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섭은 조용히 다음 사람에게 애도를 표하고(당연한 일이다. 전에 한 게 너무 멋졌으니 비교될 것이 뻔했다. 또 발표하는 중에도 방금 본 것을 가지고 각자 떠들겠지...)대기실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과학부원들이 흥분해서 떠들고 있었고 그 가운데는 당연한 이야기였지만 동규가 있었다. "굉장하던데?" 진섭은 떠들고 있는 녀석들을 무시하고 동규에게 말을 걸었다. "하하.... 당연하지 이 몸이 한 달간이나 고생한 건데" "한달?" "응. 내가 읽은 책에는 불꽃이 허공에서 타는 원리만 나와 있었지 모양을 갖춘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없었거든. 이 약품 저 약품 실험하고.... 조사하느라고 한 달이나 걸렸어. 어렵기는 했지만 꽤 재미있었지. 하지만... 화학 약품들에 대한 지식이 내 머릿속에 들어 있었다면 괜히 고생하거나 하지는 않았을 텐데... 공부가 아직도 부족해" '....그런 일들이 가능하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이놈이나 저놈이나... 인간이 아냐' 진섭은 속으로 중얼거렸으나 겉으로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 정말 대단하다. 그런데... 네 다음 차례는 누구야?" 동규는 잠시 생각하더니 불쌍하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댄스 부 녀석들. 잘못 걸렸는걸? 하필 내 뒷 차례라니..." 물론 상관없는 이야기다. 그 녀석들이 어떻게 되던 무슨 상관인가. 다만 그 녀석들이 재수가 없었을 뿐. "그런데 너는 언제 하지?" 진섭은 동규의 말에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마지막이라고 하던걸. 하이라이트라나? 쳇! 차라리 네 걸 마지막으로 했어야 되는데..." "무슨 소리야! 네 공연이야말로 정말 멋지다고! 저번에 그 '빛의 천사'던가? 그것도 엄청 대단했다고. 나조차도 한 방에 뿅 가버릴 정도였다는 걸 모르겠냐? 자신을 과소 평가하는 것도 좋지 않은 버릇이야!" 동규는 진섭의 말에 반색을 했고 진섭은 다시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에휴... 미안하다 미안해. 그리고 요번에는 그거 아냐. 새 음악을 만들었거든" 동규의 눈에 의문이 떠올랐다. "새 음악?" "응. 플롯으로 하는 건데... '새벽의 미소'라고 해. 꽤 괜찮은 거야" "빛의 천사보다?" "응" '어찌 되었던 지금까지의 음악 중에서는 최고 걸작이니까'하고 중얼거리며 진섭은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단한데? 빛의 천사만 해도 웬 만한 세계 정상급 악사들보다 훨씬 낮던데...." 진섭은 그의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알고 기분 좋게 웃었다. 물론 그 웃음에 많은 대기실의 여학생들이 단체로 혼절했지만 그들은 신경 쓰지 않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기실의 문이 열렸다. 끼익! 문으로 들어온 한 소녀. 혜진은 대기실의 여학생들이 혼절해 있는 모습에 잠시 어이없다는 듯이 사방을 바라보다가 진섭을 향해 입을 열었다. "진섭아, 빨리 준비하라고 얼마 안 있으면 네 차례야" "아, 알았어" 진섭은 그녀의 말에 허겁지겁 준비를(준비라고 할 것도 없었다. 준비물이라고 해봐야 플롯 정도였으니 그가 준비할 거라고 옷을 고쳐 입는 정도?)하고 대기실 입구에 섰다. 요번차례는 합창부였고 찬송가를 부르고 있었다. "....주의 사랑에 빛이∼....." '난 불교다' 진섭은 그들의 노래를 간단한 이유로 무시하고 시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의 시계는 그의 차례가 얼마 남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다음 차례로군" 진섭은 천천히 심호흡을 하였다,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새 음악을 연수하는 것이어서 그럴까? 