 장검은 이미 허공을 가로질러 화검상의 목을 베어오고 있었 다. “뭐, 그렇게도 다정하다고?” 가검통의 검초는 비록 화검상의 목을 겨냥하고 있기는 해도 그다지 무 게가 실려 있지 않아서 이를테면 허초(虛招)나 다름이 없었다. 비록 몹시 원한이 맺혀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소심한 그의 성격을 드 러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만일 이전 같으면 화검상은 그 일초도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화검상은 가볍게 상체를 뒤집어 피하며 말했다. “아니 자네는 갑자기 미치기라도 했나? 사형인 내게 이렇게 거칠게 나오다니 이게 무슨 짓인가?” 가검통의 그 일초는 비록 무게가 없었지만 거기에서 다시 여러 갈래로 흐르는 변식(變式)이 이어지게 되어 있었다. 그저 눈에 보이듯이 몸을 움직여 피할 수가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가검통은 화검상이 자신의 일초를 너무나도 간단히 피해버리는 것을 보고 일순 그 변식을 중단하고 검을 거두며 말했다. “뭐라고? 너는 그날 동굴 속에서 나를 때려눕힌 사실을 벌써 잊었단 말이냐?” 가검통은 처음에는 금방이라도 일을 저지를 듯했으나 그 소심한 성격 탓인지 화검상의 달라진 듯한 능력을 보자 눈에 띄게 그 기세가 줄어 들었다. 다만 이 신기하게도 나날이 실력이 증가하는 듯한 화검상에 대해서 파 악하느라 부지런히 눈알을 굴릴 뿐이었다. 화검상은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말햇다. “아, 그 일은 내가 미안했네. 미처 자네를 구출하지 못했지.” 가검통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뭐라고, 구출하지 못했다고? 그것은 바로 네가...” 화검상은 즉시 그의 말을 자르며 짐짓 엄하게 말했다. “네가가 아니고 화사형이지. 이곳은 남들의 시선도 있을 텐데 내게 그런 말로 함부로 부르면 되겠나?” 가검통은 원독의 눈빛으로 화검상을 노려본 뒤에 말투를 약간 바꾸었 다. “그것은 바로 당신이 직접 나에게 손을 쓴 것이 아니오?” 화검상은 미소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손을 내저었다. “그건 그렇지. 거기에 나 말고 또 누가 있었겠나? 나는 당시에 내 실 력을 한번 시험해볼 속셈으로 자네에게 기습을 했던 것이네. 그 결과 는 비록 좋지 않았지만, 그러나 그렇다고 네게 어떤 사심이 있었던 것 은 아니었네. 자네가 나를 감시하는 사람도 아니었을 텐데 내가 왜 자 네에게 일부러 상처를 입히겠나?” 가검통은 화검상을 노려보며 잠시 흠칫하는 듯하더니 차갑게 주시하며 말했다. “그렇다면 그때 왜 나를 곧장 구출하지 못했다는 것이오?” 화검상은 곧장 그의 얼굴을 직시하며 말했다. “자네는 정말로 내가 자네를 구출했어야만 했다고 생각하나? 자네는 정말로 나를 감시하는 사람은 아니었겠지?” 가검통은 그 말에 다소 당황해하는 빛을 보였다. 그는 다급히 눈빛을 굴리면서 어물어물 대답했다. “내, 내가 왜 당신을 감시하겠소? 그, 그건 아닐 거요.” 화검상은 정색을 하고 다시 물었다. “자네는 그렇다고 이를테면 방사숙이 나를 감시하라고 시켰다고 해도 그걸 거역했을 것이라는 말인가?” 가검통은 화검상이 갑자기 화제를 이상한 방향으로 이끌어가면서 생각 지도 못한 말을 하는 바람에 더욱 당황하여 안색이 불그락푸르락해졌 다. “그, 그럴 리가. 나, 나는 지금 그런 것을 말할 입장이 아니오.” 화검상은 다소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입장이 아니라구? 그렇지 않을 텐데? 장문인께서는 내 말을 잘 들 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네. 이번의 일은 모두 없었던 것으로 하자고 말이네.” 화검상은 어리둥절해 하는 가검통을 향해 다시 말했다. “그것은 곧 문제가 있는 쪽은 다른 사람들이라는 말이지.” 가검통은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럼 내게 문제가 있다는 말이오?” 화검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굳이 자네에게만은 문제가 없다고 말씀을 드렸지. 자네는 내가 왜 그때 미처 자네를 구출하지 못했는지 그 이유를 알고 있나?” 가검통은 이미 안색이 여러 차례 변하며 흙빛이 되어 있었다. “그 이유는 뭐요?” 화검상은 말했다. “나는 당시 어떤 약초를 실험하기 위해 몇 차례 복용해보고 있었는 데, 갑자기 배가 심하게 아파왔지.” “그래서 뒷간에라도 갔었단 말이오?” 화검상은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부음지독이 침투했기 때문인데 뒷간에 간들 무엇하겠나? 나는 어떤 약초를 이미 복용했었기 때문에 그 부음의 만성독은 급히 발작하 게 되었던 거네.” 가검통은 의심하는 표정으로 차갑게 주시하며 말했다. “그래서 어떻게 됐단 말이오?” 화검상은 대답했다. “그야 당장 내가 독이 발작하여 위험한데 어떻게 운기하여 자네를 구 출할 수가 있었겠나? 나는 잠시 자리를 피하여 독의 발작이 잠시 진정 되기를 기다렸다가 비로소 운기하여 해독할 장소를 향해 뛰었던 것이 네.” 가검통은 음험한 표정으로 차갑게 말했다. “그렇다면 그때도 나를 구할 수는 있었던 일이 아니었소?” 화검상은 그를 주시하다가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물론 그렇다고 봐야겠지. 하지만 나는 당시 누가 이 부음지독을 내 게 시전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었지.” “설마 그게 나라고 생각하는 것이오?” 화검상은 교활하게 움직이는 가검통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당시 자네라고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그러나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입장이었네. 그 독은 바로 국물 속에 들어 있었기 때문이었지. 그 래서 나는 그 일을 장문인께 상세히 말씀드렸던 것이네.” 가검통은 잠시 멍하니 화검상을 바라보며 생각을 굴리는 듯했다. 그러다가 이윽고 화검상을 향해 다시 말했다. “그래서 당신은 어쨌다는 말이오?” 화검상은 말했다. “장문인께서 나를 이해하신 것은 감시를 하더라도 독을 사용해선 안 된다는 것을 생각하셨기 때문이지. 물론 자네는 그 감시자가 아닐 테 지만 말이야.” “그럼 당신은 그런 얘길 내게 무엇 때문에 하는 것이오?” 화검상은 문득 말없이 가검통에게 다가가 그의 멱살을 잡고 따귀를 서 너 차례 후려쳤다. 갑자기 펼친 화검상의 그 한 수는 비단 생각지도 못하게 빨랐을 뿐만 아니라 은근히 상대방의 마혈을 제압하고 있어서 가검통을 꼼짝도 못 하게 했다. 대번에 가검통의 안색은 시뻘겋게 퉁퉁 부어올라 우스꽝스럽게 변모했 다. ━━━━━━━━━━━━━━━━━━━━━━━━━━━━━━━ TO BE CONTINUE.... <<무림 YAG 야그>> ━━━━━━━━━━━━━━━━━━━━━━━━━━━━━━━ 緇 야그 출력일 :: 98/10/16 ───────────────────────────────────── 제 목 : [화산문하] 1 부 1 권 제 12 장 - 2 “나를 지금 어떻게 보고 있느냐? 나는 바로 너의 사형(師兄)이다. 내 가 비록 쓸모없는 얘기를 하더라도 그 성의를 생각해서 너는 공손히 들었어야만 했을 것이다. 그런데 너는 지금 비단 나를 욕보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죽이려고까지 했다. 네놈이 건방지기에 설령 그렇게 훈계 를 하기로서니 네놈이 감히 그럴 수가 있느냐? 너는 나를 바지저고리 로 보고 있는 것이냐?” 화검상의 손속은 그다지 강하지도 않았고 그의 음성도 그다지 강한 것 도 아니었다. 하지만 가검통은 왠지 가슴이 떨려오고 안색이 거뭇하게 변했다. 그는 조금 전에 화검상이 그렇게 느닷없이 손을 써올 줄도 몰랐을 뿐 만 아니라, 도무지 그가 자신의 멱살을 잡고 따귀를 후려치는데도 무 슨 수법을 썼는지 알지도 못했고 반항하지도 못했다. 그는 화검상의 능력이 이렇게 달라져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 다. 무공을 배우는 사람이라면 이런 경우에도 실력이 드러나는 것이지, 요 행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이 녀석의 무공이 언제 이렇게 높아졌지?’ 가검통은 마치 인간이 아닌 도깨비를 보고 있는 듯하여 먼저 입술부터 파랗게 질려갔다. “내가 너를 죽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본파에서 하극상은 가장 큰 죄의 하나로 즉결처분을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너는 죽고 싶으냐?” 가검통은 그 말에 두 눈을 부릅뜨고 다리까지 떨기 시작했다. “사, 살려주십시오.” 화검상은 그의 놀란 듯한 얼굴을 바라보다가 깊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 다. “내가 너를 죽이고 싶지는 않지만 너의 그 교활하게 돌아가는 두 눈 을 보니 죽이지 않을 수가 없구나.” 가검통의 다리는 여전히 떨리고 있었지만 그의 두 눈은 더욱 교활하게 돌아갔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화사형.” 화검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지금 도처에서 죽음의 위협을 받고 있다. 그래도 간신히 버티 고 있는데, 너는 나의 무공을 본 최초의 사람이다. 어찌 죽이지 않을 수가 있겠느냐?” 가검통은 화검상의 진의를 파악하려는 듯 열심히 뇌리를 굴리고 있지 만 입술은 바싹바싹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나, 나는 결코 그것을 발설하지 않겠습니다.” 화검상은 무심한 듯이 가검통을 바라보다가 다시 고개를 저었다. “실로 너와 같은 자의 말을 어떻게 믿을 수가 있겠느냐? 나는 이미 네가 고의로 나를 죽이려고 위에서 시키지도 않았는데 부음지독을 국 속에 풀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어찌 살려둘 수가 있겠느냐?” 가검통은 화검상의 얼굴을 바라보며 생각을 굴리다가 약간 울상을 지 으며 말했다. “그, 그것은 오해입니다. 제가 위에서 시키지 않았다면 어떻게 감히 독을 사용할 수가 있겠습니까?” 화검상은 가검통의 뺨을 다시 한차례 후려치며 말했다. “네놈은 또 나를 희롱하려고 하는구나. 방사숙은 네게 그것을 시킨 적이 전혀 없다고 했다. 그럼 네게 그것을 시킨 사람을 말해 보아라.” 화검상의 이번 손속은 약간의 공력이 가해져서 가검통은 머리가 뒤흔 들리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한쪽 뺨이 더욱 심하게 부풀어오른 그는 부지런히 머리를 굴려보다가 말했다. “저는, 그..., 그것을 지금 말할 수는 없습니다. 사형은 차라리 저를, 저를 죽이십시오.” 말과 함께 가검통은 정말로 화검상이 자신을 죽이려는지 눈빛을 빠르 게 굴리며 주시했다. “정말이냐?” 다소 무심한 듯한 화검상의 표정을 보고 가검통은 문득 가슴이 철렁하 여 급히 다시 말했다. “저는 다만 지금의 상황이 그럴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사형께선 부디 살려주십시오.” 화검상은 잠시 그런 그의 얼굴을 주시하다가 문득 가볍게 웃으며 그를 풀어주었다. “정말 괜찮구나. 과연 내가 훈계한 보람이 있다. 목에 칼이 들어 와도 중요한 기밀은 누설하지 않겠다는 너의 자세는 가히 나를 기쁘게 하기 에 족했다.” 가검통은 우선 몸이 자유로워지자 어리둥절해졌지만 화검상의 말을 듣 고 더욱 어리둥절해졌다. ‘뭐라고 훈계? 기밀? 뭐가 널 기쁘게 했다는 거야?’ 화검상은 어리벙벙해 하고 있는 가검통을 향해 다시 말했다. “너는 나의 그런 훈계방법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거냐?” ‘우라질, 다시 겨루게 되면 내가 이기게 될지 누가 알게 뭐야?’ 가검통은 속으로는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겉으로는 얼른 공손히 대답 했다. “아니 예, 저는 무척 마음에 듭니다.” 화검상은 그가 아직도 뽑아들고 있는 장검을 가리키며 말했다. “네가 만일 다소의 불쾌한 점이 있었다면 그 검으로 나를 한번 공격 해보아라. 사형이라면 마땅히 사제를 가르쳐야 하는 것이 아니겠느 냐?” 가검통은 그 말에 다소의 갈등을 일으켰다. 이번에 핑계 삼아 정말로 공격한다면 화검상을 혼내줄 수 있을지도 모 르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를 태연히 자신을 바라보는 화검상을 향해 도저히 그런 용기 가 생겨나지 않았다. 그는 얼른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제가 어찌 감히 화사형께 불쾌한 감정이 있겠습니까?” 화검상은 가볍게 미소하며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좋다. 그런 자세라면 장차 대성(大成)할 수도 있겠지.” 말과 함께 화검상은 몸을 돌려 그냥 다시 채석장으로 향하기 시작했 다. 가검통은 자신에게 등을 보이며 그렇게 걸어가는 화검상을 보고 일시 두 눈 가득 악독한 살광(殺光)을 일으켰으나 감히 정말로 손을 쓰지는 못했다. 천천히 채석장으로 걸어가는 화검상의 마음은 편하지 못했다. 그는 일부러 가검통을 한번 흔들어본 것이었으니 그것이 그렇게 도움 이 되지 못했다. 누구에게나 나름대로의 장단점은 있기 마련이다. 가검통은 비록 무공도 약하고 성격도 소심한 편이어서 평소에 손해를 보는 일이 많으나 의외로 그만의 장점이 있는 것이다. 화검상은 억지로 술수를 부려서 그에게 실토를 하도록 해보려고 하였 으나, 나중에 그것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그만 중단하고 말았다. 가검통은 영악하고 교활한 자이다. 그러나 그는 또한 화산파 내부에서도 가장 능력없는 사람인 것이다. 그런 자에게조차 힘들어 한다면 이건 결코 아니다. 비록 심문을 하는 경험부족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것만은 아니 다. 화검상은 자신의 행동거지에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강호상에서 무공은 삼 푼이고 경험은 칠 푼이라고 하듯이, 사람이 살 아가는 데 있어서 무공만이 능력은 아니다. 특히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아까 연무장에서와 같은 험한 꼴을 당하지 않으려면 뭔가 달라져야 하는 것이다. 깊은 생각에 빠져 있다가, 화검상은 문득 웃으며 중얼거렸다. ‘바로 그것이었군. 나의 생활 역시 곡선적이어야 하는 것이다.’ 이 곡선적이라는 말은 얼핏 듣기에 곡선이라는 말과 비슷해 보이지만 그 의미는 실상 같다고는 말할 수가 없다. 곡선이라는 것도 역시 지정된 하나의 흐름을 연상하는 것으로 그것은 오히려 직선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거기에서 곡선적이라고 한다면 그 곡선 이외의 무한한 선, 길,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화검상은 곡선적이라는 것을 무공으로 적용하다가 느닷없이 기이하게 도 행동거지의 전반에 걸쳐서도 적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흔히 과거의 기인(奇人)들이 생활 속에서 평범한 듯한 무도(武 道)를 찾으려고 했었다는 얘기를 상기해보면 그리 처음 있는 일은 아 닐 것이다. 화검상이 채석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많은 인부들이 구슬땀을 흘려 가며 돌을 쪼개고 다듬고 나르는 등의 일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벌써 날씨도 많이 무더워졌다. 전노인을 찾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니 마침 그에게 다가오는 칼자국의 사내가 눈에 띄었다. 화검상은 즉시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오랜만이오. 전노인은 지금 어디에 있소?” 칼자국의 사내는 그의 얼굴을 힐끗 바라보더니 은근히 시선을 외면하 며 대꾸했다. “그는 또 왜 찾으시오? 전영감은 지금 여기에 없소.” 화검상은 다소 의아해져서 말했다. “여기에 없다니? 그럼 어디 다른 곳에라도 갔다는 말이오?” 칼자국의 사내는 약간 심드렁한 듯한 태도로 말했다. “그거야 나도 모르는 일이지. 그 영감이 워낙에 별난 짓을 하니 그걸 알 수 있겠소? 당신이 만약 또 여기에 있고 싶다면 안으로 들어가 짐 이나 풀어놓으시오.” 화검상은 그 말을 듣자 왠지 이상하고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그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그 전노인이 없어졌으니 이제 이곳은 당신의 관할이 된 모양이군. 그렇지 않소?” 칼자국의 사내는 음험하고도 약간 야릇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그야 별로 이상할 것도 아니지. 당신도 혹시 이 자리에 욕심을 내고 있는 것이 아니오?” 화검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별로 관심이 없지만, 그러나 전노인이 어째서 없어졌는지를 모 른다면 관심이 있을 수도 있지.” 칼자국의 사내는 일순 괴이쩍게 웃으며 어색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야 뻔한 일이 아니오. 별로 말못할 것도 없지만, 그 영감은 쓸데없 는 주둥이를 놀리기에 당신이 떠나던 날 밤에 대가를 치른 것이오.” < 제1부 1권 끝 > ━━━━━━━━━━━━━━━━━━━━━━━━━━━━━━━ TO BE CONTINUE.... <<무림 YAG 야그>> ━━━━━━━━━━━━━━━━━━━━━━━━━━━━━━━ 緇 야그 출력일 :: 98/10/16 ───────────────────────────────────── 제 목 : [화산] 2 권 제 13 장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 제 13 장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 화검상은 놀람과 동시에 치솟아오르는 거대한 분노를 의식했 다. 다름아닌 자신에게 한 말 때문에 전노인이 그렇게 되었다는 말 인 것이다. 불현듯 전노인이 그날 밤에 자신에게 하던 말들과 행동이 뇌리 속에 선연하게 떠올랐다. “그들이 전노인을 살해했소?” 칼자국의 사내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건 모르겠소. 나도 그 영감이 보이지 않길래 그런 일이 벌 어진 줄 알았지. 이거 나도 그런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 공연히 자주 말을 걸지마슈.” 화검상은 입을 다물었다. 더 이상 말을 하고 싶지 않기도 했다. 그들은 어떤 식으로 전노인에게 대가를 치르게 했을까? 아마도 그것은 알 필요도 없을지 모른다. 어떤 식으로나 방법은 많으며 그들은 필시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게 생각을 한다고 해도 전노인에게 최소한 어떤 불행 이 있었던 것은 틀림없는 일이었다. 그럼 그들은 누구이며 무엇 때문에 그런 일을 저지른 것일까? 그것은 이미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화검상은 내심 끓어오르는 분노를 삭이지 못해 이를 악물다가 이내 가볍게 웃으며 그 마음을 달랬다. 이건 한두 번 겪는 일이 아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아직 그들이 그러는 이유를 모르고 있는 것 이다. ‘당신들이 만일 그렇게 정당하고 떳떳하면 말조차 전혀 하지 못하게 할 것은 또 뭔가……? 하긴, 그렇게 불온한 말을 퍼뜨려 서 화산파의 명예를 손상시키는 사람이 있다면 당연히 벌을 주어 야 하겠지…….’ 전노인이 없다고 생각하니 그 숙소의 내부가 휑하니 넓게 느껴 지는 것 같았다. ‘우리 집안의 일에 나서지마시오. 나선다면 그 자체가 죄인이 된다는 걸 몰랐다는 말이오?’ 화검상의 자리는 아직 비워져 있었다. ‘그렇게 죽고 나면 아무런 보람도 없소. 나도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다는 말이오.’ 칼자국의 사내는 입구에 서서 머뭇거리다가 어색한 듯이 웃으 며 말했다. “아침은 드셨겠지. 오후부터 일을 하겠소?” 화검상은 전노인이 여귀기를 찾아보라는 말을 했던 것을 상기 하고 있었다. ‘아니야. 무슨 속셈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당신들은 굳이 그런 일로 목숨을 바칠 필요가 없다는 말이오. 이미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인데 그런 얘기를 다시 꺼내서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말이 오?’ “그렇게 합시다.” 칼자국의 사내는 이내 물러가버렸다. 화검상은 대강 침상을 정리한 다음에 그 위에 앉아서 잠시 생 각에 잠겼다. 전노인의 일은 가슴이 아프지만 지금으로서는 그 진위 여부를 알 수 없고 어떻게 할 수도 없기 때문에 일단 접어두는 수밖에 없었다. 화검상은 자신이 앞으로 해야 할 일들에 관해 생각해보았다. 어쨌든 일단 장문인과의 대면에서 지난 일들이 매듭이 되었으 니 그가 돌아온 것은 성공했다고 말할 수가 있었다. 그는 비단 이곳에 왔으니 일을 해야 할 뿐만 아니라 무공수련 을 해야 하고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지금 그의 처지는 얼핏 안정되어 있는 듯하지만 여러 가지를 종합해볼 때 가장 위험한 상황이라고 말 할 수 있다. 그저 가만히 있다가는 어느 날 갑자기 영문도 모르게 당할 수 가 있으며, 그것을 풀어가는 것은 역시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다. 이 사람들 사이의 일은 역시 그쪽으로 풀어야 하는 것이다. 화검상은 자신이 만나야 할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거기에 전노인이 말한 여귀기는 없다. 화검상은 그렇게 큰 부담을 주는 사람들을 다시는 만나지 않을 생각이었다. 화검상이 그러한 생각에 골몰하고 있을 때, 문득 가벼운 인기 척과 함께 문이 열리더니 한 사람이 안으로 들어섰다. 대낮인데도 술병을 들고 술을 마시고 있는 딸기코의 사내였다. 딸기코의 사내는 안으로 들어서면서 먼저 술을 한 모금 마시더 니 다소 혀가 꼬부라진 듯한 음성으로 말했다. “밥이 다되었으니 나오시오. 모두 기다리고 있으니까.” 화검상은 일순 크게 놀랐다. 다름이 아니라 그 딸기코의 사내는 그런 말을 하면서 동시에 전음(傳音)으로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그가 오늘 밤 자시에 당신을 만나기로 하였으니 작업장 부근 으로 나오시오.” 화검상은 놀라면서 한편으로 어이없기도 했다. 이 전음입밀(傳音入密)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복화술(腹話術)이라는 것과는 달리 음성을 공력(功力)에 실어 상대방에게 보내는 일이다. 고도의 정밀도가 요구되기 때문에, 이른바 대주천반운을 타통 시켜 공력이 정묘(精妙)해지는 일류(一流)의 경지에 오르지 않고 는 시전하기 어려운 것이다. 화검상도 이전에는 그저 복화술 정도만 시험해볼 수 있었을 뿐 전음입밀은 사용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저 딸기코의 사내가 느닷없이, 그것도 다른 말을 하면 서 여유있게 전음입밀을 사용하다니. 그렇게 전음입밀을 완전히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그의 무공이 이미 절정경지(絶頂境地) 이상이라는 말이다. 그럼 대체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화산파에서 본래 무림인을 인부로 쓰지 않으며 사전에 그러한 조사를 하기 때문에 인부들은 무공을 가지고 있을 리가 없고, 또 한 그들은 화산파의 무공을 배울 수도 없다. 그럼 딸기코의 사내는 일부러 무공을 숨기고 잠입한 자라는 말 인가? 화검상은 문득 인부들 중에 사마외도의 첩자가 있을지도 모른 다던 말을 뇌리에 떠올렸다. 하지만 그 딸기코의 사내는 무엇 때문에 그렇게 애써 감추고 있던 비밀까지 누설해가며 화검상에게 전음을 보내는 것일까? 그것은 실로 괴이(怪異)하고도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무공을 익히는 사람들 중에 더러 전혀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 는 경우가 있다. 전음입밀을 보냈다는 것은 무공을 익혔다는 증거이므로 아마도 딸기코의 사내도 그러한 경우일 것이다. 딸기코의 사내는 일단 그렇게 말해놓고 나서 이내 몸을 돌려 나가버렸다. 화검상은 나중에야 비로소 자신이 딸기코의 사내가 말한 ‘그’라는 사람에 대해 물어보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도대체 이건 또 뭐지?’ 화검상은 내심 크게 황당해 하다가 이윽고 천천히 밖으로 걸음 을 옮겼다. 작업장의 부근에는 어느새 솥이 걸려 있고 그 솥 안에 국밥인 지 돼지고깃국인지 모를 것이 펄펄 끓고 있었다. 워낙에 인원이 많다 보니 점심식사는 그렇게 밖에서 대강 해치 우는 모양이었다. 배추국에 돼지고기를 썰어넣고 거기에 밥까지 집어넣은, 이 죽 같은 것은 제법 구수한 냄새를 진동시켜 열흘 동안 음식맛을 보 지 못한 화검상의 뱃속을 뒤흔들었다. 삼십여 명이나 되는 인부들은 이미 대부분이 그 죽과 같은 것 을 떠서 둘레에 앉아 먹고 있었고, 화검상이 다가가자 칼자국의 사내가 괴이쩍게 웃으며 말했다. “난 또 이런 음식이 싫어서 나오지 않는 줄 알았소. 하지만 우리들이야 이런 음식이라도 감지덕지해야 할 형편이라오.” 이미 한낮이 되어 날씨는 뜨겁고 무더웠다. 하지만 인부들은 뜨거워서 이마에 비지땀을 흘리면서도 연신 숟가락을 놀리고, 더러는 다가와 한 그릇씩 더 떠먹는 사람들도 있었다. 화검상은 한 인부가 떠주는 그 죽과 같은 것을 받으며 대꾸했 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오. 야그 출력일 :: 98/10/16 ───────────────────────────────────── 제 목 : [화산] 2 권 제 13 장 - 1 “나 역시 그대들보다 낫다고는 말할 수가 없소.” 그 죽과 같은 것은 비록 간이 잘 맞지 않고 양념도 잘 되어 있 지 않았으나 일단 한 숟가락을 넘기자 뱃속이 회를 치는 것 같았 다. 하지만 화검상은 고작 한 그릇밖에 먹을 수가 없었다. 오랫동안 식사를 하지 않아서 위장이 줄어들었을 뿐만 아니라 그는 이내 다른 생각에 골몰했기 때문이다. 그 딸기코의 사내는 어느새 식사를 마치고 한쪽에 앉아서 술을 한 모금씩 마시고 있었다. 그는 마치 언제 화검상에게 전음을 보냈었냐는 듯 태연한 신색 이었다. 그는 대체 어떤 사람이며 무엇 때문에 일부러 화검상에게 그런 전음을 보냈던 것일까? 화검상은 즉시 다가가 물어볼까 하다가 아무래도 지금은 때가 아닌 것 같아서 참았다. 그가 비밀이 유지되기를 바라지 않았다면 일부러 그렇게 무공 이 노출되는 것까지 감수해가며 전음을 펼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화검상은 그에게 물어보는 것은 지금으로서는 그다지 급하지 않다고 판단을 내렸다. 식사가 끝나자 인부들 중 일부는 그늘 밑으로 휴식을 취하러 흩어졌고, 칼자국의 사내는 나머지 사람들에게 오늘의 작업상황 에 대해 이런저런 지시를 내렸다. 화검상은 마침 지금이 딸기코의 사내에게 물어볼 수 있는 기회 라고 생각하고 마악 접근을 하려고 하는데, 문득 뒤에서 인기척 이 나며 말소리가 들려왔다. 칼자국의 사내가 어느새 그의 곁으로 다가온 것이다. “이보슈, 당신은 이런 일이 서투를 테니 오늘은 저 주정뱅이 와 함께 돌이나 나르슈.” 주정뱅이라고 함은 바로 다름아닌 딸기코의 사내를 말함이다. 화검상은 칼자국의 사내가 유독 그를 지목하는 것 또한 왠지 매우 공교롭다는 느낌이 들었다. 딸기코의 사내는 이쪽으로 고개를 돌리지는 않았지만 왠지 그 의 시선이 잠시 가볍게 흔들리는 것 같았다. ‘차라리 잘된 일이로군!’ 화검상은 오후 내내 그 딸기코의 사내와 일을 해야 하는 것이 라면 굳이 지금 가서 물어볼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제법 노련하니 잘 가르쳐줄 거요.” 칼자국의 사내는 다시 한번 괴이쩍게 웃더니 이내 자신이 쉴 장소를 찾아 물러갔다. 화검상은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 조금씩 술을 마시는 딸기코의 사내를 주시하다가 역시 그늘진 곳을 찾아 쉬러 갔다. 일을 기다리는 사람에게 있어 휴식시간은 서둘러 지나가기 마 련이다. 잠깐 동안의 짧은 단잠을 아쉬워하기라도 하듯 저마다 몇 차례 씩 하품을 해대고는 인부들은 이윽고 다시 일을 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돌을 쪼개고 다듬는 것 같지만 그것들은 각기 쓰임새에 따라 모양을 정해야 하기 때문에 결코 간단한 일은 아니다. 작업장에 다시 돌가루가 튀고 요란한 소음이 진동하기 시작했 다. 화검상은 이미 맡은 임무 그대로 딸기코의 사내와 함께 다듬어 진 돌들을 한쪽으로 나르기 시작했다. 그들이 하는 그 일이라는 것은 직접 쓰일 곳으로 가져가는 것 이 아니라 임시로 쌓아두는 곳으로 운반하는 것이었다. 그다지 사람들과 멀리 떨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화검상은 남들 의 시선을 의식해서 쉽게 입을 열 수도 없었다. 두 사람 다 무공을 연성한 사람들이기에 운반하기만 하는 일은 그저 내공을 약간만 사용하면 되므로 어려울 것이 없었다. 몇 번을 망설이다가, 화검상은 이윽고 세번째로 돌을 나르면서 사람들과 멀어졌을 때 드디어 전음으로 입을 열었다. “당신은 누구요? 그리고 왜 내게 그런 말을 하는 거요?” 이것은 화검상이 거의 최초로 전음입밀을 사용한 것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도 제법 잘되는지 그 딸기코의 사내는 다소 놀란 빛을 보이며 화검상을 바라보았다. 화검상 역시 그 딸기코의 사내에 못지않게 무공이 겉으로 드러 나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딸기코의 사내는 즉시 표정을 가라앉히고 전면을 바라보더니 전음으로 대꾸했다. “그것은 나중에 다 알게 될 것이오. 지금은 알려고 하지마시 오.” 그의 전음입밀의 음성은 평소와는 달리 혀꼬부라진 음성이 아 니었다. 누가 그를 주정뱅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화검상은 자신의 전음입밀이 예상외로 잘되자 내심 매우 신기 해 하다가 이내 그 말을 듣고 화가 나서 다시 전음으로 말했다. “알려고 하지말라고? 당신은 내가 당신의 그 말을 곧이곧대로 다 믿을 것 같소?” 딸기코의 사내는 무뚝뚝하게 대꾸했다. “당신이 내 말을 믿지 않는다고 해도 그만이오. 지금의 나로 서는 더 이상 해줄 말이 없소.” 화검상은 내심 어이가 없어서 그의 얼굴을 한번 주시하고는 다 시 전음으로 말했다. “그럼 당신은 어째서 나에게 그런 말을 했소? 차라리 계속 자 신의 정체를 숨기고 있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오?” 딸기코의 사내는 아무런 대꾸도 없었다. 그는 표정도 무뚝뚝한 것이 마치 다른 일에 넋이 빠져 있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화검상은 내심 답답해져서 다시 질문을 했다. “최소한 아까 말한 그가 누군지 내게 말해줘야 하는 것이 아 니오?” 딸기코의 사내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내 대꾸했다. “그건 알 필요도 없을 것이오. 그때 나가면 알게 될 테니.” 화검상은 내심 다소 약이 올랐다. 그는 지금 이 사내에게 질문을 해서 얻어낸 대답이 하나도 없 는 것이다. 화검상은 다시 전음으로 말했다. “내가 만일 그때 나가지 않고 지금 즉시 당신을 본파의 사람 들에게 고발해버리면 어떻게 되겠소?” 딸기코의 사내는 이에 문득 화검상을 바라보며 두 눈에서 가벼 운 섬광(閃光)을 번쩍이더니, 이내 다시 표정을 가라앉히며 말했 다. “적어도 당신이 전대장문인 화천괴의 손자라면 그렇게 하지 않을 것으로 믿소. 당신은 반드시 그를 만나야만 하오.” 화검상은 눈살을 찌푸리며 속으로 생각했다. ‘여기 또 할아버지의 일을 얘기하는 사람이 나타났군!’ 화검상은 이어 고개를 가로저으며 다시 전음으로 말했다. “나는 결코 그를 만나지 않겠소. 나를 그렇게 어수룩한 사람 으로 보다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소. 보아하니 당신의 무공도 제 법인 것 같은데 우리 지금 한차례 비무(比武)나 해보는 것이 어 떻겠소?” 딸기코의 사내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아무런 대꾸도 없었다. 화검상은 속으로 다소 어이가 없는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이 사내에 대해서 새삼 다른 사람을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상당히 무뚝뚝하고 말에 조리도 있으며 냉정하고 기개가 있어 보이는 것이 이전에 보던 술주정뱅이가 아니라 어떤 낙방선비를 대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화검상은 그 뒤로도 계속 이런저런 질문을 퍼부어보았으나 그 사내는 역시 입을 다물고 대꾸하지 않았다. 화검상은 이에 화가 치밀어 욕이 절로 나왔으나, 그만 방법을 바꾸는 수밖에 없었다. 열세번째 석판을 나르면서 화검상은 문득 이런 질문을 했다. “좋소! 당신이 말할 수가 없다고 하니 당신이 누구인지, 그리 고 어떤 목적으로 이곳에 와서 그런 모습을 하고 있는지는 묻지 않겠소. 하지만 우리는 다소의 인연이 있는 듯도 하니까 다른 말 을 하도록 합시다. 보아하니 당신은 나의 조부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나의 조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오. 야그 출력일 :: 98/10/16 ───────────────────────────────────── 제 목 : [화산] 2 권 제 13 장 - 2 딸기코의 사내는 다소 머뭇거리다가 이번에는 전음으로 대꾸했 다. “나도 잘은 모르오. 하지만 최소한 그분이 좋은 분이었다는 것은 알고 있소.” 화검상은 표정이 다소 신경질적으로 일그러졌다. ‘흐흐흐, 좋은 분이셨다구? 내 또 그런 말이 나올 줄 알았지! 왜 사람들은 남의 일에 이렇게 쓸데없이 나서기를 좋아할까?’ 화검상은 그런 생각을 굴리다가 약간 차갑게 안색을 굳히며 말 했다. “좋소. 당신이 그렇게 나의 조부를 좋게 평가해주다니 고마운 일이오. 하지만 나도 부탁 좀 하나 합시다. 당신이 누군지, 그리 고 무슨 목적인지 알려고 하지 않을 테니 제발 우리 가문의 일에 는 나서지말아주시오. 나는 그런 호의를 좋아할 만큼 그렇게 마 음이 넓은 사람은 아니란 말이외다!” 딸기코의 사내는 이에 잠시 신형을 멈추고 서서 멍하니 화검상 을 바라보았다. 화검상은 그에게 다시 한마디 더 던졌다. “그리고, 당신이 말하지 않는 것도 자유이지만 내가 그 사람 을 만나지 않는 것도 자유라는 것을 알아두시오.” 딸기코의 사내는 잠시 그렇게 화검상을 바라보다가 다시 고개 를 돌려 걷기 시작했다. 그 딸기코의 사내가 말이 없었기에 화검상도 이제는 더 말을 꺼내지도 못하게 되었다. 두 사람은 그렇게 그 뒤로는 어색해진 분위기 속에서 묵묵히 일만 계속했다. 내공이 강해진 탓에 오후의 무더위가 비록 별로 심하게 느껴지 지는 않았지만 이것은 짜증나는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이 딸기코의 사내는 지나칠 정도로 냉정하고 과묵했다. 그것은 그의 평소의 주정뱅이의 모습과는 정반대의 모습이었 다. 하긴 그렇게 외곬수적인 성격이니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주 정뱅이의 흉내를 잘도 내고 있는 것이리라. 일을 시작한 지 거의 한 시진 가량 지났을 무렵 화검상은 문득 자신의 앞으로 다가온 낯익은 얼굴을 발견했다. 바로 방귀춘이었다. 화검상은 느닷없이 그를 다시 보게 되자 일순 다소 놀라고 흠 칫한 기분이 들었다. 이전에 그에게 워낙 당할 뻔한 데다가 지금은 더군다나 딸기코 의 사내와 함께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방사숙, 그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화검상은 필시 그가 가검통처럼 전날의 일을 복수하기 위해 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화검상이 그에게 그런 인사를 하고 나자, 방귀춘 은 기이하게 웃으며 그를 힐끗 바라보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 다. “그래, 일하는 것은 재미있나? 하지만 난 자네를 보러 온 것 은 아니네.” 말과 함께 그는 딸기코의 사내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것은 곧 그가 딸기코의 사내에게 볼일이 있다는 말이었다. 딸기코의 사내도 그것을 보자 이내 안색이 미미하게 흔들리는 것 같았다. 방귀춘은 그를 잠시 기이한 눈초리로 바라보다가 문득 다시 입 을 열었다. “소문으로 듣자니 자네는 늘상 그렇게 술병을 옆에 끼고 산다 고 하더군. 그렇게 해서 지장은 없겠나?” 딸기코의 사내는 눈살을 찌푸리며 무뚝뚝하게 대꾸했다. “그래도 난 내 일을 하오.” 방귀춘은 뒷짐을 지며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렇다면야 별로 문제될 것은 없겠지. 자네는 내가 누군지 알고 있나?” 딸기코의 사내는 다소 머뭇거리는 듯하다가 말했다. “내가 당신 같은 사람을 어찌 알겠소?” 방귀춘은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였다. “그렇게 간단히 대답할 일은 아니네. 자네는 내가 오늘 자네 를 왜 찾아왔는지 알고 있나?” 딸기코의 사내는 약간 겁먹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그걸 어떻게 알겠소? 나는 그래도 이제껏 말썽도 별로 일으키지 않았는데 왜들 이러시오?” 방귀춘은 한 손을 들어 가볍게 내저었다. “그렇게 간단히 대답할 일이 아니라니까 자꾸 그러는군. 나는 한 가지 조사할 일이 있어서 왔네.” “대체 뭘 조사하겠다는 거요?” 이미 두 사람이 들고 가던 석판은 바닥에 내려놓은 상태이다. 딸기코의 사내는 짐짓 거친 표정으로 허리춤에서 술병을 꺼내 술을 몇 모금 들이켰다. 하지만 화검상은 그의 손끝이 이미 가볍게 떨리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는 갑자기 이 방귀춘에게 어떤 두려움이라도 느끼는 것일까? 방귀춘은 곧장 허리춤에서 장검을 뽑아들고 딸기코의 사내를 겨누며 말했다. “근래 들어 인부들 중에 첩자가 있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다. 그래서 나는 자네의 무공을 한번 시험해볼까 하네.” 딸기코의 사내는 갑자기 다리를 덜덜 떨기 시작했다. 아마도 거기에는 약간의 연극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뭐, 뭘 시험해본다는 말이오?” 술을 마셨기 때문인지 말소리가 다시 혀꼬부라진 것처럼 변했 다. 방귀춘은 느릿하게 장검을 앞으로 내밀어 검끝이 딸기코 사내 의 목젖에 닿게 했다. 새파란 한광(寒光)이 번뜩이는 검끝이 목젖에 닿자 미세한 핏 자국이 생겨났다. “무공을 시험해본다는 말이다. 만일 네가 무공을 알고 있다면 한번 반항해보도록 해라.” 검끝이 목젖에서 미세한 혈흔을 그리자 딸기코 사내의 안색은 다소 경직되는 듯했다. “내, 내가 어찌 그럴 수가 있단 말이오?” 방귀춘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래? 하지만 첩자들도 더러 너와 같은 말을 하기도 하지. 그러니 너는 좀더 견뎌보도록 해라.” 방귀춘은 이어 이번에는 장검을 서서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 새파란 검날에 의해 의복은 여지없이 베어져나가고 딸기코 사내의 몸엔 그 미세한 혈흔이 아래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물론 약간의 엄살기도 있었지만 다리를 덜덜 떠는 딸기코 사내 의 몸은 시퍼렇게 경직되기 시작했다. 누구나 죽음의 공포는 대개 느끼는 법이다. 방귀춘이 일단 그 상태로 마음만 먹으면 그대로 그의 몸에 구 멍을 내놓을 수도 있기에 두려워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너는 대항하지 않을 생각이냐?” 딸기코의 사내는 고개를 흔들었다. “나, 난 무공을 모르니 대항할 수도 없소.” 방귀춘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렇다면 이상한데?” 그는 검끝이 딸기코 사내의 심장 부위에 오자 잠시 머뭇거리는 듯하다가 아내 앞으로 푹 찔렀다. 방귀춘의 장검은 마치 두부를 찌른 것처럼 너무도 간단하고 가 볍게 딸기코 사내의 몸을 관통했다. 일순 딸기코 사내의 두 눈이 뒤집어지면서 그의 몸에서 붉은 핏줄기가 확 내뿜어졌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을 야그 출력일 :: 98/10/16 ───────────────────────────────────── 제 목 : [화산] 2 권 제 13 장 - 3 장검은 심장을 관통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화검상은 이것을 보고 일순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는 설마 하니 방귀춘이 정말로 딸기코의 사내를 죽일 줄은 생각도 못했다. 화산파의 일대제자라면 점잖은 신분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인부들에게까지 직접 손을 쓴다는 것은 체면이 깎이는 일 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사내의 심장을 관통했고 정확히 그의 숨통을 끊 어버리고 있었다. 딸기코의 사내는 비단 너무나도 간단하게 죽음을 당했을 뿐만 아니라 비명 소리도 내지 못했다. 그는 죽는 그 순간까지도 미처 그것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는지 허옇게 돌아간 두 눈동자 사이에는 의혹과 불신, 경악과 고통의 빛이 감돌고 있었고, 두 주먹은 어느새 불끈 쥐고 있었다. 그는 혹시 마지막 순간에는 무공을 펼쳐 반격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화검상은 자신이 지금 환각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 각이 들었다. 마치 그런 그의 마음에 현실감을 주기라도 하듯 선연한 피비릿 내가 콧속으로 스며들고, 방귀춘은 장검을 빼내어 시신이 되어버 린 딸기코 사내의 옷에 핏물을 닦아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역시 내 생각이 틀림없군! 녀석이 감히 발버둥을 치다니, 하 마터면 내 검이 빗나갈 뻔하지 않았는가?” 딸기코 사내의 시신은 그때까지도 굳건하게 버티고 서 있었으 나 방귀춘이 장검에 묻은 피를 닦는 바람에 돌연 쿵, 하고 뒤로 벌렁 넘어갔다. 화검상은 그 소리에 그제서야 제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렇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짧은 순간에 허망하게만 끝난 것으로 보 이지만, 그러나 그 순간에도 격돌은 있었던 모양이었다. 일반적으로 무공이 높은 사람들은 심장이 관통당했다고 해도 그렇게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즉사하지는 않는다. 너무나 예상 못한 살수(殺手)였기에, 딸기코의 사내는 그만 자 신도 모르게 내력을 운기(運氣)하여 그것에 대항했던 모양이었다. 방귀춘은 혹시 그런 것을 처음부터 노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딸기코의 사내가 무의식중에 내력을 운기하여 저항하자 그는 즉시 검강지기(劍 之氣)를 일으켜서 딸기코 사내의 내장까지 부 숴버린 것이다. 화검상이 아직도 시신을 바라보며 어안이 벙벙할 때, 방귀춘은 검을 다시 검집에 넣으며 태연스런 어조로 그에게 입을 열었다. “이로써 이자가 첩자였다는 사실이 입증된 셈이네. 자네는 설 마하니 이런 자와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겠지?” 주위에서 일하던 인부들도 모두 일손을 멈추고 놀라 바라보고 있는 중이었다. 화검상은 겨우 억지로 마음을 가라앉히며 대꾸했다. “관계없습니다.” 기실 장검이 이미 몸 속으로 들어갔을 때는 화검상이 손을 쓴 다고 해도 늦었을 것이다. 게다가 화검상은 전대의 죄업을 짊어지고 있는 마당에서 화산 파의 사람에게 또다시 죄를 지을 수는 없는 입장이었다. 방귀춘은 희미하게 기이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자네와 관계없다니 다행한 노릇이로군.” 어느새 그의 뒤쪽으로 화산파의 제자들이 나타나서 딸기코 사 내의 시신을 들고 가고 있었다. 방귀춘은 그쪽으로 시선을 주었다가 다시 고개를 돌리며 말을 이었다. “참, 자네에게 전할 말이 있네. 자네는 오늘부터 이곳에서 일 하고 잠은 처소에서 자도록 하게. 이건 장문인의 지시일세.” 딸기코의 사내가 의문을 남긴 채로 갑자기 죽었다는 사실도 놀 랍지만, 더욱 기이한 것은 이 방귀춘이 어째서 화검상의 앞에서 보란 듯이 그 일을 처리했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는 딸기코의 사내에게 심문도 하지 않고 단순히 첩자라는 결 론을 내렸지만, 그는 정말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내가 처소에서 잠을 자게 되면 더욱 나를 감시하는 것이 용 이해지겠군.’ 화검상은 속으로 빠르게 그런 생각들을 정리하며 입을 열어 방 귀춘에게 말했다. “예, 그렇게 하도록 하지요. 하지만 한 가지 부탁드릴 일이 있 습니다. 제가 이전의 방황을 겪었던 것은 무공과도 연관이 없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잘못을 범하기도 했구요. 하지만 근 래 들어 갑자기 그 혼란이 정리되고 무공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 했습니다. 이곳 채석장의 일은 제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은 아닐 것이니, 틈틈이 필요한 시간에 동굴로 가서 따로 무공을 수련하 는 것을 허락해주십시오.” 단지 무공을 수련해야 한다는 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화검상은 또다시 딸기코의 사내나 전노인과 같은 사람을 만나 기 싫어서 외부의 사람들과 만나지 않을 구실을 만들어두려는 것 이었다. 무공에 관한 얘기가 나오자 방귀춘의 눈빛이 기이하게 번뜩였 다. “지금 나더러 그 얘기를 장문인께 전해달라는 말인가?” 화검상은 조금 전에는 거의 이성을 잃을 뻔하기도 했으나 이제 는 마음이 많이 가라앉았다. “그렇습니다. 방사숙께서 말씀드려주시면 장문인께선 반드시 들어주시리라고 믿습니다.” 방귀춘은 차갑게 냉소를 지었다. “장문인께서 들어주실 것인지는 나중에 두고 봐야 알 것이다. 너는 또 저번처럼 달아나 말썽을 부리려는 것이 아니냐?” 화검상은 문득 저번에 방귀춘을 골려먹은 것을 상기하자 절로 웃음이 나오는 것 같았다. “아닙니다. 저는 매일 밤을 반드시 처소에서 묵을 것이며, 무 공을 수련하는 것도 반드시 저번에 가사제와 다투었던 그 동굴에 서 할 것입니다. 그러니 다시는 그런 염려는 하지 않으셔도 좋을 것입니다.” 방귀춘은 잠시 생각해보는 듯하다가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그런 조건이라면 내가 장문인께 말씀드려보겠다. 하지 만 너는 항상 근신하는 자세여야 함을 잊지말아야 한다. 알겠느 냐?” “알겠습니다. 방사숙.” 화검상이 공손히 읍하며 대답하자, 방귀춘은 다소 살기가 어린 듯한 시선으로 그의 얼굴을 주시하다가 이내 몸을 돌려 사라져버 리고 말았다. 화검상은 방귀춘의 모습이 산모퉁이를 돌아 완전히 사라질 때 까지 바라보고 있다가, 이윽고 딸기코 사내의 피가 축축이 젖어 있는 곳을 향해 시선을 옮기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것 보시오. 내가 뭐라고 그랬소?’ 필요한 시간에 동굴로 가서 수련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확대해 서 해석하면 앞으로도 채석장의 일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 이다. 그러나 화검상은 그래도 약간의 명분을 위해서 오늘 오후 동안 은 계속 그 채석장의 일을 해주기로 했다. 딸기코의 사내가 그렇게 된 이후에 다시 화검상과 일을 함께 해보고자 하는 사람은 없었고, 칼자국의 사내도 그저 모른 척할 뿐 나서서 사람을 정해주지는 않았다. 화검상은 그 이후로는 혼자서 그 석판들을 나르는 일을 했다. 이미 그의 무공도 드러나 있는 상황이고 보니 내공을 좀더 사 용한다고 해서 이상할 것이 없었다. 힘도 있고 이미 일도 다소나마 배웠으니 화검상으로서는 오히 려 그쪽이 마음 편했다. 그런데 작업이 거의 마무리가 되어가는 유시 무렵의 일이었다. 갑자기 다시 한 사람이 그를 찾아왔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오. 야그 출력일 :: 98/10/16 ───────────────────────────────────── 제 목 : [화산] 2 권 제 14 장 간악(奸惡)해 지는 법 제 14 회 간악(奸惡)해 지는 법 이번에 화검상을 찾아온 사람은 그에게 의외로 낯설게 느껴지 는 사람이었다. 화검상은 그를 보자 이내 다소 놀랐다. 그는 다름아닌 바로 저 번에 전노인도 말한 바 있는 여귀기(余歸機)였기 때문이다. 여귀기는 평소에 차분한 성격에다 과묵한 사람으로 사람들과 만나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기에 화검상도 그를 대한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그는 또 무엇 때문에 화검상을 찾아온 것이라는 말인 가? 화검상은 이미 조금 전에 딸기코 사내의 일을 겪었기 때문에 그를 보자 우선 두려움부터 앞서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데 여귀기는 그를 보자 이내 낯부터 붉혔다. “자네, 아직도 내 여식을 만나고 있다고 하던데 그게 사실인 가?” 다소 작은 마른 체구에다가 깊은 눈빛을 가진 이 중년검사(中 年劍事)가 낯을 붉히는 경우는 드물었기 때문에 화검상은 약간 당황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여귀기의 여식이란 바로 다름아닌 여검월(余劍月)을 말하는 것 이다. 화검상은 들고 가던 석판을 내려놓고 먼저 인사부터 하며 어물 어물 대답했다. “여사숙이시군요. 예, 하지만 무슨 특별한 일이 있는 것은 아 닙니다.” “특별한 일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여귀기는 일순 대노한 듯이 장력을 날려 석판을 부숴버리며 소 리쳤다. “내 여식이 내게 와서 그런 말을 하는데 그래도 자네는 아니 라고 발뺌을 한다는 말인가?” 여귀기의 무공은 이미 최상승(最上昇)의 경지에 이르렀다. 장력(掌力)에서 흡사 검기(劍氣)와도 같은 강기( 氣)가 발산되 어 석판을 일거에 박살내는 것을 보아도 그것을 알 수가 있다. 만일 그의 무공이 아직 절정경지라면 장력에서 그와 같은 강기 를 발산시키는 것은 특수한 장공(掌功)을 배우지 않는 한 어렵다. 화검상은 갑자기 당하는 일이라 다소 어이가 없기도 했지만 차 라리 그것이 더욱 마음이 놓이기도 했다. 화검상은 즉시 여검월과의 일을 상기해보며 대꾸했다. “죄송하지만 여사매가 무슨 말을 했는지 가르쳐주시겠습니 까?” 여귀기는 노화가 치밀어 마악 화검상의 가슴을 장력으로 후려 치려다가, 잠깐 자제한 듯 차갑게 냉소하며 손을 거두고 말했다. “정말 자네는 소문대로 뻔뻔스럽기조차 하군. 좋네, 승복할 수 없다면 승복하게 해주어야지. 하지만 여기서 내 여식의 일을 들 먹일 수는 없으니 장소를 옮기세!” 이미 인부들은 일손을 멈추고 또다시 일이 벌어지려고 하는 화 검상을 향해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화검상은 그런 말을 듣자 왠지 한 가닥 불안한 느낌이 뇌리를 스쳤다. 크게 노한 듯한 안색과는 달리 여귀기의 눈빛은 여전히 깊어 보인다. 대체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화검상은 자신의 느낌이 틀린 것이기를 바라며 말했다. “여사숙의 말씀은 잘 알겠지만 그러나 저는 정말로 여사매와 어떤 일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부디 저의 말을 믿어주십 시오.” 여귀기는 크게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 거야 따져보면 알게 될 일이고 장소를 옮기자니까 무슨 말이 그리 많나?” 화검상은 다시 말했다. “저는 지금 장문인의 지시에 의해 이 일을 하고 있는 상황이 므로 무단으로 자리를 떠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대신 제가 그 일을 자세히 말씀드리도록 하지요.” 문득 여귀기의 전음이 화검상의 귀에 분명하게 들려왔다. “나는 지금 그런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니 어서 자리를 옮 기세!” 그것은 화검상이 은근히 두려워하고 있던 불길한 예감과도 어 느 정도 맞아떨어지는 것이었다. 여귀기는 지금 다른 말을 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화난 듯이 여 검월의 얘기로 낯을 붉히고 있는 것이었다. 화검상은 내심 한숨을 내쉬었다. ‘빌어먹을!’ “아니 자네는 누구 여식의 혼삿길을 망칠 일이라도 있나?” 화검상은 일단 그의 의도를 알았으나 그의 뜻대로 따라주는 수 밖에 없었다. 그가 일단 그렇게 결정하고 나타난 이상, 화검상이 아무리 거 역하려 한다고 해도 일이 좋게 될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화검상은 공손히 읍하며 말했다. “그럼 잠시 장소를 옮기도록 하겠습니다.” ‘당신들은 어째서 계속 이렇게 나를 곤란하게 만드는 거요?’ 여귀기는 잠시 주위를 둘러보다가 이윽고 좌측에 있는 한 야산 의 정상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가 좋겠군.” 으레 밀담을 나눈다면 사람들은 대개 은밀하고 으슥한 곳을 찾 게 되기가 쉽다. 하지만 그런 곳들은 오히려 숨어서 엿듣는 사람들이 있을 수가 있으므로 그다지 안전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여귀기는 사방이 탁 트이고 인부들의 눈에도 고스란히 드러나 는 산정상을 택했는데, 그것은 그의 주도면밀한 점이라고 할 수 가 있었다. 그런 곳은 발견되기는 쉽지만 오히려 숨어서 엿듣기 는 어려운 것이다. 이윽고 여귀기는 화검상을 그 산 정상의 넓은 바위 위로 데려 가 마주앉으며 말했다. “내 여식이 나를 찾아와서 자네와 함께 본파를 떠나겠다고 했 네. 자네도 알다시피 나도 그 여식으로 인해 우리 집안이 멸문지 화(滅門之禍)를 당하는 것을 원치 않네. 내가 일찍이 자네에게 원 수진 일이 없는데 정말 이럴 수가 있나? 자네는 도대체 그 아이 와 무슨 짓을 한 것이지?” 여귀기의 그 음성은 그다지 크다고 할 수 없었으나 만일 누군 가 근처에서 천청대법(天聽大法) 등을 사용하여 엿듣는다면 충분 히 말을 알아들을 수가 있을 것이다. 과연 생각대로 여귀기는 동시에 전음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었 다. “이런 편법을 사용하게 된 것을 이해하게. 자네는 할말이 있 을 경우에는 바닥에 글을 쓰도록 하게!” 화검상은 내심 크게 울적하고 답답하기도 하여 즉시 전음으로 이렇게 대꾸했다. “당신이 바로 오늘밤 자시에 나와 만나자고 했던 그 사람이로 군요?” 여귀기는 그 말을 듣자 일순 놀라서 화검상의 얼굴을 바라보았 다. 그는 화검상이 자신에게 전음을 보냈다는 사실이 쉽게 믿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대개 무림인이 전음을 보낼 때는 더러는 그 방법이 아직 미숙 하거나 혹은 습관적인 것 때문에 미세하게나마 입술을 놀리게 되 어 있다. 그러나 지금 화검상은 전혀 입술을 움직이지 않고 아주 자연스 러운 음성을 여귀기에게 보낸 것이었다. 다소 화검상이 달라졌다는 얘기를 듣고는 있었으나 이 정도로 달라졌을 줄은 그도 짐작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여귀기는 잠시 화검상을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이내 한숨 을 내쉬며 다시 전음으로 말했다. “좋아, 그렇다면 자네도 굳이 글을 쓸 필요는 없겠군! 이제부 터 내가 간혹 다른 사람들을 위해 헛소리를 하더라도 개의치 말 게.” 이어 그는 다시 육성으로 소리쳤다. “자네가 그렇게 양심이 없다니, 어떻게 그런, 그런 말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야그 출력일 :: 98/10/16 ───────────────────────────────────── 제 목 : [화산] 2 권 제 14 장 - 1 무릇 이 전음입밀이라는 것은 상대방과 은밀하게 대화를 나누 기 위해 사용되는 것이다. 물론 무학이 발달하여 그 전음입밀의 수법마저 엿들을 수 있는 무공들이 나타나기는 했지만, 그러나 그것은 초절정(超絶頂)의 경 우에서나 일부 가능할 뿐이고, 또한 그 경지에는 거리가 가까워 야 하는 것이므로, 장문인과 이대원로(二大元老) 등이 바로 옆에 있지 않은 현재로서는 안전하다고 해야 할 것이었다. 칼자국 사내 등의 인부들도 이쪽에서의 상황이 별로 특이할 만 한 것이 없어 보이자 다시 일을 계속하기 시작했다. 하루의 작업이 거의 마무리되는 상황이므로 그들의 일손은 더 욱 바빠지고 있었다. 화검상도 이제는 그냥 앉아서 벌어지는 일들을 구경만 할 수는 없다는 심정이 되어 있었다. “저는 여사숙께서 그 사람인지를 물었습니다.” 여귀기는 화검상이 정색을 하고 물어오자, 다소 쓴웃음을 지으 며 전음으로 대답했다. “그야 말할 게 있겠나? 갑자기 그가 찾아와서 내게 이런저런 얘기들을 하길래, 나도 생각하던 바가 있어서 자네를 오늘밤 작 업장 부근에서 만나겠다고 한 것이지. 그런데 그가 갑자기 살해 되어 나도 놀랐네. 그래서 부득이 이런 편법으로 시기를 앞당기 게 되었네.” 화검상은 의아한 느낌이 들었다. “그럼 여사숙께서도 그가 누구인지 잘 모른다는 말씀입니 까?” 여귀기는 말했다. “솔직히 그렇네. 하지만 여러 가지 정황들로 보아 나는 그를 믿을 수가 있었지. 나는 그가 나와 같은 배분이고 나의 사제뻘 속가제자(俗家弟子)라는 사실 정도만 알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렇게 사람을 쉽게 믿을 수 있기는 쉬운 노 릇이 아니다. 아마도 여귀기에게는 따로 감추고 있는 사항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화검상은 내심 혼란해진 머리를 정리하기 위해 고개를 흔들며 계속 전음으로 말했다. “어쨌든 저는 여러분이 이렇게 무모하게 나서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비단 저에게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여귀기는 다소 고소(苦笑)하며 말했다. “하지만 이미 이 자리는 마련되지 않았나? 설령 내가 지금 자 리에서 일어난다고 해도 저들의 의심은 마찬가지일 걸세.” 이어 여귀기는 육성으로 다시 말했다. “자네는 정말 나와 한번 해보자는 말인가?” 화검상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대체 여사숙께선 제게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것입니까?” “자네는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는 모양인데, 그렇다고 내가 자네에게 손을 쓰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오산이네. 내 딸은 이제 자네 때문에 시집도 가지 못하게 될 걸세. 내가 이 대로 당하고만 있을 것 같은가?” 여귀기는 육성으로 다시 한번 소리치고 난 뒤에 장력(掌力)을 휘갈겨 옆의 작은 바위 하나를 부숴버리고 나서 전음으로 대답하 기 시작했다. “내가 듣기로, 자네는 조부에 대해 일종의 죄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군. 그게 사실인가? 아니 자네가 아닌 조부에게 죄가 있다고 하는 생각 말이네. 사실이 그렇다면 그건 자네의 잘못된 생각일세.” 화검상은 대꾸했다. “그럼 여사숙께선 다른 의견이라도 가지고 계시다는 말씀입니 까?” 여귀기는 안색을 굳히고 무거운 표정으로 말했다. “세상의 진실은 비록 한때 구름 속에 가려져 있어도 결국은 드러나게 되어 있는 것이네. 과거 본파의 인심은 결코 지금과 같 지는 않았네. 정말로 사형제간의 우애가 있고 나날이 명문정파 (名門正派)로 발전해가는 상황이었지. 한데 지금은 본파의 제자들 은 오히려 무공과 협의(俠義)보다 권모술수나 간악(奸惡)해지는 법을 먼저 배우고 있네. 그것은 왜 그런지 아는가? 바로 윗물이 맑지 못하기 때문이네. 자네도 아마 과거의 기억을 모두 잊어버 리지는 않았을 것이네.” 화검상은 허망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저의 조부가 결국에는 좋은 분이셨단 말씀이군 요?” “그야 두말할 나위가 없는 사실이지. 당시 지금의 장문인은 외부의 힘을 빌려서 전대장문인(前代掌門人)을 제거하고 지금의 상황을 이룬 것이네.” 화검상은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만일 그렇게 저의 조부가 훌륭한 분이었다면, 그리고 화산파가 막강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면 어떻게 그리 쉽게 무너 질 수가 있었겠습니까? 하하, 외부의 힘이라구요? 혹시 소림(小 林)이나 무당파(武當派)가 돕지는 않았나요? 하하……, 그럴 리는 없을 것입니다. 저 역시 어찌 그런 것을 믿고 싶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본파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모든 명문정파의 사람들, 심지 어 저의 모친까지 그런 말씀을 하시는데 제가 인정하지 않을 수 가 있겠습니까? 흔히 민심은 천심이라고들 하지 않습니까?” 여귀기도 그 말을 듣고 마침내 가볍게 탄식을 했다. “나도 실은 그런 점들을 이해할 수 없기도 하네. 나는 당시 사건이 벌어질 때 외부에 나가 있어서 당시의 상황을 잘 알 수는 없었지. 그러나 어쨌든 나의 말은 분명한 사실이고 자네가 지금 이해할 수 없다고 해도 어쩔 수 없네. 다만 지금으로선 비록 믿 을 수가 없다고 해도 자네는 태도를 분명히 정해야만 하네.” 화검상은 그것이 바로 오늘 여귀기가 그를 만난 이유라는 것을 알았다. “여사숙께선 제가 앞으로 어떻게 하기를 바라십니까?” “자네는 서둘러 이곳을 떠나서 독립을 하고, 힘을 길러서 때 를 기다려야만 하네.” 화검상은 웃으며 말했다. “그건 여사매의 말과 비슷하군요?” 여귀기도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그런가? 하지만 나는 여태 나의 의중을 누구에게도 말한 적 이 없네. 그 아이는 아마 다른 뜻이 있었겠지? 그런 남녀간의 일 은 내가 관여할 바가 아니니 자네가 알아서 하게.” 화검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는 떠날 생각이 없습니다.” 여귀기는 한숨을 내쉬며 화검상의 얼굴을 보았다. “자네가 비록 믿지 못하겠다고 해도 일단은 살아야 할 게 아 닌가? 이번에 자네는 갑자기 사람이 달라져서 돌아왔지. 그건 매 우 반가운 일이지만 장문인 등은 오히려 그것을 매우 꺼림칙하게 보고 있네. 그들은 자네를 서서히 매장하려고 하였지만 그 때문 에 계획을 수정하여 빠른 시일 내에 자네를 척결하기로 하였네. 자네는 장문인 등이 이번에 자네를 유난히 관대하게 대한 이유를 알고 있는가?” 화검상은 문득 가슴속으로부터 쓴 물이 올라오는 듯하여 내심 고소하며 말했다. “그건 아무래도 명분 때문이겠지요.” 여귀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 그들에게 어떤 자비심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정말로 순진하기 짝이 없는 생각일세. 그들은 일단 자네를 척결하기 전에 자네에게 잘 대해주는 척하여 자신들이 자네에게 관대하게 해주려고 했으며 그 척결과는 무관하다는 것을 보여주 려는 것이네. 정파의 사람들에게 있어 이 명분이라는 것은 모든 일에 앞서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지. 나는 그래서 다급히 자네를 만나려고 했던 것이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오. 야그 출력일 :: 98/10/16 ───────────────────────────────────── 제 목 : [화산] 2 권 제 14 장 - 2 그렇다. 화검상은 오전에 장문인의 집무실을 나서면서 몹시 불길한 예 감을 느꼈었는데, 실은 그 예감이라는 것의 정체는 이런 것에 대 한 것이었다. 화검상은 과연 그것을 모르고 있었던 것일까? 단지 그는 일부러라도 가능하면 상황을 좋게 해석하려고 생각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여귀기가 위험을 무릅쓰고 다가와 말해주는 것을 보면 그 시기는 이미 지척에 다가와 있는 듯했다. 화검상은 웃으며 다시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저는 이곳을 떠나지는 않겠습니다.” 여귀기는 그 말을 듣고 다소 멍하니 화검상의 얼굴을 바라보다 가 탄식하며 말했다. “휴우, 그런 점은 정말로 전대장문인의 고집을 닮은 것 같군! 그러나 이런 일은 결코 고집만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네. 만일 자네가 이대로 화를 당하고 나면 그 진실을 밝힐 길은 영영 묻혀 버리고 말 수도 있네.” 화검상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저는 지금의 상황에서는 어쨌든 최선을 다해 가문의 죄를 씻 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네는 그들의 살수(殺手)에 대한 대비책이라도 세워놓고 있 나?” 화검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만일 그렇게 죽게 된다고 해도 그건 어쩔 수가 없는 일입니 다. 중원(中原)은 본래 넓은 듯하지만 좁은 법이지요. 제가 다른 곳으로 달아나서 생명을 부지한다고 한들 거기에서 무슨 다른 희 망을 기대할 수가 있겠습니까?” 여귀기는 거듭 탄식을 하며 고개를 내젓더니 몸을 일으켰다. “나도 사실은 어떤 것이 최선인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네. 어쨌든 나는 이 말을 전했으니 자네는 좀더 깊이 생각해보도록 하게. 만일 떠날 생각이 들거든 내 여식을 통해 나를 불러내도록 하게!” 이어 여귀기는 육성으로 다시 말했다. “도저히 자네는 말이 통하지 않는군! 어쨌든 차후로도 그런 일이 생길 시에는 가만 있지 않을 테니 그리 알게!” 말을 마치자, 여귀기는 이내 신법(身法)을 펼쳐 연무장 쪽으로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화검상은 잠시 그쪽을 바라보다가 내심 한 숨을 토하듯 속으로 중얼거렸다. ‘난, 어쨌든 이 화산파를 떠날 수는 없소……!’ 어느덧 날이 저물고 해가 서산으로 완전히 기울어 하루의 작업 도 끝이 났다. 대부분의 인부들이 외지에 있는 자신들의 거처로 돌아가기 위 해 서두르는 동안, 화검상은 연무장과 인접해 있는 처소로 돌아 가기 위해 우선 숙소로 발길을 옮겼다. 육체적인 노동이 힘든 것은 아니었건만, 오늘도 그의 발길은 다소 무거워 보였다. 그것은 오늘 낮에 받은 갈등과 번뇌가 너무 도 심하여 그의 마음을 대단히 힘겹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임시숙소에서 그가 챙길 물건들은 별로 없었다. 장검은 허리에 차고 일을 했었고, 그밖의 물건들도 대개 몸에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약간의 옷가지 등을 챙겨들고서 그는 숙소를 나섰다. 작업장에는 아직 돌아가지 않은 인부들이 쟁기들을 챙기고 있 었다. 화검상은 문득 그들을 바라보면서 아직도 그들 가운데에 있게 되었을지도 모를 전노인과 딸기코 사내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들은 어째서 어리석게도 그와 같이 귀중한 자신들의 목숨을 함부로 버렸을까? 과연 그럴 만큼 그의 조부는 괜찮은 사람이었다는 말인가? 작업장을 지나 연무장(鍊武場)의 앞에 도달하니 아직도 많은 제자들이 무공을 수련하느라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다. 이제 출정이 임박했으므로 그들은 밤낮없이 수련을 계속하는 모양이었다. 화검상은 천천히 오른쪽으로 돌아 자신의 처소로 향했다. 이미 주위에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고 있었는데 처소의 앞에는 후검암(侯劍岩)이 나와 앉아 있다가 그를 맞이했다. “화사제, 자네가 돌아온다는 얘기는 나도 들었네. 어서 안으로 들어가지?” 후검암은 올해 서른 여섯의 장년인으로 무공은 삼 갑자(三甲 子)의 절정경지이다. 비록 아직 숙달이 되지는 않았지만 화검상 은 자신의 무공이 이제는 그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 다. 화검상이 바라보자 후검암은 다소 어색한 듯이 웃어 보이며 그 를 안으로 안내했다. 화검상의 방은 이전과 다름없이 좌측에서 두번째의 것이었지 만, 그러나 맞은편 침상은 텅 비어 있었다. 그것을 보고 후검암은 웃으며 설명했다. “가검통, 가사제는 본인의 요청에 따라 다른 방으로 옮겼지. 따라서 자네는 좀 외롭겠지만 당분간 이 방을 혼자 쓰도록 해야 겠네.” ‘당분간? 과연 내게 그 이후로도 이곳에 머물 시간이 있을 까?’ “고맙습니다. 후사형!” 화검상이 포권하며 말하자, 후검암은 약간 멋쩍은 듯이 웃으며 이내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럼 푹 쉬도록 하게!” 저녁 때라 약간 시장기가 돌았다. 화검상은 밥을 먹으러 갈까 하고 생각해보다가 이내 다 귀찮아 져서 침상 위에 벌렁 드러누웠다. 차라리 그가 이렇게 혼자 지낼 수 있게 된 것이 마음 편할 것 이다. 화검상은 누워서 이런저런 생각을 굴리다가 이내 깊은 잠속으 로 곯아떨어지고 말았다. 본래는 이런 곳에서 편히 잠을 잔다는 것이 쉽지 않은 노릇이 겠지만, 화검상은 이미 오랫동안 잠을 자보지 못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대략 한 시진 가량 잠을 잤을까? 화검상은 문득 몽롱한 의식중에 누군가 밤고양이처럼 기척을 줄이고 방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느끼고 눈을 떴다. 무공이 높은 경지에 오르면 비단 며칠 동안 잠을 자지 않고 다 만 운기조식으로 버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짧은 시간 동안 잠 을 자더라도 피로는 더욱 빨리 풀린다. 화검상은 불과 한 시진 가량 자고 났는데도 이미 크게 어수선 했던 마음이 진정되고 머리도 맑아진 것을 느꼈다. 그도 마음이 어수선한 상태에서는 쉽게 현실의 고뇌에 이끌리 고 거기에 빠져서 공허해지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제 마음이 가라앉고 차분히 현실을 비춰보니 그는 자 신의 잘못을 알 수가 있었다. 곡선적(曲線的)이란 무엇인가. 그것 역시 그가 주인이 되어 부리는 손님에 불과한 것이다. 손님은 잠시 머물다가는 사라져버린다고 할 수 있지만, 그는 자기자신의 변하지 않는 주인인 것이다. 그 손님은 끊임없이 변화되고 끊어지지 않는 것으로 곡선적이 지만, 그는 자신의 위치를 지켜야 하는 것이다. 곡선적이 비록 뛰어난 모용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환상과도 같 고 허망하다. 잡히지 않고, 잡을 수 없는 것을 잡으려 한다면 허 망하다는 말이다. 곡선적이란 말도 본래는 그런 의미가 아니던가? 그는 어느새 그 곡선적에 집착하고 있었던 것이다. 화검상이 잠시 그러한 생각에 몰두하고 있는 동안 그 한밤의 침입자는 어둠 속에서 새파란 눈동자만 굴리며 뭔가 주저하고 있 었다. 그 침입자는 이윽고 뭔가 행동을 개시하려고 하였으나, 문득 화검상이 그간의 번뇌와 감정의 찌꺼기들을 한꺼번에 몰아내듯이 길게 한숨을 내쉬는 것을 보고 그만 놀라 멈칫했다. 마음이 안정되자 그 곡선적인 무예도 더욱 제 빛을 발휘하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우선 그가 깊은 잠속에서도 쉽게 침입자를 간파할 수 있었던 것도 아마도 그러려니와, 지금 어둠 속에서도 그 침입자의 얼굴 을 쉽게 알아볼 수 있는 것도 그럴 것이다. 본래 지금의 그의 무학경지라면 이런 능력은 당연하다고도 할 수가 있겠지만, 마음이 안정되자 충분히 역량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다. 침입자는 바로 단석광(段石光)이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오. 야그 출력일 :: 98/10/16 ───────────────────────────────────── 제 목 : [화산] 2 권 제 14 장 - 3 “무슨 일이냐?” 화검상은 조용한 모습이 되어 침상에서 일어나 몸을 세웠다. 단석광은 화검상이 그처럼 태연하게 자신을 알아보자 크게 놀 라는 빛을 감추지 못하며 수중에 들고 있던 단검을 얼른 품속에 숨겼다. “난, 단지 화사숙이 잠을 자고 있나 보러 온 거예요.” 화검상은 화섭자를 찾아 촛불에 불을 밝혔다. 단석광은 다소 붉어진 안색으로 눈빛만 예리하게 굴리고 있었 다. 화검상은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다시 말했다. “그래, 내가 자고 있는 것을 보았으니 이젠 만족하느냐?” 단석광은 재빠르게 눈빛을 굴리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당신은 지금 이렇게 앉아 있잖아요. 앉아 있는 것이 자고 있는 것은 아니지 않겠어요?” 화검상은 미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제법 조리있는 말을 하는구나. 그래, 지금 나는 잠을 자 고 있다고는 말할 수가 없지. 너는 혹시 내게 할말이 있어서 온 것이 아니냐?” 단석광은 그를 빤히 주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한데 당신은 그걸 어떻게 알았죠?” 화검상은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너는 아직도 가지 않고 있으니 당연히 할말이 있을 게 아니 냐?” 단석광은 부지런히 머리를 굴리는 듯하더니 다시 고개를 끄덕 였다. “그렇군요. 그럼 지금 즉시 그 할말을 하도록 하겠어요.” 말과 함께 단석광은 품속에서 예의 그 단검을 다시 꺼내 화검 상의 앞에 내밀었다. “이걸 가지도록 하세요.” 화검상은 다소 미소하며 말했다. “그건 단검이 아니냐? 내가 왜 그것을 가져야 하는 거지?” 단석광은 문득 두 눈에서 흉악한 안광을 뿌리며 말했다. “당신은 무단히 내 단검을 빼앗아갔어! 그러니 내 것은 돌려 줘야 할 게 아냐?” 올해 불과 열 살도 되지 않은 이 꼬마 녀석이 갑자기 말투도 바뀌었다. 화검상은 그러나 여전히 웃으며 말했다. “내가 네 것을 빼앗았다니 무슨 말인지 모르겠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주겠느냐?” 단석광은 잠시 화검상을 흉악하게 노려보더니 몸을 돌렸다. “당신이 그렇게 철면피하게 나온다면 나로선 할말이 없어. 다 른 사람들에게 이 일을 알려서……!” 화검상은 이 꼬마 녀석이 그가 가지고 있는 그 예리한 단검에 욕심을 품고 겸사겸사 그를 찾아왔다는 것을 이미 눈치채고 있었 다. 하지만 이 녀석이 이처럼 순순히 물러나는 것이 다소 뜻밖이라 고 생각했다. 한데 바로 그때였다. 단석광은 마치 돌아갈 듯이 문을 돌리더 니, 갑자기 다시 그를 향해 몸을 돌리면서 손에 든 단검으로 무 섭게 살수(殺手)를 펼치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이 초식은 비단 상대방의 허를 찌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빠르 고 살벌하여 화산파에서도 특이한 백팔식광풍쾌검(百八式狂風快 劍)에 들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상당히 위험했다. 화검상은 우선 미간을 노리고 들어오는 일식(一式)을 피하지 않을 수가 없었고, 그가 목을 옆으로 젖혀 피하는 순간 단석광의 검초(劍招)는 가슴과 아랫배, 그리고 다시 미간을 향해 벌써 세 번이나 찌르고 들어왔다. 만일 화검상이 그 순간순간마다 상체와 하체를 움직여 피하지 않았다면 그의 몸은 상처를 입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기실 화검상은 갑작스런 기습이었다고 해도 단석광의 검초가 일식에서 그 다음으로 넘어갈 때 이미 모든 변화에 앞서 나갔으며, 단석광이 다시 미간을 노리고 찔러올 때 오히려 그는 기다리고 있던 상황이었다. 두번째로 가슴을 베어올 때도 물론 충분히 그럴 수가 있었으 나, 그는 무공이 갑자기 상승되었기 때문에 애교로 봐주었다고 할 수가 있다. 똑같은 초식을 전개한다고 해도 경지에 따라 힘과 변화, 그리 고 빠르기에서 현격한 차이를 보이게 된다. 변화에 앞서나간다고 하는 것은 빠르기라고 할 수 있고, 빠르 기는 당연히 힘에 의존한다. 단석광이 두번째로 미간을 노리고 찔러왔을 때, 화검상은 가만 히 빈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지금 단석광이 찔러가는 속도는 무공이 없는 일반인이 보기에 는 대단히 빠른 것처럼 보인다. 그런 날카로운 단검을 빈손으로 상대하려는 것은 어리석어 보 인다. 그러나 기이하게도 단석광은 그 손바닥을 찌르려고 할 때 는 텅 빈 허공 같고, 황급히 변초(變招)를 하니 그의 단검은 어느 새 화검상의 손아귀에 들어 있었다. 그것은 마치 아주 빠른 속도로 자신의 단검을 화검상의 손아귀 에 손잡이 쪽으로 쥐어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것이 바로 빠르기에 이은 변화(變化)의 힘이다. 화검상의 무공은 지금 절정경지이나 곡선적이기에 힘이나 빠르 기, 그리고 변화에 있어서도 남다르다고 할 수 있었다. 단석광은 갑자기 어이없게도 단검의 손잡이 부분이 화검상의 손아귀에 빨려들어가버리자, 크게 놀라 뒤로 다급히 물러나며 안 색이 시뻘게졌다. 그것은 심리적인 요인에다 진기가 갑자기 무리를 일으켜 안색 이 그와 같이 변한 것이다. 실상 설명은 길었지만 그 순간은 짧아서 그것을 보지 않은 사 람은 마치 단석광이 그냥 단검을 건네준 것 같은 느낌을 받을 것 이다. 단석광은 일순 어쩔 줄 몰라 하다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다, 당신은 소문대로 무공이 증진되었군요?” 화검상은 자신의 손에 들려지게 된 그 단검을 바라보다가 미소 를 지으며 말했다. “너는 물건을 건네주는 방법이 특이하구나. 하마터면 손이 베 일 뻔하지 않았느냐?” 단석광은 재빨리 눈빛을 굴리다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래요. 나는 단지 그 단검을 당신에게 주려던 것이었을 뿐이라고요!” 화검상은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다시 말했다. “너는 정녕 이 단검을 반드시 내게 주고 싶은 것이냐?” 단석광은 다시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래요! 그 단검은 반드시 당신에게 어울릴 거예요.” 화검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일으켰다. “정녕 네가 나에게 이런 인심을 쓰고자 한다면 나도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구나.” 화검상은 단검을 단석광의 코앞에 들이대며 말을 이었다. “너는 저번에도 내게 한 수 지도받고 싶다고 말하지 않았으 냐?” 단석광은 검날이 자신의 코앞으로 다가들자 크게 불안해져서 눈이 휘둥그래졌다. “난, 난 지금은 하지 않겠어요.” 화검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너의 사숙이니 나의 말을 들어야지! 이런 기회는 흔하 지 않으니 너는 나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 우선 검(劍)은 상대를 공격하는 것보다 공격당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얼굴에는 상처를 낼 수 없으니 네 손을 내밀어라.”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淡【 야그 출력일 :: 98/10/16 ───────────────────────────────────── 제 목 : [화산] 2 권 제 14 장 - 4 단석광은 그만 놀라 안색이 대변했다. “당신은 그 단검으로 내 손에 상처를 낼 작정인가요?” 화검상은 고개를 끄덕였다. “검을 알려면 우선 그 성질을 아는 것도 중요하다. 손에 약간 의 상처를 내는 것은 그다지 대수로울 것은 아니니 그렇게 놀랄 것도 없다.” 단석광은 안색이 창백해져서 다급히 생각을 굴리더니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당신은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군요?” 화검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무슨 말이냐? 내가 너의 사숙이니 그러한 이치 정도는 알고 있어야지. 너는 나를 우습게 보고 함부로 그와 같은 말을 하니, 나는 우선 가르치기에 앞서, 너의 버릇을 고쳐놓을 수밖에 없구 나!” 말과 동시에 화검상은 느닷없이 좌수의 손가락을 가볍게 몇 번 튕겼다. 제 15 회 역행경혈법(逆行經穴法) 이때의 화검상의 무공은 손가락을 굳이 튕기지 않더라도 지풍 (指風)이 뜻대로 쏘아져나가게 되어 있었다. 백연탄의 최절정의 경지에 오르면 대개 선천진기(先天眞氣)라 는 것을 사용하기에 단지 지풍으로도 검기(劍氣)처럼 몸에 구멍 을 뚫어버릴 수도 있다. 지금의 화검상도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나, 그는 단순히 점혈(點穴)을 할 목적이므로 가볍게 지풍을 전개한 것이다. 설령 미리 알고 대비를 하고 있었다고 해도 단석광은 그것을 피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일단 혈도들이 제압되자 눈을 부릅뜨고 그 자리에 쓰러져서 뒹 굴기 시작했다. 화검상은 그에게 일종의 고문수법인 역행경혈법(逆行經穴法)을 전개한 것이다. 이 역행경혈법은 분근착골이나 오독수혼 등과 같은 것과는 달 리 비교적 무공을 익힌 사람들에게 효과적이다. 각파의 비전(秘傳)인 내공심법은 진기가 정해진 길을 따라 움 직이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진기가 만일 그 길이 아닌 반대로 치달아 미친 망아 지처럼 날뛰며 전신을 돌아다닌다면 그 고통은 아마도 당해보지 않고는 모를 것이다. 단석광은 그 미칠 것 같은 고통 속에서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 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화검상은 이미 그의 아혈마저 제압하여 소리지르지 못하게 한 것이다. 이 역행경혈법을 전개하면 비단 고통스러울 뿐만 아니라 진기 가 제멋대로 움직이게 되므로 그대로 오래 놔둘 경우에는 주화입 마의 위험은 물론 죽음을 당하게 될 수도 있다. 대개 고문수법으로 펼칠 때는 한 시진 이상은 하지 못하도록 정해져 있었다. 단석광은 벌써부터 전신이 시뻘겋게 변하고 핏줄이 툭툭 불거 져나오며 미친 듯이 긁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것은 뜨거운 듯 차가우며, 전신이 미칠 듯이 가렵고 정신이 어지러워 지는 등의 온갖 고통을 수반한다. 단석광은 미친 듯이 바닥을 뒹굴면서도 두 눈에는 계속 원독의 광망을 발산하고 있었다. 하긴 어지간히 독한 녀석이 아니면 어린 나이에 벌써부터 그렇 게 영악스럽지는 못할 것이다. 화검상은 잠시 서서 그 광경을 내려보다가, 이윽고 일 각 정도 의 시간이 흘러 녀석이 거의 탈진된 듯하자 담담히 입을 열었다. “이것은 그저 훈계하기 위한 것이므로 감정을 일으키면 안 된 다. 네가 만일 확실히 뉘우치는 마음이 있다면 고개를 끄덕여 라.” 또한 역행경혈법은 당연히 공력의 소모도 가져오기 마련이다. 단석광은 그 말을 듣는 즉시 재빨리 고개를 대여섯 번이나 끄 덕였다. ‘이 녀석은 자기가 괴로운 것은 참지 못하는군!’ 화검상은 즉시 지풍을 날려 그 수법을 풀어주었다. 단석광은 이내 죽은 듯이 늘어져 있다가 누워서 잠시 운공을 해 보고는 몸을 일으켰다. 그의 두 눈에는 여전히 원독의 광망이 가득 차 있었다. 화검상은 그의 앞으로 다가가 손을 잡아채며 말했다. “네가 뉘우쳤다니 다행한 일이다. 그럼 우리는 다시 그 공부 를 계속할 수 있겠구나.” 화검상은 그의 아혈을 풀어주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부분은 정상이어서 단석광은 당연히 그에게 손을 잡히지 않으려고 했다. 한데 분명 재빠르게 손을 움직여 피했는데도 어느새 그의 손은 화검상의 손 안에 들어가 힘이 빠져버리는 것이 아닌가? 단석광은 점차로 자신이 화검상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느새 화검상은 자신의 손을 단검에 대고 마악 상처를 내려는 것이 아닌가? 단석광은 그것을 보자 안색이 시퍼렇게 변하여 마구 발버둥을 치며 머리를 끄덕였다. 화검상은 그것을 보고 다소 의아한 듯이 말했다. “왜 그러느냐? 내가 너의 손에 상처를 내려는 것에 무슨 잘못 된 점이라도 있느냐?” 단석광은 다시 서너 번이나 거푸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입을 가리켰다. 그것은 즉 제압된 자신의 아혈을 풀어달라는 말이었다. 화검상은 웃으며 말했다. “그럼 네가 거기에 대해 설명을 하겠다는 말이냐?” 단석광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어디 말을 해보아라.” 화검상은 그의 손을 잡은 채로 지풍을 날려 아혈마저 풀어주었 다. 단석광은 잠시 안색이 불그락푸르락해지더니 이윽고 입을 열어 말했다. “당신도 그것에 대해 잘 알고 있을 텐데, 대체 무엇 때문에 나를 이렇게 못살게 구는 거죠?” 화검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잘 알고 있지 못하다. 전혀 뉘우치는 기미가 없어. 너는 한번 더 훈계를 받아야만 할 것 같다.” 이어 화검상이 다시 한번 그 역행경혈법을 전개하려는 듯이 보 이자, 단석광은 갑자기 안색이 크게 변해 서둘러 말했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제가 잘못했으니 용서해주세요, 화사숙! 제가 그런 짓을 했으니 야단을 맞아도 당연한 거예요!” 화검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는 도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야단을 맞아도 싸다는 말이 지?” 단석광은 잠시 화검상을 바라보며 갈등을 일으키는 듯하다가 말했다. “제가 그 단검에 독(毒)을 바른 거요. 하지만 결코 화사숙을 해칠 생각은 없었어요.” 그렇다. 본래 단석광은 애초부터 자신의 무공으로는 당할 수가 없다고 생각하여 급히 방법을 생각해보다가 검날에 극독을 바르고 들어 왔던 것이다. 그 검날에 칠해진 극독은 상당히 위험하여 그저 살갗에 스치기 만 해도 중독(中毒)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다행히 화검상이 미리 눈치를 챘기에 망정이지 그도 하마터면 실수를 할 뻔했다. 이 녀석은 결코 말처럼 단검만 회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화검상은 가볍게 웃더니 단석광의 손을 놓아주고 물러섰다. “네가 진정으로 그렇게 뉘우친다니 이만 용서해주도록 하겠 다. 너는 오늘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단석광은 일단 그렇게 화검상의 손에서 풀려나자 다시 눈빛을 굴리기 시작했다. “당신이 나를 놓아준 것은 단순히 그렇게 내가 운이 좋기 때 문만은 아닐 거예요.” 화검상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또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느냐?” 단석광은 영악스러운 눈초리로 화검상을 바라보더니 말했다. “당신은 내가 소리를 지르는 것이 두려운 거죠? 그렇지 않나 요?” 화검상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그건 너 역시 마찬가지가 아니겠느냐?” 단석광은 오른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럼 우리 협상하도록 해요. 만일 당신이 그 단검을 내게 넘 겨주면 저는 이 일을 발설하지 않겠어요.” 화검상은 즉시 그 단검을 던져주었다. 단검은 처음에는 빠르게 날아가다가 단석광의 앞에 이르러 갑 자기 멈칫하더니 뚝 떨어져내렸다. 단석광은 그 단검을 받아들고는 다소 신기한 듯 멍청한 표정을 보였다. 기실 그 단검을 던진 수법은 이기어검술(以氣馭劍術)이라는 것 과 일맥상통한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淡【 야그 출력일 :: 98/10/16 ───────────────────────────────────── 제 목 : [화산] 2 권 제 15 장 - 1 화검상은 그저 무심코 잘 던져준다고 한 것이 그렇게 된 것이 다. 이 이기어검술은 실상 무공이 상승경지에 오르지 않고는 뜻대 로 시전하기 어렵기에 단석광이 신기해 한 것이다. 그 단검에 칠해진 독은 아마도 묘강에서 유명하다고 하는 식심 (蝕心)인 것 같았다. 비록 그것은 극독이지만 냄새와 빛깔이 있기에 화검상은 이내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그 독에 일단 접촉되면 혈액을 따라 심장으로 침투하며, 만일 운기를 할 경우 그것은 즉시 발작한다. 이 독에 관한 학문 역시 간단치는 않는 것이었다. 만일 그 독을 정확히 식별하고 해독까지 하려면 보다 정밀한 지식이 필요하다. 하지만 화검상은 지금 단편적인 지식에 의해서도 일단 위기를 넘긴 셈이었다. 이 나이 어린 꼬마 녀석인 단석광은 어떻게 그 식심을 구할 수 있었을까? 외부의 인물들이 화산파로 들어오기 전에는 강호로 떠돌던 경 우가 많은데, 단석광도 아마도 그런 과정에서 입수했던 모양이었 다. 어쨌든 단검을 주지 않아도 독이 있는 한 그런 것은 얼마든지 만들 수가 있을 것이므로, 그래서 화검상은 즉각 단검을 돌려준 것이다. “이제 됐느냐?” 단석광은 뭔가 곰곰이 생각하는 듯하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 한 가지 남았어요. 당신은 아까 내게 한 수 가르쳐주겠 다고 했으니, 일단 내 질문에 대답하면 돌아가겠어요.” ‘정말 귀찮은 녀석이로군!’ “무엇을 물어보겠다는 말이냐?” 단석광은 영악한 눈초리로 화검상의 얼굴을 주시하다가 말했 다. “아까 나는 두 번이나 초식(招式)을 펼쳤는데 잘되지 않았어 요. 당신은 혹시 사술(邪術)을 부렸던 것은 아닌가요?” 화검상은 가볍게 웃고는 우수를 들어 아까의 그 수법을 느릿하 게 펼쳐보였다. “내가 펼친 것은 바로 칠십이초응사생사박(七十二招應蛇生死 搏)이었다. 네가 그렇게 느낀 것은 그 변화가 신속했기 때문이 다.” 칠십이초응사생사박은 화산파의 금나술이므로 단석광이 처음 대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의 그의 안목으로 화검상이 보여주는 무형(無形) 중의 변화에 대해 알아차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단석광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내 명랑한 듯이 웃으며 말했 다. “좋아요. 당신이 내 조건을 모두 들어주었으니 나는 이만 돌 아 가도록 하겠어요. 하지만 만일 당신이 사술을 펼쳤다는 증거 가 드러나면 나도 가만히 있지는 않겠어요.” ‘정말 끈질긴 녀석이로군!’ 단석광이 돌아가고 나자, 화검상은 방문을 닫고 다시 침상 위 에 누웠다. 조금 전에 단석광에게 시달린 일을 생각하면 쓴웃음이 나오지 만, 그러나 곡선적인 무예를 다시 생각해보면 마음이 푸근해진다. 기왕에 생각이 난 김에 그는 촛불을 끄고 금나술을 좀더 연마 해본 후에 잠들었다. 무공을 연마하는 사람은 새벽잠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의당 그렇 게 되어야 한다. 화검상도 이전에 그렇게 새벽녘에 일어나서 무공을 연마하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의 생활은 어느덧 무질서해진 듯했고, 또한 오랜만에 맛보는 단잠에 너무 취해 있었다. 누군가 방안으로 들어오는 기척을 느끼고 눈을 뜨니 어느새 주 위가 환하게 밝아져 있었다. 안으로 들어와 있는 사람은 또 단석광이었다. 단석광은 손에 음식이 담겨져 있는 쟁반을 들고 있었는데, 화 검상을 보자 다소 반색을 하는 척했다. “안녕히 주무셨나요, 화사숙! 어서 식사를 드세요.” 화검상은 다시 일어나자마자 귀찮은 녀석을 보게 되어 절로 눈 살이 찌푸려졌다. “네가 밥을 다 가져오다니 무슨 일이냐?” 단석광은 의기양양하게 대답했다. “본래는 가사숙이 하기로 했다던데 지금 가사숙이 다른 방에 있으니 이 일은 당연히 저의 차지죠. 저는 다만 사부님의 밥그릇 에 하나씩만 더 가져오면 되니 어려울 것도 없어요.” 화검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며칠간 아침을 먹지 않기로 했으니 너는 그럴 필요가 없다. 그건 도로 가져가도록 해라.” 단석광은 그 말에 일순 원한의 빛을 두 눈 가득 떠올렸다. 하지만 그는 이내 그 눈빛을 지우며 다시 말했다. “좋아요. 하지만 기왕에 가져온 것이니 이건 그냥 드세요. 당 신이 한 가지 부탁만 들어주면 되니까요.” 화검상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무슨 부탁을 들어달란 말이냐?” 단석광은 그의 얼굴을 주시하더니 말했다. “뭐 어려울 것도 없어요. 그저 어젯밤에 당신이 내게 단검을 던진 그 수법을 가르쳐주기만 하면 되요.” 화검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것은 어떤 수법이 아니라 무공이 어느 경지에 오르면 저절 로 가능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내공(內功)을 연마해야 하고, 게다가 너는 욕심이 지나쳐서 계속 앞서가고 있다. 그러면 자연 무리가 오게 되고 나중에 화를 입게 되거나 아니면 돌아오 게 된다. 돌아와서 다시 기초를 다지는 것은 비단 방법도 좋지 않을 뿐만 아니라 속도도 느려지게 된다.” 순간, 단석광은 그대로 음식이 들려져 있는 쟁반을 내던지고 욕설을 퍼부으며 달아났다. “이 개자식! 뭐라고? 그럼 네놈은 갑자기 내공이 높아져서 그 런 사술을 쓰게 되었단 말이냐?” 화검상은 그만 음식과 그릇들을 온몸으로 뒤집어쓸 상황에 놓 이게 되었다. 단석광은 공력을 실어 쟁반을 내던진 것이기 때문에 그것들은 흡사 암기들과도 같은 위력이 있었다. 비록 타격은 주지 못한다고 해도 그것을 뒤집어쓰게 되면 뭐가 되겠는가? 화검상은 즉시 몸을 움직이고 금나수법 등을 사용하여 그것들 을 받아내기 시작했다. 갑자기 그의 손이 십여 개로 늘어난 듯한 환영(幻影)이 일어났 고, 쟁반 등이 정지하여 그 위에 그릇과 음식들이 도로 내려앉기 시작했다. 밥과 국물 등은 손으로 받아낼 수가 없기에 장력(掌力)과 접인 력을 적절히 구사했다. 이윽고 그 모든 것을 다 깨끗이 받아내고 나자 화검상은 쓴웃 음을 지으며 쟁반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정말 하루하루를 버티기가 쉽지 않군!’ 그가 이곳에서 식사를 하지 않으려는 것은 무엇보다고 음식에 독이 들어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피한다면 결국 어느 곳에서도 식사를 하지 못하게 될 것이 아니겠는가? 화검상은 그런 생각이 들자, 그냥 나가려던 마음을 돌려서 그 대로 다시 침상 위에 앉아 우선 독이 들어 있나를 점검해본 후에 쟁반을 들고 식사하기 시작했다. 그의 단검으로 조사해본 결과 밥과 반찬은 물론 국물에도 독은 들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단검에 의해 발견되지 않는 독도 있을 수 있다. 하기는 그렇게 본다면 세상에는 늘상 얼마간의 독이 들어 있다 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淡【 야그 출력일 :: 98/10/16 ───────────────────────────────────── 제 목 : [화산] 2 권 제 15 장 - 2 어떤 사람은 적은 양의 독으로도 죽게 되지만 또 어떤 사람은 많은 양의 독으로도 끄떡하지 않는다. 이른바 운용의 차이일 것이다. 식사를 하고 나니 새삼 몸이 기분좋은 활력으로 가득 차는 것 같았다. 화검상은 빈 그릇들이 올려진 쟁반을 들고 방을 나섰다. 복도로 나오니, 단석광이 마치 놀란 승냥이처럼 달아나고 있었 다. 화검상은 굳이 그 꼬마 녀석을 상대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기에 그냥 밖으로 향했다. 벌써 진시 무렵이었다. 마악 식사를 하고 나서 휴식을 취하는 듯 제법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었고, 그들 중에는 다소 의외 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 섞여 있었다. 바로 피검석(皮劍石)이었는데, 외부인물도 아니고 이 건물에 거 주하는 사람도 아닌데 여기에 와서 어울리고 있다는 것은 평범한 일은 아닐 것이다. 과연 아니나다를까? 화검상을 발견하자, 피검석은 사람들과 하던 얘기를 중단하고 즉시 이쪽으로 다가와 음침한 표정으로 말을 걸었다. “화사형, 안녕하셨소? 그새 안 보는 동안 신수가 훤해졌는데 혹시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었던 것이 아니오?” 기실 화검상의 용모는 자신도 별로 상관하지 않고 남들도 알아 주지 않아서 그렇지 무공이 높아진 이후 피부에 혈색이 돌고 은 은한 윤기가 흐르는 등 많이 달라졌다. 비단 그 용모뿐만 아니라 기질(氣質)도 많이 달라졌다고 해야 할 것이었다. 피검석이 와서 말을 걸자 그 주위에 있던 사람들도 우르르 몰 려와서 에워싸며 음험한 시선으로 흥미로운 듯 두 사람을 주시했 다. 사과애에서 내려와 처음 부딪쳤던 사람이 바로 이 피검석이고, 또한 이전에도 그들에게 수도 없이 당했기 때문에 화검상은 묻지 않아도 그의 의도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화검상은 내심 씁쓸한 심정이 적지 않았으나 담담한 어조로 대 꾸했다. “오늘은 또 내게 무슨 특별한 볼일이라도 있나?” 이전에는 화검상의 능력이 부족하여 그가 이렇게 직접적으로 대꾸를 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피검석은 일순 눈빛이 다소 험악해졌으나 이내 다시 음침하게 표정을 바꾸며 말했다. “나는 별로 볼일이 없지만 다른 사람들이 볼일이 있다니 지금 함께 가야겠소.” 화검상은 문득 가볍게 웃었다. “자네가 볼일이 없다니 뜻밖이로군. 나는 또 자네가 내게 술 을 대접하려는 줄로 알았지. 한데 그 다른 사람들이란 대체 누구 인가?” 피검석은 갑자기 대담해진 듯한 화검상의 태도에 눈살을 찌푸 리며 음험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가보면 알게 되오!” 화검상은 기왕에 마음을 단단히 먹은 터라 짐짓 고개를 갸웃거 렸다. “가보면 알게 된다고? 그것 참 이상하군! 자제는 혹시 나의 사형이나 사숙이 아닌가?” 그때 무리 중에 있던 홍검백이 나서서 호탕한 듯이 웃으며 말 햇다. “하하, 화사제! 오늘따라 왜 그리 신경질을 부리는가? 피사제 가 정중하게 말하고 있으니 자네는 의당 따라야 할 게 아닌가?” 화검상은 홍검백을 향해 시선을 돌리며 마주 미소했다. “하긴 그렇군요. 하지만 나는 지금 유감스럽게도 이렇게 그릇 을 들고 있으니 즉시 응할 수가 없겠습니다. 혹시 홍사형이 내 부탁을 들어주겠습니까?” 본래 화검상은 요사이 많은 안팎의 변화를 겪고 있었다. 그러한 변화는 복잡하기도 하고 혹은 그를 혼란스럽게 만들기 도 했다. 지금의 상황은 실상 그로서도 헤쳐나가기 벅찬 상태였다. 더러 그는 기분에 따라 행동하기도 하고 혹은 계획과 결단에 의해 임기응변식으로 행동하기도 한다. 지금의 경우는 그 후자였다. 비록 다소간의 시행착오는 있을지 몰라도 그는 이들과 정면으 로 부딪쳐야 한다고 생각했고, 또한 그렇게 행동하고 있는 것이 었다. 하지만 다소 방심하고 있었던 탓인지 그는 과민반응을 보이는 것 같았고, 또한 내심으로도 이게 아닌데, 라고 느끼고 있었다. 현재의 상황은 급박한데 그는 대체 언제나 정말로 마음먹은 대 로 행동할 수 있게 될 것인가? 홍검백은 당연하게도 그 말을 듣자 안색이 험악하게 변했다. 그는 칠척거구의 우람한 몸을 가지고 있는데 일단 안색이 험악 해 지자 마치 흉한(兇漢)처럼 무시무시하게 보였다. 하지만 그는 이내 표정을 다시 부드럽게 바꾸었다. 으레 몸집이 큰 사람은 생각이 치밀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수 가 있다. 그러나 이 홍검백은 기실 생각이 치밀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호방함으로 포장하는 교활함마저 갖추고 있는 사람인 것이다. “하하, 그러지. 자네는 내게 무슨 부탁을 하려는가?” 화검상은 들고 있던 쟁반을 홍검백에게 내밀었다. “뭐 대단한 일은 아닙니다. 이것을 주방에 갖다 주시겠습니 까?” 홍검백은 음험하게 웃으며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자네가 정중히 부탁하는데 내가 의당 들어줘야 하지 않겠나?” 겨우 쟁반 같은 것을 홍검백에게 부탁하는 것은 그의 현재의 위치로 볼 때 대단한 모욕이라고 아니할 수가 없었다. 주위의 사람들은 화검상이 감히 홍검백을 상대로 그렇게 할 줄 은 몰랐기 때문에 저마다 눈이 휘둥그래졌다. 화검상의 표정은 여전히 태연했다. 이것은 이미 호랑이의 등에 올라탄 것과도 같기 때문에 도중에 그만둘 수도 없는 노릇이므로 그는 마음을 단단히 먹은 것이다. 화검상은 이내 미소하며 쟁반을 홍검백에게 내보였다. “그렇게 해주신다니 고마운 일이로군요.” 그 쟁반은 그의 손을 떠나서 천천히 날아갔다. 마치 허공에 보이지 않는 길이 있어서 쟁반이 부드럽게 미끄러 져 가는 것 같았다. 이미 말했듯이 이것은 이기어검술(以氣馭劍術)의 일종으로서, 그렇게 천천히 보내는 것은 기실 빨리 날려보내는 것보다 더 어 려운 법이다. 주위의 시선은 모두 놀란 표정으로 그 쟁반에 집중되었다. 그들은 화검상이 갑자기 그런 절기(絶技)를 펼친다는 것이 도 무지 믿기지 않는 것이었다. 두 사람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으므로 쟁반이 아무리 느리게 날아간다고 해도 그 시간은 그다지 길지 않을 것이건만, 마치 바 라보는 사람들의 눈에는 일 각처럼 길게 느껴졌다. 그 쟁반이 중간쯤 날아갔을 무렵, 갑자기 한 사람이 뛰어들었 다. “그것은 내가 갖다 주겠소!” 바로 홍검백의 제자인 장석중(張石重)이었다. 그는 우선 화검상을 우습게 보고 있는 데다가 자칫 자신의 사 부가 남들에게 웃음거리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크게 화가 나서 나선 것이다. 홍검백은 그를 말리지 않았다. 하지만 화검상은 이미 그러한 상황을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벌써 좌수를 흔들고 있었다. “누가 네 녀석더러 나서라고 했느냐?” 화검상이 좌수로 펼친 것은 바로 육합신장(六合神掌) 가운데의 수법이었다. 그것은 조화를 위주로 하여 부드러운 듯하나 내부에 강한 힘이 깃들여 있다. 화검상은 그러나 무공이 상승된 이후 연습을 많이 하지 못해서 그 공력의 수위조절에 실수를 했다. 본래는 그저 가볍게 밀어내려던 것이었으나 미처 화검상의 말 이 끝나기도 전에 장석중, 그 거구의 몸은 피를 토하며 도로 튕 겨지듯 뒤로 일 장이나 날려갔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오. 야그 출력일 :: 98/10/16 ───────────────────────────────────── 제 목 : [화산] 2 권 제 15 장 - 3 장석중이 그렇게 멀리 날려간 것은 그렇다고 해도 입에서 피를 토하고 내상(內傷)을 입은 것은 그가 한 순간 반발하여 공력으로 대항하는 바람에 육합신장의 숨은 반진력(反振力)에 당한 것이다. 홍검백은 처음에는 한 손을 내밀었으나 나중에는 두 손으로 받 았다. 하지만 그의 안색은 이내 시뻘겋게 변하고 쟁반이 크게 흔들리 며 뒤로 한걸음 물러나고 말았다. 홍검백은 이내 운기를 하여 몸을 안정시킬 수가 있었지만 그의 안색은 금방 흙빛으로 변했다. 비단 그뿐만 아니라, 피검석과 주위의 사람들도 모두 안색이 급변하고 말았다. 그들은 이것이 일종의 비무(比武)와도 같다는 것을 알았지만, 아무리 방심을 했다고 해도 삼 갑자의 공력에 절정무예를 가지고 있는 홍검백이 밀리리라고는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홍검백이 놀라고 있는 점은 그와는 또 달랐다. 그는 처음에 오 성(五成)의 공력을 일으켰지만 장석중이 당하 는 것을 보자 이내 은근히 공력을 팔 성까지 끌어올렸던 것이다. 그런데 화검상이 도중에 장석중을 상대하면서도 그런 위력을 발휘했다는 것은 최소한 전체의 공력이 자신보다 못하지는 않다 는 얘기가 아니겠는가? 하지만 조금 전에 쟁반을 날릴 때 겨우 삼 성(三成)의 공력도 사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사람들이 모두 놀라고 의혹이 가득 찬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 자, 화검상은 이내 다시 미소를 지으며 홍검백을 바라보고 말했 다. “용서하시오, 홍사형! 나는 근래에 해독을 하기 위해 운공(運 功)을 하던 도중, 그간에 잃어버렸던 무공을 되찾았기에 한번 시 험해본 것이오. 다른 뜻은 없었소. 그 쟁반은 제자에게 맡기는 것 이 좋겠소.” 홍검백은 그나마 쟁반 위의 그릇들을 떨어뜨리지 않았기에 약 간의 체면은 유지한 셈이었다. 그는 험악한 표정으로 화검상을 노려보더니 무겁게 말했다. “나는 믿지 않았는데, 자네는 정말로 사악한 비공(秘功)을 숨 기고 있었군.” 화검상은 그가 좋지 않게 나오리라는 생각은 예상하고 있었으 므로 여전히 미소하며 말했다. “내가 숨기고 있었다면 굳이 홍사형께 무공을 드러냈겠소? 게 다가 자신보다 강한 무공은 마공이라고 매도한다면 그건 곤란하 오. 내가 어떤 무공을 펼치는지 다시 한번 더 보겠소? 본파의 무 공을 마공이라고 한다면 그건 위험한 생각이오.” 홍검백은 안색이 시뻘겋게 변해 나서려고 했으나, 그보다 피검 석이 먼저 나서서 화검상에게 말했다. “자, 이제 다른 할 일도 없을 테니 어서 갑시다!” 돌아보니 장석중은 입에서 피를 흘리지만 천천히 몸을 일으키 고 있었다. 본래 골격이 튼튼하여 별로 심각한 증상은 입지 않은 모양이었 다. 화검상은 다시 피검석을 향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상한 일이군! 피사제, 자네는 내게 그들이 누구인지 말을 했는가?” 피검석은 안색이 험악하게 변했다. “그래서 가지 않겠다는 거요?” 기실 화검상의 무공이 갑자기 달라진 데 대해서 장내에서 그것 을 가장 껄끄럽게 생각하는 사람은 바로 이 피검석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는 항상 화검상을 고양이 앞의 쥐처럼 희롱했었는데 이제는 자못 처지가 이상해진 것이다. 화검상은 고개를 다시 저으며 말했다. “자네는 항상 내게 함부로 대하고 또한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해왔네. 지금 나는 그리 한가하지 않은데 자네가 또 나를 기만하 려고 하는지 내가 어떻게 알 수 있겠나?” 그때 건물의 모퉁이에서 한 사람이 걸어나오며 말했다. “그건 내가 보증하겠소!” 그는 본래부터 그곳에 몸을 숨기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바로 봉검기(封劍機)였다. 화검상이 보기에는 그도 사과애에서 내려오던 날 부딪쳤던 자 로 똑같이 간악스럽게만 보이지만,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 기에는 그는 바로 피검석의 사형으로 비중이 좀더 높다고 할 수 있었다. 화검상은 봉검기를 보고 입가에 짐짓 미소를 떠올렸다. “봉사제인가? 난 자네가 거기에 숨어 있는 줄은 몰랐네.” 사람들은 피검석보다 봉검기를 더 두려워하는데, 그것은 그의 무공도 높기는 하지만 무엇보다도 무섭게 침착한 그의 성품 탓이 라고 할 수 있었다. 봉검기는 화검상의 말을 듣고도 전혀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다가와 음침하게 말했다. “화사형, 당신은 그래, 본파의 모든 사람들을 적으로 만들 생 각이오?” 화검상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럴 리가 있는가? 난 사실 자네들과 정답게 지내고 싶은 사 람일세. 자네는 보증을 하겠다고 했는데, 어떤 식으로 보증할 생 각인가?” 봉검기는 싸늘하게 화검상을 주시하더니 말했다. “그건 윤사형이 당신을 보자고 한 것이오.” 화검상은 약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대사형(大師兄)이? 그렇다면 가야지. 자네가 이곳에서 대사형 을 핑계삼아 거짓말을 할 수는 없을 테니까 말이야.” ‘윤검진(尹劍塵), 그자가 대체 무슨 일로 나를 보자고 한 것일 까?’ 이어 화검상은 내심의 우려를 감추기라도 하듯이 피검석의 손 을 잡으며 다정한 듯 말을 이었다. “피사제, 자네도 미리부터 그렇게 말했으면 내가 이런 의심은 하지 않았을 것이 아닌가?” 피검석은 화검상이 자신의 손을 잡자 안색이 급변했다. 그는 우선 손이 잡히기 전에 그것을 피하려고 했으나 그것이 잘 되지 않았다. 마치 그물 속에 갇힌 듯이 그의 손은 어느새 화검상의 손에 잡 혀 있었고, 즉시 공력을 일으켜 떨치려고 했으나 갑자기 전신의 기혈(氣血)이 다 함께 흔들렸다. 만일 그대로 계속 대항한다면 그는 내상을 입고 말 것이다. 피검석은 조금 전에 보기는 했으나 그제서야 화검상의 무공을 실감하는 기분이었다. 과거 그는 화검상을 제압했던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천 양지차인 것이다. 다른 손으로 공격을 하려고 해도 기혈이 흔들려 잘 되지 않았 다. 이것은 맥문(脈門)을 잡고 있는 것도 아니므로 순전히 두 사람 의 공력에서 화검상이 우월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화검상이 앞으로 걸어나가자 피검석은 얼굴이 시뻘겋게 변한 채 따라 가는 수밖에 없었다. “내가 그 동안 자네에게 좀 당한 것도 사실이고 또한 화가 나 기도 했었네. 하지만 그것은 모두 과거의 일이고 우리는 또한 본 파의 제자들이 아닌가? 앞으로 그런 것은 모두 잊고 잘 지내기로 하세.” ‘이 개자식아, 어서 손을 놓지 못해? 이 무슨 더러운 수작을 부리는 거야?’ 피검석은 그렇게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 순간에 갑자기 화검상의 손아귀에서 막강한 공력이 흘러나와 그의 기혈을 뒤흔들었기 때문에 그 소리는 말로 나가지 못하고 그저 독백으로 끝나고 말았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거의 외부에서 온 인물들이기 때문에 화 산파의 일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가 없었다. 그들은 피검석이 손을 잡히고도 아무런 대꾸도 없자 마치 두 사람이 갑자기 화해한 것처럼 보여서 고개를 갸우뚱할 뿐이었다. 봉검기는 물론 옆에서 그러한 사정을 알고 있었지만 워낙 침착 하여 쉽게 나서지 않았다. 화검상은 내심 그러한 상황을 주시하며 계속 가다가 건물을 돌 아 가면 그때에야 피검석을 풀어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가 미처 얼마 가지도 못했을 때, 문득 전면에서 한 사람이 다시 걸어왔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오. 야그 출력일 :: 98/10/16 ───────────────────────────────────── 제 목 : [화산] 2 권 제 15 장 - 4 화검상은 그 사람을 보자 일순 가슴이 크게 흠칫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바로 그 사람은 사매 여검월(余劍月)이었다. 불과 어제 저녁 무렵에 그녀의 부친인 여귀기를 만났었기 때문 에, 그녀가 이렇게 일찍 나타나자 내심 크게 불길한 생각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혹시 그도 당한 것이란 말인가?’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이다 야그 출력일 :: 98/10/16 ───────────────────────────────────── 제 목 : [화산] 2 권 제 16 장 그만둘 수 없는 길 제 16 장 그만둘 수 없는 길 피검석은 화검상이 그렇게 넋을 잃고 있는 사이에 빠져나가려 고 손에 공력을 일으켜보았다. 그러나 여전히 화검상의 손아귀는 끄떡도 하지 않고 그 반진력 에 의해 기혈만 크게 요동칠 뿐이었다. ‘도대체 이 자식이 언제 이렇게 무공을 배웠지?’ 피검석이 그렇게 안색이 창백해진 채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을 때, 어느덧 여검월이 화검상의 앞까지 다가왔다. 화검상은 약간 긴장된 듯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말했다. “여사매, 이곳에는 갑자기 웬일이지?” 여검월은 화검상의 좌우에 서 있는 봉검기와 피검석을 의아한 눈초리로 바라보면서 말했다. “호호, 저는 이곳에 오면 안 되나요?” 그 표정을 보니 그다지 심각하지 않은 것 같아서 화검상은 다 소 마음을 놓았다. 그는 미소하며 말했다. “그런게 아니라, 여사매가 갑자기 이곳에 오니 반가워서 그러 는 거야.” 여검월은 표정을 환하게 바꾸며 말했다. “호호, 정말인가요? 봉사형, 피사형! 지금 화사형의 그 말이 거짓은 아니겠죠?” 봉검기는 시종 냉랭한 기색이었고, 피검석은 떫은 감을 씹은 듯한 표정으로 아무런 말도 없었다. 여검월은 일부러 그들에게 아는 척을 했는데도 아무런 반응도 없자 다소 어색한 기색을 지었다. 화검상은 미소하며 말했다. “대체 무슨 일이지?” 여검월은 어색해진 입장을 감추기라도 하듯 곱게 눈을 흘기며 말했다. “흥, 화사형은 내게 볼일이 없으면 이곳에 오지도 말라는 소 리 같군요. 좋아요, 말씀드리지요. 사부님께서 화사형을 찾으세 요!” ‘뭐라고? 어머니께서 나를 찾으신다고?’ 화검상은 일순 가볍게 놀랐다. 그의 모친인 풍귀월은 이제까지 일부러 사람을 보내 찾은 적이 거의 없고, 게다가 그가 찾아가도 인연을 끊었다면서 문전박대를 했었기 때문이었다. 대체 무슨 일로 풍귀월은 그를 찾는 것일까? 이것은 좋을 일일까, 나쁜 일일까? 갑자기 전에 없던 일을 당하여 화검상은 크게 마음이 두근거리 고 혼란스러워졌지만 억지로 마음을 진정시키고 말했다. “정말인가? 지금 나를 보자고 하신다는 말이지?” “그렇다니까요. 화사형은 내가 언제 거짓말하는 것을 보았나 요?” 다소 새침해진 듯이 대답하는 여검월을 보고 화검상은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아니 그럴 리가 있나? 나는 좀 믿기지 않아서 말이지.” 여검월은 봉검기와 피검석의 안색을 슬쩍 살피고는 다시 말했 다. “그럼 지금 갈 건가요?” 화검상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이어 피검석의 손을 놓아주고 두 사람을 향해 말을 이었다. “안됐지만 자네들도 들었다시피 나는 지금 곧 어머니를 뵈러 가야겠네. 대사형에게는 다음에 뵙겠다고 전해주게.” 피검석은 기분 같아서는 그가 손을 놓는 즉시 반격을 가해 보 복을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조금 전까지 너무나도 꼼짝도 못했기 때문에 다소 주저 하게 되었고, 또한 어여쁜 사매가 보는 앞이라 다시 창피를 당할 까 두려워졌다. 그가 그런저런 이유로 망설이고 있을 때 화검상은 이미 몇 발 자국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피검석은 분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전음으로만 소리쳤다. “이 더러운 자식! 어디 두고 보자!” 그러나 화검상은 그 전음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그저 태연히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기실 갑작스런 모친의 부름을 받았기 때문에 화검상의 마음은 크게 혼란스러워져서 당장 날아가지 못하는 것이 답답할 정도였 다. 도중에 다른 사람들과 부딪치기 싫었기 때문에 화검상은 일부 러 동쪽 조양봉 쪽으로 돌아서 여검월과 바삐 신법을 펼쳤다. 가능하면 여검월의 손을 잡고서라도 빨리 나아가고 싶었지만 그러나 이 사매는 제법 눈치가 빠르기 때문에 감정을 그대로 내 보일 수는 없었다. 화검상은 그녀와 보조를 맞추면서 질문을 던졌다. “여사매, 그 외에 다른 일은 없는 게지?” 여검월은 열심히 화검상의 신법을 펼치는 광경을 바라보고 있 다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예, 또 무슨 다른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요?” 화검상은 내심 크게 안심이 되어서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아냐. 난 그저 걱정이 돼서 해본 말이지. 그러니까……, 여사 숙께서도 지금 무사하시겠지?” 자신의 부친의 얘기가 나오자 갑자기 무슨 오해를 했는지 여검 월은 안색을 붉게 물들이며 고개를 수그렸다. “예? 예…….” 화검상은 미처 그녀의 내심을 살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일단 여귀기가 무사하다는 소식을 듣게 되자 안심을 하고 다시 모친을 향한 생각으로 줄달음을 치기 시작했다. 어느덧 두 사람은 연화봉의 기슭을 오르고 있었다. 저번에는 화검상을 추적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올라왔었지만 이 연화봉은 평소에는 사람들의 그림자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 로 조용했다. 여검월은 계속 침묵을 지키다가 왠지 어색하다고 느꼈는지 다 시 입을 열어 말했다. “아까 그 피사형은 화사형께 제압되어 있던 것 같던데 대체 어찌된 일이었죠?” 화검상은 계속 모친에 관한 생각에 골몰하다가 미처 여검월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으나 이내 웃으며 말했다. “피검석, 피사제 말인가?” 여검월은 약간 정신이 나간 듯한 화검상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 웃거리다가 말했다. “예, 그가 대체 어째서 화사형께 꼼짝 못하게 되었느냐고요.” ‘확실히 이 여사매는 안목도 제법이군. 그러니 어머니의 제자 로 손색이 없었겠지.’ 화검상은 속으로 생각을 전환하며 말했다. “내가 그의 손을 잡자 그는 다정하게 생각되었는지 그대로 가 만히 있더군.” 여검월은 웃었다. “호호, 거짓말 말아요! 그는 다정한 것을 좋아하지도 않을 뿐 만 아니라, 그대로 가만히 있을 사람도 아니죠. 어찌 된 일인지 모르지만 아마도 화사형이 그를 무공(武功)으로 제압했을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화검상은 그녀의 주의력을 분산시키기 위해 일부러 크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니 그걸 어떻게 알았지? 여사매는 무공도 뛰어나지만 머리 는 더욱 총명한 것 같아.” 여검월은 가볍게 웃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뒤 야그 출력일 :: 98/10/16 ───────────────────────────────────── 제 목 : [화산] 2 권 제 16 장 - 1 “공연히 그런 말 마세요. 지금 화사형의 신법(身法)은 나보다 도 훨씬 훌륭하잖아요!” 그렇다. 지금 화검상은 모친에 대한 생각으로 정신이 없으나 미처 여검 월이 자신의 신법에 대해 놀라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 다. 지금 두 사람은 비록 같은 속도로 달리고 있으나, 여검월이 다 소 안색이 상기되어 있는 반면에 화검상은 미끄러지듯이 나아가 고 있으면서도 딴생각을 하고 있어 마치 장난을 하고 있는 것과 같았다. 저번에 화검상의 무공이 여검월과 비교할 수도 없었던 것을 생 각하면 이것은 정말 믿기지 않는 진전인 것이다. “저도 화사형의 무공이 달라졌다는 얘기를 듣고는 있었으나 설마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요. 대체 어떻게 해서 이렇게 갑자기 무공이 높아진 거죠?” 화검상은 지금 다른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았으나 어쩔 수 없이 생각을 굴려본 뒤에 대답했다. “그건 내가 갑자기 지난날의 무공을 되찾게 되었기 때문이 야.” 여검월은 다소 생각해보는 듯하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저도 화사형이 옛날에는 대단한 기재(奇才)였다는 얘기 를 들은 적이 있어요. 그간의 무공을 되찾았다니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얘기죠. 어쨌든 이렇게 되었으니 정말로 축하드려요!” 여검월은 진심으로 화검상의 무공진전에 대해 축하해주고 있는 모양이었다. 화검상은 그것을 보자 보다 솔직해지지 못한 자신에 대해 가책 의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기실 지금 화검상이 자신의 무공에 대해 솔직히 밝힐 수없는 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도무지 그녀가 곡선적인 무공에 대해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이고, 그 때문에 소문이 잘못 퍼진다면 자칫 그의 무 공이 이단으로 몰릴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둘째는 바로 자신을 제거하고자 하는 화산파의 사람들에 관한 것인데, 곡선적 무예를 설명하자면 현재 그의 내공과 또한 조부 의 유물에 관해서도 언급하게 되는데, 그것은 상황을 더욱 악화 시킬 소지가 많다. 지금 그들이 그래도 명분을 생각하며 화검상에게 노골적으로 나오지 않는 것은 그의 능력을 과소평가하기 때문인데, 만일 그 의 진짜 능력을 알게 되면 그들은 당장이라도 이것저것 돌보지 않고 그를 척살하려고 할 것이며 그것은 화검상의 의도와도 어긋 난다. 본래 강호에서는 자신의 실력을 삼 푼은 숨기라고 하는데, 그 것은 유사시에 그 나머지의 삼 푼의 능력이 그의 목숨을 구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상황은 실로 그와 비슷하여 화검상은 능력을 숨길수록 안전하고 또한 유사시에 대비할 수가 있지 않겠는가? 그가 여검월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사람의 일은 알 수가 없어서 언제 어디서 그 소문이 새나갈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세번째는 그가 지금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의 생각은 계속 모친에 관한 쪽으로 흘러가고 있기 때문에, 나중에 한가해진다면 어떤 방법을 찾아 여검월에게 더러 가르쳐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그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에 두 사람은 연화봉의 정상 에 이르렀다. 아래쪽의 날씨는 제법 더워졌지만 일단 이곳에 오르고 보면 서 늘해진다. 그것은 한담에서 내뿜는 기운이 차갑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화검상은 모친의 모옥이 가까워지자 문득 더욱 마음이 초조해 져서 여검월에게 다시 질문을 했다. “정말로 내 어머니께도 아무런 일이 없는 것이겠지?” 여검월 웃으며 대답했다. “예. 제가 지금 모시고 있는데 아무려면 사부님을 불편하게 해 드리겠어요?” 화검상의 무공진전을 대한 이후 여검월의 시선은 왠지 더욱 애 뜻해진 것 같았다. 하지만 화검상은 미처 그런 것을 살필 겨를도 없이 계속 모옥 쪽으로 내달았다. 화검상이 앞서가기 시작하는데 문득 여검월이 뒤따르다가 소리 쳐 그를 불렀다. “잠깐만요! 아무리 그래도 세수는 해야 하잖아요.” ‘그렇군!’ 화검상은 아직 세수를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그의 얼굴이 그토록 지저분하다는 말인가? 무공수련에 몰두하는 경우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면 며칠이고 세수를 하지 않는 것도 제자들 간에는 흔한 일이다. 화검상이 한담의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세수를 하는데, 여검월 이 다가와 흰 천을 내밀며 말했다. “저번에 제가 했던 말이 기분 나빴다면 용서하세요. 저는 다 만 화사형이 무슨 일을 당할까봐 걱정이 되어서 그랬던 거예 요.” 한담의 물은 손이 시릴 정도로 차가운데 태양은 이제 마악 찬 란한 햇살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그 속에 서 있는 흰 옷을 입은 여검월이 다소 상기된 얼굴을 하고 있는 모습은 몹시 애뜻해 보 였다. 화검상은 무심코 그 흰 천을 받아들다가 문득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나도 사매의 그런 뜻은 잘 알고 있어. 하지만 알다시피 지금 의 나의 처지는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고 또한 때로는 그러한 것들이 부담이 되기도 해. 나는 사매가 나로 인해서 피해를 당하 게 되는 것을 원치 않아.” 여검월은 이에 눈물을 다소 글썽이더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나를 부담스럽게 생각하지는 말아요. 나는 앞으로 의 일이 두렵지 않아요.” 화검상은 가볍게 웃으며 얼굴을 닦고 몸을 일으켰다. ‘사매는 얼굴도 예쁘고 무공도 뛰어나며 머리도 총명한데 어 째서 이렇게 어리석게 나에게 집착할까? 나는 앞으로 언제 죽을 지도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을 텐데?’ 그러나 기실 그녀에 대한 화검상의 태도도 달라진 것은 사실이 었다. 그는 이전에는 그저 꼬마 계집아이 정도로 가볍게 생각했었는 데, 이제는 왠지 그녀가 성숙해진 듯한 느낌이 들어 함부로 대하 기도 곤란해진 상황이 된 것이다. 여검월은 눈물이 글썽해져서 잠시 생각을 해보는 듯하다가 말 했다. “그럼 나를 이전만큼만이라도 대해줘요.” 화검상은 그녀에게 흰 천을 돌려주고 몸을 날려 길 위에 서며 웃으며 말했다. “물론이야. 나는 이미 오래 전부터 사매에게 고마워하고 있었 는데 내가 멀리할 리가 있겠어?” 여검월은 그제서야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이제 우리 어서 가요!” 모친인 풍귀월은 여전히 상궁의 한쪽 구석에 지어진 모옥에 있 었고 또한 밖으로 나와보지도 않았다. 화검상이 그 마당에 이르자 여검월은 먼저 안으로 들어가 알렸 고, 이어 풍귀월의 음성이 들려왔다. “굳이 들어와 나를 볼 것은 없다. 나는 그저 네게 한마디하기 위해 너를 부른 것이다.” 화검상은 이곳으로 달려오면서 혹시나 하는 마음을 갖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기대했던 따뜻한 모친의 모습은커녕 다시 싸늘한 음성 을 듣게 되니 그는 크게 실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기는 갑작스런 즐거움을 기대한 그가 잘못일 것이다. 기대가 크면 으레 실망도 큰 법이지만 그는 이미 체념하고 감 정을 억누르는 일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는 그래도 사내대장부인데 이런 훤한 대낮에 눈물을 보일 수 가 있겠는가? 그의 적들이 만일 그것을 본다면 발을 구르며 웃을 것이다. 과거 그는 많은 고통과 번민, 상심(傷心) 등으로 눈물을 흘리기 도 했지만, 이제 그는 그렇게 마음이 약해져서는 안 된다. 화검상은 일부러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오. 야그 출력일 :: 98/10/16 ───────────────────────────────────── 제 목 : [화산] 2 권 제 16 장 - 2 “예, 어머니. 말씀하십시오.” 풍귀월은 잠시 뜸을 들였다가 이윽고 다시 말했다. “지금 너로 인해 많은 문제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내 그래서 말인데, 너는 이만 본파(本派)를 떠나도록 해라! 이건 내가 너의 어미로서 마지막으로 하는 말이다.” 화검상은 문득 가슴속으로부터 격정이 치밀어오르는 듯하여 억 지로 이를 악물며 말했다. “저는 결코 본파를 떠날 수가 없습니다. 죽더라도 이곳에 뼈 를 묻을 것입니다. 제가 본파를 떠나면 어디로 가겠습니까?” 풍귀월의 음성이 약간 격앙되었다. “네가 이곳을 떠나서 무엇을 하든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 있 단 말이냐? 너는 내가 이곳에서 사는 것이 편하게 보이느냐? 실 로 온갖 고초를 다 겪고 있는 것이다. 내 한평생이 너의 그 웬수 같은 아비와 할애비 때문에 다 망가졌다! 내가 여기서 뭘 더 해 야 한단 말이냐? 대체 나를 얼마나 더 불행하게 만들려고 그러느 냐?” 화검상은 정말로 기어코 눈물이 나오려고 하는 것 같았다. 눈앞이 갑자기 뿌옇게 흐려져 모옥도 보이지 않고 온몸은 마치 무수한 칼날로 난도질을 당하는 것 같았다. 화검상은 간신히 눈을 깜빡여 눈물을 억제하고는 말했다. “그렇겠지요. 어머니는 실로 저의 가문 때문에 온갖 고통을 다 겪으셨습니다. 하지만……, 정말이지 저는 도저히 이곳을 떠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용서해주십시오. 다만, 어머니께서 원하신 다면 모자의 인연은 끊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이제부터 저는 어 머니의 자식이 아니며, 제가 무슨 일을 벌인다고 해도 그건 어머 니와 상관도 없고 또한 책임지실 일도 없을 것입니다.” “그럼 이제 어머니라고 부르지도 마라!” “예, 저는 이대로 죽는다고 해도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오히 려 어머니께 죄송한 마음을 가질 것입니다. 저는 어머니께 이미 많은 죄를 지었으니까요.” 풍귀월은 음성이 더욱 냉랭해졌다. “그렇다면 뭘 더 망설이느냐? 난 이제 더 이상 네게 할말이 없다!” “예, 저는 이곳을 내려가서 다시는 올라오지 않겠습니다!” 풍귀월은 이제 더 이상 말이 없었다. 화검상은 잠시 우두커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한 가지 일을 더 물어보고 싶었다. 그의 부친과 조부가 그렇게도 정말로 악인들이었는가, 하는 말 이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그런 질문은 할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최소한 지금은 더 말을 할 수가 없고 그런 말을 할 분위기도 아닌 것이다. 화검상은 문득 크게 한숨을 쉬고는 하늘을 쳐다보며 생각했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나는 그럴 수록 정신을 차려야 한다. 하지만 정말 이렇게 하면서까지 나는 살아야 할까……?’ 잠시 후에 여검월이 방에서 걸어나오며 말했다. “사부님께서는 누우셨어요. 그만 돌아가시래요.” 화검상은 다시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야지. 가야 하겠지……!’ 몸을 돌려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면서 화검상의 머리는 온통 텅 비어버린 것 같았다. 무슨 생각을 하며 걸었던 것일까?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는 어느새 한담을 지나고 있었다. 그의 마음은 공허하고 메마른데 이 햇살은 너무도 눈부시다. 화검상은 고개를 들어 그 눈부신 태양을 바라보며 문득 다시 중얼거렸다. “가야 한다. 어차피 그만둘 수 없는 길이라면, 일단은 최선을 다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화검상은 이를 악물고 갑자기 산 아래로 신법을 펼치기 시작했 다. 일단 그렇게 내달리기 시작하자 서늘한 바람이 얼굴에 와서 부 딪치고 혼란스러웠던 마음이 다소 가라앉는 것 같았다. 신법은 운기(運氣)에 의한 것이고, 반대로 신법을 펼치면 기가 순환하여 정체되었던 마음도 풀어지는 것이니, 어쨌든 그러한 이 유에서인지 몰라도 그는 산 중턱에 이르자 드디어 어느 정도 마 음을 억제할 수가 있었다. ‘그래! 내가 만일 가문의 죄를 씻을 수만 있다면 그래도 생명 을 연장한 보람이 있지 않겠는가?’ 연무장에는 여전히 수백 명이나 되는 제자들이 우렁찬 기합 소 리를 내며 무공수련에 열중하고 있었다. 출정(出征)이 앞으로 사흘밖에 남지 않았으니 그럴 법도 한 것 이다. 화검상은 마음을 환기시키기 위해 그들이 연마하는 무공을 바 라볼 기회를 가졌다. 제자들이 지금 수련하고 있는 것은 거의 대부분이 새로운 변화 가 아니라 기존에 배웠던 것들을 반복 수련하는 것이다. 그들은 때로는 함께 어울려 같은 초식을 연마하다가 때로는 한 쪽으로 나와 자신의 초식에 틀린 부분이 있는지 열심히 검토해보 기도 했다. 간혹 그들은 어떤 부분에 이르러 틀렸다고 생각되는지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한다. 하지만 화검상이 보기에는 그들의 초식은 비단 그 부분 부분뿐 만 아니라 근본적으로 모두가 잘못되어 있었다. 그것은 비단, 만들고 보완한 사람들에게도 문제가 있겠지만 제 자들이 연마해갈수록 더욱 직선적으로 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보다 높은 경지에 현혹되어 꾸준한 수련을 무시하고 가장 빨리 그곳에 도달하게 되기를 바라는데, 그것이 바로 그 요 인이다. 아무리 화려해도 껍데기만 가지고 있다는 것은 무의미하다. 정말로 자신의 무학이며 살아 있는, 알찬 내용이 비록 조금밖 에 없더라도 그것이 중요한 것이다. 이러한 무학을 배우는 데 있어서도 그래서 똑똑한 천재(天才) 보다는 위대한 바보가 더 나은 것이다. 화검상이 그러한 생각에 잠겨 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 문득 연 무장에 있던 일부의 사람들이 서로 눈짓을 교환하더니 일제히 몸 을 날려 그를 에워쌌다. 지금과 같은 연무(鍊武)는 반복 습득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범 들도 필요없고, 그래서 제자들은 자율적으로 수련하고 있었던 모 양이었다. 화검상은 그들 중에서 매우 낯익은 사람들의 얼굴을 찬찬히 바 라보았다. 바로 아까 그를 보자고 했던 사람들인 것이다. 봉검기(封劍機)는 화검상이 마치 넋 나간 듯이 자신들을 바라 보고만 있자, 눈살을 찌푸리며 음험하게 말했다. “화사형! 지금 대사형을 보고도 인사조차 하지 않는 거요?” 화검상은 문득 빙그레 웃음을 떠올렸다. “그렇군. 내가 이거 너무 정신이 없었던 모양이군! 대사형, 그 리고 여러분들! 모두 무고하시오?” ‘이 자식이 갑자기 실성을 한 게 아닐까?’ 봉검기가 재차 눈살을 찌푸리고 있을 때,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던 윤검진(尹劍塵)이 앞으로 나서서 말했다. “자네는 요즘 너무도 함부로 돌아다닌다고 하더군. 무공수련 을 하지 않으려면 일을 해야지, 그렇게 제멋대로 행동해서야 되 겠나? 지금도 보아하니 어딜 다녀오는 모양인데, 이렇게 구슬땀 을 흘리며 연무를 하는 사람들이 눈에 보이지도 않나?” 성검양(成劍陽)이 그 말을 받아 비웃듯이 말했다. “아마도 자신이 아직도 무슨 대단한 존재인 줄 아는 모양이 지?” 피검석(皮劍石)이 두 눈에서 악독한 광망을 발산하며 말했다. “이런 자는 바로 죽어버려야 해! 이런 녀석이 있을수록 본파 는 썩어 문드러질 테니까 말야!” 화산파에서 상하 간의 지위는 비교적 엄격하다. 그런데 지금 공공연히 그런 것을 무시하는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은 화검상을 자신들의 동료로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말과도 같 았다. 피검석의 말은 그 지나침의 한계를 넘어선 것이었으나 대부분 음흉하게 웃을 뿐, 누구 하나 나서서 제지하는 사람이 없었다. 윤검진이 음침하게 웃으며 다시 말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있 야그 출력일 :: 98/10/16 ───────────────────────────────────── 제 목 : [화산] 2 권 제 16 장 - 3 “앞으로 자네는 어떻게 할 셈인가? 듣자니 조금 전엔 처소에 서 난동을 부렸다면서?” 그것은 이상한 일이다. 아니 매우 좋지 못한 일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이전엔 그런 말들을 들으면 감정이 치솟곤 했었는데 이제는 그 러기는커녕 오히려 먼 산의 일을 보는 것처럼 몽롱해지니 말이 다. 화검상은 마치 열병에 걸려 꿈을 꾸는 것처럼 사람들을 바라보 다가 웃으며 말했다. “내가 한마디해볼 테니 여러분은 들어보시오. 나는 사실 일을 하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라 무공을 수련하려는 것이오. 왜냐하면 여러분이 나를 귀찮아할 것 같으니까. 하지만 만일 여러분이 원 한다면 지금 이곳에서 나의 무공을 선보일 수도 있소!” 느닷없이 화검상의 말에 성검양과 봉검기 등은 일순 서로를 돌 아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귀검철(歸劍鐵)이 냉랭한 표정으로 말했다. “무슨 헛소리냐? 우린 지금 너를 훈계하고자 하는 것이지 그 런 잘난 무공을 보려는 것이 아니다!” 화검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오. 나는 지금 마악 영감(靈感)이 떠올랐소. 이 영감은 알다시피 오래 기다려주는 것이 아니니 훈계는 나중에 듣도록 하 고 우선 검(劍)을 써봐야 하겠소. 아마 여러분도 흥미로울 것이 오.” 목검일(穆劍一)이 문득 앞으로 나서며 차갑게 말했다. “좋다! 그렇다면 내가 상대해줄 테니 한번 검법을 펼쳐봐라.” 사형제들 간의 비무는 흔히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것은 상황에 따라 간혹 어떤 도전으로 비춰지기도 한 다. 목검일은 올해 스물여덟인데, 공력은 삼 갑자이고 무공은 절정 경지이다. 무림인들은 당연히 남의 비무를 구경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것은 비단 흥미로울 뿐만 아니라 은연중 자신의 무학에도 도 움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화검상은 아주 특별한 존재가 아닌가? 사람들은 본래의 의도를 약간 벗어나서 이내 흥미로운 표정을 드러냈다. 성검양이나 봉검기 등은 눈살을 다소 찌푸렸지만 억지로 막지 는 않았다. 화검상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오. 나는 칼춤을 추려는 것이지 비무(比武)를 하려는 것 은 아니오.” 혼자 검무(劍舞)를 추는 것은 아무래도 비무를 하는 것보다 현 실감이나 박진감도 덜하고 덜 흥미롭다. 사람들은 화검상이 칼춤을 추겠다고 하자 다소 맥빠진 듯한 표 정들을 지었다. 목검일 등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이내 뒤로 물러나 공간을 넓 혀 주었다. 화검상은 허리춤에서 장검을 뽑아들고 우뚝섰다. “여러분! 나는 혼자서 연공(鍊功)을 하던 도중 내 무공의 잘못 되었던 점을 발견했고, 그것을 시정함으로써 갑자기 과거의 잃어 버렸던 무공을 모두 되찾을 수 있었소.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아 마도 여러분이 지금 본다면 알 수 있을 것이오.” 이어 화검상은 공력을 올려 검법(劍法)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는 검법에 몰입하여 마치 무아지경(無我之境)에 들어간 것 같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지금 그가 전개하고 있는 것은 바로 매화검법(梅花劍法)이었다. 사람들은 그가 펼치는 것이 매화검법이라는 것을 알자 다시 실 망을 금치 못했다. 그들은 연무하는 도중, 옆 사람의 매화검법을 수도 없이 보아 왔던 것이다. 누군가가 말했다. “어? 정말로 무공을 되찾은 것 같은데! 공력이 크게 늘어났는 걸?” 같은 화산파의 사형제간이라고 해도 단순히 상대의 검법을 보 아서 그 경지를 판별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대부분이 사람들은 매화검법의 경우 그 변환(變幻)의 모습인 매화송이가 나타나는 개수와 모양을 보고 곧잘 그 경지를 판별하곤 한다. 화검상의 신형이 보이지 않을 듯이 빠르게 움직이고 눈부시게 가득 차는 검광(劍光)들과, 그 속에 피어나는 매화 모양들이 하나 둘씩 늘어날 때마다 주위의 사람들은 저마다 눈이 휘둥그래지기 시작했다. “벌써 열아홉 개야! 홍사형은 고작 열여덟 개를 만들 수 있을 뿐인데 열아홉 개나 만들다니, 정말로 아까 홍사형을 이겼다는 말이 거짓은 아닌가봐!” 매화 모양은 처음에는 빠르게 숫자가 증가했지만 나중에는 늘 어나는 숫자가 지루할 정도로 느렸다. 하지만 그것은 스무 개를 지나 드디어 스물한 개에 이르렀고, 그 이후로는 더 늘어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누가 이렇게 혼신을 다해 검법을 펼치는 것을 아직 본적이 없는 것 같았다.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자니 두려움이나 거부감은 사라지고 자 신이 마치 그 검광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화검상은 매화 모양이 늘어나지 않는데도 계속해서 검법을 펼 쳤는데, 그것을 보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그 스물한 개의 매화송이들이 점차로 빛나고, 커져서 자신들이 마음 속으로 파고드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화검상은 삼십육식(三十六式)의 매화검법을 처음부터 끝까지 세 번을 반복했는데, 마지막 세번째의 끝부분에 이르자 마치 그 매화송이들이 살아서 움직이는 듯 화검상의 몸을 허공으로 떠올 려 분분히 터져나가듯이 흩어지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마치 그 어떤 향기가 자신들의 몸 속에서 스며드는 듯한 착각을 느꼈다. 그것이 바로 마지막 초식 매화만리향(梅花萬里香)이다. 제일초인 매화점점(梅花點點)에서 시작하여 매화빈분(梅花頻 粉), 매화노방(梅花怒彷), 매화집금(梅花集錦), 한매토염(寒梅吐 艶), 청철매화(淸澈梅花) 등으로 이어지는 이 매화검법을 그들은 무수히 보아왔지만, 지금은 왠지 처음 대하는 것 같은 느낌까지 들었다. 누군가가 소리쳤다. “이, 이건 마공(摩功)이다!” 그 순간 화검상은 검법시전을 마치고 장검을 검집 속에 넣은 채 지면에 조용히 내려서 있었다. 비록 호흡은 여전히 차분하지만 워낙 혼신을 다한 검무(劍舞) 여서 그런지 그의 안색은 마치 술 취한 듯 불그레하게 변해 있었 다. 사람들은 아직도 넋 나간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이윽고 모 두 정신을 차리고 화검상을 주시했다. 화검상은 그들을 향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여러분, 제 검법이 어떻습니까?” 윤검진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이것은 뭔가 이상하다. 자네는 어디서 이런 것을 배웠나?” 문득 다른 한 사람이 나서서 말했다. “당신들은 이제 그를 괴롭히는 일은 그만둬요! 그는 솔직하게 자신의 무공을 보여줬는데도 당신들은 또 꼬투리를 잡을 건가 요?” 일순 사람들의 시선이 그쪽으로 집중되었다. 화검상도 다소 뜻밖이라 그쪽을 바라보았다. 그는 아마도 그를 위해 이런 말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은 잘 해 야 유검하(劉劍霞)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비단 목소리도 달랐을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은 용모도 유검하와는 달랐다. 그녀는 바로 올해 나이 스물셋이며 화검상에게는 사매가 되는 악검림(岳劍林)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자 다른 한 사람이 그녀에게 다가와 그 녀를 제지했다. “네가 뭘 안다고 나서느냐? 대사형께 사과드리지 못하겠는 냐?” 바로 그는 악검림의 친오빠가 되는 악검인(岳劍人)이었다. 이 악검인은 나이가 스물여섯이고 화검상에서는 사형이 된다. 평소에는 잘 나서지 않으나 매우 총명하고 냉혹한 기질이 있어 서 사람들은 은근히 그를 어려워하고 있었다. 악검림은 오빠에게서 그런 책망을 듣자 안색을 붉히면서 지지 않고 대꾸했다. “내가 뭘 모른다고 그러세요? 나도 저들과 한패가 되라는 말 인가요?”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ЕЕ 야그 출력일 :: 98/10/16 ───────────────────────────────────── 제 목 : [화산] 2 권 제 17 장 기뻐해야 할일 제 17 장 기뻐해야 할일 화검상은 씁쓸하게 웃으며 윤검진에게 다가서며 말했다. “나의 검법은 분명히 본파의 매화삼십육식(梅花三十六式)이오. 그렇게 믿기지 않는다면 대사형이 한번 나와 상대해보겠소?” 윤검진은 조금 전에 화검상의 무공이 이미 상당한 수준이라는 것을 알았다. 화검상은 스물한 개의 변환(變幻)을 일으켰는데 그도 현재는 그 정도의 수준이었다. 그러나 화검상의 무공은 변환만 보더라도 어딘가 기이하게 느 껴지는 데다가 자칫하면 대사형인 자신의 체면이 한 순간에 엉망 이 될 수도 있는 일이기에 그는 조금도 그와 대적해볼 생각이 없 었다. 그런데 그가 이내 사양하며 물러서려고 할 때였다. 화검상은 정말로 장검을 뽑아 그의 목을 향해 찔러오는 것이었 다. 윤검진은 그가 이렇게 느닷없는 행동을 취해올 줄 몰랐기에 어 처구니가 없었다. 상대의 대답을 들어보지도 않고 더군다나 대사형에게 검을 들 이대는 것은 매우 무례한 일인 것이다. 하지만 윤검진은 이내 더욱 어처구니없는 꼴을 겪어야만 했다. 화검상의 검초는 일면 매화검법의 스물네번째 초식인 매화적성 (梅花摘星)처럼 보였다. 그것은 윤검진도 알고 있는 초식이고 화검상의 출수(出手)도 그리 빠른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윤검진이 마악 대응하려고 했을 때 장검은 어느새 중간 을 지나고 있었다. 윤검진은 이런 검법을 본 적이 없었다. 적어도 이것은 그가 알고 있는 매화적성은 아닌 것 같았다. 매화적성이 매화검법 중에서 가장 빠른 초식이기는 해도 이렇 지는 않다. 변환이란 바로 그 초식의 성향을 보여주는 것이라고도 할 수가 있다. 매화적성은 말 그대로 거의 동시에 빠르게 상대방의 여러 곳을 공격하면서도 진퇴가 자유로운 것으로 그것은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로 운용이 가능하다. 그러나 윤검진은 이러한 모양으로 변화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 각해보지 못했다. 그것은 아마도 다른 사람들의 생각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마도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화검상의 검은 처음에는 느렸으나 점차 빨라지고, 나중 에는 거의 눈에 보이지도 않았던 것이 아닌가? 윤검진은 도저히 그러한 사실이 믿기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 현실도 믿기지 않았다. 화검상의 그 누런 장검은 검날이 세워져 있지 않아서 그의 몸 에 상처를 주지는 않았다. 그것은 그저 둔해 보이지만, 일단 공력을 주입하여 검기(劍氣) 를 일으키면 상황이 달라질 것이므로 윤검진은 안심할 수가 없었 다. 무엇보다도 그는 이 현실이 수치스러워 견디기 어려웠다. 하지만 무엇이든 빨라지면 제어하기 어렵고, 또한 그것이 보이 지 않을 정도라면 더욱 그렇다. 화검상의 검은 나중에는 그야말로 몹시 빨랐는데 그는 어떻게 그림처럼 완전히 그것을 제어할 수 있었을까? 윤검진은 상황이 워낙 혼란스러워서 미처 그런 것을 생각해보 지 못했다. 이때 주위의 모든 사람들은 이 뜻밖의 상황에 놀라 저마다 입 을 반쯤 벌리고 있었다. 그들의 눈엔 그저 화검상이 말을 하면서 장난하듯 검을 가볍게 찌른 것 같았는데 윤검진이 그것을 피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는 것이었다. 윤검진은 어째서 멍청하게 가만히 서 있었던가, 하는 것을 그 들은 저마다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설명은 길었지만 이 갑작스런 상황은 짧은 시간 동안에 벌어졌 다. 화검상은 장검의 검날을 윤검진에게 들이댄 다음 다시 웃으며 말했다. “어떻소? 나의 이 검법이 본파의 매화검법이오, 아니오?” 윤검진의 표정은 순식간에 무수히 바뀌었다. 사람들은 그의 표정이 그렇게 빨리 바뀌는 것을 처음 본 것 같 았다. 윤검진은 당황한 심사를 억지로 감추려는 듯 약간 억눌린 듯한 어조로 대꾸했다. “네가 이런다고 사실이 달라질 것 같으냐?” 화검상은 여전히 검날을 그의 목에 들이댄 채로 웃으며 말했 다. “나의 이 검법은 그야말로 살아 있는 검법이오. 당신은 아직 도 매화검보(梅花劍譜) 상에서 검법이 살아야지 죽으면 안 된다, 내용으로 들어가야지 껍데기만 흉내내서는 안 된다, 라고 한 글 귀를 읽어보지도 못했소? 또한 이 검법의 묘미는 드러나지 않는 변화(變化)에 있다, 그 드러나지 않는 변화를 알지 못하면 그 극 의(極意)에 달할 수가 없다, 라고 한 글귀를 읽어보지도 못했소? 자신의 검법이 죽어 있으면서 살아 있는 진짜 검법을 이단 취급 한다면 그야말로 바보가 아니겠소?” 매화검보의 글귀에는 분명히 그러한 구절들이 있다. 하지만 그런 부분에 대한 자세한 언급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저 몇 줄 적어놓은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저 수긍을 하면서도 형식적으로 포장해놓은 것이리라고만 생각하는 편이었 다. 그것은 실상 이 매화검법의 창안자 역시 곡선적 무예를 잘 알 지 못해서 다만 여지만을 남겨두었을 뿐이기 때문이다. 윤검진은 이제 다소 마음이 진정되어 차가운 음성으로 말했다. “네가 뭐라고 말을 한다고 해도 나는 상관없다. 네가 감히 나 를 벨 수가 있을 것 같으냐? 자기자신을 합리화한다고 해도 이런 하극상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화검상은 문득 전음으로 말했다. “뭐라고? 감히 벨 수가 있겠느냐고? 이 더러운 위선자(僞善 者)야! 네놈은 저번에도 겉으로는 웃으면서 잘도 나를 음해했다. 내가 너를 죽이지 못할 줄로 아느냐? 지금도 물론이지만 나중에 혼자 길을 걸어갈 때는 간혹 뒤를 돌아보는 것이 어떻겠느냐? 나 도 내 위치를 알고 있지. 너희들은 나를 죽이려고 하지만 내가 실로 너 같은 자를 함께 데려가지 못할 줄로 아느냐?” 화검상의 전음은 거의 완벽해서 표시가 나지 않았고, 사람들은 두 사람이 그렇게 가만히 있자 다소 의아해 했다. 화검상의 표정은 웃고 있었지만, 반대로 윤검진의 표정은 시시 각각으로 변해갔다. 실상 화검상의 현재의 위치는 최악이라고 할 수가 있었고, 그 야말로 장래가 내다보이는 윤검진이 그와 함께 악운을 맞을 필요 는 없을 것이다. 그는 필요에 의해 지금 나서고 있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적극적 으로 화검상과 맞설 필요는 없는 것이었다. 그런 각자의 입장 차이는 미묘하다. 윤검진은 그런 말에 대꾸할 수조차 없었지만 그래도 가만히 있 을 수가 없어서 전음으로 간신히 말했다. “내가 자네에게 뭐 그리 심하게 했다고 그러는가?” “뭐? 심하지 않았다고? 네놈이 그런 말을 한마디씩 할 때마다 네가 점점 더 지옥의 구렁텅이로 가까워진다는 것을 네놈은 모른 단 말이냐?” 윤검진은 극도로 신경을 쓴 나머지 관자놀이의 핏줄들이 툭툭 불거졌다. 전음이라는 것은 이런 때는 편하기도 한 것이어서 다른 사람들 은 그들의 대화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볼 때는 화검상은 지금 사면초가에 몰려서 발악을 하는 것이고 자신이 일부러 그 속에 휘말려 상처를 입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내게 지금 뭘 바라느냐?” “그건 간단해. 조금 전에 네가 말한 것은 모두 개소리이고 나 의 이 검법이 본파의 정통검법(正統劍法)이라는 것을 말해주면 돼. 그러면 자네의 그 지난 일들과 더러운 위선자라고 해도 전혀 상관하지 않을 테니.” 이어 화검상은 슬쩍 장검을 회수하여 검집에 넣으며 짐짓 미안 하다는 듯이 웃으며 육성으로 말을 이었다. “하하, 무슨 말이오. 하극상이라니? 나는 이미 말했듯이 비무 를 한번 해본 것이오. 대사형이 기분 나쁘게 생각한다면 그건 미 안한 일이지만, 사내대장부가 이런 일을 가지고 속 좁게 화를 내 서야 되겠소?” 사람들은 흡사 무슨 일이 벌어질 듯하다가 화검상이 검을 도로 회수하는 것을 보고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안심을 했다. 윤검진은 화검상을 노려보며 전음으로 소리쳤다. “내가 이 일을 폭로하지 못할 줄로 아느냐?”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있 야그 출력일 :: 98/10/16 ───────────────────────────────────── 제 목 : [화산] 2 권 제 17 장 - 1 화검상은 들은 척도 않고 태연하게 웃으며 다시 말했다. “그렇게 감정적으로만 나오지말고 어디 한번 다시 말을 해보 시오, 대사형! 내 검법이 정말 그렇게도 이상했소? 만일 이상하다 면 다시 한번 더 시험해볼 수도 있소이다.” 윤검진은 마음의 갈등을 일으키는 듯 여러 번 안색을 바꾸다가 이윽고 다시 입을 열었다. “너의 검법이 어떤지는 지금으로서는 단정하기 어렵다. 이 일 은 내가 판단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화검상은 다소 무표정하게 윤검진을 주시했다. “그러니까 결국 아직 모르겠다는 말이로군? 그럼 내가 다시 한번 알게 해드릴까?” 무표정한 시선은 간혹 어떤 차가운 시선보다 더욱 두려움을 느 끼게 한다. 윤검진은 다소 망설였으나 결국 이내 대답을 하고 말았다. “좋다. 너의 검법은 내가 보기에는 본파의 무학이 분명하다. 그러나 나를 건드리면 나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다!” 화검상은 짐짓 호탕하게 웃으며 윤검진의 손을 잡아 흔들었다. “하하, 내 이럴 줄 알았소. 대사형은 정말로 정인군자(正人君 子)라니까!” 이때도 다른 사람들은 유의하지 못했으나 윤검진의 손을 잡는 화검상의 손속은 평범한 것이 아니었다. 윤검진은 물론 희롱당하는 기분이 들어서 손을 잡히고 싶지가 않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에 화검상은 그의 앞으로 다가들었고, 윤검진 이 손을 쓰려고 했으나 그의 손짓은 왠지 화검상의 손을 마주잡 은 것밖에 되지 않았던 것이다. 손이 마주치는 순간, 윤검진은 빠르게 변화하여 화검상의 맥문 (脈門)을 공격하려고 했으나, 이상하게도 그의 공격은 미끄러지듯 빗나갔고 그의 진기가 찌르르하니 저리듯 울려오는 순간에 그의 손은 화검상의 손아귀에 마주잡혔다. 이번의 짧은 접촉은 윤검진이 거의 전력을 다한 것이어서 아까 보다 더욱 그를 놀라게 했다. 그는 비단 초식뿐만 아니라 내공에 있어서도 화검상의 무공이 놀랍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윤검진이 다시 멀쩡하게 손을 마주잡고 악수 를 나누자 기이하게 생각했다. 누가 그의 속을 모두 알 수 있겠는가? “사실 내 검법은 알기 어려운데 이렇게 은근히 마음을 써주다 니 나는 탄복했소.” 이어 화검상이 손을 풀고 떨어져나가자, 윤검진은 원한 맺힌 듯한 표정으로 화검상의 등을 노려보다가 감히 공격하지 못하고 전음으로 소리쳤다. “네 놈은 결코 편하게 죽지 못할 것이다!” 화검상은 사실 윤검진에게 등을 돌리기는 했지만 방심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조금 전에 이미 손을 잡으면서 소문대로 그의 무공이 삼 갑자 반에 절정경지라는 것을 확인했다. 한데 윤검진이 감히 공격하지 못하고 그와 같은 전음을 날리며 달아나듯 물러가버리자, 그는 속으로 웃으며 생각했다. ‘편하게 죽지 못한다? 하하, 그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소?’ 윤검진이 그렇게 자리를 피해버리자, 장내에는 잠시 어색한 기 운이 감돌았다. 모여들었던 사람들 중 일부는 슬그머니 연무를 하기 위해 물러 가고 귀검철, 성검양, 봉검기 등이 남았다. 봉검기가 음침한 표정으로 화검상에게 말했다. “화사형, 당신의 무공이 그렇게 높아졌다고 해도 예외는 아니 오. 반드시 본파의 규율을 따라야 할 것이오.” 화검상은 자조적인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그게 바로 조금 전에 나를 훈계하겠다고 하던 말인가? 그렇 다면 나도 묻지 않을 수가 없군. 자네들 중에는 본파의 규율을 어기지 않는 사람이 없단 말인가?” 봉검기는 음험하게 말을 받았다. “화사형께서 무슨 가르침이라도 있으시오?” “내가 굳이 자네를 일부러 가르칠 필요는 없겠지. 자네가 원 한다면 한 수 지도해줄 수는 있네. 대사형과의 경우와는 좀더 다 른 것이 되겠지. 나는 조금 전에 누가 내게 함부로 상하가 무엇 인지도 모르고 대들었는데, 자네들은 그런 하극상에는 어째서 모 른 척하느냐는 말이네.” 그것은 피검석을 지목하는 말이었다. 본래 피검석은 화검상에게 원한 같은 것을 느끼고 있었는데 조 금전에 대사형이 당하는 것을 보자 자신이 수치스럽게 생각할 필 요가 없다고 여겨 마음이 누구러지게 되었다. 그런데 이제 다시 지목을 받자 안색이 시뻘게지도록 울화가 치 밀어올랐다. “지금 나를 두고 하는 말이오?” 화검상은 태연히 웃으며 말했다. “조금 전과 같으면 자네는 네놈이라는 말을 썼을 텐데 이제는 제법 규율을 따르려고 하는 것 같군? 그런데 자네는 그 하극상이 가장 무거운 죄라는 것을 아직 잊어버리지는 않았겠지?” 그 말은 바로 화검상이 사과애에서 내려오던 날, 봉검기가 협 박할 목적으로 그렇게 사용했었다. 봉검기가 아무리 낯짝이 두꺼워도 그 말에는 더 나서지 못했 다. “그래서 지금 내게 어쩌자는 거요?” 피검석이 얼굴이 시뻘게져서 대드는 것을 보고, 화검상은 다소 외면하며 말했다. “이미 말했듯이, 나는 자네들에게 어떻게 하려는 것은 아니네. 오히려 서로 사이가 좋아져서 친하게 지내게 되기를 바라고 있 지. 나는 알다시피 죄인의 자손으로 나 역시 그것을 알고 공을 세워 그것을 씻으려고 하고 있네. 만일 정녕 문제가 되어 처벌을 받게 된다고 해도 그건 어쩔 수가 없는 일이겠지. 하지만 우리는 같은 사형제 간이니 그때까지는 친하게 지냈으면 하는 것이네.” 성검양이 음침하게 웃으며 말했다. “흐흐, 누가 뭐라고 합디까?” 화검상은 그를 향해 미소하며 말했다. “자네들은 오늘 나를 불러 공갈 협박하고 꼼짝못하게 만들어 노리개로 삼으려고 했던 것이 아닌가?” 성검양은 음험하게 안색이 굳어져서 노려보며 대꾸했다. “그러면, 어디 당신이 넘어가겠소?” 화검상은 그를 주시하며 말했다. “최소한 자네같이 건방진 사제는 다시는 그러지 못하게 손봐 줄 수가 있네.” 목검일이 나서서 웃으며 화검상을 제지했다. “자자, 그런 얘기는 이제 그만 하도록 하세. 출정할 준비를 해 야 하고, 또한 이렇게 다투면 무슨 소득이 있겠나?” 화검상은 웃으며 그에게 포권했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목사형, 이렇게 소란을 피웠으니 제가 사 죄드리지요. 그럼 저는 이만 돌아가서 혼자 무공수련이나 해야겠 습니다.” 목검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도록 하세.” 화검상이 천천히 그곳을 벗어나자 뒤에서 성검양 등이 그를 향 해 욕하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염병할! 저 개자식이 언제 저렇게 무공이 높아졌지?” 일단 그곳을 벗어나자 화검상의 머리는 혼몽해졌고 정신이 없 어졌다. 그는 모친의 일로 크게 상심해 있던 데다가 갑자기 울분이 폭 발하여 평소에 없던 과격한 행동을 하게 되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야그 출력일 :: 98/10/16 ───────────────────────────────────── 제 목 : [화산] 2 권 제 17 장 - 2 그러한 행동을 하게 된 데에 대한 후회는 별로 일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갈수록 마음이 무거워지고 우울해짐을 느꼈다. 이것이 그의 한계란 말인가? 그는 경우 이 정도밖에 될 수 없는 사람이란 말인가? 아까의 그러한 행동은 강호의 시정잡배들과 다를 게 뭐가 있었 다는 말인가? 화검상은 한숨을 내쉬며 거푸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렇다. 지금은 비록 어리석어도 더욱 노력하면 그는 좀더 나아질 것이 다. 그는 바로 사람이 노력하면 점점 더 훌륭해질 수 있다는 것을 믿는 사람이었다. 채석장의 부근으로 가자, 예의 그 칼자국의 사내가 기다리고 있다가 다가와 묻는다. “오늘 일을 할 거요?” 화검상은 고개를 저으며 걸음을 옮겼다. “아니오. 오늘은 일이 있어 쉬도록 하겠소.” 이 낙안봉은 이제 많이 익숙해졌다. 화산파의 사람들은 으레 화산의 모든 봉우리에 익숙할 것이라 고 생각하지만 기실은 다르다. 늘상 지척에 두고 보면서도 정작 돌아다닐 시간이나 일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잘 모르는 경우가 더 많다. 화검상은 이윽고 가검통을 제압했던 그 동굴에 이르자, 자리를 정하고 간단하게 운기조식을 한 다음, 무공수련에 들어가기 시작 했다. 본래 무공에는 기본적인 것인 내공 이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을 수가 있겠는데,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이 권법(拳法)이고, 장법(掌 法), 지법(指法), 금나수법(擒拿手法), 신법(身法), 보법(步法), 그 리고 병장기를 다루는 법에는 도검창곤(刀劍倉棍) 등이라고 할 수 있다. 흔히 검(劍)을 만병지왕(萬兵之王)이라고 하는데, 권법이나 장 법 등에 대한 무공절기(武功絶技)들도 많이 있다. 화검상은 우선 생각나는 대로 그러한 절기들을 하나씩 차례로 연마해가기 시작했다. 이 동굴은 협소하기 때문에 그런 절기들을 마음껏 연마하는 데 는 무리가 있다. 일단 그 오의(奧義)에 통하게 되면 공력이 많아도 사용하는 것 은 다름이 없을 것이기에 그는 일 성(一成)의 공력만을 사용했다. 그는 사실 근본적인 이치에 통해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그것들 을 절기들에 적용하는 것은 새로 배우는 것이 아닌 익숙해지게 하면 되는 입장이다. 아까도 그는 단시간 내에 매화검법을 익숙하게 펼치지 않았던 가? 본래는 단련하면서 터득해가는 것이지만 이런 특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바로 그는 오랫동안 터득만 하고 단련해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제 달리는 방법을 터득한 사람이 실제로는 기는 연 습부터 해나가야 하는 입장이나 비슷한 것이다. 별로 새로 깨우쳐지는 것도 없고 장애되는 것도 없기에 그 절 기들의 연마는 일사천리로 되어갔다. 어떤 동작의 형(形)을 연마하는 것이 아닌 진기의 운용(運用)을 위주로 하는 것이어서 이런 것들은 오히려 진전이 빨라질 수가 있다. 그 유명한 죽엽수(竹葉手)나 자하지(紫霞指), 그리고 표미각(豹 尾脚)과 소엽퇴법(掃葉腿法), 양오검(養吾劍), 희이검(希夷劍) 등……. 화검상은 일단 그렇게 무공수련에 몰두하자 점차 아까의 일들 을 잊어가기 시작했고 마음도 맑아져갔으며 무아지경에 빠져 시 간 가는 줄 모르게 되었다. 충분한 공력의 바탕이 있었기에 그는 지치지도 않았다. 얼마나 시간이 흐른 것일까? 그가 배운 모든 절기들을 뜻대로 구사할 수 있겠다고 생각되었 을 때, 어느새 주위가 어두워지고 저녁 무렵이 되어 있었다. 화검상은 문득 자신의 이런 빠른 성취를 믿기 어려워졌다. 그는 최소한 모든 절기들이 익숙해지려면 한 달은 걸려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기이한 것은 그 모든 절기들이 의외로 쉽게 보인다는 사실이 다. ‘혹시 공력을 너무 적게 사용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밖으로 나가서 한번 모든 공력을 사용하여 연마해볼까 하고 생 각해보다가 그는 문득 고개를 내저었다. 말할 것도 없이 밖에는 지금 그를 감시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 이다. 그는 그들에게 자신의 진짜 능력을 보여줘선 안 된다. 기실 그의 무공은 특이하여,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그리 대 단해 보이지 않아 아까 연무장에서 사람들은 겨우 자신들과 비슷 한 수준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파괴력은 대단하며 그런 것을 감시자에게 보여줘선 안 되는 것이다. 화검상은 무공수련을 마치고 처소로 돌아갈 생각을 하자 다시 마음이 심란해지기 시작했다. 오늘 낮에 있었던 모친과의 일, 그리고 연무장에서의 일 등은 다시 그에게 깊은 마음의 상처를 남겼다. 그는 지금 또 입장이 달라진 것이다. 그는 차라리 이렇게 혼자 고독하게 무공수련에 몰두할지언정 다시 돌아가 사람들과 어울리기가 싫어졌다. 하기는 가문의 죄를 씻는 것은 밖에서 공로를 세우는 것이니 그는 사흘 후에 출정에 참가하기만 하면 될 것이다. 사형제들과의 사이가 하루아침에 가까워지기를 바란다는 것은 무리가 아니겠는가? ‘그럼 그때까지 여기서 계속 수련이나 할까?’ 그는 이미 밤에는 반드시 처소에서 잠을 자기로 약속을 한 바 가 있었다. 하지만 화검상이 감시를 당해야 할 큰 죄를 저지르지 않은 이 상은 반드시 그래야 할 필요는 없다. 제자들이 중요한 관문을 넘기 위해 며칠 혹은 수십 일 간 폐관 (閉關)에 드는 일은 흔한 일인 것이다. 그것이 무슨 커다란 죄가 되지는 않는다. 게다가 그들이 자신을 해치려는 것은 뻔히 드러난 사실인데 애 써 그들과의 약속을 지켜줘야 할 일이 있겠는가? 지금의 상황에서는 어떤 신의(信義)보다는 능력이 더욱 필요할 것이다. 풍천비 등이 지금 실권을 잡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화산파 자체는 아니다. 화검상은 화산파 자체를 위하려는 것이지 그들에게 충성하려는 것은 아닌 것이다. 일단 그런 생각이 들자 화검상은 이내 마음을 정하고 이곳에서 머물 자리를 고르기 시작했다. 고작 사흘이라고 해봐야 이틀 밤낮이 될 테지만, 그러나 무엇 보다도 시작은 중요한 것이다. 자리를 고르고 나자 그는 그 위에 정좌하고 운기행공에 들어가 기 시작했다. 어차피 밤에는 절기들을 연마하는 것이 어려울 것이니 운기행 공을 하며 보내자는 생각에서였다. 그는 그 운기행공이 길어질 것을 대비하여 허기진 배를 달래려 고 벽곡단 한 알을 복용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런데 그가 그렇게 다시 운기행공으로 들어갔을 때였다. 갑자기 화검상은 아까와는 뭔가 다른 기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것은 잠을 자고 있던 기운이 다시 꿈틀거리는 듯한 느낌과도 같았다. 화검상은 즉시 운기를 멈추고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재차 운기 행공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과거 그는 동굴의 무덤에서 그보다 더한 상황도 겪었으므로 설 령 모르는 일이 벌어진다고 해도 걱정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었 다. 재차 운기행공에 들어가자 정말로 그러한 기운은 전신에서 움 직이기 시작했다. 화검상은 놀라는 가운데 계속 운기행공을 했고, 이내 그 이유 를 알게 되었다. 본래 화검상의 무학에 대한 깨우침은 비록 깊고 넓은 편이었으 나 아직 세밀하지 못했었다. 따라서 많은 부분이 활동하게 되었으나 아직 미세함이 결여되 어 잠재된 능력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런 것을 그는 오늘 낮에 무공수련으로 문제를 제거하게 되었 고, 지금은 그 남은 잠재력의 부분이 마지막으로 활약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좀더 터득되는 부분은 느끼지 못했다고 해도 무공수련을 할수록 어딘가 시원한 쾌감이 느껴졌던 것은 바로 그것이 나타내 는 일이었다. 무학에 대한 오의의 깨달음과 그 능력은 더 많은 공력을 수용 할 수 있기에 가능하다면 그것을 움직인다. 지금 화검상의 체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는 바로 만년옥장 의 약효가 좀더 공력으로 녹아드는 것이다. 현재의 화검상의 심정은 현실에 대해 다소 비관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전에 그는 공력이 증가되면 크게 기뻐하고 마음도 들떴지만, 지금은 별로 그렇지도 않았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있 야그 출력일 :: 98/10/16 ───────────────────────────────────── 제 목 : [화산] 2 권 제 17 장 - 3 지금 그의 마음엔 즐거움이라곤 없으며 그저 공력이 늘어나면 좋고, 아니라도 상관없다는 식이었다. 물론 비관적인 심정은 기혈(氣血)을 침체되게 할 수가 있으므 로 그 자체가 공력증진에 좋을 수는 없다. 다만 지금의 화검상에게 있어서 그것은 오히려 마음을 맑게 진 정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어서 운공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다. 그는 그런저런 이유로 공력이 불어나기 시작하자 마음을 모으 고 이전처럼 융통된 대주천반운(大周天搬運)을 따라 돌리기 시작 했다. 운기행공은 대개 몸을 활기있게 만들고 쾌적하게 해주기 때문 에 마음도 따라서 편안해지게 된다. 화검상은 처음에는 다음 단계인 백맥(百脈)의 타통에 도전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것은 별로 의욕도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계속 운기행공에 몰두해감에 따라 그는 본능적으로 그 일을 해나가게 되었다. 공력이 대주천반운의 통로에 가득 차버린 듯한 느낌이 드는 것 은 벌써 상달(上達)의 조짐이다. 화검상은 대주천반운의 장애가 점차 느껴지게 됨에 따라 이윽 고 진기를 백맥(百脈)의 경로(經路)로 보내기 시작했다. 이전에 그는 백맥의 타통에 도전했다가 공력의 부족으로 실패 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번의 시도는 오히려 익숙했다. 백맥이란 십이정경 등과 세맥(細脈)들 사이의 중간층을 말하는 것으로서, 그것을 타통하는 것은 십이정경 등의 대주천반운과 같 이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보다 다른 방법인 것이다. 화산파의 이 자하신공(紫霞神功)에도 그러한 언급이 당연히 되 어 있었다. 화검상은 한동안 꾸준히 백맥의 경로로 운기를 하던 도중, 갑 자기 해저(海底)에서 충맥(衝脈)을 통해 기운이 일직선으로 이환 궁(泥丸宮)으로 치솟으며 두정(頭頂)이 열리는 것을 느꼈다. 이것은 소위 생사현관(生死玄關)의 타통이다. 흔히들 생사현관의 타통이라고 하면 두 가지를 연상하게 되는 데, 하나는 중요성이고 두번째는 위험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화검상은 오직 그것이 중요한 어떤 획기적인 관문이기 에 그렇게 불려진 것이지 위험하기 때문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 다. 이러한 모든 관문은 순서대로 자연스럽게 밟아가면 저절로 열 리는 것이지, 위험할 게 없다. 그게 위험해진다면 그건 내공심법의 잘못일 것이다. 직선적인 내공의 경우, 그것은 충분히 기초와 과정을 밟아가지 않았기 때문에 자칫하여 그 거대한 진기가 머리로 치솟으면 두뇌 를 파열시키고 미치게 하거나 죽음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 아니면 진기가 갑자기 역류(逆流)하여 엉뚱한 길로 접어들고 미치거나 반신불수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곡선적인 내공의 경우 충분한 기초과정과 모든 장애를 제거하고 나아가기에 그런 위험은 있을 수가 없고 조금도 문제될 게 없다. 실제로 지금 화검상은 그 생사현관을 타통하는 과정에서 산뜻 하고 쾌적하게 하늘이 열리는 듯한 느낌만을 약간 받았을 뿐이었 다. 그는 이내 자신과 우주(宇宙)가 하나가 된 듯한 느낌을 맛보았 고, 그 소위 천인합일(天人合一)이라는 단계를 거쳐 전신에 말할 수 없이 쾌적한 기운이 두루 노니는 것을 느꼈는데, 이것이 바로 백맥(百脈)이 타통되는 모습이다. 일단 생사현관을 타통하여 체내의 진기가 천지간의 기운과 교 감하면 그 진기는 지극히 맑고 영성(靈性)을 띤 선천진기(先天眞 氣)로 화한다고 하는데, 백맥은 바로 그 선천진기가 하강하고 상 승하면서 비로소 타통이 가능한 것이다. 이때의 진기는 수화상제(水火相濟)하고 강유(剛柔)가 조화를 이 룬 것이다. 선천화된 진기가 전신의 표면을 따라 흘러내리듯 하강을 하게 되자 그의 몸은 앉은 그대로 부공삼매(浮功三昧), 즉 세 치 가량 떠오르게 되고 머리 위에는 오장의 기(氣)가 모여 홍화(紅花), 은 화(銀花), 금화(金花)가 나타났는데 그것이 바로 삼화취정(三花聚 頂) 오기조원(五氣朝元)이다. 이때의 진기는 노화순청(爐火純淸)이라고 하고 반박귀진(返樸 歸眞)이 된 것이며, 그의 뼈마디가 다시 움직여 제자리를 찾고 거칠어진 피부가 벗겨지기 시작하니 이것이 바로 환골탈태(換骨 奪胎)이다. 이 최상승(最上昇)의 경지에 오르는 작업은 제법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화검상은 거의 무아지경에서 시간의 흐름을 모르고 있었는데, 문득 눈을 떠보니 주위가 훤해져 있었다. ‘벌써 하룻밤이 지났단 말인가?’ 그러나 아직 날이 샌 것은 아니었다. 아직도 밤중이지만 갑자기 최상승의 경지에 이르러 그의 시력 이 급격히 좋아졌기에 어둠속을 훤하게 꿰뚫어볼 수 있게 된 것 이다. 화검상은 내심 웃고는 다시 운공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시작도 중요하지만 언제나 마무리도 중요한 법이다. 이 최상승이라고 불리는 백연탄(白筵彈)의 경지는 생사현관이 라는 말이 보여주듯이 육체적인 그 최후의 관문을 돌파하고 얻어 지는 심상치 않은 경지이다. 거기에는 마음의 작용이 중요해지며 기초를 다져두지 않으면 차후에 곤란해지게 되는 것이다. 곡선적 내공의 당위성은 바로 그런 점에서도 알 수가 있다. 그런데 화검상은 운공을 시작하자마자 갑자기 그런 상황에 달 한 듯 혼란에 접하기 시작했다. 매우 맑고 예민해진 최절정의 내공을 운기하기 시작해서인지 그의 전신에 남아 있던 만년옥장의 기운들이 이제는 모조리 들고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기실 그것은 괴이한 듯해도 당연한 일이다. 직선적인 내공의 경우에도 다른 경지로 오르기 전에는 공력의 증가가 어렵지만, 일단 단련된 공력으로 상달하면 그때는 얼마간 의 내공증가가 가능한 것이다. 화검상의 곡선적인 내공은 이 백연탄의 경지에 이르러 더 깨어 났다. 그것은 가능한 공간을 말해주며 모든 공력들을 스스로 불러일 으키고 있는 것이다. 혼란인 것 같지만, 기실 화검상은 오늘 다시 겹치는 행운을 얻 고 있었다. 화검상은 이내 그러한 사실을 스스로 알 수가 있었고, 잠시 후 에는 드디어 공력이 십 갑자(十甲子)나 되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 다. 그는 만년옥장의 구 갑자의 가능한 공력을 모두 얻은 것이다. 당연히 그것은 기뻐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그는 그런 것들을 확인하는 순간 마음이 오히려 더욱 우울해지고 있으니 그것은 무슨 까닭일까? 그는 혹시 그것을 자랑할 만한 사람들을 잃었기 때문이 아닐 까?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이 야그 출력일 :: 98/10/16 ───────────────────────────────────── 제 목 : [화산] 2 권 제 18 장 출정전야(出征前夜) 제 18 장 출정전야(出征前夜) 새로 공력이 더 증가되었기 때문에 기초를 다지는 일에 시간이 더 걸렸다. 그는 오랫동안 몰입하여 자기자신마저 잊을 정도가 되었고, 이 윽고 그가 운공을 모두 마치고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날이 밝아오 고 있었다. 오랫동안 운기행공을 하면 온몸이 뻐근해질 테지만 그러나 지 금 그의 전신은 그야말로 무게가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가 볍고 쾌적했다. 주위가 매우 밝게 느껴졌으나 눈부신 것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모든 것을 세밀하게 볼 수 있고 또한 빠르게 움직이는 물 체도 정확히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 것들 또한 그가 최상승의 경지에 오른 결과이다. 화검상은 잠시 앉은 채로 상념에 젖다가 이윽고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가보기로 했다. 신법 역시 당연히 증진되어 가볍게 지면을 차자 그의 신형은 부드럽게 미끄러져 나아갔다. 동굴이 깊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이내 동굴의 입구에 이르렀 다. 그냥 계속 밖으로 나가려다가 그는 문득 귀를 기울였다. 감시자가 부근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과연 아니나다를까? 바로 위쪽에서 느닷없이 가느다란 숨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아 닌가? 그 숨소리는 워낙 미세하여 예전이라면 분간하기 어려웠을 것 이다. 화검상은 다른 곳에도 사람이 있지 않을까 하여 소위 천청대법 (天聽大法)이라는 것을 펼쳐 두루 조사해보았으나 다른 곳에서는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누굴까? 혹시 방귀춘이 아닐까?’ 슬그머니 고개를 내밀어 위쪽을 바라보니, 위쪽의 우거진 숲 사이로 정좌를 하고 있는 방귀춘의 모습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화검상은 그를 보자 마음이 다시 차갑게 식어버렸다. 그는 본래 따뜻한 햇살을 한번 느껴보고 싶었던 것이었으나 방 귀춘이 감시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자 그만 그 생각이 사라져버 렸다. 이런 상황에서 밖으로 나가본들 어떻게 마음 편히 햇살이라도 쬘 수가 있겠는가? 화검상은 다시 신형을 돌려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한동안 정좌를 하고 재차 상념에 잠기다가 이윽고 몸을 일으켜 무공 절기들을 연마하기 시작했다. 오늘 그가 연마하는 절기들은 최상승의 경지이기 때문에 어제 와는 또 다르다. 이 경지에 오르면 무형(無形)의 진기가 유형인 선천진기로 화 하기 때문에 호신강기(護身 氣)나 검강(劍 ) 따위의 강기공( 氣功)을 사용할 수가 있다. 천리전음술(天里傳音術)이나 백리지청술(百里地聽術) 등을 사용 할 수 있음은 물론이요, 등평도수(登萍渡水)의 경공술을 사용할 수가 있고 비로소 육신의 제약을 벗어나는 기초적 무공절기(武功 絶技)들을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연마하는 절기들은 어제와 다름이 없으나 그 내용은 판이하게 다르고 보다 깊은 오의(奧義)에 접근해가는 것들이라고 할 수 있 는 것이다. 화검상은 육합신장(六合神掌)에서 시작해서 낙영장(落英掌), 죽 엽수(竹葉手), 난화불혈수(蘭花拂穴手) 등의 모든 절기들을 하나 씩 차례로 반복해서 연마해나갔다. 약간의 공력만을 사용할 뿐만 아니라 시전 즉시 거두어들였기 때문에 동굴 벽에 부딪치는 일도 거의 없었다. 그는 그런 식으로 신법이나 보법 등도 연마를 했는데, 비록 좁 고 울퉁불퉁한 동굴이라고는 하나 이제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단지 그는 낮에 운기행공을 하는 것을 삼갔는데, 그것은 자칫 밖의 감시자에게 자신의 실력을 노출시킬까 우려되었기 때문이었 다. 가급적 모든 것에 인내해가면서 그렇게 수련에 몰두하자 비교 적 시간은 빨리 흘러갔다. 정오 무렵이 되는가 싶었는데 어느새 밖의 날이 저물고 저녁 무렵이 되었다. 방귀춘은 밖에서 그렇게 계속 감시만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동굴의 내부가 점차 어둑어둑해지자 화검상은 다시 벽곡단 한 알을 복용해 허기진 배를 달래고 운기행공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오늘밤의 운공은 더 이상 공력이 늘어나는 일도 없겠기에 비교 적 순탄한 여정이 되었다. 운공조식을 하면 피로회복이 되는 것은 물론이요, 무아지경 속 에 쉽게 들어가게 한다. 화검상은 간혹 쉬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운기행공에 몰두하면서 또 하룻밤을 보냈다. 새벽녘에 이르러 그는 자신의 최상승 내공이 이제는 상당한 기 초가 잡혀서 무리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화검상은 날이 밝자 다시 밖으로 나가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 다. 하지만 그는 계속 참고 무공절기들의 수련을 계속했으며 오후 무렵에야 그것을 마칠 수가 있었다. 그는 어딘가 무공에 대해서는 자신감이 생겼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여전히 무거웠다. 이 무거워진 마음을 어떻게 하면 치료할 수 있을까? 화검상은 정좌를 하고 조용히 상념에 잠기다가, 이윽고 유시 무렵이 되어 동굴 내부의 흔적을 없애고 밖으로 나갔다. 화검상이 묵묵히 산 아래쪽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 문득 뒤쪽에서 가벼운 바람소리가 일어나며 한 사람이 허공을 날아 그 의 앞에 내려섰다. 바로 방귀춘이었다. 화검상은 다소 초췌해진 듯한 그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이내 미 소 짓고 포권하며 말했다. “방사숙, 그간 무고하셨습니까?” 방귀춘은 그를 보자 다소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안색 을 차갑게 굳히고 소리쳤다. “네놈은 그 안에서 대체 쥐라도 잡았느냐? 네놈이 조금만 늦 게 나왔으면 내가 끌고 나왔을 것이다!” 화검상은 미소하며 말했다. “저는 쥐를 잡은 것이 아니라 무공을 수련하고 있었을 뿐입니 다.” 방귀춘은 음험한 시선으로 쏘아보았다. “그래서 처소에도 가지 않고 계속 여기에만 있었다는 말이렸 다? 설마 하니 네놈은 내일의 출정에도 빠지려는 것은 아니겠 지?” 화검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출정을 위해 무공수련을 한 것인데 어찌 빠지겠습니까?” 방귀춘은 음침한 표정으로 산 아래쪽을 가리켰다. “그렇다면 좋다, 어서 이만 내려가자!” 말과 함께 그는 다시 신법을 날려 훌쩍 사라져버렸다. 아마도 계속 화검상을 멀찍이 감시하고 있을 것이다. 화검상은 가볍게 웃고는 보다 빠른 걸음으로 아래쪽으로 내려 갔다. 채석장에서는 이미 작업이 끝나 인부들이 물건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칼자국의 사내만이 멀리서 화검상을 바라볼 뿐 누구도 그에게 시선을 던지지 않았다. 계속 걸음을 옮겨 연무장의 앞에 도달하자 그 넓은 연무장은 텅 비어 있었다. 아마도 출정 전날이기 때문에 오늘은 모두가 쉬는 모양이었다. 다시 걸음을 옮겨 처소로 향하려고 하는데 문득 멀리서 누군가 가 소리쳐 그를 부르며 다가왔다. “화사제! 잠깐 나 좀 보세!” 바로 악검인(岳劍人)이었다. 화검상은 평소에는 거의 아는 척도 하지 않던 그가 갑자기 태 도가 달라진 듯하자 다소 이상하게 생각했다. 악검인은 곧장 다가와서는 화검상의 얼굴을 다소 주시하더니 말했다. “자네에 관한 얘기는 나도 들었네. 지금 돌아오는 길인가?” 아마도 화검상이 동굴에서 수련하고 있었던 것을 이미 모두들 소문을 통해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화검상은 웃으며 말했다. “그렇습니다만, 악사형은 제게 무슨 볼일이라도 있으십니 까?” 악검인은 손을 내저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야그 출력일 :: 98/10/16 ───────────────────────────────────── 제 목 : [화산] 2 권 제 18 장 - 1 “그런 것은 없네. 우리가 무슨 볼일이 있어야만 만날 수 있겠 는가? 자네도 아직 식사 전이겠지?” 화검상은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만, 악사형은 지금 식사를 하러 가시는 길이로군 요?” 악검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앞쪽을 가리켰다. “그렇네. 이렇게 공교롭게도 만났으니 함께 식사나 하러 가 세.” 화검상은 마침 매우 시장했고 게다가 지금 굳이 처소로 먼저 가 봐야 할 일은 없었다. 그는 악검인을 따라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내일 아침에 출정인데 매우 바빴겠군요?” 악검인은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반드시 그렇다고만 할 수도 없네. 우리와 같은 사람들은 그 저 오늘은 푹 쉬고 내일을 대비하는 것이지.” 화검상은 다시 말했다. “그래서 연무장이 이렇게 조용하군요. 한데 제가 이렇게 악사 형과 함께 어울리면 악사형이 불이익을 당하지 않겠습니까?” 악검인은 화검상을 한번 돌아보더니 다소 어색한 듯이 웃으며 말했다. “그런 걱정을 할 필요는 없네. 기실 내일의 출정은 워낙에 험 난한 것이어서 자칫하면 다시 살아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르지. 어 쨌든 우리는 사형제니까 그런 어려운 일을 앞두고 서로 화합(和 合)해야 하지 않겠나?” 화검상은 그가 갑자기 그런 말을 하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 했다. 그는 고마운 마음에 그만 자신의 무공에 대해서도 말을 꺼내볼 까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기실 지금 그의 심리상태는 정상적이라고 할 수 없다. 그의 마음은 다시 혼돈되고 어지럽게 짓눌려 있는 상태인 것이 다. 이런 상태에서는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가 없는 일이므로 그는 이내 그런 생각을 지워버렸다. 그런 중요한 사항은 신중을 기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처소 쪽으로 가자 과연 많은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그들 중 대부분은 주방 쪽으로 향하고 나머지는 여기저기 모여 잡담을 즐기고 있었다. 내일이 출정일이어서 그런지 다소 사람들의 얼굴이 긴장되어 있는 것 같기도 했고, 그래서인지 악검인과 함께 가는데도 그들 은 화검상에게 전혀 아는 척도 하지 않았다. 주방은 처소의 바깥쪽에 위치하고 있다. 그 부근에 이르자 이미 구수한 음식 냄새가 코를 찌르고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다. 악검인은 묵묵히 걸음을 옮겼는데 일단 그 앞에 이르자 줄을 서지 않고 화검상을 앞쪽으로 이끌었다. “자네가 그 동안 고생했을 테니 내가 좀 편리를 봐주도록 하 지.” 이곳에서 식사를 하기 위해 줄을 서고 있는 사람들은 대개 이 삼대의 제자들이다. 장로급이나 일대제자들은 따로 음식을 날라다주는 사람들이 있 는 것이다. 기다랗게 늘어서 있는 줄의 맨 앞으로 가자 얼핏 매우 낯익은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귀검철과 성검양, 봉검기였다. 마침 성검양은 쟁반에 음식을 가득 담아가지고 나오고 있었는 데, 두 사람과 부딪치자 약간 어색한 표정으로 아는 척을 했다. “안녕하시오, 화사형? 또 며칠 못 본 것 같소이다.” 악검인이 그것을 보고 나서며 말했다. “성사제, 자네 지금 바쁘지 않겠지? 바쁘지 않으면 그 쟁반을 화사제에게 주게. 화사제는 며칠 굶어서 몹시 시장한 모양이네.” 그것은 그야말로 고맙기 이를 데 없는 따뜻한 배려였다. 화검상은 악검인이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기에 일시 사양할 말도 꺼내지 못하고 어리둥절해 했다. 성검양은 다소 의아한 표정으로 화검상을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 바쁠 거야 없지만, 화사형이 내가 타온 밥을 먹으려 하 겠소? 내 밥에 혹시 파리라도 들어가 있을지도 모르지 않소?” 악검인은 웃으며 즉시 성검양의 쟁반을 빼앗듯이 받아서 화검 상의 손에 쥐여주었다. “그럴 리가 있겠나? 자, 어쨌든 편리를 봐주니 고맙네!” 화검상은 엉겁결에 음식 그릇들이 올려져 있는 쟁반을 받아들 게 되자 여전히 어리둥절해 하다가 이윽고 악검인에게 말했다. “이 밥을 지금 나더러 먹으라는 것이오?” 악검인은 주위를 둘러보는 듯하다가 화검상을 바라보며 대꾸했 다. “아니 그럼 자네에게 멋으로 들고 있으라고 한 줄 알았나? 설 마 하니 내 성의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겠지?” 화검상은 그를 바라보며 가볍게 웃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무시할 리가 있겠소?” 식사를 하기 위해 화검상은 비어 있는 탁자로 다가가 앉았다. 출정 전날이어서 그런지 오늘따라 반찬들이 푸짐했고 고기만두 와 몇 점의 돼지고기도 있었다. 그런데 그가 마악 고기만두 하나를 들고 먹으려고 할 때였다. 갑자기 누군가가 그의 옆으로 다가오며 화가 난 듯 소리치는 것이었다. “멈춰요! 정말 당신들은 이럴 수가 있나요? 반드시 사람을 이 렇게 못살게 굴어야 하겠나요?” 마악 먹으려던 고기만두를 도로 내려놓고 고개를 돌려보니 그 의 옆에는 악검림(岳劍林)이 와서 서 있었다. 그녀는 바로 며칠 전에 연무장에서 나서서 그를 변호해주던 그 사매였다. 몸은 화검상을 보고 있었지만 그녀의 화난 듯한 시선은 다른 사람들을 보고 있었다. “림(林)아! 네가 뭘 안다고 또 나서느냐?” 악검림은 심한 꾸중을 듣자 그만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내가 뭘 아느냐고요? 난 다 알아요! 저 사람들이 이 음식에 독(毒)을 타는 것을 다 보았다고요. 그래, 이런 비열한 짓을 해야 만 되겠어요?” 그녀의 그런 말에 주위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이쪽으로 집 중되었다. 악검림은 이어 화검상을 보더니 다시 소리쳤다. “멈춰요! 당신은 내 말을 듣지도 못했나요?” 화검상이 다시 그 고기만두를 입으로 가져가고 있었기 때문이 었다. 악검림은 소리침과 동시에 금나수법을 펼쳐서 그 고기만두를 빼앗으려고 했는데, 그러나 그녀의 진짜 목적은 쟁반에 있었다. 화검상이 슬쩍 피하며 고기만두를 베어 무는 사이에 그녀는 어 느새 쟁반을 집어들고 내던지려고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악검림은 이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았다. 어찌 된 일인지 쟁반이 자신의 손에 들어와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도로 그것이 화검상의 좌수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화검상은 고기만두를 몇 번 씹어서 꿀꺽 삼키며 자신과 쟁반을 마주들고 있는 악검림을 향해 말했다. “신경을 써주는 것은 고맙지만 나도 귀머거리는 아니오. 그래, 내 밥을 빼앗아서 무엇을 하려는 것이오?” 악검림은 어안이 벙벙해진 표정이 되어 손가락으로 화검상의 얼굴을 가리켰다. “당신은 그것을 먹고도 아무렇지 않나요?” 쟁반 위의 음식들에서는 아직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었다. 화검상은 다시 하나의 고기만두를 입에 넣고 씹어 삼키면서 남 은 것을 집어들며 대꾸했다. “물론이오. 혹시 악사매도 하나 먹어보고 싶소?” 악검림은 그것을 보자 그만 어리둥절해져서 번갈아 화검상의 얼굴과 음식들을 바라보다가 안색이 빨갛게 변했다. “아니에요. 나는……, 그건 만성독일지도 모르니 당신은 주의 해야 할 거예요.” 악검림은 이어 얼굴을 가리고 달아나버리고 말았다. 기실 급속히 발작하는 독이라고 해도 당장은 중독여부를 모를 수도 있다. 악검림은 아직 마음이 순수하고 경험이 부족하여 감히 더 있지 못하고 달아난 것이다. 하지만 화검상은 이미 성검양 등이 멀찍이서 음침하고 괴이쩍 은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기실 그는 미리부터 그런 것들을 짐작하고 있었다. 그는 조금 전에 두 가지의 색다른 경험을 한 것이다. 우선 그는 아까 악검인과 처음 이곳으로 왔을 때 희미하기는 하지만 이상한 소리를 들을 수가 있었다. “준비 되었나?” “물론이오, 악사형!” 앞의 것은 악검인의 음성이었고 뒤의 것은 바로 성검양의 것이 었다. 놀랍게도 화검상은 느닷없이 그들의 전음입밀을 엿듣게 된 것 이다. 본래 이 남의 전음을 엿듣는 것은 초절정의 경지라도 반드시 지척에서 천청대법을 펼치고 있어야만 다소 가능한 것이다. 화검상은 악검인에게 무공에 관한 말을 하는 것을 주저한 이후 부터 자연스럽게 경계심을 가지고 귀를 기울이고 있었던 모양이 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그가 이미 그런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 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그들은 대체 무엇이 준비되었다는 말인가? 성검양이 들고 있는 쟁반을 보고 화검상은 어렵지 않게 그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쟁반 위의 음식들에는 독(毒)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화검상은 그것을 확인했고, 이내 그 쟁반을 받아들자 자리로 가져가며 삼매진화(三昧眞火)를 일으켜 그 독들을 제거했다. 이 삼매지화는 말 그대로 무쇠라도 녹일 수 있다는 내공의 불 인 것이며 최상승의 경지에 올라야만 가능하다. 화검상은 이미 곡선적인 최절정의 경지에 올라 있었지만 처음 으로 그것을 사용해서 음식물 속의 독들을 모두 제거한 것이다. 비록 처음으로 삼매진화를 일으켰지만 그의 수법은 교묘하고 완전하여 누구도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단지 음식들이 오래도록 김이 났던 것은 허점이라고도 할 수가 있겠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그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당연히 악검림이 나서서 말렸을 때는 화검상은 독이 모두 제거 된 고기만두를 먹고 있었던 것이며, 따라서 오히려 악검림이 어 리둥절해졌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로 인해서 더 이상 희생자가 생기는 것을 원치 않았다. 비록 독을 제거했다고 생각하기는 했으나 그 음식들을 먹는 것 은 그다지 유쾌하지 못했다. 그래도 인내심을 가지고 식사를 마치고 나서 주위를 둘러보니 이제 그 성검양 등은 보이지 않았다. 쟁반을 돌려주고 나서 처소로 돌아오는 길에 그래도 안심이 되 지 않아서 운기를 해보니 중독된 증상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전신이 다소 무기력하게 느껴지는 것은 마음이 더욱 무거 워졌기 때문일 것이다. 주위에 오가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는 상관하지 않고 처소로 곧장 걸어갔다. 그의 처소는 며칠 전과 크게 달라진 곳이 없어 보였다. 식곤증을 느끼고 침상 위에 누워 잠을 청하려고 하는데 문득 방문이 열리고 들어온 사람을 보니 가검통이었다. 화검상은 약간 뜻밖이라고 생각하여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가사제! 자네는 이제 오랜만에 보게 되는군. 무슨 일인가?” 가검통은 다소 이상야릇한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들고 있던 옷 가지 등을 침상 위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게 당신에게 배당된 물건들이오. 그리고 오늘은 한 사람을 모셔왔소.” 그 새옷들은 내일 출정시에 입고 가게 되는 물건들이다. 가검통의 말이 끝나자 한 사람이 다시 방안으로 들어섰다. 화검상은 무심코 그 사람을 바라보다가 일순 놀란 표정을 보였 다. 유검하(劉劍霞)였다. 화검상은 그녀가 갑자기 이런 곳까지 그를 찾아올 줄은 몰랐 다. 그가 놀라고 있는 사이에 가검통은 괴이쩍은 웃음과 함께 방을 나가 문을 닫아버렸고, 방안에는 잠시 기이한 침묵이 감돌았다. 약간 방안이 어두워진 듯하여 화검상은 촛불에 불을 밝혔다. 먼저 입을 열어 침묵을 깬 사람은 유검하였다. “약간 뜻밖이겠지만 나로서는 일을 좀더 분명히 해두지 않을 수가 없었어.” 그녀의 음성은 약간 떨려나왔다. 화검상은 덤덤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무슨 일을 어떻게 더 분명히 해두겠다는 거요?” 유검하는 그의 맞은편에 있는 침상 위에 걸터앉으며 말을 이었 다. “우리는 비록 떳떳하다고 해도 남들은 그렇게 믿지 않아. 나 는, 나는 결코 아버님께 불효여식이 될 수는 없어.” 그녀의 손에는 작은 술병과 술잔이 하나씩 들려 있었다. 혹시 그녀는 이별주라도 나누러 온 것이 아닐까? 화검상은 문득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나더러 앞으로는 유사자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공표하라는 말이오?” 촛불이 일렁이자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에는 수심이 스쳐지나가 는 듯했다. 유검하는 아미를 찌푸리며 말했다. “사실은 내게 이럴 권리는 없는 거야.” 화검상은 다시 가볍게 웃었다. “어쨌든 내가 그렇게 해주기만 하면 되는 일이 아니오? 솔직 히 그건 나도 역시 바라던 바이니까 말이오.” 유검하는 그를 주시하더니 이내 품속에서 작은 주머니 하나를 꺼내서 그에게 내밀었다. “이건 내가 지금 줄 수 있는 모든 거야.” 그 주머니에는 몇 개의 값진 구슬들이 들어 있었다. 확실히 그런 것을 구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화검상은 이내 그 주머니를 그대로 돌려주며 웃으며 말했다. “이런 것은 별로 필요하지 않소. 그보다 그건 술이 아니오? 그거나 한잔 주시오.” 이어 화검상은 그 술병을 빼앗다시피 하여 집어들었고 병째로 들고 마시기 시작했다. 유검하는 잠시 멈칫했으나 그것을 말리지는 않았다. 화검상은 그 술병의 술을 모두 마시고 나자 빈 병을 그녀에게 돌려주고는 말했다. “자, 이제 이별주도 마셨으니 그만 돌아가야 하지 않겠소? 자 칫하면 이곳에 함께 있었다고 해서 그것도 오해를 살 테니 말이 오.” 유검하의 눈빛은 떨리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그녀의 손은 떨리지 않았고 이내 몸을 일으켰다. “그럼 다음에 봐.” 유검하는 가뿐한 몸놀림으로 나가서 방문을 닫고 사라졌다. 화검상은 그녀가 떠나자 촛불을 끄고 침상 위에 도로 드러누웠 다. 그의 얼굴은 이내 시뻘겋게 달아올랐고 마치 술에 취한 것 같 았다. ‘하하, 굳이 이럴 필요가 있었다는 말인가? 화검상, 너는 아직 도 마음이 독하지 못하구나……!’ 화검상은 술에 취한 것이 아니었다. 아무리 독한 술이라고 해도 이제 그를 단 한 병으로 이렇게 만 들 수는 없는 일이다. 그는 중독(中毒)된 것이다. 그럼 그는 아까 주방에서 미처 해독하지 못한 독이 발작한 것 일까?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야그 출력일 :: 98/10/16 ───────────────────────────────────── 제 목 : [화산] 2 권 제 18 장 - 3 아니었다. 분명히 그 독을 제거한 것에는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지금의 그 술에 있었다. 본래 유검하는 그를 속일 목적으로 온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연기는 너무나도 서툴렀고 화검상은 금방 그 내 막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그가 워낙 그렇게 당하는 일에 경험이 많았기 때문이었 다. 그녀가 핑계삼아 늘어놓은 이야기도 그럴싸하지 못했다. 하지만 화검상은 마치 스스로 속는 듯이 그녀의 그 술을 마셔 주었다. 그 술에는 기실 치명적인 극독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유검하, 그녀는 대체 무엇 때문에 화검상을 죽이려고 한 것일까? 그것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화검상으로서는 그를 죽이려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아왔기 때문 이다. 아마 그녀도 그 중의 일부에 해당될 것이다. 그럼 화검상은 왜 또 그 독주(毒酒)를 스스로 마셔주었던 것일 까? 그는 혹시 아직도 그녀에게 미련을 갖고 있거나 과거의 향수를 못 잊어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화검상은 이제는 자신이 그녀에 대해 미련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더러 사람의 행동이라는 것은 자신의 의사와는 반대로 나타나기도 한다. 하나 분명한 것은 화검상은 그 독으로도 죽지 않는다는 것이 다. 그들은 제법 효과적인 방법을 썼다고 할 수 있겠으나, 화검상 의 능력을 너무도 몰랐다. 지금 화검상이 마치 중독되어 신음하 고 있는 것 같으나, 기실 그는 이미 체내로 들어온 극독들을 한 곳으로 모아 내보내는 작업을 시작하고 있었다. 그 독은 전에 단석광의 단검에서 보았던 식심(飾心)인 것 같았 다. 그 독은 본래 운기만 하면 발작하는 것이므로 운기할 수 없게 되어 있고 또한 독을 몰아낼 수는 더 더욱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비록 그 독이 대단했지만 화검상의 내공은 더욱 대단한 것이었다. 화검상이 운기를 시작했으나 그 독은 발작하지 못했고, 이내 서서히 왼손으로 몰려나가고 있었다. 문제는 과연 유검하, 그녀가 어떻게 해서 단석광의 것과 비슷 한 식심독을 입수할 수 있었는가 하는 점이었다. 거기에 어떤 내력이 있지는 않을까? 독은 성공적으로 제거되고 있었다. 그 독들은 그의 왼손의 식지로 몰려나가서 삼매진화에 의해 고 약한 냄새를 풍기며 제거되고 있었다. 이 삼매진화에 의해서도 제거되지 않는 독도 있지만, 그러나 다행히 이것은 그렇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만성독약이 아닌 경우 서두르면 이런 방법으로 십중팔구는 제 거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비록 그런 확신이 있었다고 해도 이것은 모험이므로 화 검상은 스스로 자책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그는 이런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있었을까? 혹시 그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이 운에 자신의 생명을 맡겨 버리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방안에 그 고약한 냄새가 가득 차게 되었을 때, 드디어 화검상 의 제독도 끝이 났다. 이제는 체내에 남아 있을 여독을 제거하기 위해 침상 위에 가 부좌를 틀고 앉아서 운기조식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 운기조식은 운기행공과는 비슷한 듯해도 그 의미가 약간 다 르다. 이를테면 운기조식은 가벼운 의미라고 할 수 있을 것이고 운기 행공은 무거운 의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운기조식은 조절하는 의미가 있고 운기행공은 단련하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주된 독들을 모두 제거한 이후라, 여독을 제거하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화검상은 십이주천(十二周天)하여 체내의 독이 완전히 제거되 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는 이제 쉽사리 잠도 오지 않을 듯하여 계속 운기조 식을 하면서 간혹 상념에 잠겼다. ‘내 마음에 문제가 있다!’ 그는 오늘 저녁에 기실 지나칠 정도의 모험을 한 것이었다. 만일 상대가 철저하게 준비를 했더라면 어떻게 될 뻔했는가? 그런 무책임하게 벌인 행동은 즉, 그의 마음에 문제가 있는 것 이다. 그는 며칠 전 모친과의 일 때문에 지나칠 정도로 상심했고 그 로 인해 마음이 위축되었고 무겁게 가라앉았으며 자포자기적인 심정이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는 어떤 일도 할 수 없으며 강호는 험하여 똑같 은 실수를 두 번 반복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게다가 그는 이미 어려운 길을 가기로 다짐한 사람이 아닌가? 그런 사람에게 있어 그런 자포자기적인 마음은 맞지 않는 것이 며, 당연히 그는 강한 의지로 가득 차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다시는 상심(傷心)에 묶이지말자! 나는 모든 것을 극복해나가 야 하는 것이다…….’ 대개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을 자신도 어쩌지 못하는 경우가 많 다. 하지만 화검상은 일단 마음을 고쳐먹으려고 하면 그것은 어렵 지 않았다. 그것은 그가 지난날 사과애에서 무명노인을 만난 이후에 되찾 은 능력이다. 상심의 사슬에서 벗어나자 그의 표정은 이내 조용해졌고 입가 에는 가벼운 미소가 감돌았다. 그는 이제 어떤 현실에도 굴하지 않고 극복해나갈 마음의 자세 가 된 것이다. 아직 날이 밝으려면 멀었으나 그의 마음은 점차로 다시 밝아지 기 시작한 것이다. 드디어 출정의 날은 밝았다. 이 날은 새벽녘부터 소란스러웠고 모든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 였다. 화검상도 가뿐해진 몸을 확인한 뒤 새옷을 입고 옷차림을 갖춘 다음에 해가 뜨기 전부터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함께 어울렸다. 먼저 해야 할 일은 자신이 속한 대오의 위치를 분명히 알고 임 무를 숙지하는 일이며 다음은 식사를 하는 일이다. 연무장에 각각의 대오별로 늘어선 화산파 사람들의 몸에는 잘 닦은 병장기들이 번쩍이고 그들의 정신은 유난히 기상이 넘쳐 보 이는 듯했다. 이번에 화산파에서 출정(出征)을 하는 인원은 거의 팔 할이나 되니 정말로 대규모의 출정이라고 아니할 수 없었다. 이것은 실로 보기 드문 일이고 굉장한 거동이다. 장문인의 아들 화산신수(華山神手) 풍귀엽(馮歸葉)과 이대원로 (二大元老) 등의 백여 명을 잔류시키고 나머지 사백여 명이 모두 출정에 오르는 것이니, 그 규모와 기세만 해도 엄청나다고 아니 할 수가 없었다. 이번의 출정의 주장은 당연히 장문인 화산검존(華山劍尊) 풍천 비(馮天飛)이다. 그 수백여 명의 인원들 중 일부는 이미 터를 잡기 위해 하남성 (河南省) 복우산(伏牛山)에 있는 무림맹(武林盟)으로 떠났으며, 그 래도 워낙에 인원이 많으므로 모두 십일대(十一隊)로 나누었다. 화산에서 그 무림맹의 총단까지는 대략 팔백여 리의 길이며, 이런 대규모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움직인다면 민가의 사람들이 놀라게 되기 때문이었다. 각 대(隊)는 칠팔 명의 일대제자들이 관할하며, 장문인과 장로 들 등의 주요 인물들은 제일대(第一隊)에 속해 있다. 화검상도 그 제일대의 소속이었다. 대오 속에 늘어서서 모든 주의사항 등을 하달받은 후 이윽고 주위가 환해지고 식사시간이 되자, 화검상도 다른 사람들처럼 주 방 쪽으로 향했다. 화검상은 이미 자신을 대하는 사람들의 눈초리가 범상치 않다 는 것을 직감했다. 하지만 오늘은 모두가 무림의 정세와 앞으로 출정 이후에 벌어 질 상황 등에 관해서만 관심을 보이는 듯 거의 아랑곳하지 않는 것 같았다. 정말로 어색하고 괴이한 분위기라고 할 수 있겠지만 화검상은 도리어 그런 것이 마음 편하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야그 출력일 :: 98/10/16 ───────────────────────────────────── 제 목 : [화산] 2 권 제 19 장 숲속의 일 제 19 장 숲속의 일 주방으로 가면서, 혹은 밥을 타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면서 화검상은 내내 모친에 대한 생각을 떠올렸다. 그의 모친 풍귀월은 역시 이번에도 잔류하고 출정의 대열에 끼 지 않는 모양이었다. 기실 그것은 그녀 스스로 선택한 감옥이나 같아서 거의 밖으로 나가지 않는 것이다. 화검상은 비록 인연을 끊는다는 말을 하기는 했으나 기실 그것 도 역시 말일 뿐이다. 그런 말을 했다고 현실에서 정말로 인연이 끊어질 수 있을까? 그가 화산파를 떠나지 않는 한 그것은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 고, 또한 그는 결단코 이 화산파를 떠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 었다. 대체 그는 어째서 굳이 화산파에 목숨을 걸고라도 연연하는 것 일까? 그것은 어리석게 보인다. 그러나 사람은 때로 그런 어리석음 속에서 의미를 부여하며 살 아가게 되는 것은 아닐까? 화검상은 다시 모친을 뵈러 갈까 하고 몇 차례 망설이다가, 드 디어 그만두고 말았다. 그는 이번에 나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럴 가능성은 아주 다분하다. 하지만 이런 일은 억지로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인연이 있어 그가 다시 살아 돌아온다면 모친도 다시 뵙게 되 지 않겠는가? 그는 그저 잠시 연화봉의 정상을 올려다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마악 밥을 담아서 탁자로 걸어가는데 문득 한 사람과 마주치게 되었다. 화산옥녀(華山玉女), 그 별호에도 걸맞게 화산파 내에서 그야말 로 금지옥엽(金枝玉葉)의 대우를 받고 있는 풍검심(馮劍心), 그녀 였다. 지금은 비록 상황이 많이 달라졌지만, 화검상은 과거에 함께 어울려 놀았던 그녀 등을 볼 때마다 왠지 마음 한쪽이 푸근해지 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풍검심은 차갑고 험악한 시선으로 화검상을 한번 쏘아보더니 말했다. “흥! 네놈은 아직도 자신의 주제를 파악하지 못하는 모양이 지? 제법 목숨이 질기기는 하지만 그것도 이제 머지않을 것이 다!” ‘머지않을 것이라고? 휴우! 나도 이젠 이런 생활에 신물이 다 나는데 차라리 그 핑계를 대고 쉴 수 있게 된다면 좋겠소. 다만 내가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말은 듣지 않도록 해야 하지 않겠 소?’ 풍검심은 화검상이 미처 대꾸를 하기도 전에 멀리 가버렸다. 그녀는 이번에 화검상과 같은 대에 속해 있다. 화검상을 제일대에 배속시킨 것은 당연히 이유가 있을 것이다. 비록 그다지 먼 여정은 아니겠지만, 또 그 길에서 얼마나 많은 일이 벌어질 것인가? 지금은 그럴 가능성이 별로 없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 로 화검상은 단검을 꺼내 독이 있는지 여부를 판별한 뒤에 이상 이 없자 식사하기 시작했다. 삼매진화를 일으켜 제독하는 것이 더 간단하겠지만, 그런 음식 은 먹기가 왠지 더부룩해진다. 그것은 비단 맛도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음식에 대한 느낌마저 변화시키는 것이다. 출정을 하는 데 있어서 식사는 그 마음가짐만큼이나 중요하다. 식사를 마치고 나서 모두 다시 연무장에 집결하자, 사람들의 기세는 하늘을 찌르고 단숨에라도 천하의 사마외도(邪魔外道)들 을 쓸어버릴 것만 같았다. 이번에 대규모의 출정을 하는 이유는 무림대회(武林大會)를 열 기 위한 것이고, 또한 그것은 나날이 세력이 급증하는 군림맹(君 臨盟), 일명 집마부(集魔府)가 여러 정파세력들을 침공하고 있기 에 그것에 대비하고 쳐부수기 위한 것이다. 저번에 화검상도 우연히 장문인의 집무실 밖에서 녹림맹과 개 방의 분타들이 격돌하고 상황이 험해지고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 이 있다. 이번에 출정을 하여 제마멸사의 위업을 달성하고 정의를 주현 하며 화산파의 영명(英名)을 천하에 떨쳐야 한다는 등의 장문인 풍천비의 일장 훈시가 끝나고 나자, 드디어 각 대별로 이동이 시 작되었다. 화검상이 소속된 제일대는 이름은 첫번째이지만 이동은 가장 늦게 시작되었다. 나머지 열 개의 대가 모두 출발을 하고 났을 때, 드디어 장문 인을 비롯한 제일대의 사람들은 잔류하는 풍귀엽 등의 전송을 받 으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연무장의 남쪽으로 내려가 산구비를 돌면 북쪽의 화음현(華陰 縣)으로 가는 길과 남쪽으로 내려가는 갈래길이 나타난다. 평소의 물자들은 화음현 부근에서 주로 구입해왔지만 오늘은 남쪽으로 나 있는 험한 길로 방향을 잡았다. 이 제일대에 소속된 사람들은 대부분이 핵심인물들이어서 수발 을 드는 제자들을 제외하면 대개가 무공이 뛰어난 편이었다. 일단 이동을 시작하자 그들은 이내 제각기 신법(身法)을 펼쳐 빠르게 보조를 맞추어 달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오랜만에 잘 차려입고 중무장을 한 채 내달리는 모습은 장관이어서 기분이 유쾌해질 만도 했다. 그러나 일행은 경신술(輕身術)을 펼친 지 한참이 지나도록 거 의 말이 없었고 다소 무거운 분위기였다. 화검상은 이미 신법을 펼쳐 일행과 보조를 맞추는 것은 너무나 도 쉬운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마치 한가롭게 산책을 하듯 유유히 나아가는 화검상의 옆에는 방귀춘(方歸春)이 바싹 붙어 있었는데, 잠시 후 문득 그가 눈빛을 날카롭게 굴리며 전음으로 말했다. “이번에 나는 너의 직속상관이 되었다! 그러니 너는 모든 일 에 나의 허락을 받아야 하고, 지시를 따라야 한다! 알겠는냐?” 방귀춘은 감시자에다 이번에는 아예 화검상의 직속상관이 되었 다. 화검상은 속으로 웃으며 역시 전음으로 대꾸했다. “알겠습니다, 방사숙!” 방귀춘은 그 전음수법이 왠지 예사롭지 않다고 느꼈는지 잠시 화검상의 얼굴을 미심쩍은 표정으로 주시했다. 일행이 나아가는 속도는 화검상이 보기에는 지루할 정도로 느 렸다. 하지만 그것은 화검상과 같은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이다. 무공이 부족한 삼대제자(三代弟子)들은 그런 이동이 오래 지속 되자 드디어 얼굴이 붉어지고 호흡이 난조를 보이며 헐떡이기 시 작했다. 불과 오십 리도 못 가서 장문인 풍천비는 손을 들어 일행을 정 지시켰다. “여기서 잠시 쉬어 가자!” 태양은 벌써 허공에 둥실 떠올라 찬란한 맹위를 떨치기 시작하 고 있었다. 공력이 부족한 삼대제자들은 휴식시간이 되자 먼저 가부좌를 틀고 운기조식하기에 바빴지만 나머지 이대제자 이상은 여유만만 하여 주위를 산보하듯 어슬렁거렸다. 화검상도 한쪽에 있는 바위로 가서 잠시 앉아 있었다. 그런데 문득 방귀춘이 다가오더니 이런 말을 하는 것이었다. “잠시 소피를 봐야겠으니 함께 저쪽으로 가자!” 화검상은 웃으며 대꾸했다. “저는 생각이 없으니 방사숙이나 다녀오십시오!” 방귀춘은 표정을 험악하게 굳히며 다시 말했다. “조금 전의 말을 벌써 잊었느냐? 너는 어떤 경우라도 나의 지 시를 따라야 하는 것이다! 어서 일어나지 못하겠는냐?” ‘이런! 천상 이 방사숙의 물건을 보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 군!’ 화검상이 몸을 일으키자, 방귀춘은 이내 길 옆의 우거진 숲속 으로 화검상을 이끌었다. “이거 너무 멀리 들어온 것이 아닙니까?” 방귀춘은 뭐가 그리 부끄러운지 제법 깊은 곳까지 들어가 걸음 을 멈추었다. 그곳은 풀이 자라나지 않은 황토흙이 있는 곳이라 볼일을 보기 에는 적당하다고 할 수 있었다. 방귀춘은 주위를 한번 둘러보는 듯하다가 말했다. “여기에서 잠시 기다려라. 내 잠시 갔다 오겠다.” ‘이건 소피가 아니라 큰 거였단 말인가?’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야그 출력일 :: 98/10/16 ───────────────────────────────────── 제 목 : [화산] 2 권 제 19 장 - 1 방귀춘이 근처의 숲속으로 사라지고나자 화검상은 공연히 기다 리는 것이 지루해졌다. 그는 떠나기 직전에 소피를 보았기 때문에 그 생각도 없어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문득 이쪽으로 다가오는 몇몇의 사람들을 발견했다. 곡검성과 풍검진 등 대여섯 명이었다. 화검상은 약간 어리둥절해졌다. ‘저들도 소피를 보러 오는 모양인데, 어째서 남녀가 한꺼번에 몰려오지? 무슨 다른 짓을 벌이려는 것이 아닐까?’ 그들이 무슨 짓을 하든 화검상은 굳이 상관할 필요가 없으므로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려고 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들은 미리 알고 있기라도 한 듯이 곧장 화 검상이 있는 쪽으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이거 난처하게 됐군. 자리를 옮기기도 그렇고……, 여기에서 남이 소피를 보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고 하면 변명이 될까?’ 화검상은 공교로운 이 상황에 대해 일단 자리를 피해보려고 했 다. 그런데 그가 마악 옆의 숲속에 몸을 숨기려고 하는데 귀검철이 앞으로 나서며 말하는 것이었다. “화사제, 네가 거기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니 숨을 필 요가 없다!” 화검상은 그 말을 듣자 일순 깜짝 놀랐다. 보아하니 그들은 이미 화검상의 위치를 알고 있고 기척도 감지 하고 있으며 그를 목표로 온 것 같기도 하지 않는가? ‘저들의 무공이 사실은 저렇게 대단한 것이었나? 그런데 어째 서 또 나를 찾지?’ 풍검심이 다시 앙칼진 음성으로 말했다. “네놈이 숨는다고 해서 우리가 못 찾을 줄 아느냐? 그러니 어 서 나서라!” ‘얼씨구! 내가 뭘 숨었다고 그러지? 나는 이렇게 멀쩡히 가운 데 서 있는데, 뭘 또 나서라는 거야?’ 화검상은 그제서야 그들이 지금 화검상에 대해 단순히 추측만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대체 왜 그들이 이 숲속까지 들어와서 그를 찾는지 그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화검상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 사이에 어느새 그들은 화검 상의 바로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화검상이 다소 싱거운 표정으로 서서 웃고 있는 것을 보고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아마도 화검상이 너무도 태연한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 다. 화검상은 그들의 의도를 몰라 그저 멀뚱히 그들의 얼굴만 살폈 는데, 바로 곡검성과 풍검진, 유검하와 귀검철, 그리고 풍검심과 녹귀보 여섯 사람이었다. 화검상은 그들 중에서도 유검하의 안색을 주시했는데, 그녀는 싸늘한 신색으로 그를 외면하고 있었다. ‘분위기도 살벌하고, 또 나에게 볼일이 있는 것 같지 않은 가?’ 화검상이 입을 열어 물어보려는데, 문득 풍검진(馮劍眞)이 싸늘 한 어조로 말했다. “네놈이 유사매의 물건들을 훔쳤다고 하던데 그게 사실이 냐?” ‘뭐라고?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내가 유사자의 물건들을 훔 쳤다고?’ “그게 무슨 허무맹랑한 소리요?” 화검상은 설마 하니 그들이 그런 얘기를 들고 나올 줄은 미리 짐작하지 못했다. 유검하는 외면했던 시선을 돌려 화검상을 바라보며 냉랭한 표 정을 짓고 있었다. 풍검진은 스르릉, 소리를 내며 허리 춤에서 예의 그 보검을 뽑 아 들었다. “그럼 유사매가 거짓말을 했다는 말이냐?” 기실 화검상은 그들이 자신을 목표로 왔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 만 상황은 뜻밖에도 약간 꼬여가고 있었다. 풍검진의 시선이 은근히 유검하에게 향했으므로, 유검하는 정 색을 하고 말을 받았다. “어제 저녁에 그는 분명히 나와 만난 자리에서 내 보석주머니 를 훔쳤어요!” 화검상은 다소 어이가 없었다. 이건 말할 것도 없는 누명인 것이다. 유검하는 어째서 지금 그에게 그런 더러운 누명을 씌우는 것일 까? 화검상은 웃으며 말했다. “아! 그 작은 주머니 말이오? 그건 돌려주지 않았소?” 이어 화검상은 전음으로 거의 동시에 유검하에게 말했다. “유사자, 정말 이럴 수가 있소? 내게 왜 이런 누명을 씌우는 것이오?” 유검하는 그저 냉담하게 전음으로 대꾸했다. “그건 네놈도 어제 나를 속이지 않았느냐?” “속였다고?” 화검상은 문득 어찌 된 일인지 알게 되었다. 유검하는 독주를 먹은 화검상이 지금 아주 멀쩡하게 살아 있자 자신이 속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화검상은 그 독주에 중독되어 죽었어야만 했단 말인 가? 귀검철이 문득 장검을 뽑아들고 공격해오며 소리쳤다. “지금 네놈의 몸을 수색해봐야 하겠으니 어서 무릎을 꿇어 라!” 귀검철의 검법은 바로 백팔식광풍쾌검(百八式狂風快劍)이었다. 저번에 단석광이 펼쳤던 것과는 위력이 천지 차이인 것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그의 검법이 이미 상승경지에 이르러서 거칠고 강맹하게만 보 이던 광풍쾌검이 오히려 부드럽고 우아하기까지 한 분위기를 풍 기고 있었다. 워낙 느닷없는 공격이었기 때문에 화검상은 뒤로 한걸음 물러 나서 피하는 도리밖에 없었다. 이 광풍쾌검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파격을 그 특기로 한 다. 변화가 도중에서 미친 듯이 꺾이고 뒤집어지기 때문에 도리어 쾌검이 되고 상대를 정신 못 차리게 하는 것이다. 화검상은 놀라 두어 번 보법(步法)의 힘으로 피하고 이내 장검 을 뽑아 막아내며 당황하긴 했지만, 문득 의아한 생각이 들지 않 을 수가 없었다. 이 역시 그의 예상을 크게 빗나가는 일인 것이다. 보아하니 그들은 화검상을 괴이하게 생각하고 일단 누명을 씌 워 최소한 그의 몸을 수색해보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았 다. 하지만 어째서 이렇게 서두르는가? 이미 연무장에서 화검상이 매화검법의 시범을 보였을 때에도 그들은 귀검철이 화검상의 상대가 못된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 아 닌가? 만일 그저 사형과 사숙이라는 직위로만 해도 쉽게 이치를 따져 누명을 씌우고 수색을 하게 할 수도 있을 것을 그들은 왜 하필이 면 이렇게 일을 어렵게 하는가? 화검상은 반격을 하면서 그런 점을 생각해보다가 문득 내심 고 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비록 모종의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유검하가 어려운 일을 맡 기는 했지만, 기실 그녀는 장차 풍검진의 아내가 될 사람인 것이 다. 그런 그녀가 화검상과 방안에서 둘이만 있었다는 얘기는 누명 을 씌우려고 해도 계속 늘어놓기 곤란한 문제인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일단 그렇게 문제를 제기해놓고 강제적으로 물 리적인 방법을 써서 화검상을 굴복시키려는 것이다. 만일 지금 화검상이 굴복하여 무릎을 꿇으면 그들은 단지 몸 수색만 하고 그를 놓아줄 것인가? 일부러 꾸민 누명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럴 리가 없는 것 이다. 어쩌면 이것은 이미 시작된 화검상의 척살계획의 일환일지도 모른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있 야그 출력일 :: 98/10/16 ───────────────────────────────────── 제 목 : [화산] 2 권 제 19 장 - 2 ‘나는 너무도 거기에 대한 대비가 되어 있지 않았군!’ 비록 무공이 고강해도 일단 문파의 사형이나 사숙 등이 지시를 내리면 꼼짝할 수 없고, 만일 장문인이 어떤 누명을 씌워 척살명 령을 내린다면 그는 꼼짝없이 당하거나 혹은 무림공적(武林公敵) 으로 몰리게 될 것이 아닌가? 그렇게 본다면 화검상으로서는 지금 그것을 상기하게 해준 눈 앞의 이 사람들이 고맙다고 해야 할 것이다. 화검상도 지금 마주 백팔식광풍쾌검을 펼치고 있었다. 이런 검법은 약간의 편법이 깃들어 있고 또한 초식(招式)들이 연이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상대를 잘못 만나면 오히려 곤란해지 는 수가 있다. 귀검철도 바로 그런 경우였다. 그는 처음에는 다소 화검상을 놀라게 하는 듯했으나, 이내 어 이없게도 되놀란 표정으로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곡검성 등은 옆에서 합공을 펼치려다가 그것을 보고 일순 어리 둥절한 표정들을 지었다. 화검상의 검법은 귀검철보다 한 단계 정도 빨라 보였다. 그는 별로 힘을 들이지도 않고 그저 느릿느릿하게 검끝을 움직 이고 있는데 귀검철은 다음 단계로 넘어가려다가 귀신이라도 대 한 듯 물러나곤 하는 것이다. 귀검철은 공지를 둥글게 돌며 후퇴하고 있어서 그의 험악해진 표정만 제외한다면 마치 여러 사람에게 구경을 시켜주는 것과도 같았다. 변화가 앞선다면 상대의 초식이 전개되기 전에 미리 급소를 찌 를 수가 있으며, 상대는 자신의 상태가 위험해지는 것을 무릅쓰 고 초식을 끝까지 전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다시 변초(變招)를 하면 되는 것이고 혹은 검 법을 바꾸면 되는 일인데, 귀검철은 연신 놀라 뒷걸음질을 치면 서도 어째서 초식의 흐름을 바꾸지도 않고 홀린 듯이 광풍쾌검만 을 고집하는 것일까? 믿기지 않는 일이지만 곡검성 등은 이미 귀검철이 무형 중에 꼼짝없이 화검상에게 제압되어 싫어도 그 광풍쾌검을 계속 펼치 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게 가능이나 한 일인가? 어이없게도 장검이 부딪치는 소리 하나 없이, 화검상은 안쪽을 가볍게 공격하고, 귀검철은 허장성세로 바깥쪽으로만 무수히 검 광(劍光)을 뿌려서 시뻘건 얼굴로 후퇴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마치 그런 귀검철은 갑자기 바보가 된 것 같았다. 하지만 귀검철은 냉철하기로 화산파에서 소문난 사람이고 결코 바보는 아니다. 본래 풍검진 등은 한꺼번에 나서서 화검상을 굴복시키려고 했 다. 하지만 상황이 약간 달라지자 그들은 오히려 뒤로 물러서서 차 분히 관전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것은 그들에게 이번의 일이 감정을 일으킬 대상이 아니라는 의미였다. 그들은 냉정히 상황변화에 대한 결말도 알고 있기에 감정의 동 요를 일으키지 않는 것이다. 기실은 그러한 냉정하고 침착해 보이는 분위기가 더욱 무서운 법이다. 마치 얼마 후면 시체가 될 사람의 얼굴을 보듯, 그들은 굳이 흥분해서 상대할 필요가 없다는 계산인 것이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놀라운 현실이며 공포스런 상황인 것이다. 화검상은 잠시 그렇게 귀검철을 공격하다가 재미가 없다고 생 각되자 그냥 검을 도로 거두었다. 그러자 뜻밖에도 귀검철은 이번에는 황급히 고개를 뒤로 돌리 더니 뒤로 물러나버렸다. 그것은 마치 뒤에도 어떤 강력한 공격이 있어서 그가 황급히 후퇴한 것과도 같았다. 하지만 기실 그의 뒤에서 공격한 사람은 없고 화검상은 그저 검을 거두기만 하지 않았는가? 그 바람에 공교롭게도 화검상의 장검은 자연스럽게 귀검철의 목에 들이댄 것 같은 광경이 되었다. 이것은 대체 어찌 된 일일까? 너무 괴이해서 우스울 지경이었지만 사람들은 웃지도 않고 그 광경을 놀란 시선들로 바라보았다. 화검상은 웃으며 여전히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어떻소, 귀사형! 이래도 나를 이길 수가 있겠소?” 귀검철은 어느새 이마에서 진땀을 흘리고 있었는데 장검을 늘 어뜨리고 있는 그의 표정은 차라리 이것이 마음 편하다는 것 같 았다. “네놈은 나를 어쩔 작정이냐?” 화검상은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장검을 거두어 검집 속에 넣었 다. “뭐 어떻게 하려는 것은 아니오.” 이어 화검상은 느릿하게 그의 옆을 지나쳤는데, 귀검철은 분명 히 손에 장검을 들고 있고 기습을 할 수 있을 법한데도 전혀 그 러지 못했다. 화검상은 녹귀보의 앞에 이르러 웃으며 말을 이었다. “녹사백, 내 검법이 어떻습니까? 나와 한번 겨뤄보겠습니 까?” 녹귀보는 일대제자이며 무공이 이미 최상승의 경지에 올라 있 으니 귀검철과 비할 바가 아니다. 하지만 그도 조금 전의 이해하기 어려운 광경을 보았으므로 쉽 게 나서서 어쩔 기분은 들지 않았다. 녹귀보는 냉혹한 시선으로 화검상을 쏘아보며 대꾸했다. “나는 네놈의 그 사술(邪術)에 정당하게 대응하고 싶은 마음 은 없다!” 녹귀보는 표면상으로는 가장 어른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화 검상은 우선 그를 누르려고 하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지금 무공이 높아졌으니 가능한 일이다. “본파의 광풍쾌검을 사술이라고 하다니? 하긴 이 광풍쾌검은 다소 편협한 점이 없지 않소. 그것은 편협한 초식을 사용하므로 만일 그것이 거꾸로 걸리게 되면 마음도 뒤따라 어지러워져서 마 치 공격하지 않아도 뒤에서 공격하는 듯한 착각을 느끼게 한다는 말이오. 그런 위험한 초식은 마치 호랑이의 등에 올라탄 것과도 같아서 주위를 위협할 경우 다른 방향으로 전환하거나 그만둘 수 도 없소. 나의 이 말이 틀렸소이까?” 녹귀보의 눈빛이 다소 놀라움으로 번쩍였다. 그것은 그도 아직 분명하게 간파하지 못한 검법의 오의(奧義) 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말은 쉽지만 그 자세한 내용까지 깊이 이해한다는 것은 어렵다. “네놈이 그런 궤변을 늘어놓는다고 해도 지금의 상황이 달라 지지는 않는다.” 화검상은 이번에는 진짜 우두머리라고 할 수 있는 풍검진의 앞 으로 다가가 말했다. “풍사형이 그럼 나를 굴복시켜보겠소?” 풍검진의 손에 들고 있는 보검을 힐끗 바라보다가 차갑게 말했 다. “나는 굳이 네놈에게 손을 쓸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네놈은 감히 윗사람의 말을 거역하고 하극상을 벌이겠다는 말이냐?” 화검상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나는 굳이 하극상을 벌이려는 것이 아니오. 단지 아무런 근 거도 없이 강제적으로 사람을 핍박하는 일에는 수긍할 수가 없다 는 것이지. 당신들은 어째서 말로 그 이치를 설명하지 않고 무력 으로 나에게 함부로 하는 것이오? 그래, 정말로 내가 그 물건을 훔치지 않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 아니오?” 풍검진은 잠시 화검상을 쏘아보다가 이내 싸늘하게 웃으며 검 을 도로 검집에 넣었다. “네놈은 정말 소문대로 무공도 달라졌고 또한 더욱 교활해졌 구나. 좋다! 내가 좀더 네놈을 일찍 처단하지 못한 것이 잘못이라 고 인정하지. 하지만 그렇다고 좋아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 이 오히려 너의 명을 재촉하는 길이 될 테니까 말이다.” 풍검진은 정말로 냉정하고 침착하며 사려 깊은 사람인 셈이다. 가문의 후광이 있고 여건이 좋아서 그가 그저 화산일룡(華山一 龍)이 된 것은 아니다. 자신에게 만만히 보이던 자가 느닷없이 자신을 위압하게 되었 을 때 기분좋을 사람은 없고, 쉽게 참을 수 있는 사람도 드물 것 이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건 풍검진은 지금 의외일 정도로 잘 참으 며 냉소하고 있는 것이다. 풍검진이 몸을 돌려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자 곡검성과 녹귀보 등도 이내 그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풍검심은 내내 얼음장 같은 시선으로 화검상을 주시하고 있다 가 마악 떠나려는 순간에 급히 뒤돌아서며 일장(一掌)을 날렸는 데, 그 수법은 미리 준비하고 있었던 것인지 이내 십여 개의 장 영(掌影)이 화검상을 뒤덮으며 그의 가슴을 가격해버렸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있 야그 출력일 :: 98/10/16 ───────────────────────────────────── 제 목 : [화산] 2 권 제 19 장 - 3 바로 낙영장(落英掌) 중의 일식(一式)이었다. 화검상은 일장에 가슴을 얻어맞고 놀란 기러기처럼 허공으로 떠오르는 듯했으나 이내 우아하게 허공에서 몸을 돌려내리며 가 슴의 먼지를 툭툭 털어내며 미소 지었다. “이번엔 풍사자(馮師姉)가 내게 볼일이 있으시오?” 풍검심은 분명히 자신의 팔 성(八成) 공력이 실린 장력을 가격 했는데도 흡사 솜뭉치를 친 듯한 감각이었고 그가 아무렇지도 않 은 것을 보자 경악하여 불신(不信)의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이내 차갑게 냉소하며 대꾸했다. “흥! 네놈이 어디서 마공(魔功)을 익혔는지는 모르지만, 내가 아니더라도 네놈은 머지않아 죽게 될 것이다!” 풍검심은 이어 풍검진 등을 따라 사라져버렸다. 그들이 모두 멀리 사라져버리자, 화검상은 쓴웃음을 짓더니 문 득 귀를 기울였다. “이제 그만하면 나올 때가 되지 않았소, 방사숙?” 기실 화검상은 방귀춘이 볼일을 보러 간 것이 아니라 일부러 이곳까지 데려와서 부근에서 그를 주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의 무공은 이제 방귀춘보다 크게 월등하여 방귀춘이 특별한 방법을 쓰지 않는 한, 기척을 숨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방귀춘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려다가 문득 화검상은 조금 전의 일이 상기되어 생각했다. ‘만일 내가 이대로 다시 그들에게 순순히 걸려간다면 마침내 는 당하고야 말 것이다.’ 화검상은 문득 가볍게 움직여 숲속으로 몸을 숨기더니 갑자기 신법(身法)을 펼쳐 소리없이 뒤쪽으로 돌아갔다. 방귀춘은 숲이 우거진 자리에 겨우 두 눈만 내놓고 모습을 감 춘 채 공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화검상이 그의 기척을 듣지 못했다면 아마도 찾기 어려웠을 것 이다. 갑자기 화검상이 사라져서 보이지 않자 방귀춘이 궁금해 하고 있었는데, 문득 화검상이 별안간 뒤에 나타나 그의 등을 쿡 찔렀 다. “방사숙, 아직도 볼일이 끝나지 않으셨소이까?” 방귀춘이 갑자기 당하는 일이라 놀라 눈을 크게 떴지만 말을 하거나 움직이지는 못했다. 그것은 기실 조금 전의 가벼운 듯한 화검상의 일지(一指)가 자 하지(紫霞指)상의 고심막측한 수법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지법(指法)은 비단 빨랐을 뿐만 아니라 변화무쌍하여, 방귀 춘이 일순 그것을 의식했을 때는 피할 수 있는 여러 방법이 완전 히 차단되어 있었다. 마치 가볍게 찌르듯이 화검상의 손가락이 그의 등뒤의 혈도(穴 道)에 닿았고, 순간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지력(指力)이 발출되어 그의 전신을 마비시키고 입도 열지 못하게 한 것이다. 방귀춘은 비단 이 상황변화에 대경실색했을 뿐만 아니라 화검 상의 무공에는 더욱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니 왜 아무런 말도 없으시오?” 놀리는 듯한 화검상의 말에 방귀춘은 내심 이를 갈았으나 그저 눈으로 말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방귀춘이 몹시 험악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보고 화검상은 다시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혹시 방사숙은 혈도를 짚이거나 주화입마(走火入魔)에 걸린 것이 아니오?” ‘뭐라고! 이……, 이런 후레자식이!’ 방귀춘이 크게 노하여 눈을 부릅뜨는 것을 보고, 화검상은 고 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이런! 정말 고통이 심하신 모양이군? 그럼 일단 내가 아는 대로 손을 써볼 테니 좀 참아보시오.” 화검상은 이어 몇 가닥의 지풍(指風)을 날려 방귀춘의 혈도들 을 제압했다. 이 지풍이라는 것은 지법(指法)이라는 말과는 조금 내용이 다 르다. 지풍은 내력을 가느다랗게 쏘아내는 것이지만 마치 암기와도 같아서 한번 쏘아낸 다음에는 허점이 남게 되고 그다지 정확하다 고 할 수가 없다. 지풍이 제아무리 빨라도 상대는 피할 여지가 있게 되는 것이 며, 상대가 급소를 피했을 경우에는 오히려 자신이 치명상을 당 하게 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정통무학(正統武學)은 공수를 겸한다. 지풍을 쏘아내거나 지력(指力)을 발산하는 것은 결정적인 순간 의 일이며, 그 이전의 변화에 의해 결정적인 순간을 만들어가는 것이 지법(指法)이다. 비단 지법뿐만 아니라 장법, 금나수 등 대개의 무학들도 그러 하다. 물론 비단 초식(招式)뿐만 아니라 내력의 운용(運用)에 관해서 도 각기 특징이 있다는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지금 방귀춘은 전혀 움직일 수가 없기에 화검상이 그저 일직선 적인 지풍을 날려도 고스란히 제압되는 것이다. 화검상이 제압한 혈도들은 당연히 무슨 해혈수법(解穴手法)이 나 주화입마를 푸는 것이 아니었다. 그 수법은 교묘하게 전신의 가려운 부분을 외부의 진기로 접촉 시켜 그야말로 미칠 듯이 가렵게 만드는 수법이었다. 방귀춘은 몸도 움직일 수 없고 소리도 지를 수 없으니 그저 입 을 딱 벌린 채 얼굴만 시뻘게지는 수밖에 없었다. 화검상은 그것을 보자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이런, 이런……! 내가 착각하여 혈도를 잘못 짚었는걸? 안되겠소이다. 나로서는 어찌할 수가 없고 장문인께 데려다 보이 는 수밖에!” 방귀춘은 점차로 몸이 더욱더 가려워오자 그야말로 미칠 것 같 아서 전신근육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으나, 화검상은 이내 그것 을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몸을 번쩍 들어 등에 메고 달리기 시작 했다. “좀 괴롭더라도 참으시오. 금방 장문인을 만나게 될 거요. 방 사숙!” 하지만 화검상은 몹시 서두르는 것 같으면서도 신법을 펼치지 않아 달려가는 것이 느리기 짝이 없었고, 또한 잠시 후에는 길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그는 우거진 숲속을 이리저리 맴돌았고, 마침내 숨이 차는지 방귀춘을 떨어뜨렸다. 방귀춘은 마침 비탈진 곳에 떨어져서 바위와 나뭇가지에 부딪 쳐서 마구 굴러내려갔다. 만일 그렇게 해서 혈도만 풀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심오한 내력(內力)을 사용하여 점혈했기 때문에 방귀춘의 몸은 전신이 긁히고 멍들었어도 전혀 혈도가 풀릴 기미는 없었다. 이윽고 아래쪽에서 굴러가는 것을 멈춘 방귀춘의 몸은 사시나 무 떨듯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아까 그의 눈빛은 대노한 것이었지만 이제는 감히 그러지 못하 고 미칠 것 같은 심한 가려움에 눈알이 돌아간 것 같았다. 화검상은 가볍게 그의 앞에 내려서며 말했다. “왜 그러시오? 그렇게 고통스럽소? 고통스러우면 고통스럽다 고 말을 해보시오!” 만일 그들이 극단적으로 화검상을 죽이려고만 하지 않았다면 화검상도 이렇게까지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방귀춘의 눈은 그 말을 듣자 눈동자가 바로 돌아오며 쉴새없이 깜빡거렸다. 화검상은 지풍을 날려 그의 아혈을 풀어주었다. 방귀춘은 아혈이 풀렸으나 전신이 너무도 간지러운 나머지 얼 른 말을 하지 못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아 야그 출력일 :: 98/10/16 ───────────────────────────────────── 제 목 : [화산] 2 권 제 20 장 진짜와 가짜 제 20 장 진짜와 가짜 방귀춘은 이윽고 겨우 잘 알아들을 수 없는 발음으로 다급히 말했다. “네, 네놈이 나를……, 나를 왜 이렇게……, 무슨 짓이냐?” 화검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난 무슨 소린지 알아들을 수가 없소. 내가 그 아혈을 다시 한번 점해보겠소.” 방귀춘은 그만 얼굴이 샛노랗게 변해 다시 황급히 말했다. “무, 무엇을 원하느냐……?” “내가 방사숙에게 무엇을 바라겠소? 그 입에서 또 이상한 소 리가 나오니 나는 아무래도 다시 그 입을 봉해야 하겠소.” 방귀춘은 크게 화가 나서 악독한 표정이 되었으나 이내 다시 표정을 풀며 떨리는 어조로 말했다. “너의 원하는 것은 모두, 모두 들어주겠으니 어서 이 혈도 를……, 혈도를 풀어라.” 화검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쎄 잘 될지 모르겠소. 이번에는 다른 곳을 풀어볼 테니 어 떤가 보시오.” 이어 화검상은 마치 장난하듯 손가락을 대여섯 차례 튕겼다. 그런데 그 지풍들이 방귀춘의 몸에 가격되자 신기하게도 그 모 든 가려움증이 사라지는 것이었다. 방귀춘은 길게 숨을 내쉬며 겨우 마음의 안정을 취할 수가 있 었다. 화검상은 그를 향해 포권하며 말했다. “이제 되었군요, 방사숙! 이 사질이 우둔하여 미처 혈도를 풀 어 드리지 못했으니 용서하시오.” 방귀춘은 그를 험악한 시선으로 노려보더니 이를 악물며 말했 다. “어서 이 혈도를 마저 풀어라!” 화검상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런데 아까 그 약속은 분명히 지키는 거요? 당신이 워낙 실 언을 잘하니 말이오. 아까도 측간에 간다고 하고서 사실은 숲속 에 숨어 있지 않았소?” 방귀춘은 이를 갈았다. “네놈은 무엇을 원하느냐?” 화검상은 그를 보더니 가볍게 실소하며 말했다. “아까도 말했지만 내가 방사숙께 뭘 원하겠소? 나는 본래 천 한 태생인데 방사숙이 그처럼 잘 대해준다면 부담이 되지 않겠 소? 너무 내게 잘 대해주려고 하지마시오.” 방귀춘은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그건 나의 임무였다는 것을 너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화검상은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일이야 하셔야겠지. 하지만 모든 일에는 융통성이라는 것이 있는 게 아니오? 모두들 내가 며칠 살지 못할 거라고 하는데, 내 가 그렇게 힘들게 여생을 보내서야 되겠소?” 방귀춘은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가 말했다. “내가 그렇게 한다고 해도 별로 차이는 없을 것이다.” 화검상은 웃으며 다시 물었다. “대체 어째서 모두들 나를 죽이려는 것이오? 그 이유를 말해 줄 수가 있겠소? 아, 물론 그 흔한 얘기는 빼고.” 방귀춘은 그를 노려보다가 차갑게 말했다. “세상이 달라지고 갑자기 사람들도 변하면 모든 게 달라지는 법이다. 너는 모든 사람들에게 거북한 존재가 된 것이지. 너도 그 런 것은 알고 있지 않느냐? 그 외에는 나도 모른다.” 화검상은 다소 망설였다. 그는 좀더 방귀춘을 심하게 고문하여 일을 밝혀내고 싶었으나 어쩌면 더 밝힐 것도 없을 듯하고, 또한 정말로 그가 알고 있는 것도 별로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사실 모두와 잘 지내고 가문의 죄를 씻어내려는 사람이 오. 그런데 어째서 나를 이렇게 극단적으로 나가게 하는 거요?” 화검상은 방귀춘의 혈도를 모두 풀어주었다. 방귀춘은 혈도가 풀리자 잠시 운기조식을 하는 듯하더니 갑자 기 사납게 기습적으로 달려들었다. 일순간에 사십 개나 되는 변환(變幻)이 일어나며 화검상의 몸 을 장검(長劍)이 뒤덮었는데, 그것은 육합신검법(六合神劍法)으로 방귀춘이 전력을 다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주위 십 장 방원이 갑자기 검의 변환과 사람의 모습으로 가득 채워지는 것 같았다. 이 방귀춘의 무공은 최상승(最上昇)의 경지이기에 확실히 아까 대했던 귀검철의 무공과는 비교할 수가 없었다. 강기( 氣)화 된 검기(劍氣)가 빛살처럼 공간을 가득 메워서 금 방이라도 화검상의 의복을 갈갈이 찢어버릴 듯했고, 화검상의 모 습은 풍전등화처럼 다급해서 검도 뽑아들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 다. 그러나 화검상은 십 장 방원을 누비면서 곡예를 하듯 구궁보 (九宮步)의 변환(變幻)에 의지하여 아슬아슬하게 피하고 있지만, 실상 오히려 내용면에서는 여유를 부리며 변환이 앞서가고 있었 다. 그것은 마치 화검상이 미리 방귀춘의 다음 초식을 알고 있어서 대비하고 있는 것과도 같았다. 그러다가 방귀춘이 마악 결사적인 초식을 전개하려고 할 때, 문득 화검상은 거짓말처럼 보법을 멈추었다. 그것은 심장 부위를 노리고 거듭 공격해들어갈 때였다. 