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신 도 (四 神 刀) "하하. 제가 초대한 저녁 식사에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오히려 우리 쪽에서 감사를 드려야 하는군요" 라이드가 우리 일행을 대표해서 말했다. 저녁 식사는 훌륭한 편이었다. 사실 마계에서 마족의 고기도 먹던 내가 못 먹을 것이 어디에 있겠냐 만은 음식 맛을 판단하는 혀가 어떻게 된 것은 아니다. "그럼 즐겁게 즐겨 주십시오" 시장은 우리에게 예의를 갖추어 말한 후 다른 곳으로 갔다. 요번 파티는 이번에 아세린이 지독한 더위에서 벗어난 것을 축하하는 파티였는지 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그 덕에 나는 실용성도 없고 어울리지도 안는 어울려서도 안 되는 신사복을 입고 나올 뻔했다. 옷을 입히는 아주머니는 처음에는 내가 여자인줄 알고 여자 옷을 가져왔다가 내가 남자라는 것을 밝히자 다시 신사복을 들고 나왔었다. 내가 입지 않으려고 하자 꼭 입어야 한다고 우기기에 어쩔 수 없이 살기를 뿜어대었고 그 아주머니를 쫓아 낼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입고 다니던 마신의 갑옷을 꺼내 놓았다. 검은 색이 깨끗하게 흐르는 듯한 이 갑옷은 마계에서 상급 마족과 전투를 하여 얻은 것이다. 정확한 소재는 알 수 없고 마신이 사용하던 갑옷을 우연히 얻었던 것 같다. 게다가 상의뿐이 아니라 온 몸을 덮어주는 갑옷이기 때문에 입고 나가는데 문제가 없었다. 게다가 마기(魔氣)도 풍기지 않아 눈치보일 일도 없고. "헤에? 그러고 있으니까 멋진데?" 린이 다가와서 말했다. 사실 그렇기는 하다. 내 자랑은 아니지만 내 몸은 완벽한 검사(劍士)의 표본이었다. 비록 검은 색의 상의를 입어 안 보이기는 하지만 근육도 상당했다. 하지만 거기에 결정적인 결점이 있었으니.... "우와∼ 근데 진짜 예쁘다. 꼭 여전사 같아" 이 망할 놈의 낯짝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전 남자입니다. 그런 발언은 삼가... 응?" 나는 린에게 주의를 주려다가 방금만 해도 시끌시끌하던 주위가 갑자기 조용해진 탓에 고개를 돌렸다. "..." 내 얼굴근육이 약간이지만 내 통제를 벗어나 움직였다. 다행이 금방 바로 잡을 수 있었지만 그만큼 드레스를 입은 루니와 린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비록 마계에서 수많은 유혹을 당해 본적이 있는 나이지만 드레스를 입은 그녀들의 모습은 아름다운 나신의 모습으로 나를 유혹해 생기를 빨아들이려고 했던 마족들에 비해서 색다른 아름다움으로 다가섰다. 하지만 그나마 빨리(아직까지 멍하게 있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정신을 차린 나는 다시 식사로 고개를 돌렸다. "빨리 식사를 하시지요. 저 사람들 침흘리다가 음식을 다 버리겠군요" 나는 다시 식사를 시작했고 그에 정신을 차린 다른 사람들도 시뻘개진 얼굴로 각자 식사에 들어갔다. "허허.. 예쁘구나 애들아 사람들이 정신이 다 나가던 거 같던데?" 지금까지 루니의 모습을 봐왔기 때문인지 그나마 루니와 린의 모습에 약간밖에 놀라는 얼굴을 짓지 않던 라이드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나저나 드래스를 입은 건 처음이겠구나. 솔직히 드레스를 입고 나올 줄은 몰랐는데 무슨 일이냐?" 라이드는 의아하다는 듯이 말했고 루니가 작게 대답했다. "안 입으려고 했는데... 린이 자꾸 바람을 넣는 바람에..." 루니의 얼굴이 붉어졌다. 상당히 부끄러워하는 것 같았다. 그런 루니의 등을 린이 탁탁 소리나게 치며 호쾌하게 말했다. "무슨 그런 소리 하냐? 난 별로 말을 하지도 않았는데 너도 입고 싶어서 입은거면서 뭘 그래?" "..." 대답을 못하는 걸 보니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드레스를 입고있던 그녀들이 상당히 아름다웠다고 생각하며 다시 식사를 했다. 