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신도(四神刀) 슈우우우 아...머리 아프다. 무리해서 메모라이즈를 했더니... "후...."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카인과 다크는 아직 눈을 감고 있었고 주변에 움직이고 있는 존재는 하나뿐인 모양이었다. "블러드" "예. 주인님" 동시에 10명 정도의 블러드가 내 말에 답했다. 음.... 꽤 많이 늘었군. 그나마 10명에서 더 이상 늘지 않는 것은 이게 블러드의 분신을 감당할 수 있는 내 정신력의 한계라는 거겠지. "돌아가도록" 촤아아악! 10명의 블러드는 엄청난 양의 피로 변하더니 순식간에 손바닥보다 작은 포션병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런데 신기하군. 저 많은 피가 저렇게 작은 병 속에 들어가다니....차원왜곡을 사용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압축이라도 하는 건가? "후우...." 다크가 정신을 차렸고 나는 천천히 눈을 뜨는 그를 바라보았다. "마나는 다 회복했어?" "응. 와∼그런데 몬스터 시체가 엄청 많은 걸? 아주 산더미네?" "....당연하지. 거의 5시간 동안이나 우리가 명상에 빠져 있었으니 말이야. 그런데.... 막 외각을 넘어온 상태라서 얼마 들어온 것도 아닌데 이 정도의 몬스터가 덤벼들다니....일반인들이 넘어와서 살기에는 조금 문제가 있겠군" 시체의 주를 이룬 것은 대체로 오크나 오르크. 고블린 등이었다. 오거도 몇 마리 있기는 하였으나 그리 많지는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숲의 외각에서 오거라니! 약간 문제가 있어 보이는 곳이다. "그럼 돌아가자고, 카인도 슬슬 정신을 차리는 것 같으니" 나는 온 몸의 마나를 움직여 보았다. 약간 머리가 아픈 것을 제외하고는 완벽했다. 메모라이즈도 충분히 해 놓았기에 그리 위험하지 않게 절벽을 건널 수 있을 것이다. "어? 다시 가려고?" "....당연하지. 이곳은 위험해" "하지만 아깝잖아!! 아무도 없는 잃어버린 대륙에서의 탐험. 나타나는 괴수. 그리고 쏟아지는 보물....!" 다크의 눈이 몽롱하게 변했다. 미안하지만.... 다크의 장단에 맞춰주고 싶은 생각은 없었기에 나는 조용하게 살기를 풀며 낮게 입을 열었다. "다크" "응? 좀 들어가 보자∼ 응? 궁금하지 않아?" 나는 그를 노려보며 쐐기를 박았다. "....묶어서 끌고 가기 전에 그냥 말 들어라" "쳇! 쪼잔하게 시리...." 다크는 아까운 듯 입을 쭈욱 내밀고 투덜거렸다. 내는 한번 결정을 내리면 번복하는 일이 없는 사람이었기에 더욱 그런 것 같았다. "후우우...." "아...? 깼냐?" 레인은 뒤쪽을 바라보았다. 카인이 커다랗게 심호흡을 하며 눈을 뜨고 있었다. "으... 머리야. 응. 괜찮아. 메모라이즈도 끝냈고. 그런데... 그냥 가게?" "당연하지. 이곳은 위험하다. 너희가 돌아다닐 정도로 만만한 곳이 아냐" 다크가 입을 내밀었다. 그래도 자신의 힘에 자신을 가지고 있던 그들로써는 자존심이 상하는 말이었나보다. "쳇! 우리도 꽤 강하다고. 네가 심하게 강한 것 뿐이야" "....아니 틀려" 나는 조용히. 진지한 어조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나는 더 없이 냉정하게 그들을 바라보았다. "틀...리다고?" "그래. 인간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지마. 너희들의 실력 가지고는 드래곤은 고사하고 중급 마족 조차도 상대할 수 없어. 그나마 내가 조금 키워 놓았지만... 턱없이 부족해. 겨우 이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자신을 가지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이....정도 실력?" 다크가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렇게까지 내가 그들을 몰아붙이기는 처음이었다. 게다가.... 약간의 충격을 받았겠지.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정말 그들의 실력은 모자라다. 단편적인 기억이지만 혼돈의 숲은.... 