그 초식은 비록 수비를 생각하지 않는 것이지만 이미 상대방의 가능한 변화에 대해 대응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화검상이 별안간 신형을 멈추었으니 그 장검은 당연히 그의 심 장을 관통하고 있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방귀춘의 장검은 흡사 휘어지는 듯 화검상의 옷자락도 베지 못하고 옆으로 빗나가고, 어느새 화검상의 손은 그의 맥문(脈門)을 잡고 있는 것이 아닌가? 방귀춘의 그 장검은 정강(精鋼)을 달련시켜 주조한 것으로 그 렇게 갑자기 풀잎처럼 휘어질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게 보인 것은 일종의 환각(幻覺)이며, 무공절기의 변환이 일어나는 것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방귀춘은 그와 같은 현실에 아까보다 더욱 놀랐으며 잠시 믿을 수가 없어 넋 나간 듯한 표정을 지었다. 화검상은 그의 맥문을 잡은 채로 말했다. “불만이라면 다시 한번 겨뤄보시겠소?” 기실 화검상은 방귀춘이 공격해오리라는 것을 당연히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빈손으로 방귀춘의 검법을 빠르게 제압했다는 것 은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방귀춘은 넋 나간 표정으로 잠시 화검상을 노려보다가 이윽고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네놈의 무공이 갑자기 이렇게 높아진 것이 놀랍기는 하지만, 그러나 이것이 사태를 되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내가 이 사실을 장문인께 말하지 않을 줄 아느냐?” “나는 최소한 당신 한 사람을 저승길로 데려갈 수도 있소. 그 것을 명심하기 바라오.” 화검상은 맥문을 잡은 손을 놓아주었다. 방귀춘은 잠시 화검상을 험악한 표정으로 노려보다가 이내 검 을 도로 거두어 검집에 넣고 한숨 짓듯 말했다. “네놈은 지금 어디로 가겠느냐?” 화검상은 담담하게 말했다. “나는 이미 본파에서 뼈를 묻기로 한 사람인데 가긴 어디로 가겠소? 우리는 너무 오래 볼일을 보는 것이 아니오?” 방귀춘은 다소 생각을 굴려보는 듯하다가 화검상을 재차 노려 본 뒤 먼저 신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좋다, 그럼 어서 가자!” 실상 화검상이 풍검진 등을 보내기도 전에 일행은 이미 출발했 다는 것을 화검상은 기척으로 듣고 알고 있었다. 그것은 이를테면 고의적으로 화검상을 낙오시킨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대체 그 이후에 무슨 일을 하려고 했을까? 비록 이제 상황이 바뀌었지만 앞으로 그 일이 나타나게 될지도 모른다. 얼마간 뒤쳐지게 되었다고 해도 그것은 별로 문제가 아니었다. 화검상과 방귀춘의 신법이라면 이내 그 일행을 따라잡을 수 있 기 때문이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날 야그 출력일 :: 98/10/16 ───────────────────────────────────── 제 목 : [화산] 2 권 제 20 장 - 1 방귀춘은 이미 수십 년 간이나 강호의 활동을 해와 이 부근의 지리에 대해서는 손바닥을 들여다보듯 훤하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질러가듯 수풀이 우거진 산과 계곡들을 앞장서서 빠르게 나아갔다. 그런데 그들이 신법을 펼친 지 불과 일 각도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었다. 작은 계곡을 지나치는데 문득 좌우에서 음산한 호통 소리와 함 께 두 사람이 나타나 허공을 훌훌 날며 화검상의 앞을 가로막는 것이었다. “멈춰라! 감히 어디로 달아나느냐?” 그들의 기세가 평범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매우 귀에 익은 음성이었기에 화검상과 방귀춘은 즉시 신법을 늦추고 걸음을 멈 추었다. 바로 다름아닌 화산이파파(華山二婆婆) 귀천능(歸天凌)과 왕천 파(王天波)였다. 왕천파는 방귀춘과 화검상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화검상 을 향해 험악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네놈은 감히 대담하게도 본문의 규율을 어기고 제멋대로 행 동하는구나. 죽음이 두렵지도 않단 말이냐?” 화검상은 다소 놀라기는 했으나 이내 가볍게 웃으며 대꾸했다. “두 분 사숙조께선 이곳에 어인 일이십니까? 제가 본문의 규 율을 어기다니요? 게다가 규율을 어겼다면 그 규율대로 처리해야 지 죽음을 운운하는 것은 또 무슨 일입니까?” 왕천파는 화검상을 주시하더니 말했다. “그럼 네놈은 지금 일부러 본문을 이탈하지 않았다는 말이 냐?” 화검상은 가볍게 냉소하며 말했다. “왕사숙조께선 어디에 근거를 두고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제 가 만일 그런 잘못을 범했다면 이분 방사숙께서 그냥 저를 내버 려두었을 것 같습니까?” 왕천파는 다시 한번 방귀춘은 돌아보았다. 이때의 방귀춘의 몸은 그다지 부상을 입지 않았으나 그 몰골은 좋지 않았다. 방귀춘은 다소 음독한 표정을 짓고 있었으나 말을 하지는 않았 다. 왕천파는 다소 의아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이내 괴이쩍 은 기색이 되어 화검상을 향해 다시 말했다. “그건 아무래도 좋다. 너는 어차피 오늘 이곳을 벗어나지 못 할 테니까!” 문득 은연중에 그 두 노파의 전신에 살기(煞氣)가 흐르는 것을 화검상은 감지했다. 그렇다. 화검상은 그들이 언젠가는 자신에게 본색을 드러내어 척살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단지 명분 때문에 화산파 내부에서는 그를 죽이지 않은 것이다. 화검상은 이미 그러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러한 현실은 화산파를 떠나서 불과 한나절도 지나지 않아 너무도 빨리 들이닥 쳤다. 하지만 기실 그들은 그간 그러한 명분을 생각하며 오랫동안 인 내해왔는지도 모른다. ‘바로 이것이었군!’ 화검상은 자신을 낙오시킨 다음의 계획이 바로 이런 것이었다 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이제 어떤 이유라도 불문하고 그를 척살할 것이며, 나 중의 소문은 그가 멋대로 이탈하여 녹림도적들에게 당했다고 전 해질 것이다. 아니 어쩌면 더욱 심한 내용으로 그의 죽음이 매도될지도 모른 다. ‘하지만 나도 이제는 옛날과는 다르다는 것을 당신들은 알았 어야만 했소!’ 왕천파는 먼저 장검을 뽑아들었다. 그건 방귀춘의 몰골을 보고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감지했기 때 문일 것이다. “네놈은 이제 마지막으로 남길 말이 없느냐?” 왕천파의 두 눈에서는 문득 살광(殺光)이 칼날처럼 솟구쳤다. 화검상은 자신의 공력을 점검해보며 냉소하며 대꾸했다. “당신들에게 할말은 없지만 장문인에게 할말은 남아 있소.” 이미 서로가 적이라는 것이 분명히 확인되자, 왕천파는 문득 갈가마귀처럼 소름 끼치게 웃었다. “흐흐흐, 네놈은 이제 그 말을 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안됐구 나!” 방귀춘은 상황의 전개를 보고 벌써 슬그머니 옆으로 물러나고 있었다. 이 두 노파는 화산파의 장로(長老)들로서 그 무공이 결코 방귀 춘에 비할 바가 아니다. 게다가 두 사람이 동시에 합공을 한다면 그 위력은 더욱 대단 해질 것이다. 화검상은 빠르게 생각을 굴리다가 말했다. “나의 무공은 갑자기 이상할 정도로 증진되었소. 당신들은 그 사실이 궁금하지 않소?” 왕천파는 문득 화검상을 자세히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너는 그 이유를 말할 수가 있단 말이냐?” 화검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물론이오. 비록 내가 다소 손해를 보는 것이기는 하지만, 한 가지 조건만 들어준다면 말할 수가 있오.” 왕천파는 약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 조건이란 뭐냐? 설마 하니 지금 살려달란 말은 아니겠지? 장문인을 만나볼 거라면 네 뒤를 보아라!” 화검상은 장문인 풍천비가 지금 이곳에 와 있으리라고는 생각 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이란 무의식중에도 쉽게 의구심에 자극되는 법이라 고 할 수 있다. 화검상이 무심코 뒤로 고개를 돌렸을 때, 이미 왕천파의 공격 은 시작되고 있었다. 귀천능은 여전히 예의 그 지팡이를 짚고 상황을 주시하고 있는 상태였다. 갑자기 하늘을 뒤덮을 듯한 검광(劍光)이 일어나며 수십 개의 변환들이 화검상의 주위를 휩쓸었다. 화검상의 신형은 마치 거친 폭풍우 속에 휩쓸리는 가랑잎처럼 그 속에서 위태롭게 몸을 피해서 이리저리 뒤로 물러났다. 기실 화검상은 본래 그녀가 기습할 것을 눈치채고 있었으나 이 렇게 검을 뽑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의 능력을 시험해보고 있는 것이었다. 비록 다소의 위기는 있을지라도 두려워 몸을 움츠리기만 한다 면 결국 누구에겐가 당하고 말 것이다. 아무래도 손에 병장기를 들고 안 들고의 차이는 대단하다. 그것은 때로는 팔의 길이가 그만큼 늘어난 것보다도 더한 차이 를 보이는 것이다. 화검상은 지금 최대의 구궁보(九宮步)를 발휘하고 있으므로, 그 의 신형은 무려 마흔다섯 개나 되는 변환(變幻)을 일으키며 환상 적으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흔히 사술(邪術)에서 말하는 분신술(分身術)과는 다른 모습이기 는 하지만, 겹겹이 환영(幻影)을 갖가지의 모양으로 일으키며 상 대의 검을 피해가는 화검상의 보법은 마치 신기에 가까웠다. 왕천파의 검강지기(劍 之氣)가 태풍처럼 가득 차서 그 환영들 을 갈갈이 찢고 있지만, 그러나 그것들은 이미 간발의 차이로 지 나간 것들이어서 현실과 같지는 않다. 그러나 문득 왕천파의 육합신검법(六合神劍法)의 변환은 급격 히 숫자가 늘어나고 있었다. 처음엔 변환의 숫자가 화검상의 환영과 비슷했으나, 이내 오십 개 이상으로 늘어났다. 화검상은 처음에는 무난히 그녀의 공격을 피할 수가 있었으나 점차로 변환의 숫자만큼 초식이 뒤로 밀리는 것을 느꼈다. 이들은 지금 모두 그 검법이나 보법 등의 화산파 무공에 대해 서 훤히 알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가 도중에 초식이나 변화 를 바꾸어봐도 역시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마치 변화를 앞질러가서 뒤따라오는 상대의 변화를 기 다리는 것과도 같았다. 기다리는 쪽은 여유있게 더욱 변화하여 상대의 허점을 노릴 수 가 있지만 쳐지는 쪽은 미처 그 변화에 대처해나가기가 바쁜 것 이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날 야그 출력일 :: 98/10/16 ───────────────────────────────────── 제 목 : [화산] 2 권 제 20 장 - 2 만일 이런 식이라면 그 결과는 뻔한 것이다. 흔히 양자의 실력을 논할 때 수백 초 만에 반 초를 이겼다느니 하는데, 그런 말은 이런 앞서가는 변화를 표현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화검상의 실력보다 왕천파가 우월하다는 말인 가? 점차로 왕천파의 변환이 더욱 늘어가자 화검상은 급기야 당황 해 지기 시작했다. 지금의 상황에서 장검을 뽑을 여유를 갖는다는 것은 물론 바랄 수도 없는 일이다. 그는 좀더 일찍부터 최선을 다해 대응하지 못한 자신이 후회스 럽기도 했다. 이것은 달리기를 함에 있어서 느린 사람이 빠른 사람을 쫓아가 는 것과도 같아서 화검상은 점차로 공력에 무리가 오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쫓아가지 않는다면 이내 당하고 마는 것이므로 중도에 서 그만둘 수도 없는 일이었다. 화검상은 십이 성(十二成)의 공력을 모두 사용했는데도 부족하 자 점차로 진기가 이어지지 않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실로 최악이며, 화검상이 무공이 증가된 이후 처음으로 겪는 낭패라고 할 수 있었다. 이 최상승의 경지에 도달하면 비록 경기(勁氣)를 발출하지 않 더라도 검강지기(劍 之氣)를 일으키게 되는 것이므로 단순한 변 환이라고 해도 그 환영만으로 위력을 발휘하는 수가 있다. 물론 따로 검강을 발산하여 환영이 더욱 위력을 발휘하게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단지 그 여운만으로도 족히 위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화검상의 몸에는 지금 호신강기(護身 氣)가 작동되고 있어서 그것으로는 옷깃도 다치게 할 수 없지만, 그 여파로 지금 주변의 무수한 수목(樹木)들은 피해를 입어 갈갈이 찢겨지고 푸른 잎들 이 날려 허공 가득 비산하고 있었다. 본래 변환의 숫자가 하나만 앞서도 이미 이기기가 곤란한 것이 다. 변환의 숫자가 그렇게 많은 차이가 나는데도 화검상이 아직 버 티고 있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라고 해야 할 것이었다. 하지만 드디어 왕천파의 변환이 예순일곱 개에 이르자 화검상 은 더 이상 대처할 수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너무나도 속도의 차이가 나서 이제는 이미 함정을 만들 어 놓고 기다리는 곳으로 들어가는 것과도 흡사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함정 속으로 들어가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것은 이미 그의 퇴로까지 철저하게 계산된 함정 아닌 함정이 어서 그 천라지망(天羅之網)에서 헤어날 길이 없는 것이다. 초식(招式), 즉 그러한 무학의 오의(奧意)라고 하는 것은 갈수 록 정밀하고 깊어져서 도무지 다른 여지를 말살해버리는 것이다. 화검상은 가능한 모든 변화의 여지를 생각해볼 때, 마치 그런 방향 모든 곳에서 검날이 자신의 몸 속으로 파고드는 것 같은 기 분을 느꼈다. 그것은 정말로 기분 나쁜 일이었고, 또한 무공이 증가된 이후 최초의 좌절이라고도 할 수가 있었다. 게다가 실제로 이제 왕천파의 검날이 그의 옆구리로 베어오고 있었다. 옆구리의 의복을 찢고 그 검날은 살갖을 베고 지나갈 것이고, 다음에는 좀더 깊은 상처를 내기 시작할 것이다. 그것은 이제 피할 도리가 없다. 만일 그것이 싫다고 무리를 한다면 그는 즉각 더욱 허점이 드 러나 대번에 목숨까지 위험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때 다소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예상대로라면 그 검은 분명히 화검상의 살갗을 베고 지나가서 계속 그의 목숨을 위협했어야만 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강연히 살갗 쪽으로 깊이 변화되어야 할 그 검은 그저 형식적인 자세만 취하듯 맥없이 스치며 옆으로 지나가 버리는 것이 아닌가? 극도로 신경이 날카로워진 상황이라 집중력도 그만큼 강화되었 다. 화검상은 그것을 본 순간 그만 놀라서 보법이 흐트러질 뻔했 다. 그는 갑자기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목격한 것이다. 비록 단 한 순간의 광경이었어도 그것은 지금 그를 놀라 깨어 나게 하기에 족했다. 본래 이것은 무슨 특별한 것도 아닌 그가 알고 있던 사항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사람은 간혹 선입견에 묶여서 매사를 자신과 같이 보려 는 경향이 되기 쉽다. 화검상의 무공은 이미 말할 것도 없이 곡선적이었다. 그의 변환은 따라서 비슷한 듯하지만 공력이 두 배로 들어가서 이루어지는 정밀하고도 살아 움직이는 것이었다. 그런데 화검상은 이제껏 겨루면서 상대방의 주된 흐름만 보다 보니 그 변화가 직선적이라는 것을 재인식하지 못했다. 그는 무심코 자신의 초식이 곡선적이므로 상대방도 곡선적이리 라고 생각하고서 지레 놀라서 대응해왔던 것이다. 하지만 왕천파의 검법은 말할 것도 없이 직선적이었고, 그래서 그녀는 변환의 숫자에서 앞서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마치 두 마리의 토끼에 놀라 호랑이가 중간에서 왔다갔 다 하며 지레 도망가고 당황하는 것과도 같았다. 호랑이는 토끼도 자신과 같은 힘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 하고 지레 달아나는 것이지만, 실제로 부딪치면 토끼의 힘은 별 게 아니다. 만일 곡선적 무공이 그저 같은 공력일 때 변환의 숫자만 줄어 든다면 훌륭하다고 말할 수가 없을 것이다. 지금 화검상은 오히려 왕천파보다 공력이 높은데도 변환의 숫 자가 적다는 것은 어딘가 의미심장하다. 본래 화검상은 자신의 무공과 다른 사람들의 무공의 본질에 대 해 알고 있었지만 잠깐 잊고 있다가 정작 부딪치는 순간에 그것 을 다시 상기하게 된 것이다. 곡선적 무공에 의하면 그 초식은 상황에 따라 실은 보이지 않 는 변화를 내포하여 끝까지 파고들어가야 하는데, 직선적 무공이 므로 그 초식이 제 변화를 다하지 못하고 그저 껍데기뿐인 겉멋 만 흉내내듯 허망하게 지나쳐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물론 이 직선적인 무공이 그렇다고 완전히 위력이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화검상은 연이어 두번째의 공력을 받았을 때 그 사실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고, 그리고 이어 세번째의 공격을 받고 났을 때는 마음이 훤하게 트이고 몸도 편해지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것은 진짜와 가짜와의 논리와도 비슷하다. 만일 둘 다 가짜라면 서로가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물론 둘 다 진짜라도 당연히 그러하다. 하지만 하나는 진짜고 하나는 가짜이기에, 그 초식의 의미에 따르는 결과가 도무지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가짜는 아무리 빨라도 헛손질만 하는 것이고, 진짜는 아무리 그것에 맞아도 별로 상처를 입지 않는 것이다. 초식과 무공이 진짜인가 가짜인가는 이렇게 차이가 있고 중요 하다. 정신을 차리자 화검상은 상대의 초식에 허점을 분명히 보게 되 어 오히려 초식의 전환이 빠르지 않아도 느긋하게 되었고, 무엇 보다도 상황의 변화에 감지한 것은 왕천파 쪽이 먼저였다. 그녀는 이미 십이 성의 공력을 다하고 있었는데 괴이하게도 마 치 살아 움직이는 그물에 휩싸이는 듯 자신의 초식이 빗나가자 그만 놀라고 경악하여 혼몽스러워지게 되었다. ‘아니, 이 후레자식이 사술(邪術)을 배웠나?’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 나타나자 그녀는 그것을 사술이라 고 생각한 것이다. 화검상은 보법의 초식을 펼치는 데 전혀 무리가 없고 편해지자 이제는 그만 장검을 뽑으려고 했다. 그는 기실 조금 전에 너무 놀라고 당황했었다. 그런데 그가 마악 검자루로 손을 가져가는데 이번에는 뒤쪽에 서 위맹한 경기(勁氣)와 함께 검이 파고들었다. 귀천능이 어느새 상황을 보고 있다가 이상해지자 달려든 것이 다. 그녀가 짚고 있던 지팡이는 어느새 하나의 검과 검집으로 변해 있었고, 그녀는 마치 쌍검(雙劍)을 휘두르듯 그것을 무섭게 움직 였다. 이 귀천능은 왕천파의 사자이며 비단 심계(心計)가 깊을 뿐만 아니라 무공도 더욱 월등했다. 그녀의 장검에서는 무려 예순여덟 개의 검영(劍影)들이 일어나 고 있었다. 검을 그저 빠르게 베는 동작은 잔영(殘影)이 나타나지 않으므 로, 검영이 나타나는 숫자는 물론 변환의 개수이다. 화검상은 귀천능이 합세하자 다소 당황했으나 그것도 역시 이 내 편해지기 시작했다. 귀천능의 무공도 말할 것도 없이 직선적이다. 지금 그 두 노파의 합공은 일종의 합벽검진(合劈劍陣)과도 같 아서 위력이 배가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화검상은 이미 내실이 없다는 것을 알았으므로 느긋하 고 여유있게 보법으로 상대할 수가 있었으며, 반대로 그녀들은 마지막 순간에는 화검상의 몸이 귀신처럼 사라지는 듯하여 몹시 놀라고 당황해져가는 상황이었다. 화검상은 이에 드디어 여유있는 가운데 장검을 뽑아들었고, 반 격을 하기 시작했다. 이미 상황을 알아버려서 그런지 결과는 예상보다도 빨리 나타 났다. 화검상이 마주 육합신검법을 펼치자 그럴 상황이 아닌 듯한데 도 그 두 노파는 보이지 않는 오묘한 변화에 이끌려 차례로 손목 에 충격을 받아 장검과 지팡이를 떨어뜨렸고, 이어 화검상은 지 법(指法)을 사용하여 각기 그녀들을 차례로 제압해버렸다. 그녀들은 이내 악독한 표정이 되어 지면에 굴러떨어져 화검상 을 노려보았지만, 그나마 화검상이 일부러 검의 등으로 손목을 쳐서 베지 않은 것을 감사해야 할 것이다. 잠시 동안의 치열했던 격전에서 주위의 수목들이 거의 폐허처 럼 잘려나가고, 허공에는 그 먼지와 나뭇잎들로 가득 흩날리고 있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緇 야그 출력일 :: 98/10/16 ───────────────────────────────────── 제 목 : [화산] 2 권 제 20 장 - 3 ‘휴우, 정말 십년감수한 셈이로군!’ 화검상은 폐허 속에 누워서 자신을 노려보는 이파파를 내려다 보며 내심 길게 숨을 내쉬었다. 문득 악독하게 노려보던 왕천파가 찢어지는 음성으로 소리쳤 다. “네놈은 대체 우릴 어쩔 작정이냐?” 직선적인 무공이 가짜가 되고 마는 것은 곡선적인 무공에 비해 다만 겉핥기 식의 형식과 같은 것만 배우고 그 깊은 내용에 대해 자세히 연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개의 사람들이 그런다고 해서 무공을 곡선적으로 배 우려고 하면 그것은 잘 되지도 않고 진도도 몹시 더디다. 그것은 그들의 마음이 장애가 많아 정말로 깊고 바르게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화검상은 가볍게 냉소하며 말했다. “당신들은 내가 어찌하리라고 생각하시오?” 왕천파는 악독한 시선으로 소리쳤다. “네놈이 어찌하든 우린 상관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죽기밖에 더 하겠느냐?” 화검상은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알다시피 나는 이미 궁지에 몰려 있는 상황이오. 쥐도 궁지 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고 하지 않았소? 나는 하물며 사람인데 당신들을 그냥 마음 편히 죽게 하겠소?” 왕천파는 두 눈을 부릅뜨며 욕설을 퍼부었다. “염병할 후레자식! 네놈은 그래 다른 수작이라도 부리겠다는 말이냐?” 화검상은 눈살을 찌푸리며 다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입이 아직도 거칠구먼! 우선 그 입부터 봉해야 하겠소.” 화검상은 이어 두 가닥의 지풍을 날려 이파파의 아혈들마저 제 압해버렸다. 그것은 기실 그녀들이 자결하려는 것을 방지한 것이기도 했다. 왕천파는 이젠 말도 하지 못해 두 눈알만 찢어지게 부릅뜰 뿐 이었고, 귀천능은 그만 대항할 생각을 포기한 듯 두 눈을 가늘게 뜨고 화검상을 주시할 뿐이었다. 화검상은 그녀들을 향해 다시 말했다. “자, 이제 죽음보다도 더 괴로운 형벌을 경험하도록 해주겠소. 당신들은 이미 나의 적이니 상관이 없는 일이겠지.” 문득 방귀춘이 다가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자네가 만일 저 두 분을 욕보인다면 나와 생사결단을 벌일 수 밖에 없네.” 기실 방귀춘은 화검상이 그 이파파를 제압할 줄은 미처 예상하 지 못했기 때문에 이제 태도도 많이 누구러져 있었다. 화검상은 그의 얼굴을 돌아보며 가볍게 냉소했다. “그럼 당신은 그들을 풀어준다면 내게 상이라도 주려고 했 소?” 방귀춘은 안면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자네가 만일 그렇게 나오면 상황이 더욱 악화될 뿐이 네.” “악화? 나는 이보다 더 악화될 상황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 소.” 화검상은 이어 방귀춘에게 다가가며 말을 계속했다. “차라리 당신도 솔직히 내게 덤비는 것이 어떻소?” 방귀춘은 자신이 이미 화검상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 고 있기에 다소 당황했다. 그는 어쨌든 간에 이렇게 된 마당에 손을 쓰지 않을 수가 없다 고 생각했다. 하지만 화검상은 이내 그의 마음의 부담을 덜어주었다. 어떻게 된 셈인지 화검상이 그저 가볍게 손가락을 펼치자 그는 아혈과 마혈이 방어할 사이도 없이 동시에 제압되어버렸던 것이 다. 화검상은 기실 조금 전의 그 아찔했던 실전경험을 하면서 무학 을 운용하는 면에 있어서 다소 진보했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부담이 없을수록 좋은 것이지만 모두의 경우가 다 그런 것은 아니다. 방귀춘은 차라리 조금 전의 부담스럽던 상황이 더 나았다고 생 각하고 있었다. 그는 이미 아까 화검상에게 지겹도록 당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 에 혈도가 다시 제압되자 소름이 끼쳐져서 안색이 샛노랗게 변하 지 않을 수가 없었다. 화검상은 다시 이파파를 향해 말했다. “당신들은 이미 늙어서 무슨 고문수법은 통하지 않을 것이오. 그래서 내가 특별히 당신들의 건강을 염려하여 다른 방법을 강구 해 볼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오?” 이파파는 물론, 방귀춘도 혈도가 제압되어 있기에 대꾸를 할 수 없었다. 화검상은 혼자서 다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말이 없는 것을 보니 찬성인 모양이군? 나는 당신들 모두에 게 그 방법을 경험하게 해줄 테니 너무 걱정하지마시오.” 이어 화검상은 먼저 방귀춘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이 빌어먹을 후레자식이, 또 무슨 짓을 하려는 거지?’ 보아하니 이전의 방법은 아닌 것 같은데 자신의 의복이 하나씩 벗겨지자 방귀춘은 안색이 허옇게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는 정파인(正派人)이기 때문에 목숨보다 수치를 더 두려워해 야 하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화검상은 그의 그러한 우려를 확인시켜주기라도 하듯이 이내 그의 옷을 모두 발가벗겨버렸다. 때가 비록 여름이라 시원하기는 하겠지만 두 노파의 앞에서 흉 측한 물건을 그대로 드러내놓고 서 있는 광경은 정말 말이 아니 라고 해야 할 것이었다. 방귀춘은 이내 안색이 다시 시꺼멓게 변했고, 그것을 바라보는 이파파는 안색이 창백하게 변해버렸다. 귀천능은 눈을 감아버린 데 반해 왕천파는 눈을 더욱 찢어지도 록 부릅뜬 채 화검상을 노려보고 있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연이 야그 출력일 :: 98/10/16 ───────────────────────────────────── 제 목 : [화산] 2 권 제 21 장 세마리의 통닭 제 21 장 세마리의 통닭 화검상은 마치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행동을 계속했다. 근처에는 제법 가지가 굵은 나무들이 있었다. 화검상은 방귀춘의 의복으로 줄을 만들어 그의 허리 부분에 묶 고 나무가지 위에 달아매었다. 마침 조금 전의 접전으로 잔가지나 나뭇잎들이 다 날아가서 방 귀춘이 벌거숭이로 매달린 광경은 한눈에 들어왔다. “흠, 제법 그럴싸하군! 당신은 이렇게 세상구경을 좀 해보도록 하시오. 나중에 누가 와서 내려주지 않는다면 아마도 원숭이들이 라도 나타나서 구해주겠지.” 내공을 연마하는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 해혈비법(解穴秘法)을 알고 있기 마련이다. 비단 방귀춘뿐만 아니라 귀춘능과 왕천파도 이미 제압된 혈도 들을 풀기 위해 수십 차례나 그 비법을 시도해보고 있었다. 하지만 화검상이 제압한 그 자하지의 수법은 평범한 듯해도 몹 시 기이했다. 그 해혈비법으로 어느 정도는 완화시킬 수가 있을 것이라고 생 각했는데, 이상하게도 그것을 풀려고 진기를 움직이면 움직일수 록 오히려 더욱 몸이 굳어지는 듯한 것이다. 마치 그것은 그들의 몸 속에 살아 있는 기운이 숨어 있어서 해 소하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더 강한 힘으로 제어하고 있는 것과도 같았다. 그것은 그 점혈수법(點穴手法) 역시 곡선적이기 때문에 당연히 나타나는 현상인 것이다. 곡선적인 수법은 본래 그 절기(絶氣)가 가지고 있는 근원적인 이치에 대해서 깊이 트여 있기 때문에, 웬만한 반격에 대해서는 스스로 방어할 수 있도록 숨어 있는 변화(變化)들이 작용하는 것 이다. 직선적인 수법은 이와는 달리 그러한 깊은 변화까지 형성시켜 놓지 못했기 때문에 비단 오래가지 못할 뿐만 아니라, 특별한 방 법에 의해 허점이 노출되면 쉽게 깨질 수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직선적인 무공은 허술하고 또한 때로는 위험하다. 하지만 곡선적인 무공은 허술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폭발적 으로 자신을 해칠 가능성이 거의 없어서 위험하지도 않은 것이 다. 대개의 수법들은 한 시진 정도의 시간이 흐르면 허술해지고 해 혈이 쉬워지게 된다. 하지만 이 기이한 점혈법은 비단 오래 지속될 뿐만 아니라 일 반 방법으로는 풀기 어려울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그들의 뇌 리를 파고들었다. 화검상은 이번에는 이파파의 앞으로 다가가서 그녀들의 옷을 정말로 벗기기 시작했다. “오래 기다렸소. 하지만 금방 모두 경험하게 해줄 테니 걱정 하지마시오.” 화검상이 먼저 옷을 벗긴 사람은 왕파파였다. 왕천파는 생각 같아서는 분노하여 화검상을 갈기갈기 찢어죽이 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그럴 수가 없어서 몸만 부들부들 떨며 눈 알을 부릅떴다. 하지만 결국 화검상은 그녀의 몸을 이내 벌거숭이로 만들었는 데, 팔십 세를 훨씬 넘은 고령의 몸임에도 불구하고 뚱뚱한 그녀 의 몸은 피둥피둥한 기운이 흐르고 있어서 마치 삼사십대의 여자 의 몸을 보는 것과 같았다. 아래쪽의 고의까지 모두 벗겨버리자 왕천파는 너무도 분노하여 제정신이 아닌 듯 온몸이 시뻘겋게 변했는데, 화검상을 당장에라 도 찢어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화검상도 그런 광경을 보자 절로 안색이 붉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런 일일수록 태연해야 한는 것을 알기에 그는 일부러 더욱 능청을 떨었다. “그렇게 너무 고마워서 나를 바라볼 것은 없고, 원한다면 내 나중에도 얼마든지 다시 근사한 경험을 하게 해줄 수도 있소.” 방귀춘도 물론 대단히 수치스런 노릇이기는 하지만, 그보다 연 장자인 이 두 노파의 수치심에 비하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들은 비록 나이가 많기는 하지만 아직도 분명 여자이고 게 다가 무공을 깊이 연마하여 신체는 삼사십대처럼 윤기마저 흐르 는 것이다. 화검상은 이들이 매우 악독하고 끈질겨서 결코 보통의 방법으 로는 어찌해볼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이렇게 강한 수치심을 느끼게 해주면 그래도 어떤 효과가 있지 않을까, 하는 궁여지책이었다. 최소한 이들의 목숨을 빼앗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화검상은 이어 왕천파도 방귀춘과 나란히 묶어 그 옆에 매달았 다. 왕천파는 자신이 벌거숭이가 되어 결국 방귀춘과 나란히 매달 리자 그만 지나치게 격분하여 입에 거품을 물고 있었다. 화검상은 그녀를 상관하지 않고 이번엔 남은 귀천능에게 다가 갔다. 귀천능은 왕천파와는 달리 몹시 애원하듯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화검상은 이런 노파야말로 왕천파보다 더욱 악독했으면 했지 못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모르는 척하고 역시 그녀의 의복을 모두 벗겨서 왕천파와 는 다른 쪽에 매달았다. 말하자면 방귀춘이 좌우로 두 노파를 거느린 채 매달리게 된 것이다. 그 두 노파는 하나는 뚱뚱하고 하나는 깡말랐는데, 귀천능은 비록 골격이 다소 구부정하기는 했지만 역시 신체의 피부는 탱탱 하여 과거에 꽤나 예뻤을 것 같은 몸이었다. 화검상은 그렇게 세 사람을 나란히 매달아놓고 마치 구경을 하 듯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말했다. “당신들은 모두 제법 훌륭한 몸매들을 가지고 있군, 특히 두 분 사숙조는 나이에 비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니 나는 감탄 했소! 하지만 안심하시오. 나는 두 분을 어떻게 하려는 것은 아니 니. 다만 나는 이대로 갈 테니 세 분은 누군가가 나타나길 기다 려보시오!” 화검상이 마악 떠날 모습을 보이자 그만 세 사람은 다급해졌 다. 이것이 세상에 알려지면 그들은 이제 도저히 얼굴을 들고 강호 에 돌아다닐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귀천능은 이제는 안색이 새까맣게 변하여 화검상을 향해 애원 하듯 바라보고 있었고, 왕천파는 여전히 노기를 띤 채 화검상을 노려보고 있었으며, 방귀춘은 이제는 안색이 벌겋게 변하여 화검 상을 주시하고 있었다. 화검상은 마악 떠나려는 듯하다가 문득 귀천능을 바라보며 의 아하다는 듯이 말했다. “아니 당신들은 지금의 이 자세가 혹시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오?” 귀천능은 금방이라도 화검상이 떠날까 즉시 눈꺼풀을 무수히 깜빡거렸다. 화검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게 하면 내가 어떻게 알 수 있겠소? 내 말이 맞다면 한 번 깜빡이고 틀리면 두 번 깜빡이시오. 그래, 지금 곧 그 나무에 서 내려오고 싶소?” 귀천능은 즉시 눈을 한 번 깜빡이며 애원하듯 그를 바라보았 다. 화검상을 고개를 돌려 왕천파를 바라보더니 손을 내저었다. “아마 그렇지 않은 것 같소. 저 왕사숙조는 계속 이렇게 있고 싶은 모양인데, 나는 여러분의 의견을 존중하며 어느 한 사람의 말만 들을 수는 없소.” 왕천파는 계속 노기 띤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는데, 귀천능이 곁눈질로 말을 전하자 하는 수 없이 눈꺼풀을 한 번 깜빡였다. 방귀춘은 그 사이에 있었으므로 자신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 고 얼른 눈을 깜빡였다. 화검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듯이 말했다. “좋소. 나는 여러분의 뜻이 그렇다면 굳이 고집을 부리고 싶 은 생각은 없소. 이런 경험이 싫다면 당연히 내려드려야지. 하지 만 나도 여러분의 뜻을 몰라 자칫 실수를 했을 수도 있으므로 한 가지 조건을 들어줘야 하겠소.” 귀천능과 방귀천은 즉시 눈을 한 번 깜빡였고, 왕천파도 다소 머뭇거리다가 이내 눈을 한 번 깜빡였다. 화검상은 손을 내저었다. “아니오. 그건 나의 어떤 조건이라도 들어주겠다는 말이오? 일단 나의 말을 듣고 나서 대답해야 하지 않겠소? 내 조건은 바 로 내가 실수를 했다면 지금의 이 일은 앞으로 다시 거론하지도 말고 잊어버릴 것이며, 혹시 다른 핑계를 대고 나를 해치려는 일 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오. 이 조건을 본파의 조사(祖師)의 이름을 걸고 맹세했다면 한 번 눈을 깜빡이시오.” 어떤 일이든 간에 그 문파의 조사의 이름을 함부로 욕되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 세 사람은 잠시 망설였으나, 이내 하는 수 없이 모두 눈을 한번씩 깜빡였다. 이에 화검상은 즉시 두말하지 않고 칙칙칙, 하는 소리와 함께 지풍들을 날려 그들의 혈도를 모두 풀어주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들은 야그 출력일 :: 98/10/16 ───────────────────────────────────── 제 목 : [화산] 2 권 제 21 장 - 1 “이 찢어죽일 놈의 후레자식!” 혈도가 모두 시원하게 풀리자 그들 세 사람은 즉시 스스로 몸 을 묶은 것을 풀고 아래로 내려섰다. 왕천파는 욕설을 퍼부으며 아래로 내려서는 즉시 알몸을 휘두 르며 화검상을 향해 공격해 들어왔다. 몹시 분노하던 참이라, 그녀의 온몸에서는 그야말로 전력을 다 한 화산파의 절기(絶技)들이 쏟아져나왔다. 주위는 일순 폭풍 같은 장력(掌力)과 수영(手影), 퇴영(腿影)들 로 가득 찼다. 이렇게 흥분하여 장풍(掌風)을 마구 내쏟는 것은 비록 위력적 인 듯하지만 무모하여 공력만 낭비할 뿐이다. 장풍이 아무리 빨라도 그 거리가 있고 발출하는 데 시간이 걸 리기 때문에 상대는 그저 가볍게 몸을 움직여 피하면 그만이다. 혹자는 그래서 사방을 다 장력으로 뒤덮으면 된다고 하지만, 그것은 비단 쉽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공력만 분산되어 있어서 상대는 그저 간단하게 오히려 그 힘을 취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그야말로 멍청할 정도로 단순한 수법일 뿐만 아니라 초 식도 뭣도 아닌 지나친 공력의 발산에 불과한 것이다. 일단 그렇게 장력을 발산하고 나면 공력이 급속히 감소하는 것 은 말할 나위도 없다. 화검상은 비단 그녀의 그러한 행동을 예상하고 있었을 뿐만 아 니라, 설령 이제 그녀가 최선의 공격을 감행한다고 해도 전혀 두 려울 것이 없었다. 그는 마주 장법을 펼쳐 해소하기도 하고 슬슬 피하면서 웃으며 말했다. “당신은 약속을 지키지 않을 거요? 본파의 조사의 이름을 욕 되게 하겠단 말이오?” 왕천파는 더욱 화가 나서 소리쳤다. “난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없다!” 화검상은 그야말로 유유자적하게 그녀를 상대하고 있었다. 그는 다소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니, 그렇다면 당신들을 어쩔 수 없이 다시 매다는 수밖에 없겠군!” 그때, 왕천파의 귓속에 귀천능의 전음이 들려왔다. “사매, 지금은 그렇게 흥분할 때가 아니야!” 왕천파는 그 말에 다소 마음을 진정시키는 듯했다. 그녀는 공격을 멈추더니, 즉시 달려가 의복들을 찾아 하나씩 걸치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들 세 명이 옷을 다 입고 물건들은 챙기고 나자, 화 검상은 웃으며 말했다. “우리들은 그간 별일도 없었으니 그만 일행이 있는 곳으로 돌 아가야 하지 않겠소?” 귀천능은 아직도 상기된 듯한 표정으로 쏘아보며 말했다. “너는 다시 본파와 합류하겠다는 말이냐?” 화검상은 손을 흔들었다. “그게 무슨 말이오? 나는 처음부터 낙오하지도 않았는데 어찌 다시 합류한다고 할 수 있겠소?” 왕천파가 이를 갈며 욕설을 퍼부었다. “더러운 후레자식! 네놈은 결코 옳게 죽지도 못하게 될 것이 다!” ‘내가 죽지도 못하게 된다니, 그럼 차라리 그리 나쁘지도 않 을 것 같군?’ 귀천능이 다시 음험하게 말했다. “좋다, 그럼 어서 가자!” ‘이거 그들을 따라가기도 꽤나 힘든 일이군!’ 다소 어색하고 괴이쩍은 분위기가 되었지만 그들 네 사람은 다 시 신법을 펼쳐 동남쪽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모두 무공이 최절정경지 이상이어서 함께 신법을 펼치 자 그야말로 나는 듯이 나아갔는데, 화검상은 이 화산파의 신법 인 십단금(十段錦)을 펼침에 있어 그야말로 물이 흘러가는 듯했 기 때문에 귀천능이 은근히 주시하는 바가 있었다. 대략 이 각 정도 그렇게 나아갔을까? 일행의 진행속도를 보면 대략 이 정도면 마주칠 수 있을 것이 라고 생각했는데도 귀천능 등이 계속 달려가는 것을 보고 화검상 은 문득 의아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아니 그 동안 일행이 무리를 해서 한번에 수백 리나 나아가 기라도 했단 말인가?’ 화검상은 의심스런 면이 있었지만 그러나 좀더 그녀들의 행동 을 지켜보기로 하고 계속 뒤따랐다. 그런데 거의 정오 무렵이 되었을 때의 일이었다. 화검상 등은 계속 달려 하나의 사찰에 이르렀는데, 뜻밖에도 그의 일행은 이미 모두 그곳에 당도하여 휴식을 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 혼자서라면 찾기도 어려울 뻔했군!’ 장문인 풍천비 등은 일단 화검상을 낙오시키자 무공이 약한 삼 대제자들을 부축하며 빠르게 수백 리나 내달렸던 것이다. 그 사찰은 그저 산중(山中)의 이름없는 사찰로서 건물들도 허 술하고 그나마 몇 채 되지도 않았다. 하지만 일행은 이미 양식을 휴대하고 있기에 그저 밥을 짓고 쉴 수 있는 공간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화검상 등이 그곳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몇 명의 제자들이 윗 사람들의 밥을 짓기 위해 연기를 피우고 있었다. 대개의 제자들은 어찌 된 일인지 몰랐지만 일부의 제자들은 화 검상이 귀천능 등과 함께 나타나자 놀란 표정들을 지었다. 귀천능과 왕천파는 그곳에 도착하자 즉시 안쪽으로 사라졌고, 방귀춘은 다만 멀리 가지 않고 어슬렁거렸다. 화검상은 지금 당장 풍천비에게 달려가봐야 할 것 같았으나 왠 지 그것은 내키지 않아 비교적 천천히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대웅전을 조금 못미쳐서 작은 우물이 하나 있었고, 그 우물가 에 지금 풍검진과 유검하, 풍림성, 희검연(姬劍煙) 등이 모여 담 소를 나누고 있었다. 화검상이 다가가자 그들은 일순 놀라 몸을 일으켰으나, 대체 어찌 된 일인지 몰라 어떤 행동을 취하지는 않았다. “모두 잘들 있었소?” 화검상은 그들에게 바싹 다가들며 말을 이었다. “왜들 그런 눈으로 나를 보시오? 내가 무슨 시체라도 되오?” 풍검심이 앙칼진 음성으로 말했다. “네가 귀신이라고 해도 상관없다! 네놈은 정말 명이 길기도 하구나?” 화검상은 그녀를 무시하고 곧장 풍검진의 앞으로 다가섰다. “글쎄, 내가 그럼 이 나이에 벌써 죽어야만 한단 말이오?” 그들은 이미 대부분 화검상의 급증한 실력을 보았기에 감히 경 거망동하지 못했다. “네놈은 정말 살기가 귀찮아진 모양이로구나!” 풍검진의 말에, 화검상은 불쑥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럼 어서 그 보검을 내게 주시오. 자칫 날이 무디어 죽지 못할 지도 모르니.” “무슨 짓이냐?” 풍검진은 화검상이 정말로 자신의 보검을 잡으려는 것을 보고 흠칫하여 몸을 피하며 연달아 세 번의 장풍을 날렸다. 그것은 우선 몸을 피하기 위해 손을 쓴 것이다. 그 삼 장(三掌)에는 흡사 강기( 氣)와도 같은 기운이 실려 있 어서 실로 그가 무공이 이미 최상승의 경지에 올랐다는 것을 실 감하게 했다. 풍검진은 화검상이 일단 그 장력을 피할 것이고, 그러면 시간 을 벌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었다. 그와 거의 동시에 상황을 직감하고 곡검성과 풍검심 등이 좌우 에서 각기 장풍을 날려 화검상을 공격해왔다. 이미 말했듯이 그것들은 역시 풍검진에게 시간을 벌어주기 위 한 것이다. 그러나 이때 화검상의 신형(身刑)은 마치 환상처럼 움직였다. 그는 장풍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거의 몸으로 맞부딪쳐가는 것 과도 같았다. 그러나 기이하게도 격타음이나 그가 뒤로 밀리는 기색은 없고 오히려 그 여파로 그의 신형은 더욱 빠르게 앞으로 다가가는 것 이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야그 출력일 :: 98/10/16 ───────────────────────────────────── 제 목 : [화산] 2 권 제 21 장 - 2 그것은 화검상이 보법을 펼치면서 교묘하게 그 장력들을 역이 용했기 때문이었다. 이파파와의 격전 이후 그는 상대의 초식을 피하지 않고 맞부딪 쳐본 것인데 그것은 잘 통하고 있는 것이다. 화검상의 신형은 이내 다시 물러나는 풍검진의 앞에 바싹 다가 섰고 좌수로 난화불혈수(蘭花拂穴手)를 펼쳐 그의 맥문을 제압했 고 옥수로는 보검을 빼앗아 그의 목을 겨누었다. 풍검진은 설마 화검상이 그렇게 빨리 자신의 앞에 다가올 줄은 몰랐기 때문에 대항 한번 변변히 해보지 못하고 당하고 말았다. 아니 설령 그가 대항했다고 해도 그의 무공이 이파파보다 월등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모두 멈춰라! 아니면 자칫 이 보검으로 목이 베일지도 모르 니까!” 주위의 사람들은 그 시퍼런 검광(劍光)을 발산하는 보검이 풍 검진의 목에 겨누어지자 경악하며 모두 손을 거두고 물러났다. 풍검진은 누가 뭐라고 해도 풍천비가 가장 아끼는 그의 손자였 기 때문이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일 저 보검이 실수로 움직여져서 풍검진 이 상처를 입기라도 하면 그건 정말 큰일인 것이다. 풍검진은 안색이 거뭇하게 변했고, 화검상은 그의 맥문을 놓아 주고 여유있게 웃으며 말했다. “생각이 바뀌었소. 혹시 이 보검도 날이 무딜지 모르니 그대 가 한번 먼저 시험해보는 것이 어떻겠소?” 풍검진은 장래가 촉망되는 화산파의 보기 드문 기재(奇才)로서 여직껏 그와 같은 낭패를 당한 적은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는 수치심에 눈을 악독하게 빛내며 말했다. “어서 나를 죽여라!” 화검상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서두를 것은 없소. 보아하니, 이 검은 제법 예리한 듯 하오. 자칫 목이 반쯤 잘리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겠소? 게다 가……, 솔직히 앞길이 구만 리처럼 창창한 그대가 나와 함께 오 늘 죽어버린다면, 나는 어쩔 수 없겠지만 그대는 조금 아쉽지 않 겠소?” 풍검진은 야망이 있는 청년인 만큼 생에 대한 애착도 대단하기 마련이었다. 그는 결코 이렇게 허망하고 무의미하게 죽고 싶지는 않을 것이 다. 음독한 시선으로 화검상을 노려보다가 풍검진은 말했다. “네놈이 원하는 게 뭐냐?” 화검상은 고개를 가볍게 저으며 말했다. “뭐 별거 아니오. 나는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갑자기 장 문인이 또 보고 싶어지는구려. 그래서 그대가 잠시 나와 다정하 게 장문인을 만나러 가면 되오.” 그때였다. 갑자기 뒤쪽에서 차가운 음성이 들려왔다. “갈 것 없다!” 바로 화산파 장문인 풍천비(馮天飛)였다. 그는 이파파 등과 함께 다가와 있었는데, 화검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몹이 괴이쩍어 보였다. 화검상은 전혀 놀라지도 않고 고개를 돌리더니 풍천비를 향해 말했다. “아, 그렇군! 우리는 굳이 그런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겠군?” 풍검심이 문득 놀란 어조로 소리쳤다. “이 개자식, 검을 똑바로 들지 못해? 우리 오빠가 다쳤잖 아?” 화검상이 고개를 돌리는 사이에 검에 약간 힘이 가해졌는지 풍 검진의 목에서는 가느다란 혈흔이 흐르고 있었다. 화검상은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말했다. “그 보검이 정말 예리하기도 하군! 하지만 누군 개자식이고 누군 사람자식이어서야 되겠소?” 이미 주위에는 삼십여 명의 제자들이 모두 몰려들어 이 놀라운 광경을 주시하고 있었다. 풍천비는 다소 음험한 표정이 되어 말했다. “네가 원하는 게 뭐냐?” 화검상은 미소하며 풍천비를 마주 바라보다가 말했다. “나는 지금 다정하게 이 사람과 검을 누가 빨리 뽑나를 내기 하고 있었소. 그런데 웬일인지 그는 검을 뽑는 속도가 느려 내가 대신 뽑아준 것이오.” 풍천비는 음침한 표정으로 차갑게 말했다. “네가 지금 저지르는 죄가 어떤 것인지 알고나 있느냐?” 화검상은 손을 크게 내저었다. “말하지마시오. 만일 내가 놀라 손을 떨게 되면 위험해질지도 모르니까.” 풍천비는 음험하게 냉소했다. “네놈은 비단 무공이 늘었을 뿐만 아니라 훨씬 대담해졌구 나?” 화검상은 그의 얼굴을 주시하다가 말했다.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던데, 당신은 그 얘기를 들어봤소? 나는 비록 쥐는 아니지만 최소한 혼자 그냥 죽지는 않 을 것이오.” 그때 풍검심이 갑자기 장검으로 뒤에서 화검상의 등을 찔러왔 다. 화검상은 모르는 듯했으나 이내 좌수를 후려쳐 그녀를 날려버 렸다. “아!” 풍검심은 일순 짧은 비명 소리와 함께 장검을 떨어뜨리고 입으 로 피를 쏟으며 칠 장이나 날려갔다. 화검연이 급히 달려가 그녀를 받아들었으나 그녀는 이미 심각 한 내상을 입고 혼절해 있었다. 화검상은 이번에 자신의 능력을 다소 보여주었다. 비록 가벼운 일장(一掌) 같았지만 그 속에는 고수들만이 알아 볼 수 있는 심오한 변화가 내포되어 풍검심의 무공이 지금의 두 배라고 해도 피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제자들은 대부분 화검상이 좌장(左掌)으로 가볍게 풍검심을 날 려 버리는 것을 보고 그의 달라진 무공에 경악한 표정들이었다. 화검상은 이어 풍검진의 목에 다시 하나의 혈흔을 만들며 말했 다. “나는 솔직히 당신과도 한번 겨뤄보고 싶소. 당신은 그럴 용 의가 있소?” 풍천비는 이미 이파파에게서 약간의 상황설명을 들었고, 또한 조금 전의 한 수를 보았기 때문에 화검상의 무공이 이미 자신의 아래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사실 이러한 현실을 믿을 수가 없고 또한 믿고 싶지도 않 았다. 아니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비단 그뿐만이 아 니며, 대부분 화검상의 불가사의한 능력의 급증에 대해 귀신을 본 듯한 기분이 들고 있을 것이다. 풍천비는 음험한 시선으로 쏘아보며 말했다. “네놈은 그 일 때문에 일부러 나를 찾아왔다는 말이냐?” 화검상은 문득 전음으로 말했다. “나는 당신과 흥정을 하러 온 것이오. 당신은 내가 어째서 갑 자기 이렇게 무공이 높아지게 되었는지 생각해보았소?” 화검상은 이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우선 상대방의 약점을 잡아 볼까 하고도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워낙에 모든 사람에게 그의 평판이 나빠져 있으므로 어 떤 약점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었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생각해낸 것이 바로 흥정을 해보는 것이 었다. 아무리 철저하게 악독한 사람이라고 해도 자신의 이익과 욕심 에는 약한 면이 있는 법이다. 아니 오히려 그런 사람일수록 더욱 그런 욕심이 강할 수도 있 는 것이다. 무림인에게 있어 무엇보다도 강한 욕심을 일으키는 것은 무공 에 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 야그 출력일 :: 98/10/16 ───────────────────────────────────── 제 목 : [화산] 2 권 제 21 장 - 3 화검상은 자신의 현재의 위치와 상황들을 종합하여, 방편으로 그런 수단이라도 부려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물론 그것이 통할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그렇다고 지금 가만 히 있을 수는 더욱 없는 일이다. 지금 만일 풍천비의 말을 듣지 않으면 즉시 반도로 몰아 즉결 처단하거나 파문축출할 것이고, 만일 말을 듣는다면 즉시 무공을 폐지하여 그를 처단해버릴 것이 아니겠는가? 상황은 이제 화산에 있을 때와는 달라서 극단적으로 돌변해 있 는 것이다. 일단 강호로 나온 이상 화검상의 죄와 죽음에 대한 이유를 얼 마든지 찾을 수가 있을 것이므로, 풍천비는 말했다. “네놈은 무슨 특별한 일이라도 있었단 말이야?” 화검상은 다시 전음으로 말했다. “나는 물론 특별한 일이 있었소. 만일 당신이 한 가지 조건만 들어준다면 나는 당신도 그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 겠소.” 현재의 상황에서 화검상과 풍천비 등의 친척관계는 당연히 이 미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그들은 원수지간이 된 것이고, 그러한 관계는 화 검상이 알기 훨씬 이전부터 형성되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풍천비는 다시 음험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어떻게 네놈을 말을 믿을 수가 있겠느냐?” 화검상은 말했다. “당신도 알고 있겠지만, 나는 조부의 유품들을 갑자기 발견하 게 되었던 것이오. 조부는 과거 내게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 던 터라 오랜 시일에 걸쳐 나를 치료할 방법을 강구해내었던 것 이오.” 그것은 물론 반은 사실이고 반은 거짓말이다. 하지만 화검상으로서는 이제 그런 방법을 사용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풍천비는 슬쩍 화검상의 허리춤에 걸려 있는 장생보검(長生寶 劍)을 주시하더니, 음침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너는 모든 사실을 알고 있을 텐데 무슨 흥정을 하겠다 는 말이냐?” 화검상은 의도한 대로 잘 이끌어나가다가 문득 이 말을 듣고 다소 어리둥절해졌다. ‘사실을 다 알고 있다면 흥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니 이게 대체 무슨 말인가?’ 그것은 워낙 민감하고도 중대한 사안이었기 때문에 그 어리둥 절한 표정이 그대로 화검상의 얼굴에 드러났다. “그럼 내가 모르는 사항이 또 있기라도 하다는 말이오?” 풍천비는 도리어 마주 의아해 하다가 말했다. “그럼 너는 전혀 모른다는 말이냐?” 화검상은 내심 어이가 없어지며 도리어 쓴웃음이 나왔다. ‘대체 이자가 무슨 말을 하고 있단 말인가? 과거의 일에 정말 로 무슨 가려진 비밀이라도 있었다는 말인가?’ “당신은 대체 갑자기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이오?” 풍천비는 음침한 표정을 짓다가 문득 속으로 생각을 굴렸다. ‘하긴 그 일은 극비리에 진행된 것이고, 화천괴(華天魁)도 그 일을 미리 알고 있었을 리가 없다. 미리 알았다면 그렇게 당하지 도 않았겠지. 결국 그는 그 사건 이전에 저놈을 위해 상황도 모 르면서 뭔가 남겼다는 말인데……, 하긴 저놈이 지금 그 사실을 알고 있다고 해도 하나도 달라질 것은 없다!’ 이어 풍천비는 다시 말했다. “그럼 너는 그곳에서 단지 보물만 얻었다는 말이렸다?” 화검상은 마음을 다시 가라앉히고 대꾸했다. “조부는 내가 다시 본래의 기재를 되찾아 활약해주기를 기대 하고 계셨었소. 그것은 그런 병을 치료하는 특수한 비법을 적은 책자였는데, 내가 이미 다 암기하고 소각해버렸소!” 풍천비는 그 말을 듣자 안색이 가볍게 변했다. 그도 이미 무림고수이므로 한마디만 들어도 그 내용을 거의 짐 작하고 있었다. 병을 치료하는 목적이라고 해도, 그것은 효능이 뛰어나면 일반 의 무학증진에도 이용할 수가 있지 않겠는가? 일반적으로 무학이 갑자기 증진되는 경우란 없는 것이 정설이 지만, 그러나 그럴수록 더욱 그런 특별한 진전을 바라게 되는 것 이 사람의 심리다. 과거라면 쉽게 믿지 않았겠으나 그 특별한 진전의 모습은 지금 분명히 화검상의 몸에 의해 나타나 있지 않은가? ‘혹시 그자가 그 비법(秘法)을 배웠었을까? 아니야! 그자는 죽기 직전에 그것을 발견하고 저놈에게 남기기만 한 것이 틀림없 어.’ 지금의 상황에서 아무리 바보라고 해도 화검상의 말을 그대로 믿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무학에 대한 갈망은 풍천비로 하여금 최소한 어떤 비법 은 있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만들었다. 더러 어떤 사람들은 그런 이유로 목숨을 걸기도 하는 것이다. 풍천비는 음침하게 눈을 빛내다가 말했다. “너는 물론 그 내용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는 말이렸다?” 화검상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나는 기억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체득하고 있소. 당 장이라도 필요하다면 또 하나의 비급을 만들어줄 수도 있소.” 풍천비는 잠시 생각해보는 듯하다가 전음으로 말했다. “너의 그 조건이란 뭐냐?” 화검상은 미소하며 말했다. “나의 조건이란 바로 당신이 앞으로 어떠한 이유에서건 나를 해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오.” 풍천비는 안색이 변하여 전음으로 소리쳤다. “그런 얘기는 이제 전음으로 해라!” 하지만 화검상은 모르는 척 다시 말을 이었다. “나는 사실 본파의 이 비법(秘法)을 몸에 지니고 있으면서 남 기지도 못하고 죽고 싶은 생각이 없소. 그러기엔 이 비법이 너무 나도 아깝기 때문이오. 믿기지 않겠지만……, 나처럼 무학진전이 빠른 사람의 얘기를 들어보았소?” “이 녀석, 전음으로 하라니까! 네가 계속 이런다면 나와 흥정 을 할 수가 없다!” 화검상은 여전히 들은 척도 않고 말을 계속했다. “하지만 사실 또한 나는 이런 대접을 받으면서까지 비법을 누 구에게 건네주고 싶은 생각은 없소. 그것은 이 비법이 너무도 훌 륭하기 때문이오. 사실 약간 무리한 듯하지만, 나는 본파를 사랑 하는 사람이니 그런 요구를 들어줘도 손해는 아닐 것이오.” 풍천비는 안색이 가볍게 여러 번 변했다. ‘빌어먹을, 하지만 지금의 상황에서 저놈의 생명을 며칠만 연 장해주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그와 같은 생각은 굴린 후, 풍천비는 다시 전음으로 말했다. “좋다, 그럼 어서 다른 곳으로 가자!” 화검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갈 수가 없소. 이 일은 굳이 숨길 이유가 없는 것이니, 이 자 리에서 당신이 내 조건을 수락한다는 말을 해주어야만 하오. 그 렇지 않으면 내가 어찌 안심할 수가 있겠소?” ‘이 더러운 후레자식이?’ 풍천비는 화가 나서 화검상을 험악하게 노려보다가 전음으로 말했다. “좋다! 조건을 수락하마. 하지만 네놈은 오늘 당장 그 비급을 써 주어야 한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 야그 출력일 :: 98/10/16 ───────────────────────────────────── 제 목 : [화산] 2 권 제 21 장 - 4 화검상은 미소하며 포권하며 말했다. “그렇듯 조건을 수락해주시니 매우 고맙소. 하지만 좀더 완전 한 비급을 바란다면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힐 수 있도록 며칠의 시간을 주어야만 하오.” 풍천비는 더욱 화가 나서 바라보다가 문득 음산하게 웃으며 말 했다. “네 녀석은 정말 교활하구나!” 화검상은 풍검진의 목을 겨누고 있던 보검을 치워 그의 검집 속에 넣어주며 말했다. “나는 그 방면에선 아무리 해도 장문인을 따라가긴 어려울 것 이오.” 제 22 장 법사(法師) 풍검진은 제압당한 것에서 풀려나자 즉시 화검상을 향해 발악 적으로 장령을 퍼부어댔으나, 웬일인지 화검상의 몸은 허깨비처 럼 맞아도 빗나가고 이미 멀찌감치 물러나 있었다. “풍사형, 그대는 나와 또 한번 겨뤄보려는 것이오?” 풍검진은 이제까지 당한 적이 없는 강한 수치심에 안색이 흙빛 이 되어 있다가 발작적으로 보검을 뽑아들었다. “네놈을 죽여버리고 말겠다!” 화검상은 박수를 치며 웃으며 대꾸했다. “좋은 생각이오! 대련을 하려면 사람은 으레 그런 자세를 가 져야 하는 것이오.” 풍검진은 비록 지나칠 정도로 굴욕을 당했으나 그렇다고 상황 판단을 하지 못할 바보는 아니었다. 그는 당장에라도 손을 쓸 듯이 장검을 뽑아들었으나 상대가 되 지 않는다는 것을 직감하고 있기에 정말로 손을 쓰지는 않았다. 남들이 참기 어려운 순간에 잘 참을 수 있다는 것이 바로 그의 강점인 것이다. 그것을 보고 유검하가 달려들어 수건으로 목의 상처를 감싸주 며 말했다. “그만둬요, 풍사형! 그는 인간(人間)도 아니니 굳이 상대할 가 치가 없어요.” 풍검진 그 말에 다소 위로를 받았는지 표정을 가라앉히며 검을 도로 검집에 거두었다. 약간 상심한 쪽은 반대로 화검상이었다. ‘인간도 아니라고? 하하…….’ 풍천비가 전음으로 다시 그에게 말했다. “네놈은 언제 그 일을 시작할 거냐?” 화검상은 역시 전음으로 대꾸했다. “일단 오늘밤에 만나서 대강의 준비를 논의해보도록 합시 다!” 풍천비는 잠시 더 화검상은 노려보다가 이내 사라졌다. 그가 사라지자 주위의 제자들도 이내 썰물처럼 물러가버리고 말았다. 화검상은 이제 다시 혼자 남았다. 비록 애를 써서 상황을 조금 돌려놓기는 했으나 그의 마음은 왠지 더욱 황량해진 것 같았다. 그는 그대로 서 있기도 괴로워서 그저 발길이 닿는 대로 천천 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가 그 부근을 조금 지났을 무렵의 일이었다. 갑자기 누군가가 그에게 다가오며 다소 앳된 목소리로 불렀다. “화사형! 잠깐 저 좀 보세요.” 바로 악검림(岳劍林)이었다. 화검상은 다소 뜻밖이라고 생각하다가 그녀를 보고, 약간 눈살 을 찌푸리며 말했다. “무슨 일인가?” 악검림은 다가와서 해맑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를 그렇게 두려워하지마세요. 저는 화사형의 편이니까요.” ‘이 사매가 또 위험한 말을 하는군! 어제 저녁 악검인이 나섰 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 아니던가?’ 화검상은 더욱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봐 악사매, 나는 누구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귀찮아하 고 있는 거야. 나는 악사매가 제발 내 일에 모른 척해주었으면 좋겠어.” 악검림은 다소 샐쭉해져서 눈물을 글썽이다가, 이내 다시 웃으 며 말했다. “알고 보니 화사형은 마음이 매우 약하군요! 나는 화사형이 장래에 영웅(英雄)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지금 보니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겠어요.” ‘이게 무슨 소리지? 영웅이 될 수 없을 것이라고?’ 화검상은 기실 영웅이 되고 싶은 사람도 아니었고 또한 그런 생각을 해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문득 반대로 영웅이 될 것이라고 했던 여검월을 뇌리에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이번에 출전하지 않았으니 아무래도 다소 심심하겠 군.’ 악검림은 약간 상기된 표정으로 다시 말을 이었다. “대개 영웅이란 그 자질이나 무공도 뛰어나야 하지만 두뇌도 총명하고 게다가 배짱도 두둑해야 하는 법이죠. 그들은 한두 명 의 생명쯤은 가볍게 여길 뿐만 아니라, 설령 만 명의 사람을 죽 인다고 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대담성을 갖고 있죠.” ‘이 사매가 강호의 이야기책을 너무 많이 본 모양이군!’ “그래서 내가 영웅이 못된다는 말인가?” 악검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화사형은 비록 무공도 뛰어나고 또한 총명한 점도 있지만 마음이 너무 약해요. 그래서는 도저히 영웅이 될 수 없을 거예요. 그러나, 나는 생각이 조금 달라서 반드시 영웅이 좋을 것 은 없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화사형처럼 마음 약한 면이 있는 것 이 더욱 인간적이죠. 대체 만 명을 죽이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면 그건 대담하기는 하지만 잔인하기도 한 것이 아니겠어 요? 나는 오히려 영웅보다는 인간적인 사람이 더 좋아요.” 화검상은 처음에는 엉뚱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야기를 들 을수록 왠지 그럴 듯하다고 생각되어 말했다. “그럼 내가 어째서 마음이 약하다고 하는 것이지?” 악검림은 화검상의 마음이 움직이는 듯하자 입가에 미소를 띠 며 말했다. “화사형은 지금 제가 공연히 화사형 때문에 피해를 입을까 두 려워서 귀찮다고 말한 것이 아닌가요?” 화검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게 아니야.” 악검림은 말을 받았다. “그게 아니라면 그럼 저의 가족에게까지 피해가 돌아갈까봐 그러는 모양이로군요? 하지만 저는 이미 그런 것까지 모두 생각 하고 있어요. 저도 바보는 아니니까요. 하지만 화사형이 저의 자 유까지 속박할 권리는 없는 것이 아니겠어요?” 화검상은 그만 할말이 없어지기도 하여 내심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긴 그렇지만……. 무슨 일이지?” 악검림은 자신의 주장이 먹혀들어갔다고 생각되자 이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실은 제가 방금 전에 한 가지 이상한 광경을 보아서 화사형 께 자문을 구하고자 하는 거예요.” ‘자문을……?’ 화검상은 다소 귀찮은 생각이 들었으나 기왕에 말이 길어졌으 니 듣지 않을 수가 없어서 말했다. “어떤 광경을 보았다는 거지?” 악검림은 즉시 화검상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그건 말씀드리기 어렵고, 우선 거기에 가봐야 알게 될 거예 요.” 화검상은 그녀가 거침없이 손을 잡아버리자 다소 놀랐으나, 또 한 다른 곳으로 가봐야 한다는 말을 듣고 더욱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 와서 가지 않겠다고 할 수는 없는 일이어서 슬그 머니 손을 빼며 말했다. “그럼 악사매가 앞장서도록 해.”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 조 야그 출력일 :: 98/10/16 ───────────────────────────────────── 제 목 : [화산] 2 권 제 22 장 - 1 악검림은 안쪽이 아니라 화검상의 좌측으로 나 있는 작은 길로 이끌었다. 그 길은 산세가 다소 험한 계곡 쪽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악검림은 앞서서 걸음을 옮기면서 고개를 돌려 웃으며 말을 이 었다. “사실 저는 약간 소극적이어서 친구를 잘 사귈 수가 없었어 요. 다른 사자매들은 서로 어울려 잘 노는데 저는 매일 방안에서 틀어 박혀 있는 편이었죠. 그래서 방금 전에도 공연히 혼자 이곳 저곳 구경하다가 그곳을 발견하게 되었던 거예요.” 화검상은 왠지 마음이 불안해지기는 했지만 기왕에 함께 나선 길이니 미소하며 말을 받아주었다. “내가 보기에 악사매는 성품도 쾌활하고 마음씨도 고운 편이 니 만일 친하게 지내려고 한다면 모두들 좋아할 거야.” 악검림은 그 말을 칭찬으로 들었는지 다소 상기된 표정을 짓다 가 걸음을 늦추어 화검상과 나란히 걸으며 다시 말했다. “저도 사실 그 문제를 많이 생각해보았는데, 저에게도 문제가 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도 문제는 많다고 생각해요. 그들은 정말 로 친구가 되려 하기 보다는 자신들의 이익만 생각하고 혹은 다 른 사람들에게 아첨을 하기에만 바쁘죠.” 화검상은 웃으며 말했다. “그건 누구나 마찬가지야. 정말로 깨끗하게 살고 싶으면 세속 을 떠나야 하는 거지. 게다가 설령 그렇게 했다고 하더라도 자기 자신이 정말로 깨끗한가 하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거든?” 악검림은 화검상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도 그런 것은 알아요. 사람이 불완전한 만큼 서로 이해하 며 넓고 따뜻한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도요. 하지만, 정말로 사람들이 나빠져가고 또한 좋은 사람들이 매도되어갈 때 나도 그 나쁜 대열에 끼고 싶지는 않아요. 정말로 세상에 정의(正義)가 존 재하지 않는다면 협의(俠義)라는 두 글자도 불필요한 것이 아니 겠어요?” ‘이 사매가 꽤나 어려운 얘기를 꺼내는군!’ 화검상은 마음이 약간 따분해졌으나 이내 대꾸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을 모두 나쁘다고 매도하는 것도 외톨이가 되기 쉽지. 정말로 이 세상을 잘 살아나간다고 하는 것은 쉽지 않은 노릇이야.” 두 사람은 마악 이제 그 모퉁이를 돌아 계곡으로 들어서고 있 었기 때문에 전면의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계곡의 안쪽에는 작고 거의 다 쓰러져가는 허름한 암자가 자리 하고 있었다. 악검림은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가 문득 결심한 듯 말을 이었 다. “저는 사람들이 무조건 화사형을 해치려고 하는 것은 옳지 않 다고 봐요. 그것은 나쁜 짓이죠. 어떤 종류의 악은 용서할 수 없 기도 해요. 어차피 강호인(江湖人)은 내일을 기약하기 어려운 삶 을 살고 있기 때문에, 간혹 용기를 내어 주변사람들이 피해를 보 게 된다고 해도 그것은 도리어 가치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화검상은 어딘가 의미가 깊은 말인 듯해서 가슴이 뜨끔했으나, 겉으로는 모르는 척 웃으며 대꾸했다. “그러니까 악사매는 알고 보니 영웅을 선호하고 있군그래?” 악검림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하지만 왠지 저는 화사형처럼 인간적인 분이 더욱 좋아요.” ‘혹시 이 악사매가 지금 나를 좋아한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화검상은 왠지 가슴이 가볍게 뛰고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한 가지 부담을 더 안게 되었다는 걱정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화검상은 어딘가 허전하던 마음이 따뜻한 기운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이 악검림의 눈빛이 누구보다도 진실되게 느껴졌기 때 문일 것이다. 화검상은 이유도 모르게 갑자기 이상해지기 시작하는 마음을 감추기라도 하듯, 전면으로 다가온 그 허름한 암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바로 여긴가?” 악검림은 마치 화검상의 그런 마음의 변화를 짐작하는 듯 환하 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저는 바로 이곳에 왔다가 그 이상한 사람을 보게 된 거죠.” ‘이상한 사람? 아까는 이상한 광경이라더니……?’ 화검상은 웃으며 먼저 안으로 들어섰다. “자, 그럼 그 이상한 사람을 보기로 할까?” 악검림은 묵묵히 그의 뒤를 따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이 작은 암자의 내부구조는 간단하여 하나는 법당이고 그 옆은 숙소인 것 같았다. 두 사람이 바라보고 있는 그 법당의 내부에는 온갖 먼지가 가 득한 가운데 한 명의 노승이 이쪽을 바라보며 좌선에 들어 있었 다. 화검상은 내심 고개를 갸웃거리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저 평범한 화상일 뿐인데 뭐가 그리 이상하단 말인지 모르 겠군……!’ 뒤쪽의 불상이 있는 자리가 텅 비어 있는 것이 다소 뜻밖이긴 했지만 별이상할 일은 아니고, 노승의 얼굴이 지나치게 못생겼고 또한 쭈글쭈글하다는 것 이외에는 별로 이상할 것이 없는 듯했 다. 가만 보니 그 노승의 발 밑에 마치 해골과 뼈다귀로 만들어진 듯한 목탁이 놓여 있는 것이 다소 이상해 보이기는 했다. 화검상은 의아해져서 다시 전음으로 악검림에게 물었다. “저 목탁이 이상하단 말인가?” 악검림은 전음으로 대답했다. “그는 아까 내게 목탁이 왜 저런 모습인지 알면 자기가 열 냥 을 내고, 모르면 나더러 열 냥을 내라고 했어요.” 강호에는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고, 혹은 저렇게 선문선답을 하는 것을 취미로 삼는 사람들도 있다. 악검림은 아마도 그 중의 한 사람인 저 화상에게 걸려든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열 냥을 냈는가?” 악검림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는 잠시만 시간을 달라고 했고, 그는 자신을 방해하지말고 나갔다 오라고 했어요.” 이런 선문선답으로 생활해가는 사람들은 일부러 신비한 척하며 묘하게 사람들의 호기심을 이끌고, 게다가 간혹 정곡을 찔러 감 탄을 자아내게 하기도 한다. 화검상은 귀찮은 일이기는 하지만 이 악사매를 위해 나서주어 야겠다고 생각하고 말했다. “사매는 이 문제로 내게 자문을 구하려던 것이오? 그럼 그 문 제가 아직도 유효한지 그에게 물어보오.” “알았어요.” 악검림은 전음으로 대답하고 바로 그 노승의 앞으로 바싹 다가 가 말했다. “대사님, 아까의 그 질문은 아직도 유효한가요?” 노승은 겉으로는 좌선에 든 척했지만 기실은 그렇지도 않은 모 양이었다. 악검림이 질문을 하자마자 눈을 슬그머니 뜨고 화검상의 위아 래를 살피더니 퉁명스럽게 말했다. “흥, 이 법사(法師)는 허튼 소리는 하지 않아!” 악검림은 재미있어 죽겠다는 표정을 하며 화검상을 바라보았 다. “호호, 글쎄 아직도 유효하대요.”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 야그 출력일 :: 98/10/16 ───────────────────────────────────── 제 목 : [화산] 2 권 제 22 장 - 2 화검상은 전음으로 그녀에게 다시 말했다. “악사매의 생각은 어때? 지금 한번 해볼 텐가?” 악검림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에요.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유를 알 수 없어요. 게 다가 어떤 대답이라도 그가 아니라고 하면 그만일 테니까요.” 화검상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런 종류의 질문들이 더러 있는데, 이렇게 말해보면 어때? 내 대답에 틀렸다고 말할 것이기에 그렇다고. 그러면 그는 결국 틀렸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 아닌가?” 악검림은 내심 고개를 끄덕이며 전음으로 말했다. “그래요! 그럼 그는 맞았다고 해도 돈을 줘야 하고 틀렸다고 해도 결국 내가 맞힌 것이기에 돈을 줘야 하겠군요?” 사실 그것은 말장난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 셈이지.” 화검상이 내심 쓴웃음을 짓자, 악검림은 정말로 노승에게 말했 다. “그럼 지금 대답하겠어요. 그건 저의 말이 틀렸다고 대사님이 말할 것이기에 저 목탁도 잘못되어 있는 것이에요. 그렇지 않나 요?” 그 노승은 그 말을 듣자 불쑥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어서 은자를 이리 주게!” 악검림은 안색이 가볍게 변했다. “저의 말이 맞았나요, 틀렸나요? 그 말씀을 하셔야 저도 은자 를 드릴 것이 아닌가요?” 화검상은 이런 일로 열을 올리는 그녀의 모습이 문득 매우 순 수하고 귀엽게 느껴졌다. 이런 일은 속임수가 많아서 이기기 어렵고, 또한 항변을 한다 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닌 것이다. 그 노승의 말은 약간 걸작이었다. “자네의 그 대답은 맞은 것도 틀린 것도 아니었네. 하지만 알 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 모르고도 맞는 말을 할 수 있고 알면서 도 틀린 말을 할 수 있네. 어쨌든 내가 원한 것은 알고 있는가 하는 점이었으니 자네는 어서 열 냥을 내놔야만 하네.” 그러니까 설령 아무리 맞는 말을 해도 그저 노승이 모르고 있 다고만 하면 은자를 내놔야 한다는 식이었다. 화검상은 금세 붉게 물든 악검림의 얼굴을 바라보며 자신이 앞 으로 나섰다. “대사, 소생이 그 문제를 풀어봐도 되오?” 노승은 슬쩍 화검상을 돌아보더니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본 법사의 철칙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다는 것이네. 다만 우선 이쪽의 계산부터 끝내야 하겠지.” 은자 열 냥은 적지 않은 액수이다. 하지만 악검림이 고작 그것 때문에 저러고 있지는 않을 것이 다. 화검상은 품속에서 열 냥짜리 은원보 한 개를 꺼내주고는 말했 다. “나는 알고 있소.” 노승은 얼른 은원보를 받아 품속에 집어넣더니, 눈살을 찌푸리 며 말했다. “그럼 저 목탁은 왜 저런 모습인가?” 화검상은 서슴없이 대답했다. “그건 대답할 수가 없소.” 노승은 더욱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왜 대답할 수가 없는가?” 화검상은 대답했다. “대답할 수가 없기 때문이오.” 악검림은 기실 호기심이 대단한 여자였다. 그녀는 자신이 어이없이 화검상의 앞에서 창피를 당했기 때문 에 얼굴이 빨개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화검상이 그녀를 위로해주기 위해 나서서 노승을 곯려주는 것을 보고 마음이 풀어져서 킥, 하고 웃고 말았 다. 노승은 잠시 화검상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말했다. “하지만 자네는 이미 대답할 수가 없다고 많은 말을 하지 않 았는가?” 화검상은 말했다. “그것은 내가 잘못 말한 것이오.” 노승은 눈썹을 꿈틀거렸다. “알면서도 잘못 말했다는 말인가?” 화검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그 대답이 마치 아까 노승이 말했던 말과 비슷하여 악검림은 다시 한번 웃고 말았다. 노승은 다시 말했다. “그렇다면 어째서 알면서도 잘못 말했다는 말인가?” 화검상은 대답했다. “그건 그럴 수밖에 없기 때문이오.” 노승은 말했다. “그럼 어째서 자네는 말하지 않고 가만히 있을 생각을 하지 못했는가?” 화검상은 왠지 안색이 가볍게 변하며 대답했다. “말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오.” 노승은 말했다. “어째서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가?” 화검상은 대답했다. “말하지 않으면 알 수가 없기 때문이오.” 노승은 화검상을 주시하며 말했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가? 말이 거짓인데도 그것을 통해 알 수가 있겠는가?” 화검상은 다소 놀란 듯 잠시 생각해보는 듯하다가 말했다. “그것은 완전하지 못하오.” 노승은 말했다. “그럼 완전한 방법을 알고 있는가?” 화검상은 말했다. “알고 있지만 말할 수는 없소.” 노승은 목탁을 가리켰다. “그럼 저 목탁의 속은 어떻게 생겼는가?” 화검상은 대답했다. “그건 공(空)이오.” 노승은 말했다. “그걸 굳이 그렇게 죽은 물건으로 감쌀 필요가 있었을까?” 화검상은 문득 한 가지 일이 생각나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만 야그 출력일 :: 98/10/16 ───────────────────────────────────── 제 목 : [화산] 2 권 제 22 장 - 3 “그럴 필요가 없었을 것이오. 하지만 그 의미만 알고 있다면 상관은 없다고 생각하오.” 이때 갑자기 그의 곡선적 무공에 관한 생각이 떠오른 것은 무 슨 까닭에서일까? 기실 곡선적이란 말은 곡선 그 자체도 아니고 그 무엇도 아니 다. 그것은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기에 그저 곡선적이라고 이름 을 붙여본 것이다. 그 이름이 적절하다고는 할 수 없다. 게다가 그 이름대로 따라가다 보면 오히려 직선적으로 되기 쉽 다. 말이 아니고 의미를 따라야 하는데, 과연 어떻게 그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이다. 화검상은 이미 의미를 알고 이름을 붙여놓은 것이기에 목탁을 보자 그 생각이 난 것이다. 그것을 보기 좋게 하기 위해 동그란 물체로 외벽을 둘러친다 면, 얼핏 그것은 연상하기 쉽게 느껴진다. 하지만 본래의 의도와는 달리 사람들은 그 속의 공(空)은 보지 않고 외벽인 물체만 바라보게 되는 것이니, 곡선적이란 말도 그 곡선적이란 말을 보지말고 그 속에 숨은 의미를 알아야만 할 것 이다. ‘곡선적이란 즉 공(空)이란 의미이다. 어떤 초식이나 흐름에도 얽매이지 않는 것인, 얽매이지 않으므로 장애가 없고, 장애가 없 으므로 살아서 무한한 변화(變化)을 일으킬 수가 있는 것이다. 즉, 어떤 초식이나 흐름도 공으로 보게 되면 거기에 얽매이지 않 으므로 곡선적인 변화에 바르게 대응하여 가장 효율적인 곡선적 무공을 펼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군? 이째 서 이 노승은 하필이면 마침 이런 식의 말을 꺼내는 것일까?’ 화검상이 내심 그런 생각을 하며 의아해 하고 있는데, 문득 그 노승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말했다. “자네는 과연 그것을 알고 있군.” 이어 품속에 넣었던 은원보를 다시 바닥에 내려놓으며 목탁을 들고 밖으로 나가버리는 것이었다. 악검림은 처음에는 화검상이 그저 장난으로 대꾸하는 줄로 알 고 있다가 점차로 분위기가 왠지 심각해지는 듯하여 어리둥절해 하고 있었는데, 이내 느닷없이 노승이 은자를 도로 내려놓고 나 가버리자 그만 약간 어안이 벙벙해지고 말았다. 화검상은 여전히 심각한 표정으로 그 은자를 내려다보고 있었 다. 악검림은 더욱 의아해져서 화검상에게 말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죠?” 화검상은 그녀를 바라보며 낮은 한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저었 다. “나도 잘 모르겠어. 정말 이상한 사람이로군!” 악검림은 화검상의 안색을 살피다가 가볍게 웃으며 은원보를 그의 손에 쥐여주고 손을 잡아 이끌었다. “이런 일은 그냥 재미삼아 해보는 것이니 너무 그렇게 신경 쓰지마세요. 자, 그만 돌아가요!” 화검상은 은원보를 도로 품속에 넣고 그녀를 따라 밖으로 나왔 다. 악검림은 주위를 둘러보다가 의아한 듯 말했다. “아, 한데 방금 나간 그 노승은 어디로 갔죠?” 그 노승이 갑자기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것은 화검상도 이미 알 고 있었다. 화검상의 무공은 이미 범상치 않아서 일반인은 도저히 그 기척 을 숨길 수가 없다. 그런데 그 노승은 밖으로 나가는가 싶더니 이내 기척이 사라져 버렸던 것이다 그것은 그 노승의 무공이 높은 경지가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주위를 좀 둘러보고 올까요?” 악검림의 말에 화검상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럴 필요 없어. 그 노승은 이름을 감추고 살아가는 강호이 인(江湖異人)이었던 모양이야. 지금 쫓아가도 찾을 수가 없을 거 야.” 악검림은 그만 놀라 입이 딱 벌어졌다. “뭐라고요? 그럼 우리가 금방 강호의 이인을 만났었다는 말인 가요?” 화검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최소한 평범한 사람은 아니었을 거야. 정말 천하는 넓고 인 물은 많군……, 그런 사람을 또 만나게 될 줄이야!” 악검림은 의아해 하며 말했다. “아까 그 노승이 한 말이 그렇게 대단한 것이었나요?” 화검상은 또다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아마도 갑자기 그런 습관이 붙게 된 모양이었다. “그저 하는 말이었는지도 모르지. 우연의 일치였을 수도 있 고……, 어쨌든 천하가 넓다는 것은 새삼 실감한 셈이 되었군!” 이어 화검상은 표정을 풀며 일행이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 다. 악검림은 그 노승이 했던 질문의 해답에 대해서 묻고 싶었지만 다시 화검상이 심각해질까봐 일단 참으며 그 뒤를 따랐다. 화검상은 잠시 후에 문득 옆으로 고개를 돌리며 웃으며 말했 다. “악사매는 이제 궁금증이 좀 풀렸나? 하지만 아직 내가 만족 스런 자문을 해준 것은 아니겠지?” 악검림은 손을 내저으며 웃었다. “그런 식의 대답이 정답이었다면 나는 자문을 받아도 모를 거 예요. 그러니 우리 계산이나 제대로 해요.” 화검상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계산이라니?” 악검림은 눈빛을 반짝 빛내며 그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저는 이번에 열 냥을 잃었고, 화사형은 반대로 열 냥을 땄어 요. 그 노승은 본전이겠지만 결과적으로 제가 화사형께 잃은 셈 이니, 오늘 저녁에는 제가 그 은자를 빌린 대가로 한턱내도록 하 겠어요. 괜찮죠?” ‘정말 계산을 제대로 하는군!’ 화검상은 미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야 안 될 것은 없지. 하지만 악사매가 과연 시간을 낼 수 있을까?” 악검림은 웃으며 말했다. “저에 대해서는 너무 걱정하지마세요. 제가 만일 화사형으로 인해 화를 입게 된다고 해도 그건 오히려 의미있는 일이 아니겠 어요?” ‘아무리 똑똑한 척해도 여전히 순진한 구석은 감출 수가 없 군. 나는 혹시 이 순진한 사매를 이용하려고 하는 것이 아닐 까?’ 화검상은 내심 가볍게 한숨을 내쉰 뒤에 웃으며 말했다. “자, 이제 떠날 시간도 거의 다된 것 같으니 악사매도 자기 위치로 돌아가봐야지?” 악검림은 문득 품속에서 한 조각의 건량으로 말린 육포를 꺼내 화검상에게 건네주었다. “드세요! 아직 식사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저녁때 다시 봐요!” 이어 악검림은 환하게 웃으며 신법을 펼쳐 앞질러 일행 쪽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화검상은 마치 사슴처럼 달려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문득 가볍게 탄식하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정말 나는 마음이 흔들리고 있는 것일까? 대체 그녀가 어째 서 유독 나에게 잘 대해주고 있는지 모르겠군?’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 야그 출력일 :: 98/10/16 ───────────────────────────────────── 제 목 : [화산] 2 권 제 22 장 - 4 악검림이 준 육포를 입에 넣고 씹으면서 천천히 일행이 있는 대웅전 쪽으로 걸어가니, 이윽고 제자들은 모두 휴식을 끝내고 서둘러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화검상은 외톨이인데다가 특별히 맡은 임무도 없어서 본래부터 한가했고, 지금은 그냥 떠나기만 하면 되는 입장이었다. 아까 중상을 입은 풍검심은 그 동안 치료를 받았는지 다소 창 백한 안색이었지만 밖에 나와 있었고, 풍검진도 목에 흰 천을 감 은 채 유검하 등과 함께 있었다. 이제 그들 중에서 화검상의 경이적인 무공실력을 모르는 사람 은 거의 없게 되었다. 모두들 냉랭해진 시선들을 상관하지 않고 그들의 대열에 서려 고 하니, 문득 방귀춘이 어색한 듯이 웃으며 옆으로 다가왔다. “나를 또 감시하려는 것이오?” 화검상의 말에, 방귀춘은 다소 어색한 듯 음침하게 웃으며 대 꾸했다. “나는 자네의 동행인이 되었네, 우리는 저 대열에 설 필요가 없네.” 화검상은 가볍게 냉소했다. “우리는 또 중간에 볼일을 보러 숲속으로 들어가야만 하오?” 방귀춘은 음험하게 눈을 빛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이미 충분히 볼일을 보았으니 오후엔 그런 일이 없을 것일세.” 풍천비와 장로들이 나오면서 일행은 천천히 밖으로 향하기 시 작했다. 풍천비는 화검상을 한차례 주시한 다음, 즉시 출발 지시를 내 렸다. 오후에는 그다지 바쁜 일이 없으므로 일행은 다소 여유을 갖고 신법을 펼쳤다. 부상을 입은 풍검심은 희검연 등의 부축을 받고 있었는데, 내 상이 벌써 제법 호전되었는지 신법을 펼치는 데는 지장이 없어 보였다. 그녀는 화검상이 대열의 옆에서 기다리고 있는데도 전혀 바라 보지도 않았다. 단지 악검림이 가끔 그를 향해 시선을 던질 뿐이었다. 산 아래쪽으로 내려가니 분주히 위쪽으로 올라오기 시작하는 화상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마도 그들은 잠시 돈을 받고 절을 빌려준 다음에 내려갔다 올라오는 길인 모양이었다. 화검상은 그들을 보자 문득 아까 만났던 그 노승을 뇌리에 떠 올렸다. 그 노승은 다시 생각해봐도 비범한 사람임에 틀림없었다. 이 넓은 천하(天下)에서, 그와 같은 비범한 사람들을 또 얼마나 만나게 될 것인가? 충분히 휴식을 취한 탓인지 대부분의 제자들이 활력이 넘쳤으 나, 또 오십여 리쯤 가자 삼대제자들이 지치는 기색이 역력해 보 였다. 풍천비는 지시를 내려 일이대의 제자들로 하여금 그들을 부축 해 가라고 했다. 대개 부축을 한다는 것은 손을 잡고 진기를 보내주는 일인데, 진기가 넉넉해지면 다시 기력을 회복하여 계속 달릴 수가 있는 것이다. 이번 출정에 거치적거리기 쉬운 삼대제자들을 동행시킨 것은, 윗사람들의 수발을 들게 하기 위함도 있지만 동량들이기 때문에 강호경험을 시켜주려는 것이었다. 다시 오십여 리쯤 나아갔을 때의 일이었다. 일행은 작은 강줄기를 따라 갈대숲 사이로 달리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앞쪽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는 것이었다. 평탄한 지형이라 일행은 모두 그것을 볼 수가 있었는데, 풍천 비는 즉각 일행을 정지시키고 담귀운과 성귀애를 보내 그곳을 탐 지하게 했다. 담귀운과 성귀애는 일대제자들 중에서도 상귀에 속하는 사람들 이라 비교적 강호경험이 많았다. 잠시 휴식을 취하며 기다리고 있노라니, 담귀운과 성귀애는 한 명의 칠팔 세 가량의 사내아이를 데리고 돌아왔다. “작은 어촌이었는데, 어떤 무리의 습격을 받은 듯합니다. 대부 분의 사람들은 죽음을 당하고 여인들은 붙잡혀 끌려갔다고 합니 다.” 대제자 담귀운의 말이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層 야그 출력일 :: 98/10/16 ───────────────────────────────────── 제 목 : [화산] 2 권 제 23 장 녹림삼십육방(綠林三十六方) 제 23 장 녹림삼십육방(綠林三十六方) 풍천비는 데려온 그 사내아이를 불러오게 했다. 강호에는 온갖 권모술수가 난무하므로 쉽게 판단하여 행동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사내아이는 대답했다. “그들은 악귀(惡鬼)처럼 나쁜 사람들이었어요.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를 죽이고, 또 엄마와 누나를 데려갔어요. 아저씨들은 좋 은 사람들이죠?” 피천광이 달래듯이 말했다. “그래, 물론 우리는 좋은 사람들이다. 너는 그들이 엄마와 누 나를 어디로 데려갔는지 아느냐?” 사내아이는 얼굴에 온통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옷은 재투성이가 되어 있었는데, 공포스런 표정이 가라앉아 제법 똑똑하게 설명하 기 시작했다. “예, 알아요. 아저씨들은 우리 엄마와 누나를 찾아주실 거 죠?” 여러 가지 정황과 약탈자들의 옷차림 등을 들어본 후 피천광은 눈빛을 빛내며 풍천비에게 말했다. “장문사형(掌門師兄), 백교방(白蛟幇)의 무리인 듯합니다만, 어 떻게 할까요?” 풍천비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가 말했다. “아직 시간이 촉박한 것은 아니니, 그 아이는 돌려보내고 무 슨 일인지 알아보기나 하세!” 화검상의 옆에 있던 방귀춘이 문득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정말 대담하기도 하군! 그 백교방의 놈들이 감히 이곳까지 침입해오다니…….” 화검상은 문득 그에게 물었다. “백교방이라고 하면 바로 녹림삼십육방(綠林三十六方)의 하나 가 아니오?” 방귀춘이 가볍게 냉소하며 말을 받았다. “자네도 그런 것은 알고 있군그래.” 화검상은 말했다. “그 녹림맹(綠林盟)에 대해서 말씀해주시겠소?” 방귀춘이 싸늘하게 냉소하며 비아냥거리듯이 대꾸했다. “난 지금 그러고 싶은 기분이 아닐세.” 방귀춘이 설명을 해주진 않았지만 화검상도 해내팔세(海內八 勢)의 하나인 일맹(一盟), 녹림맹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알고 있 었다. 그 총단(總壇)은 남령(南嶺) 어딘가에 위치하고 있으며, 천하의 녹림흑도(綠林黑道)들의 연맹체로 그 휘하에는 오패(五覇)와 삼십 육방이 있으며, 그 인원수는 무려 십만에 달한다고 한다. 개방( 幇)의 방도수가 거의 오만여에 불과한 것을 생각하면 그것은 엄청난 세력이고 천하에서 가장 인원수가 많은 세력인 것 이다. 녹림오패(綠林五覇)의 하나하나는 인원이 삼천여 명이고 그 세 력은 화산파와도 맞먹을 정도라고 했으며, 녹림삼십육방의 하나 하나는 인원이 천여 명에 달하고 세력은 그 아래라고 했으니 지 금의 상황은 그리 위험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녹림맹의 세력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파세력에 눌려 남쪽에 치중해 있었는데 이제 이곳까지 진출해 있다니 그것은 우 려할 만한 상황이 아닐 수가 없는 것이다. 화산파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녹림맹주는 만승천자극(萬勝天子 戟) 은성공(殷成公)이란 야심 많은 늙은이로, 나이가 백삼십 세도 넘는데 몹시 뚱뚱하여 보기에도 흉물스럽다고 했다. 아이를 보내고 나자, 일행은 이윽고 방향을 바꾸어 아이가 말 한 우측의 산기슭 쪽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담귀운과 성귀애가 앞서가서 적의 사정을 정탐하게 했는데, 불과 일 각이 못되어 돌아와 보고했다. “저 안쪽에 놈들의 흔적이 남아 있고, 게다가 뜻밖의 일이 생 겨 되돌아왔습니다.” 풍천비는 눈살을 찌푸렸다. “뜻밖의 일이라니?” 담귀운은 무의식중인지 화검상을 힐끗 바라보더니 대답했다. “본파의 사람들이 그들을 추격해간 듯합니다.” 이어 담귀운은 전음으로 보충설명을 하는 듯했다. 풍천비의 표정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눈살이 찌푸려지는 것 같 았다. “우선 그쪽으로 가보자!” 풍천비의 명령이 떨어지자 일행은 더욱 빠른 속도로 달리기 시 작했다. 산세가 약간 험해진 계곡의 안쪽이었다. 일행은 그곳으로 가던 도중 몇 구의 시신(屍身)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다소 뚱뚱하고 나이가 많은 여인들이었는데, 잔혹하게 가슴이 나 목 부위가 꿰뚫려 죽어 있었다. 아마도 약탈자들은 체력이 약하거나 말을 듣지 않는 여인들을 중간중간에 본보기로 처단한 모양이었다. 방귀춘이 그것을 보고 다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정말 백교방 놈들의 짓이군! 분수자(分水刺)에 당한 흔적들이 다.” 여인들의 참혹한 시신들을 보자 제자들 중 비위가 약한 사람들 은 벌써부터 안색이 창백해지는 사람들도 있었다. 시신들을 조사하기 위해 잠시 쉬었지만 일행은 다시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 안쪽에는 작은 분지 같은 것이 형성되어 있었는데, 거기에 다시 십여 구의 여인들의 시신이 뒹굴고 있었고, 병장기가 부러 진 것들도 눈에 띄었다. 낯선 것은 분수자라고 하는 기문병기였고, 낯익은 것은 화산파 에서 만들어내는 장검이었다. 여기에 뒹굴고 있는 여인들의 시신은 놈들이 달아나기 전에 처 리해버린 것들로 보이는데, 제법 외모가 반반한 여인들도 있었고 나이 어린 소녀들도 있었다. “에잇, 더러운 사파(邪派)의 개자식들!” 풍검심이 크게 이를 갈며 소리쳤는데, 말 끝에 은연중에 화검 상을 돌아보며 차갑게 노려보는 것이었다. 화검상은 약간 어이가 없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니, 내가 사파의 사람인가? 그쪽과는 아무런 연관도 없는 데 왜 나를 보는 거지?’ 방귀춘이 아직 굳지 않은 피를 보며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모양이군……!” 풍천비는 안쪽의 절벽 위에 날카로운 물체로 그려놓은 매화송 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매화송이는 두 개가 그려져 있었고, 가지는 우측으로 나 있는 작은 소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화산파에서 서로 연락을 주고받는 독문표기였다. 화검상도 화산파의 제자이니 대강 그 표시를 읽을 수가 있었 다. 매화 그림은 서둘러 그린 듯 정교하지는 않으나, 매화송이 숫 자는 이대(二隊)를 가리키고 가지가 난 방향은 떠난 방향을 가리 키는 것으로 그 의미는 파악할 수 있었다. 상황이 얼마나 급한지, 혹은 다른 문파의 사람들이 흉내낼 수 없도록 아직 거기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그는 다만 이대의 대장은 왕귀진(王歸塵)이었다는 것만을 기억 하고 있었다. 이번에 화산파는 일반사람들을 놀라게 하지 않기 위해 열한 개 의 대로 나누어 출발했는데, 왕귀진의 이대가 조금 앞서서 약탈 자들을 발견했던 모양이었다. 풍천비는 매화 문양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을 굴리는 듯하다가 문득 옆의 피천광에게 말했다. “자네의 생각은 어떤가?” 피천광은 눈살을 찌푸리고 있다가 대답했다. “지금의 이 경우는 두 가지의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하나는 놈들이 여인들에게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고, 다른 하 나는 이곳에 양쪽의 희생자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 야그 출력일 :: 98/10/16 ───────────────────────────────────── 제 목 : [화산] 2 권 제 23 장 - 1 풍천비는 눈빛을 번쩍 빛냈다. “계속해보게!” 피천광은 말을 이었다. “놈들이 여인들에게 관심이 없다면 대체 무슨 목적으로 이런 짓을 벌인 것일까요? 그건 아마도 어떤 특별한 목적이 있었을 것 입니다.” 풍천비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렇다면 결국 놈들이 우리의 움직임을 사전에 모두 알고 있 었단 말인가?” 화검상은 문득 화산파에 외부의 첩자가 있다고 하던 얘기들을 상기해보았다. ‘장문인은 아마도 이곳은 아직 안전하리라고 보고 제자들을 분산해서 이동시켰을 것이다. 만일 그런 것을 적들이 사전에 알 고 준비한 것이라면 이것은 대체 어떻게 하려는 속셈일까?’ 피천광의 말이 다시 이어지고 있었다. “놈들이 본파(本波)를 목적으로 삼았다면 충분히 그럴 수가 있는 일입니다. 상황을 보건대, 놈들은 이곳까지 여인들을 끌고 와서는 본파의 제자들을 보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여인들을 즉 각 처리하고 별로 접전도 벌이지 않고 달아났습니다. 그것은 분 명히 사전에 모의가 있었던 일일 것입니다.” 풍검진이 옆에서 말했다. “놈들이 본파를 유인하기 위해 이런 짓을 꾸민 것이라면 결코 그 세력은 간단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놈들의 목적이 혹시 다 른 쪽에 있는 것이 아닐까요?” 화검상은 풍검진이 말하는 그 다른 쪽이란 바로 화산파의 본산 (本山)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는 이내 그렇지도 않다는 것을 간파했다. ‘만일 그들이 정말로 화산을 공격할 생각이었다면 일부러 이 렇게 일을 벌이지 않아도 본파의 사람들이 모두 무림맹 쪽으로 나간 뒤에 조용히 처리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한 목적을 숨 기려고 이런 일을 벌였다는 것도 말도 안 된다. 벌써 사람들은 본산을 염려하고 있지 않은가?’ 풍천비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뭔가 생각하는 듯하다가 이내 피 천광에게 전음으로 지시했다. 화검상은 그 내용을 알아보기 위해 천청대법을 펼쳤으나 그 전 음은 전혀 들리지 않았다. 풍천비가 펼치는 전음은 고도의 수준이라 그의 천청대법으로도 들리지 않는 것이다. 화검상은 그들의 표정으로 보아 필시 지금 즉시 흩어져 있는 제자들을 불러 모으고 소란스레 움직이지말고 곧장 무림맹으로 향하라는 지시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피천광은 그 지시를 받자 이내 담귀운과 성귀애를 대동하고 사 라졌으며, 풍천비는 이어 귀천능과 왕천파에게도 전음으로 모종 의 지시를 내리자 그들도 신법을 펼쳐 떠났다. 화검상은 그들이 적들에게 유인된 다음 각개격파를 당하는 것 을 염려하고 있다는 것을 간파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약간 달랐다. ‘설령 분산되어 격파당한다고 해도 녹림맹의 입장으로 볼 때 는 크게 대수로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들은 과연 그런 일로 이 렇게 위험을 무릅쓰는 작전을 감행했을까? 아마도 좀더 중대한 다른 목적이 있을 것이다.’ 갑자기 중요인물 다섯 명이 떠나가자 일행의 숫자는 크게 줄어 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화검상은 고적한 듯이 서 있는 풍천비를 보고 필시 적들이 노 리는 것은 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장문인도 아마 그걸 생각하고 있을 테지만 이런 상황에선 그 도 제자들을 보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가 나서면 제자들이 각개격파를 당할 위험이 있기 때문에 그는 빠지는 것이다. 그는 자존심 때문에 스스로 위험을 각오했을 것이고, 적들은 바로 그 것을 노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체 어떤 방법으로 풍천비를 노릴 것인지가 화검상으 로서는 의문이었다. 풍천비는 이어 제자들에게 아까의 그 길로 돌아갈 것을 명했 고, 일행은 오던 길로 신법을 펼쳐 되달리기 시작했다. 풍검심은 아까 여인들의 시신을 보고 노화를 일으켰기 때문인 지 상태가 더 나빠져서 안색이 눈에 띄게 누렇게 변해 있었다. 풍검진은 그것을 보고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고 신법을 펼치는 것을 도와주고 있는 모양이었다. 화검상은 자신이 도와주면 쉽게 내상(內傷)을 호전시킬 수 있 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과연 풍검심이 그것을 받아들일지 의문이었다. 일반적으로 내상을 입으면 심기(心氣)도 불안해져서 더욱 감정 적으로 되기가 쉬운 것이다. 화검상은 악검림을 돌아보았다. 그녀는 계속 그를 지켜보고 있었는지 안색이 다소 상기되며 가 벼운 미소를 보내고 있었다. 왠지 마음이 불안해지면 제자들은 더욱 기운을 내는 법이다. 제자들은 어느새 그 강가로 되돌아와서는 다시 예정된 길로 내달 리기 시작했다. 이제는 삼대제자들도 힘이 들어도 감히 내색을 하지 못했다. 화검상은 문득 방귀춘에게 전음으로 말했다. “내가 이대로 달아날 것 같소? 나는 상관하지말고 제자들이나 보살피시오!” 방귀춘은 음침한 시선으로 화검상을 바라보더니 이내 대열 속 으로 들어가 가장 힘겨워하는 두 명의 제자를 각기 양손으로 부 축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일행은 다시 삼사십 리를 더 갔다. 마악 휴식을 취하려고 하는데 문득 누군가가 소리쳤다. “야, 저 까마귀 좀 봐! 엄청나게 큰데?” 일행은 그 말에 절로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느새 일행은 험준한 산길로 접어들어 있어서 하늘이 작아져 보였다. 한데 그 위를 날아가고 있는 까마귀 한 마리는 최소한 날갯짓 을 하는 것이 독수리보다도 용맹한 것 같았다. 곡검성이 입을 열어 말했다. “저건 신오방(神烏幇)의 신오(神烏)라고 하는 거야.” 풍검심이 그 말을 듣고 못마땅해져서 말했다. “흥, 저게 무슨 신오야? 내가 보기엔 오히려 다른 까마귀들보 다 못해 보이는데?” 곡검성이 이에 안색이 붉어지며 얼른 말을 받았다. “맞아, 저 신오방의 까마귀는 참새보다도 못할 거야.” 신오방은 역시 녹림삼십육방의 하나이다. 그들의 그 큰 까마귀는 별종을 키워서 단련시킨 것으로 연락용 으로도 쓰이기도 하는 그것은 용맹하여 실제로 독수리도 잡아 죽 일 수가 있다고 한다. 풍천비는 그것을 보고 다시 크게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신오라고 하는 저 까마귀는 신오방의 특수한 무기이기 때문에 결코 아무곳에서나 함부로 날지 않았다. 저 신오가 이곳에서 날고 있다는 것은 어딘가에 신오방이 침투 해 있다는 의미였다. 아까 본 백교방의 무리에 이어 신오방까지라니, 점점 상황은 심각해지고 있었다. 과연 그들 무리 속에서 화산파 제자들은 무사할 수가 있을까? 적들은 신오방 이외에도 더 있을 수도 있는 일이다. 화검상은 풍천비를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렇게 상황이 심각하다면 피천광 등을 시킬 것이 아니라 풍천 비 자신이 나섰어야만 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대체 무엇을 염려하고 있는 것일까? 만일 풍천비가 직접 나선다면 그는 일행을 돌볼 수가 없을 것 이다. 그리고 그 자신도 더욱 위험에 처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풍천비가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혹시 화검상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것도 아니라면 풍천비는 처음부터 적들의 의도대로 따르지 않기 위해 이러는 것일까? 어쨌든 이제는 되돌리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풍천비는 마음이 초조한지 미처 일행이 충분한 휴식을 취하기 도 전에 다시 출발 명령을 내렸다. 일행은 다시 무거워진 분위기를 이끌고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일행이 이 험준한 산길의 고갯마루에 거의 이르렀을 무 렵의 일이었다. 갑자기 좁아진 양쪽 절벽 위에서 느닷없이 연막탄이 날아와 주 위를 가득 채우더니 커다란 바위 덩어리들이 굴러떨어지기 시작 하는 것이었다. 기실 화검상은 이미 이 부근이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 다. 풍천비도 그 기척들을 알았겠지만 미처 연막탄을 생각하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그는 눈살을 찌푸리더니 소리쳤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야그 출력일 :: 98/10/16 ───────────────────────────────────── 제 목 : [화산] 2 권 제 23 장 - 2 “모두 뒤로 물러서라!” 하지만 그냥 물러서기엔 이미 때가 늦었다. 연막탄은 사전에 계획한 듯 일행의 앞뒤를 완전히 검은 안개 속으로 몰아넣고 있었고, 또한 거의 백여 명에 달하는 검은 옷을 입은 무리들이 좌우의 절벽에서 포위하며 떨어져내리고 있었다. 화검상이 아니라도 풍천비가 있으니 그다지 큰 위험은 없을 것 이지만, 대부분의 제자들은 연막탄의 검은 안개에 의해 앞뒤마저 분간하지 못하고 있어서 떨어지는 바위 덩어리에 그대로 노출된 셈이었다. 화검상은 이 검은 안개가 아무리 짙어도 주위를 훤하게 살필 수가 있었는데, 우선 그는 이 검은 안개에 독(毒)이 들어 있는가 를 살폈다. 이토록 많은 양의 연막탄을 사용하는 데는 독을 사용하기가 곤 란할 것이다. 하지만 단검을 뽑아보니 검신이 약간 변색되었다. 강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독이 들어 있는 것이다. “모두 호흡을 멈추고 머리 위를 경계해라!” 풍천비의 그러한 소리를 들으며 화검상은 위험한 사람이 있는 지 빠르게 살폈다. 공력이 약한 삼대제자들 몇몇은 벌써 비틀비틀 쓰러지고 있었 다. 이 독은 사람의 정신을 어지럽게 하는 미약(迷藥)에 산공독(散 功毒)이 포함되어 있는 것 같았다. 벌써 쓰러진 한 명의 삼대제자의 몸 위로 바위 덩어리 하나가 떨어져내리고 있었다. 높은 곳에서 떨어져내린 것이기에 그 위력이 강하여 맞기만 하 면 몸이 박살나버릴 것이다. 화검상은 장력으로 반탄력을 일으켜 바위 덩어리가 옆으로 비 켜가게 한 다음에 급히 풍검심이 있는 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그녀는 어느새 다가온 흑의인(黑衣人) 한 명과 겨루고 있었는 데, 내상을 입은 탓인지 전혀 위쪽을 살피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 다. 그녀는 만일 위쪽에서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지면 피하려고 했 겠지만, 공교롭게도 바위 덩어리가 그녀의 주위로 한꺼번에 떨어 지고 있어서 앞으로 피하지 않는 한 피하는 것이 어렵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앞에는 흑의인이 공격해오고 있고 숫자가 늘고 있어서 그럴 수도 없는 형편이 아닌가? 화검상은 빠르게 다가서서 그녀의 허리를 껴안고 즉시 그 자리 를 빠져나왔으며 그녀를 비교적 안전한 위치에 내려놓았다. 그런데 문득 등뒤가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충격이 오는 것이 아닌가? 풍검심은 그가 자신을 껴안고 움직이자 다짜고짜 좌장(左掌)을 움직여 그의 등을 돌려친 것이다. 하지만 이때 화검상의 몸에는 호신강기(護身 氣)가 저절로 발 동되고 있어서 그의 몸을 해치지는 못하고 도리어 그녀의 내상이 더욱 심해져서 울컥 피를 쏟아내고 말았다. 화검상은 기실 무의식적으로 그녀를 구하면서도 다소의 감상적 인 기분이 들어 있었다. 하지만 충격은 그런 그를 일깨우기에 족했다. “여기에 있으면 안전할 거요.” 급히 그녀에게 한마디를 던지고 그는 즉시 악검림이 있는 쪽으 로 몸을 날렸다. 악검림은 비교적 바위 덩어리들로부터 안전한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이제 바위 덩어리들이 거의 다 떨어지고 적들이 엄습하 자 그녀의 상황도 그리 좋지 않게 되었다. 삽시간에 백여 명이나 되는 흑의인들이 사방에서 기혈병기들을 휘두르며 각기 덮쳐들었는데, 그들의 숫자는 일행의 세 배나 되 었고 무공들도 만만치 않았다. 지금 악검림을 향해 한꺼번에 덤벼드는 다섯 명의 대한들의 무 공은 모두 절정경지에 육박해 있어서 그녀로선 힘겨운 상대였다. 게다가 지극히 음험하고 악랄한 녹림흑도들의 무공을 그녀는 아직 접해보지 못해서 별안간 아랫도리를 노리며 덮쳐드는 공격 에 상처를 입을 뻔했다. 기실 지금의 상황에서 그녀보다 위험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더 많겠지만 화검상은 아무래도 그녀에게 더 관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었다. 화검상은 그녀의 앞으로 다가가는 즉시 장검을 뽑아 지법(指 法)의 형식으로 일일이 급소를 찔러 다섯 사람을 모두 제압해버 렸으며, 놀라는 그녀의 손을 잡고 뒤로 물러섰다. 바로 그때 갑자기 그들의 주위로 요란한 비명 소리가 울려퍼지 기 시작했다. 바로 풍천비가 손을 쓰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본래 깨끗하게 일을 처리했으나 점차 크게 화가 나자 인 정사정없이 거칠게 흑의인들을 베어 넘기고 있는 것이었다. 백여 명의 흑의인들 가운데에는 절정급의 고수들도 있었고 또 한 최절정의 고수들도 몇몇 보였다. 그러나 풍천비는 초절정의 고수로서 아무도 그를 당할 수가 없 었다. 그의 신형이 마치 환영(幻影)들처럼 움직이는 가운데 흑의인들 은 마치 추풍낙엽처럼 이리저리 베어져 쓰러졌고, 나이가 팔십도 넘은 한 최절정고수가 변변히 싸워보지도 못하고 목이 달아나버 리자 흑의인들은 그만 놀라 달아나기 시작했다. 최절정고수와 초절정의 고수는 이렇게 실력의 차이도 심할 뿐 만 아니라 근본적인 무학의 내용이 다르기 때문에 도저히 비교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저 최절정고수들의 사이에 있어서도 그 입문한 단계와 최고 단계는 두 배 가까운 공력의 차이가 있게 되는 것이다. 풍천비가 그렇게 무자비한 살수(殺手)를 쓰기 시작하자 이내 적들의 팔 할 이상이 목숨을 잃어버렸고, 상황은 간단하게 끝나 버렸다. 남은 십여 명이 도주를 하기 시작했으나 풍천비는 장검을 거두 고 더 이상 그들을 쫓지 않았다. 화검상은 비록 잠깐 본 것에 지나지 않으나 풍천비의 그 무공 을 생각해보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 풍천비의 무공은 빠르게만 여겨질 뿐 칠십여 개 의 변환(變幻)밖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갑자기 그의 몸과 손, 장검 등이 길게 느껴지거나 개수 가 많아진 것같이 느껴진 것은 보이지 않는 변환들이 작용한 것 이며, 그야말로 최상승 무학의 진면목이 드러난 것이다. 사람의 육체적 한계는 칠십이 개의 변환이 최고라고 한다. 하지만 거기에 최상승의 경지에 들어서면 무형지기(無形之氣) 의 변환이 더해지기에 가장 환상적(幻想的)인 무공이 펼쳐지게 되는 것이다. 이 과도기의 무공이 겉으로 보기에는 가장 현란해 보인다. 화검상은 조금 전의 그 무공과 자신의 무공을 비교해보면서 과 연 자신이 그를 이길 수가 있을지를 생각해보고 있었다. 비록 상황이 아무리 다급하고 그가 화가 나 있었다고 해도 결 코 그는 조금 전의 전력을 다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높게 생각해본다고 해도 칠 성(七成)의 수준을 넘지 않 았을 것이라는 것이 화검상의 판단이었다. 그렇다면 과연 그의 무학의 십 성(十成), 아니 십이 성(十二成) 의 경지까지 전개되었을 경우 그 위력은 어떠할까? 화검상은 자신의 현재의 무공이 과연 그 수준이 될 수 있을지 에 대해 궁금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일행은 일단 격전이 끝나자 즉시 그 자리를 벗어나서 자리를 잡고 휴식을 취하고 독과 내외의 부상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흑의인들을 비록 팔십여 명이나 죽음 속으로 몰아넣었지만 일 행 가운데에서도 사망한 삼대제자가 다섯 명이나 되었고 부상자 들은 그보다 훨씬 많았다. 그것은 물론 풍천비 혼자서 그 팔십여 명의 대부분을 죽였기 때문에 그나마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곡검성이나 귀검철 등의 이대제자들도 대개 부상을 입었는데, 일단 몸에 상처가 나면 독은 그 속으로 빠르게 침투해 들어간다. 하지만 다행히도 연막탄에 섞여진 그 독들은 화산파의 일반 해 독약으로도 치료가 가능한 것이었고, 이대제자들의 경우 그 부상 이 별로 깊지 않았다. 화검상은 물론 전혀 중독되지 않았다. 그래도 그는 확인해보기 위해 선 채로 기(氣)를 움직여보면서 은근히 한쪽에 홀로 앉아 있는 풍천비를 주시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였건만 그는 전혀 의복에도 피 한 방울 묻지 않았고, 마치 금방 산보를 나갔다가 온 사람처럼 조용하게 만 보였다. 그것은 비단 그의 행동이 빨랐기 때문일 뿐만 아니라, 당연히 그의 몸 주위에 강한 호신강기가 펼쳐져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최상승의 경지에 오르면 실행하지 않아도 저절로 전신에 호신 강기가 발휘되며, 그것을 강하게 일으킬 경우에는 비도 맞지 않 을 수가 있는 것이다. 풍천비는 지금 표정이 냉막하기는 하지만 어딘가 우울해 보였 다. 그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녹귀보가 문득 아직 살아 있는 흑의인 한 명을 이끌고 풍천비 의 앞에 다가갔다. 아까부터 보고 생각한 일이지만 이 흑의인들의 복장은 더러 차 이가 있었으나 하나같이 이마에 검은 두건을 두르고 있었다. 그것은 한결같기에 너무도 눈에 띄는 표시였다. 화검상은 언젠가 그런 표시를 하고 다닌다는 방파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 바로 흑풍회(黑風會)이며, 역시 그들도 녹림삼십육방의 하나였 다. 백교방과 신오방에 이어 이번에는 흑풍회까지 나타난 것이다. 풍천비의 안색이 다소 어둡게 느껴지는 것은 바로 여기에 이유 가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ЕЕ 야그 출력일 :: 98/10/16 ───────────────────────────────────── 제 목 : [화산] 2 권 제 23 장 - 3 흑풍회는 인원들이 비록 이곳에서 팔십여 명이나 죽기는 했지 만, 결코 흑풍회에서 그들만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 어째서 녹림맹에서는 유독 화산파를 집착하여 노리는 것 일까? 아마도 그것은 공교롭게도 운이 없어서이거나, 혹은 다른 문파 에도 똑같이 대대적인 공격이 시작된 것인지도 모른다. “어서 말해라! 너희들은 대체 무슨 이유로 이곳까지 온 것이 며 그 인원은 모두 얼마나 되느냐?” 녹귀보의 다그침에, 그 흑의인은 앞에 있는 풍천비를 빤히 바 라보더니 무뚝뚝하게 대꾸했다. “그건 나도 모르오. 만일 안다면 우리가 이렇게 와서 한꺼번 에 개죽음을 당하겠소? 우리는 그냥 갑자기 명령을 받고 이곳에 와서 이렇게 되었을 뿐이오.” “뭐라고? 이 자식이……! 아직도 간이 부었구나?” 녹귀보가 화가 나서 뺨을 후려치자 그 흑의인은 대번에 얼굴이 돌아가고 이빨이 부러져서 핏물과 함께 쏟아져나왔다. 그 흑의인은 이에 눈을 부릅뜨며 발악을 하듯 소리쳤다. “나를 죽이려면 마음대로 하시오! 소위 정파인이란 것들이 이 렇게 사람을 함부로 다뤄도 된단 말이오?” 풍천비는 더 이상 그 흑의인에게서 알아낼 것이 없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는 손을 저어 녹귀보에게 그자를 도로 데려가라고 지시했다. 기실, 이런 일을 알고 일부러 죽기 위해 나설 사람은 없을 것 이다. 정파인들의 경우에는 때로 명분을 위해 죽음을 불사하기도 하 지만, 사파인들은 대개 명분보다는 실속을 더 따지게 되기 때문 에 더욱 그렇다. 그들은 비단 이 부근에 침투한 이유도 모르고 게다가 함께 침 투하여 자신들을 도와줄 수 있는 인원들에 대해서도 거의 모르고 있었을 것 같았다. 아까 풍천비는 마음만 먹었다면 그 인원들은 모조리 죽여버릴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체 녹림맹에서는 무슨 목적으로 그와 같은 인원들 을 보내 승산도 없는 기습을 하게 했을까? 풍천비 등이 이곳으로 올 것을 모르고 있었거나, 아니면 최소 한 그의 심경의 변화를 노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녹귀보는 그 흑의인을 데려가더니 이내 일장을 날려 죽여버렸 다. 그의 장력에는 강기( 氣)가 깃들여 있기 때문에 그 흑의인은 장력을 맞자 두뇌부가 다 함께 으깨어져 피와 뇌수가 범벅이 되 어버렸다. 누구를 모시는 일을 맡은 사람은 그 사람의 심경을 잘 살펴야 한다. 녹귀보는 풍천비의 심경을 헤아려 즉시 아까의 격전장으로 날 아가 아직 살아 있는 사람들을 모조리 쳐죽이기 시작했다. 그들 중에는 아까 화검상이 검기(劍氣)로 혈도를 제압해놓은 사람들도 있었다. 비록 화검상이 죽이지 않았으나 그들은 이내 모두 죽음을 당하 게 된 것이다. 단말마의 비명 소리가 아직 간헐적으로 이어지는 가운데, 일행 은 대강 독과 상처의 치료를 마치고 서둘러 죽은 제자들을 처리 하기 시작했다. 더러는 눈시울을 붉히면서 우선 부근의 땅 속에 시신들을 묻고 표시를 해놓았다. 강호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대개 이렇다. 도중에 죽으면 일단 묻히기는 하겠지만 훗날 누군가 다시 찾아 뼈골을 다시 회수하여 무덤을 만들어주지 않는 한, 간혹 여우들 의 밥이 되고 뼈골이 아무데나 뒹굴게 되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강호인들은 화려한 듯한 인생을 살아가면서도, 그들의 삶은 대개 유성(流星)에 비유되곤 했다. 시신들이 처리되는 동안 풍검진은 풍검심의 내상치료를 도와주 고 있었고, 간혹 화검상을 향해 시선을 던지기도 했다. 하지만 뭐라고 말을 꺼내지도 않았고, 그것은 운기조식을 하고 있는 풍검심도 두말할 나위도 없는 것이었다. 화검상은 어째서 풍검심이 이대로 죽거나 부상을 당하게 되는 것을 버려두지 않고 일부러 구했을까? 그때는 풍검진이나 곡검성 등은 물론이요, 풍천비마저도 미처 그녀를 보살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혹시 화검상은 아직 과거의 영화에 대해 미련과 감상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닐까? “도와줘서 고마워요. 안 그랬으면 제가 당했을 거예요.” 옆에서 치료를 마악 끝낸 악검림의 말이었다. 화검상은 미소하며 전음을 보냈다. “그렇게 무사하다니 다행이야. 하지만 지금 내게 친한 척하면 안 돼. 남들이 오해할지도 모르니까.” 악검림은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흥, 오해하라죠 뭐. 하나도 잘못된 게 없으니까. 한데 화사형 의 그 무공은 정말로 훌륭했어요! 전 알아볼 수가 없었으니까. 정 말로 장문인께 비급을 만들어드릴 생각인가요?” 화검상은 그녀의 전음이 맑고 무리가 없는 것을 보고 그녀의 몸이 완쾌되었다는 것을 알고 가볍게 미소하며 대꾸했다. “그거야 지나봐야 아는 것이지.” 이윽고 시신들의 처리가 끝나고 상처 치료도 대강 끝내자 일행 은 다시 떠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방귀춘은 이번에는 부상입은 제자들을 돌보느라 화검상의 옆에 오지도 않았다. 풍천비는 과연 이 정도에서 일행을 오던 길로 되돌릴 것인가? 하지만 그의 결정은 역시 예정대로 무림맹 쪽으로 나아간다는 것이었다. 풍천비는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적들의 최종목표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출발 명령이 떨어지자 드디어 일행은 앞쪽으로 내달리기 시작 했다. 풍검심은 이제 어느 정도 회복되었으니 달리는 도중에라도 화 검상에게 전음을 건넬 수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역시 말이 없었다. 그녀는 여전히 화검상을 증오하고 있는 것일까?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떡 야그 출력일 :: 98/10/16 ───────────────────────────────────── 제 목 : [화산] 2 권 제 24 장 시골노인 제 24 장 시골노인 일행은 한번 호된 경험을 했기 때문에 자연 이제부터는 좀더 신중하게 주의를 하게 되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염려와는 달리 그 이후로는 가는 도중 별다른 사건은 벌어지지 않았다. 부상자들 때문에 일행은 천천히 나아갔으나, 그래도 두어 번 쉬어 가자 저녁 때에 일행은 태평진(太平鎭)에 도착할 수가 있었 다. 이 태평진이 바로 오늘밤 일행이 묵어 가기로 예정된 장소였 다. 이제 복우산(伏牛山)과 매우 가까워져서 무림맹까지는 이백여 리 정도 남았을 뿐이다. 태평진에는 이미 일행이 묵기로 예약된 숙소가 있었다. 태평반 점(太平飯店)이 그것이다. 그것은 중급의 식당을 겸한 객점인데, 그래도 이 작은 현성에 서 가장 크고 호화롭다고 알려진 곳이었다. 내일 많은 정파의 사람들과 대면하게 될 것인데, 이 일대(一隊) 의 주요인물들은 하룻밤 푹 쉬어 의복을 단정히 해야 할 것이었 다. 요 근래 세상이 혼란스럽고 무림맹에서 무림대회(武林大會)를 개최하자 이 작은 현성에도 제법 많은 사람들이 북적대기 시작했 다. 숙소로 향하는 도중 풍천비는 제법 많은 사람들과 대면해 인사 를 나누는 듯했으나, 상황이 좋지 않고 또한 그리 중요한 사람들 이 아니어서 그런지 이내 가볍게 지나치는 편이었다. 태평반점에 들어서자 마침 저녁식사를 할 때여서 여러 가지 미 각을 자극하는 냄새들이 코를 찌르고 있었고, 일행은 곧장 예약 된 삼층의 객실로 올라갔다. 일층을 식당으로 이삼층을 객실로 쓰고 있는 이 태평반점의 삼 층은 가장 위에 있고 또한 가장 나은 객실들이 있는 층이었다. 풍천비는 당연히 가장 좋은 하나의 객실을 차지했지만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나머지는 직위와 성별에 따라 한꺼번에 여러 명이 한 방으로 들어가도록 했다. 화검상에게 배당된 객실은 가장 작았지만 우연찮게 인원도 가 장 적었다. 화검상이 방안으로 들어가서 손을 씻고 간단히 세수를 하고 있 는데, 문득 방문이 열리며 가검통이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안으 로 들어섰다. 이번에 가검통도 일대에 포함되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그가 이런 때에 화검상과 한 방을 쓰도록 하기 위함일 것이다. 가검통은 아까의 격전에서 부상을 입었는지 팔과 다리에 흰 천 을 감고 있었는데, 어색하고 괴이쩍게 웃으며 말했다. “화사형과 또 한 방을 쓰게 되었군요. 아직도 날 미워하고 있 는 것은 아니겠죠?” 화검상은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며 웃으며 대꾸했다. “자네가 날 미워하지 않는다면 그만이지, 내가 왜 자네를 미 워하겠나?” 가검통은 눈빛을 굴리며 화검상의 안색을 살피더니 말을 이었 다. “조금 있다가 식사를 한다고 아래층의 식당으로 내려오래요. 혹시 어디 나갈 일은 없겠죠?” 화검상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지금은 없네. 자네는 아직도 나를 꼼짝 못하게 감시하려는 것은 아니겠지?” 가검통은 어색한 듯이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야 제가 그렇게 할 수가 있나요? 다만 저는 화사형의 적적 함을 풀어드리려는 것입니다.” ‘자네가 와서 꽤나 그 적적함이 풀어지겠군!’ 대화가 끊어지자 가검통은 이내 화검상의 눈치를 살피며 침상 과 이곳저곳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화검상은 공연히 그에게 신경을 쓰고 싶지 않아서 한쪽에 앉아 묵묵히 아까의 그 일을 생각했다. ‘알 수가 없군! 이곳까지 온 이상 일단 위험은 벗어났다고 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결국 그들의 무모한 듯한 공격은 다른 제자 들을 노린 것이었단 말인가? 아니면 풍천비를 시험해보았다고도 할 수 있지? 아니야……. 그들의 세력이 아무리 막강해지고 있다 고 해도 그렇게까지 여유를 부릴 수는 없을 거야. 그렇다면 우리 화산파의 본거지를 공격할 생각이었단 말인가? 정말 알 수가 없 군. 거기에 무슨 함정이 있는 것인지……?’ 화검상은 생각이 다소 막히자 자리에서 일어서며 손가락으로 머리를 툭툭 쳤다. ‘아니야. 세상의 일을 그렇게 복잡하게만 생각할 것은 없어. 그들은 풍천비가 발길을 돌리기를 기다려 그곳에서 척살하려고 했었는 지도 몰라. 사실 풍천비는 비록 맥없이 당하기는 했지만 그 흑풍회의 사람들을 보고 제자들이 곤경에 처해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들이 그런 흑풍회의 무리들을 보낸 것도 그런 목적에서이고. 사실 풍천비도 그러한 음모(陰謀)를 모를 리 가 없겠지만, 제자들이 곤경에 빠져 있다면 알면서도 가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가지 않았다. 그건 무슨 이유에 서일까?’ 화검상은 다시 침상 위에 걸터앉으며 생각했다. ‘자신의 목숨이 가장 소중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들이 노리 는 사람은 그 자신이기 때문에 오히려 그가 가지 않는다면 제자 들이 관심의 대상에서 벗어나서 더욱 안전하리라고 생각한 것일 까? 그것도 일리가 있기는 하지만 너무도 모험적이어서 충분한 근거라고는 말할 수가 없다. 그럼 대체 무엇 때문일까? 설마 하 니 자신의 친인척들만 보호하기 위함도 아닐 테고……?’ 화검상은 문득 쓴웃음을 짓고 한숨을 내쉬며 속으로 중얼거렸 다. 그것은 충분히 일리가 있다. 풍천비는 비단 그를 죽이려 할 뿐만 아니라 그에게서 비급을 건네받을 욕심이 있는 것이다. 가검통이 별로 할 일도 없을 텐데 주위를 뒤척이는 듯하다가 이윽고 다시 입을 열어 말했다. “아마 지금쯤 식사시간이 거의 다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너무 일찍 내려가면 어색하니 조금만 더 기다려보도록 하지요?” ‘결국 나 하나 때문에 그 많은 사람들이…… 그러니 그들이 나를 증오할 만도 하지 않은가……?’ 화검상이 다시 생각에 잠기려는데 문득 방문이 열리며 한 사람 이 가볍게 안으로 들어섰다. 악검림이었다. 화검상은 약간 놀란 듯하다가 의아해 하며 그녀를 향해 말했 다. “악사매, 무슨 일이지?” 악검림은 잠시 화검상을 바라보다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무슨 일이냐뇨? 제가 한턱내겠다고 했잖아요?” 화검상은 그만 실소하며 말했다. “그건 그저 해본 소리고, 아니 그렇게 한다고 해도 그렇지, 우 리는 이제 마악 와서 식사도 하지 못했는데 어딜 나간다는 거 야?” 악검림은 그 말에 안색이 다소 어두워지며 말했다. “그럼 나가지 않겠다는 말인가요?” ‘그렇다고 또 그렇게 금방 실망할 건 뭐람?’ 화검상은 몸을 일으키며 웃으며 말했다. “좋아, 그럼 나가지! 지금 나간다고 뭐가 잘못되기라도 하겠 어?” 악검림은 이에 다시 안색이 환해지며 옆의 가검통은 돌아보지 도 않고 즉시 화검상의 손을 잡아끌었다. “그럼 어서 가요! 나는 식사대접을 해드리려는 것이란 말이에 요.” 가검통이 문득 옆에 서 있다가 화검상을 향해 우물쭈물하며 말 했다. “화사형, 어디 나갈 일은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화검상은 그에게 고개를 돌리며 미소하며 말했다. “아까는 없었지만 지금은 생겼지. 자네도 보지 않았는가? 혹 시 자네도 따라갈 생각이 있는 게 아닌가?” 가검통이 뭐라고 대답하려고 하는데, 문득 악검림이 안색까지 변해가며 꾸짖듯이 말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연히 야그 출력일 :: 98/10/16 ───────────────────────────────────── 제 목 : [화산] 2 권 제 24 장 - 1 “가사제! 당신은 기본예절도 모르나요? 만일 당신이 창피한 것도 모르고 굳이 따라가겠다고 한다면 내가 가만있지 않을 거예 요!” 가검통은 비록 그녀보다 나이가 열 살도 더 많지만 입문(入門) 이 늦어 사제가 된다. 가검통은 감히 악검인의 여동생인 그녀에게 대꾸도 하지 못하 고 안면만 심하게 일그러뜨렸다. “자, 어서 가요!” 다시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가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문득 가검 통의 두 눈에서는 음험한 원독의 광망이 이글거렸다. 화검상은 악검림이 식당으로 들어가지는 않고 밖으로 이끄는 것을 보고 의아해 하며 말했다. “아니, 식사대접을 한다면서 어디로 가는 거야?” 악검림은 손을 가볍게 저으며 말했다. “이런 곳의 음식은 비록 훌륭하지만 맛은 없어요. 제가 밖으 로 나가 근사한 곳을 알아보죠.” 화검상은 미소했다. “음식이 훌륭하다면 맛도 있어야 하는 것이 아냐?” 악검림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제가 말하는 맛이란 그런 맛이 아니에요. 제가 말하는 건 그 야말로 구수한 인심이죠.” 화검상은 그만 약간 어이가 없어하며 실소를 지었다. ‘그야말로 책 속의 강호여협(江湖女俠)다운 말을 하는군!’ 두 사람이 그렇게 마악 태평반점을 벗어나려고 하는데, 문득 가벼운 인기척과 함께 한 사람이 다가와 그들의 앞을 막아섰다. 바로 방귀춘이었다. “자네 지금 어디를 가는가?” 그의 표정이 매서웠기 때문에 잠시 대담한 척하던 악검림도 약 간 두려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화검상은 가볍게 웃으며 그를 보다가 말했다. “당신은 지금 나를 구속하려고 하는 거요? 그렇다면 쉽지 않 을 텐데. 당신이 과연 나를 잡을 수 있을까?” 방귀춘은 표정이 심히 음험해지다가 차갑게 말했다. “자네는 오늘밤 장문인과 약속을 하지 않았나? 그 약속을 어 기지는 말아야지?” ‘과연 그 얘기를 풍천비가 이들에게 한 걸까?’ 화검상은 웃으며 다시 말했다. “당신은 내가 도망을 가지 못해서 이러고 있는 줄로 아시오? 내가 도망을 가고자 한다면 언제라도 갈 수 있었지. 하지만 나는 일부러 떠나지 않은 것이오. 무슨 말인지 알겠소?” 방귀춘은 싸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너는 지금 바로 도망가려고 하는 것이란 말이냐?” 화검상은 문득 그의 앞으로 다가와 어깨를 툭 쳤다. 이번의 그의 이 한 수는 얼핏 평범해 보였지만 느린 듯하면서 도 빠르고, 단순한 듯하면서도 변화가 많아 방귀춘은 도저히 피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지금 당장 당신을 반쯤 병신으로 만들어서 저 지붕 위 에다 걸어놓고 잠시 나갔다 올 수도 있소. 당신은 지금 그걸 바 라고 있는 것 같은데?” 화검상의 점혈수법은 평범하지 않았다. 방귀춘은 그것을 이미 신물이 나도록 알고 있기 때문에 갑자기 어깨에서부터 전신이 마비되어버리자 표정은 더욱 악독해졌지만 안색은 거뭇하게 변했다. 그는 쥐어짜듯 소리쳤다. “네가 이렇게 나온다면 장문인이 네게 잘 대해줄 것 같으 냐?” 화검상은 미소하며 그의 안면을 좌우로 가볍게 두들겼다. “그건 장문인에게 가서 물어보시오. 내가 마음에 들어서 봐주 는지, 아니면 내가 만들 비급에 욕심이 나서 그러는지. 이 정도면 알 만할 텐데 이 양반이 왜 이러나? 내가 너무 사람이 좋아서 갖 고 놀려고 그러시나?” 화검상의 무공은 점점 더 가공스러워지고 있었다. 그가 가볍게 안면을 두들기자 방귀춘은 벌써 안면에 마비가 와 서 말하기 어려워지는 것을 느꼈다. 방귀춘은 원독이 어린 시선으로 노려보다가 아무래도 안되겠다 고 생각했는지 다시 말투를 바꾸어 급히 말했다. “자네는, 그럼 언제 들어올 건가?” 화검상은 다시 방귀춘의 안면을 좌우로 가볍게 두들겼다. 그러자 마비되어가던 그의 안면이 이내 풀리기 시작했다. 누가 보면 이 광경은 화검상이 장난으로 방귀춘의 얼굴을 만져 주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장문인에게는 내가 얼마간 놀다가 들어가겠다고 전하시오. 만일 기다리지 못하겠다면 말로……, 그런데 내가 이미 그런 질 문은 하지말라고 했소, 안 했소? 당신은 지금 이 자리에서 혈도 를 풀어보고 싶소?” 화검상이 제압한 혈도는 저번에도 방귀춘이 풀어보려고 했지만 되지 않았었다. 방귀춘은 표정이 악귀처럼 일그러지며 소리쳤다. “그럼, 네놈은 뭘 원하느냐?” 화검상은 웃으며 말했다. “그야 당신이 좀더 고분고분해지기를 바라고 있지. 이 양반아, 내가 당신들이 나를 언젠가는 죽이려고 벼르고 있다는 것을 모를 줄 아나? 어차피 서로가 적대시하고 있는데 내가 왜 당신에게 이 런저런 훈계를 들어야 하나?” 방귀춘은 다시 소리쳤다. “네놈이 만일 우리를 적대시한다면 어째서 본파를 떠나지 않 느냐?” 화검상은 문득 정색을 하고 말했다. “나는 당신들을 적대시하지만 우리 화산파를 사랑해. 당신들 이 화산파의 전부라고 생각하는가? 오히려 옛날의 주인은 나의 가문이었다는 것을 왜 모르는가?” 방귀춘은 두 눈이 음침하게 빛났다. “그럼 네놈은 장차 반도(叛徒)가 될 생각이란 말이냐?” 화검상은 가볍게 웃음을 지었다. “정말 말로는 안 되는 작자로군!” 이어 그는 가볍게 한 줄기의 지풍을 날려 방귀춘의 아혈을 제 압했다. 방귀춘은 입을 벌리다가 굳어져서 아무런 소리도 못하고 눈알 만 악독하게 굴렸다. “그럼 장문인과 상의해보시오. 이 혈도도 그가 풀어줄 테니 까.” 화검상은 그를 바라보며 그렇게 말한 뒤에 가볍게 다시 안쪽 어깨를 치고 신형을 돌렸다. 화검상은 그의 눈빛이 더욱 악독해져가는 것을 보고 다시 이전 과 비슷한 간지러워지는 혈도를 제압해버렸다. 방귀춘의 몸은 과연 서서히 붉어지고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하 더니 뒤로 벌렁 넘어가 입에 게거품을 물기 시작했다. 잠시 길을 걷다가 악검림이 문득 화검상에게 물었다. “조금 전의 그 수법은 뭐라고 하는 거죠? 그는 혹시 죽게 되 지는 않을까요?” 화검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저 점혈수법(點穴手法)일 뿐이니 죽게 되지는 않을 거야. 게다가 아까 위층과 아래층에서는 본파의 사람들이 내다보고 있 었지. 그들이 금방 데려다가 장문인에게 보일 거야.”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의 야그 출력일 :: 98/10/16 ───────────────────────────────────── 제 목 : [화산] 2 권 제 24 장 - 2 악검림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화사형의 점혈수법은 무공처럼 대단할 텐데 만일 장문인이 풀지 못하게 되면 어쩌죠?” ‘그렇군, 과연 그가 나의 점혈수법을 해소시킬 수가 있을 까?’ 기실 화검상이 방귀춘의 몸에 다시 그렇게 많은 혈도들을 제압 한 것은 그를 혼내주기 위함도 있지만, 순간적으로 떠오른 다른 의도가 있어서였다. 그는 아까 풍천비의 무공을 보고 자신의 무공과 비교해보고 싶 은 의욕이 생겨났다. 그것은 의욕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생존하기 위한 의무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내친 김에 그가 제압한 혈도를 풍천비가 풀 수 있 는가를 알아보기로 했다. 만일 풍천비가 그것을 풀 수 있다면 약간 심상치 않은 경우가 되겠지만, 풀지 못한다면 이쪽의 가능성이 더 높아질 수도 있다. 물론 단지 점혈수법 하나로 모든 것을 파악할 수는 없는 일이 었지만……. 천하의 무공들은 비단 초식도 다르지만 흐름도 대개 다르다. 특히 초식은 비슷한 부분이 있어도 흐름은 각기 고유의 특성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비록 같은 흐름의 무공을 연마하는 사람도 개성이나 자 질의 취향이 달라서 혹자는 힘이 강하고, 혹자는 빠르고, 혹자는 변화에 더 자신있는 등의 차이를 보이게 되는 것이었다. 풍천비도 점혈수법은 미약할지라도 검법에는 특별한 조예가 있 을지 모른다. 하지만 화검상의 무공은 이미 높은 경지에 올라 있었다. 그런 경지에 올라 있는 사람은 비록 여러 가지 가능성을 생각 한다고 하더라도 능히 한두 가지의 무공을 보고도 알 수 있는 이 치가 있는 것이다. 화검상은 지금 왠지 풍천비가 그 혈도를 풀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자꾸만 들었다. 만일 그렇다면 그는 여유를 가져서는 안 되며 더욱 무공수련에 정진해야 할 것이다. 화검상은 현재의 자신의 무공이 아직 급증된 공력의 단련이 충 분히 되지 않아서 앞으로 더욱 증진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 다. “그래도 죽지는 않을 거야.” 그렇게 대답한 다음, 화검상은 다시 악검림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어쨌든 악사매도 그런 험한 광경을 보았고, 또한 앞으로 그 런 일들로 인해 오해를 사거나 고초를 당할 수도 있으니 이제 내 게 관심을 보이지말도록 해.” 악검림은 안색이 가볍게 변해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지금 즉시 돌아가라는 말인가요?” 화검상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지금은 기왕에 나왔으니 어디 가서 간단하게 식사라도 해야 하겠지. 그리고 돌아가면 별문제 없을 거야.” 악검림은 잠시 뭔가 생각하는 듯하다가 문득 주위를 둘러보더 니 말했다. “아, 마침 내가 생각하던 그런 좋은 식당을 발견했어요. 우리 저곳으로 들어가요!” 그곳은 길가에 지붕도 없이 의자와 탁자들만 내다놓고 술과 음 식을 팔고 있는 싸구려 주점이었다. 아마도 근래에 손님이 부쩍 늘어나자 주점의 주인은 머리를 써 서 주점의 밖에 또 하나의 야외주점을 차린 모양이었다. 화검상은 다시 한번 내심 실소했지만, 그러나 영웅(英雄)의 흉 내를 내기를 좋아하는 이 사매의 행동이 밉지는 않았다. “어서 오십시오, 두 분 나으리. 거기 앉으시고, 무얼 드릴까 요?” 미처 자리에 앉기도 전에 달려와서 주문을 받는 사람은 주인인 지 점원인지 모르겠는데 사십대로, 얼굴이 둥굴둥굴하고 눈빛이 빠르게 돌아가는 사내였다. 자리에 앉자, 악검림은 짐짓 점잖은 태도를 취하여 몇 가지를 주문했다. “우선 죽엽청(竹葉淸) 두 근 하고 돼지고기에, 국수 두 그릇을 갖다 줘요!” 그 사내는 잠시 뭐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지 머뭇거리다가 다 시 말했다. “에 또, 죽엽청은 독한 술이니 이분은 좀 약한 여아홍(如兒紅) 으로 갖다 드릴까요?” 악검림은 아미를 살짝 치켜뜨며 꾸짖듯이 말했다. “대체 사람을 어떻게 보고 하는 소리지? 죽엽청을 가져오라면 가져올 것이지 웬 말이 그렇게 많은가?” 화검상은 그녀가 제법 여협사(女俠士)의 흉내를 내려 하는 것 을 보고 그만 웃음이 나올 뻔했다. “예, 예, 알겠습니다. 금방 갖다 드리지요.” 그 주인인지 점원인지 모를 사내가 즉시 허리를 굽히며 물러가 자, 악검림은 기분이 좋은지 다소 상기된 기색으로 말했다. “저는 항상 이렇게 한번 멋을 내보는 것이 소원이었어요. 화 사형도 이런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나요?” 화검상은 속으로 웃으며 말했다. “그래, 이곳이 음식 맛이 난다고 하던 그런 곳인가?” 악검림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주위를 둘러보더니 말했다. “음, 완전히 그렇다고는 말할 수가 없고……, 이런 곳이라면 한번 취할 수도 있는 곳이죠. 저 주인이 촐랑대지만 않았으면 더 좋을 뻔했는데…….” 한창 식사시간이 되어서 그런지 탁자들은 거의 사람들로 채워 져 있었고 그 주인 같은 점원은 곳곳에 불을 켜고 손님들을 상대 하느라 이마에서 땀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평소에는 이런 곳의 손님들은 강호인들이 드물었지만 지금은 강호인들의 숫자가 더 많은 것 같았다. 악검림이 주문한 음식들은 늘상 이런 곳에서 미리 준비해두는 것들이라 빨리 나왔다. 그 사내가 음식들과 술과 술잔들을 탁자 위에 늘어놓고 물러가 자, 문득 마치 그것을 기다렸다는 듯이 한 사람이 다가와 남은 의자에 앉으며 늙수그레한 음성으로 말했다. “이보게 젊은 양반들! 자리가 없는데 내가 이곳에 합석해도 되겠나?” 평범한 시골노인의 복장을 하고 있으나 왠지 눈빛이 조용하고 청수하게 느껴지는 노인(老人)이었다. 악검림은 마악 화검상과 술을 한잔하며 즐기려는데 느닷없이 불청객이 나타나자 다소 눈살을 찌푸렸다. 주위를 둘러보니 아직 자리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었고, 또한 잠시 기다리기라도 하면 이내 좋은 자리가 나타날 것이다. “우리는 지금 중요한 얘기가 있어서 그건 어렵겠어요. 정히 자리를 찾기 어려우시다면 제가 하나 잡아드릴까요?” 노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닐세, 그 얘기가 끝날 때까지 여기서 잠시 기다리지. 사실 말이지, 허허…… 나는 이 자리의 술맛이 가장 좋을 것 같아서, 일부러 이곳에 온 것이네. 내게도 한잔 주지 않겠나?” 악검림은 여협사의 흉내를 내고 있었는데 노인에게서 술맛이 좋을 거라는 얘기가 나오자 그만 더 이상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눈살을 찌푸리더니 이내 하는 수 없다는 듯 빈 잔에 술 을 따라주었다. “그럼 이 술을 한잔 받으세요.” 노인은 술이 잔에 채워지기가 무섭게 집어들고 단숨에 들이키 더니 껄껄 웃으며 말했다. “내가 이거 손님인 주제에 먼저 마셔서 미안하네. 대신 그 보 답으로 재미있는 얘기를 해주도록 하지.” “재미있는 얘기요?”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악 야그 출력일 :: 98/10/16 ───────────────────────────────────── 제 목 : [화산] 2 권 제 24 장 - 3 악검림은 노인의 입에서 무슨 고리타분한 옛날얘기가 나올까봐 이맛살을 찌푸렸다. 노인은 이번에는 스스로 술을 잔에 따라 마시며 고개를 내저었 다. “늙은이의 얘기라고 해서 함부로 무시하면 안 되네. 오히려 늙고 나이 많은 사람의 얘기일수록 그 속에 깊은 삶의 경험이 배 어 있는 법이지. 허, 그 술맛 좋군!” 악검림은 노인이 나타나 분위기를 망치고 그녀의 의도를 흐리 게 하고 있었지만 기왕에 이렇게 되었으니 그냥 잠시 상대해주기 로 했다. “그럼 옛날얘기는 아닌가요?” 노인은 벌써 석 잔째의 술을 안주도 없이 마시며 손을 내저었 다. “커, 정말 취하는군! 내 얘기는 강호인들의 무공(武功)에 관한 것일세.” 본래 악검림이 가장 좋아하는 내용이 강호인들에 관한 것이었 고 또한 거기에 무공이 빠질 수가 없다. 악검림은 처음에는 눈살만 찌푸렸다가 그 말을 듣자 이내 흥미 가 느껴져 눈빛을 반짝 빛냈다. “강호인들의 무공요? 대체 어느 문파(門派)의 어떤 무공에 대 해 말하려는 거죠?” 노인은 이번엔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 화검상에게 말했다. “자네는 어째서 술은 마시지 않고 그렇게 국수만 먹고 있나? 술은 좋아하지 않는가?” 화검상은 기실 지금 국수를 먹으면서 이 갑자기 나타난 정체불 명의 노인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이 노인이 처음 다가와 앉을 때부터 일종의 괴이(怪異)한 감각을 느꼈다. 마치 유리처럼 단단하고 위험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것은 결코 무공에 의해 느껴지는 기(氣)의 감각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 노인이 무공과 어느 정도 연관이 있다는 것은 이내 알 수가 있다. 아까 노인은 두 사람과 그리 가깝지 않은 거리에 있었던 것 같 았는데도 그는 어느새 두 사람의 대화를 정확히 엿듣고 다가온 것이 아닌가? 만일 정말로 평범한 시골노인이었다면 귀가 어두워 이곳이 아 주 조용하다고 해도 잘 듣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곳은 음식을 먹고 마시는 소리, 그릇를 나르고 부딪치는 소리, 주고받는 얘기 소리 등으로 제법 시끌벅적하다. 화검상은 요즈음 무공이 높아져서 그의 안목도 보통이 넘는다 고 할 수가 있었다. 이 노인은 무공을 지니고 있으되 무림인(武林人)은 아니고 시 골노인은 더 더욱 아니며 아마도 강호의 숨은 이인(異人)들 중의 하나일 것이다. 화검상은 문득 전에 작은 암자에서 만난 선문선답(禪問禪答)을 하던 노승의 모습을 뇌리에 떠올렸다. 갑자기 어째서 이렇게 들어보지도 못한 이인들이 나타나는가? 바야흐로 난세(亂世)여서 영웅(英雄)들을 부르는 것일까? 그런데 어째서 그 이인들은 갑자기 유독 그들의 앞에 계속해서 나타나는 것일까? 자신에게, 혹은 악검림에게 무슨 특별한 점이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다른 어떤 목적들이 있는 것일까? 화검상은 곰곰이 지금 이 노인의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 해보고 있었다. “괜찮으시다면 좀더 드십시오.” 노인은 빙그레 웃으며 손을 내젓더니 술잔을 건네주며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린가? 옛 말에 술은 친구와 함께 마셔야 제 맛 이라고 하지 않던가? 우린 비록 아직 친구는 아니지만 이렇게 만 났으니 우선 친구라고 해두세. 자 어서 한잔 들게나!” 화검상은 웃으며 수저를 놓고 술잔을 들더니 말했다. “제가 어찌 노인장과 친구가 될 수 있겠습니까? 혹시 노인장 께선 이 부근에 사시는 분이십니까?” 노인은 잠시 멈칫하더니 웃으며 말했다. “이 부근이면 어떻고 아니면 또 어떻겠나? 이 풍진 세상을 살 아 가는 인생(人生)이니 차라리 방랑객이라고 하는 것이 좋지 않 을까?” 화검상은 술잔을 내려놓고 웃으며 다시 말했다. “노인장께선 혹시 저희들에게 무슨 볼일이라도 계신 것이 아 닙니까? 만일 하실 말씀이 계시다면 경청하겠습니다.” 노인은 웃으며 화검상의 앞에 내려진 술잔을 들어 마시며 말했 다. “자네는 계속 술맛을 깨뜨리긴가? 아까 나는 술맛이 그리워서 찾아왔다고 하지 않았나? 세상사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이렇게 한번 취해서 누우면 그곳이 바로 하늘나라가 아니겠나? 커어, 취 한다……!” 노인은 정말로 취하는지 약간 상기된 얼굴로 멍하니 어두워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악검림이 노인의 어깨를 잡고 흔들며 말했다. “아까 강호인들의 무공에 대해서 말씀하신다고 했잖아요? 어 서 그 얘기를 해주세요.” 노인은 빈 술잔을 내려놓고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말했다. “그 얘기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나? 그럼 어디 해보기로 하지. 음……, 자네는 세상에 무공이 아닌 무공이 있다는 얘기를 들어 본 적이 있나?” 처음의 말은 악검림에게 시작했지만 노인은 나중에는 화검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화검상은 잠자코 있었지만, 악검림이 그 말을 듣고 즉시 흥미 가 동해 말했다. “그런 무공이 대체 어디에 있어요?” 노인은 다시 악검림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이건 내가 각처를 돌아다닐 때 본 것인데, 한 사람이 바로 그런 무공 아닌 무공을 쓰고 있었네.” 악검림이 더욱 흥미가 동해 말했다. “그 무공 아닌 무공이란 대체 어떤 거죠?” 노인은 슬쩍 화검상을 돌아보며 말했다. “음, 말하자면 무공이 낮은데도 거대한 힘을 일으키고, 혹은 신법(身法)을 펼치지도 않았는데 몸을 움직이는 것들이지. 내가 본 그 사람은 누가 장력(掌力)으로 후려쳤는데 내공을 일으켜 반 격하지도 않았는데도 멀쩡했고 그 장력은 어디론가 사려져버렸 지.” 악검림은 멍하니 넋을 잃고 듣고 있다가 문득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에이, 그런 게 어디 있어요? 그렇다면 전혀 무공을 배울 필 요도 없게요?” 노인은 짐짓 엄한 표정을 지었다. “이 늙은이의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건가? 자고로 늙은이의 말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만두를 먹게 된다는 말을 들어보지도 못했는가?” 악검림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럼 그런 게 정말로 있단 말인가요?” 노인은 엄숙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암, 있다마다! 내가 직접 이 두 눈으로 목격을 했는걸?” 악검림은 다시 웃으며 말했다. “만일 노인장께서 지금 그런 것을 보여주시지 않는 한 저는 믿지 못하겠어요.” 노인은 화검상을 한번 바라본 뒤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 다. “내가 만일 그런 것을 배울 수만 있었다면 왜 이렇게 떠돌아 다니겠나? 그 사람은 그 뒤로 자취를 감추어버려 다시는 찾을 수 가 없었지.”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악 야그 출력일 :: 98/10/16 ───────────────────────────────────── 제 목 : [화산] 2 권 제 24 장 - 4 악검림은 너무나도 황당한 얘기인 듯해서 더 이상 거기에 관한 이런저런 얘기를 물어보지 못했다. 노인은 이번에는 다시 화검상을 향해 말했다. “자네도 그런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나?” 화검상은 계속 침묵을 지키고 있다가 웃으며 말했다. “그거야 이론상으로 가능할지 몰라도 실제로 그런 능력을 가 진 사람이 있겠습니까?” 노인은 문득 눈빛을 가볍게 빛냈다. “그럼 자넨 그 이론을 알고 있단 말인가?” 화검상은 웃으며 말했다. “그것은 무슨 이론이랄 것도 없습니다. 말하자면 이론도 아니 고 이론이 아닌 것도 아니라고나 할까? 어쨌든 뭐라고 설명할 수 가 없기에 말씀드리기가 곤란한 것입니다.” 이때 문득 노인의 두 눈 깊은 곳에서 번갯불과도 같은 광채가 번쩍이다 사라졌다. 악검림은 화검상을 보고 있었고, 화검상은 노인의 시선을 약간 외면하고 있어서 미처 그것을 보지 못했다. 아니 설령 악검림과 같은 경우는 보았다고 해도 너무 빨리 나 타났다 사라졌기 때문에 자신의 눈의 착각이라고 생각했을 것이 다. 노인은 깊은 관심이 깃들인 표정으로 화검상에게 다시 말했다. “그때 그 사람도 그런 비슷한 말을 했었지. 나는 이해하지 못 했네만 자네는 잘 알고 있는 모양이네?” 화검상은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도 다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뿐이지 알고 있지는 못합 니다. 그것으로 무슨 무공 아닌 무공을 펼친다는 것은 생각도 못 하고요.” 노인은 고개를 한번 내저으며 말했다. “그 무공 아닌 무공이란 말은 그저 내가 붙여본 것에 불과하 네. 아마도 맞는 이름은 아닐 것이네. 자네는 그런 것을 어디에서 배웠나? 혹시 그런 사람이 있으면 내게 소개시켜줄 수 있겠나? 내 자네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라도 들어주겠네.” 화검상은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너무 지나친 말씀입니다. 저는 그것을 스스로 알게 된 것이 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이 아닙니다.” 제 25 장 곡선(曲線)과 곡선적(曲線的) 노인은 잠시 눈을 빛내며 화검상을 주시하다가 다시 말했다. “그렇게 단정적으로 말할 일이 아니네. 자네도 모르는 사이에 누구에게서 배웠을 수도 있지 않은가?” 화검상은 웃으며 다시 고개를 저었다. “그럴 일도 없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것도 그리 대단치도 않 고요. 노인장께선 공연히 제 말에 신경을 쓰시는 것 같습니다.” 화검상은 왠지 이 노인에 대해서 경계심이 일어 별로 생각해보 지도 않고 그렇게 대꾸했다. 노인은 잠시 더 화검상을 바라보더 니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자네가 배우지 않았다면 나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지. 하지만 만일 나중에라도 생각이 난다면 내게 가르쳐줄 수 있겠 나?” 악검림이 옆에서 듣고 있다가 다시 입을 열어 말했다. “그럼 노인장은 그 일로 계속 우리를 따라다니겠다는 말인가 요?” 노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게까지 폐를 끼칠 수는 없는 노릇이지. 하지만 인생사란 인연이 있으면 또 만나게 되는 것이 아니겠나?” 말과 함께 노인은 즉시 몸을 일으켰다. “자, 그럼 술도 잘 마셨고 하니 나는 이만 물러가도록 하겠네. 다음에 또 보도록 하지.” 악검림은 내심 어느 정도 노인이 해준다는 강호인들의 무공에 대한 얘기에 기대를 갖고 있었기에 느닷없이 일어서서 가버리는 노인의 행동에 다소 어이가 없었으나, 한편으로는 귀찮기도 했던 터라 붙잡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화검상은 노인이 사라지고 나자 스스로 술을 한잔 따라 마셨 다. 악검림은 아미를 가볍게 치켜올리고 있다가 이윽고 화검상을 향해 말했다. “정말 이상한 노인이죠? 안 그래요, 화사형?” 화검상은 다시 남은 국수를 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할 뿐만 아니라 신비로운 노인이지. 정말 천하(天下)는 넓다는 생각이 들어. 과연 저런 사람들이 강호에는 얼마나 있을 까?” 악검림은 그저 생각나는 대로 기분을 말했을 뿐인데 화검상이 너무도 심각해 하는 모습을 보자 그만 도리어 어리둥절해졌다. “그 노인이 그렇게도 대단한 사람이었나요?” 화검상은 가볍게 웃으며 음식 그릇들을 그녀의 앞으로 내밀었 다. “그러니까 악사매도 앞으로 매사에 좀더 신중하게 행동하는 것이 좋을 거야. 흔히들 강호에는 숨은 이인들이 모래알처럼 많 다고들 하지 않아?” 악검림은 우선 그 노인에 대해 자신이 잘못 평가하고 있었는지 도 모른다는 놀라움이 내심 일었고, 또한 화검상이 왠지 갑자기 우울해진 것 같아서 잠시 묵묵히 생각에 잠기며 젓가락만 움직였 다. 대개 여인들은 자신들의 미모를 유지하기 위해 음식을 적게 먹 는 습관을 들이고 있다. 악검림도 예외는 아니어서, 그녀는 비록 젓가락을 이리저리 움 직이고 있지만 정작 음식은 별로 먹지 않았고 또한 상황이 좋지 않은 탓인지 술도 마시지 않았다. 화검상은 국수를 다 먹고 나자 이제는 그녀를 돌려보내려고 생 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악검림이 잠시 동안의 침묵을 깨고 방긋 웃으며 입을 열어 다시 말했다. “제가 보기에 화사형은 역시 훌륭한 분이세요. 조금 전의 그 노인도 화사형에게만 신경을 쓰고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나요?” 화검상은 마악 다시 술 한잔을 하려다가 고개를 들고 웃으며 대꾸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지? 세상의 일이란 그렇게 간단히 설명 하기가 곤란한 거야.” 악검림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어쨌든 저의 생각은 이제 변하지 않아요. 우리는 지금 멋드 러지게 술 한잔을 하러 온 것인데 만일 화사형이 즉시 나를 돌려 보내려고 한다면 저는 오히려 악착같이 가지 않겠어요.” 화검상은 가볍게 실소하며 말했다. “그럼 여기에 있는 술을 다 마셔야만 갈 수 있단 말인가?” 악검림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일단 오늘은 그 정도로 내가 참기로 하죠. 하지만 계 속 화사형이 내게 그런 눈치를 준다면 저는 결단코 오늘 돌아가 지 않겠어요.” 말과 함께 그녀는 자신의 비어 있는 술잔을 앞으로 내밀었다. “하하, 정말 대단히 무서운 사매인걸?” 화검상은 그만 파안대소를 하며 그녀의 비어 있는 술잔에 술을 따랐다. 그런데 악검림이 마악 그 술잔을 집어들고 마시려고 할 때였 다. 갑자기 어디선가 커다란 나방 같은 것이 날아들어 그녀의 술잔 위를 덮어버렸다. 알고 보니 그 나방 같은 물건은 바로 하나의 만두였다. 만두가 느닷없이 불빛을 받으며 날아들어 흡사 살아 있는 것처 럼 움직였기 때문에 그렇게 보인 것이다. 악검림이 마악 술을 마시려던 차에 느닷없이 날아들었고, 게다 가 손목까지 찌르르 울렸기 때문에 그녀는 그만 깜짝 놀라 아, 하는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하지만 정작 그것을 보고 더욱 놀란 사람은 앞에서 바라보고 있던 화검상이었다. 본래 화검상은 아미 주점의 안쪽으로부터 무엇인가 날아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것이 위협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가만히 있었다. 그러나 이 만두가 날아온 수법은 실로 특이했다. 일반적으로 이기어검술(以氣馭劍術)이라는 것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애초에 공력의 비중을 교묘히 실어 날려보내기 때문에 방 향을 바꿀 수도 있고, 또한 목적을 마치면 되돌아오게 되는 것이 다. 그러한 것도 실은 황하예의 경지에 올라야만 안정되게 시전할 수 있는 것으로 결코 간단하지는 않다. 하지만 무공경지가 거기에서 좀더 진보한다고 해도 일단 발출 된 내력(內力)이나 물체를 도중에 다시 변화시킨다는 것은 거의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무림인들은 함부로 자신의 내력을 발출시 켜서 공력을 소모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백연탄의 경지에 올라도 그 경기(勁氣)가 빠르고 예리하며 영 성이 깃들기 시작했다고 해도 아직 일단 발출된 다음에 다시 그 기운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어렵다. 일단 내력이든 물체든 간에 사람의 몸을 떠난 다음에는 조정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더러 먼저 암기를 날린 다음에 더욱 빠른 지력(指力) 등으로 암기의 부분을 뒤따라 맞추어서 변화시키는 것이 있기는 한데, 그것은 외부의 힘에 의한 것이고 자체적으로 변화를 이루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논외이다. 그런데 조금 전의 그 만두는 화검상이 보기에도 분명 도중에서 외부의 가격 없이 임의로 방향을 바꾸어서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그 술잔 위를 덮어버렸던 것이다. 일반적인 무공의 경우 그렇게 조종이 뜻대로 가능한 것은 전설 의 광검(光劍)이나 심검(心劍)의 말기 이외에는 아직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어찌 보면 그것은 화검상이 생각한 곡선적 무공과도 비슷한 것 같았다. 곡선적 무공의 경우, 만일 대홍락의 경지에 오르기만 해도 그 것은 어느 정도 가능해진다. 곡선적 무공은 모든 가능한 변화를 섭렵해가는 것이므로 비록 광검의 경지에 오르지 않아도 그것이 가능한 것이다. 광검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공력의 응결체인 빛을 사용하는 것 으로 대홍락의 중간 경지이며 공력이 무려 육십사(六十四) 갑자 (甲子)가 필요한, 말 그대로 전설의 경지이다. 그것은 그야말로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으로 화검상은 지 금 그들의 눈앞에 그러한 고수가 있다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그저 빛의 반사와 산란에 의한 갑작스런 눈의 착각이었다고 해 도 그 둥그런 만두가 흡사 나방처럼 빛무리를 끌며 환영(幻影)을 일으켰다는 것도 기실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야그 출력일 :: 98/10/22 ───────────────────────────────────── 제 목 : [화산문하]제 1부 3 권 제 25 장 - 1 무공의 증진에 의해 변환의 모습이 환영으로 점차 늘어간다고 하는 것은, 물론 그 속도가 더욱 빨라지는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기실 단순히 눈앞의 환영이 미처 사라지기도 전에 그 시간 동안에 변환이 그 숫자만큼 일어난다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육체는 그렇게 빠를 수가 없을 것이다. 다만 사람의 예민한 듯하지만 기실은 둔한 시각과 두뇌는, 그 영상(影像)이 강렬할수록 오래도록, 흡사 영상이 없는데도 남아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되며 기억과 감수 등의 여러 요인들 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영상이 사라지는 데 좀더 시간이 걸리게 한다. 따라서 실제로 환영이 사라지는 동안에 대여섯 개의 변환이 일 어났다고 해도 보는 사람들은 마치 그것의 수배나 되는 개수의 환영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무공의 변환은 기(氣)를 은연중 발산하는 것이어서 그 영상은 뇌리에 오래 남을 정도로 강렬한 것이 아닐 수가 없다. 흔히 사파(邪派)의 분신술(分身術) 등은 바로 그런 영상들을 좀 더 강렬하게 함으로써 그런 이치를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무학상의 기준은 사람들이 보는 입장에서 생각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칠십이 개가 육체적 한계라고 하는 그 변환의 개수 도 실은 실제의 모습이 아닌, 뇌리에서 영상이 지워지지 않은 동 안의 모습이다. 인간의 육체는 정말로 그 짧은 시간 동안에 그 많은 변환을 만 들 수 있을 정도로 빠를 수는 없을 것이다. 화검상은 이제까지 그 곡선적 무공을 알고 있는 사람은 천하에 서 자신이 거의 유일할 것이라고 나름대로 믿고 있었다. 그는 이제까지 어느 누구에게서도 그것에 관한 얘기는 들어보 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뜻밖에도 여기에서 갑자기 그것과 흡사한 무공을 보게 되자 자연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것은 어쩌면 잠재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그의 자만심에 경종 을 울리게 하기에 족했기 때문이다. ‘정말 이렇게도 인물이 많단 말인가? 정말 이렇게도 천하는 넓단 말인가…….’ 그는 오늘 거듭 놀라고 있었다. 그런데 내심 설마 하며 그 안쪽을 바라본 화검상에게 이어 펼 쳐진 광경은 그를 더욱 놀라게 만들었다. “하하하! 미안하오! 두 분의 대화가 너무 질투가 날 정도로 다정해 보이기에 한번 방해를 해본 것이니 너무 화내지마시오!” 그런 말소리와 함께 안쪽에서 미소를 지으며 걸어나온 사람은 믿을 수 없게도 이제 겨우 삼십을 넘었을까 싶은 장년인이었다. 화검상은 그렇게 젊은 사람이 그런 무공을 펼쳤다는 사실이 쉽 게 믿기지 않아서 안쪽을 좀더 둘러보았으나, 정말로 그럴 만한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이쪽으로 다가오는 그 장년인의 용모를 살펴보니 과연 두 눈에 서 쏘는 듯한 바늘끝같이 예리한 기운이 느껴지는 것이 매우 범 상치 않았다. 나이는 삼십대 초반으로 보이고 헌칠한 체구에 준수한 외모를 가지고 있으며, 눈빛은 좌우로 빠르게 움직이고 음침하며 다소 어두운 기질(氣質)을 가지고 있었다. 허리에는 마치 검처럼 길쭉한 병기를 차고 있었는데 손잡이 부 분을 보니 검의 손잡이와는 달리 그것이 일종의 기형도(奇形刀) 라는 느낌을 주고 있었다. 대개 도(刀)는 검에 비해 도신의 폭이 넓고 두터운 편이지만, 그것은 칼집의 모양으로 보아 폭도 좁고 얇은 병기일 것이며 또 한 예리하고 휘어져 있을 것이다. 지금 이 부근에는 많은 무림인들이 우글거리고 있다. 으레 그렇게 많은 무림인들이 모이게 되면 사건들도 많이 벌어 지게 되는 법이지만, 그러나 지금 이곳은 무림맹의 총단을 지척 에 두고 있고 대부분은 긴장하고 있으며 사파인들이 근접을 못하 고 있기 때문에 조용한 모양이었다. “하하, 우리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서로 수인사나 나누 는 것이 어떻겠소?” 그 장년인은 다가와 넉살좋은 듯이 웃으며 털썩 자리에 앉으며 그렇게 다시 말했다. 악검림은 비록 갑작스런 일이라 놀라기는 했지만 아직 무공에 대한 견식이 부족하여 그 장년인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내릴 수 가 없었다. 단지 그의 무공이 괴이하다고 생각되기는 했지만 깊이 생각하 지 않고 즉시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며 말했다. “당신은 어디에서 온 누구죠? 대체 기본적인 예의도 모르나 요?” 그 장년인은 악검림을 향해 한번 가볍게 미소를 보내며 말했 다. “역시 아직도 화를 내고 계시는구려? 하지만 당신에게 무슨 악의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니 이해하시오. 하하, 내 이름은 사 마귀(査摩歸)라고 하오.” 악검림은 그 장년인의 미소를 가까이에서 접하자 마치 마음이 이상하게 흔들리는 것 같아서 안색이 기이하게 변했다. 그토록 사람의 마음을 음울하고도 끈끈하게 잡아 끌어당기는 듯한 괴이한 미소를 그녀는 처음으로 보았기 때문에 문득 생각했 다. ‘무슨 남자의 웃음이 저렇담? 그리고 이름이 사마귀라니? 정 말 웃기는 이름이잖아!’ 악검림은 그 사마귀라는 괴상한 이름을 가진 사람의 미소를 본 다음에는 왠지 가슴이 울렁거리고 마음이 불편해지는 것 같아서 시선을 화검상에게 돌렸다. 그러자 기이하게도 화검상의 얼굴을 본 순간, 이번에는 마음이 아주 따뜻하고 편안해지는 것이었다. 화검상은 그 사내가 자신을 사마귀라고 소개하는 바람에 하마 터면 한번 웃을 뻔했다. 그 이름은 마치 사마귀(邪魔鬼)를 연상시키는 것이 아니겠는가! 자신과의 나이 차이가 칠팔 세 정도인 듯해서 화검상은 그저 편하게 대하기로 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늘상 따돌림만 받아왔던 처지이기 때문에, 화 검상은 일단 그런 젊은 사람이 접근해왔다는 사실에 호감을 느꼈 다. 그가 아무리 능력이 강하다고 해도 강호상에서 혼자서 만인을 상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이른바 독불장군이라는 말인 것이다. 지금의 상황에서 화검상에게 가장 취약한 점 중 하나는 그에게 함께 일을 헤쳐나갈 친구가 없다는 것이었다. 화검상은 은근히 상대의 능력과 의도를 살피는 동시에 담담히 웃으며 입을 열어 대꾸했다. “초면인 듯하지만, 귀하가 이렇게 대담하게 나온다는 것은 실 상 미리 우리를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니오?” 괴상한 이름의 사내, 사마귀는 그 말에 일순 괴이쩍게 웃더니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흐흐, 과연 화산파의 소광생(少狂生)답게 평범하지는 않구려! 그렇소, 기왕 이렇게 되었으니 얘기하기는 좀더 편해진 것이 아 니오?” 악검림은 그가 이미 자신들을 알고 있다고 하자 이내 안색이 변해 경계하는 표정으로 그를 주시했다. 화검상은 미소를 지으며 다시 말했다. “귀하는 혹시 우리에게 무슨 볼일이라도 있소?” 사마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웃으며 말했다. “볼일이 있기는 하지만 뭐 그리 대단치는 않소. 그저 두 분과 한번 사귀어보려는 것이지. 설마 하니 화형(華兄)은 이 사마귀를 두려워하여 사귀기를 마다하는 것은 아니겠지?” 화검상의 강호견식이 비록 졸렬하지만, 그러나 이런 정도의 무 림고수라면 당연히 알려져 있어야 할지도 모른다. 화검상은 이제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속아왔고, 또한 당해왔다. 하지만 이제는 설령 당하는 한이 있어도 한번 그들에게 접근해 보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는 사마귀라는 이름이 절대 본명일 것 같지는 않았지만 일단 그런 것들은 개의치 않기로 했다. “물론 나는 사형(査兄)을 두려워하지는 않소. 하지만 사형은 이것이 그리 대수롭지 않은 것이라고 말을 했는데, 설마 하니 장 난으로 사귀려는 것이라는 말이오?” 화검상의 말에 사마귀는 문득 대소하며 탁자를 손으로 쳤다. “하하하! 정말로 화형은 알고 보니 내 구미에 맞는군. 좋소, 좋아! 그럼 우리 좀더 진지하게 사귀는 것으로 합시다! 그런 의 미에서 진지한 대화도 나눠보기로 하고…….” 대개 주먹으로 탁자를 치면 탁자 위의 물건들이 흔들리거나 튀 어나오기 마련이다. 그러나 지금 사마귀가 탁자를 치자, 다른 물건들은 모두 전혀 움직이지 않는데 유독 갑자기 악검림이 내려놓았던 그 술잔 위의 만두만이 불쑥 튀어올라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그것은 마치 나머지는 못으로 탁자에 박아놓은 것과도 같아서 괴이한 광경이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야그 출력일 :: 98/10/22 ───────────────────────────────────── 제 목 : [화산문하]제 1부 3 권 제 25 장 - 2 탁자 위의 모든 물건을 움직이는 것은 간단해도 그렇게 선택적 으로 물건을 움직이게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노릇이 아니다. 악검림은 화검상이 느닷없이 이 괴이한 사내와 사귀겠다는 말 을 하자, 즉시 나서서 한마디하려다가 문득 그 광경을 보고 놀라 서 입을 다물었다. 강호상에는 힘을 빌려 차거나 힘을 전이시켜 움직이게 하는 방 법도 있지만 이렇게 간단하고 또한 깨끗할 수가 없다. 화검상도 그 수법에 은근히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마치 아까의 그 던지는 수법을 다시 보는 듯했기 때문이었다. 사마귀는 다시 고개를 들고 웃으며 화검상을 향해 말했다. “화형이 보기에는 나의 이 무공이 어떻소?” 화검상은 본래 그의 내력이나 본명 등에 관해 물어보려고 했지 만 이렇게 되자 일단 그런 것들은 접어둘 수밖에 없었다. 화검상은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가 대답했다. “다소 특이한 무공인 것 같소.” 사마귀는 눈빛을 번쩍 빛냈다. “단지 그렇게만 생각되오?” 화검상은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사형은 내게 무슨 대답을 바라시오?” 사마귀는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며 천천히 말했다. “실은 아까 화형 등이 재미있는 무공에 대한 얘기를 하기에 나도 모르게 나서게 되었던 것이오. 사실 그런 공상 같은 무공에 대해서는 나도 모르고 이건 내가 스스로 터득한 실재하는 무공이 오. 화형의 솔직한 고견을 듣고 싶은 거요.” 화검상은 다시 생각하는 듯하다가 말했다. “내가 보기에 그건 누구라도 배울 수 있는 무공인 것 같소.” 사마귀는 다소 어이없다는 듯이 화검상을 바라보다가 이윽고 실소하며 말했다. “아니 그 말이 진심이오? 대체 어째서 그런 생각을 한단 말이 오?” 기실 화검상은 비록 놀라기는 했지만 조금 전의 그의 두번째의 무공을 보고는 어딘가 자신의 무공과는 다르다는 것을 간파한 것 이다. 하지만 대체 그 차이가 무엇인지 아직은 확실히 알 수가 없었 다. 대체 그의 무공과 이 사마귀의 무공은 어디가 다른 것일까? 화검상은 담담히 웃다가 말했다. “내 말은 말뜻 그대로 누구라도 그러한 경지에 올라 그것을 수련하면 전개가 가능하다는 말이오.” 사마귀는 안색이 다소 굳어져서 화검상을 바라보며 말했다. “정말 뜻밖이로군. 그래, 화형도 나의 이 수법을 펼칠 수가 있 다는 말이오?” 화검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아직 어려울 것이오. 하지만 그저 내 의견을 말한 것일 뿐이니 너무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마시오.” 사마귀는 문득 다시 실소하며 말했다. “좋소! 어쨌든 자신의 의견은 말할 수가 있는 것일 테니. 하지 만 내가 처음으로 그런 소리를 듣는 것이기에 이러는 것이오. 그 래, 화형은 내 무공의 근본이 어디에 있는지 아시오?” 악검림은 옆에서 그냥 듣고만 있었다. 그녀는 이 두 사람의 대화내용에 관심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 었으나 그래도 자신의 의도가 번번이 장애를 받자 오늘은 재수가 없는 날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화검상은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사형의 고견을 경청하도록 하겠소.” 사마귀는 화검상을 주시하다가 말했다. “나의 무공의 근본은 바로 곡선적인 무공이오.” 화검상은 이에 문득 놀라고 어리둥절해져서 내심 입을 딱 벌리 고 말았다. 비단 무공만 흡사한 줄 알았더니 정말로 지금 그에게서도 곡선 적이란 말도 똑같이 나오고 있지 않은가? 곡선적이란 말은 화검상이 그냥 갖다 붙인 것으로, 무공이 같 아도 그런 이름까지 같아야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너무나도 공교롭게도 그 명칭마저도 같은 말이 사 마귀의 입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화검상은 이 지독한 우연의 일치에 그만 어안이 벙벙해져서 잠 시 스스로 넋을 잃은 것 같았다. ‘정말 직접 듣고도 믿을 수가 없는 일이로군!’ 하긴 그가 이제까지 배운 무공은 그가 새로 창출해냈다기보다 는 그도 역시 본래 있던 것을 찾아낸 것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 었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도 역시 그처럼 그런 것을 찾아낼 수도 있 는 것이다. 또한 지독한 우연의 일치이겠지만 거기에다가 같은 이름을 붙 일 수도 있는 일이 아니겠는가? 화검상은 겉으로는 표정이 여전히 담담한 듯했지만 내심은 그 마음의 격동을 누르기 어려웠다. 그렇다면 뭔가 내용이 다른 듯한 이 느낌은 무엇이란 말인가? 화검상은 이윽고 가볍게 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곡선적인 무공이라는 것을 내게 설명해줄 수 있겠소?” 사마귀는 이미 겉으로는 보이지 않아도 화검상의 격동을 짐작 한 듯 웃으며 말했다. “그것은 곡선의 무한(無限)히 변화하는 흐름이라는 것이오.” 화검상은 다시 내심 어리둥절해졌다. 그 말 역시 그가 과거에 생각했던 내용과 흡사해 보였기 때문 이다. 화검상은 다시 물었다. “그럼 그 흐름을 따르는 것이라는 말이오?” 사마귀는 다소 의외인 듯 화검상을 바라보다가, 이어 웃으며 말을 받았다. “화형은 정말 나를 감탄하게 하는구려. 일반적으로 초식(招式) 에 얽매이는 무공은 보편적인 것이고, 흐름을 따르는 무공은 그 보다 훨씬 월등한 것이오. 초식을 다 알고 나서야 흐름을 따를 수가 있기 때문이오. 하지만 나의 무공은 그 초식과 흐름, 둘 다 모두 초월하여 변화하는 것이오. 화검상은 문득 그 말에 기이한 느낌이 들어서 다시 말했다. “그렇다면 그것은 무한한 변화의 전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단 지 하나의 변화가 무한히 나아간다는 말이오?” 사마귀는 이에 다소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가 웃으며 말했 다. “그럼 하나의 변화가 나아가는 것이지, 전체를 본다면 그 무 슨 변화라고 할 수 있겠소?” 화검상은 다시 말했다. “그럼 그 곡선적이란 말은 곡선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이오?” 사마귀는 화검상을 잠시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오. 곡선은 파격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변화하고, 때로 는 곡선이란 이치마저 벗어나서 변화하지만 결국은 그 모두가 곡 선이란 뜻이오.” 기실 화검상은 이미 그 이상한 느낌의 정체를 알아낸 것이다. 말하자면 이 사마귀는 곡선적인 무공이라고 스스로 말하고 있 지만 정말로 그 곡선적이란 말에 집착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화검상이 말하는 곡선적 무공이란 말은 표현할 길이 없 어서 그렇게 정한 것이지 정말로 곡선적이란 말과 같을 수는 없 었다. 이를테면 가짜로 그런 이름을 붙인 것인데 그 가짜를 진짜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어 그 사람은 오히려 가짜의 길을 가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화검상은 곡선을 곡선적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곡선적이라는 말은 그저 비유적으로 사용한 것이지, 곡선을 다 시 곡선화한다고 해도 그건 곡선적이 아니라 직선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물론 누군가가 곡선을 곡선적이라고 하고 직선을 직선적이라고 한다고 해서 잘못된 것은 아니다. 다만 화검상이 생각하고 있는 그런 곡선적인 것과는 완전히 다 를 뿐이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 야그 출력일 :: 98/10/22 ───────────────────────────────────── 제 목 : [화산문하]제 1부 3 권 제 25 장 - 3 화검상이 생각하는 그 곡선적이란 어떤 정해진 틀에 집착하지 않고 전체적으로 보고 전체적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정해진 틀이 아니기에 문자로 표현할 수 없고 또한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것이다. 만일 하나의 변화되는 곡선이 있다면 그것은 직선적이고 나머 지의 모든 무한한 곡선들을 포함한 것이라야 곡선적이라고 할 수 있다. 애초에 곡선적이라는 말은 두 점 사이에 무한히 많은 곡선들이 있으며, 그 전체의 곡선을 보고 전체적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이미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가짜로 말한 것이기에 그 뜻을 봐야지 말을 보아서는 안 된다. 기실 전체적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했지만 그 말에도 집착해 서는 안되며, 그럴 경우 정말로 사마귀의 말처럼 오히려 하나의 변화도 보이지 않는 것처럼 되는 것이다. 화검상은 그러한 사마귀의 무공에 대해서 알게 되자 과연 그에 게 어떤 말을 해줄까 하고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지금 그가 말하고 있는 곡선적이란 것도 말에 집착하여 결국 직선적인 것이다. 그와 같이 말에 집착하는 사람은 어떤 말을 해준다고 해도 역 시 말에 집착하게 될 것이므로 소용이 없을 것이다. 그런 무공을 스스로 창안해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겠지만, 그러나 진짜는 말로 표현할 수 없기에 그것을 알게 해주기는 어 려울 것이다. 화검상이 잠시 그러한 생각에 잠기자 사마귀는 웃으며 그에게 다시 말했다. “어떻소? 화형은 누구라도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했는데, 지 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소?” 화검상은 생각을 거두고 그를 향해 가볍게 마주 웃으며 말했 다. “아마도 쉽지 않을 것이오. 내 말이 귀에 거슬렸다면 이해하 시오.” 사마귀는 그래도 뭔가 석연치 않은 듯 화검상의 얼굴을 바라보 다가, 이내 다시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런 것은 이미 이해한다고 말했으니 상관없소. 하지만 이제 는 화형의 무공에 대해서 말해야 할 게 아니오?” 화검상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는 화산파의 사람이니 당연히 본파의 무공이 아니겠소?” 사마귀의 무공이 자신의 것과 같지 않다는 것을 알자 다소 기 이하고도 야릇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것은 반쯤은 허전하면서도 일종의 숨길 수 없는 자부심이었 다. 하지만 이미 경험했듯이 천하는 넓고 인재들은 많다. 정녕 자신의 것과 같으면서도 더욱 심오한 경지에 도달한 사람 이 반드시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마귀는 약간 눈살을 찌푸렸다. “허, 이거 왜 이러시나? 화형이 근래 들어 대단한 성취를 이 루었고 그것이 화산파의 무공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소. 내가 나의 무공의 비밀을 말했으면 화형도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이 아니오?” 화검상은 사마귀를 바라보며 다소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무공이 화산파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도 불과 얼마 전의 일이었다. 아무리 소문이 빠르다고 해도 이렇게 빨리 그가 알고 있을 수 가 있을까? 하기는 강호에서 마음만 먹으면 그런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 겠지만, 문득 이 사마귀가 근거없는 떠돌이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화검상은 다소 염두를 굴리다가 말했다. “나의 무공도 사형의 무공과 비슷하오.” 사마귀는 일순 뜻밖이란 표정을 지었다. “아니 그럼, 곡선적인 무공이란 말이오?” 화검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내가 사형의 말을 금방 이해할 수 있었던 거요. 하지 만 그 내용은 사형의 것과는 조금 다르오.” 사마귀는 아연하여 잠시 입을 짝 벌리고 있다가, 이윽고 화검 상을 바라보고 놀란 표정으로 웃으며 말을 받았다. “그렇겠지! 사람의 생각이 아주 똑같을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이거 너무 뜻밖이고 놀라운데? 하하하, 이 사마귀의 무공과 화산 파 소광생의 무공이 흡사한 데가 있다니? 흐흐흐…….” 화검상은 다소 얘기가 길어질 것 같아서 악검림을 향해 말했 다. “악사매, 미안하지만 시간이 너무 늦었는데 사매는 먼저 그만 돌아가는 것이 어때?” 악검림은 화검상의 무공에 대해서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합석한 사마귀란 작자가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는 데다 가 갈수록 분위기가 불편해지는 것 같아서 이내 거절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서며 전음으로 말했다. “좋아요, 하지만 오늘은 충분하지 않았으니 다음에 또 시간을 내주셔야 해요? 오늘 술값은 제가 내고 갈게요.” ‘충분하지 않았다고?’ 악검림은 이어 사마귀를 향해 짐짓 포권하며 말했다. “사대협(査大俠), 그럼 저는 이만 다음에 뵙기로 하겠어요!” 사마귀는 별로 그녀에 대해 신경을 쓰는 눈치가 아니었다. “그럽시다. 한데 그 대협이라는 칭호는 너무 과분하구려.” 악검림이 이어 계산을 마치고 총총히 사라지자, 이윽고 사마귀 는 다시 화검상을 향해 말했다. “서로 간의 의견이 다르다면 그걸 당장 비교해볼 수도 없는 노릇이겠고……. 아니, 그 요지에 대해서 한번 말해보겠소?” 화검상은 이미 생각해둔 바가 있었기 때문에 즉시 미소를 지으 며 대답했다. “나의 곡선적 무공은 곡선이 아니며, 또한 전체적으로 움직이 는 것이오.” 사마귀는 눈빛에서 이채를 발하며 잠시 생각해보는 듯하다가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웃으며 말했다. “알 수 없군! 말하자면 내용은 나와 반대의 이론을 갖고 있다 는 말인데……, 어디 한번 그 무공을 펼쳐 보여주겠소?” 화검상은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어렵지 않지만, 나는 아직 사형에 관해서는 거의 아는 바가 없소. 내가 사형을 신뢰할 수 있다고 한다면 남들은 나를 바보라고 생각할 것이오.” ‘빌어먹을!’ 사마귀는 화검상의 무공에 대해서 몹시 궁금해 하는 듯 속으로 욕설을 퍼붓고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는 나요. 내가 뭐 반드시 어디에 소속되어 있어야만 하겠 소? 남자라면 다른 것들을 무시하고 있는 그대로도 사귈 수 있는 것이 아니겠소?” 화검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금 겉으로 드러난 모습이 있는 그대로 가 아닐 수도 있소. 나는 솔직히 사형에 대해서 의심이 가는 부 분들이 없지 않소.”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것 야그 출력일 :: 98/10/22 ───────────────────────────────────── 제 목 : [화산문하]제 1부 3 권 제 26 장 믿을 수 없는 일들 제 26 장 믿을 수 없는 일들 ‘이런 우라질!’ 사마귀는 속으로 욕설을 퍼붓다가 이윽고 하는 수 없다는 듯이 전음으로 말했다. “그럼 한 가지만 말해주겠소. 나는 바로 녹림맹(綠林盟) 소속 이오.” 화검상은 그 말에 그만 놀라 소리를 지를 뻔했다. 지금 이곳은 거의 무림맹의 지역이고 사파인들은 발을 붙이기 가 어렵다. 그런데 지금 이 자리에 앉아서 스스로 녹림맹의 일원이라고 밝 히고 있으니 놀랍고 대담하다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화검상은 그의 말을 의심할 수도 없었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그의 기질은 특이하며 그것은 결코 여러 정파의 무공들과는 다른 것이었기 때문이다. 화검상은 즉시 내심의 격동을 억누르며 역시 전음으로 말했다. “당신은 대담하구먼!” 사마귀는 화검상의 안색을 살피고 웃으며 전음으로 말했다. “화산파의 소광생이 이런 일로 놀라다니 전혀 소광생답지 않 은걸?” 기실 화검상은 너무도 느닷없이 허를 찌린 것처럼 처음으로 적 을 만나게 되어 그처럼 놀란 것이다. 화검상은 안색을 이내 차분히 가라앉히며 말했다. “내가 이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을 것 같소?” 사마귀는 여유있게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럴 리가 없지, 흐흐! 화산파의 소광생은 이미 정파의 공적 (公敵)이 되어 있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는데, 화형이 그렇게 할 리가 있겠소?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내가 이렇게 신분을 밝히 지도 않았을 테지. 화형이 유난히 화산파에 미련을 갖고 있다는 것은 알지만, 그게 지금의 사람들에 대한 것은 아니지 않소?” 화검상은 가볍게 안색이 변했다. “내게 일부러 접근한 이유가 뭐요?” 사마귀는 그의 표정이 싸늘해지자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 다. “그야 여러 가지가 있지만, 흐흐…… 화형은 지금 그야말로 고립무원 독불장군의 형세라 자연 친구가 필요할 것이오. 사실 적과 친구라는 것은 쉽게 구분할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오. 나 는 우선 화형의 그 놀라워졌다는 무공에 관심을 가졌고 또한 더 불어 친구가 될 수 있다면 좋으리라고 생각하여 찾아온 것이 오.” 화검상은 다시 안색을 가라앉히며 말했다. “당신은 그러한 사실들을 어떻게 알아낸 것이오?” 사마귀는 웃으며 계속 전음으로 말했다. “나는 화형이 상당히 똑똑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과연 어 수룩한 면도 있구려? 우리 녹림맹은 알다시피 그 인원이 무려 십 만(十萬)이고 이목도 대단하오. 게다가 지금의 상황에서 정보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그래, 화형은 우리 녹림맹의 첩자가 화산파에도 없으리라고 생각했단 말이오? 내가 알기로는 그쪽의 첩자들도 아마 우리 녹림맹의 내부에 있을 것이오.” 화검상은 문득 그 채석장의 사람들을 뇌리에 떠올렸다. 비단 주목을 받던 그들뿐만 아니라 저자들 속에도 첩자가 있을 수가 있고 지금 사마귀의 말은 거짓이 아닐 것이다. 화검상은 다시 전음으로 말했다. “나는 명문정파(名門正派)의 후예인데 당신과 친구가 될 것 같소?” 사마귀는 음산한 웃음을 입가에 흘리며 말했다. “흐흐, 그러시겠지? 하지만 지금 당신의 처지가 몹시 딱하다 는 것을 알아야 할 거요. 게다가 나와 사귀게 되면 필시 여러 가 지의 이득이 있게 될 테지. 당신은 지금 너무 외롭다는 말이오. 지금 나와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도 기실은 그런 이유 때문 이 아니오?” 화검상은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가 말했다. “녹림맹에서의 당신의 직책과 역할은 무엇이고 또한 본명은 뭐요?” 사마귀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사마귀요. 그 이외에 무슨 본명이 더 필요하겠소? 흐흐, 게다가 나의 직책과 역할 등에 대해서는 아직 말할 수가 없소. 이미 내가 녹림맹의 소속이라는 것을 말한 것만 해도 충분한 것 이 아니겠소?” 그렇다. 사마귀는 녹림맹의 일원임을 밝혔으니 그밖의 사항들 은 밝히지 않아도 이미 가장 중요한 것은 밝힌 셈이 되는 것이 다. 사마귀는 자신들의 능력으로 화검상에 관해 알아낸 것인데, 화 검상이 어떻게 더 그런 것들을 거져 알려고 할 수가 있겠는가? 화검상은 이 사마귀라는 괴이한 자에 대해서 다소 망설이는 느 낌이 일었다. 그저 그의 말대로 그와 친구가 되면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아니 어쩌면 장래의 그의 입지에 그것이 결정적인 명분상의 타 격을 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아직 그런 상황과도 먼 시점이며 화검상에게는 아무래도 우선 이런 사람이라도 필요한 것이 사실이었다. 화검상이 그런 일들은 생각하며 잠시 침묵을 지키자 사마귀가 다시 육성으로 웃으며 말했다. “자, 이젠 화형이 무공을 펼쳐 보여줄 때가 아니오?” 화검상은 시선을 들어 그를 바라보며 전음으로 말했다. “당신은 나의 친구가 아니오.” 사마귀는 음침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적만 아니라면……, 흐흐 선의의 경쟁자라고나 할까?” 화검상은 잠시 주위를 둘러보다가 바닥에 떨어진 그 만두가 눈 에 띄자 천천히 우장(右掌)을 내밀었다. 그의 장심(掌心)에서는 일순 강기( 氣)와도 같은 장력이 발출 되었으며 그 만두에 정확히 격중되어 마치 매화 문양이 음각된 것 같은 그림을 그려냈다. “나의 무공은 바로 이렇소.” 그 만두에 그려진 그림은 너무나도 정교했으나 일순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만두와 함께 퍽, 하고 가루로 부서져버리고 말 았다. 사마귀는 모처럼 어렵게 그의 무공을 견식하는 터라 주의를 집 중하고 그것을 주시했다. 화검상의 수법은 가만히 손을 내뻗는 것 같았으나 기실은 내력 만을 운용한 매화장법(梅花掌法)인 듯했다. 그러나 그 장력이 처음에 만두의 표면을 눌러 정교한 매화 문 양을 만들어내자 그의 두 눈은 번쩍 크게 이채를 띠기 시작했다. 백연탄이 아니라 황화예의 경지에 오른 고수라고 해도 만두 하 나쯤 박살내는 것은 일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화검상은 그 연한 만두의 표면을 상하지 않게 눌러 그 와 같은 문양을 정교하게 만들어냈으며 이미 부서진 만두의 부서 짐을 잠시 유보시켰던 것이다. 그것은 실로 대단히 정교한 변화가 깃들지 않고는 거의 불가능 한 일이었다. 그것은 비록 도중에서 장력이 변화하는 수법은 아니었지만 그 때문에 사마귀를 크게 놀라게 하기에 족했다. 장법을 일으키면 변환에 의해 그와 같은 환영(幻影)들이 일어 난다. 단지 그것을 내력의 운용만으로 빠르고도 정확히 축소시켜서 거의 한 순간에 찍히는 것처럼 적용시킨다는 것도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사마귀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게 바로 그 전체적인 변화라는 말인가? 도무지 어찌 된 셈 인지 알 수가 없군……?’ 사마귀는 혼자서 잠시 생각을 굴리다가 이내 화검상을 향해 웃 으며 엄지손가락을 높이 치켜세웠다. “역시 화형의 무공은 대단하오. 나의 안목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겠소.” 화검상은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말을 받았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 야그 출력일 :: 98/10/22 ───────────────────────────────────── 제 목 : [화산문하]제 1부 3 권 제 26 장 - 1 “나는 이미 사형의 무공이 초상승(超上乘)의 경지에 올라 있 다는 것을 알고 있소. 그러니 너무 그렇게 과찬하지마시오.” 초상승의 경지라고 하면 바로 초절정이며 대홍락(大紅落)의 입 문 단계라고 할 수 있다. 화검상도 기실 지금 사마귀의 무공경지를 정확히 알 수가 없어 서 단지 아까 본 것을 기초로 추측하여 물어본 것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사마귀는 다소 흠칫할 뿐 전혀 반박하지도 않 고 웃으며 엉뚱한 말만 하는 것이 아닌가? “하하! 이제 우리 그런 얘기는 그만하고 화제를 돌립시다. 우 선 술을 한잔씩 하도록 하는 게 어떻겠소?” 말과 함께 사마귀는 술잔들을 비우고 거기에 새로 술을 따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무언의 긍정인 셈이었다. 이에 화검상은 내심 오히려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초절정이라면 공력이 팔 갑자는 되어야 한다. 그의 나이가 이제 겨우 서른두셋 정도일 텐데 벌써 그런 경지라니……, 대체 이자는 어떤 사람일까?’ 화산파의 기재라고 하는 화산일룡(華山一龍) 풍검진(馮劍眞)은 그야말로 놀라운 성취를 이루었다고 하는데도 겨우 사 갑자의 공 력에 최상승의 무예경지였다. 그것은 소위 해내팔세(海內八勢)의 하나하나로 인정되는 소림 (少林)과 무당파(武當派)의 최고수재들과 비교해도 조금도 뒤지지 않는 성취였다. 화산파는 비록 현재 중원 내에서 가장 강하다고 하는 그들 여 덟 개의 문파에는 들지 못했지만, 그러한 인재를 만들어냈다고 하는 것은 근래에 크게 발전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렇다면 역시 해내팔세의 하나인 녹림맹의 최고수재 역시 그 정도여야 하지 않겠는가? 사 갑자와 팔 갑자의 공력의 차이는 비록 두 배이지만 그 능력 의 차이는 실로 하늘과 땅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이러한 성취를 이룬 귀재(鬼才)가 녹림맹에 나타나게 되었을까? 하긴 그것은 직선적인 것이며 화검상과 같이 특별한 경우가 또 없으리란 법은 없겠지만 어쨌든 이 사마귀라는 사람은 녹림맹의 내에서도 결코 평범한 위치에 있는 사람은 아닐 것이다. 화검상은 아직 누구에게도 사파에 그러한 귀재가 나타났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다. 대체 이 사마귀는 어떤 신분의 사람이고 또한 그의 녹림맹에서 의 위치는 어떠한 것일까? 사마귀는 먼저 술잔을 들며 웃으며 말했다. “자, 우리가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라고 할 수 있으니 축배 를 들도록 합시다!” 기실 화검상은 자신이 스스로가 워낙에 뛰어난 성취를 이루고 있어서 정작 다른 사람의 뛰어난 점을 별로 느끼지 못하고 있는 편이었다. 혹시 이 사마귀는 무림의 역사상 가장 뛰어난 사파의 기재일지 도 모르는 일이 아닌가? 어쨌든 그러한 사람이 갑자기 화검상의 앞에 나타난 것도 기이 한 일이며, 의아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대체 이 사마귀는 무슨 목적으로 화검상의 앞에 나타난 것일 까? 화검상은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마주 술잔을 들며 말했다. “당신과 내가 적이 되지 않기를 바라겠소.” 사마귀는 단숨에 그 술을 들이키고 나서 화검상도 잔을 비우기 를 기다려 다시 술을 따르면서 말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화형은 강호의 일에 별로 관심이 없다고 하던데, 최근의 강호 상황에 대해 알고 있소?” 화검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럴 만한 여유가 없기 때문 이오. 하지만 앞으로는 비록 여유가 없더라도 관심을 두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소.” 사마귀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역시 화형은 최근의 강호 정세에 대해 잘 모르고 있겠구려? 당금의 강호는 세외팔세(世外八勢)와 해내팔세(海內八 勢), 기타 문파들로 나뉜다고 볼 수 있소. 물론 유감스럽게도 화 형의 화산파는 그 맨 마지막의 기타 문파에 속하는 것이지만 말 이오.” 화검상은 말했다. “나는 무림맹과 집마부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소!” 사마귀는 문득 전음으로 음침하게 웃으며 말했다. “흐흐, 이런 곳에서는 당연히 정무맹(正武盟)을 무림맹으로, 그리고 군림맹(君臨盟)을 집마부(集魔府)라고 불러야 하겠지.” 이어 사마귀는 육성으로 말을 계속했다. “무림맹은 해내팔세 가운데 정파인 소림사(少林寺)와 무당파 (武當派)가 주축이 되어 있고, 집마부는 역시 해내팔세 가운데의 사파인 수라교(修羅敎), 녹림맹(綠林盟), 흑루(黑樓), 만화교(萬花 敎)가 주축이 되어 있소. 거기에다가 정사 중간의 소수세력인 동 심맹(同心盟)이란 단체도 있지.” 강호의 정세에 관한 것은 아무리 사소해도 대세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화검상으로서는 특히 모르던 것을 자세히 알게 되는 것도 있을 테니 더욱 이익이 될 것이다. 사마귀는 대체 무슨 마음을 먹고 이런 것들을 가르쳐주는 것일 까? 화검상은 말했다. “집마부는 이번에 해외팔세의 대부분과 교통하고 있다고 들었 소.” 사마귀는 고개를 끄덕였다. “해외팔세는 바로 중원 밖에 있는 여덟 개의 거대한 세력들을 말하는 거지. 그 세력의 규모는 해내팔세와 비슷하다고도 말할 수가 있소. 소뇌음사(小雷音寺), 환희밀교(歡喜密敎), 포달랍궁(布 達拉宮), 만독궁(萬毒宮), 공포림(恐怖林), 청조각(淸朝閣), 혈붕도 (血鵬島), 자부문(紫府門), 뭐 그런 것들이지. 그들은 중원 밖의 사방으로 흩어져 있기에 망정이지 만일 한쪽에 모여 있었다면 아 마도 중원을 넘보게 되었을지도 모르오.” 화검상은 그를 보며 말했다. “그들 중에 어느 곳이 지금 집마부와 교통하고 있는지 아시 오?” 사마귀는 문득 전음으로 대꾸했다. “모르오!” 이어 사마귀는 음침하게 웃으며 말을 계속했다. “그런데 사실은 정작 무림맹의 뒤에는 세외팔세의 정파 쪽 삼 세(三勢)가, 집마부의 뒤에는 세외팔세의 나머지인 오세(五勢)가 버티고 있다는 사실을 아시오?” 화검상은 다소 눈살을 찌푸렸다. “세외팔세는 바로 강호에 나서지 않은 은자지계(隱者之界)가 아니오?” 사마귀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그들은 어떤 금계(禁戒)에 의해선지 몰라도 지난 오 백 년 동안 거의 강호의 일에 나서지 않았고 또한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도 하오. 하지만 이미 나서지 않았다면 또한 언젠가는 나설 때도 있게 되는 것이 아니겠소?” 화검상은 그만 놀라서 어안이 벙벙해졌다. 세외팔세는 말 그대로 여덟 곳의 은자지계로, 무공이 극고한 경지에 올라서 인간수명의 한계마저 넘어선 사람들이 만년의 수 행을 위해 모인다는 곳으로, 그 세력이 실로 엄청나서 그 중의 한곳만 강호에 나타나도 천하를 제패할 수 있다고 하지 않았는 가? 지난 오백 년 동안 그들은 거의 강호의 일에 나서지 않아서 사 람들은 그들의 존재마저 망각해갈 정도였고, 혹 어떤 사람은 아 예 그 존재를 의문시하는 경우도 있었다. 사실 그런 초인적인 사람들이 다시 강호로 돌아오면 강호는 갑 자기 혼란스러워질 것이므로 그런 상황이 차라리 좋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사마귀의 말을 들어보면 그 세외팔세가 드디어 강 호사(江湖事)에 나서기 시작했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화검상은 일순 가볍게 실소하며 말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 야그 출력일 :: 98/10/22 ───────────────────────────────────── 제 목 : [화산문하]제 1부 3 권 제 26 장 - 2 “그런 당신의 말은 아마 누구도 믿지 않을 것이오. 그들은 이 미 오랫동안 나서지 않았는데 어째서 갑자기 지금 나선단 말이 오?” 사마귀는 문득 다시 전음으로 말했다. “그들의 마음이 어째서 갑자기 변하게 되었는지, 그건 나도 잘 모르겠소. 하지만 화형은 해외팔세의 대부분이 단지 우리 군 림맹(君臨盟)의 힘에 굴복하여 한패가 되었을 거라고 생각하시 오? 그것은 당연히 세외오세의 힘이 있었기 때문이오. 게다가 이 미 오세가 움직였는데 정파 쪽의 삼세가 가만히 있겠소?” 화검상은 무의식중에 놀라 전음으로 답변했다. “그럼 사형의 생각은 그 세외팔세가 머지않아 표면에 드러나 활동을 개시할 거란 말이오?” 만일 정말로 세외팔세가 활동을 개시한다면 그야말로 상황이 심각해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하늘과 땅이 한번 뒤바뀌는 상 황이 오게 될지도 모른다. 지금 화검상이 놀라고 있는 것은 당연하며 오히려 부족하다고 해야 할 것이었다. 그런 대혼돈의 세상이 오면 그야말로 그가 그토록 미련을 갖는 화산파의 힘과 명성이라는 것은 실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 릴 것이기 때문이다. 사마귀는 전음으로 여유있게 웃으며 대꾸했다. “그렇소. 게다가 나는 이미 그들 중 일부가 벌써 행동을 개시 했다는 것을 알고 있소. 아마 나 이외의 많은 사람들이 그런 추 측을 하고 있을 것이오.” 화검상은 문득 웃으며 전음으로 말했다. “사형은 지금 내게 농담을 하는 거요?” 사마귀는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그런 일로 농담할 리가 있겠소? 화형은 믿지 않는가본 데, 그들 중 하나가 이미 십사 년 전에 행동을 개시했소. 아……, 이 일은 화형이 좀더 잘 알겠구려? 자신의 집안일이니까 말이 오.” “십사 년 전의 일……?” 화검상은 잠시 어리둥절하여 그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이내 어 이없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대체 뭐가 집안일이고 또 대체 뭐가 좀더 잘 안다는 말이 오?” 사마귀는 오히려 의아하다는 듯이 화검상의 얼굴을 쳐다보며 말했다. “아니 그럼, 화형은 화산파의 장문인이자 자신의 조부가 살해 된 그때의 그 일을 아직도 모르고 있다는 말이오?” 화검상은 이미 그의 말하는 의도를 파악했고 다소 뜨끔한 기분 도 들었지만 그렇게 세외팔세와 자신의 가문의 변고와 연관짓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했고 어이없는 느낌까지 들었다. 화검상은 웃으며 말했다. “그럼 그때 세외팔세의 하나가 그 일에 끼여들었다는 말이 오?” 사마귀는 잠시 빤히 화검상을 주시하다가 가볍게 실소하고 고 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보아하니 정말로 모르는 모양이군? 허 참! 이거……, 내 말을 믿지도 않을 거고…… 만일 화형이 내게 한 가지 조건만 들어준 다면 즉시 그 사건의 전모를 가르쳐주겠소!” 화검상은 어이없다는 듯이 마주 실소하며 대꾸했다. “나는 알고 있는 그대로 당신의 말을 믿지 않고 있으니 조건 을 붙이고 말고도 없소.” 사마귀는 이에 더욱 어이가 없다는 듯이 한번 하하, 하고 웃더 니 전음으로 말을 계속했다. “좋소, 좋아. 내 그럼 아무런 조건 없이 그 일을 가르쳐주도록 하지. 당신은 천륭무가(天隆武家)란 이름을 알고나 있소?” 화검상은 눈앞의 이 사마귀의 의도를 몰라 내심 의아해 하면서 도 가볍게 냉소하며 대꾸했다. “정파 쪽 세외삼세가 천륭무가와 성모궁(聖母宮), 그리고 성수 곡(聖手谷)이라는 것쯤은 나도 알고 있소.” 사마귀는 마주 냉소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좋아, 그런 것은 이미 알고 있었군? 천륭무가는 그 세외팔세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세력이고 또한 강력한 가문(家門) 중심의 집단이기 때문에 일명 천하제일가(天下第一家)라고 불리기도 하 지. 그럼 화형은 아직 그들이 무림제국(武林帝國)을 꿈꾸고 있다 는 사실도 모르고 있겠구려?” 화검상은 이에 몸을 벌떡 일으켜서 육성으로 싸늘하게 말했다. “나는 그래도 사형이 사귈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로군? 그런 문제로 농담을 즐길 만큼 나는 마음이 넓지 못하 니 나는 이만 실례해야 하겠소.” 사마귀는 그것을 보고 안색이 차갑게 변하더니 이내 냉소하며 전음으로 말했다. “흐흐! 좋소. 마음대로 하시오. 하지만 화형은 보기보다 무척 소심한 것 같소. 비록 믿을 수가 없다고 해도 일단 그런 얘기를 듣지도 못할 것은 또 뭐가 있겠소? 나 역시 그리 한가한 사람은 아니란 말씀이외다!” 화검상은 문득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을 누르기 어려워서 겸사 겸사 그렇게 몸을 일으켰던 것이다. 그는 사마귀를 잠시 주시하다가 다시 자리에 앉으며 전음으로 말했다. “그래, 당신은 그 모든 일을 다 알고 있기라도 하다는 말이 오?” 사마귀는 가볍게 냉소한 뒤에 말을 이었다. “당신은 당시 어린아이였겠지만 나는 열아홉이나 되었었고, 게다가 우리 녹림맹의 소식통에 의해 나는 보다 잘 알 수 있었던 것이오. 화형이 내 말을 믿든 안 믿든 그건 자유요. 이런 중요한 기밀을 이런 분위기 속에서 말한다는 것은 대단히 자존심이 상하 지만 일단 내가 말을 하겠다고 했으니 간략히 설명하도록 하겠 소. 당시 천륭무가는 무림제국을 건설하기 위해 명문정파의 수뇌 들과 은밀히 접촉을 했고, 대부분의 문파는 반강제적으로 수락을 했지만 유독 청렴하고 고집이 센 화산파의 장문인만은 반대했소. 그래서 천륭무가는 뒤에서 조종하여 화산파를 치고 지금의 체제 를 만들어놓았던 것이오.” 화검상은 너무나도 엉뚱한 얘기를 듣는 것 같아서 실소하며 말 했다. “그게 지금 가능한 일이라고 말을 하고 있는 것이오?” 사마귀는 가볍게 냉소하며 대꾸했다. “가능한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 하지만 당시 그렇게 되었으 니 별도리가 있겠소? 좋소! 당신에게 두 가지만 질문을 해봅시다. 당시 화천괴, 그러니까 당신의 조부가 장문인을 맡고 있을 때는 화산파는 사상 유래가 없을 정도로 중흥기를 맞고 있었소. 당시 의 문하제자들의 수가 천 명을 넘었고, 무공들도 비약적으로 발 전하고 있었으니까. 만일 그대로 두었으면 화산파는 지금쯤 이미 해내팔세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을지도 모르오. 그런데 갑자 기 화산파 제일의 기재(奇才)라던 당신의 조부와 오백여 명의 사 람들이 떼죽음을 당했는데, 그런 대체 누구의 짓이었겠소? 소림 사와 무당파가 그렇게 깨끗이 일을 처리할 수가 있었겠소? 아니 면 우리 군림맹에서 그랬는데도 화산파가 여전히 잠자코 있었겠 소?”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겠는 야그 출력일 :: 98/10/22 ───────────────────────────────────── 제 목 : [화산문하]제 1부 3 권 제 26 장 - 3 “뭐라고, 사상 유래가 없는 중흥기? 화산파 제일의 기재였다 고? 게다가 오백 명……?” 화검상은 비록 과거 사건 이후 화산파로 돌아와서 그런 것들을 목격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자연 분명한 사실은 알 수가 없었 기 때문에 지금 그런 얘기들을 듣자 일순 어리둥절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화검상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그 일을 천륭무가가 나서서 했다는 말이오?” 사마귀는 말했다. “당시 당신의 조부는 일단 밖으로 불려내어진 다음에 척살되 었고, 화산파 내부의 사람들은 일단의 복면인들이 나타나서 처리 했소. 지금의 풍천비는 당시 안에서 그들과 내응한 공로로 현재 의 장문인이 되었지.” 정말 들을수록 황당하게만 느껴지는 내용들이었다. 만일 그 말들이 모두 사실이라면 얼마나 놀라운 일이겠는가? 화검상이 만일 당시의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면 지금처럼 가만 히 듣고 있지만도 않았을 것이다. 화검상도 조부가 그토록 훌륭한 사람이었다면 풍천비 등에게 어째서 그렇게 쉽게 무너질 수가 있었겠느냐고 생각했던 적이 있 었다. 하지만 화검상은 지금의 사마귀의 말은 그대로 믿을 수가 없다 고 생각하여 그저 가볍게 들어넘기기만 하려고 하고 있었다. 화검상은 웃으며 말했다. “당신의 말대로 정파의 모든 사람들이 합심을 하여 지금처럼 되었다고 합시다. 그러나 나의 어머니는 나를 낳으신 분인데 어 찌 그 일을 나에게 말하지 않겠소?” 사마귀는 한차례 웃은 뒤에 말했다. “내가 물으려던 두번째의 질문이 바로 그런 거요. 세상의 일 이라는 것이 아무리 악한 일을 한 사람이라고 해도 반드시 그를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법이오. 그런데 지금 정파 의 모든 사람들은 한결같이 당신의 가문을 원수처럼 대하고 있으 니 그게 이상하지 않소? 그들이 그렇게 떳떳하다면 당신을 그토 록 감시하고 그렇게까지 악랄하게만 대할 일이 뭐가 있겠소? 게 다가 당신의 조부가 화산장문인이었는데 무슨 그리 악마와 같은 짓들만 했겠느냐는 말이오. 당신의 모친은 우리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이미 일찍부터 풍천비의 야심에 의해 정략적으로 당신의 선친과 혼인을 했던 것으로 드러났소. 풍천비는 당시 제이의 인 재라고 했지만 당신의 조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사람이었소. 그자는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미리부터 당신의 모친으로 하 여금 당신의 선친을 유혹하게 한 것이며, 당신의 선친은 너무나 도 순진했기 때문에 그대로 넘어간 것이오. 물론 당신의 모친은 아직도 풍천비에게 효성을 다하기 위해 당신 가문 전체를 매도하 고 자신을 합리화시키고 있는 것이오.” 화검상은 모친에 관한 얘기를 들을 때 다시 화가 불끈 치밀었 으나, 이제는 너무도 놀라운 얘기를 많이 들어서인지 굳이 일일 이 상대하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일단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갑자기 가슴속이 무겁게 내 려앉고 답답해지는 듯한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그것은 사마귀의 말이 마치 그의 내심을 알고 말하는 듯 이치 가 틀리지 않아 반박할 수가 없기 때문일까? 갑지가 화검상의 표정이 무거워진 것을 보고 사마귀는 다시 말 을 이었다. “노광(老狂), 그러니까 당신의 선친은 한때는 매우 잘 나가다 가 갑자기 그 사건 이후에 미친 사람처럼 되어버렸고, 끝내는 사 망했는데, 그런 무슨 이유에서일 것이라고 생각하시오? 정말로 그가 나중에 전장문인의 악행을 알게 되어 스스로 고뇌하다가 그 렇게 된 것이라고 보시오? 흐흐흐……, 만일 그랬다면 그 순진하 고 똑똑하던 사람이 어째서 그 이전에는 그 많은 악행들을 전혀 눈치채지도 못했을까? 정말로 당신의 선친이 악인이었다면 그렇 게 죽음을 불사하면서까지 뉘우치지도 않는 법이오. 우리가 조사 한 바에 따르면 당신의 선친은 자신이 아내에게 속아서 간접적으 로 부친을 살해하는 일에 가담했고 씻을 수 없는 불효를 저질렀 다는 사실 때문에 그렇게 미치게 되었던 것이오. 당신의 모친은 사건 직전에 당신들 부자를 강호로 빼돌렸고, 그 이후 돌아가보 았을 때는 당신의 선친에게는 물론 모든 것을 돌이킬 능력이 없 었던 것이오.” 화검상은 왠지 대꾸할 수도 없이 가슴이 무겁고 혼돈스러워져 서 잠시 시선을 외면하고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이상하게도 지금 이 사마귀의 말은 그저 흘려들으려고 해도 그 의 뇌리와 가슴속에 깊이 박혀들고 있었다. 그것들은 그가 이제까지 느껴왔던 모든 의문들을 해소해버릴 수 있을 정도로 분명한 해답들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일까? 문득 그의 뇌리로 화산파의 채석장 전노인 등의 얼굴이 스쳐지 나가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그러나 지금 화검상이 어찌 그런 것들을 믿을 수가 있겠는가? “화형, 이래도 내 말을 믿지 못하겠소?” 화검상은 사마귀를 바라보며 말했다. “사형이 지금 내게 그런 얘기를 해주는 이유가 무엇이오?” 사마귀는 문득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이런 얘기는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실은 화형의 처지는 내 처지와도 비슷한 구석이 있어서 그러는 것이오.” ‘흥, 비슷한 구석이 있다고? 그럼 너도 녹림맹의 귀공자였단 말이냐?’ 화검상은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말했다. “나는 알고 있소. 당신은 나로 하여금 그들과 싸우게 하여 어 부지리를 보려는 것이 아니오?” 사마귀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그런 것은 아무렇게나 생각해도 좋소. 하지만 이 사마 귀는 이래봬도 그런 본맹의 일에는 별로 나서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소.” 화검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당신은 오늘 너무나도 많은 거짓말을 했으니 내가 그 어떤 말을 믿을 수가 있겠소?” 사마귀는 다시 실소를 터뜨렸다. “그렇다면 당신은 여전히 모친에게 연연하여 그 풍천비에게 목을 매겠다는 말이로군? 만일 계속 그런다면 당장 내일 무림맹 에만 가더라도 당신은 선친의 꼴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오. 더군 다나 당신에겐 아직 처자식도 없을 테고……, 내가 보기에는 당 신은 화산파를 재건하기 위해서라도 당장 따로 나와 독립을 해야 하오. 뭐 본맹에 가입하라는 소리는 아니고, 그 정사 중간의 동심 맹의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도 좋겠지. 그것도 아니라면 최소한 후손은 남겨야 할 테니. 아, 아까 그 귀여운 낭자(娘子)는 어떻 소? 보아하니 드물게 마음씨도 착한 것 같던데. 아니면 내가 다 른 여자 하나를 소개해드릴까?” 남의 심각한 상황을 이토록 장난하듯 말하다니, 평소라면 화검 상은 차갑게 최소한 냉소라도 지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화검상은 어찌 된 일인지 무슨 나쁜 섭혼대법에라 도 걸린 사람처럼 마음이 무겁고 정신이 없었다. 화검상은 길게 한번 숨을 내쉬고 말했다. “이제 그만 일어서도록 합시다. 나는 가서 자야겠소!” 사마귀는 그 말에 멈칫하다가 말했다. “아, 이렇게 하면 어떻겠소? 내가 억울하게 욕을 얻어먹으면 서도 그런 중요한 얘길 해줬으니, 만일 나중에라도 그게 맞다는 것을 알게 되면 아까 말한 한 가지 부탁을 들어주는 것이오?” 화검상은 정말로 농담을 할 기분이 아니었기 때문에 즉시 몸을 일으켰다. “그럼 먼저 가겠소.” 사마귀는 엉거주춤 몸을 따라 일으키며 전음으로 다시 말했다. “이건 절대 농담이 아닌데, 화형은 하루 빨리 결단을 내리는 것이 좋을 것이오. 비단 천륭무가뿐만 아니라 정파인들도 대단하 여 화형이 제아무리 날고 기어도 어려울 것이오. 사실 내가 보기 에는 이미 사태를 돌이키기에는 늦었고 불가능한 일이지만……, 흐흐! 어쨌든 살아서 다시 봅시다. 그때는 나를 또 괄시하지말 고……. 흐흐, 왠지 나는 오늘 처음 보는 화형이 마음에 들었 소.” 화검상은 그에게 가볍게 포권을 취해 보이고는 말없이 신형을 움직였다. 그런데 불과 서너 걸음도 못 걸었을 때의 일이었다. 갑자기 주위의 탁자에 둘러앉아 있던 사람들이 빠르게 일어나 에워싸더니 그의 앞을 가로막는 것이었다. 화검상은 혹시 무슨 오해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여 그들을 둘 러보니 그 중의 한 사람이 냉랭한 어조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네놈은 바로 화산파의 미친 화가녀석 아니냐? 저놈과 아까부 터 무슨 밀담을 나누고 있던데, 혹시 첩자질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 화검상은 그렇지 않아도 마음이 몹시 우울하던 차에 그만 기가 막혔다. 그들은 평소처럼 그를 대하고 있건만 이제는 그가 달라진 것이 다. 화검상은 그러나 치미는 격동을 억누르고 웃으며 말했다. “무슨 오해를 하고 계신 모양인데, 여러분은 모두 어느 문파 에 소속된 분들이시오?” 다른 거칠게 생긴 중년인이 사납게 소리쳤다. “이 더러운 후레자식! 무슨 말라 비틀어진 오해냐? 당장 무슨 내통을 했는지 고하지 않으면 네놈의 입을 찢어버리겠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사람 야그 출력일 :: 98/10/22 ───────────────────────────────────── 제 목 : [화산문하]제 1부 3 권 제 27 장 인피면구(人皮面俱).... 제 27 장 인피면구(人皮面俱) 속의 미녀(美女) 지금 눈앞에 있는 자들의 무공은 그리 강한 편들이 아니었다. 사오십대의 사람들로 절정급(絶頂級)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대 개 일류급일 뿐이었다. 화검상의 지금 실력이라면 그들이 다 함께 덤벼도 전혀 위협이 될 수가 없다. 하지만 화검상은 그들의 기질을 보고 각기 명문정파의 무공들 을 터득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만일 지금 이들에게 손을 쓰면 당장 정파의 공적이라는 말이 표면화되어 나타날 텐데 어찌 그럴 수가 있단 말인가? 화검상이 잠시 그렇게 망설이고 있는데, 문득 뒤에서 가벼운 기척과 함께 한 인영(人影)이 날아와 바람처럼 그들을 덮치기 시 작했다. 이내 그 서슬 푸르게 덤비려던 십수 명의 사람들이 으악! 억! 하는 비명 소리와 함께 그 인영의 손짓, 발짓에 당해 차례로 나 가떨어졌다. 그 수법은 화검상도 조금 전에 대한 적이 있는 것이었다. 빠르게 환각적(幻覺的)으로 무수히 변화를 일으켜 설령 그 자 신이라 해도 쉽게 대적하기가 곤란할 것이다. 바로 사마귀가 뒤에 서 있다가 갑자기 나선 것이었다. 화검상은 무거운 기분에 억눌려 멍하니 서 있다가 나중에야 현 실을 파악하고 놀랐다. 하지만 그가 손을 쓰려고 했을 때 이미 사마귀는 벌써 그들을 모조리 때려눕히고 저만큼 사라져가고 있었다. “화형이 좀 우유부단한 것 같아서 내가 손을 썼소. 그들은 바 로 공동파(山空 山同 派)와 종남파(終南派)의 속가제자(俗家弟子) 들이오. 별볼일 없는 것들이니 무슨 짓을 하지도 못할 거요… ….” 그것은 이른바 천리전음(千里傳音)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일찍이 화검상은 더러 정파의 사람들을 만나보기도 했었지만 그들은 거의 대부분 그와 통성명을 하는 것은 물론 만나는 것조 차 꺼려 한다. 그것은 일단 그와 통성명을 하고 난 사이라고 하면 곤란해질까 봐 그러는 것일 것이다. 이들이 공동파와 종남파의 속가제자들이라는 사마귀의 말은 맞 는 것 같았다. 하지만 사마귀는 짐짓 그를 돕는 척하며 오히려 지금 그를 궁 지로 몰아넣은 것이다. 아까 저들은 그를 첩자라고 말을 했지만 그것은 근거가 별로 없었고, 이제 사마귀가 자신의 무공을 드러내며 저렇게 해놓았으 니 그것은 화검상을 아예 첩자로 만들어버리는 것과 무엇이 다르 겠는가? 비록 그들이 속가제자들이라고는 해도 입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금 그들은 모두 각기 무지막지한 방법으로 혈도(穴道)가 제 압되어 있었다. 그들이 원독에 차서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자 화검상은 그 들의 혈도를 풀어줄까 하고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지금 그들을 풀어준다고 해도 상황이 나아질 것은 하나 도 없으며, 오히려 더욱 귀찮은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화검상은 이에 그냥 한숨을 내쉬고 숙소를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숙소인 태평반점으로 걸어가면서 화검상은 애써 사마귀가 들려 준 얘기들을 기억에서 떨쳐버리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런 얘기들은 기이하게도 떨쳐버리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더 그의 머릿속으로 깊숙이 파고들었다. 그것들은 그만큼 일리가 있고 가슴에 와닿는 얘기들이란 말인 가? 하지만 그런 얘기들은 너무나도 엄청나고 황당하기도 하여 분 명히 알아보지 않고는 믿을 수가 없다. 그는 잠시 과거의 기억들과 화산파의 사람들, 그리고 모친에 대한 기억들을 떠올려보았다. 여태 그는 그 누구에게서도 그런 자세한 얘기들을 들은 적이 없다. 하지만 정말이지, 그는 그것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었다. 태평반점의 입구에 도달하자, 문득 어디선가 소란스런 움직임 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화검상은 숙소 쪽을 한번 올려다보다가 문득 아까의 일이 생각 나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악사매는 잘 돌아왔겠지? 그런데 그 방귀춘이 없는 것을 보 니 이미 혈도를 풀어준 것일까?’ 한데 바로 그때의 일이었다. 갑자기 주위를 지나는 사람들 가운데 그의 곁을 빠르게 스치고 지나가는 사람이 있었다. 화검상은 마침 은근히 신경이 숙소 쪽으로 쏠려 있었기 때문에 처음엔 그 사람의 특별한 움직임을 눈치채지 못했다. 안색이 창백하고 허름한 의복을 걸친 다소 허약해 보이는 노파 (老婆)였는데, 그저 힘이 없어 휘청거리는 줄로 알았는데 느닷없 이 빠르게 손이 그의 품속으로 헤집고 들어오고, 그 손은 뜻밖에 도 노파의 것이라고는 할 수 없는 아주 섬세하고 부드러운 옥수 (玉手)였던 것이다. 그 괴상한 노파는 화검상의 품속에서 대담하게도 세 권의 비급 과 자하신단(紫霞神丹)이 들어 있는 옥병을 꺼냈다. 화검상은 마침 한눈 파는 사이에 그 괴상한 노파의 접근을 허 용했고, 이어 그 섬섬옥수를 보게 되자 다소 뜻밖이라서 일단 행 동을 유보하게 되었다. 그 괴상한 노파의 그러한 수법(手法)은 사실상 몹시 빠르고 교 묘한 변화를 담고 있어서 일반 사람들은 물론 일류고수라고 해도 그녀의 섬섬옥수를 보기는커녕 자신이 무엇을 잃어버렸는지도 몰 랐을 것이다. 하지만 화검상은 이미 그녀의 무공으로 자신을 털끝 하나 해칠 수 없다는 것을 간파했기에 그녀의 그런 무례한 손속을 잠시 방 임해둔 것이다. 그녀의 손끝이 비록 그의 급소에 접근해 있다고 해도, 정작 그 녀가 화검상을 해치려고 했다면 즉각 강력한 호신강기(護身 氣) 가 발동되어 그녀 자신이 다치게 되었을 것이다. 빠른 시간 내에 물건을 훔치고 보이지 않게 갈무리하는 모습은 그녀의 이 수법이 매우 능숙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 노파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이미 힘없는 모습으로 서둘러 앞쪽으로 걸어나가고 있었다. 화검상은 비록 공격을 받지는 않았지만 그 두 가지의 물건은 중요한 것들이라 훔쳐가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 얼굴과 손이 이상하게 서로 달랐기 때문에 약간의 호기심이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화검상은 문득 난색을 하고 다소 망설였다. 비록 상황에 대해 다소 여유를 두기는 했지만, 그는 지금 다른 일에 신경을 쓰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고, 게다가 지금은 빨리 숙 소로 올라가봐야 할 것 같았다. 그 노파는 수법이 능숙해 보여서 그것들을 도중에 어디에다 감 춰버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화검상은 잠시 생각을 해보다가 한숨을 내쉬고 다소 짜증이 나 는 기분으로 이윽고 그녀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이를 두고 악운이 겹친다고 하는 것인지, 지금 또 쓸데없는 일 이 생기려는 모양이었다. 노파가 어느새 골목길로 접어드는 것을 보고 화검상은 하는 수 없이 신법(身法)을 일으켜 그녀의 뒤를 바싹 따라붙었는데, 갑자 기 그의 신형이 거짓말처럼 앞으로 성큼 나아가자 지나가던 사람 들이 놀란 표정들을 지었다. 화검상은 이미 그 여자가 노파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노파라면 그렇게 손이 처녀처럼 고울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아까 순간적으로 느꼈던 것은 아직 노련해지지 않은 젊은 기질 (氣質)이었던 것이다. 화검상은 그 여자의 무공이 비록 한번 본 것이지만 상당하여 절정(絶頂)급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람이 뒤에도 눈이 달려 있는 것은 아니지만 무공이 절정급이 라면 상대가 이렇게 노골적으로 뒤따르고 있는 것을 모를 리가 없다. 하지만 그 여자는 뭐가 그리 바쁜지 정말로 그런 것을 모르고 있는 것처럼 여전히 서둘러 앞으로만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화검상은 하는 수 없이 좀더 두고 보기 위해 뒤를 따르고는 있 지만 내심 매우 내키지 않는 일이라고 속으로는 다른 생각들을 하고 있었다. 그의 생각은 주로 자신의 조부를 찬양하며 목숨까지 바쳤던 사 람들과 모친에 관한 것이었다. 아마도 그것은 아직 근원이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근원이 아직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그 어떤 일도 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과연 근원이 완전히 해결된다는 것이 있을 수 있을까? 화검상은 그런 생각을 하며 뒤따르는 사이에 마음이 점차 피곤 해져서 그만 달려들어 제압을 하고 물건만 회수해올까 하고 생각 을 했다. 그런데 그 여자는 어느새 마을을 벗어나서 종종걸음으로 산기 슭쪽으로 걸어가는 것이었다. 이미 주위가 어둑어둑해졌는데 이런 어둠 속에서 산 쪽으로 가 고 있다는 것은 다소 어이가 없는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그것은 이미 화검상이 뒤따르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 같기도 했으나, 그러면서도 이렇게 계속 천천히 가고 있다는 것은 지금 그를 유인해보겠다는 것이란 말인가? 세상에는 의외의 일이 생겨서 나빴던 기분도 좋아지는 경우가 더러 있다. 하지만 지금 화검상에게는 그 어떤 일이 벌어져도 그의 기분을 좋게 할 수는 없었다. 화검상은 너무도 태연자약해 보이는 상대방의 태도에 어처구니 없기도 하고 화도 다소 났지만, 기왕에 여기까지 따라온 것이니 좀더 시간을 두고 보기로 했다. 요즘은 달도 뜨지 않는 그믐 무렵이어서 주위가 온통 암흑으로 가득 찼지만 이런 어둠은 화검상의 지금 무공으로는 대낮이나 다 름이 없는지라 그녀를 놓칠 위험은 전혀 없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야그 출력일 :: 98/10/22 ───────────────────────────────────── 제 목 : [화산문하]제 1부 3 권 제 27 장 - 1 그녀는 구불구불한 논두렁의 길을 이리저리 계속 나아가더니 이윽고 그 산기슭에 이르러 모퉁이 안쪽으로 꼬부라졌다. 이 부근에는 일반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화검상은 마음껏 신법 을 펼쳐 즉시 그녀를 바싹 따라붙었다. 그 모퉁이 안쪽에는 산기슭에 지어진 작은 사당 같은 것이 있 었다. 그녀는 그 사당 속으로 들어갔다. 화검상은 혹시 그녀가 무슨 볼일을 보려는 것이 아닐까 하여 다소 주저했지만 이내 따라들어갔다. 그 사당의 내부는 더욱 어두컴컴했다. 안쪽에 낡은 신상 같은 것이 있고 주위는 지저분하고 침침했지 만 과연 그녀는 그 안에 서 있었다. 화검상이 들어가자 그녀는 그를 바라보고 있다가 촛불을 밝히 며 말했다. “과연 이곳까지 잘도 따라왔군요? 나는 당신이 바보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어요.” 역시 그 음성은 생각대로 화검상이 처음 듣는 낯선 것이었고 젊은 처녀의 음색이었다. 그녀가 갑자기 허름한 의복을 벗어버리고 얼굴까지 드러내자 화검상은 다소 놀랐다. 기실 그녀의 그 창백한 노파의 얼굴이 역용술(易容術)이나 인 피면구(人皮面具)일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정말로 그녀가 그 면구를 드러내고 의복까지 벗어버리자 다소 당황스런 기분이 들 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허름한 의복 속에 또 하나의 의복을 산뜻하 게 걸치고 있었고 용모도 제법 갸름하여 보기 드문 미인이었다. 나이는 대략 스물두세 살 정도 되었을까? 몸매는 상당히 늘씬하고 오연한 듯한 기질이 있었다. 화검상은 그녀가 전혀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재삼 확 인하며 이윽고 입을 열어 말했다. “나를 이곳까지 데려온 목적은 무엇이오? 아니, 우선 내 물건 들은 돌려주었으면 좋겠소.” 그녀는 화검상의 태도를 잠시 주시하다가 말했다. “당신은 내가 누구인지 알고 싶지도 않나요? 그리고 물건을 돌려주는 것은 어렵지 않아요.” 화검상은 다시, 내심 짜증이 일며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는 것 을 느꼈다. 화검상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럼 어서 그 물건이나 돌려주었으면 좋겠소. 나는 솔직히 그리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사람이 아니오.” 그녀는 이에 약간 발끈하는 듯하다가 이어 가볍게 웃으며 말했 다. “당신도 별수없이 위선자에다 이중인격을 가지고 있군요? 그 렇게 물건이 필요했다면 어째서 아까 진작 내게 달라고 하지 않 았죠?” 화검상은 쓸데없는 얘기가 자꾸 길어질 것 같아서 고개를 끄덕 이며 말했다. “그럼 좋소. 낭자는 누구이며 무슨 목적으로 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것이오?” 그녀는 다소 어이없다는 듯이 화검상을 주시하다가 말했다. “엎드려 절 받는다는 말이 있지만 이건 마치 엎드려서 간신히 매를 맞는 꼴이로군요? 하지만 좋아요! 우선 이름을 밝히기로 하 죠. 난 어연하(魚蓮霞)라고 해요. 남들은 나를 소소귀(少素鬼)라고 불러주고 있죠.” 강호의 여인들은 으레 수줍음이 적은 편이지만 지금 그녀가 쉽 게 자신의 별호까지 가르쳐주고 있는 것은 지금 공적인 일로 화 검상을 만나고 있다는 의미이다. 화검상은 물론 강호의 정세에 어두운 탓인지 그녀의 이름과 별 호를 들어본 적이 없다. 화검상은 그래도 잠시 생각을 굴려보다가 말했다. “강호에 야묘방(夜猫幇)이란 문파가 있다고 들었소. 낭자는 혹 시 그쪽의 문하인(門下人)이오?” 어연하는 화검상이 전혀 자신을 알지 못하는 듯하자 가볍게 냉 소를 지었으나 이내 냉소하며 대꾸했다. “소문과는 달리 그래도 당신은 제법 많은 문파의 이름을 알고 있군요? 그래요, 저희 야묘방의 방주이신 비천무영수(飛天無影 ) 어충엄(魚忠淹), 어대협께서는 저의 증조부님이 되시죠. 우린 당 신들과 같은 소속이 아니라 동심맹(同心盟)에 들어 있어요.” 화검상이 야묘방에 대해서 금방 말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문파 의 사람들이 소매치기, 도둑 등의 온갖 잡기를 지닌 인물들이 모 여 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야묘방과 비슷한 문파로는 공공문(空空門)이 있는데, 그 문파는 야묘방보다는 수준이 높아서 거의 화산파와 같은 대열이기 때문 에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물론 화검상은 그 야묘방주라는 비천무영수 어충엄에 대해서 들어본 적도 없다. 어연하의 반쯤 비아냥거리는 투의 말을 듣고 나자, 화검상은 다시 말했다. “그런데 낭자는 무슨 목적으로 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것이 오?” 어연하는 다시 어이가 없다는 듯이 화검상을 바라보다가 말했 다. “당신은 정말 낯짝이 두껍군요? 이미 숙녀가 자기 이름을 밝 혔으면 당신도 이제 존성대명(尊姓大名)을 밝혀야 할 차례가 아 닌가요?” 동심맹이라고 하면 현재 가장 세력이 약한 무림연맹체로서 정 사중간(正邪中間)의 무리가 모여 있는 곳이다. 화검상은 가볍게 실소하며 대꾸했다. “난 화산파의 화검상이오. 낭자가 그걸 모르고 유인해왔을 리 가 없을 텐데?” 어연하는 짐짓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 과연 화산파의 소광생(少狂生), 화검상이 틀림없기는 하 군요……?” 화검상은 다시 심하게 짜증이 치밀었다. 어연하가 혹시 동심맹의 지시를 받고 그를 만나러 온 것인지는 몰라도, 화검상은 아직 그들과 만나고 싶은 기분도 아닌 것이다. “자, 이젠 그 목적을 말하고 내 물건들을 돌려줄 때가 되지 않았소?” 어연하는 다소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아니, 왜 이렇게 서두르죠? 혹시 내가 그 물건들을 가져가기 라도 할까봐 그러는 것인가요?” ‘흥, 네가 가져가려고 해도 이젠 그럴 수가 없을 것이다!’ 화검상은 가볍게 안색을 굳히며 대꾸했다. “솔직히 나는 지금 낭자와 이런 얘기를 나눌 기분이 아니오. 그러니 양해를 해주었으면 좋겠소.” 어연하는 이에 표정이 다시 차갑게 변해서 말했다. “좋아요, 나도 뭐 이런 일이 시간이 남고 좋아서 하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에요. 자, 우선 이 지저분한 당신의 물건들은 돌려 드리죠!” 말과 함께 그녀는 품속에 감춰두었던 비급들을 가볍게 화검상 에게 던져주었다. 그 비급들은 세 권 모두 상하지 않고 무사했다. 화검상은 간단히 비급들을 조사해본 뒤에 품속에 넣고서 가볍 게 웃으며 말했다. “내가 보기에 낭자는 비단 무공(武功)도 뛰어날 뿐만 아니라 손속도 제법인 것 같소.” 어연하는 그를 주시하며 마주 냉소했다. “나의 이 미천한 무공이 당신과 비교할 때 어디 상대나 되겠 어요? 나를 너무 높이 평가해주는 것 같군요?” 화검상은 그만 다시 눈살을 찌푸리며 손을 내밀었다. “장난은 그만 하고 그 옥병도 마저 넘겨주는 것이 어떻겠 소?” 어연하는 약간 흠칫해 하다가 이내 짐짓 놀랍다는 표정으로 말 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그 야그 출력일 :: 98/10/22 ───────────────────────────────────── 제 목 : [화산문하]제 1부 3 권 제 27 장 - 2 “아, 그건 어떻게 알았죠? 당신의 안목은 정말 소문대로 대단 한 모양이로군요? 하지만 이 물건은 내가 몇 마디 물어본 다음에 돌려줄 테니 너무 걱정하지말아요.” 화검상은 금세 매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낭자는 그것으로 지금 나를 협박할 생각이오?” 어연하는 싸늘하게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거야 지금 당신의 처지와 태도 여하에 달려 있는 것이 아 니겠어요?” 화검상은 딱딱해진 표정 그대로 말했다. “그 물건은 내게 중요한 것이오. 나는 그런 것으로 흥정을 하 고 싶지 않으니 어서 돌려주었으면 좋겠소.” 어연하는 차갑게 냉소하며 비웃듯이 말했다. “당신은 남자도 아니군요? 숙녀가 이렇게 말하는데 그런 식으 로 나오긴가요? 자칫하면 손이라도 쓸 듯한 태도로군요?” 화검상은 내심 마음이 답답해지고 이런 입씨름까지 해야 하는 자신이 한심스럽게 느껴지기조차 했다. 그는 앞으로 한걸음 나서며 말했다. “그 물건은 낭자가 부당한 방법으로 내게서 가져간 것이오. 만일 지금 즉시 내놓지 않으며 나는 정말 손을 쓰겠소.” 어연하는 이에 즉각 눈빛을 표독하게 빛내며 싸울 태세를 갖추 더니 차갑게 소리쳤다. “흥! 네놈은 지금 우리 야묘방과 나를 아예 우습게 여기는 모 양이로구나? 좋다! 네놈이 그렇게 자신이 있다면 어서 손을 써봐 라. 그 유명한 화산무예(華山武藝)가 어떤 것인지 나도 한번 견식 해볼 테니까!” 화검상은 막상 손을 쓰려니까 문득 자신이 우습다는 느낌이 들 어서 실소하며 다시 말했다. “나는 정말로 낭자에게 손을 쓰고 싶지는 않소. 그러니 어서 그 옥병을 돌려주시오.” 하지만 어연하는 이미 노화가 치밀어서 안색이 냉랭하기 짝이 없었다. “흥! 막상 손을 쓰려니 두려운 모양이로구나? 하지만 이젠 그 냥은 이 물건을 돌려줄 수가 없다. 어서 자신이 있으면 빼앗아보 지 그러느냐?” 말과 함께 그녀는 어느새 품속에서 꺼내들었는지 옥병을 들고 이리저리 흔들어 보였다. 화검상은 거듭 실소하며 말했다. “그래, 낭자는 내게 무엇을 물어보려는 것이오?” 어연하는 차갑게 냉소하며 대꾸했다. “흥, 이제야 순순히 나올 모양이지? 본래 우리 동심맹에서는 네놈을 도와서 같이 일을 해보려고 나를 보냈던 것이었다. 하지 만 네놈이 이렇게 나를 함부로 대하니 나는 반드시 한 가지 사실 을 알아야만 하겠다!” 화검상은 스스로도 일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를 몰라 내심 쓴웃 음을 지었다. “말해보시오.” 어연하는 그 와중에도 눈빛을 재빠르게 굴리며 말했다. “너는 갑자기 무공도 높아지고 녹림맹(綠林盟)과 이상한 술수 를 부리기 시작했다. 너는 그 동안 무공을 감추고 있었으며 지금 에 와서 무슨 음모(陰謀)를 꾸미고 있는 게 아니냐?” ‘녹림맹과 이상한 술수를 부리기 시작했다고?’ 화검상은 도리어 어리둥절해졌다. “나는 녹림맹과 전혀 관계도 없고 게다가 무공을 감추고 있지 도 않았소.” 어연하는 가증스럽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이미 소문이 그렇게 났고 게다가 너는 조금 전에도 녹림맹의 사람을 만났으면서도 그런 시치미를 뗀다는 말이냐? 좋다, 그럼 어째서 녹림맹이 이번에 무모하게도 유독 풍천비를 노렸던 것이 지?” ‘소문이 벌써 그렇게 났다고……?’ 화검상은 거의 건성으로 대꾸를 하다가 문득 소문이 그렇게 난 것이라면 이건 가벼운 문제가 아니라고 여겨져서 안색이 굳어져 다시 생각했다. ‘그럼 혹시 풍천비도 나의 무공이 증가된 것에 대해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어연하는 화검상이 잠자코 있자 다시 차갑게 질문했다. “네놈은 세상 사람들을 모두 바보로 아느냐? 대체 네놈은 그 들과 무슨 음모를 꾸민 것이지?” 화검상은 내심 다시 어리둥절해 하며 생각했다. ‘이건 결코 보통 일이 아니다. 그들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면 상황도 크게 달라지는 법이지……. 혹시 그 사마귀라는 자가 미리 이런 점을 노렸던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그들이 무모 하게도 풍천비를 노렸다는 것은? 그것은 혹시 그 사마귀와도 연 관이 있지 않을까?’ 정말 이 일은 생각할수록 점입가경인 셈이었다. 사마귀는 녹림맹의 습격 이후 이내 화검상의 앞에 일부러 나타 난 것이기에 더욱 의구심을 가지기도 했다. 화검상은 스스로 바보처럼 혼자 생각에만 빠져 있었다는 것을 깨달으며 내심 크게 자책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는 잠시 동안 빠르게 그런 생각들을 굴려본 뒤에 이윽고 말 했다. “정말이지 나는 그들을 이전에 안 적도 없고 또한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오.” 어연하는 즉시 냉랭하게 코웃음을 쳤다. “좋다! 그럼 그 얘기는 일단 접어두고, 네놈은 어째서 그간에 무공을 감추고 있었던 것이지? 흥! 이런 얘기는 대답이 빤한 게 아니냐? 너는 가문의 복수를 위해서 그랬었을 테지?” 화검상은 현실이 생각보다 더욱 심각하다는 것을 알게 되자 도 무지 그녀와 더 상대하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았다. 화검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미 말했듯이 나는 무공을 감추지 않았고 갑자기 급증하게 된 것이오.” 어연하는 그 말에 자신을 놀린다고 생각했는지 안색이 차갑게 변하며 분노한 기색을 지었다. “네놈이 감히, 지금 그 얘기를 나더러 믿으라는 거냐?” 화검상은 이제 몹시 귀찮아져서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그 말을 믿든 말든 상관하지 않겠소. 이제 대답을 했으니 그 물건은 돌려줘야 하는 게 아니오?” 어연하는 차갑게 웃으며 대꾸했다. “네놈은 정말 제멋대로구나. 네놈의 죽은 아비도 그런 식이어 서 노광(老狂)이란 별호를 얻었겠지? 지금 그것을 대답이라고 하 는 거냐?” 화검상은 이에 문득 분노했다. 기실 그가 그렇게 선친에 관한 얘기를 듣고 분노하게 된 것은 의외의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전에 그는 선친뿐만 아니라 조부와 증조부에 관해서 간혹 입 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을 들었어도 그저 괴로울 뿐, 분노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이미 그의 마음이 가문에 대해서 다른 확신을 내리기 시작했다는 의미일까? 화검상은 안색이 무섭게 굳어지며 말했다. “나는 이미 할말을 다했다. 너는 지금 즉시 그 옥병을 내게 건네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어연하는 갑자기 화검상의 안색과 말투까지 험악하게 변하자 다소 흠칫했으나 이내 냉소하며 공력을 집중하여 옥병을 든 손을 앞으로 들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그 야그 출력일 :: 98/10/22 ───────────────────────────────────── 제 목 : [화산문하]제 1부 3 권 제 27 장 - 3 “흥, 좋다! 하지만 네놈이 한 발짝만 다가오면 이 옥병과 약은 산산이 부서져버리고 말 것이다. 나를 탓하지마라!” 표독스럽게 쏘아보는 그녀를 바라보다가, 화검상은 문득 움직 였다. 어연하는 이미 그가 한 발짝만 움직이면 옥병을 부숴버리겠다 고 했지만, 그러나 화검상의 움직임은 처음에는 마치 움직이지 않는 듯 느렸지만 나중에는 빨랐다. 어연하는 그가 다가드는 것을 보고 즉시 경각하여 대처하려고 했지만 어느새 화검상은 그녀의 코앞에 다가들어 있었고, 옥병을 부숴버리려고 했으나 그것은 어느새 화검상의 손에 넘어간 뒤였 다. 공력이 실린 손과 손이 서로 부딪치면 으레 충격이 오게 마련 이지만 어연하는 전혀 그런 충격도 느낄 수가 없어서 마치 자신 이 일부러 건네준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화검상은 이어 코앞에 있는 그녀를 아랑곳하지 않고 옥병을 열 어 그 안의 내용물을 확인해보고 있었다. 그 안에는 틀림없이 세 알의 자하신단이 상하지 않고 잘 들어 있었다. 