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신도(四神刀) 숙소 안. 우리들은 각자 짐을 챙기고 있었다. 다른 학생들은 방학식을 하기 전에 모두 챙겨놓고 방학식이 끝나고 바로 출발한 모양이지만 우리는 그라나 크레바크를 건넜다가 마나를 탕진하는 바람에 회복하느라고 그럴 틈이 없었다. "다 챙겼다. 앗차! 레인, 수영복! 수영복!" "그딴 건 가다가 사!" 수영복은 무슨... 여기는 내륙지방이다. 그다지 교통이 발달한 것도 아닌데 이런 곳에 수영복이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엇? 내가 만들어놓은 포션이 어디로 갔지?" "어제 마셨잖아!" 마나를 회복하는데 도움이 된다면서 자기도 마시고 우리도 마시게 하더니 지금 찾는다. 후.... 다크는 그렇다고 치고 카인까지 왜 이러는 거지? "당연하잖아? 놀러 가는 거라고!!" 당당하게 소리치는 다크. 나는 이마를 찡그리며 소리쳤다. ".....나야 11년만에 놀러 가는 거라서 그렇다고 치고 너희들은 왜 그러는 건데?" "우씨! 우리도 힘들었다 말이야! 네 스파르타식 훈련이 얼마나 힘든지 알아!?" 그다지 세게 한 기억은 없는데? 게다가 그들은 내가 행하는 훈련을 잘 따랐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꾀라도 부리겠지만 이들은 피 터지는 한이 있더라도 그날 목표량은 반드시 끝내는 녀석들이다. 보기들 보다 근성이 있는 녀석들이라서..... 하지만 실력은 빨리 오르기에 걱정은 안 하고 있었는데? "별로 힘들지는 않잖아?" "뭐가 별로 안 힘들어! 난데없이 한 손가락으로 물구나무서서 팔굽혀펴기를 하라고 하지를 않나, 검을 휘두르는 것도 1000번 2000번 단위가 아니라 10만 단위로 넘어가잖아!!! 사람을 죽이려는 거라고 밖에는 생각이 안 든다고!!" "그러냐?" "뭐가 '그러냐?'야!? 우워어어어어!!!" 폭주하는 다크. 결국은 다 하면서 왜 그러는지 원.... 나는 간단하게 그의 주위로 룬 실드를 감싸 기물 파괴를 막은 뒤, 카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너도 힘들었어?" "하하.... 야...약간" 식은땀을 흘리는 카인. 다크야 그렇다고 하더라도 카인까지 이런 말을 하다니.... 내가 그렇게 세게 굴렸던가? 똑똑! "아....누구십니까?" "어? 카인이야? 아직 준비 안 끝났어?" 밖에서 들리는 린의 목소리. 벌써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 금방 끝납니다. 잠깐만 기다리세요!" 허겁지겁 마법서를 자신의 가방에 넣는 카인. 다크도 지금은 폭주상태지만 준비는 끝마친 모양이다. "좋아. 다크" "우워어어어!! 응?" "빨리 와" "에? 알았어" 순식간에 폭주모드를 해제(?)하고 우리를 따라오는 다크. 역시 변화가 빠른 녀석이다. 벌컥! 빡! "우왁!" 자신에게 휘둘러지는(?) 문짝을 몸을 뒤로 빼 간신히 피하...려고 했으나 정통으로 머리에 맞아버린 린. 그녀는 상황파악을 못 한 듯 붉게 물든 머리를 잡고 있다가 얼굴을 찡그렸다. "다크! 너지!?" 기운차게 문을 열었다가 당황하는 다크. 그는 잠시 그런 그녀를 바라보다가 피식 웃었다. 그리고..... "우하하하!! 그럼 먼저 갈게!" "이씨! 야! 너 거기 안서!?" 도망가는 다크와 추적하는 린. 린도 꽤나 빠른 속도로 달릴 수 있었으나... 애초에 카드법사인 그녀가 다크를 잡을 수 있을 리가 없었고 그녀와 다크와의 거리는 점점 벌어졌다. 도저히 잡을 수 없어 보이는 상황. 하지만 린은 지는 것을 무지하게 싫어하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젠장! 소환! 오거(Oger). 히나! 지금 나의 부름에 답하라!" 피리릭! 그녀의 카드가 허공을 갈랐다. 그리고 그 카드는 잠시 허공에서 멈췄고 카드 안에 새겨져 있던 오거는 마치 뛰쳐나오듯이 밖으로 나왔다. "쿠워워!!" 포효하는 오거. 이름이 히나라고 했던가? 아마도 암컷이라서 그렇게 이름을 붙인 모양인데.... 저런 박력에 히나라는 이름은 조금 안 어울리는군. "좋아! 히나 달려!!" 오거의 어깨에 올라타 소리치는 린. 