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악! 사..살살해요!" "어...어라?" 대기실에 들어가자마자 진섭의 눈에 의아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 이유는 멀쩡하게 들어간 정식에게 간호선생이 붕대를 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흑! 피가 좔좔 흘러... 허억! 팔이 부러진 것 같아...." 빠악! "이씨! 왜 때려요!" "엄살피지 마라. 겨우 이 정도 상처가지고" "이...이 정도 상처?" 별로 예쁘지는 않지만. 아니 오히려 굉장히 무섭게 생겼지만 아무튼(?) 여자인(ㅡ.ㅡ;;;) 양호선생의 얼굴이 무섭게 찡그려 졌다. "괜한 짓을 하니까 그런 것 아니냐? 입 닥치고 가만히 있어" 양호 선생님은 양호선생님 답지 않은(?) 아니, 인간 같지 않은(?) 거대한 팔을 들어올리더니 정식의 팔을 잡았다. 무식할 정도로 큰 근육들이 무서울 정도로 불끈거렸다. "그리고 부러지지 않았어, 그저 약간 탈골한 것 뿐이야" '탈골? 팔이 아주 빠진 것처럼 보이는데?' 정식의 팔은 원래의 괘도에서 약간 벗어나서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실제로 보기에도 엄청난 부상이었다. 병원에 가도 치료하기 힘든. "다시 맞출 테니까 힘 빼. 아! 그리고 이 악물어라" 이 대목에서 양호선생님이 슬쩍 웃었지만 정식에게는 전혀 위안이 되지 않았다. 생각해 보라 2미터가 훨씬 넘는 키의 소유자가 슬쩍 웃는 것을 올려다보는 심정이란.... 엽기를 넘어서서 엄청난 공포로 다가온다. 더군다나 앞으로 벌어질 일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는. "에....? 아..안돼! 자..잠깐만 기다....!!" 뿌드드드드드득!!! "크아아아아악!!" 순간 끔찍한 비명소리가 대기실을 메웠고 마음이 여린 학생들을 고개를 돌렸다. 물론 그녀의 치료법을 많이 봐온 학생들은 '쯧! 저런 불쌍한 놈'하는 시선을 보냈고 말이다. 진섭은 후자 중에 하나였다. "살살할 수도 있잖아요! 흑! 진짜 드럽게 아프네...." 정식은 팔을 부여잡고 죽는소리를 냈다. 그러자.. 간호선생의 눈에서 안광이 뿜어져 나왔다. 당장에 대기실 분위기가 공포에 젖은 것은 당연지사였다. "뭐...라고?" "히익! 치료해 주셔서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알고 있다. 부상자가 있으면 또 부르도록" 그녀는 학생들을 한번 둘러보고 대기실을 나갔다. 쿵! 그녀는 살짝 닫는 다고 닫은 모양이지만 문은 부서질 듯이 세게 닫혔다. '정식도 정식이지만 저분도 인간이 아닌 게 틀림없어' 진섭은 도대체 이 학교의 정체가 뭐 길래 저런 사람이 양호선생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씽! 아파도 절대로 안 부를 테다!" 정식은 팔을 돌리면서 중얼거렸고 진섭은 그의 근처로 다가갔다. "....괜찮아? 무릎은 또 왜이래?" "아...진섭이로구나. 조금 다쳤지" "왜?" "아... 약간 오버했다고나 할까?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이라 너무 긴장해서. 게다가 더 멋있게 하려고 바위도 너무 큰 걸로 준비하는 바람에...." "...." 진섭은 너무 어이가 없어 멍하니 그를 쳐다보았다. 요컨대 너무 큰 바위를 사용했다는 말이다.(정식이 긴장했다는 말은 애초에 무시한다) '쯧! 그것보다 조금 작았어도 누가 뭐라고 하지는 않았을 텐데... 바보 아냐?' 진섭은 한심하다는 듯이 정식을 바라보았지만 굳이 뭐라고 탓하지는 않았다. "그러고 보니 무릎은? 주먹으로 친 게 아니었어?" 정식은 무릎을 들어올렸다. "하하! 아무리 나라도 단지 주먹만으로 그 정도 왜는 바위를 부수는 것은 힘들어. 바위는 단단하거든? 속도를 빠르게 한다고 해도 그 정도쯤 되는 강도를 가진 물건을 때리면 오히려 주먹이 터져 나갈 수도 있어. 