어연하는 화검상의 무공과 그 옥병을 빼앗은 수법에 놀랐다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장법(掌法)으로 화검상의 가슴팍과 하복부 의 급소를 퍽퍽퍽퍽, 하고 공격했다. 그것은 야묘방의 절기(絶技)로 무영장(無影掌)이라고 하는 것이 며 빠르고 변화가 많은 것이 특색이었다. 그러나 어연하는 처음 일 장(一掌)을 가격할 때부터 무슨 솜뭉 치를 두드리는 듯한 느낌과 강한 반탄력(反彈力)을 느끼며 내기 (內氣)가 크게 진동했고, 이어 연달아 터진 사 장(四掌)이 미처 다 끝나기도 전에 그녀의 신형은 거칠게 뒤로 날려가 벽에 심하 게 부딪치고 말았다. 그것은 물론 화검상의 호신강기(護身 氣)가 작용한 것이다. 화검상은 일부러 호신강기의 위력을 부드럽게 조절할 수도 있 었으나 분노한 탓에 그냥 두어 그녀는 스스로 당한 결과가 되고 만 것이었다. 화검상은 그런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내 옥병을 품속에 갈무리 하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밖으로 몸을 돌려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어연하는 기실 자신의 무공이 절정(絶頂)경지인데도 그와 같은 결과가 벌어지자 파리해진 안색에 피를 왈칵 내뿜은 상태로 잠시 어안이 벙벙했으나 문득 손으로 품속에서 무엇인가를 꺼내 화검 상의 등뒤를 향해 내던졌다. 그것은 암기(暗器)의 종류인 것 같았는데 특이하게도 끝이 날 카롭지 않고 작은 구슬처럼 둥글둥글했다. 화검상은 비록 등뒤로 무엇인가 날아온다는 것을 알았지만 아 직 암기에 대한 경험이 적어서 미처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다. 그 검은 구슬 같은 세 개의 암기들은 머리와 등, 허리 부분으 로 동시에 정확히 날아갔는데, 화검상은 본능처럼 머리로 날아오 른 것은 가볍게 고개를 기울여 피했지만 등과 허리로 날아오는 두 개의 구슬들은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과연 그 두 개의 구슬들은 그의 호신강기에 가로막혀 미처 의 복에 닿기도 전에 도로 튕겨져나갔다. 한데 그때 갑자기 그 세 개의 구슬들이 거의 동시에 터지며 이 루 형용하기 어려운 악취를 풍기는 검은 연기가 사당의 내부를 가득 에워싸버리는 것이었다. ‘아니, 이건……?’ 화검상은 뒤늦게서야 일의 심각성을 깨닫고 크게 멈칫했으나, 이미 이 상황을 돌이키기에는 늦어 있었다. 어연하는 하나의 구슬을 일부러 화검상의 뒤통수로 던져 그가 그것을 피하도록 했는데, 알고 보니 그것은 앞쪽으로 가서 터져 서 그의 퇴로를 완전히 봉쇄해놓고 있었다. 이 연막탄 같은 것에 이렇게 심한 악취가 느껴진다는 것은 십 중팔구는 독(毒)을 함유하고 있다는 증거다. 화검상은 황급히 호흡을 봉쇄하고 시선을 어연하에게 되돌렸으 나. 그녀는 이미 차갑게 조소하며 느릿하게 몸을 일으키고 있었 다. “호호, 당신의 무공은 정말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이로군요? 하지만 그래도 나를 너무나도 쉽게 봤어요! 당신은 지금 이곳에 가득 차 있는 독(毒)이 어떤 것인지 아나요?” 화검상은 즉시 운기(運氣)를 해보았으나 일단 체내에서 어떤 독기도 느껴지지 않았으므로 그녀를 향해 말했다. “우리는 피차 원수진 일도 없소. 그런데도 반드시 이렇게 해 야만 하겠소?” 이미 그 검은 연기는 이 사당의 내부를 가득 채워놓고 있었고 지저분한 벽을 오르내리던 거미나 벌레 등이 갑자기 툭툭, 떨어 져내리기 시작했다. 아마도 이 검은 연기 속에는 정말로 독이 들어 있을 뿐만 아니 라 그것도 심한 맹독이 들어 있는 모양이었다. 무공이 있는 사람들은 당연히 독에 대한 저항력이 강한 것이 사실이나, 그 독이 강력하다면 문제가 달라질 수도 있는 것이다. 어연하는 품속에서 단환(丹丸) 하나를 꺼내 꿀꺽 삼키더니 여 전히 파리해진 안색으로 차갑게 다시 말했다. “네놈에게는 여한이 없을지 몰라도 나는 결코 네놈을 이대로 보낼 수는 없다. 호호호! 네놈은 벌써 몸의 이상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 아니냐?” 화검상은 다시 선 채로 운기를 해보았으나 여전히 이상이 없자 다소 의아하게 생각했다. 어연하는 그의 안색이 다소 변하자 일순 득의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호호호! 네놈은 전혀 예상을 못했겠지만 이건 바로 백약문 (百藥門)에서 제조한 소혼분(消魂粉)이란 거다. 동(董)언니는 바로 네놈 같은 자를 상대하라고 그걸 내게 준 거지.” 화검상은 이미 얼마 전에 녹림맹의 무리들에게 그런 비슷한 연 막탄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 그 연기 속에 감춰진 독은 위력이 미미하여 별게 아니었다. 그것은 그런 많은 양의 극독을 연막탄에 포함시키기가 어려웠 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만일 이 연기 속의 독이 백약문에서 제조한 것이 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이 백약문(百藥門)은 무공 방면에서는 야묘방과 거의 비슷할 정도로 별로 대단하지 않은 수준의 문파였다. 그러나 화검상은 비록 야묘방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지 못해도 백약문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는 편이다. 그것은 그 백약문이 일단 강호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반드 시 유의해야 할 문파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백약문은 드물게도 중원에서 가장 전문적으로 동물이 아닌 식 물 등에서 독을 채독하여, 이독치독(以毒治毒), 즉 그 독으로 병 을 치료한다고 하는 문파이다. 천하에 독술을 연구하고 사용하는 문파는 많지만 이렇게 깊은 경지에 들어서 있는 문파는 드물다. 따라서 사람들은 그 문주인 백초옹(百草翁), 동각(董角)의 무공 은 두려워하지 않아도 그의 독술만큼은 두려워한다. 그들의 독은 비록 묘강독문(苗疆毒門)의 경우처럼 강력하고 신 속한 위력을 발휘하지는 않으나 대부분 복잡하고 오묘하게 제조 되어 그들의 해약이 없다면 풀 수 없다는 것이 강점이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그 야그 출력일 :: 98/10/22 ───────────────────────────────────── 제 목 : [화산문하]제 1부 3 권 제 28 장 명문정파(名門正派)의 사람들 제 28 장 명문정파(名門正派)의 사람들 이 소혼분(消魂粉)이라는 것만 해도 특이한 것이다. 강호에는 물론 독에 관한 여러 가지 명칭이 자유로이 붙어다니 지만, 일반적으로 소혼분이라고 하면 무림인에게는 거의 치명적 이다. 그것은 일단 산공(散功), 즉 사람의 공력을 모두 소진시킨 이후 에 발작하며 열두 시진 내에는 목숨을 잃게 하는 것이다. 다른 문파에도 소혼분은 많지만 이 백약문의 소혼분은 더욱 오 묘하고 치명적일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백초옹 동각에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치의 병에 걸려 고생 하는 증손녀가 하나 있는데, 병화(病花) 동소유(董少柔)라고 한다. 그녀는 비록 불치의 병에 걸려 있기는 하지만 두뇌가 매우 총 명하여 오히려 의술과 독술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한 다. 지금 어연하가 말한 동언니는 바로 그 병화 동소유를 가리키는 것일 것이다. 그녀가 만일 그런 소혼분을 어연하에게 호신용(護身用)으로 주 었다면 반드시 해독약도 함께 주었을 것이며, 조금 전에 어연하 가 복용한 것이 바로 그 해독약일 것이다. 화검상은 비록 지금은 자신이 중독된 기미가 보이지 않으나 앞 으로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어서 내심 자신의 경솔함을 후회했 다. “낭자가 원하는 게 무엇이오?” 어연하는 화검상이 자신에게 걸려든 듯하자 내심 매우 득의해 하면서도 표정은 더욱 차갑게 변했다. “네놈은 앞으로 무슨 일이든 내 말에 복종해야 할 것이다! 우 선 네놈은 녹림맹과의 음모에 대해 밝혀라!” ‘이 계집이 너무 함부로 날뛰는군!’ 화검상은 내심 화가 치밀었지만 다시 말했다. “녹림맹에 대해서는 정말로 다시 더 말할 것은 없소. 그리고 나는 낭자의 종복도 아닌데 복종해야 할 일이 있겠소?” “뭐라고? 이 개자식이?” 어연하는 일순 크게 분노하여 즉시 달려들어 화검상의 따귀를 후려쳤다. 하지만 번갯불처럼 빠른 듯한 그녀의 손은 미처 화검상의 뺨을 맞히지도 못하고 아슬아슬하게 화검상의 손에 잡히고 말았다. 어연하의 손속에는 분노한 김이라 공력이 강하게 실려 있었다. 만일 일반인이 그 따귀를 맞았다면 죽지는 않는다고 해도 이빨 이 모두 부러지고 그 얼굴은 심하게 부어오르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화검상이 뒤늦게라도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간단히 잡 아버린 것은 기이했다. 어연하는 일순 크게 놀라며 의아해 하다가 이번엔 다른 손을 휘둘렀다. 이번엔 무영수의 수법으로 화검상의 인후부를 잡아채는 살수 (殺手)였다. 하지만 이번에도 화검상의 손이 어느새 움직여 그녀의 좌수(左 手)를 간단하게 잡아내고 있었다. 본래 이 소혼분은 산독(散毒)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중독된 사람은 공력을 쓸 수도 없고 사용해서도 안 되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공력이 실린 공격을 간단히 받아냈다고 하는 것 은 이미 공력을 사용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기실 화검상 스스로도 이 사실에 대해 놀라고 의아해 하고 있 는 것이다. 그는 심지어 지금 그녀가 터뜨린 이 소혼분이 가짜가 아닐까 하고 생각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면 지금 어연하가 이렇게 자신만만해 할 리도 없 고, 또한 병화 동소유가 준 것이라면 실로 가짜일 리가 없지 않 겠는가? 어연하는 더욱 놀라고 경악해 하다가 이번에는 두 다리를 풍차 처럼 돌리며 어지러이 화검상의 하체를 발길질하기 시작했다. 야묘방의 무공은 신법(身法)과 보법(步法)이 뛰어난 편이므로 그녀의 발길질이 이렇게 현란한 것은 당연하다. 그것은 물론 화검상이 다른 생각을 하느라고 미처 그녀의 손을 잡되 맥문(脈門)은 제압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화검상은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는 와중에도 그녀가 발길질을 해대자 이번에는 그녀의 두 손을 놓고 간단히 두 다리를 잡아 들 어올렸다. 어연하는 지금 비록 치마가 아닌 경장차림의 바지를 입고 있다 고는 해도 이렇게 남자에게 엉덩이를 보이며 다리가 잡혀져 거꾸 로 들어올려진다고 하는 것은 수치스런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그녀는 황급히 자유로워진 두 손으로 뒤쪽의 화검상을 향해 지 풍을 날리려고 했으나, 이미 화검상은 그녀의 급소를 제압하여 조금의 진기(眞氣)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기실 중원의 여자들이 수치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손보다는 발 을 남에게 보이는 것이고 또한 잡혀버린다면 말할 것도 없다. 그녀는 한 순간 안색이 붉고 창백하게 여러 번 변화하다가 악 독하게 눈빛을 빛내며 소리쳤다. “이, 이 개자식! 어서 놓지 못하겠느냐?” 화검상은 엉겁결에 우스꽝스런 모양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별다 른 기분이 드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가볍게 실소하며 말했다. “해약을 주시오. 그럼 부탁하지 않아도 놓아주겠소.” 지금 그녀의 발목을 잡고 있는 화검상의 손에는 분명 강한 공 력이 실려 있었다. 그것은 말하자면 전혀 중독이 안 된 듯한 모습이다. 어찌 된 영문인지는 알 수가 없지만 어연하는 화검상이 지금 자신을 희롱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안색이 파랗게 되어 소리쳤다. “이 더러운 음적(淫賊)! 내가 장차 원귀가 되어서라도 네놈을 결코 가만두지 않겠다.” 강호상에는 원수지는 일이 많은데, 이렇게 사소한 일로 그것이 비롯되는 경우도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음적이라……? 하긴 나는 이제까지 온갖 욕을 다 들어왔으니 거기에 하나를 더 추가한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없겠지.’ 화검상은 내심 실소하며 말했다. “해약을 주면 놓아주겠다는데 무슨 말이 그리 많소?” 어연하는 새파래진 안색으로 말했다. “네놈은 지금 중독되지도 않았는데 무슨 해약이 필요하단 말 이냐?” 화검상은 그렇지 않아도 내심 의아해 하고 있던 참이라 고개를 갸웃거리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니 그럼 내가 정말로 중독되지 않았단 말인가? 알 수 없는 일이로군. 하긴 내 공력이 곡선적이라서 특별한 위력을 발휘할 수도 있겠지만서도……, 정말 그럴까?’ 기실 화검상은 독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곡선적 내공과 독과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잘 파악하지 못하고 있 었다. 곡선적 내공은 말하자면 살아 있는 공력으로서 스스로 변화하 여 유사시에는 자체방어를 할 수 있는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직선적 내공처럼 결함이 있는 것은 아니다. 직선적 내공의 경우, 극독은 그 결함을 따라 침투하여 결정적 인 영향을 미치나, 곡선적 내공은 본래 결함이 없는 취지이기 때 문에 백연탄(白筵彈)의 경지 이상에 오르면 거의 완성에 가까워 져서 웬만한 독은 피부나 호흡을 통해 침투할 수가 없다. 물론 일부러 독약을 복용하는 경우에는 조금 다르겠지만, 그것 도 크게 영향을 미치지는 못하게 되므로 화검상은 곡선적 내공으 로 인해 만독(萬毒)은 아니라고 해도 백독(百毒)이 불침하는 경지 가 되어 있었다. 화검상은 스스로도 거의 그러한 이치를 느끼고 있기는 했지만 아직 확신을 내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함부로 행동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해약을 내놓으시오. 해약만 내놓으면 될 일이 아니 오?” 어연하는 화검상의 어조가 비교적 담담한 것을 보고 그가 자신 을 어떻게 하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하지만 일단 그것을 알자 그녀의 눈빛은 빠르게 돌아갔다. ‘동언니는 이 독이 무공이 높은 사람이거나 특이체질이 있는 사람에게는 발작이 늦어질 수가 있고, 또한 무공이 아주 높은 사 람에게는 전혀 중독시키지 못할 수도 있다고 했다. 보아하니 지 금 이 녀석은 중독이 되었으나 발작이 지연되고 있는 것이거나 아니면 이 녀석의 무공이 이미 초상승의 경지에 올라 있기라도 하단 말인가?’ 그녀는 내심 그럴 리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싸늘하게 말 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는 야그 출력일 :: 98/10/22 ───────────────────────────────────── 제 목 : [화산문하]제 1부 3 권 제 28 장 - 1 “해약은 지금 내가 복용해버려서 남아 있지 않다. 네놈이 만 일 나를 놓아준다면 열두 시진 안에 해약을 가져다 줄 수가 있 다!” 화검상은 문득 그녀가 지금 수작을 부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 다. 아까 그녀는 세 알의 독탄(毒彈)을 던졌었다. 그렇다면 가벼운 적을 상대할 때를 대비해 해약은 독탄의 숫자 만큼은 있을 것이다. 지금 그녀에게 독탄이 더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일단 그녀가 해약을 복용하는 것을 본 이상, 그녀에게 해약이 하나밖에 없었다는 말은 믿을 수가 없는 일이고, 또한 목숨을 남 에게 내맡기고 열두 시진이나 기다릴 수도 없는 일이다. “이거 정말 말이 통하지 않는 낭자로군? 그렇다면 내가 직접 몸을 뒤져보는 수밖에!” 그러나 그녀의 몸에서 해약들을 찾아낸다고 해도 그것이 해약 이라는 확신이 들지 않는 한은 복용할 수가 없는 일이다. 어연하도 기실 그런 점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 그녀는 아직 시집도 안 간 처녀의 몸인데 화검상이 몸을 뒤진다고 하자 그만 질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네, 네놈이 만일 내 몸에 손을 댄다면 나는 죽어서도 네놈을 저주할 것이다!” 화검상은 사실 이 여자에게 그리 심하게 대할 생각은 아니었 다. 그런데 어연하는 지금 오히려 그 점을 역이용하여 그에게 끈질 기게 달라붙고 그를 제멋대로 하려고 하는 것이다. 화검상은 이에 그만 마음이 차갑게 굳어지고 말았다. “좋소, 나는 이미 온갖 저주는 다 받고 사는 사람인데 그저 그런 사람이 하나 더 늘어난다고 해도 상관없는 일이겠지! 나는 일부러 애써 낭자를 봐주려고 했는데, 낭자는 오히려 그 점을 이 용하여 끝까지 나를 해치려고 하는군! 그렇다면 나도 더 이상 바 보가 될 수 없으니 앞으로 나의 행동을 원망하지마시오!” 화검상의 어조는 오히려 담담할 지경이었으나 그것은 어연하의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기에 족했다. 그녀는 눈빛을 새파랗게 굳히며 말했다. “네, 네놈은 내게 무슨 짓을 하려는 거냐?” 화검상은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 “나는 지금 중독되었는지도 모르고, 또한 앞으로 그렇게 될지 도 모르오. 이런 상황에서 내 마음을 역이용하다니, 실로 낭자는 강한 자에게는 굽히고 약한 자들을 괴롭히는 그런 사람임이 분명 하오. 한데 나는 그다지 약한 사람도 아닐 뿐만 아니라 마음도 넓지 못하고 또한 좋은 사람도 아니오. 따라서 나는 지금 세 가 지의 방안을 제시하고자 하오. 첫째는 특수한 방법으로 낭자의 두뇌의 일부를 파괴하여 그런 나쁜 심리와 기억을 제거하는 것이 고, 그럼 낭자는 아마도 미쳐서 아무렇게나 세상을 떠돌다가 죽 게 될지도 모르지…….” “네, 네놈이 감히……!” “두번째는 그것도 마음에 차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낭자의 몸 을 더럽히고 이 아름다운 얼굴을 파괴하고 무공을 제거하여 발가 벗겨서 즉시 내쫓는 것이오. 물론 귀찮아질 것을 방지하기 위해 역시 낭자의 두뇌 일부를 파괴시켜야 하겠지. 나는 항상 벼랑 위 에서 사는 사람인데 그런 일을 못할 것 같소?” “네, 네놈이……?” 어연하의 얼굴에 문득 공포심이 떠올라 그녀의 음성이 자신도 모르게 떨려나왔다. 그녀가 아무리 악랄하게 나오려고 해도 그런 방법에는 어쩔 수 가 없는 모양이다. 화검상은 계속 말을 이었다. “세번째의 방법은 간단하오. 낭자가 즉시 해약을 주고 진정으 로 무슨 목적으로 내게 이러는 것인지 말해주면 즉시 풀어주도록 하겠소.” 말이 끝나자 화검상은 그녀를 들고 있던 손을 놓았다. 그러자 어연하는 발악적으로 몸을 허공에서 뒤틀면서 화검상을 공격하려고 했다. 하지만 화검상은 이미 지풍을 날리고 있어서 그녀는 곧장 간단 하게 그 지풍에 혈도가 제압되어 바닥에 길게 쓰러졌다. 어연하는 시퍼런 독기를 뿜고 이를 갈며 소리쳤다. “지옥 끝까지 쫓아가서라도 네놈의 간담을 씹어먹고 말겠 다!” 화검상은 그녀가 마혈이 제압되어 꼼짝할 수 없는데도 여전히 그처럼 발악적인 것을 보고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본래 이 일은 모두 당신의 잘못 아니오? 낭자는 애초에 귀찮 아 하는 나를 억지로 소매치기를 하여 데려와서는 내 물건을 가 지고 흥정하지 않았소? 나는 이미 참을 만큼 참았으니 다음 대답 엔 세번째의 방법을 듣게 되었으면 하오.” 그러나 어연하는 계속 독기 서린 시선으로 소리쳤다. “내가 장차 네놈의 간을 씹어먹지 않으면 사람도 아니다.” 화검상은 이내 그녀의 아혈마저 제압하고 그녀의 앞에 쭈그리 고 앉았다. “정말 말이 통하지 않는군. 그럼 나는 두번째의 방법을 시행 하게 될 것 같으니, 낭자는 만일 세번째의 방법이 좋다고 생각되 면 즉시 눈을 두 번 깜빡이시오.” 그 수법은 얼마 전에 바로 이파파 등에게 써먹었던 것이기도 했다. 화검상은 말이 끝나자 즉시 그녀의 상의 겉옷을 풀어헤치기 시 작했다. 기실 화검상은 이것은 무슨 대단한 상황도 아니어서 두번째의 방법을 정말 실시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선 그렇게 겁을 준 다음 에 그녀의 품속을 뒤져 해약 등이 나오면 다시 방법을 강구할 생 각이었다. 소매치기를 하는 사람답게 그녀의 의복은 풍성해서 여유가 많 았고, 겉옷을 젖히자 이내 속옷의 위에 몇 개의 주머니와 같은 것들이 눈에 띄었다. 화검상은 그 주머니들을 뒤지려다가 문득 그녀의 얼굴을 보고 는 멈칫했다. 그녀는 이 순간 안색이 창백하게 변한 채 눈을 조금도 깜빡이 지 않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녀의 두 눈에서 흐르는 눈물은 원한이 맺혀 차디찼고, 입술 은 거뭇하게 죽어들고 있었다. 화검상은 눈물을 흘리면서 자신을 노려보는 그녀를 보며 문득 생각했다. ‘그녀는 굴복하지 않을 모양이다. 내가 그녀에게 심하게 대한 어떤 것이 있었던 것일까? 해독약만 주면 그저 무사할 것을 어째 서 그녀는 유독 이렇게 원한을 갖는 것일까? 정말 오기가 대단한 여자로군!’ 화검상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다시 생각했다. ‘사실 이 여자가 크게 나쁜 짓을 한 것은 없다. 그녀는 아마 도 소매치기한 내 물건들을 그냥 돌려주려 한 것이고, 그저 몇 가지 물어보려고 했던 것 같다. 아마도 상부의 지시였기 때문에 그녀는 쉽게 이 일을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겠지. 그런 것을 내 마음이 너무 무겁고 거칠어져 있어서 쉽게 그녀의 오기를 건드렸 던 것 같다. 그녀는 지금 자신의 손익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자 존심이 상해서 이러는 것이다. 대체로 이런 사람은 나쁘지 않다. 게다가…… 나의 몸은 지금 중독되지 않은 것 같다. 설령 중독되 었다고 해도 나의 이 곡선적 내공을 한번 믿어보는 것도 좋지 않 겠는가?’ 화검상은 그런 생각이 들자, 이내 그녀의 주머니들을 그대로 두고 겉옷을 본래처럼 여며준 다음에 혈도를 풀어주고 내상(內 傷)까지 치료해줄 생각으로 그녀의 맥문을 잡고 진기를 보내주었 다. 그녀의 내상은 그리 심한 것은 아니고 게다가 화검상의 공력이 매우 우수하여 그녀의 내상은 이내 믿기지 않을 만큼 쉽게 완치 되었다. 어연하는 이때 전혀 반항하지 않았다. 아마도 화검상이 갑자기 혈도를 풀어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화검상이 그녀의 내상까지 치료해주고 몸을 일으켜 앉게 해주 자, 비로소 그녀의 차가운 시선에는 다소 의아한 빛이 떠올랐다. 화검상은 그녀를 향해 가볍게 탄식하며 말했다. “일이 이렇게까지 된 것은 내가 사과하겠소. 본래 나는 일부 러 그런 것이 아니라 워낙 상황이 좋지 않고 심정이 괴로워서 그 랬던 것이오. 내가 낭자를 어떻게 하려던 생각은 솔직히 없었소. 난 낭자가 미워서 그랬던 것이 아니라 마음이 매우 괴로워서 그 랬던 것이오.” 어연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으나, 문득 눈빛이 점차로 살아나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화검상은 거듭 탄식하며 말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는 야그 출력일 :: 98/10/22 ───────────────────────────────────── 제 목 : [화산문하]제 1부 3 권 제 28 장 - 2 “낭자가 나를 보고자 한 이유에 대해서는 나도 대강 짐작은 하겠소. 하지만 나는 이미 말한 대로 녹림맹과는 전혀 연관이 없 소. 무공도 조부의 유물을 얻어 병을 고치고 갑자기 높아지게 된 것이오. 내가 만일 녹림맹과 음모를 꾸몄다면 풍천비 등이 나를 감시하고 있었는데 나를 그대로 두었겠소? 아까 그 녹림맹의 사 마귀를 만난 것도 처음 있는 일이었고, 내 생각에는 아마도 그들 이 나의 무공과 처지를 이용해서 이득을 보려고 한 것 같소. 음…… 아마 그 정도면 낭자가 상부에 보고할 정도는 될 것이라 고 생각되오. 어쨌든 내가 낭자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고 또한 수모를 준 것은 미안하오. 나도 지금 중독되었으니 서로 비긴 것 이라고 합시다. 나는 이만 가겠소. 혹시 사람들이 해칠지도 모르 니 낭자는 이제 그만 빨리 돌아가는 것이 좋겠소…….” 화검상은 이어 몸을 일으켰다. 그가 마악 밖으로 걸음을 옮기는데 문득 어연하가 입을 열어 말했다. “당신은 다른 해독할 방법이라도 있나요?” 고개를 돌려보니 그녀는 이제 차가운 기색은 많이 사라지고 눈 빛이 맑아지고 있었다. 화검상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만일 그런 방법이 있었다면 내가 일부러 낭자를 놀라게 했겠 소? 하긴 나는 앞으로 언제 죽게 될지도 모르니 그런 해약이 필 요없을지도 모르겠소.” 말과 함께 화검상은 이내 빠르게 걸음을 옮겨 밖으로 나왔다. 밖은 아까보다 더욱 어두워진 것 같았다. 화검상은 우선 맑은 공기를 심호흡하여 마음껏 들이마신 다음 에 신법을 펼쳐 곧장 으슥한 장소를 찾아갔다. 우선 체내에 독이 있는지 정밀하게 진단해보기 위해서였다. 마침 그는 근처에서 수풀에 가려진 바위를 발견하여 그 위에 정좌를 하고 앉아 한동안 운기조식을 해보았다. 운기조식을 해본 결과 독이 몸 밖에서 다소 느껴지는 것은 사 실이었다. 그러나 그 독은 조금도 내부로 침투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가 공력을 일으키자 그 몸 밖의 독들도 밖으로 밀려 나 바람결에 사라져버렸다. 화검상은 이에 미미하게나마 자신의 곡선적 내공이 독을 스스 로 물리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는 서너 차례 더 운기조식하여 체내 외의 모든 독들이 전혀 존재하지 않음을 확인하고 나서 몸을 일으켰다. 이 어둠은 그의 시야를 장애하는 것은 아니지만 왠지 그를 더 욱 우울하게 만든다. 그는 잠시 상념에 젖다가 이내 신법을 펼쳐 숙소로 향하기 시 작했다. 숙소인 태평반점의 입구에 다시 도착하자, 뜻밖에도 밖에 나와 기다리다가 웃으며 그를 맞는 사람이 있었다. 가검통이었다. 가검통은 그를 발견하자 웃으며 말했다. “화사형, 이제 돌아오시는군요? 어서 안으로 들어가보십시오. 장문인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화검상은 마침 방귀춘의 혈도를 제압해놓은 일도 있어서 그가 그렇게 말하자 다소 의아하게 생각했다. 가검통이 그를 안내한 곳은 숙소가 아니라 바로 일층의 식당이 었다. 이제 저녁식사 시간도 거의 지나고 하여 지금 다른 손님들은 별로 없고 한쪽의 자리에는 화산파의 사람들을 비롯한 여러 사람 들이 술과 차를 마시고 있었다. 장문인 풍천비도 바로 그 자리에 있었다. 화검상은 다른 사람들은 대개 처음 대하는 사람들인지라, 아마 도 이곳에서 만난 정파인들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가검통은 즉각 화검상을 그쪽으로 데려가 풍천비에게 고했다. “화사형을 데려왔습니다.” 풍천비는 다른 사람들과 뭔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 말에 고개를 돌리더니 짐짓 가벼운 미소를 띠며 화검상에게 말했 다. “잘 왔다! 네가 지금 인사드릴 분들이 계시니 그쪽에 앉도록 해라.” 화검상은 풍천비가 전에 없이 입가에 미소까지 띠고 그를 대하 자 다소 기이하게 생각했다. 지금 기다란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앉아 있는 낯선 사람들은 모두 여덟 명이었고, 그 가운데 노인은 둘이었고, 여자도 둘이 있 었다. 화검상이 빈자리에 앉자, 풍천비는 차례대로 그들을 소개시켜 주었다. 가장 먼저 소개시켜준 사람은 나이가 가장 많아 백 세에 가까 운 노인이었는데 탁자 앞에 금빛이 어른거리는 사 척(四尺) 길이 의 단창(短槍)과 방패를 올려놓고 있는 상태로, 창노야(槍老爺) 양붕비(楊鵬飛)라고 했다. 화검상은 그의 이름을 듣자 이내 그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누 구인지 알 수 있게 되었다. 중원에는 갖가지의 병장기를 사용하는 명문대파들도 있지만, 그 중에서도 창법(槍法)으로 이름을 날린 곳은 바로 장안에 있는 금창보(金槍堡)라고 하는 곳이다. 그 금창보가 있는 장안은 화산과 같은 섬서(陝西) 지방에 위치 하고 있어 지리적으로 가깝기 때문에 화검상에게도 그쪽의 소문 이 심심치 않게 들려오던 터였다. 그들은 사 척 길이의 단창과 방패를 사용하기도 하고 혹은 쌍 창(雙槍)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지금 그 가주인 양붕비의 앞에 놓 인 것이 바로 그 유명한 금창보의 가보 금창(金槍)과 금방패라고 하는 것이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그들은 그들의 조상이 어떤 신인(神人)에 게서 그 물건들을 받았다고도 하는데, 겉으로는 금빛이 어른거리 지만 무슨 재질로 만들었는지 알 수 없고 대개 강호의 이기(利 器)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하지만 그가 비록 나이가 가장 많아도 무공이 가장 높은 편은 아니었다. 비단 나이도 가장 많을 뿐만 아니라 그는 일파의 종사(宗師)급 에 해당되는 사람이기에 풍천비가 은근히 대우를 해주고 있는 것 이다. 그보다 무공이 훨씬 높은 사람은 나이가 다소 적은 종남일군자 (終南一君子) 육만천(陸萬川)이라고 하는 사람인데 그는 다름아닌 명문대파 종남파의 대제자였다. 이 종남파에 대해서는 워낙 대파(大派)이니 화검상은 다소 상 세하게 알고 있다. 종남파는 과거 전진도가(全眞道家)의 명맥을 이었으며 계승, 발 전시켜서 우주적(宇宙的)인 무공의 흐름을 연구하는 문파로서, 현 재의 장문인은 종남파 제일기재라고 소문났던 은하노인(銀河老 人) 여비신(余非信)이란 사람이다. 현재 그 대제자인 육만천은 나이가 풍천비보다 많은데도 종주 (宗主)가 아직 아니기에 서열상으로 밀리는 것이다. 세번째로 소개받은 사람들은 청수하고 차분한 인상의 오십대 중년인으로 와룡검(臥龍劍) 제갈산중(諸葛山重)이라고 했는데, 바 로 제갈세가(諸葛世家)의 소가주 신기검수사(神機劍秀士) 제갈철 생(諸葛鐵生)의 아들이다. 이들은 아마도 우연히 이곳에 함께 묵게 되어 만나게 된 모양 이었다. 화검상은 풍천비가 어째서 갑자기 자신에게 이런 호의를 보이 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필시 그에게는 어떤 속셈이 있을 것이며 그것은 결코 화검상에게 유리하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들 세 사람을 소개받고 나자, 나머지는 그들의 수행인들과 친척들이라 화검상은 굳이 소개를 받지 않아도 알 수가 있었다. 종남일군자 육만천의 옆에 앉아 있는 삼십대 후반의 여자는 육 만천의 손녀이자 시집 못 간 노처녀인 종남일선자(終南一仙子) 육소빈(陸少頻)이라는 사람이었고, 와룡검 제갈산중의 옆에 앉아 있는 이십대 중반의 청년은 제갈산중의 아들로 십방수재(十方秀 才) 제갈성(諸葛星)이란 사람이다. 그들 여덟 명 중 금창보의 사람들이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는 데, 나머지는 칠십 세에 가까운 나이에도 중년인으로 보이는 금 창보의 소가주 철혈무적창(鐵血無敵槍) 양정룡(楊正龍)과, 그의 아들이자 쌍창(雙槍)의 명수라는 유성창(流星槍) 양준호(楊俊豪), 그리고 다시 양준호의 딸인 아직 방년(芳年)의 나이도 안 된 미 소녀 화창(花槍) 양소금(楊少琴)이었다. 그들과의 수인사는 그저 빠르고 간단하게 끝났다. 화검상은 그들에게 각기 정중한 예를 갖춰 보였지만 그들은 대 부분 차가운 기색으로 묵묵히 앉아 있을 뿐이었고, 오직 제갈세 가의 와룡검 제갈산중만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을 뿐이었 다. 양쪽의 소개가 끝난 뒤에 풍천비는 음침하게 웃으며 한마디를 더했다. “본파의 이 아이는 비록 길을 잘못 들어 사마외도(邪魔外道) 의 인물들과 만나고 있지만 그 무공만은 이미 본인을 압도할 지 경이오.” 화검상은 그 말을 듣자마자 이내 어느 정도 풍천비의 의도를 파악할 수가 있었다. 지금 그의 그러한 한마디는 완전히 강호에 그가 화산파의 반도 (叛徒)라는 것을 천명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기 때문이다. 화검상은 이미 풍천비가 좋지 않은 의도가 있을 것이라는 점을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별로 놀라지도 않고 반박하지도 않았지 만 이내 생각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야그 출력일 :: 98/10/22 ───────────────────────────────────── 제 목 : [화산문하]제 1부 3 권 제 28 장 - 3 ‘내가 사마귀와 조금 전에 만났던 일을 풍천비가 이미 알고 있단 말인가?’ 문득 화창 양소금이 쌀쌀하게 웃으며 비아냥거렸다. “흥, 정말 낯짝도 두껍군! 감히 사마외도의 무리들과 어울리는 주제에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이 자리에 앉아 있담?” 풍천비의 옆 자리에 앉아 있던 풍검심이 마주 조소하며 말을 받았다. “본래 사마외도의 사악한 종자는 그런 구분도 잘 못하는 법이 에요. 지금 저자는 온갖 나쁜 짓들을 다하고 있지만 우리 장문인 께선 너무나도 인자하셔서 가능하면 그를 참회시키려 하고 있지 요.” 창노야 양붕비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허허, 사마외도의 무리를 참회시켜 바르게 이끄는 것은 본래 우리 정파인들의 할 일이지만 요즘 사마외도가 워낙 날뛰니 풍장 문인께선 너무 무리를 하는 게 아닌가 싶소이다.” 풍검진이 문득 몸을 일으켜 포권하며 말했다. “예, 양노야의 그런 지적은 정말로 훌륭하신 말씀이라 생각됩 니다. 하지만 저희 장문인께선 가능하면 모든 사마외도의 무리들 에게도 한번쯤은 참회할 기회를 주자는 것입니다.” 풍검진이 다시 자리에 앉자마자, 이번엔 종남일군자 육만천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음, 좋은 말들이오. 그러고 보면 화산파에 저런 풍소협과 같 은 인재들이 수두룩하니 앞으로 화산파가 해내팔세에 드는 것은 시간문제인 것 같소이다, 풍장문인!” 풍천비는 음침하게 웃으며 포권과 함께 그 말을 받았다. “과찬의 말씀이오, 육대협(陸大俠).” 화검상은 어이없게도 사마외도로 몰리는 분위기에 휩싸이고 말 았지만 우선 그가 말을 꺼낼 시간이 없었고, 게다가 그는 이미 이런 분위기에 적응되어 쉽게 동요하지 않고 있다가 이윽고 틈이 나자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저는 본래 본파를 훼손시키는 망나니였다가 우연히 본파 비 전(秘傳)의 무학(武學)들을 알게 되어 그 병도 고치고 무공이 급 증하게 되었습니다. 저희 장문인께서도 이번에 제가 그 비전을 비급으로 남기는 것을 허락하셨지요. 하지만 지금 이렇게 여러 선배고인(先輩高人)들을 뵈오니 먼저 공경하는 마음이 앞서서 우 선 저분 제갈대협께 차를 한잔 올릴까 합니다. 무례하다고 생각 지마시고 받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화검상이 일부러 와룡검 제갈산중을 택한 것은 조금 전의 그의 태도가 남달랐기 때문이었다. 제갈산중은 즉시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대협이라니 당치 않소. 그저 선배라고 불러주는 것으로 족하 오.” 종남일군자 육만천이 다소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오호, 비급(秘 )이라? 알고 보니 화산파에는 이번에 중요한 비급이 하나 더 늘어나게 되었구려? 이거 축하해야 하겠소, 풍장 문인?” 이를테면 풍천비는 이번에 화검상을 아직 살려둔 데에 대한 해 명을 하고 나름대로 나중에도 화검상을 제거하기 위한 명분을 만 들려던 것이었는데, 화검상이 그 속셈을 금방 드러내자 육만천은 비웃고 있는 것이다. 풍천비는 그 말을 듣고 그저 음침하게 눈빛을 빛낼 뿐 대꾸하 지 않았지만, 풍검심 등은 일제히 원독이 서린 시선으로 화검상 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지금 풍천비가 가만히 있기에 그들은 함부로 나서서 화 검상을 제지하지 못했다. 화검상은 그런 좌중의 분위기를 느끼며 우선 빈 찻잔에 차를 가득 따른 다음에 우장(右掌)으로 가볍게 미는 듯했다. 하지만 이때 화검상의 우장이 별안간 흔들리며 찻잔을 중심으 로 매화 문양을 그려내듯 현란하고도 빠르게 움직였다. 그것은 거의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빠르게 움직였기 때문에 마치 한 순간의 착각 같기도 했다. 물론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고, 이어 그 찻잔은 느릿하게 제 갈산중에게로 날아갔다. 어쨌든 화검상이 무공을 펼치는 동안은 그들도 무공을 밥 먹듯 이 좋아하는 사람들인지라 그에게로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풍검심이나 양소금 등은 이내 별로 대단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 하여 조소 어린 표정들을 지었다. 그저 찻잔을 날려 보내는 기술은 진기의 배합만 잘하면 양소금 과 같이 일류급이라고 해도 어느 정도는 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 었다. 하지만 무학고수들, 특히 풍천비와 육만천, 제갈산중 등은 화검 상이 장력을 펼치는 동안 일순 눈빛을 번쩍 빛내며 주시했고, 이 어 마치 대단한 물건이라도 보듯 날아가는 찻잔을 주시했다. 찻잔은 사실 보통의 속도로 날아갔지만 여러 사람들이 긴장하 여 주시하고 있어서인지 꽤나 오래도록 날아가는 것 같았다. 이윽고 그 찻잔은 제갈산중의 면전에 도달하자 갑자기 거짓말 처럼 허공에 멈춰지더니 한 바퀴 빙그르르 맴돌았다. 그것은 마치 여러 사람들에게 보라고 하는 것만 같았다. 이에 문득 풍천비 등뿐만 아니라 조소를 보이던 양소금 등도 한결같이 놀란 표정들을 지었다. 그 찻잔의 둘레에는 언제 생겼는지 여덟 개의 작은 매화 문양 들이 또렷하게 음각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혹시 본래부터 찻잔에 그런 조각이 되어 있었던 것이 아닐까 의심하여 자신도 모르게 얼른 자기가 들고 있던 찻잔들을 살폈다. 그러나 모든 찻잔들은 그저 밋밋하게 생겼을 뿐 그런 조각이 있을 리가 없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종 야그 출력일 :: 98/10/22 ───────────────────────────────────── 제 목 : [화산문하]제 1부 3 권 제 29 장 지혜로운 자의 덕(德) 제 29 장 지혜로운 자의 덕(德) 그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기에도 이상한 일이었다. 화검상이 찻잔을 날린 수법은 이기어검술(以氣馭劍術)과 비슷 한 것이며, 그들은 그 간단한 일을 화검상이 매우 수선을 떨며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동안에 어떻게 소리없이 찻잔에 그런 매화 문양을 새길 수 있겠는가? 그 매화 문양은 비록 작았지만 몹시 또렷했고, 게다가 조각을 한 것보다도 정교하여 마치 살아 있는 매화꽃들을 보는 듯했다. 무공이 높은 사람일수록 잠시 넋을 빼고 그것을 바라보았고, 특히 찻잔을 앞에 둔 제갈산중의 경우에는 경악한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사실 지금 그들이 놀라고 있는 점은 두 가지라고 할 수 있었 다. 하나는 그 수법이 너무나도 빠르고 정교하며 자연스럽다는 것 이고, 다른 하나는 매화 문양이 장인(掌印)으로 생각하기엔 너무 나도 작다는 것이다. 무공이 일단 백연탄(白筵彈)의 경지에 오르면 소위 선천화된 진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되기에 강기로써 그렇게 자기로 된 찻잔 등에 문양을 새길 수가 있다. 하지만 그토록 정교하고 빠르게 자연스러운 솜씨로 조각하기는 어려운 일이고 더군다나 매 순간마다 장인을 자유로이 작게 응축 시킬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워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만일 그런 사람이 무공을 펼친다면 그 변화는 그야말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고 오묘하여 일반 초식의 허를 찌를 수 있 게 될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기실 그들 모두는 화검상이 그저 그가 가진 능력의 이 성(二成)이나 삼 성(三成) 가량을 사용했을 뿐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사람들이 저마다 자신의 무공과 비교하느라 정신없는 도중에, 갑자기 그 돌아가던 찻잔이 느닷없이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가루 가 되어 부서져내리고 찻물은 위로 치솟았다. 누군가 앗, 하고 경호성을 발하는 사이에 제갈산중은 문득 입 을 벌려 흡력공(吸力功)을 발휘하여 빗물처럼 그 찻물을 받아마 셨다. 조금 전에 그 오묘한 모습을 보여주던 찻잔은 이제 탁자 위에 모래알처럼 부서진 채 소복이 쌓여 있었다. 사람들은 그 찻잔이 깨지는 바람에 정신을 차렸고, 일순 놀란 표정으로 화검상을 주시했다. 화검상은 일어난 자세 그대로 제갈산중을 향해 포권하며 말했 다. “후배가 실수를 하여 그만 찻잔을 깨뜨리고 말았으니 선배님 께선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제갈산중은 잠시 탁자 위에 소복이 쌓인 찻잔 가루와 화검상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문득 전음으로 말했다. “잠시 후에 나 좀 보도록 하세!” 종남일군자 육만천이 문득 껄껄 웃으며 말했다. “허허허! 화산파의 무공은 나날이 발전하는군. 나는 풍장문인 이 무슨 사정이 있는지 이해할 만하오.” 이어 그는 벌떡 일어서서 자리를 떴다. 종남일선자 육소빈도 잠시 화검상을 주시하더니 이내 그 뒤를 따랐다. 풍천비는 여전히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음침한 그의 시선은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기 어렵게 했다. 제갈산중이 이어 일어서서 풍천비와 양붕비를 향해 포권하며 말했다. “불초는 이만 일이 있어서 실례해야 할 것 같소이다. 두 분 선배께선 좀더 쉬십시오.” 풍천비와 양붕비는 포권으로써 그 인사를 받았다. 제갈산중이 나가자 십방수재 제갈성도 그 뒤를 따랐다. 화검상은 제갈산중에게서 그 전음을 들었기 때문에 즉시 몸을 일으켜 그쪽으로 따라갔다. 제갈산중은 과연 밖으로 나가 골목 어귀에서 그를 기다리고 서 있었다. 이미 밤이 깊어서인지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많지 않았고, 그래 서인지 그 골목은 더욱 어두워 보였다. 십방수재 제갈성은 허리에 장검을 꽂은 채로 시립하듯 뒤에 공 손히 서 있었다. 아마도 그들은 지금 밤을 이용해 무림맹으로 향하는 모양이었 다. 화검상은 그의 앞으로 다가가 포권하며 말했다. “선배님께선 소생에게 무슨 가르침이라도 있으십니까?” “지금 이곳에는 사람의 눈이 많으니 우리는 전음으로 말하도 록 하세.” 제갈산중은 먼저 그렇게 전음입밀로 서두를 꺼낸 다음에, 잠시 뜸을 들이다가 다시 전음으로 말을 이었다. “음, 자네의 선친인 귀농(歸農)은 나와 나이도 동갑이었고, 또 한 약간의 친분이 있었다고 할 수도 있지……. 그는 무학의 천재 였기 때문에 무공이 나와는 비교도 할 수 없었고, 또한 효자였 네.” 화검상은 갑자기 그에게서 선친에 관한 얘기를 듣게 되자 마음 이 매우 혼란스러워졌다. 그는 이제까지 많은 사람들로부터 선친 등에 관한 얘기를 들었 지만, 기실 그의 얘기는 다른 사람들의 얘기와 그 비중이 다른 것이다. “자네의 조부 또한 대단한 무학의 종사(宗師)였고, 인심도 후 하셨지. 하지만 어째서 그들이 그렇게 쉽게 하루아침에 몰락하게 되었는지 자네는 알고 있는가?” 화검상은 이런 비중있는 사람에게서 사마귀의 말과 비슷한 얘 기를 듣게 되자 그야말로 가슴이 떨리고 넋이 나가는 것만 같았 다. 그럼 그것은 모두 사실일까? 지금 이 사람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을 수가 있을까? 화검상은 겨우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애쓰며 고개를 저으며 전 음으로 말했다. “저는 모르겠습니다. 모두들 저의 선친을 노광(老狂)이라고들 부르고 있지요.” 제갈산중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전음으로 말했다. “자네는 이미 그 일을 어느 정도 알고 있을 걸세. 오늘 보니 자네의 무공은 자네의 선친의 진전을 능가하고 있고, 또한 나보 다도 앞서네. 실로 내가 놀랄 만한 것이고, 문득 아까운 생각이 들어서 한마디해주려는 것이네. 자네가 보기엔 그들이 그저 무공 이 약해서 당했다고 생각하는가?” 화검상은 간신히 머리를 굴리며 고개를 저었다. “무공보다도 지혜가 더 뛰어나다고 생각합니다.” 제갈산중은 입가에 문득 가벼운 미소를 떠올렸다. “옳은 말이네. 내가 보기에……, 세상은 소수의 착한 사람들이 이끌어가는 것도 아니고, 또한 소수의 악한 사람들이 이끌어가는 것도 아니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착한 것도 아니고, 악한 것 도 아니고, 자신들의 욕망에 이끌려 그런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 이지. 자네의 조부와 선친은 그런 대부분의 사람들에 비해 너무 나도 뛰어났고 깨끗했기에 모두의 질시를 받고 배척당하게 되었 던 것이네. 내가 보기에 세상의 주된 흐름은 선(善)도 악(惡)도 아니지. 자네는 이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네.” 화검상은 자신의 조부와 선친이 그렇게도 깨끗하고 뛰어난 사 람들이었고, 그래서 오히려 배척을 받게 되었다는 말을 듣고 내 심 한줄기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화검상은 내친 김에 즉시 질문했다. “세상의 소문은 반대로 나고 있습니다만, 선배님의 말씀은 그 럼 저의 조부와 선친은 오히려 좋은 분들이었다는 말입니까?” 제갈산중은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비치며 말했다. “훌륭한 분들이었지. 하지만 그들은 시대의 흐름을 타지 못했 던 것이네. 나는 자네도 그 전철을 밟게 되지 않을까 하는 노파 심에 일러주는 것이네. 음, 시간이 없군! 다음에 또 보세. 만일 나 중에 우리 제갈세가를 찾아오면 그때는 융숭히 대접하도록 하겠 네.” 말과 함께 이내 제갈산중은 그의 아들 십방수재 제갈성을 대동 하고 신법을 펼쳐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화검상은 미처 작별인사를 할 시간도 갖지 못했지만, 무엇보다 도 제갈산중의 말에 내심 충격을 받고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었 다. ‘훌륭한 분들이라……? 훌륭한 분들이셨다고?’ 화검상은 어둠 속에서 잠시 멍하니 석상이라도 된 것처럼 넋을 잃고 있었고, 그러다가 이윽고 길게 한숨을 몰아쉬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仄 야그 출력일 :: 98/10/22 ───────────────────────────────────── 제 목 : [화산문하]제 1부 3 권 제 29 장 - 1 ‘그렇다면 그들의 말이 모두 사실이었단 말인가……?’ 물론 아직은 그저 비중있는 한두 사람의 말을 들었다고 해서 그것으로 모든 것을 분명히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대체 제갈산중은 무엇 때문에 처음 만나는 화검상을 보고 그런 하기 어려운 말들을 해준 것일까? 단순히 옛 친구의 아들을 대하는 호의에서였을까? 이 제갈세가는 일명 신기제일(神機第一)이라 불린다. 물론 무공 도 높지만 두뇌가 총명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많기에 많은 사람들 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다. 화검상은 물론 제갈산중이 한 말의 요지를 알고 있었고 또한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은 덕(德)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화검상은 제갈산중이 마지막으로 한 말에 대해서 생각해보고는 문득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나중이라고 했지만 그때가 언제인가? 모든 상황을 극복하 고……? 내가 과연 그때까지 살 수 있을까?’ 이윽고 골목에서 벗어나서 태평반점으로 돌아오니, 입구에서 풍검심이 화창 양소금과 뭔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가 차갑게 그를 노려보았다. 화검상은 공연히 그들을 상대하고 싶지가 않아 무시하고 안으 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문득 한 자루의 창이 네 개의 변환(變幻) 을 일으키면서 그의 등뒤로 파고들었다. 바로 화창 양소금이 손을 쓴 것이다. 화검상은 이런 일을 한두 번 겪는 것은 아니지만 다시금 쓴물 이 목구멍으로 치미는 듯하여 즉각 손을 써서 창을 잡아버리고 돌아서서 말했다. “낭자와 나는 원수 지간이 아닌데 어째서 이런 심한 살수를 쓰는 것이오?” 양소금의 무공은 고작 일 갑자의 공력에 일류(一流)의 경지에 불과하다. 그녀는 자신의 혼신을 다한 기습이 그처럼 어이없게도 간단하 게 상대의 손에 잡혀버리자 안색이 시뻘게져서 소리쳤다. “실로 너와 같은 개잡종은 죽어야 해! 나는 무림공도(武林公 道)에 의거해서 손을 쓰는 것이다!” 화검상은 올해 열여덟 살 먹은 계집애의 이런 맹랑한 말을 듣 게 되자 그만 기가 막히기도 하여 말했다. “나의 어머니는 곧 풍사자의 고모이기도 한데, 너는 대체 누 구를 욕하는 것인가? 그리고 금창보에서는 무림공도가 기껏 이런 암습이나 하는 것이라고 가르치던가?” 양소금은 도무지 그에게 잡힌 창을 빼앗을 수가 없자 크게 애 가 타고 약이 올라서 소리쳤다. “나는 너의 그 미친 아비를 욕한 거야! 그리고 무림의 패륜아 에게 암습 좀 한다고 그게 무슨 대수겠어?” 화검상은 그녀가 다시 장풍을 날리려는 것을 보고 즉시 그녀의 마혈을 제압해버리고 창을 내던지며 말했다. “그럼 너는 암습에 실패했으니 이 무림의 패륜아에게 한번 당 해봐야 할 것이다.” 금창보는 대대로 장안에서 부를 누리고 명성을 날려온 집안이 다. 이 양소금은 그런 집안에서 금지옥엽(金枝玉葉)으로 자라나 그 나이에도 벌써 두려울 것이 없어진 모양이다. 화검상이 양소금을 그렇게 두고 다시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니 이번엔 풍검심이 앞을 가로막았다. 풍검심은 두 눈에 원독의 광망을 발산하며 말했다. “흥! 이제 네놈은 내가 눈에 보이지도 않는 모양이지? 그러고 도 감히 본파의 제자라고 할 수 있겠느냐?” 화검상은 몹시 귀찮은 기분이 들었지만 내키는 대로 대꾸했다. “나는 본파의 사람이지 너희들의 졸개는 아니다. 너희는 본래 훌륭하던 우리 가문과 본파를 무너뜨리고 음모에 의해 현 상황을 이루었으니 어찌 간악한 족속이 아니겠느냐? 너도 이미 그런 것 을 대강은 알고 있을 텐데, 계속 이렇게 나오는 것은 그것을 증 명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풍검심은 비록 화검상의 사자로 배분이 위이기는 하지만 나이 는 한 살 차이밖에 나지 않고, 게다가 과거 함께 뛰놀던 어렸을 때에는 거의 화검상을 도련님 모시듯이 했었다. 이미 상황이 달라지고 세월도 많이 흘러갔지만 그 이상으로 그 녀의 태도는 완전히 달라져 있는 것이다. 풍검심은 즉시 그 말에 크게 분노하여 장검을 뽑아들었다. “뭐라고? 네, 네놈을 지금 찔러죽이지 않는다면 내가 성을 갈 고야 말겠다!” 그녀의 무공은 이미 삼 갑자의 절정경지에 올라 있기 때문에 조금 전의 양소금과는 달리 공격이 매우 무서웠다. 갑자기 바람이 일고 십여 개나 되는 장검의 변환이 화검상의 몸을 당장에라도 찢어버릴 듯했다. 그러나 잠시 손을 쓰지 않던 화검상은 그녀의 장검에 옷깃도 상하지 않고 어느새 그녀의 면전에 바싹 다가서 있었다. 기실 요즈음의 화검상의 무공은 거듭되는 실전경험으로 인해 나날이 진보를 더하고 있었다. 풍검심은 분명히 자신의 장검이 그의 가슴을 꿰뚫었을 것이라 고 생각했는데 기이하게도 장검은 빗나가고 화검상이 바싹 다가 서 있자, 일순 당혹하여 황급히 좌수(左手)로 난화불혈수(蘭花拂 穴手)를 펼쳤다. 하지만 화검상에게 이미 기선마저 제압당했는데 그녀의 공격이 통할 리가 없었다. 그녀의 금나수가 제이변환으로 넘어가기도 전에 그녀의 좌수는 이미 화검상에게 잡혀버리고 말았다. 풍검심은 이미 저번에도 화검상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었는데 이제는 그것을 더욱 통감하게 된 셈이었다. 화검상이 바로 그녀의 맥문을 잡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공력 을 일으킬 수가 없어서 장검을 다시 사용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때 풍검심의 두 눈에는 알 수 없는 득의의 광채가 번 뜩이는 것이었다. 화검상이 일순 의아해져서 그녀의 얼굴을 다시 보는 순간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눈앞에서 폭죽 같은 것이 터져올랐다. 본래 사람은 어떤 특수한 상황에 접하게 되면 대개 비슷한 반 응들을 보이게 마련이다. 당연히 있어야 할 반응이 없다는 것은 대개 역시 아직 그러한 상황이 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느닷없이 터진 폭죽 같은 것은 물론 폭죽이 아니라, 강력한 위력을 지닌 실바늘 같은 것들이었다. 게다가 몹시 빨랐다. 풍검심이 그저 가볍게 잡힌 좌수를 움직이는 순간, 그녀의 반 지같이 생긴 물건에서 그 수십 개의 실바늘 같은 것들은 한꺼번 에 폭사되어나왔으며, 화검상의 몸 바로 앞에서 삽시간에 그의 전신을 뒤덮어버렸다. 그저 보통의 상황이었다면 화검상은 도저히 그것을 피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풍검심의 두 눈에서 득의의 광채가 번뜩였던 것은 아무리 그라 고 해도 도저히 피할 수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화검상의 몸을 벌집처럼 만들 듯하던 그 무수한 실바늘들은 마치 거짓말처럼 그의 몸을 통과하고 뒤쪽으로 날려 갔다. 뒤쪽에는 양소금이 마혈이 제압되어 서 있었는데 그녀는 그 바 람에 일부의 실바늘들에 얻어맞고 놀란 비명을 내질렀다. 그 암기(暗器)는 함사사영(含沙射影)이라고 하는 것으로, 그 작 은 실바늘과도 같은 것들은 철판도 뚫는 위력이 있으며 비교적 알려져 있지만 만들기가 어려워 세상에서 보기 드문 것이다. 더구나 그 실바늘과도 같은 것들엔 극독이 발라져 있어서 상대 는 설령 치명적인 부상을 입지 않는다고 해도 그 극독에 당하게 되어 있었다. 다만 그것은 그 위력이 너무 강하고 반지 같은 작은 물건으로 만들어져 있어서 단 한 번밖에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 단점이다. 화검상은 기실 이번엔 정말로 당할 뻔했다. 그의 능력으로 그런 암기에 의해 무슨 커다란 치명상을 입게 되지는 않겠지만, 그러나 그 또한 크게 놀랐고, 그로 인해 또 한 번의 중요한 경험을 한 것이다. 그가 간신히 그 암기들을 피해낼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풍검심 의 그 뜻밖의 표정 때문이었다. 만일 단순히 속도로만 말하자면 그는 지척에서 발사되는 그 함 사사영의 속도를 따를 수가 없고 최소한 절반쯤은 얻어맞게 되었 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발사하는 사람은 발사하기 직전에 어떤 감정을 드러내게 되면 이어 암기장치를 건드리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도 암기의 속도에 비해 의외로 길어진다. 그것이 바로 이런 암기들의 최대의 단점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발사자가 감정을 드러내면 이어 발사하기도 전 에 상대는 이미 낌새를 눈치채고 그 자리를 피해버리는 것이다. 즉, 암기의 속도와 위력이 자신과 완전히 조화를 이루지 못했 다는 점에서 이것은 직선적인 무공의 폐단과 그 맥을 같이 한다 고 할 수 있다. 직선적인 무공은 그 파괴력이 대단하다고 해도 가장 효율적으 로 사용할 수가 없으며 더러는 그런 부조화로 인해 오히려 자신 을 해치는 위험이 상주하기도 한다. 하지만 강호에서 암기가 더러 위력을 발휘하는 것은 그런 부조 화의 허점이 미미하며 그것을 찾아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풍검심은 아직 강호경험이 충분하지 못하여 결정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우를 범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야그 출력일 :: 98/10/22 ───────────────────────────────────── 제 목 : [화산문하]제 1부 3 권 제 29 장 - 2 하지만 만일 어떤 감정을 표출시키지 않도록 잘 단련된 살수가 있어, 똑같은 상황에서 그것을 사용했다면 화검상은 그것을 피할 수가 있었을까? 게다가 강호에는 실상 그보다 더욱 악랄하고 위력적인 암기들 도 있을 것이 아닌가? 풍검심이 암기의 기관을 작동시키는 순간에 화검상은 이미 그 자리를 피하고 있었고 그녀가 보았던 벌집처럼 되는 화검상의 모 습은 남은 환영(幻影)이었을 뿐이다. 암기가 덮치는 순간에 그는 이미 거짓말처럼 그녀의 뒤로 돌아 가고 있었다. 양소금이 암기에 대신 얻어맞고 비명을 내지르고 풍검심이 놀 라 고개를 돌리는 순간, 화검상은 즉시 그녀의 마혈을 제압하여 꼼짝도 할 수 없게 해놓았다. 마혈을 제압하면 꼼짝할 수 없지만 입은 놀릴 수가 있다. 양소금이 연신 놀라고 고통스런 비명을 내지르는 바람에 즉각 안에서 사람들이 뛰어나왔다. 아까 화검상도 대한 적이 있는 철혈무적창 양정룡과 유성창 양 준호 등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손녀와 딸이 그처럼 참혹한 비명을 지르는 소 리를 거의 들어본 적이 없기에 하나같이 놀란 기색들이었다. 화검상은 그들이 나타나자 슬쩍 지풍(指風)을 날려 양소금의 혈도를 풀어주었고, 이어 조금 물러서서 풍검심의 혈도도 풀어주 었다. 양소금은 혈도가 풀리자 이내 쓰러졌고, 양정룡과 양준호 등이 급히 그녀의 몸을 받아들었다. 그들은 그 금지옥엽 양소금이 생각보다 대단한 상처를 입었을 뿐만 아니라 그 작은 구멍난 부분들이 검게 물들어가고 있는 것 을 보고 놀란 표정들이었다. 함사사영의 지독한 위력으로 그 실바늘들은 그녀의 몸을 관통 하거나 더러는 아직 박혀 있는 채였다. 풍검심은 혈도가 풀렸어도 처음에는 크게 놀라고 당혹스러워서 다소 멍하니 서 있다가 이어 몸을 돌려 장검으로 화검상을 다시 공격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때 양정룡이 다급히 날아와 두 사람의 사이를 가로막 으며 화검상을 향해 소리쳤다. “네놈이 방금 내 손녀를 해쳤느냐?” 금창보는 그리 대단한 문파가 아니고 양정룡은 나이가 칠십에 가깝지만 무공은 이제 겨우 사 갑자 최절정의 수준이다. 하지만 풍검심은 그를 당할 수가 없기 때문에 화검상을 계속 공격할 수가 없었다. 화검상은 반쯤은 조소하듯이 웃으며 풍검심을 가리켰다. “내가 구태여 암기를 썼을 것 같소? 암기는 그녀에게 있으니 그녀에게 물어보시오.” 양정룡은 비록 무공은 그리 대단하지 않지만 강호에서 오래 굴 러먹은 사람이어서 벌써 그 암기가 어떤 종류라는 것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는 아마도 지금의 상황을 모두 알고 있으면서 괜히 화검상에 게 먼저 물어본 것인지도 모른다. 화검상이 아무리 죽이고 싶도록 밉더라도 우선은 자신의 손녀 를 구하는 것이 급선무일 것이다. 양정룡은 돌아서서 멍하니 서 있는 풍검심의 좌수를 살피더니 즉각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어서 해약을 주시오.” 풍검심은 갑자기 벌어진 예상 못한 변고에 경황없어 하다가 간 신히 대꾸했다. “해약은 지금 나에게 없어요. 우리 할아버지께 물어보세요.” 양정룡은 더 이상 지체할 수가 없어서 고개를 돌려 화검상을 한번 노려보고는 곧장 다시 양소금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이때는 창노야 양붕비도 어찌 된 일인지 알아보기 위해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양정룡은 즉시 간단한 응급조치를 취한 뒤에 양소금을 안고 양 붕비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양정룡이 간단하게 어찌 된 일인지 설명하는 동안 양소금은 여 전히 비명을 지르면서도 소리치고 있었다. “풍언니는 잘못이 없어요! 그건 저 미친 개잡종 때문에 이렇 게 된 거예요.” ‘여전히 저렇게 기가 살아 있다니 그렇게 심한 부상은 아닌 모양이군?’ 화검상이 그 소리를 듣고 내심 쓴웃음을 지을 때, 양붕비도 말 할 수 없이 분노가 실린 시선으로 화검상을 노려본 뒤에 재빨리 양소금을 안고 양정룡과 함께 안으로 사라졌다. 풍검심은 이미 자신감이 없어졌을 뿐만 아니라 양소금의 일로 더욱 경황이 없어졌기 때문에 감히 화검상을 재차 공격할 생각을 못했다. 그녀가 여전히 장검을 손에 든 채로 머뭇거리고 있을 때, 문득 양소금의 부친인 양준호와 곡검성 등이 화검상에게 다가들었다. 양준호는 양소금의 단창을 집어들고 왔는데, 화검상을 노려보 며 소리쳤다. “네놈이 이렇게 악랄하다니! 무림의 공분이 두렵지도 않단 말 이냐?” 화검상은 이미 풍검심에게 더 이상 발사할 함사사영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다소 느긋해져서 대꾸했다. “먼저 암습을 한 건 그 양낭자이고, 게다가 암기를 사용한 것 은 이 풍사자인데 대체 누가 악랄하다는 것이오?” 양준호는 자신의 허리춤에서 쌍창을 뽑아들며 소리쳤다. “어쨌든 모든 일들이 다 네놈으로부터 비롯되었으니 네놈은 살 생각을 버려야 할 것이다!” 그때 문득 주위에 나와 있던 사람들 중 하나가 입을 열어 말했 다. “당신들은 정말 대담하군요!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 다고 했어요. 게다가 함사사영으로도 그를 어쩌지 못했는데 과연 당신들이 그를 죽일 수가 있을까요?” 바로 종남일선자(終南一仙子) 육소빈(陸少頻)이었다. 양준호는 일순 멈칫하다가 그녀를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육낭자는 대체 어느 편이오?” 육소빈은 한쪽 구석진 곳에 서 있었는데 한걸음 앞으로 나서며 미소하며 대꾸했다. “나는 바로 당신들을 염려하여 하는 말이에요. 만일 화산장문 인이 가능한 일이었다면 왜 그를 미리 제압하지 않고 이대로 두 었겠어요? 당신네 금창보가 설마 하니 화산파보다 우위에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나는 금창보의 훌륭한 명맥이 오늘 끊 어질 것을 우려해 이러는 거예요.” 양준호는 다소 머뭇거리다가 쌍창을 힘주어 잡으며 말했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합세하여 악독한 마귀를 제거한다면 그 것도 의미있는 일이 아니겠소?” 육소빈은 차갑게 코웃음을 치며 대꾸했다. “당신의 금지옥엽이 당했으니 그럴 만도 하겠지만 나는 이런 일에 공연히 목숨을 걸고 싶지 않아요. 이미 말했듯이 승산도 없 고, 게다가 그는 별로 난폭해 보이지도 않는군요. 나는 그만 들어 갈 테니 당신들이나 알아서 하세요.” 말과 함께 육소빈이 훌쩍 신형을 날려 안으로 들어가버리자 다 른 몇몇 사람들도 역시 안으로 사라져버렸다. 양준호는 이에 분노한 듯 안광을 빛내다가 이윽고 스스로도 무 리라고 여겼는지 화검상을 노려보며 말했다. “좋다! 내 오늘은 네놈을 살려두지만 다음에 만날 때에는 각 오해야 할 것이다!” 금창보가 무공도 별로 대단할 것 없이 상당한 위세를 누리는 것은 그들이 다른 정파인들과 강한 유대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 고 할 수 있었다. 누구라도 금창보를 공격하면 이내 명문대파의 반격을 받게 될 것이기에 감히 그들에게 손을 쓰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화검상은 미소하며 대꾸했다. “그렇게 굳이 사양할 것은 없소. 지금이라도 나는 당신의 명 이 얼마나 긴지 알아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나중에라도 금창보 의 모든 사람들을 다시 만나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오.” 그 말은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무서운 말이 될 수도 있는 것이 다. 화검상은 이런 자들은 점잖게 대할수록 더욱 다가든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한마디해준 것이다. 양준호는 문득 그 말뜻을 생각해보는 듯하더니 가볍게 안색이 변해서 쌍창을 다시 허리에 꽂고 화검상을 노려보며 안으로 들어 갔다. 양준호마저 그렇게 사라지자 곡검성은 풍검심의 손을 잡아 안 으로 이끌었다. 풍검심은 아직도 경황없어 하다가 이윽고 원한 맺힌 표정으로 화검상을 노려보며 말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할 야그 출력일 :: 98/10/22 ───────────────────────────────────── 제 목 : [화산문하]제 1부 3 권 제 29 장 - 3 “언젠가 네놈을 내 손으로 죽일 날이 있을 것이다!” 화검상은 빙글거리듯 웃으며 대꾸했다. “나를 죽이려는 사람이 워낙 많으니 그건 알 수 없는 노릇이 지. 하지만 풍사자는 아직 앞길이 구만 리와도 같은데 나와 같은 개잡종에게 목숨을 건다는 것은 너무 억울하지 않겠소?” 곡검성이 말했다. “풍사매, 저런 자와 말을 할 필요가 없으니 어서 들어가지!” 두 사람도 그렇게 마저 들어가고 나니 입구엔 화검상이 홀로 남게 되었다. 그는 잠시 그 자리에 주저앉아 생각에 잠겼다. 겉으로는 태연자약한 듯했으나 그는 기실 조금 전에 크게 놀라 아직도 정신이 없었다. 그것은 그가 아직 강호경험이 부족한 때문이기도 했다. 기실 그는 갑자기 무공이 급증된 이후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놀 라운 곡선적 무공의 위력 때문에 다소 태만해져 있었다. 암기나 직선적 무공은 비록 살아 있는 무공은 아니나 방심하면 역시 위험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미처 정신을 차릴 기회를 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화검상은 오늘 중요한 경험을 한 셈이었다. 그가 정신만 차리고 있는다면 상대방이 제아무리 감정을 드러 내지 않고, 혹은 살기(殺氣)마저 드러내지 않고 암기를 발사한다 고 해도 역시 높은 정신적 수양과 그에 걸맞는 무공을 터득하지 못한 이상 기미를 드러내게 되어 있고, 또한 발사하는 데에는 시 간이 걸리게 되어 있다. 곡선적 무공을 연마한 사람은 그런 직선적 움직임과 허점에 주 의를 기울이기만 하면 의외로 쉽게 간파할 수가 있다. 그가 오늘밤에 주의만 했어도 그렇게 놀라진 않았을 것이다. 본시 강호는 험난한 것이고, 게다가 그에게 처해진 이 상황은 더욱 험악한 것이니 어찌 주의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그럼, 암기를 사용하는 사람이 높은 공부에 의해 기미를 거의 드러내지 않고, 또한 기미를 드러낸다고 해도 발사할 때 시간이 거의 걸리지 않는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정말로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건 그 사람의 무공이 대단히 높 은 것이므로 설사 그 암기가 없다고 해도 당하기 어려울 것이며, 암기의 유무는 그 사람의 능력에 별영향을 미치지 않게 된다. 즉, 암기와 같은 것은 직선적 무공의 극단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무공이 높아질수록 그런 죽은 능력은 효용성이 없게 되는 것이요, 나중에는 손의 병기마저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과거 한때 강호의 무공수준이 낮았을 때는 병장기만을 개발하 여 그 위력으로 천하를 제패하려고 했던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들도 무공이 높아지자 점차로 쓸모가 적어지게 되었으며 아무리 대단한 병장기나 폭약이라고 해도 무공보다 못 하다는 인식이 비로소 자리잡게 되었다. 병장기에 의존하는 것에 비해 무공은 살아 있는 보다 유익한 능력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 곡선적 무공은 그야말로 그 살아 있는 무공의 극치라고도 말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여 좀더 매사에 주의를 기울일 수 있을 것 인가? 화검상은 그 역시 곡선적인 것에 몰두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해 냈다. 그저 주의를 기울인다는 의식에 묶여 있으면 오히려 잘 되지 않고 직선적으로 변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화검상이 그렇게 잠시 생각에 몰두하고 있을 때, 문득 다시 가 검통이 다가왔다. 가검통은 그를 보며 다소 어색한 표정으로 웃더니 말했다. “장문인께서 지금 방에서 기다리시오. 어서 가보는 게 좋겠 소.” ‘방에서?’ 화검상은 몸을 일으키며 잠시 생각을 해보는 듯하다가 그를 따 라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미 많은 일들이 있었기 때문에 풍천비가 방안에서 그를 불렀 다면 필시 한두 가지의 용무가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사마귀와의 일 등도 다시 상기해보면서 화검상은 삼층에 올라 풍천비가 묵고 있는 가장 커다란 객실의 앞에 이르렀다. 가검통은 이내 물러가버렸고,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풍천 비는 침상 위에 걸터앉아 있다가 몸을 일으키며 탁자를 가리켰 다. “우선 거기에 앉도록 해라!” 둘러보니 실내에는 눈에 띄는 다른 사람들은 없었지만 풍천비 가 앉아 있던 침상 아래쪽에서 무슨 이상한 숨소리 같은 것이 느 껴졌다. 화검상은 이미 풍천비와 비급의 제작에 대해 의논하기로 했었 기 때문에 그런 것은 일단 접어두고 그냥 시키는 대로 탁자 앞에 앉았다. “내게 혹시 다른 용무가 있는 것이 아니오?” 화검상은 지금이라도 당장 사마귀가 말한 내용을 풍천비에게 추궁해 진실을 가려내고 싶었지만, 풍천비가 결코 자신에게 불리 한 말을 사실대로 말하지 않을 것이고 또한 그렇게 되면 상황은 좀더 극단적으로 치달아 협상의 여지가 없게 될 것이다. 화검상은 현재로서는 그런 것을 바라지도 않았고, 또한 아직 상대를 이길 수 있다는 확고한 신념이 들지 않았다. 풍천비는 다가와 그와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앉으며 음침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너는 지금 그런 생각이 들기는 하는 게냐?”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吩▶ 야그 출력일 :: 98/10/22 ───────────────────────────────────── 제 목 : [화산문하]제 1부 3 권 제 30 장 타협과 흥정 제 30 장 타협과 흥정 화검상은 태연하게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나는 물론 스스로 떳떳하다고 자부하지만 사람의 일이라는 것은 모르는 것이 아니겠소?” 풍천비는 잠시 음산한 시선으로 화검상을 노려보다가 이내 잘 라 말했다. “네가 아까 사마외도의 무리들과 어울리다 왔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너도 알다시피 비급 때문에 오라고 한 것이 다!” 화검상은 좀더 미소를 보이며 여유있게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좀더 건설적인 이야기를 나눌 수가 있겠구 려. 나는 지금 이 아까운 시간을 사실도 아니고 별로 도움도 되 지 못하는 일로 언쟁하며 소모하고 싶지는 않소. 당신도 사실 마 찬가지가 아니오?” 확실히 예상대로 이 풍천비는 이미 화검상이 사마귀와 만났던 일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비단 그때의 공동파와 종남파의 속가제자들의 입이 아 니라도 그는 충분히 알 수 있었을 것이다. 풍천비는 음산하고 기이한 표정으로 화검상을 노려보다가 문득 다시 말했다. “너는 장차 본파에 귀속되려고 하느냐, 아니면 아예 본파를 뒤엎고 반역도가 되려고 하느냐? 네가 만일 조금이라도 본파에 귀속될 마음이 있다면 감히 지금 나에게 이렇게 대할 수는 없다. 또 만일 본파의 반도가 되겠다면 굳이 본파의 이름을 더럽히며 이대로 계속 남아 있을 필요가 없겠지?” 화검상은 가볍게 실소하며 말했다. “그걸 어찌 한마디로 잘라 말할 수가 있겠소? 나는 본래 의당 본파를 사랑하고 있으므로 모든 일이 원만히 해결되길 바라는 것 이오. 하지만 만일 그 모든 일이 전혀 되지 않고 내가 극단적인 입장에 몰린다면 그야 어쩔 수가 없는 일이 아니겠소?” 풍천비는 일순 두 눈에서 실낱 같은 광채를 내뿜었다. “그럼 너는 결국 끝까지 이런 식으로 본파에 남아 있겠다는 말이냐?” 화검상은 웃음을 거두고 담담하게 대꾸했다. “그것 역시 당신이 바라는 바가 아니오? 우리는 지금 흥정을 하고 있는 것이고, 서로가 필요에 의해 마주하고 있는 것이니 다 른 말은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니겠소?” 풍천비는 갑자기 화가 난 듯 화검상을 노려보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지금 세상의 소문이 어떻게 나고 있는지 아느냐? 본파는 이 미 위아래도 없고 사마외도의 무리와 어울린다고 한다. 너는 본 파를 사랑한다면서 지금처럼 본파의 명예가 크게 실추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화검상은 가볍게 실소하며 말했다. “그야 어떻게 보면 보다 작은 일일 수도 있고, 당신이 하기 나름 아니겠소? 게다가 위아래가 무질서해지는 것이라면 나의 이 런 공로를 생각해서 나를 태상호법(太上護法)쯤으로 임명할 수도 있고.” 순간 풍천비는 크게 노한 듯 탁자를 치고 몸을 일으키며 소리 쳤다. “이런 더러운 잡종놈의 종자 같으니! 나는 그래도 네놈의 외 할애비다! 그런데 네놈은 감히 내게 그런 후레자식과 같은 소리 를 할 수 있단 말이냐?” 화검상은 일순 깜짝 놀라기는 했지만 그래도 태연히 그를 올려 다보면서 말했다. “당신이 나의 외조부라고? 과연 그 말이 틀림없기는 하오? 애 초에 나는 당신의 외손자가 될 수도 있었지만 당신은 나를 오히 려 나의 가문 쪽으로 밀어붙였소. 나는 당연히 나의 조부의 손자 가 될 수밖에 없었지. 당신은 나의 조부를 만고의 대역적으로 만 들었듯이 나도 그렇게 만들었소. 나의 가문의 죄를 짊어지고 대 역적이 되어 당신들의 온갖 해침을 받아왔고, 드디어는 죽음의 위기에 몰리게 되었소. 본래 당신은 나의 조부와 선친을 친인척 으로 인정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온갖 간악한 방법으로 살해하여 그 이름마저 극악하게 욕되게 하였으니 나와는 그야말로 불공대 천의 원수요. 내가 그런 당신을 외조부로 인정할 것 같소? 내가 만일 당신을 외조부로 인정한다면 나의 선친과 조부는 그야말로 지하에서 통곡을 하실지도 모르는 일이 아니겠소?” 극단적인 말은 본래 하지 않으려고 했으나 화검상은 그만 다소 흥분한 나머지 그 민감한 말을 해버리고 말았다. 그것은 이제 상황에 중대한 변수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화검상은 말을 하면서도 그것을 의식했고, 이내 긴장하여 전신 의 공력을 모두 일으켜 만반의 태세를 갖추었다. 그런데 즉각 달려들 것으로 생각했던 풍천비는 오히려 표정이 점차로 음침하게 가라앉더니, 자리에 도로 앉으며 음산한 목소리 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래? 그럼 나는 이제 너의 어쩔 수 없는 불공대천의 원수가 되었다는 말이지?” 이미 그런 말을 해버렸으니 이제는 도로 물릴 수도 없는 것이 므로 화검상은 할 수 없이 좀더 적극적으로 나가기로 했다. “그것은 지금부터가 아니라 이전부터 우린 그렇게 되어 있었 소. 지금 내가 당신과 이렇게 마주앉아 있는 것만 해도 나의 조 부께선 이미 지하에서 통곡을 하고 계실지도 모르오. 당신은 본 래 그 천륜마저도 간악한 방법으로 이용하고 자신의 야욕에 눈이 어두워 온갖 악행과 반역을 저지른 사람이기 때문이오.” 풍천비는 두 눈에서 섬뜩한 광채를 빛내며 화검상을 노려보았 으나 이번에도 역시 음산하게 웃으며 말했다. “너는 그럼 지금 나와 흥정을 할 필요도 없겠구나?” ‘지금 이자는 과거의 사실을 모두 인정하고 있는 것일까?’ 화검상은 속으로 생각을 굴려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지는 않소. 어쨌든 현재의 본파의 주권은 당신이 쥐고 있기 때문이오. 과거야 어쨌든 나는 나의 가문의 명예가 회복되 고, 또한 본파의 모든 일이 잘되어나가기를 바라고 있소. 그래서 나는 당신이 진심으로 속죄하고 뉘우친다면 당신과도 근본적인 흥정을 해볼 의향이 있는 것이오.” 풍천비는 냉랭하게 소리쳤다. “정말 자신의 주제를 모르는 후레자식이로군! 내가 과연 그렇 게 할 것 같으냐?” 화검상은 마음을 가라앉히며 고개를 천천히 가로저었다. “그것은 앞으로 모르는 일이오. 사람의 일이란 간혹 변할 수 도 있는 일이지. 나는 아직 그 가능성을 믿고 있소.” 풍천비는 잠시 음산한 표정으로 화검상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그래서 네놈은 일단은 흥정을 해보겠다는 말이겠지? 하지만 나는 지금 네놈과 결코 흥정을 할 생각이 없다!” 화검상은 잠시 그를 주시하다가 문득 가볍게 실소했다. “내 그럴 줄 알았소. 그렇다면 내가 여기에 계속 앉아 있을 필요도 없는 것이겠지.” 이어 화검상이 다소 긴장하며 몸을 일으키자, 풍천비는 소리치 며 우수를 휘둘러 장력(掌力)을 날렸다. “잠깐, 거기 그대로 있어라!” 화검상은 이미 기호지세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 이상의 두려 움은 없었다. 하지만 풍천비는 장력으로 화검상을 공격한 것이 아니라 침상 의 아래 부분을 가볍게 친 것이었다. 그 휘장 등이 젖혀지자 거기에는 한 사람의 모습이 드러났다. 화검상은 이미 그곳에 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그 일에 별로 놀라지는 않았다. 하지만 정작 그 사람의 모습을 확인했을 때는 다소 우스꽝스럽 고 의외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금 그 침상 아래에 웅크리고 있는 사람은 바로 다름아닌 방 귀춘이었다. 그는 지금 마치 죽은 시체처럼 거뭇하게 변해서 땀에 흠뻑 젖 은 채 전신에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는데, 기운이 하나도 없어 보 이고 호흡도 거칠고 미약했다. 화검상은 아까 저녁 때 그의 마혈과 아혈, 그리고 간지럽게 하 는 혈도를 제압했었는데, 지금의 그의 상황은 일면 비슷한 듯해 도 상당히 달랐다. 그가 제압한 그 혈도들은 비록 사람을 온갖 간지럼에 시달리게 하고 탈진시키기는 하지만 저렇게 급속히 사람을 죽어가게 하지 는 않는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할 야그 출력일 :: 98/10/22 ───────────────────────────────────── 제 목 : [화산문하]제 1부 3 권 제 30 장 - 1 그렇다면 이후에 누군가가 그에게 손을 써서 더욱 상황을 악화 시켰다는 결론이었다. 그럼 대체 누가 그에게 손을 쓸 수가 있었을까? 필시 그건 풍천비일 것이고, 지금의 상황으론 그 외에 다른 사 람을 생각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풍천비는 온갖 시도를 하다가 혈도는 풀지 못하고 상황만 악화시킨 것이라는 말인가?’ 화검상은 은근히 풍천비의 무공을 시험해본 것이었고, 그가 혈 도를 풀지 못하기를 바랬었다. 그러나 본래 강호는 온갖 음모와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곳이다. 풍천비는 일부러 자신의 무공을 과소평가하게 하기 위해 이렇 게 해놓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므로, 화검상은 이제 그것만으로는 그의 무공을 평가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풍천비는 음산한 표정으로 화검상을 주시하더니 방귀춘을 가리 키며 말을 이었다. “네놈은 그를 모른다고 말하지는 않겠지?” 화검상은 가볍게 미소하며 대꾸했다. “물론이오. 그는 바로 당신의 충실한 개이자 나를 감시하던 사람이 아니오? 하지만 그가 지금 왜 저렇게 다 죽어가게 되었는 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소.” 풍천비는 음침하게 다시 말했다. “그를 네놈이 죽여놓고도 모른다는 말이냐?” 화검상은 문득 그 말에 어딘가 다른 의미가 있는 듯하여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를 죽이지 않았지만 당신은 그를 죽였소. 따라서 내 가 다시 그를 살려놓는다고 해도 당신은 또 죽일 수가 있을 것이 오. 당신은 그를 죽이고 싶소?” 풍천비는 음침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는 물론 당연히 그를 살리고 싶다. 하지만 너의 그러한 태 도는 그를 죽이게 될 것 같구나?” 화검상은 그를 주시하며 말했다. “당신이 그를 죽인다고 해서 무슨 이득이 있겠소?” 풍천비는 고개를 가볍게 내저었다. “나에게는 물론 이익이 없다. 하지만 그가 죽게 될 경우, 너는 그 오명을 뒤집어쓰게 될 것이고, 강호에서 발을 붙일 수가 없게 될 것이다. 이미 네가 그에게 독수(毒手)를 전개하는 것을 사람들 은 다 보았으니 증거는 충분하고, 또한 너는 이제까진 커다란 죄 가 없었겠지만 이제는 분명한 죄목이 생기는 것이 아니겠느냐?” 문파의 존장을 친히 살해하는 것처럼 대죄는 없다. 하지만 지금 화검상의 입장은 그야말로 평판이 더 이상 더러워 질 수도 없고, 죄가 더 이상 늘어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가 적이 된 문파의 존장 한 사람쯤 죽였다고 해서 그의 지금 의 상황에 크게 달라질 것은 없었다. 풍천비는 그런 것으로 화검상을 제압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풍천비는 대체 무엇을 노리고 있는 것일까? 화검상은 기왕에 내친 김이니 좀더 과감하게 나가기로 했다. 지금 방귀춘의 온몸이 땀으로 축축한 것은 기혈(氣血)이 방출 되어서 그러한 것이며 만일 그대로 둘 경우 그는 자칫 폐인이 되 어버릴지도 모른다. 화검상은 즉시 그쪽으로 신형을 움직여 칙칙칙, 하고 가볍게 지풍을 날려 그의 제압된 혈도들을 풀어주었다. 비록 그간에 변화가 있었어도 곡선적 무공인 화검상의 이 해혈 수법은 탁월한 효과가 있어서 방귀춘은 금방 아혈과 마혈, 그리 고 모든 다른 막힌 혈도들이 풀려서 고통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되었다. 화검상은 그 짧은 동안에도 풍천비의 행동에 촉각을 곤두세우 고 있었지만 기이하게도 그는 전혀 놀라거나 말리려는 기색이 없 이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 바라보고만 있었다. 화검상은 축 늘어진 방귀춘이 길게 숨을 몰아쉬면서 기력을 회 복하는 것을 느끼면서 풍천비에게 말했다. “자, 당신은 이래도 그를 죽일 수가 있겠소?” 풍천비는 대답 대신 침상 밑에서 기어나오고 있는 방귀춘에게 말했다. “너는 가서 쉬도록 하고 지금 귀기(歸機)더러 이곳으로 오라 고 해라!” 방귀춘은 즉시 읍하고 고개를 조아리더니 휘청거리는 걸음걸이 로 밖으로 나갔다. 풍천비는 이어 화검상을 향해 음침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리로 와서 앉지 않고 뭘 그렇게 서 있느냐?” 화검상은 그의 음침한 미소를 보자 문득 속았다는 것을 깨달았 다. 이 풍천비는 실로 노련하고 늙은 생강처럼 매운 자였다. 그는 본래 방귀춘을 죽이려던 것이 아니라 화검상에게 협박하 고 반쯤 젊은 혈기를 충동질하여 그가 스스로 방귀춘을 구하기를 기다렸던 것이다. 그것은 그도 이미 어떤 일로든 화검상의 명분이 더 나빠질 수 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실익을 챙긴 것이었다. 만일 그가 이런 방법을 쓰지 않고, 그저 흥정에 들어갔다면 혹 시 화검상이 방귀춘을 구하는 일 등을 앞으로도 조건으로 내세울 지 모른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기실 이것은 화검상이 당하기는 했지만 실제로 그가 손 해를 보는 것은 거의 없었다. 화검상은 본래부터 방귀춘의 혈도를 풀어주려고 생각하고 있었 고, 그는 또한 그런 일로 협박이나 조건을 내세울 사람은 아니었 다. 풍천비는 비록 노련하기는 했지만 이 화검상이란 사람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그는 그저 가만히 있어도 되는 일을 공연히 힘들여서 한 것이 었고, 그러는 바람에 공연히 자기자신만 노출시키게 되었다. 방귀춘의 혈도를 풀어주는 순간에도 문득 느낀 것이지만, 화검 상은 그가 고의적으로가 아닌 정말로 자신이 제압한 혈도를 풀지 못했다는 확신을 거의 갖게 되었던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별다른 이유도 없이 무엇 때문에 방귀춘의 일로 그렇게 신경을 썼겠는가? 비록 아직 완전한 확신이 든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사실을 간 파하자 화검상은 내심 든든해짐을 느꼈다. 하지만 화검상은 자리에 앉으면서 풍천비가 방귀춘에게 귀기를 데려오라고 했던 말을 상기하고 다시 안색이 가볍게 변했다. 귀기라고 하면 바로 여귀기(余歸機)가 아니겠는가? 기실 이번의 출정에서 여귀기는 역시 지금의 이 일대(一隊)에 속해 있는 상황이었다. 그는 본래 매우 과묵하고 차분한 성격이어서 모든 일에 나서지 않았고, 화검상도 그가 다치게 될까봐 일부러 아는 척도 하지 않 았던 것이었는데, 그렇다면 풍천비는 이미 그러한 모든 사실들을 알고서 여귀기를 이 일대에 포함시켰던 것이었단 말인가? 지금의 상황에서 실로 이곳에 그를 부른다는 것은 그런 이유밖 에는 생각될 수가 없었다. 물론 풍천비는 지금의 협상보다는 그저 여귀기를 감시하기 위 해 직접 데려왔을 것이다. 실로 조금 전의 협박은 가짜였고, 지금부터 진짜 협박이 시작 되는 것이리라. 화검상은 일순 그러한 일들을 생각하자 절로 풍천비의 깊은 일 처리에 모골이 송연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풍천비는 화검상의 안색을 스산하게 주시하더니 문득 다시 말 했다. “너는 물론 귀기를 알고 있겠지?” 화검상은 풍천비를 마주 바라보며 태연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는 물론 나의 사숙인데 내가 모를 리가 있겠소?” 이런 상황에서는 어쨌든 그런 일을 모른다고 잡아떼는 것 이외 에는 방법이 없다는 것을 화검상은 알고 있었다. 만일 여귀기가 그 일로 고문을 받아 죽게 된다고 해도 아직 완 전히 밝혀지지 않은 이상은 그 가족이나 명예는 다소 온전할 것 이고, 반대로 화검상이 인정을 한다면 여귀기도 같은 반도의 무 리로 낙인 찍혀 살아남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명예도 더러워지고 그 가족들도 역시 화를 당하게 될 것이 아니겠는가? 풍천비는 이어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말했다. “요즘 들어서 느끼는 것인데, 역시 사람을 다루는 것은 쉽지 않아! 너도 물론 알겠지만 간혹 빗나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자들은 가차없이 도려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느냐?” 화검상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당신은 나와 협상을 할 거요, 않할 거요? 만일 하지 않겠다 면 내가 공연히 여기에 계속 있을 필요가 없지 않겠소?” 풍천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문득 생각이 달라졌다. 아무래도 너와 협상을 하기는 해야 할 텐데, 그 일은 잠시 후에 결정을 내려야 할 것 같구나.” 화검상은 몸을 일으켰다. “그렇다면 나는 방에 돌아가서 쉬고 있을 테니 내일 다시 보 도록 합시다!” 풍천비는 손을 내저으며 음산하게 말했다. “앉아라! 이 일은 별로 오래 걸리지 않는다. 보아하니 너는 귀 기를 만나는 것을 매우 싫어하는 것 같은데……?” ‘이자는 이미 여사숙이 나와 한패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구나! 그렇다면 내가 잡아뗀다고 해서 그가 여사숙과 그의 가족들을 그 대로 두겠는가?’ 화검상은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꼈다. 풍천비의 이 협박은 매우 유효했다. 아니, 그는 그러한 상황에 별로 커다란 기대를 갖고 있지 않을 지도 모르지만, 실상 화검상에게는 그런 것이 그 어떤 협박들보 다도 무서운 것이었다. 일전에 악검림은 화검상이 마음이 너무 약해서 영웅이 될 수 없다고 했는데, 그것은 아마도 오히려 화검상을 가장 잘 본 것인 지도 모른다. 화검상은 비록 자신의 희망들을 이루기를 바라지만 그로 인해 서 선의의 피해자들이 생기는 것은 결코 원하지 않았다. 그는 일전에 더러 그런 사람들을 보아왔고, 그로 인해 실로 막 대한 마음의 고통을 느꼈었다. 설령 가문의 명예를 되찾는 등의 일이 제아무리 중요하다고 해 도, 그로 인해 그 여귀기와 그의 가족들을 희생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모르고 겪은 일들도 몹시 마음이 아팠는데 어찌 알면서도 그럴 수가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지금의 상황에서 여귀기 등을 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그야말로 극단적인 방법으로, 당장에 풍천비 등과 생사 결전을 벌여서 승부를 내고 자신이 화산파를 차지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모친의 일도 있고, 또한 여러 가지 여건상 그렇게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승리할 자신감도 들지 않는다. 그렇다면 다른 하나의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그야말로 두렵기도 하고 생각하기도 괴롭지만 그가 풍 천비와 타협을 하는 것이다. 이제까지 서로 타협의 얘기가 오가기는 했지만, 그에게 결정적 인 약점이 생긴 이상 그 타협의 내용은 전혀 다른 것이 될 것이 다. 화검상은 자리에 도로 앉으며 말했다. “나는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중요한 문제를 의논하 는 중이라 방해가 될까봐 그러오.” 풍천비는 음침한 시선으로 그를 주시하며 말했다. “별로 방해되지 않는다. 나는 그와 비급의 제작에 대해 함께 의논하려는 것이다.” 희망 사항이기는 하지만 정말로 풍천비가 비급의 제작만을 목 적으로 여귀기를 지금 부른 것이라면 별로 문제가 없을 것이다. 화검상이 그것에 관해 다시 입을 열려는데, 문득 가벼운 문 두 드리는 소리와 함께 방안으로 여귀기가 들어왔다. 여귀기는 여전히 표정이 태연했고 안으로 들어서는 동작도 차 분해 보였다. “부르셨습니까?” 풍천비는 손으로 화검상의 옆 자리를 가리키며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리 와서 앉아라!” 평소에 제자들은 장문인과 마주 자리하기가 어렵다. 여귀기는 다소 머뭇거리다가 이내 가볍게 읍하고는 화검상의 옆자리에 앉았다. 화검상은 여전히 차분해 보이는 그의 태도를 보고 지금 그의 마음도 그러할까 하고 생각해보았다. 여귀기는 생각이 깊은 사람이므로 지금의 상황에 대해서 모를 리가 없다. 풍천비는 시선을 화검상에게 돌렸다가 다시 여귀기를 바라보며 말했다. “귀기,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나는 얼마 전부터 본파의 제 자들 중에 반도와 내통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너 는 이럴 경우에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느냐?” 여귀기는 풍천비를 마주 바라보며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대 답했다. “그것이 어떤 내용인지 모르므로 저는 한마디로 말씀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 풍천비는 이내 안색이 매우 음산하게 변하더니 다시 말했다. “만일 그것이 바로 너라면 어떤 벌을 받게 될 것 같으냐?” 화검상은 이미 자신의 예측대로 역시 풍천비가 여귀기에 대해 어떤 확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비급제작에 대해 의논하겠다는 것은 화검상을 잠시 붙잡아놓으 려던 속셈이었던 것이다. 여귀기는 이때에도 상당히 침착하여 어떤 결심을 하고 들어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사정을 잘 알 수 없으므로 말씀드리기 곤란합니다.” 풍천비는 이에 두 눈에서 일순 섬뜩한 안광을 발하더니, 다시 표정을 음산하게 가라앉히며 말했다. “그 사정이란 바로 여기 있는 이 화가 녀석과 내통한 혐의 다!” 여귀기는 잠시 풍천비를 주시하더니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 “그렇다면 그 역시 본파의 제자이므로 별로 대단한 죄는 아니 라고 생각합니다.” 풍천비는 일순 대노한 듯 탁자를 치며 소리쳤다. “이 화가 녀석은 이미 내가 반도로 낙인을 찍었다! 그런데도 대단한 죄가 아니라는 말이냐?” 화검상은 얘기가 여기에서 더 진전되면 필시 무슨 일이라도 벌 어지게 될 것임을 알고 있었기에, 즉시 나서서 전음으로 풍천비 에게 말했다. “당신은 내게 무엇을 바라시오?” 풍천비는 음침하게 웃으며 전음으로 대꾸했다. “내가 지금 네게 뭘 바라는 것은 없다. 이 일은 네가 신경 쓰 지 않아도 되니 잠시 가만히 있어라!” 여귀기는 다소 생각해보다가 말했다. “장문인께서는 제자들에 대한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계시므로 뜻대로 하실 수가 있으실 것입니다.” 풍천비는 음산하게 여귀기를 노려보며 말했다. “혹시 너는 정말로 이 화가 녀석과 내통해온 것이 아니냐?” 여귀기는 문득 가볍게 웃으며 그를 향해 대꾸했다. “장문인께서는 그 어떤 증거라도 가지고 계십니까?” 풍천비는 두 눈에서 신광을 번쩍이며 말했다. “비단 증인들도 많을 뿐만 아니라 내가 직접 목격한 것이 다!” 증인에 있어서는 풍천비는 얼마든지 뜻대로 조작해낼 수가 있 겠지만 화검상은 그가 직접 목격했다는 말을 듣고 우선 사실여부 를 떠나 등골이 오싹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장문인의 한마디 말은 무겁고 또한, 그렇기에 어떤 일이든 쉽 게 말하지 않는 법이다. 여기에 이르러 화검상의 혹시나 하던 일말의 기대는 와르르 무 너져버린 것이었다. 여귀기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로 야그 출력일 :: 98/10/22 ───────────────────────────────────── 제 목 : [화산문하]제 1부 3 권 제 30 장 - 3 “그렇다면 제가 아무리 변명을 한다고 해도 이미 소용없는 일 이 되겠군요?” 화검상은 문득 참을 수 없는 심정이 되어 전음으로 풍천비에게 말했다. “타협을 하도록 합시다! 대체 당신은 무엇을 원하는 거요?” 풍천비는 화검상을 한번 바라보며 입가에 기이한 미소를 떠올 리다가 다시 여귀기에게 말했다. “그건 모두 농담이었다. 너는 그만 가서 쉬도록 해라!” 여귀기는 이에 다소 놀란 듯 풍천비를 바라보다가 안색이 무거 워져서 몸을 일으키고는 이어 화검상을 잠시 바라보다가 천천히 걸어서 밖으로 나갔다. 여귀기가 밖으로 완전히 사라진 뒤에 풍천비는 음침하게 웃으 며 화검상에게 다시 말했다. “너는 제법 다정한 녀석이로구나. 그래, 대체 나와 무슨 타협 을 하자는 거지?” 화검상은 마음이 매우 갈등을 일으키고 고뇌가 치밀어 당장이 라도 가슴이 터져나갈 것 같은 가운데, 망설이다가 말했다. “나는 아무런 조건 없이 당신에게 비급을 만들어주도록 하겠 소.” 풍천비는 냉랭하게 웃으며 코웃음을 쳤다. “그래? 그럼 비급을 다 만들고 나서의 일은 상관하지 않겠다 는 것이냐?” 화검상은 내심 깊이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나는 당신과 전체적인 면을 타협하고 싶소. 비급을 만들고 나면 나는 떠날 수도 당신을 해칠 수도 없을 테니 당신은 마음만 먹으면 나를 죽일 수가 있을 것이오. 그래서 내가 태상호법과 같 은 특수한 지위를 원했던 것이오.” 풍천비는 싸늘하게 대꾸했다. “흥, 꿈도 크구나! 내가 그 말도 안 되는 요구를 들어줄 것 같 으냐?” 화검상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나는 그만 당신에게 항복하겠소. 앞으로 가문의 명예회복도 생각하지 않을 것이며 화산파의 일에 대해 나서지도 않겠소. 당 신을 나의 외조부로 인정하고 공경하고 따를 것이며 다른 윗사람 들도 공경하도록 하겠소. 다만 당신도 나를 외손자로 생각해주길 바랄 뿐이오.” ‘일단 지금은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 가문의 명예회복은 내 가 장차 죽지만 않는다면 언젠가는 이뤄지지 않겠는가?’ 화검상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말을 이었다. “나는 사실 죄도 많이 지었고 또한 물의도 많이 일으켰지만, 비급을 만드는 공로도 있을 것이고, 또한 두고 보면 무공이 높아 쓸모도 많을 것이므로 당신 자신을 위해서라도 죽이지말았으면 좋겠소.” 풍천비는 다소 뜻밖인 듯 화검상을 다소 주시하다가 이윽고 음 산하게 웃으며 말했다. “너는 지금 여귀기를 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네 목 숨까지 상관하지 않겠다는 말이냐? 그렇다면 남자가 아니지?” 화검상은 말했다. “당신은 나를 외손자로 인정해야만 하오. 그래야만 나를 반도 로 보지 않는 것이며 그들도 죽이지 않는 것이 되기 때문이오. 만일 나를 외손자로 인정하고 과거의 모든 잘못을 용서한다면 앞 으로 커다란 잘못 없이 나를 죽이지는 않을 것이오.” 풍천비는 잠시 생각해보는 듯하다가 즉시 냉랭하게 코웃음을 쳤다. “그렇다면 애초의 흥정과 뭐가 다르겠느냐?” 화검상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분명히 다르오. 나는 당신의 지시에도 잘 따를 것이며 다른 윗사람들에게도 공경할 것이오. 게다가 당신은 비록 용서한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을 테니 나는 앞으로 적지 않은 고 초를 겪게 될 것이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건 흥정이 아니라 내 가 항복하고 용서를 구한 것이고 당신은 나를 외손자로서 받아들 인 것이오.” 풍천비는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듯하다가 음산하게 웃으며 냉 랭하게 고개를 저었다. “너는 정말 말을 그럴듯하게 하는구나. 하지만 내가 지금의 네 말을 어떻게 믿을 수가 있겠느냐?” ‘지금의 내 사정을 지하에 계신 할아버지도 이해해주실 것이 다. 그리고 마음만 바르다면 상관이 없을 것이다…….’ 화검상은 속으로 열심히 되뇌이면서 말했다. “나는 그것을 나의 가문을 걸고 맹세할 수 있소. 만일 내가 그 약속을 어긴다면 나의 가문의 명예는 영원히 더러워지게 될 것이오.” 기실 짧은 시간 동안의 결정이라 지금 화검상 자신도 스스로의 이러한 결정이 과연 옳은 것인지를 확신할 수가 없어서 마음이 몹시 두려움에 떨리고 괴로운 상태였다. 그는 따라서 그것에 대한 마음의 용기를 갖기 위해 계속 속으 로 되뇌이고 있는 것이다. 순간, 풍천비는 잠시 뭔가 생각해보는 듯하더니 별안간 신형을 날려 화검상의 따귀를 후려쳐왔다. 화검상은 마침 마음속으로 많은 갈등을 겪고 있던 참이라 미처 그 돌발적인 상대의 행동에 대해 분명한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 다. 순간적으로 풍천비의 신형이 환각처럼 흔들리며 다가들고 이어 그의 손바닥이 수십 개로 늘어나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순간, 화검상은 퍽퍽퍽펏! 하고 무려 십여 대나 좌우측의 뺨을 얻어맞 았다. 이 풍천비의 느닷없는 손속에는 아마도 살기는 들어 있지 않은 것 같았다. 만일 화검상으로서도 어떤 위기를 직감적으로 느꼈다면 무의식 적으로라도 틀림없이 다른 행동을 취하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러한 그의 직감은 정말로 옳은 것일까? 비록 가볍게 손을 쓴 듯하지만 풍천비는 순간적으로 그의 능력 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화검상은 따귀를 맞자마자 즉시 머리와 내장의 기혈이 흔들리 며 입으로 한 모금의 선혈이 토해져나왔다. 과거와는 현격하게 달라진 그의 무공으로 볼 때 이것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 풍천비는 가벼운 듯한 손속에 무거운 중수(重手)를 사용한 것 이며, 만일 그 대상이 화검상이 아닌 다른 일반제자였다면 즉시 그 자리에서 혼절하거나 죽고 말았을 것이다. 무공에서는 흔히들 급소니, 치명요해니 하는 말들을 자주 사용 하지만, 그러나 사람을 죽이는 데 있어서 반드시 그러한 이치에 맞아야 하는 것만은 아니다. 화검상은 맞는 순간, 정신이 아찔하고 가슴의 울혈이 치솟았으 며 문득 이런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아, 이게 아닌데…….’ 화검상은 그냥 앉아서 멍청하게 맞아준 것이지 그것을 피할 수 없거나 대응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니다. 만일 풍천비가 좀더 오래도록 손을 썼다면 그는 무의식적으로 반격을 하거나 했을지도 모른다. 풍천비는 어느새 뒤로 다시 물러나서 시뻘겋게 부어오른 화검 상의 얼굴을 다소 야릇한 표정으로 주시하다가 이내 냉랭한 신색 으로 소리쳤다. “이 더러운 녀석! 그런데도 아직 말투가 그 모양이란 말이 냐?” 화검상은 내심 자신의 이런 행동에 대한 회의감으로 가슴이 터 져나갈 듯했으나 그 말에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당신은 이제 나를 외손자로 인정한다는 말이오?” 풍천비는 문득 화검상을 노려보며 차갑고 심각하게 다시 생각 해보는 듯하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며 냉랭하게 대꾸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야그 출력일 :: 98/10/22 ───────────────────────────────────── 제 목 : [화산문하]제 1부 3 권 제 30 장 - 4 “그럼 어쩌겠느냐? 네 녀석은 어쨌든 내 딸년의 못난 자식이 아니겠느냐?”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비 를 야그 출력일 :: 98/10/22 ───────────────────────────────────── 제 목 : [화산문하]제 1부 3 권 제 31 장 백혈단(白血團)에서 온 사람. 제 31 장 백혈단(白血團)에서 온 사람. 풍천비의 그러한 말들은 화검상이 내심으로 항상 바라던 바이 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지금 그 얘기를 듣게 되자 어딘가 빗나간 듯한 허 전한 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과연 화검상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것일까? 잠시 풍천비를 바라보던 화검상은 이윽고 말했다. “그럼 내가 앞으로 외조부님을 어떻게 불러드리면 되겠소? 그 냥 외조부님이라고 할까요, 아니면……?” 풍천비는 문득 그의 말을 자르며 냉랭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냥 장문인이라고 불러라. 그게 다른 사람들의 눈에 보기에 도 좋지 않겠느냐?” ‘장문인……?’ 화검상은 이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장문인.” 잠시 실내에 몹시 어색한 분위기가 휩쓸고 지나가는 듯했다. 풍천비는 그런 것을 무마시키려는 듯이 헛기침을 두어 번 하더 니 이내 차가운 신색으로 화제를 바꾸었다. “그래 비급은 언제부터 만들 작정이냐? 지금부터 만들 수가 있겠느냐?” 화검상은 다소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은 정신이 혼란스러워서 곤란하고, 내일 아침부터 모든 준비를 갖춰주시면 시작하겠습니다.” 풍천비는 예리한 시선으로 화검상을 주시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그 모든 준비란 그저 지필묵 정도면 되겠지?” 화검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신의 집중이 필요하므로 조용하고 간섭을 받지 않는 공간 이 필요합니다.” 풍천비는 잠시 생각해보는 듯하다가 다시 천천히 고개를 끄덕 였다. “좋다, 그럼 이만 돌아가보도록 해라.” 비록 그다지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화검상은 마치 깊은 지옥의 수렁 속을 지나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아직 그 끈끈한 느낌은 그의 전신에 들러붙어 그의 마 음을 못내 괴롭게 하고 있었다. 그는 즉시 일어나 가볍게 인사를 하고는 그 방을 물러나왔다. 복도로 나오자 그는 그 희미한 어둠 속에 자신의 몸과 마음이 맥없이 늘어져버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는 마치 그러한 현실을 변명이라도 하듯이 안간힘을 다해 속 으로 중얼거렸다. ‘이것은 잘못된 판단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미 결정은 내려졌고 상황은 흘러가고 있다. 잘못된 판단일지라도 어찌 이렇 게 해보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어리석음이지만……, 한번 살아 보는 것도 좋지 않겠는가? 비록 지금 돌이킬 수 있을지라도 나는 바꾸지 않겠다. 바꾸지 않겠다! 나는…… 이 생을 후회하지 않겠 다!’ 인생에 있어서 기회는 그다지 많지 않고 또한 운명은 그리 넉 넉하지도 않다. 이 운명이라는 것은 가혹하여 한번의 잘못된 결정은 그를 파멸 로 몰고 가기도 한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가 이 일로 인해 천추 의 한(恨)을 남기고 죽거나 죽음보다 더한 치욕 속에서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 역시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갑자기 이런 어처구니없는 결정을 내리고 말았고, 스스로 그 나락 속에 불안과 두려움이 가득 찬 상태로 묻히게 되 었다. 만일 사람에게 좀더 깊은 지혜와 그 지혜가 좀더 분명하게 적 용될 수 있을 만큼의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만 된다면 그는 비록 지옥행이 될지라도 분명한 판단을 내리고 이렇게 혼돈과 갈등을 느끼며 불안해 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인간의 지혜는 고작 몇 푼에 불과한데 그는 항상 시간에 쫓기 니, 중요한 순간순간마다 그 몇 푼의 지혜마저 사용하지 못하고 임기응변으로 불확실한 판단을 내려야 했다. 그는 자신의 마음이 맑게 정리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복잡 하고 빠르게 흘러가는 상황을 맞이하자 그것들은 전혀 소용이 없 게 되었다. 그것은 마치 그의 무공이 아직 부족하듯이, 그의 마음속의 밝 은 지혜가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갑자기 엄청난 일을 저질러놓은 어린 소년처럼 혼돈 속에 서 떨고 있지만 내심 자위의 말들을 되뇌이고 있는 것이다. 흔히 무공만 강하면 무엇이든 다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사 람들이 의외로 많다. 하지만 아까 제갈세가의 그 누구도 말했지만, 무공만으로 무엇 이든 다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만일 지혜를 잃고 나면 그는 혼자서 천하인(天下人)들을 모두 상대해야 할지도 모른다. 정말로 그 무공이 극한마저 초월하여 천하인들을 모두 물리칠 수 있다고 하자, 그렇다면 그는 비록 승리했지만 누구와 더불어 살 것인가? 천하의 모든 사람들과 적이 된다면 그는 산속에서 돌이나 나무 와 대화를 하며 살아갈 것인가?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도 좋지만 역시 사람은 사람들과 어울 려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아까의 그 제갈산중은 덕(德)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 덕이라는 것도 다름아닌 진정한 의미의 지혜에 속하 는 것이다. 지식은 차갑고 날카롭지만 지혜는 그렇지 않다. 거대한 어리석음이 오히려 지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무공은 이를테면 사용 가능한 자신의 힘이고, 지혜는 그것을 사용하는 능력이다. 힘이 있으되 그것을 사용할 줄 모른다면 소용이 없는 것이고, 그 지혜가 있다고 해도 정작 힘이 없으면 그것은 아무런 일을 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고로 무림인은 무공과 지혜를 모두 다 닦아야만 하 는 것일까? 기실 그렇지는 않다. 하류의 무공은 지혜와는 상관이 없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의 무공에 접하면 지혜는 곧 그 자체가 무 공이 된다. 지혜만의 무형의 힘이 아닌 무공의 힘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따라서 이 둘은 분리된 것이 아니라, 무공을 닦는 것은 곧 지 혜를 닦는 것이며, 지혜를 닦는 것은 곧 무공을 닦는 것이다. 진정 훌륭한 경지의 무공을 연마하는 것은 반드시 이와 같아야 만 한다. 무공은 결코 차가운 쇠붙이의 장검이나 암기 따위가 아니라, 진정으로 이와 같이 살아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객실로 들어가자 가검통은 곤히 잠들어 있었다. 화검상은 비록 아직도 정신이 혼몽스러웠지만 그 순간 정신이 맑게 깨어났다. 무림인은 일반 사람들과 같지 않아서 며칠 동안 잠을 자지 않 고도 견딜 수가 있을 뿐만 아니라 일단 잠을 자더라도 그렇게 정 신없이 곯아떨어지지는 않는다. 특히 이 가검통이란 자는 비록 우둔해 보여도 몹시 교활하고 민감한 성품이어서 이렇게 누가 와도 모를 정도로 정신없이 잠을 자지는 않는다. 화검상은 즉시 이곳에 뭔가 이상한 변화가 있다는 것을 감지했 다. 게다가 지금의 그의 무공은 이미 상당한 경지에 올라 있어서 이내 그 이상한 변화의 요인을 발견해냈다. 수작을 부린 자는 뜻밖에도 그다지 대단한 능력을 지닌 인물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대체 어떤 미련스러운 자가 별다른 능력도 없이 그를 향해 이런 수작을 부려온 것일까? 화검상은 막 침상 위에 앉으려다 말고 창밖을 향해 문득 무겁 게 말했다. “낭자, 비록 추운 계절은 아니지만, 그렇게 숨어 있는 것은 좀 모양이 사납지 않소?” 그러자 과연 가벼운 기척과 함께 창문의 휘장이 흔들리며 한 사람이 안으로 날아들어왔다. “흥, 당신은 여전히 안하무인이로군요?” 바로 소소귀(少素鬼) 어연하(魚蓮霞)였다. 그녀는 왜 또 이 한밤중에 이곳까지 그를 찾아온 것일까? 화검상은 이미 그녀에게 충분히 곤욕을 당했지만 문득 가검통 이 어째서 그녀에게 이토록 쉽게 당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 다. 현재 가검통은 무공이 일 갑자 반의 공력에 일류(一流)급이지 만, 이 어연하는 아직 젊은 나이에도 절정급의 무공을 가지고 있 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할 야그 출력일 :: 98/10/22 ───────────────────────────────────── 제 목 : [화산문하]제 1부 3 권 제 31 장 - 1 공력으로만 본다면 고작 반 갑자의 차이지만 절정급의 무공은 차원이 달라지기 때문에 그 상달(上達)로 인해 절반의 능력이 더 증가한다는 수치 이외에도 더한 능력이 발휘되게 된다. 그것은 말하자면 힘의 증가 이외에도 변화에 대한 자유로움과 관련이 있다고 할 수가 있다. 게다가 이 어연하의 야묘방(夜猫幇)의 무공은 은밀하고 소리없 는 변화에 치중하는 것이니 가검통이 불시에 당했다고 해도 이상 한 일은 아닐 것이다. 화검상은 자신의 무공이 더 높은 경지에 있기에 그녀의 무공이 쉽게 보이는 경향이 있지만, 실상 그녀의 무공은 가검통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인 것이다. 어쨌든 그녀는 감히 화산파의 사람들을 건드린 것이니 대담하 다고 아니할 수가 없었다. “또 무슨 일로 나를 찾아왔소?” 어연하는 그의 말을 듣는 듯 마는 듯하고 그의 달라진 얼굴을 살피며 미소하며 말했다. “당신은 그렇게 안하무인이면서 누구에게 당하기라도 했나요? 어째서 그렇게 엄마에게 얻어맞은 아이 같은 얼굴을 하고 있 죠?” 화검상은 내심 고소하며 말했다. “지금 이 자리는 안전하지 못하오. 이제 나는 낭자가 누구에 게 어떻게 되더라도 도와줄 수 없게 되었으니 그렇게 알고 계시 오.” 어연하는 다소 처연한 듯한 기색을 짓더니 쓸쓸하게 웃으며 말 했다. “나는 지금 두 가지의 중요한 일 때문에 왔어요. 하지만 당신 은 전혀 나를 아는 척도 하지 않는군요?” ‘아는 척을 하지 않는다고? 그럼 지금 내가 반가워서 껴안기 라도 해야 한다는 말인가? 정말 웃기는 낭자로군……!’ “무슨 중요한 일이 또 두 가지나 생겼다는 말이오?” 어연하는 잠시 부드러운 기색으로 화검상을 바라보다가 약간 웃는 듯이 말했다. “본래는 한 가지 일이에요. 하지만 그것은 다음의 것 때문에 비롯된 것이죠. 게다가 그 다음의 것은 바로 당신 때문에 비롯된 것이고요. 나는 그것이 해결되지 않는 한 그 본래의 일을 말하지 않을 생각이에요.” 화검상은 느닷없이 알 수 없는 말을 늘어놓는 그녀에 대해 어 리둥절해졌다. ‘이 낭자가 갑자기 말장난을 하려는 것일까? 본래의 것은 뭐 고 다음의 것은 또 뭐야?’ “어째서 그게 나 때문에 비롯된 것들이란 말이오?” 어연하는 눈빛을 기이하게 빛내며 화검상을 주시하다가 문득 안색을 가볍게 붉혔다. “당신은 감히 아까 나의 모든 것을…… 다 보았어요. 나는 심 하게 농락을 당했고 또한 더럽혀졌어요. 지금 이 자리는 비록 좋 지 않지만, 앞으로도 당신에게 좋은 자리를 기대하긴 어려울 것 같아서 하는 수 없이 온 거예요.” 화검상은 무심코 듣고 있다가 어이가 없어 웃으며 말했다. “그게 바로 그 다음의 일이란 말이오? 게다가 농락을 당했다 는 것은 또 무슨 말이오?” 어연하는 그렇지 않아도 안색이 붉어져 있었는데 그 말에 안색 이 더욱 빨개지며 화를 냈다. “당신은 감히 시치미를 떼긴가요? 나는, 나는 그래도 생각해 서 좋은 관계로 이끌려고 했는데, 당신이 끝내 이런다면 나도 생 각이 있어요.” 화검상은 내심 어이없어 하면서도 웃으며 말했다. “내가 무슨, 어떻게 하려는 것은 아니오. 낭자도 알지 않소? 나는 이렇게 머리가 아둔한데 그렇게 알아듣기 어려운 말을 하면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소? 좀더 쉬운 말로 해주시오.” 어연하는 화가 나서 안색이 빨개져 있었으나 이내 그 말에 풋, 하고 웃으며 다소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당신이 이미 나를 그렇게 난처하게 했으니, 이제는 책임을 져야 할 거예요. 비록 좋은 자리는 아니지만 나는 상관하지 않아 요. 자리를 옮긴다면 더 좋고……, 이제 무슨 말인지 알겠나요?” 화검상은 잠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웃으며 대꾸했다. “그러니까, 낭자는 지금 나와 부부의 인연을 맺자는 말이 오?” 어연하는 다시 벌컥 화를 내며 장력(掌力)을 일으켜 그의 가슴 을 후려쳤다. 하지만 이번의 공격은 살의(殺意)가 조금도 없었을 뿐만 아니 라 화검상의 몸에서 스스로 반탄력이 일어나 조금도 그를 상하게 할 수가 없었다. “정말로, 당신은 나를 그렇게 또 함부로 대하긴가요? 내가 그 렇게도 천박하게 보인다는 말인가요? 이래봬도 나는 아직 순결한 몸이란 말이에요.” 아마도 일반의 규수라면 스스로 순결한 몸이니 하는 따위의 말 을 이렇게 태연히 말하지 못했을 것이다. 화검상은 문득 절로 웃 음이 나오는 것을 참으며 생각했다. ‘조금 전엔 더럽혀졌다고 하더니 이젠 또 순결하다고 하고, 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화검상은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낭자는 내가 낭자를 일평생 부인으로 모실 기회를 주겠다, 이 말이 아니오?” 어연하는 잠시 화검상을 주시하다가 이내 가볍게 웃음을 떠올 렸다. “당신은 말을 재미있게 하는군요. 게다가 사실 그다지 둔하지 도 않아요. 본래 여자는 그런 일을 솔직히 말하기는 어려운 법이 죠.” 화검상은 입가에 미소를 떠올렸으나 이내 안색이 다소 무거워 졌다. “나는 낭자에 대해 아직 잘 모르오. 게다가 낭자도 나에 대해 서 다 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오. 대체 지금 내게 이렇게 갑 자기 청혼하는 이유가 뭐요?” 어연하는 안색이 다시 딱딱하게 굳어졌다. “당신, 당신은 나를 놀리는군요. 그건 이미 말하지 않았나요? 당신이 감히 나를…….” “내가 낭자와 몇 번의 드잡이질이 있었다고 해도 그런 것은 강호상에서 간혹 일어날 수 있는 일이오. 따라서 그런 일에 굳이 얽매여 평생의 일을 그르칠 필요는 없을 텐데?” 어연하는 안색이 새파랗게 변했으며 두 눈에서 살기(殺氣)까지 감돌았다. “다, 당신이 감히 나를……, 나를 농락하는군요. 나를 그렇게 천박하게 보았나요? 그렇다면 나도 여기서 이렇게 당하고 있지만 은 않겠어요!” 말과 동시에 그녀는 분격하여 즉시 밖으로 신형을 날렸다. 하지만 그녀는 미처 방을 벗어나지 못하고 화검상에게 제지되 고 말았다. 무슨 혈도를 제압한 것이 아니라 화검상이 어느새 그녀의 앞을 가로막고 그녀의 몸을 껴안아버린 것이다. 그의 팔 힘은 완강하여 그녀가 도저히 벗어날 수 없었고, 또한 표정도 엄숙하며 미소가 깃들여 있었다. “다, 당신이 감히……!” 어연하는 본능적으로 그를 공격하려고 하였으나 이내 그의 그 러한 표정을 보고는 몸이 얼어붙고 말았다. 그녀는 화검상의 표정에서 깊은 애정의 빛을 본 것이다. 화검상은 속으로 순식간에 여러 가지를 생각했다. 이 여자는 거칠고 또한 얼굴도 매혹시킬 정도로 아름답지 못하 며 도무지 여성적이라고 할 수가 없다. 그러나 어딘가 그의 마음을 잡아끌고 번뇌를 녹여주며 유쾌하 고 감미롭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는 것을 화검상은 이미 발견했 다. 또한 이것은 지나칠 정도의 진전이다. 그녀가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갑자기 대담하게 나오는지 알 수 는 없어도, 화검상은 지금의 상황에서 이미 여유를 가지고 여자 와 교제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또한 어연하는 그가 이제까지 느끼지 못했던 감정을 느끼게 해 주고 있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ЕЕ 야그 출력일 :: 98/10/22 ───────────────────────────────────── 제 목 : [화산문하]제 1부 3 권 제 31 장 - 2 그에게 잘 대해주는 사람으로는 악검림도 있겠지만 그녀는 마 치 꿈에 도취된 듯하고 지나치게 이상적이며 마치 귀여운 친구 같은 느낌이 있을 뿐이다. 지금과 같은 극도의 불안감을 느끼는 시점에서 화검상은 문득 자신의 후손에 대해 얘기한 사마귀의 말 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풍천비와의 협상 이전이라면 몰라도, 이제는 꼼짝없이 수렁에 빠져 있는 상황이라 그는 자신의 앞일을 장담할 수가 없었다. 정말로 죽는 것은 두렵지 않으나 조상을 대할 면목이 없어진다 는 것은 괴로운 노릇이다. 그에게 만일 후손이 생긴다면 만일의 경우라도 다소나마 희망 이 생기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것은 너무나도 이기적인 생각이고 사랑이 느껴지는 이 여인에게 미안한 노릇이다. 그래서 화검상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나와 혼인을 한다는 것은, 물론 혼인식도 올리지 못하겠지만, 스스로 고초를 자초하는 것이 되기 쉽소. 나는 누군가에게 목숨 을 잃어 불과 얼마 살지 못할 수도 있고, 그대와 우리의 자식도 함께 무림공적으로 몰려 참혹하게 될 수도 있소. 그래도 상관없 겠소?” 어연하는 다소 떨리는 표정으로 화검상을 잠시 주시하다가 고 개를 저었다. “어차피 강호는 험난해요. 우리는 언제 죽을지도 모르죠. 그럴 바에는 스스로 커다란 고행을 자초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거예 요. 나는 그 어떤 의미가 당신에게 있을 거라고 믿어요. 아니 믿 지는 못해도 당신은 나를 충동질했어요. 나는 그만 넘어갔죠. 나 는 강호의 여자예요. 한다면 하는 거죠. 후회는 없어요. 우리는 비록 아직 서로를 잘 모르지만, 평생을 살아도 서로를 다 아는 부부는 없다고들 해요.” 화검상은 줄줄이 달변을 토하는 그녀의 어여쁜 입술을 바라보 면서 대꾸했다. “나는 지금 궁지에 몰려 있기 때문에 당신을 이용하려는지도 모르오. 당신은 아마도 나에 대해 원망을 하고 후회하게 될지도 모르오.” 어연하는 순간 따귀를 후려치며 소리쳤다.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잖아요! 당신은 그렇게도 내가 허술해 보이나요?” 그녀의 손속은 비록 맵지 않았으나 화검상의 입술이 터져 피가 다소 흘러나왔다. 그것은 아까 풍천비에게 당한 상처가 감춰져 있다가 약간의 충 격에 지금 터진 것에 불과했다. 어연하는 그의 입술이 터진 것을 보고 다소 멈칫했지만 그러나 표정을 바꾸거나 하지는 않았다. ‘이거 오늘은 따귀 맞는 날인 모양이군!’ 화검상은 일부러 호신강기를 제거해 그 따귀를 맞으면서도 속 으로 고소하게 생각했다. ‘이렇게 한 대 맞았으니 미안함을 덜 수가 있겠군!’ 문득 세차게 껴안은 그녀의 몸에서 부드럽고 매끄러운 굴곡과 탄력을 느끼며 그는 미소와 함께 다시 말했다. “한데 이거 우리가 너무 서두르는 건 아닐까?” 어연하는 다시 두 눈에 냉기를 일으키며 그를 두 손으로 밀쳐 냈다. “그렇다면 우리 다음에 만나기로 해요!” “어이쿠.” 화검상은 짐짓 신음을 발하며 뒤로 벌렁 넘어갔다. 그의 뒤에는 마침 창문이 있어서 그는 그 밖으로 날아갔는데, 어이없게도 그의 두 손 안에는 여전히 어연하가 안겨져 있었다. 비록 밤중이기는 하지만 어연하는 남들이 볼 수 있는 위치에서 화검상에게 안겨 있다는 생각에 안색이 붉어져서 말했다. “어서 날 놔줘요. 대체 어디로 가는 거죠?” 화검상은 오히려 그녀의 몸을 더욱 세게 껴안으면서 웃으며 대 꾸했다. “어차피 우리는 한 몸이 될 터인데 무슨 상관이오? 게다가 저 녀석이 보는 앞에서 일을 치를 수도 없는 일이 아니겠소?” 화검상은 마냥 유쾌한 심정에 미소를 지었지만 그 말에 어연하 는 뭔가 곰곰이 생각해보는 듯했다. 이윽고 화검상은 그녀와 함께 빠른 속도로 마을을 벗어났다. 어느새 그는 자신도 모르게 그 사당 같은 곳의 앞에 이르러 있 었다. 그는 그 앞에 이르러 잠시 멈칫하다가 그녀에게 말했다. “이곳에 다시 들어간다는 것은 좀 그렇고……, 어디로 갈까? 근처에 알고 있는 마땅한 동굴 같은 곳이라도 있소?” 어연하는 여태 잠자코 있었는데, 그 말에 이윽고 입을 열어 말 했다. “우리의 일은 그저 한마디의 분명한 약속만 있으면 돼요. 반 드시 그런 일을 치러야만 하는 것은 아니죠. 게다가 이미 말했듯 이 난 당신에게 알려줄 중요한 내용이 있어요.” 화검상은 문득 그 말에 왠지 가슴의 유쾌한 기분이 다소 식어 버리는 것을 느꼈다. ‘그렇지……, 역시 내멋대로의 감격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누 구나 자신들만을 위한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지.’ 하지만 그는 내심 뭔가 말할 수 없이 섭섭한 기분을 느끼며 그 녀를 풀어주었다. “미안하지만 난 지금 그 어떤 약속도 해줄 수가 없는 입장이 오. 지금이 아니라면 다음 기회에 우리의 인연이 맺어질 수도 있 을 것이오.” 어연하는 금새 화검상의 마음의 변화를 눈치채고 다소 당황해 져서 말했다. “만약 당신이 지금 제 몸을 갖기를 원한다면 나도 상관은 없 어요. 그런 동굴 속이라도 상관없어요.” 화검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리의 생각에 약간 차이가 있는 것을 몰랐소. 그런 것을 안 이상 이제는 별로 생각이 없어졌소. 나는 무슨 호색한도 아니니, 우리 두 사람의 생각이 일치할 때 함께 부부의 인연을 맺도록 합 시다. 약속할 수는 없지만 인연이 있다면 우리가 그렇게 될 수도 있을 것이오.” 갑자기 봄바람이 가득하던 두 사람 사이에 허전하고 어색한 분 위기가 감돌았다. 어연하는 그러한 분위기를 무마하기라도 하듯이 짐짓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좋아요. 나도 반드시 우리가 다시 만나 혼인을 할 날이 있을 거라고 믿어요.” 화검상은 크게 유쾌했던 만큼 이제는 반대로 마음이 가라앉는 것을 느끼며 화제를 돌렸다. “한데 지금 내게 알려줄 중대한 내용이라는 게 무엇이오?” 어연하는 잠시 화검상의 안색을 살피다가 웃으며 말했다. “그건 사실 당신에겐 아주 중요한 일이 될 거예요. 지금 누군 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죠. 저 산꼭대기에 올라가보면 될 거예 요.” 그녀가 가리킨 그 산은 마을의 반대편에 있는 곳으로 몹시 지 세가 험준하고 정상은 돌무더기들만 보이는 암봉(岩峯)이었다. 화검상은 더 이상 그에 관한 일을 묻지 않고 그녀에게 포권하 며 작별을 고했다. “그럼 이만, 다음에 또 보게 되기를 바라겠소.” 그가 마악 신법을 펼치려고 하자, 문득 어연하가 다시 입을 열 어 그를 잡았다. “보아하니 당신은 갑자기 화가 났군요. 그렇죠? 하지만 세상 의 모든 여자들은 다 이래요. 누구나 멋진 혼인식을 치르고 좋은 신방에서 단꿈을 꾸고 싶은 거죠. 나도 처음에는 아무래도 좋다 고 생각했지만 혼인은 인륜지대사가 아닌가요?” 화검상은 내심 고소하며 거듭 포권하며 말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이 야그 출력일 :: 98/10/22 ───────────────────────────────────── 제 목 : [화산문하]제 1부 3 권 제 31 장 - 4 “지금 내게는 그럴 여유가 조금도 없소. 그게 아쉬울 뿐이오. 낭자는 사실 내가 혼인을 하고 싶다고 생각한 첫번째의 사람이 오. 앞으로 내가 아니더라도 보다 좋은 남자를 만나기를 바라겠 소.” 어연하는 안색이 약간 딱딱해져서 아무런 대꾸도 없었다. 화검상은 이내 즉시 신형을 날려 어둠 속을 질주했다. 왠지 답답하고 울적한 이 심사는 아까의 그 유쾌하고 즐겁던 마음과 대조되어 나타나는 것이리라. 마치 그런 울적한 마음을 풀어버리기라도 하듯이 그는 아주 빠 르게 신형을 날려 어느새 마을을 옆으로 돌아 그 산의 정상 부근 에 도달했다. 그 산은 역시 멀리서 보았던 것처럼 정상에는 나무나 풀들이 거의 없었고 오랜 세월 동안 닳고 갈라진 바위들만이 바람을 견 디고 있었다. 화검상은 정상에 이르렀으나 누구의 모습도 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이내 주위를 살피다가 앞쪽의 바위가 갈라진 틈을 향해 걸어갔다. 그쪽으로부터 조심스러운 인기척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과연 아니나다를까? 그 바위의 갈라진 틈으로 들어서자 그 안쪽에 교묘하게 외부에 선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동굴처럼 패어들어간 부분이 있었다. 그곳에 숨어 있는 사람은 매우 침착한 듯 시종일관 한 자리에 가만히 있었으며 숨소리를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아직 화검상이 지척에 당도한 기척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일 것 이다. 하지만 화검상 자신도 지금 그곳에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확실히 믿을 수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일부러 상대방의 반응을 알아보기 위해 근처에 있 는 바위덩어리를 한번 가볍게 건드려보았다. 바위덩어리가 굴러가며 탁탁탁 하는 소음을 일으키자 이내 그 쪽에서 반응이 나타났다. 호흡 소리가 거의 사라짐과 동시에 민감한 진기의 떨림이 느껴 졌다. 그것은 바로 그 사람이 별안간 놀라서 귀식대법(龜息大法)을 펼쳤다는 것인데 워낙에 무학의 차이가 있어서 그것으로도 그 미 세한 기척을 화검상에게 속일 수는 없었다. 이윽고 잠시 후에 그 사람은 뭔가 결단을 내린 듯 나직하고 긴 장된 어조로 말했다. “누구시오? 어(魚)낭자의 연락을 받고 온 사람이오?” 그 사람의 무공은 어연하보다 훨씬 우위였고 나이도 걸쭉한 음 성의 사십대였기 때문에 지금 나타난 사람이 어연하는 아니라는 사실을 감지한 모양이었다. 화검상은 미처 어연하에게 이 기다리는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 해 물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 자신도 상대방을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그렇다고 할 수 있지만, 귀하는 누구시오?” 그 사람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말했다. “그럼 혹시 귀하는 화검상이 아니오?” 화검상은 무슨 놀림을 당하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하여 웃으며 대꾸했다. “그렇소만, 당신은 내게 무슨 볼일이라도 있소?” ‘아마도 동심맹(同心盟)에서 온 사람이 아닐까?’ 그 사람은 일순 크게 격동한 듯 작은 움직임의 파탄을 보이더 니 다시 말했다. “그, 그렇다면 이리로 들어와볼 수 있소?” ‘그건 나도 그러려던 참이오.’ 화검상은 이내 대답없이 천천히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그 동굴의 내부는 비록 어두웠으나 그러한 어둠이 화검상의 시 야를 가리지는 못했다. 동굴의 중간쯤에 사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한 사내가 몸을 일으 키고 있었는데 두 눈에서 시퍼런 광채가 번쩍거렸다. 그것은 그의 무공이 이미 최상승의 경지에 도달하여 안광이 물 빛처럼 맑아졌다는 의미이다. 이런 어둠 속일수록 자연 시력을 집중하여 안광이 빛나게 되는 것이다. 그 사내는 문득 손에 들고 있던 화섭자를 켜서 불빛으로 화검 상의 얼굴을 비춰보고는 이내 꺼버렸다. 화검상은 비록 눈에는 잘 보이지 않으나 그 사람이 이 순간 크 게 격동하고 있다는 것을 진기의 떨림으로 감지할 수가 있었다. 그 사람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도로 자리에 앉으며 자신의 맞 은편 바위를 가리켰다. “그쪽에 좀 앉으시겠소?” 화검상은 자리에 앉지 않고 그를 주시하며 말했다. “그 전에 우선, 내가 이미 신분을 밝혔으니 귀하의 신분 또한 밝히는 것이 순서가 아니겠소?” 그 사람은 잠시 마음을 가라앉히는 듯이 침묵을 지키더니 이윽 고 말했다. “그녀가 말해주지 않았단 말이오? 난 서귀현(徐歸賢)이란 사 람으로 백혈단(白血團)에서 왔소.” 강호에는 흔히들 구파일방(九派一幇), 오대세가(五大世家) 혹은 해내팔세(海內八勢), 해외팔세(海外八勢) 운운하지만, 그러나 정작 곳곳의 문파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무슨 회(會)니, 방(幇)이니, 단(團)이니 하는 이름들이 있다고 해도 화검상이 어떻게 그런 이름들을 다 알 수가 있겠는가? 아마도 이 백혈단도 동심맹에 소속된 한 문파일 것이라고 생각 을 하며 화검상은 천천히 대꾸했다. “아, 서대협이셨군요. 그래 소생에게는 무슨 볼일이라도 있으 십니까?” 서귀현은 잠시 화검상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가볍게 탄식하며 말했다. “우리 백혈단은 강호에 알려지지 않도록 그 동안 극비리에 행 동을 해왔소. 그러니 그대도 모를 수밖에……. 그럼 혹시 장귀산 (蔣歸山)이라는 사람은 기억하시오?” ‘장귀산? 생소한 이름이로군. 하긴 내가 이전에 취중에라도 그런 사람을 만났었는지도 모르는 일이지.’ 화검상은 잠시 생각해보는 듯하다가 말했다. “나로서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구려. 어쨌든 서대협께서 동심 맹에서 오셨다면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이니 경청하도록 하겠소.” 서귀현은 다소 씁쓸하게 웃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린 동심맹과 아무런 연관도 없소. 다만 내가 그 어낭자를 이곳에서 만나 부탁을 좀 했을 뿐이지……. 장귀산을 모른다면 그대는 혹시 그 채석장의 주정뱅이는 기억하고 있겠구려? 그는 그대와 연락을 취하던 도중 죽었다고 했으니.” ‘채석장의 주정뱅이? 그 이상스러웠던 딸기코의 사내……?’ 화검상은 문득 뒤통수를 둔기에 강타당한 듯 멍한 표정이 되었 다. 그는 마치 조금 전에 들은 그 말을 잘못 들은 듯이 귀를 의심 했고 혼란에 빠진 듯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 딸기코의 사내를 내가 잊어버렸을 리가 없다. 한데 그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이 사람은 대체 누구인가? 백혈단? 백혈단이 라고……?’ 기실 그것은 화검상도 어딘가 혹시나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것이기는 했다. 하지만 당시 느꼈던 그 어떤 비밀스런 단체가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는 말인가? 그러고 보면 지금 듣고 있는 사람들의 이름도 이상한 점이 있 다. 화검상은 갑자기 그 서귀현을 바라보며 멍하니 생각에 잠기는 듯하다가 돌연 실소하며 말했다. “그럼 그 딸기코의 사내가 장귀산이고, 그 역시 귀하와 마찬 가지로 ‘백혈단’의 소속이었다는 말이오?” 서귀현은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소. 역시 그대는 소문처럼 그다지 둔하지도 않고 이미 무공이 높은 경지에 이르렀구려. 반드시 나의 사부님께서 크게 기뻐하실 것이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ЕЕ 야그 출력일 :: 98/10/22 ───────────────────────────────────── 제 목 : [화산문하]제 1부 3 권 제 31 장 - 5 화검상은 침착한 서귀현과는 달리 일순 머릿속이 텅 비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럼 백혈단은 바로 화산파의 현체제에 대항하고 돌아가신 나의 조부를 받드는 사람들의 비밀집단이란 말이오?” 런 야그 출력일 :: 98/10/22 ───────────────────────────────────── 제 목 : [화산문하]제 1부 3 권 제 32 장 늙은 매복자(賣卜者) 제 32 장 늙은 매복자(賣卜者) 그것은 놀라움이라기보다는 너무나도 의외였고 마음이 그것을 따라가지 못해서 일어나는 허둥댐이었다. 서귀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바로 맞추었소. 우리 백혈단(白血團)의 백(白) 자는 서악 화 산의 빛깔을 상징하는 것이고, 혈(血) 자는 석년의 그 피비린내 나던 참혹상을 상기시키고 있소. 십사 년 전의 그 참변 당시 수 백 명이 죽음을 당하고, 살아남은 뜻있는 사람들은 달아나 후일 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소. 그래서 그 사람들은 백혈단이라는 단 체를 조직했고, 이제까지 오직 은밀하게 본파의 정통성(正統性)을 회복하기 위해 활동해왔소. 그러한 내용은 나도 들은 것으로, 좀 더 자세한 얘기는 이제 그대가 나와 함께 가서 사부님을 만나면 듣게 될 것이오.” 화검상은 마음의 준비 없이 그런 얘기들을 듣게 되어 흡사 기 습을 당한 꼴로, 정신없이 허둥대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미 대강의 얘기를 들었으니 오히려 마음이 점차 가라앉았고 이내 차분함을 되찾을 수가 있었다. 물론 그는 그러기 위해 이마에 비지땀까지 흘리고 있는 상태였 다. 화검상은 잠시 침묵을 유지하다가 이윽고 한숨을 내쉬며 말했 다. “나는 귀하가 초면이오. 한데 귀하는 어찌 날 알아볼 수가 있 소?” 서귀현은 즉시 웃으며 대답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오직 하나, 화산파의 정기(精氣)를 회복시 키는 일이니, 어찌 우리가 그대를 모를 리 있겠소? 나는 간혹 변 장을 한 채 화산파에 가보기도 했고 멀리서나마 그대를 분명히 볼 수가 있었소. 나는 속가제자이니 잘 모를 테지만 아마도 나의 사부님을 만나게 되면 어쩌면 기억이 날지도 모르오.” 화검상은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 “그래서 지금 나더러 함께 그곳으로 가자는 말이오?” 서귀현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렇소. 나의 사부님은 지금 그대를 고대하며 기다리고 있으니, 아마도 그대는 우리 백혈단의 주역이 될 수 있을 것이 오.” 화검상은 싸늘하게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 초면인 귀하를 믿을 수도 없고 또한 그 말 에 수긍할 수도 없소. 당신은 그와 같이 몇 마디를 늘어놓는다면 내가 곧이 들을 거라 생각했단 말이오? 천만의 말씀이오. 나는 지금 그다지 한가하지도 않고, 설령 한가하다고 하더라도 일부러 귀하를 따라가고 싶은 생각은 없소.” 서귀현은 비로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는지 안색이 변했다. 그는 잠시 분노한 듯 눈빛을 번쩍이다가 이내 벌떡 일어서며 소리쳤다. “그, 그대가 그런 말을 하다니 믿을 수가 없군! 어떻게 해야 내 말을 믿을 수가 있겠소?” 화검상은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떻게 해도 믿을 수 없소. 아니 믿을 수 있다고 해도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이오? 나는 그런 일을 좋아하지도 않고 더욱이 함께 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소이다. 사람을 잘못 본 것이오. 내가 이른바 소광생(少狂生), 후레자식이라는 것을 몰랐 단 말이오? 흐흐흐, 오늘의 이 얘기들은 못 들은 것으로 하겠소 이다.” 화검상은 말과 함께 훌쩍 밖으로 신형을 날려버렸다. 그 서귀현은 그야말로 외곬인 사람이어서 금방이라도 검을 뽑 아 목을 베어서라도 사실을 입증하려고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화검상이 그렇듯 신경질을 부리며 나가버리자 그는 도 리어 어안이 벙벙해져서 멍하니 서서 중얼거렸다. “아니……, 이럴 수가! 그럼 사부님이 사람을 잘못 본 것이란 말인가? 아아 이건 정말, 설마 했더니 그가 저런 자였을 줄이 야……!” 화검상이 정말로 그 서귀현을 믿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어떤 사람은 온갖 노력을 다 보여도 믿기 어려운 반면 어떤 사 람은 그저 한 순간의 표정만 봐도 능히 믿을 수가 있다. 서귀현이 모든 방면에 있어서 정직한 사람은 아니겠지만 조금 전 그의 태도는 진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화검상은 비록 처음에는 느닷없는 상황을 맞이하여 당황했지만 그런 안목마저 흐려졌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죽은 딸기코 사내와 여귀기 등으로 인하여 무거운 짐을 지고 있었다. 게다가 지금의 상황은 또 달라진 것이니 그가 어떻게 그들과 어울릴 수가 있겠는가? 설령 그곳에 간다고 한들, 그리하여 그들과 교분을 갖고 또한 몇 가지의 분명한 사실들을 알게 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는 이미 알아야 할 것들은 거의 모두 알고 있는 상태이며 또 한 자신의 분명한 행로를 정해놓고 있었다. 사람들은 비록 어떤 좋은 명분들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결국에 는 자신들이 원하는 길을 가는 것이며 그것을 이래라저래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화검상으로서는 도저히 그들과 행동을 함께할 수가 없고 또한 그것을 반대하고 있으며, 그럼에도 가서 만류할 능력은 더 더욱 없었다. 그렇다면 아예 가지 않고 못 들은 것으로 하는 것이 좋지 않겠 는가? 그러나 실상 한번 들은 것을 못 들은 것으로 할 수는 없는 노 릇이었다. 실로 이러한 사실들은 간혹 상처입은 그에게 찾아와 그 상처들 을 짓이겨버리는 망령들과도 같았다. 저번에 그 딸기코 사내의 죽음에서 충격과도 같은 체험을 했 고, 뒤이어 그는 이러한 어떤 단체가 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일이 너무도 느닷없이, 마치 농락하듯이 그에게 찾아들었기에 그는 충격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신법을 펼쳐 달리다가 한동안 멈춰서서 그는 정신없이 오래도 록 상념에 잠겼다. 화검상은 이러한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만일 그 일이 완전히 옳고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면 의당 나도 따라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따를 필요 없이 나는 내 일을 하고 그들은 그들의 일을 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다. 그곳에 갈 필요가 없다면 가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화검상, 이 착각 속에 사는 미련한 녀석아, 모든 일들이 너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모두 너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느냐? 천만의 말이다! 나는 내가 옳다고 인정되는 길을 가면 되는 것이고 그것에 관한 책임만 지면 되는 것이다. 그들도 나름대로의 목적을 추구하는 것이며, 그 책임은 그들이 지게 되는 것이다. 후후후후…….’ 화검상은 내심 그렇게 부르짖고는 눈을 떴다. 주위를 둘러보니 그는 문득 자신이 예의 그 낡은 사당 앞에 서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는 어째서 하필 이곳에 와 있는 것일까? 갑자기 그는 사당 안에서 있었던 일들을 상기하며 어연하가 미 칠 듯이 보고 싶어졌다. 언제부터 그녀를 이토록 사랑하게 된 것일까? 오래도록 심한 상처를 받아온 그의 마음은 그것을 달래줄 따스 한 손길이 필요했다. 그것은 아마도 사랑을 원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비록 짧은 시간의 일이고 느낌도 그다지 크다고 할 수는 없지 만, 그러나 이미 마음에 새겨졌기에 지금과 같은 순간에는 미칠 듯이 보고 싶어지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혹은 바라던 바였기에 그러한 것일까? 그러나 그의 뛰어난 감각으로 비추어보건대 그녀는 지금 이 주 위에 없었다. 그녀는 이미 떠나가버린 것일까? 화검상은 문득 미칠 듯한 괴로움 속에서 후회하는 기분이 들었 다. ‘그래! 여자들은 대개 그런 것을, 나는 왜 그녀를 내멋대로만 하려고 했던 것일까? 그러지 않았으면 그녀는 지금 내 옆에 있었 을 것을…….’ 화검상은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심정이 되어서 사당의 문을 열 고 안으로 들어가보았다. 역시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마치 그녀가 가버린 자리의 황량함을 말해주듯 여러 가지 부서 진 물건들이 어지럽게 뒹굴고 있었다. 화검상은 문득 그러한 것을 확인하자 이번에는 자신의 그 뛰어 난 시력을 의심하고 싶어졌다. 그는 촛불을 밝히기 위해 황급히 품속을 뒤졌으며 이내 화섭자 를 찾아내어 불을 당기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문득 그 화섭자의 불을 밝히지 못하고 멈칫했으며 석상처럼 굳어졌다. 그는 이미 분명히 불이 밝혀진 뒤의 결과를 알고 있는 것이다. 어연하, 그녀는 지금 이 자리에 없다. 만일 불을 밝혀서 확인을 한다면 더한 고통을 느끼게 될 것이 고, 그렇지 않다고 해도 갈수록 미칠 듯한 갈증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인가? 화검상은 한동안 죽은 듯이 그대로 석상처럼 서서 움직이지 않 다가, 이윽고 잠시 후에 길게 한숨을 내쉬며 쓴웃음을 지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야그 출력일 :: 98/10/22 ───────────────────────────────────── 제 목 : [화산문하]제 1부 3 권 제 32 장 - 1 ‘나는 무엇을 구하려고 한단 말인가? 나는 무엇을 두려워한단 말인가? 할아버지! 아버지! 나를 너무 원망하지마십시오. 내 능력 이 고작 이것뿐인 것을, 어쩌란 말입니까?’ 이어 그는 느릿하게 화섭자를 품속에 다시 갈무리하고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가 숙소에 다시 도착했을 때에는 비록 여명이 터오지는 않았 지만 이미 새벽녘이었다. 가검통은 아직도 잠에 곯아떨어져 있었고 주위는 조용했다. 과연 풍천비는 이미 그를 완전히 믿고 있기에 그에 대해서 감 시를 하지 않고 있는 것일까? 지금부터 잠을 자기도 어중간하고 하여 그는 운공조식을 하기 로 했다. 화검상은 이미 스스로도 자신의 무공수련에 대한 필요성을 절 실하게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환경은 그에게 그럴 만한 여유를 주지 않았고 정신적으로도 마음놓고 한곳에 몰두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그저 가볍게 조식을 할 목적으로 침상 위에 올라 정리를 하고 운기(運氣)를 시작했을 때, 그는 문득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그 동안 그다지 수련을 한 일도 없고 흘러간 시간도 길지 않건 만 문득 진기의 운용이 훨씬 더 자유로워지고 영활해진 것을 발 견하게 된 것이다. 혹시 착각인가 하여 몇 번을 다시 검토해보아도 결과는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건 좋은 일이기는 하지만 대체 어찌 된 일인지……. 화검상은 이미 곡선적 무공의 깊은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그러한 의문의 원인을 찾아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이내 그것이 바로 그 곡선적 무공 자체에 있다는 것을 알 아냈다. 기실 이 곡선적 무공은 비록 그 훌륭한 능력이 간혹 느껴지기 는 하지만 그 공력에 비해 나타나는 능력은 하류급의 경지에서의 직선적 무공에 비해 그다지 완전한 차이를 보인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것은 이 곡선적 무공은 대홍락(大紅落)의 경지에 이르러야 비로소 그 진정한 능력을 발휘하게 되기 때문이다. 과연 그것이 어떤 능력을 발휘하게 될지는 현재의 화검상으로 서는 아직 잘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이미 생사현관을 타통하고 육체의 한계를 초 월하는 무학의 바탕이 열려져 있는 상태였다. 요 하루이틀간 그는 곡선적인 이치를 생활에 적용시켜보려고 하였고 그러는 가운데 많은 고뇌와 혼란을 겪었다. 또한 그러면 서 안목이 자신도 모르게 단련되었다. 비록 직접적인 무학의 수련은 없었지만, 그러한 이치가 점차 트여감에 따라 더불어 그의 무공도 증진된 것이다. 그것은 바로 그의 곡선적인 무공이야말로 지혜와 둘로 나뉘지 않는 진정한 의미의 무공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작은 기쁨은 때로는 갈수록 크게 증대될 수도 있는 법 이다. 화검상은 점차로 또 다른 진전된 경지의 무학을 맛보게 되자 그 즐거움으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게 되었다. 으레 그러 한 육체적인 현상은 마음에도 영향을 끼치는 법이다. 주위에 누가 있다는 것도 잊은 채, 그는 자신도 모르게 운기행 공에 몰두해가기 시작했다. 화검상이 운기행공에서 깨어났을 때는 어느새 주위가 환하게 밝아진 아침이었다.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니 가검통이 이미 의복을 갖춰입고 모 든 준비를 마친 채로 화검상을 괴이쩍은 시선으로 주시하고 있었 다. 화검상은 그를 보자 문득 자신이 얼마 동안 주의를 게을리했다 는 것을 자각하고 흠칫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기실 그의 이 곡선적 내공의 방어능력은 상당히 우수하 여, 실상 가검통이 아니라 풍천비가 와서 중간에 엄습을 했다고 해도 그에게 치명적인 부상을 입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또한 만일 누군가 그를 노렸다면 그는 그것을 이내 감지하고 깨어나서 대비하게 되었을 것이다. 화검상은 어쨌든 마음의 경각심을 새롭게 다지며 미소와 함께 가검통에게 말했다. “가사제, 간밤에 잘 잤는가?” 가검통은 밤중에 어연하에게 당해 수혈을 제압당하고 줄곧 잠 만 잤으나 아직 누구에게 어떻게 당했는지 잘 모르는 모양이었 다. 화검상은 간밤의 그 미칠 듯하던 심경이 많이 누그러져 있어서 이제는 풍천비와의 일을 생각해보았다. 가검통은 처음에는 그저 그를 바라보기만 하더니 이윽고 말했 다. “모두들 떠날 준비를 하고 아래층 반점에 모였소. 우리도 지 금 즉시 내려가는 것이 좋겠소.” 화검상은 가볍게 미소하며 침상에서 내려섰다. “그렇게 하지, 가사제!” 아래층의 반점에 내려가자, 여러 사람들이 북적대는 가운데 한 쪽의 넓은 자리에 화산파의 사람들이 모두 모여 식사를 하고 있 었다. 여귀기와 방귀춘도 거의 무표정한 안색으로 함께 자리하고 있 었으며, 거의 오랫동안 보지 못하던 사람들도 새로 합류해 있었 다. 화검상은 그들을 보자 문득 과거의 일들이 다시 생각나 새삼 그 우울한 감회가 뇌리를 스치는 것을 느꼈다. 그들은 바로 요근래 무림맹에 나가 있었던 수석장로 성천익(成 天翼)과 희귀화(姬歸花), 그리고 얼마 전에 보았던 유귀생(劉歸 生)이었다. 이제 무림맹과 가까워져서 마중을 나온 모양으로, 그들은 이미 서로 인사까지 나누고 식사도 거의 끝내가는 상황이었다. 화검상이 가검통과 함께 다가가자 그들 모두의 시선은 갑자기 복잡하고 괴이하게 변해버렸다. 그들의 지위를 인정하지 않았을 때 화검상은 그들의 가운데에 서 움직이기가 몹시 불편했었다. 하지만 어젯밤에 풍천비와 그 흥정을 끝낸 이후, 지금은 오히 려 그 자신의 처지가 더욱 곤란해진 것 같았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과연 옳은 길을 가 고 있는 것일까……?’ 먼저 장문인 풍천비에게 다가가 공손히 인사를 올리니, 문득 풍천비는 몹시 자애로운 듯한 표정으로 자신의 옆을 가리켰다. “흠, 우선 성사백조와 사백들에게 인사를 올리거라.” 어젯밤의 그 쌀쌀하던 표정이 저렇게 바뀌다니 어이없는 일이 지만 어쨌든 상황은 더 나빠질 수 없을 것 같았다. 이어 사백조인 성천익에게 공손히 인사를 올리니, 성천익은 그 저 무표정한 기색으로 화검상을 차갑게 주시할 뿐 말이 없었다. 대신 반대쪽에 앉아 있던 풍검심이 냉랭하게 코웃음을 치며 소 리쳤다. “흥! 정말 철면피군! 어떻게 인간이 저렇게 교활하고 뻔뻔스 러울 수 있을까?” 사람들은 그녀를 제지하지 않았고, 다만 저마다 입가에 싸늘한 조소를 가볍게 떠올렸을 뿐이었다. 이번엔 사백인 희귀화에게 인사를 올리니, 그녀는 차가운 시선 으로 가볍게 미소를 떠올리더니 말했다. “오랫동안 보지 못했더니 많이 달라졌구나! 하지만 네 소식은 간간이 듣고 있었다.” 휘귀화의 현재 나이는 환갑도 넘었지만 용모는 흡사 중년여검 객과도 같아서 별호도 화산일검향(華山一劍香)이다. 밖에 대표로 나가 있는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이 그녀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화산의 여협(女俠)이며, 먼저 인사를 드린 성천익은 기실 무학의 경지가 대홍락에 올라 있는 화산파의 네 사람 가운데의 한 사람이다. 유귀생은 그저 눈살을 찌푸릴 뿐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렇게 인사가 끝나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식사를 마치고 몸을 일으켰다. 화검상과 가검통은 남은 자리에 앉아 식사를 했는데, 분위기가 살벌하여 그저 뜨는 둥 마는 둥 할 수밖에 없었다. 반점의 내부는 새로 들어온 많은 손님들로 채워져 있었고, 종 남파의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으며 금창보의 사람들도 아직 내려 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일개 문파의 사람들이 세가의 사람들보다 더욱 부지 런하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있기 마련이다. 풍검심은 이제 완전히 기력을 회복한 모양인데, 함사사영에 맞 은 화창 양소금 양낭자는 상세가 호전되고 있을까? 이런 어색하고 살벌한 상황에서는 자칫 몸과 마음이 굳어지기 쉬우므로 쓸데없는 곳으로 분주히 머리를 굴려보는 것도 그것을 막는 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식사를 마치고 나자, 녹귀보가 그에게 다가와 말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시달 야그 출력일 :: 98/10/22 ───────────────────────────────────── 제 목 : [화산문하]제 1부 3 권 제 32 장 - 2 “장문인께서 보자고 하시네.” 조금 전의 그런 어색하고 살벌하게 긴장된 상황은 얼핏 어떤 격전보다도 견디기가 어려운 것 같았다. 하지만 이미 상황이 극단에 이르러 더 나빠질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런대로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앞으로도 그렇게 하면 될 것이다. 녹귀보와 함께 태평반점을 나서는데 문득 누군가 늙수그레한 음성으로 그를 불렀다. “이보게 젊은이! 자네의 미간에 액운이 잔뜩 끼었구먼. 나에게 점을 한번 보지 않겠나?” 화검상은 액운이란 말이 없었으면 자신을 지목한다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낯선 음성이고 또한 지금의 상황에서 모든 사람들이 그에게 등 을 돌리고 있는 것같이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 액운이라는 말이 없었으면 그다지 귀가 솔깃하지도 않 았을 것이다. 길 건너의 구석진 자리에 낡은 자리를 깔고 앉은 늙고 초라한 용모의 노인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 노인은 점을 쳐준다는 문구인 그 흔한 ‘미래를 알아맞히 고’, ‘만사무불통지(萬事無不通知)’라는 등의 물건들을 전혀 갖추지 않고 심지어 점치는 도구들마저 없었지만 그 분위기는 괴 이하고 음울했다. 그 분위기는 다른 어떤 점쟁이들보다 더욱 점쟁이 같은 느낌을 주고 있었다. 화검상은 비록 처음 대하기는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늙은 매복 자(賣卜者)에게 관심이 끌렸다. “잠시 시간을 내도 되겠습니까, 사백?” 녹귀보는 다소 눈살을 찌푸렸으나 이내 차갑게 조소를 떠올리 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가 거기에서 점(占)을 배우겠다고만 하지 않는다면 흐흐, 상관없겠지.” 화검상은 그 노인에게 걸어갔다. 그 노인은 검고 칙칙한 의복을 걸치고 있었는데 머리카락은 검 은 빛이고 그것이 반쯤 검은 외투에 덮여 있었다. 쭈글쭈글한 얼굴 가운데 두 눈만이 기이하게 빛을 내며 화검상 을 보고 있었는데 입가에는 일그러진 듯한 어색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화검상은 처음에는 별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나, 노인에 게 거의 다가간 순간 갑자기 정신이 아득해지고 검은 환상과도 같은 것이 눈앞에 떠올랐다. 지금 화검상의 무공은 거의 곡선적 무공의 최상승의 중간 위치 에 있기 때문에 갑자기 그런 파탄을 느끼거나 누구에게 당한다는 것은 거의 찾아보기가 어렵다. 이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비록 순간적인 상황이고 느낌이기는 했지만, 화검상은 눈앞의 그 검고 음울한 환상이 마치 단단히 뭉쳐진 유리처럼 투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러한 것은 상당히 신비롭지만 또한 두렵고 위험하기도 하다. 사람에게서 그러한 느낌을 받는다는 것을 믿기도 어려운 일이 지만, 문득 화검상은 불과 얼마 전에 그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또 다른 사람을 만났었던 것을 기억해냈다. 화검상은 스스로의 그런 감각조차 의심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클클클, 자네의 액운은 정말 대단하군, 대단해! 이런 액운이 한 사람에게 모인다는 것도 쉽지 않은 노릇이고, 또한 여태 살아 있다는 것도 기적이로군, 클클클…….” 노인은 자신의 손가락을 꼽아보며 점을 보기 시작했다. 화검상은 그 소리에 환상에서 깨어났으며 유심히 노인을 주시 했다. 천하는 정말 넓고도 넓다. 난세가 영웅호걸들을 부른다고는 해도 이런 알 수 없는 이인 (異人)들까지 모이게 된다고는 생각할 수가 없다. 대체 이런 이인들은 또 얼마나 있는 것이며, 이들은 또한 어떤 알 수 없는 능력들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화검상은 노인을 바라볼수록 기이하게도 몸과 마음이 크게 긴 장되고 두려움이 드는 것을 느끼면서 마음을 편하고 유연하게 가 지려고 노력했다. “내가 평생 점을 쳐서 먹고 사는 동안 이렇게 불길한 상(相) 은 처음 보네. 자네, 점을 보려나? 그럼 복채를 내게! 복채는 금 백 냥일세.” 눈살만 찌푸리고 있던 녹귀보도 복채가 무려 금 백 냥이라는 말을 듣고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놀라 이쪽을 바라보았다. 이런 길거리에서의 복채는 으레 많아봐야 은자 열 냥 정도다. 그런데 은자도 아니고 금 백 냥이라니, 이건 정말 말도 안 되 는 웃기는 일이다. “클클, 자네의 액운이 너무 많아 그것을 해소하려면 그 정도 는 받아야지, 암 그렇고 말고 클클…….” 화검상은 약간 머뭇거리다가 품속에서 한 냥도 안되는 은덩이 하나를 노인의 앞에 던져주며 고개를 저었다. “나는 점을 보지 않겠소.” 이어 화검상이 몸을 돌리자, 그 노인은 황급히 웃으며 입을 열 어 그를 잡았다. “하하, 그럼 내가 공짜로 점을 봐주기로 하지. 클클, 이건 손 해지만 약간 예외라서……, 자네가 이 액운을 비켜가려면 남쪽으 로 바로 내려가게. 그리고 한 사람을 만나야지. 그는 자네와도 이 미 인연이 있었던 사람일세. 클클클……, 그게 아니라면 지금 바 로 다른 한 사람을 만나보게. 음? 그 사람도 자네와 아주 깊은 인연이 있었군? 자네는 액운이 깊어도 인연은 너무 좋아. 바로 자네가 어젯밤에 만나고자 했던 사람을 만나보게. 그녀는 바로 동쪽에 있군!” 화검상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그 노인의 얼굴을 다시 바라보았다. 아무리 용한 점쟁이라고 해도 그에 대해서 이렇게 자세히 알고 있을 수는 없다. 노인은 지금 차선책으로 어연하를 만나보라고 하는 게 아닌가? 노인은 벌써 자리를 말고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클클, 늦기 전에 서두르는 게 좋아. 죽고 나면 아무것도 소용 없는 것이지. 클클……, 오늘은 너무 많은 말을 해서 이만 가야겠 네. 다음에 또 보게 될지도 모르지, 클클클…….” 노인은 종종걸음을 옮기더니 이내 골목길 쪽으로 사라져버렸 다. 화검상은 감각으로 노인의 기척이 그 골목길의 안쪽에서 갑자 기 사라졌다는 것을 알았다. 그의 감각으로 사라졌다면 그것은 대개 두 가지의 상황을 말해 준다. 하나는 그 자리에서 완전한 귀식대법을 펼친 것이고, 다른 하 나는 그야말로 놀라운 신법으로 기척없이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는 것이다. 쓸데없이 노인이 골목 안에서 귀식대법을 펼칠 리는 없으므로 아마도 사라졌을 것인데, 대체 어떤 신법(身法)을 펼쳐 사라진 것 일까? ‘그녀를 찾아보라고? 흐흐, 그런들 무엇 하겠는가? 부질없는 짓이다. 나의 이 길이 죽음의 길이라고 해도, 설령 그렇다고 해도 상관은 없겠지. 이건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이니까. 피한다고 모든 일이 달라지겠는가?’ 화검상은 태평반점의 뒤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곳에 도열해 있는 제자들과 하나의 마차가 있었는데, 녹귀보 는 그 마차의 안쪽을 가리켰다. “들어가보게!” 도열해 있는 사람들은 대개 차갑게 안색을 굳히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 풍검심과 악검림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녀들의 눈빛은 완전히 달랐다. 상황은 어젯밤 협상 이후 달라진 것 같기도 하고 달라지지 않 은 것 같기도 했다. 마차의 안으로 들어가니 풍천비가 혼자 그곳에 앉아 있다가 그 를 주시했다. 그의 시선은 냉혹해 보였다. 이 마차는 별로 특이할 게 없는데 그 내부는 이상스럽게도 마 치 작은 서재처럼 꾸며놓았다. 책은 없지만 가운데 서탁이 있고 지필묵이 있었다. 화검상은 그런 것들을 보는 순간 풍천비의 의도를 이내 파악할 수가 있었다. 그는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을 가능한 한 빨리 얻으려는 것이 다. 불행하게도 화검상은 이미 그의 의도대로 해줄 생각이었다. “더 필요한 것은 없느냐?”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하고 야그 출력일 :: 98/10/22 ───────────────────────────────────── 제 목 : [화산문하]제 1부 3 권 제 32 장 - 3 풍천비의 시선은 이 순간 칼날처럼 광채를 뿌리고 있었다. 그것은 그가 공력을 사용하고 있다는 의미이며, 즉 이 마차 내 부의 음파를 차단하여 밖으로 흘러나가지 않도록 하고 있는 것이 다. 화검상은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만하면 충분합니다.” 좋은 사람이건 나쁜 사람이건 그에게 장애만 일으킬 것이다. 풍천비의 눈빛은 일순 괴이하게 변했다. “얼마나 걸리겠느냐?” 화검상은 잠시 생각해보다가 대답했다. “보름 정도면 가능할 것입니다.” 풍천비는 대뜸 눈살을 크게 찌푸렸다. “뭐라고? 지금 나와 농담을 하자는 거냐? 내가 보기엔 사흘이 면 족할 것이다.” 화검상은 마음이 급한 풍천비의 심경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만일 그대로 베껴 쓰는 것이라면 단 하루도 걸리지 않을 것 입니다. 그러나 저는 머리도 그다지 좋지 못하고 암기력도 뛰어 난 편이 아닙니다. 다만 체득을 한 것인데, 암기력에 자신을 가지 지 못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더듬어서 나름대로의 비급을 완성하 려고 합니다. 따라서 보름은 그다지 긴 시간이 아니고, 장문인께 서도 만족하시게 될 것입니다.” 풍천비는 날카롭게 화검상을 노려보다가 몸을 일으켰다. “만일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너는 나를 원망할 수 없을 것이 다!” ‘반드시 만족하게 될 것이오.’ 화검상은 마차 밖으로 나가는 풍천비의 등을 바라보며 잠시 그 렇게 중얼거렸다. 기실, 풍천비는 처음에는 당연히 만족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 내용은 곡선적 무공을 말하는 것이어서 이해할 수 있을 듯 해도 결국은 이해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화검상이 일단 안심하는 한 가지 요인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풍천비가 그의 무공을 배우기 위해서는 항상 그에게 물어야 하 는 것이고, 따라서 화검상을 죽일 수 없음은 물론 대우를 해줘야 하는 것이다. 결국 그렇게 하여 갑자기 화검상이 변고를 당하지 않는다면 풍 천비는 점차 만족을 더해가게 될 것이다. 마차가 어느덧 달리기 시작했다. 사방이 밀폐된 마차의 안이라 누가 마차를 몰고 있는지는 알 수 가 없지만, 아마도 기척으로 보아 녹귀보인 것 같았다. 화검상은 즉시 모든 사항들을 접어두고 마음을 가라앉히고 정 신을 몰입하여 비급의 제작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 비급의 제작은 정말 쉽지 않다. 화검상 자신도 아직 곡선적 무공에 대해 완전히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러하므로, 그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이 알고 있는 한도 내에서 화산파의 무공을 적용시켜 그 이치를 하나하나 저술해가 는 수밖에 없었다. 대가의 구도를 정함에 있어서 그는 우선 심법(心法)을 위주로 하고, 거기에 따른 내공(內功)의 운용(運用), 그리고 백타(白打)와 병기무예(兵器武藝)를 포괄하여 하나의 비급으로 엮어내기로 했 다. 그는 가능하면 쉬운 말로 저술을 하려고 하겠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부분도 많을 것이다. 백타에 속하는 장풍(掌風)과 지법(指法) 따위는 그 초식(招式) 의 설명으로 인해 분량이 많아지더라도 역시 심법에 따르는 것이 기 때문에 역시 심법이 위주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 비급의 제목은 무엇이라고 할까? 이전에 그러한 비급이 있었다고 해야 하니 좀더 그럴듯하게 < 화산진무비요(華山眞武秘要)>라고 하는 것이 제법 괜찮을 것이 다. 일단 그렇게 제목부터 적어놓고 나서, 화검상은 비급의 세부적 인 내용에 대해 파고들기 시작했다. 비급을 만드는 데 있어서 내용에 착오가 있어서는 안 되는 일 이므로 많은 신중을 기해야 하는 것이다. 화검상이 그 내용에 대해 몰두하여 무아지경에 빠져 시간이 흐 르는 동안 마차는 쉬지 않고 계속 달렸다. 이미 복우산(伏牛山)의 산중에 들어서서인지 마차는 몹시 구불 구불하고 험한 길을 가고 있었고 그다지 빠르게 나아가지도 못했 다. 그저 신법을 펼쳐 나아간다면 정오 무렵에는 정무맹(正武盟)에 도착하겠지만, 상황으로 보아 좀더 시간이 걸릴 것이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문득 마차가 정지하고 잠시 후에 가검통이 삐죽 마차의 안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는 약간의 물과 건량을 넣어주며 힐끗 내부를 살피고는 말했 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때가 되었으니 식사나 하면서 하도 록 하쇼.” ‘벌써 점심 때인가?’ 이 비급을 제작하는 것은 대단한 심력(心力)을 소모하는 것이 라, 화검상은 비록 아직 내용을 한 자도 쓰지 못했지만 심신이 매우 피곤해진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그의 대단한 무공을 무력화시킬 정도로 그 곡선적 무공 의 깊은 이치를 파헤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화검상은 쓴웃음을 지으며 가검통이 들이밀고 간 음식들을 먹 고 난 뒤에 잠시 운기조식을 했다. 그는 가능하면 운기조식 때 드러나는 모습에 의해 자신의 무공 을 노출시키지 않으려고 가볍게 하기 위해 주위를 기울였다. 그런데 이때 또다시 그의 무공은 진보하여 공력이 뜻대로 더욱 유연해지고 있었다. 그러한 현상은 이미 곡선적 무공이 지혜의 증장과 함께하는 것 이라는 점을 화검상도 알고 있던 바였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사라 야그 출력일 :: 98/10/22 ───────────────────────────────────── 제 목 : [화산문하]제 1부 3 권 제 33 장 개과천선(改過遷善) 제 33 장 개과천선(改過遷善) 화검상의 운기조식은 예상보다 빠르고 간단히 끝났지만, 그 점 심 식사의 휴식 시간 또한 빨리 끝났는지 마차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화검상은 달리는 마차 속에서 이어 잠시 더 생각을 해보다가 이윽고 붓을 들어 두루마리의 흰 종이 위에 글을 써나아가기 시 작했다. 첫번째 문구는 제법 그럴듯하게 전해져내려온 것이라는 내용이 들어 있는 경구였다. 이 글을 인연(因緣) 있는 자에게 남긴다. 이것은 우리 화산파 (華山派)의 가장 깊은 부분의 무학(武學)이다. 제법 그럴듯한 생 각이나 착상이 떠올라도 섣불리 그것을 따라가면 안 된다. 그것 은 곧 잘못된 길로 접어드는 것이다. 망령되이 이 내용을 함부로 인연없는 사람들에게 전하지말 것이며, 심법(心法)의 내용을 충분 히 터득한 이후에야 비로소 다음으로 움직여라. 이 글은 무학의 진본(眞本)이니, 이것에 의하면 능히 모든 주화입마(走火入魔)에 서 벗어나 뜻대로 다스리고, 진정한 무학의 길로 들어서게 되리 라. 분명한 깨우침이 있은 연후에야 그것은 비로소 빛을 발하리 라. 화검상이 손수 창안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부각시켜야 하기에 그 내용에는 다소 과장과 허황됨이 첨가되었다. 이것은 그 의미에서 나쁘지 않고, 또한 본론이 아니므로 상관 은 없을 것이다. ‘누구라도 지나치게 자신의 무학견해를 과신하는 사람은 자칫 이 경구를 무시하고 스스로의 해석에 의존하려고 할지도 모른다. 혹시, 풍천비도 그렇게 하지 않을까?’ 화검상은 문득 붓을 놓고 소름이 오싹 끼치는 듯한 느낌에 젖 어들었다. 만일 풍천비가 경구를 무시한다면 그라는 존재도 불필요하게 생각할지도 모르는 일이 아닌가? 그리고 이어지는 상황의 전개는 화검상에게 더욱더 불리해질 뿐이다. 화검상은 잠시 그러한 것들을 생각해보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 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이미 이 길로 접어들었다. 지금에 와서 돌이킬 수는 없 다. 이미 그런 위험도 각오한 상황이 아닌가?’ 그래도 지금의 시점에서 한 가지 희망을 느끼게 해주는 것은, 비급을 제작하면서 생각을 거듭하는 동안 그의 곡선적 무공에 대 한 지혜가 증장하여 그의 무공도 증진되어간다는 사실이었다. 결과적으로 그의 무공이 크게 증진된다면 장차 어떤 일이 생겨 도 그것이 유력한 변수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화검상은 다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본문의 제작으로 들어갔다. 이 본문의 제작은 더욱 시간과 심력이 소모되었다. 그저 생각하기에 간단히 넘어갈 수 있을 듯한 내용도 막상 저 술을 하다 보면 이내 미세하고 전혀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문 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는 그 미처 알아두지 못한 부분들을 반드시 다시 깊이 생각 하여 깨우친 뒤에 넘어가야 했다. 불과 얼마 적지도 못했는데 이윽고 마차의 속도가 느려지더니 주위의 기척이 요란해지고 드디어 마차가 멈춰섰다. 화검상은 이 부근에서 마차가 곧장 나아갔다는 점 등을 상기하 여 아마도 정무맹에 당도한 것이리라고 생각했다. 그는 기왕이면 정무맹을 살펴보고 싶었지만 이대로 가만히 풍 천비의 행동을 지켜보기로 했다. 상황이 위험할수록 더욱 모든 일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것이 다. 마차가 정지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듯하더니 이윽고 마차는 다시 방 향을 돌려 천천히 나아가기 시작했다. 한참 후에 마차는 다시 정지했는데, 문득 풍천비가 불쑥 안으 로 들어섰다. 그는 서탁 위를 바라보고 잠시 못마땅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밖을 가리켰다. “다 왔으니 잠시 내려서 쉬도록 해라!” 화검상은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너무 많은 심력을 소모하여 창 백한 안색으로 미소를 짓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마차에서 내렸다. 풍천비는 그가 쓴 내용을 검토하는지 아직 마차 안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곳은 아주 넓게 닦여진 작은 평원이었다. 여름철이라 풀이 무성할 테지만 공사를 마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듯 평원에는 풀들이 거의 없고 바닥도 울퉁불퉁하며 누런 먼지들이 가득했다. 그 넓은 땅위에 놀랍게도 많은 견고한 임시 건축물들이 가득 지어져 있었고, 사람들이 분주히 오가고 있었다. 무공이 있다고 재주까지 겸비하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미 목 수 등을 고용하여 무공의 힘을 빌려 이런 커다란 공사를 이룩한 것이 틀림없었다. 눈에 익거나 다소 눈에 익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일행을 영접 하고 있었고, 더러 화검상을 차갑게 주시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를 모르는 척했다. 이 급조한 건축물들의 사이에는 어디엔가 역사가 제법 오래된 정무맹(正武盟)의 건축물들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심력을 많이 소모하여 화검상도 굳이 여러 사람들을 상대하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는데, 문득 녹귀보가 다가와 다시 그를 인도 했다. 화산파의 수백 명이 거처할 이 건축물들은 거의 화산파의 본산 (本山)을 흉내낸 것 같기도 했는데, 녹귀보가 데려간 곳은 중앙에 있는 바위를 깎아 만든 견고한 건축물의 앞이었다. 그 내부는 임시로 만든 대청과도 같은 곳으로, 화검상이 따라 들어가 자리 하나를 차지하고 앉자, 녹귀보는 음험한 표정으로 웃는 듯 마는 듯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곳에서 기다리게. 뒷간은 근처로 나가 아무 곳에나 볼일을 보면 되고, 별다른 지시가 있을 때까지 멀리 나가지는 말도록 하 게.” 녹귀보가 이어 밖으로 사라진 이후 아무도 안으로 들어오지 않 았고, 실내는 너무도 조용했다. 화검상은 처음에는 앉은 자세 그대로 운기조식을 하여 기력을 회복시켰지만 금방 그 일이 끝나자 답답하기도 하여 주위로 귀를 기울였다. 그것은 이른바 천청대법(天聽大法)이라는 것으로 가까운 곳이 라면 남의 전음입밀도 엿들을 수 있는 기법이었다. 아무도 이 대청으로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주위의 건물들에는 새로 온 사람들이 부산하게 짐을 정리하는 소리와 온갖 대화 등 이 어울려 시끌벅적했다. 화검상은 그들의 대화를 듣고 나름대로 현 무림의 정세 등에 관해 견문을 넓히게 되었지만, 이어 시간이 흐르자 풍천비에 대 해 이상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대체 풍천비는 벌써 한 시진 이상 지나도록 왜 그를 보러 오지 않는 것일까? ‘나는 이미 그들과 부딪히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너무 시간 이 지체되니 일단 몸을 숨기고 주위를 살피도록 할까?’ 그때, 문득 녹귀보가 다시 안으로 들어와 음험하게 웃으며 말 했다. “자네, 시장하지 않나?” ‘후후후, 지금까지 기다리게 해놓고 시장하지 않냐고? 이건 시간을 벌려는 속셈이로군!’ 화검상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보다 방사숙을 좀 불러주십시오.” 녹귀보는 눈살을 다소 찌푸렸다. “방사제를? 그는 지금 매우 바쁘네. 음……, 하지만 일단 가서 얘기나 해보지. 그가 오지 않을지도 모르니 기다리진 말게.” 화검상은 웃으며 말했다. “방사숙께 이렇게 전하십시오. 그 병(病)은 지금 돌보지 않으 면 좋지 않다고요. 그러면 아마도 오게 될 것입니다.” 녹귀보는 날카롭게 화검상을 쏘아보다가 이내 말없이 나갔다. 이윽고 방귀춘이 대청 안으로 들어온 것은 그로부터 이 각여의 시간이 흐른 후였다. 방귀춘은 햇빛을 받아서인지 안색이 이전보다 더 거뭇했고, 게 다가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는 것 같았다. “왜 날 찾았느냐?” 화검상은 웃으며 자리에 앉은 채로 대꾸했다. “내가 사숙을 찾은 것이 아니라 실은 사숙이 날 찾은 것이지 요. 환자는 늘 적당한 의원을 구하기 마련이니까요.” 방귀춘은 오만상을 찌푸리며 화검상을 주시했다. “너는 그럼 내가 환자라는 말이냐?”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시달 야그 출력일 :: 98/10/22 ───────────────────────────────────── 제 목 : [화산문하]제 1부 3 권 제 33 장 - 1 화검상은 고개를 끄덕였다. “환자가 아니라면 사숙은 이곳에 오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 병에 대해서 나만큼 잘 알고 있는 사람을 찾기도 어려울 테니까 요.” 방귀춘은 그 말에 천천히 걸어와 화검상의 앞에 섰다. “듣자니 너는 마음을 돌려 개과천선하기로 했다던데, 어째서 감히 내 앞에서 일어나지도 않느냐?” 화검상은 웃으며 대꾸했다. “나는 지금 중요한 대목을 생각하느라 자리를 옮기거나 마음 을 산란하게 할 수도 없습니다. 그것은 사숙의 병을 치료하는 데 도 영향이 있지요. 지금은 그저 한 의원의 앞에 와 있다고 생각 하십시오.” 방귀춘은 눈살을 크게 찌푸렸다. “네가 정말 나의 증상에 대해 알고 있단 말이냐?” 화검상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비록 의원은 아니지만 무공과 관련된 그러한 증상에 대 해서는 어느 정도 잘 알고 있습니다. 사숙은 지금 진기(眞氣)의 유통은 원활한 편이나 더위에 민감해지고 땀이 솟아 기혈(氣血) 이 조금씩 밖으로 소진되어가고 있습니다. 지금의 상황이 험악한 만큼 사숙은 이번의 격전에서 무사하려면 반드시 그 병을 고쳐야 하며 시일이 흐를수록 더욱 나빠져서 갑자기 주화입마를 초래할 지도 모릅니다.” 방귀춘은 이맛살을 찌푸리더니 냉소했다. “내가 주화입마에 걸린다고? 흥, 그래, 네놈은 무학의 기초도 모르느냐?” 화검상은 손을 내저었다. “그건 보통의 경우입니다. 사숙은 이미 전신의 경맥(經脈)에 나쁜 상처를 입어서 진기가 엉뚱한 방향으로 새어나가고 있습니 다. 만일 그것이 역정되어 본류(本流)가 그런 쪽으로 내닫는다면 전신의 경락은 뒤집어집니다. 그것이 바로 생사현관을 타통하고 도 주화입마를 당하게 되는 경우입니다.” 방귀춘은 문득 소매를 들어 이마를 훔쳤다. 기실 그는 어제 저녁의 그 일로 인해 갑자기 땀을 잘 흘리는 병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무림인들은 웬만한 경지에 오르면 여름에 거의 땀을 흘리지 않 는 법이다. 방귀춘은 겉으로 창피스럽기도 하고 근심스럽기도 하여 은근히 여러 번이나 조식을 해보았으며 이윽고 어딘가 이상이 있다는 것 을 발견했다. 아직 화검상의 말대로 진기가 새어나간다는 사실을 알아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고민하고 있던 중에 연락이 와서 이리로 오게 되었던 것이다. 무림인에게 있어 무공은 생명과도 같고 또한 주화입마는 그 천 적이나 다름없다. 그는 비록 화검상을 찢어죽이고 싶도록 미워하고 있지만 일단 생각을 거듭하다가 일을 제자들에게 맡겨두고 달려오지 않을 수 가 없었다. 방귀춘은 신경질적으로 손끝을 떨었다. “그래, 네가 나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화검상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칠 수 없다면 부르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방귀춘은 코방귀를 뀌었다. “흥! 내가 네놈을 어찌 믿을 수가 있겠느냐?” 화검상은 다소 엄숙해진 안색으로 말했다. “방사숙을 살린 사람은 바로 저입니다. 그런 제가 또 무슨 목 적으로 방사숙을 해치겠습니까? 지금 방사숙이 그냥 돌아가셔도 무방합니다. 다만 제가 방사숙을 고칠 수 없게 되는 것뿐이니 까.” 무림인에게 있어서 증진되어도 부족할 공력이 자꾸만 새어나가 고 급기야는 주화입마를 부를 수도 있다는 말은 목에 박힌 가시 처럼 껄끄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방귀춘은 그냥 나갈 수도 없지만 정작 고쳐달라고 할 수도 없 어서 다소 머뭇거렸다. 그도 기실 화검상의 무공이 아주 비상한 점이 있고, 또한 장문 인이 풀지 못한 혈도를 아주 간단히 풀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 문이다. 화검상은 그런 그의 모습을 보자 즉각 신형을 움직였다. 그의 신형이 의자 위에서 환영처럼 사라지는가 싶었는데 어느 새 방귀춘의 전신을 수십 개의 손가락과 신형(身形)이 가득 에워 싸고 있었다. 방귀춘은 그만 놀라 엉겁결에 반격을 하려고 했으나 일순간 시 큰한 느낌과 함께 전신이 마비되었고, 뜨겁고 부드러운 기운이 전신에 가득 차는가 싶더니 정신이 아득해졌다. ‘이, 이 녀석이……?’ 방귀춘은 황급히 정신을 차리려고 했다. 한데 어느새 화검상은 다시 그 의자 위에 앉아 있었고 뭔가 작 은 종이 위에 글씨를 써넣고 있었다. 방귀춘의 몸도 어느새 신기하게도 자유로워지다 정신이 맑아졌 고, 오히려 몸은 조금 전보다 쾌적해졌다. 방귀춘은 이마를 만져보고 더 이상 땀이 흐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한 순간에 화검상은 그가 반항도 못하도록 해놓고 그의 몸을 치료해버린 것이다. 방귀춘은 다소 어리둥절해 하다가 오만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네놈은 왜 날 치료한 것이냐?” 화검상은 바쁘게 여전히 글을 적어넣으면서 대꾸했다. “그야, 내가 그 동안 잘못한 점도 있고 해서 사과의 뜻으로 그렇게 한 것이오. 하지만 기실 지금 그건 완전히 치료된 것이 아니라 그대로 두면 또 이전과 같이 될 겁니다. 이것은 마치 섭 혼대법(攝魂大法)처럼 스스로 작용하여 습관성을 낳게 되기 때문 이죠.” 말과 함께 화검상은 드디어 다 적은 글을 한번 검토해본 연후 에 방귀춘에게 건네주었다. “앞으로 몸에 조금이라도 이상이 생기거나 하면 언제라도 몸 을 땅속에 머리만 내놓고 묻되, 이 심법(心法)을 암송하고 깨우쳐 서 운기(運氣)해야 합니다. 그러면 처음에는 시간이 길어도 나중 에는 짧아지게 될 것이며, 설령 병이 재발하지 않는다고 해도 자 주 계속 한다면 이것은 무공의 증진에 큰 효험이 있게 될 것입니 다.” 방귀춘은 그 종이를 받아들어 한번 읽어보더니 오만상을 찌푸 리며 말했다. “이건 내가 나중에 알아서 판단할 일이다. 어쨌든 네놈이 나 를 다 치료해주다니 희한한 일이로구나. 또 다른 볼일이라도 있 느냐?” 화검상은 곡선적 내공의 내용에서 응용이 쉬운 것을 뽑아서 그 에게 적어준 것이었다. 만일 다른 사람에게 주었다면 그는 믿음이 없어서 전심전력으 로 노력하지 않을 것이므로 실패할 것이다. 그러나 이 방귀춘은 믿음은 없어도 언젠가 한번은 절박한 심정 으로 시도를 해볼 것이고 점차로 믿음도 갖게 될 것이니, 성과가 있을 수도 있다. 그것은 그야말로 전화위복이라고나 할까? 그가 굳이 땅속 운운한 것은 우선 땅의 기운을 흡수한다는 점 이외에도 꼼짝 못하고 구결의 암송에 전념할 수 있게 하기 위함 이었다. 화검상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없습니다. 가서 일보십시오.” 방귀춘은 날카로운 시선으로 화검상을 잠시 바라보더니 그 종 이를 품속에 집어넣고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는 짐짓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듯하지만 그 종이를 결코 소홀히 잃어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장문인이 화검상에게서 비급을 얻어내려고 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방귀춘이 사라진 이후에도 그저 답답하고 무료한 시간이 흘러 화검상은 운기조식을 하면서 비급에 관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문득 운기조식을 하면서 그런 생각을 하면 그 효과도 좋 고 심력이 탈진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마침 새로운 이치에 접하게 되어 화검상은 흥미를 갖고 몰입하 게 되었고, 더 깊고 원만하고 분명하게 곡선적 무공에 대해서 파 고들게 되었다. 그러는 가운데 이제는 시간이 빠르게 흘러 저녁 무렵이 되었 다. 주위의 환경이 그래서인지 이곳의 황혼은 왠지 살풍경하고 피 비린내를 느끼게 한다. 화검상이 잠시 생각을 중단하고 깊은 상념에 잠겨 있을 때, 문 득 한 사람이 가벼운 기척과 함께 안으로 들어왔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시달 야그 출력일 :: 98/10/22 ───────────────────────────────────── 제 목 : [화산문하]제 1부 3 권 제 33 장 - 2 바로 악검림(岳劍林)이었다. 화검상은 갑자기 그녀가 나타난 것을 보자 약간 놀랐고 어딘가 마음이 산란해졌으며 불길한 예감 같은 것을 느꼈다. 하지만 이미 깨끗한 의복으로 잘 차려 입은 그녀는 오히려 아 주 생기발랄한 표정이었다. “화사형, 그 동안 지루했죠? 어서 저를 따라오세요! 제가 방으 로 안내해드릴게요.” 화검상은 갑자기 들어온 그녀에 대해 묻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이내 할 수 없이 그만두고 입가에 미소만은 떠올린 채 몸을 일으 켰다. “장문인이 시키던가?” 악검림은 다소 멈칫하며 화검상을 바라보다가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이 일은 제가 자원한 거예요.” 악검림은 이어 화검상을 안쪽으로 인도했는데, 대청을 나가자 하나의 견고한 석조 건물이 있었고, 그 문안으로 들어서자 작은 마당을 지나 제법 잘 지어진 가옥이 있었다. 이 가옥은 누가 사용하게 되는 것일까? 그것은 거의 생각해볼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 가옥의 안으로 들어가자 작은 거실이었고 그 거실의 끝에는 작은 제단 같은 것이 있었다. 악검림은 주저없이 그 제단의 앞에 있는 매화 문양을 몇 번 순 서에 따라 찔렀는데, 일순 아래쪽에 숨겨진 문이 열리며 작은 계 단이 나타나는 것이었다. 그 계단의 안쪽은 이미 희미한 불빛이 밝혀져 있었다. “바로 여기예요!” 악검림은 환하게 웃으며 먼저 계단의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이 장문인의 처소는 매우 특별하게 만들어진 것이 분명했다. 유사시의 일을 논의하기 위해 밀실이 있다는 것도 당연하다. 다만 지금 이러한 것들을 화검상이 사용하게 되었으니 그것은 다소 우스꽝스럽다고 아니할 수가 없었다. 이 밀실이 제법 잘 꾸며졌지만 지상의 가옥보다 나을 리는 없 다. 그것은 두 개의 방으로 되어 있었는데, 하나는 입구와 통해 있 는 공간이고, 다른 하나는 거기에서 다시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하 는 하나의 완전한 밀실(密室)이다. 첫번째의 방에는 여러 가지 우선 필요한 물품들이 여기저기 놓 여 있었고, 한쪽에 물이 흐르고 있었으며 대소변을 처리할 수 있 는 장소도 있었다. 다른 밀실에는 보다 조용하고 깔끔한 분위기가 눈에 띄었는데, 그가 마차에서 쓰던 눈에 익은 두루마리와 서탁 등이 밀실의 중 앙에 놓여져 있었다. 화검상은 그것을 보자 이내 누구에게 묻지 않아도 상황을 다 짐작할 수가 있었다. 그는 이제 앞으로 얼마간 이곳에 틀어박혀서 나가지도 못하고 비급의 작성에만 몰두해야 할 것이다. 화검상은 이에 그만 어이가 없을 뿐만 아니라 웃음이 나왔다. 자신은 이제 무슨 이상한 사람처럼 되어 그들의 수작대로 움직 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별로 예상 못한 일들도 아니고 차라리 조 용한 점도 있어서 상관없다고 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갑자기 그들이 이 일에 악검림을 개입시킨 것은 어딘가 몹시 불길하게 느껴졌다. 그 두루마리 등도 화검상이 쓰다 만 그대로였다. 화검상이 주위를 둘러보고 있자 악검림이 다가와서 다정하게 말했다. “시장하죠? 내가 금방 가서 식사를 가져올게요.” 화검상은 잠시 시선을 돌려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십중팔구 그녀는 모든 일을 잘 모르고 있다. 화검상으로서는 당장 그녀에게 이 일의 위험성을 말해주고 자 신을 멀리하도록 권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마도 그녀는 잘 이해하지도 못할 것이며 설령 이해한 다고 해도 풍천비는 그녀의 그 새로운 뜻을 받아주지도 않을 것 이다. 차라리 그녀가 거의 모르고 있는 것이 그녀 자신을 위해 더 낫 지 않을까? 풍천비가 만일 어떤 결정을 내렸다면 그것은 어찌 되든 그녀에 대한 상황이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을 것이며 또한 자칫 별로 위험하지 않는데도 오히려 더욱 긁어 부스럼을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화검상은 한 순간 복잡한 마음의 갈등을 일으키고 있었건만 악 검림은 오히려 안색이 빨개진 채 그를 마주보며 이런 말을 하고 있었다. “내가 앞으로 시중드는 일이 불편할 것 같아요? 하지만 내게 다시는 위험하니까 떠나라는 말은 하지말아요. 난 이 험악한 세 상에서 그다지 오래 사는 일에 연연하고 싶지는 않아요. 저는 이 미 집안에서도 내놓은 자식이 되어버린걸요. 나는 사형의 시중을 들어주는 일이 어떤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이 될 거라고 믿어 요.” 화검상은 그만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의 말을 들어보니 상황은 더욱 심각한 편이라고 할 수 있 었다. 그녀는 그가 아무리 사실을 말해도 오히려 더욱 그에게 따라붙 을 것이 아닌가? 화검상은 그만 한숨을 내쉬며 웃으면서 생각했다. ‘그래 이것도 인연이라면…….’ “본파의 제자들은 지금 상황이 어떻지?” 악검림은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본파의 사람들이 모두 도착했어요. 이곳으로 오던 도중 모두 오십여 명이 죽고 백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하더군요. 그 덕분 에 본파에 잔류하던 사람들도 모두 이곳으로 왔다고 해요.” 도중에 녹림맹의 공격을 받아 그 정도의 피해가 있었다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본파에서 잔류하던 인원들까지 모두 이곳으로 왔다는 말을 듣고 화검상은 다소 심각해졌다. ‘모두?’ 화산파에 있어서 화산은 아주 상징적인 것이다. 한데 그곳마저 비워둘 정도라면 풍천비는 뭔가 중대한 일을 벌 이기 위한 결단을 내린 것이기 때문이다. 화검상은 일단 그런 생각을 접어두고 웃으며 말했다. “어쨌든 앞으로 나 때문에 악사매가 쓸데없는 고생을 하게 되 었으니 이걸 어쩌지?” 악검림은 정색을 하고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쓸데없다는 말은 그만둬요. 우리가 밖으로 나가 적들과 싸워 몇 명이나 몇 십 명을 죽인다고 해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거예요. 나도 아마 그 가운데 목숨을 잃게 될지도 모르죠. 나는 그런 일은 오히려 별로 가치가 없다고 생각해요. 정말로 가치있 는 일은 훌륭한 화사형의 시중을 들어드리는 일이죠.” ‘이 사매가 언제부터 이렇게 나를 떠받들게 되었다지?’ 화검상은 그만 내심 실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하지만 항상 조심하고 무엇보다도 악사매 자신의 안전 에 대해 철저히 신경을 써야 해, 알겠지?” 악검림은 다소 상기된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화사형.” 악검림은 이내 음식을 가지러 밖으로 나갔다. 화검상은 먼저 주위를 정리한 다음에 서탁 앞에 앉아서 비급을 만들 마음의 준비를 했다. 이윽고 잠시 후에 악검림은 음식을 가지고 돌아왔는데, 이번엔 혼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두 사람을 대동하고 있었는데 그 두 사람을 본 순간 화 검상은 그만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설 뻔했다. 바로 다름아닌 그 두 사람은 그의 모친인 화산신녀(華山神女) 풍귀월(馮歸月)과 여검월(余劍月)이었던 것이다. “어, 어머니!” 화검상이 놀라 입을 딱 벌리며 몸을 일으키자, 풍귀월은 악검 림과 여검월을 밖으로 나가 있으라고 한 다음에 문을 닫고 얼굴 에 씌워진 흰 면사를 벗었다. 화산신녀 풍귀월. 풍귀월은 다소 수척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빼어난 미모와 신비 로운 듯한 기질을 가지고 있었고, 아마도 그러한 모습에 그의 선 친도 반하게 되었으리라. 화검상으로서는 실로 오랜만에 대하는 모친의 얼굴이었지만 과 거의 모습과 거의 달라진 것이 없는 것 같았다. 모자지간의 인연을 끊는다는 말은 진실이 아니었다고는 해도 화검상은 이렇게 갑자기 모친을 다시 뵙게 될 줄은 미처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화검상은 잠시 모친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일순 내심으로 가볍 게 탄식하며 이제는 기억마저 희미해진 선친의 얼굴을 떠올려보 지 않을 수가 없었다. 풍귀월은 잠시 화검상을 마주 바라보다가 문득 전에 듣지 못하 던 부드러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내 너와 모자간의 인연을 완전히 끊으려고 했지만, 듣자니 네가 외조부님을 도우며 개과천선하기로 했다더구나. 그래서 내 일부러 너를 만나러 온 것이다.” 화검상은 일순 복잡하고도 많은 감회에 빠져들었다. 풍천비가 일부러 그의 모친을 보낸 것은 능히 그 이유를 알 만 했다. 그는 화검상이 혹시 비급에 수작을 부릴까봐 딸을 보내 화검상 을 묶어두려는 것이다. 하지만 어쨌든 화검상으로서는 지금 그런 생각보다 지난날의 온갖 고통과 회한, 번뇌 등이 한꺼번에 떠올라 가슴이 벅차고 한 편으로는 우울하고 또 한편으로는 미어지는 것에 몰두할 뿐이었 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다시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도 나는 이제 드디어 모친을 뵙게 되었다. 이제는 여한 이 없어지고 마음도 편안해지는구나.’ 기실 화검상이 풍천비에게 항복함으로써 얻은 것이라고는 이 것, 바로 이것 하나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화검상은 갑자기 세상을 다 얻은 듯하고 여한이 없어지 고 자신의 해야 할 일을 다한 듯한 편안함을 느끼는 것이었다. 다른 것들은 아무래도 좋을 듯했으며 단지 당장 달려가 모친의 품에 안기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뿐이었다. 그는 공연히 눈시울이 붉어지고 눈물이 핑그르르 도는 것을 느 꼈다. “네가 무슨 비급을 만들기로 했다던데 그게 사실이냐?” 화검상은 모친의 태도가 여전히 사무적이기 때문에 가능한 침 착하려고 노력하며 대답했다. “예, 우연히 그런 무공을 알게 되어 비급을 만들어 외조부님 께 드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풍귀월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다가 미소하며 말했다. “잘 생각했다. 한데 그런 일로 또 모두를 속이거나 실망시키 지는 않겠지?” 화검상은 이번엔 다시 모친의 미소마저 보게 되자 그야말로 전 신이 구름 위에 둥둥 뜨는 듯하고 아득해지는 것 같았다. 그는 순간 모친의 얼굴의 저 미소만 볼 수 있다면 그 어떤 일 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화검상은 자신을 주시하는 모친의 시선을 의식하고 얼른 정신 을 차려 서둘러 대답했다. “예, 제가 만일 비급에 조금이라도 구결을 다르게 하거나 속 인다면 어머님의 자식이라고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순간, 풍귀월은 만면에 환한 미소를 떠올리며 다가와 화검상을 따뜻하고 부드럽게 안아주었다. “좋다! 너는 실은 착한 내 아들이었구나. 이 어미의 무심함을 용서하거라. 네가 이렇게 바른 사람이 되니 이 어미는 더할 나위 없이 기쁘구나.” 화검상은 드디어 모친의 살과 아름답고 부드러운 향취, 그리고 따뜻한 포옹에 접하게 되자 그야말로 너무나도 즐거운 충격을 받 아 그만 머리가 크게 혼란스러워지고 꿈속을 헤매는 것처럼 몽롱 해지게 되었다. 그의 무공은 비록 대단히 높아졌지만, 모친의 이러한 포옹은 그런 그의 무공을 대번에 무력화시키고 어린아이로 만들어버리는 것 같았다. 그러한 갑작스런 즐거움의 홍수는 일면 어딘가 괴이한 고통으 로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화검상은 그것이 아무리 커다란 고통이라고 해도 그 속 에 묻혀서 헤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나도 좋고 기뻐서 그는 그만 그 자리에서 소리내어 엉엉 울고, 그것이 아니라면 눈물이라도 원없이 흘리고 싶었다. 그러나 이때 이상하게도 금방이라도 봇물처럼 터질 듯하던 감 정은 왠지 맥없이 스러지는 것이었다. 화검상은 다소 어리둥절해 하기는 했지만 그도 이내 그런 것을 잊어버리고 모친을 마주 포옹하며 그토록 원했던 그 따뜻한 정을 마음껏 즐겼다. “어머니, 오히려 제가 불효자식이었습니다.” 풍귀월은 문득 포옹을 풀고 떨어져서 그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 보더니 미소하며 말했다. “그래, 네 무공이 대단해졌다는 얘기도 들었다. 너의 무공이 외조부님과 비슷하다고 하더구나. 그게 사실이냐?” 화검상은 이제 마음이 몹시 흐뭇한 표정이 되어서 대답했다. “예, 물론 제가 외조부님과 비슷할 수는 없지요. 하지만 이렇 게 단시일 내에 무공이 급증되었으니, 그 비결을 외조부님도 아 시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물론 어머님께도 가장 정성들인 비급을 만들어서 올리겠습니다.” 풍귀월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 것을 따로 만들 필요는 없다. 네가 비급을 만들 때까지 나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가장 먼저 읽어보도록 하겠다. 그 래도 물론 괜찮겠지?” 화검상은 웃으며 대답했다. “어머님께서 가지 않으시고 이곳에서 기다려주신다면 그 이상 제게 좋을 것은 없지요. 하지만 지금 저기 적어놓은 첫머리의 글 처럼 이 비급은 난해해서 서둘러 연마하시면 안 됩니다. 반드시 많이 생각을 해봐야 하고, 또한 저의 조언을 많이 듣는 것이 가 장 좋을 것입니다. 그런 얘기를 외조부님께도 말씀드려주십시 오.” 풍귀월은 만면의 미소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네 말대로 해야겠지. 그런데 이 비급을 만드는데 시 일이 얼마나 걸리겠느냐?” 화검상은 미소하며 대답했다. “저는 이 비급에 조금도 착오가 없도록 하기 위해 심혈을 기 울여야 하므로 아마도 보름 정도는 걸릴 것이라고 봅니다. 어쨌 든 진짜 좋은 비급이 나오는 것이 낫지 않겠어요?” “그렇겠구나!” 풍귀월은 다소 정색을 하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을 이었다. “이제 내가 여기에 더 있다가는 공연히 네 시간만 빼앗겠구 나. 나는 밖에 나가서 기다릴 테니, 내게 무슨 부탁이 있다면 말 해보아라.” 화검상은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가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없어요. 제게 무슨 다른 부탁이 있겠어요?” 풍귀월은 자애롭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하지만 내가 이미 한 가지의 선물을 준비했으니 거절 하지 말거라.” 이어 그녀는 화검상을 다시 한번 따뜻하게 안아준 뒤에 밖으로 나갔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화 야그 출력일 :: 98/10/22 ───────────────────────────────────── 제 목 : [화산문하]제 1부 3 권 제 34 장 부활(復活)의 비법을.... 제 34 장 부활(復活)의 비법을 파는 노인. 모친이 나간 뒤에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여검월(余劍月)이었다. 화검상은 조금 전의 흥분과 감격이 아직 다 가시지 않은 상태 에서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노력하고 있다가 그녀를 보게 되자 또 다시 절로 입이 벌어졌다. “아, 여사매! 그 동안 잘 있었어?” 여검월은 기이한 듯한 시선으로 화검상을 바라보다가 가볍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저도 이러리라고 짐작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날이 이렇 게 빨리 오게 될 줄은 몰랐어요.” 화검상은 약간 어리둥절해졌다. “그야……, 하하! 모자지간은 천륜이라고들 하니 이렇게 되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니겠어?” 여검월은 그의 앞으로 다가와 앉으며 정색을 하고 고개를 가로 저었다. “사부님께 말씀을 듣지 않았나요? 사부님의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전 지금 제 일을 말하고 있는 거예요.” 화검상은 더욱 어리둥절해져서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다가 웃으 며 말했다. “여사매의 일이라면, 그럼 우리 두 사람의 일을 말하는 거 야?” 여검월은 차분한 시선으로 그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미소를 지 으며 말했다. “화사형이 잘 모르고 있으니, 그럼 부끄럽지만 제가 얘기를 해야 하겠군요. 사부님은 제게 화사형께 시집을 가라고 하셨어 요.” “뭐……, 뭐라고?” 화검상은 갑자기 둔기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이 멍한 표정이 되었다. “여긴 합환주도 없고 또한 축하를 해주는 사람들도 없지만, 사형에게 커다란 도움이 된다면 저도 기뻐요.” 말과 함께 여검월은 천천히 웃옷을 벗기 시작했다. 화검상은 잠시 너무나도 뜻밖의 일이라 멍하니 앉아 있다가 얼 른 그녀의 손을 잡아 제지했다. “무슨 짓이야? 합환주는 뭐고 축하는 또 뭐야?” 여검월은 다소 처연한 기색이 되어 그를 바라보다가 짐짓 웃으 며 말했다. “사형께선 제가 싫으신가요? 하지만 사부님께선 반드시 사형 이 일을 시작하기 전에 첫날밤을 보내야만 한다고 말씀하셨죠. 그러니까 이곳이 우리의 신방이 되는 셈이에요.” ‘뭐라고, 신방? 첫날밤……?’ 화검상은 일순 너무나도 놀라고 어이가 없어서 말을 하지 못했 다. ‘그, 그럼 조금 전의 그 어머님의 선물이란 것이 바로 이것이 었단 말인가……?’ 이것은 정말 우습고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혼인이라는 것은 인륜지대사라고들 하는데 이렇게 간단하고도 어이없게 치러진다면 아무것도 아니지 않는가. 물론 화검상은 지금 여검월의 좋고 나쁨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 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과연 그녀는 오늘따라 유난히 화장을 야릇하게 하고 지금 드러나버린 속옷 또한 야한 것이 아닌가? 화검상은 순간 알 수 없는 고뇌가 전신에 가득 차 오르는 것을 느끼며 내심 탄식과 함께 그녀의 반쯤 벗겨진 겉옷을 다시 여며 주었다. “여사매, 굳이 이럴 필요 없어. 어머님께는 내가 나중에 말씀 드리지. 비급을 만드는 데 이런 일은 전혀 필요가 없어.” 여검월은 안색이 변해 다소 울먹이는 듯한 표정으로 화검상을 바라보며 말했다. “사형은 제가, 그렇게도 싫은가요? ” 화검상은 난처한 심정이 되어 짐짓 편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 다. “그런 게 아냐. 하지만 지금 여기에선 그럴 필요가 없어.” 여검월은 문득 그의 품속으로 몸을 던지며 크게 울먹였다. “용서해주세요! 하지만 저는 오늘 사형과 첫날밤을 보내지 않 으면 쫓겨나게 된단 말이에요! 전 다른 것은 바라지 않을 테니 저를 거절하지만 말아줘요!” ‘어, 어머님이……?’ 화검상은 일순 가슴이 갈가리 찢겨져나가는 것만 같은 고통을 느꼈다. 그가 못미더워서 그에게 다시 이런 족쇄를 채우려고 하는 것을 이제 모를 리가 없는 것이다. 여검월은 아마도 단단한 지시를 받고 이 방에 들어온 것 같았 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의사가 어쨌든간에 그녀를 위해서라도 이 런 일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화검상은 몸을 일으킨 뒤에 그녀의 옷을 잘 여며주고 손을 잡 아 밖으로 이끌었다. 방을 나오니 악검림이 탁자 위에 음식그릇들을 올려놓고 앉아 있다가 발딱 일어서는 모습이 보였다. 화검상은 여검월을 계단 위쪽으로 밀어 보내며 말했다. “여사매, 이 일은 내가 반드시 어머니께 잘 말씀드릴 테니 걱 정하지 않아도 좋을 거야. 내가 여사매를 거절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이렇게 되기에는 여사매는 정말 너무도 아깝고 어여쁘기 때문이야. 여사매, 내 뜻을 이해하겠지?” 여검월은 이미 밖으로 이끌려나오면서 어느 정도는 체념을 한 것 같았다. 그녀는 한번 시선을 옮겨 악검림을 바라보더니 눈물이 맺힌 얼 굴로 반쯤 웃으며 말했다. “좋아요. 우리의 인연이 그것뿐이라면, 나는 더 이상 조르지 않겠어요. 호호, 정말 우습네요. 나는 적어도 내 인생이 이렇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녀는 요 얼마 동안 정신적으로 더욱 많이 성숙해진 것 같았 다. 그녀는 이제 결코 귀엽고 철모르는 앳된 소녀가 아니었다. 그것은 그야말로 인생의 깊은 고뇌를 너무도 많이 체험했기 때 문이 아닐까? 그런 말과 함께 서둘러 계단 위로 사라지는 여검월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화검상은 일순 넋이 나간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상황, 이런 고통스런 상황은 이미 예견된 당연한 귀결이 고 오히려 다른 것을 바라는 그의 심경이 잘못된 것이리라. 갑자기 모든 것이 꿈속처럼 잘 이루어지기를 바란 것은 그의 내심의 뻔뻔스러움이 아닐까? 한동안 넋을 잃고 멍하니 혼자서 중얼거리고 있는데, 문득 악 검림이 다가와서 말했다. “화사형의 그런 표정은 너무도 무서워요. 하지만 저는 화사형 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화사형이 여사매와 혼인 하는 것을 원치 않아요.” 화검상은 헤아릴 수 없는 고통 속에 몸을 내맡기고 있다가 그 말에 문득 헛웃음을 지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그녀에게 미소 했다. “자, 그럼 밥을 먹도록 할까? 이러다간 정말 비급은 만들지도 못하고 말겠군.” 악검림은 그런 화검상의 미소를 보자 한 순간 안색이 빨개지더 니 급히 몸을 움직였다. 그녀는 마치 어린 소녀처럼 팔랑거리며 음식그릇들을 밀실로 옮겨 화검상이 식사를 하게 했다. 화검상은 자리를 잡고 앉아 식사를 하려다가 문득 그녀가 앉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악사매는 이미 식사를 했나? 왜 그러고 있지?” 악검림은 아직도 안색이 상기된 그대로였다. “난, 난 이미 먹었어요. 사형이나 어서 드세요. 국이 식어 다 시 데울 수 있다면 좋았을 텐데…….”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가 야그 출력일 :: 98/10/22 ───────────────────────────────────── 제 목 : [화산문하]제 1부 3 권 제 34 장 - 1 화검상은 그녀의 그러한 모습이 문득 매우 귀엽다는 생각이 들 었다. 그렇다. 그녀들은 이미 결코 어린아이가 아닌 것이다. 남자들은 저돌적으로 파고드는 기질이 있지만 여자들은 주위의 일에 민감하다. 때로는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더 현실적이다. 식사를 끝내고 마음을 가라앉힌 다음에 손을 씻기 위해 밖으로 나가니, 악검림이 혼자서 남은 밥과 반찬으로 식사를 하고 있다 가 그만 안색을 붉혔다.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난, 난 차라리 남자로 태어났으면 좋았을 걸 그랬어요.” 화검상은 미안하기도 하여 웃고 있다가 대꾸했다. “악사매는 정말 남자로 태어났더라면 더욱 좋았을 거야.” 화검상은 그녀가 무안해 하는 것을 보고 얼른 손을 씻고 밀실 로 돌아왔다. 이제부터 그는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이것은 과연 누구의 강요나 부탁에 의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그는 정말로 이런 비급을 하나 만들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일단 운기조식에 들어가자 그는 이내 시간의 흐름을 잊었다. 그는 운기조식을 하면서도 글을 쓸 수가 있었다. 그 비급의 내용은 우선 곡선적 무공의 이치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데까지 설명하고, 이어 화산파의 내공심법과 무공절기(武功 絶技) 등으로 그것을 풀어가는 방식이었다. 이를테면 대개 알고 있는 내공심법이나 무공절기의 변화(變化) 가 백 가지라면, 그는 곡선적 무공의 이치로 그것을 수십 배, 혹 은 수백 배로 풀어서 일일이 보여주는 것이다. 비급의 분량이 한정되어 있으므로 그 모든 절기의 초식(招式) 들을 모두 다룰 수는 없다. 그는 단지 곡선적 무공의 요지를 이해하게 함으로써 그것을 응 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로 했다. 현재 그에게는 자하신공과 매화검보, 그리고 난화불혈수의 비 급이 있었는데 그것들은 실질적으로 비급을 제작하는 데 많은 편 리함을 가져다 주었다. 간혹 악검림이 가져다 주는 식사를 하는 일 이외에는 화검상은 거의 잠을 자는 것도 잊고 지냈었다. 대략 사흘 정도 지났을까? 문득 생각이 중대한 벽에 부딪혀서 해결점을 찾으려 고민을 거 듭하다가 피로감을 느끼고 그대로 쓰러지듯 잠들었는데, 문득 눈 을 떠보니 악검림이 그의 곁에서 함께 잠을 자고 있었다. ‘아니……?’ 화검상이 어리둥절해져서 몸을 일으키자, 그 기척을 느끼고 악 검림은 얼른 잠에서 깨어 어색하게 웃으며 안색을 붉혔다. “너무 피곤해 보여서 간호를 하다가 나도 모르게 호호……, 지난 사흘간 몸이 많이 수척해진 것을 아세요?” 몸이 수척해진 것은 그녀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왠지 지금 그녀의 얼굴에는 맑고 조용한 생기가 흐르는 것 같았다. 화검상은 잠시라도 그녀와 함께 잠을 잤다는 사실을 내심 야릇 하게 느끼면서도 웃으며 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 “악사매, 이러다가 나중에 이 일로 시집도 못 가게 되는 거 아냐?” 악검림은 안색을 붉히다가 문득 정색을 하고 말했다. “시집가는 것은 걱정 안 해요. 반드시 시집을 가야만 하는 것 은 아니잖아요. 그렇지 않나요?” 화검상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럼 강호에 노처녀가 하나 더 늘어날 뿐만 아니라, 악사매 는 어머니도 될 수 없겠는걸?” 악검림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건 간단해요. 화사형이 내게 아기를 갖게 해주는 거예요. 그럼 나는 아기 엄마도 되어보는 거고, 또한 하나의 소영웅(少英 雄)을 키워보게 되는 것이 아니겠어요?” 말이 끝나자 그녀는 문득 안색을 귓불까지 붉혔다. 화검상은 그만 놀라고 어리둥절해져서 말했다. “아니 그럼 악사매는 지금 내게 시집을 오겠다는 말인가?” 악검림은 즉시 고개를 저으며 몸을 일으켰다. “아니에요. 나는……, 그저 희망 사항일 뿐이지요. 나 같은 여 자는 화사형의 배필이 될 수는 없을 거예요.” ‘희망 사항이라고……?’ 그 뒤로도 내용이 막히는 경우는 여러 번 있었다. 그것은 가장 미세하고 근본적인 문제까지 완전한 흐름을 이루 어야 하기 때문이다. 막상 비급제작에 들어가고 보니 그는 자신의 무공이 아직 분명 하지 않은 부분이 너무나도, 실로 너무나도 많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아주 의외의 일이었고 그로서는 또 다른 경험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 뒤로는 막히는 부분이 있어도 풀리는 속도가 빨라지 게 되었으며, 마침내 어느 날 그는 전신의 공력이 그의 생각과 하나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즉 아직 완전히 단련되지 않았던 전신의 모든 공력이 거의 완 전히 단련된 것이며, 거의 대부분의 곡선적 무공의 근본에 대한 의문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공력의 단련도 별로 없이 단지 그 깨달음에 의해 그렇게 되었 다는 것은 역시 신비로운 체험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즈음에는 비급도 거의 완성되어 있는 상태였다. 화검상은 수북하게 쌓인 두루마리들을 바라보다가, 이윽고 잠 시 후에 뭔가 다른 생각을 굴려본 후에 또 다른 작업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 작업은 불과 몇 시진 만에 끝이 났다. 화검상은 마지막으로 만든 작은 두루마리 하나를 한번 검토해 본 연후에 환한 웃음을 지으며 밖으로 나갔다. 무엇을 이루었다는 성취감은 어쨌거나 기분을 유쾌하게 만든 다. 밖으로 나가니 뜻밖에도 악검림이 의자 위에서 쪼그리고 잠들 어 있었다. 화검상은 그것을 보고 어리둥절해졌다. 그는 지금 전혀 기척을 감추지도 않고 스스럼없이 걸어나온 것 이다. 그런데 악검림이 자신의 처소로 돌아가지 않았다는 것도 뜻밖 이지만, 그의 기척도 모르고 정신없이 잠들어 있다는 것이 더욱 이상한 노릇인 것이다. 무림인은 대개 이렇게 깊이 잠들지 않으며 그녀의 무공경지로 볼 때 이건 결코 평범한 일이 아니었다. 얼른 다가서서 그녀의 이마를 짚어보니 이마가 불덩이와도 같 았다. 최근에 왠지 그녀가 더욱 수척해 보이고 어딘가 몸이 좋지 않 아 보인다고 느끼긴 했다. ‘이거 너무 시중드는 일이 피곤해서 몸살이 난 것일까……?’ 화검상은 내심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그녀의 맥문을 잡고 진기 를 주입하여 한바퀴 조식을 시켜주었다. 그의 공력은 이제 평범한 것이 아니어서 이내 열을 가라앉히고 평온하게 만들었다. 악검림은 그가 손을 떼자 그제야 눈을 뜨더니 방긋 웃었다. “어머, 제가 사형께 수고를 끼쳤군요?” 화검상은 어느새 환한 표정이 되어버린 그녀를 보며 다소 눈살 을 찌푸렸다. “항상 몸을 관리해야지, 무공을 연마하는 사람이 그렇게 쉽게 병이 들어서야 되겠어?” 무공을 연마하는 사람들은 본래 이런 시시한 병에 걸리는 경우 가 드물다. 게다가 그녀는 무공이 이미 상승경지에 이르러 있는데도 그 짧 은 기간에 몸살이 났다니 기이한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악검림은 가볍게 미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사형의 그 훌륭하신 말씀 잘 듣고 잊지 않고 실행 할게요.” 화검상은 그녀가 너무도 정색을 하고 공손히 대답하는 바람에 그만 웃음이 나왔다. “내가 안에 들어가서 일하기 시작한 지 얼마나 지났지?”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 야그 출력일 :: 98/10/22 ───────────────────────────────────── 제 목 : [화산문하]제 1부 3 권 제 34 장 - 2 악검림은 잠시 그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아직 열흘이 되지 않았어요. 오늘 저녁이면 만 열흘이 될 거 예요. 혹시 일이 다 끝났나요?” 문득 그녀의 두 눈에 작은 이슬이 맺히는 것 같았다. ‘하하, 열흘이라……? 꽤나 시간이 단축되었군!’ 화검상은 그녀가 눈물을 글썽이는 이유를 잘 몰라서 스스로의 생각에 빠져 있다가 문득 손에 들고 있던 작은 두루마리를 그녀 에게 내밀었다. “그래. 자, 이건 그 동안 고생한 것에 대한 대가야. 내 무공의 근본 이치는 담을 수 없어도 그 응용하는 방법을 담은 거야. 악 사매는 내 무공을 신뢰하는 듯하니 자주 암송하고 연마하면 반드 시 도움이 될 거야.” 악검림은 얼른 옷소매로 눈물을 훔쳐내고는 그 두루마리를 받 아 소중히 품속에 갈무리하고는 웃으며 말했다. “미안해요. 사형이 일을 마쳐서 기쁜 날인데 내가 공연히 기 분을 상하게 해서.” 화검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나도 어찌나 마음이 편한지 눈물이 다 나오려고 하 는걸?” 악검림은 문득 정색을 하고 말했다. “사형이 제게 소중한 비급을 주셨으니 반드시 소중히 간직하 고 연마하도록 할게요.” 화검상은 자신의 모친에 대해 그녀에게 물어볼까 하다가 그만 두고, 이내 간단히 세수를 하고 얼굴을 단정히 한 후에 다시 안 으로 들어가 두루마리 비급을 가지고 나왔다. 불과 열흘 만이었으나 실로 오랜만에 바깥의 공기를 대하는 것 같았다. 비밀문을 열고 그 거실로 올라가자, 녹귀보가 지키고 있다가 다소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무슨 특별한 볼일이라도 있느냐?” 화검상은 역시 한결같아 보이는 그의 태도에 내심 웃으며 대꾸 했다. “그런 게 뭐가 있겠습니까? 일을 마쳤으면 나와야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녹귀보는 그 말에 귀가 번쩍 트이는 듯 즉시 화검상의 손에 들 린 두루마리를 보더니 안광을 날카롭게 빛내며 말했다. “그럼 비급을 다 만들었단 말이냐?” 악검림이 말했다. “화사형은 그간 잠도 거의 자지 않고 시간을 단축시킨 거예 요.” 화검상은 미소하며 그녀를 돌아본 뒤에 녹귀보를 향해 다시 말 했다. “혹시 저의 어머님이 어디 계신지 알고 계십니까?” 녹귀보는 재삼 두루마리를 주시하며 생각하는 듯하다가 이내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다른 곳에 가지말고 여기서 잠시 기다려라!” 악검림은 그가 차가운 표정으로 서둘러 사라지는 것을 보고 나 직하게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흥, 그들은 화사형의 노고는 조금도 생각해주지 않는군요!” 화검상은 웃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그야 그들이 나를 죽이려고 하지만 않는다면 고마운 일이 지.’ 이어 화검상은 문득 악검림에 대해서 생각했다. ‘이제 작업도 끝났으니 이쯤 해서 그녀를 멀리하는 것이 그녀 의 안전을 위해 좋을 것이다.’ 하지만 대체 어떤 말을 꺼내서 그녀를 떼어낼 것인가? 그것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을 것이다. 화검상이 짐짓 다른 곳에 시선을 두며 그 생각을 하고 있는데, 문득 가벼운 기척과 함께 한 사람이 나타났다. 바로 풍천비가 나타난 것이다. 저번의 경우와는 달리 이 풍천비는 너무도 빨리 모습을 드러냈 다. 화검상은 가능하면 그가 오기 전에 악검림을 보낼 생각이었는 데 그만 그게 어렵게 된 것이다. 풍천비는 이때 안광을 형형하게 빛내고 있었는데 그 얼굴에는 음험하고 냉혹한 기색이 가득했다. “장문인을 뵈옵니다.” 악검림이 공손히 예를 올렸으나, 그는 들은 척도 않고 화검상 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비급이 완성되었다고? 그럼 어서 그 비급을 이리로 내놓아 라!” 화검상은 내심 쓴웃음을 지었으나 우선 입을 열어 물었다. “혹시 저의 어머님이 어디에 계신지 아십니까?” 풍천비는 눈빛을 몹시 괴이쩍게 빛내더니 눈살을 찌푸리며 대 꾸했다. “네 에미는 지금 볼일이 있어 다른 곳으로 나갔다. 얼마 후면 돌아올 것이다. 그 비급부터 내놓으라니까 무슨 말이 그리 많으 냐?” 모친이 먼저 비급을 읽어주겠다고 했지만 지금 그녀가 없으니 그럴 수도 없는 일이다. 화검상은 오히려 너무 일찍 나온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이 비급이 풍천비의 손에 들어가면 그의 모친도 보게 되지 않겠는가? 화검상은 담담히 웃어 보이며 두루마리를 풍천비에게 던져주었 다. 두루마리는 펴지지도 않은 채 그대로 풍천비의 앞으로 날아갔 으며, 풍천비는 얼른 그것을 받아들고 그 내용을 읽어보기 시작 했다. 일순간 그의 얼굴에는 흥분과 불안, 초조 등의 여러 가지 표정 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내 그는 그 내용에 빠져서 앞에 누가 있는지도 잊어 버린 모양이었다. 잠시 기다리다가 지친 악검림이 문득 입을 열어 말했다. “저어, 화사형은 매우 고생을 했으니 잠시 나갔다 와도 되겠 습니까?” 풍천비는 비급의 내용에 몰두해 있다가 그 말을 듣고 홀연 정 신을 차려 두 사람을 바라보고는 말했다. “그러나 멀리 가지는 않도록 해라!” 풍천비에게는 무엇보다도 그 비급이 중요한 모양이었다. 그는 말을 마치자 비급을 얼른 품속에 집어넣고는 안으로 사라 져버렸다. 화검상은 갑자기 허둥대는 풍천비의 모습을 보자 그만 어이가 없어서 잠시 그가 사라진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악검림이 이윽고 그의 손을 잡아끌며 말했다. “자, 나가도 된다고 했으니 우리 어서 나가요!” 밖은 이미 정오가 가까워져가고 있었다. 이곳으로 처음 들어올 때도 화검상은 거리를 돌아본 적이 있지 만, 지금도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악검림이 그런 그의 내심을 알기라도 하듯 입을 열어 말했다.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이미 거의 대부분 밖으로 싸우러 나갔 어요. 사람들은 우리 쪽이 연일 승리하고 있다고 하지만 제가 보 기에는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아요.” 화검상은 기왕에 말이 나왔으므로 이윽고 생각해두었던 말을 꺼냈다. “이제 일도 끝났으니 악사매도 그들과 함께 출전하게 되는 건 가?”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연 야그 출력일 :: 98/10/22 ───────────────────────────────────── 제 목 : [화산문하]제 1부 3 권 제 34 장 - 3 악검림은 화검상의 얼굴을 돌아보더니 미소하며 말했다. “저도 이미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기 시작했으니 금방 그 대열 에 끼기는 어려울 거예요. 차라리 잘된 것 같아요. 아예 몸이 아 프다고 하고 계속 잔류하려고 해요.” 화검상은 그녀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았다. 기실 그녀의 병이 다 나은 것은 아니다. 그녀는 정말로 병이 있기 때문에 칭병을 한다는 것은 오히려 진짜를 말하는 것이 될 것이다. 대체 그녀는 무엇으로 인해 병이 생긴 것일까? 화검상은 제발 그 병의 원인이 자신이 생각한 그런 것이 아니 기를 바랬다. 그녀는 비록 출전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와 함께 출전하는 것 은 은근히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악검림은 약간 안색이 상기되더니 짐짓 웃으며 말했다. “우리 기왕에 나왔으니 주루에 가서 식사나 하도록 해요. 오 늘 하루 화사형을 안내해드려도 괜찮겠죠?” 화검상은 문득 마음이 아파왔다. 그는 사실 악검림의 병명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녀는 비록 다소 허황되기는 하지만 생각이 깊고 자제력도 있 으며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데가 있었다. “이곳에 주루도 있단 말인가?” 악검림은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에요. 주루나 반점도 있고, 또 온갖 상점들도 있는걸 요?” 이어 그녀는 화검상의 손을 잡아끌었다. 주위에 더러 화산파의 제자들이 눈에 띄기는 하지만 다소 의아 한 듯한 시선으로 두 사람을 바라볼 뿐이었고, 더러는 마주치지 않기 위해 달아나버리기도 했다. 화검상은 실로 오랜만에 햇빛을 대하는 것이었다. 먼지를 뿌옇게 일으키는 이 따가운 햇살은, 그러나 그 자체로 도 좋은 것만 같았다. 화산파가 자리잡고 있는 지역을 벗어나자 바로 드넓은 대로(大 路)였다. 급조된 곳이지만 그래도 이미 많은 사람들이 오가서 황토흙은 다져지고 주위의 건물들은 더욱 견고해지는 것 같았다. 보아하니 이번의 이 정사대전(正邪大戰)은 시일을 오래 끌 것 같은 모습들이었다. 화검상은 마차 속에서 이 대로를 지나왔다. 이제 마음도 가벼워진 상태로 대로를 거닐어보니, 실로 수많은 건물들이 곳곳에 옹기종기 지어져 있는 것을 발견할 수가 있었 다. 대로상에 많은 사람들이 오가며 두 사람을 쳐다보았지만, 대부 분 두 사람을 잘 알지 못하는 편이고 또한 화검상에 대해서는 알 고 있다고 해도 모른 척할 것이다. “출전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새벽에 나가고 저녁이나 한밤중에 돌아와요. 혹은 반대로 한밤중에 나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지금은 한가하게만 보이네요.” 악검림은 화검상을 위해 설명을 해주는 것이 즐거운 듯 연신 입가에 미소를 떠올렸다. 이 싸움은 대체 어떤 형태로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화검상은 문득 이곳으로 오던 도중에 녹림맹의 무리에게 당했 던 일들을 뇌리에 떠올렸다. 더러는 우두머리들의 결전 이후에 싸움이 끝나버리는 경우가 있고, 우두머리들이 좀더 신중하여 그들 사이의 결전을 미루는 경우가 있으며, 혹은 우두머리의 결전이 끝나도 여전히 싸움이 끝나지 않는 경우가 있다. 두번째와 세번째의 경우 그것은 거의 전체적인 대격전이 될 가 능성이 높으며 그 싸움도 지루하게 오래가게 될 것이다. 이미 정무맹에서는 이러한 토대를 마련했다. 그것은 바로 장기전에 돌입하려는 것이 아닐까? 대로를 따라 북쪽으로 나아가다가 이윽고 후문(後門) 부근에서 오른쪽으로 꺾어지니 제법 넓은 저잣거리가 나타났다. 비록 건물들은 급조한 것들이라 볼품이 없지만, 악검림의 말대 로 그 점포들의 숫자는 일반 현성의 저잣거리를 능가할 정도였 다. 사람이 많은 곳에 반드시 이런 것들이 생긴다고는 볼 수가 없 으며, 필시 정무맹에서 사람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일부러 만들 어놓은 것이리라. 마치 그런 이치를 여실히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그 저잣거리에 는 다른 곳과는 달리 많은 사람들로 크게 붐볐다. 당연히 대부분이 무림인들이고 또한 대낮부터 술을 마시거나 취해 큰 소리로 떠들어대고 있었다. 하지만 정파의 일반제자들이 모두가 다 이런 곳에 올 수 있다 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옷가게나 병기점, 심지어 객점이나 푸줏간 등 없는 것이 없을 지경이었는데 역시 주루가 가장 많았고, 악검림은 그 중에서도 가장 붐비는 주루의 앞에 이르러 말했다. “우리 이곳으로 들어가요!”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은 아무래도 주의를 덜 받게 된다. 화검상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와 함께 주루의 안을 들어섰다. 그 주루의 내부는 역시 너무 사람들이 많아 앉을 자리를 찾을 수 없을 지경이었고 또한 시끌벅적해서 도무지 정신이 없을 지경 이었다. 그 중 더러는 술에 취해서 통로를 왔다갔다하고 있었는데, 악 검림은 자리를 찾다가 그들 중의 한 사람과 부딪쳐 넘어질 뻔했 다. 그런데 무공이 이미 상승경지에 이른 그녀가 그와 같은 일로 그렇게 쉽게 넘어질 뻔한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화검상이 시선을 돌려보니, 악검림이 얼른 한쪽으로 몸을 피하 는 사이에 한 사람이 그를 보며 징그럽게 웃고 있었다. “헤헤헤, 젊은 양반!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몇 푼 쓰지 않겠소? 헤헤헤, 절대 후회는 하지 않을 거요.” 이미 만취한 듯 눈알까지 붉어진 얼굴에 머리카락은 수세미처 럼 온통 뒤엉켜진 노인이었다. 화검상은 그 노인이 갑자기 자신들에게 접근했다는 느낌이 들 었기 때문에 일순 정신을 모으고 더욱 유심히 살폈다. 이 노인은 비록 술냄새가 진동하기는 하지만 그다지 술에 취했 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고, 게다가 어딘가 나이를 분명히 파악하 기가 어려웠으며 손에는 작고 빨간색의 기이한 북을 들고 있었 다. 무엇보다도 기이한 것은 역시 노인에게서 마치 유리나 수정처 럼 투명하고 위험한 기질이 느껴진다는 사실이었다. 이것은 정말로 이상한 일이다. 화검상은 이제는 이러한 사람들을 대한다는 것이 별로 괴이한 일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게 되었다. 눈앞의 이 노인도 역시 그가 만난 여러 강호이인(江湖異人)들 중의 하나인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화검상은 쉽게 그들의 그 특별한 기질을 느낄 수가 있었다. 놀랍고 기이하게도 그는 오늘 또 이 자리에서 다시 한 명의 강 호이인을 만났다. 그렇다면, 대체 그들의 이 유리처럼 위험하게 느껴지는 공통된 기질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말일까? 한 가지 분명한 확신이 드는 것은 그들은 실로 강호에서 찾아 보기 어려운 대단한 능력들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오늘 또다시 한 명의 강호이인들을 만났지만 이들은 대체 얼마 나 더 있을까? 화검상은 아직 그들에 대한 얘기를 들은 적이 없으므로 그들은 세상 사람들이 모르는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렇다면 혹시 강호의 모든 일들은 그들의 보이지 않는 조종에 의해 어이없는 길로 흘러가기라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화검상은 아직 강호의 정세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므로 그저 단편적인 경험으로 그런 판단을 내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럼 대체 이들은 어째서 이런 곳에 나타난 것이며 또한 무슨 목적으로 화검상의 앞에 번갈아 나타나는 것일까? 기질 따위를 알아보는, 화검상의 그러한 특별한 능력이 없었다 면 그도 전혀 이들을 경계하지도 않았을 것이 아닌가? 물론 화검상의 그러한 능력은 그들이 미처 예상하지도 못할 뿐 만 아니라, 대비하지도 못한 일이었겠지만 말이다. 화검상이 잠시 그렇게 생각에 잠겨 있자, 그 노인은 고개를 갸 웃거리며 그를 향해 다시 말했다. “젊은 양반이 생각보다 좀 눈치가 없군. 헤헤, 내 말은 나를 잠시 사부로 모시라는 말이네. 그러면 자네는 만수무강하게 될 걸세, 헤헤헤헤…….” 느닷없이 사부로 모시라는 말은 정말 엉뚱하지만 화검상은 이 미 이들의 괴이함을 경험한 바가 있었기에 그다지 놀라지도 않았 다. 악검림이 한쪽에 서서 재미있다는 듯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한번 돌아보고는 화검상은 노인에게 말했다. “당신은 그러니까 일신의 고절(高絶)한 비기(秘技)를 나에게 팔겠다는 것이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야그 출력일 :: 98/10/22 ───────────────────────────────────── 제 목 : [화산문하]제 1부 3 권 제 34 장 - 4 노인은 희미하게 웃더니 일순 그의 앞으로 바싹 다가서서 속삭 이듯 말했다. “고절한 비기? 흠, 고절한 비기지……. 그런 것을 지금 이 자 리에서는 말할 수가 없고, 어서 밖으로 자리를 옮기도록 하세.” 이미 주루의 내부가 다소 조용해졌고 일부의 사람들이 이쪽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지금 입구에 서서 남들의 눈에 띌 만한 행동을 하고 있 기 때문이다. 하지만 화검상은 그러한 상황의 변화가 지금의 자신의 처지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있었 야그 출력일 :: 98/10/22 ───────────────────────────────────── 제 목 : [화산문하]제 1부 3 권 제 35 장 명문정파(名門正派)의.... 제 35 장 명문정파(名門正派)의 기재(奇才)들. 악검림이 반쯤 흥미롭다는 듯이 웃으며 그 노인에게 불쑥 말했 다. “당신의 무공이 그렇게도 높은가요?” 노인은 주위가 점차로 조용해지자 몹시 감당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긁으며 고개를 두 번 흔들었다. “무공이야 암, 높지. 하지만 내가 지금 파는 것은 무공이 아니 라 부활(復活)의 비법이네.” 악검림은 웃으며 다시 말을 받았다. “부활의 비법이라, 그럼 그런 것이 정말로 있기라도 하다는 말인가요?” 노인은 몹시 조심스럽고 우스꽝스런 몸짓으로 대꾸했다. “정말, 이런 곳에서는 말할 수가 없네. 이 비법은 보통사람에 게는 전수할 수가 없는데 실로 이 젊은 양반에게는 그 인연이 있 네. 만일 한 번 살아날 수 있다고 하면 최소한 십 년은 더 살 수 있지 않겠는가?” 악검림은 웃으며 다시 물었다. “그럼 호호, 열 번을 부활하면 백 년은 더 살 수가 있겠네 요?” 노인은 정색을 하더니 고개를 세 번 흔들었다. “그게 아니야. 이 비법은 그 사람에게 꼭 한 번만 통할 뿐이 지 두 번 이상은 통하지 않아. 그게 나로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지. 왜 처음은 되고 두번째는 되지 않을까? 아아, 아아……, 하지만 어쨌든 나는 오늘 이 비법을 저 젊은 양반에게 은자 한 냥에 팔겠네.” “왜 하필이면 은자 한 냥이죠?” 노인은 약간 당황한 표정으로 얼른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조, 좋아! 은자 한 냥이 너무 비싸다면 닷 푼은 어때? 아니, 두 푼이라도 좋아.” 악검림은 가격이 너무 낮은 것 같아서 물었던 것인데 노인이 그렇게까지 값을 깎아버리자 그만 싱거워져서 웃으며 말했다. “그럼 결국 우리 화사형은 십 년밖에 더 살지 못하니 별로 대 단하지는 않겠네요?” 노인은 안색이 벌게져서 생각을 굴리는 듯하다가 헛기침을 하 며 말했다. “그, 그럼 내가 또 다른 부활의 비법을 소개하지. 이, 이건 한 푼……, 이거 이거 너무 싼 가격이지만 어쨌든 할 수 없지. 하지 만 아가씨의 사형은 운이 좋기 때문에 그저 한 번의 고비만 넘기 면 백 살까지는 살게 될 것일세.” 그때 마침 자리가 비었으므로 화검상은 즉각 그쪽으로 걸어가 앉아버렸다. 주위의 사람들은 별로 대단치 않은 듯하자 다시 저마다 시끄럽 게 떠들기 시작했다. 악검림은 다시 그 노인에게 물어보려고 했으나 화검상이 그쪽 으로 가버리는 바람에 그녀도 이내 그의 뒤를 따라가 앉았다. 점원들은 부리나케 움직이며 주문을 받고 있다가 즉시 그쪽으 로 다가왔다. 하지만 점원들이 당도하기도 전에 그 노인이 다시 뒤따라와 자 리에 앉으며 헛기침과 함께 말했다. “험험험! 자네는 내 말이 별로 흥미롭지 않은가? 하지만 이건 결코 가볍게 다룰 문제가 아니라네!” 화검상은 대꾸하지 않고 다가온 점원들에게 몇 가지의 음식들 을 주문했다. 악검림은 노인의 말이 약간 흥미가 느껴졌기 때문에 다시 노인 에게 말했다. “그럼 그 비법이란 것은 대체 어떤 거죠?” 노인은 짐짓 주위를 둘러보며 조심하는 듯하다가 아주 작은 음 성으로 말했다. “하나는 그 비법으로 이 작은북을 울리는 것일세. 그럼 죽음 의 문턱에서 그는 기적적으로 소생하게 될 것일세. 그리고……, 에헴!” 악검림은 그의 말을 자르며 물었다. “그럼 그 비법과 함께 그 작은북도 거저 주는 것인가요?” 노인은 문득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 그렇지. 아마도……, 어쩔 수가 없는 일이겠지. 이건 내가 너무도 손해를 보는 일이지만…….” ‘저 작은북까지 포함해서 은자 두 푼이란 말인가?’ 악검림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저 평범한 북이라고 해도 그렇게 값이 싸지는 않을 것이리 라. 하물며 그 작고 붉은 북은 생긴 것이 아주 정교하고 고색창연 한 윤기가 흐르고 있어서 결코 보통의 북에 붉은 칠을 한 것만은 아닌, 매우 특이한 물건임을 알게 했다. ‘저건 너무도 예쁜 북이고 또한 이 거래는 너무도 이상스럽게 쉽고 간단하다. 그런데 어째서 화사형은 이 일에 관심이 없는 걸 까? 혹시 저 북 속에 어떤 나쁜 의도가 숨어 있는 것이 아닐 까?’ 악검림은 그렇게 내심 생각을 굴리며 다시 말했다. “한데 북을 울리는 것이라면 다른 사람이 알고 있어야만 하는 것이 아닌가요?” 노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냐 아냐, 이건 그 비법으로 스스로 울려야만 효과가 있는 것이지 다른 사람이 울려주는 것은 아냐. 그리고 두번째의 비법 은 바로 방중술(房中術)이네.” 악검림은 그 말에 문득 안색이 빨갛게 물들었다. 본래 그녀는 여협사(女俠士)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으로 그런 얘기는 간단하게 들어버릴 수가 있었는데, 요즈음은 왠지 그런 말에 몹시 민감해져 있었다. ‘흥, 내 앞에서 그런 말을 하다니 이 할아버지는 좀 엉큼한 사람이로구나!’ 하지만 그녀는 본래 호기심이 강하여 계속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방중술이 부활의 비법의 하나가 된다는 말인가요?” “물론이지. 본래 이 음양(陰陽)이 서로 조화를 이루면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은 다들 알고 있는 일이 아닌가? 이건 바로 그대 가……, 아니지! 우선 이 젊은 양반이 승낙을 해야 하는 거지.” 노인은 고개를 돌려 화검상에게 다시 말했다. “내 좀더 인심을 써서 두 가지의 비법을 전수하는 데 두 푼을 받도록 하지. 하나에 한 푼, 허허 이건 너무 싸네. 게다가 자네가 총명하다면 고작 한 시진 정도밖에 시간이 걸리지 않을 걸세. 자 네는……, 자네는 혹시 아직도 너무 비싸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 니겠지?” 화검상은 노인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가 말했다. “노인장께선 영원히 살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십니까?” 노인은 다소 당황스러운 듯 어물거리다가 안색이 변하며 말했 다. “아, 그야……, 안 되겠지. 하지만 이 부활의 비법도 필요하지 않겠나?” 화검상은 가볍게 실소하며 말했다. “노인장께선 어째서 모든 일들이 그렇게 맞는 듯하면서도 비 켜 가는지 알고 계십니까?” 노인은 더욱 안색이 변하여 멍하니 있다가 대꾸했다. “그야 모르지. 만일 그걸 알았다면 이 부활의 비법도 영원히 사용할 수 있게 되었을지도 모르지.”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瀏�� 야그 출력일 :: 98/10/22 ───────────────────────────────────── 제 목 : [화산문하]제 1부 3 권 제 35 장 - 1 화검상은 노인을 주시하며 다시 말했다. “바로 그런 식의 심리가 그것을 비켜가게 하는 것입니다. 이 것이 아니면 저것이라는 식의 생각은 곤란한 것입니다.” 노인은 잠시 화검상의 얼굴을 망연히 바라보다가 이윽고 반쯤 실성한 듯이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 그런가? 헤헤헤! 그럼 자네는 나와 거래를 하지 않겠군? 헤헤, 그렇다면 헤헤, 나는 이만 가보겠네. 인연이 있다면 또 보 게 되겠지. 헤헤헤헤…….” 노인은 이어 밖으로 걸음을 옮기더니 곧장 사라져버리고 말았 다. 악검림은 옆에서 듣고 있었지만 문득 그들의 대화를 이해할 수 가 없었다. 본래 노인은 몹시 이 거래에 열성적이었는데 그저 화검상의 몇 마디의 말에 달아나듯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그녀는 그 대화 중 에서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는지 쉽게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점원들이 어느새 술과 음식들을 날라왔다. 화검상은 마치 술에 굶주린 사람처럼 병의 마개를 따고 병째로 기울여 술을 두어 모금이나 들이켰다. 화끈한 기운이 목구멍에서 뱃속으로 퍼져나가더니 전신을 뜨거 운 열기로 몰아넣었다. 화검상은 고개를 돌려 악검림을 바라보며 말했다. “악사매는 혹시 그 노인의 방중술을 배우고 싶었던 것이 아닌 가?” 악검림은 문득 안색이 붉어졌으며 눈물이 핑돌고 시선을 떨구 었다. 그녀 스스로 현실에 무딘 편이라고 느끼고 있기는 하지만 요즈 음 들어서 화검상이 어딘가 위험한 수렁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것 정도는 그녀도 느끼고 있었다. 화검상이 그녀를 멀리하려고 하는 것을 볼 때마다 그녀는 더욱 그런 것을 느끼는 것이다. 그녀는 본래 여협사가 되고 싶은 장부와 같은 꿈을 가지고 있 었고 그것을 키워가려고 했었다. 하지만 갑자기 닥친 이 사랑은 언제부터 생겨난 것인지 그녀 자신도 알지 못하고 있었다. 언제부턴가 시작된 이 사랑하는 감정은 그녀를 꼼짝 못하게 붙 잡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들어놓고 있었다. 그녀는 화검상을 생각하고 보고 말할 때마다 눈물부터 솟구쳤 으며 그녀는 그 눈물을 감추기 위해서만도 그녀의 모든 노력을 다 기울여야만 했다. 그녀는 지금 화검상이 위험에 처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방금 그러한 화검상의 말을 듣자마자 가슴이 갑자기 미어져오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겨우 눈물을 감추며 짐짓 미소하고 말했다. “내가 아마 그것을 배운다면 본문에서 쫓겨나고 말거예요.” 화검상은 다시 술을 몇 모금 들이킨 다음에 깊은 한숨을 내쉬 었다. 아까 그 노인이 사라질 때, 역시 주루의 밖에서 갑자기 기척이 사라져버렸다. 비록 어수선한 주루의 내부이기는 하지만 그의 능력으로 한 사 람의 기척을 추적한다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노인의 기척이 그렇게 갑자기 사라졌다는 것은 정말 로 그 노인이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그 노인의 부활의 비법이라는 것은 정말로 거짓이 아닐지도 모 른다. 한데 자신은 어째서 전혀 확인도 해보지 않고 그 중요하고 좋 은 기회를 거절해버린 것일까? 그것은 그의 고집이라고도 할 수 있고 혹은 감각이라고도 말할 수가 있었다. 이상스럽게도 그의 알 수 없는 감각은 그 노인이 도움을 줄 사 람이 아니라 위험한 사람이라고 절실하게 말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만일 그가 죽고 난다면 그런 것들도 다 소용없는 일이 아닌가? 그의 뇌리에는 얼마 전에 그 반점 앞에서 그에게 그런 말을 하 던 점쟁이 노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대체 그들의 정체는 무엇이며 어떠한 능력들을 가지고 있을까? 