상당히 긴장되었다. "네. 상당히 화음이 잘 맞았던 것 같아요" 보람이와 혜진은 어느새 무대위로 나와 전에 나온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도 저 능숙한 태도와 말투. '익숙하잖아?' '하긴 혜진이가 긴장을 타거나 수줍음을 탄다는 것도 이상하지만' 하고 중얼거린 정식은 다시 무대위를 바라보았다. 합창부는 이미 다 들어가 버린 상태였다. "제발,,,, 쓸데없는 말은 하지 않기를...." 대답하고도 당당한 혜진이 무대 위에 있으니 더 불안하다. 이것이 진섭이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자 그럼 여러분!! 청수 4대 명물이 뭔지 아세요?" "네!" '4대 명물?' 진섭은 다시 자신이 모르는(진섭만 모른다)이야기가 나오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런 게 있었던가? "자! 정식이와 동규. 그리고 제가 무대에 다∼나왔네요! 그럼 남은 사람은 누구죠?" "신진섭! 신진섭! 신진섭!! 신진...." 무슨 분위기가 사이비 종교 신도들이 교주를 부르는 것 같다... "뭐....뭐야?!" '4대 명물이 도대체 뭘까?'하는 생각을 하고 있던 진섭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맙소사... 그런데 내가 저렇게 유명했던가?" 진섭은 어이없어 하면서 허망한 듯 중얼거렸다. 딱히 답을 구하려고 중얼거린 것은 아니었지만 대답은 그의 양쪽에서 들려왔다. "암. 너는 존재 자체가 유명해질 가치가 있지. 안 그러니 동규야?" "...그렇지 솔직하게 이야기해서 진섭이를 모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이상한 거지. 전에도 한번 연주를 했으니까" 동규와 정식은 어느새 자리를 잡고 무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도 딴 건 몰라도 진섭이의 무대만은 꼭 보고 싶은 모양이었다. "자! 그럼 저와는 공식커플이자 최고의 미소년 음악가! 진섭군은 나와주세요!!" '겨...결국' 진섭은 한 소년의 소박한(?) 꿈을 가차없이 박살내 버린(?) 혜진을 보면서 비틀거렸다. 하지만... 그에게는 그럴 시간마저 모자랐다. 이제 나가야 되는 것이다. "잘해!" "모두를 깜짝 놀래켜 주라고!!" "하아... 으...응, 알았어" 진섭은 정식과 동규의 말에 얼결에 대답하고서 재빨리 무대로 다가갔다. "후우...." 진섭은 한차례의 신호흡을 마지막으로 무대에 올랐다. "신진섭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합니다" "우와아아아아!!!" 진섭은 엄청난 환호성을 들으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좋은 느낌이었다. 사람들의 웃음소리 함성, 그리고 뜨거운 열기. 모든 것이 한껏 생명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진섭이 가만히 서 있어서 일까? 곧 주위는 조용해 졌다. 그리고... 진섭의 오른손에 들려있던 플롯이 그의 부드러운 입술에 자리잡았다. 그리고... 그는 눈을 떴다. 피이이이이∼ 처음에는 별 것 아닌 음이 조용히 사방을 감싼다. 그리고 그 소리가 끝날 때쯤에... 은은한 노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바로... 새벽의 노래가!! 쉬이이잉 마치 빛이 진섭의 몸을 감싸는 듯 했다. 그리고 그에게서 조용히 흘러나오기 시작한 감미로운 음율!! 새벽은...생명의 상징. 새로운 시작의 상징. 어두운 밤을 숨죽여 지내던 모든 것들이...조용히 기다리는 포근함. 그것이....바로 새벽 생명의 박동(博動)! 눈뜨기 시작한다. 대지가 산이. 들이. 바다가... 하늘이.... 기쁘다. 즐겁다. 행복하다. 