그리고 그녀의 오거는 무서운 속도로 다크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오거를 타고 달린다? 제법이로군. 아무리 카드법사라고 하더라도 자신이 잡은 몬스터에는 위험해서 다가가지 않는데. 그만큼 확실하게 키웠다는 이야기겠지?" 카인이 다크과 린의 모습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사실이었다. 그녀도.... 어떻게 보면 천재일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그녀의 명령에 늦게 반응하는 몬스터 조차 본 적이 없다. 게다가.... 그녀의 몬스터들은 그녀를 따른 다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아끼고 있다. "그럴지도. 그나저나 다크녀석...." 나는 복도의 끝을 향해 달리고 있는 다크를 바라보면서 말끝을 흐렸다. 그리고 내 말을 잊는 카인. "맞아 뛰어내릴 생각인데? 먼저 쫓아갈까?" "마음대로. 나도 뒤따라가지" "알았어" 린과 다크 모두 빠른 속도로 굉장히 긴 복도를 달리고 있었지만 우리와의 거리가 벌어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나만해도 당장이라도 추월할 수 있을 정도였고 카인은..... 응? 바닥에 있는 그림자가 카인의 발을 얹고서 움직이고 있다? "그림자로 달리고 있군" "맞아. 백호가 만들었다는 반지야. 그림자를 이용해 바닥을 앞으로 끄는 거지. 바닥이 평평할 때 밖에 못 쓰기는 하지만 상당히 쓸만해" 상당히 편안하게 달리고 있는 카인. 나는 다시 시선을 다크에게 돌렸다. "이익! 이제 멈춰!! 복도가 끝난다고!!" 다크를 놓칠까봐 멈추지는 못하지만 벽에 충돌할 것이 무서워 속도를 줄이는 린. 그럴 만도 했다. 이제 그들이 다다른 곳은 복도의 끝. 하나의 창문이 위치하고 있는 곳이었다. 저 정도 속도로 충돌했다가는 부상을 피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싫은뎅? 웃차! 그럼 안녕∼" 하지만 벽과 충돌하지 않고 오히려 창문의 난간을 밟고 열려진 창문으로 몸을 날리는 다크. 린은 경악해서 소리쳤다. "미...미친!! 여기는 5층이야!! 추락한다고!!" 린의 걱정대로 다크의 몸은 잠시 허공을 가르다가 무서운 속도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근처에 잡을 것도 없었기에 그대로 대지와 충돌하여 부상을 입을 상황. 하지만 그의 얼굴 어디에도 두려움 따위는 없었다. "헹! 파워 슈즈(power shose)..... 개방(開放)!!" 우웅! 작게 진동하는 다크의 신발. 그는 잠시 심호흡을 하더니 어느새 눈앞까지 다가오고 있는 대지의 모습을 보고서 다리를 뻗었다. 파앙!! "야호∼!!!" 꽤나 높은 곳에서 뛰어내렸지만 그의 산발이 충격을 흡수. 반사한 모양인지. 그는 마치 고무공이 땅에 퉁겨나가듯이 다시 땅을 박차고 앞으로 뻗어나가더니 이내 우리 우리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녀석... 벌써 백호의 무구를 꽤 자유롭게 다루는걸? "말도....안돼. 이건 또 뭐야?" 사라지는 다크의 못브을 바라보며 얼이 빠져있는 린. 카인은 그런 그녀의 옆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가 자신의 다리를 창틀에 올렸다. "흐음. 역시 대단한데?" 감탄성을 내는 카인. 그는 이내 몸을 움직였다. "나도 가야겠지" 휘익! "어....어라?" 다시 입을 벌리는 린. 하지만 카인은 망설임 없이 창틀을 박찼고 그의 몸은 아무런 저항 없이 아래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좋아. 그럼 나도 해 볼까? 쉐도우 링(Shadow ring). 개방(開放)" 카인의 작게 중얼거리면서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쏴아!! 그의 중얼거림에 반응하듯 풍선에 바람이 들어가는 것 같이 일어나는 건물의 그림자. 그리고 카인은 마치 쿠션처럼 변한 그림자에 어렵지 않게 착지했다. 털썩. "아.... 역시 약간은 쑤시는군. 레인! 너도 빨리 내려와∼!" 