이제 분명하게 느껴지는 것은 자신의 위기가 거의 목전에 도달 해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런 일종의 긴장감은 그가 조금 전에 중요한 기회일지 모르는 것을 놓쳐버린 데 대한 회한 비슷한 감정을 일게 만들었다. 만일 그 노인이 좀더 오래 그를 설득했더라면 그는 아마 그 비 법을 배우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제 그는 무엇인가 해야 할 터인데, 과연 그가 할 수 있는 일 이 무엇인가? 화검상은 술잔 위에 술을 따르고 앞에서 조용히 음식을 먹고 있는 악검림에게 말했다. “어차피 괴로운 인생(人生)일진대, 어찌 마시지 않을쏜가? 라 는 말은 정말 그럴듯하지 않아?” 악검림은 음식을 먹다가 말고 그 말에 고개를 들며 방긋 미소 를 떠올렸다. “저도 그 말에는 찬성이에요.” 화검상은 이미 오랫동안 술을 마셔본 경력이 있었다. 무공이 높아질수록 그 독한 기운을 다스리기 쉬어져 마음대로 취할 수도 있고 취하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그는 이제 좀더 술값이 많이 들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때 누군가가 뒤에서 탁자를 치며 말했다. “정말 세상살이가 쉽군! 저렇게 더러운 악마의 새끼도 멀쩡히 앉아서 술을 마실 수 있다니 말야. 실로 우리가 이렇게 너무 자 비롭기 때문에 이 싸움도 오래가게 되는 것이 아니겠어?” 바로 뒤에서 큰 소리로 울려오는 소리이기도 하여 화검상은 막 그 술잔을 들려다 말고 고개를 돌려 그쪽을 보았다. 그들은 혹시 방금 전에 들어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는지도 모 르겠지만 그럴 리는 없고 아마도 화검상으로서는 미처 자세히 사 람들을 살필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 말을 한 사람은 체구가 마치 작은 황소와도 같았는데 일어 서면 그 키는 더욱 클 것 같았다. 그는 탁자 위의 술잔을 어루만지며 바로 화검상을 노려보고 있 었는데, 그 기질은 매우 대담하고 용맹스러워 보였다. 아마도 이 주루의 많은 사람들이 화검상에 대해서 알고 있을 것이다. 그 우람한 체구의 청년 주위에는 비슷한 또래의 남녀가 십여 명이나 길쭉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었는데, 뜻밖에도 이미 눈에 익은 사람도 있었다. 바로 전에 태평진에서 만났던 십방수재(十方秀才) 제갈성(諸葛 星)이다. 제갈성은 화검상과 시선이 마주치자 그저 희미하게 미소만 지 을 뿐 아는 척을 하지 않았다. 문득 악검림이 전음으로 그 십여 명의 젊은 남녀들에 대해 설 명해주기 시작했다. 화검상은 혼자 방황하며 세상 사람들에 대해 알아볼 기회가 없 었지만 그녀는 그래도 그들에 대해서는 아는 모양이었다. 그 십여 명의 젊은 남녀들은 그야말로 당금 정파의 중요한 위 치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방금 그 우람한 체구로 말한 사람은 바로 하북팽가(河北彭家) 의 장손 패왕도(覇王刀) 팽인호(彭人豪)다. 하지만 화검상은 그보다는 문득 그의 우측에 나란히 앉아 있는 한 쌍의 남녀에게 더욱 시선이 집중되었다. 여자는 구석진 자리에 앉아 있고, 남자는 바로 그 옆에 앉아 있다. 화검상은 비록 세상에 많이 나가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살아 가려니 제법 여러 사람들을 만나보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군계일학(群鷄一鶴)이니 인중용봉(人中龍鳳)이니 하는 말들이 정말로 사실로 나타나게 될 줄은 미처 생각지도 못 했다. 남자는 자신과 비슷한 나이에 체구는 헌칠해 보이고 용모는 그 야말로 그린 듯이 준수하며, 그 차갑고도 맑은 기품(氣品)과 시선 은 강한 기개와 더불어 오만함조차 느끼게 한다. 아니 이런 정도의 설명은 오히려 그 모습에 거꾸로 가는 것이 고, 한마디로 말하자면 그는 가장 완벽하게 잘 생기고 수려하며 남성의 기품마저 지닌 그야말로 절세미남자(絶世美男子)라고 할 수 있었다. 화검상은 한 순간에 그에게서 어떤 외형상의 결함도 발견하지 못했다. 주위의 적지 않은 여자들이 마치 해바라기처럼 열정적인 시선 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는 것만 봐도 그 사실은 입증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같은 남자로서의 감탄과 일종의 질투심에 의한 시선 집중일 뿐이다. 화검상은 자연 그보다는 구석에 앉아 있는 그 여자에게 더욱 관심이 갔다. 그 여자는 옆의 남자와 비슷하게 청삼(靑衫)을 걸치고 있고 또 한 어딘가 닮은 구석도 있지만 그다지 완벽한 미인(美人)이라고 는 말할 수가 없다. 어떤 결함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녀는 약간 지나칠 정도로 얼굴이 갸름하고 체구가 수척하며, 표정은 어딘가 우울함이 느껴 진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야그 출력일 :: 98/10/22 ───────────────────────────────────── 제 목 : [화산문하]제 1부 3 권 제 35 장 - 2 나이는 스물세 살 정도나 되었을까? 하지만 그녀의 전체적인 모습에서는 그야말로 보기 어려운 섬 세하고도 맑은 기품(氣品)이 느껴지며, 우울한 표정이 그런 것을 감추지 못하고 있고 차갑고도 유연해 보이는 기질은 어딘가 완벽 을 추구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한 완벽을 추구하려는 듯한 기질은 어딘가 이전에 만났던 어연하를 상기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녀의 용모는 그야말로 눈부신 듯 수려하고 성품도 대 단히 맑아 보여서 도무지 어연하와 비교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 다. 그 어낭자에게는 미안한 노릇이지만 마치 흙으로 빚은 사람과 옥(玉)을 조각하여 잘 만든 사람과의 차이라고나 할까? 그렇게 생각해서인지 계속 보니 그녀의 다소 우울한 느낌과 지 나치게 갸름한 단점들이 나중에는 장점으로 변하여 더욱더 눈부 신 감을 주었다. 화검상이 이렇게 계속 바라보고 있으니 그녀는 당연히 눈살을 찌푸려야 할 텐데 신경이 온통 그 옆의 잘난 남자에게 쏠려 있는 듯 화검상이 바라보는 것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두 사람은 혹시 연인이 아닐까? 하지만 악검림의 말을 듣고 나서 그는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 게 되었다. 그 잘난 남자는 바로 등금의 해내팔세(海內八勢)의 하나인 남 궁세가(南宮世家)의 자제로 소신룡(少神龍) 남궁신(南宮信)이란 사람이며, 그 여자는 그 남궁신의 친여동생인 옥호리(玉狐狸) 남 궁설완(南宮雪完)이었기 때문이다. 그럼 혹시 그녀는 오라비인 남궁신의 그 무엇이 대단히 걱정스 러워서 남모르게 계속 애를 태우고 있는 것이란 말인가? 악검림의 설명이 거의 끝나갈 무렵, 문득 아까 입을 열었던 패 왕도 팽인호가 벌떡 몸을 일으키더니 그의 앞으로 다가와서 소리 쳤다. “이거 정말 기분 더러워서 참을 수가 없군! 네놈이 얼마나 대 단해졌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네놈과 함께 한 집에서 술을 마실 수가 없다! 네놈은 어서 검을 뽑는 게 어떠냐?” 그 사람은 과연 일어선 것을 보니 키가 무려 팔 척(八尺)은 되 는 것 같았다. 화검상은 이전에 홍검백이 매우 크고 우람하다고 생각했었는 데, 이 팽인호는 홍검백보다 최소한 머리 하나는 더 크고 더욱 우람한 것이었다. 그가 황소와도 같은 근육을 움직이며 큰 칼을 뽑아들자, 갑자 기 무엇이라도 터질 듯한 분위기가 팽배해졌다. 실내는 갑자기 조용해지고 사람들의 시선도 이쪽으로 집중되었 다. 화검상은 그 옥호리 남궁설완이란 낭자가 자신을 보지 않을 까 하여 다시 바라보았으나, 그녀는 역시 한차례 그를 보았지만 이내 시선을 돌려 자신의 오라비만 바라보았다. ‘나는 별로 관심의 대상도 아니라는 말이로군! 하지만 오늘은 제법 눈이 호강을 하게 되었는걸?’ 화검상은 그녀를 바라볼수록 어딘가 자신의 마음이 흐뭇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실로 이전에는 거의 없던 일이었다. 한데, 갑자기 목덜미가 거센 힘으로 죄어들더니 그의 신형이 허공으로 붕 떠올랐다. 화검상은 시선을 다시 앞으로 돌리고 쓴웃음을 머금었다. 팽인호가 느닷없이 좌수를 내밀어 그 화검상의 목덜미를 움켜 쥐고 높이 들어올린 것이었다. 화검상의 키도 육 척은 되는데 팽인호가 워낙 거대한 인물이고 보니 그는 그야말로 대롱대롱 매달린 꼴이었다. 기실 강호상에서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면 이렇게 되는 경우는 드물다. 특히 화검상은 무공이 이미 팽인호와는 비교할 수 없는 경지에 올라 있기 때문에 그가 가만히 있지 않았다면 이렇게 될 수가 없 고, 또한 팽인호가 신중한 반면 대담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되지 도 못했을 것이다. 상황이 그렇게 되자 역시 가장 놀란 사람은 악검림이어서, 그 녀는 즉시 몸을 일으키며 장검을 뽑아들었다. 팽인호는 화검상을 이렇게 쉽게 다룰 수 있게 될 줄은 몰랐기 에 다소 어리둥절해 하다가 이윽고 말했다. “네놈은 감히 나를 우습게 여기는 거냐?” 누구라도 그런 위치가 되면 태연하지 못하겠지만 화검상은 그 저 고소(苦笑)를 지을 뿐 담담한 표정이었다. “내가 왜 패왕도(覇王刀)를 우습게 여기겠소? 아마 감히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천하에 거의 없을 것이오.” 기실 화검상은 팽인호와 싸울 수도 몸을 피할 수도 없는 곤혹 스러운 상황이었다. 만일 그가 진짜로 인정받는 화산제자라면 그렇지도 않겠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는 그렇게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뒷자리에서 막 술병을 기울이고 난 한 거지 같은 옷차림의 청 년이 비아냥거리듯이 말했다. “팽형! 어서 그 녀석의 면상을 박살내든지 심장을 꺼내 보이 든지 하시오. 나도 영 술맛이 나지 않는 것 같소이다. 흐흐흐!” 그 사람은 개방( 幇)의 유명한 신진으로 소천개(少天 ) 홍계 남(洪桂南)이란 자다. 개방은 당연히 해내팔세의 하나에 들어 있고, 또한 그 홍계남 의 무공도 이미 최상승(崔上昇)의 경지에 올라 있다고 악검림이 설명해주었었다. 팽인호는 아직도 태연한 표정을 하고 있는 화검상이 이제는 자 신에게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기에 다소 머뭇거렸 다. 본래 그의 의도는 이런 것이 아니라 우선 자신이 먼저 화검상 에게 당하는 한이 있어도 싸움을 벌이고, 이어 친구들이 호응하 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문득 다른 한소리 맑고 청아한 음성이 들려왔다. “팽오라버니! 그는 불쌍하게도 반항도 못하고 있어요. 그런 사 람을 다스린다고 해서 무슨 재미가 있겠어요? 우선은 그 정도로 하고 그대로 앉아 술이나 몇 잔 더 마시도록 하는 게 좋을 것 같 군요!” 그 여자는 바로 십방수재 제갈성의 여동생으로 나이가 가장 어 려서 고작 열여섯밖에 안되는 제갈혜지(諸葛蕙芷)였다. 그녀는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매우 영특하여 소제갈(少諸葛)이 란 별호를 얻고 있었다. 팽인호는 그 말에 화검상을 노려보며 말 했다. “네놈을 오늘 처단하려고 했지만 화산파의 위신을 생각해서 참는 것이다. 하지만 만일 나중에 다시 보게 된다면 결코 이 정 도에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이어 막 화검상을 내려놓으려는데 문득 악검림이 사나운 표정 으로 소리쳤다. “우리 화사형이 네놈들에게 무슨 잘못을 했다고 그러느냐? 정 말 그렇게 막 나간다면 우선 나와 일전(一戰)을 치루어야 할 것 이다!” 팽인호는 거칠게 화검상을 자리에 내려놓더니, 이내 그녀를 향 해 포권하며 냉막하게 말했다. “악낭자에 대해서는 우리도 소식을 듣고 있소. 낭자가 만일 화산파의 사람이라면 이런 사악한 종자와는 더 이상 어울리지 않 는 것이 좋을 것이오!” 악검림은 이에 그만 크게 분격하여 공력을 일으켜 공격을 하려 고 했다. 그런데 문득 공력이 방해를 받아서 화검상을 보니, 그는 가볍 게 미소 지으며 그녀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악검림은 화검상이 자신을 제지한 것을 알고 고개를 떨구며 이 내 검을 도로 넣고 자리에 앉았다. 팽인호가 돌아가자마자 뒤이어 한 사람이 다시 두 사람의 앞에 섰다. 그는 바로 다름아닌 소신룡(少神龍) 남궁신(南宮信)이었다. 아까 볼 때도 그는 훌륭한 모습이었지만 지금 서 있는 모습을 보니 더욱 용모가 수려하고 골격도 최상(最上)임을 알 수가 있었 다. 화산파에서는 풍검진(馮劍眞)을 대단한 기재(奇才)라고 말하고 들 있지만, 그도 이 남궁신에 비하면 떨어지는 면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문득 다시 뒤를 이어 다른 한 사람이 남궁신의 옆에 다 가와 섰다. 바로 옥호리(玉狐狸) 남궁설완이었다. 사람의 별호는 공연히 붙여지는 것이 아니다. 옥호리(玉狐狸)라는 별호가 붙여져 있듯이 그녀에게도 어딘가 지혜롭고 냉혹한 구석이 있을 것이다. 남궁설완은 이쪽으로 다가오면서 자연 화검상을 바라보게 되었 는데, 화검상은 그녀의 시선을 마주 대하자 일순 정신이 다 없어 지고 눈이 부심을 느꼈다. 남궁신은 처음에는 다소 긴장된 표정이었으나 이내 화검상이 자신의 누이만을 멍하니 쳐다보는 것을 보고 그만 입가에 기이한 미소를 떠올리며 말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ЕЕ 야그 출력일 :: 98/10/22 ───────────────────────────────────── 제 목 : [화산문하]제 1부 3 권 제 35 장 - 3 “나에 대해서 알고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오늘 처음 만나는 군. 그대에 대해서는 귀가 아프도록 듣고 있었소!” 화검상은 남궁설완이 자신의 시선을 몹시 못마땅하게 생각하여 눈살을 심하게 찌푸리는 것을 보고 있는 데다가 남궁신이 말을 걸어오므로 그에게 다시 시선을 옮겼다. “나 역시 무림제일(武林第一)의 절세미남기재(絶世美男奇才)인 당신에 대해서 귀가 아프도록 듣고 있었소이다.” 이 말은 화검상이 최대한의 아부를 한 것이다. 기실 남궁신은 그러한 말을 듣기에 거의 부족함이 없지만, 그 러나 그는 왠지 그를 치켜세워주기 싫어하는 기분이 들어 있었으 므로 억지로 그와 같은 말을 한 것이다. 남궁신은 그 말에 오히려 싸늘하게 안색을 굳혔다. “내가 그대에게서 그런 말이나 듣자고 이리로 온 줄로 아는 가? 나는 지금 그대에게 당장 이곳을 나가라고 권하기 위해 온 것이다. 만일 그대가 더 이상 이 자리에 있겠다면 우리는 사마외 도의 무리와 어울린다고 오해를 받을 것이 아닌가?” 문득 옆에서 악검림이 반쯤 웃으며 입을 열었다. “당신들은 별로 화사형에 대해서 알지도 못하면서 그런 말을 함부로 하는군요. 나는 세상 사람들이 겉모양만 보고 사람을 평 가한다는 것을 이제야 알겠어요. 당신은 오히려 우리 화사형과 어울릴 수 있다면 영광이라는 것을 모르나요?” 남궁신은 그 말에 안색이 크게 굳어졌으나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악검림의 말은 다 맞다고 할 수 없다. 이런 사람이 유명해진 것은 다 이유가 있는 것이며 물론 겉모 양 뿐만은 아니다. 화검상은 이번엔 남궁설완을 향해 입을 열어 말했다. “낭자는 혹시 남궁설완(南宮雪完), 남궁소저가 아니시오? 우리 는 오늘 또 보게 되는구려.” 남궁설완은 본래 화검상과 아무런 말도 하고 싶지 않았는데, 그가 그런 말을 하자 자연 대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리가 언제 본 적이 있었나요?” 그녀의 음성은 비록 달콤하고 부드럽지는 않았지만, 맑고 차가 우면서도 시원스러워서 화검상의 가슴속으로 새겨드는 것만 같았 다. 화검상은 기실 그녀와 대화를 해보려고 그런 말을 꺼낸 것이었 다. 그는 고개를 한번 갸웃거리며 말했다. “글쎄요. 나는 혹시 언젠가 본 듯해서 그 기억을 떠올리려고 했던 것인데 잘 생각나지 않는구려. 어쨌든 아니라면 이렇게 만 나서 반갑소.” 남궁설완은 일순 몹시 화가 나서 화검상을 향해 금방이라도 출 수할 것만 같은 표정을 지었다. “네놈이 감히 나를 우습게 본단 말이냐?” 화검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지 않소. 그와는 정반대요. 낭자는 정말 내가 본 그 어떤 여자들보다 훌륭하고 아름답구려. 내가 청혼을 한다면 받아주지 는 않겠지만 말이오.” 남궁설완은 이에 더욱 분격하여 장검을 반쯤 뽑아들었으나 이 내 남궁신에 의해 제지되고 말았다. “완매(完妹), 굳이 저런 자와 상대할 필요가 없다.” 그때 갑자기 화검상의 눈앞으로 한 명의 낯익은 사람이 다가왔 다. 바로 녹귀보였다. 녹귀보가 나타나자 남궁신 등은 그를 향해 형식적으로 예의를 취해 보였다. 녹귀보는 그들에게 그저 간단히 답례하고는 곧장 화검상에게 다가와 차갑게 말했다. “장문인께서 찾으시네. 어서 돌아가세!” 화검상은 그의 차갑고 험악한 얼굴을 바라보다가 이내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런데 그가 막 밖으로 걸어나갈 때의 일이었다. 갑자기 한 사람이 그의 옆으로 슬그머니 다가오며 몸을 부딪치 는 것이었다. 그 사람을 보자 화검상은 문득 한 사람을 뇌리에 떠올렸다. 전날 그에게 소매치기를 하며 접근하던 어연하, 그녀였다. 그런데 그 사람은 술에 만취된 모습이었고 여러 가지로 분장을 했지만 결코 그녀는 아니었고, 중년의 사내였다. 신기하게도 그는 역시 화검상에게 어떤 목적이 있었고 이번에 는 소매치기가 아니라 작은 쪽지 하나를 빠르게 건네주는 것이었 다. 비록 빠르게라고는 하지만 그의 무공 실력으로는 이 주루 안의 많은 무림인들의 시선을 피하기에는 부족했다. 다만 화검상은 미리 알고 반응했고, 그 때문에 그의 도움으로 모두의 시선을 속일 수가 있었다. 그 사내는 일단 그렇게 쪽지를 전한 이후에 비척거리다가 그대 로 아무 곳에나 쓰러져 잠자기 시작했다. ‘정말 우스운 일을 또 한번 겪게 되는군!’ 화검상은 굳이 그를 다그칠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그 냥 쓴웃음을 지으며 녹귀보를 따라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술을 마신 뒤여서 그런지 밖의 기온이 다소 덥게 느껴졌다. 화검상은 옆에 함께 따라가는 악검림의 뒤로 돌면서 재빨리 그 쪽지를 펴보았는데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아무렇게나 휘 갈겨져 있었다. 후문 밖 백 리 지점에 있는 사당에 가보시오. 그러면 중요한 인물을 만나게 될 것이오. ‘중요한 인물이라고……?’ 화검상은 내심 실소했다. 그 쪽지에는 누가 보낸 것인지, 혹은 그 중요한 인물이 누구인 지 등에 관한 설명은 하나도 없었다. 만일 까다로운 사람이라면 쉽사리 응하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 다. 하지만 스스로 생각해도 화검상은 성품이 너그럽지는 못하지만 별로 할 일도 없고 한가한 편이었다. 한 순간 가루가 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쪽지를 잠시 바라 보면서 화검상은 문득 다시 생각했다. ‘나를 만나려는 사람이 또 있기라도 하다는 말일까?’ 화산파의 주거지로 돌아오니 아직 내부가 한산하기는 해도 분 위기는 다소 달라진 것 같았다. 녹귀보는 악검림을 거처로 돌려보낸 다음에 화검상과 둘이서 대청으로 들어갔다. 아까 대청에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지만 지금은 대여섯 명이나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제법 널찍한 대청은 그들 다섯 명이 발산하는 위엄과 기도로 인해 금방이라도 터져나갈 것만 같았다. 화검상은 비록 강호의 정세에 다소 어두운 편이나 눈앞의 이 네 사람에 대해서는 아무리 모르려고 한다고 해도 그럴 수가 없 었다. 실로 그들이야말로 당금의 정무맹(正武盟)을 이끌어가는 주축 인 해내팔세(海內八勢)의 정파측 사세(四勢)의 주인들이었기 때문 이다. 비록 아직은 그들을 직접 만나본 일은 전혀 없었지만, 화검상 은 여태 들은 내용과 모든 사항들을 보건대 그런 확신을 내릴 수 있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미소 야그 출력일 :: 98/10/22 ───────────────────────────────────── 제 목 : [화산문하]제 1부 3 권 제 36 장 추락(墜落)의 노래 제 36 장 추락(墜落)의 노래 풍천비는 지금 눈살을 잔뜩 찌푸린 채로 주인석에 혼자 앉아 있고, 가장 상석에 앉아 있는 사람은 당금의 정무맹주(正武盟主) 이자 소림방장(少林方丈)인 무난(無難)대사, 그리고 그 아래쪽으 로 무당장문인(武當掌門人) 현학진인(玄鶴眞人)과 개방방주( 幇 幇主) 천왕개(天王 ) 홍두자(洪頭子), 남궁세가주(南宮世家主) 제 왕검노(帝王劍老) 남궁조능(南宮兆能)이 차례로 자리하고 있었다. 화검상이 잠시 추정해본 결과, 놀랍게도 이들은 나이도 백 세 를 훨씬 넘었지만 공력도 십이 갑자(十二甲子)를 훨씬 넘어섰다 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현 정무맹주인 무난대사의 공력과 무공은 대단히 뛰어 나다. 하지만 이때 화검상은 기이하게도 그들의 앞에서 전혀 위축되 지 않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것은 일전에 풍천비에게서 느꼈던 긴장감에 비하면 실로 아 무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즉 그의 공력이 비급을 완성하면서 완전히 단련되었으 며, 그 결과 그의 능력이 예전보다 두 배는 증가되었기 때문이고, 기실 그도 어렴풋이 그런 것을 느끼고 있었다. 이제 화검상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이들 다섯 명이 설령 한꺼 번에 덤빈다고 해도 한번 싸워볼 만하다고 보고 있었다. 과연 아니나다를까? 화검상의 추측은 바로 맞아서 눈앞의 인물들은 바로 그 사람들 이었다. 풍천비는 일일이 그 네 사람에게 절을 하게 하면서 소개했고, 화검상은 그들을 재삼 알아보면서 모두에게 부복하며 절을 했다. 어쨌든 이들은 당금의 무림정파를 이끌어나가는 우두머리들인 것이다. 그 네 명의 수뇌들은 화검상을 향해 전혀 고개조차 끄덕이지 않았고 그저 말없이 화검상의 전신을 예리하게 주시하기만 했다. 따라서 화검상은 절을 하는 도중 마치 철판이라도 뚫을 듯한 예리한 그들의 시선에 의해 난도질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화검상이 인사를 마치고 나자, 문득 풍천비는 냉랭한 어조로 말했다. “너는 그만 내 거실로 가 있어라!” ‘정말 위세가 너무도 대단들 하시군!’ 화검상은 그렇게 하는 수 없이 자신에게 단 한마디의 말도 하 지 않은 사람들을 향해 깍듯이 절만 하고 밖으로 나왔다. 밖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고 녹귀보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대청의 건물을 돌아서 뒤쪽으로 갔다. 그 거실은 물론 밀실로 통하는 비밀문이 있는 곳이다. 한데 그가 그 거실의 안으로 들어서니 문득 낯선 한 사람이 그 를 보며 서 있었다. 그 사람은 본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혹은 방금 전에 나타난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평범한 일이 아니다. 화검상의 능력으로 이렇게 다른 사람의 종적을 모른다는 것은 실로 있을 수가 없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 사람은 머리카락이 은발(銀髮)로 눈부실 정도로 수려(秀麗) 한 용모의 노인(老人)이었는데, 화검상은 아직 그처럼 아름다운 노인을 만나보지 못했다. 실로 나이를 많이 먹은 노인도 이렇게 눈부시게 아름다울 수가 있다는 것을 그는 처음으로 알았다. 게다가 그 노인의 눈빛은 무슨 아름다운 옥(玉)이 광채를 뿌리 고 있는 것만 같았다. 화검상은 문득 이 일이 매우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실로 조금 전에 당금강호의 최고 실력자들을, 물론 소림 사에는 방장보다 더한 고수들이 있다고 하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지만 거의 다 만나보고 온 셈이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이곳에 나타난 이 사람은 대체 누구이며, 또 한 어째서 이렇게 대청에서도 느끼지 못했던 두렵고도 위험해 보 이는 기분을 느끼게 되는 것일까? 화검상은 기실 이 노인보다 더욱 위험하게 느껴지는 강호이인 들을 더러 만나보았지만, 왠지 두려움은 지금 이 노인에게서 더 욱 강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대체 이 사람은 누구일까? 그리고 왠지 이 사람이 이제 곧 자신에 대해서 밝힐 것 같은 예감도 들었다. 과연 아니나다를까? 노인은 화검상을 잠시 그 신비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더니 이렇 게 입을 열어 말했다.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느냐? 네 녀석은 생각보다 그런 점에 있어서는 둔하구나.” 화검상은 우선 마음을 여유있게 갖기 위해 입가에 미소를 떠올 리고 느긋한 표정을 지었다. “노인장께선 유명하신 분입니까?” 노인은 화검상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더니 가벼운 실소를 날렸 다. “네 녀석은 정말 괴물 같은 녀석이다. 여태 천하의 그 누구도 그런 나이에 나를 귀찮게 하지 못했다. 너는 무엇을 바라느냐?” 화검상은 되물었다. “혹시 노인장이 어떤 분인지 말씀해주실 수가 있으십니까?” 노인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는 천하제일가(天下第一家)를 아느냐 모르느냐? 천하제일 가를 알고 있다면 당연히 나도 알고 있을 것이 아니냐?” ‘천하제일가……?’ 화검상은 일순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설마 했던 일들이 사실로, 경악감으로 다가드는 순간이 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경악감은 처음에는 의식할 수 없었으나 나중에는 금방 그 의 마음을 휘감아버렸다. “그, 그렇다면 노인장께선 천수자(天隨子)란 말씀이십니까?” 화검상은 모처럼 말을 더듬고 있었고 태연한 듯한 안색과는 달 리 그의 손끝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는 문득 일전에 사마귀에게서 들은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었 다. 과연 그 말들이 모두 사실일까? 그렇다면 화검상은 지금 원흉(元兇)과 얼굴을 마주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노인은 입가에 미소를 떠올리며 말했다. “그렇다. 내가 바로 당대의 천수자인 석장생(石長生)이다.” 화검상은 내심 길게 숨을 내쉬어 마음을 가라앉히며 미소와 함 께 말했다. “그럼 당금의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이시군요? 이거 이렇게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화검상이 길게 읍하여 절하자, 천수자는 잠시 더 화검상을 유 심히 바라보았다. “노선배께선 소생에게 무슨 하교(下敎)하실 일이라도 있으십 니까? 소생은 귀를 씻고 경청하도록 하겠습니다.” 천수자는 기이하게 웃으며 말했다. “너는 과거 십사 년 전의 일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화검상은 일순 전신에 심한 격동이 스치는 것을 느꼈으나 역시 웃으며 대답했다. “그것은 과거의 일입니다. 돌이킬 수는 없지요. 다만 가능하다 면 정의(正義)가 바로서게 되었으면 하고 바랄 뿐입니다.” 천수자의 입가의 미소가 좀더 깊어졌다. “너는 풍천비와 이미 협상을 했다면서?” 화검상은 미소하며 대답했다. “저는 모든 일을 순리대로 풀어가려고 합니다. 역시 그게 가 장 좋을 것입니다.” “순리대로라……?” 천수자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미소하더니 문득 걸음을 내디뎠 다. 두 걸음째 내딛는가 싶었는데 갑자기 그의 신형이 사라지고 음 성은 허공에서 울려왔다. “그것도 좋겠지. 화천괴(華天魁)의 손주녀석이라……, 정말 어 이가 없군!”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순 야그 출력일 :: 98/10/22 ───────────────────────────────────── 제 목 : [화산문하]제 1부 3 권 제 36 장 - 1 그렇게 갑자기 사라진 천수자의 빈자리를 보며 화검상은 잠시 넋을 잃은 표정이 되었다. 그는 물론 순간적으로 천수자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종적을 알 지 못했고 기척도 다른 곳에서 느낄 수가 없었다. 화검상은 문득 주저앉고 싶은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그의 감각은 이제부터의 그 무한한 위기를 직감하고 그 대로 주저앉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문득 다소 피로해지고 충혈된 시선을 들어 화검상은 생각했다. ‘후문 뒤쪽 백 리 지점의 낡은 사당이라고 했던가……?’ 천수자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어쨌든 화검상은 그의 능력이 자신의 능력과는 전혀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이제 천수자와 만났고 자신의 능력을 보인 셈이라고 할 수 있었다. 천수자가 만일 그를 죽이려고 한다면 과연 그는 거기에서 목숨 을 부지할 수 있을까? 이것은 애초에 풍천비와 협상을 하면서부터 들어선 길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니 본래는 그 이전부터 이렇게 될 가능성이 많았던 것일까? 어쨌든 이제 와서는 후회할 필요도 없고 후회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은 명백해 보였다. 화검상은 그 쪽지의 내용대로 찾아가되 무공을 숨기지 않기로 했다. 이 지나칠 정도로 넘쳐흐르는 위기감은 도저히 그를 그대로 있 도록 놔두지 않았다. 화산파는 분지의 좌측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그는 빠르고 은밀 하게 그 분지를 좌측으로 벗어나 북쪽으로 내달렸다. 현재 그의 무공으로 아무리 몸을 숨기고 달린다고 해도 백여 리의 길은 그리 먼 여정이 아니다.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쪽지에 적혀 있었던 그 부근에 이 르렀다. 그는 천청대법(天聽大法)을 펼쳤으며, 이내 사람들이 머물고 있 는 사당을 찾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 사당은 역시 오래되어 다 쓰러져가는 곳이었는데, 그는 다 소 신중을 기하기 위해 부근에서 내부를 엿듣기로 했다. 뜻밖에도 그 안에서는 귀에 익은 음성이 다른 음성과 더불어 흘러나왔다. “그러지말아요, 소강(少康)! 그가 올지도 모르잖아요?” “그럴…… 리가 없어. 그 녀석은 풍천비에게 간다 했으니 최 소한 한 시진은 더 있어야만 올 거야. 정말 하매(霞妹)는 아름다 워!” “아아 소강! 그러지말아요. 그대는 지난 며칠간 나를 계속 못 살게 굴고, 그러고도 부족한가요? 나중에 시간도 넉넉한데……, 이러지말아요. 지금은 싫어요.” 그 음성이 특별히 귀에 익은 것이 아니었다면 화검상은 도중에 천청대법을 거두었을 것이다. 하지만 들려오는 그 소리들은 능히 그의 귀를 의심스럽게 하고 있었다. ‘이곳에 어연하, 그녀가 있다는 말인가? 그리고 그 쪽지는 그 녀를 만나보라는 것이었나?’ 화검상은 도무지 알 수가 없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지만 그래도 일단은 부딪쳐보기로 했다. 그는 그냥 사당의 안으로 들어가려다가 문득 그 안의 상황이 불안스러워서 뒤로 삼십여 장쯤 물러난 뒤에 천리전음(千里傳音) 으로 말을 보냈다. “그 안에 쪽지를 보낸 사람이 있소?” 과연 그로부터 잠시 후에 그 사당의 안에서 두 사람이 걸어나 왔다. 한 사람은 정말로 어연하, 그녀였고 다른 사람은 등에 장검을 멘 비슷한 나이의 젊은 청년이었다. 그들은 어딘가 옷차림이 흐트러져 보였고 또한 어연하가 그 청 년에게 보내는 시선은 상당히 애틋하게 보였다. 이 상황은 더 물어보지 않아도 명백하다. 화검상은 가슴 한쪽이 갑자기 주저앉는 것을 느끼면서도 한편 으로는 내심 웃음이 나왔다. 그녀는 불과 열흘 전만 해도 그와 혼인을 하겠다고 하던 여자 였기 때문이다. 과연 그는 정말로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을까? 화검상이 그들의 앞으로 다가가니 그 장검을 멘 청년이 그를 주시하다가 음침한 기색으로 말했다. “당신은 생각보다 일찍 왔군. 나는 소요검(逍遙劍) 종리강(鐘 里康)이라고 하며 천산검문(天山劍門)의 사람이오.” 천산검문은 동심맹의 주요 세력들 중의 하나이다. 어연하가 갑자기 그와 친하게 된 것은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 닐 것이다. 화검상은 짐짓 미소 짓고 포권하며 말했다. “소생은 화검상이오. 귀하가 소생을 보자고 했소?” 종리강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북쪽을 가리켰다. “우리는 그저 은자를 받고 일을 해주는 것에 불과하오. 당신 을 만나고자 하는 사람은 여기에서 북쪽으로 이백여 리 더 가야 만날 수 있소. 그 부근에 백사(白沙)라고 하는 작은 마을이 있는 데, 그 마을의 하나뿐인 주루에 가면 그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것 이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약속이 어긋날 수도 있으니 당신 은 술집에서 기다리지말고 그 부근을 뒤져보는 것도 좋을 것이 오.” 화검상은 어리둥절해졌다. “그럼 그 사람은 대체 어떤 사람이오?” 종리강은 음침한 표정으로 어연하를 한번 돌아보더니 말했다. “그는 자신의 신분이 드러나는 것을 꺼려 하지만 내 당신이니 특별히 가르쳐주겠소. 그는 바로 백혈단(白血團)의 주인인 동방천 서(東方天西)라는 사람이오.” ‘백혈단……? 동방천서?’ 화검상은 백혈단이 바로 화산파에 반기를 들고 있는 또 다른 세력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우두머리가 동방천서라는 사람이라는 것은 처음 듣 는 것이었고, 게다가 그 사람이 자신을 찾는다니 놀랍기도 했다. 그는 저번에 만났던 서귀현이라는 사람과 어떤 관계일까 하고 생각했지만, 어쨌든 그 우두머리가 직접 나섰다니 이제는 그를 한번쯤 만나봐야 할 것 같았다. 화검상은 이번에는 어연하를 향해 미소하며 입을 열었다. “어낭자, 우리는 또 보게 되는구려. 그간 별고없었소?” 어연하는 다소 냉랭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가 말을 받았다. “무슨 별일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나요? 나는 앞으로 얼마 후면 여기에 있는 이분과 혼인을 하게 되요. 당신도 그때 와서 축하해 주면 좋겠군요.” 화검상은 내심 마음이 허전해졌지만 이상하게도 직접 보고 그 말을 들으니 그다지 마음의 충격은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이오. 설령 내가 가지 못한다고 해도 두 분이 행복하게 잘 살게 되기를 바라겠소!” 말과 함께 화검상은 즉시 신법을 날려 북쪽으로 향하기 시작했 다. 비록 이백여 리의 산길이라고 해도 그에게는 조금도 멀거나 장 애를 느끼게 하지는 못했다. 이 무렵 그의 신법은 대단히 발전하여 삼사백 장을 단숨에 날 아가고 마치 새가 나는 것과도 흡사했다. 백사(白沙)라는 그 작은 마을을 찾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 다. 그런데 문득 그 마을의 입구에 이르렀을 때 자신이 약속 시간 에 대해 물어보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다소 마음이 초조해져서 머뭇거리다가 내심 생각했다. ‘다시 돌아가본다고 해도 그들이 그 사당에 계속 있다는 보장 도 없고, 일단 이곳에 들어가 기다려보면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 마을에서 주점을 찾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주점을 찾고 보니 그곳은 이미 엉망으로 부서져 있고 한 초로의 주인이 넋 나간 듯한 표정으로 물건들을 정리하 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주인은 화검상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우라질! 오늘 정오에 그런 노인 하나가 우리 가게에 찾아오 기는 했소. 그런데 그 때문에 우리 가게도 이 모양이 되었고 내 아들녀석도 죽고 말았다오. 우라질! 내가 그렇게 나서지말라고 말 렸는데…….”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순 야그 출력일 :: 98/10/22 ───────────────────────────────────── 제 목 : [화산문하]제 1부 3 권 제 36 장 - 2 노인의 슬픔에 더 이상 동조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동방천서와 비슷한 사람이 동쪽의 산으로 달아났다는 말을 듣 고 그는 황급히 그쪽으로 신법을 펼치며 천청대법을 펼치기 시작 했다. 정오에 그런 일이 벌어졌다면 벌써 한 시진 이상의 시간이 흐 른 셈이다. 과연 그 동방천서라는 사람은 무사할까? 다행히도 그는 얼마 가지 않아서 한 계곡의 막다른 지점에서 격렬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비록 결렬한 싸움이라지만 그 싸움은 이미 거의 막바지에 이르 러 있어서 다른 한쪽은 다소 한가한 모습마저 보여주고 있었다. 막다른 구석 쪽에 지금 온통 전신이 만신창이가 된 노인이 안 간힘을 다해 검을 휘두르고 있었는데, 지금 그 노인과 상대하고 있는 사람들은 수석장로 성천익(成天翼)과 봉천학(封天鶴)이었고, 나머지 뒤에 포위하고 서 있는 수십 명의 사람들은 모두 화산파 의 제자들이었다. 화검상은 그 노인이 동방천서일지는 모르지만 우선 화산파의 사람들과 공공연히 싸울 수는 없다고 생각하여 비상수단을 쓰기 로 했다. 갑자기 화산파의 제자들이 무더기로 쓰러지고 성천익과 봉천학 이 뒤로 주춤 물러났는데, 그것은 화검상이 암기의 수법으로 솔 잎들을 날렸기 때문이다. 그 노인의 그것을 보자 이내 멈칫하다가 빠르게 달아나기 시작 했다. 화검상은 그의 뒤를 따랐다. 노인은 이미 심한 중상을 입어 백여 장 정도 나아가자 점차로 그 속도가 떨어지기 시작했는데, 화검상은 더 이상 그의 기력이 소모되는 것을 막기 위해 그의 앞에 나타났다. “당신이 바로 동방천서입니까?” 노인은 거의 마지막 사력을 다해 달아나다가 누군가 앞을 가로 막자 누군지 알아보지도 않고 먼저 장검부터 휘둘렀다. 그것이 바로 화산파의 검법(劍法)이라는 것을 화검상은 이미 조금 전에 알아본 바가 있었다. 노인의 무공이 정상적이라고 해도 전혀 화검상에게는 당할 수 가 없었을 것이다. 화검상은 먼저 노인을 제압한 다음에 진기를 주입하여 기력을 보충시켜주었다. 노인은 잠시 화검상을 바라보는 듯하다가 이윽고 한숨을 내쉬 며 말했다. “나를 은밀한 곳으로 데려가시오.” 화검상은 노인의 상세가 이미 심상치 않아 손을 쓸 수 없을 정 도라는 것을 느끼고 즉시 신법을 날려 은밀한 동굴 같은 곳을 찾 았다. 노인은 화검상의 품속에 안겨 있으면서 정신이 가물가물한 모 양이었으나 왠지 깊은 회한에 젖은 듯한 표정을 풀지 않았다. 이 사람은 용모가 상당히 청수하고 젊었을 때는 제법 준수했을 듯했으나, 불거져나온 광대뼈와 눈빛은 고집이 세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화검상은 다행히 깊고 은밀한 계곡에서 쉴 수 있을 만한 한 동 굴을 발견할 수 있었다. 동굴에 이르러 다시 진기를 주입하며 치료하려고 하자, 노인은 잠시 후에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마도 그대는 당시 어렸었기 때문에 나를 기억하지 못할 것 이오. 하지만 나는 그대를 분명히 알아볼 수 있소. 그대는 돌아가 신 조부와 많이 닮았소. 내가 바로 동방천서(東方天西)요…….” 그 노인은 이미 심한 내상을 입은 데다가 어깨와 한쪽 허벅지, 그리고 가슴에 각기 한 자루씩의 장검이 꽂혀 있었고 전신에서 흐르는 피는 멈추게 할 수 없었다. 자칭 동방천서라고 한 그 노인은 쓸쓸한 표정을 지으며 가슴에 박혀 있는 장검을 어루만지면서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나는 백혈단(白血團)에서 살아남은 마지막 장로(長老)요. 그 대가 어느 정도 알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십사 년 전에 그 엄청난 원한을 잊을 수가 없어서 화산파를 다시 일으켜세우려 고 했소…….” 그 내용은 화검상이 이전에 사마귀에게서 들은 것과 기이할 정 도로 일치했고 또한 약간 더 자세했다. 이 동방천서라는 장로는 당시 화천괴에게 많은 총애를 받던 막 내 사제였고, 대부분의 일에 참여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과거의 일에 대한 판단은 더욱 분명해진 셈이었다. 원흉(元兇)은 천수자(天隨子)이고 풍천비는 야심을 가진 기회주 의자였으며, 무림제국(武林帝國)이라는 정파 세력의 거대한 음모 에 의해 화천괴 등은 희생된 것이다. 화천괴는 일세의 기재(奇才)였으나, 무모하게도 천수자에게 반 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직 좀더 분명해져야 할 내용들도 있었으나 이미 그것으로 대 강의 당시 상황은 확실해진 셈이었다. “우리 백혈단은 본래 그 취지가 분명했으나 나중으로 갈수록 혼탁해지게 되었고 또한 그 숫자도 이미 많이 줄어들게 되었소. 믿을 수 없겠지만, 이제 그들로서는 그 무엇도 할 수가 없소. 그 대가 우리의 일에 반대한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아무래도 그대가 우리와 합류해야 하겠기에 혼자 목숨을 걸고 그대를 만나고자 한 것이오. 앞으로는 부디 그대가 이끌어주시오. 그들은 본래가 나쁘 지 않고 또한 역시 화산파의 사람들이기 때문이오. 나는 믿소. 언 젠가는 그대가……, 그대가 나서줄 것을. 지하에 계신 장문사형도 그대를 가장 믿었던 것이오. 마지막으로 개인적인 부탁이…… 있 소. 내가 은밀히 돌보아온 나의 친인척들이 있는데, 그들을… ….” 동방천서는 모든 말을 마치자 스스로 가슴에 박힌 장검을 뽑고 죽었다. 몹시 쓸쓸해 보이기는 했지만 왠지 그러한 그의 주검에는 한 가닥 평온이 깃들어 있는 듯했고, 그제야 화검상은 어렸을 적에 그를 보았던 듯한 기억이 아스라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동방천서는 비록 자신의 평생 소원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하고 싶은 말은 다할 수 있었기에 눈을 감을 수 있었던 모양이었다. 화검상은 동굴 속에 그의 무덤을 만들어주고 동굴의 입구를 막 아 버린 다음에 정무맹으로 다시 신형을 날렸다. 이미 사위는 황혼의 저녁노을이 붉게 물들어 몹시 장렬한 느낌 까지 주고 있었다. 화검상은 신법을 날리면서 계속 생각에 잠겼다. 이제 그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과연 예전과 달라진 것이 있을 수 있을까? 비록 좀더 자세히 알게 되기는 했지만 화검상이 정말로 그런 과거의 일들을 모르고 있었던 것일까? 백혈단에 대해서는 그는 여전히 합류하거나 뜻을 같이할 수가 없고, 또한 동방천서의 개인적인 부탁은 화검상에게 나중에 그럴 만한 여유가 있을지 의문이다. ‘당신들은 나를 잘못 보았소. 나는 그런 훌륭한 사람도 못되 고 비단 나약할 뿐만 아니라 소심하고 어리석은 사람이오. 당신 들은 그렇게 헛되이 목숨을 버렸지만, 바로 나라는 사람에게 잘 못 기대한 것이 실수란 말이오. 나는 나 자신조차 감당하지 못하 는 사람이오.’ 몸과 마음은 갈수록 무거워지고 발걸음도 느려지지만 이상하게 도 머릿속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고 심한 두통만이 엄습했다. 그리고 온갖 감정들이 뒤엉켜 미칠 듯한 이 기분…….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웃음만이 치솟으니 이 무슨 일인가? 마치 정신없이 술취한 사람처럼 화검상은 다시 예의 그 사당이 있는 곳에 이르렀다. 그의 감각으로 사당의 안에는 이제 아무도 없지만, 문득 그는 다시 안으로 들어가서 확인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고 계속 정무맹 쪽으로 걸음을 옮 겼다. 이렇게 취한 것 같은 날에는 정말로 만취하고 싶다. 술을 마실 생각을 하자, 그는 신법의 속도를 더하여 짧은 시간 에 정무맹의 그 주루 앞에 이르렀다. 이미 주위가 어두운 저녁 때라 주루는 더욱 붐비는 것 같았다. 이곳의 사람들은 그의 출입을 거부하고 있지만 이 순간 그는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 안으로 들어갔다. 다행히도 금방 자리가 비어 그는 그쪽으로 가서 앉았고 점원을 불러 술을 다섯 병 정도 시켰다. 이렇게 아무런 생각 없이 마셔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문득 술을 기다리는 사이에 눈에 익은 한 사람의 모습이 크게 부각되어 들어왔다. 바로 옥호리(玉狐狸) 남궁설완(南宮雪完)이었다. 주위의 사람들은 바뀌었지만 그녀는 또 자신의 오라비를 따라 이곳에 온 모양이었다. 화검상은 아직 술을 마시지도 않았는데도 정신이 몽롱하여 몸 을 일으켜 그녀에게 걸어갔다. 왜 지금 미친 듯이 그녀에게 걸어가고 있는지 그도 알 수가 없 었다. 남궁설완도 이미 술을 조금 마셨는지 안색이 약간 상기되어 사 람들과 어울려 웃고 있었다. 화검상이 다가가자 그녀는 놀란 듯이 바라보다가 이내 얼굴 가 득 살기를 일으키며 장검의 손잡이를 잡았다. 지금 화검상에게는 이상하게도 모든 주위의 시선과 소음들이 전혀 들리지 않고 마치 시간마저 정지되어버린 것 같았다. 만일 그때 누군가가 그를 잡지 않았다면 그는 정말로 그녀에게 다가가 입을 맞추어버렸을지도 모른다. 고개를 돌려보니, 화산파의 제자 하나가 괴이쩍게 웃으며 이렇 게 말하고 있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야그 출력일 :: 98/10/22 ───────────────────────────────────── 제 목 : [화산문하]제 1부 3 권 제 36 장 - 3 “그대의 모친께서 지금 기다리고 계시니 어서 가보는 게 좋겠 소.” ‘어머님이……?’ 그 한마디는 화검상을 정신차리게 하기에 족했다. ‘그래, 어머님이……, 어머님이 날 부르신다고 하지 않는가?’ 화검상은 곧장 화산파가 주둔하고 있는 곳으로 내달렸다. 그는 자신이 도중에 어떤 신법으로 어떻게 시간을 단축시켜 그 곳에 이르렀는지 기억할 수가 없었다. 저녁 무렵이라 출전했던 제자들이 속속 돌아오고 있었고, 다소 어수선해진 가운데 대청은 그 사람들이 떠나고 비어 있었다. 화검상은 장문인의 처소로 들어갔다. 과연 그곳에는 그의 모친이 탁자 앞에 앉아서 술을 마시고 있 었는데 화검상을 보자 문득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비급을 완성했다는 얘기는 들었다. 참 잘했다. 이리 와서 술 한잔하지 않겠느냐?” 화검상은 마침 술이 먹고 싶은 상태였지만 아직 그의 모친이 술을 마시는 것을 별로 보지 못한 것 같았다. 풍귀월은 짐짓 쓴웃음을 지으며 그의 술잔에 술을 따르고 말했 다. “이번에 먼 곳을 다녀왔다. 그래서 미처 너의 비급을 읽어보 지 못했구나. 하지만 이건 이 어미가 그래서 따라주는 술이니 남 기지말고 어서 마셔라.” 화검상은 얼른 그 술을 마셔버리고 웃으며 말했다. “제가 술을 마시고 싶었던 것을 어머님은 이미 알고 계셨던 모양입니다.” 심한 갈증 속에 마셨던 술이라서 그런지 매우 독했고 이내 그 뜨거운 열기가 전신을 몽롱하게 마비시켜가는 것 같았다. 아무리 심하게 취했어도 이렇게 운기(運氣)조차 안될 정도로 정신이 몽롱해지기는 처음 있는 일이다. 풍귀월은 문득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냉랭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 이건 천하에 다시없을 귀한 술이고 너는 이제 다시는 술을 마실 수가 없을 거다. 그냥 편히 잠자거라.” 화검상은 자꾸만 모친의 모습이 흐려져가는 것을 보고 눈을 크 게 뜨려고 하며 미소했다. “편히 잠잘 수 있다면 그건 좋은 일이지요. 하하, 그렇게 귀한 술을 제가 마셨다는 말입니까?” 풍귀월은 뒤로 두어 걸음 물러서며 말했다. “그렇다. 그건 바로 칠심해당(七心海棠)이다.” 화검상은 일순 말을 잘못 알아들은 것 같았다. 천하에 가공할 독들이 많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그래 도 가장 무서운 독(毒)은 바로 이 칠심해당(七心海棠)이다. 사람들은 오랫동안 독에 대해 연구했었는데도 정작 그보다 더 한 독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을 기이하게 생각했다. 이 칠심해당은 자연의 독 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것이며, 그 어 떤 인공적인 독의 배합으로도 그것을 따라갈 수가 없다. 그것은 무색, 무미, 무취하며 일단 중독된 사람은 해독이 거의 불가능하다. 일반적으로 치명적인 독들 중에서 불과 잠깐 동안에 사람의 육 신을 녹여버리는 독들도 많이 있지만 그것들은 일반인들에게나 적용되는 것이고 무림고수들에게는 잘 적용되지 않는다. 무림고수들은 그 높은 공력으로 그러한 독들을 배출시킬 수 있 다. 하지만 아무리 공력이 높아도 배출시킬 수 없는 독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이 칠심해당이다. 따라서 언제부터인가 칠심해당은 그 무서움이 알려지게 되었 고, 거의 전설(傳說)처럼 전해지게 되었다. 그런데 이들은 이 칠심해당을 어디에서 구할 수 있었을까? 만일 칠심해당이 그야말로 희귀한 것이 아니라면 이미 많은 무 림인들이 성하지 못했을 것이다. 화검상은 잠시 멍하니 그대로 앉아 있다 넋 나간 사람처럼 그 의 모친을 바라보고는 웃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저를 죽여야만 했습니까?” 그때 갑자기 사방에서 살기가 진동하며 많은 사람들이 실내를 에워싸며 들이닥쳤다. 이대원로(二大元老)와 장로(長老)들, 그리고 그들의 우두머리는 물론 풍천비였다. 풍천비는 장검을 뽑아들며 화검상을 향해 소리쳤다. “그렇다! 바로 네놈 때문에 본파가 얼마나 많은 피해와 곤욕 을 겪었는지 아느냐? 네놈을 이제 더 이상 살려둘 수가 없다!” 화검상은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외할아버지께서는 이미 나를 해치지 않겠다고 약속하지 않았 소?” 풍천비는 안면을 흉악하게 물들이며 소리쳤다. “이 더러운 개잡종놈! 누가 네놈의 외할애비란 말이냐? 나는 너 같은 개잡종의 종자를 내 친인척으로 생각해본 일이 전혀 없 다!” 화검상은 전신이 주도로 무력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 칠심해당은 정말로 무서워서 놀랍게도 그의 자랑스럽던 곡 선적 내공마저 깡그리 말살시켜가고 있는 것이다. 화검상은 안간힘을 다해 무너져가는 의식의 끈을 잡으며 모친 에게 다시 물었다. “제가 그렇게도 미웠습니까?” 풍귀월은 다소 창백해진 안색으로 화검상을 바라보다가 이내 장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너는 본래 태어나서는 안 되는 인생이었다. 너는 이 어미를 원망하지마라. 만일 조금이라도 이 어미를 생각해준다면 즉시 스 스로 목숨을 끊어다오.” 화검상은 잠시 더 모친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문득 한소리 부르 짖으며 번쩍 밖으로 신형을 날렸다. 풍천비는 이에 놀라 소리쳤다. “모두 뒤쫓아라!” 화검상은 무의식중에 서쪽으로 내달렸다. 하지만 운기를 할수록 칠심해당의 독은 그의 골수로 파고들어 그의 육체와 정신을 갉아먹어갔다. 그는 너무도 급격한 변화들을 체험하고 있었으며, 마침내 어느 순간 더 이상 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곳은 정무맹으로부터 백 여리 정도 떨어진 곳이라고 생각되 었다. 그의 신형이 정지한 순간 수많은 장력(掌力)과 장검이 그의 몸 속으로 파고들었으며, 희미해진 의식 속으로 귀에 익은 음성들이 들려왔다. “정말 대단한 놈이로군, 칠심해당에 중독되고서도 검을 피하 다니! 어서 따라내려가서 시체를 확인해라!” “아버지, 그 아이의 시체는 훼손하지말아주세요…….” 화검상의 육신은 어둠 속에서 깊은 절벽 아래로 추락하고 있었 다. 마치 그처럼 그의 의식도 어둠의 나락 속으로 곤두박질을 치는 것만 같았다. 화검상은 문득 그렇게 꺼져가는 의식 속에서 내심 미소를 지으 며 중얼거렸다. ‘차라리 잘된 일이다. 내 마음이 이젠 편안하구나. 더 이상 무 엇을 바라겠는가? 이 세상에서…… 노래를 불러본들.' 제 37 장 동방남매(東方男妹) 그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더러 이상한 일들이 생기기도 하지만 이것은 그것들과는 또 다른, 다른 사람들은 경험할 수 없는 아주 이상한 일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본래 일반적으로 따져본다면 화검상(華劍傷)은 죽었어야 할 운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한밤중에 거의 빈사상태에서 절벽 아래로 떨어져내리면서 그 갑작스런 이상한 일들은 벌어졌다. 그가 거의 절벽의 아래쪽에 가까워질 무렵, 갑자기 떨어지는 속도가 급격히 줄어들더니 드디어 허공에 둥둥 뜨며 떨어지는 것이 멈춰져버린 것이다. 대개 사람이든 무엇이든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하면, 갈수록 그 속도가 증가되지 저절로 속도가 줄어들거나, 더욱이 멈추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무공에 있어 소위 허공을 걷거나 날아갈 수 있다는 능공허도(凌空虛渡), 육지비행술(陸地飛行術), 어풍비행술(御風飛行術) 등은 공력이 십육 갑자(十六甲子)에 대홍락(大紅落) 심검(心劍)의 경지에 이르러야만 정말로 가능하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화검상은 아직 그와 같은 경지에 이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치명적인 극독에 중독되어 있고, 또한 빈사상태가 아닌가? 이것이 어찌 된 일인지는 사실 그 본인인 화검상 자신도 잘 모르고 있었다. 다만 그는 이때 마음이 더할 나위 없이 맑고 고요해져서 구태여 그런 이상한 일의 원인에 대해 알아내고자 하는 생각은 일지 않았다. 다만 그의 지금의 마음은 그 한없이 맑고 고요한 세계 속으로 깊이 빠져들어 가고 있었다. 마음의 힘은 왕왕 아주 신기한 일들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어는 순간부터 그는 육체적 혼몽감과 고통을 인식하지 않게 되었고, 혹은 아예 그러한 것들이 갑자기 모두 사라져버린 것 같기도 했다. 대체 이러한 일들은 어째서 벌어진 것일까? 슬픔과 고통이 극에 이르러 오히려 마음이 맑고 조용해진 모양이다. 아니면 깊은 허탈감과 고뇌의 일종일까? 그런 것도 아니다. 그 어떤 설명할 수 없는 마음속으로 깊이 접어들어 화검상은 거대한 슬픔 속에 있는 것 같으면서 아닌 것도 같은, 이를테면 기이하고도 불가사의한 심정 속으로 깊이 빠져들어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극도의 고뇌와 슬픔, 허망한 기분을 느꼈지만 이내 그 알 수 없는 마음의 힘이 그런 것들은 안개처럼 녹여버리고 마음은 매우 고요하고 편안해지게 되었다. 다만 흡사 안개와도 같아진 그 거대한 고뇌와 슬픔이 기실 그의 마음 전체를 지배하고 있었는데, 아마도 갑자기 일어난 이 기이한 현상은 거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이 아무리 크게 슬퍼하고 절벽 아래로 떨어져 내린다고 해도 백이면 백 모두 다 떨어져 박살이 나며 그런 기현상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과연 단지 그의 현재 마음이 매우 슬프고 괴롭기 때문에 그런 괴력이 발휘되는 것일까? 그것은 아닐 것이다. 이때 점차로 곤두박질하며 혼몽하게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하던 그의 의식도 어느새 맑고 명료해지게 되었다. 이것은 과연 무엇 때문일까? 문득 이내 그의 귓가에 분명하게 귀에 익은 사람들의 음성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절벽 아래쪽이었다. "아니 이 개자식이 어딜 갔지? 떨어져서 벌써 박살이 났을 리도 없고 말야." "무량수불, 우리 대화산파(大華山派)의 사람들이 그런 상스런 말을 써서야 되겠소? 어험 어험, 그 개자식은 이제 반드시 죽었을 테니 너무 걱정 마오." "제기랄, 그런 도사의 흉내는 그만 내고 어서 찾아보기나 하자고. 이 개잡종 녀석이 이미 죽어서 하늘로 날았단 말인가? 그 개잡종은 뒈져도 이렇게 속을 썩이는군!" "험험, 어디 안 보이는 구석에 떨어졌을지도 모르니 좀더 찾아봅시다. 어쨌든 이번에 그 개작식을 죽일 수 있었던 것은 본파에 광명의 빛이 던져진 것이라고 할 수가 있지. 그것을 위해서 우리 신녀(神女)께서 멀리까지 다녀오신 것이 아닌가? 험험, 저기가 수상한데......?" 화검상은 아직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고 또한 몸을 움직일 그런 생각도 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그저 그렇게 시체처럼 뻣뻣해진 몸으로 미끄러지듯 허공을 날아 적벽 사이의 어느 좁고 갈라진 틈새로 스며들듯 들어갔다. 그 틈새는 눈에 잘 띄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어린아이 하나도 들어가기 어려울 정도로 아주 좁았는데, 기이하게도 화검상의 육신은 스르르 안으로 들어가서 이내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화검상이 안으로 들어간 이후 그 안쪽은 기이한 기운의 작용으로 돌과 흙이 무너져내려 외부와의 길을 차단해버렸다. 일부러 동굴속에 갇히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을 테지만, 그 동굴은 또한 비좁으면서 깊었다. 그 동굴이 깊을수록 좋아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화검상은 오히려 완전히 몸을 피할 수 있다는 생각에 그것을 좋아했다. 그 동굴은 깊기는 했지만 그저 동굴이라고도 할 수 었는 갈라진 틈이었기 때문에 안쪽은 막혀 있었다. 이런 곳에서는 숨쉬기가 곤란해져서 일반인들은 출고가 막혀 있는 상태라면 얼마 가지 않아 질식하고 말 것이다. 하지만 화검상은 일단 그 안쪽 깊이 들어가 안전해지자 마음이 오히려 편안해졌다. 지금 그의 의식은 흡사 육신을 초월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지금 죽은 것이 아니니 육신을 벗어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인 것 같기도 했다. 그의 육신은 이내 거칠고 음습한 바닥 위에 내려앉았고 혼자만의 깊은 명상의 시계로 빠져들어가기 시작했다. 이어 얼마 가지 않아 그의 육신이 서서히 급격한 변화를 이루기 시작했다. 전신에서 눈부신 밝은 기운이 점차적으로 일어나더니 도저히 제거되지 않을 듯하던 그 검은 기운을 녹여가기 시작했다. 그러한 경이적인 변화는 급작스러우면서도 외견상으로는 서서히 진행되었다. 대체 이러한 변화는 어째서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지금의 상황을 본다면 무슨 공교로운 기연이나 누군가의 도움에 의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느덧 시간이 흐르고 그러한 변화의 진행이 어느 정도에 이르자 화검상은 그 맑아지고 깊어진 마음의 눈으로 그러한 이유에 대해서 이내 알게 되었다. 그것은 그가 생각하기로는 씁쓸한 웃음이 나올 만한 우습고도 기이한 일이었다. 또한 지금까지의 그의 생각에 그리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이기도 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그 해답은 역시 그가 생각해오고 연마해온 곡선적(曲線的)무공에 있었다. 본래 이 독중지독(毒中之毒)인 칠심해당(七心海棠)은 비록 대단히 무섭기는 하지만 무공이 대홍락의 심검(心劍)의 경지에 오르면 이겨낼 수 있다고 되어 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무림야그 출력일 :: 98/11/04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1 권 제 37 장 - 1 그것은 이 심검이라는 경지가 이른바 수중무검(手中無劍) 심중유검(心中有劍), 즉 육신의 제약을 벗어나 뜻대로 초식(招式)을 펼칠 수 있다고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공의 운용이라는 것은 역시 그 초식의 운용과 별다름이 없으므로 스스로 그 칠심해당의 독을 이겨낼 수가 있는 것이다. 다만 무공이 그처럼 높은 경지에 오르기가 어렵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당금의 강호에서도 현재 무공이 그와 같은 경지에 오른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예를 들어 현재의 화산파에도 그런 경지에 오른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것이 사실이다. 화검상의 무공은 곡선적 무공의 최절정의 경지에 올라 있었다. 그 경지는 사실 곡선적이기 때문에 비록 심검보다는 두 단계나 아래이긴 하지만 어느 정도 스스로 움직여 칠심해당에 대항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것은 이 곡선적 무공은 스스로 살아서 움직이며 자체를 방어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화검상은 자신의 무공이 그러한 경지에까지는 원만해졌다고 생각했으나, 기실 이론적으로는 성숙했어도 실제로는 아직 완전하지 못한 상태에 있었다. 그것은 이 곡선적 무공이 마음을 가장 중심에 두고 펼쳐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곡선적이라는 요체는 역시 그 이해할 수 없고 설명되지 않는 불가사이한 마음에 있다. 본래 화검상은 그러한 마음의 능력도 부족한 것이 아니었다. 다만 그에게는 그 마음이 충분히 역량을 발휘할 수 없게 하는 거대한 얽매임과 장애가 있었다. 그것은 이른바 가문과 사문(師門), 그리고 모친 등과 얽힌 거대한 번뇌와 갈등, 고통이었다. 비록 능력은 갖취졌어도 그러한 것들의 장애에 묶여 그의 능력은 별로 발휘되지 못한 것이다. 게다가 당시 그의 마음은 그런 온갖 번뇌와 허망함, 갈등, 장애 등이 더할 수 없이 증폭되어 있어서 칠심해당의 독은 이내 그의 곡선적 내공(內功)을 무기력하게 만든 것이다. 하지만 비록 곡선적 내공은 그렇게 심하게 몰리기는 했어도 완전히 능력을 상실하지는 않아 최후의 호심진기(護心眞氣)를 이루고 있었고, 게다가 아직 사태를 반전시킬 여지를 가지고 있었다. 절벽에서 빈사상태로 떨어질 때 다행히도 그는 극도의 번뇌 속에서 오히려 그러한 장애를 벗어나게 되었고, 그 순간부터 그의 곡선적 무공은 본래의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 화검상으로서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있었다. 아무리 장애가 제거되어 곡선적 무공이 발휘되기 시작했다고 해도 어떻게 그런 열악한 상황 속에서 갑자기 떨어지는 몸을 멈추게 할 수가 있었느냐 하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것은 아무래도 완전해진 곡선적 무공과 관련이 없지 않겠지만 그러나 그 위력은 최소한 그 경지를 초월하는 능력이었다. 곡선적 무공이라고 해도 허공을 걸어다니려면 초절정의 경지에는 올라야 하는데, 당시 그의 경지는 최절정이었다. 그 신비한 힘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다행스러운 것은 당시 그의 마음이 그런 것을 생각해볼 만큼 여유가 있지 않아 오직 그 거대한 슬픔과 고요한 심경 속에 잠겨 있었다는 사실이다. 만일 그가 당시 그 힘에 대해서 생각을 하려고 했다면, 갑자기 그 신비한 힘은 빛을 잃고 그는 다시 추락하게 되지 않았을까? 이러한 기이한 힘들은 사실 이해하기 어렵고 분석할 수는 없지만 곡선적이란 무공과 그리 다르지 않은 부분이다. 화검상은 아직 확신할 수는 없어도 그런 생각이 드리고 있었다. 만일 그런 힘을 뜻대로 사용할 수만 있다면 어떻게 될까? 그 뒤에 벌어진 일들은 생각하면 간단하고 우스우며 기이한 일들이다. 바로 곡선적 무공이 완전해지며 미처 생각지 못했던 현상들이 일어난 것이다. 곡선적 무공이 제대로 움직이기 시작하자 문득 그의 내부에 아직 활성화되지 않은 기(氣)들을 발견했다. 그리하여 그의 공력이 갑자기 세 배 가까이 급증하면서 또 하나의 경지를 돌파했고, 그의 몸에서 눈부신 광채가 발산된 것은 바로 그런 모습이었다. 그는 무공이 이제 곡선적 초절정 혹은 초상승(超上昇), 대홍락(大紅落)의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물론 그런 과정에서 점진적인 변화를 이루기 위해 얼마 간의 시간이 소모되는 것이다. 기실 이 곡선적 무공은 마음을 근간으로 하기에 대홍락의 경지 이후에야 비로소 참다운 위력을 발휘한다고 할 수가 있다. 대홍락이야말로 말 그대로 마음으로 펼쳐지는 무학이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여러 가지 부수적인 효과들도 생겨나게 되었다. 칠심해당의 독기(毒氣)인 검은 기운이 완전히 제거되었을 뿐만 아니라, 몸의 상처가 안팎으로 점진적으로 완전히 치료되었다. 그것은 저절로 일어나는 것이기에 다른 무림인들의 능력과는 비슷한 듯해도 다른 것이다. 그럼 화검상의 몸에서 갑자기 발견된 활성화되지 못한 기운의 정체는 무었일까? 대개 곡선적 무공은 직선적 무공에 비해 같은 공력으로 세 배의 위력을 발휘한다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하나의 영약(靈藥)에서 얻을 수 있는 공력의 양도 직선적에 비해 세 배에 달할 수가 있는 것이다. 본래 이 만년옥장(萬年玉奬)이라는 것은 옥(玉)의 정수인 만년옥정(萬年玉精)의 응축액이기 때문에 그 속에 겨우 삼 갑자의 공력만 들어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한 방울만 복용하면 삼 갑자의 공력을 얻을 수 있다고 했지만 그것은 직선적인 무공의 경우이다. 이 직선적 무공의 경우 그러한 공력의 증가는 마치 강물 속에서 창과 작살로 물고기를 잡는 것과 흡사하다. 더러 잡히겠지만 그 무한한 변화를 읽을 수가 없으므로 번번히 빗나가게 되는 것이다. 직선적 무공의 경우 공력의 증가가 되기는 하겠지만 대부분의 양은 흡수되지 못하고 배출되어버린다. 곡선적 무공의 경우 그 손실되는 양도 적을 뿐만 아니라. 아직 쓰이지는 못해도 그 나머지의 공력을 흡수해서 잠재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아직 쓰이지 못하므로 사용할 수는 없지만, 일단 활성화시키면 그것은 이내 느낄 수 있게 된다. 사실 처음부터 화검상의 공력이 완전했다면 그 나머지 공력이 잠재하지도 않고 바로 활성화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장애 때문에 그의 일부, 혹은 대부분의 모습들이 직선적 특성을 닮아 있는 상태에서 그 곡선적 내공은 스스로 움직여 나머지 공력들을 잠재시킨 것이다. 곡선적 무공은 이와 같이 살아서 스스로 움직이는 특성이 있다. 화검상은 조부의 유물에서 만년옥장 세 방울을 복용할 수 있었으니 이제 그의 공력은 무려 삼십 갑자에 가까워진 것이다. 이것은 사실 공교롭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가 비급을 제작하면서 곡선적 무공의 이론에 대해 분명히 알지 않았다면 이렇게 갑자기 곡선적 무공이 완전해질 수가 없었을 것이다. 물론 이 완전하다는 것은 그 단계에서 원만하다는 것이지, 아주 깊고 완전해졌다는 뜻은 아니지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화검상은 문득 온몸에서 흘러나오는 광채를 거두고 조용히 일어나 앉았다. '이렇게 다시 살아나게 되다니, 아직 죽을 운은 아니란 말인가......?' 그의 몸은 이제 말끔히 치료되어 있었고 느낌도 쾌적하여 그야말로 생각대로였다. 그의 몸이 생각대로라는 것은 그의 곡선적 무공이 분명히 옳다는 것이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무림야그 출력일 :: 98/11/04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1 권 제 37 장 - 2 그는 지금 곡선적 무공의 초상승의 경지에 올라 있는데, 그것은 강호인들의 말에 의하면 백맥(百脈)을 융통하고 세맥(細脈)을 타통하기 시작하며 뜻대로 움직이는 영기(靈氣)인 무형지기(無形之氣)를 사용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세맥의 타통과 무형지기의 사용 중 어느것이 먼저인가 하면, 아마도 무형지기의 사용이 먼저일 것이다. 무형지기의 사용으로 세맥의 타통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것은 물론 진기를 움직여 통관하는 경우와 또 다르다. 이 마음의 무예인 무형지기는 심검의 경지에 오르는 토대가 되며, 심검의 경지에 오르면 대개 그런 무형지기만을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사실 이 초절정의 단계는 백연탄과 대홍락의 중간 단계로 두 가지의 특성을 모두 지니게 되며 유형(有形)의 진기와 무형지기를 동시에 사용하게 됨으로써 무공이 가장 화려하고 환상적(幻像的)으로 보이게 되는 단계이기도 하다. 무공을 펼쳤을 때 마치 머리와 팔다리가 몇 개씩 불어난 것과 같은 모습 등이 보이는 것은 바로 그러한 이치이다. 게다가 지금 화검상의 경우는 직선적이 아닌 곡선적인 무공이기에 사실상 또 다르고, 그 위력을 분명히 정하여 말하기는 어렵다. 오랫동안 명상 속에 몰두해 있었기에 화검상은 그간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 동굴 속은 어둡고 또한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지 않는다. 다만 화검상은 시력 또한 크게 증진되어 이 어둠 속을 훤하게 꿰뚫어볼 수가 있었다. 어쨌든 비록 몸은 회복되고 무공도 크게 증진되었지만 화검상은 이제 앞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들 때문에 매우 혼란스러웠다. '화산파로 다시 돌아갈까? 지금으로서 굳이 그곳으로 급하게 다시 돌아간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일 것이다. 음. 그럼 어쩐다......? 일단 다른 곳에서 그들을 상대할 철저한 준비를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긴 그들은 내가 이미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을 테니 굳이 나를 찾지도 않을 것이다.......' 확실히 절벽에서의 그 일 이후 그의 생각도 다소 바뀐 것이 사실이었다. '이곳은 행동하기에 이목이 많아 불편하다. 그럼 어디로 갈까......?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내가 이전에 하지 못했던 일들....... 음...... 거기가 좋겠군.' 지금의 상황에서 화산파로 다시 돌아가는 것도 문제지만 그곳과 너무 멀리 떨어진다는 것도 우스웠다. 화검상은 문득 이미 죽은 동방천서(東方天西)에 대한 기억을 떠울렸다. 그는 쓸쓸하게 죽음을 당했으며 화검상에게 많은 부담을 주었고 또한 여러 가지 부탁을 하지 않았던가? 다시 시작하는 이 일은 아마도 그쪽으로부터 움직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화검상은 그 문제에 대해서 여러 각도로 세밀하게 검토해보다가 이내 얼굴의 근육을 움직였다. 그의 용모는 이내 비슷한 나이의 평범한 시골청년처럼 변모했다. 이 진기역용(眞氣易容)의 방법은 축골공(縮骨功)의 응용으로 다소 복잡한 흐름이 있기는 하지만 백연탄의 경지 이상이라면 누구나 가능한 수법이다. 다만 진기를 이용하는 데 어느 정도의 제약을 받고, 또한 진기를 거두면 용모는 본래대로 돌아간다. 화검상으로서는 이제 본래의 얼굴로서는 마음대로 활동할 수가 없기에 부득이 그렇게 용모를 바꾼 것이다. 그는 이제 당분간은 모친 등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보다는 앞으로의 해야 할 일들에 대해 깊이 검토를 거듭했는데, 그것은 얼마 전과 같은 일을 두번 다시 겪지 않기 위해서였다. 병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역시 으뜸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며, 이겨놓고 싸우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능력 이외에도 많은 검토가 필요한데, 마침 이곳은 장소가 그리 좋지는 않아도 조용히 생각을 하기에는 적당했다. 한데 화검상이 조용히 깊은 상념에 잠겨 있을 때 문득 한 사람이 느릿하게 그의 앞으로 걸어왔다. 화검상은 무심코 눈은 떠서 그 사람을 보다가 문득 해연히 놀라게 되었다. 이곳은 폐쇄된 동굴 속이며 출구도 없다. 그런데 저 사람은 대체 어떻게 이곳으로 들어온 것이며 또한 이 칠흑 같은 어둠을 꿰뚫어볼 수 있는 것일까? 그 사람은 겉보기에는 그리 대단하게 생기지는 않았다. 그저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노의원(老醫員) 같았고, 어깨에는 하나의 약초상자를 메고 있었다. 그러나 화검상이 보기에는 그저 평범한 노의원이 아니라 하나의 움직이는 유리 조각이 다가오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느낌은 화검상에서 낯설지 않다. 그 위험하고 두려운 듯한 느낌은 화검상은 이미 여러 번 경험했다. 마치 그것은 화검상이 동일한 사람을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화검상은 지금 보는 이 사람이 그가 이전에 보았던 그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의 경우 특이한 각자의 기질(基質)을 가지고 있고, 그런 것은 쉽게 변하지 않으며 적어도 화검상의 눈을 속일 수가 없는 것이다. 지금 느껴지는 그 위험한 느낌은 어떤 무학의 경지를 말해주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아닐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이 사람들이 틀림없이 기이한 능력을 갖춘 강호의 이인(異人)들일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화검상의 현재의 능력은 그야말로 불가사의한 진전을 이룬 상태였다. 그러나 이 사람들의 능력이란 그로서도 아직 상상조차 할 수가 없다. 대체 이들은 어떤 능력들을 갖춘 사람들이며 또한 그런 능력을 갖춘 사람들은 대체 얼마나 많은 것인가? 천하가 아무리 넓고 사람이 많다고 해도 화검상은 이런 사람들을 계속해서 만나게 되자 자못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이들은 무엇 때문에 화검상의 앞에 하나씩 나타나는 것일까? 요 얼마 사이에 화검상은 무공도 급증했지만 더욱 달라진 것은 마음의 안정이라고 할 수 있었다. 비록 속으로는 놀라고 깊이 상대를 파악하고자 긴장했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태연하고 그저 조용하게만 보였다. 그 노의원은 천천히 다가와 주위를 살피는 듯하더니 이내 화검상을 향해 말했다. "허어, 젊은이가 실로 대단하군. 그런 부상을 입고도 아직 살아 있다니....... 음? 이거 알고 보니 내가 전혀 필요없겠는걸?" 화검상은 앉은 그대로 입가에 미소를 떠올리며 말했다. "노인장께서는 누구십니까?" 노의원은 잠시 화검상을 바라보더니 이내 실소하듯 웃으며 말했다. "나? 허허. 나야 이름없이 떠도는 늙은 의원에 불과하지. 세상이 무상하여 정처없이 떠돌다가 이 부근에 혹시 만년하수오(萬年何首烏)가 있지 않을까 해서 몇 달 동안 뒤지고 있는 중이네. 허허...... 그 직업은 아무래도 속일 수가 없는 일이지. 한데, 얼마 전 자네에 관한 일을 우연히 보고 이렇게 한번 찾아와본 것이네." 만년하수오란 바로 희귀영초의 하나로 하수오가 오래 묵어서 그 뿌리가 흡사 사람의 모습을 닮았다는 인형하수오(人形何首烏)를 말하는 것이다. 그런 희귀한 영초를 태연히 말하는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화검상은 그보다 더욱 놀라운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사람이 어둠 속에 들어가면 자연 시력을 집중하게 되고 부지불식간에 그쪽으로 기운이 방출되기 마련이다. 지금 화검상도 자연 눈에서 빛을 발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 노인은 눈에서 전혀 빛이 방출되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럼에도 빛이 한 점도 새어들지 않는 이 칠흑의 어둠 속을 간단히 꿰뚫어보고 있는 것이다. 화검상은 문득 미소하며 말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무림야그 출력일 :: 98/11/04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1 권 제 37 장 - 3 "노인장께서는 이곳의 지리에 대해서 잘 아시는군요?" 노의원은 역시 가볍게 마주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몇 달을 헤맨 덕분에 이곳의 지리는 대강 안다고 할 수가 있지." "그래 그 만년하수오는 찾으셨습니까?" 노의원은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손을 흔들었다. "찾긴 뭘 찾겠나, 그저 이제까지 헛고생을 한 셈이지. 그나저나 자네도 길을 모르면 나와 함께 가기로 하세. 마침 나도 만년하수오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었으니." 화검상은 미소하며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였다. "저는 이곳에서 해야 할 일이 아직 남았고, 게다가 나가는 길도 알고 있습니다. 노인장께선 굳이 신경 쓰지마십시오." 노의원은 잠시 머뭇거리며 그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이내 다시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보아하니 자네는 매우 특이한 젊은이로군그래. 내가 자네를 치료하려고 몇 가지의 약을 가지고 왔네만, 앞으로 내겐 쓸모없는 물건이 될 테니 자네가 사용하는 것이 어떻겠나? 이것도 말하자면 인연이 아니겠나?" 화검상은 노의원이 매고 있는 약초상자를 바라보았다. "지나친 호의를 베푸시는군요. 저는 그런 약들이 필요없고. 또한 가지고 있는 것들도 몇 가지 있습니다. 노인장께선 다른 사람에게 주시지요." 노의원은 고개를 꺄웃거렸다. "자네는 험험, 남의 호의를 무시하는 나쁜 버릇이 있군그래? 늙은이의 호의를 이렇게 무시할 수가 있나? 하지만......, 자네의 그런 성질이 나로 하여금 흥미를 일으키는군그래. 난 오히려 그런 사람을 좋아한단 말이야. 암, 젊은이라면 당연히 그런 기개가 있어야지! 요즘 아이들은 그렇지 않아 실로 오랜만에 자네 같은 사람을 보는군. 그래서 아마도 또 보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드는걸? 실례지만 자네는 어느 분의 고제(高弟)인가?" 화검상은 문득 가볍게 실소했다. "저는 노인장과 같은 떠돌이고 누구에게 특별히 사사받은 일도 없습니다. 그저 제멋대로 배운 셈이지요." 노의원은 문득 눈빛을 잠시 번뜩였다. "그런가? 허. 이거 좀 이상한걸? 난 자네의 모습이 꼭 누구와 닮은 듯해서 말이야. 어쨋든 다음에 다시 보기로 하세. 다음에 만나면 필히 내 호의를 거절하면 안 되네? 그런다면 내가 너무 무안해지지 않겠나? 허허허......, 세상을 살려니 지겹지만 또한 떠나려니 붙잡는구나. 살 수도 떠날 수도 없으니 아직 때가 되지 않았음인가?" 노의원은 몸을 돌리더니 그렇게 혼자말을 중얼거리며 느릿하게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화검상은 잠시 그 노의원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가 문득 속으로 중얼거렸다. '당신들은 아직 나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는 것 같군.' 벌써 날씨가 많이 서늘해졌다. 계절은 이미 완연한 가을이고 드넓은 벌판은 누렇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황하(黃河), 그 도도히 흘러가는 강물은 오늘도 변함이 없는데 끝없이 펼쳐진 갈대밭은 오늘따라 유난히 쓸쓸해 보였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저녁 무렵 한 시골 청년과 같은 젊은이가 그곳에 이르렀다. 그 시골청년의 모습을 한 사람은 바로 다름아닌 화검상이었다. 그는 얼마간 강호를 돌아다니다가 드디어 그곳에 이른 것이다. 바로 이곳에 동방천서의 친인척들이 살고 있다고 했다. 화검상은 노을빛에 물들어가는 강물 쪽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바로 그쪽에 지금 한 소년이 웃통을 벗어제치고 그물로 고기를 잡고 있었다. 소년의 나이는 십칠 세 정도로 보였는데, 나이에 걸맞지 않게 체구가 근육질로 우람하고 또한 허리가 잘록하여 헌칠해 보였다. 간혹 보이는 용모 또한 상당히 준수한 편이다. 소년은 그물로 물고기를 잡고 있었지만 왠지 그 행동이 필요 이상으로 과격해 보이고 마치 화가 나서 물고기들과 싸움이라도 벌이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화검상은 아마도 그 소년의 신경이 다른 곳으로 쏠려 있기 때문에 그 일은 금방 끝날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그대로 서서 소년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해가 완전히 지고 주위가 어두워지기 시작하자 드디어 그 소년은 바구니에 고기를 가득 채워가지고 그물을 메고 밖으로 나왔다. 화검상은 그 소년에게 다가가 물었다. "혹시 네가 동방량(東方亮)이냐?" 소년은 화검상을 바라보더니 의외로 가벼운 미소를 띠고 공손히 말했다. "저를 찾으십니까? 어디서 온 누구시죠?" 소년의 웃는 모습은 친근감을 주고 다분히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그것은 조금 전의 과격하던 모습과는 다른 일면이다. 이 소년은 본래 고기를 잡을 때 그런 버릇이 들어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화천몽(華天夢)이란 사람이다. 누구의 부탁을 받고 너를 찾아온 것이지." 화검상은 용모를 바꾸었듯이 당분간 누구에게도 이름을 알릴 수는 없으므로 가명을 말한 것이다. 소년 동방량은 잠시 유심히 화검상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이내 몸을 돌려 걸으며 말했다. "그럼 저를 따라오세요." 화검상은 다소 멈칫하다가 그의 뒤를 따르며 다소 우습고도 어이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잠시 걷다가 말했다. "너는 아까는 그렇지 않던데 어째서 이렇게 내게 잘 대해주느냐? 내가 믿을 만해 보이느냐?" 동방량은 힐끗 고개를 돌려 화검상을 바라보더니 계속 걸으며 말했다. "사실 아까는 당신이 그놈들과 한패인 줄로 알았어요. 하지만 그 놈들과 한패라면 그렇게 오래 기다려주지는 않죠. 그래서 내가 잘못 생각했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놈들이라니?" 동방량은 다시 한번 고개를 돌려보더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당신은 그 유가장(劉家莊)의 놈들을 모르는 모양이로군요? 그렇다면 굳이 상관하실 필요가 없어요." '유가장?' 화검상은 갈수록 기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소년은 그가 대체 누구의 부탁을 받고 찾아온 것인지를 묻지 않고 있는 것이다. 화검상은 하는 수 없이 다시 말했다. "너는 내가 누구의 부탁을 받고 찾아온 것인지 알고 있느냐?" 동방량은 그 말에 문득 걸음을 멈추더니 말했다. "누구의 부탁으로 찾아오신 거죠?" "너는 동방철(東方喆)이라는 사람을 모르지는 않겠지?" 동방철은 바로 동방천서(東方天西)의 본명이다. 동방량은 잠시 고개를 숙이고 뭔가 생각해보는 듯하더니 그대로 말했다. "작은할아버지께서는 돌아가셨나요?" 동방천서에게는 동방민(東方民)이라는 친형이 있었는데 이미 십여 년 전에 사망했고, 동방민의 손자와 손녀가 이곳에 살고 있다고 했다. 그러니까 지금 이 동방량에게는 동방천서가 작은할아버지가 되는 셈이다. 화검상은 문득 놀라서 말했다. "그 사람은 네가 잘 모를 거라고 했는데 어떻게 알고 있느냐?" 동방량은 다소 우울해진 듯한 어조로 고개를 숙인 채 대답했다. "그분은 가끔 몰래 오셔서 저를 도와주셨죠. 하지만 저도 바보가 아닌 이상은 그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그분은 혼자 오셔서 저를 만나는 것조차 꺼려 하셨는데 이제 당신이 그분의 부탁을 받고 오셨다니 아마도 돌아가신 거죠." 화검상은 동방량의 그 모습을 보고 문득 가볍게 탁식했다. "그는 나에게 너를 한번 만나보라고 했다." 동방량은 고개를 들어 화검상을 바라보더니 씩 웃으며 말했다. "아까는 그런 분을 제가 오해했으니 정말 미안한 거죠." 이어 동방량은 다시 몸을 돌리고 걷기 시작했다. 무성한 갈대숲을 헤치고 앞장서서 걸어가는 그 소년의 모습은 아까의 첫인상과는 달리 왠지 듬직해 보이면서도 우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무림야그 출력일 :: 98/11/04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1 권 제 38 장 선천(先天)의 음양절맥(陰陽絶脈 제 38 장 선천(先天)의 음양절맥(陰陽絶脈) 화검상은 동방량의 뒤를 따라가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너의 부모님은 어디 다른 곳에 계시느냐?" 동방량은 고개를 내저었다. "저의 할아버지는 이 근방에서도 유명한 학자이셨는데 십삼 년 전에 지병으로 돌아가셨죠. 그리고 저의 아버님은 숭(崇) 자 문(文) 자의 함자를 쓰셨는데, 그 이 년 후 어머님과 함께 난리통에 돌아가시고 말았어요." 화검상은 동방천서에게 그 자세한 이야기는 듣지 못했었다. 그는 고개를 두어 번 끄떡이며 다시 말했다. "너의 선친께서도 훌륭한 학자이셨겠구나?" 동방량은 천천히 고개를 내젓다가 이어 말했다. "그런 셈이죠. 하지만 나는......." 문득 동방량은 말끝을 흐리다가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며 말을 이었다. "저의 작은할아버지는 어떤 분이셨죠?" 화검상은 언뜻 비치는 동방량의 두 눈에 눈물이 가득 고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 녀석이 보기보다는 제법이군!' 화검상은 왠지 갈수록 이 소년이 귀엽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너의 작은할아버지는 성미가 좀 급하고 거칠기는 했지만 아주 훌륭한 분이셨지. 성품은 대쪽같이 곧았고, 또한 어떠한 불의에도 굴하지 않고 많은 사람들을 이끌어오셨었다." 동방량은 문득 눈을 가볍게 빛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분의 성품이 급하고 거친 편이었다는 것은 저도 어렸을 때 얘기를 들었어요. 그분은......편안히 눈을 감으셨나요?" 화검상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분은 비록 자신의 목표를 다 이루지는 못했지만 그야말로 최선을 다해서 살아오셨다. 그래서 마지막 순간에는 별로 유감이 없다고 하시더구나. 내가 보기엔 그분은 한 사람의 진정한 강호인(江湖人)이셨던 것 같았다." 동방량은 뭔가 깊이 생각하는 듯한 표정으로 화검상을 바라보더니 문득 가볍게 웃으며 몸을 돌려 다시 걷기 시작했다. "어서 오세요. 제가 저의 누나를 소개해드리겠어요." 주위가 이미 많이 어둑어둑해졌다. 무성한 갈대숲을 헤치고 잠시 나아가자 하나의 섬처럼 융기한 작은 야산이 나타나고 그 야산의 중턱쯤에 작은 모옥 하나가 자리잡고 있었다. 황하의 강물은 몹시 거대하면서도 거칠다. 그것은 간혹 엄청난 기세로 범람하여 드넓은 땅을 삼켜버리곤 하는데, 그럴 경우 필시 이 작은 야산은 강물 속의 작은 섬이 될 것이다. 대개 이런 곳에서는 농사를 지을 수가 없으므로 사람들이 잘 살지 않는다. 만일 굳이 이런 곳에서 사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어떤 사연이 있을 것이다. 저녁 때가 되자 모옥에 불이 밝혀지고 한 소녀가 부엌을 왔다갔다하고 있었다. 동방량은 모옥에 가까워지자 안으로 뛰어들어가며 소리쳤다. "누나, 손님이 찾아왔어요. 어서 나와보세요." 힘없이 기어들어가면서도 차분한 느낌을 주는 목소리가 뒤를 이었다. "소량(小亮), 갑자기 웬 호들갑이지? 네가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왔니?" "그게 아냐. 작은할아버지의 소식을 가지고 오신 분이라구." "작은할아버지의......?" 화검상은 모옥의 앞에 이르러 잠시 기다렸다. 이윽고 부엌 쪽에서 한 소녀가 걸어나왔는데 화검상을 향해 공손히 인사를 했다. "어서 오세요. 누추하지만 잠시 안으로 드시겠어요?" 나이는 대략 스무 살 전후로 보이는데 예상대로 매우 마른 체구에 허약해 보이지만 왠지 맑은 기품(氣品)이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뜻밖에도 그 용모는 매우 추악한 편이었다. 추악한 얼굴 가운데 두 눈은 맑은 빛을 발하고 있는 것 같았다. 화검상이 잠시 그 얼굴을 바라보자 그 소녀는 다소 당황해 하는 눈치였다. 화검상은 이내 정중히 태도를 갖추고 말했다. "이거 제가 와서 폐를 끼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소녀는 다시 마음을 가다듬으며 미소를 지었다. "아니에요. 저희들은 별로 찾아오는 사람도 없어서 다소 적적하던 편이었지요." 화검상은 미소하며 마주 포권했다. "그럼 폐를 끼치겠습니다." 동방량이 다시 걸어나와 화검상의 손을 잡아 방안으로 이끌었다. "어서 들어오세요." 방안에는 등불이 밝혀져 있었고 매우 초라한 편이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상당히 깨끗했고, 또한 한쪽 벽에는 많은 서책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이런 초라한 모공에 이렇게 많은 서책들이 있는 것은 결코 흔한 일이 아니다. 동방량은 방안에 화검상과 마주앉자마자 다시 입을 열어 말을 꺼냈다. "우리 누나의 이름은 동방리(東方莉)라고 하죠. 물론 알고 있겠죠? 우리 누나 어때요?" 화검상은 이제 그 손자와 손녀를 다 만난 셈이다. 화검상은 미소를 짓고 있다가 대답했다. "너를 닮았다." 동방량은 어리둥절해 했다. "나를 닮았다구요?" "성품이 맑고 또한 자존심이 강하구나. 하지만 몸이 너무 허약해 보인다." 동방량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화검상은 말을 이었다. "이곳에는 정말 너희 두 남매만 사느냐?" 동방량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이렇게 살아온 지도 벌써 십 년이 넘었는걸요." 이어 동방량은 몸을 일으켰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醮 무림야그 출력일 :: 98/11/04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1 권 제 38 장 - 1 "누나를 도와줘야겠어요. 잠시만 앉아 계세요." 동방량은 일단 부엌 쪽으로 나간 뒤에는 다시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화검상이 잠시 기다리고 있노라니 그 소녀, 동방리가 밥상을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 "소찬이라 죄송해요. 입에 맞지 않더라도 많이 드세요." 고깃국과 구운 물고기, 그리고 정갈한 느낌을 주는 소채까지 있어서 그리 소찬은 아니었다. "잘 먹겠습니다." 화검상이 밥을 한 그롯을 비우자 동방리는 새로 밥 한 그릇을 떠주며 입을 열었다. "작은할아버지에 대한 말씀은 소량에게 얘기를 들었어요. 정말 이렇게 일부러 와주시다니 고마워요." 이 소녀는 몸이 허약했지만 매우 침착하여 별로 흐트러진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실은 그분이 돌아가신 것은 한 달쯤 전이었는데 그간 일이 있어서 이렇게 늦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분의 유체는 제가 잘 모셔두었지요." 동방리는 눈빛을 가볍게 빛내며 말했다. "본래 저의 동생은 사람을 잘 사귀지 않고 사교성도 없는 편이에요. 그런데 오늘 화소협(華少俠)을 대하는 것을 보고 놀랐어요." 화검상은 가볍게 고소를 지었다. "거기에는 아까 약간의 사정이 있었지요. 그보다, 아까 동생이 유가장의 일을 말하던데, 그건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것입니까?" 동방리는 약간 당황한 표정으로 웃다가 대답했다. "유가장(劉家莊)은 남동쪽 십리쯤에 위치한 장원입니다. 그들은 간혹 사람들과 마찰을 일으키지요." 화검상은 밥을 다 먹고 수저를 내려놓은 뒤에 말했다. "제가 이곳에 온 것은 낭자의 작은할아버지의 부탁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마침 이렇게 신세도 졌으니 뭔가 도와드리고 싶습니다." 동방리는 미소하며 말했다. "화소협은 겉으로는 평범해 보여도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군요. 하지만 저희 남매는 별로 불편한 것 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모쪼록 기왕에 오셨으니 며칠 편히 쉬었다가 가세요." 그녀는 차를 한잔 따라준 후에 물러갔다. 화검상은 차를 마시며 잠시 상념에 잠기다가 바닥에 드러누웠다. '정말 자존심이 강한 남매로군. 한데 무슨 사연이 있는 듯한데......, 좀더 지켜봐야 하겠군." 깜빡 잠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인기척에 눈을 떠보니 동방리가 이불을 들고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화검상은 처녀를 맞아 너무 폐가 되는 것 같아서 얼른 몸을 일으켜 앉으며 정중히 말했다. "이거 너무 폐를 끼치는 것 같군요. 내일 아침 일찍 떠나도록 하겠습니다." 동방리는 이불을 내려놓고는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희 집은 그래도 방이 여러 개이므로 며칠 더 쉬어가셔도 괜찮아요. 마침 제 동생이 화소협을 매우 좋아하는 듯하니 추석을 지내고 가셨으면 좋겠어요." 오늘이 열흘이니 앞으로 닷새 후면 중추절(仲秋節)이다. '추석이라......, 무척 오랜만에 듣는 말인 것 같군.' 화검상은 내심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동생이 무척 훌륭해 보이더군요. 보아하니, 지금도 무공을 연마하고 있는 것 같은데, 맞습니까?" 한밤중이지만 강바람에 의해 갈잎들이 부딪치는 소리들이 들여오고 있어 조용하지는 않았고, 게다가 그 소리에 섞여 다른 소음도 들려오고 있었다. 동방리는 눈빛을 가볍게 붉혔다. "오늘은 쉬라고 했는데, 고집이 워낙 세서 저도 어쩔 수가 없어요." 화검상은 몸을 일으켰다. "실례지만 제가 직접 가서 봐도 되겠습니까?" 동방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할아버지와 아시는 분이니 상관없겠지요." 모옥의 뒤쪽으로 돌아 개간된 작은 텃밭을 지나면 몇 개의 무덤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소리가 들여오는 곳은 그 무덤의 좌측 숲속이었다. 동방리는 몸이 허약해서인지 얼마 올라가지 않아 숨이 차는 것 같았지만 일부러 내색하지 않으려는 듯한 기색이었다. 그곳은 숲이 제법 우거져 있었는데 안쪽에는 나무들이 아예 자랄수가 없었는지 얼마간의 공지가 형성되어 있었다. 한 사람이 쉬지 않고 그곳에서 매일 무공수련을 해왔다면 풀과 나무들이 자랄 수가 없었을 것이다. 동방량은 아직도 웃통을 벗어버린 상태였는데 이번에는 온몸에 땀이 가득 흐르고 있었다. 하류의 무공의 경우 땀이 흐르는 것은 열심히 연마한 흔적이 되기도 하지만, 상승무공의 경우 그것과는 조금 다르다. 상승무공은 조화에 역점을 두기 때문에 그저 힘만 짜내어 무리하게 움직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런 것은 진기(眞氣)의 조화를 해치기 때문에 금기시되어 있었다. 동방량은 너무나도 무공연마에 몰두하여 근처에 누가 오는 것도 알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낮에 보았던 것처럼 몹시 화가 나서 금방이라도 싸울 듯이 필요 이상으로 과격하게 운기(運氣)하고 몸을 움직이고 있었는데, 그러한 것이 바로 땀을 흐르게 하는 요인인 것 같았다. 두 사람은 동방량이 보이는 곳에서 잠시 멈춰서서 그쪽을 주시했다. 동방리는 잠시 바라보다가 문득 두 눈 가득 처연한 기색을 떠올렸다. 한밤중이라 그녀는 화검상이 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겠지만, 화검상은 지금 그녀의 표정을 대낮처럼 훤히 꿰뚫어보고 있었다. "저 내공은 눈에 익은 것이로군요. 하지만 왠지 무공과는 잘 맞지 않은 것 같은데 동생은 무슨 무공을 배운 것입니까?" 지금 동방량이 보이고 있는 내공은 바로 다름아닌 화산파의 자하신공(紫霞神功)이었다. 하지만 지금 주로 연마하고 있는 것은 검법인데 그것은 화산파의 무공이 아니었다. 마치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이 사방으로 비산하여 떨어져내리며 그 가운데 강한 살기(殺氣)를 내포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늘에는 지금 아직 보름달이 되지 못한 달이 중천에 둥실 떠올라 조용히 그 광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동방리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소량이 배운 것은 바로 작은할아버님이 가져다 주신 것들이에요. 바로 자하신공과 낙성십이검(落星十二劍), 복호권(伏虎拳), 연화지(蓮花指), 연환원앙퇴(連環鴛鴦腿), 비보(飛步) 같은 것들이에요. 하지만......, 그는 지금 스스로를 해치고 있군요." '낙성십이검이라...... 그렇군! 동방천서는 내공은 몰라도 감히 더 이상 화산파의 절학들을 가르칠 수 없었던 모양이로군.'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지 ─────────────────────────────────────── PRINTER/CAPTURE를 정지하고 [Enter]를 누르십시오. 무림야그 출력일 :: 98/11/04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1 권 제 38 장 - 2 "내가 알기로 자하신공은 우레와 같은 강한 기운이 부드러움과 조화를 이루어가는 것으로 그 나름대로의 내공의 특성과 장단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보는 저 낙성십이검의 특징은 빠름을 위주로 하고 강한 변화로 접근해가는 것이로군요. 이 두가지는 맞지 않아 서로 상충작용을 일으킵니다. 비록 무공이 낮은 경우에는 그 특징이 뚜렸해지지 않아 상충작용도 가볍다고 할 수 있지만, 지금 동생의 무공수위는 이미 일류경지(一流境地)로군요. 무공을 바꾸지 않고 좀더 세월이 흐른다면 위험해질 것입니다." 동방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 거야 어쩔 수 없겠지만 소량은 지금 저 때문에 자신을 해치고 있어요. 그는 지금 알고 있으먼서도 일부러 마음의 격분을 일으키고 있어요!" 참다못해 동방리는 그만 처연한 한숨을 내쉬었다. 화검상은 문득 다소 기이한 표정으로 그녀를 돌아보았다. 보기에 그녀는 몸이 너무도 허약하여 무공을 전혀 배울 수가 없을 듯한데도 오히려 그 지식을 뜻밖에 해박해 보였다. 같은 말을 한다고 해도 그 어조에 따라 느낌은 전혀 다른 법이다. 흔히들 무공의 이론에 능한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기실 단순히 지식과 탐구만으로 그 깊은 무학의 세계를 잘 이해하기란 쉬운 노릇이 아니다. 아니 그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동방량은 두 사람이 다가온 것을 모르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동방리의 한숨 소리에 그는 더 이상 검법연마를 계속할 수가 없어서 검을 거두고 이쪽으로 다가왔다. 약간 어색하게 웃으며 동방량은 말했다. "두 분께서 나와 계셨군요?" 화검상은 그를 바라보다가 문득 그의 손을 잡아 한쪽으로 이끌었다. "나와 얘기 좀 하지 않겠느냐?" 동방량은 다소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순순히 그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두 사람은 무덤들의 앞에 이르렀다. "이것이 너의 조부와 선부모의 무덤들이냐?" 동방량은 손짓으로 위쪽과 아래쪽의 무덤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것이 할아버지, 그리고 이것이 부모님의 무덤입니다." 무덤들은 비록 초라하기는 했으나, 잘 정돈되어 있었다. 화검상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너는 너의 누나가 중병(重病)에 걸려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느냐? 동방량은 길게 한숨을 토하며 대답했다. "당신도 알고 있군요. 그렇습니다! 저의 누나에겐 병이 있죠." 화검상은 부근의 풀밭에 앉으며 다시 말했다. "누나의 병을 고치려는 생각은 가지고 있느냐?" 동방량은 마악 따라 앉으려다 돌연 언성을 높이며 붉어진 안색으로 대꾸했다. "뭐라고요? 고칠 겁니다! 제가 반드시 나중에 성공해서 누나의 병도 고치고 좋은 남자와 만나 잘 살게 해줄 것입니다! 그게 대체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다고 이렇게 묻는 거죠?" 화검상은 동방량이 그만 화가 나고 말았다는 것을 알았지만 계속 말을 이었다. "너의 누나는 혹시 그때까지 기다려줄 수 없을지도 모른다. 너의 누나의 병은 내가 보기에는 아주 심한 것이지. 너는 그 병명(病名)을 알고 있느냐?" 동방량은 이내 크게 격분하여 안색을 여러번 변화시키며 화검상을 노려보다가 이윽고 좀더 차분해진 태도로 그의 옆에 앉으며 말했다. "나는 당신을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작은할아버지의 얘기를 해준 것도 고맙게 생각하고요. 하지만 나는 누가 나의 누나에 대해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을 제일 싫어합니다. 내가 당신을 미워하지 않게 해줬으면 좋겠어요." '높이 평가한다고? 하하.......' 화검상은 내심 고소하며 다시 말했다. "너는 내가 너의 누나를 해치려고 이런 말을 한다고 생각하느냐? 나는 너의 누나의 병일지도 모르는 어떤 병의 치료법에 대한 것을 한 가지 알고 있다. 그래서 그것을 말해주려는 것인데 네가 이렇게 격분하다니 할말이 없구나." 동방량은 잠시 화검상의 얼굴을 주시하다가 이윽고 고개를 돌려 외면하며 말했다. "우리 누나의 병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말이 많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삼음절맥(三陰絶脈)이라고 했으며 또 어떤 사람은 모른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만일 만년삼왕(萬年蔘王)과 같은 희구영초를 구입하고 천하제일의 의원을 만날 수만 있다면 누나의 병을 고칠 수가 있을 것이므로 전 그렇게 할 것입니다." '만년삼왕? 천하제일의(天下第一醫)? 하하.......' "내가 볼 때 너의 누나의 병명은 선천적 음양절맥(陰陽絶脈)의 일종이다." 동방량은 고개를 돌려 화검상의 얼굴을 주시했다. "음양절맥이라고요?" 화검상은 그의 얼굴을 마주보며 다시 말했다. "너의 누나의 이러한 병은 혹시 어려서부터 나타난 것이 아니냐?" 동방량은 눈살을 짙게 찌푸렸다. "당신은 벌써 우리 누나를 진맥했습니까?" 화검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음양절맥이란 신체의 십이정경(十二正經)과 기경팔맥(奇經八脈) 중 음맥과 양맥이 동시에 기능이 끊어져가는 것이지. 십이정경에 문제가 발생한다면 좀더 증세가 심하고 기경팔맥이라면 다소 증세가 약하다고 할 수 있는데, 그러한 이치에 따라 음양절맥에도 여러가지가 있다. 너의 누나의 경우 삼음(三陰)과 삼양(三陽)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았다." 동방량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삼음과 삼양이라고요?" 화검상은 고개를 돌려 외면하며 말을 이었다. "네가 말한 삼음절맥(三陰絶脈)이나 육양산맥(六陽散脈) 등도 희귀한 병이지만 이 음양절맥은 더욱 희귀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런 구분이 아니라 선천적인가 후천적인가 하는 문제이다. 만일 후천적으로 그렇게 된 것이라면 대개의 경우 그 원인을 제거하지 않더라도 나을 수가 있으므로 설사 음양절맥보다 더한 것이라도 치료가 가능하다." 동방량은 잠시 생각해보다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당신은 의원입니까?" 화검상은 가법게 고소하며 말했다. "나는 비록 의원은 아니지만 일단 무공을 배우면 사람의 몸에 대해서 자세히 알게 되기 마련이다. 불행히도 너의 누나의 경우 그 음양절맥이 선천적인 것 같다. 이런 경우는 팔자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가 없지. 너는 만년삼왕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느냐? 또한 너는 천하제일의 의원이 어디에 살고 있는지 아느냐?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은 그러한 것들이라도 너의 누나의 병을 치료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말이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니 무림야그 출력일 :: 98/11/04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1 권 제 38 장 - 3 말과 함께 화검상은 몸을 일으켰다. 하늘의 달은 잠시 구름 속에 숨어서 주위가 다소 어두워졌다. 화검상은 걸음을 옮겨 모옥으로 향했다. 동방량은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멀어져가는 화검상을 주시했으나 그만 일어날 수도 없었고 그를 잡을 생각도 하지 못했다. 화검상이 모옥으로 돌아오니 그 방안에서 동방리가 이불을 펴놓고 그를 기다리며 앉아 있었다. "저의 동생과 무슨 얘기를 그렇게 하셨죠?" 화검상은 그녀가 이불을 펴놓고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미안스러워서 가벼운 웃음과 합께 대답했다. "몇 가지의 충고를 해주려다가 그 녀석과 다투고 말았지요. 아무래도 내일 아침에 떠나야 하겠습니다." 동방리는 잠시 뭔가 생각에 잠긴 채 화검상을 바라보다가 문득 조심스럽게 다시 말했다. "당신은 정말로 보통 분이 아니란 생각이 들어요. 당신에게는 이상한 밝은 기운이 느껴지죠. 당신의 무공은 대단한 편인가요?" 화검상은 그 뜻밖의 질문에 약산 멋쩍어져서 대답했다. "하하, 나의 무공은 그거 그렇고 강호를 떠돌다보니 약산의 쓸모없는 지식만 늘었을 뿐입니다." 동방리는 유난히 반짝이는 시선으로 화검상을 빤히 주시하며 다시 말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저는 어젯밤에 이상한 꿈을 꾸었어요. 강가에서 밝은 서광(瑞光)이 비춰오더니 저희 집을 감싸는 거였어요. 그러나 돌아가신 할아버지께서 이젠 떠나야 할 때가 되었구나, 하시는 거였어요. 그래서 말씀드리는 것인데, 내일 떠나신다면 저의 동생을 데리고 가주세요. 소량은 저 때문에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죠." 빤히 바라보는 그녀의 두 눈에 눈물이 고이는 것 같았다. 화검상은 시선을 돌려 외면하고 반쯤 웃으며 말했다. "부담스런 말씀을 하시는군요. 하지만 저는 이미 말씀드렸다시피 그럴 수가 없습니다. 우선 남을 가르칠 만하지도 않고 또한 그 녀석과 사이가 나빠졌으니 어찌 그 녀석이 나를 따라가려고 하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군요." 말과 함께 화검상은 봇짐 속에서 세 권의 비급을 꺼내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그것들은 바로 화검상이 화산파를 떠나오면서 가져왔던 자하신공과 매화검보(梅花劍譜), 난화불혈수(蘭花拂穴手)의 사본들이었다. 비록 사본들이지만 그 내용은 원본과 다르지 않다. "이 무공들은 동생이 배운 내용과 그 흐름을 같이하는 것들로서 상충되지 않고 무공의 진전을 가져올 수 있을 것입니다. 게다가 다른 무공을 이미 수련했으니 이 무공을 수련하는 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 익숙해질 것입니다." 동방천서는 정말로 그런 무공들을 동방남매에게 전해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동방리는 계속 화검상을 바라보다가 이윽고 그 비급들을 조용히 받아들었다. 그리고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그럼 내일 떠나시더라도 아침식사는 하시고 떠나시도록 하세요." 화검상은 그렇게 계속 외면하고 앉아 있다가 그녀가 밖으로 사라지자 비로소 한숨을 내쉬고 그쪽을 바라보며 내심 중얼거렸다. '휴우, 정말 남을 도와준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로군!' 불을 끄고 이불 속에 누웠으나 잠은 잘 오지 않았다. 아까 잠을 자고 났기 때문일까? 동방리가 가져다 준 이불은 깨끗했고, 맑은 향취마저 느껴지고 있었다. '그나저나 인내심이 대단한 편이군. 이제는 거의 거동하기도 불편할 텐데 이런 집안일들을 다 챙기며 살아가고 있다는 말인가......?' 계속 잠을 자려고 했기 때문에 이윽고 몽롱히 잠 속으로 빠져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무렵 갑자기 인기척과 함께 방문이 열리며 한 사람이 안으로 들어섰다. 바로 동방량이었다. 화검상은 비록 아쉽기는 하지만 잠에서 깨어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저 누운 채로 가만히 있자니 동방량이 엎에 다가와 앉으며 화난 듯한 어조로 말했다. "당신은 방법이 있다고 했으니 그 방법을 말해야 할 게 아니요?" '이 녀석이 내가 아직 자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단 말인가......?' 화검삼을 불을 켤까 하다가 그냥 일어나 앉으며 말했다. "자에도 이미 말했다시피 나는 의원도 아니고 뭣도 아니네. 그런데 그런 내말을 무엇 때문에 들으려고 그러나?" 동방량은 잠시 묵묵히 있다가 다시 말했다. "당신은 일단 말을 꺼냈으니 결말을 지어야 할 게 아니오?" 화검상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난 자네에게 쓸데없는 시간과 정력의 낭비없이 올바른 판단을 하도록 하기 위해 그런 말을 꺼냈던 것이지 무슨 특별한 방법이 있었던 것은 아니네. 내가 무슨 천하제일의 의원도 아닌데 어떻게 그 병을 고칠 수 있겠나? 음......, 자네 말대로 일단 말을 꺼냈으니 결말을 짓도록 하지. 그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우담화(優曇華)가 필요하네." "우담화......, 우담화라고요?" 동방량은 몸을 부르르 떨며 화검상을 노려보았다. "그렇네. 전성의 그 우담화라면 어떠한 선천적 질환도 고칠 수가 있을 것이네." 전설의 이 우담화(優曇華)는 삼천 년에 한번씩 꽃이 핀다는 것으로 그저 전설로 존재할 뿐 이제까지 정말로 그것을 보았다는 사람은 없다. 설령 그것을 운 좋게도 발견할 수 있다고 해도 그 꽃이 필 때까지 어떻게 기다리겠는가? 도방량으로서는 차라리 만년삼왕 열 뿌리를 캐려는 쪽이 더 쉬울 것이다. 동방량이 그 말에 화를 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당신은, 당신은......, 내가 사람을 잘못 보았군요." 화검상은 그가 당장이라도 발작하려는 것을 억지로 참는 것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내가 보기에 자네의 누나는 앞으로 일 년 후면 일을 할 수가 없고, 또한 앞으로 삼 년을 넘기지 못할 것이네, 사실 자네의 누나는 병이 이미 골수에 맺혔지만 억지로 참아온 것이지. 그러니까 내 얘기는 반드시 우담화를 찾으라는 말이 아니라 보다 현명한 대책을 세우라는 말이네. 비록 원인을 치료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치료를 통해 끊어진 경맥(經脈)들을 이어준다면 고통을 줄이고 생명을 약간 연장시킬 수가 있네. 물론 다시 재발하겠지만 말이네. 그리고 어차피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그녀를 편히 쉬게 해주는 것도 하나의 대책이네." 화검상은 미소하며 다시 말을 이었다. "자, 이제 말을 끝냈으니 나를 쉬게 해주겠지? 나는 호의를 가지고 찾아왔는데 이거 영 다른 분위기가 되어버렸군. 자네는 아직 나이도 어린데 화를 내니 제법 무섭군, 하하하......." 동방량은 입술을 깨물고 한참을 생각하는 듯하다가 화검상을 노려보고는 그냥 몸을 일으켜 돌아가버렸다. 화검상은 다시 잠자리에 들며 가벼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이제야 편히 잠을 잘 수가 있겠군! 빌어먹을, 그 녀석이 동방천서의 친인척만 아니었다면 조금 전에 가만두지 않는 건데. 감히 그런 꼬마 녀석이 내게 대들어......?"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니 무림야그 출력일 :: 98/11/04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1 권 제 38 장 - 4 하룻밤이 지나가고 아침의 여명이 밝아왔다. 화검상은 동방량을 그렇게 보낸 이후로 과연 계속 편히 잠을 잘 수가 있었다. 하지만 소위 편안한 잠이라는 것은 그 다음날 아침 깨어날 때도 조용히 하루의 일을 계획해볼 수가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갑자기 들려오는 시끄러운 소음으로 인해 화검상은 모처럼 편한 잠의 여운이 여지없이 무너지고 정신이 어지러워지고 말았다. '아니, 이거 무슨 일이라도 일어난 것일까?' 그 소음은 가까운 모옥의 마당 쪽에서 들려오고 있었고, 그 소음 속에는 고함치는 귀익은 음성도 함께 들려왔다. 화검상은 이미 잠에서 깨었으므로 의복을 걸치고 봇짐까지 챙겨가지고 밖으로 나갔다. 밖에는 전혀 낯선 사람들이 십여 명이나 다가와 있었는데 그 모습들이 한결같이 좋지 않았다. 그들은 저마다 병장기를 손에 든 채 작은 마당을 차지하고 흉악한 표정으로 한 사람을 주시하고 있었는데, 바로 동방량이었다. 동방량은 이번에는 언제 갖춰 입었는지 두터운 겉옷을 걸치고 장검(長劍)을 손에 들었는데, 그 눈은 밤새 잠을 자지 못했는지 시뻘겠다. 그들과 험악하게 대치하고 있는 동방량의 뒤로 동방리가 서 있었는데, 그녀는 화검상이 나오는 것을 보자 반색하며 다가왔다. "편히 주무셨나요?" 화검상은 이른 새벽부터 나타난 이 인상이 좋지 못한 사람들을 한번 둘러본 뒤에 그녀를 향해 미소하며 고개를 끄떡였다. "덕분에 잘 잤소. 한데 이게 무슨 일이오?" 동방리는 다소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들은 유가장(劉家莊)의 사람들이에요. 화소협께선 바쁘시면 이만 떠나세요. 더 이상 대접해드리지 못하는 것을 양해하세요." '바쁘면 떠나라고? 이거 교묘하게 사람의 감정을 자극하는군. 그런 말을 들으면 내가 떠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단 말인가......?' "아니, 뭐 바쁜 것은 없소. 무슨 일인지 알아보고 떠나도 늦지는 않을 것이오." 어젯밤에 이미 유가장에 관한 얘기를 대강 들었다. 동방량이 그 일에 몹시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것 정도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 화검상은 사태를 좀더 두고 보기로 했다. 동방량은 장검을 뽑아들며 다시 소리쳤다. "네놈들이 기왕에 작정을 했다면 뭘 망설이느냐? 어서 덤벼라!" 이 유가장의 인상이 좋지 못한 사내들은 그러지 않아도 마악 동방량에게 다가들려던 참이었다. 갑자기 나온 화검상 때문에 잠시 멈칫하고 있었는데, 그의 모습을 보곤 대수롭지 않다고 판단하고 이내 시선을 동방량에게 돌렸다. 맨 앞에 서 있던 한 명의 사내가 귀두도(鬼頭刀)를 번쩍이며 즉시 쇄도해들었다. 이들은 대부분이 삼사십대로 무공은 일류경지로 보였다. 같은 경지라면 사마외도 쪽이 보다 위험하다. 그들은 잔인하고 상궤를 벗어나는 살검(殺劍)에 능하기 때문에 갑자기 당하기 쉬운 것이다. 그 사내는 귀두도를 번쩍이는 순간 벌써 동방량의 앞에 바싹 다가들었고, 과연 어느새 몸을 좌측으로 완전히 굽히며 밑으로부터 변화해왔다. 대개의 경우 남자, 혹은 여자라도 그러한 갑작스런 변칙공격에는 당황하기 마련이고 우선 자신의 국부를 보호하기 위해 몸을 피하거나 방어를 하게 되는데, 그럴 경우 뒤를 이어 보다 강력하고 치명적인 제이, 제삼의 살검이 펼쳐지게 되는 것이다. 이런 사내들의 무공은 누구에게 배웠다기 보다는 스스로 실전경험을 통해 터득한 흐름이 많은데, 그러한 실전무예(實戰武藝)로 일류경지에 올랐다는 것이 우선 쉬운 노릇이 아닌 것이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일 무림야그 출력일 :: 98/11/04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1 권 제 39 장 강상(江上)의 귀인(貴人) 제 39 장 강상(江上)의 귀인(貴人) 동방량이 그런 공격을 받자 뒤에서 바라보던 동방리는 안색이 하얗게 변했다. 그녀는 동생의 능력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때 다소 의외의 일이 벌어졌다. 동방량은 그 사내의 기습을 받고 몸을 피하거나 방어를 하기는커녕 오히려 그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사내의 가슴을 베어갔던 것이다. 누구도 예상하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동방량은 이미 목숨을 걸고 이자들을 죽이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비무나 격돌에는 무공수위 못지않게 심리적인 면도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대개 변칙 공격이란 미꾸라지처럼 잘도 빠져나가고 머리를 노리면 꼬리가 대응하는 식이 되지만, 오히려 그 약점을 제대로 노리면 멍청해지는 수가 있다. 그 사내의 귀도도는 마악 동방량의 낭심을 베려고 하고 있었지만 그 순간에 이미 동방량의 장검도 그자의 가슴을 파고들고 있었다. 사마외도의 인물들은 대개 동패구상의 살수(殺手)로 적의 허를 찌르고 상대를 당황하게 만들지만, 그러나 정작 정말로 자신의 목숨을 상대와 바꾸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간악스럽게 이익을 노리고 있는 것이지 결사적인 마음은 아닌 것이다. 지금 동방량의 태도는 이른바 살을 내주고 적의 뼈를 깎는 그러한 전법이었으므로 그 사내는 감히 이것을 계속할 수가 없었다. 그의 귀두도가 동방량의 낭심을 베려다가 지척에서 미끄러지면서 변화하여 그의 허벅지를 스치며 후퇴했다. 동방량의 이 낙성십이검(落星十二劍)은 실로 쾌속하고 강력한 위력을 담고 있어서 이런 상황에는 그야말로 적절했다. 미처 방어하지 못한 사내가 급히 몸을 뒤집어 파하는 순간, 그의 장검은 겨드랑이에 깊은 칼집을 내고 있었고, 이어 다급히 방어하며 몸을 뒤집어 피하는 사내의 전신으로 유성(流星)처럼 별빛 같은 검환(劍幻)이 작렬했다. 비슷한 실력의 경우 한번 수세에 몰리면 전세를 뒤집기가 어려운 법인데, 사내는 너무도 심한 수세에 몰려 있고 게다가 동방량은 한번 성공한 이후에도 계속 쉬지 않고 결사적인 공격을 퍼붓고 있으니 사내의 상황은 호전되기는커녕 오히려 더욱더 나빠져갔다. 그는 아마도 느닷없이 사신(死神)을 만난 기분일 것이다. 번개같이 혼신을 다해 몸을 피하고 방어하는 사이, 어느새 우박처럼 쏟아지는 검변환(劍變換)에 의해 십여 군데의 상처를 더 입고 사내의 안색은 시커멓게 질려갔다. 미처 호흡을 가다듬을 시간도 없으니 그는 자신이 먼저 나선 것을 후회할 여유도 없을 것이다. 일류경지 이상의 고수가 무공을 펼치면 일반인은 그 장검의 움직임을 알아볼 수가 없고, 일단 같은 경지의 고수라고 해도 마음의 준비가 없다면 늦어지기 십상이다. 그 사내가 다시 두어 군데의 가볍지 않은 부상을 당하고 나서야 비로소 그 옆의 두 사내가 각자의 병장기를 번쩍이며 동방량의 배후를 노려갔다. 그들의 병기는, 하나는 날이 두 개인 단창(短槍)이고 하나는 도끼와 같이 육중하게 생긴 칼이었는데, 병기들의 모양이 하나같이 흉흉하고 또한 즉각 동방량의 급소를 노렸다. 아마도 자신들의 동료를 일단 위기에서 구하자는 생각인 모양이었다. 실전경험이 많은 그들은 이런 때에는 어떤 공격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것을 몸으로 체득하고 있었다. 그들의 무공은 하나같이 동방량에 비해 못하지 않다. 마음먹고 그의 급소를 노리는 것이기 때문에 동방량은 이때는 무사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제 거의 다 잡은 적을 놓아줄 수는 없는 일이라 동방량은 등뒤의 치명요해만을 피하며 계속 그 귀두도의 사내를 공격할 모양이었다. 이것은 비록 수준 높은 것은 아니지만 보기 드물게 살벌한 싸움이고 흉악스런 사내들을 질리게 하기에 족한 것이었다. 동방리는 그것을 보자 즉시 눈물이 두 눈에서 그렁그렁해지고 손끝을 떨었다. 동방량의 무공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지금 그의 의도대로 등뒤의 치명요해를 반드시 피해낼 수 있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바로 그때 화검상이 문득 소리치며 앞으로 나섰다. "잠깐, 멈추시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실로 그의 말을 따로 멈출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동방량은 과연 그사이에 세 번이나 적에게 칼집을 내어 마침내 사내의 가슴에 구멍을 뚫어놓고 있었다. 이렇게 빨리 그가 사내를 죽일 수 있었던 것은 두 사람의 실력의 차이보다는 사내가 동방량의 결사적인 공격에 눌려 방어조차 변변히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때 동방량은 그와 동시에 자신의 몸도 만신창이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뜻밖에도 그렇지 않았다. 몸을 돌려보니, 어이없게도 그의 배후를 공격하던 그 두 명의 사내들은 지척에 다가와서 정말로 화검상의 말처럼 공격을 잠시 멈추고 있었다. 그들은 과연 그 말을 듣고 순순히 공격을 멈춘 것일까? 이곳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공이 낮지 않기 때문에 그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 이쪽을 보며 어리둥절해 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그 두 사내도 자신들이 갑자기 왜 공격을 도중에 멈추었는지 알지 못하겠다는 표정들이었다. 그런 찰나의 순간의 차이라도 상황을 충분히 역전시킬 수가 있다. 그 두 사내가 정신을 차리고 급히 재차 살수를 펼치려는 사이에 어느새 동방량도 몸을 돌려 한 사내를 공격해 들어가고 있었다. 동방량은 분명히 두 사람이 공격해오고 있지만 오직 한 사람만을 향해 공격해 들어갔다. 두 사람을 동시에 상대한다면 그는 어느 한 사람도 제거하지 못할 것이고 결국 당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한쪽의 공격은 당해주면서 다른 한쪽은 제거해버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기실 이것은 경험이 없기 때문에 생긴 대단히 무모하고 위험한 발상이었다. 그가 공격하려는 대상은 적절히 맞대응을 하면서 방어하고 피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다른 상대에게 그저 등을 대주고 있는 상황이니 과연 누가 먼저 죽음을 당하겠는가? 이들의 무공은 모두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느니 동방량이 제아무리 결사적으로 덤빈다고 해도 되지 않을 것이며, 혈기만 지나친 무모한 행동이 될 것이다. '용기는 가상하지만 경험이 너무 부족하군!' 화검상은 하는 수 없이 쓴웃음을 지으며 앞으로 나서 마악 동방량의 등을 찌르려던 두날단창을 가진 사내를 상대했다. 그는 어느새 장생보검(長生寶劍)을 손에 뽑아들었는데 마침 눈에 보이지도 않을 변화를 일으키며 빠르게 동방량의 등을 찔러가던 두날단창의 사이에 그 날이 없는 누런 검신(檢身)이 끼었다. 그 사내는 다소 놀라 황급히 검을 떨쳐버리려고 했으나 되지 않았고, 창을 잡아당겨도 마치 달라붙은 것처럼 장검이 떨어지지 않고 꼼짝을 하지 않아 더욱 놀라며 소리쳤다. "네놈은 무슨 사술(邪術)을 부리는 거냐?" 화검상은 태연히 웃으며 말했다. "내 능력이 그것뿐이니 어쩌겠소? 그보다 여러 명이 한 명을 공격하는 것은 비열하지 않소? 그리고 우리 대화로 이 일을 풀어보도록 합시다." 사내들의 뒤쪽에 한 명의 비단옷을 걸친 중년인(中年人)이 서 있었다. 용모는 대체로 미끈했으나 코가 매부리코이고 눈빛은 음험한 독기가 깔려 있었다. 다른 사내들과는 달리 무공이 절정경지에 오른 듯했으니 겉모습과 비교해보더라도 그가 바로 이 사내들의 우두머리였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망仄 무림야그 출력일 :: 98/11/04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1 권 제 39 장 - 1 그 사내는 계속 동방리 쪽을 힐끔거리고 있었는데 그 바람에 화검상도 계속 보게 되고, 이어 그의 이상한 능력을 보았으므로 즉시 손을 들어 싸움 중지명령을 내렸다. "잠깐 물러서자!" 이때 당연히 동방량과 그 도끼칼을 쓰는 사내와의 격돌이 치열했는데, 그것은 또 다른 양상이 되어 있었다. 동방량은 본래 빨리 그자를 죽이고 다른 자를 노리려고 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계산착오였을 뿐만 아니라, 상대마저 잘못 골랐다. 그는 차라리 단창을 쓰는 자를 고르는 것이 나을 뻔했다. 그 사내는 이미 동방량의 전법을 보았으므로 그에 대한 대비를 하고 있었고 무리한 공격을 하지 않아 초반부터 수세에 몰리지 않았다. 동방량이 결사적으로 방어없는 공격만 퍼부어도 그자는 적당히 허실(虛實)을 보이며 피했다가 마주 달려들곤 했다. 바로 이 사내의 장기가 이런 결사적인 근접전에서 유리하게 상황을 이끄는 것이었다. 그 육중한 도끼칼은 때로는 두터운 방패가 되기도 했고 때로는 허를 찌르는 무서운 흉기가 되기도 했다. 동방량은 계속해서 전력을 다한 공격을 방어없이 퍼부었지만, 대부분이 빗나가고 오히려 그 사내의 도끼칼에 몇 군데의 크고 작은 상처를 입게 되었다. 비록 동방량은 아직도 결사적으로 물러서지 않는 공격을 퍼붓고 있었지만 이렇게 되자 상황은 오히려 그가 엉뚱하게도 수세에 몰리게 되었다. 그 사내는 중년인의 지시가 떨어진 이후에도 두 눈을 번뜩이며 아쉬운 듯 두어 번 더 공격해보다가 여유있게 물러갔다. 동방량은 아까는 상대의 허를 찌르고 쾌거를 이룰 수가 있었지만 이번에는 다시 추격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 잠깐 동안에 그는 어느새 지치고 허탈해진 것 같았다. 그 중년인은 화검상을 향해 음험한 눈을 번뜩이며 소리쳤다. "네놈은 누구냐?" 화검상은 장생보검을 도로 검집 속에 넣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꾸했다. "나는 그저 지나가는 떠돌이지만 잠시 이 집에서 신세를 지고 있는 형편이오. 그러는 네놈은 누구요?" 중년인의 좌우에 있던 사내들이 그 말에 크게 화가 나서 병장기를 휘두르며 험악하게 소리쳤다. "아니 저놈이 감히 우리 소장주(少莊主)님께 노, 놈이라니! 당장에 쳐죽일 놈!" 중년인은 의외로 쉽게 동요하지 않고 침착해 보였다. 그는 손을 내저어 주위를 진정시키며 말했다. "본인은 지금 저 계집에게 볼일이 있어 온 것이니, 네놈은 순순히 뒤로 물러나라. 본 공자가 한번 은전을 베풀 때 물러나지 않으면 본 공자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뭐? 용서하지 않는다고? 정말 말은 근사하게 하는군.' 화검상은 다시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하는 듯하다가 말했다. "그렇다면 좋소. 기왕에 은전을 베푼다는데 감사하게 받아야지. 마침 나도 사실은 지금 떠날 생각이었소. 그런데 어쨌든 내가 이미 관여했으니 그 이유는 알아야 하지 않겠소?" 앞쪽에 있던 사내 하나가 음침하게 웃으며 말했다. "정말 죽지 못해 환장을 한 후레자식이로군!" 다른 사내 하나가 중년인을 향해 말했다. "소장주님, 저런 부랑아를 일일이 상대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둘 다 쓸어버리고 저 계집을 데려가면 되지 않습니까?" 화검상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말했다. "저 낭자는 내가 보기에는 못생긴 데다가 아무런 쓸모가 없을 것 같은데 왜 데려가려는 것이지?" 중년인의 옆에 서 있던 사내 하나가 음침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쓰레기와도 같은 네놈이 어찌 고상한 우리 소장주님의 깊은 뜻을 알겠느냐?" 그때 아, 하는 동방리의 외침이 들려왔다. 아까 동방량과 격돌하던 그 도끼칼의 사내가 어느 틈에 몰래 움직여 기습적으로 그녀를 제압하려고 한 것이다. 다행히도 동방리는 무공은 없어도 그 흐름을 읽을 수가 있기 때문에 미리 기습을 눈치채고 소리친 것이다. 동방량은 그 소리에 놀라 급히 정신을 차리고 그쪽으로 움직이려고 했지만 어느새 그 도끼칼의 사내는 동방리의 주위에 접근하여 그 도끼칼을 그녀의 목에 들이대고 있었다. "모두 꼼짝 마라! 안 그러면 즉시 이 계집을 난도질해버리겠다." 동방량은 급히 자신의 누이를 구하려다 멍청히 그 자리에 서버렸고, 동방리도 물론 방법이 없어 보였다. 화검상은 천천히 걸어서 그쪽으로 다가가며 그 사내에게 말을 걸었다. "아니, 정말로 그녀를 죽일 생각이요?" 그 사내는 음험한 눈빛으로 빠르게 생각을 굴려본 후에 대꾸했다. "멈취라! 네놈들이 정녕 끝까지 말을 듣지 않는다면 그러겠다는 것이다. 소장주께서 비록 이 계집에 눈독을 들이셨지만, 팔. 다리 하나가 없어진다고 해도 상관하지 않으실 것이다." 화검상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다시 몸을 돌려 그 중년인을 바라보았다. "아니, 그렇다면 당신은 지금 이 낭자에게 장가를 들려는 것이오? 하지만 이쪽에서는 반대를 하고 있고, 그래서 이렇게 살벌하게 된 것이로구먼?" 중년인은 음침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네놈은 제법 머리가 돌아가는구나." 화검상은 다시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정말 이런 청혼은 처음 보겠군. 음...... 혼인은 인륜지대사라고 했으니 다소 거칠더라도 내가 관여할 수는 없지. 게다가 신부의 팔다리를 베어가겠다니, 여기에는 무슨 약간의 오해가 생긴 것 같지 않소?" 중년인은 음산한 표정으로 화검상을 주시하며 대꾸했다. "으흐, 너도 그렇게 생각하느냐?"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보았던 사람들도 이제는 화검상을 주시하며 경계하기 시작했다. 강호의 실전경험이 많은 만큼 이런 곳에서 이런 여유를 부릴 수 있다는 것은 웬만큼 강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화검상은 다시 그 도끼칼의 사내에게 몸을 돌려 바라보며 손을 내밀었다. "그것 보시오! 당신이 틀렸소. 우선 그 이상하게 생긴 칼이나 좀 봅시다." 그 도끼칼의 사내는 비록 눈치 빠르게 행동하기는 했지만 목적이 동방리에게 있는 만큼 그녀를 인질로 삼기는 곤란한 일이었다. 그는 순간적으로 상황판단을 하면서 즉시 도끼칼을 돌려 화검상의 미간과 목젖, 가슴을 동시에 노리며 베어갔다. 칼은 하나이지만 그 빠른 변환(變換)이 일어나기에 마치 서너 개의 도끼칼이 동시에 화검상을 공격하는 것과도 같았다. 하지만 다음 순간 어찌 되었는지 그 칼날은 얌전히 화검상의 손에 들려져 있었다. 화검상은 가볍게 잡아당겨 그 도끼칼을 입수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은 무림야그 출력일 :: 98/11/04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1 권 제 39 장 - 2 "그렇게 장난을 치다니, 하마터면 손이 베일 뻔하지 않았소?" 사내가 너무도 간단히 칼을 빼앗겼기 때문에 마치 옆에서 보기에는 그가 일부러 칼을 건네준 것 같았다. 하지만 이 일류고수들이 검강(劍 )의 초보단계인 검망(劍芒)을 일부러 시전하지 않더라도 그 검끝에는 항상 예리한 검기(劍氣)가 실리기 마련이었다. 사내는 너무도 놀라서 어리둥절해졌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크게 놀랐다. "음, 과연 제법 예리하게 날이 섰군. 하지만 당신은 이쪽이 아니라 저쪽으로 가서 기다리시오." 화검상은 다시 도끼칼을 사내에게 쥐어주고 그의 등을 밀어서 중년인이 있는 쪽으로 가게 했다. 사람들은 그 사내가 멍청하게 등을 떠밀려서 아무런 저항도 못하고 밀려오는 것을 보고 더욱 경악해서 눈이 휘둥그래졌다. 그 도끼칼의 사내는 이제 더 더욱 놀라서 말도 안 나올 지경이었다. 화검상은 동방리를 한번 돌아본 뒤에 중년인을 향해 다시 말했다. "나는 이렇게 여기에 서 있을 테니 당신은 알아서 하시오. 하지만 아까도 말했듯이 이렇게 많은 사람이 한 사람을 상대한다는 것은 좀 비열하지 않소? 당연히 처남과 매부가 싸워야 하는 거지. 당신은 그래, 저 녀석과 싸울 용기가 없단 말이오?" 동방량은 그 말에 중년인을 주시했지만 당연히 그 중년인은 지금 그와 싸우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는 잠시 화검상을 노려보다가 음험하게 웃으며 소리쳤다. "흐흐, 네놈은 반드시 이 일에 나서세 된 것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자, 모두 일단 돌아가자!" 중년인이 그 말과 함께 먼저 신형을 날리자, 나머지 사내들도 모두 그 뒤를 따라 순식간에 멀리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음, 제법 눈치가 빠른 녀석이로군. 하긴 그러니 이 험한 강호에서 여태 살아남았겠지!' 화검상은 그들이 모두 사라지자 눈살을 찌푸리며 그 자리에 주저 않아 잠시 뭔가 상념에 잠겼다. 동방리는 얼른 동생에게 달려가 그의 상처를 보살피고 있었다. 동방량의 상처는 더러 뼈가 드러나는 깊은 것이 있기는 해도 그다지 심각한 것은 없었다. 화검상은 이윽고 그들에게 다가가 포권하며 말했다. "자, 그럼 두 분은 편히 잘 사시기를 바라겠소." 동방리는 그 말에 놀라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지금 떠나시려는 것인가요?" 동방량은 어둡고 무거운 기색으로 고개를 돌려 외면하고 있었다. 화검상은 가벼운 웃음을 지으며 대꾸했다. "그렇소, 이미 말씀드렸다시피. 게다가 낭자의 그 작은할아버지와 나와의 인연은 이것으로 모두 상쇄되었다고 생각되니 나로서는 해야 할 일을 다한 셈이오." 동방리는 눈빛이 어두워지고 동방량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자, 그럼......." 화검상은 가볍게 인사한 뒤에 홀가분한 표정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인연이란 억지로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잔머리만 굴리고 감상에만 빠져 있다고 되는 일인가? 진실로 구하지 않는다면 얻는 것도 없는 것을.......' 화검상의 발걸음은 빨라서 어느새 예의 그 강가에 이르렀다. 강가에는 작은 배가 한 척 있었는데 사공은 없다. '한번 물위를 걸어가볼까?' 무공이 대홍락의 초입에만 이르러도 물위를 걸을 수 있다고 되어 있었다. 화검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냐, 공연히 사람들을 놀라게 할 필요는 없지.' 그는 그 작은 배로 다가갔다. 그가 노젓는 일에 익숙하지 않다고 해도 그 흐름은 역시 무공의 그것과도 다르지 않은 만큼 금세 그는 편히 배 위에 않아서 노를 젓기 시작했다. 황하의 강물은 거세게 흘렀지만 그가 탄 배는 미끄러지듯 부드럽게 나아갔다. 그는 지금 황하를 건너 서쪽의 태행산(太行山)으로 가려는 것이었다. 태행산에는 이른바 백혈단(白血團)의 본거지가 있다. 지금 그가 그곳으로 가려는 것은 반드시 그 세력을 손에 넣으려는 것은 아니다. 우선 가봐야 할 것 같아서 가는 것이고, 상황에 따라 행동하려는 것이다. 반드시 세력을 손에 넣었다고 해서 좋은 것도 아니고 또한 그렇지 않다고 해서 좋은 것도 아니다. 세상의 일은 정해지지 않아서 상황에 따라 임기응변하는 것이 중요하다. 근본이 되어 있다면 그 임기응변의 결과도 좋은 것이다. 강물은 절반쯤 지나는데 배 주위로 팔뚝만한 물고기들이 펄떡거리며 뛰어올랐다. '마침 시장한데 저놈을 잡아다 구워 먹을까?' 그때 갑자기 뒤쪽에서 누가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귀에 익은 음성이었고 목 쉬도록 애타게 부르는 소리였다. "화공자님! 잠깐만 기다리세요!" 그것은 바로 동방리의 음성이었다. 돌아보니 그 강가에 어느새 그녀와 동방량이 다가와 있었다. 무공도 없고 허약한 그녀가 이렇게 크게 소리칠 수 있는 것은 혼신을 다했기 때문이리라. 화검상은 고개를 돌리고 대꾸했다. "무슨 일이오?" 그저 가볍게 말했지만 그의 음성은 자연히 천리전성(千里傳聲)의 수법으로 그들 남매에게 날아갔다. "드릴 말씀이 있으니 그곳에 잠시만 계셔주세요!" 이어 동방리는 동생 동방량에게 부축을 받아 강물을 건너오기 시작했다. 허약한 동방리는 말할 것도 없고 동방량도 이미 상처를 입은 상황이라 물속으로 들어오는 것은 위험했다. 화검상은 그쪽을 바라보다가 가볍게 탄식하며 배를 돌려 다가갔다. 동방량은 수영실력이 대단하지만 안색이 파래져서 화검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화검상은 그들의 몸이 더 나빠질까봐 신형을 날려 물위에 내려섰고, 이어 두 사람을 가볍게 건져올려 배 위에 태워주었다. 화검상이 물위를 걸어 뒤따라 배 위에 오르는 것을 보고 동방량은 일순 눈이 휘둥그래졌다. 화검상의 물위를 걷는 신법은 거의 완벽하여 마치 구름 위를 걷는 것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화검상은 그들과 마주앉으며 말했다. "내게 할말이 있다니, 무슨 말이오?" 동방리는 이미 기운이 쇠진하여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그녀는 즉시 몸을 일으켜 절을 하며 말했다. "제가 귀인(貴人)을 몰라뵈었으니 용서해주세요! 부디 화를 내지 마시고 저의 절을 받아주세요."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ЕЕ 무림야그 출력일 :: 98/11/04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1 권 제 39 장 - 3 그녀는 너무도 기운이 없어서 절을 하는데도 안간힘을 다하고 있었다. 물속을 지나왔을 뿐만 아니라 한 순간 정신적인 고뇌와 갈등, 번뇌가 증폭되어 병세를 급격히 악화시킨 것이다. 화검상은 담담한 표정으로 그 절을 받으며 대꾸했다. "내가 화를 내고 있다니 그게 무슨 말이오?" 동방리는 이어 동방량에게 말했다. "너도 어서 절을 올려라." 지금 동방리의 상태는 그야말로 숨이 끊어지기 일보직전인 것 같았기 때문에 동방량은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그는 즉시 화검상에게 큰절을 올리며 말했다. "부디 저를 거두어주십시오." 화검상은 눈살을 다소 찌푸렸다. "거두어달라니? 그럼 나더러 자네를 제자로 삼으라는 말인가?" 동방량은 엎드린 채 더듬거리며 말했다. "예, 저는...... 저는 당신의 제자가 되겠습니다." 화검상은 가볍게 실소하며 말했다. "이거야말로 웃기는 일이로군. 자네는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몰라도, 내가 보기에는 자네는 별로 대수롭지 않은 한 사람에 불과하네. 내가 자네와 같은 사람을 제자로 거두어서 무슨 이익이 있겠나? 그런데도 자네는 마치 마지못해 나를 사부로 모시겠다는 말투로군?" 동방리는 그것을 보고 있다가 몸이 문득 그대로 늘어졌다. 가볍게 실신한 것이다. 동방량은 그것을 보자 급히 일어나 다가가 동방리를 흔들어 깨웠다. "누, 누나!" 동방리는 이내 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이제는 가물가물해진 희미한 음성으로 말했다. "소량, 네가 그렇게 건성으로 나를 속이겠다면 나는 차라리 지금 죽고 말 거야." 동방량은 이에 화검상을 노려보더니 다시 엎드려 이마로 바닥을 열댓 번이나 세차게 부딪치며 소리쳤다. "부디 저를 제자로 삼아주십시오! 저는 진심으로 당신의 제자가 되겠습니다. 저를 거두어주십시오......!" 배가 나무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그의 머리는 성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계속 부딪치다보니 이마가 찢어져 피가 흘러나왔다. 화검상은 내심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어쨌든 일단 몸을 치료해야 할 테니 집으로 돌아가기로 하자. 너는 노를 저어라!" 동방량은 고개를 들고 화검상을 바라보더니 이윽고 일어나 노를 젓기 시작했다. 화검상은 곧장 동방리에게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녀의 손은 맥이 가물가물하고 싸늘했다. 그는 마음을 모은 뒤에 공력을 주입하여 그녀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화검상의 지금의 내공은 아주 신비로운 것이었다. 그것은 살아 움직이는 것이고 영성(靈性)을 띠고 있어서 모든 탁기를 제거하고 그 어떤 영약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치료가 시작된 지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서 동방리는 전신이 마치 감로수에 잠긴 듯이 쾌적하고 편안해졌으며 끊어졌던 절맥들이 이어져서 활력이 넘치게 되었다. 그런 갑작스런 변화는 마치 거짓말 같다고나 할까. 그녀는 이제까지 스물한 살이 되도록 그렇게 편안하고 쾌적한 기분을 느껴보지 못했었다. 처음에는 일부러 눈을 감고 가만히 있었지만, 이윽고 참다못해 눈을 떠보니 조용히 자신의 손을 잡고 눈을 감고 있는 화검상의 얼굴에는 밝은 서광(瑞光) 같은 기운이 가득 떠올라 있었다. 그녀는 이제까지 이렇게 젊은 나이에 이러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는 들어보지도 못했고, 또한 그녀의 상식으로도 그건 불가능했다. 대체 그의 이 얼굴과 손, 그리고 전신을 감싸고 있는 상서로운 기운은 무엇일까? 그녀가 잠시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화검상이 손을 놓고 눈을 떴으므로 그녀는 깜짝 놀라 급히 고개를 숙였다. "이제 몸은 어떻소?" 동방리는 갑자기 고개를 숙인 자기 자신이 부끄러워서 얼른 고개를 들고 웃으며 대답했다. "이상해요. 갑자기 몸이 날아갈 것 같고 이렇게 좋을 수가 없어요. 마치 몸이 다 나아버린 것 같아요." 화검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 근원이 치료되지 않았기 때문에 몸이 다 나은 것은 아니오. 다시 병이 발작하게 될 것이니 앞으로는 힘든 일은 하지말고 조심하는 것이 좋겠소." 동방리는 약간 처연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저는 한번 몸이 이렇게 건강해지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이제 그 소원을 풀었으니 여한이 없어요." 어느새 배가 강가에 도착했으므로 두 사람은 배에서 내렸다. 동방량은 먼저 배에서 내려 있다가 자신의 누나가 가뿐하게 내리는 것을 보고 놀라 멍청한 표정이 되었다. 동방리는 그런 동방량의 손을 잡아끌며 재촉했다. "뭘 그렇게 보니? 어서 가서 아침밥을 준비해야지!" 화검상은 그 남매의 뒤를 따라 천천히 다시 그 모옥에 이르렀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동방량은 상처를 치료하고 있는지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잠시 후에 동방리가 아침상을 들고 들어왔다. 화검상은 무심코 그녀를 바라보다가 문득 가볍게 놀란 듯한 표정을 보였다. 동방리는 깨끗한 새옷으로 단정히 갈아입었는데 용모가 아까와는 달리, 추악하지 않고 갸름하면서도 매우 아름다웠던 것이다. 다만 약간 심하게 마른 듯한 느낌은 있었지만 안색에는 밝은 홍조가 감돌고 눈빛도 광채를 띠고 있었다. 그녀는 화검상의 앞에 밥상을 내려놓은 뒤에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간 화공자님을 속여서 죄송해요. 저는 힘도 없고 해서 남자들을 멀리하기 위해 그렇게 역용(易容)을 하고 살아왔던 거예요." 화검상은 미소하며 말했다. "어쩐지 그 유가장의 소장주가 난리를 치더라니, 하지만 생각보다는 훨씬 미인인 것 같소." '생각보다......? 그럼 이분은 이미 내가 역용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계셨었다는 말인가?' 동방리는 왠지 안색이 붉어지는 것 같아 얼른 시선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그 일은 얼마 전에 제가 세수를 하다가 그만 얼굴을 그자들에게 보이게 되어 문제가 일어났던 거예요. 그자들은 매우 흉악하여 저를 마구잡이로 데려가려고 했고, 제 동생이 성질이 급해 싸움이 벌어지게 되었죠." 화검상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ЕЕ 무림야그 출력일 :: 98/11/04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1 권 제 39 장 - 4 "이 부근에는 녹림삼십육방(綠林三十六方)의 하나인 천하방(天下 )이 있다고 하던데, 그 유가장은 그들과 어떤 사이요?" 동방리는 다시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유가장은 천하방의 일개 분타와 같다고 해요. 장주(莊主)는 염왕도(閻王刀) 유백호(劉伯虎)란 사람인데 특기가 상문십이도(喪門十二刀)라고 하고, 무공은 거의 최상승의 경지에 올랐다고 해요. 그곳에는 백여 명의 인원들이 있는데 대개가 일류고수(一流高手) 이상이고, 또한 아까 그 소장주는 등룡검(騰龍劍) 유원(劉園)이란 사람인데 단혼검법(斷魂劍法)을 사용하죠." 화검상은 그녀가 뜻밖에도 그들에 관해 자세히 알고 있는 것을 보고 약간 놀랐다. 당장 생사가 걸린 문제이니 알지 않을 수가 없겠지만, 그런 불편한 몸으로 이곳에 살면서 그쪽의 상황을 훤히 알고 있었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화검상은 미소하며 화제를 돌렸다. "동생은 지금 괜찮소?" 동방리는 그의 안색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소량은 자존심이 강하고 성질이 급해서 그렇지 나쁜 아이는 아니에요. 지금은 비록 고집을 부려도 나중에는 잘못을 뉘우칠 것이니 화공자님께서 이해해주세요." 화검상은 미소하며 손을 내저었다. "나는 그 녀석의 상처를 묻는 것이오." 동방리는 이에 안색이 다시 밝아지며 대답했다. "걱정 마세요. 그 아이는 몸이 아주 건강해서 여태 한번도 아파 본 적이 없는걸요." 아침식사를 마치고 나서 화검상은 천천히 걸어서 예의 그 연무하는 장소에 이르렀다. 하늘은 거의 구름 한점 없이 맑았으며 강바람은 조용한 편이었고, 반쯤 드러누워 드넓게 펼쳐진 갈잎들이 따가운 햇살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참으로 좋은 날씨다. 아직 한여름의 열기가 곳곳에 남아 있는 듯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서늘하게 불어오는 바람은 땀방울을 이내 시원하게 씻어버린다. 상승무공을 수련하는 무림인이라면 설령 더없이 무더운 한여름이라고 해도 땀을 흘려서는 안 될 것이다. 동방량은 여전히 땀을 뻘뻘 흘리며 검광(劍光)을 일으키고 있었고, 어젯밤과는 달리 그 주위의 잡목들이 흡사 서리 맞은 듯이 우수수 가지와 나뭇잎들이 떨어져 있었다. 동방량은 지금 제법 굵은 소나무 하나를 상대로 검광을 쏟아붓고 있는 중이었다. 그 소나무는 잎과 잔가지들이 이미 모두 떨어져나가고 이제는 껍질들이 조각나고 있는 중이었다. 화검상은 그의 주위에 이르러 미소하며 입을 열었다. "그들은 머지않아 또 올 것이다. 너는 다시 그들을 상대할 자신이 있느냐?"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살 무림야그 출력일 :: 98/11/04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1 권 제 40 장 백발(白髮) 제 40 장 백발(白髮) 동방량은 잠시 멈칫하더니 검을 거두었지만 그러나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지는 않았다. 화검상은 미소하며 다시 말했다. "나는 네가 아까 억지로 나의 제자가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물론 그게 정말로 제자라는 것인지도 의심스런 노릇이지만, 따라서 이제는 제 누나의 병세가 많이 좋아졌으니 그 말을 무를 때가 되지 않았느냐?" 동방량은 여전히 고개도 돌리지 않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화검상은 다소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기왕에 서로간에 그런 말이 오갔으니 우리는 일단 사제지간(師弟之間)이라고 치자. 하지만 나는 결코 네게 부탁하거나 강요할 생각이 없으니 앞으로 원한다면 언제든지 내 곁을 떠나도 좋다. 지금 이 순간도 역시 마찬가지다." 동방량은 이윽고 입을 열어 말했다.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 화검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엄격히 말해서 너는 나의 제자라고는 할 수가 없다. 따라서 나는 네게 지금 무공을 가르치지도 않을 것이며 여러 가지 나에 관해서 가르쳐줄 생각도 없다. 너 역시 지금 나를 경계하며 모든 일을 숨기고 있는 게 아니냐?" 동방량은 그제야 고개를 돌리고 그를 한번 노려보더니 그를 스치고 모옥 쪽으로 내려갔다. 화검상은 문득 가볍게 웃더니 신형을 움직였다. 동방량은 분명히 앞을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환성처럼 화검상이 눈앞에 나타나고 손바닥이 그의 얼굴을 향해 날라왔다. 동방량은 그래도 이미 일류급의 무공을 가지고 있으므로 즉시 신속하게 그것에 대응하거나 피하려고 했다. 하지만 피하려는 순간 갑자기 반대쪽의 뺨이 철썩, 울리며 정신이 아득해졌고 대응하려던 손발의 움직임도 기이하게 마비되었다. 그것은 마치 기이한 시간의 단축과도 같은 것이었다. 분명히 피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화검상의 손은 어느새 반대편에 도달해 있었고, 마치 그가 일부러 뺨을 갖다 대는 것처럼 연속적으로 철썩철썩, 울리는 것이었다. 동방량은 그 뺨을 얻어맞는 순간 고통이나 상처를 입지는 않았지만 그 대신 정신이 계속해서 아득해졌다. 화검상은 이윽고 손을 거두더니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 "비록 무공은 가르치지 않더라도 일단 네가 나의 제자라는 이름이 있는 이상, 나는 나의 앞에서 그따위의 행동을 하는 꼴은 볼 수가 없다. 너는 지금 당장 나를 떠나는 게 어떠냐?" 동방량은 정신을 차리자 문득 화가 나서 얼굴이 시뻘게졌으며 그를 노려보며 고함을 질렀다. "좋소! 당신은 이제 나의 사부가 아니고 나도 당신의 제자가 아니오! 이제 됐소? 제발 우리 집에서 꺼져주시요!" 화검상은 미소하며 그를 주시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이제부터 너와 나는 상관도 없는 남남이며 내가 너의 일에 상관할 필요도 없겠지. 내가 떠나려던 것은 미리부터 생각했던 일이다." 말과 함께 화검상은 즉시 모옥 쪽으로 내려갔다. 동방량은 잠시 우두커니 서서 화검상의 등뒤를 노려보고 있었다. 화검상이 모옥에 당도하니 동방리가 텃밭 쪽에 나와 있다가 그를 보고 있었다. "죄송해요. 저의 동생이 아직 철이 없어서 화공자님께 심려를 끼쳐드리는군요." 화검상은 처연한 기색을 하고 있는 그녀를 향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내가 보기에 두 사람은 즉시 이곳을 떠나는 게 좋겠소. 낭자는 이제 몸도 어느 정도 좋아졌으니 그럴 때가 되지 않았소?" 동방리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그를 보았다. "지금 떠나시려는 것인가요?" 화검상은 가볍게 웃으며 대꾸했다. "만일 달리 갈 곳이 없다면 태행산(太行山) 쪽으로 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오. 만일 인연이 있다면 다시 만나게 될 것이오." 이어 화검상은 간단히 태행산의 백혈단의 위치와 내용 등을 설명해준 후에 몸을 돌렸다. 화검상은 모옥을 나온 뒤에 으슥한 곳에 이르자 이내 신법(身法)을 펼쳤다. '공연한 일로 시간과 힘을 낭비하고 있구나.' 그는 강 쪽으로 가지 않고 이번에는 남동쪽으로 나아갔다. 그쪽에는 야산들도 많이 있고 제법 험준한 산들도 있다. 그 계곡의 안쪽 평지에 하나의 견고하게 지어진 장원(莊院)이 위치하고 있었는데 바로 유가장(劉家莊)이다. 화검상은 곧장 시간을 아끼기 위해 그 장원의 안으로 들어갈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지만 이내 마음을 정하고 모옥 쪽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기다렸다.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는 좋은 날씨라서 그런지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흘러갔다. 얼마의 시간이 흘러 사시 무렵이 되자 과연 그 유가장에서 제법 많은 사람들이 쏟아져나와 이쪽으로 달려왔다. 그 숫자는 삼십여 명이어서 아까보다 세 배는 많았고, 그 소장주의 좌우에는 제법 나이 많은 자들도 있는 것 같았다. 화검상은 비스듬히 마른 갈대밭에 누워서 그들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는데, 이윽고 그들 중 가장 먼저 다가온 자가 놀라 신형을 멈추며 소리쳤다. "앗! 그자가 여기에 있습니다. 소장주님!" 그 사내는 아까 왔었던 자들 중의 하나이다. 아까 왔었던 자들은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거듭 생각해볼수록 화검상의 능력이 기이하여 은근히 두려움을 품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들의 움직임을 시삭으로 속속 다가드는 사람들이 일제히 화검상을 주시하며 일자(一字)로 늘어섰다. 그 소장주 등룡검(騰龍劍) 유원(劉園)은 화검상이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자 처음에는 다소 놀라는 눈치더니 이내 그 좌우의 노인들과 함께 천천히 앞에 나섰다. 유원이 그렇게 앞으로 나서자 다른 사내들도 천천히 다가들어 마치 화검상을 반쯤 포위하는 활 모양의 대형을 이루었다. 유원은 은근히 좌우의 노인들을 의식하며 흉악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흥, 네놈이 감히 이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단 말이지? 흐흐흐! 정말 죽고 싶어 환장한 놈이로군?" 화검상은 그 말을 듣자 드디어 천천히 몸을 일으켜 그들에게 다가갔다.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것 같았는데 갑자기 그의 신형이 오 장을 이동하여 어느새 유원의 앞에 이르러 있었다. 유원의 말을 듣고 따라온 그 두 노인들은 내심 설마 했는데 조금 전에 화검상의 용모나 나이 등을 보고는 더욱 우습게 보고 있었다. 한데, 마치 사술(邪術)을 보는 듯한 화검상의 갑작스런 신법을 보고는 그만 놀라 어리둥절해 하다가 급히 좌우에서 화검상을 향해 병자기를 내뻗었다. 그 두 노인의 병기는 하나는 갈고리와 같은 것이었고 하나는 쌍날도끼였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은 무림야그 출력일 :: 98/11/04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1 권 제 40 장 - 1 그 두가지의 병기는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공통점은 모두 괴이하고 위험한 것이라는 점이다. 하나는 멀고, 하나는 가까우니 괴이한 살초(殺招)를 전개하면서도 둘은 교묘한 조화를 이루어 서로의 단점을 보완하고 또한 장점은 더욱 신랄하게 만들고 있었다. 이들은 이미 수십년 간이나 실전경험 속에서 살아온 노강호(老江湖)들로서 무공이 다른 사람들과 또 다르고 절정경지에 올라 있었다. 병장기를 내뻗는 순간 어느새 그들의 몸은 좌우로 화검상의 몸을 에워싸며 각기 십여 개의 변환(變幻)을 만들고 있었다. 갈고리를 상대하려면 어느새 쌍날도끼가 파고들고, 쌍날도끼를 상대하려면 어느새 갈고리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에서 치명요해를 노리며 파고든다. 서로의 병기가 아직 부딪치기 전에 변환이 일고 있다는 것은 상대의 반응에 따라 공격과 방어를 포함하는 변화가 빠르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한번 부딪친 다음에도 그러한 변환은 계속된다. 하류의 무공은 일단 상대의 허실(虛實)을 모르기에 무모하게 공격하기 쉽지만 상승하는 무공은 그러한 허실에 능하므로 부딪치기 전에 먼저 변화하고 부딪친 이후에도 또한 변화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신중하면서도 기실 무서운 변화의 흐름은 지척에서 서로 얽혀들 수도 있고, 또한 서로간에 멀리 떨어져서 일어날 수도 있다. 아마 동방량과 같은 사람은 이들 중 하나만 만나도 도저히 얼마 견딜 수도 없었을 것이다. 화검상은 그저 가볍게 양손을 좌우로 내뻗었다. 갈고리는 길고 쌍날도끼는 짧은데 어느새 그것들을 각기 화검상의 손아귀에 들어왔다. 무공을 연마한 사람은, 특히 절정고수가 아니라 해도, 말할 것도 없이 공격의 폭이 넓으며 상대의 전면 중앙을 향해서만 공격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다. 그런데도 그저 가볍게 내민 듯한 그의 손에 동시에 두 병기가 들어왔다는 것은 이상하게도 그 두 노인이 동시에 얌전히 병기를 갖다 바친 것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정말 실제로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있을까? 무림인에게 있어서 병장기를 빼앗긴다는 것은 위험하기도 하지만 또한 치욕스럽기도 했다. 두 노인은 느닷없이 병장기가 화검상의 손에 들어가자 놀라서 안색이 시퍼레지며 황급히 공력을 모아 병장기를 잡아당기려고 했다. 공력이 비슷한 경우 노인들은 손잡이를 잡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시퍼런 날을 잡는다는 것은 무모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라고도 할 수가 있다. 하지만 그들이 급히 병장기를 당기는 순간, 마치 공력이 부드러운 솜뭉치를 후려치는 것과 같아서 기운이 오히려 빨려들어가는 느낌이고, 그 기운들은 이어 빠르게 되돌아 내공이 허해진 그들의 가슴을 쳤다. 두 노인이 절정고수인 만큼 이러한 변화는 실로 잠깐 사이에 빠르게 벌어졌다. 사람들의 눈에는 그저 노인들이 공격하는데 갑자기 그들의 병기가 화검상의 손아귀에 들어가고 그들은 뒤이어 입에서 피를 토하며 날아가는 것들만 보일 뿐이었다. 화검상은 뒤를 이어 그들의 병기들을 각자에게 돌려주었다. 그 병기들은 쾌속하게 날아가 각기 주저앉아 있는 노인들의 미간을 노리다가 마치 살아움직이기라도 하듯 옆으로 빙글 미끄러지며 그들의 낭심 앞에 내리박혔다. 그것은 이기어검술(以氣馭劍術) 등의 수법과는 흐름이 다소 달랐다. 게다가 서로 특성이 상반된 병기들이 동시에 비슷한 변화를 일으킨다는 것도 이미 평범한 일이 아니었다. 유원은 노인들보다 대담하지 못하여 겨우 노인들이 나가떨어진 이후에야 검을 뽑아들어 공격했는데, 소위 단혼검법(斷魂劍法)이라는 이 검법은 오직 살초들만을 연결한 것으로서 갈수록 위험한 살초가 중첩되는 무서운 위력이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미처 그 검법을 펼쳐보기도 전에 상대를 잃어버렸다. 노인들이 화검상을 공격하자 이내 사내들은 화검상을 포위하고 사방팔방에서 공격해들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화검상의 신형은 그쪽에 있었다. 아니 어느쪽에 있다고는 말할 수가 없이 화검상의 신형은 사방을 뒤덮고 있었는데, 어느것은 팔다리가 서너 개는 되는 것 같고 어느 것은 팔과 다리가 하나씩 둥둥 떠서 움직이는 것 같기도 했다. 유원은 도무지 어느것이 진짜인지 알 수가 없었고 그저 삼십여명의 사내들이 단시간 내에 와르르 쓰러져 뒹구는 것을 보고 절로 눈이 휘둥그래질 뿐이었다. 등룡검 유원은 비록 고도의 무공수련을 쌓아 절정경지에 오르기는 했지만 아직 실전경험은 거기에 못 미쳤다. 그는 도무지 듣도 보도 못한 이러한 무공에 그저 눈이 휘둥그래지고 입이 딱 벌어질 뿐이었고 뒤이어 화검상이 다시 눈앞에 다가왔는데도 전혀 공격할 생각을 못했다. 조용히 그를 바라보는 화검상을 보면 전혀 조금 전의 일이 없었던 것 같았다. 화검상은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도 나를 공격해볼 생각이냐?" 유원은 스스로도 두 노인 중 하나의 적수가 못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두 노인의 실력을 인정하고 있기에 이번에 그들의 실력을 믿고 다시 모옥으로 향하던 중이었던 것이다. 그는 거칠고 험악한 사마외도의 세계에서 악독하게 성장했지만 그러나 아직 그리 대담하지는 못했다. 그는 겉으로 평범하게 보이는 이 시골청년을 더 이상 함부로 볼 수 없었다. "다, 당신은 누구요?" 화검상은 손을 내밀어 그가 들고 있는 장검을 집어들었다. "너는 설마 사마귀를 모르지는 않겠지?" 화검상의 손놀림은 그리 빠른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기이하게도 유원은 전혀 그것을 피할 수도 방어할 수도 없이 그냥 장검을 빼앗기고 말았다. 병장기를 빼앗긴 것은 치욕스런 일이지만 그보다 유원은 문득 두려움이 치솟았다. 화검상은 빼앗은 장검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이 마치 그것을 감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유원은 놀라며 말했다. "당신은 그분을 알고 있단 말입니까?" '확실히 알고 있긴 한 모양이군!' 화검상은 그를 주시하며 말했다. "만일 내가 그와 약간의 안면이 없었다면 오늘 너희들은 한 사람도 살아돌아가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만일 너희들이 계속 그 동방남매를 헤치거나 못살게 군다면 나는 사마귀를 만나 따지는 것은 물론이요. 너희들을 한 사람도 살려두지 않을 것이다. 알겠느냐?" 유원은 문득 이 사람에 대해 어떤 대답을 해야할지 몰라 정신이 어지러워졌다. "예, 예...... 그것은......" 화검상은 장검을 곧장 뻗어 유원의 목 밑에 이르게 했다. 이번에도 그리 빠르지는 않았지만 유원은 도저히 그것을 피하거나 방어할 수가 없었다. 그는 이제까지 부단한 노력으로 연마해온 자신의 무공이 이렇게 장난처럼 무력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너는 유가장에서 좀더 오래 살면서 세상구경을 하고 싶으냐?" 유원은 자신의 검날이 자신의 목젖을 압박하자 안색이 시퍼렇게 변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망仄 무림야그 출력일 :: 98/11/04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1 권 제 40 장 - 2 "예, 예, 그렇습니다." 화검상은 그를 주시하며 다시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두 가지의 약속을 해라. 하나는 그 동방남매를 최대한 보호해줄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들이 다른 곳으로 가기를 희망할 경우 암중에서 최대한 협조를 아끼지 않을 것. 만일 지금 네가 그 약속을 하지 않는다면 나는 즉시 너의 무공을 폐하도록 하겠다." 무공은 무림인에게는 생명과도 같다. 유원은 드디어 손발이 다 떨리기 시작했다. 여러 모로 생각해도 이 사람은 도저히 자신들의 상대가 아니었다. 가능한 한 빨리 일을 끝내는 것이 여러 수하들의 앞에서 이롭다고 생각한 그는 얼른 대답했다. "아, 알겠습니다. 약속하겠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대협의 성함이라도......." '이런 녀석에게서 대협(大俠)의 소리를 듣는군.' "내 이름은 지금 알 것은 없다. 나중에 사마귀를 만나 물어보면 자연히 알게 될 것이다." 말과 함께 화검상은 장검을 돌려주고 즉시 신법을 펼쳤다. 그의 신형(身形)은 마치 환상처럼 그 자리에서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유원은 그제야 길게 안도의 한숨을 쉬며 자신의 몸을 살폈다. 한 노인이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정말 무서운 능력을 가진 자로군요. 언제 저런 자가 나타났을까요?" 다른 노인이 말했다. "일단은 그 남매를 건드리지 말고 그자에 대해 알아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유원은 주위를 두루 살피며 어색한 표정으로 말했다. "좋소. 그냥 돌아갑시다." 화검상이 그런 높은 무공들을 선보인 것은 그들로 하여금 두려움을 갖고 물러서게 하기 위함이었다. '이것으로 그 동방남매에게 해야 할 일은 다해준 셈이로군!' 유원 들이 모두 장원으로 돌아가는 것을 근처의 숲속에서 지켜보고 있다가 그는 이윽고 서쪽으로 신형을 날렸다. 서쪽으로 나아가다보면 역시 황하의 거센 강물과 만나게 된다. 화검상은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신법을 펼쳐 그냥 강을 건넜고, 계속 서쪽으로 향했다. 왠지 그냥 두고 온 동방남매에 대한 걱정이 뇌리를 가득 메워서 도무지 다른 일들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 낭자는 기실 보기보다 현명하다. 상황도 많이 좋아졌으니 필시 무사할 수 있을 것이다.' 은원의 문제는 그것으로 대충 마무리가 되었다고 해도 이 인연(因緣)의 족쇄는 질기고도 질기다. 화검상은 간혹 쓸쓸히 산속에서 상념에 잠기기도 하면서 서쪽으로 계속 나아가서 며칠 후에는 드디어 태행산의 아래에 이르렀다. 이 태행산은 황하(黃河)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하남성(河南省)의 접경지대에 속하고 그 유명한 숭산에서 불과 북쪽으로 사오백 리만 올라가면 있다. 이곳의 산세는 험준한 편이며,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당금의 화산파의 저항세력인 백혈단(白血團)의 거점이 이곳 어딘가에 숨어 있다는 사실이다. 태행산이 워낙 거대하여 그저 찾으려면 쉽지 않겠지만, 화검상은 이미 그 위치를 알고 있기에 백혈단의 거점과 가까운 한 마을에 들어섰다. 일명 오가촌(吳家村)이라고 불리는 이 마을은, 비록 작지만 찾는 손님들이 적지 않아 객점과 주루 등이 발달된 터였고 사람들도 친절한 편이었다. 화검상은 본래 이곳을 찾지 않으려고 했었지만 이제 상황이 바뀌어 드디어 이곳을 찾아오게 되었다. 그는 과연 이곳에서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또한 무엇을 해야만 하는 것일까? 일단 찾아가보는 것 자체가 중요하며 나머지의 일들은 그 이후에 생각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어느 정도 휴식을 취하며 마음의 여유를 가져보기 위해 하룻밤 묵어갈 작정으로 마을의 객점에서 방을 하나 빌렸는데, 잠시 방안에 누워 뒹굴다보니 어느덧 해가 지고 어둑어둑한 저녁 무렵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바로 팔월 대모름 중추절이다. 문득 추석을 지내고 하라고 하던 동방리의 모습이 뇌리에 떠오르고, 그런것이 아니라고 해도 그의 마음은 심란해졌다. '오늘 같은 날은 일을 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오늘은 그저 떠오르는 달을 보며 한잔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약간 주저하기는 했으나, 이윽고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심정이 되어 그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주루를 찾아 객점을 나섰다. 아직 달이 뜨지는 않고 어둑어둑했으나 마을 사람들은 대개 추석 기분을 내느라 각기 의복들을 곱게 차려입고 있었다. 이 마을에는 두어 개의 객점과 주루들이 있다. 무심코 그 중 가장 큰 주루로 들어가려다가 문득 화검상은 느닷없이 깜짝 놀라 신형을 멈춰세우고 말았다. 주루의 입구에서 다소 떨어진 한쪽 옆에는 그의 눈에 익은 사람들 둘이 서서 얘기를 나누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얼마 전에 복우산(伏牛山)의 정파집결소 주루에서 보았던 사천당문(四川唐門)의 혈갈(血竭) 당청(唐菁)과 추혼편(追魂鞭) 당욱(唐旭)이었다. 그들과 얘기를 나누지도 않았고 사건도 없었지만, 그러나 화검상은 그들을 보자 마치 자라보고 놀란 가슴이 솥뚜껑 보고도 놀라는 것과 같은 심정이 되었다. 그들은 이른바 정파의 사람들로 소위 현재의 화산파의 인물 등과 모두가 한통속이다. 일순 당황해 하다가 화검상은 자신이 지금 변장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고서야 비로서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가 있었다. 화검상의 이 진기역용술(眞氣易容術)은 거의 완전하여 그들은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왠지 안심이 되지 않아 화검상은 우선 한쪽으로 물러나서 그들의 대화내용을 엿듣기로 했다. 당연히 정무맹(正武盟)에 있어야 할 듯한 그들이 이 궁벽한 시골 마을에 어째서 나타난 것일까? 추혼편 당욱은 다소 격앙되어 있어서 음성도 그에 따라 약간 고조되었다. "제기랄, 우리도 그래 사천땅에서는 황제(皇帝)처럼 살아가고 있단 말이야! 누이는 어째서 그렇게 계속 저자세로 나갈 것을 고집하는 거지?" 혈갈 당청은 동생의 언성이 높아지자 약간 당황해져서 주위를 살피며 말했다. "소욱(少旭), 목소리를 낮추라니까! 그들은 천하제일가(天下第一家)의 사람들이야. 너는 소림사의 방장스님도 그들에게는 잘 대해주는 것을 보지 못했니? 아냐, 우리 전음으로 말하기로 하자." 추혼편 당욱은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내저으려 말했다. "굳이 전음을 쓸 건 없어. 우리가 무슨 못할 말이라도 하고 있나? 나는 그 나이 어린 녀석이 제멋대로 우리를 우습게 보는 것을 참을 수가 없어. 우라질, 놈들이라고 독(毒)에 당하지 말라는 법은 없잖아." 당청은 당욱이 여전히 언성을 높이자 다소 화가 나서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다면 좋아! 너 때문에 우리 가문은 멸문지화를 당하게 될 것이고, 또한 나도 앞으로는 너를 보지 않을 거야. 그러니 네 마음대로 해!" 그러자 당욱은 일시 당황해져서 벌게진 얼굴로 전음으로 뭐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화검상은 그들의 얘기를 엿들으면서도 동시에 여러 가지를 생각 해보느라고 미처 그들의 전음을 엿들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마악 다시 전음을 엿들으려는데 의외로 대화가 빨리 끝났는지 그들은 어느새 환한 표정들이 되어 그가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화검상은 느닷없이 그들이 자신에게 다가오자, 이거 마각이 드러난 것이 아닌가 하여 내심 크게 뜨끔해졌다. 그는 한 순간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해서 결단을 내리느라 머리가 다 어지러워졌다. 그런데 당욱은 그에게 다가오더니 엉뚱한 말을 하는 것이었다. "이봐, 자네는 이곳에 사는 사람인가?" '이 자식이 나를 알아본 것은 아니었군.' 화검상은 내심 가슴을 쓸어내리며 그래도 조심하기 위해 고개를 반쯤 숙였다. 비록 언젠가는 그들과 부딪쳐야 하겠지만 아직은 때가 아닌 것이다. "아닙니다. 저는 이곳에 놀러온 것입니다." 당욱은 찬찬히 화검상을 살피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이곳 사람인 것 같지는 않군. 그런데 왜 그렇게 몸을 사리는 거야? 마치 남의 말이나 엿들은 사람처럼 말이야. 흠, 그 검은 멋으로 달고 다니나?" 말과 함께 당욱은 다가와서 그 장생보검(長生寶劍)을 뽑아보려고 했다. 화검상은 내심 고소하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무림야그 출력일 :: 98/11/04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1 권 제 40 장 - 3 '이 자식이 죽으려고 작정을 하는군!' 그때 당청이 다가와서 당욱에게 말했다. "소욱, 왜 그래?" 당욱은 마악 장생보검을 잡으려다가 멈칫하여 손을 도로 거두며 웃으며 말했다. "난 이곳에 쓸만한 물건을 파는 곳이 있는지를 물으려고 했는데 이 녀석이 글쎄 조금 전부터 우리의 말을 엿듣는 것 같아서 말이야." 화검상은 갑자기 그들을 만나는 바람에 어수선해진 데다가 심란하여 그만 실수한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당청은 시선을 돌려 화검상을 주시하다가 이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쓸데없는 데 신경 쓰지마. 너만 잘한다면 천하의 누구도 우리를 해치지 못할 거야." 당욱은 어색한 표정이 되어 손을 내저었다. "나는 그 석사공자(石四公子)에게 선물이라도 해주려는 것이라구!" 당청은 그의 손을 잡아 주루의 안으로 이끌었다. "일부러 그렇게 할 필요는 없어. 또한 이런 작은 마을에는 쓸만한 것도 없을 거야. 그들이 이상하게 생각하기 전에 빨리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좋을 거야." 당욱은 할 수 없이 이끌려 함께 주루의 안으로 들어가면서도 한번 고개를 돌려 화검상을 기분 나쁜 시선으로 주시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네놈이 나를 죽이고 싶어진 모양이군. 하지만 네 누이 덕에 네 목숨이 연장되었다는 것을 너는 알아야 할 것이다.' 화검상은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내심 다시 생각했다. '그나저나 이곳엔 또 다른 녀석돌도 있는 것 같지 않은가? 천하제일가, 석사공자......, 설마 그럴 리는 없겠지!' 흔히들 천하제일가 하면 천륭무가(天隆武家)를 떠올리기도 한다. 게다가 그들의 가문은 석씨(石氏)이다. 하지만 지금 그들이 이곳에 와 있다고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본래 그 세외팔세(世外八勢)는 세상에 거의 나서지 않는데, 하필이면 지금 이곳에 그들이 와 있겠는가? 어쨌든 사천당문의 사람들이 이곳에 와 있다는 사실만 해도 이상하므로 화검상은 일단 안으로 들어가 좀더 자세히 알아보기로 했다. "어서 오십쇼. 소영웅(少英雄) 나으리! 일행이 있으십니까? 아, 없다고요? 그럼 저쪽으로 가서 앉으십시오." 화검상은 가능하면 정체가 탄로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반쯤 고개를 숙였기 때문에 안으로 들어섰어도 내부를 살필 수가 없었다. 그는 점원의 질문에 손짓으로 대꾸했으며 점원이 말해준 대로 주방과 가까운 쪽의 구석진 자리에 가서 앉았다. 그 자리는 가장 작고 지저분하기는 하지만 오히려 내부를 살피기에는 더없이 좋아서 화검상으로서는 오히려 다행스런 일이었다. "뭘 드시겠소?" 처음에는 소영웅 운운했지만 화검상에게 일행이 없나는 말에 점원의 태도는 그리 공손하지 않았다. "술과 안주를 갖다 주시요." 점원은 물러가지 않고 비아냥거리듯이 다시 말했다. "우리 집의 술은 십 년이나 묵은 것들이고 또한 안주도 이 근방에서 소문나 있소.. 다만 그 가격이 비싸다는 것이 약산 흠이기는 하지." 화검상이 고개를 들고 바라보니 그 점원은 사오십대의 중년인으로 눈치가 빠르고 음침한 편이었다. 하지만 화검상은 그 순간에 슬쩍 주루의 내부를 살필 수가 있었는데, 어느 한곳을 바라본 순가 놀라서 그만 입이 딱 벌어질 뻔했다. 지금 은근히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어 있어 결코 그런 내색을 해서는 안 되는 입장이었으므로 화검상은 얼른 품속에서 한 냥 정도 되는 은자 부스러기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이것은 우선 그대의 수고비요. 계산은 따로 할 것이니 어서 좋은 술과 안주를 갖다 주시오." 그 빛나는 은자를 보게 되자 갑자기 그 점원의 안색은 달라졌다. 그는 얼른 그것을 집어넣으며 은근히 웃으며 말했다. "헤헤헤, 소년 영웅이 확실히 배포가 넓군. 혹시 이곳에서 추석을 지낼 작정이오?" 화검상은 주위의 시선이 집중되어 있는 마당이라 차라리 이 점원을 상대하는 것이 나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른바 견문을 넓히고 천하구경을 하기 위해 강호를 돌아다니고 있는 중이오. 하하하. 추석이라는 것은 명절이지만 그러나 사내대장부의 뜻을 꺾을 수는 없는 일이 아니겠소? 오늘 같은 날은 이렇게 한잔하는 것도 좋겠지." 소심해서 얼굴도 못 드는 듯하던 이 시골청년은 갑자기 대범해진 것 같았다. 사람들은 대부분 그를 바라보았지만 오히려 흥미를 잃고 다시 고개를 돌려버렸다. 점원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나 천하를 유람하려면 고생스럽고 또한 위험할 텐데, 그렇지 않소?" 화검상은 짐짓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물론이오. 따라서 그러기에는 우선 두 가지의 기술에 필요하지. 하나는 겸손이란 것이오. 만일 천하에서 제일가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해도 오만하면 온갖 적을 맞이하게 될 것이니, 결국에는 죽음을 당하게 될 것이오. 오직 겸손하여 사람들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아야만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오. 그리고 두 번째는 이 실력이라는 것이지." 화검상은 말과 함께 한쪽에 있는 나무젓가락 두 개를 양손에 하나씩 집어들고서 오른쪽의 나무젓가락 끝을 왼쪽 나무젓가락의 중간에 대고 가볍게 그었다. 오른쪽 나무젓가락의 끝에서는 느닷없이 푸른 기운이 뱀의 혓바닥처럼 일어나더니 왼쪽의 나무젓가락을 싸악, 하고 잘라버렸다. 그것은 검법을 나무젓가락에 운용한 것으로서 소위 검망(劍芒)이란 것이다 그것은 아직 조절할 수는 없지만 이른바 검강(劍 )의 시초로 인정되고 일류경지라면 시전이 가능하다. "나는 이와 같은 무공(武功)을 가지고 있소. 따라서 만일의 경우에는 이것으로서 적을 제압하고 목숨을 보존할 수 있는 것이지." 그 점원은 화검상이 느닷없이 무공을 보여주자 놀라 눈이 휘둥그래지며 물러갔다. "예, 예, 그럼 술과 안주를 갖다드리겠습니다요." 점원이 그렇게 물러가자 화검상은 약간 고개를 숙인 상태로 다시 은근히 그쪽을 살폈다. 놀랍게도 지금 그곳에는 그의 눈에 너무나도 낯익은 사람들이 각기 자리를 차지하고 않아 있었던 것이다. 바로 그 정무맹(正武盟)의 총단 주루에서 보았던 소천개(少天 ) 홍계남(洪桂南), 소신룡(少神龍) 남궁신(南宮信), 옥호리(玉狐狸) 남궁설완(南宮雪完), 패왕도(覇王刀) 팽인호(彭人豪), 그리고 당청, 당욱과 화산일룡(華山一龍) 풍검진(馮劍眞), 화산옥녀(華山玉女) 풍검심(馮劍心) 등이었다. 화검상을 마치 사갈 보듯 했던 옥호리 남궁설완이 이곳에 와 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었고, 풍검진 과 풍검심이 이곳에 있다는 일은 더욱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이때 화검상의 신경을 가장 자극한 것은 그들보다는 오히려 상석 쪽에 앉아 있는 삼남일녀(三男一女), 네 명의 젊은이들이었다. 그들은 모두 눈부신 백색(白色)의 비단의복을 걸치고 있었으며 용모는 대부분 대단히 수려하고 기질(氣質)은 얼음처럼 차갑고 날카로웠다. 나이는 십칠팔 세에서부터 스물일곱 정도까지였는데 기이한 것은, 그들의 머리카락은 의복보다도 더욱 눈부신 백색이라는 사실이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반쯤 무림야그 출력일 :: 98/11/04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1 권 제 41 장 술이 필요한 이유 제 41 장 술이 필요한 이유 화검상은 그 가문 사람들은 모두가 그런 백발을 하고 있다는 곳에 대해서 얘기를 들은 것 같았다. 천하제일가(天下第一家), 일명 천륭무가(天隆武家)라고 불리는 그곳의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일종의 천형(天刑)인 천상절맥(天上絶脈)을 타고난다. 서로 모순된 말인 듯한 이 천상절맥이라는 말에는 그야말로 천상의 능력과 저주의 절망이 얽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의 기이한 체질은 태어날 때부터 그 사람을 거의 천재(天才)로 만들지만 그 부조화로 인해 원기(元氣)가 소모되어 급격히 생명을 단축시키는 것이다. 무학이 백연탄의 경지에 오르면 진기는 선천화(先天化)되어 부족한 원기가 보충될 수 있다고 했다. 원기, 즉 진원진기(眞元眞氣)와 이 선천진기(先天眞氣)라는 말은 다른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무학의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그들이 천하제일의 가문이고 세외팔세(世外八勢)의 으뜸이며 무학이 그보다 훨씬 높은 경지에 이른다고 해도 그 소모되는 원기가 보충되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그것은 이른바 현실이 다른, 무학상의 가장 커다란 숙제라고도 할 수가 있으며 또한 천륭무가의 가장 절실한 과제라고도 했다. 현재 천륭무가는 여러 가지의 노력으로 수명이 연장되기는 했지만 이제는 그러한 노력도 한계에 이르렀고, 점차로 수명이 감소되어가는 추세에 있다고 했다. 사람들은 일부 그것을 두고 하늘이 천재들의 가문을 이 땅에 보내고서 또한 그것을 시기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천륭무가의 사람들이 하나같이 머리카락이 백색인 것은 바로 그 천상절맥의 표시인 것이다. 화검상은 눈앞의 이 사람들, 백발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 대해서 지금 도저히 천륭무가의 사람들이라고 믿을 수가 없었다. 천륭무가의 사람들은 그 동안 은둔해 있었는데 어째서 공교롭게도 지금 이곳에 나타나 있을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그들은 지금 모두 백발일 뿐만 아니라 무학 또한 비범하여 결코 평범한 수재(秀才)가 성취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닌 듯했다. 그렇다면 놀랍게도 이들은 정녕 그 천륭무가의 사람들이라는 말인가? 화검상은 도저히 이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지만 또한 반대로 그럴 경우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사이에 이들이 강호에 나타난 것이라면 이는 실로 당금의 강호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째서 갑자기 이곳에 나타난 것일까? 설마 하니 지금 이들이 백혈단이라도 토벌하려고 하는 것이란 말인가? 제기랄, 이거 갑자기 정신이 하나도 없어지는군.......' 화검상이 갑자기 그와 같은 무공을 펼쳤기 때문에 오히려 그들 중 일부의 시선을 끈 것 같았다. 홍계남과 남궁신이 각기 한번씩 이쪽을 바라보았고, 당청과 당욱은 계속 그를 주시했으며 그 백발의 젊은이들 가운데에서도 한두명이 이쪽에 관심을 보였다. 어쨌거나 화검상은 풍검심과 풍검진이 가장 껄끄러웠다. 하지만 왠지 그들은 풀이 죽은 표정들이었고 별로 말도 없이 주위에 신경을 기울이지 않았다. 화검상은 그 가운데에서도 은근히 남궁설완을 살폈는데, 그녀는 여전히 남궁신에게만 관심이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혹시 자신의 오라비를 사랑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실내에 손님들이 또 있었지만 그들의 기세에 눌렸는지 조용했고, 그들도 지금은 대화가 끊어졌는지 무겁고도 기이한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다. 화검상은 점원이 술을 가져오면 그것을 천천히 마시며 상황을 지켜볼 것인지, 아니면 빨리 마시고 이곳을 떠날 것인지를 생각해보았다. 잠시의 시간이 흘러 점원이 술과 음식들을 들고 이쪽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그 점원이 미처 이곳이 이르기도 전에 두 사람이 차례로 일어나 화검상의 앞에 다가왔다. 바로 당청과 당욱이었다. '이거 오늘 편안히 마시기는 글렀군!' 점원은 분위기가 험악한 것을 보고 얼른 되돌아가버렸다. 당욱은 입가에 비릿한 조소를 머금고 있다가 대뜸 그의 앞의 탁자를 후려치며 말했다. "네놈은 어디서 온 누구냐?" 당욱은 어딘가 자신의 성질을 많이 죽이는 듯했지만 그러나 그 바람에 화검상의 탁자가 박살이 나며 그 파편이 어지러이 난무했다. 화검상은 일순 당혹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가볍게 탄식하며 말했다. "나는 당신에게 죄를 지은 일도 없고, 또한 무례하게 대한 일도 없는데 어째서 시비를 거는 거요?" "뭐라구?" 당욱은 대뜸 다가들더니 화검상의 멱살을 잡아 내동댕이쳤다. 화검상의 몸은 그 바람에 주방으로 들어서는 입구의 모서리에 세차게 부딪칠 뻔했다 하지만 당욱의 손에서 떨어지는 순간 약간의 탄력을 이용하여 그의 신형은 공중에서 대여섯 번이나 빠르게 회전을 하였으며 이윽고 한 자나 옆으로 이동하여 입구의 옆에 가볍게 내려섰다. '빌어먹을, 이게 내 꼴이 말이 아니군!' "당신이 이렇게 계속 무경우하게 나온다면 나 역시 진실을 밝히고 상대하는 수밖에 없소" 당욱은 뜻밖에도 화검상의 그와 같은 신법(身法)을 보자 그만 다소 어리둥절해졌다. 그저 공중에서 몸을 회전하면서 위치를 바꾸는 것은 자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세게 내던졌는데도 그럴 수 있다는 것은 자신도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당욱은 이 시골청년의 실력이 상상외로 놀라운 것을 보고 어리둥절해진 것이다. 당청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무슨 진실을 밝히겠다는 말이냐?" 화검상은 마악 대답을 하려고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당청은 말을 하면서 동시에 허리춤의 채찍으로 매섭게 공격해왔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급한 살초(殺招)를 맞이하게 된 화검상은 우선 피하는 도리밖에 없었다. 지금의 상황에서는 장생보검을 사용할 수가 없다. 그의 신형이 이리저리 피하자 채찍은 그의 몸을 뒤좇으며 주위에 어지러이 편환(鞭幻)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 채찍의 환영은 화검상이 펼치는 보법의 신환(新患)의 급소를 각기 정확하게 적중시키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화검상의 변환은 그녀의 것보다는 하나가 더 많았고 무사했다. 그것은 그만큼 그가 더 빠르다는 증거이다. 화검상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던 사람들도 이제는 모두 그쪽으로 시선을 집중시키기 시작했다. 그들은 설마 하니 저런 촌뜨기가 당청보다 무공이 강할 줄은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당청은 점차로 다급해지자 무리한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처음에 그녀는 우아한 솜씨를 발휘하여 탁자나 기물들은 건드리지 않았지만 나중에는 살수(殺手)만을 위주로 하다 보니 그런 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 무림야그 출력일 :: 98/11/04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1 권 제 41 장 - 1 그녀의 별호가 혈갈(血竭)이다. 갑자기 탁자나 의자 등이 비산하고 점원들이나 손님들이 놀라 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화검상은 반격을 전혀 하지 않고 간혹 피하기만 하면서도 몹시 다급하고도 난처한 기색이 되어 다시 말했다. "어쩔 수 없군! 난 그래도 참아보려고 했는데......, 당신들은 조금 전에 밖에서......." 그때 당청이 너무나 다급해서인지 그만 실수로 발이 걸려서 앞으로 휘청하고 쏠리며 초식이 흐트러졌다. 그것은 비록 잠깐이지만 화검상으로서는 궁지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기회였다. 그가 지금 그 허점을 이용하여 빠져나간다면 다소 편안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마악 그녀의 옆으로 빠져나가려던 그는 문득 주춤하며 오히려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리 다급하지 않아서 본 것이겠지만 당청은 실수로 허점을 노출시켰는데도 전혀 당황한 기색이 아니었고, 게다가 기이하게 두 눈에서 살광(殺光)을 발하고 있었던 것이다. 화검상은 이 순간, 그녀의 채찍이 초식은 흐트러졌지만 오히려 소매 속으로 숨겨진 왼손 부근은 전혀 흐트러지지 않고 오히려 잘 긴장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의 별호에서 혈갈이라는 말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지만 그 중의 하나는 용독술(用毒術)에 능하다는 점이다. 소위 앞으로 실수를 하는 척하면서 뒤를 독으로 치는, 이러한 수법으로 그녀는 많은 사람들을 상대해왔는지도 모른다. 기실 그녀와 같은 절정고수가 쉽게 탁자 따위에 걸려 넘어지는 실수를 한다는 자체가 맞지 않는 것이었다. 비록 맞지 않기는 하지만, 오히려 상대방은 그런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그저 단순히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는 데 문제가 있다. 사람에게는 많은 일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생각하려는 듯한 습성이 있기 때문이다. 화검상은 뒤로 물러서며 다시 말했다. "당신들은 무슨 석사공자(石四公子)가 함부로 대하니 그를 독으로라도 해쳤으면 좋겠지만, 천하제일가가 있으니 지금은 은인자중하고 후일을 기약하자고 말하지 않았소?" 당청은 술수를 화검상에게 발견당하자 내심 크게 당황하여 즉시 그를 향해 좌수의 독을 발출했다. 대뜸 뿌연 독 안개가 날아가며 가구 등을 시커멓게 변색시키고 화검상의 몸을 휘감는 듯했으나, 그는 어느새 그곳을 벗어나 다른 쪽에 서 있었다. 화검상은 여전히 말을 계속했다. "당신들은 석사공자에게 무슨 선물을 선사한다면서 나에게 물었고, 내가 엿들었다고 해서 죽이려고 했었지만 살려주었다면 이제와서 또 죽이려는 이유가 뭐요? 내가 무공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오? 어쨌든 나는 이와 같이 아무런 죄도 없이 당하고만 있으니 이제부터는 가만히 있지 않겠소!" 당청은 독을 상대방이 쉽게 피하자 이번에는 다시 채찍을 휘두르기 시작했고, 당욱도 멍하니 있다가 옆에서 가세했다. 화검상은 과연 이번에는 피하기만 하지 않고 장생보검을 검집째 들어 응수하기 시작했다. 그 두 개의 채찍은 삽시간에 허공에 편환(鞭幻)을 가득 채우며 화검상의 몸을 조각내는 듯했지만, 화검상은 혹은 피하고 혹은 공격까지 하며 아직 여유가 있는 모습이었다. "정말 말이 통하지 않는군! 하지만 나는 아직 검을 뽑지 않았다는 것을 명심해두시오. 내가 만일 검을 뽑게 되면 당신들은 다치게 될지도 모르오. 그러니 이 정도에서 당신들은 그만두는 것이 어떻겠소?" 문득 누군가의 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풍검심이었다. "호호, 정말 웃기는 자로군요. 그는 자기가 호랑이를 건드렸다는 것을 모르는 모양이죠?" 그들은 아직 화검상의 정체를 전혀 모르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 소리를 듣자 화검상은 절로 마음이 어지러워졌다. '너희들은 아직 내가 죽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로구나. 하지만 언젠가는 내가 이렇게 살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되겠지.' 그때 갑자기 한 사람이 번쩍 신형을 날려 무수한 편환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 사람의 무공은 당욱, 당청보다 훨씬 우월했다. 쌍수(雙手)를 그저 가볍게 밀고 당기는 듯한 동작으로 두 사람의 공격을 무산시켰으며 나머지 반탄력(反彈力)을 이용하여 그들을 각기 석 자나 뒤로 물어나게 만들었다. 그 수법은 실로 신속하고 위력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간단히 한순간에 이루어졌다. 삽시간에 실내에 어지러운 채찍들의 움직임이 사라지고 살벌한 긴장감이 감돌았는데, 뜻밖에도 갑자기 뛰어든 그 사람은 백발의 젊은이들 네 명 중에서도 가장 나이 어린 소년(少年)이었다. 하지만 화검상은 그가 그런 나이 어린 소년이라는 사실보다는 다른 것에 내심 크게 놀라고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조금 전에 펼친 그의 신법과 무공에 있었다. 그것은 이른바 청륭무가의 절학이라는 여의신행(如意神行)과 귀결수(鬼決手)를 닮은 것 같았는데, 비록 아직 확신할 수는 없지만 크게 불길한 예감이 그의 뇌리를 스쳤다. '그렇다면 정말로 이들이 천륭무가의 사람들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나머지 세외칠세(世外七勢)는....., 정말 어지럽군!' 그 백발소년(白髮少年)은 매우 냉혹하면서도 오만한 기색을 짓고 있었는데 이어 비웃듯이 당청과 당욱에게 말했다. "이미 사실이 밝혀졌는데도 다시 살인멸구(殺人滅口)를 할 필요는 없지 않느냐? 혹시 내가 모르는 또 다른 음모가 있는 것은 아니겠지?" 당청과 당욱은 일시 경악해서 멍하니 대꾸를 하지 못하고 있다가 이윽고 당청이 급히 말했다. "석사공자! 그건 날조된 말이에요. 설마 하니 우리가 감히 석사공자를 해치려고 하겠어요?" 그 백발소년은 차갑게 코웃음을 치며 당욱에게 고개를 돌렸다. "흥! 물론 날조된 말이겠지. 하지만 어째서 너희들은 저자의 입을 막으려 한 것이지? 너는 이 말에 대한 대답을 할 수 있지 않겠느냐?" 당욱은 잠시 동안 안색이 여러 번 변화했다. 그는 조금 전에 실제로 백발소년과 부딪쳐봄으로써 비로소 그의 능력을 실감했고 자신이 무모했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제까지의 쌓인 감정도 있고 체면도 남아 있고 하여 입술을 깨물고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우리 가문은 그래도 한 지방을 다스리고 있소. 솔직히 내가 말을 잘못하기는 했지만 석사공자(石四公子)도 우리를 너무 무시한다고 생각되오." 백발소년은 그에게 한걸음 다가가며 음침하게 웃었다. "그래서 장차 나를 어떻게 해보겠다고? 그러려면 차라리 용기있게 지금 덤벼보지 그러느냐?" 당청은 지금의 상황에서는 당욱의 심정이 격양되어 있기 때문에 오래 있을수록 불리하다고 느끼고 급히 당욱의 앞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석사공자께서 지금 저희들의 말을 믿지 않으니 달리 해명할 도리가 없어요. 저희들은 지금 그만 물러가기로 하고 나중에 해명할테니 기회를 주세요." 백발소년은 잠시 그녀의 얼굴을 주시하다가 문득 고개를 돌려 백발의 낭자를 바라보았다. 문득 그 낭자가 입을 열어 말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반쯤 무림야그 출력일 :: 98/11/04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1 권 제 41 장 - 2 "그럼 두 분은 먼저 돌아가도록 해요." 그 백발의 낭자는 마치 얼음을 조각한 듯 지극히 아름다우면서도 차가워 보였는데, 지금의 그 음성도 역시 서늘했다. 화검상은 이 순간에는 은근히 모든 일에 주의를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가 조금 전에 그 백발소년을 제지했다는 것을 전음을 엿듣고 알 수 있었다. 그 백발낭자의 음성은 비록 싸늘했지만 당청 등에게는 그렇게 따뜻하게 들릴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그녀는 즉시 백발낭자에게 그 자리에서 큰절을 하며 말했다. "석소군주(石少郡主)께서 이렇게 은전을 베푸시니 그 은혜는 결코 잊지 않겠어요! 그럼 다음에 뵙겠어요." 확실히 이 백발의 젊은이들의 능력은 놀라웠다. 고작 가장 나이 어린 두 명이 나섰을 뿐인데도 이러하니 다른 두명의 능력은 또한 어떠할까? 사실상 화검상은 이제는 그들이 천륭무가의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믿고 싶지 않은 것이다. 당청과 당욱이 그렇게 사라져버리자 화검상은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받게 되어 그만 몰래 달아나려고 했다. 하지만 그가 미처 입구에 당도하기도 전에 한 사람에게 앞을 가로막혔다. 그 백발소년이었다. "흐흐, 어디로 가려고 하느냐? 좋은 일을 했으면 의당 그 대가를 받아야 하지 않느냐?" 화검상은 손에 들었던 장생보검을 다시 허리에 차며 한숨과 함께 말했다. "좋소, 사내대장부가 한 가지 일을 했으면 그 결과도 따르는 법, 나는 비겁하게 회피하지는 않겠소." 말과 함께 화검상은 도로 몸을 돌려 남은 탁자 하나 앞에 다가가 털썩 주저앉았다. 백발소년은 차갑게 화검상을 주시했지만 느닷없는 그런 행동에 그만 어이가 없어서 실소하고 말았다. "너는 대체 무슨 일을 했으며 무엇을 회피하지 않겠다는 말이냐?" 화검상은 짐짓 그와 같은 행동을 하고 있었지만 은근히 속으로 부아가 치밀어서 생각했다. '저 어린 녀석은 정말 무례하고도 건방지군. 기분이 나빠지면 우선 저 녀석부터 해치워버릴까?' 화검상은 점원이 술을 가져오기를 기다렸으나 이미 점원들은 모두 달아나버려서 그것을 기대할 수가 없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남궁신 등이 있는 쪽을 슬쩍 바라보며 말했다. "이런 얘기는 으레 맨정신으로는 할 수가 없고 일단 술이 한잔 들어가야만 하오. 사내대장부나 영웅(英雄)도 때로는 술을 마셔야 할 때가 있는 법이오." 백발소년은 더욱 어이가 없어 했다. 그는 잠시 화검상을 바라보다가 이내 그의 앞에 다가가 앉으며 말했다. "네가 그럼 영웅이란 말이냐?" 화검상은 이런 꼴을 계속해서 당하게 되어 기분이 나빴지만 여전히 천연덕스럽게 대꾸했다. "나는 비록 영웅은 못 되지만 그러나 사내대장부는 된다고 생각하오. 하지만 역시 사내대장부에게는 간혹 술이 필요하오. 최근에 나는 비교적 그러한 부분에 있어서 많은 것을 깨닫고 있었소. 아......, 나는 비교적 철저하게 인생을 살아가는 편이지만 최근에는 그 무상(無常)함을 느끼기 시작했소." 백발소년은 그가 너무나도 엉뚱해서 이제는 별로 우습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그래서 너는 술을 필요로 한다는 말이냐?" 화검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무상함을 느끼기는 하지만 그것으로 술이 필요한 것은 아니오. 무상함은 술로 치유될 수 없소. 술로 무상함을 달래려고 하면 더욱 더 허망함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로. 내가 지금 술을 필요로 하는 것은 그저 약간의 용기를 얻기 위함이오." 백발소년은 그만 입가에 미소를 떠올렸다. "설마 하니 너는 무슨 죄라도 저질렀느냐?" 화검상은 손을 내저었다. "그런 말은 하지도 마오. 나는 이 무상함을 치료하려는 것이오. 거기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어디 사랑만 하겠소? 모든 것들이 부질없지만 나는 이 사랑만은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줄 것이라고 생각했소. 세상에 사랑을 잃고 천하를 얻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소? 만일 진실된 사랑을 얻을 수만 있다면 천하에 관한 일이 또한 무슨 상관이 있겠소? 하지만 여기에는 술이 필요하오." 백발소년은 더욱 어이가 없어 웃으며 말했다. "어째서 술이 필요하다는 말이냐?" 화검상은 짐짓 아쉬운 듯 다른 탁자 위에 놓인 술을 바라보며 말했다. "만일 누군가가 그 사랑을 고백할 때 술이 필요하지 않다면 그것도 상관없는 일이오. 하지만 그는 진실로 절실한 사랑을 했다고는 말할 수가 없을 것이오. 만일 누군가 절실한 사랑을 했다면 비록 사내대장부라고 해도 그 사랑을 고백할 때는 마음이 떨려서 용기를 얻기 위해 술을 마셔야 할 것이오. 비록 남들은 다 그를 바보로 볼지라도 그는 굳이 술이 필요한 만큼의 사랑에 빠지니 그 떨리는 마음이 좋고, 또한 그 마시는 술이 좋지 않겠소?" 백발소년은 안색이 다시 싸늘해져서 말했다. "그럼 너는 이곳에서 사랑 고백이라도 하겠다는 말이냐?" 화검상은 그를 바라보며 대꾸했다. "그럼 그대는 내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이런 곳으로 화를 자초하러 들어왔다고 생각한단 말이오?" 백발소년은 뜻밖에도 화검상이 겁도 없이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며 반박하자 그만 몸을 벌떡 일으키며 소리치려고 했다. 한데, 그때 문득 좌중에서 한 사람이 일어나더니 천천히 걸어서 화검상의 앞에 다가와 앉으며 술병 하나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비록 천천히라고는 했지만 실제는 그 걸음이 느린 듯 빨라서 거의 한 순간에 다가와 앉은 것이다. 바로 백발의 젊은이들 중 두 번째로 나이가 많고 용모가 여자처럼 준미수려한 청년이었다. "좋지! 그 마시는 술이 정말 좋구나! 어서 그대는 한모금 마시도록 하오!" 그 백발의 청년은 입술이 흡사 조소하듯 비틀어져 있고 매우 마른 것이 다분히 신경질적으로 보였다. 음성은 마치 깊은 슬픔 속에 잠겨 있는 듯하고 두 눈은 공허하게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이런 녀석이 갖다 준 술이 정말 괜찮을지 모르겠군?' 화검상은 내심 은근히 경계했으나 그 술은 그저 맛이 좋을 뿐 독과 같은 것은 들어 있지 않았다. 화검상은 단숨에 그 술병을 비우고 나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미안하오. 나는 그만 마음이 급해 다 마시고 말았소."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宙湧 ─────────────────────────────────────── PRINTER/CAPTURE를 정지하고 [Enter]를 누르십시오. 무림야그 출력일 :: 98/11/04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1 권 제 41 장 - 3 백발청년은 화검상을 주시하더니 이내 큰 소리로 웃고 말았다. 지극히 감상적인 느낌이 실려 있는 웃음 소리라 듣는 이의 마음이 괴롭고 흡사 까마귀가 우짖는 것만 같았다. "좋아! 그대가 만일 더 마시고 싶다면 내가 더 갖다 줄 수도 있지." 화검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랑을 고백하는 데는 이 정도로 충분하오. 만일 좀더 마시게 되면 그 술기운 때문에 참다운 사랑의 기분을 느낄 수 없게 되오. 그것은 너무 위험하오." 백발청년은 화검상을 주시하다가 말했다. "그럼 어디 사랑 고백을 해보시오." 화검상은 고개를 다소 갸웃거리다가 말했다. "술은 이미 충분하지만 내 마음은 이상하게도 아직 준비가 안 된 것 같소. 그럼 이 얘기를 먼저 해야겠소. 솔직히....... 아시겠지만 천하에서 진정한 사랑을 만나기란 실상 어렵고도 어려운 일이오. 안 그렇소?" 백발청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해둡시다." 화검상은 눈살을 다소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음, 내가 보기엔 그건 무공을 연마하는 일보다 더 어려운 것 같소. 솔직히......, 솔직히 내가 지금 사랑을 고백하려는 그녀는......, 그녀는 내가 오늘 처음 본 사람이오. 그리고 나는 아직 그녀의 이름이나 나이, 신분 등을 전혀 모르고 있소. 이해하겠소?" 백발청년은 어리둥절해 하다가 웃으며 말했다. "그럼 첫눈에 깊이 사랑에 빠졌다는 말이로군. 그래 그런 사람이 이곳에 지금 있단 말이오?" 화검상은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보다시피 나는 그리 대단한 영웅호걸이 못 되는 것 같소. 아까도 이곳에 들어오기 전에 한참을 망설였으며, 지금도 용기가 부족해서 계속 머뭇거리고 있으니 말이오. 하지만 만일, 그런 사랑을 발견했다면 결코 놓치지말아야 하는 게 아니오?" 백발청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음, 만일 그런 사랑을 발견했다면 놓치지말아야겠지." 화검상은 그 말을 듣자 즉시 벌떡 일어서서 남궁설완(南宮雪完)에게 다가갔다. 이곳에는 그럴싸한 여자들이 모두 세 명이 있었는데 그 백발낭자와 풍검심은 화검상에게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지만 정작 남궁설완은 관심이 없어서 먼 산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화검상이 자신에게 다가오자 다소 어리둥절한 표정을 보였다. "당신은 내게 무슨 볼일이죠?" 화검상은 그 자리에 뻣뻣이 서서 포권하며 말했다. "나는 지금 사랑 고백을 하고 있는 거요. 부디 내 사랑을 받아주시요." 남궁설완은 이내 눈살을 찌푸렸고, 어느새 뒤따라온 백발청년이 화검상의 어깨를 가볍게 치며 웃으면서 말했다. "당신은 이론은 제법이지만 실제는 형편없군? 사랑 고백을 그렇게 멋없이 하는 사람이 어디 있소?" 화검상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이오?" 백발청년은 웃으며 대꾸했다. "음, 당신은 제법 눈은 높다고 할 수가 있는데, 이를테면 꽃이라도 한아름 들고 와서 정중히 사랑 고백을 해야지." "곷이라면 나는 얼마든지 구해올 수가 있소." 화검상은 남궁설완에게 다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만일 내가 지금 가서 꽃을 구해온다면 내 사랑을 받아주겠소? 당신은, 당신은 대신 이곳에서 나를 기다려줘야만 하오." 남궁설완은 그만 너무나도 어이가 없어서 화검상을 주시하다가 이윽고 차갑게 말했다. "나는 당신 같은 사람은 좋아하지 않아요. 설사 꽃이 아니라 하늘의 별을 모두 따온다고 해도 싫어요. 알겠나요? 그러니까 어서 꺼져줘요!" 화검상은 그녀를 주시하며 다시 말했다. "왜 나와 같은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이오?" 남궁설완은 이런 작자에게 걸린 자신이 한심스러운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건 내가 당신이라는 인간을 근본적으로 싫어하기 때문이에요. 실로 당신과 같은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조금도 내 마음에 들 수가 없어요. 그러니 제발 날 귀찮게 하지말아줘요!" 화검상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이윽고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서 두 손을 머리를 싸매고 엎드렸다. 백발청년을 다시 따라와서 말을 걸었다. "왜, 잘 되지 않소?" 화검상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당신은 나의 이 고통을 알 수 있소?" 백발청년은 절로 웃음 말했다. "물론 알 수 있소, 그래서 내 별호가 바로 상심공자(傷心公子)가 아니오?" "상심공자라고?" 화검상은 갑자기 탁자를 치며 몸을 벌떡 일으켰다. "흥! 지금 나를 놀리고 있군!" 말과 함께 그는 일순 오만상을 찌푸리며 밖으로 도망치듯 달려나가고 말았다. 백발청년은 그것을 보자 그만 어안이 벙벙해져서 말했다. "정말 웃기는 녀석이로군!" 백발낭자가 말했다. "우리는 아직 그에 대해서 아무것도 물어보지 못했어요." 백발청년은 기이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내가 아까 일부러 어깨를 쳐봤는데 대수롭지 않은 녀석이었어. 만일 또다시 나타난다면 그때는 꼼짝못하게 해놓고 물어보면 되지. 정말 우리가 운이 좋다면 말이야....... 흐흐 모든 일이 잘되겠지." 화검상은 일단 밖으로 나오자 곧장 신법을 펼쳐 은밀히 백혈단(白血團)의 거점으로 향했다. 이곳에서 그 백혈단의 거점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는다. 하늘에는 중추절의 둥근 보름달이 어느새 떠올라 사위를 밝게 비추고 있었다. 그것은 갑자기 이곳에 나타난 그 무리들이 혹시 백혈단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닌가 해서였다. 화검상은 솔직히 이 백혈단이라는 존재에 대해 그리 기대를 걸지 않고 있었다. 다만 동방천서와의 인연도 있으니 모른 척할 수는 없고 한번은 가봐야 할 것이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무림야그 출력일 :: 98/11/04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1 권 제 41 장 - 4 '어쨌든 지금으로서는 온갖 수단을 부려보는 수밖에 없다. 나의 실력은 비록 높아지기는 했지만 그러나 아직 절대적인 경지와는 거리가 멀다. 지금으로서 그 많은 적들과 공공연히 대적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화검상은 문득 그 차갑고 오연하던 남궁설완을 뇌리에 떠올려보았다. '정말 자존심이 상하게 하는군! 차라리 좀더 멋있게 변장할 것 그랬나?' 기실 지금 화검상의 실력으로써는 아까 보았던 그 천륭무가의 사람들 정도는 얼마든지 상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천륭무가에서 그들은 아마도 가장 무공이 낮은 사람들이라고 해야할 것이었다. 그들의 부모나 조부 등도 있을 것이고 또한 그보다 더 윗대의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화검상은 일전에 보았던 그 천수자(天隨子)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과연 그는 그를 상대할 수 있을까? 이길 수 있을까? 솔직히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무리라는 결론이었다. 게다가 천수자 이외에도 세외칠세의 주인들이 있을 것이고, 또한 그 신비롭게 나타나는 의문의 노인(老人)들......, 화검상은 아직도 확실히 매우 힘겹다는 느낌이 들었다. 과연 그 노인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태행산은 비록 거칠지만 그런 것이 화검상의 발길을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정말 달이 밝군! 지금 가면 혹시 송편이라도 얻어먹을 수가 있을까? 하긴 가서 잘못 얻어맞지만 않으면 다행일지도 모르겠군!' 화검상은 빠르게 달리다가 이내 신법의 속도를 늦추어 작은 계곡 하나를 건너며 다시 생각했다. '내가 신분을 밝힌다고 해서 과연 그들이 모두 내 말을 잘 따라줄까? 게다가 지금은 그 천륭무가의 사람들이 쳐들어올 경우 그들을 모두 제거할 수도 없는 없는 노릇이다. 그것은 마치 풀을 건드려 뱀을 놀라게 하는 것으로 천하의 이목이 나에게 집중되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할 수 없이 이곳에서도 수단을 부려봐야 하겠군!' 배혈단의 거점은 아주 은밀한 곳에 위치하고 있다. 그것은 백혈단이 소수의 세력임에도 불고하고 이제까지 잘 버텨온 중요한 이유들 중의 하나이기도 했다. 다섯 개의 험한 계곡들이 연이어지는 곳에 이르러 두 번째의 계곡 안으로 들어가면 하나의 거센 폭포수가 나온다. 그 폭포수의 연못 아래쪽으로 일단 내려가 전면으로 나아가면 위로 올라가는 수중동굴이 나타나는데, 그 동굴의 위로 올라가면 텅빈 천연동굴이 나타나고 우선 그 입구에 도달한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서부터 안으로 들어가려면 세 곳의 입구를 막는 관문을 거쳐야 하는데, 동방천서는 화검상이 그곳에서 서귀현(徐歸賢)을 찾으면 무난히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 서귀현이란 사람은 일전에 화검상이 태평진의 산꼭대기에서 만났던 사람이다. 그러니까 이 장소는 비단 은밀할 뿐만 아니라 천험에 인공을 가미한 요새와도 같아서 입구를 잘 지키면 어느 정도는 버틸 수 있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신분을 밝히지 않고 몰래 들어가려면 어느 정도 고생은 해야 할 것 같군.' 폭포수의 앞에 이르러 주위의 인기척이 없는 것을 확인한 화검상은 곧장 몸을 날려 연못 속으로 들어갔다. 연못의 물은 비록 서늘했지만 그리 깊지는 않았다. 소용돌이가 일어나는 곳을 지나 조금 더 아래로 내려가자 이내 바닥에 닿았고 미미한 물살의 흐름이 느껴졌다. 수영을 특별히 배우지 않아도 무공에 능하면 이내 쉽게 그 흐름에 익숙해지게 되는 법이다. 전면으로 얼마간 나아가자 과연 수중동굴이 나타났고 그 위쪽으로부터 희미한 빛이 스며들었다. 화검상은 이번에는 신중을 기하여 공력을 끌어올린 채로 천천히 위로 올라갔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무림야그 출력일 :: 98/11/04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1 권 제 42 장 백혈단(白血團) 제 42 장 백혈단(白血團) 화검상의 생각은 우선 악의는 없더라도 물 표면에 가까이 접근한 다음에 빠르게 몸을 날려 입구를 지키는 사람들부터 제압하고 보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막상 그렇게 물 표면에 올라간 화검상은 일순 다소 어리둥절해지고 말았다. 이 정도라면 부근에서 지키고 있는 사람들의 인기척을 분명히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아무런 인기척도 들을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마치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런 곳에 지키는 사람이 없을 리가 있나? 혹시 내 실력이 갑자기 녹슨 것은 아니겠지?' 다소 망설이다가 화검상은 이윽고 내친 김에 번쩍 신형을 솟구쳐 물위로 올라갔고 그와 동시에 지체하지 않고 급히 몸을 날려 그 천연동굴의 구석진 위치에 몸을 숨겼다. 한데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그 천연동굴에는 그저 안쪽에서 희미한 빛이 스며들고 있을 뿐 조용했고, 입구를 가로막는 석문도 열려 있었으며 사람들이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화검상은 공력을 일으켜 귀를 기울여보다가 문득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혹시 그들이 벌써 이곳에 쳐들어왔단 말인가?" 하나의 석문을 지나 좌측으로 구부러지는 동굴을 따라가자 그곳에 등불이 켜진 채 아직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 부근에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머물며 지키고 있었던 것 같았다. '대체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겠군!' 화검상은 왠지 마음이 급해지자 더 이상 조심스럽게 움직이지 않고 곧바로 안쪽으로 내달았다. 동굴이 끝나는 부분에는 한두 사람 정도 있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화검상은 아주 편안하게 그 내부로 진입했다. 이곳은 마치 거대한 호리병을 연상시키는 지하의 광장이었다. 위쪽은 아주 작은 구멍처럼 보이고 사방은 거친 기암절벽들로 둘러싸여 있는데, 위로 올라갈수록 절벽이 안쪽으로 오므라들기 때문에 설령 위쪽의 그 작은 구멍을 발견한다고 해도 이곳으로 내려오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과거에 용암이 분출되었다가 가라앉으며 이런 공간을 만든 것 같았다. 광장의 안쪽에는 수십 채의 초라하고도 작은 모옥들이 여기저기 늘어서 있고, 또한 곳곳에는 횃불들이 밝혀져 있었다. 설령 횃불이 없다고 해도 화검상이 이 내부를 살피는 데는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모옥들의 앞쪽에는 연무장(鍊武場)으로 쓰이고 있는 듯한 제법 넓은 광장이 있었는데, 뜻밖에도 지금 그곳에는 이십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서 긴장된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아마도 이곳의 사람들이 모두 모여 있는 것 같았다. 그 긴장되고 살벌한 분위기로 미루어보아 혹시 누군가가 침입한 것이 아닌가 했는데, 의외에도 그들의 옷차림 등이 비슷하여 그런 것만도 아닌 것 같았다. 아까 주루에서 만났던 사람들은 물론 그곳에서 발견할 수 없었다. '하긴 그자들이 벌써 이곳에 도착했을 리는 없겠지? 이곳을 노리고 있다고 해도 말이야.' 다만 화검상은 그들 중에서 한 사람의 낯익은 듯한 사람을 발견할 수 있었다. 기억이 다소 희미하기는 하지만 화검상은 이내 그가 바로 그 태평진의 산 꼭대기에서 만난 서귀현(徐歸賢)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일견하기에도 그들은 두 무리로 나뉘어져 있었다. 한 무리가 다른 한 무리를 포위하고 있었는데, 포위를 당한 무리의 숫자는 훨씬 적고 서귀현은 그들을 포위하고 있는 많은 무리 속에 섞여 있었다. '뭐야, 내분이라도 일어난 것일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사람들이 이렇게 긴장하고 있다니 이상한 일이군!' 화검상은 좀더 그들의 대화 내용을 자세히 엿듣기 위해 빠른 신법을 펼쳐 안쪽 모옥의 뒤편으로 기척없이 돌아갔다. 비록 위쪽의 작은 구멍에서 달빛이 스며들고 있고, 곳곳에 횃불이 밝혀져 있지만 아무도 화검상의 그런 움직임을 눈치채지 못했다. 아니 설령 대낮이라고 해도 그들은 알아볼 수가 없었을 것이다. 다행히 사람들이 모두 광장 쪽에 몰려 있기 때문에 모옥 뒤편에서 화검상이 활동하는 데는 아무런 불편도 없었다. 화검상은 광장과 가까운 모옥의 안으로 들어가 대들보 위에 앉아서 지붕을 조금 뜯고 그쪽을 내다보았다. 포위를 당하고 있는 쪽의 인원은 모두 일곱 명이었는데 최절정급의 인원이 두 명이고 절정급의 인원이 다섯으로 보였다. 최절정급의 인원은 나이가 오십대이고 절정급의 인원은 사십대였는데, 나이에 비해 그들의 무공 차이는 두드러져 보였다. 그러고 보니 지금 포위를 하고 있는 무리들도 어딘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의 무리로 나뉘어져 있는 것 같았다. 가장 가운데에 있는 무리는 모두 열 명이고 좌측의 무리, 그러니까 서귀현이 속해 있는 무리는 모두 다섯 명, 우측의 무리는 세명이었다. 서귀현이 속해 있는 무리는 모두 다섯 명이지만 나머지 네 명을 무공이 절정급이어서 가장 힘이 약해 보였다. 오른쪽의 세 명만 해도 인원은 적지만 모두가 최절정급이기 때문이다. 오른쪽의 무리는 관망하는 자세였고, 가운데의 무리는 어정쩡한 태도였으며 좌측의 무리만이 가장 분개해 있는 것 같았다. 그 포위당하고 있는 무리 중에서 가장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가 음침하게 웃으며 말했다. "흐흐흐, 상사형(桑師兄), 한번 잘 생각해보시오. 우리가 이렇게 계속 버틴다고 해서 결국 살아남을 수가 있겠소? 아니, 앞으로 며칠도 살 수가 없을 것이오. 우리는 그래도 살아남아야만 하지 않겠소? 살아남아야 무슨 본파의 일도 다시 해볼 수가 있는 일이겠지." 서귀현이 분개하여 소리쳤다. "허귀철(許歸鐵)! 이제 본파를 배신한 네놈이 감히 다시 본파의 일에 대해서 논할 수가 있느냐? 돌아가신 사부님께서도 미리 네놈들을 처단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계실 것이다!" 그 허귀철이란 자는 서귀현을 슬쩍 바라보더니 입가에 더욱 음침한 웃음을 떠올리며 말했다. "네놈이 감히 호랑이의 간담이라도 삶아 먹은 모양이로구나? 하긴, 그 동방늙은이는 비단 고집불통이었을 뿐만 아니라 무능해서 감히 내 상대도 되지 못했지." 서귀현의 옆에 있던 사내가 얼굴이 시뻘게지며 소리쳤다. "네놈이 감히 사부님을 그렇게 부르다니, 이런 나쁜 놈!" 허귀철은 그 사내를 상대하지도 않고 다시 가운데의 무리를 향해 말했다. "상사형, 이제 시간이 별로 없소. 빨리 결정하는 게 좋을 거요. 그들이 오기 전에 저런 귀찮은 녀석들을 제압해서 그들에게 선물로 준다면 좋지 않겠소?" 그 가운데의 무리를 이끌고 있는 상사형이란 인물은 나이가 가장 많았고 또한 무공도 가장 높은 것 같았다. 그는 짐짓 주위를 둘러보며 눈살을 찌푸리더니 말했다. "음, 허사제(許師弟)! 자네의 충정은 내 익히 알고 있네. 하지만 우리는 본래 한 가족이 아닌가? 마땅히 모두가 무사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만 할 걸세." 서귀현이 격분하여 말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무림야그 출력일 :: 98/11/04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1 권 제 42 장 - 1 "상사형, 그게 무슨 소리요? 저 허귀철이란 자는 명백히 본파의 반도인데 무슨 가족이란 말이오? 어서 그를 처치하고 입구를 지켜야만 하오. 그래야만 우리는 이 요새에서 얼마간 버티면서 대항할 수 있을 것이오." 그 상사형이란 사람은 그 말에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런 대꾸도 없었다. 대신 허귀철이 음침하게 웃으며 말했다. "흐흐, 이제 입구를 지킨다고 해도 소용이 없을걸? 그들이 벌써 들어왔는지도 모르고, 게다가 우리는 이미 입구를 열고 기관장치를 모두 파괴해버렸지." 서귀현 옆의 사내가 말했다. "그, 그래서 네놈들이 오늘따라 그 당번을 자청했었구나!" 허귀철은 상황이 자신의 뜻대로 돌아간다고 생각되자 음산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흐흐, 이미 후회해도 너희들은 때가 늦었다!" 서귀현은 마음이 급해져서 말했다. "상사형! 어서 결정을 내리시오. 사형이 저들을 제압하면 나는 즉시 입구로 달려가 봉쇄하겠소! 그러고 난 후에 사형은 우리의 장문인이 되어 함께 움직입시다!" 상사형이란 자는 서귀현을 돌아보더니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내가 보기에는 음, 약간 때가 늦은 것 같소. 이번에 오는 그 천륭무가의 사람들은 무공이 풍장문인보다 훨씬 뛰어났다고 하오. 우리는 그들을 막아낼 수 없을 것이오. 그러니......, 우리는 좀더 합리적인 방법을 모색해봅시다." "뭐라고?" 서귀현은 소리치며 즉각 몸을 날려 허귀철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상귀황(桑歸黃)! 네놈은 돌아가신 상장로(桑長老)를 생각해보아라! 그래도 그분은 본파의 안위만을 걱정하셨는데 이럴 수가 있느냐?" 이번에 서귀현이 허귀철을 공격한 것은 오히려 허귀철이 먼저 그쪽으로 슬그머니 움직였기 때문이었다. 서귀현은 소리침과 동시에 전력을 다해 허귀철을 공격했으나, 그는 나이도 적을 뿐만 아니라 도저히 허귀철의 상대가 아니었다. 첫 번째의 공격에서 그는 벌써 어깨에 일검을 당했으며 말을 하는 도중 다시 옆구리에 제법 깊은 부상을 당했다. 기실 그들은 모두 화산파의 검법을 사용하고 있고 서로의 무공을 잘 알기 때문에 이렇게 빨리 부상을 당할 정도는 아니었으나, 그 화산검법이 살검(殺劍) 위주로 다소 변질되었고 또한 서귀현이 무모하게 피하지는 않고 공격만을 퍼부었기 때문이었다. 서귀현은 마음이 급해 결사적인 공격을 퍼부었으나 허귀철은 그보다 공격이나 검법도 우월하여 교활하게 미끄러지듯 되받아치고 있었다. 서로간에 살검 위주의 검법을 펼치는 만큼 허귀철도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었으니 그의 상처에 비해 서귀현의 부상은 최소한 그 깊이나 정도가 두 배는 되는 것 같았다. 그들은 둘 다 최절정의 고수들이지만 같은 경지라도 공력이나 그 수위의 차이에 따라 이런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상사형, 즉 상귀황이란 자는 그것을 보고 짐짓 고뇌 어린 표정을 지으며 두 손을 내저었다. "싸우지마시오! 싸우지마시오! 우리는 지금 존망(存亡)의 위기에 처한 만큼 서로 이성적으로 합리적인 방법을 모색해봅시다!" 본래 허귀철의 주위에 있던 자들은 즉시 움직여 서귀현 쪽의 사람들을 주살하려고 했다. 인원의 숫자나 실력으로 보아도 그들이 훨씬 우세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상귀화이 그렇게 말하는 바람에 그들은 눈치를 살피며 즉각 멈춰섰다. 서귀현 쪽의 사람들은 즉시 서귀현을 돕고 싶었으나 우선 실력이 부족하기도 하고 또한 허귀철 쪽의 사람들을 견제해야 하기 때문에 분격한 표정만 드러낼 뿐, 꼼짝할 수가 없었다. 기이하게도 이런 상황에서 두 사람만이 격돌하게 된 것이다. 허귀철은 지금 상귀황의 말을 거스르고 싶지 않았으나 서귀현이 결사적으로 공격해들어오므로 몸을 뺄 수 없는 처지였고, 서귀현만 죽이면 상황이 완전히 자기 쪽에 유리해지므로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서귀현은 몸과 마음이 모두 다 다급했다. 그는 안간힘을 다해 공격하면서도 맞은편의 방관하는 세 명을 향해 소리쳤다. "당신들은 어째서 가만히 있소? 이곳이 무너지면 우리 모두가 무사할 수 없다는 것을 모른단 말이오?" 그러나 그 세 명은 모두 묵묵히 사태만 주시할 뿐 대꾸도 하지 않았다. '실로 이들은 적은 인원인데도 뿔뿔이 갈라져 있다. 동방천서는 그래서 내게 이곳을 부탁했던 것이로군!' 화검상은 내심 그와 같은 광경을 바라보며 절로 쓴웃음을 지었다. "제발 지금 당장 달려가서 입구라도 지며주시오! 우리는 그래도 한 사형제가 아니었소?" 그렇게 말하는 도중 서귀현은 다시 피를 뿌리며 허벅지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 이번의 부상은 가장 깊어서 하마터면 그는 움직이기 어려워질 뻔 했다. 기실 허귀철은 의외로 노련해서 승부가 좀더 일찍 끝날 수도 있었으나, 서귀현은 간혹 기발한 변초(變招)로서 허점을 찌르기 때문에 이만큼 버티고 있는 것이다. 여전히 그들이 꼼짝도 하지 않는 것을 보자 서귀현은 공력을 최대한 일으키며 초식을 바꾸었다. 갑자기 칼날 같은 강기( 氣)가 일어나며 또한 좌수로는 연달아 위맹한 장력(掌力)을 세 번이나 퍼부었다. 서귀현은 이제 겨우 최절정의 경지에 진입한 상태로서 아직 검강(劍 )을 일으키기에는 무리였다. 게다가 이 수법은 공력을 급격히 소모시키는 것이기도 했다. 허귀철은 상대가 검강을 일으키자 다소 주춤했으며 그 와중에 첫번째의 장력에 우측 어깨를 가볍게 가격당했다. 하지만 그는 어느새 두 번 좌우로 미끄러지고 한번 돌아서는 사이에 나머지 이 장(二掌)을 간단히 피해내고 이어 허공으로 떠올라 다섯 번의 변초를 일으켰다. 대개 비슷한 실력일 경우 허공에 떠오르게 되면 손해를 보기가 쉽다. 그것은 운신(運身)에 민첩성이 부족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허귀철은 초식의 운용에서 자신이 있기 때문에 상대를 압박하고 접근하여 싸움을 일찍 끝낼 속셈으로 이 방법을 택한 것이다. "안되겠다! 어서 그대들이라도 달려가서 입구를 지키게!" 서귀현은 연달아 오 장(五掌)을 날리며 남은 자신의 무리에게 소리쳤다. 허귀철은 두 번은 마주 장력을 날려 대응하고 세 번은 피하면서 더욱 접근하여 서귀현의 가슴과 머리를 노리며 베어왔다. "서사형(徐師兄)......!" 서귀현 쪽의 그 네 명은 자신들이라도 떠나면 서귀현의 상황이 더욱 불리해질 것이 뻔하기 때문에 주저하다가 이내 입구 쪽으로 신형을 움직였다. 허귀철의 무리는 마치 이때를 노리기라도 한 듯 그들을 가로막았으며 그곳에서도 쌍방간의 치열한 격전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무림야그 출력일 :: 98/11/04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1 권 제 42 장 - 2 그쪽에는 최절정고수가 하나 더 있었으나 이번에 서귀현 쪽 사람들을 가로막은 것은 절정급의 다섯 명이었고 공격도 그다지 악착같지는 않았다. 아마도 그들은 단지 서귀현만이 이 상황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느끼는 모양이었다. 상귀황은 그것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으나 말리지 않고 탄식하며 말했다. "우리는 지금 가장 현명한 방법을 찾아야 하며 싸워서는 안 되오! 모두들 냉정을 되찾도록 합시다." 이제 그의 의사는 허귀철 쪽으로 거의 기울어진 것 같았다. 사람들은 그의 말을 듣기만 할 뿐 대꾸하는 사람이 없었다. 서귀현 쪽의 그 네 사람의 무공은 각기 상대방인 다섯 명의 무공과 비슷했다. 하지만 네 사람이 결사적으로 공격하기 때문에 공격받는 쪽은 당황했고, 나머지 한 사람이 번갈아 가며 위기에 몰린 쪽을 도와주었다. 이 싸움은 그다지 심한 부상도 없이 오래갈 것 같았다. 서귀현은 상대방의 공격이 급박해지자 약간 당황해 보였으나 이어 주저없이 오히려 다가들었다. 상대방이 비록 위력적인 공격을 퍼붓지만 지금은 운신이 불편하여 그의 공격을 피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다가드는 것에 몸을 들이대는 것은 분명히 자살행위나 다름이 없지만 그는 그와 동시에 상대방의 목도 날려버리겠다는 계산이었다. 일면 가슴을 노리는 듯하지만 기실 나중에는 꼼짝못하게 목을 날려버리는 살초(殺招)라는 것을 허귀철이 모를 리가 없는 것이고, 또한 그는 함께 죽는 것을 바리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초식을 거두고 피하거나 방어를 해야 하는데, 지금은 허공에 떠 있기 때문에 그는 급격히 수세로 몰리고 서귀현은 승기를 몰아 거듭 살초를 전개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막상 그 살초를 전개했을 때 상황은 조금 바뀌었다. 허귀철의 검끝에서 느닷없이 칼날 같은 강기( 氣)가 일어나더니 그것이 돌연 세 치나 길어졌다. 지금 두 사람은 변화된 백팔식광풍쾌검(百八式狂風快劍)을 펼치고 있었던 것이지만 그것은 일면 옥녀금침십삼검(玉女金針十三劍)처럼 되어버린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옥녀금침십삼검에도 그렇게 검강이 갑자기 길게 늘어나는 경우는 없다. 고수들의 대결이란 몹시 빠르고 변화막측하지만 치밀하게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에 이 세 치의 차이라는 것은 엄청난 것이다. 적어도 그것이 예상 못한 것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서귀현의 몸에는 지금 호신강기(護身 氣)가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미처 그의 검이 다가가기도 전에 허귀철의 그 늘어난 강기는 그의 호신강기와 부딪치게 될 것이고, 허귀철의 운신은 그때부터 빠르게 변화할 것이다. 서귀현의 살초는 빗나가게 될 것이고 검강은 그 날카로움으로 호신강기를 꿰뚫었으며 이어 목을 노리게 될 것이다. 서귀현은 일순 아득한 기분을 느꼈지만 상황은 급박하여 도저히 판단을 내릴 시간을 주지 않았다. 그는 계속 살초를 펼치며 일부러 발동시켰던 오신강기를 풀어버렸다. 호신강기가 없었다면 반발력도 적어져서 허귀철의 변화의 여지가 줄어들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그야말로 자살행위였다. 호신강기가 없다고 해도 여전히 반탄력은 어느 정도 생겨나며, 오히려 그 일식(一式)에 의해 검강은 호신강기가 없는 그의 가슴을 갈라놓을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일단 타격을 받은 상황이라면 위력은 급격히 줄어들고 서귀현의 살초는 빗나가기 쉬우며 허귀철이 당할 위험은 크게 적어지게 된다. 그런 상황이라면 허귀철은 아예 약간의 피해를 감수하더라도 끝장을 내려고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나 상황이 늘상 두 사람의 생각대로만 이어지는 것은 물론 아니다. 서귀현이 호신강기를 풀고 검상을 가중시켰으며 허귀철의 검강이 마악 서귀현의 가슴팍을 헤집으려는 순간, 갑자기 이상하게도 허귀철은 가슴이 크게 뜨끔하여 진기(眞氣)가 이어지지 않는 것을 느꼈다. 검상이 세 치나 늘어난 것도 급격한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지만 그것이 갑자기 도로 사라지는 것도 역시 그 못지않은 변화를 일으킨다. 이 검강이라는 것은 진기의 산물이므로 진기가 이어지지 않는다면 검강이 사라지는 것도 당연하다. 무엇보다도 허귀철은 일순간 공격과 방어의 중심을 잃게 되었으므로 그야말로 절대적인 위기에 몰리게 되었다. 서귀현의 검은 다음 순간 허귀철의 호신강기를 꿰뚫고 그의 가슴을 헤집었다. 본래 그의 살초는 먼저 가슴을 노리는 것이지만 상대가 그것을 방비하지 않을 리가 없으므로 상대의 대응에 따라 여러 변식(變式)을 낳으며 목을 노리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허귀철이 오히려 전혀 가슴을 방어하지 못했으므로 다른 변식으로 이어지기도 전에 그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무공에는 그 흐름의 특성과 초식이 있는 것이지만 흐름이나 초식 둘 다 그 마음이 실려 있다. 그것을 이른바 검의(劍意)라고 하는 것이지만 모든 초식을 깊이 이해해도 검의까지 정통하기는 어려우며, 그렇다고 해도 또한 그것을 능숙하게 연마하여 돌발적인 상황이 드러나게 하기는 더욱 어렵다. 이 돌발적인 상황 변화에 대해 가장 놀란 사람은 물론 허귀철 본인이겠지만 역시 그 상대인 서귀현도 다소 놀라게 되었다. 초식이 먼저 변화에 따라 가슴을 노리는 것은 당연히 상대가 방비해야 하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검의에는 당연히 그 방비해야 하는 이유가 들어 있는 것이며, 만일 서귀현이 이 검의에 깊이 들어가 있었다면 그 일식(一式)으로도 거의 허귀철의 숨을 끊어놓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서귀현의 검의에 대한 이해는 아직 부족했고, 또한 상대는 무공이 그보다 우월했다. 이번의 일검(一劍)으로 허귀철의 가슴은 피가 뿜어지고 뼈가 드러나는 깊은 중상을 입었지만 그러나 치명상은 아니었다. 게다가 서귀현은 비록 아주 잠깐이지만 다소 놀라서 주춤하는 바람에 그 검의에 맞는 변초를 이루지 못했고 그것이 또한 상대에게 기회를 주게 되었다. 허귀철은 갑자기 무엇인가 잘못되는 순간 서귀현의 검을 절묘하게 피하여 치명상을 면하게 되었고 또한 위기 속에서도 그것을 이용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서귀현의 검과 그의 호신강기가 부딪치는 그 탄력을 이용하여 일순간 그의 신형은 그대로 빙글빙글 돌아 우측으로 이동하였으며, 마치 물고기가 거센 물살을 차고 오르듯 몸을 뒤집어 그 흐름을 차고 오르는 동작이 거의 한 순간에 이루어짐으로써 일단 그 위기에서 벗어났다. 실로 그러한 임기응변은 무공의 노련함이 어떤 경지에 오르지 않고는 어려운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한번의 위기는 또 한번의 위기를 초래한다. 서귀현은 한 순간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다급히 허귀철의 뒤를 추격했으나, 허귀철은 이미 그보다 먼저 허공에서 우측으로 미끄러지며 좌수로 장력을 쏟아내고 있었다. 서귀현의 초식은 또 빗나갔고 허귀철의 장력이 연달아 사오 장이나 날아오고 있었다. 그 장력을 맞받거나 몸에 맞을 경우 상대에게 숨을 돌릴 기회를 줄 수가 있으므로 서귀현은 일단은 보법(步法)으로 피했는데, 장력은 대신 지면을 후려치게 되고 그 반탄력을 받아 허귀철은 멀찍이 물러나게 되었다. 이번에는 차라리 장력을 맞더라도 계속 공격하는 것이 나을 뻔했다. 서귀현은 내심 아차, 하고 다시 허귀철에게 달려들었으나, 이미 허귀철은 숨을 돌리고 땅에 발을 딛고 있는 상태였다. 서귀현은 결사적인 맹공을 퍼부었으나 허귀철은 즉시 검강을 일으켜 그의 옆구리에 다시 칼집을 내놓았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반쯤 무림야그 출력일 :: 98/11/04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1 권 제 42 장 - 3 서귀현은 이제야 그 기이한 검강의 위력을 본 것이다. 그는 일단 한걸음 뒤로 후퇴하는 수밖에 없었다. 적절한 대비책이 없는 한 무모하게 목숨을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허귀철은 마침 심하게 놀라고 한 순간 전력을 다해 위기에서 벗어난 참이기 때문에 내심 진땀을 흘리면서 지혈을 하는 한편 빠르게 생각을 굴렸다. 그의 이 검강은 화산파의 정통무공과는 거리가 먼 다른 곳의 무공에서 따온 것이고 위기의 순간에 사용하려고 했던 것이었다. 흐름이 다른 만큼 위력은 감소되지 않는다고 해도 진기의 흐름상 무리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의 무공이 일단 최절정의 경지에 올라 있기 때문에 웬만한 무리는 감수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또한 이전에도 그랬었다. 그런데 바로 조금 전에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은 무슨 까닭일까? 이것은 아주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가 없었다. 따라서 그는 다시 공격해 들어오는 서귀현의 검을 맞받으며 소리쳤다. "혹시 천륭무가에서 오시었소? 하지만 나는 당신들의 편이오!" 이번의 공방은 그리 격렬해질 수가 없었다. 허귀철이 검강을 쓰는 한 서귀현은 적극적인 공세를 펼 수가 없었고, 또한 허귀철은 조금 전의 그 기이한 일 때문에 모험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일 서귀현이 그 검강에 대항하는 방법을 알게 되면 다시 격렬해지게 될 것이다. 화검상은 뒤편에서 그것을 보고 있다가 내심 생각했다. '그 천륭무가의 녀석들은 과연 정말로 이곳을 노리고 온 것이고 사전에 또한 치밀한 공작을 해두었었군! 그렇다면 저 싸움이 오래 가게 되면 이로울 것은 없다.' 기실 허귀철이 조금 전 결정적인 순간에 가슴이 뜨금했던 것은 물론 화검상이 은밀히 지풍(指風)을 날려 그의 무리한 단점을 촉발시켰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것은 또한 허귀철과 같은 무공을 상대하는 한 가지 방법이기도 했다. 지금 게속 화검상이 은밀히 도와준다면 서귀현 등은 무사할 수가 있겠지만 그러나 주루에서 보았던 인물들이 금방 나타난다면 상황은 곤란해지게 된다. 따라서 화검상은 즉시 서귀현에게 전음을 보냈다. "나는 당신의 사부 동방노인이 보낸 사람이오. 그러니 빨리 싸움을 중지하고 동료들과 함께 물러나시오!" 서귀현은 그렇지 않아도 내심 조금 전에 누군가가 암중에서 자신을 도왔을 것이라는 점을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사부에 관한 얘기까지 나오자 일순 크게 주춤했다. "내색하지마시오. 내각 있다는 사실을 알리지말고 태연히 물러나시오." 치명적인 상대의 허점만을 노리며 공격을 하고 있는 마당에 갑자기 주춤한다는 것은 곧 위기로 직결된다. 허귀쳘은 노련한 만큼 기회를 이용하는 능력도 뛰어나서 즉시 그 허점을 파고들며 살초를 펼쳐왔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는 갑자기 가슴이 뜨끔해지는 것을 느끼고 놀라 황급히 뒤로 일 장이나 물러나면서 주위를 둘러보며 소리쳤다. "누가 오셨오? 나는 당신들 편이라니까 왜 자꾸 나를 곤란하게 하는 거요?" 화검상의 전음을 듣고 나자 서귀현은 절망적이던 기분에서 벗어나서 그렇게 결사적으로 공격할 생각이 사라졌다. 그는 허귀철이 뒤로 물러서자 역시 뒤로 한걸음 물러서며 먼저 지혈을 하고 몸을 보호했다. 그리고 아직 결사적으로 싸우고 있는 네 명의 동료를 향해 말했다. "잠깐 이리들 오게! 우리는 역시 아무래도 좀더 대화를 해야겠네." 그 네 명의 동료는 서귀현이 갑자기 이상한 말을 하자 다소 어리둥절해졌으나 즉시 뒤로 물러섰다. 그들을 가로막고 있던 다섯 명의 사내들은 그렇지 않아도 허귀철이 부상을 입고 엉뚱한 말을 해대는 것을 보고 더 이상 싸울 생각이 없어져서 역시 싸움을 중단하고 그쪽으로 돌아갔다. 상귀황은 그런 광경을 바라보고 있다가 짐짓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렇지, 잘 생각했네! 우리는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싸우지말고 힘을 합쳐야 하네. 또한 그들이 이미 들어와 있다고 해도 우리가 힘을 합하고 있다고 하면 결코 무시하지 못할 것이네." 화검상은 서귀현이 다소 주저하는 것을 보고 전음으로 자신의 위치를 알려주며 말했다. "머지 않아 그들이 도착하게 될 것이오. 우리는 그들을 대적할 수가 없으니 일단은 몸을 피하여 후일을 기약하는 게 좋겠소. 어디 몸을 피할 만한 좋은 장소라도 있소?" 서귀현은 복잡한 표정으로 급히 생각을 굴려보다가 전음으로 말했다. "당신은 누구요?" 화검상은 그가 자신을 아직 믿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고 말했다. "이미 말했다시피 나는 동방노인이 보낸 사람이오. 잠시 후면 만나게 되겠지만 지금은 저 사람들 앞에 내 모습을 드러낼 수가 없소. 그러니 일단 내 말을 믿고 몸을 피하시오. 이곳은 지키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후일을 기약하는 것도 중요할 것이오." "우리 사부님은 지금 어디에 계시오?" "그분은 유감스럽게도 한 달쯤 전에 돌아가셨소. 나는 그분의 부탁을 받고 온 것이니 빨리 움직이시오. 만일 그들이 나타나게 되면 늦어버릴지도 모르오." 서귀현은 가볍게 탄식을 발하고 허귀철을 향해 말했다. "기왕에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우리가 싸워본들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이오. 당신은 그럼 다른 방법을 제시해보시오." 허귀철은 놀란 표정으로 주위를 살피고 있다가 서귀현의 그 말을 듣고 다소 의아한 기색을 지었다. "그럼 너도 우리와 뜻을 함께 하겠다는 말이냐?" 서귀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나는 근본적으로 그들에게 항복하는 것을 반대하오. 