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본 작품은 구파일방총서의 여섯 번째에 해당되는 것으로 운남성(雲南省) 점창산(點蒼山)에 자리 잡고 있는 점창파를 소재로 하여 쓴 것입니다. 본래 점창파는 강호에서의 그 위치가 태산북두라는 것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필자는 역시 고전무엽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내에서 실 전무예(實戰武藝)에 대한 내용을 보다 강조하려고 하였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애독을 바랍니다. 백상(百象)- 서장 지금으로부터 이십오 년전 흡사 낙제수재와도 같이 온 몸에 궁때가 가득히 흐르는 약관의 서생 하 나가 어느날 점창산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이해의 호숫가에 이르러 여 장을 풀었는데마치 심한 중병에 걸려 있는 사람처럼 그의 안색은 좋지 않았고 두 눈에도 총기가 보이지 않았다. 호숫가에서 정착을 하고 부근에서 처녀를 맞이하여 혼인을 하니 십 년 이나 살다가 귀천했다. 사람들은 그의 생전의 재주가 다소 비상하게 뛰어났었기 때문에 이를 애석하게 여겼지만 뒤이어 십 년의 세월이 흐른 후에 그 부인마저 세상 을 떠나게 되자 점차 그들에 관한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다. 따라서 그곳에 역시 불치의 병에 걸린 서생의 아들 하나가 자라나고 있 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제1장 공포의 쾌결도술 이른 봄임에도 불구하고 한낮의 뙤약볕은 따가왔다. 거의 한여름의 날씨를 연상케 하는 이곳 운남지방의 더운 기후를 참기 어려워서인지 점창산으로 통하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는 이 작은 찻집으로 문득 한명의 꾀죄죄한 몰골의 초로인이 다소 지친듯한 표정으로 찾아들었다. "어서 오십시오 손님차 한잔을 올릴깝쇼?" 찻집 주인의 묻는 말에 매부리코에 양쪽의 광대뼈가 불룩 튀어나와서 몹시 험상궂은 인상을 주는 그 초로의 노인은 등에 한 자루의 도(刀)를 도집채 짊어진 상태로 천천히 내부를 둘러보다가 이윽고 우측의 비어 있 는 구석진 자리에 가서 앉으며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쳇! 외지에서 온 사람인가?) 자신의 가게에서 시끄러운 사건이 벌어지기를 바라지 않는 주인은 다소 낯설은 듯한 험한 용모의 노인이 찻집안으로 들어서자 다소 못마땅한 마 음에 눈살을 찌푸렸으나왠지 싸늘한 느낌을 주는 노인의 시선이 두려워 서 감히 내색을 하지 못하고 즉시 차를 한잔 따라서 그의 탁자 위에 가 져다 주었다. 그러자 노인은 찻잔을 들어서 가볍게 입술만을 축이고 다시 내려놓은 채 다소 냉막한 표정으로 자신이 들어온 입구쪽을 바라보았는데알고보니 그는 갈증을 느껴서 이 찻집안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 그저 누군가를 기 다리기 위해서 앉아 있는 모양이었다. 그때 문득 이제까지 조용하던 좌측의 구석진 자리에서 다소 수군거리는 듯한 나직한 한줄기 음성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음...... 검이 아닌 칼을 매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부근의 사람은 아 닌 것 같군......사실 요 옆에 있는 점창파나 남쪽의 무량검파(無量劍派)등 은 모두 칼이 아닌 검을 쓴단 말이야......" 왠지 다소 긴장되고 자신없어 하는 말투나 그 말의 내용 등으로 보아 필시 방금 안으로 들어온 그 노인에 관해서 얘기하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기실이 찻집의 내부에는 노인이 안으로 들어오기 전에 이미 모두 세명 의 손님들이 각기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 더위를 식히며 차를 마시고 있었는데그중 좌측의 구석진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두명의 장한들은 저 마다 한쪽 어깨에 약초주머니를 둘러메고 한손으로는 병장기를 쥐고 있 었고 나머지 중앙의 탁자를 차지하고 있는 한명의 중년서생은 일신에 깨 끗한 백의(白衣)를 걸치고 앉아서 천천히 부채를 부치고 있었다. 물론 방금전에 그 얘기를 꺼낸 사람은 일행인 듯한 두명의 장한들 가운 데의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누군가가 이렇듯 공공연하게 자신에 관해서 얘기를 하고 있다 면 당연히 기분이 나빠서 은근히 화가 날법도 하건만 그 노인은 여전히 입구쪽만을 바라본 채 냉막한 표정 그대로 변화를 일으키지 않았다. 두명의 장한들은 다소 그 노인을 경계하는 것 같았으나 이처럼 들은척 도 하지 않자 이내아까 말한 장한이 다시 입을 열기 시작했다. "하긴 점창파나 무량검파의 사람들이라고 해서 반드시 검이 아닌 다른 병기를 쓰는 삶이 없으리라는 법은 없지. 그렇지만...... 그는 다소 낯설은 편이군...... 그러나...... 만일 그가 이곳에 와서 어떤 말썽을 피우려고 생각하고 있다면 그건...... 그건 실로 오산이 라고 할 수가 있지." 장한의 말은 왠지 가시가 돋쳐있는 듯하고 어떤 저의가 깔려 있는 듯도 하여 그저 평범하게만은 들리지 않았다. 이때 중앙의 자리에 앉아서 부채를 부치고 있던 백의중년서생이 문득 그 장한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불쑥 질문을 던졌다. "아니 어째서 오산이라는 것이오?" 장한은 이 백의 중년서생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을 쓰고 있지 않다가 그 가 느닷없이 질문을 던져오는 바람에 다소 놀랐으나 이내 그 질문을 핑 계삼아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험험그거야 당연히 당금의...... 당금에 이르러 점창파가 크게 세력을 떨 치게 되었기 때문이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근래 들어서 점창파 의 위치는 이곳 천남 일대에서 거의 확고부동한 것이 되어버렸다는 말씀 이야." 장한은 처음에는 점창파와 무량파의 두 곳에 관해서 얘기를 시작하였으 나 아무래도 이곳에서 점창파가 가까운지라 그 노인이 점창파와 모종이 은원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백의중년서생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여전히 부채를 부치며 장한을 향 해 물었다. 장한은 이에 금방 대답을 하려다가 문득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가볍게 생각을 하며 백의 중년서생을 향해 싸늘한 어조로 오히려 되물었다. "그건 그렇고당신도 보아하니 내가 처음 보는 사람인 것 같은데 혹시 강호의 밥을 빌어 먹고 살아가는 친구가 아니오?" 알고보니 이 백의중년 서생과 두명의 장한은 아직 서로간의 수인사나 대화도 없었던 전혀 모르는 사이였던 모양이었다. 장한이 말한 강호의 밥을 빌어먹고 살아가는 친구라는 것은 바로 무림 인을 가리키는 말로서 강호상에서의 은어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백의중년서생은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는 듯이 고개 를 갸웃거리다가 부채를 크게 부치며 입을 열어 대꾸했다. "나는 본래 하남성 출신의 사람으로 수려한 산천경관을 따라 유람을 다 니다가 우연히 이곳에 이르렀을 뿐 무슨 밥을 빌어먹는 사람은 아니오. 험험이곳 점창산의 풍광이 수려하다고 해서 찾아왔더니 사실은 별 것도 아니더군요......" 장한은 원래부터 이 백의중년서생의 모습이 닭 한 마리 잡을 수 없는 나약한 백면서생의 몰골이기 때문에 거의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는데 이 제 다시 그의 말을 들어보고는 확실히 그가 무림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 게 되었다. 따라서 펑소라면 즉시 노골적인 경멸의 기색을 드러내고 사나운 눈초리 로 흘겨보며 무림인도 아닌 주제에 어서 꺼져버리라고 소리를 질렀을 것 이나지금은 상황이 다르다고 생각하여 힐끗 노인이 있는 자리를 건너다 보며 묵묵히 생각에 잠겼다. 그러자 백의중년서생은 아까 자신의 질문에 장한이 대답하지 않은 것을 상기하고 즉시 입을 열어 어 물어오는 것이었다. "그래그 점창파라는 곳이그렇게도 대단한 곳이라는 말씀이오? 누군가의 말에 의하면 옛날에 이 부근에 자리잡고 있었던 대리국(代理國)의 후신이 라고 하기도 하던데...... 형장께저 소생에게 어디 그 얘기좀 들려주시지 않으시겠소?" 장한은 곰곰히 생각에 잠겨 있다가 백의 중년서생의 질문을 듣고는 실 로 이 서생이 분수도 모르고 그와 같은 얘기를 어이없게도 마치 구수한 옛날 얘기처럼 들으려고 한다고 생각했다. 이는 실로 강호무림의 피를 튀기는 살벌한 얘기이며 하다못해 작은 얘 기라고 할지라도 자칫하면 개인의 살신지화(殺身之禍)는 물론 가문의 멸 문지화까지 초래할 수가 있는 것인 것이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 백의중년서생의 질문이 바로 자신이 말 하고자 하는 내용을 절로 이끌어 내는 것이기 때문에 역시 상대해 주는 척하는 것이 좋겠다고 여기고 입을 열어 대답했다. "점창파는 물론 대리국의 재건에 뜻을 두고 일어난 문파이지만 그렇다 고 대리국의 후신이라고까지 말할 수는 없는 일이지. 그들이 대리국을 다 시 일으키겠다고 해서 사방에서 인재들이 몰려들어 지금과 같은 성세를 이루게 되었지만점창파가 무량검파보다도 역사가 짧으면서도 지금과 같 은 천남제일의 위세를 갖게 것은 과거 대리국이 인심을 얻었었기 때문 에 그 영향을 받은 것이지 그 자체가 대리국의 후신인 것은 아니야. 그들 의 무공도 과거 대리국의 신공절기들을 하나도 이어받지 못하고 있는 실 정이지." 백의중년서생은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그 점창파는 이제 대리국을 다시 일으키겠다는 소리를 하지 않고 있다는 말씀이오? 나는 그 점창파는 이제 대리국을 다시 일으키겠 다는 소리를 하지 않고 있다는 말씀이오? 나는 이곳으로 오면서 그런 얘 기들을 전혀 들어보지 못했는데 그럼 점창파는 세력이 강해지자 점차로 변절될 것이라는 말씀이오?" 장한은 노인이 앉아 있는 곳을 힐끗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점창파는 처음에는 대리국을 재건하기 위해 생겨났지만 나중에 본격적 인 문파로 등장하게 되면서부터 다른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주축이 되게 되었으니 변절 것이라고는 말할 수가 없는 일이지. 다만 점창파는 대리 국의 후광을 크게 받았다는 말인데 당금에 이르러 사도가문이 점창파에 서 득세하게 것도 따지고 보면 그와 같은 점을 잘 이용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가 있지." "......." 백의중년서생은 장한이 이미 말을 꺼내기 시작했으니 굳이 그가 계속해 서 청하지 않더라도 말을 이어갈 것임을 알았는지 부채를 부치며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과연 장한은 백의중년서생의 얼굴을 한차례 바라보더니 다시 말을 잇기 시작했다. "당금의 점창파는 그야말로 사도가문의 일색이라고 할 수가 있지. 원래 는 공평하게 가장 훌륭한 제자에게 장문인의 지위가 돌아가는 것이지만 전대 장문인이었던 분광검신(分光劍神) 사도붕(司徒鵬)이 그것을 무시하 고 자신의 맏아들인 일검무적(一劍無敵) 사도백위(司徒伯威)에게 장문인 의 직위를 물려주면서부터 그런 전통이 무너지기 시작했지. 현재이 장문 인인 사도백위에게는 조카들까지 합해서 모두 일곱명의 아들들이 있는데 강호에서는 그들을 쉽게 뇌전풍운용호표(雷電風雲龍虎豹)라고 부르지. 사 도백위의 친동생들에서는의 무공도 대단히 뛰어난데다 그들 뇌전풍운용 호표는 하나같이 대단한 인재들이어서 점창파는 그들로 인해 사도가문의 일색으로 변했지만 그 힘이 더욱 막강해진 것은 사실이지. 틀림없이 앞으로 차기 장문인의 직위도 그 뇌전풍운용호표 가운데에서 나올 것......." 그때였다. 한참동안이나 기세좋게 말을 이어가던 장한이 느닷없이 안색을 격변시 키고 입을 벌리더니 다물지를 못했다. 얼핏 보면 그의 모습은 멀쩡히 잠을 자다가 날벼락을 맞은 사람과도 같 았다. 그렇다. 비록 말 그대로 날벼락은 아니었지만 이번의 경우는 날벼락보다도 더욱 심하다고 할 수가 있는 것이었다. 도(刀). 한 자루의 섬뜩한 냉기를 뿌리고 있는 도신이 그의 전면을 향해 뻗어있 고 그 도신의 끝부분은 바로 장한의 목즐기에 닿아 있었던 것이었다. 노인불과 조금전까지만 해도 입구쪽을 내다보며 이쪽의 일은 신경도 쓰 지 않는 것 같았던 그가 대체 어느새 이곳에 이르러 장한을 향해 도를 발출했는지 실제 믿기 어려운 광경이었다. 원래 노인이 앉아 있었던 자리와 장한의 자리 사이에는 백의중년서생이 앉아 있어서 노인은 필시 그 옆을 지나왔을 것인데도 백의중년서생이나 장한이 이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고 노인의 등 뒤에 그저 간단하게 메어져 있었던 도가 실로 이와 같은 쾌속한 솜씨를 보일 것이라는 점은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장한은 너무나도 놀란 나머지 침을 꿀꺽하고 삼키다가 목젖이 이동하며 그 부분이 예리한 칼날에 베어져서 선혈이 줄줄 흘러나왔는데도 전혀 이 를 의식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순간 장한의 옆에 앉아 있던 장한이 발작적으로 몸을 일으키면서 손에 쥐고 있었던 병기를 휘둘러 노인의 앞가슴을 쪼개어 갔다. 이것은 바로 동료를 구하기 위해서 적의 심장부위를 공격하는 것으로만 일 노인이 자신의 몸을 돌보려고 한다면 장한의 목에 겨누었던 칼날을 치워야만 할 것이다. 과연 노인의 두 눈에서 싸늘한 냉광이 피어오르는 순간 장한의 목에 겨 누었던 칼날이 치워짐과 동시에 눈에 보이지도 않는 눈부신 도광이 한차 례 어지러이 허공을 수놓고 쨍그랑하는 소리가 두번 이는 가운데 노인의 칼끝은 다시 예의 그 장한의 목줄기로 되돌아갔다. 그와 같은 움직임들이 실로 너무나도 빨랐기 때문에 부근에서 이를 지 켜보고 있던 백의중년서생과 주인은 처음에는 다소 어리벙벙한 표정이었 으나 이내 드러나는 정황으로 전의 상황들을 미루어 짐작할 수가 있었다. 쨍그랑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떨어진 것은 바로 그 두명의 장한의 병기를 들고 있는 손목이었는데 그러니까 옆의 장한이 동료를 구하기 위 해 손을 쓰는 순간 노인이 칼을 거두어서 눈부시게 빠른 쾌도술을 전개 했고 뒤이어 그 장한도 병기를 휘둘러 뒤늦게 합세를 하려다가 똑같이 병기를 들고 있는 손목이 절단당했던 것이었다. 말하자면 이 두명의 장한의 무공도 녹녹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노인의 무공은 거 의 믿을 수 없이 대단한 것이어서 두명의 장한은 전척 그의 상대가 되지 못했던 것이었다. 잘려나간 두개의 손목이 있었던 부위에서는 각기 시뻘건 핏줄기가 솟구 쳐 나오고 있었고 따라서 두명의 장한이 안색은 공포감에 억눌려 하얗다 못해 파랗게 질려가고 있었다. 노인은 그 장한을 향해 예리한 안광을 거두며 냉랭하게 소리쳤다. "네놈들 따위가 감히 점창파의 일에 관해서 왈가왈부할 수가 있다고 생 각하느냐?" (......?) 장한은 경황중에서도 얼굴에 어이없다는 표정을 떠올렸다. 알고보니 점창파와 모종의 은원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오히려 점창파의 사람인 것 갈지 않은가! 장한은 어리석게도 노인의 앞에서 그와 같은 점창파의 험담을 늘어놓았 던 자시의 어리석음을 한탄하며 아무런 소리도 하지 못하고 그저 입술만 을 깨물었다. 바로 그때였다. 갑자기 찻집의 바깥에서 요란한 말발굽소리가 들려와 가까이에서 멈추 더니 휙휙휙하는 파공음과 함께 세명의 화려한 의복을 걸친 대한과 청년 들이 안으로 들어오더니 일제히 그 노인을 향해 공손하게 무릎을 끓고 인사를 올리는 것이었다. "둘째숙부께서 오신 것을 모르고 이렇게 늦게서야 마중나오게 되었으니 실로 죽을 죄를 지은 것입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쇳소리와도 같은 강맹한 음성으로 그렇게 말한 사람은 새로 나타난 세 명의 사람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은 서른 두어 살 남짓의 대한이었는데 나머지 두 청년은 스물서넛이나 스물대여섯 정도로 묵묵히 공손한 자세 로 엎드려 있었다. 장내의 사람들은 살벌하게 긴장 와중에서도 이 새로 나타난 세명의 젊 은이들이 그야말로 사람 가운데의 용과 호랑이와도 같은 인물들이라는 것을 금방 알아볼 수가 있었다. 대한과 청년들의 두 눈에서는 각기 예리한 정광이 강렬하게 번뜩일 뿐 만 아니라 준수하게 생긴 외모나 우람한 체구 등에서도 사내다운 기질과 강인한 기상이 절로 넘치는 것이었다. (......!) 노인은 금방이라도 장한의 목을 베어버릴 듯이 차가운 눈길로 노려보고 있다가 대한의 목소리를 듣고는 금새 표정이 부드럽게 변하며 칼을 거두 고 느릿하게 그쪽으로 몸을 돌렸다. 세명의 젊은이들을 향해 노인의 표정은 아까의 갈까마귀와 같은 험악한 음성과 살기를 드러내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아주 온화하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노인은 비록 등을 노출시키고 몸을 돌렸지만 장한들은 이미 노인이 가 공스러운 패도술을 경험했기 때문에 감히 그를 암습할 생각을 하지 못하 고 손목에 피가 흐르는 것조차 지혈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노인은 미미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큰조카로군 그래! 이렇게 오랜만에 자네의 성장한 모습을 보게 되니 마 음이 기쁘기 그지 없네. 그간 형님께서도 무고하셨는가?" 대한은 매우 감격에 젖은 음성으로 머리를 숙이며 대답했다. "아버님께서는 여전히 건강하시고 이 모두가 둘째숙부께서 염려해 주신 덕분입니다." "음......" 노인은 아주 흐뭇한 표정으로 다가가서 대한의 손을 잡아서 몸을 일으 켜 주고 이어 옆에 무릎을 끓고 엎드려 있는 두명의 영기발랄한 청년들 을 향해 다소 부드러우면서도 엄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용(龍)아호(虎)아! 내 이미 너희 큰형님의 인사를 받았고 그리고 너희들 의 건강한 모습을 보았으니 그것으로 됐다. 어서 그만 너희들도 일어서도 륵 해라." "예아버님!......" 두 청년은 노인의 말이 떨어지자 즉시 합창이라도 하듯이 대답한 다음 에 공손히 몸을 일으켜 시립하는 자세를 취했다. 실로 이들의 이와 같은 하나하나의 몸동작들은 그야말로 명가의 후예다 운 것이고 절도가 있고 예의바른 것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대한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대한은 공손히 미소하며 손짓으로 밖을 가리켰다. "둘째숙부님밖에 말 한필을 준비시켜 놓았습니다. 어서 저희들과 함께 산으로 오르시지요." 노인은 음하고 고개를 끄덕인 후에 밖으로 나가려다가 문득 뒤에 있는 두명의 장한의 일을 생각했는지 고개를 돌려 그때까지 몸을 조금도 움직 이지 못하고 파리한 안색으로 굳어져 있던 두명의 장한들을 향해 싸늘한 음성으로 말했다. "네가 잠시 문중을 떠나있는 사이에 너희들과 같은 신농방(神農幇)의 졸 개들이 감히 본파의 험담을 하고 다니다니 대체 어찌 일인지 모르겠구 나. 내 오늘은 피를 보지 않기로 작정을 하였으므로 네놈들을 살려두는 것이니네놈들은 즉시 방으로 돌아가서 사공원(司空元)에게 후일 내가 직 접 찾아가겠다고 전해라!" 말을 끝내자마자 노인은 즉시 세명의 젊은이들과 함께 밖으로 나가서 말을 타고 요란한 소음과 함께 사라져 갔는데 장한들은 한참후에야 비로 소 자신들의 손목이 잘려나간 부위를 지혈시키고 깊게 한숨을 몰아쉴 수 가 있었다. 이곳 장내에 이미 그들이 쏟은 핏물로 인해 피비린내가 물씬하게 풍기 기 시작하고 있었다. "우라질! 우리가 재수없게도 그와 같은 인물을 만나게 되었다니 그야말 로 재수에 옴붙은 격이로군!" 옆의 장한도 소리내어 욕을 하며 떠들어댔다. "염병할! 우린 그저 점창파에 원한을 가지고 찾아든 사람인줄만 알았지 그와 같이 험상궂게 생긴 늙은이가 바로 당금 점창장문인의 바로 아랫동 생이었을 줄을 누가 알았겠어! 빌어먹을 오랫동안 보이지 않던 늙은이가 이제야 돌아온 것은 대체 무슨 영문이란 말인가?" 장한이 다시 이를 뿌드득 갈며 소리쳤다. "쾌도진천(快刀震天) 사도중맹(司徒仲猛)...... 그야말로 명실공히 눈부신 쾌도술이었군 그래. 이놈의 장(張)가가 앞으로 그 늙은이의 무덤앞에서 침을 뱉지 않는다면 정말로 성을 갈고야 말겠어!" 장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시팔! 그나저나 우리는 어서 이 일을 방에 돌아가서 알려야 하는 것이 아닐까?" "암 그래야지꾸물신시 말고 이서 가세!" 두 사람은 그렇게 몸을 일으키고 자신들의 잘려나간 손목과 병기들을 줏어들고는 빠르게 찻집의 밖으로 사라져 버렸다. 따라서이 찻집의 내부는 다시 긴장되었던 순간이 지나가고 조용해졌으 나 바닥이 핏물로 인해 지저분하게 되었기 때문에 찻집의 주인은 나서서 청소를 하려다가 문득 중앙의 비어있는 자리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 리며 생각했다. (그 백의서생은 어느새 사라져 버렸군? 그 녀석은 강호인도 아니면서 이것저것 관심이 많아 오래살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알고보니 이 와같이 눈치빠르게 도망치는 재주가 있었군 그래.) ...... 쾌도진천 사도중맹 신농방의 졸개들이었던 장한들의 말대로 그는 바로 당금의 점창파의 장 문인인 일검무적 사도백위의 가장 위에 있는 친동생인 동시에 쾌검술을 다루는 점창파에 있어서 거의 유일하게 쾌도술을 연성하고 있는 장본인 이었다. 기실그는 거의 십 년 가까이나 점창파를 떠나서 남황의 오지속에 은둔 해 살면서 무공연마에 몰두해 왔었는데 이번에 느닷없이 고향인 점창파 로 돌아가게 되자 이곳의 사람들은 대부분 알아보지 못하고 놀라와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곳 점창파가 있는 점창산은 원래가 과거 대리국의 수많은 사찰들이 자리하고 있었던 곳인 만큼 비단 그 풍광이 수려할 뿐만 아니라 항상 산 속에는 마음을 맑게 해주는 청량한 기류가 흐르고 있어서 어떠한 수양이 나 공부를 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그야말로 적격의 장소라고 할 수가 있었다. 점창장문인으로 내정되어 있는 사도백위의 맏아들 분광일검 사도뢰의 인도와자신의 두 아들인 사도룡과 사도호의 호위를 받으며 뒤에 따르는 십여명의 제자들과 함께 천천히 말을 달리기 시작했다. 지금 그와 함께 말을 달리는 이 세명의 젊은이들은 모두가 아까 장한들 이 말했던 뇌전풍운용호표라는 점창파의 일곱명의 인재들 가운데 포함되 는 사람들이어서 하나같이 뛰어난 기상과 무위를 보여주고 있었고 그것 은 사도중맹의 마음을 다소 흡족하게 만들었다. 그때 문득 앞서서 말을 달리던 사도뢰가 말을 옆으로 비키면서 나직한 음성으로 말했다. "셋째숙부께서 오십니다!" (......!) 사도중맹은 미미한 과거의 일에 관한 회상과 함께 잠시 기이한 감상에 젖어 있다가 그 소리에 문득 정신을 차리고 앞쪽을 주시했다. 과연 약간 좌측으로 굽이져 있는 산길로 수십명의 제자들을 거느린 한 명의 외모가 청수하게 생긴 초로의 노인이 말을 타고 다가오고 있었는데 다름이 아니라 바로 당금 점창파에서 세력을 떨치고 있는 사도형제들 가 운데의 셋째이며 사도중맹의 아랫동생인 마운수 사도숙강이었다. 큰형인 사도백위가 장문인의 직위에 있기 때문에 동생들은 굳이 사문의 절학인 분광쾌검(分光快劍)을 익히려고 하지 않았고사도중맹이 쾌도술을 연성한 것처럼 셋째인 사도숙강도 특이한 위력의 장법을 연마하여 그와 같은 별호를 얻게 되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이들 형제들의 용모는 특이하게도 서로 크게 다른 것이어서 사도중맹의 용모가 매부리코에 광대뼈가 심하 게 튀어나온 험상궂은 얼굴인 반면에 사도숙강의 용모는 그야말로 청수 하고 전형적인 좋은 인상을 풍기는 모습이었다. "둘째 형님!" 사도숙강은 멀리서 사도중맹의 얼굴을 보자마자 크게 소리침과 동시에 빠르게 말을 몰아서 다가왔으며 미처 말이 채 이르기도 전에 먼저 번쩍 하고 몸을 날려서 사도중맹에게 다가와 뜨겁게 그의 몸을 얼싸 안았다. "형님! 보고싶었습니다." 제2장 네 사람의 기재들 "아우야!" 사도중맹도 함께 소리쳐 부르며 마주 사도숙강의 몸을 얼사안았고 두 사람은 잠시 한 필의 말 위에서 서로 껴안은 채 뜨거운 형제간의 우애를 나누었다. 이윽고 두 사람이 다시 떨어져서 사도숙강이 자신의 말위에 올라 말머 리를 돌려서 나란히 산 위로 향하게 하고 나서야 비로소 그가 입을 열었 다. "형님께서 이렇게 건강하시니 저는 달리 바랄 것이 없습니다." 사도중맹은 미미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내 나이가 아직 예순도 되지 않았는데 벌서 몸이 망가져서야 되겠느 냐? 그래 형님은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시지?" 사도숙강은 고개를 돌리며 미소하며 대답했다. "큰형님께서는 둘째형님이 빨리 올라오시기를 기다리며 환영잔치를 준 비하고 있을 것입니다." "환영잔치를?" 사도중맹은 다소 놀랍다는 듯이 눈을 휘둥그래졌다. 그가 돌아온다는 소리에 점창파에 알려진지 얼마 되지 않았을 것인데 벌서 잔치까지 준비하고 있다는 말에 다소 의아한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것을 보고 사도숙강이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둘째형님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십니까?" 사도중맹은 잠시 생각하다가 문득 흠칫 놀라서 되물었다. "가만있자 형님의 생일이 바로 이맘때였으니 그렇다면...... 그렇다면 오 늘이 바로 형님의 회갑일이라는 말이냐?" 사도숙강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회갑은 아마 내년에나 있을 것이고 오늘은 그저 큰형님의 보통의 생일 잔치를 하고 있던 중이었지요." "아하 바로 그랬었군!" 사도중맹은 그제서야 알겠다는 듯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큰형님인 사도백위는 얼마쩐까지 자신의 생일상을 받고 있다가 문득 사 도중맹이 돌아온다는 소식을 전하게 되자 일부의 사람들에게 마중하도록 지시하는 한편 자신은 손수 새로이 잔치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미 생일잔치를 위해서 거의 모든 음식들을 준비하고 손님들도 초대했 을 것이니 이제 다시 새로이 상을 차리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과연 형님답게 매사에 철두철미하시군!) 사도중맹은 내심 고개를 끄덕이며 동생 사도속강과 더불어 이런저런 얘 기들을 나누며 천천히 산길을 따라올라갔다. 점창파는 옛 대리국의 호국사찰인 천룡사가 있었던 자리였던 점창산 중 악봉의 북쪽에 녹음이 우거진 산을 등지고 앞으로는 강을 끼고 수려한 풍광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사도중맹 등이 산길을 따라 올라서 드디어 넓은 연무장을 지나 거대한 중악전에 들어서자 과연 점창파의 장문인인 사도백위가 수백명의 사람들 을 모아놓고 잔치를 벌이고 있다가 그를 알아보고 반갑게 달려나와 맞이 해 주었다. "어서 오게 동생이게 대체 얼마만인가?" 열검무적 사도백위 장방형의 불그레한 얼굴에 은은한 위엄을 느끼게 하 는 그의 체구는 마치 곰의 허리를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았는데 머리결은 이미 백색으로 하얗게 새어 있었다. 시종 표정의 냉막함을 무너뜨리지 않았던 사도중맹도 이와 같은 늙은 형의 얼굴을 보게 되자 그만 절로 감정에 젖어서 볼에 두줄기의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형님......" "그래 그동안 몸은 건강하였는가?" 사도백위는 사도중맹의 몸을 뜨겁게 얼싸안으며 그의 어깨를 친근하게 두들겼다. 장내에 모여서 술과 음식을 들고 있던 수백명의 제자들과 손님들은 이 순간 다함께 손길을 멈추고 이와 같은 형제간의 뜨거운 해후의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윽고 잠시의 시간이 지나가자 사도백위는 끌어안았던 팔을 풀고 사도 중맹을 자신이 앉아 있었던 상석의 태사의가 있는 곳으로 이끌었다. 원래 그곳에는 다섯개의 태사의 외에도 사도중맹을 위해 준비해 놓은 또 하나의 태사의가 놓여져 있었는데사도중맹이 사도백위를 따라서 그곳으로 걸어가자 문득 세명의 호호백발의 노인들이 다가와서 인사를 청했다. 그들은 바로 세명의 사도형제들을 제외하고 나머지 세개의 태사의에 앉 을 수 있게 되어 점창파의 겨우 세명 남은 제1대의 최고원로들이었다. 그들은 이미 작고한 17대의 장문인이었던 분광검신 사도붕과 같은 배분 의 사람들인 것이었다. "안녕들 하십니까?" 사도중맹과 그 세명의 원로들이 각기 예를 다해서 인사를 주고받고 나 자사도백위는 모두 함께 태사의에 앉도록 했다. 기실 사도중맹과 사도숙강의 배분은 원로들에 비해서 한 배분 낮은 것 이지만 이미 사도가문의 위세가 점창파를 지배해온 것이 어제 오늘의 일 이 아니었기 때문에 원로들도 감히 맞서지 못하고 대우 해주는 것이었다. 사도백위는 사람들을 불러서 음식들을 더 가져오게 한 뒤에 우선 자신 들과 같은 배분의 장로들을 위시로 하여 모든 제자들에게 사도중맹을 뵙 고 인사를 나누도륵 하라고 지시했다. 오늘의 잔치는 원래 생일잔치로 그다지 중요한 성격을 띠는 것이 아니 었기 때문에 외부의 손님들은 숫자도 적었고 그다지 신경쓸 인물이 거의 없는 상태였다. 사도백위의 그와 같은 지시는 비단 오랜 여행에서 돌아온 사도중맹을 위한 배려일 뿐만아니라 또한 막강한 사도가문의 위치를 노골적으로 드 러내는 것이기도 했다. 점창파의 장문인과 같은 배분인 2대 재자들인 장로들은 모두 십오명이 었는데그들이 앞으로 나서서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위로의 말이나 치하 의 말을 하면 사도중맹은 그저 태사의에서 일어나지도 않고 고개를 끄덕 이며 음하고 대꾸하는 것으로 답례할 뿐이었다. 이어 약간의 손님들과 제3대제4대의 제자들이 무리를 지어서 한꺼번에 인사를 올리고 나서 모두가 착석을 하고 술과 음식을 들며 잠시 흥겨운 기분에 젖어들기 시작했다. 몇 차례의 술잔이 오간 연후에 사도백위가 미소하며 사도중맹을 향해 입을 열었다. "형제가 이렇게 훌륭한 성취를 이루어서 다시 만나게 되니 내 마음은 기쁘기 그지없네." 사도중맹은 웃으며 대답했다. "형님께서 이와같이 많은 제자들을 훌륭히 거느리고 계시는 것을 경하 드리는 바입니다." 사도백위는 고개를 내저었다. "물론 우리 점창파의 제자들이 보다 훌륭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자네는 아직 그러한 감탄을 하기에는 부족한 상태일세. 자네가 생각하기 에 우리 점창파에서 차세대를 이끌고 나갈 인재들이 있다면 어떤 사람들 일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사도중맹은 내심 이 사도백위가 스스로 자신의 제자들을 훌륭하다고 칭 찬하며 혹시 자만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며 웃으며 대답 했다. "저는 돌아오면서 우리 점창파에 뇌전풍운용호표라는 일곱명의 병강장 달같은 인재들이 있어서 장차의 장래를 짊어지고 나갈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바로 저들이 아니겠습니까?" 사도중맹이 말을 마치면서 손가락으로 한쪽에 길게 시립하여 늘어서 있 는 일곱명의사도 가문의 아들들을 가리키자일제히 이 소리를 듣고 다소 안색을 붉혔다. 뇌전풍운유호표 이것은 실은 일곱명의 이름을 서로 연결한 하나의 문구 였다. 그 가운데 가장 맏이인 사도뢰를 비롯하여 사도전사도풍사도운이 사도 백위의 아들들이고. 아까 사도중맹을 마중하러 나왔었던 사도룡과 사도호가 사도중맹의 아 들들이며나머지 가장 나이가 어린 스물세 살의 사도표는 바로 세째 사도 숙강의 외아들이었다. 사도숙강은 이 외아들 이외에도 다시 한명의 금지옥엽과도 같은 딸을 낳아서 지금 무산의 신녀문에 무학수련을 하도륵 보내놓고 있는 상태였 다. 구태여 강호에서 뇌전풍은 운운하며 칭찬을 하지 않더라도 지금 한쪽에 길게 늘어서 있는 그들 일곱명의 젊은이들을 보노라면 그 영기발랄함에 절로 탄성을 발하게 되고 준수함과 강렬한 패기를 느낄 수가 있게 될 것 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사도중맹의 말을 들은 사도백위는 웃으며 고개를 가로 젓는 것이었다. "자네가 들은 말은 우리 점창파를 비방하는 사람들에게서 들은 것인가 보군. 본파의 장래를 짊어지고 나갈 최고의 인재들은 바로 그 뇌전풍운이 아니라 점창오수라는 것일세." 확실히 사도백위의 추측은 정확하게 들어맞아서 사도중맹이 뇌전풍운용 호표에 관한 얘기를 들은 것은 점창파를 비방했던 신농방의 졸개에게서 였다. 그러니까 이 뇌전풍운용호표는 비록 대단하지만 점창파를 비방할 구실이 될 뿐이 고 진정한 점창파의 인재들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었다. (점창오수?) 사도중맹은 원래 지난 십 년 가까이 남황의 오지에서 머물며 강호의 일 에 거이 신경을 쓰지 않았었기 때문에 여태 그와 같은 이름을 듣지 못하 고 있다가 사도백위의 말을 듣고 내심 기이하게 여겨서 생각했다. (내가 보기에도 저 일곱명의 아이들은 무림이 기재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자질들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본파에 저들 이외에 다른 인 재들이 있다는 말인가?) 사도중맹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사도백위는 그의 내심을 파악하고는 웃 으며 다시 입을 열어 말했다. "물론 나의 못난 아들인 뢰아가 그 점창오수의 하나가 되어 있네." 사도중맹은 그 말을 듣고는 더욱 기이하게 생각했다. (큰조카는 바로 차기장문인으로 내정되어 있는 명실공히 본파의 최고의 기재인 것이다. 그가 어떤 다섯명의 기재들의 명단에 올라 있는 것은 당 연한 일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사실 말이지 둘째조카인 사도 전이나 셋째조카인 사도풍그리고 우리의 용아 등도 그 큰조카의 자질에 비해 뒤진다고는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형님께서 굳이 큰조카를 못난아들 운운하고 또한 한 사람밖에 기재의 명단에 포함시키지 않는 것 은 혹시 보다 나은 인재들이 있다는 말일까?) 당금에 이르러 사도가문에서는 점창파를 완전히 휘어잡고 있지만 인재 가 나타나면 신경을 써서 자기편으로 만들어서 키우거나 아니면 일찌감 치 제거해 버리는 수단을 쓰곤 했다. 사도가문이 계속해서 세력을 떨치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는 조치이며 그런 상황하에서 새로운 인재가 나타났다는 말은 사도중맹에게도 다소 심각한 얘기가 아닐 수가 없었다. 그러나 사도백위는 그러한 사도중맹의 우려를 불식시키라도 하듯이 담 담히 웃으며 다시 입을 열어 말했다. "나의 뢰아를 제외하고는 그들 네명이 자질은 그야말로 하늘도 시샘할 정도로 뛰어난 것이지얼마나 훌륭한지 나는 미처 사문의 금기도 생각해 보지 않고 그들에게 모두 천룡무상신공(天龍無上神功)을 전수해 주었다 네." 천룡무상신공은 바로 점창파의 진산신공(鎭山神功)으로 그 유명한 분광 검법의 최정수인 분광삼검형(分光三劍形)과 함께 오직 장문인이나 차기장 문인으로 내정 사람이 아니고는 익히지 못하게 되어 있는 최고의 신공 이었다. 사도중맹도 자신이 이 분광삼검형을 배울 수가 없게 되자 실망을 하고 무공을 도법으로 전환시켰던것이었다. 따라서 사도중맹은 자신의 형님이 그 네 사람에게 사문의 진산신공마저 전수해 주었다는 말을 듣고 다소 놀랐다. 물론 그것은 사도백위가 확실하게 자기편으로 인식했다는 증거이기도 하지만 또한 정말로 그들의 자질이 훌륭하다는 증거이기도 하기 때문이었다. 사도중맹은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자질이 사도뢰보다 뛰어날 것이라고 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하고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물었다. "그들은 누구입니까?" 사도중맹은 자신의 기억으로는 자신이 알고 있는 점창파의 제자들 가운 데 그럴만한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는 것을 상기하고 있었다. 사도백위는 일부러 동생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속셈인지 쉽게 대답해 주지 않았다. "옛말에 의하면 가장 귀중한 것은 나중에야 등장하여 그 빛을 발휘한다 고 하였네만내 오늘도 그들을 동생에게 소개시켜 주기 위해서 아직 인사 를 시키지 않고 안에 숨겨두고 있었다네. 자그들을 불러내어 볼까?" 말과 함께 사도백위가 가볍게 손짓을 하자 문득 대청이 뒷문이 열리며 일시에 네명의 젊은이들이 하나같이 가볍게 엄정한 걸음걸이로 안으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 사도중맹은 무심코 그쪽으로 시선을 던지다가 문득 가볍게 놀라고 말았 다. 기실 점창파의 제1대에 해당되는 원로들은 나이가 이미 칠십 세를 훨씬 넘어 선 사람들이고 제 2대는 560대여서 장로들 가운데에는 장문인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도 있었다. 따라서 제3대의 제자들은 사도가의 아들들을 제외하고는 3,40대의 인물 들이고 제4대의 인물들은 20대의 청년들인 것인데 사도중맹은 남은 점창 사수(點蒼四秀)가 사도백위의 지도를 직접 받았다고 했기 때문에 그들의 3대의 제자들이라고 생각하고 당연히 사도뢰보다도 나이가 많거나 비슷 한 또래일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의외에도 지금 장내로 들어서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나이가 이제 겨우 스물서넛이나 너덧 정도의 약관의 청년들이 아닌가 사도중맹은 처음에는 그들이 사도백위가 점창오수의 네명이라는 것을 믿을 수가 없어서 다시 사도백위의 얼굴을 바라보았으나이어 그 네명의 청년들이 그의 앞에 이르러 길게 한줄로 늘어서고 사도백위의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매우 흐뭇해 하고 있는 것을 보고 그야말로 이 기이한 일이 사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믿을 수가 없는 일이로군!) 사도중맹은 일순 어이가 없어지며 이와 같은 젊은이들을 그토록 극찬했 던 사도백위의 얼굴을 다시 한번 바라보고는 뒤이어 시선을 앞으로 보내 네명의 용모를 살폈다. 그 네명의 젊은이들은 그의 시선이 앞으로 향하자 일순 거의 동시에 허 리를 깊이 숙이며 인사를 올리고 있었다. "삼가 사숙어르신께 인사올립니다." 사도중맹에게 사숙이라는 호칭을 섰으니 틀림없는 제2대의 제자들인 것 이 확실했다. 사도중맹은 자신의 아들들인 사도룡과 사도호그리고 막내조카인 사도표 등과 마찬가지로 그토록 어린 나이에 특별히 예외적으로 제3대의 제자가 되었으며게다가 이제는 일약 점창파 최고의 인재들이 되어 있다는 그들 네명의 젊은이들의 얼굴 을 꿰뚫을 듯이 예리하게 주시해 보았다. 기이하게도 예상대로 그들 네명은 모두 자신이 아직 보지 못했던 청년 들이었으며 그가 점창산에 있었던 시기에는 미처 입문도 하지 않았던 사람들이었다. 그렇다면 그들은 불과 입문한지 십 년도 되지 않아서 이와 같이 놀라운 성취를 이루었다는 얘기가 되는 것이므로 사도중맹은 순간적으로 의아스 러운 생각이 들지 않을 수 가 없었다. (여기에는 혹시 어떤 음모가 개입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어떻게 그토 록 짧은 기간에 그와 같은 빠른 성취를 보일 수가 있다는 말인가?......) 그러나 사도중맹은 다시 사선을 사도백위에게 보내다가 그의 표정이 매 우 안정되어 있고 평온한 상태인 것을 보고 내심 고개를 저으며 다시 생 각했다. "아니야형님께서는 원래부터 철두철미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계신 분이 기 때문에 결코 당금에 이르러 어떻게 점창파를 완전히 휘어잡을 수가 있었겠는가!) 그와 같은 생각을 하며 그들 네명의 청년들의 용모와 골격 등을 다시 살펴보자 보다 냉정한 마음속에서 세밀하게 주의할 수가 있었고따라서 사도중맹은 지금의 상황이 모두 이해가 가고 사도백위의 말이 하나도 거 짓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가 있게 되었다. 실로 눈앞의 그들 네명의 청년들의 용모나 자질 등은 모두 천하에서 눈 을 씻고 찾으려고 해도 찾기가 어려운 보기드문 것들이었던 것이었다. 사도중맹은 점차로 볼수륵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고 다시 내심 의아 해졌다. 형님께서는 어떻게 이와 같은 우수한 인(재들을 한꺼번에 얻을 수가 있 었을까?) 그가 감탄하고 있는 것을 옆에서 살피고 사도백위는 지시를 내려서 이 번에는 그 네명의 청년들에게 각각 따로따로 나서서 자신을 소개할 것을 명했다. 그러자 맨 먼저 그 백명의 청년들 가운데에서 용모가 매우 청수하게 생 기고 전신의 골격이 시원하게 쭉 빠졌으며 눈매가 지극히 맑고 날카롭게 보이는 서생 타입의 스물세 살 가량의 청년이 철필(鐵) 하나를 들고 앞으 로 나서서 공손히 입을 열어 낭랑한 음성으로 말했다. "소질의 이름은 여문량(呂文亮)이옵고 여러 사숙 사형님들께서 뇌전일필 (雷電一筆)이라는 별호 붙여주셨습니다. 소질이 배운 무공은 천룡무상신 공과 뇌전지(雷電指)그리고 다수의 점혈무공 등인데 사숙어르신께서는 앞 으로 어여삐 여기시고 많은 지도를 내려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때 사도백위가 이미 그의 우려함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전음으로 보 충해서 설명해 주었다. "그는 점창오수에서 두번째이지만 기실은 가장 뛰어난 인재일세내가 따 로 조사를 해보니 정말로 북쪽 송계현(松桂縣)에서 대대로 선비가문으로 이어져 내려오다가 최근에 이르러 몰락한 여씨가문의 독자가 틀림없네." 사도백위라는 사람은 겉으로는 대범해 보여도 매사의 행동이 지극히 철 두철미하여 실수가 없었기때문에 그가 틀림이 없다고 하면 그것은 정말 로 틀림없는 것이다. 사도중맹은 그제서야 눈앞의 네명의 기재들에 대한 의심을 풀고 한숨을 놓았다. 그러나 아무래도 사도백위가 자신의 자식을 지금 깎아내려서 겸손해 하 고자 하는 뜻이 담겨져 있는것 같았다. (뇌전일필이라? 흠그건 바로 큰조카의 분광일검이라는 별호와 대비가 되는 말이로군. 뇌전지와 철필로 구사하는 점혈무공을 잘 쓰기 때문에 그 런 별호가 붙었겠지?) 뇌전지라고 하는 것은 비록 진산비전절예는 아니라고 할지라도 그에 버 금가는 점창파의 중요한 절예중의 하나였기 때문에 사도중맹에게 결코 낮설은 것이 아니었고 따라서 그는 눈앞의 청년의 작은 움직임만 보아도 능히 대강의 내용을 짐작할 수가 있었다. (옛부터 천기의 흐름이 양호해지고 난세가 도래하게 되면 뛰어난 인재 나 영웅호걸들이 많이 나타난다고 했지. 지금이 비록 난새인지 모르겠으 나 형님께서는 저들 네명의 인재들에게 큰 조카를 보좌하게 하여 장차의 커다란 야망을 이루는데 도움이 되도록 할 모양이군.) 사도중맹은 금새 매우 흡족한 기분이 도어 두어번 눈꺼풀을 깜빡이고 미미한 웃음을 입가에 떠올렸다. 이때는 여문량이라는 청년은 자리로 돌아가고 뒤이어 키가 칠척이나 되 고 어깨와 가슴이 우람하게 떡 벌어졌으며 허리와 하체가 지극히 유연하 고 강인해 보이는 흡사 사자와도 같은 느낌을 주는 준수한 청년이 앞으 로 나서서 인사를 올리고 있었다. "저의 이름은 황종보이고 흑풍일기(黑風一氣)라는 별호를 가지고 있습니 다. 저는 천룡무상신공과 흑풍와선기(黑風渦仙氣)를 배웠습니다." 앞서의 여문량이라는 청년은 그야말로 준비수려한 백면서생과도 같아서 맑고 예리한 천재성을 보여주는 반면 지금의 황종보라는 청년은 그야말 로 사내답고 강인한 기질을 물씬 느끼게 하는 사람이었다. 흑풍와선기 역시 뇌전지와 비슷한 위치의 절악이었지만 사도중맹은 문 득 그 청년의 두 눈에서 예리한 정광(精光)이 무섭게 번득이고 있는 것을 보고 내심 놀라 생각했다. (저 청년이 설사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내공을 수련했다고 하더라도 저와 같이 심후한 내공을 터득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저 청년은 불과 십 년도 안되는 동안 연마를 했으면서 어떻게 내공이 이미 일류고 소의 수준이라는 말인가?) 사도중맹의 의구심을 이미 알고 있기라도 하듯이 사도백위의 전음성이 뒤따랐다. "그는 북쪽 설산에서 태어난 나뭇꾼의 자식일세. 부모가 녹림의 도적들 에게 무참하게 살해되자 무공을 배울 것을 결심했다고 하던데 내가 조사 해 보니 과연 모든 것이 틀림이 없었네. 그는 천생의 신력(神力)을 가지 고 있었기 때문에 내공방면에서 특별히 큰 성취를 이루었고 평소에 노력 을 많이 하는 사람으로 점창오수의 세번째일세." 사도중맹은 사도백위의 말을 모두 이해하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가령 눈앞의 청년과 같은 인재가 옆에 있다고 하면 우선 마음부터 크게 든든해질 것이니 어찌 마음이 흡족해지지 않겠는가 (그가 무량검파나 신농방이 아닌 우리 점창파로 들어오게 것은 그야 말로 우리들의 커다란 복이라고 할 수 있겠군.) 다음으로 황종보라는 청년이 물러가자 육척에 달하고 용모가 대단히 준 미수려하며 전신의 체형이 그야말로 이상적으로 고루 발달한 청년이 백 우선(白雨扇)을 들고 흡사 고대의 송옥(宋玉)이나 반안(潘安)과도 같은 미남자의 모습으로 산뜻하게 나와서 인사를 했다. 앞의 황종보라는 청년은 스물다섯 정도였는데 이 청년의 나이는 고작 처음의 여문량이라는 청년과 비슷한 스물셋 정도였다. "사숙어르신을 뵈오니 실로 금생의 영광이옵니다. 소생은 산화일장(散花 一掌) 이모화로서청룡무산신공과 산화장(散花掌)산화보(散花步)를 특별히 노력해서 연마하였습니다." 이 산화장과 산화보 역시 점창파의 훌륭한 절기들이었다. 사도중맹은 이 이모화라는 청년의 그야말로 한 곳의 결함도 찾아볼 수 없는 뛰어난 자질을 갖춘 신체와 더욱 뛰어난 그의 용모를 일시 천하에 이와 같이 완벽하게 잘생긴 사람이 있을까 하고 놀라워했다. 그러나 실로 이와 같이 지나치게 뛰어난 자색은 다른 사람들에게 시기 심을 불러일으키기가 쉽고 또한 스스로 오만해지기가 쉽다는 것을 경험 으로 알고 있는 사도중맹은 다소 눈살을 찌푸렸다. 가령 이와 같은 사람이 성실한 노력을 갖추고 거기에 좋은 시운을 만나 기만 하면 천하의 영웅으로 커갈 수가 있을 것이지만 그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사도중맹은 뒤이어 들려온 사도백위의 전음성을 듣고 내심 가볍 게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점창오수의 네번째를 차지하고 있는 그는 바로 제16대 장문인이었던 산화신수(散花神手) 이운룡(李雲龍)의 증손자이자 하나 남은 혈육일세. 내 가 이미 자세하게 조사해 보았네." 제3장 병약한 의원 산회신수 이운룡 그는 점창파의 이백여 년의 역사 가운데 비교적 뚜렷한 업적을 남긴 얼 마 되지 않는 인물들 중의 하나였다. 비단 그 자질이 기이하게 뛰어났었을 뿐만 아니라 용모도 대단히 수려 한 것이어서 많은 여인들의 방심을 울렸다고도 하며 제16대 점창장문인 의 직위에 올라서 그가 남긴 커다란 업적은 바로 점창파의 몇 가지 안되는 절학 가운데 하나들인 산화장과 산화보라는 무공을 창안했다는 사실이었다. 산화신수라는 별호도 여기에서 비롯되는 것임은 물론이었다. 그러나 실로 그처럼 뛰어난 영웅의 풍모를 느끼게 해주었던 그에게 있 어서 말로는 시작처럼 좋은 것이 결코 아니었다. 순탄하게 장문인의 직위를 마치고 작고한 것이 아니라 그는 어느날 알 수 없는 방법에 의해 의문의 살해를 당했던 것이었다. 그 뒤를 이어서 모든 제자들의 의견에 의해 제17대 장문인의 직위에 분 광검신 사도붕이 취임하게 되었는데 사람들은 한대 전대의 장문인인 이 운룡의 전 가족이 거의 남김없이 몰살되고 멸문지화를 당한 점을 들어 혹시 사도붕이 장문의 직위를 노려서 그와 같은 일을 벌인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품었었다. 물론 당시의 사도붕의 입김이 워낙에 강해서 아무도 그와 같은 의구심 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조사하려고 하지 안았지만 이것은 지금 장문인의 직위를 맡고 있는 사도백위조차도 확실히 알지 못하는 수수께끼중의 하 나였다. 당시 그 기질이 너무나도 빼어났었기 때문에 운명마저 시기해서 그렇게 되었는지는 몰라도 세월속에 그저 묻혀버린 그 의문의 사건속에서 오직 이운룡의 나이어린 막내아들 하나만이 어딘가로 탈출을 했었다고 전해지 는데바로 그 사람의 손자가 눈앞의 점창오수의 일인인 산화일장 이모화 였을 줄은 정말 꿈에서 생각지 못했던 일이었다. 사도중맹은 당시 나이가 어려서 사태를 잘 파악할 수가 없었지만 이제 야 생각해보니 눈앞의 이모화의 용모는 과거 이운룡의 자태를 거의 그대 로 빼어닮은 것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사도중맹은 즉시 매우 우려하는 마음이 들어서 고개를 돌리고 전음으로 사도백위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니 그렇다면 이건 좀 위험한일이 아니겠소?" 비록 사도백위마저도 그때의 사건의 진위를 잘 모르고 게다가 설령 그 것이 사도붕의 짓이 아니었다고 해도 당시의 소문이 그렇게 흘러갔었던 이상은 이 이모화가 결코 사도가문에 좋은 심정을 가지고 있지는 않을 것이며 이모화는 어쨌든 상황을 보아가며 사도가문의 세력을 전복시키고 다시 장문인의 직위를 차지하려고 획책한 것이 틀림이 없는 것이다. 대체 무슨 생각을 먹고 이모화가 점창파에 홀홀단신으로 나타났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것은 시로 심복지환을 키우는 결과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사도백위는 미소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결코 위험하지 않네. 나는 항상 저 아이를 주시하고 있으니 저 아이가 무엇을 하려고 해도 내 눈을 속일 수는 없는 일이지." 순간 사도중맹의 두 눈에서 예리한 정광을 번쩍 발하며 다소의 경악과 감탄에 젖은 표정을 슬그머니 비춰보였다. 그렇다. 사도백위도 이모화가 심복지환인 것은 잘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가 공공연하게 나타난 이상 그를 제거한다는 것은 오히려 이상한 느낌만을 주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과거 사도붕이 이운룡을 제거하고 장문인의 직위를 찬탈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 되는 것이므로그럴 바에는 차라리 이모화를 중용하여 넓은 대인지심과 같은 포용력을 보이자는 말이었다. 설령 그렇게 하더라도 항상 이모화의 행동을 옆에 두고 예의 주시하는 것이니 그가 무슨 다른 생각을 품는다면 그저 일장에 쳐죽이면 되는 것 이고확실히 멀리 두고 걱정하는 것보다 낫지 않겠는가! 사도중맹이 경악한 것은 적도마저 포용할 생각을 하는 그의 독심(毒心) 때문이었고 또한 감탄한 것은 그의 심모원려와 같은 사려깊은 생각 때문이었다. (나는 늘 형님이 매사에 철저하고 강압적인 일면만을 가지고 있는 줄 알고 있었는데 기실은 그의 심기는 이와 같은 깊은 경지에 이르러 있는 것이로구나!) 사도중맹은 그와 같은 생각을 하자 비록 자신의 친형이라고 할지라도 왠지 소름이 끼치고 존경스러운 마음이 드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 이모화가 물러가자 이번에는 마지막으로 용모는 준수하지만 전신이 마 치 대나무처럼 깡말라 있는 스물두 살 정도의 청년이 천천히 다가와 공 손히 예를 올렸다. "저는 섬류일수(閃流流手) 전백승(銓百勝)입니다. 천롱무상신공과 섬류무 형수(閃流無形手) 그리고 유운신법(流雲身法) 등을 전수받았습니다." 이어 청년은 장삼의 앞섶을 헤쳐서 그속에 열두자루의 단도가 가지런히 꽂혀 있는 것을 사도중맹에게 보여주었다. 그것은 곧 그의 병기가 그 열두자루의 단도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 이었다. 사도중맹은 기실 이모화의 일이 매우 마음에 질려서 이번의 청년을 대 할 때에는 그저 졸린 듯한 눈초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그의 전신의 골격과 몸속에 품고 있는 열두자루의 단도를 본 순간 갑자기 그의 두눈은 신선한 충격을 느낀 듯이 크게 떠졌고 입이 벌어졌다. 눈앞의 이 청년은 비록 점창오수의 마지막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지만 나이가 가장 어려보이는 사람이고 게다가 사도중맹이 신선하게 느낀 바 로 네 사람 가운데에서도 가장 실전적인 자질을 타고난 사람이라는 사실 이었다. 비록 그저 보기에는 깡마른 대나무와도 같았으나 무한한 탄력이 넘치고 있었고게다가 군살이 하나도 없는 깡마른 피부에는 신경조직이 그야말로 예민하게 발달하여 있어서 만일 그가 신법을 펼치거나 비도술(飛刀術)을 전개한다고 하면 보다 빠르고 상상불허의 무 서운 위력을 나타낼 수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거기에다 이 청년이 선택하여 연마한 섬류무형수와 유운산법이라는 두 절기는 그야말로 그의 전체적인 특성을 극도로 발휘하게 해주는 이상적 인 절기여서 대체 그 위력이 어느 정도일까 궁금해지기까지 했다. 사도중맹은 비록 다른 청년들의 자지로가 그 능력들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 스스로가 오랜 실전의 경험을 쌓아와서 보다 실전적인 힘 을 좋아하기 때문에 점창사수 가운데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사람은 바로 이 전백승이라는 청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사도중맹은 잠시 놀란 듯이 그 청년의 전신 구석구석을 살피며 대체 이 와 같은 놀라운 체질이 어떻게 태어난 것인가 하고 신기하게 생각하기도 했다. 사도백위는 뭔가 생각에 잠겨있는 듯 하다가 나중에야 전음으로 설명해 주었다. "그 청년은 점창오수의 막내이지만 나이가 가장 어리고 또한 매우 재치 가 있는 사람이라네. 대리성 부근에서 태어났지만 백정의 일을 하던 부모 가 돌아가자 고아로 떠돌다가 우연히 이곳으로 오게 되었네. 그 사실 또 한 명확하게 알아보았지." 사도중맹은 이 마지막의 청년이 실로 매우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설령 그의 출신이 불분명하더라도 나중에 기회가 닿는대로 필히 자신의 수제 자로 삼아서 데리고 다녀야 하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와 같이 네명의 청년들이 모두 자신의 소개를 끝내자 일제히 한줄로 늘어서서 사도중맹을 향해 공손히 인사를 한 후에 주위의 제자들이 있는 곳으로 물러갔다. 사도백위는 그들이 주변으로 물러가서 다른 제자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 을 바라본 다음에 다시 사도중맹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미소와 함께 물 었다. "자오늘 우리 점창파의 최고의 인재들을 보게되니 기분이 어떤가?" 사도중맹은 미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어디에 내놔도 뒤지지 않는 사람들이더군요. 하지만 저는 우리 큰조카가 그들에게 미치지 못한다는 얘기는 찬성할 수가 없습니다. 그들 은 나름대로 장점들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 큰조카는 그런 장점들을 하나 씩 모두 소유하고 있는 것이지요. 예로부터 뛰어난 점은 오히려 펑범하게 보인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게다가......" 사도중맹은 뒤이어 형님을 닮은 그 독심은 나머지 점창사수가 아무리 노력해도 따를 수가 없을 것이라고 말하려다가 문득 그것이 좋지 않은 말이라고 생각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사도백위는 능히 그가 말하지 않아도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있다는 듯이 웃으며 대꾸했다. "자네는 자꾸만 나의 얼굴에 금칠을 하려고 하는군. 하지만 자네의 나중 의 말은 내가 생각하기에도 틀림이 없네. 재주있는 사람은 한평생 그 재 주로써 끝날 것이지만 대인의 풍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 재주있는 사람들을 부린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렇습니다." 사도중맹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사도가문의 사람들이 단순히 어떤 재주만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 다면 결코 오늘날과 같은 기업들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었다. 사도백위와 사도중맹은 각기 흥에 젖어서 두어 차례 술잔을 돌린 다음 에 안주를 집어먹으며 당당하게 보이는 제자들의 모습과 크게 발전한 점 창파의 위세를 가만히 느껴보았다. 그때 문득 사도중맹은 한가지 생각나는 것이 있는 듯 사도백위를 바라 보며 질문을 던졌다. "참 그러고 보니 막내동생이 보이지 않는군요. 그녀는 지금 그 호숫가에 서 잘 지내고 있습니까?" 그런데 사도백위는 그 질문을 받자마자 다소 흠칫하여 무거운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다른쪽으로 돌려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 사도중맹은 의아해져서 고개를 돌려 사도숙강을 바라보았는데사도숙강 은 술 한잔을 마시다가 문득 입을 열어 대답해 주었다. "인화(燐花)는 이미 오년전에 세상을 떠나서 그 남편을 따라 호숫가에 묻혔습니다." "......." 사도중맹은 자신들의 형제중에서도 가장 나이가 어리고 또한 사랑을 많 이 받았었던 그녀가 오히려 그토록 먼저 세상을 떠났다고 하자 문득 마 음이 울적해져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오라비가 되어서 미처 그녀의 임종조차 보지 못했으니 정말 안 일이군. 그래죽을 때 누구를 원망하거나 그러지 않던가?" 사도숙강은 고개를 내저었다. "누구를 원망하지는 않고 그저 자신의 시신을 남편의 무덤에 함께 합장 해 달라고 하는 유언을 남겼었습니다." 그말에 사도중맹은 문득 가볍게 화를 내며 소리쳤다. "빌어먹을! 그 계집애는 생전에도 그따위 서생에게 시집을 가서 우리를 속썩이더니 끝내 죽을 때까지 악담을 하고 갔군 그래!" 사도숙강은 미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당시 선친이나 우리 모두가 말렸지만 그녀가 굳이 그 백리청우(百理靑 牛)에게 시집을 갔던 것은 오로지 그녀 자신의 의견이었지요. 게다가 나 중의 말은 결코 우리에게 악담을 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둘째형님 께서는 노여움을 푸십시오." 그제서야 사도중맹도 고개를 돌리고 무거운 표정으로 한숨을 불어내며 말했다. "그녀가 비록 누구의 의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행동을 했었지만 결과 적으로 한평생을 어렵게 살다갔으니 그 죄는 갚은 셈이지. 다만 불쌍하게 생각될 뿐이네." 사도숙강이 눈치를 살피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녀에게 당시 열다섯 살 되었던 아들이 하나 있었습니다. 지금은 스무 살이나 되었지요. 아마 형님께서도 이미 아시고 계실 것인데...... 한번 만 나 보시겠습니까?" 사도중맹은 눈살을 다소 찌푸렸다. "그애는 애비를 닮아서 불치의 병에 걸려 있었던 것 같던데 그래 아직 도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말인가?" 사도숙강은 고개를 끄덕이며 한쪽을 향해 가볍게 손짓을 했다. 그는 기왕에 모든 사람들과 상면하는 자리에서 그런 사람도 함께 만나 게 해야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자 손님들이 앉아 있는 쪽의 자리에서 문득 한명의 깡마르고 키가 큰 청년이 몸을 일으키더니 천천히 이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사도중맹은 눈이 매우 밝아서 그 청년이 아까 손님들이 모두 함께 나서 서 인사를 올릴 때 그곳에 있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사실 그의 위치는 아주 미묘하여 손님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도집안의 사람이나 점창파의 제자라고 하기에도 이상한 위치였다. 사도중맹은 그 청년이 일어서서 느릿하게 자신이 있는 쪽으로 다가오자 독사같이 매서운 눈초리로 청년의 얼굴과 신체 그리고 구석구석을 빠르 게 살펴보았다. 아무래도 그는 평소에 이런 곳에 오지 않는 편이나 오늘을 사도백위의 생일이기 때문에 일부러 왔던 것 같았다. 청년의 키는 칠척은 되지 못했지만 육척은 훨씬 넘는 매우 큰 키였는데 워낙에 몸이 깡마르고 힘이 없어 보여서 금방이라도 바람이 불면 날려갈 것 같았다. 게다가 극도로 창백해 보이는 안색은 누렇게 떠있어서 허약한 느낌을 더해주었다. 눈빛 역시 광채가 없고 미미하여 일견하기에도 그가 심한 중병에 걸려 머지 않아 세상을 떠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했다. 청년이 다가와서 사도중맹에게 공손히 인사를 하자사도중맹은 다소 못 마땅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가 불쑥 입을 열어 물었다. "네가 바로 백리자성(百理自成)이냐?" 청년은 고개를 들더니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떠올리며 대답했다. "예둘째외숙님." 청년에게 이 사도중맹은 바로 외삼촌에 해당되는 것이다. 사도중맹은 눈살을 심하게 찌푸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네놈은 역시 네 애비를 닮았구나." 기실 이 백리자성이라는 청년이 그의 선친인 백리청우를 꼭 빼어닮은 것은 아니지만 그의 이런 병약한 모습은 선친과 흡사하다는 느낌을 불러 일으키게 만들었다. 백리자성은 둘째외삼촌이 갑자기 자신을 노려보며 욕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서도 전혀 화를 내지 않고 웃으며 대꾸했다. "자식이 부모를 닮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사도중맹은 백리자성이 자신에게 말대꾸를 하고 있다고 생각해서인지 즉시 앞의 탁자를 가볍게 내리치며 소리쳤다. "이 병신 같은 자식아! 네놈이 만일 그 인화라는 계집애를 반푼이라도 닮았다면 내가 이렇게 화를 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네몸의 얼굴 아니 하 는 행동들이 하나같이 너의 그 병신 애비를 닮았으니 대체 어디에다 쓰 겠느냐?" 사도중맹의 그와 같은 욕설은 매우 지독한 것이어서 잠시 백리자성의 안색을 더욱 창백하게 만들었지만 그러나 백리자성은 그렇다고 해도 그 지 조용히 웃을 뿐 화를 내지 않았다. 그 대신 느닷없이 그의 주위에 번쩍하고 두개의 붉고 푸른 인영(人影)들이 나타 나더니 사도중맹을 향해 사나운 기세로 손가락질을 하며 소리치는 것이 었다. "이봐요! 대체 당신들이 뭐가 그리 잘났다고 그렇게 심한 말을 하고 있 는 거죠?당신들이 여태 우리 공자님께 한푼이라도 도움을 줘봤어요? 어 째서 당신은 돌아가신 분까지 그렇게 들먹이며 오욕적인 말을 하고 있는 거죠?" "대체 당신들은 양심도 없군요! 여태까지 우리 돌아가신 나으리와 마님 께 그토록 핍박을 하고서도 어떻게 감히 지금 그와 같은 말들을 할 수가 있죠? 대체 당신들은 그렇게 말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단 말인가요?" 너무나도 갑자기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화를 내고 있던 사도중맹도 일 순 어이가 없어서 말대꾸를 할 수가 없었다. 상대방들이 퍼붓는 말에도 일리가 있는 것이지만 그보다는 그 두 사람 의 방금전에 펼쳤던 신법이 그를 더욱 놀라게 했다. 일신에 각기 붉고 푸른 장삼을 산뜻하게 걸친 이 두명의 동자들은 체력 이 다소 가냘프며 나이가 대략 십칠 세 정도 될 것 같았는데 분명히 조 금전까지 백리자성과 함께 손님들의 자리에서 음식을 들고 있었던 것으 로 사도중맹은 알고 있었다. 그러다가 백리자성이 심한 욕설을 듣게 되자 발작적으로 신법을 펼쳐서 그의 좌우로 달려 나왔는데 얼핏 보기는 했지만 그 신법이 대단히 빠를 뿐만 아니라 기이하여 사도중맹으로서는 대체 어느파의 무공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는 것이었다. (저 정도의 신법이라면 이미 일류의 경지를 넘어선 것이다. 내가 혹시 잘못본 것일까?) 사도중맹은 좌우의 시선들을 살피다가 내심 고개를 저으며 생각했다. (과거 그 백리청우는 병약하기는 해도 갖가지의 기이한 재주들을 많이 가지고 있었지. 그보다 효과적이기 때문에 사도중맹은 기실 어떤 신법에 대해서도 별로 중요하게여기지 않고 있었다. 예쁘장한 얼굴에 각기 홍의와 청의를 입은 이 두명의 동자들은 이미 맑 고 날카로운 여자의 목소리를 내어 그들이 원래 나이어린 계집아이들이 라는 것을 노출시킨 터였다. 실상 그녀들은 백리청우가 죽기전에 사도인화가 백리자성의 친구가 되 도록 데려다 기른 아이들이라는 것을 사도중맹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 쌍둥이라고 그랬지 아마?) 사도중맹은 십 년 전에 그저 어렴풋이 듣기만 했었는데 이제 와서 이렇 게 직접 대하고 보니 어이없다는 생각이 앞섰다. 이때 백리자성은 다소 엄한 표정으로 자신의 그 두명의 여자시종들을 말리고 있었다. "홍아청아! 그래선 안돼! 그분은 나의 외삼촌이시니 감히 대들어서는 안 되는 거야." 이에 푸른 옷을 입은 여자아이는 금새 입을 다물었으나 붉은 옷을 입은 여자아이는 여전히 지지 않고 말했다. "그들은 일찍부터 마님과 형제간의 의를 끊겠다고 했었어요. 하지만 공 자님께서 너무나도 마음이 좋으셔서 이렇게 모처럼 이곳에 오셨는데 저 들은 우리를 푸대접할 뿐만 아니라 저처럼 심한 욕설을 해대고 있으니대 체 이런 경우도 있나요? 대체 우리가 어째서 저 사람들의 욕설을 들어야 만 하죠?" 붉은 옷을 입은 여자아이는 말끝에 그만 감정이 복받친 듯이 소리내어 울음을 터뜨리는 것이었다. 따라서 원래는 매우 엄숙하던 장내의 분위기는 이로 인해 매우 이상하 고 우스꽝스럽게 변하고 말았다. 백리자성은 이 홍아라는 붉은 옷을 입은 여자아이의 울음을 쉽게 막을 수가 없자 그만 다소 당황한 표정으로 사도중맹을 향해 말했다. "용서하십시오. 둘째외숙님그녀는 원래 성품이 나쁘지 않은데 이곳에서 그만 무례를 범하고 마는군요" 사도중맹은 우선 눈앞의 두명의 여자아이들의 무공이 다소 기이한 점이 있고. 게다가 구태여 여자아이들과 말다툼을 했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가 않아서 그만 흥하는 차가운 코웃음을 치고는 대꾸하지 않았다. 백리자성은 이것을 보고 웃으며 다시 말했다. "저의 어머님의 묘소는 저희집 근처에 있습니다. 둘째 외숙께서 원하신 다면 제가 직접 그곳으로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사도중맹은 이 말을 듣고 문득 매우 귀찮은 생각이 들어서 고개를 저으 며 말했다. "나는 지금 그렇게 한가한 사람이 아니다. 지금은 중요한 일이 있으니 나중에 시간이 난다면 그때 한번 생각해 보기로 하지" 옆에서 홍아가 겨우 울음을 그치고 그 말이 또다시 못마땅한지 흥하는 냉소를 터뜨렸다. 백리자성은 그녀가 다시 뭐라고 말을 할까봐 손을 저어서 말린 뒤 곧바 로 사도중맹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럼 그때 뵙기로 하고 소질은 이만 물러가도록 하겠습니다." 사도중맹은 이에 싸늘하게 외면을 하고 고개를 돌린 채 대꾸도 하지 않 았다. 백리자성이 몸을 돌려 밖으로 걸어나가려고 하자 문득 사도숙강이 이쪽 을 바라보며 다소 미안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조카! 기왕에 왔으니 좀더 앉아서 놀다가도록 하게나." 그래서 차마 그냥 나가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인 다음에 두명의 여자시 종들을 설득시켜서 아까 앉아 있었던 손님들이 앉는 자리로 되돌아가서 앉았다. 그 부근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이 깡마르고 허약해 보이는 청년이 사도 중맹의 외조카인줄은 모르고 있다가 그제서야 다소 아는 체를 하며 자리 를 비켜주었다. 두명의 시종인 홍아와 청아는 그런 심한 욕을 먹고도 계속 이런 곳에 앉아 있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불만투성이였지만 그녀들은 근본적 으로 백리자성을 매우 충성스럽게 모시고 있는 사람들이어서 감히 내색 하지 않았다. 백리자성이 몹시 식욕이 없는 상태여서 두명의 여자시종들이 번갈아 젓 가락으로 가져다 주는 음식들을 그저 조금씩 입으로 가져가면서 묵묵히 앉아 있었다. 그때 다시 사도중맹과 사도백위의 대화하는 목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왔 다. 사도중맹은 다소 피곤한 듯이 말소리가 조금 빨라지고 있었다. "형님제가 십 년 전에 큰 결심을 하고 이곳을 떠났었지만 그렇다고 지 금 돌아온 것은 나름대로의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본파에 있어서의 중요한 일을 상의하 기 위해서 돌아온 것이지요." 사도백위가 다소 의외인 듯이 물었다. "아니 무슨 일인데 그렇게 본파에 있어서 그리 중요하다는 말인가?" 사도중맹은 대답했다. "그것은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에 이런 자리에서는 함부로 말씀드릴 수 가 없습니다." 사도백위는 사도중맹이 계속해서 중요하다는 말만을 반복하자 금새 궁 금한 마음이 들었는지 은근히 물었다. "그럼 빨리 자리를 파하도록 할까?" 사도중맹은 즉시 대답했다. "에그러죠." 뒤이어 부산한 소음과 함께 사람들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소리가 들 리고 바야흐로 잔치가 종료되는 모양이었다. 제4장 소장원 백리자성은 주위의 손님들이 일어서는 것을 보고 자신도 몸을 일으켜 두명의 여자시종들의 부축을 받으며 천천히 밖으로 걸어나갔다. 사도가문의 사람들이 원하지도 않는 일이기 때문에 그는 구태여 그들에 게 다시 하직인사를 올릴 필요가 없었다. 하나의 전각을 돌아가자 거기에 자신이 타고와서 세워놓았던 마차 한대 가 눈에 들어왔다. 홍아와 청아는 벌써 그를 한쪽에 세워두고 저쪽에 매어놓은 말을 끌어 다가 마차에 매는 등의 일을 하느라 분주했다. 백리자성은 묵묵히 그러한 광경을 바라보다가 그녀들이 말을 마차에 완 전히 매달고 나자 천천히 몸을 움직여 마차의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때 문득 그의 몸이 별안간 가벼워지더니 아득한 느낌과 함께 이미 마 차안에 안전하게 올라앉아 있었다. 바로 그의 여자시종의 하나인 청어가 그의 몸을 안아서는 마차안에 안 전하게 태워준 것이었다. 홍아는 벌써 마부석에 올라서 천천히 말을 몰기 시작하고 있었고 청아 는 그를 보호하기 위해 얌전하게 옆에 앉아 있었다. 이 마차는 사방과 지붕에 각기 두터운 휘장을 드리운 것이기 때문에 그 들과 주위를 지나는 사람들과는 금새 차단되었다. "신법이 많이 발전하였구나." 백리자성이 그런 알을 하자 청아는 다소곳이 숙인 얼굴을 곱게 붉혔다. "모두가 공자님께서 가르쳐주신 덕분이예요." (.......) 백리자성은 얼굴을 살짝 붉힌 옆얼굴을 잠시 바라보면서 다소 망연한 기색을 떠올렸다. 이들 여자시종들은 기실 아주 드물게 빼어난 미모를 가지고 있는 쌍동 이 자매였다. 평소에는 거의 그 호숫가와 작은 장원에서 백리자성의 시중을 들어주 며 밖으로 전혀 나가지 않고 살아와서 외부인들과의 접촉이 거의 없었으며오늘은 그가 점창산으로 오른다고 하자 스스로 남장으로 분장을 하느라 얼굴에 다소간의 검댕이 칠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기실 그 검댕이 칠을 한 얼굴 역시 백리자성이 보기에는 무척 아름답기 그지 없었다. 백리자성은 이들 자매가 그의 곁에 머물러 있기에는 너무나도 아름답고 발랄한 나이라고 생각했다. 요즘들어 그의 병이 더욱 악화되고 더욱 허약해질수록 그런 생각은 계 속해서 치밀었고 마음의 부담이 되었다. 백리자성은 스스로 이미 얼마 가지 못해서 죽을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 에 눈앞의 이러한 아름다운 자매들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 었다. 만일 이들 자매가 곱사등이에 못난 얼굴들을 하고 있다면 그는 차라리 마음에 크게 부담이 되지 않았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백리자성은 문득 미미하게 한숨을 내쉬며 전면으로 고개를 돌리고 내심 중얼거렸다. (내가 만일 그녀들에게 다른 곳으로 떠나라고 하면 그녀들은 결코 가지 않으려고 할것이다. 설령 내가 어떤 수단을 써서 그녀들을 멀리한다고 해 도 그것은 오히려 그녀들에게 마음의 상처만 주게되는 결과가 되지 않을 까?...... 게다가 나는정말로 그녀들의 이러한 진실 마음을 매정하게 뿌리 칠 수 있다는 말인가?) 백리자성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차라리 내가 빨리 죽어서 그녀들의 부담을 덜어주고 그녀들로 하여금 스스로 제갈 길을 찾아서 가도록 하는 것이 순리적이고 옳은 방법일 것 이다. 아...... 나는 대체 언제쯤 죽게 될 것인가? 반년쯤 혹은 일년쯤아니 그보다도 오래살 수가 있을까?......) 백리자성은 문득 망연한 생각에 젖어서 뇌리에 문득 하나의 희미한 사 람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 사람은 바로 그의 선친인 백리청우그였다. "돌아가신 아버님의 마음도 당시 지금의 내 마음처럼 괴로우셨을까?" 백리청우 이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기이하게도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말할 수가 있었다. 그는 본래 천하를 떠돌고 있던 낭인이었는데이십오 년 전에 이곳 점창 산 동쪽의 이해라는 호숫가에 이르러 문득 발길을 멈추고 여장을 풀어 정착을 하게 되었다. 그는 겉으로 보기에는 흡사 시험에 낙방하여 돌아가는 낙제수재처럼 별 볼일 없이 보였지만 기실은 다방면에 걸쳐서 기이하고 놀라운 재주들을 많이 가지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그 자신이 불치의 병을 앓고 있으면서 천하에서 보기 드문 의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처음에는 호숫가에 모옥을 짓고 밭을 일구어 농사를 지었지만 나 중에는 자신의 의술을 사용하며 다른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기 시작했다. 어느날 점창파 장문인의 여식인 사도인화라는 처녀의 병을 돌보게 되었 다. 이 사도인화라는 처녀의 병 역시 불치의 병에 속하는 것으로 일명 구음 절맥(九陰絶脈)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백리청우가 그 병을 돌보기 시작하여 마침내 차도가 보이고 고 칠 수 있다는 희망이 보이기 시작하자 사도인화라는 처녀는 비단 그의 의술에 감탄하고 자신의 죽을 목숨을 구해준 은혜에 감격했을 뿐만 아니 라 온건하고도 조용한 그의 성품에 매료되어 그만 깊은 사랑을 느끼게 되고 말았다. 한번 죽을 고비를 넘겼던 이 처녀의 가슴에 피어오른 사랑의 열정은 실 로 대단한 것이었다. 그녀는 백리청우가 불치의 병에 걸려 있다는 것을 알고 이내 자기와 혼 인해 줄 것을 청했으며 거부하는 그의 승낙을 끈질기게 애원하여 받아내 고 이어 집안에서 심하게 반대를 하는 것을 무릅쓰고 마침내 집을 뛰쳐 나와 백리청우와 혼인식을 올리고 말았다. 백리청우 역시 이 아름답고 총명한 처녀에게 쉽게 사랑의 감정을 느꼈 지만 자신의 불치병 때문에 만일 그녀가 결사적으로 그와 혼인하려고 하 지 않았다면 혼인하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점창파의 사도가문에서 그토록 반대를 하는 것은 우선은 백리청우가 근본도 모르는 떠돌이라는 점과 게다가 이제는 멀쩡하게 다 나은 아름다 운 처녀가 그와 같은 불치병을 가진 사람에게 시집가려고 한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당시에는 아직 분광검신 사도붕이 살아있는 때여서 사도인화가 결사적 으로 혼인을 하겠다고 덤볐으므로 할 수 없이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내 버려두고 말았는데만일 당시 그 사도붕이 이미 죽고 그녀의 오빠들만 있 었다면 그 혼인은 혹시 이루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만일 그랬다면 오늘날의 이 백리자성도 태어나지 않게 되었을 것이었다. 사도인화는 혼인식을 올린 이후에 백리청우와 함께 점창파와의 인연을 아예 끊다시피 하고 살면서 전적으로 그의 불치병을 치료하는데 전력을 쏟았다. 그러나 사도인화의 구음절맥도 치료할 수 있었던 백리청우는 자신이 그 불치병만은 도저히 고칠 수가 없어서 마침내 그로부터 십년 정도의 세월 이 흐르자 그만 세상을 떠나게 되고 말았던 것이었다. 백리자성이 태어난 것은 그 십년의 중간 정도인 오 년이 지난 해였으며 그러니까 백리청우 그의 아들이 다섯 살이 되었을 때 돌아간 것이다. 사도인화는 그렇게 남편을 허망하게 잃고 다시 십 년의 세월을 역시 불 치병에 걸려 있는 자식을 키우며 살아가다가 가슴에 우울증이 병이 되어 서 지난 오년 전에 세상을 떠나 남편의 묘소에 함께 묻히게 되었다. 아니 그보다 먼저 백리청우가 불치병이 크게 도져서 생사의 기로에서 헤매고 있을 때 사도인화는 남편이 죽기 전에 그의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오직 단 하나의 물건이라는 전설의 우담화를 찾기 위해 대설산의 성모봉 근처를 누비고 다녔었다. 바로 그때눈속에서 마악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죽어가는 한쌍의 젊은부 부를 보게 되었는데그들의 말로는 자신들은 전설의 성모궁에서 탈출하여 나온 사람들인데 이제 성모궁의 추격을 받아서 죽음을 당하게 되었으니 자신들의 숨겨놓은 자식들을 대신 맡아서 길러달라는 것이었다. 그 한쌍의 부부는 그 말을 전한 후에 이내 숨을 거두었는데 사도인화는 자신들의 처지가 생각나서 차마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가르쳐준 대로 가 보니 어느 한 동굴속에 이제 겨우 두 살 남짓의 쌍동이 자매가 숨겨져 있었다. 그때는 사도인화는 이미 전설의 우담화를 찾는 것을 어느 정도 포기하 고 있었던 참이라 할수없이 남편의 임종이나 지켜봐야 하겠다고 생각하 고 있었던 상태였는데그러한 아주 예쁘게 생긴 쌍동이 자매를 보게 되자 문득 집에서 불치병에 시달리고 있는 자신의 자식이 생각났고 데려다가 키우면 친구라도 되어주지 않을까 해서 결국 그 쌍동이 자매를 집으로 데려오게 되었던 것이었다. 당시 사도인화는 이미 자신이 직접 경험을 했었기 때문에 불치병에 시 달리고 있는 백리자성이 혼인을 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것을 생각에 백리 자성과 혼인시킬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집으로 쌍둥이 자매를 데려온 사도인화는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그녀들 을 서로 분간하기 위해 다소 발랄한 성격의 아이에게는 붉은 옷을 입혀 서 홍아라고 하고다소 침착하고 조용한 성품의 아이에게는 푸른 옷을 입 혀서 청아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그리고 나중에 나이가 들게 되면 그녀들이 말을 듣지 않을까봐 아예 시 종으로 삼아서 어렸을 때부터 매우 엄하게 교육을 시키며 길러왔는데 정 작 미처 자식의 혼인식을 올려주지 못하고 마음의 병을 이기지 못해 세 상을 떠나고 말았던 것이었다. 사도인화는 따라서 세상을 떠나기 전에 이 두명의 소녀들을 불러서 은 밀히 자신이 죽더라도 그녀들은 반드시 나중에 백리자성과 혼인을 하여 그를 섬겨야 한다는 말을 했고 또한 그렇게 맹세를 하도록 시켰었다. 두명의 소녀들은 물론 어렸을 때부터 백리자성을 매우 좋아하고 따라서 사도인화의 지시를 오히려 기쁘게 생각했지만 실상 당사자인 백리자성은 그것을 조금도 달갑게 생각할 리가 없었다. 그는 모친이 세상을 떠나자 선친이 남겨놓은 서책을 통해서 터득하게 의술을 이용하여 가끔씩 환자들의 병을 고치고 그 사례금으로 가게를 꾸 려나가는 한편그 두명의 소녀들을 마치 친누이들처럼 대하여 대부분의 장원의 사소한 일들은 그녀들에게 맡겨버렸다. 백리자성은 선친의 서책들을 통해서 터득하게 무공들 가운데 일부를 그녀들에게 각각 가르쳤고또한 장원내의 하인들을 부리게 해주었다. 그러나이미 작고한 사도인화에게서 그와 같은 간곡한 부탁을 듣고 또한 스스로 맹세까지 하게 그녀들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미 마옴을 굳게 정하고 있어서 항상 자신들이 시종이라는 신분을 떠나려고 하지 않 았다. 만일 그녀들이 백리자성의 누이가 둢a면 결국 나중에 혼인을 할 수 없 게 되기 때문이었다. 백리자성은 그녀들을 누이처럼 대하고 있지만 그녀들은 그를 상전 그녀 들은 그를 상전처럼 받들어 모시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그러나 기실 백리 자성의 목숨은 그다지 오래 남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녀들이 아무리 혼인을 하고 싶어한다고 해도 그것은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다. 다만백리자성은 스스로 해가 지날수록 자신의 의술이 점차로 깊은 경지 에 이르러 스스로의 목숨을 연장시켜가고 있다는 사실에 다소간의 불안 을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만일 그가 앞으로 한 삼 년 정도만 더살게 둢a면 정말로 이 두명의 꽃 다운 소녀들과 혼인을 해야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백리자성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가 앞으로 삼 년씩이나 생명을 연장시킬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지만 설령 그렇게 둢a고 해도 자신의 병든 몸으로 이 두명의 아름다운 소녀들 의 일생을 망치게 해서는 안둢a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백리자성은 물론 불치의 병 때문에 비록 많은 무공을 터득하기는 했지 만 그것들을 아주 조금이라도 몸에 익힐 수는 없었다. 그의 몸은 평상시에도 다른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는 심한 고통에 시달 리고 있었고 거의 운신을 하기도 어려운 상태였다. 만일 백리자성이 어려서부터 그러한 고통스러운 병에 익숙해지지 않았 었다면 지금처럼 태연한 행동을 보일 수가 없었을 것이었다. 불과 몇 년전 까지만 해도 백리자성이 손수 환자들을 돌보며 장원의 가 계를 꾸려나가야 했지만 이제는 홍아와 청아가 약간의 의술을 가르침 받 아서 이것저것 일러주면 그녀들이 맡아서 치료하곤 했기 때문에 비록 그 가 몸이 날로 허약해져도 장원을 꾸려나가는 데에는 별로 어려움이 없었 다. 이 홍아와 청아는 기실 매우 총명할 뿐만 아니라 무공이 높아진 이후에 는 성격도 강해지고 행동도 빨라져서 실로 그녀들 만이라면 어디로 가더 라도 잘 살 수가 있을 것이라고 백리자성은 생각하고 있었다. 백리자성은 요즈음 들어서 자신의 몸이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상태라 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리하여 이번에 그는 사도백위의 생일을 생일을 맞이하여 혹시 내년의 환갑일에 찾아가지 못할 수도 있으므로 한번 무리하여 거동을 하게 되었 던 것이었다. 집과 점창파의 사도가문과는 거의 왕래가 없었기 때문에 그가 생일잔치 에 나타나자 그들은 아주 냉담하게 대해주었지만 백리자성은 이를 개의 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그들을 대하는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 아니겠는가 백리자성은 이렇게 그들을 보고 왔으니 마음속의 유감은 별로 없었지만 다만 외갓집과의 전대의 감정이 아직 풀리지 않은 것과 지금 옆에 앉아 있는 이 두명의 소녀들과 헤어지는 문제가 다소 서운하고 어려운 문제로 남아 있는 것들이라고 생각했다. 이미 오래전부터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오고 있었기 때문에 이제 그에게 있어서 죽음이라는 자체는 그다지 커다란 고통을 가져다 주지 않았다. (.......) 백리자성은 흔들리는 마차의 진동을 느끼며 오랫동안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청아의 얼굴을 보고는 그녀가 고개를 숙이고 소리죽여 울고 있는 것을 보고는 의아한 생각이 들어 물었다. "청아왜 그러지? 무슨 괴로운 일이라도 있는 거냐?" "아니예요. 저는 괴롭지 않아요. 공자님께서는 한숨을 쉬시니 저는...... 저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어요." 백리자성은 순간 절로 가슴이 찡하게 울려오는 것을 느꼈다. 이 두명의 자매는 비록 자신의 무공이 크게 진전되고 용모도 매우 아름 답게 변모하여 괴로운 일이라고는 없을 것인데도 근래에는 대체로 깊은 우수에 잠겨 있었다. 그것은 바로 백리자성의 병이 더욱 깊어졌기 때문인데 그로 인해서 그 녀들은 간간히 보이지 않는 곳에서 흐느껴 울기도 하는 모양이었는데 아 까는 그러한 슬프고 괴로운 감정들이 쌓여있던 상황이라 그만 자신들도 모르게 나서서 사도중맹에게 대들고 또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던 것이 었다. 실로 이들 자매들이 백리자성을 생각해주는 마음은 세상에 다시 없을 정도로 기특하고 훌륭한 것이었는데백리자성은 간단히 그녀들의 깊은 정 성에 감동되어 사랑을 느낄 때가 많았다. 그는 지금도 자신도 모르게 청아의 어깨를 안아주려다가 문득 불에 데 이는 듯한 뜨거운 마음을 느껴서 황급히 손을 거두고 말았다. 청아는 물론 무공을 상당한 경지에까지 연성한 사람이니 그의 그러한 행동을 마치 눈으로 본 것처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청아는 옷소매로 눈물을 닦고 고개를 들더니 이슬이 맺힌 듯한 환한 얼굴로 그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백리자성은 이에 공연히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감정을 억누르며 입을 열었다. "내가 한숨을 내쉰 것은 그저 습관적인 기분에 불과한 것인데 네가 그 와 같이 시시한 일에조차 눈물을 흘린다면 어찌 너의 눈물이 남아날 수 가 있겠느냐?" 이때 묵묵히 마부석에서 마차를 몰고 있던 홍아가 문득 장난기가 섞인 음성으로 이렇게 질문을 해왔다. "공자님 청아의 눈물이 많은 것은 원래가 천성이예요. 그런데 공자님의 말씀도 이상하시네요. 