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인은 의자에 앉은 채 자신의 몸에 있는 마나를 이리저리 움직여 보았다. 다행히 다크와의 대결에서 사용한 마나가 그렇게 많지 않았기에 몸에는 그리 이상이 없었다. 지금 그는 경기할 때와 마찬가지로 온 몸을 갑옷으로 덥고 있었다. 누군가 레인을 모르는 사람이 방안에 들어왔다면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나 하고 슬금슬금 피할 것이다. "레인?" 레인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의 뒤에서는 린이 힘겨운 모습으로 침대에 누워있었다. 원래는 소환의 반지를 가지고 있으면 라몬슬라임 정도는 가볍게 사용할 수 있으나 린은 반지를 받자마자 적응기간도 없이 바로 사용했기에 마나가 탕진된 상태였다. "정신이 드셨습니까?" "아... 그렇지 뭐" 린은 힘겹게 몸을 일으켰고 레인은 그런 린을 보면서 나직하게 말했다. "시합에는 나갈 생각입니까?" "물론! 아직 멀쩡하다고" 툭 "어?" 털썩 린은 레인이 살짝 몸을 밀치자 힘없이 침대로 쓰러졌다. "이런 몸으로 말입니까?" "...어머. 숙녀를 쓰러트리다니, 무슨 엉큼한 생각을 하는 거야?" "말 돌리지 마십시오. 당신은 지금 오거 한 마리조차 소환하기 버겁습니다" "..." '도무지 농담이 통하지가 않는다니까'라고 생각하며 그녀는 다시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맞는 말이었다. 자신의 상태는 자신이 더 잘 알았다. 카르난이라고 하는 하프오크 같은 녀석과의 대결에서 마나를 모조리 사용해 버렸다. 그나마 한숨 자서 어느 정도는 찼지만 그야말로 오거 한 마리가 한계. '망할 놈... 다루지를 못하면 소환이나 하지 말 것이지' "하지만 상대는 소드마스터야, 어차피 몸이 멀쩡해도 질 텐데 뭐. 해 봐서 손해볼 건 없지" 레인이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는 멋 적은 미소를 지었다. 도대체가 투구로 얼굴을 가리고 있어서 무슨 표정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결국은 시합을 할 생각입니까?" "응" 레인은 린의 말을 듣자마자 손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뭐하나 하고 쳐다보고 있는 린의 시선을 받으며 자신의 손을 린의 가슴 위에 턱 하고 올려놓았다. "무..무..무..무슨 짓이야?" 린은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얼굴이 깜짝 놀라 벽까지 뒤로 물러났다. 그녀의 얼굴은 이미 붉은 색 페인트라도 칠한 듯 완전히 붉은 색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레인은 이미 그 정도는 예상한 듯 담담하게 말했다. "마나를 공급하려는 겁니다" "마..마나? 레인도 시합이 있잖아" "여유가 있습니다" "..." 린은 약간 황당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아니 그렇게 큰 마나의 폭풍을 만들고서... 여유가 있다? 하여튼 린은 그나마 레인이 자신의 가슴에 왜 손을 올렸는지 알게 되었고 그것 때문에 오히려 더 황당해 졌다. 보통 검사나 파이터들은 배꼽 아래에 있는 단전(丹田)에다가 마나를 모으고 마법사나 정령사, 카드법사들은 심장 주위로 마나를 모은다. 물론 두 개에 다 속하는 마검사인 레인같은 경우는 양쪽 모두에 있다. 물론 양쪽에 마나를 나눈 만큼 마나량은 한가지에 도전한 사람에 비해서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레인은 지금 여유가 있다고 했다. 도대체가 이 녀석은 인간이란 말인가? "뭐하시는 겁니까?" "아... 미안 잠시만 시간을 줘" 린은 침대에 머리를 박고 고민에 빠졌다. 자신은 지금 마나가 바닥이다. 경기에 나가도 그야말로 아무것도 못하고 쓰러질 것이다. 그런데 지금 레인이 마나를 회복시켜 준다고 한다. 객관적으로는 상당히 좋은 일이었으나 문제는 다른 것에 있었다. 