하지만 이미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 다른 방법이 없지 않겠소? 우리는 당신들은 막지는 않겠소. 각자 뜻대로 행동하도록 합시다." 허귀철은 음침하게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흐흐, 그러나 이 일은 오직 두 가지의 선택이 있을 뿐이다. 만일 네가 엉둥한 행동을 한다면 그들이 나를 의심하지 않겠느냐?" 상귀황이 그것을 보고 나서서 말했다. "허사제, 내가 보기엔 상황을 더 악화시키지 않는 게 좋겠네. 서사제는 그의 뜻대로 하도록 내버려두게. 앞으로의 일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굳이 우리 사형제끼리 피를 봐야 할 것은 없지 않은가?" 허귀철은 눈살을 찌푸리고 있다가 전음으로 말했다. "상사형, 일단 그들이 오고 나면 우리에게 무슨 선택권이 있을 것 같소? 일처리를 희미하게 한다면 그들은 우리를 의심하게 될 것이고, 우리는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하게 될 것이오. 그럴 바에는 저들을 죽이고 그들의 신임을 얻어 살아남는 것이 좋지 않겠소?" 상귀황은 다소 주저하며 전음으로 대꾸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奮求 무림야그 출력일 :: 98/11/04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1 권 제 42 장 - 4 "하지만 우리는 지금 이곳을 떠날 수도 있지 않은가?" 허귀철은 음흉한 모습으로 웃었다. "달아난다고? 흐흐, 그게 가능할 것 같소? 우리는 얼마 가지 못해 그들에게 몰살을 당할 것이오." 상귀황은 눈살을 찌푸리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이어 그는 육성으로 자신의 무리에게 지시했다. "어서 저들을 잡도록 합시다!" 서귀현은 이미 그 두 사람의 전음을 나누는 것을 눈치채고 마음 속으로 어느 정도 대비하고 있었다. 그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들을 제거하기 위해 몰려들자, 이내 동료들을 지휘하여 화검상이 있는 쪽의 모옥으로 물러섰다. 화검상은 서귀현 등을 안심시키기 위해 전음으로 말했다. "내가 저들을 상대할 수 있소. 그러니 여러분은 빨리 안전한 곳으로 몸을 피하시오." 서귀현은 다소 주저하다가 전음으로 말을 받았다. "일전에 선사(先師)께서는 상황이 더욱 불리해지는 것을 느끼시고 은밀히 또 다른 비밀통로를 개척하셨습니다. 우리는 일단 그쪽으로 가는 게 좋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오." 서귀현은 이어 네 명의 동료에게 하나씩 그 비밀통로 쪽으로 갈 것을 전음으로 지시했다. 그 비밀통로의 입구는 뒤쪽 중앙의 가장 큰 모옥의 내부에 있었다. 상귀황과 허귀철 등의 무리는 서귀현의 동료 하나가 빠르게 그쪽으로 내달리자, 그렇지 않아도 다가들어 험악한 기세를 올리고 있다가 즉각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이제까지 방관만 하고 있던 또 다른 무리인 세 명의 최절정고수들도 언제 그랬었냐는 듯이 거기에 합세했다. 허귀철은 먼저 달려가는 그 서귀현의 동료를 추격했다. 그러나 그는 이번에도 또 신형을 날리는 도중 가슴이 짓눌린 듯이 답답해져왔다. 이번에 그는 미리 거기에 대비한 듯 그 이상한 기운에 대항하며 당기고 늦추는 등의 변화로 반탄력(反彈力)을 형성하며 그것으로 그 지역을 벗어나려고 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사 무림야그 출력일 :: 98/11/04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1 권 제 43 장 천하제일가(天下第一家)의 무예( 제 43 장 천하제일가(天下第一家)의 무예(武藝) 그러나 그 이상한 기운은 실로 기이하여 그가 감히 상대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당기려고 하면 늦춰지고 늦추려고 하면 달라붙어서 그가 전혀 기운을 쓸 수 없었고, 오히려 그의 몸은 앞으로 나아가기는커녕 반대로 거세게 뒤로 튕겨져 나동그라졌다. 실로 그와 같은 무림고수가 이렇게 심하게 나동그라지는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허귀철은 멍청한 표정으로 으악, 하는 소리와 함께 한 모금의 피를 토해냈고, 서귀현 등을 공격하던 다른 사람들은 잠시 멈칫하며 어리둥절한 표정들을 보였다. 아까도 그는 혼자서 뭐라고 이상한 말을 하더니 이번에는 마치 허공에 떠올라 재주를 부리는 것처럼 하다가 넘어져 저 몰골인 것이다. "무슨 일인가?" 상귀황이 묻자 허귀철은 고개를 내저으며 정신없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나도 모르겠소" 화검상은 이때 문득 입구쪽에서 인기척과 나직한 말소리 등을 감지하고는 급히 서귀현 등에게 말했다. "그들이 지금 도착했소! 빨리 모두 피하시오!" 서귀현은 그 전음을 듣자 안색이 변하여 즉시 남은 사람들과 함께 신형을 날려 중앙의 그 모옥 쪽으로 향했다. 상귀황 등은 갑자기 그들이 모두 달아나자 한꺼번에 우르르 몰려들어 추격해왔다. 화검상은 뜻밖에도 그들이 생각보다 빨리 나타난 것을 보고 당황했다. 이 추격하는 사람들을 처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자칫하면 자신의 존재가 노출되기 쉬운 것이다. 그는 부득이 무공이 높아 서귀현 등을 추월하고 있는 사람들부터 제지한 다음 급히 은밀히 몸을 숨기며 그 모옥 쪽으로 신형을 날렸다. 상귀황을 비롯한 최절정고수들이 갑자기 엇엇엇, 하며 놀란 기러기처럼 황급히 뒤로 물러나자, 그들과 함께 서귀현 등을 추격하던 자들도 무슨 일인지 몰라 잠시 멈칫했다. 그러고 보면 그 방법이 가장 좋았다. 게다가 다행인 것은 그 주루에서 보았던 자들이 여유 만만하게 농담까지 지껄이며 천천히 들어오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추격하는 자들이 잠시 멈칫하는 사이에 화검상과 서귀현 등은 무사히 그 모옥의 안으로 숨어들어갈 수 있었다. 상귀황 등이 다시 추격하려고 할 때 문득 뒤따르던 한 사람이 소리쳤다. "앗, 입구에 사람들이 나타났소!"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그 백발의 젊은이들을 맞이하는 일이다. 상귀황과 허귀철 등은 하는 수 없이 무리들을 이끌고 퇴각하여 그쪽으로 나아갔다. 서귀현 등은 이에 다소 한숨을 돌릴 수가 있었고, 문득 그들의 앞에 나타난 화검상을 대할 수가 있었다. 서귀현과 그의 동료들은 자신들을 방금 도와준 사람들이 이렇게 평범하게 생긴 젊은 사람이라는 것에 대해 하나같이 놀란 모습들이었다. "당신은 바로 조금 전에......?" 화검상은 포권하고 어색한 듯이 웃으며 말했다. "화천몽(華天夢)이라고 하오. 사실 나는 여러분과 인연이 없는 것은 아니오. 동방노인에게 부탁을 받은 일도......, 우선 서두릅시다! 그리고 이제는 전음으로 말해야 하오. 그들이 우리를 발견할지도 모르니." 서귀현은 고개를 내저으며 가볍게 탄식했다. "정말 강호(江湖)에는 인재도 많구려. 좋소, 기왕에 이렇게 되었으니 당신을 한번 믿어보도록 하겠소. 어서 입구 쪽으로 가도록 합시다." 화검상은 어리둥절해져서 말했다. "아니 이곳이 비밀통로의 입구가 아니었단 말이오?" 서귀현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사실 이런 곳에서는 은밀히 비밀통로를 만들 수가 없소. 이곳은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곳이기 때문이오. 나는 만약을 대비해 잠시 거짓말을 한 것이오." 화검상은 그만 어이가 없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여 속으로 놀라며 중얼거렸다. '우라질, 이런 다급한 마당에 뭐라고? 아이쿠, 정말 못 살겠군!' 서귀현은 화검상의 안색을 살피며 전음으로 다시 말했다.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마시오. 이곳에서 그쪽으로 가는 통로가 또 있으니 말이오." 화검상은 눈살을 찌푸린 상태로 밖의 상황에 귀를 기울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어서 가도록 합시다!" 이 중앙의 목은 일종의 회의실을 겸한 지휘소인 셈이었다. 비록 초라하기는 하지만 제법 널찍한 거실이 있고 안쪽에는 작은 집무실이 있으며, 집무실의 한쪽 벽면에는 제전이 있고 조사(祖師)의 영정과 또 한 사람의 영정이 걸려 있었다. 그 사람은 화검상의 눈에 익었는데, 바로 다름아닌 화산파의 전대장문인(前代掌門人) 화산검신(華山劍神) 화천괴(華天魁)의 영정이다. 화검상은 미리 예상하지 못하고 있다가 느닷없이 조부의 영정을 보게 된 상황이어서 한편으로는 놀랍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몹시 복잡하고도 심란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서귀현은 재빨리 그 두 개의 영정들을 거두어 품속에 잘 갈무리 한 뒤에 의자 하나를 뒤로 젖히고 중앙의 탁자를 뜯어냈다. 그러한 서귀현의 동작은 제법 익숙한 느낌이 들기도 했는데, 바로 그 탁자의 아래에 작은 지하통로가 입을 벌리고 있었다. 통로가 드러나자 네 명의 동료들은 빠르게 그 안으로 사라졌고 서귀현의 뒤를 따르며 전음을 보냈다. "어서 오십시오!" 화검상은 조부의 영정을 본 탓에 멍하니 복잡한 감회에 젖어 있다가 이내 뒤늦게 그 안으로 들어갔다. 통로는 그리 복잡하지도 않고 폭이 좁기는 했지만 이내 끝났다. 그들은 위로 오르자 다른 작은 모옥의 안에 도착해 있었다. 화검상은 이렇게 행동이 늦어지게 되자 마음이 울적한 상태이면서도 다급해졌다. 앞쪽의 상황에 귀를 기울이니 금방이라도 이쪽으로 다가들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서귀현은 의외로 침착한 구석이 있어서 화검상을 향해 전음으로 말했다. "이 통로가 만들어진 이후 이제 처음으로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 모옥은 그저 평범하여 사람이 거주해온 곳인 듯했고, 하나의 침상과 탁자, 그리고 한쪽의 벽면에는 날이 잘 세워진 병장기들이 걸려 있었다. 다른 한 사내가 웃으며 화검상에게 전음으로 말했다. "이곳은 바로 우리 서사형(徐師兄)의 거처입니다." 화검상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으며 생각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무림야그 출력일 :: 98/11/04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1 권 제 43 장 - 1 '이들은 아주 여유가 만만하군! 그나저나 제법 이런 사태를 대비해 준비해본 모양인데?' 서귀현은 그 병장기들이 걸려 있는 벽면으로 다가가 장력(掌力)을 일으켜 그 벽을 허물었다. 그 병장기들은 벽 위에 다소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었는데 벽을 허물자 바로 떨어져내려 서귀현의 손에 작은 상처를 입혔다. 서귀현은 그 떨어지는 병기의 날을 피하지도 않고 맞고 있다가 상처를 입고서는 화검상을 돌아보며 전음으로 말했다. "우리는 모두 이곳에서 죽더라도 이 통로는 열지 않게 되기를 바랬습니다." 문득 바라보니 서귀현과 그의 동료들의 두 눈에는 모두 다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맺혀 있었다. 실상 이들은 지금 여유를 부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곳을 떠나고 싶어하지 않는 것이다. 화검상은 그러한 광경을 보고 내심 가슴이 뭉클하여 속으로 생각했다. '세상에는 또한 이런 사람들도 있구나!' 문득 그의 뇌리에는 언젠가 화산의 채석장에서 죽은 딸기코의 사내에 대한 기억이 아련하게 떠올랐다. 그 무너진 벽면의 뒤쪽에는 지하통로가 입을 벌리고 있었다. 서귀현의 동료들은 급히 그 안으로 사라졌고 화검상과 서귀현도 그 뒤를 따랐다. 통로는 다소 비좁고 어두웠는데 안쪽으로 급히 꺾여져 절벽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서귀현은 이내 그 비밀통로의 입구를 기관을 작동시켜 폐쇄했으며 절벽의 안쪽으로 들어갔다. 이 부분은 통로가 급격히 위로 향하고 있었는데, 조금 위로 올라가자 희미한 빛이 안으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서귀현이 그쪽의 작은 석판 하나를 들어내자 그것은 좀더 분명해졌다. 바로 그곳은 절벽의 안쪽으로서 그 구멍으로 밖의 상황을 훤히 내다볼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 부분의 통로는 다소 넓어져 있다. 동료들은 계속 안으로 사라져갔고 서귀현은 남아 그 구명으로 밖을 내다보며 화검상에게 전음으로 말했다. "이곳은 저의 선사(先師)께서 심혈을 기울이신 부분이죠. 저의 선사와는 어떻게 만나셨습니까?" 그들이 이 안에 들어온 직후 소천개 홍계남과 패왕도 팽인호 등이 그 모옥 근처를 수색하고 있었다. 화검상은 밖을 내다보면서 역시 전음으로 대꾸했다. "나는 그때 우연히 그 백사(白沙)라는 마을을 지나고 있었는데 화산파의 사람들에게 공격을 당하는 그분을 발견하게 되었죠. 나는 간신히 그분을 구해서 어느 동굴로 피신시켰지만 그때는 이미 그분이 치명상을 당한 뒤였습니다. 그분은 죽기 전에 여러 가지의 일을 내게 말해주었는데, 알고 보니 무슨 화검상(華劍傷)이란 사람을 만나러 왔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그 화검상이란 사람은 느려터져서 한참후에나 나타났는데 내가 그에게 그런 얘기는 들려주었죠. 한데 얼마 후에 그 화검상이란 사람은 변을 당했다고 하더군요." 서귀현은 가볍게 탄식하고 잠시 뭔가 생각하는 듯하다가 전음으로 말했다. "그렇게 된 것이로군요. 이미 아시겠지만 우리 백혈단(白血團)은 이제는 유명무실하게 변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처음에는 선사를 포함한 세 명의 장로(長老)와 이십칠 명의 일대제자(一代弟子), 사십오 명의 이대제자(二代弟子) 등 화산파에서 떠나온 정식 제자들만 해도 칠십여 명이었고 또한 속가제자들도 많았지요. 하지만 십여 년이 흐른 지금 최근에 돌아가신 선사를 포함하여 장로들이 모두 돌아가시고, 이대제자들도 모두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속가제자(俗家弟子)였는데, 우리들까지 모두 스물다섯 명만 남은 것입니다." 화검상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 사람이 어째서 그런 얘기를 묻지 않아도 말해주는 것일까? 혹시 갑자기 내가 믿음직스러워지기라도 했단 말인가?" 서귀현은 전음을 계속했다. "사람들의 숫자가 줄어든 것은 그래도 괜찮았습니다. 문제는 갈수록 사람들 강의 갈등과 반목이 심해져서 분열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선사 이외에도 상천장(桑天長), 허천도(許天挑) 장로가 있었는데, 그들이 죽고 난 이후 상천장을 따르던 천장파(天長派)와 허천도를 따르던 천도파(天挑派), 그리고 우리 천서파(天西派)와 이쪽도 저쪽도 아닌 중간파(中間派), 이렇게 네 개의 파벌로 갈라지게 되었는데, 정말 창피스러운 일이고 선사께서도 그 일을 고민해오셨습니다. 우리 천서파는 그 네 개의 파벌 중에서도 이제 힘이 가장 약해졌습니다. 우리는 모두가 속가제자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죠." 화검상은 속으로 고소하며 생각했다. '정말 심하긴 하군. 웃기는 일이야! 고작 스물다섯 명이 남았는데 그것이 다시 네 개의 파벌로 나뉘어졌다니.......' 화검상은 전음으로 말했다. "동방노인에게 은밀히 돌봐주고 있던 친인척이 있었는데 그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서귀현은 화검상을 슬쩍 돌아보며 전음으로 말했다. "당신은 그 일도 알고 있군요. 선사께선 그 일을 비밀로 하셨지만 간혹 바쁘실 경우 저를 그곳으로 보내 몰래 일을 처리하게 하시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잘된 일이로군!' 화검상은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전음으로 말을 받았다. "실은 나도 그 부탁을 받았었는데, 그래서 얼마 전에 그곳으로 가서 그 남매를 약간 돕기도 했었지만 그곳의 상황이 좋지 못해서 이쪽으로 오라고 말했습니다. 서대형이 나중에 그들을 돌봐주는 것이 좋겠군요." 서귀현은 잠시 묵묵했다. 지금 밖의 상황은 뜻밖에도 그들의 생각과는 많이 달라져가고 있었다. 홍계남과 팽인호, 풍검진 등은 한참 동안 모옥들을 수색하다가 그 광장으로 돌아갔는데, 광장에는 그 천륭무가의 사람들과 남궁신 등이 묵묵히 상귀황 등을 주시하고 있는 상태였다. "남은 다섯 명은 비밀통로를 통해 이곳을 빠져나간 모양이오." 홍계남의 말에 허귀철이 다소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이건 저희들에게는 책임이 없습니다. 우리는 비밀통로에 대해서 알지도 못하고, 게다가 이미 말씀드렸듯이 어떤 자가 나타나 암중에서 그들을 도와주는 바람에......." 나이가 가장 많고 좌측 뺨에 긴 검상(劍傷)이 있는 날카로운 인상의 백발청년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가서더니 느닷없이 상귀황에게 일장(一掌)을 날렸다. 그 모습은 마치 느릿하여 그의 모습이 갑자기 길쭉하게 늘어나서 상귀황에게 다가서며 장력(掌力)을 갖다 붙이는 것과도 흡사했다. 화검상은 그 광경을 보고 드디어 그 옥색(玉色) 투명한 장력이 바로 천륭무가의 옥황장(玉皇掌)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상귀황은 기세에 눌려 감히 피할 생각도 못했지만 그 옥황장의 특이한 위력 때문에 피하려고 해도 도저히 피할 수가 없었다. 별로 타격음도 일지 않았는데 갑자기 상귀황이 뒤로 벌렁 나가떨어졌다. 상귀황은 대경한 표정으로 입에서 피를 한 사발이나 쏟아냈는데, 그것에는 잘려진 내장 조각들도 섞여 있었다. 상귀황은 이 사실이 믿을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그는 잠시 그 백발청년을 바라보다가 가래 끓는 음성으로 소리쳤다. "우리는 이미 항복했는데 왜 나를 죽이느냐?"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반쯤 무림야그 출력일 :: 98/11/04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1 권 제 43 장 - 2 상귀황이 이렇게 허망하게 당한 데에는 두 가지의 이유가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우선 그 백발청년의 손속은 느린 듯하면서도 빨랐고, 그 옥황장은 변화가 없는 듯이 보이면서도 많은 변화를 함축하고 있었으며, 흡인력(吸引力)으로 상대의 변화를 제어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 옥황장의 특유한 파괴력은 위험한 무공의 하나로서, 백발청년이 막대한 공력에 의해 위력을 발휘하여 상귀황의 내장을 단숨에 박살내버렸다. 백발청년은 즉시 지풍(指風)을 가볍게 튕기며 대꾸했다. "항복이라고? 흐흐, 정말 말이 좋군! 상황이 나빠지면 항복만 하면 다란 말인가? 나는 너희들에게 항복하라고 말하지 않았다." 이번에 백발청년이 발출한 지풍은 옥황지(玉皇指)라는 것으로 그 위력이 옥황장과 비슷한 것이었다. 상귀황은 본래 내장이 박살나서 얼마 살지 못할 상황이었지만 그 옥황지가 미간에 적중됨으로써 백발청년의 말을 채 듣지도 못하고 뇌수가 터져서 즉각 숨이 끊어지고 말았다. 이 천하제일가라는 말은 결코 실없이 나온 말이 아니다. 백발청년의 가공할 무공에 의해 상귀황이 맥없이 죽는 것을 보고 남은 사람들은 안색이 새파랗게 변했다. 허귀철은 안색이 급변하여 안면근육을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이, 이러는 법은 없소. 우리는 개과천선하여 항복했으니 당신들은 최소한 목숨은 보장해줘야 하오." 가장 나이 어리고 막내 격인 백발소년이 즉각 앞으로 나서서 그를 공격하며 코웃음을 쳤다. "흥, 뭐라고 개과천선? 말은 좋지만 네놈들 같은 배신자를 우리는 좋아하지 않는다!" 이번에 백발소년이 사용한 것은 무극옥황검(無極玉皇劍)이라는 것이었다. 비록 장법이 아닌 검법이라고 해도 이 천륭무가의 무공은 일맥상통하는 흐름이 있었다. 일견하여 정파(政派)의 무공을 닮기는 했으나 오히려 정파무공의 흐름을 파해하고 결판낸다는 점이었다. 허귀철은 말하면서 홍계남과 팽인호 쪽을 바라보았으나 그들은 그저 모른 척할 뿐이었다. 허귀철은 백발소년의 검이 다가들자 반격할 수도 없었고 방어할 수도 없었다. 반격하여 상대의 살을 베려고 하면 벌써 상대의 검은 그의 뼛골을 갈라오고 있었다. 그것은 이른바 천륭무가의 무공이 정파무공의 천적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일견 초식이나 흐름에 문제가 있는 듯해도 근본적으로 그 차이는 검기(劍氣)에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첫 번째의 격돌에서 허귀철은 감히 반격하지 못하고 황급히 보법으로 그것을 피했고 이어 두 번째의 초식(招式)에서 허귀철은 그것을 미처 피하지도 못해 어깨에 검상을 입었으며 세 번째의 초식에서 그는 그만 왼팔이 싹, 잘려나갔다. 지금 백발소년의 공력은 허귀철보다 일 갑자 이상 우위에 있기는 했다. 하지만 이것은 그의 노련한 경험을 보더라도 너무나도 어이없는 결과이기도 했다. 아까 그와 서귀현은 이와 비슷한 차이가 있었어도 제법 오래 격돌하지 않았는가? 마치 상대방에게 고스란히 허점이 드러난 상황에서 허우적거리는 것과도 같았다. 무공이 비슷하다고 해도 초식의 흐름에서 상대의 흐름은 최소한 두 배 이상은 빠른 것 같았고, 이쪽에서 무슨 초식을 반도 펼쳐내기 전에 상대의 검은 이미 그의 급소에 닿아 있는 것과도 같았다. 그것은 어떤 무공 수법의 차이이지 실력의 차이라고는 말할 수가 없었다. 그럼 천륭무가의 무공은 아주 훌륭하고 화산파의 무공은 저열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화검상은 그것을 바라보며 문득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는 명문정파(名門正派)의 무공을 아주 잘 아는 사람이 만든 무공이기 때문이다. 그 천재적 발상으로 인해 그 무공은 정파무공의 극성이 된다. 하지만 그 역시 단점을 가지고 있으므로 어느것이 훌륭하다고는 말할 수가 없다. 저런 무공은 대개 날카로운 만큼 아주 위험한데, 그 단점을 분명히 찌르지 못해서 저런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상황이 그와 같으니 허귀철은 반격할 수도 없고 갈수록 바빠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비록 허귀철이 그렇게 허망하게 당하기는 했어도 그것은 어쩔수 없기도 했지만 일종의 궁여지책이라고도 말할 수가 있었다. 허귀철의 무공수위는 그 백발소년보다 많이 뒤떨어지기는 하지만 그는 이미 오랫동안 실전경험을 치러냄으로써 임기응변은 오히려 우위에 있다고도 말할 수가 있었다. 그는 이미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으로 겨우 백발소년의 공격을 피해냈지만 그사이에 벌써 일종의 감각 같은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물론 그의 임기응변에서 나온 것이다. 세 번째의 공격에서 그는 더 이상 피할 수가 없어서 목숨 대신 왼팔을 희생하게 되었지만 감각적으로 그는 잘려나갈 팔게 호신강기(護身 氣)를 최대한 집중시켰다. 검강(劍 )이 일어난 백발소년의 장검은 그 어떤 보검보다도 예리하게 그의 왼팔은 간단히 잘라냈다. 하지만 그 검강이 호신강기를 파해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자연 어떤 저항력을 일으키게 되기 마련이었다. 만일 정상적인 움직임이라면 허귀철은 그 반탄력으로 뒤로 물러나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순간 그 반탄력을 역이용하여 오히려 몸이 백발소년의 앞으로 다가들었다. 그것은 반사적인 임기응변이지 무슨 초식이라고는 말하기 어려웠다. 그의 몸이 다가드는 순간 그의 장검도 어느새 소년의 가슴팍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실로 그와 같은 광경을 보자 화검상은 내심 탄식했다. '저자는 정말 아까운 자로구나. 그와 같은 자질을 가지고도 마음이 좋지 못하여 무너지니 어찌 아깝지 않겠는가?' 천륭무가의 무공의 장점은 상대방 무공의 흐름을 꿰뚫어 먼저 도달하고 먼저 파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신기해 보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정파무공의 그 깊은 흐름마저 이해했다고 말할 수가 없고 서두르는 만큼 그 깊이를 실을 수가 없다. 문제는 현재의 정파무공 자체도 그 깊은 흐름이 상실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도저히 천륭무가의 무공을 당할 수가 없고 선불 맞은 돼지처럼 당황하게 되는 것이다. 만일 정파무공을 깊이 이해하는 자가 그 깊이 있는 흐름을 펼쳐낸다면 오히려 천륭무가의 무공의 단점을 압박할 수가 있고 못할리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진정 무학의 깊은 흐름에 들어가기 어렵기에 현실에서는 자연 천륭무가 등의 무학이 강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허귀철이 순간적으로 감각에 의해 펼쳐낸 일련의 수단은 일련의 궤도를 벗어난 것으로서 진정한 깊이라고는 말할 수가 없지만 한번 그 깊이를 찌른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천륭무가의 무학과 같은 서두르는 무학의 경우 그 깊이나 파격에 약해지기 쉬우며, 게다가 백발소년의 경우 아직 경험이 부족했다. 또한 허귀철의 장검은 그러한 파격으로 인해 초식을 펼쳤다기보다는 가만히 있는 상황에서 백발소년이 가슴을 들이댔다고도 말할 수가 있는데 그것은 실로 이정제동(以靜制動), 둔검(鈍劍)으로 쾌검(快劍)을 이긴다는 이치와도 흡사하며, 천륭무가 무공의 단점의 하나를 잘 찌른 것이라고도 말할 수가 있었다. 천륭무가의 무공과 같이 서두르는 무학의 경우 상대의 흐름을 압도하여 제압하는 성질이 있지만 흐름이 없거나 보이지 않는 경우 어떻게 할 도리가 없게 된다. 실상 깊은 무학의 위치로 본다면 그런 깊이 없는 무학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반 쯤 무림야그 출력일 :: 98/11/04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1 권 제 43 장 - 3 하지만 설령 껍데기에 불과한 무학이라도 현실에서는 제대로 응징하지 못하면 위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백발소년은 일순간 자신이 당했다는 것을 알았지만 허점을 찔린데다가 경험이 없고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의 검법은 본래 기이할 정도로 빨랐지만 일단 그렇게 허점을 찔리자 또한 기이할 정도로 둔해졌다. 그는 다급한 나머지 몸을 틀어 급소만을 면하고자 했지만 상대방의 검은 옆으로 베고 지나간 이후에도 역행(逆行)하여 바싹 달라붙고 계속 그의 급소를 노릴 것이다. 바로 그때 갑자기 옥색투명한 지풍이 날아들어 허귀철의 우수를 가격했다. 그 지풍을 날린 사람은 바로 백발낭자이며 그녀는 적절한 시점에 지풍을 날려 동생의 몸을 위기에서 구한 것이다. 본래 허귀철이 정말로 무학의 깊은 흐름을 알고 있었다면 그 지풍마저도 이용할 수가 있었을 것이나 그는 그렇지 못했고, 또한 백발낭자의 무공은 초절정의 경지라 차원이 달랐다. 지풍에 맞는 순간 어쩔수 없이 허귀철의 우수는 진기의 흐름이 무너졌고 그 검은 다만 백발소년의 좌측 옆구리를 베고 미끄러졌을 뿐이었다. 물론 그는 더 이상 백발소년을 따라붙을 수가 없었다. 백발소년은 일단 그렇게 위기에서 벗어나자 동작이 다시 기민해졌다. "이 죽일놈의 늙은이가?" 허귀철이 급히 무력해진 오른손을 거두는 순간 그의 장검은 그 오른손도 싹, 하고 베어버렸으며, 뒤뚱거리며 보법으로 몸을 피하려던 허귀철의 변화를 제압하며 가슴을 깊숙이 찔렀다. 허귀철은 회심의 한 수가 백발낭자에 의해 저지당한 이후 정신이 혼란스러워져서 대번에 줄줄이 가슴까지 당하게 된 것이다. 그런 감각이란 쉽게 생겨나는 것이 아니며 정신이 혼란스럽다면 더욱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백발소년의 장검이 자신의 가슴을 꿰뚫어버리자 일순 그는 두 눈을 번쩍 발했다. 그대로 뒤로 스러지는 듯하면서 비스듬히 돌아가며 그는 발길질로 백발소년의 아랫배를 후려차버렸다. 이번에도 역시 아까와 비슷한 상황이며 실상은 그가 발로 찬 것이 아니라 백발소년이 일부러 거기에 부딪쳐 떨어진 것과 같은 상황인 것이다. 이번에 백발소년은 약간의 내상(內傷)을 입고 장검도 놓친 채 뒤로 날려갔다. 비록 형편없이 나가떨어지지는 않았지만 창백한 안색으로 내려선 것이 그 오만한 기질에 낭패감을 준 것임에 분명했다. 허귀철은 이번 마지막의 한 수로 자신의 모든 여력을 다 발휘한 것이다. 솔직히 이번의 그 한 수는 백발낭자조차 미처 알아보지 못했다. 그는 똑바로 몸을 일으켰지만 이제 끊어진 양팔 등에서 쏟아지는 핏물로 이내 전신이 악귀(惡鬼)처럼 변해 있었다. 그는 문득 음침하던 두 눈에서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고개를 젖히며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흐흐핫핫핫핫, 난...... 난 믿을 수 없어......." 그는 아마도 자신의 이런 최후에 대해서 너무나도 억울했을 것이다. 하긴 사람들은 누구나 억울하다고 생각한다. 허귀철은 그렇게 울부짖으며 숨이 끊어졌고, 이내 그의 육신도 썩은 짚단처럼 뒤로 무너졌다. 백발소년은 뒤늦게 그 앞으로 다시 다가들었고 이어 검을 뽑아 미친 듯이 시신을 난자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검법도 뭣도 아닌 광란의 몸부림이었고, 오만한 자존심에 상처를 입힌 데 대한 분노였다. "죽어라. 이 더러운 종자! 더러운 후레자식!" 백발소년은 그런 가운데 눈부신 백의가 붉은 혈의(血衣)로 변해갔다. 다른 사람들은 누구도 그를 말리지 않았고 장내에는 무시무시한 공포의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남은 무리는 그래도 십칠팔 명이나 되었지만 감히 그러한 분위기에 짓눌려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하고 있다가 갑자기 발작적으로 각자의 행동을 취하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들은 달아났고 또한 어떤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덤벼들었다. 기실 이들의 무공도 약하지만은 않아서 개중에는 아직 홍계남과 남궁신 등이 상대하기 어려운 고수들도 남아 있었다. 게다가 그들이 주로 노리는 대상은 무공이 약한 쪽이었기 때문에 남궁석완과 풍검심, 그리고 팽인호 등이 위태롭게 되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죽게 되더라도 한 사람이라도 더 데려가려는 것이다. 이 중에서 겉으로만 우람하고 팔 척 장신인 팽인호의 무공이 가장 약했는데 그는 어느새 양쪽 다리와 옆구리에 각기 일검(一劍)씩 격중당하고 있었다. 지금 그를 공격하고 있는 사람은 바로 허귀철의 뒤에 있던 자로, 그 또 한 명의 최절정고수였다. 그가 아무리 체구가 우람하고 기운이 세다고 해도 이런 고수에게는 당할 수가 없었다. 그때 자칭 상심공자(傷心公子)라고 말하던 백발청년이 달려들어 간단히 팽인호를 구해냈고, 백발낭자는 남궁석완과 풍검심을 구했으며, 백발소년은 다시 이쪽으로 달려와 사람들을 도륙하기 시작했다. 홍계남과 남궁신, 그리고 풍검진은 쉽게 당하지 않을 사람들이었다. 가장 나이가 많은 백발청년은 달아나는 사람들을 추격하며 하나씩 죽여버렸는데 그 속도와 수법이 얼마나 대단한지 마치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것 같았다. 백발청년은 뒤이어 돌아와 버티고 있는 사람들을 제거하기 시작했는데, 가장 무공이 뛰어난 그가 다가들자 상황은 급격히 끝나가기 시작했다. 여기에서 최절정고수 여섯 명과 절정고수 십여 명이 모조리 죽음을 당했다. 팽인호 등의 부상도 있었지만 그들의 피해는 상대에 비하면 그저 미미할 뿐이었다. 싸움은 끝나고 모옥들에 불을 지르면서 문득 백발낭자가 그 검상이 있는 백발청년에게 말했다. "둘째 오라버니! 이제 앞으로 어쩔 거죠?" 백발청년은 무의식적인지 바로 화검상 등이 숨어 있는 절벽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쩌다니, 이제 그만 돌아가야지. 사실 우리는 이런 녀석들과 상대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백발낭자는 가볍게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 남은 다섯 명은 대수로울 것이 없겠지만 그들을 도와주었다는 자가 왠지 신경이 쓰여요. 그런 자를 두고 간다면 후환이 있지 않을까요?" 백발청년은 음산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고 그런 놈 하나 때문에 산속을 헤매며 시간을 허비할 수도 없는 일이 아니냐? 그놈은 지금 우리를 두려워하여 숨었으니, 나중에 후환이 된다고 해도 별로 대수롭지 않을 것이다." 백발낭자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긴 둘째 오라버니의 말이 맞을 거예요. 작은 일에 너무 집착하면 으레 큰일을 놓치게 되는 법이죠. 나중에 놈들이 문제를 일으킨다면 그때 와서 다시 제거해도 늦지는 않을 거예요." 그들은 이내 간단히 상황을 수숩하고 떠나갔다. 아직 불타고 있는 모옥들을 바라보며 서귀현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무림야그 출력일 :: 98/11/04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1 권 제 43 장 - 4 "그들이 이렇게 참혹한 최후를 맞이한 것은 저희에게도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건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죠. 그들은 그 길을 자신들이 선택한 것이었으니까요. 저는 다만 우리 백혈단이 이렇게 끝나게 된 것이 믿기지 않을 뿐입니다." 화검상은 밖으로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그들의 태도가 수상하니 빨리 행동을 취합시다." 통로를 따라 좀더 나아간 뒤에 서귀현은 기관을 작동시켜 그 뒷박문도 폐쇄시켜버렸다. 두 사람은 이제는 빠르게 계속 나아갔는데, 동굴은 여러 차례 돌고돌아서 어느 지하수가 흐르는 거대한 천연동굴로 이어졌다. 그 지하수를 따라 잠시 더 나아가자 두 사람은 달빛이 스며드는 것을 느꼈고, 위로 갈라진 틈을 헤치며 올라가자 어느 작은 기암계곡이었다. 그곳에는 먼저 나온 네 명의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고, 중추절의 보름달은 아직 지지 않고 밤하늘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그곳에 앉아 잠시 숨을 돌린 후에 화검상은 서귀현에게 말했다.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서귀현은 무거운 표정으로 생각을 굴리다가 말했다. "오늘밤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우리는 이제 이 부근의 동굴에서 은신하며 훗일을 도모해볼 생각입니다!" "다른 곳으로 가실 의향은 없습니까?" 서귀현은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우리가 다른 곳으로 간들 뭐가 달라지겠습니까? 다행히 이곳에는 은신할 장소가 많으니, 우리는 계속 이곳에 머무를 것입니다." 화검상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몸을 일으켰다. "그럼 저는 이만 가겠습니다. 부디 모두들 무사하시길 빌겠습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아 무림야그 출력일 :: 98/11/04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1 권 제 44 장 곰 제 44 장 곰 서귀현 등과 헤어진 이후 화검상은 다음날 정오까지 그 부근에 은밀히 머물며 그들이 다시 화를 당하지 않나를 살폈다. 그 천륭무가 사람들의 떠날 때의 모습이 어딘가 의미 심장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이후로 그들은 나타나지 않았고 서귀현 등이 무사할 듯해서 그는 이윽고 그곳을 떠났는데, 험한 산길을 따라 남쪽으로 불과 수십 리도 가지 않아서 그는 문득 생각했다. '그 천륭무가의 젊은이들의 무공은 내가 상대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만일 앞으로 그 윗대의 사람들과 부딪친다면 내가 고전(苦戰)하게 되지 않을까?' 화검상은 이제 곧장 정무맹의 총단으로 가려는 것이었다. 현재의 이 상황을 타개하려면 직접 호랑이굴로 들어가는 도리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마침 그의 현재의 무공은 곡선적 초절정의 경지에 있지만 곡선적 심검(心劍)의 경지에 거의 육박해 있었다. 비록 초절정의 경지로 대홍락의 범주에는 들어가지만 그러나 진정한 대홍락의 경지라면 육신의 제약을 초월하여 무형지기(無形之氣)를 완전히 사용할 수 있는 심검 이상의 경지에 올라야만 된다고 불 수 있다. 하나의 경지를 돌파한다는 것은 단순히 공력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그러한 발상은 아주 위험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화검상은 현재의 상황은 무학의 이치에 대한 마음의 눈이 활짝 열려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공력의 도움만 받는다면 하나의 경지를 돌파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볼 수 있다. 곡선적 심검의 경지에 오르려면 삼십이 갑자의 공력이 필요하게 된다. 하지만 화검상이 현재 가지고 있는 것 중 두 알의 자하신단(紫霞神丹)만 복용하면 그는 육 갑자(六甲子)의 공력이 증진되어 삼십사갑자(三十四甲子)의 공력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 이 자하신단은 일반인이 복용할 경우 일 갑자의 공력을 증진시키지만, 그는 그것으로 한 알에 십 갑자의 공력을 증진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약간의 시간적 여유가 있다고 생각되는 지금 그러한 성취에 오르지 않는다면 나중에는 기회가 없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일단 그렇게 마음의 결정을 내리자, 그는 즉시 움직여서 근처의 조용하고 은밀한 동굴을 찾아 안으로 들어가 정좌했다. 현재 그는 모두 세 알의 자하신단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만일을 대비하여 한 알은 남겨두지 않을 수가 없고, 또한 일단 하나의 경지를 돌파하는 것이 중요하지 세 갑자의 공력이 더 증가하는 것은 그다지 커다란 의미가 없는 일이다. 연공(練功)이 다소 깊어질 것을 대비하여 벽곡단을 한 알 복용한 다음, 그는 곧장 옥병에서 두 알의 자하신단을 꺼내 복용했다. 이십팔 갑자(二十八甲子)나 되는 마당에서 고작 육 갑자가 증진되는 것이기에 갑작스런 공력의 증가로 인한 무리는 전혀 없었다. 운기행공(運氣行功)에 들어가자 자하신단의 약력(藥力)이 자연스럽게 융화되면서 그의 신형은 앉은 채로 석 자 가량 떠올랐으며 곧장 삼매(三昧)경으로 접어들었다. 이 무공상태로 떠오르는 높이는 공력이나 경지에 따라 차이가 생기는 것이며 일정할 수는 없는 법이다. 마치 밝고 투명한 광채의 막(幕)이 흡사 갑자기 확산되듯 둥글게 일어나 그의 몸을 에워쌌으며, 그것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하는 듯했다. 시간이 갈수록 그 투명한 광채는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희미하게 엷어져갔는데, 그것은 이른바 일천세맥(一千細脈)이 타통되어가는 것이며 진기가 무형지기(無形之氣)로 변해가는 것이다. 그러한 변화는 생각보다 상당히 느리게 진행되었는데, 그로 인해 시간도 많이 소모되게 되었다. 해가 지고 어둠이 몰려들었으며 거의 자정이 되었을 무렵의 일이었다. 갑자기 비릿한 냄새와 함께 기척이 일더니 무슨 커다란 물체 하나가 소리를 죽이며 안으로 들어섰다. 그것은 사람처럼 두 다리로 지면을 딛고 서 있었는데 사람이 아니라 어마어마하게 큰 덩치의 곰이었다. 그놈은 소리를 죽이고 거의 지척까지 다가왔지만 처음에는 흉악한 눈빛을 빛내며 허공에 떠 있는 화검상을 주시하기만 했다. 혹시 이곳은 곰이 거주하던 동굴이 아니었을까? 이윽고 잠시 뜸을 들이다가 그놈은 갑자기 그 큰 덩치를 날려 덮치며 앞발을 휘둘러 공격해왔다. 화검상은 지금 삼매경에 들어 있기는 하지만 마음의 여유가 있어서 그러한 광경을 잘 보고 있었다. 무공이 초상승의 경지에 오르면 의식하지 않아도 호신강기(護身 氣)가 절로 일어나 있는 것이니 이렇게 운공 중에 습격을 받는다고 해도 그다지 큰 문제는 없었다. 덩치만큼이나 그 곰의 힘은 엄청났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화검상의 몸은 앉은 자세 그대로 동굴의 뒤쪽으로 날려갔다. 그러나 그의 몸에서 즉시 호신강기가 자율적으로 움직이며 동굴의 벽에 부딪치는 충격을 완화시켰고, 이어 마치 둥근 공처럼 가볍게 툉겨져나와 그의 몸은 원래의 자리에 그렇게 되돌아왔다. 화검상의 몸에서 자연히 일어나는 호신강기는 평범한 것이 아니라 밀고 당기는 등의 여러 가지 변화가 조화를 이루는 것으로서 그 반탄력(反彈力)은 결코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그 덩치 큰 곰은 마치 자신의 공격을 자신이 받는 것과도 같아서 별안간 뒤로 벌렁 나가떨어졌고 잠시 정신이 어지러운 듯 멍청한 표정을 보였다. 하지만 그놈은 일순 크게 노한 듯 크악, 하는 괴성을 지르며 재차 공격을 해왔다. 이번의 놈의 공격은 그저 단순히 힘만 쓰는 것이 아니라 두 개의 앞발을 동시에 휘둘러서 조화를 이루는 것으로써 앞의 것은 허초(虛招)와 같고 뒤의 것은 실초(實招)와 같은 것이었다. 앞의 공격은 가볍게 스치는 정도이고 뒤의 공격은 아주 맹렬했는데, 그러나 아무리 가벼워도 그 기운이 있는 만큼 처음의 공격에서 다시 반탄력을 받고 놈은 뒤뚱거렸으며 뒤이은 공격에서 헛치면서도 다시 뒤로 벌렁 나가떨어졌다. 화검상의 몸은 이번엔 아까의 절반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것은 한번의 경험이 있는 만큼 호신강기의 움직임이 보다 영활해지게 된 것이다. 이 곰은 아주 크고 사나운 발톱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들은 하나하나가 병장기와 다름이 없겠지만 유감스럽게도 그것들은 전혀 화검상의 몸에 닿지도 못했다. 화검상은 처음에는 운공을 중단하고 놈을 우선 물리칠까 하고 생각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한두 번 부딪치고 나자 그의 생각은 이내 달라졌다. 비록 일방적으로 위험하게 얻어맞는 꼴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호신강기와 같은 무의식중에 일어나는 기운의 움직임을 단련시키는 것으로 오히려 현재의 운공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심검의 경지에 오르는 것은 그런 호신강기도 무협지기가 되는 것이며, 이런 단련을 통해 그 경지에 오르는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화검상의 내공이 거의 완전한 곡선적인 것이기에 가능한 것이지, 만일 직선적이라면 도움을 주기는커녕 주화입마는 당하지 않는다고 해도 오히려 방해만 될 것이다. 그 곰은 이미 약간의 내상(內傷)을 입은 것 같았다. 놈은 몸을 벌떡 일으키더니 마치 원수를 노려보듯 적개심을 가지고 화검상을 노려보면서 이번엔 달려들어 껴안고 이빨로 깨물려고 했다. 화검상이 가만히 떠 있는 상황이므로 일단 놈은 껴안는 일에는 성공을 했다. 그러나 막상 아가리를 크게 벌리고 깨물려고 했을 때, 갑자기 옆구리와 가슴, 팔뚝 등이 심하게 아파오며 목이 옆으로 돌아갔다. 비단 아파서 정신이 없을 뿐만 아니라 목이 옆으로 꺾여져 부러질 것 같으므로 놈은 즉시 괴성을 질러대며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고소 무림야그 출력일 :: 98/11/04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1 권 제 44 장 - 1 물러서는 동작에서는 반탄력이 작용하였으므로 놈은 이번에도 쿵, 하고 비틀거리다가 넘어지고 말았다. 이 곰은 보기에 그저 평범한 놈이 아니라 거의 영물에 가까워진 놈인 듯했다. 행동하는 것이 그저 마구잡이가 아니라 제법 영악스러운 면모가 있었다. 이번에 입은 상처는 제법 컸지만 그래도 일어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놈은 화검상이 지금은 자신을 공격하지 못한다는 것을 아는지 그대로 벌렁 드러누운 상태로 염두를 굴리며 눈알만 반짝였다. 그리고 잠시 후에 다시 일어났는데, 이번에는 더욱 움직임이 신중해졌다 조용히 화검상의 지척까지 다가든 그놈은 갑자기 몸을 번쩍 날려 화검상의 머리 위를 뒤덮었다. 이번에는 자신의 그 육중한 몸을 이용하여 화검상을 압사시킬 모양이었다. 당연히 그놈은 이번엔 더욱 큰 실수를 한 것이다. 화검상의 몸을 압사시키기는커녕 미처 머리에 닿지도 못하고 심하게 튕겨져 날려가 동굴의 천장에 부딪쳤으며, 괴상한 비명소리와 함께 다시 바닥에 떨어졌다. 동굴의 천장에는 뾰족하게 생긴 종유석들이 많이 있었으므로 심한 외상(外傷)을 입었을 것 같은데도 놈의 가죽은 의외로 튼튼한지 전혀 외상을 입지 않았고 다만 내상만 훨씬 가중되었다. 놈이 아무리 영물에 가깝다고 해도 일단 그 흉성(凶星)이 폭발하게 되면 더욱 미련스러워지게 되는 법이다. 이제 극심한 내상을 입고 흉성이 폭발하게 되자 놈은 이것저것 생각할 것도 없이 벌떡 일어나서 마구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그 대부분은 덩치로 압박하면서 양팔을 휘두르는 것이었는데, 물론 화검상의 몸은 갈수록 조용해졌고 놈의 내상만 늘어갔다. 놈은 의외로 지구력이 강한 편이었다. 그렇게 계속 내상을 입고 나뒹구는 가운데에서도 놈은 지치지도 않고 계속 공격을 해왔다. 그 공격은 밤이 지나고 다음날 정오까지 계속되었다. 그놈은 이제 흉성이 발작하여 아무것도 돌보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 지구력에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정오 무렵이 되자 놈은 드디어 심하게 지치고 깊은 상처를 입어서 거친 숨을 몰아쉬었고, 마침내 벌렁 나가떨어져서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되었다. 그 흉성이 폭발하던 두 눈은 이제는 고툥에 겨워하고 있으면서 애처롭게 보이기까지 했다. 화검상은 이에 분산되었던 마음을 정리하고 깊이 삼매경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가 다시 도래한 것이다. 깊은 삼매경에 이른 상황에서는 시간의 흐름조차 망각하기가 쉽다. 마치 화살처럼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고 해가 지더니 어느새 자정 무렵이 되었다. 이때 화검상은 중요한 시점에 이르러 있었다. 바야흐로 그의 무공이 심검의 경지에 도달하면서 일천세맥(一千細脈)이 완전히 타통되는 순간인 것이다. 이 곡선적 무공은 본래 완전한 흐름을 타고 있어서 그러한 경지를 넘어서는 일도 특별한 장애를 느끼거나 충격을 받지 않는다. 마치 그것은 갑자기 마음이 트이고 전신이 텅 비어버리는 듯한 느낌의 변화와도 흡사한 것이었다. 이제까지 허공에 떠 있던 그의 몸이 느릿하게 지면에 내려앉았고, 그의 몸에서 터져나오던 진기의 막(幕)이나 광채도 사라졌다. 마치 그는 다시 평범한 모습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이는 실로 그가 비로소 곡선적 심검(心劍)의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화검상은 연공(練功)이 끝나자 조용히 눈을 떴다. 그의 두 눈은 맑고 고요한 것이 마치 깊은 명상 속에 들어가 있는 것 같았다. 지금은 자정이라 다소 어두운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눈앞의 무엇인가가 앞에서 달빛을 가로막고 있었다. 바로 그 덩치 큰 곰이 어느새 그의 앞에 일어나 앉아 멀거니 그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화검상은 손가락을 들어 놈의 머리를 가볍게 두들겼다. "혼이 나고 싶어서 그렇게 계속 앉아 있단 말이냐?" 화검상은 그 손짓은 비록 가벼웠으나 놈은 마치 거대한 쇠망치로 얻어맞은 것처럼 심하게 고통스러워했다. 그 엄청난 능력을 보자 놈은 일순 놀라고 괴상한 비명을 마구 내지르며 황급히 몸을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하하, 그래도 덕분에 심심하지는 않았군!" 화검상은 미소한 뒤에 몸을 일으키며 가볍게 움직였다. 어느새 그의 신형은 허공을 가볍게 날아 동굴 밖에 이르렀고, 몸은 아직도 구름처럼 허공에 떠 있었다. 비록 중추절의 보름달과 같지는 않지만 이날의 달빛도 휘영청 밝아 사위를 밝게 비추고 있었다. "생각보다 더 시간이 지체되었군. 서둘러야 하겠다." 일순 그의 신형은 밤하늘을 날아 남쪽으로 아득히 사라져갔다. 남쪽으로 내려가다보면 소림사가 있는 숭산(嵩山)의 부근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화검상은 아직 그곳에 볼일이 없기에 계속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노산성(魯山城). 이곳은 이제 서남쪽으로 백여 리만 더 가면 정무맹의 총단에 이르게 되는 지점에 위치한 곳으로서 근래에 이르러 제법 문물이 번성해졌다. 이것은 오가촌과 같은 작은 마을이 아님은 물론이다. 대략 이틀 가까이 지나서 화검상은 그 노간현성의 어느 주루 앞에 이르렀다. 지금은 정오 무렵이라 식사를 하기 위해 몰려드는 사람들로 인해 주루는 가득 차 있었고, 화검상도 또한 배가 고파왔다. 하지만 그가 유독 이곳으로 온 것은 물론 특별한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일의 매듭을 풀기 위해서는 인연(因緣)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할 것이다. 물론 그것이 더러 위험할 수도 있지만, 그러나 일단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는 어려운 일은 접근하기도 어려운 경우가 많다. 오늘 그는 제법 은자를 썼다. 포목점에서 화려한 의복을 사서 설쳤으며 병기점에서 제법 멋드러지게 보이는 장검(長劍)을 하나 사서 걸쳤다. 물론 가지고 있던 장생보검과 단검을 몰래 부근의 안전한 장소에 숨겨두었는데, 그것은 화산파의 사람들이 알아볼까 염려되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평범한 용모로 했었기 때문에 바꿀 수는 없었으나 돋아난 수염을 깨끗이 밀고 얼굴도 단정히 했다. 누가 본다면 그를 그저 시골의 부잣집 도령 정도로 생각할 것이다. 주루의 안으로 들어가자, 점원 하나가 다가와 그의 위아래를 살피며 말했다. "손님은 식사를 하실 거요. 아니면 술을 마실 거요?" 약간 이상한 질문이기는 했지만 화검상은 일층 내부가 가득 채워져 있는 것을 보고 이미 그 말뜻을 알아차렸다. 그는 한 냥쯤 되는 은덩이를 그의 손에 건네주며 다소 오만한 듯이 말했다. "나는 밥도 먹고 술도 마시면서 잠시 쉬러가려고 하네. 좋은 자리로 안내하게!" 점원은 뇌물을 받고 나자 이내 안색이 부드러워지고 움직임이 빨라졌다. "아 예, 그럼 이쪽으로 따라오십시오. 사실 이층은 중요한 손님들만 대접하는 곳입니다." 과연 점원의 말대로 일층과는 달리 이층은 그렇게 손님이 많지도 않았고 시끌벅적하지도 않았다. 시설 등이 크게 다르지도 않았지만 이들을 이렇게 구분하여 짭잘한 부수입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 To 무림야그 출력일 :: 98/11/04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1 권 제 44 장 - 2 이 이층에 한 가지 좋은 점이 있다면 그것은 전망이 좋다는 것이다. 점원은 화검상을 이층의 구석지고 작은 자리로 안내한 다음 말했다. "사실 이런 곳에 와서 식사를 하실 수 있는 분은 많지 않죠. 그것은 이런 좋은 자리에 앉으려면 마땅히 그 자격을 갖춰야 하기 때문이죠." 화검상은 내심 눈살을 찌푸리며 욕을 했다. '이런 미꾸라지 같은 자식이 겨우 이런 자리를 주고 또 뇌물을 달라고 하는군!' 화검상은 품속에서 열 냥짜리 은원보(銀元寶) 하나와 두 냥짜리 은덩이 하나를 탁자 위에 올려놓은 뒤에 보란 듯이 거만하게 웃으며 말했다. "자네가 보다시피 여기에는 두 개의 은자가 있네. 자네는 이 중 어느것이 말을 할 것 같은가?" 점원은 어리둥절해 하는 한편 눈빛이 탐욕으로 빛났다. "그야, 헤헤헤, 나리는 정말 영웅호걸이시군요. 정말 이 자리에 앉을 자격이 있으십니다." 말과 함께 점원은 재빨리 그 은원보를 집어들려고 했다. 한데 어찌 된 셈인지, 그 두 개의 은자는 각기 화검상의 양손에 어느새 들려져 있었다. 화검상은 짐짓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그게 아니야. 자네는 큰 것이면 말을 할 것이라고 믿는 모양이네만, 기실 이 두 개의 은자는 둘 다 말을 하지 못하네. 말을 하는 것은 오직 이 사람이지. 자네는 어떻게 하면 은자를 벌 수 있는지 알고 있는가?" 점원은 이미 무림인들을 많이 상대해봤고 또한 조금 전의 신기한 화검상의 손속을 보고 그가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이미 간파했다. 점원은 눈살을 찌푸리며 손을 내저었다. "소인은 지금 무척 바쁜 몸입니다. 손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다 들어드릴 수는 없고, 주문을 하시면 음식을 가져다드리겠습니다." 화검상은 그것을 보고 내심 소리쳤다. '앗 실수다! 이 녀석은 눈치가 빨라 도저히 먹혀들지 않는군!' 화검상은 이어 그 두 냥짜리 은자를 흡사 가위질하듯 두 손가락으로 잘라 두 개로 만든 다음, 그 두 개의 은 조각 모두를 점원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음, 그건 바로 시간을 아끼는 것일세. 나는 지금 이 집에서 가장 좋은 술과 음식을 맛보고 싶네. 자네가 수고해주도록 하게. 하지만 만일 술과 음식이 늦어지게 된다면 나는 자네의 머리가 이 은자보다 더 단단한지 봐야겠네." 단단한 은덩이를 그렇게 반듯하게 간단히 자르려면 손가락에 검강(劍 )을 운용해야 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역시 흔하게 볼 수 없는 재주이다. 일류급의 검망(劍芒)이나 절정급의 검기(劍氣)로는 이렇게 깨끗하게 하기가 어렵다. 점원은 안목이 제법 있어서 다소 놀란 표정으로 화검상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화검상이 계속 거만한 눈초리로 바라보자 이내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예, 예.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점원이 그렇게 물러가자, 화검상은 이윽고 천천히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폈다. 그리고는 문득 크게 놀란 듯 눈을 휘둥그레 뜨며 몸을 벌떡 일으켰다. "아니 당신들은 바로......? 하하하, 이거 이렇게 우연히 만나다니 인연이 깊은 것 같습니다!" 거리를 내려다볼 수 있는 창가에 천륭무가의 사람들과 남궁신, 남궁설완 등이 앉아 있었던 것이다. 화검상은 이어 빠르게 그쪽으로 다가가서는 예의 그 상심공자라는 백발청년에게 쓰윽, 오른손을 내밀었다. "하하하! 오랜만에 다시 보는군요!" 그 백발청년은 차가운 기색으로 화검상을 바라보고 있다가 냉소하며 대꾸했다. "흥, 이건 바로 당신이 의도적으로 접근한 것이겠지. 우연일 리가 있겠는가?" 화검상은 멍하니 그를 마주 바라보다가 문득 머쓱해진 표정으로 손을 거두어들이며 어색하게 웃었다. "헤헤, 당신은 과연 몹시 총명하여 내 의도가 단숨에 탄로나고 말았군요! 하하하, 그러나 내가 왜 이런 수단을 써야만 했는지 아십니까?" 백발청년은 냉소하며 말했다. "전날에는 그렇게 바쁘게 달아나더니 오늘은 또 무슨 속셈으로 우리를 다시 찾아왔는가?" 화검상은 눈살을 찌푸리며 짐짓 무겁게 손을 내저었다. "이제 그런 얘기는 하지도 마시오. 내가 얼굴이 뜨거워져서 견딜 수가 없으니, 하지만 나의 이 사랑은 진실하여 하늘을 우러러 한 점의 부끄러움도 없다고 생각하오." 말과 함께 그는 은근히 곁눈질을 하여 차갑게 외면하고 있는 남궁설완의 옆얼굴을 훔쳐보았다. 백발청년은 차갑게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흥, 또 사랑 때문이란 말인가?" 화검상은 슬쩍 비어 있는 자리에 앉으며 그를 향해 말했다. "하지만 당신은 내가 오늘 어떤 비법(秘法)을 가지고 있는지 알지 못할 거요." 백발청년은 그의 차림새를 한번 살피더니 조소하듯 말했다. "그새 당신은 부자가 되었나보죠?" 화검상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그렇지 않소. 나의 이 깊고깊은 사랑에 비하면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이 막대한 재산은 실로 아무것도 아니오. 하지만 당시 당신이 그 많은 꽃들을 사라고 했을 때 나는 깨달았어야만 했소." 백발청년은 실소하며 말했다. "뭘 깨달았어야만 했다는 말이오?" 화검상은 다시 한번 남궁설완을 지그시 훔쳐본 후에 말했다. "꽃을 산다는 것은 곧 은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오. 그 은자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겠지. 나는 실로 이 죽음보다 더한 정신적인 고통 속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었소. 하지만 빌어먹을, 나는 그 가운데에서도 일종의 회의를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소. 이런, 이런 회의가 든다는 것은 실로 나의 못남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겠소?" 백발청년은 실소하며 화검상을 주시하다가 말했다. "당신은 대체 사랑을 하러 온 거요. 아니면 말을 하러 온 거요?" '어이쿠 이런! 이 자식이 또 눈치를 채는군!' 화검상은 내심 안색이 붉어지며 말했다. "물론 사랑 때문에 온 거요. 한데 당신은 어째서 내게 이런 회의가 일어났는지 몯지 않는 거요?" 백발청년은 실소하며 말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안 ─────────────────────────────────────── PRINTER/CAPTURE를 정지하고 [Enter]를 누르십시오. 무림야그 출력일 :: 98/11/04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1 권 제 44 장 - 3 "대체 어떤 회의가 일어났단 말이오?" 화검상은 무겁게 한숨을 내쉰 다음에 말했다. "이런, 이런 분위기는 음, 매우 좋소. 음, 나는 당시 또 한 명의 절세미인(絶世美人)을 보게 되었소. 나는 생각했던 거요! 왜 나는 하필이면 보다 어려운 쪽을 택했을까? 저 너그러운 눈의 여왕(女王), 아니 공주(公主)라면 이렇게까지 어렵지는 않았을 것이 아닌가? 하지만 이건 바로 운명의 화살을 맞은 것이 아니겠소?" 백발낭자가 문득 차갑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내가 그렇게 쉽게 보이나요? 어째서 내가 너그럽다고 생각을 하죠?" 화검상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솔직히 내가 보기에도 낭자는 내 사랑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총명하며 지혜롭소. 그런 사람이 너그럽지 않을 리가 있겠소?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낭자는 내게는 관심을 갖지 말아주길 부탁드리오. 나는 오직 내 사랑에게만 열정을 바치는 사람이니까 말이오." 백발낭자는 싸늘하게 냉소했다. "그렇다면 당신의 그 사랑하는 사람은 매우 행복하겠군요?" 화검상은 짐짓 탄식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렇지 않소. 휴우! 나는 여기에 이르러 인생을 한번 되돌아보지 않을 수가 없었소. 과연 사랑은 무엇이고 이별은 무엇인가? 과연 인생(人生)이란 이렇게 덧없이 흘러가는 것일까?" 백발청년이 문득 차갑게 말했다. "그건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오. 인생이란 이렇게 괴롭고 애절한 것일까? 내 스스로 가슴을 베었어도 눈물은 떨어지는구나......." 화검상은 그를 돌아보더니 말했다. "당신의 말은 일리가 있소." 백발청년은 어느새 애상이 가득한 표정이 되어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상심(傷心), 상심...... 무엇이 상심인가? 이 마음을 이미 베어 버렸는데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저 하늘은 저토록 푸르른데 내 마음에 흐르는 눈물은 막을 길이 없구나......!" 마침 그때 점원이 눈치 빠르게 이쪽의 탁자에 술과 음식들을 차려놓고 돌아갔다. 화검상은 술잔에 술을 따르고 들어올리며 말했다. "우리 술이나 한잔합시다." 백발청년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게 아니오, 나의 이 눈물은 오직 흐르는 피만이 멈추게 할 수 있소." 화검상은 내심 크게 뜨끔하여 속으로 욕을 퍼부었다. '이런 우라질 녀석이 나보다 한술 더 뜨는군!' 그러나 화검상은 겉으로는 태연히 손을 내저었다. "그건 안 될 일이구려. 하지만 당신은 내가 보기에는 아직 그 자격이 없소. 당신은 진정한 상심이 무엇인지 아시오? 이른바 상심(喪心)이란 것이오. 사랑하는 내님을 찾아 밸 리 길을 걸어서 왔네. 이미 왔어도 볼 수가 없구나. 사랑하는 내님은 다른 사람을 사모하여 저렇게 행복하게 웃고 있거늘. 나는 다만 먼 길을 떠나는 길에 들렀을 뿐이라고 말하였네......." 백발청년은 화검상을 바라보며 물었다. "당신이 지금 그렇다는 말이오?" 화검상은 손을 내저었다. "아니, 나도 우연히 그 얘기를 들었을 뿐이오. 하지만 나는 지금 그렇게 될까봐 두려운 심정이오." 백발청년은 잠시 화검상을 바라보다가 이윽고 말했다. "나는 당신을 죽이지는 않겠소. 다만 다른 사람들은 나처럼 풍류(風流)를 알지 못하니 반드시 당신을 죽이게 될 것이오." 화검상은 들고 있던 술을 단숨에 들이키고 나서 남궁설완을 바라보며 말했다. "들었소? 나는 이렇게 목숨을 걸고 왔는데 당신은 얼굴을 한번 돌리지 않는구려." 남궁설완은 드디어 참다못해 고개를 돌리며 살기 띤 시선으로 싸늘하게 말했다. "네놈이 감히 나를 이렇게 능욕하다니, 반드시 갈기갈기 찢어죽이고 말 것이다!" '이거 이렇게 계속 이런 식으로 일을 추진해야만 하는 것일까?' 화검상은 남아 있는 술을 병째 들고 들이키더니 몸을 일으켰다. "알겠소. 우리는 이제 서로 남남이고 나는 앞으로 그대를 귀찮게 하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시오. 나는 그저 먼 길을 떠나는 길에 들렀을 뿐이오......." 말과 함께 그는 느릿하게 휘청거리며 밖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홍계남이 문득 전음으로 가장 나이 많은 백발청년에게 물었다. "지금 바로 저자를 잡아죽여야 하는 것은 아닙니까?" 그 날카로운 인상의 백발쳥년은 싸늘하게 웃으며 전음으로 대꾸했다. "걱정하지마시오. 저자가 일단 이곳으로 온 이상 쉽게 떠나지는 않을 테니." 화검상은 그 주루를 나와 느릿하게 거리를 거닐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멍청한 표정으로 계속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이윽고 그는 북쪽으로 방향을 잡아 걸어가지 시작했다. 오던 길로 되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비록 멀리 가지는 않았지만 그가 워낙 느리게 걷고 있었기 때문에 숲속에 도착했을 때는 저녁노을이 붉게 물드는 황혼 무렵이었다. 이 숲은 비록 험하지는 않지만 산짐승들이 더러 있었다. 마치 그 산 위로 오르려는 듯이 계속 걸어올라가고 있는데, 문득 측면에서 기척이 일어나며 무엇인가 그를 향해 돌진해왔다. 화검상은 마치 너무나도 멍청해져서 그러한 것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일순 쾅, 하는 소음과 함께 그의 신형이 허공으로 날려가 근처의 나무에 사정없이 부딪치며 굴러떨어졌다. 느닷없이 달려와 그를 들이받은 것은 한 마리의 커다란 멧돼지였다. 그놈은 자신이 들이받았으면서도 그 반탄력에 의해 석 자나 뒤로 밀려났으나 지면을 힘차게 딛고서 간신히 넘어지지 않고 있었다. 화검상이 잠시 누운 그대로 있다가 일어나자 그놈은 몹시 화가 난 듯 씩씩거리며 다시 덤벼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화검상은 멍청한 표정으로 그 멧돼지를 바라보고 있다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지금 사방에는 먹을 것이 가득하다. 그런데도 너는 굳이 내가 먹고 싶었단 말이냐?" 그 멧돼지는 마치 그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 다시 거세게 달려들었다. 화검상은 그것을 보자 재삼 탄식하며 허리춤에서 장검(長劍)을 뽑아들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안 무림야그 출력일 :: 98/11/04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1 권 제 44 장 - 4 "어쩔 수가 없구나!" 그는 마음속으로 자신이 알고 있는 검법 하나를 떠올리며 엄숙한 표정으로 비스듬히 초식(招式)을 전개했다. 그런데 이때 갑자기 이변이 발생했다. 너무나도 정신이 없어서인지 그는 그만 멧돼지가 도착하기도 전에 초식을 전개해버렸다. 그는 한 순간 빠르게 멋드러진 초식을 전개했으나 그가 초식의 전개를 끝내고 멋진 자세를 잡을 무렵, 그 멧돼지는 그제서야 그의 앞으로 돌진해들고 있었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멋진 자세로 고개를 숙인 그의 이마와 멧돼지의 머리가 그만 정통으로 부딪쳤다. 그가 조금 움푹 패인 곳에 서 있었기 때문에 멧돼지는 부딪친 다음 뒤로 튕겨져나가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잠시 후에 화검상은 고개를 들며 멍청한 표정으로 이마를 툭툭 쳤다. "이거 희안한 일이로군. 내가 갑자기 철두공(鐵頭功)이라도 연마한 것이 아닐까?" 그의 이마는 물론 전혀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멧돼지는 이미 머리가 깨져서 죽어 있었고 두 개의 송곳니도 부러져 있었던 것이다. "너는 나를 원망하지 마라. 이것은 네가 스스로 자초한 일이고, 게다가 나도 너처럼 이마로 들이받지 않았느냐?" 문득 그의 뱃속에서 꼬르륵, 하는 소리가 천둥치듯 일어났다. 그는 점심 때 고작 술 한병을 마셨을 뿐 아직 아무것도 먹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 잊자! 사랑할 만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겠지만, 그러나 되지 않는 일을 억지로 할 수도 없는 일이 아닌가? 천하에는 그런 여자가 또 있을 것이다." 그는 그 죽은 멧돼지를 한 손에 들고 도로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해가 지고 주위가 어두워질 무렵 그는 제법 널찍한 공지에 당도했다. 오는 도중 준비한 두 개의 말뚝과 하나의 긴 장대로 죽은 멧돼지를 걸어서 아래쪽에 불을 지피고 굽기 시작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보 무림야그 출력일 :: 98/11/04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1 권 제 45 장 몽씨가문(夢氏家門)의 후예 제 45 장 몽씨가문(夢氏家門)의 후예 멧돼지를 굽기 위해서는 우선 가죽을 벗기고 내장을 긁어낸 다음 돌려가며 구워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아직 그런 일에는 서툴어서 그냥 불만 때고 있었다. 멧돼지의 털은 이내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타들어갔고 점차로 그런대로 일어가기 시작했다. 다행인 것은 이 부근에도 땔감들이 아주 많다는 것이다. 맑고 건조한 날씨이기 때문에 불길은 활활 타올랐고, 그 불빛을 받으며 화검상은 옆에 길게 드러누웠다. 뱃속에서는 연신 먹을 것을 달라고 아우성을 치고 있었지만 정작 그는 태연히 말을 중얼거렸다. "솔직히 그 백발낭자는 멋있었고, 좋았지만 그 옆의 다른 낭자도 그리 빠지는 편은 아니었다. 음, 몽천화(夢天華). 몽천화야! 너는 그러고 보면 공연히 서둘러서 고생을 자초한 것이 아니냔 말이다. 그런 사나운 여자들말고 시골에서 소박한 꿈을 안고 살아가는 여자들도 있을지 모른다......." 화검상은 이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아까의 그 몽(夢), 몽씨검법(夢氏劍法)은 약산 이상했다. 비록 한번 먹을 부려본 것이기는 해도, 어떻게 상대도 없이 그 검법이 끝까지 펼쳐질 수가 있었을까? 상대의 변화에 따라 변화하는 검법이라면 이건...... 이건 약간 이상하다. 마치 누구의 검법처럼 죽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화검상은 막대기 하나를 집어들어 누운채로 천천히 검법을 시전해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피곤한지 잠이 들었다. 그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제법 시간이 지난 뒤였는데, 이미 멧돼지는 시커멓게 타버리고 아래쪽의 불은 꺼져가고 있었다. 그는 잠시 유쾌한 표정이 되어 몸을 털고 일어나더니 검게 타버린 멧돼지의 앞으로 다가가 껍질을 벗겨내고 장검으로 고기를 도려내어 먹기 시작했다. 껍질은 시커멓게 탔지만 안쪽은 타지 않았고 오히려 알맞게 잘 구워져 있었다. 그는 장검을 휘둘러 껍질과 내장 등을 모두 떼어내고 골고루 맛을 보다가 문득 탄성을 지르며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역시 좋군. 좋아! 나는 차라리 검법보다는 요리 쪽에 더 재능이 있는지도 몰라.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면 차라리 주루나 차려서 돈을 벌어볼까? 음....... 이제야 정신이 나는군. 역시 먹지 않으면 정신이 없어지게 되는 거야." 옆에 아무도 없었는데 그는 마치 걸신들린 사람처럼 고기를 뜯어 먹기 시작했다. 그때 문득 앞쪽에서 일단의 사람들이 거의 기척을 내지 않고 나타났다. 바로 천룡무가의 사람들과 홍계남, 남궁신, 남궁설완 등이었다. 비단 지금 앞쪽뿐만 아니라 은근히 많은 사람들이 주위를 포위하고 있다는 것을 화검상은 알고 있었다. 화검상은 별로 놀라지도 않은 기색이었다. 그는 여전히 고기를 뜯어먹으면서 그들을 향해 말했다. "또 만나게 되는군. 모두 어디로 가시오? 아직 식사 전이라면 이리 와서 모두들 드시오. 사사리 이 멧돼지 고기는 흔하게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외다." 그들 중에는 남궁설완도 있었지만 화검상은 일부러 그녀를 못 본척 했다. 자칭 상심공자라고 말하던 그 백발청년이 다소 우울한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는 지금 고기를 먹으러 온 것이 아니오. 밥은 이미 충분히 먹었소. 또한 다른 어느 곳으로 가려고 하는 것도 아니오. 우리는 지금 당신의 제삿날을 정해주기 위해 온 것이오." 화검상은 한참 고기를 뜯어먹고 있다가 고개를 들며 의아한 듯이 말했다. "제삿날? 아니 누가 죽기라도 했단 말이오? 당신들은 좀 웃기는군. 뭔가 잘못 생각한 것이 아니오? 나는 아직 죽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당신들이 애써 그런 수고를 해줄 필요는 없소." 패왕도 팽인호가 일순 사오 장의 거리를 단숨에 다가들며 발로 멧돼지 고기를 차버리며 소리쳤다. "잘못 생각한 것은 바로 네놈이다! 네놈은 반드시 지금 죽게 될 것이다." 화검상은 일순 자신이 아끼던 음식이 날아가버리자 다소 어리둥절한 표정을 보였다. 그러다가 그는 한숨을 내쉬며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 "이건 참 어이가 없는 일이로군! 아까도 약간 이상하게 생각을 했었지만, 내가 비록 지체가 높아 보이는 당신들을 다소 귀찮게 하기는 했어도 그것 자체가 죽을 죄라고는 생각하지 않소. 하물며, 이제 나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이런 식으로 나온다는 것은 정말 너무한 일이 아니오?" 팽인호는 무공이 가장 낮은 편이었지만 한번 체면을 세워보려고 무리를 해서 나온 것이었다. 그런데 의외로 화검상이 순순히 나오는 것을 보자 배짱이 두둑해졌다. 그는 즉시 재빨리 우수를 내밀어 화검상의 멱살을 잡아 거칠게 들어올리며 소리쳤다. "이런 개 같은 후레자식! 너무한 일이라고? 당장에 뒈지고 싶으냐?" 체구도 몹시 우람한 데다가 부릅뜬 두 눈으로 노려보며 호통치는 그 모습은 상대방의 기를 질리게 하기에 족했다. 화검상은 눈살을 찌푸렸다. "정말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군. 내가 그렇게도 우습게 보인다는 말인가? 충분히 예의를 갖추어서 대해주었거늘, 나를 화나게 하지 마시오! 솔직히 내가 당신들을 두려워하는 줄 아시오? 이건 마지막 경고요." 말고 함께 화검상은 팽인호의 손을 가볍게 치더니 멱살 잡힌 손에서 풀려나와 박살이 나서 흩어진 고기들을 주우러 갔다. 그것은 마치 너무도 간단히 보이기도 했지만 절정고수인 팽인호의 그 솥뚜껑만한 손아귀를 그렇게 쉽게 벗어났다는 것은 기이한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화검상이 그저 가볍게 손을 치는 순간 팽인호가 스스로 멱살을 풀어준 것 같았는데, 정작 그 본인도 어찌 된 셈인지 모르는 듯 어리둥절하고 놀란 표정이었다. 화검상은 주변의 풀숲에서 그래도 가장 큰 살코기를 발견하고 마악 집어들려고 했다. 한데 순간 갑자기 그의 등뒤에서 옥색(玉色)의 검강(劍 )이 날벼락처럼 덮쳐들어 단숨에 머리와 등골, 그리고 허리 부분을 요절내려고 했다. 화검상은 뒤늦게 그러한 사실을 발견하고 어쩔 수가 없어서 그대로 앞으로 나뒹굴며 그 살검(殺劍)을 피했다. 그의 그러한 동작은 약간 허를 찌르는 부분이 있어서 다행히 부상은 입지 않았지만 새로 마련한 의복의 곳곳이 찢어지거나 구멍이 나게 되었다. 방금 전에 그를 공격한 사람은 언제 다가왔는지 그 백발소년이었다. 백발소년은 상대방이 아주 기이한 동작으로 아슬아슬하게 자신의 공격을 피해내자 다소 뜻밖이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는 재차 공격을 해왔다. 옥색의 검강이 강렬한 빛을 뿌리며 화검상의 치명요해를 파고드는 가운데 그 부근을 뒤덮어버렸다. 화검상은 아직 일어나지 못한 상황이라 위치가 다소 불리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는 이제 상대를 마주보고 있었다. 일견하기게 유멍한 그의 동작은 둔해 보여서, 백발소년의 공격에 적중된 것 같은데도 어느새 그의 몸은 옆으로 비켜나 있었고, 순식간에 그러한 동작을 십여 차례나 반복했다. 그것은 마치 백발소년이 일부러 헛치고 있는 듯한 기묘한 광경이었다. 이러 다시 백발소년의 장검이 그의 가슴으로 파고들었는데, 또다시 방향이 미끄러지는 듯하므로 백발소년은 얼른 초식을 변화시켰다. 하지만 화검상의 몸은 움직이는 듯하면서도 움직이지 않았고, 움직이지 않는 듯하면서도 이미 움직였다. 백발소년이 재차 본래의 흐름으로 전환하려고 하는데, 어느새 화검상은 좌측으로 선 자나 비켜서 있었고, 흡사 재주를 넘듯 빠르게 몸을 회전시키며 상대의 공격권을 벗어나고 있었다. 백발소년은 이미 무리하게 두 번이나 변초(變招)를 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그것이 매끄럽지 않아서 다소 주춤했다. 화검상은 그사이에 몸을 바로 세우며 서서 소리치고 있었다. "이, 이런 개 같은...... 하지만 나는 한번 더당신들에게 기회를 주겠소. 목숨이 아깝다면 지금 즉시 모두들 엎드려 사죄하고 물러가도록 하시오!" 의복이 여기저기가 찢어지고 먼지가 묻어서 낭패한 목골이었지만 화검상의 안색은 오히려 당당해 보였다. 백발소년은 상대가 흡사 미꾸라지와도 같이 자신의 공격을 피해냈을 뿐만 아니라 거기에 한술 더 떠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보고 급격히 화가 치밀어 다시 공격하려고 했다. 한데 그때 백발낭자가 갑자기 소리치며 그를 제지했다. "잠깐만! 이봐요. 당신은 아직 자신의 이름마저 밝히지 않았는데, 우선 통성명부터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 마침 화검상은 공교롭게도 남궁설완의 앞에 서 있었는데, 그녀는 그렇지 않아도 그에게 감정이 좋지 않은 데다가 그 좋은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다. 화검상이 뭐라 대꾸하려고 머뭇거리는 순간 그녀는 물실호기라, 즉각 그의 등을 향해 남궁세가(南宮世家)의 독문절기(獨門絶技)인 천풍장력(天風掌力)을 날렸다. 화검상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가 느닷없이 쾅, 하고 등판에 장력을 얻어맞아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아니, 그는 마악 코를 땅바닥에 처박으려는 순간 장력을 일으켜 오뚝이처럼 도로 일어났으며 뒤를 돌아보고는 몸시 화가 치밀어 안색이 시뻘개졌다. "이, 이 계집이!" 남궁설완은 이미 자신의 실수를 직감했다. 자신보다 훨씬 무공이 뛰어난 백발소년도 그를 어쩌지 못했는데 아무리 기습을 한다고 해도 그녀로선 도저히 무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녀로선 그저 얌전히 가만있는 것이 더 나을 뻔했다. 하지만 이미 기왕에 시작한 일이니 이제는 그만둘 수도 없고 하여 그녀는 황급히 무한보(無限步)로 몸을 피하는 한편 장검을 뽑으려고 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어었다. 그녀는 분멍히 무한보로 몸을 피했는데도 기이하게도 오히려 그의 앞으로 더 다가서 있었던 것이다. 화검상은 크게 격분하여 그녀의 혈도를 지풍(指風)으로 제압하는 한편 따귀를 후려치며 소리쳤다. "이 더러운 년, 감히 지아비를 모살하려고 하다니! 아니, 아니지, 나는 이제 그녀와는 상관이 없지......." 남궁설완 그녀의 본래 아주 갸름하고도 완벽히 섬세하며 깨끗한 미모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바람에 대뜸 양 뺨이 퉁퉁 부어올랐다. 소신룡(少神龍) 남궁신(南宮信)은 바로 그 옆에 있었는데 자신의 누이가 화검상에게 제압된 것을 보고 즉시 장검을 뽑아들고 공격해 왔다. 마침 화검상은 남궁설완에게 소리치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던 참이라 무심코 한 발을 들어 그것에 상대했다. 하지만 이 남궁신의 과거 후기지수들 중의 최고라고 불리던 사람이다. 공력도 이미 사 갑자 반에 이르렀을 뿐만 아니라 검법의 정교함이나 예리함이 범상치 않다. 화검상은 발길질로 그의 장검을 튕겨내려고 했으나, 섬전십삼검뢰(閃電十三劍雷)가 펼쳐지자 그 뇌검강(雷劍 )에 의해 벌써 바짓가랑이가 찢겨져 나갔다. 화검상은 이에 당황하여 황급히 발길을 빠르게 수십 차례나 변화시켰으나 어느새 남궁신의 장검도 무수한 변화를 일으키며 그림자처럼 따라붙어 그의 바짓가랑이를 걸레쪽처럼 갈갈이 찢어놓고 있었다. "어이쿠, 이런!"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무림야그 출력일 :: 98/11/04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1 권 제 45 장 - 1 풍검진과 풍검신 역시 그 부근에 있었는데 이에 편승하여 각자 장검을 뽑아들고 좌우에서 공격해 들어왔다. 그런데 이건 이상한 일이었다. 화검상의 움직임이 다소 멈칫한 듯해서 남궁신이 그의 한쪽 다리를 요절내려고 마악 공력을 집중시키려는 순간, 느닷없이 화검상의 다리가 길쭉하게 늘어났다. 사람의 다리가 그렇게 갑자기 정말로 늘어날 수는 없는 일이다. 화검상의 다리는 멈칫하는 듯했으나 기실은 오치려 전진하여 남궁신의 예상을 벗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갑자기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남궁신은 발에 가슴이 채여서 뒤로 일 장이나 날려갔으며 입으로 붉은 핏물을 토해냈고 그대로 제압되어 움직이지 못했다. 그것을 시작으로 화검상의 몸은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풍검진과 풍검심은 자신들의 장검이 너무나 어이없는 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너무나도 심하게 빗나갔기에 그들은 도중에 변초(變招)를 하기도 곤란해졌는데, 그들은 도무지 이와 같은 실수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미처 그들은 그런 놀라움을 감상해볼 시간도 없이 양 뺨을 서너 차례씩 얻어맞고 정신이 아득해지는 가운데 제압당하고 말았다. 그러한 상황의 변화는 그야말로 한 순간에 날벼락처럼 벌어져서 백발낭자 등은 제지할 수도 없었다. 화검상은 너덜너덜해진 옷차림으로 몹시 우울하고 분노한 표정으로 이윽고 백발낭자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아무런 죄도 없었는데 이와 같이 한꺼번에 내게 독수(毒手)를 전개하다니! 게다가 내가 이미 몇 차례나 경고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 기분이 매우 좋지 않아. 나는 막 죽고 싶던 참이었는데 너희들은 나를 이렇게 건드렸군. 좋아, 어디 한번 해보기로 하지! 모두 한꺼번에 덤벼라! 순진하고 죄없는 사람을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지. 흐흐흐!" 조금 전에 화검상의 그러한 손속들은 다소 어수룩한 듯하면서도 몹시 기이하여 도무지 믿기지 않으면서도 흡사 장난 같기도 했다. 백발청년 등은 자신도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하고 생각해 보면서 절로 안색이 변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백발낭자는 안색을 다시 바로하며 말했다. "우리가 지금 아무런 이유도 없이 당신을 찾아온 것은 아니에요. 당신은 그날 태행산에서 백혈단의 잔당들을 도와 탈출시켰죠. 설마 아니라고 발뺌을 할 건가요?" 화검상은 크게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는 거요? 나느 그 백혈단이라는 것이 뭔지도 모르고 태행산의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 아니 태행산에는 가보기는 했지. 낭자는 지금 간악스럽기도 나에게 더러운 누명을 씌우려고 하고 있군! 으흐흐! 하긴 상관이 없겠지, 나는 이미 모든 것을 포기한 상태요. 어서 다들 덤비라는데 무슨 잔말이 그리 많소?" 백발소년은 그렇지 않아도 공격을 하다가 만 상황이었는데, 화검상의 그런 말을 듣자 몹시 분노하여 소리쳤다. "누나, 말할 필요도 없어요! 어서 저 시골 촌뜨기 같은 놈을 죽여버리자고요!" 백발낭자는 손을 저어 백발소년을 제지한 다음에 정색을 하고 다시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잘못 오해를 한 것이로군요. 아직 정확히 판단할 수는 없지만 증거도 없으니 일단 사과를 드리도록 하겠어요. 이미 말했듯이 우리는 먼저 서로를 아는 것이 좋겠어요." 이어 그녀는 자신들의 일행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홍계남과 남궁신 등에 대해서는 화검상도 익히 알고 있다. 몰랐던 것은 그 천륭무가의 사람들인데, 먼저 나이가 스물일곱 정도로 가장 많아 보이는, 좌측 뺨에 긴 검상이 있는 날카로운 인상의 백발청년은 천륭무가의 둘째로서, 석이공자(石二公子)라고 불리며 이름은 석한천(石恨天)이었다. 자칭 상심공자라고 하고 용모가 여성적으로 수려하게 생긴 백발청년은 그 아래인 셋째였는데 나이가 화검상보다는 한 살 정도 어려 보이고 석삼공자(石三公子) 석한상(石恨上)이라고 했다. 지금 화검상에게 자신의 일행을 소개해주고 있는 백발낭자는 그 아래인 넷째였는데, 나이는 스물하나 정도 되어 보이고 이름은 석소군주(石少郡主) 석한절(石恨絶)이라고 했다. 화검상은 음양절맥의 여자는 보기는 했어도 정작 이름에 절(絶)자를 쓰고 있는 여자는 처음 보는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그 백발소년은 나이가 십칠 세 정도 되어 보였는데, 다섯째로 석사공자(石四公子) 석한맥(石恨脈)이라고 했다. 화검상은 그들의 이름이 하나같이 괴이하다고 생각하고 있다가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간파하고 어이없는 일이라고 느꼈다. 그들의 이름을 연결해보면 무슨 천상절맥(天上絶脈)을 한(恨)한다고 하는 말이 되는 것이다. 세상에 이렇게 이름을 짓는 사람들도 드물 것이다. '어쩐지 너희들의 성이 석(石)이라더니 모두들 돌대가리들이었군!' 화검상은 이어 문득 가장 나이 많은 석한천이 둘째라는 데에 생각이 미치고, 과연 맏이는 어떤 사람이며 어떤 이름을 가지고 있을까 하고 혼자 염두를 굴려보았다. 그들의 소개가 모두 끝나자 화검상은 매우 못마땅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는 표정으로 이윽고 자기 자신을 소개했다. "음, 나는 몽, 몽천화(夢天華)라고 하오. 우리 몽씨가문은 대대로 훌륭한 전통을 이어왔지만 내 대에 이르러 그만 끊어지게 되었지. 고향은, 고향은...... 음, 묻지마시오. 생각할수록 마음만 되로워지니까. 하북성(河北省)의 황하강변인데, 워낙 어려서 그 일을 당해 지금은 그 기억도 희미하지만 아직 우리 몽씨가문의 절학들인 몽몽신공(夢夢神功)과 몽씨검법(夢氏劍法) 등은 남아 있지. 나는 그간 절치부심하고 산속에서 그러한 절학들을 연마해왔었는데 최근에 대성을 하고 고향에 돌아가보니 원수는 이미 죽어버리고 없더군. 흐흐흐......! 자, 그럼 이제 싸움을 시작해보도록 합시다!" 화검상은 한번 화천몽이라는 이름으로 바꾸기는 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마각이 쉽게 드러날지도 몰라 이번엔 아예 그 글자를 뒤집어서 성씨까지 바꿔버린 것이다. 화검상의 자오항한 자기 소개를 유심히 다 듣고난 그 백발낭자 석한절은 문득 가볍게 미소한 뒤 정색하고 말했다. "시작하다니 대체 뭘 시작하죠? 우리는 이미 사과를 하지 않았나요?" 화검상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더니 대뜸 오만상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뭐라고? 그래 사람을 죽여놓고 사과만 하면 된단 말인가? 흐흐흐! 그래, 좋아. 우리 몽씨가문의 사람들은 대대로 너그러웠으니 이번에도 내가 양보하기로 하지. 대신 당신들은 반드시 내 앞에 엎드려 세 번 절하고 잘못을 빌어야 하오." 문득 다른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섰다. 그는 가장 나이가 많은 석이공자 석한천이었다. "자네는 흐흐, 권하는 술을 마시지 않고 굳이 벌주를 마시려고 하는군! 감히 천하(天下)를 상대로 싸움을 벌이려고 한단 말인가?" 지금 그들 가운데 이 석한천의 무공이 가장 높다. 화검상도 그가 나서자 다소 긴장하며 조심하는 눈치였다. "천하? 천하라고......" 천륭무가가 감히 천하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그렇게 대단하단 말인가? 하지만 우리 몽, 몽씨가문의 사람들은 결코 두려워하지 않소. 흐흐흐! 어차피 나는 죽고 싶은 심정이오!" 석한천은 음산하게 웃으며 말했다. "좋다. 네가 정말로 그렇게 죽고 싶은 심정이라면 그 부탁을 못 들어줄 것도 없지!" 말과 함께 그는 장검을 뽑아들고 앞으로 쇄도해들었다. 그 모습은 마치 별로 움직이지도 않는 것 같은데도 그의 몸과 장검이 앞으로 길쭉하게 늘어나며 칼날 같은 살기(殺氣)가 화검상의 전신을 파고드는 것과도 같았다. 화검상은 마치 광란하는 듯한 살기 속에 일순 에워싸여버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건 바로 잔인무쌍하며 방어를 별로 염두에 두지 않는 공격을 위한 공격적인 겁법이다. 비록 같은 천륭무가의 무극옥황검(無極玉皇劍)이라고 해도 그 시전자의 의도에 따라 그 성질은 이렇게 달라진다. 흡사 살귀(殺鬼)를 연상시키는 이러한 검법을 대하게 되면 상대는 우선 기가 질리게 되는 것은 물몰이요. 약간 당황하게 된다. 설령 마주 격돌하여 상대의 목을 베어버린다고 해도 역시 이쪽도 그에 버금가는 피해를 입기가 십상이기 때문이다. 이건 또한 결사적인 공격과도 그 의미가 달라진다. 흔히 이런 공격을 만나면 상대는 두 가지의 선택을 하게 되는데, 하나는 방어적인 입장이고, 다른 하나는 공격적인 것이다. 하지만 실상 그 두 가지 모두 이쪽에서 노리는 바이다. 화검상은 일단은 몸을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했다. 설사 이런 검법이 무서운 듯해도 그만큼 커다란 단점이 있으며, 정도의 검법이란 공연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데 바로 그 순간, 화검상은 뒤쪽에서 서늘한 느낌을 받았다. 백발소년 석한맥이 어느새 그의 지척으로 다가들어 소리없는 공격을 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소리없는 공격은 고도의 정신집중과 공력이 소모되며 결코 간단하지 않은 무공이다. 아직 검이 이르지 않았는데도 화검상은 흡사 뼛속까지 서늘해지는 것만 같았다. 앞쪽의 석한천의 공격만 해도 무시무시한데 뒤의 석한맥의 기습까지 감당해야 하니 이는 곤란한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다급히 몸을 움직여 피하는 가운데 퍽퍽퍽,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옷자락이 마구 찢겨져나가 주위에 흩어졌다. '이, 이건 정말 장난이 아니군1' 화검상은 그만 다급해져서 열심히 몸을 사방으로 움직여 피하는 가운데 뒤쪽의 석한맥이 뒤로 돌아가고자 했다. 부욱, 하는 소리와 함께 석한천의 장검이 아슬아슬하게 그의 옷만 찢고 옆구리 쪽으로 스쳐지나갔다. 석한맥의 검은 그 순간 다시 그의 허리를 노리고 파고들고 있었다. 그런데 석한맥은 분명히 화검상의 허리를 관통한 줄로 알았는데 느닷없이 손끝이 허전한 감각을 맛보았다. 화검상의 신형이 갑자기 환상처럼 스러지며 그의 두에 가 있었던 것이다. '휴우, 이제야 됐군!' 화검상은 이 나이 어린 석한맥을 이용하고자 한 것이다. 신법으 아무래도 그가 더 빠르며 석한맥을 적절히 이용할 경우 석한천은 제대로 그 살벌한 공격을 감행할 수가 없다. 그로 인해 빈틈이 생기는 것은 그와 같은 무공의 단점 중의 하나였다. 그런데 화검상은 마악 석한맥을 제압하려는 순간, 다시 양쪽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어느새 상심공자 석한상과 백발낭자 석한절이 장검을 뽑아들고 좌우에서 그를 협공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들의 무공은 이미 초절정의 경지여서 석한맥과 또 다르고 석한천과도 그리 차이가 나지 않는다. 화검상은 그만 다소 안이하게 대처하는 바람에 손발이 어지러워지고 말았다. 석한상의 검법은 몹시 섬세하고 예리하며 석한절의 검법은 아주 냉정하고 침착하다. 우선 허리를 끊어놓을 듯이 깊이 파고드는 석한상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그쪽으로 다급히 신형을 움직이는 순간 어느새 다가선 석한절의 장검에 의해 그의 한쪽 다리가 길게 찢겨져나갔다. 비록 약간 빗나갔고 호신강이게 의해 튕겨져 상처가 깊지 않은 것이라고는 해도, 피가 튀자 화검상은 그만 다오항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황망히 신형을 십여 차례 움직여 뒤로 피하면서 그는 장검을 뽑아 아무렇게나 휘저으며 소리쳐싿. "멈, 멈추시오. 이런 식으로 비열하게 나온다면 나의 치명살초를 원망하지 마시오!" 아주 짧은 순간에 긴박하게 벌어지는 싸움이기 때문에 도중에 말을 할 기회가 생긴다는 것은 거짓말이었다. 그가 겨우 몇 마디를 꺼내기도 전에 다시 석한상과 석한절은 어느새 다가들어 그의 좌우를 엄습해들었는데, 그러나 이상한 일이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무림야그 출력일 :: 98/11/04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1 권 제 45 장 - 2 화검상의 그 아무렇게나 휘두르는 듯한 검법이 이상했다. 전혀 황당하여 허공을 헛치는 듯한 그의 검은 은근히 두 사람의 초식을 제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반격까지 엿보고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은 따라서 순간적으로 십여 차례의 초식을 변화시켰지만 놀랍게도 혼란스러운 그 겁법에 이끌려 조금도 승기를 잡지 못했다. 석한상은 보기와는 달리 무학에 대한 이해가 깊어서 이것은 혹시 자신들의 착각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싿. 그는 이번에는 공격 도중 결정적인 순간에 상대방 초식의 위협을 무시하고 그대로 화검상의 허리와 목을 동시에 노리며 쇄도해들었다. 과연 화검상의 초식은 우연히 그런 흐름을 타는 것이지, 정말로 상대방 초식에 허를 찌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석한상은 검이 막 그의 허리를 베는 순간 화검상은 그만 당황하여 장검으로 그것을 막았고 쨍, 하는 소리와 함께 검의 중간이 부러지며 날아갔다. 석한상은 이미 그런 변화에 대해 익숙하기에 이번에는 화검상의 앞뒤의 허점을 훔치면서 교묘하게 목을 베려고 했다. 하지만 갑자기 화검상의 부러진 장검의 파편이 자신의 오른팔에 깊숙이 박혀든 것을 보고 어리둥절해졌다. 무공이란 갑자기 흐름이 중단되게 되면 어려워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 마침 그 파편은 교묘하게도 그 요혈(要穴)을 제압하고 있어서 그는 즉시 그 파편을 뽑아내지 않는 한 검법 시전이 곤란해지게 되었다. 이 검의 파편을 날리는 방법도 일종의 검법의 하나에 들어가가도 하지만 조금 전의 그 수법은 그것과는 달랐고 오히려 너무나도 공교롭고 정확하여 마치 우연인 것 같았다. 갑자기 그 허점을 놓치지 않고 발길질이 날아들어 석한상의 몸을 일장 밖으로 날려버렸다. 화검상은 갑자기 장검이 부러지게 되자 검법도 흐트러지게 되고 당황하여 석한상에게만 일순 집착하여 발길질로 그를 날려버렸다. 하지만 이것은 그의 중대한 실수였다. 석한상을 날려버린 순간 석한절의 공격을 의식하게 되었고 마악 거기에 대응하려고 하는데 어느새 목 아래가 서늘한 것이 아닌가? 석한절의 장검은 어느새 관채를 밝히며 그의 목을 베어오고 있었다. 이런 순간을 실로 생각할 여우가 있는 것이 아니다. 화검상은 그만 안색이 시꺼멓게 변하여 뒤로 몸을 젖혔다. 돌발적인 순간에 그렇게 갑자기 몸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도 기이한 일이지만 석한절의 검끝은 한번 잡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계속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화검상의 몸이 바닥을 뒹굴면서 사력을 다해 눈부시게 움직이며 그것을 벗어나려고 했지만, 그녀의 장검은 계속 변화를 일으키며 화검상을 노리는 것이 마치 옥색의 화려한 검망(劍 )이 그의 몸을 완전히 뒤덮은 것 같았다. '아이구, 이거 죽겠군!' 적은 그녀 하나만이 아니기 때문에 화검상은 비상수단을 쓰는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도 심하게 몰려 있어서 방어도 어려운 상황이라 그는 피하기에 급급해 하다가 느닷없이 오히려 그녀의 앞으로 파고들었다. 달아나는 적을 계속 추격하다가 갑자기 상대가 자신의 앞으로 달려들었다고 해도 그리 달라질 것은 없었다. 그녀는 여전히 태연하게 옥색의 검강을 일으키며 화검상의 목을 베어갔다. 화검상이 바닥에 드러누운 상태로 순식간에 수십 번이나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검을 피하는 이러한 동작도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대여섯 번을 피하다가 느닷없이 좌수를 위로 내밀었다. 지금의 상황은 그가 오른손의 장검을 움직여 방어할 여유도 거의 없는 상황이었다. 미처 그가 방어하기도 전에 허점이 먼저 드러나 목이 잘려나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물며 목이 잘려나가는 것을 감수하고서 왼손을 움직일 수가 있겠는가? 석한절이 그런 것을 미처 예상 못한 것은 바로 그런 이유였고, 그러나 화검상은 어이없게도 좌수를 움직였다. 실상은 화검상의 왼손이 미처 닿기도 전에 그녀의 장검이 그의 목을 베어버렸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가 왼손으로 노리고 있는 부위는 바로 그녀의 아랫도리, 가장 수치스런 부분이었다. 만일 이 상황에서 그녀가 더욱 냉정할 수만 있었다면 당장 화검상의 목은 잘려나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상대방의 의도를 안 순간 문득 그녀의 안색은 붉어졌고 검끝이 멈칫하며 변화가 흐려졌다. 이런 고수들의 격돌이라는 것은 순간적인 움직임이며 그 빠르기가 거의 눈에 보이지도 않는 것이기에 그 짧은 순간의 지체는 상황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화검상은 오직 이 다급한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이 방법을 택한 것이고, 정말로 그런 짓을 하려는 생각은 없었다. 그는 자신이 그렇게 하면 혹시 상대가 몸을 피할 경우 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가 있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반쯤 그의 희망대로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몸을 피한 것이 아니라 그녀는 거의 가만히 있었다. 그것은 너무도 뜻밖이고 당혹스러웠기 때문이다. 검법 등의 무공을 펼치는 경우, 대개 사람들은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지기 때문에 오히려 그 심리의 허점이 찔릴 경우 더 당황해질 수도 있는 것이다. 화검상은 문득 손끝에 뭉클, 하는 감촉을 느끼고 그만 어리둥절해지며 안색이 벌게졌다. 그는 이 순간에 빨리 달아나야 하는데 오히려 당황하여 정신이 멍청해져 있었다. 정신을 먼저 차린 사람은 오히려 그녀였으며, 그가 얼른 정신을 차리고 몸을 피하려고 하는데 그녀의 검이 날아들며 목 밑에 후끈한 감촉이 일었다. 비록 가볍기는 하지만 검강이 작용하여 그의 목 밑에 상흔을 만들어놓은 것이다. 화검상은 내심 어이쿠, 하고 비명을 질렀지만 그 순간에 검강과 호신강기가 부딪치며 오히려 그녀의 검법에 장애를 주었고 그로 하여금 피할 여유를 주게 되었다. 비록 그것이 미세하기는 하지만 분명히 상황에 영향을 미쳤다. 그는 비로소 숨을 돌릴 수가 있었고 부러진 장검으로 대응할 수가 있었으며 우선 뒤로 서너 번 몸을 구르면서 일어섰다. 화검상은 이제 겨우 그 다급한 위기에서 벗어난 것이다. 그러나 아직 정말로 안전해진 것은 아니어서, 어느새 다른 세 명이 좌우와 등뒤에서 살벌하게 공격해 들어오고 있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무림야그 출력일 :: 98/11/04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1 권 제 46 장 사랑과 증오 제 46 장 사랑과 증오 '이거 정말 정신없이 당하는군!' 이제는 사면에서 협공을 당하게 된 것이니 화검상은 그만 울상을 짓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석한절의 공력은 말할 것도 없고, 석한맥은 이제는 무모할 정도로 저돌적인 공격을 해오고 있었으며, 석한천의 공격은 정말로 무섭고 등뒤의 석한상의 공격도 그에 못지 않았다. 실로 이런 상황에서 무사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화검상은 일면 부러진 검으로 방어하면서 그야말로 눈부시게 그들의 공격은 피했지만 벌써 온몸에 대여섯 군데의 상처를 입고 있었다. 비록 그 상처들이 모두 가벼운 것들이기는 해도 이제 등뒤의 석한상이 본격적으로 공격해 들어온다면 문제는 달라질 것이다. 화검상은 이 등뒤의 석한상에 대해 몹시 꺼림칙한 마음이 들지않을 수가 없었다. 아까와는 달리 그는 이번에는 지나칠 정도로 신중했고 조심스러워 보였다. 다른 사람들이 열 번의 변초(變招)를 일으키는 동안 그는 아직 한번도 뚜렷한 공격을 해오지 않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야말로 치명적인 공격을 위해 기회를 노리고 있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화검상은 지금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오히려 그 등뒤의 석한상을 제압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으며 즉시 뒤로 움직였다. 그것은 비록 등의 어느 부위를 심하게 당한다고 해도 치명 요해만은 피하여 상황을 반전시키자는 생각이었으며 다소 위험한 착상이기도 했다. 그가 등을 바싹 들이대자 과연 그 석한상은 약간 주춤하며 공격할 태세를 보였다. 순간 화검상은 전면과 좌우의 공격을 상대하면서 다급히 몸을 날아올려 석한상의 몸을 넘어갔다. 그러나 기실 그건 그의 생각이었을 뿐 그는 아직 상대의 몸을 넘어가지 못했다. 뜻밖에도 석한상은 갑자기 키도 몹시 커졌을 뿐만 아니라 검이 아닌 크고 무거운 도(刀)를 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석한상의 키가 갑자기 두 자가 커졌기 때문에 화검상은 계산을 잘못하여 그만 넘어가지 못하고 걸리게 된 것이다. 하지만 무림인이 병기를 갑자기 바꾸는 문제는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키가 갑자기 커질 수가 있을까? 당황해 하면서도 공중에 뜬 상태로 내려다보니, 뜻밖에도 그의 생각은 빗나갔다. 알고 보니 상대는 석한상이 아니라 패왕도 팽인호가 아닌가? 팽인호는 그 동안 자신의 무공이 약하다는 것을 느끼고 조심하고 있다가 화검상이 위기에 몰리자 그의 배후를 치려고 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는 화검상이 자신을 목표로 하고 그렇게 갑자기 위로 떠오를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화검상은 그렇지 않아도 불리하던 상황에 이제 다시 공중에 떠오르게 되어 운신이 불편해지자 더욱 어렵게 되었다. 천륭무가의 이 젊은이들은 결코 이런 기회를 놓칠 만큼 우둔하지 않았다. 팽인호도 화검상이 바로 자신의 머리 위에 떠올라 있으므로 마치 자신의 목을 짓누르는 것만 같아 황급히 도(刀)를 위로 휘두르며 공격했는데, 그의 공격보다 다른 세 사람의 공격이 더욱 빨리 당도하는 것 같았다. 이런 상황이라면 비록 최선을 다해 방어한다고 해도 한두 사람의 치명적인 공격을 피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화검상은 그들 세 사람이 마치 절초의 기회를 만난 듯 몸을 날려 삼 면에서 덮쳐드는 것을 보고 당황한 나머지 공격해 들어오는 팽인호의 칼날을 잡고 거꾸로 재주를 부렸다. 팽인호의 무공이 약한 데다가 이렇게 상대의 공격을 역이용하는 방법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어서 화검상의 몸은 그 탄력에 의해 급격히 아래로 내려갔고 반대로 팽인호의 몸이 공중으로 떠올라 화검상의 자리에 있게 되었다. 이러한 수단은 매우 신기해 보이고 실행하기가 어렵기는 하지만 이치가 그리 난해한 것은 아니다. 마침 석한천 등의 공격은 바로 지척에서 덮쳐들고 있는 상황이었다. 팽인호는 갑자기 변한 자신의 위치에 대해 놀라 어리둥절해 하다가 그 무시무시한 공격들을 보고 그만 놀라 소리쳤다. "나, 나요! 제발 살려주시오......!" 팽인호가 그들의 공격을 당해낼 수 없다는 것은 말할 나위가 없는 일이다. 가장 먼저 도달한 사람은 석한천이었는데, 그는 물론 가장 먼저 그런 변화를 알아차렸지만 살기가 강한 그의 검법의 흐름상 그렇게 갑자기 검세를 완전히 되돌린다는 것은 무리였다. 하지만 그는 동료를 죽일 수는 없었으므로 무리임에도 불고하고 검세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석한절의 검법은 그래도 가장 안정되어 있어서 도중에 검세를 돌리는 데 가장 무리가 적은 편이었다. 정작 문제가 심한 것은 석한맥이었는데, 그는 정말로 무리를 해서 기필코 화검상을 죽일 작정이었기 때문에 전력을 다한 십이성(十二成)의 공격을 퍼부은 것이고, 막상 그렇게 상황이 급격히 변하자 도저히 무리를 한다고 해도 검세를 돌릴 수가 없었다. 그는 그야말로 온갖 기력을 다해 검세를 비틀었지만 이미 손에 익은 검초(檢招)는 예정된 길을 가며 팽인호의 가슴을 꿰뚫어버렸다. 그나마 석한맥이 나중에 검세를 비틀어서 치명요해는 피한 것이지 하마터면 팽인호는 그 자리에서 즉사할 뻔했다. 물론 이 모든 변화가 그들이 허공에 떠 있는 바람에 운신이 불편해져서 상황이 악화된 것이기도 하다. 석한절은 비록 가장 적기는 해도 일단 무리를 한 이상 내기(內氣)가 혼란스러워져서 그것을 조절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고, 허공에서 다소 주춤하는 사이에 어느새 다가든 화검상에게 제압당했고 또한 석한천도 이미 제압된 것을 알게 되었다. 아무리 상황이 그렇다고 해도 그녀는 일순 석한천이 그렇게 간단히 제압당한 것이 믿을 수 없는 듯한 기분이 되었다. 석한맥은 너무나도 무리한 탓에 약간의 내상(內傷)마저 입게 되었으므로 입가에 약간의 피가 흘러나왔다. 그 역시 간단히 제압할 수 있었으므로, 화검상은 이윽고 부러진 장검을 높이 쳐들고 소리쳤다. 으흐하하하! 드디어 모든 사악한 자들을 물리치고 광명천지를 이루었구나. 장하다, 몽씨가문의 후예여! 음, 아니 이건 돌아가신 부모님이 해야 할 말이지......?" 기실 석한상은 아까 화검상의 발길에 차여 내상을 입었을 뿐만 아니라 교묘히 제압되어 꼼짝도 못하고 있었다. 팽인호는 마치 바윗덩이처럼 떨어져 내렸는데 아직 정신은 멀쩡해서 그가 건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비, 빌어먹을 이, 이런......." 하지만 그는 이내 그 말을 다 끝맺지 못하고 혼절하고 말았다. 화검상은 그의 몸에서 쏟아지는 피를 지혈시켜 간단히 응급조치하고 역시 제압해버렸다. 조금 전까지 혼란스럽고 정신이 하나도 없던 장내는 이렇게 갑자기 조용해지고 말았다. 화검상의 점혈수법은 곡선적이라 물론 제압된 그 누구도 마혈(麻穴)을 풀 생각은 버려야 했다. 석한절은 잠시 점혈된 부위를 검토해보다가 입을 열어 말했다. "대체 우리를 어떻게 할 셈이죠?" '흥, 어떻게 할 거냐고? 나는 이미 너희들이 무자비하게 백혈단의 사람들을 다 죽이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화검상은 약간 표정이 무거워지며 대답했다. "어떻게 하다니? 조금 있다가......, 음 자정이 되려면 아직 멀었군. 어쨋든 깨끗이 너희들을 모두 죽여버리고 나도......, 나도 다른 방법을 찾아보는 수밖에 없지." 화검상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본래는 그래도 고향에라도 돌아가 장사를 해볼까 했는데, 이제는 그것도 틀려버렸어. 흘흘, 이렇게 된 바에는 솔직히 너희들을 모두 죽이고 나도 깨끗이 끝낼 작정이야. 이건 너희들이 자초한 일이고, 게다가 내게도 이득은 없으니 너희들에게도 손해는 없을 거야!" 말을 끝내자, 화검상은 고개를 덜리며 몹시 고독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석한절은 가볍게 미소를 보인 다음에 말했다. "당신은 비록 무공은 대단해도 세속에 물들지 않아서 너무나 순진하고 바보스럽군요?" 화검상은 스스로 깊은 고독에 잠겨 있다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바보스럽다고? 내가? 흐흐흐, 그러는 낭자는 나보다 더 바보같이 보이오. 실은 아까 내가 낭자의 으흐흐......! 그만둡시다." 석한절은 그 말에 은근히 안색이 붉어졌으나 지금은 어두워져 그런 미세한 변화는 다른 사람들에게 잘 드러나지 않았다. 그녀는 다시 말했다. "좋아요. 당신이 세상에서 가장 똑똑하다고 말해두죠. 하지만 본래 당신이 이렇게 좌절하게 된 것은 한 여인의 사랑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요?" 화검상은 슬쩍 고개를 돌려 남궁설완의 얼굴을 돌아보고는 무거운 표정을 대꾸했다. "그래서 어쨌단 말이오? 나는 이미 그녀와는 남남이니 지금에 와서 그녀를 특별히 생각해주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소." 석한절은 다시 말했다. "당신은 너무 생각이 단순하군요. 사람은 상황에 따라 생각이 변할 수도 있는 일이에요. 지금 그녀의 생각이 달라졌을 수도 있는 일이잖아요." "뭐, 뭐라고?" 화검상은 일순 큰 충격을 받은 듯 멍한 표정으로 다시 남궁설완을 돌아보았다. "그, 그게 정말이오? 하지만 그녀가 무엇 때문에 갑자기 생각이 바뀌겠소? 그녀는 나를 마치 더러운 벌레 보듯이 했는데......." 석한절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그건 바로 당신이 아직 여자의 심리를 모르기 때문이죠. 여자들은 생각이 복잡한 듯해도 오히려 단순해요. 현실에 아주 민감한 현이죠. 아까 그녀는 당신의 능력을 몰랐지만, 이제는 당신이 대단한 무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잘 알 거예요. 여태 천륭무가를 이긴 사람은 없었는데 당신은 놀랍게도 조금 전에 그 일을 해낸 것이죠." 화검상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당신의 생각도 바로 그렇다는 말이오?" 석한절은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물론이에요. 만일 당신이 내게 그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면 나는 오히려 그런 소영웅(少英雄)에게 당장 반해버렸을 거예요." "소, 소영웅이라......?" 화검상은 문득 혼자말로 중얼거리다가 크게 득의해진 듯 어깨를 펴고 앙천대소를 터뜨렸다. "와핫핫핫! 과연 그렀소. 나는 사실 우리 몽씨가문에서도 보기 드문 인재(人才)라는 소리를 들었었지. 실로 나는 천하의 여인들이 모두 탐내는 그런 영웅호걸일지도 모르오. 나는 사실 누구에게나 정을 주는 사람은 아니기 때문이오. 흐흐흐!" 말과 함께 그는 걸어서 남궁설완의 앞에 이르렀다. "음, 낭......, 낭자! 오랜만이군." 남궁설완은 이 순간 왠지 몹시 분개한 듯 안색이 시퍼렇게 변해있었다. 그녀는 처음에는 화검상을 쳐다보지도 않다가 이내 차갑게 말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다면 무림야그 출력일 :: 98/11/04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1 권 제 46 장 - 1 "만일 할 수만 있다면 네놈의 골수를 갈아마시고 쳐죽여서 시체가 썩어 문드러지게 하겠다!" 화검상은 그 말에 그만 놀라고 가슴이 진동되어 더 이상 할말을 잃고 말았다. 남궁신은 그녀의 옆에 있었는데 그것을 보고 가볍게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완매, 그렇다고 그를 자극하는 심한 말을 할 필요는 없지 않느냐?" 화검상은 그 말을 듣고 정신을 차린 듯 고개를 크게 내저으며 몸을 돌렸다. "그래, 그래! 내 시체는 언젠가 썩어 문드러져 개나 지나가는 날짐승들의 밥이 되겠지! 좋아, 이젠 모두 끝났어! 다시는 내 그녀를 귀찮게 하지 않을 테니까! 모두 함께 이 자리에서 죽는 거야! 아니, 우선 내가 너희들을 모두 죽이는 거지." 그때 문득 풍검심이 입을 열어 말했다. "이봐요. 세상에 여자는 그녀만 있는 것이 아니에요. 나도 솔직히 그녀보다 못할 것이 없다고 생각해요. 나에게 한번만 관심을 가져보는 것이 어때요?" 화검상은 걸음을 옮기다 말고 그녀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았다. 그러나 말고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건 안 돼. 노름지기 여자는 세 가지 조건을 모두 갖춰야만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지. 첫째는 우선 몸이 순결해야 하는 것이고 둘째는 마음이 순결해야 하는 것이지. 그리고 마지막은 그 두 가지보다 더 중요한데, 바로 진실해야 한다는 거지. 사실 그 세 번째의 조건을 갖춘 여자를 찾기란 이 세상에서 그리 쉽지 않아." 풍검심은 싸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내가 그 세 가지 조건에서 미달된다는 말인가요?" 화검상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몸이 순결하다는 것은 전혀 남자와의 접촉이 없어야 한다는 말은 아냐. 오히려 그런 여자라도 몸이 불순할 수도 있지. 사실 그건 마음의 순결과도 연관되는 말이지. 음, 하지만 만일 그대가 몸의 순결을 입증하기 위해 이 자리에서 옷을 모두 벗는다면 그대만은 성의를 생각해서 살려줄 수도 있소." 풍검심은 안면이 크게 일그러져서 화검상을 노려보았다. "뭐, 뭐라고 이 더러운 자식이!" 풍검진은 가볍게 탄식하며 말했다. "심매, 그렇게까지 애쓸 것은 없는 거야. 세상의 운이 우리 화산파에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것도 그만인 게지. 흐흐, 몽(夢)가야! 우리를 그냥 죽이도록 해라!" 화검상은 잠시 그들을 바라보다가 대소를 터뜨리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으핫핫핫! 한 자루 장검(長劍)에 의지하여 갈 길을 가노라. 그 끝닿은 곳은 어디냐? 갈가마귀는 춤추고, 동구 밖에는 개 짖는 소리가 들리는도다! 그대들은 이제부터 모두 속으로 열을 세도록 하시오. 나는 이제부터 몽씨 검법의 최절초를 운기(運氣)하여 그대들을 단숨에 죽이도록 하겠소. 하나도 안 아플 거요." 이어 화검상은 그들과 약간 떨어진 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부러진 장검을 치켜올린 채 엄숙히 운기조식에 들어갔다. 하지만 그는 이내 얼마 가지 않아 고개를 갸웃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이상한데? 어째서 사람의 숫자가 하나가 부족한 거지?" 석한맥이 이를 갈아붙이며 욕설을 퍼부었다. "미친 놈아, 그건 네놈에 숫자를 잘못 세었기 때문이 아니냐?" 화검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오. 나는 아까 분명히 숫자를 세었었는데 지금보다는 확실히 하나가 더 많았소. 으음, 이건...... 이건 좀 문제가 있는데?" 석한상이 말했다. "당신은 죽고 싶다면서 다른 사람들이 올까봐 그러시오?" 화검상은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게 아니오. 당신들은 오는 똑같이 나를 찾아왔는데 유독 그만 살아남는다면 이건, 이건 불공평한 일이 아니겠소? 내가 나중에 그를 찾아 죽인다고 해도 시간상의 차이가 있고, 이건 약간 고민되는 일이오." 석한천이 입을 열어 말했다. "그렇다면 자네는 우리 모두를 살려주면 되는 일이 아닌가? 마침 우리도 오해라는 것을 알았으니, 앞으로 우리는 모두 자네를 생명의 은인으로 생각할 것일세." 화검상은 그를 바라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당신은 제법 훌륭한 안건을 제시하는군! 하긴 나도 방금 전에는 그런 것을 생각하고 있던 참이오. 나도 산속에서 무공만 배운 것이 아니라 훌륭한 옛 성현들의 서책들을 독파할 수가 있었던 것이오. 음......, 하지만 지금은 왠지 그럴 수가 없소. 이건 솔직히 한 여자 때문만은 아닌 것이오." 석한절은 미소하며 말했다. "내가 전음(傳音)을 쓸 수 있도록 혈도를 조금만 풀어줘요. 남궁낭자에게 할말이 있어요." 화검상은 그녀가 다시 나서자 안색이 절로 밝아졌다. "음, 이건...... 이건 간단한 일이오. 솔직히 대화란 아주 중요한 것이오. 낭자는 어서 그녀에게 말을 하도록 하시오!" 화검상의 점혈수법은 아주 기이했다. 그가 지풍을 날리자, 석한절은 몸은 움직일 수 없지만 전음은 펼칠 수 있게 되었다. 석한절은 이에 잠시 화검상을 바라보다가 이윽고 남궁설완 등에게 전음을 펼치기 시작했다. 화검상은 그 동안 재빠르게 움직이며 일일이 그들의 부상을 돌봐주고 응급조치를 취해주는 척했다. 문득 남궁설완이 차가운 음성으로 말했다. "좋아요! 당신들의 뜻이 정녕 그렇다면 내가 협조하기로 하죠!" 순간 화검상은 얼굴이 환해지고 입이 크게 벌어졌다. "저, 정말이오? 하하하, 내 그럴 줄 알았소! 여러분, 여러분 정말, 정말 고맙소! 내 이 은혜는 잊지 않겠소! 나중에 우리 아들이 생기면, 아니 딸도 좋겠지. 여러분의 축하를 한번 고려해보도록 하겠소. 하하하, 모두 춥지는 않소? 사실 이곳은 별로 좋지 않으니 일단 자리를 옮깁시다!" 말과 함께 그의 신형이 이쪽저쪽으로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사람들의 혈도를 반쯤 풀어주었는데, 그것으로 그들은 대부분 무공을 펼칠 수는 없어도 일어나서 걷는 것은 가능해졌고 또한 약간의 전음을 사용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석한맥은 절로 어리둥절해져서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저자는 혹시 정말로 미친 것이 나릴까?" 이어 화검상은 문득 한쪽을 바라보며 말하고서 신형을 날렸다. "이봐, 당신도 그렇게 숨어 있지만 말고 어서 와서 도우시오. 하하, 좋은 게 좋지 않겠소?" 화검상이 느닷없이 십여 장 정도 숲속으로 들어갔다 나오면서 데려온 사람은 바로 다름 아닌 사라졌던 그 문제의 인물인 홍계남이었다. 홍계남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자 우선 자리를 피했었는데, 뜻밖에도 느닷없이 손도 써보지 못하고 제압당해 들려나오자 어리둥절해졌으며 안색이 시뻘게졌다. 석한맥은 어이가 없어서 중얼거렸다. '저 녀석은 본래 알고 있었으면서도 모른 척했군? 그럼 녀석은 처음부터 수작을 꾸미고 있었단 말인가?' 화검상은 이어 홍계남에게 말했다. "저 사람들은 별로 쓸모가 없소. 그러니 다들 물러가게 하는 게 어떻겠소?" 본래 그 주위에는 어느새 수백 명이나 되는 개방의 제자들이 포위망을 형상하고 대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홍계남이 제압당하자 황급히 포위망을 좁히며 다가왔는데, 화검상의 말을 듣자 모두 멈칫했다. 이 홍계남은 비단 개방에서 귀한 신분일 뿐만 아니라 무공도 높았고 두뇌도 영악스러웠다. 그는 이내 판단을 굴린 뒤에 개방제자들에게 손을 내저었다. "나는 아무 일도 없을 테니 모두 물러가도록 하시오." 개방제자들은 그 뜻을 충분히 알고도 남음이 있었기에 즉시 뒤로 움직여 물러나는 척했다. 주위가 일단 그렇게 조용해지자 화검상은 짐짓 모두에게 환하게 웃으며 지시했다. "자, 저쪽으로 조금 돌아가면 비어 있는 집이 하나 있으니 모두 그쪽으로 가도록 합시다!" 석한맥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누가 네놈의 뜻대로 해줄 것 같으냐? 네놈 혼자서 가는 게 좋을 것이다!" 화검상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그렇지 않소. 나는 지금 실로 여러분을 애틋이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있소. 일단 그곳에 가면 내가 여러분의 고질병이 될지도 모르는 그 혈도를 모두 풀어줄 것이고, 또한 아아...... 이 혈도를 풀지 않으면 당신들은 무공이 영원히 폐지될 수도 있기에 나는 다리 하나를 자르더라도 데려갈 수밖에 없소." 석한절이 말했다. "소맥(小脈), 무슨 일은 없을 테니 일단 따라가자." 석한맥은 그대로 다리가 잘려나가는 것은 싫었는지 오만상을 찌푸리면서도 더 이상 항변하지 않았다. 현재 걸음을 옮길 수 없는 사람은 팽인호 정도였다. 화검상은 홍계남에게 그를 부축하게 한 다음 서둘러 그들을 빈집 쪽으로 데려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아주 협조적이었다고 해도 시간은 걸렸을 것이다. 모두가 그 빈집에 도착한 것은 거의 자정 무렵이었는데, 그 집은 살던 사람들이 떠나간 지 얼마 되지 않는 듯 비교적 깨끗했고 방문 등도 거의 그대로였다. 화검상은 바깥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그 마당에 사람들을 낮게 한 뒤에 가운데에 불을 피우게 했다. 이 집은 제법 잘 지어진 기와집이어서 아직 잠시 쉬어가기에는 훌륭한 편이었다. 일단 움직일 수 있게 되자 사람들은 심한 부상을 입은 사람들을 가지고 있던 약으로 치료하기 시작했다. 화검상은 남궁설완에게 이윽고 다가가 말했다. "당신은 이제 마음의 준비가 되었소? 사실 이런......, 이런 곳에서 첫날밤을 보낸다는 것은 좀 우습지만 그러나 세상의 일은 늘 좋게만 되는 것은 아니오." 남궁설완은 그만 너무나도 어이가 없어 말했다. "당신은 혹시 미친 것이 아닌가요? 나는 다만 당신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겠다는 것이지 다른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에요. 호호호호! 정말 미쳤군요?" 화검상은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榕 向 무림야그 출력일 :: 98/11/04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1 권 제 46 장 - 2 "그렇소. 나는 미쳤소! 나는 사랑에 미치고 인생에 미친 것이오. 흐흐, 나도 본래는 이렇게 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미 여유를 부리기에는 늦어버렸소. 그렇소! 나는 비록 미쳤지만 아직 바보는 아니오. 내각 만약 그대를 대강 풀어준다면 나는 아마도 사흘도 못 되어 죽음을 당하고 말 것이오. 나도 좋은 사람은 아니지만 다른 사람들도 좋지는 않소. 아아......, 나의 사랑은 아직 부족하여 죽음도 불사하는 사랑은 하고 싶지가 않소. 만일 그대가 나와 잠을 잔다면 즉시 모든 사람을 풀어주도록 하겠소." 남궁설완은 어이가 없어서 화검상을 노려보며 한 맺힌 어조로 말했다. "호호! 당신이 설령 나와 잠을 잔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질 것 같은가요?" 화검상은 두 손을 내저었다. "그, 그렇지 않소. 만일 그렇게만 된다면 당신은 내 사람이 되는 것이고, 그 이후에는 나는 죽어도 여한이 없소. 내가 무슨 여한이 있겠소?" 남궁설완은 문득 미친 듯이 날카로운 웃음을 터뜨리더니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나는 이미 말했지만 당신 같은 사람을 증오해요! 그러니 모두들 죽이든 말든 마음대로 해요!" 화검상은 이에 그만 안색이 무겁게 가라앉더니 몹시 분개하며 말했다. "좋소, 좋소! 당신들은 결국 나를 기만한 것이로구먼? 흐흐흐. 내가 그렇게도 어수룩하게 보였던가? 좋아, 마침 이 자리는 조용하니 일단 모두의 다리를 하나씩 자르고 나서 이야기를 시작하도록 하지." 화검상이 다시 화가 나서 광란하는 듯하자, 석한천이 음산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봐 애송이, 만일 그녀가 그렇게도 탐이 난다면 차라리 마음대로 해보지 그래? 솔직히 지금 네놈이 하고 있는 행동도 그것과 다름이 없지 않은가?" 화검상은 손을 내저었다. "그렇게 함부로 말하지 마시오. 나는 그녀의 사랑을 원하고 잇는 것이지 결코 그런 것을 원하고 잇는 것은 아니오. 조금 심심하더라도 참도록 하시오. 아직 그대의 다리를 자른 것은 아니니." 석한천과 석한맥이 다시 발작하려고 했으나 석한절이 전음으로 말리는 바람에 그들은 분노한 시선만 보낸 뿐 다시 입을 열지 않았다. 화검상은 다시 남궁설완에게 말했다. "나는 우선 그대의 오라비의 무공은 폐지하고 두 다리를 자를 작정이오. 그래도 생각은 변함없소?" 남궁설완은 두 눈에서 독기(毒氣)를 가득 발하며 소리쳤다. "내 반드시 네놈의 뼈를 갈아마시고 내장을 짓이겨버릴 것이다!" 화검상은 석한절에게 다가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이젠 어떻게 하면 되겠소?" 석한절은 그만 가볍게 실소하며 말했다. "당신의 그 방법은 전혀 틀렸어요. 여자의 마음은 그런 식으로는 돌아서지 않아요. 그러니 그만 모두 풀어주고, 그녀에게도 사과하는 것이 좋을 것 같군요." 화검상은 난처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말했다. "하지만 이건...... 이건 너무나도 괴로운 일이로군. 그래도 나도 마침 그것을 생각하고 있던 중이오." 말과 함께 그는 즉시 신형을 움직여 지풍으로 모든 사람들의 혈도를 풀어주며 말했다. "하하하, 우리가 잠시 재미있는 놀이를 했다고 칩시다. 혈도가 풀렸다고 나는 공격하지 마시오. 그러면 나도 살수를 쓰게 될지도 모르니까. 나는 사실 여러분에게 별로 유감이 없는 사람이오." 사람들은 느닷없이 다시 자유로운 몸이 되자 하나같이 어리둥절해졌다. 남궁신과 홍계남 등은 감히 화검상에게 다시 덤벼들 생각을 하지 못했지만 석한맥과 석한상은 은근히 석한천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나 석한천은 그저 가볍게 냉소할 뿐 별로 싸우려는 기색이 아니었다. 그는 시간이 갈수록 자신이 화검상의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체면상 그는 화검상을 노려보며 한마디를 했을 뿐이다. "오늘의 이 빚은 앞으로 언제고 갚을 날이 있을 것이다! 네놈은 감히 잠자는 사자를 건드렸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화검상은 약간 어색한 듯이 웃으며 말했다. "아, 미안하오! 내 나중에 다시 만나면 술 한잔 사겠소. 우리 앞으로 잘 지내보도록 합시다!" 그들은 모두 다시 그를 상대하지 않고 밖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천륭무가의 사람들이 먼저 사라지고 나머지 사람들은 다소 뒤에 처지게 되었는데, 화검상은 은근히 다시 남궁설완의 옆으로 다가갔다. "아직도 나를 그렇게도 증오하오?" 남궁설완은 차갑게 그를 노려보더니 말했다. "네놈이 계속 나를 따라온다면 나는 네놈과 사생결단을 하고 말 것이다!" 화검상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그것 참 알 수가 없군. 그럼 다음에 다시 봅시다." 그들을 모두 그렇게 보내고 나서 화검상은 잠시 그 부근을 거닐다가 평평한 바위 하나를 발견하고 그 바위 위에서 운기조식 겸 명상을 하며 밤을 지새웠다. 모든 일이 혼란스러운 듯하지만 거의 그의 의도대로 된 셈이다. 아침이 되자 그는 근처의 계곡물에 세수를 하고 갈증을 해소한 다음 도로 노산현성으로 들어갔다. 그것은 의복과 장검 등을 새로 갖추기 위함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정무맹(正武盟)의 총단으로 들어가기 전에 본격적인 일을 추진할 수가 있겠지만, 그러나 아직은 여러 모로 보나 그때가 아니라고 보고 있었다. 기실 지금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가 하는 것에 대한 결정은 비단 앞으로의 일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뿐만 아니라 그 판단을 내리기도 어렵다. 비단의복을 새로 여벌까지 넉넉히 구입하여 입고 장검까지 새로 사서 착용하고 나서 노산현성을 벗어나려고 할 때, 문득 구석진 자리에서 웅크리고 앉아 있던 늙은 거지 하나가 이쪽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유복하신 나리, 한푼만 보태줍쇼! 이런 거지에게 적선하면 죽어서도 무간지옥(無間地獄)만은 면할 수가 있답니다." 이 거지의 하는 말이 다소 이상했다. 대개는 부귀장수를 축원하겠다는 말 등을 하곤 하는데, 이 거지는 지금 흡사 저주의 말이라도 퍼붓고 있는 듯하지 않는가? 그러고 보니 그 늙은 거지의 기세(氣勢)는 예사롭지 않았고 게다가 두 눈에서는 음험한 살광(殺光)이 번뜩이고 있었다. '끌끌, 이런 거지에게 적선을 해보기는 처음이군." 화검상은 내심 고소를 지으며 품속에서 한 돈 가량의 은 조각을 꺼내 그 거지의 밥그릇에 던져주었다. 화검상이 은 조각을 던진 수법은 그저 무공도 아니었고 은 조각은 밥그릇에 떨어지면 가벼운 소음만 일으켰을 뿐이었다. 그런데 문득 이상하게도 그 밥그롯은 은 조각이 떨어진 이후 가운데가 쩌억, 갈라지더니 평. 소리와 함께 터져버렸다. 밥그릇은 사리로 된 것이었기 때문에 그 파편이 날아, 하마터면 화검상의 새로 사 입은 의복에 구멍이라도 날 뻔했다. 늙은 거지는 그 받은 은 조각을 잡아 두 손가락으로 지그시 눌러 부수며 음험한 표정을 말했다. "으흐흐, 당신은 늙은 거지의 밥그릇을 깨뜨렸으니 죽어서 반드시 무간지옥에 떨어지게 될 것이오." 지금 늙은 거지가 간단하게 두 손가락으로 은 조각을 부숴버리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이 완력이 아닌 대단한 무공(武功)이요. 그 보다는 화검상의 감정을 자극하려는 태도 같았다. 화검상은 다시 그 늙은 거지를 주시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늙은 거지의 도 눈에는 간혹 신 바늘과도 같은 기운이 번뜩이고, 나이는 거의 구십에 가까운 고령인데 머리카락은 전체가 모두 검은빛이었다. 혈색도 몸시 좋은 편이었고 피부에는 어딘가 눈부신 기운이 일고 있는 것 같았다. 비록 전신이 때에 절어 있기는 해도 이런 거지를 만나 한번 유심히 살펴보면 평범한 거지가 아니라는 것은 이내 알 수 있을 것이다. 화검상은 그러나 굳이 이런 거지와 상대하며 시간을 소비하고 싶지는 않았다. "남의 일에 그렇게 관심을 가져주다니 고마운 일이로군." 말과 함께 화검상이 몸을 돌리자, 문득 그 늙은 거지는 번쩍 신형을 움직여 다시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런 신법(身法)은 이미 눈에 많이 익은 것이다. 마치 신법(身法)은 이미 눈에 많이 익은 것이다. 마치 늙은 거지의 몸이 길쭉하게 늘어나 반원을 그리면서 그의 앞을 가로막은 것 같았는데, 그런 환상적인 신법을 구사할 수 있는 경지는 바로 초상승(超上乘)의 경지이다. "사람을 죽였으면 목숨으로 배상을 해야 하고 상처를 입혔으며 다리 하나를 잘라야 한다! 네놈은 본방(本方)의 사람들을 농락하고서 어디로 달아나려고 하느냐?" 그 늙은 거지의 그 주문같이 음산한 말이 끝나자, 어느새 몰려들었는지 사방에서 거지들이 우르르 다가와 그의 몸을 살벌하게 에워싸버렸다. 화검상은 절로 기분이 나빠지기도 하고 화도 나면서도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 나이에 이미 무공이 대홍락의 초입(初入)에 이르렀다니, 정말로 개방에는 인재들이 있는 모양이군 그러나 이거 너무 분수를 모르는 거지가 아닐까?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貫瓚 무림야그 출력일 :: 98/11/04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1 권 제 47 장 보물 찾기 제 47 장 보물 찾기 화검상은 늙은 거지를 마주보며 말했다. "그 규율은 엄하기도 하군. 하지만 나는 당신이 누군지도 모르는데, 일단 당신이 누구인지 밝혀야 하는 게 아니오?" 주위에 몰려든 거지들 가운데에서 하나가 소리쳤다. "분방의 신개님을 몰라보다니 네놈은 과연 멍청하기 짝이 없는 음적이로구나!" 다른 거지가 말을 받았다. "놈에겐 그런 말을 해줄 필요도 없다! 어서 가자! 만일 네놈이 순순히 따라 나선다면 목숨만은 보존하게 해줄 수도 있다!" '신개...? 그럼 이 늙은 거지가 바로 개방방주 천왕개(天王 ) 홍두자(弘頭子)의 친아들인 신개(神 ) 홍천구(洪千驅)란 말인가?' 당금의 개방은 홍씨(洪氏) 일족이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방주인 홍두자와 그 아들인 홍천구의 이름이 널리 퍼져 있는데, 만일 그게 사실이라면 화검상은 오늘 제법 강호에서 명망있는 굵직한 늙은이를 만난 셈이다. 이 홍천구의 막내 손자가 바로 홍계남이라는 말도 있다. 홍천구라는 늙은 거지는 전신의 공력을 끌어올리고 화검상을 상대할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화검상이 마악 다시 입을 열려고 하는데, 문득 그의 귓속에 다소 귀에 익은 듯한 음성이 전음으로 들여왔다. "그들은 지금 당신을 상대하기 위해 많은 인원을 투입하여 마을밖에 진세(陣勢)를 펼치고 있으니 가지 않는 것이 좋을 거예요" 거지들이 몰려나온 골목의 반대쪽 건물 뒤에 지금 한 명의 두건을 깊이 눌러쓴 서생(書生)이 은신한 채 이쪽을 보고 있었는데, 그 모습은 언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기도 했고 낯선 것 같기도 했다. 용모도 평범해 보이고 옷차림도 초라하지만 피부는 은은한 맑은 광채가 어리고 있는 것 같았다. 화검상은 이내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내고 가볍게 웃은 뒤에 이어 늙은 거지에게 말했다. "신개라고? 후후, 요사이는 남을 사칭하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군! 나는 얼마 전에 한 사람을 사귀게 되었는데, 바로 개방방주의 직계 증손자인 소천개(少天 ) 홍계남(洪桂南)이오. 그의 말에 의하면 광명정대하고 훌륭한 조부가 한 명 있다고 했는데 마침 나도 만나고 싶던 참이오. 그런데 당신같은 무례한 자가 바로 가 신개라니, 흐흐 과연 내가 믿을 수 있을 것 같소!" 거지 하나가 화난 음성으로 소리쳤다. "네놈은 과연 강호의 견식이 듣던 대로 천박하구나. 우리가 개방의 사람들이라는 것도 모른다는 말이냐?" 화검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마음만 먹으면 설사 사마외도(邪魔外道)라도 그렇게 꾸미기는 쉬운 일이지. 내가 당신들의 말을 믿을 것 같소? 개방은 천하제일방(天下第一幇)이요, 상하의 질서가 뚜렷하여 결코 웃어른의 일에는 아랫사람들이 나서지 않는다고 들었소. 그러고 보면 오히려 당신들은 함부로 나대는 것이 사마외도에 가깝지 개방과는 멀지 않소?" "네놈이 바로 사마외도다!" 방금 말한 자가 화가 나서 타구봉으로 화검상을 뒤에서 공격하려고 했다. 그 홍천구는 손을 들어 그것을 제지한 다음 음험하고 살기 띤 표정으로 말했다. "네놈은 과연 교활하고 간악스럽구나! 만일 용기가 있다면 지금 즉시 나를 따라가는 것이 어떠냐?" 화검상은 고개를 저으며 앞으로 한걸음 내디뎠다. "나는 비록 용기가 있더라도 당신 같은 가짜와 상대할 만큼 시간이 넉넉하지 못하오. 게다가 저쪽에 있는 자는 당신들이 밖에 매복조를 숨겨두었다고 말하는데, 나는 어느 것을 믿어야 할지 모르겠구려?" 주위의 거지들은 그 말에 하나같이 놀라 급히 그가 가리키는 쪽을 일제히 주시했다. 그러나 그들이 바라보았을 때는 이미 그 서생은 얼른 자취를 감춘 뒤였다. 홍천구는 화검상이 다가들었기 때문에 미처 그쪽을 보지 못하고 마주 그와 격돌했다. 처음에 홍천구의 타구봉이 화검상의 가슴 언저리에 파고들었을 때는 화검상의 장력은 미처 그의 몸에 이르지도 못하고 있었다. 홍천구의 타구봉은 마치 길쭉하게 늘어나서 화검상의 가슴을 단숨에 꿰뚫어가는 듯했다. 그 폭발적인 빠르기라는 것은 실로 세인들의 상상력을 초월한다. 이때의 타구봉은 그저 곤봉이나 지팡이가 아니라 그 어떤 보검보다도 더한 파괴력을 가지고 있어서 설령 두터운 철판이라고 해도 박살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물론 쾌(快)와 붕(崩)의 위력만 있는 것이 아니라 현묘한 변화가 깃들여 있었다. 분명히 화검상의 가슴이 꿰뚫린 것 같았는데 문득 화검상의 모습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헛친 것이다. 그러나 타구봉은 마치 그런 것을 알고 있었기라도 한 듯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그 기세를 몰아 절묘한 변화(變化)를 이루며 화검상의 뒤를 추격했다. 타구봉의 재질이 잘 휘어지기는 하지만 마치 뱀이 움직이는 듯할 수는 없음에도 지금은 그렇게 보이고 있었다. 화검상은 어느새 좌측으로 돌아가서 반격하려고 하고 있었는데 그 타구봉이 추격하자 약간 당혹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여러 거지들 속으로 들어가 있는 상황인데 움직임이 다소 둔화된 것 같았다. 타구봉과 이미 하나의 흐름으로 되어버린 홍천구는 지체없이 화검상의 치명요해를 노리며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 그때 문득 그 화검상의 모습이 기이하게 변하며 말했다. "앗, 왜 그러십니까?" 홍천구는 이미 그 전에 몸이 뻣뻣하게 굳어지며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기실 화검상은 그의 전면이 아니라 뒤에 있었으며, 어느새 그의 미혈을 제압하고 사라져 버렸던 것이다. 거지들이 다시 시선을 돌려 홍천구를 바라보았을 때는 홍천구의 몸은 앞으로 기우뚱거리며 넘어가고 있었다. 물론 그들은 화검상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지 못했다. 마을을 완전히 벗어나서 소톳길로 접어들자 화검상은 신법을 중지하고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그 홍천구라고 한 자의 무공은 제법이었고 그런대로 개방의 타구봉법을 시전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정말로 그가 개방의 신개였을까...? 신개, 후후! 내가 보기에는 그 말이 전혀 어울리지 않았는데 말이야...' 이어 화검상은 좀더 걷다가 문득 걸음을 멈추고 전면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바로 조금 전에 건물의 뒤쪽에서 전음을 보내오던 그 서생이 서 있었다. 서생은 화검상을 바라보더니 의미 심장하게 웃으며 말했다. "당신은 묘한 악취미를 가지고 있군요. 도와주려는 사람을 그렇게 곤경에 빠뜨리는 법이 어디 있죠?" "그건 그대가 알면 안 되는 비밀이 있기 때문이지." 화검상은 그의 앞으로 다가가며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낭자는 대체 내가 이쪽으로 오리라는 것을 어떻게 알아냈소?" 이 서생. 그는 기실 변장한 천륭무가의 백발낭자 석한절(石恨絶)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어째서 갑자기 일행과 떨어져서 변장을 하고 화검상의 앞에 나타난 것일까? 석한절은 기이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나는 당신에 대해서 거의 짐작하고 있어요. 당신은 남궁낭자를 몹시 사랑하는 듯이 행동해도 그 목적은 다른 데에 있죠. 따라서 당신이 기왕에 이곳에 왔다면 반드시 정무맹(正武盟)의 총단으로 가리라는 것을 생각했어요" 화검상은 변장한 그녀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다가 말했다. "이렇게 굳이 나를 찾아왔다면 반드시 용건이 있을 테니, 우선 그 용건부터 들어봅시다." 석한절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마치 심문을 당하는 것 같군요! 우리 천륭무가의 사람들은 대대로 거의 이런 대접을 받아보지 못했어요. 하지만 오늘 우리는 임자를 만난 것 같군요? 좋아요. 용건을 말하죠. 당신은 실로 대담하기 짝이 없고 또한 능력도 대단해요. 아주 사려 깊어서 모두에게 과소평가받길 바라고 있죠. 조금 전의 일도 바로 그 때문이 아닌가요? 나는 당신에게 반했어요." 화검상은 어이없어 하며 말했다. "이거 정말 웃기는 세상이로군! 어떤 여자는 한사코 나를 벌레 취급하는데 또 어떤 여자는 이렇게 제 발로 내게 오다니 말이오." 석한절은 웃으며 말했다. "당신은 내 말을 믿지 않는군요. 하긴 나도 당신 말을 믿지 않죠. 지금 당신은 종무맹을 도와주러 가는 것이 아니라 해치러 가는 길일 거예요. 그렇지 않나요?" 화검상은 웃으며 대꾸했다. "그렇게 알고 있다니 이젠 하는 수 없고 일단 낭자를 내 인질로 사용하는 수밖에." 석한절은 두 손으로 박수를 치며 말했다. "참 잘 생각했어요! 여기에서 조금 더 가면 길목을 지키는 정무맹의 수비대가 있죠. 그 무당파(武當派)의 말코도사들은 상대하기가 그리 간단하지 않아요. 만일 나를 인질로 삼아준다면 나는 그대롤 위해 어떤 일이라도 해드리겠어요." 화검상은 한숨을 내쉬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정말 이 여자는 나보다 한술 더 뜨는군!' "우리는 좀더 심각하게 얘기를 해보도록 합시다. 우리는 청춘남녀들이닌 자칫하면 분위기가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게 될지도 모르오." 석한절은 약간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애석하게도 당신은 좀 고리타분하군요? 아니면 나는 좀더 당신과 가까워지고 싶었는데. 당신은 그래, 그 남궁낭자만이 인질로서 가치가 있단 말인가요?" '이 여자가 혹시 내 잘생긴 본모습을 알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거 분위기가 갑자기 위험해져서 정신이 혼동되는군!' 화거상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당신이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니 내 그럼 말하겠소. 낭자는 솔직히 자격 미달이오." 석한절은 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가 웃으며 말했다. "당신은 갈수록 내 마음에 드는군요. 나는 이미 너무나도 가슴이 울렁거려서 걸음을 옮길 수조차 없어요. 하지만 무려 이십여 년이나 기다린 끝에 한 남자를 만났으니 할 일은 해야겠죠?" '위, 위험하다, 이 여자는 지금 미인계(美人計)를 쓰고 있는 모양인데, 자고로 영웅은 미인에 약하다고 하지 않았는가?" 화검상은 속으로 그런 염두를 굴리며 웃으며 말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ЕЕ 무림야그 출력일 :: 98/11/04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1 권 제 47 장 - 1 "낭자는 지금 여기서 내게 청혼이라도 하려는 거요? 하지만 솔직히 나는 보기보다 자존심이 있는 사람이므로 아무나의 청혼을 받아주는 사람은 아니오." 석한절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나는 청혼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보물을 찾아주려는 것이니 걱정 말아요." "보물이라고? 낭자가 언제 이곳에 보물을 숨겨놓았소?" "글쎄요. 하지만 나는 저 숲속에 근사한 보물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이것은 내가 당신에게 선물로 주는 것이니 용기가 있다면 어서 따라와봐요." 말과 함께 그녀는 번쩍 신형을 날려 그 숲속으로 들어가버렸다. 화검상은 그 자리에 서서 잠시 고민하여 고개를 갸웃거렸다. '근사한 보물이라? 혹시 신병이기(神兵利器)가 아닐까? 음, 그런것을 적인 내게 줄 리는 없는 것이고, 혹시 신비로운 영약이나 비급일까? 그것들도 가능성이 없고...... 실수다! 처음부터 좀더 신중하게 대화를 나누는 건데. 이런 대화는 일종의 비무(比武)와도 같은데 웬일인지 내가 벌써 어리둥절해지고 있지 않은가? 음...... 용기가 있으면 따라와 보라고? 혹시 그곳에 어떤 함정이라도 있는 것이 아닐까?' 즉시 공력을 일으켜 그쪽을 주시해도 나무들이 워낙 빽빽히 들어차 있어서 잘 보이지도 않고 그저 부스럭거리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실수한 거야! 여자와 말장난을 시작한 것은, 이런 식으로 장난을 하다가 만일 심하게 당하기라도 하면 앞으로의 일에 막대한 지장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 아닌가......? 한데 저 여자는 생각보다 훨씬 장난이 심한 편이로군?" 그때 그곳에서 석한절의 전음이 들려왔다. "나는 이미 보물을 찾아냈어요. 한데 당신은 그곳에서 아직 뭘 하고 있는 거죠? 혹시 이라도 잡고 있는 것이 아닌가요? 아니면 한 쌍의 자라를 키우고 있을지도 모르죠." 화검상은 안면이 크게 일그러졌다. '흥, 나더러 후레자식이라고? 정말 고단수로 나오는군?' 화검상은 하는 수 없이 즉각 그쪽으로 신형을 날렸다. 그곳은 빽빽하게 들어찬 나무숲의 가운데에 위치한 작은 공지였다. 비록 은밀하기는 하지만 무슨 보물이 나올 것 같지는 않았다. 원가 함정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화검상은 조심스럽게 그 안쪽으로 들어갔다. 석한절은 그 공지의 안쪽에 몸을 웅크리고 돌아앉아 있었다. "자, 이제 왔으니 보물을 보여줘야 할 게 아니오?" 그러나 화검상의 예측은 과연 그대로 들어맞았다. "흥! 당신은 속았어요!" 석한절은 소리침과 동시에 번쩍 신형을 날리며 무슨 비단폭과 같은 것들을 무수히 그에게 내던지는 것이 아닌가? 그 비단폭과 같은 것들은 비단 부드러울 뿐만 아니라 칼날 같은 강기(剛氣)들을 함유하고 있어서 한꺼번에 던져지자 매우 위험스런 암기였다. '아이쿠, 이...... 이런!' 화검상은 다급히 신형을 움직여 그것들의 예봉을 피하는 한편 두손을 부지런히 움직여 그것들을 하나씩 받아들었다. 뒤이어 그녀가 다가들며 무수한 장력(掌力)을 날벼락처럼 퍼부었다. 그 장력들은 천륭무가의 옥황장(玉皇掌)이었기 때문에 하나같이 무시무시할 뿐만 아니라 단숨에 화검상의 전신을 뒤덮어버리는 것 같았다. 화검상은 간신히 그 장력들을 피해 옆으로 달아나며 말했다. "머, 멈추시오! 반드시 이렇게 해야만 하겠소?" 석한절은 이 순간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알몸이었던 것이다. 석한절은 계속 공격해도 화검상이 피하기만 하자 이윽고 신형을 먼추며 눈살을 다소 찌푸렸다. "흥, 달아나기만 할건가요?" 그녀의 나신은 눈부셨다. 요염하고 절묘하며 신비(神秘)로울 뿐만 아니라 자극적이어서 화검상은 급히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이, 이렇게까지 할 것 없지 않소? 어젯밤에 내가 한번 실수로 만졌다고 그러는 모양인데, 그...... 그건 그저 실수였은 뿐 이런다고 내가 낭자를 책임지진 않소." 석한절은 입가에 기이한 미소를 떠올리며 말했다. "당신은 의외로 순진하고 단순하군요? 나는 지금 당신과 비무(比武)를 하려는 것일 뿐 다른 의도는 없어요. 우리 가문에서 내려오는 여자들의 특수한 무공은 이렇게 옷을 벗어야만 비로소 그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거죠. 그래서 내가 일부러 당신을 이리로 불러들였던 거예요." 화검상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그, 그렇다면 좋소. 이게 비무라니...... 할 수 없는 일이지. 하지만 이건 약산 불공평한 것 같기는 하오." 이어 화검상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한데 나는 어째서 그런 무공에 대한 예기를 미처 듣지 못한 것일까? 하긴...... 연공(練功)할 때 순음(純陰)의 공력을 연마하려면 여인들은 옷을 벗어야 한다는 말도 있긴 했지.' 석한절은 이어 다시 번쩍 신형을 날리며 공격해왔다. "그럼 어서 시작해요!" 화검상도 이에 얼른 받아들었던 의복들을 모두 한쪽에 내려놓고 그녀의 공격에 맞받을 준비를 했다. 석한절은 이번에는 장력을 날리지 않고 장법(掌法)을 구사했기 때문에 접근전이 이루어졌다. 무공이란 근본적으로 상대의 강함에 나의 약함이 부딪치지 않고, 상대의 약함에 나의 강함 또한 부딪치지 않으며 오직 상대의 강함에 나의 강함으로 부딪치는 것이다. 그런 논리에 기초하여 초식이라는 것도 생겨나고 상대의 약점을 찾아 공격해가기 때문에 고수들의 대결에서는 검과 검, 장력과 장력이 서로 부딪치는 경우는 별로 없고 서로 현란한 변화와 움직임 속에서 빠르게 얽혀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상대의 무공을 서로가 잘 알고 비슷한 실력일 경우 더욱 그러하다. 지금도 석한절에 따라 화검상도 마주 장법을 펼쳤기 때문에 두 사람의 신형(身形)은 가득 찬 장법의 변환(變幻)과 함께 뒤섞여서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지만, 그러나 소음은 거의 일지 않고 있었다. 화검상은 처음에는 그녀가 말하는 이 특수한 무공의 정체는 무엇일까 하고 자못 궁금해하며 신중을 기했다. 두 사람의 초식의 변환은 화검상이 다소 빨라서 그녀의 변환을 누르며 점차로 압박해 들어가고 이어 결정적인 기회가 도래했다. 그녀는 이제까지 수세에 몰리면서도 다른 변환으로 그것을 상쇄시켰지만 이제는 그럴 여유마저 없어진 것이다. 그러나 문득 화검상은 마악 결정적인 장력을 퍼부으려다가 갑자기 멈칫하며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허점이 드러난 곳은 바로 그녀의 절묘하게 융기한 젖가슴 부위였는데, 그것은 비단 생생하게 살아움직일 듯할 뿐만 아니라 자극적이어서 도저히 장력을 날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화검상은 이어 황급히 생각을 굴렸다. '그렇다! 그녀의 특수한 무공이란 바로 이런 것에 요점이 있을지도 모른다. 사실 생사(生死)의 갈림길에서 혹시 어떤 여자가 이런 방법을 쓸 수도 있는 일이 아닌가?' 만일 하나의 허점을 개의치 않고 다른 부분에 주력할 수 있다면 그만큼 강해지게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화검상이 그런 염두를 굴리고 있는 사이에 그녀가 다시 공격해 들어왔으므로 재차 격돌이 벌어졌다. 화검상은 조금전에 의외의 일을 당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그 문제를 해결하느라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가능하면 부끄럽지 않은 곳으로 공격부위를 전화시켜야 한다. 음, 등뒤를 가격하면 되겠군? 한데 이 공격부위를 전환하는 일이 쉽지 않겠군!' 화검상은 이번에는 약간의 시간을 소모하고 나서 드디어 공격부위를 그녀의 등뒤로 옮기는데 성공을 했다. 그런데 이때 갑자기 의외의 일이 벌어졌다. 그녀의 신형이 마악 허점이 노출되려는 순간 갑자기 훌쩍 위로 떠올랐던 것이다. 싸움 도중 허공으로 떠오르는 것은 거의 금기처럼 되어버린 일이기 때문에 미처 예상치 못했고 아주 뜻밖이었다. 비록 별다른 문제는 없다고 하더라도 화검상은 그만 허를 찔린 듯이 놀라 위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별다른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그만 석한절의 가장 은밀한 부위를 고스란히 다 보게 되었고, 갑자기 멍청해지고 말았다. 비록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그 짧은 순간에도 상황의 역전은 충분히 가능했다. 화검상이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어느새 그녀가 지상으로 내려와 그의 몸을 안고 있었고, 양손으로 그의 등뒤의 요혈들을 감싸고 있었다. 화검상은 그만 혼이 구천(九泉)을 떠도는 것처럼 심하게 놀라 다급히 생각을 굴렸다. '이, 이 수법을 그야말로 최강의 승부수로구나! 나는 그만 당하고 말았다. 하지만 내가 지금 호신강기(護身 氣)를 증폭시키면 그녀를 떼어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위기를 벗어나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을 수 잇지 않을까?' 그런데 석한절은 잠시의 시간이 흘러도 그의 요혈들을 공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태도가 다소 이상해 보였다. 알고 보니 그녀는 그 자세로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흘리고 잇는 것이 아닌가? 화검상은 그만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그녀는 왜 또 갑자기 운다지? 대체 이건 또 어떤 무공일까......?' 석한절은 이윽고 눈물을 닦아내더니 뒤로 물러서서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오늘은 내가 졌어요. 하지만 나는 물러서지 않아요. 그런 다음에 또 봐요!" 이어 그녀는 한쪽에 놓인 의복들을 빠르게 주워 입더니 이내 신형을 날려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져, 졌다구? 이건 또 무슨 수법일까? 음, 고도의 심리전(心理戰)이군! 한데 나는 왜 미처 예상하지 못했을까......?' 화검상은 더욱 머리가 혼란스러워져서 그만 그 자리에 주저앉아 가부좌를 틀고 그 원인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무공이 높아질수록 그는 심리적인 공격이 가장 무섭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아마도 그 의문이 해결되기 전에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가 이미 타격을 받은 것은 확실한지, 그는 그만 얼마 참지 못하고 몸을 일으키고 말았다. 그는 멍청한 표정이 되어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확실히 여자는 무섭다. 남자들은 어째서 여자들이 무섭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일까......?' 남서쪽으로 수십 리를 더 내려가니 험준한 고개가 앞을 막는다. 석한절은 이 부근에 무당파(武當派) 사람들이 지키는 요새가 있다고 했으나, 화검상은 그 말을 곧이 듣지 않았다. 그는 그냥 계속 비교적 빠른 신법(身法)을 펼쳐 그 부근을 지나가려고 했다. '이거 그녀와 싸운 이후 영 정신이 하나도 없군.' 그런데 불과 얼마 더 가지 않아서 기척과 함께 십여 명의 검(劍)을 든 도사들이 그의 앞을 가로막으며 나타났다. 화검상은 여전히 술취한 듯 몽롱한 눈빛이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다면 무림야그 출력일 :: 98/11/04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1 권 제 47 장 - 2 '아니 이거 도사들이 갑자기 녹림도적이 됐나? 아니면 녹림도적들이 갑자기......?' 그가 혼자말로 중얼거리는데 그 나타난 도사들 가운데 하나가 그를 주시하더니 말했다. "지금 오시는 분은 바로 몽씨가문의 몽공자(夢公子)가 아니시오?" 화검상은 그 말에 눈을 크게 떴다. "몽, 몽공자? 아니 당신들이 나를 어떻게 아시오?" 그 초로의 도사(道士)는 짐짓 엄숙한 표정으로 도호를 외우며 말했다. "무량수불, 빈도는 바로 무당파의 제자이외다. 마침 몽공자가 이곳을 지나간다는 것을 아시고 저희 대사백께서 기다리고 계시는 중입니다." 무당파는 바로 해내팔세(海內八勢)의 하나이며, 현재의 배분은 현불곡허화죽(玄不谷虛花竹) 등으로 나간다. 화검상은 놀라며 말했다. "아니 당신들의 그 대사백은 무슨 신통력(神通力)이라도 있단 말이오? 어떻게 내가 이곳으로 올 줄 밀 알았소?" 그 초로의 도사는 슬쩍 멍청해 보이는 그의 두 눈을 바라보고는 천연더스럽게 대꾸했다. "무량수불, 아무래도 열심히 도(道)를 닦다보면 그런 신통력도 생기는 법이외다." 화검상은 이때 엉뚱하게도 다시 석한절의 그 벗은 모습이 뇌리에 떠올랐다. 그는 눈빛을 더욱 멍청하게 뜨며 말했다. "당신은 지금 몇 살이오?" 그 조로의 도사는 어리둥절하여 그를 바라보다가 대꾸했다. "빈도는 이제 경우 일흔을 넘었을 뿐이외다. 빈도에게는 아직 그런 신통력이 없으니 안심하시오." 화검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럼 아니군!" 이어 화검상은 그 주위의 다른 도사들을 바라보며 다시 말했다. "당신들은 이 여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오? 그들은 대단히 무섭소? 아니면 하나도 무섭지 않소?" 그 초로의 도사가 다시 의아해 하다가 대표로 말했다. "으험, 여자란 이를테면 요물(妖物)이지요. 우리들은 항상 맑은 정신으로 수도(修道)하고 성현의 가르침을 따르기 때문에 도저히 사마(邪魔)가 범접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도 간혹 여자와 만나기는 합니다만, 그저 또 하나의 치마 걸친 나무토막을 보는구나, 한답니다." 화검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무토막이 아니오. 당신들의 그 대사백을 지금 어디에 있소?" 그 초로의 도사는 일순 얼굴이 환해지며 말했다. "지금 저 안에 계십니다. 어서 빈도를 따라오시지요!" 화검상은 그러나 지금 그자를 따라갈 만큼 마음이 넉넉하지 않았다. 그는 즉시 절벽 위에 있는 요새를 향해 신형을 날렸다. 그의 신형이 절벽 위를 디디며 위쪽으로 날아올라가자, 그 초로의 도사 등은 일순 어리둥절하여 쫓아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였다. 그 요새의 위에는 제법 무당파의 도사들이 많이 왔다갔다하고 있었다. 불과 한 달쯤 전만 해도 이 정무맹의 총단 부근은 이렇게 경비가 삼엄하지 않았다. 갑자기 이렇게 된 것은 그 사이에 무림의 정세가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화검상은 마음이 급해서 도저히 그 사람들을 일일이 만나볼 생각이 들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가 갑자기 나타난 것을 발견했으나 도저히 그를 막을 수가 없었다. 화검상은 빠르게 사람들의 사이를 이리저리 돌아서 안쪽의 견고하게 지어진 건물 속으로 들어갔다. 복도에는 두 명의 초로의 도사가 지키고 있다가 놀라며 소리쳤다. "웬 놈이냐?" 그들이 각기 장검을 뽑아들며 앞을 가로막았기 때문에 화검상은 그저 귀찮은 생각에 가볍게 두 번의 지풍을 날리며 말했다. "당신들은 상관할 일이 아니니 가만히 있으시오." 그들은 마악 공력을 일으키던 도중에 각기 마혈이 제압되어 그 자리에 뻣뻣이 굳어졌다. 화검상은 그들의 머리 위를 타고 넘어서 안쪽으로 들어갔다. 횡으로 가로지른 복도 맞은편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제법 널찍한 대청이 나타났는데, 거기에는 한 명의 늙은 도사가 앉아 있다가 얼른 몸을 일으키며 소리쳤다. "누구냐?" 화검상은 그의 앞에 이르러 태연하게 마주보며 말했다. "당신이 바로 그 대사백이오?" 노도사는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노도는 사형(師兄)이 아니오. 그런데 대사형을 찾는 그대는 어디에서 온 누구요?" 화검상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말했다. "나는 그대의 대사형이 기다리는 몽씩가문의 몽천화란 사람이오. 그런데 그대는 혹시 여자......." 화검상이 몽천화라는 말을 꺼내자마자 그 노도사의 안색을 급히 달라졌다. 그는 화검상이 미처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안쪽으로 신형을 날리며 말했다. "여기에서 잠시 기다리시오! 내 즉시 가서 대사형을 모셔올 테니." 혼자 남게 되자 화검상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알고 보니 그들도 여자를 두려워하고 있었군! 하지만 그 신통력이 있다는 대사백이란 자는 좀 다르지 않을까?' 이내 밖으로부터 소란이 일더니 수십 명의 무당도사들이 안으로 짓쳐 들어와 그를 겹겹이 포위해버렸다. 그들은 하나같이 안면에 노기가 충천하고 장검에는 살기(殺氣)가 번뜩이고 있었다. "네놈은 누구냐?" 화검상은 그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나는 바로 여러분의 대사백이 기다린다는 몽씨가문의 몽천화요. 여러분은 지금 전쟁놀이라도 하고 있는 거요? 한데 우선 한가지만 물어봅시다. 대체 이 여자라는 존재는 어째서 남자를 유혹하여 넘어가게 만드는 것일까?" 그가 이름을 대자 사람들의 살기는 오히려 더욱 강해졌지만 태도는 달라졌다. 어떤 도사가 조소하며 말했다. "네놈은 그래 아직도 그녀를 못 잊는 모양이지? 흐흐, 여자란 아주 죽여주는 요물이라고 할 수 있지. 그 맛이란....... 으흐흐흐흐!" 다른 도사가 말했다. "무량수불! 우리들은 본래 여자를 멀리하고 있소. 여자란 그저 불쌍한 속인의 하나일 뿐이오. 우리는 아무리 아름다운 여자가 있다고 해도 그저 못생긴 여자와 똑같이 생각하오." 다른 나이 많은 도사가 사람들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그대는 여기에 잠시 서 계시오. 우리는 즉시 대사백께 그대가 왔다는 것을 알리겠소." 그러나 그 도사가 미처 사람을 보내기도 전에 아까의 그 노도사가 다른 한 명의 체결 좋은 노도사(老道士)를 데리고 나타났다. 그 노도사가 나타나자 다른 도사들은 일제히 길을 터주었으며 또한 뒤로 멀찍이 물러나서 관망하는 자세를 취했다. 화검상은 마침 마음이 조급하던 참이라 그 노도사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먼저 말했다. "당신이 바로 그 신통력이 있다는 대사백이오?" 그 체격 좋은 노도사는 무슨 신통력 운운하자 어리둥절해졌으나 이내 점잖게 웃으며 말했다. "무량수불, 노도가 바로 본파(本派)의 대제자인 불광(不廣)이오. 신통력이라면 무량수불, 우리는 항상 자제하며 드러내지 않지만 간혹 실수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도 한다오. 그대가 바로 몽공자요?" 화검상은 그 말에 안색이 환하게 밝아졌다. "잘됐소, 잘됐소! 그런 우리 지금 어서 얘기를 시작해보도록 합시다. 그 여자......" 불광도장은 얼른 그의 말을 자르며 말했다. "그 여자에 대해서는 노도가 이미 알고 있소이다. 무량수불, 하지만 여기서는 얘기가 곤란하니 자리를 옮겨야 하겠소." 화검상은 그만 입이 쩌억 벌어지며 좋아서 소리를 질렀다. "뭐, 알고 있다고? 하하하! 다행이오, 정말 다행이오! 하긴 흐흐흐, 여기서는 말하기가 다소 곤란하겠지." 화검상은 한차례 사람들을 흐뭇한 표정으로 둘러본 뒤에 불광도장의 뒤를 따라 걸어갔다. 불광도장이 안내한 곳은 복도를 여러 차례 돌고돌아서 어느 절벽과 인접한 밀실과도 같은 곳이었다. 그곳은 사방의 벽이 몹시 견고하게 지어져 있고 그 흔한 의자도 하나 없이 썰렁한 분위기였다. 사라들은 두 사람의 뒤를 따라왔는데, 이윽고 그 방안에 둘이 들어가자 더 이상 따라오지 않았다. 그들은 다만 밀실의 밖에서 물끄러미 방안을 바라보기만 했다. 일단 방안에 들어서자, 화검상은 털썩, 바닥에 주저앉으며 말했다. "이곳이 그리 나쁘지는 않군. 어서 얘기를 시작해보도록 합시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무림야그 출력일 :: 98/11/04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1 권 제 48 장 분노 제 48 장 분노 불광도장은 자리에 앉지도 않고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굳이 말을 할 필요가 뭐 있겠소? 노도는 몽공자의 심정을 충 분히 헤아리고도 남음이 있으니 곧장 가서 그녀를 이곳으로 데려 오도록 하겠소. 다만 중요한 것은, 몽공자는 절대 이것을 한걸음 도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오! 그래야만 그녀가 좋아할 것이오.” 이어 불광도장은 빠르게 걸어서 밀실 밖으로 나섰고 이내 기관장 치를 작동시켜 쿵, 하고 철문을 내리닫았다. “흐흐흐, 마침 특별히 준비해놓은 이 밀실을 잘 쓰게 되는군! 놈 은 비록 우둔해도 무공만은 우리가 감당할 수 없다고 했으니 이 방 법이 가장 좋지. 놈의 무공이 아무리 대단해도 아마 견딜 수가 없 을 것이고, 남궁세가에서도 나중에 들으면 좋아할 것이다. 흐흐, 사제! 어서 시작하지 않고 뭣 하나?” 그 노도사는 몹시 뜨악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불광도장의 뒤를 가리키며 전음으로 말했다. “사형, 놈은 지금 바로 뒤에 있소.” “뭐. 뭐라고?” 불광도장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치며 고개를 돌렸다가 그만 놀라 고 어리둥절해지고 말았다. 화검상은 아직 그 밀실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새 그의 뒤를 따라나와 멀뚱멀뚱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대체 무슨 쓸데없는 짓을 하려는 거요? 그런 것들은 다 필요없으니 우선 나와 얘기부터 합시다.” 불광도장은 그만 당황했으나, 화검상의 그 말을 듣고 마음이 다소 안심이 되어 얼른 철문을 열고 그를 다시 데리고 밀실 안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아이구 이, 이런… 서로간에 오해가 생기고 말았구먼? 하지만 쓸데없는 얘기라니?” 화검상이 다시 바닥에 안기를 기다려 그는 약간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럼 몽공자의 뜻대로 얘기부터 하기로 하겠소. 사실 이런 얘기는 굳이 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는데 몽공자가 그토록 원하니…….” 화검상은 아직도 이 안을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있는 사람들을 한차례 주시한 후 말을 자르며 말했다. “나는 지금 여자에 대해 말을 하고 있는 것이오. 그들은 대부분 남자들을 유혹하고 남자들이 그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만들고 있소. 어떤 사람은 그런 여자로 인해 자신은 물론 가문과 다른 모든 사람들까지 망치는 그런 경우가 있소. 나는 그런 점에 있어서 당신에게 묻고 있는 것이오.” 불광도장은 상대방이 자신의 말을 자르자 절로 답답해져서 말했다. “좋소, 좋아. 그래서 내가 그 해결책을 마련해주는 것이 아니오? 지금 이곳에는 그 남궁낭자가 와 있소. 물론 나의 주선에 의한 것이지. 알아듣겠소?” 화검상은 약간 어리 둥절해 하며 말했다. “알아듣겠소.” 불광도장은 그만 화가 나서 발로 바닥을 한번 굴렀다. “바로 그 여자를 내가 지금 해결해주려는 것이 아니오? 알아듣겠소?” 화검상은 그의 얼굴을 바라볼 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이런 빌어먹을!’ 불광도장은 그만 화도 나고 크게 답답해져서 자신도 모르게 바닥 에 마주앉으며 다시 말했다. “몽공자는 남궁낭자를 사랑하고 있다! 그 남궁낭자는 지금 이곳에 와 있다! 나는 몽공자의 문제를 해결해주려고 한다! 이 말들에 이의가 있소?” 화검상은 더욱 멍청한 표정이 되어 잠시 생각해보는 듯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의 없소.” 불광도장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그럼 여기에 꼼짝 말고 가만히 있으시오. 그렇지 않으면 그녀가 그냥 가버리는 일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무슨 말이지 알겠소?” 화검상은 그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모르겠소. 내 말은 여자가…….” 불광도장은 즉시 그의 말을 자르며 고함을 질렀다. “아이구 이런 빌어먹을! 그러니까 내가 그 여자를 찾아주겠다는 말이 아니오? 당신은 어떨지 모르지만 나는 지금 매우 바쁘오. 내 말을 알아듣겠소?” 화검상은 고개를 끄떡였다. “당신은 지금 그렇게 보이오.” 불광도장은 발을 다시 한번 세게 굴렀다. “그러니까 다시는 나를 따라오거나 잡지마시오! 만일 다시 한번 그렇다면 내가 화를 내고 말 것이오. 알아듣겠소?” 화검상은 그저 멀뚱히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불광도장은 그만 울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밖의 그 노도사에게 전음으로 말했다. “이 녀석이 너무 멍청해서 안 되겠네! 자네는 지금 즉시 불을 당기게!” 노도사는 근심스런 표정으로 마주 전음을 보냈다. “하지만 그러면 사형도 다칠 수 있지 않소?” 불광도장은 버럭 화를 냈다. “자네는 내가 그렇게도 미련해 보이나? 지금 불을 당겨도 피할 시간은 있으니 걱정할 것 없고, 내가 문앞에 도달하여 신호를 보내면 바로 철문을 내리도록 하게!” 노도사는 자신의 사형이 화가 나 있기 때문에 다소 주저했으나 이내 다른 사람에게 전음으로 지시를 내렸다. “사형이 불을 당기라고 하네.” 불광도장은 일단 그렇게 지시를 내리자 화가 다소 누그러져서 천천히 문을 향해 뒷걸음질을 쳤다. 화검상은 그 자리에 앉은 채로 멀뚱히 그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저 의아해 할 뿐, 다른 것을 눈치챈 것 같지는 않았다. 불광도장은 이에 시간을 고려하여 약간 빨리 신형을 움직였고, 이내 문앞에 이르자 소리치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어서 문을 닫아라!” 쾅, 하고 철문이 닫히고 이어 불광도장은 급히 노도사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가 미처 불을 붙였는지 확인하기도 전, 꽈꽈꽝! 굉음과 함께 복도와 천장 등이 다함께 뒤흔들리며 밀실 안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그 폭발은 어찌나 대단했는지 입구를 막고 있던 그 육중한 철문 마저 심하게 우그러들고 구멍이 날 정도였다. 불광도장은 얼른 그 구멍으로 내부를 살폈다. 지독하게 매캐한 화약 냄새와 연기가 눈과 코를 찔러 고통스러웠지만 그는 화검상이 앉아 있던 자리에 여러 가지의 잔해가 난무하고 화검상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을 보고 그만 너무 좋아서 소리쳤다. “제기랄, 이제 됐군! 놈이 어찌나 끈질기던지 아직도 정신이 하나도 없군!” 그는 한숨을 내쉬고 구멍에서 눈을 떼며 소매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그런데 고개를 돌려보니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여전히 뜨악한 것이 아닌가? 그가 왜 그러냐고 질문을 하려는 순간 누가 등뒤에서 가볍게 그를 쳤다. 고개를 돌려보니 바로 화검상이었다. “아무래도 당신이 무슨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아서 따라왔소.” 불광도장은 그를 다시 보게 되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 고 울화 가 폭발하여 그야말로 미칠 것 같았다. 그는 그만 마음의 평정이 중요하다는 무학의 금기를 깨고 미친듯이 부르짖으며 화검상을 향해 쌍장(雙掌)을 휘두르며 공격해 들어갔다. “이……, 이놈이, 죽어라!” 무공이 최대한 펼쳐진 상태에서도 그는 화검상을 당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화검상은 다소 의아해 하면서도 불광도장의 진산장(震山掌)이 덮쳐오는 것을 보고 가볍게 그와 맞부딪치는 듯했는데, 어느새 그 허를 교묘히 찌르며 혈도(穴道)를 제압하고 말았다. 불광도장은 그저 헉, 하는 소리와 함께 눈을 부릅뜨며 신형이 굳어졌지만, 그를 제압한 화검상은 오히려 풀이 죽은 모습이었다. ‘이자는 별로 신통력도 없었군 그래?’ 불광도장이 그렇게 단숨에 제압당하자 일순 화검상을 공격하는 사람들이 없어젔다. ‘그럼 그 해결법을 아는 사람이 없단 말인가? 그렇다면 하는 수 없이 그 여자에게나 한번 물어보는 수밖에 없겠군.’ 한숨을 내쉬며 마악 떠나려다가 그는 문득 생각난 듯 한 젊은 도사에게 말했다. “참, 이곳에 남궁낭자가 있다는 얘기를 들은 것 같은데, 그녀는 지금 어디 있소?” 그 젊은 도사는 뒤로 슬금슬금 피하며 대꾸했다. “그, 그건 나도 모르는 일이오. 하지만 그녀는 남궁세가에 있겠지 이곳에는 왜 와 있겠소” ‘하긴 나도 그럴 줄 알았다.’ 화검상은 그들을 한차례 주시한 다음 훌쩍 신형을 날렸다. 그 요새를 지나 화검상이 정무맹의 총단에 도착한 것은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오후 무렵이었다. 이때는 하늘에 온통 구름이 가득하여 저녁노을을 제대로 구경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화검상은 이제 다시 이곳에 이르자 그야말로 감화가 뭉클 치솟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도 이때만은 그는 그 눈앞에서 아른거리던 나신의 기억을 지워버릴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그는 즉시 화산파가 머물고 있는 곳으로 가보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다는 것을 알기에. 자연 그가 먼저 향하는 곳은 예의 그 주루였다. 많은 주루들이 늘어서 있지만. 역시 그는 예전에 가보았던 그곳으로 들어섰다. 얼핏 보기에는 예전과 크게 달라진 곳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러나 주루의 손님들이 그간 부쩍 줄어들었다. 손님이 줄어든 탓에 점원들이 재하는 태도가 좀더 좋아지긴 했지만, 그런 사소한 일에서도 그의 감정은 자극되었고 고통과 번민 이 엄습했다. 이곳의 사람들 가운데 그의 용모를 알고 있거나 특별히 주시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가 특별히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도 거의 없었다. 마치 그는 이 호랑이 굴로 들어와서 갑자기 한가해진 듯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는 정말로 그렇게 한가하다고 말할 수가 있을까?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武當 무림야그 출력일 :: 98/11/04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1 권 제 48 장 - 1 점원에게 술과 음식들을 시키고 기다리다보니 주문한 것들이 나중에는 먹는 일보다 마시는 일이 잦아졌으며 점차로 그의 탁자 위에는 술병들이 늘어가기 시작했다. 이곳의 술은 제법 나쁘지 않아서 마시면 기분 좋은 취기를 느끼게 한다. 하지만 그는 이상하게도 점점 더 그 취기 느낄 수가 없었으며 나중에는 정신은 맑은데 술병들이 그렇게 많이 늘어났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라 쓴웃음을 지었다. 이곳에서 그가 어떻게 취할 수가 있겠는가? 벌써 해가 지고 어두워지기 시작했는데 점원들이 밝혀 놓은 등불들이 은은한 빛을 밝히고 있었다. 술은 물이 아니므로 취하지 않는다면 마침내는 싫증이 나기 마련이다. 그가 점차로 싫증을 내고 일어날까 생각을 굴리고 있는 데. 문득 한 사람이 주루의 안으로 들어오더니 바로 그의 앞에 마주앉았다. 화검상의 기분은 침체의 늪을 헤매고 있었는데 그 사람을 보자 갑자기 그럴 수가 없었다. 그의 안색은 벌게지고 두 눈은 멍청해졌으며 안절부절못했다. 바로 석한절, 그녀가 나타난 것이다. 그녀는 용모나 의복 모두 본래의 아름다운 면모를 회복하고 있었으며 전혀 아무렇지도 않은 듯했다. “당신은 배짱도 정말 두둑하군요? 이런 곳에 들어와서도 한가하게 술이나 마시고 있단 말인가요?” 그녀가 지금 이 시각에 이런 곳에 올 수 있다는 것은 조금도이상할 것은 없으나, 아까 그렇게 하고서도 금방 이렇게 다시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에 화검상은 다소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건 대범함일까 아니면 뻔뻔스러움일까? 어쨌든 화검상은 그녀를 보게 되자 다시 예의 그 아찔한 광경이 뇌리에 떠오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화검상은 얼른 한 모금의 술을 들이켰다. “그럼 내가 분주히 돌아다니기라도 했어야 한다는 말이오?” 석한절은 그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비어 있는 술잔을 빼앗아 손수 술을 따르고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지금 모두들 보이지 않는 가운데 당신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죠. 비록 아직 표면적인 움직임을 취하지는 않았지만 지금의 당신은 아주 위험한 상태예요.” 화검상은 그녀가 마시다 만 술잔을 도로 빼앗아 마시며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그야 이미 자신들의 손안에 들어 있으니 좀더 느긋해진 것이겠지. 흐흐흐, 대체 사람들은 어째서 굳이 나를 적으로 삼으려는 것일까? 나는 이해할 수 없소. 나는 오직 한 여자에게만 관심이 있는데 말이오.” 석한절은 그를 바라보다가 문득 미소를 지었다. "당신도 눈물을 흘리는군요. 난 당신이 우는 것을 처음 볼뿐만 아니라 전혀 상상도 해보지 못했어요.” 화검상은 얼른 자신의 눈 주위를 만져보고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흥, 뭐라고? 눈물도 없는데 울긴 누가 운단 말인가?’ “나는 차라리 빨리 그들에게 잡히게 되기를 바라고 있소. 이렇게 술만 마시는 것도 지겹고, 우선 오늘밤 마땅히 잠잘 곳도 없단 말이오.” 석한절은 나직하게 냉소하며 말했다. “당신은 아무래도 그 남궁세가에 잡히기를 더 바라겠군요? 내가 도와드릴까요? 만일 내가 도와준다면 답례로 어떻게 해줄 거죠?” 화검상은 그녀를 바라보며 코웃음을 치다가 그저 묵묵히 술병을 기울였다. 석한절은 문득 눈빛이 표독하게 변했다. “왜 나를 그렇게 비웃는 거죠?” 화검상은 심드렁한 어조로 대꾸했다. “나 자신을 비웃고 있는 거요. 낭자가 내게 지금도 접근해 있지만 나는 지금 낭자의 의도나 진심. 그리고 현 위치 등에 대해서 하나도 모르고 있소. 그러니 한심하지 않겠소? 게다가 낭자는 지금 남들의 시선이 주목되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나를 만나고 있으니, 그 속셈이 뭔지 좀 밝혀주는 것이 좋지 않겠소?” 석한절은 가볍게 실소하며 그의 술잔을 빼앗으려다가 그가 놓지 않자 그대로 술병을 들고 마시며 말했다. “그건 나도 모르겠어요. 내가 대체 왜 그러는지…… 하지만 한가지만은 분명해요. 당신이 만일 좀더 나를 경계하지 않는다면 나는 그만큼 더 행복해지게 될 거예요.” 화검상은 술을 마시다 말고 잘못 넘어가서 심하게 재채기를 했다. “세상에는 여자를 잘못 만나서 인생(人生)을 망치는 사람들도 더러 있는 법이오. 나는 최근에야 그 이치를 깨달았소.” 석한절은 마시던 술병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하지만 세상에는 그렇지 않은 여자들도 있는 법이에요.” “다 그만둡시다! 제발 좀 나를 귀찮게 하지마시오!” 화검상은 몸을 벌떡 일으키며 탁자 위를 신경질적으로 쓸어버렸다.탁자 위의 술병들은 이내 요란한 소음을 내면 바닥으로 떨어져 박살나거나 굴러갔다. 화검상의 그러한 행동은 주위의 이목을 모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곧장 그에게 다가온 사람들은 점원들이 아니라 아주 눈에 익은 사람들이었다. 석한절은 즉각 그에게 전음으로 말했다. “당신이 데려갈 사람들이 나타났으니 이제 소원을 푼 셈이로군요?” 지금 화검상에게 다가온 사람들은 뜻밖에도 홍계남과 남궁신, 그리고 풍검진 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겉보기에도 걸출해 보이는 인재들이었기 때문에 갑자기 주루 안이 훤해지는 것 같았다. “지금 나에게 볼일이 있어 온 것이오?” 화검상의 말에 그들 세 명은 들은 척도 않고 먼저 석한절에게 포권 을 취해 보였으며 남궁신이 대표로 말했다. “석소군주(石少郡主), 혹시 저자에게 지금 다른 볼일이라도 있습니까?” 석한절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그저 우연히 합석하게 된 거예요. 나는 상관없으니 당신들은 알아서 하도록 하세요.” “고맙소. 석소군주.” 남궁신은 이어 화검상을 향해 말했다. “솔직히 우리는 당신에게 볼일이 있어 온 것이오. 마침 나의 조부님께서 기다리고 계시니 지금 곧 가도록 합시다.” 화검상은 그들을 두루 바라보다가 이내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마침 나도 핑계가 없어 가지 못하던 참이었으니 말이 오,” 석한절은 문득 다시 전음으로 화검상에게 말했다. “나중에 다시 봐요. 나는 절대 물러서지 않을테니. 당신은 앞으로 지겹도록 나를 계속 보게 될 거예요.” 주루를 나서자 술에 취해서 오가는 사람들이 대로상에 더러 보이고 주의는 여전히 한산한 편이었다. 화검상은 잠시 걸음을 옮기는 동안에도 거의 말이 없었으나 이윽고 입을 열어 말했다. “어쨋거나 내가 처음으로 찾아가는 길이니 무엇인가 선물이 필요하지 않겠소?” 그들 세 사람은 은근히 긴장되고 냉랭한 분위기였지만 그래도 남궁신은 가볍게 미소하며 말했다. “그건 당신의 생각대로 하시오.” 화검상은 이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내가 가서 일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겠는데 무슨 선물이 필요하겠소? 그냥 갑시다.” 홍계남이 문득 가볍게 냉소하며 말했다. “그래도 선물은 때때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할 수도 있는 법이오. 그저 꽃이라도 한 다발 사가지고 가지 그러시오?” 화검상은 그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그렇지 않소. 내가 듣기로 남궁세가의 가주(家主)께선 호방한 전형적인 무인(武人)이라고 했소. 혹시 꽃 대신 그대의 수급이라도 잘라 가면 아마도 좋아하게 될지도 모으지.” 홍계남은 곁눈질한 두 눈에서 무서운 살광(殺光)을 번뜩였으나,이내 다만 음침하게 웃었다. 풍검진이 말했다. “내 생각엔 그래도 뭔가 선물을 준비해가는 것이 이로울 것 같소.” 화검상은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는 피차 적이나 다름이 없는데 그래도 나를 생각해주는 것이오?” 풍검진은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도 옛날엔 적과 아군이 분명히 구분되어 있는 줄로 알았소. 하지만 최근에 와선 그것도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것을 알았소.” 지금 풍검진의 안색에는 그늘이 깔려 있고 그간 그가 풍상을 겼었다는 것을 알게했다. 대체 화산파에는 어떤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그들이 말하고 침묵하고 하는 사이에 벌써 남궁세가의 주둔지에 이르렀다. 남궁세가의 주둔지는 개방의 주둔지와 인접해 있으며 정문(正門)과도 가깝다. 이곳 건물들이 거의 다 그러그러하지만 남궁세가의 건물들은 숫자는 많지 않아도 제법 견고하게 잘 지어져 있었다. 사람들이 지키고 있는 바깥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제법 널찍하게 조성된 연무장(練武場)이 나오고, 그 연무장을 가로지르자 대청으로 쓰이는 제법 큰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화검상은 약간 긴장했다. 이 건물의 내부에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남궁신과 홍계남, 풍검진이 안으로 들어간 뒤에 잠시의 시간이 흐르자 이윽고 문을 지키던 사람이 퉁명스런 어조로 말했다. “안에서 부르시니 어서 들어가보시오!” 대청의 내부는 그리 호화롭지는 않더라도 잘 정돈되어 있었고 제법 아취를 풍기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곳은 많은 사람들의 차가운 기세로 그 잘 정돈된 분위기마저 냉랭하게 얼어붙고 있었다. 대강 세어봐도 그 숫자는 스무 명도 넘는 듯했는데, 그 개개인의 비중만 해도 이곳에 수백 명의 인원이 들어차 있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우선 중앙의 가장 상석에는 두 노인(老人)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눈에 익은 백발(白髮)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천륭무가(天隆武家)의 사람일 것이다. 기실 이 자리는 남궁신의 조부가 주재하고 있는 자리는 결코 아닌 것이며 단지 전갈을 그렇게 했을 뿐이다. 이 안에는 두 명의 여인들이 있었는데, 다행히도 그 중 하나가 남궁설완이라는 것을 화검상은 확인할 수 있었다. 갑자기 그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흡사 칼날처럼 집중되어 서늘한 감각을 느끼게 했으나, 화검상은 이내 태연히 두루 포권하며 말했다. “소생은 몽천화(夢天華)라고 하오. 불행히도 소생은 견식이 부족하여 여러 선배들을 다 알지 못하니 그 점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 무림야그 출력일 :: 98/11/04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1 권 제 48 장 - 2 그 말에 장내의 사람들 중 더러는 냉소를 짓기도 했고 또 더러는 더욱 유심히 그를 살피기도 했다. 문득 좌중에서 나이가 구십에 가까운 노검객 하나가 몸을 일으키더니 말했다. “내가 바로 신아(信兒)의 할애비 되는 남궁원도(南宮遠圖)일세. 자네의 얘기는 이미 들었지. 내 손녀인 완아(完兒)에게 청혼까지 했다면서?” 화검상은 미소하며 대꾸했다. “자세한 말씀은 잠시 후에 드리도록 하지요. 그 전에 지금 이곳에 계신 분들을 소개받고 싶습니다만, 수고해주시겠습니까?” 지금 먼저 들어온 남궁신, 홍계남 등은 비록 아직 이곳에 있기는 해도 한쪽 구석에 서 있었기 때문에 화검상으로서는 일단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화검상의 그 말이 나오자, 일순 좌중에서는 가벼운 소요가 일어났다. “정말 버릇없는 후레자식이로군! 그래 어린 녀석이 감히 이 자리에서 그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저런 엉뚱한 녀석이 있기 때문에 강호의 질서가 엉망이 되고 마는 게야. 오늘은 그런 의미에서 저런 녀석은 살려 보내서는 아니되네.” 남궁원도, 즉 남궁세가의 소가주(小家主)인 창궁검신(蒼穹劍神) 남궁원도는 이에 다소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자네도 이제 알겠지만, 우선 자네가 상황 설명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네. 여러 어르신들을 소개하는 것은 그 다음에 생각해보도록 하지.” ‘하하, 역시 나는 방향을 잘못 잡았군! 하지만 이렇게 한번 해보는 것도 상관없지 않겠는가?’ 화검상은 이곳에 와서 기분이 훨씬 더 나빠졌다. 그는 가볍게 미소 띤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럼 할 수 없는 일이죠.” 이어 그는 천천히 걸어서 남궁설완의 앞에 이르러 무릎을 꿇고 엎드리며 말했다. “낭자, 다시 한번 진심으로 청하는 바이오. 나와 혼인해주지 않겠소?” 남궁설완은 그렇지 않아도 창백해진 안색이 되어 화검상을 노려 보고있었는데, 그가 갑자기 자신에게 다가와 무릎을 끓자 안색이 더욱 냉랭해졌다. 그러나 뒤를 이은 화검상으 정중한 말을 듣자 다소 그 냉기가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녀는 이내 싸늘한 음성으로 말했다. “대체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겠나요? 나는 당신과 말도 하고 싶지 않고 혼인문제는 더 더욱 말도 안 되는 일이에요. 다시는 내게 그런 말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래도 그녀의 말들 중 이번이 가장 성의가 있어 보이는 것 같았다. 화검상은 미소한 뒤 고개를 들며 말했다. “좋소, 낭자의 그 말은 문득 나를 일깨워주는 구려. 좋소! 약속하리다. 앞으로 나는 낭자에게 다시 이와 같은 일을 하지 않을 것이며, 부담을 주도록 행동하지도 않을 것이오, 이 말은 지금 여기에 계신 선배님들이 증인 이 될 것이오. 그리고……, 이제까지 내가 낭자에게 해를 끼친 점이 있다면 모두 용서하고, 모쪼록 앞으로 좋은 사람을 만나 잘 살기를 바라겠소!” 그 말에 문득 남궁설완의 두 눈에 보기 드문 이채가 떠오르는 것 같았다. 그녀는 기이한 듯한 시선으로 화검상을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이 그렇게 해주겠다니, 그럼 나도 한번 믿어보도록 하겠어요, 좋아요! 당신이 앞으로 그렇게만 해준다면 나도 용서하는 것으로 하죠. 그리고 당신이 굳이 나의 앞일에 개의할 필요는 없어요!” 그것은 실로 두 사람 사이에서 이제까지 이루어졌던 대화들 중 가장 점잖은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어 화검상은 몸을 일으켜 다시 남궁원도의 앞에 서서 포권하며 말했다. “그 설명은 지금 보신 바와 같습니다. 선배께 심려와 폐를 끼치긴 했어도 이미 당사자도 용서를 한다고 했으므로 선배께서도 의당 용서하실 것으로 믿습니다. 그럼 소생은 볼일도 없어졌으므로 이만 작별을 고할까 합니다.” 남궁원도는 이에 손을 들며 말했다. “잠깐, 아직 아니네. 아무래도 자네는 일단 모든 설명을 해야 할 것 같네.” 화검상은 그를 바라보며 대꾸했다. “선재께서는 착각을 하시는군요? 소생은 이미 모든 일을 결말지었으므로 달리 해명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남녀간의 일이라는 것은 으레 그런 것이 아닙니까?” 남궁원도는 다소 안색이 붉어지며 말했다. “자네는 아직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군? 사실 오늘 자네를 이곳에 부른 것은 내가 아니네.” 화검상은 일순 싸늘한 냉소를 터뜨렸다. “흐흐,그렇다면 결국 이 남녀간의 문제는 상관도 없었다는 말이 아닌가 그럼 진작에 그렇다고 말씀해주셔야 했죠.” 남궁설완이 몸을 일으키며 소리쳐 말했다. “당신은 감히 우리 할아버지께 함부로 대하긴가요?” 화검상은 차갑게 웃으며 그녀를 돌아보았다. “낭자는 또 뭔가 착각하고 있군! 우리 사이는 이미 깨끗이 정리 가 되어서 아무런 상관도 없는 남남인데 내가 못할 말이 둬가 있겠소? 으흐흐, 낭자는 혹시 아직도 내가 그대에게 연연하고 있는 줄로 착각하고 있는 게 아니오?” 지금 화검상의 기분은 그야말로 가장 최악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 순간 그는 자제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울분이 치밀어 평소 계획하고 있던 일들마저 개의하지 않을 정도로 즉흥적으로 칼날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남궁설완은 그 말을 듣자 안색이 붉어지며 말했다. “난 단지 당신이 나의 할아버지께 무례하게 구는 꼴을 두고 볼 수가 없었을 뿐이에요. 만일 당신이 계속 무례하게 나온다면 우선 나와 일전(一戰)을 치러야 할 거예요!” 화검상은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이내 가볍게 실소했다. “그만둡시다.” 이어 그는 좌중을 둘러보며 차가운 시선으로 다시 말했다. "나는 뒤에서 수작만 부리는 사람을 가장 경멸하오. 여기에 나를 무른 사람이 있다면 지금 즉시 나서는 것이 어떻겠소?” 그때 상석 쪽에서 한 사람이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자네는 지금 이곳이 어딘지 알고도 그런 말을 하는 건가?” 그 사람은 백 살도 훨씬 넘은 고령의 노인으로 용모는 청수(淸秀)한 편이었고 고집이 세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했다. 화검상은 그 노인이 남궁원도 등과 용모가 비슷한 점이 있다고 느껴져 일단 예의를 갖추고 말했다. “실례지만 노선배의 함자를 말씀해주시겠습니까?” 그 노인은 말했다. “내가 바로 이 집의 주인일세.” ‘주인? 그렇다면 남궁세가의 가주인 제왕검노(帝王劍老) 남궁조능(南宮兆能)이란 말인가?’ 화검상은 다시 한번 실소한 뒤 포권하며 말했다. “그렇다면 제왕검노 남궁노선배이시군요. 소생에게 무슨 가르침이라도 있으십니까?” 남궁세가의 가주 남궁조능(南宮兆能)은 싸늘하게 눈빛을 빛내며 말했다. “자네는 윗사람을 공경할 줄 모르고 게다가 함부로 날뛰는군. 만일 이곳에서 소란을 피울 작정이라면 일단 나와 한 수 겨루어야 할것일세.” ‘윗사람을 공경할 줄 모른다고? 흐흐흐! 너희들은 사실상 내 가문의 원수들인데 어찌 공경해줄 수가 있겠느냐? 당장 죽이지 않는 것도 운이 좋은 줄 알아야 할 것이다!’ 속으로는 그렇게 중얼거렸지만, 그러나 화검상은 구태여 그와 싸우고 싶지 않았기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좋습니다. 그러면 제가 이곳을 나가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저의 뒤를 따라나오라고 하십시오.” 이어 그가 마악 밖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자, 문득 한 사람이 벌떡 일어나 달려들며 소리쳤다. “밖으로 나갈 것 없다! 아예 이곳에서 끝장을 재주마!” 그 사람은 남궁조능의 옆에 앉아 있던 늙은 거지의 타구봉이 그의 등을 꿰뚫어갔다. 평소라면 화검상은 이렇게까지 심하게 손을 쓰지 않는다. 하지만 처음부터 찔러오는 그 타구봉에 무거운 살초(殺招)가 숨겨져 있는 것을 알자 그는 이내 충동적으로 움직였다. 그의 몸은 여전히 밖을 향하고 있었는데 단 지 오른손만 돌아가 타구봉의 끝을 움켜쥐었다. 타구봉이 먼저 그의 지척에 도달했던 것을 생각하면 실로 믿을 수 없는 빠르기요, 게다가 거기에 담긴 변화는 더욱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우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타구봉이 갑자기 갈갈이 찢겨져 날아가며 그 늙은 거지는 별안간 뒤로 곤두박질을 치는 것은 그렇다고 해도, 그 늙은 거지의 손아귀는 이미 심하게 찢어져 피가 철철 흘렀고 입으로도 거푸 두 모금의 피를 토해냈다. 강호에서 많은 싸움을 볼 수 있긴 해도 실로 조금 전과 같은 경우는 매우 드물다. 자신의 강한 것으로 적의 강한 부위를 치는 것은 금기가 되어 있으며 어리석은 행위나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화검상과 그 낡은 거지의 실력이 워낙 차이가 있기에 오히려 그러한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사실 그것은 무모해 보이지만 능력이 있을 경우 상대의 기를 꺾어버릴 수도 있는 수법인 것이다. 제 49 장 천륭무가(天隆武家)의 고수(高手) 그 늙은 거지는 분노를 누를 길이 없어서 즉시 몸을 일으켜 달 려들려고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화검상의 공력은 매우 특이하여 보기보다 훨씬 심각한 내상(內 傷)을 그에게 입혔던 것이다. 사람들은 도저히 지금과 같은 결과를 예상할 수 없었기에 하나 같이 크게 놀라 두 눈을 부릅떴다. 이것은 이제 나이가 겨우 스물다섯인 젊은이로서는 불가능한 능력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실 더욱 놀란 사람은 남궁신 등이었는데, 그들은 비 로소 화검상이 이전에는 진짜 실력을 전혀 발휘하지 않았다는 것 을 알게 된 것이다. 왜냐하면 그 늙은 거지의 신분은 보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경악과 불신의 회오리가 장내를 휘감는 가운데, 그 늙은 거지 는 몸을 움직일 수가 없자 입에서 피를 토하며 소리쳤다. "네, 네놈이 감히 나를......, 이 죽일 놈!" 그는 소리치는 가운데에서도 계속 안간힘을 다해 공격하려고 했으나 오히려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하고 내상이 깊어가고 있었 다. 조금 전의 화검상의 한 수는 기실 일시적으로 그의 내공의 흐 름마저 파괴해 버렸던 것이다. 화검상은 느릿하게 몸을 돌리며 차가운 안색으로 말했다. "그다지 대수롭지도 않은 무공을 가지고 있으면서 처음부터 후 배에게 독수(毒手)나 펼치는 것이 선배의 할 도리란 말인가? 대 체 내가 당신에게 무슨 죽을 죄를 지었기에 그런단 말인가, 흐흐! 생각이 있다면 한번 더 덤벼 보시오. 당신의 그 소중한 목숨을 간단히 끊어 드리겠소." 그때 문득 화검상의 귓속으로 다급한 전은이 들려왔다. "말을 삼가요! 그 거지가 누군 줄이나 알고 그러나요? 바로 오 만(五萬 개방의 방주 천왕개(天王 ) 홍두자(洪頭子)라고요! 당신 은 설마 하니 개방의 오만방도와 싸울 생각은 아니겠죠?" 그것은 다름아닌 석한절의 전음이었다. 그녀는 아까 주루에서 간단히 화검상을 보내는 듯했으나, 기실 은 이후 은밀히 따라와서 이 남궁세가의 지붕 위에 숨어서 엿보 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화검상은 내심 냉소(冷笑)를 터뜨리고 있었다. '흥, 설령 천하의 백만대군이 몰려온다고 해도 나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물며 개방의 오만이야...... 그들 또한 나의 원수들이 아 니었던가?' 그때 장내에서 누군가가 소리치며 솟아올라 천장을 뚫고 지붕 위로 올라갔다. 화검상은 그가 바로 가장 상석에 앉아 있었던 그 천륭무가의 백발노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백발노인의 무공은 실로 무서운 것이어서 이미 석한절의 전음 을 모두 엿듣고 쫓아올라간 것이다. 석한절의 무공이 제아무리 뛰어나도 그 백발노인의 손을 벗어 날 수는 없을 것이다. 과연 아니나다를까? 어느새 이내 다시 자리로 돌아온 그 백발노인의 손에는 축 늘 어져 혼절한 듯한 석한절이 들려져 있었다. 화검상은 그것을 보자 문득 그녀의 안위가 걱정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물론 극단적인 상황은 벌어지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녀는 필 시 이와 같은 사태를 예상하지 못하고 그에게 전음을 보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늙은 거지, 천왕개 홍두자는 이미 거듭되는 울화와 극심한 내상으로 인해 혼절하고 말았고, 어느새 그의 곁에는 홍계남이 다가와 부축하고 있었다. 홍계남은 홍두자의 몸을 안아 들더니 밖으로 걸음을 옮기면서 화검상에게 소리쳤다. "언젠가는 내가 네놈을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만들어 줄 것이 다!" 화검상은 그것을 보자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이내 신형을 날려 그의 앞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잠깐,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네놈만은 오늘 죽여야 하겠다. 네 놈은 평소에도 그렇게 교활하고 음독잔인(陰毒殘忍)하니 앞으로 는 어떻게 되겠느냐?" 개방의 방주인 홍두자도 화검상의 상대가 되지 못했는데 이 홍 계남이야 말할 나위도 없는 일이었다. 우선 지풍(指風)을 날려 화검상이 그의 마혈(痲穴)을 제압해 버 리자, 홍계남의 얼굴에 언뜻 공포감이 떠올랐다. 아무리 마음이 악독하다고 해도 공포심을 느끼지 않는 것은 아 니다. 아니 오히려 공포심을 덜 느끼는 쪽은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 이 없는 선량한 사람들 쪽일 것이다. 뒤이어 화검상이 장력을 날려 홍계남의 머리를 부숴 버리려고 할 때, 문득 한 사람이 급히 몸을 날려 그의 앞을 막아섰다. 바로 남궁조능이었다. "자네가 그 아이를 죽이려면, 역시 나와 먼저 한 수 겨루어야 할걸세." 화검상이 보기에 이 남궁조능의 무공은 홍두자와 그리 차이가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이런 늙은이 하나 정도 더 해치우는 것은 그리 어렵 지 않은 노릇이겠지만, 화검상은 사실 지금 그와 상대하고 싶은 기분은 아니었다. 화검상은 잠시 주저하는 듯했으나 이내 물러서고 말았다. "흐흐흐, 좋습니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양보하는 것은 이번 한 번뿐이라는 것을 알아두셔야만 할 것입니다." 남궁조능은 이에 약간 어색한 듯이 웃으며 대꾸했다. "허허, 알겠네. 내 그 말을 잘 기억해 두도록 하지." 검상이 손을 거두자, 남궁조능은 급히 서둘러 혼절한 홍두자의 몸을 점혈(點穴)하여 응급조치한 다음에 주위에 늘어서 있던 호 위들에게 홍두자와 홍계남을 안쪽으로 데려가도록 지시했다. 이에 이윽고 화검상은 자리를 옮겨 예의 그 백발의 노인에게 다가가 포권하며 입을 열었다. "실례지만, 노선배의 존성대명(尊姓大名)을 말씀해 주실 수가 있겠습니까?" 그 백발의 노인은 화검상을 어이없는 듯한 기색으로 주시하고 있다가 이내 음산한 표정으로 웃으며 싸늘하게 말했다. "허허허, 정말 하늘 높은 줄을 모르는 녀석이로군. 나는 너와 같은 천둥벌거숭이에게 내 이름을 말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노인의 손에 들려져 있는 그 석한절은 지금 그저 혼절한 것일 뿐 그다지 상처를 입은 것 같지는 않았다. 화검상은 그녀를 한번 돌아본 다음에 내심의 울화가 다시 크게 폭발하여 일순 심하게 조소하며 말했다. "그렇습니가? 후후후, 그렇다면 어디 나와 한번 겨루어보는 것 은 어떻겠소이까?" 노인은 다시 한차례 음산하게 웃었다. 하지만 문득 그의 두 눈 에서는 가느다란 살광이 번뜩이고 있었다. "허허허! 네놈이 감히 내게 도전하겠다는 말이냐?" 화검상은 역시 조소하는 표정으로 다시 짐짓 포권하며 말했다. "그렇습니다만, 그것 역시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오." "허허허, 정말 분수를 모르는 녀석이로군!" 이에 노인은 다시 한번 음산하게 웃더니, 이윽고 남은 손을 위 로 약간 들어올렸다. "물론이다.. 나는 사실 네놈을 처리하러 이곳에 온 것이니까." 이 무림의 최상급의 고수들 간의 실력이란 서로가 대개 직접 경험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는 알 수가 있을 법한 것이다. 그러나 기실은 그렇게 무학에 대한 안목이 대단하다고 해도 현 실에서는 정작 그렇지 않는 경우도 그러하다고 할 수가 있는데, 백발노인으로서는 화검상의 이 기이한 무공의 수준을 파악하기는 커녕 이해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고, 또한 화검상 본인으로서도 자신의 그러한 무공에 대한 믿음을 아직 확실하게 가지고 있지 못한 상황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의 비무라는 것은 드문 일이지만, 화검상은 지 금 감정이 너무도 복잡하고 미칠 듯한 기분이 되어서 무모할 정 도로 나서고 있는 것이다. 화검상이 한눈에 보기에도 이 노인은 남궁조능이나 홍두자 등 과는 전혀 다른 무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소위 대홍락의 심검(心劍)의 거의 장점에 도달해 있는 사람이 라고 할 수가 있었다. 노인의 공력은 최소한 화검상의 공력보다 훨씬 우위에 있을 것 이고, 따라서 이런 사람은 놀랍게도 허공을 마음대로 걸어다니고 날아다닐 수가 있을 뿐만 아니라 전혀 움직이지도 않고서 사람을 죽일 수가 있다. 자연 지금 그가 한 손을 그렇게 들어올린 것은 마치 공격을 하 려는 동작으로 보여졌다. 그러나 기실은 그런 것이 아니었고, 그 순간 노인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데 느닷없이 좌우에 있던 사람들이 사방으로 날아오 르며 화검상을 항해 날벼락처럼 덮쳐 왔다. 이것은 마치 사전에 잘 짜여진 계획 같기도 했고, 게다가 실로 지금 그 화검상을 향해 덮쳐들고 있는 사람들 중에 강호 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평범한 고수는 하나도 없었다. 하나같이 그들의 움직임은 마치 번개처럼 빨랐고, 그 공격력은 무쇠라도 박살낼 정도여서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흡사 갑자기 폭풍이 휘몰 아치고 살광이 회오리를 일으키는 것과 같은 무시무시한 느낌을 주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무림야그 출력일 :: 98/11/11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2 권 제 49 장 - 1 아니 만일 무공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본다면 그저 눈에 보 이지도 않는 그림자들만이 아른거린다고 생각될 것이다. 화검상은 이미 그들의 포위망으로 스스로 걸어들어가 있었던 셈이니 결국 이런 난국을 자초한 것이라고도 볼 수가 있었다. 하지만 급박해졌다고 해도 일반인들에게는 믿어지지 않겠지만, 화검상은 그 속에서도 상대방 한 사람 한 사람의 움직임을 분명 히 볼 수가 있었고, 설령 눈이 아니라 해도 마음으로 알 수가 있 었으며 이에 대처할 수가 있었다. 그것은 이곳의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지금 화검상을 향해 덮쳐드는 사람들의 무공수준은 하나같이 높았지만, 그 수법들이 각기 다양할 뿐만 아니라 그 수준에도 많 은 차이가 있었다. 즉, 그 중에서도 단연 놀랍도록 쾌속하고도 무서운 공격을 펼 쳐오고 있는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그 사람은 바로 조금 전까지 백발노인의 옆 자리에 앉아 있던 황포노인이었다. 이 황포노인은 머리카락이 검은색이었는데도 얼굴에 주름살이 얼마나 많은지 도저히 나이를 추정할 수가 없었으며, 생각해 보 면 지위 또한 이곳에서 그 백발 노인에 이은 두 번째의 사람인 것 같았다. 자신의 무공에 대한 확신이 있어서였겠지만, 노인은 정면에서 곧장 공격해 왔는데, 가장 늦게 움직인 편인데도 이미 남들보다 몇 배나 빨리 가장 먼저 지척에 이르러 쌍장을 펼쳐냈다. 실상 나이가 가장 많아 보이는 이 황포노인의 지위는 백발노인 에게 양보하고 있다고 해도 무공은 거의 그에 못지않는다는 것을 화검상은 느낄 수가 있었다. 아마도 이런 노인은 자신이 스스로 이런 합공에 가담하고 있다 는 사실조차 귀찮게 생각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노인의 무공은 역시 아주 기이하여 가볍게 쌍장을 펼쳐낸 듯했 는데도 어느새 누런 노을빛의 강기가 마치 그물처럼 화검상의 몸 을 덮어씌워 오고 있었다. 이것은 초식이 아닌 실제의 변환이 그렇게 뒤덮어 오는 것이므 로 몹시 신기하게 보이지만 환상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환상적인 무학은 초절정의 경지이지만 이것은 그것과는 상당히 내용이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눈의 착각이라기보다는 거의 실제의 변환이 그렇게 보 이는 것이다. 흔히들 알고 있는 것처럼 무공이 소위 백연탄의 경지에 오르면 강기류의 무학을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만, 그때의 강기는 지금과 같이 될 수는 없다. 수십 혹은 수백 개의 변환이 그 초식에 들어 있을 뿐만 아니 라, 그러한 변환들 속에는 움직이는, 각기 보이지 않는 변환들이 또 숨어 있다. 본래 강기라는 것은 그 위력이 강력한 반면에 운용이 쉽지 않 은 것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그것으로써 지금 이러한 상상할 수 없는 변환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일 이다. 즉, 이것은 바로 대홍락의 무학이며 또한 거기에서도 이미 깊 이 접어든 단계인 것이다. 이것은 언뜻 장공(掌功)으로 보이지만 그러나 기실은 금나수 (擒拿手)라고 할 수가 있었다. 변환 속에 다시 변환들이 작용하여 상대방을 마치 그물망처럼 바르게 조여 가며, 상대방이 제아무리 민첩하고 강하게 대응한다 고 해도 이내 거의 모든 퇴로를 차단하여 엄청난 위력으로 파괴 해 버린다. 화검상은 비록 강호의 견식은 그다지 많지 않았지만 그러나 이 런 종류의 특수한 무학들에 대한 이야기는 자연 들은 적이 있었 다. '아, 이건 혹시 금삽수(金揷手), 금삽수가 아닐까?' 금삽수라는 것은 바로 세외팔세의 하나인 성수곡(聖手谷)의 절 예이다. 이 무학의 극도로 선명하고 날카로운 점은 천륭무가의 무학과 도 어느 정도 비슷한 면모가 있고, 게다가 그 무학의 빛깔과 특 유한 성질은 그 근본의 흐름을 나타낸다. 그러나 이런 무학도 기실은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일반인들에게는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이겠지만 적어도 화검상 이 보기에는, 이러한 것도 역시 말할 나위 없이 직선적인 무학인 것이다. 그 가치로 보자면 다른 여타의 무공들에 비해 별로 다르지 않 다고 한다면 사람들은 믿을 수가 있을까? 물론 위력이야 있겠지만, 이것은 마치 하나의 선이 아닌 무수 한 선들을 모아 놓은 것과도 같다. 흔히 무수한 선이 겹쳐지거나 모이면 면이나 흐름이 된다고 생 각하기 쉽지만, 그러나 제아무리 많은 변화의 선이 모인다고 해 도 여전히 그 여지는 남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에 의한 방법으로는 그러한 것들이 얻어지지 않으 며, 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불행이 생기는지도 모르는 일 이다. 그러한 것들은 다른 방법으로 얻어지며, 하지만 다르다고 말할 수가 없고 사실 그것은 이론으로 설명할 수고 없다. 바로 곡선적이라는 말이다. 이미 말했지만 아무리 죽어 있는 것을 많이 나열한다고 해도 그것이 살아 있는 것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 흐름이라는 것은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며 살아 있는 변 화라고 할 수 있다. 살아 있는 것은 거의 목적에 따르지만 죽어 있는 것은 헛짚는 다. 그것은 계산에 의하기 때문에 오히려 그 어떤 것도 영원히 정 확하게 잴 수가 없는 것이며, 또한 그것은 누적이 되고, 말할 것 도 없이 무한하고도 깊은 변화를 도저히 헤아릴 수가 없는 것이 다. 하지만 사람들은 곧잘 오히려 그 직선적 무예의 이치에 걸려들 게 되는데, 그것은 그 사람이 스스로 직선적으로 생각하여 시전 자의 요구대로 움직여 주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황포노인의 공력은 분명히 화검상의 공력보다 우위에 있어서 거의 두 배에 가까울 정도였지만, 일단 부딪치자 화검상의 손속 은 기이할 정도로 그 틈새로 파고들었고, 마치 황포노인의 그 무 서운 공세는 마치 헛되이 허공만 후려지는 것과도 같았다. 화검상은 단지 옷자락만 두어 군데 찢어졌을 뿐 이내 그 공세 를 벗어났고, 황포노인이 이에 대경실색하여 재차 정신을 차리고 화검상을 노리려고 했을 때, 그는 이미 노인의 뒤쪽으로 돌아가 고 있었다. 대홍락의 경지에서 곡선적 무예의 진면목이 드러난다고 하는 말은, 이제야 비로소 그 깊은 변화에 접근했다는 의미이기 때문 이다. 같은 공력에 비해서 곡선적 무공의 위력이 세 배 이상인 것은, 아마도 직선적 무공은 헛되이 공력을 낭비하는 편이고 곡선적인 무공은 그러한 낭비가 크게 줄어들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사실은 이 곡선적 무공의 능력이라는 것 자체가 본래부 터 분석이 되지 않는 것이다. 오로지 아직 미숙하기 때문이겠지만, 그러한 면에서 본다면 화 검상이 지금 자신의 곡선적 무공의 위력에 대해서 확실한 믿음을 갖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이해가 간다고도 말할 수가 있을 것이다. 화검상은 일단 그렇게 황포노인의 공세에서 벗어나자 이제는 역으로 노인의 허점을 반격할 위치가 되었다고 할 수 있지만 그 러나 그는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우선 그는 지금의 상황에서 그 황포노인에게만 신경을 쓸 수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자신감이 없다면 수세와 공세가 각기 다른 능력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황포노인의 공세에서 벗어나자 비로소 다른 여러 고수들의 공 세가 지척에서 물밀듯이 흉험하게 밀어닥쳤다. 그들의 무공은 각기 그 수법이나 내용면에서 달랐지만 그러나 그것들 중 어느 하나도 무섭지 않고 칼날같이 예리하지 않은 것 이 없었다. 하지만 화검상의 신형은 이런 상황에서 또다시, 마치 물결이 그 어떤 미세한 틈도 파고들듯이 유연하게 그 칼날 같은 공세의 그물망을 빠져나갔다. 눈으로 보기에는 마치 그의 몸이 그 흉험한 공세 속에서 갈가 리 찢겨져 날아가는 듯했는데, 어느새 거짓말처럼 그의 몸은 그 공세를 벗어나 전면으로 이동하였고, 이어 한 사람의 목덜미를 손으로 잡아올리고 있었다. 비단 그 당한 사람도 놀랐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크게 놀라서 황급히 저마다 최대한의 공력을 끌어올려 다시 화검상을 향해 방향을 전환해 덮치기 시작했다. 이것은 마치 무시무시한 강기들이 강력한 폭풍을 일으켜 돌개 바람으로 그 주위를 덮치는 것과도 같은 것으로, 한 순간에 그 주위의 탁자나 의자 등은 그 가운데 휘말려 산산조각이 되어 날 려갔다. 사실 화검상은 이미 그 순각이라면 충분히 그 포위망을 벗어날 수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고 손에 들어올린 그 사람을 일순 백발노인을 향해 내던졌다. 그러는 동안에 이미 그 노인의 공세가 가장 먼저 다시 그의 전 신을 뒤덮었고, 주위의 포위망이 더욱 강력하게 형성되었다. 그저 다른 사람들의 공세뿐이라면 화검상에게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겠지만 그러나 그 황포노인의 공세는 그로서도 지금 무 시할 수가 없었다. 이번에 그는 다른 일로 지체하는 바람에 처음보다 더욱 급박한 사태에 놓이게 되었고, 또한 황포노인의 공세도 더욱 강력했다. 생각해 보면 이러한 사태는 다시 화검상 스스로가 자초한 것처 럼 보였다. 그는 어째서 지금과 같이 급박하고도 위험한 상황에 서 쓸데없이 사람을 집어들어 백발노인에게 던진 것일까? 과연 이번에는 그들의 공세를 벗어나는 일이 여의치 않아서 이 윽고 간신히 황포노인의 손아귀를 벗어났지만 그러나 그것에 너 무나도 신경을 쓴 나머지 그만 전면의 한 사람과 부딪치게 되었 다. 그 부딪친 사람은 검으로 화검상의 가슴과 머리 부분의 급소를 노렸지만 빗나가고 이내 서로의 호신강기들이 부딪치게 되었는 데, 순간 마치 돌풍에 휘말린 듯 신음을 발하며 날려갔지만 역시 화검상도 그 여파로 주춤하고 뒤로 밀려나는 수밖에 없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무림야그 출력일 :: 98/11/11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2 권 제 49 장 - 2 황포노인이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최소한 이런 상황을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르는 일 이었다. 격전이나 비무의 와중에서 무공 못지않은 것이 바로 이 경험이라는 것이다. 황포노인은 나이가 많은 만큼 아무래도 경험이 매우 풍부하여 아주 짧은 순간의 변화였지만 결코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약간 놀라면서도 황포노인은 이내 즉시 돌아오는 화검상을 향 해 보다 강력한 공격을 퍼부었다. 이번의 이 공격은 아까와는 달리 강력한 파괴력이 것들인 공격 위주이고 장법이나 금나수가 아닌 권공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렇게 분명히 말할 수가 없는 것은 사실상 대홍락의 심검의 후반에 이르면 그 무학 수법의 구분이 점차로 모호해지게 되기 때문이다. 지금 화검상은 뒤로 밀리고 있는 상황에서는 아까처럼 신속한 변화를 일으키기는 어려웠다. 황포노인의 그 권공은 바로 그러한 상황에서는 시기적절하고 아주 강력한 위력의 무공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것은 마치 두 개의 강력한 쇠뭉치가 번갈아 상대의 몸을 후 려치는 것과도 같았는데, 거기에는 아까보다도 훨씬 강력한 노을 빛의 강기가 실려 있었다. 또한 이 권공은 강력한 위력이라고 해서 변화가 적은 것도 아 니다. '아, 이것은 쌍류금(雙流金), 그렇다면 역시 성수곡(聖手谷)의 사람이란 말인가?' 상대방의 강한 힘에 대해서 나의 강한 힘으로 부딪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라고 할 수가 있다. 무학의 이치상 그것은 역시 금기(禁忌)의 하나이다. 하지만 지금 화검상은 도저히 그것을 피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 고 설사 모험이 아니라고 해도 정면충돌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도저히 피할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에서 화검상은 간신히 황포 노인의 첫 번째의 권공을 피해냈지만 두 번째의 공격은 피할 수 가 없었다. 기실 이 성수곡의 절학 쌍류금은 두 번째 이후의 공 격이야말로 그 권공의 진정한 위력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기실은 그 찰나지간의 어려운 상황에서 화검상이 믿을 수 없는 변화를 일으키며 첫 번째의 공격을 피해낸 것만 해도 이미 놀라 운 일이라고 해야 할 것이었다. 마치 예정된 상황이 벌어지듯, 거대한 쇳덩이 두 개가 격렬히 부딪치는 것과도 같은 꽝! 하는 굉음이 울려나오는 가운데 흡사 지붕이 통째로 무너져내릴 것만 같은 강력한 여파가 역시 일어나 주위를 휘감았고, 한 사람이 뒤로 주춤주춤 두 걸음 물러나는 가 운데 다른 사람은 그 반탄력에 의해 마치 화살처럼 앞쪽으로 날 려갔다. 앞쪽으로 날려간 사람은 바로 화검상이었고, 뒤로 두 걸음 정 도 물러난 사람은 그 황포노인이었다. 사람들은 일순간 크게 놀라면서도 한편으로는 저마다 이러한 결과에 대한 해석을 내리기에 바빴다. 노인은 뒤로 두 걸음밖에 물러나지 않았지만, 안색은 거뭇하게 변하고 자세가 흐트러져 있었으며 여전히 뒤로 밀려나려고 하고 있었다. 황포노인은 명성이 대단한 사람이었고 그 명성만큼이나 자존심 또한 대단히 높은 사람이었다. 사람들은 그 격돌한 내용을 분명히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지금 황포노인이 스스로의 자존심 때문에 무리하게 억지로 버티려고 하고 있는 것이며 내상이 가볍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것은 실상 황포노인이 회심의 일격을 가한 것인데 대체 어째 서 이런 결과가 벌어진 것이며, 과연 그 화살처럼 날려간 상대 화검상의 상태는 어떻게 되었을까? 사람들은 최소한 그가 치명상을 입은 것이 틀림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무시무시한 격돌의 여파로 인해 자연 포위망이 허술 해지게 되고 사람들의 공세도 다소 주춤하게 되어버릴 수밖에 없 었다. 게다가 그들은 화검상이 막 뒤로 밀려나던 상황에서 느닷없이 다시 앞쪽으로 쏜살같이 날려갔기 때문에 미처 그쪽으로 새로 방 향을 잡을 수가 없었고, 또한 날려가는 화검상을 누구도 제지하 지 못했다. 화검상이 날려간 곳은 공교롭게도, 바로 그 백발노인의 앞쪽이 었다. 이 순간 백발노인은 양손에 각4기 하나씩의 사람을 들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보자 절로 어리둥절해지지 않을 수가 없게 되 었다. 하나는 석한절이었는데, 다른 하나는 바로 조금 전에 화검상이 집어던졌던 그 사람이었다. 백발노인은 그럼 어째서 지금 이 순간에 그 사람까지 손에 들 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다름아닌 나중에 화검상이 던졌던 그 사람이 바로 백발 노인에게는 더없이 중요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사람은 백발의 아주 잘생긴 청년이었는데, 그러고 보니 그 세 사람 모두가 다 백발을 가지고 있다. 그 백발청년은 나이가 서른에 가깝고 준수한 용모에다 차갑지 만 은연중 후덕해 보이는 위엄을 갖추고 있어서 화검상으로서는 그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크게 주목받는 존재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게다가 그는 화검상이 이전에 만났던 석한상(石恨上) 등의 용 모와도 많이 닮아 있었기에, 화검상은 일부러 그 백발청년의 혼 혈을 제압하고 백발노인에게 내던졌던 것이다. 화검상이 그렇게 내던진 수법은 평범한 듯해도 가만히 둘 경우 백발청년에게는 위험해질 수가 있다. 백발노인은 도저히 자신을 향해 날려오는 백발청년을 받아들지 않을 수가 없었고, 또한 화검상이 다시 날아오기까지 미처 손을 쓰지 못한 것이다. 이것은 사실 한 순간에 펼쳐진 아주 치밀한 계획이었지만 화검 상으로서는 모험을 하는 것이고 실패할 경우에는 위험부담도 많 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 모험은 기대 이상으로 성공을 거두어 비록 약 간의 내상이 느껴지기는 했지만 그러나 화검상의 몸은 대체로 멀 쩡한 편이었고, 얻기 어려운 기회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황포노인의 권공을 몸에 맞는 순간, 그는 본신의 호신강기로써 그 대부분의 위력을 되돌렸고, 나머지의 여력을 이용하여 백발노 인이 있는 쪽으로 날아간 것이다. 즉 이것은 그가 날려간 것이 아니라 날아간 것이 되는데, 소위 말하는 반탄력의 극치라는 사량발천근(四兩撥千斤)이라는 것은 오묘한 것이며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님은 물론이다. 지금 화검상의 의복은 그러는 와중에 이곳저곳이 많이 찢어지 고 손상되었지만, 그런 것은 이 순간 아무것도 아니다. 이어 화검상은 우장(右掌)을 백발노인을 향해 가볍게 내밀었다. 비록 지금의 그의 이 공력이 가벼운 듯이 보이고 심지어 겉으 로 별로 위력이 나타나지 않아 장난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결코 간단한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바로 대홍락의 곡선적 무공이며 의형수형(意形隨形), 심즉살(心 卽殺)에 가까운 것이었다. 화검상은 오늘 그야말로 최강의 적들을 맞이한 셈이고, 따라서 이제는 할 수 없이 자신의 최고의 무공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본래 이 의형수형이라는 것은 초식을 초월한다는 것으로서 직 선적인 일반무공의 이치에 의하면 광검의 경지에서나 가능한 일 이라고 되어 있었다. 하지만 화검상은 지금 곡선적 무공의 심검으로도 이미 그것을 거의 시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 백발노인은 말할 것도 없이 당금 천하에서 보기드문 고수의 하나이고, 따라서 이런 최고의 무공을 알아보는 안목이 당연히 갖춰져 있는 사람이었다. 곡선적 무공에 대한 것은 알 수가 없을지라도, 직감적으로 그 는 이 무공의 정체를 간파하고 그만 크게 안색이 변했다. 이 의형수형의 무공은 그 자신도 어려운 일인데, 하물며 이런 새파란 나이의 시골청년과 같은 젊은이가 시전해 내고 있다는 사 실은 정말로 믿어지지 않는 일인 것이다. 지금의 백발노인의 경지라면 능히 손을 쓰지 않고도 단지 무형 지기만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가 있지만, 그러나 기실 그것은 상 대가 그보다 훨씬 약할 경우게 해당되는 일이다. 현재로서는 그는 상대의 공격을 피할 수도 없게 되었으므로 손 을 쓰지 않을 수가 없는데, 이렇게 두 손에 각기 사람을 하나씩 들고는 손을 쓸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이런 상황은 순간적으로 일어나고 지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비 록 여러 가지의 경우가 있다고 해도 생각할 여유가 있다는 것은 거짓말일 것이다. 대개 다급한 상황에서 그 사람의 숨겨진 본성이 드러낸다고 하 는데, 이 백발노인은 자존심이 너무나도 강하여 사람을 던져서 그것으로 기선을 제압할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백발노인은 즉각 석한절을 바닥에 내려놓았고, 이어 그 빈손으 로 화검상을 향해 장력을 휘둘러왔다. 그것은 바로 화검상도 이미 본 적이 있는 천륭뮤가의 유명한 절기 옥황장(玉皇掌)이었다. 실로 같은 옥황장이라도 시전하는 사람에 따라 그 위력이나 모 습이 거의 판이하게 달라지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유리처럼 투명한 옥색의 장인이 무수히 피어 올라 꽃잎처럼 흩어지더니, 이내 각기 급격히 확대되어 화검상의 전신으로 덮쳐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보기에는 그저 아름답고 신비롭게만 보이지만 기실 그 하나하나의 꽃잎 같은 장인들은 설사 철판이라도 두부처럼 부숴 버릴 수가 있는 가공할 파괴력이 있는 것들일 것이다. 화검상의 몸이 순간적으로 그 투명한 장인들에 의해 박살이 나 는 것 같은 강렬한 환각이 일어났다. 그러나 갑자기 퍽! 하는 그리 크지도 않은 음향과 함께 그곳에 서 눈부신 광채가 찬란하게 일어나 주위로 확산되더니, 이내 사 라지고 장내도 갑자기 조용해졌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광채가 너무나도 눈부셨을 뿐만 아니라 아주 갑작스럽고 순간적으로 벌어진 일이라서 도무지 그 순간의 정황을 알아볼 수가 없었다. 사람들이 얼른 다시 정신을 차리고 장내를 주시했을 때는 뜻밖 에도 사태는 이미 종결되어 있어서 저마다 크게 어리둥절한 표정 들을 지었다. 어느새 놀랍게도 화검상, 아니 몽천화라는 청년은 온데간데없 이 사라져 버리고 게다가 석한절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 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무림야그 출력일 :: 98/11/11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2 권 제 50 장 천재는 불행하다는...... 제 50 장 천재는 불행하다는...... 백발노인은 여전히 백발청년을 들고 그 자리에 서 있었지만 안 색은 불그죽죽했고 어딘가 낭패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장내는 갑자기 거세게 휘몰아치던 폭풍이 거짓말처럼 사라져서 조용해지기는 했지만 이어 그 가운데 숨막힐 듯한 긴장감이 감돌 기 시작한 것 같았다. 백발노인은 잠시 아무런 말도 없었고, 또한 아무런 행동도 취 하지 않았으며, 다른 사람들도 그러했고 또한 일부의 사람들은 크게 얼빠진 듯한 표정들을 짓기도 했다. 지금의 이 결과와 사태는 아무리 해도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문득 장내의 사람들 중에서 누군가가 서로 은밀하게 놀란 어조 로 전음입밀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아, 아니, 그 몽가 녀석이 달아나 버렸단 말인가? 이럴 수 가......! 한데 그 석소군주는 왜 안 보이지?" "나도 모르겠네....... 아무튼, 그 몽가 녀석은 이미 치명상을 입 고 도주해 버린 것이 틀림없어. 놈은 십중팔구 다시 영원히 제기 할 수 없거나 폐인이 되어 살아가게 될 걸세......." 지금 생각해도 화검상의 그러한 일련의 행동들은 비록 심하게 격분하여 거칠기는 했어도 그대로 다소 절묘한 점이 없지 않았다 고 생각되기도 했다. 아무래도 무리를 한 탓에 위험의 요소가 많았지만, 그런 가운 데에서도 어느 정도의 소득은 있었다고 할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가 성취해 온 곡선적 무공에 대한 확신이 늘게 되었다는 것이다. 마지막 순간에 그는 정말로 그 백발노인을 향해 공격을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목적은 다른 곳에 있었으므로 당연히 그의 공격은 상대의 반격 을 유인하는 허초와도 같은 것이었고, 그러는 가운데 상대의 그 옥황장과 부딪치는 순간 그는 문득 자신의 무공이 그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무공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는 것이 더 높은 무공을 습득하는 것보다 더욱 중요할 때가 종종 있다. 그러한 확신이 부족하다면 실전에서도 거의 제 위력을 발휘하 지 못하게 될 뿐만 아니라, 이어 보다 높은 경지로 올라가는 데 에도 장애 요소로 작용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 마지막 순간에 화검상은 상대의 옥황장을 흡수한 다음 분산 시켜 주위의 이목을 흐리게 하고, 곧이어 석한절을 집어든 다음 빠르게 그 자리를 떠난 것이었다. 그러한 일련의 행동들은 화검상이 거의 전력을 기울였기 때문 에 실패하지 않았다. 이 소위 사량발천근이라는 것은 진기(眞氣)의 운용에 있어서 변화가 능수능란하고 신기에 가까워야 하기 때문에 강호에서는 그저 이론상의 법문(法文)으로만 통용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약간의 차이라면 가능한 일이겠지만, 그러나 그렇게 커다란 차 이의 공력을 가지고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은 실로 꿈 같은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황포노인 등의 무학은 대홍락의 경지에 들어 있으면서도 그런 수법에 당했다는 것은 그런 현실을 단적으로 말해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비록 그 백발노인 등을 격퇴시키지는 못했지만, 그러나 화검상 으로서는 일단 그들보다 무공이 우위에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만 으로도 매우 기분좋은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상 그는 지금 오히려 기분이 그다지 좋은 것 같지 않 은 표정이었다. 비단 기분이 좋지 못할 뿐만 아니라, 지금 그의 마음속은 몹시 혼란스럽고 복잡하며 괴로운 감정들로 마구 뒤엉켜 있었다. 그것은 자신이 겪은 격렬한 감정의 변화에 대해 심히 마음에 들지 않았으며, 게다가 그 취한 행동들에 대해서도 하나같이 마 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석한절을 데리고 가고 있는 자신의 행동만 해도 또한 그러하다. '이게 아니다. 이게 아니야......! 나는 왜 또다시 이렇게 미친 사 람처럼 격분하여 이성을 잃고 날뛰고 있는 것일까......? 속으로 연신 그렇게 뇌까리면서 그는 이미 정무맹(正武盟)의 총단을 벗어나서 계속해서 내달리고 있었는데, 아마도 그것은 자 신의 그러한 빗나간 모든 과오에 대해서 벗어나고 싶은 본능적인 움직임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얼마나 달렸을까? 밤은 아직도 깊은데 어느 정도 마음이 가라앉자 정신없이 내달 리던 그는 이윽고 길게 한숨을 내쉬고서 걸음을 멈추었다. 이곳은 어떤 험준한 산의 정상인데, 서늘한 계곡의 바람이 간 헐적으로 불어올라 오고 있었다. 아마도 이곳은 정무맹의 총단(總壇)에서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산봉우리일 것이다. 석한절을 한쪽에 내려놓고 잠시 조식을 취하다가, 이윽고 그는 그녀의 제압된 혼혈(昏穴)을 풀어 주었다. 백발노인이 그녀를 제압한 수법은 역시 천륭무가의 것으로 보 였는데, 아무래도 평범하지는 않지만 화검상은 간단히 해혈(解穴) 할 수가 있었다. 석한절은 의식이 깨어나자, 처음에는 다소 어리둥절한 표정을 보였지만 그러나 이내 상황을 파악하고 모든 것을 짐작한 사람처 럼 입가에 가벼운 고소를 지어 보였다. "호호, 당신이라는 사람은 정말로 대단하군요......?" 이렇게 빨리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것을 보면 그녀는 비단 무 공도 뛰어나지만 두뇌도 총명하고 통찰력도 예리한 모양이었다. 이미 잠시의 조식으로 마음을 진정시킨 후라 화검상은 이제는 다소 차분한 태도로 그녀를 대할 수가 있었다. "몸은 좀 어떻소? 어디 이상이 생긴 곳은 없소?" 석한절은 다시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잘못된 곳은 없어요. 하지만 우리가 이렇게 무사히 그곳을 빠 져 나오게 될지는 몰랐죠. 아무래도 나는 아직도 당신이라는 사 람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아요." 그녀는 이미 깨어나는 순간 진기를 일주천(一週天)하여 자신의 몸을 점검해 본 모양이었다. 화검상은 표정을 약간 굳히고 시선을 돌려 외면하며 말했다. "내가 왜 하필 낭자를 그곳에서 데려왔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 는 나도 잘 모르겠소. 하지만 한가지 분명히 해두고 넘어가야 할 일은 있는 것 같소." 석한절은 쓸쓸한 표정이 되어 주위를 둘러보는 듯하며 말했다. "당신의 무공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나를 그곳에서 데려오 기까지는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을 거예요. 그 한마디를 하기 위 해서 나를 데려온 것인가요?" 화검상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무겁게 말했다. "이 일로 낭자는 더욱 입장이 곤란해질 수도 있겠지만, 차후를 위해서는 지금 모든 것을 분명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기 때문 이오." 석한절은 문득 가벼운 웃음을 입가에 떠올리며 그를 주시했다. "호호, 결국 다시는 당신의 일에 나서지 말아 달라는 것이로군 요? 하긴, 나도 내가 왜 그곳으로 당신을 쫓아갔는지 쉽게 이해 할 수가 없을 것 같아요. 나는 당연히 당신을 적으로 생각해야 할 텐데 말이에요." 화검상은 그녀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낭자는 현명한 사람이니 내가 굳이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아도 좋으리라고 생각하오." 석한절은 먼저 몸을 벌떡 일으키며 말했다. "좋아요, 당신에게 그렇게 부담이 된다면 나도 앞으로는 당신 을 더 이상 귀찮게 하지 않도록 하죠. 대신 나는 앞으로 당신을 적대시하고 사사건건 추적하게 될 거예요. 이제 됐나요? 하지만 우리는 그래도 서로간에 약간의 감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라고 생 각해요." 화검상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낭자는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보시오." 석한절은 짐짓 뒷짐을 지고 느릿하게 주위를 거닐면서 여유있 는 표정으로 말했다. "당신은 능력은 제법 비범하게 보이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어 리석은 삼척동자(三尺童子)나 다를 바가 없어요. 최소한 적을 상 대하는 데는 그 사람들이 누군지는 알아야 할 것인데, 당신은 비 단 그런 방면에 까막눈일 뿐만 아니라 심지어 지나치게 감정적으 로 행동하고 있죠. 그런 사람이라면 나는 간단하게 처리할 수가 있죠. 나의 적이 되려면 최소한 그런 것들은 알아야 할 것 아닌 가요? 이건 나의 진정한 적에 대한 예우예요." 화검상은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어리석음은 나도 동감하는 바이오." 석한절은 그의 얼굴을 한번 돌아보았고, 이어 다시 주위를 거 닐면서 산 아래쪽을 굽어보며 말을 계속했다. "오늘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은 호위(護衛)들을 제외하면 모두 열네 명인데, 그들은 하나같이 당금의 정파무림에서 중요한 위치 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이니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만 알아도 당신에게는 많은 도움이 될 거예요......." 이어 그녀는 계속 산 아래쪽을 바라보며 줄줄이 그 사람들에 관해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는데, 그 내용은 화검상이 짐작하 고 있던 부분이 대개 적중했고 혹은 다소 모르고 있던 부분도 이 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에 무림야그 출력일 :: 98/11/11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2 권 제 50 장 - 1 그 백발노인은 역시 천륭무가의 사람이었는데, 소가주는 아니 고 소가주의 동생이 되는 사람으로 이름은 석승무(石승武)라고 했다. 석한절에게는 고조할아버지의 작은아버지가 되는데 나이는 현 재 백사십을 넘었다고 했다. 황포노인이 성수곡의 사람이라는 추측도 맞았는데, 뜻밖에도 그 황포노인은 성수곡의 소곡주(少谷主)인 황진(黃眞)이라는 사람 으로 나이는 무려 이백팔십에 가깝다고 하니 그것은 놀라운 일이 다. 그리고 제왕검노(帝王劍老) 남궁조능(南宮兆能)과 천왕개(天王 개) 홍두자(洪頭子)에 대한 것은 알고 있었고, 이어 화검상이 집 어던졌던 그 백발청년에 대한 얘기가 나왔는데 그것 역시 거의 예상했던 바였다. 석한생(石恨生), 현재 나이는 이십구 세이고, 천륭무가의 종손 이며 일명 석대공자(石大公子)라고 불리고 있었으며 석한절에게 는 큰오라버니가 되는 사람이었다. 그밖에 제갈세가(諸葛世家)의 가주 천기만리통(天機萬理通) 제 갈창해(諸葛滄海)와 하북팽가(河北彭家)의 가주 건곤도수(乾坤刀 搜) 팽조문(彭組文)이 있었고, 그리고 성수곡의 황대공자(黃大公 子) 황견(黃堅)과 소군주(少君主) 황봉황(黃鳳凰) 등이 있었다. 특히 그 중에서도 성수곡의 소군주인 황봉황은 석대공자 석한 생의 정혼녀(定婚女)라고 했는데, 화검상은 그 와중에서도 그녀가 매우 아름답고 늘씬하며 키가 큰 낭자였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 다. 기실 그들 가운데 남궁세가주와 개방방주에 대해서는 지금 생 각해 보면 이전에도 만나 본 적이 있었던 것 같았다. 화검상의 기억력은 그리 나쁘지 않은데도 이번에 마치 처음으 로 대면한 것 같았던 것은 그가 무의식 중에도 당시 기억을 떠올 리기 싫었기 때문이었을까? 석한절은 이어 말을 계속했다. "당신은 그런 사람들 속에서 나를 데려올 수 있었으니 정말로 능력이 대단하다는 것은 인정하죠. 하지만 당금의 정파무림의 힘 은 오직 그들만은 아니에요. 우리 천륭무가의 가주이신 천수자 (天隨子)만 해도 그 능력이 소가주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이 고, 게다가 성수곡과 성모궁(聖母宮)의 주인들도 소주인들과는 차 원이 다른 능력들을 가지고 있죠.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일이라 는 것도 그저 무력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에요." 화검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에 수긍하는 듯한 태도 를 보이다가 이윽고 말했다. "낭자의 그러한 충고는 매우 고맙소. 나는 아무래도 과분한 적 을 두게 된 것 같소." 석한절은 고개를 돌려 그의 안색을 살피고 약간 주저하는 듯하 다가 다시 말했다. "이만 나는 가야겠어요. 당신이 나를 위해 애써 주었으니 고맙 다는 말을 하고 싶군요.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이 말은 해야 할지 어떨지 모르겠군요." 화검상은 그녀의 태도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간파하고는 어딘 가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모든 일에는 서두르는 것이 좋지 않은 경우가 더욱 많은 법이 오. 낭자가 시기를 잘 모르겠다면 그건 나중으로 미루는 것도 좋 을 것이오." 석한절은 그의 얼굴을 잠시 주시하다가 이내 결심한 듯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에요. 모든 일에 시기를 놓치게 되면 영영 그런 기회를 잡을 수 없을 수도 있죠. 지금은 바로 그때예요. 당신은 나의 적 이 되었으니 서로간에 공정한 승부를 원한다면 이 이야기는 해야 만 할 것 같아요. 이건 앞으로의 상황에 커다란 변수로 작용하게 될 수도 있는 내용이니까요." 화검상은 바닥에 앉으며 말했다. "그럼 어디 말해 보시오. 경청하도록 하겠소." 석한절은 입가에 고소를 지으며 고개를 천천히 가로저었다. "당신은 이 일을 너무나도 쉽게 생각하는군요. 게다가 틀림없 이 나도 가볍게 보고 있겠죠? 하지만 만일 지금 이 이야기를 듣 지 않으면 당신은 나중에 반드시 후회하게 될 거예요. 이런 얘기 를 내가 이런 자리에서 이야기할 수가 있을 것 같은가요?" 화검상은 그녀를 바라보며 약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자리를 옮기자는 말이오?" 석한절을 시선을 돌려 먼산을 바라보는 듯하면서 말했다. "당신이 내 얘기를 듣고 안 듣고는 당신의 판단에 맡기도록 하 겠어요. 나는 지금 가서 적당한 자리를 마련해 보도록 하죠. 만일 당신이 구미가 당긴다면 나를 따라오고, 그렇지 않으면 나도 그 냥 돌아가도록 하겠어요......." 말이 끝나자 갑자기 그녀는 신형을 움직였고, 마치 어둠 속으 로 빨려들듯 이내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화검상은 떠나는 그녀를 잡을 수도 있었을 것이며 또한 바로 그녀를 뒤쫓아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고 그냥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서 뭔가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대체 그녀는 지금 무슨 얘기를 그에게 하겠다는 것일까? 화검상이 귀가 아프게 들어서 이제는 생각하기도 싫은 과거 사 건에 관한 얘기일까, 아니면 현재의 무림의 정세에 관한 얘기일 까, 그것도 아니면 또 다른 어떤 절박하고도 긴요한 얘기일까? 만일 이런 의문이 일어 고민을 해야 한다면 화검상은 차라리 조금 전에 떠나는 그녀에게 최소한 그 얘기의 개요에 대해서만이 라도 물어봤어야만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고, 또한 지금 고민을 하는 와중 에도 그렇게 한 데 대한 후회는 일지 않는다. 그것은 어째서 그런 것일까? 화검상은 잠시 후에는 그런 고민을 접어두고 이어 자신의 현실 과 모든 문제점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지금의 상황에서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는 분명히 알기 어렵고 또한 문제점을 알기 어려우니 그 해결책도 찾기가 어렵다. 대개 세상의 일이라는 것은 이러하며, 그 속에서 어떤 분명한 해결책을 찾아낸다는 자체가 오히려 잘못된 일인 것이다. 알았다고 하면 그것은 잘못 안 것이며 해결책을 찾았다고 하면 그것은 잘못 찾은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에서 해결책을 찾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니 지 않은가? 시간이 흘러가자 모든 생각들도 모호해지고 그는 점차로 그 어 떤 생각도 아닌 몽롱한 의식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이것은 흔히 말하는 좌선명상(坐禪冥想)과도 비슷하지만, 그의 마음속은 괴로웠고, 또한 어두웠다. 어둠 속에서 표정이 다소 일그러졌지만 그는 그 모습 그대로 석상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그는 조금 전에 석한절이 그렇게 말하고 떠나간 사실을 이미 잊어버리고 있는 것 같았다. 시간은 고통스러운 사람에게는 몹시 더디게 가는 것 같지만, 즐거운 사람에게는 화살처럼 빨리 지나가 버릴 수도 있는 법이 다. 영원(永遠)히 이 세상을 암흑으로 뒤덮어 버릴 듯하던 어둠은 이윽고 지나가 버리고, 동녘의 하늘에 뿌연 여명의 빛이 일어나 더니 점차로 주위가 밝아지기 시작했다. 주위가 밝아졌지만 그의 표정은 여전히 어둡게 일그러져 있었 고,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도 않았다. 가을날의 태양은 마치 모든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것처럼 눈부 시고 밝지만, 그 속에 있는 사람의 마음은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은 것 같다. 화검상이 드디어 긴 한숨과 함께 몸을 일으켰을 때는 태양이 눈부시게 빛나며 거의 중천에 떠올라 있을 때의 일이었다. 