너무나도 위험하다. 이들을 최소한 두 단계 이상씩 올려놓아야 한다. 그래야... 나에게 짐이 돼지 않는다. "겨우 이 정도...의 실력이라고?" 다크가 떨리는 목소리로 확인한다. 할 수 없다. 조금 잔인하지만... 그들에게는 자극이 필요하다. 이들은 천재. 계기만 있다면 충분히 실력을 기를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만약에 이들이 그렇지 못했다면. 어쩌면. 정말이지 어쩌면... 나는 이들을 포기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 다크" 쉬익! 나는 가볍게 몸을 움직였다. 내 입장에서는 가벼운 움직임 이였지만 아마도 그들은 그럴 수 없을 것이다. 내가 기본적으로 기척을 숨기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니... 나의 모습을 쫓기는커녕 내가 있는 방향을 짐작조차도 하지 못할 것이다. 스륵 내 눈에 다크의 뒤통수가 보인다. 그들은 당황하고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내 모습을 순식간에 놓쳐 버렸으니... "...봤어? 아니... 느끼기라도 했어?" 나는 그를 조용히 응시했다. 뒤돌아 서서 나를 확인한 다크의 눈이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 "이것이... 나와 너희의 차이야. 너희 둘을 죽이는데는.... 검을 두 번 휘두를 필요조차 없어" "....!?" "뭐...뭐!?" "...."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너무 잔인하다. 나도 알고 있었다. 어쩌면 이들은 내 말에 충격을 받아 검을 놓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소한 내가 알던 다크와 카인은 그런 이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은.... 절망을 밟고 일어서는 편이었다. "마음을 풀지마. 우리는 최강 따위가 아냐" 나는 나직하게 말하고는 그들의 목에 겨누었던 검을 치웠다. 그들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기 위해서였지만 바로 질풍을 감싸 않은 채 날아오는 주먹이 있었다. 쐐엑! 나는 날아오는 주먹을 가볍게 고개를 돌려 피한 뒤 허공으로 떠올랐다. "좋은 공격이야 다크" "체엣!! 한방 먹인 다음에. '너야말로 마음을 풀지마, 우리는 최강 따위가 아냐. 으하하하!!'라고 하려고 했는데..." 다크가 아까워하는 모습이 보인다. 대사까지 준비했던 거냐? 훗! 역시 이 정도는 되야 내 친구라고 할 수 있지. "가랏! 작열하는 붉은 폭염의 힘이여! 파이어 블래스트(fire blast)" 쿠아아아!! 허공에 떠 있는 내 쪽으로 화염으로 만들어진 불공이 날아왔다. 뒤에서 빈틈을 노리던 카인이 날린 마법이었다. 파이어볼과 비슷하게 생긴 마법이었으나 위력은 천지차이였다. 파이어볼이 그냥 불공이라고 한다면 파이어 블래스트는 더욱 압축된 불공이 팽이가 돌듯이 맹렬하게 회전하면서 날아오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멋진 기습이기는 하지만.... 맞아줄 생각은 없어. "세상 모든 것을 꿰뚫는 빙마(氷馬)의 뿔이여.... 콘 오브 아이스(cone of ice)" 당연한 이야기지만 마법은 스펠을 사용하는 쪽이 강력하다. 예를 들어 파이어볼만 하더라도 그냥 '파이어볼!'하는 방법이 있다. 이 방법은 마법이 가장 빠르게 생성되어 적을 공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나.... 위력은 형편없다. 반대로 발동어를 집어넣으면. 같은 마법이라고 하더라도 강력한 힘을 지니게 되나.... 이 경우에는 발동되는 시간이 너무나 길어 중간에 적에게 공격을 당하거나 하면 죽는 수밖에 없다. 지금의 우리의 경우에는 발동어와 간단한 스펠을 외웠으나... 간략하기 짝이 없었기에 위력이 적어야 정상이다. 치이이이이익!!! 내 빙계마법과 카인의 화염마법이 맹렬하게 충돌하고 있었다. 둘 다 간단하게 발사한 마법이었지만 위력은 상당했다. 카인이나 나나 모두 천재인 까닭 이였다. 물론 카인은 선천적인 천재였고 나는 파이로드에 의해서 만들어진 후천적 천재라는 것이 차이일 뿐. 