대체 그녀의 그런 눈물을 아꼈다가 무엇에 쓰려고 하시는 거죠?" 백리자성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야 당연히 내가 죽었을 때 울어줘야 하지 않겠느냐? 만일 이미 눈물 을 모두 써버리고 고갈이 되게 되면 그때는 정말로 슬프게 울고 싶어도 울 수가 없을 것이며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혹시 가짜로 우는 것이 아니냐 하고 수상하게 여길 것이 아니겠느냐? 나야 이미 죽어서 땅속에 묻혀있을 것이니 상관이 없지만 전도가 창창한 너희들은 평판이 좋지 않 게 난다면 어찌 좋을 것이 있겠느냐?" 백리자성은 이렇게 우스개의 말을 함으로써 전차로 그녀들에게 사실의 인식을 강하게 느끼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녀들은 미처 그가 우려하기도 전에 미리 포기하고 스스로 떠나갈 지도 모르는 일인 것이었다. 헌데 그때였다. 청아가 문득 그의 품속으로 달려들면서 으왕하고 커다란 울음소리를 터 뜨리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아니예요 공자님공자님이 돌아가시면 저도 반드시 따라죽을 거예요. 그 러니 돌아가시지 마세요 공자님! 돌아가시지 하세요......" (.......) 그는 청아가 그 소리를 듣고 이렇게 큰소리로 울 줄은 미처 생각지도 못하고 있다가 깜짝 놀라서 엉겹결에 그녀의 몸을 껴안고는 숨을 몰아쉬 다가 이윽고 할 수 없이 그녀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달래주기 시작했다. 홍아도 그 뒤로는 묵묵히 말이 없었고 백리자성도 대체 뭐라고 위로를 해야 할지를 몰라서 멍하니 청아의 어깨만을 두들겼다. 이윽고청아는 대성통곡하는 것을 멈추었지만 그 뒤로도 흐느끼는 것은 쉽게 멈추지를 않아서 백리자성은 자신의 작은 장원에 도착할 때까지 그 녀를 달래주어야 했다. 이해의 호숫가는 땅이 비옥해서 일단 개간을 해놓으면 채소를 심거나 약초 따위를 심더라도 아주 잘 자라났다. 과거 백리청우는 부인이 사방으로 약초를 캐러 다니는 동안에 스스로의 몸을 보호하고 생활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자신이 살고 있는 그 개간 한 땅의 주변에 오행팔괘(五行八卦)의 기문진도지학에 근거를 둔 일종의 심오하기 짝이 없는 진법을 설치하여 외부의 사람들이 함부로 안으로 들 어오지 못하게 했다. 이 백리청우는 세상에 알려져 있는 신묘한 의술 이외에도 다른 방면의 학문 역시 놀라운 경지에 이르러 있어서 그와 같은 진법을 펼쳐놓는 것 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백리자성은 선친이 그와 같이 설치해 놓은 진법들의 이론을 완전히 터 득하여 스스로 간혹 필요한 곳은 보수하기도 하고 혹은 진법상의 새로운 변화를 첨가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거동을 잘 할 수가 없고 또한 의원의 일을 맡아봐야 하기 때문에 비교적 많은 하인들을 두게 되었는데그들을 모두 거주하도록 하 기 위해 건물을 하나씩 짓게 되었고 그것이 지금에 이르러서는 하나의 외부와 단절되어 있는 조용한 소장원으로 만들어지게 계기가 되었다. 백리자성은 자시의 소장원으로 돌아온 뒤에는 홍아와 청아에게 각기 하 고 싶은 일을 하도록 놓아준 쥐 자신의 주위가 어두워질 때까지 서재에 들어가서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날은 특별히 그가 맡아봐야할 환자가 없었다. 백리자성은 그처럼 특별히 해야할 일이 없는 날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그렇게 서재에 들어가서 책을 읽는 것으로 보내곤 했는데그것은 또한 그 에게 있어서의 거의 유일한 낙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선친인 백리청우가 그를 위해서 치하의 서재에 남긴 서책들은 그 분량 이 대단히 많아서 백리자성은 어린시절부터 거의 항상 그곳 서재에 들어 가서 살다시피하면서 깊은 학문의 이론을 배우고 연구하였는데 그러한 일은 기실 다른 사람들은 알기 어려운 말할 수 없는 감동과 즐거움을 주 게 하는 것이었다. 다만근래에 이르러 백리자성은 그만 너무나도 심하게 공부에 열중한 나 머지 마침내 서재안의 모든 서책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보게 되었고 특별히 더 보아야 할 것이 없어지게 되어 그러한 즐거움도 점차로 사라 지게 되었다. 백리자성이 요즈음 서재에 들어가서 하는 일이라는 것은 과거 선친의 유작들을 보고 느꼈던 감동들을 다시금 조용히 회상해 보기도 하고 혹은 따로 선친의 학문에 자신의 생각을 첨가하여 보다 나은 학문을 연구해 보기도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과정에서 간혹 백리자성이 스스로 저술하여 놓은 서책들도 이미 적지 않게 되었지만 그러나 기실 그러한 모든 행위들은 백리자성에게는 거의 심심풀이 이상의 의미를 가져다주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본래 백리자성의 체력으로는 무엇을 연구했다고 한는 것 자체가 어려운 상태였기 때문에 그는 자연히 한가지의 연구를 하고 서재에서 나올 때면 전신의 기력이 거의 소진되고 고통이 더욱 심해져서 한차례의 침을 놓아 서 어느 정도 기력을 회복하지 않고서는 식사를 하러갈 수도 없는 형편 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백리자성은 저녁무렵에 서재에서 나와서 식사를 하기 위해 거실 의 안으로 들어갔다가 음식상이 오직 하나만 차려져 있고 그 두명의 자 매가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기이하게 생각했다. 제5장 천룡사의 비전무학 원래 홍아와 청아는 간혹 아침식사와 점심식사때는 따로 식사를 하곤 했지만 오직 저녁 식사만은 거의 무슨일이 있어도 그와 함께 거실에 따 로 상을 차리고 앉아서 식사를 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여 그의 마음 을 위로해 주곤 했던 것이다. 백리자성으로서는 구태여 그녀들이 그렇게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 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러나 늘상 해오던 일이었기 때문에 오늘 저녁 갑 자기 자기 혼자서만 식사를 하게 되자 문득 매우 허전한 기분이 들었고 그녀들의 그 조잘거리던 말소리가 그리워지게 되었다. (급한 환자가 몰려와서 시간을 낼 수가 없는 것일까?) 백리자성은 본래 체력이 지극히 허약했기 때문에 밥맛이 없었으므로 흡 사 모래를 씹는 기분으로 식사를 하면서 겨우 마음의 허전함을 억눌렀다. 그는 앞으로 그녀들과 멀어져야 할 것이니 이제부터라도 이러한 혼자있 는 생활에 보다 익숙해져야 할 것이라고 스스로를 달래는 것이었다. 저녁식사를 끝내자 백리자성은 역시 별다른 할 일이 없어서 여늬 때라 면 잠시 장원의 주위를 돌면서 산책을 할만도 했으련만 곧장 다시 서재 로 들어가 버렸다. 백리자성이 지난 몇 년 동안 연구에 심혈을 기울였던 내용은 사실 선친 이 남긴 서책과 자신의 능력을 동원하여 과연 자신의 불치병을 치료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었는데 그 일은 결국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 리고 말았다. 비록 요 근래들어 자신의 의술이 보다 완숙해지고 정밀해져서 금방이라 도 죽을 것 같았던 그의 목숨이 조금씩 연장되어 가고는 있지만 마침내 그것도 한계가 있는 것이어서 어느날에는 마치 촛불이 그 생명을 다하듯 이 그는 홀연히 눈을 감게 될 것이다. 백리자성으로서는 따라서 그 어떠한 학문에도 깊은 관심이 쏠리지 않게 되었지만 그러나 그는 마치 무료하게 살게 되면 심마가 침입하게 되기라 도 하는 것처럼 항상 무엇옏a 열중하여 무료함을 잊으려고 했고 그러한 행동은 오늘밤에도 마찬가지였다. 백리자성은 오늘밤에도 역시 자신의 목숨과는 전혀 연관이 없는 역의 원리와 그 미세한 흐름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고 연구했으며 마치 목숨과 는 전혀 연관이 없는 역의 원리와 그 미세한 흐름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 고 연구했으며 마치 너무나도 열중하여 온밤이라도 지샐 것 같은 태도였 다. 그런데 백리자성이 그렇게 한참 동안 연구에 골몰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조용하던 실내에 지극히 귀에 익은 홍아와 청아의 음성이 은은 하게 들려오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동생! 오늘은 몸이 피곤할 것이니 그만 방으로 들어가서 쉬도록 하게 나." "형님 그러나 저는 아직 해야할 일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니 무슨 해야할 일이 또 있다는 말인가?" "아니 무슨 해야할 일이 또 있다는 말인가?" "형님께서는 일부러 그렇게 말씀하시는군요. 저는 이미 형님이 제가 아 까 말했던 그 중요한 일에 대해서 궁금해 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있습 니다." "하핫 그랬었나? 둘째 자네의 그와같은 깊은 심기에는 나도 그만 두손 을 들고 말겠네." "저야말로 형님의 독심에 이미 두 손을 들고 만 사람입니다." "하하핫! 자네는 또다시 나의 얼굴을 뜨겁게 만드는군. 그래 그런 얘기 는 이제그만 하기로 하고 마침 자리도 조용하고 좋으니 한번 자네의 그 중요한 얘기를 듣도록 하세." 백리자성은 무심코 그 말소리를 듣고 있다가 문득 뭔가 크게 이상하다 는 것을 느끼고 정신을 차려서 생각하다가 이내 그 원인을 알아냈다. 홍아가 쌍동이 자매중에서도 언니이고 청아가 동생이지만 그녀들은 결 코 형님 동생하는 말을 쓰지 않으며 대체 어찌 영문인가 했더니 바로 그녀들은 지금 마치 연극을 하듯이 누군가의 말을 흉내내고 있는 것이었 다. 그리고 원래 백리자성이 앉아 있는 서재의 구조는 다른 건물과 다소 다 그게 특수하게 지어져 있어서 보통의 외부의 소음이나 말소리는 거의 들 리지 않게 되어 있는 것이었는데도 지금 이렇게 맑고 유창하게 잘 들리 고 있는 것은 그녀들이 바로 이쪽을 향해 천리전성(千里傳聲)이라는 전음 입밀상의 무공을 전개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일류고수의 경지에 도달하게 되면 능히 전음입밀의 무공을 사용할 수가 있는 것이라고 하지만 이 천리전성이라는 무공은 그보다도 더욱 심오하고 공력이 많이 소모되는 것으로서 비단 이런 외부와 깊이 차단되어 있는 서재의 안에 뿐만 아니라 시전자가 마음만 먹으면 당하는 사람이 제아무리 귀를 막고 있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듣지 않을 수가 없 게 하는 수법인 것이었다. 잊으려고 했고 그러한 행동은 오늘밤에도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사마외도의 전음수혼대법(傳音搜魂大法)과 비슷한 효과를 지니는 것이었는데 홍아와 청아가 일부러 그와 같은 어려운 무공을 전개하는 이 유는 아무래도 어떤 얘기를 백리자성에게 들려주려는 생각인 것 같아서 백리자성은 미소하며 편안한 마음으로 그 목소리들을 듣기로 했다. 홍아와 청아의 얘기는 이어지고 있었다. "형님! 제가 이번에 본파로 돌아온 것은 그야말로 우연한 기회에 본파의 힘과 명성을 크게 높일 수 있는 길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본파의 힘과 명성을 크게 높일 수 있는 방법이라고?" "그렇습니다. 형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본파에서 비록 이곳 천남지방 에서는 명성을 날리고 있지만 강호상의 태산북두가 되지 못하는 것은 그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 로...... 바로 본파에는 소림사와 무당파의 경우처럼 절세의 비전무학들이 있지 않다는 점 때문이라고 할 수가 있지. 무공이 약하기 때문에 세력을 펼 수가 없고따라서 제자들도 우수한 인재들이 많이 모여들지 않으니 이 는 실로 악순환이라고 할 수가 있지." "바로 그렇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곽 이 부근에서 세력을 떨치던 대리국에는 그야말로 뛰어난 신공절학들이 있었습니다. 만일 우리 가 그 신공절학을 얻어서 본파의 절학으로 삼아버린다면 어떻게 되겠습 니까?" "그럼...... 그럼 바로 육맥신검(六脈神劍)을 말하는 것인가?" 이 부근에 이르러서 홍아의 음성이 다소 격렬한 감정에 젖어서 떨리고 있었으므로 당시의 그 사람의 심정을 엿볼 수가 있게 했다. 백리자성은 이미 홍아와 청아가 어떤 사람들의 말을 흉내내고 있는 것 인지 확실하게 알아차리고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오늘 낮에 백리자성이 점창파로 가서 사도백위와 사도중 맹의 대화의 내용에 다소 귀를 기울이는 듯하자 그녀들은 비록 그들을 좋아하지 않고 또한 한차례 대들기도 했었지만 오로지 백리자성을 생각 하는 마음에서 몰래 그곳으로 신법을 펼쳐 가서는 그들 형제들의 대화내 용을 들었다가 그대로 백리자성에게 들려주고 있는 것이었다. 만일 이와 같은 사실을 그들 사도형제가 알았다면 그야말로 크게 놀라 서 안색이 대변할 일이었지만 홍아와 청아의 신법은 뛰어나서 그들에게 들키지 않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비록 오늘 저녁의 식사는 함께 하지 못했지만 그것은 오직 이와 같은 일을 하기 위해서였던 것이었으므로 두사람의 맑고 아름다운 음성을 듣 는 동안 백리자성은 점차로 그녀들의 깊은 사랑을 피부로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홍아와 청아의 얘기는 다시 이어졌다. "이 육맥신검은 대리국의 호국사찰이었던 천룡사의 비전무학이었던 만 큼 우리 점창파가 과거의 천룡사의 자리에 세워졌으니 우 가 그 무공을 소유한다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고 따라서 명성이 높이지게 될 것이오. 우리는 그야말로 고대의 천룡사의 명성마저 이어받는 것이 아니겠소?" "아니 정말로 그 육맥신검이 나타나기라도 했나?" "제가 남황의 한 오지에서 무공을 연구하고 있었을때 우연히 적염동(赤 炎洞)이라는 한 문파에 그 육맥신검경(六脈神劍經)이 전해내려오고 있다 는 것을 알게 되었소" "뭐라구!" "과거 대리국이 멸망할 때에 그 무공을 터득하고 있었던 사람이 원나라 사람들의 추격을 피해서 남황으로 가게 되었는데그 적염동에 이르러 미 처 중원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그 비급을 남겼던 모양이오. 본래 그 무공 은 특이한 지력이 뒷받침이 되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곳의 사람들도 아직 그 무공을 터득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고 했소." "그렇다면 설령 우리가 그것을 얻게 둢a고 해도 필요없게 되지 않겠는 가?" "그렇지는 않소. 비록 우리가 그것을 터득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그것 이 본파에 있게둢a면 상징적인 성과를 거둘 수가 있을 것이오. 게다가...... 이 육맥신검의 기초가 되는 선천공(先天功)의 내공심법과 일양지(一陽指) 의 공력은 육맥신검과는 달리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해졌는데그것이 근래 에는 황산(黃山)의 성수곡(聖手谷)에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는 사실 을 나는 확실히 알게 되었소." "하지만...... 황산의 그 성수곡은 워낙에 신비로운 곳일 뿐만 아니라 무 공이 기이하게 높아서 설령 소림사나 무당파와 같은 무림의 태산북두라 고 할지라도 감히 시비를 걸지 못한다고 하지 않는가?" "물론 우리가 감히 그들에게 시비를 걸 수는 없소. 그리고 또한 그들의 위치를 억지로 찾아낸다는 것도 거의 불가능한 일이지. 하지만 이는 마치 먹이를 놓아두면 참새가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는 이치와도 같이우리가 육맥신검경을 보과하고 있게 되면 필시 성수공의 사람이 와서 한번 보자 고 할 것이 틀림이 없소. 왜냐하면 그들의 무공과 육맥신검은 서로 상통 하는 점이 있기 때문에 무학을 연마하는 사람으로서 그냥 소홀히 넘길 수가 없게 되기 때문이오." (.......) "우리는 다만 그 검경을 깊숙히 보관하고 있기만 하면 만사가 형통이라 는 것이오. 그랬다가 은근히 그 소문을 흘리게 되면 성수고에서 사람이 올 것이니우리는 미리 육맥신검경의사본을 하나 만들어 두었다가 그자에 게 선청공과 일양지의 내용이 들어 있는 비급과 서로 교환하자고 하는 것이오. 그렇게만 둢a면 실로실로 우리의 무공은 과거의 천룡사의 모든 무공을 이어받는 것이 되지 않겠소?" "하긴 그렇군. 하지만 그 육맥신검이 그렇게도 훌륭한 무학이라고 한다 면 다른 곳에서도 필시 탐을 낼 것인데 우리가 과연 성공적으로 그것을 입수할 수 있을까?" "현재 직염동에 그것이 있다는 사실은 거의 알려지지 않은 극비의 사항 이고 또한 우리가 은밀하제 거사를 한다면 성공하지 못할 것도 없소. 아 니 나는 이미 곰곰히 따져보았는데 이 일에서 우리가 성공할 확률은 무 려 구할이나 되는 것이었소. 그것은...... 적염동에는 현재 태양신공(太陽神 功)이라는 새로운 무공을 연마하고 있는 모양인데 그것을 높은 경지에까 지 연성하기 위해서는 남황의 태양곡(太陽谷)이라는 곳에서 난다는 화령 선과(火靈仙果)라는 과일이 필요하다는 정보를 나는 입수하게 되었소." (.......) "그들은 이 육맥신검경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소용이 없는 터에 우리가 만약 그 귀하다는 화령선과를 가져다 주면서 서로 교환하자고 한다면 아 마도 그들이 싫다고 할 이이유가 별로 없을 것이오" "그러나 내가 듣기에도 화령선과는 그 태양곡의 보물이어서 결코 쉽게 구할 수가 없다고 하던데 그것 역시 가능할까?" "흐흐흐물론 그것은 결코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통하지 않는 것이오. 우 리가 만일 아무런 대비도 없이 태양곡으로 가서 그것을 구하려고 한다면 태양곡의 사람들에게 당하기가 십상인 것이고또한 우리가 설령 그것을 구해가지고 왔다고 하더라도 만일 적염동에서 필요하지 않다고 한다면 그것으로 허탕을 친 것이 아니겠소? 결국 우리가 사용해야할 방법은 허 허실실의 모계인 것으로......" 청아의 말은 거기에서 문득 끝나버리고 말았다. 그녀들은 그야말로 실감을 더하기 위해 사도백위와 사도중맹의 얘기 중 에서도 음산한 웃음소리나 떨리는 어조까지 세밀하게 흉내를 내어 말했 기 때문에 비록 그녀들의 음성이 워낙에 맑고 고와서 음산한 웃음소리는 은방울이 구르는 듣기 좋은 소리로 변하고 말았지만 그런대로 훠하게 당 시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게 해주었다. 비록 가장 중요한 고비에 이르러 느닷없이 말이 중단 것이 서운하기는 했지만 이제까지 들려온 말로는 충분히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었 다. 백리자성은 기실 이 두 자매의 두뇌가 지극히 총명하다는 것을 알고 있 었기 때문에 그녀들이 도중에 그들의 얘기를 잊어버렸거나 아니면 공력 이 부족해서 얘기를 미처 못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마도 청아의 얘기가 갑자기 중단 것인 피치못할 이유가 있었기 때문 일 것이며십중팔구는 그들이 육성으로 말하다가 중요한 부분에 이르러 전음으로 말하기 시작했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되었다. 홍아와 청아가 만일 이 상태에서 물러갈 생각이었다면 다시 천리전성으 로 몇마디의 말을 더했을 것이지만 계속 아무런 말도 첨가하지 않고 침 묵을 지키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를 불러서 뭔가 묻고 싶은 말이 있는 모양이었다. 백리자성은 이에 미소하며 천천히 천리전성이 들려온 방향인 거시로 향 했다. 홍아와 청아는 과연 거실의 탁자를 마주보고 앉아서 차 한잔을 마시고 있다가 백리자성을 보고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혹시 저희가 공자님을 괴롭혀드린 것은 아닌가요?" 홍아의 말에 백리자성은 담담하게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도 마침 잠이 오지 않던 차에 재미있게 그 얘기를 들었다. 헌데 너희 들은 아마도 내게 묻고 싶은 것이 있는 모양이구나." 백리자성이 탁자의 앞에 자리하자 홍아가 미소하며 그의 앞에 하나의 찻잔을 가져다 놓고 찻물을 따라준 다음에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저희는 항상 공자님의 앞에서는 어린아이와도 같아서 궁금한 일 투성 인 걸요." 백리자성은 자신의 앞에 놓인 강남에서 가져온 푸른빛의 용정차(龍井茶) 로 만든 찻물을 한모금 마신 뒤에 입을 열었다. "자그럼 어서 궁금한 것을 물어보아라"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홍아가 먼저 입을 열어 말했다. "그 육맥신검이라는 것은 정말로 그렇게 대단한 것인가요?" 백리자성은 미소하며 대답했다. "나는 선친이 남긴 서책에서 그런 무공에 관한 내용을 읽은 적이 있다. 그 육맥신검이라는 것은 바로 금속으로 만들어진 병기를 말하는 것이 아 니라 일양지라는 지력을 마치 날카로운 검기처럼 운용하는 일종의 무형 검기(無形劍氣)를 말하는 것이다.." 홍아가 다시 물었다. "그럼 육맥신검이라는 것은 이름 그대로 여섯 가지의 검기를 말하는 것 이겠군요?" 백리자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육맥(六脈)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십이정검 가운데의 여섯 개의 맥그러 니까 손가락으로 통하는 수태음폐경(手太陰肺經)수양명대장경(手陽明大腸 經) ,수소음심경(手小陰心經)수태양소장경(手太陽小腸經)수궐응심포경(手 厥陰心包經)수소양삼초경(手小陽三焦經)을 말하는 것으로육맥신검은 이들 의 손가락에 있는 혈도들인 소상혈(小商穴)상양혈(商陽穴) 소충혈(小衝 穴)소택협(少澤穴)중충혈(中衝穴)관층혈(關衝穴)로 지력을 검기처럼 날카 롭게 변화시켜 쏘아보내는 것이므로 모두 여섯 종류의 무형검기라고 말 할 수가 있지." (.......) "이 여섯 종류의 무형검기들은 각기 다른 성질을 띠고 있기때문에 그 검법 역시 다르기 마련인데만일 내공력이 뛰어나서 이 여섯 종류의 검기 를 모두 사용할 수가 있다면 실로 천변만화(千變萬化)하는 초식과 무서운 위력을 발휘할 수가 있다고 할 수가 있겠지." 홍아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놀라서 안색이 변하며 말했다. "그래서 그 사도가문의 형제들이 기를 쓰고 얻으려고 하는군요. 그들의 쾌검술이 아무리 빠르다고 해도 이 무형검기로 그저 한번 내뻗는 것보다 빠를 수가 있겠어요?" 이번에는 청아가 입을 열어 질문을 던졌다. "그 육맥신검은 정말로 과거 대리국 천룡사의 진산절예였나요?" 백리자성은 웃으며 대답했다. "그 말은 사실이다. 이미 수백년이나 흘러갔지만 당시에는 이 무공으로 천룡사는 강호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지." 홍아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그렇다면 공자님의 말씀은 그 무공으로는 당금의 강호에서는 그다지 빛을 보지 못한다는 말씀인가요?" 백리자성은 가볍게 고개를 내저었다. "무공이라고 삼척동자에게 당할리가 없는 것이지만 그렇게 큰 차이가 없는 한은 상대적인 여건에 의해서 빛나게 되는 것이다. 원래 이 무형검 기라고 하는 것은 무공이 최절정의 경지에 이르러 유실반허(由實返廬) 자 진귀박(自眞歸撲)하게 둢a면 다른 특별한 방법이 없다고 해도 능히 발출 할 수가 있는 것이지만당시에는 무공의 보급이 매우 저조하여 실로 그러 한 경지에 도달한 사람이 드물었다." (.......) "실상 대리국의 천룡사에서도 기실은 이 육맥신검을 완전히 터득한 사 람이 없었을 정도였다. 그러나사실 천하에 진실한 고수가 없었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아서 그런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대로 존재하여 속세를 버리 고 신선처럼 은둔하여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청아가 말했다. "그러니까 중간 정도의 무공을 터득한 사람이 없었다는 말씀이시군요?" 백리자성은 미소하며 대답했다. "이 육맥신검을 그저 중간정도의 무공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지. 가 히 말 그대로 최절정의 무공이라고 해야 되겠지. 물론 그 검경을 배우게 되면 무공이 최절정의 경지에 도달하지 않더라도 능히 무형검기를 발황 할 수가 있으니 유리해질 것이지만 당금의 무림에는 진실로 최절정의 경 지에 도달햐 사람들이 제법 많이 있고 그 이상의 사람들도 있다. 따라서 당금에 이르러서는 과거와 같이 육맥신검을 터득하더라도 상대적으로 그 위력을 떨치지는 못하리라는 것이다." 청아가 다시 물었다. "하지만 역시 점창파라면 그것을 얻게 되면 도움을 받게 되지 않을까 요?" 백리자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만일 점창파가 그 비급을 입수하고 완전히 터득하게 둢a면 그 위세는 수배나 증가하게 될 것이다." (.......) 이어 백리자성은 두 자매를 돌아보며 미소와 함께 말을 이었다. "내가 너희들에게 각기 전수한 구양신공(九陽神功)과 구음신공(九陰神 功)은 본래 무공이 최절정의 경지에 도달할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 나 만일 너희들이 각기 신공들을 대성하고 나서 다시 천지양극귀원공(天 地陽極歸元功)을 연성하게 되면 능히 그 무공이 최절정의 경지에 도달할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홍아와 청아는 그렇지 않아도 내심 자신들의 무공과 육맥신검을 비교해 보고 있었는데 백리자성의 그 말을 듣고는 절로 기쁜 마음이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백리자성은 스스로 자신은 점차로 시들어가고 있는 상태인데 그녀들은 이와 같이 발랄하게 미래에 대해서 희망을 걸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다 소 기분이 우울해졌으나 내색하지 않았다. 홍아가 웃으며 말했다. "저희들의 자질은 심히 우둔하여 겨우 절정의 무공도 아직 완전히 성취 하지 못하고 있는걸요. 하지만 우리가 그 천지양극귀원공을 완성하여 최 절정의 경지에 도달하게 되면 자연히 육맥신검을 배운 사람보다도 낫게 되지 않을까요?" 백리자성은 그녀들이 점창파의 사람들을 의식하고 무공방면에 있어서도 그들에게 뒤지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을 알고 웃으며 대답했다. "너희들의 자질은 실로 훌륭한 편이니 우둔하다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 다. 너희들의 무공은 이미 일류의 경지를 넘어섰으니 머지 않아서 절정의 경지에도 오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설령 너희들이 나중에 최절정의 경지 에 오르게 되더라도 그 육맥신검을 얕보아서는 결코 안둢a. 이 육맥신검 은 비록 최절정의 경지에 오르지 않은 사람에게도 무형기검을 쓸 수 있 도록 하며 그 내용이 지극히 심오하지만 가장 정통적인 무공이기 때문에 설사 최절정의 경지에 오른 사람일지라도 능히 상대할 수가 있게 하는 것이다." 기실 이 말은 백리자성이 나중의 일을 생각하여 마치 유언을 남기듯이 한 말이었지만 두 자매는 지금 다소 기분이 들떠서 미처 그의 뼈저린 심 정을 이해하지 못했다. 청아가 자신들이 앞으로 충분히 점창파의 사람들을 능가할 수 있다는 백리자성의 말에 얼굴이 다소 상기 상태로 입을 열어 물었다. "육맥신검은 반드시 일양지가 있어야만 시전이 가능한 것인가요?" 백리자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일양지를 일으키는 선천공은 천하에서 가장 순수하고 전통적인 내 공중의 하나라고 할 수가 있다. 그 두 가지의 무공은 서로 연결되어 하나 라도 빠져서는 안되는 것이지. 만일 이 일양지로 내상을 당한 사람을 치 료한다면 그 사람의 오장육부가 토막나거나 심맥이 완전히 끊어지지 않 은 이상은 불과 기경팔맥을 한차례 관통시키는 것으로 그 사람을 치료할 수가 있는 것인 만큼 육맥신검은 그렇게 순후한 지력으로 펼칠 수 있도 록 고안 것이므로 만일 다른 지력으로 그것을 펼치려고 한다면 자칫 신 경이 거슬러서 주화입마에 빠질 염려가 있는 것이다. 허나 만일 그 일양 지와 같이 순수하고 정통적인 지력이 또 있다면 그것으로 육맥신검을 펼 쳐도 괜찮다." 홍아가 문득 웃으며 물었다. "공자님께서는 물론 그런 지력을 알고 계시겠죠?" 백리자성은 미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선친께서 남기신 서책에는 분명히 그러한 것이 있었다" 비록 있기는 해도 백리자성이 몸으로 익히지는 못했다는 말이었다. 청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돌아가신 나으리나 공자님께서는 그런 무공들을 점창 파에 일러주지 않으셨죠? 그랬었다면 그들은 아주 좋아해서 나으리나 공 자님께 그렇게 푸대접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 아닌가요?" 그러나. 지금 청아가 말하는 것은 십중 팔구 맞다고 할 수가 있었고 최 소한 두곳의 사이가 호전되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백리자성은 고개를 내저었다. "세상의 일을 그렇게 오직 무공으로만 해결할 수가 있다면 얼마나 좋겠 느냐? 그들이 만약 스스로 알고 청해왔었다면 거절할 일은 아니지만단순 히 호감을 사려는 생각으로 무공을 건네준다면 그것은 더욱 커다란 화를 불러일으킬 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선친과 나는 그저 매사를 순리에 의거해서 행하려는 것이다" 이 사도중맹이나 사도중맹는 기실 매우 야심에 차있고 또한 선한 사람 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만일 그들에게 일부러 높은 무공을 전해줄 경우에 는 오히려 강호의 혈겁을 야기시킬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이에 홍아가 손벽을 치며 말했다. "저는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해요. 그들 사도가문의 사람들은 성품이 모 질고 사악하여 자신들의 막내동생인 돌아가신 마님을 정략적으로 이용하 려다가 안되니까그토록 못살게 굴어왔었죠. 따라서 그들은 공자님의 그 신비로운 무공들을 전혀 모르고 살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어이없는 일이 겠어요. 그들은 죄값을 받고 있는 것이라고요." 청아도 고개를 끄덕였다. "만일 그들이 좋은 뜻으로 돌아가신 나으리와 공자님을 대해왔었다면 이번에 굳이 그 육맥신검경을 구하러 갈 필요도 없이 점창파는 크게 발 전하게 되었었을 것이예요. 그것은 정말로 인과응보인 것 갈아요. 그러나 이제 그들은 육맥신검경을 얻게 되면 점차적으로 발전하게 되지 않을까 요?" 홍아가 다시 물었다. "그 황산의 성수곡과 화령선과를 복용하면 늦은 경지에 이르게 둢a는 얘기는 대체 어찌 거죠?" 백리자성은 대답했다. "확실히 황산에는 일단의 은둔자들이 살고 있는 성수곡이라는 곳이 있 는데 그곳의 지형은 신비롭고 흡사 전설의 무릉도원과 같아서 일반인들 은 결코 찾아갈 수가 없는 곳이다. 게다가 그들이 무공이 기이하게 높고 또한 그 원류가 일양지와 선천공의 무공에서 유래되었다는 것도 틀린 말 은 아니지. 더욱이 그들은 육맥신검에 대해서 다소간의 흥미를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 "화령선과를 복용하면 공력을 높인다는 태양신공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 전통적인 무공은 아니고 반쯤은 사술에 가까운 것이다. 만약 너희들이 각 기 구음신공과 구양신공을 극성으로 연성한다면 결코 그런 무공을 두려 워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백리자성이 다소 피곤한 듯 하자 청아가 마지막으로 물었다. "우리는 그들의 얘기를 끝까지 들으려고 했지만 중요한 부분에 가서는 그들이 전음입밀을 사용하는 바람에 들을 수가 없었어요. 대체 그 사도중 맹은 어떤 방법으로 그 육맥신검을 가져온다는 것일까요? 예상대로 사도중맹과 사도백위는 전음을 사용하였던 것이었다. 백리자성은 그 부분에 가서는 미소하며 고개를 저었다. "청아너는 가만히 보아하니 나를 마치 반쯤은 귀신처럼 생각하는 모양 이로구나. 내가 어떻게 그들의 속셈을 알 수가 있겠느냐?" 원래는 그저 신과도 같다고 말해도 좋을 것을 백리자성은 이번에도 자 신의 처지와 연관시켜서 귀신이라고 말한 것이었다. 청아도 이때는 그의 말뜻을 알고는 금새 안색이 붉어지며 눈시울을 붉 혔다. 이것을 보고 홍아가 웃으며 말했다. "청아! 그 사도중맹은 모계가 지독하고 성질이 악독하여 무엇이든 이용 하고 수단이라는 것은 모두 사용하려고 할 것인데 구태여 그러한 일까지 시시콜콜 알아야할 것이 뭐가 있겠니? 다만 그들은 이제 그 육맥신검경 을 입수해서 세력을 떨치게 될 것인데우리는 그것을 보면서 더욱 무공연 마에 정진하면 되는 거야." 제6장 청천벽력 백리자성이 하고 싶었던 말도 그와 비슷했기 때문에 미소하며 청아에게 말했다. "앞으로 그들이 검경을 입수해 온다고 해도 금방 무공을 터득할 수 있 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너무 그렇게 신경쓸 것은 없다. 너희들은 내가 가 르쳐주는 무공만을 배우게 되면 반드시 그들을 두려워하지 않게 될 것이 다" 기실 청아가 괴로와하고 있는 것은 백리자성의 신상에 관한 것 때문이 지 그런 것 때문은 아니었으나 청아는 이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알겠어요. 저는 이제 앞으로 무공을 열심히 연마하여 설령 공자님께 서 돌아가신다고 해도 공자님의 아이를 낳아서 훌릉하게 키우도록 하겠 어요." 순간 백리자성은 청아의 말을 듣고 심장의 피가 거꾸로 치솟는 듯 하여 그대로 의자 위에서 무너지듯 혼절하고 말았다. "앗! 공자님......" 홍아와 청아의 경악한 음성이 희미하게 멀어져가는 것을 느끼며 백리자 성은 깊은 혼수상태에 들어갔다. 백리자성이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것은 바로 다음날 오후였다 몸이 극도로 허약한 그는 다소 무리를 하거나 하면 곧잘 쉽게 혼절하곤 했는데 날이 지날수록 그가 한번 혼절하면 혼수상태에 들어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것은 바로 좋지않은 조짐이었다. 이렇게 나가다가 그가 한번 혼절하여 영원히 깨어나지 않게 되면 실로 그것이 죽음이 아니겠는가! 침상위에 누워서 잠시 눈을 뜨지 않은 채로 창문으로 스며드는 햇살의 감촉을 느끼며 백리자성은 문득 청아의 말을 듣고 그토록 크게 마음의 격동을 일으켰던 일에 대해서 내심 부끄럽게 생각했다. 비록 청아의 성품이 내성적이어서 한번 결심한 사항이 아니며 쉽게 말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은 백리자성이 응해주지 않는다 면 그녀로서는 도저히 할 수가 없는 일이기 때문에 신경 쓸 필요가 없었 던 것이었다. 기실 서로간에 알고 있기는 해도 청아가 그렇게 직접 말하기는 처음이 었고 또한 자신의 아이에 관한 얘기를 듣자 공연히 피가 끓어 올랐던 것 같았다. 그러나 이제 백리자성은 심장은 지극히 맑아져서 그는 앞으로 자신이 과연 얼 마나 더 오랫동안 살수가 있을지 알 수가 없으므로 일단은 사후를 위한 준비를 해놓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백리자성이 눈을 뜨자 눈앞에 홍아와 청아가 각기 얼굴에 수심이 가득 하고 눈물이 범벅이 되었으며 초췌한 모습으로 자신의 몸을 지켜보고 있 는 것이 들어왔다. 그러다가 홍아와 청아는 순간 백리자성이 깨어난 것을 알았는지 문득 표정이 크게 밝아져서 소리를 질렀다. "공자님! 깨어나셨군요!" 백리자성은 홍아와 청아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스스로 손을 움직여 품속에 있던 침통을 꺼내서 이곳 저곳의 혈도에 꽂고는 다시 누워서 안정을 취했다. 청아가 다시 흐느껴 울면저 달했다 "공자님 죄송해요. 공연히 저 때문에 공자님께서 몸을 상하시게 되어 서......" 백리자성은 미소하며 대꾸했다. "괜찮다. 너희들이 나를 그렇게 생각해 주는데 내 어찌 마음이 기쁘지 않겠느냐? 나는 실로 너희들에게 고마워하고 있다." ....... 몸이 허약한 탓에 회복되는 속도가 느려서 백리자성은 그로부터 무려 열흘이나 지나서 전과 같이 그의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있게 되었다. 이미 병상에 누워서 생각해둔 바가 있었기 때문에 백리자성은 몸을 움 직일 수 있게 되자 즉시 서재로 가서 수많은 서책들의 목록을 일일이 정하고 또한 그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을때 홍아와 청아가 그의 유서를 볼 수 있도록 해놓기 시작했다. 백리자성의 의도는 그 두명의 자매에게 자신이 세상을 떠난 수 있도록 용기와 힘을 부여해 주무 그리고 혹시 인연이 닿는 인재가 있다면 이곳 에 있는 서책들을 익힐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이 서재는 사실 매우 견고하게 지어져 있었고 지하와 지상의 두 층으로 이루어져서 기관의 작동에 의해 드나들 수 있게 있게 되어 있는 것이었 으므로그가 거기에 여러가지의 손질을 하자 나중을 위한 안배가 착착 이 루어지기 시작했다. 그러한 일을 하는 동안은 왠지 더욱 마음이 울적해지고 쉽게 피로감을 느끼게 되었는데 따라서 그가 대강 어느 정도 서재를 정리했을 때에는 다시 보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가고 있었다. 홍아와 청아는 그간에 외부인들의 치료보다는 그의 시중을 들고 그의 몸을 보살피는 일에 더욱 신경을 써서 매달렸고 또한 무공연마에도 억시 주력하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바쁜 틈을 타서 한 열흘쯤 전에 그녀들은 백리자성의 마음을 위 로해 주기 위해 밖으로 나가서 강호의 소식들을 알아가지고 돌아와서 그 에게 얘기해 주기도 했었는데 그녀들의 말에 의하면 과연 사도중맹이 점 창파로 돌아왔던 바로 그 다음날에 점창파의 주요원들이 은밀하게 남쪽 으로 향해 길을 떠났다는 것이었다. 그 인원들 가운데에는 사도백위와 사도중맹을 포함한 세 명의 원로그리 고 열다섯명의 장로들중에서 무려 열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 었다고 하니 점창파에서 이 일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가를 단적 으로 보여주고 있는것 같았다. 물론 그들은 가장 효과적인 운용을 위해 점창파의 일류고수들만을 데리 고 길을 떠난 것이니 나머지 대다수의 인원들인 34대의 제자들을 거느리 고 점창파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바로 다섯명의 장로들과 셋째인 사도숙 강이었다. 비록 그들 사도가문의 사람들이 이쪽을 향해 좋지 않은 생각을 품고 있 기는 하지만 백리자성은 그러한 말들을 듣는 순간 그래도 외삼촌들이라 는 혈육의 정을 생각하며 그들이 무사히 일을 마치고 돌아오기를 빌어주 었다. 백리자성의 생을 마감하는 안배에는 그 쪽 집안 사람들을 위한 내용은 들어있지 않았지만 그래도 가만히 생각해보면 가까운 곳에 있는 신공절 학들을 모르고 먼곳의 검경을 찾아가는 것이니 다소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었다. 혹시 사람의 일생이라는 것은 대부분이 이와같은 것이 아닐까? 백리자성의 마음은 이미 자신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과거의 다소간에 미워하던 감정들은 모두 사라지고 애틋하고 선량한 생 각들이 그의 심경을 지배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오늘 오전에 대강 서재의 정리를 마치고 나서 오후에 천천히 장 원의 주위를 거닐며 산책을 하고 있을 때였다. 백리자성이 몰두하고 있는 일이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었다는 것을 알 고 잠시 바람을 쏘이기 위해 혼자서 밖으로 나갔던 홍아가 돌아오더니 백리자성을 향해 놀란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공자님 야단났어요! 점창파의 사도가문이 어젯밤에 멸문지화를 당했대 요! 이게 대체 어찌 일인지...... 어찌 일인지 저도 잘 알수가 없었어요!" 홍아는 원래 매우 총명하고 기지가 뛰어나서 남의 앞에서 말을 더듬는 일이 없었는데 지금은 안색이 창백해진 채 말을 더듬고 있었다. 백리자성은 느닷없이 그런 소리를 듣고 매우 놀랐다. 처음에는 그는 쉽게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었지만 홍아의 표정이 결코 장난이 것을 알고는 경악하며 말했다. "그게 대체 무슨 소리냐? 어서 좀더 상세히 말해 보아라!" 홍아는 본시 이 백리자성이 사도가문의 사람들에 대한 혈육의 정을 떨 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다가 지금 그처럼 창백하게 굳어 진 안색으로 말하자 다소 두려운 마음에 공손히 입을 열어 대답했다. 백리자성은 일순 마음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끼고 허탈한 마음에 한숨을 내쉬다가 가볍게 몸을 휘청거렸다. 이것은 바로 청천벽력이라고나 할까 원래 사도가문의 사람들은 지나치게 패도적인 입장을 견지하여 최초 사 도붕이 장문인의 직위에 오를때에도 그러했었거니와 주변사람들의 원한과 미움을 많이 사왔었다. 그들은 계속 패도적인 기세로 그러한 원성들을 제압하고 크게 세력을 떨치려고 했었지만 백리자성은 내심 그들의 야망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것 이라는 것과 그 끝이 필시 좋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이미 내다보고 있었 다. 백리자성은 그들에게 몇 마디의 말을 해주고도 싶었지만 방들이 이쪽을 너무나도 좋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저 내심으로는 다소 불안 한 심정으로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던 중이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멸문지화를 당했다고 하다니! 비록 어느 정도의 결말이 좋지 않을 것을 예상하기는 했어도 실로 이와 같은 참극이 벌어지게 될 줄은 백리자성도 정말 몰랐었다. 한달쯤 전에 그들이 당당하게 위세를 부렸던 것을 생각한다면 이러한 결과는 마치 인생의 허망한 모습을 역설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실로 인생의 부귀영화와 권세는 한낱 뜬구름이나 파초의 잎처럼 허망하 지 않을 수가! 대체 어떻게 되서 그와 같은 사태가 벌어졌으며 현재의 정황은 어떠한 것인지 자세하게 알수는 없었지만 백리자성은 이 일이 스스로도 어느 정 도는 예상하고 있었던 일이라서 더욱 마음에 심한 괴로움을 느꼈다. 그는 자신을 비롯하여 모든 인간의 우매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고 있 는 것 같아서 실로 깊은 비탄에 빠져들었다. "공자님!" 홍아와 청아가 옆에서 바라보고 있다가 그가 다시 혼절할것 같아서 급 히 몸을 부축하며 소리쳐 불렀다. 이에 백리자성은 눈을 뜨고 정신을 차리며 천천히 고개를 흔들었다. "나는 괜찮다. 그러니 우리는 어서 점창파로 가 보기로 하자." 백리자성은 자신의 불우한 처지 때문에 요사이 더욱 마음에 비감이 넘 치고 또 한 감상적으로 되어 있었다. "그들이 우리를 쫓아내지 않을까요?" 홍아와 말에 백리자성은 고개를 저었다. "설령 문전박대를 당한들 그게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우리는 그들의 영전에 가서 조의를 표해야 하지 않겠느냐?" 홍아와 청아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예공자님!" 이어 홍아와 청아가 말과 마차를 준비하는 동안에 백리자성은 가까운 풀밭에 앉아서 스스로 금침을 놓아서 마음을 안정시키고 막혔던 기혈을 통하게 했다. 백리자성은 조금전에 다시 혼절하여 병상에 누울뻔 했었다. 그랬었다면 그 사도가문의 사람들의 영전에 찾아가 보지도 못했을 것이 아니겠는가 금침을 놓으며 백리자성은 스스로 자신의 심경이 지금 매우 섬세하고 여린 감상으로 가득차 있어서 쉽게 충격을 받는 것이니자신의 몸을 좀더 보존하기 위해서는 우선 마음을 보다 강인하게 하고 감정을 절제하지 않 으면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이윽고 마차를 타고 가면서 백리자성은 청아에게 마차를 몰도록 하고 홍아를 옆에 불러서 물었다. "대체 남황으로 갔던 사람들이 어떻게 해서 그렇게 모두 죽어서 돌아오 게 되었다고 하더냐?" 홍아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들리는 얘기에 의하면 남황의 태양마교(二太陽魔敎) 사람들에게 그렇게 당했다고 그러기도 하고......" "태양마교?" 홍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그런데 이상한 것은 바로 어젯밤에 벌어졌던 그 멸문지화에 관한 것 이예요. 사도숙강등이 당한 수법은 바로 점창파의 절기인 산화장(散花掌) 이었다는 거예요." "산화장이라고?" 백리자성이 놀라와 하자 홍아는 덧붙여 말했다. "그래서 결국 점창오수아니 그 점창오수라는 사도뢰가 이미 변을 당했 으니 이제는 점창사수가 되었겠지만그 점창사수의 하나인 산화일장 이모 화가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어 지금 조사를 받고 있다고 해요. 음...... 그 는 바로 전대 16대 점창장문인이었던 산화신수 이운룡의 유일하게 남은 혈육이었다면서요? 사람들은 그가 미리 기회를 노리고 있다가 증조부의 복수를 한 것 같다고 해요." 백리자성은 다소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 그가 시인을 했다던가?" 홍아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시인하지 않아데요. 그는 또한 자신이 그런 일을 저질렀다면 그야 말로 공공연히 발표했을 것이라고 했다고 하더군요. 사실 현재 점창파에 서 산화장을 연수한 사람이 한 두명이 아니고또한 그에 대한 뚜렷한 증 거도 없기 때문에 완전히 그를 흉수로 간주하지는 못하는 모양이예요" (......!) 백리자성은 홍아의 말을 듣는 순간 문득 점창파에는 지금 참혹한 참변 의 상황뿐만 아니라 이해하기 어려운 의혹의 먹구름이 깔려 있다는 것 을 알게 되었다. 그는 아직 그곳에 도착하지 않은 이 순간에도 그러한 대강의 읠췅i훤하 게 내다볼 수가 있었다. 세간의 의심과는 달리 그 산화일장 이모화는 미간이 청수하고 맑아서 결코 오십년 전의 한을 풀기 위해 점창파에 들어온 것도 그리고 또한 그 러한 끔찍한 일을 벌일 사람도 아니었다. 오로지 오랫동안 묵은 원한을 깨끗하게 지워버리고 과거 증조부가 이룩 하였던 그 영웅적인 기상을 다시 한번 자신의 능력으로 재현해 보기 위 해서 그는 점창파에 들어온 것이라는 것을 백리자성은 누구보다도 잘 알 고 있었다. 실로 그와 같은 인물은 드문 것이며 정녕 그와 같은 생각을 할 수가 있 는 사람은 그렇게 끔찍한 참변을 일으킬 수가 없는 것이다. 백리자성은 이번에 자신이 사도가문의 영전에 가서 조의를 표함은 물론 그들의 죽음에 얽혀있는 의혹에 대해서 조사를 해봐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문득 생각나는 의문이 있어서 입을 열어 홍아에게 물었다. "참사도백봉(司徒白鳳)이 돌아와서 일을 처리하고 있다고 한 것 같은데 대체 어떻게 그렇게 빨리 돌아올 수가 있었다고 하더냐?" 사도백봉은 바로 사도숙강의 외동딸이고 사도표의 여동생이었다. 그러니까 백리자성에게는 외사촌 동생이 되는 것이고그녀에게 있어서 백리자성은 고종오라버니가 되는 셈이었다. 이 사도백봉은 여자아이가 드문 사도집안의 여식으로 태어나서 점창파 의 무공을 배우지 못하고 따로 무산의 신녀문으로 보내져서 무공을 배우 도록 되었던 것이었는데기실 점창산에서 무산과의 거리는 수천리에 해당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녀가 불과 하루만에 나타나서 일을 처리하고 있다 다소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설령 가장 빠른 방법으로 연락을 해서 그녀가 쉬지 않고 말을 타고 달 려온다고 해도 최소한 열흘 이상은 걸려야 했을 것이었다. 남황에서 처음 사도백위 등의 죽음을 본 사람들이 빠르게 그녀가 있는 쪽으로 연락을 했다고 하는 경우는 당시 그녀의 부친인 사도숙강이 점창 파에서 버젓이 살아 있었기 때문에 타당한 것이 아니었고 상식적으로 수긍이 가지 않는 일일 것이다. 가장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어젯밤에 사도숙강이 의문의 죽 음을 당한 이후에 누군가가 급히 알려서 그녀가 돌아오게 것이라고 할 수가 있겠는데대체 그녀의 무공이 신의 경지에 도달하지 않은한 어떻게 수천리의 거리를 한달음에 달려올 수가 있었겠는가? 물론 아무래도 그 사도백봉이 사도가문을 멸문시킨 흉수가 될리는 없는 것이겠지만 사건의 실마리는 간혹 그와 같이 엉뚱한 곳에서부터 풀려나 오는 경우가 있으므로 백리자성은 이를 놓치지 않고 물어본 것이었다. 그런데 홍아의 대답은 정작 실망스러웠다. "글쎄요. 저는 너무나도 놀라서 미처 그런 점에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 에 물어보지도 못했어요." 백리자성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렇다면 어서 가서 직접 물어보면 되겠지." (......!) 이미 초여름의 날씨에 접어들어서 점창산의 풍경은 녹음이 짙푸르게 우 거져서 뜨거운 햇살을 받아 조금씩 사그러들고 있는 상태였다. 점창파의 분위기는 아주 조용했고 예상대로 너무나도 끔찍한 참변을 당 한 것이라 사방에서 감히 조문을 하러 오는 사람들도 별로 없어서 제자 들의 표정이 더욱 침통하게 보이도록 만드는 것 같았다. 홍아와 청아는 내심 문전박대를 당하게 되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이 일 었지만 다행히 마차가 정문에 이르자 그 곳을 지키는 제자들이 백리자성 의 신분을 확인하고 아무말도 없이 안으로 들여보내 주었다. 아제 사도형제들이 모조리 죽어서 백리자성을 박대하는 사람도 사라진 것 같았다. 백리자성은 마차를 정문을 조금 지난 곳에 세워놓고 일찌감치 홍아와 청아의 부축을 받아가면서 고인들의 빈소가 차려져 있는 중악전으로 천 천히 걸음을 옮겨갔다. 대략 이십오 육일 전에 사도중맹이 돌아와서 사도백위는 이곳에서 생일 상을 받고 있다가 그것을 동생을 환영하는 잔치로 바꾸어서 즐기곤 했었 는데 지금 이곳은 당시와는 너무나도 다른 무거운 분위기의 빈소로 화해 있었다. 옛말에 상전벽해라고 하기도 했지만 지금의 이 현실의 변화는 그것보다 도 더욱 극심하여 실로 인생의 무상함을 역설해 주고 있는것 같았다. 무상함을 역설해 주고 있는것 같았다. 수많은 제자들이 침통한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있었고영전이 준비되어 있는 빈소의 앞에는 지금 백색의 소복을 입고 있는 한 명의 소 녀와 다섯명의 2대의 장로들이 각기 좌우로 서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 데 그 다섯명의 장로들은 사도백위등을 따라갔다가 변을 당한 열명의 장 로들을 제외한 나머지 점창파의 원로들이 되는 셈이고그리고 백색의 소 복을 걸치고 있는 이제 나이 십팔세 정도의 아리따운 용모의 소녀는 바 로 사도백봉이었다. 백리자성이 얼핏 보기에도 이 빈소의 분위기는 다소 기이했다. 사도백봉은 그 해맑고 아름다운 얼굴에 전혀 눈물을 흘리지 않고 싸늘 한 시선으로 멍하니 영전의 뒤에 있는 이십여 개의 관들을 바라보고 있 었고 따라서 그녀의 앞에 서 있는 다섯명의 장로들도 곡을 하자니 어색 하고 해서 그저 망연한 표정을 짓고만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극도의 슬픈 분위기 속에서도 숨막힐 듯한 기상과 살기를 느낄 수가 있게 하는 광경이었는데 물론 그러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는 장본 인은 사도백봉이었다. 이 사도백봉은 원래 강인한 사내들이 있는 집안에서 태어난 여식이었기 때문에 자연히 그 강인함이 몸에 베어버린 소녀였는데 그녀가 한과 살기 가 어린 시선을 하고 있자 장내의 분위기가 괴이하게 변모하고 있는 것 이었다. 백리자성은 연무장을 지나오면서 멀리서 부터 그러한 그녀의 표정을 읽 을 수가 있었는데 한편으로는 불쌍한 느낌이 들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대견스럽다는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만일 여자가 아니더라도 마음이 조금 허약한 사람이었다면 저런 자리에 저렇게 독기를 뿜어내며 서 있을 수는 없었을 것이었다. 홍아와 청아는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여 이번에도 역시 얼굴에 검댕이 칠을 하여 남자시종으로 변장하고 있었는데 문득 백리자성이 그녀들과 함께 빈소에 가까이 이르자 멍하니 뒤쪽의 관들을 살펴보고 있던 사도백 봉이 갑자기 그가 오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냉막한 두 눈에 한줄기 의 이채를 떠올렸다. 그것은 혈혈단신 고아와 같은 외로운 처지에서 드디어 한명의 친인척을 대하게 되었다는 다소간의 안도감과 같은 것이었다. 워낙 두집안의 사이가 벌어져 있어서 백리자성과 사도백봉은 사촌지간 이면서도 서로간에 거의 왕래가 없었는데 과거 그녀가 어렸을적에 한번 보았던 백리자성은 지금 그녀의 용모는 매우 빼어나게 수려해지고 사도 숙강의 딸이어서 그런지 아주 보기드문 미녀가 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가 있었다. 백리자성과 이 사도백봉은 아직 한번도 대화를 나누어 보지 못했고 또 한 그리 친한 사이도 아니었지만그녀의 그러한 눈빛을 보는 순간에 이미 백리자성은 그녀가 자신에게 깊은 신뢰감과 혈육의 정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은 그녀의 처지가 지금 말할 수도 없이 외롭기 때문일 것이다. 백리자성은 내심 가슴이 크게 뭉클해 지는것을 느껴서 마음 같아서는 금방 달려가서 그녀에게 말을 건네고 싶었지만 지금은 엄숙한 빈소에 서 있는 것이라 감히 그러지를 못했다. 제7장 괴이한 시신들 백리자성은 홍아와 청아를 데리고 먼저 영전에 다가가서 향을 피우고 절을 올린 다음에 그제서야 공식적으로 사도백봉의 얼굴을 보았다. "얼마나 마음의 고통이 심하신가?. 봉황누이." 이 봉황누이라고 하는 것은 과거 사도가문이 세력을 떨칠 때 거의 유일 한 가문의 여식으로 태어난 사도백봉을 사람들이 유난히 금지옥엽처럼 여겨서 불러주었던 애칭이었다. 백리자성도 오랜만에 그녀를 만나게 되자 불현듯 과거에 들었던 그 애 칭을 부르게 되었다. 사도백봉은 이미 두 눈의 이채를 지워버린 후였지만 그를 향해서 고개 를 돌린 후에 다소 냉막한 안색으로 대꾸했다. "천만에요. 나는 고통스럽지 않아요. 진실로 고통스러운 사람들이 있다 면 바로 저곳의 분들이 아닐까요?" 사도백봉은 손가락을 들어 영전 뒤에 모셔져 있는 이십여 개의 관들을 가리켰다.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표정에는 너무나도 냉막한 나머지 일종의 귀기 (鬼氣)마저 어려있는 것 같았다. 원래 서로간에 얼굴을 본 다음에는 마주 절을 하게 되어 있는 것인데 이들 상제들은 비단 곡도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마주 절을 하지도 않고 그저 뻣뻣하게 서 있을 뿐이다. 백리자성은 어색한 기분 대신에 심하게 쓰라려 오는 마음의 고통을 느 끼고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예로부터 죽은 사람은 아무런 감각도 느낄 수가 없다고 하였네. 그들이 아직 살아 있다면 마음이 괴롭겠지만이제는 살아있는 사람들이 정신을 차려서 보다 잘 살도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 말은 백리자성의 진심어린 충고였다. 그는 스스로 불운하여 한창 젊은 나이에 항상 죽음을 의식하고 살아야 하는 처지이기 때문에 건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부러웠고 그만큼 그 녀에게 열심히 살라고 말해주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도백봉은 그말에 오히려 화를 내며 두 눈에서 시퍼런 살광을 발했다. "당신! 당신은 알고보니 억울하게 죽은 한을 잊을 수가 없어서 구천(九 泉)을 떠돌게 둢a는 귀신이 있다는 얘기를 들어보지도 못했나요?" 백리자성은 그녀가 갑자기 그처럼 험악하게나오자 내심 당황하게 되어 안색이 붉어졌고 이대로 더이상 그녀와 계속해서 말다툼을 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내가 말을 잘못한 것 같구려 외사촌 누이. 확실히 가장 고통스러운 사 람들은 죽음을 당한 사람들일 것이요. 만일 그들에게 억울한 점이 있었다 면 우리들 살아있는 사람들은 당연히 그 의혹을 풀어주어야 할 것이오." 이에 사도백봉은 다소 누그러진 눈빛이 되어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당신에게 그 의혹을 풀 수 있는 방법이라도 있나요?" 백리자성은 자신의 두 눈을 예리하게 쏘아보는 그녀의 눈빛에 온통 음 산한 살기가 가득 들어있는 것을 보고 문득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꼈다. 백리자성은 한숨을 내쉬어 마음을 진정시키며 대답했다. "비록 내가 우둔하기는 해도 여러 사람이 함께 생각하다 보면 어떤 해 답이 나오지 않겠소?" 사도백봉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좋아요." 이어 밖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손짓으로 주위에서 움직이고 있던 제자들 을 몇 명 불러서 이렇게 것이었다. "어서 가서 그를 이리로 데려오도록 하세요." 백리자성은 이 사도백봉이 지금 같은 가혹한 시련속에서도 자신의 위치 를 잃지 않으며 침착하게 아랫사람들을 부리고 있는 것을 보고 내심 감 탄했다. 그러나 뒤이어 사도백봉이 보냈던 제자들이 데려온 사람이 다름아닌 바 로 전날 사도중맹에게 인사를 하는 산화일장 이모화임을 알고는 내심 놀 라움을 금치 못했다. 과거의 그는 아주 깨끗하고 화려한 옷차림으로 멋들어지기 그지없는 모 습이었으나 지금은 전신의 혈도가 제압당하고 무거운 쇠사슬로 꽁꽁 결 박당해 있는 아주 초췌한 모습이었다. 다만 초췌한 가운데에서도 아직 준미수려한 오모가 살아있고 미간이 맑 고 청명한 것이 과거의 그임을 알아보게 했다. 백리자성은 즉시 사도백봉의 계획을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그녀는 기실 이렇게 빈소를 차리고 자신을 도와줄 사람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막상 백리자성이 나타나자 즉시 판단을 내려서 이순간 에 그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의혹을 풀려고 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순간적인 빠른 상황판단과 강한 결단력이 없이는 하기 어려운 일이므로 백리자성은 그녀의 그와 같은 강렬한 기질에 다시 한번 감탄하 지 않을 수가 없었다. 기실 지금 상태에서 그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곤 오직 백리 자성 밖에는 없을 것이며 만일 그녀가 격식을 생각하여 사건을 조사하는 것을 뒤로 미룬다면 백리자성이 다시 자신의 거처로 돌아가버릴지도 모 르는 일이었고 또한 흉수가 이 가운데에 있는 짓이라면 미리 모든 준비 를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제아무리 교활한 흉수라도 설마하니 이제 겨우 십팔 세 정도의 가녀린 소녀가 이런 빈소에서 대담하게도 사건을 조사하리라고는 생각하 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이 일은 다소 무리한듯 하면서도 가장 효과적인 임기응변이라고 아니할 수가 없었다. 실로 이러한 강렬한 기질과 판단력 등은 많은 사람들을 거느리는 지도 자들이 갖게 되는 특질들인데 사도백봉은 어려서부터 부친과 백부들의 행동을 보고 자라왔기 때문에 절로 그러한 기질들이 심어졌던 모양이었 다. 이모화는 자신이 제자들에 의해서 빈소의 앞에 끌려와 있는 상황인데도 결코 무릎을 꿇지 않고 오연하게 버티려고 했다. 그것을 보고 한쪽에 서 있던 장로들 가운데 한 사람이 소리쳤다. "이곳은 장문인의 빈소이다. 어서 무릎을 꿇지 못하졌느냐?" 백리자성은 아직 사도백봉과 대화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장로들과도 예의를 갖추지 못했었는데 그런 말을 듣고는 그 장로의 얼굴을 한차례 바라보았다가 다시 시선을 이모화에게 던졌다. 이모화는 제자들에 의해서 억지로 무릎이 꿇려졌지만 그래도 고개를 뒤 로 뻣뻣하게 젖히고 냉소하며 대꾸했다. "당신들은 나를 마치 흉수 취급을 하는데내가 만일 정말로 흉수라면 어 째서 이곳에 이렇게 서 있겠소?" 백리자성이 듣기에 그 말은 두 가지의 뜻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는 만일 흉수라면 이렇게 쉽게 잡혀서 끌려오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이요두번째와 바로 이와 같이 흉수의 취급을 하고 있는 한은 결코 빈 소 앞에 무릎을 꿇을 수가 없다는 의미였다. 백리자성이 보기에 그 말들은 하나도 이치에 어긋남이 없는 것이었고 또한 이모화의 모습이 그와같은 일방적인 가해에도 조금도 굴하지 않는 것이라 역시 이와 같은 사람은 드물 것이라고 생각하면 감탄스러워 했다. 일반적으로 준마는 오래 달려봐야 그 가치를 아는 것이고 사람은 어려 운 때를 당해야 그 진면목을 알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순간 장로들이 서 있는 자리에서 한줄기 인영이 번쩍하더니 어느새 이 모화의 앞으로 날아가서 발길로 다섯 번이나 그의 가슴을 걷어찼다. 그 사람은 다섯명의 장로들 가운데의 한 사람이었는데 그가 순간적으로 내지른 발길질은 비록 평범해 보이는 것이지만 어딘가 기묘한 현기(玄機) 가 깃들어 있는 것이어서 설사 성한 사람이라고해도 쉽게 피랄 수가 없 을 지경이었다. 퍼퍼퍼퍽 흡사 가죽부대를 두드리는 듯한 요란한 음향이 연달아 일어나면서 이모 화의 가슴부위의 요혈들이 일시적으로 점혈을 당해서 기혈이 역행하는 현상이 일어났다. 다른 사람들은 너무나도 빠른 순간에 일어난 일이라 미처 그 내용을 알 수가 없었지만 백리자성은 비록 무학을 익히지는 않았어도 통달해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사실들을 훤하게 알 수가 있었다. 이모화는 그 바람에 입으로 한바탕의 선혈을 내쏟았지만 비명을 지르지 않았고 여전히 뻣뻣한 고개도 숙이지 않았다. 백리자성은 실로 방금전에 그 장로가 펼친 점렬수법이 전신의 기혈을 역행시키는 것이라서 당한 사람은 마치 전신에 무수한 개미들이 물어뜯 는 듯한 엄청난 고통에 시달리게 것인데도 이 이모화라는 사람은 비멍소 리 하나 내뱉지 않는 것을 보고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다소 애석한 느낌이 드는 것도 어쩔 수가 없었 다. 과거 제16대 점창장문인이었먼 이운룡도 실은 지금의 이모화처럼 부러 질지언정 휘어지지 않는 고결한 인품의 소유자였다. 따라서 결국 그는 수많은 적들을 사방에 두게 되었고 나중에 누구도 그 를 위해 일을 조사하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다. 마치 그 당시의 경우처럼 지금 이모화는 설사 자신의 목숨이 사라진다 고 해도 이를 악물고 무모하게 저항하고 있는 것이니 대체적으로 이런 사람은 오래 살지 못하고 요절하기가 십상인 것이다. 여자의 경우에서 말하는 미인박명이라는 말과도 서로 상통하는 경우라 고 할 수가 있는 것이었다. 이 이모화와 같은 사람이 정말로 굴욕을 감수할 수 있는 참을성을 가지 고 좀더 사람을 포용할 수 있는 넓은 대인지심마저 가질 수 있다면 그야 말로 천하의 영웅으로 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지만 그렇게 하지 못 하는 것은 그야말로 그의 인간적인 한계인 모양이었다. 지금도 만일 어떤 의혹이 풀리지 않게 둢a면 그는 저렇게 헛되이 저항 하다가 덧없이 목숨을 잃게 되고 마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미 이모화가 흉수가 아니라는 것을 훤하게 알고 있는 백리자성은 그 가 만일 이번의고비를 무사히 넘기고 이번의 일을 거울로 삼아 훌륭한 스승의 문하에서 면 년간만 착실하게 마음의 수양을 쌓는다면 용모가 그 다지 요절할 상은 아니기 때문에 나중에 보다 훌륭해질 수가 있을 것이 라는 생각을 은근히 해 보았다. 그때 그 장로는 이모화가 여전히 고개를 쳐들고 버티고 있자 다시 번쩍 하는 순간에 그의 뒤로 신형을 날려 돌아가서 퍼퍼퍼퍽! 하고 대여섯 번 의 발길질을 해대니 우두둑 우두둑하는 등뼈가 어긋나는 소리가 연이어 서 들려왔다. 백리자성이 바라보니 실로 이 장로의 손속은 겉으로는 그저 평범하게 힘을 들이지 않고 발길질을 하고 있는 것 같았으나 기실은 그 수단이 매 우 음험하고 독랄하기 그지 없었다. 이번의 그의 발길질은 비록 등뼈를 부러뜨리는 것은 아니었으나 교묘하 게 발길질에 힘을 주어서 등뼈속을 지나는 중추신경들을 자극함으로써 극심한 통증과 함께 자칫하면 불구가 될 수 있는 잔혹한 상처를 입히고 있었다. 백리자성은 비록 이모화가 여전히 극심한 통증을 참으려 내색하지 않고 있고 또한 그 장로가 은밀히 그의 뒤에서 손속을 펼친 것이라고는 하나 그 자신이 천하에서 보기 드문 뛰어난 의술마저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아주 미세한 작은 움직임만 보아도 그 속에 들어있는 사정을 훤 하게 알수가 있었다. 그 장로는 아주 빠른 발길질로 이모화의 등뼈를 남김없이 탈골시켜 놓 은 다음에 다시 우장을 들어서 그 천령개(天靈蓋) 위에 올려 놓으며 엄숙 하게 소리쳤다. "네놈은 우리가 잡으려고 했을 때도 그와 같은 산화장을 써서 간악스럽 게도 반격을 했었지. 그것이 바로 네놈이 흉수라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 인 것이다. 대체 네놈이 일부러 본파에 들어와서 더군다나 굳이 산화장을 연성했던 이유가 어디에 있었겠느냐? 그것은 바로 오늘날도 같은 참극을 벌이기 위해서가 아니었더냐? 우리는 이미 돌아가신 장문인께서도 네놈 에게 특별히 경계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어디 이제 네놈에게 아직도 양심이 남아 있다면 어디 말을 해 보아라!" 이모화는 지금 말할 수가 있었다면 자신은 과거의 모든 은원관계를 떠 나서 다시 한 번 옛 조상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서 점창파로 들어왔던 것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을 것이나비단 그런 말은 지금의 상황에서 조 금의 설득력도 없는 것일 뿐만 아니라 이 순간 그는 극심한 통증을 참기 위해 오로지 이빨을 깨물고 있기에도 벅찬 상황이었으므로 단 한마디의 말이라도 내뱉을 수가 없는 상태였다. 따라서 이모화의 그러한 처지를 내다보고 이를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는 그 장로의 수단은 실로 교활한 것이라고 아니할 수 없었다. 그는 이모화가 이빨을 더욱 세차게 깨물뿐 대답을 하지 못하는 것을 보 고 다시 엄숙한 음성으로 소리치는 것이었다. "네가 만약 대답할 말이 없다면 우리는 네가 스스로 죄를 시인한 것으 로 생각하고 즉시 고인들의 영전에 너의 피를 뿌려서 제사를 올릴 것이 다. 너는 이 일에 대해서 아무런 이의도 없느냐?" 이모화는 대답을 하지 못하고 심하게 일그러진 얼굴에 싸늘한 냉소를 피어올렸다. 그것을 보자 그 장로는 즉각 우장을 들어 이모화의 천령개를 박살내기 위해 진력을 돋우고 힘차게 내리쳤다. 아니 그 순간에 싸늘한 여자의 음성이 흘러나와 그 장로의 손을 멈추게 했다. "정장로님! 그만 손을 멈추세요." 그 정장로라고 하는 사람은 그야말로 이번의 기회에 이모화의 목숨을 빼앗을 생각으로 악락한 독수를 펼쳤던 것이었지만 느닷없이 터져나온 사도백봉의 음성이 워낙에 차디차고 살기가 어려있어서 일순간 마치 등 골이 얼어붙는 듯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손을 거두게 되었다. "흥! 내 지금은 마음씨 좋은 사도소저의 체면을 봐서 네놈의 목숨을 몇 시간 더 연장해 주는 것이니 네놈은 깊이 참회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말이 끝나자 마자정장로는 다시 번쩍 신형을 움직여 자신의 자리로 돌 아갔는데 확실히 일파의 장로라는 신분에 걸맞게 그의 신법은 표홀하면 서도 기이한 것이었다. 백리자성은 자신의 지금 상황에서 그의 어긋난 뼈를 맞춰줄 수 없었지 만 그래도 극심한 통증 때문에 이모화가 금방이라도 혼절할 것 같아서 천천히 다가가서 마치 그의 몸을 조사하는 척 하면서 소매속에 숨긴 금 침으로 은밀하게 통증을 덜어줄 수 있는 그의 몇 군데의 혈도를 찔러 주 었다. 백리자성의 의술은 이미 신묘한 경지에 이를 있어서 상승의 무공으로 치료하는 것들을 제외하고는 천하에 그 적수가 없다고 할 정도였으므로 그렇게 빠르게 금침을 놓는 와중에서도 아주 정확하게 요혈을 찌를 수가 있어서 이모화는 즉시 통증이 태반이나 감소되어 일그러진 안면을 풀고 다소기이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백리자성은 일부러 그의 시선을 모른척 하고 금침을 다시 품속에 은밀 하게 갈무리 한 다음에 천천히 사도백봉 등이 서 있는 쪽으로 되돌아갔 다. 그러자 사도백봉은 냉랭한 시선으로 이모화의 얼굴을 한차례 바라보더니 백리 자성을 향해 입을 열어 묻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미 저 사람을 흉수라고 ,단정하고 있어요. 그런 점에 대해서 당신의 생각은 대체 어떻죠?" 백리자성은 웃으며 대꾸했다. "외사촌 누이. 나는 사실 제법 이름이 알려져 있는 의원이지만 그렇다고 죽은 사람의 시신도 보지 않고 그가 대체 누구의 어떠한 무공에 의해서 피살 것인지를 알아낼 수 있는 사람은 아니라오. 나는 방금 저 사람의 얼굴을 살펴보았지만 그의 얼굴의 고집스러운 성질만이 떠올라 있다는 것을 확인했을 뿐 아직 이 사건의 적정한 흉수가 누구인가는 알 수가 없 었소." 사도백봉은 싸늘한 음성으로 물었다. "그렇다면 시신을 보아야 하겠다는 말인가요?" 백리자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가령 시신이 부패되게 뇌면 그 흔적 또한 사라지는 것이기 때 문에 기왕이면 지금 당장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소." 순간 백리자성은 느낌으로 아까 이모화에게 독랄한 손속을 가했던 그 정장로의 눈빛에 기이한 이채가 흐르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만일 보통 사람들이라면 누구에게라도 이미 빈소가 마련되어 있는 선친 이나 존장들의 시신을 다시 꺼내서 보여주는 일을 꺼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좋아요!" 사도백봉은 고개를 끄덕인 연후에 즉시 주위의 제자들을 시켜서 영전을 한쪽으로 치우게하고 드러난 관들의 뚜껑을 열게 했다. 사도숙강 등이 모조리 몸살을 당한 이 상황에서 점창파의 윗사람들은 바로 옆에 서 있는 다섯명의 장로들일 것이지만 이 일은 그녀의 가문에 관련 문제이기 때문에 그들은 감히 나서서 말리지 못했다. 이 이십여 개의 관들은 비록 염을 하지는 않았지만 뚜껑위에는 각기 고 인의 이름들이 적혀 있었는데 제자들이 달려가서 관뚜껑을 여는 동시에 실로 말할 수 없는 악취가 사방으로 진동했다. 여러명의 제자들이 달려가서 한꺼번에 관뚜껑을 열어젖혔는데 그 심한 악취에 의해 어떤 제자들은 몸을 비틀거리며 쓰러지기까지 했다. 사람이 한번 죽으면 그 시신이 썩기 마련이고 따라서 송장썩는 냄새가 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일반의 사람들도 아니고 일개 무공을 배운 점창파의 제자들이 한낱 그러한 악취를 견디지 못하고 쓰러진다는 것은 다소 기이한 일이었다. 그러나 막상 의아한 마음으로 뚜껑이 열려져 있는 들은 일순 더욱 크게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시신들 이 이십여 구의 시신들은 그 모습이 심하게 변색되어 있거나 아니면 어떤 것들은 거의 썩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본래 산화장이라는 무공에 당한 사람의 몸에는 흡사 꽃무늬와도 같은 검은 손바닥 자국이 남게 되는 것인데지금 이 순간의 시신들의 모습에는 전혀 그러한 흔적들이 남아있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어떤 것들은 너무나 도 심하게 부패 나머지 내장이 다 드러나 보이고 있었고 또한 그 모습 들도 각양각색이었다. 좌우를 돌아보니 비단 사도백봉 뿐만 아니라 다섯명의 장로들 역시 이 게 대체 어찌 영문인지 알 수가 없어서 크게 어리둥절해 하는 표정이었 다. 기실 남황으로 가서 죽은 사람들의 시신은 이미 열흘 가까이나 되었으 니 다소 썩어들어간다고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놀랍게도 불과 어 젯밤에 죽었다고 했던 사람의 시신들 가운데 오히려 그것들 보다 더욱 심하게 부패되어 가고 있는 것들도 있었다. 이렇게 시신의 몸이 거의 내장까지 드러나 보일 정도로 심하게 부패되 어 가고 있는 상태라면 설령관뚜껑을 닫고 있었다고 해도 그 냄새가 사 방으로 진동했을 것이지만 원래 제자들은 미리부터 남황에서 옮겨온 시 신들이 다소 부패되어 있는 것을 보고 그 냄새를 줄이기 위해 부근에 많 은 향을 피웠으며 게다가 사도백봉의 표정이 너무나도 냉막하고 살기에 넘쳐 있어서 사람들은 당연히 흘러나오는 냄새를 의식하지 못했었던 것 이었다. "우라질 놈의 자식! 역시 그 무공으로 일을 저지르기에는 다소 무리라고 여겼더니 이제 알고보니 먼저 극독을 사용한 연후에 손속을 펼쳤었구나!" 아까 이모화에게 독수를 펼쳤던 정장로가 다시 이모학을 의식하고 하는 말이었다. 그것은 실로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시신을 잘못 묻으면 어떠한 경우에는 십 년이 가더라도 썩지 않는다고 하던데 이토록 불과 하루만에 거의 시꺼먼 흑수로 화해가고 있다고 하는 것은 이미 어떤 극독에 의해 녹아내리고 있다고 봐야하는 것이었다. 백리자성의 시선이 사도백봉에게 향하자 사도백봉은 다소 놀란 듯한 표 정을 지었지만 역시 냉랭한 음성으로 이렇게 말했다. "내가 아침에 와서 보았을 때에는 이렇지 않았어요." 비록 말은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말뜻에는 아침에는 분명히 산화 장에 당한 흔적이 거의 뚜렷하게 남아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이렇게 부패 되지도 않았었다는 의미가 깃들어 있었다. 백리자성은 잠시 고개를 끄덕이다가 입을 열었다. "외사촌 누이내 한 가지 의문이 있는데 다소 심기가 불편하더라도 대답 해 주겠소?" 사도백봉은 눈을 들어서 싸늘하게 그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냉랭한 음성 으로 대꾸했다. "당신은 설마하니 나더러 흉수라고 말하고 있는 것인가요?" 백리자성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있겠소? 나는 다만 매사는 보다 완벽하게 처리하는 것이 좋 으리라고 생각되어 의문시되는 점을 물어보려는 것이오." 이때 장내의 부근에는 이 괴이한 현실에 대해서 의아해하며 모여든 점 창파의 제자들이 무수하게 서 있었지만 일단 그들의 대화가 시작되자 그야말로 모두 다 주의를 기울여서 쥐죽은 듯한 고요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사도백봉이 싸늘하게 물었다. "대체 나에게 묻고 싶은 것이 무엇이요?" 백리자성은 담담히 웃으며 대답했다. "내가 질문하려는 것은 아마도 거의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느끼고 있는 의문일 것이오. 그것은 바로...... 외사촌 누이는 어떻게 해서 그렇게 빨리 이곳에 도착하여 일을 수습할 수가 있었냐는 것이오." 사도백봉은 곧장 싸늘하게 냉소를 터뜨렸다. "흥! 결국은 내가 미리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질 것을 알고 기대하고 있다 가 사건이 벌어지자 금방 나타났다는 말이로군요?" 백리자성은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럴리가 있겠소? 비단 나 뿐만이 아니라 이곳의 모든 제자들도 당신 이 흉수가 아니라는 점은 확실하게 알고 있소. 그러나 사실 다른 의문을 풀기 위해서는 이쪽의 의문부터 차근차근 풀어나가야 할 것이기에 먼저 그대에게 물어보는 것이오." 사도백봉도 많은 사람들이 비록 경황중이라 말은 하지 못하고 있지만 자신의 등장에 의아해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한숨을 내 쉰 뒤 정색을 하고 대답했다. "그건...... 사실 나도 매우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는 점이예요. 나는 아무 런 생각도 없이 무산을 벗어나서 이쪽으로 향했었는데 정작 이곳에 이르 러 이런 일을 치르게 될 줄은 정말 생각지도 못했어요." 말과 함께. 사도백봉은 완전히 시꺼멓게 변색이 되어 있는 선친 사도숙 강의 시신을 보고는 여태까지 참아온 눈물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는 듯 이 두 볼 가득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눈물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는 듯이 두 볼 가득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역시 그녀는 대담하고 강인한 기질을 가지고 있지만 여자인 것은 분명 한 모양이었다. 제8장 소녀 사도백봉 백리자성은 비록 그녀의 모습이 매우 처연하게 보였지만 그래도 의문을 미룰 수가 없어서 다시 입을 열어 물었다. "그렇다면 그대는 대체 누구의 소식을 듣고 이곳으로 돌아오게 되었 소?" 사도백봉은 그 질문에 다소 망설이는 듯 하다가 대답했다. "그건...... 그건 바로 저의 아버지였어요." 말과 동시에 그녀는 다시 사도숙강의 시신을 바라보며 두 눈에서 눈물 을 줄줄 흘리는 것이었다. 주위의 사람들은 사도백봉의 그러한 말을 듣고는 저마다 크게 놀랍고 의아한 생각이 들어서 내심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때라면 아직 남황에서의 참변을 당한 소식도 사도숙강에게 전해지지 않았을 때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사도숙강은 미리 이와 같은 일이 벌 어질 것을 예측하고 소식을 전해 딸을 불렀던 것이었을까?) 때는 아직 훤한 대낮이었다. 그러나 지독한 악취가 사방으로 퍼져나가고 있었고 시신들의 몰골이 워낙에 흉 측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마치 그 가운데 사도숙강 의 시신이 벌떡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귀기어린 착각을 느끼게 되 었다. 백리자성은 다시 물었다. "그 연락을 받은 것은 언제였소?" 사도백봉은 백옥같이 희디흰 손을 들어 눈물을 닦으며 대답했다. "제가 아버지에게 돌아오라는 연락을 받은 것은 한 보름쯤 전이었어요. 저는 당시 곧장 신녀문을 떠났었지만 도중에 여러가지 구경을 하고 노느 라고......" 사도백봉의 어조에는 그녀가 좀 더 일찍와서 사도숙강을 뵙지 못한 것 을 한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 여운이 깔려 있었다. 그러나 기실 그녀가 불과 하루만이라도 빨리 이곳에 도착했었다면 그녀 의 몸 역시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고 어쩌면 저렇게 관속에 누워서 썩 어가는 시신이 되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백리자성은 사도백봉의 대답을 듣는 순간 이미 스스로 많은 사항을 헤 아리고 있었다. (그녀가 도중에 유람이나 하면서 돌아올 정도였다면 필시 사도숙강의 그 지시내용은 이와 같은 비극적인 사태를 예고하는 것이 아니라 매우 희망적이고 기분 좋은 것이었을 것이다. 게다가그녀가 보름전에 연락을 받았다면 기실 사도숙강이 연락을 취한 것은 아마도 그보다 열흘쯤 전인 스물닷새 전에...... 스물닷새 전이었을 것이다.) 백리자성은 여기에서 문득 한가지 결론을 끌어내게 되었다. (그렇다면 결국 사도숙강은 자신의 형제들이 남황으로 길을 떠난 이후 에 앞으로 점창파가 육맥신검으로 크게 발전할 것을 예측하고 딸을 불러 서 그 무공을 익힐 수 있게 하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는 당시 마음이 매우 들떠있었을 것이니 그와 같은 행동을 취한다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 을 것이다.) 기실 실전무예를 중시하는 점창파에는 강렬한 무예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었고 여자들이 익힐 수 있는 무공이 드문 것이 사실이었다. 사도숙강은 생각끝에 자신의 금지옥엽과도 같은 여식을 무산의 신녀문 으로 보내 속가제자로서 무공을 배우도록 하였지만 원래 이 신녀문이라 는 곳은 매우 폐쇄적인 습성을 지니고 있어서 정식제자가 아니고는 진실 한 정통의 무학들을 가르치지 않는 것이 전통으로 내려오고 있는 상태였 다. 신녀문의 정식제자들은 강호에 나가지 않고 무산의 심처에 은둔하며 수 양을 하는 것을 최고의 목적으로 삼는데그녀들은 자신들의 절기가 자칫 속가제자들의 손에 의해서 강호로 유출되어 그 이름을 더럽힐까봐 두려 워하는 것이었다. 사도숙강은 자신의 금지옥엽과도 같은 여식을 겨우 그런 곳의 하류의 무학을 배우게 해서 마음이 좋지 않았었는데 마침 일양지나 선청공 따위 의 무학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생기자 먼저 딸을 불러들이게 되었던 것 이었다. 그리고 사도백봉이 도중에 유람을 하며 노느라고 많은 시일을 지체했었 기 때문에 공교롭게도 이번의 사건이 터진 다음 날에 점창파에 도착할 수가 있게 되었다. 그러나 백리자성은 다시 한번 확인하는 의미에서 사도백봉에게 질문을 던졌다. "혹시 돌아가신 셋째외숙께서는 육맥신검에 대한 얘기를 전하지 않으셨 소?" 이에 사도백봉은 이 육맥신검에 관한 얘기는 사도숙강이 매우 극비에 속하는 얘기이기 때문에 누설해서는 안둢a고 했는데 대체 백리자성이 어떻게 이 일을 알고 있는가 하는 듯의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하지만 나도 그 일의 전체적인 내용에 관해서는 잘 알지 못해 요." 백리자성은 사도백봉의 대답을 듣는 순간 이미 자신의 추측이 옳았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이 육맥신검경의 얘기는 비단 복잡할 뿐만 아니라 다소간의 비 밀스러운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므로 지금의 상황에서는 밝힐 수가 없는 입장이기에 다시 얼버무리며 말했다. "좋소 좋소! 셋째외숙께서는 다소간의 영험하신 능력을 가지고 계셔서 그대를 미리 이곳으로 부른 것이었다고 생각하도록 합시다. 그렇다면 우 리는 더더욱 그분의 유지에 따라서 흉수를 잡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오." 사도백봉은 이미 자신의 아버지가 육맥신검경의 일에 연관되어 이와 같 은 일을 당했다는 것을 예측하고 있었다. 사도숙강이 그녀를 부른 것도 무슨 참극을 예측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녀에게 육맥신검경의 내용을 가르치기 위해서였는데 지금 백리자성은 대체 어째서 그와 같이 얼버무리는지 알수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막상 그녀 자신도 그 얘기를 꺼내려고 하면 왠지 거북스러운 느 낌이 들었기 때문에 즉시 화제를 바꾸어서 말했다. "그럼 당신은 이 가운데에시 무슨 특별한 증거라도 찾아낼 수가 있었나 요?" 대체적으로 사람들이 살펴본 바에 의하면 이십여 구의 시신들은 거의 다 제각각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뚜렷하게 드러나는 것은 다섯 가지의 형태라고 말할 수가 있었다. 우선 이십여 구의 시신들 가운데 가장 온전하다고 말할 수가 있는 것은 어젯밤에 죽음을 당한 사도숙강의 시신이었는데그의 시신은 그저 시꺼멓게 변색이 되어 있을 뿐 조금도 부패 기미가 없었다. 검푸른 기운이 피어오르는 그의 시신은 아직도 너무나도 생생하여 앞으 로 며칠이 지나더라도 쉽게 부패될 것 갈지가 않았다. 그리고 두번째로 멀쩡한 시신들은 바로 사도숙강의 두형들이 사도백위 와 사도중맹의 시신들이었는데 그들의 시신은 똑같이 피부나 모발이 돋 아있는 부위가 다소 부패되어 있는 것 같았으나 역시 그 내부에서 검푸 른 기운을 발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이 두 사람의 시신들은 내부는 멀쩡한데 겉에만 싸소 부패되 어 있는 상태라고나 할까 이어 세번째로 멀쩡한 시신들은 어이없게도 남황으로 사도백위 등을 따 라갔었던 제자들의 시신들이었는데 반쯤 부패되어 구멍이 뻥뻥 뚫려있는 그 시신들의 뱃속은 기이하게도 텅비어 있었다. 사람들은 그 시신들을 보고 저마다 입이 크게 벌어졌으며 도무지 이해 할 수가 없다는 표정들이었다. 그리고 네번째로 멀쩡한 시신들은 바로 어젯밤에 사도숙강과 함께 죽었 던 사도가문의 일곱명의 아들들이었던 뇌전풍운용호표의 시신들이었는데 그들의 시신들은 이미 내장이 환하게 드러나도록 녹아버려서 생전의 읠 췅몛a 형체조차 찾아볼 길이 없었으며놀랍게도 가만히 살펴보니 그 드러 난 내장들이 모두 가닥가닥 끊어져 있었다. 이러한 사실 역시 매우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이어 그 시신들 가운데 가장 심하게 냄새를 풍기고 있는 시신들은 남황 으로 사도백위 등을 따라갔었던 열명의 장로들의 시신들이었는데그 시신 들은 벌서 거의 한줌의 흑수로 녹아들어서 겨우 내장이 간혹 흑수속에 몇 조각씩 드러나 보일 뿐이었다. 게다가 또한 그들의 그 작은 내장조각들 역시 뇌전풍운용호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가닥가닥 끊어져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이와같이 실로 지금 많은 사람들이 눈앞에 펼쳐져 있는 광경은 괴이하 여 쉽게 믿을 수조차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누가 감히 이 일의 원인을 알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으로 보였다. 백리자성은 그렇지 않아도 이 일의 원인을 곰곰히 생각하고 있다가 사 도백봉의 질문을 받고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비록 이제까지 죽은 사람들을 제법 보아보기는 했어도 실로 이처 럼 기이한 시시들을 한꺼번에 보기는 처음이오. 