입가에는 가벼운 쓴웃음을 짓고 있었지만 여전히 그의 안색은 어두워 보였다. 먼저 가서 기다리겠다고 하고서 떠나간 석한절은 지금 대체 어 디에 있는 것일까? 비록 그간의 시간이 오래 경과되기는 했지만, 그녀가 멀리 가 버리지 않은 이상 화검상이 그녀를 찾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 았다. 그것은 무공이 높아지면 자연히 추적술도 능란해지게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녀는 화검상이 길을 잃을 것을 염려했는지 곳곳에 은 연중 자신의 흔적을 남겨 놓은 것 같았다. 산 정상에서 산 아래쪽으로 신법을 펼쳐 내려가는 그의 모습은 마치 아무런 근심, 걱정도 없는 사람처럼 산책하듯 여유롭게 유 유해 보였다. 그렇게 한가로운 모습으로 간단히 두 개의 험한 계곡과 하나의 험준한 산봉우리를 지났을 때, 이윽고 하나의 작은 암봉(岩峰)의 앞에 도달할 수가 있었다. 그 암봉의 곳곳에는 많은 천연의 동굴들이 여기저기에 널려 있 었는데, 화검상은 잠시 머뭇거리는 듯하다가 이내 그 중의 어느 한 동굴 속으로 느릿하게 걸음을 옮겼다. 이 동굴은 입구는 좁고 구불구불하며 어둠침침하여 좋지 않았 지만,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공간이 넓어졌고, 점차로 밝고 깨끗하 게 느껴졌다. 안쪽의 공간이 더 넓다는 것은 본래의 생김새이겠 지만, 그러나 더욱 밝고 깨끗하게 느껴졌다. 그다지 긴 시간이 아니었는데도 이런 장소를 물색하여 이러한 준비를 해놓았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동굴의 안쪽에는 촛불이 밝혀져 은은한 빛을 발하고 있었고, 석한절은 마치 그간에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입가에 환한 미소를 떠올리며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안쪽의 자리에는 제법 널찍한 돌로 만들어진 평상이 마련되어 있었고, 또 그 옆에는 평평한 바위 위에 간소한 술과 안주도 차 려져 있었다. 석한절은 그사이에 벌써 마을에 내려가서 이런 모 든 준비를 해온 것일까? 석한절은 환하게 웃으며 그를 향해 눈빛을 빛내더니 말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청 무림야그 출력일 :: 98/11/11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2 권 제 50 장 - 2 "자, 이만하면 조용히 얘기를 할 만한 우리 둘만의 밀실이 준 비된 셈인가요?" 화검상은 천천히 내부를 둘러보고 이어 묵묵히 그녀를 바라보 다가 입을 열었다. "나는 아무래도 낭자에게 실망만 안겨 주게 될 것 같소." 석한절은 안색이 약간 변했으나, 이내 다시 부드럽게 웃으며 자신의 옆자리를 가리켰다. "대단하지는 않지만 그러나 사실 이런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서 무척 힘이 들었어요. 우선 이쪽으로 와서 앉지 않겠어요?" 화검상은 약간 망설이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쪽으로 걸어가 앉았다. "고맙소." 석한절은 우선 두 사람의 비어 있는 술잔에 각기 술을 가득 따 르고 이어 자신의 술잔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당신은 내가 무슨 얘기를 하려는 것인지 알고 있나요?" 화검상은 담담한 어조로 대답했다. "알고 있소. 나에게는 매우 중요하고 장차 강호의 정세에 커다 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그런 얘기 아니오?" 석한절은 약간 안색이 굳어졌다가 이내 다시 가볍게 웃으며 말 했다. "맞아요. 하지만 당신은 별로 아는 것도 없으면서도 아는 것처 럼 말하는 재주를 가지고 있군요?" 화검상은 안색이 다소 무거워지면서 말했다. "나는 이미 낭자가 나에게 하려는 얘기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 소.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그건 아무래도 나와 관련된 이야기인 것 같소." 석한절은 눈빛을 가볍게 빛냈다. "맞아요, 그건 바로 당신과 직접 관련되어 있는 이야기죠. 그럼 이제는 무슨 얘기인지 알 수 있겠죠?" 화검상은 싱거운 듯이 웃으며 말했다. "나의 능력은 겨우 거기까지요. 나는 더 이상 낭자가 무슨 말 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 진전을 볼 수가 없었소." 석한절은 잠시 그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다가 들고 잇던 술잔을 기울여 비우고는 빈 술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내가 삶을 잘못 보았어요. 당신은 비단 모든 것을 이미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시치미떼는 능력까지 가지고 있군요. 그래요, 나는 당신에 대해 알고 있고, 앞으로는 그것을 다른 사람 들에게 말하게 될지도 모르죠." 화검상은 안색이 약간 변했으나 여전히 웃으며 말했다. "내가 사람을 잘못 보았어요. 당신은 비단 모든 것을 이미 알 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시치미떼는 능력까지 가지고 있군 요. 그래요, 나는 당신에 대해 알고 있고 앞으로는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게 될지도 모르죠." 화검상은 안색이 약간 변했으나 여전히 웃으며 말했다. "나에 관한 정보를 다른 사람에게 말하겠다는 말이오? 그건 별 로 대단할 것도 없고 또한 당연한 일이기도 할 텐데?" 석한절은 자신의 빈 잔에 술을 따르고 나서 시선을 들어 그를 다시 바라보며 싸늘하게 웃음을 지었다. "별로 대단할 것도 없다고요? 당신의 정체를 다른 사람들에게 말한다는데도 별로 대단하지 않은가요? 다른 사람들이 당신의 정 체를 알게 되었을 때에도 당신은 계속 그 모습으로 강호를 돌아 다닐 수가 있을 것 같아요?" 화검상은 문득 안색이 굳어졌으나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나는 지금 낭자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소. 만일 내 게 다른 정체가 있다면 내가 먼저 알고 있어야 할 텐데, 그건 이 상한 일이 아니오?" 석한절은 씁쓸하게 웃으며 가벼운 탄식을 토해냈다. "당신은 그렇게 묻지 말고 왜 내가 지금 이런 사실을 밝히고 있는지에 관해서 물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 화산소광생(華山少 狂生) 화검상(華劍傷), 이 신분을 언제까지 감출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겠죠? 하지만 지금은 아직 그것을 분명히 알고 있 는 사람이 나 이외에는 거의 없을 것이라는 것도 사실이에요." 화검상은 앞에 놓인 술잔을 들어 단숨에 비웠다. 그 술맛은 쓴 지 달콤한지 잘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짐짓 다시 웃으며 말했다. "나는 지금 낭자가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소." 석한절은 시선을 돌려 자신의 술잔을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은 다른 곳에서는 항상 여유가 있어 보였어요. 하지만 유 독 정무맹의 총단에서는 자신을 억제하지 못하고 전혀 다른 모습 을 보여 줬지요. 당신이 그 남궁세가의 낭자에게 연연하고 있다 는 것은 명분을 만들기 위해 그녀를 이용했던 것이 아니었나요?" 화검상은 자신의 앞에 놓인 술잔에 천천히 술을 따르며 가볍게 웃어 보였다. "나는 여전히 낭자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 소." 석한절은 그의 얼굴을 똑바로 주시하며 말했다. "그럼 당신은 정말로 그 남궁낭자를 사랑했었다는 말인가요?" 화검상은 거듭 웃으며 말했다. "그 낭자는 비록 지나치게 오만하고 냉정하기는 하지만, 그래 도 욕심이 적고 성품이 맑은 편이오. 게다가 용모도 그만하면 미 인이고 매사에 항상 노력하는 편이니 어찌 사랑스럽지 않겠소. 내가 그 낭자를 사랑해서는 안 된다는 무슨 이유라도 있었단 말 이오?" 석한절은 안색이 다소 싸늘하게 변했다. "좋아요. 그럼 어쨌든 당신이 인정을 하든 하지 않든 간에 나 는 당신의 정체를 만천하에 폭로하도록 하죠. 그래도 상관이 없 다는 말인가요?" 화검상은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낭자는 나의 적이니 당연히 그런 술수를 쓸 수도 있겠지. 소 위 병법에는 비열한 것도 치사한 것도 없다고 했으니 낭자가 그 런 계책(計策)을 쓴다고 해도 나로서는 달리 할말이 없소." 석한절은 약간 화가 난 듯 화검상의 얼굴을 바라보았으나 이내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술잔을 기울였고, 이어 다시 말하기 시작 했다. "당신은 내가 어떻게 이렇게 짧은 시간 동안에 당신에 관해서 자세히 알게 되었는지 궁금하지도 않나요? 호호......, 좋아요, 말하 죠. 흔히들 천재는 불행하다는 이야기를 하곤 하지만 대체 얼마 나 불행한지 사람들은 알지 못해요. 나는 어려서부터 그러한 불 행 속에 깊이 잠겨서 살아온 셈이죠. 그래서 어쨌든 이 문제를 한번 파헤쳐 보고 싶었어요. 따라서 그 화검상이란 사람의 얘기 를 듣고는 한번쯤 만나 보고 싶었어요.그런데 아쉽게도 한번 만 나 보기도 전에 그 사람은 이미 죽고 말았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나는 천재가 반드시 불행해야 한다는 것은 믿지 않아요......." 화검상은 가벼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나도 그 사람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소." 석한절은 술잔이 비워지자 다시 술을 따라서 술잔을 기울이며 말을 계속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죠! 처음에는 그저 적이라고 생각을 했었 는데 일단 그 사람이 죽고 나자 그 사람에 대해서 더욱 관심이 가기 시작하는 거였어요. 그 사람은 이미 죽었으므로 더 이상 적 이 아니었고, 나는 갈수록 애석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죠. 관심이 깊어질수록 나는 그 사람의 신비했던 능력에 대해서 감동하게 되 었고, 또한 결국에는 그 사람이야말로 천재 중의 천재였을 것이 라고 생각하여 애석함은 더해 가기만 했죠. 그러다가 나중에는 한때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했었어요." 화검상은 마주 술잔을 비우며 말했다. "그렇다고 내가 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 오. 그 사람이 이미 죽었다면 어떻게 이렇게 금방 다시 태어날 수가 있겠소? 게다가 설령 그렇게 금방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이 렇게 빨리 나처럼 성장할 수가 있겠소?" 석한절은 피식 가볍게 실소하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당신이라는 사람이 내 앞에 나타났던 거예 요. 나는 처음에는 그저 무심하게 바라보았죠. 하지만 이내 당신 이 정말로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는 점차로 나는 가슴이 뛰기 시작했어요. 그때는 이미 나는 인간의 근원적인 불 행 앞에서 가문의 일 등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 던 참이었죠. 그러나 나는 당신이 그 화검상이라는 사람과 많이 닮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나는 이런 천재 중의 천재는 한 시대에 두 명이 나타날 수는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리하 여 여러가지의 조사를 해본 결과, 당신이 바로 그 화검상이며, 그 때 죽지 않고 기사회생(起死回生)하여 다시 돌아온 것이라는 사 실을 알아냈죠. 당신 같은 능력이라면 그것이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석한절은 이에 잠시 그의 얼굴을 주시하다가 문득 눈시울이 붉 어지며 말했다. "나는 당신이 왜 나를 일부러 멀리하려고 하는지 그 이유를 알 고 있어요. 당신은 지금 나를 두려워하고 있죠? 당신의 모친이 선친에게 했던 것처럼 내가 당신을 파멸로 이끌거나, 혹은 내가 당신과 비슷한 전철을 밟게 될까 봐 두려운 거죠? 그렇지 않나 요? 화검상은 안색이 굳어지며 말했다. "이미 우리의 사이는 정리가 되었다고 생각하오. 나는 또다시 그런 얘기를 하고 싶지가 않소." 석한절은 고개를 가로젓었다. "당신은 아직도 자신이 화검상이 아니라고 말을 하고 있는 건 가요?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아요. 당신이 누구이든 간에 그런 것은 지금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다만 나를 멀리하지만 말아 줘 요! 나는 당신과 멀어지면 살 수 없을 것 같아요......." 화검상은 그녀의 두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았다. 그녀는 본래 더없이 강하게 느껴진 여인이었는데 지금은 마치 누구의 보호를 바라고만 있는 것 같았다. 과연 정말로, 그녀는 그를 너무나도 사랑하여 그를 떠나서는 살아갈 수가 없는 것일까?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무림야그 출력일 :: 98/11/11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2 권 제 51 장 재회(再會) 제 51 장 재회(再會) 화검상은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 "낭자는 본래 매우 총명하고 전도가 밝은 사람이오. 굳이 나와 같은 사람에게 매일 필요가 없는 것이오. 나는 사실 그리 대단한 사람은 못 되오. 그러니 이만 헤어지도록 합시다." 석한절은 얼른 몸을 일으켜 입구 쪽을 가로막으며 짐짓 입가에 미소를 떠올리며 말했다. "나는 당신에게 피해를 입히는 일은 하지 않을 자신이 있어요. 그리고 앞으로 이러한 결정을 후회하지도 않을 것이고요. 나는 당신이 나의 이러한 뜻을 이해해 줄 것이라고 믿었어요. 그런데 도 나를 버릴 것인가요? 호호, 나는 당신의 군사(軍師)가 되도록 하겠어요. 나는 그 점에 있어서 매우 쓸모가 있을 것이고, 당신에 게 많은 이익을 줄 수가 있을 거예요." 화검상은 안색이 매우 어두워져서 깊은 한숨을 내쉬며 몸을 일 으켰다. "지금 나의 처지가 그럴 수가 없다는 것은 이미 낭자도 잘 알 고 있을 것이오. 나는 낭자를 보호해 줄 수 있는 사람도 못 되고 게다가 알고 보면 낭자가 생각해 온 그런 사람과도 많은 차이가 있을 것이오. 낭자는 좀더 깊이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오." 석한절의 입가에 걸린 미소는 점차로 자조어린 것으로 바뀌었 다. "당장 나를 보호해 주지 않아도 좋고 또한 나를 연인이 아닌 친구 정도로 생각해 줘도 좋아요. 호호, 그래도 정말 안 되겠나 요?" 화검상은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미안하오." 석한절은 잠시 멍하니 눈물을 흘리며 그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이윽고 옷소매로 눈물을 닦고 나서 다시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나는 본래 이런 고통을 이겨내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었으니....... 하지만 지금 당장 이렇게 떠나지는 말아요. 그런 부 탁은 드러 줄 수 있겠죠?" 이 석한절이라는 여자는 그야말로 천하절색(天下絶色)이라는 말이 오히려 부족할 정도로 빼어나게 아름다우며, 수려한 광채로 빛나는 용모뿐만 아니라 그 심성 또한 그에 못지 않게 훌륭하다 고 할 수가 있다. 그녀의 흘러내리는 눈물은 아름다운 은색의 머리카락과 함께 이 순간 슬프고도 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화검상은 묵묵히 그녀의 얼굴을 바라볼 뿐 대답하지 않 았다. 석한절은 몸을 돌려 안쪽으로 다시 걸어가며 말했다. "어쨌든 당신이 이렇게 와줘서 고마워요. 난 혹시 당신이 아예 이곳으로 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고 걱정을 했지요. 괜찮아요. 이 제는 기분이 다시 좋아졌어요. 내가 왜 갑자기 이 모양이 되었는 지 알 수가 없군요.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었어요. 그렇지 않은가요?" 석한절은 문득 다시 입구 쪽을 바라보다가 그만 멈칫하고 신형 (身形)이 굳어졌다. 화검상은 이제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그는 이미 떠나가 버린 것이다. 한참 동안 그쪽을 바라보고 있던 그녀의 두 눈에서 다시 눈물 이 흘러나왔지만, 그녀는 애써 입가에 미소를 떠올리려고 했다. '그는 틀림없이 다시 돌아올 거야. 나는 기다릴 수 있어....... 얼 마든지....... 다마, 그는 지금 매무 바쁠 뿐이야! 나는 좀더 수양 (修養)을 해야겠어. 수양이 좀더 필요해....... 정말이야......!' 화검상은 그 동굴을 벗어난 이후에 무거운 표정으로 곧장 빠르 게 북쪽으로 신법을 펼쳐 나아갔다. 오늘 같은 날은 먹구름이 가득하게 끼었으면 좋으련만, 여전히 하늘은 더없이 푸르고 한낮의 태양은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그가 어느 정도 그렇게 나아갔을 때, 문득 좌측에 있는 그리 높지 않은 산의 꼭대기에 사람의 그림자 하나가 어른거리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비록 무거운 감정 속에 심하게 젖어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 순간은 이상하게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고 있었다. 너무 멀리 있어서 그 사람의 용모는 잘 알 수가 없지만, 혹시 그사람은 지금 화검상을 만나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이제까지 이렇게 반드시 만나야만 한다는 강한 느낌을 주는 사 람이 없었는데, 지금 그러한 느낌이 든다는 것은 그 사람이 실로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단적으로 말해 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 각되었다. 비록 지금 그의 기분이 최악의 상황이라고 해도 일단은 이런 때는 그런 감정을 접어두어야만 할지도 모른다. 화검상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내 그쪽으로 신법의 속도를 늦 추어서 느릿하게 다가갔다. 그렇게생각해서인지는 모르지만, 이 작은 산도 왠지 그 크기에 비해 지세(지세)가 더욱 웅장해 보이고, 게다가 단아한 느낌까지 주고 있는 것 같았다. 한낮의 햇빛이 따스하게 내리쪼이고, 점차 누렇게 변색되어 가 는 억새풀들이 바람결에 하늘거리는 가운데, 그 사람은 마치 막 산책을 나온 사람처럼 한가롭게 거닐며 주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은발노인(銀髮老人). 나이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먹은 것 같은데 용모는 전혀 어울 리지 않게 몹시 수려(秀麗)하고, 또한 하늘색처럼 투명한 옥색의 시선(視線)은 은색의 머리카락과 어울려 자못 눈부신 느낌을 주 고 있는 노인이었다. 화검상은 언젠가 이 사람을 본 적이 있는 것 같았다. 이 사람은 결코 낯설지가 않다. 아니, 그의 생애에 있어서 이런 사람은 도저히 잊어버리려고 해도 잊을 수가 없는 그런 사람일지도 모른다. 화검상은 갑자기 가슴이 뛰기 시작하는 것을 의식했지만, 억지 로 그것을 억누르고 역시 태연한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화검상이 다가가자, 은발노인은 시선을 그에게 돌리며 다소 의 아한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상한 일이군. 우리가 이전에 만난 적이 있었던가?" 이 노인의 머리카락이 지금 은색으로 보이고 있는 것은 본래부 터가 그런 것은 아니다. 노인의 본래 머리카락 색깔은 백색이었으며, 그것이 지금 은색 으로 보이는 것은 거기에 옥색 광검(光劍)의 기운에 실려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대개 이런 광검의 경지에 올라 있는 사람 들은 소위 말하는 육구신통(六具神通)이라는 것을 사용할 수가 있다. 실상 본래의 육구신통이라고 한다면 이른바 천안통(天眼通), 천 이통(天耳通), 타심통(他心通), 숙명통(宿命通), 신경통(神境通), 누 진통(漏盡通)의 여섯 가지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신선들이나 사용할 수가 있을 것이고, 현재 광검의 경지에 오르면 사용할 수가 있는 것은 거기에 준하는 능 력들인 투시력(透視力), 투청력(透聽力), 독심술(讀心術), 예지력 (豫知力) 등을 말하는 것이리라. 지금 노인은 그러한 능력으로 화검상의 심리상태의 변화를 들 여다보고서 그와 같이 말하는 것이다. 사실 화검상도 이 무렵에는 약간의 그러한 신비로운 능력들이 가능해져 있어서 능히 상대방의 그것을 인식할 수가 있었다. 물 론 이러한 것들은 사술에서 말하는 독심술 따위와는 거의 그 내 용이 다른 것들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때의 화검상은 진기역용(眞氣易容)의 수법으로 용모를 변화 시키고 있는 상태였는데, 아마도 노인은 간단히 그러한 사실을 알 수는 있겠지만 본래의 얼굴이 어떠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그 냥은 쉽게 파악하기 어려울 것이다. 화검상은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서, 가볍게 미소하여 입을 열어 그 말에 대꾸했다.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러고 보니 갑자기 이상한 느낌이 드는 것도 같습니다." 노인은 잠시 유심히 그의 얼굴을 주시하다가, 이윽고 시선을 돌려 산 아래쪽을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자네가 보기에는 어떤가? 이 넓은 세상이, 실로 아름답다고 생각되지 않나?" 마치 선천적인 기질이나 습관처럼, 이 노인에게는 어딘가 주위 의 사람들을 제압하고 은근히 외경심을 갖게 하는 분위기가 어려 있는 듯했다. 화검상은 신형을 돌려 역시 그쪽을 내려다보며 천천히 고개를 가로젓었다. "그것은 말하자면, 소위 사람에 따라 다른 것이라고 봅니다. 예 를 들어 세상을 비관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이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지 않겠지요." 노인은 차갑고 조용한 시선을 돌려 다시 그의 얼굴을 주시했 다. "자네는 소문보다 더 사람을 놀라게 할 뿐만 아니라 더욱 대담 하군. 이제까지 내 앞에서 감히 그렇게 쉽게 반박을 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네." 화검상은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마주보며 대꾸했다. "저도 일찍이 이 세상에 노인장과 같은 분이 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었습니다." 노인의 입가에는 일순 싸늘하고도 날카로운 웃음이 스치고 지 나가는 것 같았다. "허허, 그건 칭찬을 하고 잇는 겐가, 아니면 비웃는 겐가? 자네 는 지금 대체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기라도 하나?" 화검상은 담담한 표정으로 포권한 뒤에 다소 웃으며 말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수 무림야그 출력일 :: 98/11/11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2 권 제 51 장 - 1 "세상에 노인장과 같은 분은 오직 한 사람밖에 없을 것입니다. 저는 천하제일가의 명성을 들어오기는 했지만 그러나 이렇게 직 접 천수자(天隨子) 어르신을 만나 뵙게 되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도 못했었습니다." 이에 갑자기 그 노인, 그러니까 천수자의 두 눈에서 살기 어린 기광이 가볍게 번쩍이다 사라지는 것 같았다. "자네는 정말로 대담하기 짝이 없군! 하긴 그렇기에 함부로 감 히 그와 같은 난리를 벌였었겠지. 내 둘째 손자 녀석을 그 모양 으로 만든 자네의 이름이 바로 몽천화라고 하던가? 허허, 나는 이전에도 그런 비슷한 녀석 하나를 본 적이 있는 것 같네." 화검상은 애써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고, 짐짓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지난 일에 대해서는 정말 유감으로 생각하는 바입니다. 본래 그러한 의도는 없었지만, 간혹 살다 보면 뜻밖으로 운이 나쁘게 될 수도 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저도 일단은 여러 사람들 을 만나게 되리라는 것을 미리 예측했었어야만 했다고 생각합니 다." 천수자 석장생은 잠시 차가운 시선으로 화검상을 깊이 주시하 다가 이내 음산한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그건 이를테면 사과를 하겠다는 의미인가? 하지만 단지 그것 만으로 지금의 이 자리를 모면해 보려는 것은 안니겠지? 그렇지 않은가? 허허허!" 화검상은 이에 문득 가볍게 신형을 날려 근처의 하늘거리는 하 나의 억새풀 위로 올라가더니, 그 억새풀과 함께 바람에 흔들리 면서 미소하며 말했다. "무공을 어느 정도 배우게 되면 자연 호승심도 일어나게 되는 법이겠지만, 제가 보기에 지금은 그 시기가 아닌 것 같습니다. 저 는 지금 마음이 심히 우울해져서 누구와 싸우고 싶은 기분이 아 닙니다." 직선적인 무공에서도 대홍락의 심검의 경지에 오르면 허공을 마음대로 걸어 다닐 수가 있다는 소위 능공허도(凌空虛渡)의 신 법이 가능해진다. 하지만 지금 화검상이 보여주고 있는 그 한 수는 마치 사람이 무게도 없이 자연과 신비하게 하나로 동화되어 있는 듯한 모습이 기 때문에, 기실 그렇게 하는 것은 허공을 걸어 다니는 것보다도 더욱 어려운 일이다. 석장생은 그것을 바라보면서 문득 옥색의 투명한 두 눈 가득 섬득한 기광을 발했지만, 그러나 그 왕채　 이내 사라졌고 게다 가 금방 달려들 태도를 취하지도 않았다. 분명히 여러가지의 이유가 있겠지만, 그것은 그가 무슨 공명정 대한 승부를 위해서 지금 비무를 억지로 참고 있는 것만은 결코 아닐 것이다. 석장생은 잠시 계속해서 그러한 화검상의 모습을 서늘하게 주 시하고 있다가, 이윽고 다시 산 아래쪽을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 다. "내 둘째 손주 녀석이 아마도 자네를 잘못 본 것일세. 사람을 잘못 보았으니 그렇게 당해도 오히려 부족한 것이지. 게다가 자 네는 젊은 나이에도 성취가 대단하여 실로 나마저도 눈을 의심하 게 만드는군? 지금 그건 대체 뭐라고 하는 무공인가?" 화검상은 석장생이 그렇게 시선을 돌리는 것을 보고, 이어 가 볍게 신형을 날려 아까의 자리로 되돌아왔다. 그의 그러한 신법이 얼마나 자연스러운지, 그가 그렇게 했음에 도 불구하고, 그 억새풀은 전혀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은 듯이 여전히 그 모양으로 가볍게 흔들거리고 있었다. "이건 그저 제가 노인장께 간단히 예의를 갖춘 것으로서 달리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하, 실로 세상을 움직이고 잇 는 노인장의 그 놀라운 무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것입니다." 석장생은 다시 표정이 매우 음산해지더니, 그를 돌아보고는 차 가운 어조로 반박하듯이 말했다. "무공이 높은 경지에 오르면 무도하고 하는 것일세. 나는 요새 젊은이들이 그 말들을 혼동하는 것이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아. 무공은 무학에서 시작하여 무예로 나아가고, 이어 무도에 이르게 되는 것이 올바른 순서일세." 화검상은 입가에 미소를 떠올리며 말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세상 사람들이 그런 말들을 믿지 않으니 그 게 문제가 되겠죠. 저는 이 세상에는 무공보다도 더 무서운 힘들 이 있다는 것을 요새 실감하는 중입니다." 석장생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 바라보며 말 했다. "자네가 요즘 내 집안의 아이와 사귀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있 는 중일세. 듣자니 자네의 가문은 이미 멸문을 당했다고 하던데, 그게 사실인가?" 화검상은 미소하며 대답했다. "저희 가문은 별로 대단하지 못하고 또한 저도 그렇습니다. 나 중에 그러한 일들이 좀더 분명해지게 되면 정식으로 인사를 드리 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여러 가지 문제가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분명히 하기가 어렵습니다." 석장생은 이윽고 문득 천천히 아래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 하더니, 이어 다시 말했다. "아무리 출신이 비천하다고 해도 자네와 같은 기재(奇才)를 배 출해 낸 곳이라면 그래도 뭔가 다른 구석이 있겠지. 그렇지 않겠 는가?" 화검상은 가볍게 포권하며 대꾸했다. "글쎄요, 일단은 나중에 상세히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살펴가시기 바랍니다." 석장생은 뭔가 더 할말이 있는 것처럼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듯하다가, 이내 화검상을 다시 한번 더 돌아본 후에는 산 아래쪽 으로 빠르게 사라져 가기 시작했다. 그의 신형은 처음에는 불과 십 장 밖에 있었지만 이어 백여 장 밖으로 멀어지더니, 이내 아득히 시야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그것은 소위 광검의 경지에서나 가능하다는 축지성촌(縮地成 寸)이라는 신법이다. 석장생이 그렇게 사라져 간 이후에, 화검상은 잠시 동안 계속 그 산위에 머물렀다. 대략 반 시진 가량 그 자리에 서서 깊은 생각에 잠기다가 문득 그는 씁쓸하고도 괴로운 표정이 되어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이건 비단 위험할 뿐만 아니라 쓸데없는 시간의 낭비일 뿐이 다. 나는 지금 정말로 어중간한 위치에 있는 것이다. 만일 이대로 더 상황이 지속된다면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 될 것이 다. 나는 미리 그러한 것을 예상하지도 못하고서 서둘러 출도한 것이었을까......? 하하......, 이전에는 드러나지 않아 잘 몰랐으되 이제 그러한 문제점들이 자연히 드러나게 되어 알게 되는 것이리 라. 문제점들은 계속 새롭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잠재되 어 있던 것들이 상황에 따라 드러나는 것일 뿐이다. 이제는 새롭 게 더욱 분발해야 할 때다.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고 더욱 정진 한다면 오히려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될 수도 있을지 누가 알겠 는가? 하하......." 비록 억지로 웃는 듯이 보이지만 그의 표정은 매우 어둡고도 우울해 보였다. 반면에, 그는 실로 조금 전에 보이지 않는 가장 위험한 상황을 무사히 넘긴 것이기에 한편으로는 다소의 의문점이 느껴지기도 했다. 천수자 석장생(石長生), 그는 어째서 조금 전에 화검상에세 손 을 쓰지 않고서 그를 그대로 놓아 준 것일까? 물론 간단한 싸움이 되지는 않겠지만, 그러나 화검상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아직은 그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잇었 다. 석장생은 아마도 아직 화검상의 정체와 그 곡선적인 무공에 대 해서 분명히 알지 못하고 있고, 혹은 내심으로도 그러한 것들을 인정할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 이외에도 보다 근원적인 다른 어떤 이유들 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최소한 그 이유들에는 그와 석한절과의 남녀관계 따위는 포함 될 수가 없다는 것을 화검상은 쉽게 알 수 있었다. 석장생은 그야말로 일대의 대효웅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서 그런 사소한 일로 대세를 그르칠 만한 사람은 결코 아니기 때 문이다. 그러나 화검상이 스스로 생각해 보기에도 석장생은 이번에 그 어떤 이유가 있다고 해도 일단은 그를 제거하려고 했어야만 한다 고 생각되었다. 아마도 석장생은 그의 무공을 인정하지 못하는 만큼 그의 불가 사의한 무학상의 성취 또한 인정할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는 천하에서 인정해 주는 무학의 일대종사이기 때 문이다. 앞으로의 일을 미리 알 수는 없겠지만, 만일 화검상이 석장생 의 예측보다 더 빨리 무공이 성장하게 된다면 석장생은 이번의 실수를 통렬히 후회하게 될지도 모른다. 본래 화검상이 용모를 변화시키고 이름을 바꾼 것 등은 강호의 하류배들도 흔히 쓰는 가벼운 수법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간혹 중요한 대세라고 할지라도 뜻밖에도 그런 가벼운 요소들에 의해 변화를 일으킬 수도 있는 법이다. 화검상은 실로 착잡하기만 한 심정으로 주위를 잠시 더 둘러보 다가, 이윽고 다시 신법을 펼쳐 북쪽으로 신형을 날리기 시작했 다. 이번에 그는 아까보다도 더욱 빠른 그 자신이 펼칠 수 있는 최 대의 신법을 펼쳐 나아갔다. 석장생이 혹시 도중에 마음을 바꿔 다시 그를 추격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기회라고 하는 것은 그 차이가 미세하며, 그것을 양깐이라도 지나칠 경우에는 다시 그 기회가 오지 않을 수도 있 것이다. 지금의 화검상의 신법이라고 하면 역시 거의 축지성촌에 가까 우며, 그가 그서을 최대한으로 펼칠 경우에는 세상의 다른 삶들 은 추격할 수도 없고, 또한 설사 석장생이라고 해도 거리가 멀어 지면 역시 추격하기가 어려워질 것이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ЕЕ 무림야그 출력일 :: 98/11/11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2 권 제 51 장 - 2 그렇게 얼마나 나아갔을까,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알 수가 없는데 문득 거대한 강 황하를 건너고 나자 하나의 웅장한 고산 준령(高山峻嶺)의 앞에 이르게 되었다. 아마도 이곳은 중조산(中條山)일 것 같았다. 중조산은 화산과도 가까워서 황하를 사이에 두고 북동쪽에 위 치하고 있다. 자연 화검상도 어려서부터 그 이름을 들어왔었는데, 그러나 산 이 워낙 험준하고 거대한 관계로 아직 지리를 알지 못하고 게다 가 아직 끝까지 와본 적도 없었다. 반드시 멀리 달아난다고 해서 좋은 것만은 아니다. 산기슭의 마을에 들러 이곳이 중조산임을 확인하고, 이어 대강 그 산세를 둘러본 뒤에 화검상은 이내 이곳을 수련장소로 정하기 로 마음을 굳혔다. 다음날 새벽 무렵, 식사도 하고 몇 가지의 물품들도 챙길 겸해 서 그 기가촌(祁家村)이라는 마을에 들어서는데, 입구에서 문득 머리에 수건을 뒤집어쓴 아낙네 하나가 다가와 입을 열어 이렇게 말했다. "보아하니 당신은 이 마을과 관련된 사람이 아닌 것 같군요. 으레 이런 마을은 술집이나 객점은 없고 그저 지나가는 사람들은 마을의 어느 한 집에서 신세를 져야 하는 편이죠. 모두가 약간의 농사를 짓고 사냥이나 약초를 캐는 것으로 살아가고 있는 상태이 니까요. 아직 정한 곳이 없다면 저의 집으로 오셔서 쉬어가시겠 어요?" 화검상은 지난 밤중에 이 마을에 왔었기 때문에 술집이나 객점 이 없다는 것은 아록 잇었지만, 더 자세한 상황은 아직 알지 못 하고 있었다. 아마도 이런 곳에는 이런 방법으로 부업을 하는 사람드롣 적지 않은 모양이다. 마침 화검상은 적당한 집을 찾아야 할 형편이었기 때문에 별다 른 생각없이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습니다. 혹시 폐가 되지는 않을지 모르겠군요." "그렇지 않아요." 아낙네는 고개를 가로젓더니 이내 앞장서서 마을의 옆길로 돌 아 화검상을 이끌었다. 이윽고 그 아낙네가 화검상을 데려간 곳은 예상외로 마을의 중 심부와는 멀리 떨어진 외딴 곳에 위치한 가옥이었는데, 주위에는 나무와 수풀만 무성해 보일 뿐 다른 가옥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 았다. 와검상이 보기에도 그 아낙네는 나쁜 사람처럼 보이지도 않았 고, 게다가 그 가옥은 비록 외딴 곳에 위치하고 있기는 해도 전 체의 관리가 잘된 편이어서 정갈하고 깨끗한 느낌을 주므로 역시 별다른 이상한 생각은 하지 않았다. 화검상은 마루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저는 여기서 그냥 식사만 하고 가겠습니다. 수고스럽겠지만 식은 밥이라도 있으면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낙네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그런 말씀은 마세요. 만일 손님을 그런 식으로 대접했다면 마 을 사람들이 다 저를 욕할 거예요. 마침 제 남편도 어제 저녁에 사냥을 하러 산으로 들어가서 아마 며칠은 있어야 돌아올 거예 요. 그러니 공연히 어려워하지 마시고 어서 안으로 들어가 계세 요. 밥은 이미 지어 놓았고 국만 데워지면 곧 들여가도록 할게 요." 하검상으로서는 쓸데없이 남의 집 방안으로 들어가는 일이 귀 찮게 생각되기도 했지망, 그 아낙네가 익어 부득부득 손을 잡아 안으로 끄는 바람에 하는 수없이 신발을 벗고는 안으로 따라 들 어가고 말았다. 사실 이런 부업을 하는 입장이라면 손님을 그저 그렇게 마루에 서 대접할 수는 없는 일일 것이다. 그 방안은 침실로 보였는데, 밖에서 생각하던 것보다도 오히려 더욱 내부가 청결하고 정갈하게 느껴졌으며 탁자나 침상 등도 이 런 시골의 방안 같지 않게 좋은 것들이었다. 아낙네는 뒤에서 방문을 닫고 나자 다소 어색한 듯이 웃으며 탁자를 가리켰다. "누추하지만 저 탁자 앞에 앉아서 기다리세요. 시장하신 것 같 으니 금방 상을 봐오도록 하겠어요." 화검상은 탁자 앞에 앉으며 가볍게 목례하며 말했다. "미안합니다." 아낙네는 이어 부엌으로 나가는 문을 통해서 밖으로 사라졌다. 공연히 남의 비밀스런 가정에 들어와서 그들만의 은밀한 체취 를 깨뜨리는 것이 되는 듯해서 화검상은 한편으로는 미안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불안하기도 한 심정으로 잠시 기다렸다. 이윽고 구수한 산나물국을 끓이는 냄새가 진동하더니 가벼운 기척과 함께 방문이 열리고 그 아낙네가 작은 상에 음식들을 차 려가지고 들고 들어왔다. 화검상은 내심 여인만이 있는 방이라 다소 어색하기도 하여 일 부러 시선을 다른 곳으로 두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데 문득 그 아낙네가 다시 들어온 이후 무의식적으로 그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돌아갔다. "이런 곳에서는 다들 대개 이렇게 먹고 살고 있지요. 반찬은 좋지 않지만 밥은 많이 있으니 많이 드세요." 어째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알 수가 없다. 아니, 알 수 있다고 해도 어째서 갑자기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되었는지 화검상으로서는 일면 황당하기도 하고 혹은 어이없기도 했다. 지금 상을 차려 가지고 들어온 아낙네는 아무리 보아도 겉으로 는 아까 나갔던 그 아낙네와 다르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화검상과 같은 무학의 최고수들은 민감하게 상대방의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기질(氣質) 등을 느낄 수가 있으며 때 로는 그것이 더욱 정확하게 들어맞기도 한다. 아니, 지금의 이 차이는 화검상과 같은 사람만이 느낄 숭 　ㅆ 는 아주 미세한 것일지도 모른다. 확실히 이 아낙네의 기질은 겉모습이나 말투 등과는 달리 아까 의 그 안악네와 달랐고, 그것도 마치 투박한 흙과 완벽하고 아름 다운 옥(玉)의 대조처럼 천양지차로 다른 것이었다. 게다가 지금 이 아낙네에게는 옥의 아름다움과 함께 날카롭고 도 위험한 유리거울과도 같은 감각이 느껴진다. 그 감각은 이제는 화검상에게 익숙하다고 할 만큼 여러 번이나 겪었던 것이기도 했다. 언젠가 보았던 시골 노인의 기질이 그러했으며, 느닷없이 그를 주시했었던 늙은 매복자(賣卜者)와 늙은 악사(樂士), 그리고 노의 원의 기질들이 그러했다. 또한 화검상은 그들이 모두가 비범한 무공들을 지니고 있으며 강호의 드러나지 않은 이인(異人)들이라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또한 그들을 만났을 때 화검상은 그저 그러한 경이감과 불안감 을 느끼는 정도였을 뿐이다. 하지만 이제 그는 이미 천하제일인이라는 천수자(天隨子)를 만 나 본 이후이고 대강의 강호인들의 무학 수중을 파악하고 있는 터였다. 당시 그는 천수자를 만났을 때 비록 완전한 것은 아니지만 그 래도 어느 정도는 그의 무학 수준을 파악할 수가 있었고, 따라서 거기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지금도 화검상은 이 달라진 아낙네에 대해 서 겨우 그러한 위험한 감각만 느낄 수가 있을 뿐 전혀 그 무공 수준에 대해서 파악하기 어렵다고 느끼고 있었다. 이것은 대체 어찌 된 연유일까? 이른바 무학의 근본원리에 대해서 훤하게 알고 있는 화검상에 게는 그 어떤 종류의 특이한 무공이라고 해도 그 내용ㅇ을 파악 하기 어려운 것은 거의 있을 수가 없을 것이며 오직 그런 일이 있다면 그 사람의 무공이 전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경지 에 있을 때만이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 여러명의 이인들의 무공이 오히려 천하제일인이 라는 천수자의 무공보다도 더 높은 상태란 말인가? 지금 갑작스러운 상황에서 분명히 모든 것은 더 차근차근 생각 해 볼 수는 없는 일이지만, 이것은 정말로 믿어지지도 않고 이해 할 수도 없는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이들의 무공이 더 높은 것이라면, 천수자의 천하제일이라는 별 호는 어째서 생겨난 것이며, 또한 이들은 어째서 아직 세상에 알 려지지 않은 것일까? 게다가 이들은 어째서 하나씩 화검상의 앞에 스스로 나타나는 것이며 또한 그 숫자는 얼마나 되는 것일까? 화검상은 한 순간에 이러한 생각들이 솟구쳐 올라 피가 들끓는 듯했으므로 머릿속까지 아득해지는 것 같았다. 그야말로 이를 두고 산 너머 산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혹시 자신의 추측이 모두 빗나간 것일 수도 있는 일이므로 화 검상은 한편으로는 차라리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심정이기도 했 다. 그 아낙네가 음식 그릇들을 가지런히 탁자 위에 차려놓고 나서 다시 밖으로 나가려고 할 때, 화검상은 이윽고 마음을 정하고 입 을 열어 말했다. "별로 대단하지도 않는 저에게 이렇게까지 수고를 해주신다는 것은 너무나도 과분하신 일이 아닙니까?" 아낙네는 막 자연스러운 태도로 방문을 열고 나가려다가 문득 가볍게 멈칫하더니 고개를 돌리고 무슨 말이냐는 듯이 웃었다. "지금 저에게 말씀하신 것인가요? 손님, 저는 지금 손님에게 대접을 해드리고 있을 뿐이에요." 실로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다른 점을 찾을 수가 없어서 화검 상은 혹시 스스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될 정도 였다. 화검상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씁쓸한 표정으로 다시 말했다. "정말로 그렇다면 저도 좋겠군요. 하지만 만일 제게 무슨 용건 이 있어서 이러시는 것이라면 차라리 일찌감치 말씀을 하시는 것 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에 다소 의아한 표정을 짓던 아낙네는 문득 가벼운 웃음을 터뜨리더니 도로 다가와 탁자의 한쪽에 앉으며 말했다. "호호, 알고 보니 순진한 총각이시로군요. 좋아요, 이런 얘기를 한다는 것은 솔직히 부끄럽기는 하지만 손님이 전혀 모른다니 말 씀을 드리도록 하지요. 우리가 이 마을에서 살아온 것은 그리 오 래된 것은 아니지만 그저 남편이 사냥을 해오는 것으로는 충분한 생활을 꾸려나가기가 어려워요. 그래서 저는 남편이 사냥을 나간 사이에 이렇게 손님을 받아서 그 수입으로 생활비용에 보태고는 하지요. 호호......, 우리 남편은 아마도 잘 모르겠지만 알아도 책망 을 하지는 못할 거예요. 요금은 손님께서 알아서 주시면 되고 형 편이 좋지 못하다면 그리 많이 주지 않으셔도 좋아요."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무림야그 출력일 :: 98/11/11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2 권 제 52 장 중조산(中條山)의 아낙네 제 52 장 중조산(中條山)의 아낙네 화검상은 그녀의 행동이 여전히 너무나도 천연덕스럽고 진짜 같았기 때문에 그만 오히려 머리가 혼란스러워지고 어이가 없어 져서 웃으며 말했다. "제가 지금 하는 말은 그런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계속 이렇 게 나오신다면 저도 더 이상은 상대해 드릴 수가 없겠습니다." 그러자 아낙네는 잠시 화검상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약간 수줍 은 듯이 웃으며 다시 말했다. "어마나, 그런가요? 호호......, 난 또 정말로 순진한 총각인 줄로 알았잖아요. 사실 이건 우리 여인네들로서는 하기 어려운 얘기지 만 만일 그것을 원한다면 나도 거절할 생각은 없어요. 솔직히 우 리가 무슨 밥만 먹고 살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겠어요? 그런데 사실 말이지만, 우리 남편이라는 작자는 여자들의 심정은 알아주 지도 않고 그저 한 달에 한두 번 돌아와서는 자신의 욕심만 채우 곤 하는 것이 고작이죠. 난 사실 아까 총각을 보았을 때 이렇게 밥만 먹여서 보낼 생각은 아니었어요." 화검상은 그만 더욱 어이가 없어서 쓴웃음을 지으며 몸을 일으 켰다. "당신이 과연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는 알 수가 없지만, 그래 도 우리는 지금 처음으로 대면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이것은 정말 로 나를 너무나도 우습게 보는 것 같습니다. 더 이상 용건이 없 다면 저는 이만 작별을 고할까 합니다." 만일 아낙네의 달라진 기질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면, 화검상은 그저 그녀가 정말로 이런 곳의 아낙네여서 부업을 위해 자신을 유혹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할 뻔했다. 지금 그녀의 태도는 거의 진짜처럼 은근하게 달아올라 있었고, 눈빛도 색정으로 빛나고 있어서 화검상은 이 순간에도 실로 자신 의 눈을 의심할 지경이었다. 그럼 아까 마을 입구부터 자신을 이곳으로 데려왔던 그 진짜 아낙네는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 여자는 이에 다소 안색이 변하는 듯하며 마주 몸을 일으키 더니, 이윽고 어쩔 수 없다는 듯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 입가에 기이한 미소를 지으며 양손을 내저었다. "잠깐만, 잠깐만 기다려요. 나는 지금 농담을 하고 있는 것인데 그렇게까지 심하게 화를 내긴가요? 그대가 싫다면 나도 그다지 강요할 생각은 없어요. 우선 저쪽을 봐요! 그녀에게 물어보면 나 를 이해할 수가 있을 거예요." 화검상은 비로소 그녀가 자신의 마각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 각하고 더욱 경각심을 가지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그럼 그 아낙네는 아직 무사한 것일까?' 하지만 비록 경각심을 더욱 고조시켰다고 해도 그는 일단 그런 생각과 의심이 든 이상에는 그녀가 가리킨 그쪽을 바라보지 않을 수가 없었고 또한 설사 그렇다고 해도 그것 때문에 자신이 당하 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그쪽을 바라보니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고, 게다가 갑자기 가슴을 거세게 후려치는 듯한 백색의 강렬한 빛줄기를 느 끼게 되자, 문득 아차, 하는 심정으로 생각했다. '아, 나는 왜 이렇게 어리석을까? 어째서 이렇게 바보 같은 짓 을 한 것일까?' 그러나 실상, 화검상은 지금 이 순간 굳이 후회할 필요도 없고, 그것은 거의 불가항력적인 일이라고밖에 말할 수가 없는 것이었 다. 으레 강호상에는 암습이라는 것은 있는 법이지만, 최소한 그 가 어느 정도의 경각심을 가지고 있었던 상황에서는 설사 천수자 가 와서 그와 같은 암습을 한다고 해도 그렇게까지 쉽게 당할 리 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게도 화검상은 그녀가 암습을 한다는 사실 을 거의 인식하지 못했으며, 또한 놀랍게도 막상 그 암습을 당하 게 되었을 때에도 전혀 방어를 한다던가 반격을 한다던가 하는 것들을 시도할 여유가 거의 없었던 것이다. 즉, 그것은 설사 이런 암습이 아니었다고 해도 그녀는 아주 쉽 게 화검상을 제압할 수가 있었다는 말인데, 이를테면 믿을 수 없 게도 화검상이 우려하며 추측하던 내용들이 사실이었다는 것을 정말로 확인해 주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면 어째서 이 의문의 여인은 화검상에게 이런 까 다로운 방법으로 접근한 것이며 또한 왜 쓸데없이 암습이라는 편 법을 사용한 것일까? 이 곡선적 무공의 특성이라는 것의 가장 중요한 것으로 그 위 력을 생각하기가 쉽지만, 기실은 그 내부의 보이지 않는 작용에 있다고도 말할 수가 있었다. 즉, 이 곡선적 무공이라는 것은 실상 가장 훌륭한 활인무예(活 人武藝)라서 남을 해치는 기술보다는 그 방어력에 더욱 뛰어난 능력을 보인다고 할 수 있으며, 그 내공 자체가 스스로 살아서 변화하고 강력하게 몸을 보호하기 때문에 자연 이런 무공을 가진 사람을 해친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을 해치는 것보다도 훨씬 어렵 게 되기가 쉽다고 할 수가 있다. 그 한 가지의 예로, 다른 사람들에게는 강력한 위력을 보이는 어떤 점혈수법(點穴手法)이라고 해도 이런 무공을 가진 사람에게 는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을 수가 있다. 그것은 그 점혈수법이라는 것이 내공의 허점을 노리는 것이 대 부분인데 반해서 이 곡선적 무공의 내공이라는 것은 거의 그러한 허점이 없고, 게다가 갑자기 기혈이 경직되어 제압당하는 등의 그러한 일들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단히 놀랍게도 지금 화검상의 몸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은 그러한 일반적인 이치를 전혀 벗어나고 있었으며, 암습을 받은 이후 고작 약간의 생각만 할 수 있었을 뿐 곧장 그의 기혈 은 경직되고 의식은 이내 아득한 곳으로 떨어져 가고 있었다. 이런 돌발적인 기현상은 어째서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그의 곡선적인 무공에 아직 어떤 결함이 있기 때문인 가, 아니면 오히려 그녀의 무공이 너무나도 높아서 그런 곡선적 인 무공의 강력한 방어력마저도 간단히 무력화시키고 있는 것일 까? 화검상이 다시 의식을 되찾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얼마 지나 지 않은 후의 일이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비록 의식이 돌아오고 있기는 해도 아직 몸은 제압이 되어 있는 상태여서 움직일 수가 없었고, 게다가 마음의 한구석 도 어딘가 심하게 묶여 있어서 한쪽으로만 계속 내달리려고 하고 있었다. 화검상은 문득 자신이 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로 발가벗고 누워 있다는 사실을 알고 놀라며 어리둥절해 했다. 더욱이 지금 그의 의식은 심한 어떤 욕망의 불길로 가득 채워 져 있었으며, 그것은 결국에는 하체의 중심을 향해 계속해서 밀 려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아마도 그는 이 순간 아까의 그 방안에 있던 침상 위에 그렇게 누워 있는 것 같았고, 그의 벌겋게 드러난 상징은 어이없게도 그 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크게 성질을 내고 있는 모습이었다. 시야(視野)가 뿌옇게 흐려져 와서 아직 분명히 간파할 수는 없 지만, 아까 그 아낙네의 모습을 한 여자는 지금, 역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그의 옆에 서 있다가 이윽고 그의 몸 위에 올라오고 있는 중이었다. 화검상은 내심 분노하고 어이가 없기도 하여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지금 그의 몸은 입을 여는 것은 물론이요, 눈 동자도 굴리기가 어려웠고, 게다가 의식도 혼미함에서 아직 깨어 나지 못한 상태였다. 비록 의식은 아직 완전히 깨어나지 못했지만 욕망이 워낙 그쪽 으로 심하게 쏠려 있어서 그런지 유독 그런 감각만은 더욱 예민 하게 다가오는 것 같았다. 화검상은 처음에는 마치 만년빙굴(萬年氷窟) 속으로 빠져드는 것 같은 극도그이 한기를 느꼈으나 그러한 섬뜩하고도 강렬한 느 낌은 이내 다시 거대한 욕망의 기운으로 반전되어 전신으로 마구 회오리를 치기 시작했다. 흡사 거세게 타오르는 불길에 기름을 부은 것과도 같아서 화검 상은 일순 어떻게 해보려고 할 사이도 없이 정신이 아득해지고 그 속으로 함몰(陷沒)되어 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의젓한 사내대장부의 몸으로 이와 같은 꼴을 당한다는 사실도 창피스러운 노릇이지만, 더욱이 지금의 이 상황은 생각보다 훨씬 더 위험하여 만일 그가 그 욕망 속으로 의식의 끈을 놓아 버리기 라도 하면 그의 생애는 그것으로 끝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화검상은 비록 아직 의식은 혼미해도 그러한 이치는 어느 정도 파악할 수가 있었기에 즉시 혼신의 힘을 다해 버티려고 노력했 다. 대개 사랑하는 남녀간의 방사(房事)에서도 욕망의 기운은 일어 나는 법이지만, 그런 자연스러운 흐름과는 달리 이것은 거의 살 인적인 욕망의 기운이기에 그 자체만으로도 갑자기 죽음을 당할 수도 있는 일인 것이다. 그때 문득 그 여자가 혼자말로 이렇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호호, 정말로 놀라운데? 감히 내게 이런 흥분을 불러일으키다 니......, 과연 이 녀석은 그의......." 일단 그 거대한 욕망 속으로 빠져들고 나면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겠지망, 화검상은 억지로 버티고 있는 와중이라 아직 의식 은 남아 있어서, 문득 자신의 진기가 급속도로 그 속으로 빨려들 어가는 것을 느꼈다. 우스운 일이 되겠지만, 이것은 그러고 보면 남자와 여자 간에 있을 수 있는 또 다른 격렬하고도 무서운 싸움이라고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화검상은 진기가 줄어들게 되자 점차로 마음의 의지력도 줄어 드는 것을 느꼈고, 또한 자연 마음의 의지력이 약해지자 빠져나 가는 진기의 양도 갈수록 증가되는 것을 느꼈다. 우스운 일이 되겠지만, 이것은 그러고 보면 남자와 여자간에 있을 수 있는 또 다른 격렬하고도 무서운 싸움이라고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화검상은 진기가 줄어들게 되자 점차로 마음의 의지력도 줄어 드는 것을 느꼈고, 또한 자연 마음의 의지력이 약해지자 빠져나 가는 진기의 양도 갈수록 증가되는 것을 느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무림야그 출력일 :: 98/11/11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2 권 제 52 장 - 1 그저 보기에는 자연스러운 흐름인 것처럼 보이지만, 기실은 그 의 무공이 곡선적인 것임을 생각한다면 이것은 실로 믿어지지도 않는 놀라운 일이 아닐 수가 없는 것이다. 곡선적인 무공의 그 살아 움직이는 강력한 방어력마저 이렇게 허망하게 무너뜨릴 수 있을 정도로 정말로 그녀의 무공은 그렇게 나 대단하다는 말인가? 화검상은 실상은 그녀의 무공이 천수자보다 강할 수가 있다고 추측하기는 했지만 설마 하니 이 정도이리라고는 전혀 짐작조차 못했다고 할 수가 있었다. 이것은 마치 힘이 센 어른과 힘이 약한 어린아이와의 싸움과도 같아서 전혀 상대가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렇게 혼신은 다해 서 버틴다고 해도 결국에는 그는 진기(眞氣)를 모두 빼앗겨서 죽 음을 당하게 되지 않겠는가? 화검상은 갈수록 마음이 조급해져서 거의 미칠듯한 심정이 되 어 갔지만, 그는 아직 이 방면에는 별로 경험도 없을 뿐만 아니 라 그다지 다른 뾰족한 방볍도 업는 듯했다. 아마도 그의 진기가 거의 절반 이상이나 사라졌을 때의 일일 것이다. 갑자기 노도처럼 밀려나가던 진기의 흐름이 거짓말처럼 서서히 멈춰지더니 이윽고 그 욕망도 크게 줄어들고 그여자의 행 동도 멈추었다. "호호, 정말 대단하군요, 벌써 정신을 차렸을 줄은 미처 몰랐어 요. 소문대로 당신은 과연 여러 가지 면에서 사람을 놀라게 하는 재주를 가지고 있군요. 지금 어때요? 기분이 매우 좋지 않나요?" 화검상은 미칠 듯한 심정이 조금은 가라앉기는 했지만 지금 당 장이라도 입을 열어 소리치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울 지경이었다. 사내대장부가 되어 이렇게 여인의 밑에 깔려서 죽음을 당한다 는 지체가 수치스러운 일이 될 뿐만 아니라, 그는 아직은 죽을 수가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상태였다. 그 여자는 가볍게 웃음을 터뜨린 후에 다시 말했다. "호호, 당신은 그렇게까지 나쁘게 생각할 건 없어요, 나는 본래 가 어런 일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니까요. 다만 갑자기 당신이 몹시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호호호! 나는 그만 당신을 사랑하 게 되었나봐요! 왜냐하면 나는 이제까지 거의 누구와도 이런 짓 을 하니 않았던 사람이거든요? 그말은 정말이지 하늘에 맹세코 사실이에요. 그러니 당신도 그리 손해는 아닐 것이고, 혹시 나의 유일한 낭군님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죠. 호호, 이제 기분이 좀 좋 아졌나요?" 화검상은 마음속이 몹시 복잡하고 또한 미칠 것 같은 괴로운 심정이기는 해도 그렇다고 지금 무슨 일정한 생각을 할 수 있느 상황도 아니었다. 다만 그는 이제는 마음의 안정을 다소 회복하고서 무의식중에 혼신을 다해서 이 난관을 벗어나기 의해 갖은 애를 쓰고 있을 뿐 이었다. 그 여자는 잠시 화검상의 반응을 살피는 듯하다가 이윽고 다시 움직이며 말했다. "너무 그렇게 두려워할 것은 없어요. 나는 그대를 죽일 생각은 아니니까요. 그러니 우리 서로 자연스럽게 한번 즐겨보는 것이 어떤가요? 솔직히 나는 이제까지 나를 이렇개 흥분시킬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았어요. 호호....... 아아, 사랑하 는 내 낭군(郎君)! 오히려 더욱 두여워해야 할 사람은 나라는 사 실을 알고 있나요?" 그녀가 움직이자, 다시 욕망의 불길이 가속화되기 시작하고 화 검상의 진기도 급속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이하개도 이때부터 화검상의 마음은 오히려 다시 혼 란스러워지기는커녕 점차로 안정을 되찾아 가고 있었다. 그것은 그가 일단 조금 전에 마음이 다소 안정된 다음에는 이 내 그의 마음속에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급속히 깨우쳐 가기 시 작했기 때문이다. 극도의 분노와 능력의 한계를 느끼는 상황이라서 더욱 그러한 깨우침의 속도는 빨라지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만일 일반사람들이 그런 심한 감정 속에 휘말려 있다면 오히려 그렇게 될 수가 없겠지만, 지금 화검상이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 은 사실은 그와 다른 사람들과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점이라고도 말할 수가 있을 것이다. 실로 그래서인지는 모르지만 그의 마음이 갈수록 안정을 되찾 기 시작하자 이상하게도 빠져나가는 진기의 양도 점차로 적어지 게 되었고, 마침내 그의 공력이 십 갑자(十甲子) 정도 남게 되었 을 때 문득 그 흐름이 갑자기 정지했다. 그리고 그와 거의 동시에 화검상은 문득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 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이 무렵의 화검상의 마음은 비록 아직도 그 욕망의 불길은 타오르고 있었지만 거기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고 고요한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가 되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가 조금 전에 원하던 바를 깨우치고 마음의 평 정을 되찾았기 때문이다. 기실 이 신비로운 의문의 여자의 무공도 믿을 수 없이 강한 것이 사실이지만, 거기에 화검상의 곡선적 무공이 아직 깊이가 부족했던 것도 이러한 사왕을 만든 원인들 중의 하나였다. 비록 혼미한 의식 속이라곤 해도 그는 자신도 모르게 그 거대 한 불길 속에 빠져들었다면 오히려 생각했던 것처럼 당연히 더욱 나쁜 결과를 초래했을 것이며, 오직 다시 본래대로 거기에 얽매 이지 않고 초월하여 마음이 자유롭게 되었으므로 그는 거기에 구 애받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 사실상 이치로 그렇게 따져보는 것은 쉬울지라도 정작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만일 화검상이 곡선적 무공에서 그것에 대한 버금가는 이전의 깨우침이 없었더 라면 그것이 어려웠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설령 같은 이치라도 거기에서 더욱 강력한 장애를 만나게 되면 그만큼의 더 깊이있는 깨우침이 필요하며, 따라서 그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그 장애를 초월할 수 있게 되면 오히려 깨우침이나 곡 선적인 무공은 그만큼 더 상승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 화검상의 내공은 그 깨우침에 따라 이전보다 더욱 영민 (英敏)하게 되었으며, 당연히 제압되었던 기혈이 더욱 급속도로 회복되기 시작한 것은 물론이요, 일단 이 신비한 능력의 여자와 이런 방법이라면 상대할 정도가 되었으니 그 능력이 더욱 대단해 진 것은 말할 나위도 없는 일이다. 하지만 아직도 이 여자와 무공으로는 맞설 수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는 지금 전혀 그런 즐거움을 느껴 볼 마음의 여유 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 여자는 물론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어도 이미 이러한 상황 의 변화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조금 전부터 다소 놀라고 초조해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는데, 막상 화검상의 그러한 마음속의 말을 읽고 나자 더욱 행동이 조급해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아주 미세(微細)한 심리적인 차이에 의해서도 사태가 역전(逆轉)될 수가 있는 법이므로, 그녀가 그렇게 변해 가 자 드디어 두 사람 사이의 진기의 흐름이 뒤바뀌기 시작했다. 먼저 그녀의 몸속으로 흘러들어갔던 화검상의 내공이 화검상의 몸속으로 도로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으며, 그에 따라 그 여자 는 이제까지 느끼던 흥분이 쾌락으로 바뀌면서 신음소리와 함께 말했다. "아아, 아아! 이러지 말아요. 그대는......, 그대는 나의 오랜 수양 (修養)마저 무참히 짓밟아 버리는군요......." 하지만 그녀는 반쯤은 두려우면서도 반쯤은 이 강렬해져 가는 쾌락에 미련이 생겨서 차마 그만두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이것은 그저 보통의 남녀간의 방사와는 아주 다른 것이어서 화 검상도 만일 다른 경우라면 이렇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처음부터 그 여자가 먼저 그의 진기를 빼앗기 시작했고, 이에 화검상은 대응하는 자세로 거기에 임하고 있기 때문에 이처럼 심 한 진기의 이동이 생기는 것이고 흡사 그 어떤 격전에 못지않게 되는 것이다. 화검상은 자신의 깨우침이 그 위혁을 발휘하기 시작하자 점차 로 더욱 마음의 안정을 되찾아가고 그 깨우침도 더욱 깊어지고 공고해져 갔다. 그는 앞으로의 여러가지 일어날 수 있는 상황에 대해 대처할 마음의 준비를 하며 계속 그녀에게 마음속으로 질문 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화검상은 이 무렵에는 시야(視野)가 다시 밝아져서 그녀의 표 정이 복잡한 심정으로 쾌감속에 일그러지는 것을 볼 수가 있었 다. 그녀는 여전히 행동을 그만두지 못하면서도 거푸 한숨을 내쉬 며 말했다. "나는, 나는......, 그렇게 묻지 말아요. 굳이 내 이름을 알아서 무엇하겠어요? 이런......, 쾌감은 처음이에요. 하지만......, 하지만 이제 그만둬요. 나는 더 이상 못 하겠어요." 화검상은 그녀의 얼굴이 점차로 변화를 보이기 시작하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것은 지금 그녀의 마음과 무학에 대한 신념이 크게 혼란을 겪고 있기 때문에 변장한 겉모습마저 그렇게 달라지고 있는 것이 다. 하지만, 사실 지금이라도 쉽게 그만둘 수 있는 사람은 오히려 그녀 자신이고, 아직 그만두기 어려운 쪽은 화검상 쪽이다. 다만 그녀는 지금 아직까진 겪어보지 못한 쾌락을 경험하고 있 는 것이며 그 미련을 쉽게 버리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다. 화검상은 마음속으로 다시 말했다. '그럼 당신은 대체 내게 무슨 목적으로 이러는 것입니까?' 그 여자는 이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죽겠다는 표정을 짓 고 있었다. "안 돼......, 그대를 해치지 않겠다고 말했잖아요? 나는 그냥......, 그냥 그대를 만나......, 아아 제발, 제발 나를 좀 그만 풀어줘 요......!"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To b ─────────────────────────────────────── PRINTER/CAPTURE를 정지하고 [Enter]를 누르십시오. 무림야그 출력일 :: 98/11/11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2 권 제 52 장 - 2 그녀는 지금 누구도 간섭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지만 오히려 스 스로의 쾌락이라는 그물에 묶여 있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가 있었 다. 게다가 벌써 그런 사실에 대해 분명히 알고 있는 그녀는 그러 고 보면 심리(心理)에 대해 상당히 밝은 편이라고도 말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녀가 느끼는 쾌락의 크기가 클수록 이 무렵의 상황의 변화는 역시 막대해서 이제는 화검상은 그녀의 몸속으로 들어갔던 자신 의 공력을 완전히 되찾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지금은 그녀 자신의 진기(眞氣)가 역으로 흘러나오고 있는 중 이었고, 그것은 바로 그녀 자신의 본신내공(本身內功)을 뒤흔드는 것이어서 그녀는 이제는 고통과 더욱 강렬한 쾌락을 함께 느끼고 있는 모양이었다. 화검상은 내심 가볍게 탄식하며 입을 열어 말했다. "지금 내가 당신을 붙잡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실상 조금 전부터 화검상은 몸이 거의 정상을 되찾았을 뿐만 아니라 제압된 혈도들도 완전히 풀려 있어서 무공도 사용할 수가 있게 되어 있었다. 그녀는 화검상이 갑자기 말까지 하는 것을 보고는 그만 다소 멈칫하며 그를 바라보더니 이윽고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 말은 맞아요. 내가 나를 잡고 있는 것이죠. 그대는 아직도 나를 미워하고 있나요?" 그렇게 말을 하는 가운데에서도 여전히 진기의 흐름은 이어지 고 있어서 그녀는 말을 하는 도중에도 연신 신음을 간헐적으로 발하고 있었다. 화감상은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그만 고소(苦笑)하며 말했 다. "나는 그저 나 자신의 어리석음을 미워했을 뿐입니다. 게다가 이러한 것도 어찌 생각해 보면 인연이라고 할 수도 있는 일이 아 니겠숩니까?" 그녀는 그 말에 잠시 생각해 보는 듯하다가 다시 한숨을 내쉬 고 웃으며 말했다. "하긴 그렇군요. 게다가 이러한 인연이라면 세속에서는 부부간 의 사이밖에 있을 수가 없겠죠....... 고마워요, 나는 혹시 그대가 나를 미워하게 된 것이 아닐까 하고 걱정했어요......." 말과 함께 그녀는 몸을 앞으로 숙여서 화검상의 입술에 가볍게 입맞춤을 했다. 하지만 그 순간에 갑자기 그녀의 마음속의 욕정(欲情)이 강렬 하게 일어나고, 엄청난 쾌락과 함께 본신내공이 완전히 크게 뒤 흔들리며 진기가 홍수처럼 한꺼번에 쏟아져 나갔으므로, 그녀는 그만 깜짝 놀라서 몸을 벌떡 일으키며 화검상에게서 떨어져나가 고 말았다. "아......!" 그 한 순간의 위기 상황에 너무나도 놀랐기 때문인지 그녀는 그만 멀찍이 물러선 상태에서도 황검상을 바라보며 잠시 멍하니 서있기만 했다. 화검상은 갑자기 벌어진 그와 같은 상황에 대해서 그만 다시금 고소하며 빨리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한데 그는 그러던 중 문득 무심코 물러서 있는 그녀의 얼굴을 다시 바라보다가, 왠지 갑자기 표정이 어리둥절해지고 말았다. 이 순간 그녀의 용모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모습까지 완전히 달 라지고 뒤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절세미인(絶世美人). 화검상은 일찍이 강호에서 흔히 통용되고 있는 그러한 말들을 많이 들어왔고 또한 더러 그와 같이 몹시 아름다운 여인들을 많 이 만나봤던 것이 사실이었다. 비근한 예로 그에게 매우 연연해 하던 석한절만 해도 그러한 칭호를 듣기에 거의 부족함이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 모습이 완전히 뒤바뀐 그여자의 모습은 비단 절세 미인이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오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런 말마저 초월하여 전혀 상상할 수 없는 느낌마저 불러일으키 고 있었다. 대개 사람은 아무리 깨끗한 피부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전혀 흠이나 더러움이 없을 수가 없는 일이며, 또한 아무리 모습이 광 채(光彩)가 난다고 해도 정말로 그것만으로 이루어져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 그 여자는 지금 그모습이 말 그대로 전혀 더러움 이 느껴지지 않은 백옥과 같은 투명한 모습인 데다가 그 전신이 완전한 광채로 이루어져 있는 것 같았다. 이를테면 전혀 형체마저 느껴지지 않는 혀깨비 같기도 했고, 혹은 그야말로 지상에서는 볼 수 없는 천상의 아름다운 신녀를 보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어째서 이 여자는 갑자기 이런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며, 혹시 화검상은 지금 귀신이라도 보고 있는 것이 아닐까? 게다가 그녀는 아까까지도 계속 모습을 변장하고 있었으니 실 상은 이 모습도 그녀의 새로운 변장한 모습은 아닐까? 세상에서 처음 보는 신비롭고도 가장 아름 답다고 할 수 있는 모습일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의 기이한 점들이 있어서 화검상은 한 순간 부지런히 그 리치를 생각해 보느라 도리어 멍청한 표정 이 되고 말았다. 이윽고 오히려 그녀가 먼저 정신을 차리고 쓴웃음을 지으며 말 했다. "호호, 드디어 그만 내 진면목(眞面目)을 들키고 말았군요. 이 건 오로지 내 실수예요. 하지만 당신도 앞으로 이 일을 남에게 절대로 말하지 않는 것이 좋을 거예요." 그녀의 벌거벗고 서 있는 모습은 너무나도 고결(고결)해 보이 기까지 하여 전혀 조금 전까지 그와 같은 일을 한 여자로는 생각 되지 않았다. 잠시 동안 빠르게 여러 가지의 생각을 굴려보던 화검상은 이윽 고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럼 당신의 실제의 모습은 그 원영신(元영身)이었다는 말입 니까?" 무공이 일단 광검의 경지에 오르게 되면 전신의 진기는 극도의 영성(靈性)을 띠게 되는 나머지, 그만 작게 응축되어 마치 영물 (靈物)과도 같은 투명한 결정체로 변하게 되는데 그것을 소위 원 영(元瓔)이라고 한다. 그 원영은 진기가 가장 응축된 것이고 또한 흡사 하나의 무한 한 영성(靈性)을 지닌 생물체와도 같기 때문에 그 자체로는 금강 불괴(金剛不壞)이면서도 이제까지는 경험할 수 없었던 새로운 능 력들을 발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무학의 전문적인 용어로느 일천세맥(一千細脈)을 완전히 융통 (融通)시키고 인체의 미세한 팔만사천모공(八萬四千毛孔)을 타통 시키기 시작했다는 것인데, 이때의 무공은 검즉아(劍卽我) 아즉검 (我卽劍), 즉 검과 내가 하나로 동화(同化)되어 뜻은 아직 남아 있으되 초식(招式)이 사라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때의 무공을 일명 혼검(魂劍)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이른바 원영에서 발출되는 빛에의한 의형수형(意形隨形), 심즉살(心卽殺) 의 무공과 기타의 육구신통(六具神通)에 버금가는 능력들을 사용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광검의 단계는 아직 뜻을 버리지 못했기에 그 기질에 따라서 원영이 각기 고유한 색을 띠게 되는 것이며, 또한 최고의 경지라 는 무형검(無形劍)에는 오르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이른바 가장 이상적인 마지막 무학의 단계라는 무형검 이 인간으로서는 도달하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그저 이론상 의 단계라는 것을 모두가 인식하고 있는 상황이므로 이 광검은 실제적인 최고의 단계라고 인정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사람은 자신의 기질이나 뜻을 버리기가 정말로 어려 운것이며, 게다가 그렇개 하여 성취된다는 무형검이라는 단계가 정말로 존재하는지도 실은 의문인 것이다. 또한 그 무형검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무려 수 천 갑자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공력이 필요하다고 하니, 그것은 혹시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신선들의 경지를 말하는 것일지도 모 른다. 전설에 의하면 그 신선들은 육구신통(六具神通)을 상용하고 흡 사 번갯불과도 같은 무색의 신광(神光)을 사용한다고 하니, 그것 은 거의 천의무봉(天衣無縫)하고 의검멸아(義劍滅我)한 대자연무 도(大自然武道)라는 취지에도 맞는 듯하다. 불법(佛法)에 의하면 그 신의 경지에도 다시 일선(一仙), 이선 (二仙), 삼선(三仙), 사선(四仙)으로 나뉘며, 그 위에 다시 사무량 심(四無量心)의 범천(梵天), 다시 그 위에 사무색정(四無色定)의 부동(不動), 그리고 다시 그 위에 소승(小乘)의 성자(聖者)의 경지 등으로 나뉜다고 하니 정말로 그말대로, 그런 방법만으로느 아마 도 그 끝을 찾을 수가 없을 것이며 완벽한 경지에 오를 수가 없 게 될 것이다. 이 광검의 경지에 있어서 갓 태어난 원영 자체는 금강불괴라고 해도 아직 그 육신까지 그렇게 된다고 할 수는 없으므로 점차로 오랜 세월 동안 천지간(天地間)의 기운들을 흡수하여 원영을 키 울 수가 있다. 공력이 수천 갑자에 도달하게 되면 그 원영은 그 사람의 육신 의 크기만큼 자라나 육신을 초월할 수도 있게 되는데, 이것을 특 별히 원영신이라고 하고, 이때는 그 사람의 원영신이 머무른 육 신도 금강불괴에 거의 가까워지며 불로장수(不老長壽)하게 되는 데 이를 소위 반인반선(半人半仙)의 경지라고도 한다. 실로 수천 갑자의 공력이라는 것도 그렇고 또한 그런 반인반선 의 경지라는 것도 역시 그저 전설로만 전해져 오던 얘기에 불과 했는데, 이제 화검상은 그런 얘기를 사실로 받아들여야 하는 상 황이니 그야말로 놀라움이 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본다면 아까 그의 곡선적인 무공이 그렇게 허망하게 무 너졌던 것도 다소나마 이해가 간다고도 말할 수가 있을 것이다. 과연 정말로 그녀는 원영신으로 되어 있는 사람이며 게다가 천 지간에 그러한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사실일까? 그 여자는 가볍게 고소하며 약간 주저하는 듯하다가 말했다. "그렇다면 당신은 아직 당신의 사부인 그 용와노인(龍華老人) 에게서 우리들에 대한 얘기를 들어보지도 못했다는 말인가요?" '용화노인? 용화노인이 내 사부라고......?' 하긴, 이전에 만났던 그 시골노인 등에게서 그런 비슷한 얘기 를 들어본 것 같기도 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무림야그 출력일 :: 98/11/11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2 권 제 53 장 전설(傳說)과 거짓말 제 53 장 전설(傳說)과 거짓말 화검상은 일순 의문들이 한꺼번에 솟아올랐지만 보아하니 그녀 는 쉽게 그런 얘기를 해줄 사람이 아닌 듯하여 그만 더 이상 질 문하는 것을 포기하고 화제를 돌려 말했다. "좋습니다. 그럼 당신의 이름이 무엇인지, 그리고 내게 무슨 용 건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말할 수가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 여자는 가볍게 미소하며 생각을 굴려보는 듯하다가 역시 미 소를 띤 채로 말했다. "당신이 아직 우리들에 대한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다면 그것은 당신의 사부에게 물어보면 쉽게 알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이미 말했지만 내가 당신을 찾아온 것은 그저 호기심에서일 뿐 다른 뜻은 없어요. 게다가 우리는 이미 세상에 보기 드문 야릇한 인연 도 맺게 되었지요. 그렇지 않은가요?" 화검상은 내심 더욱 의문이 많아졌지만 겉으로는 마주 미소하 며 미련이 없는 듯이 말했다. "그렇다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은 보아하니 이제 곧 이것을 떠날 것 같습니다만, 앞으로 우리가 다시 만날 기회가 있 을 것 같습니까?" 그 여자는 섬섬옥수를 가볍게 내저어 웃으며 말했다. "그거야 아직 잘 알 수가 없는 일이지요. 호호, 나중에 인연이 또 있다면....... 호호! 우리는 금방 다시 만나게 될지도 몰라요. 그 때 나를 모른 척하지만 말아 줬으면 좋겠어요. 호호......." 화검상은 침상 위에 앉은 채로 그녀에게 포권하며 미소와 함께 말했다. "물론입니다. 그럼 다음에 다시 뵙도록 하겠습니다." 그 여자는 잠시 그윽하고도 반쯤은 야릇한 시선으로 화검상을 바라보다가, 이윽고 마치 환상처럼 뒤로 미끄러지며 밖으로 사라 져 버리고 말았다. 원영신(元영身)이어서 그런지 그녀의 몸은 벽을 통과해서 사라 졌지만 그 벽은 전혀 손상을 입지도 않고 그대로 멀쩡했다. 화검상은 잠시 그대로 앉은 채로 사라져 가는 그녀의 기척을 한번 파악해 보려고 했지만 그것이 되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 한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정말 한바탕의 꿈을 꾼 것 같기도 하군!' 그 여자는 필시 그에게 좋은 의도를 가지고 접근한 것은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오히려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되어 그는 그 덕분에 곡 선적 무공이 한 단계 더 높아지고 공력도 엄청나게 많은 증진을 보게 되었다. 문득 그는 이 정도의 무공이라면 충분히 천수자를 상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그는 자신의 문제가 그저 무공에만 있는 것은 아 니라는 것을 상기하고는 고개를 내저으며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아직은 아니다. 나는 역시 예정대로 일정 기간 동안 산속에서 수련을 쌓는 것이 좋을 것이다.' 게다가 이제는 천수자를 상대하는 일뿐만 아니라 그 보이지 않 는 신비인들인, 조금 전의 그 여자와 같은 강호이인(江湖異人)들 을 상대하는 일 또한 숙제로 남겨진 셈이었다. 침상의 한쪽 옆에는 그의 의복이나 가지고 다니던 물건들이 있 었는데, 특별히 망가지거나 없어진 물건들은 없었다. 의복을 모두 걸치고 소지품들을 잘 갈무리하고서 막 그곳을 떠 나려고 했을 때, 문득 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오더니 이윽고 방문 이 열리면서 아낙네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 아낙네는 바로 아까 그를 마을 입구에서부터 그를 데려온 진짜 그 아낙네로, 그를 보자 다소 미안해 하는 표정을 짓고 있 었다. "어마, 이를 어쩌나? 아까 그만 나무를 하러 갔다가 잠깐 잠이 들었었나봐요. 여태 이런 일이 없었는데....... 호호. 이거 미안해서 어쩌죠? 지금이라도 밥을 지어 올릴까요?" 화검상은 내심 고소하며 그 아낙네에게 은자 두 냥 정도를 건 네주며 말했다. "아니, 이제 됐습니다. 잠시 잘 쉬었으니 다음에 또다시 들르도 록 하지요.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그 아낙네는 주는 은자는 이내 받아들었으나 역시 아무래도 알 수 없다는 듯이 자꾸만 화검상의 얼굴을 거듭해서 살피고 있었 다. 화검상은 그 아낙네의 시선을 뒤로한 채로 밖으로 나왔고, 이 어 계속 걸어서 마을의 중심부로 향했다. 마을의 중심부에 도착하니 어느덧 시간은 거의 정오 무렵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화검상은 공연히 이런 곳에서 여러 가지 소문이 나오게 될까 봐 서둘러 한집에 들러서 식사를 하고 간단한 물품들을 준비한 후에, 곧장 다시 산속으로 향했다. 만일 비가 많이 와서 계곡의 물이 넘치게 되면 귀찮은 일이 벌 어질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지금은 그다지 비가 많이 올 계절은 아니어서 그는 상관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동굴의 내부는 깊은 편이었고 게다가 입구와는 달리 안쪽은 다 소 건조한 편이었다. 이런 곳에서 다시 여러 가지의 준비를 하자면 시간이 또 며칠 이 지나가게 될지 모르므로 화검상은 그저 커다란 바의 하나를 가져다가 입구를 막아 놓고, 이어 앉을 자리를 고른 다음에 곧장 운기행공(運氣行功)에 들어갔다. 이때 그의 운기행공은 곡선적인 심검(心劍)의 경지이기 때문에 이미 타통된 일천세맥을 따라 두루 운행시키는 것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거의 좌선명상(坐禪冥想)에 가깝다고 할 수 있었다. 첫날 밤을 그는 그렇게 보내고 이윽고 다음날 새벽 무렵이 되 었을 때 문득 그는 드디어 상달(上達)할 조짐을 보게 되었다. 이것은 바로 어제 그 이상한 여자와의 사건 이후에 공력과 무 학에 대한 깨우침이 늘어나게 되어 발생하게 된 아주 당연한 현 상이라고 할 수 있었다. 현재 그의 공력은 무려 칠십일 갑자나 되는 것 같았는데, 하지 만 그것들은 이제야 그의 것으로 융화되고 단련되어 제 구실을 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문득 상쾌하고도 아주 부드러운 쾌감과 함께 시원스럽게 그의 전신의 일천세맥의 현관(玄關)들이 거의 일순간에 완전히 터져나 가며 융통되었고, 마치 우주와 자신이 하나가 되어버린 듯한 느 낌과 합께 상서롭게 빛나던 그의 몸의 기운들이 빨려들 듯 하나 로 작게 응축되면서 중단전(中丹田) 부위에 말할 수 없이 즐거운 쾌감이 느껴졌다. 그 쾌감은 마치 감로(甘露)를 들이부은 것처럼 달콤하고 상쾌 하며 속되지 않은, 도무지 변함없이 싫증이 나지 않을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화검상은 자신의 가슴 부위에 뭐라고 형용할 수 없이 영활하며 무한한 능력으로 가득찬 듯한 어떤 작은 기운이 머물기 시작한 것을 느꼈다. 이제 그는 비로소 원영을 성취하고 광검이라는 무학 경지에 도 달하게 된 것이다. 지금 그의 광검의 경지는 직선적이 아닌 곡선적인 것이어서 다 른 어떤 사람들이 느꼈던 것과도 다른 경험이라고도 말할 수가 있었다. 일반적으로 직선적인 무학의 경지에서는 심검의 경우 십육 갑 자의 공력이 필요하지만 광검에 오르려면 그것의 네 배가 되는 육십사 갑자의 공력이 필요하게 된다. 그러나, 이 곡선적인 무학의 경지에서는 심검에 오르려면 삼십 이 갑자의 공력이 필요하지만 광검에 오르려면 그것의 두 배인 육십사 갑자의 공력만을 필요로 하게 되니, 여기에서 광검에 오 르는 데 필요한 공력의 양이 같아지게 되는 것이므로 일면 기이 한 일이라고 아니할 수가 없었다. 물론 그저 필요한 공력의 양이 같아졌다고 해서 직선적인 광검 과 곡선적인 광검이 비슷해졌다고 하는 것은 절대로 아닐 것이 며, 다만 이는 곡선적 무공의 훌륭한 이치에 의거하는 사항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일 뿐이다. 화검상은 어려서부터 화산파의 무학을 배워 왔고, 비록 그것이 곡선적이라고는 해도 곡선적인 화산파의 무학인 것이므로 지금 그의 광검의 기질은 백색의 빛깔을 띠고 있었다. 다만 그 백색의 광채는 곡선적인 무공의 특성상 유난히 부드럽 고도 상서(祥瑞)로운 듯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화검상은 일단 그렇게 광검의 경지에 오른 다음에는 계속 그렇 게 좌선명상 속에서 시간을 보냈다. 무공이 이미 그와 같이 거의 최고의 경지에 올랐기 때문에 허 기를 느끼는 일도 거의 드물었으므로 간혹 배고픈 느낌이 들면 가지고 있던 벽곡단을 하나씩 복용하여 해소했다. 그렇게 좌선명상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동안에는 무공의 방면 에는 그다지 특별한 진전이 있지는 않았다. 다만 그는 거의 자신의 심리적인 내용에 주력하여, 처음에는 안색이 어두운 편이었으나 날이 갈수록 밝아져 보이는 것이 이를 테면 진전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단조로운 듯한 폐관(閉關)의 세월을 거의 한 달 남짓 지났을 무렵의 일이었다. 그날은 오랜만에 세수도 하고 물도 마실 겸해서 동굴의 입구를 막아놓은 바위를 옆으로 치우고 밖으로 걸어나왔는데, 미처 계곡 의 물가에 당도하기도 전에 문득 아래쪽에서 기척이 일더니 날카 로운 비명 소리와 함께 한 명의 여인이 그의 앞으로 달려왔다. "살려주세요, 제발! 제발 사람 좀 살려주세요!" 그 여자는 바로 그가 한 달 전쯤에 잠시 들러 식사를 하려고 했던 그 기가촌(祁家村)의 아낙네였다. 그 아낙네는 화검상의 앞으로 달려들더니 이내 옷소매를 붙잡 고 매달리는 것이 거의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화검상은 다소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부축하고서 말했 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야그 무림야그 출력일 :: 98/11/11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2 권 제 53 장 - 1 "아니, 아주머니는 바로 그때의 그 아주머니가 아니십니까? 갑 자기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입니까?" 아낙네의 눈빛은 몹시 피곤한 듯 휑하니 열려 있었고 또한 표 정도 몹시 불안정해 보였다. "우리, 우리 남편이 그대를......, 그대를, 아아......, 우리 두 사람 을 모두 죽이려고 하고 있어요." 화검상은 일단 가벼운 점혈(點穴)로 그녀의 심맥을 안정시킨 다음에 약간 어리둥절해 하며 말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아주머니의 남편이 대체 왜 저와 아주머 니를 죽이려 한다는 말씀입니까?" 아낙네는 비록 마음은 다소 안정되었지만 그래도 어떤 공포감 만은 아직 잊을 수가 없는 듯 아래쪽으로 손짓을 하며 더듬더듬 말했다. "그는 우리를 오해하고 있어요. 그러니 어서 그대는 달아나요. 지금 그가 이리로 올라오고 있어요!" 화검상이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과연 그쪽에 다시 덩치가 크고 몹시 우락부락하게 생긴 사내 하나가 금속성의 고함을 지르 며 올라오고 있었다. "흥! 쇠신발이 닳도록 찾아 헤맸는데 과연 이런 곳에 숨어 있 었군! 어디 내가 네녀석을 살릴 것인지 죽일 것인지 두고 보아 라!" 얼핏 보기에 그 사내는 손에 한 자루의 마치 도끼와도 같이 생 긴 칼을 들고 있었는데, 나무꾼 같기도 했고 사냥꾼 같기도 했으 며 그 패도적(覇道的)인 기세가 맹렬해 보였다. 이런 호리호리하게 생긴 아낙네에게 이런 무식하고 우락부락해 보이는 남편이 있다는 것은 약간 재미있는 일이 아닐 수가 없었 다. 아낙네는 그 사내가 나타나자 그만 공포감을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듯이 그 자리에서 혼절해 버리고 말았다. 화검상은 그 아낙네를 한쪽에 안전하게 기대앉게 해놓은 다음 에 그 사내가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사내는 워낙에 이런 산속에서 오래도록 생활해 온 사람이기 때 문인지 비탈진 계곡을 올라오는 데도 전혀 힘이 들지 않는 것 같 았으며, 발걸음이 빨라서 이내 그의 앞에 도달했다. 사내는 곧장 그 들고 있던 도끼처럼 생긴 칼로 한쪽의 바위를 내리치며 험악하게 소리를 질렀다. "아니, 이런 멀쩡하게 생긴 녀석이로군! 감히 내 마누라를 건드 리다니, 이렇게 하고서도 무사할 줄 알았느냐?" 화검상은 그 한마디의 말을 듣고 나자 이내 무슨 말을 하고 있 는지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는 잠시 사내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지금 이 아주머니가 당신의 부인이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오?" 사내는 화검상이 태연하게 자신의 얼굴을 바라볼 뿐만 아니라 웃기까지 하는 것을 보고 더욱 험악하게 두 눈을 부릅뜨며 소리 쳤다. "그렇다면 이 나쁜 녀석아! 내가 아직 장가도 가지 못했을 녀 석이란 말이냐?" 화검상은 그만 소리내어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하하, 그런 뜻은 아니오. 다만 이 아주머니에게 두 명의 남편 이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뿐이오. 내가 보기에는 당신은 도저히 이 아주머니와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인 것 같소." 사내는 잠시 의아해 하다가 이내 전신을 부르르 떨며 더욱 화 를 내어 칼을 허공에 마구 휘두르며 소리쳤다. "이런, 이 나쁜 녀석이 감히 나를 업신여기는군! 정말로 뜨거운 맛을 봐야만 제정신을 차리겠다는 말이냐? 하지만 이제는 때가 너무 늦었다! 어서 칼을 뽑아라. 네녀석을 단칼에 날려 버리겠 다!" 화검상은 겨우 웃음을 거두고 미소하며 말했다.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오. 보아하니 당신은 제법 일을 그럴 듯하게 꾸몄지만 연극이 너무 서툰 것 같소. 그래서야 누구라도 당신의 말을 곧이들을 사람이 있겠소?" 사내는 칼을 휘두르던 것을 중단하고 다시 어리둥절해 하다가 그를 보며 말했다. "내가 무슨 연극을 서툴게 했다는 말이냐?" 화검상은 표정을 조용히 가라앉히고 정색하며 대꾸했다. "다른 것들은 제쳐놓더라도 나는 최소한 당신이 일단 세속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소. 그렇다면 당신 같은 사람이 저 런 평범한 아주머니와 부부가 된다는 것이 좀 이상한 노릇이 되 지 않겠소?" 실상 화검상은 이미 아까부터 그러한 사실을 간파하고 있었기 에 시종 여유있게 그 사내에 대처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그 사내에게서도 일전에 아낙네의 집에서 보았던 그 이상한 여자처럼 투명하고도 유리거울과도 같은 위험한 느낌이 느껴졌던 것이다. 이제와서 화검상이 생각해 보면 그 위험한 느낌이란 바로 그 직선적인 무공에 의해 얻어지는 원영신을 바라보는 그만의 직감 이었다고도 할 수 있었다. 본래 원영신이라는 것은 금강불괴라고들 하지만 역시 이 경우 직선적이기 때문에 살아 있는 것이 아니고, 온갖 번뇌에 물들어 언제라도 붕괴될 위험 속에 있는 것이며, 또한 그 자체가 다루기 어려운 무서운 흉기와도 같기에, 자연 화검상에게는 실로 그렇게 느껴지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실제로 이런 사람은 다시 근본적인 이치를 배워서 무공 이 곡선적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지만, 오히려 이런 사람일수록 그렇게 되는 것이 더욱 어려워져서 대개는 번뇌에 쫓겨 불안한 나머지 좀더 높은 경지로 올라가려고 하거나, 혹은 반쯤 자포자 기한 나머지 타락의 길로 접어들게 되는 경우가 보통인 것이다. 흔히들 말하는 자기자신이 또한 가장 무서운 적이라고 하는 말 은 이런 경우에도 가장 잘 드러난다고 말할 수가 있다. 원영신은 자체로 무쇠보다도 더욱 단단하여 타의에 의해서는 잘 무너지지 않지만, 오히려 자신의 내부적인 번뇌에 의해서는 허망하게 무너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화검상은 한달 전에 만났던 그 이상한 여자에 이어 다시 한 명의 강호이인을 만나게 되는 셈인데, 이렇게 끊임 없이 계속 이러한 사람들이 나타난다는 것은 도무지 그들의 숫자 가 얼마나 되는지 헤아릴 수도 없게 만들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사내는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차갑게 화검상을 바 라보고 있었는데, 문득 그의 두 눈에 자생의 투명한 광채가 어른 거리다가 사라지는 것 같았다. "너는 과연 정말로 그러한 사실을 확신한단 말이냐?" 화검상은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떠올리며 대꾸했다. "당신이 만일 계속해서 저 아주머니의 남편으로 자처하고 싶다 면 나도 더 이상 말릴 생각은 없소." 사내는 잠시 노려보듯 화검상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이윽고 그만 안색이 다소 붉어지고 입가에 엷은 실소를 떠올리며 말했 다. "좋다, 과연 너는 정말로 소문보다 못하지는 않군. 아니, 오히 려 그사이에 무공이 훨씬 더 증가된 것 같은데 설마하니, 혹시 화(花)......! 그녀가 네게 어떤 도움이라도 준 것이 아니냐?" 화검상은 사내의 말에 은근히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상황이 었으나 겉으로는 마음을 태연히 하고서 그를 대했다. 기실 이런 사람은 사람의 생각을 능히 읽을 수가 있기에 이런 사람을 속인다는 것은 실로 쉬운 일이 아니다. 다만 이들의 독심술(讀心術)이라는 것도 역시 직선적이기 때문 에 오로지 상대방의 마음속이 일정한 흐름이나 생각에 묶여 있는 경우에만 그것을 읽을 수가 있는 것이므로, 화검상은 그런 사실 을 거의 파악하게 된 지금에 이르러서는 그다지 그 문제에 대해 서 곤란을 겪지 않고 있었다. 이를테면 이들은 직선적인 생각은 읽을 수 있어도 곡선적인 생 각이나 심리는 읽을 수가 없는 것이다. 애초에 이들이 대해 의문이 많을 뿐만 아니라 장차 이들을 상 대하기 위해서라도 이들에 대해 자세히 알아두어야만 할 것이기 에 일부러 여러 가지 수단을 부려 보고자 했다. "하하, 그거야 역시 당연한 일이 아니겠소? 만일 그녀의 특별 한 도움을 받지 않았다면 나는 이와 같은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 는 최소한 앞으로 몇 년은 더 노력해야 했을 것이오. 하지만 다 행히도, 하하......, 하지만 솔직히 그 이후 얼마 되지 않아 당신이 또 내 앞에 나타나게 될 줄은 미처 몰랐소." 사내는 그 말에 약간 안절부절못하는 것 같았다. "서, 설마하니......, 그녀, 화선(花仙)이 내 얘기도 했단 말이냐?" 화검상은 대단히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실소하며 말했 다. "그야 물론이오. 하하! 그녀는 몹시 아름다웠고, 또한 우리는 함께 어울리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소. 나의 사무인 용화노 인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고......." 사내는 약간 흥분하여 두 눈에서 다시 자색의 투명한 광채를 발했으며 말을 잘라 말했다. "용화노인? 그, 그가 정말로 너의 사부라는 말이냐? 그게 사실 이냐?" 화검상은 한 손을 들어 사내의 말을 제지하며 무뚝뚝하게 표정 을 지어 가며 말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 무림야그 출력일 :: 98/11/11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2 권 제 53 장 - 2 "그 얘기는 일단 나중에 하도록 합시다. 사실 나는 그녀에게도 아직 그것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소. 그러니까......, 내 말을 자르지 마시오. 자꾸 헛갈리지 않소? 아, 생각났소! 우리 는 나의 사부에 관한 이야기도 나누었고 또한 세상에서 오직 좋 은 일만 하며 살아간다는 삼선(三仙)에 관한 이야기도 나누었소. 그녀는 자신이 그 중 하나인 화선(花仙)이라고 하면서 오직 그 삼선만은 나쁘지 않으며 다소의 오해가 있다고 해도 믿어줘야 한 다고 했소. 아, 아니 그녀는 나중에 이 얘기를 누구에게도 해서는 안된다고 했으니 나는 더 이상 그것에 관한 얘기는 하지 않겠 소." 사내는 심하게 눈살을 찌푸렸으며 마치 정말로 화가 난 것처럼 안색이 싸늘하게 변했다. "흥! 그녀가 정말로 그런 얘기를 했단 말이냐? 그럴 리가 없는 데......? 그건 혹시 네가 일부러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냐?" 화검상은 역시 마주 눈살을 크게 찌푸리고 시선을 외면하여 다 른 곳으로 돌리며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뭐라고? 천만의 말씀이오. 만일 그렇다면 내가 그녀의 이름이 화선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고 있겠소? 게다가 그녀가 스스로 화 선임을 밝혔다면 어찌 다른 사람에 관한 얘기를 하는 것을 두려 워할 리가 있겠소? 아......! 나는 혹시 앞으로 그녀를 사랑하게 될 지도 모르겠소. 아, 나는 그 일을 말하지 않기로 했으니 더 이상 말하지 않겠소." 사내는 일순간에 여러 차례 안색이 변했으나 이내 다시 안색을 싸늘하게 굳히고 냉소하며 말했다. "그건 옳지 않은 이야기다. 천하에는 오직 삼선만이 좋은 사람 이 것은 아니야. 세상에선 그보다 더욱 많은 사람들이 있지. 너는 그 이후 사부인 용화노인을 만났느냐?" 화검상은 고개를 흔들며 거의 건성으로 대하듯 대꾸했다. "나의 사부님께선 지금 폐관 중이시니 요사이는 만나 뵙지 못 했소. 하지만 나는 나중에 그분을 뵙게 되면 화선과의 이야기를 좀더 신중히 말씀드려 볼 생각이오. 음, 나의 사부님께서 어느 곳 에서 폐관 중이신가 하면......, 그건 절대로 말씀드릴 수가 없소. 혹시 당신들이 그곳으로 가서 사부님을 귀찮게 해드릴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오." 사내는 화검상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뭔가 깊은 생각을 굴려보 는 듯하다가 이윽고 다시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쨌든 화선의 얘기가 다 맞는 것은 아니야. 너는 용화노인의 제자이니 그렇게 모든 일을 편파적으로 생각할 수는 없을 것이 다. 음......, 너는 나를 어떻게 보느냐?" 화검상은 그를 한번 힐끗 돌아본 뒤에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당신 말이오? 음......, 나는 당신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니 뭐라고 말씀드릴 수가 없소." 사내는 눈살을 가볍게 찌푸렸다. "너는 이미 화선으로부터 나에 관한 얘기를 들었다고 말하지 않았느냐?" 기실 화검상이 지금 삼선 운운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가 이제 까지 만났던 사람들 중에 그래도 모습이 가장 그럴싸해 보이는 시골노인과 노의원을 포함시켜 그렇게 말해보고 있는 것이다. 화검상은 이미 이들 강호이인들이 능력들은 비슷할 수 있어도 역시 성격들은 제각각이라는 것을 간파하고는 이런 수단을 부려 보고 있었다. 화검상은 한 손을 들어 내저으며 말했다. "물론 그녀에게 그런 얘기를 들었던 것은 사실이오. 으레 남녀 간에는 침상 위에서 여러가지의 얘기가 오가게 되는 것이 아니겠 소? 당시 그녀가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서 세상에서 처음으로 이런 쾌락을 느끼게 되었다고 말했을 때, 나는 솔직히 그녀에게 빠져들지 않을 수가 없었소. 아......, 그녀에게는 이제 내가 절대적 으로 필요한 존재이고 나또한 그녀가 필요해지기 시작하는 것 같 소. 이것은......, 이것은......, 아, 그만둡시다.! 나는 솔직히 그녀가 말한 사람들 이외에는 별로 관심이 가지 않소." 사내는 다소 멍하니 화검상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눈살을 찌 푸리며 말했다. "나, 나는 도선(刀仙)이다. 내가 보기에 너는 화선 이외에도 천 선(天仙)과 의선(醫仙)의 삼선을 말하는 모양인데, 사실은 우리 세외팔선(世外八仙) 중에서도 그 사람들만이 가장 양심적인 것은 아니야. 때로는 나쁘게 보이는 사람이 더 좋을 수도 있는 법이지. 아......, 아니 지금 그 얘기는 없었던 것으로 하자. 어쨌든 우리 세 외팔선 중에서도 나쁜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가 있다. 나는 아직 그 금계(禁戒)를 어기지 않았 으니 나중에 너의 사부를 만나게 되면 그렇게 말해 다오." 금계(禁戒). 그 얘기를 듣는 순간 화검상은 하마터면 감정이 노 출되어 마각이 드러날 뻔했으나, 가까스로 태연을 유지하여 마음 이 흔들리는 모습만을 보였을 뿐 결정적인 파탄은 드러내지 않았 다. 왜냐하면 지금 도선이라는 이 사내가 말하는 내용 중에 그 금 계라는 것은 가장 핵심적이고도 의미심장한 부분으로, 이른바 그 들이 하나씩 화검상에게 나타나는 주된 이유인 듯했기 때문이다. 세외팔선(世外八仙). 하긴 화검상은 지금 생각해 보면, 사실 과거 어느 곳에선가 마 치 옛날 얘기처럼 전해져 내려오는 그 이름을 들어본 것 같기도 했다. 비록 그 이름은 그다지 낯설지 않지만, 그러나 지금은 그 이름 은 그저 흥미 위주로 떠도는 상상속의 가공(架空)의 옛날 이야기 가 아닌, 놀랍게도 실제로 나타나 활동하고 있는 인물들에 관한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세상 사람들이 전혀 그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그 용화노인이라는 사람과 이 세외팔선과는 어떤 금계가 걸려 있 다는 말인가? 화검상은 당장이라도 그 부분에 대해서 알아내고 싶었지만 지 금은 오히려 마각이 드러나지 않게 하는 일이 더욱 급한 상황이 었기 때문에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아, 알고 보니 당신은 그 금계 때문에 일부러 지금 나를 찾아 온 것이로군? 하하, 하지만 약간 유감이오. 나는 그래도 당신이 약간은 순수한 면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가던 참이었는 데....... 뭐, 할 수 없지! 나는 사부님께는 마음에 없는 얘기를 할 수도 없는 사람이오. 그렇다고 해서 설마하니 당신이 감히 나를 핍박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소." 사내, 즉 도선은 모처럼 흔들리는 화검상의 마음속을 들여다보 려고 했으나 결국 그것이 잘 되지 않자 이내 크게 마음이 불안한 듯 짐짓 화검상의 앞으로 다가와 웃으며 말했다. "그, 그럴 리가 있나? 허허,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이지. 예를 들어 만일 자네가 지금 나를 한 대 후려친다고 해도, 허허허, 나 는 그저 잃게 가만히 웃고 있을 뿐 결코 자네를 핍박하는 일은 있을 수도 없을 것이네. 그리고 사실 내가 자네를 지금 찾아온 것은 역시 그 일 때문만은 아니야. 그저 자네가 어떤 훌륭한 사 람인지 알아보려고 온 것이네." 화검상은 일단 상황이 위기를 넘긴 듯하자 좀더 심하게 몰아붙 여야 하겠다고 생각하고 짐짓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당신의 말을 들어보자면 그 가운데에는 화선이 내게 한 말과 어딘가 다른 구석도 있는 것 같소. 이래서야 내가 도무 지 당신의 말을 믿고 또한 신뢰할 수가 있겠소? 게다가 당신은 아직 누가 어떻게 겉으로 나쁘게 보이면서도 좋은 일을 하고 있 는지 좀더 구체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전혀 말을 하지 않고 있소. 이래서야 내가 나중에 사부님을 만나게 되어 설령 당신을 생각해 준다고 해도 말을 할 수가 있겠소?" 이에 도선은 다소 주저하는 듯하면서도 그만 잠시 주위를 둘러 보다가 이윽고 옆의 평평한 바위 위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 "좋네, 하긴 이미 화선이 자제에게 모든 얘기를 다했다니 나로 서도 일단은 얘기를 하는 것이 좋겠지. 하지만 역시 나의 이 얘 기도 누구에게도 들었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일세. 알겠나? 음음....... 우리들 세외팔선은 천하에 다시없을 정도로 특수한 사 람들이기 때문에 용화노인, 그러니까 자네의 사부가 정한 그 금 계에 대해서도 십분 공감하고 있고 또한 이제까지 거기에 맞게 생활해 왔네. 그러니까 우리 천선(天仙)부터 자세히 말하자면 그 는......." 이 느닷없는 상황을 맞이하여 화검상은 임기응변하여 대처하다 보니 그만 자신도 모르게 다시 없는 행운을 맞이하게 된 셈이다. 화검상은 지금의 정세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세외팔 선의 이름들을 알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드디어 이제는 그들 각 각의 간단한 특성과 위치 등에 대해서도 대강 파악하게 되기에 이르렀다. 전혀 누군지도 알 수 없는 사람들을 상대하는 것보다 그래도 최소한 그들이 누군지 알 수 있게 되면 상대하는 데 어느 정도의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물론 지금 이 도선이라는 사람은 자신의 이익과 주관적인 입장 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별로 쓸모가 없거나 혹은 정보 로서의 가치가 적은 내용들도 많이 있었지만 그래도 화검상이 새 로 알게 된 중요한 사항들은 다음과 같았다. 천선(天仙). 그는 이른바 세외팔선의 우두머리와 같은 존재로서 그 능력도 탁월한 것으로 느껴지는 사람인데 바로 일전에 화검상이 만났던 그 시골의 노인과도 같은 사람을 말하는 것이었다. 도선은 그의 무공이 이미 무형검의 경지에 올랐다고 말하고 있 지만, 그러나 화검상은 그를 한번 만나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필 시 아직 광검의 최고봉에 올라 있을 것이라고 알아들었다. 이 친선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칠선의 능력은 각기 특성이 다르 기는 해도 비슷하다고 도선은 은근히 말하고 있었다. 게다가 아주 특이한 점은 이 세외팔선은 각기 그 무공이나 특 성이 현 무림에 등장해 있는 세외팔세의 그것과 아주 유사한 내 용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과연 정말로 세외팔선이라는 사람들은 전설의 그 내 용대로 아주 오래 전의 과거에 마치 혜성처럼 나타나 세외팔세 (世外八勢)를 창건했다는 그 여덟 명의 무학의 대천재들이 틀림 없다는 말인가? 화검상은 자신의 마각이 드러나는 것을 우려하여 감히 그 부분 에 대해서까지는 도선에게 물어보지 못했다. 그는 다만 시종일관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한 느긋한 자세로 도선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을 뿐이다. 두 번째로 거론된 사람은 화선이었는데, 도선은 이 부분에 이 르러 화검상의 기분을 고려해서인지 반쯤 그녀를 추켜세우면서도 그 가운데 자신의 좋은 점을 부각시키기에 바빴다. 세 번째로 거론된 사람은 의선(醫仙)이었는데, 그는 역시 일전 에 화검상에게 접근하여 짐짓 호의적으로 몸을 치료해 주려는 듯 했던 그 시골의 노의원을 말하는 것이었다. 도선의 말에 의하면 그 노의원도 항상 근면하여 천하만민(天下 萬民)의 온갖 질병을 구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무림야그 출력일 :: 98/11/11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2 권 제 54 장 나는 사실은...... 제 54 장 나는 사실은...... 이어 그가 말한 사람은 검선(劍仙)이라는 사람이었는데, 그 사 람은 아직 화검상이 본 적이 없는 사람인 것 같았다. 도선은 그가 보기보다 아주 점잖은 군자이며, 성격도 좋고 나 쁜 일은 거의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리고 다음으로 말한 것은 사선(사선)이라는 사람에 관한 것 이었는데, 유독 이 사람에 대해서는 도선의 평가가 그다지 좋지 않았다. 도선은 그에 대해서 별로 험담을 늘어놓지는 않았지만 그저 좋 은 얘기를 해주지 않는 것만으로도 화검상은 그가 사선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 사선은 바로 다름아닌 일전에 화검상의 앞에 나타나 부활하 는 법을 가르쳐 주겠다고 했던 그 늙은 악사(樂士)였다. 그리고 이어 거론된 사람은 마선(魔仙)이라는 사람이었는데, 그 사람 역시 화검상이 아직 만나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고 도선은 그 사람에 대해서도 연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 마선이라는 사람은 바로 그가 아까 말한, 겉으론 나쁘게 보 이지만 기실 아주 좋은 일을 많이 하는 좋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도선이 말한 사람은 귀선(鬼仙)이라는 사람이었는 데, 그에 대한 도선의 설명도 그다지 나쁜 편이 아니었다. 화검상은 묵묵히 그와 같은 얘기들을 다 듣고 나자 이윽고 다 소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하지만 당신은 지금 그저 모든 사람들이 다 잘하고 있으며 나 쁜 사람은 하나도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오? 잘하는 사람 이 있다면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런 것을 모두 다 말해 주어야 내가 어떻게 사부님께 설명해 드릴 것이 아니오? 이런 식 이라면 내가 어디 사부님께 말이나 꺼내 보겠소?" 여기에 이르러 도선은 다소 난감한 듯한 표정을 보였다. "그, 그건 지금 나로서는 뭐라고 말을 할 수가 없네. 어쨌든 나 는 이미 할 수 있는 말을 다한 셈이고, 모든 평가는 자네에게 맡 기도록 하겠네. 음, 자네는 몹시 총명하고 재주가 많으니 아마도 쉽게 그 가운데의 사항을 알 수 있을 것이네. 그렇지 않은가? 허 허......." 화검상은 문득 입가에 약간 의미심장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도 선을 향해 말했다. "알고 보니 당신은 모든 어렵고 곤란한 부분은 전부 나에게 떠 맡겨 버리는구려. 하지만 나도 사실 당신의 그러한 고충을 이해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오. 그래서 말인데, 혹시 그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지 않은 사람은 지금과 같은 시기에 혼자서만 즐겁다고 북을 울리고 다니면서 귀찮게 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오?" 도선은 그 말에 그만 입이 크게 벌어졌다. "어? 자네도 알고 있구먼? 맞네, 바로 그 사람이지. 후후후! 자 네는 역시 총명할 뿐만 아니라 지혜가 뛰어나네. 하지만 지금의 이 얘기는 결코 내가 했다고 누구에게라도 말해서는 안되네. 알 겠는가?" 화검상은 이에 시선을 돌려 다시 외면하며 퉁명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음, 내가 그렇게 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오. 나는 충분히 사부님께 당신들에 관해서 잘 말해 줄 수가 있소. 하지 만......, 하지만 나는 또 그렇게 되면 화선과의 약속을 어기게 되 는 것이오. 나는 아직도 당신의 말이 전적으로 옳다는 것을 믿지 못하고 있는데, 험험! 당신은 그저 아무런 대가도 없이 나를 고생 만 시키는구려. 나는 그야말로 아무런 보람도 없이 한 여자와의 약속을 저버리는 것이고, 또한 나중에는 그 일로 그녀에게 버림 을 받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오." 도선은 이에 표정이 다시 난감해지더니 애원하는 듯한 자세로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내가 보장하지만 그녀는 결코 감히 자네를 어떻게 할 수는 없 을 것이네. 제발 우리에 관한 얘기를 사부님께 말씀드려 주게. 만 일 그렇게만 된다면 자네의 사부님께서는 우리들에 대한 금계를 조금 완화시켜 주실지도 모르네. 허허허! 그렇게만 된다면 나는 실로 자네와 같은 훌륭한 친구와 천하를 주유하며 호탕하게 한번 지내볼 수도 있게 되지 않겠는가?" 화검상이 지금 무슨 대가 운운하고 있는 것은 도리어 도선의 의심을 제거하기 위한 수단의 하나라고 할 수 있었다. 지금 그는 실상 말하기 어려운 이야기들을 줄줄이 늘어놓은 격 이 되었는데, 만일 그와 어떤 비밀을 교환해 두지 않는다면 나중 에라도 그가 혹시 불안해 하고, 두려워하며 의심하게 될지도 모 르는 일인 것이다. 만일 서로간에 곤란한 비밀이 교환된 상황이라고 그가 믿게 된 다면 나중에 설령 그가 의심이 생긴다고 해도 스스로 믿는 구석 이 있어서 별로 불안해 하지 않을 것이고 또한 적극적으로 나서 지도 않게 될 것이다. 말하자면 이것은 화검상이 도선에게 부린 수단들 중에서 가장 뒷부분에 해당되는 끝마무리인 셈이었다. 화검상은 여전히 크게 시큰둥한 표정을 지으며 혼자말을 하듯 이 중얼거렸다. "사실 내가 사부님의 제자라고 하면 아는 사람들은 모두가 아 마도 부러워할지도 모르오. 하지만 이건 사부님을 비방하는 말이 아니오. 기실 사부님이 너무나도 검소하신 탓에 지금의 나의 생 활은 별로 실속도 없고 그다지 재미도 없소. 지금 당신도 내 차 림새를 보면 알겠지만, 나는 너무나도 여유가 없어서 심지어 옷 한 벌 사 입기도 어려운 처지이고, 또한 어디 가서 옷 한 벌 사 입기도 어려운 처지이고, 또한 어디 가서 마음놓고 술을 한번 마 시기는 더욱 불가능한 상황이오. 나는 보다시피 이렇게 젊은 사 람인데 이래서야 어디 면목(面目)이 선다고 할 수 있겠소?" 도선은 그 말을 듣자 비로소 그의 의도를 파악한 듯 안색이 환 하게 펴졌으며, 너무나도 기쁜 나머지 호탕하게 여러 차례 껄껄 웃기까지 했다. "허허허! 자네는 정말로 재미있는 사람이로군. 과연 그렇네, 모 름지기 사내라면 역시 제때에 기분을 낼 줄 알아야 한다고 나도 생각하고 있지. 험험험! 그렇고 말고, 용화노인의 제자가 이렇게 궁핍하게 살고 있다면 그건, 허허허! 정말 안될 노릇이지. 내가 보기에 자네는 공공연히 재물을 모으기가 어려울 것이네. 따라서 그 문제라면 내가 쉽게 해결해 줄 수가 있네. 허허허......! 자네가 만일 나의 이 작은 성의를 받아만 준다면 나로서는 정말로 기쁘 기 한량이 없을 것이네." 화검상은 그 말을 듣자 일순 매우 기쁜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다소 신중한 듯한 표정으로 안색을 바꾸어 도선을 향해 말 했다. "당신이 만일 그렇게 애써 준다면 나도 역시 여러 가지 손해를 보는 한이 있더라도 당신을 위해서 사부님을 나중에 만나 뵈면 말씀드려 보겠소. 하지만 너무 기대를 하여 나중에 실망하게 되 지는 마시오. 사부님께서는 간혹 완고하실 때도 있으니까. 그리고 그 재물에 관한 것 말인데, 하하! 나는 요사이 세속에 나가 일을 크게 한번 벌여 볼 생각이오. 그러니 재물은 많을수록 좋겠지만, 이 일은 모두 우리 두 사람만의 비밀로 해야 하오. 만일 나의 사 부님의 귀에 들어가는 날에는 내가 크게 혼이 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오. 따라서 당신은 즉시 움직여서 가능하면 빨리 그 재물 만을 보내 주도록 하고 특별한 이리 없는 한은 당분간 우리가 다 시 만나는 일은 없도록 합시다. 이건 우리 두 사람 모두를 위한 것이며, 게다가 당신이 나를 위해 그렇게 애써 준다면 나는 결코 그 노고를 잊지 않게 될 것이오." 기실 이런 반인반선(半人半仙)의 경지에 들어서 있는 사람들은 거의 무슨 일이든지 쉽게 할 수 있는 능력들을 가지고 있는 것이 며, 재물에 관한 것도 당연히 그런 것들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화검상이 일부러 재물에 관한 얘기를 한 것은 역시 그러한 이 치를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도선은 그런 말들이 갈수록 마음에 드는지 연신 기뻐서 벙글거 렸다. 그는 즉시 떠날 준비를 하고 몸을 일으키더니, 잠시 생각한 후 에 크게 웃으며 말했다. "알겠네, 잘 알겠네. 우리 두 사람 사이의 일은 모두가 비밀이 지. 우리는 장차 둘이 다시 만나서 크게 한번 즐겨 보도록 하세. 핫핫핫! 자네는 혹시 지금 이곳을 떠날 생각인가? 그렇다면 대략 넉넉잡아 두 시진 정도만 기다려 주게. 내 즉시 재물을 가져다 주고 돌아가도록 하겠네." 화검상은 이내 고개를 돌려 외면하며 다소 퉁명스러운 어조로 대꾸했다. "당신은 대체 어디에서 온 누구요? 나는 오늘 당신과 만나 어 떤 얘기도 나눈 적이 없으니 당신은 그만 물러가도록 하시오." 도선은 잠시 어리둥절해 하다가, 이내 무슨 뜻인지 파악하고는 껄껄 웃으며 한쪽에 혼절해 있는 그 아낙네를 안아들고서 즉시 신형을 날리면서 말했다. "알겠네, 알겠어! 나중에 모든 일이 잘되면 우리 그때 다시 만 나서 즐겁게 한번 놀아 보도록 하세나. 하하하!" 잠시 시간이 흐르도록 가만히 있다가 이윽고 도선이 멀리 사라 졌다는 확신이 들자, 이윽고 화검상은 내심 씁쓸한 고소를 지으 며 문득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용화노인이라......? 과연 그런 사람이 지금까지 정말로 존재하 는지도 의문이지만, 오늘은 정말로 그 삶에게 미안하게 된 셈이 로군. 하하하, 그런데 대체 그 용화노인이라는 사람은 어떤 존재 였을까......?" 신비한 초인간(超人間)의 능력을 지닌 세외팔선조차도 두려워 서 오금을 펴지 못하고 있다는 그 존재 용화노인, 과연 그 사람 의 능력은 어느 정도였을까 하는 등의 의구심이 드는 것은 당연 한 일일 것이다. 도선을 그렇게 떠나 보낸 이후에 화검상은 이제 아무래도 더 이상은 이곳에 계속 머물 수가 없겠다고 생각하고는 떠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하긴 그는 이제는 거의 마음의 수련이 예정대로 다된 상황이어 서 그만 떠날 때가 되었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이제 이곳을 떠나게 되면 그는 다시 강호로 나가게 되는 것이 다. 말하자면 그 거대한 풍운 속에 다시 휩쓸리게 되는 것이다. 마음의 모든 정리가 다되어 있기 때문인지 그런 것을 생각하고 있는데도 그의 마음은 의외로 여전히 차분하고 조용할 뿐 그다지 심란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무림야그 출력일 :: 98/11/11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2 권 제 54 장 - 1 대강 떠날 준비를 하고 나서 계곡물에 몸을 씻은 다음에, 그는 다시 동굴 속으로 들어가 그간의 수련을 정리하는 의미에서 다시 좌선명상(坐禪冥想)에 들어갔다. 그렇게 좌선을 시작한 지 불과 한 시진도 채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었다. 문득 밖에서 가벼운 기척이 느껴져서 몸을 일으켜 나가 보니, 동굴의 입구에 무엇인가 작은 보따리 같은 것이 놓여져 있었다. 알고 보니 도선이 다시 와서 그 재물이라는 것들을 갖다 놓고 사라진 모양이었다. 그는 본래 전혀 아무런 기척도 내지 않을 수가 있겠지만, 화검 상이 발견하게 하기 위해 조금 전에는 일부러 그렇게 가벼운 기 척을 내고 돌아간 것이리라. 화검상은 내심 고소하며 그 작은 보따리 같은 것을 살피니, 거 기에는 금강석(金剛石)과 벽옥(壁玉), 명주(明株)와 같은 것들이 휘황한 빛을 발하며 가득하게 들어 있었다. 그 빛깔들이나 모양 등으로 보아 일견하기로도 하나같이 최고 급의 물건들로 보이는 이것들은, 금액을 대강 따져 본다고 해도 황금 수만 냥의 가치가 있을 것 같았다. 뜻밖에도 화검상은 이런 산중에서 수련을 하다가 느닷없이 엄 청난 횡재를 하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세외팔선 중에서 더러 그 도선처럼 다소 어리숙해 보이 는 사람이 있을지라도 모두가 다 그럴 리는 결코 없을 것이므로, 앞으로 그들을 상대해야 한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는 화검상으로 서는 그 작은 보따리를 집어드는 데도 그다지 마음이 편하지 않 았다. 그는 이제까지는 천수자 등만을 주로 경계해 왔었는데 실로 산 너머 산이라고, 앞으로는 상상못할 적들까지 상대해야 한다고 생 각하니 실로 난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일단 그렇게 도선과의 일이 매듭된 이상에는 더 이상 이곳에서 머물 수도 없을 것이므로, 화검상은 즉시 여러가지 물건들을 간 단히 챙긴 다음에 산 아래쪽으로 신형을 날리기 시작했다. 그는 이제 무공이 곡선적인 광검의 경지에 올랐으므로 신법을 펼쳐 이곳저곳을 오가는 것은 실로 더욱 손쉬워졌다고 할 수가 있었다. 지금 그가 펼치고 있는 신법은 바로 축지성촌(縮地成寸)이라고 하는 것이었는데, 그것은 말하자면 공간과 공간을 주름잡아 일시 에 이동하는 것이므로 어풍비행술(御風飛行術) 등과 전혀 내용이 다를 뿐만 아니라 또한 훨씬 시전하기가 어려운 것이었다. 그는 먼저 노산현성 부근으로 돌아가서 저번에 숨겨두었던 장 생보검(長生寶劍)과 단검을 되찾았고 의복도 새로 구입하여 입었 으며 용모도 본래대로 회복시켰다. 그는 이제부터는 자신의 본래의 이름과 신분으로 활동하려고 하는 것이다. 사실 세외팔선을 그런 방법으로 속일 수는 없는 노릇이고, 또 한 이제는 천수자(天隨子) 등도 두렵지 않으니 자연 더 이상 자 신의 용모와 신분을 숨길 필요는 없는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정무맹(正武盟)의 총단(總壇)과 가까운 위치에서 그렇게 대강의 준비를 마치고 나자, 화검상은 문득 다시 그곳으로 들어가 보려 고 하다가 다소 망설였다. 비록 지금이 상당히 유리해진 상황이기는 하지만, 이전에 그가 워낙에 심한 고난을 겪었었기 때문에 앞으로는 설령 무난하게 보 이는 일일지라도 좀더 신중을 기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 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얼마 전의 그 석한절은 비교적 정확한 평 가를 해준 것이고, 정보에 어두운 화검상으로서는 혹시라도 앞으 로 예상못한 어떤 난관에 부딪힐지도 모르는 일인 것이다. 만일 누군가 정보를 얻고자 한다면 그는 우선 많은 사람들을 다룰 수 있게 되어야만 할 것이다. 화검상은 지금의 위치에서 그를 도와 줄 사람들을 찾는다면, 다소의 어려운 점은 있을지라도 아무래도 역시 그 백혈단의 남은 인원들이 더 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용모와 이름을 회복하고 가면 그들이 거의 알아보지 못 할지도 모르지만, 혹시 그들 중의 일부는 이미 그의 신분을 알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는 일이다. 화검상은 잠시 동안 그러한 점들을 차분히 생각해 보다가 이윽 고 마음을 정하고 그 백혈단의 인원들이 있는 태행산(太行山) 쪽 으로 신형을 날리기 시작했다. 벌써 날씨가 늦가을도 저물어서 초겨울로 접어들고 있었다. 찬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고 낙엽이 우수수 떨어져서 허공 가 득 휘날리기 시작하는 그런 황량한 모습은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더욱 뚜렷하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중조산에서 이곳 복우산까지 오는 동안은 다소 긴장해서인지 그러한 계절의 변화를 별로 실감하지 못했으나 이상하게도 다시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그 긴장감이 느슨해져서인지 자꾸만 계절의 변화에 감정이 움직여 가고 있는 듯했다. 화검상은 스스로 그러한 자신의 심리를 느끼고, 또한 스스로 자책하며 간혹 탄식을 터뜨리기도 했다. 그간의 우여곡절이 비록 허다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설 마하니 그는 벌써 지치기라도 한 것이라는 말인가? 하지만 아직 그는 해야 할 일들은 많으면서도 정작 하나도 제 대로 이룬 것이 없고, 또한 아직은 쉴 시기가 아니다. 과거 그는 자신의 무력감을 느끼면서 절망감과 온갖 고통을 맛 볼 때에도 이런 심한 피로감은 느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대체 이 느닷없는 피로감은 어디에서부터 온 것일까? 어두운 밤하늘에 요사이 달이 뜨지 않는 것은 그믐이나 초하루 쯤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고, 그리고 이렇게 사방이 황량해진 것 은 아마도 계절의 탓일 것이다. 비록 그 동안 지루할 정도로 계속되고 있는 정사대전(正邪大 戰)의 탓에 인심이 메말라 가고 도처에 흉흉한 살기가 난무하다 고는 해도 이렇게까지 마음속에 피로감이 몰려오고 있는 것은 역 시 오로지 그의 탓일 것이다. 앞으로의 사태를 보다 잘 해결해 나가기 위해 내일을 기약하는 것은 그의 이성이 결정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그것으로 그의 감정 까지 완전히 수긍한 것은 아니리라. 화검상은 그러한 문제들을 한번 생각해 보기 위해 간혹 어두운 한밤중에 산속을 지나다가 한 나무의 아래에 정좌하고 앉아서 잠 시 명상에 잠겨 있기도 했다. 어쨌든 이제 앞으로 한 달 정도만 있으면 이 황량한 대지 위에 도 흰눈이 내릴 것이고 그것으로라도 약간의 위안을 받게 되지 않겠는가. 그가 태행산에 있는 그들의 은신처에 도착한 것은 막 아침식사 를 끝냈을 듯한 아침 무렵의 일이었다. 그날은 하늘에 구름이 가득 끼여 있었고, 음산한 바람이 누렇 게 메마른 나뭇잎들을 허공에 가득 휘날리고 있었다. 이렇게 기분이 좋지 않은 날씨에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지만, 사람은 간혹 싫어도 해야 하는 일이 있고 또한 기분이 좋지 않아도 웃어야 할 때가 있다. 백혈단에서 남은 인원들인 천서파(天西派)의 서귀현(徐歸賢) 등 다섯 명은 그 동안에 은신처를 약간 옮겼고, 그 때문에 화검상은 이곳을 찾느라고 약간 수고를 해야만 했었다. 그 동굴의 앞에 이르렀을 때 화검상은 문득 그곳에서 웃통을 벗어젖히고서 열심히 검법을 수련하고 있는 한 사람을 발견하고 는 잠시 자신의 눈을 의심할 뻔했다. 그의 그다지 뛰어나지도 않지만 그다지 멍청하지도 않은 기억 력에 의하면, 지금 저 앞에서 열심히 검법수련에 몰두하고 있는 사람은 바로 다름아닌 동방량(東方亮)이었던 것이다. 지금 그 동방량이 열심히 연마하고 잇는 것은 화산파의 매화검 법이었고, 그것을 보자 화검상은 일전에 그 세 권의 비급을 그들 남매에게 주었던 것을 기억해 냈다. 그렇다면 그 길지 않은 세월 동안에 그들 남매는 고집을 버리 고 어느새 이곳으로 와서 서귀현 등과 합류해 있는 중이란 말인 가. 화검상은 문득 우울하던 마음속에 한 가닥의 미소가 감돌기 시 작하는 것을 느끼고 즉시 신형을 날려 가볍게 그 동방량의 앞에 내려섰다. 동방량은 막 매화검법의 제오초 한매토염(寒梅吐艶)에서 제육 초 청철매화(淸澈梅花)로 옮겨가던 중이었는데 느닷없이 자신의 앞에 낯선 사람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 크게 경악하며 허공에서 두 번 몸을 뒤집어 내려섰고, 이어 장검을 겨누며 험악한 음성으 로 소리쳤다. "웬 놈이냐? 당장 이름과 신분을 밝히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 다." 이 덩치가 우람한 소년은 그래도 귀여운 맛이 있기는 하지만 저번에 있었던 그와의 불협화음을 생각해 내고는 화검상은 내심 다시 마음이 씁쓸해지는 것을 느꼈다. 화검상은 입가에 담담한 미소를 떠올리며 말했다. "나는 네가 지금 배우고 있는 그 검법의 비급을 건네준 사람이 고, 또한 너의 사부가 될 뻔했던 사람이지. 이래도 나를 모르겠느 냐?" 화검상은 지금 이전과는 완전히 다르게 본래의 모습을 회복한 상태이기 때문에 동방량이 몰라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왠지 그는 화검상의 얼굴을 살피며 잠시 생각해 보는 듯하다가 이윽고 말했다. "그렇다면 당신은 바로 화(華)......, 화공자란 말입니까?" 화검상은 불과 한 달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 뿐인데도 말투나 표정이 매우 어색하고 게다가 의심이 가득해 보이는 동방량의 얼 굴을 바라보며 미소와 함께 다시 말했다. "그렇다, 나는 지금 서대협(徐大俠)을 만나러 온 것이니 수고스 럽겠지만 네가 나를 서대협에게 안내해 주겠느냐?" 동방량은 여전히 크게 의심스러운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러나 뜻밖에도 이내 선선히 몸을 옆으로 돌리며 동굴의 안쪽을 가리키 며 말했다. "그럼 저를 따라오십시오. 마침 서대협께서는 안에 계십니다." 화검상은 그래도 최소한 이 녀석과 몇 차례는 입씨름을 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뜻밖에 용모가 바뀌었음에도 불 구하고 이 녀석이 이렇게 쉽게 자신을 인정하고 안내하겠다는 듯 한 태도를 보이는 것을 보고는 오히려 기이해져서 속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무림야그 출력일 :: 98/11/11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2 권 제 54 장 - 2 '정말 이 녀석이 나를 제대로 알아보기는 한 건가? 아니면 혹 시 어떤 다른 속셈이 있어서 이러는 것인지도 모르는 일이지.' 이 동굴은 입구가 매우 비좁고 천연적인 구조가 상당히 험하고 거칠어서 사람이 살고 있다는 듯한 느낌은 거의 주지 않았고, 실 로 화검상과 같은 능력을 지닌 사람이 아니라면 쉽게 찾아내기 어려운 곳이라고 할 수 있었다. 화검상은 잠시 묵묵히 동방량의 뒤를 따라 어두운 동굴의 내부 로 들어가다가 이윽고 궁금하던 점을 입을 열어 물었다. "이곳에는 너의 누나도 함께 와 있는 것이냐? 나는 솔직히 이 곳에서 너를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아마도 나의 용모가 변 하여 너로서는 이상스럽겠지?" 동방량은 얼마간 대답이 없었으나 이내 약간 무뚝뚝한 어조로 말했다. "저와 누나는 얼마 전부터 이곳에 와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비단 저뿐만 아니라 이곳에 있는 다른 모든 사람들도 쉽 게 당신을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니 그 점은 걱정하지 않아도 좋을 것입니다." '허, 다들 나를 쉽게 알아볼 수 있을 거라고? 이건 갈수록 태산 이로군!' 화검상은 두 사람의 분위기가 다시 이상하게 변해 가는 듯하여 내심 쓴웃음을 지으며 다시 말했다. "그럼 너는 어떻게 그렇게 금방 나를 알아보았느냐? 나는 얼마 간은 그래도 고생을 각오하고 있었는데 오히려 이렇게 쉽게 믿어 주다니 이상한 기분이 드는구나." 동방량은 여전히 앞으로 걸음을 옮기며 대꾸했다. "내 무공에 대해 아는 것 등도 그렇지만, 우선 당신의 기질이 나 능력은 특별하여 누구라도 쉽게 흉내낼 수 있는 것이 아니죠. 만일 당신이 다른 어떤 모습으로 다시 변장한다고 해도 저는 역 시 알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녀석은 그 동안에 더욱 건방져진 것 같군! 그나저나 네가 나를 이렇게 쉽게 알아보는 데는 그것말고도 더욱 중요한 다른 이유가 반드시 있을 것이다. 과연 그건 뭘까? 하긴 이 녀석에게 굳이 듣지 않아도 이제 금방 알게 되겠지.......' 화검상은 이에 다시 얼굴에 담담한 미소를 떠올리고 화제를 바 꾸어 말했다. "너의 누나의 건강은 요사이도 그저 그만하냐? 그리고 그 우가 장(劉家壯)......, 그래 그런 얘기는 이제 그만하자. 너희들이 이런 곳에서 잘 지내고 있다니 다행스런 일이다." 동방량은 뭔가 약간 주저하는 듯하다가 말했다. "당신이 유가장의 놈들을 혼내 준 것은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 니다. 제 누나는 언젠가 당신을 한번 더 만나게 되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나를 한번 더 만나게 되기를 바라고 있었다고? 흠, 아마도 그 것은 그 일에 대해서 고맙다는 말이라도 하고 싶었던 것이겠지.' 어둡고 구불구불한 길을 잠시 걸어가자 이윽고 동굴의 내부가 더 밝아지고 넓어져 갔다. 이 동굴의 구조가 은밀하면서도 상당히 특이한 것이, 화검상은 마치 언젠가 어렸을 적에 보았던 개미의 굴과도 비슷하다고 생각 했다. 모퉁이 하나를 돌아 좌측으로 급격히 꺾이는 지점에 이르자 화 검상은 문득 눈앞에 하나의 작은 천연의 석실 같은 것이 펼쳐져 있고, 눈에 낯설지 않은 한 사람이 경장의 무장을 하고 지키고 있는 것을 바라볼 수가 있었다. 그 사람은 바로 서귀현을 포함하여 이제 겨우 다섯 명만 남은 백혈단의 인원들 중 한 사람이다. 과거 그 백혈단의 내부의 분열과 외부의 침습으로 인해 이제는 그 가운데 소위 천서파의 인원들만이 남은 것이다. "오씨(吳氏) 아저씨, 이분이 바로 그 화공자입니다. 서대협 님 을 만나기 위해 왔다고 합니다." 그 오씨 아저씨라는 사람은 처음에는 상당히 놀라고 경계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으나, 이내 동방량의 그러한 말을 듣고는 태도 를 바꾸어 반쯤은 의심하는 듯하면서도 반가운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아, 그러십니까? 이거 몰라 봬서 죄송합니다. 이렇게 오실 줄 알았다면 미리 마중을 나가는 건데 그랬나 봅니다." 화검상은 비단 지금 용모를 완전히 바꾸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미리 연락도 취하지 않고 나타난 것이니 그가 잘 몰라본 것은 당 연한 일이고 잘못은 오히려 화검상에게 있다고 해야 할 것이었 다. 하지만 화검상은 왠지 이러한 상황을 미리 예측하고 있었으면 서도 굳이 이제 다시는 자신의 용모를 숨기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었다. 화검상은 포권하고 미소하며 인사를 했다. "별말씀을 다하시는군요. 아마도 우리가 한 달 만에 다시 만나 게 되는 것 같은데......." 그 오씨 아저씨라는 사람은 화검상의 정중한 인사를 받게 되자 그만 약간 당황해 하며 얼른 마주 받은 다음에 서둘러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아, 예 말씀을 낮추시지요. 그럼 저는 얼른 가서 서사형(徐師 兄)께 연락을 드릴 테니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 오씨 아저씨라는 사람이 급히 안쪽으로 사라진 후에 화검상 은 옆에 있는 평평한 바위 위에 앉았고 동방량도 그 옆에 서 있 었으나 아무런 말도 없이 잠시의 침묵이 흘러갔다. 화검상은 다시 입을 열어 동방량을 향해 말했다. "그 동안에 너의 무공은 좀 늘었느냐? 아까 보니 너의 그 매화 검법은 이미 제법 익숙해진 것 같더구나." 동방량은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서 있다가 이윽고 다시 말했다. "서대협과 오씨 아저씨 등이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너무도 미숙하여 부끄러울 뿐입니다." 화검상은 가벼운 미소를 입가에 떠올리며 과거를 회상해 보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좋다, 너의 그러한 겸손한 태도는 무공을 연마해 가는 과정에 서 훌륭한 마음 자세라고 할 수가 있지. 후후, 나도 실은 과거에 는 무공이 너무나도 형편없어서 많은 사람들의 놀림감이 되었던 적이 있었단다. 게다가 너는 무학에 대한 자질이 제법 있는 편이 니 그렇게 벌써부터 실망할 필요는 없다." 동방량은 시선을 돌려 화검상을 한번 힐끗 돌아본 뒤에 가볍게 눈빛을 빛내면서 말했다. "그, 그런 얘기는 저도......, 들은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앞으 로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당신과 같이 될 수는 없을 것입니 다." 이 무렵 화검상은 아무래도 상대방의 마음속을 어느 정도는 들 여다볼 수 있는 능력이 있었기에 동방량의 미묘한 심리적인 움직 임을 계속 지켜보면서 내심 의아해 하며 생각했다.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고......? 대체 무슨 얘기를 말하는 것일까? 후후, 그런 거야 사실 아무래도 상관이 없겠지. 어차피 모든 일은 다 밝혀질 것들이 아닌가? 그렇다면.......' 화검상은 한번 다시 생각을 정리해 본 다음에 미소와 함께 입 을 열어 말했다. "사실은 말이다....... 아까 아마 너도 이상하게 생각을 했었겠지 만, 실을 나는 전에 너희들을 만날 때 어떤 사정이 있어서 신분 과 용모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되었었다. 아마도 네가 약간 실망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고, 혹은 전혀 그럴 필요도 없을 지도 모르겠 구나. 어쨌든 지금의 내 모습은 변장한 것이 아니라 진짜이다. 그 리고 나의 진자 이름은 화검상(華劍傷)이며 화산파 출신이다." 당금 무림에 있어서 그 화검상이라는 이름은 적지 않은 비중을 가지고 있고 동방량도 이제는 그러한 사실을 인지하고 있을 것이 므로 당연히 놀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그렇지 않았다. 도리어 동방량은 입가에 가볍고도 기이한 고소를 떠올리며 이 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건 이미 비단 저뿐만 아니라 이곳의 모든 사람들도 다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당금의 천하에서 그렇듯 유명한데 누군들 모를 수 있겠습니까?" 화검상은 그 말에 약간 어이가 없기도 하고 어리둥절해졌으나, 이내 금방 어찌 된 영문인지 간파하고는 내심 씁쓸하게 웃으며 생각했다. '하긴, 그러고 보니 과거 서귀현이 한때 나의 본모습을 본 적이 있을 것이고, 게다가 전에 내가 이곳에 왔었을 때에도 아마 대강 나의 정체를 짐작했을 것이며, 따라서 이들 동방남매가 이곳에 오자 그런 사실들을 모두 다 말해 주었을 것이 아닌가? 또한 그 간 한 달의 세월이 흘렀으니 이미 천수자 등도 나의 정체를 어느 정도 간파하게 되었을 것이고......, 어쨌든 지금 이 녀석은 서귀현 에게 들었던 나의 진짜 모습과 내 용모를 비교해 보고는 어느 정 도 반신반의하는 것이 틀림없다.' 갑자기 인기척이 가까워지므로 몸을 일으키니 안쪽에서 서귀현 이 나타나 웃으며 그를 반기고 있었다. "아, 화공자(華公子)님이 아니십니까? 하하, 이렇게 본래의 모 습으로 나타나신 것을 보니 아마도 그간에 무슨 변화가 있으셨던 것 같습니다. 어쨌든 저희로서는 더없이 기쁜 일이고 또한 화공 자님을 뵙게 되니 반가울 뿐만 아니라 앞날에 새로운 서광이 비 치는 듯합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퓰�� 무림야그 출력일 :: 98/11/11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2 권 제 55 장 차(茶)에는 향기가.... 제 55 장 차(茶)에는 향기가 어려 있고 기품(氣品)이 어려 있다 필요 이상으로 장황한 서귀현(徐歸賢)의 인사말을 들으면서, 화 검상은 이내 자신의 판단이 분명하다는 것을 확신할 수가 있었 다. 그 동안 서귀현의 모습은 그다지 크게 변하지는 않았지만 단지 이마에 잔주름이 더 늘은 것 같았다. 화검상은 그에게 미소를 보내고 포권하며 말했다. "과분하신 말씀을 하시는군요. 일전에는 부득이한 사정이 있어 여러 가지를 속이고 무례(無禮)를 범하고 말았으니 용서해 주시 기 바랍니다. 그건 그렇고, 이번에는 몇 가지 상의드릴 일도 있고 해서 찾아온 것이니 부디 폐가 되지나 않았으면 하고 바랍니다. 그간 별고 없으셨겠지요?" 서귀현은 힐끗 동방량을 한번 돌아보곤 웃으며 다시 말했다. "이렇게 숨어서 지내기만 하는 사람들에게 무슨 별다른 일이 있겠습니까? 다만 일전에 말씀드린 바 있는 저 두 분 남매(男妹) 가 얼마 전에 이곳에 찾아와서 함께 머물고 있는 중입니다." 화검상은 담담히 웃으며 말을 받았다. "그랬었군요. 어쨌든 여러분이 제게 별다른 오해(誤解)를 하지 않고 이렇게 맞아 주시니 저로서는 뭐라고 감사(感謝)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저도 죄송스런 마음도 있고 하여 다소 망설였습니다만, 막상 이렇게 와보니 이제는 여 러분과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가울 따름입니다." 서귀현은 웃으며 안쪽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하하- 자, 그럼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저도 일단은 여러 사람 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하고, 게다가......, 아, 아침식사는 하셨습 니까?" 화검상은 그의 뒤를 따라가면서 미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막 먹고 오는 길입니다. 앞으로 저를 편하게 대해 주시고 가 급적 부담은 느끼지 말아 주셨으면 하고 바랍니다." 동굴(洞窟)은 다시 안쪽으로 비좁고 구불구불하게 이어졌으며 간혹 여러 갈래로 나뉘어지기도 했다. 동방량은 따라오지 안고 다시 밖으로 사라졌고, 서귀현은 앞장 서서 길을 안내하며 말을 계속했다. "하하, 제가 어젯밤엔 좋은 꿈을 꾸었나 봅니다. 우리는 아직 아침식사를 하기 전이지요. 옛날과는 달리 이런 곳에서 계속 살 아오다 보니 아침을 좀 느지막하게 먹고 점심과 저녁을 함께 먹 는 것이 습관이 되었습니다. 뭐, 이런 곳에서 하릴없이 살아가는 것이라면 그런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가 있겠지요. 식사를 하셨다면 차(茶)라도 한잔하시겠습니까?" 서귀현의 그러한 말을 들으면서 화검상은 은연중 그들의 재정 상태가 좋지 못하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하기는 이런 곳에서 줄곧 숨어 지내기만 하는 것이라면 활동 반경도 좁아지는 것이고, 활동반경이 좁아진다면 자연 모든 활동 비용(費用)을 충당하는 일도 어려워질 것이다. 화검상은 그러나 일단은 그들의 일에 나서지 않고 좀더 두고 보며 생각해 보기로 했다. "좋습니다. 하지만 다른 분들에게 먼저 인사를 드리고 싶군요." 서귀현이 데려간 곳은 가장 안쪽에 위치해 있는 듯한, 역시 작 은 하나의 석실(石室) 비슷한 곳이었다. 그곳에는 비록 초라하게 돌로 다듬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탁 자와 의자 등이 구색을 갖추고 있었고, 내부의 모든 구조들이 상 당히 정교하게 다듬어진 흔적을 보이고 있었다. 서귀현은 다소 어색한 표정으로 웃으며 내부를 가리키며 말했 다. "이곳은 사실 이제까지는 제가 집무실로 사용하고 있었던 곳입 니다. 다소 누추하기는 하지만 이곳에서 잠시 기다려 주시겠습니 까?" 석실의 한쪽에는 유등(油燈)이 작은 불빛을 발하며 타오르고 있었고 탁자 위에 있는 초는 불이 꺼져 있는 상태였다. 서귀현은 그 초에 불을 밝혀서 실내를 더욱 환하게 만들어 놓 고 이내 미소를 지어 보인 뒤에 물러갔다. 화검상은 잠시 그곳에 있는 의자 위에 앉아서 감각적인 방법으 로 이 동굴 전체의 구조와 사람들의 기척을 살폈는데, 사람들이 대여섯 명 정도였고 한쪽으로 바쁘게 모여드는 듯한 모습들을 보 이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앞으로의 일들을 생각해 보고 있는데, 문득 인기 척이 일며 한 사람이 안으로 들어섰다. 바로 다름아닌 동방리(東方莉), 그녀였다. 그녀는 두 손으로 찻잔이 올려진 작은 쟁반을 들고 있었는데, 처음에는 다소 놀라고 기이(奇異)한 듯한 표정을 보이다가 이내 밝게 웃으며 다가와 말했다. "다시 만나 뵙게 되어서 반가워요. 나는 당신이 이렇게 잘생긴 남자일 줄은 미처 몰랐어요." '뭐라고? 내 얼굴이 과연 잘생겼던가?' 그녀는 안색이 그새 더욱 파리해지고 기운이 없어 보였지만 일 부러 매우 발랄한 듯한 모습을 보여 주려고 하는 것 같았다. 화검상은 그녀에게서 찻잔을 받아들며 마주 웃으며 말했다. "과분한 말인 줄은 알지만 그래도 기분은 나쁘지 않은 것 같 소. 그나저나 불과 한 달 정도 지났을 뿐인데도 매우 오랜만에 만나는 것 같구려. 그간 별일은 없었소?" 동방리는 그의 옆에 있는 자리에 와서 앉으며 미소와 함께 말 했다. "그간 별일은 없었어요. 당신이 도와준 덕에 우리는 비교적 쉽 게 집안의 물건들을 정리하고 바로 이곳으로 떠나올 수가 있었지 요. 호호, 당신이 이렇게 멋진 분일 줄 알았다면 차라리 내가 그 때 좀더 적극적으로 당신을 유혹(誘惑)할 걸 그랬나 봐요." 화검상은 문득 미소짓는 그녀의 눈가에 어리는 짙은 어둠의 기 운을 느낄 수가 있었다. 당시 화검상은 그녀가 앞으로 삼 년 이상을 살 수 없을 것이라 고 진단했었는데, 아마도 그사이에 별다른 일이 없는 한은 그렇 게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발랄해 보이는 모습은 그다지 꾸민 듯한 인상을 주지 않았고, 다만 눈가에 어려 있는 그늘은 바로 절맥증 이 깊어짐에 따라 겪게 되는 고통(苦痛)의 흔적(痕迹)일 것이다. 차(茶)는 비교적 향기가 좋았고, 그것을 끓인 사람의 맑은 기품 (氣品)이 어려 있는 것 같았다. 화검상은 천천히 차를 마시며 다시 말했다. "낭자의 작은할아버님에 대해서 생각하면 늘 미안한 마음만 앞 서고 역시 내가 어떻게 해도 그 노고(勞苦)에 보답할 수 없을 것 이라는 생각이 드오. 당시는 어쩔 수 없이 다른 모습으로 도와주 려고 했던 것이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역시 낭자에게도 미 안하다는 생각이 드오. 그래서 말인데, 지금 만일 어려운 점이 있 어서 내가 도울 수 있는 것이라면 한번 말을 해보시오." 그 말에 동방리의 입가에 떠오르던 웃음이 약간 사라지고 대신 가벼운 우수(憂愁)가 깃들였다. 그녀는 잠시 시선을 돌려 뭔가 생각하는 듯하다가 다시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제가 생각하기로는 역시 저희 작은할아버지가 그렇게 해오신 것이 누구를 의식하거나 보답을 바라시고 그랬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 자신의 신념(信念)을 가지고 살 아가게 되는 것이지요. 그분도 역시 스스로의 신념에 충실했을 뿐이라는 느낌이 들어요. 이전에 우리 남매가 화공자께 받은 도 움만 해도 이미 넘칠 정도인데 이제 다시 그런 부탁을 드릴 수는 없는 일이지요." 화검상은 그녀가 무슨 도움을 바라고 있는지 대강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는 지금 자신에 관해서는 이미 어느 정도 포기하 고 있는 듯했고, 다만 자신의 남동생인 동방량에 대해서 부탁하 고 싶은 것이리라. 화검상은 차를 다 마신 다음에 화제를 돌려서 말했다. "내가 오늘 이곳으로 오면서 걱정한 것은 혹시라도 여러 사람 들이 이미 무슨 변고(變故)라도 당했으면 어쩌나 하는 것이었소. 하지만 지금 모두가 무사한 모습들을 보니 마음이 그저 기쁘기 짝이 없소." 동방리는 잠시 생각을 한 다음에 약간 주저하는 듯하다가 다시 말했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무사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렇게 계속 숨어 지내시기만 하다 보니, 그만 하나같이 크게 의기소침 (意氣銷沈)해져 있는 것도 사실이지요. 이번에 화공자께서 본래의 모습으로 오신 것은 필시 어떤 상당한 각오가 있으신 것으로 생 각이 되는군요." 화검상은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그때그때의 기분(氣分)에 따라서 오늘 이런 행동을 위하 고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슨 특별한 복안(腹案)을 가지 고 온 것은 아니오. 다만, 그저 이제까지 혼자서 행동을 해왔지만 앞으로는 좀더 여럿이서 움직이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오." 동방리는 그 말을 듣자 이내 크게 기쁜 듯이 박수를 치며 말했 다. "그렇다면 매우 잘된 일이에요. 공자께서 이곳의 사람들과 합 류하신다면 아마도 커다란 힘이 될 것이고, 또한 일단은 밖으로 나가서 활동할 수 있게 될 거예요. 그것은 비단 백혈단의 본래 취지에도 맞을 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들의 사기를 진작시키는 데 도 큰 역할을 할 수 있지요. 사실 이곳의 사람들은 계속 이렇게 살아가느니 어떤 보람있는 일만 있다면 차라리 즉시 나가서 싸우 다가 죽는 것이 낫다는 생각들을 하고 있는 편이에요." 화검상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입가에 가느다란 고소를 떠올렸 다. "낭자는 나를 너무 높이 평가하고 있는 것 같소. 나는 별로 대 단한 존재(存在)가 아니기 때문에 혹시 모두에게 해를 끼치게 될 지도 모르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무림야그 출력일 :: 98/11/11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2 권 제 55 장 - 1 그때 가벼운 인기척과 함께 서귀현이 다시 안으로 들어섰다. 서귀현은 다소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보다가 이어 정색하고 화검상을 향해 말했다. "지금 모두들 모여서 화공자님을 뵙고자 하고 있습니다. 잠시 그쪽으로 자리를 옮기시겠습니까?" 화검상은 서귀현의 부담없는 듯한 겉표정과는 달리 그의 속마 음에는 어떤 중요해 보이는 결정이 내려져 있는 듯하다는 것을 인지하고는 즉시 몸을 일으켰다. 사람은 더러 여유를 즐기는 성향이 있는 성품이라고 하더라도 때로는 좀더 서둘러야 할 때도 있는 법이리라.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무리함을 자초하는 것은 곤란을 받게 되 기가 쉬우며, 가능하면 모든 일에 있어서 자연스러운 흐름을 타 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좋습니다. 그때는 여러분들에게 미처 제대로 인사도 드리지 못했는데 이제 정식으로 만나 서로를 알게 되었으니 반가운 일입 니다." 화검상이 서귀현의 뒤를 따르자, 동방리도 역시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그 뒤를 따라왔다. 이 제법 방대하게 형성되어 있는 동굴의 전체구조 중에서도 중 앙 부근에 있는 그 공간은 거의 작은 석전(石殿)이라고 불릴 수 있을 정도로 넓은 편이었고, 지금까지 회합의 장소로 사용되어 왔던 곳인 모양이었다. 역시 작은 동굴통로를 따라 앞쪽으로 조금 나아가자 그곳에 도 달할 수가 있었고, 이내 초라하게 만들어져 있는 하나의 넓은 돌 탁자를 사이에 두고 서서 그를 바라보고 있는 그 사람들을 만날 수가 있었다. 지금 이곳의 분위기는 촛불이 밝혀져 있기는 하지만 그 빛이 작고 희미하여 다소 어둡고 우울한 느낌을 불러일으키고 있었고, 사람들의 표정들도 그리 밝아 보이지는 않았다. 사실 여기에 있는 이 사람들은 화검상에게는 낯설지 않은 얼굴 들이지만, 새삼스럽게 본모습으로 만나게 되는 오늘 화검상은 공 연히 어색해지는 것을 감출 수가 없었다. 비록 인원이 그다지 많지는 않지만 이곳은 공식적인 자리인지 라 서귀현은 상석 부근에 이르자 이내 약간 엄숙한 표정으로 입 을 열어 서두를 꺼냈다. "자, 여기에 계시는 이분이 바로 그때 우리를 도와주셨던 그 화공자이십니다. 당시 화공자 본인의 특별한 사정으로 모습을 감 출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본래의 모습으로 우리들 앞에 돌아 오셨으니 여러분은 적극적으로 이해해 주시고 그에게 협력해 주 시기 바랍니다." 이미 그들 간의 대화가 마무리되어 있는 상황일 것이므로 아마 도 지금의 이 말은 그저 형식적인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화검상은 이미 조금 전에도 이러한 모든 발생가능한 상황에 대 해서 생각을 해두었지만, 지금은 내심 그 가운데에서도 이들의 표정이 그다지 밝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 다시 한번 더 이유를 확 인해 보고 있는 중이었다. 사실 그 이유라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도 않고 생각해 보면 뻔 한 일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현재의 화산파의 세력(勢力)에 맞서서 싸워 왔던 만큼 그들은 비단 고집이 셀 뿐만 아니라 자존심(自尊心)도 대단한 편이라고 할 수가 있다. 그러한 그들이 이제는 허망하게 약화되어 존립의 위기까지 느 끼게 될 정도이고, 또한 이렇게 그 분명한 능력(能力)을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도움에 희망을 걸어야 하다니....... 그들의 마음이 심히 괴롭고 어두워지지 않을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실로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가 있고, 이러한 그들의 심리(心理)에 유의하여 처신하면서 그들에게 어떤 새로운, 분명한 희망(希望)을 줄 수 있다면 화검상은 이 분위기를 바꿀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지금 이 자리에는 동방량과 그 오씨 아저씨라는 사람도 참석하 여 그야말로 이곳의 모든 사람들이 다 모여 있는 상태이므로 화 검상을 포함한 숫자는 모두 여덟 명이었다. 서귀현이 화검상을 바라보고는 옆으로 걸음을 옮겨 자리를 비 켜 주자, 화검상은 그 자리에 서서 정중히 포권한 뒤에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말하기 시작했다. "여러분을 이제 두 번째 뵙는 것 같습니다만, 아마도 여러분은 저의 이 얼굴을 처음으로 대하시는 분이 많으실 것입니다. 저는 마땅히 후배(後背)로서의 예의를 다해 여러분들을 대했어야만 했 음에도 부득이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점은 심히 죄송스럽고 또한 재삼 사죄드리는 바입니다. 이제 정식으로 저의 소개를 하자면, 저는 여러분과 같은 화산파(華山派)의 출신으로 이름은 화검상 (華劍傷)이라고 합니다. 그럼 우선, 저의 그간의 잘못을 시인하는 뜻으로 일단 여러분의 질문(質問)을 받고 궁금증을 풀어 드릴까 합니다. 여러분께 만일 어떤 의문점이 있으시다면 가차없이 질문 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은 화검상의 말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지만 막상 그 가 이렇게 나오자 미처 예상못한 일이었는지 잠시 저마다 머리를 굴려보며 생각에 잠기는 듯했다. 하긴 그들이 화검상에게 느끼는 의문점이라는 것은 이루 헤아 릴 수도 없이 많겠지만, 지금은 그만 그런 질문을 할 생각을 하 지 못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현재의 상황에서 도무지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인지 그런 말을 들었는데도 그들은 쉽사리 질문을 하지 않고 도리어 마음이 음울 (陰鬱)하고 차가워지는 것 같았다. 서귀현이 그것을 보고 나서서 웃으며 분위기를 환기시키려는 듯이 말했다. "아, 우리 화공자님께서 비록 당시 특별한 사정이 있어서 변장 을 하기는 했지만, 사실 그런 점은 강호(江糊)상에서는 흔한 일이 고 우리도 또한 일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때때로 그 방법을 쓰곤 했지요. 게다가 화공자님은 당시 우리를 구해 주신 생명의 은인 (恩人)과도 같으신 분이라서 우리들로서는 당연히 무슨 불쾌(不 快)한 감정이 있을 리가 없고 오히려 고마워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 화공자님께서는 일단 그렇게 말씀하신 것으로 되었고, 더 이상 사과하실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아, 미처 제가 아직 여러분 들을 화공자님께 소개해 드리지 않았군요......." 이어 서귀현은 화검상이 아직 이름을 알지 못하는 그 네 사람 에 대해서 간략하게 소개하기 시작했는데, 그들은 다음과 같았다. 오귀문(吳歸文). 그는 바로 아까 동방량이 오씨 아저씨라고 부르던 사람이었는 데 나이는 가장 많아서 쉰한 살이고 서귀현의 사제(師弟)이며, 화 검상이 보는 바로는 무공이 삼 갑자 반의 절정(絶頂) 경지로 보 였다. 양귀해(楊歸海). 그는 나이가 마흔일곱이고 역시 서귀현의 사제가 되며 무공 수 준은 오귀문과 비슷한 수준으로 제법 무학에 대한 재능(才能)이 있어 보였다. 한귀풍(韓歸風). 그는 나이가 마흔다섯이고 역시 서귀현의 사제이며 무공수준은 삼 갑자 절정 경지이고 체형이 날렵해 보이는 것이 신법(身法)에 약간의 소질이 있는 것 같았다. 주귀선(朱歸善). 그는 나이가 마흔둘로 서귀현의 사제들 가운데 가장 나이가 어 린 편인데, 무공은 한귀풍과 비슷하여 역시 무학에 대한 재질이 있어 보였다. 이들은 하나같이 도중에 나이가 많은 몸으로 화산파의 속가제 자(俗家第子)로 입문하여 서둘러 무공을 배워 온 사람들이기 때 문에 자연 그 무공수준은 일대(一代)의 다른 정식제자들에 비해 열악할 수밖에 없으나, 그래도 그간의 온갖 거친 환경 속에서도 살아남은 사람들이므로 그 강인한 정신력과 경험만큼은 인정해 줄 만하다고 할 수 있었다. 서귀현이 그렇게 일일이 소개할 때마다 그들은 각기 거의 형식 적으로 허리를 굽혀 보였지만, 화검상은 그게 모두 깍듯한 예의 를 보이는 정중함을 잊지 않았다. 서로간의 소개가 그것으로 대강 끝나자, 화검상은 이윽고 미소 하며 다시 입을 열어 말했다. "여러분이 이렇게 넓으신 마음으로 저를 이해해 주시니 저로서 는 뭐라고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저 는 여러분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보기 드물게 정의(正義)를 몸소 실행하려는 분들이시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염 치 불구하고 찾아 뵌 것이지만, 과연 제가 여러분께 도움이 되어 드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군요." 이윽고 그들 가운데 양귀해가 입을 열어 다소 비아냥거리는 듯 한 태도로 말했다. "당신이 최근 강호(江湖)에서 혁혁(赫爀)한 명성을 쌓아가고 있 다는 것은 우리도 잘 알고 있소. 그러니 이제 그런 형식적(形式 的)인 말은 그만두고 보다 실질적인 내용으로 들어가는 것이 어 떻겠소? 사실 우리가 당신에게 어떤 커다란 도움을 받은 것은 사 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세상물정도 모르는 바보인 건 아니오." 오귀문이 그 말을 받아 웃으며 말했다. "솔직히 우리는 최근에 많이 의기소침해 있는 것이 사실입니 다. 그러한 때에 화공자님께서 이렇게 이곳에 와주시니 우리로서 는 갑자기 다시 새로운 희망이 샘솟는 듯하고 또한 다시 한번 몸 을 던져 일하고 싶은 의욕이 생기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만장 일치로 화공자님을 단주(團主)로 추대할 것을 합의(合議)하였고, 또한 화공자님의 지시라면 기꺼이 따를 것을 맹세하였습니다." 서귀현이 옆에서 웃으며 다시 말했다. "그러니 화공자님께서는 어서 단주의 직위(職位)에 오르시고 앞으로 우리가 해나가야 할 일들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지요." 기실 이들이 상황이 웬만하다면 아직 능력이나 그 의도도 잘 알지 못하는 한 젊은이에게 흡사 모든 것을 내맡기는 듯한 태도 를 취하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비록 모두가 겉으로는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짓거나 웃고 있는 듯하지만 기실 그들의 속마음까지 그렇다고는 결코 말할 수 가 없었다. 화검상 역시 그들이 느끼는 비참함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으므 로 가능하면 빨리 모든 일을 정리해 버리는 것이 나으리라고 생 각하고 있었다. 화검상은 짐짓 놀란 듯한 표정을 보이며 웃으면서 두 손을 가 로저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무림야그 출력일 :: 98/11/11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2 권 제 55 장 - 2 "아니, 그게 무슨 말씀들이십니까? 저는 여러분의 후배일 뿐만 아니라 이미 여러분의 밑에서 여러가지를 배우려고 작정하고 있 었는데 이런 말씀을 하신다는 것은 저의 수명(壽命)을 단축시키 는 일이 되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화검상이 이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주도적으로 일을 처 리해 나가기 위해서는 이들의 윗자리에 앉아야 할 것이며, 그것 은 거의 불가피한 것처럼 느껴지는 일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양귀해가 눈살을 심하게 찌푸리며 다시 말했다. "알고 보니 당신은 아직 나이도 많지 않은데 몹시 교활(狡猾) 한 편이로군. 나는 세상에서 위선자(僞善者)나 위군자(爲君者)를 가장 경멸하고 싫어하는 사람이오. 그러니 당신도 이제 그만 수 작을 부리고 어서 본심(本心)을 말하는 것이 어떻겠소?" 서귀현이 얼른 양귀해의 말을 제지하며 약간 어색하게 웃으며 화검상에게 말했다. "화공자께선 너무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아 주시오. 저 양사 제(楊師弟)는 비록 말투는 늘 곱지 않지만 마음만은 나쁘지 않습 니다. 그보다 우리는 화공자님이 오셔서 새로운 희망을 보여 주 시기를 바라고 있는데 우리의 밑에 계시겠다고 하시니 누가 실망 하지 않겠습니까?" 화검상은 길게 한숨을 내쉬고 한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제가 저분 양대협(楊大俠)을 나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오히려 그렇게 바른 말씀을 하시는 분을 더욱 좋아하지요. 다만 아직 나이도 어리고 경험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후배인 제 가 감히 여러분의 윗자리에 앉는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커다 란 죄(罪)가 되는 것 같은 생각이 드는군요. 그러나......, 제가 보 기에도 작금(昨今)의 상황은 여러 가지로 심히 어려워서 설사 제 가 어떤 죄를 짓는 한이 있더라도 여러분의 합의에 따라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만......." 양귀해는 그 말에 더욱 못마땅한 듯 안색이 더 냉랭(冷冷)해졌 으나 차마 더 이상은 말로 그것을 표현하지 않았다. 서귀현은 이에 얼른 화검상의 말을 받으며 재촉했다. "바로 그렇습니다. 화공자님께서는 무엇을 더 망설이십니까? 지금이라도 바로 단주(團主)의 직위를 승낙하시면 우리는 즉시 한마음으로 화공자님의 지시에 따르게 될 것입니다." 동방리도 뒤에 있다가 미소하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래요, 우리는 지금 다른 것들을 돌볼 여우가 없으므로 가장 최선(最善)의 길을 선택하는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리고 그 시기 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을 것이고, 그 일에 이런저런 시간(時間)과 정열을 낭비한다는 것은 커다란 어리석음이라고 생각해요." 그녀는 본래 이곳에 오기 전에도 상황을 통찰하는 능력(能力) 이 있었는데 이곳에 오고 나자 그러한 능력이 더욱 현실적(現實 的)으로 변한 것 같았다. 화검상은 거듭 무거운 표정으로 탄식하고 정색(正色)을 하며 괴로운 듯이 말했다. "그럼 좋습니다. 저는 이 시간부터 여러분의 뜻을 존중하여 감 히 죄인(罪人)이 되도록 하지요. 앞으로 여러분의 의사를 대신하 여 수행하겠으며 결코 실망시키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지금이라도 제가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말씀해 주시고 저에게 호된 꾸지람을 내리시거나 혹은 이 자리에서 박탈해 주십 시오." 화검상이 그런 말을 꺼내자 사람들은 약간 놀란 빛을 보였으나 이내 서로를 돌아보면서 일제히 박수를 쳐주었다. 서귀현이 크게 기쁜듯이 웃다가 즉시 부복하며 말했다. "소인(小人) 서귀현이 삼가 단주님께 인사올립니다. 축하드리는 바이옵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저 박수만 요란하게 쳐주었을 뿐 그저 묵묵히 화검상을 주시하기만 했다. 화검상은 미소를 지으며 직접 몸을 굽혀 서귀현의 손을 잡아 일으켰소, 이어 웃으며 말했다. "고맙습니다. 본래 이 자리는 서대협께서 맡으셔야 하는 것인 데 감히 제가 대신하게 되었으니 그 죄스러운 점은 말로 다할 수 가 없습니다. 저는 이제까지 별로 한 일도 없고......, 오직 서대협 께서 항상 노심초사(勞心焦思)해 오신 것이지요. 앞으로 부족한 저에게 많은 지도(指導)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서귀현은 입가에 짐짓 환한 미소를 떠올리며 고개를 가로저었 다. "이제 우리 백혈단(白血團)의 단주님이 되셨으니 앞으로 더 이 상 죄인이 아니십니다. 만일 그렇다면 우리 모두가 죄인이 되어 야 할 테니까요. 그리고 이제부터는 소인에게 말씀을 낮추어 주 시지요." 화검상은 고개를 끄덕인 뒤에, 다시 여러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서대협께서 방금 전에 하신 현명하신 충고는 깊이 새겨 듣도 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물론 저는 상황이 부득이하여 이 자리에 앉게 된 것인 만큼 우리가 화산파(華山派)의 옛 정기(正氣)를 되 찾을 때까지만 단주의 지책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이 임시 단주 에 대해서는 이미 작고(作故)하신 이전의 단주님들과 같이 생각 할 수는 없는 일이니, 여러분들은 편하게 저를 대해 주시기 바랍 니다. 그럼, 제가 일단 단주가 되었으니 여러분들 중에서 새롭게 직책들을 정해도 되겠습니까?" 서귀현이 웃으며 말했다. "단주님께서는 이제 우리들의 어른이 되셨으니 앞으로는 모든 일을 그렇게 일일이 허락받지 않아도 좋을 것입니다. 만일 생각 해 두신 것이 있다면 말씀해 보십시오." 화검상은 미소를 지어 보인 뒤에 여러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여기 계시는 이분 서대협은 이제까지의 공로도 많을 뿐만 아 니라 능력도 풍부하시고 여러분 모두에게 신망을 두텁게 받고 있 는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저는 서대협을 제게 무슨 일이 있을 경우 모든 일을 대행할 수 있는 부단주(副團主)로 모실까 하는데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오귀문이 미소하고 나서서 포권하며 말했다. "단주님의 그러한 말씀은 매우 지당하신 것입니다. 저희들은 누구도 그 말에 이의가 없을 것입니다." 서귀현도 환하게 웃으며 화검상을 향해 새삼 다시 읍하며 말했 다. "단주님께서 그런 은혜(恩蕙)를 내려주시니 소인으로서는 그저 과분할 따름입니다." 화검상은 서귀현의 그 인사를 받은 뒤에, 이윽고 자신이 가지 고 온 그 작은 보따리를 풀어 내용물들을 탁자 위에 쏟아놓으며 다시 말했다. "비록 지금은 우리의 인원이 그다지 많지 않지만, 앞으로 강호 에 나가게 되면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우선은 자금을 충분 히 준비해 두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마침 제가 얼마 전에 우연 히 횡재(橫財)를 하여 이 자금을 얻게 되었으므로 일단 이것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사람을 따로 정하는 것도 필요할 것 같습니 다. 제가 그 사람을 독단적으로 정하는 데 대해서 여러분들께서 는 찬성하십니까?" 무림인들이 비록 황금(黃金)에 대한 욕심을 멀리하고 있다고는 해도 일단 여러 사람들이 움직이기 위해서는 자금이 많이 필요한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화검상이 도선에게서 받았던, 그 작은 보따리에서는 실로 엄청 난 양의 재물이 쏟아져 나왔으므로 사람들은 미처 예상하지 못하 고 있다가 그만 일제히 두 눈들이 휘둥그래지고 말았다. 일견하기로도 황금 수만 냥에 해당되는 듯한 그 보석(寶石)이 나 명주(明珠) 등은 대단한 고급품들이라 눈이 부시게 만들 뿐만 아니라 이곳에 있는 사람들 중에는 아직 그런 귀한 물건들은 본 적도 없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크게 놀랐다가 이어 다소 의아하면서도 어 리둥절한 표정으로 화검상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양귀해가 다시 안색을 싸늘하게 가라앉히며 화검상을 향해 말 했다. "우리에게 당장 급한 것은 그런 재물(財物) 따위가 아닐 것이 오. 하지만 그런 것들도 전혀 불필요한 것은 아닐 것이므로, 일단 은 단주께서 그런 성의를 보이시는 데 대해 감사를 표하는 바이 오. 그 자금은 단주께서 가지고 온 것이니 의당 단주께서 마음대 로 그 관리인을 정해도 상관없을 것이오." 화검상은 고소(苦笑)한 뒤에 그 말을 받아 말했다. "물론 제가 이런 자금으로 모든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당연히 양대협의 말씀이 전적으로 옳을 것입니다. 따라서 제가 만약 능력(能力)이 부족하여 도저히 모든 사람들에 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된다면 언제라도 이 자리를 물러나 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다만 가능하면 여러분과 한마음이 되었으 면 하는 생각으로 어수룩하기는 하지만 이 말을 먼저 꺼낸 것에 불과합니다. 다소 무리한 점이 있더라도 여러분께서는 저를 너그 럽게 보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서귀현이 웃으며 나서서 말했다. "단주님의 실력에 대해서는 이미 전에 우리가 목격한 바가 있 으니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좋을 것입니다. 단주임께서는 너무 부담을 갖지 마십시오." 화검상은 미소하며 서귀현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인 다음에 정 색을 하고 다시 말했다. "그럼 지금 제가 생각한 바를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여기 있는 이 동방낭자(東方娘子)는 비록 건강은 그다지 좋지 않으나 통찰력이 매우 뛰어나고 이재(理財)에 매우 밝은 편입니다. 따라 서 저는 그녀에게 자금의 관리를 맡기는 한편 우리 백혈단(白血 團)의 군사(軍師)의 직위를 부여할까 하는데, 여러분의 생각은 어 떻습니까?" 이 서귀현의 네 명의 사제들은 비록 사이가 좋은 편이기는 하 지만 그래도 서로간에 아무래도 강한 경쟁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 동방남매는 그들의 선사(先師)인 동방천서의 가족 들이므로 동방리에게 군사의 직위를 맡기는 것은 그들간의 우의 를 깨뜨리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양귀해는 두 눈에서 가벼운 이채(異彩)를 발하며 말했다. "좋습니다. 우리도 동방낭자가 그런 직위를 맡아준다면 별로 이의가 없을 것입니다." 동방리는 갑자기 자신이 거론되자 다소 어리둥절한 표정이었지 만 이내 미소하며 말했다. "호호, 그 제안은 좀 이상하군요. 저는 아직 나이도 어린 계집 아이에 불과한데 과연 그런 직책을 맡을 수가 있을까요? 게다가 우리는 인원이 겨우 열 명도 안 되는데 군사(軍師)라는 직위를 둔다는 것도 그렇고요. 그렇지 않나요? 호호!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 무림야그 출력일 :: 98/11/11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2 권 제 56 장 의문(疑問)과 변수(變數) 제 56 장 의문(疑問)과 변수(變數) 화검상은 다소 정색(政色)하고 그녀를 향해 부드러운 어조로 설명했다. "그것은 그렇게만 생각할 일이 아닙니다. 비록 겉으로 보기에 는 한결같아 보이지만 기실 현재의 화산파의 사람들 중에도 진심 (眞心)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없으리라는 법은 없습니다. 따라 서 나중에 그곳의 인원들이 우리 백혈단에 합류하여 갈수록 인원 이 불어나게 될지도 모르는데 어찌 군사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비록 낭자의 건강으로 다소 어렵기는 하겠지만 지금 우리의 사정 이 워낙 좋지 못하므로 이렇게 부탁을 드리는 것이니 수고스럽겠 지만 이 직위(職位)를 맡아 주셨으면 하고 바랍니다." 이에 동방리는 표정이 약간 창백해지고 엄숙해지더니 이윽고 정색을 하며 그 자리에서 몸을 크게 굽히며 날아갈 듯한 대례를 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나 소녀(小女)를 생각해 주시니 저는 감히 이 목숨이 다하는 한이 있더라도 마다할 수가 없군요. 삼가 동방리(東方莉) 가 단주님을 뵈어요! 앞으로 미약하나마 이 일에 분골쇄신 (粉骨 碎身)노력하도록 하겠어요." "고맙소." 화검상은 역시 손수 손을 내밀어 그녀를 일으키고는 다시 사람 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자, 일단 이렇게 대강의 직위가 정해졌으니 우선 잠시 자리를 정하고 앉아서 간단히 앞일을 논의(論議)하도록 합시다. 음, 나는 먼저 여러분들의 의견을 듣고 싶소." 동방리가 탁자 위에 펼쳐져 있던 재물들을 도로 작은 보따리에 담아서 거두고 이어 모든 사람들이 그 서열(序列)에 따라서 좌정 하고 나자, 서귀현이 다시 입을 열어 말했다. "단주님께서는 만일 지금 곧 강호(江湖)에 나가게 된다면 어떤 방향으로 일을 해나갈 생각이십니까?" 서귀현이 화검상의 우측에 자리한 반면 동방리는 좌측에 앉았 고, 그리고 동방량은 그녀의 뒤에 마치 시립하듯 서 있는 상태였 다. 화검상은 손을 내저으며 미소와 함께 말했다. "이미 말했다시피, 나는 아직 별로 모든 일을 해나가는 데에 있어서 능숙하지 못하고 아는 바도 거의 없소. 그러니 먼저 부단 주께서 이제까지의 상황을 말씀해 주시고 또한 의견을 제시해 주 는 것이 좋겠소." 사람들은 그 말에 화검상의 신중한 면모를 보는 것 같아서 다 소 안도해 하면서도 어딘가 실망스러운 느낌도 감추지 못하는 것 같았다. 서귀현은 좌중을 돌아보며 미소를 보인 후에 화검상을 향해 대 답했다. "단주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그럼 제 생각을 말해보도륵 하 겠습니다. 음....... 본래 우리는 이제까지 직접적으로 나서서 활동 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나중을 위해서 최대한 정보(情報)를 수 집하는 방향으로 움직여 왔었습니다. 만일 그러다가 우연히 아주 좋은 기회를 만나게 되면 이 작은 인원으로도 한번 거사(擧事)를 해보려고 했던 것이지요. 하지만 솔직히 그럴 가능성은 아주 희 박했으며, 따라서 한편으로는 꾸준히 다른 좋은 방법을 모색해 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화검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러니까 여러분은 지금 현재의 강호정세(江湖情勢)에 대 해서는 훤하게 알고 계신다는 말씀이로군요?" 서귀현은 정색을 하고 말을 계속했다. "훤하게 안다고는 말할 수 없어도 최소한 보통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는 좀더 상세(詳細)하게 알고 있을 것입니다. 험험, 그러므로 제 생각으로는 일단은 이곳에서 힘을 기르고 때를 기다 린 후에 신중하게 강호(江湖)에 나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화검상은 잠시 뭔가 깊이 생각하는 듯하다가 이윽고 미소를 지 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우리 백혈단(白血團)은 이미 너무 오랫동안 이런 곳에 칩거하며 때를 기다리기만 했습니다. 물론 그런 신중함 자체가 나쁘다는 말이 아니라, 아무리 깨끗한 물도 오랫동안 고여 있으면 썩기 마련인 것이고 또한 사람들도 너무 오래 기다리다 보면 지치기 마련인 것입니다. 설령 한두 번 패배 당하는 일이 있더라도 그 의욕만 있으면 다시 일어날 수도 있겠 지만 지쳐서 그 의욕마저 상실(喪失)하게 되면 자칫 우리의 희망 도 모두 없어져 버리게 될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우리는 너무 서 두를 필요도 없겠지만, 지금 즉시 준비를 하여 이곳을 떠나도록 하고 점진적으로 상황을 보아 가며 보다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것 이 좋을 것 같습니다." 서귀현과 다른 사람들의 얼굴에 숨길 수 없는 우려의 빛깔이 강하게 떠올랐다. 기실 화검상이 혹시 아무것도 모르고 성급하게 행동하여 모든 일을 망치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는 그들이 처음부터 근본적으로 갖고 있던 것이기도 했다. 서귀현은 약간 불안(不安)한 듯한 시선으로 화검상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희도 사실 차라리 그렇게 되었으면 하고 바랄 때가 많았습 니다 하지만 지금의 이 전력(戰力)으로 현재의 화산장문인(華山 掌門人) 등과 맞설 수가 있겠습니까?" 화검상은 미소하며 천천히 고개를 내저은 다음에 이어 약간 뜸 을 들이다가 말했다. "우리가 만일 지금 강호(江湖)에 출도(出道)한다면 비단 화산장 문인 등뿐만 아니라 다른 여타의 명문정파(名門正派)의 사람들과 도 부딪쳐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너무 그런 걱정은 하지 마시고 저를 믿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여러분과 함께라면 충분히 그 들과 상대해 나갈 자신이 있습니다." 이어 화검상은 돌연 자신의 몸을 앉은 자세 그대로 허공에 떠 올렸다. 뿐만 아니라 그가 가볍게 우수(右手)를 내젓자 갑자기 상 서(祥瑞)로운 듯한 백색(白色)의 광채가 일어나며 장내(場內)에 있던 다른 모든 사람들도 마치 그의 경우처럼 똑같이 앉은 자세 그대로 일제히 부드럽게 허공(虛空)으로 떠올랐다. 대개 무학이 일정한 경지(境地)에 오르면 내공(內功)의 작용으 로 이리저리 허공으로 도약하는 일은 누구나 쉽게 가능하다고 말 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정말로 말처럼 허공을 날아다니는 일은 그야말로 선택된 최강(最强)의 경지에 오른 자질 높은 사람들만 이 행할 수 있는 지극히 어려운 능력(能力)이다. 게다가 이렇게 그냥 허공에 떠올라서 잠시 머무른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라 고 할 수가 있다. 서귀현 등은 이미 현재의 화산파의 장문인(掌門人)인 풍천비 (馮天飛)나 원로(元老)들조차도 아직 그러한 어풍비행술(御風飛行 術)이나 능공허도(凌空虛渡)와 같은 경지에는 오르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화검상은 비단 스스로 그런 능공허도와 같은 무공 을 펼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그렇게 되도록 하 고 있는 것이 아닌가? 무학의 이단(異端)에 사술(邪術)이라는 것이 존재하기는 해도 그것이 이렇게까지 상상도 못할 정도의 괴력(怪力)을 발휘할 수 는 없는 일이므로, 사람들은 저마다 경악(驚愕)하여 벌린 입을 다 물지 못하면서도 대체 이게 무슨 무공일까 하고 나름대로 머리를 굴려 보기도 했다. 그러나 일찍이 듣도 보도 못한 일인지라 도무 지 알 수가 없었다. 그들은 그렇게 일단 타의(他意)에 의해 허공에 떠올랐으나 거 의 구속감을 느낄 수가 없어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있었고, 그것 은 마치 스스로 능공허도의 신법(身法)을 펼치는 것과도 흡사했 기 때문이었다. 이 순간에는 제아무리 냉소(冷笑)적이었던 양귀해나, 혹은 스스 로의 경륜을 의식하며 은근히 절반쯤 화검상을 내려다보던 서귀 현 등도 비단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마치 얼빠 진 것처럼 화검상을 바라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일반적으로 무공이 아직 광검(光劍)의 경지에 오르기 이전이라 면 대개 한번 발출한 기운(氣運)을 자신의 뜻대로 이리저리 통제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不可能)한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가까운 거리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흡인공(吸引功) 따 위에도 실상은 거의 그대로 작용(作用)되는 이치이며, 일단 광검 (光劍)의 경지에 오르면 한번 발출한 기운을 조절할 수 있게 되 는 것은 그것이 이른바 말 그대로 혼(魂)의 무학(武學)이기 때문 이다. 게다가 화검상의 무학은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곡선적(曲線的) 인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 심검(心劍)의 경지에서도 어느 정도 그 런 것이 가능했었고, 이제는 광검의 경지에 오르자 그야말로 뜻 대로 원만하게 진기(眞氣)를 운용(運用)하게 된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제 화검상의 무학에서 직선적인 경우의 해설처 럼 무슨 광검이니 혼의 무학이니 하는 따위의 말은 필요가 없어 진 것인지도 모르는 일이다. 물론 그러는 가운데 장내에 상서로운 백광(白光)이 일어났던 것은 화검상의 광검의 원영(元영)이 약간의 빛을 발했기 때문이 다. 이들은 아직 직선적인 광검의 경지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있는 데 곡선적인 광검의 경지에 대해서 알 수 있을 리가 없는 일이었 다. 지금 허공에 떠오른 사람들 중에는 물론 동방남매인 동방리와 동방량도 함께 속해 있었다. 화검상은 그들을 두루 바라보면서 미소와 함께 다시 입을 열어 말했다. "자, 이만하면 여러분은 저를 믿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십니까? 노파심에서 말씀드리자면 이것은 무슨 다른 사술(邪 術)이 아니라 기실 다름아닌 우리 화산파 무공의 근원적인 흐름 에서 나온 것입니다. 저는 앞으로 여러분이 저를 믿어주고 함께 본파(本派)의 앞날과 정기(正氣)를 회복시키는 일에 한마음으로 노력해 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화검상의 그러한 말은 사람들을 정신차리게 만들었고 그들은 저마다 금방 꿈에서 깨어난 듯한 표정을 보이면서도 연신 몸을 움직여 보기도 했다. 서귀현은 문득 깊은 탄식과 함께 매우 착잡한 표정을 지으며 정중히 입을 열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ЕЕ 무림야그 출력일 :: 98/11/11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2 권 제 56 장 - 1 "단주님께서는 정말로 사람을 놀라게 하시는군요! 저는 일찍이 본파(本派)에서 이와 같은 능력을 지닌 사람이 있었다는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었습니다. 게다가 지금 단주님께서는 신공(神功)을 전개하시면서도 마치 평소처럼 그렇게 태연히 말씀을 하시니 어 찌 저희가 단주님의 능력을 의심할 수가 있겠습니까? 다만 저희 들은 스스로의 능력에 회의(懷疑)를 느끼고 또한 스스로의 비천 한 안목에 비관(悲觀)할 뿐입니다. 저는 설령 이것이 사술(邪術) 이라고 해도 반드시 단주님과 같은 능력을 지닌 분이라면 모든 일을 이루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양귀해도 쓴웃음을 지으며 어쩔 수가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이 렇게 말했다. "저도 역시 이제는 단주님을 무조건 따를 수밖에 없게 되었군 요. 저는 스스로 단주님을 측량(測量)해 보려고 하다가 결국 자신 의 한계(限界)만을 드러내고 만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핫핫핫, 그러나 어쨌든 기분은 매우 좋습니다. 제가 이렇게 바보가 되었 다고 해도 우리가 이와 같은 날을 맞이하게 되었다는 것은 정말 기쁜 일이 아니겠습니까?" 화검상은 그 말을 듣고 나자 안면(顔面) 가득 환한 미소를 지 으며 모든 사람들을 본래대로 자리에 내려놓은 뒤에 자신도 자리 에 내려앉으며 말했다. "여러분이 모두 그렇게 생각해 주신다니 저로서는 마치 태산 (泰山)이라도 얻은 듯이 마음이 매우 든든합니다. 우리는 반드시 나중에 이날을 기념(記念)하고 기뻐할 날이 있게 될 것입니다. 그 럼 일단 기본적인 일이 대강 마무리가 된 듯하니 이제는 윗분의 영정에 절하고 예(禮)를 올려야 하겠군요." 새로운 백혈단(白血團)의 일원이 된 그 사람들은 이어 모두가 일제히 화천괴(華天魁)의 영정이 걸려 있는 석실로 몰려가서 향 (향)을 피우고 예를 올렸으며, 간절히 이 사실을 고하고 모두가 한마음이 될 것을 결의(決意)했다. 화검상은 자연 다시 조부의 영정을 대하게 되자 은근히 우울 (憂鬱)한 감회가 느껴지는 것을 어찌할 수가 없었으나, 일부러 태 연한 듯한 표정으로 그것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했다. 이윽고 그러한 절차도 모두 끝나게 되자, 화검상은 잠시 휴식 을 취하기 위해 서귀현이 안내해 준 방으로 들어갔고, 나머지 사 람들은 모두가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하기 위해 서둘러 떠날 준비 를 하기 시작했다. 화검상이 그 방안에 있는 침상 위에 누워서 막 옷을 입은 채로 잠시 눈을 붙이려고 할 때였다. 문득 다시 인기척이 다가오더니 동방리(東方莉)가 문을 열고 미소하며 안으로 들어섰다. 화검상은 이미 숙성한 처녀가 방안에 들어왔으므로 더 이상 누 워 있을 수가 없어서 즉시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떠날 준비는 잘 되어 가오? 몸이 피로하다면 너무 무리하지는 말고 동생이나 부단주에게 부탁해 보도록 하시오. 갑자기 그런 모든 문제를 처리하려면 결코 쉽지 않을 것이오." 동방리는 다정(多情)한 미소와 함께 다가와 그의 옆에 앉으며 기이(奇異)한 표정으로 웃었다. "그러잖아도 부단주께서는 제가 말하지 않아도 이미 모든 준비 를 지휘하고 있는 상황이지요. 그는 이미 당신에게 마음속으로 깊이 승복하고 있는 것 같아요. 사실 누구도 제가 나서서 힘든 일을 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실상 지금 제가 할일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그래서......, 그래서 심심한 나머지 이렇게 단주님을 귀찮게 해드리기 위해 찾아온 거예요." '으음? 혹시 이 여자가 무슨 어려운 부탁이라도 하려고 찾아온 것이 아닐까......?' 화검상은 내심 은근히 그녀의 속마음을 살피며 말했다. "내게 무슨 특별히 할말이라도 있는 것이오?" 동방리는 여전히 기이하게 웃으며 그의 표정을 주시하더니 다 시 말했다. "저는 아까 당신이 특별한 관심을 보이는 듯하던 것에 관해서 잠시 곰곰이 생각해 보았고, 마침내 그것이 옳다는 것을 알게 되 었어요. 당신은 혹시 아직도 강호의 정세(情勢)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요?" 화검상은 약간 놀라는 듯한 반응을 보이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니, 그것을 어떻게 알았소?" 동방리는 품속에서 한 권의 작은 책자(冊子)를 꺼내서 그에게 건네주며 다소 시큰둥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건 아마도 아까 당신의 은근한 태도를 본 사람은 누구나 알 수 있을 거예요. 알고 보니 당신은 나를 군사(軍師)로 임명했으면 서도 기실은 나를 바보로 보고 있군요?" 그 책자를 펼쳐 보니 그것은 뜻밖에도 당금 강호의 인물들과 사건정보들을 비교적 상세(詳細)하게 기록한 것이었다. 화검상은 다소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여 웃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설마하니 당신은 이런 일이 있을 줄 미리 알고서 이것을 만들 어 두었다는 말이오?" 동방리는 고소(苦笑)하며 손을 내저었다. "나에게 아직 그와 같은 혜안(慧眼)은 없어요. 본래 그것은 나 자신을 위해서 만들어 두었던 것이지요. 우리 남매가 이곳으로 와서 강호인(江湖人)들과 어울리게 된 이상은 우선 그러한 정보 를 잘 알아두는 것이 좋을 듯해서 간혹 서대협 등에게 물어서 틈 틈이 만들어 두었던 거예요." 아마도 그녀는 자신보다는 동생인 동방량을 위해서 그와 같은 것을 만들어 놓았을 것이고, 또한 마치 심심풀이로 만들었다는 것 같지만 기실은 이 한 권의 작은 책자를 완성하기까지 그녀의 노고(勞苦)가 적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그녀가 그 책자에 대한 자신감이 없다면 손수 이것을 들고 화검상을 찾아올 리가 있겠는가? 어쨌든 이와 같은 책자야말로 지금의 화검상에게 있어서 대단 히 필요한 것이라는 점은 두말할 나위가 없는 것이기에, 화검상 은 일순 몹시 고마워하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낭자에게 한번 더 신세를 지게 되었구려. 좋소, 만일 무리한 일이 아니라면 낭자의 부탁을 고려해 보도록 하겠소. 내게 혹시 무슨 부탁이라도 있는 것이오?" 동방리는 다시 한번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혜안(慧眼)은 아마도 당신에게 있는 것 같군요. 좋아요! 하지 만 저는 이미 군사(軍師)라는 직책을 맡게 되었으니 우선 공적인 일부터 마쳐야 하지 않겠어요? 단주님께서 소녀에게 맡기신 그 재보(財寶)들을 제가 다시 점검해 보니 아마도 황금 삼만 냥 이 상은 나갈 것 같았어요. 일단 이곳을 떠나서 낙양(洛陽)이나 개봉 (開封)으로 가면 그것들을 황금(黃金)이나 은자(銀子), 혹은 은표 (銀票) 따위로 바꿀 수 있을 거예요. 그것을 그냥 사용할 수도 있 겠지만 그렇게 되면 금약을 평가하는 일에 있어서 손해보는 일이 있을 수도 있으므로 그게 역시 좋겠지요." 화검상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수긍하는 듯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하긴 아무래도 그런 것 같소. 하지만 지금 당장 그런 성시(城 市)에 다녀올 수도 없는 노릇이기 때문에 우선 필요한 자금은 그 대가 그것들 중의 일부를 처분해서 대강 사용하도록 하시오." 동방리는 미소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당장 그럴 필요는 없어요. 우리가 비록 자금이 부족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완전히 자금이 동이 났던 것은 아니지요. 서대협께서 남은 그 자금들을 제게 맡기겠다고 했으니 아마도 지금 당장은 그것으로도 충분할 거예요." 화검상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내가 아무래도 역시 사람을 잘 본 것 같소. 낭자가 이렇게 일 처리를 잘해 나가니 다른 모든 사람들은 감탄하고 믿고 따르게 될 것이오." 동방리는 가볍게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럼 저는 이제 단주님의 재가(裁可)를 받은 셈이니 즉시 나 가서 시행(시행)하도록 하겠어요. 단주님께서는 이제부터 쉬지도 못하고 그 책자와 씨름을 하셔야 할 테니 정말로 안된 일이로군 요.......!" 다정한 듯이 미소를 보이며 다시 밖으로 나가는 그녀를 바라보 면서 화검상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잠시 착잡한 기분에 젖 었다. 본래 그녀는 아직 자신의 부탁할 내용에 대해서 말을 하지 않 았지만 그것은 이미 화검상도 알고 있는 것이기에 실상 말을 한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목숨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살아가는 사람인데 부탁할 일이라는 것은 오직 그녀의 남동생에 관한 일 외에 무엇이 더 있겠는가? 어떻게 생각하면 심히 불행(不幸)하게 느껴지는 남매(男妹)이기 도 하지만, 화검상은 이미 경험해 봤듯이 그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아무리 유능하고 호의(好意)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정작 당사자가 그를 사부(師父)로 모시지 않으려고 한다면 어떻게 그 일이 쉬울 수가 있겠는가? 화검상은 문득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 자신의 손에 들려 있는 그 작은 책자를 내려다보면서 혼자말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반드시 그 아이를 제자(第子)로 삼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 저 관심을 기울여서 몇 가지의 도움을 준다면 이에 상응하는 일 을 해준 셈이 되지 않겠는가......?" 그 동방리가 가져다준 책자(冊子)에는 과연 온갖 정성이 깃들 여 있었고 자연 화검상에게 유익한 점이 많았다. 화검상은 그 책자를 읽어 보면서 간혹 전혀 다른 일에 관해서 도 깊이 생각에 잠겨 시간의 흐름을 잊을 정도로 골몰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 무림야그 출력일 :: 98/11/11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2 권 제 56 장 - 2 이전에는 미처 그렇게 깊이 생각할 기회가 없었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이 세외팔선(世外八仙)이라는 존재는 마치 목에 박힌 가 시처럼 갈수록 신경이 쓰일 뿐만 아니라 실로 중대한 변수(變數) 가 아닐 수 없었다. 대강 그가 알게 된 내용을 요약하자면, 그들은 모두가 상상도 못할 능력(能力)을 가지고 있지만 그 알 수 없는 용화노인(龍華 老人)이라는 한 사람 때문에 강호에 나서서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한 가지 이해하기 어려운 의문(疑問)이 남 는데, 만일 그들이 정말로 그러한 금계(禁戒) 때문에 강호에 나설 수가 없는 것이라면, 지금은 어째서 활동을 시작하려는 것이며 또한 용화노인(龍華老人)의 거취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그저 단순히 그것을 용화노인에게서 금계를 완화시키기 위한 움직임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실로 생각하기도 싫은 가정이었겠지만, 만일 그 용화노인이 지 금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고 따라서 그 세외팔선이 그것을 감 지(感知)하였기 때문에 그렇게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라면, 그것은 실로 엄청난 사태가 아닐 수 없었다. 화검상은 그들이 비단 모두가 정인군자(正人君子)나 욕심(慾心) 을 여읜 사람들이 아닐 뿐만 아니라 이미 오랫동안 그러한 욕망 들이 억눌려 왔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당금의 강호에서 그들의 존재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과연 그들이 어느 날 갑자기 강호에 나 서서 움직이기 시작한다면 누가 감히 그것을 막을 수가 있을까? 아마도 아무도 그들의 움직임을 막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로 인해 혹시 이 세상(世上)은 미증유(未曾有)의 대혼란(大混 亂) 속으로 빠져들게 될지도 모르는 일인 것이다. 아니, 지금까지의 상황을 보건대 혹시 그들은 이미 암암리에 그러한 자신들의 활동을 시작한 것인지도 모른다. 신비(神秘)로운 그들의 능력은 세인(世人)들이 쉽게 간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그렇다면 혹시 그들은 지금의 세외팔세(世外 八勢), 그러니까 천수자(天隨子) 등과도 이미 어느 정도 관련되어 있는 것이 아닐가? 걱정은 걱정을 부르고 불안은 또한 불안을 가중시키는 법이지 만, 정작 화검상은 그러한 이리 사실로 드러날 경우에 자신의 능 력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절로 마 음이 무거워졌다. 지금으로서는 그도 오직 그 용화노인이라는 사람이 정말로 살 아 있어서 계속 그들을 통제해 주기를 바라는 도리밖에 없을 것 같았다. 과연 그 용화노인(龍華老人)이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모든 계획이 일단 그렇게 분명하게 정해지고 나자 이곳을 떠나 는 준비 등은 물이 흐르듯이 순조롭고도 빠르게 진행되어 갔다. 사실 이런 곳에서 지내 오는 동안 별로 늘어난 물건들도 없기 에 특별히 가져가야 할 물건들도 많지 않다고 할 수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무래도 사람들이 마음을 정리하고 기분을 전환시키는 일이 되겠는데, 그 일의 일환으로 저녁 무렵에는 서 귀현의 제안(提案)에 의해 작고 조촐하지만 회의실(會議室)에서 먹고 마실 수 있는 만찬이 열렸다. 사람들은 대개 반쯤은 흥분하고 기대를 하면서도 여전히 불안 (不安)스러운 기색(氣色)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술이라는 것은 비록 일시적이기는 하지만 더러 용기(勇氣)를 불러일으키고 불안을 해소해 주기도 하는 것이다. 화검상은 처음에는 그들과 함께 어울려 술을 마시고 담소를 나 누기도 했지만, 나중에는 그들만의 편안한 자리를 만들어 주기 위해 몸을 일으켜 동굴의 밖으로 걸어나왔다. 밖은 벌써 어둠이 짙게 깔린 밤이었고 달도 뜨지 않았지만, 한 쪽에서는 지금 요란한 움직임과 함께 검광(劍光)이 춤을 추고 있 었다. 동방량이 만찬에 참석하지도 않고 이렇게 나와서 열심히 검법 (劍法)을 수련하고 있는 것이다. 화검상은 잠시 그의 연무(練武)하는 광경을 지켜보다가 이윽고 그의 옆으로 다가갔다. "다들 즐겁게 지내려 하고 있는데 너는 왜 이렇게 혼자 나와 있느냐?" 동방량은 검법을 시전해 가다가 말고 그만 힘없이 검을 늘어뜨 리고 중단하며 고개도 돌려보지 않고 말했다. "그들은 그만한 자격이 있으니까 그렇게 하는 것이지만, 저는 아직 그만한 자격이 없기 때문에 이러고 있는 것입니다." 화검상은 걸음을 옮겨 그와 얼굴을 마주볼 수 있는 위치에 있 는 평평한 바위 위에 앉으며 한숨과 함께 말했다. "너도 충분히 그만한 자격이 있다." 동방량은 화검상과 얼굴을 마주보게 되자 이번에는 일부러 고 개를 돌려 외면(外面)하며 말했다. "저에게는 자격이 없습니다. 제 누나 덕을 보는 것이라면 저는 인정할 수도 없고 또한 그렇게 되지도 않을 것입니다." 동방량과 이전에 이미 많은 입씨름을 했던 상태였기 때문에 화 검상은 다시 말이 길어질 듯하자 절로 입가에 쓴웃음이 감돌았 다. "너는 아마도 너의 자존심(自尊心) 때문에 그러는 것이겠지만, 세상의 일이라는 것은 그렇게 간단히 한두 가지의 이치로 헤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네가 만일 좋은 누나가 아닌 좋은 부모(父 母)를 두어 그 후광(後光)을 입고 있다고 한다면 그것 역시 너의 능력(能力)들 중의 하나인 것이다." 동방량은 비로소 그의 얼굴을 마주보며 눈빛을 번쩍이며 말했 다. "제 누나에게서 또 무슨 부탁의 말이라도 들은 것입니까?" 화검상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웃으며 말했다. "너의 누나는 너에 관한 얘기는 하지 않았다. 다만 내게 한 권 의 책자(冊子)를 주더구나. 그 책자는 본래 네게 주려고 했던 것 이었던 모양이다." 동방량은 깊이 한숨을 들이쉬고 다시 고개를 돌려 외면하며 생 각에 잠기는 듯하다가 말했다. "저는 아마도 세상(世上)에서 가장 못난 녀석일 것입니다. 그런 데도 이전에는 마치 제가 잘난 것처럼 생각하곤 했었지요. 차라 리 제 누나가 저처럼 건강하고 제가 대신 병(病)을 앓고 있는 사 람이었으면 좋을 뻔했습니다. 저는 그야말로 아무 곳에도 쓸모없 는 녀석입니다." '이 녀석은 그 동안 많이 변한 것 같군. 하지만 과연 그것이 얼 마나 갈 것인가......?' 화검상은 눈빛을 빛내며 그런 생각을 하다가 다시 동방량을 향 해 말했다. "내가 보기에는 그렇지 않다. 너는 사실 다른 많은 사람들보다 더 많은 가능성(可能性)을 가지고 있는 편이라고 할 수가 있지. 너의 자질(資質)은 제법 훌륭하다. 만일 좋은 사부(師父)를 만나 게 된다면, 너는 좀더 달라진 네 모습을 볼 수 있게 될지도 모른 다. 나도 물론 너의 누나가 심한 병마(病魔)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무엇 때문에 굳이 너의 누나를 군사 (軍師)로 삼았는지 아느냐? 그건 바로 너의 누나에게는 네가 있 기 때문이다." 동방량은 시선을 내리깔고 고개를 숙이면서 약간 머뭇거리는 듯하다가 말했다. "저는......, 당신이 우리와 같은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라 고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적어도 당신이 우리의 고충을 모르고 있다고 생각을 했지요. 그런데, 저는 당신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나서......." 화검상은 그가 말끝을 흐리면서 마저 잇지 못하는 것을 보고 웃으며 말을 받았다. "나는 본래 너희들에게 좀더 그럴듯하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서 애를 쓴 것이지. 그러나 결국 나는 신세가 탄로나고 말았으니 너 는 더더욱 실망하고 말았겠구나. 그렇지 않느냐? 나 역시 보잘것 없는 사람에 불과했었단다." 동방량은 뭐라고 말을 할 듯했으나, 이내 말을 꺼내지 못하고 묵묵히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화검상은 그것을 보고 내심 쓴웃음을 지으며 화제를 바꾸어 다 시 말했다. "나는 사실 너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좋아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너의 누나의 부탁을 받아들여서 너를 제자로 삼으 려고 한 것이고......, 지금에 와서 내가 네게 바라는 것은 네가 좀 더 활기를 되찾고 자신감있게 행동하게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흔히들 말하는 것이지만 세상일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는 것이라 고도 할 수가 있지. 으음......, 나는 이미 말했듯이 너의 누나에게 적지 않은 도움을 받았다. 그래서 그 보답으로 네게 가능하면 몇 가지의 도움을 줄 수 있게 되었으면 한다. 그래, 지금 내게 무슨 바라는 바라도 있느냐?" 동방량은 여전히 뭔가 계속 주저하는 듯하다가 이윽고 단념한 듯 고개를 들고 웃으며 말했다. "제 누나는 만일 건강해지기만 한다면 저보다는 훨씬 더 나을 것입니다. 당신은 많은 능력을 가지고 있으신 것 같은데, 만일 세 상의 일이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것이라면 제 누나를 건강하게 해 주실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화검상은 가볍게 실소(失笑)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말한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는 말은 그런 뜻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 너의 그 말이 내게 도움을 청하는 것들 중의 하나라 면 좀 어렵기는 하지만 다른 방법에 대해서 말해 주도록 하지. 으음, 내가 네게 너의 누나를 치료하는 방법이 전설(傳說)의 우담 화(優曇華)를 복용하는 것이라고 했던가?" 동방량은 마주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로 얻기 어려운 것이라고도 하셨지요." 화검상은 안색을 가볍게 굳히며 고개를 끄덕인 후에 다시 입을 열었다 "으음, 하지만 내가 아는 바로는 거기에 다른 두 가지의 방법 이 더 있지. 그것은 바로 너의 누나가 곡선적(曲線的) 무공을 배 우는 것과 혹은 그런 무공이 높은 사람과 너의 누나가 혼인(婚 姻)하는 것이다. 너는 혹시 그런 무공(武功)이 있다는 얘기를 들 어본 적이 있느냐? 아마도 전혀 들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따라서 나는 네게 그런 얘기를 해줄 수가 없었던 것이며, 이것은 오히려 우담화(優曇華)를 구하는 일보다도 더욱 어려운 일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동방량은 눈살을 찌푸리며 억지로 입가에 웃음을 떠올렸다. "만일 세상에 그런 무공이 있다면 그것을 배운 사람도 있을 것 이고 또한 배울 수도 있는 일이 아닙니까? 저는 설마하니 그것이 우담화를 찾는 일보다 더 어려우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 무림야그 출력일 :: 98/11/11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2 권 제 57 장 노상(路上)의 영웅호걸(英雄豪傑 제 57 장 노상(路上)의 영웅호걸(英雄豪傑)들 화검상은 가볍게 미소한 뒤에 손을 내저었다. "너의 생각이 바로 그렇게 되는 것이기에 내가 말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기왕에 나온 말이니 좀더 설명해 주도록 하지. 이 곡선적 무공이라는 것은 기존에 다른 무공들과는 전혀 다르다고 할 수 있는 것으로, 특이한 인연(因緣)이 있지 않은 사 람은 도저히 배우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런 사람은 설령 수련(修 練)이 시작된다고 하더라도 그 진전이 매우 느려서 효과를 보기 도 어려운 것이지. 그러니 자연 우담화를 구하는 일보다도 더 어 려울 수가 있지 않겠느냐?" 동방량은 묵묵히 듣고 있다가 화제를 돌리며 말했다. "그렇다면 제 누나는 정말로 가망이 없는 것이로군요. 어쨌든 당신은 그렇게 한번 저에게 도움을 주신 셈이니 감사를 드립니 다." 화검상은 약간 비아냥거리는 듯한 동방량의 말을 들으면서 내 심 쓴웃음을 지었으나 여전히 담담하게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나는 이미 너에게 몇 가지의 도움을 주겠다고 했으니 에게는 아직 청구할 수 있는 내용이 더 남은 셈이다. 그러니 지금은 생 각이 나지 않는다고 해도 나중에 좀더 생각하여 정말 부탁할 일 이 있다면 내게 말해 다오. 나는 가능하면 너의 부탁을 들어 주 도록 하겠다." 동방량은 힐끗 한차례 화검상의 얼굴을 바라보았으나 이내 시 선을 외면하고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구나.......!' 화검상은 내심 그렇게 가벼운 탄식을 발하며 걸음을 옮겨 다시 동굴의 안으로 들어갔다. 이 동굴의 내부는 언제나 어두운 편이지만, 이런 달도 뜨지 않 는 밤이 되니 더욱 어두워져서 거의 지척도 분간할 수 없을 지경 이었다. 하지만 화검상은 그 조금 들어간 안쪽에 동방리가 서 있다가 황급히 옷소매로 눈물을 닦아 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녀는 화검상을 바라보며 짐짓 웃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제 동생은 정말로 고집불통이죠? 당신께 이런 수고를 끼쳐 드 려서 정말 죄송해요." 화검상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그렇지 않고. 사람들은 대개 그런 편이지. 오히려 낭자의 동생 은 다른 사람들보다는 그래도 좀더 순수한 열정(熱情)이 있는 편 이오." 동방리는 화검상의 뒤를 따라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면서 다시 말했다. "제가 그 책자를 단주님께 드린 것은 다른 부탁이 없더라도 우 리 백혈단(白血團)을 위해서는 당연한 일이었어요. 그러니 이제는 제 동생의 일에 너무 신경 쓰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화검상은 그녀의 얼굴을 돌아보며 잠시 생각해 보는 듯하더니 웃으며 말했다. "하긴, 그 녀석은 나와 인연(因緣)이 없을지도 모르는 일이오." 어둡고 온갖 복잡한 감정(感情)들이 뒤엉키던 하룻밤이 지나가 고 새로운 날의 아침이 밝아 왔다. 예정대로 백혈단(白血團)의 인원 여덟 명은 아침 일찍 식사를 하고 동굴의 입구를 폐쇄한 뒤에 길을 떠났으며, 이윽고 산 아래 의 마을에 이르자 미리 구입해 두었던 마차에 동방리를 태우고 남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동방리는 몸이 너무나도 허약하여 그렇게 마차를 타고 가는데 도 여전히 힘들어 했으며, 자연 그 때문에 조심해서 마차를 몰고 가다 보니 일행이 나아가는 속도는 지루할 정도로 느리기 짝이 없었다. 화검상은 이미 그녀가 건네준 책자의 내용을 완전히 분석하여 당금의 강호의 상황에 대해서 거의 훤하게 알게 되었는데 그러함 에도 그는 지나칠 정도로 태평하고 여유가 있어 보여서 이상할 정도였다. 그에게는 이미 앞일에 대한 어떤 구체적인 계획이라도 세워져 있는 것은 아닐까? 아침 일찍 서둘러 출발했는데도 일행은 오후 무렵에야 비로소 황하(黃河)를 건널 수가 있었으며, 이윽고 낙양(洛陽) 부근에 당 도한 것은 해도 다 저문 저녁 무렵이었다. 지금과 같은 험악한 강호정세(江湖情勢)에 비추어 보자면 그렇 지만, 그래도 일행이 이제까지 오는 동안에 거의 별다른 사건 하 나 겪지 않았다는 것은 매우 운이 좋은 것이라고 할 수가 있었 다. 하지만 끝까지 운이 좋을 수만은 없는지, 일행은 드디어 그 낙 양 부근에 이르러서 이미 예상되었던 것 같은 사건과 부딪치게 되었다. 동방리가 너무나도 지쳐 있었기 때문에 화검상은 함께 마차를 타고서 그녀를 돌보고 있었는데, 문득 마차가 갑자기 정지하며 시끄러운 소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막 전투(戰鬪)에 들어가기 직전의 살벌한 고함소리들 같기도 했지만 어떻게 보면 또한 무슨 흥정을 하는 얘기들 같기 도 했다. 동방리가 힘겹게 미소를 지어 보이며 화검상을 향해 말했다. "저 때문에 공연히 단주님께 심려를 끼쳐 드리게 되는군요. 저 는 아직 견딜 만하니 단주님께서는 저에게 신경 쓰시지 말고 어 서 나가 보세요." 화검상은 그녀를 바라보며 뭔가 생각해 보는 듯하다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정말 그래도 되겠소? 하긴 무슨 일이 생겼는데도 내가 나가보 지 않는다면 단주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 되겠지." 기실 그녀가 지금까지 그렇게라도 버틸 수가 있었던 것은 조금 전부터 화검상이 그녀의 손을 잡아주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무슨 진기(眞氣)를 주입시켜 치료해 주는 것도 아닌데 그저 화 검상이 손을 잡아주니 그녀는 갑자기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는 듯 하고 고통을 많이 잊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동방리는 '이 사람의 손길은 정말 이상하구나!' 하고 생 각해 보기도 했었다. 마차 안의 뒷자리에는 동방량이 약간 경직된 표정으로 앉아서 묵묵히 자신의 누나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중이었다. 동방리는 그만 아주 우습다는 듯이 다른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은 때로는 아주 이해할 수 없는 구석이 있는 것 같아요. 설사 당신이 지금 나가지 않는다고 해도 당신에게 뭐라고 할 사 람은 없을 거예요." 화검상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녀의 손을 놓고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그래도 어쨌든 지금은 나가봐야 할 것 같소. 만일 갑자기 무 슨 일이라도 생기면 동생을 시켜 나를 부르도록 하시오." 마차는 지금 막 우측으로 심하게 굽어진 길모퉁이를 돌아가고 있던 중이었다. 이제 이 길모퉁이를 돌아서 얼마간 험한 산길을 가다 보면 낙 양성(洛陽城)에 도달할 수가 있을 것이다. 오귀문과 양귀해는 마차의 좌우에 서 있었고, 서귀현은 한귀풍 과 주귀선을 대동하고 앞으로 나가서 그 사람들과 험한 입씨름을 하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지금 그 마차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사 람들의 숫자가 많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다섯 명이었는데 나이는 사오십대였고, 무공(武功) 도 겨우 일류(一流)급의 수준으로 보였으며, 다만 특이한 점은 하 나같이 장대한 체구를 하고 있으며 은빛의 비늘이 번쩍이는 갑옷 들을 착용(着用)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말할 것도 없이 이들은 바로 녹림삼십육방(綠林三十六方)의 하 나인 백교방(白蛟幇)의 사람들이다. 그들의 허리춤에 각기 걸려 있는 분수자(分水刺)와 같이 생긴 병장기만 봐도 능히 그것을 확인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대체 서귀현은 지금 이들과 무슨 일로 그렇게 험한 입 씨름을 하고 있는 것일까? 화검상은 가볍게 신형(身形)을 움직여 가장 앞쪽에 나서 있는 서귀현의 옆으로 다가갔다. 기실 당금 무림의 상황은 동방리가 건네준 책자의 내용에 의하 면 이상스럽게도 정파(正派)가 크게 밀리고 있는 상태라고 했으 며,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런 곳에 녹림흑도(綠林黑道)의 무리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리라. 화검상의 그 비범(非凡)해 보이는 신법(身法)을 알아보았는지 그 다섯 명의 백교방 교도들은 문득 입을 다물었으며, 서귀현이 화검상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정말 이자들은 어이가 없는 놈들입니다. 자신들이 무슨 우리 편의 사람을 둘이나 억류하고 있으니 은자(銀子) 이만 냥을 내라 는 것입니다. 제가 그 동안 수많은 녹림도적 들을 상대해 봤지만 이런 어처구니가 없는 녀석들은 처음입니다." '내 눈에도 역시 그렇게 보이는군.' 화검상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 도적들을 바라보다가 이윽고 말했다. "우리는 이제 막 전원이 강호(江湖)에 나오고 있는 중이오. 그 런데 무슨 우리 편의 사람이 둘이나 더 있다는 말이오?" 그 백교방 교도들 중 가운데에 서 있는 자가 음침하게 웃으며 화검상에게 대꾸했다. "그야 당신이 이 흥정을 마다한다면 우리로서는 어쩔 수가 없 는 일이지. 흐흐흐, 고 계집들이 정말 야들야들하게 생기지 않았 던가?" 그 옆에 서 있던 다른 자가 음탕(淫蕩)하게 웃으며 말을 받았 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 무림야그 출력일 :: 98/11/11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2 권 제 57 장 - 1 "물론이오. 형님, 나는 벌써부터 이런 흥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 소. 솔직히 은자도 좋기는 하지만 그런 계집들은 십 년에 한 번 볼까말까한 것들이란 말이오. 그냥 눈 한번 딱 감고 눌러 버리면 우리는 최소한 십 년은 젊어지게 될 것이니 그게 어디 은자 이만 냥의 가치뿐이겠소?" 한귀풍이 화가 나서 검(劍)의 손잡이를 움켜잡고 있다가 드디 어 와락 뽑아들며 소리쳤다. "이런 멍청한 자식들과 상대할 필요가 없습니다! 당장 처치하 고 계속 길을 가도록 하죠!" 화검상은 이들의 말이 정말로 엉뚱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지나 치게 태연해 보이는 것을 보고는 오히려 내심 이상한 기분이 들 어서, 속으로 과연 그가 알고 있는 어떤 낭자(娘子)가 이들에게 걸려들 수가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화검상은 손을 들어 우선 한귀풍을 제지한 다음에 다시 그자들 에게 말했다. "당신들은 비단 배짱도 좋을 뿐만 아니라 그에 못지않게 대단 히 어리석군. 여기 있는 이 사람들은 나처럼 마음 좋은 사람들도 아닐 뿐만 아니라 무공(武功)도 이미 높은 경지(境地)에 이르렀 소. 그러니 당신들은 쓸데없이 귀중한 목숨을 버리기 전에 어서 돌아가는 것이 좋을 것이오." 화검상의 그러한 말은 지나칠 정도로 이런 도적들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들 중의 한 대한(大漢)이 느닷없이 분수자(分水刺)를 뽑아들더니 흉맹하게 휘두르며 한귀풍을 향해 덤벼드는 것이었다. 무공이 비슷한 경지라면 또 모르지만 이렇게 많은 차이가 나는 상태라면 대개 당사자들도 그것을 이내 느낄 수가 있고, 따라서 무공이 낮은 사람이 일부러 자기보다 무공이 높은 사람에게 시비 를 거는 일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 대한의 분수자는 본래 흉험하기 짝이 없는 병기(兵器)이지 만, 한귀풍은 자신의 무공이 훨씬 우위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 고 게다가 마침 화가 나 있던 참이라, 내심 잘됐다는 생각을 하 며 즉시 마주 상대해 갔다. 본래 과거부터 명문정파(名門正派)의 무공은 너무나도 점잖은 구석이 많아서, 강렬하고 파괴적인 사파(邪派)의 무공에 비해 상 대적으로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지금 이 한귀풍과 같은 경우는 백혈단(白血團)의 자체 내에서 개발한 실전적(實戰的)인 무공을 배웠고 또한 그런 경험 을 많이 쌓아왔기 때문에 오히려 전혀 그렇지 않다고 할 수 있었 다. 대한의 날카로운 분수자는 대여섯 개의 변환(變幻)을 일으키며 무시무시한 파공성과 함께 금방이라도 한귀풍의 호리호리한 몸을 무참히 짓이겨 버릴 듯했으나, 한귀풍의 무공은 절정(絶頂)의 경 지에 올라 있기 때문에 흡사 물이 흐르는 듯 자연스러우면서도 아슬아슬하게 그런 것들을 피해내면서 과연 이 초(二招)가 지나 지 않아 벌써 세 차례나 대한의 가슴과 어깨 등을 후려쳤다. 이 어 좌장(左掌)으로 대한의 하복부를 명중시키고 대한의 몸이 균 형(均衡)을 잃어 비틀거리는 순간 어느새 다시 장검으로 대한의 목에 바짝 들이대어 겨누고 있었다. 강호에서의 무공이라는 것은 비단 공력(功力)뿐만 아니라 경지 (境地)의 차이에 있어서도 이와 같이 심하게 우열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대한의 은빛이 번쩍이는 비늘갑옷은 비록 몇 차례의 직접적인 공격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는 했으나 검기(劍氣)에 의한 간접공 격은 막을 수가 없었고, 이어 내상(內傷)이 심해져서 신법이 크게 둔화되고 말았으므로 한귀풍의 장검(長劍)이 그의 목을 겨누자, 대한은 제아무리 호랑이의 간담을 삶아 먹은 자라고 할지라도 전 혀 꼼짝도 할 수 없게 되고 말았다. 한귀풍이 그래도 이런 녀석이 겁없이 덤벼들 때에는 혹시 무슨 다른 능력(能力)이나 흉계(凶計)가 있지 않을까 하여 어느 정도 신중을 기했었는데, 이제 보니 결국 아무것도 아닌 셈이라 다소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어이가 없어 웃으며 화검상을 향해 말했다. "이 녀석을 처치해 버릴까요, 단주님?" 화검상이 그 대한을 바라보니, 한귀풍이 화가 나 일부러 장검 에 힘을 주어 목의 살갗을 약간 베어 버렸기 때문에 가느다란 핏 물이 흐르고, 또한 내상(內傷)도 이미 적지 않게 입은 것 같은데 도 그 대한은 어이없게도 아직도 태연하기 짝이 없는 기색으로 한귀풍을 노려보고 있었다. 마치 그것은 자신은 절대로 죽지 않을 것이고 오히려 당하는 쪽은 너희들이기 때문에 불쌍하다는 듯이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 기도 했다. 만일 자신의 동료가 그와 같은 위기(危機)에 처하게 되면 당연 히 그 한편인 사람은 즉시 구하려고 애를 쓰거나 혹은 최소한 놀 라기라도 해야 할 것인데도, 이상하게도 다른 네 명의 대한들 역 시 강건너 불 구경을 하듯이 태연히 바라보기만 하고 있었다. '아니 이자들이 혹시 미친 것이 아닐까?' 화검상은 절로 이러한 괴이(怪異)한 상황에 대해 의아해 하면 서도 내심 왠지 귀찮은 일에 말려드는 것 같기도 해서 눈살을 다 소 찌푸리며 손을 내저었다. "아니, 이자들은 지금 아마도 제정신이 아닌 것 같으니 그냥 놓아 줍시다. 이런 자들을 처치해 버린다고 해서 무슨 이득이 있 겠소?" 한귀풍은 약간 불만인 듯이 다소 주저했지만 역시 자신도 이상 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에 이내 장검을 거두고 일 장이나 뒤로 물 러났다. 그 대한도 그제야 손을 들어 자신의 목에 흐르는 핏물을 닦아 내며 자신의 무공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식했는지 더 이상 공격해 오지는 않았다. 다만 이때 다른 사람, 그러니까 가운데에 있던 그 대한이 이번 에는 화검상을 노리며 분수자를 뽑아들고 공격해 들어왔다. 한귀풍과 주귀선, 그리고 서귀현 등은 그와 같은 광경을 보고 더욱 어이가 없는 듯한 표정들이었다. 화검상의 무공이라는 것은 그들도 이미 다소 실감하고 있는 것 으로, 설령 자신들이 합공(合攻)을 펼친다고 해도 되지 않을 텐데 지금 저 녀석은 또 어쩌자는 것일까? 아마도 화검상이 가장 나이도 어리고 만만하게 보였던 모양인 데, 그건 그야말로 천만의 말씀이라고 할 수가 있다. 대한의 분수자가 미처 화검상의 지척에 이르기도 전에 이미 그 것의 한쪽 끝 부분은 화검상의 손가락에 의해 잡혀 있었다. 화검상은 그럼에도 별로 놀라지도 않는 대한을 향해 말했다. "당신들은 정말 분수를 모르는군. 죽는 것이 그렇게도 소원이 라는 말인가?" 대한은 자신의 분수자가 화검상의 손가락에 잡혀서 빠져 나오 지 못하자 그만 힘을 주어 잡아빼려는 것을 포기하고서도 여전히 태연하게 노려보며 말했다. "분수를 모르는 것은 바로 너희들이다. 우리는 이제 돌아갈 테 니 어서 내 무기(武器)를 내놓아라!" 화검상은 이렇게 뻔뻔스럽고도 배짱이 좋은 사람들을 처음으로 보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거기에는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겠지만, 이런 식으로 있는 상태에서 생각을 해보는 것도 우스울 것 같았었으므로 화검 상은 이내 그 분수자를 놓아 주었다. 화검상이 그 분수자를 놓아주자 그 대한은 이내 아무렇지도 않 다는 듯이 그것을 허리춤에 다시 꽂고는 몸을 돌려 신법(身法)을 펼쳐 사라져가기 시작했다. 나머지 네 명의 백방교도들도 그것을 보자 즉시 뒤따라 신형 (身形)을 날리며 멀어지기 시작했고 이내 잠시 후에는 모두가 눈 앞에서 보이지 않게 되었다. 한귀풍이 고개를 젓고 있다각 길게 한숨을 내쉬며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정말로 미친 년석들이로군요! 당금의 강호(江湖)가 워낙에 혼 란스럽다 보니 그만 저런 미친 녀석들도 생겨나는 모양입니다." 화검상은 잠시 생각해 보다가 고개를 돌려 서귀현에게 말했다. "부단주도 그들이 미친 것이라고 생각하오?" 서귀현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미쳤다고 생각하기에 는 너무나도 침착합니다." 한귀풍은 서귀현의 말에 동조할 수 없다는 듯이 즉각 반박하며 말했다. "그것은 그놈들이 너무나도 심각하게 미쳤기 때문일 것입니다. 한번 미친 녀석들이 다시 한번 정신이 돌아버리게 되면 그렇게 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화검상은 가볍게 실소(失笑)하며 몸을 돌려 마차 쪽으로 걸음 을 옮기면서 말했다. "일단은 계속 길을 가도록 합시다. 그들이 만일 우리에게 볼일 이 있다면 머지않아 그 정체(正體)가 드러나지 않겠습니까?" 화검상이 그렇게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동방리는 과연 걱정 했던 대로 거의 의식(意識)을 잃어가고 있었다. 동방량은 계속 그러한 광경을 지켜보면서도 얼굴 가득 우울(憂 鬱)하고도 괴로운 표정만을 지을 뿐 화검상에게 한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다. 화검상은 마차 위에 올라 우선 그녀에게 약간의 진기(眞氣)를 주입시키고 나서 그녀의 의식을 일깨우자, 그녀는 다시 편안한 듯한 표정이 되었다. "당신은 아마도 새로운 군사(軍師)를 선출하는 것이 좋을 것 같군요." 화검상은 미소하며 말을 받았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전 ─────────────────────────────────────── PRINTER/CAPTURE를 정지하고 [Enter]를 누르십시오. 무림야그 출력일 :: 98/11/11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2 권 제 57 장 - 2 "그렇지 않아도 낭자가 더 힘들어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그렇 게 해야 할 것 같소. 하지만 세상에는 만약이라는 말도 있으니, 낭자가 만일 군사의 직위(職位)에서 쫓겨난 이후에 갑자기 다시 건강해 지기라도 한다면 그건 우리 백혈단(白血團)에는 더한 손 해가 되지 않겠소?" 동방리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을 받았다. "과연 나에게도 그런, '만약'이라는 말이 적용이 될까요? 아아, 정말로 그렇게만 된다면 소원이 없겠어요. 어려서부터 남들처럼 한번 건강하게 뛰노는 것이 나의 소원이었지요." 화검상이 점차로 미소를 거두고 정색(正色)을 하며 말했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거나 혹은 아직 젊은 사람이거나 더러는 마치 세상(世上)을 이미 다 알고 있는 듯이 생각하고 혹은 말하 기도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세상의 일이라는 것은 그렇게 쉽게 알 수 있는 것이 아니오. 그리고 또한 벌써부터 세상에 대한 판 단을 내리고 포기하는 것은 너무 이른 것 같소. 예를 들어 우리 가 지금 이렇게 길을 가고 있는 중이지만 도중에 또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는 일이 아니겠소?" 동방리는 다시 그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나는 일찍이 나를 위로해 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지만, 당 신처럼 그렇게 정말로 나의 마음을 잘 위로해 주는 사람은 아직 만나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당신의 그 말은 정말로 내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 주는군요." 화검상은 가볍게 실소(失笑)하며 화제를 돌려 말했다. "그건 나를 반쯤 비웃는 말로 들리는군. 그건 그렇고......, 낭자 도 조금 전의 일을 보았소?" 동방리는 길게 한숨을 들이쉰 다음에 화검상을 주시하며 미소 와 함께 말했다. "다행히 모두 보았어요. 그리고......, 저는 지금 군사(軍師)의 몸 이니 당연히 그것에 관한 제 소견을 말씀드려야 하겠지요." 화검상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시선을 돌려 뒤에 앉아 있는 동방 량을 바라보았다. "너무 무리할 것은 없소. 으음......, 너도 아마 보았을 텐데 그것 에 대한 네 의견은 어떠냐?" 동방량은 갑자기 화검상이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자 다소 뜻밖 인 듯 어리둥절해 하다가 안색이 붉어지며 더듬더듬 대답했다. "저는......, 세상의 일은 그렇게 너무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라면 즉시 그 녀석들을 모두 처치하고 바 로 길을 재촉했을 것입니다." 화검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다가 다소 의미있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너의 말에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사실 세상의 일이라는 것은 쉽게 이해하기 어려워서 복잡하게 생각할수록 더욱 그 미궁 (迷宮) 속으로 빠져들게 되기가 쉬운 것이지. 하지만 그렇다고 전 혀 아무런 노력(努力)도 하지 않고 단순하게만 행동한다는 것은 간혹 더욱 커다란 실수를 하게 되기가 쉬운 것이다." 동방리가 입을 열어 말했다. "제가 보기에도 그들은 결코 미친 사람들이 아니에요. 다만 어 떤 이유에서인지 그들은 평소의 대담한 성품(性品)들이 더욱 대 담하게 변해버린 것 같아요." 화검상은 그녀에게 고개를 돌리고 웃으며 말했다. "아니, 그들이 본래부터 대담한 성품의 사람들이라는 것은 어 떻게 알아냈소?" 동방리는 가볍게 고소(苦笑)하며 대답했다. "그건 아주 쉬운 일이지요. 만일 본래부터 대담하지 않은 사람 들이었다면 아무리 다른 노력을 기울인다고 해도 그렇게까지 대 담해지지는 않을 거예요. 그러니까 그들은 그러한 대담성 때문에 어떤 특별한 목적에 의해 많은 인원들 중에서 차출된 사람들이라 고 할 수도 있는 일이죠.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더욱 대담해지게 된 데에는 대개 두 가지의 이유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거예요." 화검상은 고개를 돌려 동방량의 표정을 한번 힐끗 살펴본 다음 에 다시 질문했다. "그런가? 거기엔 대체 어떤 이유들이 있다는 말이오?" 동방리는 의미심장하게 화검상을 바라보며 잠시 뜸을 들이다가 이윽고 말했다. "아주 희망적인 경우와 반대로 아주 절망적인 경우이죠. 사람 은 아주 희망적일 때도 더욱 대담해지게 되지만 그와 반대로 아 주 절망적일 때도 역시 마찬가지로 대담해지게 되는 법이니까요. 하지만 지금의 경우는 내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마도 그 두 가 지를 다 포함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 뭐 라고 말씀드릴 수가 없지만 말이에요." 화검상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알 수 없다는 듯이 혼자말로 중얼 거렸다. "희망적이기도 하고 절망적이기도 한 경우라......? 정말 갈수록 복잡하게 되어 가는군. 하지만 어쨌든 그들이 미친 것이 아니라 면 거기에는 반드시 무슨 일이 있는 것이니 일단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 좋겠군." 이어 화검상은 이번에는 소리내지 않고 마음속으로 중얼거렸 다. '대체 내가 아는 어떤 낭자들이 그들에게 잡혀 있다는 말일까? 과연 그들의 그러한 말이 모두 사실일까......?' 마차가 달리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시 정지했고, 이번에는 한귀풍이 직접 달려와서 화검상에게 화난 음성으로 보 고했다. "이젠 아예 저 녀석들이 길 가운데에 주저앉아 술판을 벌이고 있군요! 단주님께서는 정말로 저런 녀석들에게 계속 좋게 대해 주실 생각이십니까? 이러다간 혹시 저 녀석들의 지연술책에 걸려 들게 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으음, 술판이라......, 술판을 벌이고 있다고......?' 문득 그런 얘기를 듣고 나자 불현듯 과거 그가 화산에서 여러 사람들에게 그와 비슷한 방법으로 희롱당했던 일들이 뇌리를 스 치며 감회가 새로워지는 것 같았다. "일단 그곳으로 가서 무슨 일인지 알아보기로 합시다!" 마차가 있는 자리에서는 잘 보이지 않지만 좌측으로 굽어져 있 는 고갯길을 돌아가자, 과연 그 아래쪽의 길 중앙에 아까 보았던 그 다섯 명의 대한들이 자리도 깔지 않고 바닥에 주저앉아서 술 판을 벌이고 있었다. 언제 준비해 놓은 것인지 커다란 술통 대여섯 개가 그들이 둘 러앉은 자리의 가운데에 놓여 있었고, 안주도 없었고 술잔도 없 었으며 다만 그들은 그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게 각기 번갈아 술 통을 집어들고 그대로 술로 목욕을 하듯 마셔 대고 있었다. 아까 한귀풍에게 당했던 그 대한은 상처를 입은 목 부위에 흰 천을 둘둘 감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술을 마시는 것만큼은 거북 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벌써 뱃속으로 상당한 양의 술이 들어간 듯 그들은 이미 어느 정도 취기가 돌아 간혹 큰소리로 고함을 지르거나 떠들어대고 있 었다. "빌어먹을! 왜 술이 이것밖에 없다는 것을 미리 말해 주지 않 았느냐는 말이다! 이래서야 어디 제대로 일이 되겠나?" "이봐, 이봐, 술을 그렇게 너무 쏟아 버리지 말라구. 자네는 이 미 다섯 근의 술을 마셨지만 그러는 동안에 이미 열 근의 술을 쏟아 버리고 말았다구." "그래서 어쨌다는 거야? 내가 이런 술 한잔도 마실 수 없는 무 능력한 인간으로 보인다는 말인가? 자꾸 그런 소리를 한다면 네 주둥이를 갈겨 버리고 말겠다!" "왜들 그렇게 또다시 싸우려고 그러나? 어차피 우리는 지금 한 배를 탄 몸들이 아닌가? 빌어먹을, 그 이상한 녀석을 생각하니 다시 오줌이 마렵군. 으음, 잠시 갈기고 올 테니 기다리게......!" 아마도 그들은 정말로 그렇게 대담무쌍한 것이 아니라 거기에 절반쯤은 허풍들이 섞여 있는 것 같기도 했다. 혹시 그들은 자신들의 위축되어 가는 대담성을 북돋우기 위해 이렇게 질펀한 술판을 벌이고 있는 것이 아닐까? 대한들 중의 하나는 일부러 비틀거리는 듯하면서 이쪽으로 조 금 걸어와서 갑옷을 걷어올리고 이쪽을 향해 오줌을 갈기기도 했 다. 화검상은 그러한 모습을 동방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다행스러 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서귀현은 눈살을 심하게 찌푸리며 그 광경을 주시하고 있다가 화검상이 다가오자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네놈들이 정말 죽고 싶어서 환장했구나. 세상에 아무리 좋은 것들이 많아도 목숨은 하나뿐이라는 것을 모른다는 말이냐?" 이쪽을 향해 오줌을 갈기고 있던 대한은 그 말을 듣자 천연덕 스럽게 웃으며 이렇게 대꾸했다. "후후후, 너희들이 만일 우리를 죽인다면 그 대신 걸레 조각이 되는 계집년이 하나 있을 거다. 하하하! 어디 마음대로 해보아라, 네놈은 언제 한번 사람들을 향해 오줌이라도 갈겨 보았느냐?" 서귀현이 화검상을 바라보았으므로, 화검상은 고개를 끄덕여서 그가 앞으로 취할 행동에 대해서 허락의 뜻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가장 먼저 행동을 취한 사람은 서귀현이 아니라 한쪽에 말없이 서 있던 주귀선이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ЕЕ 무림야그 출력일 :: 98/11/11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2 권 제 57 장 - 3 주귀선은 평소에는 별로 말이 없었으나 일단 행동을 취하기 시 작하자 다른 사람들보다도 더 주저함이 없었고 더욱 빠른 것 같 았다. 그는 먼저 가능한 한 더 멀리 세차게 오줌을 누어 보이려고 하 는 그 대한에게 다가가 빠르게 발길질로 면상을 후려찼으며, 연 이어 빙글빙글 좌우측으로 돌아가며 검법을 전개하여 녀석의 왼 쪽 팔을 잘라 버렸다. 그 대한은 한창 오줌을 누고 있는 상황이라 행동이 불편하였을 뿐만 아니라, 설령 제정신으로 정당하게 비무를 한다고 해도 도 저히 주귀선의 상대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오줌을 누던 대한이 그렇게 당하고 나자 갑자기 술을 마시던 다른 대한들의 안색이 일변했고, 그들은 일순 술이 확 깨는 것 같은 모습들이었다. 주귀선은 벌렁 나가떨어져서 피가 철철 흐르는 왼쪽 팔을 움켜 쥐고 있는 대한에게 다시 다가들어 목에 장검을 들이대며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 "네녀석의 그 물건은 정말 작고 보잘것없어서 나를 화나게 만 든다. 그런데도 계속 그것을 자랑하고 싶다면 내가 당장 보이지 않게 해주겠다, 알겠느냐!" 화검상은 한쪽에 서서 지켜보고 있다가 주귀선의 이러한 특이 한 수법에 흥미를 느끼고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안된 일이로군. 저 녀석의 물건은 비록 보잘것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괜찮은 편이었다. 그래서 아마도 자랑을 하려고 했을 것인데, 저 사람은 너무 그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군......!' 대한은 이미 주귀선의 무공을 경험했고 게다가 그가 도무지 인 정사정없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만 안색이 창백해지며 손끝이 떨 리기 시작했고, 더불어 말소리도 떨려나오기 시작했다. "아, 알겠소. 이......, 하지만, 그것만은 봐주시오. 당신도 사내라 면 그런 것쯤은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것이오." 주귀선은 다시 검법의 변환을 일으켜 십여 개의 매화송이를 그 려냈다. 그의 장검은 대한의 머리와 목, 가슴 부위를 맴도는 것 같았는 데, 어느새 대한의 허벅지를 깊숙이 베어놓고 있었다. 대한은 이미 그 대담성을 상실하고 말았기 때문에 그만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네놈은 스스로 아무런 잘못도 없다고 생각한다는 말이냐?" 대한은 자칫 잘못했다가는 또 다른 곳에 상처를 입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므로 놀란 기색이 되어 얼른 변명하기 시작했다. "아, 아니오. 나, 나는 잘못했소. 크흐흐......! 나는 과연 여러 대 협분들께 지나친 실례를 저지르고 말았소. 하지만 제발이지 이젠 뉘우쳤으니 이쯤에서 더 이상 나를 해치지는 말아 주시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더 무림야그 출력일 :: 98/11/11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2 권 제 58 장 북망산(北邙山) 제 58 장 북망산(北邙山) 서귀현은 주귀선이 먼저 나섰기 때문에 잠시 그의 행동을 지켜 보고 있다가 이윽고 나서서 그 대한에게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 "네놈은 대담한 것이 아니라 알고 보니 교활(狡猾)한 것이었군! 좋다, 네놈을 살려줄 수도 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네놈이 모든 사실을 자세야 할 것이다." 대한은 상황이 아주 나쁘게 변하자 안색이 흙빛이 되었지만 그 러나 잠시 생각해 보는 듯하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것만은 안 되겠소. 당신들이 만일 그녀들을 구하려면 역시 우리에게 순순히 항복하고 요구조건에 응하는 것이 좋을 것이 오.......' 하지만 갑자기 이상하게도 그 말은 그의 입안에서만 맴돌 뿐 입밖으로 흘러나오지 않았다. 어느새 화검상이 그 대한의 옆에 다가와 있었으며, 그는 즉시 대한의 입에 귀를 가까이 들이대는 듯하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흐음, 우선 저기에 있는 저자들을 모조리 처치해야만 말할 수 가 있다고? 흐으......, 하지만 그들은 당신의 동료들인 것 같은데 그건 좀......, 잔인한 일이 아니겠소?" 대한은 갑자기 자신의 아혈(啞穴)이 제압되었을 뿐만 아니라, 마치 자신이 그와 같은 말을 한 것처럼 동료들이 오해할 소지가 많은 듯하여, 눈을 크게 뜨며 황급히 다른 대한들을 돌아보았다. 다른 대한들은 이미 술이 완전히 깨어 있는 상태인 데다 그와 같은 말을 듣게 되자, 그만 서로를 돌아보더니 즉시 슬그머니 몸 을 일으켜서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처음에는 감히 노골적으로 신법(身法)을 펼치지 못했지 만 다소 거리가 멀어지자 이내 황급히 신법을 펼쳐서 사라져버리 고 말았다. 서귀현은 대한들이 그렇게 달아나는 것을 그대로 방치해도 좋 을지 몰라서 화검상을 바라보았으나, 그의 안색이 태평스러운 것 을 보고 다소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가만히 있었다. 동료들이 모두 달아난 이후에 그 대한은 다시 자신의 아혈(啞 穴)이 풀린 것을 알고 크게 화를 내며 소리쳤다. "이런 법이 어디 있소? 