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신도 스응 툭. 나는 가볍게 바닥에 내려섰다. 마력의 파동을 느껴서일까? 내가 갑자기 나타났는데도 그다지 놀라지 않는 일행들. "카....카렌양은 찾았는가?" 나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환하게 펴지는 라이드의 얼굴. "자....잘 됐네! 그런데 카렌 양은?" "....잠시 방으로 가셨습니다" "휴... 다행이네. 나는 또 무슨 일이라도 나는 줄 알고...." .....이미 일 났다. 영감. 일국의 황녀정도 되는 위치의 사람이 그 정도의 모욕을 당하면 전쟁이 일어나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말이다. 뭐, 카렌 정도 되는 사람이 이런 일을 말하고 다니지는 않겠지만. "너무.... 시간을 끌었습니다" 나는 더 이상 이어지려고 하는 이야기를 끊고 라이드를 거의 노려보는 수준으로 바라보았다. 너무 시간을 끌지 않는가? 시간이 없다고 할 때는 언제고. "....." 침묵을 지키는 라이드. "레인군의 맞네요. 스승님. 언제까지 뜸을 들이실 작정이시죠? 어차피 말할 거라면 이쯤에서 말하는 게 차라리 낳습니다" "후.....그렇겠군. 하지말 레인군. 먼저 물을 말이 있네" "......" 마법공식 묻는 것만 아니면 대답해주지. "자네가 스톰블링거가 아니라고 했던 검.... 정체가 뭔지 아는가?" "마검(魔劍). 아셨을 텐데요?" 뭐, 정확히는 마족이 담긴 검이지만, 틀린 말은 아니지 "하아.... 역시 그런 것인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는 라이드. 가만히 듣고만 있다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나서는 카인. "무슨 말이죠? 교장선생님? 우리를 부른 것이 마검이란 것 때문인가요?" "....." 촤륵! 카인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커다란 세계지도를 펴드는 라이드. "카리덴. 프로센. 테린" 지도의 세 군데에 동그라미로 표시하는 라이드. 모두들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앞서가는 카인은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는지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설마.... 이건가요?" 자신의 손가락을 들어 라이드가 표시한 동그라미를 연결하듯이 잇는 카인. "....과연 자네는 눈치가 빠르군" "기간은 얼마나 걸린 거죠? 파괴된 정도는?" "....대단하군. 레인군의 친구라기에 어느 정도까지는 예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어쨌던 간에 답은 해 주지. 멸(滅).....일세. 생존자는 단 한 명도 없네. 기간은 대략 한달" "어이없군요. 그 녀석이 무슨 기갑 전차부대라도 된다는 겁니까? 수가 엄청나게 많지 않는 한 불가능합니다" "....기갑 전차부대? 그건 또 뭔가?" "아.... 기갑 전차부대는..." 어느 새인가 또 방향을 잃고 자신들만의 이야기로 빠져나가는 카인과 라이드. 화악! 나는 대충 이야기를 끊어놓기 위해서 살기를 내뿜었다. 다행히 그 방법은 먹힌 듯 라이드와 카인의 잡소리는 멈추었고 말이다. ".....앗차! 미안하네. 나도 모르게 이야기가 새고 말았네" "카인!! 적당히 놀고 우리한테도 설명해 줘! 왜 자기들끼리 떠들어대는 거야!" "미...미안. 나도 모르게 말야. 하하!" 슬슬 짜증난다. 마법사라는 종족들.... "그..그럼 다시 설명하겠네. 좀전에 말했다시피 내가 표시한 지역은.... 완전히 괴멸했네. 생존자는 단 한 명도 없을뿐더러 죽어버린 마을은 근방 마을을 공격해서 세력을 키워가고 있지" 이제야 진지모드를 유지하는 라이드. 다크가 질문했다. "죽어버린 마을이 근방마을을 공격하다니.... 무슨 소리지요?" 나도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괴멸한 마을이야 그렇다고 쳐도.... 세력을 키워간다고? "그것이.... 좀비들이네" "좀비?" 라이드의 얼굴에 그늘이 진다. "그렇다네. 좀비. 하지만.... 녀석들은 일반적인 녀석들이 아니네. 그 녀석들에게 공격당해서 죽게되는 녀석들은 모두 좀비가 되어버리니 말일세. 