그래서 무릎과 주먹으로 동시에, 아니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쳐서 파괴력을 극대화시키면서도 내 몸에 오는 충격은 분산시키는 거지" 정식은 허공에서 손을 휘두르는 시늉을 하다가 주먹을 들어올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물론 주먹에는 붕대가 감겨 있었고 말이다. "물론 충격을 분산시키고도 이 모양이지만 말이야... 아... 수련이 부족해" "웃기네. 애초에 그런 게 가능하다는 자체가 말이 안 돼는 거라고" "무슨 소리! '바람의 검심'에서 사노스케는 '이중 극점'으로 두께가 1미터짜리 바위도 간단하게 부수던데!! 넌 만화도 안 보냐!!" '만화하고 현실하고 같냐?' 진섭은 발악하는 그를 간단히 무시하고 고개를 빼꼼히 내밀어 무대를 바라보았다, 지금은 연극부가 공연을 하고 있었다. 세익스피어의 작품인 햄릿이었는데 학생들의 연기실력도 상당히 뛰어났고 미모들도 반반(?)했기에 꽤나 볼만했다. "연습하는 거 지겹도록 봤으니 또 볼 필요 없겠지" 진섭은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정식은 일어나서 몸을 풀고 있었다 "어? 일어설 수 있어?" "당연하지. 양호선생님의 치료는 더럽게 아프기는 하지만 효과는 직빵이니까. 아∼ 인정하기 싫어진다.... 어떻게 그렇게 무식하게 치료하는데 낳을 수가 있지?" 정식은 그 말을 끝으로 움직일 수는 있지만 기운이 없는지 더 이상 설치지 않고 축제를 구경하기 시작했고 진섭은 고개를 돌렸다. 동규도 어느새 준비를 다 했는지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요번 작품은 뭐냐?" "요번 거? 글쎄... 환상의 꽃 파이어 로즈(fire rose)? 아니.... 불의 여신? 그냥 편하게 불꽃의 축제라고 할까?" "...꼭 그렇게 화려한 이름이 있어야 하냐?" "당연하지. 한번 보라고, 이번 건 진짜로 멋져" 녀석은 씨익 웃으면서 엄지손가락을 들었다. 진섭은 상당히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정도인가? 저 녀석이 저렇게 자신하는 건 오랜만인데? "너무 멋진 연극이었어요. 제 가슴까지 찡한 거 있죠" "맞아요. 정말 대단..." 무대에서는 혜진과 보람이 떠들고(?) 있었고 진섭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면서 이제 동규가 나갈 차례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 그럼 우리학교. 아니 전세계의. 아∼ 우리학교에는 이런 녀석들이 왜 이렇게 많은 걸까요? 하여튼 세계제일의 천재! 동규와 과학부원들입니다!" 와아아! 함성이 있기는 있었지만 그리 크지는 않았다. 모두들 '왜 공부 잘하는 녀석이 여기에?'라는 표정이었다. "준비하자" "알았어" 그들은 관중들에게 일언반구도 없이 무대에 장비들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오래 연습해 온 듯 동작들이 꽤나 신속했다.(과학부원들이 빨라 봤자 운동부원에 비하면 느리지만) "도대체 뭘 하려고 난리지?" 과학부원들은 벌써 장비를 거의 다 설치한 상태였다. 뭔가가 담긴 두 개의 물통을 조심스럽게(필시 저게 니트로 글리세린하고 각종 약품들을 섞은 것일 것이다)옮기더니 세워놓았다. 대충 준비가 끝났을 때였을까? 동규가 앞으로 나섰다. "아아... 마이크 시험 중" '뭐 하자는 거야?' 동규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이 조금 부끄러운지 헛기침을 약간 하였으나 어느새 부드러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과학부가 준비한 작품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꽤나 노력해서 만든 것이니 신경 써서 봐 주셨으면 합니다. 그럼..." 동규는 간단히 말하더니 뒤로 가볍게 손짓했고 과학부원들은 두 개의 통을 가져와서 한 개의 큰 통에 조심스럽게 쏟아 부었다. 