그녀도 카드마스터인 만큼 심장에 마나를 모은다. 어쩔 수 없이 가슴에 손을 올려야 한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마나를 받아본 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녀가 마나를 받은 상대는 여자였다. 그녀의 스승이 여자였기 때문이었다. 린 스스로가 순결한 처녀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으나 레인이 가슴을 집게 하는 것은 좀..... '어떻게 해...' 레인은 그녀가 생각을 한다고 하자 바로 가부좌라고 하는 이상한 자세로 않아 있었고 린은 그를 갈등 섞인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가 무슨 나쁜 마음을 먹은 것 같지는 않다. '에라' "좋아, 대신 엉큼한 생각하면 죽어!" "..." 레인은 그녀가 오랜 갈등을 끝내고 협박하듯 말하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바로 심장 주위에 있는 마나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의 마나를 모았을 때 오른 손을 들어 올렸다. 웅웅 아직 레인이 마나를 다루는 것이 자유롭지 않았기에 그의 팔이 푸른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상당히 멋진 장면이었으나 이런 장면은 아직 마나 운용이 자유롭지 못할 때 나오는 현상이었다. 마나를 다루는 숙련도가 높아지면 아무 소리도 아무런 빛도 나지 않아야 했다. "후..." 레인은 문득 린이 신호흡을 하면서 눈을 감고 있는 것을 바라보았다. 솔직한 심정으로 말하면 린은 아름다웠다. 하지만 레인으로써는 그리 기쁜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아름다웠기에 더 위험했다. 린은 너무도 닮았다. 그녀와... '잡생각 말자' 레인은 가볍게 고개를 떨치고는 마나를 모은 손을 그녀의 가슴 위에 올려놓은 후 마나를 움직여 린에게 주입시켰고 린은 눈을 감은 채 그의 마나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 린은 정신 집중을 해서 마나를 받아들이고 있었으나 레인이 자신에 몸에 손대고(?) 있었기 때문인지 도무지 진정이 되지 않았다. 얼굴은 붉어졌고 심장은 이미 그녀의 통제하에서 벗어나 폭팔 할 듯 쿵쾅거리고 있었다. '진정하자... 진정' 그녀는 최대한 빠르게 마나를 받아들였다. 심장소리가 너무나 커 그가 들을 까 걱정될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웅웅웅 레인은 잠시동안 마나를 넣어주고 있다가 어느 정도 린의 마나가 거의 다 찼을 때 천천히 손을 떼었다. 린은 붉어진 얼굴로 눈을 감은 채 레인에게 받은 마나를 정리하고 있었다. "후..." 레인은 손을 떼고서 숨을 고르게 쉬었다. 전체 중에서 3분의 일 정도 되는 마나가 빠져나갔다. 사실 다음 시합에서의 마나가 모자란 것은 아니었지만 넘치도록 충분하지는 않았다. 검사로써의 마나라면 넘치도록 있다고 하지만 마법사로써는 4클래스 마스터일 뿐이었기 때문 이였다. 물론 검을 써서 다음 시합을 이기는 방법도 있었으나 다음 시합인 카인은 마법사. 그것도 같은 수준의 마법사라면 한번 정당하게 마법으로 대결을 해 보고 싶었다. "2시간 정도 남았군" "2시간?" 린은 어느새 마나를 다 정리했는지 레인의 말에 의문을 표했고 레인은 친절하게도(평소의 행동에 비하면)바로 설명을 했다. "지금은 휴식시간이라서 쉬고 있는 것이고 2시간 후에 다시 시합이 시작됩니다" "그래?" 린은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명상을 하려고 하는 레인에게 뭔가 내밀었다. "레인 이거 받아" 레인은 그녀가 내민 소환의 반지를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것을 왜 준단 말인가? "...?" "잠깐만, 일단 이유나 알자. 