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신 도 (四 神 刀) "응?" 갈라진 차원의 틈으로 들어왔던 나는 살짝 눈을 떴다가 허탈한 웃음을 낼 수밖에 없었다. 간신히 공간을 가르고 들어왔는데도 달라진 게 없었기 때문이다. '왜 그대로 일까?'란 생각하면서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검은 땅, 칙칙한 하늘.. 그리고 말라 비틀어져 가는, 그나마 녹색 빛을 띠고 있는 나무, 그리고 작은 연못과 나무에 침을 꽃고 있는 마수... "쳇, 아무 것도 없잔아! 젠자아아앙?" 짧게 욕설을 내뱉던 내 말이 길게 여운을 남겼다. 뭐? 녹색 빛을 띠는 나무? 연못? 고개를 돌리던 나는 급하게 다시 나무를 돌아보았다. "쿠우우우" 마수가 자기에게 달라붙어 수액을 빨아먹자 신기하게도 나무는 가지들을 움직여 마수를 밀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 마수는 지금까지 내가 상대하는 녀석들과는 달랐다. 일단 덩치가 거의 3포스는 되 보였고, 주둥이 부분에는 커다란 송곳 같아 보이는 큰 침이 있었다. 6개나 되는 다리는 굉장히 커서 다리 하나 하나가 거의 나만한 수준이었고 기본적으로는 개미를 연상시키는 녀석이었다. 개미가 엄청 커지고 입에 침을 달면 저런 모습일까? 그나마 나무도 상당히 큰 편이어서 그렇지, 보통나무였으면 벌써 수액을 다 빨려 버렸을 것이다. [이! 녀석! 당장 떨어지지 못해!] "말을... 하잖아?" 허허.. 어이가 없군... 나무가 말을 해? 마치 소리가 울리는 것 같아 헷갈렸지만 분명히 목소리는 나무에서 나오고 있었다. [허억!] 위험한 상황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나는 그나마 말을 할 수 있는 존재를 만난 것이 반갑고, 어차피 저런 마수는 나를 공격하게 될 것이 뻔했으므로 마수 쪽으로 달려갔다. "하압!" "쿠아앙!" 마수녀석은 내가 소리치며 달려가자 잠시 당황하는 듯 싶었으나, 내가 조그만 인간이라는 걸 알고는 우습다는 듯 다리 한 개만 휘둘렀다. 하지만 이런 곳에서 3년이나 살아남은 날 우습게 보면 곤란하지! 써걱! 추아악 "크와와아왕!" 나는 내 쪽으로 날아오던 다리를 가볍게 잘라버렸다. 아무리 단단해도 내 검인 사신도(四神刀)를 사용하면 약간의 힘이 더 들뿐이지 무엇이든지 베어버릴 수 있다. 아! 사신도는 내가 가진 도(刀)의 이름이었다. 처음에는 몰랐었는데 손잡이 부분에 한문으로 써있었다. "크르르르...." 나에게 다리를 한 짝 잘려버린 마수녀석은 나무에 밖아 두었던 침을 빼내고 다리가 한 짝이 잘려버린 것을 기억했는지 섣불리 덤비지는 않고 낮게 으르렁 거리면서 나를 경계했다. "거기 나무 아저씨는 괜찮아요?" [너... 너는 누구냐? 분명히 차원 문을 닫아놓았는데...] 나무에서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충 알 것 같았다. 아무래도 이곳은 내가 살던 차원이 아닌 저 녀석의 집 대용인 작은 차원인가보다. 뭐, 자세히는 알 수 없었지만.... "저는 웃차! 나중에 말하도록 하죠!" 나는 내가 어떻게 왔는지 이야기하려고 하다가 마수가 휘두를 다리를 간신히 피했다. 헤헷! 너무 오래간만에 자아를 가진 생물을 만나서 기쁜 나머지 저 녀석을 잊을 뻔했군!(잊었으면서...) "미안하다! 오래간만에 기분이 좋아! 기쁜 기념으로... 죽어라!" 나는 그렇게 말도 안돼는 공식을 성립시키면서 마수 쪽으로 달려갔고 마수가 휘두르는 다리를 피하면서 순식간에 옆구리를 베어버렸다. 추아악! 치익! "이런! 젠장!" 나는 마수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를 보고 옆으로 굴러 피했다. 피가 닿은 곳은 모조리 부식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녀석을 처음 보는 것은 아니다. 내가 이곳을 헤매면서 만난 마수는 종류만 해도 수백 가지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나마 평범(?)한 편인 저런 녀석이 없을 리가 없다. 나는 마수의 껍질로 만든 갑옷이 녹아버리는 것을 보고 약간 긴장했다. 이건 강력하다... 그나마 껍질이 강한 녀석의 껍질을 잘라 만든 건데... "후∼우, 꽤 대단하군 마수들의 대장이냐?" "크르르르" 마수녀석은 낮게 으르렁대면서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역시나 내 생각대로 상처는 금새 아물어 버렸다. "자, 대충 끝내자!" 나는 다시 마수녀석으로 달려갔다. 이번에 마수녀석은 침을 휘둘렀으나(말이 침이지 사실은 거대한 창 만하다...) 