우선시간의 차이에 따라 서 부패 정도가 다른 것도 아니고또한 그 사람의 생전의 공력의 크기에 따라서 부패 정도가 다른 것도 아니오. 이것은 곧 그 가운데 어떤 무시 무시한 극독의 작용이 있어 차별적으로 시신을 부패시켰다는 결론인데대 체 어떻게 돼서 이와 같은 가지가지의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는지 그 원 인을 아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소." 그렇다. 지금 백리자성이 말한 내용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 가운데에서 거의 요점을 설명한 것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게다가 극독의 작용은 둘째치더라도 뱃속이 텅비어 있는 제자들의 시신 과내장이 가닥가닥 끊어져 있는 뇌정풍운용호표 그리고 장로들의 시신의 원인을 규명하는 일조차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일이 마치 대낮의 귀신을 보고 허깨비들을 보고 있는 것 같아서 두 눈을 부비고 안색이 창백하게 질려 있는 경우도 많았 다. 사도백봉은 백리자성의 얼굴을 주시하다가 역시 한숨을 내쉰 다음에 싸 늘한 음성으로 다시 물었다. "그러니까 당신의 말은 이 가운데의 원인을 알아낼 수가 있다는 말인가 요. 아니면 도저히 알 수가 없다는 것인가요?" 사도백봉 역시 자신이 그 원인을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었으므로 한숨을 내쉬며 그렇게 물은 것이었다. 대체 오늘 오전에만 해도 대부분의 비슷비슷하던 시신들이 어째서 갑자 기 얼마되지 않는 시간 동안에 이렇게 천차만별로 모습이 변화한 것일 까? 백리자성은 잠시 생각하는 듯 하다가 대답했다. "내 반드시 그 원인을 알아낸다는 장담은 할 수가 없지만 앞으로 며칠 동안 두고 곰곰히 생각해 본다면 아마도 십중팔구는 그 원인을 알아낼 수가 있을 것 같소." 백리자성이 지금 말한 내용은 바로 의원들이 비교적 자신이 서지 않을 때 환자들의 앞에서 미리말하곤 하는 내용과 비슷한 것이었다. 사도백봉은 자연 매우 담담한 마음이 들어서 싸늘하게 말했다. "이들의 시신들은 내가 보기에는 불과 오늘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대부 분이 한줌의 흑수로 녹아버리고 말거예요. 그런 다음에는 당신은 대체 어 떻게 하시려고 그러는 거죠?" 백리자성은 그 말에 일순 웃으며 대꾸했다. "아그런 걱정이라면 하지 않아도 좋소." 이어 그의 뒤에 서 있는 홍아와 청아 중에서 홍아에게 얼른 마차로 가 서 그가 가져온 약상자를 들고 오라고 시키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이 백리자성의 행동이 매우 느릿느릿할 뿐만 아니라 마치 바 람이 불면 날려갈 듯이 허약한 것을 보고 필시 시종들도 매우 많은 시간 을 끌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때 갑자기 홍아의 신형이 안개처럼 흐릿해지더니 이네 한줄기 의 인영으로 화해서 번쩍 v소리없이 연무장 밖을 향해 쏘아져 나가는 것 이 아닌가! 사람들은 이 허약한 의원의 시종들을 내심 우습게 생각하고 있다가 느 닷없이 그처럼 경악할 신법을 보고는 놀란 나머지 입이 크게 벌어졌다. 많은 제자들은 그제서야 일전에 사도백위의 생일날에 이 신법을 보여 주었던 것을 상기하며 자신들이 감히 그들에게 시비를 걸지않은 것을 다 행으로 생각했다. 다섯명의 장로들 뿐만 아니라 이제까지 비탄과 절망에 빠져있던 사도백 봉까지도 신법으로 펼쳐 사라진 홍아의 쪽과 백리자성을 번갈아 바라보 며 약상자를 가지러 갔던 홍아는 과연 눈깜짝할 사이에 다시 그 지극히 빠른 신법을 펼쳐서 신속하게 돌아왔다. 사람들은 이 작은 남장소녀의 신법이 아까 그 정장로의 신법에 비해 결 코 뒤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욱 광명정대해 보인다는 것을 알 고 속으로 매우 기이하게 여겼다. 주위사람들의 그러한 심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백리자성은 홍아에게서 약상자를 받아든 다음에 그 안에서 다섯개의 비어있는 작은 호로병을 꺼 낸 다음에 이상하게 생긴 약초로 자신의 코와 귀를 틀어막고 긴 막대기 하나를 이용하여 시신들의 앞으로 다가가서 각각 다섯 종류의 시신들의 핏물이나 그 피부껍질 등을 채취하여 비어있는 호로병에 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이 부근에서 알려져 있는 의원인 그가 그토록 신중하게 조심 을 하며 움직이는 것을 보고 필시 저 시신들에는 극악한 독이 깃들어 있 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저마다 크게 긴장을 하고 백리자성이 표본을 채취 하는 광경을 바라보았다. 백리자성이 이어 그 호로병의 마개를 단단히 막고 그 표면에 뭐라고 표 시를 해두는 것을 보고 문득 아까 이모화에게 독수를 펼쳤던 정장로가 몸을 번쩍 달리더니 즉시 다시 이모화의 몸을 들고와서 시신들의 앞에 내려놓고 소리쳤다. "다 필요없는 짓이야! 흉수는 바로 이놈이 분명한데 그 따위의 짓들이 다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시신들이 모조리 훼손되기 전에 어서 우리 는 이놈의 목을 잘라서 제사를 지내는 것이 옳은 도리일 것일세!" 말과 함께 정장로는 다시 금방이라도 이모화를 쳐죽일 다시 우장을 그 의 천령개 위에 올려 놓았다. 실로 그와같은 고수들은 비록 손을 움직이지 않더라도 능히 이모화의 목숨을 빼앗을 수가 있는 것이었다. 사도백봉이 이를 보고 싸늘하게 소리쳐 말했다. "잠깐만 기다리세요 정장로님! 당신은 아까부터 계속해서 그를 빨리 죽 이지 못해서 안달이신 것 같은데. 혹시 오래전에 그와 원한을 맺은 일이 라도 있나요? 아니면 그를 빨리 죽여서 살인멸구(殺人減口)라도 하지 않 으면 곤란해질 어떤 이유라도 있는 건가요?" 이 정장로는 그래도 현재 점창파에서 다섯명밖에 남지 않은 최고수뇌중 의 하나인셈인데 사도백봉이 나이어린 여자의 몸으로 그렇게 강하게 그 를 공박할 수 있다는 것은 그녀의 대담한 기질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솔직히 현재의 점창파에서 사도가문의 위세는 깡그리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태였다. 정장로는 뜻밖에도 사도백봉의 그와 같은 조리정연한 얘기를 한기 가득 한 음성으로 대꾸했다. "무무슨 말인가?. 내가 저 녀석과 원한을 맺을 일이 뭐가 있겠는가? 게 다가 내가 살인멸구를 하려고 했다니...... 이는이는 천만부당한 말씀이네." 정장로는 아직 사도가문의 위세를 잊을 수가 없어서 감히 사도백봉에게 험하게하지 못하고 다소 쩔쩔매는 모습이었다. 사도백봉은 이왕에 말을 꺼냈으니 확실하게 해놓지 않을 수가 없다고 생각을 했는지 다시 싸늘하게 말했다. "그렇다면 당신은 그가 흉수라고 단정지을 수 있는 확실한 증거라도 가 지고 있단 말씀인가요?" 정장로는 잠시 눈알을 굴리며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비록 어떤 증거가 있다고는 말할 수가 없지만 저 녀석은 사도장문인도 대단히 경계를 해왔던 놈이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는 범인이라고 단정 지을 수 밖에 없는 것이오. 놈은 보다시피 극독을 사용하여 자시의 흔적 을 지우려고 했지만 우리가 만일 일장에 때려죽이게 되면 놈의 그러한 흉계는 남김없이 사라지게 되어 있는 것이 아니겠소?" 사도백봉은 이에 싸늘하게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당신은 그저 단순한 추측에 의해 누구라도 혐의를 뒤집어 씌워 죽일수 있다고 말을 하는군요. 만일 경우를 바꾸어서 내가 정장로님을 흉수로 몰 아서 일장에 때려죽이려고 한다면 당신은 기분이 좋으시겠어요?" 사도백봉은 원래 내심 독기만을 품고 있었을 뿐 감히 행동적으로 나오 지 못하고 있다가 홍아의 .무공을 보고는 크게 힘을 얻어서 그처럼 대담 하게 나오고 있는 것 같았다. 정장로는 그녀에게 그와 같은 말은 듣자 매우 화가 난듯 안면이 시뻘겋 게 물들어서 대꾸했다. "물론 나는 그런 의심받을 짓을 하지 않았네." 사도백봉은 싸늘하게 웃으며 다시 말했다. "누구라도 털어서 먼지가 나오지 않는 사람은 없는 것이니 정말로 의심 을 하자면 한이 없는 것이죠. 그리고 당신은 그가 자신의 흔적을 제거하 기 위해서 극독을 썼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그가 어째서 다른 병기를 쓰 지 않고 일부러 산화장의 흔적을 남겼을까요? 게다가 그는 저 남황에 따 라갔었던 아무런 죄도 없는 제자들에게까지 극독을 쓸 필요가 있었을까 요?" 사도백봉의 이 말의 내용은 상당히 예리하여 정통을 찌르는 것이라고 할수가 있었다. 기실 이 모화가 사도숙강 등을 모조리 살해했다면 거기에 다시 이미 죽 은 제자들의 시신마저 힘들게 손을 댈 필요가 없었을 것이었다. 정장로는 이에 대답할 말이 궁해졌는지 잠시 우물거리다가 대꾸했다. "그야 저놈이 우리를 혼란시키기 위해 일부러 그와 같은 짓을 저질렀을 지 누가 알겠는가?" 사도백봉은 싸늘하게 냉소했다. "혹시 흉수는 당신인데 자신의 죄악을 숨기기 위해 일부러 저 사람을 끌어들여 살인멸구하고 넘어가려는 것은 아닌가요? 자 이제 저 사람이 이 일에 관련되었다는 증거는 보다 희박해졌으니 앞으로 당신들은 그에 게 손을 대지 말고 이번의 일은 모두 나에게 일임해 주셨으면 해요." 정장로는 사도백봉이 자신에게 흉수가 아니냐고 묻는 바람에 절로 입이 딱 벌어지고 다물어지지 않았으나 대신 그 옆에서 다른장로 한 사람이 나서서 싸늘하게 대꾸했다. "사도소저! 우리는 그대가 전대의 장문인의 조카이기 때문에 그만큼 대 우해 주고 있는 것이외다. 그런데 이번의 일을 우리에게 전혀 관여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천만부당한 말씀이오." 사도백봉은 그를 향해 다시 냉랭하게 코웃음을 쳤다. "좌(左) 장로님! 그럼 당신은 이 일의 책임자로 나서겠다는 말인가요? 우리 아버지와 오빠들은 당신들에게 그저 한 문파의 동료일 뿐이지만 나 에게는 더이상 가까울수가 없는 사이들이예요. 대체 누가 가장 권리가 있 다고 생각해요?" 아까의 정장로가 다소 평범한 느낌을 주는 용모인데 반해서 이 좌장로 는 전신이 빼빼 마르고 눈빛이 영활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의 심기가 매우 깊다는 것을 알수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 사도백봉이 말한 내용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고 또한 이번 의 사건이 남황에서 변을 당한 사도백위 등의 사건과도 분리되는 것이기 때문에 잠시 생각하다가 대꾸했다. "그야...... 이번의 일은 사도소저에게 전적으로 처리할 권한이 있다고 할 수가 있겠지. 우리는 다만 함께 동문수학한 사람이 죽은 것을 애도하며 필요한 만큼 도움을 주게 되기를 바랄 뿐이네." 그 말에 사도백봉은 다시 확인하듯이 물었다. "그럼 앞으로 내가 어떤 결정을 내리건 간에 점창파의 일에 피해를 주 지 않는 것이라면 당신들은 일절 간섭할 수가 없는 것이 아닌가요?" 좌장로는 잠시 생각하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간섭할 수는 없는 일이지. 그러나 만일 그대가 우리에게 어떤 도 움을 요청한다면 우리는 즉각 지원해줄 생각이네." 사도백봉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이어 백리자성이 모든 표본을 채취하는 일을 마쳤음을 보고 즉각 고개 를 돌려 주위에 몰려들어 있는 제자들을 향해 싸늘한 음성으로 소리쳤다. "혹시 여기에 점창오수 가운데 사수라고 불리웠던 사람들이 있지 않나 요?" 이 점창오수는 모두 사도백봉과 같은 배분에 놓여 있다고 할 수가 있었 다. 마침 이때 시신들의 괴이한 광경을 보기 위해 수백명의 점창파의 제자 들이 몰려들어 있었는데 그들 가운데에는 점창오수에 들어있는 사람들도 섞여 있었다. 사도백봉의 말이 떨어지자 즉시 주위에서 사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더 니 영기발랄한 젊은이들이 그녀의 앞에 나타나 정중하게 포권하며 말했 다. "우리는 아까부터 여기에서 지켜보고 있었소이다. 그리고 우리 사수 가 운데 남은 한 사람은 바로 저 이모화이외다." 다름아닌 바로 뇌전일필 여문량과 흑풍일기 황종보그리고 섬류일수 전 백승이었는데 입을 연 사람은 그 가운데에서도 서생 타입의 여문량이었 다. 그는 이제 점창오수 가운데 첫째인 분광일검 사도뢰가 살해되었기 때문 에 점창사수의 우두머리로 행세하고 있었다. 사도백봉은 한차례 힐끗 초췌한 몰골의 이모화를 돌아본 다음에 자신의 앞에 나타난 그 세명의 젊은이들을 향해 말했다. "나는 평소에 우리 백부께서 당신들 네 사람의 자질을 지극히 중하게 여기고 특별히 총애하셨었다는 소문을 들은 바가 있었어요. 그것은 여기 에 계신 모든 사람들보다 당신들의 마음이 더욱 충성스러웠기 때문이 아 니라 충심은 비슷하지만 그만큼 당신들에게는 뛰어난 재능이 있었기 때 문이라고 봐요. 따라서 지금 본파에서는 뜻밖의 위기의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는데 당신들은 자신들의 뛰어난 재능들을 모두 발휘하여 저를 도와 본파의 위기를 극복해 나가실 생각이 없으신가요?" 여문량은 이 나이어린 소녀인 사도백봉이 주위의 사람들의 심리까지 생 각하여 자신들을 추켜세우는 것을 보고 내심 크게 대견하게 생각하여 즉 시 엄숙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우리는 이미 본파에서 깊은 은혜를 입었는데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어 찌 몸을 사릴 수가 있겠소이까. 만일 소저께서 명령을 내리신다면 끓는 물 혹은 타는 불구덩이라 하더라도 감히 들어갈 용의 가 있소이다." 이 여문량은 평소에 점창사수 가운데의 나머지 세명의 심리를 훤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자신있게 대답할 수가 있는 것이었다. 사도백봉은 그의 맑고 예리하게 빛나는 눈빛을 보며 내심 저의기 마음 이 드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말했다. "고마와요. 저는 전대의 장문인의 조카에 불과하기 때문에 당신들을 감 히 명령할 권한은 없지만 지금은 상황이 부득하니 잠시 당신들의 도움을 받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어요. 자그럼 세분께서는 저의 지시를 들으세 요. 우서 하나는 저 이모화를 어떤 다른 사람들의 암수에서 잘 지키도록 하고둘째는 지금 즉시 제자들에게 명령을 내려서 발인(發靷)을 하라는 것 이예요." 가냘프고 아름다운 이 어린소녀의 입속에서 흘러나온 싸늘한 옥음은 마 치 아름다운 음악을 듣는 것과 같았다. 원래 이 점창사수는 첫째인 분광일검 사도뢰와도 쉽게 어울리지 못했지 만 네 사람은 천재적인 기질들이 서로 비슷하고 뜻이 통하여 그야말로 절친한 친구와도 같은 사이였다. 이모화가 처음부터 사도백위의 의심스런 시선을 받고 있었으면서도 점 창오수의 일인이 될 수가 있었던 것은 기실 그들 사이의 우애가 크게 작 용했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사도백위는 나머지 점창삼수의 심리를 크게 생각해서 이모화를 점창사 수의 하나로 이끌어 주었지만 이번의 남황으로 가는 길에는 그들을 완전 히 믿을 수가 없어서 데려가지 못했었다. 이 점창사수는 근래에도 점창산 부근의 깊은 계곡에서 무공을 연마하느 라 오늘 새벽에야 이 참변을 알게 되었는데 거기에 이모화가 연루되어 끌려가서 심한 고초를 당하게 되자 내심 기분이 좋지 않았었다. 그런데 사도백봉이 장로들보다 자신들을 더욱 신임할 뿐만 아니라 직접 이모화를 보호하는 일을 자신들에게 맡겨버리니 어찌 감격하지 않겠는가 점창파에 비록 수백명의 제자들이 있었지만 다소 나이가 많다고 해도 배분이 그들보다 위에 있는 사람들은 오직 다섯명의 장로들밖에 없게 되 었으므로 그들이 그들을 움직여서 발인을 하도록 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 운 일이 아니었다. 따라서 여문량을 비롯한 점창사수의 세명은 즉각 공손하게 대답한 다음 에 즉각 이모화를 적극 보호함은 물론 주위의 제자들에게 지시를 내려서 발인할 준비를 서두르게 했다. 이미 시신들이 심하게 부패되어 흑수로 녹아들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서두르는 것은 실로 타당한 처사이기도 했다. 제9장 고종 오라버니 다섯명의 장로들을 신봉하는 제자들이 적지 않게 있었지만 지금은 전대 의 장문인의 장례식을 거행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으므로 누구나 할 것 없이 이십여 개의 상여가 나가는 일에 동참하게 되었다. 흑풍일기 황종보는 그 칠 척 거구의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제자들을 독려했고 전백승은 이모화를 보호하며 사도백봉의 곁에 있었으며 여문량 역시 사도백봉의 주위에서 발인이 준비되어 가는 과정을 차례차례 지켜 보았다. 현재 점창파의 제자들은 3대의 제자들이 780명이고 4대의 제자들이 이 백여 명이나 되었기 때문에 점창사수가 지시를 내리 수 있는 사람의 숫 자는 훨씬 많았다. 과거에 그들을 시기하여 멀리하던 사람들도 지금 그들이 뚜렷한 명분을 가지고 행동하고 있기 때문에 감히 이런저런 구실을 붙여서 지시를 거역 할 수가 없었다. 잠시 사도백봉과 말다툼을 벌였던 다섯명의 장로들은 그녀가 이처럼 완 전히 주도적으로 국면을 장악하자 왠지 기이한 표정들을 하고 있더니 슬그머니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사도백봉은 조금 전에는 실로 서릿발과도 같은 강인한 여인의 면모를 보여주더니 막상 장례식이 발인에 들어가자 그야말로 슬프게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원래 아름답던 여인의 울음소리는 그 자체로 많은 사람들을 격동시키는 법인데이제 꽃같이 아름다운 그녀가 백색의 소복을 입고 소리높여 오열 을 하자 처음에는 다소 건방지다고 생각했던 많은 제자들도 점차로 그녀 에게 동정의 시선을 보내기 시작했다. 만일 시신들이 그토록 빠르게 부패되지 않았다면 사도백봉은 우선 흉수 부터 잡고 난 다음에 발인에 들어갈 생각이었지만 시체가 다 녹아버리는 이 상황에서는 그럴 수도 없는 일이었다. 제자들이 입과 귀를 틀어막고 관을 새롭게 만들어서 시신들을 대강 안 치한 다음에 사도백위의 상여를 위시로 해서 차례로 나아가기 시작하자 사도백봉은 소리높여 오열하며 그 뒤를 따랐고 많은 제자들도 각기 백색 의 천을 가슴에 매달고 곡을 하며 뒤를 따랐으며 백리자성은 홍아와 청 아의 부축을 받아가며 천천히 맨 끝에서 그 뒤를 따라갔다. 이 행렬을 백리자성에게는 그리 낯설게 생각되지 않았다. 백리자성은 이제 머지 않아서 숨을 거두게 되면 자신의 시신이 저렇게 상여위에 태워져서 나가게 될 것이 아니겠는가. 사도백위를 비롯한 이십여명의 시신들은 점창산의 양지바르고 좋은 명 당의 자리에 묻히게 되었으며 제자들의 인원이 많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무공이 뛰어났기 때문에 모든 일을 하는데에도 신속하고 진전이 빠르기 마련이었다. 이십여 개의 봉분을 만든 다음에 모두들 아직 어두워지기 전에 다시 점 창파의 중악전으로 돌아올 수가 있었다. 사도백봉은 비록 그 새롭게 만든 봉분의 앞에서 밤새도록 울고싶은 눈 치였지만 아직 흉수를 찾는 일이 매듭 지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할 수 없 이 제자들과 함께 점창파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렇게 일단 모든 장례식의 절차를 마치게 되자 점창파에 드리워졌던 무거운 암운은 다소 가셔지는 듯 하였으나 아직 흉수를 찾은 일과 또한 장문인 등을 살해한 남황의 태양마교를 쳐야하는 일등을 논의해야 했고 제자들 가운데에는 어서 빨리 새로운 장문인을 선출해야 한다는 논의까 지 일기 시작하고 있었다. 사도백봉 등은 중악전의 한쪽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날이 점차 어두워짐 에 따라 흉수를 찾아내는 일에 골몰하고 있었는데 제자들의 대부분이 다 섯명의 장로들 가운데에서 장문인을 선출해야 한다는 말들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는 내심 크게 씁쓸한 생각이 들어서 생각했다. (그들은 장례식을 치루고 아직 하루도 지나지 않았는데 백부님 등은 까 맣게 잊어버리고 있는 모양이로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다소 마음이 서글퍼지기도 했지만 평소에 백부님 등이 제자들에게 덕을 베풀지 않았기 때문에 저러한 광경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달래고 있었다. 그때 부근에서 장내의 돌아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여문량이 문득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오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사도소저지금 장내의 상황은 짐짓 다섯명의 장로들에게 기울어 있는 것 같지만 만약에 사도소저가 한번 일어서서 외치게 되면 저들 대다수가 당신을 따르게 될 것이오. 앞으로도 여러가지 일을 하기 위해서는 대중의 힘이 필요한 법인데 어째서 스스로 장문인이 될 생각을 하지 않으시오." 사도백봉은 미처 자신이 점창파의 장문인이 되는 일을 생각해 보지 않 고 있다가 그와 같은 말을 듣고는 잠시 생각한 뒤에 되물었다. "저는 아직 나이도 어리고 점창파의 무공도 배우지 못했는데 감히 장문 인의 직위를 감당해낼 수가 있을까요?" 여문량은 미소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예컨대 나이가 어리고 무공실력이 부족하다고 해도 그 명분과 많은 사 람들을 부릴 수 있는 강한 영도력이 있다면 능히 장문인의 직위에 오를 수가 있는 것이오. 게다가 지금은 특별히 혼란스러운 상황이기 때문에 아 까의 소저의 영도력을 본 많은 제자들은 당신이 장문인의 직위에 오르는 것을 반대하지 않을 것이오." 사도백봉이 다시 물었다. "그럼 이 혼란스러운 시기가 지나가면 나중에 보다 실력있는 사람에게 장문인의 직위를 물려주면 되겠군요?" 여문량은 미소하면 대답했다. "그거야 소저의 재량에 달려 있는 것이고 또한 나중의 일이니 지금 생 각할 필요는 없는 것이오." 사도백봉은 어느 정도 여문량의 의도를 파악할 수가 있을 것 같았다. 만일 이번에 다섯명의 장로들 가운데에서 누군가가 장문인의 직위에 오 르게 되면 자신의 선친등의 흉수를 잡는 일 등을 하기 어려울 수가 있고 또한 이모화를 비롯하여 점창사수는 그야말로 찬밥의 신세로 전락할 수 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번에 그녀가 장내의 주도권을 잡는 일은 해도 좋은 일이 아니라 반드 시 해야만 하는 일인 것이다 사도백봉은 우선 자신이 장문인의 직위에 오르는 것으로 생각을 정하고 잠시 숙고한 후에 다시 여문량에게 고개를 들고 물었다. "그럼 저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가르쳐 주시겠어요?" 이렇게 그녀가 묻는 것은 장차 그녀가 장문인의 직위에 올랐을 경우에 여문량을 군사에 준하는 대우를 해주겠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 었다. 여문량은 물론 그러한 것을 내심으로 바라고 있었으므로 주저할 리가 없었다. "우선 우수한 인재를 근처에 두어야 합니다." 사도백봉은 눈을 둥그렇게 떴다. "당신들 점창사수는 그야말로 점창파에서 가장 손꼽히는 인재들인데 어 디가서 다른 인재를 구하라는 말이지요? 혹시 그대들이 모두 내곁을 떠 나겠다는 소리는 아닌가요?" 여문량은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희들이 사도소저의 곁을 떠날리가 있겠습니까? 아가도 보셨겠지만 저희들이 일단 소조의 지시를 받은 이상은 앞으로 어떤 일이 있더라도 소저를 모시며 뜻을 같이할 것을 맹세한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것입니다. 저희들은 이제 소저께서 떠나라고 떠밀어도 가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실로 여문량의 이 말은 구구절절이 옳은 소리였다. 그들은 아까 공공연히 다섯명의 장로들에 대항해서 움직였기 때문에 다 시 그들과 화합할 수는 없는 상태가 되었다. 여문량의 말대로 그들은 이제 사도백봉을 장문인으로 세우거나 아니면 점창파를 떠나야 하는 기로에 서있는 것이었다. 누구나 근거를 잃고 강호를 떠돌게 되는 신세로 전락하는 것은 원하지 않을 것이므로 점창사수가 이번의 일에 전력을 다할 것은 불을 보듯 뻔 한 일이었다. 그러한 의미에서 사도백봉은 이러한 뛰어난 인재들의 도움을 자동적으 로 받게 되었으니 시운을 타고 있다고 말할 수가 있을 것이었다. 사도백봉은 점창사수의 의견을 대표한다고 할 수가 있는 여문량이 그처 럼 시원하게 대답해 주자 내심으로 기쁘기 그지 없었지만 그래도 의아심 이 남아서 물었다. "그렇다면 대체 어떤 인재를 옆에 두라는 말이지요?" 여문량은 미소하더니 고개를 돌려서 백리자성이 아직 가지 않고 홍아 청아와 함께 작은 모닥불을 피워놓고 뭔가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것을 눈짓으로 가리키며 대답했다. "제가 말하는 인재는 바로 저 사람입니다." 사도백봉은 다소 놀라서 되물었다. "백리...... 나의 고종 오라버니 말씀인가요?" 여문량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사도백봉은 아까 자신이 백리자성의 도움을 입은 것을 기억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에게 무슨 커다란 능력이 있을 것 같지가 않아서 고개 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하긴그의 두명의 시종은 제법 무공이 탁월해 보였어요. 하지만 그들은 저처럼 그를 보살피는데 시종일관 눈을 떼지않고 있으니 우리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어요?" 여문량은 이에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말하자면 오늘 소저께서 장내의 주도권을 잡게 되셨던 것은 그가 나타났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소저께서도 잠시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단지 과거 사도 장문인의 미움을 받던 사람에 불과하였는 데 어떻게 그와 같이 소저의 커다란 힘이 될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것은 오로지 그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소저의 위치를 도와주었기 때문이었습 니다." "......." 사도백봉은 여문량의 이 말을 잘 이해할 수가 없어서 잠시 멍하니 생각 에 잠기며 듣고만 이었다. 여문량은 말을 이었다. "옛말에도 가장 뛰어난 사람은 오히려 그 모습이 평범해 보인다고 했습 니다. 소저께서는 과거의 두 집안 사이에 관계나 혹은 그의 허술한 외모 에 너무 신경을 쓰시지 마시기 바랍니다. 단적으로 말해서저 두사람들은 분명히 그가 가르친 것이 틀림없을 것인데 저처럼 능력들이 탁월하지 않 습니까?" 사도백봉은 문득 여문량의 말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동시에 갑자기 한 가지 생각이 뇌리에 떠올랐다. (그렇다. 사실 그의 집안과 우리 집안과의 감정은 굳이 내가 신경쓸 필 요가 없는 것이었다. 아까도 나는 외로운 상태여서 그가 나타나자 그야말 로 친혈육의 정을 느끼지 않았던가? 앞으로 그는 나의 고종오라버니이고 또한 나는 그의 외사촌 누이가 되면 되는 것이다.) 여문량은 사도백봉이 생각에 잠겨 있자 다시 이렇게 말했다. "제가 체면불구하고 말씀드리자면 우리와 그를 비교할 때 그는 마치 태 양과도 같은 존재이고 우리는 마치 반딧불과도 같은 위치인 것입니다. 과 거 사도장문인께서는 미처 그의 능력을 모르고 잘못 대해 오셨던 것이지 만이래도 그를 중요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사도백봉은 여문량의 말 가운데에서 무슨 태양과 반딧불이니 하는 말은 믿을 수가 없었지만 그래도 다소나마 백리자성과 함께 일해보고 싶은 마 음이 들었기 때문에 여문량에게 말했다. "나는 이제 과거에 집안에서 가지고 있었던 감정을 그에게 느끼고 있지 않아요. 그리고 그 역시 오늘 나를 위해 애써 주었으니 앞으로도 그렇게 사촌지간으로 지낸다면 좋지 않을까요?" 여문량은 즉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만일 단순히 그렇게 해도 둢a면 제가 일부러 이런 말 씀을 드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기실 일신에 놀라운 재주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호숫가에 깊이 은둔하고 세상의 권세에는 관심이 없는 것입 니다. 만일 그에게 어떤 야심이 있었다면 어째서 그와 같은 능력을 썩히 고 있겠습니까?" 사도백봉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그는 불치병을 고칠 수가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요?" 여문량이 고개를 저었다. "그가 불치병을 고치지 못할지라도 제가 보기에는 한 일이 년 사이에는 죽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그에게 어떤 포부가 있는 것이라면 그 기간 동 안에 무엇이든 하지 못하겠습니까? 요컨대 그는 세상의 명리에 거의 뜻 이 없는 것이니 아마도 흉사가 마무리되면 당장 오늘밤이라도 돌아가 버 릴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가 만일 계속해 호숫가에 머물러 있게 둢a면 그가 곁에 있는 것이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지요." 사도백봉은 아가 장로들의 앞에서도 매우 여유롭고 태연한 신색으로 행 동하던 백리자성의 모습을 상기하고는 점점 그와 함께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따라서 사도백봉은 다시 물었다. "그럼 내가 어떻게 그를 회유해야 하지요?" 여문량은 정색을 하고 대답했다. "그는 대단히 현명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수단을 쓰더라도 결코 넘어가 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그를 회유하는 하가지 수단이 있다면 그것은 진 실한 마음을 설득하는 도리밖에는 없을 것 같습니다." 사도백봉은 눈살을 다소 찌푸렸다. "그럼 내가 그에게 무릎을 꿇고 애원이라도 하라는 말인가요?" 여문량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소저는 명백하게 우리의 주군이 되시는 것이므로 남에게 함부로 무릎을 꿇게 되어서는 안되는 일이지요. 저의 말은 다만 그에게 혈육의 정에 의지하여 이 난국을 타개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하라는 것입니다. 그는 성품이 매우 선량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게 인정 에 호소하게 되면 반드시 소저를 돕게 될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해서 그 가 소저를 돕게 둢a면 아마도...... 십중팔구는 우리가 승리한 것이나 다름 이 없게 될 것입니다." 사도백봉은 이 여문량이 백리자성을 지나치게 칭찬하여 무슨 그가 돕기 만 하면 십중팔구는 승리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한 얘기를 곧이 곧대로 믿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마음이 계속해서 그쪽으로 기우는 것을 어쩔 수 가 없었다. 그런데 이제 마악 사도백봉이 백리자성에게 건너가서 말을 붙여보려고 생각하고 있는 순간에 공교롭게도 먼저 백리자성이 두명의 여자시종들을 데리고 이쪽으로 걸어오는 것이었다. 사도백봉과 여문량은 이에 서로가 내심으로 다소 뜨끔한 느낌이 들어서 얼굴을 쳐다고보고는 한쪽으로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러나 백리자성은 일단 그들의 앞에 이르렀지만 모닥불의 앞에는 앉으 려고 하지 않고 이렇게 물어오는 것이었다. "잠시 실례하겠소. 아까 귀하들 가운데 심한 상처를 입은 분이 계시던데 지금 그분을 뵐 수가 있겠소?" 여문량은 그가 이모화를 가르키는 것임을 알고 내심 놀라와하며 얼른 그를 한쪽의 급조 침상위에 누워있는 이모화에게 데려다 주었다. 기실이모화는 심한 중상을 입어서 통증이 심하고 거동을 할 수가 없는 형편이 되었지만 주위의 사람들은 장례식을 지내고 다시 여러가지 긴박 한 문제들은 논의하기 위해 그를 치료할 여가가 없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백리자성은 이모화의 몸에 가득하게 채워져 있던 쇠사슬이 제거되어 있 고 그의 눈빛이 아직 정기를 띠고 있는 것을 보고는 다시 말했다. "이분은 그야말로 타고난 무골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토록 심한 중상 을 입었는데도 아직 기력이 훼손되지 않고 있군요. 하지만 앞으로 좀 더 지체하게 되면 원기를 상하게 되므로 좋지 않을 것입니다." 여문량은 그가 의술에도 역시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공손히 포권하며 말했다. "우리는 아까 당신이 그에게 고통을 덜어주었던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만일 지금 다시 그를 치료해 주신다면 그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백리자성은 고개를 내저었다. "천만의 말씀을본시 환자를 보게 되면 고치는 일을 생각하는 것이 의원 의 본분이므로 내가 우연히 이분이 상처를 입는 것을 보았으므로 고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너무 그렇게 마음에 두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어 여문량을 바라보며 백리자성은 다시 말을 이었다. "참 제가 몸이 불편하기 때문에 이 삶의 뼈를 바르게 맞춰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데그대가 수고해 주시겠습니까?" 여문량은 다소 당황한 마음이 들어서 말했다. "하지만 저는 아직 누구의 뼈를 접골시켜 본 적이 없는데 그...... 그래도 되겠습니까?" 여문량은 원래 말을 아주 유창하게 잘하는 사람으로 아직 누구의 앞에 서 말을 더듬어 본 적이 없었는데 이렇게 백리자성의 앞에서 말을 더듬 게 되자 느닷없이 못난 꼴을 보인 것 같아서 그만 안색이 붉어졌다. 그러나백리자성은 전혀 그렇나 일에 신경을 쓰지 않는 듯이 대답했다. "당신은 점혈무공에 뛰어나다고 하니 제가 약간 가르친다면 쉽게 접골 시킬 수가 있을 것입니다." 여문량은 자신이 이 허약하기 짝이 없는 사람의 앞에서 느닷없이 말을 더듬게 사건을 두고 기이하게 여겨 곰곰히 생각을 굴리다가 고개를 끄 덕였다. "그럼 한번 해보지요." 백리자성은 일단 의논이 끝나자 여문량에게 이모화의 몸을 등이 위로 향하도록 엎어놓으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여문량에게 이런저런 주의점을 들어가면서 등뼈를 접골하는 방법을 세심하게 가르쳐 주었는데여문량은 비록 총명하여 한번 들으면 잊어버리지 않는 기재였지만 자신이 처음으로 접골하는 부위가 가장 중 요한 등뼈라고 생각하니 절로 식은땀이 솟는 것 같았다. 만일 그가 모든 주의사항과 방법을 완전히 기억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약간의 방심으로 힘을 조금이라도 다르게 주게 둢a면 이 준미수려한 미 남자인 이모화는 그만 불구가 되어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여문량은 이 이모화에게 진정한 우정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손으로 그를 그렇게 만들게 둢a면 평생의 무거운 짐이 되지 않겠는가, 그러나백리자성은 정작 당사자인 여문량보다 평온한 얼굴이어서 그는 일단 모든 방법을 설명한 후에 그가 그 내용을 확실히 기억하고 있는 것 을 알자 이내 시작할 것을 지시했다. 여문량은 매우 마음이 긴장되었지만 그렇다고 주저할 수도 없는 일이어 서 마음을 굳게 먹고 손을 대기 시작했으며 백리자성이 가르쳐준 대로 빠르게 손을 움직여가기 시작했다. 다행이 그는 이미 고도의 점혈무공을 터득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손놀림 이 빠르고 정확하여 막상시작해보니 생각했던 것보다는 그리 어렵지 않 은 것 같았다. 하지만 워낙에 긴장을 하고 있었던 탓에 그는 이모화의 등뼈를 맞추어 가는 동안에 이마에 땀을 뻘뻘 흘리게 되었는데이 순간에는 환자인 이모 화 역시 극심한 고통을 당하게 되어 있는 것이라 그가 안간힘을 다해 비 명을 지르지 않으며 근육을 꿈틀거리는 것을 볼 때마다 여문량의 가슴도 한차례씩 그렇게 튀어오르는 것만 같았다. 이윽고 그야말로 일각이 여삼추와도 같이 어려운 접골을 끝내고 나자 백리자성은 즉시 품속에서 금침을 꺼내서 이모화의 등뼈가 이어진 부위 에 차례차례 꽂았다. 그러자기이하게도 이모화의 통증이 대부분 시원하게 가라앉음과 동시에 금침을 꽂은 자리에는 시꺼먼 핏물이 솟아나오는 것이었다. 백리자성은 대략 이각 후에 그 금침들을 거두고 나서 여문량에게 이모 화의 몸을 조심스럽게 바로 눕힐 것을 지시한 다음에 이번에는 다시 앞 가슴의 부위에 금침들을 어지러이 꽂아가기 시작했다. 여문량이 보기에는 백리자성이 그렇게 금침을 꽂아가는 방법이 자신이 즐겨쓰는 어떤 점혈의 무공과도 흡사한 것 같기도 하고 해서 유심히 지 켜보았으나 점차로 그의 손길이 빨라지자 종래에는 그 이치를 알 수 없 게 되고 말았다. 따라서그는 내심 감탄하여 생각했다. (실로 의술이라는 것이 약과 금침만을 쓸 줄 알면 되는 것인줄 알았더 니 그 가운데에는 이처럼 심오한 학문이 깃들어 있는 것이로구나!) 이모화의 앞가슴에는 원래 정장로의 발길질을 맞아서 마치 먹장과도 같 은 시꺼먼 멍이 가득 들어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백리자성이 한차례 금침을 놓고 매우 피곤한 듯이 이마의 땀을 닦으며 뒤로 물러나자 불과 일각도 지나지 않아서 그 부분의 시꺼멓게 쌓인 멍들이 깨끗하게 사라지며 불그레한 혈색이 감돌기 시작하는 것이 었다. 물론 이때에는 이모화는 육심의 통증이 완전히 사라져서 한숨을 내쉬며 매우 감격해 하는 눈빛으로 백리자성을 돌아보고 있었다. 백리자성은 역시 이간 후에 금침들을 회수하더니 이어 그의 몸을 비스 듬히 눕힌 다음에 이번에는 기경팔맥의 순서대로 금침들을 빠르게 꽂아 가기 시작했다. 지금 그가 금침을 꽂아가는 곳은 하나같이 인체의 중요한 사혈이나 요 혈들일 뿐만 아니라 그 깊이와 각도 등이 달라야 했기 때문에 여문량은 공연히 옆에서 조바심을 내고 있었는데 백리자성은 그야말로 아주 익숙 하고도 빠르게 금침들을 모조리 꽂고는 문득 지친듯이 몸을 비틀거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뒤이어 홍아와 청아가 그를 부축하게 되자 안면에 은은한 미소 를 떠올리며 한쪽으로 가서 쉬는 것이 이제 치료가 끝났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이윽고 다시 침묵속에 이각의 시간이 지나자 백리자성은 몸을 일으켜서 그 금침들을 일일이 순서에 따라서 회수하고는 몸을 일으키는 이모화에 게 품속에서 한 알의 붉은 단화을 꺼내서 건네주었다. "당신의 몸은 비록 근골이 훌륭하여 전혀 손상이 가지 않았지만 다소 소모 원기를 보충하기 위해서는 이 천왕호심단을 복용하고 즉각 운기조 식을 해야할것이오. 그리고 아직 접골한지 오래되지 않았으니 가능한한 몸을 심하게 움직이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오." 이모화는 백리자성이 자신의 기경팔맥에 금침을 놓은 이후에 갑자기 전 신의 기혈이 왕성해지면서 진력이 샘솟는 듯하여 전혀 내상약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을 것 같았으나감히 그의 지시를 거역하지 못하고 얼른 공손히 받아서 입속에 넣어 삼키고 즉시 그 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서 운기조식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원래 점창사수가 배운 것은 점창파의 진산절예인 천룡무상신공이라는 내공신법이었다. 이모화가 단전에서 진기를 끌어올려 순서에 따라 운기조식을 하기 시작 하자 비록 정장로에게 당한 자리가 다소 울려오기는 했지만 방금전에 복 용한 내상약의 효력이 금새 발휘되어 그러한 증세를 차례대로 제거해가 고 점차로 전신의 기혈이 왕성해지는 것이 오히려 전보다도 내력이 증가 한 것 같았다. 이모화는 아까 정장로에게 워낙에 심하게 당하여 스스로도 그것을 치유 하기 위해서는 몇 달 동안 고생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렇게 백리자성과 같은 인물을 만나서 불과 두 시진도 안되어 완전히 쾌 유할 수 있게 되자 내심 크게 감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만일 자신이 계속해서 잡념을 품게 둢a면 운기조식을 하는 일에 방해를 받게 되고 또한 백리자성의 노고를 그르치는 일이 되는지라 다시 무아지경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원래 지금 그가 운공하고 있는 천룡무상신공은 점창파에서 과거의 천룡 사의 업적을 이어받는다는 상징적인 의미에서 그렇게 이름지은 것이었지 만 기실 그 내용은 불문의 내공심법도 아니었고 분광검법과 같이 아주 실전적인 무학에서 창출되어 나온 실용위주의 내공심법이었다. 비록 그 내공심법의 운용방법이나 원리 자체에 커다란 결점이 없어서 장문인만이 배울수 있도록 규정하는 진산절예에 포함시키고는 있으나 기 실 그다지 썩 훌륭한 내공심법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것이었다. 과거 사도백위가 정창사수에게 이것을 크게 마음먹고 가르친 배경에는 그와 같은 면도 작용했다는 것을 부인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제10장 간악한 흉수 여문량은 백리자성이 이모화가 운기조식을 하고 있는 광경을 바라보며 아직 가지 않고 있는 것을 보고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을 하고는 정중하 게 가서 그들의 모닥불이 있는 쪽으로 함께 자리할 것을 권했다. 백리자성은 그렇지 않아도 마악 자리를 뜨력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순순 히 여문량의 초대에 응항 사도백봉 등이 앉아 있는 부근에 이르러 마주 보고 함께 자리했다. 이에 사도백봉이 다소 기이한 표정으로 웃으며 입을 열어 말했다. "낮에 저를 도와주신 것에는 감사하게 생각학 있었어요. 그런데 혹시 아 까 말씀하셨던 시신들이 부패 원인에 대해서는 알아내셨나요?" 여문량이 옆에서 가볍게 눈짓을 하였으나 사도백봉은 천성이 남에게 쉽 게 굽히지 못하는 것이라 절로 뺏뺏한 어조로 나오고 있는 것이었다. 백리자성은 별로 그런 점에 신경쓰지 않는 듯이 웃으며 대답했다. 사실은 그 원인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고 대답하자 그만 놀라워하며 입 을 열어 다그쳐 물었다. "그럼 그 원인은 대체 어떤 것이었죠? 그리고 그 알기 어려운 일이라는 것은 또 무엇인가요?" 백리자성은 한꺼번에 두 가지의 질문을 받은 셈이었지만 담담하게 웃으 며 대답해 주었다. "그 원인은 간단하게 요약하면 세 가지의 독이 그들 이십여 명의 사람 들의 몸에 각기 차별적으로 침투항 그와 같은 전혀 다른 변화를 낳게 되 었던 것이오. 그리고 내가 알기 어려워한 것은 바로 누가 그러한 극독을 사용하여 일을 저질렀는가 하는 것이오." 사도백봉은 이 백리자성이 아주 정밀하게 몇 가지의 독이라는 말까지 하고 나서 나중에는 흉수를 찾고 있는 듯한 말을 하는 것을 보고는 문득 가슴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백리자성이 만일 흉수를 찾아준다면 자신은 그야말로 꿈속에서도 잊을 수가 없는 불구대천의 원수를 제거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닌가! "역시 흉수에 대해서는 알기가 어렵겠죠?" 내심의 진동하는 가슴을 억누른 채 겨우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사 도백봉이 그와같이 묻자 백리자성은 미미하게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아니오. 흉수는 비록 모든 일을 철저하게 꾸미려고 하기는 했지만 오히 려 결정적인 흔적들을 많이 남기에 되었기 때문에 이제 그 자를 찾는 것 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오. 아마도 그는 사도가문의 사람들을 모두 제거하고 나면 저절로 자신들의 세상이 올것이라고 낙관했었기 때 문에 그와 같은 실수들을 유발하게 되었던 것 같소." 사도백봉은 그 말을 듣는 순간 내심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해 보았다. (그렇다! 사실 내가 공교롭게도 오늘 아침에 돌아오지 않았고 또한 이 고종 오라버니의 도움이 없었다면 본파에서는 흉수를 찾으려는 일조차 하지 않게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 아닌가! 실로 흉수로서는 충분히 낙 관할 만한 상태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와같이 생각하게 되자 문득 사도백봉의 뇌리에 섬전처럼 스치고 지나 가는 생각이 있었다. (아니 그렇다면 이번에 흉수를 찾지 않고 그냥 넘어갔을 경우에 본파에 서 가장 커다란 이득을 보게 되는 사람은 누구였을까? 점창사수는 이모 화가 죄를 뒤집어 쓰게 되었을 것이니 결국 그 다섯명의 장로들이 가장 커다란 이득을 보게 되는 것이 아니었을까? 틀림없이 그들 가운데 점창 장문인이 되는 사람이 있게 되었을 것이다!) 사도백봉은 다시 오늘낮에 굳이 이모화를 흉수로 몰아서 제거하려고 했 었던 장로들의 행동을 상기해 보고는 점점 더 자시의 생각이 틀림없다고 여겨져서 다시 가슴이 쿵쾅거리며 보지 못하고 있다가백리자성의 말을 듣고는 문득 그와같은 사실을 떠올리게 되었던 것이었다. 사도백봉은 흉수가 그 다섯명의 장로들 가운데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크게 흥분하고 격동하여 가슴이 일시에 터져나갈 것 같았지만실로 이 일 은 하나하나가 매우 중대한 결과를 낳는 것이기 때문에 사도백봉은 일단 은 자신의 감정을 안간힘을 다해 억누르고 무표정한 얼굴로 백리자성을 행해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그 흉수를 찾아낼 수가 있는 것이죠?" 백리자성은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 방법은 다소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지만 실로 아주 간단하 오. 누군가 흉수로 생각되는 사람들과 약간 비무를 펼쳐 보이기만 하면 나는 그 즉시 그가 흉수인지 아닌지를 알 수가 있게 되오. 그러나 나는 그들이 쉽게 자신들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을까봐 우려하는 것이오." 사도백봉은 단지 비무하는 것만 보게 되면 흉수인지 아닌지를 판별할 수가 있다는 백리자성의 말을 쉽게 이해할 수가 없었지만 그런 얘기는 우선 흘려버리고 다시 입을 열어 자신의 최대 관심사를 물었다. "그렇다면 고종 오라버니께서 말하는 그 흉수로 생각되는 사람들이란 대체 어떤 사람들을 가리키는 거죠?" 백리자성은 잠시 그녀의 두 눈을 거너다 보더니 담담히 미소하며 대답 했다. "바로 당신이 지금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과 같소." 사도백봉은 그만 두 눈이 휘둥그래 졌다. "다섯명의 장로들 말인가요?" 사도백봉은 엉겹결에 그와 같이 내뱉고는 내심 화들짝 놀라서 급히 이 렇게 생각했다. (혹시 그는 남의 마음속까지 들여다보는 독심술까지 익힌 것이 아닐까?) 그러나독심술이라고 하는 것은 간혹 사마외도의 사술이나 환법 따위에 서 등장하곤 하는데 지금 백리자성이 그와 같은 것들을 사용한 것은 물 론 아니었다. 사람의 심리라고 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그 근원이 모두가 비슷비슷하기 때문에 깊이 생각해 보면 자연히 대강의 상대방의 생각을 알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백리자성은 대강의 상대방의 생각을 알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백리자성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다음에 입을 열어 말을 계속했다. "일반적으로 흉수의 소재를 나루 때에는 대개 세 가지로 나눌 수가 있 소. 그것은 첫째 흉수가 외부의사람인 경우와 둘째 흉수가 외부와 내부에 동시에 걸쳐 있는 경우그리고 셋째 흉수가 오직 순수하게 내부인일 경우 드이오. 내가 보기에는 이번에 흉수가 오직 사도가문의 사람들만 해치고 다른 인재들은 해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순수하게 내부인일 것이고 또한 그가 노리는 것은 점창파의 패권을 잡는 일이었던 것 같소." 백리자성이 한 말은 바로 다섯명의 장로들을 흉수로 지목하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었다. 하긴 점창파의 패권을 노리지 않았다면 누가 무엇 때문에 그들 사도가 문의 사람들에게만 살수를 펼쳤겠는가? 만일 외부인이었다면 그렇게 감쪽같이 할 수도 없었을 것이며 또한 일 부러 힘들어 그렇게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었다. 사도백봉은 문득 입술이 타는 듯 하여 혀를 내밀어 붉은 입술을 핥으며 다시 물었다. "그럼 그 다섯명의 장로들은 외부인들과 결탁했을 가능성이 전혀 없다 는 말인가요?" 다섯명의 장로들이 외부인들과 결탁을 한 것이라면 이 일을 수습하는 것은 더욱 어렵고 복잡해질 것이기에 사도백봉은 어느 정도 안심을 하며 확인하듯 물어본 것이었다. 그런데백리자성은 의외에도 고개를 저으며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현재의 점창파에서 최고의 강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 이 바로 그 다섯명의 장로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대로 둔다면 그들 가 운데에서 장문인이 나올 것으로 보아 그들 가운데 흉수가 있는 것이 거 의 확실하오. 그러나 비록 이번의 일만은 그들만의 짓이었다고 해도 남황 에서의 혈사는 결코 그들만의 힘으로는 불가능했을 것이니 필시 외부의 도움이 있었을 것이오." (.......) 사도백봉은 거의 무심코 물어보았다가 느닷없이 백리자성의 입에서 놀 랍기 짝이 없는 얘기를 듣고는 이는 그야말로 점입가경이라고 할 수 있 는지라 그만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눈을 크게 뜬 채 소리쳐 물었다. "그그렇다면 우리 백부님 등이 돌아가신 것도 사실은 태양마교의 짓이 아니라 바로 그 흉수...... 그 자들의 짓이었다는 말인가요?" 이때 주위에는 많은 점창파의 제자들이 저마다 술과 음식을 마시고 모 닥불의 앞에서 토론을 하며 시끄럽게 소란을 피우고 있었기 때문에 사도 백봉의 음성이 다소 크기는 했어도 누구도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못한 것 같았다. 실로 이런 상황에서 오히려 조용한 곳에서의 밀담보다도 이런 곳에서의 얘기가 더욱 비밀이 지켜질 수가 있는 것이었다. 백리자성은 담담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들이 다소 착각을 했었기 때문에 흔적이 남았으므로 일단 그렇게 흔 적이 남겨진 이상은 결코 내 눈을 속일 수는 없는 것이오. 사실 나는 미 리부터 태양마교의 무공에 대해서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곧 그들의 짓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소." 사도백봉은 이 백리자성이 기실은 아까 시신들을 보는 순간에 모든 상 황을 파악하고 있었으면서도 여태까지 그토록 태연하게 행동해 왔었다는 것을 홀연히 깨닫고는 일순 이 사람의 심기를 헤아릴 수가 없다는 생각 이 들어서 한동안 멍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가사도백봉은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생각을 해보고는 놀라 급히 물었다. "그렇다면 혹시 그 흉수는 백부님 등이 가지러 갔던 그 검경을 탈취하 기 위해 그러한 모든 일을 벌였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사도백봉의 말은 바꾸어 말하자면 지금 그 흉수들의 손에 검경이 있을 지도 모른다는 의미였다. 백리자성은 천천히 고개를 가로지었다. "물론당시 흉수들은 장문인 일행이 적염동에서 일을 마치느라 피곤해진 순간 노려 급습을 했을 것이오. 따라서 흉수의 손에 검경이 들어갔을 가 능성은 매우 큰 것이지만 이 검경의 일은 워낙 극비에 속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흉수가 미리 그러한 내용마저 알고 있었다고 말할 수는 없소. 내 가 보기에는 흉수는 그저 이곳의 패권을 얻고자 했었던 것 같소." 사도백봉은 문득 이 검경의 일일 그의 말대로 그토록 극비에 붙여졌던 것이라면 어떻게 그가 그렇게 자세하게 알고 있는 것인가를 묻고 싶어졌 으나 이내 자제하고 천천히 자신의 뇌리속에 떠오른 생각을 정리하고 물 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린 어떻게 해야 하는 거죠?" 평소에 점창파에서 위세를 떠리는 사도가문의 외동딸로 매우 총명하다 고 스스로 자부하고 있었던 사도백봉이었는데 지금은 그저 백리자성의 지시만을 기다리고 있는 형편이니 다소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지만 워낙 에 위기에 처한 상태인지라 마치 그런 것들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백리자성은 잠시 그녀의 얼굴을 보며 뭔가 생각에 잠긴 듯 하다가 대답 했다. "내가 보기에 아까 그들은 필승을 자신하고 있었으나 다소 일을 그르치 게 되자 당황해하는 눈치였소. 따라서 반드시 머지 않아서 그들의 새로운 암격이 시작될 것이오. 다만 내가 아까 다소 어수룩한 척 했기 때문에 필 시 그들은 먼저 우리를 제거하려고 하기 보다는 장문인의 직위에 올라 힘으로 누르려고 할 것이니우리가 그들의 의도를 막고 효과적으로 대응 해 간다면 과히 곤란하지는 않으리라고 보오." 사도백봉은 내심 그렇지 않아도 자신이 장문인의 직위에 취임하는 것에 대해서 백리자성의 도움을 받으려고 생각하고 있었다가 그와 같은 말을 듣고는문득 자신이 감히 백리자성을 두고 장문인이 될수는 없는 일이라 고 여겨져서 말했다. "그렇다면 이번에 고종 오라버니께서 본파의 장문인으로 취임하도록 하 는 것이 어떻겠어요? 그렇게만 둢a면 만사가 다 자연스럽게 풀려갈 거예 요." 여문량 등은 옆에서 이 얘기를 듣고 있다가 놀라서 급히 사도백봉에게 제지하는 눈빛을 보냈지만 사도백봉은 일단 마음을 굳혔는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백리자성은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이미 깊은 병에 걸려 있고 또한 호숫가에서 시간을 보내기를 좋 아하는 사람이니 장문인의 재목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할 수가 있소. 다 만 내가 듣기로 나의 외숙부님들 중에서 전대장문인과 불화 때문에 스스 로 떠나가 강호에서 은거하고 계시는 분이 한분 계시다고 했는데만일 그 분이 오시게 되면 장문인의 직위를 맡기기로 하고 우선 그동안 외사촌 누이가 그 대행을 하면 어떻겠소?" 사도백봉은 그 말에 일순 깜짝 놀라서 말했다. "아! 바로 능광검(凌光劍) 사도계강(司徒季强)막내숙부님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렇다. 기실 사도가문이 점창파에서 그렇게 위세를 떨치게 배경에는 그만큼 우수한 능력을 지닌 형제들이 많았기 때문이기도 했는데그들 가운데에는 사도백위의 패도적인 행사에 반감을 품고 떠나가서강호에 은거해 있는 사람도 하나 생겨나게 되었다. 그 사람이 바로 사도인화의 바로 위에 있는 오빠이자 사도숙강의 바로 아랫동생인 넷째 사도계강이었는데 점창파에서 오래 머물지 않은 사람들 은 사도형제들이 모두 세명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기실은 사도인화를 포함하여 모두 다섯명이었다. 이 사도계강은 본래 가문 자체가 싫어서 떠났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가문의 참변소식을 접하게 둢a면 자연 돌아오게 될 것이다. 원래 사도백봉도 그러한 일을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 워낙에 큰 일을 당 했기 때문에 정신이 혼란스러워서 미처 막내숙부가 있었다는 것을 잊고 있었던 것이었다. 옆에서 이 얘기를 듣고 있던 여문량은 즉시 사도백봉에게 눈짓을 보내 어 어서 그녀가 그의 제안에 승낙할 것을 권했다. 만일 정말로 사도계강이 돌아오게 되면 당연히 장문인의 직위는 그가 맡게될 것이지만원래강호하고 하는 곳은 내일의 삶을 기약할 수 없는 험 란한 곳이기 때문에 사도계강이 이미 죽어서 돌아오지 못할 경우에는 그 대행인 사도백봉이 저절로 장문인의 직위에 오르게 되기 때문이었다. 여문량 역시 사도계강에 대한 얘기를 알고 있었지만 과연 그가 돌아올 것인가에 대해서 회의를 품고 있었기 때문에 이렇듯 적극 사도백봉을 밀 고 있는 것이었다. 사도백봉은 이번에는 여문량의 뜻이 자신의 생각과 그리 다르지 않기 때문에 다소 고개를 끄덕이고는 백리자성의 말에 대답했다. "좋아요! 막내숙부님이라면 저도 좋아하고 있었기 때문에 제가 당분간 그분이 돌아오기 전까지만 장문인의 대행직을 맡고 있도록 하죠. 하지만 저는 사실 능력이 별로 없는 계집애에 불과하기 때문에 고종 오라버니께 서 적극적으로 도와주셔야 해요." 사도백봉의 숙부가 여러명이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는 워낙에 백부 가 두명이나 되고보니 사도계강을 막내숙부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었다. 사도백봉의 말에 백리자성은 미소하며 대답했다. "내가 무슨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지만 이번의 흉사에 대해서는 적극 적을 나서서 그대가 장문인의 대행직에 오를 수 있도록 해줄 것이니 너 무 염려하지 마시오." 여문량은 옆에서 눈짓으로 백리자성에게 앞으로 계속 점창파에 남아 있 게 해야 한다고 신호를 보냈지만사도백봉은 일시에 그 눈짓이 무슨 의미 인지 파악하기가 어려워서 백리자성에게 그 일에 대해서 다시 부탁하지 못했다. 따라서 할 수 없이 이번에는 여문량이 직접 나서서 백리자성에게 말했 다. "본파는 이번에 그 원기를 크게 상하게 되어 설령 흉사를 처리한다고 해도 과거의 위세를 되찾으려면 수십 년의 세월을 필요로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차제에 백리선생께서 호숫가로 돌아가지 마시고 본파에 들어오 셔서 힘을 써주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러나 백리자성은 그 말에 미소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점차아는 비록 다소의 원기를 상하게 되었다고 해도 이번의 흉사를 처 리하게 되면 그대들과 같은 인재들이 빛을 발하게 되어 예전의 위세를 금방 되찾게 될 것이오. 실로 나같은 호숫가의 야인이 일부러 뛰어들 필 요는 없는 것이지요." 여문량은 백리자성의 두 눈이 고요하게 가라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이 미 그의 마음이 굳어져서 뜻을 돌리기는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사도백봉도 옆에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막내 숙부님이 돌아오시면 그분이 알아서 잘 하실 거시니 너무 걱정하 지 말아요." 여문량은 내심 속이 타서 생각했다. (나는 지금 그가 돌아오지 않을 경우를 생각하고 있는 것이라는 말이 오.) 강호의 생리는 바로 약육강식인 것이어서 제아무리 명문대파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고 한번 그 위세가 허약해지면 언제 어느 때 주위 의 강자들에게 잡아 먹혀 버릴지 모르는 일이므로 여문량이 지금 노심초 사하고 있는 것은 실로 당연했다. 백리자성이 비록 능력이 탁월하기는 해도 그가 세속의 일에 신경을 쓰 지 않고 호숫가에 묻혀 살게 되면 먼곳의 물로써 가까운 불을 끌 수가 없다는 이치와도 같게 되지 않겠는가? 그런데여문량이 다시 한번 수단을 강구하여 백리자성의 마음을 돌리려 고 생각하고 있는데 문득 이때 주위의 분위기가 이상해지는 것을 느끼고 그쪽을 시선을 돌리게 되었다. "누구냐!" 마침 이모화가 운기조식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는데 그의 주변 을 지키고 있었던 전백승이 주위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백리자성과 여문량 등이 대화를 중지하고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새 그들의 주위는 수십명의 제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었고 그들이 각 기 흉험한 기세로 다가들고 있는 중이었다. 전백승이 눌라서 소리친 것은 실로 당연했다. 그러자문득 그 수십명이 제자들이 다가들던 걸음을 움찔 멈추더니 그 가운데에서 한명의 장한이 음침한 음성으로 대꾸하는 것이었다. "우리들은 모두 장문인의 지시를 받고 왔소. 당신들은 어서 순순히 포박 을 받도록 하시오!" 여문량은 그 장한이 발 자신과 같은 3대의 제자인 것을 알고 몸을 일으 키며 소리쳐 물었다. "본파의 장문인의 직위는 아직 공석이 것으로 아는데 대체 어느 누가 장문인이 되었다는 말이오?" 그 3대 제자는 원래 이 점창사수를 은근히 두려워하고 있었지만 시기하 는 마음도 있었기 때문에 이런 기회에 자신의 위상을 높여줄 생각을 대 꾸했다. "본파의 장문인은 당연히 본파에서 가장 지혜로우시고능력이 탁월하신 좌염기좌장문이시지 누구이겠는가? 그대들은 저 흉적 이모화를 두둔하고 본파의 윗사람들에게 반기를 들려고 했으니 어서 포박을 받으라!" 좌염기라고 하면 바로 아까 낮에 사도백봉과 다소 말다툼을 했었던 그 몸이 빼빼 마르고 눈빛이 영활하게 보이는 좌장로를 말하는 것이었다. 원래 이 좌장로는 그 다섯명의 장로들 가운데에서도 심기가 가장 깊고 무공 또한 높아서 경계의 대상이 되었는데막상 이렇게 그가 장문인의 직 위에 올랐다는 소리를 듣자 사도백봉 등은 바로 그가 흉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또한 그의 행사가 이처럼 신속한 것에 대해서 내심 놀라움 을 금치 못했다. 만일 그가 이미 점창파의 장문인이 되었다면 그들이 이제까지 논의한 내용은 모두 헛것이 되고 마는 것이 아니겠는가? 음침한 음성을 쏟아낸 그 3대의 제자를 위시로한 수십명의 제자들은 겉 으로는 흉험하게 나왔지만 백리자성과 그의 시종들의 능력을 낮에 이미 보았고 또한 점창사수의 뛰어난 능력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감히 쉽게 덤벼들지는 못했다. 사도백봉이 장내의 상황을 살피다가 몸을 일으켜서 소리쳐 말했다. "우리는 아직 그가 장문인의 직위에 오르는 것을 보지 못했으니 너의 말을 믿을 수가 없다. 그러니어서 우리를 그가 있는 곳으로 안내해라!" 기왕에 일이 터졌으니 직접 부딪쳐 보겠다는 사도백봉의 생각은 제법 예리한 상황 판단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그 장한이 사도백봉에게 감히 무례할 수가 없다고 생각되었는지 금방 태도가 수그러져서 대답했다. "그렇다면 어서 우리를 따라오시오!" 부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그 끔찍한 장례식을 치루느라 어수선했던 점창 파의 이 중악전은 이미 거대한 횃불 등으로 인해 대낮과 같이 환하게 밝 혀져 있었다. 사도백봉 등은 자신들이 잠시 밀담을 나누느라 벌써 상황이 이렇게 돌 아가고 있었던 것을 몰랐었다는 사실에 내심 어이가 없었으나 이미 대세 가 기울어져 엎질러진 물과도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기실은 다섯명의 장로들이 일부러 그들을 속이기 위해 그들이 앉 아 있는 부근에는 제자들을 보내 술과 음식을 먹고 마시면서 떠들게 해 놓고 뒤에서 일을 꾸몄기 때문에 자연히 느닷없이 이런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던 것이었으니이는 그들 다섯명의 장로들이 기민했기 때문이었다고 말할 수가 있었다.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중악전 내부에는 수백명의 제자들이 매우 엄숙한 표정으로 도열해 있었고 중악전의 내부에 마련해 놓은 태사의에는 다섯 명의 노인들이 다소 근엄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는데 다름아닌 그들의 얼 굴을 보는 순간 내심 치를 떨었으나 실로 지금과 같은 상황일수록 더욱 침착하지 않으면 안되다는 것을 생각하고 표정을 더욱 싸늘하게 굳히며 앞장서서 대청의 앞으로 걸어들어갔다. 그러자태사의의 부근에 시립하고 서 있던 몇 명의 장한들 가운데에서 한 사람이 냉랭한 음성으로 소리쳤다. "멈춸! 감히 죄인들이 어딜 위로 오르려고 하느냐? 어서 그 자리에 무릎 을 꿇지 못하겠느냐!" 사도백봉은 그 장한 역시 3대의 제자들 가운데의 하나라는 사실을 알았 으나 전혀 신경쓰지 않고 곧장 좌염기를 향해 싸늘하게 입을 열었다. "좌장로님! 당신이 과연 그렇게 장문인의 직위에 오를 수가 있다고 생각 하나요?" 태사의에 앉아 있던 좌염기를 비롯한 다섯명의 장로들은 그녀 등이 나 타나자 안면에 매우 음침한 표정을 떠올리고 있다가사도백봉의 질문에 좌염기가 문득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너와 같은 어린아이가 본파의 장문인이 되어야 옳다는 말이 냐? 본파는 이미 수백 년의 전통을 가지고 있는 명문대파이기 때문에 실 로 너와 같은 어린 계집아이는 감히 장문인의 직위를 노려서는 아니되는 법이다." 좌염기의 말이 떨어지자 일순 그의 좌우에 앉아 있던 네명의 장로들 뿐 만 아니라 안쪽에 도열하고 있었던 수백명의 제자들의 입에서 거칠은 함 성이 터져나왔다. "옳으신 말씀이오! 본파를 아직 겨드랑이에 솜털도 가시지 않은 계집아 이가 삼키려고 하다니 그게 어디 될 법이이나 한 소리겠소?" "좌염기 좌장문인께서는 어서 저런 요망한 계집아이와 그 무리들을 응 징하여 뿌리를 뽑아야 할 것이오. 어서 저 반적의 무리들을 처단하시오!" "핫핫핫핫! 아직 그곳에 비린내도 가시지 않은 계집아이야. 공연히 이곳 에 나타나서 개망신을 당하지 말고 어서 시집이나 가버리는 것이 어떠 냐? 네년이 시집을 온다면야 이 서방님께서 당장에 첩으로 맞아들이도록 하지. 핫핫핫......" 사도백봉은 차마 처녀의 몸으로서 듣기 어려운 욕설들을 듣게 되어 금 새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으나 굴하지 않고 장내의 소요가 가라앉기를 기 다려서 소리쳤다. "저는 결코 본파의 장문인이 되고자 하는 것이 아니예요! 다만 제가 지 금 온 것은 저기에 있는 좌장로가 전대의 장문인과 우리 아버지를 살해 한 흉수라는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가 장문인이 되는 것 을 못하게 하려는 것이예요!" 사도백봉은 스스로 어떤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으 나 장내의 소요를 의식하여 그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그와 같이 말한 것 이었다. 과연 다른 얘기였다면 다시 험한 소요가 일어났었겠으나 전대장문인을 살해한 흉수가 바로 좌장로였다는 말이 사도백봉이 입에서 떨어지자 장 내의 소요는 순간 물을 끼얹은 듯이 조용하게 가라 앉았다. 좌염기가 만일 전대장문인을 살해했다면 이는 일파의 가장 커다란 죄인 으로 낙인찍혀 내외적으로 그가 결코 점창파의 장문인이 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제11장 상상불허의 무예들 좌염기는 사도백봉이 그와 같은 폭탄선언을 하자 안색이 다소 사악하게 변했으나 여전히 몸을 일으키지 않고 음침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계집아이야! 너는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있다고 하였느냐?" 사도백봉은 무심결에 발해버린 말의 내용에 책임을 질 수가 없는 입장 이었기 때문에 자연 고개를 돌려 백리자성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녀가 좌염기가 전대장문인을 살해했다고 믿는 것은 거의 전적으로 백 리자성의 말에 의해서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백리자성은 이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골 똘하게 깊은 생각에 잠겨 있어서 전혀 그녀의 시선을 받지 않을 뿐만 아 니라 쉽게 입을 열 것 같지도 않았다. 그것을 보고 사도백봉의 난처한 상황을 해소해주기 위해 여문량이 즉시 앞으로 한걸음 나서면서 입을 열었다. "좌장로! 사도소저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것은 바로 당신에게 그와 같은 가능성이 있는 상태에서 아무런 능력을 발휘하는 것도 보지 못하고 장문 인으로 인정할 수가 없다는 뜻이오. 당신이 만일 진정으로 본파의 장문인 이 되고 싶다면 실력으로 그 당위성을 보여야 할 것이오." 여문량은 나서서 말을 하는 동안에 문득 백리자성이 아까 다섯 장로의 비무하는 광경을 보게 되면 흉수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 수가 있다고 했 던 말을 상기하여 그처럼 말끝을 돌린 것이었다. 기실여문량은 이 좌장로에 비해서 한 배분이 낮았기 때문에 당연히 좌 장로님하고 공손하게 불렀어야 했는데지금 그저 좌장로라고 부르고 있는 것은 그가 좌장로에게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다는 뜻이라고 할 수가 있었 다. 이 좌염기는 평소에 그런 말을 들었더라면 상당히 화가 났었을 것이지 만 당장에 사도백봉이 무슨 증거를 대려다가 만 사실에 대해서 내심 다 소 안도의 숨을 내쉬고 있었기 때문에 더이상 사도백봉을 추궁하지 않고 음산하게 말했다. "나의 실력을 보이라는 것은 못할 것도 없다. 그러나 사도소저는 이미 성년의 나이가 되어서 말과 행동에 책임을 져야하는 만큼 아까와 같은 망발을 되풀이한다면 나는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그녀는 전대 장문인의 친척이었던 만큼 아까 나에게 무례했던 것을 사죄하고 용서를 빈다면 나는 그녀를 따로 대우해줄 생각이 있다." 좌염기의 이 말을 한쪽으로는 엄하게 대하면서 한쪽으로는 회유하는 은 근한 술책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이미 그가 자신의 불공대천의 원숙라는 사실을 훤하게 알고 있는 사도백봉은 거기에 말려들어 갈리가 없었다. 여문량은 사도백봉의 눈치를 살핀 후에 다시 좌염기를 향해 말했다. "우리 사도소저께서는 굳이 당신의 덕을 보고 싶은 마음이 없으시다고 하오. 그러니 어서 당신은 자신의 무예실력이나 드러내 보이는 것이 어떻 겠소?" 좌염기는 사도백봉의 얼굴을 보고 그녀가 자신을 향해 매우 사나운 눈 빛을 하고 있는 것을 알고는 표정이 더욱 음침해졌으나 이내 싸늘하게 말했다. "네가 정히 나의 무예를 보고 싶다면 내가 나서지 못할 것도 없지만 그 래도 너는 우선 이 한 사람을 상대한 후에 나에게 도전해야 할 것이다!" 말과 함께 좌염기가 자신의 우측에 앉아 있는 정장로를 바라보자정장로 가 즉시 몸을 날려서 장내의 중앙에 훌쩍 내려섰다. "누가 감히 나를 상대하겠느냐?" 정장로가 장내의 중앙에 서서 사도백봉의 일행을 주시하며 소리치자이 미 그에게 몹시 당한 바가 있는 이모화가 즉시 화를 내며 신법을 펼쳐 나가려고 했으나이때 어느새 여문량이 다가와 그의 손을 잡고 있었다. 이모화는 접골을 시키고 내상을 치료한지 얼마되지 않았기 때문에 불리 할 뿐만 아니라 자연 위험해지기가 쉽기 때문이었다. 원래 점창파에서는 장로들의 무공이 대단하여 3대의 제자들이 상대할 수가 없었지만 그래도 이 점창사수는 예외적이라고 할 수 있느 기재들이었기 때문에 이모화가 정 상적인 상태에서 정장로와 싸우게 둢a면 그가 진다고 말하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이때 장내에 엄숙하게 도열해 있던 수백명의 제자들은 원래가 무공을 익히는 무인들로서 다른 사람들이 비무를 하는 광경을 보기를 좋아하는 습성이 있었기 때문에 이처럼 정장로와 점창사수간의 비무하는 광경을 볼 기회를 맞이하자 더이상 소란을 피우지 않고 조용히 장내를 주시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사도백봉의 일행 가운데에서 즉시 누가 나서서 자신에게 도전하려고 하 지 않자 정장로는 음침하게 그들을 둘러보며 다시 소리쳤다. "너희들은 그저 주둥아리만 살았느냐? 막상 내가 나서니 꽁무니를 빼다 니! 그러고서도 과연 사내대장부라고 할 수 있겠느냐? 칠척장신의 황종보가 이것을 보고 천천히 걸음을 옮겨 정장로의 앞으로 다가섰다. "내가 한번 맞서보겠소!" 정장로는 다소 왜소한 체구의 노인이었는데 이 거대하고 흡사 사자와도 같은 강인한 체구를 가진 황종보가 자신에게 다가서자 일순 자신이 없어 지는지 움찔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다시보면 그것은 마치 연극이었는지 이어 즉시 황종보의 몸을 향해 빠르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뒈져랏!" 정장로는 비록 체구는 다소 왜소한 편이었지만 그의 주먹에서 쏟아져 나가는 일권의 힘을 결코 거대한 체구의 황종보보다 못하다고 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황종보는 정장로가 어느새 자신의 앞으로 달려들어 일권을 휘두르는 것 을 보고 즉시 자세를 다소 낮춘 상태에서 마주 주먹을 날렸다. 그런데 정장로의 주먹과는 달리 이 황종보의 주먹에는 실로 무시무시한 암경이 실려 있어서 흡사 광풍이 휘몰아치는 듯한 은은한 우뢰음이 섞여 나왔다. 실로 이것이 바로 황종보의 절학인 흑풍와선기(黑風渦仙氣)로서 일단 그 권력이 펼쳐지기만 하면 수장 밖까지 위력이 미치기 때문에 피하기도 어 렵고 맞서기는 더더욱 곤란한 무공이었다. 장내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던 수백명의 제자들은 이런 광경을 보고 이 제 곧 정장로의 왜소한 몸집이 황종보의 위맹한 권풍에 휘말려 날려갈 것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들은 점창파의 무공에 대해서 거의 대부분의 특성을 알고 있었기 때 문에 지금 이 정장로가 굳이 자신의 장점을 살리지 않고 상대의 장점인 권력으로 맞서려고 한 일이 잘못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거의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기이한 사태가 벌어졌다. 황종보의 위맹한 흑풍와선기에 의해 금방이라도 뒤로 날려갈 것으로 생 각했던 정장로의 신형이 갑자기 좌우로 심하게 움직이는 듯 하더니 어느 새 황종보의 뒤로 돌아나가 그의 등줄기를 잡아서 앞으로 휙 집어던지는 것이 아닌가! 황종보는 엉겁결에 놀라서 허공에서 급히 몸을 뒤집어서 땅바닥에 내려 선 다음에 다시 정장로의 면전으로 달려들었지만사람들은 느닷없이 정장 로가 그토록 점창파의 절기인 흑풍와선기를 쉽게 파해버린 일에 대해서 내심 충격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점창파의 이 절기가 실로 그처럼 쉽게 파해될 수 있는 무학이라면 결코 점창파에서도 절학이라고 말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사람들은 잠시 자신들의 눈을 의심했지만 인 아마도 정장로가 무슨 특 이한 신법을 터득하여 일시적으로 황종보의 절기를 파해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마치 수백명의 제자들의 그러한 의구심을 대변하기라도 하듯이 황종보 의 이번의 공격을 흑풍와선기를 쌍권으로 운용한 위맹하기 짝이 없는 것 이었고 그것은 이내 정장로의 몸을 시꺼멓게 뒤덮어 버리는 것이었다. 그런데이번에도 마악 황종보의 쌍권이 정장로의 몸에 닿으려는 순간에 문득 정장로의 신형이 마치 아래로 꺼져내리는 듯 하더니 어느새 황종보 의 등뒤에 이르러 그의 등줄기를 잡아서 휙하고 내던지는 것이 아닌가? 이 시로 귀신 같은 정장로의 신법을 무려 두번씩이나 본 수백명의 점창 파의 제자들의 심정은 일순간 매우 복잡해졌다. 한편으로는 매우 괴이쩍고 신비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들이 그토록 믿었던 절기에 대한 믿음이 사라져서 지극히 허탈한 기분이 되는 것이었다. 만일 황종보가 전개하는 흑풍와선기가 이토록 맥없이 무너지는 형편없 는 것이었다면 아예 점창파의 모든 무학을 처음부터 다시 정리해야 할지 도 모르는 일이었다. 더욱이 당사자인 황종보의심사는 가장 괴로운 것이어서 무려 두번씩이 나 정장로에게 내던짐을 당하자 일순 허공에서 몸을 뒤집어 한소리 크게 외침을 발하고는 즉각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질 정도로 흑풍와선기를 극한으로 끌어올려 정장로를 향해 덮쳐갔다. 정장로는 황종보가 자신의 공력이 실린 힘을 다만 한차례 허공에서 몸 을 뒤집고 땅을 박차는 것으로 해소하고 다시 허공에서 시꺼먼 구름같은 권경을 펼쳐서 덮쳐드는 것을 보고 다소 놀라서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수백명의 제자들도 황종보의 그와 같은 절기를 보 게 되자 실로 그의 능력을 재삼 평가하는 기분이었다. 그런데정장로는 잠시 뒤로 주춤하는 듯 하더니 이내 상체를 기우뚱한 자세로 황종보를 향해 마주 달려들면서 어느새 다시 그의 뒤에 이르러 일권을 날리는 것이 아닌가? 퍽! 황종보는 느닷없이 정장로가 뒤에 나타나서 공격할 줄을 모르고 있다가 고스란히 그의 일권을 등에 맞고 입으로 한줄기 선혈을 내쏟았다. 비록 그의 하제가 매우 견실하여 앞으로 넘어지지는 않았지만 이것은 그가 명백하게 진것이나 다름이 없기 때문에 황종보는 잠시 그대로 서서 멍하니 한숨을 내쉬다가 말했다. "내가 졌소!" 이어 그가 천천히 돌아오자 사도백봉의 일행인 여문량 등은 너무나도 어처구 니가 없는 심정이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비록 황종보가 정장로를 맞이하여 쉽게 이길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 지만 이렇게 전혀 맥도 못쓰고 지게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만일 정장로를 비롯한 다섯명의 장로들의 무공이 모두 이와 같이 대단 한 것이라면 자신들은 필시 방법을 달리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황종보가 일행의 안으로 들어와서 한쪽에 선채로 묵묵히 운공조식에 들 어가자 이번에는 전백승이 굳어진 안색으로 앞으로 나서서 정장로에게 말했다. "나는 병기를 쓸 것이니 당신도 어서 병기를 고르시오!" 그들은 이 비무가 일파의 장문인의 선출을 가름하는 것이기 때문에 비 록 서로를 증오하고 있다고는 하나 서로가 공정하게 하지 않을 수가 없 는 일장인 것이었다. 그때정장로가 다소 머뭇거리자 이번에는 좌염기의 좌측에 앉아 있던 한 사람의 장로가 훌쩍 신법을 날려서 정장로의 앞을 막아서며 전백승을 마 주했다. "정장로! 이번 내가 상대할테니 당신은 올라가서 쉬도록 하시오." 정장로는 기실 기이한 신법을 펼쳐서 황종보를 꼼짝 못하게 했기 때문 에 별로 힘도 쓰지 않은 것 같았으나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났다. "수고하시오 양장로!" 이 양장로의 생김새는 뚱뚱하게 살이 쪄서 펑퍼짐한 얼굴이었는데 등 뒤에서 한 자루의 장검을 뽑아들더니 즉각 아무소리도 하지 않고 전백승 의 면전을 향해 덮쳐들었다. 순간전백승은 이를 기다리기라도 한듯이 쌍수를 빠르게 움직여 앞가슴 과 허리춤에 꽂아놓은 단도를 뽑아 발출하기 시작하였는데미처 그의 손 이 움직이는 것이 보이지도 않은 것 같았는데 이니 휙휙휙하는 소리와 함께 세개의 단도가 양장로의 면전으로 날아들고 있었다. 바로 섬류무형수라고 하는 무공을 운용하여 펼치는 이 비도술은 지극히 빠르고 탄력적이어서 흡사 그 소리만으로도 상대의 혼을 빼앗을 수가 있 을 것 같았다. 수백명의 사람들이 그 광경에 시선을 집중하였는데 어느새 전백승의 그 세개의 단도는 마치 유성처럼 날아서 양장로의 면전 바로 앞까지 도달하 여 양장로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피투성이가 되고 말것 같았다. 사람들은 그저 말로만 들었는데 기실 이 전백승의 비도술이 이처럼 빠 른 경지에 도달하여 있는 것을 보고는 저마다 다소간의 낯빛이 변했다. 그런데바로 그 순간에 양장로의 장검이 기이한 호선을 그리더니 전백승 이 날려보낸 세개의 단도가 갑자기 마치 무형의 벽에 부딪치기라도 한듯 우수수 떨어져 내리는 것이 아닌가! 사람들은 그와같은 양장로의 신기에 가까운 무공을 본 순간 마치 허깨 비를 본 것 같이 두 눈이 휘둥그래졌다. 공력이 실려있는 상태에서 빠르게 날려오는 비도를 맞추지도 않고 떨어 뜨린다고 하는 것은 그들이 아직 들어보지도 못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양장로는 일단 세개의 비도를 떨어뜨린 연후에 계속해서 전백승의 앞으 로 덮쳐들었는데 순간 전백승은 세개의 비도가 실패하자 연속해서 세개 씩 여섯개의 단도를 날렸고 이어 빠르게 다시 세개의 단도를 더 날렸다. 실로 이와 같은 변화는 눈깜짝할 사이에 벌어지는 것으로 사람들은 두 눈을 부릅뜨고서야 겨우 그 아홉개의 단도가 휙휙휙휙하고 검은 광채를 발하며 양장로의 머리와 가슴그리고 아랫배를 향해 날아가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그 먼저 발출 여섯개의 단도는 각기 한쌍씩을 이루어 머리와 가슴배를 향해 다소간의 시간적 격차를 두고 날아가고 있었는데그것은 만일 양장 로가 최초의 세개의 비도를 맞추어서 떨굴 경우에 두번째의 비도에 의해 서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될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만일 그가 한쪽으로 날아오는 한쌍의 비도를 쳐내려고 한다면 역시 다른쪽으로 오는 비도를 피할 수가 없게 되는 것이므로 전백승의 이 비도술은 가히 놀라울만한 것이었는데거기에다 더욱 기이한 것은 바 로 그가 마지막으로 날려보낸 세개의 비도의 움직임이었다. 그 세개의 마지막으로 날아간 비도는 비록 가장 늦게 발출되었지만 가 장 속도가 빨랐고 어느 것은 앞서서 날아가는 비도의 뒷부분을 맞추었고 또한 어떤 것은 그저 스쳐지나서 앞질러 나아가서 도무지 상상할 수도 없는 변화를 일으켰다. 만일 이러한 변화가 느릿하게 펼쳐진다고 해도 막기 어려울 것인데 지 금 그것은 그야말로 눈깜짝할 사이에 펼쳐지고 있는 것이었는데 어찌 가 공스럽지 않겠는가! 사람들은 전백승의 비도술이 실로 이와 같은 경지에 이르러 있는 것을 보고 마치 자신이 그런 공격을 받고 있는 듯 하여 절로 소름이 오싹 끼 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비록 양장로가 먼저번에는 다소 기이한 검법으로 세개의 비도를 떨어뜨 렸지만 이번에는 필시 몇개의 비도에 맞아서 낭패한 몰골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때였다. 양장로는 비도가 마악 자신의 몸에 닿기 직전에 돌연 신형이 마치 허깨 비처럼 쓰러지더니 어느새 그의 육중한 몽뚱이가 땅바닥에 그대로 드러 누워 아홉개의 비도를 모조리 피해버리는 것이 아닌가! ............? 사람들은 대체 사람의 몸이 그처럼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에 놀 랐을 뿐만 아니라 마치시체처럼 꼿꼿하게 움직이는 괴이한 신법에 놀라 서 저마다 입이 크게 벌어지게 되었다. 헌데 바로 그 순간 다시 양장로의 신형이 마치 시체처럼 꼿꼿하게 벌떡 일어서더니 그대로 손에 들고 있는 장검을 전백승의 목에 대고 겨누는 것이 아닌가! 일반적으로 강호상에는 뇌려타곤이라고 하는 마치 당나귀가 구르는 듯 한 신법과 철판교라고 하는 몸이 무릎부분에서 뒤로 일자로 꺽여지는 신 법 등이 있기는 해도 이처럼 괴상망측하고 자유자재료 마치 끈이 묶여 있어서 저절로 일어나는 듯한 신법은 일찍이 없었었다. 전백승은 자신의 품속에 간직하고 있던 열두 자루의 단도를 모조리 날 리고 나서 신법을 펼쳐 피하려고 했지만 마치 양장로의 신법이 귀신과도 같아서 어느새 자신의 몸에 검날을 들이대는 것을 보고 그만 꼼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전백승은 자신의 비도술을 그처럼 신법으로 쉽게 피해내는 양장로에 대 해서 도저히 손을 쓸 수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우선은 어쩔 수 없이 목이 잘려나갈 상황이라 자연 안색이 창백하게 변해버렸다. 그런데 양장로는 일단 여기에서 전백승의 몸을 날려버릴 수는 있지만 그런다면 공정한 비무였다는 으식이 흐려질 것 같아서인지 괴이하게 웃 으며 검날을 그대로 겨눈 채 이렇게 묻는 것이 아닌가 "흐흐흐 이 후레자식아! 네가 감히 나를 상대할 수가 있을 것 같으냐?" 전백승은 실로 모욕적인 언사를 들었으므로 심하게 화가 치밀었으나 곧 포기하고 싸늘하게 소리쳤다. "나는 이미 졌으니 죽이든 살리든 마음대로 해라!" 양장로는 잠시 수백명의 제자들 쪽으로 바라본 뒤에 잠시 주저하다가 그대로 검날을 희수한 후에 흐흐흐 하고 웃으며 말했다. "만약 너희들이 우리에게 도전하려면 한 십년은 더 무공을 배워야 할 것이다. 자다시 우리에게 덤비고 싶은 자가 있느냐?" 여문량은 이 두번째의 비무를 치룬 전백승이 거의 죽음직전에서 살아돌 아오자 이제는 백리자성의 요구도 웬만큼 들어준 셈이라고 여겨서 손을 내저으며 대꾸했다. "확실히 당신들의 무공은 뛰어나구려. 우리는 이미 당신들의 상대가 되 지 못함을 알고 있으니 다시 싸우고 싶은 생각은 없소." 여문량의 이 말은 다소 교묘하여 비록 싸우지는 않더라도 다른 방법을 취하여 저항하겠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것을 보고 양장로가 음침하게 웃으며 태사의로 되돌아가자이어 좌염 기가 냉랭하게 웃으며 사도백봉을 향해 물었다. "사실 이 정장로와 양장로 등은 이미 나에게 승복한지 오래이다. 그런데 너희들은 고작 그들도 당해내지 못했으나 나에게는 더욱 더 상대할 수가 없을 것이다. 사도소저! 그대는 아직도 내가 장문인이 되는 것에 대해 할 말이 있는가?" 좌염기는 여문량이 아까 무예실력을 보이라고 했었던 것을 상기시켜주 며 그녀로 하여금 더이상 핑계거리를 찾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사도백봉은 물론 아무리 핑계거리가 없다고 해도 이 좌염기가 이대로 정식 장문인으로 되는 것을 그냥 놔둘 수가 없었다. 그런데마악 그녀가 입을 열어서 항변하려고 하는 순간에 문득 장내에 한 사람이 천천히 걸어나와 섰다. 