이걸 나한테 왜 준거야?" "스킬드들이 린의 해치려고 할 때, 직접 개입할 수가 없어서 던져 준 것입니다만?" "아... 그런가? 그럼 반지를 던져주는 건 반칙이 아냐?" "그렇더군요. 다른 사람이 직접 개입해서는 안 돼지만 무기를 공급하는 것은 허락됩니다" "...그래? 그땐 정말 고마웠어" "그렇습니까? 그런데 반지는 왜?" 린은 레인이 의문사를 표하자 멋 적은지 헤헤거리며 미소로 넘어가려고 했지만 상대는 그렇게 만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이 반지는 너무 대단한 반지야 대륙 10대 기보 중에 하나라고, 이걸 그냥 '어? 고마워'하고 받을 수는 없어. 그렇다고 네게 대가로 뭔가를 줄만큼 대단한 물건도 없고...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레인과 나는 만난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고" '의외로군' 레인은 린의 행동에 약간 놀라움을 나타냈지만 린으로 써는 당연한 행동이었다. 린은 평소에도 아무 대가 없이 무언가를 받는 것을 싫어했다. 그런데 파이어 골렘을 준 것도 모자라 이제는 소환의 반지를 주려고 한다. 웬만한 사람은 알고 있겠지만 소환의 반지는 대륙 10대 기보 중에 하나다. 10대 기보 중에서도 소환의 반지는 카드 마법사들의 것으로 착용자의 마나를 순간적으로 20배까지 증가시킬 수 있고 몬스터들에 대한 친밀도도 높일 수 있는데다가 몇 가지 착용자를 보호하는 마법까지 걸려있고 알려지지 않은 힘까지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솔직하게 돈으로 환산하면 몇 백억 골드도 훨씬 호가하는 물건이란 말이었다. 만약에 보통 물건이나 반지 같은 것을 주었다면 고맙게 받겠지만 소환의 반지는 받을 수가 없다. 턱 "...!" 린은 레인의 손이 반지를 가져가는 것을 찹찹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가 돌연 그의 손이 자신의 손을 잡는 것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당황한 린은 뭔가를 말하려고 했지만 그보다 빨리 레인은 그녀의 손을 잡고 반지를 검지손가락에다가 끼워 넣었다. [억겁의 시간을 지내온 약속의 의지여... 세상을 지배하는 힘의 상징 중의 한 갈래여... 나 지금 그대에게 위대한 이름으로 명한다. 이는 약속의 이행자. 그녀와 나 의외에 아무도 그대에게 손대지 못하리라...] "뭐..뭐야?" 부우웅! 마치 머릿속을 울리는 듯한 레인의 말이 지나간 후 소환의 반지가 약간의 빛에 뿜어져 나오더니 린이 뭐를 하기도 전에 그녀의 온몸을 뒤덮더니 이곳 저곳 돌아다녔다. 마치 그녀를 조사하는 것 같았다. 슈우웅 린의 몸에서 가볍게 한번 빛이 나더니 린의 몸을 뒤덮는 빛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때까지 린은 당황해 가만히 서 있었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입을 열었다. "뭘... 한거야?" "린을 반지의 주인으로 정해 놓은 것입니다. 그냥... 선물이라고 생각하십시오" "하지만 왜?" "...선물에도 이유가 필요합니까?" "..." 레인은 린에게서 약간 거리를 두고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레인의 말에 잠시 멍하게 있던 린은 그런 레인에 모습에 급하게 손을 들었다. "자..잠깐만 레인!!" "텔레포트(tleport)" 스윽 린은 잠시 손을 내민 상태로 가만히 있다가 잠시 후 작게 한숨을 쉬었다. "후... 이건 뭐야? 대륙 10대 기보를 강제로 받은 듯한 이 분위기는?" 린은 어이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녀의 손은 자신의 오른손에 끼워있는 반지를 소중하게 어루만지고 있었다. ==================================== 간신히 한편 올립니다. 점 있다가 한편 더 쓰지염... 열씸히 일으시고염. 행복하세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