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신도(四神刀) "카렌님!" "무사하셨군요!" "....." 어느 새인가 갑옷을 다시 입은 채 조용히 우리 곁으로 다가온 카렌과 그런 그녀를 반갑게 맞이하는 칼과 라이드. 다행이로군. 작전을 지시하는 시간에 맞춰 와서. "작전은 내가 짤까?" "....그럴 필요는 없어. 아무리 너라도 정보가 너무 부족하잖아? 적에 대해서도 그다지 아는 바가 없을 테고 말이야" "그런가?" 수긍한다는 표정으로 뒤로 물러나는 카인. 나는 지도를 펴고서 일행을 바라보았다. 어느 새인가 자세를 잡고 내 이야기를 경청할 준비를 하고 있는 일행들. 어쩌다가..... 내가 대장처럼 되 버린 거지? 뭐, 설명하기는 이게 편하지만. "그럼.... 대충 팀에 대해 설명하지요. 일단 우리 일행은 두 개로 나누어서 갈 생각입니다" "질문! 침략 당한 곳은 세 곳이라고 알고 있는데? 팀을 세 개로 나누어야 하는 것 아냐?" 예의바르게도(?) 손을 들고 질문하는 카인. 나는 가볍게 답했다. "걱정할 필요는 없어. A조가 두 군데를 돌고 B조가 나머지 한군데를 해결하는 방식이니까" "질문이네. 어떻게 나눌 생각인가?" 이번에는 라이드의 질문. "....간단합니다. 일단 A조는 저" "그리고 누구?" "....그리고 B조는 나머지" "....." "....." "....." 잠깐 이해를 하지 못한 듯이 침묵을 지키는 일행들. 그리고..... "에에에엑?! 그럼 너 혼자 가겠다는 거야?!" "말도 안돼요! 레인님과의 여행은....여행은....!" "레인군! 무슨 말도 안 돼는 소리를....!" 순식간에 반발하는 일행들. 예상했던 일이다. 나는 목소리의 높낮이를 일정하게 유지시키며 침착하게 대답했다. "가장 효율적이고.... 빠른 방법입니다" "어째서!" ".....성급하게 인원을 나누었다가 만약에 당하기라도 한다면 모두들 좀비가 되어버리니까요" "하지만.... 에... 그러니까 레인 혼자서 갔다가는 오히려 레인이 당할 수도 있잖아?" "....난 당하지 않습니다" "....." 당연한 듯한 내 말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가 뭔가 핑계로 제시할 만한 거리를 찾는 린과 루니. 그리고 카인과 다크. "음.... 하지만 네가 꽤 빠르다고 해도 혼자서 두 군데를 돌겠다니 의외인걸? 시간이 많이 걸릴텐데? 그 좀비녀석들도 해결해 놓으려면 말야" 카인이 반론을 제시한다. 하지만 목소리에 그다지 자신이 없는 것이 어떤 방법을 사용할지는 짐작이 가는 모양이었다. "걱정하지마. 너도 레디에 대해서 알 텐데?" "....." 이해했다는 듯이 뒤로 빠지는 카인. "....그 붉은 말을 말하는 거야? 그 말이 뭐?" 카인이 조용해지자 이번에는 린이 끼어든다. "제 말은 상당히 빠른 녀석입니다. 그 단적인 예로.... 여러분이 말이건 마차 건 다 이용해서 전속력으로 좀비가 나타난다는 카리덴으로 달려간다고 해도.... 소요시간은 8일이 걸립니다" "그렇지. 그런데 그게 왜?" 여기서 그곳까지의 거리는 상당하다. 린이 내 말에 너무나도 쉽게 수긍할 정도로 말이다. "레디라면..... 약 하루의 시간을 소모해 도착 가능합니다" "뭐....?" 순간적으로 당황하는 듯한 린의 표정. 그녀가 잠시 답할 말을 찾지 못하는 동안 라이드가 끼어든다. "자네의 말.... 상당히 빠른 건 알고 있었네만.... 그런 게 가능하단 말인가?" "....일단은 그렇습니다" "....." 역시 뒤로 빠지는 라이드. 이번에는 딘이 앞으로 나섰다. "그럼 좀비들은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레인군이 강하다고 하셔도 상당한 숫자의 좀비들을 처리하려면 시간이 걸리실 텐데요?" "...일단은 저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 겁니다. 게다가... 이 녀석들도 있고요" 순간적으로 내 등뒤로 검은색의 그림자가 일어났다가 다시 가라앉았고 그걸 본 딘도 뒤로 빠진다. "그럼....질문 있습니까?" "......그 레디라는 말이 죽으면 어쩔 생각인가?" "....." 나는 고개를 돌려서 구석에서 조용히 우리들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카렌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너라도 좀비들을 처리하면서 말을 지키기는 어려울 텐데? 뭔가 방법을 생각하는 것이 좋지 않겠나?" 뭔가를 생각하는 듯한 말투로(투구 때문에 표정은 알 수가 없다)다시 입을 여는 카렌. 