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신도 "훗! 재미있게 됐는데?" 희미한 빛을 띠면서 레인일행이 사라져 버리자 백호는 그만 살짝 웃어버렸다. "아무리 그래도 그들이 다시 만나다니.... 운명이라는 게 있기는 한가봐?" 다시금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면서 손을 들어올리는 백호. 그리고 그런 그가 들어올린 손에 따라 약간의 마나가 모여들었다. "뭐, 상관은 없겠지. 그들이 전생에 뭐였던 간에.... 지금은 그냥 평범한 인간일 뿐이니까. 웃차! 그러고 보니 이곳은 봉인해 놓는 것이 낫겠군. 나도 이제 나가야 하니까" 쿠구구구구!!! 백호가 들었던 손을 내리자 백호의 무기고로 들어오는 입구가 천천히 닫히기 시작했다. 문이 닫히는 단순한 차원의 것이 아니다. 복도 전체가 벽이 되어버린 것이다. 기다란 복도였지만 서로 반대쪽인 두 벽이 만나면서 입구는 완전히 봉쇄되어 버렸다. "흐음... 그래도 영 맘에 안 드는걸? 아무리 차원이 붕괴될 때 충격이 심했다고 해도 10년이나 잠들어 있었다니 원.... 그나마 나머지 녀석들은 아직 깨지도 못했으니까 빠른 건가?" 맘에 안 든다는 듯 투덜거리는 백호의 몸이 점점 흐릿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간만에 인간계 구경을 할 수 있는 건가? 직접 움직이는 게 아니라 안타깝지만.... 다른 사람의 눈을 빌어서라도 구경이 가능하다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겠지. 에휴.... 그만 가자" 스르륵! 한숨을 길게 내쉬는 백호. 그리고 그의 모습은.... 이내 허공에 흩어지듯이 사라지고 말았다. * * * "우....웅?" 문득 눈을 떴다. 살며시 떠진 눈 사이로 천장이 보인다. 여기는.....? 몸을 일으켰다. 이곳은 분명히 골렘들을 부수고 나서 아래층으로 간 다음의 복도. 우리가 왜 여기에 있지? "우으...." "카인? 다크? 괜찮아?" "아... 그런 것 같아. 아함.... 꼭 한숨 자고 일어난 기분인데?"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다크와 카인.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벽에 나 있는 주먹자국. 아까 다크가 쳤던 곳이군. 그리 멀리 온 건 아닌데? "....얼라?" 묘한 소리를 내면서 놀라움을 표현하는 다크. "왜 그래?" 고개를 돌려서 다크를 바라보았다. 그는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벽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에 따라 나는 그의 가 있는 벽 쪽을 바라보았다. 별 볼일 없는 벽이었다. 그냥 다른 곳과 다를 것이 없는 벽. 하지만.... 그 벽의 이전 모습을 알고 있는 나는 충분히 놀랄 수 있었다. "길이?" 없어졌다. 길이 없어져 버렸다. 분명히 벽에는 다크가 벽을 쳤던 자국이 남아있는데도 말이다. 반대쪽은 분명히 복도였는데.... 틀림없이 그 복도를 통해서 백호를 만났었는데, 복도가 사라진 것이다. "신기하군. 백호가 한 일인가?" "그런 것 같은데?" 잠시 벽을 살피는 카인. 하지만.... 우리는 이내 돌아섰다. 어차피 더 이상 볼일이 없었기에. "그런데 아까 백호가 했던 말이 마음에 걸리는데?" "아.... 그 골렘들을 조심하라는 말? 하지만 레인한테 금방 박살나지 않았어?" "글세? 어쩌면 아무리 죽어도 살아나는 불사신일지도...." 우리는 천천히 걸어서 윗 층으로 올라갔다. 아까 왔던 길. 이제 밖으로 나가야 한다. 이 곳에 들어와서 너무나도 많은 시간이 흘러버렸으니 말이다. 스륵. 피잉! 아주 작은. 아주 작은 소리와 함께 내 허리가 뒤로 꺾였다. 그리고... 내 목이 있던 자리에 희미한 모습만을 남기고 한 개의 검광(劍光)이 지나갔다. "뭐...뭐야!?" "글세.... 백호가 말한 게 이건가?" 나는 간신히 상대의 검을 피하고 자세를 잡았다. 신기하군. 분명히 부쉈었는데? "레인. 