다행히 재료는 위험한 것들이었지만 폭파한다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그 대신 한줄기 연기가 솟구쳐 올라왔다. 치이익! 연기는 신기하게도 천장까지 올라가는 게 아니라 어느 정도의 높이에서 뭉치기 시작했다. 마치 서로가 끌어당기는 듯한 모습이었다. 뭉게뭉게 구형의 모양으로 모인 소용돌이치기도 하고 빙글빙글 돌기도 하면서 공중에 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관객들을 행해 동규가 입을 열었다. "시작하겠습니다" 탁 일시에 시청각실이 완전한 어둠에 잠겼다. 불을 끈 것이다. 몇 개안되는 창문도 빈틈없이 커텐이 쳐 있었기에 빛이라고는 한줄기도 없었다. 웅성웅성 사람들은 동규가 뭘 하려는지 몰라 작게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하긴 그럴 만도 했다. 무슨 설명을 해 준 것도 아니고 갑자기 불을 끄니 말이다. 치익 그들의 웅성거림이 일시에 조용해 졌다. 무대 위에는 라이터 불로 보이는 불꽃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불은 어딘가에 불을 붙였다. 치이이익! 마치 다이너마이트 심지가 타는 모양이라고 해야 할까? 한줄기 불꽃이 빛을 뿜으면서 보이지는 않았지만 공중에 뭉쳐있던 구름 쪽으로 다가갔다. 사람들은 뭐 폭파하는 게 아닌가 하고 걱정했지만 그 불은 조용히 전진해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리고... 화아아악!! 일시에 일어나는 엄청난 불꽃! 그 불꽃은 처음에는 폭파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으나 곧 아름답게... 그리고 화려하게 춤을 추기 시작했다. 불꽃의 축제! 화아아악! 하는 소리와 함께 불꽃은 맹렬하게 타오르기 시작했고 그것은 갖가지 모양을 이루기 시작했다. 새가된다. 꽃이 된다. 여왕이 된다...... 화아아아악!! 그것은 맹렬하게 불타오르더니 어느 순간 꽃의 봉오리를 이루었다. 이제까지의 모습이 추상적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훨씬 분명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꽃봉오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활짝 펴지기 시작했다. 염화(炎花)의...개화(開花)!! "머...멋지다!!" 순간적으로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왔고 진섭의 입에서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아름답다! 그 누가 보더라도 눈을 떼지 못할 정도로 화려하다. 저것이 바로 동규가 말하던.... 환상의 꽃. 파이어 로즈(fire rose)!! "와...." 관중들도 각자 환성을 내질렀다. 비록 큰 소리를 내지 않고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무대 위를 바라보느라고 그런 것이다. 압도당했다. 그래, 그 말이 가장 정확할 것이다. 화르륵! 일시에 불이 확 줄어들었다. 마치 마지막을 장식하기 위해 힘을 모으는 것처럼. 그리고.... 파아아아앗!!! 순간 모든 불을 꺼 놓은 시청각실이 환하게 물들었다. 순간적으로 훨씬 거대하게 변한 염화. 염화는 마지막 힘까지 모두 사용하였다. 그리고... 파아아아... 허공을 화려하게 수놓았던 염화는.... 조용하게 공기 중으로 비산 하며 사라져 버렸다. "...." "...." 관중들은 잠시동안 조용했고 시청각실은 침묵에 휩싸였다. 하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잠깐일 뿐이다. "우와아아아아!!!" 엄청난 함성이 터져 나왔다. 동규는 그런 관중들을 향해 조용히 고개를 숙이더니 천천히 대기실로 들어갔다. '다음차례가 누군 지는 모르겠지만 진짜로 불쌍하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