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신도(四神刀) ".....기다리게 했군요. 질문할 테니 제대로 대답하십시오" [미친놈. 차라리 죽여보시지?] 내 말에 악의에 받친 듯 대답하는 상대방의 목소리. 하지만 나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입을 열었다. "이름은?" [미엘] 너무도 순순히 대답해버리고 마는 미엘.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이...이런 바보 같은?! 대답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녀가 경악성을 토해내었고 또 그녀의 목소리에는 가득히 의문이 담겨있었지만 그다지 설명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나는 계속해서 질문을 날렸다. "이곳으로 섞여 들어온 목적은?" [너....너에 대해서 조사하고....크윽! 라이드가 하는 일에 대해서 정보 수집을....큭!] 이제는 저항하는군. 헛수고라니까. "나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지?" [제...젠장.....크윽!] 분노한 듯이 저항하는 미엘. 반동으로 돌아가는 고통이 그다지 가볍지 않을텐데 대단하군. 하지만 신경 쓸 필요는 없지. 나는 재차 질문을 날렸다. "얼마나 알고 있지?" [크...윽! 검과 마법을 수준 급 이상으로 다루는... 크윽! 소속을 알 수 없는 애송이....크윽!] 악의가 가득히 담긴 목소리. 나는 간단히 무시했다. 욕 좀 한다고 나에게 오는 피해 따위는 없으니까. "길드는 나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나?" [아니....아직은.... 큭! 하지만 지금 이 사실을 알면 조금 관심을 가지게 될걸?] 자신만만한 말투. 자신의 길드의 힘을 믿고 있는 듯 했다. "....상관없다. 어차피 너는 지금 이 사실을 보고할 수 없을 테니까" [죽일..... 셈인가?] "그렇지" 나는 간단히 말하면서 사신도를 들었다. 물론 검집을 벗겨 내거나 하지는 않았다. 속박 당한 영혼 정도는 검기로도 충분히 소멸이 가능하니까 말이다. [제...젠장!] 신음성을 삼키는 미엘. 나는 이외의 모습에 입을 열었다. "살려달라고.... 빌지 않는군?" [말이 통할 상대와 통하지 않을 상대정도는 파악할 눈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런가? 다행이군" 나는 천천히 검기를 일으켰다. 그래, 이 한번의 휘두름만으로도 이 영혼은 영원히 소멸해 버릴 것이다. [.....] 암담한 상황이 닥치자 오히려 조용하게 있는 미엘. 굉장히 쉽게 목숨을 포기하는군. 뭐, 그편이 나에게는 더 간단해서 좋지만 말이다. "....그럼" 나는 사신도를 들었다. 천천히 생성되는 검기. 촤아아아!!! "....응?" 순간 새하얀 빛이 느껴지며 배경이 바뀐다. 붉은 피. 새하얀 날개와 군데군데 묻어있는 빛나는 광혈(光血)과 암혈(暗血). 그리고 힘겹게 숨을 몰아쉬는 한 존재. [하아.... 하아.... 그 표정.... 오래간 만이군....] 내 얼굴에 닿는 부드러운 손길. [키...키엘라....] 내 입이 멋대로 움직인다. 내 마음대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었으나 느낌이 난다. 그녀는 내 품에 안겨 있었고 내 뺨에서는 쉴새없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멍청한.... 다시는 울지 말라고 말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하지만....하지만....] 힘겹게 숨을 들이쉬는 키엘라. 나는 그 환상을 보면서 경악했다. 검은색 날개를 가지고 검은색의 기운을 흘리며 내 품안에 안겨 있는 키엘라라는 마족의 얼굴이 혜진과 완전하게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하..... 언제라도...언제라도....] 다시금 나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쓸쓸한 미소를 짓는 키엘라. 그녀는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나를 바라본다. [언제라도.... 다시 만날 수만 있다면....] 촤아아아아!! 다시금 밝게 빛나서 내 시야를 가리는 빛. 나는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소리에 문득 정신을 차렸다. "....레인?" 눈을 떴다. 내가.... 내가 방금 뭘 하고 있던 거지? "레인? 왜 그래?" 주위를 둘러보았다.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과 영혼을 베기 직전에 멈추어져 있는 사신도가 보인다. "아... 별거 아냐" 나는 의아한 듯한 표정을 하고 있는 카인의 말에 아무렇지도 않게 답했다. 하지만.... 뭐였지? 방금 그 영상은? 왜, 어째서 혜진이 그런 모습을 하고, 또 그때와 같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던 거지? [왜.... 