저것들 아까 하고 모습이 틀려" ".....봐서 알고 있어" 사각! 또다시 날아드는 검. 이번에는 그만 옷자락이 베이고 말았다. 빠르다. 정말 빠르다. 백호 정도는 아니어도..... 지금의 나로서는 일검 하나 쉽게 막을 수 없을 정도였다. "아무래도.... 상대와 한번 싸우고 그 자료를 사용하는 것 같은데?" "자료?" 후웅! 나는 재빨리 계단 쪽으로 대피했다. 한 명도 상대하기 힘든데 40마리나 되는 골렘들을 막아낼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다행히 녀석들은 그 방밖으로 나가지는 않는 듯 우리가 밖으로 나가자 가만히 멈추어 섰다. "그래, 자료. 아무래도 저 녀석들은 너를 속도 위주로 움직이는 상대로 결정한 것 같아. 공격력이 아주 높은. 그 증거로 녀석들은 엄청나게 빨라졌지만 장갑이 형편없이 약해졌어. 너의 공격을.... 막아내기보다는 피하기로 결정한 거지" "그럼 여기서 레인이 검기 같은걸 날리는 게 어떨까?" 간신히 계단 쪽으로 도망쳐 나온 다크의 말. 카인은 고개를 저었다. "안돼. 다 피할걸? 게다가.... 레인. 마나를 일으킬 수 있어?" 나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불가능해. 최소 3일은 요양해야 한다" 그러고 보니 우리들의 몸 상태는 정말이지 엉망이었다. 백호와 싸우는 바람에 마나를 전혀 사용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몸에도 그다지 힘이 있지는 않다. "뭐야? 그럼 우리 지금 엄청 약한 거잖아? 그럼 여기서 못 나가는 거야?" 당황한 듯이 중얼거리는 다크. 나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 맞는 말이었다. 차라리 여기서 3일을 쉬고 가는데 더 좋을지도 모른다. 지금 녀석들을 어떻게 지나친다고 해도.... 그 뒤의 함정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상황을 봐서는 그것들도 복구되었을 것 같다. 그것도.... 최악의 형태로)아니, 어찌어찌 함정들도 지나간다고 해도.... 그 뒤의 몬스터들은? "산 넘어 산이로군" 2틀을 쉬는데도 문제가 따른다. 나야 3일 정도 굶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다크와 카인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굶어 죽는 일은 없어도 움직이기가 곤란해 질 것이다. ".....곤란하군" 나는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마나만 멀쩡했어도 방법이 있을 텐데..... 정말 곤란하다. 지금 우리들이 백호의 무기를 얻었다고는 해도 그것들을 사용하려면 최소한의 마나라도 있어야 한다. 그리고 지금은 그 최소한의 마나가 없는 상태였고 말이다. 나는 결론이 나지 않는 상황에 더욱 고개를 숙였고 카인이 한가지 해결책을 제시했다. "아... 그러고 보니 레인이 불렀던 그 붉은 색의 기사를 부르는 건 어때? 그 기사도 상당히 강해 보이던데?" 블러드를 말하는 것 같았고 나는 그의 말에 답했다. "불가능해. 녀석이 비록 강한 편인 건 사실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생물체에게 국한돼. 실제로 녀석이 변형시킨 몸의 강도는 최대가 강철정도니까. 아무리 장갑이 약하게 변했다고 해도 미스릴로 만들어진 녀석들에게 통할 리가 없지" 다시 심각하게 변하는 카인의 표정. 그로써도 지금의 상황은 해결책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아쉽군.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내 명령이나 듣는 녀석 몇 마리 만들어......어? 그러고 보니?? "왜..... 잊고 있었지?" 나는 품속을 뒤져서 한 개의 포션병을 꺼내들었다. 검은 연기가 들어있는 포션. 하! 나도 웃기는군. 이걸 잊고 있었다니.... "에? 그건 또 뭐야?" 