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해커] -시간의 역류- (1) [1004호] "후아아아암...." 컴퓨터 앞에서 기지개를 켜며 자리에 일어선 와이셔스 차림의 남자가 냉장고로 가서 물을 꺼냈다. 강 현민... 컴퓨터 게임 디자이너, 28살, 그는 현재 새로운 롤플레잉 게임의 캐릭터를 만들고 있다. 물을 마시던 그는 모니터를 너무 오래 본 탓인지 머리가 지끈거려 물통을 든 채로 밖으로 나왔다. 비소리가 참 기분좋게 들린다. 그는 아파트 베란다로 가까이 다가가 비를 직접 손에 느껴보고 싶었다. 그는 오른손을 베란다 밖으로 내밀어 본다. "으아아아아악!!!!!" 손을 내밀다 말고 갑자기 그는 비명을 지르며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엉금엉금 뒷 걸음을 치며 그는 자신의 집으로 도망치듯 들어가 버린다. 자신의 방으로 들어온 현민은 주저앉아 머리를 감싸쥐고 비명을 계속해서 질러댄다. 그는 공포로 심하게 떨고 있었다. 현재 시간.....새벽 02시 45분. [304호] "이 여편네야 누군 돈 벌기 싫어서 돈 안버는 줄 알아?" "그럼 돈을 벌어오라고!" 김 성수...실직한 회사원, 38살, 결혼 8년 째, 부인의 바가지에 화가 난 그는 담배를 피우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시커먼 하늘이 그의 마음과 같다. 장마철이라 그래도 시원은 하지만, 가을 바람처럼 시원한 것은 아니다. 가뜩이나 실직으로 갑갑한 그의 마음은 습기가 많이 느껴지는 바람 때문에 더욱 짜증이 난다. 아파트 베란다에 팔을 대고 주적주적 내리는 비를 보며 그는 생각했다. '제길...난 지금 뭘하고 있는거지?' 그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연기를 깊이 빨아들였다. 그리고는 한 숨과 함께 연기를 내뿜었다. 실직에 대한 위로로 동료들에게 받은 시계가 반짝인다. 그는 그 시계를 보며 허무감에 사로 잡혔다. 그때 그의 눈 앞으로 무언가 휙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뭐지?' 그는 베란다 밖으로 목을 빼고 위를 보았다. '누구야 쓰레기를 베란다 밖으로 버리는 놈이....' 성수는 가뜩이나 짜증이 나는지라 위를 보고 소리질렀다. "에이 비양심적 인간들아!" 성수는 위를 보고 소리쳤다. 그리고는 안으로 들어가려다 이상한 기분에 뒤돌아 본다. "으아아아아아악!" 그는 비명을 지르며 안으로 들어가 문을 잠가버렸다. 누가 문을 열기라도 할까봐 부들부들 떨며 몸으로 문을 막고 있는 그를 부인은 이상한 듯이 바라보았다. 현재 시간.....새벽 02시 48분. [804호] 시끄러운 음악소리, 애어로빅 옷을 입은 여인이 열심히 거울을 보며 춤을 추고 있다. 윤혜지...애어로빅 강사, 24살, 그녀는 새로 가미한 애어로빅 파트를 연습 하고 있었다. 땀으로 젖은 그녀의 모습은 무척 매혹적이다. [쾅쾅쾅쾅쾅!] 그녀는 두드리는 문 소리에 음악을 끄고는 비디오폰의 수화기를 들었다. 화가난 표정의 남자가 보인다. "뭐에요?" "이봐요. 잠 좀 잡시다. 지금이 몇신데 뜀박질이요. 뜀박질은...." 혜지는 그가 누군지 잘 알고 있다. 그녀는 비디오 폰의 수화기를 내려놓고 신경질적으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또 시비에요? 뭐가 시끄럽다는 거에요. 이 아파트가 그렇게 허술하게 지은 줄 알아요? 다들 아무렇지도 않아 하는데, 왜 당신만 그렇게 유별나게 구냐구요!" "아니 이 여자가 뭘 잘했다고 큰 소리야. 아래에선 얼마나 시끄러운 줄 알아? 말 만한 여자가 그렇게 뛰어다니는데 안시끄러울 수가 있어?" 한 경찬... 컴퓨터 영상기술자, 29살, 그는 혜지의 아래층 704호에 사는 독신남 이다. 혜지와는 예전부터 트러블이 자주 있어서 서로를 잘 알고 있다. 물론 서로에 대해 좋지 못한 감정으로 말이다. 애어로빅 강사인 그녀는 자주 밤 늦게 연습을 하였고, 아래층에 사는 경찬은 그녀가 뛰는 시끄러운 소리에 잠을 설치기 예사였다. 혜지는 그에게 무슨 말을 하려다가 갑자기 공포에 쌓인 눈으로 경찬의 뒤를 손으로 가리키며 비명을 질렀다. "아아아아아악!" "이봐요? 왜...왜 갑자기....?" 그녀는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현재 시간.....새벽 02시 50분. [504호] "아우 배고파. 라면이나 먹을까?" 정 찬호, 20살, 대학1년생, 공부를 하던 찬호는 허기에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찬장을 뒤졌다. 라면이 없었다. '다 먹었네?' 그는 서랍에서 돈을 꺼내 라면을 사기위해 밖으로 나왔다. 베란다 밖으로 비가 오는 것을 보고 그는 우산을 들었다. 그리고 고개를 드는 순간..... 표정이 굳어 버렸다. 그는 문을 닫았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온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찬호는 밀려오는 공포를 제어할 수가 없다. 온 몸이 부들 부들 떨린다. 현재 시간.....새벽 02시 53분. [404호] 엘레베이터에서 내린 교복차림의 여학생이 힘겨운 발걸음으로 터벅터벅 걸어 온다. 한 주희, 19살, 고등학교 3학년, 그녀는 도서관에서 늦게까지 공부를 하다가 지금에서야 집으로 오는 길이다. 고개를 들 힘도 없어서 땅만 보며 걷는 그녀는 시계를 보았다. '휴우....벌써 3시 10분이구나.....힘들어.' 그녀는 고개를 들어 집을 바라보았다. 무언가 하얀 것이 그녀의 집앞에 보였다. '뭐지?' 주희는 터벅터벅 그것을 향해 걸어갔다. 그것이 무엇인지 똑바로 알게 되었을 때, 그녀는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어어...엄마.....엄마...엄마...아아아!" 현재 시간.....새벽 03시 10분. (1편 끝) INTERVAL: 스토리 구성을 끝내고 시작을 알리는 1편을 올린다. 지금 시간 11시 20분..... 가능하면.....아파트에 사는 분들은 보지 않기를 바란다. 이 이야기 역시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쓴 것이므로... 그래도 끝까지 읽겠다면....... 어쨌거나 행운을 빈다. ........마지막 해커로부터....... [마지막 해커] -시간의 역류- (2) [디리리리리링, 디리리리리링] 새벽 4시 반... 난 전화벨 소리에 여전히 눈을 감은 채로 머리맡의 수화기를 들었다. '도대체 누구야? 이 새벽에......' "누구야? 용건만 말하고 끊어. 안그러면 집으로 찾아가서 때린다." "황기자? 나야! 자고 있어?" 귀에 많이 익은 목소리... "주형이야? 지금이 몇신데 전화야? 으아아함...." "여기 상아 아파트야! 특종 줄테니까 빨리와. 정확히 어디냐면..." 주 형사의 설명을 메모장에 적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는 아직 잠이 덜 깬 상태로 책상위에 사진기를 들고 일어섰다. 그가 특종이라고 하며 전화를 할 땐 뭔가 큰 사건이 있거나 술을 먹고 싶을 때이다. 하지만 정확한 장소를 말한 걸로 보아서는 분명 사건이 일어난 것 같았기에 책상위의 놓은 카메라와 핸드폰을 들고 얼른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왔다. 난 엘레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면서 현경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역시 잠이 덜 깬 목소리...왠지 매혹적이다. "나야. 돈암동 상아 아파트에 사건 발생같아. 대충 취재 준비하고 뛰어나와."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지만, 난 전화를 끊어버렸다. [띵]하는 소리와 함께 1층에서 에레베이터 문이 서서히 열린다. 문이 열리면서 내 눈 앞에는 한 여자가 보였다. 무척이나 창백한 얼굴, 술이 취한 것일까? 약간은 정신마저 없어 보인다. '도대체 이 시간에 들어오는 여자는 뭐하는 여자야?' 난 신문사 가까이에 자리잡고 있는 오피스텔에 살고 있다. 오피스텔이라 그런지 별의별 사람들이 다 들락거린다. 가끔 이렇게 밤늦게 들어오는 여자도 참 많다. 도대체 무엇을 하는 걸까? 내가 그런 생각을 하며 여자를 보았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문이 열린 것을 알았는지 고개를 들었다. "으아아아아아!" 갑자기 그녀가 날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며 비명을 지르곤 도망가 버렸다. '왜 저래?' 난 그 여자를 보며 잠시 이상하게 생각하고는 문을 닫는 버튼을 눌렀다. 엘레베이터는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고, 잠시 후 문이 열렸다. 싸늘한 공기가 나의 몸을 감쌌다. 지하 주차장은 시원해서 좋다. 난 가끔 아주 더울 때 새벽에 이곳으로 내려와 누워있곤 한다. 경비원 아저씨가 나 때문에 기겁을 하여 난리를 치기도 하지만 차 뒤에 숨어 있으면 운 좋게 안 걸리기도 한다. 난 오토바이가 있는 곳으로 뛰어가 시동을 걸고는 오토바이를 출발 시켰다. [부아아아앙!] 경쾌한 시동음과 함께 오토바이가 달려 나간다. '비가 왔었나?' 젖은 아스팔트가 약간 위험하긴 했지만 시간이 급했기에 난 더욱 오토바이에 속력을 가했다. 기자들은 대부분 경찰의 통신을 잡아낼 수 있는 무전 수신기를 가지고 있다. 불법적이긴 해도 그것이 있어야 타 방송사 기자들보다 먼저 사건 현장에 도착하여 빠른 취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 사이엔 공공연한 비밀인 셈이다. 분명 그들은 사건 현황을 수신기를 통해 들었을 것이고, 난 그들보다 빨리 가야한다. 다른 기자가 있으면 주형이 날 봐 주기가 힘들어 진다. 형평성에 위배된다 어쩐다 하면서 떠들어 대는 기자들이 싫은 거겠지. 사건현장의 아파트에 도착한 난 사이카를 두리번 거리며 찾았다. '음 저기구나.' 단지 내의 한 아파트 건물 앞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다. 경찰들이 주민들에게 물러설 것을 지시하고 있었다. 난 그곳으로 가서 오토바이를 세우고는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와 사건 현장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때 한 경찰이 나를 막았다. "안됩니다. 경찰 조사에 방해가 되..." 그는 말을 하다가 멈추고는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아 이 사건의 용의자야. 들여보...." 언제나 날 용의자로 부르는 주 민성 형사, 그도 말을 하다가 이상한 듯이 날 보았다. 그리고는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다. "아...용의자가 아니라, 정신병자야. 어쨌거나 들여보네." "정신병자? 이젠 용의자도 모잘라서..." 날 막던 경찰이 여전히 날 이상한 눈으로 보면서 날 놔주었다. "무슨 사건이야?" "직접 봐!" 주 형사는 가려놓은 하얀 시트를 들어냈다. "오우...기가막힌데..." "그렇지? 이런 건 참 오랜만에 보는 군." 긴 머리칼의 여자 얼굴....피가 모두 빠져 나간건지 얼굴색이 백지장이었다. 뒤통수는 바닥에 떨어질 때 부셔져서 여기저기 무언가가 흘러나와 있는 것이 보였다. "수박 생각 난다." "주 형은 아무래도 형사보다는 변태가 어울릴 것 같아." "너도 마찬가지야." 난 피식 웃고는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다 찍은 난 주형에게 물었다. "그런데 몸통은 어딨어? 왜 머리뿐이야?" 주형은 손가락을 들어 아파트의 4층을 가리켰다. "저기 있어. 나도 아직 보지 못했으니까 같이 올라가 보자구.....어? 현경씨!" 아파트 현관으로 향하던 주 민성 형사는 징그럽게 웃으며 손을 흔든다. 그의 웃는 모습은 정말이지 징그럽다. 난 그가 손을 흔드는 곳을 보았다. 현경이였다. 그녀는 주 형사에게 인사를 하고는 날 보았다. 그녀가 인상을 찌푸렸다. "유석씨, 아주 패션이 현란하네요." 난 고개를 숙여 나의 하체를 보았다. 너무 빨리 나오느라 바지를 안입고 온 나, 오피스텔의 그 여자가 소리를 지른 이유와 경찰이 이상하게 날 바라보았던 것이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다행히 박스형 팬티라 내 생각에 그리 이상하게 보이진 않았다. "시원하고 좋지 뭘 그래?" 나의 말에 현경은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난 주형을 보았다. 그는 여전히 입가에 징그러운 미소를 보이며 현경을 보고 있다. 그는 현경이만 보면 저렇게 입을 다물 줄 모른다. 노총각 주 민성 형사는 아무래도 현경이를 좋아하고 있는 것 같다. 하긴 섹시한 여성이지 지독한 말괄량이만 아니라면.... 우리는 엘레베이터를 타고 4층으로 올라가기 위한 버튼을 눌렀다. 아파트는 4자가 기분나빠서인지 F라는 것으로 4자를 대신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왜 호수는 F03, F06...이런 식으로 안 만드는지 모르겠다. 4층 문이 열리고 우리는 엘레베이터를 내렸다. 비가 와서인지 습기가 많은 공기, 때문에 피비린내가 더욱 지독하다. 현경은 코를 막았다. 우리는 경찰들이 있는 곳으로 가까이 왔다. 목이 없는 몸통... 잘려진 목 부위에서 흘러나온 피는 주위를 온통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현경은 시선을 돌렸다. 나와 주형사는 시체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입고 있는 하얀 가운이 피로 물들어 있다. 아까 바닥에 있는 얼굴과 몸매로 보니 무척 아름다운 여인이었던 것 같다. 이젠 아니지만..... 누가 도대체 이렇게 끔찍한 짓을 한 것일까? 도대체 누가? 기자들이 도착한 것 같다. 아래가 시끄럽다........... (2편 끝) INTERVAL: 아파트에 사는 것은 편하다. 하지만 아파트만큼 현대사회의 모습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것도 없을 것이다. 바로 옆집에 사람도 누군지조차 모른다. 삭막한 현대사회의 거울인 것이다. 밤 늦게 엘레베이터에 같이 탄 사람... 혹시 강도가 아닐까 의심하게 되고 날 해치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에 휩싸인다. 내가 내릴 층에서 그도 내린다. 무섭다. 날 따라온다. 어쩌지? 도대체 저 사람이 어쩌려는 거지? 집 앞에 도착했을 때, 그때까지 좇아오던 그 사람은 바로 옆집에 사는 사람이다. 우리는 왜 공포를 느껴야 하는가... 그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느끼는 그 마음에 벽 때문이다. 마음의 벽은 이 세상 가장 무서운 괴물인 것이다. ..........마지막 해커로부터........... [마지막 해커] -시간의 역류- (3) 오피스텔로 돌아온 난 사진기를 들고 암실로 들어갔다. 필름을 꺼내고 화학 약품을 적당히 섞어 인화를 시작한다. 점점 사진이 실체를 들어낸다. 암실의 어두움과 빨간 빛이 사진에 나타난 여인의 얼굴을 소름끼치게 했다. 하지만 곧은 코선과 깊이진 쌍카풀, 피가 빠져서인지 무척이나 하얀 얼굴색... 나에게 느껴지는 것은 공포보다는 아름다움이었다. 잘려진 머리의 사진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내가 이상한 것일까? 난 사진이 마를 수 있도록 걸어놓고는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 여러가지 폴더들... 여기에는 해결된, 그리고 미 해결된 수많은 사건들에 대한 나의 조사가 들어있다. 그 중 눈에 띄는 것은 결국 발표를 하지 못했던 [해커 살인]에 대한 글이다. 호기심으로 인해 5명의 유능한 젊은이가 죽었던 그 사건... 난 씁쓸하게 웃음을 지었다. 난 마우스를 눌러 새로운 폴더를 만들었다. [하얀 천사]... 왠지 아까 그 여자의 얼굴을 보고 그렇게 이름을 붙이고 싶었다. 난 컴퓨터를 끄고는 회사로 나갈 준비를 하였다. 벌써 9시다. 대충 옷을 걸쳐입고 밖으로 나온 난 인사를 하는 경비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다. 새벽에 내가 팬티만 입고 들어온 것을 본 모양인지 날 보며 웃고 있다. 난 어색하게 손을 들어 웃음을 보인 후 나의 회사인 바로 옆 건물로 들어갔다. 13층에 사무실이 있지만, 난 여기에서만은 엘레베이터를 타지 않는다. 계단으로 가는 통로에 서서 심호흡을 했다. "자 출발! 와아아아아!" 난 소리를 지르면서 계단을 마구 뛰어올라갔다. 그리고는 쉬지도 않고 사무실을 향해 달려간다. 13층에 있는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난 온통 땀으로 젖어 있다. 언제나 처럼 호랑이 국장이 아침 조회를 하고 있으리라. 난 문을 힘차게 열었다. 역시 조회 중이었는지 조용한 분위기이다. "아하하...죄송합니다. 급한 일이 있어서....하하..." 언제나 처럼 똑같은 변명, 국장은 들으려 하지도 않는다. 그리고는 나로 인해 중단된 연설이 다시금 시작되었다. "하여간에 좀 더 확실성있게 조사를 한 후에 발표를 하도록 하란 말이야. 이번에 아무런 증거도 없이 글 올렸다가 얼마나 곤욕치룬 줄 알아? 모두들 알겠어? 알겠냐고!" "예에....."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그렇게 말하고는 굳은 얼굴로 국장을 보았다. 연예부 기자 중 누군가 한 연예인의 스캔들을 올렸다가 오도로 밝혀져 명예 회손으로 법정까지 올라간 모양이었다. '쯧쯧, 연예부 기자들이란....그저 말초적 신경을 자극하는 일이면 무조건적 이라니까...앞 뒤 안가리고 올려대니 저렇게 안되고 베겨!' 난 그렇게 생각하다가 새벽녘의 피로로 하품을 하였다. "오늘 조회는 이것으로 끝내고 당장 일들 시작해. 그리고 황기자!" 불호령 같은 목소리... 난 눈을 찔끔 감았다. "넌 당장 국장실로 와!" 난 울상을 하고는 국장실로 간다. 내가 아침마다 국장실로 끌려가는 것은 매일 아침 해뜨는 것과 같은 일이라 다른 사람들은 신경도 안쓴다. 국장실로 들어간 난 호랑이 같은 그의 눈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집이 젤로 가까운 놈이 매일 한 시간 씩 늦어...너가 사람이야. 응?" "그...그게..." "그 매일 똑같은 변명 좀 집어쳐! 매일 말하는 거지만... 다시 한 번...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말한다. 지각하면...." "잘라버린다." 나의 말에 국장은 눈 썹을 꿈틀 거렸다. 진짜로 화가 났을 때의 모습이다. 난 침을 꿀꺽 삼켰다. "나....가.....!" 저음의 목소리...폭팔 직전이다. 난 슬금슬금 뒷 걸음으로 밖으로 나갔다. 국장실 문을 조심스럽게 닫고 안도의 한 숨을 쉬었다. "불가사의야. 정말이지.... 내가 왜 다른 사람도 아니고 당신과 파트너인건지....휴우..." 현경은 고개를 저으며 그렇게 말한다. 난 현경을 쏘아 본 후 책상으로 가서 의자에 앉았다. 주머니에서 꺼낸 초코바를 입에 넣고는 생각에 잠겼다. '왜 목을 잘라서 아래로 던진 걸까...왜....왜?' 잠이 올려고 한다. 어슴프레 눈이 감겼을 때, 책상위에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를 받기 귀찮았다. 졸린데....난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수화기를 들었다. "황기잡니다." "이봐! 나야. 목소리가 왜 그래? 잠 좀 그만 자라." 난 목소리의 주인공이 주 형이라는 것을 알고 엎드려 있던 몸을 일으켰다. "사건 종결이야?" "휴우....좀 도와줘야겠어. 머리 쓰는 건 니 전담이잖아. 빨리 서로 좀 와줘." "알았어." 난 전화를 끊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가 이런 부탁을 할 땐 사건이 미궁으로 빠져들 때이다. 난 잠이 싹 달아났다. 이런 일에 난 소름이 끼치는 듯한 희열이 밀려온다. (3편 끝) INTERVAL: [마지막 해커의 공포공식] 공포를 느끼고 싶을 때, 정말로 공포를 느끼고 싶을 때, 이 방법을 한 번 써보길 바란다. 1. 무지 큰 개를 찾는다. (도사견 종류 단, 끈이 풀려있어야 한다. ) 2. 돌을 하나 집어 개에게 던진다. 3. 도망간다. (안 따라오면 따라올 때까지 1부터 3을 반복한다.) 4. 무조건 달린다. (가끔 뒤도 돌아본다.) 이렇게 하면 공포가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달려오는 개에게 물리면 죽는다. 죽음은 우리가 느끼는 가장 큰 공포... 필자는 가끔 공포를 느끼고 싶을 때 이 방법을 사용하곤 한다. ..........마지막 해커로부터...... [마지막 해커] -시간의 역류- (4) 내가 경찰서로 들어가고 있을 때, 주 형사는 누군가를 배웅하고 있었다. "고맙습니다. 취조에 도움을 주셔서....." 주 형사는 그 사람에게 악수를 하고는 밖으로 내 보냈다. 그리고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서 있는 날 보았다. "무슨 일이야?" "앉아봐." "뭔데 그렇게 폼 잡아?" "시체의 신원은 그 아파트 1404호에 사는 윤 소연이라는 여자였어. 이게 그 여자 사진이야." 난 주 형사가 건네주는 사진을 받아 보았다. 전문적인 사진가가 찍은 사진처럼 보인다. 은은한 배경에 천사같은 미소를 짖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정말로 아름다왔다. 이상하게도 난 그녀의 사진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마치 날 바라보며 미소를 짖고 있는 것 같다. 입가에 그려진 미소와 오똑한 코선, 티 하나 없는 피부....모든 것이 완벽했다. 모든 것이.... 내가 그녀의 사진에 시선을 빼앗끼고 있었을 때, 주 형사는 내가 들고 있는 사진을 획 나꿔채며 말했다. "뭘 그렇게 넋이 나가 있어?" "내...내가 뭘....?" "죽은 여자 사진을 왜 그렇게 황홀하게 보고 있는 거야?" "아...아니...." 주 형은 사진을 보며 말했다. "확실히 아름답기는 해." 난 피식 웃고는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서 있지 말고 앉아." 사뭇 그의 표정이 진지하다. 그는 나에게 담배를 권하고는 자기도 한 대 피워 물었다. 그는 여태까지 증인의 말들을 적은 글을 내 앞에 던져주었다. "읽어봐." 하얀 종이 위에 아파트의 호수와 함께 다섯 명의 증인 이름이 적혀 있다. 난 그것을 대충 읽어보고는 말했다. "하나같이 다 똑같은 소리잖아. 귀신을 봤다느니, 그것이 추락하는 사람이었다느니... 사람들은 떨어지는 그 여자를 귀신으로 착각한 것이고 간단한 거잖아. 왜 이런 것으로 귀찮게 날 부르고 난리야? 주형은 역시 돌대가리야." "잘 보고 이야기 해." "뭘 잘 보라는 거야?" "시간을 보란 말이야. 시간을....하여간에 덤벙거리는 건..." 난 적혀 있는 글을 다시 한 번 보았다. 잠시 후 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이거 나 좀 빌려줘!" "어..어어....야 임마 그거...취조문이야! 이리 안가져와 너 쳐 넣어버린다!" 난 밖으로 뛰어나가다가 다시 뒤돌아서서 주 형사에게 뛰어왔다. 달려오는 날 보고는 주형사가 눈을 크게 뜨며 놀라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왜...왜그래? 농담이야아아아....!" 난 놀라는 주 형사의 가슴에서 형사 신분증인 패찰을 잡아 때며 말했다. "이것도 잠시만....아참 그리고 이것도...." 난 책상위에 있는 피살자의 사진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밖으로 달려 나갔다. "너...너 이자식 공문서 갈취에 경찰 사칭 죄까지 추가야....." 주 형사의 목소리를 뒤로 하고 오토바이위에 오른 난 두근 거리는 가슴으로 아파트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래...이거야....하하....아주 흥미로와 아주....하하하!' 묘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 난 아파트를 향해 엑셀을 감아 쥐었다. 정신없이 달렸다. 정신없이... (4편 끝) INTERVAL: 시간의 흐름도 역시 어떻게 생각하면 공포의 한 종류이다. 제어할 수 없는 것에 공포를 느끼는 것이 인간이다. 우리는 흘러가는 시간을 제어할 수 없다. 흘러가는 시간을 거꾸로 돌리고 싶은 마음.... 어떻게 해서든 잡고 싶은 마음.... 흘러간 시간에 대해 후회하는 마음................ 이 모든 것이 공포이다. 그러나........ 그 공포로 부터 벗어날 수 있는 한 가지 희망이 있다. 바로....흘러간 시간에 대해 만족하는 것이다. 만족할 수 있다면 시간은 더 이상 공포의 대상이 아니다. 노력하라. 지나간 시간에 만족할 수 있도록..... 시간이 공포의 대상이 되고 싶지 않다면............. ..........마지막 해커로부터.......... [마지막 해커] -시간의 역류- (5) 아파트에 도착한 난 고개를 들어 커다란 회색빛의 건물을 보며 묘한 기분에 쌓였다. 대낮인데도 건물의 분위기가 이상스럽게 음산하다. 난 주 형사에게 빼앗아 왔던 취조문을 보았다. "304호 김성수, 음....무직이라....집에 있겠군." 인적사항란에 적힌 김성수의 사항들을 읽고 난 3층으로 올라갔다. [304호] 난 초인총을 눌렀다. 잠시 후, 30대의 여인이 겁을 먹은 눈으로 문을 반쯤 열었다. "누..누구신가요?" "강력게 주 민성 형사라고 합니다." 난 주 형에게서 빼앗아온 패찰을 보이면서 말을 하였다. 그 여자는 문을 열어 주며 물었다. "무...무슨 일이시죠? 사건 때문이라면... 아까전에 경찰서에서 다...." "좀 더 조사할 것이 있어어요. 협조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여자가 날 들어오게 하였다. 난 방안을 둘러 보았다. 별로 깔끔하지 못한 내부, 아마도 새벽의 그 소동으로 정신이 없었던 모양이다. 안방에서 김 성수인듯한 사람이 나왔다. 그와 난 거실에 있는 쇼파에 앉았다. 잠시 후, 그의 부인이 차를 내왔다. 런닝차림의 김 성수는 계속 무언가 초조한 듯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디 불편하십니까?" "아...아닙니다. 새벽에 사건 때문에... 저도 모르게... 그런데 뭐 더 물어볼 것 이라도...." "예 한가지 이상한 점이 있어어요. 새벽에 본 것이 정확하게 무엇이지요?" "거꾸로 서 있는 여자의 모습이었어요." 그는 그 말을 하면서 새벽의 일이 생각 났는지 몸을 떨었다. "담배를 피러 밖으로 나갔지요. 여편네랑 싸운게 기분이 않좋아서요. 그런데 베란다 밖으로 하얀 옷같은 것을 걸친 여자가 머리를 곤두선 채로 날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 하얀 얼굴과 부릅 뜬 눈으로 날 바라보며 무슨 말을 하는 것처럼 ....난 너무도 무서워서 소리를 지르며 안으로 들어갔지요." 난 주머니에서 주 형사에게 빼앗아 온 사진을 들이밀었다. "보신 분이 이 사람인 가요?" 그는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그러다가 흠칫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마...맞습니다....." "그런데 증언에서 목격시간을 말씀하셨는데....여기 보면.....새벽 2시 48분경.. 어떻게 이렇게 정확한 시간을 말씀하실 수 있었던 거지요?" "그때 시계를 보았으니까요. 전 요즘 IMF라는 것으로 명예퇴직을 당했지요. 바로 이 시계가 동료들이 사 준 시계였습니다. 마누라와 싸우고 비까지 내린지라 기분이 매우 울적했었어요. 퇴직 할 때와 같은 기분이여서 자연스레 시계로 눈이 가더군요. 그래서 정확한 시간을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협조 고맙습니다." 그는 연신 담배를 피우며 일어날 생각도 하지 않았다. 다시금 그때의 공포가 밀려온 것이다. 난 밖으로 나오며 취조문에 있는 시간을 체크했다. "다음은 404호....한 주희....여고생이군." 난 4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곤 문 앞으로 가 초인종을 눌렀다. 아무도 없는가 보다. 404호의 문 앞엔 아직 지워지지 않은 선혈의 흔적이 남아있다. '많이 놀랐겠군.' 난 다음 증인이 사는 곳인 504호로 갔다. 초인종을 누르자 스피커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세요?" "강력계 주 민성 형사라고 합니다. 잠시 여쭤볼 말이 있어서...." "전 제가 본 것은 다 말했어요.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요." "한가지 확인 할 것이 있어서 그러니 잠시 시간을 내 주십시요." 잠시 후, 문이 열렸다. 안경을 쓴 남자의 얼굴.... 웃어보이려 하지만 수심이 가득하다. "뭘 알고 싶으신 거지요?" "취조문에 보면 시간을 말씀하셨는데... 정확한 시간인 가요?" "네..네에...정확한 시간일껍니다." "어떻게 알지요?" "배가 고파서 몇시인가 시간을 보았으니까요." "정확히 뭘 본거지요?" 그는 눈을 감으며 고개를 숙였다. 떨고 있는 것 같았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사건의 정확성을 위해...." "제발 그만 좀 해요. 새벽부터 시달렸어요. 새벽부터... 당신이 알기나 해요? 얼마나 두려운 건지?" "지....진정하십시요. 전..." 그가 눈을 뜨고 날 보았다. 이상하게도 눈에는 눈물이 가득고여 있었다. 날 보는 그의 눈은 공포심이라기 보다는 슬픔이었다. 그가 갑자기 소리쳤다. "진정하라구요? 도대체 뭘 진정하라는 거지요? 내가 본게 뭔지 알아요? 머리칼은 온통 곤두서 있고 죽고싶지 않다는 듯이 부릅뜬 눈... 정상적인 형태도 아닌 거꾸로 선 여자의 얼굴을 저기 저 허공에서 직접 보았을 때 그 공포를 알기 나 해요? 그런데....나보고 진정하라고요?" 그는 그렇게 소리치다 눈물이 흘러내린다. 억지로 울음을 삼키고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나가 주십시요." 그는 문을 닫아 버렸다. 난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공포심 때문이라고 하기엔 너무 감정적이야.' 그렇다. 공포를 느낀 표정을 많이 보아온 난 그의 표정이 단순한 공포의 감정만이 아닌 다른 것이 섞여 있다는 것을 알고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난 취조문을 꺼내 들고 체크를 하였다. "다음은 704호....어? 뭐지?" 난 계단으로 올라가는 통로로 무언가 희끗한게 지나가는 것을 본 것 같았다. 난 얼른 통로로 다가갔다. 하지만 통로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난 머리를 갸웃 거리고는 엘레베이터를 탔다. 그리고는 7층을 눌렀다. 704호로 간 나는 초인종을 누를 세도 없이 문을 열고 나오는 한 남자와 마주쳤다. "아...혹시 한 경찬씨 입니까?" 그는 날 이상하게 바라보더니 물었다. "누구시죠?" "강력계 주 민성 형사 입니다. 뭐 좀 물어볼 것이 있어서...." "그건 아까....?" "지금 바쁘신가요?" "예. 회사에 가봐야 하거든요. 취조받느라 늦어서...." "한 경찬씨도 혹시 그 떨어지고 있는 사람을 보신 건가요?" "아닙니다. 전 그 시간에 위 층 아가씨와 다투고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그 여자가 쓰러졌지요. 마치 귀신을 본 것 처럼... 난 뒤돌아 보았지만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것이 사람이었다니...404호 여고생은 쇼크로 병원까지 갔다고 하더군요." "그게 정확히 몇 시쯤 되었나요?" "한 2시 50분경 쯤 되었을 것입니다. 그게 뭐가 중요한 거지요?" "아...아닙니다. 그런데 혹시 이 여자 분 아십니까?" 그는 내가 내민 사진을 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한 두번 길에서 본 듯도 하지만 잘 모르겠군요. 그럼 전 이만 바빠서...." 그는 나에게 미안하다는 듯이 인사를 하고 엘레베이타로 뛰어나갔다. 난 그의 뒷모습을 보고는 취조문을 꺼내 체크를 하였다. "804호 윤혜지는 한 경찬이랑 같이 있었으니까 됐고... 1004호로 가볼까?" 난 엘레베이터를 타고 10층으로 갔다. 그리고는 1004로 가서 초인종을 눌렀다. 밖에 나간 것인지 집에는 없는 것 같다. 난 잠시 문 앞에 서 있다가 뒤돌아 섰다. 눈 앞의 베란다 밖으로 탁 트인 경치가 보인다. 그들이 거꾸로 선 여자의 얼굴을 보았다는 저 베란다.... 난 베란다로 가까이 가서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꽤 높아 보인다. 난 높은 곳이 싫다. 어렸을 적에 3층 높이에서 떨어진 적이 있다. 그래서 난 높은 곳이 싫다. 난 상황을 상상해 보았다. 깜깜한 밤, 떨어져 내리는 사람의 거꾸로 된 모습, 머리는 온통 아래로 곤두서있고, 죽어가는 그녀의 공포어린 눈동자, 그것을 보았을 때, 목격자들의 느낌은 어땠을까? 죽어가고 있는 사람의 눈을 정면에서 본 그 심정을 난 이해할 수 있다. 만약 그러한 일을 당하고도 놀라지 않거나, 쓰러지지 않았다면..... 그 사람은 두가지 중 하나이다. 그 끔찍한 일을 저지른 가해자이거나, 아니면 아무런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은 냉혈인..... 난 취조문을 다시 한 번 보았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1004호와 304호가 2시 45분경에 목격, 여기까지는 이해가 간다. 하지만 804호와 504호가 2시 50분 경에 목격을 하였다는 건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것이다. 그들이 본것이 분명 심령적 물체가 아닌 사람의 추락하는 모습이었다면 804호와 504호의 목격시간은 304호보다 나중 시간에 위치해 있어야 한다. '시간이 거꾸로 가기라도 했다는 건가? 그건 둘째 치고 왜 떨어져 죽은 시체를 404호 문 앞까지 올려다 놓는 수고를 한 것이지? 404호에 무슨 원한이라도? 그리고 머리를 잘라서 떨어뜨린 이유는 또 무엇일까....? 804호와 504호가 본 것은 정말로 억울하게 죽어가는 혼령의 모습이었다는 이야기인가?' 난 생각을 그만두고 머리를 마구 저었다. 언제나 과학적으로, 그리고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습관화하고 있는 나, 초 자연적 현상이나 미신적 이야기는 무시해버렸던 나였기에 이번 사건은 도무지 이해하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알 수가 없다. 분명 이번 사건도 가해자가 있고, 피해자가 있다. 문제는 사건 증언에서 보여지는 엇갈리는 시간의 진술과 가해자의 정체이다. 도대체 무슨 트릭이 숨어있는 것일까?....도대체..... 난 담배를 피워물고 불을 붙였다. '후우....의사가 담배 줄이라고 했는데....' 하얀 담배연기가 하늘로 퍼져올라간다. 나의 머리속처럼 복잡한 모습으로.... (5편 끝) INTERVAL: 술을 너무 많이 먹어서인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문이 잠겨 있어서 들어가지도 못하고, 현관 문 앞에 누워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아침에 동생이 나가다가 나를 밟았다. 아직도 동생이 밟은 허리가 아파죽겠다. 술은 공포를 잊게 해준다. 술은 이성을 잃게 한다. 그럼 바로 이성이 공포를 느끼게 하는 것일까? 이성이 없는 사람은 공포심이 없다. 공포심이 없으므로 끔찍한 만행을 저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음주운전을 하는 사람... 그 순간 자신의 모습은 이미 사람이 아니다. 자동차라는 무시무시한 흉기를 가지고 사람을 죽이기 위해 엑셀을 밟는다. 보아라.... 백미러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더 이상 사람이기를 포기한 악마의 모습을... 시뻘건 눈이 당신을 바라보며 음산한 미소를 보이고 있을 것이다. 악마가 되어버린 바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마지막 해커로부터........ [마지막 해커] -시간의 역류- (6) "다시 놀라는 일이 없도록 안정을 취해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해요." 주희의 어머니는 담당의사에게 연신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였다. 아직 퇴원을 해서는 안 된다는 의사의 말을 주희는 무시하였다. 시험이 내일 모레, 병원에 있다간 내신이 떨어질 것이 분명했기에 주희는 막무가내로 어머니를 졸라 퇴원을 자청했던 것이다. 병원 밖으로 나오는 주희의 얼굴은 무척 헬쓱해 보였다. "이것아 공부도 중요하지만, 몸이 이지경이 되어서 어떡하겠다는 거니. 의사가..." "그만해요. 그러다가 내신 떨어지고 대학에 못 가면 다 내 잘못으로 될 것 뻔한데, 어떻게 여기 누워 있어요." 주희의 어머니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딸의 건강도 걱정이 되지만, 주희의 말처럼 성적도 중요한 것이다. 이제 고 3, 여태까지의 노력이 이번 일로 물거품이 될까봐 주희의 어머니도 걱정하고 있던 지라, 그녀의 퇴원요구를 못이기는 척 들어 준 것이다. 어머니와 함께 집으로 온 주희는 자신의 집 앞으로 가까이 오게 되자 새벽의 일이 생각이 났다. 그녀는 눈을 감고 고개를 저었다. 어머니가 걱정스럽게 주희를 보았다. 집안으로 들어온 주희는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가여운 것....어쩌다 그런 일을 당해 가지고......" 주희의 어머니는 그렇게 생각하고는 음료를 준비하여 주희의 방으로 다가갔다. 그때 문이 열리며 주희가 나왔다. 차림새를 보니 도서실을 가려는 모양이다. "아니, 이것아! 어딜 가려는 거야? 그 몸으로...." "도서실!" "의사 선생님 말 못 들었어?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했잖아. 안정을...." "의사가 나 대신 대학가요?" 주희는 신경질적으로 그렇게 말하고는 밖으로 나가 버렸다. "주희야! 주희야!" 주희는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를 무시하고 계속 걸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공부를 해야하는 자신의 처지가 괴롭다. 자기의 몸이 쇼크로 정상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보다도 자기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해야한다. 중간고사가 얼마 안 남았다. 새벽의 공포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지만 오히려 공부를 하는 것이 더욱 안정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도서실에 도착한 주희는 휴게실에 몇몇 학교친구들이 있는 것을 보았다. 그녀가 모른 척하고 지나치려 할 때, 친구들이 걱정스런 얼굴로 주희를 부르며 다가왔다. "주희야, 괜찮아?" "학교에서 들었어. 정말 괜찮은 거니? 이렇게 빨리 오게 될 줄 몰랐는데...." 주희는 친구들의 걱정이 가식처럼 느껴졌다. "내가 아주 쓰러지기라도 바란 거니?" 주희의 차가운 말투에 친구들이 무슨 말을 하려 했지만, 주희는 도서실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주희는 자신의 책상에 앉아 가방에서 책을 꺼냈다. 하지만 책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그렇게 멍하게 얼마나 앉아 있었을까, 누군가 내민 캔 콜라에 정신이 든 주희는 뒤를 돌아보았다. 자신의 단짝 친구, 상미였다. 그녀는 생긋 웃으며 주희를 보고 있었다. "괜찮아?" 그녀는 귓속말로 주희에게 말했다. 주희는 상미에게 애써 미소를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바람쐬러 가자." 상미의 말에 주희는 책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둘은 도서관 밖으로 나왔다. "많이 놀랬어. 니 이야기 듣고.... 걱정도 많이 했고..." 상미는 주희와 마찬가지로 미대에 가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는 같은 반 친구이다. 주희와 진학하려는 대학도 같고 과도 같은 지라 둘은 무척 친했고, 자주 서로의 고민을 터놓고 이야기를 하곤 했다. "괜찮은 거야?" "응...많이 놀랜 것은 사실이지만...어쩌겠니...시험이 코앞인데..." "휴우, 우리의 현실이 정말 암담하다. 그렇지?" 상미는 한 숨을 쉬며 어두운 하늘을 보았다. 마치 자신들의 지금 심정과 같은 하늘색이다. 주희는 상미가 준 콜라를 따서 마시기 시작했다. 상미는 주희를 보며 말했다. "많이 슬프겠다. 