나는 가볍게 답했다. "녀석은....강합니다. 제가 굳이 지킬 필요는 없습니다" ".....강하다? 말이?" 약간은 이해가 안 간다는 듯한 카렌의 말투. 나는 조소를 베어 물며 답했다. "예. 당신과 거의 버금갈 전투력을 지닐 만큼" "뭐....라고?" 당황을 넘어서 거의 경악한 목소리. 모두의 시선이 나를 향한다. 방금 전에 내가 한 말을 해명하라는 듯한 눈초리. 하긴,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일개 말이(물론, 그들이 그렇게 알고 있다는 거지 실제로 그렇지는 않지만.) 모든 검사들의 꿈인 소드 마스터 경지에 육박한다니 말이다. 스윽. 나는 주머니에서 한 개의 피리를 꺼내들었다. 그다지 화려하지 않은 갈색을 띠고 있는 피리. 후욱! 가볍게 불었지만 바람 소리 밖에는 나지 않는다. 아니, 정확히는 피리소리가 나기는 했지만 '인간'들에게는 들리지 않는다. "앗! 전 번에 그 쉐꾸린 소리!" ....물론, 인간이 아닌 녀석들에게는 들린다. "....그러고 보니 저 피리가 그 레디라는 말을 부르는 도구였지. 전에는 성벽을 넘어오더니 요번에는 어떻게 올까?" 흥미진진하다는 표정으로 주변을 살피는 카인. 그는 잠시 두리번거리다가 손가락으로 한 방향을 가리켰다. "어...어라?" 휘익! 일제히 돌아가는 일행의 머리. 그리고.... 나를 제외한 모두의 눈이 부릅떠졌다. 피잇! 피잇! 피잇! 무서운 속도로 지붕을 밟으면서 달려오고 있는 레디. "뭐....뭐야? 저만한 말이 달려오는데 지붕이 멀쩡하다?" "마...말도 안돼! 보통 말들보다도 덩치가 큰 녀석이라고! 못 되도 400킬로는 되어 보이는데?" 먼저 소리치는 다크와 카인. "그뿐이 아니네! 달려오는.... 달려오는 소리조차 희미하게 밖에는 들리지 않아! 게다가 저 몸놀림은.... 저 몸놀림은....!?" 마나를 자유롭게 다루는 소드마스터의 몸놀림! "이... 이런 어...어이없는!" "이럴 수가!" 모두들 떠들거나 말거나 레디는 순식간에 내 곁까지 다가왔다. 역시나 빠른 속도. 전속력으로 달린 것도 아니었기에 호흡에도 그다지 문제가 없었기에 나는 가볍게 녀석의 등에 올라탔다. ".....그럼 이만. 제가 프로센. 테린을 돌도록 할 테니 나머지 한 곳은 여러분들이 해결해 주시길 바랍니다" "자...잠깐 레인! 우리들은?" 당황한 듯한 모습을 보이는 다크. 나는 가볍게 입을 열었다. "당연히 일행을 따라가야지. 언제까지 내 곁에만 있다가는 정작 너희들의 실전경험을 쌓지 못할 테니까 말야. 그리고 다크" "응?" "나를 만나기 전까지.... 완전하게 마나의 유동을 끝마쳐 놔. 만약에 그렇지 못하면 이유 불문하고 정권 찌르기 백만번이다" "배....배...백만 버∼언?! 백 번이 아니고?" "그래, 백만번. 아. 그리고 카인. 너도 유동을 끝마쳐 놔. 아마 13일 정도 지나면 다시 만 날수 있을 거야. 그때까지 숙제다" "휴..... 아직 감도 못 잡았는데?" 한숨을 쉬는 카인. 이해가 가는 일이다. 마나의 유동. 말이야 쉽지만 마나의 유동이 완전히 가능한 것은 5클래스 마법사나 소드마스터에 이른 사람이나 가능한 것이다. 그러니까 결국 내 말은.... 카인에게는 5클래스가 되라고 하는 것이고 다크에게는 라운드 파이터가 되라고 강요하는 것이다. 시간은 겨우 13일. 일반인들에게는 터무니없는 일이지만.... 뭐, 괜찮겠지. 저들은 천재니까. 게다가, 못하게 되더라도 그 벌로써 백만번의 주먹질을 하게 된다면 뭔가 깨닫지 않을까? "우∼ 악마 같은 놈!" "훗! 성과가 있기를 바란다. 그럼 라이드님. 저는 먼저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어? 자...잠시만 기다리게 레인군!" "아앗! 또 도망간다!" 마악 말을 이으려는 라이드와 황급히 나를 잡으려는 듯 손을 내미는 린. 하지만 레디는 그런 손길들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지나치고서 무서운 속도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쿠아아아!! "#%$#^$%" 뒤에서 일행들이 뭐라고 떠들었지만 알아듣지는 못 했다. 뭐, 상관없겠지. "휴.... 이제야 출발이군. 레디! 속도를 높혀!" "히이이잉!" 기합(?)을 내지르는 레디. 그리고 그와 함께 안 그래도 붉은 녀석의 몸에 은은하게 붉은 색의 기운이 서리기 시작했다. 3대 마계술 중.... 염(炎)의 발동. 쿠아아아앙!! 공기가.... 사납게 찢겨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