나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고 마찬가지로 건물 뒤쪽으로 사라지는 카인. "재미 들렸군. 납용 하면 그다지 좋지 않은데....."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뭐 처음이니 봐주는 것도 괜찮겠지. 턱. 나는 창문난간에 발을 올렸다. 그리고 동그랗게 눈을 뜨는 린. "레....레인도 가려고?"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린을 향해 살짝 고개를 숙였다. "예. 그럼 빨리 따라오시길" "자...잠...!" 휙! 나는 망설임 없이 몸을 날렸고 내 시야에는 어느새 텅 빈 허공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쉬이익! 더없이 상쾌한 바람이 내 귓가를 지나간다. 생각보다 재미있군. 종종 할 걸 그랬나? 피리릭!! 나는 몸을 둥글게 말고서 회전시켰다. 그리고..... 콰앙!! 몸의 회전력을 이용해서 벽을 찼다. 소리부터가 강렬하군. 보통 바위라면 부서질 정도의 파괴력. 다행히 마법이 걸려있는 건물이라서 그런지 부서지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흠....역시나 갑옷이 너무 무거워서 그런 것일까? 휘익! 어찌 되었던 간에 정면으로 뻗어나가는 내 몸. 나는 굳이 카인이나 다크 처럼 백호의 무기들을(무기라고 해봐야 보조 무구에 불과하지만) 사용하고 싶지 않았기에 나는 몸을 회전시키다가 손을 뻗었다. 빙글! 근처의 나무를 잡고서 몸을 회전시키고 다시 나뭇가지를 밟고 몸을 퉁긴다. 파앙! 다시 점프. 잔가지들이 쉴새없이 얼굴을 때린다. 하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고 그나마 탄력이 있어 보이는 나무를 잡고 크게 휘었다가 다시 그 반동을 이용해 몸을 날렸다. 쉬이이익!! 상쾌한 바람이 귓가를 지나치는 것을 느끼며 나는 고개를 들었다. 시야에는 그다지 크지 않은 호수와 그 근처에 모여있는 사람들이 잡혔다. 피리리리릭!! 살짝 몸을 퉁기듯이 움직여 낙하속도를 감소시켰다. 그리고.... 쿠우웅!!! ....역시 내가 끼고 있는 건틀렛같은 무거운 무기 때문에 이 정도가 한계다. 자세히 보니..... 내가 밟거나 잡고서 뛰어온 나무 중에서도 상당수가 부서지거나 부러진 것 같다. "여....역시 대단합니다. 스승님!!!" 감격한 듯한 카이져의 목소리를 들으며 고개를 들었다. 호수의 근처에는 그를 비롯해서 루니나 딘 등. 거의 모든 인원이 모여있었다. "거의다 모였군요" "그렇다네 그러니까....이제는 카렌양과 린 양만 오면 될 것 같네" 우리를 보면서 살짝 웃음 짓는 라이드. 하지만 그의 미소 속에는 전혀 힘이 담겨있지 않았다. 수상쩍군. 이 정도로 인원을 늘린 것도 그렇고.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쿵!쿵!쿵!쿵! 땅이울리는 듯한 굉음. 나는 라이드에게 무슨 일이 있냐고 물으려고 하다가 고개를 돌렸다. "생각보다 빨리 쫓아왔군" 나는 근처 나무를 밀어내듯이 하며 달려오는 린을 바라보았다. 뭐, 사실 그녀는 가만히 들려있을 뿐이었고 힘들게 뛰어오는 것은 그녀가 소환한 오거이지만 말이다. "이씨!! 기껏 문 밖에서 기다려 뒀더니 떼 놓고 가?" 씩씩거리며 소리치는 린. 화가 났다기보다는.... 뭐랄까? 삐졌다고 표현해야 할까? "....." 나는 린을 잠시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우리 쪽으로 다가오는 또 다른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꾸벅 고개를 숙이는 카렌. 라이드는 그런 그녀를 보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입을 열었다. "좋아. 그럼 모두 모였으니 이야기를 시작하도록 하겠네" 평온한 말투. 현재 상황에 대해서 전혀 이해하고 있지 못하는 듯한 목소리. 살짝 한숨이 나온다. 그래도 명색이 8클래스 마법사이기에 기대했는데... 역시 못 느끼는 것인가? "자, 그럼......" "....기다리십시오" "....응? 왜 그러는가 레인군?" 자신의 말을 끊어버리는 나에게 의문을 표하는 라이드와 근처에서 쳐다보는 나머지 녀석을 바라보면서 나는 재차 입을 열었다. "아직 카렌님이 오지 않았습니다" "......" "......" "......" 