멈춘 거냐!] "글세...." 화가 난 듯한 미엘의 아무렇지도 않게 답했지만 머릿속이 혼란스럽다. 슥. 일단 천천히 검을 거두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보고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듯 보이는 사람들과 분노한 듯이 몸을 떠는 미엘. [무슨.....무슨 짓이냐! 설마 동정이라도 하겠다는 거냐!?] "....별로, 기분이 잡쳤을 뿐이다" 뭐랄까? 설명은 못하겠지만 저 영혼을 베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만일 베기라도 했다가는 평생 후회할 것 같은... 그런 느낌말이다. 쉬이잉! 내가 살짝 손짓하자 간단하게 해제되는 마법진. 그리고 생각치도 못하게 자신의 몸을 감싸던 사슬이 사라지자 당황하는 미엘. [놓아....주려는 것인가?] 분명히 자유의 몸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독기가 담긴 듯한 목소리에 나는 태연하게 대꾸했다. "그렇습니다. 아까도 말했다시피 기분이 잡쳤으니까요" [호호호홋! 웃기는군. 지금 나를 풀어주었다가는 내가 이 일을 길드에 보고할 텐데?] "....불가능할 겁니다. 실험해 봐도 좋아요" [.....?]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한 미엘. 하지만 나는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것만은 잊지 말기를 바랍니다. 당신의 영혼에는.... 이미 속박의 인이 새겨져 있다는 것을"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지만 후회하게..... 해줄 테다!] 이를 가는 듯한 미엘의 음성. 나는 피식 웃으면서 대꾸했다. "할 수 있다면" [.....죽여버리겠어. 망할 자식] 씹어 삼키듯이 중얼거리고 뒤로 물러나는 미엘. 스응. 그리고 이내 사라지는 검은색 연기. "갔군" 나는 그녀가 사라진 공간을 잠시동안 바라보았다. 왜, 왜 살렸을까? 죽여야만. 죽여야만 내 앞길에 방해가 되지 않을 존재였는데.... 살인이 익숙하지 않아서? 웃기지도 않는 일이다. 내가 비록 사람을 죽여본 적이 얼마 없어도 마족 중에는 인간형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마족이란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다. 어린아이의 모습을 한 마족도 죽여봤고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을 하고 있는 마족도 죽여봤다. 그런데.... 살인에 익숙하지 않다? 말도 안 된다. 그들이 마족이라고 하는 사실 빼 놓고 보면 달라 보이는 게 전혀 없다. 사실 인간과 마족을 나란히 놓으면 달라 보이는 것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막말로 같이 붙여 놓으면 누가 인간인지 알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데..... 왜? "...."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하지만.... 또다시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고 해도 도저히 그녀를 벨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그러고 보니 미엘이라고 했지. 그 흑마법사 녀석의 이름이... "....그러고 보니 처리할 것이 남았군" 나는 검을 들었다.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검기. 그리고.... 피잉! "끼에에엑!!" 나무 위에 앉아있던 까마귀 한 마리가 몸이 위 아래로 잘린 뒤 괴성을 지르면서 추락한다. "귀찮은 녀석들...." 몸을 돌렸다. 아직까지도 나를 바라보고 있는 일행들. 그리고 그런 일행에서 빠져 나와 내 쪽으로 다가오는 라이드. "저기.... 레인군?" 라이드의 입이 조심스럽게 열린다. 아마도 내가 왜 흑마법사를 놓아주었는지에 관해서 묻겠지. 하지만 곤란하군. 나조차도 왜 녀석을 놓아주었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말이다. "조...좀 전의 그 마법이 뭔지 설명해 줄 수 있겠나?" "...." 깜빡했다. 라이드의 성격을. "이...이해할 수 없네. 언령은.... 언령마법은 9클래스에 들어야 사용 가능하다고 알고 있는데 말일세" 반드시 대답을 듣고야 말겠다는 필살의 의지가 담긴 눈으로 나를 노려보는 라이드. 나는 그냥 무시할 까도 생각했으나 라이드의 표정을 보아하니 도저히 가벼이 넘길 상황이 아니라고 느꼈기에 할 수 없이 입을 열었다. "후.... 내가 사용한 것이 언령인 것은 맞지만.... 그것은 5클래스 마법입니다" 침착하게 내뱉은 말. 하지만 미처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엄청난 반발이 쏟아졌다. "웃기지 말게!! 