그것도 죽기 전의 능력을 완전히 보유한 채" 뭐.....야? "무슨 말도 안돼는! 좀비가 죽이는 사람이 모두 좀비가 된다고요!?" 조용히 듣고만 있던 린이 경악해서 소리친다. 맞는 말이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돼는 이야기. 게다가.... 죽기 전의 능력을 완전히 보유한다고? 잘만 하면 세계지배도 가능하겠..... 잠깐. 좀비!? "모두...모두 좀비로 변한다고 하셨습니까!?" "그...그렇다네. 가...갑자기 왜 그러나 레인군?" 내가 느닷없이 소리치자 찔끔하고 놀라는 라이드. 하지만 나는 생각에 빠져들었다. 좀비? 그럼 상급이상의 마족이란 말인가? 하지만.... 설사 상급마족이라고 해도.... 나의 감지를 피해 갈 수는 없다. 그렇기에.... 중급 마족일 뿐이라고 판단하고서 굳이 건들지 않았었다. 그런데... 그런데 좀비를 만든다고? 상급마족 이상이면서 나의 감지를 피해간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최상급.... 마족?" 아니다. 아냐! 최상급 마족 따위가 인간계에 올 수 있을 리가 없지. 게다가.... 정말 최상급 마족이라면 속도가 이렇게 더디지 않을 것이다. 벌써 한 나라의 3분의 1정도는 날아갔을 것이다. 녀석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강하니까. 주륵. 더 이상 더위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내 몸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녀석이 아닐 것이다. 분명히' ...라고 생각을 해도... 정말 최상급 마족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뇌리를 지배한다. 지금은 그다지 세계 정복할 마음이 없고 장난 삼아 돌아다니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 하지만.... 나는 그 생각을 떨쳐버리기 위해 머리를 흔들었다. 하지만 만약에 녀석이 정말 최상급 마족이고 마음만 먹는다면..... 대륙은.... 파멸이다. 뿌득! 이를 갈았다. 젠장! 나라도 녀석을 막을 수는 없어! 내가 상급마족보다 약간 강해진 상태라고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약간. 최상위급 마족과 내 전투력 차이는 거의 8배 이상이다. 8배의 실력차. 말이야 간단하지만 녀석이 나를 일격에 쓰러트리는 것도 가능하다는 말과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 물론, 온 대륙 사람들의 힘을 합한다면 엄청난 피해를 입기는 하겠지만 최상위급 마족을 해치우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그것역시 다른 문제가 따른다. 인간들에게 마족이 무서운 또 다른 이유. 그것은 바로 영혼의 속박이다. 마족. 그것도 상급마족 이상의 마족에게 죽임을 당하는 인간은 죽기 전의 능력을 가지고 녀석들의 충실한 종이 되어버리니까. 예를 들어 녀석이 소드마스터의 실력을 가지고 있는 인간을 죽인다면 그 인간은 소드마스터의 실력을 가진 좀비로 변하는 것이다. 게다가... 좀비로 변하면 고통을 모르는 정신력과 절대로 지치지 않는 체력까지 얻게되니 더 많은 사람들을 죽여서 좀비들의 숫자를 늘리겠지. 마족에게 죽은 좀비의 손에 죽어도 좀비가 되어버리니까. "젠장...." 젠장! 젠장!! 솔직하게 이런 나라가 사라진다고 해도 그다지 정은 없다. 온지 얼마나 되었다고 목숨을 걸 만한 책임감이 생기겠는가? 하지만..... 이건 아니다. 아직 차원의 틈도 찾지 못한 상태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우리 역시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뭐, 내가 있다면 카인과 다크 정도야 마계에서 살아남았던 방법으로 어떻게든 생존이야 하겠지만 차원의 틈을 찾기가 어려워진다. 게다가..... 이곳의 사람들도 마음에 걸린다. 이들 역시 살고자 하는 생명들. 이렇게, 이렇게 무시해 버릴 수도 없다. 젠장...... 젠장!! 쿠오오! 어떻게.... 어떻게 해야 하지? 내 힘으로는 막을 수 없다. 차라리 내가 먼저 가서 녀석을 막아볼까? 좀비들이 늘어나기 전에 말이다. "....." ....아니, 그것도 안 된다. 그러다가 내가 죽어버리면 어떻게 하는가? 