내 진지한 말투에 잠시 사방을 감싸는 침묵.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까? 제일먼저 정신을 차린 다크가 어이없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하하...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카렌은 네 옆에 있잖아? 요즘 통 과묵하게 살다가 간만에 가벼운 농담이라도 한 거야?" "허허.... 그....그렇네. 자네답지 않게 실수를 한 모양이구먼" 다크의 말에 동조하는 라이드와 그에 따라 같이 동조하는 나머지 사람들. 아무래도 나에게서 풍겨 나오는 불안감을 떨쳐버리려고 하는 듯 싶었으나 나는 그런 그들의 노력을 간단하게 날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실수가 아닙니다. 아직 카렌양은 오지 않았습니다" "....." "....." 다시 긴장되는 분위기. 그리고 마침내 그 분위기를 이겨내지 못한 카렌이 나를 향해서 입을 열었다. "무슨.....말이지? 내가 없다니?" 은근하게 살기를 뿜어내는 카렌. 아니.... 카렌의 모습을 하고 있는 어떤 존재. 나는 그가 뿜어내는 살기를 보고 그만 피식 웃음을 터트릴 뻔하였으나 어렵지 않게 참았다. 우습군. 누군 인지는 모르지만 카렌으로 변해서 우리 일행에 끼어 들 생각이었나? 확실히 감쪽같은 방법이기는 하지만.... 상대를 잘못 골랐어. "말 그대로입니다. 카렌님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미세하게 굳어지는 상대의 표정. 하지만 그녀는 이내 어이없다는 듯이 외쳤다. "흥!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는 거지?" 나를 노려보는 그녀를 바라보면서 나는 살짝 내 등에 걸쳐 있는 검 중 사신도를 잡았다. 물론 언제나 와 같이 검 집이 씌워져 있는 상태였다. "레.....레인! 무슨 짓을!?" 내가 검을 꺼내는 것을 보고 기겁하는 카인. 모두들 당황하는 듯 싶었으나 나는 그대로 검기를 일으켰다. 그리고... 서걱! 그녀의 목을..... 베었다. 망설임 없이, 깔끔하게 그어버렸다. 촤악!! 텅 비었던 허공을 아름답게 수놓는 붉은 색의 피. "꺄악!!" 린과 루니의 비명이 들린다. 더 없이 붉은 색의 피가 대지를 적신다. 툭! 당황한 표정을 지은 채 바닥에 떨어지는 머리. 나는 검집에 묻은 피를 검기를 일으켜 증발시킨 후, 다시 등에 찼다. "이....이게 무슨 짓....!" 당황해서 말조차 잊지 못하는 라이드와 시체와 나를 번갈아 보는 나머지 녀석들. 그렇게 잠시의 시간이 지났을까? 그나마 빨리 정신을 차린 다크가 입을 열었다. "무...무슨 짓이야 이게!! 사람을 죽이다니!!" 흥분해서 당장이라도 주먹을 휘두를 기세의 다크.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무.... 무슨 말이라도 하게! 카렌님을 시해하다니! 그녀는 일국의 공주란 말일세!! 설마 자네는 전쟁이라도 일어나기를 바라는 건가?" 이어지는 라이드의 외침. 다들 절실함을 담은 말들이었으나 나는 그들이 뭐라고 하던 간에 시체를 바라보았다. 훗! 아직 빠져나가지 않았군. 내가 이들과 전투라도 벌여 부상이라도 입기를 바라는 건인가? "마....맞습니다 레인님. 도...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거죠?" 조용히 있던 딘 마저 경악한 표정으로 나섰다. 얼굴 색이 창백한 것을 보니 사람이 죽는 것을 본 적이 없는 모양이었다. 저벅. 나는 그들이 뭐라고 떠들던 간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쓰러져 있는 시체 근처로 다가갔다. 목에서 쏟아지는 다량의 피. 누가 봐도 영락없이 처참하게 죽은 시체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시체를 보면서 나직하게 중얼거리듯이 입을 열었다. ".....일어나라 가짜.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