내가 포션병을 바라보면서 고개를 살짝 흔들자 다크가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좋은 거. 뒤로 물러서" "작전상 필요할 거다. 뒤로 물러서" "내가 왜?" 나를 바라보는 다크. 나는 피식 웃으면서 녀석을 노려보았다, "나가기 싫어?" "......비키마" 뒤로 물러나는 다크와 카인. 그들이 5미터 정도 물러나는 것을 확인한 후 포션병을 잡았다. 퐁! 쉬이이... 가볍게 열리는 뚜껑. 그리고 그곳에서 쏟아지듯이 내려가는 검은 색의 연기. 연기들은 땅에 바로 내려서지 않고 공중에서 방향을 꺽어 바로 내 그림자 속으로 쏟아졌고 나는 검은색의 연기가 내 그림자에 스며드는 모습을 보면서 입을 열었다. "....만든 지 꽤 되었으니 문제없겠지. 어둠을 지배하는 일족..... 파괴를 지향하는 일족이여...." 나는 조용히 뇌까리듯이 중얼거렸고 그에 따라 내 그림자에서 조금씩 어두운 기운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지금 그 위대한 맹약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나는 천천히 주문을외우기 시작했다. 녀석을 깨우는 주문을. ".....일어나라! 암흑의 성지를 지키는 어둠의 파수꾼. 나이트워커(NIGHT WALKER)!" 고오오오오!! 슈르르르륵!! 내 발 밑의 그림자에서.... 검은 기운이 뿜어져 나와 허공에 하나의 형상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온몸이 칠흑 같은 어둠으로 이루어진 인간형의 거인...... 어둠의 파수꾼이라고 알려져 있는 나이트워커(NIGHTWALKER)였다. "저....건 또 뭐라냐?" "대단해. 엄청난.... 음 차원 에너지인걸?" 나이트 워커가 죽음의 음기를 미약하게나마 뿌리고 있음에도 그다지 무서워하지 않는 다크와 카인. 나는 그들에게 신경 쓰지 않고 나이트 워커를 바라보았다. "지식공유....." 나는 블러드 때와 마찬가지로 지식을 공유시키기 시작했다. 이곳의 기본지식과 언어 등을. [.....내 이름은?] ....이놈도 어지간히 급하군. 블러드도 그랬지만. 그런데 이 녀석은 블러드와는 다르게 소리를 내지 않고 공명음으로 말하는군. "...." 이름으로 뭐가 좋을까? 한번 이름을 정하고 나면 다른 것은 먹히지 않으니 편한 것이 좋겠지. [....이름은?] 되묻는 나이트 워커. 나는 복잡한 생각을 하기 싫었기에 간단히 녀석의 이름을 정해버렸다. "너는 워커, 어둠의 맹약자" [워.....커.....] 조용히 자신의 이름을 되새기는 워커. 그런 녀석을 보면서 나는 블러드 때와 마찬가지로 입을 열었다. "나는..... 너의 주인" [주인.....] 다시 뇌까리듯이 중얼거리는 워커. 잠깐의 시간이 지났을까? 녀석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고 나를 바라보았다. 검은색을 띠는.... 마치 전체가 그림자 같은 색의 눈동자. 녀석은 이내 느릿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명령을......영원한..... 주인이여.....] 나를 향해 무릎을 꿇는 워커. '이 녀석은 또 색다르군'하고 중얼거리면서 나는 손을 들었다. 다행히 깨어나고 나서 쉬는 기간 따위는 없는 것 같았고 명령은 이미 준비되어 있다. "좋아. 그럼 내 앞을 가로막는 자들을..... 쳐라" [알았다.....주인......] 스르르륵! 크기가 거의 4미터는 되는 덩치가 거짓말처럼 내 그림자 속으로 스며들어간다. "저 녀석....뭐야?" 이제서야 내 쪽으로 다가온 다크는 신기하다는 듯 내 그림자를 만지다가 나에게 물었다. ".....파이로드의 작품이지. 만들기는 내가 했지만" 내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하자 다크가 내 그림자를 손으로 만져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근데 어디로 갔어? 갑자기 그림자로 들어가다니....." "아.... 어디로 갔냐고? 저기" ".....?" 카인과 다크의 얼굴이 동시에 내가 손가락질하는 쪽으로 돌아갔다. 