그렇게 된다면 사상 최강의 좀비가 만들어져 버릴 것이다. 젠장! 어떻게 해야...! "레....레인군?! 왜...왜 그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진정하게. 진정" "....." 나는 생각을 끊고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일행들은 저만치 물러나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라이드만의 어떻게든 가까이 와 있는 상태. "레....레인 무서워...." 살기에 민감하게 반응한 것인지 바들바들 떨면서 뒤로 물러나는 루니. "하하.... 거...검에 관통되는 기분이었어. 자...장난이 아니잖아?" 식은땀을 흘리며 마음을 진정시키려는 듯 심호흡을 하는 다크. "대....단....합니다. 저...저도 제법인 실력이라고 새..생각해 왔는데 다...단지 살기 때문에.... 무너지다니..." 어느새 주저앉아서 힘겹게 말을 내 뱉는 딘. "대단합니다. 스승님! 단지 살기만으로 저에게 두려움을 느끼게 하시다니!" ....별로 겁먹은 듯해 보이지는 않는 카이져. 그들뿐이 아니었다. 모두들 질린 듯한 기색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나마 무사한 것은 늘 생명의 위협과 살아가는(거인족들의 거주지역은 거의 마계에 맞먹을 정도로 몬스터가 많다)거인족의 카이져와 일행 중에서 가장 나은 실력을 가지고 있는 라이드 뿐이었다. "...죄송합니다. 이정도에 흥분해 버리다니...." 숨을 고르면서 살기를 거두어들인다. 마계에서 나오고 나서 상당히 줄여놓은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살기가 마구잡이로 뿜어져 나오는군. "후.... 그래, 확신 할 수 없지" 맞는 말이다. 확신할 수 없다. 애초에 최상급 마족이 담겨있으려면 최소한 신검급의 마검이나 가능하다. 하지만.... 그 검 자체는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았다. 비록 명검 축에는 드는 것 같았지만... 마검도 아니었다. 마족이 들어갔기에 마검화 되었던 것뿐이지. 아마 그따위 검에 최상급 마족이 들어갔다가는 1∼2초를 못 버티고 부서져 버릴 것이다. "레인....군?" 뭐지? 뭘까? 최상급 마족도 아니고 상급 마족도 아니고.... "저기.... 레인 구운∼∼?" "....그렇군!!" 화들짝! 내가 갑자기 탄성을 지르자 순식간에 뒤로 물러나는 칼. "아...아니, 굳이 답해 달라는 건 아니고.... 하하하!" 약간은 당황한 듯한 표정으로 웃는 칼. 처음 보는 듯한 그의 표정이 새로웠으나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기에 나는 라이드에게 고개를 돌렸다. "마검에대한 상황을 설명해주십시오. 있는 대로 전부다!" "아...알겠네. 그...그러니까 좀비가 나오기 시작한 건 대략 한달 전 부터라네. 발생지역이 검이 마지막으로 모습을 보였던 리아스인 것을 보아 검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한 것이라네" "그 후의 검의 종적은?" "아...알 수 없네. 세간에는 어떤 남자가 들고 다닌다고도 하지만 리아스 주변의 생명체가 모두 죽어버렸기 때문에 목격자가... 아니 생존자가 없기 때문이지" "....." 예상했던 일이다. 마족이 설사 녀석들에게 신경쓰지 않더라도 녀석이 만든 좀비들은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를 증오하니까 말이다. "그럼 그 검에 무슨 속성이라도 나타난 적이 없습니까? 예를 들어 불꽃이라던가 어둠이라던가, 혹은 뇌격....이...라...던...가?" 말이 끌린다. 그...렇군. 이제야 기억이 났다. 뇌전을 뿜었었지. 그랬기에 스톰블링거로 오해받았었고 말이다. "그래... 녀석들이었군. 상급마족보다 강하면서 최상급보다는 약한 마족들. 주로 최상급 마족의 보조역할을 한다는 속성마족들 중에서.... 뇌전을 사용한다는 뇌령마족(雷靈魔族)" 검 손잡이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이번 싸움.... 힘들어지겠군. 뭐, 최상급보다는 나으니 그나마 다행인 건가?" 작게 열려진 입술 사이로 조용히 한숨을 내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