당신들은 양심이 있소, 없소? 그들은 모두 나를 오해했을 것이 아니오?" 한귀풍이 어느 사이에 다가와 대한의 따귀를 후려치며 말했다. "이 더러운 녀석! 그러니 네놈은 어서 모든 것을 사실대로 말 해야 할 것이다! 감히 어디서 큰소리를 치느냐?" 대한은 이번에는 이빨이 대여섯 개가 부러지고 입안에서 피가 왈칵 쏟아져 나왔지만 눈알을 부라리며 다시 큰소리로 말했다. "좋소, 좋아! 당신들은 알아서 하시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당신들에게 말할 것이 없으니 당신들도 헛수고를 하게 될 것이 오!" 평소에 침착하기만 하던 서귀현도 그런 말을 듣자 약간 안색이 변하는 것 같았다. 세상이 어수선해지다 보니 약삭빠른 사람들만 늘어나고 정말 기골(氣骨)이 있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어려워졌다. 이 녀석은 비록 다소 교활하기도 하고 정말 기골이 있다고는 말할 수가 없겠으나 그래도 지금의 이 모습은 발악이라기보다는 다소의 기골이 엿보인다고도 말할 수가 있었다. 이런 녀석이 제멋대로 고집을 부리기 시작한다면 일이 생각외 로 어려워질 수도 있지 않겠는가? 화검상은 이미 출혈이 심한 대한의 상처 부위의 혈도를 점혈하 여 지혈시킨 다음에 다소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그래도 당신은 그녀들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말할 수가 있을 것이 아니오? 만일 당신이 그 얘기만 한다면 나는 즉시 당신을 놓아주도록 하겠소." 대한은 고개를 돌려 잠시 화검상을 바라보다가 이윽고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으며 말했다. "보아하니 당신은 그리 영웅호걸(英雄豪傑)같이 보이지 않는 걸? 내가 당신 같은 사람의 말을 어떻게 믿을 수가 있겠소?" 한귀풍이 다시 화가 나서 대한의 따귀를 후려치며 소리쳤다. "네놈이 감히 지금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 줄 아느냐? 네놈 이 계속 그런 말을 늘어놓는다면 우리는 당장 네놈을 요절내 버 리고 즉시 달려가서 알아보면 그만이다!" 대한은 다시 이빨이 두 개나 더 부러져 나가자, 더 이상 고집 을 부리는 것은 자신에게 손해라고 판단했는지 잔뜩 눈살을 찌푸 리며 말하기 시작했다. "조, 좋소. 그러니까......, 그 두 계집들은 무슨 명문정파라는 화 산파......, 당신들은 그 이름을 알고나 있소? 아, 당연히 당신은 알 고 있겠지. 그러니까 그 두 계집들은 우라질 화산파의 계집들이 오......!" 한귀풍은 다시 노화가 치밀어 발길질로 대한의 가슴팍을 후려 차 버렸고, 대한은 우지끈, 하고 갈비뼈가 부러져 나가는 소리와 함께 뒤로 일 장이나 데굴데굴 굴러가 버렸다. "뭐라고, 네놈은 감히 우라질......, 우라질 화산파라고 했느냐?" 대한은 심한 고통과 함께 가슴이 답답해 오는지 잠시 누운 채 로 숨을 고르고 있다가 가벼운 기침을 해대며 변명하듯 말했다. "나는 그냥 우라지, 에취! 그냥 우라질이라고 한 것이지 화산파 를 우라질이라고 한 것이 아니오. 우라질, 나를 이런 식으로 자꾸 기분 상하게 한다면 에취! 나는 더 이상 말하지 않겠소." 화검상은 가볍게 손을 내저어 허공을 격하고 대한의 부러진 갈 비뼈를 맞춰주고 내상을 치료해 주며, 다시 부드러운 어조로 말 했다. "당신이 만일 그 낭자(娘子)들의 이름을 말한다면 나는 즉시 당신을 풀어주도록 하겠소. 그것이야말로 실로 서로 기분이 상하 지 않는 좋은 일이 아니겠소?" 뜻밖에도 대한의 입에서 화산파라는 말이 나왔기 때문에 화검 상은 이상스럽기도 했지만 놀라기도 했다. 대한의 말을 십분 그대로 다 믿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그렇 다고 전혀 다 거짓말이라고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기에 화검상은 다소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약간 긴장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대체 화산파의 어떤 낭자(娘子)가 이쪽으로 온 것이며, 또한 무 엇 때문에 저런 녹림도적들에게 잡혀 있다는 것일까? 대한은 화검상의 신기(神奇)한 능력(能力)을 다시 경험하고는 그제야 그를 다르게 보기 시작했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화검상 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이윽고 다시 말했다. "당신들은 나를 너무 귀찮게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거요. 그 계 집들의 이름은 사실 나는 분명히 알고 있소. 무슨 여, 여검림(余 劍琳)과 악검춘(岳劍春)이라고 했소." 서귀현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을 받았다. "그런 사람은 화산파에는 없다. 혹시 그녀들은 여검월(余劍月) 과 악검림(岳劍林)이 아니냐? 대한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내 능글맞게 웃으며 음탕(淫蕩) 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소. 바로 그렇소. 여검월(余劍月)과 악검림(岳劍林)이오. 당신은 제법 나이도 많은 것 같은데 재주도 좋은 것 같소. 어느 새 그런 야들야들한 계집들을 둘이나 손에 넣었다니......, 세상의 계집들은 정말로 우리와 같은 영웅호걸(英雄豪傑)들을 몰라본단 말이야. 만일 나에게 온다면 하늘나라가 어떤 것인지 보여줄 수 있을 텐데 말이야! 아, 하지만 당신이 그 계집들을 독차지하고 싶 다면 그건 말리지 않겠소." 서귀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전음입밀(傳 音入密)로 화검상에게 물었다. "이 녀석을 이제 어떻게 할까요?" 화검상은 가만히 입가에 미소를 떠올리고 있다가 이윽고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그만 보내주시오. 어떻게 된 일인지는 좀더 가보면 알게 되겠 지." 대한은 눈빛을 빠르게 굴리면서 다른 사람들의 표정을 살피다 가 이내 짐짓 호탕하게 껄껄 웃으면서 소리쳤다. "하하하, 당신 제법인걸? 나이도 많지 않은데 그런 영웅(英雄) 의 풍도가 있다는 것은, 흐흐흐! 제법 가능성(可能性)이 엿보이는 것 같소. 나중에라도 다시 만나게 되면 술이나 한잔하도록 합시 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듣 무림야그 출력일 :: 98/11/11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2 권 제 58 장 - 1 "과연 정말로 악사매(岳師妹)와 여사매(余師妹)가 그들에게 붙 잡혀 있는 것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정말로 그 말이 사실이라면 그 들이 일부러 그런 사람들을 보내서 마치 시간을 지체시키는 것처 럼 이런저런 수단을 부리지는 않았을 거예요. 나는 거기에는 필 시 어떤 다른 복잡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만일 다른 복잡한 이유가 있다면, 그 녹림맹(綠林盟)과 우리 백혈단(白血團)에 어떤 다른 복잡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 하시오?" 동방리는 고개를 저으며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그건 아직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마도 얼마 후면 저절로 그 러한 이유들을 알게 되겠지요." 마차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고 주위는 이미 상당히 어둑어둑해 졌다. 마차를 몰고 있는 마부는 그러지 않아도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 었는데 조금 전에 그러한 사건들을 겪게 되자, 빨리 이곳을 벗어 나고 싶은지 시키지도 않았는데 점점 더 마차를 빨리 몰아가고 있었다. 낙양성(洛陽城)의 북쪽에는 망산(邙山)이 있는데 이제 그 고개 만 넘어가면 바로 성시(城市)에 들어서는 것으로 안전하게 될 것 이다. 오귀문이 마차의 옆에서 신법(身法)을 펼쳐 달리고 있다가 다 가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상한 일이군요. 어째서 아무런 소식도 없을까요? 혹시 우리 가 다른 길로 돌아와 버린 것이 아닐까요?" 만일 그들이 일부러 지연술책을 펼친 것이라면, 그것은 역(逆) 으로 생각해 보면 일행이 반드시 그곳에 가봐야 할 일이 있다는 말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다. 이제 마차는 빠르게 고개를 넘어서 내리막길을 달리고 있는 상 황인데, 그 아래쪽으로 무슨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지는 않 고 게다가 낙양성 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 리도 없을 것 이 아니겠는가? 화검상이 여전히 잠자코 침묵만을 지키자 오귀문은 다시 입을 열어 말했다. "만일 이 일이 중요한 사안(事案)이라면 우리는 다시 길을 돌 아가는 일이 있더라도 한번 주위를 살펴보는 것이 좋을 듯합니 다." 그때 앞쪽에서 주위를 정찰하며 나아가고 있던 서귀현이 급히 돌아와 화검상을 향해 말했다. "저 우측의 안쪽으로 무슨 사건이 벌어지고 잇는 듯합니다. 지 금 곧 가보시겠습니까?" 화검상은 그제야 입가에 가느다란 미소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 덕였다. "좋소, 가봅시다! 부단주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먼저 그곳으로 가보도록 하시오. 나는 나머지 사람들을 데리고 뒤따라가도록 하 겠소." 동방리는 옆에서 듣고 있다가 즉시 나서서 말했다. "촌각을 다투는 일일지도 모르니 단주님께서는 저를 상관하지 마시고 어서 다녀오세요. 저는 동생과 함께 이곳에 남아 있도록 하겠어요." 화검상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두 팔로 그녀의 몸을 안아들었다. "도중에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니 이렇게 하는 것이 더욱 안전(安全)할 것이오. 으음, 너도 어서 함께 가도록 하자!" 서귀현과 오귀문 등은 이미 화검상의 지시를 받고 나서 그쪽으 로 빠르게 사라져 버렸다. 동방리는 화검상의 품에 안기게 되자 그만 안색이 가볍게 상기 되었는데, 동방량은 그러한 자신의 누나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이 내 신법(身法)을 펼쳐서 두 사람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화검상에게는 이런 처녀 하나 안고 있다고 해서 전혀 문제될 것은 없겠으나, 동방량의 무공이 아직 수준이 낮은 편이라서 그 와 속도를 맞추다 보니 그 세 사람이 나아가는 속도는 자연 다른 사람들보다 느려질 수밖에 없었다. 세 사람은 거대한 공동묘지를 지나고 있었는데, 마치 이 부근 은 산 전체가 묘지로 변해 버린 것 같았고, 사방이 어두워지자 음산(陰散)한 바람이 불어오며 흡사 금방이라도 주둥이에 피를 가득 묻힌 여우 등이 나타날 것만 같았다.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 곳은 그 공동묘지를 지나서 좀더 안쪽으 로 들어가면 산세(山勢)가 다소 작은 숲이 나오는데, 간간이 시끄 러운 소음이 들려오는 것으로 보아 바로 그쪽인 듯했다. "정말로 무덤들이 많이 있군요.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곳에 죽어서 묻혀 있는 것일까요? 저런 초라한 봉분들조차 없이 그냥 묻혀 버린 사람들도 있을 테니......, 으레 사람이란 한번 세 상에 태어나면 이렇게 되어 버리는 것이겠죠." 이윽고 그 작은 숲에 도착하자,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서로 어울려 격전(激戰)을 벌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고, 가장 먼저 세 사람을 맞이하는 사람들은 바로 그 은빛의 비늘갑옷을 걸친 백교방(白蛟幇)의 방도(幇徒)들이었다. 갑자기 어둡고 무성한 숲속에서 분수자(分水刺) 세 개가 느닷 없이 소리없이 덮쳐드는 바람에 동방량은 하마터면 거기에 이리 저리 몰려 몸이 꼬치처럼 꿰일 뻔했다. 그들 백방교도들의 무공은 하나같이 동방량보다 낮은 수준이 아니었다. 동방량이 황급히 몸을 움직여 간신히 하나의 분수자를 피해내 고 이어 그 와증에서 장검(長劍)을 뽑아 다른 분수자들을 상대하 려고 했을 때, 하나의 분수자가 그의 오른쪽 어깨를 막 꿰뚫으려 고 했으나 순간 어찌 된 셈인지 그들 세 명이 동시에 뒤로 벌렁 나가떨어졌다. 화검상이 어느새 무형지기(無形之氣)를 사용하여 그들을 제압 해 버린 것이다. 동방량은 워낙에 갑자기 심하게 몰리던 상황이라 미처 그런 상 황을 눈치채지 못하고 정신없이 반격(反擊)을 가하던 도중 넘어 진 그들의 팔과 다리를 하나씩 잘라놓고 말았으며, 그 때문에 그 두 명이 고통스런 비명을 내질렀다. 화검상의 주위에도 적(敵)들이 대여섯 명이나 한꺼번에 덮쳐들 었는데, 역시 그들도 화검상이 손을 쓰는 것 같지도 않았는데도 하나같이 벌렁벌렁 나가떨어졌다. 지금 화검상의 무공의 경지(境地)로는 광검(光劍)을 사용할 수 가 있는 단계이므로 무형지기(無形之氣)는 심히 영민해져서 심즉 살(心卽殺), 즉 마음먹은 대로 그들을 죽일 수도 있을 것이다. 무형지기가 유형화(有形化)된 광검(光劍)으로 나타나지 않는 것 은 그가 손속을 약하게 쓰고 있기 때문이리라. 갑자기 앞장서서 달려들던 무리들이 그렇게 어이없게 하나같이 나동그라지자 뒤에서 따라오던 다른 수십 명의 사람들이 앞서 크 게 의아해 하며 멈칫했다. 화검상은 동방량의 안전을 위해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며 한편 으로 말했다. "매화검법(梅花劍法)은 흔히 말하듯이 변화(變化)가 많은 검법 이지만 그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어져야 한다. 그래야만 그 속의 보이지 않는 변화까지 시전할 수가 있는 것이다. 너는 아무래도 아직 상승경지(上乘境地)에 오르지 못해서 흐름이 자연스럽지 못 하구나." 동방리는 방금 전에 동생의 위험했던 상황을 보았기 때문에 동 생의 안목(眼目)을 높여주기 위해서 그 말을 듣자 즉시 입을 열 어 물었다. "대개 매화검법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들은 초식(招式)에 따라 변환(變換)의 숫자가 정해져 있지 않다고 말들을 하지만, 초심자 들이 보기에는 일 초(一招)보다는 이 초(二招)가, 이 초보다는 삼 초(三招)가 더 변환이 많은 것으로 느껴져요. 그것은 대체 왜 그 렇죠?" 화검상은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내려다보고는 동방량 쪽을 힐끗 바라보며 대답했다. "매화검법의 초반에는 힘을 위주로 하고 중반에는 쾌속(快速) 함을 위주로 하며 후반에는 변화(變化)를 위주로 하오. 힘을 위주 로 하기 때문에 초반에는 그러한 변화들이 대개 그 힘을 향해 집 중되는 성향을 가지며, 변환들이 겹치거나 미세해지기 때문에 초 심자들은 그러한 변환들을 잘 인식할 수가 없게 되는 것이오. 하 지만 무공이 높아지게 되면 능히 그러한 변환들을 구분할 수가 있게 되고, 혹은 무공이 더 높은 경지(境地)에 오르게 되면 비단 그 변환들의 속성을 일일이 알아낼 수가 있을 뿐만 아니라 거기 에 속지 않게 되는 것이오. 그러니까 이 변환이라는 것은 말 그 대로 겉으로 드러나는 눈속임과도 같은 착각으로서, 무학(武學)상 으로는 그다지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는 할 수 없소."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었다 무림야그 출력일 :: 98/11/11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2 권 제 58 장 - 2 동방리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다. "아, 그러니까 변환이라는 것은 힘과 속도, 그리고 변화, 이 세 가지가 함께 어우러져야 나타나는 것이므로 그 사람의 무공경지 와 관계가 있는 것이지, 역시 단순한 어떤 초식에 따라 그 변환 의 숫자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로군요?" 화검상은 미소하며 다시 말했다. "매화검법은 따라서 끊임없이 순환되는 것이며, 마지막 초식(招 式)인 삼십육 초(三十六招) 매화만리향(梅花萬里香)을 연마(練磨) 한 다음에 다시 일 초(一招)인 매화점점(梅花點點)으로 돌아오면 더욱 그 극의(極意)를 알게 되고 점차로 깊은 경지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오. 다른 명문정파(名門正派)의 무공들도 대개 이러한 특성들을 가지고 있으며, 비록 배우는 속도가 느려지기는 하겠지 만 하나의 초식이라는 끝없는 경지를 알게 되는 것이오." 동방리는 눈빛을 빛내며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소위 명문정파의 무공들이라는 것은 사람들이 오랜 시 간에 걸쳐서 배우고 또한 오래도록 전해져 내려오는 것이로군요? 하지만 간혹 사파(師派) 등에서 위력이 강력한 속성(速成)의 무공 이 나오기도 하는데, 그건 아무래도 잘못된 것이겠죠?" 화검상은 그 말에 다소 정색(正色)을 하고 동방량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흔히들 명문정파의 무공들을 온갖 현학적인 말로써 비방하기 도 하는데, 그건 완전히 잘못된 것이며 그 사람들은 비단 정파 (正派)의 무공에 대해서 모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무학(武學)의 근본 이치에 대해서도 모르고 있는 것이오. 명문정파의 무공이 어렵고 대단히 복잡해 보이는 것 같은 것은 당연히 그럴 만한 이 유가 있는 것이며, 만일 그러한 것들을 간과(看過)하고 한쪽으로 치우친 오류에 빠지게 된다면, 그것은 비단 남을 해칠 뿐만 아니 라 자신을 해치고 결국에는 중도에서 좌절하거나 처음부터 다시 배우지 않으면 안될 것이오." 동방리는 웃으며 말을 받았다. "아, 그래서 그런 속성(速成)의 무공들은 한때 반짝하더라도 그 생명력이 오래가지 못하게 되는 것이로군요?" 놀랍게도 지금 이 작은 숲에 몰려와 있는 백교방도들의 숫자는 거의 수백 명이나 되는 것 같았다. 혹시 그 백교방(白蛟幇)의 인원들이 한꺼번에 모두 이곳에 출 동해 있는 것이 아닐까? 앞쪽으로 좀더 나아가자 이내 두 곳에서 치열하게 접전(接戰) 을 벌이고 있었으며, 그쪽이 가장 싸움이 격렬해 보이고 사상자 (死傷者)도 많이 나는 것 같았다. 서귀현 등 다섯 명은 그래도 백교방도들보다 무공이 우위에 있 어서 비록 수십 명의 적들과 상대하여 곤란한 지경에 처하기는 했지만, 죽거나 심하게 다치는 사람들은 대개 백교방(白蛟幇)의 사람들일 뿐 그들은 아직 그다지 심한 부상을 입은 것 같지는 않 았다. 서귀현 등을 상대하고서도 남은 인원들이 한꺼번에 화검상이 있는 쪽으로 몰려들었는데, 간간이 동방량이 앞에 나서서 한두 명의 백교방들과 격전(激戰)을 벌일 뿐, 동방리를 안은 화검상은 거의 무인지경(無人之境)을 달리듯 적들을 제압하여 신형(身形)을 옮겨 서귀현 등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무공이 가장 높은 서귀현은 그래도 거의 무사한 편이었으나, 나머지 네 명의 사람들은 비록 심하지는 않지만 이미 여기저기에 많은 부상을 입고서 마치 전신(全身)을 피로 목욕한 듯 보였다. 백교방도들은 처음에는 계속해서 화검상의 주위로 덮쳐들려고 했지만 이내 모두들 제압되고 나동그라지곤 하자 드디어 더 이상 저돌적으로 덤벼드는 자들이 없어졌으며, 자연 그의 주위에는 둥 글고 제법 넓은 빈 공간(空間)이 생겨나게 되었다. 서귀현 등은 잠깐 동안 싸운 것이지만 실로 너무나도 참혹하고 살벌한 격전(激戰)을 치른 것이라 막 심리적으로도 지쳐가고 있 었는데, 화검상이 다가와서 적들을 제압해 물리치는 바람에 겨우 한숨을 돌리고 쉴 수 있었다. 동방리가 그들의 흉해진 몰골을 보고는 그만 웃으며 말했다. "당신들은 지금 대체 여기까지 들어와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거 죠? 나는 아마도 당신들이 먼저 멀찌감치 비켜서서 정세(情勢)를 파악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말이에요." 서귀현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받아 입을 열었다. "하긴, 우리도 그게 이상하고 우습기도 하오. 사실 우리도 처음 에 이곳에 왔을 때는 먼저 형세판단을 하고서 단주님을 기다리려 고 했었지, 이렇게 많은 놈들과 접전(接戰)부터 벌일 생각을 없었 소.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놈들은 우리를 미리 기다리고 있다가 유인한 뒤에 한꺼번에 공격해 오는 것 같았소." 동방리는 가볍게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렇다면 정말 이상한 일이로군요. 이들은 벌써부터 우리를 노리고 있었던 것일까요? 아......, 주대협(朱大俠)께선 몸이 아직 견딜 만하신가요?" 주귀선(朱歸善)은 무공이 다섯 명 중에서 가장 떨어지는 데다 가 성격도 저돌적인 편이어서 그런지 부상이 가장 심한 편이었 다. 그래도 그다지 심각한 정도는 아니지만, 그의 양 어깨와 팔다 리, 그리고 가슴 등에서 피가 줄줄 흘러나오고 있었다. 주귀선은 우선 손수 상처 부위들을 점혈(點穴)하여 지혈(止血) 시킨 다음에 역시 그 무뚝뚝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나는 아직 괜찮소." 화검상은 잠시 그들의 모습을 둘러보다가 고개를 돌려 걸음을 옮겨가며 말했다. "그럼 안쪽에 무슨 일이 있는 것인지 좀더 들어가보도록 합시 다." 화검상의 그 놀라운 무공(武功) 때문에 백교방도들의 움직임이 많이 위축되었고, 그에 반해서 서귀현 등의 기세(氣勢)는 크게 상 승되어 이제부터는 화검상이 거의 무공을 사용하지 않아도 서귀 현 등이 먼저 앞장서서 움직여 파죽지세(破竹之勢)로 길을 열어 가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어이없게도 심하게 당한 꼴이어서 그들은 내심 격 분(격분)해 있었으므로 자연 무자비한 살수(殺手)를 쓰게 되었는 데, 그 바람에 백교방도들은 더러 공포감(恐怖感)을 느끼기 시작 했는지 뒤로 주춤주춤 물러나고 있었다. 무공이 아주 높은 사람들은 정신수양도 대단하므로 거의 해당 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어울려 싸우는 데에는 그 기세(氣勢)라는 것도 상당히 중요한 몫을 차지 하게 된다. 서귀현은 이미 격전(激戰)이 벌어지고 있는 또 다른 장소를 파 악해 두었는지 그가 주축이 되어 마치 수많은 늑대들 속을 누비 는 성난 호랑이들처럼 날뛰며 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는데, 이내 얼마 지나지 않아 일행은 비록 작지만 험하게 느껴지는 하 나의 계곡(溪谷)으로 들어섰고, 또한 그곳에서 벌어지는 그 의문 스럽던 상황을 한눈에 바라볼 수가 있었다. 동방리가 일순 가볍게 놀란 표정으로 화검상을 바라보며 말했 다. "아, 저들은......, 저들이 바로 화산파(華山派)의 그 사람들인가 요?" 화검상은 비록 겉으로 놀라는 기색(氣色)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내심은 그녀보다도 더 감정(感情)의 변화를 일으키고 있었다. 그 작은 계곡은 마치 호리병처럼 입구(入口)는 비좁고 안쪽은 둥글게 제법 넓어서 소수의 인원이 다수를 상대하기가 수월한 지 형(地形)이었고, 게다가 양쪽의 절벽을 따라 신법(身法)을 펼쳐 내려가 포위하기도 곤란한, 그런 곳이었다. 지금 세 명의 화검상의 눈에 익은 사람들이 십여 명의 백교방 (白蛟幇)의 사람들과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었는데, 한 사람은 이미 계곡의 안으로 진입해 있는 대여섯 명의 사람과 상대하고 있고 나머지 두 사람은 계속 안으로 진입하려는 다른 사람들을 격퇴시키고 있는 상태였다. 아무리 이런 지형상의 이점을 십분 활용하고 있다고 해도 그렇 게 고작 세 명으로 이 많은 적들을 상대한다는 것은 어려운 법인 데, 그러나 지금 안에 진입해 있는 대여섯 명의 비교적 무공이 높은 고수(高手)들과 상대하고 있는 그 사람의 무공(武功)이 그들 보다도 훨씬 높았기에 가능한 일인 것 같았다. 놀랍게도 바로 그 무공이 월등히 높은 사람은 화산파(華山派) 의 녹귀보(鹿歸寶)였다. 거의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지만 정말로 그 녹귀보와 함께 적들 을 막아내고 있는 다른 두 사람은 악검림(岳劍林)과 여검월(余劍 月)이었고, 대체 어찌 된 일인지는 알 수 없겠지만 이미 제법 오 랫동안 격전(激戰) 속에서 버텨온 듯 그녀들은 지금 상당히 지쳐 보이고 제법 많은 부상을 입고 있는 것 같았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었다 무림야그 출력일 :: 98/11/11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2 권 제 58 장 - 3 다행이라면 그녀들의 무공(武功)이 다른 백교방도들보다 우위 에 있었고, 게다가 옆에서 무공이 훨씬 높은 녹귀보가 계속해서 도와주고 있었기에 이제까지 그다지 심각한 부상(負傷)은 입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귀풍이 다소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반쯤 냉소(冷笑) 하며 말했다. "알고 보니 아직 붙잡힌 것도 아니고, 그리 대단한 상황도 아 니었군그래!" 사실 이 화산파의 사람들은 백혈단(白血團)의 사람들과 그 근 본의 뿌리는 같으면서도 지금은 가장 심하게 감정이 얽혀 있는 적(敵)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일행은 그러니까 지금 양쪽의 적들이 서로 싸우는 광경을 바라 보고 있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으리라. 서귀현이 달려드는 두 녀석 중 한 녀석의 머리를 발로 후려차 서 짓뭉개 버리고, 이어 다른 녀석의 은빛 비늘갑옷을 장검(長劍) 으로 갈라 가슴을 절반이나 베어버린 다음 어느새 돌아와 화검상 을 향해 말했다. "정말로 화산파(華山派)의 사람들이 저기에 있군요. 이제 어떻 게 하시겠습니까?" 화검상을 제외한다면 일행 중에서 서귀현의 무공이 그래도 가 장 높지만 그도 역시 지금 여기저기에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리고 있었다. 화검상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다시 한번 전면의 상황을 바라 본 다음에 대꾸했다. "그들도 역시 우리와는 뿌리가 같고, 또한 앞으로는 우리가 정 기(正氣)를 회복시킨 다음에 화합(和合)하여 잘 지내야 할 것이니 일단 지금은 구해주도록 합시다." 양귀해가 장력(掌力)으로 상대를 연달아 세 번이나 후려치고 뒤로 훌훌 공중회전을 하며 날아 화검상의 앞에 떨어져내리며 다 소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 "우리야 그럴 수 있다고 쳐도, 저자들이 우리와 과연 화합하려 고 하시겠습니까?" 화검상은 앞으로 신형(身形)을 옮겨가며 약간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쨌든 우리가 힘을 합쳐서 노력(努力)하다 보면 저들도 마음 이 달라지게 되는 날이 오게 될 것이오." 화검상이 앞으로 전진하면서 십수 명이나 되는 백교방도들을 한꺼번에 제압하여 쓰러뜨렸기 때문에 나머지 사람들이 놀라 어 지러이 흩어지고, 일행에게는 계곡의 진입을 가로막는 장애(障碍) 가 사라져서 길이 훤히 트이게 되었다. 동방리가 문득 말했다. "나를 그만 내려줘요. 저들이 보면 우리를 이상한 사이라고 오 해(誤解)하겠어요." 악검림과 여검월을 비교해 보면, 악검림은 나이도 두 살이 위 이고 무공도 여검월보다 더 높은 편인데도 불구하고 좀더 적극적 으로 싸움에 임했기 때문인지 부상(負傷)의 정도가 더 심해 보였 다. 지금은 어두운 밤중이라 처음에는 잘 몰라보았지만 이내 그녀 는 화검상을 알아보았는지 눈이 휘둥그래지고 입을 딱 벌리다가, 느닷없이 이쪽을 향해 신법(身法)을 날려 다가오기 시작했다. 화검상은 동방리를 내려놓고 그녀가 다가오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악검림의 앞에 백색(白色)의 그림자가 번뜩이 더니 녹귀보가 어느새 그녀의 앞을 가로막으며 소리쳤다. "저자는 우리의 적(敵)인데 어디로 가려고 하느냐? 감히 내 말 을 거역하겠단 말이냐?" 악검림은 이미 녹귀보에게 혈도(穴道)를 제압당했는지 그대로 떨어져내렸는데, 즉시 입을 열어 무슨 말인가 하려는 듯했지만 미처 말을 하기도 전에 갑자기 장내의 상황이 변화를 일으켜 그 녀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 녹귀보는 본래 그 대여섯 명의 백교방(白蛟幇)의 고수들과 상 대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들을 제압하지도 않고 몸을 움직여 자 리를 떠나자, 그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그만 그쪽에 남은 여검월 을 향해 성난 사자처럼 덮쳐들기 시작한 것이다. 여검월도 그것을 인식하고 즉시 몸을 피하면서 대처하려고 하 는 듯했으나, 그들 여섯 명의 고수들은 무공이 하나같이 그녀보 다 우위에 있어서 그녀는 도저히 그들이 살수(殺手)들을 당해낼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삽시간에 그녀는 포위되었고, 즉각적으로 그 중의 한 사람을 향해 공격하려고 하였으나, 그녀의 장검이 그 삶에게 닿기도 전 에 이미 대여섯 개나 되는 분수자(分水刺)가 무시무시한 위력으 로 그녀의 몸을 향해 쇄도해 들고 있었다. 악검림은 비록 몸을 움직일 수가 없어서 그 뒤에 일어나고 있 는 광경을 바라볼 수가 없었으나, 금방이라도 여검월의 몸이 갈 가리 찢겨져나가고 참혹하게 죽음을 당하는 광경이 눈앞에 선하 게 떠오르는 것만 같았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들을 무림야그 출력일 :: 98/11/11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2 권 제 59 장 화해(和解) 제 59 장 화해(和解) 그 순간에 마치 착각처럼 눈부시면서도 마음을 편안하게 만드 는 백색(白色)의 광채(光彩)가 어둠을 환하게 밝히며 번쩍 피어올 랐다가 사라졌는데, 그것이 대체 어찌 된 연유인지는 모르지만 악검림은 갑자기 몸의 혈도(穴道)가 풀리고 자유로워졌으므로 급 히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다가 그만 표정이 어리둥절해지고 말 았다. 그쪽의 상황은 그녀가 상상했던 것과는 정반대가 되어 있었으 며, 그 여섯 명의 흉악스러운 백교방의 고수(高手)들은 모두가 의 식을 잃고 저마다 바닥에 나동그라져 있었고 여검월만이 멀쩡하 게 피 묻은 장검(長劍)을 들고 멍청하게 서 있었는데, 그것은 마 치 그녀가 갑자기 대단한 능력이 생겨서 그들 모두를 처치한 것 과 같은 착각을 부러일으키는 것이었다. 게다가 이번엔 앞쪽으로 고개를 돌려보자, 조금 전까지만 해도 거의 당장이라도 손을 쓸 듯이 살기 등등하게 날뛰던 녹귀보가 느닷없이 몸이 뻣뻣하게 굳어버린 채 그녀를 향해 괴이(怪異)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악검림은 이러한 갑작스런 괴변(怪變)에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은 마음의 혼란(混亂)과 놀라움을 느꼈지만, 이내 다시 정신 을 차리고 침착하게 생각해 보니 문득 그녀의 뇌리를 번쩍 스쳐 지나가는 한 사람의 모습이 있었다. '맞아, 화사형(華師兄)! 이건 바로 화사형이 손을 쓴 거야. 아......!' 즉시 고개를 돌려 좀더 앞쪽을 바라보니, 과연 화검상이 그녀 를 향해 가벼운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녀는 그만 마음속에 강렬한 불덩이와도 같은 감격의 흥분을 느끼고는 이내 자신도 모르게 소리치며 화검상을 향해 몸을 날렸 다. "아아, 화사형! 화사형! 정말로 화사형이 맞나요? 아아, 나는 믿 을 수가 없어요......!" 갑자기 어디서 그런 새로운 힘이 생겼는지, 그녀는 단숨에 십 여 장이나 되는 제법 먼 거리를 날아서 그대로 화검상의 품속에 안겨 버리고 말았다. 백교방(白蛟幇)의 방도들은 대부분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인지 알지 못하고 있었지만, 느닷없이 펼쳐진 화검상의 그 놀라운 무 공(武功)의 위력에 경악감을 금치 못하고 있다가, 일순 누군가의 다급한 지휘로 시신(屍身)이나 부상자들을 수습하고 재빨리 움직 여 후퇴하기 시작했다. 그 많던 백교방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썰물처럼 빠르게 사라져 버리자 갑자기 이 작은 숲은 본래대로 어둠 속의 정적(靜寂)을 되찾는 것 같았다. 화검상은 본래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 양손에 동방리를 안아들 고 있었느데 이제는 그만 다른 처녀인 악검림을 안아들게 된 셈 이었다. 너무나도 기쁘고 흥분되었기 때문에 악검림은 이 순간 다른 사 람들의 시선(視線)은 전혀 의식하지 않았고, 마구 두 볼을 비비면 서 화검상의 품속으로 계속 파고들었기 때문에 그는 다소 난처한 지경에 처하게 되었으나, 그렇다고 그녀를 일부러 밀어재기도 어 려워서 그대로 잠시 참고 서 있었다. 이윽고 악검림은 여전히 화검상의 품속에 안긴 채로 고개를 들 고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는데, 그녀의 얼굴은 어느새 눈물로 가 득 젖어 있었다. "나는 믿을 수가 없어요. 화사형......,화사형이 다시 살아돌아왔 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나는 믿을 수가 없어서 이렇게 화사형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서도 아직도 믿을 수가 없네요. 화사형, 이건 혹시꿈이 아닌가요......?" 화검상은 아무리 담담한 표정을 지으려고 해도 지금은 솔직히 감동되지 않을 수가 없었고, 솔직히 그는 미처 이 작은 소녀(少 女)와의 대면에서 이러한 따뜻한 감정(感情)을 맛보게 될 줄은 몰랐다고 해야 할 것이다. 화검상은 가볍게 숨을 몰아 재쉬면서 그녀를 내려놓은 후에 웃 으며 말했다. "악사매(岳師妹), 너는 그동안 울보가 되어버렸그나. 나는 상관 이 없지만 그러나 강호(江湖)의 당당한 여협객(女俠客)이 되겠다 고 했던 네가 계속 이러면 남들이 흉을 보지 않겠느냐?" 악검림은 양손으로 정말로 자신의 두 볼을 꼬집어보다가 이어 가볍게 마주보고 웃으며 고개를 좌웅로 내저었다. "그래도 이젠 상관이 없어요. 저는 이미 그런 계획(計劃)들은 모두 취소해 버렸는 걸요. 저는 그 동안 정말로 울보가 다되어 버린 것 같아요. 호호, 하지만 이게 꿈이 아닌 것 같으니 정말로 믿을 수가 없네요!" 화검상은 미소하며 한번 주위를 둘러본 뒤에 그녀를 향해 다시 말했다. "나는 그 동안 이리저리 강호(江湖)를 떠돌아다니다가 여기에 있는 이분들과 사귀게 되었지. 너도 이분들과 친해보지 않겠느 냐?' 악검림은 옷소매로 얼굴에 가득했던 눈물을 닦아낸 뒤에 웃으 며 동방리와 서귀현 등을 향해 포권하며 말했다. "나는 당신들에 대해서 조금은 알고 있지요. 당신들은 바로 그 유명한 백혈단(白血團)의 사람들이 아니신가요?" 양귀해가 다소 시선을 외면하며 말을 받았다. "우리에 대해 알고 있다면 우리가 얼마나 무섭고 흉악한지에 대해서도 알고 있겠구려?" 악검림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당신들은 아주 무섭고 흉악하다고들 그랬어요. 하지만 너무나도 흉악해서인지 그 흉악스러운 백교방(白蛟幇)의 사람들 이 다 두려움을 느끼고 달아나 버리고 말았네요?" 한귀풍이 그만 껄껄 웃으며 옆에서 나서서 말했다. "하하, 정말 재미있는 낭자(娘子)로군! 앞으로 낭자가 우리와 함께 생활할 것이라면 너무나도 무서워서 잠도 오지 않게 될걸? 하하......, 한데 참, 낭자는 악검림(岳劍林), 악낭자(岳娘子)인가 아 니면 여검월(余劍月), 여낭자(余娘子)인가?" 악검림은 그 말에 일순 곱게 눈을 흘기며 대꾸했다. "당신은 알고 보니 머리가 나쁘군요. 당신은 조금 전에 우리 화사형이 내게 악사매(岳師妹)라고 한 말을 듣지도 못했나요? 나 는 당연히 악검림이죠. 그리고 저기에 있는 나의 여사매(余師妹) 는 바로 당신이 말한 그 여검월이에요. 당신은 혹시 그녀에게 흥 미가 있지 않나요? 아니면 바로 저기에 있는 녹사백(鹿師伯)......." 악검림이 미처 그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문득 그녀의 뒤에서 귀에 익은 여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바로 여검월(余劍月)이 어느새 이곳으로 다가온 것이었다. "악사자(岳師姉), 혹시 지금 나를 욕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호호......! 화사형, 정말 나도 믿어지지 않네요. 화사형을 이렇게 다시 뵙게 될 줄은 미처 몰랐어요. 그 동안 이 못생긴 여사매(余 師妹)는 보고 싶지도 않았겠죠?" 화검상은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어 대꾸했다. "그럴 리가 있겠느냐? 화간파(華山派)는 바로 나의 고향과도 같은 곳이라는 것을 너도 이미 알고 있지 않느냐? 여검월은 다소 기이(奇異)한 시선(視線)으로 화검상을 주시하며 뭔가 머뭇거리는 듯하다가, 이번에는 백혈단(白血團)의 사람들을 향해 포권하며 말했다. "알고 계시겠지만 저는 바로 여검월(余劍月)이라고 해요. 화사 형과는 어려서부터 매우 친하게 지내곤 했죠. 오늘 이렇게 여러 분을 마나고 나니 소문과는 많이 다른 것 같아서 반가운 느낌이 드는군요." 양귀해가 그말을 듣고 고개를 좌우로 내저으며 말했다. "좋지 않군! 좋지 않아! 우리 단주님과 그대가 친하게 지냈다는 말이 나는 맏어지지 않는군." 여검월은 안색(顔色)이 이상하게 변해서 다소 눈살을 찌푸리며 양귀해를 향해 말했다. "뭐라구요? 그럼 내가 지금 화사형이 보고 있는 앞에서 멀쩡하 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말인가요?" 한귀풍잉 약간 냉소하듯이 웃으며 옆에서 끼여들었다. "그럴지도 모르지. 우리 단주님은 너무나도 마음씨가 좋으신 분이니까 말이오. 그건 그렇다고 치고, 낭자는 지금 소문과는 다 르다고 했는데, 대체 강호(江湖)에 우리에 대한 소문이 어떻게 나 있다는 말이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嗤 무림야그 출력일 :: 98/11/11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2 권 제 59 장 - 1 여검월은 다소 당황해 하는 듯했으나, 이내 안색을 차갑게 굳 히고 싸늘하게 말했다. "흥! 당신들은 지금 사람을 차별하고 있군요? 대체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기에 나의 사자(師姉)는 따뜻하게 대하고 유독 나만 냉 대하는 거죠?" 한귀풍이 다시 싸늘하게 그 말을 받았다. "그건 아마도 낭자 자신이 스스로 생각해 보면 알 수 있겠지. 흥! 요사이 어린 것들은 어른도 몰라보고 이다지도 함부로 대한 다는 말인가?" 동방리가 분위기를 전환시킬 겸해서 웃으며 나서서 입을 열어 말했다. "나는 우리 백혈단의 군사(軍師)의 직책을 맡고 있는 사람으로 이름은 동방리(東方莉)라고 해요. 두 분은 우리 단주님과 매우 친 한 분들인 것 같은데 이렇게 만나게 되어서 반가워요." 여검월은 그 말을 듣자 일순 눈빛을 의미심장하게 빛내더니 그 녀를 향해 말했다. "아까 보니, 당신은 화사형의 품에 안겨 있던데, 혹시 이미 우 리 화사형과 혼인(婚姻)을 하신 분이 아닌가요?" 동방리는 가볍게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호호, 그렇지 않아요. 오해(誤解)를 하셨군요. 저는 다만 요즘 건강이 좋지 않아서 단주님의 부축을 받고 있었던 것일 뿐이에 요." 악검림이 다가와 그녀의 손을 잡으며 다정한 어투로 말했다. "이렇게 만나게 되어서 반가워요. 동생은 아마도 나이도 나보 다 어린 것 같은데도 무척 아름답고 훌륭해 보이네요. 우리 화사 형과 혼인을 한 사이라고 해도 질투(嫉妬)를 하지 않겠어요." 동방리는 미소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지 않다니까요. 나는 그저 우리 백혈단의 군사일 뿐 단주 님과는 그렇게 가까운 사이는 아니죠. 내가 보기에는 언니야말로 우리 단주님과 아주 가까운 사이인 듯하네요." 화검상은 뭔가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듯하다가, 이윽고 악검 림에게 말했다. "이곳으로 오던 도중 너희들에 관한 얘기를 듣고 약간 놀랐다. 대체 어떻게 해서 이곳까지 오게 된 것이냐?" 악검림은 웃으며 화검상을 향해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대꾸했 다. "그건 조금 전에 이미 내가 말씀드렸잖아요. 저기 있는 여사매 가 화사형의 얘기를 하기에 우리는 함께 화사형을 만나러 오기로 했죠. 그런데 몰래 이곳으로 오던 도중 그만 마각(馬脚)이 들통나 서 저기에 계신 녹사백(鹿師伯)께서 우리를 도로 데려가려고 이 곳까지 따라오신 거죠." 서귀현이 나서서 그녀에게 질문했다. "그럼 낭자들은 처음부터 그와 함께 온 것이 아니라 이곳에 와 서 그를 만나게 되었다는 말이오?" 악검림은 미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 물론이죠. 만일 그 전에 녹사백에게 붙잡혔다면 이렇게 화사형을 지금 만나볼 수도 없었을 거예요. 그리고 또한 녹사백 이 제때에 나타나주지 않았다면 저와 여사매는 일찍이 죽어서 혼 백(魂魄)이 구천(九泉)을 헤매고 있을 거예요. 왜요? 뭔가 이상한 점이라도 있나요?" 서귀현은 약간 무뚝뚝한 표정으로 포권하며 말했다. "그럴 리가 있겠소?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천리(千 里)가 멀다 않고 찾아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 나는 다만 낭 자(娘子)가 지나칠 정도로 운이 좋았다는 점을 말하고 잇을 뿐이 오." 악검림은 그 말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받았다. "맞아요. 나도 실은 그 점을 생각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사실은 저는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곧 병(病)을 얻어 죽고 말 거요. 어 쨌든......, 나는 지금 매우 기쁘고 행복(幸福)하고, 게다가 이렇게 갑자기 운이 좋아진 것을 보면 앞으로 우리들이 하는 일이 반드 시 잘되어 나갈 것을 확신해요!" 녹귀보(鹿歸寶)는 아직가지 전신혈도(全身穴道)가 제압되어 그 상태로 꼼짝도 못하고 있었는데, 화검상은 그에게 다가가서 씁쓸 한 어조로 말했다. "오랜만입니다. 녹사백(鹿師伯), 우리가 이런 곳에서 또 만나게 될 줄은 몰랐지만, 그러나 어쨌든 인연(因緣)은 있는 것 같군요." 화검상이 다가온 순간 그의 무형지기(無形之氣)에 의해 혈도가 풀렸으므로 녹귀보는 몸을 돌려 화검상을 주시하며 얼음장같이 차가운 어조로 대꾸했다. "네가 아직 나를 사백(師伯)으로 인정하기는 한다는 말이냐? 흐흐! 하여간 네놈의 무공(武功)은 갈수록 나를 놀라게 하는구 나!" 화검상은 가능하면 험악한 분위기를 만들지 않으려고 했지만, 백혈단(白血團)의 사람들은 도저히 멀리서 바라보기만 할 수 없 는지, 그것을 보자 즉시 뒤따라와서 녹귀보의 주위에 포위를 하 듯 둘러쌌다. 사실 이 녹귀보는 같은 일대(一代)라고 해도 정식제자이기 때 문에 무공(武功)이 높을 뿐만 아니라 경험도 풍부해서, 화검상이 아니라면 서귀현 등이 모두 한꺼번에 에워싸고 덤빈다고 해도 어 려울 것이므로 그들은 크게 경계를 하고 있는 표정들이었다. 화검상은 가벼운 함숨과 함께 미소를 지어 보이며 다시 말했 다. "나는 가능하면 우리 모두가 잘되기를 바랍니다. 이미 조금 전 에 말했지만, 화산파는 나의 고향(故鄕)이기도 하니까요." 녹귀보는 음산(陰散)하게 냉소(冷笑)하며 말했다. "너의 고향이기 때문에 이제는 네가 차지해서 멋대로 움직이고 싶다는 말이겠지? 흐흐......!" 다소 성질이 급한 편인 한귀풍이 그 말을 듣고 참지 못해서 싸 늘하게 말했다. "네놈들이 만일 정당하게 행동을 했다면 누군들 나쁘다고하겠 느냐? 다만 천인공노(天人共怒)할 짓들을 저질러 놓고서도 아직 도 뉘우칠 줄을 모르니 결코 하늘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흐흐 흐, 내가 홰 이런 자식과 쓸데없는 말을 주고받고 있는 것이지? 단주, 어서 저자를 처치해 버리도록 합시다!" 녹귀보는 순간 두 눈에서 살광(殺光)을 번쩍 발하더니, 앞으로 바짝 다가들며 크게 분노(忿怒)한 기색으로 오른손으로 화검상의 뺨을 후려쳤다. 지금 화검상의 주위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서 있었지만 그러 나 무공이 그보다 못한 관계로 그 순간의 녹귀보의 손속을 저지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비록 녹귀보의 그 한 수(手)는 그 어떤 무공초식(武功招式)은 아니라고 해도 이미 그의 손속에는 막강한 공력(功力)이 은연중 실려 있기 때문에, 보통사람이 얻어맞는다면 죽지는 않는다고 해 도 최소한 머리가 터져 버리고 말 것이다. 게다가 현재 화검상은 그래도 백혈단(白血團)이라는 일개 단체 의 우두머리이니 그렇게 아무에게나 뺨을 얻어맞을 수가 있겠는 가! 서귀현 등은 녹귀보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 역시 다급히 움직였 지만 미처 그를 제지하기도 전에 녹귀보의 우수는 화검상의 뺨에 거의 다가들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혹시 화검상이 옛날의 미련을 버리지 못 했거나 아직 감상(感想)에 젖어 있어서 녹귀보의 뺨을 그대로 얻 어맞으려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거의 녹귀보의 우수가 뺨에 닿으려는 순간에 거짓말처 럼 그 자리에 멈춰졌고, 화검상은 다소 우울(憂鬱)해진 듯한 표정 으로 다시 말했다. "당신이 계속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상황만 더욱 악화될 뿐입 니다. 나는 고향을 잃어버릴 수도 있겠지만, 당신들은 목숨을 잃 게 될지도 모릅니다. 비록 나는 손을 쓰지 않게 될지는 몰라도 여기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당신을 지금 당장 죽이게 될지도 모 릅니다. 이것은 서로간에 어리석은 짓이 되지 않겠습니까? 나는 우리가 서로 조금씩만 양보를 한다면 그것은 서로에게 유익(有 益)한 일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嗤 무림야그 출력일 :: 98/11/11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2 권 제 59 장 - 2 화검상은 그 순간에 비단 녹귀보의 마혈(痲穴)을 제압했을 뿐 만 아니라 역시 무형지기(無形之氣)로써 녹귀보를 공격하는 다른 백혈단(백혈단)의 사람들의 마혈도 함께 제압하여 모든 행동을 제지시켰다가 풀어주었다. 만일 그가 녹귀보의 마혈만 제압했다면 다른 사람들의 검날은 이내 녹귀보의 몸 속으로 깊숙이 파고들고 말았을 것이다. 기실 지금 화산파의 사람들과 화해(和解)를 하고자 하는 것은 오로지 화검상만의 생각일뿐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아니었다. 잠시 정지시켰다가 풀어주면 다시 그 손속이 아까처럼 움직일 것 같지만, 기실은 이 무공이라도 하는 것은 마음과 기(氣)가 하 나가 되어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에 그럴 수가 없다. 마음은 있더라도 잠시 기(氣)의 흐름이 끊어진 상태가 되었기 때문에 녹귀보를 비롯한 그 사람들은 모두가 다소 어정쩡하게 서 있는 상태가 되었다. 녹귀보는 잠시 화검상을 차갑게 노려보다가 이내 손을 내리고 다시 음산하게 웃으며 말했다. "네놈이 무엇 때문에 이런 쓸모없는 쓰레기와 같은 자들과 어 울리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는데, 알고 보니 네놈은 그들을 시켜 서 손을 쓰게 하고 명분(名分)을 얻기 위해 그렇게 한 것이로군. 흐흐흐...... 교활한 후레자식 같으니! 게다가 네놈은 바로 오늘과 같은 날을 미리 내다보고 본파(本派)에 그러한 수작을 부려놓은 것이렷다?" 한귀풍이 그 말을 듣고 극도로 격분(激憤)하여 소리쳤다. "단주, 지금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요? 이런 더러운 개자식을 당장 죽이지 않는다면 우리 백혈단이 존재(存在)한들 무슨 소용 이 있겠소? 어서 손을 쓰시오! 안 그러면 당장 내가 손을 쓰도록 하겠소!" 화검상은 손을 저어 한귀풍을 가볍게 만류한 다음에 다소 눈살 을 찌푸리며 녹귀보에게 말했다. "그건 대체 무슨 소리요? 내가 화산파에 수작을 부려 놓다 니......? 혹시 지금 화산파에 무슨 다른 일이라도 생긴 것이란 말 이오?" "흐흐흐, 네놈은 이미 의도적으로 그렇게 만들어놓고 나서 지 금은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떼겠다는 말이냐? 설마하니 그 비 (秘)......, 좋다, 그 얘기는 나중에 하도록 하지......." 녹귀보는 몹시 분개한 표정으로 화검상을 노려보다가, 다시 말 을 이었다. "네놈은 지금 나와 무슨 흥정을 하자는 말이냐? 설마하니 네놈 이 본파(本派)의 장문인(掌門人)이 되기라도 하겠다는 말이냐?" 화검상은 그가 화산파의 지금의 상황에 대해서 쉽게 말하지 않 으려는 것을 보고 잠시 생각해 보는 듯하다가, 이내 말했다. "나는 장문인(掌門人)이 되려는 것은 아니오. 다만 이미 말했듯 이, 우리 모두가 조금씩 양보하여 화합(和合)하고 잘 지내게 되기 를 바랄 뿐이오. 이른바, 누가 잘못을 했든 간에 과거는 이미 흘 러가 버린 것이니 지금에 와서 다시 거론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 소? 나는 그보다는 지금의 현실(現實)과 앞으로의 일이 더 중요 하다고 생각하는 것이오." 녹귀보는 음침한 표정으로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가 조소하며 대꾸했다. "내가 네놈의 말이 어디까지가 진실(眞實)인지 어떻게 믿을 수 가 있겠느냐? 게다가 이런 일은 내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 니고 반드시 장문인께서 판단하실 일인 것이다. 하지만......, 후후 후, 좋다! 일단 나는 저 대역무도한 계집들을 데리고 먼저 돌아갈 테니 네가 만일 어떤 협상을 하고자 한다면 천천히 뒤따라오도록 해라." 양귀해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화검상에게 눈살을 찌푸리면서 말 했다. "단주, 그렇게 하는 것은 우리 백혈단(白血團)의 본래의 취지 (趣旨)와 어긋나는 것이오. 당신이 비록 단주가 되었다고 해도 그 런 중대한 사안(事案)을 한마디의 상의도 없이 독단적으로 처리 할 수는 없을 것이오." "여러분, 그런 문제는 내가 잠시 후에 상세(詳細)히 설명해 드 리도록 하겠습니다." 화검상은 손을 들어 양귀해를 가볍게 제지한 다음에, 다시 녹 귀보를 향해 말했다. "당신의 말은 대부분 나도 찬성하는 바이지만, 지금의 우리로 서는 이런 협상에 임하게 되면 아마도 당신들보다 아무래도 좀더 손해를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신들도 어느 정도는 성의 를 보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저 사매(師妹)들을 당신에게 맡길 수는 없습니다. 저 사매들은 나로 인해 이곳으로 온 것이므 로 내가 데리고 갈 테니, 당신은 혼자 돌아가서 장문인께 잘 말 씀드려 주시기 바랍니다." 녹귀보는 그 말에 다소 주저하는 듯하다가, 이내 음산(陰散)하 게 앙천광소(仰天狂笑)를 터뜨리더니 갑자기 신법(身法)을 펼쳐 신형(身形)을 나려 사라져가며 소리쳤다. "핫핫핫! 좋다! 네놈이 그렇게 나오겠다니 나로서도 지금은 어 쩔 수가 없겠지. 일단은 돌아가서 네놈을 기다리기로 하겠다! 과 연 네놈이 어떻게 나오는지 두고보기로 하지......!" 사람들은 녹귀보가 그렇게 의외(意外)로 선선히 악검림 등을 포기하고 느닷없이 사라져 버리자, 약간 놀란 표정들이 되어 그 가 사라져간 방향을 향해 두리번거렸다. 화검상은 입가에 가벼운 고소(苦笑)를 지으며 사람들에게 말했 다. "자, 이곳은 그다지 오래 머물 곳이 못 되는 것 같습니다. 일단 은 자리를 옮겨서 다시 얘기를 나누도록 하지요." 한귀풍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듯이 말을 받았다. "그렇습니다. 하긴 이곳에 다시 귀신(鬼神)들이 수십 명은 더 늘어났으니, 우리가 좀더 있다가는 그 혼백(魂魄)들 중의 하나가 갑자기 자신들의 목숨을 돌려 달라고 우리들의 발목을 잡고 늘어 질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동방리가 그 말을 받아 웃으며 말했다. "한대협께서는 짓궂으시군요. 우리 여자들은 귀신(鬼神)을 무서 워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인가요?" 한귀풍은 고개를 좌우로 내저으며 다시 말했다. "아, 그건 미처 몰랐소. 그럼 귀신들을 놔두고 대신 영웅에 대 해서 말해 보는 것은 어떻겠소? 아......! 마침 저기에 여우 한 마 리가 나타난 것 같군!" 여검월이 그만 질색을 하며 소리를 질렀고, 일행은 이윽고 웃 으며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일행은 어느덧 아까 마차를 두고 왔던 그 장소에 이르렀다. 하지만 뜻밖에도 마차는 그대로 있었지만 마부는 어디로 사라 졌는지 보이지 않았다. 동방리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마침 중요한 물건들은 모두 다 품에 지니고 있어서 도난당하 지 않았으니 다행한 일이로군요. 하긴 그 마부도 이런 음산(陰散) 한 곳에서 오래 있고 싶지 않았을 거예요." 주귀선이 말없이 마부석에 앉아서 마차를 몰기 시작했고, 일행 은 다시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으며 낙양성(洛陽成)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낙양(洛陽)은 소위 말하는 고대의 구왕조(九王朝)가 도읍을 두 었다고 하는 고도(古都)로서, 성내에는 옛날 성곽의 구조물들도 많이 있고 또한 어딘가 예술적인 운치가 느껴지기도 하는 곳이기 도 하다. 남쪽으로는 낙하(洛河)가 흐르고 있고, 그 외의 유명한 것들로 는 백마사(白馬寺)나 용문석굴(龍門石窟), 그리고 관림(關林) 등이 있다. 예로부터 수많은 시인묵객(詩人墨客)들이 그러한 운치에 젖어 보기 위해 이곳을 찾아왔었다고는 하지만, 지금 일행은 비단 한 밤중에 성안으로 들어온 상태일 뿐만 아니라 도무지 그런 여유에 젖어 있을 수가 없어서, 그저 좋은 객점(客店) 하나를 잡아서 식 사를 한 뒤에 푹 쉬고 부상을 치료하는 등의 일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화검상이 객방의 한쪽에 마련되어 있는 욕실(浴室)에서 마악 간단한 목욕을 마치고 옷을 갈아입고 있을 때, 문득 방문이 열리 더니 한 사람이 안으로 들어섰다. 바로 동방리였는데, 그녀는 아직 피로가 가시지 않은 듯한 파 리한 안색으로 겉옷을 걸치고 있는 화검상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 다가 이윽고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嗤 무림야그 출력일 :: 98/11/11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2 권 제 59 장 - 3 "나는 처음 당신을 보았을 때 아무래도 비범(非凡)한 점이 있 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지금 보니 과연 당신은 여러 명의 여자들 이 반할 만한 사람이로군요. 호호, 이럴 줄 알았다면 차라리 그때 무조건 눈을 딱 감고 당신에게 매달려 시집이나 가버릴 것을 그 랬었나 봐요." 겉옷을 다 입은 화검상은 이어 대강 머리를 매만진 후에 탁자 앞에 앉아 웃으며 말을 받았다. "흔히들 말하는 것이지만 겉모양이 화려할수록 속이 비어 잇는 경우가 많소. 즉, 세상의 일은 실제와는 다르게 보일 수도 있다는 말이오. 아마도 나는 낭자와 같은 훌륭한 여자를 맞이할 자격이 없었나 보오. 그래,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이오?" 동방리는 다가와 그의 앞에 마주앉으며 말했다. "당신은 마치 내 속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어서 이미 모든 일을 알고 잇는 듯한 태도로군요. 그래요, 이 일이 좋은 일인 것 같은 가요? 아니면 나쁜 일인 것 같은가요? 화검상은 약간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을 해보는 듯하더니 대 답했다. "낭자는 우리 백혈단의 군사(軍師)이니 당연히 나와 자주 이야 기를 나누게 되는 것이지만, 워낙 낭자의 지모(智謀)가 출중하니 나로서는 매번 만나서 이야기를 할 때마다 자연 나의 어리석음이 드러나게 될까 봐 더욱 신중을 기하게 되는 것이오. 음......, 음......, 내가 보기에는 아무래도 나쁜 일은 아닌 것 같소. 만일 나 쁜 일이라면 낭자가 그렇게 마음에도 없는 칭찬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오." 동방리는 가볍게 실소(失笑)를 하며 말했다. "정말 당신에게는 못 당하겠군요! 조금 전에 서대협과 함께 밖 으로 나가서 당신이 내게 맡겼던 그 재보(財寶)들을 금표(金票)와 은표(銀票) 등으로 바꾸었지요. 그 액수가 얼마인지 짐작할 수 있 겠나요? 무려 황금 사만 삼천 냥에 달하더라고요. 이건 엄청난 액수예요." '으음, 나는 대략 사만 냥 정도를 예상했었는데 이 여자는 제법 능력9능력)이 있는 모양이군?" 화검상은 다소 놀라는 빛을 보이면서 말했다. "잘된 일이오. 한데 아직까지 문을 열고 있는 점포가 있었다는 말이오?" 동방리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무림인들은 은자(銀子)의 가치를 간혹 너무 쉽게 생각하곤 하 지만, 세상에는 그 은자로 하지 못하는 일이 많지 않은 법이지요. 내가 보기에는 이 은자로 우리는 하나의 커다란 힘을 얻게 되었 다고 생각해요." 화검상은 그녀가 자신에게 그 두툼한 봉투를 내미는 것을 보고 약간 의아해 하며 말했다. "아니, 왜 이걸 나에게 주는 거요? 내가 이미 군사에게 모든 자금을 관리하라고 하지 않았소?" 동방리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면서 웃으며 말했다. "일전에 우리 남매(男妹)가 살아갈 때에는 그다지 궁핍하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많은 은자를 만져볼 수는 없었지요. 하지만 보 다시피 나는 몸도 허약하고 또한 이렇게 많은 은자를 몸에 지니 고 있으면 필시 오래 살지 못하게 될 거예요. 이건 그 중의 백 냥짜리 금표만을 묶은 황금 사만 냥이에요. 나머지 내가 가지고 잇는 액수만 해도 우리가 당분간 충분히 쓰고도 남을 액수가 될 거예요." 그 봉투에는 정말로 백 냥짜리 금표(金票)가 사백 장이나 묶음 으로 들어 있었다. 화검상은 그 봉투를 받아 몸에 잘 갈무리하며 웃으며 말했다. "내가 군사(軍師) 하나는 잘 정했다는 생각이 드는구려. 그건 그렇고, 기왕에 우리는 이미 부자(富者)가 되었으니 앞으로는 좀 더 화려(華麗)하게 모두가 최대한 부자의 행세를 하도록 합시다. 수고스럽겠지만 군사가 내일 아침 출발할 때까지 사람들을 시켜 서 그일도 신경을 써주시오. 우리는 인원이 많지 않은 만큼 앞으 로의 상황에 대비해서 이렇게라도 위세(威勢)를 늘려보는 것도 좋지 않겠소?" 동방리는 잠시 화검상의 의중을 파악해 보려는 듯 생각에 잠기 다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정말로 자금만 충분하다면 부자의 행세를 하는 것 은 그다지 어려운 노릇은 아니지요." 그때 갑자기 다시 방문이 열리면서 서귀현이 다른 네 명과 함 께 안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단주님께서는 지금 군사만 마음에 들고 저와 같은 부단주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는 듯하니 정말로 섭섭하군요. 하 하하......!" 화검상은 몸을 일으키며 그들을 맞이했다. "모두 어서들 오십시오. 마침 제가 그쪽으로 가서 몇 가지 의 논(議論)을 드릴까 생각하던 중이었습니다." 동방리도 함께 몸을 일으켰고, 이윽고 모두가 다시 탁자를 사 이에 두고 둘러앉자 서귀현이 화검상을 향해 말을 이었다. "두 분께선 무슨 말씀을 그리 오래도록 나누고 계셨습니까? 혹 시 두 분이 앞으로 혼인(婚姻)이라도 하시려는 것은 아닙니까?" 동방리는 안색을 다소 붉히며 서귀현을 향해 가볍게 눈을 흘겨 보였다. "부단주께서는 농담이 지나치시군요. 혹시 악낭자나 여낭자라 면 또 몰라도 저와 같은 사람이 무슨 그런 자격이 있겠어요? 우 리는 다만 앞으로의 일에 대한 몇 가지의 사항을 의논하고 있었 던 것일 뿐이에요." 양귀해가 천천히 내부를 둘러보는 듯하면서 입을 열어 말을 받 았다. "전혀 그렇지 않다고 하면서도 오히려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보니 오히려 수상하군. 비록 군사의 건강상태가 좋지 못하다고 해도 내가 보기에는 충분히 단주의 혼인상대가 될 수 있으리라고 보오." 동방리는 여전히 안색이 붉어진 상태로 양귀해를 바라보며 가 볍게 항변했다. "알고 보니 여러분은 저를 난처하게 만들기 위해 오신 것 같군 요. 정말 계속 이러실 거라면 저는 그만 제 방으로 돌아가버리고 말겠어요." 동방리는 비록 그렇게 말을 했지만 전혀 몸을 일으킬 기색이 아니었고, 게다가 비록 서로간에 오가는 대화의 내용은 마치 한 가롭고 화기애애한 듯이 보였으나 기실 지금 실내의 분위기는 그 와는 반대로 갈수록 무거워지는 것 같았다. 화검상은 정색(正色)을 하고 좌중(座中)의 사람들을 둘러보더니 이윽고 입을 열어 말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얘 무림야그 출력일 :: 98/11/11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2 권 제 60 장 제자(弟子) 제 60 장 제자(弟子) "아마도 여러분은 제가 아까 독단적으로 처리한 일에 대해서 상당히 불만이 많을 것입니다. 따라서......, 제가 이미 말씀드린 바 와 같이 지금 그것에 대해서 충분히 납득할 만한 해명(解明)을 해드리겠습니다." 양귀해가 다시 입을 열어 다소 냉소적으로 말했다. "이제까지 우리 백혈단에는 제법 여러 명의 현명하신 단주님들 이 계셨었지만, 그분들도 결코 오늘처럼 그렇게 쉽게 그와 같은 일을 처리하지는 않았습니다. 설사 지금의 단주님계서 그들보다 더욱 현명(賢明)하신 분이라고 해도, 자칫하면 이건 우리 백혈단 (白血團)의 존재가 전혀 유명무실(有名無實)하게 변해버릴지도 모 르는 일입니다." 화검상은 다소 무거워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 다. "사실 제가 단주의 직책을 맡에 된 지도 얼마 지나지 않았고 해서 비록 어느 정도의 생각은 가지고 있었지만 이런 중요한 사 항(事項)에 대해서 미처 의논할 기회를 가지지 못했습니다. 마침 그러던차에 갑자기 그러한 상황을 맞이하게 되어 부득이 여러분 의 의견을 물어보지도 못하고 임기응변식으로 일을 처리하게 되 어 여러분에게 우선 깊은 사과(謝過)의 말씀을 드리는 바입니다." 서귀현이 분의기를 환기시키려는 듯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떠 올리며 말했다. "아마도 단주님께서는 무슨 측별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일을 처리하셨을 것입니다. 하하. 솔직히 우리가 그런 간악무도 (奸惡無道)한 자들에게 반드시 약속을 지킬 필요도 없을 것이고, 또한 다른 술수(術數)를 부린다고 해도 나쁠 것이 없지 않겠습니 까? 그들이 이미 적도(敵徒)가 되어버린 이상, 우리는 병법에 있 어서의 기만이나 술수는 죄(罪)가 되지 않는다고들 하지 않습니 까? 자, 모두들 그만 흫분을 가라앉히시고 단주님의 말씀을 들어 보도록 합시다." 화검상은 서귀현을 향헤 가벼운 미소를 지어 보인 다음에 말했 다.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아마도 여러분은 현재의 화산파(華山 派)의 정종(正宗)임을 자처하는 사람들을 모조리 제거해버리고 새로운 길을 열어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계실지도 모릅니다. 하지 만, 실상 과거와는 달리 현대 우리 백혈단(白血團)의 인원은 지금 얼마 남지도 않았고, 만일 그들을 모두 제거하게 된다면 본파(本 派)의 앞날에 존망(存亡)의 위기가 닥쳐오게 될지도 모르며, 또한 과거의 선사(先師)들께서 이룩하신 그 많은 유산(遺産)들이 하루 아침에 막대한 손상을 입게 될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양귀해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다는 듯이 화검상의 말을 자르 며 말했다. "그러니까 결국은 단주께서는 정말로 그들돠 현실적인 타협을 하겠다는 말이 아닙니까? 흐흐, 그건 말이 타협이지 실상은 그야 말로 스스로 굴복하여 들어가는 것이나 뭐가 다르겠습니까? 흐흐 흐......! 난 솔직히 단주가 그 장문인(掌門人) 풍천비(馮天飛)의 외 손자라는 사실을 생각할 때부터 알아보았소. 만일 다른 사심 없 는 사람이었다면 그깟 모든 정파(正派)의 위선자(僞善者)들과 쑤 게 된다고 해도 상관하지 않았을 거요." 과연 예상했던 대로, 실내의 분의기는 그대로 무겁게 가라앉아 서 얼음장과도 같이 싸늘하게 변해버리고 말았다. 조금 전에 짐짓 웃으며 분의기를 바꾸려고 했던 서귀현도 이제 는 그저 눈살을 찌푸리고 있을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화검상은 이에다시 입가에 미소를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 "여러분이 지금 하시는 말씀에 대해서 저는 십분 공감(共感)하 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그 많은 백혈단(白血團)을 지켜오신 영령 (英靈)들이 바로 그 정의(正義)라는 것이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상관하지 않으시고 심지어 목숨까지도 초개와 같이 버리셨던 것 이지요. 정말로 지금 우리가 그들과 타협을 하게 되면 자칫 그분 들의 넋을 욕되게 하는 일이 생기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기는 합 니다. 그러나......, 저는 그분들이 필시 천하(天下)의 정의분만 아 니라 화산파(華山派)의 앞날에 대해서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게 생각하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양귀해가 눈살을 찌푸리며 비아냥거리듯이 말했다. "그럼 단주는 지금 그래서 화산파의 앞날을 위해서 천하의 정 의는 포기하기로 결심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까?" 화검상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실 그 두 가지를 모두 다 얻기란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태입 니다. 하지만 저는 천하에 정의도 세우고 우리 화산파도 옛날의 명성(名聲)을 되찾게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입니다. 여러분 은 아마도 그 두 가지 중에서 어느 하나도 놓칠 수 없다고 생각 하실 것입니다. 저도 물론 지금으로소 앞날의 일을 분명하게 예 측해드릴 수는 없지만, 반드시 그 두가지 중에서 어느 하나도 소 흘히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또한 앞으로 반드시 그렇게 노력해나갈 것을 여러분의 앞에서 진심으로 약속을 드리는 바입 니다......." 양귀해는 크게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으며 대꾸했다. "단주는 마치 우리들을 앞에 두고 바보로 만들고 있는 것 같군 요. 이건 마치 적에게 굴복하려고 하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과도 같은데, 흐흐흐......, 만일 적도들을 모조리 제거하고 본파(本派)에 정기(正氣)가 바로 서게 되면 자연 본파는 멸망(滅亡)하지 않고 오히려 그 명성(名聲)이 빛을 발하게 될 것이오. 그러한 이치도 모른다는 말이오?" 화검상은 안색이 약간 어두워져서 그들을 바라보며 자미 생각 에 잠기는 듯하다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아무래도 제가 여러분의 의견을 미처 물어보지 못한 것이 커 다란 불찰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 저는 여러분께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는 것 같으니, 여러분께서는 잠시 논의(論議)하셔서 제 게 그 결정된 사항을 말씀해 주십시오. 저는 그 동안 자리를 패 해드리겠습니다." 화검상의 그러한 갑작스러운 행동에 동방리와 오귀문 등은 다 소 놀라는 반응을 보였으나, 양귀해 등은 오히려 더욱 입가에 냉 소를 지을 뿐 밖으로 나가는 화검상을 말리지 않았다. 객방의 밖으로 나가면 바로 작은 복도였고, 그 복도를 돌아서 건너편으로 가면 일행이 빌린 또 하나의 객방이 나온다. 이곳에서 서귀현 등 다섯 명과 동방량을 합하여 모두 여섯 명 의 남자들이 묵고 있었다. 화검상이 그 객방(客房)으로 들어가자 마침 동방량이 혼자 바 닥에 주저앉아서 자신의 장검(長劍)을 손질하고 있던 중이었다. 화검상은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그의 옆으로 다가가 침상위에 앉으며 친근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부상(負傷)이 심하지는 않았느냐? 아마도 지금 여러 모로 나 를 따라다니기가 어렵겠지......? 으음, 내가 좀더 신경을 써주지 못한 탓이다. 나는 사실 이런 정도의 일은 능히 할 수 있으리라 고 생각해 오곤 했었으나, 기실은 아직 나의 능력은 형편없이 부 족한 상태인 모양이다." 동방량은 마른 천으로 계속 장검의 검날을 닦아내다가 문득 그 것을 멈추고 장검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들이 당신께 뭐라고 한 것이로군요? 그래서 상황이 어려워 진 것인가요?" 화검상은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고개를 그덕여 보였다. "그래, 너는 확실히 총명(聰明)할 뿐만 아니라 내 마음에 드는 구석이 있다. 바로 너의 짐작대로이다. 그들은 내가 아까 혹시 화 산파의 사람들에게 고의로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닌가 하고 물었 고, 나는 그것이 거짓말이 아니라 실로 그러한 의도가 있다고 말 한 것이지. 아마도 너와 나는 내일 아침에 또다시 헤어져야 할지 도 모르겠구나." 동방량은 장검을 검집에 넣어서 한쪽에 세워둔 다음에 수선하 는 도구들을 치우고, 이어 고개를 약간 돌린 상태에서 다시 말했 다. "그들의 생각은 완고하고 게다가 자부심이 매우 높아서 쉽게 당신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세상에서 가 장 깨끗하고 정당하게 살아가겠다고 하는 것이지만, 저의 생각은 그와는 다릅니다." 화검상이 미소하며 말했다. "이곳에 와서 너의 그러한 말을 들으니 상당한 위안(慰安)이 되는구나. 하지만 솔직히 그러한 중대한 일을 그들에게 미처 상 의도 해보지 않고 독단적으로 처리한 나의 잘못도 크다. 대개 이 러한 집단의 우두머리라는 것은 자신의 생각대로 일을 처리할 수 는 없고 대중(大衆)의 의견을 따라야 하는 것이 보통인 셈이지. 하하......, 실상 내가 능력이 있다면 그들의 생각을 돌려놓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지만, 나는 아직 그렇게 하기에는 역부족인 듯 하구나."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ЕЕ 무림야그 출력일 :: 98/11/11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2 권 제 60 장 - 1 동방량은 잠시 머뭇거리는 듯하다가 여전히 반쯤 외면한 듯한 자세로 약간 더듬거리며 말했다. "일전에......, 제게 부탁할 것이 있으면 말하라고 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잇습니다. 혹시, 지금 제가 그 말을 해도 되겠습니까? 화검상은 약간 의아스러운 듯한 표정으로 동방량의 얼굴을 바 라2보다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다. 내가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자연 전혀 거짓말을 하 지 않은 것은 아니었겠지만, 내가 네게 했던 그 말은 결코 식언 (食言)이 아니었다. 만일 내가 네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 있다 면 어서 말을 해보아라." 동방량은 깊게 숨을 들이쉬어 애써 침착한 마음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며 말했다. "그럼 이제부터 가능하면 사실 그대로를 말씀해 주시기를 바랍 니다. 당신게서 말하신 그 곡선적(曲線的)인 무공(武功)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는데......, 그것이 천하에 보기 드문 무공이고 배우기 도 어렵다며　드시 그 위력도 보기 드문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런 데 제가 보기에는 당신의 무공이 실로 천하(天下)에 보기 드물 정도로 대단하고 놀라운 것입니다. 혹시, 당신이야말로 그 곡선적 무공을 터득하신 분이 아니십니까? 화검상은 그만 가볍게 실소(失笑)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그만 네게 들통이 나고 말았구나......! 하긴 이런 것을 미 리 짐작하고 있어야만 했지. 사실 말이지만, 그 곡선적인 무공이 라는 것은 바로 내가 이름을 붙인 것이고 또한 내가 스스로 배워 온 무공이다. 아마도 네가 천하를 다 뒤진다고 해도 그런 무공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거의 찾아보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결국 이 렇게 들통이 나게 되니 창피스럽기는 하지만, 네가 나의 그러한 무공을 인정해 준다니 고마운 일이로구나." 동방량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다시 주저하다가 말했다. "그럼 저희 누나와 혼인(婚姻)을 해주십시오. 이것이 제 첫 번 째 부탁입니다." 화검상은 그 말에 약간 어이가 없다는 듯이 그의 얼굴을 바라 보고 웃으며 말했다. "내가 네게 그런 말을 했던 것은 그저 네가 혹시 나의곡선적인 무공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던 것이지 결코 그런 의 도는 아니었다. 이 혼인이라는 문제는 그렇게 너와 내가 이 자리 에서 그렇게 간단하게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선 너의 누나가 나를 좋아할지도 알 수 없는 일이 아니냐? 동방량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희 누나가 당신을 사모(思募)하고 있는 것은 확실합니다. 혹 시 당신께서 저희 누나를 귀찮아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화검상은 웃으며 길게 한숨을 내쉬더니 대답했다. "좋다, 기왕에 말이 나왔으니 솔직히 말을 하도록 하지. 내가 그녀의 병(병)을 고칠 수 있는 만큼 그녀의 건강상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녀는 실로 보기 드물게 침착할 뿐만 아니라 몹시 현명(賢命)하며 또한 아름답다. 내가 만일 네가 정말로 그녀가 나 를 좋게 생각하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면 한번 그녀와도 의논(議論)을 해보는 것이 어떻게느냐? 만일 그래서 그녀가 좋다 고 한다면 나도 역시 찬성이다." 동방량은 이에 문득 고개를 돌려 화검상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이윽고 그 자리에 엎드려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고맙습니다. 당신은 역시 훌륭하신 분이십니다. 예로부터 영웅 호걸(英雄豪傑)은 삼처사첩을 두어도 상관없다고 했으니, 만일 저 희 누나를 싫어하시지만 않는다면 저는 당신께서 악낭자 등 다른 사람들을 더 맞아들이는 것에 대해서 상관하지 않겟습니다." 화검상은 그만 실소(失笑)하며 손을 내저었다. "그런 인사는 나중에 해도 좋다. 아직 이 혼인(婚姻)이 성사된 것도 아니지 않느냐? 동방량은 다시 고개를 숙이며 떨리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그럼 이제 두 번째의 부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를 당신의 제자(弟子)로 삼아주십시오." 화검상은 잠시 동방량의 그러한 모습을 바라보다가 이윽고 다 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조금 전에 이미 말했다시피 네게 나의 이 곡선적 무공을 전해 주고 싶은 것은 내가 바라던 바였다. 말하자면 그것은 나의 욕심 (慾心)이었던 셈이지. 그런데 네가 직접 그렇게 말해주니 나로서 는 고맙기 이를 데 없구나. 너를 나의 제자(弟子)로 받아들이기로 하마. 하지만 그것은 부탁이라고는 말할 수가 없으니 다른 부탁 이 있다면 말해보아라." 동방량은 크게 몸을 떨며 고개를 들어 화검상을 올려다보더니 이어 다시 고개를 숙인 뒤에 가로저으며 말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저에게는 다른 부탁은 없습니다." 화검상은 한차례 길게 한숨을 내쉰 다음에 다가가서 동방량의 손을 잡아 일으키며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량(亮)아, 고맙구나! 너도 알다시피 나는 지금 여러 가지로 어 려운 상황에 몰려 있어서 그 화(禍)가 자칫 네게 돌아갈지도 모 르고, 게다가 나의 이 무공은 어밀히 말해서 화산파의 현재의 무 공과는 약간 다르다고 할 수 있으므로 너를 확산파의 제자(弟子) 로 입적시킬 수도 없는 일이다. 또한 나의 이 무공은 이제까지의 일반적인 무학(武學)의 이치와도 크게 다르다고 할 수 있으므로 네가 나를 진심으로 믿고 따르지 않는다면 배우기 어려운데 네가 그렇게 노력해주겠느냐? 동뱡량은 일순 눈물을 뚝뚝 흘리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이내 다 시 엎드려 큰절을 올리기 시작했다. "삼가, 제자(弟子) 동방량(東方亮)이 사부님을 뵈옵니다.! 저는 오직 사부님의 문하(門下)이며, 앞으로는 사부님의 말씀을 절대복 종하고 존경할 것입니다." 화검상은 역시 바닥에 주저앉아서 그 절을 받았고, 이어 동방 량이 절을 마치고 나자 따듯하게 안아주며 다정한 어조로 말했 다. "다른 문파(門派)의 사람들은 제자를 받을 때 여러 가지 의식 (儀式)을 행하곤 하지만 나는 아직 그러한 절차에 익숙하지 못한 편이다. 하지만 우리 사제지간(師弟之間)이 이미 서로 마음이 통 했으니 그것으로 족한 것이 아니겠느냐? 그리고......, 증표로 이 보검(寶劍)을 너에게 주마. 이것은 소위 신검(神劍)이라고 할 수 있는 것으로, 비록 겉으로 보기에는 무디게 보이지만 마음이 통 하게 되면 강력한 위력을 발희하게 되는 것이다." 화검상이 건네준 것은 바로 그 장생보검(長生寶劍)이었는데, 동 방량은 즉시 두말하지 않고 그것을 공손히 받아들어 허리에 찼 다. 이어 화검상은, 이젠 자신에게 거의 필요가 없게 된 금창약병 과 해독약병, 그리고 내상약병을 동방량에게 건네주었으며, 마지 막으로 이제 한 알 남은 자하신단(紫霞神丹)을 꺼내 그에게 복용 시켰다. "이제 몸을 돌리고 정좌(正坐)하고 앉아서 마음을 편안하게 하 고 있거라." 만일 일반인들이 그 자하신단을 복용하게 된다면 그저 일 갑자 의 공력(功力)을 얻게 될 뿐이지만, 화검상은 즉시 개정대법(開頂 大法)을 펼쳐 자신이 그 자하신단을 용해시켜서 동방량의 공력을 증가시켜 주었기 때문에 동방량의 전체의 공력은 갑자기 삼 갑자 나 증가하여 사 갑자 이상이 되게 되었고, 이어 화검상은 내친 김에 그의 대주천반운(大週天搬運)상의 현관(玄關)들마저 타통시 켜 그가 빨리 곡선적(曲線的) 무공(武功)의 상승경지(上乘境地)에 이르도록 해주었다. 기실 이 곡선적인 무공이라는 것은 그 깨우침에 요체가 있는 것이지 무슨 공력이나 진기(眞氣)의 운용(運用)에 의해 터득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동방량의 무공은 갑자기 짧은 시간 동안에 급증 하기는 했지만 그러나 그의 공력은 아직 단련되지 않았고 또한 아직 곡선적인 무공에 대해서 모르는 만큼 그 잠재되어 있 는 공력들을 다 사용할 수가 없는 상황일 것이다. 화검상은 이어 동방량을 바로 앉게 하고 비교적 간단한 곡선적 무공의 기본적인 요결(要訣)에 대해 반복하여 가르쳤고, 이윽고 동방량이 어느 정도 이해하고 암기한 듯하자 비로소 그러한 모든 절차를 마쳤다. "너의 공력은 지금 사 갑자 반에 달하고 곡선적 무공의 절정 (絶頂)경지의 토대를 이루었다고도 할 수 있으나, 일단은 그 요결 에 대해서 깊이 깨우치지 않는 한은 그러한 공력뿐만 아니라 무 공을 사용할 수가 없다. 지금 너의 공력의 절반 가까이는 곡선적 인 흐름에 의해 잠재되어 있으므로 아마도 일반적인 절정경지에 다 공력이 갑자 반 종도의 능력을 보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 로 너는 앞으로 그 요결을 부지런히 연마(練磨)하여 곡선적 무공 을 사용할 수 있게 되도록 해야 한다. 알겠느냐?"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ЕЕ 무림야그 출력일 :: 98/11/11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2 권 제 60 장 - 2 동방량은 이제 마악 절정(絶頂)경지에 올라 안색이 불그레해지 고 두 눈에서 맑고 온화한 기운(氣運)이 흐르고 있었는데, 화검상 의 말을 듣자 즉시 공손히 대답했다. "예, 사부님!" 화검상은 이에 몸을 일으키며 다시 말했다. "지금까지는 내가 너의 운공(運功)을 도운 것이지만 이제부터 는 네가 스스로 조식(調息)하여 지금의 경지를 확실한 너의 것으 로 만들어야 한다. 너는 지금 그대로 앉아서 계속 조식하도록 해 라." 그 동안 제법 상당한 시간이 흘렀으므로 화검상은 곧장 다시 자신의 그 객방으로 돌아갔다. 서귀현과 동방리 등 여섯 사람은 과연 그 동안 많은 토의를 거 쳤는지 이미 서로 말들이 없었으며, 화검상이 안으로 들어오자 일제 그를 주시했다. 화검상은 다시 아까의 그자리에 앉으며 입을 열어 말했다. "제가 너무 늦은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만일 여러분의 뜻 이 모아졌다면 지금 말씀해주십시오" 아까까지 비교적 말이 많았던 양귀해는 지금은 약간 그를 외면 하고 있을 뿐 입을 열지 않았다. 대신 여러 사람들을 대표하듯 서귀현이 다소 정색(正色)을 하 고 그에게 입을 열어 말했다. "이미 우리들 사이의 논의(論議)는 끝났습니다. 그 얘기를 하기 전에 우선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만일 우리의 뜻이 확고부동한 것이라면 단주께서는 우리와 뜻을 함께하실 의사가 없으십니끼? 화검상은 그 대답을 하기 전에 무의식적인 행동인지 고개를 돌 려 동방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동방리는 이에 가볍게 안색(顔色)을 상기시키더니 고개를 내저 으며 말했다. "저는 이미 그 일을 실행에 옮기고 있는 상황입니다. 지금으로 서는 그럴 수가 없군요. 혹시라도 여러분께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실 의향은 없으십니끼?" 양귀해가 여전히 고개를 외면한 채로 쌀쌀맞은 어조로 대꾸했 다. "당신이 안 된다면 그만이지 우리더러 다시 한번 더 생각하라 고 할 것은 또 뭐가 있소? 그대는 알고 보니 이런 일에 우리를 이용하려고 끌어들인 것이로군? 화검상은 입가에 담담한 미소를 떠올리며 말했다. "어떻게 생각을 하셔도 좋지만, 어쨋든 제가 이제까지 여러분 에게 해를 끼친 것은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말에 양귀해는 일순 탁자를 후려치며 몸을 벌떡 일으키며 소리쳤다. "뭐라고, 해를 끼친 것이 없다고? 당신 때문에 우리 백혈단(白 血團)이 풍비박산이 나고 또한 이름도 엉망으로 더렵혀지게 되었 는데 그래도 아무런 해가 없다는 말인가?" 화검상은 미소한 뒤 가볍게 포권하며 말했다. "그렇다고 해도 일단은 자리에 앉아서 말씀을 하시는 것이 좋 을 듯합니다. 저는 그래도 아직은 여러분의 단주가 아니겠습니 까?" 양귀해는 너무나도 어이가 없는지 고개를 돌리며 크게 냉소(冷 笑)를 지었다. "흥, 뭐라고......? 정말 뚫린 입이라고 말은 잘하는군!" 서귀현이 양귀해의 말이 다소 지나치다고 생각했는지 그를 약 간 손을 저어 제지하는 듯하면서 화검상을 향해 말했다. "사실 우리는 단주께서 계속 그렇게 고집을 부리신다면 앞으로 더이상 그 직위를 인정할 수가 없다는 합의(合議)를 보았습니다. 그래서 상황이 그만 이렇게 그만 이렇게 되었으니 우리는 내일 아침에 다시 태행산(太行山)으로 돌아갈까 합니다." 화검상은 다소 우울한 표정으로 그 말을 듣고 있다가 이내 고 소(苦笑)하며 말했다. "정말 어쩔 수가 없는 일이로군요. 모든 것이 제가 잘못한 탓 이니 여러분의 질책을 달게 받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결속한 지 불과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도 이렇게 헤어져야 한다 니 정말로 가슴 아픈 일이로군요." 양귀해가 음산(陰散)하게 웃으며 소리쳤다. "정말 네놈도 위군자(僞君子)가 다되어 가는군. 흐흐흐, 어디 참지 못하겠다면 우리를 모두 죽여보지 그래?" 동방리가 그 말을 듣고 그만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저분은 그래도 조금 전까지만 해도 당신들의 단주였으며 게다 가 당신들의 목숨을 구해준 생명의 은인(恩人)인데 감히 그런 말 을 할 수가 있나요?" 서귀현이 다시 발작하려는 양귀해를 제지하면서 몸을 일으킨 뒤에 화검상을 향해 포권하며 말했다. "화공자, 우리는 서로 잘해보려고 하다가 뜻하지 않게 이런 결 과를 맞이하게 되었지만 기실 누구도 당신을 원망하거나 미워하 지는 않소. 다만 당신도 사실은 우리와 목적이 비슷하다고 말했 으니 건투를 빌어줄 뿐이오, 그럼 무사히길 빌겠소!" 서귀현이 몸을 일으켜 그렇게 말한 뒹에 밖으로 걸음을 옮기자 다른 사람들인 오귀문과 한귀풍 등도 역시 몸을 이르켜 그의 뒤 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더이상 말이 없었지만, 화검상도 그저 다소 우울(憂鬱) 한 표정만을 지을 뿐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이윽고 그들이 모두 사라지자 이 객방 안에 남은 사람은 화검 상과 동방리 두 사람뿐이었다. 화검상은 문득 시선을 돌려 그녀를 바라보며 쓴우슴과 함계 말 했다. "지금 량(亮)은 조식을 하고 있는 중이니 낭자가 가서 보살펴 주는 것이 좋겠소. 자칫하면 주화입마(走火入魔)를 당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오" 동방리는 뭔가 말을 하려는 듯했으나, 그 말에 문득 무슨 생각 이 들었는지 두 눈에서 기광(奇光)을 빛내며 화검상을 바라보다 가 이윽고 고개를 끄덕이며 역시 물러가고 말았다. 화검상은 잠시 객방 안에 혼자 앉아서 그 상태로 깊은 생각에 잠겼다. 마치 그는 명상(冥想)에 잠겨 있는 것 같기도 했고, 혹은 그러 한 우울한 감정 속에 계속 젖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 때 문득 다시 방문이 열리면서 한 사람이 안으로 들어섰다. 그 사람은 바로 다름아니 악검림(岳劍林), 그녀였다. 악검림은 화검상의 표정이 다소 우울해 보이는 것을 보고 약간 의아해 하는 듯하다가 이내 다시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화사형......, 혹시 제가 방해가 된 것은 아닌가요? 그렇다면 즉 시 다시 나갈게요. 사실 그다지 특별한 볼일이 있어서 이곳에 온 것은 아니거든요?" 화검상은 가볍게 실소(失笑)한 다음에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방해가 되긴. 마침 사매와 할 얘기도 있었는데, 이렇게 찾아와 주니 잘된 일이로군. 어서 이곳으로 와서 앉도록 해" 악검림은 화검상이 다시 밝은 미소를 보이자 매우 기뻐하며 즉 시 다가와 탁자 앞에 마주앉으며 말했다. "화사형, 내게 할 얘기라는 것이 무엇이죠? 사실 나는 그 동안 아주 바보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조금 전에 화사형을 만나면 무슨 얘기를 해야 하나 하고 크게 망설였었어요" 화검상은 미소와 함께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이윽고 다시 말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째姸 무림야그 출력일 :: 98/11/11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2 권 제 60 장 - 3 "사매가 이렇게 나를 특별히 생각해서 험난(險難)한 길을 마다 않고 찾아와준 것은 나로서는 매우 고마운 일이야. 하지만 사매 가 이러한 행동을 취할 경우에는 사매의 부모님이 걱정하실 뿐만 아니라 좋징 않은 상황에 처하게 되지 않을까? 악검림은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지 않아요. 나는 이미 스스로 살아나갈 수 있는 나이가 되어버렸고, 또한 우리 부모님은 나 때문에 곤란한 상황에 처하 게 될 정도로 그렇게 약하지는 않아요. 오히려 그분들은 아주 냉 정(冷情)하신 분들이고 또한 이제는 나를 포기하다시피 하고 계 시는걸요. 호호, 그런 면에서 본다면 나와 화사형은 거의 처지가 같다고도 할 수가 있을 거예요. 게다가......, 나는 이미 어떤 일이 있더라도 화사형과 한편이 되기로 작정한걸요. 아무래도 여인들 중에서 보기 드물게 순수한 열정(熱情)으로 가득 차 있는 듯한 이 악검림을 보게 되면 마음이 절로 부드러워 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화검상은 과거 그가 어려웠던 상황에서 그녀를 통해 마음의 위 안을 많이 느꼈던 것을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 화검상은 잠시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으로 그녀의 얼굴을 바라 보다가 화제를 돌려 다시 말했다. "으음......, 아까 사매가 무공을 펼치는 것을 보니 내가 전에 주 었던 그 비급(秘 )을 전혀 연마하지 않은 것 같은데, 그건 어찌 된 일이지? 악검림은 안색이 약간 상기된 듯한 표정으로 웃으며 대답했다. "그건 오로지 저의 잘못이었어요. 화사형은 저를 위해 그 비급 을 애써 만들어준 것이지만, 저는 화사형이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고는 밥도 먹지 못하고 매일 아파서 방에 누워 있으면서 그 비 급을 꺼내보고는 많이 울곤 했죠. 그런데 저희 부모님께서는 제 가 그 비급 때문에 그러는 것이라고 생각하시고는 그 비급을 그 만 가져가버리고 말았어요. 그래서 저는 화사형의 기대를 저버리 고 정작 그 비급을 한번 배워보지도 못한 거죠." 화검상은 가볍게 실소(失笑)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그래서 사매의 무공(武功)이 그 동안 별로 늘지 않은 것 이로군, 하지만 이제 내각 있으니 그런 비급은 다시 얼마든지 만 들어줄 수가 있지. 걱정할 필요가 없을 거야." 악검림은 여전히 상기된 표정으로 눈빛을 빛내면서 말했다. "저는 그 이후에 많은 이후를 했지요. 왜 저는 바로같이 그 비 급을 몰래 보지 않고 들켜서 빼앗기게 되었을까 하고요. 아마도 저는 그때부터 이미 바보가 되어버렸던 것 같아요. 저는 그일로 저희 부모님과 많이 싸우기도 했지만 그러나 소용이 없었거든 요." 화검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 보이며 다시 화제(話題)를 바 꾸어 말했다. "이런 애기를 들으면 사매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 러나 일단은 얘기를 해주는 것이 좋을 것 같군. 사실 말이야, 나 는 아무래도 사매가 아까 본 그 동방낭자(東方娘子)와 혼인(婚姻) 을 하게 될 것 같아 이건 조금전에 이야기가 오고 간 것이라 아 까는 미처 이런 얘기를 해주지 못했지. 그리고 또한 나는 아까 그 백혈단(白血團)의 사람들과 결별하게 되어서 그만 다시 외톨 이가 되고 말았지. 나는 사실 사매가 생각하눈 것처럼 그리 대단 한 사람은 아니야" "어머, 그래요? 그건 참 잘된 일이군요? 저도 그 동방낭자가 무척 마음에 들었어여. 우리가 만일 한 자매(姉妹)처럼 친하게 지 내며 화사형 도와드린다면 참 좋을 것예요. 호호......, 저도 사실 그 동생이 화사형을 이미 사모(思慕)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 어." 화검상은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지으려고 했지만 악검림이 내심 감정(感情)이 혼란스러워 어쩔 줄을 몰라 하는 것을 보고, 그만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탄식하며 말했다. "너는 대체 이 쓸모없는 나의 어디가 좋다고 그렇게 애를 태우 는냐? 나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더러운 대소변을 보는 사람이 고, 게다가 이미 천하(天下)에 가장 나쁜 패륜아로 낙인(烙印)이 찍혀 있다는 것을 너도 알고 있지 않느냐? 악검림은 그 말에 일순 넋 나간 듯이 멍한 표정으로 두 눈에서 눈물을 주르르 흘리더니, 즉시 몸을 일으켜서 화검상에게 달려와 와락 안기며 고개를 도리질하여 울며 말했다. "제가 나쁜 계집아이예요! 저는 사형을 보지 못하는 사이에 어 느새 그렇게 되어버렸어요. 조금 전에도 온갖 나쁜 생각만을 하 며 사형을 그리워하다가 잠을 잘 수가 없어서 이곳으로 오고 만 거예요. 저는 사형이 죽는 것도 실고 오직 나만 바라보고 있기만 을 바래요. 저는 이미 그런 나쁜 계집아이가 되어 버렸는데 어떻 게 사형과 함께 지낼 수가 있겠어요. 저는 나 자신이 미워 죽겠 고, 또한 죽어버리는 것이 좋을 거예요......!" 화검상은 한편으로 어이가 없고 우습기도 하다가, 그만 실소 (失笑)하며 그녀를 부드럽게 안아주며 말했다. "악사먜......, 너는 비록 나의 사매이지만 그러나 천하에서도 아 주 보기 드문 희한한 사람임에 특림이 없는 것 같다. 세상의 여 자들은 거의 대개가 그렇게 욕심(慾心)을 내고 또한 남을 질투 (嫉妬)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이를테면 여자이기 때 문에 생겨나는 자연스러운 감정(感情)의 변화라고도 할 수가 있 지. 하지만 세상의 모든 여자들이 실로 너처럼 그렇게 솔직하고 그것을 나쁘다고 생각하여 고민한다면 아마도 좋은 여자는 하나 도 남아 있지 않게 될 것이다. 하하......, 그래서 너는 사실 내가 사랑하는 사매(師妹)이고, 실로 세상에서 보기 드물게 훌륭한 한 여인(女人)일 수가 있는 셈이지. 네가 훌륭한 일이다. 다만 나는 지금 너를 위해서 이런 말들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야......." 제 61 장 감로(甘露) 악검림은 이전에는 상사(想思)의 고통(苦痛)을 몰랐으나 화검상 이 죽었다고 알려진 이후부터 그러한 것을 깊이 알게 되었으니, 이제는 그 마음이 과거와 같다고는 할 수가 없었다. 그녀 스스로는 타락(墮落)했다고도 생각할 수가 있겠으나, 기실 이제 그녀는 그와는 반대로 여인 (女人)으로서 더 한층 성숙하게 되었다고도 말할 수가 있을 것이다 본래 그렇게 욕심(慾心)에 물들고 인색(吝嗇)해지며 질투를 하 게 되는 것은 나쁜 일이지만, 그러나 그러한 것들에 접하게 됨으 로서 비로서 좀더 깊이 인생(人生)을 느끼게 되는 것이며 좀더 깊이 자기 자신을 수행(修行)해나갈 계기가 되는 것이니라. 악검림은 다시 도리질하며 말했다. "싫어요, 나는 지금 사형과 함께 여기에서 자고 싶어요." 화검상은 미소한 뒤에, 그녀를 가볍게 밀어내며 말했다. "알고 보니 너는 그 동안 비단 울보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도 로 어린아이가 되어버리고 말았구나. 과거에 너는 비록 지나치게 단순한 점도 없지 않았지만, 그러나 장차 강호의 여협(女俠)이 되 고 말겠다는 강한 의지력을 가지고 있었다. 너의 그와 같은 훌륭 한 모습은 이제 어디로 갔느냐......? 악사매, 우리는 비록 그간에 다시 볼 수 없을 뻔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었으니 앞으로는 언제든지 보고 싶으면 만날 수가 있게 될 것 이다. 그런데 어째서 마음을 그렇게 조급하게 가지느냐?" 악검림은 잠시 생각을 해보는 듯하다가, 이윽고 다시 입가에 가벼운 웃음을 떠올린 뒤에 화검상과 떨어지며 말했다. "하긴......, 그래요. 저는 정말로 바보같이 변하고 말았지요. 하 지만, 정말로 우리는 다시 헤어지지 않겠지요?" 화검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기실 사람의 앞날은 쉽게 예측할 수 없 는 것이기는 하지만......,그러나 나는 앞으로 너를 실망시키지 않 도록 노력할 것을 약속하마. 자, 그럼 이만 가서 자야지?" "알겠어요, 화사형. 이렇게 와서 귀찮게 해드려서 미안해요. 하 지만......, 나는......." 악검림은 뭔가 약간 주저하는 듯하다가, 갑자기 달려들어 화검 상의 얼굴에 입을 맞춘 다음에 금세 빨개진 얼굴로 도망치듯 밖 으로 사라지며 말을 이었다. "안녕히 주무세요, 화사형......!" 확실히 이 악검림은 화검상을 연모(戀慕)하고 있는 듯하지만 그것을 과연 말 그대로 사랑이라고 할 수가 있을까? 물론 그녀가 어느 정도 화검상을 사랑하게 된 것은 사실이겠지 만 거기에는 근본적으로 어떤 우정(友情)과도 같은 것이 깊이 깔 려 있기 때문에 사랑이라기보다는 우정이라고 말하는 것이 나을 것이고, 게다가 당연히 이런 우정도 사랑 못지않게 소중한 것이 라고 말할 수가 있을 것이다. 화검상은 갑작스런 그녀의 행동에 다소 어안이 벙벙하기도 하 고 우습기도 하여 잠시 실소(失笑)를 한 뒤에, 곧장 자리에서 일 어나 잠을 자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어디선가 그의 귓속으로 요염한 듯하면서 도 한편으론 비웃는 듯한 음성이 전음입밀(傳音入密)의 수법으로 들려왔다. "호호, 당신은 알고 보니 제법 그럴듯한 위선자(僞善者)에다 위 군자(僞君子)로군요. 마치 목석처럼 당신은 전혀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계속 그럴듯한 말만을 늘어놓고 있었어요. 하지만 과연 당신이 그렇게 훌륭한 도덕군자일까요? 솔직히 내가 없었더 라면 그녀와 잠을 자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요." 가볍게 창문의 휘장이 흔들리며 어느새 방안에는 여검월이 들 어와 있었다. 실상 이건 화검상도 아까부터 알고 있었던 일로, 그녀를 계속 창밖에서 기척을 숨긴 채 방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엿보고 있었 던 것이다. 화검상은 반쯤 몸을 일으킨 상태에서 약간 멈칫하는 듯하다가, 이내 웃으며 다시 자리에 앉으면서 담담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여사매도 그간 많이 변한 것 같군. 언제부터 이렇게 도둑고양 이가 되어버렸지?" 여검월은 훌쩍 신형(身形)을 날려 곧장 침상으로 다가가 앉으 며 다소 냉랭한 어조로 말했다. "나는 본래 나쁜 계집아이이고 악사자는 아주 좋은 여자이죠. 나를 도둑고양이라고 한다고 해도 그것은 칭찬일 수밖에 없는 일 이겠죠. 그렇지 않나요?" 과거 여검월은 대단히 청순하게 느껴지던 소녀였고, 게다가 아 직 나이도 악검림보다 두 살이나 어린데도 불구하고 지금은 기이 하게도 악검림과는 대조적으로 요염해 보이고 더욱 노련해 보이 는 모습이었다. 그렇다면 과연 그녀는 본래부터 이러한 품성(品性)을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겉으로 드러내 보이지 낳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갑자기 그사이서 사람이 이렇게 많이 달라진 것일까? 화검상은 고개를 돌려 침상 위에 걸터앉은 그녀를 바라보며 가 볍게 실소(失笑)하는 듯하다가, 약간 정색을 하며 대꾸했다. "그렇지 않아, 여사매. 나는 옛날부터 여사매를 귀여워했고 또 한 지금도 근본적으로는 악사매와 같이 잘 대해주려고 노력하고 있지. 그러니 굳이 그렇게 나를 비웃는 것처럼 바라보지 않았으 면 좋겠다." 여검월은 여전히 다소 싸늘한 기색(氣色)으로 짐짓 고개를 갸 웃거리며 말했다. "오호......, 그런가요? 호호호! 그 성의는 대단히 놀랍군요. 나는 당신이 설마 하니 내게도 위군자처럼 행동하게 될 줄은 몰랐어 요. 호호호, 당신은 정말로 아주 대단히 훌륭한 사람이로군요?" 화검상은 다소 씁쓸하게 웃은 뒤에 이어 화제를 돌리며 말했 다. "마침 내가 한가지 사실을 잊고 있었는데 잘됐다. 아까 녹사백 이 무슨 말을 하려다가 만 것 같은데......, 너는 그 사실을 알고 있겠지? 대체 지금 화산파(華山派)에 무슨 일이 있다는 거냐?" 여검월은 문득 다소 기이(奇異)한 표정이 되어 잠시 화검상을 주시하다가, 이내 웃으며 대꾸했다. "그럼 당신은 정말로 그 일을 모르고 있다는 말인가요? 화검상은 마주 웃으며 말했다. "모르고 있으니까 묻고 있는 것이 아니냐? 여사매, 그래 대체 화산파에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지? 설마 하니 나 때문에 이번의 싸음에서 화산파에 많은 피해를 보았다는 것은 아 니겠지?" 여검월은 여전히 기이한 표정으로 화검상을 주시하며 잠시 뭔 가 생각해보는 듯하다가, 다시 냉소(冷笑)를 하며 되물었다. "좋아요, 그렇다면 우선 내가 먼저 화사형께 한 가지 묻도록 하죠. 으음......, 대체 당신은 그때 본파(本派)에 몇 권의 비급을 만들어 놓은 것이죠?" 화검상은 그 말에 약간 어리둥절해져서 대꾸했다. "비급이라니......? 음, 나는 악사매 등에게 몇 자 적어주기도 했 지만 정식으로 비급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너도 알다시피 한 권 뿐이. 설마 하니 그 일에 무슨 문제라고 생겼다는 말이냐?" 여검월은 가볍게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흥, 당신은 그 말을 듣고도 아직 모르겠다는 말인가요? 정말 로 뻔뻔스럽군요! 당신은 사실 미리부터 이와 같은 결과를 내다 보고 그와 같은 것을 했던 것이 아닌가요?" '그와 같은 짓이라니? 나는 당시 그저 호의적으로 열심히 한 권의 비급(秘 )을 만들어주었던 것인데......, 그것을 감히 비난받 을 짓이라고 말할 수가 있을까?' 화검상은 매우 어이가 없어서 실소(失笑)하며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다가, 그녀를 바라보며 다시 말했다. "여사매, 아까도 말했지만 내가 지금 모르니까 이렇게 묻고 있 는 것이 아니냐? 그렇게 비웃지만 말고 그것에 관해 좀더 자세히 말해 줄 수는 없겠느냐?" 여검월은 잠시 고개를 돌려 외면하고 뭔가 깊이 생각해보는 듯 하다가, 이내 다시 화검상을 주시하며 가볍게 냉소(冷笑)하며 대 꾸했다. "좋아요! 일단 당신이 그렇게 정말로 모른다고 하니 내가 좀더 자세히 말해주도록 하지요. 하지만 그냥은 안 되겠고 거기에 한 가지 조건을 제시하겠어요. 만일 당신이 그 조건을 들어준다면 나도 당신의 소원대로지금 그이야기를 자세히 가르쳐주도록 하 죠." 화검상은 그만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 조건이란 뭐냐?" 여검월은 이내 대답했다. "아주 쉬워요. 그건 바로, 호호, 오늘 하룻밤 당신을 내게 빌려 주는 거죠. 아니면 당신이 나를 빌린다고 해도 상관은 없어요. 그 래서 함께 침상 위에 누워서 우리 두 사람이 이전에 하지 못했던 정담을 나누는 거죠. 그렇지 않나요?" 말할 것도 없이 이것은 아무리 좋게 보아도 유혹(誘惑)인 셈인 데, 어이가 없게도 그녀는 지금 안색 하나 붉히지 않고 그런 얘 기를 하고 있었다. 화검상은 그만 놀랍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여 그녀의 얼굴을 바 라보고 있다가 웃으며 다시 말했다. "너는 그 동안 농담이 많이 늘었구나. 그보다 어서 그 얘기를 해보아라. 혹시 내가 지금의 화산파의 일에 대해서 도움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르지 않느냐?" 여검월은 이에 금세 다시 안색이 냉랭(冷冷)하게 변하여 고개 를 돌리고 외면하더니 쌀쌀맞게 대꾸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무림야그 출력일 :: 98/11/20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3 권 제 61 장 - 1 "흥! 내, 이미 그럴 줄 알았어요! 과연 벌써 당신은 알고 있으 면서도 시치미를 떼고 있군요. 호호, 나를 더 이상 비참하게 만들 지 말아요. 내가 비록 이렇게 비천하게 보일지라도 지금의 상황 에서 당신에게 그래도 가장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나예 요. 상황이 이미 그렇게 되었다고 해도 그들을 아직 허수아비가 아닐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욱 무섭다는 것을 당신은 알아야 할 거예요. 호호......!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당신이 만일 오늘밤 나 와 동침을 하고 혼인(婚姻)을 해준다면 장차 나는 당신의 목숨을 구해주도록 하겠어요." 화검상은 그녀가 이번에는 노골적으로 혼인이라는 말을 꺼내는 것을 보고 다소 눈살을 찌푸리며 이내 다시 정색(正色)을 하고 말했다. "네가 내게 그런 얘기를 해줄 생각이 없다면 그건 나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 혼인이라는 것은 서로가 인연(因緣)의 맞아야 하는 것이지 억지로 하려 한다고 해서 되는 일은 아니다. 내가 보기에는 너는 나와 그런 인연이 아닌 것 같구나." "호호호, 인연이 아니라고요? 당신은 감히 나를 이렇듯 비참하 게 만드는군요? 호호호......! 여자가 한(恨)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말이 있지 않나요? 좋아요, 어디 한번 마음대로 해보세요!" 놀랍게도 그녀는 즉시 옷을 훌훌 벗어버리고 금세 알몸이 되어 침상 위에 벌렁 누워버리는 것이었다. 무공(武功)을 배워서인지 그녀가 옷을 벗는 모습은 매우 빠르 면서도 현란해 보였다. 게다가 그녀의 몸매는 그야말로 벌써부터 육감(肉感)적으로 잘 발달되었고 균형 잡혀 있었지만 지금은 상황에서 그것을 아름답 다고는 말할 수가 없었다. "호호호! 만일 당신이 내게 어떤 수작을 부린다면 나는 즉시 소리를 지르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들 모두에게 떠들고 다니겠어 요. 호호, 지금 이와 같은 광경을 그 백혈단의 고고하신 양반들이 본다면 과연 당신에게 어떻게 대할까요? 호호, 우습지 않나요? 호호.......그러지 말고 어서 이리 와서 남을 안아줘요. 당신이 정말 로 어린아이가 아닌 사내라면 말이에요." 화검상은 그만 심하게 눈살을 찌푸리고 고개를 돌려 외면한 채 그대로 무거운 표정으로 대꾸하지 않았다. 지금의 상황으로 보아 비록 그가 무공을 펼쳐서 그녀에게 강제 로 손을 대지 않고도 옷을 입혀서 쫓아버릴 수는 있었겠지만, 역 시 그녀의 말대로 난처하기 이를 데 없는 상황이라고 아니할 수 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그런 문제보다는 어째서 여검월이 이와 같은 행동을 하고 있는가 하는 의문(疑問)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있었 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는 그다지 용모(容貌)가 못생긴 편은 아니 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여자들에게서 인기를 한몸에 받을 만 큼 대단히 잘생긴 것도 아니라고 할 수 있었다. 그 가까운 예로 얼마 전에 그가 그토록 쫓아다녔던 남궁세가 (南宮世家)의 소저(小姐)도 그를 마치 벌레 보듯 싫어했으며, 비 록 변장을 하기는 했어도 동방리(東方莉)도 그의 능력만을 대단 하게 생각했을 뿐 근본적으로 그에게 관심을 별로 없었으며, 또 한 눈앞의 여검월도 처음에는 아주 현실적으로 그를 대하고 이었 을 뿐 그를 대단히 좋아했던 것은 아니었다. 일전에 그와 혼인을 하겠다고 했던 천륭무가(天隆武家)의 석한 절(石恨絶)이나 조금 전의 악검림(岳劍林)등도 사실은 모두가 어 떤 특별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화검상에게 그토록 연연하게 되었 을 뿐이다. 그런데 대체 그토록 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여검월이 어 째서 지금 그를 유혹하며 혼인(婚姻)을 하려고 드는 것일까? 거기에는 필시 어떤 특별한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닐까? 그때 문득 마치 이러한 상황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이, 밖에서 가벼운 기척이 일며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동방리의 조심 스러운 음성이 들려왔다. "저어......, 화공자님, 지금 잠시 들어가도 될까요?" 이것은 실로 매우 공교롭고도 난처한 상황이라고 아니할 수가 없었다. 가뜩이나 화검상에 대한 세상의 평판이 좋지 않은 상황인데, 거기에다 이런 소문마저 나돌게 되면 그 여파는 어떻게 감당해야 할 것인가? 물론 그의 대단해진 무공(武功)을 사용하여 어떻게 해볼 수는 있겠지만, 결국 이러한 문제는 그렇게 한다고 해도 크게 달라지 지는 않을 것이다.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려 여검월을 보니, 그녀는 약 간표정이 굳어 있었지만 이내 다시 그 모습 그대로 의기양양하게 웃으면 이러한 말하는 것이었다. "호호, 마침 잘 됐네요, 어서 그녀더러 들러 오라고 하지 그래 요? 위군자(僞君子)양반, 나와 당신이 이렇게 달콤한 한때를 보내고 있는 것을 들키는 것이 부끄러운가요?" 화검상은 다시 길게 한숨을 내쉰 다음에 이윽고 방문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들어오시오." 여검월은 설마 하니 그가 이런 상황에서 정말로 동방리에게 들 어오라고 말할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가, 그 말을 듣자 이내 안색이 굳어지고 눈에서 독기(毒氣)를 내뿜으며 즉시 뭔가 말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뜻밖에도 동방리는 마치 화검상의 그거한 말을 기다리 기라도 한 듯이 이번에는 서둘러서 여검월이 미처 말을 꺼내기도 전에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고, 이어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화검상을 향해 말했다. "미안해요, 시간이 이미 늦은 줄은 알지만 한가지 의논드릴 일 이 남아서요." 화검상은 입가에 미소를 떠올리며 그녀를 바라보고 있다가 자 신의 앞자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마침 나도 아직 잠을 자지 않고 있었으니 미안해 할 것은 없 소. 어서 이리 와서 앉으시오." 동방리는 비록 짐짓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다소 표정이 굳어져 있었는데, 그 말을 듣자 다시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화검상의 앞 자리에 와서 앉았다. "백혈단(白血團)의 그 사람들은 이미 모두 서둘러서 떠나버렸 어요. 그리고 저는 조금 전에 저의 동생과 여러가지 얘기를 나누 게 되었는데, 그래서 이렇게 다시 찾아오게 된 거예요." 서귀현 등이 그렇게 빨리 떠나버렸다는 것은 다소 의외이기는 하지만 그들은 아마도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잠시라도 더 화검 상 등과 함께 생활할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화검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해보는 듯하다가 말했 다. "량(亮)아는 지금 잠을 자고 있소?" "예, 한데 지금 이곳에 손님이 와 계신 모양이로군요?" 동방리는 대답을 하면서 고개를 돌려 침상 쪽을 바라보다가 짐 짓 다소 의아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화검상은 가볍게 고소(苦笑)를 지으며 말을 받았다. "그렇소, 보다시피 그녀는 지금 내 침상을 차지하고 누워 있는 상황이오." 여검월은 안색이 새파랗게 변해서 두 눈에서 독기를 펄펄 날리 고 있었지만 그러나 애써 침착을 유지하며 그대로 누워 있었다. 동방리는 이어 그녀의 앞으로 다가가더니 상냥한 표정을 지으 며 미소하며 여검월에게 말했다. "여낭자(余娘子)로군요. 나는 항상 소심해서 낭자와 같은 활발 한 모습이 항상 부러워요. 하지만 늘상 그래도 노력하는 편이니 우리는 반드시 친구가 될 수 있을 거예요. 여낭자, 우리 앞으로 친자매처럼 잘 지내도록 해요." 여검월은 뜻밖의 그녀의 행동에 크게 놀라면서도 의아해 하고 있다가 그 말에 이내 몸을 일으켜 않으며 사납게 말했다. "흥, 누가 당신과 친자매가 된다는 거지? 당신도 결국 위선자 로군그래? 호호, 내 이 모습이 이상하지 않다는 말인가? 저 인면 수심(人面獸心)같은 작자가 나를 이 꼴로 만들었는데도 당신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말인가?" 동방리는 미소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게 나쁘게만 생각하지 말아요. 어차피 나도 저분을 모시 기로 한 사람이에요. 그러니 우리가 이렇다고 한들 무슨 상관이 있겠어요? 낭자의 마음이 그렇게 어색하다면 지금 나도 낭자처럼 옷을 벗을까요? 호호, 하지만 나는 낭자처럼 몸이 예쁘지 않으니 부끄럽군요." 여검월은 그 말에 잠시 독기 어린 시선(視線)으로 동방리를 노 려보다가, 이윽고 다시 빠르게 옷을 모두 걸치고는 침상의 아래 로 내려와 밖으로 신형을 날리며 화검상을 향해 원한(怨恨) 맺힌 음성으로 소리쳐 말했다. "네놈이 언젠가는 이 일을 후회하게 될 날이 있을 것이다. 나 는 장차 네놈의 가슴을 난도질해버릴 것이고 또한 죽어 지옥에서 영원히 헤어나지 못하도록 저주(咀呪)할 것이다......!" 화검상으로서는 갑자기 여검월이 그렇게 훌쩍 사라져버리자 매 우 다행스러운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무겁고 씁쓸한 기 분이 더 앞서서 다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동방리는 다시 그에게 고개를 돌리며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제가 혹시 어떤 방해가 되지는 않았나요? 그렇다면 정말 미안 해요." 화검상은 그녀가 일부러 그렇듯 웃고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지금 그녀의 눈가에는 눈물자국이 남아 있는 것을 알 수가 있었 다. 그녀는 여검월이 사라지는 동안 빠르게 옷소매로 자신의 눈물 을 닦아내고 나서 다시 이렇듯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짓고 있 는 것이다. 화검상은 다시 고소(苦笑)를 지은 후에 몸을 일으켜 걸음을 옯겼고 이윽고 침상 위에 걸터앉아서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낭자가 이미 량아와 얘기를 나누었다니 어느 정도 내 뜻을 짐 작하고 있을 것이라고 믿소. 나는 비록 지금은 정식으로 예(禮)를 갖추어 낭자를 맞이할 수는 없지만 장차 반드시 그렇게 할 날이 오게 될 것이라고 보오. 이제는 낭자의 의견을 들어보고 싶소."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무림야그 출력일 :: 98/11/20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3 권 제 61 장 - 2 동방리는 다시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저는 아직 몸을 씻지 못했어요. 지금 욕실에 들어가서 몸을 씻고 와도 될까요?" 동방리가 욕실에서 나온 다음, 화검상이 욕실로 들어가서 목욕 을 하는 사이에 동방리는 말없이 방안을 대강 치우고 침상 위를 정리했다. 화검상이 욕실에서 나오니, 그녀는 촛불이 은은한 빛을 발하는 가운데 말끔해진 모습으로 다소 수줍은 표정이 되어 그를 바라보 고 있었다. 화검상은 담담한 표정으로 그녀의 얼굴을 마주 바라보다가 이 어 약간 정색(正色)을 하고 말했다. "낭자의 선천음양절맥(先天陰陽絶脈)은 이미 상태가 악화되어 체력이 크게 쇠약해져 있는 상황이오. 본래는 다른 치료를 할 필 요가 없겠지만 지금은 우선 간단한 치료를 통해서 원기(元氣)를 회복시켜야 하겠소." 동방리는 그 말을 듣자 곧장 말없이 미소를 지으며 침상 위로 올라가 앉았다. 화검상은 침상 위에 올라 그녀의 등뒤에 앉은 다음 손바닥을 그녀의 머리 위에 얹고서 개정대법(開頂大法)으로 그녀를 치료하 기 시작했다. 사실 이 개정대법이라는 것은 무공이 낮은 사람들에게는 자칫 위험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가장 효과가 빠른 방법이라고 할 수 가 있었다. 2 지금 화검상이 행하고 있는 것은 다름아닌 자신의 진기(眞氣) 를 주입시켜 그녀의 막히거나 끊어진 혈맥(血脈)들을 뚫어주고, 그리고 약화된 전신의 기운(氣運)들을 고루 균형있게 강화시키는 것이었다. 그것이 물론 임시방편에 불과한 것이기는 해도, 그러나 역시 쉽지 않은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점차로 화검상의 몸에서 원영(元 )의 광채인 백광(白光)이 부 드럽게 빛나더니 이어 그 광채가 동방리의 몸까지 두루 감싸게 되었을 때, 이윽고 화검상은 치료를 마치고 손을 거두었다. 동방 리는 아까 처음에는 다소 긴장된 듯한 모습이었지만, 나중에 치 료를 마치고 났을 때는 마치 반쯤 졸린 듯이 노곤하고 황홀한 듯 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것은 실로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흔히들 도가(道家)의 무공을 배우는 사람들이 더러 감로(甘露) 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는데, 지금 화검상의 진기(眞氣)는 마치 그 와같이 쾌적하고도 달콤한 느낌을 주는 것이어서 그녀의 전신을 완전히 누비고 휘감아버렸던 것이다. 그렇게 치료를 마치고 난 그녀의 모습은 여전히 허약하게 말라 보이기는 해도 전신에 맑은 광채(光彩)가 어려 있는 듯하고 피부 도 은은하게 윤기가 흐르고 있었다. 그 다음에 화검상이 옷을 벗고 자리에 눕자, 그녀 역시 촛불을 끄고 옷을 벗은 다음에 그의 옆으로 다가와서 누웠다. 이 두 사람의 정사(情事)라고 하는 것은 강한 애정의 표현이라 기 보다는 치료에 가까운 것이었기 때문에 역시 화검상은 조심스 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흔히들 일부에서 말하듯이 음양(陰陽)이 화합(和合)하면 만병 (萬病)을 치료할 수 있다고들 하지만, 실상 이러한 남녀간의 정사 에 있어서 정작 음앙이 제대로 화합하기는 어려운 일이고, 게다 가 설령 거의 그렇게 되었다고 해도 정말로 모든 병을 치료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음양이 화합하기 위해서는 신체의 기질(氣質)이 잘 맞아야 할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서로간의 마음이 깊은 사랑으로 잘 어우 러져야 하는 것이다. 지금 화검상이 사용하고 있는 방법은 그런 음양화합에 관련된 것이라기보다는 그의 곡선적(曲線的)인 기운(氣運)이나 마음을 은 근하게 함께 나누는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대개 다른 치료의 방법은 동방리와 같은 선천(先天)의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에게 일시적인 효과는 나타낼 수 있을지 몰라도 얼마가지 않아서 다시 질병이 악화되어버리는 것이며 또한 방법 도 점차로 쓸모가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지금 화검상이 사용하고 있는 방법은 당장 그녀의 질 병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곡선적인 힘으로 그녀의 잘못되어 있는 선천적 근원(根源)의 오류를 점차로 개선시켜 나 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 근원적인 치료를 하기 위해서 자연 서로간의 마음의 교감 (交感)이 필요한 것이고, 그 때문에 이런 정사를 통하게 되는 것 이며 서로 부부(夫婦)가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꾸준히 근원의 오류를 개선시켜 나아가다 보면 외부의 증상도 점차로 나아지게 될 것이고, 게다가 그 근원이 크게 좋아지게 되 면 외부의 증상은 고칠 필요도 없이 저절로 치유되게 될 것이다. 화검상은 실상 무슨 방중술(房中術)이니 하는 기교에 대해서 배운 바가 없기 때문에 겉으로 보기에 그가 유도하는 두 사람의 행위는 그저 단순하기 짝이 없어 보였다. 동방리는 물론 아직 순결한 몸이었고 처음으로 그와 같은 행위 를 하게 됨으로써 고통을 느꼈겠지만, 그러나 그런 정도는 이제 까지 그녀가 질병으로 인해 겪어왔던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 었는지 고통스런 표정은 짓지 않았고 다만 한 순간 무심결에 눈 물을 주르르 흘렸다. 비록 어둠 속이라고는 해도 화검상은 대낮같이 환하게 모든 것 을 볼 수가 있었기 때문에 매우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서 자연 더 욱 정성을 다하게 되었다. "미안해요, 나는 그 동안 결코 건강하게 될 수 없으리라고 생 각하고 있었는데 막상 이렇게 믿음이 생기게 되가 그만 눈물이 나왔나봐요." 정사가 끝나고 두 사람이 나란히 침상 위에 누웠을 때 동방리 는 반쯤 웃으며 그렇게 변명하듯 말했다. 물론 그것은 그저 변명일 뿐이고 그런 믿음 때문에 기쁨의 눈 물이 흘러내린 것도 아니며, 아마도 그녀는 상실에 대한 어떤 깊 은 허전함과 애착에서 나오는 알 수 없는 불안함과 뒤엉킨 마음 의 고통(苦痛) 등이 뒤섞여서 절로 눈물이 나오게 되었을 것이다. 이런 심리(心理)라고 하는 것은 본래가 곡선적인 것이기 때문 에 사실은 말로써 이러쿵저러쿵 나누어 설명한다는 자체가 어려 운 노릇이다. 그것은 대개의 사람들이 오류에 빠져 있는 것처럼 곡선적인 것 을 직선적으로 보려 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연 되지 않고 맞지 않 는 것이다. 이 여인들은 복잡한 심리를 가지고 있고 또한 자신들이 일부러 그것을 감추려고 한다고 해도 대개 스스로 자신의 심리에 대해서 모르고 있는 경우가 더욱 많을 것이다. 화검상은 잠시 뭔가 깊이 생각해보는 듯하다가 고개를 돌려 그 녀를 향해 받았다. "아리(阿莉), 몸은 좀 어떻소? 어디 심하게 아프거나 결리지는 않소?" 그가 그녀를 향해 아리라는 애칭으로 부르기 시작했다는 것은, 이제는 그녀를 자신의 여인으로 인정한다는 뜻이라고 할 수 있었 다. 동방리는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지어 보이다가 고개를 갸웃거 리며 대답했다. "정말 이상해요. 갑자기 몸이 날 듯이 가볍고 상쾌한 느낌이 들어요. 다만 아래쪽이 ......, 그건 상관없는 일이겠죠?" 화검상은 약간 정색을 하고 다시 말했다. "지금 당신의 몸이 그렇게 갑자기 달라진 듯한 것은 재가 조금 전에 먼저 치료를 하고 원기를 보충시켰기 때문이오. 그러한 것 은 앞으로 얼마 가지 않아서 쇠퇴할 것이고, 아마도 이전처럼 다 시 몸이 나빠지게 될지도 모르겠소. 하지만 그런 치료법은 근원 적(根源的)인 치료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당신은 앞 으로도 좀더 인내심을 가지고 계속 나와 함께 지내야 할 것 같 소." 동방리는 몸을 돌려 화검상의 몸을 두 팔로 껴안고 다정하게 머리를 그의 가슴에 재며 말을 받았다.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요. 다만 당신이 항상 저와 함께 지내 게 되었으니 그건 저에게는 과분한 것이고......, 또한 당신에게는 무거운 짐이 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어요. 저와 이렇게 부부(夫 婦)가 되는 것을 혹시 후회하지는 않으세요?" 화검상은 가볍게 미소를 띤 채로 그녀의 몸을 어루만져주며 말 했다. "나는 후회하지 않소. 오히려 나처럼 천하의 사람들에게 욕을 먹는 대단치 않은 사람에게 당신처럼 기품(氣品)있고, 아름다운 여인이 시집오게 되었다는 사실이 나로서는 고마울 따름이오." "고마워요. 저는 당신께 더 드릴 말씀이 없어요. 저는 앞으로 오직 당신만을 섬기며 아내로서의 모든 것을 지키고, 또한 모든 사랑을 바치도록 하겠어요." 말과 함께 그녀가 더욱 깊이 안겨들었기 때문에 두 사람은 잠 시 깊은 입맞춤을 나누기 시작했다. 조금 전의 정사에서는 약간 긴장되고 몸이 딱딱하게 굳어져 있 었지만, 오히려 이제는 서로간의 마음이 부드럽게 풀리고 깊은 사랑이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이미 시간이 많이 흘러 거의 새벽녘이 가까워졌지만,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잠은 오지 않았다. 동방리는 한동안 그의 가슴에 머리를 기대고 잠을 자는 듯했지 만 이윽고 문득 고개를 돌려 그의 얼굴 쪽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 다. "저어, 이상한 일이지만 오늘 일은 뭔가 알 수 없는 기분이 들 어요. 왠지 모르지만......, 그러나 뭔가 심상치 않다는 느낌이 들어 요. 당신도 그런 기분이 들지 않나요? 내 생각에는 그들은 모두 가 서로 연관되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하긴 그렇다고 믿기 도 어렵겠지만, 어쨌든 뭔가 이상한 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에요." 화검상은 동방리의 얘기를 듣고 있다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뭐가 이상하다는 말이오. 악사매(岳師妹)가 이상하다는 말이 오? 아니면 여사매(余師妹)가......?" 동방리는 가볍게 고소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제가 그녀들을 질투(嫉妬)하고 있다고는 말하지 마세요. 저는 당신이 그녀들을 어떻게 대한다고 해도 상관하지 않겠어요. 제가 지금 말하는 것은 오늘 이곳으로 오면서 느낀 모든 일을 말하는 거예요." 화검상은 다소 정색을 하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는 나도 그런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오. 하지만, 만일 그들이 모두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라면 그렇게 많은 사상 자를 내며 싸움을 벌일 리가 없을 것이고, 으음......, 그렇지 않소? 게다가......., 악사매가 그들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은 결코 생각할 수 없는 일이오." 동방리는 잠시 생각해보는 듯하다가 다시 말했다. "저도 그분 악소저가 그들과 한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사람은 더러 자신도 모르게 남에게 이용을 당하는 경우가 있지 않을까요? 오늘의 상황은 아무래도 당신을 그쪽으로 유인해 서 뭔가 함정 속으로 몰아넣으려는 의도가 있는 것 같아 보여 요." 화검상은 그녀의 몸을 감싸고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며 담담하 게 말을 받았다. "아리, 당신이 이렇게 현명하니 나는 사랑스런 부인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유능한 군사(軍師)까지 함께 얻게 된 셈이구 려, 나는 정말2로 복이 많은 것 같소." 동방리는 그의 등을 가볍게 꼬집으며 웃으며 대꾸했다. "호호, 저는 그저 당신이 저를 귀찮아하게 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에요. 어찌 감히 그토록 사랑스럽고 현명할 수가 있겠어요. 호호호......."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무림야그 출력일 :: 98/11/20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3 권 제 62 장 여협객(女俠客) 제 62 장 여협객(女俠客) 그만 그렇게 밤을 지새고 말았나보다. 잠깐 눈을 붙였는가 싶었는데 어느새 다시 눈을 떠보니 실내가 훤하게 밝아져 있었고 아침이었다. 동방리는 뒤늦게 잠이 들었던 탓인지 아직도 옆에서 잠을 자고 있었는데 숨소리가 조용해 평온해 보이기까지 했다. 이제 오늘은 아마도 정무맹(正武盟)의 총단(總壇)으로 들어가게 되거나 아니면 최소한 그 앞에서 그들과 본격적으로 마주치게 될 것이니 상황이 이제까지보다 더 어렵게 될지도 모른다. 화검상이 잠시 누운 그대로 그 일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있 노라니 문득 동방리가 잠에서 깨어났는지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 었다. "오늘 아침은 정말 편안해요. 나는 이렇게 편안한 아침을 맞이 한 것이 언제였던가 잘 기억나지 않아요. 아마도 아주 어렸을 때 였던가......, 그때는 거의 아프지도 않았었으니." "마음이 편안하다니 다행이오. 어쩌면 생각보다 치료가 빨라지 게 될지도 모르겠소. 으음, 당신이 좀더 빨리 건강을 되찾을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오. 그것은 내가 배운 곡선적 무공의 심법(心法)을 병행하는 것인데......, 그러나 아직 당신은 그것으로 운기(運氣)를 해서는 안 되고 그저 그 이치(理致)를 배워가는 것 만으로 만족을 해야 하오. 만일 당신이 그것에 대해 조금이라도 진전이 생긴다면 치료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오." 동방리는 그의 가슴으로 안겨들며 다정(多情)한 어조로 대답했 다. "알겠어요, 정랑(情郞)! 앞으로 당신께서 제게 그 심법을 가르 쳐 주시면 저는 성심껏 배우도록 하겠어요." 화검상은 그녀의 뺨에 가볍게 입맞춤을 해준 다음에 몸을 일으 켰다. "우리가 좀 늦잠을 잔 것 같소. 어서 일어납시다. 남들이 혹시 흉을 볼지 모르니." "흥, 흉을 볼 테면 보라고 하죠. 저는 상관없어요. 당신만 저의 곁에 있다면." 동방리는 가볍게 코웃음을 치며 그렇게 말했지만, 이내 뒤따라 몸을 일으키다가 문득 약간 몸이 굳어지며 멈칫하는 표정을 지었 다. 비단 아랫도리가 심하게 아파왔을 뿐만 아니라, 이불이 젖혀진 침상 위에 어젯밤 그 정사의 흔적이 아직 붉은 자국으로 남아 있 었던 것이다. 화검상은 자연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다가 그녀의 몸이 다 소 마르기는 했지만 그래도 균형이 잡혀 있어서 상당히 아름다움 것을 보고는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떠올렸다. 그녀는 비록 그간 심한 고통에 시달리기는 했지만 그것을 참아 내며 계속 근면하게 일을 해왔기 때문에 군살이 붙지 않은 것이 다. 그런데, 그때 문득 밖에서 가벼운 기척이 일더니 별안간 방문 이 벌컥 열리면서 한 사람이 발랄한 음성으로 소리치며 안으로 뛰어들어왔다. "화사형, 잘 잤나요? 혹시 그새 잠꾸러기가 되어버린 것은 아 니겠죠......?" 그 사람은 바로 악검림이었다. 이때는 비록 화검상은 이미 바지를 입고 있었지만 동방리는 아 직 침상 위에 벌거벗은 그대로 멍하니 앉아 있는 상황이었기 때 문에 실로 난처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동방리로서는 설마하니 악검림이 이렇게 무작정 안으로 뛰어들 어올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고 또한 방문을 미리 잠그지 않은 것이 실수였던 셈이다. 화검상과 동방리는 비록 난처하고 당황스러웠지만 그러나 이 순간 더욱 놀란 사람은 오히려 악검림이었던 모양이다. 악검림은 처음에는 발랄하고 생기있는 표정이었지만 이내 실내 의 그러한 광경을 보고는 갑자기 크게 놀란 사람처럼 안색이 심 하게 창백해지고 멍하니 서 있다가, 이윽고 반쯤 넋 나간 사람처 럼 되어 중얼거리듯이 말을 이었다. "미, 미안해요....... 나는 이럴 줄을 몰랐어요. 나는 단지......, 화 사형을 깨우러 왔을 뿐이에요." 그녀의 표정이 너무나도 심각해 보였기 때문에, 동방리는 오히 려 당황스러웠던 기분에서 벗어나서 침착을 되찾고 얼른 간단한 옷을 걸친 다음에 악검림의 앞으로 걸어가서 다정(多情)한 표정 으로 말했다. "나도 저분에게서 언니에 관한 예기를 들었어요. 나는 언니와 함께 저분을 섬기는 일이라면 찬성이에요. 앞으로 우리 친자매처 럼 잘 지내도록 해요." 악검림은 그 말을 듣고 계속 멍하니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도리질하며 뒤돌아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나는......, 나는, 미안해요. 나는......, 나는 그만 나가 있겠어요." 악검림이 그렇게 정신없는 표정으로 밖으로 나가 버리자, 동방 리는 잠시 뭔가 생각해보는 듯하다가 고개를 돌려 화검상을 향해 말했다. "당신은 어서 그녀에게 가보세요." 화검상은 천천히 옷을 다 걸치고 있다가 이윽고 그녀에게 웃으 며 말을 받았다. "당신은 그녀를 질투하지 않는다는 말이오?" 동방리는 다시 침상 쪽으로 돌아와서 고개를 돌리고 옷을 처음 부터 하나씩 걸치면서 비교적 침착한 어조로 대꾸했다. "그건 이미 제가 어젯밤에 드린 말씀이 아닌가요? 그녀는 심한 충격을 받은 듯하니 당신이 가서 달래줘야 할 거예요. 나는 상관 하지 마세요." 화검상은 내심 실소(失笑)하며 그녀의 옷을 걸치는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밖으로 걸음을 옮기며 말을 받았다. "당신이 그렇게 말을 하니 나가보기는 하겠지만, 그러나 당신 은 보기보다 더 훌륭한 것 같소." 악검림은 멀리 가지 않고 바로 그 문밖의 복도에 멍하니 정신 없는 표정으로 서 있었다. 아마도 그녀는 당장이라도 멀리 떠나버리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고 도저히 자신을 억제할 수가 없어서 그 자리에서 머뭇거리며 심한 고뇌와 마음의 갈등에 시달리고 있는 것 같았다. 화검상이 다가가자 그녀는 고개를 돌려 그를 보지는 않았지만 그러나 표정이 더욱 복잡하게 변했다. "악사매, 이미 내가 어젯밤에 네게 말을 하지 않았느냐? 갑자 기 내가 그렇게도 보기가 싫어졌느냐?" 화검상이 그녀의 손을 잡았으나, 악검림은 이내 가볍게 뿌리치 고, 신법을 펼쳐 밖으로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이미 환한 아침이었기 때문에 길거리에는 많은 사람들이 오가 고 있었지만 그녀는 그 사람들이 자신이 신법을 펼치는 것을 보 고 놀라는 광경을 개의치 않았다. 지금 그녀의 마음이 한곳으로만 몰입되어 있어서 다른 것을 생 각할 겨를이 거의 없었다. 어디로 갈 것인가를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그저 무작정 감정 (感情)에 따라 달려나온 것이기 때문에, 악검림은 처음에는 빨리 달렸으나 나중에는 갈수록 신법의 속도가 느려졌다. 그러다가 이윽고 낙양성을 벗어나서 작은 야산(野山) 같은 곳 에 이르자, 그녀는 그만 신법을 거두고 몸을 멈춰세울 수밖에 없 었고 이어 급히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혹시나 화검상이 그녀를 뒤따라온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본 것이었으나, 아무리 둘러보아도 그의 모습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 았다. 이에 그만 그녀는 오만상을 찌푸리며 그 자리에 엎드려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고, 그러는 가운데 속으로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나는 바보야, 왜 어젯밤에 화사형과 함께 자겠다고 끝까지 매 달리지 않았을까? 그리고 아까도 왜 그 나이 어린 동방낭자보다 도 더 침착하지 못했을까......? 그리고 또 왜 화사형이 나와서 그 렇게 말했는데도 이렇게 도망쳐나오고 말았을까? 아아......, 나는 이제 어떻게 한다지......?' 한참 동안 그렇게 실컷 울고 나자 다소 마음이 진정되고 고뇌 가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으므로, 그녀는 이제는 몸을 돌려 슬슬 다시 그쪽으로 돌아들어가기 시작했다. 성안으로 다시 들어가자 사람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씩씩해 보 였고 반면에 자신은 비록 눈물자국을 제거했다고는 해도 몹시 우 울하게 보이는 것 같아서, 그녀의 마음속에 근심이 더욱 가중되 었다. 일부러 대로(大路)를 피해서 골목길로 접어들어 잠시 멍하니 걸음을 옮기는데, 문득 그 골목길의 한쪽에 차려진 작은 술집에 서 한 사람이 큰소리로 누군가를 불렀다. "어이, 거기 가는 분은 혹시 화산파의 그 유명한 여협객(女俠 客)이 아니시오? 오늘 날씨도 그만한데 이리 와서 술이나 한잔하 며 서로 수인사나 나누너보는 것이 어떻겠소?" 비록 그 무슨 강호의 여협객이니 하는 말은 그녀 자신이 잘 쓰 는 말이기는 했지만 설마하니 그 여협객이 자신을 가리키는 것이 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최근에 그녀는 전혀 여협객다운 점이 없었으므로, 아마도 이 부근에 화산파의 다른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여 주위를 둘 러보다가 문득 그 술집 쪽을 바라보니 이상하게도 그 부르는 사 람의 얼굴이 몹시 낯이 익었다. 바로 화검상이었던 것이다. 악검림은 순간 어리둥절해지기도 하고 놀라기도 하여 잠시 멍 하니 넋을 잃고 화검상을 바라보고 서 있었으나, 금방 다시 눈물 이 솟구칠 것만 같아서 그만 고개를 숙였다. 화검상은 그것을 보자 다시 큰소리로 이렇게 소리치며 말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이오 무림야그 출력일 :: 98/11/20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3 권 제 62 장 - 1 "아니, 당신 혹시 지금 울고 잇는 것이 아니오? 어허......! 강호 의 그 유명하다는 여협객이 이런 곳에서 울고 있다니 이상한 일 인걸? 강호의 소문과는 달리 그리 대단한 여협객(女俠客)은 아니 라는 말인가......?" 갑자기 화검상이 무슨 강호의 유명한 여협객이니 하며 떠들어 댔기 때문에 그 주위를 오가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제히 악검림 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악검림은 막 눈물이 치솟는 것을 억제하기 어려워졌으나, 그 말을 듣자 이내 기분이 따뜻해져서 마음을 강하게 먹을 수가 있 었으므로 다가가 화검상을 향해 웃으며 이렇게 대꾸했다. "흥, 이런 곳에서 그렇게 큰소리로 떠들어대다니 부끄럽지도 않나요? 쳇, 울긴 누가 운다고 그래요?" 화검상은 길 밖으로 삐죽 나와 있는 탁자를 하나 차지하고 앉 아 있었고 막 점원이 술과 음식들을 이쪽으로 날라오고 있는 중 이었다. 화검상은 짐짓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아한 듯한 표정으로 알 수 없다는 듯이 다시 말했다. "으음, 그런가? 하긴 강호의 여협객이 그럴 리는 없는 것이겠 지. 아무래도 내가 잘못 본 것 같소. 나는 강호의 이래 무명소졸 (無名小卒)인데 이렇게 유명하신 여협객을 만나게 되어 영광이외 다." 악검림은 그의 앞에 서자 다시 아까처럼 눈물이 치솟으려고 했 다. 그녀는 억지로 눈물을 참고서 그의 앞자리에 앉으며 짐짓 미소 를 지으며 말했다. "그 예쁜 마누라를 두고 왜 여기 나와있는 거죠? 그녀가 나중 에 화사형께 화라도 내면 어쩌려고 그러는 것인가요?" 화검상은 점원이 가지고 온 술을 술잔에 따라서 한잔 비운 다 음에 가볍게 웃으며 대꾸했다. "나는 네가 갑자기 그렇게 나가버린 이후 정신이 혼란스러워 이렇게 아무런 생각도 없이 나와버리고 말았다. 나는 네가 그냥 멀리 달아나버린 줄로만 알고 근심에 싸여 여기서 아침부터 한잔 하려고 앉아 있었던 것이지. 그런데 뜻밖에도 다시 여기에서 너 를 만나게 될 줄을 어찌 알았겠느냐? 정말 다행스럽게도 하늘이 우리를 돌보신 모양이다." '흥, 그건 아마도......, 아마도 화사형이 계속 나의 뒤를 쫓아왔 었기 때문이 아닌가요?" 악검림은 코웃음을 치며 그렇게 대꾸하려고 했었으나, 그 순간 그만 다시 눈물이 복받쳐올라 그대로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줄줄 흘리고 말았다. 사람들은 무슨 대단한 사람이 나타난 것이 아닌가 하여 은근히 이쪽으로 시선을 집중하고 있다가, 실상은 두 사람이 서로 아는 사이이며 화검상이 장난을 쳤다는 것을 알아채고는 그만 다들 시 들해져서 제 갈 길을 가버리고 말았다. 잠시 후 악검림은 드디어 눈물을 그치고 고개를 들어 화검상을 바라보려고 했으나, 그때 갑자기 그녀의 몸이 누군가에게 안겨져 허공을 나는 듯하고 정신이 아득해졌는데, 이윽고 다시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어보니 두 사람은 어느새 제법 거대하게 흘러가 는 한 강가에 서 있었다. 이 강은 바로 그 유명한 낙하(洛何)이며, 낙하는 북동쪽으로 흘 러 중원(中原)의 두 젖줄의 하나인 황하(黃河)로 들어가게 된다. 황하는 거세게 흐르는 탁류(濁流)로서, 비교적 잔잔하게 흐르는 장강(長江)과는 달리, 영웅(英雄)의 기상이 느껴진다고 했던 혹자 의 말이 전해지기도 했다. 실로 예로부터 그 얼마나 많은 영웅호걸(英雄豪傑)들이 이 땅 에서 저마다의 화려한 야망(野望)을 이루기 위해 피를 흘리고 또 한 죽어갔던 것일까? 화검상은 잠시 그녀와 나란히 서서 흘러가는 강물을 굽어보고 있다가 이윽고 다시 말했다. "너도 이미 보았겠지만, 그녀는 병(病)이 그간 너무 악화되어 내가 서둘러 그런 방법으로 치료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제법 얼마간 함께 지내오면서 비록 너만큼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그 녀를 좋아하게 되었단다." 악검림은 고개를 숙인 채 듣고 있다가 다시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사실은 나를 그녀보다도 더 좋아하고 있다는 말인가요? 그럼, 그럼 나와도 혼인(婚姻)을 해주세요. 저도 사실은 그녀와 친자매처럼 잘 사귀며 화사형을 모실 수가 있다구요." 화검상은 그녀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주며 미소와 함께 말했 다. "하지만 사실 내가 그녀를 좋아하는 것과 너를 좋아하는 것과 는 차이가 잇다. 나는 너에 대해서는 조금도 사심을 갖고 싶지 않구나." 악검림은 아직 눈물에 젖어 있는 두 눈을 맑게 반짝이며 화검 상의 얼굴을 주시했다. "그럼, 저는 그저 이렇게 화사형과 친구처럼 지내기만 해야 한 다는 말인가요?" 화검상은 시선을 다시 강물 쪽으로 돌리며 대답했다. "대개 남녀간에 혼인을 하는 경우도 한 가지로 정해져 있는 것 이 아니다. 서로간에 애정이 깊은 부부도 있는가 하면 우정(友情) 이 깊은 부부도 있고, 또한 서로를 깊이 공경하는 부부도 있는 법이다. 일반적으로는 남녀간에 한 사람과 한 사람이 만나서 혼 인을 하는 경우가 가장 바람직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러 나 부득이한 상황이라면 그 외의 경우도 어쩔 수가 없을 것이다. 나는 너와 혼인을 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현 실적으로는 아직 큰 장애(障碍)가 남아 있구나." 악검림은 그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말했다. "대체 어떤 장애가 남아 있다는 거죠?" 화검상은 고개를 돌려 다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악사매, 가능하면 네가 이 세상에서 이제까지 살아오는 동안 에 알고 지내던 사람들, 그러니까 우선 너를 낳아주신 부모님을 비롯하여 친척들과 가까운 사람들의 동의를 얻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 혼인이라는 것은 현실에 사는 것이기 때문에 미리 생각했 던 대로만 되는 것은 아니며, 바로 그러한 문제들 때문에 간혹 커다란 불행 속에서 살아가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악사매, 네 가 만일 정말로 나와 혼인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우리들의 앞날을 위해서 그 이전에 다시 한번 더 노력을 해봐야 하지 않겠 느냐?" 악검림은 그 말에 잠시 고개를 숙이고 깊이 생각해보는 듯하더 니, 이윽고 고개를 들고 화검상의 품속으로 와락 안겨들며 소리 치듯 말했다. "알겠어요, 화사형! 저는 반드시 화사형을 가장 사랑하고 공격 하는 아내가 되겠어요. 앞으론 제발 더 이상 저를 멀리하지 말아 주세요.......!" 화검상은 그녀를 사랑스럽게 감싸주며 말했다. "자, 이제 그만 돌아가도록 하자. 모두들 기다리겠구나." 화검상 등 네 사람은 간단히 아침식사를 하고 나서, 마차를 한 대 빌린 다음에 낙양성을 떠나 다시 정무맹(正武盟)의 총단(總壇) 이 있는 복우산(伏牛山)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동방리의 건강상태가 상당히 좋아져 있었기 때문에 마 차를 빠르게 몰아갈 수가 있었고, 그러는 가운데 앞쪽의 마부 옆 자리에 앉은 동방량을 제외한 나머지 세 사람은 뒷자리에 함께 앉아 간혹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는데, 그들의 표정을 대개 밝 은 편이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비록 일행이 소수이고 게다가 앞으로의 상 황이 얼마나 어려워질지는 몰라도, 모두가 그 어떤 일이라도 헤 쳐나갈 수 있는 자신감이 있어 보이기도 했다. 이야기를 하던 도중에 문득 어젯밤에 여검월 등이 말하던 화산 파의 현사태에 대한 얘기가 나왔는데, 불행히도 악검림은 그간 너무나도 한곳에 틀어박혀서 지내왔었기 때문에 그 일에 대해서 는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정무맹의 총단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으니 장차 그곳에 가기만 하면 그러한 의문(疑問)에 대해서는 자연 저절로 알게 도리 것이 아니겠는가? 이제 초겨울로 접어드는 계절이어서 그런지 간간이 흙먼지, 낙 엽 등과 함께 삭풍(朔風)이 회오리를 일으키고 있었고, 하늘은 구 름이 가득 끼어 있어서 스산해 보였다. 비록 어제 저녁 무렵에 녹귀보에게 앞으로는 그쪽과 화해를 하 겠다는 말을 하기는 했지만, 그러나 아무래도 정무맹의 총단으로 가기 전에 다시 한번 그들과 부딪칠 것이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하나 이상하게도 일행이 하루종일 길을 가는 도중 다시 어떠한 적도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설마하니 그들이 일행의 이 움직임을 몰라서 나타나지 않는 것 은 아닐 것이고, 그러니 자연 이것은 마치 일행이 적들의 함정 (陷穽) 속으로 깊숙이 빠져들어가고 있는 듯한 느낌을 강하게 주 었기 때문에 때때로 긴장하고 있는 동방리 등의 신경을 날카롭게 만들었다. 점심 때가 지나서부터는 그 때문에 간혹 기습을 당한 만한 지 형(地形)이 나타나면 잠시 쉬면서 주위를 정찰하곤 했는데, 그 때 문에 일행의 진행속도가 다소 느려지게 되어 저녁 무렵이 되자 겨우 노산(魯山) 현성에 당도하게 되었다. 이 노산 현성은 화검상과는 제법 인연(因緣)이 있는 곳이라고 할 수있다. 이곳에서 그는 여러 가지의 사건을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얼 마 전에는 이 부근에 보관해 두었던 장생보검(長生寶劍)과 단검 (短劍)을 다시 찾아가기도 했었다. 이층 주루인 노산루(魯山樓)는 여전히 그대로 있었는데, 마침 조용해 보이기도 하여 일행은 바로 그 안으로 들어섰다. 과연 아래층에 손님이 별로 많지 않았으므로, 굳이 위층으로 올라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되어 네 사람은 아래층의 한 탁자를 차지하고 앉아서 점원이 가까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 점원은 언제 다쳤는지 다리 하나를 심하게 다쳐 절룩거리며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는데, 금방이라도 넘어져서 물을 쏟아버 릴 것같이 위태로워 보였다. 과연 아니나다를까, 그런 대로 무사히 다가온다고 생각했었는 데 드디어 탁자의 앞에 이르러 약간 발을 헛디디며 물주전자를 쾅, 하고 탁자 위에 올려놓더니 이렇게 말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꼭 무림야그 출력일 :: 98/11/20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3 권 제 62 장 - 2 "뭘 드시겠소? 이곳에서는 뭐든지 팔고 있소." 손님의 앞에서 상당한 실수를 한 셈인데도 점원은 오히려 태도 가 당당할 뿐만 아니라 거칠기까지 한 것 같았지만, 동방리는 별 로 개의치 않고 말했다. "술 한 병과 국수 네 그릇, 그리고 만두와 돼지고기 삶은 것이 있으면 갖다 주세요." 점원은 그 말에 힐끗 그녀를 돌아본 다음 다시 화검상을 주시 하며 말했다. "이곳에선 그런 것들은 팔고 있지 않소. 이곳에선 다만 인육(人 肉)을 팔고 있을 뿐이오." 악검림이 잠자코 듣고 있다가 마침내 참지 못하고 웃으며 말을 받았다. "당신은 보아하니 대담하기도 할 뿐만 아니라 농담도 잘하는군 요. 호호, 대체 누구의 인육을 이곳에서 팔고 있다는 거죠?" 점원은 악검림 쪽은 돌아보지도 않고 계속 화검상을 주시하며 대꾸했다. "이곳에서는 미친 사람의 고기만 전문으로 팔고 있소. 전에는 노광생(老狂生)의 고기를 팔았지만 지금은 소광생(少狂生)의 고기 를 팔고 있소. 네놈이 만일 네놈의 고기를 먹게 된다면 내 얘기 가 틀렸다고는 말할 수가 없을 것이다." 정작 점원이 노려보고 잇는 화검상 본인은 여전히 가만히 앉아 있었지만, 그 말이 끝나는 순간 동방량이 벌떡 몸을 일으키며 장 검을 뽑아 점원의 목에 들이대며 소리쳤다. "뭐라고? 이 더러운 작자가 감히 누구에게 시비를 거느냐?" 어쩐지 아까부터 약간 이상한 느낌이 들더라니, 이 점원은 다 시 보면 볼수록 괴이(怪異)하고 수상했다. 이 점원은 다른 대부분의 점원들과는 달리 저저분하기 짝이 없 었는데 가까이 다가온 순간 괴상한 악취가 진동했었다. 처음에는 이 점원이 특별히 게으르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제 보니 그 악취는 점원의 몸에서만이 아니라 탁자 위에서도 나고 있었다. 알고 보니 점원이 아까 주전자에서 쏟아놓은 물까지도 마시는 물이 아니라 악취가 진동하는 썩은 오물이었다. 화검상이 보니 이 점원은 무공(武功)을 배운 무림인이었고, 그 수준도 사실 동방량보다 높으면 높았지 낮은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지금 그렇게 쉽사리 동방량에게 제압되어버린 것은 그가 이미 목숨을 도외시하고 있으며 오로지 화검상에게만 관심 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화검상은 이에 손을 내저어 동방량에게 검을 거두게 한 다음, 가볍게 일장(一掌)을 날려 점원을 저만큼 밀어내고는 담담한 어 조로 입을 열어 말했다. "여러분이 이미 나를 만나기 위해 이렇게 준비한 것이라면 어 째서 아직도 주저하는 것이오? 내가 좀더 기다려야만 하겠소?" 그때 갑자기 주루의 벽과 바닥, 창문 등이 일제히 부서져나가 며 수십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일행을 에워싸듯 나타났다. 악검림 등은 그들이 나타나자 노산루 전체에 퍼져 있는 더러운 악취가 더욱 진동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은 점원처럼 더러운 모습을 한 사람들이 더 많이 늘어났기 때문에 그런 느낌이 든 것이지 그들이 모두 다 오물을 들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즉 그들은 다름아닌 바로 개방(개幇)의 사람들인 것이다. "으흐흐! 네놈이 아직도 기세가 등등하다만 이곳이 바로 네놈 의 무덤이 될 것이다. 감히 본방(本幇)과 원수를 지고도 무사히 살아갈 수 있을 줄 알았느냐?" 지금 이곳에는 수십 명의 개방방도들이 나타나 있지만 아마도 이 주루의 밖에는 수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일행을 철저하게 포위하고 있을 것이다. 흔히들 오만(五萬) 개방이라는 말들을 하고 있는 만큼 개방의 사람들은 그 숫자가 많기로 유명하며, 따라서 지금 이곳에 나타 나 있는 살마들은 그 중에서도 가려 뽑은 사람들일 것이고 하나 같이 상대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오늘 이쪽으로 오면서 내내 느낀 것이지만 이제 드디어 그 심 상치 않은 조짐들이 현실로 드러나려고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화검상이 아직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기에 동방리와 악검림은 여전히 자리에 앉아 있었지만 자연 그녀들의 표정도 긴장되지 않 을 수가 없었다. 화검상은 그들 중에서 아직 뚜렷한 수뇌급의 인물이 보이지 않 았으므로 대강 조금 전에 입을 열어 소리친 사람족을 향해 담담 한 어조로 다시 말했다. "나는 아직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내가 어느새 개방과 그런 사이가 되었다니 이거 유감이오. 하지만 아직 서로간에 대화가 별로 없었으니 싸움을 하기 전에 우선 대화부터 하는 것이 좋지 않겠소?" 조금 전에 소리친 사람이 다시 음산(陰散)하게 웃으며 대꾸했 다. "흐흐흐! 네놈은 아직도 우리 개방을 우습게 보고 있는 모양인 데, 우선 이것을 보고 나면 생각이 달라지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미 이곳에서 천하의 더러운 패륜아(悖倫兒)를 제거하기 위해 모두 죽음을 각오하고 있다. 설사 네놈은 어찌어찌해서 도망갈 수 있을지라도 네놈의 옆에 있는 계집들은 무사하지 못할 것이 다." 갑자기 그 삶의 말이 신호가 되기라도 한 듯 그 일행을 포위하 고 있는 수십 명의 사람들이 일제히 품속에서 뭔가를 하나씩 꺼 내들었는데, 그것은 각기 검고 붉은 주머니들이었고 거기에서 다 시 마치 어린아이의 장난감과도 같은 작고 붉은 구슬들과 칙칙하 고 검은 물건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이 일을 사전에 철저하게 계획한 듯 그러한 물건들을 들고 있는 자들이 사방에 골고루 뒤섞여 있었고, 또한 마치 그 수십 명의 사람들이 일정한 진법(陣法)에 의해 잘 배치되어 있는 것 같았다. 동방리가 그 물건들을 보고는 다소 눈살을 찌푸리며 화검상에 게 말했다. "저들은 정말로 죽음을 도외시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저들이 지 금 들고 있는 것은 강력한 위력의 독암기들과 폭약(爆藥)들인 것 같아요." 세상에는 흔히들 방문좌도(傍門左道)라고 불리는 집단들에서 끊임없이 개발되는 무서운 위력의 암기(暗記)들이 많이 있고 또 한 벽력탄(霹靂彈)이니 하는 폭약들도 그와 마찬가지이다. 우선 사방에서 그들이 일제히 철판도 꿰뚫어버릴 만한 암기들 을 비오듯 쏟아낼 때 아무리 빨라도 이 한정된 공간에서 일행 모 두가 그것을 피해내기는 어려울 것이며, 게다가 그렇게 철저하게 살상 위주로 만들어진 암기들은 대개 치명적인 극독(劇毒)들이 함유되어 있어서 그저 피부에 스치기만 해도 중독되어 목숨을 잃 게 되기 쉬울 것이다. 거기에다 하나같이 무공이 범상치 않은 사람들이 들고 있는 폭 약들은 집요하게 일행의 움직이는 방향을 노릴 것이며 한 순간에 이 주루 전체를 흔적도 없이 날려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무식하리만큼 자신의 목숨마저 도외시하고 한꺼번에 포위해서 덮치는 이 방법은 아주 낡은 수법인 듯해도 역시 가장 위력적이 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설령 화검상의 능력이 뛰어나서 일행을 거의 무사히 데리고 이 죽음의 함정(陷穽)을 벗어나게 되었다고 해도, 마치 하나의 파도 가 지나가면 다시 그보다 더 커다란 파도가 덮쳐들 듯이 지금 주 루의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수백 명의 개방방도들이 필시 그보다 더욱 가공할 능력과 수단들을 가지고 재차 쉴새없이 덮쳐들 것이 아니겠는가? 선봉(先鋒)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강력한 위력을 자랑하는 돌 격대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왕왕 그 뒤에 오는 본격적인 공 격이야말로 더욱 위력적인 경우가 많은 것이며 게다가 이 개방 (개幇)에는 그러잖아도 그 파도가 끊임없이 밀려드는 것과도 같 은, 생사(生死)를 도외시하는 위력적인 견벽진(堅擘陣)이라는 것 이 있다. 타구봉법(打拘棒法)이니 살구진(殺拘陣)이니 하는 것들이 더 유 명하기는 하지만, 수천 명이나 되는 인원들이 수십 개의 조로 나 뉘어서 사방에서 끊임없이 밀려드는 파도처럼 덮쳐드는 이 견벽 진이야말로 개방의 그 진면목(眞面目)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악검림이 문득 화가 나서 몸을 일으키며 그들을 향해 소리쳤 다. "당신들은 명문정파(名門正派)의 사람들이면서 감히 이런 비겁 한 수단을 부리다니, 실로 부끄럽지도 않나요?" 그 사람은 음침한 웃음을 입가에 흘리며 그녀를 향해 씹어뱉듯 이 대꾸했다. "흐흐, 네년은 오히려 사문(師門)과 네년을 낳아 준 부모님을 배신하고 저런 무림의 말종과 함께 놀아나고 있으니 무슨 할말이 있단 말이냐? 우리가 썩은 네년의 아랫도리를 난도질해 버린다면 차라리 네년의 부모들도 우리에게 감사히 생각하개 될 것이다. 흐흐흐, 간악한 무림의 악적(악敵)을 처단하는 데 있어서 이런 방 법이 대체 어쨌다는 말이냐?" 악검림은 그 사람에게서 차마 듣기 어려운 말이 거침없이 흘러 나오자 그만 대꾸할 말을 잃고 다만 고개를 저으며 혼자말로 중 얼거렸다. "당신들은 사마외도(邪魔外道)나 다름이 없군요. 나는 당신들이 개방의 사람들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아요......." 화검상은 여전히 담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어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당신들이 어리석은 짓을 하는 것이오. 나는 그저 개방의 몇몇 사람들의 혈도(穴道)를 제압했을 뿐 개방 과 무슨 철천지 원한을 맺은 것도 아니고 도한 당신들과도 직접 적인 원한관계가 없소. 솔직히 우리 네 사람이 지금 이 자리에서 죽는다고 해도 당신들 역시 무사하지는 못할 것이고, 당신들 개 개인의 그 소중한 목숨의 대가는 무엇으로도 보상받기 어려울 것 이오. 당신들은 우리들 네 사람의 목숨이 당신들 자신의 목숨보 다 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시오? 하하, 나는 당신들을 해칠 생 각이 전혀 없는데 그저 당신들은 다른 사람들의 조작에 의해 헛 되이 목숨을 버리는 결과가 되는 것이오. 나는 지금 개방의 방주 (幇主)와 만나 이야기를 하고 싶소. 그가 지금 이곳에 와 있다면 나와 대면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소?" 다른 사람 하나가 음산하게 안면을 일그러뜨리며 한 손을 천천 히 들어올리면서 말했다. "이제 하고 싶은 얘기는 다했느냐? 흐흐, 네놈은 쓸데없는 이 야기로 남은 시간을 허비하고 말았구나. 자, 이제 너희 연놈들은 지옥(地獄)에나 가라!" 그 사람이 그렇게 한 손을 들어올리는 것이 마치 그들 사이의 계획된 신호인 듯했다. 한 순간 실내의 기운이 더욱 팽팽하게 긴장되면서 그 수십 명 의 사람들이 전신의 공력(功力)을 최대한 끌어올린 상태에서 막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그 무림야그 출력일 :: 98/11/20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3 권 제 63 장 병(病) 제 63 장 병(病) 암기를 들고 있는 자들과 폭약을 들고 있는 자들의 움직임의 방향이 달랐을 뿐만 아니라, 같은 암기를 들고 있는 자들의 움직 임도 각기 여러 가지의 차이를 가지고 있어서 마치 일행의 사방 에서 거센 회오리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 같았다. 확실히 그들 개개인의 움직임은 저마다 무질서한 듯해도 각기 법도를 가지고 있어서 과연 이것은 잘 짜여져 있는 진법(眞法)의 일종이며 그들이 제법 숙련되게 연마(練磨)를 한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었다. 무공을 배우지 못한 동방리는 안력(眼力)이 그다지 좋지 못해 서 그저 주위에서 사람들이 안개처럼 회전하고 있는 것 같은 느 낌만 받을 뿐이었다. 기실 정지된 상태에서 암기 등을 발사하는 것은 상대방의 심리 적인 허(虛)를 찌르는 경우에는 유효하지만 지금과 같은 경우에 는 서로가 진법의 이치에 따라 움직이며 상대방을 혼란(混亂)시 키고 아울러 전체 인원의 호흡이 그 이치 속에서 하나로 융합되 었을 경우에 시도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일 것이다. 필시 그들은 지금의 이 순간을 위해서 적지 않은 노고(勞苦)를 들였을 것이며, 이제 잠시 후 그들의 움직임의 조화가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순간적으로 그들은 덮쳐들 것이며 지옥(地獄)의 아 수라장과 같은 참상이 펼쳐지게 될 것이다. 동방량은 장검을 움켜쥐고 전신의 공력을 최고로 끌어올린 상 태에서 날카롭게 그들을 주시하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악검림과 동방리는 여자이기 때문에 다소의 공포감(恐怖感)을 느끼는지 점 점 안색이 파리하게 변해갔다. 화검상은 여전히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그 표정은 역시 담담하 여 마치 눈앞의 이 살벌한 광경이 보이지 않는 것 같기도 했다. 사실은 그가 지금 이렇게 지나칠 정도로 여유를 보이고 있는 것은 그 나름대로의 또 다른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대개 친구가 옆에 있는 경우라면 자연 도움을 받을 수가 있겠 지만 세상에는 비단 친구뿐만 아니라 적(敵)에게서라도 간혹 도 움을 받을 수 있는 경우가 있다. 과연 아니나다를까, 거의 수십 명의 개방방도들의 움직임이 최 고조에 이르고 분위기가 더욱 긴박해졌을 무렵에 문득 어디선가 밝고 부드러운 듯한 여자의 음성이 들려오며 일단의 남녀들이 이 층에서 아래로 걸어내려왔다. "잠깐만 기다리세요, 여러분! 잠깐만 저희에게 시간을 주세요." 그 일곱 명의 남녀들은 뜻밖에도 모두 화검상에게 매우 낯익은 사람들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 중에는 그와 인연이 상당히 깊 이 사람들도 섞여 있었다. 일전에 남궁세가의 대청에서 보았던 석대공자(石大公子) 석한 생(石限生)과 나중에 그의 정혼녀(定婚女)라는 것을 알게 된 황소 군주(黃少郡主) 황봉황(黃鳳凰), 그리고 황봉황의 친오빠인 황대 공자(黃大公子) 황견(黃堅)과 남궁세가의 두 남매(男妹), 화산파의 눈에 익은 풍검진(馮劍眞)과 풍검심(馮劍心) 두 남매였다. 이들은 말하자면 당금의 무림에서 가장 촉망받는 젊은이들이라 고 할 수 있는데, 바로 지금과 같은 시기에 이곳에 갑자기 나타 났다는 것은 실로 뜻밖이라고 말할 수가 있을 것이다. 개방의 사람들이 아무리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고 해도 도저히 그 일곱 명의 남녀들을 다치게 하면서까지 일을 강행시킬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거의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갔던 그들의 움직임은 이내 맥없이 풀어지며 그들 중의 하나가 다소 짜증난 음성으로 대꾸했다. "이러시면 정말 곤란하오. 우리가 빨리 떠나라고 하지 않았 소?" 조금 전에 개방의 방도들을 제지시킨 사람은 바로 그 황소군주 황봉황이었다. 그녀는 약간 씁쓸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여전이 가벼운 미소를 잃지 않으며 다시 말했다. "여러분께서 그런 의도가 있으신 것은 이미 알고 있지만 저희 에게도 한 가지 중요한 일이 있기 때문에 미처 떠나지 못한 거에 요. 잠깐만 양해를 해주세요." 그 개방의 사람들은 저마다 무공이 뛰어난 사람들이기 때문에 일단 공격을 중단하게 되자 다시 빠르게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 섰다. 한데 바로 그 순간에 화검상은 가볍게 손을 들어올리며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의 무공을 펼쳤다. 느닷없이 상서(祥瑞)로운 백색(白色)의 광채(光彩)가 주위를 눈 부시게 물들인다고 생각되는 순간에, 갑자기 그 수십 명이나 되 는 개방방도들이 일제히 전신의 마혈(麻穴)이 제압되어 뻣뻣하게 굳어버리고 말았다. 화검상의 이러한 무공(武功])이라고 하는 것은 그야말로 상상 할 수도 없이 정교하고 신비(神秘)로워서 설사 다른 광검(光劍)의 경지에 도달한 고수들이라고 해도 도저히 따라할 수 없는 것이라 고 할 수 있었다. 비록 마혈은 제압되었지만 아직 아혈(啞穴)이 제압되지 않아 말은 할 수가 있었기 때문에 그 수십 명의 개방방도들이 일제히 크게 분노(忿怒)한 기색을 지었고, 또한 더러는 일제히 이를 갈며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이......, 이런 더러운 놈! 감히 암습(暗襲)을 펼치다니......! 과연 사문을 배반한 더러운 후레자식이라 다르구나." "뭐라고? 이놈들이 감히......!" 화검상이 뭐라고 말릴 사이도 없이 동방량이 순간 크게 격분하 여 신형을 날리더니 그들 중 가장 노골적으로 악의적인 욕을 한 자의 앞으로 다가가 뺨을 십여 차례나 후려갈기기 시작했다. "사부님께서는 오히려 너희들의 목숨을 구해주기 위해 이런 수 법(手法)을 쓰신 것이다! 게다가 비열하고 몰염치한 너희들이 감 히 지금 사부님께 뭐라고 말할 수가 있느냐......?" 그자는 무공이 높아서 동방량의 손속에 이빨이 부러지거나 턱 이 나가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대뜸 양 뺨이 시뻘겋게 부풀어오르 기 시작했다. 사실 동방량은, 이제까지는 그저 긴장하느라 분노를 발산할 기 회가 없었지만 조금 전에 다시 사부(師父)인 화검상의 그 놀라운 무공을 보았고, 그렇게 크게 고무된 심정 속에서 다시 분노가 폭 발하자 마침내 이것저것 돌보지 않고 달려가 그자의 뺨을 후려친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곳에 일행을 제외하고는 그보다 무공이 낮은 사 람은 거의 없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자는 마혈이 제압되어 있는 바람에 멀쩡히 두 눈을 뜨고도 뺨을 얻어맞았으며, 이내 시뻘게진 얼굴로 다소 어이없다는 듯이 멀거니 동방량을 노려보고 있었을 뿐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듯이 대꾸하지 않았다. 갑자기 나머지 개방방도들의 표정도 괴이쩍고 음흉(陰凶)하게 변해버렸으며 실내의 분위기가 이상해져 버렸다. 동방량은 십여 차례나 그자를 후려갈긴 다음에야 비로소 그러 한 괴이한 분위기를 눈치챘으며, 이윽고 다시 돌아와 화검상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얼굴을 붉힌 채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사부님. 제가 그만 바보 같은 짓을 한 것 같습니 다." 화검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다. "그렇다, 너는 실로 바보 같은 짓을 한 것이다. 그들은 그렇지 않아도 나를 해치기 위해 우선 네게 손을 쓰려고 생각하고 있을 터인데, 지금 너는 그들이 네게 손을 쓸 수 있는 명분(名分)을 제 공한 셈이다. 본래 너는 무공이 그리 높지 않아서 그들이 네게까 지 손을 쓰기가 미안한 상황이었지만 앞으로 그들은 그 몇 차례 의 뺨을 얻어맞은 것을 그냥 흘려보내지는 않을 것이다. 너는 좀 더 참을성을 길러야만 할 것이다." 사실 이것은 화검상이 그와 같은 말을 함으로써 그러한 괴이쩍 은 분위기를 누그러뜨린 것이었지만, 그러나 그 맞은 자는 이제 는 새롭게 음흉한 표정이 되어 다시 입을 열어 말했다. "흐흐, 그 어린 녀석의 손이 제법 매운걸......? 아무래도 내 제 자와 한번 겨뤄보게 해야겠어. 후레자식을 사부로 모시는 녀석이 니 내가 파격적으로 봐주는 것이지만. 흐흐! 꼬마야, 어디 한번 나중에 나와 다시 만나는 게 어떠냐?" 동방량은 다소 성격이 화급한 편이기 때문에 조금 전에 화검상 의 그런 말을 들었음에도 다시 크게 발끈하려 그자의 얼굴을 노 려보았지만, 이내 얼른 내심의 격분을 억누르고 화검상의 등뒤에 가서 공손히 섰다. 문득 풍검심(馮劍心)이 싸늘하게 조소하며 화검상을 향해 입을 열어 말했다. "호호호, 화가 녀석아! 네놈은 어느새 그렇게 계집질을 했을 뿐 만 아니라, 제자도 맞이하여 사부가 되었구나. 정말 제 분수도 모 르는 녀석이 가관이로군. 호호호......!" 그녀는 과거에는 화사제라고 불렀으나 이제는 그렇게도 부르지 않고 있으니, 아마도 현재는 화산파에서는 화검상을 동문(同門)으 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 모양이었다. 동방리는 조금 전에 자신의 동생과 관련된 사건이 벌어졌으므 로 기분이 다소 격앙된 상태에서 풍검심의 말을 듣자 이내 입을 열어 대꾸했다. "당신이 바로 그 화산옥녀(華山玉女)라는 풍검심인 모양이로군 요.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도무지 분수를 모르고 있는 것은 오히 려 그쪽인 것 같아요. 애초에 다른 문파의 사람들과 결탁을 하고 서 화산파의 내부에서 반역(叛逆)을 저질렀던 것은 오히려 그쪽 이 아니었나요? 게다가 그렇게 해놓고서 자신들의 마각(馬脚)이 드러나게 될까봐 사사건건 이분에게 온갖 혐의를 뒤집어씌워 제 거하려고 했던 사람들이 바로 당신들이었지요. 실로 당신들이야 말로 천하의 도의(道義)에 어긋난 짓들을 하고 있고 염치도 모르 는 악덕 패륜아들로서, 말하자면 인간말종이라고도 말할 수가 있 지요. 그리고 당신들은 지금 이분이 그저 마음만 먹으면 단순간 에 죽음을 당할 수도 있고, 혹은 영원히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될 수도 있어요. 호호, 나는 그래서 이분이 너무 덕(德)에 구애되 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요. 만일 나라면 당신들 같은 천하의 대악인(大惡人)들이자 가문의 철천지 원수들은 일시에 모 두 손을 써서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만들어버리고 말았을 거예 요."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게 무림야그 출력일 :: 98/11/20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3 권 제 63 장 - 1 지금 동방량은 비록 화검상의 지시 때문에 억지로 눌러 참고 있지만 그 화급한 성격으로 말미암아 나중에 반드시 이 격분한 심정을 풀어버리려고 할 듯 보였다.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동방리는 자신의 동생의 격분한 심정 도 풀어 줄 겸해서 그런 말을 나서서 하고 만 것이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무공이나 그 식견이 높아서 한 눈에도 그녀가 무공을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풍검심은 처음에는 그녀를 상대할 가치도 없다고 생각했는지 대꾸도 않고 그저 얘기를 듣고 있다가, 이윽고 더 이상 참을 수 가 없다는 듯 크게 분노하여 신형(身形)을 날려 덤벼들며 소리쳤 다. "네년은 어디서 나타난 갈보년이냐!" 풍검심의 현재의 무공 수준은 동방량보다도 더욱 높은 수준이 며 그녀가 독한 마음을 품고 덤벼드는 손속은 비단 악랄할 뿐만 아니라 살벌하기 짝이 없었다. 화검상은 가볍게 손을 휘저어 화살처럼 날아오는 그녀를 제지 하며 담담히 말했다. "풍낭자(馮娘子), 그대의 입은 여전히 그렇게 더러운 편이로군. 그러나 지금은 어쨌든 잠시 잠자코 있는 것이 좋지 않겠소? 만일 이 순간 그대 한 사람 때문에 화해를 하려는 모든 사람들의 생각 이 무너지게 되어서는 안될 것이기 때문이오." 풍검심은 화검상의 손짓에 따라 다시 화살처럼 빠르게 되돌아 갔으며 기이하게도 그 자리에 이르자 급격히 신형이 멈춰지며 부 드럽게 처음처럼 내려서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화검상이 그녀의 움직임을 일시적으로 완전히 제압하여 억지로 그렇게 만들어놓은 것이기 때문에 그녀는 비록 겉으로는 멀쩡히 다시 그 자리에 서 있는 것 같지만 속으로는 기 혈(氣血)이 마구 역류(逆流)하여 안색이 붉어지고 움직이기는커녕 말도 하기 어려워졌다. "네......, 네놈이 감히......, 감히 나를, 이 죽일 놈......!" 그녀는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억지로 말을 하다가 그만 입 으로 한 모금의 피를 토하고 기혈이 더욱 어지러워졌다. 풍검진(馮劍眞)이 그것을 보고 지풍(指風)을 날려 그녀의 기혈 이 더 이상 역류되지 않도록 손을 쓴 다음에, 딱딱한 표정으로 화검상을 향해 말했다. "네가 정말로 우리와 화해를 할 마음이 있는지의 여부는 절로 알게 되겠지만, 어쨌든 우리의 얘기는 일단 나중에 하도록 하자." 황봉황(黃鳳凰)이 상당히 차분한 신색으로 그와 같은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가, 이윽고 화검상을 향해 부드러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우리는 아마도 지금 두 번째 만나는 것 같군요. 당신에 관한 얘기는 많이 들었어요. 나는 황봉황이라고 해요. 당신은 나의 이 름을 들어본 적이 있나요?" 화검상은 그렇지 않아도 아까부터 내심 그녀의 거동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던 중이었다. 그녀의 무공은 이미 최절정(最絶頂)의 경지에 육 갑자(六甲子) 정도의 공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지만, 그런 무공이 대단한 것이 아니라 그녀에게는 뭔가 말하기 어려운 깊고 조용한 지혜(智慧) 가 엿보이는 듯했기 때문이다. 비록 화검상이 석한절(石恨絶)등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을 만나 보기는 했지만 그러나 아마도 그의 기억에 이런 여자를 만나본 것은 처음인 것 같았다. 실로 이런 사람의 지혜라고 하는 것은 간혹 대수롭지 않게 생 각될 수도 있겠지만 때로는 아주 상황을 어렵게 만드는 적(敵)이 될 수도 있는 법이다. 화검상은 담담한 표정 그대로 미소를 지으며 간단하게 대꾸했 다. "성수곡(聖手谷)의 황소군주(黃少郡主)에 대해서는 이미 그 명 성(名聲)을 들어 알고 있었소. 하지만 오늘 이렇게 직접 나를 만 나고자 하는 데는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오?" 황봉황은 마주 미소하더니 가볍게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무슨 다른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에요. 이미 알고 있 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벌써 오래 전부터 한 사람과 연관을 맺고 있고 또한 그분을 좋아하고 있죠. 나는 이 세상에는 사람은 많아 도 인재(人才)는 그리 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서로가 각기 다른 사정이 있어서 부딪치게 되었더라도, 만일 세상에서 그리 흔하지 않고 또한 만나볼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 만나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화검상은 가볍게 실소(失笑)하며 말을 받았다. "그러니까 낭자는 지금 내게 자신의 정혼자를 소개하겠다는 말 이오?" 황봉황은 안색을 다소 붉히더니 다시 말했다. "가능한 부드럽게 이 자리를 마련하려고 했었는데 그만 나의 말재주가 부족하여 도리어 어색해지고 말았군요. 하지만 나는 두 분이 모두 세상에서 보기 드문 사람들이기 때문에 서로 잘 어울 릴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요. 비록 지금의 상황이 그다지 좋지는 않더라도 이렇게 서로 대화로 풀어나가다 보면 그래도 좀더 나아 지지 않을까요?" 화검상은 담담하게 표정을 바꾸며 대꾸했다. "하긴, 나도 그 말에는 동감이오. 그러나 나는 이미 누구나 알 고 있듯이 천하의 패륜아인데 그처럼 대단한 사람이라면 나와 한 번 말이나 나누어보려고 하겠소?" 석한생(石恨生). 황봉황의 정혼자이자, 흔히들 석대공자(石大公子)라고 부르는 이 백발의 미청년(美靑年)은 바로 일전에 화검상이 남궁세가의 대청에서 격전 도중 그의 혈도를 제압하여 집어던진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이미 화검상은 그의 여러 명의 동생들을 만나본 바가 있었고 아마도 이들 형제들은 각기 뚜렷한 개성들을 가지고 있는 것 같 았는데, 지금 이 사람의 성품(性品)은 다소 후덕해 보이는 편이었 지만 역시 차가운 냉기(冷氣)가 깔려 있어서인지, 오늘따라 안색 이 더욱 창백해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석한생은 두 사람 사이의 대화를 거의 무표정한 시선을 하고 듣고 있다가, 이윽고 화검상을 향해 쓴웃음을 지으며 포권과 함 께 입을 열어 말했다. "세상에는 강자(强者)만이 진정한 대접을 받을 수 있는 법이오. 나는 이미 귀하에게 패하여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게 되었는 데 어찌 대단하다고 말할 수가 있겠소? 비록 천하의 소광생(少狂 生)이라고 해도 이미 그러한 명성(名聲)을 쌓았으니 오히려 나보 다도 더 대단하다고 해야 할 것이오." 화검상은 그에게 시선을 돌려 바라보다가 이윽고 가벼운 미소 와 함께 다시 말했다. "당신의 그러한 말은 마치 갑자기 내 얼굴에 금칠을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드오. 확실히 저분 황낭자의 말처럼 우리는 제법 대 화가 잘되어 나갈 것 같기도 하오. 하지만 우리는 기왕에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었으니 좀더 시간을 아껴야 하지 않겠소?" 석한생은 그 말에 안색이 더욱 싸늘해지는 듯하더니 이어 다시 입가에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귀하의 말은 내가 솔직하지 못하다는 말이오?" 화검상은 가볍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꾸했다.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오. 나는 지금 곤경에 처해 있다고 할 수 있는데, 혹시 당신과 얘기가 잘되게 되면 금방이라도 이 곤경 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는 중이오." 석한생은 안색이 문득 음산(陰散)하게 변하더니,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가 정색을 하고 반쯤 웃으며 말했다. "좋소, 내 그렇다면 솔직히 말하도록 하지. 그날 내 당신과 겨 룬 이후에 나는 당신의 암수(暗手)에 걸려 오늘날까지 몸이 그다 지 좋지 못한 상황이오. 사실 이런 얘기는 드러내놓고 말하기가 곤란한 것이지만, 당신이 원한다면 나는 솔직히 그날의 패배를 시인해 줄 수도 있소." 기실 지금의 이 기묘(奇妙)한 상황을 더듬어본다면 그야말로 어이가 없으면서도 우습기까지 한 일이라고 아니할 수가 없을 것 이다. 오늘 화검상의 눈앞에 명성이 평범하지 않은 이 젊은 기재(奇 才)들이 이렇게 직접 화검상을 마중 나와준 것은, 실상은 바로 일전에 석한생이 화검상에게 혼혈(昏穴)을 제압당했었다는 데에 이유가 있는 것이었다. 대개 강호의 무림인들이 구사하는 이 점혈수법(點穴手法)이라 고 하는 것은 직선적이기 때문에 자연 거기에는 아무리 정확하다 고 해도 분명하지 않은 부분이 많을 뿐만 아니라, 게다가 결함들 도 많아서 생각보다는 그 위력이 오래가지 못하고 또한 더러 그 허점을 찌르는 방법에 의해서 간단히 해소되기도 하는 것이 일반 적인 상황이다. 하지만 반면에 화검상이 구사하는 점혈수법은 바로 곡선적(曲 線的)인 것이므로 훨씬 분명할 뿐만 아니라 살아서 움직이는 것 이므로, 그 결함 도 찾아내기가 어렵고 그것의 위력이 전혀 다르 다고 말할 수가 있을 것이다. 과거 그는 방귀춘 등의 혈도(穴道)를 제압하여 혼내준 일도 있 거니와, 전날 남궁세가에서의 그는 평소보다 심하게 격분한 상태 였고, 또한 대단히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자연 석한생을 제압한 그 수법(手法)은 훨씬 더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화검상은 천륭무가의 천수자 (天隨者)라면 아마도 그 혈도를 풀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짐 작하고 있었던 터인데, 막상 지금과 같은 결과를 보자 그는 약간 어이가 없으면서도 웃음이 절로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좀더 쉽게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직선적인 점혈수법은 마치 사람을 끈으로 묶어서 결박시켜 놓은 것과도 같고 그에 반해서 곡선적인 점혈수법은 흡사 하나의 병(病)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끈으로 결박시켜 놓은 것은 그 매듭을 풀어내기만 하면 간단히 해소시킬 수 있는 것이고, 또한 그것이 살아서 움직이며 사람을 더욱 곤경에 처하게 하지는 않는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무림야그 출력일 :: 98/11/20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3 권 제 63 장 - 2 하지만 이 병(病)이라고 하는 것은 무슨 특별한 매듭을 찾아내 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살아서 움직이며 그 사람을 곤란하게 만들고, 게다가 잘못 건드릴 경우에는 오히려 더욱 상황을 악화 시킬 수가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 곡선적인 점혈수법은 직선적인 방법으로는 해소시 키기가 어려우며 결국 곡선적인 방법으로 해소시켜야만 한다는 것인데, 그러니까 천수자는 그 무공의 힘이 가히 천하(天下)를 뒤 덮을 정도로 대단하기는 해도 어이없게도 이런 이치에 있어서는 그만 어찌해 볼 수가 없었던 모양인 셈이다. 지금 석한생의 상태는 그래도 대단한 능력자가 제법 많은 노력 을 기울인 흔적이 엿보여서, 비록 과거의 그 혼절한 상태에서 벗 어나기는 했지만 무공은 거의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있었 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천하제일(天下第一)의 무학기재(武學 奇才)라는 소리를 듣던 사람이 이렇게 갑자기 무공을 사용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는 것은 실로 무엇보다도 답답하지 않을 수가 없 을 것이다. 그러나 누가 뭐라고 해도 천륭무가(天隆武家)는 전설(傳說)이라 고 불릴 만큼 대단한 능력들을 가지고 있는 신화(神話) 속의 가 문이었는데, 아무리 그래도 고작 이런 일로 다가와서 이렇게 순 순히 자신들의 명성을 깎아내리는 언행을 하고 있다는 것은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다. 혹시 이것은 앞으로 화검상에 대해서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 아도 될 만한 상황이기 때문에 그 윗사람들도 석한생 등의 이런 행동에 대해서 눈감아 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아직 화검상은 죽은 시체도 아니거늘, 그렇다면 어째서 그들은 지금 화검상에 대해서 그다지 부담을 갖지 않아도 된다는 말인 가! 화검상은 최소한 이들이 자신에게 우호적으로 변했기 때문에 이렇게 나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화검상은 약간 생각에 잠겨보는 듯하다가 이내 웃으며 말을 받 았다. "하하, 당신이 정말로 그렇게 솔직하게 나오니 그럼 나도 말하 기가 편해지게 되었구려. 좋소, 나는 지금 당장이라도 당신의 그 중상을 깨끗하게 해소시켜 줄 수가 있소. 하지만 당신은 오늘 이 자리에 있어서 우리들의 안전(安全)을 책임져줘야만 하오. 이 조 건은 서로에게 있어서 상당히 공평한 것 같은데, 당신의 의견은 어떻소?" 석한생은 다소 괴이쩍은 듯한 시선(視線)으로 화검상을 바라보 다가, 이어 가볍게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귀하는 나이도 나보다 어린데 제법 시세(時勢)에도 밝고 능력 도 있는 것 같소. 아무래도 나는 오늘 이곳에 와보기를 잘했다는 느낌이 드는구려." "나 역시 오늘 당신과 같은 천하기재를 만나게 되어 대단히 영 광이외다." 말과 함께 화검상은 가볍게 우수(右手)를 내저었는데, 순간 마 치 안개와도 같은 흐릿한 장력(掌力)이 날아가 석한생의 가슴을 가격했고 석한생은 그로 인해 욱, 하는 소리와 함께 한 모금의 검은 피를 토하며 비틀거리면서 뒤로 서너 걸음이나 물러섰다. 황견(黃堅)이 상당히 냉랭(冷冷)한 기색으로 옆에서 말없이 지 켜보고 있다가 그와 같은 광경을 보고 앞으로 나서서 화검상을 향해 일권(一拳)을 날리며 소리쳤다. "무슨 짓이냐, 이 더러운 자식!" 황견은 체격이 우람하고 서른 살이 넘는 거의 장년(壯年)층에 접어드는 나이이지만 무공은 황봉황에 비해 그다지 차이가 없어 서 도저히 화검상과 상대가 될 수는 없었다. 그의 쌍류금(雙流金)의 제일식(第一式)은 누런 강기가 되어 화 검상의 얼굴을 향해 날아갔지만, 그러나 이내 중간에서 물거품처 럼 퍽, 하고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황봉황이 얼른 그의 옷자락을 잡아당겨 제지하며 말했다. "그만두세요, 오라버니! 그는 지금 석상공(石相公)을 치료한 거 예요." "뭐, 뭐라고? 그럴 리가......?" 과연 지금 석한생은 그렇게 검은 피를 토하고 뒤로 물러선 이 후에 확연히 안색이 밝아지고, 잠시 그대로 서서 눈을 감고 운기 조식(運氣調息)을 해보고 있는 것 같았다. 황견의 식견이 아직 대단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조금 전에 석한 생이 최소한 손해를 보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이런 방법으로 치료가 되다니, 정말 믿을 수가 없는 일이군.' 황견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뒤로 물러난 이후에, 이윽고 석한생은 운기조식을 끝내고 신체의 문제점이 완전히 해소되었는 지 눈을 뜨더니 온화해진 안색(顔色)으로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떠올리며 화검상을 향해 말했다. "고맙소. 확실히 귀하의 능력이 대단하다는 것은 인정할 수밖 에 없군. 나는 오늘의 이 일을 잘 기억하도록 하겠소." 화검상이 미처 입을 열어 대꾸하기도 전에 악검림이 먼저 나서 서 입을 열어 말했다. "그럼 어서 약속을 지키도록 하세요. 당신은 설마하니 한입으 로 두말하지는 않겠죠?" 석한생은 힐끗 악검림을 바라보았으나 대꾸하지는 않고, 이어 개방의 사람들을 향해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여러분은 이제 그만 물러가도록 하시오. 오늘 불초의 체면을 보아주신다면 반드시 후일에 그만한 보답을 할 날이 있을 것이 오." 이제 무공이 도로 완전히 회복된 석한생의 능력은 십이 갑자 (十二甲子) 초절정(超絶頂)의 경지이므로 지금 이 자리에서 개방 의 사람들 중 누구도 그와 비교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얼마 전에 개방의 방주 천왕개 홍두자가 부상을 입지 않았다면 아마도 그와 능력이 비슷하다고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개방의 사람들은 상황이 돌아가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가 그 말을 듣고 일제히 의혹스러운 표정들을 지었으며, 그들 중에서 다시 한 삶이 입을 열어 말했다. "석대공자(石大公子), 우리가 당신의 처지를 모르는 바는 아니 지만, 그러나 지금 이 자리는 당신들과는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 아주셨으면 좋겠다. 우리는 지금 본방(本幇)의 사활을 걸고 저 인 면수심의 대악적을 처단하려고 하는 것인데, 아무리 우리 개방이 대단치 않게 보일지라도 이런 일에까지 간섭을 하신다는 것은 정 말로 곤란하오." 비록 그들이 준비한 그 온갖 방법이라면 석한생도 상대할 수가 있겠지만, 그러나 그들은 감히 이 천륭무가의 대공자(大公子)를 어찌해 볼 수가 없는지 그 말투가 다소 고집을 부리고 있기는 하 지만 상당히 저자세였다. 석한생은 그 말에 다소 눈살을 찌푸리는 듯했고, 대신 황봉황 이 다시 입을 열어 그들에게 말했다. "보아하니 여러분은 지금 상황판단을 잘못하고 계신 것 같군 요. 솔직히 우리가 지금 이곳을 그대로 떠난다면 그는 즉시 여러 분을 모두 죽이고 달아날 수도 있을 거예요. 석상공은 사실 여러 분을 위해서 이런 말을 해주고 있는 것인데 어째서 여러분을 무 모한 고집을 부리시나요? 만일 여러분이 끝까지 이렇게 고집을 부리신다면 나중에 후회할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 일이 아니겠어 요?" 석한생 한 사람이라면 대단하지 않다고 할 수 있어도 그 뒤에 있는 천륭무가(天隆武家) 등은 감히 개방으로서도 대항할 수가 없는 일이기에, 황봉황의 그 말을 듣자 개방의 사람들은 모두 대 꾸를 할 수가 없어서 묵묵히 있을 따름이었다. 석한생은 이에 다시 괴이쩍은 웃음을 지으며 돌연 밖을 향해 낭랑한 어조로 말했다. "천왕개(天王개) 홍(洪)선배! 불초가 지금 이 자리에서 선배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만, 이쪽으로 들어와주실 수가 있겠소?" 동방리와 악검림 등은 밖에 이미 개방의 방주까지 와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약간 안색이 변해 서로를 돌아보았다. 과연 아니나다를까, 잠시 후에 갑자기 밖에서 가벼운 기척들이 일어나더니 이윽고 문이 열리며 십여 명의 사람들이 세 개의 교 자(轎子)를 둘러메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 세 개의 교자 위에는 사람이 각기 하나씩 올라타고 있었는 데, 물론 그들은 화검상에게 너무나도 낯익은 사람들이다. 중앙의 교자 위에 앉아 있는 사람은 바로 천왕개 홍두자(洪頭 子)였고, 좌측의 교자 위에 있는 사람은 신개(神개) 홍천구(洪千 駒)였으며 마지막으로 우측의 교자 위에 앉아 있는 사람은 소천 개(少千개) 홍계남(洪桂南)이었다. 홍천구는 홍두자의 아들이고, 홍계남은 홍천구의 막내손자인데, 이들은 공교롭게도 모두 다 화검상에게 당해서 꼼짝도 못하고 그 런 몰골들이 되어 있는 것이었다. 따지고 보자면 천수자 등도 석한생의 혈도를 풀지 못했는데 그 들이 대체 무슨 재주로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가 이었겠는 가? 홍두자는 전날 화검상에게 가장 심하게 당하여 거의 무공이 파 괴되고 폐인지경이 되어 지금도 누렇게 뜬 얼굴로 간신히 교자 위에 몸을 의지하고 앉아 있는 중이었고, 다른 두 명은 모두 마 혈(麻穴)이 제압당해서 뻣뻣해져 있는 상태였다. 홍두자는 나이가 이미 백 살도 훨씬 넘은 고령인데, 일찍이 그 의 신세가 그렇게 건강한 상태가 아니었으면 그와 같은 심한 부 상을 입고도 아직 살아 있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홍두자는 먼저 화검상을 살기(殺氣) 가득한 시선(視線)으로 노 려본 뒤에, 이윽고 석한생을 바라보며 다소 쉰 듯한 음성으로 말 했다. "석대공자,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우리 개방은 다른 사람들이 이러쿵저러쿵 간섭을 하는 것을 싫어하는 편이오. 그래, 무슨 일 로 이 늙은이를 보자고 한 것이오?" 석한생은 담담한 표정으로 홍두자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다소 웃으며 말했다. "나도 이미 경험을 한 바이지만, 실로 나의 처지가 선배의 처 지와 다를 바가 없었다고 생각하고 있소. 선배께선 아마도 나의 이 말에 동조를 하실 것이오. 그래서 말인데, 실은 지금의 이러한 상황은 서로간의 작은 오해가 불씨가 되어 몸이 상하게 되고 또 한 그것으로 인해 더욱 원한(怨恨)이 깊어지게 된 것이라고 할 수가 있는데, 만일 다시 모두가 건강을 되찾게 되고 약간의 양보 만 하게 되면 만일 다시 모두가 건강을 되찾게 되고 약간의 양보 만 하게 되면 그런 오해 정도는 굳이 지금 생각해야 할 필요는 없는 것이 아니겠소?" 홍두자는 다소 눈살을 찌푸리며 생각해 보는 듯하다가 대꾸했 다. "그러니까 석대공자는 지금 나더러 사람들을 이끌고 이곳을 떠 나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오?" 석한생은 웃으며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내가 어찌 감히 선배께 그런 말씀을 드릴 수가 있겠소? 다만 나는 저 화산파의 소광생(少狂生)이 어떤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선배의 몸도 치료해 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아울러 저 다른 분들의 몸도 정상으로 돌려놓을 수가 있을 것이므로, 지금 애써 자리를 마련해 드리고 있는 것이오. 솔직히 선배는 개방에 서 드물게 걸출한 명성(名聲)을 얻고 계신 분이신데, 고작 이런 일로 몸을 해친다는 것은 아까운 일이고 또한 다른 분들도 마찬 가지이리라고 생각하오....... 화공자, 내 말이 옳지 않소?"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 PRINTER/CAPTURE를 정지하고 [Enter]를 누르십시오. 무림야그 출력일 :: 98/11/20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3 권 제 64 장 화산파의 공포(恐怖) 제 64 장 화산파의 공포(恐怖) 석한생은 나중에는 화검상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그렇게 질문 했다. 기실 지금 석한생의 그와 같은 말들은 현재 상황의 정곡을 찌 른 것이라고도 할 수가 있었다. 천하의 대다수의 정파무림(正派武林)이 적대시하고 있는 화검 상을 애초부터 개방이 먼저 나서서 제거하려고 하다가 그과 같은 피해를 입게 되었던 것이었으니, 이제 화검상이 그들을 모두 다 치료해주게 된다면 그들도 그렇게 유독 자신들만이 나서서 화검 상에게 목숨을 걸 필요는 없어지는 것이다. 화검상은 그 말을 듣고는 잠시 입가에 가벼운 고소(苦笑)를 떠 올리는 듯하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나는 의원이 아니니 단시일 내에 몸을 완전히 치료할 수는 없 겠지만, 그러나 어떤 특별한 원인이 있다면 그 원인을 제거하고 본래 의 바탕으로 되돌릴 수는 있을 것이오. 아마도 다른 사람들 도 그와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보는데, 과연 그 당사자들이 나의 말을 믿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오." 홍계남이 눈동자를 굴리며 여러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는 듯하 다가 음침한 표정으로 입을 열어 말했다. "흥, 그건 네놈이 우리에게 사술(邪術)을 걸었으니, 네놈이 그 걸 풀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 지금 와서 그런 것을 가지 고 굳이 생색을 낼 필요가 있겠느냐?" 홍두자는 힘겹게 손을 들어 홍계남의 말을 제지한 다음에, 화 검상을 바라보며 악독(惡毒)한 어조로 말했다. "저분 석대공자께서 이렇게까지 말씀을 하시니 오늘은 내가 네 놈에 대한 처분을 미루도록 하겠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우 선 네놈이 스스로 그 사악한 무공(武功)을 폐지하고 모든 사람들 에게 이제까지의 일들을 백배 사죄해야 하는데, 그럴 수가 있겠 느냐?" 석한생이 이에 얼른 다시 나서서 화검상을 향해 웃으며 말했 다. "우선 이 홍선배의 몸을 치료해 드리는 것이 급선무일 것이오. 대개 노인분들은 마음이 너그러워서 크게 화가 났다고 해도 젊은 사람의 하는 행동을 보아서 그만 다시 마음이 누그러지기도 하는 것이 아니겠소?" 동방리가 자리에 앉아서 듣고 있다가 그만 다시 입을 열어 말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당신들이 즉시 이곳을 물러가겠다는 확 실한 약속을 해야 해요. 당신들은 때에 따라서는 아랫사람들의 목숨도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인데, 그저 그렇게 말한 것으로 우 리가 당신들의 말을 믿을 수가 있겠어요?" 홍천구가 입을 열어 그녀를 향해 음산(陰散)한 어조로 말했다. "네년은 또 어디서 불거져나온 계집이냐? 틀림없이 저 막나가 는 후레자식이 건드린 또 하나의 미친년이겠지? 흐흐, 이 자리가 어떤 자리라고 너 같은 계집이 나서서 떠드느냐?" 악검림이 옆에서 듣고 있다가 한숨을 내쉬며 다시 입을 열어 말했다. "당신들은 명문정파(名門正派)라고 하면서 정말 말을 함부로 하는군요. 여기 이 동방낭자는 바로 우리 화사형의 부인(婦人)이 되실 분이에요.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가 있나요?" 석한생은 반쯤 어색한 듯이 웃으며 화검상을 향해 말했다. "귀하도 이미 보았겠지만 나도 이제는 어느 정도 할 만큼 한 셈이오. 대체 어떻게 하겠소? 나는 더 이상 어떻게 해줄 수가 없 으니 앞으로는 귀하가 알아서 하시오." 화검상은 잠시 그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는 듯하다가 이윽고 한 손을 들어올리며 가벼운 어조로 입을 열어 말했다. "물론이오. 나 역시 화해(和解)를 바라고 있으니 이런 일은 그 저 좋게 매듭이 지어지는 것이 좋을 것이오. 어쨌든 당신이 이번 일에 나서 주어서 고마웠소." 말과 동시에 화검상의 손끝에서 다시 한번 그 상서(祥瑞)로운 듯한 백색의 광채(光彩)가 번쩍 피어올랐는데, 사람들은 갑자기 눈이 부셔서 앞을 볼 수 없게 되자 일순 놀라는 한편 저마다 무 의식중에 눈을 크게 떴다. 대개 보이지 않는 가운데 상대방을 위압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 지만, 그와는 반대로 더러는 일부러 자신의 능력(能力)을 드러내 어 편법으로 상대방을 은근히 두렵게 만드는 방법도 있을 수가 있다. 지금 솔직히 화검상으로서는 단지 그들을 치료하는 것뿐이라면 일부러 그와 같은 최상급의 무공(武功)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었 을 것이다. 이번의 경우는 아까와는 달리 그 백색광채의 물결이 좀더 오래 지속되었는데, 그것은 홍두자의 경우 그저 혈도(穴道)가 제압된 것이 아니라 무공이 파괴되고 거의 폐인지경이 되어 있는 것이었 으므로 그것을 치료하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윽고 그 백색광채의 물결이 지나간 후에 비단 사람들의 표정 뿐만 아니라 실내의 분위기도 많이 달라지게 되었는데, 그 수십 명의 개방방도들이 일제히 마혈(痲血)이 풀려 마음대로 몸을 움 직일 수 있게 되었다. 홍천구나 홍계남의 경우도 그러했고, 홍두자의 경우는 아직 완 전히 치료된 것은 아니지만 안색이 불그레해진 것이 다시 건강해 져서 무공(武功)을 회복할 수 있게 된 것처럼 보였다. 수십 명의 개방방도들은 갑자기 몸이 자유로워지자 다소 어리 둥절해졌으나, 이내 다시 얼굴 가득 악독한 표정들을 지으며 화 검상을 대적할 준비들을 하기 시작했다. 홍천구와 홍계남은 잠시 운기(運氣)해보고 나서 무공에 이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자, 즉시 신법(身法)을 펼쳐 교자 위에서 내려와 뒤로 훌쩍 물러난 뒤에 음험한 표정으로 상황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홍두자는 좀더 오랫동안 신중히 운기를 해보다가 이윽고 다소 표정이 밝아져서 눈을 뜨고 교자 위에 앉은 채로 화검상을 향해 말했다. "좋다, 내가 기왕에 말을 했으니 오늘은 그만 이대로 물러가기 로 하겠다. 하지만 네놈이 끝까지 그렇게 자신의 죄(罪)를 뉘우치 지 않는다면 앞으로 언젠가는 네놈을 처단하여 만천하에 알릴 날 이 오게 될 것이다." 홍천구가 뒤에 멀찌감치 물러나서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가 그 말에 다소 눈살을 찌푸리며 끼여들었다. "아버님, 저런 녀석에게까지 굳이 신의(信義)를 지킬 필요가 있 겠습니까? 차라리 이번 기회에 저 녀석을 이곳에서 끝장내 버리 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우리 개방의 위력을 이번 기회에 보여주 는 것도 좋을 것 같고 말입니다." 홍두자는 홍천구를 돌아보며 약간 험악해진 표정으로 대꾸했 다. "닥쳐라! 내 말이 무슨 개방구인 줄로 아느냐? 누구에게라도 내가 한번 입에서 내뱉은 말은 그대로 지켜질 것이다. 자, 모두 이만 돌아간다!" 기실, 과거 홍두자가 처음부터 화검상과 험악하게 원수진 사이 처럼 나서게 된 것은, 바로 그 전에 자신의 아들인 홍천구가 공 연히 나서서 화검상을 제거하려고 했다가 마혈이 제압되어 버려 서 더욱 감정이 좋지 않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사건 이후로 그들은 사실 엄청난 곤욕을 치러야만 했었 다. 홍두자의 그런 지시에 따라 막 결전(決戰)의 자세를 갖추고 준 비하고 있던 개방의 모든 사람들은 일제히, 마치 썰물이 빠져나 가듯이 빠르게 사라져 버리기 시작했다. 홍두자는 떠나면서 석한생에게 뭐라고 전음으로 인사말을 하는 것 같았고, 홍천구와 홍계남은 그저 화검상을 한차례 악독하게 노려보다가 이어 다른 사람들의 뒤를 따라 사라져버렸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사라져 버리자 마치 이 주점의 내부는 갑자기 텅 비어버린 것 같은 느낌마저 주었다. 어쨌든 이것으로 일행은 일단 위험한 고비를 하나 넘긴 셈이라 고 생각하니 동방리 등은 절로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되었 다. 개방의 사람들이 그렇게 모두 떠나고 나자, 석한생은 곧장 화 검상을 향해 포권하며 작별인사를 했다. "오늘 귀하를 만나서 상당히 유익했던 것 같소. 불초는 바쁜 일이 있어서 이만 실례할 테니, 나중에 기회가 닿는다면 다시 보 도록 합시다. 그리고......." 다음의 말은 전음(傳音)으로 이어져 화검상의 귓속으로 파고들 었다. "나도 믿어지지 않는 일이지만 내 여동생이 귀하를 연모(戀慕) 하고 있는 것 같소. 하하, 만일 웃어른들에게 붙잡혀서 갇히지만 않았다면 지금 이 자리에 함께 나와 있을 텐데 말이오. 어쨌든 시간이 있다면 내 여동생을 한번 찾아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오. 그럼......." 3 황봉황과 황견도 석한생의 뒤를 이어 신형을 나려 사라져갔는 데, 황봉황은 그렇게 떠나면서 역시 전음으로 다음과 같은 기묘 한 어조의 말을 남겼다. "오늘 고마웠어요. 다음에 인연(因緣)이 닿는다면 다시 만나도 록 하죠. 나는 당신에 대해서 나쁜 감정이 없으니 그리 경계하지 않아도 좋을 거예요." 이제 이 어지러워진 주루의 내부에는 일행을 제외하고는 고작 네 사람의 방문객이 남았을 뿐이었다. 풍검진 등은 상황이 그렇게 갑자기 매듭지어질 줄은 미처 몰랐 는지 마음의 준비를 하지 못하고 약간 어색해 하는 듯하다가, 이 내 냉랭(冷冷)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지금과 같은 상태에서 내가 네게 달리 더 말할 것도 없을 것 이다. 나는 본파(本派)의 결정사항을 네게 전달하러 온 것이다. 네가 만일 정말로 화해를 하고자 한다면 본파에 와도 좋다. 이것 이 바로 그 결정사항이다. 잘 알아들었느냐?"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건 무림야그 출력일 :: 98/11/20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3 권 제 64 장 - 1 풍검심은 여전히 독살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가 참지 못하고 악의에 찬 어조로 옆에서 끼여들었다. "흥, 네놈에게 과연 그과 같은 의도가 있을 리는 없겠지. 어쨌 든 네놈이 본파로 들어오게 되면 가장 먼저 네놈의 가슴에 칼을 꽂는 사람은 바로 내가 될 것이다!" 풍검진은 그녀의 말을 제지하며 다시 말했다. "어쨌든 나는 이미 말을 전했으니 이만 돌아가도록 하겠다. 네 가 오늘밤에 오든 내일 아침에 오든 우리는 상관하지 않겠다. 자, 그만 가자!" 풍검진이 그렇게 말한 뒤에 곧장 풍검심의 손을 잡아 이끌듯이 신법을 펼쳐 사라져 버리자, 남궁신도 뭔가 말할 것이 있는 것 같았으나 즉시 그 뒤를 따랐고, 가장 뒤늦게 신형(身形)을 날린 남궁설완도 다소 머뭇거리는 듯했으나 문득 그 가운데 전음을 펼 쳐 화검상에게 말했다. "할말이 있으니 잠깐 마을 밖으로 나와요." 그렇게 모두들 사라져 버리고 실내가 조용해지자, 이윽고 악검 림 등은 길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혹시 누군가 더 남아 있지 않을까 하여 은근히 주위를 둘러보는 기색들이었다. 동방리가 문득 화검상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어 말했 다. 그 남궁낭자(南宮娘子)가 당신께 무슨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던데, 혹시 전음으로 무슨 말을 하지는 않았나요?" 화검상은 담담한 표정으로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떠올리며 그 녀를 향해 말했다. "역시 당신의 감시망은 피할 수가 없겠소. 하하, 사실 그녀는 내게 무슨 할말이 있으니 지금 당장 마을 밖으로 나오라고 했다 오." 악검림이 약간 긴장한 듯하다가 끼여들며 말했다. "가면 안 돼요. 그들이 무슨 술수(術數)를 부릴지도 모르고, 또 한 그 남궁낭자는 화사형을 몹시 미워하던 사람인데 화사형이 가 버린 다음 누군가를 시켜서 우리를 해치려고 할지도 모르잖아 요." 동방리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 생각은 달라요. 그녀는 당신을 해치려는 것 같지는 않았어 요. 그리고 모처럼 은밀(隱密)하게 당신을 만나려는 것 같으니 우 리는 이 사실을 모두 듣지 않은 것으로 하고, 당신은 어서 그녀 를 만나러 가보는 것이 좋겠군요." 화검상은 미소하며 동방리를 향해 말했다. "아리, 당신은 정말 이해심도 많은 것 같소. 사실 내가 한때 그 녀를 쫓아다니기는 했지만 그녀는 내게 별관심이 없으니 무슨 일 이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오. 그럼 내 잠시 다녀올 테니 그 동안 쉴 곳을 구해 자리를 옮기도록 하시오." 만날 장소가 확실히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화검상의 능력으로 그녀를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주위가 벌써 어둠 속에 잠겨 있어서 이런 시각이라면 은밀히 만나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기도 적당할 것이고, 게다가 남녀간에 비밀스러운 사랑을 속삭이기는 더없이 좋을 것이다. 남궁설완은 작고 평평한 바위 위에 앉아서 몹시 초조한 기색으 로 화검상을 기다리며 두리번거리고 있었는데, 왠지 그녀는 이전 보다 훨씬 더 안색(顔色)이 마르고 핼쑥해져 있는 것 같이 보였 다. 화검상은 즉시 그녀의 앞에 가볍게 내려서서 말했다. "내게 무슨 할말이 있다는 것이오?" 남궁설완은 이내 표정이 싸늘해져서 몸을 일으키더니, 화검상 을 주시하며 약간 주저하는 듯하다가 냉랭(冷冷)한 어조로 말했 다. "당신은 뻔뻔스럽게도, 감히 그 동안 나를 잘도 우롱했었군요? 호호......, 하긴 당신 같은 사람에게 이제 와서 굳이 그런 것을 따 질 필요도 없겠지요. 내가 지금 당신을 보자고 한 것은 한 가지 거래를 하기 위해서예요." 3 당시 화검상이 남궁세가(南宮世家)의 대청에서 그 일을 벌인 이후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천수자(天隨子) 등은 이내 그의 정 체(正體)를 알게 되었을 것이고, 그로부터 다시 한 달 정도의 시 간이 흘렀으니 이제 이 남궁설완도 화검상이 그때의 몽공자(夢公 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을 것 이다. 화검상은 가벼운 고소(苦笑)를 입가에 떠올리며 짐짓 포권한 뒤에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그 일에 대해서는 항상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소. 하지만 내가 당시 고의로 낭자를 해치기 위해 그랬던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아 주었으면 좋겠소. 내가 만일 다른 사정이 있지 않았다면 그렇 게 굳이 변장을 하면서까지 일부러 곤란을 자초하지는 않았을 것 이오. 음......, 한데 나와 거래를, 무슨 거래를 하겠다는 것이오?" 남궁설완은 화검상이 그렇게 사과의 말을 하고 있는 동안에도 마치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듯 멍한 표정이 되어 있다가, 이내 다시 안색을 차갑게 고치며 말했다. "9좋아요, 당신의 무공(武功)이 높아졌으니 이런 일은 쉽게 할 수가 있겠지요. 만일 당신이 이 일만 해준다면 나는 당신이 원하 는 한 가지 부탁을 들어주도록 하겠어요. 그것은......." 남궁설완은 나직한 전음(轉音)으로 말을 이었다. "바로 운소군주(雲少郡主)를 죽여 달라는 거예요." 이어 남궁설완은 그의 대답도 듣지 않고 마치 더 이상 할말이 없다는 듯이 느닷없이 신법(身法)을 펼쳐 곧장 사라져가기 시작 했다. 화검상은 순간 다소 놀라 자신의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 었고 또한 느닷없는 그러한 행동에 어이없기도 하여, 그만 실소 (失笑)하며 그녀가 사라져간 쪽을 향해 잠시 넋 놓은 듯이 바라 보고 말았다. '하하, 그녀는 혹시 내게 농담이라도 하려고 했던 것이 아닐 까......? 하지만 이 농담은 이제까지 내가 들어왔던 것들 중에서 가장 재미없는 것이로군!' 농담이라고 하기에는 그녀의 표정이 너무나도 심각하게 굳어져 있었기에 농담은 결코 아닐 것이므로, 화검상은 마치 무방비 상 태에서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화검상은 이미 강호(江湖)의 정세(情勢)에 대해서 상당한 지식 을 갖게 되었기 때문에 그 운소군주가 바로 다름아닌 성모궁(聲 母宮)의 촉망받는 소군주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운소군주의 이름은 운빙약(雲氷若)이라고 하는데, 세외팔세(世 外八勢)의 하나인 성모궁의 후기지수(後起之秀)답게 무공이 뛰어 날 뿐만 아니라 용모가 가히 세상에서 비교될 사람이 없을 정도 로 아름답다고 했다. 이전에 보기에 남궁설완은 비록 다소 수심에 잠겨 있는 듯하기 는 했어도 그다지 걱정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는데, 뜻밖에도 지 금은 안색이 그렇게 핼쑥해져 있고 난데없이 살인청부(殺人請負) 를, 게다가 그것도 운소군주를 제거해달라고 주문하고 있으니, 실 로 사람이란 겉으로 보기와는 다른 것이어서 그녀도 실은 어떤 남모르는 커다란 고뇌(苦惱)라도 가지고 있는 것이라는 말인가? 그녀가 비록 명문세가(名門世家) 출신의 낭자라고는 하지만 감 히 성모궁의 소군주를 제거해 달라고 청부(請負)를 한다는 것은 실로 그녀 자신의 능력을 벗어나는 엄청난 일이 아닐 수가 없었 다. 과연 그녀는 무엇 때문에 그러한 살인청부를, 게다가 굳이 지 금 화검상에게 의뢰한 것이며, 또한 대체 거기에는 어떤 보이지 않는 심리(心理)와 의도가 깔려 있는 것일까? 그녀에게 화검상을 향한 감정(感情)이 다소나마 남아 있어서 그런 것은 결코 아닐 것이고, 다만 그녀는 궁리 끝에 화검상이야 말로 가장 다루기 쉽고 적당한 능력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여차하면 모른 척 시치미를 뗄 수 있는 상대라고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그것에 관해 조사를 해보기 전에는 그녀 가 대체 무슨 목적으로 그런 살인청부를 할 것인지에 대해서 쉽 게 안다는 것은 어려울 것이고, 단지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반면 에 다소나마 의미심장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러한 것들 이외에도 그녀가 조금 전에 말한 그 대가로 한 가지 부탁을 들어주겠다는, 그 조건의 말이 어떤 실마리를 풀어나가는 계기(契機)가 되지 않 을까 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 조건에 대해서는 그녀가 반대로 화검상을 노리고 있는 지도 알 수가 없는 일이므로, 화검상이 만일 실로 그 운소군주라 는 여자를 해치우고 나서 그녀에게 가서 그 대가를 요구한다고 해도 그녀가 정말로 자신이 말한 그대로 그의 요구에 순순히 따 라줄 것이라고 기대한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지나치게 순진한 생 각일지도 모르고, 게다가 그녀가 그 부탁의 범위를 어느 정도까 지 생각하고 있는지도 아직은 알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실 지금의 상황은 누가 생각해 본다고 해도 그에게 불리한 점이 많으며, 비록 아무리 가치없어 보이는 이들이나 정 보(情報)들일지라도 혹시 그로 인해 좋은 기회를 잡게 되어 국면 에 커다란 변화를 일으키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르므로, 화검상은 자연 모든 부분에 대해서 세심히 검토해보지 않을 수가 없는 입 장이었다. 지나치게 확대해서 생각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이것은 그를 향 해 밀려들고 있는 파국(破局)의 전조일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반 대로 혹시 그를 향해 미소를 짓는 행운(幸運)의 한 기회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기실 화검상이 단순히 천수자(天隨子) 등 세외팔세의 주인(主 人)들만을 제거해 버리면 되는 문제라면 이 상황은 오히려 간단 하다고도 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화검상은 그들 뒤에는 팔선(八仙)이 연결되어 있 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들은 비록 지금은 무슨 그 용화노인(龍 華老人)이니 하는 사람을 의식하여 나서지 않고 있다지만 벌써 간접적으로 활동을 하고 있는 상황이니, 따라서 얼마 지나지 않 아서는 정말로 그들이 강호에 직접 나서게 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드 무림야그 출력일 :: 98/11/20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3 권 제 64 장 - 2 그 팔선의 능력은 하나같이 모두 상상을 초월(超越)하는 것들 이어서 비단 지금의 화검상뿐만 아니라 천하(天下)의 그 누구도 그들을 상대할 수가 없을 것이고, 또한 그 용화노인이라는 수수 께끼의 사람은 이미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렇게 어려운 상황을 대체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에 대해서는 누구라도 절로 막막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고, 화검 상으로서는 그저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듯한 심정 으로, 상황을 조금이라도 호전(好轉)시킬 수만 있다면 어떤 작은 기회라도 간과해 버릴 수가 없는 처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세상의 일은 그저 무공으로만 승부가 나는 것은 아니기에 화검상은 감히 이미 이곳까지 찾아온 것이며, 또한 그 래서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사태에 대처해 나가는 것 이라고 할 수도 있다. '어쨌든......, 이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겠지. 어떤 것이든 인연(因 緣)이 있고 보면 그 상황도 점차로 변해가게 되는 것이 아니겠는 가.......' 화검상은 이윽고 대강의 생각을 정리한 후에, 담담한 표정으로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되돌아 신형을 날리기 시작했다. 그날은 이미 한바탕의 험한 상황을 겪은 데다가 날도 많이 어 두워졌기 때문에 바로 정무맹(正武盟)의 총단(總壇)으로 가는 것 이 더욱 무리였으므로, 일행은 그 노산루 부근의 한 가옥을 빌려 서 하룻밤을 묵은 다음에 다음날 아침 다시 길을 떠나게 되었다. 다행히 그 노산루에서의 사건 이후 그날 밤은 다시 그런 험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으며, 역시 다행스러운 일인지는 모르지만 다음날 정무맹의 총단으로 가는 도중에도 그들을 노리는 적(敵) 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비록 적들이 겉으로는 나타나지 않고 있었지만 일행을 삼엄하 게 주시하고 있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일이고, 일행은 이 미 긴장했던 데다가 어제 저녁에 그 일을 겪었기 때문에 오늘 길 을 가는 동안에는 서로가 별로 말이 없었다. 정무맹의 총단은 노산현성에서 백여 리의 지점에 위치하고 있 기 대문에 일행은 그다지 빨리 마차를 몰지 않아도 금세 그 목적 지에 가까워지게 되었고, 이윽고 정오(正午) 무렵에는 정무맹의 총단에 별다른 제지도 받지 않고 들어서게 되었다. 폭풍전야라는 말이 있듯이, 정작 위기의식을 느끼는 것은 폭풍 전의 그 고요한 정적(靜寂)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 비록 생각보다 훨씬 쉽게 목적지에 도달했다고는 해도 그 위기감 때문에 지나치 게 긴장한 탓인지 동방리는 약간 피로한 기색까지 보였다. 정무맹의 총단의 모습은 과거와 그리 달라져 보이지는 않았고, 다만 오랜 정사대전(正邪大戰) 속에서 모두다 지쳤는지 분위기가 조금 더 무거워져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생각 같아서는 이곳으로 오는 동안의 여독이라도 풀어버릴 겸 우선 주루에라도 들러 한잔하고 싶다고 했지만,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여유부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되어 일행은 즉시 화산파의 사람들이 있는 곳을 향해 나아갔다. 믿을 수 없는 일이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이곳 사람들은 마치 화검상의 재등장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거나 잘 알지도 못하는 듯이 행동거지가 이전과 다름이 없었고, 또한 유난히 일행을 주 시하는 사람들도 없어 보였다. 이전에도 그러했듯이 화산파의 사람들은 이제 마악 점심 때가 되어 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고, 저마다 자신의 일에 몰두할 뿐 일행을 유난히 경계하거나 혹은 놀라지도 않았다. 일행이 연무장(練武場)으로 들어서자 그 부근에 있던 화산제자 하나가 얼른 안으로 들어갔고, 이내 대청(大廳)에서 한 사람이 나 와 일행을 맞았는데 그 사람은 바로 대사형(大師兄)이었던 윤검 진(尹劍塵)이었다. 윤검진은 다소 어색한 듯도 하지만 억지로 반가운 표정을 드러 내어 웃으며 말했다. "아, 자네로군? 자네가 온다는 얘기를 듣기는 했네만, 그래도 내일쯤 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벌써 왔군그래. 어서 안 으로 들어가보게. 윗분들이 기다리고 계시네." 지금의 상황으로 볼때 어쨌거나 화검상은 천수자(天隨子) 등과 상대를 하고 있는 만큼 일 파(一派)의 주인이나 다름이 없는 신 분이고, 또한 이제는 과거와는 달리 이 화산파와도 거의 결별된 상태라고 할 수 있는데, 고작 이런 이대제자(二代弟子)에게 그를 맞이하라고 내보낸 것은 우선 다분히 화검상의 격을 깎아내리고 자 하는 의도가 들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화검상은 이상하게도 이번에는 과거와는 달리 마음이 혼란스럽거나 격앙되지 않고 오히려 담담하게 가라앉고 있었는 데, 그것은 그 동안 그의 수양(修養)이 깊어졌기 때문일까, 아니 면 그 이외에 또 다른 이유가 있기라도 한 것일까? 화검상은 담담한 표정으로 윤검진을 바라보고 있다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다. "고맙소. 내가 생각보다 명이 길어서 이렇게 또 보게 되었으니 나중에 다시 만나 이야기할 기회도 있을 것이오." 윤검진은 다시 어색한 표정으로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아, 나야 뭐 무슨 할말이 있겠다? 지금 자네와 얘기를 나눌 사람들은 따로 있을 것이니 어서 안으로 들어가 보게." 화검상은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동방리 등을 이끌고 대청의 안으로 문을 열고 들어섰다. 밖의 상황이나 분위기 등을 볼 때 혹시 이 대청의 안에도 별로 대단치 않은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지만, 그 러나 막상 안으로 들어와 보니 그렇지 않았다. 대청의 내부는 지나칠 정도로 조용했지만, 그러나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가득 채운 상태에서 앉아 있었다. 두 명의 원로(元老)들과 장로(長老)들, 그리고 일대제자(一代弟 子)들까지 합해서 무려 수십 명은 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뜻밖에도 장문인인 풍천비(馮天飛)는 보이지 않았는데, 아마도 그는 잠시 후에나 모습을 드러내려고 하는 것 같았다. 이렇게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대청을 가득 채운 상태에서 지 나칠 정도로 조용하게 한결같이 일행을 주시하고 있는 광경은 일 면 공포심(恐怖心)마저 느끼게 하여, 악검림은 안색마저 창백하게 변하는 것 같았다. 하검상은 여전히 크게 달라지지 않은 표정으로 그들을 한차례 둘러보다가 이윽고 정중히 포권하며 입을 열어 말했다. "제가 잠시 오해를 할 뻔했습니다만, 이렇게 여러분들께서 몸 소 정식으로 소생을 맞이하여 주시니 뭐라고 감사의 말씀을 드려 야 할지 모르겠군요." 이대원로(二代元老)의 하나인 곡몽현(谷夢玄)이 음산하게 눈빛 을 빛내며 차가운 어조로 입을 열어 말했다. "네가 지금 제자로서의 예를 갖추지 않는 것을 보니, 이제 네 가 본파(本派)의 제자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한다는 말이냐?" 화검상은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그 말을 받았다. "너는 지금 화해를 하러 온 것이 아니라 복수(復讐)를 하러 온 것인 모양이로구나?" 화검상은 담담히 웃으며 말했다. "그럼 좀더 솔직히 말하도록 하겠소. 지금 여기에 제법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 같소만, 여러분 모두는 사실 나의 일초 (一招)의 상대도 되지 않소. 비단 내가 단숨에 여러분을 저승으로 보내드릴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평생을 그야말로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고통 속에서 보내게 할 수도 있는 일이오. 하지만 나는 지금 화해(和解)를 하기 위해 온 것이오. 그렇지 않다면 이 렇게 많은 말을 하지도 않을 것이오." 왕파파(王婆婆) 왕천파(王天波)가 몸을 벌떡 일으키며 흉악(凶 惡)해진 표정으로 소리쳐 말했다. "네놈이 감히 사문(師門)의 존장도 몰라보고 그따위로 막말을 해대다니 그야말로 근본도 모르는 후레자식이 분명하구나! 그렇 다면 어디 그 잘난 무공으로 나에게 덤벼보아라! 네놈의 그 미쳐 죽은 아비보다 얼마나 더 대단한지 한번 보겠다!" 말이 끝나자 왕천파는 즉시 신형을 날려 화검상을 향해 덮쳐들 려고 했다. 하지만 그 순간에 화검상의 우수(右手)가 가볍게 한번 움직였 고, 이내 그녀가 미처 신형을 날리기도 전에 쿵, 하는 소리가 들 리면서 동시에 그녀의 신형이 의자와 함께 뒤로 벌렁 나동그라져 입에서 거품을 물며 미친 듯이 뒹굴기 시작했다. 이 많은 제자들이 있는 가운데에서 전혀 아무런 비명 소리도 내지 못하는 가운데 저렇게 미친 듯이 뒹굴고 있다는 것은 그 고 통(苦痛)이 얼마나 대단한가 하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이 라고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이미 여기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화검상의 점혈수 법(點穴手法)은 일단 그에게 제압당했으면 그가 아니면 도저히 풀 수 없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화검상은 약간 우울해진 듯한 표정으로 좌중을 한차례 둘러보 며 다시 말했다. "여러분과 한솥밥을 먹었다고는 하지만 여러분을 그 동안 내게 별로 잘 대해준 것이 없소. 오히려 나를 조금이라도 더 음해하려 고 했고 조금이라도 더 고통을 주어 스스로 내 선친(先親)과 같 은 길을 가도록 만들려고 했을 뿐이오. 나는 오늘 사실 기분이 별로 좋지 않으니 여러분은 굳이 나를 건드리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오. 자, 나도 이쯤에서 여러분께 정식으로 묻겠소이다. 여러 분을 나와 화해를 하는 것을 원하시오. 아니면 좀더 다른 흥미있 는 결말이 나는 것을 원하시오?" 목몽양(穆夢陽)이 은근히 나뒹굴고 있는 왕천파의 몰골을 바라 보다가 음침하게 말했다. "우리가 다른 결말을 원한다면 너는 어떻게 하겠다는 말이냐?" 화검상은 가볍게 한숨을 내쉰 뒤에 표정을 다시 담담하게 고치 며 대답했다. "나는 이미 여러분도 알겠지만 강호에서의 평판도 좋지 않고 그야말로 더 이상 나빠질 수 없는 상황이외다. 게다가 나는 이미 여러분을 모두 제거할 수 있는 명분(名分)을 가지고 있는 상태이 고, 그러한 능력도 있으며 또한 여러분을 결코 나를 조금도 어찌 해 볼 수가 없을 것이오. 여러분을 이제까지 쌓아 왔던 이익과 명성(名聲)을 모두 잃은 채 그야말로 미친 듯이 살아가게 될 것 이며, 나는 그저 여기에서 가문(家門)의 원한(怨恨)을 모두 해결 한 뒤에 조용히 한적한 곳에 은거를 하게 될 것이오. 이 두 가지 중에서 어느쪽이 여러분에게 유리한 것인지는 여러분 스스로가 생각해서 판단을 내려야 할 것이오." 문득 좌중에서 일대제자 하나가 몸을 벌떡 일으키더니 곡몽현 쪽을 바라보며 약간 더듬거리며 말했다. "우리가, 미친 듯이......, 미친 듯이 살아가게 된다는 것은, 이건 아무래도 안 되겠소. 그는 그래도 제법 시원하게 재미를 볼 것인 데 우리가 그렇게 된다는 것은 아무래도......, 아무래도 불공평하 오. 사백조께서 제발 말씀을 잘해 주십시오. 우리는 일단 화해를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곡몽현은 안면을 심하게 일그러뜨리고는 손을 내저으며 소리쳤 다. "무슨 짓이냐? 어서 저 녀석을 끌어내라! 여기가 어떤 자리인 데 감히 나서서 그런 쓸데없는 소리를 해대느냐? 결정은 우리가 내릴 테니 너희들은 그저 잠자코 듣고 있다가 그대로 따르기만 하면 된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무림야그 출력일 :: 98/11/20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3 권 제 65 장 늙은 농부와 늙은 무사 제 65 장 늙은 농부와 늙은 무사 목몽양이 화검상을 향해 말했다. "우리는 일단 너와 화해를 하는 쪽으로 생각해보도록 하겠다. 하지만 너는 그 전에 우선 너의 모든 무공(武功)을 폐지하고 순 순히 우리들의 말에 따라야 할 것이다." 느닷없이 일어나서 말한 일대제자는 갑자기 멍청한 표정이 되 더니 다른 사림의 손에 이끌려 순순히 밖으로 걸어나갔다. 하지만 그가 밖으로 사라진 이후에도 다른 사람들의 표정은 갑 자기 이상하게 변해 있었고, 또한 좌중의 분위기도 아주 괴이(怪 異)쩍고 음산하게 변해버린 것 같았다. 악검림은 처음에는 두려운 마음이 들어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 었으나, 이제는 그것을 보자 약간 의아한 생각이 들어 표정이 어 리둥절해지고 있었다. 화검상은 담담한 표정으로 좌중울 둘러보다가 다시 말했다. "여러분은 아무래도 아직 상황판단을 잘못하고 있는 것 같소. 나는 지금 화해를 하자고 하는 것이지 여러분에게 굴복을 하겠다 고 말하는 것이 아니오. 여러분이 만일 굴복을 바란다면 그것은 차라리 나와 극단적인 결말을 내자고 하는 말과도 같으니, 여러 분은 지금부터 자신들의 앞날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것이 좋을 것 이오." 성천익(成天翼) 이 고개를 돌려 곡몽현을 바라보며 말해했다. "하긴 이 문제는 우리가 좀더 신중하게 생각해봐야 할 문제인 것 같습니다. 저 녀석이 나오는 태도를 지켜보도록 하지요. 저 녀 석이 그래도 제 분수를 모른다면 그때 가서 우리가 저 녀석을 매 장시켜 버려도 늦지는 않을 것입니다." 곡몽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다가 화검상을 향해 말했다. "좋다. 우리는 일단 네놈의 의견대로 서로간의 화해 점을 찾아 보도록 하지. 네놈은 그래 우리와 어떻게 화해를 하겠다는 말이 냐?" 화검상은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좋다. 우리는 일단 네놈의 의견대로 서로간의 화해 점을 찾아 보도록 하지. 네놈은 그래 우리와 어떻게 화해를 하겠다는 말이 냐?" 화검상은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우리는 일단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해치지 않는 것이오. 그리고 서로간에 마찰이 생기는 부분들에 대해서는 점차로 대화 와 타협을 통해서 해결해나가는 것이오." 목몽양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네놈의 밀은 그러니까 본파의 내부에 두 개의 파벌을 만들자 는 말이냐?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본파가 그렇게 둘로 갈라 지게 된다면 우리가 네놈에게 굴복하는 것이나 뭐가 다르겠느냐? 흐흐, 네놈은 감히 화해라는 말을 내세워서 네놈의 욕심대로 해 보겠다는 수작이로구나." 화검상은 가볍게 고소(苦笑)하며 담담하게 대꾸했다. "화산파가 나의 고향과 다름없고 또한 애착이 가기는 하지만 나는 굳이 화산파에 남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소. 다만 나는 나 의 조부나 선친의 이름이 심하게 더렵혀진 데 대해서 그것을 바 로잡고자 하는 것인데, 여러분의 그저 어떠한 방법으로라도 그분 들의 명성(名聲)을 회복시켜준 다음에는 좀더 쉽게 다른 문제들 에 대해서 나와 대화할 수 있게 될 것이고, 또한 좀더 안전하게 될 것이오." 성천익이 안면을 흉악(凶惡)하게 변모시키며 살기(殺氣) 띤 어 조로 소리쳤다. "네놈의 그 죽은 애비는 미친 주정뱅이였고, 죽은 할애비는 인 면수심(人面獸心)의 대악적(大惡敵)이었는데 거기서 뭘 더 명성 (名聲)을 회복시켜달라는 말이냐?" 목몽양이 송천익을 가법게 제지하며 말했다. "지금 굳이 그런 문제를 서둘러서 생각할 필요는 없다. 저 녀 석이 일단 그렇게 말한 이상 반드시 거기에 맞는 근거도 있을 테 니 그런 문제는 좀 더 시간을 두고 생각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 을 것이다." 곡몽현이 음침한 기색으로 웃으며 화검상을 향해 말했다. "좋다. 네놈이 정말로 어떤 근거에 의해서 그런 말을 한 것이 고, 게다가 정말로 우리와 화해를 할 의향이 있는 것이라면 우리 도 일단은 천천히 검토해볼 수도 있는 일이겠지. 네놈은 앞으로 어디에서 기거할 작정이냐? 화검상은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우리가 앞으로 지내는 곳은 객점이라도 좋고 이곳이라도 좋을 것이니 그런 문제는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닐 것이오. 다만 일단 우리가 서로 화해를 할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이라면 두선 서로 에 대한 말투부터 점잖게 바꿔야 하지 않겠소?" 말과 함께 화검상은 가볍게 손짓을 하여 뒹굴고 있던 왕천파의 혈도(穴道)를 풀어주었는데, 그녀는 그 즉시 몸이 자유로워지고 고통이 사라져서 몸을 일으키기는 했지만 아직 정신이 혼란스러 워서 어떻게 해볼 수가 없는지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원로들과 장로들은 잠시 그들끼리 나직하게 전음(傳音)으로 뭔 가 말을 주고받는 듯하더니, 이윽고 곡몽현이 대표 자격으로 다 시 입을 열어 화검상에게 말했다. "좋다, 일단 얘기가 그렇게 되었으니 우리는 서로 화해를 하기 로 한 것으로 하고, 그 세부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만나서 얘기를 해보도록 하자. 오늘 너는 이곳으로 오느라 피곤 했을 테니 그만 가서 쉬도록 해라. 무슨 다른 할말이라도 있느 냐?" 화검상은 잠시 좌중의 사람들을 둘러보다가 문득 가벼운 소고 를 지으며 말했다. "오늘 나는 문득 여러분이 이토록 현명(賢明)해졌다는 사실에 대해서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소. 그래도 나는 아무래도 몇 가 지 좋지 않은 결과가 생길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었는데, 그야말 로 여러분의 그 상황에 따른 빠른 태도의 변화는 나로 하여금 알 면 당황하게까지 만들고 있는 것 같소. 하지만, 나는 오늘 여러분 과 유익한 시간을 보내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직 한 사람을 보지 못한 것 같은데 거기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지 않겠소?" 목몽양이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더니 음흉(陰凶)하게 웃으며 대 꾸했다. "그 한 사람이란 누구를 말하는 것이냐? 혹시 너는 네 모친(母 親)에게서 젖이라도 더 먹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냐? 그렇다면 잠 시만 기다려라. 곧 그녀가 너를 찾아올 것이다. 그리고 만약 그게 아니라 장문인(掌門人)을 만날 생각이라면, 흐흐, 그건 네가 직접 찾아가보면 될 일이 아니냐?" 마치 목몽양의 그러한 행동이 신호가 되기라도 하듯이 그의 그 러한 말이 끝나자 좌중의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걸어나가기 시작했는데, 그 가운데 신법(身法)이 은연중 운용(運用)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 모두는 잠깐 사이에 사라져 버리고 이 대청의 내부는 이내 아주 조용해지고 텅 비어버린 것 과 같이 되고 말았다. 동방리가 뒤에서 이제까지 묵묵히 있다가 이윽고 입을 열어 화 검상을 향해 말했다.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당신은 그들이 정말로 당신과 화 해를 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화검상은 벌써 무형지기(無形之氣)로 음파를 차단하여 외부로 음성이 흘러나가지 않게 해놓았기 때문에 마음놓고 입을 열어 미 소며 대답했다. "그들은 오늘 그저 나를 형식적으로 맞이한 것일 뿐 결코 화해 를 하려는 것은 아닐 것이오." 악검림은 긴장했던 탓인지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는 데, 눈빛을 반짝이며 입을 열어 말했다. "그럼 그들은 무엇 때문에 사형(師兄)과 화해를 하겠다고 말을 한 것이죠?" 화검상은 담담한 표정으로 미소를 짓다가 대답했다. "아마도 그들은 뭔가 다른 의도가 있기 때문에 그와 같이 나를 대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우선 그들이 과연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있는가에 대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겠지." 동방량은 화검상의 제자가 된 이후에 눈에 띄게 말수가 줄어들 었지만 이번에는 그만 참지 못하고 끼여들어 말을 꺼냈다. "저는 그들의 의도라는 것이 그야말로 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 다. 그들은 결국에는 사부님을 해치려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그 방법에 있어서는 좀더 교활(狡猾)하고 악랄하게 나오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화검상은 미소하며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네가 생각한 그대로이다. 그들은 아마 이번에는 전혀 상 상못할 방법으로 우리를 대접할 것 같구나. 그런 면에서 본다면 우리는 더욱 경각심을 가져야 할 것 같다." 악검림이 잠시 뭔가를 깊이 생각해 보는 듯하다가 고개를 가로 저으며 말했다. "하지만 뭔가 이상해요. 사형도 그런 기분을 느껴보지 못했나 요? 이전에는 그렇지 안았는데 오늘 보니 그들은 모두 어딘가 다 른 사람들인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화검상은 웃으며 말했다. "사매, 너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들과 함께 지냈던 사 람인데 그들이 정말 진짜인지 가짜인지도 분간을 못한단 말이냐? 그야말로 내가 더 이상해 보이는구나." 동방리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원하 무림야그 출력일 :: 98/11/20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3 권 제 65 장 - 1 "그런 느낌은 저도 들었어요. 그들이 설마하니 가짜일 리는 없 는 일이고, 아무래도 그들은 모두 이상해져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지나칠 정도로 그들은 신경이 예민해져 있고, 조금 전에 는 또 마치 도망치듯이 한꺼번에 신법을 펼쳐 사라져 버리고 말 았지요. 화산파에 무슨 일이 있다고 하던데......, 그건 혹시 이런 일을 두고 했던 말이 아닐까요?" 그때 문득 문이 열리더니 풍귀엽(馮龜曄)이 안으로 들어와 화 검상을 향해 다가왔다. 조금 이상한 일이기는 했지만 풍귀엽은 조금 전의 그 사람들 속에 끼여 있지 않았었다. "그 동안 많이 컸구나. 후후, 장문인을 만나고 싶으냐? 그럼 내 가 안내해줄 테니 따라와라." 풍귀엽의 외모는 이전과 그리 달라진 것이 없어 보였지만 그러 나 안색을 다소 어두워져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이 사람은 바로 화검상의 외삼촌이 되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비단 가문의 철천지 원수들 중의 하나일 뿐만 아 니라, 현실적으로도 화검상에게 가장 악랄하게 대해 왔던 적(敵) 들 중의 하나였기 때문에 화검상은 그를 외삼촌이라고 생각할 수 가 없었다. "그럼 부탁드리겠소." 화검상은 간단히 대꾸한 다음에 일행과 함께 그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사실상 화검상은 생각이 그리 무딘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기 실은 이미 이곳에 도달하기 전에도 화산파(華山派)의 사태에 대 한 그 여러 가지의 얘기들을 종합해 보고 가장 일어날 가능성이 많은 한두 가지의 상황에 대해서 짐작해두고 있었다. 그리고 사실 조금 전에는 그렇게 짐작했던 바에 대해서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었는데, 정말 믿을 수 없게도 그의 그러한 짐작은 과연 사실이 되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이것은 그야말로 예측하지 못했던 일일 뿐만 아니라 중대한 변 수(變數)이며 장차 그에게 있어 대단히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사태이기도 하지만 과연 이러한 것을 보고 그저 좋다고만 말할 수가 있을까? 비록 겉으로는 태연한 듯이 담담하게 웃고 있는 그였지만 내심 의 그 씁쓸한 심정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것이다. 다만 그가 지금 차마 그것에 대해 말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이 일이 너무나도 어이가 없어서 도저히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아무래도 좀더 신중을 가하기 위해 한 사람을 더 만나봐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만나봐야 할 그 사람이란 다름아닌 장문인 풍천비(馮天 飛)이다. 대청의 안쪽 문을 열고 나가 좀더 걷다보면 하나의 건물이 나 오는데, 그곳은 바로 과거 화검상과도 인연(因緣)이 깊었던 장문 인의 처소이다. 그 장문인의 처소 안으로 들어서자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약간 어질러진 듯한 실내의 텅빈 분위기였고, 뒤를 이어 느껴지 는 것은 몹시 괴이쩍으면서도 금방이라도 등뒤를 후려칠 듯한 날 카로운 살기(殺氣)였다. 화검상은 이미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비교적 태연히 그 상황에 대처할 수 있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 중에서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사람은 역시 풍귀엽이었다. 풍귀엽은 즉시 신형을 날려 옆으로 훌쩍 물러나며 무겁고 어두 워 보이는 음성으로 소리쳐 말했다. "아버님, 제발 이제는 그만두십시오?" 풍귀엽의 그러한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가 바라보는 방향 에서 느닷없이 흡사 번갯불과도 같은 검강(劍 )이 화검상을 향 해 우박처럼 쏟아져내려 왔으므로, 악검림 등의 일행은 일제히 경악성을 발했다. 대체 풍천비가 어디고 갔는가 했는데 알고 보니 풍천비는 이곳 에 없었던 것이 아니라, 뜻밖에도 천장의 한구석에 흡사 거미처 럼 달라붙어 있었고, 화검상을 노려보다가 일순간 음험(陰險)한 암습(暗襲)을 가해왔던 것이다. 풍천비가 전개한 그 검법은 이상하게도 화산파의 일반적인 검 법과는 달리 몹시 악랄하고 위력적이면서도 무질서하게 변화하여 환각(幻覺)을 동반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일견하기로도 피하거나 막아내기가 어려워 보였다. 