온갖 긍정적인 감각이 모두를 감싸안고 온 세상이 생명력으로 꿈틀거린다. 환희(歡喜)!!! 어둠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빛이 대신한다. 밤이 아무리 길어도... 새벽은 반드시 온다. 해는 반드시 뜬다! 그것이... 그것이 바로... 자연의 섭리. "어..엄청나잖아? 저..녀석..." 동규는 나직하게 신음했다. 대단하다. 그의 음율 하나 하나가 사람들의 영혼을 울리는 것 같다. 장엄하다. 단지 음악일 뿐인데... 그것도 독주일 뿐인데... 모두들 할말을 잃어버렸다. 하지만 음악은 그들을 기다리지 않았고 절정에 다다랐다. 어둠이 물러나고 빛이 흘러나온다. 새벽의 여신이... 모두에게 부드럽게 미소짓는다. 그것이 바로.... 새벽의 미소!! 새로운 시작... 새벽은 또 다른 시작을 알리는 환한 종소리... 샤아아앙! 부드러운 음율이 마지막으로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감싸않았다. 그리고 그 부드러운 음율은 그것을 마지막으로 조용히... 조용히 사라졌다. "...." "...." 일순간이지만 모두들 침묵을 지켰다. 동규 때에는 놀라움 때문에 그랬다고 한다면... 요번에는 모두들 편안한 표정으로 조금이라도 더 음악을 되새기고 음미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 침묵은 제일 먼저 정신을 차린 동규가 천천히 박수를 치기 시작함으로써 끝나고 그를 시작으로 엄청난 박수소리와 함성소리가 터져 나갔다. 짝짝짝짝짝짝!!! "와아아아아아아!!!!" 흥분의 도가니. 아마도 그들의 눈에는 진섭이야 말로 정말 천사로 보였을 것이다. "짜...짜식. 진짜로... 멋지잖아...." 혜진은 눈물까지 글썽이며(거의 모든 여학생이 그랬다) 중얼거리다가 진섭이가 대기실로 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무대로 나갔다. 연주는 끝났다. "너무...멋진 연주였어요" 혜진은 조용한 목소리로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 그리고 다행히 그 목소리에 무대를 바라보며 떠들어 대고 있던 사람들도 조용해 졌고 보람도 정신을 차린 듯 입을 열었다. "정말이지... 대단했어요! 아름다운 것을 넘어서... 경건하다고 까지 해야할까? 황홀함까지 느껴지더군요!" 그녀들의 말에 모두들 동감하는 것일까? 관중들은 아무 말도 없었고 그녀들은 몇마디 말을 더 나누다가 다음 차례에 대한 것으로 입을 열었다. "자! 다음 차례는 여러분이 그렇게 기다리시던 마지막 차례인 '사랑의 무도회'입니다!! 다들 자신의 파트너를 정해주세요!" 그녀의 말과 함께 사람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물론 사랑의 무도회는 꽤 유명하므로 몰라서 그러는 것들이 아니라 누구를 자신의 짝으로 정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고민을 하는 사람들에게 혜진은 단호하게 일침을 놓았다. "미리 말해 두지만. 우리 진섭이에게 껄떡대는 분은 저주할꺼에요! 꿈도 꾸지 마세요!!" 순간 사방에서 한숨이 터져 나왔다. 틀림없이 말도 안 돼는 허무맹랑한(?) 꿈을(여자들은 진섭이와 남자들은 혜진이와 춤추는 망상)꾸었던 녀석들일 것이다. 이 정도는 그녀도 이해한다. 그녀가 정말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그녀 옆자리에 있던 보람이도 한숨을 쉬었다는 것이다. "보람아∼?" "아... 혜..혜진아? 왜...왜?" 보람은 무시무시한 혜진이의 시선에 식은땀을 흘렸다. "설마... 엉뚱한 상상을 한 건 아니겠지?" "아.. 무..물론이지!!" 보람이는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자의든 타의든 간에. "호호! 넌 역시 내 친구야!" 은근히 무서운 혜진이다. 그들이 그렇게 아름다운(?) 우정을 쌓고 있는 동안에 진섭은 위기(?)에 빠져 있었다. 여학생들이 다가가지는 못해도 엄청난 눈빛공격을 뿌리고 있었던 것이다. "버..버티기 어렵군. 