마력이나 경험 모든 것에서 내가 압도했다. 물론 카인이 들고 있는 파이어 스태프는 화염마법을 20배로 늘릴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마법무구였으나 아직은 카인이 그 정도로 사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마도... 5배정도가 지금으로써는 한계겠지. 물론 그것도 엄청나지만 말이야. 퍼석! 내가 만든 얼음의 뿔이 카인의 불공을 뚫고 카인을 향해 날아갔다" 쩌엉! 물론 카인이 맞거나 하지는 않았다. 비록 그가 무방비 상태였다고는 하나 다크가 있었으니까 말이다. "쳇!! 정말 괴물이라니까.... 어떻게 해야 그런 속도로 움직일 수 있는 거지? 나처럼 보법을 쓰는 거야?" 다크가 간신히 얼음뿔의 측면을 쳐서 박살을 낸 후 투덜거리면서 입을 열었다. 훗! 기죽지 않았군. 여전한걸? 애초에 노렸던 목적에서 반만 효과를 본 것인가? "별거 아냐. 그냥 많은 전투를 겪다보니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법을 깨달았을 뿐이야. 자, 이만 돌아가자고. 이 쪽은 드래곤 천지야" "쳇!" 나는 레디 위에 올라탔고 다크와 카인은 투덜거리면서 따라서 레디의 등에 올라탔다. "자. 그럼 가볼...." 찌잉! ".....!?" 휘익! 내 고개가 급격하게 뒤쪽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쪽에는 오직 숲만이 있었을 뿐이다. "뭐야? 레인! 뭐가 나타났어?" 내가 갑자기 급하게 고개를 돌리자 화들짝 놀란 카인과 다크가 경계하는 자세를 취했다. 그 모습이 약간은 우스워 보였지만 나는 웃지 않았다. "뭐...였지? 방금 그 느낌은?" "뭐야! 뭐라도 나타난 거야?" "뭐야? 설마...드래곤이라도 나타난 거야?" 내 말에 카인과 다크가 긴장했고 나는 주위를 살피면서 입을 열었다. "뭐가...나타난 게 아냐. 느껴졌다. 약간은 더 먼... 뭐...뭔가 그리운...." 머릿속이 울린다. 메모라이즈의 영향이라고 하기에는 정도가 조금 심했다. [우리는 천공의 수호신!!] "....!!" ".....뭐야? 레인? 왜 그래!!" 뭐....뭐야 이 목소리는?? 하지만 들어본...들어본 목소리다. 분명히 어디서 들어본.... 스윽 나는 숲 쪽을 바라보았다. 그래! 이 느낌은 바로 저곳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카인. 다크" "으...응?" "무슨 일이야?" 카인과 다크가 긴장하고 있던 도중에도 내 말에 답했고 나는 그대로 레디를 몰았다. "숲 속에... 들어간다" "레....레인?" "무조건.... 직선이다. 달려!!" 콰아아악!! 카인과 다크는 내 말에 당황했으나 레디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무서운 속도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정면에는 수많은 나무들이 위치하고 있었으나 나는 가볍게 검을 휘둘렀다. "합!!" 텅텅 내 앞에 있던 나무들이 깨끗하게 잘려나갔고 레디는 그런 나무들을 밀치면서 돌진하기 시작했다. 내 허리보다 굵은 나무들이 우리들에게 충돌해 왔으나 레디는 단지 달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통나무들을 박살 내버릴 능력이 있었다. [우리는 천공의 수호신!!] 쿠아아아!! "쿠워워워!!" 쳇! 역시 약간 깊숙하게 들어왔을 뿐인데도 엄청난 수의 몬스터들이 달려드는군. 평소였다면 카인과 다크의 실력을 키우는 용으로라도 놔두겠지만..... 시간이 없다!! 감각이... 뭔가가 특별한 느낌이 점점 사라지고 있단 말이다!! 마계쌍룡검법(魔界雙龍劍法)! 제 4장. 환영음영검(幻影陰影劍)!! 쉬이이익!! 나의 주위로 수 십개의 그림자로 이루어진 검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나를 향해서 달려오는 수백 마리의 몬스터들... 잠깐 사이에 많이도 모였군. 하지만.... "....죽어" 촤촤촤촤!!! 내 근처에 떠있던 검들이 그림자만을 만들어 놓고 순식간에 대기를 찢어발겨 버렸다. 콰아아악! 틱틱틱!! 순간적으로 모든 몬스터들의 움직임이 멈추었고 그들은 곧 우리가 달려가는 풍압에 박살이 나기 시작했다. 