사도백봉은 바로 그가 백리자성임을 알고 즉시 마음에 기쁜 생각이 들 어 입을 다물었다. 기실이 백리자성의 행동거지가 매우 신중하여 처음부터 신뢰감을 주어 왔었고 또한 놀라운 능력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사도백봉은 그가 나서는 순간 매우 든든한 기분이 들었던 것이었다. 좌염기 역시 사도백봉의 대답을 듣고자 하여 기다리고 있었는데 느닷없 이 백리자성이 가운데에 걸어나오는 것을 보고 다소 의아한 눈초리로 그 를 바라보았다. 이때 기이하게도 창백하던 백리자성의 얼굴에는 보기좋은 불그레한 홍 조가 떠올라 있었는데 사람들은 이 모습을 보고 혹시 그가 많은 사람들 의 앞에 나서게 되어 수줍어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백리자성은 그들의 생각외로 아주 낭랑한 음성으로 장내를 돌아 보며 입을 열었다. "나는 오늘낮에 여러분들 앞에서 한가지 약속을 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제가 채취했었던 시신들의 변화에 대한 원인을 규명해 내는 일이었습니다......" 백리자성을 알고 있었던 사람들은 원래 그가 매우 허약하여 목소리도 가늘게 들리곤 했었는데 지금은 모든 사람들이 들을 수 있을 만큼 아주 낭랑하게 음성이 울리고 있는 것을 보고 다소 기이하게 생각했으나 이내 그의 얘기속으로 빠져들어갔다. 기실수백명의 점창파의 제자들은 다소 끔찍하기는 했지만 오늘낮에 그 이십여 구의시신들의 변화에 대해서 괴이하게 생각하고 내심 궁금하게 여기는 점이 많았었는데 느닷없이 백리자성이 그 의문을 밝히겠다고 하 자 저마다 귀를 곤두세우게 되었다. 좌염기 역시 백리자성이 나서서 그와 같은 얘기를 꺼내기 시작하자 다 소 좋지 않은 느낌이 들었지만우선은 장내의 분위기가 그쪽으로 끌리고 있고 하여 잠자코 들어보기로 했다. 백리자성은 다소 느릿한 음성으로 입을 열어 말을 계속했다. "저는 당시 며칠 내에 원인을 규명할 수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다 행히도 얼마전에 그 원인을 알게 되어 지금 나서서 여러분에게 속시원히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우선 그 대답부터 간략하게 말씀을 드리자면 그 것은 바로 세 가지의 극독이 시신들에게 차별적으로 작용하여 변화를 일 으킨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어백리자성은 말을 하다가말고 약상자을 들고 와서 낮에 표본을 채취 하였던 다섯개의 작은 호로병들을 꺼내서 땅바닥에 한줄로 늘어놓더니 그것들을 하나씩 손가락으로 일일이 가리키며 말을 계속했다. 사람들은 그가 갑자기 그 표본들을 꺼내놓는 것을 보자 낮의 시신들을 다시 보는 듯 하여 정신을 차리고 그의 말을 듣기 시작해싸. "여기 있는 다섯개의 표본들 가운데 가장 심하게 부패되어 있는 이것은 바로 두 가지의 극독이 작용한 것인데 그 두가지의 이름은 오독실심산과 화시분입니다." 제12장 기이한 반전 사람들은 가장 심하게 부패되어 있었던 열명의 장로들의시신이 오독실 심산가 화시분에 중독되어 있었다는 말을 듣고 다함께 크게 놀랐다. 기실그 열명의 장로들은 거의 사도가문을 제외하고는 점창파를 대표한 다고 할 수 있는 중견의 인물들이었기 때문에 보다 덜 부패되었던 세명 의 원로들의 시신보다 제자들의 관심을 더 끌었다. 그런데그들의 몸에 중독되어 있었다는 이 오독실심과 화시분은 모두가 하나같이 무서운 극독으로 이루어진 것 뿐만 아니라 특히 오독실심산은 그것을 복용하면 그 사람의 의식조차 마비시킬 수가 있는 것으로 단장산 부골독과 함께 당금 신농방의 삼대절독의 하나에 해당되는 것이었으며 두번째로 화시분은 그야말로 악독하여 한번 닿으면 그 시신마저 한줌의 흑수로 녹아내리게 하는 유명한 극독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놀라움을 더욱 컸다. 백리자성의 음성은 매우 놀라는 그들의 심리 사이를 헤집고 여전히 낭 랑하게 울려퍼졌다. "그 시신들이 가장 심학 부패되어 있었던 원인은 바로 이 화시분의 괴 사의 절독으로 이루어진 음독인데 그와같은 음독한 사독의 성분이 들어 있었기 때문에 서로 상조하여 더욱 시신을 부패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비록 독의 성질에 관해서는 잘 알지 못했지만 이 백리자성이 의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말을 듣고 다소 수긍하는 빛을 보였다. 좌염기 역시 이때에는 다소 괴이쩍은 시선으로 백리자성을 바라보고 있 었는데 마치 그의 말을 더 들어보고 싶은 눈치였다. "그리고 이 두번째로 심하게 부패되어 있는 것은 단지 십여 일이라는 시간이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첫번째의 것과 차이를 보이는 것이었지 그 들이 중독 극독의 성분은 같은 것입니다. 즉첫번째의 시신들은 이미 십 여 일 동안 부패되어 있다가 화시분을 만난 것이었고이 시신들은 불과 죽은지 얼마되지 않은 상태에서 화시분을 만났기 때문에 보다 덜 부패되 게 되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기이한 것은 이 두 종류의 시신들이 비단 그 중독 독의 성분이 같을 뿐만 아니라죽을 당시에 입었던 내부의 상처 또한 완전히 같은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 사람들은 백리자성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더욱더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첫번째의 시신들은 장로들의 시신으로 이미 십여일 전에 남황에서 태양 마교들의 손에 의해 죽은 것이라고 했고두번째의 시신은 바로 사도가문 의 뇌정풍운용호표라는 일곱명의 아들들의 시신들로서 흉수에 의해 죽음 을 당한 것들이었다. 그런데만일 중독 독의 성분이 같다고 해도 이상할 것인데 거기에다 치 명적인 살수를 당한 그 수법까지 같은 것이었다고 한다면 이는 매우 기 이한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게다가사람들 가운데에서 대부분의 제자들이 이미 그 두종류의 시신들 의 내장이 똑같이 가닥가닥 끊어져 있는 것을 목격했었기 때문에 백리자 성의 이 말은 매우 신빙성이 있는 것이 아닐 수가 없는 것이었다. 이때 문득 좌염기가 침묵을 깨고 싸늘한 음성으로 입을 열어 백리자성 에게 물었다. "자네는 그래 지금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인가?" 이 좌염기의 음성은 비록 평상시의 어투였지만 그 어조에는 살벌한 음 한의 기운이 깔려 있어서 실로 듣는 사람들의 가슴을 섬뜩하게 했다. 백리자성은 이에 천천히 그를 향해 몸을 돌리더니 대답했다. "나는 지금 그 두 종류의 시신들이 기실은 한 사람에 의해 저질러진 것 이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오." "자네는 사람들을 구해주는 의원이라서 내가 좋게 생각해 와었는데 갑 자기 그게 무슨 망발이가? 그 시신들 가운데 하나는 남황의 태양마교들 에게 당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본파에서 직접 당한 것인데 어떻게 흉수 가 같을 수가 있다는 말인가? 이러한 곳에서 말을 함부로 하다니 그대는 감히 죽음이 두렵지 않다는 말인가?" 좌염기는 이 허약해 보이는 백리자성에 대해서 처음부터 대단하게 여기 지 않았었고 지금도 역시 그저 나약한 의원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따라서 자신의 무서운 기세로 겁을 주게 되면 자연히 질려서 물러날 것 으로 생각했었지만 실로 그가 처음부터 백리자성을 우습게 생각한 일 자 체가 그에게는 불운이었다고 말할 수가 있을 것이었다. 백리자성은 이에 오히려 담담한 미소를 얼굴에 떠올리며 여전히 낭랑한 음성으로 대꾸했다. "나는 그저 사실을 밝히려는 것인데 죽음이 두렵다 한들 그게 나와 무 슨 상관이 있겠소? 게다가 내가 듣기로는 남홍으로 길을 떠났었던 사람 들 가운데 살아 돌아온 사람이 없었다고 했는데당신이 그 시신들을 반드 시 태양마교들에게 당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으니 실로 이상한 일이 아니 오? 혹시 그 당시 남황에 있어서 그들이 태양마교도들에게 당하는 광경 을 직접 목격했던 것이 아니오?" 좌염기는 느닷없이 그와 같은 질문을 받게 되자 절로 당황한 마음이 들 어서 절로 안색이 변했다. 만일 그가 남황에 있었다고 하면 자신이 스스로를 흉수와 연관시키고 있는 꼴이 아니겠는가! 그렇다고 백리자성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다는 것도 이상한 것 같아서 좌염기는 눈살을 찌푸리며 어물아물 대답했다. "나는 당시 본파에 남아 있었는데 어떻게 남황에 있을 수가 있었겠는 가? 그리고 태양마교도에 관한 일은 사람들이 알려온 것이므로 나느 그 렇게 믿었던 것 뿐이네." 상대를 우습게 생각하고 있다가 백리자성에게 일격을 당하게 되자 좌염 기는 다소 정신이 혼란해지는 느낌이어서 이 나약해 보이는 의원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백리자성은 여전히 미소하며 그를 향해 물었다. "자는 당신이 쓸데없이 나의 말을 가로막고 진실을 밝히는 것을 꺼려하 는 것 같아서 혹시 흉수와 연관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이상하게 생각 한 것이오. 당신은 당신의 일을 직접 보지 못하고 또한 증거조차 없을 것 이니 내가 뚜렷한 증거를 제시하며 말하고 있는 것을 반박할 수가 없는 것이 아니겠소?" 좌염기는 시퍼런 안광이 번뜩이는 눈빛으로 백리자성의 얼굴을 노려보 다가 서서히 다시 태사의에 앉으며 대꾸했다. "그래 그렇다고 해두지. 그대는 다시 무엇을 말하려고 한다는 말인가?" 백리자성은 좌염기의 시선에 어느 정도 독기가 떠올라 있는 것을 담담 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나는 또한 그 두 종류의 시신들이 당한 무공수법에 대해서 알고 있는 데 그것들은 바로 일월신교의 월영인이라는 무공이라는 것이오." 월영인대체 그것이 어떤 무공인지 이를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 가운데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할 수가 있었지만 뜻밖에도 다섯명의 장로들은 이 말을 듣고는 저마다 크게 안색이 변했다. 특히 좌염기는 실로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백리자성을 노려보고 있었는 데 이것은 그가 마치 말해서는 안되는 금기사항을 말했기 때문에 그를 원수처럼 대하고 있는 것과도 같았다. 좌염기는 이빨을 뿌드득 갈더니 기이하게 백리자성을 노려보면서 소리 쳐 물었다. "대체 그 월영인이 어떻다는 것인가?" 헌데 이때백리자성이 마악 대답을 하려는 순간 느닷없이 좌염기의 좌우 에 앉아 있었던 정장로와 양장로가 번쩍 신형을 날려 백리자성을 향해 덮쳐오는 것은 물론이요. 그 뒤를 이어서 좌염기 역시 백리자성을 향해 마치 독수리처럼 날아오고 있었다. (.......) 사람들은 이와 같은 광경을 보고 저마다 놀라고 어리둥절해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대체 그 월영인이라는 것이 무엇이길래 저처럼 좌염기와 두명의 장로가 한꺼번에 날아와서 백리자성을 제거하려고 한다는 말인가? 사도백봉과 여문량 등은 더더욱 놀라며 그들 삼인의 공격에 대해서 어 떻게 백리자성을 구해야 할지 어쩔줄을 몰라하고 있는데 순간 그들의 뒷 전에서 두 줄기의 붉고 푸른 그림자가 번적 날아가더니 재빨리 백리자성 을 향해 덮쳐드는 정장로와 양장로의 앞을 막아서는 것이었다. 바로 그들은 백리자성의 두 시종인 홍아와 청아였다. 여문량 등은 비록 그녀들의 무공이 매우 대단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 만 그래도 과연 그녀들이 두 장로들을 물리칠 수 있을 것인가 하고 우려 하고 있는데다음 순간에 좌염기가 드디어 백리자성의 앞에 이르러 쌍장 을 휘둘러 공격해 가고 있었다. 이러한 광경은 마치 산넘어 산과도 같아서 홍아와 청아가 각기 한명씩 의 장로들을 맡았기 때문에 더이상 백리자성을 돌볼 수 없는 상태에서 좌염기가 공격해 들어 왔으므로 백리자성은 어쩔 수 없이 부득이하게 그 와 맞서야만 했다. 여문량 등은 자신들도 당할 수 없는 좌염기의 공격을 백리자성이 당할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한 일이었으므로 일이 다급하게 되었다고 생각하고 그를 구하기 위해 몸을 날리려고 했으나 이미 때가 늦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좌염기는 백리자성의 앞에 도달하자 즉각적으로 쌍장을 휘둘러서 공격 해 왔는데 순간 백리자성은 기이한 냄새가 코끝을 스치며 머릿속이 어지 러운 것을 느꼈다. 기실이 좌염기는 이미 백리자성을 단번에 제거할 속셈을 가지고 있었으 므로 자신이 가장 무겁게 생각하는 수법을 펼치고 있었다. 생각해 본다면 이 나약해 보이는 의원은 놀라운 식견을 가지고 있을 뿐 만 아니라 자신의 무예에 대해서 대비가 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므로 자칫 다른 무공으로 그를 공격했다가 시간을 끌게 되어 그의 말이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되게 해서는 안되기 때문이었다. 여문량 등이 다가와서 한꺼번에 저항한다면 백리자성이 충분히 말할 수 있는 시간을 벌게되지 않겠는가! 그러나 실은 그와 같은 그의 생각은 미리부터 백리자성의 예측속에 들 어 있었고 또한 백리자성이 노리고 있었던 바이기도 했다. 백리자성의 앞으로 덮쳐온 것은 다른 사람들이 예측했던 무시무시한 무 공이 아니라 그저 산들바람과도 같은 부드러운 기운으로 밀어내는 기이 한 냄새였는데백리자성은 그것을 눈치채자마자 호흡을 멈추고 즉각 우수 를 들어 가볍게 원호를 그리고는 천천히 앞으로 내뻗었다. 그러자 좌염기는 느닷없이 자신이 발출한 내력이 흡사 바닷불속으로 빠 져버린 듯이 흔적도 없이 사라짐과 동시에 기이하기 짝이 없는 냄새가 옹흔한 기세를 타고 자신에게 덮쳐오는 것을 느끼고 대경실색하였으나 이미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기이한 냄새를 깊이 들이마신 후여서 정 신이 아득해지고 머리가 빙빙 돌아가는 것 같아서 갑자기 그 자리에 털 썩 쓰러지고 말았다. ......! 수백명의 사람들이 하나 같이 경악을 금치 못하는 가운데 거의 불가사 의 한 상황의 변화를 일으킨 백리자성은 잠시 서서 그 기이한 냄새가 자 신이 체내에서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고서야비로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의 옆에서는 지금 네명의 사람들이 한참 서로 어우러져 격전을 벌이 고 있었는데 다름아닌 홍아 청아ㅘ 두명의 장로들이었다. 사람들은 실로 그곳에서도 괴이한 광경을 목격하고 이었다. 원래 정장로와 양장로는 황종보와 전백승을 상대로 그야말로 신기에 가 까운 능력을 발휘하여 승리를 거두었었는데기이하게도 이번에는 전혀 그 렇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의 상황이 되어가고 있었다. 정장로와 양장로가 몸을 괴이하게 움직이는 것은 아까와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막상 그들이 고이하게 신형을 움직여서 상대의 뒤쪽이나 아래쪽 혹은 옆으로 은밀하게 다가서려고 하면 어느새 홍아와 청아는 그것을 알 고 있었다는 듯이 그 방위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그들을 향해 주먹을 한 방씩 내지르는 것이었다. 정장로와 양장로는 급히 그 괴이한 신법을 펼쳐서 이를 피했지만 그들 의 놀라운 심정은 이만저만 한 것이 아니어서 안색이 변한채 마치 넋이 나간 듯 했다. 게다가 홍아와 청아는 원래 백리자성의 신변을 걱정하여 함부로 두 장 로를 적극적으로 공격하지 못했었는데이제 백리자성이 성공을 거두는 것 을 보게 되었고 또한 두 장로의 움직임에 대한 의도를 훤하게 파악하게 되자 이내 그녀들의 움직임이 보다 적극적이고 빠르게 변했다. 원래가 여인들은 신법에 능하게 되어 있는 데다가 무공이 뛰어난 그녀 들이 두 장로의 움직임을 미리 예측하고 기선을 제압해가며 움직이자두 장로들의 처지는 그야말로 수세에 몰리다 못해서 아예그녀들에게 목숨을 내맡긴 것이나 다름이 없게 되었다. 그야말로 홍아와 청아가 가지고 노는 인형이어서 그녀들이 움직이는 대 로 때리면 두들겨 맞는 것과도 같았는데사람들은 이 두명의 장로가 이제 는 홍아와 청아에게 너무나도 간단한 방법으로 평범한 권법에 의해 제압 당하고 있는 것을 보고 이를 매우 신기하게 생각했다. 정장로와 양장로는 장내를 사방으로 돌아다니며 그야말로 마구 구르거 나 빙글빙글 맴돌기도 하고 허공을 허우적거리다가 시체처럼 괴이하게 누비는 등의 움직임으로 그녀들의 추격을 따돌리려고 하였으나 종래에는 따돌리지 못하고 무수한 주먹을 맞게 되어 전신에 피멍이 가득 들었을 뿐만 아니라깊으 내상을 입어 수차례 피를 토하게되자 그만 더 견디지 못하고 몸을 멈춰세우고 말았다. 그것을 보고 홍아와 청아가 각기 점혈의 방법에 의해서 그들의 전신대 혈을 제압하고 나자 백리자성은 문득 그녀들을 자신의 곁으로 부르며 한 쪽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이제 당신들도 그곳에서 내려오는 것이 어떻겠소?" 백리자성이 말하고 있는 방향은 물론 아직 태사의에 앉아서 참담한 표 정을 하고 있는 두명의 장로들이 있는 쪽이었다. 두 장로가 그 말을 듣자 문득 한차례 길게 탄식을 하더니 고개를 끄덕 이며 몸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우리가 이미 죄를 지었고 또한 일이 실패하였으니 무슨 면목이 있을 수가 있겠소? 우리를 마음대로 하시오!" 백리자성이 그것을 보고 홍아와 청아를 바라보자 그녀들은 즉시 번적 몸을 날리더니 그들의 앞으로 다가가서 역시 전신의 혈도를 제압했다. 백리자성은 그것을 보고서야 문득 자신의 몸을 더듬어서 수십개의 금침 을 뽑아내더니 금새 안색이 창백해져서 비틀거렸다. 홍아와 청아가 다시 놀란 음성을 발하며 날아와서 그의 몸을 함께 부축 하여 태사의에 가서 앉히자백리자성은 다소 가물가물하던 의식이 점차로 돌아오며 그제서야 다소 기운을 되찾는듯 했다. 사도백봉과 여문량 등은 갑자기 백리자성이 좌염기 등을 제압하여 그야 말로 뜻밖의 기적을 만난 것 같았지만 느닷없이 다시 그가 극도로 쇠약 한 모습을 보이자 더욱 더 어리둥절해지고 말았다. 이때 백리자성은 사도백봉을 등에게 태사의가 있는 쪽으로 올라오라고 말한 뒤에 다시 점창사수에게 모든 제자들을 좀더 앞으로 다가오게 하도 록 하라고 시켰다. 사도백봉과 점창사수는 대체 어찌 영문인지 알 수가 없었지만 일단 그 가 대단한 일을 해냈고 또한 극도로 피로한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주저없이 그가 하라는대로 모든 일을 해주었다. 수백명의 점창파의 제자들은 이제 다섯명의 장로들이 제압되자 그 가운 데 감히 누구도 점창사수의 지시를 거역하지 못했다. 백리자성은 거칠게 흘러나오는 호흡을 겨우 조용하게 가라앉히며 나직 한 음성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다시 입을 열기 시작했다. "여러분들은 지금 모든 일이 의혹스러울 것이오. 내 그것에 대해서 말해 주겠소......" 홍아가 옆에서 매우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이들에게 나중에 얘기해 주면 안되나요?" 백리자성은 담담히 웃으며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나는 아직 괜찮다. 그리고 이 얘기는 지금 해야 하는 것이니 너는...... 너는 나의 말을 막지 말아라." 사람들은 이 백리자성이 매우 힘겨운 상태에서도 억지로 말하려고 하고 있는 것을 보고 대체 무슨 얘기일까 하고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백리자성은 주위의 사람들을 둘러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 "내가 아까 말하려다 만 얘기를 다시 시작하도록 하겠소. 그 세번째의 표본은 바로 남황으로 따라갔던 일반제자들의 것이었는데그들의 시신은 다만 화시분에 중독되어 있었기 때문에 앞서의 두가지 경우보다 부패가 느렸던 것이고 또한 그들의 내장이 녹아버린 채 텅비어 있었던 것은 바 로 일월신교의 일광수(日光手)에 당했기 때문이었소." 여문량이 이를 듣고 참다 못해 질문을 던졌다. "선생께서 말하시는 그 일월신교는 무엇이고 또한 월영인이나 일광수라 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백리자성은 잠시 말을 멈추고 여문량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웃으며 대답 했다. "그 일월신교는 지금 천산에 그 총타를 두고 중원으로 세력을 펼쳐나오 고 있으나 아직 이곳 운남지방에는 전파되지 않은 무림의 집단이오. 중원 에서는 그 일월신교를 일명 마교라고도 하는데그들의 무공은 괴이쩍고 음험독랄하여 월영인처럼 소리없이 상대의 내장을 끊어버리거나 일광수 처럼 상대의 내장을 녹여버리고 그 기운을 흡수하기도 하는 것이오." 사람들은 소리없이 상대의 내장을 토막내는 무공이 있고 게다가 상태의 내장을 녹여서 그 기운을 흡수하는 무공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는 절로 소름이 끼치고 섬뜩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기실은 그 증거를 이미 많은 사람들이 보았었기 때문에 백리자성 의 말을 믿지 않을수가 없어서 절로 경악을 금치 못하게 되었다. 여문량이 문득 한가지 생각난 듯이 이미 제압되어 있는 정장로와 양장 로를 가리키며 백리자성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저들의 그 괴이한 무공들이 바로 일월신교의 무공이었다는 말입니까?" 백리자성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일월신교의 무공들은 한가지 괴이한 특성이 있는데 그것은 그들의 무공을 배우기 위해서는 이전에 배웠던 모든 무공들을 버려야 하는 것이 오. 그 두명의 장로들은 일월시교의 무공을 배웠기 때문에 내가 홍아와 청아에게 그들이 일광수나 월영인을 펼치지 못하도록 계속해서 몰아붙이 라고 했었고나 역시 좌장로가 그와 같은 무공들을 펼치지 못하도록 했던 것이오." 사람들은 이제 백리자성의 그 말을 듣자 다소 두명의 장로들의 무공이 괴이했던 것을 이해할 수가 있게 되었다. 다만 그 일월신교의 무공들을 홍아와 청아가 어떻게 해서 그렇게 쉽게 깨뜨리게 되었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 알 수가 없었는데백리자성은 다시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네번째와 다섯번째의 경우는 역시 그 독의 성분이 같소. 거기에는 각기 오독실심산과 화시분 이외에도 금잠고독이 배어 있었는데흉수는 아마도 그들의 무공이 고강하기 때문에 오독실심산만 가지고 당할 수가 없어서 금잠고독을 사용하게 되었던 것 같소. 하지만 이 금잔고독은 화시분과는 달리 양성을 띠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두 가지의 극독이 상충작용을 일 으켜서 화시분의 극독이 발작을 일으키지 못하고 시신들은 단지 검푸른 상태로 부패되지 않은 채 있게 되었던 것이오." 사람들은 백리자성의 말 가운데에서 다시 금잠고독이라는 극독의 이름 을 듣고는 안색이 일변하여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 금잠고독은 일명 천하제일독이라고 하는 것으로 묘강독문의 비전지 독인데 그야말로 생각만 해도 치가 떨리게 하는 끔찍스러운 독성을 발휘 하기 때문에 이미 무림에서는 누구라도 사용하지 못하도록 금기화되어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오독실심산과 화시분이라는 극독들만 해도 놀라운 것이었는데 이제 사 람들은 다시 금잠고독의 얘기를 듣게 되자 대체 흉수가 어떻게 묘강독문 의 비전지독인 금잠고독을 사용하여 일을 저지를 수가 있었을까 하고 의 아하게 생각했다. 제자들 가운데에서 누군가가 문득 입을 열어 물었다. "그렇다면 네번째와 다섯번째는 어째서 그 부패 정도가 다른 것입니 까?" 백리자성은 그 제자가 있는 쪽을 바라보다가 웃으며 대답해 주었다. "원래 네번째의 경우는 이미 열흘전에 오독실심산과 금잠고독에 의해 중독이 되어 있는 상태에서 부패되어 가다가 다섯번째와 같은 시기에 화 시분에 다시 중독이 되게 되어 부패가 멈추어졌던 것이오. 이 세가지의 극독은 서로 이독제독(以毒制毒)의 상충작용을 일으켜서 그 이후에 만지 는 제자들에게 별로 독성을 일으키지 않았던 것이며 다시 부패가 일어나 지 않도록 하였소." 여문량이 이 말을 듣고 다시 입을 열었다. "백리선생께서는 보아하니 상세하게 처음부터 가르쳐 주시겠습니까?" 백리자성은 그를 돌아보며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내 그렇지 않아도 마악 그런 얘기를 하려던 참이었소. 결론적으로 말해 서 아까도 말했지만 장문인 등이 살해 남황에서의 혈사와 나의 셋째외 숙 등이 살해 이곳에서의 혈사는 모두 그 수법이 동일한 것이며 같은 사람들에 의해서 저질러진 것이오. 흉수는 먼저 장문인 등의 뒤를 따라서 남황까지 갔다가 적당한 기회에 장문인 등을 중독시키고일광수월영인 등 으로 제거한 다음에 재빨리 다시 점창파로 돌아와서 역시 같은 수법으로 셋째외숙 등을 살해한 계획을 세웠던 것이오. 그들은 셋째외숙 등을 살해 한 다음에 그 죄상을 남에게 전가시키기 위해 우선 산화장의 흔적을 일 부러 만들어 놓았으며 이내 그것도 안심이 되지 않아서 시신들에게 모두 화시분을 발라 놓았던 것이었소." "......." 사람들은 당시의 상황을 마치 눈으로 목격한 듯이 말하고 있는 이 허약 해 보이는 젊은의원의 말을 매우 신기한 표정으로 숨죽이며 듣고 있었다. "만일 당시 시신들이 다른 극독에 중독되지 않았다면 그리 심한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소. 그러나 그들은 설마하니 극독들 이 각기 고유의 특성을 가지고 있어 서로 만나면 상조혹은 상충작용을 일으키게 될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오." 여문량은 다시 물었다. "선생께서 이미 말씀하신 대로 그들은 바로 점창파의 장문인이 되기 위 해서 그와 같은 끔찍한 짓들을 저질렀다는 말입니까?" 백리자성은 그 질문에는 즉시 대답하지 않고 웃으며 손가락을 아래쪽으 로 가리켰다. "그와 같은 사항들은 이제부터는 그에게 직접 물어보는 것이 좋을 것이 오." 물론 지금 백리자성의 손길을 따라서 그쪽으로 시선을 옮기다가 문득 하나같이 크게 놀라서 안색이 변하고 말았다. 좌염기불과 조금전까지만 해도 그토록 무섭고 영활해 보이던 그의 몸뚱 이가 지금 땅바닥에 거칠게 뒹굴고 두 손으로 쥐어뜯고 있었기 때문이었 다. 머리가죽이 물텅 뜯겨져 나간 것과 온몸의 살가죽이 찢겨져서 피가 줄 줄 흘러내리고 있는 것 등을 보면 지금 그가 얼마만한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인지를 알 수가 있을 것 같았는데그는 사람들의 시선이 닿자 비명소리 를 지르지 않으려고 하던 노력도 수포로 돌아가서 이어 땅에 엎드려 돼 지 멱 따는 비명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아악! 으아아아......아아악!" 제13장 허허실실의 의미 좌염기의 비명소리는 실로 말할 수도 없이 처절하여 마치 사람들의 가 슴속을 일제히 긁어대는 것과도 같았다. 이 기다란 절규는 마치 누가 그의 몸을 예리한 비수로 한점 한점 저며 낼 때 지르는 소리와도 같았는데 실로 점창파의 유명한 장로의 한 사람 인 이 좌염기는 실제로 그와 같이 누가 자신의 몸을 비수로 저며낸다고 하더라도 그와 같은 비명소리를 지를 수는 없는 일이었다. 대체 얼마만한 고통을 느끼고 있기에 저러한 비명소리를 지르고 있는 것인가 하고 사람들이 의아해하고 있는데이제는 전신의 맥이 완전히 풀 려서 손을 움직이지도 못하고 엎드려 있는 그를 향해 백리자성이 문득 읿을 열어 말했다. "나는 의원이기 때문에 혹시 그대가 사용한 그 독의 이름을 알게 둢a면 그대를 치료할 줄 수 있을지도 모르오." 좌염기는 혹독한 고통속에서도 백리자성의 그와 같은 말을 알아듣고는 비명을 지르는 가운데 소리높여 대꾸했다. "내가 순순히...... 말할 것 같으냐! 이미...... 나는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 니 어서 나를...... 죽이도록 해라!" 좌염기의 이 말은 그가 있는 힘을 다해서 말한 것이었기 때문에 말을 하고 난 이후에 그는 다시 처절한 비명소리를 내질러야 했다. 백리자성은 그것을 보고 담담한 표정으로 다시 말했다. "당신의 생각은 틀렸소. 내가 그렇게 당신을 쉽게 죽일 것 같소? 나는 당신 앞으로 계속 고통을 당하는 것을 지켜볼 것이오." 좌염기는 그 말에 일 순 경악한 듯 전신을 부르르 경련을 일으키더니 즉시 자신의 양손을 들어 목을 조여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상한 일이었다. 일신에 깊은 공력을 가지고 있었던 그는 자신의 목을 졸라서 죽으려고 했으나 기력이 없어서 그럴 수가 없었고이어 다시 죽어라고 이마를 땅바 닥에 짓찧었지만 이마 역시 힘이 가해지지 않아서 터지지 않는 것이 아 닌가! 좌염기는 이내 뜻을 이룰 수가 없자 다시 처절한 비명소리를 발하며 이 리저리 데굴데굴 굴렀는데 사람들은 그가 스스로 죽지도 못하는 것을 보 고 내심 경악해 했다. 잠시의 시간이 흐르자 좌염기는 이제 도저히 고통을 견딜 수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숨을 헐떡거리며 백리자성을 향해 묻는 것이었다. "대체......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 좌염기는 역시 말하는 가운데에도 계속해서 시끄럽게 비명을 내지르 고 있었다. 백리자성은 이것을 보고 답답한 표정으로 다시 말했다. "나는 당신이 스스로 모든 것을 말해주기를 바랄 뿐이오." 이에좌염기는 문득 길게 한숨을 내쉬더니 모든 것을 체념한 듯 빠르게 입을 열기 시작했다. "좋다. 이...... 이 고통을 벗어날 수가 있다면나는...... 나는 너의 말대로 모든 것을 말하도록 하지...... 내가...... 내가 너를 공격하여 죽이려다 도리 어 중독 이...... 이것은 바로...... 금잠고독이다......" 순간 장내에서 이를 주시하고 있던 사람들은 일순 깜짝 놀랐을 뿐만 아니라 그제서야 이 좌염기가 어째서 지금 그와 같은 추한 꼴을 보이고 있는 것 인지 이해할 수가 있게 되었다. 사람들은 비록 조금전에 백리자성에게 금잠고독에 대한 얘기를 들었었 지만 설마하니 이 좌염기가 중독 것이 바로 그것이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었다. 금자고독 그것은 실은 바로 묘강의 지역에서 희귀하게 서식하는 금잠이 라는 독물을 말려서 가루로 만든 것으로 어떤 형태나 색깔조차 없는 데 다가 중독 자는 마치 천만 마리의 누에들이 동시에 온 몸을 야금야금 물어 뜯는 듯하여 뭐라고 형용할 수도 감당할 수도 없는 고통에 시달리 게 되는 것이었다. 게다가이 고독을 사용하게 되면 그 흔적으로 찾을 수가 없으니 제아무 리 천하무적의 신공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일단 중독이 되어 전신이 힘을 조금도 쓸 수 없데 되면 자기가 살고 싶어도 살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죽고 싶어도 역시 죽을 수가 없게 되는데오히려 정신 은 말짱한 상태로 남아있기 때문에 온몸 각 부분의 고통을 하나하나 맛 보다가 이레 밤낮이 지나서야 살이 문드러지고 뼈다귀가 드러나면서 죽 음을 당하게 되는 것이니 당장에 즉사케 되는 독물들보다 더 끔찍스러운 것이었다. 이 독물은 무공을 전혀 못하는 아녀자나 어린이조차 사용할 수가 있기 때문에 무림이 인사들은 누가 이것을 언급하기만 해도 이를 갈며 통분해 할 정도였다. 그런데점창파의 일개 장로인 좌염기가 바로 백리자성을 향해 그것을 사 용했었을 줄이야! 백리자성은 좌염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나는 당신이 바로 그러한 독을 쓸 것을 미리 예상했기 때문에 기다리 고 있다가 그 독을 도리어 당신에게 되돌려 주었던 것이오." 좌염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그렇소! 알고보니 당신의 능력은 실로...... 실로 놀라운 것이었 소 만일...... 내가 그것을 알았다면...... 그런 것을 쓰지 않았을 것이......오" 이때 사도백봉은 내심 그렇지 않아도 아까 백리자성이 손을 쓰는 것을 보고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러한 말을 듣자 백리자성에게 질문 을 던졌다. "고종 오라버니그렇다면 당신은 원래 무공을 할 줄 아는 분이였군요?" 그런데백리자성이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그 옆의 홍아가 불쑥 다소 싸 늘한 음성으로 입을 열어 대꾸했다. "흥! 당신들은 또다시 우리 공자님을 의심하는 군요. 하지만 우리 공자 님은 무공을 익히신 것이 아니라 고통을 무릅쓰시고 금침술로 잠력을 결 박시켜서 잠시 그 힘으로 무공을 발휘하여 저자를 물리치셨던 것이예요. 우리 공자님께서 자신들을 위해 무려 육개월정도의 생명을 소모하신 것 을 모르고 그와 같은 말을 하실 수가 있어요?" 사도백봉은 그 말을 듣고는 문득 안색이 붉어졌다. 그렇다. 사람들은 아까 백리자성이 처음에는 뭔가 깊이 생각하는 듯 하 다가 갑자기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던 것들을 상기하고는 백리자성이 자 신의 잠력을 격발시켜서 그와 같은 일일 해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실로 아까 그와 갑자기 힘이 생겼다가 다시지극히 쇠약한 듯한 모습을 보였던 것 등은 이로써 쉽게 이해가 되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이미 백리자성의 의술이 놀랍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가 스 스로 잠력을 격발시켰다는 애기를 의심하지 않았다. 사도백봉은 홍아의 말을 듣고는 다소 무안한 기분이 들기도 했으나 백 리자성이 이번의 일을 해결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무려 육개월 이상이 나 단축시켰다는 말을 듣고는 다시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백리자성을 이 일에 끌어들여 그와 같은 일을 만든 것은 결국 자신이었 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때백리자성은 다시 비명을 지르는 좌염기를 향해 말했다. "나는 지금 당장이라도 손을 써서 당신의 고통을 줄여줄 수가 있지만 당신이 아직 내가 원하는 얘기를 하지 않으니 그럴 수가 없는 입장이오. 당신은 계속 그렇게 고통을 받게 되기를 바란다는 말이오? 일단 시간이 흘러서 독기가 심장을 침투하게 되면 설령 나라고 해도 치료할 수가 없 게 되는 것을 명심하시오." 이에좌염기는 다시 길게 한숨을 내쉰 다음에 입을 열어 말했다. "과연 당신은 예측대로 모든 것을 알고 있었구려. 그렇소...... 내가 바로 이 모든 사건의 흉수였소. 사도장문인 등과 이곳의 사도가문의 사람들을 살해한 것을 모두 나의 짓이었소." 이미금잠고독의 얘기까지 나온 상태여서 대부분의 눈치빠른 사람들은 이 좌염기가 혹시 이번 사건의 흉수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었다. 그러나설사 그들이라고 해도 막상 좌염기가 자신의 입으로 그와 같이 실토를 하자 내심 크게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백리자성이 그저 묵묵히 듣기만 하자 좌염기는 다시 빠르게 말을 이었 다. "내가 사도장문인 등을 살해한 이유는 바로 점창파를 내 손안에 두기 위해서였소. 나는 원래 무량검파의 문주인 무량우사 좌염무의 친동생이었 다는데젊어서부터 우리 무량검파가 역사도 길건만 그 위세가 점창파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점창파를 우리 손안에 두기 위해 점창파 에 투신하게 되었소......" 좌염기는 실로 극심한 고통을 한시라도 빨리 덜고 죽음을 맞이하기 위 해 사실 그대로 말하기 시작했는데 사람들은 그의 얘기를 듣는 순간 남 쪽의 무량검파마저 이 일과 연관되어 있는 것을 알고는 내심 크게 놀라 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람들의 경악하는 마음이 점입가경으로 치닫는 가운데 좌염기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그러나 나는 점창파에 투신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사도가문의 위세가 너무나도 강하기 때문에 이대로는 결코 나의 뜻을 이룰 수가 없을 것이 라는 것을 알게 되었소. 따라서 나는 각 방면으로 무공을키울 수단을 찾 다가 드디어 일월신교의 사람들과 만나게 되어 점창파의 모든 무공을 버 리고 일월신교의 무공을 배우게 되었소. 나는 그것들을 배운 이후에도 여 전히 점창파의 장로 행세를 하였는데마침 정장로와 양장로를 수하게 두 고 그들에게도 역시 일월신교의 무공을 가르칠 수가 있었소." 사람들은 점차 입을 벌리고 어안이 벙벙해 하고 있는 것을 보고 문득 여문량이 그의 말을 자르며 물었다. "그렇다면 저기 있는 풍장로와 손장로는 일월신교의 무공을 배우지 않 았단 말이오?" 여문량이 말한 풍장로와 손장로는 바로 역시 조금전에 홍아와 청아에게 자청하여 제압당한 그 두명의 장로들이었다. 좌염기는 고통이 극심하여 빠르게 고개를 내저었다. "점창파는 그리 허술하지 않았는데 내가 어떻게 네명씩이나 일월신교의 무공으 가르칠 수가 있었겠소? 그들 풍장로와 손장로는 사실 사도장문인 등이 남황을 떠난 이후에 우리가 그들의 약점을 잡고서 협박해서 함께 움직인 사람들이오." 여문량은 이 좌염기가 너무나도 고통이 심해서 빨리 대답을 하고 죽기 를 바란다는 것을 알고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알겠소. 앞으로는 방해하지 않을 것이니 어서 계속해서 말해 보시오." 좌염기는 즉시 대답했다. "나는 원래 일월신교의 무공을 배우 이후에도 시시각각으로 사도가문의 사람들을 살해할 생각을 품고 있었는데자연히 금장고독이나 오독실심산 화시분 따위를 늘상 휴대하고 다니게 되었고느닷없이 사도장문인 등이 남황으로 떠난다는 것을 알고는 은밀하게 그들의 뒤를 추적하기 시작했 소." 이때 사도백봉은 가만히 있으려고 했지만 갑자기 일이 생각나서 좌염기 의 말을 자르며 물었다. "당신은 그때 우리 백부님 등으로부터 한권의 검경을 빼앗었겠죠?" 좌염기는 이미 죽음을 각오한 사람이라 씁쓸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우리는 그들이 적염동에서 일을 마치고 나오는 것을 보고 길목에 매복 하고 있다가 은밀하게 습격했던 것이니 자연 그 육맥신검경을 차지할 수 가 있었소. 그러나 나는 당시 빨리 이곳으로 되돌아와야 했기 때문에 그 것을 나의 친형에게 맡기게 되었소." 사도백봉은 놀라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남황에서의 일은 무량검파에서도 끼어들었었다는 말인가요?" 이 좌염기는 이미 고통에 지칠대로 지쳐 있어서 전신이 물먹은 솜처럼 늘어져 있었는데 사도백봉의 계속되는 질문에 몇 차례 내지르면서 대답 했다. "내가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사도장문인의 일행은 백리선생이 말한대로 우선 오독실심산을 음식속에 섞어서 일행에게 마시게 했고음식 을 먹지 않은 제자들은 내가 손수 일광수를 펼쳐서 죽여버렸는데사도장 문인 등이 오독실심산에 중독이 되고서도 쓰러지지 않는 것을 보고 다시 금장고독을 사용하게 되었소. 그 뒤의 상황은 그야말로 저 백리선생이 말 했던 바와 그야말로 일치하오. 만일 나는 그의 능력이 그토록 비상한 것 이라는 점을 알았다면 좀더 일에 신중을 기해었을 것이오." 사도백봉은 백리자성의 얼굴을 돌아본 다음에 다시 물었다. "그럿다면 당신은 우리 아버지께서도 오독실심산을 음식속에 넣어 드시 게 했고 이어 금잠고독을 사용했으며 화시분으로 녹여버리려고 했나요?" 좌염기는 대답했다. "내가 비록 겉으로는 산화장에 당한 것처럼 위장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월영인을 쓴것이기 때문에 어찌 끝까지 속일 수가 있었겠소? 따라서 시 신들을 모두 녹여버리려고 화시분을 쓴 것이었는데 실로 그와 같은 변화 가 일어날줄은 정마롤 몰랐었소." 사도백봉은 이 좌염기의 말이 그야말로 백리자성이 했던 말과 조금도 틀리지 않는지라 내심 그의 판단력을 놀랍게 생각하며 다시 좌염기에게 물었다. "당신은 이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없나요?" 좌염기는 그녀가 자신을 통쾌하게 죽여줄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눈을 감 으며 대답했다. "나는 기왕에 이번의 거사에 목숨을 걸었던 사람이니 이미 많은 사람들 을 죽인 상태에서 무슨 할 말이나 여한이 있겠소? 다만 나를 제외한 다 른 사람들은 그저 나의 지시대로 따를 것 뿐이니 나를 즉시 죽여주고 그 들은 살려주기 바라오." 좌염기는 여기까지 힘겹게 말하고 이를 악물며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도백봉은 이것을 보고 문득 불공대천의 원한이 크게 되살아나서 냉랭 하게소리쳤다. "흥! 내가 잘도 너의 그런 부탁을 들어줄 것 같은가?" 만일 좌염기가 금잠고독이라는 무서운 극독에 중독되어 있지 않다면 사 도백봉은 금방이라도 달려가서 그의 몸뚱이를 갈가리 찢었을 듯한 한스 러운 태도였다. 백리자성은 이것을 보고 이미 자신이 약속했던 대로 홍아를 보내서 좌 염기의 가슴부위의 혈도를 점혈하여 독이 심장부위로 침투하는 것을 막 는 한편고통을 줄어들게 만들었고 기다란 막대기로 좌염기의 의복을 모 조리 벗겨서 그가 가지고 있는 독약들을 불태우게 했다. 홍아는 이미 무공이 일류고수의 경지를 넘어서고 있어서 점혈을 일일이 격공점혈의 수법을 써서 했기 때문에 금잠고독에 당하지 않고도 그와 같 은 일들을 무사히 끝낼 수가 있었다. 백리자성이 그와 같이 하게 하여 좌염기가 비로소 다소 고통에서 벗어 나 기진맥진한 몸을 그대로 바닥에 뉘이고 있을 때여문량 등 점팡사수는 사도백봉과 함께 이번에는 풍장로와 손자로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풍장로손장로! 당신들은 이제 더 할말이 있소?" 이모화의 싸늘한 질문에 낮에 심하게 그를 구박했었던 그들 두명의 장 로들은 눈을 내리 깔고는 탄식하여 대꾸했다. "우리들은 아무런 할 말이 없네. 그대들은 어서 우리를 처단하도록 하 게!" ............ 백리자성은 사도백봉의 일행들이 그 다섯명의 장로들을 처리하려고 하 는 것을 보고 이제 자신의 역할은 끝났다고 생각하며 피곤한 몸을 일으 키며 홍아와 청아에게 쉴 곳으로 가자고 했다. 백리자성이 이미 흉사의 내막을 완전하게 밝히고 흉수들을 제압한 만큼 이제부터는 점창파 사람들이 나름대로 모든 일을 해결해 나갈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비록백리자성은 의원의 신분이고 좌염기를 치료해줄 수고 있었겠으나 그토록 커다란 흉사를 저지른 그를 사도백봉 등이 살려줄 것 같지 않아 서 그냥 물러나기로 했다. 마차가 있는 곳으로 가서 쉬고 있으려니까 잠시 상황을 알아본다고 하 고 갔다가 돌아오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점창파에서는 그 풍장로와 손장로가 위협을 받아서 부득이하게 움직였 기 때문에 당분간 장로의 직위를 박탈하기는 했지만 그대로 풀어주라고 했어요. 그리고 그 사도낭자는 당분간 장문인의 권한대행이 되었고 내일 아침에 사도장문인 등의 묘소에 가서 그 세명의 장로들의 목을 자르고 제사를 지내기로 했어요." 백리자성은 그와 같은 상황의 전개가 이미 자신이 예측하고 있었던 것 과 같은지라 고개를 끄덕이며 점창파가 이미 그렇게 수습이 되었다면 자 신은 이제 날이 밝는대로 소장원으로 돌아가서 예전처럼 살아야 하겠다 고 생각했다. 그러나백리자성이 마차에 올라 미처 잠을 한숨 자기도 전에 다시 상황 을 보러갔던 홍아간 나는 듯이 달려와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큰일났어요! 그 풍장로와 손장로가 정장로와 양장로를 죽인 뒤에 좌염 기를 달아나게 하고 스스로 자결해 버렸대요. 그래서 사도낭자는 점창사 수와 함께 좌염기가 무량검파로 달아났을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내일 아 침에 그쪽을 치러가겠다고 했어요!" 백리자성은 이 느닷없는 얘기를 듣고는 다소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그 풍장로와 손장로는 이미 문파에서 낙인 찍힌 것이나 다름이 없기 때 문에 살고 싶은 의욕이 없을 것이 당연했다. 그러나그들이 굳이 정장로와 양장로를 죽이고 좌염기를 달아나게 한 것 은 어딘가 다소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럼 내일 아침에 제사도 지내지 않고 점창파의 모든 사람들이 무량파 를 향해 떠난다는 말이야?" 청아의 질문에 홍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제물들이 모두 없어졌는데 무슨 제사를 지냈겠어. 그 무량검파는 남족 에서 제법 위세를 떨치고 있는 문파이기 때문에 내일은 거의 전제자가 내려간다고 했어." 백리자성은 그와 같은 얘기를 듣고 다소 마음이 어두워지는 것을 느꼈 다. 원래가 무량검파는 이번의 사건에 개입 곳이었으니 점창파가 그들을 토벌하는 것은 명분이 서는 일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 풍장로와 손장로가 좌염기를 풀어주고 자진한 것은 어떤 외부의 압력이 있었던 것 같았기 때문에점창파에서 의 도적으로 그렇게 한 것이라면 좌염기를 추격한다는 명분을 더하여 이번 의 출정은 무수한 피를 부를 것이 뻔한 일이었다. 백리자성은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남자와도 같이 강인한 기질을 가지고 있는 사도백봉이 자신의 선친의 원수를 갚을 뿐만 아니라 육맥신검경을 되찾기 위해 내심으로 전력을 다하고 있는 것 같았다. 기실지금 그녀는 무공이 낮아서 겨우 장문인의 대행이 되어 있지만 만 약 육맥신검경을 되찾아오게 둢a면 일약 점창파의 여주인이 될 수도 있 는 일이었다. 백리자성은 이미 자신이 사도가문과의 혈육의 정을 잊지 못해서 거대한 흉사를 해결하고 사태를 크게 반전시켜 놓았지만 결국 이렇게 더욱 거대 한 혈사를 야기시킬 것이라면 자신이 대체 무엇을 한 짓인지 알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내심 매우 답답한 생각이 들었다. 아까 백리자성은 사도백봉에게 자신은 이번의 흉사를 해결하고 그녀를 장문인의 대행직에 올려놓겠다고 했었으므로이미 그러한 일이 성취한 마 당에서 아침에 인사를 나누고 떠나려고 하다가 문득 지금은 그렇게 하고 싶은 생각이 사라졌다. 피를 부르기 위해 출발하려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기 보다는 그저 자 신의 소장원으로 조용히 돌아가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되어 백리자성은 이내 홍아와 청아에게 마차를 소장원으로 몰게 했다. 홍아와 청아 역시 조용하고 한가로운 소장원에서 살던 생활이 습관이 되어 점창파의 사람들을 내심 좋아하지 않았으며 즉시 기뻐하며 마차를 몰았다. 점창파의 흉사를 해결하기 위해서 백리자성이 금침술로 체내의 잠력을 끌어올린 일은 그의 원기를 크게 손상시켜서 비단 수명이 육개월 정도나 단축되게 했을 뿐만 아니라 며칠 간이나 그를 앓아눕게 했다. 게다가백리자성은 극도로 허약한 자신의 몸에 행여라도 약간의 금잠고 독이라도 침투한 것이 아닌가하고 한차례의 자신의 몸을 완전하게 해독 시켜야 했는데그러한 모든 일을 겪고 나자 그의 허약한 몸은 그렇지 않 아도 앙상하던 몸이 더욱더 눈에 띄게 수척해졌다. 백리자성이 그렇게 흡사 금방이라도 숨을 거둘 듯이 심하게 열을 가까 이나 앓게 되자 그를 시중들던 홍아와 청아는 감히 전혀 다른 곳은 신경 도 쓰지 못하고 밤낮으로 그를 보살폈는데다시 며칠이 지나서 백리자성 의 몸이 다소의 원기를 회복하자 홍아가 다시 나가서 점창파의 소식을 알아가지고 돌아왔다. 그런데홍아의 말에 의하면 점창파의 수백명의 제자들은 과연 예상대로 대부분이 무량검파로 떠나서 아직 소식을 알 수가 없고다만 한가지 기이 한 일은 점창파에는 지금 한명의 이상한 노인이 있는데그는 자신이 바로 이미 죽은 사도장문인의 동생이라고 말했다는 것이었다. 백리자성은 금방 그가 바로 자신이 나타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었던 능광검 사도계강이며 지금비록 점창파에 남아있는 하급의 제자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지만 주력이 돌아오게 되면 자연히 그를 알아보고 장문인 으로 모시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과연그의 추측은 틀리지 않아서 다시 며칠 후에 홍아가 알아온 소식에 의하면 점창파의 주력들이 그야말로 수백명의 무량검파의 제자들을 무찌 르고 당당하게 개선하였으며무량검파로 달아났던 좌염기와 무량검파의 주인 좌염무의 목을 베었고이어 미리 돌아와 있었던 사도계강에게 장문 인의 직위를 승계하게 했다고 했다. 그러니까 이 사도계강은 점창파의 제19대 장문인이 셈이었다. 백리자성은 이미 점창사수 등이 있는 점창파가 무량검파를 능히 격파할 것을 예측하고 있었기 때문에그와 같은 모든 결과를 당연하게 생각했으 나 홍아와 청아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흥! 그들은 아마도 우리 공자님이 돕지 않았다면 이미 점창파 자체가 어떻게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는데새로운 장문인이 나타나고도 여전 히 우리에게 아무런 소식도 보내지 않고 고맙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다 니 정말 너무하는 일이군 그래." "하지만 그들이 우리에게 무관심하니까 오히려 우리가 더욱 편해지는 것이 아닐까?" 홍아와 청아는 그런 대화에 대해 백리자성은 내심으로 이 사도계강 역 시 자신과는 그리 좋은 사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담담 히 웃어버리고 말았다. 청아가 문득 홍아에게 다시 물었다. "참 그런데 그 육맥신검경이라는 것을 이번에 찾았다고 그래?" 홍아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냐. 그 검경은 점창파의 사람들이 갔을 때에는 이미 무량검파에 남아 있지 않았었다고 해. 좌염기는 당시 일월신교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었는 데 그때 그들이 중원으로 가져가 버렸다는 거야. 점창파에서는 지금 나중 에 그 검경을 찾으러 가야 한다고 말이 나오기도 하고......" 백리자성은 그와 같은 얘기를 듣고는 비록 그들이 검경을 찾지 못했지 만 점창파의 원기를 회복해야 하기 때문에 다시 중원으로 떠날 수는 없 을 것이라고 생각되어 당분간은 점창파에 대한 걱정도 하지 않고 수양에 전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도게강이 장문인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고 점창사수가 그를 보좌한다면 앞으로 점창파에 별다른 흉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뜻밖에도 그로부터 불과 열흘도 지나지 않아서 점창파가 자리하 고 있는 점창산 중악봉에는 갑자기 화광(火光)이 충천하게 되었는데홍아 가 그것을 보고 급히 달려가서 살펴보고 오더니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 이었다. "이상한 일이 벌어졌어요. 남황에서 이상한 사람들이 복수를 하겠다고 점창파로 몰려왔는데 그 숫자가 무려 백여명이나 되는 것 같았어요!" 백리자성은 이 말을 듣고 다소 어이가 없어서 물었다. "점창파 사람들이 그들과 원한관계를 맺었다고 하더냐?" 홍아는 고개를 내저었다. "점창파에서는 오히려 영문을 알 수 없다고 해요. 그 남황의 사람들은 자칭 태양마교의 사람들이라고 하는데 전대장문인인 사도백위 등이 그들 의 분타인 적염동에 와서 검정과 화령선과 등을 배앗아가고 사람들을 몰 살시켰다고 하면서 막무가내로 공격을 해왔기 때문에 지금 점창파에는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중이예요." (.......) 백리자성은 문득 그 말을 듣는 순간 한 가지 깨닫는 것이 있어서 내심 안색이 변했다. 그렇다! 기실 전에 홍아 청아가 사도중맹과 사도백위의 얘기를 엿듣다가 그들이 전음을 사용하는 바람에 듣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서 이제야 훤하게 알 수 있을 것 같았던 것이다. 이 남황의 태양마교의 사람들의 말은 얼핏 신빙성이 없을 것 같아도 기 실은 가장 진실 말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처럼 심한 원한이 맺어져 있지 않았다면 그들이 일부러 남 황에서 이곳까지 와서 싸움을 벌일 리가 없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당시 사도중맹이 말했던 허허실실의 방책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대외적 으로는 화령선과 검경을 바꾸러 간 것처럼 위장을 해서는 기습적으로 가서 검경을 빼앗아오는 것 이었던 것이다. 사도중맹은 미리 적염동에 화령선과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며 그러한 술책을 이용하여 지능적으로 사람들을 속이고 살해하며 물건을 빼앗아 오는 것은 실로 지탄을 받아 마땅한 일이며 태양마교에서 당연히 원한을 가질만한 일이었다. 사도중맹은 당시 여러차례 시도를 해 보았으나 다른 방법으로는 검경을 얻을 수가 없자 그와 같은 방법을 써서 검경을 강탈하여 돌아오다가 다 시 좌염기 등의 독수에 걸리게 되었던 것이었는데 지금 다시 그 죄값을 점창파의 제자들이 치루고 있는 것이었다. 하긴 당시 사도중맹 등이 어떻게 남황의 탱양곡으로 가서 화령선과를 구해올 수가 있었겠는가! 백리자성은 실로 이 원한관계는 점창파에서 먼저 자초한 것이었기 때문 에 지금 당하는 것이 당연한 일일 뿐만 아니라그가 홍아와 청아를 보낸 다고 해도 별로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기 때문에 그날은 그저 좋지 않 은 낯빛으로 점창파의 혈겁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며 보내게 되었다. 제14장 교활한 유언 다음날 아침백리자성은 은근히 온밤을 뜬 눈으로 지새며 점창파의 소식 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아직 동이 트지 않은 무렵에 느닷 없이 사도백봉이 혼자서 그의 소장원으로 찾아와서는 그를 찾는 것이었 다. 백리자성이 옷을 갈아입고 서둘러 밖으로 나가자 그녀는 다소 초췌한 모습으로 기진한 상태에서 겨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저의 막내숙부께서 위독하시니 빨리 가주셔야 겠어요!" 사도백봉은 비단 의원을 모시러 온 것일 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 그의 도움을 바라고 있기도한 모양이었다. "알겠소!" 백리자성은 사도백봉이 그다지 내상을 입지 않고 아직까지 살아있는 것 만 해도 매우 반가왔기 때문에 즉시 반갑게 대답을 하며 홍아와 청아에 게 지시를 내려 점창파로 갈 준비를 서두르라고 했다. 사도백봉은 일단 백리자성에게 자신의 해야할 말을 전한 다음에 편히 앉지도 않고 그저 한쪽에 우두커니 서서 백리자성과 홍아 청아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는데다소 넋나간 듯한 그녀의 표정이나 그렇게 그녀가 혼 자서 소장원으로 오게 사실 등을 미루어 보아 생각외로 점창파에서 어 젯밤에 일어난 사건은 심각한 것이었던 모양이라고 백리자성은 생각했다. 이윽고홍아와 청아가 준비한 마차가 약상자 등을 싣고 사람들을 태우고 달라기 시작하자 백리자성은 옆에 거의 무표정하게 앉아 있는 사도백봉 에게 물었다. "넷째외숙께서는 아직 심백이 온전하시오?" 만일 환자의 심맥이 온전하게 뛰고 있는 상태라면 설령 극심한 내상을 입었거나 해도 그칠 희망이 있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사도백봉은 백리자성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오히려 싸늘한 음 성으로 이와같이 대꾸하는 것이었다. "당신은 그간 우리가 당신에게 무심하게 대해오다가 그와 같은 참변을 당하게 사실에 대해서 내심으로는 고소하게 생각하시겠죠?" 백리자성은 사도백봉이 일컬어 참변이라고 말한 것을 듣고 내심 심하게 가슴이 저려오는 것을 느꼈다. 그녀의 표정이나 말투 등으로 미루어 보아 이번의 점창파에서 입은 피 해는 실로 막대한 것이었음을 알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백리자성은 스스로 불치의 병에 걸려 있는 의원이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생명의 소중함을 절실하게 인식하고 있다고 할 수가 있었다. 무릇 선인이나 악인을 막론하고 생명의 소중함을 절실하게 인식하고 있 다고 할 수가 있었다. 무릇 선인이나 악인을 막론하고 생명의 소중함이라고 하는 것은 누구에 게나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이고또한 그 차이가 없다고 할 수가 있는데이 번에 점창파에서 겪은 일은 그들이 스스로 자초한 일이었기 때문에 당연 하다고 할 수가 있겠으나백리자성은 혈육의 정에 이끌려서 자신이 좀더 그들을 안전하게 보호해 주지 못했던 것이 못내 가슴을 쓰라리게 만들고 있었다. "나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지않소." 백리자성의 말에 사도백봉은 문득 기진한 가운데에서도 온몸을 흔들며 요란한 웃음소리를 터뜨렸다. "호호홋! 알고보니 당신은 그야말로 위선자에 위군자로군요. 어째서 기 분이 나빴었다면 그랬었다고 말을 하지 않았죠? 그래놓고 우리 점창파가 어젯밤에 당하는 꼴을 마치 강건너 불구경을 하듯이 고소하게 바라보고 있다가 다시 관심을 기울이는 척할 것은 또 뭐예요?" 백리자성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내저었다. "나는 진심으로 그대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오." 기실 어젯밤에 백리자성은 홍아와 청아를 보내서 그들간의 싸움에 개입 하여 조금이라도 점창파의 사상자를 줄일 수도 있었겠으나 전혀 그러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아서 그만두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백리자성은 스스로 그들의 물고 물리는 사악하고도 집요한 은원관계에 휩쓸리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그렇다고 그런 백리자성을 위선자요 위군자라고 매도할 수가 있 을까 만일 백리자성이 진심으로 그들 점창파의 사람들에게 관심을 느끼지 않 았다면 지난 밤을 꼬박 세우지도 않았을 것이고 또한 지금 이렇게 급하 게 달려가지도 않았을 것이었다. 백리자성은 다만 한숨으로 그러한 자신의 의사를 대신했지만 구태여 지 금의 그녀에게 해명하고 싶은 생각을 들지 않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번에 당신에게 또 한번 구제를 받게 되겠군요? 호 호홋......" 사도백봉이 연신 옆에서 그와 같이 한서린 음성으로 비아냥거리는 소리 를 들으며 백리자성은 그저 묵묵히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홍아와 청아가 특별히 신경을 써서 개조한 이 마차는 백리자성이 거의 충격을 느끼지 않도록 흔들림을 최소로 줄인 것이며그래서 거의 잔잔하 게 달려가는 마차의 창밖으로 뿌연 안개속에서 밝아오는 초여름의 햇살 이 어슴푸레 스며들고 있었다. 점창파에 이르러 보니 과연 어젯밤에 이곳에서 입은 피해는 그야말로 막심한 것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지난번에 무량검파와의 일전을 치루고 난 뒤에 점창파의 인원은 대략 이백오십여 명을 헤아렸었는데지금은 그 대분분의 제자들이 불길과도 같 은 장력에 타버리거나 아니면 사지가 잘려나가서 시체로 변한 채 도처에 널려 있었다. 워낙에 극심한 피해를 입은 상태였기 때문에 점창파에서는 미처 그러한 시체들을 치우지도 못하고 있었고 그나마 더러 살아남은 제자들의 신음 소리가 적막한 점창파의 내부를 간간이 울리고 있었다. 백리자성은 그러한 점창파 제자들의 시체들 가운데에서 또한 적지 않은 홍의를 걸친 남황의 사람들의 시신들을 볼 수가 있었는데그로 미루어 보 아 어젯밤의 격전은 누구도 승리하지 못한 양패구상의 대펼전이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비록 태양마교의 사람들이 백여 명이나 몰려와서 복수를 하려고 했지만 이 점창파는 과연 오랜 전통을 과시하기라도 하듯이 그들에게 지지는 않 았던 것이었다. 만일 점창파가 그들에게 졌었더라면 오늘의 점창파는 이미 흔적도 찾아 볼 수가 없는 것이 되어 있었을 것이었다. 간혹점창파의 아직 심한 상처를 입지 않은 제자들이 부상을 입은 제자 들을 한쪽으로 옮겨가는 모습들이 보이기도 하지만 지극히 참혹하게 변 해있는 장내에 이르러 백리자성은 마차에서 내린 뒤 사도백봉이 뒤를 따 라서 안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전에 그토록 화려하던 중악전을 비롯한 대부분의 전각들이 이미 불타버 려서 주위는 폐허와도 비슷했고그나마 장문인 등이 기거하는 정사(情舍) 쪽이 다소 온전해 보였는데 사도백봉은 백리자성 일행을 곧장 그쪽으로 안내했다. 백리자성은 이미 전에 점창파에 의해서 멸문지화를 당했던 무량검파의 경우 역시 수백명의 사람들이 죽음을 당했었다는 얘기를 듣고 있었으므 로 내심 이렇게 생각했다. (당시 무량검파의 정경도 실로 이와 같이 비참한 것이 아니었을까?) 사람들은 간혹 자신의 야심과 욕심을 채우기 위해 극악무도한 짓들을 저지르지만 그 결과는 대부분이 이처럼 처참한 물고 물리는 참화로 끝나 게 되는 것이었다. 정사의 안쪽에는 제법 수십명의 사람들이 누워 있거나 왔다갔다 하고 있었는데그래도 다행이라면 점창사수 등이 아직 죽지 않고 그들 환자들 의 사이에 끼어있다는 사실이었다. 여문량은 안색이 거뭇하게 변한채 내상을 여기저기의 의복이 구멍이 뻥 뻥 뚫린 몸으로 간신히 제자들의 움직임을 지휘하고 있었고나머지 황종 보다 이모화 전백승 등은 모두가 여기저기 심하게 그을리고 내상을 입어 서 한쪽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운기조식에 몰두하고 있었다. 특히체구가 거대한 황종보는 등에 시뻘겋게 보이는 장인이 새겨져 있었 는데그것은 바로 높은 경지에 도달한 태양신자에 격충당한 것으로아무리 그의 내공이 심후하다고 해도 그저 운기조식만을 해서는 치료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백리자성은 그러한 사람들의 곁을 지나서 사도백봉의 뒤를 따라 정사의 침실로 들어서 문득 지금 침상위에 누워있는 한 사람과 옆에서 그를 열 심히 간호하고 있는 한 사람의 얼굴을 보게 되었다. 백리자성에게는 그 사람들의 얼굴이 비록 낯설기는 하지만 그 가운데 서서 간호를 하고 있는 사람의 신분은 금방 알아볼 수가 있었다. 능광검 사도계강 바로 점창파의 제19대 장문인으로 취임한지 얼마되지 않는 사람이며 그 의 용모는 사도중맹과 많이 닮은 것 같았는데다시 보니 사도중맹 보다는 체격이 다소 왜소하고 평범한 노인네를 연상시키는 사람이었다. 백리자성은 그의 안색이 남빛처럼 시꺼멓게 변해있고 연신 입속에서 붉 은 선혈을 토하고 있는 것을 보고 안으로 들어서다 말고 흠칫하고 놀랐 다. 사도계강이 그토록 극심한 부상을 당한 상태에서도 열심히 간호를 하고 있는 한 사람은 바로 나이가 이제 십칠팔 세 정도 되어 보이는 준수하게 생긴 소년이었는데침상위에 뻣뻣하게 누워 있는 소년의 가슴부위에 시뻘 건 장인이 깊숙히 찍혀 있고 그의 피부가 딱딱하게 굳어져 있는 것을 보 고 백리자성은 이미 소년이 죽은 시체라는 것을 알았다. 사도계강은 대체 무엇 때문에 이미 죽은 시체를 저처럼 애지중지 하며 열심히 닦고 쓸어주며 간호하고 있는 것일까 말할 것도 없이 소년은 생전에 사도계강에게 있어서 무엇보다도 소중한 존재였을 것이다. 백리자성이 문득 안으로 들어서다 말고 신형을 멈추자 사도백봉은 다소 의아해하며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는데백리자성은 그녀를 향해 가볍 게 고개를 저어 보였다. 백리자성은 비록 대단한 의술을 가지고 있는 의원이라고 할 수가 있으 나 이미 죽은 사람이나 죽도록 되어 있는 사람들은 고칠 수가 없다. 눈앞의 침상위에 누워있는 소년 뿐만 아니라 지금 그 소년을 간호하는 사도계강 역시 이미 죽은 사람이나 다름이 없었던 것이었다. 사도계강의 안색이 저처럼 시꺼멓게 변한 것은 이미 그의 내장이 심하 게 으스러져 있는 증거이고입속에 연신 선혈을 토하고 있는 것은 역시 마찬가지 얘기로 심장에 깃i이 나 있다는 표시인 것이었다. 백리자성은 일단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그런 모습을 보고는 실로 애석 하지만 그는 이미 죽은 사람이나 다름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사도계강이 아직 버티고 있는 것은 그의 평소의 공력이 심후하여 그것 으로 혼신의 마음을 다해서 소년을 간호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백리자성이 고개를 저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사도계강은 마치 그의 말을 증명이라도 해주듯이 허물어지듯이 그 자리에 무너져 버렸다. "막내숙부님!" 사도백봉이 소리치며 달려가서 급히 사도계강을 부축했으나이미 그는 두 눈빛이 흐릿하고 입으로는 한바탕 선혈을 쏟아낸 후였다. 사도백봉이 그를 안아서 소년의 시체가 누워 있는 침상 위에 나란히 눕 히자이윽고 다소 의식이 돌아오는지 사도계강은 눈을 바로 뜨더니 입을 열어 말하기 시작했다. "질녀인가? 그 백리조카는 모시고 왔는가?" 사도백봉은 두 눈에 눈물을 떨구며 대답했다. "예...... 그가 지금 방안에 와 있어요." 사도계강은 아까는 너무나도 혼신의 힘을 다해 소년을 간호하고 있었기 때문에 미처 백리자성이 온 것을 보지 못한 모양이었다. 백리자성은 이에 천천히 사도계강이 자신을 잘 볼 수 있는 곳으로 다가 가서 조용한 시선으로 그를 내려다 보았다. 사도계강은 자신의 시아에 백리자성의 모습이 들어오자 다소 눈빛을 격 동시키는 것 같더니 느릿하게 입을 열어 말하기 시작했다. "내 일찍이 자네를 찾아봤어야 했으나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가 이와 같은 꼴을 당하게 것은 가히 인과응보라고 할 수가 있겠지. 사실 과거 우리 가문의 사람들은 자네의 선친이나 어머니를 너무나도 못살게 했었 지. 그것은 모두가 우리들의 야심을 채우기 위해서였네. 바로 그러한 죄 값을 지금에 이르러 우리 학아(鶴兒)마저 잃고 사도가문의 명맥이 끊어지 게 되는 것으로 갚게 되는구나." 백리자성은 그의 말을 듣고 지금 그의 옆에 누워 있는 시신은 바로 사 도계강의 하나밖에 없었던 아들이었던 사도학이었음을 알아차렸다. 사도가문의 사람들이 거의 멸족한 상태에서 자신의 아들을 그토록 애지 중지한 것은 이해가 가는 일이었다. 분명히 이 사도가문의 명맥은 그들 부자를 끝으로 끊어지게 되었다. 백리자성은 피를 토하면서 말하는 사도계강의 두 눈에 인색의 깊은 한 이 서려 있는 것을 보고 내심 가볍게 탄식하며 말했다. "외숙께서는 그만 마음을 평안하게 하십시오." 사도계강은 고개를 저으며 고집스럽게 말했다. "실로 나와 같은 배은망덕한 사람이 편안하게 죽을 수는 없는 일이지. 어쨌든 간에 나는 지금 해야할 말을 해야겠네. 그것은...... 바로 자네에게 부탁하는 것이라네. 자네...... 혹시 나의 마지막 부탁을 들어주겠는가?" 백리자성은 문득 깊은 자비심이 있어서 평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 다. "말씀하십시오. 제가 능히 할 수 있는 일이라면 해드리겠습니다." 사도계강은 고개를 끄덕이며 두 눈에 이채를 떠올렸다. "고마우이. 자네는 필시 나중에 많은 복을 받게 될 것이네. 이 늙고 힘 없이 죽어가는 사람의 부탁을 들어주는 일은 과거 성현들이 하셨던 것이 었지. 나의 부탁은 그러니까... 자네가 나의 질녀를 도와서 우리 점창파를 다시 일어서게 만들어 달라는 것이라네." "......." "나는 뒤늦게야 점창파로 돌아와서 자네의 능력이 탁월하다는 것을 알 게 되었지만 과거의 감정에 연연하게 되어 모른척 했던 것이네. 나는 자 네가 나의 질녀를 도와준다면 필시 우리 점창파를 옛날보다 더욱 번성하 게 만들 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네. 그리고...... 그리고 만일 나의 질녀 가 어떤 사람과 혼인을 하게 되어 첫아들을...... 첫아들을 낳게 둢a면 그 아이의 성씨를 사도씨로 하여 점창파의 장문인이 되도록 만들어 주게. 자 네...... 자네 나의 이 부탁을 틀림없이 들어주겠는가?" 백리자성은 스스로 일시적인 자비심이 일어서 그의 부탁을 들어주겠다 고 했지만 이 사도계강은 실은 아직도 가문의 명맥이나 그 명리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심하게 연연하고 있는 것을 보고는 내심 생각했다. (아! 나는 실로 쓸데없이 일시적인 충동심으로 그의 부탁을 들어주겠다 고 했구나. 그러나 나는 이제 앞으로 얼마 살지 못할 몸이니 그저 그의 부탁대로 최선을 다해주면 도는 것이겠지.) 따라서 백리자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반드시 그렇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사도계강은 잠시 백리자성의 두 눈을 직시하며 그의 내심을 파악하려는 듯 하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고맙네. 자네 선친께서도 과거 한 마디의 말을 한다면 반드시 책임을 지는 분이셨지." "......." 이때 여문량 등 점창사수는 장문인의 유언이 시작되자 자신들의 심한 부상을 무릅쓰고 이미 방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사도계강은 그들을 향해서도 말했다. "자네들은 역시 내 질녀를 장문인의 대행으로 모시고 잘 도와주기를 바 라네. 그리고 만일 그 어떤 사람이라도 나의 질녀의 남편이 둢a면 그 를...... 그를 장문인으로 모시도록 하게. 이것은 장문이었던 나의...... 나의 명령일세. 나의 명령에 따르겠는가?" 그가 사도백봉은 장문인의 대행으로 모시라는 것은 이 점창사수가 장문 인의 직위에 대해서 욕심을 갖고 더욱 사도백봉에게 잘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나만일 사도계강이 그와 같은 말을 남기지 않는다면 힘이 없고 여 자에 불과한 사도백봉이 얼마 안되는 점창파의 장문인 직위를 노리는 사 람들에 의해서 축출 것이 아니겠는가! "예명심해서 거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점창사수가 일제히 엄숙하게 대답을 하자 사도계강은 이번에는 사도백 봉을 향해 입을 열었다. "질녀야너는...... 너는 이제 실로 우리 사도가문의 하나밖에 남지 않은 핏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항상 자중자애하고 몸을 보존하여 다른 사람들과 함께 점창파의 위세를 도살리고 그리고 만일 혼인을 해서 첫아들을 낳거든 그에게 사도 성씨를 주어서 우리 사도가문의 명백을 잇도록 하여라. 나의 이 말을 명 심하겠는냐?" 사도백봉은 즉시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막내숙부님. 저는...... 저는 결코 우리 사도가문의 명맥이 끊어지지 않 도록 하겠어요." 사도계강은 매우 만족스러운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나는 너의 말을 믿겠다......" 이어사도계강은 갑자기 고개를 들어서 뭔가 긴요하고 중대한 얘기를 하 려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순간느닷없이 그는 입속에서 많은 선혈을 토해내며 뒤로 털썩 늘어지는 것이었다. "막내숙부님!" 사도백봉이 소리쳐 말하자사도계강은 간신히 눈을 들어서 다음과 같이 입을 열었다. "육맥...... 육맥신검...... 검경은 나의 형님들의 의지가 담겨...... 너는 반드 시 그것을...... 되찾아서 우리의 점창파의......" 사도계강은 그와 같은 말을 하다가 끝내는 말을 다 잇지 못하고 그대로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러나사람들은 누구나 그 사도계강이 생전에 하고 싶었던 말의 의미가 무엇이었는지 알 수가 있을 것 같았다. 사도계강은 이번에 만일 점창파에 육맥신검경과 같은 신공절학비급들이 있었다면 그토록 처참하게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앞으로 반드시 그 육맥신검경을 되찾아서 점창파의 무공으로 만들라는 말을 하 고 간 것이었다. ............ 사도계강이 그렇게 숨을 거두자 일시 주위는 어둠과 같은 무거운 적막 감이 내리깔렸고 사도백봉은그 앞에 엎드러 소리죽여 울음을 터뜨렸으며 갑자기 쿵하는 소리와 함께 황종보를 비롯한 이모화와 전백승이 내상의 발작이 이기지 못하고 그 자리에 쓰러져서 혼절했다. 백리자성은 스스로 자신이 죽은 사도계강와 이미 약속을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점창파의 일에 관여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신분이 것을 고통스럽게 생각하며 잠시 서 있다가 홍아와 청아의 부축을 받으며 방금 쓰러져 혼절한 그 세사람의 상태를 살폈다. 다행히도황종보의 내공이 심후하여 태양신장 등에 정통으로 맞았으나 치명적인 것이 아니었고그 다음으로 내상이 심한 전백승 역시 걱정할 정 도가 아니었으며이모화는 전에 치료했던 내상이 다시 발작하여 혼절한 것이었다. 백리자성은 여문량이 제자들을 시켜서 그 세명의 환자들을 다른 침상으 로 옮기게 하고 이어 장문인의 장례식 준비를 하는 것 등을 보면서 홍아 와 청아와 함께 환자들이 있는 곳으로가서 그들을 일일이 치료해주기 시 작했다. 제15장 팔대절학 그러는 가운데 시간이 흘러 점창파의 움직일 수 있는 제자들은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시신들을 옮기고 밥을 지어서 먹도록 하는 등의 일을 시 작했고 장례식 등의 일을 맡아서 지휘하는 여문량은 두어차례 백리자성 에게 와서 내장의 치료를 받고 가곤 했다. 무겁고 암울한 분위기 가운데에서 그렇게 점창파는 조금씩 소생하기 시 작하는 것 같았다. 워낙에 많은 인원들이 죽었기 때문에 점창파에서는 일시에 그 많은 수 백명의 시신들의 염을 하기도 어려워서 무려 닷새나 지나서야 전대장문 인이었던 사도게강과 수백명의 제자들의 합동 장례식을 쓸쓸하게 거행할 수가 있게 되었고그리고 나서 인원들을 조사해 보니 부상을 입고 있는 제자들의 포함하여 대략 오십여 명이 될 것 같았다. 물론 개중에는 스스로 점창파를 떠나간 사람들도 적지 않았지만 실로 이번의 참사에 이백여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죽었다고 하니 저마다 입이 크게 벌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과거 한때 삼백여명이나 되었던 점창파의 제자들이 이제 불과 오십여 명으로 줄어들게 되자점창파는 불타서 쓸러져 있는 건물들의 잔해와 어 울려서 지극히 쓸쓸하고 폐허와도 같았다. 백리자성은 자신이 점창파의 일을 적극적으로 돕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홍아와 청아에게 번갈아서 소장원에 다녀오도록 하고 자신 은 계속 부상자들을 치료하며 점창파에 머물렀는데 그렇게 장례식이 모 두 끝나고 대부분의 부상자들이 몸을 일으켜서 걸어다닐 정도가 되자 문 득 장문인 대행인 사도백봉이 모든 제자들을 불러모아놓고 이와 같이 말 하기 시작했다. "본파는 이미 심한 환란을 당하여 사람들의 숫자도 크게 줄었을 뿐만 아니라 그 위세가 쇠퇴일로에 놓여있는 상태예요. 우리는 앞으로 전대장 문인의 유언을 받들어서 중원으로 가서 육맥신검경을 되찾아와야 할 뿐 만 아니라 앞으로 다시 계속될지도 모르는 태양마교도들의 침략에 대비 해야만 해요. 따라서나는 네분의 수석호법들과 상의하여 내일 아침에 바 로 중원으로 전제자를 이끌고 떠나기로 했어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언제 환란이 닥쳐올지 모르는 일이므로 일부러 우리는 서두르는 것이예 요. 그러나실로 여기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 본파의 앞날이 전혀 희망이 없어 보이고 더이상 본파에 남아서 나를 따라 중원으로 가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내일 아침에 내가 다시 사람들을 불러모으기 전에 산을 내려가기를 바라는 바예요. 나는 그 사람들에게 아무런 문책도 하지 않을 것이며 앞으로 그 사람들은 본파의 사람들이 아님을 명백하게 하겠 어요!" 사도백봉의 이 말은 그녀가 장문인의 대행으로 다시 옹립 상태에서 내 려진 최초의 결단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하긴이미 제자들이 사기가 이만저만 하락 것이 아니어서 그들을 모두 이끌고 중원으로 간다고 해도 별로 커다란 도움이 되지 못한 것 같았다. 백리자성은 이미 그 태양마교의 사람들이 점창파에 패하여 돌아갔기 때 문에 다시 침략해 올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 사도 백봉의 의견에 다소 동감을 느꼈다. 물론 지금 그녀가 말한 네 사람의 수석호법들은 바로 그녀가 장문인의 대행이 되면서 승격시킨 점창사수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요며칠이 지나는 동안 그들 점창사수의 부상은 이미 완전히 치유되어 있는 상태였다. 사도백봉의 말이 끝나자 모여들었던 제자들은 각기 수근거리며 흩어졌 지만 백리자성은 내심 사도백봉이 이러한 폐허속에서 더이상 지내고 싶 지 않아서 태양마교들을 피하고 육맥신검경을 되찾으러 간다는 명목하에 중원으로 떠나려고 한다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가문득 자신도 내일 이들 과 동명목하에 중원으로 떠나려고 한다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가문득 자 신도 내일 이들과 동행하여 중원으로 가지 않으면 안되는 것을 경각하고 는 그것을 준비하기 위해 몸을 움직이려고 했다. 헌데 그때문득 사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더니 사도백봉이 그의 앞에 나 타나서 입을 여는 것이었다. "막내숙부님께서는 비록 당신에게 그와 같은 부탁을 하셨지만 그러나 당신은 굳이 그분의 말 때문에 우리를 따라갈 필요는 없어요." 백리자성은 그녀가 이미 자신을 따돌리고 점창사수와 의논하여 지금과 같은 결정을 내린 일에 대해서자신이 점창파의 일에 관여해야 하는 입장 으로 다소간에 씁쓰레한 느낌을 받았으나 개의하지는 않았다. 백리자성은 미소하며 대꾸했다. "나는 이미 점창파의 흥망에 대해서 개입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설령 그대가 어떤 말을 하더라도 따라가지 않을 수가 없소." 이에사도백봉은 일시 두 눈에 기이한 광채를 떠올리더니 다소 붉어진 안색으로 입을 열어 이렇게 묻는 것이었다. "나는 사실저번에 당신의 장원으로 가보기는 했지만 워낙에 경황이 없 어서 미처 구경을 하지 못했어요. 당신은...... 오늘 저에게 그곳의 구경을 시켜주시지 않으시겠어요?" 백리자성은 자신의 앞에 다시 소복을 학 서 있는 이 아릿따운 소녀의 모습을 보자 그가 이런 나이에 무거운 짐을 떠맡게 사실에 다소 안스러 움을 느꼈다. 게다가이미 자신은 돌아가서 소장원의 일과 물건들을 정리해야할 처지 가 되었으므로 즉석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함께 가도록 합시다!" 사도백봉은 이에 매우 고마운지 한쌍의 볼을 발그레하니 물들인 채 고 개를 숙이고 은근히 그의 얼굴을 훔쳐보았다. 백리자성은 한쪽에 서 있는 홍아와 청아에게 마차를 끌고 오게 해서 모 두 함께 마차를 타고 소장원으로 향했다. 점창파에서 소장원으로 내려가는 동안에 홍아와 청아는 함께 마부석에 앉아서 마차를 몰았고 사도백봉은 백리자성의 옆자리에 앉게 되었는데 문득 기이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고종 오라버니! 저는 사실 고종 오라버니께 그 점창사수들과 마찬가지 로 아주 그럴싸한 직책 하나를 드리려고 했지만 아직 마땅한 직책이 생 각나지 않아서 주저하고 있었던 중이예요. 혹시 고종 오라버니께서 우리 점창파에서 따로 원하고 계시는 직책이라도 있는가요?" 이 사도백봉은 그간에는 매우 초췌하고 슬픈 표정만을 보여왔었는데 오 늘은 뜻밖에도 아주 밝은 표정을 지으며 다소 애교가 깃든 말을 하고 있 는 것을 보고 백리자성은 내심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러나혹시 그녀가 이제가지의 슬픔에 연연하지 않고 새롭게 살아갈 의 욕을 굳힌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여 대견스럽게 여기며 대답했다. "나는 비록 이번에 점창파를 따라가기는 하지만 그것은 옆에서 도우려 는 것이지 그렇다고 내가 점창파의 사람들이라는 것은 아니오. 그러니 나 에게 있어서 그 어떠한 직책이라는 것은 필요하지 않고 그저 식객의 신 분이라면 어울릴 것 같소." 사도백봉은 다소 흠칫하더니 약간의 생각을 굴리다가 웃으며 말했다. "과연 당신은 우리 점창파를 좋지 않게 여기고 굳이 들어오지 않으려고 하는군요. 하지만 그것은 본인의 자유이고 누가 억지로 시킬 수 있는 일 이 아니니 마음대로 하세요. 고종 오라버니께서 본파의 식객을 들오오신 다면 본파에서는 능히 고종 오라버니를 먹여살릴 능력이 충분하니까요." (.......) 백리자성은 이 사도백봉의 그 표정은 다소 밝은 듯 하지만 말투에 심한 가시가 돋혀 있는 것을 보고 내심 마음속에 탄식이 일었으나 반박하지는 않았다. 사도백봉은 그를 향해 다시 웃으며 입을 열었다. "참 제게 한가지 궁금한 점이 있었는데 지금 그것을 물어보아도 되겠어 요? 저는 어렸을 적에 얼핏 듣기는 했었지만 막내고모에게 불치병이 있 었는데 고모부가 그것을 고쳐주고하지만 정작 고모부 자신은 스스로의 불치병을 고치지 못했으며 역시 당신에게도 불치병이 있다고 했는 그 모 든 것들은 같은 종류의 것이었나요?" 백리자성은 이 사도백봉이 갑자기 자신에게 관심이 많아졌다는 것을 느 끼고는 매우 씁쓸한 웃음을 입가에 매달며 대답했다. "그 세가지의 불치병은 모두 다른 종류의것이었소. 하나는 구음절맥이었 고다른 하나는 육양산맥이었으며 나머지 하나는 만절산맥이라는 것이었 다오." 백리자성은 자신과 관계돈 일을 마치 남의 일이나 되는 것처럼 말했다. 사도백봉은 백리자성이 한꺼번에 세 가지 불피병의 이름을 말하자 일시 놀란 듯이 입을 크게 벌리며 다시 물었다. "구음절맥육양산맥만절산맥이라고요? 대체 그것들은 어떤 특성을 가지 고 있는 거죠? 막내고모가 앓았었던 것이 바로 구음절맥이었나요?" 백리자성은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의 어머니께서는 구음절맥에 걸리셨는데 선친에 의해서 거의 완치가 되셨었소. 그러나 비록 그렇다고 하더라도 역시 계속해서 몸을 보살피고 간간히 치료를 해야 천수를 누릴 수가 있는 것이었는데어머니께서는 그 만 선친의 죽음으로 인해 마음을 크게상하시어 그 질환이 크게 발작하게 되었고 그리하여 돌아가시게 되었던 것이었소." 사도백봉은 실로 의외의 말을 들었다는 듯이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끄 덕였다. "아아 그랬었군요! 저는 고모께서 그저 다른 병으로돌아가신 것으로만 알았지 설마 완치돈 것으로 생각했던 구음절맥이 도져서 돌아가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어요." 백리자성은 이 사도백봉의 태도가 약간의 가식이 섞여 있는 것이 아무 래도 자신과 관련되어 있는 불치병에 관해서 알고 싶은 눈치였기 때문에 순순히 그것들에 대해서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원래 구음절맥은 선천적으로 생겨나기도 하고 혹은 후천적으로 생겨나 기도 하는 병인데 나의 어머니의 경우 바로 선천적인 것이었소. 본시 절 맥증이라고 한ㄴ 것은 삼음절맥육양절맥칠음절맥 그리고 구음절맥 등으 로 나눌 수가 있는데인체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십이정경과 기 경팔맥 등의 경맥상의 음맥이 절단되어 제기능을 다할 수가 없는 것으로 역시 가장 심한 경우가 구음절맥이라고 할 수가 있소." "......." 사도백봉은 백리자성이 불치병에 관해서 설명을 하자 매우 관심이 깊은 듯한 표정으로 유심히 듣고만 있었다. "이 구음절맥을 완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회세의 영약을 복용하여 금 침술로 그 약력을 유도하고 절단 음맥을 이어주거나그렇지 않으면 일양 지와 같은 순후한 공력으로 음한의 사기를 몰아내고 역시 음맥을 이어주 어야 하는 것이오. 만일 그렇게만 할 수가 있다면 당장에라도 구음절맥을 완치실킬 수가 있는 것이지만 나의 선친께서는 비단 그와 같은 회세의 영약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무공을 익힐 수가 없었기 때문에 다 만 약을 투여하고 금침술로 음맥을 이어줌으로써 점차로 구음절맥이 치 료되게 하셧던 것이오." 사도백봉은 문득 눈빛을 빛내며 물었다. "그렇다면 당신의 경우도 만일 회세의 영약이나 일양지 등의도움을 받 는다면 치료할 수가 있는 것인가요?" 백리자성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는 않소. 비록 뛰어나다고 말할 수가 없지만 그런 방법으로 치료 할 수가 있었다면 이미 나의 선친께서 다른 방도를 강구하여 능히 자신 의 불치병을 치료할 수가 있었을 것이며 돌아가시지도 않으셨을 것이오. 나의 만절산맥은 선친의 경우보다 훨씬 심한 것인데 그와 같은 방법으로 치료할 수가 있겠소?" 사도백봉은 일전에 세상에서 천고에 보기 드문 희세영약이라는 것이 있 어서 치료할수 없다고 하는 불치병도 능히 고치게 한다는 얙를 들은 적 이 있었는데지금 백리자성의 말을 들어보니 반드시 그런 것만도 아니라 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사도백봉은 의아해 하며 물었다. "그럼 그 육양산맥이나 만절산맥이라고 하는 것은 어떻나 것들이죠?" 백리자성은 미미하게 웃으며 대답해 주었다. "육양산맥이나 만절산맥은 둘 다 산맥증이라고 하는 것이요. 이 산맥증 은 사실 어떠한 원인에 의해서 생겨난 것인지 확실하게 밝혀져 있지는 않으나 먼저 절맥증에 비해 훨씬 희귀한 질환임에 틀림이 없는 것이오. 후천적으로 생겨나는 것보다는 선천적으로 생겨나는 것이 대부분인데 그 증세는 바로 강렬한 음기와 양기가 인체의 경맥상에 무질서하게 흩어져 있는 것이오." 사도백봉은 잠시 생각하다가 물었다. "기운이 흩어져 있다는 것은 경맥이 절단되 것보다 나은 것이 아닌가요 /" 백리자성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절맥증에 걸린 사람은 몸의 기운이 유통되지 않아서 점차로 침체 사 기가 발전하게 되어 음절맥에 걸린 사람은 신체가 음한하게 변하고 양절 맥에 걸린 사람은 신체가 기이하게 뜨거워지게 되는 것이오. 그러니 이 산맥증에 걸린 사람은 신체가 수시로 차갑거나 뜨거워지며 그에 따라서 극심한 고통을 겪게 되는데절맥증에 걸린 사람은 다만 갑자기 혼거하여 죽게 되는 것이지만 산맥증에 걸린 사람은 극도의 헤아릴 수 없는 고통 을 겪고 죽게 되는 것이오." 