하지만 기이(奇異)하게도 그러한 가공(可恐)스러운 검강들은 이 내 화검상의 몸 주위에 이르자 마치 눈녹듯이 사라져버렸고, 그 것을 본 풍천비는 갑자기 그 자리에서 사라져서 마치 한 덩어리 의 안개가 되어버린 것처럼 흔들리며 눈에 보이지도 않을 속도로 빠르게 실내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특이한 것은 풍천비는 햇빛을 싫어하거나 혹은 마치 누구에게 심하게 쫓기는 사람처럼 으슥하고 잘 보이지 않는 곳을 골라서 옮겨 다니고 있다는 것이었는데, 이윽고 어느 한 순간 윽! 하는 소리와 함께 풍귀엽이 피를 뿌리며 뒤로 황급히 물러나고 풍천비 는 그 부근에 내려와서 약간 웅크린 자세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음, 이상한 일이군. 한데 아까는 왜 잘 안됐던 것일까.......?" 풍귀엽은 그다지 심한 중상을 입은 것처럼 보이진 않았으나 어 깨 쪽을 관통당하여 피를 흘리며 보기보다 더 고통(苦痛)스러운 지 눈살을 심하게 찌푸리며 소리쳐 말했다. "아버님, 제발 그만두시라니까요. 왜 이런 일로 계속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려고 하십니까?" 풍천비는 고개를 돌려 힐끗 화검상을 주시한 뒤에 다시 풍귀엽 을 바라보며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뭐라구? 내가 왜 이 일을 그만둬야 한다는 말이냐? 흐흐, 내 가 이제 곧 천하제일(天下第一)의 개세고수(蓋世高手)가 되어 무 림을 지배하게 된다면 너도 다시는 그런 소리를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무릇 세상의 일이라는 것은 좋은 의도로 시작한 일이라고 해도 오히려 그것이 나쁘게 작용(作用)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 모양이 다. 애초에 화검상이 화산파에 비급을 만들어주었을 때에는 어쨌든 그저 순순한 의도로 자신의 고향과도 같은 화산파에 약간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그렇게 했던 것이고, 또한 혹시 라도 무슨 일이 생길까 해서 그렇게 했던 것이고, 또한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길까 우려하여 앞부분에 주의사항을 제법 그럴듯하 게 적어놓기도 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눈앞의 이 풍천비가 벌이고 있는 모습은 무학(武 學)의 길에 잘못 들어 심마(心魔)에 빠져버린 광경이고, 아마도 그 원인은 화검상이 만들어준 비급을 잘못 해독(解讀)하여 제멋 대로 깊은 곳으로 나아가 버렸기 때문일 거이다. 본래 화검상이 만들어 준 그 비급은 앞부분의 주의사항을 보지 않은 사람이라도 그 안의 내용에 따라 충실하게 연마(練磨)하기 만 한다면 별로 무리가 없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 풍천비 등은 그 비급의 내용마저 불신(不信)하여 스 스로 자신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어딘가 흥미있는 부분이 발견되 면 무리하게 그 부분만을 파고들어 자신의무학과 연관시키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모든 학문에는 기초가 있는 것처럼 심오(深奧)한 무공에도 그 기본이 있어서 뒷받침을 해주게 되어 있는 것인데, 만일 풍천비 등이 그렇게 했다면 그것은 마치 기본도 없는 어린아이가 위험하 고 날카로운 병기(兵器)를 가지고 장난을 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 게 되는 것이니 어찌 무사할 수가 있겠는가? 그러나 화검상으로서 아직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지 금 이 풍천비뿐만 아니라 화산파의 다른 사람들 거의 대부분이 비록 아직 증상이 심하지는 않지만 비슷한 상황에 빠져 있다고 하는 점이었다. 그가 당시 만들어주었던 비급은 악검림의 것을 제외하면 한 권 이나 다름이 없는데, 그것이 어떻게 해서 그 많은 제자들에게 퍼 지게 되었고 지금의 사태를 만들게 되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 었다. 하긴, 심마에 빠진 사람은 간혹 정신이 혼란해질 수가 있으므 로 그사이에 비급의 사본이 하나 만들어질 수가 있고, 또한 그 사본은 다른 사본들을 낳아 순식간에 번질 수가 있으며, 화검상 의 무공(武功)이 대단하다는 소문이 퍼지자 누구나 그것을 보려 고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악검림의 비급을 그녀의 부모가 빼앗아 버렸다고 하는 데서도 충분히 그 가능성(可能性)을 엿볼 수 있는 일이다. 화검상의 무공은 곡선적(曲線的)인 것이고 마음의 수련에 따라 점차적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인데, 그것을 그저 직선적(直線的)인 관점에서 제멋대로 해석하고 심오(深奧)한 부분까지 외곬으로 빠 져들게 되었다면 이러 한 일이 생기는 것은 실로 당연하지 않겠 는가? 만일 그러한 것이 모두 사실이라면, 화검상이 아무리 그들을 본래대로 돌려놓으려 한다고 해도 그들의 그에 대한 불신감(不信 感)이 남아 있는 이상은 계속 자신의 잘못된 길을 고집할 것인 데, 실로 이것은 난감함 문제가 아닐 수가 없었다. 풍귀엽은 잠시 다소 막막한 표정으로 풍천비를 바라보는 화검 상을 향해 전음(傳音)으로 말했다. "이 일은 본래 네녀석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냐? 그러니 네게 조금이라도 양심이 있다면 그 처방도 만들어줘야 할 것이다." 지금에 이르러 화검상은 이 화산파의 사람들이 아까 자신에게 제법 유연한 태도를 보였던 여러 가지 이유들 중의 하나를 분명 히 알게 되었다. 그들은 아마도 현재의 자신들의 상황에 대해서 대단히 공포심 을 느끼게 되었을 것이고, 따라서 일단은 그가 그들 곁에 머물면 서 해결책이라도 찾아주었으면 하고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던 것 이다. 물론 그것이 잘되든 않든 간에 나중에는 발톱을 드러내어 그를 제거하려 할 것이고, 그 흉악(凶惡)한 성품을 드러내게 될 것이 다. 화검상은 내심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전음으로 풍귀엽에게 대 꾸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쩜 무림야그 출력일 :: 98/11/20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3 권 제 65 장 - 2 "일단은 내게 사실대로 말해줘야 할 것이오. 장문인이 이렇게 된 것은 내 비급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다른 많은 사람들 이 그렇게 된 것은 대체 또 어떤 연유이오? 혹시 그들도 역시 내 비급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는 말이오?" 풍귀엽은 흉악(凶惡)한 표정이 되어 화검상을 향해 전음으로 다시 소리쳤다. "그럼 어디 다른 이유라도 있단 말이냐? 네놈이 그 비급을 만 들어 놓은 이후 그 비급은 열 개, 스무 개로 늘어나게 되었다. 이 것은 모두 네놈이 노리던 바가 아니냐? 흐흐......, 네놈의 그 사악 (邪惡)한 비급 때문에 모두들 이렇게 되었는데, 네놈은 이제 와서 전혀 모른다고 잡아뗄 작정은 아니겠지?" 화검상은 씁쓸한 고소를 지으며 전음으로 말했다. "당신들이 만일 그 비급의 내용 그대로만 연마(練磨)를 했더라 면 이와 같은 일은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오. 지금 이 장문인과 같은 경우는 그 증세가 대단히 심하기 때문에 아마도 최선의 방 법이라면 무공을 모두 폐지하고 마음의 수양(修養)을 쌓게 해야 할 것이고, 증세가 그다지 심하지 않는 사람들의 경우는 이제까 지의 잘못된 생각을 버리고 처음부터 그 비급의 내용을 다시 수 련하게 하는 것이 좋을 것이오." 풍귀엽은 잠시 내심 생각을 굴려보는 듯하더니 이내 다시 안면 을 악독하게 변모시키며 전음으로 말했다. "흐흐, 뭐라고? 네놈은 지금 제정신으로 하는 소리냐? 나의 아 버님이 무공이 폐지된 상태에서 더 살아갈 의미가 있을 것 같으 냐? 흐흐! 네놈은 지금 고의로 그와 같은 말을 하면서 은근히 복 수를 하고자 하는 것이겠지?" 화검상은 담담히 웃으며 이번에는 육성으로 말했다. "내가 무슨 특별한 처방을 내려주거나 혹은 직접 치료해 주기 를 바라는 모양인데, 당신들에게는 그 비급 이외의 다른 특별한 처방이 필요가 없을 것이고, 치료를 하는 것은 비록 가능한 일이 기는 하지만 근본적인 것이 될 수는 없기 때문에 장차 커다란 도 움이 되지는 못할 것이오." 풍천비(馮天飛)가 화검상을 향해 일그러진 얼굴로 괴이쩍게 웃 으며 말했다. "흐흐, 너를 다시 보게 되다니 참으로 뜻밖의 일이로구나. 너는 실로 목숨이 질기기도 한 모양이다. 그간 네녀석의 무공이 또 늘 어난 것 같은데, 흐흐......, 그러나 아직은 방심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반드시 얼마 지나지 않아 절세무공(絶世武功)을 터득하여 네놈을 눌러버리고 세상을 지배하게 될 테니까." 악검림은 아까는 비록 이상해 보였어도 지금 풍천비가 말하는 것을 보니 그 어조가 제법 차분해 보였기 때문에, 속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했다. '장문인은 그 동안 무공이 달라진 것 같기는 하지만 그러나 다 른 것들은 그다지 달라진 것 같지는 않구나.' 화검상은 담담한 어조로 풍천비를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은 아무래도 좀더 자중하고 그 무공을 연마(練磨)하는 것 을 그만두는 것이 좋을 것이오. 만일 당신 스스로가 마음을 바로 잡아서 무공을 근본부터 다시 배워나간다면 그 심마(心魔)에서 벗어나게 될지도 모르오." 풍천비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괴이한 표정을 짓더니 험악한 표 정으로 대꾸했다. "뭐라구, 나더러 감히 당신이라고 말하다니......, 네녀석은 이 외 할아버지를 인정하지......, 인정하지......." 갑자기 풍천비는 그렇게 말을 하는 도중 두어 번 더듬다가 느 닷없이 입에서 거품을 물며 뒤로 벌렁 나가떨어졌다. 악검림은 처음에는 화검상이 손을 쓴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 으나 이내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는 속으로 놀라서 중얼거렸 다. '장문인은 정말 이상해졌구나. 과거에는 무척이나 강한 사람이 었는데 지금은 어쩌다가 저렇게 허약해진 것일까?' 풍천비가 그렇게 되자, 화검상은 즉시 가볍게 손을 내저어 허 공을 격하고 손을 썼다. 곡선적(谷線的) 무공의 무형지기(無形之氣)가 풍천비의 몸 속으 로 스며들어 마구 혼란스럽게 발작을 일으키는 그의 기혈(氣血) 을 부드럽게 가라앉히자, 풍천비는 미친 듯이 마구 몸을 흔들며 뒹굴다가 이내 축 늘어져서 잠을 자듯 조용해지고 말았다. 풍귀엽은 화검상이 풍천비를 치료하는 것을 아는지 가만히 보 고 있다가, 이윽고 다가가 풍천비의 몸을 안아들고 침상이 있는 쪽으로 옮기며 화검상을 향해 음침한 어조로 말했다. "정말 네놈이 양심을 가지고 있는지 두고보기로 하겠다. 만일 네놈이 끝까지 악랄하게 나온다면, 지옥(地獄)에 가더라도 절대로 마음이 편할 수가 없을 것이다." 화검상은 가볍게 고소하며 말했다. "만일 당신이 끝까지 내 말을 믿지 않는다면 내가 아무리 좋은 방법을 생각해낸다고 하더라도 전혀 소용이 없게 될 것이오. 당 신들이 자신들을 위한다면 지금부터라도 빨리 내 말을 믿고 내가 아까 말한 그대로 실행(實行)해 가는 것이 좋을 것이오." 화검상은 이어 일행과 함께 밖으로 사라지자, 문득 그 실내에 어디선가 음산한 눈빛을 한 사람들이 하나둘씩 나타나 풍귀엽에 게 다가가더니 말했다. "그 더러운 후레자식이 뭐라고 하던가? 혹시 전혀 방법을 모르 겠다고 3말한 것은 아니겠지?" 풍귀엽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천천히 내저으며 대 꾸했다. "여러분도 이미 어느 정도 들었을지 모르지만, 그 녀석의 방법 이란 별로 신통치 않소. 우리는 아무래도, 이 일에 대해서 좀더 깊이 생각해봐야 하겠소." 화산파 내부의 분위기가 매우 좋지 않기 때문에, 일행은 객점 에서 묵을 생각으로 이내 그곳을 나와 대로(大路)상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간 제법 시간이 흐른 탓으로, 이 대로는 상당히 굳어져서 흙 먼지도 잘 일어나지 않고 다만 간간이 불어오는 삭풍에 낙엽(落 葉)들만이 어지러이 흩날렸다. 사람들의 숫자는 여전히 많아 보였지만, 이제 이곳은 옛날과는 달리 어딘가 음산(陰散)하고 황량한 느낌을 주고 있는 것 같았다. 주루에 가서 술 한잔을 할 생각도 사라지고 그저 한시라도 빨 리 객점을 잡아서 쉬고 싶었으므로, 일행은 약간 걸음을 재촉하 여 저잣거리로 향했다. 방금 전에 일행에게 현재의 화산파의 사태에 대해서 대강 설명 해 준 이후라, 화검상은 기분이 더욱 좋지 못하고 마음이 상당히 우울해져 잇는 것 같았다. 그 이상한 사람들을 갑자기 만나지 않았다면, 동방리는 정말로 화검상의 기분을 전환시키기 위해 어디 가서 술이나 한잔하자고 말할 뻔했다. 저잣거리에 거의 다 왔을 무렵에 건물의 모퉁이를 돌아가는데, 느닷없이 그 두 명의 노인들은 일행의 앞을 가로막았다. 늙은 농부(農夫)와 늙은 무사(武士)의 차림새를 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마치 두 눈에 색칠을 한 것처럼 각기 남색(藍色)과 회색 (灰色)의 빛깔을 띠고 있었고, 괴이(怪異)하게도 머리카락과 피부 도 역시 각기 그러한 색깔을 띠고 있었다. 악검림은 아무래도 순진한 편이라 그 노인들을 보자 경계심이 들기에 앞서서 우선 재미있다고 생각이 드는지 웃으며 말했다. "어마, 이 할아버지들은 정말 특이하게도 생기셨네요. 혹시 해 외(海外)에서 오신 분들이 아닐까요? 화사형, 이 할아버지들은 아 는 분들인가요? 비록 초면이기는 하지만 물론 화검상은 이내 이들이 누구인지 쉽게 알 수 있었다. 도선(刀仙)이 말한 세외팔선(世外八仙)은 모두 여덟 명이며, 화 검상은 아직 그들 가운데 여섯 명밖에 만나보지 못했다. 세상에서 이러한 특별한 모습과 느낌을 주는 살마들은 결코 흔 하지 않으며, 두말할 필요가 없이 이들은 바로 세외팔선 중에서 그가 아직 만나보지 못한 두 사람인 검선(劍仙)과 마선(魔仙)일 것이다. 흔히들 상대가 누구인지 알면 놀라움도 줄어들게 되기 십상이 지만, 지금 화검상은 겉으로는 태연해 보이는 것과는 달리 내심 으로는 크게 놀라고 있어서, 실상 지금 일행 중에서 가장 많이 놀라고 있는 사람은 바로 그일 것이다. 과거 그는 팔선 중에서 다른 사람들을 만나보기도 했지만 그들 은 대개 자신들의 모습을 어느 정도는 숨기려고 했던 반면에, 지 금 이들은 기이(奇異)하게도 그러한 것이 별로 신경쓰이지 않는 듯 거의 많은 부분에 있어서 특이한 점을 노출시키고 있었다. 이것은 혹시 이전과는 다른, 어떤 분명한 그들의 태도변화를 그대로 나타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신들의 모습이 세상에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제 그들이 세상에 적극적으로 나설 준비가 다되었다는 것 을 의미한다면, 이것은 실로 놀랍고도 두려운 일이 아닐 수가 없 고 다만 자신의 그러한 추측이 틀린 것이기를 바라는 도리밖에 없었다. 화검상은 아직 그들을 상대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설령 아무리 그가 마음의 준비를 한다고 해도 정작 그들과 맞아 싸울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아마도 아직 그들의 그 유리처럼 위험(危險)하게 느껴지는 기 질(氣質)을 알아볼 수는 없겠지만, 그러나 동방리는 이번에는 뭔 가 심상치 않은 것을 느꼈는지 드물게 안색(顔色)이 변하고 있었 다. 화검상은 가능하면 자신의 놀라는 심리상태를 드러내지 않으려 고 노력하며 미소와 함께 그들에게 말했다. "두 분은 혹시 소생에게 무슨 볼일이라도 있으신 것입니까? 아, 그러고 보니 두 분은 마치 제가 이전에 보았던 다른 사람들 과 많이 닮으신 것 같군요?" 늙은 농부가 입가에 기이한 미소를 떠올리며 간단히 대꾸했다. "그렇다. 내가 바로 검선(劍仙)이고, 옆의 이 사람은 바로 마선 (魔仙)이다. 너는 우리가 너를 찾아올 것을 미리부터 알고 있지 않았느냐?" 화검상은 여전히 가볍게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사실 두 분에 대해서는 들어서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렇 게 갑자기 뵙고 보니 반가운 느낌이 드는군요. 소생에게 무슨 다 른 볼일이라도 있으시다면 말씀하십시오. 다만 이곳은 그다지 자 리가 좋은 것 같지는 않군요." 늙은 무사의 차림을 한 마선이 무표정하게 잿빛의 눈동자를 굴 리며 말했다. "이곳의 자리가 어쨌다는 말이냐? 우리는 다만 네게 한 가지 일을 확인하러 온 것이다. 네가 그 용화노인(龍華老人)을 알고 있 다고 했다던데, 그게 사실이냐?" 검선이 마선을 제지하며 가볍게 웃어 보이고는 화제(話題)를 돌렸다. "이 사람의 말에 대해서 너무 그렇게 신경 쓸 필요는 없다. 우 리는 다만 네가 대단하다기에 궁금해서 찾아온 것일 뿐, 다른 의 도는 없으니 굳이 경계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악검림은 본래부터 이런 특별한 부류의 사람들과 대화(對話)를 나누는 것을 즐겨하는 성품(性品)이어서 즉시 나서서 뭔가 말을 해보려고 했으나, 옆을 돌아보니 동방리 등의 표정이 뭔가 심상 치 않아 보이는 것을 보고는 내심 고개를 갸웃거리며 도로 입을 다물고 말았다. 화검상은 짐짓 가볍게 고소하며 말했다. "알고보니 두 분은 잠시 오해를 하신 모양이로군요. 사실 제가 그런 얘기를 하기는 했지만, 그러나 그것은 그저 일시적인 기분 에 젖어서 그렇게 말했을 뿐 사실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 용화노인이라는 분이 그렇게도 신비(神秘)한 사람이라면 제가 혹 시 모르는 사이에 그분의 제자(弟子)가 되어버렸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그러나 소생은 별로 그분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습니 다. 그러니 두 분이 만일 용화노인에 대해 알고 싶어서 소생을 찾아온 것이라면 오늘 두 분은 헛걸음을 하신 것이 될 것입니 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무림야그 출력일 :: 98/11/20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3 권 제 66 장 무학이론(武學理論) 제 66 장 무학이론(武學理論) 마선이 두 눈에서 일순 회색(灰色)의 광채를 번갯불처럼 번쩍 발하면서 약간 머뭇거리는 듯하다가, 이내 다시 음산(陰散)한 어 조로 말했다. "네놈이 감히 우리를 우롱하다니, 그러고도 살아남을 줄 알았 느냐?" 화검상은 표정이 가볍게 굳어졌으나, 이내 다시 담담하게 웃으 며 대꾸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애써 바다의 넓이와 깊이를 측 정하려고 하지만 그런 것은 잘 되지도 않고, 또 그런 방법으로 되는 것도 아니다' 세상(世上)의 일이라는 것은 바로 그러한 것입 니다. 두 분이 정말로 소생에게 손을 쓰고자 한다면 나는 말리지 는 않겠소." 마선이 잠시 분노(忿怒)한 듯 두 눈에서 더욱 강렬한 광채를 뿌리며 말했다. "그, 그건 바로 용화노인이 우리에게 했던 말과 비슷하다. 너는 그 사람의 제자(弟子)가 분명하구나. 흐흐, 내가 너의 흉계(凶計) 에 넘어갈 줄로 아느냐? 우리는 너를 해치려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한번 놀러 온 것일 뿐이다." 검선이 대단히 깊은 시선(視線)으로 화검상을 주시하고 있다가 다시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 사람이 비록 거칠기는 하지만 그리 나쁜 사람은 아니네. 자네도 알겠지만 무슨 악의(惡意)가 있어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말게나. 으음, 자네가 굳이 용화노인에 대해 서 말을 하지 않으려고 하니 더 이상 그것에 대해서는 묻지 않기 로 하겠네. 다만 한 가지만 물어보기로 하지. 자네의 무공이 제법 높은 듯한데......, 대체 검(劍)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악검림은 분위기가 다소 부드러워지는 듯하자 드디어 나서서 웃으며 말했다. "그야 말할 것이 있나요? 검이란 바로 정의(正義)이며 도(道)라 고 할 수 있겠지요. 근자에 들어, 사람들은 그것을 망각하고 있는 것 같아요. 으흠, 그렇기 때문에 세상이 이처럼 어지러워져 있는 것이고 또한 검의 깊은 의미(意味)를 알지 못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제 내가 말을 했으니 당신들이 한번씩 말을 해봐요." 화검상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검이란 말하자면 시냇물이라고 할 수는 있을 것이오. 그것은 간혹 굽이치지만 원인을 자세히 알기 어렵고, 또한 온갖 변화(變 化)를 일으키지만 그 모든 것을 자세히 알기가 어렵소." 마선이 눈살을 찌푸리며 생각해 보는 듯하다가, 약간 어색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럼...... 으흠, 자네는 마(魔)란 대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화검상은 미소하며 대답했다. "그것은 말하자면 시냇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오. 그것은 간 혹 굽이치지만 원인을 자세히 알기 어렵고, 또한 온갖 변화(變化) 를 일으키지만 그 모든 것을 자세히 알기가 어렵소." 마선은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가 안면을 크게 찌푸리 며 말했다. "아니, 그건 바로 조금 전에 한 말이 아닌가?" 악검림이 웃으며 다시 말했다. "내가 말해보도록 하겠어요. 으음, 그건 바로 도(道)에 있어서 일종의 오류가 생긴 것이라고도 할 수가 있겠어요. 어려운 얘기 지만, 사람들은 대개 심마(心魔)에 빠지는 것을 원하지 않아요. 그럼에도 심마에 빠지곤 하는 것은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할 수도 있는데 사람들이 그것을 스스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으 음, 이건 지나치게 어려운 문제로군요! 당신이 한번 말해봐요." 마선은 안면을 험악(險惡)하게 변모시키고 그녀를 바라보다가, 일순 크게 화가 난 듯 소리쳤다. "이 못생긴 계집애야, 그만 입 좀 다물 수 없겠느냐? 누가 너 같은 계집아이의 말을 듣자고 했느냐? 당장 입을 다물지 않으면 그 못생긴 얼굴을 다시는 들지 못하도록 만들어주겠다!" 악검림은 안색이 변해 속으로 투덜거리며 생각했다. '내......, 얼굴이 그렇게도 못생겼단 말인가? 으음, 이자들은 정 말 나와 얘기를 나눠볼 만한 사람들이 못되는구나. 난 그래도 서 로가 의기상통할 것으로 생각하고 말을 해주었던 것인데....... 정 말 무례한 자들이구나.' 화검상이 다시 말했다. "그럼 마(魔)란 말하자면 공중에 뜬 초목(草木)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오. 그것의 뿌리가 어디에 닿아 있는지도 알기 어렵고, 또한 바람이 불어도 어째서 날아가지 않는지 그 이유를 알기 어 렵소." 마선은 이번에는 대답이 제법 마음에 드는지 표정을 가라앉히 고 잠시 눈을 반쯤 내리감으며 생각해보는 눈치였다. 검선이 웃으며 악검림을 향해 가볍게 손짓을 해보이며 말했다. "왜 이 귀여운 아가씨에게 화를 내는가? 내가 보기에는 예쁘기 만 한데....... 자, 귀여운 아가씨! 내가 약간의 선물을 줄 테니 그 만 기분을 풀게나." 악검림은 검선이 자신에게 손짓을 하는 순간 갑자기 전신이 맑 은 공기에 휩싸인 듯 상쾌한 기분이 들면서, 번갯불과도 같은 강 한 기운이 스며들어와 단전(丹田)에 자리하는 것을 느끼고 어리 둥절하여 즉시 그에게 말했다. "아니, 당신은 지금 대체 어떻게 한 것이죠?" 검선은 담담히 웃으며 말했다. "뭐 대단한 것은 아니야. 나는 그저 아가씨의 몸안에 있는 탁 한 기운(氣運)을 몰아내고 십 갑자(十甲子)의 공력(功力)을 주입 시켜 준 것이지. 그건 지금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겠지만 나중에 아가씨가 무공이 높아지게 되면 그 잠재(潛在)된 진기(眞氣)가 저 절로 조금씩 녹아서 아가씨의 내공과 합쳐지게 될 것이네." 이렇게 십 갑자나 되는 공력을 거저 얻는다는 것은 거의 생각 할 수도 없는 일이기에, 악검림은 지금 실로 뜻밖에도 굉장한 횡 재를 하게 된 셈이다. 악검림은 약간 믿어지지는 않았지만, 이 사람들이 과연 대단하 기는 한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장문인도 공력이 십 갑자가 되지 못한다고 했는데, 그럼 내가 그보다 더 높아지게 된다는 말일까? 아냐, 그럴 리가 없을 텐 데......?' 검선은 화검상을 향해 다시 말했다. "자, 우리는 이만 가야겠네. 자네가 이렇게 우리에게 좋은 말을 해주었으니 그럼 우리도 자네에게 한마디 해주기로 하지. 자네가 정말로 용화노인의 제자인지는 모르겠지만, 세상일이라는 것은 안 되는 일을 억지로 무리하게 하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네. 그건 누구라도 마찬가지이겠지. 때가 되면 나서고, 그렇지 않으면 조용히 은거(隱居)한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처세이지 않겠 나?" 화검상은 가볍게 포권하며 말했다. "말씀 고맙소." "혼자서 모든 사람들을 다 상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그저 세상의 일은 세상 사람들에게 맡기는 것이 가장 좋겠지." 말과 함께 그 두 사람은 갑자기 그 자리에서 환각(幻覺)처럼 꺼지듯이 사라져버렸다. 물론 그것은 그들이 축지성촌(縮地成寸)의 신법(身法)을 펼쳐 너무나도 빨리 가버렸기 때문에 그렇게 보인 것이다. 악검림은 혼자 곰곰이 생각해보고 있다가 문득 그와 같은 광경 을 보고는 다소 놀라서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자신도 모르게 말 했다. "아, 그들이 과연 실력이 있기는 한 모양이로군요!" 점포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는 저잣거리에서 묵을 만한 객점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나란히 비어 있는 세 개의 객방(客房)을 빌린 화검상은 일행의 안전을 위해 동방리와 함께 가운데 객방에 들었고, 좌측에는 동 방량이, 그리고 우측에는 악검림이 혼자 묵기로 했다. 악검림은 자신도 화검상과 한 방에서 묵기를 바라는 눈치였지 만, 화검상이 일단 그렇게 정하자 감히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는 못했다. 점원들이 가져온 음식으로 대강 식사를 마친 후에 동방량과 악 검림이 각기 방으로 돌아가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문득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점원 하나가 다시 안으로 들어와 말했다. "손님이 찾아오셨는데 지금 곧 이리로 들어오시라고 할까요?" 상황이 워낙에 좋지 않은 만큼 사소한 일이라고 해도 주의를 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일행이 이 객점에 들어온 지 얼마 지나 지도 않아 벌써 손님이 찾아왔다는 것은 상당히 수상쩍은 일이었 다. 동방리가 마악 입을 열어 말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한 사람이 방안으로 불쑥 들어서며 화검상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화형(華兄), 오랜만이오! 나는 그 동안 화형이 죽은 줄로만 알 고 있었는데,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다니 실로 반가운 일이오. 그 래, 그간 혹시 이 사마귀의 얼굴을 잊어버리지는 않았소이까?" 사마귀(査摩歸), 놀랍게도 지금 그렇게 안으로 들어선 사람은 다름아닌 사마귀였다. 과거 화검상은 태평진의 어느 야외 주점에서 그를 만난 적이 있었는데, 그의 재능(才能)이 특이하고 자칭 곡선적(曲線的)이라 고 하는 무공을 가지고 있었던 점 등에서 상당히 인상이 깊었던 것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던 무림야그 출력일 :: 98/11/20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3 권 제 66 장 - 1 그의 그러한 능력이라면 제법 강호에서 이름을 날리며 활약을 하게 될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었는데, 생각외로 그에 대한 소식 이 들려오지 않아 이상하던 차에 그를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자 화검상은 다소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물론 이 사람과는 한때 어울려보기는 했지만, 무학에 대한 견 해도 다르고 뜻도 별로 맞지 않아서 화검상의 친구라기보다는 오 히려 적(敵)에 가까웠던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화검상은 그가 여전히 헌칠한 체구에 다소 음울해 보이지만 준 수한 외모를 가지고 있는 것 등을 바라보며, 가벼운 미소(微笑)와 함께 대꾸했다. "사형(師兄)은 늘상 그렇게 갑자기 나타나서 사람을 놀라게 하 는 재주를 가지고 있는 것 같구려. 나는 아마도 언젠가는 사형을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설마하니 그곳이 이런 곳이 될 줄은 몰랐소이다." 사마귀는 물러가는 점원의 등뒤를 슬쩍 바라본 뒤에 문을 닫고 약간 어색한 듯이 웃으며, 나직한 음성으로 말했다. "실은 나도 마찬가지요. 만일 화형의 명성(名聲)이 지금 천하 (天下)를 진동시키고 있지 않았다면 나는 도저히 이런 곳으로 찾 아올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오. 물론 나의 이 기막힌 역용술 (易容術) 덕분에 이곳이 허다한 정파(正派)의 작자들을 속여넘길 수가 있었지만 말이오." 화검상은 웃으며 말을 마주 받았다. "그러니까 사형은 조금 전에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고 이 안으 로 들어온 것이구려?" 사마귀가 자못 심각하다는 듯이 고개를 좌우로 내저으며 말했 다. "그야 내가 만일 변장한 그대로 이 안으로 들어선다면 그 대단 해진 화형의 무공으로 나를 일격에 날려버릴 수도 있을 것이니, 어찌 조심하지 않을 수가 있겠소? 하하하! 이건 농담이오. 어쨌든 이렇게 무사히 화형과 만나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의 보살핌이 있었다고 해야 할 것이오. 으음, 한데 이제 보니 화형은 그 동안 에 이미 장가를 가신 것 같구려. 내게 저 아름다우시고 훌륭하신 부인(婦人)을 소개해주시지 않겠소?" 동방리가 안색을 다소 상기시키며 입을 열어 말했다. "저의 성은 동방(東方)이에요. 이분과 만난 지는 아직 얼마 되 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이분의 친구 분이시라니 정말 대단한 분 이실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사마귀는 짐짓 그녀를 바라보며 넋을 잃은 듯한 표정을 짓더니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실은 그와는 정반대요. 화형은 당당한 화산파의 명문귀족(名門 貴族)이고 나는 그저 쓰레기와도 같은 인생이지요. 게다가 나는 그를 친구로 생각하고 있지만 그는 나를 오히려 마치 빚을 받으 러 온 빚쟁이처럼 생각하고 있답니다. 하하......! 그건 그렇고 화 형, 나를 이렇게 계속 이 자리에 세워두실 생각이시오?" 화검상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는 당신이 매우 넉살 좋은 사람이어서 굳이 내가 그런 말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마귀는 얼굴에 웃음을 달고 양팔을 벌려 마치 날갯짓을 하듯 하며 말했다. "하하하, 이거 화형에게는 항상 못 당하겠구려. 하지만 이렇게 훌륭하신 부인을 맞이하셨는데 내게 그렇게 면박을 주시다니, 이 는 실로 너무한 처사이구려." 사마귀가 앞자리에 앉는 것을 보고, 화검상은 담담히 그를 바 라보다가 말했다. "한데 사형은 어떻게 소생이 이곳에 머물고 있는지를 알게 되 었소이까?" 사마귀는 손수 차를 따라서 한입에 꿀꺽 들이키며 말했다. "당금의 강호에서 화형의 움직임 하나하나는 모든 사람들의 촉 각을 곤두세우게 하고 있는데 어찌 내가 모를 수가 있겠소? 그보 다......, 실은 지금 내가 어렵게 이곳으로 와서 화형을 만나고자 하는 것은 한 가지 중요한 천하대사(天下大事)를 논의하기 위함 이오." 화검상은 약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천하대사라면......, 혹시 나를 또다시 곤란하게 만들려고 하는 것은 아니오?" "정말 그럴지도 모르오." 사마귀는 이번에는 약간 정색(正色)을 하고 다시 한잔의 차를 따라 마신 뒤에 말을 이었다. "화형은 내가 그 동안 어디에 가 있었는지 알고 계시오? 나는 그 동안 모처에서 한 분의 스승을 만나 무공을 배우고 있었소이 다. 실로 짧은 시간이고 또한 다분히 이론적인 내용이기는 했지 만 나는 제법 많은 것들을 배웠다고 생각하고 있소." "축하해야 할 일이구려." 사마귀는 잠시 정색을 하고 화검상의 얼굴을 주시하다가 말했 다. "당금의 천하는 크게 정파(正派)와 사파(邪派), 이렇게 둘로 나 뉘어져 있고, 그 외의 다른 문파나 세력들은 감히 그 사이에 끼 여들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소. 화형은 이러한 때에 어떻게 하 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고 가장 효과적으로 사태를 해결해나가는 길이 되는 것인지 알고 계시오? 그건 바로 화형이 나서서 그 중 간(中間)의 세력들을 이끌어주는 것이오. 으음, 나는 얼마 전에 녹림맹(綠林盟)에서 탈퇴하여 그 동심맹(同心盟)의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고 있소. 동심맹은 현재 이렇다 할 구심점이 없는 데 반해 화형은 지금 그야말로 혈혈단신이나 마찬가지이니, 이 두 개의 힘이 하나로 합쳐진다면 아마도 당금의 천하를 이끌어갈 새로운 거대세력이 탄생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오." 화검상은 묵묵히 듣고 있다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사형의 그 새로운 스승이라는 분은 아마도 그 동심맹과 연관 이 있는 분이었겠구려?" 사마귀는 역시 마주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분은 아직 천하에 별로 나서지 않은 강호의 이인(異人)이셨 소. 당금의 동심맹이 비록 지나칠 정도로 숨을 죽이고 있기는 하 지만, 그렇다고 해도 아직 이와 같은 난세(亂世)에서 무사히 그 세력을 보존해 올 수 있었던 이유를 알고 있소? 그분이야말로 실 상 동심맹의 배후에서 거대한 힘이 되어왔다오. 그분은 비록 이 제까지 무슨 이유에서인지 거의 강호에 나서지 못하고 있었기는 하지만, 작금의 상황이 너무나도 험악하고 자신의 나이가 워낙 많기 때문에 자신의 대를 이어줄 사람을 찾고 있었소. 실은 내가 이렇게 나서게 된 것도 모두 그분의 제안이었소." 화검상은 잠시 생각에 잠겨보는 듯 묵묵히 있다가 말했다. "강호에는 기인이사(奇人異士)들이 구름처럼 많이 있다고들 하 니 아마도 그런 사람도 있을 수가 있겠지요. 하지만 사형은 너무 나도 갑자기 나타나서 소생을 당혹하게 하는구려." 사마귀는 눈빛을 번쩍 빛내더니 강한 어조로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지금 이렇게 한가하게 이야기만 나누고 있을 상황이 아니오. 그분은 한시라도 빨리 화형을 이곳에서 빠져나오게 하지 못한다 면 장차 천하의 정세(政勢)가 크게 혼란해질 것이라고 말씀을 하 셨소. 그렇지 않았다면 이 사마귀가 이렇게 목숨까지 걸면서 이 런 곳으로 화형을 찾아오지는 않았을 것이오." 화검상은 그를 보며 담담히 말했다. "혹시 사형의 그 새로운 스승이라는 분은 사형의 곡선적(曲線 的) 무공이라는 것과 무슨 연관이 있지는 않았소?" 사마귀는 약간 어리둥절해 하다가 말했다. "아니......, 화형이 그것을 어떻게 알고 계시오? 설마 그분을 만 나보기라도 했단 말이오? 사실 나는 아주 짧은 동안 그분의 곁에 있었기 때문에 그분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것이 없소. 그분은 내 게 이름도 가르쳐주지 않으셨고......, 다만 내가 지금 분명히 알고 있는 한 가지 사실은, 그분은 내가 이제까지 겪어봤던 그 어떤 사람과도 다른 아주 신비(神秘)롭고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계신 분이라는 점이오." 화검상은 문득 고개를 돌려 동방리를 향해 말했다. "아리, 당신은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시오?" 동방리는 눈빛을 깊게 빛내며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가 말했다. "저는 이 일을 당신이 이미 잘 알고 계실 거라고 생각해요." 화검상은 가볍게 미소하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이어 사마귀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보기에 사형은 그 당시에 무공이 자신의 뜻대로 잘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사마귀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다소 놀란 어조로 말했다. "아, 그걸 어떻게 알고 있소? 확실히 나는 도저히 화형을 따라 갈 수가 없겠구려. 나는 당시 나의 무공에 어떤 오류가 있지는 않나 해서 잠시 강호를 떠났던 것인데 다행히도 그런 분을 만날 수 있게 되었던 것이오." 화검상은 담담히 미소하며 말했다. "사형의 그러한 무공은 자연 문제가 생기지 않을 수가 없게 되 어 있었소. 일반적으로 그러한 곡선(曲線) 위주의 무공이라고 하 는 것은 다른 무공들에 비해서 변화가 심하고 제법 위력이 잇는 듯이 보이기도 하지만, 반면에 지나칠 정도로 변화에 의존하여 마음을 산란하게 하고 심기(心氣)를 해치게 하는 점이 있소. 만일 그저 평범한 수준의 경지라면 그다지 심한 해를 당하지는 않겠지 만, 그것이 사형과 같은 높은 경지까지 올라간 것이라면 자연히 심마(心魔)를 일으키고 모든 것이 잘되지 않으며, 오히려 다른 정 종(正宗)의 무공들보다 못하게 되는 것이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무림야그 출력일 :: 98/11/20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3 권 제 66 장 - 2 동방리가 끼여들며 미소하며 말했다. "그러니까 지나치게 직선(直線) 위주의 살상무공(殺傷武功)도 좋지 않지만, 반대로 지나치게 곡선(曲線) 위주의 변화무쌍(變化 無雙)한 무공도 마찬가지로 좋지 않다는 말이로군요?" 화검상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무공이란 자연 직선 그대로는 되지 않겠지만, 이 살수(殺手)들 이 즐겨 쓰는 살상무공이라고 하는 것은 자신의 심한 피해를 감 수하고서라도 빠른 시간 내에 상대를 척살하기 위해 많은 변화를 거의 도외시하기 때문에, 말하자면 직선(直線) 위주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오. 하지만 이 직선 위주의 무공은 무학의 기본이치를 무시하는 것이고, 그 사람이 무공을 배운 것이 아니라 그저 무식 한 살인기술만을 배운 것이기에 무공에 대한 발전을 기대할 수 없고 당연히 끝까지 별볼일없는 하류(下流)에 머물게 되는 것이 오. 하지만 직선 위주의 무공이 그래도 심마(心魔)에 빠져들 위험 이 적은 반면에 지나친 변화만을 추구하는 이 곡선(曲線) 위주의 무공은 더욱 심마에 빠져들 위험이 많은 것이 그 특성이라고 할 수 있소. 그래서 이 두 가지의 극단적인 무공은 그야말로 방문좌 도(傍門左道) 무공의 가장 전형적인 예를 보여주는 쉬운 본보기 라고 할 수가 있고, 또한 물론 당연히 좋을 리가 없는 것이오." 동방리는 말했다. "정랑(情郞), 그럼 가장 이상적인 무공이란 어떤 것이죠?" 화검상은 미소하며 말했다. "직선이니 곡선이니 하는 말 자체가 이미 무학의 기본이치를 망각하고 있는 것이오. 흔히들 말하는 정종(正宗)의 무공이라고 하는 것들은 그러한 제약에서 벗어나 바른 이치에 따라 바르게 흐르고 움직이며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마치 대 자연(大自然)의 흐름을 닮은 듯하고 또한 그 생명력이 오래가게 되는 것이오. 그러나 비록 그 무공이 대자연의 모습을 닮은 훌륭 한 것이라고 해도 그것을 배우는 사람들이 그 깊은 이치를 보지 못하고 다만 겉핥기로 형식적인 무공만을 연마(鍊磨)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나는 그것을 하나의 정해진 흐름이라는 의미로 직선적 이라고 말하고 있소." 동방리는 짐짓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그럼 곡선적(曲線的)인 무공이란 어떤 것이죠? 그 깊은 무공 을 보고 펼쳐가는 여러 갈래의 흐름이라는 말인가요? 화검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두 개의 지점 사이에는 양쪽을 오갈 수 있는 무한히 많은 길 이 있소. 일직선으로 가든, 아니면 아무렇게나 곡선으로 변화를 일으키며 휘어지든 그 많은 길을 다 일일이 세어본다는 것은 어 리석은 짓일 것이오. 내가 말하는 곡선적인 무공이라는 것은 그 사이에 있는 그 모든 흐름을 보고 그것을 동시에 펼쳐간다는 것 이오. 하지만 만일 그것을 그저 전체의 흐름이라고 이해한다면 그 역시 직선적인 경우에 빠지는 것이오. 전체와 일부, 이런 생각 을 하는 자체가 이미 그릇된 길로 접어드는 것이오. 사실 이 곡 선적인 무공이라는 것은 전체라고도 할 수 없고 일부라고도 할 수가 없으며, 마찬가지로 하나라고도 할 수가 없소. 요컨대 사람 들은 자신도 모르게 생각에 의해 이것저것을 분별하여 보려고 하 는 것이지만, 그렇게 한다면 무엇이든 분명히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본 것은 껍데기뿐인 죽은 것이 되어버릴 것이오. 만일 마음의 장애(障碍)를 제거하고 그러한 분별에서 벗어나 깊 이 바라본다면 그 무한한 변화들이 살아서 무한히 변화해 가는 듯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고, 정말로 마음의 장애가 제거되 었다면 또한 뜻대로 그러한 것들을 장애없이 시전할 수 있을 것 이오." 동방리가 말했다. "그럼 살아서 무한히 변화해가는 듯하다는 말도 기실은 정말로 살아서 무한히 변화해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되겠군요?" 화검상은 미소하며 말했다. "그러니까 말에 집착해서는 안 되고 그 이치를 따라 음미해야 하는 것이오. 말이 비록 그것을 가리키기는 하지만 그것 자체는 아니기 때문이오. 다시 말하자면 곡선적 무공을 배우기 위해서는 우선 마음의 장애를 제거해야 하는데, 기실 그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일이고 또한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오." 사마귀는 다소 괴이쩍은 표정으로 듣고 있다가, 이윽고 어색한 듯이 웃으며 말했다. "과연 화형의 그러한 무학이론(武學理論)은 대단해서 이 사마 귀를 감동시키는 것 같소. 하지만 아까도 말했지만 지금은 이렇 게 한가하게 앉아서 무학에 대해 얘기할 시기가 아니오. 어서 빨 리 준비하여 그쪽으로 가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소?" 화검상은 그를 바라보며 담담히 웃다가 말했다. "사형의 무공은 과거와 그리 달라진 것 같지 않소. 그렇다면 그러한 무공으로 무학의 높은 경지(境地)에 오를 수는 없는 법이 오." 사마귀는 약간 의아해진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그분의 무공은 정말로 대단했소. 화형은 혹시 내 말을 믿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니오?" 화검상은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분의 무공은 정말로 대단했소. 화형은 혹시 내 말을 믿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니오?" 화검상은 웃으며 말했다. "나도 역시 가능하면 사형의 말을 믿고 싶소. 하지만 이러한 이치는 명백하기 때문에 재론의 여지가 없소." 사마귀는 안색이 변해서 잠시 멍하니 화검상을 주시하다가 짐 짓 웃으며 말했다. "화형은 지금 농담을 하고 있는 것이오? 사실 내가 그분과 함 께 생활한 것이 얼마 되지 않는데 그분의 무공이 어떤 것인지 어 떻게 알 수 있겠소? 게다가 천하의 무공이라는 것은 다소 비슷한 듯해도 그 내용이 천양지차로 다른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렇게 쉽게 단정을 내린다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니오?" 화검상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만일 그 사람의 무공이 정말로 대단한 것이었다면 사형의 무 공을 지금 이 상태로 그냥 놔두었을 리가 없소. 게다가 천하의 무공이 아무리 다양하다고 해도 높은 경지(境地)의 무공이란 그 이치가 비슷해지게 되어 있소. 이러한 이치 이외에는 제아무리 온갖 다른 방법을 사용한다고 해도 이러한 경지에는 오를 수 없 는 것이기 때문이오." 동방리가 말했다. "그 사람의 무공이 비록 당신처럼 그렇게 높은 경지에 올라 있 지는 못해도 어느 정도는 상당한 경지에 올라 있을지도 몰라요. 그렇다면 지금의 상황을 호전시키기 위해 이분의 말을 한번 더 고려해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화검상은 미소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무공이 그렇게 별로 대단하지 않다면 강호의 정세에 그렇게 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가 없소. 게다가 사형의 무공을 지금 이 상태로 그냥 두었다는 것은 실로 그 사람의 인간성(人間性)을 한 번 생각해볼 문제이오. 그리고 아울러, 그런 사람은 내게 필요하 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지금 사형의 그 모든 얘기를 한번 의심해 볼 수밖에 없지 않겠소?" 사마귀는 안색이 갑자기 복잡하게 변해가더니 이어 흉악한 기 색으로 화검상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일순 그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환각(幻覺)처럼 사라지 더니, 어느새 동방리의 곁에 이르러 그녀의 맥문(脈門)을 한손으 로 잡고 다른 손으로 그녀의 머리 위를 덮으며 악독하게 소리쳤 다. "흐흐흐, 지금 나의 무공이 대체 어쨌다는 말이냐? 네놈은 혼 자서 잘난 척은 다했지만 결국에는 이렇게 내 손에 걸려들고 말 았다. 만일 이 여자가 무사하기를 바란다면 순순히 무공을 폐지 하고 내 말에 따라라!" 동방리는 조금 전의 사마귀의 그러한 신법을 보고는 흡사 아까 의 그 화산장문인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내심 의아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물론 이 사마귀와 화산장문인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을 것이다. 화검상은 졸지에 동방리가 그런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을 보고 그만 고소(苦笑)하며 말했다. "사형, 그렇다고 그렇게까지 화를 낼 것은 없소. 내가 당신이 말한 그 사람을 한번 만나보면 될 것이 아니오. 그러니 어서 그 녀를 풀어주시오." 사마귀는 음산하게 웃으며 동방리의 머리를 덮고 있는 오른손 에 내공을 증가시켰다. "네놈은 지금 농담을 하고 있는 것이냐? 그런 인간이 있을 리 가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이 순간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서 그따위 수작을 부리고 있는 것이겠지? 흐흐흐, 사실 나는 그 런 대단한 인간을 본 적도 없고 들은 적도 없지. 다만 네놈에게 좀더 근사한 계책(計策)을 부려보려고 했었는데 네놈이 잘난 척 을 하는 바람에 일이 이렇게 급진전되게 되었다. 자, 어서 무공을 폐지하라는데 뭘 꾸물거리고 있느냐? 당장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 계집의 머리를 부숴버리고 말겠다." 동방리는 그런 상황이 되었는데도 이상하게도 마음은 편안하여 조금도 두려움이 없었고, 화검상은 여전히 그 자리에 앉은 채로 담담히 말했다. "나는 아까부터 당신의 그런 수작이 너무나도 허술하여 이상하 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좀더 분명히 알 수 있을 것 같소. 당신은 곡선(曲線)의 무공에 의해 신경이 극도로 산만해진 나머 지 그만 심마(心魔)에 빠져 정신이 흐려지게 된 것이오. 지금 당 신은 힘이 모두 빠져버려서 오히려 자신의 몸조차 제대로 가눌 수가 없을 텐데, 어떻게 그녀를 다치게 할 수 있겠소?" 사마귀는 그 말에 이상하게도 전신의 기운이 모두 빠져버린 것 처럼 무력감이 들어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게 된 것을 보고, 놀라고 어리둥절해져서 멍한 표정이 되고 말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는 그래도 그 환각과도 같은 신법을 펼 칠 수가 있었고 내공을 운용(運用)할 수가 있었는데, 이것은 대체 갑자기 어찌 된 영문일까? 동방리도 약간 의아한 기색이 되어 화검상을 바라보다가 이윽 고 사마귀에게서 빠져나와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어느새 사마귀 는 입에서 지저분한 거품을 내뿜으며 막 발작을 하려는 듯이 눈 동자가 허옇게 돌아가고 있었다. 화검상은 가볍게 탄식하며 몸을 일으키더니 말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발전을 위해서 온갖 노력들을 하곤 하지만, 바른 길은 그렇게 해서 얻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오. 우 선 마음의 수양(修養)을 쌓아야 하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너무 모 르고 또한 게을리하고 있는 것 같소." 동방리는 어이없어 하다가 이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정랑(情郞), 당신은 조금도 무공을 사용하지 않고 사람을 이렇 게 만들었으니, 이런 능력이라면 그 무엇도 두려울 것이 없을 것 같아요. 화검상은 가볍게 고소(苦笑)한 뒤, 그녀의 손을 잡으며 부드럽 게 말했다. "아리, 당신은 내가 당신을 신경써 주지 않았다고 화가 난 모 양이구려. 하지만 이 일이 분명하지 않았다면 내가 어찌 당신을 두고 그런 모험을 할 수가 있겠소? 이 사람은 스스로 이런 심마 에 든 것이지, 내가 이렇게 만든 것은 아니오." 그때 갑자기 좌우측의 방에서 거의 동시에 수상쩍은 소음이 들 려오기 시작했으므로 화검상은 이어 말했다. "자, 손님은 한두 명이 아닌 것 같소. 그러니 어서 다른 사람들 에게 가보도록 합시다." 화검상이 동방리의 손을 잡고 악검림의 객방에 들어갔을 때, 악검림은 막 전신에 피를 잔뜩 묻히고 고군분투하고 있는 중이었 다. 고군분투라고는 하지만 기실은 지금 방안에서 움직이고 있는 사람은 그녀 혼자였고, 다른 십여 명의 복면인(覆面人)들은 그저 제각기 엉거주춤하게 서 있거나 드러누운 채로 그녀에게 일방적 으로 얻어맞고 있는 중이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무림야그 출력일 :: 98/11/20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3 권 제 67 장 불청객들! 제 67 장 불청객들! 악검림은 연달아 매화장법을 펼쳐 복면인들의 전신을 가격하고 있었고, 벌써 대여섯 명의 복면멱인들이 그 바람에 코피가 터지 거나 입에서 피를 흘리는 등 험한 몰골이 되어 있었다. 동방리는 방안을 둘러보고는 다소 의아한 느낌이 들어서 악검 림에게 말했다. "악언니,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이지요?" 하긴 지금 이렇게 많은 복면인들이 몸이 뻣뻣하게 굳어버린 채 로 나타나 있다는 것이 이상스럽기는 하지만, 그보다 더욱 이상 한 것은 악검림의 행동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악검림은 성품이 본래 선량하여 이렇게 반항할 수 없는 사람을 함부로 공격하지 않는 사람인데, 지금은 어찌 된 영문인지 마치 혼자서 격전을 치르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었 다. 악검림은 안면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몹시 화가 난 것처럼 펑펑 펑, 하고 정신없이 손을 쓰다가 이윽고 두 사람이 들어온 것을 알고는, 손을 거두고 다소 어색한 듯이 웃으며 말했다. "호호, 정말 우습지? 하지만 이자들이 자꾸만 말을 함부로 하 잖아!" 사실을 말하자면 이렇다. 본래 이 복면인들은 악검림을 제압하기 위해 조금 전에 이 방 안에 잠입한 것이고, 그때는 물론 그들의 몸이 이렇게 바보처럼 되어 있지는 않았다. 마악 악검림에게 손을 쓰려고 하는데 갑자기 그들의 몸은 일시 에 누군가에게 제압을 당하여 이렇게 되었고, 당황한 그들은 상 대가 나이 어린 순진한 낭자라는 데 착안하여 수작을 부리기 시 작했다. 상대의 장력의 힘을 빌려 제압당한 혈도를 푸는 것도 있거니 와, 무엇보다도 그들은 그녀가 자신들의 복면을 벗기지 않게 되 기를 바랬던 것이다. 그들은 이런저런 음란하고 지저분한 욕을 하여 그녀를 격분하 게 만들었고, 그녀로 하여금 쉴새없이 장력을 날리게 하는 한편 자신들의 혈도를 풀려고 노력했고, 또한 간혹 반탄력(反彈力)을 사용하여 그녀를 공격하기도 했다. 악검림이 수십 차례의 공격을 퍼부었으나 이들의 무공은 상상 외로 고강하여 그녀의 공격은 그저 코피를 터뜨리게 하는 정도에 불과했고, 화검상이 동방리와 함께 안으로 들어서자 그들은 모두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화검상을 주된 목표로 삼고 먼저 악검림 등을 노렸던 것인 만 큼 그들은 제법 화검상에 대해서 상세히 조사해두고 있었고, 따 라서 지금 자신들이 제압당한 것이 화검상에 의한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동방리가 그만 입가에 미소를 떠올리며 말했다. "그렇게 손만 쓰지말고 우선 저들의 복면을 벗겨보셨어야죠." 악검림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아, 내가 왜 미처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지?" 복면인들은 입을 다물고 있다가 그 말에 저마다 눈빛이 괴이쩍 게 변하더니 그 중의 한 사람이 말했다. "소, 소광생(少狂生), 네놈이 만일 우리의 복면을 벗긴다면 장 차 후회할 일이 생길 것이다! 나중에 후회하지말고 지금 곧 순순 히 우리를 풀어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다른 복면인이 뒤따라 입을 열었다. "그렇다. 소광생, 네놈이 만일 우리를 즉시 풀어준다면 너의 이 여자들은 나중에 무사하게 될지도 모른다. 너는 실로 이 순간에 생각을 잘해야 할 것이다. 한 순간의 결정이 모든 것을 좌우할 수도 있는 법이지, 아미타불 ……." 그 복면인은 말을 하고 나서 자신도 모르게 어리둥절하여 입을 다물었고, 다른 복면인들은 크게 놀라 일제히 비난의 시선을 그 복면인에게 보내기 시작했다. 그 복면인은 평소에 남을 훈계하는 자리에 있던 사람인지 비록 조심하기는 했으나, 나중에 그런 비슷한 말을 하다가 결국 아미 타불, 하는 불호 소리가 묻어나오게 되었고, 그만 어느 정도 자신 들의 마각을 드러내게 된 셈이 되고 말았다. 악검림이 다소 의아해 하다가 즉시 신형을 날려 그들의 복면을 벗기기 시작했고, 드디어 하나같이 허여멀건 얼굴들이 드러나게 되었다. 조금 전에 그들은 비록 악검림의 공격은 간단히 받아낼 수가 있었으나, 혈도가 제압되어 꼼짝할 수가 없는 상황이니 그녀가 복면을 벗기는 것은 전혀 막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과연 아니나다를까. 그들 가운데에는 머리를 빡빡 깎은 화상들 도 있었고, 도사들도 있었으며 게다가 거지처럼 보이는 지저분한 사람들도 섞여 있었다. 악검림이 그것을 보자 다소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아, 당신들은 바로 소림과 무당, 그리고 개…… 개방의 사람들 이로군요!" 그녀엑 지저분한 욕설을 퍼붓다가 아직도 코피를 줄줄 흘리고 있는 한 무당도사(武當道士)가 안색을 음침하게 변모시키더니 악 독한 어조로 말했다. "기왕에 이렇게 되었으니 네놈 마음대로 손을 써라. 천하의 대 악적을 제거하지 못한 것이 한스럽지만 머지않아 네놈의 육신은 갈가리 찢겨져서 효수되고, 영혼은 지옥의 불구덩이 속을 헤매게 될 것이다." 화검상은 가볍게 탄식하며 무형지기를 일으켜 그들의 혈도를 풀어주며 말했다. "나는 당신들을 해친 적도 없고 또한 그럴 의사도 없는데 어째 서 이렇게 정당치 못한 행동만을 일삼는 것이오? 나는 당신들을 어쩔 생각이 없으니 그만 모두 돌아가도록 하시오." 그들은 혈도가 풀려 몸이 자유로워지자, 즉시 몸을 일으키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를 돌아보며 주저하다가, 이내 일제히 신법을 펼쳐 밖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악검림은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하는 듯하다가 화검상을 향해 말했다. "저들은 입이 그토록 지저분하고 또 나중에 다시 사형을 해치 게 될지도 모르는데 어째서 그렇게 그냥 풀어준 거죠?" 화검상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들은 비록 좋은 사람들은 아니지만 수뇌도 아니므로 모두 제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보다 랑아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 는지 어서 가보도록 하자." 동방량이 머물고 있는 좌측의 개방에 들어섰을 때에는, 비록 사태가 비슷하기는 했지만 상황은 아무래도 악검림의 경우와는 약간 달라 보였다. 역시 한동안 난타전을 벌인 흔적이 보이기는 했지만, 우선 동 방량은 그들의 복면을 모두 벗겨놓고 있었고 지금은 한창 열을 올리며 입씨름을 하고 있었다. "당신들은 지금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오. 나를 애송이라고 하는 것은 상관없지만 일단 한 사람이 죽고 나서도 그런 말을 할 수 있는지 두고 보겠소. 나의 사부님을 그런 식으로 모욕하다니 이는 죽어 마땅한 ……." 이곳을 습격한 사람들의 숫자도 악검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십여 명으로 보였는데, 화검상 등은 일단 안으로 들어선 이후 약 간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십여 명의 정파인들 가운데에는 아주 낯익은 사람들도 섞여 있었던 것이다. 바로 얼마 전에 화산파의 대청에서 보았던 성천익(成天翼)과 봉천학(封天鶴)이었다. 악검림은 그들을 보자 내심 크게 놀라 얼른 화검상의 뒤로 숨 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저들은 아까 그곳에 있었는데 언제 이렇게 이곳을 습격해온 것일까?' 소림사와 무당파의 사람들은 대개 묵묵한 편이었지만 성천익과 봉천학은 안색이 붉어진 상태에서 화검상을 노려보았는데, 이윽 고 성천익이 음흉하게 웃으며 말했다. "네놈은 정말 교활하기 짝이 없구나. 이미 우리가 이곳에 온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일부러 저 어린 놈을 시켜 우리를 모역 하게 했던 것이겠지?" 그러고 보니 그 두 사람은 얼굴이 붉어졌을 뿐만 아니라 양쪽 모두 퉁퉁 부어올라 있었는데, 그것은 조금 전에 동방량에게 얻 어맞아서 그렇게 된 것 같았다. 동방량은 화검상이 안으로 들어오자 말을 멈추고 옆으로 물러 나 있다가 이윽고 그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들은 모두 철면피일 뿐만 아니라 간악스럽기 짝이 없는 자 들입니다. 그들이 사부님을 심하게 모욕했기 때문에 저는 마악 우선 그들의 팔과 다리를 하나씩 자르려고 했었습니다." 화검상은 조용한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당신들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화해를 하겠다고 말을 했으면서 도 이렇게 나온다는 것은 너무나도 성의가 없는 짓이 아니오? 나 는 그 일을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하겠으니 당신들은 이만 돌아 가도록 하시오." 화검상이 그들의 혈도를 모두 풀어주고 몸을 돌리자, 다른 사 람들은 일제히 밖으로 신형을 날려 사라졌으나, 유독 성천익과 봉천학은 반대로 신형을 날려 각기 동방량과 동방리를 향해 덮쳐 들기 시작했다. 동방리는 무공을 연마하지 못했으니 그저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지만, 동방량은 그러잖아도 그들을 주시하고 있던 참이라 즉 시 이에 대응하고자 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게 무림야그 출력일 :: 98/11/20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3 권 제 67 장 - 1 평소라면 그 두 사람은 동방리와 동방량을 단숨에 제압하고도 남음이 있었겠지만, 이내 다시 마악 목적을 달성하려는 순간 몸 이 뻣뻣하게 굳어지고 말았다. 동방량은 순간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에 전력을 다해 반격했고, 이내 뻣뻣하게 굳어진 성천익의 몸에 복호권(伏虎券)이 작열하여 펑펑펑펑, 하는 가죽부대를 두드리는 듯한 요란한 소리와 함께 성천익의 몸은 뒤로 벌렁 나동그라져버렸다. 동방량은 다소 의아해 하다가 이내 화검상이 다시 손을 썼다는 사실을 알고는, 생각 같아서는 계속 손을 쓰고 싶었지만 성천익 을 그대로 두고 몸을 돌려 화검상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일행이 가운데의 객방으로 돌아오자 어느새 그 심마에 빠져 있 던 사마귀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모두 작은 탁자를 사이에 두고 자리하자, 이윽고 동방리가 화 검상을 향해 말했다. "조금 저의 이 사건들은 어딘가 심상치 않은 구석이 있어요. 특히 다른 것들보다도 그 사마귀라는 사람의 일은 좀더 생각해봐 야 할 것 같아요. 제가 알고 있는 바로, 그는 녹림맹(綠林盟)의 소맹주 무적극신(無敵戟神) 은붕구(殷鵬九)의 여러 손자들 중의 하나인데, 과연 그 정파인들과 한패일까요?" 화검상은 고개를 천천히 내저으며 말했다. "아직은 그렇다고 단정할 수 없는 일이오. 당신의 생각을 한 번 말해보시오." 동방리가 가볍게 눈빛을 빛내더니 말했다. "하긴, 저도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미흡한 점이 너무나도 많다 고 생각해요. 우선 그가 정파의 사람들과 합작하여 우리를 노린 것이라면 좀더 치밀하게 나왔을 것인데, 오히려 그는 너무나도 허술하여 마치 자신이 무슨 목적으로 온 것인지도 모르는 것처럼 보였어요. 하지만 지금의 상황에서 그가 그저 독단적으로 행동했 을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가 없는 노릇이고……, 게다가 심마에 빠져 정신이 이상해졌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행동한 것이라고는 더 더욱 생각할 수 없는 노릇이에요. 말하자면 어쨌든 그는 정파 인들과 합작하여 이곳에 나타났던 것인데, 너무나도 허술하여 그 들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자신은 정작 그것이 실패하리라고는 별로 생각해보지 못했다……. 이건 정말 복잡하 군요. 하여튼 그 이면에는 어떤 다른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요?" 화검상은 미소하며 말했다. "그러니까 그자의 배후에 무언가를 노리는 자가 있다는 말이 오?" 동방리는 가볍게 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흔히 이런 문제는 여러모로 허술하기만 하고 그 보이 지 않는 목적이 잘 파악되지 않기 때문에 사람을 맥 빠지게 만들 고 의문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곤 하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일 단 문제점이 발견되었다면 그것은 간과할 수는 없는 일이죠. 저 는 이번에 사마귀라는 사람이 나타난 것은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이면에 목적이 숨어 있는 것이라고 봐요. 그럼 대체 그 보이지 않는 목적이란 어떤 것일까요?" 기실 화검상은 아까 사마귀가 그 무슨 이인(異人)에 대해서 말 할 때 혹시 그 사람이 신비의 인물인 용화노인이 아닐까 하는 생 각을 할 뻔했다. 너무나 공교로울 정도로 사마귀가 하는 말은 용화노인에 대해 말하는 것 같았고, 은근히 화검상으로 하여금 그런 착각이 들도 록 유도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이것은 아주 이상한 일이다. 지나치게 예민한 반응일지는 몰라도, 당금의 천하에서 용화노 인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은 극히 제한되어 있다고 할 수 있는 데, 사마귀가 굳이 그렇게 곡선적 무공까지 거론하면서 그 사람 을 지칭했다는 ㅜ것은 정말로 이상한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혹시 이것은 그들이 사주한 것이 아닐까……?' 사마귀는 실제로 이전에 어떤 사람을 만났을지도 모른다. 하지 만 그것은 직접적인 것이 아니라 자신도 잘 분간할 수 없을 정도 로 간접적인 만남이었을 것이며, 그로 인해 그 자신이 어떤 확실 하지 않은 특별한 생각을 정리하게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지금의 화검상과 같은 무공의 경지에 올라 있는 사람은 자연 독심술과 같은 능력을 가지게 되는데, 화검상은 줄곧 사마귀에게 서 그가 일부러 거짓말을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별로 받아보지 못했던 것이다. 당금의 천하에서 화검상의 능력을 비교적 많이 알고 있고, 또 한 그러한 술수를 부릴 수 있는 사람들은 아마도 팔선(八仙) 정 도일 것이다. 사마귀는 이제까지 팔선에게 은연중에 세뇌를 당해 결국 이곳 까지 찾아오게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팔선은 무엇 때문에 그렇게 어렵게 공을 들여서 사마 귀를 화검상에게 보냈던 것일까? 그것은 혹시 화검상에게 용화노인(龍華老人)에 대한 단서를 좀 더 알아내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화검상으로서는 가능하면 일행에게 그 팔선(八仙)에 관한 얘기 를 들려주고 싶기는 했지만 그렇게 되면 자신의 의도가 팔선에게 노출될 염려가 있기 때문에 지금으로서는 그렇게 할 수 없는 입 장이었다. 따라서 화검상은 가볍게 미소를 지은 뒤 슬쩍 화제(話題)를 돌 리며 말했다. "지금으로서는 아직 모든 일을 분명히 알 수 없으니, 일단 밖 으로 나가 행동을 취하면서 천천히 생각해보도록 합시다." 화검상이 일행과 함께 객점을 나와 남궁세가(南宮世家)들에게 간략하게 용건 등을 말한 다음에 그 호위무사들 중의 하나가 안 으로 들어갔다 나온 후 이렇게 말을 하며 문을 열어주었다. "마침 소가주님께서는 대청(大廳)에 계시오. 어서 안으로 들어 가 보시오." 제법 잘 다듬어진 연무장(練武場)을 가로질러 대청의 안으로 들어서자, 남궁세가의 소가주 창궁검신(蒼穹檢身) 남궁원도(南宮 遠圖)는 과연 대청의 태사의에 홀로 앉아 있다가 몸을 일으키며 화검상을 맞이했다. "이거 오랜만이오, 화공자(華公子)! 나도 그간 당신에 대한 소 문은 익히 듣고 있었소. 그래 오늘은 또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이 곳을 다시 찾아주셨소?" 이곳 대청에서는 과거 화검상을 에워싸고 한판의 격전(激戰)이 벌어졌었기 때문에, 화검상으로서는 이곳에 들어서자 우선 그 당 시의 일들이 생생하게 뇌리에 떠오르는 것 같았다. 화검상은 간단히 포권으로 예를 표한 다음에 말했다. "소생이 오늘 이곳을 찾아온 것은 무슨 다른 일이 있어서가 아 니고, 또한 저번처럼 심한 폐를 끼치지도 않을 것이니 염려하지 않으셔도 좋을 것입니다." 낭궁원도는 입가에 가벼운 고소(苦笑)를 지으며 말했다. "알겠소. 조금 전에 얘기를 듣기는 했지만, 그 밖의 다른 일이 라고 해도 나는 상관하지 않을 것이니 그렇게 경계하지마시오. 자, 우선 앉읍시다." 화검상은 자리에 앉은 다음 미소하며 말했다. "이렇게 좋지 못한 불청객(不請客)을 편히 맞아주시니 뭐라고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군요." 다시 태사의에 앉은 낭궁원도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그런 말씀 하지마시오. 당금 천하(天下)의 사정으로 볼 때 화 공자와 같은 분은 내가 이렇게 맞이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영광 일 것이오. 으음, 저 두분은 내가 오늘 처음 보는 사람들인 것 같 은데 내게 소개해주지 않겠소?" 화검상은 간단히 말했다. "그들은 제가 이번에 받아들인 제자(弟子)와 그리고 내자(內子) 가 될 사람입니다." 남궁원도는 문득 안색이 가볍게 변하여 동방량과 동방리의 얼 굴을 주시하다가 웃으며 말했다. "화공자의 제자가 되었다면 실로 대단한 인재(人才)이겠구려. 그리고, 헛헛! 어쨌든 화공자는 천하의 영웅(英雄)이라고 할 수 있으니 저런 미인(美人)들을 거느린다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 고, 이것은 축하해야 할 일이외다." 동방량은 화검상의 등뒤에 서서 여전히 묵묵했고, 동방리는 아 무래도 약간 어색한지 안색을 상기시키며 남궁원도를 향해 말했 다. "남궁세가의 창궁검신(蒼窮劍神)은 문무(文武)를 겸비한 대단히 훌륭하신 분이라고 들었는데, 과연 명불허전(名不虛傳)이로군요. 초면인데도 저를 이렇게 잘 보아주시니 뭐라고 감사의 말씀을 드 려야 할지 모르겠어요." 남궁원도는 대소(大笑)를 하며 말했다. "핫핫핫, 이거야말로 정말 기분좋은 일이오. 나는 본래가 소문 처럼 그렇게 대단하지 않고 그저 기분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이외 다. 이렇게 미인에게 칭찬도 들었으니 화공자, 우리 나중에 다시 만나 술이나 한잔하는 것이 어떻겠소?" 화검상은 담담히 웃으며 말했다. "소생은 이제 의지할 곳 없이 떠도는 몸인데, 선배께서 그런 기회를 주신다면 소생이야말로 영광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때 갑자기 안쪽의 문이 열리며 남궁설완(南宮雪完)이 안으로 들어섰다. 남궁원도는 슬며시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가며 말했다. "화공자, 그 일은 이미 서로간에 약속이 되었으니 나중에 발뺌 하지마시오! 자, 그럼 다음에 다시 보도록 합시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게 무림야그 출력일 :: 98/11/20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3 권 제 67 장 - 2 남궁원도가 밖으로 나가고 나자, 남궁설완은 이윽고 화검상의 앞으로 다가와서 차가운 기색(氣色)으로 말했다. "당신은 정말 어이가 없는 인간(人間)이로군요. 어째서 나를 찾 아온 것이죠? 설마 하니 그사이에 벌써 일을 매듭 짓기라도 한 것인가요?" 말할 것도 없이 화검상은 지금 그녀를 만나 보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다. 화검상은 앉은 자세 그대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내가 보기에 낭자(娘子)는 이런 일에 매우 서툰 것 같소. 이런 일은 생각보다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오. 우선 서로간의 조건에 대해서 좀더 명백히 해야 하고, 게다가 그 이유에 대해서도 아무 래도 약간은 내게 알려줘야 할 것이오. 나는 본래 이곳을 굳이 찾아오고 싶은 것이 아니었으나 바로 그 때문에 실례를 무릅쓰게 된 것이오." 남궁설완은 약간 주저하는 듯하다가, 미간을 찌푸리며 대청의 한쪽 구석에 있는 작은 방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럼 저쪽으로 가서 얘기를 나누도록 해요." 그 작은 방은 대청으로 여러 가지 회의(會議)가 있을 경우를 대비하여 그에 필요한 간단한 물품이나 자재 등을 쌓아두고 있는 곳이었다. 화검상이 그녀의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서자, 남궁설완은 냉랭 (冷冷)한 기색으로 전음(轉音)으로 말했다. "내가 이미 말하지 않았나요? 하기 싫으면 그만두면 될 일이지 어째서 나를 이렇게 귀찮게 하죠? 흥, 내 이미 벌써부터 그 일을 후회하고 있었어요. 이제 내가 한 말을 모두 취소할 테니 당신을 그만 돌아가도록 하세요." 작은 방의 한쪽에는 손바닥만한 창문이 매달려 있었는데, 지금 황혼(黃昏)의 저녁노을이 그곳을 통해 불그레하게 안으로 비춰들 고 있었다. 화검상은 그러한 광경을 잠시 바라보다가 약간 언성을 높여서 말했다. "낭자는 너무나도 나를 모르고 있군. 나는 이미 그 얘기를 들 었고, 또한 바쁜 와중에도 이렇게 어렵게 낭자를 찾아오게 되었 소. 그런데 지금에 와서 그 일을 그만두라니! 후후후, 낭자는 지 금 나를 놀리는 것이오, 아니면 장난을 하자는 것이오? 만일 장 난이었다면 나는 순순히 물러날 수는 없고 최소한 낭자의 오빠를 만나 한 번 따져보는 수밖에 없소." 남궁설완은 안색이 약간 창백해지는 듯하더니 당황해진 표정으 로 전음으로 말했다. "음성을 낮추고 전음으로 말해요! 누가 장난이라고 했나요? 다 만 당신이 ……, 흥! 당신은 이미 모든 사항을 알고 있으면서도 지금 나를 놀리고 있군요. 그렇다면 마음대로 해요! 이미 나를 해 치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면서도 이렇게 다시 교활(狡猾)하게 나오 다니, 정말 철면피로군요!" 화검상은 짐짓 미소를 지은 뒤에 전음으로 말했다. "고정하시오. 나는 그저 한 번 해본 소리에 불과하오. 내가 그 사이에 어떻게 모든 일을 알 수가 있겠소? 게다가, 혼인(婚姻)할 사람이 저렇게 옆에 있는데 무엇 때문에 낭자를 다시 해치려고 하겠소? 자아, 이제부터는 정식으로 그 일에 대해 논의(論議)해보 도록 합시다. 공연히 얘기가 길어지면 서로가 좋지 않을 것이오." 남궁설완은 살벌한 시선으로 화검상을 한동안 노려보다가, 이 윽고 가볍게 한숨을 내쉰 다음에 전음으로 말했다. "좋아요, 그럼 지금은 상황이 좋지 않으니 일단은 당신의 말을 그대로 믿기로 하죠. 당신은 지금 대체 내게 무슨 말을 하겠다는 거죠?" 화검상은 전음으로 말했다. "이미 말했듯이, 내가 과연 이 험한 일을 해주고 얼마만한 대 가를 받을 수 있는지 분명히 알아야만 이를 시작할 수 있지 않겠 소? 만일 내가 일을 다 마친 이후에 낭자가 그야말로 시치미를 뗀다면 나는 마치 닭 쫓던 개가 지붕을 올려다보는 꼴이 되지 않 겠소?" 남궁설완은 그만 가볍게 실소(失笑)하고 말았다. "당신은 이미 저렇게 현숙(賢淑)한 부인을 두게 되었는데 무슨 욕심이 그리도 많죠? 설마 하니 아직도 내게 욕심(慾心)을 품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하긴 호호……, 당신은 본래부터 어떤 목적 을 가지고 내게 일부러 접근했던 것이었으니 내게 특별한 감정 (感情) 따위가 없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죠." 화검상은 자못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전음으로 말했다. "내게 어떤 사정이 있었다는 것은 역시 부인하지 않겠소. 하지 만 내가 순수하게 낭자에게 마음이 끌렸던 것은 사실이오. 다만 기개가 너무나도 부족하여 낭자가 나를 벌레 보듯 하니 나로서는 그런 것에만 매달릴 수가 없어서 포기하게 된 것이요." 남궁설완은 다시 표정이 칼날같이 차갑게 변해서, 전음으로 말 했다. "좋아요, 당신이 그렇게 원하니 내 그 문제에 대해서는 분명히 말해주도록 하지요. 당신이 만일 그 일을 처리해준다면, 나는 정 말로 도의(道義)에 벗어나지 않는 한 무엇이든 한 가지 부탁을 들어주도록 하겠어요. 하지만 지금 당신에게 그 이유에 대해서는 말해줄 수가 없어요." 화검상은 약간 의미 심장한 표정이 되었다. "낭자도 알다시피 나는 그리 좋은 사람이 아니오. 따라서 혹시 나는 그 조건으로 낭자의 몸을 요구하거나 혹은 나의 두 번째 부 인(婦人)이 되어달라고 요구할지도 모르오. 그래도 상관이 없다는 말이오?" 남궁설완이 안색이 다소 상기되어 화검상의 얼굴을 노려보았 다. "당신이 만일 내 몸을 요구한다면 그것이 비록 도의에 어긋난 다고 해도 나는 들어줄 수가 있어요.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니까 요. 하지만 당신은 껍데기뿐인 내 몸을 데려다가 어디에 쓰겠다 는 거죠?" 화검상은 담담히 웃으며 대꾸했다. "오해하지 마시오. 그건 그저 농담이었소. 나는 지금 혼인할 사 람이 있고, 거기에 다시 다른 여자(女子)를 더 맞아들 없소. 게다 가 나는 낭자의 몸을 건드릴 생각도 없으니 안심해도 좋을 것이 오. 나는 다만 낭자가 그래도 내가 한때마나 짝사랑을 했던 사람 이기에 뭔가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하여 확인해본 것일 뿐이 오. 자, 그 이유에 대해서 내게 말해주지 않겠소?" 남궁설완은 잠시 화검상의 얼굴을 주시하다가 전음으로 말했 다. "당신의 말을 제법 그럴 듯 하군요. 하지만 어쨌든 이미 말했 듯이 나는 그 이유에 대해서는 말할 수가 없어요. 당신이 만일 그것 때문에 이 일을 할 수 없다면 당장 그만두도록 하세요." 화검상은 손을 내저었다. "기왕 시작한 일이니 그렇다고 해서 그만둘 수는 없는 노릇이 지. 하지만 나는 보다시피 지금의 상황에서 행동반경이 넓을 수 가 없고 또한 모든 사람들이 주시하고 있기 때문에 무슨 일을 은 밀하게 행할 수도 없소. 그러나 그 운소군주(雲少君主)를 제거하 기 위해서는 우선 낭자가 어떤 방법으로든 그녀를 유인하여 계기 를 만들어줘야만 하오." 그때 갑자기 창 밖에서 가벼운 기척이 일었으므로, 남궁설완은 말을 하려다 말고 멈칫하여 즉시 창 밖을 내다보았다. 창 밖에는 아무도 없었고 그저 호위무사들이 먼 곳에서 왔다갔 다할 뿐이었다. 남궁설완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전음으로 화검상에게 말했다. "알았어요. 그럼 그 일이 준비되는 대로 다시 당신에게 연락할 테니 이제는 그만 돌아가도록 하세요." 객점으로 돌아가는 길에 동방리는 뭔가 깊이 생각해보는 듯하 더니 문득 입을 열어 화검상에게 말했다. "그 남궁낭자(南宮娘子)는 보기보다는 괜찮은 사람인 것 같아 요. 그녀는 폐쇄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고 현실적이기는 하지만, 주관이 분명하고 성품(性品)이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화검상은 웃으며 말했다. "내가 아직도 그녀에게 미련을 가지고 있을 것 같아서 그런 말 을 하는 것이오? 하지만 나는 이미 그대와 한평생을 함께 할 것 을 약속한 사람이고, 다른 여자들에게는 흥미가 없어졌으니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을 것이오." 악검림이 나서서 말했다. "화사형, 나와도 혼인(婚姻)하겠다고 한 말을 잊어서는 안 돼 요. 알았죠?" 화검상은 안색이 다소 붉어져서 화제를 돌리며 말했다. "자아, 이런 곳에서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면 좋지 않으니 어서 돌아가도록 합시다." 일단 잡아놓은 객점이 있기는 하지만 이런 곳에서는 잠을 자는 것은 물론이요, 식사를 하는 것도 곤란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 다. 비록 객점에서 간단한 식사를 주문할 수 있다고는 해도 일일이 그들이 가져온 음식들을 점검해본다는 것은 피곤해질 수밖에 없 을 것이다. 생각 같아서는 주루에 들러서 식사를 하고 객점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아직은 별다른 사건은 없어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기에 일행은 곧장 다시 객점으로 돌아갔다. 이미 주위가 어둑어둑해져 있었고, 지금쯤이면 점원들이 방청 소를 다해놓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잠시라도 쉴 수 있을 것 이라고 짐작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고 다시 귀찮은 일들이 일행 을 기다리고 있었다. 객방(客房)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우선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아주 낯익은 얼굴들이었다. 화검상은 일순 마음이 몹시 쓰라려오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 다. 방안에 와 있는 사람들은 모두 세 사람이었는데, 그들 가운데 에는 그의 모친인 화산신녀(華山神女) 풍귀월(馮歸月)도 섞여 있 었던 것이다. 촛불이 밝혀져 있는 실내에 백색(白色)의 깨끗한 의복을 걸치 고 있는 풍귀월의 모습은 여전히 아름답고 고아(高雅)한 듯이 느 껴졌다. 화검상은 처음에는 차마 모친의 얼굴을 마주 바라볼 수가 없어 서 고개를 돌렸지만, 이내 그녀를 마주 바라보며 말했다.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어머니, 아까 낮에는 미처 여유가 없어 서 찾아 뵙고 인사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풍귀월은 잠시 화검상의 얼굴을 주시하다가, 이내 걸음을 옮겨 동방리에게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매우 다정한 듯한 음성으 로 말했다. "네가 바로 내 아들의 안사람이 될 사람이냐? 조금 약해 보이 기는 하지만 그래도 매우 참하게 생겼구나. 이리와서 나와 얘기 좀 하지 않겠느냐?" 동방리는 즉시 그 자리에 주저앉으며 그녀를 향해 큰절을 올렸 다. "소녀 동방리가 어머님을 뵈어요." 악검림은 뒤에 서서 그러한 광경을 바라보며 속으로 고민을 하 며 생각했다. '나도 지금 저 동방낭자처럼 어머님께 인사를 올려야 하지 않 을까……?' 풍귀월은 동방리의 인사를 받고 나서 그녀의 손을 잡아 탁자 쪽으로 이끌며 다시 다정하게 말했다. "고맙다. 내 아들이 네게 어떤 얘기를 했는지는 몰라도 나도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란다. 천하의 그 어떤 부모(父母)가 자식 이 잘못되는 것을 바라겠느냐? 나는 그 동안 많은 노력을 기울이 기는 했지만 그것이 잘되지 않았을 뿐이란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泳 汰 무림야그 출력일 :: 98/11/20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3 권 제 68 장 암천(暗天) 제 68 장 암천(暗天) 동방리는 그녀와 함께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앉으며 공손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분께선 어머님이 보기 드물게 인자하시고 좋으신 분이라고 하셨어요. 그런데 뵙고 보니 어머님은 정말로 훌륭하신 분일 뿐 만 아니라 아름다우신 분이세요." 풍귀월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으며 화검상을 돌아본 뒤에 말했 다. "상아의 아버지는 이미 죽었지만 역시 나쁘지 않은 사람이었 지. 나도 한때는 그이를 사랑했었고, 또한 저 아이를 낳았었는데 그만 그이는 나와 저 아이를 버리고 세상을 떠나버리고 말았단 다. 그가 만일 아직 살아서 너를 보았다면 아마도 반드시 기뻐했 을 것이다." 동방리는 공손히 웃으며 말했다. "저희 부모님은 저희가 어렸을 적 난리통에 두 분 다 돌아가시 고 말았지요. 그래서 저희는 항상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을 부러워했답니다. 소량(少亮)! 어서 이리 와서 인사드려." 동방량은 고개를 돌려 화검상의 얼굴을 바라보고는, 즉시 풍귀 월에게 다가가 공손히 인사를 했다. "저는, 동방량입니다." 풍귀월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여 보였다. "너의 자질(資質)은 훌륭해 보이는구나. 제법 남자다운 기개(氣 槪)도 있어 보이고……. 네가 내 아들의 제자가 되었다면서?" 동방량은 얼굴이 벌게지며 간단히 대답했다. "예, 그렇습니다." 악검림이 망설이다가, 이윽고 풍귀월의 앞으로 다가와서 새빨 개진 얼굴로 공손히 절하며 말했다. "저어, 제……, 제자가 인사올립니다." "음……." 풍귀월은 그녀의 인사에 대해서는 그저 간단히 고개만 끄덕여 보인 다음에, 다시 화검상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왜 거기에 그렇게 서 있느냐? 이리 와 앉아서 잠시 그간의 얘 기를 나눠보도록 하자꾸나." 화검상은 잠시 무겁고도 우울한 표정으로 모친의 얼굴을 바라 보다가, 이윽고 탁자의 앞으로 다가가 앉으며 말했다. "혹시 무슨 다른 이유가 있어서 오신 것은 아닙니까?" 풍귀월은 안색이 가볍게 변하여 두 눈에서 일순 푸른 독기(毒 氣)를 번뜩였지만, 이내 다시 표정을 부드럽게 변모시키며 말했 다. "호호, 너는 이상한 말을 하는구나. 내가 내 아들을 만나러 오 는데 거기에 무슨 다른 이유가 있어야만 한다는 말이냐?" 풍귀월의 뒤에 서 있던 방귀춘(方歸春)이 음침하게 웃으며 그 말을 받아 말했다. "흐흐, 너는 실언한 것이다. 보다시피 풍사자(馮師姉)는 그냥 너를 만나 보러 온 것이고, 우리는 다만 풍사자를 호위(護衛)하기 위해 따라온 것이다." 방귀춘의 옆에 서 있는 녹귀보(鹿歸寶)는 약간 음산(陰散)한 기 색으로 묵묵히 있는 데 반해 그 방귀춘은 안색이 불그레한 것이 이전보다 무공이 더욱 증가된 것 같았다. 이전에 화검상은 방귀춘의 몸을 상하게 하고서 그에게 다시 적 은 심법(心法)을 전수해주었는데, 아마도 그는 하는 수 없이 그 심법을 계속 연마(鍊磨)하여 그 효과를 보게 된 모양이었다. 화검상은 가볍게 고소(苦笑)하며 말했다. "그럼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혹시 어머니도 제가 만든 그 비 급을 다르게 연마해온 것이라면, 이제부터라도 그것을 중지하고 그 비급을 처음부터 바르게 연마하도록 하십시오. 지금으로서는 오직 그러한 것만이 심마(心魔)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고, 다 른 특별한 길은 없습니다. 그것은 저 사람의 경우만 봐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방귀춘은 화검상이 특별히 자신을 지목하자, 순간 뭐라고 할말 이 있는 듯이 입술을 달싹거렸다. 그는 아마도 아직도 몸을 땅속에 묻어야만 하는지에 대해서 물 어보고 싶은 것 같았다. 풍귀월은 그 말을 듣자 동방리의 손을 잡으며 즉시 몸을 일으 켰다. "아무래도 우리는 좀더 자세한 얘기를 나누기 위해 자리를 옮 겨야 하겠구나, 얘야, 너는 설마 하니 반대하지는 않겠지? 만일 내가 의심스럽다면 너의 동생을 함께 데려가도 무방하다." 동방리는 무공을 연마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의 강제적으로 이 끄는 그녀의 손길에 전혀 대항할 수가 없었다. 풍귀월의 손에 공력(功力)이 실려 있어서 그녀는 이내 손목이 끊어질 것처럼 아파오고 안색이 핼쑥하게 변했지만, 그것을 두고 뭐라고 대꾸할 수도 없었다. 지금의 상황에서 동방량을 데려가도 무방하다고 했지만, 실상 동방량이 그녀에게 무슨 힘이 될 수 있겠는가? 동방량은 자신의 누나가 풍귀월에 의해 거의 끌려가다시피 하 는 것을 보고 그만 어찌할 바를 몰라 두 눈이 휘둥그래졌다. 화검상은 문득 그것을 보고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 "어머니, 그녀를 데려갈 수가 없습니다." 기이하게도 화검상의 그 말이 떨어지자 동방리는 손이 자유로 워지는 것을 느끼고, 얼른 몸을 움직여 화검상의 등뒤로 피할 수 가 있었다. 풍귀월은 일순 넋 나간 듯한 표정을 짓더니 즉시 그 자리에서 쓰러져 뒹굴면서 소리를 질렀다. "아, 아니 네가……, 네 녀석이 감히 이 에미에게 이런 짓을 하 다니! 아아, 이 더러운 녀석아! 네 녀석이 이 에미를 이렇게 만들 수가 있느냐? 어서 이 독수(毒手)를 풀지 못하겠느냐? 나는 그래 도 너를 어려서부터 젖을 먹여서 길러왔는데……,. 이대로는 죽을 수가 없다! 어서, 이 사악(邪惡)한 수법을 풀어라. 다른 사람들이 모두 이 사실을 알기 전에……." 악검림 등은 처음에는 정말로 화검상이 동방리를 구하기 위해 손을 쓴 것인 줄로 알았으나, 이내 화검상의 표정 등을 보고는 이 일이 뭔가 아주 이상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화검상의 표정이 아주 무서운 반면에, 방귀춘과 녹귀보의 안색 (顔色)이 음흉(陰凶)하고 득의(得意)한 표정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었다. 과연 아니나다를까, 풍귀월이 그렇게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갑자기 방문과 창문, 그리고 사방의 벽이 일 제히 허물어지면서 그곳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 이었다. 그들은 비단 그 숫자도 거의 백여 명에 다할 뿐만 아니라, 그 개개인의 신분도 하나같이 엄청난 사람들이어서 악검림과 동방량 은 거의 동시에 그만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소림사(少林寺)와 무당파(武當派), 개방( 幇), 화산파(華山派) 등 정파세력(正派勢力) 거의 대부분의 문파(門派)의 수뇌급 인물 들과, 흔히 세외삼세(世外三勢)라고 불리는 천륭무가(天隆武家), 성모궁(聖母宮), 성수곡(聖手谷)의 사람들도 그 가운데 포함되어 있었다. 대체 어떻게 해서 이런 사람들이 이렇게 빠른 시간 동안에 한 꺼번에 나타날 수가 있었는지 그것까지는 몰라도, 이들은 실로 당금의 정무맹(正武盟)의 거의 주축을 이루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악검림과 동방량이 즉시 안색이 변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풍귀월은 그들이 나타나자 더 이상 견딜 수가 없는 듯이 몸을 심하게 떨어대다가, 이윽고 숨이 넘어갈 듯한 음성으로 말을 이 었다. "너의 아비와 할애비도 그토록 대악무도(大惡無道)했는데 실로 너마저 이렇게 사악(邪惡)한 길에 빠져서 영원히 헤어 나오지 못 하다니, 아아……. 네가 원한다면 다른 곳에 가서 죽어줄 테니 제 발 지금은 죽이지 말아다오! 여, 여러분……, 그만 여러분은 모든 것을 보고 말았군요! 하지만 이것은 제가 몹쓸 병에 걸려서 그러 는 것이지 제 녀석이 한 짓이 아니므로, 부디 저의 자식은 죽이 지 말아주세요……." 개방의 신개(神 ) 홍천구(洪千駒)가 그 말을 받아 즉시 크게 분개한 듯이 소리쳤다. "저런 녀석을 끝까지 감싸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소? 저 녀석이 한 짓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미 다 보았소! 저런 대악무도(大惡無 道)한 녀석은 도저히 살려둘 수가 없으니 그대는 양해하시오!" 풍귀월은 이미 혼절한 듯 그대로 바닥에 늘어진 채 아무런 말 도 없었다. 홍천구의 뒤를 이어 그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크게 분개한 듯 앞장서서 소리치기 시작했다. "아미타불, 부모의 마음이란 역시…… 자식이 죽이려고 하는데 도 그 자식을 위해 다른 곳에 가서 죽어주겠다고 말을 하는구나, 아미타불……." "저 미친 자식은 그 죽은 아비, 할애비보다 더욱 대악무도한 자식이다! 당장에 죽여버려야 한다! 여러분, 어서 함께 손을 쓰도 록 합시다!" "그렇고! 저런 놈을 그냥 둔다면 사람들은 천하에 정의(正義)라 는 두 글자가 아예 없다고 생각할 것이오. 저런 놈은 사마외도 (邪魔外道)보다도 오히려 더욱 간악(奸惡)한 자이니 무엇보다도 먼저 없애버려야만 하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무림야그 출력일 :: 98/11/20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3 권 제 68 장 - 1 "그야 사마외도라고 해도 저 녀석에 비하면 차라리 순진무구 (純眞無垢)하다고 할 수가 있지. 으흐흐! 여러분, 비단 저 녀석뿐 만 아니라 저 계집들도 한꺼번에 처치해버리도록 합시다!" 그 수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그렇게 떠들어댔기 때문에 장내 는 시끌벅적하여 귀가 다 멍멍해질 정도였으나, 어느 한 순간 그 들의 고함소리가 거짓말처럼 사라지더니 이윽고 그들이 한걸음씩 일행을 향해 공력(功力)을 일으키며 다가들기 시작했다. 무려 백여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공력을 일으키며 다 가 들었기 때문에 비단 장내에는 긴장감과 살기(殺氣)가 가증되 어 갔을 뿐만 아니라, 회오리와 같은 돌풍이 일어났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일제히 떠들어댔기 때문에 동방량은 정 신이 하나도 없어져서 혹시 정말로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이 들기도 했으나, 이내 이를 악물고 그게 아니라고 속으로 열심 히 되뇌기 시작했다. 악검림은 처음에는 놀라고 당혹스러워서 넋을 잃은 표정이 되 었으나, 이내 정신을 차리고 목소리에 공력(功力)을 실어서 소리 쳤다. "이것들 봐요, 여러 선배님들! 이건 순전히 오해예요! 저분은 지금 화사형에게 해침을 당한 것이 아니라…, 아아, 이걸 대체 어 쩌지……? 좋아요! 만일 여러분이 우리 화사형을 해칠 생각이라 면 먼저 나와 한 수 겨루어야만 할 거예요! 나는 오늘 목숨을 초 개와 같이 버리고 화사형을 위해 옳고 그름을 가리도록 하겠어 요! 하지만 만일 거기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다면 그것은 오로지 당신들의 잘못이니, 그건 당신들이 책임을 지도록 하세요!" 말과 함께 악검림은 허리춤에서 장검(長劍)을 뽑아들고 공력을 일으켰다. 그녀는 처음에는 아직도 긴장이 되고 두려운지 전신이 덜덜 떨 렸으나. 이내 점차로 몸과 마음이 안정되어 신검합일(身劍合一)을 이루고, 전신에 맑고 고요한 기운(氣運)이 흘러넘치기 시작했다. 악검림이 검을 세워든 자세 그대로 그렇게 거의 무아지경(無我 之境)에 빠져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계속해서 다가들고 있 었는데, 이윽고 그 거리가 일행과 이 장여에 이르자 문득 뒤에 서 있던 한 사람이 맑은 음색으로 입을 열어 말했다. "잠깐! 오늘의 이 일이 비록 분명하기는 하지만 저자는 알다시 피 흉악(凶惡)하기 짝이 없는 자이오. 저자는 자신의 부모마저 해 치려고 했으니 혹시 이미 이곳에 우리를 해치기 위해 어떤 사악 (邪惡)한 술책(術策)을 부려놓았을지도 모르는 일이오. 실로 저런 자 하나 때문에 우리 정파무림(政派武林)이 한꺼번에 무너져서는 안 되는 일이므로, 일단 이 상태에서 물러나 좀더 자세히 이 일 을 검토해보도록 합시다!" 그렇게 말한 사람은 백발(白髮)의 노인으로, 바로 화검상이 얼 마전에 대한 적이 있는 천륭무가(天隆武家)의 석숭무(石崇武)였 다. 지금 그 석숭무의 주위에는 소림방장(少林方丈) 무난(無難)을 비롯하여, 무당장문인(武當掌門人) 현학(玄鶴), 개방방주( 幇幇 主) 천왕개 홍두자, 그리고 성모궁(聖母宮)의 소궁주(少宮主)로 보이는 흑발(黑髮)의 노파(老婆)와 성수곡(聖手谷)의 소곡주 황진 (黃眞) 등이 서 있었다. 그들은 금방이라도 일행에게 덮쳐들 듯했으나, 석숭무의 그러 한 말이 떨어지자 이내 마치 거짓말처럼 뒤로 후퇴하며 썰물처럼 빠져나가 사라져버리기 시작했다. 석숭무 등도 역시 마찬가지로 그 사람들의 뒤를 따라 즉시 사 라져버리고 말았다. 이제는 거의 폐허처럼 변한 이곳에 남은 사람들은 일행과 쓰러 져 누워있는 풍귀월, 그리고 방귀춘과 녹귀보뿐이었다. 풍귀월은 이윽고 슬그머니 몸을 일으키더니 다소 처연한 듯한 기색으로 화검상을 향해 말했다. "너는 차라리 그때 죽거나 돌아오지 말았어야만 했다. 너는 그 것이야말로 진정한 효도(孝道)라고 생각되지 않느냐? 호호……, 이런 말을 하는 이 에미도 마음은 무척 아프단다. 나는 네게 최 소한의 양심(良心)이 있다면 자결하기를 바라면서 기다리겠다. 잘 가거라!" 풍귀월이 그렇게 말하며 신형(身形)을 날리자, 방귀춘도 녹귀보 와 함께 그녀의 뒤를 따라 신법(身法)을 펼치면서 음흉한 어조로 말했다. "흐흐, 네놈은 두렵지도 않느냐? 하지만 오늘의 이것은 그저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만 할 것이다……!" 동방리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나는 이제야 그들이 어째서 지금까지 우리에게 직접 손을 쓰 지 않을 것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들은 당신에게 좀더 나 쁜 평판을 뒤집어씌우고, 그것을 명분(名分)으로 삼아 대대적인 공격을 가하려고 한 것이에요." 화검상은 이제까지 흡사 석상(石像)이 되어버린 것처럼 가만히 앉아 있다가, 이윽고 씁쓸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아리, 당신은 그토록 현명(賢明)한데 오늘날 나와 같은 사람에 게 시집오게 되어 그러한 고초를 겪게 되었으니 혹시 후회하는 마음이 들지는 않소?" 동방리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전혀 그렇지 않아요. 오히려 저는 시간이 지날수록 당신과 함 께하게 된 것을 기뻐하고 행복해 하고 있어요. 그렇게 본다면 저 는 세상에서 가장 복(福)이 많은 사람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어요." 악검림이 검을 거두고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정말 이상한 일이야. 어째서 그들은 조금 전에 바로 손을 쓰지 않은 것일까?" 동방리는 그녀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건 그들은 이미 목적한 바를 달성했고, 게다가 아직 그들만 으로는 이분을 이길 수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죠." '맞아 하지만 나는 아까 어째서 내가 화사형을 지켜드려야 하 겠다고 생각한 것일까?' 악검림은 그렇게 속으로 생각을 굴리면서 화검상을 바라보다가 그만 안색을 새빨갛게 붉히고 말았다. 그때 갑자기 동방량이 바닥에 주저앉으며 쿵쿵, 하고 머리를 바닥에 부딪치기 시작했다. 화검상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며 웃으며 말했다. "무슨 일이냐? 너는 갑자기 이마가 가렵기라도 한 것이냐?" 동방량은 일순 두 눈에서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말했다. "제자는 감히 조금 전에 사부님을 의심했었습니다. 이는 실로 개만도 못한 자식입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당장 이렇게 죽어버 리고 싶습니다." 화검상은 담담히 웃으며 말했다. "사람이란 누구나 실수를 하기가 쉬운 것이다. 만일 실수를 했 다면 그것을 인정하고 스스로 고치려고 노력(努力)하면 되는 것 이지. 너는 앞으로도 좀더 그런 노력을 할 생각이 있느냐?" 동방량은 아직도 눈물 자국이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들며 말했 다. "예, 제자는 반드시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 다." 화검상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좋다, 너의 그러한 자세는 매우 훌륭하다. 나는 미리부터 너의 이러한 점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네게 기대하는 바도 컸던 것이 다." 악검림이 슬그머니 다가와 화검상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화사형……, 아무래도 여기서는 잘 수가 없을 것 같으니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겨야 하겠죠?" 그 객점에서 더 이상 지낼 수가 없게 되었으므로 다른 객점을 찾아봐야 하겠지만, 다른 객점을 찾아간다고 해도 역시 이와 같 은 일이 다시 벌어지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는 일이므로, 일행 은 도중에 거처를 다른 곳으로 바꾸기로 했다. 무엇보다도 다시 그러한 사태가 벌어질 경우에 다른 무고한 사 람들이 다칠 우려가 있으므로,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화검상 자 신이었다. 비록 이렇게 금방 다시 이곳을 떠난다고 해도 이제 그의 본래 의 의도에는 크게 지장을 줄 것이 없으리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 었다. 점포에 들러서 식량과 물품 등을 충분히 구입한 다음에, 화검 상은 일행을 이끌고 정무맹(正武盟)의 총단(總壇)을 벗어나 서쪽 으로 방향을 잡았다. 마차로 갈 수 없기 때문에 동방리는 화검상이 안아들었고, 악 검림과 동방량은 각기 구입한 물품들을 나누어서 등에 가득 짊어 지고 신법(身法)을 펼쳐 그의 뒤를 따랐다. 이제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일행을 제지하는 사람들은 하나도 없었다. 길을 가는 도중에 화검상은 간혹 어두운 밤하늘을 높이 올라 거처로 삼을 만한 곳을 조사했고, 이윽고 정무맹의 총단과 대략 오십여 리 떨어진 지점에서 거처로 삼을 만한 산 속의 동굴(洞 窟)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정무맹의 총단을 떠났을 때도 그래도 아직 저녁 무렵이었는데, 그 동굴에 도착해보니 벌써 자정이 거의 다되어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짐승들의 거처였던 것으로 보이는 그 동굴 의 내부를 대강 치우고 나서 잠자리를 마련했고, 한시라도 빨리 휴식을 취하고자 했다. 이런 곳에서는 침실을 나눌 수가 없는 일이므로, 동방리와 화 검상은 그저 나란히 옆에서 잠을 잘 수 있는 것만으로 만족을 해 야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무림야그 출력일 :: 98/11/20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3 권 제 68 장 - 2 동방량은 짐을 풀어놓고 잠자리를 마련하는 등의 바쁜 시간이 지난 후에도 자리에 눕지 않고, 마치 동굴을 지키는 사람처럼 입 구(入口)의 옆에 앉아서 곰곰이 뭔가 생각을 하는 듯한 모습이었 다. 당연히 동방리도 심신(心身)이 지쳐있기는 하지만 잠이 잘 오 지 않는지 문득 눈을 뜨고 화검상을 향해 말했다. "그들이 우리가 이런 곳으로 오게 될 것이라고 예측을 했을까 요? 앞으로 그들은 어떻게 나오게 될까요?" 화검상은 잠시 생각해보는 듯하다가 말했다. "아마 그들은 이런 것을 예상하지는 못했겠지만 이렇게 되었다 고해도 상황이 크게 달라지짖는 않을 것이오. 필시 그들은 우리 가 멀리 달아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오." 그러고 보니 악검림이 아까 밖으로 나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었으므로, 화검상은 몸을 일으켜 천천히 밖으로 걸어나갔다. 밖은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고, 하늘에는 구름이 가득 끼어 있 어서 별빛마저 보이지 않았다. 비록 화검상과 같은 사람에게는 이러한 어둠이 조금도 장애(障 碍)가 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러나 본래 이 어둠이라는 자체가 간혹 그에게도 심리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법이다. 지금의 시점에서 본다면 상황은 그리 더 나빠진 것은 아니지 만, 워낙 어려운 일을 하고 있는 것이기에 과연 앞으로의 일들이 그의 의도대로 되어줄지는 그도 알 수 없을 것이다. 만일 모든 일이 잘되어간다면 그것은 다행스런 일이겠지만, 그 반대가 된다면 앞으로의 사태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화검상이 잠시 무거운 표정이 되어 암천(暗天)을 바라보며 깊 은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문득 어디선가 악검림이 나타나 환하게 웃으며 그의 손을 잡고 이끌었다. "여기서 뭘 하고 있죠? 잠시 이리 와봐요. 제가 재미있는 것을 보여줄게요." 어둠 속이기는 하지만 악검림은 지금 유난히 표정이 밝아 보였 다. "사매야말로 무슨 일이지? 혹시 어디서 곰이라도 한 마리 잡은 게 아냐?" "곰이라고요? 나는 그따위 시시한 것은 잡지 않아요. 나는 그 보다 더 희한한 것을 잡아놓았으니 어서 이쪽으로 와보기나 하세 요." 동굴의 아래쪽에는 두 갈래의 계곡(溪谷)물이 하나로 합쳐지며 흐르고 있고, 좌측으로 돌아가면 계곡의 건너편에 작은 평지(平 地)가 형성되어 있다. 깊은 산중(山中)이기는 해도 이런 곳이라면 얼마간 지내기에 그다지 불편하지는 않을 것이다. 악검림이 화검상을 데려간 곳은 바로 그 작은 평지가 형성되어 있는 곳이었다. 누렇게 메말라서 이제는 거의 그 형체만 남은 억새풀들과 낙엽 (落葉)들이 수북이 쌓여 있는 위에 하얀 그 무엇이 길게 누워 있 었지만, 그것은 무슨 다른 것이 아니라 그저 하얀 천을 깔아놓은 것이었기 때문에 화검상은 의아해 하며 말했다. "어라? 이건 뭐야? 아무것도 없군. 대체 무엇을 잡아놓았다는 거야?"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들에 젖어 있었기 때문에, 화검상은 미 처 악검림의 태도가 달라져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는 것 같 았다. 악검림은 짐짓 슬쩍 주위를 예리하게 둘러보는 듯하다가 음성 을 낮추며 말했다. "쉿! 조용히 하세요. 너무 떠들면 그 사람이 달아날지도 몰라 요." 화검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람이 있다는 말인가?" 악검림은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겨 그 흰 천 위에 서더니, 느릿 하게 옷을 하나씩 벗기 시작했다. 화검상은 어리둥절해져서 그녀를 바라보며 다시 말했다. "아니, 뭘 하는 거야? 왜 갑자기 옷을 벗는 거지? 무슨 이상한 짓을 하려는 것 아냐?" 악검림은 속옷만 남은 상태에서 손을 들어 짐짓 엄숙한 표정으 로 입술을 가리며 말했다. "나는 지금 의식(儀式)을 거행하고자 하는 거예요. 그 사람은 워낙 대단하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하지 않으면 놓쳐버리고 만다 고요. 나는 그 동안의 경험으로 알 수 있어요. 이건 사실 목숨보 다 중요한 일이라고요." 이어 그녀는 느릿하게 그 속옷마저 벗어버리고 완전히 알몸이 되어버렸다. 비록 어둠 속이기는 하지만 그녀의 전신은 아름답고 순결한 느 낌으로 화검상의 시야를 파고들고 있었다. 화검상은 뭐라고 대꾸를 하려고 했지만 그만 그녀를 더 이상 바라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악사매, 너는 정말 연극이 서툴구나. 너도 알다시피 나는 지금 중요한 결전(決戰)을 앞두고 있다. 만일 내가 승리한다면 다행이 겠지만, 이 일은 실패한 가능성이 많고 성공할 가능성은 아주 희 박한 것이다. 만일 내가 실패한다면 십중팔구 나는 살아남지 못 하게 될 것이고, 그럴 경우에 너는 그래도 다른 사람을 만나 새 로운 인생(人生)을 개척할 수가 있다. 하지만 이것은 너의 그러한 희망마저 무너뜨리는 것이다. 너는 그러한 사실을 모르지 않을 텐데 왜 이러는 것이냐?" 악검림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나는 지금 의식을 거행하고 있다고 말했잖아요. 이 일은 너무 나도 중요하기 때문에 시기를 놓칠 수는 없어요." 화검상은 말했다. "너는 아직 부모님도 만나 보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것 은 나와 한 약속에도 어긋나지 않느냐?" 악검림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나는 오늘에야 알았어요. 나는 사형이 실패한다면 살아남지 않을 거예요. 만일 사형이 이대로 그냥 가버린다고 해도 나는 괜 찮아요. 화사형, 이쪽으로 와보세요. 저기 하늘에 별이 나타나기 시작했군요. 하나, 둘 셋……, 어마, 또 구름에 가려버리고 말았어 요." 화검상은 그만 가볍게 고소(苦笑)하며 그녀의 옆으로 다가갔다. 악검림은 두 눈에서 눈물을 가득 흘리고 있었다. "사매, 나는 사실 약간 못생긴 편인 데다가 그리 대단한 사람 도 아니다. 그런데도 내가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되느냐?" 악검림은 그의 품속으로 안겨들며 말했다. "그건 나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내가 바보라는 사실은 알 수 있어요. 아까 이쪽으로 오는데 어떤 나무들은 나뭇잎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어요. 날씨가 벌써 많이 추워졌나봐요. 음, 이제 얼마 후면 눈이 오게 되겠죠? 사형은 눈이 오는 것을 좋아하나 요? 나는 어렸을 적에는 눈을 치우는 일이 귀찮기도 했지만 재미 있기도 했어요. 그리고 언젠가는 ……, 눈싸움을 하다가 한 대 얻 어맞고 울기도 했어요. 사람들이 나를 향해 던진 것은 아니었는 데, 나는 그냥 거기에 끼어들어 놀다가 그렇게 되었나봐요, 그리 고 또……, 나는 비가 오는 것은 싫어요. 그건 왜 그런지 아세 요?" 화검상은 그녀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말했다. "나는 사실 네가 더 좋은 사람에게 시집가게 되기를 바랬는 데…… 결국 이렇게 되고 마는구나. 이것은 너에게는 손해인데 나중에 후회하지 않겠느냐?" 악검림은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사형은 정말 나빠요. 내가 앞으로 더 바보가 되면 어쩌려고 그러죠? 그리고 앞으로는 나를 더 이상 사매라고 부르지말고 동 방낭자처럼 아림(阿林)이라고 불러줘요. 나도 사형을 정랑(情郞) 이라고 부를 테니까요." 화검상은 잠시 웃고 있다가 말했다. "그럼 앞으로 사매에게도 말을 높혀줘야 하겠군. 으음, 아 림……, 오늘은 제법 날씨가 쌀쌀하구료. 그런데 그렇게 벌거벗고 서 춥지는 않겠소?" 악검림은 웃지도 않고 정색을 하더니 그의 시선을 마주보며 말 했다. "정랑! 저는 앞으로 동방낭자처럼 현숙하지는 못하지만 훌륭한 부인(婦人)이 되도록 노력하겠어요. 저는 목숨을 바쳐서 당신을 모시고 절대로 당신의 뜻을 거스르지 않도록 하겠어요." 이어 악검림은 그의 옷을 벗겨주기 시작했고, 마침내 두 사람 은 똑같이 벌거숭이가 되어 그 흰 천 위에 드러누웠다. 주위가 아직도 칠흑같이 어둡고 삭풍(朔風)이 점점 더 차갑게 불어오기 시작했지만, 두 사람의 몸은 갈수록 뜨거워져갔고 악검 림은 화검상을 껴안은 손은 풀지 않았다. 이윽고 황홀한 기분 속에서 한 줄기 강렬한 고통(苦痛)이 느껴 졌을 때, 악검림은 무득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그의 몸을 더욱 세차게 껴안은 채 속으로 중얼거렸다. '나는 당신을 사랑해요. 나는 그것을 오늘에야 비로소 깨달았어 요…….' 두 사람이 다시 동굴 안으로 들어갔을 때에도 동방리는 아직 잠들지 않은 상태였고, 마치 그녀는 이미 두 사람 사이에 생긴 일에 대해서 알고 있는 듯한 눈치였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 PRINTER/CAPTURE를 정지하고 [Enter]를 누르십시오. 무림야그 출력일 :: 98/11/20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3 권 제 68 장 - 3 화검상이 동방량에게 다가가 무공(武功)에 대한 설명을 해주는 동안 동방리와 악검림은 나란히 누워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 기 시작했고, 이내 더욱 친해진 듯 소리내어 웃기까지 했다. 이 하룻밤은 그렇게 조용히 흘러갔고 이윽고 시간이 흘러 다음 날이 되었다. 화검상은 늦게 잠자리에 든 탓에 거의 정오 무렵이 다되어서야 잠에서 깨어났는데, 눈을 떠보니 동방리와 악검림은 부지런히 음 식을 차리고 있었고, 동방량은 밖에서 열심히 검법(劍法)을 수련 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제야 일어나다니 너무 게으른 것이 아닌가요? 우리는 아까 부터 혹시 무슨 일이 일어나면 어쩌나 하고 얼마나 걱정을 했었 다고요." 악검림의 말이었다. 그녀의 안색이 약간 부석부석해 보이기는 했지만 표정은 몹시 밝아 보였고, 게다가 어제보다 훨씬 더 안정되고 성숙해 보이기 도 했다. 동방리가 웃으며 말을 받았다. "어서 나가 세수를 하고 오세요. 만일 세수를 하지 않으면 밥 을 드리지 않을 테니 그렇게 아세요." 화검상은 공연히 어색하기도 하고 곤란한 느낌이 들기도 하여 그 말을 듣자 즉시 걸음을 옮겨 밖으로 나왔다. 동방량은 화검상이 어젯밤에 가르쳐준 무학의 요결(要訣)에 대 해서 연습해보고 있는 중이었다. 전신이 땀에 젖어 있었지만 잘되지 않는지 얼굴이 벌겋게 상기 되어 있었다. 화검상은 그의 어깨를 가볍게 치며 말했다. "열심히 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러나 잘되지 않는다면 무 리할 것은 없다. 이른바 몸은 활기(活氣)에 차 있어야 하고 마음 은 느긋해야 하는 것이다. 너의 누나가 하는 말을 듣지도 못했느 냐? 우리 함께 세수를 하러 가자꾸나." "예, 사부님." 동방량은 얼른 안으로 들어가 수건을 가지고 나와서 화검상이 세수를 마치자 공손히 건네주었다. 화검상은 수건으로 얼굴을 닦은 다음에 동방량을 바라보며 미 소와 함께 말했다. "다른 얘기를 하도록 하자. 너는 평소에 무공이라는 것에 대해 서 의문(疑問)을 많이 느꼈을 것이다. 어떤 것이 궁금하더냐?" 동방량은 잠시 머뭇거리는 듯하다가 말했다. "세외팔세(世外八勢)의 무공은 구파일방(九派一幇)의 무공보다 도 더욱 위력이 강하고 성취도 빠르다고 들었습니다. 그럼 결국 세외팔세의 무공은 구파일방의 정통무공(正統武功)보다 더 뛰어 난 것이라는 말입니까?" 화검상은 웃으며 말했다. "구파일방의 정통무공이라도 각기 저마다의 특색을 가지고 있 지. 모두가 어느 정도의 균형을 갖추고 있기는 하지만 어떤 것은 힘을 중요시하고, 혹은 어떤 것은 변화나 빠르기를 중요시하는 일 등이지. 하지만 그런 것들은 모두가 균형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안정되어 있고, 또한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세외팔세의 무공은 그와는 다 르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무림야그 출력일 :: 98/11/20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3 권 제 69 장 불가사의(不可思議) 제 69 장 불가사의(不可思議) 동방량은 눈을 크게 떴다. "그럼 세외팔세의 무공은 안정되어 있지 않다는 말씀이십니 까?" 화검상은 말했다. "이른바 명문정파(名門政派)의 정통무공이라고 하는 것은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여러 인재(人才)들에 의해 갈고 다듬어진 것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도 이미 결함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세외팔세의 무공들이란 일종의 파격을 통해 우선 성취속도와 위력을 증대시키고 나중에 그 균형을 맞추어놓은 것 이기 때문에 여기에는 약간의 문제가 있다. 일단 틀을 벗어난 것 은 아무리 보완을 한다고 해도 완전히 그 결함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며, 그 결과에 대해서는 이미 너도 알고 있지 않느냐?" 동방량은 잠시 생각해보는 듯하다가 다소 놀란 표정으로 말했 다. "그럼 천륭무가(天隆武家)의 대대로 이어지는 천형(天刑)은 바 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생겨난 것이라는 말씀이십니까?" 화검상은 미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세외칠세의 무공들도 결함이 있기는 하지만, 그 가운데 에서도 천륭무가의 무공은 단연 독보적이라고 할 만큼 위력적이 면서도 그만큼 결함도 증대되게 되었다. 이 사람의 천재성(天才 性)은 그 무공을 획기적으로 강하게 만들기는 했지만 그 결함만 큼은 더욱 보완할 수가 없었다. 이것은 소위 그런 종류의 사람들 에게서 발생하는 한계(限界)라고 하는 것이다. 무공의 파격은 심 해지게 되었지만 반면에 결함은 보와되지 못했으니 그 결과가 어 찌 되었겠느냐? 다른 세외칠세와는 달리 천륭무가의 무공은 마침 내 심리(心理)의 아주 미묘(微妙)한 부분까지 건드리게 되었고, 그것이 신체(身體)에 작용을 일으켜 이른바 천형(天刑)이라고 하 는 것을 낳았으며, 후대로 내려갈수록 그 천형도 깊어지게 되었 던 것이다." 동방량은 마치 꿈을 꾸는 듯한 표정으로 그 얘기를 듣고 있다 가 다시 말했다. "소문으로 듣기에는 그 천형은 원기(元氣)의 소실로 인해 나타 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무학(武學)의 이론(理論) 상으로는 맞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무학이 최상승(最上乘) 의 경지(境地)에만 올라도 선천진기(先天眞氣)를 원기로 보완할 수 있다고 했는데, 그것은 어째서 나타나는 일입니까?" 화검상은 담담한 표정으로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지금은 아직 네게 그 이유에 대해서 설명해주어도 잘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이는 곡선적(曲線的) 무공(武功)으로 들어가는 한 이치인데, 이른바 세상의 일이라는 것은 그렇게 생각과 이론 에 의해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말하자면 근본부터가 잘못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설령 그것이 아주 미세한 차이라고 해도 점차로 누적되면 나중에는 전혀 다른 길을 헤매게 된다는 것과도 비슷한 이치이다. 이러한 내용에 대해서는 내 네게 시기 가 무르익으면 가르쳐주도록 하겠다." "그렇다면 정말로 그 천형은 소문대로 고칠 수가 없다는 말씀 이십니까?" 화검상은 담담히 웃으며 말했다. "만일 길을 잘못 들었다면 다시 바른 길로 가면 도리 것이다. 그러나 계속 그 잘못된 길을 고집한다면 어찌 그 문제가 해결될 수가 있겠느냐? 이것은 너의 누나의 병(病)과도 비슷한 일이다. 너의 누나는 상황이 다급하기 때문에 오히려 나에게 의지하여 병 을 고쳐나가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누가 말해도 쉽게 자신들의 길을 바꾸려고 하지 않을 테니, 어찌 그것이 수월할 수가 있겠느 냐? 자, 이제 네게 묻겠다. 너는 어느쪽의 무공이 더 나은 것이라 고 보느냐?" 동방량은 잠시 생각해보다가 대답했다. "그 천형에 대해서는 천상절맥(天上絶脈)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자면 그것은 비록 오래 살지는 못할지라도 천인(天人)과 같은 능력을 구사하며 살 수가 있다는 뜻입니다. 세 상 사람들은 비록 단 하루를 살아도 그처럼 화려(華麗)하게 살아 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게다가, 그들은 아직도 대략 이백 년은 살 수가 있다고 합니다. 무공을 배우지 않았거나 혹은 배웠더라도 다른 문파의 사람들은 겨우 백 살을 넘기는 것이 고작입니다. 그리고 아직 다른 칠세(七勢)의 결 함을 드러나지 않고 있으니 아마도……, 세상의 사람들은 비록 약간의 문제가 있을지라도 그쪽을 선호하는 것 같습니다." 화검상은 웃으며 말했다. "너는 제법 솔직하게 말해주었구나.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세외팔세에서도 자신들의 길을 바꾸지 않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 다. 그러나, 대개 결과가 있으면 그 원인이 있기 마련이다. 다른 칠세의 결함은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결함이 없는 것이 아닌 만큼 그것은 그들의 내공(內攻)이나 심리(心理)에 있어서 자주 충 돌을 일으킬 것이다. 겉으로는 화려해 보일지 몰라도 그 가운데 에는 실로 남모르는 많은 고통과 번뇌(煩惱)가 있었다는 것을 알 지 않으면 안된다. 실로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의 행복(幸福) 이란 그러한 화려함 속에 있는 것은 아니다. 무공이란 본래 사람 을 위해 만들어 진 것인데, 오히려 그것으로 사람이 지옥(地獄)의 고통을 겪게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잘못된 일이 아니겠느냐? 소위 명문정파의 정통무공(正統武功)이라는 것은 잘 배우기만 한다면 그 자체가 사람의 심신(心身)을 단련하게 하고 인생을 살아가는 데 도움을 주는 것들이다. 그것은 그야말로 무공의 본래의 목적 에 제법 잘 부합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 동방량은 숙연한 표정이 되어 말했다. "저는 이제서야 정통무공이 더 낫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화검상은 다시 말했다. "게다가 이 바른 길을 간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이익이 있다. 잘못된 길을 간다면 그것은 점점 더 그 사람을 비천(卑賤) 하게 만들 것이고, 바른 길을 간다면 그것은 반대로 더욱더 그 사람을 훌륭하게 만들어갈 것이다. 그래서 이른바 사람은 단 하 루를 살아도 욕망(慾望)을 쫓기보다는 바르게 살아야만 하는 것 이다. 너 역시 정말로 자신을 위한다면 진정으로 그러한 마음자 세를 가져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사부의 무공이 세외팔세의 무공보다 우월하다고 생각되지 않 느냐?" 동방량은 엄숙히 대답했다. "사부님의 무공이 그들의 무공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화검상은 미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은 그야말로 바른 힘인 것이다. 바른 것은 실로 상상할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 바른 길을 걸어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기에 종종 사람들은 도중에 게을러져서 잘못된 길 로 나아가게 되곤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말했듯이 설령 잘못 된 길로 가게 되었다고 해도 다시 마음을 돌려 바른 길로 나아가 게 되면 되는 것이다. 너는 너 자신을 진정으로 위하고 또한 진 정으로 바른 힘을 갖게 되기를 원한다면 반드시 바른 길로 가야 만 할 것이다. 나의 이러한 말을 이해하겠느냐?" 동방량은 그 자리에서 엎드려 절하면서 엄숙히 말했다. "예, 사부님. 제자는 반드시 앞으로 바른 길을 가도록 노력하며 항상 그런 마음자세를 갖도록 하겠습니다." 화검상은 그의 손을 잡아 일으키며 미소하며 말했다. "좋다. 너의 자질이 비록 다소 미흡한 점이 있더라도, 그런 마 음자세를 가지고 꾸준히 노력하게 되면 장차 그 어떤 다른 길을 가는 천재(天才)들보다도 오히려 그 힘이 앞서게 될 것이다. 다른 궁금한 점이 있으면 또 말해보아라." 동방량은 마음이 크게 흥분되고 가슴이 들끓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상태에서 말했다. "사부님, 저는 사마외도(邪魔外道)의 무공에도 어떤 결함이 있 다고 들었습니다. 그럼 그 사마외도의 무공과 세외팔세의 무공들 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입니까?" 화검상은 말했다. "세외팔세의 무공들이 일단 파격으로 나간 뒤에 나중에 균형을 맞추어 안정하려고 한 것이라면, 사마외도의 무공은 파격으로 나 간 뒤에 균형은 고려하지 않고 그저 그 상태에서 안정을 유지하 려고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세외팔세의 무공들이 비록 나중 에 균형을 맞추는 바람에 결함이 생기기는 해도 그래도 그들은 아직 바른 길에 대한 마음을 버리지 않고 있다. 하지만 사마외도 의 무공은 그 위력과 성취에만 관심을 두고 있으며, 그 상태에서 어느 정도 안정될 수만 있다면 바른 길은 상관이 없다는 태도이 다. 그것은 바로 눈을 감고 낭떠러지 위를 걸어 다니는 것과도 같은 것으로, 비록 당장에 무슨 큰일이 없다고는 해도 반드시 마 침내는 어느 날 갑자기 깊고 어두운 나락(奈落)으로 떨어져내리 게 될 것이니, 그것을 어찌 안정이라고 할 수가 있겠느냐? 물론 이러한 경우는 세외팔세의 경우보다도 훨씬 더 좋지 않은 것이 다. 무엇이라도 일단 그 정체를 알고 나면 거기에 쉽게 빠지지 않는 법이니, 너는 앞으로 그러한 점을 명심하여 태도를 분명히 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동방량은 잠시 생각해보다가 다시 말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무림야그 출력일 :: 98/11/20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3 권 제 69 장 - 1 "저어, 이건 다른 질문이지만……,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 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저는 사부님의 무공이 한 가지의 흐름 도 아니고 거기에 얽매이는 것도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사부님께서는 무공을 정해진 경지(境地)에 따라 연마하셨고, 또한 무공초식(武功招式)을 구사하시고는 하셨습니다. 그것은 혹 시 하나의 틀에 따르고 거기에 얽매이는 것은 아닙니까?" 화검상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너는 실로 어려운 질문을 했구나. 말하자면 이 곡선적인 무공 이라는 것은 하나의 흐름도 아니고 그렇다고 여러 가지의 흐름도 아니다. 경지가 있는 것도 아니며 경지가 없는 것도 아니다. 여기 에서 나의 이 곡선적(曲線的) 무공(武功)이 정파의 무공과 차이를 보인다고 할 수 있다. 기실 내가 말하는 바른 길이라는 것은 정 파에서 말하는 것과는 달리, 바르고 그른 것을 초월(超越)하고 있 는 것이다. 만일 초식이 있다면 거기에 얽매이게 될 것이고, 반대 로 초식이 없다면 또한 그러한 것에 역시 매이게 될 것이다. 흐 름이나 경지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이 진정한 도리라 고 하는 것은 생각으로서는 알 수가 없다. 실로 생각이 미칠 수 가 없는 것이기에 그것은 불가사의(不可思議)라고 할 수 있는 것 이다. 마음의 장애(障碍)를 제거하고 분별과 집착 없이 무공을 배 우고 경지에 따르며 초식을 전개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나의 이 곡선적인 무공은 마치 무한한 변화가 살아서 움직이는 듯하고, 흐름과 초식과 경지가 다른 무공들과 같지 않은 것이다. 이러한 이치는 지금의 너로서는 알 수 가 없다. 너는 우선 내가 말한대 로 꾸준히 바른 마음으로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그때 문득 동굴에서 악검림이 걸어나와 미소하며 입을 열었다. "세수를 하고 오라고 했더니 당신은 거기에서 낮잠이라도 자고 있는 것인가요? 당장 오지 않으면 우리가 이 많은 음식들을 다 먹어버릴지도 몰라요." 화검상은 웃으며 동방량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자, 그럼 이만 들어가자. 무공을 배우려면 우선 밥을 잘 먹고 몸이 건강해져야 하는 것이다." 화검상이 동방량과 함께 동굴 안으로 들어가자, 동방리는 기다 리고 있다가 웃으며 말했다. "당신은 제 동생과 그곳에서 무슨 얘기를 그리 오래도록 하신 거죠? 만일 우리의 흉을 보신 것이라면 가만있지 않을 거예요." 화검상은 마주 웃으며 말했다. "나는 당연히 당신들이 아주 아름답다고 말을 했지. 그랬더니 량아도 그건 사실이라고 하는 거야. 그러니 나로서는 과연 그게 사실일까, 하고 다시 한 번 생각해보지 않을 수가 없었지." "아니, 뭐라고요? 그렇다면 오늘 아침밥은 없으니 알아서 하세 요." 악검림은 달려들어 그를 껴안고 짐짓 곱게 눈을 흘기다가 일순 다함께 크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오후에 동방량은 다시 밖으로 나가서 검법을 수련(修練)하기 시작했다. 화검상이 동방리와 악검림을 상대로 이런저런 얘길을 나누고 있을 때, 문득 동방량이 안으로 들어오더니 그를 향해 공손히 말 했다. "사부님,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일행이 이곳으로 자리를 옮긴 다음에 비교적 얼마간 평온한 시 간이 지속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폭풍전야의 고요함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에 그 것이 언제까지나 지속되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만약에 지금 누가 이곳을 알고 찾아온 것이라면 적들도 이미 이 부근을 완전히 포위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인 것이다. 화검상이 밖으로 나가보니, 낯설지는 않지만 의외의 사람이 와 있었다. 성수곡(聖手谷)의 소군주(少君主) 황봉황(黃鳳凰)이었다. 그녀가 이전에 뭔가 의미 심장한 말을 남기기는 했었지만, 이 미 정혼(定婚)한 남자가 있는 몸으로, 게다가 달리 특별한 볼일도 없을 텐데 무엇 때문에 이곳을 찾아온 것일까? 황봉황은 화검상이 밖으로 나오자 이내 가벼운 미소를 입가에 지으며 말했다. "또 만나게 되었군요. 과연 우리는 인연(因緣)이 있다고 할 수 있겠어요. 이건 저도 예상 못한 일이기는 해요." 화검상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무슨 일이오? 나에게 무슨 볼일이라도 있다는 말이오?" 황봉황은 미소하며 손을 내저었다. "저에게 그렇게 심한 경계심을 품지 않아도 괜찮아요. 저는 다 만 몇 가지 할말이 있어서 급히 이곳으로 달려온 것이니까요. 미 안하지만, 지금 잠시 저를 따라 자리를 옮겨주시지 않겠어요?" 악검림이 뒤따라 나와 있다가 그녀를 향해 말했다. "당신은 우리의 상황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쉽게 말을 하 는군요 만일 거리낄 것이 없다면 이곳에서 얘기를 해도 상관이 없지 않을까요?" 황봉황은 웃으며 말했다. "무슨 양심에 가책이 될 그런 얘기는 아니지만 이곳에서는 말 할 수는 없어요. 가까운 곳으로 가서 이야기를 나눌 것이니 여러 분의 안전에도 그다지 문제가 되지는 않을 거예요." 악검림은 잠시 생각해보다가 화검상을 향해 말했다. "정랑(情郞), 그녀가 진심을 가지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렇다고 해도 우리가 굳이 지나치게 움추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요. 당신이 생각을 정하셨다면 이곳은 마음에 두지 마세요." 화검상은 천천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와 같은 생각이오." 두 사람은 이윽고 신법(身法)을 펼쳐 자리를 옮기기 시작했는 데, 황봉황은 정말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신형을 멈추고 서서 화검상을 향해 말했다. "우리는 일단 신중을 기하기 위해 전음(傳音)을 사용하기로 해 요." 이곳은 사방을 내려다보기 쉬운 산꼭대기로, 비록 다른 사람들 의 눈에 잘 띄기는 하겠지만 남에게 이야기를 나눈 내용을 들킬 염려는 적은 곳이었다. 화검상은 전음으로 말했다. "무슨 일이오?" 황봉황은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는 듯하면서 전음으로 말했다. "나는 사실 한 가지 임무를 띠고 이곳으로 온 거예요. 그것에 대해서는 지금 말해줄 수가 없고, 아마도 잠시 후면 당신도 저절 로 알게 될 거예요. 하지만 내가 굳이 이곳으로 자청해서 오게 된 것은 한 가지 다른 목적이 있기 때문이에요." 화검상은 묵묵히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고, 황봉황은 말을 이 었다. "당신은 혹시 제삼(第三)의 바람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나 요? 그건 바로 신풍회(新風會)를 가리키는 말이예요." 화검상은 웃으며 전음으로 말했다. "나는 아직 강호(江湖)의 견식이 적어서인지 그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소." 황봉황은 화검상을 얼굴을 바라보며 다시 미소했다. "그건 신풍회가 최근에 생겨난 단체이고 또한 극비(極秘)리에 활동을 하기 때문에 거의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 죠." "그런데 굳이 그 이름을 내게 가르쳐주는 이유가 무엇이오?" 황봉황은 고개를 돌려 은근히 다시 주위를 살폈다. "당신은 사실 지금까지 매우 외롭게 거대한 적(敵)들과 맞서왔 지요. 하지만 천하(天下)에는 그렇게 한 가지 부류의 사람들만 있 는 것은 아니에요. 당신이 외롭게 적들과 싸우는 동안 그 다른 부류의 사람들은 그것에 의해 용기(勇氣)를 얻고 하나의 단체로 모이게 된 것이지요. 그러니까 이 신풍회는 당신과 밀접한 연관 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화검상은 가볍게 실소했다. "그러니까 낭자도 그 단체에 소속된 사람이라는 말이오?" 황봉황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여러 가지 여건상 그 신풍회에 소속된 사람은 아니죠. 다만 그것을 옆에서 도와주고 싶은 사람이라고나 할까요? 어쨌든 신풍회가 이미 조직되었다는 것은 당금의 천하정세(天下政勢)에 있어서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고, 당신에게는 많은 힘이 될 수 있 으리라 믿어요." 화검상은 잠시 생각해보다가 전음으로 말했다. "아마도 낭자는 그 신풍회에 대해서 좀더 자세히 말해줄 수는 없겠구려?" 황봉황은 가볍게 웃으며 다시 시선을 돌렸다. "아직은 신풍회에 대해서는 이 정도밖에 말씀드릴 수가 없어 요. 하지만 머지않아 당신은 그들과 만나게 될 것이고, 그러면 그 들에게서 좀더 자세한 사항을 듣게 딜 거예요."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다. 무림야그 출력일 :: 98/11/20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3 권 제 69 장 - 2 확실히 신풍회(新風會)라는 단체가 새로 생긴 것이라면 그것은 매우 신선한 충격이라고 아니할 수가 없겠지만, 그러나 이것은 마치 느닷없고도 엉뚱해 보이는 것 같아서 어이가 없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우선 성수곡의 소군주인 황봉황이 그런 단체와 연결되어 있다 는 말 자체도 의심(疑心)스러운 것이다. "내게 할말이란 그것뿐이오?" 황봉황은 화검상이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이는 것 같자 가볍게 고소(苦笑)하며 전음으로 말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은 말을 전해달라고 했어요. 흔히들 아는 것 처럼 급하게 서두르는 일은 잘되지 않아요. 당신은 이제 혼자가 아니니, 앞으로의 모든 일들을 신중히 생각하고 한발 물러서서 행동해달라는 것이지요. 당신은 사실상 당금 무림의 희망(希望)이 라고 할 수가 있으니까요." 화검상은 실소(失笑)하며 육성으로 말했다. "나는 이미 천하의 대악무도(大惡無道)한 자로 이름이 높아 있 는데, 이번엔 그런 말을 다 듣게 되다니 정말 희한한 일이요." 황봉황은 쓴웃음을 지으며 전음(傳音)으로 말했다. "당신이 당장 쉽게 믿지 않으리라는 것은 우리도 잘 알고 있어 요. 다만 당신의 움직임을 우리 모두가 주시하고 있으니 앞으로 의 일에 좀더 신중(愼重)을 기해달라는 말을 드리고 싶은 것이지 요." 화검상은 전음으로 말했다. "낭장의 그 정혼자(定婚者)는 이 사실을 알고 있소?" 황봉황은 다소 안색(顔色)을 붉히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분은 이러한 것을 조금도 알지 못해요. 그러니 당신은 앞으 로 다른 누구에게도 이러한 말을 해서는 안 되고 비밀(秘密)을 지켜주시기 바래요." '나중에 알게 된다고 했으니 그럼 어쨌든 일단 그때까지 기다 려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화검상은 잠시 그렇게 생각을 굴려보다가 웃으며 말했다. "알겠소. 그럼 더 이상 할말이 없다면 나는 이만 돌아가도록 하겠소." 황봉황은 포권으로 인사하며 웃으며 말했다. "다음에 만날 때는 좀더 부드러운 분위기가 되었으면 해요. 당 신의 앞날에 행운(幸運)이 함께하길 빌어요." 화검상이 동굴로 돌아갔을 때에는 사람의 숫자가 같으나 거기 에는 전에 없던 한 사람이 섞여 있었다. 몹시 지저분한 옷차림을 하고 길쭉한 막대기를 하나 들고 있는 그 대한(大漢)은 언젠가 본 적이 있는 개방의 사람들 중의 하나 인 것 같았다. 동방량은 대단히 분개한 듯 장검(長劍)을 뽑아들고 대한을 향 해 공격을 퍼붓고 있었고, 그 대한은 반쯤 상대하는 듯하면서도 이리저리 여유있게 몸을 피하며 동방량을 놀려대고 있었다. "흐흐흐, 네 녀석은 정말 쓸모없는 녀석이로구나. 너의 사부는 그렇게도 대단한데 너의 무공은 고작 이 정도란 말이냐? 흐흐, 하지만 성질은 아직 살아 있군, 헤헤헤! 어서 더 힘을 써봐라. 네 녀석의 기운이 이 정도면 나는 저 계집을 한 번 만나 봐야 하겠 다. 저 계집은 빛깔이 뽀얗고 살결이 야들야들하여 정말 그 맛이 기막히겠군. 어허, 어허, 이래서는 안 된다니까. 그럼 내가 저 계 집을 안아보아도 상관하지 않겠다는 말이냐?" 대한의 무공은 동방량보다 훨씬 우위에 있어서 동방량은 도무 지 그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동방량은 얼굴이 뻘게진 상태로 아무런 말도 없이 무모할 정도 로 대한을 공격하고 있었는데, 동굴 쪽에서는 동방리가 입구에 나와서서 초조한 기색(氣色)으로 동방량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 화검상이 그 앞에 내려서며 말하자, 대한은 즉시 신형을 훌쩍 날려 뒤로 물러섰고, 동방량은 계속 대한을 공격하려다가 그만두 고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사부님. 악사모(岳師母)께서 다른 곳으로 가셨습 니다." 화검상은 의아해졌다. "뭐라고, 아림(阿林)이? 그녀가 대체 어디로 갔다는 말이냐?" 동방리가 화검상의 옆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아까 당신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화산파(華山派)의 사람 들이 와서 그녀를 데려갔어요. 그녀는 부모님이 찾는다는 말을 듣자 우리의 만류도 듣지 않고, 곧장 돌아오겠다는 말만 남기고 는 그들을 따라갔어요." 이것은 사실 아주 교묘한 일련의 술책(術策)이라고 할 수가 있 었다. 그들은 이번에는 그야말로 최대규모의 공격(攻擊)을 퍼부으려 고 하는 것이지만, 그러나 화검상이 부근에 있는 동안에는 그것 을 준비하는 것이 쉽지 않으리라고 판단하여 그러한 술책(術策) 을 부린 것이다. 화검상은 이쪽의 상황이 위급할 경우 언제라도 즉시 달려올 수 있는 거리에 있었으므로, 그들은 감히 무력(武力)을 사용하지 못 하고 대신 다른 방법으로 적절하게 그 기회를 이용했다. 우선 악검림을 그녀가 꼼짝못할 이유로 유인했고, 동방량이 화 검상에게 알리러 가는 것을 간접적으로 방지하기 위해 지금 이 개방의 대한으로 하여금 그를 붙잡아두게 한 것이다. 아까 황봉황은 자신이 이곳에 보내진 목적에 대해서 곧 알게 될 것이라고 했는데, 그것은 실로 다름 아닌 이러한 일련의 술책 을 부리기 위한 가장 중요한 배경을 만들어준 것이다. 악검림을 그들이 유인해간 것은 화검상에게 어떤 심리적(心理 的) 타격을 주기 위함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그들이 지금 싸울 준비를 끝낸 장소에 화검상을 끌어들이려는 것이며, 게다가 이 대한으로 하여금 시간을 끌게 한 점으로 보아 그 거리는 가깝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했다. 이번에 그들의 술책에서 가장 효과적이었던 부분은, 화검상은 설마 하지 악검림이 강제로가 아닌 스스로 그들을 따라가리라고 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그렇다면……, 이제야 비로소 그 결전(決戰)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로군……!' "어서 빨리 가서 그녀를 구해야만 해요. 그들은 당신을 해치기 위해 그녀에게 무슨 짓을 할지도 몰라요." 대한은 슬금슬금 뒤로 물러서면서 변명조로 이렇게 말하고 있 었다. "나, 난 이일에 대해서 잘 모르오. 다만 시켜서 한 것일 뿐, 아 는 것이 하나도 없고. 만일 내가 그것에 대해 알고 있다면 그들 이 왜 굳이 나를 이곳에 보내겠소?" 화검상은 동방량에게 말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동방량은 여전히 안색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지만 눈빛을 빛 내면서 말했다. "저자는 입이 더럽고 죽어 마땅한 자이지만 멍청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들이 사부님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저 녀석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주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크게 분개하여 정신이 없을 것 같은데도 그것을 참고 침착하게 그런 생각을 해내는 것을 보면 동방량은 그간 제법 정신적인 수 양(修養)이 되고 성장한 것 같아서 화검상은 잠시 대견한 듯이 그를 바라보았다. 화검상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다. 그럼 우리는 어서 간단하게 준비를 하고 그녀를 구하 러 가기로 하자." 대한은 화검상이 자신에게 별로 관심이 없는 듯하자 즉시 신법 (身法)을 펼쳐 멀리 달아나 버리고 말았다. 말할 것도 없이 일행은 지금 격전을 치르러 가는 것이므로, 여 러 가지 물건들을 다 챙겨갈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저 중요한 물 건들만 챙겨서 동방량이 짊어졌다. 동방리는 다시 화검상이 안아들었는데, 이제부터 격전이 벌어 질 것이고 거기에서 자신이 화검상에게 어떤 장애로 작용(作用) 하게 될지도 모르겠기에 그녀는 다소 미안한 듯한 표정을 지었 다. 비록 제아무리 다급한 상황이라고 해도 일행의 속도는 그저 동 방량의 신법(身法)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는 일이기에 화검상이 보기에는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까 악검림 등이 사라졌던 방향을 대강 잡아서 나아가는데, 하나의 협곡(峽谷)에 이르러 한 여자의 몸의 여기저기에 심한 멍 이 들고 옷이 갈기갈기 찢어져 거의 나체가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동방량은 앞서서 가조 있었는데, 그것을 보자 그만 놀라고 당 황해 하며 소리치며 그쪽으로 달려갔다. "악사모님!" 쓰러져 누워서 거의 치부(恥部)까지 노출시키고 있는 그 여자 의 모습은 거의 악검림과 비슷했다. 아마도 그녀는 이미 심하게 능욕을 당한 데다가 치명적인 부상 마저 입은 듯 기식이 엄엄해 보였다. 그녀의 사태가 위중하다고 느껴지지 않았다면 동방량은 감히 그녀 앞으로 달려가지 않았을 것이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다. 무림야그 출력일 :: 98/11/20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3 권 제 69 장 - 3 바로 그때 갑자기 협곡의 좌우에서 흡사 환각(幻覺)처럼 수많 은 사라들이 솟아오르며, 동방량을 향해 해일 같은 공격을 퍼붓 기 시작했다. 그들의 공격수법은 다양해서 온갖 종류의 독암기(毒暗器)들이 주종을 이루었지만 검법(劍法)이나 장법(掌法)을 펼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런 자들의 경우 독암기들도 무섭지만 검법이나 장법을 펼치 는 자들이 의외로 더욱 괴이 독랄하고 무서울 수가 있다. 화검상이 아니었다면 당연히 동방량은 전혀 손을 써보지도 못 하고 그 순간에 전신이 무수한 파편(破片)으로 화해서 갈가리 찢 겨지고 말았을 것이다. 동방량은 놀라 멈칫하고 있는 사이에 화검상에 의해 그 많은 암기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암수를 전개한 자들이 뻣뻣하게 굳어졌다. 그런가 하면 그와 동시에 이번에는 여러곳에서 사람들 이 연차적으로 나타나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대개 아무리 무공이 높은 사람이라고 해도 그 호흡이라는 것이 있는 만큼 그 공격이 계속해서 이어지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 다. 예를 들어 한곳을 공격하면 다른 곳은 신경 쓸 수가 없고, 또 한 한 번 진기(眞氣)를 발출했다면 다시 진기를 발출하기 위해서 는 아무래도 그 시간적인 빈틈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의 그들의 공격은 대단히 지능적(知能的)이고 위력적이고 아니할 수가 없었다. 이쪽에서 그들을 제압할 수 있는 사람은 화검상 혼자인데, 그 들은 짧은 시간적 간격을 두고 연차적으로 사방에서 나타나 화검 상과 동방량, 그리고 악검림으로 보이는 여자를 동시에 공격해왔 기 때문에 화검상으로는 도저히 그들을 모두 제압할 수 없을 것 처럼 보였다. 아마도 그들은 화검상의 능력에 대해서 깊이 연구를 했고, 또 한 제법 그에 대한 준비를 했던 것으로 보였다. 동방량은 적들의 공격이 실로 무시무시한 것 이외에도 악검림 이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을 생각하여 실로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는 일단 모든 것을 화검상에게 의지하고 무모할 정도로 길을 막아서는 한 사람을 향해 적극적으로 덮쳐갔다. 만일 정상대로라면 그는 그들 중 누구의 상대도 되지 못했겠지 만 다음 순간 그자의 몸이 화검상에 의해 뻣뻣하게 굳어져버렸기 때문에 동방량의 검은 예상외의 능력을 발휘하여 그자의 목을 그 대로 날려버렸다. 당연히 비명 소리 비슷한 것이 들려야 하지만, 그 대신 순간 쾅, 하는 굉음과 함께 동방량은 귀가 멍멍하고 정신이 아득해지 며 몸이 공중으로 훌훌 날려갔다. 이것은 실로 누구도 예상 못한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알고 보니 습격해온 자들은 대부분 몸에 엄청난 위력의 폭약 (爆藥)들을 장치하여 만일 누군가가 그들을 죽이거나 건드릴 경 우 그대로 폭발하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한 번 폭약이 터지자, 그것이 연차적으로 다른 사람들까지 건 드리게 되어 계속해서 서너 번이나 폭발하게 되었다. 당연히 그 폭약을 가지고 있던 그 사람들은 육신(肉身)이 흔적 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갈가리 찢겨져서 날아갔고, 그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동방량도 공중으로 대여섯 장이나 날아올랐다. 그래도 폭발이 그 정도에서 그친 것은 화검상이 즉시 손을 쓴 덕분이었지만, 실로 이런 죽음을 완전히 도외시하는 사람들을 만 나게 되면 공포심(恐怖心)이 앞서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동방량은 화검상이 도와준 덕분에 그래도 부상을 입지 않았지 만, 그와 동시에 폭발에 휘말린 그 여자도 뒤로 십여 장이나 날 려갔다. 동방량은 이것이 자신의 잘못이라고 판단하고 허공(虛空)에서 몸을 뒤집고 장력(掌力)을 내쏟아, 그 여력으로 여자가 있는 쪽으 로 날아가려고 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찾 무림야그 출력일 :: 98/11/20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3 권 제 70 장 비운(悲運) 제 70 장 비운(悲運) 그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어떻게 해보려는 것이 아니 라, 그저 자신의 사부의 부인인 그녀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자신 의 몸이라도 희생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렇게 생각이 외곬으로 나가게 된 데에는 아까 자신의 능력 부족으로 악검림을 돕지 못했다는 데 대한 죄의식도 포함되 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그의 무공은 아직 황화예(黃化 )의 절정경지(絶頂境地) 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내공운신(內攻運身)의 변화가, 이를테면 허상에 가까워서 그러한 방법이 목적에 별로 도움이 되지 못했 다. 허공에서 내공의 운용만으로 의지없이 몸을 움직이려면 변화가 실상에 가까운 백연탄의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 마음이 더욱 급해진 동방량은 지면에 내려서자마자 즉시 신형 을 날려 여자가 쓰러져 있는 쪽으로 향했고, 이번에는 주위에서 덮쳐드는 사람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몸을 기울여 피하기만 했다. 과연 화검상의 능력은 대단하여 여전히 사방에서 연차적으로 공격해들어오는 사람들을 무력하게 만들면서도 동방량을 보호할 수가 있었다. 악검림을 닮은 그 여자는 협곡의 구석진 자리에 혼절한 듯 두 다리를 벌리고 부끄러운 자세로 쓰러져 있었고, 동방량은 그만 그녀의 적나라하게 드러난 치부를 보고 말았기 때문에 더욱 정신 이 없어졌다. 동방량은 그래도 우선 그녀의 목숨을 구해야 하겠다는 생각으 로 그녀의 맥문을 잡고 진기를 주입시켜주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문득 그녀가 정신을 차렸는지 가볍게 신음을 발하 며 동방량을 잡고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동방량은 그녀가 완전한 알몸이나 다름이 없었기 때문에, 그만 어찌할 바를 몰라 엉거주춤한 자세로 이번에는 그녀의 몸을 부축 했다. 한데 바로 그 순간 그녀의 한쪽 젖가슴이 갈라지며, 거짓말처 럼 그곳에서 붉은 암기가 마치 뱀의 혓바닥인 양 동방량의 가슴 을 향해 날아드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화검상도 그것을 잘 볼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동 방량은 그만 그 암기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뻔했다. 그때, 느닷없이 주위에 번쩍, 하고 백색의 상서(祥瑞)로운 광채 가 빛나더니 그 여자는 뻣뻣하게 몸이 굳어지고 암기도 동시에 사라졌다. 암기는 화검상의 광검에 의해 파괴되어 녹아들 듯 사라져버린 것이다. 어느새 화검상은 그 수많은 적들을 모두 제압하고 동방량의 곁 에 다가와 있었다. 동방리는 여전히 화검상의 품속에 안겨져 있었는데, 비록 안색 이 다소 창백해 보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매우 온화해진 표정이었 다. 동방량은 사부의 모습을 보자 다소 마음이 진정되어 다시 그 여자를 내려다보다가, 순간 놀라서 손을 놓고 뒤로 훌쩍 물러나 고 말았다. 그 여자는 찢어진 젖가슴에서 괴이한 냄새를 풍기는 누런 농액 을 줄줄 흘리고 있었는데, 다름 아닌 조금 전의 그 암기에 의해 스스로의 육신이 녹아 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몸이 꼼짝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엄청난 고통을 느끼는지 그녀는 안면을 부들부들 떨어댔지만, 그러면서도 이를 갈며 말했 다. "소, 소광생……, 너희들은 이제 끝장이다. 이 주위에는 이미 엄청난 양의 폭약이 매설되어 있어서 이 말이 끝나는 즉시 이 협 곡 전체가 한꺼번에 날아가게 될 것이다." 알고 보니 조금 전에 그녀가 이쪽으로 날려온 것은 반쯤은 의 도적인 것으로 화검상을 이쪽으로 유인하기 위함이었던 모양이 다. 하지만 정작 그녀의 말이 다 끝나고 약간의 시간이 지났는데도 폭발은 일어나지 않았고, 화검상도 담담한 표정이 되어 말했다. "어리석구나. 너희들은 어째서 자신들의 목숨까지 도외시하며 나를 제거하고자 한단 말이냐? 너는 조금 전에 내가 손을 쓰는 것을 보지도 못했느냐?" 그 여자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입을 딱 벌리며 불신에 가득 찬 표정으로 말했다. "미, 믿을 수 없다. 어떻게 그, 그것을……?" 실상 폭약과 같은 것은 움직이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잘 설치 될 경우 미리 간파하기가 가장 어려운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 다. 하지만 알고 보면 그것도 역시 사람이 설치하는 것이고, 부근 에 사람이 있다면 화검상과 같은 능력자의 경우 그 사람의 심리 를 읽어서 그것을 알아차릴 수가 있다. 그리고 일단 알았다면 그것이 폭약과 같은 것일 경우 비록 위 험하기는 하지만 허점이 쉽게 노출되는 것이기에, 파괴하는 것도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 여자는 이내 숨을 거두었다. 그리고 동시에 그녀의 신체와 용모가 변하기 시작하여 전혀 낯설고 좀더 나이가 많은 모습으로 되었다. 동방량은 조금 전의 그 가공할 암기의 위력에 놀라워하다가, 이내 죽은 그 여자의 모습을 보고 다시 놀라며 말했다. "그녀는 악사모님이 아니었군요." 화검상은 미소하며 말했다. "세상에는 온갖 종류의 권모술수가 난무하고 있고 그 가운데에 는 이런 변장술도 흔히 볼 수 있다. 이것은 진기역용이라는 것인 데, 그것을 아무리 완벽하게 한다고 해도 진기에 의한다는 치명 적인 결함이 있다. 너도 장차 무공이 높아지게 되면 그러한 간파 하는 안목이 갖춰지게 될 터이지만, 좀 더 침착해져야만 할 것이 다. 동방리가 생각에 잠겨 있다가 말했다. "이들은 그 악독함과 잔인함, 그리고 조직적인 강한 파괴력 등 을 갖춘 것으로 미루어볼 때 아마도 흑루(黑樓)의 살수들인 것 같아요. 이들은 당신을 살해하려는 의도보다는 시간을 지연시키 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본래 이 흑루는 하마외도 의 무리들인데 어째서 이곳에 나타나 우리를 공격하는 것일까 요?" 화검상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세상에는 겉으로 잘 알아보기 어려운 일들이 많이 있소. 소위 여러 달을 끌어왔던 정사대전(正邪大戰)이라는 것이 우리의 생각 과 다른 것이었다면 그것은 이제 잠시 후면 절로 알게 되겠지." 동방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그렇다면 정파와 사파는 겉으로는 싸우면서도 속으로는……." 그때 갑자기 어디선가 이상한 여인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으므 로 동방리는 말을 중단했다. 화검상은 그 비명 소리가 어딘가 귀에 익숙한 것 같다는 느낌 이 들어 안색이 가볍게 변했다. "빨리 저쪽으로 가봐야 하겠소." 동방리는 그것을 보고 놀라며 말했다. "혹시 이것은……? 하지만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니고, 게다가 그쪽은 전혀 다른 방향이에요. 이들이 이곳에서 우리를 기다렸던 것으로 보아 악언니는 분명히 이쪽으로 갔을 텐데, 만일 그쪽으 로 갔다가 악언니가 아니어서 시간이 지체되기라도 하면 어쩌 죠?" 화검상은 보기 드물게 안색이 어두워지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게 단정할 수는 없소. 오히려 아니라고 해도 이쪽으로 가 면 시간이 더욱 지체되고 그쪽으로 가는 것이 더욱 빠를 수도 있 는 법이지. 게다가, 지금 나는 기분이 이상하니 빨리 저쪽으로 가 보는 것이 좋겠소." "아니, 자네 무슨 짓인가? 그렇게 하면 다시는 그 맛을 볼 수 없을 것이 아닌가? 빌어먹을 , 이 계집은 정말 아까운데, 자네 미 치기라도 했나?" "우라질! 그런 소리하지마. 가만히 보니 이 계집은 소문에 듣던 그 계집과 얼굴이 너무나도 많이 닮아 있는 것 같아. 만일 그게 사실이라면 우리들은 모두 그자에게 뼈도 추리지 못할 것이고, 또한 죽지도 살지도 못하고 지옥보다 더한 고통을 당하게 될 걸 세. 그러니 차라리 지금 이 계집을 죽여서 흔적을 없애버리려는 걸세." "그, 그런가……? 하지만 비록 생긴 것은 비슷하다고 해도 그 계집이 지금 이런 곳에 와 있을 리는 없지 않은가? 게다가 무공 도……, 조, 좋아! 어쨌든 이 계집은 이미 이렇게 되었으니 할 수 없는 일이지. 아쉽기는 하지만, 한 번 기막힌 맛을 보았으니 그것 으로 만족을 해야겠지." "육시랄! 그러게 내가 뭐라고 그랬나? 혹시 그놈이 이길지도 모르는데 하필 우리가 왜 그곳에서 모두 당해야 하느냔 말이야. 자네들은 내 덕분에 이곳으로 와서 기막힌 맛들을 보게 되지 않 았느냔 말이야. 자, 말들을 해보라구, 우리가 세상에 다시 태어난 다고 해도 이런 맛을 볼 수 있을 것 같아?" "그, 그건 그래. 이건 사람이 아니라 무슨 여우가 둔갑을 한 것 같기도 해. 자, 우리 이럴 것이 아니라 이 계집이 죽기 전에 마지 막으로 한 번씩 더 돌아가며 맛을 보는 것이 어때?" "흐흐흐, 하지만 서두르세. 누구에게든 발각되면 좋지 않으니 까……." 그 세 명의 사내들은 녹림맹(綠林盟)의 사람들로 보였다. 두 명의 사내는 각기 아랫도리를 흉측하게 드러낸 채 음흉하게 웃으며 차례로 기다리고 있었고, 다른 하 사내는 지금 막 새로 시작한 듯 두 눈을 까뒤집으며 흥분한 채 미친 듯이 하체를 움직 이고 있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무림야그 출력일 :: 98/11/20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3 권 제 70 장 - 1 여자는 유난히 아름답고 뽀얗게 빛나는 둔부를 고스란히 드러 낸채, 섬세한 두 다리가 하늘 높이 쳐들려진 상태로 사내의 움직 임에 따라 이리저리 나신이 흔들리고 있었다. 장내에는 마치 안개처럼 괴이쩍은 분위기가 진한 피비린내와 함께 감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다지 먼 거리가 아니었으므로 일행은 이내 그 부근에 도착했 다. 사내들은 비로 끄 일에 열중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목이 뛰 어난지 즉시 일행이 나타난 것을 알아보고 놀라 달아나려고 했 다. 그들은 화검상에 대해서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들은 불과 얼마 가지 못해서 화검상에 의해 혈도가 제압되어 몸이 뻣뻣하게 굳어지고 말았고, 그런 그들을 향해 동 방량이 마치 성난 아수라처럼 덮쳐갔다. 비록 짧은 순간이기는 하지만, 동방량은 무득 얼마 전까지 그 토록 상냥하고 밝은 표정을 짓고 있었던 악검림에 대해서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그 얼마나 순진하고 아름다워 보였던가. 비록 화검상의 부인이 되었기 때문에 그렇기는 했지만, 동방량 은 그녀의 다정함에 감복했고, 또한 사부에게 느꼈던 것과 비슷 한 존경심마저 느꼈기에 당연히 자신이 장차 잘 보호해드려야 하 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내가 무능했기 때문이다. 내가 그때 즉시 악사모 님을 따라갔어야만 했는데, 이 죽일놈들이 감히 악사모님을……!' 사내들의 무공도 역시 약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뻣뻣한 석상처럼 되어 있었기 때문에 동방 량의 장검을 막을 수도, 피할 수도 없었다. 동방량은 극도로 분노한 나머지 그들의 몸을 모두 수십 차례나 난도질했고, 그들의 육신은 이리저리 토막토막이 되어 날아갔으 며 동방량의 몸도 그들에게서 뿜어져나온 핏물로 붉게 물들어버 렸다. 화검상의 안색은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것처럼 무겁게 굳어져 있었다. 동방리는 두 눈에는 눈물을 주르르 흘리며 화검상의 품을 벗어 나 그쪽으로 달려갔다. "악언니, 악언니! 죽으면 안돼요! 이럴 수가……!" 악검림의 양쪽 젖가슴은 예리한 칼날에 의해 도려내어진 듯 붉 은 피를 가득 내뿜고 있었다. 순간 그녀는 잠시 정신을 차린 듯 단검 하나를 집어들어 자신 의 심장 부위에 박아넣고 있었다. 동방리는 그것을 보고 금방 기절할 것처럼 몸을 휘청거리다가 다시 그녀에게 달려가서 몸을 부축하고자 했다. 그런데 막 울면서 악검림의 얼굴을 바라보던 동방리는 갑자기 몸이 굳어졌으며, 의아하고도 멍한 표정이 되고 말았다. 악검림이라고 생각한 그 여자는 악검림이 아니라 전혀 다른, 마치 사람의 넋을 빼놓을 것처럼 아름다운 낯선 여자였던 것이 다. 사실 이 여자의 모습이 악검림과 닮았다고는 말할 수가 없고, 다만 동방량과 동방리는 그 기이한 분위기 때문에 자세히 보지도 않고 먼저 그녀를 악검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 여자의 모습은 비단 용모뿐만 아니라 전신이 그야말로 공들 여 조각을 한 것보다 더욱 아름답고, 순결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동방리가 멍한 표정을 지었던 것은, 아직 여자인 자신마저 매 혹시킬 정도로 지극히 아름다운 여자를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 다. 비록 두 개의 젖가슴이 베어져서 흉측한 몰골이 되어 있기는 해도 그녀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동방리는 문득 뒤에 기척이 느껴져서 고개를 돌려보니, 화검상 이 가까이 당가와 있었는데 두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인 듯한 것을 보고 속으로 생각했다. '어머, 그럼 이 여자는 저분이 아는 사람이었다는 말인가?' 그녀는 이 아름답고도 슬프게 보이는 비운의 여자가, 다름아니 라 그렇게도 화검상과 혼인하려고 했던 사람이라는 것은 생각지 도 못하고 있었다. 그 여자는 바로 석한절이었던 것이다. 석한절이 무엇 때문에 이곳에 와 있고 또 무엇 때문에 이런 상 황이 되어 있는지 그것을 추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혹시 그녀는 가문의 사람들에 의해 무공이 폐지당한 상태에서 감금되었다가 어렵게 탈출하여 이곳으로 와서 화검상을 만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화검상이 이내 손을 썼기 때문에 가슴에서 흐르는 피는 멎었으 나 그녀의 아랫도리에서 흐르는 피는 멈추게 할 수 없었다. 화검상을 바라보는 석한절의 표정은 기이할 정도를 맑게 가라 앉아 있었는데, 이윽고 눈물을 흘리면서 그녀는 입을 열어 말했 다. "우리는 ……, 결국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었군요. 당신은 미리 이와 같은 상황을 내다보고 그렇게 나를 멀리했던 것인가요? 이 제……, 시간이 별로 없군요." 화검상이 당황하지 않았다면 그녀가 단검을 자신의 가슴에 박 아넣기 전에 손을 썼겠지만, 그런다고 그녀가 이런 상황을 겪고 도 계속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살아갈 수가 있었겠는가……. 화검상은 마치 석상처럼 서 있다가 딱딱한 어조로 말했다. "나의 잘못이오. 나는 지금 후회하고 있소." 석한절의 안면이 기이한 표정으로 일그러지면서 눈물이 더욱 많이 솟구쳐 나왔다. "후회하고 있다고요? 호호……, 이건 당신의 잘못이 아니지요. 이건 내 잘못이예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는 몰라도, 당신을 원망 하지는 않겠어요. 나는……, 보다 나은 세상을 꿈꾸어왔어요. 그 게 잘못인가요?" 동방리는 다시 고개를 돌려보다가 화검상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보고는 약간 놀랐다. '저분은……, 이 여자를 사랑하고 있었구나!' 화검상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잘못이 아니오. 당신은 나를 탓하시오. 나를 원망하시오. 나 역시 그렇게 하고 있으니 말이오." 석한절은 문득 눈물이 점차 줄어들고 다소 평온한 듯한 표정이 되었다. "이제 보니……, 당신은 바보로군요. 왜 이제……, 와서 제게 그런 얘기를 하는 거죠? 내가 그 동안……, 얼마나 당신을 그렸 는지 아시나요? 매일 나는 당신을 생각했고, 꿈속에서도 당신을 찾아 헤맸어요. 하지만 항상 당신은 멀리……, 사라져버리더군요. 당신은 나의 절박한 이상이었고……, 영웅이었으며……, 사랑이었 죠. 나는 반쯤 미친 사람처럼 되어……,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 었는지……, 나도 잘 모르겠어요. 결국 이렇게 되기는 했지만, 그 러나……, 지금 다시 당신을 보게 되니……, 마음의 위안이 되는 군요. 당신을……, 사랑해요. 나는……, 이제 죽게되면 영원히 어 둠속에……, 갇혀버리게 되지 않을까요? 당신이 없는 세상은 정 말 싫은데……, 제발, 나를 잡아줘요. 당신을……, 떠나기는 싫어 요. 제발……." 화검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당신은 어둠 속에 갇히지 않을 거요. 내가 반드시 그렇게 되 도록 하겠소." 그러나 동방리가 보니 석한절은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화검상은 잠시 흘러내린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멍하니 석한절의 시신을 바라보고 있다가, 이윽고 몸을 굽혀 그녀의 시 신을 안아들고는 산꼭대기로 향하기 시작했다. 동방리는 화검상의 걸음을 따라갈 수가 없어서 그 자리에 앉은 채로 바라보았고, 동방량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녀의 옆으로 다가왔다. 잠시 후에 산꼭대기에서 작은 불길이 일어났다. 아마도 석한절의 시신을 태우기 시작하는 듯했다.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육신은 완전히 재가 되어 사라 지고 그 여운만이 남아 흐르게 될 것이다. 동방리는 문득 그러한 광경을 바라보다가 동방량에게 말했다. "나는 최근에 저분이 완벽한 사람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저분의 눈물은 오늘 처음으로 보는구나. 저런 사람도 간 혹 실수를 하는 때가 있는 것일까……? 정말로 사람은 완벽할 수 가 없는 모양이로구나." 동방량은 이에 반박이라도 하듯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아냐, 누나는 잘 모르지만 나는 사부님이 완벽하신 분이라고 생각해. 만일 실수를 했다고 해도, 그렇다고 완벽하지 않은 것은 아니니까." 동방리는 고개를 돌려 동방량을 바라보고는 다소 의아한 표정 을 지었다. 이제까지 그녀는 자신의 남동생을 비교적 잘 알고 있다고 생각 해 왔었는데, 지금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벌써 그 동안 그가 그렇게 변한 것인가 하는 느낌이었다. 문득 몸이 가볍게 들려지고 귀에 익숙한 음성이 들려오기에 고 개를 돌려보니, 어느새 화검상이 다가와 그녀의 몸을 안아들고 부드럽게 웃고 있었다. "자, 어서 갑시다. 이러다간 정말 늦어질지도 모르겠소." 정말 다행스럽게도 화검상의 판단대로 이쪽 방향이 오히려 악 검림이 있는 곳과 가까워서, 일행은 간신히 늦지 않게 그곳에 도 착할 수가 있었다. 벌써 하늘의 태양이 서쪽으로 많이 기울었다. 이곳은 사방이 거의 다 기암절벽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흡사 거 대한 그릇의 내부와 같은 느낌을 주는 곳으로, 악검림은 지금 그 바닥의 낙엽에 깔려 있는 평평한 풀밭 위에 서 있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무림야그 출력일 :: 98/11/20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3 권 제 70 장 - 2 아마도 이런 곳은 과거에 화산이어서 용암을 분출했다가 나중 에 식으면서 가라앉아 만들어진 지형일 것이다. 비록 바닥의 풀잎들은 이제는 거의 죽어버리거나 메말라 앙상 한 몰골만을 드러내고 있지만, 그 위에 장검을 들고 서 있는 그 녀의 음성은 아직 발랄하고 싱싱하기 짝이 없었다. "당신들은 정말 구제할 수가 없는 사람들이로군요! 나는 그래 도 당신들에게 아직 일말의 양심이 남아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렇게 쉽게 사람을 속일 수가 있나요? 어서 쓸데없는 짓 하지 말 고 약속대로 아버지나 만나게 해줘요." 악검림의 주위에는 다섯 명의 화산파의 제자들이 에워싸고 있 었는데, 다들 화검상의 눈에 익숙한 사람들로 악검인(岳劍人), 성 검양(成劍陽), 봉검기(封劍機), 피검석(皮劍石), 녹검서(鹿劍西)였 다. 악검인은 약간 뒤로 물러나 있는 반면, 나머지 네 사람은 각기 장검을 뽑아들고 악검림과 대치하고 있었는데, 녹검서와 피검석 등이 부상일 입은 것으로 보아 그들은 이미 악검림으로부터 약간 의 쓴맛을 본 것 같았다. 성검양이 고개를 돌려 악검인을 바라보며 음침한 표정으로 말 했다. "악사형,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이오? 저 계집애는 그간 무공이 상당히 높아진 것 같은데, 악사형은 아직 그런 것도 모르고 있었 다는 말이오?" 악검인은 이맛살을 약간 찡그리며 음산하게 말했다. "저 계집아이는 이미 우리 가문의 사람이 아니오. 그간 그 소 광생(少狂生)과 함께 있었는데 그 후레자식이 저 계집아이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내가 어떻게 알겠소?" 피검석이 음탕하게 웃으며 끼여들었다. "이거 그렇다면 우리가 괜히 헛고생을 하는 것이 아닌지 모르 겠소. 저 계집애는 이미 그 후레자식에게 당해서 그렇고 그렇게 되었을 텐데, 게다가 저렇듯 사나워졌으니 이거 무슨 보람이 있 겠소?" 성검양이 같이 음성이 동한 표정으로 웃으며 대꾸했다. "피사제는 아직 경험이 적어서 뭘 모르는군. 설령 계집이 그 짓을 몹시 밝히고 또한 사납다고 해도, 오히려 그럴수록 더욱 맛 이 있다는 것을 듣지도 못했는가? 흐흐흐, 게다가 우리가 이제 다시 한꺼번에 덮쳐서 저 계집을 짓누르고 돌아가며 그 맛을 즐 긴다면 저 계집은 미칠 듯이 좋아하게 될 걸세." 피검석은 엄지손가락을 꼽아 보이며 성검양을 향해 다시 음탕 하게 웃으며 말했다. "과연 나는 이 방면에 있어서는 성사형을 당할 수 없을 것 같 소. 잠시 후에 성사형이 직접 시범을 보일 때 나도 옆에서 거들 테니 잘 부탁드리오." 성검양은 짐짓 거들먹거리며 말했다. "그야 어려울 것 없지. 사실 말이지, 그 후레자식은 본래부터 이 방면에 있어 능숙하게 되었기 때문에 그와 같은 무공……, 무 공을 성취하게 되었을 거야. 따라서 이 무공은 비록 어지러워 보 이기는 해도 그 위력은 천하무쌍(天下無雙)이라고 할 수 있지. 자, 우리 그럼 먼저 옷을 벗고 나서 시작하는 것이 어떤가?" 이어 성검양이 먼저 정말로 옷을 벗기 시작했고, 피검석도 장 검을 내려놓고 괴이한 표정이 되어 옷을 벗기 시작했다. 악검림은 다소 어리둥절해 하다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당신들, 이게 무슨 짓이죠? 이러고도 명문정파의 사람들이라 고 할 수 있나요? 만일 당신들이 이렇게 계속 나를 속인다면 나 는 그만 돌아가도록 하겠어요." 갑자기 그렇게 장내의 분위기가 음산하면서 이상스럽게 변하 자, 악검인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성사제의 말에는 나도 동감이지만 지금은 시간이 별로 없네. 그 후레자식이 나타나기 전에 우선 저 계집아이를 제압하고 보 세. 그 이후에 우리는……, 우리는 좀더 그 문제에 대해서 자세히 검토해 보는 것이 좋겠네." 성검양과 피검석도 그 말에는 수긍을 하는지 고개를 끄덕이더 니 다시 옷을 걸쳐입기 시작했다. '이들은 왜 나를 거짓말로 이곳에 불러놓고 이상한 짓들을 하 는 거지? 지금쯤 정랑(情郞)과 동방동생 등이 걱정하고 있을 텐 데, 빨리 돌아가봐야 하지 않을까……?' 너무나도 그쪽의 일이 마음에 걸려서 그런지 그만 그녀의 귓가 에 동방리의이런 말소리까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악언니,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에요." 그런데 무심결에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뜻밖에도 그녀의 뒤에 는 정말로 화검상이 나타나 있고, 게다가 동방리가 그의 품속에 안겨서 그녀를 바라보며 다정히 웃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악검림은 처음에는 자신의 두 눈을 의심하다가, 이내 너무도 반갑고 기쁜 마음에 즉시 그 두 사람을 껴안고 웃으며 소리쳐 말 했다. "어머! 정말로 당신들이네? 한데 이곳은 어떻게 알고 찾아온 것죠? 나 때문에 온 것인가요?" 이곳으로 오는 도중에 생긴 그 심한 우여곡절은 그녀가 직접 겪어보지 못했으니 어찌 알 수 있겠는가. 화검상의 뒤쪽에 동방량이 약간 붉어진 안색으로 서 있었는데, 악검림은 뒤늦게 그를 발견하고는 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며 중 얼거렸다. '정랑의 저 제자는 갑자기 나를 보더니 수줍어진 모양이네. 아 니면 혹시 내가 그 동안 이상해지기라도 한 것일까?' 화검상은 다정하게 악검림의 손을 잡아주며 말했다. "아림, 그 동안 별일은 없었소?" 악검림은 잠시 생각해보는 듯하다가, 이내 가볍게 웃으며 고개 를 가로저었다. "음, 별일은 없었어요. 그러니 나에 대해 그렇게 심한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돼요." 악검림이 이 사람들에게 유인되어 이곳으로 향한 지 제법 시간 이 흘렀으니, 사실 그 동안에 어찌 아무런 일도 없었겠는가. 화검상 등이 이곳에 도착하기 전에 악검림은 하마터면 좋지 못 한 위기에 몰릴 뻔했으나, 당시 의외의 상황이 벌어져서 그녀는 간신히 위기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비록 어느 정도 경계심을 가지고 있기는 했으나, 이들 화산파 의 제자들은 으슥한 곳에 이르러 갑자기 음심을 일으키며 그녀를 공격해왔다. 악검림이 황급히 장검을 뽑아들고 반격을 개시했으나, 아직 이 들 모두를 상대로 이길 수는 없었기에 그녀는 꼼짝없이 제압될 뻔했다. 그런데 약간 수세에 몰렸을 때, 성검양 등은 느닷없이 공격을 멈추고 자기들끼리 무슨 알지 못할 무공에 대해서 논하고 언쟁을 벌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어느 경우를 두고 보더라도 대체 그렇게 격전 도중 갑자기 태 도를 바꾸어 무공에 대해 논하는 경우는 없으므로, 악검림은 다 소 이상하게 생각하다가 즉시 다시 반격하여 그 중의 몇 사람을 다치게 하고 위기를 벗어나게 되었다. 상황이 그렇게 바뀌자 성검양 등은 이내 자신들의 잘못을 시인 하고 사죄하며 그녀를 이곳끼지 유인했고, 이후부터 다시 허세를 부리고 그처럼 떠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악검인 등은 화검상이 나타나자 그만 놀라고 당황해 하는 표정 이 되어, 즉시 전신의 공력을 모두 일으키고 싸울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동방리가 주위의 지형을 대강 둘러보고는 화검상을 향해 말했 다. "이곳은 입구도 비좁고, 만일 포위를 당해 공격을 받을 경우에 는 곤란해질 것 같아요. 어서 빨리 돌아가는 것이 좋겠어요." 화검상은 미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같은 생각이오." 하지만 일행이 미처 입구 쪽으로 신형을 옮기기도 전에 느닷없 이 꽈르릉, 하는 굉음과 함께 입구 좌우의 기암절벽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더니 길이 막혀버리는 것이었다. 이제 그렇게 되었으니, 일행이 밖으로 나가려면 그저 이 사방 의 기암절벽들 가운데 어느 한쪽으로 골라 타고 넘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동방리가 입가에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과연, 어쨌든 이들은 미리부터 철저하게 준비하고 당신을 기 다리고 있었던 것 같군요." 아니나다를까, 입구가 그렇게 막혀버리자마자 즉시 사방의 절 벽위에서 무수한 사람들이 나타나 다가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섬검양 등 화산파의 제자들은 그것을 보자 일제히 가볍게 안도 의 한숨을 내쉬며 슬그머니 뒤쪽으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화검상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는 아무래도 한쪽 방향으로 우선 몸을 피하는 것이 좋겠 소." 동방리가 그에 동조하며 말했다. "맞아요. 이 지형은 과거 용암이 분출되었던 곳이라, 만일 누군 가가 지하에 다량의 폭약을 설치하여 폭발시킨다면 다시 그 용암 이 터져나오게 될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때 앞쪽에서 누군가가 큰소리로 웃으며 화검상을 향 해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으핫핫핫! 네놈은 과연 잔꾀를 부리려고 하는구나! 하지만 그 런 쓸데없는 짓은 하지말고 우선 내 설명이나 잘 듣는 것이 어떠 냐?" 전면의 절벽 위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이렇게 소리치는 사 람은 바로 다름 아닌 백발노인 석숭무(石崇武)였다. 화검상은 가볍게 웃으며 일행을 돌아보고는 말했다. "우리는 오늘 아무래도 살아서 이곳을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 같소." 악검림이 마주 웃으며 말했다. "만일 우리가 한 번 시원하게 싸우다 죽는다면 그거야 나쁘지 않은 일이죠. 더욱이 정랑, 당신과 함께라면 저는 지금 당장 지옥 속이라도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아요." 동방리도 웃으며 말했다. "저들은 아마도 이 최후의 격전에 만만치 않은 준비를 했을 거 예요. 우리는 괜찮으니 당신은 신경 쓰지마시고 싸워주세요." 동방량은 아무런 말도 없었고, 다만 두 눈을 크게 뜬 채 주위 를 무섭게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석숭무가 화검상을 향해 다시 말했다. "오늘이 바로 네가 죽는 날이다. 너는 우선 주위를 둘러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너의 악행이 극에 이르러 천하의 모든 무림동 도(武林同道)들이 이 일에 나섰느니라." 화검상이 일행과 잠시 얘기를 나누는 사이에 이미 사방의 공간 은 그 몰려든 사람들로 인해 가득 채워져 있었다. 거의 만여 명은 될 듯한 이 많은 사람들은 그 숫자도 헤아리기 어려울 지경인데, 한눈에 보기에도 무림정예들로만 이루어져 있 는 듯하고, 게다가 중원의 정사양도, 해외세파들까지 거의 다 포 함되어 있었다. 일행은 그저 그 숫자만으로도 위압감을 느끼고 있던 데다가, 정사양도의 거의 모든 문파의 사람들이 여기에 나타나 있다는 사 실에 어안이 벙벙해질 지경이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 무림야그 출력일 :: 98/11/20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3 권 제 71 장 불가능한 일일지는 몰라도…… 제 71 장 불가능한 일일지는 몰라도…… 동방리가 안색을 굳히며 말했다. "과연 사파는 본래부터 정파와 한편이었군요. 그렇다면 그들은 어째서 이제까지 쓸데없는 소모전을 치러온 것이죠? 그건 아무래 도 배후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음모가 있었던 것이 틀림없어요." 화검상이 가볍게 탄식하며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내가 그렇게도 좋지 않은 사람이었다는 말인가?" 악검림이 의아해 하며 동방리에게 말했다. "거대한 음모라면 그럼 그건 대체 어떤 것을 말하는 거지?" 동방리는 잠시 생각해보는 듯하다가 말했다. "아마도 정사양도를 서로 상잔(相殘)시켜 세력을 약화시킨 다 음 무림제국(武林帝國)과 같은 것은 만들려고 했거나, 아니면 그 보다 더욱 심한 무림말살지계(武林抹殺之計)와 같은 것을 사용하 여 아주 강력한 대제국을 건설하려고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죠." 악검림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난 아무래도 이해할 수가 없어. 왜 사람들은 굳이 그러한 것 을 만들려고 하는 것일까?" 이곳에 나타나 있는 사람들을 일일이 설명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대강 문파들에 따라 나누어 세어본다면, 우선 소림사, 무당파, 개방 등이 주축이 되는 정파의 무림인들이 이천여 명이 고, 수라교(修羅敎), 만화교(萬花敎), 녹림맹(綠林盟) 등의 사파무 림인들이 오천여 명이며, 포달랍궁(布達拉宮), 만독궁(萬毒宮), 공 포림(恐怖林), 혈붕도(血鵬島), 환희밀교(歡喜密敎), 청조각(淸朝 閣) 등의 해외팔세(海外八勢)에서 온 무림인들이 이천여 명이고, 마지막으로 천륭무가(天隆武家)를 주축으로 한 성모궁(聖母宮), 일월신교(日月新敎), 현현사(玄玄社), 태양마교(太陽魔敎), 도막(刀 幕), 검총(劍塚) 등의 세외팔세(世外八勢)에서 온 사람들도 천여 명이나 됐다. 이들 개개인이 각파에서 가려 뽑은 정예 중의 정예들이라는 것 은 이제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고, 가장 놀라운 것은 세외팔세에 서 온 사람들이 무려 천여 명이나 된다는 사실인데, 아마도 그들 이야말로 가장 상대하기 어려운 세력일 것이다. 일행 중에서 만일 조금이라도 심약(心弱)한 사람이 있었다면 그저 그들을 보기만 해도 이내 놀라서 혼절해버리고 말았을 것이 다. 화검상은 천천히 그들을 둘러보다가 이윽고 석숭무를 향해 말 했다. "일단 이렇게 되었으니 싸우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일이겠지 만, 그 전에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하고 넘어가도록 합시다. 보시다 시피 내 옆에 있는 이 사람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녀의 부모를 만나기 위해 이곳까지 온 것인데, 그렇다면 먼저 그녀에게 그러 한 기회를 주는 것이 어떻겠소?" 석숭무는 잠시 생각해보는 듯하다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다. 아무리 간악(奸惡)스러운 자라고 해도 죽기 전에 한 가 지 소원은 들어주는 법이므로 그 소원을 들어주도록 하지." 그러한 말에 따라, 문득 화산파의 무리 중에서 악천일(岳天一) 이 앞으로 걸어나와 말했다. "네년은 감히 사문과 집안의 법도를 무시하고 그런 인면수심 (人面獸心)의 대악적과 함께 어울렸으면서 이제 와서 무슨 염치 로 나를 보고자 하느냐? 하지만 만일 네년이 지금이라도 과거의 일들을 뉘우치고 개과천선을 하겠다고 한다면 나는 다시 한 번 고려해볼 생각이 있다." 악검림은 문득 눈물이 솟구치는 것을 느꼈으나 이내 억지로 눈 물을 참고 당당한 어조로 말했다. "이분을 감히 인면수심의 대악적이라고 말하지 마세요. 나는 다만 할아버지를 설득하고 싶었고, 만일 그게 되지 않는다면 정 식으로 작별의 인사라도 드리고 싶었던 거예요. 하지만 이제보니 할아버지도 다른 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군요. 대체 이분이 무슨 잘못을 그리 많이 했다고 그런 말들을 하는 거죠? 이분은 아직 어느 누구도 헛되이 죽인 적이 없는 사람이에요." 악천일은 차갑게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흥! 저 후레자식을 따라다니더니 너도 어느새 간악한 계집애 가 다되었구나. 저 후레자식이 제 어미를 죽이려고 했다는 것은 천하의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데, 감히 괴변을 늘어놓을 작정이 냐? 더 할말도 없다. 잠시 후에 내가 먼저 네년을 처단할 것이 다." 동방리가 악검림에게 나직한 음성으로 말했다. "저 사람들의 말에 너무 그렇게 신경 쓸 필요는 없어요, 악언 니. 저들은 자신들의 목적과 이익을 위해서는 어떤 말이나 명분 이라도 지어낼 수 있는 사람들이니까요." 악검림은 다시 말했다. "알겠어요. 나도 이제부터는 화산파의 사람도 아니고, 또한 할 아버지와도 인연이 끊어진 것으로 하겠어요. 이것은 내가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이 아니니 당신들은 나중에 후회나 하지마세요." 화검상은 석숭무를 향해 다시 말했다. "자, 이제 그 일도 매듭이 된 것 같으니 그만 정식으로 시작을 하는 것이 어떻겠소? 설마 하니 지금 이곳에 당신과 같은 졸개들 만 온 것은 아닌 것 같은데, 내게 인사를 시켜주지 않겠소?" 석숭무는 그 말에 크게 노한 듯이 눈썹을 치켜세우며 소리쳤 다. "뭐, 뭐라고? 네놈이 감히 나에게 졸개라고 말을 했느냐?" 그때 문득 허공에서 우렁찬 웃음 소리와 함께 일단의 사람들이 천천히 내려오더니, 중간쯤에서 신형을 멈춰세우며 한 사람이 말 했다. "과연 소문대로 대단한 녀석이로구나! 다만 지나치게 미련한 것이 흠이기는 하지만, 하핫! 그래도 귀엽게 봐줄 만한 점이 있기 는 하도다." 악검림 등은 그 엄청난 기세로 보아 필시 천수자가 나타난 것 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나타난 사람들의 숫자는 모두 일곱 명이었고, 천 수자가 나타난 것이 아니라 세외팔세(世外八勢)의 주인들 중 다 른 일곱 명이었다. 성모궁의 궁주 광한성모(廣寒聖母)와 성수곡의 곡주 성수신의 (聖手神醫), 그리고 검총의 충조 천검성자(天劍聖子)와 도막의 막 주 도황제(刀皇帝), 태양마교의 교자 성태양존자(聖太陽尊子)와 일월신교의 교주 일월신성(日月神聖), 그리고 현현사의 사주 현현 노사(玄玄老師)였다. 지금 말한 사람은 그 중에서도 도황제 곽철산(郭鐵山)이라는 사람인데, 나이는 이미 삼백 세를 훨씬 넘어서 있고 무공은 광검 의 경지이며, 그래서인지 머리키락이 기이하게도 자색을 띠고 있 었다. 화검상은 즉시 그쪽을 올려다보면서 가볍게 포권하며 말했다. "여러분의 명성은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소이다만, 이렇게 직 접 만나게 되니 실로 영광이외다." 성수곡의 곡주 성수신의 황화순(黃化淳)이 문득 전음으로 말했 다. "내가 보기에 자네는 매우 아까운 인재일세. 지금의 정세는 결 코 자네가 이길 수 없는 상황이니, 차라리 지금부터라도 항복을 하고 순순히 우리를 따르는 것이 어떻겠나? 만일 그렇게 한다면, 자네가 장차 좋은 대접을 받게 될 것을 내가 보장하겠네." 노란 색깔의 머리를 하고 있는 그 노인은, 세외팔세의 주인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나이가 많을 뿐만 아니라 실력도 그 중에서 상당하다고 알려져 있는 사람이기에, 이 순간에 그런 말을 할 자 격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화검상으로서는 정작 이 모든 사태를 지휘하고 있 는 천수자가 눈에 보이지 않는 데에서 왠지 불안함을 느낄 수밖 에 없었다. 화검상은 말했다. "당신들이 장차 어떤 일을 하려고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이미 이 길에 들어서 있으니 나를 설득할 수는 없을 것이오. 나 는 그보다 이제부터라도 당신들이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새사 람이 되는 것이 어떤가 하고 권하고 싶소." 아름다운 백발을 하고 있는 노파 광한성모(廣寒聖母)가 눈살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정말로 광오(狂傲)한 놈이로구나! 네놈의 눈에는 이 많은 선배 고인들이 바지저고리 정도로밖에 안 보인단 말이냐?" 성수신의 황호순이 다시 전음으로 말했다. "자네의 무공이 우리보다 낫다는 것은 일단 인정하겠네. 아니 그것도 아직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말이네. 하지만 자네가 과연 우리 일곱 명의 합공을 막아낼 수 있을까? 좋아! 자네의 실력이 그야말로 상상외로 대단해서 그것도 가능하다고 치세. 하지만 과 연 그렇다고 해도 저 많은 사람들이 자네의 일행을 해치는 것을 막을 수가 있을까? 허허, 게다가 자네의 진정한 상대자는 아직 나타나지도 않은 상황인데도 말일세." 화검상은 전음으로 그에게 말했다. "천수자가 아직 나타나지 않은 점이 뭐가 그리 대단하단 말이 오? 설마 하니 그 한사람의 능력이 당신들 일곱 명보다 더 강하 다는 말이오?" 황화순은 미소하며 전음으로 대꾸했다. "좋아, 기왕 말이 나왔으니 그 얘기도 해주기로 하지. 자네가 애기를 듣는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없으니까 말일세. 사실, 허허! 이 산의 지하에는 자네의 예측을 뛰어넘을 만큼의 엄청난 폭약이 숨겨져 있네. 그것이 터진다면 여기에서 살아남을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고, 그 열쇠를 바로 그가 가지고 있네. 이제 알겠나? 게 다가 그는 이제 잠시 후면 이곳에 나타날 걸세."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무 무림야그 출력일 :: 98/11/20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3 권 제 71 장 - 1 화검상은 비록 아직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으나, 그런 얘기 를 들으면 들을수록 놀라고 엄청난 느낌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 다. 아무래도 이 일의 모든 지휘는 천수자가 아니라, 그 배후인 팔 선이 하고 있는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황화순은 아직 자세히 모르고 있는 듯하지만, 지금 이 많은 사 람들을 동원시키고 또한 지하에 엄청난 양의 폭약을 숨겨두었다 는 것은 아주 심상치 않은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 많은 양의 폭약이 터지면 당연히 지하의 용암도 터져나오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화검상은 비단 자신과 일행을 보호해야 할 뿐만 아니라 눈앞에 있는 이 많은 사람들도 동시에 보호해주 어야 한다. 만일 화검상이 이 많은 사람들이 죽는 것을 그대로 방치한다면 화검상은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고, 당연히 그것은 팔선에게 용화노인의 존재를 다시 의심하 게 하고 또한 그들이 강호로 나서는 명분을 제공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차라리 그가 황화순에게서 그런 얘기를 듣지 않은 것보 다 훨씬 못하게 되었다. 그런 얘기를 듣지 못했다면 그도 갑작스럽게 그런 일을 당한 것이 되니, 알고서도 방치한 것보다 훨씬 그 책임이 줄어들 것이 기 때문이다. 기실 화검상의 지금의 무공은 그가 스스로 생각해볼 때 대략 세외팔세 주인들의 세 배 가까이 될 것 같았다. 그렇다면 실로 황화순의 말대로 현재의 세외칠세의 주인들을 상대하는 것만도 벅찰 터인데, 엄청난 위력의 폭발 속에서 그가 어떻게 일행과 이 많은 사람들을 동시에 보호하고, 게다가 뒤를 이어 나타날 천수자마저 상대할 수가 있겠는가? 이것은 그야말로 죽으라는 소리와도 같고, 동방리의 말대로 무 림 말살지계의 책임을 화검상에게 전가시키려는 의도인지도 모르 는 일이다. 화검상은 잠시 무거운 기색으로 생각해보는 듯하다가, 이윽고 황화순에게 전음으로 다시 말했다. "그러한 말씀은 고맙지만, 당신들이 과연 그렇게 해서 무엇을 얻울 수 있을지 의심스럽소." 그 말은 사실 아주 의미심장하여 황화순이 아닌, 그것을 듣고 있을 다른 사람들에게 한 것이었지만, 정작 전음을 들은 당사자 인 황화순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내 눈살을 찌푸리며 전음 으로 대꾸했다. "정말 자네는 광오하군! 그렇다면 나도 더 이상은 권하지 않겠 네." 어느새 장내의 상황은 다시 변화하여 세외팔세의 사람들을 주 축으로 그 만여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일행을 향해 점차로 쇄도 해 들어오고 있었고, 무시무시한 살기가 더욱 팽배해지기 시작하 는 것 같았다. 이들의 공격은 아까 그 흑루의 살수들에 결코 비할 바가 아니 었다. 사람들의 공세가 마악 적극적으로 변하려는 순간, 화검상은 문 득 광검을 일으켜서 일행을 감싸는 한편 즉시 함께 칠세의 주인 들이 있는 공중으로 날아올라갔다. 비로 그러한 것이 당연한 결론이기는 하겠지만, 화검상에게 그 러한 능력이 있다는 것은 그 많은 지상의 사람들에게는 의외의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화검상이 그렇게 일행을 모두 백색의 상서로운 광채로 휘감은 채 함께 공중으로 올라가자, 지상의 사람들 중 대부분은 거의 일 행을 향해 공격을 제대로 펼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당연히 황화순을 비롯한 그 칠세의 주인들은 즉각 화검상을 향 해 광검으로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갑자기 하늘에 온갖 빛깔의 눈부신 광채들이 번쩍이기 시작했 고, 그 대부분은 일제히 화검상이 펼쳐놓은 백색 광채의 막에 부 딪쳐 흡사 무시무시한 불꽃이 터져나가는 것과도 같았다. 비록 지상의 사람들은 대개가 무림의 상당한 고수들이었지만, 대부분이 그 눈부신 광채들 때문에 도저히 공중의 상황를 분간할 수가 없었다. 동방리와 악검림 등은 그저 자신들이 가만히 있는 것이 도와주 는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지만 이내 화검상의 모습이 뭔가 심 상치 않게 변해가는 것을 보고 놀라기 시작했다. 이 순간 화검상이 어떤 무공을 어떻게 펼치고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어도, 안색이 점차로 창백해져가고, 이어 입가에서 선혈 이 조금씩 배어나오기 시작했다는 것은, 그가 지금 대단히 불리 한 상황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상하게도 지금 화검상은 비단 불리할 뿐만 아니라 완전 히 수세에 몰려 있었으며,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그것은 거의 화 검상 본인의 의도에 의한 것이었다. 그는 아까 말을 했고, 이제는 실상 그 팔선(八仙)이 생각하고 판단할 시간을 주고 있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그렇게 여유를 부린다는 것은 가히 자살 행위나 다름이 없겠지만, 화검상은 그것이 최선이라고 보고, 비록 불가능한 일일지는 몰라도 일단 최대한의 노력을 다해보고자 하 는 것이었다. 드디어 화검상의 입가에서 피가 울컥, 하고 한 사발이나 쏟아 져 나왔으며, 이어 계속해서 선혈이 줄줄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을 바라보는 악검림 등의 일행은 더욱 놀라서 넋을 잃을 지경이 되었고, 그만 어찌할 바를 몰라서 이제는 도리어 자신들 의 가슴이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본래 광검이란 한 사람의 공격도 무서운 것이거늘 이렇게 계속 해서 일곱 사람의 공격을 그냥 받아내고만 있으니, 그렇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오히려 아직 죽지 않은 것이 이상할 지경 이라고 해야 할 것이었다. 화검상의 몸은 일 각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이제는 피를 쏟다 못해 안색이 새파랗게 변한 채 옆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했고, 또 한 광검의 막이 점차로 엷어져가는 것 같았다. 일 각(一刻)이 여삼추(如三秋)라는 말도 있지만, 이처럼 위태위 태한 상황 속에서의 일행의 심정이란, 그 일 각이 최소한 삼십 년은 되는 듯했다. 그리고 이윽고 화검상의 몸이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이 부들부 들 떨리기 시작했을 때, 드디어 그는 마치 지나치게 무거워져서 들기 어려워하는 것처럼 오른손을 들어올리더니 가볍게 눈을 감 았다. 그 순간 일행은 마치 백색의 서광이 강렬하게 증폭되어 사방으 로 해일처럼 밀려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으며, 그 다음에는 왠 지 모든 것이 갑자기 조용해진 것 같았다. 악검림 등은 순간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았었는데, 눈을 뜨고 보니 어느새 화검상은 다시 몸을 똑바로 세우고 있었고, 안색도 언제그랬냐는 듯이 본래처럼 다시 평온해 보였다. 이제 전면을 바라볼 수 있게된, 일행은 다음 순간 상황을 분명 히 알아보고는 내심 크게 기뻐하며 소리쳤다. '이겼구나, 이겼다……! 아아, 이겼다……!' 지금 칠세(七勢)의 주인들은 아직도 그 자리에 서 있었지만, 모 두들 표정이 납덩이처럼 무겁고 넋이 나간 듯한 눈빛들을 하고 있었다. 최소한 다시 공격을 하지 않고 있는 것만 봐도, 그들이 이미 패했다는 것은 분명한 일일 것이다. 문득 그 중에서 성태양존자(聖太陽尊子)가 먼저 입에서 피를 내뿜으며 아래로 떨어져내리자, 일월신성(日月神聖)이 뒤따라 떨 어져 내리며 크게 분노한 기색으로 소리쳤다. "대체……, 천수자는 왜 여태 가만히 있었던 게야? 왜 여태 나 타나지도 않았느냔 말이야……!" 보아하니 그들은 아직 화검상에 의해 죽을 정도의 치명적인 부 상은 입지 않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재기할 수가 없어졌기에 그 정도로도 이미 그들은 치명 적인 것이나 마찬가지이며, 이는 화검상의 완전한 승리라고 할 수 있었다. 나머지 사람들이 이어 그렇게 차례차례 아래쪽으로 떨어져내리 고 나서 역시 가장 늦게까지 그 자리에 남은 사람은 황화순이었 는데, 그는 문득 힘없이 웃으며 말했다. "자네는 정말 대단하군. 나도 이게 어찌 된 영문인지는 잘 모 르겠지만, 자네는 운도 매우 좋은 것 같군 그래. 어쨌든 자네의 승리일세……." 황화순까지 그렇게 추락하고 나자, 이윽고 화검상은 천천히 광 검의 막을 거두며 일행과 함께 지상으로 내러서기 시작했다. 비록 그의 의복은 자신이 흘린 피로 가득 물들어 있어 흉해 보 였지만, 그것은 가히 승리의 상징이라고 할 수가 있었고, 안색은 밝아 보였다. 지상의 사람들은 아직 거의 부상을 입지 않아 멀쩡했지만, 이 제는 감히 어느 누구도 화검상과 그 일행을 향해 손을 쓸 엄두를 내지 못했다. 칠세의 주인들도 화검상에게 당할 수가 없었는데, 제아무리 숫 자가 많다고 해도 그들이 어찌 그의 상대가 되겠는가? 무엇보다도 그들은 이미 사기가 땅에 떨어지고 말았으니 어떻 게 해볼 생각도 나지 않을 것이다. 이윽고 신법을 펼쳐 밖으로 신형을 옮기면서, 문득 악검림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화검상에게 말했다. "정랑(情郞), 대체 그 천수자는 왜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죠? 그 가 나타났다면 상황은 또 달라지 않았을까요?" 화검상은 이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글세……, 나도 잘 모르겠소. 아마도 그는 지금이 그 시기가 아니라고 판단했던 것일지도 모르오." 하지만 그러한 대답과는 달리, 왠지 지금 그의 두 눈은 마치 그러한 이유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있는 것처럼 깊고 고요하게 빛나고 있었다.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무 무림야그 출력일 :: 98/11/20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3 권 제 71 장 - 2 그 격전이 끝나고 나서 사흘 동안 화검상은 부상을 치료하느라 동굴 속에만 틀어박혀 있었고, 그러는 가운데 일행에게는 아주 평화로운 시간이 흘러갔다. 비록 산중이라 그것을 잘 느낄 수가 없겠지만 아무래도 그 격 전 이후에 세상이 갑자기 크게 변한 것 같았고, 간혹 가까운 마 을에 내려가봐도 그러했다. 일행에게는 이렇게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세상 속에서 살아가게 되었다는 사실이 마치 현실이 아닌 꿈속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화검상은 어째서 굳이 아직 그 동굴을 떠나지 않 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아직은 모든 것이 완전히 해결되지 않 았기 때문이었다. 모든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려면 아직 건재한 천수자부터 제거 해야만 할 것이다. 세외칠세의 주인들을 제압한 이후이기 때문에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 같은데도, 왠지 화검상의 태도는 오히려 이전보다 더욱 신중해 보이고, 마치 이번에야말로 진짜 최후의 결전을 치르게 되는 것처럼 더욱 긴장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와 더불어 달콤한 사랑을 즐기고 싶어하는 악검림 등에게는 그것이 다소 불만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녀 등은 아주 즐겁고 평화롭게 그 시간들을 보냈다. 그리고 그 사흘도 지나고 나흘째 되는 날 오후 무렵, 갑자기 동굴로 낯익은 한 여자가 찾아왔다. 그 여자는 바로 다름아닌 남궁설완(南宮雪完)이었다. 남궁설완은 여전히 표정이 냉랭했지만 그래도 눈빛이 어딘가 이전과는 달리 다소 부드러워 보였는데, 밖으로 나온 화검상을 보자 그냥 이렇게 한마디만 하고 몸을 돌렸다. "당신이 만일 그 약속을 지키겠다면, 지금 나를 따라와요." 너무나도 일방적이었기 때문에 다소 어이가 없기도 했지만, 화 검상은 이내 서둘러 준비한 다음에 일행과 함께 그녀의 뒤를 따 라가는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남궁설완이 화검상 등을 데려간 곳은 동굴과는 제법 거 리가 먼 강가였는데, 어느덧 해가 저물어가는 가운데 수면에서는 희미한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런 곳이라면 으레 열정에 사로잡힌 청춘남녀가 사랑을 속삭 이기에 적당할 것이고, 게다가 지금은 시간적으로도 알맞다고 할 수 있었다. 악검림 등은 남궁설완이 누렇게 변한 갈대밭에 몸을 숨기고 언 덕위를 주시하고 있는 것을 보고, 다소 의아해 하면서도 그녀의 표정이 상당히 심각해 보였기 때문에 감히 입을 열어 말을 건네 지 못했다. 과연 아니나다를까, 잠시의 시간이 지나자 이윽고 가벼운 기척 과 함께 그 언덕 위에 한 남자가 나타나더니 주위를 두리번거렸 고, 이어 다시 그 남자의 앞으로 한 여자가 나타났다. 일행은 그 남자가 바로 다름아닌 남궁설완의 오빠인 남궁신(南 宮信)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그 상대인 여자의 얼굴이 낯 설 뿐만 아니라 대단히 아름답고 눈이 휘둥그래질 정도로 자태가 매혹적인 것을 보고 과연 누구일까 하고 궁금해졌다. 말할 것도 없이 그 절세적인 미모를 가지고 있는 낭자는 운빙 약(雲氷若)으로, 흔히들 운소군주(雲少郡主)라고 불리는 여자였다. 악검림 등은 그 잘생긴 두 남녀가 필시 이제부터 사랑을 속삭 이려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는데, 실상 그 두 사람은 그와는 정반대로 아주 살풍경하고 기이한 광경를 보여주고 있었다. 거리가 멀어 잘 들리지는 않았으나 남궁신은 연신 뭐라고 그녀 에게 말하며 애원을 하는 것 같았고, 반대로 그 운빙약은 차가운 표정으로 화를 내며 소리치고 있었는데 급기야는 그녀는 남궁신 에게 달려들어 손바닥으로 뺨을 철썩, 후려치는 것이 아닌가. 세외팔세의 하나인 성모궁(聖母宮)의 사람답게 운빙약은 남궁 신보다도 오히려 무공이 더 높아 보였고, 남궁신은 그래서인지 전혀 그녀의 손을 피하지 못하고 고스란히 뺨을 얻어맞아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남궁설완은 그러한 광경을 바라보고 있다가, 순간 크게 분노한 기색이 되어 오른손으로 장검의 손잡이를 세차게 잡으며, 전음으 로 화검상에게 말했다. "자, 이제 그녀가 왜 죽어야 하는지도 알겠죠? 어서 가서 그녀 를 죽여요! 나는 당신이 이 일만 마치면 이미 약속한 대로 한 가 지 부탁을 들어주도록 하겠어요." 실상 알고 보니 그녀가 굳이 운빙약을 죽이려는 것은 그녀 자 신의 일 때문이 아니라, 바로 그녀의 오빠와 관련이 있는 것이었 다. 보아하니 남궁신은 운빙약을 깊이 사랑하여 구애를 하고 있으 나, 반대로 운빙약은 그것을 거절하고 오히려 그를 매몰차게 박 대하고 있는 모양이다. 남궁설완은 본래 그녀의 오빠를 오랫동안 짝사랑해왔었는데 이 제 그 오빠가 다른 여자에게 그와 같은 수모를 겪게 되자, 도저 히 참을 수가 없어서 이와 같은 일을 벌인 것 같았다. 아마도 그녀는 미리 손을 써서 그 두 사람을 은밀히 이곳으로 불렀을 것이고, 하지만 그녀의 오빠에게 이 일이 발각되는 것이 두려워서 아직 직접 나서지는 못하고 있는 것일 것이다. 화검상은 잠시 생각해본 후에 웃으며 말했다. "알겠소. 하지만 이미 그냥 도와주겠다고 한 것이니, 그러한 조 건에 대해서는 부담을 가질 필요가 없을 것이오." 남궁신은 따귀를 한 대 얻어맞은 후에 화가 나기도 하고 어이 가 없기도 했으나, 이내 그것을 참고 다시 그녀를 설득해보려고 억지로 입가에 웃음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미처 그가 다시 말을 꺼내기도 전에 느닷없이 옆에 한 낯선 청년이 나타나더니, 운빙약을 향해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네가 바로 운소군주(雲少郡主)라는 나쁜 계집이냐? 과연 내 동생이 홀려서 죽을 만큼 여우 같은 계집이로구나. 하지만 오늘 나를 만났으니, 이제부터는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청년은 물론 조금 전에 변장을 하고 이쪽으로 온 화검상이 었다. 운빙약은 이 청년의 말이 너무나도 어이가 없을 뿐만 아니라, 또한 조금 전에 그가 나타나는 것을 제대로 알아차릴 수가 없었 기 때문에 다소 놀라 잠시 그를 주시하다가 눈꼬리를 치켜뜨며 말했다. "네놈은 또 어디서 온 미친놈이기에 그런 헛소리를 하느냐?" 남궁신은 이미 조금 전에 운빙약에게 얻어맞은 왼쪽 뺨이 벌겋 게 부풀어올라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내심 부끄러워하다가, 그만 참지 못하고 화검상에게 말했다. "실례지만 귀하는 누구기에 운소저께 그런 무례한 말을 하는 것이오? 만일 무슨 오해가 있다면 좀더 예의를 갖추고 대화를 나 누는 것이 좋지 않겠소?" 화검상은 고개를 돌려 남궁신의 왼쪽 얼굴을 일부러 조소하는 듯이 바라보다가, 짐짓 뜨악한 표정을 대꾸했다. "오해는 무슨 오해요? 무공수련을 마치고 돌아와 보니 내 동생 이 상사병을 앓고 있었고, 또한 사흘 전에 그 때문에 죽었는데 그럼 내가 가만히 있어야만 한다는 말이오? 만일 내 동생이 유언 으로 저 여우같은 계집을 죽이지만은 말아달라고 당부하지 않았 다면, 내가 그저 얼굴만 망가뜨리려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오." 남궁신은 그가 자신의 심하게 부풀어 있을 듯한 왼쪽 얼굴을 놀리는 듯이 바라보고 있고, 또한 그의 말이 다소 일리가 있는지 라 그만 대꾸를 못하고 또 얼굴만 더욱 붉어지고 말았다. 운빙약은 조금 전에는 비록 즉각적으로 욕설을 퍼붓기는 했으 나, 아무래도 이자의 무공이 심상치 않다고 판단하여 안색을 고 치고 반쯤 냉소하며 말했다. "네놈은 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헛소리를 지꺼여대느냐? 혹시 다른 더러운 속셈이 있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냐?" 화검상은 그녀를 다시 바라보며 무표정한 기색으로 말했다. "내가 누구인지는 알 필요가 없다. 또한 내가 무엇 때문에 너 와 같은 계집에게 다른 속셈을 품겠느냐? 나는 다만 천하에 또 다른 나의 동생 같은 자가 나타나게 될까봐 그것을 방지하기 위 해 너의 얼굴을 훼손시키기로 했으니, 너는 스스로 이제까지의 너의 행실을 원망해야 할 것이다." 말과 함께 화검상은 슬쩍 손을 뻗어 그녀의 혈도를 제압하려고 했고, 운빙약은 이미 당연히 전신의 공력을 모두 끌어올려 그에 대비하고 있었으므로, 즉각 나직하게 코웃음을 치며 반격을 하려 고 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분명히 그녀는 화검상의 그 가벼워 보이는 수 법을 막아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어느새 그는 간단히 그녀의 손목을 잡고 맥문을 제압해버리는 것이었다. 운빙약은 이에 그만 경악하여, 눈을 크게 뜨고 안색이 변하며 소리쳤다. "네놈은 대체 어디서 온 누구냐? 네놈의 동생이 그렇게 되었다 고 해도 언제 어디서 나를 만났다는 말이냐?" 화검상은 짐짓 가볍게 탄식을 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 동생이 언제 어디서 너와 같은 계집을 만나게 되었는지는 나도 아직 듣지 못했으니 모르겠다.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지 않았느냐. 사실……, 이런 일은 가슴이 아프기는 하지만 모두를 위하는 일이니 너무 억울하게 생각하지 말아라. 그리고 또한 그렇게 많이 아프지도 않을 것이다." 운빙약은 일단 무공으로 당할 수 없겠기에 안색이 새파랗게 변 하여 어찌할 바를 몰라 했는데 순간 화검상의 뒤에서 남궁신이 장검을 뽑아들고 공격을 해왔다. 화검상은 그것도 이내 간단히 옆으로 피하는 동작으로 무산시 킨 뒤에 지풍을 날려 그의 혈도를 제압하고 나서, 고개를 갸웃거 렸다. "이상한 일이군. 설마 하니 당신은 고작 저 여자의 얼굴을 보 호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마저 내던지겠다는 말이오……? 나는 본 래 동생의 유언 때문에 이 여자는 죽이지 않기로 했지만, 만일 다시 내 동생과 같은 자가 나타날 경우에는, 그 사람과 다른 사 람들을 위해 아예 처치해버리기로 했소. 으음, 당신은 다시 생각 해보는 것이 어떻겠소?" 남궁신은 자신의 검법을 간단히 무산시켜버리는 그의 무공에 대해서 놀라워하다가, 이내 쓴웃음을 지으며 눈을 감고 말했다. "나는 이미 패했으니, 더 할말도 없을 것이오. 당신의 뜻대로 하시오." 화검상은 이에 지풍을 날려 먼저 운빙약의 혈도를 제압한 뒤에 알 수 없다는 듯이 남궁신의 앞으로 가서 장검을 빼앗아들고 짐 짓 그의 목을 베려는 듯이 마악 목에 들이대다가, 문득 고개르 가로저으며 시선을 돌려 다시 운빙약을 향해 말했다. "아무래도……, 이 방법은 그다지 현명하지 못한 것 같소. 한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것보다는 그래도 얼굴을 훼손하는 것이 더 낫지 않겠소? 한 사람을 죽인다고 해서 이와 같은 사람이 또 생 기지 말라는 법도 없고, 게다가 이 사람은 보아하니 상당히 아까 운 인물인 것 같은데 말이오. 만일 낭자가 대신 자신의 얼굴을 훼손시킨다는 것을 원한다면, 나는 지금이라도 생각을 바꿀 용의 가 있소."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泳汰 무림야그 출력일 :: 98/11/20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3 권 제 72 장 세월은 유수와도 같이…… 제 72 장 세월은 유수와도 같이…… 운빙약은 냉랭하게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나는 네놈의 의도를 의심하고 있다. 네놈의 무공이 아무리 괴 상하다고 해도 감히 내게 손을 댈 수 있을 것 같으냐?" "흠……, 낭자가 그렇게 말한다면, 그럼 나도 할 수 없는 일이 지." 화검상은 그만 안색을 짐짓 싸늘하게 변모시키고는, 이번에는 정말로 남궁신의 목을 베려는 듯이 검을 들이밀다가, 문득 다시 그것을 멈추고 지풍을 날려 운빙약을 혈도를 풀어주며 말했다. "나는 비록 이 사람에게 손을 쓰게 되었지만 근본적으로 이 사 람을 미워하는 것은 아니오. 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낭자를 그냥 보내기는 하지만 아주 미워하고 있소. 따라서 이와 같은 남자의 죽음을 낭자가 보게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자, 낭자는 먼저 갈 길을 가도록 하시오." 이때 남궁신의 목에는 검에 의해 약간의 상처가 생겨서, 선혈 이 조금씩 배어나오고 있었다. 운빙약은 이에 다소 뜻밖이라는 듯이 화검상과 남궁신을 번갈 아 바라보다가, 이내 차갑게 냉소하더니 소리치며 신형을 날려 사라져 가기 시작했다. "네놈은 정말 멋모르고 함부로 날뛰고 있구나. 호호, 하지만 나 중에 다시 나를 만나게 되면 그때는 반드시 오늘의 이 일을 후회 하게 될 것이다……!" 이윽고 운빙약이 그렇게 멀리 사라져버리고 나자, 문득 남궁신 은 눈을 뜨고 화검상을 바라보더니 고소하며 말했다. "당신이 누구인지는 모르나 연극이 그다지 고명하지 못한 것 같소. 나는 이미 스스로의 잘못을 인식하고 있으니, 이제는 그만 검을 내려놓아도 좋을 것이오." 화검상은 우선 그의 혈도를 풀어주고 장검을 되돌려준 다음에 자신의 역용술을 해제하여 용모를 본래대로 회복시키고서, 짐짓 정중하게 포권하며 말했다. "으음, 용서하시오. 나는 별로 이럴 만한 자격이 없는 사람이지 만, 부득이하여 이렇게 되고 말았소. 하하, 부디 기분이 많이 나 쁘지 않았으면 좋겠소." 남궁신은 자신의 목에 생긴 상처를 손으로 어루만지면서 화검 상을 바라보다가, 문득 다시 고소하며 말했다. "이건 나의 잘못이니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을 것이오. 그러고 보니……, 당신은 아주 낯이 익구려. 혹시 최근에 더욱 유명해진 소광생(少狂生)……, 화공자가 아니시오?" 화검상은 짐짓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본래 나는 미친 녀석이니……, 이러한 주제넘은 짓을 하는 것 은 당연한 일일 것이오. 하하, 그보다 우리가 오늘 이렇게 만나게 된것도 인연이라고 할 수가 있겠는데 기분 나쁮 않읏다면 오늘부 터 나와 친구가 되는 것이 어떻겠소?" 그때 문득 뒤쪽에서 가벼운 기척이 일며 누군가가 창로한 음성 으로 웃으며 말했다. "당금의 천하에서 화공자만큼 훌륭한 분이 어디에 있겠느냐? 네가 그분과 친구가 된다면 그야말로 행운을 만난 것이다." 남궁신이 급히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그곳에는 방금 전에 말 한 남궁세가의 가주 제왕검노(帝王劍老) 남궁조능 이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나타나 있었으므로, 크게 안색을 붉히며 속으로 생각했 다. '이거 큰일이군. 내가 아까 벌인 일들을 이분들이 모두 다 보셨 을 것 아닌가……?' 지금 그곳에는 남궁세가의 사람들 이외에도 제갈세가(諸葛世 家), 아미파(峨嵋派) 등의 여러 다른 문파의 사람들도 있었고, 게 다가 남궁설완과 화검상의 일행은 천천히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 는 중이었다. 화검상은 즉시 남궁조능 등을 향해 가볍게 미소하며 포권과 함 께 말했다. "하하, 소생이 멋대로 저지른 일들을 여러분이 이미 보셨을 터 이니, 정말 부끄럽군요. 오랜만에 다시 만나게 된 것을 감안하셔 서 심하게 탓하지마시기 바랍니다." 그 십여 명의 사람들 가운데에서 문득 창궁검신(蒼穹劍身) 남 궁원도(南宮遠圖)가 가까이 다가오더니, 화검상을 향해 말했다. "화공자, 미안하지만 지금 긴히 의논드릴 일이 있소이다. 잠시 저쪽으로 자리를 옮겨주시겠소?" 화검상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소생은 이미 죄를 지었으니 어쩔 수가 없는 일이지요. 심하게 잘못을 탓하시려는 것이 아니라면 기꺼이 응하겠습니다." 자리를 옮겨 한적한 곳에 이르게 되자, 남궁원도는 가볍게 웃 음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우선 화공자의 승리를 축하드리고, 또한 그리하여 무림의 앞 날을 밝게 해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를 드리는 바이오. 이제 화공 자는 무림의 영웅이 되셨으니, 감히 내가 함부로 대할 수가 없을 것이오." 화검상은 웃으며 말을 받았다.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한데 저를 이곳으로 데려오신 것은, 제 게 무슨 다른 조언이라도 해주시려는 것입니까?" 남궁원도는 약간 정색을 하더니 말했다. "이미 그 황봉황(黃鳳凰), 황낭자에게서 우리 신풍회(新風會)에 대해 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오. 사실 미리 말해주지는 못했지만, 우리는 앞으로 사심없이 화공자의 모든 일에 협조를 하고자 하는 마음이오. 그리고……, 화공자도 아마 우리가 조금은 필요하게 될 것이라고 보오." 화검상은 이들이 바로 이전에 황봉황이 말했던 그 신풍회의 실 체라는 말을 듣고, 놀라는 듯한 표정을 보였다. 남궁원도의 말에 의하면, 이 신풍회는 남궁세가와 제갈세가, 그 리고 아미파와 달마하원(達摩下院) 등을 중심으로 하여, 그 세력 이 놀랍게도 이미 정사 중간의 동심맹에까지 이어져 있다고 했 다. 사실 남궁원도의 말 그대로, 비록 화검상의 능력이 대단하여 적들의 기세를 꺾어버렸다고는 해도, 천하의 정기를 회복시키려 면 그 혼자서는 잘되지 않을 것이다. "소생이 비록 어쩌다 운이 좋아서 한차례 승리를 하기는 했지 만, 그것이 어찌 저 혼자만의 힘이었겠습니까? 아마도 여러분이 뒤에서 도와주시지 않았다면, 그것은 어려웠을 것입니다. 앞으로 제가 필요하시다면 언제든지 말씀만 해주십시오." 남궁원도는 웃으며, 화검상의 손을 잡더니 말했다. "고맙소. 우리는 사실 화산파의 과거의 불행했던 일에 대해서 매우 유감으로 생각하고 있고, 또한 더러 그 일에 본의 아니게 끼여 들었던 사람들도 이제는 크게 뉘우치고 있는 상황이오. 그 런데 화공자가 이렇게 넓은 마음으로 대의를 위해 포용해주시기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소이다. 그리고……, 황낭자는 본래 우리 신풍회에 가입할 수 없는 사정이 있는 사람이었지만, 역시 대의 를 위해셔 나서주었으니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이 좋을 것이 오. 그녀는 가능하면 화공자가 천륭무가와 성수곡 등의 문파를 완전히 말살시키지는 말아주었으면 하고 바라고 있소. 아직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미안한 일이지만, 그렇게 해주시겠소?" 화검상으로서는 본래부터 더 이상 세외팔세 등을 해치지 않으 려고 생각하고 있던 것이므로, 황봉황의 그런 부탁은 굳이 할 필 요가 없는 것이기도 했다. 화검상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때 문득 남궁설완이 일 행과 함께 이쪽으로 다가왔기 때문에 남궁원도는 즉시 손짓을 하 며 그녀를 불렀다. "완(完)아, 어서 이리로 오너라! 화공자, 무슨 일이든지 명분이 라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오. 특히 이번에 무림에 새바람을 일으 키는 일에는 더욱 우리가 하나가 되는 것이 필요할 것이오. 그래 서 말인데……, 마침 화공자도 저 아이를 싫어하지는 않는 듯하 니, 저 아이를 첩실로 받아주시는 것이 어떻겠소?" 만일 평상시였다면 화검상은 당연히 이를 사양했을 것이지만, 지금 이 자리는 신풍회와 화검상이 마주앉아 있는 중요한 자리나 다름이 없는 것이기에, 그만큼 한마디 한마디가 신중하게 나오는 것이고 간단하게 생각해버릴 일이 아니었다. "하하, 저는 이미 두 명의 아내를 거느리고 있는 것이나 다름 이 없는 처지인데 혹시 그녀가 저를 지나치게 염치없다고 생각하 지는 않겠습니까?" 남궁설완은 가까이 다가와다소 상기된 안색으로 은근히 두 사 람의 표정을 살피다가, 문득 기이하게 웃으며 말했다. "혹시 당신은 아직도 내게 흑심을 품고 있다가 지금 이런 것을 핑계로하여 욕심을 채우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요?" 화검상은 다소 어색한 듯이 웃으며 말을 받았다. "나는 아까 그만 낭자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말았는데, 그 일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주었으면 좋겠소." 남궁설완은 문득 안색을 붉게 상기시키더니 약간 주저하며 대 꾸했다. "저도……, 사실은 그럴 작정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당신이 그 렇게 매듭을 잘 지었으니……, 그것으로 다된 거예요." 화검상은 문득 약간 정색을 하고, 그녀를 바라보며 전음으로 말했다. "최근에 나는,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다른 것 들에 구애되지 말고 그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소. 이전에 내가 당신에게 접근한 것은, 그러한 진 심이 있었기 때문이오. 지금 내가 그저 정략적인 것을 핑계로 삼 아 욕심을 채우려고 한다고 생각해도 좋소. 나와 혼인을 해주지 않겠소?"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워하 무림야그 출력일 :: 98/11/20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3 권 제 72 장 - 1 남궁설완은 이에 얼굴을 홍당무처럼 빨갛게 물들이더니, 그만 아무런 대답도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남궁원도가 그것을 보자 껄껄 대소를 터뜨리더니 신법을 펼쳐 사라져가며 말했다. "핫핫핫! 이거 젊은 사람들이 있는 곳에 공연히 늙은이가 너무 주책없이 오래 있었나보군. 그럼 나중에 봅시다, 화공자!" 악거밈이 다른 두 명과 함께 멀찍이 서서 바라보고 있다가 이 내 모든 것을 눈치채고는 얼른 다가와 웃으며 말했다. "우리 가족이 더 늘어나게 되었군요. 남궁낭자와 한 가족이 되 어서 기뻐요! 하지만 정랑, 당신이 앞으로 우리 세 사람 이외에 부인을 더 맞아들이는 것은 싫어요. 만일 그런다면 나는 정말로 혼내주고 말 거야." 화검상은 그만 대꾸할 말이 없어져서 시선을 돌리다가 겨우 말 을 받았다. "어서, 그만 돌아가도록 합시다. 천수자를 상대할 방법에 대해 서 생각해봐야 하겠소……." 아무래도 어떤 도와줄 세력이 있다는 것은 편리한 일이다. 그 로부터 사흘 후 아침에 화검상은 드디어 천수자와 대결을 하기 위해, 그가 있는 쪽으로 가게 되었다. 이번에도 화검상은 무공이 없는 동방리를 안아들었으며, 다른 사람들은 각기 신법을 펼쳐 그의 뒤를 따랐다. 어느새 사방에는 흰 눈이 내려서 제법 수북하게 쌓여 있었는 데, 비록 때 이른 감이 없지 않지만 이런 험한 산중에서는 그다 지 빠른 것도 아닐 것이다. 수십 개의 크고 작은 계곡들과 산등성이들을 지나 천수자가 있 는 곳에 거의 가까이 이르렀을 때, 문득 화검상은 낯익은 두 사 람이 자신의 앞을 막아선 것을 볼 수 있었다. 바로 다름아닌 그의 모친 풍귀월과 그녀의 제자인 여검월이었 다. 그녀들은 모두 새하얀 백색의 의복들을 걸치고 있었기 때문에 눈속에서 금방 나온 사람들처럼 순결해 보이기도 했지만, 그러나 그 눈빛만큼은 하나같이 새파랗게 빛나고 있었다. 화검상이 걸음을 멈추자, 풍귀월은 즉시 그의 앞으로 날아오더 니 눈 위에 그대로 엎드려서 두 팔로 그의 다리를 껴안으며 말했 다. "얘야,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어서 천수자에게 항복하고 모 두가 잘 살도록 하자꾸나. 그 어른도 이미 그것을 허락하셨단다. 우리도 이제는 옛날처럼 그렇게 하지 않고 너를 잘 위하고 보살 펴주마. 네가 원한다면 네 할아버지의 명예도 회복시켜주고 또한 네 선친의 무덤도 잘 만들어주도록 하겠다. 이 모든 것을 에미가 보장하마. 설마 하니……, 너는 이 예미의 말을 못 믿는 것은 아 니겠지?" 화검상은 아무런 말도 없이 모친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마치 먼 산을 보고 있는 듯 표정이 공허해 보였다. 풍귀월은 고개를 들어 그러한 화검상의 얼굴을 올려다보다가 다시 더욱 그의 다리를 세차게 껴안으며 애원했다. "천수자의 무공은 정말로 대단하여 너는 결코 그 어른을 당해 낼 수가 없단다. 그래서 이 에미가 순전히 너를 위해서 이런 말 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 얘야! 비록 내가 그동안 네게 못할 짓을 많이 하기는 했지만, 아직 너의 어머니가 아니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온갖 고생을 다 겪으며 너를 낳아 젖을 먹여 길러 주었고, 또한 너의 대소변을 다 받아주었다. 나의 그러한 은혜를 조금이라도 인정한다면, 이 한 가지 소원만은 들어주어야 하지 않겠느냐? 이제부터 오직 너와 잘 사는 것만이 내 소원인데, 설 마 하니, 이 에미의 하나뿐인 소원도 마다할 생각이냐……? 이 에미는 이제 네가 없으면 살아갈 수가 없단다. 으흐흑! 상아(像 兒)야! 상아야! 제발 이에미를 살려다오. 과거의 잘못을 모두 빌 테니 한 번만 용서해다오." 화검상은 고개를 들어 전면을 바라보더니, 그만 내심 크게 탄 식하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저도 이제는 어쩔 수가 없는 일입니다. 지금은……, 제가 그렇 게 해드리려고 해도, 돌이키는 것이 이미 늦었습니다.' 풍귀월은 다시 소리쳐 말했다. "얘야! 내가 이미 과거의 모든 잘못을 사과한다고 하지 않았느 냐? 그리고 우리 모두가 잘 살게 되기를 바란다는 것은 너도 한 말이다. 이 에미의 부탁이라는 것은 고작 그렇게 쉬운 것인데, 너 는 그저 약간 굴복하는 것이 싫어서 이 에미의 부탁을 거절하려 고 하느냐? 네가 그렇게 한 번만 굴복한다면 우리 모두가 잘 살 게 될 것이고. 만일 끝까지 고집을 부린다면 모두가 비참하게 죽 어버리고 말 것이다. 설마 하니, 호호……, 너는 이 에미를 정말 로 죽이려는 것은 아니겠지?" 화검상은 그렇게 계속 서 있다가, 이윽고 말없이 앞으로 걸음 을 옮기기 시작했다. 풍귀월은 강하게 그의 다리를 붙잡고 있었지만, 그녀의 힘으로 그를 저지할 수는 없는 일이기에, 그만 그를 놓치고서 그 자리에 쓰러지며 목소리를 높여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이……, 더러운 후레자식 놈! 감히 이 에미마저 죽이려 드는 간악스러운 놈의 자식! 과연 네놈이 앞으로 얼마나 잘 살게 될지 두고 보겠다! 네놈을 끝까지 저주할 테다! 장차 네놈의 살이 썩 어문드러져서 죽게 될 때 반드시 지옥에 떨어져서 영겁의 고통을 당하게 될 것이며, 다시는 인간 세상에 태어나지 못하게 될 것이 다. 이 인간 같니 않은 더러운 후레자식 놈……!" 풍귀월이 그렇게 눈 위에서 뒹굴면서 악을 쓰며 욕설을 퍼붓고 있을 때, 여검월은 그녀에게 달려가 부축하며, 역시 화검상의 뒷 모습을 향해 원한 맺힌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어느 정도 나아갔을 때, 문득 악검림이 가벽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정말로 산다는 것은 간단하지 않는 것 같아요. 일단 자신이 나쁜 씨앗을 뿌려놓으면 그것에서 헤어나기 어렵고, 그리하여 만 일 그것이 끝까지 간다면 지옥과도 같은 고통을 겪게 되는 것일 거예요. 하지만 세상에는 자신이 원하지 않아도 그런 길을 가게 되는 사람이 있으니, 그것은 대체 어찌 된 연유일까요? 그것은 혹시…… , 전생의 업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요?" 드디어 화검상은 한 사람과 마주세 되었다. 이사람은 천하제일가의 주인이며, 과거에는 천하제일인라고 불 렸던 바로 그 사람이다. 천수자는 은빛 머리카락을 바람결에 가볍게 휘날리며 화검상을 향해 말했다. "나는 이전에는 설마 하니 네가 이렇게 나와 마주서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그것이 나의 치명적인 실수라고 해야 하겠지, 허허 허……! 그렇다 , 내가 바로 너의 가문을 말살시키려고 했던 그 장본인이다. 무림제국이라……, 허허, 너는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보느냐?" 화검상은 그저 조용한 표정으로 그를 주시할 뿐, 대꾸하지 않 았다. 지금의 천수자는 비록 모습은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듯했 으나, 왠지 눈빛이 다소 초췌해진 것 같고, 크게 낙망한 것 같은 기색이었다. "우리 천륭무가는 오랫동안 은자지계(隱者之界)에 머무르며 천 하의 평화를 위해 노력해왔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을 별로 생 각해주지 않았고, 또한 우리는 천상절맥(天上絶脈)에 의해 자구만 수명이 줄어들고 있다. 허허……, 그러한 것들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잘못되었다는 말이냐?" 화검상은 이윽고 담담한 어조로 입을 열어 말했다. "지금으로서는, 더 이상 그런 말을 할 필요가 없다고 보오." 천수자는 고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실로 더 이상 그런 말을 해봐야 아무런 소용도 없겠 지, 허허허! 좋다……, 너는 내가 보기에 고금에 다시 없을 기재 일 것이다. 실로 너와 같은 적수를 만나서 한판 싸우다가 죽는 것도 어쩌면 의미가 있는 일이겠지. 그럼 시작하도록 하자." 문득 가벼운 삭풍이 불어와 주위의 눈발을 휘날렸고, 그 순간 에 천수자는 오른손을 내밀어 옥색의 광채를 발출했는데, 그것은 바로 그의 광검이었다. 일순 그 옥색의 광채는 주위를 뒤덮은 눈에 반사되어, 그야말 로 더욱 무시무시한 위력으로 화검상을 짓눌러가는 것 같았다. 화검상은 오른손을 내밀어 허공에 그저 간단한 검법을 전개하 는 듯이 가볍게 휘저었는데, 순간 놀랍게도 그의 그러한 동작으 로부터 한 송이의 상서로운 광채를 지닌 매화 모양의 강기( 氣) 가 생겨나더니, 흡사 나비처럼 너울거리기도 하고 크기가 사람만 큼이나 커졌다 작아졌다 하기도 하면서, 마치 살아 있기라도 한 듯이 움직이며 천수자를 향해 날아가는 것이었다.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 매화송이와도 같은 기이한 강기는 속도가 상당히 느린 듯한데도 능히 천수자의 광검을 막아내고, 그것을 흡수하거나 파해(破解)하여 무력화시키면서, 점차고 그의 몸을 덮어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천수자와 같은 빠른 신법의 소유자라면 충분 히 그것을 피할 수 있을 것 같은데도,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그는 이내 그 매화강기(梅花 氣)에 뒤덮였으며, 그대로 쓰러져 버리고 말았다. 실로 한때 천하제일인으로 군림하며 만인을 지배하려고 했던 자의 최후치고는 정말로 허망한 모습이었다. 천수자는 전신의 칠공(七孔)에서 피를 줄줄 흘리고 있었지만, 이내 고개를 들어 화검상을 향해 놀란 시선으로 말했다. "이……, 이건 무슨 무공이냐?" 화검상은 그를 잠시 바라보다가, 담담한 담담한 표정으로 대답 했다. "그건 화산파 매화검법의 또 다른 모습이오." 천수자는 그만 크게 어이가 없다는 듯이 입을 딱 벌리다가, 이 어 실소를 하며 말했다. "화산파의 매화검법이라고……? 허허, 좋다. 정말 좋다. 정말로 훌륭한 무공이로구나! 허허……, 이런 말도 안 되는……." ━━━━━━━━━━━━━━━━━━━━━━━━━ << To be Continue......무림야그>> ━━━━━━━━━━━━━━━━━━━━━━━━━ 워하 무림야그 출력일 :: 98/11/20 ─────────────────────────────────────── 제 목 : [화산문하] 2 부 3 권 제 72 장 - 2 천수자는 그렇게 숨을 거두었다. 화검상이 이윽고 신형을 돌리자, 악검림이 크게 기뻐하며 즉시 그ㅓ에게 달려와 안기며 말했다. "정랑, 정말 잘됐어요. 이로써 모든 일이 해결된 셈이로군요. 하지만……, 호호, 이제 우리는 어디에 가서 살아야 하는 거죠?" 그 무렵에 거기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서 여덟 명의 그 사 람같지 않은 사람들이 서로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빌어먹을, 결국은 이렇게 되고 만 것이 아닌가……? 차라리 지금 저 녀석을 제거해버리고 곧장 천하를 지배해버리는 것이 좋 지 않을까?" "흐흐……, 그렇다면 말로만 하지말고 자네가 한 번 그것을 시 도해보지 그러나?" "우라질! 그럼 용화노인이 살아 있다면 나만 당하게 될 것이고, 그렇지 않은 경우라도 자네들은 뒤에서 가만히 앉아 잇속만 챙기 게 될 것인데, 흐흐……, 내가 바보인 줄 아는가?" "어쨌든 우리는 지금까지 그렇게 해온 것처럼 함께 행동할 수 밖에 없네. 이렇게 된 것은 지금이 아직 때가 아니기 때문이겠 지." "으으으……, 내가 보기에는 아무래도 우리가 그때 석장생이 폭약을 터뜨리려고 할 때, 그냥 두었어야만 했던 것 같네. 만일 그 일을 두고 모른 척한다면, 나중에 용화노인이 정말로 나타난 다고 해도 뭐라고 말을 하지 못할 것이 아니겠는가?" "흥! 정말로 당신은 그렇게 생각한단 말인가요? 만일 그렇다면 어째서 그대 폭약을 제거하는 것을 찬성한 것이죠?" "이히히히, 그러니까 말인즉 그렇다는 것이오. 사실 용화노인은 신비한 사람이니, 우리가 그 사람의 능력을 알 수는 없는 일이지. 하지만 정말 아깝군……, 당시 석장생은 은근히 우리의 존재를 눈치채고 기대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그만 우리가 폭약을 제거 한 것 같자 실망하고 돌아갔던 것 아닌가? 그런 좋은 기회가 또 다시 올 수가 있을까?" "아니야, 우리는 그 일도 일단 잘한 것 같소. 저 화검상이라는 녀석이 갑자기 우리에게 그런 말을 했을 때, 우리는 모두 크게 놀라서 계획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았는가 말이오. 과연 저 녀석 에게 믿는 구석이 없었다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맞아요! 내가 보기에는 애초에 그와 같은 사람을 길러낼 수 있는 사람은 용화노인밖에는 없다고 봐요. 그의 뒤에 용화노인이 있었으니까, 자연 그는 태연히 모든 일들을 해나갈 수 있었던 거 죠. 나는 용화노인이 그렇게 무책임한 사람은 아니었다고 알고 있어요." "흐으, 그나저나 저 어린 녀석의 능력이 정말 갈수록 대단해지 고, 너무나도 진척이 빠르단 말이야? 이러다간 우리가 오히려 저 어린 녀석에게도 당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으히히, 화선은 좋겠소. 이미 저 녀석의 애인이 되어버렸으니, 장차 저 녀석이 성장한다고 해도 화선만은 해치지 않을 것이 아 니오?" "뭐라고요? 그러는 당신들은 그럼 그에게 각기 조금씩 도움을 주지 않았다는 말인가요? 나 역시 그를 한 번 시험해보려다가 그 만 일이 그렇되고 만 것이라고요. 그리고 그는 용화노인과 성격 이 비슷하여 결코 아무런 이유도 없이 우리를 해치려고 하지는 않을 거예요." "으음……, 천선(天仙), 당신이 보기에는 어떻소?" 잠시 후에 천선이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 "내가 보기에 저 화검상이라는 아이는 용화노인의 제자가 분명 한 것 같소. 설령 하니라고 해도, 저런 무공을 보면 용화노인과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은 사실이겠지. 그러나 용화노인은 결코 우 리처럼 오래도록 세상에서 살아갈 사람은 아니므로, 우리에게는 좀더 시간을 두고 기다리는 지혜도 필요할 것이오. 우리의 수명 은 그렇게 기다릴 수 있을 정도로 길다고 할 수가 있지. 따라서 이번의 일을 거울삼아서 앞으로 계속 지시하며 기다리다보면, 언 젠가는 기회가 오게 될 것이오." "흐흐흐! 하긴 그렇군. 그럼 우리는 이만 모두 각자 흩어지도록 합시다. 한데……, 우리가 다시 만날 때는 밤이 좋겠소, 낮이 좋 겠소? 나는 아무래도 낮이 좋겠는데 말이야……." 삼 년이라는 세월이 정말 유수와도 같이 흘렀다. 화검상은 그 동안 발해에서 은거 생활을 계속해오다가, 어느 날 문득 화산파로 다시 가봐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것은 그가 삼 년 전에 만들어주었던 무명노인의 무덤을 한번더 찾아보기 위해서였다. 그의 부인들과 그 사이에 태어난 자식들도 이 오랜만의 여정에 모두 따라나섰고, 제자인 동방량은 앞장서서 길을 인도했는데, 중 원으로 들어선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일행은 그간에 달라진 새 로운 소식들을 연달아 접하게 되었다. 강호는 이미 과거 신풍회라고 불렸던 세력이 주도하여 거의 새 로운 세상이 되어 있었다. 화산파는 삼 년 전부터 시작되었던 그 단체적인 심마(心魔)의 현상이 극도에 달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광기에 시달리다 죽어버 린 지가 오래이며, 남은 제자들을 백혈단의 사람들이 들어와서 여귀기(余歸機)를 장문인으로 모시고 함께 이끌고 있다고 했다. 물론 여귀기가 장문인의 지위에 오른 다음에 가장 먼저 한 일 은 화검상의 조부와 선친의 명예를 회복시키고, 화산파의 정기를 바로 세우는 일이었으며, 기이하게도 그 이후로는 화검상이 남긴 비급을 제자들이 배워도 전혀 심마의 증상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들려오는 소문들 가운데에서 역시 가장 우울한 것은 화검상의 모친 등이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심마에 의해 고통스럽게 살 다가 죽어갔다는 것이며, 가장 특이한 것은 방귀춘(方歸春)이라는 그 사람에 관한 소식이었다. 방귀춘은 그 당시의 많은 화산제자들 가운데에서도 거의 특이 하게 심마에서 벗어났던 사람들 중의 하나였으며, 이후에 다시 화검상의 비급을 보게 되었는데도, 오히려 심마에 걸리지 않고 더욱 괴이한 위력의 무공을 터득하여 지금은 윤검진(尹劍塵), 가 검통(賈劍通) 등이 보좌하는 녹림흑도(綠林黑道)의 일대괴수가 되 어있다는 것이다. 그와 같이 되어서 비록 화산파의 정기를 회복시키기는 했지만, 그러나 이제는 과거의 그 많던 제자들은 거의 보이지 않을 것이 다. 어느 날 밤 화검상이 황하를 거슬러 올라가는 배 위에 앉아서 이제느 볼 수 없게 된 외조부 풍천비, 풍검진, 풍검심, 유검하 등 의 모습들을 잠시 뇌리에 떠올려보고 있을 때, 문득 악검림이 그 의 옆으로 걸어나와 앉으며 말했다. "여보, 이제 우리에게도 그 얘기를 해줘요. 그 무명노인이란 분 은 대체 어떤 분이셨죠? 그분은 대단히 훌륭하신 분이셨나요?" 화검상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분은……, 나에겐 사부와도 같은 분이셨지. 그분이 아니었다 면 아마도 오늘의 내가 없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오." 악검림은 약간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그의 옆으로 바싹 다가와 앉아 다시 말했다. "아, 그게 정말인가요? 그럼 그분은 당신과 비슷한 능력을 가 지신 분이었단 말인가요?" '으음, 지금은 이런 얘기를 해줘도 상관이 없겠지.' 화검상은 잠시 그렇게 생각을 해본 뒤 대답했다. "그분은 사실……, 지금의 나보다 더욱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계신 분이었소. 사람들은 대개 자신의 눈에 보이는 일만을 생각 하기 쉬운데, 간혹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 일들이 더욱 대단한 경우도 있는 법이오. 그분은 이 세상에 계셨을 때에는 아주 평범 해 보이기도 했지만, 그러나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가운데 실로 많은 일들을 해오셨소. 나는 얼마 전에 스스로 이러한 사실들을 알게 되었는데……, 아마 당신에게 설명해줘도 그 자세한 부분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오." 악검림은 눈빛을 반짝이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하지만 나는 한 가지는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분이 하신 일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당신을 도와주신 것이 아닐까요?" 화검상이 미소하며 고개를 끄덕이려고 하는데, 그때 갑자기 선 실안에서 우당탕, 하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남궁설완의 다급해 하 는 듯한 음성이 뒤를 이었다. "여보! 어서 이리 좀 들어와보세요. 아이들이 장난을 치다가 촛 불을 건드려서 불이 났단 말이에요. 당신이 어서 들어오지 않으 면 이 배가다 타버릴지도 몰라요." 악검림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그녀는 또 우리가 다정히 얘기하는 것을 보고 샘이 난 모양이 로군요. 호호! 하지만 동방동생이 이미 병이 거의 다 나아서 아기 를 가지게 되었고, 그녀더 저렇듯 부드럽고 따뜻하게 변했으니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에요." 그런데 갑자기 사방에서 불빛이 번쩍이더니, 주위가 환해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화검상은 짐짓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웃으며 말했다. "아니……, 이거 정말로 불이 난 모양인데? 아림(阿林), 하지만 이 불은 생각보다 더 대단한 것 같지 않소?" 느닷없이 동방량이 그의 앞에 내려서더니 공손히 말했다. "사부님, 녹림의 도적들입니다. 그런데 그 괴수라……." 악검림이 순간 대노한 듯 몸을 벌떡 일으키더니, 장검을 뽑아 들고 엄숙한 어조로 소리쳤다. "아니 뭐라고? 감히 녹림의 도적들 따위가 우리의 배를 노리고 있다는 말인가? 이는 실로 어리석고도 멍청한 도적들이로구나!" 선실 안에 있던 동방리와 남궁설완도 그 소리를 듣고 밖으로 달려나오더니 각기 소리쳐 말했다. "악언니! 지금 녹림의 도적들이 나타났다는 량아의 말이 사실 이에요?" "어머나……, 정말이로구나! 여보, 당신은 그저 이곳에서 구경 만 하세요. 저런 녹림의 도적들은 우리 여자들이 단숨에 처리해 버릴 테니까요." 동방량이 이에 약간 벌게진 얼굴로 머뭇거리다가, 이윽고 다시 말했다. "그런데……, 그 괴수가 바로……, 방귀춘이라고 합니다." 방귀춘이라는 그 이름이 상당히 귀에 익은 것이었기 때문에 여 인들은 일순 서로를 돌아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방귀춘이라고요……? 그럼 그 화산파의 이단자 방귀춘이란 말 이야? 하긴 그래도 상관은 없지. 이번 기회에 아예 그자를 혼내 주는 거야!" 화검상은 그만 가볍게 파안대소를 하며 동방량을 향하여 말했 다. "하하, 마침 잘됐다! 그럼 너는 어서 가서 그자에게 말해라. 잠 깐 이리로 와서 술이나 한잔 나누자고 말이다." 여인들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기세가 등등하다가다 그 말을 듣 자 다소 맥이 빠지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다시 태도가 변 해 각기 화사하게 웃으며 부산을 떨기 시작했다. "호호……, 그랬구나! 그렇다면 어서 주안상을 준비해야지." "남궁언니는 술을 가져오세요. 저와 악언니는 안주를 준비하고 있을게요, 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