아름다운 건 아름다운 거고, 식사는 식사다. "저기, 루니" 내가 식사를 하고 있는데 린이 조용하게 옆자리에 있는 루니를 불렀다. 사실 나와 린의 자리는 조금 떨어져 있었지만 나의 상상을 초월하는 청각에 그런 것이 문제가 될 리는 없다. 린은 루니의 귀에 대고 조용하게 말했다. {정말, 전혀 반응이 없는데? 내 얼굴을 보고 저렇게 무표정인 사람은 없었는데... 최소한 당황했었는데 말이야. 너도 그렇지?} {그..그래} {너도 그렇고 나도 그런데 전혀 반응도 없네? 사람들이 전부다 일시에 조용해 질 정도였는데 말이야. 매일 자기모습을 거울로 보다보니 눈만 높아 진 것이 아닐까? 그게 아니면 혹시 레인이.....} "다 들립니다" "핫!" 나는 그녀의 뒷말에 대충 어떤 말이 이어질지 짐작이 갔기에 그녀들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몰라 멍청한 표정을 지었지만 린과 루니는 폭파하기 직전인 폭탄이 아닐까 걱정이 될 정도로 붉어진 얼굴로 머리를 숙이고 앉았고 나는 여전히 식사를 할뿐이었다. 사람들은 간간히 루니와 린을 흘깃거리기는 했으나 우리가 파이어 골렘을 잡았다는 사실을 알기에 가끔씩 감사하다며 말을 걸어오는 사람은 있어도 수작을 부리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내가 기분 나쁜 것은 루니나 린이나 쳐다볼 것이지 나에게 눈을 향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나는 당장에 사신도로 전부 날려 버리고 싶은 욕망이 일었으나 필사적으로 무표정을 유지한 채 식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파티는 점점 시끄러워 지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혼자 정원으로 가서 벤치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약간 어두운 남색을 띠고 있는 하늘에는 많은 별들이 빛을 내고 있었다. 내가 살던 곳에서는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사실 우리 집은 공기가 맑은 곳이었다. 뭐랄까... 산 중턱정도? 버스가 들어오지도 않고 슈퍼 같은 것도 약간 멀었지만... 아, 그렇다고 촌 동네는 아니다. 십 분만 내려가면 아파트 있고 게임방도 있고...(엄청나기는 하지 대 학교가 다섯개 정도는 되어서 한 마을에 게임방이 거의 서른 개는 되었으니까) 뭐, 아무튼 우리 집 근처도 다른 곳보다는 공기가 맑았다는 말이다. 밤에 별도 상당히 볼 수 있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짙은 남색의 하늘에 밝은 별무리... 마치 영혼이라도 빨아들일 것 같은 환상적인 아름다움이었다. 마계에는 별이 없었다. 물론 태양도 없었고 있는 것이라고는 희미하게 떠있던 달빛뿐... "멍∼ 하구만? 하늘 보면서 무슨 생각하는 거야?" 나는 하늘을 바라보던 시선을 그대로 다시 아래로 내렸다. 린이었다. "무슨 일이 신가요?" "일은 무슨... 식사도 다했고... 저기에 있는 것은 따분해서 따라나와 봤어" "그런가요..." 내가 조용히 대답하자 린이 순간적으로 내 옆자리에 않았다. 심장이 순간적으로 쿵 하고 울리는 듯 했으나 마계에서 당한(?) 일들도 있고 해서 조용히 마음을 가라앉도록 할 수 있었다. "레인" 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조용히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달빛이 비친 린의 모습은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다가왔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반문했다. "무슨 일이시죠?" "치이! 되게 재미없네. 궁금한 것이 있어서 왔어" 린은 정말로 재미없다는 듯이 입을 삐쭉 내밀고 말했다. "궁금한 것? 아까 그 검무에 관한 거라면..." "아냐, 살기 때문에 왔어" "살기(殺氣)?" 나는 순간적으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살기라면 검을 익힌 사람들이 낼 수 있는 일종의 힘 중의 하나였다. 