사도백봉은 다시 물었다. "그렇지만 어째서 산맥증은 고치기가 어렵다는 것이죠/" 백리자성은 웃으며 대답했다. "음절맥이나 양절맥에 걸려 있는 사람을 치료할 때에는 각기 그 방면의 순후한 기운을 이용하여 끊어진 경맥을 이어주게 되면 되는 것이지만이 산맥증에 걸려 있는 사람에게 만일 양성을 지닌 한 가지의 기운을 주입 하게 되면 양성을 지닌 체내에 사기가 급격하게 발달하게 되어 음기를 채 치유하기도 전에 환자가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오. 음기의 경우도 역시 마찬가지인 것이오. 그렇다고 해서 음양의 두 가지의 성질을 가진 기운을 주입시켰다가는 오히려 체내의 음기와 양기가 흩어져 있는 정도 를 알 수가 없어서 그것들의 사악한 기운을 더욱 발달시켜서 더욱 위험 해지는 것이니설사 희세의 영약이 있다고해도 산맥증은 고칠 수가 없는 것이오." 사도백봉은 다소 망연한 표정을 짖고 있다가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그 육양산맥과 만절산맥은 대체 어떻게 다른 거죠?" 백리자성은 담담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육양산맥은 지금까지 얘기한 산맥증의 대표적인 것이라고 할 수가 있 고내가 걸려 있는 만절산맥은 그것의 또 다른 변형이라고 할 수가 있죠. 아직 확실한 원인이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내가 보기에 이 산맥증은 선 천적으로 강한 음한의 기운과 양강의 기운이 침투해 들어가서 체내에 어 울리지 않고 각기 독립하여 경맥상의 흐름을 무질서하게 만드는 것이기 에 부모가 무공을 익힌 사람의 자식에게 나타날 가능서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만절산맥은 말하자면 산맥증에 절맥증의 현상이 겹치게 상태를 말하는 것이오." 사도백봉은 지금 백리자성의 몸이 산맥증과 절맥증이 겹쳐 있는 상태라 고 하자 어이가 없어서 질문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 백리자성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나의 어머니는 아직 구음절맥이 완전히 치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나를 낳으셨기 때문에 그와같은 절맥의 증상이 나에게도 유전되게 되었던 같 소. 나는 선친의 산맥증과 어머니의 절맥증을 모두 이어받았는데 그것은 산맥증이 있는 가운데 전신의 경맥들이 가닥가닥 끊어져서 고칠수도 없 고 무한한 고통을 받게 되는 것이오." 사도백봉은 듣고 있다가 그만 참지 못하고 물었다. "만일 그와 같은 상태에 있다면 어떻게 당신은 지금까지 살아올 수가 있었죠?" 백리자성은 웃으며 대답했다. "일반적으로 절맥증은 스무 살을 넘기가 어려운 것이고 산맥증은 열다 섯 살그리고 나의 경우는 불과 다섯 살을 넘기기 어려운 것이었는데 다 행히도 선친께서 대단한 의술을 가지고 계셨었기 때문에 나의 생명을 지 금까지 연장시킬 수가 있었던 것이오." 사도백봉은 백리자성의 얘기를 듣고는 내심 생각했다. (그의 말을 들어보면 산맥증은 그야말로 심한 고통을 당하게 되어 있는 모양이다. 그러하뎐 만절산맥은 그보다 수십배나 되는 고통을 당할 것인 데 과연 그렇게 살아온 것이 다행이었다고 말할 수가 있을까?) 사도백봉은 실롭이 얼마나 삶을 귀중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그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만일 지금과 같은 상태로 앞으로 십 년만 더 살 수가 있다고 한다면 백 리자성은 그야말로 기뻐서 춤이라도 추었을 것이었다. 사도백봉은 도저히 치료할 수 없는 절증을 가지고 있는 눈앞의 사람이 마치 괴물처럼 생각되기도 하여 잠시 고개를 들어 바라보다가 다시 고개 를 숙이고 뭔가 깊이 생각에 잠기기 시작했다. 백리자성은 이미 한참동안이나 설명을 했지만 이제는 할 말을 다 하고 말았기 때문에 그만 어색한 기분이 들어서 묵묵히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 다. 어느새그의 소장원이 저만큼 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주인이 잠시 며칠동안 비우고 있었지만 소장원의 모습은 예전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홍아와 청아가 수시로 들러서 이곳 저곳을 청소하고 물건들을 정리하곤 했기 때문잉ㅆ다. 백리자성은 며칠만에 소장원을 돌아오자 실로 먼 타향에 있다가 고향으 로 돌아온 것 같은 푸근함을 느꼈지만그러나 앞으로 그는 이곳을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애써가며드는 푸근한 감상을 뿌리쳤다. 비단 그 뿐만이 아니라 홍아와 청아 역시 그와 비슷한 감상을 느끼는 듯 잠시 이곳 저곳을 새삼스럽게 둘러보는 듯 하더니 이내 빠르게 움직 이며 물건들과 사람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내일 가져가지 못할 중요한 물건들은 깊이 감추고 내일부터는 의원의 노릇을 하지 못할 것이니 약간의 관리하는 사람들만을 남겨 놓고 대부분 의 사람들을 내보내는 일인 것이었다. 아주 오랫동안 살아온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아쉬움에 다소 상심해 있 는 홍아와 청아를 볼 때마다백리자성은 다소 미안한 마음을 느꼈지만 이 내 그녀들이 지시하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잘 알아서움직이는 것을 보고 매우 대견스러운 느낌이 들기도 했다. 사도백봉은 마차가 소장원의 안으로 들어설 때까지도 아무런 말도 없었 는데 이윽고 백리자성이 마차에서 내리자 기어코 말한 대로 장원의 내부 를 구경하기 위해서그를 따라다녔다. 백리자성은 이것을 보고 그녀에게 물었다. "본 장원은 그리 크지는 않지만 모든 것을 구경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 간이 소모될 것이오. 외사촌누이가 특별히 보고 싶은 것은 어떤 것이오?" 사도백봉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윽고 다소 안색을 붉히며 대답했다. "돌아가신 고모부께서는 생전에 아주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어서 많 은 사람들의 경탄을 자아냈다고 해요. 그러므로 저는 그 고모부께서 살아 생전에 자신의 재능을 기록하여 놓은 서책들을 구경하고 싶어요." 백리자성은 내심 그렇지 않아도 영악한 소녀가 자신의 무공에 대해서 궁금해하고 백리가의 무공비급들을 보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원래 그녀는 백리가의 무공에 대해서 알지 못하다가 저번에 그의 시종 들이 정장로와 양장로 등을 그토록 쉽게 제압하는 것 등을 보고 내심 은 근히 관심을 두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나백리자성은 만일 자신이 노골적으로 그녀의 심리를 알고 있는 듯 한 기미를 드러낸다면 그녀가 심히 무안해할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대답 했다. "선친께서는 그러한 서책들을 하나의 서고에 모아두셨으니 만일 그것들 을 보고 싶다면 나를 따라오도록 하시오." 말과 함께 백리자성은 사도백봉을 자신의 서재로 안내했다. 백리자성이 거처하는 침실이나 거실 등에 연결되어 있는 이 서재는 독 립되어 있는 전각의 내부에서도 가장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고 또한 그 면적이 넓다고 할 수가 있었는데안으로 들어서게 되면 우선 사방의 벽면 을 따라 세워진 서가에 가득 꽂혀있는 수많은 서책들을 볼 수 있게 둢a. 사도백봉이 바라보니 그곳에 꽂혀있는 서책의 대부분이 심오한 각 방면 의 학문이나 학술의 이론서적들이었는데비록 분랴이 방대하교 내용이 이 해할 수 없이 심오한 것들이기는 해도 무공에 관한 것은 하나도 보이지 않자 그만 흥미를 잃어버렸다. "다른 서책들은 없나요?" 사도백봉이 묻자 백리자성은 미소하며 입을 열었다. "선친께서는 가끔 방편으로 무공을 연구하시기는 했지만 결국 그것들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아시고 나중에는 의술이나 역학 등에 보다 깊은 관심을 기울이셨소. 지금 이 곳에 있는 그 역학 등에 관한 일부의 서책들인데 보고 싶지 않으시요?" 그녀는 미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저는 사실 무림인이기 때문에 무슨 의술이나 역한 따위에 관심을 가지 고 있지는 않아요. 제가 지금 보고 싶은 것은 고모부께서 연구하셨다는 그 무공서책들이예요." 백리자성은 빙그레 웃으며 대꾸했다. "그렇다면 진작에 그렇게 말하지 그랬소?" 이어서재의 중앙에 놓여 있는 의자를 좌우로 몇번 움직이자 느닷없이 그그긍하는 소리와 함께 책상이 옆으로 밀려나면서 그 자리에 대리석으 로 만들어진 지하로 내려가는 돌계단이 눈앞에 드러나는 것이었다. 사도백봉은 원래 이 소장원이 기이한 진법에 의해 외부아 단절되어 있 었던 점과 게다가 서재의 아래에 그와 같은 정교한 기관장치가 되어 있 는 것 등을 미루어 보아 필시 이 아래에는 놀라운 무학비급들이 있을 것 이라고 생각하고는 일시 흥분감에 가슴을 졸였다. 기실절세의 신공절학만 얻게 둢a면 설령 그녀가 점창파의 장문인의 직 위를 차지한다고 해도 앞으로 어려울 것이 뭐가 있겠는가? 구런데막상 백리자성을 따라서 지하로 내려간 사도백봉은 백리자성이 군데군데에 있는 홍촛불을 밝혀놓자 엄청난 분량의 서책들을 지고 서가 가 곳곳에 수십개나 늘어서 있는 서고의 정경을 보고는 내심 놀라고 질 려서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기실중원에 가면 무려 수십만 권의 장서를 소유하고 있는 거대한 책가 게들도 많이 있다고 하기에 지금 이곳에 수만 권에 달하는 서책이 있는 것은 그리 대단한 분량이라고 할 수 없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나사도백봉이 보기에는 이곳에는 일반사람들이 학문을 배우기 위해 서 보는 무슨 소학이나 천자문 따위의 저열한 수준의 서책들은 하나도 없는 것 같았으니 그야말로 심오한 부분의 학문에 대해서는 이처럼 많은 분량을 소유하고 있는 곳이 다시 없을 것이었다. 사도백봉은 절세의 무학비급을 찾기 위해 이곳에 내려온 것이었지만 막 상 그 가운데에서 무학비급을 찾으려니 그만 엄두가 나지 않는 것 같았 다. 하지만 다행히도 각각의 서가에는 새로 붙인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 꼬리표들이 달려 있었고백리자성이 그 가운데에서 무학비급이라고 적혀 있는 서가로 인도했기 때문에 사도백봉은 이 넓은 서고 가운데에서 헤매 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선친께서 연구하신 무학들은 기실 가문에서 전래되어 내려오는 내용에 한한 것이 대부분이었소. 여기에 있는 여덟 권의 무공비급들이 바로 그와 같이 가문에서 전래되어 내려 오는 것들인데 내가 지금 알고 있는 무학 지식 역시 거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이니 만일 그대가 보고 싶다 면 보도록 하시오." 기실강호사에서는 가문파의 무공이나 독문절학 등에 관해서는 외부인이 그 연무하는 모습만 보도 극형에 처할 정도로 금기시 되어 있는 상태였 다. 강호의 그 어떤 문파라고 할지랃 자파의 무학은 결코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주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그런데사도백봉이 여기에서 태연하게 백리가문의 전래되어 내려오는 무 학비급을 보고자 하는 것은 실로 뻔뻔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가 있었고 옳지 못한 행동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사도백봉은 지금 점창파의 위치가 매우 좋지 못하고 자신의 처지 역시 무학비급이 매우 필요한 상황이기에 부끄러운 심정을 무릅쓰고 서 책을 보려고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때 사도백봉은 백리자성의 말을 따라 무시모 시선을 서가쪽으 로 옮기다가 문득 다시 한번 눈을 휘둥그래 뜨고 놀라고 말았다. (이럴 수가?) 이 서가의 크기는 다른 서가들의 크기에 비해 조금도 작거나 하지 않았 다. 그러나서가의 전체는 모조리 빈틈없이 서책으로 가득차 있건만 정작 살 펴보니 그곳에 꽂혀있는 서책의 숫자는 불과 몇 권 되지 않았다. 이것은 어찌 일일까다름이 아니라 지금 이 서가에 꽂혀있는 서책의 두 께는 그야말로 다른 서책들의 이삽십 배나 혹은 심지어 칠팔십 배에 해 당되는 것이어서 믿을 수가 없는 크기였던 것이었다. (세상에 이와 같이 커다란 서책도 있었던가?) 일시 아연하여 바라보던 사도백봉은 이어 서책들의 옆면에 적혀 있는 제목들을 살펴보다가 문득 다시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이것들은 혹시 불문의 무학이 아닐까?) 가장 부피가 커다란 역근세수진경이나 그밖의 반야장(般若掌)천불수(千 佛手)대금강권신공마하지금강부동신법연대구품팔만사천검결 등의 제목이 하나 같이 불문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그것들은 언졛a 들 은 기억이 있는 소림사의 무학과 이름이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고종 오라버니는 이 서책들이 백리가문에서 전래되어 온 것이라고 했 는데 그렇다면 소림사의 무학은 아닐 것이고 그 이름이 소림무학과 닮은 이유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하긴사도백봉은 설령 소림사의 무학비급이라도 이처럼 부피가 크다는 얘기는 전혀 들어보지도 못했었다. 서가의 윗부분에는 다시 강호유행기라고 적혀 있느 커다란 서책과 강호 무학이론해석이라고 적혀 있는 커다란 서책이 각각 한권씩 꽂혀 있었지 만사도백봉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슨 강호유람기나무학의 원리를 해설 한 내용이 아니었기 때문에 곧장 그런 것에서 시선을 떼고 백리자성이 말한 그 여덟 권의 무학비급으로 관심을 집중시켰다. 사도백봉은 원래 그다지 서책을 좋아하는 성품이 아니었기 때문에 자연 히 서책들 가운데에서 가장 부피가 작은 것인 대금강권신공이라는 무학 비급을 먼저 뽑아들게 되는데 일견하기로 부피가 다른 서책들의 이삼십 배에 달하는 이 서책의 재질은 아주 얇으면서도 질긴 검은 천과도 같은 것이었는데 고색창연한 느낌이 드는 것이 과연 연대가 매우 오래 것 같 았다. 사도백봉은 비단 이 가장 작은 서책 뿐만 아니라 가장 부피가 큰 역근 세수진경의 종이의 재질조차도 역시 매우 얇은 특수한 것이엇 생각보다 도 더더욱 많은 분량의 내용이 들어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내심 혀를 내두르는데문득 중간쯤 그 내용을 한번 읽어보다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았다. 실로 이 서책은 무슨 무학비급이라기 보다는 한 권의 심오하기 짝이 없 는 내용을 적어놓은 일종으 불문의 경전괃 흡사했기 때문이었다. (......?) 백리자성이 옆에서 분명히 무학비급이라고 소개했기 때문에 결코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다시 한번 세심하게 내용을 살펴보니 과연 간혹 가다가 사람의 신체를 정밀하게 그려놓은 도형들이 있고 혹은 무학에 관 한 문그 등이 나타나기는 했지만 역시 대부분의 내용이 불문의 경전과도 같은 내용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사도백봉은 마치 다시 한번 확인이라도 하듯이 그 커다란 서책을 처음 부터 빠르게 훑어보면서 내심 크게 곤혹한 심사가 되었다. 그러니까이 서책들은 불경서적이라고 ㅁ라하기도 어려었지만 무슨 무학 비급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것이었던 것이었다. 하긴사도백봉이 생각해도 실로 그와 같은 내용들이 없다면 이 서책들의 분량이 그토록 많게 되었을 리가 없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사도백봉이 제아무리 무공에 깊은 집착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이 난해하기 짝이 없꼬 복잡하며 지루하도록 기다란 내용의 문구를 어떻게 해석하여 무공으로 운용할 수가 있다는 말인가 사도백봉은 이내 대금강권신공의 서책을 제자리에 꽂아놓고 설마하는 심정으로 다른 서책들을 일일이 꺼내서 펼쳐보았으나역시 그 종이의 재 질이 한결같이 같을 뿐만 아니라 내용도 비슷비슷하게 불경같은 내용으 로 난해하기 짝이 없는 것들이었다. 사도백봉은 그러한 서책들을 대강 처음부터 끝까지 넘겨보면서 세상에 하나의 무학을 두고 이처럼 많은 내용을 적어두고 있는 비급을 다시 없 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사도백봉이 만일 그 중 단 한 권의 서책이라도 들고 가서 이해하고 무 공으로 터득하려고 한다면 한평생이 걸리더라도 제대로 그 뜻을 파악할 수가 있을지조차 의문이었다. 여덟 권의 서책들을 모조리 살펴본 연후에 다시 웧뭣A 꽂혀 있는 다소 다른 재질의 종이에 적혀있는 오래되지 않은 서책인 강호유행기와 강호 무학이론 쪽으로 시선을 옮겨서 그것들의 내용을 살펴볼까 하고 생각하 다가 문득 매우 질리고 답답한 마음이 들어서 손을 내리고 말았다. 그것을 보고 옆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던 백리자성이 문득 사도백봉에게 질문을 던졌다. (.......) 사도백봉은 이때 말할 수도 없이 답답한 심정이 되어서 잠시 한숨을 내 쉬다가 고개를 쳐들어서 대꾸했다. "저와 같은 사람은 대체 그것들이 무슨 무공인지조차 알아낼 수가 없겠 군요." 제16장 정통무학의 이론 백리자성은 기실 내심으로 이와 같은 결과를 이미 내다보고 있었던 터 였으므로 다소 미소하며 말했다. "원래 그 여덟 권의 무학비급들은 가문에서 전래되어 내려오는 것이지 만 내용이 워낙에 심오하여 선친께서도 다만 그것들을 연구하시는 선에 서 그치셨을 뿐 다른 무학을 첨가하시지 않으셨던 것이오." 사도백봉은 실로 아까는 무심코 흘려들었었지만 백리자성의 선친인 백 리청우가 겨우 그와 같은 여덟 권의 무학비급의 내용만을 연구했었을 뿐 이라는 말의 의미를 이제야 새삼 실감할 수가 있게 되었다. 하기는그야말로 세상에 다시 없는 천재라고 할지라도 어떻게 불과 수십 년의 기간동안에 그와 같은 서책들을 모조리 독파하고 이해하여 그보다 더욱 나은 내용의 서책을 만들어 놓을 수가 있겠는가! 사도백봉은 문득 백리자성의 얼굴을 바라보며 싸늘하게 웃으며 물었다. "그러니까 당신은 순전히 저를 놀리기 위해 이곳으로 데리고 온 것이로 군요." 백리자성은 그녀의 안색을 보고는 마음이 다소 무거워졌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리가 있겠소? 나는 다만 그대가 원하는 대로 성심껏 대해주었을 뿐이오." 사도백봉은 기이하게 웃으며 다시 물었다. "나는 저번에 당신의 그 시종들이 놀라운 무공을 펼쳐서 정장로와 양장 로를 아주 쉽게 제압하는 것을 본 적이 있어요. 당신도 스스로 그 일을 부인하지는 못하겠지요? 만일 내가 당신가문의 무공비급을 보는 것이 싫 었다면 솔직하게 말을 하면 그만이지 나를 이토록 무안줄 수가 있나요?" 백리자성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실로 여기에 있는 무학비급들은 우리 가문의 뿌리이며 그 전부라고 할 수가 있서. 내가 무엇 때문에 그대에게 속이겠소? 다만 나느 ㄴ그 서책들 을 보고 깨우친 바가 있어서 건강을 유지하게 하는 목적으로 홍아와 청 아에게 각기 간단한 무공들을 전수하고 전날에는 마교의 무공의 헛점들 으 ㄹ가르쳐서 그들을 쉽게 제압하도록 했던 것이오. 만일 외사촌누이가 원한다면 다시 내가 다른 무공들을 가르쳐줄 수는 있는 일이지만 이번으 일에 오해는 말기를 바라오." 그러나사도백봉은 이미 기분이 몹시 상한 듯이 싸늘한 표정을 풀지 않 았다. "나더러 당신의 시종들이나 배운 그 무공들을 이제서야 배우기 시작하 라는 말인가요? 호호 그래서 내가 언제 그녀들보다 무공이 높아지게 되 죠" 백리자성은 그녀의 마음에 오해가 이토록 깊어진 것을 보고 내심 다급 하여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무공이라고 하는 것은 결코 속성으로 배울 것을 생각해서 는 안되는 것이오. 마교의 무공들이 겉으로는 위력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전에 홍아와 청아에게 쉽게 깨지고 말았듯이정통의 무공을 당할 수는 없 는 일이기 때문이오. 실로 저기에 있는 여덟 권의 비급에 많은 내용이 담 겨져 있는 것은 그야말로 가장 정통적인 길을 밟아가기 위한 것이며 실 로 그와 같은 비급이야말로 천하에서 가장 훌륭한 것이라고 할 수가 있 서. 무릇 무학이라고 하는 것은 그 기능만을 중요시해서는 안되며 그 마 음이 심히 존중되어야 하는 원리인 것이오. 그러나 무학이ㅡ 깊은 경지에 들어 가지 않은 상태에서 심마에 빠질 위험이 없기 때문에 나는 우선 홍 아와 청아에게 간단한 내공심법과 무공 등을 가르칠 수가 있었는데그것 들은 바로 나의 어머니께서 앓으셨던 구음절맥 등의 이론에 근거하여 양 기와 음기를 가장 지순한 경지에 이르도록 수련하여 기초를 튼튼하게 할 뿐만 아니라 그 마음과 몸을 건강하게 할 수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각기 구양신공과 구음신공이라고 이름 붙인 것들이었다오." "......." "나는 나의 몸이 건강하지 못했기 때문에 반발적으로 그와 같은 신공들 을 만들어서 그녀들의몸을 강건하게 만들게한 것이었는데실로 그와 같은 무공은 그러한 배경 이외에도 그야말로 보다 나은 무공을 연성하는데 훌 륭한 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어서 내가 다시 그대에게도 권하고 싶은 것 이오. 그대가 저기에 있는 무학비급들을 볼수가 없다면 내가 그와 같은 무공들을 가르쳐줄 수가 있는 것이니 너무 상심해하지 말고 또한 너무 조급하게 무공을 성취하려고 생각하지 말기를 바라오. 무공수련에 있어서 그 조급한 마음은 가장 커다란 적이 되는 것이라오." 백리자성은 너무나 마음이 괴로운 나머지 평소의 습관을 깨고 아주 많 은 말을 한꺼번에 그녀에게 하게 되었다. 사도백봉은 비록 표정이 좋지 않았으나 처음에는 다소 차분하게 그의 말을 듣는 듯 하더니 문득 나중에는 안색이 차갑게 되돌아 가서 싸늘하 게 되꾸하는 것이었다. "결국은 그게 그런 얘기로군요! 저의 자질로는 아무리 해도 당신들의 그 시종들을 따라 갈 수가 없다는 것이겠죠? 제가 앞으로 처음부터 그 구양 신공이나 구음신공 등을 배우게 둢a면 대체 그녀들은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사형이라고 부를까요아니면 사자라고 부를까요?" 백리자성은 자신이 그토록 알아듣게 얘기했는데 사도백봉이 조급한 마 음을 버리지않고 그와 같이 비아냥거리는 것을 보고 마음이 괴로와서 말 했다. "당신은 점창파의 장문인 대행의 신분이니 어떻게 그녀들에게 사장라고 불를 수가 있겠소/" 사도백봉은 싸늘하게 코웃음 쳤다. "흥! 좋아요. 당신의 그 무학비급들은 엉터리가 아니며 당신의 호의 역 시 진심어린 것이었다 해두죠. 그러나 분명히 말해두지만 다시는 내 앞에 서 당신의 그 알량한 무학들을 가지고 사람을 희롱하려고 하지 말아요.나 에게 시종들이나 배우는 무학을 배우라고요? 흥! 나느 결코 그렇게는 못 하겠어요백리선생!" 사도백봉은 갑자기 그렇게 소리치더니 문득 신법을 펼쳐서 날아가 계단 을 따라 밖으로 사라져 버리고말았다. "......." 백리자성은 서고안에 홀로 남게 되어 한동안 멍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 내 무거운 한숨을 불어쉬고천천히 주위를 거닐기 시작했다. 이렇게 그가 서가들의 주위를 거니는 것을 그의 오래 산책습관 중의 하나라고 할 수가 있었다. 매우 어려운 문제라도 부딪치게 되면 이와 같이 거닐면서 생각하게 되 었고 또한 공교롭게도 그렇게 하면 머리가 맑아져서 어려운 문제들고 쉽 게 풀리곤 하는 것이었다. 백리자성은 생각했다. (나에게 분명히 그녀에게 보여줄 수 있는다른 무학비급들이 있었ㄷ. 기 실 저기에 있는 여덟 권의 무학비급들은 그야말로 선택 사람들만이 볼 수가 있는 어려운 것으로 설령 홍아와 청아라고 해도 그것을 터득하기는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다. 나는 그녀에게 일부러 그러한 무공비급들을 보 여주었다. 그것은 정말로 그녀를 희롱하려는 생각이서였을까? 아니다. 나는 시롤 그녀가 무학비급의 최상품을 보고 조급한 마음을 없애며 정통무학에 대 한 열망을 느끼게 하려고 했을 뿐이었다. 아! 나는 어렸을 적에 저 무학 비급들을 보고 얼마나 가슴이 벅찼었던가! 그랬었기 때문에 나는 설마하 니 그녀가 그것들을 보고 도리어 짜증을 내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 이었다......) 그렇다! 기실 사도백봉이 그 여덟 권의 무학비급들을 보고 질색을 하며 돌아서 고 말았지만 실레조 말하자면그것들은 바로 백리가의 다시 없을 보물들 이요. 최상의 무학비급들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들이었다. 이미 오랫동안 손에서 손으로 전해내려왔던 것으로백리자성이 만일 그 녀에게 각별한 마음이 없었다면 어째서 그와 같은 보물들을 쉽게 보여주 었겠는가? 사도백봉에게 그만 결과적으로 실례를 범한 꼴이 되고 말았지만 기실은 만일 그녀가 순수학 학문을 연구하는 입장에서 바라보았었다면 짜증까지 낼 상황은 아니었던 것이었다. 물론 그의 생각대로 보관되어 있기는 했지만그것은 백리자성이 어떤 인 연있는 사람들을 기다리기 위한 것으로 사도백봉의 성격에 맞지 않아서 보여주지 않은 것이었지 그가 자신의 무공비급을 아껴서 그랬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백리자성이 그녀에게 따로 구양신공 등을 전수해줄 수가 있다고 말한 것으로 미루어 봐도 알수가 있는 사실이었는데실상 사도백봉의 현 재의 무공실력과 그 재질 등으로 미루어 보아 구양신공을 배우는 것은 감추어놓은 비급들을 보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할 수가 있는 상태였다. 그러니까백리자성이 가장 경계한 것은 그녀가 지금 대단히 조급한 마음 을 가지고 있고 마치 갈증을 느끼는 사람처럼 절세무공들을 열망하고 있 는 것이었는데그와 같은 마음들은 실로 그의 말대로 그녀의 무공수련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주화입마만을 부르는 것일 뿐이었던 것이 다. 기실사도백봉이 육맥신검경에 대해서 잘못 이해하고 마치 그것을 대하 기만 하면 금방이라도 무공실력이 높아질 것이라고 믿는 것은 잘못 망 상이며 백리자성은 차라리 그가 말했던 구양신공 등을 배우며 차례차례 무공을 높여가는 것이 더욱 빠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비록 그가 직접 고안한 것이었지만 구양신공이나 구음신공은 차라리 점 창파의 전산신공인 천룡무상신공보다 더 더욱 훌륭한 것이었으며게다가 홍아와 청아의 자질은 우너래 매우 보기드문 것들로서 사도백봉보다도 훨씬 뛰어난 것임을 그녀는 간파하고 있었다. 단지 쓸데없는 오만한 마음으로 홍아와 청아를 무시하고 조급하게 무공 을 배우려고 하지만 그것은 이루어질 수 없는 망상으로 그녀엑 오직 해 가 될 뿐이었다. 자신보다도 훨씬 자질이 뛰어나고 총명한 홍아와 청아도 구양신공을 배 우면서 점차적으로 나아가고 있건만 그녀는 오히려 신경질을 부리고 던 져주는 떡조차 마다하며 오로지 육맥신검경을 찾으러 가겠다고 하니백리 자성으로서는 어쩔 수가 없는 일이고 매우 딱한 상황이라고 아니할 수가 없었다. 홍아와 청아를 감히 시종이라고 무시하고 있는 사도백봉은 그 자존심이 매우 높은 여자이기 때문에 앞으로 백리자성이 아무리 가르쳐준다고 해 도 무공을 배우려고 하지 않을 것이고따라서 백리자성은 오지 그녀가 원 하는바대로 육맥신검경을 찾도록 도와주어 그것으로 점창파를 크게 일으 킬 수 있게 최선을 다해 도와주는 도리 밖에는 없다고 생각했다. (오래 전부터 그 사도가문의 사람들은 깊은 탐욕속에 젖어 있었다. 그들 은 매우 강렬하게 보다 강한 무공을 원하고 있지만 실은 보다 훌륭한 무 학은 그러한 탐욕이 없어져야 비로소 얻게되는 것임을 모르고 있는 것이 다. 누가 그들의 탐욕을 제거할 수가 있을가? 그것은 오직 그들 자신일 뿐인 것이다. 이제 겨우 외사촌누이 하나만 남았지만 실로 그녀는 탐욕이 강해서 우리 가문의 무학과는 거리가 멀다고 할 수가 있다 아!...... 안타까 운 일이지만 억지로 그녀에게 무공을 가르친다는 것은 부질없는 짓인 것 이다. 나는 여태 그래왔듯이 반드시 순리를 따르도록 하자!) 사도백봉이 점창파로 혼자서 돌아간 이후에 백리자성은 계속 서재에 남 아서 생각을 거듭하다가 이윽고저녁식사를 끝낸 이후에는 밖으로 나가려 는 홍아와 청아를 불렀다. "아직 해야할 일이 많이 남았느냐?" 홍아는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환자들은 이미 대부분 돌려보냈고 그리고 더이상 의원의 일을 하지 않 는다고 써놓았으니 다시 환자들이 몰려들지는 않을 거예요. 게다가 그밖 의 일들은 대강의 정리를 해놓았으니 내일 아침에 그저 간단하게 챙기고 길을 떠나면 될 거예요." 백리자성은 고개를 끄덕인 뒤에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는 아마도 이번에 이곳을 떠나게 되면 다시 돌아오지 못하게 될지 도 모른다. 그러므로 나중에 후호하지 말고 필요한 물건들을 미리미리 챙 겨놓는 것이 중요하다." 청아가 웃으며 대답했다. "저희들은 이미 그러한 것들을 알고 있으니 공자님께서는 너무 심려하 시지 마세요. 그보다...... 그 사도낭자는 공자님께 어떤 비급이라도 얻어서 갔나요? 아까보니까 마치 화가 나서 돌아가는 것 같던데." 백리자성은 담담히 웃으며 대답했다. "실은 그녀는 아무런 비급도 가져가지 못했다. 그녀는 매우 효과적이고 높은 무공을 원하고 있었는데 나에게는 그러한 속성의 무공은 없었지. 내 가 너희들이 연성한 구양신공이나 구음신공을 권했더니 그녀는 그만 화 를 내고 가버렸다." 홍아가 문득 안색을 싸늘하게 굳히더니 말했다. "흥! 그녀는 아마도 우리를 무시하고 있었던 모양이로군요. 하지만 자신 의 재질은 그 구양신공도 익히기에 과분한 재질이라는 것을 알고나 있었 는지 몰라요. 이 구양신공은 공자님께서 창안하신 아주 훌륭한 무예인데 그녀가 감히 신경질을 부리고 화를 내다니...... 정말이지 저라면 당시 참 을 수가 없었을 것이예요." 홍아와 청아는 아무래도 당시 백리자성과 사도백봉의 대화내용을 엿들 었던 모양이었다. "그들 사도가문의 사람들은 대부분이 아주 나빠요. 당시 공자님께서는 선심을 베풀기 위해서 부탁을 들어주겠다고 했었는데 그 죽어가는 사람 은 그것을 이용하여 공자님으로 하여금 아프신 몸을 이끌고 고향을 떠나 게 하셨으니...... 만일 이 일로 공자님께서 타향에서 돌아가시게 둢a면 그 것은......" 청아는 그만 말을 더이상 계속할 수 없는 듯 고개를 떨구고 눈물을 소 리죽여 흘리기 시작했다. 그렇다. 기실 몸이 극도로 허약한 백리자성에게는 이번의 여행은 실로 어렵고도 고난에 가득찬 것이 될 것이 뻔한 일이었다. 백리자성은 담담한 얼굴로 웃으며 대답했다. "사람이란 한번 죽으면 부토로 돌아가게 되어 있는 것인데 그까짓 타향 에서 죽게 들 무슨 그리 대단한 문제가 있겠느냐? 나는 괜찮으니 앞으 로는 그런 일로 울지 마라.' 홍아가 다시 말했다. "공자님께서 이번에 그너에게 무공비급을 주지 않으신 것은 아주 잘하 신 일이예요. 설령 무공비급을 주셨다고 해도 그녀는 그것을 하찮은 것이 라고 생각하고는 그 사도계강의 유언대로 계속해서 육맥신검경을 찾으려 고 하지 않겠어요? 기왕에 우리가 중원으로 가서 육맥신검경을 찾아야 하는 것이라면 그녀엑 앞으로 그것을 배워서 무공을 높이라고 하세요." 이 홍아와 청아는 비록 말투나 행동에서 시종의 신분처럼 행동하고 있 지만 기실은 백리자성의 부인들로 키워져서 실로 그의 안사람들이나 마 찬가지였다. 따라서사도백봉의 감히 그녀들에게 시종들이라고 무시한 것은 있을 수 가 없는 처사였으며 무례한 언동이었다. "그녀의 행동은 당연히 그 응보를 받게될 것이니 다시 말할 것은 없다. 내가 지금 말하려고 하는 것은 바로 너희들에 관한 것이다......" 홍아와 청아는 백리자성의 어조가 다소 엄숙한 것을 보고 얼른 정색을 하고 열심히 그의 말을 경청했다. 백리자성은 말을 이었다. "나는 이미 전에도 말했지만 너희들에게 매우 고마워하고 있다. 실로 너 희들이야말로 나의 가장 친밀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지. 따라 서 나는 얼마전부터 너희들에게 어떤 보답을 해주고 싶었지만 마땅한 것 이 생각나지 않아서 그저 무공이나 조금 높여주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이었지. 그런데...... 실로 이번에 중원으로 길을 떠나게 딤에 따라서 내가 언제 너희들의 곁을 떠나게 될지 알 수가 없으므로 부득이 모든 일을 앞 당기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청아가 문득 고개를 숙이고 다시 흐느끼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백리자 성은 미소하며 말을 계속했다. "사실 중원에 가게 되면 어떠한 일이 발생할지 알 수가 없기 때문에 미 리 너흐들의 무공을 높여서 나의 안전을 도모하려는 생각도 깃들어 있다 고 할 수가 있지. 어떠냐? 나는 오늘 저녁부렵에 너희들이 지금 연마하고 있는 구양신공과 구음신공을 빠르게 터득할 수 있는 비결을 생각해 내게 되었는데 너희들은 오늘밤 그것을 한번 시험에 보겠느냐? 이것 역시 정 통적인 내공심법의 범주에서 벗어자 읺는 것이기 때문에 조금도 위헌한 일은 아닌 것이다." 홍아와 청아는 중원에 가서 백리자성을 보호해야 한다고 듣게 되자 일 제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예공자님 저희들은 한번 해보겠어요!" 그녀들은 그 무공들을 모두 배우게 되면 금방이라도 백리자성과 헤어져 야할 것 같아서 마음이 매우 우울해져 있는 것이었다. 백리자성은 미소하며 말했다. "이 속성의 방법은 물론 너희들이 이미 기초를 튼튼하게 다져왔고 게다 가 내가 너희들의 난점에 대해서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결점을 지적하여 빨리 성취하게 하는 것이므로 말하자면 속성의 방법이라고 말할 수도 없 는 것이다. 이 구양심공과 구음신공은 내력과 깨달음이 있기만 하면 대성 할 수가 있는 것이므로 내가 오늘 너희들에게 그것을 성취하게 해주려는 것이다." 백리자성은 홍아와 청아를 한쪽에 마련되어 있는 연공실로 데려가서 품 속에서 작은 옥병 하나를 꺼내어 봉합되어 있는 뚜껑을 열고는 그 안에 들어 있는 두 알의 은은한 금빛의 단환을 각기 홍아와 청아에게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이것은 바로 대라금단(大羅金丹)이 아닌가요?" 홍아가 다소 놀란 음성으로 하는 말에백리자성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 다. "그렇다. 너희들의 대공이 성취될 수만 있다면 그것은 나에게는 소용이 없는 물건이 될 것인데 어찌 사용하는 것을 주저하겠느냐? 그것의 약력 은 이미 너희들이 경험했겠지만 앞으로내가 일러주는 구결의 내용을 완 전히 이해하고 암기한 후라야 복용해야 한다. 만일 그렇지 않고 욕심을 부려서 함부로 복용하게 되면 그 약력을 처리할 수가 없게 되어 주화입 마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기실그 대라금단은 전설에서 말하는 불과 한 알만 복용하게 되면 신선 이 되어 우화등선하다는 금단은 아니지만 바로 석년의 백리청우가 부인 인 사도인화가 각처에서 가져왔던 영약들을 재료로 하여 모두 다섯알을 만들어 놓은 것으로그중 사도인화가 한 알을 복용하였고나머지 네 알을 백리자성에게 남겨주었는데 백리자성은 이미 그 가운데의 두 알을 홍아 와 청아에게 복용시킨 바가 있다. 따라서만약 홍아와 청아가 지금 그것들을 복용하게 둢a면 이 땅에 남아 있는 대라금단은 모두 사라지는 셈인데그것의 약력을 최대한으로 내공으 로 흡수한 경우에는 무려 일갑자 반의 공력을 높일 수가 있으므로 무공 을 모르는 사람은 함부로 복용할 수가 없는 물건이었다. 백리자성은 홍아와 청아가 일전에 구양신공과 구음신공을 팔성 이상 깨 우친 것을 보고 대라금단을 한 알씩 복용시켜 명실공히 내력도 그 깨달 음과 같도록 만들어 주었었는데이제 다시 나머지 두 알을 복용시키려는 것이었다. 만일 여기에서 그녀들이 구결의 내용을 잘못 이해하여 강렬한 약력을 잘못 운기하여 진기를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게 한다면 주화입마에 빠지 게 되는 것이고그렇지 않고 정확하게 이해하고 바르게 운용한다면 그녀 들은 일약 절정고수의 공력을 넘어서서 최절정의 삼갑자의 공력과 신공 을 터득한 사람들로 돌변하게 되는 것이었다. 홍아와 청아는 백리자성이 자신들에게 대라금단을 조금도 아까와하지 않고 마지막 남은 것까지 나누어 주는 것을 보고 문득 깊은 감격과 사모 하는 마음이 치밀었으나 이내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백리자성이 들려주는 구결의 내용을 듣기 시작했다. 이 구결의 내용은 다만 그녀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고안한 것으로 그리 길지 않았으나 많은 함축적인 으미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었다. 게다가내력이 최절정의 경지에 오르기 우해서는 그녀들이 지금 연마하 고 있는 구양신공과 구음신공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도중에 신법을 바꾸어서 천지양극귀원공으로 운행해야 하는 것이므로 그것의 내용까지 포함하여 대단히 어렵고 복잡하기 짝이 없었다. 백리자성은 구결의 내용을 그녀들이 암기할 수 있도록 두번 가르쳐 주 었으며 이니 한 차례의 상세한 해설까지 곁들여서 그녀들의 혹시 오해하 고 있는 부분이 없도록 했다. 그와 같이 오랜 시간동안 무공전수를 마치고 나자 백리자성은 잠시 한 쪽의 의자에 앉아서 쉬었고 홍아와 청아는 스스로 가부좌를 틀고 백리자 성이 들려준 구결의 내용을 상기하며 참오하기 위해 전력을 기울였다. 홍아와 청아는 백리자성과 함께 소장원에서만 거의 살아왔기 때문에 세 속의 때가 거의 묻지 않아서이와 같은 무공을 수련할 때에 쉽게 몰두하 고 참오할 수 있는 맑은 심상들을 가지고 있어서 간혹 매우 유리했다. 지금도 그녀들이 정신을 모아서 참오하기를 시작하지 불과 한 시진도 되지 않아서 그녀들은 거의 동시에 눈을 떴다. 그녀들은 쌍동이로 태어났기 때문에 비록 성격이 다소 다르지만 용모는 물론 그 자질마저도 매우 비슷했다. 거의 동시에 눈을 뜬 그녀들의 시선이 매우 맑을 뿐만 아니라 깨달음에 따른 기꺼운 미소가 어려있는 것을 보고 백리자성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 이자 그녀들은 즉시 각기 받아들고 있었던 대라금단을 복용하고 가부좌 를 튼 뒤에 운기행공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고 백리자성은 즉시 품속에서 금침이 들어있는 주머니를 손안 에 꺼내들고 만지작거렸는데그것은 최악의 경우 그녀들이 자칫 잘못하여 주화입마에 빠져들 경우를 대비한 행동이었다. 비록 겉으로는 태연하게 보이지만 지금 백리자성의 마음은 시간이 없어 서 대공을 서두르려는 행동 때문에 혹시 화를 자초하지나 않을까 하는 조바심 때문에 가슴이 심학 두근거리고 있는 상태였다. 만일 백리자성이 이 두명의 쌍동이 자매들의 자질을 크게 신뢰하지 않 았다면 이와같은 모험은 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과연아니나 다를가백리자성이 크게 믿었던 두 자매의 자질은 역시 훌륭 하여 처음부터 그 탄탄한 기초를 드러내며 차분하게 대공을 향해 나아가 기 시작하고 있었다. 우선 그 첫번재의 조짐은 그녀들의 주위에서 엷게 번져나오고 있는 각 기 불고 푸른 안개와도 같은 기운이었는데 시간이 점차 흐름에 따라서 그것들은 그녀들의 몸을 완전히 붉고 푸른 기운으로 둘러싸서 마치 그녀 들의 몸이 각기 하나씩의 커다란 붉고 푸른 공의 내부에 들어 있는 것과 도 같은 모습을 보여주었는데여기에서 그녀들을 둘러싸고 있는 불고 푸 른 기운들이 비교적 고르게 분포되어 있고흔들리지 않고 있는 것은 그녀 들이 이제까지 연마해온 신공의 방법이 그야말로 올바른 것이었음을 입 증해주는 것이었다. 그리고이어 그녀들의 이마에 더운 땀방울들이 솟아나기 시작하면서 그 공과도 같던 기운들이 점차로 백회혈의 부근으로 몰려들어 작은 환(環)과 도 같이 응축되어 빛을 발하며 회전하기 시작했는데여기에서 그녀들의 표정에 흔들림이 없고 그 각각의 환들이 굴곡이 없이 완전한 원을 그리 고 있으며 밝게 빛나기 시작하는 것은 이미 그녀들이 구양신공과 구음신 공의 절정에 이르러 바르게 나아가고 있다는 표시인 것이었다. 백리자성은 이 두 가지의 조짐을 보게 되자 문득 안색이 심각하게 굳어 졌다. 이제 바야흐로 중요한 고비의 순간을 맞게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홍아와 청아는머리위에 떠오른 색환들이 점차로 강렬하게 빛을 발하기 시작함에 따라서 몸이 한자 정도 가부좌를 튼 상태로 허공 에 둥실 떠오르게 되었는데이것은 물론 부공삼매(浮空三昧)가 아니라그녀 들이 정련 자신들의 내공의 힘을 빌어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지금의 그녀들의 성취로는 다소 무리한 일이었기 때문에 다소의 위험이 수반하게 되는 일인 것이었다. 두 사람의 몸이 허공으로 떠오르자 거의 동시에 미리 약속이라도 한 듯 이 홍아와 청아는 각기서로를 향해 돌아가며 천천히 앞으로 내밀었는데 이윽고 두 사람은 네개의 손바닥이 정확하게 달라붙게 되자 두 사람의 몸은 일시에 거 격동을 일으켰고 머리 위헤서 돌고 있었던 각각의 색 환들도 일시에 크게 주춤하는 양상을 보였다. 백리자성은 여기에서 바로 각자의 깨달음이 진실한 것인지의 여부가 판 가름나게되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백리자성은 자연히 손안에 들고 있던 금침의 주머니를 힘주어 잡았는데 순간 그녀들의 쌍장 사이에서 한줄기의 붉고 푸르게 어우러진 광채가 회 전하듯이 일어나며 점차로 확산되어 두 사람의 몸을 에워싸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비로소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 홍아와 청아의 깨달음은 완벽한 것이었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가히 대공 이 십중팔구 완성되었다고 말할 수가 있는 것이었다. 제17장 주막에서 생긴일 기실홍아와 청아가 비록 구양신공과 구음신공을 대성했다고 해도 다시 최절정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 천지양극귀원공을 연성하기 위해서는 구양 신공을 연성한 홍아는 구음신공을구음신공을 터득한 청아는 구양신공을 처음부터 새롭게 연마해야만 했다. 이것은 바로 인간이 마음을 쉽게 두개로 분리할 수가 없기 때문에 처음 부터 천지양극귀원공을 연마하지 못하는 원리에 입각한 것이었으니그렇 게 해서 대공을 성취하자면 자연히 시간이 많이 걸리고 또한 그런만틈 안전하기도 한 것이었지만백리자성은 시간이 없기 때문에 지금 홍아와 청아가 각기 구양신공과 구음신공을 대성하게 한 다음 대라금단을 넘쳐 나는 공력을 음양화학의 원리에 입각하여 교환하게 하여 수화상제(水火 相濟)하고강(剛)유(柔)를 서로 조화시키므로써 일시에 천지양극귀원공을 대성하도록 지도하고 있는 것이었다. 물론 이와 같은 속성의 방법을 그 원리가 광명정대하며 올바른 것이라 고 해도 대단히 까다로운 조건을 필요로 하여 실패하기 쉬운 것이었는데 우선 그녀들은 각기 구양신공과 구음신공 그리고 천지양극귀원공을 대성 하도록 지도하고 있는 것이었다. 물론 이와 같은 속성의 방법은 그 원리가 광명정대하며 올바른 것이라 고 해도 대단히 까다로운 조건을 필요로 하여 실패하기 쉬운 것이었는데 우선 그녀들은 각기 구양신공과 구음신공 그리고 천지양극귀원공의 이치 를 통달하고 있고 게다가 공력이 가히 대공을 성취할 수 있는 단계에 있 는 것이며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내용이라고 할 수 있는 마음의 처리에 있어서 두 사람이 쌍동이였기 때문에 서로가 쉽게 화합할 수가 있었으므 로 모든 조건들이 순조롭게 해결되었던 것이었다. 과연 예상대로 두 사람의 머리 위에 맴돌고 있던 색환들이 점차로 시가 이 지남에 따라서 붉고 푸른기이한 색깔로 변화하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그 두가지 종류의 색깔이 점차로 뚜렷해져서 함께어우러져 찬연한 빛을 발하기 시작하자 홍아와 청아는 허공에서도 서로 싼장을 붙인 채 맴을 돌다가 무아지경으로 들어갔다. 실로 이것이 바로 부공삼매이ㅡ 경지인 것이었다. 여기에 이르러서는 이미 그 두 사람의 천지양극귀원공의 대공은 완성 것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백리자성은 그와 같은 광경을 보고 입가에 흐뭇한 미소를 떠올리며 꺼 내놓았던 금침주머니를 슬그머니 다시 품속으로 집어넣었다. 그런비록 대공이 완성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는 해도 그의 마음은 그녀 들이 그냐말로 다시 눈을 뜨고 몸을 일으키기 전에는 이곳을 떠날 수가 없어서 계속해서 지켜보게 되었다. 이윽고 무아지경에 빠져서 함께 천천히 원을 드리며 돌아가던 두 사람 의 손바닥이 동시에 떨어지면서각자 옆으로 밀려나서 잠시 둥둥 떠서 돌 아가지도 않고 앉아있더니 문득 두 사람의 머리위의 두 가지의 생환이 번쩍하고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아주 맑으면서도 강렬한 빛을 발했다. 이것은 실로 두 사람의 대공이 막 완성되었음을 알려주는 표시인 것이 었다. 과연잠시 후에 두 사람은 서서히 몸이 지면에 내려앉으며 머리위의 색 환이 마치 환각처럼 그녀들의 머리속으로 사라지면서 눈을 뜨게 되었는 데기이하게도 지금의 그녀들의 두 눈에는 어떤 강렬한 안광이 발출되는 것이 아니라도리어 안광이 사라지고 한줄기의 온화하고도 맑은 빛이 은 은하게 감돌고 있는 것이었다. 이것이야말로 실은 그녀들의 내공이 유실반허(由實返虛) 자진귀박(自眞 歸撲)의 경지에 이르러 안광이 평범하게 돌아갔음을 말해주고 있다. (......!) 홍아와 청아는 각기 무아지경에서 깨어나자 즉시 자신들의 눈앞에 백리 자성이 매우 초췌한 안색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고는 문득 깊은 감 격이 치밀어 무릎을 꿇고 엎드려서 그를 향해 절을 하기 시작했다. "공자님께서 저희들을 이처럼 돌봐주신 은혜는 결코 잊지 않겠어요!" 백리자성은 담담히 미소하며 그녀들의 절을 받고는 입을 열었다. "너희들의 대공이 성취 것을 축하한다. 하지만 이 일은 원래가 매우 위 험한 일이었는데 너희들이 정신을 모아서 해낸 것으로 굳이 나에게 그렇 게 고마와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다만 내가 너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 은 그러니까...... 너희들의 내공은 이미 최절정의 경지에 올라있는 것이지 만 아직 무공수법이 미숙할 것이고 또한 경험에 있어서 더욱 아는 바가 없다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이제 앞으로 중원으로 가게 되면 스스로 무 공은 비록 최절정에 이르러싸고 할지라도 경험이 없어서 강호의 초년생 이나 다름이 없다고 생각하고는 보다 경험을 신중하게 쌓아서 진정한 강 호의 최절정의 고수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홍아와 청아는 실로 금과옥조와도 같은 백리자성의 말을 깊이 마음속에 새기며 거의 동시에 고개를 숙여 대답했다. "예 공자님명심하여 복행하도록 하겠어요!" 백리자성은 그녀들이 그처럼 진심어린 대답을 하자 매우 만족하여 손수 일어나서 양손으로 각기그녀들을 잡아 일으킨 다음에 먼저 밖을 향해 걸 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연공실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자 이미 거실의 문밖으로는 밝고 뿌연 새벽의 여명이 가득 밀려오고 있었다. 백리자성은 그 밝은 빛줄기를 보는 순간에 문득 밤새도록 허약한 몸을 이끌고 노심초사한 흔적이 살아나서 갑자기 아찔한 기분을 느끼며 몸을 휘청거리게 되었는데바로 다움 순간에 이미 그의 몸은 거의 동시에 좌우 에서 달려든 홍아와 청아의 품속에 안겨있는 것이었다. 백리자성의 몸을 부축한다는 것이 그만 껴안게 되고 말았는데백리자성 은 그녀들의 다소 수줍어진 그러한 심정들을 풀어주려는지 문득 미소하 며 이렇게 입을 여는 것이었다. "벌써 아침이로구나. 우리들은 어서 점창파로 떠날 준비를 하자!" 처음에는 한 두명의 늙은 하인들을 두어 소장원을 관리하게 하려고 했 으나 결국은 단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소장원을 완전히 폐쇄하여 주위 에 설치되어 있는 진법을 발동시킨 연후에 백리자성은 홍아와 청아와 함 께 비교적 간단한 차림새로 마차를 타고 점창파로 향하기 시작했다. 역시 홍아가 마차를 몰고 청아는 백리자성의 옆자리에 앉아서 그를 보 살피는 역할을 맡았는데 점차로 마차가 소장원에서 멀어질 때마다 그 청 아는 계속해서 그쪽으로 시선을 보내며 마치 고향을 떠나느 사람처럼 훌 쩍거렸다. 기실그녀들이 살아온 그 소장원은 그림처럼 경치가 좋고 무엇하나 부러 울 것이 없는 알므다운 추억이 간직되어 있는 곳이어서 그녀들은 앞으로 그곳으로 다시 돌아오지 못할지라도 결코 잊을 수는 없을 것이었다. 비록 똑같이 밤을 지새기는 했지만 홍아와 청아는 새로 신공을 성취했 기 때문에 피로가 쌓이기는 커녕 얼굴에는 더욱 홍조가 돌고 눈빛에는 광채가 감돌았으나백리자성은 그야말로 피곤하기 짝이 없어서 잠시 마차 를 타고 가는 중에도 졸게 되었다. 청아는 드디어 소장원이 보이지 않게 되자 할 수 없이 한숨을 내쉬며 졸고 있는 백리자성의 몸을 좀더 편안하게 해주는 일에 신경을 쓰기 시 작했다. 이해의 호숫가와 점창산 중악봉 사이의 거리는 그다지 가까운 것은 아 니었으나 일행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점창파에 도착하게 되었 다. 백리자성이 마차를 타고 과거 중악전이 있었던 불타버린 폐허의 광장에 이르렀을 때 마침 사도백봉은 제자들을 모두 모아놓고 일장의 훈시를 내 리고 있었다. 그런데무심코 그 모여있는 제자들의 숫자를 살펴본 백리자성은 다소 놀 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오십여 명을 헤아렸었던 제자들의 숫자가 지금은 겨우 그 절반밖에 안되는 스물대여섯 명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호법의 위치에 해당되는 340대의 제자들이 겨우 다섯명 정도였 고 나머지 ㅂ20대의 제달이 이십명 정도였다. 과연 어제 사도백봉이 떠나고 싶은 사람은 떠나도 좋다고 마을 하자정 말로 가고 싶은 사람들이 떠나가 버렸고혹은 자신의 몸이 불편하여 중원 으로 따라기 못할 것 같은 사람들도 떠나버린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다행이라면 그러한 제자들을 향해 훈시를 내리고 있는 사도백봉의 표정이 우울해 있지 않고 냉막하면서도 싸늘한 기상이 발휘 되고 있으며게다가 지금 남아서 도열하고 있는 제자들이 대부분이 우수 한 건아들이서 앞으로의 점창파의 미래는 그다지 실망할 단계는 아닌 것 같기도 한 것이었다. "......우리는 이제 나 장문인대행과 수석호법 다섯명 그리고 제자들의 숫 자가 겨우 스무 명박에 되지 않는 소규모의 문파로 전략하고 말았지만앞 으로 중원으로 가서 스스로 검경을 되찾고 나면 필시 본파를 크게 부흥 시켜서 여러분들을 최고의 무인들로 키우고 스스로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도록 만들고야 말겠어요. 나는 앞으로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라고 믿고 있으며 이는 실로 천지신명께서 보우하여 주실 것이예요!" 사도백봉이 말을 끝내고 자신의 허리춤에 걸려 있었던 보건 한 자루를 뽑아서 하늘을 향해 쳐들자 일제히 제자들도 그와 똑같이 따라하며 커다란 함성을 내질렀다. "천지신명께서 보우하여 주실 것이오!" 비록 제자들의 숫자는 줄었지만 아직 과거의 기세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모양이었다. 사도백봉이 이윽고 장검을 회수하고 단상에서 내려와서 백리자성이 타 고 있는 마차쪽으로 걸어오자모든 제자들은 일제히 도열을 떠나서 바삐 움직이며 떠날 준비를 서두르기 시작했다. "오셨군요? 저는 혹시 화를 내시고 오시지 않는 것이 아닌가 했어요." 백리자성은 내심 그녀가 전날 화를 내고 돌아갔었기 때문에 매우 마음 이 어색해져 있었는데 지금느닷없이 아주 부드러운 표정으로 그와 같이 말하는 것을 보고는 저으기 어색한 마음이 풀리고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도백봉은 이 순간 그야말로 눈부신 백색의 비단으로 소복을 차려입고 있어서 햇살 아래 눈부시게 빛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겹의 안개막을 두르고 있는 것과도 같아서 실로 아름답기 그지 없는 모습이었다. "내가 그럴리가 있겠소? 나는 오히려 외사촌누이가 혹시 화를 내면 어 쩌나 하느 ㄴ걱정을 하고 있었다오." 백리자성이 그렇게 대꾸하자 사도백봉은 고개를 돌려 마차의 앞과 백리 자성의 옆자리에 각각 자리하고 앉아 있는 홍아와 청아를 슬쩍 바라보고 는 몸을 돌려 돌아갔다. 홍아와 청아는 이 순간 비록 남장을 하고 있기는 했지만 과거처럼 검댕 이 칠을 하지는 않아서 그야말로 유난히 오똑한 코와 백옥같은 피부그리 고 영롱한 눈빛과 불그레한 홍조 등이 살아나서 깨물어 주고 싶은 미소 년들의 모습과도 같았다. 사도백봉이 자신들의 얼굴을 기이한 눈초리로 주시한 뒤 돌아가자 문득 홍아는 마부석에 앉아서 매우 못마땅하다는 듯이 종알거렸다. "흥! 그녀는 지금 상중인데도 저렇게 호화로운 상복을 입고 있으나 대체 누구를 유혹하려는 것인지 모르겠군요. 점창파는 과거 커다란 위세를 떨 쳤었기 때문에 자연히 재산이 많을 것이므로 그녀가 다소 사치를 부리는 것은 상관없겠지만 그래도 정말 꼴불견이로군요!" 홍아와 청아는 이미 사도백봉에 대해서 좋지 않은 인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앵두같은 입술을 삐죽이며 비아냥거린 것이었다. 기실홍아의 말대로 사도백봉이 다소 자시의 몸에 사치를 부린 것은 틀 림이 없는 사실이었으며 호사스러운 상복을 걸치고 이외에도 훌륭해 보 이는 보검 하나와 새로 구입한 커다란 마차 한 대그리고 삼십여 명에 달 하는 제자들이 모두 탈 수 있는 준마들을 사들인 것 등은 과용했다고도 말할 수가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백리자성이 보기에는 그렇지 않아도 기분이 우울해지기 쉬운 제자들의 심리에 그처럼 화려하게 차리고 나서게 둢a면 그것으로 훌륭한 마음의 청량감을 심어줄 수가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 그 새로 구입한 마차는 바로 사도백봉이 타게 되는 것이었는데 그녀는 언제 구했는지 평범한 용모의 시녀를 두명이나 데려와서 자신이 마차위 에 태우고 있었다. 이윽고준마에 올라탄 제자들이 먼저 도열하여 점창산의 아래로 달리기 시작하자 사도백봉이 타고 있는 마차가 그 뒤를 따랐고이어 백리자성은 가장 뒤쪽에서 느릿하게 그들의 일행을 뒤따르기 시작했다. 폐허로 변한 점창파의 정경이 뒤쪽으로 아스라하니 멀어지고 있었다. 점창파의 제자들은 대부분이 패기 넘치는 젊은제자들로 구성되어 처음 에는 기세도 당당하게 줄을 맞추어 말을 몰아서 내달렸지만 이내 얼마 가지 않아서 말들이 지치게 되고 사람들 또한 어느 정도 도취되었던 기 분에서 풀려나 천천히 중원이 있는 북동쪽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때는 아직 초여름에 해당되는 계절이었지만 이곳 운남지방의 날씨는 몹 시 더워서 조금만 움직이면 이마에서 땀방울이 줄줄 흘러내리기 마련이 었는데점창파의 제자들은 아직 패기에 도취되어 그러한 더위마저 잊고 있는 모양이었다. 일행은 점심식사마저 거른 채 저녁나절 때까지 계속해서 나아가서 마침 내 저녁무렵에는 장강의 근원이 옆으로 흐르는 맥초령의 부근에 이르렀 다 사도백봉은 비록 자신은 마차속에서 여행을 하고 있으니 피곤하지 않다 고는 하나 제자들이 이미 어느 정도 지쳐있기 때문에 이제는 더 나아갈 수가 없어서 객점을 하나 찾아 하룻밤을 유할 수박에 없게 되었다. 그 백초령의 부근에는 삼태라고 하는 작은 현성이 있었는데다행히도 제 법 커다란 객점이 하나 있어서 사도백봉은 즉시 그 객점 전체를 하룻동 안 빌리기로 했다. 백리자성은 사도백봉이 자신이 빌린 객점의 안에서 유하자고 했으나 워 낙에 많은 사람들이 함께 유하기 때문에 다소 불편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는 그 객점의 건너폄에 있는 보다 작은 객점으로 가서 방을 두개 빌려 유하기로 했다. 그러나 비록 객점을 따로 쓴다고 할지라도 식사를 하는 것은 일행이 머물고 있 는 객점에 딸ㄹ 있는 주루에서 함께 하기로 하였으므로 뱌은 객방에 들 어가서 일단 여장을 정리한 다음에는 홍아와 청아를 대동하고 주루로 향 했다. 일단 주루에 가보니 역시 많은 제자들이 모두 주루로 들어오면 복잡할 것이락 생각했는지 일반의 제자들의 음식은 객점으로 옮겨가고 있었고 지금 주루안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사람들은 사도백봉을 비롯한 아홉명 의 호법 등의 열 명 남짓한 사람들이었다. 그 가운데에서도 다섯명의 호법들은 따로 하나의 탁자를 차지하고 있었 고 수석호법인 점창사수는 사도백봉과 함께 하나의 탁자를 차지하고 앉 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백리자성과 홍아와 청아가 안으로 들어가 보니 사도백봉은 점창사수를 대하는 태도가 매우 은근하고 부드러워 보였는데그녀는 뭔가 기분 좋은 얘기를 하고 있다가 고개를 돌려 백리자성 일행이 들어온 것을 보고 손 짓을 했다. "아! 고종 오라버니께서 오셨군요. 어서 이쪽으로 오시겠어요?" 백리자성은 비단 그쪽의 자리가 넉넉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건강한 청 춘남녀들의 대화에 구태여 끼어들어 방해를 하고 싶지 않았으므로 손을 흔들어 마다하고 가까운 곳에 있는 구석진 탁자 하나를 골라서 홍아와 청아와 함께 자리했다. "나는 괜찮으니 여러분들은 신경쓰지 말고 계속 얘기를 나누도록 하시 오!" 사도백봉은 백리자성의 그 말에 다소 눈빛을 기이하게 빛내는 듯 하더 니 이내 고개를 돌려 음식을 먹고 마시면서 점창파와 계속해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홍아와 청아는 그렇듯 요란스럽게 보이는 사도백봉의 행동이 매우 마음 에 들지 않았는지 나직하게 코웃음을 쳤으나백리자성은 내심으로 만일 사도백봉이 점창사수 가운데 한 사람과 혼인을 하게 둢a면 그것은 축하 해야 할 일이며 점창파를 일으켜야 하는 자신의 부담을 줄일 수 있는 길 이라고 여겨서 그저 담담한 표정이었다. 이미 얘기가 되있는지 음식을 주문하지도 않았는데 점원들이 술과 고기 그리고 과자나 음식 따위를 날라오기 시작했는데홍아와 청아는 자신들의 일행 중에는 술을 마시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술은 한쪽으로 치워놓고 나서 젓가락을 부지런히 움직이며 백리자성의 식사시중을 들기 시작했다. 원래 백리자성이 소장원에 있었을 때에는 혼자서 식사를 하고 그녀들은 따로 식사를 하는 것이었으나이제 강호상에 나서게 되자 그녀들은 더욱 백리자성을 적극적으로 보호한다는 생각으로 그렇게 알뜰한 정성을 보이 고 있는 것이었다. 백리자성은 기실 식사시중은 처음 받아오는 것이었지만 그밖의 시중은 어려서부터 매우 익숙하게 받아왔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녀들이 옮겨 주는 음식들을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이때 갑자기 주루의 건너편 구석진 자리에서 한차례의 싸늘한 코 웃음이 들려왔다. "빌어먹을! 이거야 말로 어디 불공평해서 세상을 살아갈 수가 있겠나? 아 우리같은 건강한 사내들은 아직 변변한 계집 하나 구하지 못했는데 어떤 병신같은 작자는 그야말로 계집을 둘씩이나 끼고 보란 듯이 식사시 중을 받고 있다니...... 흐흐 이거야 말로 눈꼴 시려워서 도저히 못봐줄 일 이로군!" 홍아와 청아는 기실 자신들의 신공이 성취 이후에 백리자성의 건강이 더욱 악회되어 있는 듯 하고 언제 그와 헤어져야 할지 모른다는 강박관 념이 들어서 백리자성의 일에 관해서는 그야말로 신경을 예민하게 곤두 세우고 있는 상태였는데느닷없이 자신들을 모욕하고 있는 듯한 그런 거 칠은 말투를 듣게 되자 금새 표정이 냉랭해져서 그쪽으로 시선을 보내게 되었다. 기실오늘 새벽에 백리자성이 강호에서는 신중하게 행동을 한다고 말을 했었지만 원래가 무공이 아직 절정의 경지에도 이르지 못했던 시절에도 점창파의 사람들좌 두려워하지 않았던 그녀들이었는데 이제 최절정의신 공을 성취하여 심신이 모두 깃털처럼 가벼워지고 진력이 끊임없이 샘솟 는 상태에서 그녀들이 누구를 두려워할 리가 없었다. 과연 아니나 다를까이 주루의 안에는 임 제법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서 식사를 하거나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건너편의 그 구석진 탁자 부근에는 대여섯명의 흉측하게 생긴 장한들이 상의를 길게 찢어서 숭숭하게 돋아 난 가슴의 털을 드러내놓고 고기를 안주삼아 술을 마시며 이쪽을 향해 음탕하고 야릇한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홍아와 청아가 일시 화가 나서 미처 몸을 일으키기 전에 문득 그들의 탁자와 가까운 곳에서 한 사람이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입을 여는 것이 었다. "당신들의 말은 틀렸서. 만일 당신들이 피가 거꾸로 흐르는 듯 하고 전 신이 마치 개미가 무수하게 기어가는 듯이 가렵고 고통스러운 상태라고 한다면 역시 태연하게 앉아서 웃으며 식사를 할 수가 있겠소? 만일 그렇 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비단 두명의여자들의 시중을 받을 수가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열 배인 스무 명의 여자들의 시중을 받는 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오." 홍아와 청아는 비단 그 사람들이 자신들이 여자라는 사실을 훤하게 알 고 있을 뿐만 아니라 놀랍게도 백리자성의 증세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 는 것 같아서 몸을 일으키다 말고 의아한 시선으로 그 사람의 모습을 바 라보았다. 그러나이 순간 그 사람은 그녀들에게 등을 돌리고 있는 상태여서 그저 그의 체구가 매우 깡말라 보이고 키가 큰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을 뿐이었다. 느닷없이 전혀 상관도 없어 보이는 사람이 나타나서 간섭을 하자 장한 들은 일시 불끈 화를 내며 몸을 일으키려다가 문득 그 중 한사람이 냉랭 한 어조로 말했다. "너는 대체 그게 무슨 말이냐? 병신같은 자식이 어떻게 두명도 모자라서 스무명이나 되는 계집의 욕구를 만조시며 줄 수가 있다는 말이 냐? 쓸데없는 개소리를 하지 말고 어서 옆으로 비켜서 얌전히 있는 것이 신상에 이로울 것이다!" 홍아와 청아는 그와 같은 심한 말을 듣고 안색이 붉어져서 지금 일어서 서 그자들을 바라보고 있는 그 사람도 필시 화가 났을 것이라고 생각했 다. 그러나기실 그녀들의 생각은 실로 오산이서 그 사람은 여전히 담담한 어조로 다시 그들을 향해 입을 여는 것이었다. "내가 말한 것은 그에게 참다운 영웅의 기질이 있다는 것이지 무슨 계 집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일을 말한 것은 아니오. 그와 같은 일은 당신들 과 같은 시정잡배의 무리들은 평생 가도 알 수가 없을 것이오." 홍아와 청아는 그 사람이 아주 태연하게 장한들을 시정잡배의 무리라고 말하는 소리를 듣고 내심 속이 다 시원해졌다. 과연장한들은 그 사람의 말을 듣자 일시에 크게 노한 듯이 들고 있던 술잔을 팽개쳐 깨뜨리고는 제각기병장기를 손에 들며 분분히 몸을 일으 켜 그 사라의 앞으로 다가드는 것이었다. "뭐라고? 이 개자식이 말을 함부로 하다니 죽고 싶어 환장이라도 했단 말이냐!" "빌어먹을 허우대가 멀쩡하게 생겨서어느 정도 봐주려고 했더니 이거야 말로 실로...... 실로 우리를 개똥으로 취급하는 군 그래?" - 2권에 계속 제18장 가공할 암기 장한들이 귀도와 유성추 등을 휘두르며 흉흉하게 덮쳐드는 것을 보고 홍아와 청아는 내심 은근히 그 서생같은 사람을 도와 주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아나 다를가 "시팔놈!" 장한들 가운데 하나가 돌연 쌍스러운 욕설을 퍼부으며 날이 시퍼렇게 갈려진 귀두도를 종횡으로 어지러이 휘두르며 요란한 파공음과 함께 그 사람의 면전으로 덮쳐드는 것이 아닌가! 장한은 대번에 그 사람의 눈을 위협하며 기실은 가슴팍을 노리는 것이 그야말로 그 사람을 단칼에 저승으로 보낼 심산이 모양이었다. 홍아가 먼저 그 장한의 눈에 살기가 떠올라 있는 것을 보고 안되겠다고 생각되어 급히 가지고 있던 한쌍의 젓가락 중에서 하나를 장한의 안면으 로 날렸다. 비록 느닷없이 살기를 품고 사람을 해치려고 하는 장한에 대해서 화가 치밀었지만 홍아는 기실아직 사람을 죽여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저 가 볍게 진력을 운용하여 날렸고 게다가 그것도 장한의 급소를 벗어나도록 했다. 그 사람은 이때 장한이 흉악스럽게 병기를 휘두르며 달려들고 있는데도 마치 전혀 무공을 모르는 사람처럼 멍하니 서있다가 장한의 귀두도에 두 눈을 맞을 뻔 했는데느닷없이 장한은 공격을 하다말고 처참한 비명을 지 르며 그 자리에 꼬꾸라지듯이 쓰러지고 말았다. 홍아가 던진 나무젓가락 하나가 어느새 소리없이 그 장한의 한쪽 뺨에 깊숙히 박혀서 극심한 통증을 유발하게 하고 붉은 피를 철철 흐리게 했 던 것이었다. 그 사람은 장한이 자신의 병기마저 떨어뜨리고 안면에 박혀있는 젓가락 을 감히 뽑아내지도 못하고 주저앉아서 연신 비명을 지르고 있는 것을 보고 잠시 어리둥절한 모습을 보이더니 즉시 홍아가 있는 곳을 향해 몸 을 돌리더니 정중하게 포권을 하는 것이었다. "낭자께서 저를 도와 주셨군요. 고맙습니다!" 홍아는 절로 그 사람과 얼굴을 마주치게 되었는데바라보니 그 사람은 신체가 아주 깡마르고 늘씬학 생겼을 뿐 아니라 얼굴 또한 계란형으로 기다랗게 생겨서비단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줄 뿐만 아니라 아주 준수하기 이를데 없는 귀공자를 연상케 하는 사람이었다. 다만 얼굴의 윤곽이나 신체의 선이 부드럽고 섬세한 느낌을 주어서 왠 지 홍아의 마음에는 남자답지 않다고 느껴졌는데기이하게도 그 사람의 눈을 바라보는 순간 홍아는 자신의 눈이 마치 작은 바늘에 찔린 것처럼 따끔한 것을 느꼈고 다소 의아해졌다. 이미 그녀의 무공이 최절정의 경지에 도달한 이상은 아무런 이유도 엇 이 그와 같은 느낌이 일어날 리는 없는 것이고그렇다고 해서 다시 그 귀 공자의 눈을 살펴보니 그저 보통사람과 같이 평범함 잔잔한 눈빛이었기 때문에 자신이 혹시 착각을 일으킨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기실그 귀공자는 엉뚱하게도 전혀 무공을 모르는 백면서생이나 다름이 없는것 같았다. 비록 최초의 장한의 공격이 무산되기는 했지만 장한들은 아직 너댓명이 나 남아 있었고 정말로 지금 다시 한명의 장한이 그 귀공자가 몸을 돌리 고 있는 것을 보고 기회를 노려 유성추를 휘둘려 오고 있었는데도 전혀 이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것 같았다. 홍아는 순간 뭔가 깊은 생각을 굴리고 있었지만 청아가 이것을 보고 역 시 급한 마음에 젓가락 하나를 날려서 그 장한의 어깻죽지를 맞추었다. 그러자 "으악!" 소리없이 파고든 젓가락에 의해서 장한은 일순 돼지 멱 따는 듯한 비명 소리를 내지르더니 그만 귀공자를 향해 취둘러 가던 유성추가 팔을 움추 리는 바람에 방향이 틀려지게 되어 도리어 그 장한의 허벅지를 후려치는 것이 아닌가! "헉!......" 워낙에 강하게 유성추를 휘둘렀기 때문에 장한이 도리어 자시의 그 유 성추에 허벅지를 맞았을 때에는 일순 우두둑 하는 뼈가 골절되는 소리와 함께 너무나도 극심한 통증을 참을 수가 없어서 장한은 그만 짧은 비명 소리를 내뱉고 그대로 혼절하여 뒤로 벌렁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원래 홍아와 청아는 비록 신공을 성취하여 최절정의 내공을 가지고 있 다고는 하나 아직 실전경허이나 무예를 운용하는 수법에 능숙해지지 않 아서 비록 아주 가볍게 손을 쓴다고 했던것이 하나는 장한의 한쪽뺨을 거의 두치나 꿰뚫게 도어서 골수를 위협하게 만들었고다른 하나는 그것 을 염두에 두고 어깻죽지를 향해 던진 것이 그만 뼈와 살가죽을 그대로 관통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기실이 장한들은 성품들이 하나 같이 악독하고 모질어서 쉽게 굴복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는데 만일 홍아와 청아의 공격이 실로 해서 그처럼 심하 게 고통을 주지 않았었다면 그들이 어지 도중에 병기를 떨어뜨리고 자신 이 휘두른 병기에 의해 부상을 당하겠는가 느닷없이 장내의 상황이 험악하고 기이하게 돌아가자 일순 이제 서너명 이 남은 장한들이 일제히 병기를 휘두르며 자신들의 앞을 보호하더니 살 벌하게 백리자성이 있는 탁자 쪽으로 다가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비록 홍아와 청아의 수법이 워낙에 깨끗하고 빨라서 보지는 못 했지만 젓가락이 날아온 방향등으로 미루어 보아 그들 세사람 가운데 누 군가가 그것을 던졌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었다. 홍아와 청아는 자신들이 절기를 드러내어 장한들을 패퇴시켰음에도 불 구하고 그들이 조금도 두려워 하지 않고 한꺼번에 달려들기 시작하는 것 을 보고 다소 눈살을 찌푸렸다. 비록 그녀들의 무공이 매우 대단하여 이러한 강호 하류의 잡배들은 상 대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지만아직 그와 같은 흉악한 싸움을 해본적 이 없었기 때문에 다소 귀찮은 느낌이 들었던 것이었다. 헌데 바로 그때였다. 일순 휙휙휙하는 파공음과 함께 세사람이 그자들의 앞을 막아서더니 각 기 장력과 권풍 그리고 발길질을 사용하여 병기를 든 장한들을 일제히 뒬로 물리치는 것이 아닌가 그 사람들은 바로 점창사수 가운데의 황종보와 이모화그리고 전백승이 었다. 원래 그들 세 사람은 모두 백리자성에게 내상을 치료받은 은혜를 입고 있는데다가 느닷없이 장한드이 백리자성이 있는 곳으로 달려들기 시작하 는 것을 보고 무의식중에 달려나와 각기 장한들을 물리치게 되었던 것이 었다. 기실 이들 점창사수는 모두 일류의 무공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 문에 그와 같은 강호의 하류 잡배들을 상대한다는 것은 간단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장한들은 갑자기 나타난 황종보등에 으해서 하나같이 뒤로 물러서거나 거칠게 나가 떨어지기도 했는데느닷없이 그와같은 고수들이 등장한 것을 보고 의아해져서 몸을 벌떡 일으키며 그 가운데 한사람이 소리쳐서 외쳤 다. "당신들은 누구요? 우리는 당신들에게 해를 입히지 않았으니 우리 무산 방(巫山幇)과 원수지간이 되고 싶지 않다면 어서 물러나시오!" 황종보등이 나타나자 처음에는 장한들이 크게 놀랐지만 이제 그 장한들 가운데에서 한사람이 소리치자도리어 어리둥절해진 것은 점창사수였다. "뭐라고 무산방!...... 강호상에 그러한 방파도 있었던가?" "이게 웬 뚱딴지 같은 소리인지 알 수가 없군!" 이모호와 황종보가 각기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하자아까의 탁자에서 아 직 몸을 일으키지 않고 있었던 여문량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무산방은 바로 무산삼협 일대를 근거지로 삼아서 날뛰는 녹림도적들의 집단이라고 하던데 이름만 그러싸할 뿐이고 별로 대단한 방파라고는 할 수가 없지." 이모화가 다시 그말을 받아서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그 무산방의 도적들이 갑자기 간덩이가 부어서 이곳 천남지 방에까지 내려와서 행세를 하고 있다는 말인가?" 황종보가 그 말한 장한을 향해 입을 열었다. "우리들은 바로 점창파의 사람들인 것이다. 만일 너희놈들에게 눈이 있 다면 똑바로 보고 맞아죽기 싫다면 어서 무산으로 꺼지도록 해라!" 기실황종보가 그와 같은 하류의 잡배들에게 점창파의 이름을 말한 것은 장한들이 스스로 알아서 물러나도록 하여 귀찮은 싸움을 벗어나자고 하 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었다. 무산방이 제아무리 녹림에서 알아주는 곳이라고 해도 이 점창파의 강호 의 명문대파로서 감히 견줄수가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점창사수는 황종보가 그와 같이 말하자 내심 마음이 후덕하여 장한들을 그대로 놓아 보내려는 것임을 알았고 이내 장한들이 안색이 변하여 달아 나 버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상황은 점창사수가 생각하고 있던 것과는 매우 다르게 이어지고 있었다. 장한들은 황종보의 말에 다소 흠칫하는듯 하더니 아까 입을 열었던 그 장한이 다시 냉랭한 표정으로 이렇게 입을 여는 것이 아닌가! "당신들이 설령 점창파의 사람들이라고 해도 우리들은 결코 두려워하지 않소. 만일 당신들 점창파의 사람들이 우리 무산방과 원한을 맺고 싶다면 우리는 그것을 말리지 않겠소!" 점창사수는 장한의 그 말이 매우 뜻밖이었기 때문에 저마다 일순 멍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문득이모화가 웃으며 그 장한을 향해 백우선을 흔들 며 덮쳐갔다. "{이들이 감히 우리 점창파에 무슨일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서 이러는 걸까?" 비록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모화의발길은 이미 기이하게 움직이고 있었고그에 따라서 그의 손에 들려져 있는 백우선이 허공에 펼쳐져서 마치 백색의 꽃무늬가 일시에 흩어지는 것과도 같았다. 그것은 바로 이모화가 산화장을 신법에 운용한 광경이었다. 입을 연 장한은 그 태도가 가장 침착해 보이는 것이 장한들 가운데에서 도 우두머리격인 모양이었다. 이모화의 백우선이 마치 꽃잎이 흩어지듯이 환영을 일으키며 자신을 향 해 덮쳐오자 일순 그는 병기로 삼고 있는 두개의 쇠막대를 들어서 이모 화의 공격을 막아내려는 듯 하다가 돌연 하나의 쇠막대로 다른 하나의 쇠막대의 끝부분을 땅하고 때리는 것이 아닌가! 이모화는 마악 백우선을 어지럽게 움직여서 장한의 가슴팍을 후려치려 다가 문득 장한의 그와같은 기이한 행동을 보고는 다소 어리둥절한 표정 을 지었다. 아니이보다 먼저 여문량은 무심코 장한의 병기를 보고 있다가 마악 그 가 두개의 쇠막대를 부딪치려고 하는 것을 보고 일순 무너가 놀라운 것 이 생각났는지 안색이 대변해서 번적 신형을 날리며 소리쳤는데 아니나 다를까마악 부딪힌 장한의 손에 들려있는 한 개의 쇠막대기 속에서 느닷 없이 한줄기 가느다란 물체가 튀어나오더니 곧장 이모화의 미간을 향해 날아가는 것이었다. "조심해라!" 설마하니 그와 같은 쇠막대기 속에서 가느다란 침이 쏘아져 나올줄은 모르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워낙에 그 침의 속도가 빨랐기 때문에 이모화 가 순간 여문량의 외츤 ㄴ소리를 듣고 경각하여 백우선을 들어 그것을 막았을 때에는 이미 그것이 백우선을 가볍게 꿰뚫고 여전히 그의 안면으 로 쇄도해 들고 있는 중이었다. 비록 백수선이 평범한 것이라고느 ㄴ하나 내공이 깃들어 있는 그것을 가볍게 꿰뚫었으니 그 파괴력 또한 엄청난 것이라 이모화가 자연 안색이 창백하게 변하고 있는데 갑자기 옆에서 하나의 철필이 날아들어 쩡하는 소리와 함께 그 암기를 퉁겨냈다. 바로 여문량이 뒤늦게 날아들어 자신의 철필로 암기를 퉁겨버린 것이었 다. 이어쨍그렁하느 소리와 함께 바닥에 떨어지는 그 물체를 보니 마치 바 늘과도 같이 생긴 기다란 침이었는데 침이 끝부분은 검푸른 광채가 빛나 고 있어서 틀림없이 극독이 칠해진 것임을 알 수 있게 했다. 비단 놀라서 달려든 여문량 뿐만 아니라 특히 이모화는 자신이 태만하 게 생각하고 있다가 자칫 잘못하여 그와 같은 암기에 목숨을 잃을 뻔 했 다는 사실을 깨닫고 일시 크게 어이가 없는 모양이었다. "돌아가자!" 암기를 발사한 장한의 외침과 함께 장한들이 각기 부상당한 장한들을 들쳐업고 빠르게 밖으로 달아나는 광경을 보았으니 점창사수는 일시 너 무나도 충격적이고 어이없는 일을 겪어서 망연한 기분에 사로잡혀 있었 기 때문에 미처 그들을 제지하지 못했다. 아니 비록 암기가 놀랍기는 하지만 굳이 그 장한들으 ㄹ잡아서 손을 쓸 필요 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모화가 잠시 나무나도 상대를 쉽게 보고 방심해서 그랬던 것이지 만 일 그가 보다 신중했다면 조금전과 같은 실수는 발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러나 아물 싨였다고는 하나 하마터면 이모화의 목숨을 앗아갈 뻔했던 아찔한 충격을 준 이 암기의 사건은 결코 작은것이 아니었다. 전백승이 단검을 뽑아들고 그것으로 그 바늘과 같은 침을 건드리며 고 개를 갸웃거리더니 말했다. "요 위에 있는 천성산의 청성파나 사천당문 역시 암기를 잘 쓴다고 했 지. 혹시 무산방의 무리를 사칭하는 청성파나 당문의 사람들이 아니었을 까?" 여문량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내저었다. "청성파의 암기가 유명하다고는 하나 그들의 무기인 뇌공굉(雷公轟)이라 는 것은 아까 그 장한이 가지고 있었던 것과는 달리 망치와 정 같은 것 이야. 그리고 그들은 결코 암기에 독을 사용하지 않지. 게다가 사천당문 의 사람들이 비록 독을 묻힌 암기를 쓰지만 그들의 암기 역시 그와 같은 없네." 전백승은 고개를 돌리고 여문량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렇다면 대체 아까 그 녀석의 암기는 어디서 나타난 것이지?" 전백승은 자신이 비도술을 사용하기 때문에 그러한 암기수법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보다 관심이 더욱 많다고 할 수가 있었다. "나느 ㄴ바로 산동지방에 있는 봉래파(蓬來派)라는 곳에 바로 그와 같은 음험하기 짝이 없는 암기수법이 전해내려오고 있다는 애기를 들은 것이 있네. 나도 처음에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아서 나중에야 알고 뛰어들게 되 었던 것이네." 이모화는 암기에 의해서 뚫어진 자신의 백우선에 미세한 구멍 주위로 거무스름한 독기가 묻어있는 것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나느 수만 리나 되는 산동지방에서 들어온 사람에 의해 목숨 을 잃을 뻔 했었다는 말인가?" 여문량이 고개를 가로 저었다. "비록 그 암기가 산동 봉래파의 것이라고는 하나 그 사람들 역시 그곳 의 사람들이라고는 말할 수가 없는 일이지. 내가 보기에 그들은 산동지방 의 사투리를 쓰지 않고 있었고 아무래도 장말로 무산방의 사람들이 틀림 없는 것 같았네." 전백승이 그 암기를 헝겊으로 여러번 감싸서 품 속에 집어 넣으며 고개 를 갸웃거렸다. "그렇다면 그 무산방의 사람들이 요사이 호랑이의 간담을 삶아 먹었나. 어째서 감히 우리를 대하고도 뻣뻣하게 고개를 쳐들고 있는 것이고 또한 그 암기수법은 대체 뭐지?" 여문량은 잠시 생각하다고 다소 무거운 어조로 대답했다. "아무래도 우리가 모른 사이에 강호에서는 새로운 자들이 많이 출현하 여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모양이네. 무산방이 갑자기 그렇게 대답해진 것 은 그 가운데 강한 인재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고. 단지 우리만이 퇴보하 는 실정이니 그들이 우리를 쉽게 생각할 만도 한 일이지." 여문량의 그 말은 심사숙고한 것이었으나 약육강식의 현실속에 실로 점 창파의 사람들로 하여금 깊은 비감이 들게 하는 것이었다. "자그렇게 너무 외곬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모두 그만 앉아서 술이나 마시도록 하세." 황종보의 말에 따라서 점창사수는 다시 사도백봉과 함께 자리를 같이 하기는 했지만 쉽게 마시는 술에 취기가 오르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내심으로 근래의 점창파의 위세가 크게 격감도어 있어서 고심하고 있는 상태였는데만일 강호의 방파들은 그간 크게 발전하고 있 었다면 혹시 그들 점창파의 사람들이 설 자리가 없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백리자성과 홍아 청아들은 아까 장한들이 달려들 때에 다행히도 점창사 수가 제때에 막아주어 귀찮은 일을 보면할 수가 있었는데이제까지의 상 황을 바라보며 나름대로 생각을 굴리고 있다가 문득 청아가 앞쪽을 바라 보며 다소 놀라서 소리쳤다. "아! 그 서생이 보이지 않아오. 대체 언제 사라졌을까죠?" 홍아는 청아처럼 쉽게 한 곳에 몰두하는 성질이 아니어서 여태가지 그 귀공자와 같이 생긱 서생을 주시하고 있다가 그가 장한들이 달아나는 순 간에 슬그머니 자리에서 빠져나와 떠나버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바로 무산방의 사람들을 쫓아갔는데아무래도 그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대단한 내력이 있는 사람같아." 청아도 다소 그렇게 느꼈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이의를 제기하지 는 않았다. 백리자성과 홍아 청아는 술을 마시지 않았기 때문에 음식을 먹고 차를 한잔씩 마시고 나자 사도백봉 등보다 먼저 식사를 끝내게 되었다. 백리자성은 그래도 먼저 자리를 뜨기가 미안하여 잠시 기다리고 앉아 있다가 호법들이 일어나서 객점으로 돌아가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몸을 일으켜서 사도백봉에게 다가가 입을 열었다. "나는 몸이 좋지 않아서 처소로 가서 쉴까 하는 데 먼저 일어나게 되어 실례가 되는 것은 아니오?" 사도백봉은 아까부터 묵묵히 생각에 잠긴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 다가 그제서야 고개를 돌려 백리자성을 바라보더니 싸늘한 표정으로 입 을 열었다. '당신이 가서 쉬겠다고 하는데 실례가 될 리가 없는 것이고 또한 그런 일로 저에게 허락을 받아할 필요는 없는 것이지요. 다만 저는 지금 당신 에게 한 가지 물어 볼것이 있는데 과연 대답해줄지가 의문이로군요." 백리자성은 그녀가 여전히 비아냥 거리는 것을 보고 개이하지 않고 대 답했다. "만일 내가 알고 있는 것이라면 가르쳐 드리겠소." 사도백봉은 홍아와 청아의 얼굴을 다시 힐끗 주시한 다음에 백리자성에 게 고개를 돌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가 궁금한 것은 과히 그렇게 특별한 내용이 아니니 일부러 긴장하실 필요는 없어요. 제가 궁금한 것은 바로 조금전의 그 암기에 대해서 당신 의 생각은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이죠." 점창사수는 묵묵히 술을 마시고 있다가 문득 자신들이 이 박식한 사람 에 대해서 잊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일제히 시선을 그의 쪽으로 보내 기 시작했다. 백리자성은 이에 담담히 미소하며 입을 열었다. "내가 생각하는 것 역시 여러분의 생각과 그렇게 다르지는 않소. 확실히 그 암기는 산동 봉래파의 것이며 근래들어서 무산방에서 그와 같은 것을 사용하게 되어서 그 위세가 강해진 것 같소. 그러나...... 실로 그와 같은 음험한 병기는 강호인들이 누구나 사용하기를 꺼려하는 것으로 단지 무 산방이 그런 암기를 얻게 되어서 위세가 증가된 것만 보고서 당금의 강 호무림의 현실을 지레짐작할 필요는 없는 것이오." 사도백봉은 문득 홍아와 청아를 눈짓으로 가르키며 다시 말했다. 제가 보기에 그녀들이 펼치던 그 젓가락을 던지는 방법은 기실 아까 그 무산방의 사람들이 펼친 암기술보다 고명한 것이었어요. 그녀들의 무공이 그 처럼 높아지게 된 것 또한 그와 같은 강호의 흐름을 타고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인가요?" 기실사도백봉은 점창파의 장문인이나 다름이 없는 신분으로서 점창파의 기둥이라고 할 수가 있는 점창사수가 일시에 의기소침해 있는 것을 보다 못해 백리자성에게 말을 건네서 그들의 그런 기분을 풀어주려고 했던 것 이었는데막상 백리자성이 입을 열어서 마치 그녀의 마음속을 들여다 보 기라도 한듯이 그런 얘기를 해주자 그녀는 다시 홍아와 청아를 보고 기 묘한 질투심이 들었던 것이었다. 백리자성은 다소 난처한 느낌이 들었지만 역시 담담한 표정을 풀지 않 고 대답했다. "그녀들의 무공은 확실히 내가 가르친 것이지만 그것은 결코 강호의 흐 름과 연관되어 있는 것이 아니오. 내가 보기에는 기실 우리 점창파의 앞 날은 수석호법들과 같은 인재들이 있기 때문에 다른 방파들보다 훨씬 밝 아질 수가 있다고 생각하오. 강호상에서 간혹 다소 불운하거나 쉽게 흥하 는 방파도 있기도 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일시적인 현상들이고 장래에는 그 유구한 전통들을 이어받게 되는 것이 대부분이오." 사도백봉은 그 말을 듣자 비록 백리자성이 홍아와 청아의 무공에 대해 서 상세하게 설명하지는 않았지만그런데로 그녀 자신이 원하던 점창사수 의 의기소침해진 마음을 일으키는데 충분한 말을 해 주었고특히 백리자 성 점창파를 말할때 우리라는 표현을 쓰는 것을 보고 매우 기쁜 마음이 들어서홍아와 청아에 대한 질투감을 일시에 잃어버리고 말았다. "고마와요. 당신의 생각은 실로 그와 같군요. 장차 우리 점창파가 크게 번성하게 되면 당신의 역할 또한 작지 않았다고 할 수가 있겠지요." 백리자성은 그녀가 안면에 미소를 떠올리고 있느 것을 보고 그제서야 다시 그녀가 트집을 잡지 않도록 홍아와 청아를 데라고 서둘러 주루이ㅡ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 사동낭자는 정말로 분수를 모르는 것 같아요. 우리 공자님께서 선심 을 기울여서 일부러 돌보아 주려고 하시는데도 마치 자신이 우리의 윗사 람이나 되는 것처럼 말을 하고 있잖아요! 홍아와 청아가 객방에 들어서자마자 매우 기분이 상해서 그와같이 말을 하는것을 보고 백리자성은 담담히 웃으며 그녀들을 달랬다. "그녀는 지금 외로운 처지에 있고 또한 일파의 장래를 책임져야 하는 막중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자연히 그렇게 마음이 편하지 못해서 좋지 않은 말을 하게 되는 것이란다. 우리는 그래도 그녀의 가장 가까운 친척 이라고 할 수가 있는데 우리가 그녀를 이해하고 잘 도와줘야 하지 않겠 느냐?" 청아가 말했다. "하지만 만약 제가 그녀의 입장이었다면 오히려 공자님께 좋게 의논해 서 모든 일을 쉽게 풀어 가려고 했을 거예요. 만일 그녀가 그랬다면 아무 래도 지금의 상황보다는 더욱 좋게 되지 않았을까요?" 백리자성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의 그 외사촌 누이는 확실히 강한 탐욕을 가지고 있어서 너희들과 비교할 수가 없는 사람이다. 자연 청아가 그런 위치에 있었다면 더욱 나 은 결과를 이룩할 수가 있었겠지만 그녀는 청아처럼 그럴 수가 없는 사 람이니 우리가 이해해야 하지 않겠느냐?" 청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공자님께서 늘 이처럼 마음을 쓰시고 계시는데 우리가 감히 어떻게 다른 생각을 품을 수가 있겠어요? 다만 저희는 그녀가 공자님께 무례한 언동을 하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는 것이예요." 백리자성은 아주 맑고 선량한 청아의 눈빛을 바라본 뒤에 흐뭇하게 미 소하며 각기 그녀들로 하여금 돌아가서 쉬라고 했다. 홍아와 청아는 즉시 공손히 인사를 하며 함께 옆에 있는 객방으로 물러 갔다. 