나는 순식간에 피해내고 그 녀석의 배 쪽으로 가서 마수녀석을 아래서부터 완전히 베어버렸다. 꽈직! "쿠아아아앙!" 도저히 무언가가 잘리는 소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소리가 났고 마수 녀석은 괴로운 소리를 지르면서 다리를 휘두르려고 했으나 이미 잘려버린 다리는 자기의 임무를 실행하지 못했고 나는 다시 한번 녀석의 머리를 베어버렸다. 슈악! 쿵! [이..이럴 수가! 어..어떻게 인간이...] 마수가 쓰러지면서 땅이 울렸고 믿기지 않은 듯이 중얼거리는 나무에게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여기가 어디죠?" [...그렇군! 바로 3년 전에 이곳 마계에 갑자기 나타났던 녀석이었지!] "그런데요?" 하하... 대단하군 내 말을 씹어버리 면서도 내 질문에 답할 수 있다니... 이곳이 정말 황당한 곳이라고 생각했지만 마계라... [아무튼 고맙다. 당황해서 이 말을 이제야 하게 되는군..] "상관없어요... 상처는 괜찮나요?" [아, 걱정 마라 얼마 안 되면 회복될 꺼다] "그런데... 마계라뇨?" [응? 3년동안 이곳에서 지내고도 여기가 어딘지 몰랐냐?] "가르쳐 주는 사람이.. 아니 말을 할 수 있는 존재가 없으니까요" [그래? 그럼 너는 여기에 어떻게 오게 된 거지?] 나무는... 아! 그러고 보니 누구인지도 모르는군! "아! 자기 소개가 늦었군요. 나는 신진섭 이라고 해요" [그래? 약간 이상한 이름이군. 나는 지혜의 나무... 미랜드라고 한다] 나무.. 아니, 미랜드는 웃음을 지으면서(그렇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소리를 들어보아 그렇게 느낀 것이다)조용히 대답했다. [위! 빠르게!] "하압!" 나는 다시 수평으로 검을 휘두른 뒤 두 개의 검으로 동시에 공중을 갈라버릴 듯 휘두르고 몸을 한바퀴 돌린 후 다시 자세를 잡고 섰다. [잘 했어] 나는 자리에 주저앉아 쉬었다. 나는 지금 미랜드에게 검술을 배우는 중이었다. 미랜드는 이곳이 마계라는 곳이라고 했다. 온갖 마수들과 마족, 들이 우글 우글 한 곳이라는 추가설명도 있었다. 그리고 미랜드는 내가 지금까지 싸운 마수들이 마족 중에서 최 하위마족 이라고 했고, 내가 마수들의 대장이라고 생각한 그 덩치 커다란 마수는 하급 마족이란다... 허허 어떻게 보면 허무하군 그 동안 엄청나게 만나고 생명의 위협을 받게 했던 녀석들이 하급도 아니고 최하위 급이라니... 내가 마지막으로 상대한 하위마족 녀석은 충분히 내가 싸우던 녀석들은 열 마리 정도는 상대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런 녀석들이 떼거지로 기거하는 곳에 내가 가야 한다. 집에 가기 위해서는... 어디까지나 미랜드의 설명인데... 차원끼리는 각기 통하는 길이 한 군데씩 있다고 한다. 내가 들어온 그 섬의 차원 문도 그런 곳의 하나였고 말이다. [팔에 힘을 줘! 남는 힘밖에 없는 녀석이 뭐 이리 힘을 아껴!] "흐랴압!" 나는 미랜드가 준 마검과 사신도를 약간의 시간차를 두면서 몇 십 번인가 빠르게 휘둘렀다. 미랜드가 준 마검은 도베라인 이라는 마검이었다. 도베라인은 검은색 칼날에 멋진 무늬를 하고 있는 날카로운 마검이었다. 뭐, 아무리 뛰어난 검이라고 하더라도 사신도보다 날카로울 순 없으니... "미랜드" [왜?] "네가 알고 있는 차원의 문은 몇 개나 있는데?" [2개] "어디?" [네가 처음에 마계로 넘어오게 된 차원의 문과 여기서 상당히 떨어진 곳에 있는 차원의 문이야] "...그러고 보니 내가 차원을 넘어왔다는 것은 어떻게 알아?" [바보냐? 그럼 태어날 때부터 여기에 사는 인간이 있냐? 그리고 나는 마계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지혜의 나무야, 마계에서 일어나는 일 중에서 모르는 것은 없어] "그래? 생각보다 제법이네?" [뭐야?] "농담이야, 농담" 나는 미랜드의 가지가 다시 꿈틀대려고 하는 것을 보고 닷 두 자루의 검을 들었다. "그래, 차례가 뭐였지?" [오른쪽으로 한 발짝, 가로. 다시 앞쪽으로 한 발짝 위, 양 옆.] 후웅! 휘이익! 촤아악! 검이 빠르게 허공을 갈랐고 미랜드가 작게 탄성을 질렀다. [잘했어. 그렇게 만 번!] "..." [응? 왜 그래?] "몇.... 몇 번?" [만 .번 .이 .라 .고! 넌 고향으로 안 갈 생각이냐? 나약한 소리는 하지 마라] 나는 고향이라는 말에 잠시 몸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되도록 빨리 돌아가야 한다. 모두가 걱정하고 있을 것이다. 촤라랑! 다시 나는 무시무시한 기세로 검을 베어 나갔다. "하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