물론 나라면 살기를 자유롭게 다룰 수 있었다. "모르고 있었어? 네가 늘 살기를 뿌리고 다니는 바람에 사람들 분위기가 자꾸 어색해 지잖아. 검을 모르는 나도 살기라는 것을 확연하게 알 수 있으니 원...." 루니가 어이없다는 듯이 말하는 말은 상당한 충격이었다. 그럼 지금까지 내가 말만 하면 자꾸 분위기가 추락하던 것이 그 때문이었나? 나는 조용히 앉은 채로 내 몸의 살기를 느껴보았다. 모두 내가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었지만 놀랍게도 내 몸에서 조금씩 살기가 자연적으로 흐르고 있었다. "훗! 나참... 제 버릇 개 못 준다더니..." 나는 약간 자조적인 웃음을 띄웠다. 착각이었을까? 순간적으로 린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는 듯 했으나 금방 사라졌다. "무슨 소리야?" "별거는 아니고... 습관이 들어버린 것 같군요. 예전에 제가 지내던 곳이 워낙 살벌하던 곳이라..." 그랬다. 마계에서 살기를 내지 않는 것은 없다. 나무도 바위도 심지어 공기에서 조차도 살기가 둥둥 떠다닐 지경이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살기가 나지 않는 곳은 없었다. 오히려 그런 곳에서 어느 정도의 살기가 없으면 더욱 마족들이 몰려오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 물론 지나치게 강해도 마찬가지였지만 말이다. "고향이야?" "고향은 아니고 잠시 지내던 곳이었습니다" "그...런 곳이 있어?" "별로 알아서 좋을 건 없어요" 나는 약간씩 내 몸에서 새어 나오던 살기를 정리하면서 말했다. 조용한 내 말에서 단호함을 느낀 건지 더 이상 묻지는 않았다. "그래, 요번에 세인트에 입학하려고?" "예. 딘도 입학한다고 하던데..." "나도 할 생각이야" "린도요?" 나는 듣지 못했던 말에 되물었고 린은 살짝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 나도 카드 마법 길드에서 뽑혔어. 나 말고도 꽤 많은 녀석들이 갔지 세인트에 다닌다는 것은 아주 명예로운 일이니까. 게다가 시합 구경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 근처로 몰려들걸?" "시합?" "뭐야? 정말 몰라? 하여튼 잘 들어. 일단 세인트에 들어가면 시합을 벌이지, 마법, 검술, 카드 마법, 정령술.... 뭘 사용해도 상관없어. 무기도 자유롭고. 스크롤이나 독을 사용하면 실격이지만 말이야... 각지에서 걸르고 걸러 나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실력은 대단하지. 그렇다고 진다고 탈락하거나 하는 것 아니야, 정말 실력이 없으면 교장이 막을 수는 있지만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야해. 시합으로 정하는 것 반이지" "반? 등급을 나누는 것입니까?" "그래 강한 자들은 모아서 엘리트 반을 만들고... 등급을 나누어 반을 나누지 시합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계속 성적이 좋으면 졸업도 일찍 할 수 있을걸? 삼일이면 도착할 거니까 그리 오래 남은 것도 아니고" "..." 나는 조용히 생각을 정리했다. 내가 살던 세계로 돌아가려고 가는 학교. 빨리 졸업할수록 좋다. 내 실력이 여기에서 상당히 통하는 것 같고. 우승을 향해 도전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하고 생각했다. "레인?" "..응? 아, 죄송합니다. 말씀 감사드립니다" "뭘, 괜찮아"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린도 일어났다. 린은 뭔가 더 할말이 있는 것 같았지만 나는 별로 상관하지 않았다. "그럼 안녕히 주무십시오" 린은 뭔가 더 말을 하려는 듯 우물쭈물 하다가 결국 한숨만 푹 하고 내쉬더니 손을 흔들었다. "잘 자, 레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