참 좋은 언니였는데, 그렇지?" "슬프다니? 좋은 언니?" "너...모르고 있었던 거니?" "뭐..가?" 상미는 주희가 되묻자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너, 그럼 아직도 모르고 있는 거야?" "도대체 무슨 말이야?" "죽은 사람이 소연이 언니라는 거 정말로 모르고 있었던 거야?" 주희는 콜라를 떨어뜨렸다. 그럼 죽은 사람이 1404호에 사는 그 언니였다는 말인가! "내..내가 본게 소연언니의 시체였단 말이야?" "주..주희야!" 주희는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리고는 갑자기 일어나서 집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뛰어가고 있는 주희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언제나 자신을 보면서 행복한 미소를 보였던, 자신이 공부하던 미술에 대해 친절히 가르쳐 주던, 바로 그 천사와도 같은 소연언니가 자신이 본 끔찍한 시체의 주인공이라니..... 아파트에 도착한 주희는 엘레베이터에 올라 14층을 눌렀다. 자꾸 눈물이 흘러 나왔다. 14층의 불이 켜지고 엘레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주희는 1404호로 달려갔다. 그녀는 문을 마구 두드리며 소리쳤다. "언니! 언니! 소연 언니!" 아무도 나오지 않는다. 언제나 초인종을 누르면 그 하얀 미소를 보이며 문을 열어 주었던 소연언니... 지금은 주희의 목소리가 공허하게 복도에 울릴 뿐이다. 소연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이전까지의 공포감도 모두 사라져 버렸다. 자신이 정말로 좋아하고 존경하던 소연이 죽었다는 것에 대한 슬픔으로 계속해서 울기만 했다. 얼마나 울었을까? 주희는 멍하게 소연의 집 앞에 앉아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는 눈물을 닦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터벅터벅 엘레베이터를 타는 곳으로 온 주희는 갑자기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꼈다. 엘레베이터의 문이 열려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도 지나가는 사람을 보지 못했는데 14층의 엘레베이터가 열려있다니... 주희는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주위를 둘러보던 주희는 슬픔으로 잊고 있었던 공포감이 밀려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얼른 엘레베이터를 탔다. 그리고는 4층을 눌렀다. 스르르 문이 닫혔다. 주희는 겉잡을 수 없는 공포감으로 몸을 떨었다. 머리가 아파 오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제발...빨리...빨리...' 유난히도 엘레베이터가 내려가는 것이 느리게 느껴진다. 10층...9층...8층.. 7층....갑자기 엘레베이터가 섰다. 주희는 흠칫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12시가 거의 다 되어 가는 시간...누굴까....도대체 누굴까? 주희는 문이 열리는 것을 도저히 볼 수가 없어. 눈을 감았다. 하지만 아무런 변화도 느껴지지 않는다. 문이 열리는 소리도 7층에 도착했다는 소리 음도 나오지 않았다. 주희는 눈을 떴다. 문은 열려 있지 않았다. '고...고장?... 싫어...싫어...' 주희는 공포감으로 심하게 떨리는 손을 겨우 들어 비상벨을 눌렀다. '제발...경비 아저씨, 경비 아저씨....' 주희는 정신없이 비상벨을 눌렀다. 대답이 없다. 그녀는 극심한 공포로 점점 희미해지는 자신의 정신을 깨우기 위해 다리를 꼬집었다. 감각이 없다. 아니,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 살려요. 갇혔다고요. 누구 좀 도와주세요. 사람 살려요." 그녀는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렀다. 스피커폰에선 아무런 대꾸가 없다. [띵...] 주희는 7층을 알리는 경보 음에 자기도 모르게 몸이 굳어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주희는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그녀의 심장이 더욱 더 빠르게 고동치기 시작한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부들부들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눈을 감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다. 시간이 정지해 버린 것만 같다. 주희는 열리는 엘레베이터의 문 사이로 나타나는 광경에 입이 벌어진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밤의 정적을 가르는 비명소리가 아파트 복도에 울려 퍼졌다. ......현재 시간 새벽 0시 30분....사건 발생후 19시간 경과.... (6편 끝) INTERVAL: 폐쇄에 대한 공포는 [마지막 해커]에서 말한 적이 있는 것 같다. 갇혀있다는 것과 혼자라고 생각하는 곳에 누군가 다른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으로 인간은 극심한 공포감을 느끼는 것이라고 썼던 것 같다. ..........이런 이야기 여기다 써도 될까? 언젠가 밤늦게 좀 친한 K양 (사정상 신원을 밝히지 못함을 양해 바람니다. K양 애인이 알면 난 죽음.)과 한 건물 안에 갇힌 적이 있다. 잠긴 현관문을 두드리며 소리지르고 난리치는 K양을 보며 처음엔 갇힌 것이 무서워서 그러려니 하다가 그녀의 계속되는 소음에 하도 짜증이 나서 내가 말했다. "왜 그렇게 난리야! 좀 있으면 경비가 와서 열어 줄 텐데, 뭐가 무섭다고 그렇게 소리를 지르는 거냐고?" K양이 공포스런 눈으로 날 보며. 아무런 거리낌도 죄책감도 없이 일말의 양심도 없이, 아주 뻔뻔스럽게 정말이지 아주 뻔뻔스럽게 말했다. "너!....." 여자에게는 절대로 손을 대지 않겠다고 맹세했던 나, 하지만 그땐 정말이지 때리고 싶었다. 정말로..... ..........마지막 해커로부터......... [마지막 해커] -시간의 역류- (7) "주 형이 왠일이야? 우리 집까지..."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내 방으로 들어오는 주형사는 주머니에서 비디오 테잎을 하나 꺼내 나에게 던져 주며 말했다. "이것 좀 조사해봐. 혹시나 해서 가지고 왔어. 너라면 뭔가 찾아낼 수 있을 것 같아서.... 도대체 세상이 어떻게 되려는 건지, 하루도 안지나서 그것도 같은 아파트에서 또 살인사건이라니.... 여고생 한 주희가 죽기 전 엘레베이터의 CCTV에 찍힌 화면이야." 난 테잎을 컴퓨터와 연결된 VTR에 넣으며 물었다. "그래 사인이 뭐래?" "아직 몰라. 밝혀지면 연락 준다고 했어. 도대체 어떤 놈이 이런 짓을 하는 건지?" 난 재생버튼을 눌러 비디오를 돌리기 시작했다. 모니터에 나오는 화면......... 난 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는 주 형사를 바라보았다. 주 형사는 나의 시선에 의아해 하며 물었다. "왜 그래?" "주 형....진짜 형사맞아?" 주 형사는 목을 빼고 모니터에서 나오는 포르노 영화를 보고는 당황하며 일어섰다. "아하하...이게 왜 ....하하...여기있는 거지?" 그는 얼른 테잎을 VTR에서 꺼내며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오래 전, 사회적 문제로 까지 대두되었던, 그 문제의 테잎이다. 학생의 본분을 잊은 인간 쓰레기 라느니 그런 비디오를 찍는 요즘 세대들은 모두 말종이라느니 하면서, 다른 건강하고 맑은 청소년들까지 모두 싸잡아서 매도하던, 그러면서도 정작 그렇게 욕을 하던 기성세대들이 그 테잎을 구하기 위해 혈안이 되서 청계천일대가 온통 이 테잎을 찾기위한 사람들로 북적거렸던, 그 문제의 테잎이었다. 주 형은 나에게 다른 주머니에서 테잎을 꺼내 주면서 여전히 어색한, 그 징그러운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난...그냥 조사할 것이 있어서... 하하..." "그 사건 끝난 지가 언젠데 조사야 조사는....참나...정말 형사로서의 자질이 의심스럽다." 난 주 형이 준 다른 테잎을 VTR에 넣고는 재생을 시켰다. 살해된 주희라는 여고생이 겁을 먹은 표정으로 엘레베이터에 타는 것이 보인다. 갑자기 그녀가 무언가에 놀라 난리를 치는 장면이 나오기 시작했다. 비상벨을 눌러대는 그녀의 얼굴에 공포심이 가득하다. 살려달라고 소리치는 것 같다. 갑자기 그녀가 죽은 듯이 멈추어 서서 문 쪽을 바라본다. 잠시 후 엘레베이터의 문이 열리며 그녀가 비명을 지르는 장면이 나왔다. 주희는 고목나무처럼 쓰러진다. 거기서 화면이 갑자기 까맣게 가려졌다. 난 다시 리워드를 시키고 VTR의 재생버튼과 컴퓨터의 비디오 캡쳐 녹음 버튼을 동시에 눌렀다. 똑같은 장면이 나오고 난 뚫어지게 화면을 보았다. 피살자의 모습 이외에는 단서가 될 그 어떤 것도 나오지 않고 비디오는 끊나버린다. "내가 수천번도 더 돌려 보았어. 헛수고야!" "조용히 좀 해봐." 난 이번엔 컴퓨터로 저장한 MPEG파일을 연속적으로 재생시키기 시작했다. 지금 내가 찾으려 하는 것은 주희라는 여고생이 죽기전에 무엇을 보았는가 하는 것이다. '무엇을 보았기에 기절을 했던 것일까? 그렇다면 사망원인은 쇼크로 인한 심장마비인가?' 주 형사는 포기를 한 것인지 내 침대에 누워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다. 모니터를 너무 가까이서 본 것 때문인지 난 눈이 아프고 속이 울렁거렸다. 머리도 아팠지만, 모니터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분명 무언가 저기에 있다. 어쩌면 유일한 단서가 될 수 있는 것이 저기 숨어있을 지도 모른다. 비디오 파일을 세번 쯤 돌려 보았을 때 갑자기 내 눈에 또렷이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잡았다. 저거야 저거...." 내가 소리를 지르자 주 형이 침대에서 벌떡일어나 나에게로 뛰어왔다. "뭐야? 뭐?" 난 화면을 스틸시키고 마우스로 한 구역을 확대시키기 시작했다. 내가 확대를 하고 있는 부분은 화면에 나타난 엘레베이터의 문 반대쪽으로 자리잡고 있는 거울이었다. 거울의 부분을 모니터로 확대시켜나가자 엘레베이터 안의 형광등 불빛 과는 다르게 붉은 빛이 비추어 지는 것이 나타났다. 그리고 바닥 쪽으로 하얀 옷자락 같은 것이 보였다. 완벽한 형체가 보이진 않았지만.... 분명 사람같았다. 누구일까? 거울의 부분을 더욱 확대 시켜나가자 옷자락 말고 다른 형체가 반쯤 열린 문 사이로 희미하게 보인다. 머리카락..........? 그때 주형사가 아무런 생각없이 말을 던졌다. "얼굴 같은데...좀 더 확대 시켜봐." 내가 기가막힌 눈으로 주 형사를 바라보자 주형사가 묻는다. "왜 그래?" "얼굴이라고...?" 주 형사가 다시 한번 모니터를 보았다. 그리고는 표정이 굳어졌다. 주 형사는 긴장으로 마른 침을 삼키는 것 같았다. 그가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며 말했다. "저게 얼굴이라면 얼굴이 있어야 할 위치가 아니잖아...." 주 형사와 난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면서 말을 잃었다. 저 희미한 물체가 만약 정말 머리라면... 그의 말처럼 머리가 있어야 할 위치가 아닌 것이다. 인간이라면 허리부분에 머리가 있을 리 없다. 아무리 눈을 씻고 다시 보아도 분명 머리가 있어야 할 위치가 아니다. 하지만.... 그 희미한 물체를 머리말고는 다른 것으로 생각하기 힘들었다. [띠리리리리리링] 갑작스런 전화벨 소리에 나와 주 형은 깜짝 놀랐다. 가뜩이나 긴장하고 있는 터라 겁이 없다고 자부했던 주 형과 나 일지라도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주 형사는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아...결과가 나왔습니까?......아....알겠습니다." 주 형은 전화를 끊고 나를 보았다. "왜 그래?" "사인은 뇌진탕이래." "쇼크사가 아니고?" 주형은 고개를 끄덕였다. 난 모니터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뇌진탕이라고....심장마비가 아니라...뇌진탕?' 저것이 만약 피살자의 머리를 내려쳐 뇌진탕을 일으키게 한 것이라면...... 분명 상대방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인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형체가 아니다. 도대체 저게 무엇일까.....? (7편 끝) INTERVAL: 이런 이야기 여기다 써도 될까? 언젠가 선배가 데쓰메탈 비디오 테잎을 빌려 준 적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귀한 테잎이라 신이나서 연습실에 전화를 하고 한 걸음에 달려갔다. 선배들과 여자친구들...그리고 문제의 K양도 있었다. 모두 메탈광이라서 나의 전화에 잔뜩기대를 하고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난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약간 튕기면서 말했다. "이거 구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테잎을 넣고 비디오를 틀었다. 모두 날 바라봤다. 문제의 K양이 말한다. "그래 정말 힘들었겠다." 내가 가지고 온 테잎은 흔히들 포르노라고 부르는 저질 테잎이었다. 잘못 빌려준 것이다. 확인을 안해본 내가 잘못이지.....망신!!! 특히 K양의 애인인 Y선배가 제일 심하게 날 비방했다. 날 질책하며 나가는 사람들... 난 민망한 심정으로 테잎을 꺼내고 의자에 앉아 인상을 찌푸렸다. 그때 제일 심한 소리를 했었던 Y선배가 들어와 말했다. "유석아.....그거 나좀 빌려줘......" 그 선배가 정말로 무섭게 느껴졌다. 인간의 사악한 이중성을 가진....그 선배가... ..........마지막 해커로부터....... [마지막 해커] -시간의 역류- (8) 주 형사가 가고 난 방... 너무도 조용하다. 난 의자에 멍하니 앉아서 모니터의 화면을 보았다. 보면 볼 수록 이상한 광경이다. 이해를 할 수 없다는 것에 화가 난다. 다섯 가치 째 피워 문 담배가 필터까지 타 들어갔다. 목이 말랐다. 난 자리에서 일어서서 냉장고로 가 물병을 꺼내들고 암실로 들어갔다. 죽은 소연의 사진이 여기 저기 걸려 있다. 난 물을 마시면서 사진들을 보았다. 바닥에 떨어져 있던 머리를 찍은 사진과 404호 문 앞에서 찍었던 몸체... 난 여섯 가치 째 담배를 꺼내 물며 물끄러미 그 사진을 바라보았다. 지포라이터를 꺼내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사진이 붙어 있는 곳으로 가서 잘려져 있는 머리사진을 떼어 몸체의 허리부분에 붙여 놓았다. 난 뒤로 물러서서 다시 한 번 그 사진을 보았다. '주희가 본 것이 정말로 이것인가?......정말로 주희는 이것을 보고....' 피로 물든 하얀 가운....잘려진 목....만약 주희가 본 것이 이것이라면 그녀는 심장마비만으로도 죽을 수 있었을 것이다. 갇힌 것에 대한 공포... 눈앞에 드러난 죽은 시체의 환상..... 난 사진을 떼어서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컴퓨터의 모니터 옆에 사진을 아까와 같은 식으로 붙여 놓았다. 난 모니터에 나타난 엘레베이터 안의 희미한 형체와 옆에 붙여 논 사진을 번갈아 보았다. '정말 이것을 본 것일까?....설마....이건 아닐 꺼야!' 난 붙여놓았던 사진을 떼어 버렸다. 한 숨과 함께 빨아들였던 담배연기를 뱉어내고는 의자에 몸을 깊숙히 묻었다. 난 컴퓨터의 모니터를 멍하니 보다가 마우스를 드래그하여 [하얀천사]라는 제목의 폴더를 눌렀다. 창이 열리면서 문서파일과 그래픽 파일이 보였다. 난 그래픽 파일을 열었다. 주 형사에게서 빼앗아왔던 소연의 생전 모습을 스캔 받은 사진..... 환한 미소를 짖고 있는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이 나의 시야로 들어왔다. 흐릿한 배경화면의 가운데에 천사와 같은 모습으로 서 있는 그녀의 모습..... 도대체 왜.....이토록 아름다운 여인을 그토록 잔인하게 부셔뜨린 것이지? 왜 인간들은 아름다운 것을 가만히 관조하지 못하는 것일까? 이렇게 바라만 보아도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여인의 미소를 도대체 무엇 때문에 짓밟아 버린 것일까? 도대체 무엇때문에...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언제나 냉정하게 모든 것을 생각했던 내가 왜 이렇듯 감정적이 되는 것일까? 난 화가 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컴퓨터를 꺼버리고는 오피스텔 밖으로 나왔다. 이성적이 되기 위해선 시원한 바람이 필요했다. 감정에 치우치면 판단이 흐려진다. 신발도 신지 않고 복도를 걸어나갔다. 난 가끔 깨끗한 오피스텔의 복도를 맨발로 걸어다니곤 한다. 나의 여러가지 특이한 행동들을 보아온 오피스텔 사람들은 이젠 이런 행동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인다. 무척 늦은 시간....비가 간간히 내리고 있는 거리엔 사람들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난 오피스텔 로비의 창문 앞에 쭈그려 앉아 일곱가치째 담배를 피워 물었다. '같은 아파트에서 두번의 살인사건... 소연의 죽는 모습을 본 사람들의 엇갈린 시간진술... CCTV에 나타난 불가사의한 형체...' 난 눈을 감고 증인의 진술을 하나 하나 생각했다. 그 중 약간 의심스러운 사람이 기억났다. 504호에 사는 정찬호...20살의 대학생... 그가 증언을 하면서 보인 반응은 공포라기 보다는 슬픔이었다. '무언가 알고 있는 거 같아...' 그 때,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참...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 거야? 이런....이런....' 담배를 버리고 난 신발을 신으러 방으로 올라가려 하다가 그냥 주차장으로 뛰어갔다.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고 상아 아파트를 향해 출발했다. 난 제일 중요한 윤 소연의 집을 조사하지 않았던 것이다. 상아 아파트에 도착한 난 그녀의 집으로 가기 위해 엘레베이터 앞에 섰다. 그때, 문이 열리면서 엘레베이터에서 나오는 안경을 쓴 남자와 마주쳤다. 504호에 사는 정찬호.. 그가 날 보며 흠칫 놀랐다. "안녕하십니까?" 나의 인사에 그는 대답대신 고개를 약간 숙여 인사를 했다. 난 그에게 미심쩍은 것이 있었지만, 지금은 소연의 방을 보는 것이 더 중요했다. 닫기 버튼을 누르고 14층을 눌렀다. 문이 닫히는가 싶더니 다시 열린다. 뭐지....? 닫히는 문 사이로 그가 보였다. 안경을 쓴 504호의 정찬호였다. 그는 날 바라보고 있다. 약간 기분이 이상했지만 난 신경 쓰지 않았다. 그가 엘레베이터 안으로 들어왔다. 난 그가 5층에 사는 것을 알기 때문에 버튼을 눌러주며 물었다. "뭐 잊어버리고 나오셨나 보지요?"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엘레베이터가 올라가고 잠시 후에 5층을 알리는 소리 음이 나며 문이 열렸다. 난 그가 나가기 편하도록 문 옆으로 비켜섰다. 하지만 그는 내릴 생각을 하지 않고 날 바라보았다. "할 말이 있어요." 갑작스런 그의 말에 난 놀랐다. 하지만 애써 태연한 척 그를 바라보았다. '그래...역시 이 사람 무언가 알고 있어.' 엘레베이터의 문이 닫히고 난 그가 빨리 무슨 말을 하길 바랬다. 그는 날 보며 약간 주저하더니 입을 열기 시작했다. "소연이 누나에 대한 이야기에요." 소연이 누나? 그럼 피살자와 잘 알고 지내던 사이였군. "뭐지요? 말해보세요."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 순간 갑자기 엘레베이터가 멈추어 섰다. 8층과 9층 사이였다. 찬호가 놀란 눈으로 날 바라보며 말했다. "이...이럴수가?" 난 엘레베이터 주위를 둘러보다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고장인가 본데요." "고...고장이 아니야. 안돼...안돼." "왜 그래요?" "죽을꺼에요. 우리 죽을 꺼라고요. 으아아..." "이봐요. 진정해요. 고장난 것뿐이라고요. 정신차려요." 그의 눈이 공포로 가득 찼다. 난 비상벨을 눌렀다. 스피커폰에선 아무런 반응도 없다. 난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혹시...주희에게 일어났던 것과 똑같은 상황?' 갑자기 나의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공포로 인해서? 아니다. 난 지금 주희에게 일어난 일이 내 앞에 일어날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이제 좀 있으면 문이 열릴 것이고 주희가 본 그 괴형체를 나의 눈으로 직접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찬호는 구석에 주저앉아 떨고 있었다. "죽을 거라고요. 다 죽을 꺼에요." 그는 머리를 싸쥐고 소리를 질렀다. "이봐 조용히 좀 해. 단순 고장일 뿐이야 시끄럽다고!" 난 여전히 엘레베이터의 문을 바라보며 찬호에게 소리쳤다. 찬호는 더욱 몸을 움츠리며 구석 쪽으로 몸을 붙였다. 난 그를 신경쓰지 않고 긴장을 한 채 다음에 일어날 일을 기다렸다. '와라...와....너가 누군지 내가 반드시 밝혀내지...와라.' 흥분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문 쪽에서 눈을 한시도 때지 않고 빨리 문이 열리기를 바랬다. '열려라. 어서...열려라. 지금 이렇게 널 기다리고 있다. 어서....모습을 나타내봐. 어서...' 난 일종의 쾌감 같은 것이 밀려왔다. 드디어 보게 된다. 내 눈으로 직접.... 주희가 보았던 그것이 무엇인지 이 두눈으로 직접보게 되는 것이다. (8편 끝...) INTERVAL: 몇달전, 마루에서 혼자 책을 읽고 있을 때, 몸이 아프신 할머니가 날 부르셨다. 오래전 부터 몸이 많이 아프셨던 할머니는 너무도 힘드셨던 것 같다. "약 좀 사다줘... 너무 아파서... 죽고싶어...편안히 죽을 수 있게, 약 좀 사다줘...." 할머니가 말하시는 약은 아픔을 참기위한 약이 아니라, 죽기위한 약이었다. 할머니에게 병원에서 받아온 약을 드리며 말했다. 이 약 드시면 안 아플거라고... 그런 소리 하시지 말라고.... 밖으로 나온 난 읽던 책을 계속 읽었다. 얼마뒤 할머님의 앓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고, 이상해서 들어가 본 난 이불위에 누워 계신 할머님을 보았다. 잠이 드신 것 같아서 조용히 문을 닫고 나온 나... 저녁을 먹을 시간이 되서 할머니에게 드릴 밥을 차려 방 안으로 들어갔다. "할머니 진지 드세요. 할머니..." 대답도, 움직임도 없으셨다. 언제나 찡그리고 계신 할머님의 얼굴... 괴롭고 힘들어 하시던 할머님의 그 짜증이 베인 얼굴... 그런 할머님의 얼굴이 이상하게도 고요하고 편안해 보인다. 저런 할머님의 표정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난 밥상을 내려놓고 할머니를 똑바로 뉘었다. 그리고 말했다. "할머니...이젠 안 아플 거에요." 난 이불을 덮어드리고.....전화를 걸었다. "엄마....할머니 돌아가셨어요." 그때서야 눈물이 나왔다. 10년동안 병석에 계셨던 할머님의 찡그린 얼굴은 바로 할머님의 고통스런 영혼의 표정이었던 것이다. 몸의 고통에서 해방된 할머님의 영혼은 할머님의 평온한 표정처럼 이제 더 이상 아프지 않을 것이다. 더이상은..... ..........마지막 해커로부터.......... [마지막 해커] -시간의 역류- (9) 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엘레베이터 문이 열리길 기다리고 있었다. 흥분 감으로 엔돌핀이 솟는 것이 느껴졌다. 조금만 지나면 난 그 실체를 직접 볼 수가 있다. '빨리 나타나라...빨리....' 뜸을 들여 공포감을 증폭시키려는 것일까? 엘레베이터는 멈춘 채로 움직이지 않고 있다. 고요하다. 시간이 정지해 버린 것만 같았다. 이대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다. [덜컹!] 갑자기 엘레베이터가 흔들렸다. '뭐...뭐지?' 이상했다. 이 느낌 낯설지가 않다. '이...이건...' 갑자기 호흡이 가빠지고 몸이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떨리고 있다. 흥분 때문이 아니다. 이건 공포감이다. '알아...난 알아...언젠가 느낀 적이 있어. 이 공포감...제기랄 이게 아니야!' 어렸을 적 3층에서 떨어진 기억이 있는 나, 그래서 고소 공포증이 있는 나... 나의 몸이 반응을 한다. 어렸을 적과 똑같은 느낌이다. 추락이다. 등골을 타고 내려가는 소름이 나를 전율시켰다. 나의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식은땀이 느껴진다. "추락이야...이건 추락이라고...!" 그렇게 소리를 지르며 엘레베이터의 문을 강제로 열기 시작했다. 난 필사적이었다. 떨어지는 것에 대한 공포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나... 심장이 터질 것처럼 두근거리고 있다. 엘레베이터의 문이 조금 열린다. 난 생긴 틈으로 손을 넣고 있는 힘을 다해 문을 열기 시작했다. 문이 열린다. 난 발로 문을 밀어붙이고 겉옷을 벗어 엘레베이터 위쪽을 드러난 공간 사이에 끼워 넣었다. 바지의 혁대를 풀러 다른 쪽 문도 고정시켰다. 문을 고정시킨 후 찬호를 보았다. 찬호는 엘레베이터의 구석에 여전히 주저앉아 머리를 부둥켜안고 있다. "일어나!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일어나라고...! 내가 그를 흔들며 일으키려 하자 그는 손을 허우적거리며 소리질렀다. "으아아아! 하지마! 날 건드리지 마!" 그는 공포심으로 제 정신이 아니다. 난 그를 억지로 문 쪽으로 끌고 갔다. 그리고는 내가 먼저 엘레베이터 위쪽으로 드러난 8층의 공간으로 빠져 나왔다. 난 엎드려서 엘레베이터 안으로 손을 들이밀고 소리쳤다. "손을 줘! 손을 달라고... 안 그러면 죽어! 빨리 손을 달란 말이야." "못해...못해요... 못한다고요!" 그는 주저앉은 채로 부들부들 떨며 손을 줄 생각을 않고 있다. "이 새끼야. 정신차려! 정신차리란 말이야! 날 봐! 날 보라고 빨리...." 그가 부들부들 떨며 고개를 들어 날 보았다. "잘 들어...너 따위 죽는 거 나 신경 안 써! 알아? 난 너 잘 알지도 못해. 너랑 술도 한 잔 같이 먹은 적 없어. 그러니 너 죽었다고 슬퍼하지도 않아. 떨지 말고 잘 들으란 말이야. 이 새끼야! 니가 어디에 빠져서 죽든, 누구에게 맞아 죽든 신경 쓰지 않지만... 내 앞에선 죽지 말란 말이야. 내 눈앞에선 아무도 못 죽어. 내가 허용안해. 인정 못한다고! 알겠어! 내 눈앞에서 다신 아무도 죽게 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단 말이야! 빨리 내 손잡아. 안 그러면 내손으로 널 죽여버릴꺼야! 어서 잡아! 어서!" 난 이를 악물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나의 소리침에 정신을 조금 차린 것 같다. 심하게 떨리는 손을 힘겹게 나에게 내민다. 난 그가 내민 손을 부여잡고 끌어당겼다. 손이 엘레베이터 밖으로 나왔다. [덜컹] 다시 한번 엘레베이터가 움직인다. 탈출할 수 있는 구멍이 더욱 작아졌다. "빨리!" 그가 고개를 내밀었다. 난 있는 힘을 다해 그를 끌어당겼다. '살려야 해. 다시는...다시는 내 눈앞에서 아무도 죽지 못해. 아무도...' 그의 얼굴이 보였다. 눈을 감고 거의 나의 힘에 의해 끌려 나오는 그를 향해 소리쳤다. "조금만 더... 힘내라고! 정신차리고 힘내란 말이야!" 그가 눈을 떴다. 그의 살려는 의지가 느껴진다. 끌어당기는 나의 팔에 힘이 덜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 나오란 말이야. 어서! 할 수 있어...제발, 빨리....!" 구할 수 있다. 살 수 있다고....어서 나와! 어서... 그때 갑자기 내가 그를 향해서 끌어당겨지는 것을 느꼈다. '뭐...뭐야! 헉...' 굉장한 힘이다. 그가 다시 엘레베이터 안으로 들어가려고 발버둥치고 있다. '왜? 도대체 왜? 들어가면 죽는단 말이야 빨리 나와야 한다고....그런데 왜?' 난 그를 보았다. 그의 얼굴은 정상인의 얼굴이 아니었다. 공포로 일그러진 그의 얼굴은 끔찍했다. 마치 악마라도 본 것처럼 심하게 떨면서 그는 내 손을 놓으려고 발버둥친다. 그의 공포어린 눈동자는 내 뒤를 보고 있다. "뭐하는 거야! 뭐하는 거냐고!" "으아아아아아!" 그는 소리를 지르며 계속 나의 팔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친다. 난 그의 팔을 놓지 않으려 있는 힘을 다했다. 식은땀이 쏟아져 내린다. "놔줘! 놔주라고....으아아....안돼!" 그는 나의 뒤를 보며 소리질렀다. 뒤에 도대체 무엇이 있는 거야? 왜 그래? 도대체 무엇을 보고 그러는 거냐고? 난 뒤를 돌아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다. 조금 있으면 엘레베이터는 떨어져 버릴 것이고, 난 어떻게 해서든 이 사람을 구해내야 한다. 이를 악물고 그를 끌어내려 했지만 그의 힘은 너무도 엄청났다. "나와! 제발....제발....!" 난 필사적으로 그의 팔을 잡아 당겼다. [카캉...탁!] 쇠줄이 끊어지는 소리.... [퍼걱...] 끔찍한 소리와 함께 난 뒤로 나가떨어졌다. [슈우우욱] "안돼!" 내 눈앞의 엘레베이터가 사라져 버렸다. 시커먼 빈 공간만이 나의 눈에 들어왔다. 비틀거리며 일어서 엘레베이터 쪽으로 갔다. 다리가 휘청거리며 중심을 잃고 넘어질 뻔했지만, 난 겨우 몸의 중심을 잡고 섰다. 멍하니 나의 손을 보았다. 조금 전 까지만 해도 나의 옆에 살아 움직이고 있던 찬호의 팔이 팔꿈치 아래로 잘려나간 채로 여전히 나의 손에 들려있다. 끊어진 팔 아래로 피가 쏟아져 내리고 있다. 신발을 신지 않은 나의 발에 뜨겁고 끈적한 그의 피가 느껴졌다. "안돼...아...안돼...안 된다고...!" 난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으아아아아아아!" 난 절규했다. 또 나의 눈앞에서 누군가가 죽어버렸다. 또.... 사람들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 난 엎드린 채로 계속해서 소리를 질렀다. '이건....이건....말도 안돼! 말도 안 된다고.....으아아아!' 피 비린내가 나의 코를 찔렀지만, 상관이 없었다. 또 다시 나의 눈앞에서 누군가 죽어버린 것에 대해 견딜 수가 없었다. 미칠 것만 같았다. (9편 끝...) INTERVAL: 인간에게는 귀소본능이 있다. 술이 취해 아무리 정신이 없어도 다음 날 깨어보면 자신의 집, 자기 침대에 누워있다. 데려다 주는 친구가 없어도 혼자서 잘 찾아 오는 것이다. 영혼에게도 귀소본능이 있다. 그래서 죽은 사람이 쓰던 가구나 옷가지, 물건들은 태워버리게 된다. 안 그러면 영혼이 그것을 떠나지 못하고 그것의 주위를 떠돌게 되기 때문이다. 친구가 겪은 실화이다. 친구는 자취를 하고 있었다. 집으로 오는 길에 친구는 멀쩡한 흔들의자가 버려져있는 것을 보고 그것을 들고 자신의 집으로 가져왔다. 묻어있는 오물들을 닦고 보니 새것처럼 좋았다. 친구는 신나서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좋은 의자가 생겼다면서....... 몇 일 뒤 친구의 집으로 찾아갔다. 의자는 없었다. 난 친구에게 자랑하던 그 의자는 어딨냐고 물었다. "응? 그 의자 버렸어." "왜? 새것 같다며 좋아했잖아." 친구는 날 보며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새벽에 오줌 마려서 잠이 깼는데 보니까 누가 앉아 있잖아." 그가 본 것은 분명 귀신이었을 텐데도...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다니..... 술을 좋아해서 일까? 간 하나는 엄청나게 부어 있는 친구이다. ..........마지막 해커로부터.......... [마지막 해커] -시간의 역류- (10) 추락한 엘레베이터에서 시체를 꺼내는 오렌지 색의 구조복을 입은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경찰들은 모여있는 주민들을 해산시키기 위해 마이크로 방송을 하고 있다. 나에겐 그들의 목소리가 윙윙거리는 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꿈 속에 있는 것만 같았다. 나의 시야에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사람 나타났다. 그가 누군지 잘 생각나지 않았다. 넌 누구냐? "황기자...괜찮은 거야?" 날 바라보는 사람은 주 형이었다. 찬호의 잘려진 팔에서 흘러나온 피를 뒤집어 쓴 채로 출입구 계단의 구석에 멍하게 앉아 있는 날 보며 주 형사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가 나에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물을 적신 수건이다. "닦아. 얼굴에 있는 피 때문에 보기가 흉해." 난 그가 주는 수건을 받을 생각도 하지 않고, 그를 보지도 않고 말했다. "담배 하나만 줘..." 주 형사는 잠시동안 나를 바라보고는 수건을 치우고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여 나의 입에 물려 주었다. 입에 물린 담배를 깊숙히 빨아들였다. 담배 맛이 어떤 지도 모르겠다. 멍하니 그렇게 허공을 바라보며 호흡과 함께 담배연기를 뱉어내었다.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는다. 아니, 아무런 생각도 하기 싫었다. 희미한 나의 시야에 아파트 주민들과 경찰들의 틈 사이를 빠져나오는 현경이 보였다. 그녀는 나를 발견하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잠시동안 놀란 눈으로 날 바라보던 현경은 약간 주저하며 나를 향해 걸어왔다. 내 앞에 선 그녀가 걱정스럽게 날 부른다. "유석씨....!" 그녀가 나에게 무언가를 말하려 했을 때, 주 형사가 현경에게로 다가왔다. "오셨어요? 현경씨..." 언제나 현경을 보며 징그러운 미소를 지었던 주 형도 지금은 웃지 않고 있다. 약간의 심각한 표정까지 지으며 그는 현경에게 무언가 이야기를 했다. 얘기를 끝내고 주 형사는 방금 뽑아 온 커피를 그녀에게 건냈다. 아마도 날 진정시키라고 부탁한 것이겠지. 주 형사가 다른 곳으로 갔고, 현경은 커피를 나에게 내밀었다. "유석씨...괜찮아요? 이것 좀 마셔봐요. 몸이 따스해 질꺼에요." 난 그녀가 주는 커피를 받아 들고는 가만히 그것을 바라보았다. "그래요. 마셔요. 그럼 진정이 좀 될꺼에요." 난 입에 문 담배를 그녀가 준 커피에 집어 넣었다. "난 아무렇지도 않아." 그렇게 말하며 일어서는 날 현경은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어디가려는 거에요?" 난 커피를 쓰레기 통에 던져 버리고 말했다. "경찰서에 가야해. 난 용의자야...길어 질지 모르니까 현경씨가 국장에게 잘 말해줘." 비틀거리며 걸어가는 날 현경이 바라본다. 난 경찰들과 이야기 하고 있는 주 형사에게 갔다. 다가오는 날 보며 주 형사가 물었다. "왜그래?" "빨리 끝내고 싶어." 주 형은 내가 하는 말이 무엇인지 알아듣고는 경찰 몇 명을 손 짓으로 불렀다. 다가온 경찰의 부축을 받으며 사이카로 가는 날 주 형사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멍하니 차 창 밖을 바라보던 나의 눈에 아파트 밖으로 찬호의 시신이 들것에 실려 나오는 것이 보였다. 시신을 덮은 시트가 붉은 피로 물들어 있다. 그때 주 형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 처리하고 곧 갈께....금방 풀려 날 수 있을꺼야." 주 형사는 손에 들고 있는 엘레베이터의 CCTV의 테잎을 흔들어 보였다. 난 주 형사를 보며 말했다. "진짜 주 형 말처럼 용의자가 된건가?" 나의 말에 주 형사가 씁슬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난 앞을 바라보고는 눈을 감았다. 긴장감이 풀려서인지 피곤이 밀려왔다. ********** ********** 어두운 취조실안... 나의 손에 채워져 있는 수갑이 갑갑했다. 주 형사를 기다리는 시간은 몹시 지루했다. [철컹] 문이 열리며 주 형사와 또 다른 한 남자가 들어왔다. 그는 나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강력계 강 인철 형사입니다." 난 악수를 하며 말했다. "많이 불편하군요." "아...죄송합니다. 관행상 어쩔 수가 없었거든요." 그는 나의 손에 채워져 있는 수갑을 풀러주었다. 난 주 형을 보고 물었다. "내 혐의는?" "풀렸어. CCTV에는 너가 찬호를 구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 뿐이었으니까." "그럼 지금 풀어주는 건가?" 나의 질문에 강 인철 형사가 말했다. "물론 입니다. 그러기 전에 잠깐 도와주실 것이 있습니다." 강 형사는 비디오 테잎을 VTR에 넣고는 재생 버튼을 눌렀다. 아까의 장면이 나왔다. 난 고개를 숙였다. "꺼줘. 주 형...." "물어 볼 것이 있어서 그래. 괴롭더라도 참고 봐." "뭘 물어볼려는 건지 알아." 주 형은 강 형사에게 눈짓을 하였다. 강 형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VTR을 꺼버렸다. 찬호가 죽는 순간이 머리속에 그려진다. 난 고개를 숙인 채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그 남자가 엘레베이터 안으로 들어가려고 발버둥을 쳤어. 난 그의 손을 놓치지 않으려고 있는 힘을 다했지. 그는 공포에 질려 있었어. 나의 뒤를 바라보며 손을 놔달라고 소리쳤어." "그게 뭐였지요?" 강 형사가 심각한 표정으로 날 보았다. 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라니?" 주형사가 의아한 듯이 물었다. 난 고개를 들어 주형을 보고 말을 이었다. "아무것도 없었어. 엘레베이터가 떨어지는 바람에 내가 정신이 없었다 치더라도 그렇게 빠른 시간에 내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사라질 순 없을 테니까..." "비디오에선 그가 너의 뒤에 무언가를 보고 놀라하는 모습이 잡혔다고..." "나도 알아...하지만 난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고, 보지도 못했어. 아무것도... 만약 그가 본 것이 사람이었다면... 내가 느끼지 못했을 리가 없다고..." "그럼 그가 본 것이 귀신이라도 된단 말이야?" 주 형사의 말에 한참동안 침묵이 흘렀다. 잠시 후 강 형사는 테잎을 VTR에서 꺼내고는 밖으로 나갔다. 주 형도 일어서며 나에게 말한다. "나가자. 바래다 줄께...." 난 주 형사와 함께 경찰서 밖으로 나왔다. 새벽공기가 시원했다. 난 담배를 꺼내 물고는 불을 붙였다. 진정이 된 것인지 이제 좀 담배 맛이 느껴진다. "많이 놀랐냐?" "주형...내가 놀라는 거 본 적 있어?" 난 그렇게 말하고 담배연기를 한숨과 함께 뱉어내었다. 난 그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답답하고 괴로웠다. 그런 나를 보면서 주 형사가 조용히 말했다. "혜선씨 때문에 그런거지?" "그 이야기 꺼내지마. 기억하고 싶지 않아." 난 그렇게 말을 했지만.......답답했다. 너무도 힘들었다. "이제...이제 겨우 잊어버린 것 같았는데....빌어먹을...." 나의 눈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주 형사가 나의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를 하였다. 자꾸만 눈물이 흘러 나온다. 3년 만에 흐르는 눈물... 난 흐르는 눈물을 애써 닦으려 하지 않았다. 그냥 새벽바람에 지워져 버리길 바랬다. (10편 끝...) INTERVAL: 새벽에 집으로 오다가 갑자기 호러방에서 읽은 '귀신을 부르는 법' 이 생각나 장난 삼아 실험을 해 보았다. 새벽 4시였기에 집으로 향하는 골목길에는 아무도 없었다. 난 뒤를 돌아보며 소리를 질렀다. "거기 숨어있지 말고 나와!" 다시 앞으로 걷다가... 또 멈추어 서서 "숨어있지 말고 나오라니깐!" 다시 걷다가...뒤돌아 서서....으아악 골목길 가로등을 뒤로 하고 아까는 없었던 검은 형체가 보였다. 너무도 놀라서 입을 벌리고 있는 나에게 그 형체가 가깝게 다가왔다. 내가 형체를 육안으로 확인 할 수 있는 거리까지 그것이 왔을 때... "나 알아?" 술이 취한 남자였다. 술김에 벽에다 볼 일(?)을 보고 있던 그는 내가 자꾸 부르자 아는 사람인 줄 알고 다가온 것이다. 휴우....정말이지 오랜 만에 간을 들었다 논 것 같다. 