제19장 무서운 독심 홍아와 청아가 옆방으로 돌아간 연후에 백리자성은 옷을 벗고 간편한 차림으로 잠을 자기 이해 침상에 누웠으나 극도로 피로한 가운데에서도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백리자성은 요사이 그의 몸이 마치 다 낡은 수레처럼 수명이 다 되어 간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는데잠을 자기 위해 누우니 몸은 천근이나 만근 쯤 되는 것처럼 무거운데 정신은 오히려 더욱 더 맑아져서 전신에서 느 껴지는 고통을 하나하나 느끼게 해주었다. 만일 다른 사람들이 이러한 지경에 처하게 되면 결코 스스로 잠을 이룰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마음이 극히 쇠약해져서 참을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는 것인데백리자성은 오직 스스로의 마음의 깨우침에 의해서 고통을 잊어가고 깊은 자애심으로 모든 것을 감사가려고 생각하고 있었 다.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백리자성은 비록 그와 같은 상황에서도 능히 잠을 이룰 수가 있는 것이며 마지막의 순간까지 매우 성실한 자세로 삶 을 살아갈 수가 있게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정작 백리자성이 어렵게 잠이 들어서 마악 숨소리가 고르게 변 하기 시작하려는 순간에 느닷없이 방해꾼이 나타나서 그의 애써 청한 잠 을 깨워놓고 말았다. (......!) 백리자성은 비록 신체상의 제약 때문에 스스로 무공을 연성하지는 않았 지만 정신력이 고도로 발달하여 주위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기척이나 작 은 흔적 등만을 보더라도 능히 일시에 모든 것을 추리해 낼 수가 있는 상태가 되었으며 그것은 육감보다는 차라리 영감에 가까운 능력이었다. 지금도 그는 비록 깊은 잠에 빠져들고 있었으나 작은 기척을 느끼게 되 었고 그것이 바로 자신과 연관된 기척이라는 점을 즉시 알게 되어 정신 이 갑자기 맑아졌고 금방 잠에서 깨어나 눈을 뜨게 되었다. "무슨 일이냐?" 아까는 홍아와 청아가 정말로 옆방으로 자러 가는 것으로 생각했었지만 백리자성은 조금전의 미미한 기척을 듣는 순간 이미 홍아와 청아는 잠을 자러 갔던 것이 아니라 일단 그가 안심을 하도록 한 다음에 그의ㅡ 신변 을 지키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기실조금전의 기척은 누군가가 백리자성의 객방으로 잠입해 들어오려다 가 갑자기 홍아와 청아에게 제압되는 소리였다. 백리자성의 말이 흘러나가자 과연 홍아의 다소 죄송스러운 듯한 음성이 지붕 위에서 전음으로 대답을 해왔다. "실은...... 그녀가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기에 저희들이 빠르게 흔혈을 짚 어서 제압해 놓았어요." 백리자성은 순간 홍아가 말하는 그녀가 누구를 말하는 것인지 훤하게 알게 되었다. "그녀에게 무례하게 대하지 말고 어서 안으로 들여보내라." 말과 함께 겉옷을 걸치고 촛불을 켜놓은 채 기다리고 앉아 있자과연 홍 아와 청아가 빠르게 창문을 열고 한 사람을 안에 내려놓고 사라지는데그 녀는 바로 다름아닌 사도백봉 그녀였다. 아까 불과 얼마 전에 헤어졌었는데 대체 그녀는 무슨 속셈을 품고 이렇 게 야심한 밤에 백리자성을 찾아온 것이었을까? 잠시 기다리니사도백봉이 흔혈이 풀어지게 되어 스르르 눈을 뜨더니 자 신이 백리자성의 방안에 들어와 있는 것을 보고 놀라와 하며이어 창문이 열려 있는 것과 주위의 다른 사람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는 일순간에 모든 상황을 파악했는지 즉시 싸늘하게 웃으며 백리자성에게 입을 열었 다. "과연 당신의 그 시종들은 능력이 대단하군요. 하마터면 제압당하고도 대체 누가 나를 제압했던 것이었는지조차 모르고 있을 뻔 했어요." 사도백봉의 그 말은 실로 조금 전에 홍아와 청아가 백리자성이 잠에서 깰 것을 염려하여 얼마나 빠르고 신속한 방법으로 그녀를 제압한 것이었 나를 알게 해주는 것이었다. 백리자성은 다소 미안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녀들이 당신에게 일부러 그랬던 것은 아니었으니 이해해 주시오. 아 마도 나의 안위가 걱정되었던 모양이오." 사도백봉은 여전히 싸늘한 웃음을 거두지 않은 채 다시 말했다. "나는 비록 당신이 외사촌 누이지만 항상 당신에게 피해만을 입히는 사 람이니까 그와 같은 시종들도 나를 가로막는 것이 당연하죠." 백리자성은 담담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그녀들은 비록 겉으로는 나와 주종관계를 이루고 있지만 기실 나의 어 머니께서 친구 사이가 되라고 데려오신 사람들이었다오. 지금도 사실 그 녀들은 나의 시종들이라고 말할 수가 없는 것이라오." 사도백봉은 기이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결국은 당신들의 사이가 그렇고 그런 것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 로군요. 호호그녀들은 매우 아름다우니 저 같은 사람은 아예 상대할 수도 없겠죠?" 백리자성은 이 사도백봉이 계속해서 비아냥거리며 자신과 홍아와 청아 와의 관계에 대해서 캐묻는다면 다소 곤란해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 는데 다행히도 사도백봉은 지금 말은 그렇게 하고 있지만 관심은 다른 곳에 있는 것 같아서 백리자성은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외사촌 누이가 갑자기 나를 찾아 오다니 그동안 문중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이오?" 사도백봉은 그를 차분하고 기이한 눈초리로 바라보더니 오히려 되물었 다. "왜요? 만일 무슨 특별한 일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제가 당신을 찾아서 이렇게 올 수는 없는 것인가요? 우리는 원래 사촌지간이니 이렇게 한밤 중에 방안에서 만나서 은밀하게 사랑을 속삭일 수고 있지 않겠어요/" 중원에는 사촌간의 혼인이 허용되고 있는 것이 상례였다. 사도백봉은 입가에 아주 야릇하기 짝이 없는 미소를 떠올리더니 창문쪽 으로 걸어가서 창문을 닫아버리고 는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 비록 당신의 시종들이 지붕위에서 몰래 우리들의 대화를 엿듣고 있겠지만 내가 당신에게 사랑을 속삭이는 것마저 막을 수는 없는 일이 아니겠어요/" 그와 같이 말하는 사도백봉의 얼굴에는 다소간의 열기가 어려 있고 또 한 그 눈빛은 매우 유혹적으로 촛불 아래 빛나고 있었다. 백리자성은 담담히 웃으며 대꾸했다. "그러나 나는 당신이 그와 같은 일로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 고 있소." 사도백봉은 마치 금방이라도 백리자성을 유혹하여 그의 품속으로 뛰어 들 것 같은 태도를 취했지만 백리자성의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안색이 창백하게 변하면서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눈빛도 싸늘하게 돌아갔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백리자성을 정시하더 대답했다. "그래요. 나느 ㄴ사실 한가지 중요한 일을 의논하기 위해서 오늘밤에 찾 아온 것이예요. 원래 저는 당신이 매우 현명하다는 사람들의 말을 믿지 않았는데 과연 저의 생각은 틀렸고 그들의 생각은 옳아서 당신은 아주 현명한 사람이로군요/" 백리자성은 그녀를 향해 담담히 웃으며 손을 들어 포권하며 말했다. "과찬의 말씀이오." 사도백봉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의 말은 결코 과찬의 말이 아니예요. 제가 만일 당신을 어느 정도 믿 지 않았다면 오늘밤에 이렇게 당신을 찾아오지도 않았을 거예요. 나는 오 늘밤에 한가지 당신의 도움을 받을까 해요." 백리자성은 이미 그녀가 무슨 이유가 있어서 온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 었지만 막상 그녀가 그 이유를 말하려고 하자 정색을 하고 대답했다. "점창파와 관련된 일이라면 도움을 주도록 하겠소." 백리자성은 일전에 사도계강에게 함부로 부탁을 들어주겠다고 했다가 지금과 같은 곤욕을 치루고 있는 것을 상기하고 도움을 주겠다는 것을 점창파의 일에만 국한시킨 것이었다. 만일 그가 무조건 도움을 주겠다고 했다가 혹시 이 사도백봉이 어떤 기 괴한 일에 그를 연관시킨다면 좋지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사도백봉은 그러한 백리자성의 심리를 파악했는지 곧 냉소하며 말했다. "이번의 일은 점창파와 관련된 것이니 염려하지 마세요." 말과 동시에그녀의 품속에서 제법 두툼한 보따리를 꺼내들었는데이어 그녀가 그것을 객방의 한쪽에 있는 탁자위에 올려놓고 풀어젖히자 그 안 에서는 일곱 여덟 권의 댧은 양피지 책자가 드러나는 것이었다. 백리자성은 그 가운데 가장 위에 있는 책자의 표지에 있는 제목이 점창 진산천룡부상신공이라고 쒸여져 있는 것을 이내 사도백봉이 오늘밤에 그 를 찾아온 이유를 알아차리게 되었다. 그러니까 지금 사도백봉이 보따리속에서 꺼내놓은 그 여덟권의 책자들 은 바로 점창파의 진산절예들이 적혀 있는 무공비급의 진보들이었던 것 이었다. 원래 그것들은 제19대 장문인이었던 사도계강이 가지고 있었으나 이제 자연스럽게 장문대행인 사도백봉에게 돌아가게 되었던 것이었다. 과거 사도백봉은 장문인대행을 한번 더 맡았던 적이 있었으나 지금의 경우는 가히 그녀의 신분이 장문인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 녀가 그와 같은 점창파의 진산비급들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고 할 수 있었다. 사도백봉은 그 여덟권의 무공비급들을 탁자위에 늘어놓은 채 백리자성 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이 책자들은 그렇게 부피가 많이 나가는 것도 아니고 또한 당신의 눈 에는 하찮은 것들로 보일 것이지만 실로 우리 점창파의 수백년의 노고가 담겨져 있는 것이예요. 이 책자들에 대한 당신의 견해는 어떤 것이죠?" 보아하니 사도백봉은 이 백리자성을 어느 정도는 믿고 있는 모양이었다. 만일 그녀가 백리자성을 믿고 있지 않다면 감히 점창파의 가장 중요한 물건이라고 할 수 있는 비급들을 이렇게 쉽게 드러내보일 수는 없는 일 이었다. 백리자성은 그러한 사도백봉의 심리를 가만히 생각해 보면서 여덟권의 비급들을 바라본 다음에 담담히 일을 열어 대답했다. "당신의 생각은 아주 훌륭한 것이오. 실로 그러한 생각에 의해서 점창파 는 앞으로 크게 발전하게 될 것이오." 사도백봉은 백리자성의 말을 듣는 순간 다소 흠칫해하며 놀라 물었다. "그렇다면 당신은 그럼 내가 이 비급들에 적혀 있는 무공들을 제자들에 게 전수해 줄 생각이라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말인가요?" 백리자성은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미리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바로 당신이 그 비급들을 펼쳐보 이는 순간에 당신의 의도를 알게 되었던 것이오." 사도백봉은 백리자성의 그 말을 듣는 순간 다소 흠칫해하며 놀라 물었 다. "그렇다면 당신은 그럼 내가 이 비급들에 적혀 있는 무공들을 제자들에 게 전수해 줄 생각이라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말인가요?" 백리자성은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미리 알고 있었던 것이오. 당신이 만일 그 일에 관해서 나에게 의 논하고 싶지 않았다면 어째서 이 한밤중에 나를 찾아왔겠소?" 사도백봉은 싸늘하게 코웃음을 쳤다. "당신은 과연 현명하니 남이 비록 말을 하지 않더라도 미리 알고 행동 하는군요." 그러나자신의 마음을 들켰다는 수치감보다는 자신이 지금 해야할 일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했는지 그녀는 이내 표정을 고치고 다시 물었다. "당신은 정말로 내가 이 비급들을 제자들에게 공개하는 것이 좋으리라 고 생각하나요?" 백리자성은 이 감정의 변화가 많은 사도백봉에 대해서 담담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지금 점창파의 제자들은 비록 겉으로는 패기에 가득차 있는 것 같지만 속으로는 다소 위축감을 느끼고 있을 것이니 그와 같은 절기들을 전수해 준다면 그들은 필시 다시 용기를 되찾게 될 것이오. 결국에 있어서 강호 상의 힘이라고 하는 것은 무공이기 때문이오. 그러나...... 기실 무공이라는 것은 그 사람에게 맞지 않으면 전수할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다소간 의 문제가 있는 것이고또한 기실 그 무공들 자체에도 약간의 문제가 있 소." 만일 눈앞의 사람이 사도백위나 사도계강이었다면 백리자성은 결코 점 창파의 신공에 문제점이 있다고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도리어 그들의 반발심을 불러일으켜서 오해를 자아낼 소지가 있 기 때문이었다. 그러나지금 눈앞에 있는 사도백봉은 이미 그의 무학에 대한 식견이 남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백리자성은 솔직하게 말해준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사도백봉은 문득 얼굴 가득 환한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여 는 것이었다. "맞아요! 저도 사실은 그들에게 무공을 전수해주고 싶었지만 그 가운데 의 어떤 문제점이 있을 것 같아서 당신과 의논하기 위해 찾아온 것이예 요. 당신은...... 당신은 과연 나의 기대를 실망시키지는 않겠지요?" 백리자성은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그 비급들을 한번씩 읽어보고 나서 제자들이 익히기에 적당하도 록 고쳐주는 것과 원래의 무공 자체의 결함을 고쳐주는 것 등은 문제가 없는 것이오. 하지만 기실 그 비급들은 점창파의 진산절예인데 외부인인 내가 감히 보게 되어서 다른 문제가 생기지는 않겠소/" 사도백봉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당신은 이미 저의 막내숙부님께 점창파의 일을 적극적으로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은 사람이니 설령 그와 같은 비급들을 보고 배운다고 해도 상 관이 없을 거예요. 그러나...... 실로 우리 점창파에서 어떻게 감히 그와 같 은 복을 얻을 수가 있겠어요? 제가 솔직히 말하지만 우리 점창파의 무공 들을 모두 익힌다고 해도 당신의그 두명의 시종들의 무예를 따라갈 수는 없을 거예요. 그렇지 않나요?" 백리자성은 이미 기왕에 솔직하게 말하기로 하였으므로 웃으며 대답했 다. "만약 육맥신검경을 터득한다면 그녀들과 비슷한 경지에 이르게 될 것 이오." 그런데여태까지는 아주 태연한 신색으로 말하던 사도백봉의 안색이 백 리자성의 그 말을 듣고는 일순 매우 창백하게 변했다. "그그녀들의 무공이 벌써 그렇게나 높아진 것인가요?" 일시 손끝까지 가늘게 떠는 것으로 보아 의외에도 이 사도백봉의 마음 의 충격은 대단한 모양이었다. 따라서백리자성은 비록 그녀가 제법 활달하게나오기는 했지만 역시 여 자의 소견을 버리지 않고 있어서 자신이 그저 그녀의 겉모습만 보고 지 나치게 솔직한 말을 했던 것은 잘못이었다고 다소 후회하게 되었다. 그런기왕에 뱉어진 말이기 때문에 백리자성은 그 말을 다시 줏어담을 수가 없었다. "원래는 그렇게 높지 않았지만 근래 들엇 내가 그녀들의 단점들을 보완 하여 서로 수화상제하고 강과 유를 조화시켜 주었으므로 그들의 무공익 급격하게 늘어나게 되었던 것이오." 사도백봉은 기이한 시선으로 백리자성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싸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그것은 속성의 방법이 아닌가요? 당신은 나에게 그런 방법이 없 다고 해놓고선 그들에게는 잘도 그렇게 무공을 높여주는 군요. 아마도 당 신은 우리가 육맥신검경을 찾으러 중원에까지 가는 것이 우습게 보이겠 죠?" 사도백봉의 표정을 보아하니 그녀는 이미 홍아와 청아의 무공이 전에 비해서 크게 달라졌음을 눈치채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백리자성은 그녀가 이토록 심하게 감정적으로 나오는 것을 보고 상대하 기가 곤라하여 난처한 느낌을 받았다. "그녀들의 무공은 원래 순음과 순양의 기운이었기 때문에 서로 합심하 여 그와 같은 성취를 이룰 수가 있었던 것이었지 다른 속성의 방법을 썼 던 것은 아니었소. 그것은 역시 정통적인 무공을 배웠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으므로 그대가 오해하지 말기를 바라오." 사도백봉은 싸늘하게 웃으며 즉시 말을 받았다. "어째서 당신은 나에게 그처럼 저자세로 말을 하고 있는 거죠? 설령 당 신이 그녀들에게 속성의 방법을 써서 무공을 증강시켜 주고 또한 우리의 검경을 찾으로 가는 행위를 우습게 생각하고 있다고 한들 그게 무슨 잘 못이라고할 수가 있겠어요?" 백리자성은 씁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대는 나의 외사촌누이이기 때문에 나는 늘상 그대가 좀더 나아지고 훌륭해지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오. 게다가 이번의 검경을 찾으러 가는 일 은 점창파의 현재의 상황에 있어서 걸맞는 명분이고 또한 전대장문인의 유지이기 때문에 나는 결코 그것을 소홀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소." 사도백봉은 싸늘하게 냉소를 하더니 이어 문득 기이하게웃으며 그를 향 해 물었다. "좋아요! 그렇다면 제가 다시 묻겠어요. 당신은 항상 내가 잘되기를 바 란다고 했는데그렇다면 당장에라도 당신의 시종들과 무공이 비슷해질 수 있는 무공비급을 만들어 줄 수가 있나요?" 백리자성은 가볍게 탄식을 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실로 그와 같은 무공은 있을 수가 없소. 만일 내가 다른 방법으로 그대 의 무공은 높여준다고 하면 그것은 오히려 장차 그대를 해치게 되는 결 과를 낳게 될 것이오. 원래 홍아와 청아가 그와 같이 높은 무공을 터득하 게 된 것은 기실 그녀들의 기연이 맞아떨어져서 그렇게 된 것으로 실로 무공이라고하는 것은 역시 순서대로 정통적인 방법을 따라야 하는 것이 오." 백리자성은 먼저번에도 이와 비슷한 얘기를 하다가 그녀가 뛰쳐나간 것 을 상기하여 내 심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문득 사도백봉은 싸늘한 안색으 로 뭔가 깊이 생각하는 듯 하더니 오히려 가볍게 웃으며 입을 여는 것이 었다. "좋아요. 제가 보기에 당신은 가장 뛰어난 무학선생인 것 같으니 만일 내가 더이상 고집을 부리게 되면 오히려 나만 손해가 되는 셈이겠죠? 당 신으 나를 위해서 정말로 새로운 무공을 만들어 줄 수가 있나요?" 백리자성은 그녀가 갑자기 그와 같이 마음을 돌리게되자 절로 반가운 생각이 들어서 즉시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이오. 만일 내가 가르치는 무공을 배우게 된다면 앞으로 육맥신검 경을 찾지 못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에 못지 않은 능력을 얻게 될 것이 오. 외사촌누이가 그렇게 서두르지만 않는다면 나는 열심히 도와주겠소." 사도백봉은 기이하게 웃더니 물었다. "그렇다면 당신은 제게 어떤 무공을 전수하려는 거죠?" 백리자성은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우리 가문의 그 여덟가지 무공은 홍아와 청아마저도 아지 깨우치기 어 려운 것으로 그것들을 전수할 수는 없는 일이고...... 나는 비교적 천하의 거의 모든 무공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편이니만일 그대가 이미 배운 무 공에 대해서 말을 한다면 그것과 연관되는 무공을 가르치도록 하겠소." 사도백봉은 이미 홍아와 청아의 무공이 매우 높아진 것을 보았기 때문 에 백리자성의 말을 의심하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잠시 생각한 다음에 자신이 배운 무공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했 다. "저는 무산의 신녀문에 열두 살때에 보내져서 무공을 배우기 시작했으 니 대략 오륙 년이나 신녀문의 무공을 배워온 셈이예요. 그러나 그 신녀 문의 규율은 아주 엄격해서 외부인이나 속가의 제자들에게는 자신들의 진산절예를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 저는 겨우 현녀신공과 천라지방세미녀 권법현녀지현녀보현녀신법현녀검법 따위를 배우게 되었어요." 뱌은 그 신녀문이 속세의 사람들에 대해서 매우 폐쇄적인 입장을 취하 고 있으며 자신들의 진산절예를 오부로 유출시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백리자성은 웃으며 말했다. "그대가 그런 무공을 배웠을 것이라는 예측은 하고 있었소. 단지 내가 알고 싶은 것은 그대 대체 얼마만큼의 화후를 터득하고 있느냐는 것이 오." 사도백봉이 말한 그 현녀신공 등의 무공은 그야말로 신녀문의 입문의 무공들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들이었다. 사도백봉은 다소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저는 오성(五成) 정도 터득했지만 내력이 부족하여 겨우삼성 정도밖에 시전할 수가 없는 상태예요." 과거 점창파를 주름잡았던 사도가문의 사람들은 비록 이 하나뿐인 외동 딸을 매우 귀여워하기는 했지만그래도 역시 아들들을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사도백봉의 내공을 높여주는 일을 게을리하여 지금 그녀의 내공 수위는 겨우 십 년도 되지 않는 상태였다. 백리자성은 그러한 사도백봉의 상태를 잠시 생각해 보며 천천히 입을 열어 다시 말했다. "그렇다면 내가 빠른 시일내에 그대의 내공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강 구해 보기로 하겠소. 그리고 내공이라고 하는 것은 반드시 무학에 대한 깨우침이 병행되어야만 하는 것이니우선 내가 그대에게 하나의 내공심법 을 전수해 보도록 하겠소." 사도백봉은 그 말에 매우 기쁜 표정을 하고 물었다. "그 내공심법은 대체 어떤 것이죠?" 백리자성은 담담히 웃으며 대답했다. "과거 남해신니(南海神尼)라는 사람이 창안한 연화관음선공이라고 하는 것인데그야말로 불문의전통적인 내공심법일 뿐만 아니라 심오한 현기가 깃들어 있어서 대성한다면 가히 무공이 최절정의 경지에 도달할 수가 있 게 하는 절학이오." 사도백봉은 이 허약해 보이는 사람이 어떻게 그와 같으 무학을 일일이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하고 의아해 하면서도 생각하며 물었다. "그럼 그 무공은 당신 가문의 무공보다는 못한 것인가요?" 백리자성은 씁쓰레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우리 가문의 무학은 내가 자랑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일반의 사람들로 서는 쉽게 익힐 수가 없는 것들로서 무학의 궁극을 꿰뚫는 것들이기 때 문에 자연히 구결의 내용이 많은 것이고 함부로 욕심을 낼 수 있는 것이 아니오." 사도백봉은 눈길을 내리깔며 살포시 웃었다. "나는 다만 한번 물어보았을 뿐이고 욕심을 내려는 것은 아니니 너무 그렇게 말하지 말아요. 하지만 내가 이미 배운 무공은 도가의 무공인데 이제 다시 불문의 무공을 익히게 된다면 무학상의 혼선이 생기지 않겠어 요?" 백리자성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연화관음선공은 가장 전통적인 무학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에 설령 도가의 무공을 배웠다고 하더라도 거대한 흐름으로써 그것들을 포용할 수가 있는 것이오. 그것은 이른바 무학의 근본적인 원리는 하나로 통하다 고 하는 것인데실로 그와 같은 이치를 꿰뚫고 있으면 쉽게 다른 무학으 로서 전환이 가능한 것이오." 사도백봉은 비록 백리자성이 말하는 하나로 통하는 원리라는 이치에 대 해서는 잘 알 수가 없었지만이미 그의 말을 십중팔구는 믿는 상태가 되 어 있어서 웃으며 대꾸했다. "좋아요! 그렇다면 어서 그 내공심법과 함께 우리 점창파의 무공비급들 을 한차례 손을 봐주세요." 백리자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은 그 비급들을 한차례씩 읽어봐야 하고 또한 새로운 비급들을 만 들어야 하는 것이니 아무래도 지금 당장은 어려울 것 같소. 내일 이맘때 까지 기다려 줄 수가 있겠소?" 사도백봉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같은 전래되어 내려온 무학들을 손보고 또한 새로이 무공비급을 만드는데 있어서 겨우 하루가 걸린다는 그것은 아주 빠른 것이며 내가 만일 그것마저 참을 수가 없다고 한다면 당신은 저를 욕하시겠죠?" 백리자성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내가 그대를 욕할 리가 있겠소? 자우선 내가 빨리 저기에 있는 비급들 을 읽어볼 것이니 잠시 기다렸다가 가져가도록 하시오." 사도백봉은 백리자성이 이미 깊은 무학의 원리를 꿰뚫고 있기 때문에 그저 비급들을 한번만 보는 것으로써 충분하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당신이 저 비급들을 훔쳐가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으니 하룻동 안만 당신에게 맡겨두기로 하죠. 저는 비록 상관이 없지만 만일 남들이 우리가 이런 한밤중에 함께 있는 것을 보고 당신을 오해하기라도 한다면 큰 일이 나는 것이 아니겠어요?" 사도백봉은 그렇게 웃으며 말을 하더니 문득 창문을 열고 밖을 향해 훌 쩍 신법을 날려 사라져갔다. (......!) 백리자성은 잠시 멍하니 그녀가 사라져간 쪽을 바라보다가 가볍게 한숨 을 내쉰 다음에 탁자가 있는 쪽으로 돌아와서 의장 앉아서 사도백봉이 남겨놓고 돌아간 서책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백리자성은 원래 잠을 이루기 어려워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기왕에 일이 생긴 이상은 오늘밤에 잠을 자기는 틀렸다고 생각했다. 여덟권의 비급들은 과연 천룡무상신공과 산화장섬류무형수흑풍와선기뇌 전지산화보유운신법분광검법 따위의 무공들을 기록하여 놓은 것들이었는 데진본이었다. 진본이어서 그런지 양피지로 만들어진 책자들이이미 색갈 이 변하여 고색창연한 느낌을 주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백리자성은 그 책자들을 손에들고 마악 읽어내려 가려다가 문득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홍아청아! 그만 들어오너라!" 순간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창문 옆에 매달려 있는 휘장들이 가 볍게 흔들리면서 거의 소리없이홍아와 청아가 방안으로 들어섰다. 비록 오랫동안 지붕위에서 백리자성을 호위하고 있었지만 그녀들의 눈 빛은 매우 말게 빛나고 있어서 전혀 피로하지 않은 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했다. 백리자성은 그녀들의 내공이 이미 노화순청의 경지에 이르러 있어서 거 의 피로를 느끼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는 그녀들이 창문을 닫기를 기다려 서 입을 열었다. "내가 너희들에게 잠을 자라고 해도 역시 너희들 가운데 하나는 나를 지키려고 할 것이니 아예 오늘밤은 함께 잠을 자지 않고 무공을 연구해 보는 것이 어떠냐?" 제20장 키가 큰 또 한명의 의원 이 홍아와 청아는 내심 그렇지 않아도 백리자성이 모두 들어가서 쉬라 고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자신들이 좋아하는 무공연구 를 함께 하자고 하자 그야말로 너무나도 좋아서 기쁜 표정들을 그대로 드러냈다. "좋아요 !사실 우리들은 별로 잠이 오지 않았어요" 백리자성은 미미하게 웃으며 그 녀들로 하여금 자신의 탁자 건너편의 의자위에 각자 앉도록 한 다음에 다시 입을 열었다. "아까 주루에서 보니 너희들이 비록 내공력이 심후하기는 해도 아직 그 것들을 사용하는 무공수법들을 연구하지 않아서 유사시에는 오히려 당황 할 수가 있겠더구나. 원래 이 무공이라고 하는 것은 미세할수록 강하게 되는 것인데 이미 강 한 내공력을 갖춘 너희들은 당연히 미세한 공부로 들어가야 하지 않겠느 냐?" 홍아와 청아는 이미 내심으로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참이어서 즉 시 고개를 끄덕이며 합창하듯 대답했다. "실로 옳으신 말씀이세요 저희들은 명심해서 따르도록 하겠어요" 흥아와 청아의 그 말들은 그녀들이 평소에 백리자성에게 무공 따위를 배우는 과정에서 생겨난 습관적인 말투였다. 백리자성은 마치 아름다운 새들이 우짖는 듯한 그 녀들의 아름다운 목 소리를 들으며 미소와 함께 말을 계속했다. "나는 이미 너희들에게 무공수법들을 가르치기는 했었지만 그것들은 절 정으로 가는 수법이었지 지금과 같이 최절정의 경지에 도달하게 된 너희 들게는 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그것은 마치 힘이 장사가 되어 있는 어른 이 겨우 아이들이 사용하는 장난감 병기를 사용하는 것과 같이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이제부터 그야말로 진짜 어른들이 사용하는 병기라고 할 수 가 있는 최절정의 무공수법들을 가르칠 것이니 명심해서 잘 듣고 연성하 도록 해라." 홍아와 청아는 백리자성의 말을 들을수록 가슴이 약동하고 흥미감이 일 어서 미소하며 얼른 대답했다. "예 명심하여 봉행하겠어요!" 백리자성은 미소하며 말을 계속했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 가르치려는 최절정의 무공수법들은 어떤 것들인가 하면나는 비록 그러한 경지에 있는 무공들을 알고 있기는 하지만 따로 창안해둔 것이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소림사의 절학들을 가 르치도록 하겠다. 그 것들은 바로 무영금강장(無影金剛掌)대자대비천엽수 (大慈大悲千業手)백보신권(百步神拳)일지선(一指禪)연대부운(運臺浮雲)일 위도강(一賣渡江)달마삼검(達磨三劍) 등인데원래 이러한 소림사의 절학들 은 심오하여 우선 달마역근경을 연성한 연후에 배워야만 하는 것이지만 내가 그간의 문제점을 해결하여 가르칠 것이니 힘써서 배우도록 해라" 기실 백리자성이 구음신공과 구양신공 등을 스스 로 창안했다고 해도 다른 일반의 무공수법까지 일일이 새롭게 만들어낼 수는 없는 노릇이어 서 일찍이 홍아와 청아가 그에게 배운 무공수법들은 소림사의 무공들이 대부분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원래가 그 소림사의 무학들은 가장 정통적인 불문의 무학의 흐름을 이 어가고 있는 것들이었기 때문에 우선 달마역근경을 터득한 연후에 배우 게 된다면 가장 좋을 것이었지만 그 역근경의 내용은 워낙에 어려워서 홍아와 청아에게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기에 백리자성은 천지양극귀원공 을 터득하게 하고 뒤이어 약간의 문제점을 개선하여 다시 소림사의 무따 들을 가르치려는 것이었다. 원래 홍아와 청아는 대체 어떠한 무공수벌들응 전수해주려는 것인가 하 고 다소 궁금해 하고 있었는데 바로 소림사의 칠십이종 절예의 주종을 이루고 있는 그와 같은 절기들을 전수해 준다고 하자 일시에 마음들이 기쁨으 로 들떴다. 당금에 이르러 소림사의 무공이 다소 지나치게 어렵고 겅통적이어서 외 면을 당하고 소림사와 위치 또한 위세가 과거와 같지 않은 상태이지만 그래도 그 무학들은 가장 정통적인 것들이라는 얘기를 그녀들은 백리자 성에게 이미 들은 바가 있었다. "그 소림사의 절학들은 하나 같이 심오하여 보퉁의 사람들은 매우 오랫 동안 수련하여야 비로 소 터득하게 되는 것이지만 너희들은 이미 내공이 노화순청의 경지에 이르러 있기 때문에 다만 얼마간만 수련하게 되면 이 내 제법 무공을 시전할 수가 있게될 것이다......." 홍아와 청아가 맑은 눈빛을 반짝이며 바라보고 있는 상태에서 백리자성 은 이어 자신이 말한 그 일곱가지의 무퐁수법들에 대해서 설명하기 시작 했는데-비록 그와 같은 소림사의 절학들이 하나같이 지극히 난해하여 터 득하기가 어려운 것이라고 해도 워낙에 백리자성의 설명이 자상하게 이 어지고 홍아와 청아의 자질 또한 매우 대단한 것이어서-백리자성이 한차 례 모 든 구결들을 말하고 설명하고나자 그 녀들은 이미 많은 부분을 이 해했을 뿐만 아니라 절반 가량을 암기하게 되었다. 원래가 그 소림사의 절학들은 오랫동안 연마할 수록 더욱더 깊은 경지 에 들어서게 되고 새롭게 위력이 강해지는 것이었는데백리자성은 그녀들 을 위해 구결을 세번이나 일러주고 설명해 주었는데홍아와 청아는 비로 소 새벽녘에야 그 구결들을 모두 암기할 수가 있게 되었다. 그러니까백리자성은 자신이 사도백봉의 비급들을 살펴보는 동안에 홍아 와청아에게 무공을 연마하도록 할 생각이었지만 워낙에그녀들이 열심히 그의 설명을 듣고 있었으므로 그만 자신의 일은 하나도 하지 못하고 그 녀들에게 무공수법을 전수해 주는 것으로 하룻밤을 다시 지새게 되었던 것이었는데 이윽고백리자성이 홍아와 청아에게 모든 구결을 가르치고 어 렵게 동작까지 천천히 보여주고 나자 문득밖에서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 가 들려오는 것이었다. "장문인대행께서 주루로 나오셔서 식사하시라고 하십니다" 홍아와 청아는 워낙에 백리자성의 가르침에 흠뻑 빠져있다가 밖에서 들 려오는 발자국소리가 자신들의 객방으로 다가오는 것인 줄을 미처 생각 하지 못하고 있었다가 그와 같은 점창파 제자의 음성을 듣고는 다소 놀 라서 경각하게 되었다. (우리가 만일 유사시에도 적들이 다가오는 기척을 이처럼 모르게 된다 면 그 또한 커다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미 아침해가 밝아서 점창파 사람들이 식사하는 시간이 되었던 것이었 다. 백리자성은 홍아와 청아의 내심을 훤하게 들여다보고는 몸을 일으킴과 동시에 미소하며 입을 열었다. "유사시에 주의를 게을리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고 할 수가 있지만 기 실은 그 보다 훌륭한 것은 너희들이 그와같이 한 가지의 일에 집중할 수 가 있다고 하는 것이다. 실로 그와같은 천성은 아무나 얻기 어려운 것으로 만일 너희들에게 그 와 같은 깊은 집중력이 없었다고 한다면 내가 어떻게 하룻밤만에 그 일 곱 가지의 절학들을 모두 가르칠 수가 있었겠느냐? 만일 유사시에 걱정 이 된다면 이와 같은 일은 다소 자제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홍아와 청아는 백리자성이 자신들의 심리를 금방 파악하고 보다 나은 길을 일러주는 것을 보고 마음이 기뻐서 공손히 절을 했다. "공자님의 그 말씀을 명심하겠어요" 이 홍아와 청아의 눈빛은 다시 하룻밤을 지새었건만 피로한 기색이 전 혀 없고 오히려 더욱 맑고 밝은 빛을 생생하게 뿌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들은 이미 그 소림사의 절학들의 많은 부분을 이해하여 기초적인 수법을 펼칠 수가 있을 정도가 되어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반대로 백리자성은 육신이 그야말로 피곤하기 그지 없어서 무거 운 몸을 이끌고 그래도 얼굴의 미소를 잃지 않은 채 밖으로 나가기 시작 했다. "자알았으면 이제 그만 나가도록 하자. 그 들이 기다리지 않겠느냐!" ....... 보아하니 사도백봉이 점창파의 진산비급들을 맡겼던 것은 점창사수와 논의하지 않았던 것 같았는데사도백봉은 백리자성이 주루에 나타나서 식 사를 하자 얼굴이 마주쳐도 간밤의 일에 관해서는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그녀는 여전히 점창사수와 함께 식사를 하며 매우 즐거운 듯한 표정이 었다. 백리자성은 몸이 매우 피곤하여 마치 식사를 하는 것이 모래를 씹는 것 같은 상태였으나 묵묵히 식사를 하고 나서 이윽고 점창파의 사람들을 따 라서 다시 중원으로 향하는 여정에 오르게 되었다. 백리자성의 마차는 여전히 일행의 맨 뒤에 따라가게 되었는데 간밤을 한잠도 자지 않고 지새었기 때문에 백리자성은 자연히 마차를 타고 가면 서 한편으로는 잠을 자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도백봉이 부탁했던 일을 하 기도 했다. 그런데일행이 오전에 백초령의 험준한 산길을 따라가고 있을 때였다. 문득 앞에서 길을 가고 있던 점창파의 사람들이 소란스럽게 떠들고 있 는 것을 보고 마찬안에서 고개를 내밀어 살펴보니 기이하게도 산길의 좌 우에는 대여섯명의 장한들이 자리를 깔고 엎드려서 연신 일행을 향해 절 을 하고 있었는데그들의 이마나 의복에는 붓으로 마구 휘갈겨 쓴 문구들 이 가득 쓰여져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것들은 바로 백리자성 일행을 찬 양하는 얘기가 아닌가! 게다가 장한들이 바로 어제 저녁때에 그 주루에서 보았던 무산방의 사 람들이라는 점과 그들이 연신 입으로도 백리자성에게 백배사죄하고 있으 며 천하의 대영웅으로 생각한다는 따위의 말 등을 늘어놓는 것을 보고 다소 기이하게 생각했다. 백리자성은 비록 자신이 이처럼 터무니없게 찬양하는 소리를 듣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대체어찌된 영문인가 하고 의아해져서 살펴보고 있는 데문득 홍아의 전음이 그의 귓가에 들려왔다. "그들은 이미 전신의 경맥이 심하게 수난을 당하여 극도의 고통을 참 고 있는 것 같아요. 대체 저들에게 저와 같은 짓을 하도 록 시킨 사람은 누구인지 모르겠어요" 백리자성은 그 장한들의 얼굴이 온통 시퍼렇게 부어올라 있는 것을 보 고 홍아의 말 대로 누군가의 강압에 못이겨 그 와 같은 짓을 벌이고 있 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강호라는 곳은 실로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지기도 하는 것이어서 일단 쉽게 그 원인을 알 수 없게 되자 백리자성은 이내 그러한 광경에 대한 생각을 지워버렸다. 점창파의 사람들도 처음에는 다소 괴이하게 생각하고 우스꽝스럽게 생 각했지만 이내 계속해서 그 자들을 지나쳐서 나아가기 시작했다. 사도백봉은 이미 아침에 객점을 떠나기에 앞서서 점심때에 먹을 음식 등을 준비하라 고지시를 내렸었기 때문에 일행은 점심때에 부근의 현성 에 들르지 않고 그저 맑은 물이 흘러내리는 계곡의 근처에 멈춰서서 간 단히 식사만을 끝낸 연후에 계속해서 북동쪽으 로 나아갔다. 그들이 북쪽으로 조금씩 올라갈 때마다 기온이 조금씩 떨어질 것이지만 날씨가 점점 더 더워지는 계절이었기 때문에 더위는 역시 마찬가지여서 사람들은 말을 달리지는 못하고 그저 느릿하게 여행을 계속했다. 그리하여 일행은 저녁무렵이 되어서 다시 하나의 작은 현성에 도달하게 되었는데 그 현성의 이름을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인화(仁和)라고 했다. 사도백봉은 이미 사람과 말이 다함께 피로에 지쳤기 때문에 더이상 나 아갈 수가 없다고 판단하고 제자들을 먼저 보내서 현성의 안에 지낼만한 객점이 있는가를 알아보게 했는데 다행히도 이 곳 역시 커다란 객점이 하나 있어서 사람들은 편안하게 하룻밤을 쉬게된 것을 기뻐했다. 사도백봉은 우선 호법들 가운데에서 한 사람을 보내 그 객점을 통째로 하룻밤을 빌리도록 한 다음에 일행을 모두 이끌고 객점의 안으 로 들어 갔는데 예상외로 이번에도 역시 객점을 구하는 일은 그다지 애를 먹지 않았다. 그런데 마악 그들이 객점안으로 들어가는데 그 커다란 객점의 부근에는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고 기이하게도 길 건너편에 있는 주루의 주변에 그야말로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 있는 것을 보고 점창파의 제자들은 하 나 같이 이상하게 생각했다. 느닷없이 이 현성에 흥미로운 일이 발생하여 손님들이 객점의 주위에 는 몰리지 않고 저렇게 주루의 주위에 몰려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 하며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객점의 사환을 불러서 그 원인을 물어보 았다. 그러자그 사환은 이령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지금 저 주루의 이층에는 훌륭하신 의원나리가 한분 오셔서 무료로 사 람들을 치료하고 있는 중이오. 나도 실은 어렸을 적에 발목을 다쳐서 조 금씩 절룩거리고 다녔었는데 아 글쎄 그 의원나리께서 아무런 약도 쓰지 않고 그저 한번 어루만져 주시자 발목이 그대로 깨끗하게 나아버리는 것 이 아니겠소? 자당신들이 정히 의심이 간다면 한번 보시오" 말과 함께 사환은 직접 사람들의 앞에서 한바탕 걸어보이는 것이었다. 사환은 그 야말로 그 의원의 은혜에 너무나도 감복하여 그 와 같은 행 동을 함으로써 은혜에 대한 보답을 하려는 것이었는데 백리자성 등이 보 기에 그 사환의 발걸음은 말 그대로 오랫동안 잘못되었다가 방금전에 고 친 걸음걸이가 분명했다. 사람들이 일제히 걸음을 멈추고 자신의 걸음걸이를 주시하자 그 사환은 이어 부축을 받아서 안으로 들어서는 백리자성에게 다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아여기 환자가 또 한명 있었군. 당신은 어서 빨리 저 주루의 이충으로 가보 는 것이 좋을 것이오. 만일 그렇게만 한다면 나의 얘기가 맞다는 것 을 알게 될 것이 고 또한 이 마을에 와서 재수좋게 의선(醫仙)을 만나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오" 점창파의 사람들은 원래 이 백리자성이 유명한 의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다시 그가 사환에게 의원을 소개받는 것을 보고 만일 오랫동안 낫지 않았던 발목을 사환의 말대로 그저 한번 어루만져 주는 것으로 고칠 수가 있는 사람이라면 그야말로 놀라운 능력이 있다고 말할 수가 있을 것이고혹시 백리자성의 허약한 몸도 고칠 수 있을지 모 르는 일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일제히 다시 백리자성의 얼굴로 시선을 보 내게 되었다. 그러나이미 천하에 다시 없는 의원이 온다고 해도 결코 자신의 병 만은 고칠 수가 없다는 것을 알 고 있는 백리자성은 웃으며 홍아와 청아에게 말했다. "주루안에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으니 아마도 그 의원은 매우 바쁠 것이 틀림이 없다. 우리가 가서 공연히 귀찮게 해서야 되겠 느냐?" 사환은 이에 백리자성이 자신의 말을 믿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딱한 듯 이 끌끌 혀를 찼지만 홍아와 청아는 즉시 백리자성을 객점의 안으로 부 축했다. 이 인화현성에는 지금 일행이 빌린 그 커다란 객점 하나와 맞은편의 이 충 주루가 각기 하나씩 있을 뿐이고 다른 좋은 객접은 없었으며 아주 작 고 초라한 객점들은 그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백리자성은 우선 일행을 따라서 안으로 들어서게 된 것이었다. 사도백봉은 이 객점이 하나의 별채가 딸려 있는 것을 보고 다른 제자들 에게는 객방들을 사용하게 하고 자신은 작은 별채를 쓰도록 했는데백리 자성은 그녀가 모든 제자들의 쉴 곳을 정해주고 나서 다소 한가해질 때 를 기다려 객점의 마당에 있는 나무의자 위에 앉아 있다가이윽고 사도백 봉이 대강의 일을 마치고 밖으로 걸어나오자 청아에게 들려져 있는 점창 파의 비급들과 오늘낮에 그가 만들어 놓은 비급들이 들어 있는 보따리를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사도백봉은 비급들이 들어있는 보따리를 받게 되자 일시 표정이 환하게 밝아지며 백리자성을 향해 말했다. "정말 이렇게 신경을 써주시니 고맙군요. 그래 오늘밤에는 이곳에서 저 희들과 함께 지내지 않으시겠어요?" 백리자성은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리는 인원이 많지 않기 때문에 보다 작은 객점을 찾을 수가 있으니 구태여 이 가운데 끼어들어 복잡하게 하고 싶지는 않소이다" 사도백봉은 그저 담담하게 웃더니 더이상 권하지 않고 그 비급들이 들 어있는 보따리를 들고 별채가 있는 곳으 로 걸어가 버렸다. 백리자성은 이에 미소하며 믐을 일으키게 되었는데 그가 밖으로 걸음을 옮기자 문득 청아가 다소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이렇게 묻는 것이었다. "공자님 혹시 주루로 먼저 가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그 의원이 공 자님의 병환을 고칠 수가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청아가 만일 보통의 일이었다면 그와 같은 백리자성의 백리자성의 능력 을 의심하는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었겠지만 워낙에 그의 병을 고치는 것은 그녀들의 가장 커다란 소원이었기 때문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그 와 같은 말을 꺼낸 것이었다. 백리자성은 홍아 역시 다소 머뭇거리며 입을 열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 고 차마 그녀들의 성의를 뿌리칠 수가 없어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주루로 가서 우선 저녁이나 먹도록 하자꾸나. 만일 우리가 대놓고 그 의원에게 치료를 받으러 간다고 한다면 누가 나에게 치료를 받으려고 하겠느냐?" 홍아와 청아는 백리자성이 다소 해학적인 말을 하는 것을 보고 다소 마 음의 격정이 일어서 눈물을 글썽거렸으나 이내 표정을 고치고 웃으며 백 리자성을 주루가 있는 쪽으로 안내하기 시작했다. 그 주루에는 워낙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있었기 때문에 백리자성과 홍아 청아는 비록 간신히 안으로 들어서기는 했지만 비어있는 탁자를 잡 을 수가 없었다. 지금 주루의 아래층에는 하나하나의 탁자마다 사람들이 가득 들어차 있 을 뿐만 아니라 탁자가 아닌 곳에도 역시 많은 사람들이 가득 모여앉아 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홍아와 청아는 그래도 백리자성의 말대로 탁자를 차지하고 앉아서 음식 을 주문하려다가 그와 같은 광경을 보고 다소 머뭇거렸다. 그런데바로 그때 기이하게도 한 사람이 그 들의 앞에 다가오더니 공손 히 손을 모 으며 입을 열어 묻는 것이었다. "귀하께서 혹시 점창산에서 오신 백리선생이 아니십니까?" 백리자성은 그 사내의 얼굴이 전혀 낯선 것이고 또한 그 사람의 용모로 보아 이 지방 의 촌사람에 불과한 것 같아서 의아해져서 되물었다. "아니 내가 백리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틀림이 없지만 당신과 나는 안 면이 없는 것같은데 어떻게 나를 아시오?" 그러자 그 촌사람은 공손히 허리를 굽히더니 다음과 같이 대답하는 것 이었다. "나으리 소인과 같은 자가 어찌 감히 천하의 대영웅이신 백리선생을 알 겠습니까? 소인은 그저 다른 분의 지시를 받은 것이니 나으리께서는 어 서 소인의 뒤를 따라 이층으로 오르시지요" 백리자성은 갈수록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 촌사내가 손짓으로 주루의 이층을 가리키는 것을 보고 그쪽으로 시 선을 돌려보니 어느새 복잡하기 짝이 없던 실내에는 사람들이 양쪽으로 길을 터주어서 쉽게 이층으 로 올라갈 수가 있는 통로가 형성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 백리자성은 우연히 들어오게 된 이 주루의 내부에 자신을 기다리고 있 었던 것 같은 기이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보고 이를 매우 기이하게 생각했으나 이내 이층으로 올라가보면 알 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는 즉시 촌사내의 뒤를 따라서 이층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홍아와 청아 역시 양쪽에서 백리자성을 부축하며 만일 무슨 일이 생길 시에는 가차없이 손을 쓸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는 모양이었는데막상 이 층으로 올라서게 되자 일순 그들 세 사람의 표정이 기이하게 변했다. 그렇다. 바로 주루의 이층에는 그들이 알고 있었던 한 사람이 탁자 앞에 앉아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어제저녁 때 주루에서 그 대여섯명의 무산방의 장한들이 거칠은 욕설을 퍼붓고 있었을 때 느닷없이 몸을 일으켜서 그 장한들을 상대하던 그 귀 공자와 같이 생긴 서생이었다. 홍아와 청아는 그 서생의 두 눈에서 일순간 역시 어제저녁에 느꼈던 그 바늘로 찌르는 듯한 예리한 기운을 느끼고는 더욱 의아해 하며 백리자성 을 부축하며 천천히 다가갔다. 백리자성은 지금쯤 의술이 펼쳐지느라 아주 복잡해져 있을 것이라고 생 각했던 이곳이 생각외로 매우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사람 들도 거의 보이지 않고 오직 그 서생만이 중앙의 탁자앞에 단정하게 앉 아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고 의아한 생각이 들어서 다가서며 입을 열었다. "우리는 이미 서로간에 약간의 안면이 있는 셈이로군요. 그래 귀하께서 소생을 보자고 하셨습니까?" 서생은 그 말에 일순 그 커다란 키로 몸을 일으키더니 백리자성을 향해 정중하게 허리를 굽히며 입을 여는 것이었다. "이미 아시고 계시겠지만 저는 백리선생과 정식으로 인사를 나누기 위 해 그와 같은 일들을 꾸몄던 것이었습니다.저의 이름은 심용(沈能)이라고 합니다" 그렇다. 기실 백리자성도 어느 정도는 예측하고 있었던 백초령에서 무산방의 장 한들이 기이한 행동을 보였던 일이나 지금 이곳에서 다소의 기이한 광경 등은 모두가 이 심용이라고 하는 서생이 일부러 꾸며놓은 일이었던 것이 었다. 백리자성은 사실 이곳으로 오면서 심용이라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것 이라고 은근히 생각하고 있었던 참이라 즉시 웃으며 마주 인사를 나누었 다. "하하실로 이와 같은 인사는 너무나도 거창하여 저로 하여금 다소간의 부담을 느끼게 하는군요. 저의 이름은 백리자성입니다." 홍아와 청아는 늘상 백리자성의 몸이 허약하여 미처 그의 키가 큰 것을 모르고 있었는데 이제 그가 심용이라는 서생과 인사를 나누기 위해 몸을 바르게 펴는 것을 보고 오히려 백리자성의 키가 심용이라는 서생의 키보 다도 조금 큰 것을 알고 원래 백리자성의 키는 이렇게 큰 것이었구나 하 고 생각했다. 기실이 심용이라는 서생의 키는 오히려 백리자성의 키보다도 작은 것이 었으나 그의 체형이 유난히도 늘씬하여 깨우 키가 크다는 느낌을 심어주 었던 것이었는데 어쨌든 이 심용이라는 사람의 키가 육척을 넘어서는 큰 키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제 21 장 무산신녀문 백리자성이 탁자앞에 자리하자 그 서생이란 서생은 그의 맞은 편에 앉 으며 즉시 주루의 점원들을 불러서 음식을 시켰다. 백리자성은 홍아와 청아를 자신의 좌우로 다리던 사람들이 앉도록 한 다음에 문득 아래층에서 순서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일제히 물러가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심용을 향해 고개를 들 어 물어 보았다. "저 하나 때문에 저렇게 많은 환자들을 그냥 돌아가게 해서야 되겠습니 까?" 이에심용은 정색을 하써 고개를 가로 저었다. "제가 오늘 의술을 펼친것은 다만 백리선생과의 인연을 더욱 뜻깊게 하 려는 의미에서 그랬었던 것일 뿐이었지 무슨 가난한 백성들을 구제하려 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실로...... 천하에는 악인들은 많아도 정작 진실로 훌륭한 사람은 매우 드문 법이지요. 제가 오늘날 이까짓 의술로서 백리선 생과 같은 훌륭하신 분을 치료하지 못하고 있는데 구태여 그러한 쓸모없 는 사람들을 치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 다소 섬세하게 보이는 심용이라는 서생의 입에서 홀러나온 음성은 뜻밖에도 아주 의 기가 넘치는 분연한 것이었다. 백리자성은 담담히 웃으며 대꾸했다. "하하심형에서는 과찬이 심하시군요." 이 심용이라는 사람의 나이는 백리자성보다 많지 않은 것 같아 보였고 처음에는 그저 다만 나약해 보이는 서생으로만 알았었는데지난 번에는 한눈에 백리자성의 병세를 알아내어 홍아와 청아등을 놀라게 하더니 오 늘은 또다시 많은 사람들에게 의선으로 칭송을 받는것을 보니 정말로 뛰어난 의술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요. 강호상에는 그 야말로 기인이사들 이 구름처럼 널려 있다는 맡을 새삼 실감할 수 있게 하는 것 같았다. 홍아와 청아는 내심 그 심용이라는 서생의 분연한 말에 어느정도 동감 을 하면서도 실로 백리자성의 병만은 고칠 수가 없다고 말하자 마음이 매우 괴롭기 짝이 없었다. 비록 그녀들은 백리자성의 좌우에 앉아서 태연한척 하고 있지만 만일 일 곳이 심용등이 있지 않은 그녀들만의 자리였다면 아마 그녀들은 치밀 어 오르는 슬픔을 참지 못했을 것이었다. 그러나한편으로는 입술을 깨물며 울음을 억지로 삼키고 있으면서도 다 른 한편으로는 홍아와 청아는 문득 다른 생각을 굴려보는 것이었다. (아까 백초령에서의 일이 저사람의 짓이었다는 것과 또한 그가 어제 저 녁에 우리 보다 먼저 이곳으로 와서 의술을 펼치고 있었던 것 등으 로 미루어 보아 그 는 아마도 무공을 지닌 무림인인 모양이다. 그러나 우리 로서는 대체 그의 무예가 어느 정도인지 알아낼 수가 없고 또한 그 의 눈빛이 마치 쏘는 듯한 것은 설마 그의 무예가 우리 보다도 높다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 홍아와 청아가 은근히 그와 같은 생각을 굴리고 있는 사이에 점원들이 각기 음식을 날라왔고 이어 백리자성과 심용은 함께 식사를 하면서 이런 저런 학문에 관한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이 심용이라는 서생은 비단 의술에도 뛰어날 뿐만 아니라 학문에도 깊 은 경지를 이루고 있어서 옆에서 그런 얘기를 듣고 있는 홍아와 청아를 다소 놀라게 했다. 그녀들은 천하에 백리자성만큼 많은 서책을 읽은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늘 다시 그와 상대할 수 있는 심용이라는 서생을 보게 되자 다소 희안한 기분이었다. 두 사람은 차를 마시고 이어 약간의 술도 곁들이면서 자연스럽게 자신 들이 가지고 있는 깊은 학문의 논리에 대해서 이야기를 주고 받게 되었 는데문득 날이 저물어지자 심용이 화제를 돌리며 물었다. "혹시 선생의 일행은 지금 북동쪽을 향해 나아가고 계신것이 아닙니까? 그러시다면 저도 마침 그쪽으로 가던 길이었으니 앞으 로 함께 동행을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백리자성은 그 와의 동행을 거절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으므로 즉석에서 수락을 하고 몸을 일으켰다. "그렇게 하지요. 오늘은 분에 넘치게 대접을 받았으니 뭐라고 감사의 말 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심용도 마주 몸을 일으키며 손을 내저었다. "분에 넘치는 대접이라니 그 무슨 섭섭한 말씀을 하십니까? 내일 부터 는 제가 선생을 따라다니며 많은 것을 배울 것이니 귀찮다고 하시지나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백리자성은 미소하며 대꾸했다. "천만의 말씀을 저도 귀하와 같은 사람과 사귀는 것은 영광입니다." 심용과 인사를 하고 헤어져서 주루를 나와 객점을 찾기위해 걸음을 옮 기면서 홍아는 문득 참다못해 백리자성에게 질문을 던졌다. "공자님아까 그 심용이라는 사람은 정말로 대단한 사람이었나요? 대체 어떤 사람이지요?" 백리자성은 잠시 미소를 떠올리더니 웃으며 대답했다. "그는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운 사람이다." 홍아가 다시 물었다. "훌륭한 인재인가요?" 백리자성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한 인재라고 할 수가 있지만일 그런 사랍을 제외한다면 누가 감히 훌륭하다고 말할 수가 있겠느냐?" (......?) 백리자성이 다소 지나치게 심용을 칭찬하는 것 같아서 다소 의아해 하 다가 문득 이번에 는 청아가 물었다. "아까 저희들은 그를 보면서 왠지 눈을 바늘로 찌르는 듯한 따끔한 감 각을 느꼈었어요. 그것은 대체 어째서 그 랬었던 거죠?" 백리자성은 그 녀들의 얼굴을 차례로 돌아보더니 "그것은 바로 그의 눈에서 무형의 신기(神氣)가 저절로 발산되기 때문이 다." 홍아는 그 말에 놀라서 물었다. "그렇다면 그는...... 그는 무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는 말인가요?" 백리자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비단 무공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상상하기 어려운 경지에 이르러 있다는 의미이다." "초절정이라고요?" 홍아와 청아는 자신들이 이미 최절정의 경지에 이르러 있는 상태인데 실은 그 최절정의 경지를 초월하는 다른 경지가 있다는 말을 듣고 놀라 서 다시 물었다. "대체 그 초절정의 겅지라는 것은 어떤 것이죠?" 백리자성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윽고 그녀들의 호기심을 이길 수가 없 다고 생각했는지 웃으며 대답하기 시작했다. "사람의 내공져의 한계는 육갑자라고 하기도 한다. 그것은 인간의 몸은 육갑자 이상의 내공력을 감당할 수가 없다는 뜻이지. 그런데 만일 내력이 육갑자에 이르러 전신의 미세한 경락까지 모조리 타통시키는 전신주천 (全身周天)을 완성하고 여기에 다시 두(頭頂)을 여는 대주천(大周天)의 생사현관 (生死玄關)을 통과하개 되면 그 사람의 내력이야 말로 마음먹은 대로 움직이게 되는 신묘한 경지에 이르게 된다.비록 그 사람의 내력은 육갑자에 불과하다고 해도 실은 그 위력은 가히 십갑자에 이르게 되는데 이러한 경지에 오른 사람들을 초절정의 고수라고 말하기도 한다." (.......) 홍아와 청아는 자신들의 내력이 이제 삼갑자의 경지에 이르러 최절정의 수준이고 당세에도 거의 두려워할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 는데느닷없이 내력이 육갑자 이상이며 그 능력은 십갑자 이상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는 사람들의 얘기를 듣게 되자 일순간 너무나도 놀라고 어 이가 없어서 실로 백리자성이 농담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 심마저 들 정도였다. 이제 겨우 삼갑자의 내공을 성취한 홍아와 처아의 경우만 해도 이미 진 기가 노화순청의 경지에 이르러 그야말로 마음먹은 대로 움직일 수가 있 고 무형진기조차 발휘할 수가 있는 상태가 되었는데 대체 그 초절정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들의 능력이라고 하는것은 상상도 가지 않았다. 아까 백초령에서의 일을 생각해보고 또한 그 심용이 너무나도 빠르게 미리 이 현성에 도착하여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던 점 등을 생각해 보면 그의 능력이 놀라운 것이라는 점을 어느정도 상상할 수가 있었지만 지금 에 이르러 생각해보면 오히려 더욱 엄청나게 혼란스러워 지는 것이었다. 청아가 참다 못해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그 심용이라는 사람이 바로 그러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말 인가요?" 백리자성은 홍아와 청아가 그 사람의 능력을 쉽게 믿지 않고 있는 것을 보고 담담히 웃으며 다시 설명해 주었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무려 육갑자에 달하는 공력글 얻게 된다는 것도 거 의 불가능한 일이지만 게다가 그 생사현관을 타통하여 초절정의 고수가 된다고 하는 것은 실은 그 보다도 더욱 어려운 일인 것이다. 따라서 강호 상에는 그와같은 최절정의 고수들이 흔한 것은 결코 아니지-너희들은 기 실 결코 흔하지 않은 강호상의 기인 한 사람을 오늘 보았던 것이다" 홍아는 더욱 어리둥절해져서 말했다. "그는 겉으로 보기에는 나이가 저희들과 비숫한 것 같았는데 실은 기인 이었다는 말인가요?" 백리자성은 웃으며 대답했다. "그의 나이가 많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가 그러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도 사실이다" 청아가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무공의 끝은 바로 그런 최절정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인가 요?" 백리자성은 웃으며 대답했다. "무공의 끝이라는 말을 어찌 함부로 할 수가 있겠느냐? 사실은 하늘위 에 다시 하늘이 있는 법이다. 내가 책에서 읽은 바로는 만일 그 대주천의 생사현관을 타통한 사람이 두정이 열려있는 상태에서 식음을 전패하고 오랫동안 폐관에 들어가게 되면 공력이 점차로 증가하여 대체로 십갑자 의 경지에 이르러 단전부위에 원영이라는 것이 만들어지게 되고 그사람 의 음부는 마음장으로 변하게 된다. 그 사람은 이후에 원영을 밖으로 유 출시키면서 특수한 수련을 거치게 되는데 이윽고 다시 오랜 시간이 흘러 서 그 사람의 공력이 육십갑자에 도달하면 원영의 크기는 그 사람의 크 기와 꼭 같아지게 되는데 이때를 가리켜 무예의 극한 초인의 선정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 홍아와 청아는 백리자성의 말이 갈수록 엄청난 내용이었기 때문에 그저 잠자코 입을 다물지 못하고 듣고 있었다. 백리자성온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 원영이라는 것은 바로 진기가 완전하게 응축된 것이기 때문에 이후 에 그 초인의 몸은 금강불괴가 되는 것이고 그 육신 또한 아주 오랫동안 장수를 할 수 있게 된다. 그는 비록 체내에 육십갑자의 공력을 갖추고 있 지만 마음대로 천지간의 기운을 빌려 쓸 수가 있게 뢰며 하늘을 마음대 로 날아다니고 빛의 무예인 황검(光劍)이라는 것을 발출할 수가 있게 되 는 것이다. 그 이후에는 다시 우화등선(羽化登仙)의 단계가 있다고 하기도 하는데 그러한 일에 관해서는 나도 아직 잘 모르고 있다." 홍아와 청아는 처음에는 초절정의 무공에 대해서 몹시 놀랐었지만 이제 그 초인의 경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 다시 그 초절정의 경지라는 것은 우습게 여겨지는 것이라 내심 어리벙벙한 생각에 잠시 말문을 열지 못했 다. 실로 무학의 경지라고 하는 것은 한도 끝도 없는 것이로구나 하는 놀라 움과 불가사의 하다는 느낌으로 그녀들의 생각은 가득 채워지고 있었다. 청아가 문득 다시 입을 열었다. "혹시 당금의 천하에 그 초인들이 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백리자성은 가볍게 정색을 하고 대답했다. "내가 서책에서 읽은바에 의하면 당금의 천하에 모두 여덟명의 초인들 이 존재하고 있다. 그들은 각기 곤륜산(崑崙山)과 천산(天山) 대설산(大雪 山)과 황산(黃山) 그리고 대막(大漠)과 동영(東瀛) 남황(南荒)과 북해(北 海)에서 살고 있는데 평소에는 사람들의 눈에 나타나지 않고 불가사의한 능력을 발휘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홍아는 천하에 그토록 많은 초인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놀 라와 하다가 문득 한가지 일을 생각한 듯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렇다면...... 대설산에서 살고 있다는 그 초인은 바로...... 바로 성모궁 (聖母宮)의 주인인가요?" 이 홍아와 청아는 대설산 성모궁의 사람들에 의해서 부모를 잃고 사도 인화에게 구함을 받았었기 때문에 자연 그 성모궁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 다. 백리자성은 그녀들의 심사를 짐작한듯 다소 무거온 표정을 짓더니 고개 를 끄덕여 대답했다. "그렇다. 그 성모궁의 주인은 바로 그 여덟명의 초인들 가운데 한 사람 으로 설산동모라고 한다." 홍아와 청아는 자신들의 원수라고 할 수 있는 성모궁의 주인이 실로 그 와 같은 무시무시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말을 듣자 잠시 말 도 하지 못하고 멍한 표정을 지었다. "......." 백리자성은 자칫 그녀들이 상심할까 저어하여 정색을 하고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나 실로 너희들도 이미 알고 있겠지만 세상의 일이라고 하는 것은 모두가 무공에 의해서 좌우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것들을 떠나 서 바른 마음으로 살아가게 된다면 그렇게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는 초인들이 전혀 부럽지 않은 삶을 살게 될 수가 있는 것이다." 기실 그와 같은 얘기는 백리자성이 스스로 삶을 통해서 체득하고 있는 관념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홍아와 청아는 오늘따라 그런 얘기를 듣고 그다지 마음속으 로 수용하 려는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었다. 과거의 그녀들은 늘상 백리자성의 말에 순종하고 아름답고 요정과도 같 은 귀여운 소녀들이었다. 허나지금에 이르러 문득 과거의 원한에 대해서 연연하고 있는 그녀들에 게 혹시 무슨 변화가 찾아오지는 않을 것인가 백리자성은 그날 밤에 홍아와 청아를 대동하고 변두리의 작은 객점을 찾아가 객방을 두개 얻은 다음에 편히 쉬었다. 다음날 아침에 백리자성이 일어나서 홍아와 청아를 대동하고 마차를 타 고 일행이 머무르고 있는 객점의 앞에 이르니 오늘따라 상당하 날이 밝 았는데도 아직 점창파의 제자들은 출발할 준비조차 되어 있지 않는 것이 었다. 백리자성은 혹시 사도백봉이 어제 저녁에 자신에게서 무공비급을 받고 나서 그것들을 연구하느라 다소 늦장을 부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그들이 먼저 식사를 하기 위해 주루에 올라가니 어느새 그 심용이 먼저 와서 음식상을 차려놓고 기다리고 있다가 반갑게 백리자성을 맞이하는 것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오늘 아침에는 제가 조 금 빨랐군요?" 심용의 태도는 마치 그들 일행과 오래전부터 사귀어온 사람처럼 서스럼 없기 짝이 없었다. 홍아와 청아는 백리자성이 그와 인사를 나눈 뒤에 함께 앉아서 식사를 하는 것을 보 고 역시 뒤따라 앉아서 식사를 하다가 문득 대체 이 섬세 해 보이는 서생이 어떻게 그런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 하고 의아해 하며 은근히 계속해서 그의 행동거지를 주시했다. 심용은 그러한 그녀들의 시선을 아는지 모 르는지 여전히 백리자성과 학문이나 의술 그 밖의 사항에 관해서 담소하면서 소탈한 태도를 보였다. 이윽고 백리자성이 심용을 동반하고 홍아 청아와 함께 다시 주루를 나 가 객점앞에 이르자 비로소 사도백봉은 제자들을 지휘하여 길을 떠날 채 비를 서두르는데 그녀의 안색은 다소 초췌하여 간밤에 편히 자지 못했다 는 것을 알게 했다. 사도백봉은 이어 일행을 이끌고 다시 길을 떠나게 되었는데 일행의 가 장 뒤에 쳐져 있는 백리자성 등이 타고 있는 마차에는 심용이라는 기이 한 서생이 하나 더 추가되어 홍아와 청아는 함께 마부석에서 마차를 몰 고 백리자성은 계속해서 그 심용이라는 서생과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얘기는 홍아와 청아가 듣기에도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심오한 내용들이 대부분이었는데 그들은 때로는 함께 신중하게 열변을 토하기도 불쑥 말하기도 하는 것이 매우 진지하고 흥미가 깊어 보였다. 대낮의 날씨는 여전히 더웠지만 실로 그 두 사람이 타고 있는 마차의 내부는 더위를 느낄 엄두조차 낼 수가 없을것 같았다. 홍아와 청아는 처음에는 혹시 그 심용이라는 사람이 백리자성에게 무슨 흑심을 품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여 은근히 경계를 하고 있었 는데 나중에는 이내 자신들의 생각이 틀린 것이라는 것을 알고 그녀들도 나름대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시간을 보냈다. 일행이 나아가는 속도는 전날과 비슷해 보였으나 사도백봉은 어제처럼 점심식사를 준비 하라는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길을 가다가 마침 지 나치게 된 회리라고 하는 조금 커다란 현성에 들어가서 잠시 주루에 들 러 식사를 하면서 쉬어가게 되었다. 아마도 백리자성의 예상대로 사도백봉은 무공비급들을 연구하느라 구태 여 길을 달리 가고 싶은 생각도 없는 모양이었다. 수급명의 인원이 한낮에 한꺼번에 주루에 들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고 하여 사도백봉은 제자들을 시켜서 주루에서 음식을 사다가 먹도록 한 다 음에 주루에 가서 쉬고 싶은 사람들은 그래도 좋다고 했고 그러나 자신은 시종일관 그 커다란 마차속에서 한 걸음도 밖으로 나오 지 않았다. 백리자성은 아마도 사도백봉이 그 무공비급들에 단단히도 마음을 빼앗 긴 모양이라고 생각하면서 따로 마차를 몰아 주루로 향했다. 그들이 회 리의 가장 커다란 주루에 도착하자 이미 점창파의 제자들 가운데에서 그 곳에 이르러 술과 음식을 시켜먹고 있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홍아와 청아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지만 이 심용이라는 서생은 그 러한 주위의 상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일행이 주루로 들어서는 순간까 지 백리자성과 깊은 얘기를 주고 받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그의 끝나지 않을것 같던 얘기는 문득 안으로 들어서서 주 루의 내부를 살피는 순간에 갑자기 멈춰졌다. ............ "신녀문(神女門)의 사람들이로군." 홍아와 청아는 심용이 잠시 멈칫한 태도를 보이다가 이윽고 자신들에개 도 전음으로 그와같이 말해주는 것을 보고 역시 그는 무공을 지니고 있 는 것이로구나 하고 생각하면서도 시선을 들어 주루의 내부를 살폈다. 원래 날씨가 워낙에 무더웠기 때문에 많은 손님들은 밖에 차일을 쳐놓 고 마련한 자리로 가서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지금 그 주루의 내부에는 그다지 많은 사람들이 있는것은 아니었으나 매우 서늘한 기운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일신에 백색의 나삼들을 걸친 백의여인(白衣女人)들이 무려 십수명이나 중앙부근의 탁자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홍아와 청 아는 그녀들이 신녀문의 사람들이라는 심용의 말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지금 그녀들의 일신에서 흘러나오는 서늘한 냉기와도 같은 기운들을 느 끼며 다소 놀라운 심정이 되었다. 제22장 악랄한 음계 비록 심용은 워낙에 초절한 무림의 기인이니 비교할 수 없는 것이지만 이들 신녀문의 여인들의 무공은 매우 대단하여 그녀들이 강호에 나온 이 후에 처음 보는 고수들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백의여인들의 중앙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얼굴에 면사를 쓰고 있는 여인의 몸에서는 마치 기이한 한기가 발산되고 있는것 같았는데실 로 홍어와 청아는 그녀를 본 순간 가히 만만하게 볼 수 없는 강적이라고 생각했다. 의외에도 심용은 그녀들과 미리 안면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가 천천히 그녀들의 앞으로 다가가자 그 가운데의 면사여인은 문득 어마하는 다소 놀란 듯한 음성을 발하더니 손수 몸을 일으키며 심용을 맞이하는 것이었다. 백리자성과 홍아와 청아는 비록 그들과 적은 아니었지만 친구도 아니어 서 그저 다소 어리둥절한 기분으로 주루의 구석진 자리를 차지하여 음식 을 주문하고 있었는데이윽고 심용이 그녀들과 한참동안 웃고떠들며 이야 기를 나누다가 그 들의 자리가 있는 곳으로 되돌아 왔다. "그녀들과는 매우 친하신가 보죠?" 홍아의 질문에 심용은 문득 가볍게 안색을 붉히더니 웃으며 대답했다. "뭐 그리 친하다고 말할 수는 없어도 그저 그령게 아는 사이인 셈이오. 나는 그 신녀문이 좀처럼 강호상에 나타나지 않는데 갑자기 보게 된 것 이 이상하여 다가가서 물어보았던 것이오." 청아는 문득 궁금한 생각이 들어서 물었다. "그래그녀들은 어째서 강호로 나왔다고 그래요?" 심용은 담담히 웃으며 대답했다. "듣자니 근래에 신녀문의 주위에 무산방이라는 녹림흑도의 무리들이 득 세를 하여 산동봉래파의 암기수법을 배워와서는 함부로 사람을 죽이고 부녀자들을 농락한다고 해서 보다 못해 신녀문에서 그 들을 제압하기 위 해 나섰다고 하는군요." 홍아와 청아는 이미 산동봉래파의 암기 등에 관해서 들었기 때문에 즉 시 이해하고 다시 입을 열어 물었다. "그럼 그 무산방의 사람들이 이 부근으로 도망쳐서 그녀들이 잡으러 온 것인가요?" 심용은 웃으며 대답했다. "바로 그렇소. 그녀들의 말로는...... 그러니까 무산방의 중요한 두목 하나 가 이 부근으로 달아나서 저기 있는 신녀문의 소문주인 이산산(檣뷝ㅤ이 직접 이쪽으로 와서 그 두목을 추격하게 되었는데지금은 사람을 보내 위 치를 추적하고 있는 나머지 사람들은 그 사람들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고 하오." 홍아와 청아는 일전에 신녀문의 정식 제자들은 하나같이 이씨(牆;)성을 쓰는 여자들인데 그것은 소문주라고 하는 중앙의 면사를 쓰고있는 여인 을 보게 되어서 다소 신기한 기분으로 새삼 그녀들을 다시 살펴보았다. 소문주라고 하는 이산산이란 여자는 서른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였는데 면사를 쓰고 있음에도 실로 아름다운 온몸와 윤곽을 느낄 수가 있을만큼 미인이었다. 원래 무산신녀문이 있는 무산과 이곳과는 상당한 거리가 떨어져 평소에 는 그곳의 사람이 이곳에 거의 오지 않는 상태였는데 오늘무산방의 한 두목이 부근에 숨어있다고 하는 말을 듣게되자 홍아와 청아는 서로의 얼 굴을 마주보고 혹시나 백리자성이 그 악랄한 자들의 손에 의해 피해를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겠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과연 아니나 다를까 잠시후에 밖에서 백의여인 하나가 빠르게 안으로 들어와서 면사여인 이 산산과 뭐라고 논의를 하더니 이윽고일제히 신형을 움직여서 밖으로 사 라져 버렸다. 백리자성의 일행은 잠시 그곳에서 음식과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다 가 다시 마차에 올라 일행이 기다리는 곳으로 향했다. 그런데 저녁때가 다 되어가도록 마땅히 쉬어갈만한 현성이 나타나지 않 아서 일행은 부득이 하천을 끼고 있는 작은 계곡입구에서 노숙을 하게 되었다. 심용은 항상 백리자성의 뒤를 따라다니면서 그와 얘기를 나누다가 이윽 고 저녁무렵이 되자 웬일인지 다소 볼 일이 있다고 하면서 내일 아침에 야 다시 오겠다고 하는 말을 남기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는 것이었다. 홍아와 청아는 원래 점창파의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을 싫어하였으 므로 식사시간이 되자 그녀들이 스스로 마련한 식사를 가지고 백리자성 과 함께 마차안에서 식사를 하였으며 이윽고 마차안에백리자성이 쉴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준 다음에 그녀들은 마차 밖으로 나왔다. 그녀들은 무공이 높으므로 밤새도록 마차의 부근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백리자성을 지켜줄 생각이었던 것이었다. 그런데주위가 다소 어두워져서 모닥불이라도 피우려고 생각하고 있는 무렵에 웬 사내의 모습을 보고는 다소 눈살을 찌푸리며 소리쳐 물었다. "이봐요! 당신은 누군데 우리의 숙소 부근에 와서 그렇게 기웃거리고 있 는 거죠?" 사내는 그녀들의 모습을 보더니 다소 당황한 듯이 머리를 긁적였다. "아니오. 나는 무 그저 아는 사람이 혹시 있나 하고......" 청아는 그 사내의 행색으로 미루어 보아 점창파의 사람들과도 아는 사 람인 것 같지가 않아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물었다. "대체 당신이 찾는 사람은 누구죠?" 사내는 그녀들을 향해 다소 머뭇거리더니 대답했다. "아니나는 뭐 내가 아는 사람이 아니라 남의 심부름을 온 것이오. 내가 아는 한 사람이 사람을 찾고 있는데 그의 이름이 백리선생이라고......" "백리선생이요?" 홍아와 청아는 다 함께 놀라서 되물었다. 이 백리자성의 신상에 관한 일은 그녀들에게 그야말로 최고의 관심사가 되지 않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홍아가 혹시 마차에서 잠이 들었을지도 모르는 백리자성이 혹시 깰까 저어하며 다시 나직한 음성으로 물었다. "누가 우리 공자님을 찾고 있다는 거죠...... 혹시 그의 이름을 알고 있지 않나요?" 사내는 느릿하게 대꾸했다. "그는 바로 심가인데 이름은 알 수가 없고 키가 이렇게 늘씬하게 크고 의술에 뛰어난 사람이지요. 그는 지금 바로 신녀문의 일 때문에 다소 어 려움에 처해 있는데그것은 그는 남자이지만 신녀문의 사람들은 여자라는 점 때문이오. 그는 그 일로 속히 백리선생을 뵙고자 하오." 홍아는 잠시 헤아려 보다가 물었다. "그렇다면 그 분 심공자가 찾고 있는 사람은 혹시 백리공자님이 아니고 우리가 아니었던가요?" 홍아와 청아는 전혀 본 적도 없는 이 사내가 그 심용에 대해서 그토록 자세하게 알고 있는 것을 보고 필시 심용이 무슨 일을 당해서 사람을 보 낸 것이라고 생각했다. 확실히 아까 심용은 이곳을 떠날 때 갑자기 무슨 일이 생겼다고 하지 않았던가? 홍아는 사내의 말 가운데에서 생각해 보면 심용이 백리자성을 청하는 이유는 여인의 손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고그렇다면 요 근래에 백리자성 이 심신이 매우 피곤함에도 잘 쉬지 못했기 때문에 구태여 그를 깨워서 데려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이 모든 생각들은 물론 백리자성을 향하는 그녀들의 깊은 충정에서 비 롯된 것이었다. 사내는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은 그런 것 같았소그 심가라는 사람은 나에게 반드시 그 두명의 아름다운 낭자분들을 모시고 와야 한다고 말했었소." 청아는 그녀들 가운데에서 한 사람만 가면 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두명이나 필요하다고 하자 다소 주저하여 홍아에게 물었다. "혹시 우리가 없는 사이에 공자님께 무슨 일이라도 생기지 않을까?" 홍아는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리가 늘상 공자님을 보호하고 있기는 해도 기실 공자님께서는 그리 녹녹하신 분은 아니야 게다가이곳은 점창파의 사람들로 가득차 있는데 누가 감히 우리 공자님을 해치려고 다가들겠어." 청아는 홍아의 그 말을 들어보니 과연 그럴듯 하다고 느꼈다. 게다가이 백리자성은 평생 남에게 원한 사는 일을 하지 않은 사람이기 때문에 설마 잠깐 사이에 누가 그를 해치러 올 것 같지가 않았다. "우리가 공자님의 허락을 받고 가야 하지 않을까?" 홍아는 그 말에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공자님께서는 지금 아마도 주무시고 계실지도 모르는데 우리가 만일 그 분의 잠을 깨우게 되면 얼마나 죄송스러운 일이 되겠어? 우리도 이제 는 어린애가 아닌데 이러한 일쯤은 우리들의 생각으로 할 수 있어야 하 지 않겠어?" 다소 조심스러운 성격인 청아는 왠지 걱정이 되는 느낌이었으나 홍아의 말을 듣고 보니 그럴듯한지라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럼 우리 빨리 일을 마치고 어서 돌아오기로 해." 홍아는 이어 그 사내에게 물었다. "이봐요! 그 심용이라는 분이 우리를 찾는 곳이 대체 어디죠?" 홍아와 청아는 기실 그리 우둔하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강호의 험난한 인심을 잘 모르고 있었고 게다가 아직 사리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힘이 부족했다. 만일 심용이 그녀들을 찾고자 했었다면 그러한 어수룩한 사내를 보내서 일을 어렵게 만들거나 시간을 지체하지도 않았었을 것이었다. 게다가심용은 원래가 의원인 데다가 무예가 이미 초절정의 경지에 이르 러 있어서 설사 여인의 벌거벗은 몸에 손을 대야 한다고 해도 전혀 손을 대지 않고 뒤돌아서서 무형의 진기를 이용하여 충분히 일을 처리할 수가 있었을 것이었다. 홍아와 청아는 이 사내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는데 처음에는 그가 얼마 가지 않아서 그 장소에 도착할 것처럼 말을 하다가 나중에는 그 느린 발 걸음으로 무려 십리나 넘게 걸어가는 것을 보고 불현듯 의심이 솟게 되 었다. 홍아가 즉시 훌쩍 몸을 날려 사내의 앞을 막아서며 물었다. "이봐요! 대체 그 심용이 우리와 만나자고 했던 장소가 정확히 어디에 있지요?" 그런데 그 사내는 문득 걸음을 멈추더니 입가에 기이한 웃음을 머금으며 느닷 없이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갈 필요가 없소이다. 낭자들도 이쯤 되었으면 눈 치챌만 하지 않겠소?" ......? 홍아와 청아는 일순 너무나도 어이가 없어서 능글맞게 웃고 있는 사내 의 모습과 부근의 지형지물들을 새삼스럽게 다시 살폈다. 혹시 이 사내가 그녀들을 욕심내어 여기까지 감히 데리고 온 것 같지 않았고 게다가 그녀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느 정도는 두려워하는 것이 아마도 그녀들에게 흑심을 품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홍아가 안색을 싸늘하게 굳히며 다시 물었다. "대체 당신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죠? 혼나기 전에 순순히 말하지 않겠어요?" 사내는 이 소녀들이 강호의 경험이 적어보이고 이런 상황에서도 겨우 존댓말로 물어오는 것을 보고 다소 마음의 여유가 생긴 듯이 웃으며 대 꾸했다. "흐흐흐 그녀들은 당신들의 그 공자를 꿈속에서도 못 잊어서 이렇게 나 로 하여금 당신들을 유인하고 만나보려고 하는 것인데 그래도 아직 모르 겠단 말이오?" 홍아와 청아는 일순 어이가 없다가 문득 무슨 이상한 생각이 치밀어서 사내의 멱살을 틀어잡고 들어올리며 홍아가 사납게 물었다. "솔직히 말해라...... 대체 네놈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이냐? 빨리 말 하지 않으며 네놈의 몸뚱이는 반드시 저렇게 될 것이다!" 말과 함께홍아가 나머지 한 손으로 근래에 백리자성에게서 배운 무영금 강장 한 수를 날려 커다란 바윗돌을 산산조각내어 버리는 것을 보고 사 내는 새파랗게 변했다. "사살려주십시오...... 소인은 이 부근에서 살고 심부름을 해 준 죄밖에는 없습니다요." 홍아가 안색을 싸늘하게 굳히며 금방이라도 그 자를 집어던질 듯이 자 세를 취하며 다시 재촉했다. "대체 누가 어떤 심부름을 네게 시켰다는 말이냐?" 사내는 즉시 허공에 들린 채 횡설수설하며 답변하기 시작했다. "소소인은 두분의 아릿따운...... 그 못생긴 계집들이 나타나서 두분을 이 쪽으로 모셔오기만 한다면 은전을 무려 열냥이나 주겠다고 하길래 한번 힘을 써본 것이옵지요. 사실 소인은 그 계집들의 말하는 것으로 보아서 그녀들이 혹시 백리선생이라는 분과 정을 통하고 있는 사이가 아닌가 하 여 거의 부담없이 이 일을 했던 것입니다요. 제발 저에게는 노모와 딸린 식구들이 있사오니 살려만 주십시오." 홍아와 청아는 뒤이어 사내가 설명하는 그 두명의 여자들의 생김생김으 로 미루어 보아 그녀들이 바로 사도백봉의 시중을 들고 있는 그두명의 하녀들과 비슷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문득 안색을 일변시키며 말했다. "여기서 머뭇거려서는 안되겠어...... 빨리 가서 그 사도낭자가 혹시 우리 공자님께 무슨 짓이라도 벌이지 못하도록 해야겠어." 사도백봉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안심을 하고 있었으므로 그녀들은 느닷 없이 그와 같은 일을 당하여 마음이 다급하여졌고 마치 이미 백리자성의 시신이라도 대한 사람들처럼 가슴이 크게 뛰어서 전혀 다른 생각을 하지 못했다. 사내가 대강의 말을 해주자 그녀들은 그 사내를 제압할 생각도 못하고 즉시 신법을 펼쳐 마차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런데 홍아와 청아가 마차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예상하던대로 백리 자성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흐트러진 이불 등만이 급조하여 만든 간이침상 위에 뒹굴고 있었 다. "대체 이 일을 어쩌죠?" 청아가 사방으로 신법을 날려 찾아보았으나 쉽게 찾지 못하자 발을 동 동 구르며 눈물을 펑펑 내쏟았다. 그것을 보고 홍아가 문득 한 가지 생각을 떠올린 듯이 눈빛을 빛내며 먼저 신형을 아까의 그 곳으로 날렸다. "우선 그 사내를 찾아야 하겠어. 그를 제압하여 증거를 대게 한다면 사 도낭자가 우리 공자님을 감히 험하게 대하지는 못할 거야." 청아도 즉시 그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는 신법을 날려 그 뒤를 따라갔다. 기실십여 리에 해당되는 먼 길이었지만 그녀들의 신법이 매우 뛰어나서 한번 돌아갔다가 다시 가는데에 걸린 시간은 그리 많이 들지 않았다. 사내가 제아무리 도망을 가려고 했어도 지금의 시간이면 충분히 잡을 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홍아가 먼저 신형을 날렸던 것이었다. 그런데 막상 아까 그 사내를 놓아주었던 자리에 도착했을 때 홍아와 청 아는 일순 크게 놀라서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사내 아까는 금방이라도 애걸을 하며 달아날 것 같았던 그 사내는 지금 겨우 몇 발자국도 가지 못한 채 땅바닥에 누워 있었다. 그는 일부러 가지 않은 것인가? 그게 아니었다. 눈을 커다랗게 부릅뜨고 있는 그 자의 목이 머리와 분리되어 있었고 그 곳으로부터 지금 많은 선혈이 꾸역꾸역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지금은 어두운 밤중이었기 때문에 사내의 그러한 모습은 그야말로 한밤 중에 귀신이라도 만난 것처럼 극심한 공포감을 불러 일으켰으나 기실 홍 아와 청아는 다른 일로 인해서 더욱 커다란 공포감을 느끼기 시작하고 있었다. 