내 손가락이 머문 곳은 우리를 노려보던 골렘 중 하나. 그곳에는 그들을 제외한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마악 다크가 '저기에 뭐가 있어?'라고 말하려는 순간. 골렘의 아래에 있는 그림자에서 하나의 커다란 손이 뻗어 나왔다. 쉬익! 콰직! 순식간에 머리를 잃어버리고 쓰러지는 골렘. 거대한 암흑의 손은 다시 녀석의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잘못 걸렸다고......" "응?" 내가 작게 중얼거리는 듯한 소리에 카인이 귀를 기울였고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답했다. "골렘 녀석들 말야. 속성이 최악의 속성이야. 그것도 마나도 없이 무기로 덤비는 녀석들에게는 말이야" ".....?" "보기나 해. 아마 얼마 걸리지 않을 걸?" 콰직! 다시 한 마리가 머리를 잃고 쓰러졌다. 그림자 사이를 자유롭게 움직이는, 막기가 정말로 까다로운 공격. 하지만.... 이번에는 골렘들도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손이 나오는 순간 동시에 근처에 있던 골렘 6마리가 엄청난 속도로 검을 움직여 손을 베어 들어간 것이다. 단번에 워커의 손을 잘라버릴 듯한 기세였다. 퍽!퍽!퍽!퍽!퍽!퍽! 하지만 워커의 팔에서는 마치 북 치는 소리가 났을 뿐 그다지 큰 문제가 없어 보였다. 아니 오히려.... 워커의 팔은 골렘들의 검을 반쯤 빨아들이고 있었다. 챙강! 챙강! 챙강! 챙강! 땅으로 떨어지는 네게의 검. 나는 그 모습을 보고 희미하게 웃었다. "여섯 개 중에서 네 개라.... 운이 좋은 건가?" "운이 좋은 게 문제가 아니라.... 뭐가 어떻게 되가는 거지? 갑자기 왜 녀석들의 무기가 왜 부서지는 거야?" "기술이야" "기술?" "그래. '무기파괴'라는 기술이지. 성검이나 신검이 아닌 이상..... 워커의 몸을 가격하는 무기의 2분의 1은 박살이 나버리지. 물론 확율 상으로" 다크의 얼굴에 어이없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굉장히 편리한 기술이네?" "그렇지. 그것도 특히 저런 녀석들에게는 치명타지. 워커한테는 성검이나 신검. 혹은 검기를 이용한 방법밖에는 통하지 않거든? 마법도 잘 안 통하고 말야. 그런데 그런 상대에게 오직 좋은 무기를 빨리 휘두를 뿐인 녀석들이 나타났으니....." 콰직! 콰앙! 콰지직!! 챙강! "휘이익! 끝내주는데? 녀석들. 한방도 제대로 못 치고 나가떨어지잖아?" 난리가 난 홀. 상황은 생각보다도 더 쉽게 정리되어 가기 시작했다. 골렘들은 쉴새없이 워커에게 공격을 날렸지만 무기파괴에 걸려 힘없이 파괴되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불쌍한 놈들.... 무기 다 날아갔네?" 맞는 말이었다. 이제 대충 끝났다고 생각해서 우리가 홀에 도착할 때쯤에는 이미 골렘 중에 제대로 무기를 들고 있는 녀석이 없었다. 어떻게 반항하는 듯 맨주먹으로 덤비는 모양이었지만... 워커에게는 그것마저도 무기로 판정 받은 건지(금속이니까) 충돌하는 주먹들 전부가 부서지기 시작했다.(왜 2분의 1인데 전부가 부숴지냐고? 당연한 것 아닌가? 한 번 치면 2분의 1확률로 부서진다. 하지만..... 한방으로 만족할 녀석은 없었고 다시금 공격하게 된다. 그리고.... 부서지게 되는 것이다. 어쩌다 엄청나게 운 좋은 놈도 기껏해야 4방정도? 그 정도가 한계였다.) "가자" "왠지.... 무지무지 허무한걸?" 위층으로 올라가는 우리들. 나는 골렘 중 한 녀석의 머리를 들고 올라왔다. 비록 이 골렘들은 죽어도 살아나는 모양이었지만..... 우리가 싸움을 끝내고 나서야 복원이 되어 있던 것을 보면, 복원속도가 그리 빠르지는 않은 모양이었고 녀석들이 복원되기를 기다려줄 마음은.... 전혀 없다. ================================= 에혀.... 이제 개학이군여.... ㅡ.ㅡ;;; 이제 2틀한번 연재도 힘들어지겠다는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