호러방에 있는 글들...결코 흥미를 위해서만 써 놓은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어쩜 사람이 아닌 어떤 무언가가 올려논 글이 있을 지도 모른다. 나에게 다가온 것은 다행히도 취객이었지만... 호러방의 매니아들이여... 조심하라. 어쩜 있을 지도 모르는 사람이 아닌 악마의 글들을.... ..........마지막 해커로부터....... [마지막 해커] -시간의 역류- (11) "아니... 황 유석씨..." 오피스텔로 들어오는 날 보고 경비가 놀라며 불렀다. 그는 나의 바지와 웃옷에 묻어있는 피들에 많이 놀란 것 같다. 난 경비 아저씨를 보면서 웃음 지어 보였다. "보기 흉하지요?" "아...아니...그게...괜찮은 거예요?" "살아는 있으니까요." 난 웃음을 지어 보이며 엘레베이터로 향했다. 그때 나에게 경비 아저씨가 약간 주저하며 말했다. "저기...어떤 분이 찾아오셨습니다. 시간이 그런지라 기다릴 곳이 마땅치 않아서 황기자님 방에서 기다리게 했거든요. 신원도 확실하고 해서..." 난 고개를 끄덕이고는 엘레베이터를 타고 나의 방으로 올라갔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현경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이제 끝난 거예요?" 난 아무런 말없이 현경을 잠시 바라보다가 피가 묻은 옷을 벗기 시작했다. 현경은 막무가내로 옷을 벗어 데는 날 보고는 놀라서 고개를 돌렸다. 샤워실로 들어가 물을 틀고 몸을 닦기 시작했다. 말끔히 씻어버리고 싶었다. 씻겨져 내려가는 피와 함께 아까의 기억도 지우고 싶었다. 샤워를 끊내고 수건을 두른 후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옷장에서 청바지를 꺼내 입었다. 현경이 내가 옷을 입은 것을 확인하고는 신경질 적으로 말했다. "뭐에요! 난 여자로도 안 보여요?" "평생에 여자로 보이는 사람은 하나면 돼." 난 책상 위에서 박스로 사 놓은 초코바를 하나 꺼내 들었다. 그러자 현경은 나에게서 초코바를 빼앗아 책상 위에 놓고 말했다. "5시 반이에요. 지금 기사식당은 열었을 테니까 먹으러 나가요." "그럴 시간 없어." 난 책상 위의 초코바를 도로 들어 포장을 뜯고 반으로 구부려 한 입에 넣었다. 그리고 서랍에서 사진기와 손가방을 꺼내 들었다. 현경은 나의 행동에 짜증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도대체 사람이 왜 그 모양이에요. 자기 생각도 조금은 해야지요. 그러다가 병이라도 나면 어떡하냐고요!" 그녀의 표정은 무척이나 화가 난 것 같다. "당신이 경찰이에요? 기자라구요. 기자... 단지 사건을 보도하기만 하면 되는 게 유석씨 일이에요. 자기의 일은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왜 그렇게 쓸데없는 일에 목숨을 거냐고요. 죽을 뻔한 거 잊어버렸어요?" "잊어버렸어." "그따위로 말하지 말아요." 그녀가 소리를 질렀다. 난 대꾸하지 않았다. "당신만 그렇게 똑똑한 거 아니에요. 왜 사람 말을 무시하는 거냐고요." 난 현경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입을 열었다. "아직도 모르겠어? 이번 사건... 목격자는 다 죽어." 차가운 나의 말에 현경은 말을 잃었다. "죽은 사람... 모두가 소연과 관계가 있는 사람들이야. 윤 소연, 그녀는 순수 미술을 하고 있는 여자였어. 404호의 여고생은 미술대 지원 수험생, 방금 전 내 앞에서 죽었던 504호의 대학생은 죽기 전에 나에게 그녀에 대해서 말하려고 했어. 나머지 목격자들...아직 죽지 않았지만...만약 소연과 관계가 있는 사람들이라면 틀림없이 죽게 되있어." "경찰이 할 일이잖아요." 현경은 어느 정도 진정을 한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화는 가시지 않은 목소리였다. "왜 당신이 그렇게 난리냐고요. 주 형사님도 있고 다른 경찰들도 범인을 검거하기 위해 애쓰는데... 왜 당신이 경찰인 것 마냥 그러는 거냐고요. 아직도 정신 못 차려요? 당신도 죽어요. 그 살인범이 당신은 예외로 둘 것 같아요?" "경찰은... 눈에 보이는 명확한 증거가 없으면 움직이지 않아. 증인들의 비현실적인 목격시간... 아무런 흔적도 없는 엘레베이터의 살인, 도대체 무엇을 단서로 움직인다는 거지?" 현경은 한 숨과 함께 따지듯 묻는다. "그럼 유석씬 무엇 때문에 움직이는 거지요? 경찰도 찾지 못한 단서라도 찾은 거에요?" 난 남방을 꺼내 입고는 챙겨둔 물건을 들고 그녀를 보았다. "난 내 직감을 믿어." 뒤돌아 선 나의 귀에 현경의 목소리가 들렸다. "당신답지 않아요." "......" "냉정했던 유석씨가 아니에요. 왜 그렇게 감정적인 건가요. 왜?" 난 대답을 하지 않고 밖으로 나왔다. 어쩌면... 그녀의 말처럼 난 냉정하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 내 자신도 내가 왜 이렇게 감정적으로 행동하는지에 대해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그런 것은 상관없다. 난 알고 싶었다. 그 살인범이 도대체 어떤 짓을 하고 있는 건지... 도대체 이 수수께끼의 비밀이 무엇인지... 그 끔찍한 일이 일어난 지 6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난 또 그 아파트로 간다. 미친 짓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풀어야 한다. 피살자들의 연계고리를 찾아야 한다. 또 다른 살인이 일어나기 전에... 모두 죽기 전에.... (11편 끝...) INTERVAL: 무지무지 예쁜 여자를 만났다. 정말로 무지무지 이뻤다. 그런데 그 이쁜 여자를 보면서 엉뚱한 생각이 떠올랐다. "전설의 고향" 예전부터 귀신의 역할은 그 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미인이 맡았다. "구미호"가 그랬고, "내다리 내놔" 가 그랬다. 가장 아름다운 미인이 가장 무서운 귀신의 역할을 하였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이쁜 여자 = 귀신 이 공식이 맞는 다면... 이쁜 여자는 다 귀신이니까... 이쁜 여자는 무조건 멀리해라... 맞는 이야기인가? 이 나이 먹도록 아직도 풀지 못한 비밀이다. ..........마지막 해커로부터........ [마지막 해커] -시간의 역류- (12) 새벽의 빛은 너무도 푸르다. 공해로 찌든 세상이지만 새벽 빛의 아름다움만은 인간의 추악한 행동으로도 오염시킬 수 없는가 보다. 난 그래서 새벽 빛이 좋다. 하지만... 지금의 새벽 빛은 그렇게 아름답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살해된 사람들의 영혼 때문인가? 난 지금 폐쇄된 아파트의 엘레베이터를 바라보고 있다. 내 눈앞에서 죽어간 찬호의 눈이 날 보고 있는 듯 하다. 난 머리를 흔들어 찬호의 눈빛을 지우려 했다. 그리고는 1404호, 윤소연의 집으로 가기위해 계단을 올랐다. 언제나 13층까지 뛰어다녔던 나였기에 그녀의 집까지 올라가는 것은 힘들지 않았다. 하지만 자꾸만 떠오르는 3년전 기억으로 발걸음이 무거웠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랑했던 여인, 김혜선... 그녀의 시선과 작은 손 짓 하나 하나까지 나에겐 모두가 커다란 의미로 다가왔던, 내 마음속의 천사... 그토록 사랑했던 여인이 바로 내 눈 앞에서 죽어갔을 때... 난 맹세했었다. 다시는 아무도 내 앞에서 죽게 하지 않겠다고... 3년 동안 잊으려 애써왔고, 잊었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 나에게 찬호의 죽음은 너무도 큰 고통이었던 것이다. [1404] 첫번째 희생자인 소연이 살아있을 때, 거주하던 아파트... 분명, 여기에 단서가 있을 것이다. 난 심호흡을 크게 들이키고는 손가방에서 수술용 장갑을 꺼내 손에 끼웠다. 그리고는 가방속에 초코바 한개와 얇고 가는 쇠뭉치 꾸러미를 꺼냈다. 초코바의 껍질을 까서 입에 물고는 쇠뭉치 꾸러미에서 열쇠구멍 크기에 맞는 두개의 쇠핀을 꺼내 문 손잡이로 가져갔다. [철컹] 소리가 경쾌하다. 난 이 소리가 좋다. 그래서 오피스텔의 열쇠도 일부러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 열쇠로 여는 것 보다, 이 두개의 쇠핀으로 잠긴 문을 여는 것에 쾌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가끔 옆 집의 신고로 경찰에게 끌려간 적도 있지만, 그래도 언제나 난 이 방법을 고집하고 있다. 가만히 손잡이를 잡고 문을 열었다. 갑작스런 한기는 느껴진다. 아직은 컴컴한 방안이 끝이 없는 미궁처럼 보였다. 난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갔다. 어둡지만 불을 켜서는 안된다. 앞 동 사람들이 신고를 할 것이고 그러면 골치아파 질 것이 뻔하다. 난 손 가방에서 조그만 손전등을 켜고 조사를 시작했다. 먼저 거실을 둘러보았다. 여러가지 석고상, 이젤...미 완성의 그림들.... 전형적인 미술가의 방이다. 정돈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지저분 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것들이 놓여 있는 위치가 마치 원래 거기에 놓여 있어야만 하는 것 처럼 잘 조화 되어 있기 때문이다. 거실의 여기저기를 살펴보았다. 그러나 단서가 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어쩌면 경찰들이 먼저 조사를 해서 단서가 될 만한 것은 모두 가져 갔을지도.. 하지만 난 그들이 찾지 못한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난 방안을 조사하기로 마음먹고 문을 열었다. 침대가 놓여져 있고 그 옆에 화장대가 보인다. 특이한 것은 방의 중앙에 자리잡고 있는 캔버스였다. '중요한 작품인가? 그래서 따로 방안에 둔 것일까?' 난 손전등으로 캔버스를 비추어 보았다. 그 순간 알 수 없는 감정이 나를 휘감았다. 그녀의 모습이다. 아름다운 미소를 짓고 있는 소연의 모습이다. 연필로 정교하게 스케치 된 그녀의 그림... 죽기 직전까지 그리던 그림인 듯 해보였다. 상반신까지 유화로 칠해져 있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살이있는 것 처럼 보였다. 너무도 아름다왔다. 사진에서의 모습보다 더욱 아름답게 표현된 그녀의 그림을 보며 난 넋이 나간 듯 아무런 행동도 못하고 서 있었다. 마치 손을 내밀면 나의 손을 잡아 줄 것만 같다. 난 가슴이 두근거렸다. 가만히 그 그림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내가 왜 여기에 왔는지 조차도 잊어버리고 있다. 웃고 있는 그녀의 그림에서 또 다른 감정이 느껴진다. 슬픔이다. 그녀는 그림 속에서 분명 웃고 있지만 그 미소 속에는 슬픔이 베어 있었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슬픈 미소를 짖고 있는 걸까?' 난 그림 속에 빠져 들것만 같았다. "왜 그렇게 감정적인 건가요!" 갑자기 현경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감정적.... "냉정했던 유석씨의 모습이 아니에요." 감정적... 감정적이라고? 감정적이라고? 가슴 한 구석에서 떠오르는 것이 있다. '마...말도 안돼. 이럴수가...' 난 고개를 숙였다. 이제 알았다. 왜 그렇게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나도 모르는 감정들에 빠지게 되었던 건지... 사랑이었다. 말도 안돼. 사랑이었어...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그렇게 끔찍하게 죽은 여인의 모습을 보고 어떻게 사랑을 느낄 수가 있을까... 하지만 사실이었다. 난 머리를 저었다. '말도 안돼....말도 안된다고....' 처음으로 혜선을 보았을 때와 똑같다. 혜선을 보았을 때, 난 살아있는 천사를 본 것 같은 착각에 빠졌었다. 마찬가지로 소연의 죽은 모습을 찍은 사진을 보고 컴퓨터의 사건 폴더의 제목에 나도 모르게 [하얀 천사]라고 적어 넣었던 나... 이젠 알 수 있다. 분명 난 살해된 소연에게서 사랑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제기랄..." 난 고개를 들고 그림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사랑이라고? 말도 안돼.... 난 혜선이 죽은 이유로 아무에게도 사랑을 느끼지 못했어. 그런데...왜 도대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죽어버린 소연에게서 그런 마음을 느끼는 거냐고....도대체 왜!" 난 나의 감정을 부정하려 애썼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 더 확실해졌다. 사건을 접하면서 왜 그렇게 감정적이 되어 갔던 것인지, 냉정하지 못하고 왜 그렇게 분노에 치달았는지... 사랑이었다. '하지만 전혀 알지도 못하고 말도 한 번 나눠 보지 않았다고... 사랑이란 감정, 나에게 그렇게 쉽게 다가올리 없어. 이건 아니야...아니라고....' 눈을 감고 마음속으로 아니라고 소리쳤다. 그러나 부정할 수가 없었다. 더욱 더 확실해져만 갔다. 고개를 들고 눈을 떴다. 소연의 그림이 다시 나의 눈에 들어온다. '사랑이라고....? 사랑....?' 멍하니 그림 속의 소연을 바라본다. 난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사랑이라는 단어 이외에는....... 얼마나 그렇게 멍하게 서 있었을까? 갑자기 느껴지는 이상한 기운에 몸이 움츠러 들었다. '뭐지? 이 느낌은...' 순간 온몸에 소름이 끼치며 심장박동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누군가 뒤에서 날 보고 있다. '뭐...뭐야... 도대체...' 두근 거리는 심장의 소리가 귀에 들리는 것 같다. 식은땀이 흘러 내렸다. 난 공포감으로 굳어버린 몸을 겨우 움직여 뒤돌아 섰다. "헉....!" 숨이 턱까지 막힌다. 비명조차 지를 수 없다. 난 내 눈을 의심하였다. 도대체 어떻게 이럴수가... 이가 딱딱거리며 부딪혔다. 이런 공포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다. 지금 내 눈 앞에 보이는 것은 바로... 그림 속에 소연이었다. 환상이 아니다. 하얀 얼굴... 긴 머리칼... 날 바라보고 있는 차가운 눈빛... 모든 것이 현실이었다. 겁이 없다고 자부한 나... 하지만 지금 난 지독한 공포감으로 나의 몸을 제어 할 수가 없다. 그녀가 날 보고 서있다. 분명 머리와 몸이 잘려진 채로 추락사한 소연이 지금 내 앞에 서있는 것이다. (12편 끝...) INTERVAL: 공포와 가장 가까운 감각을 하나 뽑으라고 한다면 무엇일까? 그것은 고통이다. 고통은 공포에서 빼 놓을 수 없는 부가적 감각이다. 다음 INTERVAL부터는 바로 그 고통에 대해 적어보려고 한다. ..........마지막 해커로부터........ [마지막 해커] -시간의 역류- (13) [우당탕] 난 자리에 주저앉아 뒤걸음질 치다 그림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떨리는 다리를 주체 할 수가 없다. 몸이 모두 따로 놀고 있었다. 심장은 자기 멋대로 뛰고 있었고, 이빨은 소리가 들릴 정도로 딱딱거리며 부딛히고 있다. 도대체가 내 몸 자체를 제어할 수가 없다. 내 눈 앞에 서 있는 소연의 모습이 내 호흡마저 멈추게 하려 한다. 이런 공포, 일찌기 느껴본적이 없었다. 흘러내리는 식은땀이 나의 목덜미를 타고 내려왔다. 그녀는 차가운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얼마동안을 그렇게 바라보던 그녀가 천천히 나에게로 다가오기 시작한다. 난 뒷걸음질 치며 뒤로 물러섰다. '안돼... 빌어먹을... 안된다고... 이건 꿈이야. 생시가 아니야.' 제발 꿈에서 깨길 바랬다. 저 형체가 내 눈 앞에서 사라지길 바랬다. 하지만 나의 바램과는 상관없이 그녀는 점점 더 나에게로 가까이 왔다. "제기랄... 제발 사라져 버려... 꿈이라면 빨리 깨라고... 빨리...!" 난 그렇게 소리를 지르며 눈을 감았다. 내가 다시 눈을 뜰 때, 그 공포스런 형상이 없어져 있길 원했다. 난 잠시 후, 가만히 눈을 떠 보았다. "......" 꿈도 허상도 아니다. 지금 그녀는 바닥에 떨어져 있는 그림을 들어 제자리에 놓아두고 있다. '정신차리자. 이렇게 주저 앉아 있으면 안돼... 정신차려...황 유석... 정신차리라고....' 난 이를 악물고 억지로 일어났다. 아직도 나의 다리는 떨리고 있었지만, 그렇게 주저앉아 있을 수 만은 없었다. 내 앞에 나타난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해야만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404호의 여학생과 504호의 남자가 죽은 이유가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이 형체 때문이라면... 난 지금 날 죽일 수 있는 살인범과 함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녀는 죽었는데, 분명 죽은 그녀의 모습을 내가 확인했는데 어떻게 내 앞에 나타나 있는 것일까... 그녀는 고개를 돌려 날 바라보았다. 소름이 끼쳤지만, 애써 진정을 하였다. 난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에게 물었다. "당신은...도대체 뭐지? 윤 소연은 죽었어.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내 눈 앞에 나타나 있는 거지?" "언니가... 죽었다고요.......?" '언니?' 놀란 듯한 표정은 아니다.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한 반문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저를 언니와 착각하지요." 그녀는 그림으로 시선을 옮기며 말을 이었다. 무척이나 차분하고 가라앉아 있는 목소리다. "전 소연언니의 쌍동이 동생 윤 소희에요. 언니의 편지를 받고 유럽에서 지금 한국에 도착 했어요. 하지만... 내가 너무 늦었군요." '소연의 동생이라고? 그럼 지금 내 앞에 있는 여자가 소연이 아니라... 소연의 동생 소희...?' "언니만 한국에 남고 우리 가족은 모두 유럽으로 이민을 갔어요. 그런데 이런 일을 당하다니..." 그녀의 슬픈 눈동자... 그림 속 소연의 모습과 너무도 흡사하다. 난 그녀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저..정말 소연의 동생이란 말입니까?" "네... 일란성 쌍동이에요." "확인 해 봐도 될까요?" 그녀는 여전히 소연의 그림을 바라본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난 핸드폰을 꺼내 떨리는 손으로 주 형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한참 울리다가 목소리가 들렸다. "어떤 놈이야! 꼭두 새벽부터.....!" "나..나야. 황기자...." 신경질적인 주형의 목소리가 전화를 건 사람이 나라는 것을 알자 부드러워 진다. "우하암... 황기자야? 왜? 무슨 일인데?" "인적사항 좀 알아봐줘. 빨리... 급하니까." "인적사항이라니 누구의?" "피살자 윤 소연의 인적사항..." "그건 왜?" "지금은 말하기 곤란해. 빨리 좀 알아봐줘." 난 전화를 끊고 소연의 동생 소희라는 내 앞의 여자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캔버스의 그림에 손을 가져가 마치 살아있는 언니의 얼굴을 쓰다듬듯이 그림을 쓰다듬었다. 그 모습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슬픔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느끼게 하였다. 멍하니 말을 잃고 그녀를 바라보는 나에게 그녀가 물었다. "누구신가요...?" 차가운 목소리... 난 최면에서 깨어난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저..전 윤 소연씨의 친구입니다." 나도 모르게 거짓말을 하였다. "그럼 언니의 편지 속에 적혀있는 친구 중 한 분이겠군요." "편지 속의 친구....?"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었지요. 혹시? 강 현민씨?" '강현민...? 1004호 목격자....' "아닌가요? 그럼 한경찬씨?" '한경찬은 704호 목격자 잖아...이...이런...' 난 순간적으로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혹시 편지에 윤 혜지와 정 찬호, 김 성수, 한 주희의 이름도 있습니까?" 내가 다급하게 묻자 그녀는 이상한 듯이 날 바라보고는 말을 이었다. "예, 한 명만 빼고요. 김 성수라는 이름은 처음 들어보는 군요." 김성수... 304호 목격자...실직한 30대 후반의 남자....! 그렇다면 혹시... "언니는 위험을 느끼고 있었어요. 그래서 나에게 편지를 보냈지요. 빨리 와 달라고..."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눈물 같은 것을 흘리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그녀의 슬픔을 짐작할 수가 있다. 하지만 난 아직까지 그녀의 말을 전부 신임할 수는 없었다. 또 다른 소연의 모습을 한 여인... 정말 그녀의 말처럼 피살자의 동생 소희가 맞다는 것일까? [디리리리리링] 긴장감을 가르는 전화벨 소리... 난 핸드폰을 꺼내 들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응. 나야... 주 형사..." "내가 말한 것 조사해 봤어?" "응. 그녀의 다른 가족들은 모두 유럽으로 이민을 갔어. 부모님과 여동생이 하나 있는데... 여동생이라고 하긴 좀 그렇군. 나이가 같아. 쌍동이 인가봐. 이름은 윤 소희고 아버지 이름은..." "거기까지... 고마와! 확인해 줘서..." "무슨 단서라도 찾은 거야?" "나중에 이야기 할께..." 난 전화를 끊고 소희를 보았다. 소희는 침대에 앉아 있었다. 어느새 아침 햇빛이 창문으로 들어와 침대 위에 앉아 있는 그녀의 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천사와 같은 모습이다. 너무도 아름답다. "편지 좀 볼 수 있을 까요?" "언니의 편지요?" "네에... 지금 혹시 가지고 계십니까?" 그녀는 주머니에서 반으로 접은 종이를 꺼냈다. "솔직히 편지라고 할 수도 없어요. 주소를 쓴 봉투에 이름과 자신이 위험하다는 말만 쓰여 있었으니까요." 난 그녀가 준 편지를 펴 읽어 보았다. 김 성수를 뺀 나머지 목격자들의 이름이 모두 적혀있다. 그리고 밑에는 단 한 줄의 글이 적혀 있었다. [나...어쩌면... 죽을 지도 몰라.] 소연은 자신의 죽음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편지에 적힌 사람들의 이름은 그녀의 죽음과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가? 도대체 어떻게 목격자의 이름이 소연의 편지에 정확히 씌여져 있는 것일까? 그리고 김 성수의 이름은 왜 편지에 적혀 있지 않은 것일까? 난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혼란에 빠졌다.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알았다. 편지를 내려놓고 소희를 보았다. 그리고 애써 마음을 진정하면서 조용히 말했다. "소연을 죽인 범인은 여기 적혀 있는 사람들 모두를 죽여가고 있습니다. 이미 주희라는 여고생과 찬호라는 대학생이 죽었습니다. 만약 범인이 소희씨를 보게 된다면..." "저도 죽게 되겠지요." 그렇게 말하며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이 무척 슬퍼보였다. "여기 있으면 안돼요. 죽임을 당하기 전에 안전한 곳으로 피해야 합니다. 나머지 살아있는 목격자들도 마찬가지이고요." "아니요...." "아니라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소희는 언니의 그림을 보고는 여전히 차분한 목소리를 말을 이었다. "그 살인범이 날 언니로 착각한다면... 분명 다시 절 죽이러 올 거에요." 난 그녀의 말을 이해하고는 놀라서 외쳤다. "안됩니다. 그건 너무 위험해요." "그거 밖에는 없어요. 그 범인을 잡는 방법은..." 소희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결심을 굳힌 것 처럼... (13편 끝...) INTERVAL: 고통의 원인은 아주 여러가지가 있다. 그 중 가장 빠르고 손쉽게 고통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은 신체에 직접적인 자극을 주는 것이다. 고통의 원래 목적은 인간의 병이나 목숨과 관계된 위험한 신호를 알리는 꼭 필요한 하나의 감각기관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고문의 도구와 자백의 방법으로 사용하고 있다. 고통을 견디는 것은 너무도 괴로운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이용하여 아주 오래전 부터 사람들은 고통이라는 감각을 원래 목적과는 다른 곳에 사용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신이 주신 신체의 위험에 대한 경보의 기능을 이렇듯 나쁘게 오용하고 있는 우리들... 도대체 인간은 어디까지 잔혹해 질 수 있는 것일까? 선비의 나라 한국이라 불리워 지는 대한민국... 전혀 걸맞지 않은 이름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잔인성은 세계에서 가장 으뜸가는 것으로 보고 되어지고 있다. 월남 전 때 그것이 명확히 나타났다. 베트공이 가장 무숴워하고 다가가기를 꺼려했던 곳이 한국 주둔 기지였다고 한다. 여기서 그 잔인성을 대표하는 예를 한가지 들어보려고 한다. 우리 나라 군인은 베트공 포로를 잡아두고 죽이지 않은 채로 묶어 둔다. 그리고 신병이 들어오면 훈련이라는 명분으로 신병에게 잡혀있는 포로의 몸에서 아무거나 한가지씩만 가져오라고 명령한다. 신병이 포로에게 가 보았을 때, 포로는 몸에 아무것도 걸쳐있지 않은 알몸의 상태... 도대체 무엇을 가져오라는 걸까? 잠시 후, 신병이 고참들에게 가져왔을 것이 무엇인지 상상해 보라 만약 상상이 된다면... 당신도 역시 잔인한 민족인 한국인의 피를 물려받은 후손임이 분명한 것이다. 신병이 가져온 베트공 포로의 몸에 있는 물건.... 모든 것을 신병이 아닌 잡혀있는 포로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라. 그러면 그 고통이 어느정도인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눈 앞에서 자신의 신체의 일부가 하나씩 제거 되어지는 그 상태에서 과연 어느 강심장이 끔찍한 공포를 느끼지 않고 견딜수 있을까? 우리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런 국민이다.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키키킥 ..........마지막 해커로 부터........ [마지막 해커] -시간의 역류- (14) "들어오세요. 방이 좀 그렇지만..." 소희는 현관 문 앞에 서서 나의 방안을 둘러보았다. 많은 사진들과 기사글을 벽지 처럼 붙여 놓은 내 방을 그녀는 신기한 듯이 바라보았다. "좀 지저분 하지요? 하하..." 난 쑥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나의 말에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안으로 들어왔다. 난 침대위의 여러가지 잡동사니들을 치우며 그녀가 앉을 만한 곳을 마련해 주었다. "앉아요. 남자 혼자 사는 방이라 좀 그래요. 하지만 지금은 마땅히 어디 다른 곳으로 가기도 뭐해서... " "취미가 참 독특하군요. 이런 끔찍한 사진들을 모으는게 취미인가요?" "하하... 직업상 어쩔수가 없었습니다." 그녀는 주위를 바라보다가 나의 컴퓨터 모니터에 붙어있는 사진을 바라보고는 표정이 굳어 버렸다. 난 그녀가 바라본 것을 보았다. 소연의 죽은 모습을 찍은 사진... 난 당황하여 그것을 떼어 감추었다. "미...미안해요. 이걸 띈다는 것을 깜빡 했군요." "보고 싶어요." 그녀는 굳은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난 망설이다가 그녀의 단호한 표정에 사진을 건넸다. 소희는 그 사진을 한 참 동안 바라보다가 말했다. "이것이 우리 언니의 마지막 모습이군요." 언니의 죽음의 소식을 듣고도 울지 않던 소희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끔찍하게 죽은 언니의 모습을 보는 동생의 마음을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난 착찹한 심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우리 언니의 친구분이 아니지요?" 소희의 물음에 난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그녀의 눈물은 말끔히 닦여 있었다. 난 당황하여 말을 못했다. 소희는 사진을 내려 놓고는 말을 이었다. "이 많은 사건 기록들... 죽은 사람들의 사진들... 경찰이신가요?" "아..아닙니다." "그럼 제가 경솔하게 행동한 건지도 모르겠군요." "예? 뭐...뭘 말이지요?" "친구가 아니라면... 당신이 우리의 언니를 죽인 살인범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요." "아... 아닙니다. 전... 그게 아니라... " 그녀는 당황하는 날 보며 미소를 지었다. '아... 정말... 아름답다.' "알아요. 당신이 아니라는 거... 날 죽일 생각이었다면... 이미 언니의 아파트에서 죽였을테니까요. 그리고 당신이 살인범이었다면..." 그녀는 나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따스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지 않았을 꺼에요." 난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마치 발가벗긴 채로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에 내버려진 기분이었다. 그녀의 눈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난 피우려던 담배를 내려놓고는 그녀의 눈과 마주치지 않으려 뒤돌아 섰다. "저... 전 기자입니다. 이번에 소연의 살인사건에 대한 기사를 쓰고 있어요. 조사를 하다가... 자꾸만 미스테리로 빠져들어서 무언가 단서를 찾을 수 있을까 해서 아파트로 간 거지요." 소희는 대꾸가 없다. "그..그러다가 소희씨를 보게 되었고... 전 소희씨가 죽은 소연씨인 줄만 알고 나도 모르게 그렇게 당황했던 겁니다. 제... 제가 그런 눈으로 소희씨를 보았던 것이 이상했다면... 그.. 그게 아니라... 사실..." 난 나답지 않게 자꾸만 말 끝을 흐렸다. 하지만 여전히 소희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난 이상한 생각이 들어 뒤돌아 보았다. 피곤한 것이 었을까? 그녀는 나의 침대위에 자신의 가는 팔을 벼개삼아 엎드려 있었다. 허리까지 오는 긴 머리칼이 침대위에 흐르는 물처럼 흩어져 있었고, 숨을 쉴 때마다 조금씩 움직이는 그녀의 가녀린 어깨가 아름다운 한마리 하얀 새의 깃처럼 보였다. 너무도 아름답다. 마치 여신이 나의 집에 나타난 것 같은 모습이었다. 난 가만히 그녀에게로 다가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그녀는 깊은 잠에 빠진 듯 하다. 난 조심럽게 그녀의 어깨에 손을 가져갔다. 그녀의 옷깃에 손이 닿을 때 난 잠깐 멈칫 하였다. 마치 손을 대서는 안되는 성역에 함부로 침입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냥... 우리와 똑같은 사람일 뿐이야... 우리와 똑같은...' 하지만 그녀는 사람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신비스러운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었다. 난 조심스럽게 그녀를 부축하여 나의 침대에 편안히 눕히곤 시트를 덮어주었다. 그녀는 잠깐 뒤척이더니 이내 다시 깊은 잠에 빠져 든다. 난 한동안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럴 상황이 아닌데... 왜 이렇게도 나의 마음이 행복해 지는 것일까? 마치 소연이 살아서 나의 집에 와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정말 오랜만의 일이었다. 이런 행복을 느낀 것은... 3년전 혜선에게서 느꼈었던, 그리고 이제는 잊어버린 것이라 생각했던, 행복이란 감정, 그리고 사랑이라는 감정... 난 핸드폰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그녀의 잠을 깨우고 싶지 않았다. 언니를 잃어버린 마음의 상처로 힘들어 하고 있는 소희의 휴식... 잠이 깨면 다시 그 상처가 떠오르겠지만, 지금 이 순간 만큼은 그녀의 평온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난 현관문 밖 오피스텔의 복도에 앉아 담배를 꺼내 물고 불을 붙였다. 그리고는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잠시 후 상대방의 목소리가 들린다. "강력계 주형사입니다." "나야... 황기자..." "지금 어디야? 아까 그 전화는 도대체 뭐고..." "나중에 설명할께. 주 형이 할 일이 있어. 지금 당장 목격자들의 거주현황을 알아봐줘. 상아 아파트에 아직 남아 있는 사람부터 시작해서 다른 곳으로 임시 대피한 사람까지... 부탁해. 8시간 쯤 후에... 아니 시간은 잘 모르겠어. 하여간... 다시 연락할 테니까 그때 말해."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이봐... 황기자...!!!" 난 잠시동안 말을 않고 보채는 주 형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주 형...." "그래. 말해봐. 궁금해 죽겠잖아. 무슨 일이야?" "난 지금 천사의 휴식을 지키고 있어. 아주 행복하게..." 나의 입가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그려진다. 난 핸드폰을 끊고 눈을 감았다. 출근으로 자신들의 오피스텔 방을 나오는 사람들의 발소리가 들린다. 아마... 지금 나의 집 문 앞에 주저앉아 눈을 감은 채로 웃음을 짖고 있는 날 본다면... 또 다들 그러겠지? 미쳐도 어떻게 저렇게 미치냐고... 상관없다. 난 지금 너무도 행복하다. 이대로 영원히 천사의 휴식을 지키고 싶다. 가슴이 벅차오르는 행복감... 3년전에 이미 잊어 버린 줄 알았던, 사랑에 대한 소중한 느낌... 나의 입가에 미소가 떠날 줄을 모른다. 난 지금 너무도 행복하다. (14편 끝) INTERVAL: 선배가 입원을 해서 병원에 문병을 하느라 글을 쓰는 것이 늦어졌다. 사실 문병이라기 보단 병원에 있는 먹을 것에 탐이 나서 거기서 살다싶이 하는 중이다. 선배 어머니도 억지로 보내다 싶이 했다. 선배가 말했다. "피곤하지 않아? 집에 가서 좀 쉬어." "선배가 입원했는데... 지금 내 몸이 문제야? 내 걱정 하지 말고 형이나 좀 자둬... 아플 땐 잠이 최고래." 다섯개 째 홍도 통조림을 따면서 말했다. 난 통조림 홍도를 너무도 좋아한다. "유석아... 괜찮으니까 가서 쉬어." "내 걱정 말라니까... 우와 딨다 맛있다." "좀 가...응?" "우와 여기 오랜지도 있다. 형 이거 놔두면 쉬니까 내가 먹을께." "가버려 이 새끼야. 정말이지 징그러워 죽겠어. 빨리 좀 내 눈 앞에서 사라지란 말이야." 선배가 신경질을 내는 통에 난 입원실 밖으로 도망 나왔다. "정말이지 사람이 아프면 짜증이 는다는게 사실이군. 하지만 선배는 아프니까 저 정도의 짜증은 내가 감수해야쥐." 내 손엔 여전히 오랜지 두개와 아까 먹던 홍도 캔이 들려 있다. 선배의 입원이 한 3개월 정도로 길어졌으면 좋겠다. 오늘은 집에 가서 베개랑 이불을 가져와야지. 어제 병원에서 그냥 잤더니 너무 목이 아파..... ..........마지막 해커로부터......... [마지막 해커] -시간의 역류- (15) 문득 누군가 건드리는 바람에 잠에서 깨었다. 난 어슴프레 눈을 뜨고 앞을 바라보았다. 넓적한 사각형의 얼굴, 부리부리한 눈, 짙은 눈썹, 한 일자로 꾹 다문 입, 산 만한 덩치, 우락부락한 근육이 드러난 팔뚝..... 내 앞의 그 남자는 날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너 점점 상태가 아주 망가지는 구나?" 난 눈을 번쩍 뜨고 그를 보았다. 주 민성 형사였다. 난 눈을 엄지와 검지로 비비고는 주위를 둘러 보았다. "지금 몇시나 된거야?" "오후 9시야. 회사에 가 보니까 현경씨가 너 출근 안했다고 하더라. 그래서 이리로 온거야. 근데 왜 멀쩡한 방 나두고 복도에서 자고 있는 거야? 열쇠라도 잊어버렸어? 참 넌 열쇠 가지고 다니지도 않잖아." "아우... 그렇게 많이 잔 건가?" 난 일어나 앉으며 담배를 꺼내 물었다. "도대체 아까 그 전화 뭐야?" "내가 알아보라고 한거 알아봤어?" "응. 한 경찬은 아직 아파트에 남아있고, 강 경민은 회사에서 나간 후여서 연락이 안돼고... 윤 혜지는 에어로빅 센타에서 잠시동안 생활하기로 했다는 군." "김 성수는?" 주 형사는 고개를 저었다. "무슨 뜻이야?" "모르겠어. 부인이 그러는데 어제 집을 나가서 소식이 없데." "제길 그럴 줄 알았어. 주 형 빨리 강 현민이 어딨는지 찾아줘. 급해." "김 성수가 아니라 강 경민을 찾으라고? 그는 퇴근 한 것 뿐이야. 어딘가에서 술 마시고 있겠지." 난 담배를 꺼내 입에 물며 말했다. "강 현민이 있는 곳에 김 성수가 있을꺼야." "속 시원히 이야기 좀 해봐.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거야?" "사실은..." 난 소희의 존재에 대해 말을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아직 숨기는 것이 나을 것이다. 만약 주 형사가 소희가 왔다는 것을 알게 되면 사건이 공개적으로 진행될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소희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살인자의 범행수법은 보통 사람의 상식을 뛰어 넘는다. 여태까지의 그의 행동이 그랬다. 경찰들 조차도 이번 사건의 모호성 때문에 수사에 혼란을 빚고 있다. 특히 이 사건은 그 미스테리적 시간의 모호성 때문에 언론매체의 주목을 받고 있다. 소희의 출현이 보도되고 아무런 대책없이 사건이 장기화 된다면 분명 소희는 다른 사람들처럼 아무런 단서도 남지 않은 채로 죽어버리게 될 것이다. 내가 입을 다물고 있자, 주 형은 더 이상 묻지 않고 일어섰다. 그리고는 날 보며 말했다. "좋아. 그냥 믿어볼께. 넌 언제나 옳았으니까... 하나만 빼고... 그 해면인진 해컨지하는 사건 말이야." "나도 아직은 잘 몰라...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건...이제 곧 4번째 살인이 일어나게 된다는 거야." "휴우... 명확한 확증이 서게 되면 좋을 텐데... 지금 상태로는 경찰력을 이 사건으로 몰아올 수가 없어." "오히려 그게 낳을 지도 몰라. 잘못하면 그 살인자가 사라져 버릴지도 모르니까... 어쨌거나 다 죽기 전에 잡아야해." "다 죽다니?" "나중에 말해줄께. 빨리 강 경민과 김 성수의 신원소재나 파악해줘." 주 형은 아무런 말없이 날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밖으로 걸어나간다. 그는 나를 언제나 아무런 조건없이 믿어 준다. 그런 점에 대해서 난 그에게 무척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누군가를 아무런 조건없이 신뢰한 다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인간이기에.... 그런 생각을 하며 난 그의 뒷 모습을 바라보았다. 딱 벌어진 그의 어깨는 마치 산처럼 보인다. [디리디리디리디리디...] '엘리제를 위하여...', 그의 핸드폰 소리... 난 피식 웃었다. '저런 덩치에 핸드폰 수신음은 꼭 엘리제를 위하여로 해놓는 다니까...' 전화를 받던 그가 뒤돌아 섰다. 난 그의 표정을 보고 심상치 않은 일임을 알고 벌떡 일어섰다. "왜그래?" "강 현민이야. 빨리 자신의 아파트로 와 달라는데?" 난 그에게로 뛰어갔다. "무슨 일인데..." "몰라 거의 정신이 없는 말투야." "빌어먹을... 빨리 가야해. 시간이 급해." 난 그와 함께 뛰기 시작했다. 오피스텔 밖으로 나온 나는 자신의 차로 뛰어가는 주 형의 목덜미를 잡고 소리쳤다. "미쳤어? 차가 얼마나 막히는데...!!!" "그럼 어떻하게..." 난 지하 주차장으로 가서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시동을 걸고 출발시켰다. 