범인은 분명히 백리자성을 노리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지금에 이르러 이러한 평범한 사내를 죽여 살인멸구할 것이었다 면 혹시 이미 백리자성을 제거하기라도 했다는 소리가 아닐까? 홍아와 청아는 일시 사내의 시신을 보고 급히 주위를 돌아보다가 흉수 를 찾을 수가 없자 급히안색이 변해서 몸을 떨며 말했다. "이 일은 분명히 사도낭자의 짓이 틀림없어. 그렇다면 우리는 빨리 그녀 가 있는 곳을 찾아가서 공자님을 구해야 해!" 미처 떨리는 음성이 사라지기도 전에 그녀들의 신형은 어둠속으로 사라 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대체 백리자성은 어떻게 된 것이었을까? 기실 그 보다 앞서서 백리자성은 홍아와 청아가 웬 낯설은 사람의 얘기 를 따라서 밖으로 사라지는 것을 듣고 구태여 그녀들의 행동을 구속하고 싶지가 않아서 그냥 두었었는데 느닷없이 잠시 후에 마차의 문이 열리고 사도백봉이 안으로 들어선 것을 보고 놀라서 물었다. "아니 무슨 일이오외사촌누이?" 사도백봉은 이 순간 마치 귀기어린 눈빛을 하고 있다가 다음 순간 느닷 없이 그의 몸으로 다가들어서 손을 빠르게 움직여서 백리자성의 전신혈 도와 아혈마저 제압한 다음에 빠르게 몸을 날려 마차를 벗어나기 시작했 다. "흥! 아직도 나에게 말을 아주 그럴싸하게 들려주고 있군요! 나를 따라 서 잠시 가보면 알게 되어 있어요!" 백리자성은 원래 무공은 물론 몸의 움직임이 원활하지 못했고 게다가 이 사도백봉이 느닷없이 자신의 몸을 제압할 줄은 생각도 못하고 있다가 느닷없이 그녀에게 완전히 제압되어 그녀의 한쪽 손에 들린 채 납치되어 가는 신세가 되었다. 백리자성은 느닷없이 일을 당하여 마음이 매우 곤혹스럽기 그지 없었고 게다가 대체 무슨 이유로 그녀가 이토록 험악하게 나오 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어서 그 일에 대한 생각으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이때는 다소 멀리에서 보면 누구도 볼 수가 없을 어두운 밤이었는데 사 도백봉은 처음에는 다소 조심을 하는 듯이 주위를 살피며 신형을 날리다 가 문득 일행이 머무르고 있는 주위를 벗어나자 최대한의 속력을 발취하 여 신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백리자성은 순간 사도백봉의 행동이 매우 심상치 않고 게다가 홍아와 청아가 밖으로 사라진 때에 공교롭게도 그녀가 나타났었다는 점 등으로 미루어 보아홍아와 청아가 밖으로 유인된 일조차 이 사도백봉의 계교였 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과연 아니나 다를까 사도백봉은 그로부터 아주 먼 거리를 이동하여 거대한 장강이 절벽 아 래에서 굽이치며 흐르고 있는 어느 벼랑위에서 걸음을 멈추더니 백리자 성의 몸을 바닥에 세워놓고 아직 전신의 혈도를 풀지않고 아혈만을 풀어 주며 싸늘한 음성으로 입을 열어 말했다. "고종 오라버니...... 유감스럽게도 당신의 그 충실한 시종들은 이 순간에 결코 당신을 찾을수가 없을 거예요. 게다가 나중에 제가 당신을 제거했다 고 해도 그녀들은 결코 나에게 찾아와서 당신을 살려내라는 소리를 할 수 없도록 되어 있어요." 백리자성은 여기까지 오는 동안에 그러한 일들을 미리 예상했던 터라 씁쓸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그는 전날에는 금침술로 잠력을 격발시켜 좌염기를 제압하기도 했었으 나 오늘에는 미리 그것을 주의하고 있었던 사도백봉의 철저한 급습으로 인해서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가 없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 순간에 백리자성은 비로소 자신이 이 사도백봉이라는 여인에 대해서 어느 정도 잘못 생각하고 있었으며 오늘 그로 인해서 겪게 될 곤란이 적 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원래 백리자성은 자신이 어제 사도백봉에게 무공비급을 전해주었기 때 문에 그녀는 어느 정도 그에게 고마워하고 있을 줄로 알고 있었던 것이 었다. "대체 그대가 나에게 원하고 있는 바가 무엇이오?" 사도백봉은 냉랭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당신은 아직도 시치미를 땔 생각인가요? 만일 계속 그러겠다면 나는 지금 당장 당신의 몸을 저 절벽 아래로 던져버려서 시체도 찾을 수가 없 게 하겠어요!" 백리자성은 사도백봉이 이처럼 흉악하게 나오고 있는 것을 보고 어이가 없어 하며 물었다. "그대는 나에게서 무공비급을 원하는 것이오?" 사도백봉은 싸늘하게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나는 지금 전날처럼 그대에게 구걸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명 령을 하고 있는 거예요. 만일 당신이 나에게 놀라운 속성의 무공을 전해 주지 않는다면 그 즉시 죽을 각오를 하세요." 백리자성은 사도백봉의 표정과 홍아 청아의 일 등을 생각해볼 때 지금 의 그녀의 표정이 결코 가식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만일 사도백봉이 그처럼 심각하게 할 일이 아니었다면 홍아와 청아를 그렇게 따돌리지 않았었을 것이었다. 백리자성은 갑자기 강해진 그녀의 무공에 대한 탐욕을 안타갑게 생각하 며 탄식과 함께 대답했다. "내가 전에도 말했다시피 내가 그대에게 전해준 무공은 가장 최상의 배 려인 것이오. 나에게는 속성의 무공이라는 것은 없소." 사도백봉은 싸늘하게 웃으며 말했다. "과연 당신은 또 다시 그와 같이 변명을 하는군요. 하지만 그런 변명은 지금에 와서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하세요. 당신들의 그 시종들이 느닷없이 무공이 높아지게 되었는데 그것은 결코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 니예요. 아마도 당신이 그녀들에게 내공을 높일 수가 있는 영약이나 신단 을 주었겠죠. 내게는 왜 그러한 것들을 주지 않죠?" 백리자성은 그녀에게 이와 같은 추궁을 당하게 되자 절로 어이가 없어 져서 웃으며 맡했다. "그 단약들은 원래 선친께서 제조하신 것이었는데 이번에 그녀들에게 모두 사용하고 하나도 남지 않게 되었었소. 내 그렇지 않아도 그대에게 다른 내공을 높일 수 있는 것을 주겠다고 하지 않았소" 사도백봉은 싸늘하게 코웃음을 쳤다. "내가 그러한 달콤한 얘기에 속을 줄 알았나요? 전날 당신의 그 시종들 이 아직 무공이 높아지기 전에도 나는 당신의 집으로 찾아가서 무공비급 을 구하려고 했었죠. 그런데 당신은 그때 나를 쫓아보내고는 보라는 듯이 당신의 시종들의 무공만을 훨씬 높여주었었죠? 그렇지 않나요? 지금에 이르러서 내가 다시 당신의 말을 믿을 것 같아요?" 백리자성은 내심 탄식했다. 그 가 사도백봉이 돌아간 이후에 홍아와 청아의 무공을 높아주었던 것 은 사실이었지만 그것은 내침 김에 하려던 것을 한 것이었을 뿐 결코 사 도백봉을 의식하고 한 행동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지금에 이르러 다시 그 일을 변명하기도 어려워서 백리자성은 그저 씁 슬하게 웃고 말았다. "당신의 말은 사실과 다르오. 나는 결코 당신을 속이려는 의도는 없소. 만약 이대로 돌아간다면 나는 머지 않아서 당신에게 내공을 높일 수 있 는 것을 구해주겠소." 사도백봉은 냉랭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때까지 나더러 계속해서 그 남해신니라는 여중이 만들었다는 내공을 배우고 있으라는 말인가요? 내가 그것을 배워서 대체 어느 천년에 무공 이 당신 시종들과 비슷하게 되는 것이죠?" 백리자성은 실로 이 사도백봉이 스스로의 무공을 아주 높여서 명실공히 점창파의 장문인이 되려고 한다는 것을 그제서야 알게 되었다. 한다는 것을 그 제서야 알게 되었다. "그 연화관음 선공은 아주 훌륭한 것으로서 다소 정통적인 것이기 때문 에 외사촌누이의 성품을 부드럽게 해주는데도 효능이 있을 것 같아서 권 했던 것이었소. 만일 그대가 지금 내게 원하는 무공이 있다고 한다면 이 름을 말해보시오." 백리자성은 이 사도백봉의 안색이 배우 날카롭고 흉흉해 보이는 것이 어딘가 극단적인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아서 할 수 없이 그녀가 원하는 속성의 무공이라도 전해주는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러자 사도백봉은 기이하게 웃으며 바라보더니 대답했다. "좋아요. 나는 단 한 마디로 하겠어요. 당신이 만일 나에게 그 백리가문 의 팔대신공를 한달내에 터득하게 해주겠다면 나는 즉시 당신을 풀어주 고 되돌아가도록 하겠어요." 백리자성은 어이가 없어서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 "내가 아직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아서 그러는 모양인데 그 팔대신공들 은 기실 천하에서 다시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가장 뛰어난 절학들이오. 만일 외사촌누이가 그와 같은 천하제일의 무공을 정말로 한달 안에 성취 할 수가 있다는 것이 가능하겠소?" 사도백봉은 냉랭하게 웃었다. "좋아요. 그렇다면 당신은 여기서 그만 죽을 수밖에 없겠군요" 백리자성은 그녀의 어조가 워낙에 분명하고 살기에 차있자 어이가 없어 서 물었다. "그게 정말이오?" 사도백봉은 싸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내가 지금 당신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아나요? 내가 만일 그 와 같은 실없는 소리를 하려고 했었다면 일부러 나의 두명의 하녀들을 죽이면서까지 당신을 이곳으로 데려오지는 않았을 거예요. 나는 사실 당 신이 설령 그 팔대신공을 속성으로 전해줄 수가 있다고 해도 역시 죽여 버릴 생각이었어요." 백리자성은 원래 죽음에 대해서는 담담한 심정이었지만 사도백봉이 자 신에 대해서 그토록 사악하게 대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니내가 혹시 외사촌 누이에게 잘못한 일이라도 있었다는 말이오?" 사도백봉은 싸늘하게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잘못한 일이 있기는요. 오히려 당신은 매사에 우리 사도가문의 일을 도 와주려고 했었고 그 때문에 나는 매우 감격하고 있는 상태인 걸요." 백리자성은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그대는 어떤 필요에 의해서 나를 죽이려고 생각하고 있다는 말이오?" 사도백봉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당신은 원래 막내숙부님의 부탁을 받아서 나에게 많은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 했었지만 기실은 그렇지 않았어요. 나는 원래 당신의 능력이 뛰어나서 차라리 당신과도 같은 능력있는 사람에게 시집을 가버릴까 하고 생각했 었지만 당신은 불치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없었어 요" "......." 백리자성은 마치 원귀에 씌인 듯한 사도백봉의 설명을 그저 멍하니 듣 고만 있었다. 그는 이제까지 사람의 심성이라는 것은 매우 복잡하다는 것을 알고 있 었지만 실로 이와같이 사악해질 수가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알게 되고 있었다. 제23장 백의소녀 사도백봉은 다시 말을 이었다. "따라서 결국 나는 당신이 아닌 사람들 가운데에서 가장 뛰어난 인재라 고 생각되는 점창사수 가운데에서 하나를 골라서 시집을 가려고 했었죠. 원래 막내숙부님의 생각이 그런 것이었으니까요. 그러나...... 나는 생각했 죠. 만일 내가 그 가운데의 한 사람에게 시집을 가게 된다면 본파의 장문 인의 직위는 그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므로 제아무리 유언이 있었다고 해 도 그가 그저 나를 나중에 구박하기만 해도 나는 무공이 형편없기 때문 에 전혀 힘을 쓰지 못할 것이며 사도가문의 맥을 이어가는 일도 할 수가 없을 것이라고요." "......." "결국 나는 역시 나 스스로 무공이 강해져서 막내숙부님의 방법이 아닌 나 스스로 본파의 정식장문인이 되기로 했어요. 그리하여 점창사수를 아 래에 두게 된다면 장차 본파는 강호상에서 이름을 떨칠 수가 있을 것이 며 그 가운데의 변화에 대해서는 누구도 말할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요." 백리자성은 문득 듣다 못해 물었다. "하지만 내가 옆에 있게 된다면 역시 그대에게 커다란 도움은 되지 못 한다고 할지라도 해가 되지는 않을 것이 아니겠소?" 사도백봉은 기이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 당신은 나의 옆에 있기만 해도 본파의 무공비급들을 수십배나 훌 륭하게 고쳐줄 수가 있는 것이니 말할 수가 없이 도움이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당신은 한가지 결정적인 일에 있어서 나에게 방해가 되니 해 치울 수밖에 없는 거예요." 백리자성은 잠시 생각하다가 안색이 변해서 물었다. "그렇다면 그것은 혹시 그대가 다른 속성의 무공을 얻어서 배우고 있기 때문이 아니오?" 사도백봉은 일순 기이하게 웃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바로 보았어요. 바로 당신의 그런 총명함이 있기에 더욱 더 내 가 당신을 제거하려고 하는 것이라고요. 이를테면 미인박명이라고나 할 까? 호호...... 전날 나는 당신이 시종들을 시켜서 좌장로를 그토록 쉽게 제거하는 것을 보고 결국 당신을 제거하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당신이 만일 이 일을 알게 된다면 나는 그야말로 끝장이기 때문이죠." 백리자성은 안색이 일변했다. "그렇다면...... 당시 나는 다소 의아심을 가졌었는데당신이 바로 그 풍장 로와 손장로를 위협하고 좌장로를 구출하게 한 다음에 그를 달아나게 하 여 즉시 그들을 뒤쫓는 구실을 만듬과 동시에 그에게서 그 일월신교의 무공을 얻었다는 말이오?" 사도백봉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지난 며칠간 그 무공에 대해서 조사를 해보았어요. 당신은 스스로 의 무공을 배우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었겠지만기실 나는 당신이 지어준 그 연화관음선공인가 하는 것은 한번 훑어보지도 않았다는 말이예요. 나 는 앞으로 그 일월신교의 무공을 배우게 됨으로써 당신이 굳이 내공을 높여주지 않아도 나중에 두 시종보다도 더 높은 내공을 얻을 수가 있다 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러니 당신은 나에게 있어서 불필요한 존재가 아니겠어요?" 백리자성은 안색이 변해서 말했다. "당신의 그 생각은 잘못된 것이오. 일월신교의 무공이 비록 남의 내력을 빼앗는 수법으로 쉽게 내공력을 높이게 하는 것이지만 결국에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해치게 되는 것이오. 역시 정통의 무공을 배우는 것이 좋을 것이니 지금에라도 그것을 포기하시오." 사도백봉은 싸늘하게 웃을 뿐이었다. "당신의 그 말은 저에게는 이제 소용이 없어요. 일월신교의 그 무공들의 근본인 일월흡성대법을 나는 이미 요며칠 동안 내가 전에 신녀문에서 배 웠던 무공들을 모조리 제거함으로써 이미 발을 들여놓았으니까요. 흥! 강 호의 사람들이라는 것은 그 목숨이 마치바람과도 같아서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것이예요. 지금 당신의 생명 또한 그렇지 않은가요? 나는 차라리 내일을 기다리면서 그 연화관음선공을 익히기보다는 지금 마공인 일월흡 성대법을 연성하여 가장 화려한 일생을 살아가고 말겠어요! 당신은 나의 그런 일생에 있어서 가장 커다란 장애인 것이 분명하니 그래서 나는 일 단 일월흡성대법의 기초를 완성한 후에 당신부터 제거하려는 것이예요." 백리자성은 그녀가 이미 자신에게 일월신교의 내공심법의 명칭마저 가 르쳐준 이상에는 틀림없이 지금 제거하려는 것임을 알아챘다. 백리자성은 이미 자신이 아무리 설명을 해도 그녀가 마음을 돌리지 않 을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당신이 사악한 길에 발을 들여놓고 나서 결코 후회하지 않겠다니 이제 나로서는 더 이상 어쩔 수가 없구려. 이는...... 당신의 숙부와의 약속을 저 버린 것은 아니오. 나로서는 최선을 다한 셈이니까." 사도백봉은 막상 그를 제거하려고 하자 다소 마음에 걸리는 듯이 처연 하게 웃으며 말했다. "당신을 죽인다는 것은 사실 매우 가슴이 아픈 일이예요. 당신은 아직도 막내숙부와의 약속을 염두에 두고 있으니 실로 천하에 당신처럼 성실한 사람은 다시 없다고 봐야 하겠죠만일...... 만일 당신의 생명이 짧아서 불 과 내일이면 죽을 사람이었다면 내가 이렇게 일부러 죽일 필요도 없었을 갓이지만나는 당신의 생명력이 예상외로 매우 끈질기다는 것을 알게 되 었고 이런 수단을 쓸 수박에 없었어요." 백리자성은 대꾸했다. "나는 그리 오래 살지 않을 사람이기 때문에 당신에게 죽임을 당한다고 해도 그리 괴로울 것은 없소. 사실 이 시한부의 생명을 살아가는 일은 오 래살고 싶기도 하지만 어떤 면으로는 죽음을 기다리는 일이 지루하고 매 우 피곤하기도 하다오." 사도백봉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이 죽는 마당에도 나를 원망치 않고 그렇게까지 말해주니 나의 마 음은 편안하지가 못하군요. 그래서 얘긴데...... 만일 지금 당신에게 한가지 원하는 일이있다면 말해봐요. 나도 어쩔 수 없는 처지에서 하는 행동이니 만큼 그 한가지 부탁은 들어주고 싶어요." 백리자성은 내심 길게 탄식했다. 눈길을 돌려 주위를 돌아보니 이 한적하고 황량한 벼랑위에는 그 어떤 사람들도 오가지 않았고 짙은 어둠이 깔려 있어서 설령 누가 근처에 있 다고 해도 무슨 일이 있는지 알 수가 없을 정도였다. 원래 백리자성은 강호의 유능한 인재였고 아직 죽음이 있기까지 많은 일을 할 수가 있을 것이라고 스스로 인정하고 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이와 같은 상황을 맞이하여 한낱 아녀자의 손에 의해 피살되는 운명을 맞이하게 될 줄이야 하지만 이미 어쩔 수가 없는 상황이고 또한 그 자신이 원래부터 죽음을 늘 의식하고 살아왔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포기하는 시간이 매우 빨랐다. 백리자성은 이번의 강호출도로 다소의 마음에 하고 싶은 일이 있기는 했으나 지금은 다시 그 모든 계획들을 백지화시켜 버렸다. 기실 백리자성이 하고 싶었던 가장 중요한 일들은 바로 홍아와 청아에게 무 공을 가르쳐주는 일과 차후의 인재등을 위한 안배 등이었다. 나중에는 사도백봉의 일이 겹치게 되었지만 그 일이 이렇게 틀려버린 상황에서는 나중의 일은 의미가 없게 되었고 처음의 일은 이미 완수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는 이미 그 소장원에 차후의 인재를 위한 안배를 이루어 놓은 상태였 고 또한 홍아와 청아는 이미 최절정의 신공과 그 무공수법들을 모 조리 전수받았으니 특별한 위험이 없는 이상은 앞으로 그의 속박에서 벗어나 서 강하게 잘 살아갈 수가 있을 것이다. 그녀들은 원래 그의 품속을 벗어나지 않으려고 했었겠지만 이번의 사건 으로 잊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고마침내는 미리 예상했던 대로 일이 잘 진행되어 갈 것이다. 백리자성은 처음에는 매우 서운한 감이 있었지만 그와 같이 모든 안배 가 잘 되어간다고 생각되자 오히려 마음에 크게 홀가분한 것을 느끼게 되었고 더 이상 죽음에 대해서 괴로와하지 않게 되었다. 따라서 백리자성은 다시 한숨을 내쉰 다음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어떻게 죽는 것은 상관이 없으나 나의 두 시종인 홍아와 청아가 이번의 일에 연관되어 피해를 입지 않았으면 좋겠소." 사도백봉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의 그 두명의 시종은 워낙에 무공이 뛰어나서 나로서도 어쩔 수가 없었으니 안심하도록 하세요. 나는 이번의 일을 나의 두명의 하녀들이 일 을 꾸며서 외부인들과 짜고서 당신을 제거한 것처럼 했어요. 그녀들은 필 시 나에게 혐의점을 두고 있지만 증거나 증인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감 히 나를 제거할 수는 없을 거예요. 그녀들은 당신이 나를 상당히 존중해 주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거든요. 호호...... 그녀들은 아마도 당신을 찾 다가 찾지 못하게 되면 나중에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시집이나 가버리고 말겠죠." 백리자성은 사도백봉의 그와 같은 얘기를 듣게 되자 그야말로 평생의 소원이 풀린 듯이 마음이 편안해져서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그렇다면 어서 손을 쓰도록 하시오. 나는 이번의 이 죽음에 대 해서 아무런 유감이나 유한이 없소. 원래 일년쯤 지나면 죽게 되어 있었 던 시한부 생명이었고 또한 그녀 들 역시 헤어져야할 사람들이었는데 도 리어 부담을 덜게 되었던 것 같소." 백리자성은 그와 같이 달하고 나서 입을 다물었다. 사도백봉은 그의 말을 듣고 즉시 다시 지풍을 날려서 그의 아혈마저 제 압한 다음에 입가에 서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원래 나는 당신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어서 기왕에 내가 누구에게 시집 가지 않을 것이라면 최초로 탄복하고 시집가고 싶었던 당신에게 나의 처 녀성을 바칠까 하고 생각했었어요. 하지만 당신은 못나게도 그러한 일도 할 수가 없는 몸이니 호호...... 굴러들어온 떡도 먹을 수가 없다고나 할 까? 어쨌든 당신이 죽기 전에 그처럼 나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니 나의 마음이 얼마나 좋은지 모 르겠어요. 자! 고통이 없게끔 내가 빨리 죽음 주도록 하겠어요-당신은 어서 눈을 감으세요." 말이 끝나는 순간에 백리자성은 눈을 감았는데바로 그때 사도백봉은 백 리자성의 뻣뻣해진 몸을 두 손으로 들어서 힘껏 벼랑아래로 내던져 버 리고 말았다. 획! 백리자성의 몸은 곧장 악마의 아가리와도 같은 벼랑의 아득한 어둠속으 로 사라져 버렸다. 사도백봉은 눈을 크게 뜨고 그의 몸뚱이가 아래로 급속하게 떨어져 보 았으나 이내 그의 몸뚱이가 어둠속으로 사라져서 대체 바위에 부딪쳐서 산산조각이 난 것이진아니면 깊고 깊은 장강의 물속에 떨어져서 피사를 하게 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으나 그래도 내심 생각했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도 살아날 수가 있다면 그는 그야말로 끈질긴 생명이라고 할 수가 있겠지. 암! 그는 이제 죽었어!) 아혈이 제압되어 있었기 때문에 백리자성의 비명소리조차 들을 수가 없 었던 점을 아쉬워하며 사도백봉은 즉시 몸을 돌려 신법을 펼쳐 사라지기 시작했다. 한줄기 후덥지근한 바람이 불어와서 조금전까지 있었던 그들의 자취마 저 없애주어 대체 누가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한 무심함을 드러내어 주었다. 그 럼 백리자성은 벼랑아래로 떨어져서 피곤죽이 되어서 죽어버리고 만 것이었을까? 무심히 수만년의 세월을 흘러가고 있는 장강의 거칠은 파도는 그야말로 그의 참혹스러운 죽음을 그저 조용히 잠재우고 있었던 것이었을까?" 아니었다. 기실 주위의 상황이 워낙에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사도백봉조차 도 보지 못하고 장강의 물결 소리를 때문에 듣지 못하고 있었으나백리자 성의 육신이 거의 벼랑아래로 절반쯤의 중간 쯤에서 한줄기의 하얀 비단 천이 기이하게 한바탕 주춤하는듯 하더니 위로 끌어올렸다. 실로 그 비단결과도 같은 백색의 천은 아주 빠르게 아래로 떨어져 내리던 백 리자성의 몸을 휘어감아 그 힘을 해소시켰을 뿐만 아니라 역시 빠른 속 도로 뻗어나와 백리자성의 몸을 한쪽의 끌어잡았다. 그와같이 마치 사람의 팔을 자유자재로 쓰는 것과도 같은 비단천을 쓰 는 방법은 실로 교묘하며 놀라운 것이었고 그 시전한 사람의 공력도 대 단히 높다고 아니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백리자성은 비록 아혈 등이 제압당해 있어서 말할 수도 없었고 움직일 수도 없었지만 그와 같은 상황의 변화를 즉각적으로 느끼게 되었고다음 순간에는 자신의 몸이 절벽의 중간에 교묘하게 위장되어 나 있는 하나의 동굴 속으로 들어와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백리자성의 몸은 동굴의 바닥에 뉘여졌고 이미 그의 허리를 휘감아서 그를 끌어올렸던 하얀 비단천은 거두어져서 한 사람의 손에 들려져 있었 는데그 사람은 백색의 비단옷을 걸치고 있었고 아마도 조금전에 백리자 성을 끌어올리느라 지나친 진력을 소비한 듯 한동안 자신의 비단천을 몸 에 거두지도 못하고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백리자성은 비록 이 동굴속이 어둡기는 하지만 잠시 후에는 그 사람의 나이가 이제 겨우 십육칠 세의 어린 나이일 뿐만 아니라어렴풋이 매우 아름다운 백의소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 대체 이 백의소녀는 어떻게 해서 이런 곳에 있다가 백리자성의 몸을 구 하게 되었던 것일까? ) 백리자성은 비록 그 와 같은 일들이 궁금해졌지만 입을 열어 말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눈앞의 이 백의소녀가 입을 열기만을 기다렸다. 아니나 다를까 과연 백의소녀는 잠시 호흡을 고르고 나서 진기를 보충시키더니 천천히 마치 옥음과도 같은 아름다운 음성으로 입을 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나는...... 지금 상당히 곤란한 지경에 처해 있어요. 따라서 지금 당신의 아혈을 풀어서 말을 하게 할 수가 없으니 그 점은 이해해 줘요." 백리자성은 이미 죽은 목숨이었던 그를 이렇게 살려준 것만 해도 고마 운 일인데 그까짓 말을 하지 못하는 것쯤이야 대수롭지 않다고 여겼다. 백의소녀는 백리자성의 눈빛이 자신의 말을 수용하는 것 같은 것을 보 고는 다시 호흡을 가다듬으며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녀의 음성은 흡사 누가 들을까봐 속삭이는 아주 낮은 것이었지만 그 음색이 매우 맑아서 백리자성의 귓전에는 아주 또렷하게 들렸다. "나는 원래 이곳에서 오늘밤에 떠나기로 되어 있었는데 소백을 기다리 는 동안에 설마하니 당신과도 같은 사람을 구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나 는 방금전에 너무나도 많은 공력을 사용했기 때문에 힘이 없어서 당신 의...... 당신의 혈도를 풀어주지 못함을 이해해 주세요. 나는 지금의 처지 가 아주 좋지 않기 때문에 당신을 구하기는 했지만 이대로 당신을 놓아 드릴 수도 없고 게다가 여기에다 놔두고 갈 수도 없기 때문에 부득이 소 백과 함께 떠나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어요." 백리자성은 여전히 자신의 목숨이 새로 생겨난 것이나 다름이 없는데 그까짓 다른 의문은 몰라도 상관이 없지만 느닷없이 그녀가 중요한 상황 이기 때문에 자신을 소백과 함께 어디로 데려가겠다고 하자 마음이 다소 산란해졌다. 그는 만일 말을 할 수가 있었다면 그러한 의문만은 꼭 풀었을 것이었다. 백의소녀는 잠시 가만히 백리자성의 두 눈을 내려다보고 있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눈빛을 반짝이며 물었다. "당신은 혹시 내가 누구인지 아나요?" 백리자성이 가만히 누워서 바라보고만 있자 백의소녀는 다시 말했다. "만일 당신이 그렇다고 한다면 눈을 한번 깜빡이고 그렇지 않다고 한다 면 두 번 이렇게 깜빡이세요." 동굴의 내부는 매우 어두웠기 때문에 백의소녀는 그의 얼굴을 자세히 보기 위해 고개를 숙여야 했는데 그러자니 자연히 산뜻하고 그윽한 소녀 의 방향이 백리자성의 콧속에 은은히 스며들었다. 백의소녀는 보아하니 비록 곤란한 상황이기는 해도 여태까지 혼자서 있 다가 친구가 생기자 기분이 매우 좋아진 것 같았고 게다가 백리자성의 혈도를 풀어주자니 다소 그가 겁이 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녀는 다시 입을 열어 말했다. "당신은 혹시 내가 누구인지 아나요?" 이에 백리자성은 한번 눈을 깜박거렸다. 그러자 백의소녀는 다소 놀란 듯이 물었다. "아니 나를 알고 있다고요? 그것은 어떻게 알게 되었죠." 원래 백리자성은 그 나이에 비해서 무수한 경험을 했기 때문에 견식이 남달리 풍부한 편이었다. 지금도 비록 느닷없는 상황에 처해있기는 했지만 금새 그 상황의 근본 원인을 알아내고 눈앞의 사람이 어떤 사람이라는 것까지 알아낸 것이었 다. 그러니까 그가 이 백의소녀의 신분을 알아내게 된 것은 아까 그녀가 사 용하던 백색의 비단천과도 같은 무기와 그 수법을 보고 나서 부터였다. 이 수법은 바로 무산 신녀문에서 전해내려오는 비전절기인 것이며게다 가 문주 직전의 제자가 아니라면 전하지 않는 수법이었다. 백리자성은 이미 전에 신녀문의 소문주 이산산을 보았었는데그렇다면 이 백의소녀는 이산산의 딸 정도가 아닐까 하고 추측하고 있는 것이었다. 백리자성은 원래 매우 정확한 내용이 아니라면 장담하지 않는 사람이었 지만 지금은 이대로 그냥 있는 것보다는 한번 아는 것처럼 시험해 보고 있는 면도 있었다. 백의소녀는 잠시 멍하니 백리자성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문득 그가 자신 의 말에 대답할 수 없는 상태임을 알고는 다시 물었다. "당신은 원래부터 나를 알고 있었나요. 아니면 지금에야 나를 알게 되었 나요? 원래부터 나를 알고 있었다고 한다면 눈을 한번 끄덕이고 그렇지 않고 지금에야 알게 되었다고 한다면 두번 눈을 깜빡이세요." 백리자성은 실로 자신의 아혈을 풀어주면 일이 간단해질 것을 가지고 일을 아주 어렵게 만들고 있는 눈앞의 아름다운 소녀에 대해서 재미있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래도 그녀의 요구대로 두번 눈을 깜빡여 주었다. 그러자 백의소녀는 휴우하고 한숨을 길게 내쉬는 것이었다. 그녀는 말했다. "나는 혹시 당신이 나의 어머니의 지시를 받고 나를 잡으려고 은 것인 줄로만 알았어요. 헌데 당신이 지금 나를 알게 되었다고 하니 그린 것 같 지는 않고 안심이예요." 백리자성은 백의소녀의 그 말을 듣는 순간 두 가지의 사실을 알 수가 있게 되었다. 우선 첫째는 이 소녀와 신녀문의 상황은 원래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 던 것과도 다소의 차이가 있다는 것이었고 두번째는 이 소녀가 아직 강 호의 경험이 없어서 매우 순진하여 남의 말을 함부로 믿는다는 것이었다. 만일 백리자성이 거짓으로 눈을 두번 깜빡였을 경우에는 그녀는 그의 거짓을 그대로 믿고 있었던 것이 아니겠는가 백의소녀는 잠시 기분이 좋아진 듯이 백리자성의 얼굴을 빤히 내려다 보더니 웃음과 함께 다시 입을 열었다. "저도 이제는 어서 당신의 입을 열게 해서 대화를 나누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어요. 하지만 지금 이 주위에는 우리 어머님의 부하들이 숨어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나의 소백이 오기 전에는 그럴 수가 없어요." 백리자성은 이미 두번째로 듣는 말이지만 그녀가 다시 그 소백이 오면 자신의 아혈을 풀어줄 수가 있다고 하는 말을 듣고 다소 소백이라는 존 재에 대해서 의구심이 생겼다. 그 소백은 사람일까 아니면 다른 무엇일까? 백리자성이 다소 눈을 내리감으며 생각에 잠겨 있는 것을 보고 백의소 녀는 다시 미소하며 입을 열었다. "저의 어머니와 할머니께서는 저에게 반드시 그와 같은 금수와도 같은 짓을 하라고 시켰지만 나는 끝내 하지 않겠다고 버티었지요. 그래서 이번 에 이렇게 도망쳐 나왔던 것이고 이곳에 숨어서 제가 데리고 있었던 소 홍(小紅)에게 소백을 데리고 오라고 시켰던 것이예요. 아내가 당신에게 소홍에 대해서 미리 설명해 주지 않았군요. 호호...... 그 소홍은 바로 한 마리의 앵무새로 나의 귀여운 친구예요." 백의소녀는 자신의 기분에 너무 도취되어 자신이 아직 소백의 소개도 하지 않았음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백리자성은 죽음의 순간아 가까이 다가갔었는데 느닷없이 구조를 받게 되고 그와 같은 말을 듣게 되자 다소 재미있다는 느낌에 두 눈에 다소의 미소를 떠올리게 되었다. 백의소녀는 다시 말했다. "저의 이름은 이보유(李賣柔)예요. 오늘 저는 혼자서 쓸쓸히 떠날 것을 생각하고 내심 매우 쓸쓸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당신과 같은 사람을 만 나게 되어서 마음이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나는 조 금 전에 당신과 나의 그...... 속가의 자매였던 사도백봉의 얘기를 자연스럽게 모두 엿듣고 말았 어요. 나는 당신에게 매우 감복했을 뿐만 아니라 그 악랄한 사매에게 매 우 화가 났었어요. 만일...... 내가 이와 같이 숨어있지 않을 수밖에 없는 신세가 아니었다면 당장에 올라가서 그녀를 혼내주고 말았었을 거예요." 백리자성은 이 백의소녀 이보유가 자신을 구해주었던 원인이 바로 그와 사도백봉간의 대화를 무심코 주위를 기울이다가 듣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는 것을 알고 이 공교로운 인연에 대해서 내심 기이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백리자성은 이미 이 백의소녀의 이름이 바로 이보유인 점으로 미루어 보아 그녀의 할머니와 어머니는 바로 당금의 문주인 무산신모(巫 山神母)이능파(李産波)와 소문주 이산산이 틀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 다. 백리자성은 이들이 아주 특이한 방법으로 모계의 혈통을 유지해가고 있 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이보유는 다시 말했다. "저는 아까 당신의 말을 듣고 매우 감복했으며 실로 그와 같은 사람의 얼굴이라도 보고 싶어서 무리한 공력의 소모를 무릅쓰고서 모험을 감행 하여 당신을 구했던 것이예요. 그런데 당신의 모습은 실로......" "......" "실로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훨씬 더 아주 멋있게 생기셨 군요. 나는 바로 당신과 같이 생긴 사람을 좋아해요. 나는 당신과 같은 사람을 꿈에서도 그렸었는데 실로 오늘에 이르러서 이와 같이 만나게 되 었을 줄은 몰랐어요. 당신도 실은 시한부 인생이기 때문에 나와 함께 그 곳으로 가게 된다면 결코 섭섭하지 않을 거예요." 백리자성은 그녀가 느닷없이 어디로 간다고 하자 내심 궁금한 마음이 일어서 어떻게든 질문은 해보려고 생각하고 있는데 문득 어디선가 동굴 의 안으로 붉은 한 마리의 앵무새가 날아들었다. "내가 왔다! 내가 왔다!" 기괴한 소리로 사람의 음성을 흉내내는 그 앵무새는 아주 조그마한 특 이한 품종이었는 눈빛이 유난히 붉어서 매우 영특해 보였다. 앵무새가 날아와서 날개짓을 하자 이보유는 즉시 매우 기뻐하며 그 앵 무새를 반겼다. "소흥! 네가 돌아왔구나!" 앵무새는 여전히 그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내가 왔다! 내가 왔다!" 이보유는 그것을 보고 기뻐하며 다시 물었다. "헌데 내가 데려오라고 시켰던 그 소백은 지금 어디에 있지? 혹시 데려 오지 않은 것은 아니겠지?" 바로 그때였다. 소홍이 마악 입을 열어 말을 하려는 순간에 느닷없이 백리자성은 자신 의 옆쪽으로 가벼운 바람이 일어나며 이보유가 매우 기뻐하는 표정을 보 았다. "아아 소백! 네가 정말로 와 주었구나!" (......?) 백리자성은 고개를 돌려서 그 쪽을 보다가 어느새 한 마리의 커다란 백 학이 날아 들어 있었고이보유가 그 백학의 목을 껴안고 기뻐하고 있는 것을 보고 바로 소백의 정체가 바로 그 백학임을 알아냈다. 백리자성은 순간 이보유가 그 소백만 나타난다면 능히 자신의 아혈을 풀어줄수가 있다고 했던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제24장 전설속의 고인 원래 이보유는 어머니인 이산산의 시야를 벗어나기 위해서 그와 같은 동굴속에 숨어 있었던 것이었는데겉으로는 두산방의 사람들을 뒤쫓는다 고 했던 이산산은 기실은 이보유를 뒤쫓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에 이보유는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아서 자신이 기르고 있었던 작은 앵무새인 소흥이를 보내서 소백을 데려오도록 시켰던 것이었다. 만일 그녀가 소백을 타고 하늘을 날아서 사라지게 된다면 더이상 누구 를 피해 달아날 필요도 없을 것이고 이야기도 마음 놓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백리자성은 그런 의미로써 이보유의 말들을 금방 이해하게 되었다. 이보유는 소홍에 비해 소백이라는 이름이 결코 걸맞지 않는 그 커다란 백학의 목을 껴안고 한참이나 기쁜 해후를 누리고 있다가 이윽고 몸을 움직여 한 손으로 백리자성의 허리춤을 안아든 다음에 즉시 소백의 등 뒤에 올라탔다. "소백! 우리 어서 그곳으로 가도록 하자!" 대체 어떤 곳인지는 알 수가 없었지만 백학은 일순 커다란 날개를 움직 이자 두 사람과 한 마리의 앵무새가 타고 있는데도 전혀 힘들이지 않는 듯이 하늘을 훨훨 날아서 어둠속으로 떠오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이보유는 자신이 그 동굴을 떠나게 되어서 누구도 추격하는 사람이 없 고 또한 자신의 몸이 안전하게 허공을 날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이윽고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정말 세상의 인심은 사악하고 설사 나의 어머니나 할머니조차도 그 마 음을 믿기는 어려워요. 그런 상황에서 그저 깊은 산속에 들어가서 은둔하 며 사는 것이 좋을 거예요." 이어자신의 앞에 내려놓은 백리자성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나는 이제 당신의 아혈을 풀어줄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혈 도를 풀어줄 수는 없어요. 만일...... 만일 나에게 당신이 다른 요구를 해온 다면그렇다면 나는 당신의 아혈마저 풀어주지 못할 거예요. 그러니까 묻 겠는데 지금 나의 일에 대해서 반대를 하고 있는 건가요? 만일 그렇다면 두 번 눈을 깜빡이세요." 백리자성은 이에 한번 눈을 깜박였다. 어차피 그가 반대를 한다고 해도 자신이 그녀에 의해서 끌려갈 것은 뻔 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백리자성은 사도백봉의 마수에서 벗어나자마자 이렇게 한명의 아릿따운 소녀에 의해서 다른 곳으로 옮겨지게 될 줄은 몰랐다. 이보유는 백리자성이 한번 눈을 깜빡이자 즉시 기뻐하며 그의 아혈을 풀어주었다. 사도백봉이 비록 일원신교의 내공심법을 연성했다고 해도 아직 신녀문 의 무공수법을 버리지 못하고 일었던 상태였기 때문에 이보유는 자신의 수법으로 그의 아혈을 쉽게 풀어줄 수가 있었다. (......!) 백리자성은 아혈이 풀리게 되어 마음대로 말을 할 수가 있게 되자 문득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며 누운 자세 그대로 흘러가는 하늘의 구름을 올려 다보며 잠시 가만히 있었다. 그것을 보 고 이보유가 물었다. "당신은 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죠?" 백리자성은 다소 씁쓰레하니 웃으며 대꾸했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할 수가 있겠소?" 이보유는 여태까지 그의 맡을 듣지 못하다가 문득 그의 말을 다시 마음 이 새긴듯이 웃으며 말했다. "당신은 아마도 지금의 이러한 상황을 좋지 않게 생각하겠지요? 그러나 당신은 사실 동료들로부터 그와 같은 일을 당하고 나서 다시 돌아갈 생 각은 없겠지요?" 백리자성은 묵묵히 백학의 등위에 누워서 흘러가는 어두운 하늘을 바라 보며 멍하니 있는 것을 보고 이보유는 다시 말했다. "당신은 가령 그와 같은 여자를 상대하여 복수를 할수도 있겠지만 역시 저의 생각으로는 그러한 모든 일을 잊고 은둔하는 것이 좋으리라고 생각 해요." 백리자성은 문득 입을 열어 물었다. "대체 우리가 지금 가고 있는 곳은 어떤 곳이오?" 이보유는 그의 말에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 "그곳은 아주 비밀스러운 곳인데 지명은 말씀드릴 수가 없어요. 만약 내 가 말하게 되면 당신은 그 즉시 달아나려고 할 것이 아니겠어요? 저는 사실 혼자서 그와 같은 곳에 가서 산다는 것이 매우 괴로왔었지만 실로 당신과 같은 사람과 한평생을 해로할 수만 있다면...... 아니 당신은 이제 생명이 얼과 얼마 남지 않았을 것이지만 그러나 내가 만약 당신의 아기 를 낳아서 기르고...... 기르게 된다면 심심하지는 않은 것이 아니겠어요?" 백리자성은 느닷없이 그녀가 아기의 얘기를 하는 것을 보고 놀라 물었 다. "뭐라고? 아기라고 했소?" 이보유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당신은 어차피 얼마 지나지 않아서 죽을 목숨이라고 했고 또한 강호로 돌아가 봐야 낙이 없는 사람이니 별로 밑지는 장사는 아닐 거예 요. 나는 사실 신녀문의 소군주로 수문주인 나의 어머니의 딸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나를 매우 아름답다고 말들을 고 있죠. 당신이 만약 나와 같은 사람과 혼인을 하여 심산에 살게 된다면 말년에 그야말로 즐거운 행복을 누리는 것이 아니겠어요?" 백리자성은 자신의 운명이 그야말로 엉망진창으로 남에 의해서 이끌려 가는 것을 보고 어이가 없어서 탄식하며 말했다. "나의 현실이야 그렇지만 그대야 어째서 그와 같은 어리석은 짓을 하려 는 것이오? 천하에 나보다도 훨씬 잘생긴 미남자가 많을 것인데." 이보유는 고개를 내저었다. "바로 그런 문제 때문에 저는 이번에 어머니와 다투고 신녀문을 뛰쳐나 오게 되었던 것이예요. 참당신은 아까 나를 금방 보고 알았다고 했었는데 대체 어떻게 해서 그것을 알게되었던 것이었죠?" 백리자성은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원래 신녀문의 무공에 대해서 알고 있었는데 당신이 그 무공들을 펼치자 금새 당신의 신분을 할게 되었던 것이오." 이보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그와 같은 점이 있었군요. 기실...... 저는 장래에 신녀문의 문주가 될 신분으로 키워졌기 때문에 일반의 제자들이 연성할 수 없는 옥녀심공 (玉女心功)과 소수마인(素手魔印)소수만화장(素手萬花掌)과도 같은 무공 들을 배울 수가 있었죠. 그밖에도 소수지(素手指)와 산운보(散雲步)여의부운신행 (如意浮雲神行)옥녀소심검결(玉女素心劍訣) 등의 무공을 배웠는데 당신은 혹시 무산에 얽혀있는 조운의 고사에 대해 서 알고 있나요?" 백리자성은 그녀가 자꾸만 다른 쪽으로 화제를 돌리려고 하는 것을 보 고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대체 이번에 이런 일을 하는 이유는 무엇이오?" 이보유는 그 말에 다소 길게 한숨을 내쉬더니 대답했다. "저는 어차피 그와 같은 일에 대해서 말하지 않을 수가 없겠군요. 기실 저는 어렸을 적부터 매우 엄격한 교육속에서 자라나게 되었는데 어느날 어머니가 강호에서 아주 잘생긴 미남자 하나를 데려다가 저와 하룻밤을 자라고 하는 것이었어요. 저는 아직 순결한 처녀이기 때문에 과와 같은 일을 도저히 할 수가 없었고 게다가 그와 같이 기생오라비와 같이 생긴 남자가 싫었을 뿐만 아니라 더욱이 그를 나중에 죽이는 일은 할 수가 없 었어요. 그것은 실로 사악한...... 본파에 유일하다고 할 수 있는 사악한 짓 이었죠." 백리자성은 이미 신녀문에서 후예를 낳는 과정이 바로 강호상에서 준수 한 젊은 남자를 데려다가 씨를 내리게 하고 죽여버리는 수법을 써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이번의 사고가 바로 그와같은 과정에서 빛어진 것 임을 알게 되었다. 소문주인 이산산도 그와 같은 일이 있었기 때문에 차마 일반에 공개하 지 못하고 나와서 그녀를 추적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보유는 두 눈에 다소 물기를 머금으며 말을 이었다. "저의 할머니와 어머니는 저에게 그야말로 깊은 은혜를 내리신 사람이 었지만 저는 사람으로 태어나서 결코 그 와 같은 금수만도 못한 짓을 할 수가 없었어요. 저는 어머니가 그 남자와 합방을 하라고 지정해 놓았던 그날에 무공수련을 하는 척 하면서 비밀통로를 이용하여 몰래 달아나 버 리고 말았죠. 다행히 저는 과거에 이 소백과 소홍을 알고 지냈었기 때문 에 이렇듯 무사히 그들의 손에서 벗어나서 자유를 쫓게 된 것이예요." 백리자성은 웃으며 물었다. "이번의 일을 후회하지는 않겠소? 그리고 지금과 같은 어린 나이로 혼 자서 산속에서 살 수가 있다고 하는 것이오?" 이보유는 다소 이상하다는 듯이 되물었다. "아니 그게 어째서 어렵다는 것이죠? 우리 신녀문의 조상이신 이한상 시조께서도는 처녀시절에 우리 무산에 이르러서 은거하며 문파를 세우셨 던 것이예요. 저라고 해서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은 없는 것이 아니겠어 요? 저는 반드시 혼자서 독립을 하고야 말겠어요. 원래 저는 혼자서 산속 에서 생활하는 것이 좋아서 많은 물건들을 준비해 두었던 곳이 있거든요 " 백리자성은 다시 물었다. "그래도 만약 그대의 어머니가 보고 싶어지지 않겠소?" 이보유는 고 개를 가로저었다. "물론 보고 싶어지기야 하겠지만 그래도 다시 그 곳으로 돌아갈 수는 없어요. 만약 당신의 아기를 갖고 간다면 그것은 문제가 달라지겠지만...... 당신은 시한부의 생명을 살고 있는 분이시니 구태여 내가 죽일 필요는 없는 것이 아니겠어요?" 백리자성은 합방을 한 이후에 죽여버린다는 신녀문의 규칙을 상기할 때 에 다소 섬뜩한 기분이 것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백리자성은 이미 사도백봉에 의해서 한번 살해를 당했던 것이나 다름이 없었기 때문에 이 여인들의 심정이 한번 악독해지면 다루기 어렵다는 것 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뭔가 다시 말을 하려고 하는 순간에 느닷없이 정신이 아득 해지고 심한 졸음이 엄습해왔다. 이보유는 그가 말을 계속해서 자신의 의도를 방해할까봐 혼수혈을 제압 했던 것이었다. "당신은 몸이 매우 허약하시니 잠깐 쉬시도록 하세요. 제가 모든 일을 처리해 드리겠어요. 참-당신의 이름은 뭐죠?" 백리자성은 희미해지는 의식속에서 느릿하게 겨우 입을 열어 대답했다. "백리자...... 성이 오......" 도대체 얼마의 시간이 흘러갔는지 그것을 알 수가 없었다. 아득하게 흐르는 시간속에서 백리자성은 문득 정신을 차리고 의식을 회 복하게 되었는데 문득 그의 육신이 몹시 무기력한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실로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백리자성의 병은 증세가 매우 심각하여 스스로의 치료를 하지 않는 한 은 하루도 버티기 어려운 상태였는데 무려 며칠간이나 계속해서 잠을 잔 것 같으니 말이었다. 이것은 물론 이보유의 실수였고 그녀가 이 백리자성이 가장 뛰어난 의 원이라는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워낙에 기운이 없어서 눈앞이 희미하게 보였지만 이내 자신이 하나의 동굴속에 상위에 누워있으며 이보유가 부근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보아하니 침상의 부근에는 진한 약냄새가 진동하고 자신을 치유하기 위 해 애를 쓰고 있는 것임을 알고 백리자성은 빨리 자신이 이보유를 볼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랬다. 만일 그렇게만 된다면 병세를 호전시킬 수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백리자성의 생각과는 달리 이보유는 무엇을 하는지 쉽게 돌아오지 않았 고 이내 그의 의식은 다시 희미하게 혼수상태로 빠져들어갔다. 백리자성은 실로 그 와 같은 상태에 접어들어가면 다시 깨어나기가 어 렵다는 것을 알고 내심 생각했다. "이것으로 나의 생은 끝인가?......" 다시 얼마의 시간이 흘러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백리자성은 혼미한 의식속에서 마치 기나긴 여행을 하고 있는 듯 하다 가 문득 기이한 충동과 함께 서서히 의식이 되돌아왔다. 그의 육신은 역시 과거보다 더욱 더 무겁게 굳어져 있었다. 이것은 바로 죽음 일보직전의 상태를 말해주는 것이었다. 그는 조 금도 움직일 수가 없다고 느꼈다. 그러나 이 순간 기이하게도 그의 신체의 일부분만은 심하게 흥분하여 날뛰기 시작하고 있었다. 바로 그의 아랫도리였다. 백리자성은 원래 어려서부터 몸이 극도로 허약하여 거의 남녀사이의 춘 정을 느끼지 못한 채 자라왔고 홍아와 청아와 같은 아름다운 소녀들이 옆에 늘상 붙어 있었어도 정욕을 느끼는 예가 지극히 드물었었다. 그런데 지금은 실로 말할 수도 없이 강력한 정욕을 느끼고 있었으며 마치 죽음 마저 초월하고 있는 듯이 강렬한 힘으로 폭발직전에 놓여 있었다. 그때...... 이보유의 다소 서글픈 듯한 음성이 들려왔고 이내 자신의 몸과 그녀의 희미하게 보이는 몸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백리가가! 당신은 실로 이제야 깨어나셨군요. 저는 어쩔 수가 없이 음 양화합산(陰陽 和合散)을 사용하게 되었어요. 당신이 이대로 죽어버리면 저는 외로와지 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당신의 애기를 갖기로 했어요" 뒤이어 이보유의 알몸이 그의 몸위로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백리자성은 비록 극도의 흥분속에 있었지만 역시 그의 이성은 한쪽에 침착하게 살아남아서 가벼운 탄식을 터뜨렸다. 음양화합산이 음약은 바로 과거에 아주 유명한 군자를 탕남으로 만들고 설혹 수십년을 수절한 여자라고 해도 일시에 탕녀로 만들 수가 있다는 지독하고도 위력적인 춘약이었다. 물론 그 자체는 독성을 지닌 것이 아니어서 위력이 시간이 갈수록 증대 되며 일주일이 지나게 되면 성욕이 그야말로 미칠듯이 증대되기 때문에 만일 그것을 해소하지 못하게 되면 전신의 피부가 갈가리 찢겨져서 죽게 되는 것이었다. 백리자성은 물론 그 와 같은 음약의 해소법을 알고 있었지만 지금은 꼼 짝할 수가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도저히 그것을 해소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몸이 극도로 쇠약해져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오히려 그와 같은 약력을 쉽게 이기지 못하고 체내의 정력이 한쪽으로 급속히 잘려나가고 있는 것이었다. 백리자성은 극도로 흥분된 쾌감속에서 혹은 아주 침착한 이성속에서 그 두 가지의 마음 가운데 실로 몇 번이나 이보유와의 정사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가 있었다. 이보유는 그와 같은 행위를 즐기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만 약 그가 죽게 되고 자신이 임신을 하지 못하게 될 것을 두려워했는지 체 력의 소모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그와의 그러한 정사를 했고 그것은 이 어 며칠이나 지속되었다. 원래 신녀문에서는 남자를 데려다가 씨를 내리게 하는 방법이 비전처럼 전해져 내려오기 때문에 이보유는 미리 이산산에게 그와 같은 방법들을 전수받았던 것이었다. 그녀는 비록 당시에는 그 방법대로 따르지 않고 거부했었지만 그 방법 을 유용하게 사용하여 임신이 되도록 하고 있었다. 그렇게 아마도 열흘 가까이나 흘렀을까? 이보유는 이제는 아마도 자신의 몸에 임신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는지 거의 흔수상태에 들어가 있는 백리자성에게 다시 음양화합산을 쓰지 않았다. 백리자성은 음양화합산을 복용하지 않게 되자 다시 몸이 죽은 듯이 무 거워지게 되었고 이내 깊은 수렁속으로 의식이 가라앉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다시 얼마의 시간이 흘러갔을까?" 문득 백리자성은 귀에 매우 낯익은 음성을 듣게 되었다. "요망한 것! 무림의 일대 영웅을 이와 같은 방법으로 매장하려고 하다니 " "음성은 바로 그가 생각하고 있던 그 사람의 음성인 것 같기도 하고 혹 은 다소 낯설게 들리는 것이기도 했다. 백리자성은 자신의 몸이 바로 그 말한 사람의 손에 의해 들려지는 것을 느끼고 다시 혼절속으로 빠져들어갔다. 극심한 통증 그것은 이미 그에게 있어서는 매우 낯익은 것이었고 전혀 생소한 것이 아니었지만 느닷없이 다시 그와 같은 고통을 당하게 되자 백리자성은 매 우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들게 되어 있는 것이었고 지금과 같은 극심한 고통은 일어나지 않게 되 어 있었다. 백리자성은 의식에서 깨어나면서 스스로의 의학적인 지식을 동원하여 자신의 거대한 힘이 스며들어와서 놀라운 기력을 충전시켜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러나 비록 지금과 같은 일이 놀라운 의술을 필요로 하는 고도의 상승 비법에 속하는 것이라고 해도 역시 그의 만절산맥을 고칠 수는 없는 것 이며 단지 그의 꺼져가는 생명의 불을 잠시 더 일으키고 있는 것에 불과 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 댓가로 느껴야 하는 고통은 실로 막대한 것이었지만 백리자성은 자 신이 하루의 해를 더 볼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그러한 고통을 오히려 반가운 느낌마저 들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마치 자신의 몸이 지옥의 유황불길 속에 들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얼 음속에 들어있는 것 같기도 했는데 마치 영겁과도 같은 시간이 흘러간 뒤에 문득 고통을 주던 그 거대한 힘이 물러가고 나자 백리자성은 눈을 뜰 수가 있었다. 비록 심한 고통은 전신에서 몰려들고 있었지만 이제는 시야가 매우 선 명해졌고 게다가 의식 또한 매우 뚜렷해졌다. 백리자성은 아직 자신의 몸이 이처럼 활력에 넘치던 때가 없었기 때문 에 아마도 어떤 뛰어난 의술을 지닌 사람이 자신의 몸을 치료했다는 것 을 알아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백리자성이 침상위에서 몸을 일으키자 문득 한명의 청수하게 생긴 백발 의 노인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보고 있다가 웃으며 이렇게 말하는 것 이었다. "실로 준재로다 그와 같은 고통을 참아낼 수가 있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 그러자 옆에서 문득 한줄기의 맑은 음성이 들려왔다. "그 만절산맥은 정말로 고칠 수가 없는 것인가요?" 바로 백리자성이 혼절속에서 들었던 그 낯익으면서도 낯설게 느껴지는 음성이었는데 그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한명의 담황색의 의삼을 걸친 소녀 하나가 그의 앞에 서 있었다. 그녀는 아주 키가 늘씬하고 매우 아름다운 용모였는데 문득 그의 시선 이 와닿자 가볍게 웃으며 인사하는 것이었다. "백리선생이렇게 다시 뵙게 되었군요" 담황색 의삼의 그 미소녀는 지금 남자의 음성으로 말했기 때문에 백리 자성은 문득 그녀의 원래의 신분에 대해서 알 수가 있게 되었다. 알고 보니 그 담황색 의삼을 입은 소녀는 바로 전에 백리자성과 오랫동 안 담론을 벌이기도 했었던 서생 심용이었던 것이었다. 아니 백리자성은 이제야 알게 된 일이었지만 기실 이 심용은 원래는 여 자였고 바로 그녀가 이보유에게서 자신을 구한 사람이며 당시에 그녀가 여자의 음성으로 말했었기 때문에 백리자성은 그녀의 음성을 들으면서도 다소 낯설은 느낌을 받았었던 것이었다. "만절산맥은 불치의 병 가운데에서도 가장 고약한 것이지혹시 전설의 신선이라는 대라금선(大經金仙)이 나타난다면 모를까 현실의 세상에서는 그것을 고칠 수가 없다." 백발노인이 그렇게 대답하자 담황색 의삼을 입은 심낭자는 다소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백리자성을 향해 이렇게 다시 말했다. "안됐군요. 당신의 병은 저의 할아버지도 도저히 고칠 수가 없다고 하시 니 고칠 수가 없겠어요." 백리자성은 문득 웃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당신이 바로 심용이오?" 심낭자는 웃으며 대답했다. "저의 이름은 원래는 심용이 아니라 심황진 (沈黃眞)이여요. 당신은 그 저 심낭자라고만 불러주시면 되는 거예요." 이에 백리자성은 우선 몸을 일으켜 심황진을 향해 포권하며 말했다. "낭자께서 저의 목숨을 구해주셨으니 감사드리는 바이오." 심황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 당신의 목숨은 구해졌다고 말하기가 어려워요. 당신의 병은 그야 말로 불치의 병이기 때문이죠. 게다가 당신을 이렇게 나마 치료해주신 분 도 제가 아니라 바로 이분 할아버지세요." 백리자성은 이에 그 백발의 노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포권하며 공손하게 물었다. "실례지만 제게 한 가지 떠오르는 기억이 있군요. 혹시 강호산인(江湖山 人)이 아니십니까?" 백발의 노인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말로 견식도 탁월하구나. 그렇다내가 바로 심홍기(沈洪基)이다." 강호산인 심홍기- 이 사람이 대체 어떤 사람이며 또한 나이가 몇 살이 나 되고 그의 능력이 어느 정도가 한계인가를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 지 않다. 분명한 것은 바로 그가 전날 백리자성이 들먹였던 천하의 여덟명의 초인들 가운데에 서 황산에서 살고 있는 그 한명의 초인이라는 사실이었다. 백리자성도 그저 부친의 유작에서 읽어보았을 뿐이었는데 이렇게 그를 직접 만나게 될줄은 몰랐다. 기실 이 황산의 성수곡(聖手谷)에서 살고 있는 강호산인 심홍기는 그 초 인적인 무예 외에도 의술이 거의 신의 경지에 이르러 있다고 하였는데백 리자성은 바로 조금 전에 그의 시술을 받았던 것이었다. 백리자성은 이미 자신의 병이 치유될 수 없는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 에 그와 같은 심홍기의 말을 듣고도 실망하지 않았다. "말학후진(末學後進)이 무림의 대선배님의 도움을 입게 되어서 여간 영 광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이곳은 그 럼 성수곡이겠군요?" 심홍기가 고개를 끄덕이자 심황진이 옆에서 말했다. 아마도 그녀는 그 심홍기의 후예쯤 되는 모양이었다. "나는 당신을 찾으러 돌아다니다가 며칠 전에 무릉산(武陵山)의 깊은 산 중에서 당신을 찾게 되었던 것이예요. 나는 거기에서 당신을 이리로 데려 왔던 것이죠" 심홍기는 이때 백리자성이 심황진의 말을 듣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고 미미하게 웃으며 방을 나가 자리를 비켜주었다. 백리자성은 이에 물었다. "이낭자는 어떻게 되었소?" 심황진은 웃으며 대답했다. "제가 당신을 보았을 때에는 그녀는 이미 당신의 자식을 얻기 위해 온 갖 노력을 다하고 있더군요. 아마도 그녀는 당신을 나에게 빼앗기게 되자 다시 신녀문으로 돌아가려는 것 같았어요." 백리자성은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모르긴 몰라도 근간에 이보유가 그를 간호하면서 심한 고생을 했을 것 이고 따라서 그녀가 다시 신녀문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생각은 틀림이 없 을 것이었다. 제25장 점창파로 돌아오다 백리자성은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물었다. "혹시 당시에 홍아와 청아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고 있소?" 심황진은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 "당신이 실종된지 지금 약 한달이 지난 상태이니 나도 그녀들의 행적에 대해서는 잘 알 수가 없어요. 당시 나는 그녀들의 연락으로 인해서 다음 날 아침부터 당신을 찾기 시작했었는데 곧장 그녀들과 헤어지게 되었지 요. 나중에 알아본 바에 의하면 그녀들은 그다지 화를 입은 것 같지는 않 았어요." 백리자성은 사도백봉이 약속을 지킨 것이라고 생각하며 다시 물었다. "그 나의 외사촌누이는 어떻게 되었소?" 심황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리는 당시 그녀가 당신을 데려간 것이라고 생각했었지만 감히 증거 를 찾지 못해서 그녀를 심문할 수가 없었어요. 그녀는 지금쯤 아마도 중 원에서 점창파의 제자들과 함께 일월신보를 치기 위해서 분주하게 움직 이고 있을 거여요." 백리자성은 의아해져서 물었다. "일월신보라니 그건 또 무엇이오?" 심황진은 웃으며 대답했다. "일월신보는 바로 일월신교가 중원에 설치해 놓은 여러개의 분타라고 할 수가 있지요. 사도낭자 등은 지금쯤 그 가운데의 한 곳에서 자신들의 육맥신검경을 보관하고 있다고 생각하고는 그곳을 치려고 하는 것 같았 어요." 백리자성은 물었다. "당신이 보기에는 어떤 것 같았소?" 심황진은 웃으며 대답했다. "당신의 질문은 교묘하게도 두 가지를 동시에 묻고 있군요. 사실 우리도 육맥신검경에 대해서는 약간의 관심이 있었지만 그다지 필요한 무학은 아니라고 봐요. 현대의 무학은 과거의 무학에 비해서 훨씬 우수하게 발달 을 했거든요. 특히 본곡의 선천오행검철만 해도 그 육맥신검경에 비해서 아주 뛰어나게 우수한 것이예요. 마치 어른과 아이들과의 차이와도 같은 것이죠." 백리자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그럴 것이오"" 심황진은 다시 말했다 "두번째의 답변을 드리죠. 제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확실히 그 육맥신검 경은 그 일월신보에 보관되어 있어요. 그들은 기실 그 무공비급들이 소용 이 없는 것이죠. 그러나 과연 그 사도낭자가 비급을 되찾게 될지는 미지 수의 일이예요." 백리자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그럴 것이오." 심황진은 미소하며 백리자성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문득 물었다. "내가 대답을 했으니 이제는 당신이 나의 질문에 대답할 차례가 아닌가 요?" 백리자성은 이미 그녀가 무엇을 궁금하게 여기고 있는 것인지 알고 있 었으므로 고개를 끄덕여 대답했다. "물어보시오." 심황진은 물었다. "대체 당신은 어째서 그와 같이 갑자기 실종되게 되었던 것이죠?" 백리자성은 이에 솔직하게 그간의 사정을 설명해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심황진은 그 설명을 듣고 나더니 안색이 다소 싸늘하게 변해서 말했다. "그 사도낭자는 그야말로 맹랑한 아가씨로군요. 나는 그래도 당신을 생 각하여 상당히 좋게 보려고했었는데...... 감히 당신에게 그 따위로 손을 썼다니 이는 정말로 어이가 없는 노릇이로 군요." 백리자성은 그녀의 어조에 다소의 살기가 어려있는 것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그 일에 대해서는 나에게도 약간의 책임이 있었던 것이니 앞으로 그녀 의 일에 관해서는 신경을 쓰지 마시기 바라오." 심황진은 냉랭하게 코웃음을 쳤다. "당신은 여전히 마음 좋게 그녀를 비호하는 군요. 대체 당신이 애써서 그녀를 비호해야할 이유가 뭐죠?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혹시 그 이낭자 가 당신을 데려갔던 것이 아니었나 하고 오해를 했었어요." 백리자성은 심황진이 자신에게 그 만큼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화 를 내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웃으며 말했다. "그것도 나의 천성이니 당신에게는 미안할 뿐이오." 심황진은 다시 코웃음을 쳤다. "당신의 천성에 대해서 나에게 굳이 미안하다고 사과할 필요는 없는 것 이죠." 백리자성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그렇기도 하군" 심황진은 잠시 그를 바라보고 있다가 문득 물었다. "이제 당신은 어떤 일을 하고 싶은 것이죠?" 백리자성은 그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기실 백리자성은 이미 죽음을 대비하고 삶은 거의 정리한 상태이기 때 문에 정작 앞으로의 일을 생각해 보니 해야할 일이 없는 것 같았다. 다만 한 가지 일이 있다면 홍아와 청아의 거취문제를 알아보는 일과 그리고 역시 사도백봉의 장래에 관한 걱정 등이었다. "혹시 홍아와 청아가 돌아왔을지도 모르는 일이니 점창파로 한번 가볼 까 하오." 심황진은 싸늘하게 웃었다. "그녀들은 아마도 다시 점창파로 돌아오지는 않을 거예요. 당신은 아마 도 그 사도낭자를 잊지 못해서 그러는 거죠?" 백리자성은 속이지 못하고 웃으며 말했다. "이것은 나의 천성인 것 같소. 나는 사실 이미 하고 싶은 일을 다했기 때문에 홍아와 청아가 다시돌아오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는 것 이 더욱 좋은 일이오. 나는 이 여분의 삶을 이미 나와 그러한 인연이 있 는 사람들을 위해 펴볼 생각이오." "......." 심황진은 다소 못마땅하기는 했으나 여전히 깊고 고요한 백리자성의 눈 빛을 바라보며 다소 생각하는 듯했다. 그러다가 불쑥 말했다. "좋아요...... 그렇다면 그 곳까지는 내가 데려다 주도록 하겠어요." 백리자성은 이에 정중하게 그녀를 향해 포권했다. "낭자의 은혜는 깊이 받아들이도록 하겠소." 비록이제는 백리자성이 스스로 마차를 탈 수 있는 상태가 되었지만 황 산에서 중원의 찬 일월신보까지 가려면 많은 시일이 걸릴 것이고 또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기 때문에 다시 심황진의 도움을 받기로 한 것이었다. 인사를 받는 심황진의 입가에는 언뜻 미미한 웃음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성수곡의 지형은 매우 기이하여 사람이 살기에는 아주 좋은 곳이었고게 다가 환자가 살기에는 더욱 훌륭한 곳이었다. 그러나 백리자성은 성품이 그러한 곳에서 남의 도움을 받으며 오래살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금새 심황진을 재촉하게 되었고 이삼일도 지나지 않아서 성수곡을 출발하여 일월신보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당금에 있어서 일월신교는 드디어 그 교세를 크게 확장하여 중원에도 여러개의 분타를 건립하게 되었는데 사도백봉등이 도착하여 노리고 있는 분타는 동정호의 군산에 있는 호남성의 분타였다. 심황진은 마차를 빌려서 때로는 그녀가 잠을 자면서 나아가기도 했고 때로는 백리자성의 몸을 안고서 그 놀라운 신법을 펼쳐서 나아가기도 했 다. 그리하여불과 며칠이 지나지 않아서 백리자성은 드디어 점창파의 제자 들이 은밀하게 머물고 있는 한 악양의 객점에 도달할 수가 있었다. 이 악양에는 천하에서 유명한 악양루라는 찻집이 있다. 그러나백리자성은 심황진과 함께 전혀 그러한 곳에 들러볼 엄두도 내지 못하고 곧장 점창파의 제자들이 머물고 있는 도화객점으로 찾아갔다. 마침 점창파의 제자들은 객점의 별채를 모두 빌려서 그 곳에서 몸을 숨 긴 채 상처를 치료하고 있다가 느닷없이 점원의 안내로 나타난 백리자성 과 여장차림의 심황진의 얼굴을 보고는 다함께 크게 놀라는 표정이었다. "아니...... 백리선생! 어떻게 이곳으로 오셨습니까?" 여문량이 먼저 그를 알아보고 놀라 말하며 다가왔다. 백리자성이 고개를 돌리며 안을 살펴보니점창파의 제자는 지금 네명의 수석호법과 서너명의 호법들 그리고 단지 십여명의 제자들이 있었을 뿐 이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깊은 부상을 입고 있는 상태였다. 그야말로 눈으로 보지 않았어도 그간의 좋지 않은 상황과 악전고투의 흔적을 찾을 수가 있을 것 같았다. "그간 잘 있었소 ?......" 백리자성이 다가가서 여문량의 손을 잡아주자 문득 여문량은 다소 착잡 한 심정을 보이며 말했다. "우리는 모두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장문인대행을 한번 만나보시겠습니 까?" 아마도실종된 당시의 일을 묻지 않는 것을 보니 여문량 등은 대강 백리 자성이 어떻게 해서 실종되게 되었는지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백리자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만나보아야 하겠지요." 점창파의 제자들은 이때 다소 기이한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대부분이 그의 출현을 반가와하는 눈치였고 게다가여문량을 비롯한 수석호법 네명 은 상당히 그의 출현을 기뻐하는 표정이었다. 백리자성은 그러한 그 들의 표정을 보고 실로 그간의 많은 변화를 나타 내고 있는 것 같아서 숱한 감회가 오가는 것 같았으나 이내 사도백봉과 만나보기 위해 안쪽으로 걸음을 옴겨갔다 바로 그 때였다. 돌연 그의 눈앞에 매우 낯익은 느닷없이 눈앞에 한줄기의 백색의 바람 이 이는 것 같더니 한 사람이 나타났다. 바로 사도백봉이었다. 그녀는 잠시 백리자성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뒤에 서 있는 심황진을 알 아보지는 못하는 모양으로 다소 기이한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말했다. "당신...... 당신은 돌아왔군요." 그 말의 의미는 상당히 복잡하다고 할 수가 있었다. 일면- 놀랍다는 표현도 있을 것이고 또한 불가사의하다는 것과 또한 매우 끈 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는 감탄성 그리고 상대방에 대한 증오의 감정 도 있을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사도백봉의 표정에는 거의 아무런 감정도 깃들어 있지 않은 것 같았다. 무심한 표정이 그녀의 눈빛과 어조에서 흐르고 있었고 그것은 극도의 냉랭함으로 느껴져서 백리자성의 가슴을 갉아먹어가는 것 같았다. "역시 내가 이곳에 오는 것이 아니었나?" 백리자성은 불과 조금전까지만 해도 점창파의 제자들을 보는 순간에 자 신이 이곳에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런데 지금 사도백봉의 무심하도록 싸늘한 표정을 보고는 자신의 행동 에 대해서 회의감을 품게 되었던 것이었다. 사도백봉은 그간에 매우 달라져 있었다. 우선 그녀의 눈빛에 아주 예리한 광채가 흐르고 있어서 내공이 절정의 수준에 이미 도달한 것 같았고 조금전의 신법으로 보아 그것은 역시 절 정에 도달한 일월신교의 신법인 것 같았다. 이 일월신교라고 하는 것은 그 교도들이나 그렇게 부르는 것이지 강호 상에서 불리우는 이름은 기실은 마교라는 것이다. 대체 사도백봉의 무공이 그와 같이 마공을 연성하고 높아졌다면 어떠한 상태에 있는 것인지 궁금해 졌을 뿐만 아니라 백리자성은 전에는 다소 걱정스럽기도 했었으나 이제는 그녀의 얼굴이 멀쩡한 것을 보고 안심을 하며 이렇게 생각했다. (차라리 그때 내가 그녀에게 속성의 다른 무공을 전수해줄 것을 그랬었 던 것이 아니었을까?) 물론당시에도 이미 사도백봉이 좌염기의 무공비급을 가지고 있었을 것 이니 설령 백리자성이 속성의 다른 무공을 전수해 주었다고 하더라도 그 녀는 역시 가장 빠르게 성취할 수 있는 그 마공을 선택했을 것이 틀림이 얼을 것이었다. 백리자성은 다소 감회에 젖어서 떨리는 어조로 물었다. 그의 어조에 조금도 악감이 깃들어져 있지 않은 것을 보고 사도백봉의 표정이 다소 움직이더니 말했다. "나는......당신이 돌아온 것이 반가와요." 순간 백리자성은 그녀의 말을 듣고 다시 마음이 바뀌었다. 그녀에게서 반갑다는 소리만 들을 수가 있다면 역시 그가 점창파의 사 람들에게 돌아온 것은 가치가 있는 일인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고맙소외사촌누이" 백리자성이 그렇게 웃으며 말하자 사도백봉은 이차 고개를 돌려 여문량을 바라보며 말했다. "여수석호법은 어서 그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쉴 곳을 정해 하세요." 이어 백리자성에게 물었다. "당신은 아마도 우리와 함께 지내기 위해 온 것이겠지요?" 백라자성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나는 실로 다시 돌아온 마당에 나의 전력을 다하여 점창파의 일에 한번 매진해 볼 생각이오." 백리자성의 말에 점창파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아도 어느 정도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표정이 즉시 밝아졌다. 사도백봉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신법을 펼쳐서 안으로 들 어가 버리고 말았다. 사도백봉이 안으로 사라져 버리자 문득 여문량은 백리자성의 손을 잡으 며 반갑게 다가와서 말했다. "백리선생! 당신이 다시 우리의 곁으로 오게 되다니...... 이는 정말로 우 리의 복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이모화와 황종보그리고 전백승 등도 다가와서 웃는 얼굴로 인사를 했다. 백리자성은 우선 그 들의 신체가 아직도 심한 부상을 당하지 않아서 어 디 한곳 부러지거나 잘려나간 곳이 없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실 점창파에 있어서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인재들이라고는 그 들 네 명밖에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점창파의 다른 제자들은 백리자성과 사도백봉과의 대화의 내용을 들었 기 때문에 저마다 부상당한 몸을 이끌고 다가와서 식사를 차려주는 등의 일을 해 주었다. 백리자성은 그 들 점창파의 제자들과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우선은 그 들의 상세를 살피느라고 미처 뒤에 서 있던 심황진을 그 들에게 소개시 키지 않았었는데한참 후에 뒤돌아보니 그녀는 어디로 가버린 것인지 보 이지 않았다. (......?) 백리자성은 그녀가 자신을 기다리다 못해서 돌아간 것이라면 그것은 그 녀에게 있어서 매우 미안한 노릇이지만 실로 그녀의 모든 은혜는 그와 같은 말로서는 갚을 수가 없는 것이기에 그는 그것은 이 생애에 모두 갚 을 수가 없어서 내세에서나 갚아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백리자성에게는 비록 약상자나 금침 따위의 물건들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지만 점창파의 구급약들이 있었기 때문에 한번 그의 손길이 닿자 당 장에 병세들이 호전을 보이기 시작하여 많은 제자들이 매우 좋아하는 표 정들이었다. 백리자성은 한참동안 식사도 잊을 정도로 그 들을 보살피다가 문득 여 문량이 조용히 자신을 향해 손짓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밖으로 걸어나 갔다. 여문량은 백리자성을 이끌고 도화객점의 건너편에 있는 한 주루로 데려 갔는데그 주루에는 이미이모화와 황종보 그리고 전백승이 와서 술을 마 시며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였다. 백리자성은 그 들 네명이 이렇게 모여 있는 것을 보고 아마도 그들이 긴히 자신에게 할 말이 있는 것이라 고 생각했지만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고 말했다 "여러분들이 저를 이토록 중히 여기시고 대접을 잘 해 주시니 저는 앞 으로 그저 마음을 다해서 여러분들을 도와드릴 것을 약속드립니다" 그 말에백리자성이 자리에 앉자 문득 주위를 둘러보던 황종보가 일어나 서 술을 따라주며 입을 열었다. "백리선생께서는 어째서 그와 같은 아까운 재주를 가지고 계시면서 썩 이고 계시는 것입니까? 설령 한 일 년밖에 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선생 의 경우라면 우리 점창파를 위해서 정말로 좋은 일을 할 수가 있을 것입 니다. 만일...... 선생이 장문인이 되는 것을 허락하신다면 저희들은 모두 선생을 추대하겠습니다" 백리자성은 평소에 거의 말이 없는 황종보의 어조가 매우 직선적인 것 에 매우 놀랐다. 상황은 그렇다면 그가 예상하지 못했을 정도로 심각하게 흐르고 있는 것이라는 말인가? 그러나 백리자성은 여전히 겉으로 내색하지 않고 말했다. "제가 만일 필요가 있는 상태라면 점창파의 앞날을 위해서 얼마 남지 않은 신명을 바치는 것이야말로 영광된 일이겠지요. 그러나......지금은 점 창파에는 장문인이나 다름이 없는 대행이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제가 어 떻게 그럴 수가 있겠습니까?" 그말에 이모화가 문득 자신의 앞에 놓여 있는 술잔을 들어 단숨에 들이 키며 쓰디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백리선생...... 우리가 지난 한 달동안 어떤 생활을 해왔는지 아십니까? 허허...... 그야말로 한번 결심한 마음을 돌이킬 수가 없어서 계속 본파에 머무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만일 선생께서 돌아오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아마도 내일 아침에는 본파에 남아있지도 않았었을 것입니다." 백리자성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혹시 점창파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습니까?" 이모화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무슨 일이 왜 없었겠습니까? 선생께서 갑자기 실종이 되시고 난 뒤의 일이었습니다. 그때부터 기이하게도 본파의 제자들이 하나씩 사라지 기......" "처음에는 우리는 그것이 외부인들의 소행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기실은 어느날 발견된 제자의 시신을 베어보니 그 시신의 내부가 텅 비 어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백리자성은 다소 안색이 급변했다. "그렇다면 그것은...... 그것은 바로 일광수에 당했다는 말이오?" 이모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당시에도 역시 외부인들 특히 마교집단의 소행인 것으로만 생 각했었습니다. 그런데 근래에 들어서는 제자들이 부상을 입어 거의 죽어 가게 되면 반드시 내장이 녹아서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선생께서는 저 희들이 어째서 이와 같은 부상을 입었는지 아십니까?" 백리자성은 물었다. "그건 마교인들과 상대하느라 그렇게 되었던 것이 아닙니까?" 이모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겉으로 본다면 그렇습니다. 우리는 거의 매일같이 일월신보의 사 람들과 싸워왔지요. 그러나 기실은 우리는 동정호 군산에 있는 일원신보 의 구경도 못해보 고 있는 실정입니다." 백리자성은 의아해져서 물었다. "그렇다면 그 싸움은 이쪽에서 걸어갔던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쪽에서 걸어왔던 것이었다는 말입니까?" 이모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들은 이곳에 도착한 이후에 계속해서 끊임없이 마교도들의 습격을 받고 있습니다. 그들의 습격은 그야말로 용의주도하여 우리가 전혀 반격 을 할 수 없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부상을 당하는 숫자 역시 거의 일정하게 정해져 있는 것입니다." 백리자성은 의아해져서 물었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일광수를 전개하기 위해서 점창파의 제자들을 일부 러 다치게 하고 있다는 말입니까?" 이모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 사람은 처음에는 은밀한 수법으로 일광수를 전개했으나 이제는 거의 공공연히 제자들을 부상입혀서 그 공력을 흡수하고 있는 것 입니다. 그리고...... 어제는 바로 오대호법 가운데의 한 사람이 부상을 입 고서 그와 같은 방법으로 죽었습니다." (......!) 백리자성은 안색이 창백하게 굳어졌다. 생각보다도 이 현실은 아주 좋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절망적이었다. 어찌하여 사도백봉이 그토록 다급한 방법을 쓰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 었지만 자신의 제 자들의 공력을 흡수하려고 하다니 그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백리자성은 할 수 없이 물었다. "그렇다면 대체 그 혐의자는 누구라는 말이오?" 전백승이 옆에서 묵묵히 듣고 있다가 대답했다. "사람은 근래에 들어서 전혀 부상을 입지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불과 한 달전만 해도 무공이 형편이 없었으나 지금은 가히 절정의 고수로 둔 갑해 있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이미 선생께서도 만나보셨으니 잘 아실 것입니다." 이윽고여문량도 입을 열었다. "저희들은 이미 선생께서 어떠한 경로로 해서 실종이 되셨던 것인지 대 강의 사정을 눈치채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마각이 드러나는 것이 두려워서 우선 당신부터 제거하려고 했었을 것입니다." 백리자성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럼 나의 외사촌누이가 그 주범이라는 말이오?" 이모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선생께서도 이미 잘 알고 계시는 일이 아닙니까?" "......." 백리자성은 잠시 멍하니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겼다. 이 일은 점창파의 미래를 위해서 아주 중요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또한 자신의 외사촌누이인 사도백봉의 일이기도 했다. 여문량이 옆에서 그것을 보며 다시 말했다. "그녀는 비단 우리 점창파의 제자들을 말살하려고 했을 뿐만 아니라 당 신마저 해쳤던 사람입니다. 기실 그녀는 우리마저 해치지는 않을 것입니 다. 그녀는 실로 점창파의 내일을 위해서 고심을 하고 제자들을 해치고 그 공력을 흡수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의 그러한 방법은 아주 틀린 것입니다. 설령 그녀가 그것으로 인해서 무공이 더없이 높아지게 된 다고 해도 우리 점창파의 미래는 결코 좋아지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그녀 한사람으로 인해서 멸망의 길을 걷게될 수도 있는 일이겠죠." 백리자성은 그를 향해 물었다. "차라리 그녀를 지금이라도 교화를 시켜서 좋은 길로 유도하는 것이 어 떻겠습니까?" 여문량은 다소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다가 말했다. '우리는 이모화의 말 그대로 선생께서 오시지 않았다면 내일 아침에라 도 본파를 떠날 결심이었습니다. 마교의 오명을 뒤집어쓰게 된다면 결코 무공이 높아지더라도 감당할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선 생께서 돌아오시게 되어서 저희들은 희망을 걸게 되었던 것입니다." 백리자성은 다시 물었다. "이 일에 있어서 다른 방도는 없는 것이오? 나는 사실 그 외사촌누이에 게 사심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기왕이면 그녀가 잘 되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오...... 나는 기실 여러분들 가운데에서 한 사람이 그녀와 짝이 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소. 나는 오직 그녀와 여러분들 그리고 점창파가 잘 되어 나가기를 바라는 마음 뿐이오." 백리자성의 말에 여문량이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녀의 공력이 이미 호법의 공력을 흡수할 수 있을 만큼 높아졌습니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그 마교의 무공은 공력이 높아질수록 자제하기가 어 려운 것이며 한번 시작한 무공은 도중에 그만둘 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앞으로 선생께서는 조심하셔야 할 것입니다" 제26장 사악한 마교무학 여문량의 말은 앞으로 사도백봉이 다시 백리자성을 제거하려고 할 수도 있다는 말이며아니 거의 반드시 그렇게 할 것이라는 말이었다. 그러나 백리자성은 기왕에 자신의 목숨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말에 개의하지 않았다. "그녀의 일은 제가 한번 애를 써보겠습니다. 만일 그래도 되지 않거든 여러분들께서 마음대로 행동해 주십시오. 그건 그렇고...... 여러분들은 이 미 육맥신검경이 군산의 일월신보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전백승이 다소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 "저희들은 다만 그 말만을 들었을 뿐 아직 전혀 그 곳으로 검경을 찾으 러 가지도 못한 상태입니다." 백리자성은 그가 다소 분개하는 표정을 보 고 웃으며 달랬다. "자자여러분들이 그와 같은 심정을 조금씩만 양보를 하시고 잠시만 기 다려 주십시오 앞으로는 일이 잘 되어 갈 것이며 점창파의 앞날이 밝아 지도록 할 것입니다." 원래 이 점창사수는 백리자성에 대해서 남다른 신뢰감을 느끼고 있었 는데다가 이제 그가 다시 살아돌아오자 그의 말을 전적으로 믿게 되었다. 만일 그와 같이 현명한 사람이라면 한번 당한 일은 다시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였다. 그러나 기실은 그 들의 생각은 틀린 것이었다. 지금의 백리자성의 심정은 다시 그 일을 당하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라 전혀 그러한 것을 개의하지 않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어찌 그 들이 알 수가 있겠는가? 백리자성은 기왕에 자신의 목숨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다시 그녀에게 당한다고 해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었다. 어쨌든그리하여 일단 점창사수의 마음은 가라앉게 되었고 백리자성은 그러한 그들의 심사를 알아차리고 먼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우리가 이렇게 모두 나와있는 것을 알게 되면 그녀가 혹시 무슨 다른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먼저 들어갈 것이니 여러분 들께서는 그 냥 이렇게 계속 노시다가 들어오시도록 하십시오." 