내가 받는 것도 아닌데..." 진섭의 옆에 있던 동규는 신음을 흘렸다. 정말 장난 아니었다. 하지만... 그 시선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사람이 있었으니... "오우! 정말 기분 끝내주는군. 내가 여자한테 부러운 시선을 받게 될 줄이야..." 틀린 말은 아니었다. 여학생들은 모두 동규와 정식을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대충 그녀들의 마음을 표현하자면'내가 남자였다면 그와 함께 걸을 텐데...'하는 탄식과 진섭과 함께 걸어가는 동규에게 부러운 시선을 보내는 것이었다. 뭐, 여기서 '나랑 춤추자'같은 말을 해봐도 되겠지만 그랬다가는 다른 여학생들에게 바로 아작이 나기 때문에 그러지도 못하고 있었지만... 단 단단 단단단단단 어느 순간인가부터 연주단이 나와서(진섭은 왜 자신과 저들이 합창을 하지 않았는지 알 수 있었다. 만약에 하면 그도 이걸 해야 하는데 그럼 그가 춤을 못 추게 되기 때문이었다)조용하게 연주를 시작했다. 물론 진섭이가 연주하던 것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지만 그래도 상당히 훌륭한 연주였기에 어느 정도의 분위기가 깔렸다. 하긴. 이 정도의 분위기는 깔아주어야 한다. 이번 '사랑의 무도회'는 남학생이나 여학생이(비록 학교를 두 개로 나누었지만 청수고등학교는 남학생과 여학생 모두 다닌다)마음에 드는 상대방에게 고백하고 그와, 혹은 그녀와 무대에서 춤을 추는 시간이다. 뭐? 무대가 모자라지 않겠느냐고? 천만의 말씀! 이곳의 무대는 워낙이 넓은 데다가 아무리 고백을 하는 날이라도 고백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물론 고백을 하는 사람도 많지만 그 중에 거절하는 경우도 많고 아예 고백조차 안 하고 쓸쓸하게 구경만 하는 솔로의 수는 압도적으로 많다. "자신의 파트너를 골라주십시오" 혜진은 나직하게 말하고 무대에서 내려와 7번 테이블로 왔다. 그녀의 예상대로(?)사방에서는 연정이 넘치는 눈길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눈 돌리지 그래?" 부드럽지만 낮게 중얼거리는 듯한 그녀의 목소리에 다들 한숨과 함께 고개를 돌렸다. 물론 아주 돌린 것은 아니고 살짝 살짝 엿보고 있었지만 그것만큼은 혜진이도 어쩔 수 없었다. "왔네?" "응" 혜진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즐겁다. 그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이런, 이런... 벌써 콩깍지가 씌인 거냐?" "....?" "아...별말 아냐?" 혜진은 계속 웃으면서 의자에 앉았다. 하지만 순간 그녀의 미소에 금이 갔다. 테이블에 그녀와 진섭 이외에도 두 명이 더 앉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뭐야? 너희들은 고백 같은 거 안 해?" "응? 왜?" 정식은 전혀 모르겠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당연하잖아! 너희들도 진섭이 만큼은 아니지만 꽤 미남이라고!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야!" 그녀의 말에 정식이는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뭔 말인지 알았어. 하지만 맘에 드는 애가 없는걸?" "...기준이 뭐 길래 이 많은 사람 중에서 한 명도 없냐?" "에... 무술을 좀 잘했으면 좋겠어. 예쁘면 더 좋고" "....." "나..나는 어느 한 방면이라도 지식에 정통한 사람을..." "...." 혜진의 얼굴에 살짝 핏줄이 돋아났다. "그래서... 그런 사람을 내가 소개해 달라고?" "응!" 동규와 정식은 기대에 찬 눈빛으로 혜진을 바라보았다. 혜진의 미소가 무너졌다. "....그딴 인간들이 존재할 리가 없잖아앗!!!" 혜진은 열이 받아서 근처에 잡히는 걸 아무거나 집어 던졌다. 