오피스텔 건물 앞에 주 형사가 초조하게 발을 구르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끼기기긱] 타이어 소리와 함께 그의 앞에 선 나의 모습을 보고 주 형이 기겁을 한다. "그... 그걸로 가게?" "빨리 타 시간없어." "시...싫어." "시간 없다니까...!" "싫다고 내가 그 일을 잊어버린 줄 알아? 죽으려면 너 혼자 죽어... 난 그거 절대 못타!" 오래전 주 형은 도주하는 범인을 검거하기 위해 나의 오토바이를 탄 적이 있다. 범인은 잡혔지만, 주 형은 그 일로 6주일 동안 병원을 다녔다. 범인과의 싸움 때문이 아니라 나의 오토바이가 전복 되었기 때문이다. 도주하던 범인의 차를 세울 수가 없어서 난 오토바이를 그대로 범인의 차에 받아버렸다. 오토바이가 미끄러지면서 차의 밑으로 말려 들어갔고 튕겨져 나간 나와 주 형사는 아스팔트에 굴러 떨어졌다. 다행히 난 레이싱용 바지와 자켓을 입고 있었던 터라 마찰 없이 미끄러졌지만, 주 형은 온 몸이 성 한 데가 없을 정도로 찢어지고 심한 찰과상을 입었던 적이 있었다. 그 뒤로 그는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나의 오토바이에 타지 않는다. 자신의 차로 가는 주 형을 바라보던 난 헬멧을 들고 그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헬멧으로 그의 뒷통수를 사정없이 내리쳤다. [쿠당] 차에 엎어진 주 형사의 뒷덜미를 잡고 끌고 오다싶이해서 오토바이 뒷 자석에 앉힌 후, 난 말했다. "정신차리고 빨리 붙잡는게 좋을 꺼야." 클러치를 잡고 엘셀을 힘껏 당겼다. [부아아아앙!] 가와사끼 닌자 ZX-9R... 배기량 899cc 오토바이의 커다란 공회전 엔진소리에 정신이 든 주 형사가 소리쳤다. "너 이새끼! 진짜 감방에서 썩고 싶어? 감히 법을 수호하는 대한민국 강력계 형사를 폭행해?" 난 다시 한번 엘셀을 끝까지 감아쥐어 최대한 스트록을 열었다. 왼발로 기어를 이단으로 바꾸고 왼손으로 잡고 있던 클러치의 레바를 놓는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 주 형사의 비명소리와 함께 오토바이의 앞바퀴가 들리며 달려나간다. 윌리댓쉬... 주 형사가 가장 싫어하는 짓, 오토바이의 뒤에 탄 사람은 윌리를 하게 되면 죽어라고 라이더의 허리를 끌어않는다. 그는 나의 허리를 끌어안고 소리쳤다. "너 이시키야 정말 죽고 싶어.... 으악 사람살려!!!" "시끄러 어차피 사람은 다 죽어. 지금 죽으나 늙어서 죽으나 그게 그거야. 꽉 잡기나 해!!!" 주 형은 날 으스러져라 끌어않고 계속해서 비명을 질러덴다. 오토바이는 한 줄기 긴 헤드라이트의 빛을 그으며 상아 아파트로 달려가고 있다. (15편 끝...) INTERVAL: 오빠의 글을 독촉하는 메일 때문에 3일동안 집에도 안들어 오고 병원에서 살고 있는 오빠를 찾아 병원으로 직접 갔다. 보조 침대에 쭈그리고 앉아 홍도를 먹고 있는 우리 오빠... 휴우...아는 척 하고 싶지 않은데... "환자는 어딨어?" "몰라!" "아니 간호한다는 사람이 환자가 어디갔는 지도 모르면 어떻게...?" 오빠는 대꾸도 않고 홍도만 먹는다. 이상하게도 오빠의 얼굴이 많이 피곤해 보인다. "오빠도 아파보여... 간호를 하긴 하나보다." "그래? 하긴 어제 밤새도록..." "밤새도록 간호했어?" "밥도 안 먹고 홍도만 죽어라고 먹었더니... 설사가 나서... 화장실을 수십번도 더 갔거든... 그래서 또 보충하고 있는거쥐." 히죽 웃는 우리 오빠의 모습을 보고 난 생각했다. 우리 오빠 아니었음 좋겠다고... [글이 늦어진 점 대신 사과드려요. 오빠 선배가 빨리 나았으면 좋겠네요. 오빠의 글을 보고 싶은 것은 저도 마찬가지니까요. 이번 15편 인터벌 보면... 오빠가 혼낼지도 모르겠당...후훗] ..........마지막 해커 동생으로부터........ [마지막 해커] -시간의 역류- (16) 주형과 난 정신없이 1004호 강현민의 집을 향해 계단을 뛰어 올랐다. 너무 급하게 뛰었기 때문에 10층에 도달했을 땐 숨이 턱까지 차 올랐다. 복도로 뛰어나온 우리는 1004호, 강 현민의 집 쪽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집, 현관 문을 멍하니 보며 베란다 쪽으로 바짝 붙어 앉아있는 강 현민이 보인다.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쥔 그의 모습은 멀리서 보는데도 심하게 떨리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난 순간적으로 안심이 되었다.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에, 그리고 4번째 살인을 막을 수 있었다는 것에... 주 형사와 난 그가 앉아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괜찮아요?" 주 형이 그의 어깨에 손을 데자 그가 흠칫 놀라며 물러섰다. "강력계 주 민성 형사입니다. 저 한테 전화하셨지요?" 그는 여전히 공포에 질린 눈 빛으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그리곤 겨우 상황이 이해가 된 것인지 힘들게 일어섰다. "무슨 일이 있던 건가요?" 그는 손가락을 들어... 자신의 집 문을 가르켰다. 그의 손이 심하게 떨리는 것은 누가 봐도 알 수가 있다. 난 현관 문을 열어 젖혔다. 무엇을 본 것일까? 방안은 어둡다. 난 현관 가까이 있는 전등 스위치를 올렸다. 거실 한 복판에 그림이 보였다. 소연의 미완성의 그림... 분명 소연의 방에서 내가 본 그녀의 그림이었다. '왜... 저 그림이 왜 여기에 와 있는 거야?' "뭐야 저거 보고 놀란 거야? 제길... 헛걸음 했군." 나의 뒤에 있던 주 형이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리곤 강 현민에게 물었다. "정말 저거 보고 놀라 저에게 전화를 건 겁니까?" 그는 말을 하지 못한 채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난 소연의 모습이 그려 있는 그림으로 다가가 자세히 보았다. '복사본...' 그것은 유화로 칠해 져 있는 오리지날 그림이 아닌, 복사본 이었다. "정말 저 그림 보고 놀라서 나한테 전화한거냐구요?" 주 형의 목소리에 짜증이 섞여있는 것 같다. 강 현민은 여전히 몸을 떨며 대답을 못하고 있다. 난 캔버스에 붙어있는 그녀의 그림을 떼어 목 부위만 찢어서 몸의 허리부분에 붙인 후 그것을 떨고 있는 강 현민의 얼굴 앞에 들이 밀었다. "으아아아아..." 그는 다시 주저 앉으며 비명을 질렀다. 난 주형을 보고 말했다. "그가 본 건 이거야..." "무슨 헛소리야? 그럼 이 사람이 목이 없는 시체의 혼령을 보았다는 거야?" "한 주희가 죽기 전 본 것도 이거고, 내 앞에서 죽어버린 정 찬호가 본 것도 이거야. 그리고 강 현민이 지금 미친 것 처럼 떨고 있는 이유도 이걸 보았기 때문이고...." "웃기지마. 이 사건은 심령적 사건이 아니야. 명백한 증거가 있는 살인사건 이라고... " "무슨 명백한 증거...?" 나의 물음에 주 형은 대답하지 못했다. 난 주 형을 비켜 주저앉아 있는 강 현민에게 다가갔다. "윤 소연이란 사람과 무슨 관계지요?" "으으으으...." 그는 말을 못하고 부들부들 떨기만 한다. 난 그의 어깨를 잡고 소리쳤다. "그만 난리치고 묻는 말에 대답해. 윤 소연이란 여자와 무슨 관계지?" 여전히 공포감에 질린 얼굴로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강 현민... 그는 지금 자기정신이 아니었다. ************* ************* "그녀를 처음 본 것은 주희라는 여고생 때문이었지요." 담배를 들고 있는 강 현민의 손은 아직도 떨고 있다. 아직 그는 진정이 되지 않은 것 같다. "주희는 소연의 집에 자주 놀러 갔어요. 미술을 하고 있는 그녀에게 이것 저것 배우고... 또 아마 많이 동경하고 있었을꺼에요. 그래서인지 그녀를 무척 따랐었고,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그녀에 대해 자랑을 하곤 했지요." 주 형사가 차가운 물을 떠가지고 와서 그의 앞에 놓은 후 나의 옆 쇼파에 앉았다. 그는 두 손으로 컵을 들어 물을 벌컥 벌컥 마셨다. 어느 정도 진정이 되어 보인다. 그는 담배연기를 깊숙히 빨아 들이고는 한 숨과 함께 내 뿜었다. "주희의 학교가는 시간과 저의 출근 시간이 비슷했기에 자주 보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주희가 좋아하고 동경하는 소연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지요. 한 아파트, 4호라는 공통점... 소연과의 자리는 예정되어 있었던 것처럼 마련되었고, 전 그녀의 아름다운 미소와 천사같은 마음에 매료되었어요." "정 찬호, 윤 혜지, 한 경찬씨도 마찬가지 입니까?" 나의 질문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혼자산다는 것... 우리는 자주 만나서 서로의 외로움을 위로 해 주었습니다." "윤 소연의 그림을 복사한 것이 왜 여기 있는 겁니까?" 그는 아까의 공포감이 다시 밀려 온 것인지 두려워 하는 것이 보였다. "몰라요. 전 내일 회사에 보여 줄 게임 캐릭터 견본을 가지러 집에 왔어요. 그런데 문을 연 순간... 그녀의 그림이 저기에 놓여있는 것을 보았지요.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문을 닫을 생각도 않고 멍하니 그림을 보던 나의 등 뒤로 이상한 한기가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뒤를 돌아본 순간... 그녀였어요. 목이 잘려진 채로 자신의 머리를 들고 날 바라보고 있는 그녀였어요. 난 공포감을 주체 할 수가 없었어요. 소리를 지르려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주 형은 그의 말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날 바라보았다. "헛 것을 본 것이 아닙니다. 내 눈 앞에 뚜렷이 보이는 그녀의 모습... 난 절대로 헛 것을 본 것이 아니었다구요." 그가 감정이 격해져 말했다. "압니다. 헛 것을 본게 아니라는거... 진정하십시요. 그리고 우선은 여길 피하세요. 그리고 당분간 이 아파트로 혼자 오는 것을 삼가하십시요." 난 일어서며 그렇게 말했고, 주 형은 떨고 있는 강 현민을 일으켰다. 주 형과 나는 강 현민의 임시 거처할 곳을 확인하고 아파트 밖으로 안전하게 나가도록 배웅을 해주었다. 도망치듯이 가버리는 그의 뒷 모습은 무척이나 두려움에 차 있었다. 주 형은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으며 말했다. "저 사람 말을 믿어? 정말 억울하게 죽은 소연의 혼령이 그들에게 나타난 것이라고 믿냐고..." 난 뒤돌아 서서 상아 아파트를 바라보았다. "난 귀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고 말했잖아. 하지만..." "하지만 뭐...?" "그들이 본 것이 귀신이든 아니든... 무언가 존재한다는 것은 확실해. 목격자 모두를 죽이려 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 말이야. 살인자가 쳐 놓은 치밀한 덫..." "김 성수..." "지금으로서는 가장 유력한 용의자이지." "어쨌거나 난 김 성수의 소재 파악과 강 현민의 집 내부의 지문을 검사해 보도록 하지." "지문 검사? 후훗 쓸데없는 일일껄... 그는 아무런 단서도 남기지 않을꺼야. 여태까지 그랬듯이... 소재파악에나 신경써.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난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그리고는 주 형을 보고 말했다. "가자. 빨리 가서 김 성수가 어딨는지 찾아야지." "싫어. 아깐 얼떨결이었지만, 이제 다시는 그런 바보짓 하지 않는다. 차라리 걸어가면 걸어갔지..." 그의 말에 난 피식 웃었다. 이럴때보면... 그는 강력계의 이름난 형사가 아니라 겁많은 어린아이처럼 보인다. (16편 끝) INTERVAL: 사랑이라는 것은 집착이다. 집착은 마음의 고통을 낳는다. 마음의 고통은 육체의 고통보다 견디기 힘든 것이다. 자신을 잊어버리게 되고 심한 경우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상황까지 가게 된다. 친구가 나에게 말했다. "사랑하면 안돼는 사람을 사랑하게 된 것 같아..." "왜 사랑하면 안돼는데?" "그 사람의 행복을 방해하게 될 것 같아서..." "그건 보기 좋은 변명이야." "맞아... 어쩌면..." "넌 너가 아플까봐서 자기방어를 하는 거야." "그럴꺼야. 그런데 우스운 것은... 못 보게 되는 것이 더 힘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야." "이기적이고 비겁해." "그래... 나 이기적이고 많이 비겁하지?" 3년 만에 찾아온 사랑이라는 감정에서 도망치려는 그 친구... 너무도 비겁하다. 너무도 바보같다. 하지만... 이해한다. 마음의 상처를 받을까봐 두려워하는 그 친구의 여린 마음을... 또한 너무도 힘들게 찾아온 그 소중한 사랑의 감정을 잃게 될까봐 두려워하는 슬픔을... "사랑해. 난 그 사람을... 너무도... 말이야." 혼자말을 하듯 그렇게 말하는 친구의 모습에 나도 지나가듯이 말했다. "넌...아주 많이 바보야... 아주 많이..." ..........마지막 해커로부터......... [마지막 해커] -시간의 역류- (17) 오토바이를 파킹시킨 후 밖으로 나온 난 시계를 보았다. 거의 자정에 가까운 시간... 난 소희가 이제 쯤 잠에서 깰 것 같았기에 그녀가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것을 사러 편의점으로 갔다. 비록 인스턴트 식품이기는 했지만, 오랜만에 초코바가 아닌 음식을 먹게 되는 것이다. 난 편의점을 둘러보다가 찌개를 끌일 수 있도록 셋팅해 놓은 즉석 요리용 식품을 보았다. [유석아, 매일 그렇게 초코바만 먹지 말고 차라리 이런거라도 해먹어. 이것도 별로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초코바보단 낳을 꺼야. 고집부리말고 안그럼 누나가 혼내준다. 음식 습관 그렇게 계속 하면 나중에 많이 아프게 될까봐서 그래. 그러니까 누나 말 들어... 알았지?] 혜선의 말이 생각났다. 그녀는 나보다 2살 연상이었다. 누나라고 부르는 것을 싫어했었지만, 내가 말을 안들을 땐 항상 자기 입으로 누나임을 강조하던 여인... 그녀는 언제나 나의 불규칙한 식사에 걱정을 하였었다. 나의 오피스텔로 와서 음식을 직접 만들어 주기도 했고, 자신이 해 주기 어렵더라도 꼭 이런 찌개류의 식품들을 사와 강제로라도 먹이곤 했다. 난 잠시동안 그녀의 생각에 멍하니 서 있다가 그 즉석 요리용 식품을 들었다. 그리고 옆으로 가서 음료수가 있는 냉장 진열대의 문을 열고 1.5리터 콜라를 꺼내 들었다. [콜라 먹으면 뼈가 많이 상한데... 그러니까 물 대신으로 콜라 먹는거 삼가해.] 역시 그녀의 말, 콜라를 집어넣고 생수를 꺼낸다. [정 바쁠 땐 말이야... 음... 콘후레이크도 괜찮아 우유랑 같이 먹으면 영양도 많고 배도 부르고...] 난 콘후레이크 한 상자와 우유를 꺼내 든다. [빵은 비싸더라도 제과점에서 먹는게 좋아. 이런데 빵은 방부제가 많이 들었거든... 새벽 6시 쯤에 제과점 가면 그날 온 빵을 먹을 수 있으니까 조금만 부지런 떨란 말이야.] 집었던 빵을 내려놓았다. 카운터로 가 음식들을 올려놓자 종업원이 놀라며 말했다. "와 왠일이에요? 초코바 대신 이런걸..." [이것두...] 잠시 팩용 김치를 들고 오는 그녀의 환영이 보였다. 언제나 계산을 할 때 쯤 급하게 카운터로 와서 조그만 김치를 추가했던 그녀... "잠시요." 난 팩용 김치를 꺼내 들고와서 그녀가 했던 것처럼 추가를 했다. 종업원이 음식을 넣어준 봉지를 들고 편의점 밖으로 나왔다. 오피스텔 쪽으로 걸어가던 난 잠시 우뚝서서 들고있는 음식봉지를 열어 보았다. 즉석 찌개요리, 콘후레이크, 우유, 생수, 김치... 모두 그녀가 우리집에 올 때 자주 사왔던 음식들이다. 갑자기 기분이 이상해졌다. 난 음식봉지를 집어던지고 말았다. 땅바닥에 떨어진 음식 포장이 터지면서 음식물들이 흩어졌다. 난 생수통을 발로 밟아서 부셔뜨렸다. 미친듯이 군화발로 음식들을 밟아데던 난 자리에 주저앉았다. 멍하니 길에 흩어져 있는 음식들을 본다. 담배를 꺼내들어 입에 물고 지포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였다. "빌어먹을...." 갑자기 견딜 수 없이 외로워 졌다.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이상한 듯이 날 바라보았다. 하지만 사람들의 시선따위에 신경을 쓸 정도로 마음에 여유가 생기지 않는다. 필터까지 타들어가는 담배연기가 나의 손가락을 뜨겁게 했고, 그때서야 멍하게 있던 정신이 깨었다. 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터벅 터벅 나의 오피스텔로 들어갔다. 나의 집 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난 내 눈을 의심했다. 혜선....? 싱크대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는 여인의 모습... 분명 혜선, 그녀였다. 아무리 기억에서 지우려 해도 그 모습만은 지울 수가 없었다. 난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 확실히... 이제 조금 있으면 그녀가 뒤돌아서 말 할 것이다. 천사같은 미소를 지으며... [이제오니? 잠시 기다려 내가 맛있는 거 만들어 줄께...] 그녀가 뒤돌아 선다. "이제 오세요? 그냥 제가 좀 이것 저것 사다가 만들고 있는 중이에요. 배가고파서요...식사 안하셨지요? " 소희였다. 유리조각이 깨지듯이 그때까지의 환상이 무너져 내린다. 난 그렇게 멍하니 서 있다가 쇼파로 가서 앉았다. "어디 아프세요? 괜찮아요?" "아니... 좀 피곤해서요." "아... 저 때문에 잠을 못자서..." "아닙니다." "잠시만요." 그녀는 탁자위에 무언가를 차려 놓았다. 좋은 냄새가 났다. 음식을 다 차린 소희는 날 보며 말했다. "식사... 안하실래요?" "괜...찮습니다." "어서요. 저 혼자 먹는거... 싫어요." 난 자리에서 일어나 식탁에 앉았다. 찌개와 밥... 참 오랜만에 보는 것이다. 그녀는 내 앞에 앉아 날 바라보았다. "드세요..." "아니요. 먹는 거 보고 싶어요. 맛도 좀 평가해 주세요. 저... 누구에게 저의 음식을 맛보게 하는 것... 처음이거든요." 난 웃음 지으며 찌개를 수저로 떠 먹었다. "어때요?" "좋아요. 맛이 있네요." 그녀는 행복하게 미소 지었다. 정말로 행복해 하는 표정이다. 가식이 섞여있지 않은 미소는 세상 어느 것보다 아름다운 것이다. 식사를 하면서 소희가 말했다. "아무 호텔이라도 알아봐야겠어요. 이 식사까지만 신세 질께요." 난 아무런 말도 않고 계속 음식을 먹었다. 식사를 끝내고 설겆이를 하려는 그녀... "놔둬요. 제가 할께요." "그래두..." 난 그녀가 든 접시를 받아 싱크대에 내려 놓았다. 그녀는 날 잠시 바라보더니 손을 씻고 거실 쪽으로 나갔다. 그녀는 가방을 들고 말했다. "그럼... 이제 가볼께요. 너무 신세 많이 진 것 같아요." "가지말아요." "......" "가지 말아요. 아직은 위험해요. 언니의 살인범을 잡기 전에는..."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괜찮을 꺼에요. 그 살인범... 제가 온지도 아직은 모르잖아요. 정말... 고마왔어요." 그녀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현관 문의 손잡이를 잡았다. "가지 말아요... 내 옆에 없으면... 지켜줄 수가 없어요." 난 어느새 그녀에게 다가가 가녀린 그녀의 팔을 잡고 있었다. 소희가 뒤돌아서 날 바라본다. 난 그녀의 시선을 피해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난 아주 힘들게 말을 꺼냈다. "실수는... 한 번이면 되요. 또 다시... 내가 시간에 늦어서, 누군가를 잃게 되는 거 싫어요. 다시는 그러고 싶지 않아요. 시간에 늦지 않을 수 있도록 내 옆에 있어줘요." 내가 그녀에게는 너무 힘들어 하는 것으로 보인 것일까? 아니면 그녀에 대한 나의 마음을 이해한 것일까? 그녀가 가만히 날 안아주었다. 분명... 소희가 날 안아준 것인데... 난 마치 지금... 혜선의 품에 안겨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따스했다. 무척이나..... (17편 끝) INTERVAL: "그거 뭐야?" 친구가 치고 있는 피아노를 들으며 내가 물었다. 악보위에 우리들이 쓰는 언어로 제목이 적혀 있었다. "아름다운 사람을 위한 곡...?" "그냥...." 친구가 사랑을 시작하기로 마음 먹은 것 같다. 자신이 가지게 될 아픔을 받아들이며... 난 이제 말리고 싶지 않다. 그저 시간이 흐르는 데로 상황이 돌아가는 데로 나두어야지. 이젠 그가 다시는 감정을 속이는 일이 없기만을 바랄 뿐이다. 자신의 감정을 속이는 것 만큼 고통스러운 것도 없을 테니까... 사랑은 집착을 낳는다. 집착은 고통을 수반하고... 고통은... 고통은... 다음 것이 생각이 않난다. 고통은... 고통을 즐기는 것은 변태니까... 고통은 변태를 낳는다. 이상하네... 결과가... 결국...사랑은 변태를 낳는다... 뭐...뭔 소리야 이게...! ..........마지막 해커로부터....... [마지막 해커] -시간의 역류- (18) "예 그러한 인상착의의 남자를 보시면 곧장 이 번호로 연락 바랍니다. 그럼 수고하십시요." 주 민성 형사는 전화를 끊고는 경찰서와 연결된 네트웍 컴퓨터의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김 성수의 사진... 사이코처럼 보이진 않는다. 그렇다고 그런 끔찍한 일을 벌릴만큼 잔인해 보이지도 않는다. 주 형사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정말 이 사람이 범인일까? 그렇다면 왜 소연을 죽인 것일까? 또... 다른 사람들을 살해한 이유는 뭘까? 그리고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걸까?' 생각을 할 수록 머리가 아프다. 전혀 단서가 없다. 그가 만약 범인이라면 어떻게 이렇게 감쪽같이 죽일 수 있는 것인지도 의문스러웠다. 만약 김 성수가 다시 나타난다하더라도... 아무런 증거가 없기 때문에 그를 처벌 할 수가 없다. 그런 생각을 하던 주 민성은 담배를 찾기 위해 주머니를 뒤졌다. 하지만 담배가 없었다. "이럴때가 제일 짜증난다니깐..." 주 민성은 재떨이에서 꽁초를 꺼내 라이터로 필터를 조금 태운 후 불을 붙여 입에 물었다. 담배가 떨어졌을 때 꽁초를 피는 맛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그는 책상위에 다리를 올리고 몸을 쭉 뻗으며 한 껏 담배의 맛을 즐겼다. 지금 시간 새벽 3시... 피곤했지만, 지금은 그 살인범을 잡는 것이 급했다. 그러나 아무런 단서도 없었다. 단지 황기자가 지목한 김 성수를 대상으로 사라져 버린 그를 찾는 것에 신경을 몰두할 뿐이었다. 이미 살아있는 목격자들에겐 김 성수가 나타나면 자신에게 연락을 할 것을 부탁하였다. [디리디리디리디리리] 핸드폰 소리에 주 민성은 얼른 전화를 받았다. "강력계 주 민성 형사입..아뜨뜨..." 주 형사는 다 타드러간 꽁초를 떨어뜨리며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는 다시 말했다. "강력계 주 민성 형사입니다. 누구시죠?" "........" "여보세요?" 대꾸가 없었다. 주 형사는 다시 한 번 물었다. "여보세요? 누구시죠?" "나... 김 성수요." 주 민성 형사는 놀라서 책상위에 올려논 다리를 내리며 말했다. "지금 어디에 있는 겁니까? 안전한 가요? 경찰서로 오세요. 혼자 있으면 위험합니다." "날 범인으로 생각하고 있는 거 압니다." "....." "날 잡으려고 하지 마십시요. 당신들 때문에 목격자들의 죽음의 시간이 더 빨라질 뿐이니까... 어차피 모두 죽게 될 것이지만... 킥킥킥... 당신에게 기회를 주지요. 오늘 한 명이 더 죽을 것입니다. 한 번 막아 보십시요." 전화는 그 말을 끝으로 끊어졌다. 주 형사는 그의 대담함에 말을 잃었다. '이런... 이젠 살인을 아예 예고 하다니...' 한 동안 멍하게 있던 주 민성은 시계를 보았다. 오늘이 다 가려면 20시간 정도 남았다. 20시간 안에 그의 범행을 막아야 했다. 아니 어쩌면 벌써 누군가 죽었을지도 모른다. 주 형사는 초조한 마음으로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제발... 모두 살아있어라. 아직 아무도 죽지 말라고 제기랄...' ************ ************ 새벽 5시... 윤 혜지가 임시로 거주하고 있는 에어로빅 센터의 빌딩 앞으로 온 난 주 형의 차가 건물앞에 세워져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에어로빅 센터가 있는 8층으로 가기위해 엘레베이터의 버튼을 눌렀다. '고장인가?' 아무런 반응이 없는 엘레베이터... 난 하는 수 없이 8층까지 걸어올라갔다. 8층으로 올라와 깨끗한 유리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온통 거울로 된 벽이 있는 넓은 마루바닥이 나온다. 그리고 주 형과 전에 취조실에서 본 강 형사, 그리고 아직 살아있는 목격자들이 보였다. 강 형사와 이야기를 하던 주 형은 날 보더니 다가오기 시작했다. "엘레베이터 고장이야?" "아니... 일부러 내가 통제 시켰어. 저번과 같은 일이 일어날까봐." 강 형사가 날 보고는 손을 들어 인사를 했다. 나도 목례로 답하고는 윤 혜지와 한 경찬, 그리고 강 경민을 보았다. 그들은 무슨 말을 들은 것인지 무척 근심에 쌓인 얼굴이었다. "무슨 일이야? 다들 표정이 왜 그래?" "김 성수가 전화를 했어." "김 성수가?" "오늘 한 명을 더 죽일꺼래..." 난 놀라서 다시 물었다. "아니... 직접 전화를 걸어서 살인을 예고했단 말이야?"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담배를 입에 문다. "나보고 시간을 줄테니 막아보라고 했어. 다행히 아직 죽이지 않았기에 난 전화를 걸어 모두를 불러냈지. 마땅한 장소가 없어서 혜지씨의 직장으로 모이라고 한거야. 모두 모이긴 여기가 안성맞춤이니까. 마침 혜지씨 친구가 하는 에어로빅 센터이기에 양해도 구하기 쉽고해서..." 난 한 숨을 쉬었다. "정말... 대담하군. 그렇게 자신이 있는 건가?" "정말로 살인이 일어날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오늘 하루는 꼬박 지켜야 될 것 같아." 나와 주 형은 강 형사와 목격자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강 현민이 불안해 하는 얼굴로 다가오는 주 형과 날 바라보며 말했다. "어떻게 해야지요? 정말 우리들 중 한 사람이 죽는다는 거에요? 그것도 오늘?" "잘 모르겠지만, 현재로선 조심하는게 최선의 방법입니다." 강 현민은 이미 살인에 대한 경고를 자신의 아파트에서 받았기에 더욱 불안해 하는 듯 싶다. 한 경찬은 약간 짜증스런 얼굴을 하고 있었다. "회사일도 바빠 죽겠는데... 이렇게 미친놈 농간에 놀아나야하다니...!" 윤 혜지는 오히려 담담해 보인다. 난 그녀를 오늘 처음 보는 것이다. "그냥 이렇게 죽기만을 기다리는 건가요?" 그녀가 날 보며 물었다. 탄탄한 몸매를 가진 여인이다. "여기 주 형사와 강 형사님은 경찰서 내에서도 알아주는 강력계 형사님들이니 그렇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이 분 들의 통제에 잘 따라주기만 한다면..." 나의 말에 혜지가 피식 웃었다. 그녀의 미소는 왠지 도발적인 느낌이 든다. "전 이분들이 더 무서운데요. 남의 직장에 와서 감놔라 배추놔라... 그리고 모두 남자분들 뿐이니... 여자인 나로선 많이 거북스럽군요. 어쨌거나 난 샤워 좀 해야겠어요. 꼭두새벽부터 잠을 설치게 해서... 현민씨 저번 처럼 훔쳐보면 죽을 줄 알아."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샤워장으로 들어갔다. 김 경찬과는 별로 친하지 않은 것 같지만 강 현민과는 꽤 친해 보인다. 난 주 형사에게 말했다. "다른 경찰들은?" "없습니다. 저와 주 형사도 겨우 인가를 내어 온 것이지요. 협박 전화 하나로 경찰력을 모두 끌어오기에는 인력이 너무 모자라요. 신빙성도 그다지 없고..." "무슨 말입니까? 여태까지 죽은 사람들은 그럼 아무것도 아니란 말입니까?" 강 형사의 말에 나의 언성이 좀 높아지자 주 형이 끼어들었다.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야. 우선은 우리 둘이 교대로 24시간 지켜보기로 했어. 강 형사도 우리과에선 알아주는 실력자니까 그리 걱정은 할 필요없을 꺼야. 어차피 범인은 한 명이니까..." "세금 받아서 도대체 뭐에 쓰는 거야? 제길..." 난 그렇게 말하며 담배를 버릴 곳을 찾았다. 운동을 하는 곳이라서 인지 재떨이를 찾을 수가 없다. 난 남자 샤워실 쪽으로 가서 문을 열고 아무렇게나 담배를 던져 버렸다. 그리고는 주 형에게 말했다. "난 회사에 갔다가 저녁 쯤 다시 올께." "너 이 일은 비밀이다. 특종이 아니야. 생명에 관계된 일이야... 알겠어? 범인이 여기를 안다면 지키기가 더 힘들어져." "누구들처럼 그렇게 생각없는 기자 아니니까 걱정말아. 강 형사님 수고 하십시요. " 난 그에게 인사를 하고는 잠시 떨고 있는 강 현민과 생각에 잠겨있는 것 같은 김 경철을 보았다. 과연 그 살인범의 말대로 오늘 살인이 일어날 것인가? 아니면 경찰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한 트릭일까? 난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젖고는 뒤돌아서 에어로빅 센터를 나갔다. "황 기자라는 사람, 도대체 어떤 사람이야?" 강 형사의 물음에 주 민성은 피식 웃음 지었다. "어떤 사람? 글쎄... 미친놈이라고 하면 될까나? 생각하는게 좀 달라. 그리고 슈퍼맨이라도 저 놈을 힘으로 무릎 꿇게 할 수는 없을껄?" "그렇게 고단자야?" "아니... 힘이 아니야." 주 민성은 자신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엄청 고집불통에 앞 뒤 안가리고 덤비는 그런 정신병자지. 저 놈을 굴복시키려면... 죽이는 수 밖에 없을꺼야. 저 놈과 싸운 적이 있는데... 다시는 그러고 싶지 않아. 아주... 징그러워... " "힘으로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자네가 그런 말을 하다니... 이해가 안가는군." 강 형사는 의외라는 표정으로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18편 끝) INTERVAL: 우리는 작은 고통도 참기 힘들어 한다. 그래서 보통 사람인 것이다. 보통사람이 아닌 사람들이 있었다. 독립 투사들... 그들이 일본인들에게 당한 고문은 상상을 초월한 것이다. 아주 간단한 예를 들자면... 긴 바늘을 손톱 밑으로 넣어 손등까지 일직선으로 관통시키며 동료들의 소재를 캐물었다고 한다. 그래도 그들의 입에선 일본인에 대한 욕설과 대한독립 만세라는 말만을 외쳤다고 한다. 그들의 피와 고통으로 찾은 우리나라인데... 우리들은 이 나라를 어떻게 만들고 있는 것인가? 노세, 노세 늙어서도 노세의 국회... 나 혼자 잘 살면되리 사기꾼... 그밖의 여러 분야의 나라팔아 먹는 사람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외국 문화에 미쳐있는 우리 자신들... 난 어떤 특정한 의식이 있는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가끔 뉴스 같은 것을 보며 한 숨이 나오긴 한다. 그들이 지금 우리나라를 본다면 고문의 고통보다 더한 고통을 느끼며 비통해 하진 않을까..... ..........마지막 해커로부터......... [마지막 해커] -시간의 역류- (19) "신경질 나!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갇혀 있어야 하는 거에요?" 혜지는 짜증이 섞인 어투로 말을 하였다. 지금 시간 오후 10시, 새벽부터 하루 내내를 갇혀 있다 싶이 한 그녀가 화를 내는 것은 당연한 것일 지도 모른다. 한 경찬은 창가 쪽에 의자를 붙여 놓고 앉아 아무런 말없이 있었고, 공포에 떨며 안절부절 못하던 강 현민도 많이 지쳐보이는 듯 하다. 강 형사는 시계를 보았다. 김 성수가 살인을 예고한 지 벌써 18시간 경과... 이제 2시간 후면 오늘이 지나고 만다. 정말 살인이 일어날까? 강 형사 역시 짜증이 났지만, 그 전화를 무시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실낱같은 단서이기도 한 그의 전화... 오늘 잡지 못한다면 다음 살인이 있을 때까지 잡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또 다른 시체를 봐야만 한다는 생각에 힘들더라도 그는 참아야 했다. 하지만 더 걱정이 되는 것은 이것이 트릭이라면... 하는 생각이었다. 만약 김 성수가 도피하기 위한 출구를 마련하기 위해 허위 전화를 하였던 것이라면... 지금 쯤 그는 완전히 사라져 버렸을 지도 모르는 것이다. 강 형사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에어로빅 센터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주 민성 형사였다. 강 형사는 문을 열어주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강 현민이 흠칫 놀라며 문 쪽을 바라본다. 강 형사가 문을 열어주고 안으로 들어온 주 민성은 목격자들을 둘러보았다. "별다른 조짐 없어?" 주 민성의 물음에 강 형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우리가 속은 거 아닐까?" "그럴지도 모르지... 후우... 피곤하다. 하지만 앞으로 2시간만 버텨보자." "젠장... 꼴이 우습군.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이라..." 주 민성은 문을 잠그며 말했다. "강 형사... 이런 거 알지?" "뭐?" "우리 취조할 때 말이야. 4시간이고 5시간이고 취조실에 쳐 박아 놓고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계속 혼자 있게 하는거..." "그거야... 진이 빠지면 그 다음에 술술 불게 되니까... 혹시..." 주 민성은 담배를 꺼내 물며 말했다. "어쩌면 그런 방법을 쓸지도 몰라. 지금 저 사람들은 물론이고 자네와 나도 많이 지쳐 있잖아." "그럼... 우리가 지치기를 기다리는 건가?" "잘 모르겠지만... 어쩌면 오늘 살인이 일어나지 않을 지도 몰라." "휴우... 어떡하지 마냥 이렇게 기다릴 수 만은 없는 거잖아." 주 민성은 의자를 끌어와 앉고는 불안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강 현민을 보았다. 공포와 피곤... 그리고 배고픔으로 그는 거의 탈진 상태의 사람처럼 보였다. 주 민성이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하기 위해 음식은 물론이고 그 밖의 모든 것을 단절시켰기 때문에 그들은 하루동안 꼬박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있었다. 강 형사가 말했다. "뭐 좀 먹는게 낳지 않을까?" "안돼. 2시간 동안만 참으라고... " "집으로 전화해서 가져오라면 돼잖아." "2시간만 참자고... 지금까지 잘 버텼잖아." "주 형사... 이렇게 하면 잡지 못해. 함정수사라는 것도 있잖아. 함정을 만들지도 않고 그냥 이렇게 지키기만 한다면..." "살인범을 잡는 것 보다는 생명을 지키는게 우선이야. 그게 우리의 일이고..." 주 민성의 말에 강 형사는 한 숨을 쉬었다. 그때 의자에 앉아 있던 윤 혜지가 벌떡 일어섰다. "도저히 못 견디겠어. 난 그만 나갈꺼에요." 주 민성은 그녀를 막으며 말했다. "안돼요. 2시간만 버티면 되는데 좀 참아요." "어차피 죽을 꺼라면... 오늘이 아니라 내일도 될 수 있고 모래도 될 수 있다고요. 그럼 우리보고 이렇게 매일 지내라는 말인가요?" "곧 잡힐 것입니다. 그러니까..." "정말 짜증나 죽겠어. 난 나갈꺼에요." "안돼요." 주 민성은 그녀를 쏘아 보며 차갑게 말했다. 주 형사를 화가 난 표정으로 바라보던 윤 혜지는 휙 돌아서서는 샤워실로 들어가며 문을 쾅 하고 닫아 버렸다. 그 모습을 보던 한 경찬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정말이지 견디기 힘들군요. 도대체 이게 무슨 꼴인지... 나도 샤워나 해야겠습니다." 한 경찬은 남자 샤워실로 들어갔다. 주 민성은 한 숨을 쉬며 자리에 앉았다. 강 형사는 주 민성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그럴 만도 하잖아. 자네가 이해하라고..."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공포에 떨어야 하는 겁니까?" 강 현민이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다. 주 민성은 그의 물음에 대꾸할 수가 없었다. 그 자신도 몰랐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들의 목숨을 지키고 있어야 하는 건지... 만약 오늘 살인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김 성수의 살인은 멈추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의 전화는 모두를 지치게 하기 위한 책략일지도 모른다. 주 형사는 시계를 보았다. 앞으로 1시간 30분... 만약 오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고 끝나 버린다면... 살인지목 대상자들의 협조를 받기는 더욱 힘들어 질 것이고 김 성수의 살인은 더욱 용이해 질 것이다. 그가 노린 것은 바로 이것이었던가? 주 민성은 걱정이 되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하지... 어떻게... [으아아아악!] 갑작스런 비명소리... 한 경찬이 들어간 남자 샤워실에서 나는 소리였다. "빌어먹을....!" 주 민성과 강 형사는 허리에 차고 있던 권총을 뽑아들고 샤워실 문 손잡이를 잡았다. 잠겨있다. 강 형사가 문을 박차고 먼저 들어간다. 뿌연 수증기 때문에 그들의 시야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잔뜩 긴장을 한 주 민성과 강 형사는 자신의 앞을 권총으로 겨누며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간다. 샤워실의 칸막이를 하나하나 지날때 마다 먼저 권총을 들이밀었고 아직 있을 지도 모르는 살인범을 조심하며 물 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강 형사의 목덜미로 식은 땀이 흘러내린다. 샤워실의 창가 쪽으로 다가온 강 형사와 주 형사는 수증기 사이로 들어나는 희미한 무언가를 발견했다. 한 경찬의 다리였다. 강 형사는 창문 쪽을 경계하였고, 주 형사는 조심스럽게 마지막 칸막이 쪽으로 권총을 들이밀었다. 아무도 없다. 단지 바닥에 한 경찬이 쓰러져 있을 뿐이다. 주 민성은 샤워기의 물을 잠그고 쓰러져 있는 한 경찬의 목부위에 손을 대었다. 맥박이 뛰고 있다. "강 형사 도와줘. 아직 살아있어." 창 문 쪽을 경계하던 강 형사는 권총을 집어넣고 주 민성을 도와 그를 샤워실 밖으로 끌어내었다. 강 형사는 전화를 꺼내어 119에 전화를 건다. 발가벗은 채로 두 형사에게 업혀 나온 한 경찬을 보고 강 현민은 놀라 소리지른다. "으아아아..." 그는 여지껏 참고 있던 공포심이 폭팔하며 앉아 있던 의자에서 일어서 밖으로 뛰어나가려 한다. 잠겨있는 현관 유리문의 손잡이를 잡고 미친듯이 흔들면서 그는 소리 질렀다. "사람 살려! 사람 살려요...!" 강 형사가 그에게로 뛰어가 그의 어깨를 부여잡으며 소리쳤다. "진정해. 진정하라고..." 강 현민은 계속해서 소리지르며 몸을 허우적 거린다. 주 민성은 김 경찬의 숨소리를 확인하기 위해 그의 입에 귀를 갔다 데었다. 가늘지만 그의 숨소리가 느껴진다. 그의 생존을 확인한 주 형사는 고개를 들었다. 강 형사가 강 현민을 진정 시키기위해 그를 넘어뜨렸고, 그래도 여전히 강 현민은 난리를 치고 있었다. 순간... 주 형사의 머리에 스치는 것이 있다. 그는 벌떡 일어서서 권총을 뽑아 들고는 윤 혜지가 들어간 샤워실의 문을 부시고 들어간다. 샤워기에서 나오는 물소리 말고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빌어먹을..." 샤워장의 바닥은 온통... 피로 물들어 있다. 주 민성은 피가 흘러나오는 곳으로 다가갔다. 눈을 부릅뜬 채로 잘려져 있는 윤 혜지의 머리... 그 옆에는 피가 아직도 뿜어져 나오고 있는 윤 혜지의 몸이 보인다. 주 형사는 자리에 주저 앉고 말았다. 허무한 마음이 겉잡을 수 없이 밀려 온다. 지금 시각 오후 10시 40분... 살인범은 약속을 지켰다. 그리고 주 민성은... 막지 못한 것이다. 예고된 살인을... (19편 끝) INTERVAL: 드디어 호러방이 생겼다. 지나님에게 수고의 박수를 보낸다. 이젠 여기저기 떠돌던 호러 매니아들의 영혼이 쉴 곳을 찾았다. HORROR'S VILLAGE... go fear... 기대가 된다. 호러인들의 활약이.... ..........마지막 해커로부터..... [마지막 해커] -시간의 역류- (20) 내가 에어로빅 센터에 도착했을 땐 들 것에 시체가 실려 나오고 있는 중이었다. 