언령은 9클래스 마법이네!!" "웃기지 마! 언령은 9클래스 마법이야!" "웃기지 말라고!! 언령은 9클래스 마법이란 말이야!!!" 마치 짜기라도 한 듯이 동시에 외치는 세 명의 마법사.(카인. 라이드. 칼) 왠지 모르게 묘한 박력이 느껴지는군. 쓸데없이 필사적이란 말이야.... "그런데 칼? 그런데 넌 또 언제 온 거냐?" 동시에 소리친 것이 부끄러웠는지 험험 하고 헛기침을 하던 라이드는 문득 입을 열었다. 좀 전만 해도 없던 인물이 눈에 보였기 때문이었다. 바로 그의 제자 칼. "예? 저요?" "그래! 너는 서류정리나 하고 있으라고 그랬잖아!" "우씨! 아무리 서류정리를 하고 있어도 그렇지. 교내에서 이 정도로 큰 마나가 유동하는데 관리자로써 와 보는 건 당연하잖아요! 혹시 스승님 바보에요?" "뭐? 바보? 지금 네가 감히 위대한 스승이자 교장 선생님한테 바보라고 그랬냐?" "틀린 말은 아니잖아요!!" "뭐야? 이런... #$!@#^#%#^%^&%#@@^&%&!!!" "이씨! 나는 욕 못하는 줄 알아요? !#$@$@$%*^&*&*(&*)&$!!!" 말싸움을 시작한 라이드와 칼. 라이드는 아까의 걱정스러운 태도는 대체 얼마를 받고 팔아먹은 건지는 몰라도 필사적으로 칼을 공략하고 있었고 칼도 만만치 않은 태도로 반격하고 있었다. "....." 머리 아프다. 나는 더 이상 추한 꼴 보기 전에 사태를 종결시킬 필요성을 느꼈다. "후.... 어째서 언령이 5클래스 마법인지 설명을 듣고 싶지 않은 사람만 지금부터 떠드십시오" 뚝! 순식간에 조용해지는 두 명의 마법사. 그리고... 후다닥! 재빨리 한군데에 모이는 세 명의 마법사.(얼결에 카인 포함) "스톤 체어(stone chair)!" 드드득! 순식간에 세 개의 돌 의자를 만들어 앉는 세 명의 마법사. 촤라락! 필기도구 준비. 팡팡! 옷매무새도 다듬고. 경건한 마음으로. 반짝! 탐구심으로 반짝이는 눈빛. 모든 준비가 끝났다. 대표로 라이드가 입을 연다. "자. 모두 준비 끝났네. 이제 설명을 시작하게나" "......" ....갑자기 마법사라는 종족이 싫어진다. "하하... 미안. 나도 궁금해서 하하하..." 어느 새인가 라이드의 옆에 앉아있던 카인이 머리를 긁적인다. "...좋습니다. 한번만 설명할 테니 잘 들으십시오. 이건 권능언령술입니다. 파워 워드 킬(power word kill)과 같은 종류이기는 하지만 등급이 다르지요" "등급이 다르다니 무슨 말이지?" 칼이 손을 들어 질문한다. "말 그대로입니다. 칼 님은 파이어 드래곤(fire dragon)이라는 마법을 아십니까?" "물론이라네. 본적은 없지만 9클래스 궁극의 화염마법이라고 알고 있지" "예. 맞습니다. 그럼 여기서 한가지 집어보지요. 칼님. 파이어 드래곤이 9클래스 화염마법이라고 해서 다른 화염마법. 그러니까 예를 들어 파이어 볼 같은 마법도 9클래스라고 할 수 있을까요?" ".....!" "말했다 시피 등급이 다릅니다. 파이어 볼과 파이어 드래곤은 모두 화염계열이지만 그 등급이 엄연히 다르지요. 마찬가지로 언령도 등급으로 나누어집니다. 그리고 그 중에 가장 궁극에 오른 언령이 바로 파워 워드 킬. 그러니까.... 말로써 상대방을 죽이는 경우이지요" "그렇다면 어떤 등급으로 나누어지는가?" "....가장 낮은 등급의 언령이 바로 사람을 조종하는 권능입니다. 그렇게 대단한 것은 아니고 '멈춰'라는 말이나 '잠들라'라는 정도의 간단한 것들이지요. 그것이 3클래스입니다. 음... 그리고 그런 식으로 등급이 올라갑니다. 방금 전 제가 사용한 언령은 그 중에 5클래스에 속한 '속박'이라는 언령이고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주문을 외웠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칼의 질문. 나는 짧게 답했다. "당연합니다. 마법이란 역시 주문이 병행되어야 더 편해지고 강력해 지니까 말입니다" "흠.... 하지만 우리들 모두 언령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없다네. 혹시 비밀로 붙여서 내려오던 것인가?" "...그렇다고도 할 수 있지만 다른 이유가 강합니다. 언령은.... 클래스에도 영향을 받지만 정신력에도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극적인 예로 내가 마법사들에게 언령을 가르친다고 해도 사람들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어...째서?" "말했다 시피 정신력의 문제이지요. 이 정신력이라는 것이 마법사들이 말하는 정신력과는 조금 다른 것이어서 그러니까 검사들이 소유하는 정신력과 비슷한 개념입니다. 뭐, 9클래스에 들어서면 다 똑같이 돼 버리지만" ".....그럼 자네 같은 마검사들이나 사용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 갑자기 힘빠지는 표정을 짓는 카인. 라이드. 칼. 그들은 잠시 서로의 등을 토닥이며 위로하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서 나를 바라보았다. 정작 중요한 것이 이제야 떠오른 모양이었다. "레....레인군! 그럼 카렌양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