던진 물건들은 대략 꽃병이나 포크 나이프 등이었으나 정식은 아무렇지도 않게 포크와 나이프는 손가락에 슬쩍 거는 듯한 동작으로 테이블에 차례대로 떨어지게 해서 똑바로 놓고 꽃병은 발로 슬쩍 차서 테이블의 중앙에 놓는 진기한 광경으로 주위의 탄성을 자아냈다. "쳇! 역시 없는 걸까?" "내가 그럴 거라고 했잖아?" 정식은 맘에 안 드는 듯 투덜거렸고 할 수 없다는 듯이 중얼거리는 그들을 보면서 혜진은 그들을 죽일 듯이 씩씩거렸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중재하는 것은 언제나 그렇듯 진섭이였다. "혜...혜진아? 좀 참으라고. 그리고 정식아! 제발 도발 좀 하지마!!" "도...발? 난 진심인데?" "하아∼..." 진섭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어깨를 들썩였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뻐팅기려고 하는 정식을 끌고 가는 것은 동규였다. "그럼 방해꾼들은 멀리서 닥치고 구경이나 할게. 겁먹지 말고 잘 해봐라 진섭아" "뭘 겁먹지 말라는 거야!" 진섭은 얼굴이 새빨개져서 소리쳤고 그들은 하하 하고 웃으면서 사람들 속으로 섞여 버렸다. 와아아∼ "....?" 진섭의 고개가 무대위로 돌아갔다. 무대 위에는 벌써 두명이 올라가 손을 잡은 채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성급한(?) 커플이었다. "빠르네.... 벌써 나가다니. 그렇게 일찍 나갈 필요는 없을 텐데..." 하지만 그의 생각과는 달리 몇 명의 사람들이 한명, 한명 무대로 나가기 시작했다. 혜진은 어떤 뜻을 담아 진섭을 바라보았다. 진섭은 그녀의 뜻을 모르지는 알았지만 얼굴을 붉히기만 하고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다. '치잇! 저 바보!' 혜진은 초조하게 진섭을 바라보았다. 진섭은... 잠시 얼굴을 붉인 채 서 있었다. 그리고 혜진이 초조함에 뭔가 말을 꺼내려고 할 때, 피식 하고 웃어버렸다. "역시 안 되겠어" "뭐...뭐?!" 혜진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고 진섭은 그런 그녀를 보면서 당황했다. "아앗! 그 뜻이 아냐! 그냥 내 식대로 하는 게 편하겠다는 뜻이야" "내...식?" 혜진의 얼굴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그때 진섭의 입이 열렸다. "그럼... 한곡 추시겠습니까? 사랑하는..." 진섭은 조용히 오른손을 그녀에게 내밀었다. "...나의 공식커플씨?" 혜진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그게 뭐야 바보야" "에... 역시 지나치게 닥살스러운 대사는 못 하겠더라고... 그런데 팔 아픈걸?" 혜진의 얼굴에서 미소가 떠올랐고 그녀는 조용히 손을 내밀어 진섭의 손을 잡았다. "예. 사랑하는... 공식커플님" "푸흣!" "하하하" 그들은 잠시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이미 무대에는 어느 정도 사람들이 올라가 있었다. 진섭은 혜진을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갈까?" 혜진도 따라서 미소지었다. "응!" 촤아아 진섭이와 혜진이 손을 잡고 앞으로 나서자 사람들이 두 줄기로 나누어졌다. 은연중에 그들이 주인공이 되어있는 것이다. 그들은 무대의 정 중앙으로 향했다. '따뜻하다' 진섭은 혜진이의 체온을 느끼면서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 어차피 결론은 같았다. '지켜주고 싶어....' 그녀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지 않게 해 주고 싶었다. 꼬옥 혜진은 조용히 그를 앉고 있던 팔에 힘을 주었고 진섭은 깜짝 놀랐지만 반응하지 않았다. 빙글 그는 밝게 미소지었다. 그렇다 그가 지금 느끼는 감정은... 한 소녀에 대한 사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