많은 경찰들이 있었지만 주 형은 보이지 않았다. 두리번 거리고 있던 날 강 형사가 보고 다가온다. 난 그에게 물었다. "주 형은요?" "위에 있어요." "누가 죽은 건가요?" 강 형사는 옮겨지는 시체를 세우곤 덮여있는 들 것의 시트를 약간 들어올리며 시체를 보여 주었다. 윤 혜지의 얼굴이 보인다. 잘려진 그녀의 얼굴에 드러난 표정은 죽기전의 공포감이 그대로 각인되어 있었다. 난 잘려나간 그녀의 목 부분을 자세히 보았다. "깨끗하게 잘라냈군요. 흉기는 찾았습니까?" "예. 지금 지문 조사를 위해 연구소로 보냈지요. 소용없는 짓이겠지만..." 강 형사가 시트를 덮으며 말했다. 그리곤 걱정스럽게 날 바라본다. "주 형사가 많이 힘들어 하고 있어요. 살인을 막지 못했다는 자책감 때문에 그런 것일테니 유석씨가 좀 위로해 주십시요. 부탁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난 8층으로 올라갔다. 이미 조사가 끝난 것인지 에어로빅 센터의 내부는 고요했다. 난 샤워실로 걸어 들어갔다. 샤워실의 바닥에 아직 씻겨 내려가지 않은 피덩이가 여기저기 보였다. 창가 쪽으로 낯이 익은 사람의 넓은 어깨가 보인다. 하지만 여느때와는 왠지 달랐다. 항상 당당함을 보여주던 그의 어깨가 지금은 무척 힘이 없어 보였다. 많이 힘들어 하고 있는 것 같다. 난 아무런 말없이 그의 옆에 섰다. 그리고 그가 멍하게 바라보고 있는 곳을 나도 바라보았다. 건물의 뒤쪽으로 나무들을 심어놓아 공원으로 만든 그곳... 위대한 자연은 사건 현장의 아수라장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는 듯이 근엄하고 고요하게 보인다. "많이 힘들어?" "......" "왜 말이 없어?" "......" 주 형사는 말하는 것을 잃어 버린 듯 하다. 살인을 막을 수 없었다는 자책감으로 그는 지금 커다란 공허감에 빠져 있는 듯 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다. 난 담배를 꺼내 물고 불을 붙였다. 그리곤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는 말했다. "나라면 잡을 수 있었다." "......" "돌대가리..." "......" "병신..." "그래... 난 병신이야." 그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도대체 할 줄 아는게 뭐야?" "......." 난 담배연기를 깊이 빨아들이고는 다시 말했다. "강력계 귀신이라는 형의 별명, 이젠 허수아비로 바꿔..." 주 형이 날 보았다. 가까스로 화를 참고 있는 듯 해 보였다. "형사는 얼어죽을 무슨 형사야." "그만해." "교통순경이나 하라고... 그따위로 할거면..." "그만하라구!" "나라면 죽게 내 버려두지 않았다." "그만하란 말이야!" 그가 나의 멱살을 잡고 소리친다. "그만해. 불가항력 이었다고... 잡을 수 없었어. 그 놈의 트릭에 완전히 넘어간 거였어. 내가 아닌 누구라도 그 놈을 잡을 수 없었다고...!" 난 멱살을 잡힌 채로 주 형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 형 아닌 누구라도 잡을 수 없었어. 완벽하게 계획된 살인이었고, 형도, 나도, 우리 모두가 그 놈 손에 놀아난 거야.... 그러니까... 그만 자책해. 형의 말처럼... 불가항력이었으니까..." 나의 멱살을 잡은 그의 손에 힘이 빠진다. 그는 고개를 숙였다. 난 피고 있던 담배를 그에게 주었다. 그는 담배를 받아 한 모금 깊이 빨아들이고는 한 숨과 함께 연기를 뱉어 내었다. "형은 최선을 다한거야. 형이 할 수 있는 책임을 다한 거라고..." 나의 말에 주 형은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동안 아무런 말이 없던 그가 움츠리고 있던 어깨를 쭉 피고는 주먹을 쥔다. 어느새 예전의 당당하고 산 같은 주 형사로 다시 돌아 온 것 같다. 난 그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그게 어울려. 주 형은..." "고맙다." "고맙긴... 형이 단순해서 빨리 일어선 거지." 나의 말에 그가 웃는다. 그는 담배를 바닥에 떨어뜨리고는 발로 비벼 껐다. 그리고는 눈을 반짝이며 말한다. "시작해 볼까? 숨겨진 단서를 찾는 것을..." 난 웃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주 형은 창문을 열고는 말했다. "흉기는 저기 풀위에서 발견되었지. 이리로 와봐." 나와 주 형은 남자 탈의실로 갔다. 남자 탈의실의 창문에는 잠김장치 주위에 유리 베는 칼같은 것으로 동그랗게 잘려나간 구멍이 보였다. "여기를 잘라내서 잠금장치를 풀고 문을 열고 들어온 것 같아. 그리고 샤워실에 숨어있다가 샤워를 하려고 들어온 한 경찬의 머리를 둔기로 내려치고 저기 여자 탈의실의 경계벽 위에 공간으로 넘어가 위에서 흉기를 사용해 윤 혜지의 머리를 잘라낸 것일 꺼야." 난 주 형이 가리키는 천정의 공간을 바라보았다. 원래는 하나의 공간이었던 이곳을 남, 여 샤워실로 나누기 위해 인공으로 벽을 세운 듯해 보인다. 마음 먹는다면 쉽게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왜 한 경찬을 먼저 내려친 후 애써 저 위로 넘어가 윤 혜지를 죽인 것일까?" "시간을 벌기 위해서 아닐까? 강 형사와 난 한 경찬의 비명소리에 뛰어 들어 왔고, 그로 인해 우리가 정신이 없을 때 탈의실로 넘어가서 윤 혜지의 목을 잘라버린 것이겠지. 아무래도 남자보다는 여자를 죽이는게 좀 더 수월했을 테니깐..." "그럴까...?" 난 주위를 둘러 보았다. 그리고는 구멍이 뚫린 창문 쪽으로 갔다. 주머니에서 사인펜을 꺼내 뚫린 구멍 가까이로 창문에 X 표시를 하는 날 보며 주 형사는 물었다. "도대체 뭐하는 거야?" "나도 잘 모르겠어." 난 구멍으로 손을 집어넣어 밖에서 X 표시를 중심으로 유리를 쳤다. 창문이 깨지며 안으로 파편이 떨어진다. 난 흩어져 있는 유리조각 중 X표시가 되어있는 조각을 들어 윗 주머니에 넣고는 주 형을 보고 말했다. "나가자. 주 형 밥도 안 먹었을 텐데... 편의점에서 라면이라도 먹자고..." "단서는 어떻게 하고...?" "이미 다 찾은 것 같은데... 더 이상 조사할 것도 없잖아?" 난 피식 웃으며 멍하게 날 바라보는 주 형을 뒤로 하고 밖으로 나갔다. (20편 끝) INTERVAL: 의정부에 있는 아는 선배 연습실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다가 집에 간답시고 나왔는데 돈이 450원 밖에 없었다. 차도 끊기고... 난 어떡할까 생각을 하다가 별다른 수가 없어서 걷기 시작했다. 터벅터벅... 2시간을 넘게 걸어도 겨우 방학 역을 지났을 뿐이다. 어느새 나의 다리가 아프기 시작했고, 난 점점 힘이 빠지기 시작 했다. 3시간 걸었을 때, 배가 고팠다. 하지만 돈이 없었다. 포장마차에서 음식을 먹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며 침만 꿀꺽 꿀꺽 삼켰다. 4시간 째... 너무 힘이 들었다. 내 팔다리가 이렇게 귀찮았던 적은 없다. 머리도 무겁고, 손에 들고 있던 Roland sc-88(음원 모듈)이 너무도 걸리적 거려 버리고 싶었다. '안돼... 이게 얼마짜린데...' 난 포기할 수 없었다. 나의 귀에 터미네이터 2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이 환청처럼 들린다. [두둥 둥두둥...다라라... 다리라.... 두둥 둥두둥...] 난 이를 악물고 계속 집을 향해 걸었다. 7시간 째, 종암동에 거의 다 와가고 있었다. 동이 트고 있다. 막막했던 시간이 지나고 이제 조금만 지나면 나의 집이 있는 안암동이 보일 것이다. 목표지점이 보이고 있다. 난 희열에 가득찼다. 조금만 더 힘을 내면 난 해낸 것이다. 이미 나의 다리나 팔은 거의 무의식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었지만... 난 행복했다. 난 해내고야 만 것이다. 해내고야 만 것이라고... 7시간의 대장정을 끝내고야 만 것이.........!!! [부아아아앙] 19번 버스... 저... 저건... 분명... 5시 30분에 도봉동에서 출발한 첫차일 텐데... 시계를 보니 5시 50분... 난 거의 7시간이나 걸려서 여기까지 걸어왔는데... 7시간의 동안의 피곤과 외로움을 이겨내며 힘들게 힘들게 여기까지 걸어 왔는데... 30분도 안걸려서... 나를 제치고 달려가 버리는 저 빌어먹을 19번 버스... 허무감으로 자리에 주저앉아 모듈을 끌어안고 동이 트고 있는 하늘을 향해 절규 했다. "배가 고파아아아아아!!!!" 아무 관계없는 절규였나? 하지만 그때 생각 나는 말은 그거 밖에 없었다. [청소년 여러분 이제 밤이 깊었습니다. 따스한 사랑이 기다리고 있는 가정으로 돌아가십시요. 버스가 끊기기 전에....] ..........마지막 해커로부터......... [마지막 해커] -시간의 역류- (21) [쾅쾅쾅쾅!] "문 열어. 안자고 있는 거 다 알아!" 난 목동의 한 아파트 단지로 와서는 문을 두드리며 소리를 질렀다. 잠시 후, 눈을 비비고 나온 남자... 동희... 컴퓨터 해킹 방지 프로그램의 책임자, 언젠가 해커 살인의 일로 프로그램을 확인하기 위해 도움을 청했던 친구이다. 난 졸린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는 그를 지나쳐 안으로 들어갔다. 뒤에서 그의 짜증스런 목소리가 들렸다. "넌 도대체 시간 개념이 있는 놈이냐? 지금이 몇신데 와서 난리야?" 난 그의 어지러운 방안을 둘러 보다가 물었다. "전자 현미경 어딨어?" "전자 현미경?" "그래... CPU 검사에 쓰이는 전자 현미경 말이야." "그건 왜 찾아 이밤에... 으하아암..." "급하니까 시간 끌지 말고 빨리 말해. 어딨어?" 동희는 서류뭉치들이 잔뜩 쌓여 있는 곳을 가리켰다. 난 종이들을 한참 치우고 나서야 현미경을 발견하였다. "이렇게 어지럽게 해 놓고도 어디에 뭐가 있는 지 알기나 하는 거냐?" "그게 정리해 놓은 거니까 어지럽히지 말고 할 일만 하고 가버려..." 동희는 다시 쇼파에 누웠다. 그의 방에는 침대가 없다. 언제나 쇼파에 누워서 자고 쇼파에 앉아서 일하고 쇼파에서 밥을 먹는다. 난 주머니에서 사건현장에서 가져온 유리조각을 꺼내서 현미경으로 볼 수 있도록 설치를 하고는 렌즈를 들여다 보았다. "그럼 그렇지... 야! 동희야 이것 좀 확인해줘." "...." 난 뒤돌아 보았다. 동희는 어느새 코를 골며 잠이 들어있었다. 난 그에게로 가서 지포라이터를 키고는 그의 발가락에 갔다 데었다. "으앗 뜨거...!" 그는 비명을 지르며 일어났다. "괴롭히지 좀 마...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이것 좀 봐. 내 생각이 맞는 지 확인 좀 해 줘." 그는 한 숨을 쉬고는 현미경으로 다가와 렌즈에 눈을 갔다 데었다. "유리자르는 칼로 잘린 단면인데... 뭘 확인하라는 거야?" "정확히 칼을 덴 부분이 어느 면이지?" "단면의 형태로 보건데... 음 X표가 그려진 곳이 자르기 시작한 곳이야. 잘린 면이 매끄러운 걸로 봐서... 그리고 뒤쪽면은 잘린 면이 거친 것으로 봐서... 칼에 의해 잘린 것이 아니라 일정한 압력에 의해 뜯겨져 나갔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한 거지." "직접해봐." 동희는 멀뚱거리며 날 보다가 책상으로 가서 다이아몬드로 칼날을 만든 유리 자르는 칼을 꺼내와 자신의 유리탁자의 모서리 부분을 일직선으로 그었다. 그리고는 손으로 잡고 힘을 주었다. [툭!] 끊어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유리가 깨끗이 잘려 진다. 동희는 그것을 나에게 주었고 난 내가 가져온 유리 조각을 빼내고 동희가 준 유리조각을 아까처럼 현미경에 설치한 후 들여다 보았다. 역시 칼날이 닿은 부분은 매끄러운 단면이었고, 동희의 힘에 의해 끊어진 나머지 부분은 거친 단면이다. 난 X표를 한 유리조각을 그에게 보이며 말한다. "그럼... 내가 사인펜으로 표시를 한 이 부분이 유리자르는 칼을 덴 부분이 맞는 거지?" "그래. 이제 된거냐? 난 그만 잘란다. 깨우면 죽어. 후아아암...." 그는 다시 쇼파에 누워 눈을 감았다. 난 눕자마자 코를 고는 동희를 바라보며 피식 웃고는 아파트를 나왔다. 그리고는 핸드폰을 꺼내 주 형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주 형... 한가지 트릭이 풀렸어." "트릭이라니?" "생각해봐. 살인이 일어난 곳은 8층이야. 주 형이 아무리 정신이 없었다고 해도 살인을 하고 8층에서 창문을 통해 아래로 내려가 도망가는 범인을 보지 못했다는 것은 말이 안돼잖아. 뛰어내려서 도망갔다면 또 모를까..." "그럼... 혹시..." "이제 좀 감이와? 살인자 김 성수는 이미 샤워실에 와 있었던 거야. 그 에어로빅 센터는 건물이 만들어 질때 같이 공사를 시작한 것이 아니라 나중에 입주하면서 에어로빅 센터로 개조가 된 것일꺼야. 샤워실에 인공으로 만들어진 경계벽만 봐도 알 수가 있잖아. 원룸 형식의 건물 내부를 두개로 나누기 위해서 나중에 만든 것이기 때문에 뭔가 엉성했던거지. 샤워실 어딘가에 김 성수가 숨을 만한 곳이 있었을 꺼야. 경찰이 조사를 할 때도 그 곳에 있었을 지 몰라. 지금은 이미 도망가고 없겠지만..." "어떻게 그걸 확신하지?" "창문의 잠금장치가 있는 곳의 구멍... 그건 밖에서 만든 구멍이 아니라 안에서 만든 구멍이었으니까. 자신이 창문을 통해 침입한 것 처럼 꾸미기 위해서 그렇게 해 놓았던 거지. 그래서 조사자들은 당연 김 성수가 창문을 통해서 다시 도망갔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고..." "안에서 만든 거라고?" "그래... 지금 확인했어. 그것이 안에서 만든 구멍이라는 것을..." "제길... " 어쩌면 조사 당시 샤워실의 어딘간에 숨어 있었을 지도 모르는 김 성수를 놓쳤다는 것이 분한 것인지 주 형의 말이 거칠어 졌다. "이제 두번의 살인이 더 남았어. 아직 목격자가 모두 죽지 않았으니까... 살인은 계속될 꺼야. 그들이 죽기 전에 우리는 잡아야 해. 김 성수를... 문제는 다음 살인이 어떻게 실행되느냐이고 또 어떻게 그것을 막느냐는 거지." "강 형사는 강 현민에게 붙여두고 난 병원에 있는 한 경찬을 맡도록 하겠어. 이젠 죽이지 못할 꺼야. 귀신이라도..." 주 형은 그렇게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난 핸드폰을 주머니에 집어 넣고는 오토바이 위에 올랐다. 그리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자꾸만 무언가 석연치 않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떻게 목격자들이 에어로빅 센터에 있다는 것을 안 것이지?' [디리리리리리] 무언가 형상이 잡힐 것 같은 나의 생각이 핸드폰 소리로 깨어져 버렸다. 난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받았다. "누구야?" "나 주 형사야!" "왜?" "김 성수에게 전화가 왔어." "뭐라고? 전화 발신지 추적장치 설치한 거야?" "아니 이렇게 빨리 전화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한지라..." "뭐라는 데?" "오늘... 5번째 살인을 하겠데..." 난 말을 잃었다. 이건 완전히 미친 인간 아닌가? 첫번째 희생자인 소연이 죽은 지 일 주일도 지나지 않아서 3명이나 더 살해 당했다. 그런데 오늘 또 살인을 할 것이라니... 난 기가 막혔다. 그는 4번째 살인을 예고했었고, 그 예고를 현실로 만들었었다. 5번째 살인에 대한 예고... 그는 반드시 자신의 약속을 지킬 것이다. 윤 혜지를 주 형사와 강 형사가 있는 곳에서 죽였듯이... 이번에도 그처럼 대담하고 치밀한 계획으로 말이다. (21편 끝) INTERVAL: 사랑에 대한 집착은 때론 인간에게 끔찍한 짓을 저지르게 하기도 한다. 우리에게 유명한 화가로 알려 진... 반 고호... 그는 무척이나 못생긴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아무도 그를 사랑하지 않았다고 한다. 언젠가 매춘부를 찾아가 자신의 그런 신세를 한탄하던 반 고호는 매춘부에게서 뜻밖의 말을 들었다고 한다. "당신은 귀가 잘 생겼군요." 그는 집으로 돌아와 자신을 처음으로 칭찬해준 그녀를 위해서... 그녀가 사랑해 준 자신의 귀를 잘라 바쳤다고 한다. 고호가 귀를 자른 이유는 자화상을 그릴 때 자신의 귀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다는 말도 있고, 고갱과의 공동생활에서 서로 너무 성격이 맞지 않아 나타난 정신 분열적 증상과 발작의 결과라고 하는 말도 있지만... 아무에게도 받지 못한 사랑에 대한 집착으로 고호가 그러한 끔찍한 짓을 저질렀다고 하는 것이 나에게 가장 설득력있게 생각되는 것은 나만의 편견일까? 사랑은 사람을 아름답게도 하지만... 사랑을 따라다니는 부가적인 것인 집착이라는 괴물은 사람을 끔찍하게 만들기도 한다. 난 집착이 싫다. 사람에 대해 집착하게 되는 나를 절대로 인정하고 싶지 않다. 집착을 만들어 내는 가장 큰 원인은 사랑이고........ 그래서 난 사랑이....... 싫다. ..........마지막 해커로부터......... [마지막 해커] -시간의 역류- (22) 집으로 오는 내내 난 살인범의 대담성에 놀라워하며 다음 살인이 정말 그가 예고한 오늘 일어날 것인가? 일어난다면 어떤 방법일까? 를 생각해 보았다. 한 경찬은 주 형사가 지키고 강 현민은 강 형사가 지킨다. 그들이 그렇게 밀착하여 지킨다 하더라도 분명 틈은 생길 것이다. 그 것이 어느 순간이냐는 문제와 과연 살인에 성공을 하더라도 들키지 않고 도주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가 남는다. 이번 경우는 혜지가 죽었을 때와 좀 다르다. 1:1 로 지키는 상황이라 살인에는 성공할 수 있을 지라도 잡히지 않고 도주한 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살인범은 그것을 어떤 트릭으로 막을 수 있을까? 난 알 수가 없었다. 머리속은 더욱 복잡해져만 갔다. 문득 생각 속에서 벗어났을 때 나의 집 문 앞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방안이 이상하리 만큼 고요하다. "소희씨?" 소희가 보이지 않는다. 도대체 어디를 간 것일까? 난 덜컥 겁이 났다. 혹시... 자신의 언니를 죽인 범인을 스스로 잡기 위해....? 난 정신없이 방 문을 뛰쳐 나갔다. 그녀가 어디로 갔을 지 짐작이 가는 곳은 한 군데 밖에 없었다. 아파트... 언니의 아파트... 엘레베이터의 버튼을 누르고 문이 빨리 열리길 기다렸다. 엘레베이터가 올라오는 속도는 평소와 똑같으려니만... 초조한 마음으로 난 너무 느리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고 계단으로 뛰어내려가기 시작했다.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다. 빨리 가지 못하면 그녀를 영원히 잃게 될지도 모른다. '안돼... ' 지하 주차장까지 뛰어내려온 난 오토바이에 올라타고는 아파트를 향해 가기 시작했다. 제정신이 아니었다. 속도계의 바늘이 160을 넘어서고 있다. 얼굴을 때리는 맞바람으로 눈도 뜨기 힘들다. 난 몸을 최대한 오토바이의 기름통에 밀착시키고 엑셀을 더욱 감아 쥐었다. 속도계가 170을 넘어서자 백미러로 비치는 주위의 배경이 잔상효과로 사라진다. 이미 오토바이는 갑작스런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제어 속도를 넘어서고 있다. 하지만 난 속도를 줄일 생각을 하지 않고 더욱 더 속력을 가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소연의 아파트로 달려온 난 그녀의 집이 있는 14층으로 뛰어올라가기 시작했다. 숨이 가쁘다. 땀은 비오듯이 흘러내렸고, 심장은 터질 것 같았지만, 난 계속해서 뛰어 올라갔다. 14층에 도착해 1404호의 문을 열었다. 잠겨있지가 않다. "소희씨!!!" 내가 소리를 지르며 그녀의 이름을 불렀지만 대답이 없다. 난 소연의 침실 문을 열어 제쳤다. [아...] 소희의 모습이 보이자 난 긴장감이 풀리며 다리에 힘이 빠져 그만 주저 앉고 말았다. 그녀는 소연의 침대 끝 쪽에 앉아 언니의 모습이 그려진 그림을 바라보고 있었다. 너무도 슬픈 표정으로 말이다. 난 갑자기 화가 났다. "도대체 왜 여기에 있는 것입니까? 이렇게 있다간 죽을 지도 모른다고요. 제 정신이에요? 내가 그렇게 말했잖아요. 위험하다고....!!!" 나의 말에 그녀는 대꾸가 없다. 그녀는 여전히 슬픈 표정으로 그림을 보고 있을 뿐이다. 난 주저 앉은 채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후우우우우....." 한 숨이 나왔다. 도대체 여자들은 왜 이렇게 제멋대로인 건지... "우리 언니는 이 그림을 완성시키고 싶었겠지요?" "........" 한 참 후에 그녀의 말... 많이 힘들어하고 있는 것 같다. 난 마땅히 할 말이 없었다. 언니를 잃은 슬픔은 어떤 말로도 위로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림을 사랑했기 때문에 사람을 사랑할 시간이 없었을 꺼에요. 사랑도 한 번 하지 못하고 그렇게 끔찍하게 죽게 된 우리 언니가 너무 불쌍해요." 난 무슨 말을 하려다가 그만 두었다. 소희의 눈에서 반짝이는 것은 눈물일 것이다.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녀를 위로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난 자리에서 일어나 소희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그녀의 가녀린 어깨를 가만히 감싸 않아 주었다. 소희는 나의 팔에 얼굴을 묻고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잡을 수 있을 꺼에요. 이제 조금씩 풀려가니까... 조금만 기다려요. 반드시 잡을 꺼에요. 반드시..." 나의 팔에 뜨거운 무언가가 느껴졌다. 그녀의 눈물일 것이다. 난 그녀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사람이 없는 아파트... 마치 죽어버린 건물처럼 느껴진다. 그녀를 오토바이에 태우고 집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아까처럼 빠르게 달리지 않았다. 그녀가 놀라지 않게 최대한 안전한 속도로 라이딩을 했다. 그녀는 나의 허리를 꼬옥 끌어안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난 행복한 마음이 든다. 난 그녀를 사랑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희가 소연과 똑같은 얼굴을 한 사람이기 때문은 아닐까? 난 소희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소희에게서 보이는 소연의 모습을 사랑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난 고개를 저었다.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지금의 감정에 충실하고 싶었다. "유석씨..." 문득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왜요?" 오토바이의 엔진소리 때문에 난 큰 소리로 물었다. "한강에 가고 싶어요." "한강이요?" "네... 한강... " [끼이이익] 난 오토바이를 도로 한 가운데에서 세웠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소희를 보았다. 소희는 나의 등에 묻고 있던 얼굴을 들어 그 아름다운 눈으로 날 바라본다. 마치 꼭 가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것처럼... 난 중앙선에서 그대로 STOP TURN을 하였다. 그리고는 한강의 시민 공원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왠지 가슴이 두근거린다. 데이트를 한다는 기분이어서 일까? 만난기도 전에 소연의 그림에서 사랑이라는 것을 느꼈고, 보호해 주기 위해서라는 명목이었지만, 그녀를 내 곁에 두고 싶어서 나의 오피스텔에 머물기를 간청했던 나, 하지만 사건과 범인 추적으로 제대로 말 조차 나누어 보지 못했었기에 지금의 시간은 나에게 커다란 행복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우리는 어느새 한강의 다리위를 지나고 있었다. "너무 예뻐요." 그녀는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다리위를 가로지르며 달리는 오토바이위에서의 한강의 야경은 정말로 예뻤다. 그다지 깨끗하지 않은 한강 물의 색깔도 어둠으로 들어나 보이지 않았고, 사람들이 터트리는 형형색색의 폭죽도 한 몫을 하였다. 한강 다리를 다 지나서 시민공원에 도착한 우리는 오토바이에서 내렸다. "와아... 시원해." 그녀의 표정이 무척 밝아 보였다. 강 바람에 그 긴 머리칼을 휘날리며 서 있는 그녀의 모습이 마치 여신과도 같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녀를 흘끔 흘끔 보았다. 여자들 마저도 그녀의 아름다움에 시선을 던진다. 난 아이처럼 좋아하는 그녀를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거리 상점에서 캔 커피를 사들고 와서 그녀에게 건넸다. "마셔요." "예에. 고맙습니다." 그녀는 내가 준 커피를 두손으로 받으며 행복한 표정으로 날 보았다. 우리는 강변을 걸으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난 그녀의 행복한 표정을 보는 것 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소희는 여기저기를 두리번 거리면서 신기한 듯이 살펴보고 있었다. 마치 한강에 처음 온 사람처럼 말이다. "한강에 안 와 봤어요? 뭐가 그렇게 신기해요?" 그녀는 창피한 듯이 날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사실 한 번도 안와봤어요." "네? 정말로요?" 그녀는 웃음지었다. "바보같지요? 하지만 한강에 같이 올 사람이 없었는 걸요. 꼭 와보고 싶었지만 혼자오기는 좀 이상해서요." "하하... 하긴 혼자 왔다면 남자들이 가만히 안 있었을 꺼에요. 지금도 저렇게 소희씨 쳐다보는 사람이 많은데..." 소희가 나의 말에 주위를 둘러 보았다. 소희를 훔쳐보던 남자들이 시선을 피한다. 그녀는 잠시 웃음 짖고는 나를 보며 말했다. "미안해요." "예? 뭐가요?" 가만히 그녀가 나의 팔짱을 꼈다. "이렇게 하면 애인인 줄 알고 날 훔쳐보지 않을 꺼에요. 그렇지요?" 그녀가 행복하게 웃음 짖는다. 난 이상하게도 얼굴이 달아오는 것을 느꼈다. '아직도 이런 마음이 남아있다니... 참 이상하군... 이미 잊어버린 줄 알았는데...' 나의 가슴은 두근거리기까지 했다. 말을 꺼내기가 무섭다. 횡설수설 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우리 여기 앉아요." 그녀는 나를 끌며 강물과 가까운 방파제 위에 앉으려다 팔짱을 낀 상태라서, 그만 들고 있던 캔 커피를 나의 옷에 흘리고 말았다. "아... 미... 미안해요." 그녀는 당황해 하며 나의 옷에 묻은 커피를 닦을 것을 찾으려고 하였다. "괜찮아요. 이렇게 하면 되요." 난 옷을 어깨까지 걷어올렸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채로 풀이 죽어있었다. "괜찮다니까요. 그렇게 풀이 죽어 있으면 내가 더 미안해지잖아요." 그녀는 방파제 위에 앉아 무릎위에 얼굴을 대고는 아무런 말이 없다. "소희씨... 괜찮아요. 정말로, 정말로 괜찮아요. 정말로오오오오오오...." "사실..." "예?" 그녀는 뭐가 부끄러운 건지 얼굴에 홍조를 띄우고 있었다. "앉을 때 유석씨 팔을 놓아야 했었는데...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나... 아까 팔짱 낄때 무척 용기를 낸 것이거든요. 팔을 놓으면... 다시 팔짱을 낄 용기가 나지 않을 것 같아서... 그러다가 그만... 나... 바보같지요?" 난 형언할 수 없는 무언가가 가슴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느꼈다. 어렴풋이 떠오른다. 잊어버렸던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행복해 하던 나의 모습이.... (22편 끝) INTERVAL: 유니 방송국에 갔다가 온 후, 앓아 누었다. 전날 비온다고 좋아서 밖에 나가 뛰어논 것이 화근 이었을 것이다. 몸살에 목감기.... 침도 제대로 삼킬 수 없어서 밥도 못 먹고 계속 누워 있었는데 동생이 방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나에게 무언가를 던져 주었다. "약 먹어." 우와 저 눔이 왠일로... 이런 친절을... 내가 죽어나가도 눈하나 깜짝 안 할 것 같은 내 동생이 약을 사오다니... 우와 감격... 난 힘든 몸을 일으켜 약을 먹고는 감격어린 눈으로 내 동생을 보았다. 내 동생은 아무런 말도 않고 내 방문을 닫고 나갔다. '그래. 짜식... 차갑긴 해도 오빠가 아프다니까 걱정은 되나 보군... 하하하...' 난 행복해 하면서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잠이 들었을까? 동생이 들어오는 소리에 눈을 떴다. 동생은 시계를 보고 있었다. "이제 약발이 좀 받았을 테니까... 어때 좀 괜찮아져?" "그럼... 누가 사준 약인데..." 동생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무표정하게 날 보며 말했다. "이제 글써... 빨리 3일이나 안 썼단 말이야. 빨리 써!" 다시 머리가 아파오고 힘이 빠진다. 이젠 없었던 화병까지 생길 것 같다. 정현이는 내 동생이 아닌가 보다. ..........마지막 해커로부터......... [마지막 해커] -시간의 역류- (23) "아직까지 아무런 이상도 없는 거지? 그래 그럼 계속 긴장을 늦추지 말고 수고해줘. 저번처럼 마지막에 당하지 말고..." 주 민성은 전화를 끊고는 병원침대에 누워있는 한 경찬을 보았다. 그다지 아파보이지는 않았지만 의사가 후유증을 생각해서 병원에 입원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주 형사는 담배를 한 대 피우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사람들이 많은 입원실이라 살인범이 아무리 대담하더라도 살인행각을 벌일 순 없을 것이다. 새벽녘 잠시 뜸했던 비가 다시 오기 시작한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거야? 우라지게도 오는 구만..." 그는 막연히 살인범을 기다릴 수 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에 짜증이 난 것인지 말이 험해졌다. 지금 오후 9시... 앞으로 오늘이 지나려면 3시간 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그는 숨을 크게 들이키며 기지개를 폈다. 새벽부터 한 경찬의 주위에서 떠나지 않았던 그는 이제 지친 것일 지도 모른다. '이번엔 어떤 방법을 쓰게 될까? 아무래도 한 경찬은 병원에 있으니까 좀 그렇고... 그럼 강 현민을 타켓으로 삼아야 할 텐데... 강 현민은 강 형사가 아예 붙어서 지키고 있으니 힘들 것이고... 알 수가 없어. 도대체 무엇을 믿고 그렇게 대담하게 살인을 예고한 것이지?' 주 형사는 담배 한대를 다 피우고는 또 다른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리고 꽁초로 다시 불을 붙였다. 그때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들리며 엘블란스가 병원 응급실쪽으로 달려왔다. 차가 서고 들것에 사람이 실려 나온다. 교통사고인가 보다. 얼굴이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무너져 버린 남자가 보였다. 응급실에 있으면 별의별 사람을 다 보게 된다. 죽어가는 사람들의 처절한 몸부림, 살리기 위해 애쓰는 의사들의 피나는 노력들... 그래서 병원에 오면 항상 정신이 없다. 같은 병원의 의사들끼리도 누가누군지 모른다는 말도 있을 정도이다. '누가 누구인지 모른다? 이런 제기랄...' 주 형사가 그렇게 생각을 했을 때, 그는 당황하여 한 경찬의 병실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많은 병원이라고 안심해서는 안되는 거였어. 가장 죽이기 쉬운 장소가 병원이라고... 빌어먹을...' 너무도 혼잡한 병원... 만약 살인범 김 성수가 의사로 가장을 하고 들어온다면 그래서 자신이 화장실이라도 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면... 아주 쉽게 죽일 수 있는 장소가 바로 병원인 셈이다. 그는 정신없이 한 경찬의 병실로 뛰어들어갔다. 한 경찬이 누워있는 침대 옆에 하얀 가운을 입은 누군가가 서 있다. 그는 링겔병을 만지고 있었다. 주 민성 형사는 권총을 뽑아들고 소리질렀다. "움직이지마. 링겔 병에서 손 때, 안그러면 머리통을 날려 버리겠어." 병실안의 사람들이 놀라서 소리를 지른다. 의사가운을 입은 사람은 놀라서 링겔병을 놓고는 손을 번쩍 들었다. 그가 뒤돌아 보려고 하자 주 민성은 더욱 거칠게 소리질렀다. "움직이지 말라고 했잖아. 죽고 싶지 않으면 그대로 서 있어." 주민성은 의사가운을 입은 자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는 머리에 총을 겨누고 말했다. "뒤로 돌아 천천히... 손은 그대로 들고... 잘들어 갑작스런 행동을 하면... 그대로 머리통을 날려버리겠어. 그러니까 조심스럽게 움직이는게 이로울 꺼야." "도...도대체 왜 이러십니까..." "시끄러... 어서 뒤로 돌기나 해." 소란에 한 경찬이 잠에서 깨었다. 그는 놀란 눈으로 앞의 광경을 바라본다. 병원 관계자들이 병실로 몰려왔다. 주 형사는 여차하면 방아쇠를 당길 기세로 그가 뒤를 돌아서는 모습을 주시하고 있었다. '이런... 김 성수가 아니잖아.' 주 형사는 돌아선 사람이 처음보는 얼굴이자 당황하였지만, 아직 의심을 늦추어서는 안되었기 때문에 여전히 그의 머리에 총을 겨누며 소리쳤다. "신분증 어딨어." "여기 가슴에 달려있는 패찰이 보이지 않습니까?" 주 형사는 그의 가슴에 달린 패찰의 사진과 얼굴을 비교하고는 총을 내렸다. "제길..." "이봐요. 도대체 왜 이러는 겁니까? 놀랐잖아요." "죄송합니다. 지금... 어쩔수 없는 상황이라서..." "그래도 그렇지 사람 머리에 총을 겨누고 다짜고짜 소리치다니... 이거 고소감인거 아시겠지요?" 주 형사는 할 말이 없었다. 경찰의 총기 사용이 허가는 되었지만, 위험한 상황이 아닌이상 총을 뽑아드는 것에는 많은 제한이 가해진다. 의사는 기분이 나쁘다는 눈빛으로 주 민성을 쏘아본 후 밖으로 나가버렸다. '또 시말서 쓰게 생겼군.' 주 형사는 권총을 집어넣고는 한 숨을 쉬었다. "주 형사님... 괜찮으세요?" 한 경찬은 주 형사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물었다. 주 민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요. 제가 너무 긴장을 해서... 그나저나 몸은 어때요. 이제 좀 정신이 듭니까?" "아무래도 또... 누군가 살해를 한다는 전화를 받으신 것 같군요." 주 민성은 대답하지 않았다. 한 경찬은 눈을 감고는 말했다. "우리들이 다 죽어야 범인이 잡히는 것은 아닌가 의심스럽습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살인이 일어나지 않을 꺼에요." "계속해서 지키고 계시다면 그렇겠지요. 언제까지 지키실 건가요? 한달... 두달...? 주 형사님도 지치고 저도 지치고 모두가 지치는 일일 뿐입니다. 그렇게 평생을 살아간다면 차라리 죽는게 낳아요." "곧 잡힐 것입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십시요." "혼자 있게 해주세요. 주 형사님이 옆에 있으면 죽음의 위협을 받고 있다는 생각을 더욱 지울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 "부탁입니다." 주 민성은 한 숨을 쉬고는 병실의 문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그가 보이는 쪽 복도에 앉았다. 이틀동안 꼬박 한 숨도 자지 못한 그였기에 피곤이 몰려 왔다. '황기자라도 있으면 좋을텐데... 도대체 왜 전화도 안 받는 거야?' 잠을 자지 않으려 했지만... 잠이 몰려왔다. '자면... 안돼는데... 안돼는데...' *********** *********** "형!...... 형!!!" 내가 소리를 지르자 주 형은 눈을 번쩍뜨고 날 바라보았다. "사람 지킨다는 형사가 자고 있으면 어떻게... 정신이 있는 거야?" "...황기자... 참 한 경찬... 한 경찬은..." 그는 당황을 하여 병실로 뛰어들어가려고 한다. "내가 확인했어. 자고 있으니까 걱정하지마." "후우...." 그는 안도의 한숨을 쉬고는 시계를 보았다. 새벽 1시... "이런 하루가 지나버렸잖아." 주 형은 핸드폰을 꺼내기 위해 주머니를 뒤적였다. "이거 찾아?" 난 주 형사의 핸드폰을 눈 앞에서 흔들거리며 말했다. "전화해야해. 한 경찬이 안 죽었으면... 강 현민이라고... " "방금 전화 왔었어. 내가 받았지. 아무 이상없데..." "그럼... 살인이 일어나지 않은 거야?" "그래... 오늘은... 살인이 일어나지 않은 것 같아." "휴우... 그럼 그렇지. 이렇게 철통같이 지키고 있는데 어떻게 죽여?" "철통같이...? 이렇게 자빠져 자고 있는데?" "잠시 잔거야. 잠시 뿐이라고..." "변명은 집어치우고 커피나 한잔 먹으러 가자." 난 주 형사를 끌고 자판기 커피가 있는 곳으로 갔다. 커피를 뽑아들고 밖으로 나온 우리는 아직도 비가 내리고 있는 하늘을 우두커니 바라보았다. "정말... 지루한 싸움이 될 것 같지 않아?" "후우... 빨리 잡아야 할텐데..." "하지만... 방법이 없잖아. 신출귀몰한데다가 우리를 빤히 바라보고 있으니..." "꼬리가 길면 잡히게 돼있어." "그 말은 사람이 더 죽어야 한다는 소리와 같아." 주 형은 나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그랬다. 사람이 하나 더 죽어야 김 성수의 소재를 명백히 찾아낼 증거를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살인이 일어나도 단서를 찾을 수 없을 지도 모르지만... 난 담배를 꺼내 물고 말했다. "방법이 전혀 없어. 어디서부터 시작을 해야하는지 갈피가 잡히지 않아." "함정을 파 놓고 시작해 볼까?" "그건 주 형 방식이 아니잖아. 형은 검거보다는 사람의 생명을 지키는 것을 항상 우선시 했으니까..." "하지만... 이러다간 모두 지쳐서 죽을 것 같아. 어떻게든 방법을 취하지 않으면 그 놈의 술수에 말려들어 모두 죽게 될 것은 뻔해." "함정...수사라..." [디리디리디리디리리...] 엘리제를 위하여... 주 형사의 핸드폰 소리... "강력계 주 형사입니다." "키킥... 형사나리... 오늘도 실패하셨군요." 전화를 받는 주 형사의 얼굴이 굳어진다. "무...무슨 소리야." "난 약속을 지켰습니다. 이제 한 명 남았지. 마지막 한 명은 언제 죽을 것인지에 대한 힌트를 주지 않을 겁니다. 이걸로 저의 전화도 끝이고요. 자 이젠... 우리도 작별을 해야지요. 그럼 이만... 즐거웠습니다. 하하하..." "이봐... 오늘 아무도 죽지 않았다고 도대체 무슨 헛 소리야." 전화가 끊어졌다. 주 형사는 핸드폰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왜그래?" 그는 커피를 집어던지고 병실로 뛰어갔다. 나도 그를 따라 한 경찬의 병실로 뛰어올라갔다. 병실에 도착한 우리는 한 경찬을 찾아 보았다. 그가 보이지 않는다. "여기 누워 있던 사람 어디로 간거지요?" 주 형사가 옆에 누워있는 환자에게 물었다. "아까... 어떤 여자분이 와서... 데려갔는데..." "뭐...뭐라고요? 어디로요..." "그냥 밖으로..." 주 민성은 밖으로 뛰어나갔다. "주 형!" "찾아야해. 아직 멀리가지 못했을 꺼야." "이 큰 병원에서 어떻게 찾겠다는 거야." "이런 빌어먹을... 어디든 찾아봐. 찾아보라고..." 주 형은 이미 제정신이 아닌 듯 싶다. 그런데... 여자라니... 여자가 와서 데리고 갔다니... 도대체 무슨 일이야. 주 형사가 받은 전화는 또 뭐고... 그럼 지금 살인이 일어난다는 소리인가?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23편 끝) INTERVAL: 언젠가 병원 응급실에서 있었던 일이다. 왼손 엄지 손가락이 칼에 심하게 베여 피를 철철 흘리던 선배를 데리고 병원으로 왔다. 시간이 늦은 지라 응급실로 간 우리는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는 선배의 비명소리에 짜증을 내며 의사를 찾았다. 하긴 뼈가 보일 정도로 베였기 때문에 아프긴 많이 아팠을 것이다. 난 아무 의사나 붙들고 말했다. "빨리좀 치료해 주세요. 뼈가 보일 정도로 베었다니까요." "기다리세요. 먼저 온 사람들부터 봐야하니깐... 의사가 곧 갈테니까 빈 침대에서 앉아 계세요." "우아아아악 아파 죽겠는데 뭘 기다리라는 거에요. 아파 죽겠다구요." 선배가 소리를 지르고 난리를 치는 바람에 우리는 거의 강제로 선배를 데리고 침대로 왔다. 사람들이 우리를 쳐다보는 것이 창피했다. "그만 좀 해. 시끄러워 죽겠어." "너라면 그만 하겠어. 