검은 검들에 의해서 이미 완전하게 잘라져 버린 후이기 때문이다. "뭐...뭐야? 이 어이없는 결과는?" 다크가 달려가는 도중에도 경악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것은 카인도 마찬가지였다. "보...보고도 믿을 수가 없군. 우리 둘만 있었다면....못 이길 정도의 수였는데.... 일격에?" 콰아아아아!! 나는 계속 돌진했다. 얼마 남지 않았어! [우리는 천공의 수호신!!] 콰직!! 나는 다시 사신도를 움직여 네 개의 나무를 베어 길을 만들었다. "쿠아악!!" 리자드맨이었다. 흔치않은 녀석이라고 들었는데... 서걱. 흔치않을 뿐이지 무적은 아니다. 물론... 오거보다고 강한 그 전투력만큼은 대단한 것이지만. 검기를 사용하는 나로서는 그리 문제가 아니었다. 촤악! 레디가 힘차게 도약한다. 나무밖에 없던 숲에서 한줄기 빛이 보였다. 나무가 자라지 않을 정도의 크기를 가진 건축물이 있다는 소리였다. "히이이잉!!" 우리는 숲을 빠져 나왔고 그에 따라 한가지 형상이 눈에 띠었다. 넓은 크기의 숲 한가운데에 자리잡고 있는 거대한 건물이.... "도착인가?" "신전(神殿)이네?" "어째서 이런 곳에?!" 거대한 신전이었다. 그것도 아무도 사용하지 않고. 몬스터만 득실거리는 숲에 있는 건물인데도 불고하고 굉장히 깨끗한.... 신전. 인간이 만들었다고 하기에는 믿기 지 않을 정도로 엄청날 곳 이였다. 은은한 황금빛을 뿌리는 벽들. 벽돌과 벽돌이 만나는 지점까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세심하게 만들어진 주 건물. 그리고 약간의 아치형으로 조화를 지니고 있어 보기만 해도 진정이 되는 곳이었다. 저벅 나는 망설임 없이 신전으로 들어갔다. 신전은....신경도 안 쓴다. 내가 신경을 쓰는 것은 여기에 있는 무언가. 분명히 여기에는 뭔가가 있다. "레인! 위험하다면서!" 카인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으나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마치 내 몸에 무언가가 들어있는 것 같은 이질감이 느껴졌다. '이곳이 도대체 무엇을 하는 곳이기에.....' 반드시 들어가야만 할 것 같은 이 느낌은 뭐지? 나를 끌어당기는 이 느낌은 뭐지? 덜컹! 처음 와보는 곳이었다. 분명히 그러했다. 하지만... 나는 정확하게 길을 찾아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같이 가자니까...헉헉... 왜 자꾸 무시하고 난리야. 휴∼ 그나저나 왜 그러는 거야? 무슨 문제라도 있어?" 카인과 다크는 얼결에 따라온 듯했다. 하긴. 내가 갑자기 들어가는데 남아있기도 조금 그랬을 것이다. "뭔가가.... 있는 것 같아, 글쎄.... 느낌이 온다고 해야하나?" "보물?" "...." 지금 상황에 무슨 보물타령이야? 보물이라면 넘치도록 있는데.... 쓸데도 없으면서 욕심은... 끼이익!! 나는 이상한 무늬가 새겨져 있는 문을 밀었다. 들어가기로 한 이상 망설일 필요 따위는 없다. 그리고 우리 눈에 들어온 넓은 공터. "호오∼ 지하에 이런걸 만들다니. 누군 지는 모르겠지만 할 일도 없는 모양이네" 다크는 맘에 안 드는지 꿍얼거렸고 카인은 또다시 학구열이 불타오르는 건지 이곳저곳을 살피고 다녔다. 별거 없는 방이었다. 그냥 상당한 크기의 텅 빈방이었다. "레인!! 이상한 게 있는데!?" "이상한 것?" "응! 우리세계에서나 보던 건데??" "뭐?!" 나는 황급하게 카인에게 달려갔다. 카인이 서 있던 쪽은 벽이었고 그 벽에는 커다란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아니 벽화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섬세하고 실감났다. 당장이라도 벽을 박차고 튀어나올 것 같다고 느낄 정도였다. 하지만... 내가 정작 놀란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이...이건!?" "이상하네? 이곳에 왜 사방신(四方神)의 벽화가 새겨있는 거지?" 맙소사, 벽에 그려져 있는 벽화는 청룡(靑龍). 백호(白虎). 주작(朱雀). 현무(玄武)....바로 나를 이곳으로 보내버렸던.... 사신(四神)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