우아아악... 아파 죽겠어." 호들갑을 떠는 우리 선배... 하긴 선배의 손을 지혈하기 위해 감싼 손수건은 이미 피로 물들어 있었을 정도니까... 그런데 옆에서 가만히 앉아있던 한 아저씨가 말했다. "많이 다쳤어요?" 그 아저씨도 손가락을 다쳤는지 손에 붕대를 감싸고 앉아 있었다. "많이 베였거든요." "우갸갸갸 아파 죽겠어." "아우 시끄러워 좀 조용히 해. 그런데 아저씨도 손을 다쳤나 보지요?" "예... 공장에서 부주의로... 그런데 의사들이 바빠서인지 기다리라고 하고 아직까지 치료를 안해 주네요." "곧 치료해 주겠지요. 아우 조용히 좀 하라니깐..." 소리를 지르고 있는 선배... 잠시 후 의사가 왔다. 그런데 의사는 우리 선배는 신경도 안쓰고 옆의 아저씨에게로 갔다. "어디 좀 봅시다. 음... 나머지 부분은요?" "여기..." 아저씨가 얼음이 담긴 비닐 주머니를 보인다. "수술해야 하니까 여기 간호원 따라 가세요." "예." 아저씨는 아무렇지도 않게 비닐 주머니를 들고 간호원을 따라간다. 의사는 비명을 지르고 있는 선배에게로 왔다. 그리고는 말했다. "어디 봅시다." "으아아악 아파..." "저기... 저 아저씨가 가지고 간 비닐 주머니에 뭐가 들었어요?" "어휴...많이 베었군요. 꼬메야 겠네요. 잠시 기다리세요." "저기 뭐가 들었는지...?" "아... 저 분이요? 손가락이요. 공장에서 절단기에 검지 손가락이 잘려나갔데요." 의사는 그 말을 하고 가버렸다. 소리를 지르던 선배는 갑자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고통은 상대적인 것인가? 꼬메면서도 소리하나 지르지 않은 선배가 자랑스러웠다. 바보... 멍청이... 진작에 그럴것이지.... ..........마지막 해커로부터...... [마지막 해커] -시간의 역류- (24) "도대체 무슨 전화였길래 그러는 거야?" 미친듯이 한 경찬을 찾아 헤메는 주 형사를 따라다니며 묻는 나에게 그는 황당한 답변을 하였다. "자신은 약속을 지켰데... 살인을 하였다는 소리야." "약속을 지켰다면 지금 시간이 맞지 안찮아." "시간이 무슨 문제야. 그 놈은 한 경찬을 데리고 나갔고, 지금 쯤 죽였을 지도 몰라. 빨리 찾아야 해. 시간에 대한 논쟁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주 형! 놈이 아니라 여자야. 한 경찬을 데리고 나간 것은 여자라고..." 주 형이 멈추어 섰다. 나도 멈추고는 숨을 돌렸다. "여자..." "그래... 아우 힘들어. 여자란 말이야. 아까 그 사람말 못들었어? 어떤 여자가 데리고 나갔다고 했잖아." "지금 그런거 따질 때가 아니야. 생각해 보자. 죽이기 위해서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장소를 찾아야 할테고... 그럼..." 주 형은 그말을 끝으로 어딘가로 뛰어가 버렸다. 난 주 형사를 쫓아가는 것을 그만 두었다. 난 한 경찬을 데리고 나간 사람이 살인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무리 몸이 아픈 병자라도 살인범을 순순히 따라갈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았고, 더욱이 여자라면 이 사건과 관련이 없는 전혀 의외의 인물이 혜성처럼 출현한 것이라는 말인데... 피살자들의 연관성을 생각해 볼때 앞 뒤가 맞지 않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난 숨을 돌리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비소리가 요란하게 들린다. 고개를 돌렸을 때, 문득 휠체어를 탄 한 남자와 그 옆에 서 있는 여자가 보였다. "어...!" 한 경찬이었다. 그리고 옆에 있는 여자는 처음보는 얼굴... 둘은 무언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내가 다가서자 한 경찬이 날 바라보고는 아는 척을 하였다. "황기자님? 아니 여긴 어쩐 일로..." "안녕하세요. 무사하셨군요." "무사하다니요?" 난 옆에 서 있는 여자를 보았다. 한 경찬이 소개를 한다. "저의 여동생입니다. 인사해. 이분은 황 기자님이셔..." 그녀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난 같이 목례로 대꾸하고는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갔지만 바로 가까이서 핸드폰 소리가 울렸다. '뭐...뭐야?' 난 전화를 끊고 다시 걸었다. 또 신호가 가고 아주 가까운 곳에서 벨이 울린다. 주위를 둘러 보았지만 핸드폰을 쓰는 사람은 없었다. "황 기자님... 저기..." 한 경찬이 가리키는 곳을 보자 바닥에 떨어져 있는 핸드폰이 보였다. 아까 전화를 받고 주 형이 바닥에 떨어뜨린 그의 핸드폰이었다. '으휴... 덤벙거리긴... ' 약간 부셔지긴 했지만 그다지 많이 고장난 것 같지는 않았다. 난 그것을 들고 다시 전화를 걸었다. 그의 비퍼로 말이다. "나야. 여기 병원입구니까 빨리와. 한 경찬씨 아직 살아있으니까 엉한 곳에 가서 소란 피우지 말고 이거 받는 즉시 빨리 오라고..." 전화를 끊고 난 한 경찬에게 말했다. "우리는 그 쪽이 무슨 봉변이라도 당한 줄 알았어요. 그래서..." "아... 그렇군요. 죄송합니다. 함부로 행동해서... 하지만 주 형사님이 안계셨기에..." 잠시 후 주 형이 뛰어왔다. 그는 한 경찬이 살아있는 것을 보자 안심을 한 것인지 한 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화내다 싶이 말했다. "왜 그렇게 사람을 놀래키는 겁니까? 자신의 처지가 어떤 지도 몰라요?" "...그렇지만..." "그러다가 죽으면 어떻게 해요. 범인은 귀신보다도 더 영악한 놈이라고요." "우리 오빠가 무슨 잘못을 한 거지요?" 그때까지 아무런 말이 없던 한 경찬의 동생이 차갑게 말했다. 주 형사는 그녀의 말에 화가 난 눈으로 바라보았다. "왜 우리 오빠가 감금당하다싶이 감시를 받고 있어야 하는 거냐구요." "경미야...!" "한 경찬씨는 목숨의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감시가 아니라 보호라고요." 목소리가 커지자 한 경찬이 동생을 말린다. 하지만 그녀는 오빠의 말을 들을 생각도 않고 계속 화를 내었다. "우리 오빠가 이렇게 된 것도 다 당신들이 부주의 한 것 때문이잖아요. 보호를 하려면 제대로 하시던가... 그게 아니면 그만 두세요. 철창만 없지 감옥하고 다른게 뭐가 있어요." 주 형이 화를 참지 못하고 무슨 소리를 하려는 것 같았다. 그는 어느정도 남성 우월 주위에 빠져있는 남자 였기에 난 다음 말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얼른 그의 입을 막고 말했다. "죄송합니다. 그럼 이야기 나누십시요." 나는 강제로 그를 끌고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 막았던 그의 입을 놓자 그가 소리질렀다. "왜 그래?" "여자가 어디서 큰 소리야 할려고 했잖아." "당연하지 어디서 여자가 난리야 난리는 그냥 성질 같아선..." "그래서 또 폭행치사로 철창 신세 지고 싶어?" 그는 신경질을 참지 못하고 옆에 관상용 화분을 발로 차 버렸다. "잘하는 짓이다. 그래 다 부셔라. 기물파손까지 추가에다가...." "그만해. 제기랄... 으으으으으..." 그는 머리 끝까지 화가 난 듯 싶었다. 그도 그럴것이 살인범을 잡지 못하는 스트레스와 한 경찬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짜증이 날 때까지 난 것이다. 겨우 겨우 화를 참아낸 그는 내가 들고 있던 자신의 전화를 빼앗다싶이 낚아 채고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강 형사에게로 전화를 거는 것이겠지. 한 경찬이 죽지 않았다면... 강 현민이 죽었을 테니까... "왜 전화를 안 받는 거야?" 그는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전화는 여전히 불통이었다. 그는 밖으로 나가 택시를 잡아 타며 말했다. "한 경찬 옆에 붙어 있어. 나 강 형사에게 가볼테니까..." 그는 그 말을 남기고 병원을 떠나 강 형사에게로 가 버렸다. 난 터벅터벅 병원 밖으로 나가서 한 경찬과 그의 동생이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는 담배를 꺼내 물었다. "후우... 이게 왠 사서 고생인 건지... 월급 올라가는 것도 아닌데..." 난 잠시 생각에 빠졌다. 살인범에게 끌려 간 줄로만 안 한 경찬... 그는 아무런 일도 없이 그의 동생과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김 성수는 살인을 했다고 주장했고, 그렇다면 연관된 제 3의 인물이 있다는 것일까? 갑자기 머리속에서 종이 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제 3의 인물? 이...이런...' 난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 오토바이가 있는 주차장으로 달려갔다. 폭우로 오토바이를 몰기는 역부족이었지만, 그래도 난 시동을 걸고 상아 아파트로 향했다. 20분 쯤 지나 겨우 아파트로 온 나는 비를 맞으며 재빛 아파트를 바라보았다. 음산한 기운이 넘치는 아파트의 분위기... 난 젖은 옷에서 빗물을 뚝뚝 흘리며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3층으로 올라갔다. 304호... 김 성수의 집... 난 문을 열었다. 내 생각이 맞지 않길 바라며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역시 잠겨 있지 않다. [번쩍!] 갑작스런 번개... 어두운 방안으로 번개의 빛이 비추어지며 무언가가 언뜻 보인다. [콰콰강!!!] 요란한 천둥소리와 함께... 많이 맡아 본 냄새가 느껴진다. 피비린내... 난 불을 켰다. 그리고는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말을 잃었다. 역한 냄새가 더욱 더 나의 후각을 자극한다. 난 마음을 진정하고 다시 한 번 내 앞에 펼쳐진 광경을 바라보았다. 잘려진 목이 거실의 한 쪽 구석에 나뒹굴고 있었고... 엎어져 있는 몸의 목 부분은 구더기가 들끓고 있었다. 벽은 일부러 피를 뿌린 것 처럼 시뻘겋게 얼룩져 있는 것이 아마도 목을 자를 때, 동맥이 끊켜 쏟아져 나온 혈류 때문인 것 같았다. 난 안으로 들어가서 뒹굴고 있는 머리를 발로 건드려 얼굴이 보이도록 했다. 김 성수... 여태 우리가 살인범이라고 지목했던... 바로 그 김 성수의 얼굴이다. 공포와 고통으로 심하게 일그러져 있는 그의 표정...그의 코와 입에도 수많은 구더기가 들끓고 있다. 살인범이라 생각했던 김 성수가 죽었다. 김 성수가 죽었다고... 지금까지의 유일한 단서가 모두 사라져 버리다니... 모두.... 난 전화를 걸었다. 잠시 후 주 형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 상아 아파트 304호 김 성수의 집이야. 살인범의 말대로 약속은 지켜졌어. 빨리 여기로 와... 빨리... 혼자있기 짜증나니까 빨리 오라고!!!" 전화를 끊고 난 천둥이 치는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빌어먹을 그만 좀 와라. 그만 좀 내리라고 징그러운 비야.... (24편 끝) INTERVAL: 거의 아픈 몸을 잊고서 (동생의 협박으로) 3편을 내리써나간 나에게 전화가 왔다. HORROR'S VILLAGE의 시솝님인 지나님이셨다. "내일 정모에 안나오시면 죽음이에요." 전화를 끊고 동생보다 더 무서운 시솝님의 협박에 몸을 떨었다. 내일 빨리 몸이 나야 할텐데... 지금 너무 힘들다. 자자... 이제 더 이상 노트북의 자판을 건드릴 힘도 없다. 아휴......내일까지는 살아있어야 할텐데.... ..........마지막 해커로부터....... [마지막 해커] -시간의 역류- (25) 사진기의 플래시가 터지고 경찰들은 지문을 찾기위해 여기저기 조사를 시작했다. 난 김 성수의 아파트, 현관 문 옆에 기대서서 베란다 밖으로 내리는 비를 보며 담배를 피우고 있다. "휴우... 냄새 한 번 지독하다. 오래전에 죽은 시체 같아." 주 형이 김 성수의 집에서 나와 조사용 장갑을 벗으며 말한다. 나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은 채로 여전히 내리는 비에 시선을 두고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오래전에 죽은 시체는 무슨 오래전에 죽은 시체야... 사건 벌어진 지 일주일도 안되었는데..." "하긴... 아직 일주일도 되지 않았군. 지독한 새끼... 일주일도 안되서 벌써 다섯번의 살인이라니..." 난 담배를 하나 꺼내 필터를 뜯어 버리고는 주 형에게 건넸다. "이렇게 피면 담배가 좀 독해 지니까 시체 냄새가 사라질 꺼야." "그래도 필터없는 담배는 건강에 너무 해로와." "형... 담배 피는 사람이 그런 말 하는 거 제일 바보같은 대답인거 알아? 담배는 어떻게 피우던지 해로운 거라고..." 주 형은 내가 준 담배를 받아 입에 물고는 불을 붙였다. 나의 입에 역시 필터를 제거한 담배가 물려있다. "징그러워 죽겠어." "뭐가... 시체가? 왠 일이야? 니가 시체를 보고 징그럽다니..." "비 말이야. 비... 도대체가..." 몇일 째 내리는 폭우... 그리고 계속되는 살인... 난 비를 보며 짜증이 났다. "인간이 너무 잘못을 많이 해서 하늘이 노한거야." "주 형... 전화도 녹음이 되었던 것일까?" "전화?" "형 한테 살인을 예고 했었던 전화 말이야. 아무래도 이미 녹음을 해 놓은 상태에서 자동으로 전화가 걸리도록 장치를 한 것 같아." "실제로 범인이 전화를 했어도 추적하기엔 어려웠을꺼야." 난 담배연기를 깊이 빨아들이고는 한 숨과 함께 내뱉고 혼자말을 하듯이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간단 말이야." "뭐가?" "김 성수가 죽은 것이 발견되리라는 것을 뻔히 알고 있었으면서 왜 그로 가장을 해서 전화를 건 것일까? 이렇게 되면 김 성수가 범인이 아니었다는 것이 확실해 지는 거잖아." "무슨 소리야? 아우... 눈이야." 주 형사는 필터가 없는 쓴 담배연기가 눈으로 들어갔는지 자신의 눈을 손으로 비비며 인상을 찌푸리고는 물었다. "생각해봐. 김 성수는 나중에 발견되는 것이 훨씬 좋았어. 증인을 다 죽이고 말이야. 그럴듯하게 유서라도 써서 말이지... 그럼 이 사건은 김 성수를 범인으로 완전하게 결말이 나 버렸을 것이라고... 완전범죄로..." "하긴 그렇게 했으면... 상부에서 사건 종결이라고 판결했겠지." 나의 말에 주 형의 표정이 심각해 진다. "아니면 김 성수의 시체를 아예 매장했다고 쳐봐. 그럼... 이 사건은 결국 살인범은 모든 살인을 하고 사라져 버렸다라는 미해결 문제로 끝나게 되는 것이라고... 그런데 이렇게 찾기 쉬운 김 성수의 집에 시체를 그대로 방치해 두다니... 뭔가 이상해." "....." "그리고 또 한가지 이상한 것은 왜 5번째 피살자가 한 경찬이나 강 현민이 아니라 김 성수였냐는 거야. 그는 소연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우연한 목격자일 뿐인데... 그를 범인으로 몰기 위해서 죽인 것이라면... 지금의 처사는 너무 바보같은 짓 아닐까? 형이 살인범이라면 그렇게 했겠어?" 난 여기까지 말하고 주 형을 보았다. 무언가 잡힐 것만 같은 기분이다. "여태까지의 전화도 그렇고 너무 많은 힌트를 준 것 같지 않아? 마치..." "마치 김 성수의 시체를 일부러 우리가 발견 하도록 이곳에..." 주 형사는 눈이 날카롭게 빛난다. "그래... 김 성수의 시체는 언제고 발견되야 했던 거야. 우리들 눈에 발견되야 했던 거라고..." "도...도대체 왜?" 주 형이 그렇게 물었을 때, 강 형사가 김 성수의 집에서 나오며 말했다. "시체의 부패정도로 봐서..." "이런 빌어먹을..." "예? 황 기자님... 지금 저보고?" 내가 강 형사를 보고 나도 모르게 욕설이 터지자 그는 약간 불쾌한 얼굴을 하며 물었다. "왜... 왜 강 형사가 여기 있는 거야? 왜! 형은 또 여기 왜 있고..." 내가 당황하며 소리치자 주 형과 강 형사가 놀란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아직도 모르겠어? 범인은 한 경찬과 강 현민 둘 중 하나야. 김 성수가 발견되지 않으면 강 형사와 주 형은 그 둘의 옆에서 항상 감시를 하였을 것이고 그럼 둘 중 하나인 범인이 나머지 목격자, 아니 소연과 관계된 남자를 죽일 수가 없게 되는 거라고... 주 형과 강 형사 둘다 동시에 한 자리에 모일 계기가 필요했던 거야. 둘 다 아무에게도 감시를 받지 않은 상태가 되야 했던 거지. 마지막 희생자의 살인을 예고할 수 없었던 것도 그 살인 시간이 강 형사와 주 형이 김 성수의 시체를 발견한 때에 따라 달라지는 가변적 시간이었기 때문이고..." 주 형은 입에 문 담배를 떨어뜨렸다. "이... 이런..." "진짜 마지막 살인은 지금 일어나는 것이라고... 지금... 빨리 전화 걸어봐. 아니야. 그렇게 되면 범인이 누군지 아예 모르게 돼. 그들이 있는 곳으로 직접 가야겠어. 또 다른 트릭을 만들기 전에 말이야. 빨리 한 경찬이든 강 현민이든 둘 중 하나가 있는 곳으로 가야해." 강 형사가 당황을 하며 물었다. "도... 도대체 어디로 먼저 가야하는 거지?" "먼저가 어딨어요. 빨리 강 형사는 현민인지 하는 그 놈에게로 출동하고 주 형은 나랑 같이 병원으로 가보자고... 어서! 뭘 그렇게 멀건히 서있는 거냐고!!!" 나의 호통에 놀란 주 형은 김 성수의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 소리쳤다. "이봐. 시체 처리할 몇 명만 남기고 지금 즉시 한 경찬이 입원한 병원으로 출동하라고!!! 빨리 움직여! 지금 당장....!!!!" 강 현민은 어딘가로 무전을 때리고 급하게 계단으로 뛰어 내려간다. 나와 주 형사도 정신없이 아래도 뛰어내려갔다. 빨리 가야했지만 쏟아지는 폭우로 오토바이를 도저히 탈 수 없었기에 주 형의 차에 오른 난 급한 마음으로 소리쳤다. "이런 망할놈의 비 같으니라구... 빨리 몰아!! 현장을 잡아야해. 살인범이 잡아 뗀다면 범인을 찾는 것은 불가능 해져. 왜 이렇게 굼뜬 거야? 빨리 가라니까!" "빨리 몰고 있는 거니까 재촉하지마. 제기랄... 비 때문에 더 이상 속도를 올리는 것은 무리야." 폭우로 차 앞은 거의 보이지가 않는다. 이대로 가면 늦을 지도 모른다. 난 초조한 마음으로 연신 담배를 피웠다. 잘못하면 범인의 정체가 아예 사라져 버리게 된다. 물론 마지막 남은 사람이 범인인 것은 확실하지만 그렇게 되면 또 한 명의 희생을 필요로 하게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남은 한 사람이 확실히 범인이라는 확증이 서더라도 물적 증거가 없다. 현장을 잡아야 했다. 현장을... 쏟아지는 비 속을 뚫고 겨우 병원에 도착한 우리는 경찰들을 아직 차에서 내리지 않게 하고 우리만 한 경찬이 입원한 병실로 갔다. 살인이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면 기다려야했기 때문이다. 그 순간을 잡아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경찰들이 보여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한 경찬의 병실... 그가 보이지 않는다. "한 경찬이 강 현민에게로 간 것일까?" "강 형사에게 전화를 걸어보자고..." 주 형사가 전화를 걸려 할 때, 아까 보았던 한 경찬의 여동생, 한 경미가 병실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한 경찬씨 어디계시죠?" "예?" "오빠 어딨냐구요?" "아까 어떤 분이 찾아 오셔서 같이 이야기 하러 잠깐 나갔는데..." "어디로 갔지요? 어디로...?" "그건...잘...그런데 왜 그렇게 다급하게 우리 오빠를...?" 나와 주 형은 밖으로 뛰어 나왔다. 주 형은 경찰들에게 둘씩 짝을 지어 한 경찬과 강 현민을 찾으라고 말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한마디를 덧붙였다. "보는 즉시 아무 짓도 못하게 무조건 붙잡아 와. 둘다..." 난 그의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형... 붙잡으라니....? 그렇게 되면 범인을 찾아낼 수가 없어." 그는 굳은 얼굴로 날 바라보았다. "범인 색출보다는 사람 생명이 우선이야. 범인을 잡기 위해 시간을 지체한다면 범인이 아닌 둘 중 한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 뻔해." 난 피식 웃고 말았다. "누가 형을 말리겠어. 저 고집만 없었어도 범인 검거율이 한국에선 최고 였을 텐데..." "걱정마. 난 가려낼 수 있어. 둘 중 하나가 범인이라면 자백은 시간 문제나 마찬가지라고... 날 믿어봐. 반드시 자백을 받아 낼 테니까." 나와 주 형사는 병원을 뒤지기 시작했다. 이번엔 분명 살인을 할 사람과 당할 사람이 함께 있는 것이다. 시간 내로 그들을 찾아내지 못하면... 둘 중 한 명은 죽고 만다. 강 현민이던, 한 경찬이던 간에... 둘 중 하나가 죽고 마는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지? 이런 폭우 속에서 도대체 어디를 가야 그들을 찾을 수 있는 거지? (25편 끝) INTERVAL: 몇일 째 폭우가 쏟아지고 있다. 무섭게 쏟아지고 있다. 아주 무섭게... 지금 벌어지고 있는 재난들은 어쩜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물이 가야할 길에 인간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버렸다. 물은 죄가 없다. 단지 물이 가야할 길에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인간이 파괴하고 짓밟고 부서뜨렸던 자연... 자연은 말없이 그 고통을 참아 내었다. 이제 그 인내의 자연이 잠시 기지개를 펴는 것일까? 사람들이 고통으로 소리지른다. 쏟아지는 비에 욕을 퍼 붓는다. 자연이 인간이 저지른 만행을 묵묵히 참았던 것과 상반되게 우리, 인간은 수많은 욕설과 원망을 자연에게 퍼붓는다. 인간은 결코 자연의 지배자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바로 이 한가지 차이점 때문에 결코 자연처럼 위대해 질 수 없는 것이다. 무엇이 다른 것일까... 무엇이... 자연과 인간이 다른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마지막 해커로부터....... [마지막 해커] -시간의 역류- (26) 비는 조금씩 그치고 있다. 난 그들이 지금 어디에 있을 지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무턱대고 움직이는 것은 바보같은 짓이다. '어딜까... 사람이 없는 곳... 생각해 보자. 사람이 보이지 않고 죽이기 쉬운 장소... 우선은 살해될 사람은 살인범에게 아무런 경계심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 문제는 해결이고, 그럼... 죽이기 쉬운 방법으로는...' 난 그렇게 생각하던 중 갑자기 아파트에서 추락사한 소연이 떠올랐다. "그래 알았어. 떨어뜨리는 것이 죽이기 가장 쉬운 방법이야." 나의 말에 주 형이 바라본다. "형 옥상이야. 병원 옥상..." 주 형은 날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병원의 옥상을 향해 엘레베이터를 탔다. 우리는 맨 꼭대기의 층을 누르고 초조한 마음으로 엘레베이터가 빨리 올라 가길 기다렸다. [띵!] 부저음과 함께 엘레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우리는 옥상으로 향하는 계단으로 뛰어올라갔고, 더 이상 올라갈 계단이 없는 곳까지 왔다. 그리고는 옥상 밖으로 통하는 문을 열어 제쳤다. 난 주위를 둘러본다. 그때 갑자기 주 형이 소리쳤다. "저기 있어." 주 형사가 가르킨 병원 옥상의 가장자리에 한 경찬과 강 현민이 우산을 들고 서 있었다. 둘은 나와 주 형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주 형사가 그들에게로 가서 다짜고짜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한 경찬씨, 그리고 강 현민씨... 두 분을 연쇄살인 용의자로 체포하겠습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이봐요!" 주 형은 막무가내로 그들의 손에 수갑을 채웠다. 그리고는 아직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짖고 있는 둘에게 말했다. "우선 서로 가주셔야겠습니다." "무슨 말이십니까? 무슨 죄로 연행을 하겠다는 거지요?" 한 경찬이 따지듯이 묻는다. 강 현민은 약간 흥분한 상태로 소리치다 싶이 말한다. "연쇄살인의 용의자라니요. 제가 사람을 죽였다는 거에요?" 주 형은 입술을 한 일자로 굳게 다문 채로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난 그들을 진정시킬 말을 찾았다. 그리고는 흥분하고 있는 둘에게 말하였다. "두 분 중 한 명은 그 끔찍한 살인을 저지를 살인범입니다. 그리고 한 분은 마지막 살인의 대상이고요. 보호차원과 범인검거의 차원에서 하는 행동이니 협조해 주십시요." 한 경찬과 강 현민이 서로를 바라본다. 그러다가 한 경찬이 먼저 주 형사에게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협조하겠습니다. 목숨이 걸린 일이라니... 하지만 이 수갑은 풀러 주십시요. 아무런 증거도, 영장도 없이 서로 연행하는 것은 안돼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건 안됩니다. 살인범이 두 분 중 누구인지 모르고 도주라도 하게 되면 일이 곤란해 집니다." "아니... 누가 범인인지도 모른다고요?" "우...우리...두..둘 중에 한 사람이 범인이란 말입니까?" 강 현민은 말을 더듬었다. 몹시 흥분을 하고 있는 상태라는 것을 난 파악할 수가 있었다. 한 경찬이 짜증스럽게 말했다. "살인범이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막무가내로 잡아가겠다는 겁니까? 그렇다면 나도 협조할 수 없습니다. 이건 명예회손 죄로 고소할 수 있는 행동이란 거 아실테지요?" "......." 주 형의 눈 썹이 꿈틀 움직인다. 한 경찬의 말에 화가 난 듯 하다. 갑자기 강 현민이 소리쳤다. "증거도 없고 심증이라면 누가 진짜 범인인지 모르지 않아요. 그럼 어떻게 보호를 하겠다는 겁니까? 지금... 내 앞의 이 사람이 날 죽이려는 범인일지도 모른다는 것인데... 어떻게 안심하고 당신들의 말을 따르지요?" "뭐라고? 아니 이 사람이...! 나도 당신과 마찬가지의 입장이야." 한 경찬이 강 현민에게 화를 내었다. "그만들 해요. 범인은 두 분 중 한 사람이니까 이젠 다시는 살인이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내가 지킬테니..." 주 형은 겨우 화를 참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가끔 무식하게 행동하는 구석이 있다. 그것이 범인검거율이 최고이면서도 승진을 못하고 있는 한가지 이유이기도 하다. "어떻게 지킨다는 거에요. 벌써 4명이나 죽었는데... 당신들이 한게 뭐가 있어요." "이거나 빨리 풀어 주십시요. 그 끔찍한 살인을 저지렀을 지도 모르는 강 현민씨와 같이 묶여 있다는 자체가 견디기 힘드니까요." 둘의 말에 주 형은 인상을 찌푸렸다. 난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 "풀어드려." "어떻게 풀어주라는 거야. 두 명 중 하나가 살인범이라고... 그런데 어떻게 풀어주라는 말이야." "풀어줘. 주 형... 한 경찬씨 말이 맞잖아. 이건 명예회손이라고.... 그리고 만약 두 사람 중 하나가 도주를 하게 된다면... 그 사람이 범인임을 밝히는 것이 되니까 그렇게 어리섞은 짓은 하지 않게 될꺼야. 지금까지의 살인 행각으로 봐선..." 주 형은 입술을 깨물고 잠시 생각을 하더니 열쇠로 그들의 손목에 채워져 있는 수갑을 풀러 주었다. 한 경찬이 자신의 손 목을 만지면서 말했다. "이해가 안가는 군요. 살인범이 우리 둘 중 한 사람이라니..." 강 현민은 초초했던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강 현민은 이상할 정도로 흥분하고 있다. 반면에 한 경찬은 너무 이성적이다. 한 경찬의 이성적인 모습이 범인일 수도 있다. 그리고 강 현민은 초초한 모습 또한 트릭일 수 있다. 둘 중 누가 범인인지 밝혀낼 수 있는 방법은 모호했다. 혹시... 둘이 공범일 가능성은? 충분하다. 그들이 공모를 했다면 일은 더욱 수월 했을 테니까... 그렇게 되면 윤 소연이 죽을 때 시간이 역류한 것도 어느정도 일관성이 있는 것이 되는 것이다. 내가 그렇게 생각 속에 빠져있을 때, 한 경찬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린다. "증거가 있기는 있는 거에요? 혹시 우리 둘 밖에 안 남았으니까 막연히 우리 둘 중 하나가 범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까?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것입니까? 말씀해 보세요. 주 형사님!!!" 주 형은 아무런 말도 못하고 있다. 그렇다. 확실한 물증이 없는 것이다. 그들을 취조실로 데려간다 하더라도 살인범이 입을 봉하고 있다면 밝혀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알리바이가 확실하다. 윤 혜지가 죽었을 당시, 의심이 가는 증거는 내가 조사한 유리 파편 밖에 없기 때문에... "주 형사님!!!" 한 경찬이 답답하다는 듯이 소리쳤다. 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는 한 경찬과 강 현민을 보고 소리없는 웃음을 보였다. 그들은 내가 웃자 이상한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난 여전히 입가에 조소적인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말했다. "있습니다. 명백한 증거가... 이제 조금 있으면 살인범은 자신의 범행을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한 경찬과 강 현민 뿐 아니라 주 형 마저도 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난 여전히 웃고 있었다. "우선 내려가시죠. 두 분다 협조를 부탁합니다." "겨...경찰서로 가는 건가요?" 강 현민은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물었다. "아니요. 지금은 아닙니다. 조금 지나서 두 분 중 한 분만이 경찰서로 가는 것이지요. 진짜 범인만이...자 저기 있는 경찰들과 함께 우선은 아래로 내려가십시요. 비가 많이 오는 군요." 한 경찬은 미심쩍은 표정으로 날 바라보며 두말없이 나의 말에 따라 뒤늦게 올라온 제복입은 경찰들을 따라나선다. 강 현민도 한 경찬의 뒤를 따라간다. "무슨 소리야? 명백한 증거라니?" 주 형은 그들이 옥상 출입구 쪽으로 나가자 나에게 물었다. 난 입가의 웃음을 지우고는 심각하게 말했다. "저 둘을 데리고 윤 소연의 아파트로 가... 그리고 기다려 내가 올 때까지... 아무것도 그들에게 묻지마. 그냥 계속해서 기다리기만 해." "윤 소연의 아파트?" "그래. 윤 소연의 아파트...! 다른 사람들은 모두 밖에서 기다리게 하고' 저 두 사람과 형만 윤 소연의 아파트에 들어가 있어. 알겠지?" "도대체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난 피식 웃었다. 그리고는 담배를 꺼내 물고 지포라이타를 꺼냈다. [팅!] 지포의 뚜껑을 열때 나는 소리가 기분좋게 들린다. 난 담배연기를 깊이 빨아 들이고는 말했다. "살인범이 피살자들을 죽이기 전에 했던 짓을 그대로 해 볼 생각이야... 이제부터... 마술을 하는 거지... 분신사바라바였던가? 귀신을 부르는 유치한 주문이? 킥킥킥...." 어리둥절해 하는 주 형을 뒤로하고 난 출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난 더 이상 웃지 않았다. 소연을 죽인 범인... 이제 넌 자신의 입으로 자신의 범행을 말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할 것이다. 똑같이 당해봐. 아무 죄없는 다른 사람들에게 너가 주었던 그 공포감을... (26편 끝) INTERVAL: 1999년의 지구 멸망의 예언, 한 쪽에서는 말세의 징후로 요번 폭우를 말하고 있다. 이것이 말세의 징후이던, 멸망의 준비적 행위이건 난 상관하지 않는다. 오직 현재의 시간이 나에겐 소중한 것이다. 지구 멸망은 일어나건 일어나지 않건 간에 미래의 일이다. 우리는 현재에 살고 있다. 과거도 미래도 아닌 오직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 대부분은 현재의 삶에 충실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인간의 도리이고 의무이다. 현재의 삶에 충실하라. 지금 이 순간 만족하면 앞으로의 일에도 만족할 수 있다. 그리고 제어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도 이겨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그러나...하지만...그러므로...어쨌거나...그리고... 결혼은 해보고 죽어야 하는데... 2002년 월드컵도 꼭 보고 싶은데... (앗 뭔소리를 하는 거지?) ..........마지막 해커로부터........ [마지막 해커] -시간의 역류- (27) 게시자 last해커(황유석) 게시번호 9 게시일 98/08/13 11:56:27 수정일 크기 7.8K 조회횟수 7276 "오래 기다리셨습니까?" 지금 시각 새벽 4시... 어두 컴컴한 소연의 집... 모두 내가 오는 것을 많이 기다린 것처럼 보인다. 주 형까지도 날 호기심 어린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다. 난 그들의 앞으로 다가가서는 강 현민과 한 경찬에게 차가운 미소를 보였다. 내심 불안해 했던 강 현민, 여전히 냉정을 잃지 않는 한 경찬... 그들은 나의 움직임에 시선을 떼지 않고 있다. "여기가 모두들 낯설지 않지요?" 난 소연의 집을 둘러보며 말했다.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는 그녀의 집은 불을 켜지 않아서 어두울 뿐이지 금방이라도 집 주인이 현관 문을 열고 들어 설 것만 같았다. "그만 뜸 들이고 소연씨를 죽인 범인의 명백한 증거나 보여주십시요." "아... 그거요. 그래야지요. 모두 피곤하실 텐데... 특히 한 경찬씨는 아직 병원에 있어야 할 몸인데도 불구하고 협조해 주신 점 감사드립니다." 난 한 경찬을 향해 피식 웃고는 소연의 방으로 들어가 완성되지 못한 소연의 초상화를 꺼내왔다. 강 현민은 내가 들고 나오는 그림을 보고 흠칫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주 형사는 아무런 말 없이 나의 행동을 팔짱을 낀채 바라보고 있다. 난 그들의 앞에 그림을 놓고는 담배를 꺼내 입에 물며 말했다. "참 아름다운 여인이지요? 전 이 그림을 보면서 신비로움마저도 느낀답니다. 그러니 살아있었을 당시 소연의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왔을까요?" "요점이 무엇입니까?" 한 경찬이 약간 짜증이 섞인 말투로 따지고 들었다. 난 여전히 그림에 시선을 둔 채로 혼잣말을 하듯이 말했다. "난... 아직도 모르겠어. 왜 이처럼 아름다운 여인을 그토록 끔찍하게 죽여야 했던 건지. 소연이 도대체 무슨 잘못을 하였기에 잔인하게 그런 죽음을 당해야 했는지... 둘 중 한사람은 알꺼야. 안그래?" 난 강 현민과 한 경찬을 쳐다보았다. 나의 눈빛이 섬뜩했던 것일까? 주 형마저도 놀란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난 한 경찬과 강 현민은 번갈아 보며 말했다. "생각해봐. 혼자있다는 것에 대한 외로움으로 서로를 위로하기 위해 모였던 당신들... 소연은 당신들의 호의와 친절에 행복을 느꼈을 꺼야. 선천적으로 착한 그녀의 성격과 아름다움에 당신들 또한 소연과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끼고 사랑을 느꼈겠지. 그러나..." 난 그때까지 물고만 있던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연기를 폐 속 깊숙히 빨아 들였다. "어딜가나 꼭 한 명씩 있더라고... 왜 그런거 있잖아. 길에 피어있는 이름 모를 아름다운 꽃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꼭 꺾어가는 인간 쓰레기들... 꺾여진 꽃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아. 꺾여버린 그 순간부터 시들기 시작하지. 그리고 그 시들어진 꽃은 결국 그것을 꺾은 그 쓰레기 같은 놈의 손에 의해 길가에 아무렇게나 버려지게 되고... 아름다움을 모두 짓밟힌 채로 말이야.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꺼야. 지금 우리와 같이 있는 그 개 새끼는... 안그래?" "황 기자..." 나의 거칠어진 말투에 주 형이 참견을 하려한다. 난 손을 들어 그가 참견하지 못하도록 막고는 나의 말을 계속하기 시작했다. "난 아주 궁금한게 있었어. 물론 목격자들의 증언시간이 틀려진 것이 이 사건의 가장 큰 이슈였지만... 난 그것 보다 더 큰 의문이 있었지. 왜...? 왜 소연을 죽여야만 했던 건지... 알 수가 없었어. 이해가 안되더라고... 여기 그림을 봐. 그냥 이렇게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이 여인의 미소... 이 여인이 살아있다면 이 한장의 종이 조각에 불과한 그림이 주는 행복보다 더 한 행복을 사람들에게 줄 수 있었을 것인데... 도대체 왜... 왜 그토록 처참히 짓밟은 것인지. 대답해봐. 나에게 말해주라고... 내가 이해할 수 있도록... 남자들의 그 개 같은 소유욕 때문인가? 사랑을 방패삼아 당연하다는 듯이 주장하는 그 개 떡같은 소유욕 때문에 죽인 것인가? 아니면... 섹스? 꼭 그래야만 했던가? 천사 같은 미소를 보이고 있는 이 여인의 몸을 그 더러운 마음과 몸으로 역시 사랑이라는 단어를 빚대어 오염시켜야만 했냐고... 말해봐. 어서!!!" 나의 말소리가 커졌다. 그때까지 참고 있던 나의 분노가 폭팔한 것이다. "아니야! 그렇지 않아요. 그렇지 않다고..." 갑자기 강 현민이 소리질렀다. 주 형과 한 경찬이 그의 목소리에 놀라 머리를 감싸쥐며 주저않는 강 현민을 바라보았다. "나...난 소연씨를 사랑했어요. 한 번만이라도 나만을 향해서 오로지 나만을 향해서 그 미소를 보여 주길 바랬어요. 하지만... 소유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고요. 아니란 말입니다. 아니라고요." 난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서 담배연기를 다시 한 번 깊숙히 빨아들였다. 그리고는 한 경찬을 바라보며 물었다. "당신은 나의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하고 싶지?" 그때까지 나의 말을 듣고만 있던 한 경찬이 차가운 눈으로 날 바라보며 말한다. "미친자식..." 난 그의 말에 피식 웃었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방패로 미친 짓을 하고 있는 건 바로 당신이야. 이렇게 우릴 모아놓고 한다는 소리가 그따위 소리였어? 난 여기에 그런 너저분한 설교 들으러 온 것이 아니야. 소연씨를 죽인 범인을 이 눈으로 직접 보기 위해 왔던 거라고... 그런데 그런 말도 안돼는 자기 주장으로 시간낭비를 하고 있어?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사랑은 그렇게 더럽지도 추악한 것도 아니야. 소연씨를 사랑한 우리들은 그 따위 더러운 마음으로 그녀를 대하지 않았어." 난 한 경찬에게 다가섰다. 그리고는 그의 눈을 바라보며 웃음을 보였다. "오호... 그래? 단 한 번도 소연을 보면서 그녀의 몸을 생각으로나마 겁탈한 적이 없다 이건가?" "말 조심해." 그가 이를 악물며 말했다. 난 키득거리며 웃음지었다. "이상하군. 나 역시 그녀의 사진을 보면서 한 번 자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었는데... 한 경찬씨 당신은 절실한 성자가 아니면 고자인가 보군." "이 새끼가...!!!" 그가 나의 멱살을 잡았다. 난 그에게 멱살을 잡힌 채로 여전히 조소적인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고귀한 척 하지마. 남자는 어차피 다 똑같아. 아름다운 사람을 보면 소유하고 싶어하고 사랑하면 구속하고 싶어하지 그것이 안될땐 강제로라도 그 사람을 취하려고 하는게 남자, 아니 인간들이야. 신과 다른 하나의 커다란 차이점이지. 그래서 인간은 신과 가까와 질 수 없는 것이라고... 그 추악한 마음 때문에... 어쩜 신은 우리 인간과 차별을 두기 위해서 그런 더러운 본능을 만들어 준 것일 수도 있고... 너도 나도... 신이 아니야. 똑같은 인간일 뿐이지. 좀 더 솔직해지는 것이 필요하지 않은가?" 나의 멱살을 잡은 한 경찬의 손에 떨림이 느껴진다. 그는 무척 흥분하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에게 보여주었던 냉정함은 어느새 사라졌고, 금방이라도 날 칠 것같은 모습이다. 난 여전히 그의 눈을 바라보며 차가운 미소를 보이고 있었다. 그는 나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무슨 말인가를 하려고 한다. "으아아아아아악!" 갑자기 강 현민이 소리를 지르며 뒷 걸음 친다. 주 형사와 한 경찬은 그가 소리를 지르며 바라보고 있는 곳으로 시선을 향했다. 주 형도 한 경찬도 놀라서 말을 잃은 듯 싶다. 겁이 없다던 주 형도 자기도 모르게 주춤 뒤로 물러섰다. 한 경찬이 나의 멱살을 잡았던 손을 놓으며 멍한 눈으로 나의 뒷 쪽을 바라본다. 그는 몸을 심하게 떨며 자기도 모르게 신음을 토해냈다. "이...이럴수가..." 난 한 경찬과 강 현민은 번갈아 보았다. 강 현민은 거실의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서 몸을 부들부들 떨며 아직도 비명을 지르고 있다. 한 경찬은 얼굴빛이 하얗게 되어 벌어진 입을 다물 줄 모른다. 나의 옆으로 한 여인이 지나쳐가며 한 경찬과 강 현민에게 다가선다. 강 현민은 손으로 머리를 감싸쥐며 비명을 질렀고, 한 경찬은 뒤로 물러서며 믿겨지지 않는다는 얼굴로 내 옆에 나타난 여인을 바라본다. 주 형사 역시 마른 침을 삼키며 말을 못하고 있다. "마...말도 안돼." 갑자기 한 경찬이 소리치다싶이 외쳤다. "분명히 죽였다고... 분명히 죽였단 말이야.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난 분명히 죽였다고..." (27편 끝) INTERVAL: 대한민국을 미워하는 것일까? 서울에 이어 이젠 지방도시들 마저 폭우의 상처로 무너져가고 있다. 쌈박질이나 하며 놀고 있는 국회, 폭우로 찢겨진 마음을 다시 한 번 밟아 다지는 좀 도둑들... 8.15특사로 사면자 명단에 올라가 있는 엉뚱한 사람... 진짜 사면되어야 할 사람은 특사가 무언지도 모르고 있고... 어쩜 하늘의 노여움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노여움을 받는 대상이 왜 아무런 죄도 없이 건실하게 살아가는 우리 착한 시민들인가요. 왜? 뉴스가 보기 싫다. 더 심한 욕도 하고 싶다. 하지만... 나도 똑같이 욕심많고 사악한 인간들 중 하나라는 생각에 그만두려 한다. 이젠 그만 좀 했으면... 이제 그만 좀... 고통받아야 할 사람들은 지금 수해를 당하고 있는 그 사람들이 아니란 말입니다. 제발 그만 좀 하세요... 제발... ..........마지막 해커로부터....... [마지막 해커] -시간의 역류- (28) 게시자 last해커(황유석) 게시번호 8 게시일 98/08/13 13:58:28 수정일 크기 6.3K 조회횟수 7533 "난 분명히 죽였다고... 그런데 어떻게... 이건 말도 안돼." 난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을 분명히 듣고 있다. 쭈그리고 앉아있던 강 현민도 한 경찬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주 형사도 소연의 모습으로 나타난 소희의 모습에 놀라 하면서도 한 경찬의 절규에 가까운 자백을 듣고 있었다. 한 경찬은 내 옆에 나타난 소희를 바라보며 외쳤다. "어떻게... 도대체 어떻게 살아난 거지? 분명히 죽였다고... 도대체 어떻게 지금 내 앞에 있는 거냐고..." 소희는 그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단지 자신의 언니를 죽인 범인의 말에 분노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난 입에 문 담배를 손으로 감싸쥐었다. 뜨거운 담배불이 나에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만큼 난 분노가 치밀어 올랐던 것일까? 난 떨고있는 그를 향해 다가갔다. [퍼억!] 한 경찬의 고개가 돌아가며 땅바닥에 나뒹군다. 나의 갑작스런 행동에 주 형이 소리쳤다. "황 기자 뭐하는 짓이야." 난 손을 털며 쓰러져 있는 한 경찬의 얼굴을 경멸적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범인을 알게 되면 반드시 이렇게 해주고 싶었어." 난 고개를 돌려 소희를 보았다. 그녀는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자신의 언니를 죽인 범인의 얼굴을 보고 있는 그녀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괜찮아요? 소희씨?" 나의 말에 주 형이 다시 한 번 놀랐다. "아니... 그럼 이 분이 지금 유럽에 있다는 소연의 쌍동이 동생, 윤 소희란 말이야?" 난 고개를 끄덕였다. 한 경찬도 강 현민도 주형의 말에 놀란 듯 하다. 처음에 소희를 내가 보았을 때의 심정을 그들도 똑같이 느꼈으리라... 죽은 줄로만 알고 있던 소연이 살아서 돌아온 것만 같았던 그때의 순간을... "쌍동이 동생... 소희라고? 소연이 아니라 소희라고?" 한 경찬이 정신나간 사람처럼 혼자말을 하듯이 말한다. 그는 비틀거리며 일어서고는 소희를 바라보며 다시 한 번 다짐하듯이 말했다. "쌍동이 동생... 소희... 소희?" 난 그가 소희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역겹게 느껴졌다. 다시 한 번 그의 면상을 갈겨주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았지만, 참았다. 그럴만한 가치도 없는 인간이기에.... "왜... 왜 죽인거지요?" 그때까지 말없이 있었던 소희가 한 경찬을 향해 물었다. "주 형... 그만 저 인간 데리고 나가... 명백한 증거가 아니라 자백을 받아내었으니 충분히 체포할 수 있잖아." 주 형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한 경찬에게로 다가갔다. "왜 죽인거냐고요... 도대체 왜... 말해주세요." 소희가 한 경찬에게 다가 서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묻는다. 난 이 상황이 싫었다. 빨리 주 형사가 한 경찬을 데리고 나가길 바랬다. "알고 싶어요. 알고 싶다고요." 소희는 애원하는 듯한 목소리로 말한다. 주 형은 한 경찬의 옆으로 다가가서 그의 손에 수갑을 채우기 위해 그의 팔을 잡았다. 한 경찬은 주형의 행동에 반항할 생각없이 소희를 바라본다. 여전히 정신이 없는 사람같이 풀린 눈으로... 한 쪽 손에 수갑이 채워지고 다른 쪽 손에 수갑이 채워지려는 순간, 그가 말을 하기 시작했다. "왜 죽였냐고 물었나?" "그래요. 왜 인지 알고 싶어요." 소희의 눈에서 끝내 눈물이 흘러 내렸다. "주 형! 저 새끼 빨리 끌고 나가버려." 난 한 경찬의 입에서 나올 말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기에 듣고 싶지 않았다. '듣고 싶지 않아. 저 새끼 입에서 소연을 너무 사랑해서였다는 그런 통속적인 말... 절대로 듣고 싶지 않다고...' "왜... 죽였나고?... 킥킥킥... 으하하하..." 갑자기 그가 미친듯이 웃기 시작했다. 주 형은 그의 행동에 잠깐 주춤 했다. "제기랄..." 나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주 형의 허리 춤에 있던 권총이 어느새 한 경찬의 손에 들려있었고, 그는 소희의 목을 팔로 감싸며 그녀를 방패삼아 우리를 향해 권총을 겨누었다. 내가 그를 제지하려 다가서자 고막을 울리는 총성이 들렸다. [콰앙!] 한 경찬은 허공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고, 다시 우리 쪽으로 총구를 향하며 말했다. "첫번째는 공포탄... 그리고 다음 부터는 실탄이지. 시험해 볼까?" 두 번째 총성... "으아아아아아악!" 강 현민이 비명을 지르며 자신의 다리를 부둥켜 안았다. 그는 자신의 다리를 뚫고 들어온 총알로 인한 고통으로 신음하였다. "이런 머리를 겨누었는데... 다리라니... 실망인걸? 이래서는 조준사격이 불가능하잖아. 킥킥... 우리나라 경찰들이 소지한 권총은 조준 사격거리가 너무 짧군. 하지만..." 그는 소희의 머리에 총구를 갔다 데었다. "여기서도 총알이 빗나간다면 이건 총이 아니겠지?" "그만둬. 한 경찬, 그녀를 죽인다면 일급살인 죄로 당신은 사형이야." 주 형이 소리를 질렀다. 한 경찬은 크게 웃기 시작한다. 얼마간 웃기만 하던 그가 웃음을 멈추고는 우리를 향해 말했다. "이미 5명을 죽였어. 이 여자를 죽이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사형을 면하기는 어림도 없지. 안그래?" "소희씨가 다치면... 널 절대 편안하게 사형대에서 죽게 두지 않을 꺼다." 나의 말에 한 경찬은 이빨을 보이며 웃음을 지었다. "건방진 새끼... 처음부터 니가 맘에 들지 않았지만, 지금 널 찢어 죽이고 싶은 건 나도 마찬가지야." 총성에 밖에 있던 경찰들과 강 형사가 소연의 집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벌어진 상황에 아연실색하였다. "움직이지마. 조금이라도 허튼 수작 부리면 이 여자의 머리가 부셔질 테니까..." 그는 소희의 긴 머리에 자신의 코를 들이밀고는 숨을 들이킨다. 그리고는 황홀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소연과 똑같은 냄새... 후후... 정말... 이렇게 완벽하게 똑같을 수 있다니..." 소희가 그의 행동에 고통스러운듯 눈을 감는다. 난 분노로 이를 악물었다. 한 경찬은 그녀의 머리에 여전히 총구를 겨눈채로 문 쪽으로 가기 시작했다. 경찰들과 강 형사가 그를 주시하면서 비켜선다. "난 이 여자와 할 일이 있어. 따라오지마. 그럼 그냥 이 자리에서 죽여버릴 테니까... 주 민성씨... 당신 차 얌전히 쓰고 돌려 줄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모두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에 미칠 지경이다. 그는 우리들을 바라보며 징그러운 웃음을 보이고는 밖으로 나가버렸다. "강 형사... 여기 이 사람 좀 빨리 병원으로 데리고 가. 그리고 나머지 대원들은... 앗 이봐! 황기자!!!" 난 나를 부르는 주 형의 목소리를 뒤로 하고 밖으로 뛰쳐 나갔다. [소희씨! 언니를 죽인 범인을 잡고 싶다고 했지요? 소희씨의 도움이 필요해요.] [내가 지켜줄께요. 걱정 말아요. 그냥 소희씨는 나의 옆에 서 있기만 하면 되는거에요.] [내가 지켜줄께요. 내가 지켜줄께요.] 한 경찬을 따라 아파트의 계단을 뛰어내려가며 그녀를 이곳으로 데리고 오기전에 내가 소희에게 했던 말이 자꾸만 떠올랐다. [내가 지켜줄께요. 내가 지켜줄께요.] [내가 지켜줄께요. 내가...] (28편 끝) INTERVAL: 드디어...드디어... 난 동생에게 빚진 8만원을 갚고야 말았어. 으하하하 이제 그 공포에서는 해방이야. 시원하다. 앓던 이가 빠져버린 기분... 으하하하 근데 왜 이렇게 배가 아프지? 꾼 돈을 갚는 것은 빌리는 것과는 너무도 다르다. 배가 아파...많이... ..........마지막 해커로부터......... [마지막 해커] -시간의 역류- (29) 게시자 last해커(황유석) 게시번호 7 게시일 98/08/14 13:21:04 수정일 98/08/14 13:44:07 크기 15.1K 조회횟수 7785 한 경찬은 주 민성 형사의 차를 몰고 어딘가로 달리고 있다. 쏟아지는 굵은 빗방울이 차의 유리창을 때린다. 조수석에 앉아 있는 소희는 말이 없다. "비가 너무 많이와. 너무 많이 온다고... 그때도 비가 이렇게 내리고 있었어." 한 경찬의 목소리가 차분하다. 아까 소연의 아파트에서와는 다른 느낌이다. 미친듯이 행동했던 그의 모습도 이젠 사라져 버리고 처음처럼 냉정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의 눈에는 왠지 모를 슬픔 마저도 보인다. "소희라고 했나?" 처음으로 그가 소희에게 말을 건넸다. 소희는 한 경찬을 바라보았다. 그는 소희를 보지 않은 채로 운전에만 열중하고 있는 듯 싶다. 소희는 그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단지 그를 바라보기만 할 뿐이다. "너무 닮아서 난 소연씨인 줄만 알았어." "....." 그는 잠시 그녀를 바라보더니 회상하듯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 ************* "왜... 싫다는 겁니까?" 한 경찬은 답답한 마음으로 소연을 보았다. 소연은 방금 타온 커피를 들고와 그의 앞에 내려 놓으며 쇼파에 다소곳이 앉았다. "경찬씨는 아직 절 몰라요. 그런데 어떻게..." "사랑은 느낌이랍니다. 전 소연씨의 느낌이 좋아요.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 또한 확신하고요." 그녀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아름다운 긴 머리칼이 흘러 내리며 그녀의 얼굴을 약간 가렸다. "아직... 전 사랑을 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아요. 경찬씨의 마음에 감사하지만 전... 아직은..." "난 소연씨를 행복하게 해 줄 자신이 있습니다. 행복하게 말입니다. 저의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소연씨를 저의 사람으로 만들고 싶다고요." 소연은 약간 흥분을 한 것 같은 한 경찬을 향해 부드럽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보여드릴께 있어요." ".......?" 그녀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서는 하얀 천으로 쌓인 무언가를 들고 나왔다. 그리고는 한 경찬의 앞에 그것을 세워 놓고는 말했다. "다른 사람에게는 처음 보여주는 거라서 좀 창피하지만...." 그녀는 시트를 벗겨내었다. 그녀가 가지고 나온 것은 디젤위의 커다란 캔버스... 그곳에는 소연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정교하게 스케치된, 그리고 상반신의 어느정도 까지만 색깔이 칠해져 있는 그녀의 초상화는 무척이나 신비로운 모습으로 소연, 자신을 표현해 내고 있었다. "철이 들었을 적 부터... 그리기 시작했던 그림이랍니다. 지금까지...6년의 시간동안 하나하나 그려 나가기 시작했지요." "6년 동안이요?" 소연은 자신의 모습을 그린 그 그림을 보면서 미묘한 감정의 표정을 지었다. 슬프기도하고 약간은 행복해 보이기도 한 그런 표정을.... "마음이 성장해 갈때마다 한 부분, 한 부분씩 그려나갔던 이 그림이 어느새 이만큼 채색까지 되어 있어요. 전 이 그림에 저의 슬픔과 기쁨, 그리고 저의 마음과 생각... 모든 것을 담아 가고 있어요." 한 경찬은 그녀의 그림을 바라보며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쌓였다. 신비롭기 까지한 그녀의 모습을 그린 그 그림은 그녀의 말대로 소연의 모든 것이 담겨져 있는 것 처럼 보인다. "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많은 생각들이 떠올라요. 나의 모든 기억들이..." 소연은 그림을 바라보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한 경찬을 향해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전 제 자신을 아직 몰라요. 그래서 아직까지 이 그림을 완성하지 못하고 있는 지도 모르지요. 많이 성장했다고 생각하고 있고, 그림을 완성 시켜보려고도 했지만... 무언가 알 수 없는 감정이 그림을 완성시키는 것을 막고 있어요. 그 이유가 무엇인지... 그 감정이 무엇인지 아직도 모르고 있지요. 무척 많이 생각해 보았지만... 알 수가 없었어요." 그녀는 자신의 그림을 다시 한 번 천천히 바라보고는 다시 그림의 위에 천을 덮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기 전에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접어두기로 했지요. 전... 제 자신도 잘 모르면서 남을 사랑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거에요. 사랑을 받고... 사랑을 하는 것에는..." 한 경찬은 그녀의 말에 고통이 밀려왔다. 소연을 향한 그의 마음이 거절을 당하는 순간이었기에... 한 경찬은 가슴에 스며드는 아픔을 삼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렇군요...... 죄송합니다." "경찬씨..." 소연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것일까? 그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그를 걱정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미안해요. 경찬씨에게... 정말로..." "아니요. 아직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면... 기다려야지요. 기다리는 것은 허락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는 진심으로 그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말했다. "그런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요. 좋은 분 만날 수 있으실 꺼에요." 한 경찬은 그녀의 말에 다시 한번 마음이 아파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아무런 대꾸없이 그녀의 아파트에서 나가기 위해 문을 열었다. "어? 경찬씨!" 한 경찬은 마침 들어오는 강 현민과 마주친다. 그의 뒤에는 윤 혜지, 정찬호, 한 주희도 보였다. 그들은 손에 무언가를 잔뜩 들고 있었다. 언제나 그렇다. 그들은 요리를 할 것을 가지고 와서 서로의 집에 모여 만들어 먹으며 담소를 나누는 것이 일상화 되어 있었다. 저녁을 혼자 먹는 것에 외로와서 일까? 하지만 한 경찬은 그러지 않았다. 그들이 소연의 집에 모여서 음식을 먹고 그녀와 같이 웃음을 나누고, 같이 행복해 하는 것에 이상하게 화가 났다. "와... 그 까다롭기로 유명한 경찬씨도 있었네." 그와 별로 사이가 좋지 못한 윤 혜지가 빈정거리는 투로 말했다. 한 경찬은 그녀를 쏘아보았다. 강 현민이 웃음 지으며 말한다. "경찬씨. 아직 식사하지 않았지요? 오늘은 소연씨 집에서 저녁같이 하는 날인데 안했으면 드시고 가세요." "아닙니다. 전 바빠서...." "흥... 언제나 바쁘지요." 윤 혜지가 팔짱을 끼면서 여전히 빈정거렸다. "혜지 누나..." 정 찬호가 그만 하라는 표정으로 혜지의 이름을 불렀다. "모두 오셨네요." 한 경찬의 뒤로 소연의 목소리가 들렸다. 한 주희가 안으로 뛰어들어가며 말한다. "소연 언니!" "주희 왔구나. 공부 잘 하고 있니? 모두들 어서 들어와요." 사람들은 그녀의 집으로 들어갔다. 강 현민 만이 약간 이상한 듯한 한 경찬의 행동에 그의 뒷 모습을 잠시 바라 보았을 뿐이다. 한 경찬은 그들을 뒤로 하고 계단으로 향하는 복도쪽으로 걸어갔다. 웃음 소리가 들렸다. 자신의 마음은 찢어질 것처럼 아팠는데... 그들은 저렇게 웃고 있다. 치밀어 오르는 화를 겨우 참아내며 그는 자신의 아파트로 돌아왔다. 문을 잠그고 잠시동안 자신의 어두운 집 안을 바라보았다. "으아아아아아!!!!" 그는 미친듯이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다. 거실의 텔레비젼을 집어 던지고 탁자를 발로 걷어찼으며 깨뜨릴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박살을 내기 시작했다. 미칠 것만 같았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죽어 버릴 것만 같았다. 그는 자리에 주저 앉아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여지껏 부족한 거 없이, 그리고 아쉬운 것 없이 살아왔던 한 경찬... 하지만 지금, 그는 그동안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절망감과 허무함으로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자신의 이러한 고통은 생각지도 않고 그들은 소연의 집에서 즐거워 하고 있을 것이다. 화가 났다. 그들 모두가 미웠다. 소연은 자신만의 소연 이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은 그녀와 함께 행복을 나누워서는 안된다. 소연은 다른 사람을 향해 미소를 지어서는 안된다. 말을 해서도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주어서도 안된다. 오로지 한 경찬, 그 자신만을 위해서 그 모든 것은 존재해야만 한다. 오로지 그 자신만을 위해서... "가질 수 없다면... 내가 가질 수 없다면... 다른 사람도 가질 수 없어. 가질 수 없다면... 부셔져야 해. 내가 가질 수 없다면... 부셔져야 한다고..." 한 경찬은 멍한 눈으로 그렇게 자꾸만 말하였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한 경찬은 어지러운 거실에 죽은 듯이 앉아 있다. 시계가 두시를 알리는 종을 쳤다. 그는 마치 최면에라도 걸린 듯이 일어섰다. 그리고 자신의 옷장겸 창고의 문을 열었다. 그는 이것 저것을 뒤적이다가 굵고 긴 고무 밧줄과 야구 배트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집 현관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밖에는 아무도 없다. 늦은 시간이라 모두 잠이 들었으리라. 그는 주위를 살피며 윤 소희의 집으로 올라갔다. 그녀의 집 현관까지 온 한 경찬은 초인종을 눌렀다. 윤 소희는 언제나 밤 늦게까지 일을 하곤 한다. 아직 잠들지 않았을 것이 뻔하다. 잠시 후 그녀가 문을 열며 얼굴을 나타내었다. "... 한 경찬씨..." "미안해요. 늦은 줄 알지만 제가 아까 다이어리를 놓고 간 것 같군요." "아... 다이어리요. 이상하네요. 못 봤는데... 잠시만 기다리세요." 그녀는 안으로 들어간다. 한 경찬은 문을 열고 그녀를 따라 들어가고는 거실의 탁자에서 다이어리를 찾기 위해 뒤돌아선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가질 수 없다면... 부셔야 한다. 가질 수 없다면...' 한 경찬은 그렇게 되뇌이면서 야구배트를 잡은 손에 힘을 잔뜩 주고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그녀의 머리를 향해 있는 힘껏 내리쳤다. 비명조차 없이 윤 소연이 거실 바닥으로 쓰러진다. 한 경찬의 이미와 손, 등허리에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긴 머리카락이 흩으러진 채로 거실의 바닥에 쓰러진 그녀를 바라보며 그는 긴장으로 가빠진 숨을 몰아쉬고 있다. '아무도 가질 수 없어. 내가 가질 수 없다면... 아무도 가질 수 없다고...' 한 경찬은 쓰러진 그녀를 똑바로 누이고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떨리는 손으로 그녀의 하얀 얼굴을 쓰다듬었다. "킥킥킥..."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는 얼마동안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렇게 소리 죽여 웃다가 소연의 방으로 들어가 서랍에서 생리대를 꺼내왔다. 그리고는 그녀의 한쪽 발목에 그것을 대고 고무 밧줄을 묶었다. 밧줄의 나머지 한 쪽은 현관 문의 손잡이에 묶는다. 그는 쓰러져 있는 소연을 들고 베란다 쪽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잠시동안 그렇게 서서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높이로 현기증이 난다. 그는 눈을 감고 다짐을 하듯이 말했다. "내가 가질 수 없다면... 다른 사람도 가질 수 없다..." 그녀를 들고 있던 손을 놓았다. 그리고 필사적으로 아래층을 향해 뛰기 시작 했다. 시간 안에 자신의 알리바이를 입증할 수 있도록 해야 했다. 계단 두 세개 정도는 단 번에 뛰어내렸다. 그렇게 윤 혜지의 집까지 미친듯이 뛰어내려온 한 경찬은 그녀의 집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비디오 폰으로 그녀의 목소리가 들린다. "뭐에요?" "이봐요. 잠 좀 잡시다. 지금이 몇신데 뜀박질이요. 뜀박질은...." 윤 혜지가 문을 열고 나왔다. "또 시비에요? 뭐가 시끄럽다는 거에요. 이 아파트가 그렇게 허술하게 지은 줄 알아요? 다들 아무렇지도 않아 하는데, 왜 당신만 그렇게 유별나게 구냐구요!" "아니 이 여자가 뭘 잘했다고 큰 소리야. 아래에선 얼마나 시끄러운 줄 알아? 말 만한 여자가 그렇게 뛰어다니는데 안시끄러울 수가 있어?" 지금쯤, 고무 밧줄의 탄력으로 다시 튕겨져 올라간 소연의 모습이 보여야 할텐데... 한 경찬은 조바심이 났다. 자신이 너무 늦었던 것일까? "아아아아아악!" "이봐요? 왜...왜 갑자기....?" 윤 혜지가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만다. 한 경찬은 자신이 늦지 않았음에 회심의 미소를 짖고는 베란다 아래를 바라보았다. 고무 밧줄에 묶여 몇번 더 움직이던 그녀의 몸이 멈추었다. 한 경찬은 층수를 확인하고 다시 뛰어내려가기 시작했다. 4층으로 온 그는 메달려 있는 소연의 몸이 보이자 그곳으로 뛰어갔다. "아..." 한 경찬은 놀라서 그 자리에 멈추고 말았다. 떨어질 때 바닥에 그녀의 목뼈가 부러져 버린 것일까? 소연의 머리가 없다. 뜯겨져 나갔다고 표현해야 옳을 그녀의 목 부분에서 피가 쏟아진다. 베란다 아래를 보니 그녀의 머리가 보였다. 그토록 아름다왔던 그녀 역시 이젠 끔찍한 시체에 불과하다. 한 경찬은 밧줄을 풀러 시체를 4층의 복도에 내려 놓았다. 그는 엘레베이터가 있는 곳으로 뛰어와서는 버튼을 눌렀다. 지친 몸으로 14층까지 뛰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14층 버튼을 누른 그는 엘레베이터가 도착 하길 초조하게 기다렸다. 곧 엘레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그는 소연의 집으로 뛰어가 문 손잡이에 묶여있던 밧줄을 끌어올렸다. 그녀의 집 현관 문을 닫고 야구배트와 밧줄을 들고 자신의 집으로 뛰어와 던져 넣은 후... 윤 혜지의 집으로 내려갔다. 아직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그녀... 성공한 것이다. 이로써 완전범죄가 이루어 진 것이라고... 그리고 이젠 아무도 그녀를 갖지 못하게 되었어. 아무도... 킥킥킥... 쏟아져 내리는 비소리가 유난히도 크게 들린다. *********** *********** "그게 내가 소연을 죽인 이유지... 내가 가질 수 없다면... 아무도 갖지 못해. 아무도..." 한 경찬의 말에 소희는 여전히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킥킥...슬픈가? 언니를 잃은 것이...? 하지만 비교도 안돼. 내가 느낀 고통하고는... 거절당한 사람의 마음이 어떤지 알아? 난 여지껏 누구에게도 거절 당하지 않고 살아왔어. 그런데... 그런데..." 그는 다시금 냉정을 잃고 미친듯이 소리질렀다. "난 지금 도망가는 것이 아니야. 어차피 이렇게 된 이상 죽을 수 밖에 없어. 하지만 한가지가 남았기에... 당신을 이렇게 납치하다 싶이 데리고 온 거야. 한가지 때문에... 난 어차피 내 인생을 당신의 언니를 죽일 때 포기 했어. 하지만 죽기 전에 반드시 해야할 일이 있어. 당신을 본 순간 떠올랐지." [콰당탕!!!] 한 경찬과 윤 소희가 탄 차가 폭우로 통행금지된 올림픽 대로의 통제선을 뚫고 지나간다. 충돌할 때의 충격이 한경찬의 몸에 약간 전해진다. 그는 소희를 보며 다시 소리쳤다. "내가 해야할 일이 뭔지 알아?" "....." 그의 눈에서 광기마저 보이기 시작한다. "당신은 소연과 너무도 똑같은 모습이야. 난 소연에게서 듣고 싶은 말이 있었지. 말해줘... 그 입술로 날 사랑한다고 말이야. 그럼 넌 살려 주겠어. 죽이지 않고 살려 주겠다고... 말해. 날 사랑한다고 이 한 경찬이를 사랑한다고 말이야." 그가 소희를 향해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 있을때 갑자기 한 경찬이 잡은 핸들이 저절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콰지지직! ......퉁] 그들이 탄 차의 앞 바퀴가 무언가에 걸리면서 심하게 요동치기 시작한다. 한 경찬은 차를 제어하려고 했지만 비로 인해 형성된 수막으로 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차가 돌며 한 쪽으로 기울었다. 한 경찬은 핸들을 반대쪽으로 돌리며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끼이이이이익!!!] 차가 겨우 멈추었다. 한 경찬은 핸들에 머리를 대고는 가쁘게 숨을 몰아쉬었다. "제...길...어떻게 된거야?" 그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는 차에서 내린다. 차의 앞바퀴 쪽으로 무언가 커다란 것이 끼어져 있었다. 오토바이.....? "빌어먹을 이래서는 움직일 수가 없잖아. 도대체 이 오토바이가 어디서 나온거야?" 그가 소리를 지르며 고개를 들었다. 쏟아져 내리는 비속으로 저 만큼 앞에 누군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점점... 다가오는 사람의 모습이 확실해 진다. 약간 다리를 절룩거리며 다가온 사람의 모습에 한 경찬은 놀라서 권총을 꺼내 들었다. 왼쪽 이마와 다리, 그리고 팔이 온통 땅에 긁혀서 인지 피가 흘러내리고 있다. 이마에서 흐르는 피는 비와 함께 얼굴을 적시고 있었고, 왼쪽 팔은 뼈가 드러나 보일 정도로 심하게 살점이 떨어져 나가 있다. 비속을 뚫고 다가오는 사람의 눈이 뚜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한 경찬은 다가오는 사람의 눈과 마주치자 지금까지 느껴본 어떤 것 보다도 더한 공포감을 느꼈다. 황 기자로 불리는 그 남자... 그의 눈은 마치 악마의 눈처럼 분노로 이글거리며 불타오르고 있다. 권총을 든 한 경찬의 손이 부들 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이...이건 도대체 뭐야. 저 사람이 정말 아까 내가 본 그 황 유석 기자란 말이야?' 한 경찬은 황 기자의 악마적인 모습에 겉잡을 수 없는 공포감을 느낀다. 윤 소희가 차에서 내려 다가오는 황 유석을 바라본다. 어금니를 악물어 드러난 그의 턱선과 흘리는 피와 비에 얼룩져 번쩍이는 그의 눈은... 그렇다. 지금 그의 모습을 본 사람은 모두가 공포에 떨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사람이 아닌 악마의 모습이었다. 분노로 이글거리는 그의 눈에서 한 경찬은 공포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가 다가오고 있다. 마치 지금 자신의 앞에 나타나 방해하는 것은 무엇이라도 부셔버릴 기세로 말이다. (29편 끝) INTERVAL: 악마의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자기가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한 분노를 느꼈을 때.... 자신의 얼굴을 본적이 있는가? 자신이 가진 모든 선이 분노로 인해 사라졌을 때... 우린 악마의 모습을 볼 수가 있다. 바로... 자신의 얼굴에서... 감사의 말:오래전에 이미 시간이 역류한 이유를 정확히 추론해 낸 분이 계시다. 그 분은 정확한 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게시판에 올리지 않고 다른 사람의 추리의 즐거움(?)을 위해 나에게만 메일로써 그 생각을 보내주셨다. 하지만 난 그 분이 정확한 답을 맞춘 것을 가르쳐 드리지 않고 답장도 보내지 않았다. 왜냐면... 여기까지 글을 읽으면서 그 분 역시 자신의 추리가 맞았는지 아닌지 알 수있는 즐거움(?)을 드리기 위해서이다. 이 자리를 빌어서 그 분의 배려에 늦게 남아 감사드린다. ..........마지막 해커로부터........ [마지막 해커] -시간의 역류- (30) 게시자 last해커(황유석) 게시번호 6 게시일 98/08/15 13:03:24 수정일 98/08/15 20:09:41 크기 6.7K 조회횟수 7480 "속도를 좀 더 높이란 말이야. 좀 더 속도를 높이라고..." 주 민성이 운전을 하고 있는 강 형사에게 소리친다. "더 이상 높였다간 우리도 안전하지 못해. 이 비속에서 이정도로 달리는 것도 미친 짓이나 마찬가지라고..." 비로 인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조심을 한다고 하더라도 이 비속에서 운전을 한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다. 그것을 뻔히 보고 있는 주 민성이 속도를 높이라고 소리를 지르는 것을 강 형사는 이해할 수 없었다. 강 형사는 주 민성이 지나치게 흥분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계속해서 줄 담배를 피우며 담배연기를 연신 뿜어대는 그의 모습을 보며 강 형사는 생각했다. '도대체 왜 이렇게 안절부절 못하는 거야?' "제기랄... 황 기자가 나가지 못하도록 붙잡았어야 했어." "황 기자를? 이봐 주 형사 도대체 무슨 말이야? 황 기자를 붙잡다니..." 주 민성의 탄식이 섞인 알 수 없는 말에 강 형사는 더욱 의아해하며 물었다. "빌어먹을..." 그는 차창을 손으로 탁탁 두드리며 한 숨을 쉬었다. 무척 초조해 하는 모습이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토록 불안해하는 것일까? 범인이 도주한 올림픽 대교의 반대편은 이미 경찰들을 배치하여 도주로를 차단하였고 주 민성과 강 형사가 추적해 들어가는 퇴로는 모든 경찰 병력의 출동으로 되돌아 올 길을 차단하며 범인과의 거리를 좁혀가고 있다. 한 경찬이 잡히는 것은 시간 문제인 것이다. 그런데 왜 이토록 불안해 하는 것일까? 혹시 윤 소희라는 여자의 안전 때문인가? "소희라는 여자를 죽이지는 못할 꺼야. 그 여자가 다치거나 죽기라도 한다면 자신이 탈출하기 위한 최선의 방도를 포기하는 것이 되는 거라고... 윤 소희는 인질이야. 한 경찬, 그 작자의 마지막 방패막이기도 하면서... 함부로 그녀를 어떻게 하지 못해. 안심하라고..." 주 민성은 눈을 감고 의자에 머리를 기대며 말한다. "난 지금 한 경찬이나 윤 소희 때문에 이러는 게 아니야." "그럼 왜 이렇게 난리야." "3년 전에 이 두눈으로 똑똑히 보았으면서도 다시금 이런 똑같은 실수를 하다니... 제기랄... 병신... 돌대가리!!!" 주 민성이 자기 자신을 향해 욕설을 퍼붓고 있다. 강 형사는 답답한 마음으로 그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속 시원히 말 좀 해보라고...!!!" 주 민성은 강 형사를 보며 한 숨을 쉬듯이 말한다. "왜 그러는 거냐고?" "그래. 무슨 일로 그렇게 초조해 하는 거냐고... 답답해 미치겠잖아." 주 민성은 10개 째 담배를 꺼내 물고는 불을 붙이며 말했다. "지금 우리가 말려야 할 사람은 한 경찬이 아니야." "그...그게 무슨 말이야?" "우리가 말려야 할 사람은 황 기자, 바로... 그들을 쫓아 뛰어나간 황 유석 기자라고..." 너무도 어이없는 주 민성의 대답에 강 형사는 멍청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도대체 무슨 말인가... 지금 우리가 가는 것이 한 경찬을 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황 기자를 말리러 가는 것이라니... 그는 단지 소희를 구하기 위해 뛰쳐 나간 것인데... 그를 말려야 한다니...? 주 민성은 자신의 얼굴을 감싸쥐며 소리쳤다. "황 유석, 그 새끼... 다중 인격 장애자란 말이야." "다중인격 장애자?" 한 사람이 두가지 성격을 가지고 전혀 다르게 생활하는 정신병을 가리키는 의학적 용어... 주로 상반된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하나의 성격이 나타난 상황에서는 다른 성격이 나타났을 때의 행동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그것이 바로 다중 인격 장애이다. "지금 한 경찬을 추적하고 있는 사람은 우리가 알던 황기자가 아니야. 한 경찬을 죽이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는 괴물일 뿐이라고... 인간의 감정을 조금도 가지고 있지 않은, 오로지 잔인성과 살인본능만을 지닌 그런 괴물이란 말이야. 제길... 우리가 총구를 겨누어야 할 사람은 한 경찬이 아니라 황 기자라고... 잡았어야 했어. 나가지 못하게 막았어야 했어... 빌어먹을... 빌어먹을..." 강 형사가 주 민성의 이야기에 할 말을 잃은 듯 싶다. 주 민성이 담배연기를 깊이 빨아들이고는 말을 계속한다. "황 기자의 가슴엔 커다란 상처가 있어. 총알이 뚫고 들어간 자국이지." "총알 자국?" "그래... 3년전... 내가 그의 가슴에 직접 박아 넣었어." "주 형사가 황 기자를 쏘았단 말이야?" "그래 내가 쐈어. 보통 다중인격 장애자는 두가지 생활을 번갈아 가면서 하는 거지만 황 기자의 경우는 달라. 극도의 흥분상태가 일어나게 되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머지 성격이 나타나게 되는 거지. 분노를 일깨운 상대만이 눈에 보이게 되며 오직 죽이겠다는 생각 하나 밖에는 하지 않는다고... 아무도 말리지 못해. 아무도... 지금 위험한 것은 한 경찬 만이 아니야. 윤 소희가 만약 한 경찬을 죽이려는 황 기자의 행동을 막으려 든다면..." "되... 된다면?" "목뼈가 부러지는 것은 윤 소희도 마찬가지가 될꺼야." "그... 그럴수가... 그럼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다는 거야?" 주 민성의 얼굴 표정이 무척이나 심각해 진다. 그리고 혼자말을 하듯이 되내었다. "그를 말릴 수 있는 방법은 3년 전 처럼 그의 가슴에 다시 한 번 총알을 박는 것 뿐이라고..." 강 형사가 아연실색하며 주 민성을 보았다. 주 민성은 착찹한 마음으로 말한다. "연락해." "누구에게?" "경찰청 특수 테러진압 전문 사격수 팀.... 최고의 스나이퍼가 올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줘. 황 기자... 죽이기는 아까운 사람이니까..." 주 민성은 담배연기를 한 숨과 함께 내뱉으며 눈을 감았다. 황 기자가 그토록 살인범의 입장에서 그들의 행동방식을 정확히 생각해 낼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살인귀적 본능 때문이었다. 주 형사는 입술을 깨물며 내리는 비를 허망하게 바라보고 있다. 시간이 늦거나 만에 하나 실수를 하게 되면 황 기자를 영원히 잃게 될 지도 모른다. 잠시 후... 부셔진 올림픽 대교 통제물이 보였고, 그들의 차는 그것을 지나 대교 안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저 만큼 앞쪽으로 한 경찬이 도주할 때 탔던 주 형사의 차가 보였고 총을 뽑아 들고 있는 한 경찬과 우두커니 서 있는 황기자가 보였다. "세워!" [끼이이익!!!] 그들의 대치 현장에서 40미터 정도 앞에 차를 세운 주 민성은 차에서 내려 황 유석 을 바라보았다. "제기랄..." 주 민성은 미간을 좁히며 탄식을 하였다. 뒤이어 내린 강 형사도 황 유석의 모습을 보고 입을 벌렸다. 온 몸이 피와 비로 젖은 채 서 있는 황 기자의 앞에 한 경찬이 총을 겨눈 채로 부들 부들 떨고 있다. 쏟아지는 비 속에서도 똑똑히 보인다. 황 기자의 눈이 광기를 내 뿜고 있는 것이... 입가에는 악마같은 미소를 보이고 한 경찬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황 기자의 지금 모습은 다섯 명을 죽인 살인마, 한 경찬이라도 공포로 떨게 하기에 충분했다. (30편 끝) INTERVAL: 웃음이 엔돌핀을 증폭시켜 사람을 기쁘게 한다는 것은 이미 밝혀진 사실이다. 그런데... 고통이 극대화되면 웃음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의 엔돌핀이 쏟아지면서 또 다른 쾌감을 느끼게 된다는 말이 있다. 그 때의 느낌은 마약을 했을 때와 같은 효과를 나타나게 한다고 한다. 견디기 힘든 고통의 정도가 그 한도를 넘게 되면 뇌의 쾌락을 느끼게 하는 중추신경이 자극을 받게 되고 그것은 인간에게 쾌감을 가져다 주는 결과를 나타낸다. 전혀 상반된 감각인 쾌락과 고통이 어느 한도를 넘게 되면 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니... 인간의 몸은 참으로 복잡하고 아이러니 하다. (제발... 이 방법을 실험해 보려는 어리석은 사람이 없길 바란다. 난 변태적 행위의 선동죄로 감옥에 가기는 싫다.) ..........마지막 해커로부터........ [마지막 해커] -시간의 역류- (31) 게시자 last해커(황유석) 게시번호 5 게시일 98/08/18 10:35:19 수정일 98/08/18 11:07:16 크기 9.4K 조회횟수 7495 "가... 가까이 오지마. 다가 오지 말라고 죽여버릴꺼야!" 죽인다고... 누굴... 나를...? 아... 너도 죽이는 거 좋아하는 구나... 킥킥... 그래... 나도 언젠가 죽게 되겠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여기 온 건 널 죽이기 위해서이지 내가 죽기 위해서가 아니라고... 이리와 절대 아프지 않아. 그냥 잠시 눈을 가만히 감고 다른 생각을 하고 있으면 돼. 아주 잠깐이라고... 뜨끔하고 눈 앞이 캄캄해지면... 슈욱... 하면서 하늘로 올라가는 거야... 전혀 아프지 않아. 지금 넌 너무 힘들어 보여. 내가 편안하게 해 줄께. 거기 가만히 있어. 나만 믿으라고... 어? 그런데 니가 들고 있는 거... 그거 총이니? 음... 위험하잖아. 그런거 들고 있으면... 그리고 총 같은 건 살인의 기쁨을 전혀 못느끼는 도구라고... 죽이는 순간 손에 사람이 죽어갈 때의 감각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물건이란 말이야. 그거 버려 꼬마야. 얼른 그거 버려. "황 기자! 나 주 민성 형사다. 거기 가만히 서 있어. 우리가 왔으니까. 바보같은 짓 하지 말고 거기 가만히 서 있으라고..." 누가 이렇게 크게 떠드는 거야? 확성기 안 끄면 부셔버린다. 방해하지 말라고 나의 즐거움을... 목뼈가 부러지는 소리만큼 끝내주는 소리도 없단 말이야. 그러니까 잘 들릴 수 있도록 조용히 좀 하라고... 아... 기분이 더러워. 젠장맞을 비... 속옷까지 다 젖은 거 같아. 빨리 끝내고 집에 가서 샤워해야지. 빨리 끝내고 샤워해야지... ************* ************* "빌어먹을... 완전히 미쳐있어. 다른 사람들의 말을 다 무시하고 있다고..." "어떻게 저렇게 될 수가 있는 거지?" 강 형사가 이해 할 수 없다는 듯이 묻는다. 주 민성은 여전히 황 기자와 한 경찬, 윤 소희를 초조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눈 앞에서 자기 자신보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버린다면 강 형사는 미치지 않을 수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강 형사가 주 민성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 슬픔이 약간 보인다. "황 기자는 자신의 눈 앞에서 자신의 목숨보다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렸어. 자신의 눈 앞에서 말이야." 강 형사는 주 민성의 말에 생각했다. '그럼... 사랑하는 사람의 생명을 구하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으로?' "안돼. 가까이 가지 말란 말이야." 주 민성이 갑자기 소리를 지른다. 강 형사가 시선을 돌려 그들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총을 겨눈 채 부들거리며 떨고 있는 한 경찬, 피를 흘리며 한 경찬, 가까이에 서 있는 황 기자, 그리고 그 황 기자에게로 다가 선 여인, 윤 소희... 주 민성은 차를 발로 걷어차며 소리질렀다. "도대체 언제 오는 거야? 저격수는! 세금 받아 처먹고 잠이나 퍼자고 있는 거냐고... 제기랄!!!" 그렇게 소리치는 주 민성의 귀에 사이카 소리가 들린다. 기다리던 테러진압팀의 스나이퍼가 도착한 것이다. ************* ************* "이제... 이제 그만해요." 이 여자는 왜 내 앞에서 울고 있지? 저리 비켜... 난 지금 해야할 일이 있다고, 비키지 않으면 너도 같이 죽일 지 몰라. 어서 비켜... "그만 잊어버려요. 이제 그만 잊어버리라고요. 혜선씨의 망상에서..." 혜선...? 혜선! "유석씨의 이런 모습 때문에 마음 아파하고 있어요. 제발... 혜선씨를 더 이상 유석씨의 욕심으로 마음 속에서 잡고 있지 말아요. 보내주세요. 혜선씨의 영혼이 편히 쉴 수 있도록... 보내주라고요." 혜선... 혜선...? 내가... 내가 잡고 있다고? 아니야... 나... 난 혜선이를 불편하게 한 적이 없어. 아니라고...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이제... 보내주라고요. 이렇게 유석씨가 힘들어 하면... 혜선씨는 떠날 수가 없다고요. 보내주세요. 이젠... 보내주세요." 눈물이 흘러내리는 걸까? 아니면 비...? 왜 그렇게 날 슬프게 바라보는 거지? 왜...? "제발... " 나의 손을 잡고 고개를 숙인 그녀... 내 손에 따스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차가운 빗방울이 아니였다. 그녀의 눈물이었다. 갑자기 나의 가슴이 찢어지는 것 처럼 아프다. 이건 뭐지? 도대체 당신 누구야? 누구...냐고...? ************* ************* "가능하겠어?" 주 민성이 답답한 마음으로 묻는다. 검은색 테러진압 복을 입은 스나이퍼가 저격용 라이플의 조준경에서 눈을 떼며 말한다. "흉부를 맞추기는 어렵겠어요. ." 경찰차 위에 저격용 라이플을 놓고 황 기자를 조준하던 스나이퍼는 고개를 저으며 주 민성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어두운 표정으로 말한다. "여자가 너무 가까이 있어요. 이대로 쏘면 황 기자라는 사람을 실신 시킬 수는 있을 지 몰라도 저 여자의 안전은 보장 할 수가 없습니다." "제길 시간이 없다고... 잘못하면 황 기자의 손에 저 여자가 죽을 지도 몰라." 강 형사가 소리쳤다. 스나이퍼는 다시 조준경에 눈을 가져간다. "머리라면 맞출 수 있습니다. 결정하십시요." 그의 말에 주 민성은 입술을 깨물며 눈을 감았다. '어떻게... 어떻게 해야하지? 어떻게... 생각해봐. 3년 전 일을... 생각해 보라고... 혜선씨가 죽고 나서 황 기자가 미쳤고, 그리고... 그리고...' 주 민성은 필사적으로 그때의 일을 생각해 내려 한다. 그는 분명 후회를 한 기억이 있다. 황 기자를 쏘고나서 무언가로 인해 후회를 하였었다. 그 후회는 그를 쏘았다는 죄책감이 아니라, 그를 쏘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라는 아쉬움 때문이었다. '쏘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무엇이었지? 무엇 때문에 그런 후회를 했었던 거지? 쏘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주민성이 눈을 번쩍 떴다. "그래 맞아. 알았다! 한 경찬이를 쏴! 지금 황 기자의 목표는 한 경찬이라고, 목표가 사라지면 더 이상 자신이 할 일이 없어진다고... 그럼 돌아올 꺼야. 제정신으로 돌아올 꺼야." 그래... 그때도 그것 때문에 후회를 했었다. 갑작스럽게 악마처럼 변한 황 기자의 행동에 정신이 없었던 터라 그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그를 향해 총을 쏘았던, 주민성... 황 기자를 구할 방법은 이것 밖에 없다. 스나이퍼는 주 민성의 말에 총구를 한 경찬으로 향해 정 조준을 하였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방아쇠에 검지 손가락을 갖다 놓는다. ************* ************* [타앙!] 총성과 함께 한 경찬이 털썩 주저 않는다. 그는 자신의 다리에 인두로 지진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 "빌어먹을..." 한 경찬은 이를 악물고 일어섰다. 그리고는 윤 소희에게로 다가갔다. "이렇게... 이렇게 죽을 순 없어. 난... 이렇게 죽을 수 없다고..." 한 경찬은 윤 소희의 어깨를 붙잡았다. 소희가 놀라며 뒤를 돌아본다. 한 경찬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윤 소희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있는 힘을 다해 그녀를 끌어당겨 다리의 난간 쪽으로 끌고 왔다. 황 기자는 그것을 막을 생각도 않고 멍하게 바라보고 있다. "절대로 나 혼자는 못죽어. 같이 가자. 끝까지 듣고 말겠어. 날 사랑한다는 말을..." 그는 절규에 가까운 말을 하며 그녀를 끌어안고는 난간위로 몸을 던졌다. 그와 동시에 멍하게 서 있던 황 기자가 소희의 팔을 붙들었다. 피가 흘러 내리는 왼팔은 난간을 끌어안고 있었고, 오른 손은 그녀의 팔을 필사적으로 붙들고 있었다. 악마와 같았던 그의 눈빛이 어느새 바뀌었다. 황 기자는 이를 악물고 그녀의 팔을 붙들고 있다. "놔...! 노란 말이야. 같이 죽게 내 버려둬. 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 것 같아? 노란 말이야. 어서 노라고...!!!" 한 경찬은 황 기자를 향해 소리치다가 무언가에 놀란 듯이 말을 멈추었다. "도...도대체..." 그는 무언가에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이...이럴수가... 말도 안돼." ************* ************* 나의 눈에 소희가 보였다. 난 필사적으로 그녀의 팔을 잡고 있다. 왼손에 상처가 두 사람의 몸을 지탱할 수 없을 정도의 고통으로 느껴졌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정신을 차렸을 때, 나의 팔에 매달려 겨우 지탱하고 있는 그녀와 그녀의 몸을 붙들고 있는 한 경찬이 보였다. 아무것도 기억이 나진 않았지만, 상관이 없었다. 지금 나의 손에 의지해 매달려 있는 그녀의 모습만이 보일 뿐이다. 비로 인해 불어난 한강 물이 빠르게 하류 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만약 내가 그녀의 손을 놓치게 된다면... 한강 물은 그들을 집어 삼킬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난 다시한 번 견딜 수 없는 슬픔을 가지고 평생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점점 나의 손아귀에 힘이 빠지고 있다. 난 이를 악물고 그녀를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두 사람의 무게로 나까지 끌려 내려갈 것 같다. 하지만 놓을 수 없었다. 견뎌야 한다. 소희가 날 바라보고 있다. 너무도 슬픈 눈으로... "조...조금만 버텨... 살 수 있어. 조금만..." 그녀는 잡고있던 나의 손을 놓는다. "왜...! 제발... 잡으라고 내 손을... 왜 놓는거야? 조금만 버티라고 사람들이 구해줄꺼야. 제발... 놓치말라고 제발..." "가야할 사람은 저에요. 유석씨까지 위험해 지면 안돼요." 그녀가 나를 애처롭게 바라보았다. 그녀의 입가에 슬픈 미소가 그려진다. "안돼... 제발... 포기하지마. 제발... 포기하지 말란 말이야... 제발...!" 나의 손에서 그녀의 작은 손이 미끄러져 나간다.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그녀는 너무도 슬픈 미소를 내게 보이고는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았다. "잡으라고... 잡으란 말이야. 소희씨... 제발... 잡으란 말..." 그녀의 손이 나의 손에서 빠져나가 버렸다. 시커먼 한강 물이 소희와 한 경찬을 삼켜버린다. "안돼!" 난 소리를 지르며 그녀를 구하기 위해 물 속으로 뛰어들려고 하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누군가가 나의 허리를 부둥켜 안는 것이 느껴졌다. "노란 말이야. 구해야해. 구해야 한다고... 안돼... 절대로 안돼!" 난 거의 제정신이 아닌 것 처럼 울부짖었다. "구조대원들은 한 경찬과 윤 소희를 구해. 그리고 빨리 들것 가지고 와!" 주 형사가 소리를 질렀다. 난 몸부림을 치며 한강을 향해 소리질렀다. "구해야 된다고... 더 이상... 고통으로 어둡게 살고 싶지 않다고... 구해야돼. 구해야 한다고... 나 좀 제발 나줘. 나좀... 으아아아아아아!!!!" 나의 절규가 쏟아지는 비소리를 잠재운다. (31편 끝) INTERVAL: 무서운 꿈에 잠에서 깨었다. 수많은 애기들이 날 보고 있었고, 내가 놀라 소리를 지르자 모두 도망을 갔지만, 오직 한 아이만이 날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아이의 눈속 검은 동공이 점점 커졌고, 급기야 그 동공이 나를 집어 삼켰다. 너무도 생생했고, 무서웠기에 놀라서 누군에게 이 꿈을 해석해 달라고 말하였다. 듣고있던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태몽이야." 물어본 내가 잘못이지............... 그 사람의 말을 무시했지만, 왠지 나의 배를 자꾸 만지게 되는 이유는 뭘까? 태몽이라고? 음... 으음... ..........마지막 해커로부터........... [마지막 해커] -시간의 역류- (32) 게시자 last해커(황유석) 게시번호 4 게시일 98/08/20 09:57:42 수정일 크기 8.3K 조회횟수 7276 [철컹!] 난 나의 오피스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입원을 해야한다는 의사의 말을 무시하고 집으로 온 것이다. 혼자 있고 싶었다. 밝고 사람이 많은 곳에서 지금은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불을 켜지 않은 채로 나의 책상이 있는 곳으로 가서 의자에 앉았다. 넋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의자에 기대 앉아 허공을 바라본다. 새벽에 벌어진 일들... 마치 꿈만 같았다. 아니... 꿈이었으면 하는 나의 바램이었다. 구조대가 한 경찬이 대교의 교각에 매달려 있는 것을 찾아내었고, 부상을 입은 그를 119 구조대원들이 병원으로 데려갔다. 강 형사는 사건 전모의 취조를 위해 그를 따라갔다. 주 형은 윤 소희를 찾기 위해 꼬박 하루동안 그 대교 위에 있었다. 하지만... 윤 소희는 끝내 찾아내지 못하였다. 구조대가 아직 철수를 하지 않고 그녀를 찾기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사실상 모두가 윤 소희의 생존은 포기하고 있는 상태였으며, 행방불명 한 명과 살인범 검거로서 사건은 종결상태이다. 이젠 그녀를 찾았다 하더라도 더 이상 그 아름다운 미소를 보일 수 없는 싸늘한 시신일 뿐이겠지. 그녀의 언니, 윤 소연과 마찬가지로... 가슴이 미어지도록 슬펐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너무 슬퍼서 일까? 왜 눈물이 나오지 않는 것이지? 만난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서 그녀에게 사랑을 느꼈고, 그리고 영원히 그녀와 이별을 하였다. 단지 몇일만에 사랑과 이별을 모두 경험하게 된 것이다. 이 세상 어딘가에 살아있을 것이라는 희망도 없는 그런 이별을 말이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기에 그녀를 잃어버린 것에 눈물이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닐까? 그렇지 않다. 난... 난 그녀를 분명 사랑하고 있었고, 그녀를 잃게 된 지금도 사랑을 하고 있다. 그런데 왜 눈물이 나오지 않는 거지? 왜... [내가 지켜 줄께요. 내가...] 그녀에게 했던 말이 자꾸만 떠올랐다. 난 그녀와 한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그녀를 죽게 만든 것은 결국... 나인 것이다. 그렇다면 죄책감이 나의 슬픔을 막고 있는 것일까? 그녀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인한 괴로움이 나를 짖누르고 있는 것일까? 아니야... 난 울고 싶다고... 정말로 엉엉 소리내어 울고 싶다고... 그러면 차라리 속이라도 시원할 텐데... 가슴이 너무도 답답해. 미칠 것만 같아. [디리리리리리] 나의 핸드폰이 울렸다. 난 받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잠시 후 핸드폰 소리가 멈추고 곧바로 집 전화가 울렸다. [지금 외출 중이니까 메모남겨... 장난 전화면 찾아가서 밟아버린다. 띠......] "황 기자? 괜찮은 건야? 나 주 형사야. 집에 있는 거 알아. 하지만 전화받을 상태가 아니겠지. 너무 상심말아. 황 기자 잘못이 아니니까... 난 지금 병원으로 가고 있어. 한 경찬의 집에서 윤 소연의 홀로그램을 나타나게 하는 장치를 발견했지. 컴퓨터 영상 기술자라서인지 정말 정교하게 만들었더구만... 이봐. 부탁이야. 다른 생각하지 말고, 지금은 좀 자둬... 난 한 경찬을 취조하러 가야하니까 나중에 다시 연락할께. 힘들어 하지마. 황 기자 잘못이 아니니깐..." 전화가 끊어졌다. 홀로그램... 한 경찬은 그것을 이용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윤 소연의 죽은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공포감을 일으키게 하였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그 사람들을 손쉽게 죽였으리라... 하지만 난 그가 다른 사람을 어떻게 죽였든지에 관해서도 그리고 시간이 역류한 사실에 대해서도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가 않았다. 다만... 윤 소희를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에 너무도 괴로울 뿐이었다. '나의 잘못이 아니라고? 킥킥... 윤 소희는 바로 내가 죽인거야. 내가...' 실성한 사람처럼 웃기 시작했다. 도대체 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남자들은 그토록 잔인한 짓을 하는 것일까? 자신의 사랑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다고 해서 왜 그런 끔찍한 짓을 저지르는 것이냐고... 사랑으로 인해서 생기는 집착, 그리고 소유욕... 왜 사람들은 아무런 조건이 없이 그냥 사랑을 할 수는 없는 거냐고... 왜? 윤 소연을 사랑한 한 경찬... 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는 자신의 사랑에 대한 배신감으로 6명을 죽였다. 강제로라도 겁탈을 하여 사랑을 성취하려는 인간들... 자신이 소유할 수 없으면 다른 사람도 소유할 수 없도록 아예 부셔버리는 이기적인 새끼들... 열 번 찍어 안넘어가는 나무 없다라는 옛말을 하며 자신의 사랑이 받아들여 지지 않으면 집요하게 괴롭히고 피해를 주는 사람들... 사랑을 받아내기 위해 폭력을 휘두르는 인간들... 그리고 그런 횡포로 괴로워하고 힘들어하는, 바로 자신이 사랑했던 그 여인의 고통을 보며 즐거워하는 정신병자같은 인간들... 모든 것이 단지 여자가 남자보다 힘이 없다는 이유로 이루어지는 일들이다. 어떻게 사랑을 하는 사람이 자신으로 인해 그토록 고통받는 것을 보며 기뻐할 수 있는 것일까? 정말로 사랑한다면... 그 사람의 행복을 위해 놓아주어야 하는 건 아닌가? 도대체 왜... 왜 그렇게 해야만 하는 거지? 한 경찬은 왜? 윤 소연으로도 모자라서 윤 소희까지 죽여야만 했던 것지? 단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 새끼는 아직 살아있어." 난 갑자기 치밀어 오르는 분노로 주먹을 쥐었다. 살아야 할 사람은 죽고 죽어야 할 인간은 멀쩡히 살아있다. 언제나... 언제나 그 모양이다. 언제나 그렇게 불공평한 일 투성이다. 난 의자에서 일어섰다. 하늘이 그렇게 불공평하게 인간사를 만들어 간다면... 나라도 제대로 잡아 주겠어. 나라도 그렇게 하겠다고... 난 냉장고로 가서 냉동실의 문을 열었다. 신문지에 쌓여 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무언가를 꺼내 난 조심스럽게 종이를 벗겨 내었다. 언젠가 연쇄살인범을 주 형과 함께 검거하였을 때, 살인범이 나에게 준 것이다. 살인범치고는 너무도 카리스마적이고 똑똑한 머리에 난 그에게 호감을 느꼈고, 사형을 당하는 순간까지 그를 자주 찾아가서 면회를 하였었다. 그도 나의 마음이 통했던 것인지 처음에는 피하다가 언젠가 부터 내가 면회를 오는 것을 즐겁게 맞아 주었다. 난 그에게 살인에 대한 미학을 무척이나 많이 들었었다. [칼은 언제나 차갑게 보관하라고... 아주 차갑게 말이야... 킥킥... 차갑게 식혀진 예리한 칼날이 몸에 파고 들며 인체의 뜨거운 피와 만나게 될 때... 그때의 느낌... 안 해본 사람은 몰라... 죽이는 자의 쾌감을 증폭시키기 위해서 그리고 죽는 자에 대한 최선의 배려이기도 하지. 시원할 꺼야. 그렇지? 킥킥... 차갑게... 차갑게 식혀둬. 언제나 말이야.] 신문지를 모두 벗기자 그가 살인에 쓰던 잭 나이프가 나왔다. 주 형이 살인 흉기로 그렇게나 찾아해메었던 그 물건... 주 형은 꿈에도 모르고 있다. 내가 이것을 가지고 있으리란 것을... 난 그것을 들고 현관 문으로 갔다. '죽어야 할 사람은 소희가 아니라 한 경찬 그 새끼라고...' 한 경찬, 그를 죽이기 위해 현관 문을 열었다. 하지만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난 그대로 문 앞에 서서 나의 앞을 멍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 **************** "무슨 헛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주 민성이 한 경찬의 말도 안되는 소리에 화를 내며 소리쳤다. 병원 침대에 누워 멍하게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한 경찬... 강 형사는 주 민성이 흥분을 하는 것처럼 보이자 그를 말렸다. "진정해. 아까부터 자꾸 똑같은 소리를 하고 있어. 제 정신이 아니야." 한 경찬이 고개를 저으며 주 민성을 보았다. 그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게 주 민성을 바라보며 말하였다. "난 거짓말을 하는게 아니에요. 똑똑히 봤어요. 이 두 눈으로 똑똑히..." "이 새끼!!! 수작 부리지 말라니까... 내가 그런 어설픈 연기에 넘어갈 인간을 보이냐? 날 호구로 아는 거냐고....!" 주 민성은 한 경찬의 멱살을 잡으며 소리를 질렀다. "정신병자의 행세로 사형을 면할 심사인가 본데, 웃기지 말어. 내가 널 사형대로 반드시 올라가게 해 줄 테니까!!!" 주 민성은 그렇게 소리치며 이를 악물고 한 경찬을 노려보았다. 한 경찬은 주 민성의 분노가 어린 눈을 피하지 않고 바라보며 말한다. 마치 자신의 말을 믿어달라는 모습으로... "난 분명히 보았습니다.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에요." **************** **************** 들고 있던 칼을 현관 문 앞에 떨어뜨렸다. 난 내 눈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어...어떻게..." 내 눈 앞에는 소희가 서 있었다. 구조대원들이 그렇게나 찾아 헤메던 소희, 그녀가 나의 앞에 서 있다. 하나도 흩으러 지지 않은, 나를 만났던 처음의 모습 그대로, 나의 앞에 그녀가 서 있었다. 난 내 눈을 의심했다. 꾸...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이냐고... (32편 끝) INTERVAL: 수백번의 시도에도 자신의 사랑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적이 있었는가? 있었다면... 당신은 다음에 어떻게 행동을 하였는가? 그토록 사랑하던 그 여인이 자신의 사랑을 받아들일 때까지 그녀를 괴롭혔는가? 강간이라도 하여 마음이 아니라 그녀의 몸만이라도 가지려 하지는 않았는가? 아니면 뒤돌아서서 그녀의 행복을 빌었는가? 당신은 어떤 쪽이었는가? 사랑으로 인해 생긴 소유욕과 집착을 어떻게 해결하였는가? 당신의 마음속에 과연 한 경찬이가 했던 짓을 그대로 해 볼 생각은 정말... 조금도 하지 않았었던가? 생각해 보라. 거부 당했을 때, 그 순간 당신은 도대체 어떤 마음을 그녀에게 품었는지... 생각해 보라. 당신의 마음 속 한 경찬의 모습을... 생각해 보라. ..........마지막 해커로부터......... [마지막 해커] -시간의 역류- (33) 게시자 last해커(황유석) 게시번호 3 게시일 98/08/21 15:37:13 수정일 98/08/21 15:41:12 크기 7.2K 조회횟수 6837 눈 앞에 나타난 여인의 모습으로 난 아무런 말도 못하고 서 있었다. 경찰들도, 구조대원도 사실상 찾는 것을 포기한 윤 소희, 그녀가 지금 나의 앞에 서 있는 것이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내가 꿈이라도 꾸고 있다는 것인가? 윤 소연은 죽었다. 그리고 윤 소희는 물에 빠져 사라졌다. 물에 빠져 행방불명된 그녀가 혼자의 힘으로 급류를 이겨내고 살아서 나에게로 왔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것이다. 한 경찬도 구조대에 의해서 겨우 살아났는데... 설사 그런 말도 안되는 일이 기적같이 있었다하더라도 새벽의 그 난리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는 듯한 멀쩡한 모습으로 내 앞에 서 있다는 것은 더욱 말도 안되는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일이? 윤 소희, 아니 윤 소연의 모습이기도 한 지금 내 앞의 이 여인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고맙다는 말 하고 싶어서... 왔어요." 말없이 나를 바라보며 천사와 같은 미소를 보이는 그녀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고맙다니...? 두서 없는 그녀의 말... 그리고 말도 안되는 지금의 상황... 난 꿈을 꾸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너무도 피곤해서 잠시 잠이 든거야. 난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거라고... 부드럽고 차분한 그녀의 목소리가 다시금 들린다.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알 수 없었던 나의 마지막 모습이 무엇인지를 유석씨가 가르쳐 주셨답니다." **************** **************** "비가... 비가 그렇게 쏟아지고 있었는데 그녀의 몸에는 물 한 방울 묻어있지 않았어요." 주 민성 형사의 눈썹이 꿈틀 움직인다. "새벽에 우리가 본 그 여자의 모습은 황 기자의 말처럼 죽은 윤 소연의 쌍동이 동생... 윤 소희가 아니라... 바로... 내가 죽인 윤 소연이란 말입니다. 내가 추락사 시켜 목이 잘린 채로 처참하게 죽었던 윤 소연이라고요. 난 거짓말을 하는게 아닙니다. 분명히 보았다고요. 머리칼 하나 젖지 않았던 그녀의 모습을..." "그걸 나보고 믿으란 말이야. 이새끼야!" 주 민성은 흥분으로 한 경찬의 멱살을 더욱 거세게 휘어 잡았다. "그만둬 주 형사... 그만 두라고..." 강 형사는 안되겠다 싶었는지 그를 만류하였다. *********** *********** 그녀는 하얀 새의 깃과 같은 두손을 가슴으로 가져가며 눈을 감는다. "저를 알아가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그림이 조금씩 완성되어 가는 것을 보면서 행복을 느꼈어요. 나의 모습을 그리기 시작했던 6년의 시간... 하지만... 전 완성할 수 없었답니다. 저의 그림을... 마음속에 한 가지, 내가 알지 못했던 그 감정 때문에... 아무리 알려고 노력을 해도 그것이 무엇인지 뚜렷하게 형상이 잡히지 않았지요. 그런데... 유석씨가 가르쳐 주었답니다. 제가 알고 싶어했던 그 무엇인가를..." '지금 그녀의 집에 있었던 미완성 초상화를 이야기하고 있는 건가?' "유석씨는 저에게 자신보다 남을 더 사랑하는 마음을 가르쳐 주셨답니다. 제가 알 수 없었던 한 가지 나의 모습... 그건 바로 내 스스로가 나를 사랑하는 것 만큼 남을 사랑할 줄 모르는 이기적인 모습이었던 거지요." 그녀는 고개를 들어 눈을 뜨고 너무도 행복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유석씨를 본 시간... 너무도 짧았었지만, 전 충분히 느낄 수 있었어요. 저에 대한 유석씨의 조건없는 사랑을... 저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단지 저의 미소만을 바라보며 행복해 하던 유석씨의 마음... 그리고 날 바라보던 그 따스한 눈빛... 전 알았답니다. 유석씨는 자기 자신보다 더 나를 사랑해 준다는 것을 말이에요. 난 다른 사람들에게 언제나 미소로서, 친절로서 대했지만 그들이 저를 사랑해 주는 만큼 보답하지는 않았어요. 이기적인 마음... 그것 때문에... 난 항상, 진실로서 사람들을 대하지 않았던 것이랍니다. 유석씨를 만나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답니다. 나의 마지막 모습을... 그리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을..." 그녀는 너무도 아름답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멍하게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나에게로 다가왔다. 부드러운 그녀의 손이 나의 뺨을 쓰다듬었다. 난 최면에 걸린 사람처럼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하고 그렇게 서 있다. 약간은 수줍은 듯, 조금은 미숙하게 그녀는 가만히 나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가져왔다. 부드러운 그녀의 입술이 느껴진다. 난 눈을 감고 그녀의 향기와 감촉을 마음으로 느꼈다. 꿈이라면 깨지 말았으면... 이대로 꿈에서 깨지 않는다면... 잠시 후 그녀의 목소리가 나의 귀에 은은하게 울린다. "이젠 그림을 완성할 수 있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사랑해요. 유석씨!" 가슴시리게 파고드는 그녀의 음성... 난 눈을 떴다. 그녀가... 그녀가 보이지 않았다. 정말... 난 꿈을 꾼 것이란 말인가? *********** *********** 주 민성은 경찰서로 돌아와 자신의 책상에 걸터 앉아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창 밖을 바라보았다. 이제 비는 그친 것 같다. 지겨울 정도로 내리던 비가 이제야 그친 것이다. 요 몇일 동안 거의 잠도 자지 못하였기 때문에 사건 종결 시점인 지금, 그는 피곤함을 한꺼번에 느꼈다. 이대로 쓰러져 자고 싶었지만, 한 경찬의 말을 생각하면 다시금 화가 났다. 말도 안되는 헛소리를 시작한 한 경찬... 그래 어쩌면 사랑하는 사람을 그토록 끔찍하게 죽인 그는 정말로 정신병자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사랑을 거부받았다는 이유로 6명이나 죽인 한 경찬... 제정신인 사람이라면...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겠지. 허무한 생각이 들었다. 왜 이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인지... 도대체 왜... "주 형사님... 누가 찾아 오셨는데요?" 생각에 잠겨있던 주 민성은 어떤 의경의 말에 고개를 돌려 보았다. 깨끗한 정장차림을 한 여인이 문쪽에서 자신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짧은 커트머리를 하고 건강미 넘치는 피부색을 가진 여인이었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지만, 주 형사는 그녀의 눈매와 얼굴형을 어디선가 많이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주 민성 형사님이신가요?" "예, 그런데요? 무슨 일로..." 그녀는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며 말했다. "주 민성씨가 보내 준 언니의 부고 소식을 받고 왔습니다. 비로 비행기가 연착이 되는 바람에 이렇게 늦게 되었어요." 주 민성은 그녀가 건네 준 종이를 바라보았다. 자신이 유럽에 있는 소연의 가족에게로 보낸 편지... 주 민성은 고개를 들어 앞에 있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전 소연언니의 쌍동이 동생... 윤 소희라고 합니다." 주 민성은 들고 있던 편지를 떨어뜨렸다. 윤 소희...? 이 여자가 정말 윤 소희? 그럼... 한 경찬의 말이 사실이란 말이야? 한 경찬의 말이 정말 사실인 것이냐고? (33편 끝) INTERVAL: 사랑을 할때, 남자보다 여자는 더욱 이기적인 마음으로 사랑을 한다. 남자가 자신의 마음을 모두 바쳐 사랑을 주는 반면, 여자는 언제나 도망갈 구멍을 마련해 둔다. "남자친구 있어요?" "친구는 많아요." 여자들의 고정적인 레파토리...(뻔히 남자친구 있는 거 아는데, 이런 소리를 들으면 왜 난 때리고 싶어지는 걸까?)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도 언제나 이렇게 주위의 다른 남자들에게도 들어올 틈을 조금씩 남겨두는 것이다. 그래야지 지금 사랑하는 남자와 헤어졌을 때, 그 상처로 인한 힘겨움을 줄일 수 있을 테니까. 나의 말은 여자만 그렇다는 것이 아니다. 단지 여자는 남을 자기 자신 이상으로 사랑하게 되는 것을 막는 경향이 남자보다 강하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남자는 사랑을 할 때, 성적 욕망이 여자보다 강하고... 여자는 사랑을 할 때, 이기심이 남자보다 더 강하고... 그래서 사랑을 하는 연인들의 입에 항상 붙어 다니는 말이 있다. [저질!] [못된 뇬!] 아름답게 사랑하자. 이런 말은 어떨까? [사랑스런 나의 왕자님!] [아름다운 나의 백조여!] 우오오오옷.....닭살돋아..... 우오오오오옷!!! 우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다음편이 완결인데... 이렇게 닭살 돋아서 쓸 수 있을까?) ..........마지막 해커로부터........ [마지막 해커] -시간의 역류- (완결) 게시자 last해커(황유석) 게시번호 2 게시일 98/08/21 23:22:09 수정일 98/08/21 23:43:35 크기 5.0K 조회횟수 8145 "돈암동 상아 아파트로 가주십시요." 난 윤 소연의 집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탔다. 그곳으로 가는 목적도 이유도 없다. 그녀의 환영을 본 후, 난 무언가에 취한 사람처럼 밖으로 나왔고, 지금 그녀의 집으로 향하고 있는 중이다. 멍하니 차창 밖으로 스쳐지나가는 풍경들에 시선을 두며 난 아까의 사황을 합리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애썼다. 난 영혼의 존재를 믿지 않고 있다. 아니 믿고 있다 하더라도 아까와 같은 황당한 경우는 말도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 가... 어떻게... 나와 지금까지 같이 있었던 그 여인이 소희가 아니라 소연의 영혼이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난 지금 소연의 집으로 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무언가를 확인하고픈 그런 마음으로... "손님, 상아 아파트입니다." "......" "손님?" "아..." 난 멍하게 있다가 택시기사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그에게 돈을 주고 택시에서 내렸다. 그리고는 뒤돌아서서 상아 아파트를 바라보았다. 사건의 모든 시발점인 그녀의 집이 있는 14층을 올려다 보며 담배를 꺼내 물었다. 이젠 그곳이 전처럼 음산하게만 느껴지지는 않았다. 엘레베이터가 고쳐져 있다. 하지만 난 그것을 타지 않고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무서워서가 아니다. 계단을 올라가면서 그녀의 모습을 기억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계단 하나를 오를 때마다 그녀의 목소리와 미소를 기억해 내었다. 그녀와의 모든 것을 기억해 내고 싶었다. 모든 것을... 내가 이런 생각들 속에서 깨어났을 때, 난 그녀의 집 문 앞에 서 있었다. 1404호... 윤 소희를 아니... 윤 소연을 처음 만나 장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어제 범인을 밝혀 내던 중 꺼내 놓았던 그녀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 거실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천천히 그녀의 그림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녀의 그림 앞에 정면으로 섰다. 난 멍하게 그것을 바라보았다. 이때까지 슬픔을 억제하던 나의 마음이 그녀의 초상화를 보는 순간 무너져 버린 것일까...? 눈물이 자꾸만 흘러내려 나의 시야를 가린다. 손으로 닦아내고 또 닦아내어도 계속해서 흘러내렸다. 이게... 뭐야...병신 같잖아... 제길... 이게 뭐냐고... 왜 울어? 눈물 따위 잊어버린지 오랜데... 왜 우는 거야... 병신같잖아. 병신같다고... 제길... 난 나의 눈물을 손으로 계속해서 훔쳐내며 그림을 보고 또 보았다. [이젠 그림을 완성할 수 있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미완성이었던 그녀의 초상화가 이젠 모든 부분이 칠해져 있는 완성된 그림으로 나의 눈을 가득 메웠다.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나를 바라보며 그림 속에서 웃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이제 더 이상 슬퍼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행복하게 웃고 있는데... 난 왜 이렇게 슬픈 것이지? 난 왜 이렇게 눈물을 자꾸만 흘리는 것이지? 닦아내고 또 닦아낸다. 그칠 것 같지 않는 나의 눈물을... 잃어버렸던 사랑의 감정을 다시금 깨워 주었던 그녀가 이 세상에는 이미 존재하지 않았던 윤 소연의 영혼이었다는 것이 못견디게 괴롭다. 내가 사랑한 사람 윤 소희, 아니... 윤 소연... 그녀는 지금 날 바라보고 있을까? 이렇게 바보처럼 울고 있는 나의 모습을...? [디리리리리리...] 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이봐. 황기자! 나 주 형사야. 도대체 어떻게 된거야. 지금 윤 소희라는 여자가 경찰서로 찾아왔다고...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거야? 말 좀 해봐. 내가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 좀 해보라고..." 난 대답하지 않고 핸드폰의 파워를 아예 꺼 버렸다. 그리고 뒤돌아 그녀의 집을 나갔다.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아무것도...' (완결) INTERVAL: 사랑은 집착이 아니다. 사랑은 기다릴 수 밖에 없는 서로에 대한 이해이며, 악한 인간의 본성을 따스하게 감싸주는 소중한 감정이다. 당신에게 사랑을 느끼게 해준 사람이 있다면... 그것 자체만으로도 상대방에게 감사해야만 하는 그런 것이 바로 사랑인 것이다. 이글에서 필자가 전하고 싶었던 사랑에 대한 우리의 이기심과 집착을 조금이라도 공감한다면 이렇게 해주기 바란다. 자신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해준 사람이 가장 당신에게 바라는 것을 해주어라. 떠나는 것을 바란다면 떠나고, 기다리는 것을 바란다면 기다리고, 당신을 이용하겠다면 이용당하고, 사랑을 해주기 바란다면, 사랑을 해주어라. 사랑을 준 상대가 당신에게 바라는 모든 것을 해주어라. 아무런 조건도 바램도 없이 말이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상대방을 힘들게 하지 않기를 난 바란다. 사랑은... 이 세상 가장 소중한 감정이기에... PS........이번 시간의 역류를 끝으로 전 당분간 글을 올리지 못할 것 같습니다. (개인적 사정으로 인해서......) 잘되었다고요?.....-_-; 아예 사라져 버리라고요?.....-_-;; 글을 올리던 말던 관심도 없다고요?.....-_-;;;;;;;; 음...너무하다....정말.... 너무하다....-_-;;;;;;;;;;;;;;;;;; 나중에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발전된 모습으로 나타나기 위해서 잠시 도망(?)을 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멋있는 변명이겠지요? 실망스럽지 않은 글로써 여러분을 만나기 위해 다시금 제가 공/불 방에 나타났을때, 그때 반갑게 맞아 주시면 하는 바램뿐입니다. 마지막으로... 지루했을 지도 모르는 시간의 역류를 끝까지 보아주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요. 떠나는 이의 뒷 모습은 세상 모든 외로움을 등지고 있답니다. 하지만 더 좋은 내일을 향하여... ..........마지막 해커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