백리자성이 먼저 몸을 일으켜서 도화객점으로 돌아왔을 때에는 점창파 의 제자들은 대부분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백리자성에 의해서 많은 부상들이 치료되었기 때문에 점창파의 제자들 은 다소 사기가 올라가 있는 모습들이었다. 그런데백리자성이 마악 사도백봉의 방으로 가서 이야기를 나누려고 하 는데 문득 점창파의 제자 하나가 그의 곁으로 다가오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여수석호법께서 쉽고 싶으시답니다. 저를 따라오십시오!" (여문량이?) 백리자성은 혹시 여문량이 아까 주루에서 하지 못했던 말을 이곳까지 따라와서 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그 점창파의 제자는 얼른 몸을 돌려 앞의 객방으로 향했기 때문에 백리 자성은 역시 빠르게 그 뒤를 따라갔다. 그런데 그 점창파의 제자는 하나의 객방의 방문앞에 이르러 백리자성을 바라보더니 이렇게 말하며 기이하게 웃는 것이었다. "저는 더이상 이곳에 있을 수가 없습니다. 선생께서는 어서안으로 들어 가 보십시오!" 백리자성은 여문량이 아마도 그 객방의 안에 있는 것이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점창파의 그 제자가 기이하게 웃고 사라져간 이유를 알지 못하 고 있다가 이윽고 천천히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 백리자성은 일단 안으로 들어가서 방문을 다시 닫고 몸을 돌려서 내부 를 바라보다가 문득 다소 놀라소 몸이 굳어졌다. 침상의 위지금 그 곳에는 여문량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느닷없이 여문량이 아닌 백의를 걸치고 있는 소녀가 등을 돌리고 앉아 있는 것이 었다. 백리자성이 다소 멈칫하고 놀라와 하자 그 소녀는 역시 고개를 돌렸는 데 바로 사도백봉그녀였다. 순간 백리자성은 그제서야 조금전의 그 제자가 기이하게 웃었던 의미를 알 수가 있을 것 같았다. 그 제자는 바로 사도백봉의 지시를 받고 자신을 이리로 유인했던 것이 었으며 필시 그와 사도백봉이 방안에서 정분을 나눌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백리자성은 다소 섬뜩한 기력이 들었으나 이내 마음을 가라앉히고 웃으 며 입을 열었다. "외사촌누이가 나를 불렀던 것이었소? 그래나에게 긴히 무슨 할 말이라 도 있는 것이오." 그 말에 사도백봉은 입가에 기이한 웃음을 띄우며 말했다. "당신이 생각하기에는 어떤 일인 것 같아요?" 백리자성은 다소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대는 나를...... 나를 죽이기 위해 불렀다는 말이오?" 사도백봉은 싸늘하게 웃었다. "당신은 어지간히도 나를 놀라게 하는 사람이더군요. 나는 아까 당신의 얼굴을 본 순간 그야말로 귀신의 얼굴을 보고 있는 것 같아서 심장이 멎 어버리는 줄 알았었어요. 그래서 한가지 결심을 하게 되었죠." 백리자성은 씁쓸히 물었다. "그건 무슨 결심이오?" 사도백봉은 냉랭하게 웃으며 말했다. "전에는 어두운 밤에 벼랑에서내던져서 그렇게 되었지만 지금은 눈앞에 서 시신을 난도질을 하는데도 과연 당신이 다시 살아날 수가 있을까 하 는 것이었죠.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요?" 백리자성은 쓸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물론 나는 그렇게 하면 살아날 수가 없소내가 전에 살아날 수가 있었 던 것은 마침 신녀문의 소군주가 그 곳의 동굴에서 숨어있다가 우연히 구해주었기 때문이었소." 사도백봉은 싸늘하게 코웃음을 쳤다. "나는 혹시 그 대에게 무슨 용을 빼는 재주가 있는 줄로만 알았더니 이 제 알고 보니 결국 운이 좋아서 살아났던 것이었군요. 그렇다면 어디 이 번에도 운을 한번 시험해 보도록 해요." 사도백봉은 말과 함께 즉시 손을 쓰려는 듯이 천천히 우수를 앞으로 내 밀었다. 그러자일순 그녀의 우장에서는 마치 달빛과도 같은 희뿌연 기운이 한꺼 풀의 막처럼 일어나서 소리없이 백리자성의 면전으로 덮쳐오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일월신교 의 무공중의 하나인 월영인이라는 장법이었다. 이 무공은 실로 교묘하여 비단 시전할 때에 발출하는 소리가 나지 않을 뿐만 격중되어 죽은 시신은 내장이 토막나게 되지만 겉으로는 전혀 표시 가 나지 않는 것이었다. 만일 누구라도 그 시신을 검으로 잘라보지 않는다면 심장마비가 되어 급사한 것으로 밖에 볼 수가 없는 것이었다. 백리자성은 사도백봉의 월영인이 소리없이 자신의 앞으로 다가오는 것 을 보고 내심 놀라서 말했다. "외사촌누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가 없겠소? 나는 앞으로 전적으로 그대의 말을 들을 것이며 결코 거역하지 않을 것이오. 나의 남은 생애를 걸고 맹세하겠소! 우리가 함께 힘을 합친다면 더욱 좋아지지 않겠소?" 사도백봉은 백리자성의 말에 다소 주춤하는 듯 하더니 싸늘하게 웃으며 말했다. "당신의 그 맡은 이미 늦었어요. 나는 이미 일월흡성대법이 절정의 경지 에 이르러서 설사 육맥신검경이 아니더라도 앞으로 충분히 그이상의 능 력을 쌓을 수가 있을 것이고 또한 점창파를 잘 이끌어갈 수가 있을 거예 요. 흥! 당신이 비록 아까 그 들 점창사수와의 대화에서 나를 두둔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죽이지 않을 수는 없어요. 나는 어쩔 수 없이 이제 그 들마저 죽이기로 했어요." 사도백봉은 알고 보니 아까 백리자성과 점창사수의 대화를 엿들었던 모 양이었다. 백리자성은 그와 같은 말을 듣게 되고 다시 사도백봉의 월영인이 느릿 하게 자신의 가슴 앞으로 덮쳐드는 것을 보 고 일순 암담한 생각이 들어 서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는 그저 이것이 자신의 최후라고 생각하며 눈을 감으려고 했다. 월영인에 격중되는 순간에는 심장의 박동이 그대로 멎어버리며 급사를 당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순간의 일이었다. 느닷없이 자신의 앞가슴으로 밀어닥치던 그 달빛과도 같은 한꺼풀의 희 뿌연 막이 돌연 거짓말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백리자성은 그것을 보고 감으려던 눈을 더욱 크게 떴다. 이와 같은 현상이 일어날 수 있는 경우라는 것은 오직 하나밖에는 없었 다. 지금 누군가가 은밀하게 자신을 보호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녀가?) 백리자성이 내심으로 그와 같이 생각하는 순간에 문득 사도백봉 역시 뭔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즉시 쌍장을 일으켜 그의 면전을 향 해 퍼부어왔다. 번쩍! 일시에 햇살이 찬란하게 일어나듯이 백리자성은 자신의 눈앞이 온통 밝 은 광채로 뒤덮이는 것을 느꼈다. 이것은 바로 일월신교의 무공 가운데의 일광수라는 것으로 전적으로 상 대의 내장을 녹여서 공력을 흡수하는 방법이었다. 가장 패도적인 무공인데 사도백봉은 지금 그의 공력을 흡수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가 느닷없이 기이한 무공을 펼치고 있다고 판단하고 엉겁결에 최강의 수단을 전개하고 있는 것이었다. 만일이 일광수에 걸리게 되면 그 사람은 즉시 정신을 잃고 혼수상태에 서 내장이 마치 불에 녹아버리듯이 사라지며 죽음을 당하게 되는 것이었 다. 헌데 바로 그 때였다. "흥!" 한줄기 싸늘한 냉소와 함께 백리자성의 몸앞에 마치 환상처럼 나타나는 하나의 인영이 있었다. 원래 그 일광수는 그야말로 쾌속하여 즉시에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수 법이었는데 지금 나타난 사람의 신법은 그야말로 그 수법보다도 빨라서 마치 환상적인 빛을 가르고 밝은 기운을 심어놓고 있는 것과도 같았다. 백리자성은 미처 그 일광수의 밝은 빛 때문에 앞을 분간할 수가 없었는 데 그 한줄기의냉소가 터진 다음에는 갑자기 불이 꺼지듯이 일광수의 빛 이 사라지고 사도백봉의 신형이 뒤의 침상위로 뒹구는 것이 보였다. 그렇다! 지금 이 순간에 나타나 극적으로 백리자성의 목숨을 구해준 사람은 다 름이 아닌 심황진 그녀였다. 백리자성은 이미 돌아간 줄로만 알았던 그녀가 기실은 자신의 몸을 은 밀히 지키고 있다가 그와같이 구해준 것을 알고 내심 크게 기쁨과 함께 감회를 느꼈다. 심황진은 그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다소 비웃들이 물었다. "당신은 이래도 그녀를 두둔하겠어요?" 심황진은 손가락으로 사도백봉의 쓰러져 누워 있는 몸을 가리키고 백리 자성이 바라보니 침상위에 쓰러져 누워 있는 사도백봉의 몸은 이미 입가 에 한줄기의 선혈을 흘리고 있었으나 그리 부상을 입은 것 같지는 않았 다. 백리자성은 이에 기뻐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녀를 두둔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는 점창파의 장문인대행의 신분이니 함부로 대하지 마시오. 부탁이오." 심황진은 다시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역시 당신은 그런 면에 있어서는 말할 수도 없이 우유부단하군요. 눈앞 에 보이는 저 여자가 어디가 곱다고 그렇게 좋은 마음을 쓰는 것이죠? 좋아요! 일단 당신의 말대로 살려주기는 하겠어요. 하지만 그녀는 일단 일광수를 전개하다가 나에게 되돌림을 받게 되어서 전신의 공력이 폐쇄 되었으니 아마도 앞으로는 그 일월습성대법을 연성하기가 어려울 것이예 요." 그말에누워있던 사도백봉 뿐만 아니라 백리자성 역시 크게 놀랐다. 사도백봉은 마치 소스라치게 놀라서 기절할 듯한 표정이었지만 백리자 성은 이내 도리어 기쁜 표정이 되어 말했다. "그렇다면 잘 되었소! 앞으로 내가 그녀를 치료해서 다른 좋은 무공을 배우도록 해 보겠소!" 백리자성의 그 말은 물론 진심이었다. 그러나 과연 지금 거의 기절할 정도로 놀라 누워서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는 사도백봉이 과연 그의 말을 들어줄 지가 의문이었다. 백리자성은 즉시 몸을 움직여서 사도백봉을 일으키며 말했다. "자외사촌누이! 그만 처소로 돌아가도록 합시다. 내 나중에 치료를 하도 록 하겠소!" 그러자 잠시 멍하니 생각엔 잠겨 있던 사도백봉은 문득 싸늘하게 코웃 음을 치더니 즉시 그의 손을 뿌리치고 밖으로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비록 느닷없이 무공을 상실당하여 평범한 사람과도 같이 되었지만 그래 도 그녀의 힘은 허약한 백리자성이 당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 사도백봉이 사라지고 나자 백리자성은 더이상 감격을 참을 수가 없어서 즉시 심황진에게 다가가서 그녀의 손목을 덥석 잡고는 말했다. "고맙소! 정말로 고맙소." 심황진은 느닷없이 그가 자신의 손목을 그처럼 잡아버리자 다소 안색이 붉어지는 모습이었다. 지난날 백리자성을 치료하는 도중에 심황진은 그의 손목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한 곳에도 손을 대게 되었었지만 그 때의 상황은 워낙에 생사 를 가름하는 시기었고게다가지난 며칠동안 그녀가 거의 그의 몸을 안고 오다시피 했었지만 그것 역시 그녀의 뛰어난 무공으로 별다른 접촉이 없 었다고 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만일 그녀가 놀라운 무공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백리자성의 손을 피하려고 했으면 피할 수가 있었을 것인데도 피하지 않고서 다시 새삼스럽게 안색을 붉히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그러나백리자성은 워낙에 심정이 굳어져 있어서 미처 그런 그녀의 마음 을 잘 알지 못하고 있었다. 심황진은 그를 향해 물었다. "당신은 아마도 내가 당신의 그 외사촌누이의 무공을 아무런 탈이 없이 제거해준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겠죠?" 백리자성은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그것은...... 아무래도 앞으로 그녀가 일월흡성대법을 배을 수가 없게 되 었으니 매우 다행한 일이겠지만 그러나 나는지금 당신에게 나를 살려준 것에 대해서 진실하게 고마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오. 나는 실로 겨우 살아 돌아와서 다시 죽을 뻔 하지 않았소?" 심황진은 그 말을 듣고 다시 코웃음을 쳤다. "당신의 말은 제법 그럴 듯 하군요." 기실원래는 백리자성이 자신의 생명에 대해서 애착을 느끼지 않고 있었 는데 지금에는 그가 다소 자신의 생명에 대해서 애착을 느끼고 있을 뿐 만 아니라 그 일에 관해서 심황진에게 고마워하고 있는 것을 보고는 심 황진은 마음이 매우 흡족하게 되었다. 백리자성은 스스로 다소 흥분해서 말을 하다가 문득 자신이 아직도 그 녀의 길고도 아름다운 고운 손목을 잡고 있으며 그녀 역시 다소 상기된 표정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마치 불에 데인 듯이 손을 거두었다. "아 이거...... 이거 미안하오!" 심황진은 싸늘하게 웃었다. "당신의 손이 나의 손과 마주친 것이 어디 한두번이었던가요? 나는 여 태까지 많은 환자들을 돌보아 왔기 때문에 당신과 한번 손을 잡았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어요." 그런데 기실은 백리자성 역시 의원의 신분으로 그녀와 아주 비슷한 경 험을 했었는데도 지금은 가슴이 심하게 두근거리고 있다는 것을 그녀는 몰랐다. 기실 백리자성도 과거 의원노릇을 할 때에 많은 여자들의 손목을 잡고 진액을 했었는데 지금과 같은 기이한 감정을 느끼지는 않았던 것이었다. 백리자성은 그일에 관해서 이상하게 생각하다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 했다. "하긴 그렇군. 그럼 우리는......우리는 어서 그만 밖으로 나가보는 것이 어떻겠소?" 심황진은 그가 마치 어색해진 것처럼 말을 더듬으며 붉어진 얼굴로 소 년처럼 당황해서 서두르는 것을 보고 다시 냉소를 날렸다. "흥! 당신이 결국 겉치레 만인 인사만 하고 이대로 나를 내쫓아 버리려 는 것이로군요?" 백리자성은 다소 당황해져서 말했다. "사실 나는 이곳에서 식객의 신분이기 때문에 돈도 없는 상태이니 그대 를 하나 더 달고 있을 수는 없는 상황이오. 만일 그대가 여기에 계속해서 머물겠다면 그것은 물론 나에게는 도움이 되는 일이지만내가 그것을 책 임질 수가 없기 때문에 그대는 아마도...... 아마도 이곳에서 따로 객방을 구해야할 것이오." 심황진은 그의 난처한 안색을 보고는 더 추궁하고 싶은 생각이 일어나 지 않아서 냉랭하게 웃으며 말했다. "알겠어요! 내가 뭐 당신이나 점창파의 밥을 빌어먹기 위해 온 것으로 알고 있나요? 나는 앞으로 내 볼 일이나 볼 것이니 당신은 나를 상관하 지 말고 어서 그 사도낭자에게 가보도록 하세요" 말과 함께심황진이 정말로 신형을 날려서 사라져 버리자 백리자성은 문 득 그녀가 사라져버린 곳을 향해 멍하니 한숨을 내쉬다가 문득 괴로운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와 같은 사람은 가장 못난 사람이라고 할 수가 있고 그녀는 그야말 로 가장 훌륭한 여자인데 내가 어찌 감히 그녀와 같은 하늘의...... 하늘의 거위 고기를 탐내는 못난 두꺼비가 될 수가 있다는 말인가?......" 잠시 후에 그는 고개를 내저으며 다소 굳어진 표정으로 별채를 향했다. 백리자성은 별채로 가서 다시 사도백봉의 마음을 돌려보려고 했다. 그런데 그 가 별채의 가장 후미에 있는 장문인대행의 처소에 이르렀을 때 문득 두명의 낯설은 하녀들이 나타나서 출입할 수가 없다고 하는 것 이었다. 아마도 이들 두명의 하녀들은 전날 사도백봉이 홍아와 청아를 따돌리는 과정에서 제거해 버린 하녀들의 대용으로 쓰고 있는 사람들인 모양이었 다. "장문인대행께서는 지금 피곤하시다고 결코 누구라도 안으로 들여보내 지 말라는 엄명을 내리셨어요" 그 두명의 하녀들은 허리에 장검을 차고 있는 것이 아마도 그간에 사도 백봉이 다소의 무공을 가르친 모양이었다. 백리자성은 그렇지 않아도 감히 함부로 장문인대행의 처소로 들어갈 수 가 없는 것이었는데 그녀들이 막고 나서자 더더욱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게 되었다. 따라서백리자성은 하는 수 없이 다시 밖으로 나와서 제자들과 함께 저 녁식사를 마치고 나서 숙소에 가서 쉬며 동정을 살피는 수밖에 없었다. 점창사수는 뒤이어 안으로 들어와서 각자 무공을 다듬어 보는 모양이었 는데 백리자성은 감히 그들에게 조금전의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속만 태 우며 사도백봉이 빨리 나오기를 기다렸으나 그녀는 결국 오지 않았다. 안으로 들어가서 편하게 잠을 자라는 제자들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내심 으로 사도백봉이 나와서 자신과 대화를 나누기를 고대하고 있었던 백리 자성은 허약한 몸을 이끌고 제자들과 함께 거실에서 새우잠을 자게 되었 다. 아니백리자성은 거의 새벽녘까지는 잠을 자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으나 새벽녘이 되어서 밖이 뿌옇게 밝아오려고 하자문득 반쯤은 혼절한 듯이 기다란 의자위에 누워서 잠을 청하고 말았다. 그런데 그가 겨우 한시진도 자지 않아서 아침의 햇살이 내리쬐기 시작 할 무렵의 일이었다. 느닷없이 사도백봉의 처소를 지키고 있었던 하녀 두 사람이 빠르게 그 의 앞으로 달려오더니 그를 깨우며 이렇게 소리치는 것이었다. "큰일났어요! 큰일났어요!" 백리자성은 혹시 사도백봉의 몸이 밤사이에 병이 나서 그러는 것인 줄 로 알고 급히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지금 그녀의 상태가 어떠하냐? 그녀는 지금 혹시 의식을 잃고 있는 것 이 아니냐?" 그러자 하녀가 말했다. "아니예요장문인대행께서 병이 나신 것은 아니예요." 그녀들은 사도백봉의 무공이 그토록 뛰어난데 설마 무슨 병이 생길 것 인가 하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백리자성은 마음이 급해져서 다시 물었다. "그럼 다른 일이 있다는 말이냐?" 이때는 점창사수도 소식을 듣고 빠르게 거실로 뛰어나와 있는 상태였다. 하녀가 말했다. "사실은 오늘 새벽에 장문인대행께서 밖으로 나가시면서 아주 이상한 말씀을 하셨어요. 글쎄 저희에게 말씀하시기를 만일 자신이 나가서 한 시 진 안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면 즉시 사람들에게 알려서 자신을 찾으라고 하셨거든요. 그래서 저희들은 아직도 그 분치 돌아오시지 않는 것을 보 고 달려오게 되었던 것이예요." 점창사수 등은 하녀의 말을 듣고는 대체 그게 무슨 일이냐는 듯이 심드 렁한 태도를 지어 보였다. 그들로서는 무공이 높은 사도백봉이 불과 한 시진 안에 설마 무슨 일이 야 있었겠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정작 백리자성의 심정은 달랐다. 그는 사람들 가운데에서 오직 그녀가 무공을 상실했다는 것을 알고 있 는 사람이었다. 그렇다면사도백봉은 필시 무슨 중요한 일이 있어서 그런 몸을 이끌고 나갔었을 것이며혹시 지금까지 돌아오지 않고 있다는 것은 무슨 일이 발 생했다는 증거가 아닐까? 제27장 정자에서의 슬픔 백리자성은 일순 사도백봉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 게 되자 크게 놀라서 말했다. "그렇다면 어서 그녀를 찾으러 가도록 합시다!" 점창사수는 다소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원래 그들은 사도백봉을 매우 미워하게 되었는데 느닷없이 아침부터 그 녀를 찾으러 가고 싶어질 리가 없었다. 따라서 백리자성은 하는 수 없이 말했다. "사실 그녀는 어제 저녁에 나에 의해서 무공이 모두 상실당한상태였단 말이오." ............! 점창사수는 그와 같은 백리자성의 말을 듣게 되자 일순 저마다 크게 놀 란 표정을 지었고 불신의 표정까지 지었으나 이내 백리자성의 말에 거짓이 없었다는 것을 상기하고는 역시 행동을 개시했다고 생각했는지 빠르게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즉시 옷을 걸치고 병기를 착용하며 제자들에게 지시했다. "모두 출동준비를 서둘러라-! 그리고 남여 하나를 대령해라!" 점창사수가 남여를 준비하라고 한 것은 그 뚜껑이 없는 의자와 비슷한 가마로 백리자성을 직접 모시려는 생각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백리자성은 이어 황종보와 전백승이 앞뒤에서 드는 남여의 위에 올라타 서 여문량과 이모화의 호위를 받아가며 별채의 후원쪽으로 빠르게 나아 가기 시작했다. 객점의 별채 뒤쪽으로는 넓고 광활한 갈대밭이 펼쳐져 있어서 쉽게 그 무엇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일행이 빠르게 신형을 날려서 이십여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넓게 펼쳐져서 사람을 찾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을 때였다. 백리자성 역시 마음이 조급해져서 남여위에 올라탄 자세 그대로 사방으 로 멀리 눈길을 보내며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문득 앞에서 남여를 들고 있는 황종보가 이와 같이 말하는 것이었다. "빌어먹을! 저런 자식들은 벌건 대낮에도 저와 같은 짓을 저지르다니! 만일 급한 상황이 아니었다면 당장에 달려가서 요절을 냈을 것이다." "......." 백리자성은 무심코 그 얘기를 듣다가 황종보가 바라보는 쪽으로 시선을 보내다가 문득 얼굴에 다소 괴이한 기색이 떠올랐다. 지금 갈대밭이 넓게 펼쳐져 있는 광활한 대지의 한쪽에 이미 지은지 오 래되어 보이는 작은 정자가 하나 있었는데그 정자의 안에는 대여섯명의 장한들이 온통 벌거벗고는 여자 하나를 상대하여 한참 열나게 강간을 벌 이고 있는 중이었다. 백리자성은 그와 같은 광경을 보게 되자 문득 사도백봉이 혹시 그와 같 은 짓을 이미 당한 것이 아닐까 하는 불길한 예감이 치밀어서 안색이 괴 이하게 변했던 것이었다. 기실 당금에는 일월신교가 천하에 계속 출몰하고 있는 어지러운 상황이 어서 가끔씩 저렇게 여자를 강간하는 광경은 쉽게 볼 수가 있는 일이었 다. 백리자성은 얼른 그 불길한 예감을 씻어버리기라도 하듯이 이내 고개를 돌려 다른 곳을 바라보았지만 뒤이어 전백승이 역시 그 쪽을 바라보고는 다시 말했다. "백리선생기왕에 앞으로 나아가는 길이니 우선 그녀부터 구하고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어차피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고 그런 불쌍 한 여자를 구하게 되면 복을 받게 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 전백승은 생긴 것 같지 않게 상당히 선량한 마음이 있는 사람이었다. 기실 제자들은 지금 사방으로 흩어져서 빠르게 신법을 펼쳐가며 사도 백봉을 찾고 있는 중이었지만 설령 그와 같은 광경을 보더라도 지금의 상황이 워낙에 급하다고 생각하여 감히 시간의 여유를 부리고 그런 일에 끼어들려는 사람은 없었다. 백리자성이 바라보니 그 정자안의 희롱을 당하는 여자는 완전히 발가벗 겨져 있었고 장한들이 가끔씩 농담도 하고 있는 것 등을 보아서 아마도 악양성내의 화류계의 여자들 가운데의 하나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일반의 여자라면 저렇게 반항도 하지 않고 함께 즐기는 경우가 거의 없 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비록 사도백봉을 찾는 일이 다소 급하기는 해도 전백승의 말대 로 눈앞의 일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고 생각되어 황종보 등에게 그 쪽 으로 가자고 했다. 여문량과 이모화는 마침 사도백봉에게서 소식이 오나 하고 눈이 빠져라 하고 사방을 둘러보다가 백리자성의 그와 같은 얘기를 듣고 그쪽의 일을 빨리 처리하기 위해서 먼저 신형을 그쪽으로 움직였다. 그런데- 막상 그 들이 그 부근에 이르렀을 때였다. "아......" 여문량과 이모화는 다 함께 신형을 멈칫하더니 즉시 짧은 탄성을 지르 고 마는 것이 아닌가! 백리자성도 대체 무슨 일인가 하여 궁금해졌지만 황종보와 전백승 역시 다소 궁금한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그쪽으로 발걸음을 빨리했다. 일행은 즉시 그 정자의 앞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 대여섯명의 장한들은 한창 기분나게 벌거숭이가 되어서 몸을 움직이고 있다가 일행이 다가오자 그가운데의 한명이 다소 귀찮은 듯이 고개를 돌 렸다. "무슨 일이슈?" 백리자성은 남여의 위에서 보니 남은 네명의 장한들이 그야말로 한명의 여자의 몸 위에 사방으로 엎드려서 핥고 격렬하게 움직이고 있어서 거의 여자의 알몸은 보이지도 않을 정도였다. 백리자성은 일전에 이렇듯 여러 명의 남녀가 방사를 치루는 일이 있다는 얘기를 들은 것이 있었지만실로 그와 같은 추악한 광경을 보기는 처음이었다. 지금 고개를 돌리고 일행에게 의아한 표정으로 말을 건넨 사람은 그래 도 가장 할 일이 없어서 여인의 유방을 빨던 사람이었는데 그렇게 고개 를 돌리고 말을 하자니 자연 그자가 한창 심하게 빨던 유방이 시뻘겋게 부풀어 올라서 타액속에 젖은 채로 드러나 있었다. 그와 같은 광경을 보면서 백리자성은 실로 조금전에 이모화와 여문량이 다소 놀라서 몸을 멈춰섰던 것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이해가 가고 있었다. 보아하니 여인의 몸이 아직 죽지는 않은 것 같았지만 그와 같이 다섯명 이나 되는 장한들이 한꺼번에 달려들고 있으니 결코 성할 것 같지가 않 았던 것이었다. 백리자성은 비록 이 장한들이 한 때의 즐거움을 위해서 그와 같은 짓거 리를 하고 있는 것이지만 자신이 말리지 않을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는 가볍게 탄식을 하며 말했다. "어서 멈추시오! 당신들은 그래 집에 처자도 없다는 말이오?" 그러자 방금전에 말을 꺼냈던 그 장한이 다소 눈살을 찌푸렸고 다시 그 옆에서 다른 일에 몰두해 있던 다른 장한이 고개를 쳐들고 소리쳤다. "이 빌어먹을 개자식들아-! 나리들이 지금 한창 즐기고 계신데 느닷없 이 달려와서는 무슨 개수작들이냐? 네놈들이 정히 하고 싶으면 홍등가에 가서 하나 골라잡으면 될 일이 아니냐?" 백리자성은 그 말을 듣고 역시 그 여인은 홍등가의 여인이 틀림이 없다 고 생각했다. 그러나 기왕에 나서기로 했기 때문에 여기에서 그만 둘 수가 없어서 장한의 한 쪽에 서 있는 여문량과 이모화에게 시선을 보냈다. 그러자- 그 두명의 사람들은 빠르게 신법을 날려서 그 들을 향해 덮쳐갔다. 기실 그때는 다른 한명의 장한이 마악 절정의 순간을 맞이하고 있던 중 이었다. 장한이 마악 신음을 발하며 몸을 일으키자 다른 장한이 기회를 놓칠새 라 빨리 여인의 얼굴로 다가가서 아랫도리를 들이밀고 있었고 바로 그 순간에 그야말로 두 사람의 공격이 날벼락처럼 들이닥쳤다. 펑펑펑!...... 여문량과 이모화의 공격은 그저 가벼운 공격이 아니었다. 그들은 이미 이 시정잡배들과도 같은 무리들을 빨리 물리치고 사도백봉 을 구하러 가려는 마음을 굳히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히 그 들의 손속은 빠르고도 강한 진력이 숨겨져 있었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분명히 이모화와 여문량의 장력이 그들에게 각기 일장씩 퍼부어졌는데 도 그들은 그 자 리에 쓰러지기는 커녕 재빨리 정신을 차림과 동시에 빠르게 몸을 움직 여 제각기 달아나 버리는 것이 아닌가! 온통 발가벗은 채로 달아나는 그 광경이 가히 볼만한 것이었지만 백리 자성은 그들의 신법이 바로 일월신교의 신법과 매우 흡사하다는 것을 알 고 다소 기이한 생각이 들었다. (이 부근에 마교의 무리가 갑자기 크게 늘었다는 말인가?) 백리자성은 이내 멀리 달아나 버리는 장한들의 뒤를 쫓고 싶은 생각이 일지 않아서 누워있는 여인의 상세를 보고 싶어서 남여에서 내려서 천천 히 걸어갔다. 백리자성은 비록 사도백봉의 일이 다소 급하기는 했지만 이 여인이 혹 시 이미 혼절을 했을지도 모르는데 모른척 하고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이었다. 과연 가까이 다가가서 살펴보니 여인은 나이가 상당히 어려보였는데 몸 이 거의 혼절한 듯이 늘어져 있었고 음부가 심하게 찢어져서 퍼가 흐르 고 있었고 지저분한 타액 등으로 얼굴이나 그밖의 용모조차 분간하기가 쉽지 않을 지경이었다. 백리자성은 공연히 그와 같은 여인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지 않아서 대강 살펴 본 다음에 지장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몸을 돌 려 주위에 널려있는 그 여자의 찢어진 옷가지를 들어다가 그녀의 더럽혀 진 알몸을 덮어주려다가 문득 이상한 예감이 들어서 그 여자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왜냐하면그 여자의 의복은 다시 보니 매우 깨끗한 백색이었고 옷감이 매우 고급이어서 결코 화류계의 여자의 옷 같지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니! 기실은 원래 사도백봉도 그와 비슷한 백색의 옷을 입었었기 전날 객방 에서 백색의 그녀를 상기하며 다시 여인의 얼굴을 살펴보게 되었던 것이 었다. 그런데 여인의 얼굴은 여기저기가 심하게 터져 있고 멍이 들었으며 또한 장한 들이 남기고 간 더러운 액체 때문에 뒤범벅이 되어서 재대로 알아볼 수 가 없었다. 하지만백리자성은 문득 그녀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가 가슴이 철렁하게 되었다. 보아하니 이 여인의 용모가 만일 깨끗한 것이고 또한 그와 같이 심하게 터지지 않고 멍들지 않았더라면 사도백봉의 수려한 얼굴과 비슷했을 것 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백리자성은 문득 그러한 생각이 들자 마치 보지 못할 것을 본 사람처럼 급히 그녀의 알몸을 덮어주고 고개를 돌리려고 했다. 그런데 느닷없이 그 여자의 입에서 다소 기운이 없어서 탁한 듯 하면서도 멍한 음성이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당신은 이제 만족하셨나요?" (......!) 백리자성은 그 음성을 듣는 순간 일순 뒤통수를 크게 얻어맞은 것처럼 괴이한 충격을 느꼈으나 이내 혹시 이 여인은 자신을 강간한 사람을 잘 못 착각하여 자신에게 그와 같이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 는데다시 생각해 보니 그게 아니어서 즉시 고개를 돌리고 그 여자의 얼 굴을 뚫어지게 주시하며 놀라 물었다. "그대는...... 그대는...... 그렇다면 바로 나의 외사촌누이라는 말이오?" 백리자성은 그 외사촌누이라는 말을 하면서 마치 학질에 걸린 사람처럼 덜덜 떨어댔다. 기실 그는 여태까지 그 외사촌누이라는 말을 숱하게 해온 셈이었지만 지금처럼 그 말을 하기가 어려운 적이 없었다. 그렇다! 놀랍고 믿을 수 없게도 이 여자는 바로 사도백봉이었다. 느닷없이 밖으로 나가서 돌아오지 않았던 사도백봉은 바로 여기에서 장 한들에게 그 짓을 당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어찌 이 일을 믿을 수가 있을까? 전신을 벌벌 떨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백리자성을 향해 사도백봉은 득 두 눈을 떠서 바라보더니 기이하게 웃으며 말했다. "당신은 역시 좋은 사람이로군요. 아직도 나에 대해서 그와 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니 의 지금의 모습은...... 실로 추악하지 않나요?" "외사촌누이...... 이것은...... 이것은 실로 있을 수가 없는 일이오." 백리자성이 아직도 몸을 떨고 있는 것을 보 고 사도백봉은 웃으며 다시 말했다. 그녀의 얼굴에 부풀어 있는 시퍼런 멍자국과 진한 타액 등이 햇살 아래 에서 유난히 끔찍하게 드러나 보이고 있었다. "나는 사실 당신의 말을 들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다시 기회를 잡기 위해서 일월신교의 무리들과 다시 만나게 되었어요. 나는 이 일이 위험할 것으로 생각하기는 했지만 그러나 그 자들이 설마 이렇게 나를...... 호 호!......" 백리자성은 아무런 말도 못하고 듣고 있으면서 덜덜 떨리는 몸으로 이 렇게 연신 생각했다. (이것은 모두 나의 잘못이다! 이것은 모두 나의 잘못이다!) 워낙에 마음이 괴로운 나머지 그의 두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사도백봉은 시종 싸늘하고 냉소적인 표정을 짓고 있다가 문득 그의 두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얼굴에 느끼고는 절로 그 눈에서 눈물이 펑펑 쏟아지게 되었다. 원래 백리자성은 제아무리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결코 눈물을 흘리는 일이 없었는데 지금 그와 같이 정신없이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 사도 백봉은 그만 마음속의 한이 허물어져 버렸던 것이었다. 그녀는 일순 절규하듯 웃으며 말했다. "고종 오라버니! 나는 사실 고종 오라버니를 사랑했었어요만일 나의 숙 명이 그렇게 주어져 있지 않았고 또한 고종 오라버니가 불치의 병을 앓 고 계시지만 않았어도 저는 반드시 고종 오라버니에게 시집을 가려고 했 을 거예요. 호호호...... 그 일월신교의 무리들은 내가 다시는 일월신교의 무공을 배울 수가 없는 사람이 된 것을 알자 즉시 나를 이처럼 강간하 고...... 호호호!......" 사도백봉의 두 눈에서는 그야말로 눈물이 비오듯이 줄줄 흘러내렸다. 실로 그녀와 같은 사람이 그와 같은 혼절하지도 않은 상황속에서 당했 다면 그 고통은 어떠했을 것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는 일이었다. 백리자성은 소리쳤다. "나는 행세한다. 반드시 너의 원수를 갚아주마! 나는 반드시 너의 원수 를 갚아서 아까의 그 자들을 갈가리 찢어죽일 것을 맹세하마!" 백리자성은 원래 성품이 매우 선량하여 결 코 남을 죽인다는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지금에 이르러 눈빛이 심히 붉게 충혈되어 있고 피가 뚝뚝 떨어 질 듯 하며 눈물을 뿌리고 그 자들을 갈가리 찢어죽이겠다고 맹세하는 것을 보고 사도백봉은 다소의 위안을 얻었는지 가볍게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고종 오라버니! 저는 이미 당신의 진심을 알았으니 저를 위해서 그와 같이 하실 필요는 없어요. 사실 이 모든 일은 제가 자초한 일이기 때문 에......" 이어 사도백봉은 다소 생각을 굴리는 듯 하더니 다시 그의 얼굴을 그윽 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고종 오라버니! 만일 저를 사랑하신다면 저를 위해서 그 쪽에 떨어져 있는 비급을 하나 주워서 주시겠어요?" 백리자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외사촌누이나는 사실 그대를 아주 사랑하고 있었다오. 물론 그까 짓 일이야 할 수가 있지." 백리자성은 정신이 없었기 때문에 사도백봉이 평소에 비급을 좋아했었 기 때문에 당연히 찢어진 옷이 있었던 자리에 그녀가 가지고온 비급이 하나 떨어져 있는 것으로 알고 즉시 그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에 뒤쪽에서 황종보 등이 다소 경악성을 지르는 것 을 보고 놀라서 다시 사도백봉을 바라보니 이미 그녀의 가슴에는 한 자 루의 비수가 꽂혀 있었다. 원래 사도백봉은 처음에 이곳으로 오면서 하나의 비수를 품고 있었는데 당시 장한들에게 당하면서도 그것을 사용하지 않았던 것은 자신의 힘으 로는 설령 비수가 있다고 해도 당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녀는 그것을 몸 아래에 숨기고 있었다가 이윽고 백 리자성이 한눈을 팔고 있는 사이에 결심을 하고 자신의 심장을 찔러버린 것이었다. 기실은 그들의 주위에 점창사수 등이 서서 바라보고 있었지만 감히 그 녀의 알몸의 근처에 다가갈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다가 그녀가 워낙에 작 정을 하고 빠르게 손을 움직였기 때문에 비수는 바로 그녀의 심장을 관 통하여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 되고 말았다. 백리자성은 물론 뛰어난 의원이었기 때문에 비수의 주위로 솟구쳐 나오 는 선혈로 보아 그녀가 이미 가망이 없다는 것을 알고 놀라서 안색이 대 변해져서 소리쳤다. "아니 그대! 외사촌누이! 이게 대체 무슨 짓이오?" 백리자성이 달려가서 그녀의 몸을 껴안자 이미 얼굴에 죽음의 기운이 드리워져 있는 사도백봉은 다소 웃으며 말했다. "저는 원래가 아주 나쁜 여자이기 때문에 사람을 많이 죽였고 이와같은 응보를 받게 되어 있는 사람이예요. 저의 죽음에 대해서 그리 슬퍼하지 마세요. 다만...... 다만 나를 사랑하신다면 한 가지의 부탁을......" 백리자성은 그녀의 숨이 마악 넘어가려는 것을 알고 급히 정색을 하며 소리쳐 물었다. "무슨 부탁이든지 내 들어줄 것이니 말해보시오." 백리자성은 과거 사도계강에게 자비심에서 부탁을 들어주겠다고 했었다 가 한번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모 든 일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소리쳐 말했다. 이것은 그야말로 그의 진심이었기 때문이었다. 사도백봉도 그의 말뜻을 알고 죽어가는 얼굴에 다소 홍조를 떠올리며 말했다. "나는 이렇게 죽어가니 당신은 이제 막내숙부님의 부탁을 염두에 두실 필요가 없어요. 다만 나는 점창파를 다시 일으키고 싶었는...... 그래서 당 신에게 그 일을 부탁드려요. 당신은 부디 점창파의 제20대 장문인이 되셔 서 점창파를 앞으로 크게 일으켜 주세요. 당신이라면 능히 그 일을 하실 수가 있을 것...... 하아 하아내가 좀더 일찍이 이와 같이 당신의 품속에 들어 있었다면...... 그랬다면 결코 이와 같이 되지는......" 사도백봉은 그만 거기에서 더 이상 말을 맺지 못하고 숨을 거두고 말았 다. 그녀의 숨이 끊어지고 고개가 떨구어지자 이미 주위에 몰려들어 있었던 십수명의 점창파의 제자들은 일제히 오열하는 표정들이었다. 사도백봉은 비록 스스로 점창파의 제자들을 죽여버리기는 했지만 그러 나 그녀가 점창파를 다시 세우려는 정성은 기특한 것이었다고 할 수가 있었다. 게다가 지금의 그녀의 참혹한 죽음은 여태까지의 미워하던 마음을 그야 말로 눈녹듯이 녹여버리고 말았다. 백리자성은 사도백봉이 죽은 이후에 한참동안이나 그녀의 식어가는 시 신을 안고 있다가 이윽고 여문량 등이 다가와서 부축을 해서야 겨우 몸 을 일으킬 수가 있었다. 백리자성은 제자들이 사도백봉의 알몸을 천으로 감싸고 운반하기 시작 하는 것을 보고 다소 넋을 잃은 듯이 말했다. "그자들을 반드시 잡아야 하오." 여문량이 말했다. "그자들은 반드시 잡게 될 것이니 염려마십시오. 그보다 실은 선생께서 이제 본파의 장문인이 되셔야 할 분이니 몸을 보중하여야 합니다." 백리자성은 그제서야 사도백붕의 마지막 말을 상기하고는 다소 충격을 받은 듯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나는 몸을 보중해야 해나는 반드시 그녀의 부탁대로 점창파 의 장문인이 되어 점창파를 크게 일으킬 것이다......" 백리자성은 거의 혼절 상태에서 역시 황종보와 전백승이 드는 남여위에 올라서 객점으로 되돌아왔다. 사도백봉의 시신이 그 옆을 따르고 있었지만 백리자성은 한동안 넋을 잃은 것이 마치 그런 사실조차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여문량과 이모화는 그와 같은 백리자성의 몸이 매우 걱정스럽게 느껴졌 으나 감히 그에게 뭐라고 말을 하지 못했다. 백리자성이 객점으로 돌아갔을 때마침 거기에는 심황진이 앉아서 그를 기다리고 있다가 그의 모습이 괴이함을 보고 놀라서 맞이했다. 백리자성은 이미 반쯤은 혼수상태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빠르게 점창사수에게 일련의 상황에 대한 설명을 들은 다음에 심황진은 즉시 백리자성을 침상위에 눕히게 하고 치료를 하였는데이윽고 한 시진 후에야 비로소 백리자성이 서서히 제정신을 차리고 의식을 회복하였다. 심황진은 그의 심려가 그토록 큰 것을 보고 그가 깨어나자 울며 말했다. "죄송해요! 제가 그녀의 무공을 패쇄시키지만 않았더라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인데...... 이 모든 것이 저 때문이었어요." 그러나백리자성은 이미 마음이 상당히 가라앉아 있었기 때문에 처연하 게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당신은 일부러 그녀의 무공을 폐쇄한 것도 아닌데 어째서 잘못이라는 말이오? 이 모 든 일은 사실은 그녀의 운명이었던 것이오아아...... 그 숙 명의 힘을 어찌하겠소." 심황진은 다시 말했다. "제가 만일 간밤에 육맥신검경을 되찾아주기 위해 당신의 곁을 떠나있 지 않았었다면 실로 그와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거예요." 말과 함께 심황진이 품속에서 한권의 아주 오래된 고서적 하나를 꺼내 서 백리자성의 손에 건네주자 백리자성은 육맥신검경(六脈神劍經)이라고 전자체로 적혀 있는 그 비급의 표지를 보면서 내심 깊은 감회에 젖었다. 실로 그 한권의 비급은 아주 유서가 깊은 많은 것이고 또한 점창파에 있어서 유달리 사연이 많은 것이었는데심황 진에 의해선 이토록 쉽게 되찾아지게 되었을 줄은 몰랐던 일이었다. 그러나 정말로 그녀가 백리자성에게 그 비급을 건네주어 그로 하여금 사도백봉에게 비급을 건네주게 하려는 의도로 밤새도록 일월신보에 가서 비급을 탈취해 오지 않았다면 사도백봉은 또한 그 처럼 죽지 않았었을지 도 모르는 일이 아니겠는가! 심황진은 결국 그 비급을 사도백봉에게 돌아가게 하려던 것이었는데 그 만 사도백봉이 죽어버리자마음이 괴로와져서 말하고 있는 것이었으나 기 실 그녀의 잘못은 전혀 없는 것이었다. 백리자성은 내심 한탄을 하고 비급을 품속에 넣은 후에 다시 옆으로 고 개를 돌려서 여문량을 향해 물었다. "그자들을 아직도 잡아오지 못했소?" 심황진도 이미 그 얘기를 들었기 때문에 옆에서 말했다. "당신이 깨어나면 우리가 함께 가서 금방 잡아오려고 생각하고 있었으 니 염려하지 마세요." 말과 함께 그녀는 점창사수와 함께 밖으로 서둘러서 나갔다. 지금 그자들을 잡아오는 것이 백리자성의 병세를 낫게 하는 길이 된다 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제28장 점창장문인이 되다 심황진의 능력은 과연 놀라운 것이었다. 점창사수를 데리고 나간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녀는 그 다섯명의 장한 들을 모조리 사로 잡아왔고이내 간단하게 사도백봉의 영전을 차려놓고 점창파의 제자들이 그자들의 목을 베어서 제사를 지낼 수 있도록 했다. 알고 보면 사도백봉과 상대했던 장한들은 일월신보의 내에서도 그다지 강한 자들이 아니었던 모양이었고사도백봉도 그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적당히 이용했던 모양이었다. 심황진과 점창사수가 아주 감쪽같이 그자들을 제압해왔기 때문에 일월 신보에서는 그들을 추격해 오는 일이 없었고 따라서 일행은 사도백봉의 장례식을 다소 간소하게 마저 치를 수가 있었다. 백리자성은 사도백봉의 장례식을 그처럼 치루고 나자 다소 마음이 가라 앉는 모양이었지만 그러나아직 며칠간은 마음이 우울해져서 과거 사도백 봉의 처소였던 곳에 틀어박혀서 쉽게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미 사도백봉의 원한을 갚았을 뿐만 아니라 점창파의 숙원과도 같았던 육맥신검경을 회수하였고 하였으니 그다지 당장에 급한 일은 없다고 하 더라도 점창파의 재자들은 백리자성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 문에 그것을 노심초사하며 지켜보게 되었다. 다행히도 결국 점창사수와 심황진이 안으로 들어가서 끈질기게 설득을 하여 사도 백봉의 부탁을 들어준다는 명분으로 백리자성은 이끌고 다시 며칠이 지 난 후에 제자들의 앞에 나와서 정식으로 제20대의 점창장문인의 직위에 오르고 그 일을 맡아보기 시작했다. 사도백봉의 시중을 들기 위해 고용되었던 두명의 하녀들은 돌려보내게 되었다. 지금에 이르러 숫자는 수석호법 네명에 호법네명그리고 일반제자들이 열두명인 총 스무명에 불과한 상태였고 비록 점창산으로 가서 조사전에 정식으로 예의를 갖추지는 못했지만 그러나 이번에 장문인대행의 추천을 받았던 것이어서 백리자성의 장문인 취임은 가장 명분이 있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원래심황진은 전날 사도백봉의 무공을 폐쇄한 이후에 백리자성에게 육 맥신검경을 찾아주고나서 다시 황산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왠지 백리자성이 점창파의 장문인이 되고 나자 그녀는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고 오히려 그 점창파 사람들이 묵고 있는 별채의 후미진 방 하나를 달라고 하여 함께 식사도 하며 움직이는 것이었다. 백리자성은 스스로의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 미처 그러한 그녀의 행동을 제지하지 못했지만 나머지 여문량 등은 차라리 심황진이 과거의 심용이 었다는 것을 알고 그녀가 계속해서 점창파에 남아주어 백리자성의 몸을 치료해 줌은 물론 점창파 사람들의 무공증진에도 도움을 주게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눈치였다. 게다가 그 들은 만일 그 두명의 청춘남녀가 사랑을 하게 되어 혼인이라도 한다 면 그것은 점창파의 앞날을 위해 아주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기실점창사수 등은 전날에 그녀와 함께 일월신보에 가서 다섯명의 장한 들을 사로잡아오면서 그야말로놀라운 그녀의 무예를 보고 경악하면서도 반쯤은 존경하는 마음이 들었던 것이었다. 벌써 사도백봉이 죽은 지도 한달이 다 되어 가서 계절은 제법 신선한 바람이 일기 시작하고 있었고반면에 늦여름의 더위는 마지막으로 그 맹 위를 떨치기 시작하고 있는 팔월말의 어느날이었는데 백리자성은 이윽고 점창파의 장문인으로서의 모든 재산과 비급들 그리고 기타의 사항에 대 해서 인수를 하고 나서 다소 여유를 찾을 때라 문득 네명의 수석호법들 을 포함한 여덟명의 호법들과 아직도 가지 않고 있는 심황진을 별채의 거실로 불러서 토의를 가졌다. 이번의 토의의 안건은 바로 앞으로 점창파의 거취문제였다. 여문량 등이 제자들 가운데에서 제법 똑똑해 보이고 나이가 비교적 어 린 두명의 제자들에게 백리자성의 시중을 들어드리라고 시켰었는데 그들 이 마악 찻잔을 사람들의 탁자 위에 올려놓고 공손히 물러가자 이윽고 백리자성이 사람들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여러분들도 이미 아시다시피 우리 점창파는 이제 검경을 되찾게 되었 고 따라서 우리가 중원으로 오게 된 명분도 해결이 된 샘이니 앞으로의 거취에 대해서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오. 여기에 대해서 여러 분들의 기탄없는 의견이 있기를 바라겠소." 여문량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제가 일전에 제자들에게서 들은 바에 의하면 지금 울남지방에는 태양 마교의 사람들이 우리를 추격하기 위해 북적대고 있으니 그 일부는 이곳 을 향해 올라오고 있다고 합니다. 원래 우리가 이곳으로 오게된 원인 가 운데 하나도 바로 그들을 피하기 위한 것이었으므로 이제는 전적으로 그 들을 상대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백리자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본파가 중원으로 오게 되었던 것은 우선 태양마도들의 공격을 피 하고 검경을 얻어서 세력을 강화하자는 데에 그 목적이 있었소. 그러나 지금 우리가 검경을 얻었지만 그것이 과연 앞으로의 상황에 얼마나 도움 이 될 것인지가 의심스러운 것이오. 여기에 대해서 이수석호법께서 한말 씀을 해주시기 바라오." 이모화는 잠자코 듣고 있다가 지명을 받자 백우선을 들어서 한차례 부 친 후에 대답했다. "우리가 비록 검경을 찾으러 이곳으로 오기는 했었지만 보다 중요한 목 적은 일시 태양마교 도들의 예봉을 피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설령 지금과 같이 검정을 찾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우리에게 일시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들이 다가온다면 일시적 으로 다시 자리를 피해서 시기를 보아가며 행동하거나 아니면 그들을 물 리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백리자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옳은 말씀이오. 자고로 시기를 잘 파악하는 사람이 준걸이라고 했듯이 우리가 힘이 약하다면 구태여 그정면으로 부딪쳐서 손해를 볼 필요는 없 다고 생각하오. 나중에 우리의 힘이 막강해졌을 때에는 그들은 감히 다시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이오. 그러나 우리가 여기에서 단순히 도피를 목적으로 움직이게 된다면 그것은 매우 싱거운 노릇이고 또한 공연히 힘 들게 버티며 그들을 상대하려고 한다는 것도 무리한 일이오. 나의 생각으 로는 이 두 가지의 방안을 절충했으면 하는데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떻 소." 여문량이 즉시 입을 열어 말했다. "장문인의 의견은 지극히 지당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일면으로는 피하면 서 일면으로는힘을 기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 시기를 보아 가면서 행동하게 된다면 앙으로 본파의 앞날은 크게 기대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백리자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어느 곳으로 피하는 것이 좋을 것이며 또한 어 떻게 힘을 기르는 것이 좋으리라고 생각하시오?" 그말에 묵묵히 듣고만 있었던 전백승이 입을 열고 웃으며 말했다. "그거야 운남지방에서 올라오는 자들을 피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당연히 북동쪽으로 하는 것이 좋을 것이고그리고 힘을 기르는 문제는 아마도 장 문인께서 특별한 고견이 있으실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백리자성은 이미 이번에 자신이 장문인으로 취임하게 됨에 따라서 제자 들의 눈빛에 사기가 오르기 시작하고 은근히 그의 능력에 대해서 기대를 하는 일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기실백리자성도 그들의 기대에 못지않게 앞으로 자신이 해나가야할 일 들에 관해서 대강의 구상을 해둔 바가 있었다. 백리자성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전수석호법의 말은 매우 고맙게 들었소. 그러나 만일 내가 장문인이라 고 해서 너무나도 독단적으로 일을 처리하게 되면 많은 사람들은 이해할 수가 없게 될 것이오. 나는 여러분들의 의견을 한번 묻고자 하는 것이오. 정말로 여러분들은 앞으로 내가 지시하는 대로 따라서 본파가 힘이 강해 지는데 노력해 주겠소?" 여문량이 몸을 일으켜서 공손하게 포권하며 대답했다. "장문인의 그 말씀은 천부당만부당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들은 모 두 장문인의 지시를 오래전부터 기다려온 것이니 이제부터라도 지시만 내리시면 설사 끓는 물이나 타는 불속이라도 저희들은 뛰어들 각오가 되 어 있습니다." 백리자성은 그 말에 손을 저으며 말했다. "여러분들은 이미 나의 수족이나 다름이 없는 사람들인데 어찌 그와 같 은 험한 일을 시키겠습니까? 저는 다만 여러분들이 본파의 앞날을 위해 서 애써주시기를 바라는 것일 뿐입니다. 그러면 이제부터는 제가 생각하 여 놓은 방안에 대해서 설명드리기로 하겠습니다." 백리자성은 말과 함께 옆에 앉아 있는 심황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것은 이제부터 점창파의 중요한 토의를 하려는 것이니 외부인은 그만 물러나 달라는 의미였다. 기실 심황진은 이미 초절정의 고수이고 또한 그녀가 점창파의 일에 관 해서 대단한 호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설령 점창파의 무공들에 관해서 듣게 된다고 해도 상관이 없을 것이었으나 백리자성이 이토록 나오는 것 을 보고 심황진은 그저 웃으며 뒤로 물러나 버렸다. 심황진이 사라지자 백리자성은 즉시 품속에서 여러권의 무공비급들을 꺼내어 탁자위에 올려놓은 다음에 그 가운데에서 한권씩을 골라 여문량 등에게 건네주기 시작했다. "내가 다행히도 무공에 관해서는 아는 점이 있어서 앞으로 본파의 제자 들이 배워야할 무공들에 대해서 어느 정도 정리해 보았습니다. 여러분들 께서 각기 검토해 주시기 바랍니다." 기실백리자성은 전날에 사도백봉에게 새롭게 무공비급들을 만들어 주었 던 적이 있었으나 그녀가 실은 그러한 무공비급들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자신의 보따리 속에 쳐박아 두었었기 때문에 백리자성은 이번에 그것들 을 하나씩 꺼내어 다시 한번 살펴보고 모두다 새롭게 정리해 놓은 것이 었다. 사도백봉에게 전수해 주려던 연화관음선공의 비급은 소각시켜 버렸지만 여러권의 전해내려 오는 무공비급들을 새롭게 정리한 비급들과 또한 그 가 이번에 새로 만든 비급들이 모두 네권의 책자로 만들어져 있었다. 백리자성은 여문량 등이 열두권의 비급들을 천천히 살펴보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다시 입을 열었다. "본래 본파의 진산절예인 천룡무상신공과 그밖의 일곱 가지 무공들은 지극히 높은 수준의 무학들이지만 우리가 기왕에 육맥신검경을 배우기로 생각했었던 만큼 불행히도 그러한 무공을 연성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것 을 보고 내가 따로 그 내용을 변형시켜서 새롭게 만들어 보았소이다. 나 는 이 일에 대해서 여러분들의 오해가 없었으면 하고 바랍니다." 여문량 등이 그 여러권의 비급들에 대해서 우선 살펴보니 천룡무상신공 만 해도 기실은 그들이 연성했던 것으로 쉽게 알 수가 있는 것이었는데 지금 백리자성이 변형시킨 내용은 원래의 것보다 심오한 것으로 변했을 뿐만 아니라 위력이 몰라볼 정도로 달라져 있었다. 확실히 천룡무상신공은 절정에 이르게 하는 내공심법임에는 틀림이 없 었으나 이제 그 것을 변형시킨 것을 보니 앞으로 그것을 연성하게 되면 가히 최절정의 순후한 공력을 얻게 되어서 육맥신검을 펼칠수가 있게 될 것 같았다. 여문량등은 그 나머지 비급들 역시 절정의 무공이 하나같이 결함이 사 라진 최절정의 지고한 무학들로 변형되어 있는 것을 보고 놀라 마지 않 았다. 기실일개의 문파가 한때 세력을 떨치는 일은 쉬운 일이지만 이처럼 그 무학들이 훨씬 높은 내용으로 발전하기는 어렵고도 어려운 일인 것이었 다. 과거 뇌전지는 중지 하나로만 펼칠 수가 있으며 한번을 펼치고 나면 다 시 진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시간을 지체해야 하는 불편이 있었으나 이제 는 비단 그 뇌전지를 연달아서 펼칠 수가 있을뿐만 아니라 중지가 아닌 다른 손가락으로도 시전이 가능하며 심지어 열개의 손가락으로 일시에 시전이 가능하게 되이 있었다. 물론 그 뇌전지의 특성 또한 매우 순후해져서 그것으로 나중에 육맥신 검을 시전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산화장 역시 이모화가 배운 것 이상의 수십배의 위력을 가진 완벽한 무 공으로 변해있었고 이어 섬류무형수나 흑풍와선기 역시 완벽해져서 위력 이 수십배나 증가해 있다는 것을 전백승과 황종보 등이 확인했다. 그들은 이미 그러한 무공들에 대해서 깊이 연구하고 있는 상태였기 때 문에 금방 그러한 이치를 알아볼 수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저마다 미처 상상도 못하고 있던 깊은 무학의 이치에 대해서 눈을 뜨게 되고 크게 백 리자성을 존경하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기실 정말로 무공을 연성한 사람도 무학의 이치는 알기 어려운 것인데 몸이 허약하여 무학을 연성하지 못한 백리자성이 그와 같이 깊은 이치를 꿰뚫고 있다는 것은 불가사의한 일이라고 아니할 수가 없었다. 여문량 등은 이어 기쁜 마음으로 나머지 네권의 비급들을 살펴보았는데 그것들은 기실 그들 네명의 인재들을 위해 백리자성이 특별히 만든 무학 들로서 다시 그들 네명이 제자들에게 전수할 수 있게 만든 것이었다. 여문량에게 건네준 비급에는 바로 심황진이 가져왔던 육맥신검경의 내 용을 다소 알기 쉽게 해설하여 뇌전지를 연성한 여문량이 앞으로 터득할 수 있게 한 것이 들어 있었고 황종보에게 건네준 비급에는 흑풍와선기를 절정의 경지에 이르도록 연마하여 터득할 수 있는 같은 계통의 무형신권 (無形神拳)의 무공을 수록하였으며 이모화에게 건네준 비급에는 산화장을 터득한 이후에 고 도의 수준에서 연성할 수가 있는 최절정의 무학인 천 룡대라장법(天龍大羅掌法)을 수록하였으며 전백승에게 건네준 비급에는 섬류무형수를 극도의 경지에까지 연성하여 최절정의 경지에 도달하면 시 전한 수가 있다는 금나수법의 최고경지의 무학 금룡십팔해(擒龍十八匯를 수록하고 있었다. 원래무인에게 있어서 자신에게 무공을 가르쳐준 사람에게는 그야말로 사부로 모시고 깍듯이 대하게 되어 있으며 가장 존경하게 되고 고마와하 게 되어 있는 것이기에 이들 여문량 등은 실로 자신들에게 그와같은 무 학들을 배울 수 있게 해준 백리자성의 은혜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고마 운 뿐이었다. 그들은 비급을 읽어보다가 마침내 감격을 참을 수가 얼어서 일제히 백 리자성을 향해 엎드려서 소리쳐 말했다. "일찍이 이와 같이 본탁의 무공을 한꺼번에 높이고 방대한 근원을 이룩 하신 분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제 장문인께서 그와 같은 일을 하시고 저희들에게 감당할 수 없는 은혜를 베푸시니 이는 실로 수백년 동안의 본파의 업적 가운데에서도 파천황적인 일이 될 것입니다." 백리자성은 그들이 매우 기뻐하자 웃으며 답례하고 이어 나머지 네명의 호법들을 향해 말했다. "나는 원래 여러분들에게도 특별한 무공을 생각해서 전해주려고 했었으 나 기실 본파의 무공은 쾌검으로 이름이 나 있었던 만큼 역시 수석호법 은 각각의 특성대로 가더라도 여러분들 만큼은 본파의 쾌검을 옅성해주 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그만두었습니다." 이어 백리자성은 그들 네명에게도 각기 하나씩의 비급을 건네주었는데 그 비급의 내용에는 과거에는 분광삼검형이라고 하여 진산절예로 정해져 서 일반제자들이 배우는 것이 금기시 되었던 것을 백리자성이 다시 손질 한 것이 적혀져 있었다 그 네명의 호법들은 기실 자신들은 아무런 무학도 얻지 못하다 다소 시 무룩한 상태였는 그와 같은 진산절예를 배울 수가 있게 되자 그야말로 입이 함지박만하게 벌어졌다. 백리자성은 그들을 향해 다시 말했다. "본파는 역시 쾌검에 특성을 가지고 있기때문에 저는 이번에 쾌검의 연 구에 보다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따라서 본파의 분광삼검형을 새롭게 고 치는 한편으로 거기에서 이어지는 최절정의 쾌검법인 분광삼절(分光三絶) 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오로지 그것만은 본파의 호법무공으로 장문인만이 연성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만일 여러분들 가운데에서 분광삼검 형을 모두 터득하고 나서 이 섬절뇌절분광절이라는 세개의 검식으로 되 어 있는 분광삼절을 배우고자 하는 분이 있다면 저는 언제라도 가르쳐 드릴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지금은 본파의 비상시국이기 때문입니다" 기실 그 네명의 호법들은 나이는 많아도 자질들이 별로 좋지 않아서 점 창사수처럼 최절정의 경지에까지 무공을 터득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백리자성의 말이 이제 자신들이 노력만 하면 본파의 호법 무공까지도 배울 수가 있다고 하자 저마다 크게 무학에 대한 열의가 끓 어오르기 시작했다. 백리자성은 사람들에게 각기 비급들을 전해주고 여덟권의 비급들은 다 시 거두어 들이면서 재차 말했다. "다시 말하지만 지금은 본파의 비상시국이기 때문에 앞으로 어떠한 무 학이라도 여러분들 가운데에서 배우기를 희망한다면 가르쳐 드릴 것입니 다. 그것은 비단 가장 낮은 제자들이라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러나다 만 여기에 있는 여덟 가지의 진산절예들은 충분히 가르쳐 드릴 수가 있 지만 제가 가장 심혈을 기울여서 고안한 본파의 최고 호법무공인 분광삼 절만큼은 여러분의 능력이 최절정의 경지에 이르러야 비로소 연마를 시 작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서 제외하도록 하겠습니다." 원래 무림의 제자들이 각 문파에 투신하는 이유는 뭐니뭐니 해도 그 문 파의 무공을 배우기 위해서라고 할 수가 있었다. 점창파의 제자들은 과거에 비록 배우고는 싶어도 신분의 제약 때문에 감히 배울 수가 없는 무학들이 많았는데 이재는 최절정의 경지에 오를 수가 있는 상승무공들을 자신들이 원하기만 하면 무수하게 배울 수 있는 상태가 되자 저마다 크게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백리자성은 다시 그 들을 향해 말했다. "앞으로 우리는 일단 내일 아침에 이곳을 출발하여 하남성의 방면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비록 이 부근에 일월신교의 분타가 있기는 하나 우리는 아직 힘이 미약하여 감히 그 들을 제거할 수가 없기 때문에 그냥 떠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직 태양마교 도들이 가까이 도달한 것이 아니기 때 문에 앞으로 우리는 아침마다 제자들에게 무공을 전수하고 오후에만 길 을 떠나도록 합시다." 여덟명의 호법들은 이미 백리자성의 말에 크게 감복하고 있었으므로 일 제히 그의 말이 끝나자 몸을 일으켜서 오체복지하며 대답했다. "장문인의 말씀은 하늘의 말씀입니다. 반드시 지킬 것이며 또한 추호도 어김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백리자성은 그들이 이처럼 예상외로 자신을 따라주자 마음이 매우 기뻐 서 웃으며 몸을 일으켜서 답례했다. "여러분 그럼 오늘의 토의는 이것으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제29장 황마와 미녀 백리자성이 토의를 마치고 안으로 들어가자 심황진이 의자위에 앉아서 그가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문득 웃으며 말했다. "그 뇌전지로는 비록 육맥신검을 제대로 발휘할 수가 있겠지만 보다 현 묘한 경지에 오르기는 어려워요. 역시 일양지의 무공과 선천오행신공을 전수해 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그렇다. 비록 백리자성이 점창파의 진산절예들을 고쳐서 순후하게 만들기는 했 어도 사람들의 자질을 고려한 나머지 아직 극상승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서는 많은 결함이 있는 상태였다. 결코 심황진의 선천공이나 일양지의 무공에 비교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아마도심황진은 비록 토의장소를 떠나 있기는 했지만 계속해서 그 과정 을 엿들었던 모양이었다. 백리자성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그들은 그러한 무공을 전수해 준다면 오히려 배우지 못하게 될 것이고 불평을 털어놓게 될 것이오." 백리자성은 이미 사도백봉에게 당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사람의 자질에 알맞는 무학을 전수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이번에 점창파의 무학들을 좀더 완벽하게 고치지 않은 것은 능력 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일부러 그렇게 했던 것이었다 심황진은 그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렇겠군요. 원래 이 일양지나 선천공은 무공이 초절정의 경지에 이르러 비로소 그 현묘한 점을 모두 이해할 수가 있게 되는 것이예요. 그 들은 아마도 한평생을 연마해도 겨우 최절정의 경지에서 머물고 말 것이 니 그와 같은 무공이 어울리겠지요." 심황진은 그처럼 말을 하면서도 내심으로는 당금의 점창파에서 그 인재 들이 부족하여 백리자성의 능력을 다 수용하지 못하게 되는 것을 안타깝 게 생각했다. 그것을 보고 백리자성이 문득 물었다. "참 이제 당신은 황산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겠소?" 심황진은 그말에 다소 흠칫하는 듯 하더니 되물었다. "왜요? 당신은 내가 돌아가기를 바라나요 ?" 백리자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원래 나는 이미 당신의 은혜를 깊이 입었지만 현세에서는 그 은혜를 갚을 길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이상의 은혜를 입고 싶지 가 않은 것이오." 심황진은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원래 저는 가려고 했었지만 문득 그 말을 듣고 보니 다시 가고 싶은 생각이 사라지는군요. 저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은혜를 베풀어서 당신이 과연 어떻게 나를 대하나 봐야하겠어요. 설마 나를 쫓아내지는 않겠죠?" 백리자성은 그녀가 굳이 가지 않겠다고 하자 마음이 어지러워졌으나 이 내 고개를 흔들었다. "당신은 나의 생명의 은인이고 무엇보다도 소중한 은혜를 주었기 때문 에 감히 내가 당신을 쫓을 수는 없는 일이오. 그러나 당신이 계속 이곳에 있게 된다면 앞으로 심심해질 것인데 그래도 상관이 없겠소?" 심황진은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점에 관해서는 걱정말아요. 저는 이미 제가 해야할 일에 대해서 생 각해 냈어요. 그 것은 우선 당신의 신변을 보호해 주는 일과아울러 당신 의 치료를 맡아주는 일...... 그리고 제자들의 공력을 높여주는 일이예요." (......!) 심황진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앞으로 점창파가 다시 일어나기 위해서는 우선 짧은 기간 동안에 네명 의 수석호법들의 무공이 비록 최절정의 경지에는 이르지 못한다고 할지 라도 절정의 경지에는 이르러야 한다고 봐요. 그리고 나머지 네명의 호법 들의 무공도 일류의 경지에는 이르러야 하겠죠. 허나 그러기 위해서는 공 력을 높일 수가 있는 것이 필요하지 않겠어요?" 심황진은 말과 함께 문득 품속에서 하나의 작은 약병을 꺼내들었다. 그 약병은 투명한 옥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는데 수십알의 작은 붉은 알 약들이 들어 있어서 은은한 단향의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백리자성은 그 옥병을 보는 순간에 다소 놀라서 물었다. "혹시 그 것이 바로 구전신단(九轉神丹)이라는 말이오?" 심황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이 구전신단은 비록 전설의 신단처럼 사람을 신선으로 간들 수 는 엄지만 가장 작은 분량으로 가장 많은 공력을 얻게 하는 것이죠. 이것 은 제가 만든 것인데 앞으로 그들이 나의 방식대로 이 신단을 가끔씩 복 용하게 된다면 방금 내가 말했던 그와 같은 공력을 쉽게 얻을 수가 있게 될 거예요" 기실 심황진의 말대로 지금 점창사수 등은 워낙에 공력이 미천하여 무 공이 겨우 일류급의 수준에 머물고 있는 상태였다. 만일 그들이 무공을 절정의 경지에까지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공력을 얻 게 해 주는 일이 필요할 것이었다. 일개의 문파에 절정고수가 하나도 없는 것이라면 어떻게 미래를 좋게 생각할 수가 있겠는가...... 심황진의 말대로 호법들의 무공도 공격을 높여주기만 하면 지금의 점창 사수의 경지에까지 끌어올려 줄 수가 있는 것이었지만 그 러나그 방법이 문제였다. 과거 백리자성은 이미 구전신단의 비밀을 알아내고 스스로 그것을 제조 하려다가 일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것을 제조하기가 어려워서가 아니라 그 방법이 지극히 까다롭고 또한 들어가는 약재가 너무나도 많이 들어가기 때문이었다. 백리자성과 같은 허약한 체질로서는 도저히 그 미세한 요구사항을 맞출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것의 제조를 포기했었으나 눈앞의 심황진이 이미 그것을 제조하여 가지고 다니는 것을 보고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구전신단의 제조비법은 그야말로 난해하여 보통 총명한 두뇌를 가지 고 있지 않아서 는 도저히 제조하기가 어렵기 때문이었다. 과거에 백리청우 역시 그와 같은 것을 만들지 못하고 그저 대라금단을 몇개 만들었을 뿐이었던 것이었다. 그 구전신단의 효능은 심황진의 말대로 공력을 높여주는데 있어서 가장 뛰어난 것이었는데 그 자질에 따라서 더러는 한알에 일갑자의 공력의 증 진을 볼 수가 있기도 했다. 백리자성은 비단 자신의 신변보호가 필요할 뿐만 아니라 그녀의 고집을 꺾을 수가 없게 되고 게다가 다시 그녀에게 해야할 일이 생긴 것을 보 고 감히 더 이상 그녀를 돌아가라고 할 수가 없게 되고 게다가 다시 그 녀에게 해야할 일이 생긴 것을 보고 감히 더 이상 그녀를 돌아가라고 할 수가 없었다. 그는 그저 담담한 표정으로 포권하며 말했다. "만일 그대가 그렇게만 해준다면 본파는 앞으로 나날이 발전하게 될 것 이오. 나는 본파의 장문인으로서 그대에게 매우 감사하는 바이오." 백리자성은 다음날 아침에 객점의 모든 비용을 계산하고 나서 제자들을 이끌고 하남성 방면으로 길을 떠나기 시작했다. 그는 길을 떠나기 앞서서 무공수련을 중시하여 먼저 제자들을 모두 불 러놓고 새로운 천룡무상신공의 구결을 강론하였는데 제자들에게 우선 그 내공심법에 익숙해지도록 지시했다. 백리자성은 우선 점차적으로 제자들에게 무공을 하나씩 가르쳐줄 생각 이었지만 무엇보다도 공력을 높일 수가 있는 천룡무상신공을 가르쳐줄 생각이었지만 무엇보다도 공력을 높일 수가 있는 천룡무상신공을 가르쳐 주려는 것이었다. 원래 이 천룡무상신공은 난해하기 짝이 없는 내용이었으나 백리자성이 손질을 가해 더욱 현묘한 이치가 깃든 것으로 변모하고 말았다. 점창사수와 같은 사람이라면 몰라도 일반의 제자들은 감히 연성할 꿈도 꾸기 어려울 만큼 심오한 최절정의 신공이 되어 있었다. 다만백리자성이 그 구결의 내용을 아주 자세하게 풀어서 설명을 주었고 그것은 마치 길을 자세히 아는 사람이 외지인을 편안하게 갈 수 있도록 하는 사람이 외지인을 편안하게 갈 수 있도록 하는 것과도 같이 제자들 을 신공의 이치로 이끌었을 뿐만 아니라 점창사수에게도 실로 적지않은 깨달음과 도움을 주었는데백리자성은 혹시 그 무공에 대해서 제자들이 욕심을 낼까 두려워하고 결코 무리하게 운기행공을 하지 말라고 했다. 심황진은 과연 이때부터 점창파의 일에 깊이 관여하기 시작하여 제자들 이 잘못 이해하고 있는 부분이 있으면 가르쳐 주기도 했고 직접 점창사 수와 구결의 내용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심황진의 설명에 의하면 그 구결의 내용은 백리자성이 말했던 내용보다 도 더욱 심호해지기도 하는 것이어서 실로 백리자성이 일반의 제자들을 위해서 쉬운 것만을 말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게 했다. 심황진은 그렇게 점창사수와 무공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면서 간혹 그 무공을 개조한 백리자성의 능력은 자신마저도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뛰어난 것이라고 극찬하여 마지않았다. 그녀는 비록 지금 제자들의 공력을 높여주고는 싶었지만 그들이 아직 내공심법을 자세히 모르고 있기 때문에 함부로 공력을 높여줄 수가 없는 상태였다. 얼마동안의 무공전수가 끝나게 되자 백리자성은 서둘러서 길을 떠나게 했는데이때 점창사수는 비록 점창파에서 제이인자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 었지만 백리자성에 대해서는 마치 사부를 대하고 있는 듯한 존경심이 우 러나서 스스로 남여를 메고 혹은 마차를 몰기도 했다. 특히그의 가운데에서 여문량과 이모화는 제자들을 통솔하는 일을 맡았 지만 황종보와 전백승은 거의 제자들을 젖혀두고 백리자성의 시중을 들 어주다시피 했다. 백리자성은 홍아와 청아가 없는 이상은 그 소 부담이 되기도 해서 가 능하면 스스로 움직이려고 했고 또한 일부러 자신의 남여를 메는 황종보 와 전백승에게 무학의 얘기를 하여 그들의 성취를 돕기도 했다. 심황진은 항상 그의 주위를 맴돌았는데 요즘에는 무슨 생각이 있는 듯 이 자주 백리자성의 처소에 들르고 그의 병세를 살피며 때로는 옷을 입 는 것을 거들어주기도 했다. 백리자성은 그러한 주위의 움직임들이 때로는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기 실은 요사이처럼 의미있는 날이 없었던 것 같기도 했다. 사도백봉에 대한 기억이 점차로 사라져 가자 백리자성은 다시 홍아와 청아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끔씩 마음을 졸이게 되었었는데 그 때마다 알 아본 바에 의하면 당시 홍아와 청아는 백리자성을 계속해서 보름간이나 찾아헤매다가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서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사방으로 수소문을 해봐도 소식이 없었기 때문에 백리자성은 이 내 그들에 대한 집착을 지워버리고 다시 제자들의 무공을 가르치는 일에 전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점창파의 사람들은 그날 악양을 출발하여 장강을 따라서 북상하여 하루 에 고작 서너 시진만을 이동하여 부근의 객점이나 야산에서 쉬곤 했는데 그것은 오로지 무공을 수련하기 위한 조처였다. 백리자성은 매우 세심하게 제자들이 무공수련에 전념할 수 있도록 신경 을 써주었는데 그래서 나중에는 그들이 무창성에 이르렀을 때에는 그대 로 한 곳의 객점의 별채 안에 자리잡고 제자들이 마음놓고 수련할 수 있 도록 움직이지 않았다. 기실 그들이 이렇게 거대한 성시의 한 객점의 별채안에 숨어지낸다면 결코 태양마교 도들이 쉽게 찾을 수가 없을 것이며 추격할 수도 없을 것 이기 때문이었다. 기실 점창파의 재산이 많지 않았다면 그와 같은 일을 할 수도 없었을 것이나 원래 점창파는 사도가문의 대에 이르러 그 위세가 팽창하여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었 고 사도백봉이 그것의 대부분을 은표나 금표로 바꾸어서 가지고 중원으 로 나왔었기 때문에 지금 수중에는 실로 상상외의 많은 자금이 있었다. 그것은 실로 그 들의 밑천중의 하나라고 할 수가 있었다. 백리자성은 일단 무창성내의 만수객점이라고 하는 곳의 별채에서 외부 의 출입을 삼가한 채 제자들의 무공전수에 전져을 기울였는데 ,역시 그- 중에서도 내공심법인 천룡무상신공의 구결의 설명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 였으며 과연 이미 연성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여러사람들 가운데에서도 점창사수가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도 여문량이 내공심법을 터득하는데 있 어서 가장 빨랐다. 이어서 황종보와 이모화 그리고 전백승의 순서로 네공심법을 터득하게 되었는데 그들이 일단 천룡무상신공의 구결을 모두 터득하게 되자 심황 진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 들에게 각각 구전신단을 한알 씩 복용시켜 주 었다. 그 구전신단은 전에도 이미 말했지만 그 사람의 자질에 따라서 공력의 증가가 크게 흑은 작게 되는 기이한 영단이었다. 여문량과 이모화 등은 그 영단을 복용하고 제각기 전력을 다해 운기행 공을 함으로써 일거에 이갑자에 달하는 공력을 얻을 수가 있게 되었다. 그들의 무공수법은 아직 절정의 경지에 이르러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공이 가히 최절정의 경지에까지 이를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 다. 다만 점창사수 가운데에서도 황종보만큼은 내공이 가장 심후하여 과거 에는 거의 일류고수의 공력을 상회하는 공력을 소유하고 있었으나 이제 는 여문량 등보다 공력의 증가가 조금 못미쳐서 단지 절정의 공력인 이 갑자의 공력을 조금 웃도는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그러나 실로 이 황종보는 무학에 있어서는 가장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 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백리자성은 아직 그가 무공전수를 시작한 이래 십여일 동안이나 그가 밤잠을 자는 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앞으로 그의 성취가 역시 나머지 점창사수에 비해 결코 못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내다보았다. 과거 백리자성은 홍아와 청아의 자질이 지극히 뛰어난 것이라고 생각하 며 더러 감탄했었다. 그러나 기실 이 점창사수의 자질은 실용적인 면에 있어서는 홍아와 청아의 자 질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 놀라운 것이었다. 홍아와 청아는 비록 기연을 만나고 좋은 수련을 하여 함께 노력하여 최 절정의 공력을 얻게 되었지만 점창사수 등이 단기간내에 절정의 경지에 오르게 되었던 것은 그러한 자질을 반영해주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백리자성은 점창사수가 차례대로 천룡무상신공의 개요를 터득하고 나서 공력을 절정의 경지로 높이고 마음대로 운기행공 할 수 있게 되자 그들 이 무공수법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다소 그간에 가졌던 심려를 놓았다. 이재 점창파에는 명실공히 절정의 고수들이 네명이나 생겨나게 된 것이 니 그는 다소 마음이 느긋해져서 더러 심황진과 함께 무예전수를 마치면 무창의 그 유명한 황학루 따위의 명고적들이 있는 곳으로 산책을 다녀오 기도 했다. 물론 황종보와 전백승은 밤낮없이 무공수련에 전념하고 있었지만 그가 밖으로 나가는 일이 생기면 즉시 달려와서 남여를 들어서 그를 모시는 것이었다. 백리자성은 이에 그들에게 무공구결에 대한 얘기를 들려주며 그들이 쉽 게 무학의 경지로 들어설 수 있게 도와주었다. 이미 날씨가 가을로 접어들어 완연한 가을의 서늘한 기운을 느끼게 해 주고 있었고 백리자성은 옷을 다소 두텁게 입고 남여에 오른 채 천천히 주위의 단풍이 물들기 시작하는 광경을 바라보았다. 어제 오후에는 심황진과 함께 사산의 정상에 위치하고 있는 황학루에 올라서 차를 마셨고 오늘은 다시 황종보와 전백승 등의 두 사람에게 의 지하여 심황진과 함께 무창의 외곽지대를 산책하고 있는 중이었다. 원래황종보 등을 비롯한 점창사수는 비단 백리자성을 스승처럼 깍듯하 게 모시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심황진에게도 역시 사모님을 대하는 듯한 예우를 해오 고 있었는데 백리자성을 남여에 태워갈 때면 역시 그녀에게 도 함께 남여위에 오르라고 권하는 것이었다. 이 점창사수는 비단 그 심황진을 지극히 존경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이 기회에 백리자성과 맺어지게 되기를 희망하고 있었다. 길에서 걸어가기도 뭣하고 그렇다고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는 상황에서 신법을 펼칠 수도 없는 상태였던 것이었다. 그리하여 며칠 전에 황종보 등은 생각다 못해 백리자성에게 청하여 그 녀를 부근의 커다란 마시장으로 가게해서-한 필의 좋은 말을 고르게 하 였는데마침 백리자성이 따라가서 심황진의 요청에 의해서 한 필의 말을 골라주었기 때문에 백리자성은 그 해박한 지식으로 그야말로 천하에서 보기 드문 천리양마(千里良馬)인 비쩍마른 황마(黃馬)하나를 골라주게 되 었다. 그 황마는 기실 성질이 매우 급격하여 주인을 몹시 가리고 음식을 잘 먹지 않아서 그와같이 비쩍마른 상태가 되었었으나 이제 심황진과 같은 멋드러진 주인을 만나게 되자 절로 기분이 좋아져서 제자들이 정성껏 보 살피고 먹이를 잘 가져다 주자 금방 전신에 살이 오르게 되고 털에 윤기 가 흐르게 되어 금방 천리양마의 자태를 자랑하게 되었다. 바로 오늘도 심황진이 타고나온 말은 바로 그 황마였다. 그 황마는 비록 천리준마는 아니라고 할지라도 그에 버금가는 좋은 말 이기 때문에 그 멋드러지게 생긴 말의 위에 단정하게 옆으로 앉아서 가 고 있는 심황진의 모습은 그야말로 세외도원경의 선녀를 방불케 하는 것 이었다. 황종보 등이 이미 백리자성에게 깊이 감복하고 마음속으로 감히 사모가 될 심황진에 대해서 공경하는 마음 이외에 마음을 품지 않고 있는 것이 었지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그 들의 눈길은 그녀의 주위에서 떨어지지 않았었을 것이었다. 백리자성은 그러나 정작 그토록 아름다운 담황색의 의삼을 바람에 나부 끼고 있는 절세 미모의 심황진의 얼굴에는 거의 시선을 주지 않고 그저 깊은 생각에만 골똘해 있었다. 심황진이 문득 저물어가는 주위를 바라보다가 그를 향해 입을 열어 물 었다. "당신은 과언 한 가지의 일이 궁금하지도 않으세요? 저에게 이미 약혼 한 사람이 있는 것인가 혹은 그렇지 않으면 남자친구라도 있는 것이 아 닌가 하고 말이예요?" 백리자성은 먼산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다가 그녀의 말을 듣고는 다소 움찔해져서 안색이 변했다. 기실 그것은 기이하게도 질투의 감정과도 비슷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원래 백리자성은 이 기이한 품성의 심황진에 대해서 날이 갈수록 깊은 애착심과 함께 사랑하는 마음을 느끼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러나이미 자신의 몸으로는 그 무엇도 해서는 안되다는 것을 알고 있 는 백리자성은 일부러 그러한 자신의 감정을 억눌렀고 그리하여 도리어 그러한 감정들이 은근히 강하게 자라나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과거에 백리자성은 비록 홍아와 청아에게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녀들에게 질투의 감정은 느껴보지 않았었는데 지금은 심황진의 단 한 마디의 말에 질투의 불길을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이것은 실로 그의 감정이 가장 격정적이고 좋지 않은 상황에 와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를테면 애욕의 물결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었다. 백리자성은 이미 자신의 처지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 의 마음속에 그와같은 심마가 자라나는 것을 가장 경계해 왔었다. 그러다가느닷없이 질투심을 느끼고는 재빨리 정색을 하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나는 지금 할 일이 많아서 미처 그런 생각을 할 여유가 없으니 양해해 주시구려." (......?) 심황진은 잠시 그러한 백리자성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문득 다 시 물었다. "그렇다면 대체 당신은 어떤 생각을 늘상 열심하고 있는 거죠?" 백리자성은 이에 얼씨구나 하고 대답했다 "내가 늘상 하고 있는 생각은 바로 무학에 관한 것이오. 원래 이 무학이 라고 하는 것은 가장 기초적인 것이 가장 궁극으로 통하게 되어 있는 것 이오. 그리하여 나는 요즈음 무학의 구결을 가르치면서 간혹 그 근원에 대해서 세심하게 살펴보기도 한다오. 이를테면 가장 쉬운 방법으로 무공 을 배우게 하는 법이 있을까 하는 것이오." 심황진은 이제 다시 황종보 등을 의식하고 무학의 얘기로 화제를 돌린 백리자성의 의도를 간파하고 미소하며 물었다. "그렇다면 과연 그러한 방법이 있을까요?" 백리자성은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간혹 그것이 혹시 가능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보는 것이지만 역시 무학은 가장 정통적인 방법을 따라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다시 금 확인하게 되는 것이오." 심황진은 일순 까르르 웃으며 말했다. "호호호...... 그거야 당연한 일이 아니겠어요? 만일 어린아이라도 대번에 상승의 무학을 배울 수가 있다고 한다면 여태까지 무림의 질서가 이렇게 유지되어 왔겠어요? 저의 할아버지께서도 역시 무공은 정통적인 방법이 가장 훌륭하다고 늘상 강조하고 계셔요" 백리자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은 간혹 빠르게 무공을 성취할 수 있는 편법을 생각해 내곤 했 지만 그것들은 결국에는 다만 그 경지에 이르러 다른 기초를 해치고 말 아서 스스로를 해치고 남을 해치게 되는 마공이나 사공이한(理功異學)으 로 돌변하게 되는 것이오. 실로 바르게 꾸준하게 나아간다고 하는 것은 가장 좋은 것이며설령 사공을 성공적으로 배운 사람이 있다고 해도 역시 이 바른 무공을 배우게 되면 나중에는 능히 따라가서 추월하게 되어 있 는 것이오." 이에! 심황진은 문득 눈빛을 가볍게 반짝이며 말했다. "그러나 저는 가끔씩 환자들 가운데에서 나이가 어리면서도 비정상적으 로 느닷없는 힘을 소유하게 된 아이들을 보게 되는데 그 들의 능력은 대 체 어떻게 되어서 생겨나게 된 것이지요?" 백리자성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그 부분은 어려운 것이기 때문에 나는 말하지 않겠소. 세상에는 간혹 예외적인 일이 생기기도 하지만 역시 정통적으로 무학을 배우는 것이 좋 을 것이오." 심황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군요. 저는 그들의 능력이 기형적으로 발전하여 그 아이의 심신 에 커다란 장애가 도거나 아니면 오히려 능력이 갈수록 줄어들게 되는 것을 보았어요. 역시 가장 정통적인 방법을 따르는 것이 좋겠지요?" 이어심황진이 황마의 위에 올라탄 자세로 천천히 양쪽 손을 움직이기 시작하자 일시에 황종보와 전백승은 그만 놀라서 아하는 외침을 발했다. 다름이 아니라심황진이 이번에는 그 두 사람에게 도움이 되도록 하기 위해 한손으로는 황종보가 가지고 있는 비급의 무형신권을 펼쳤고다른 한손으로는 전백승이 가지고 금룡십팔해를 펼쳤는데 실로 한 사람이 전 혀 다른 두 가지의 무공을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고 제각기 펼칠 수 있 다는 일이 놀라웠던 것이었다. 게다가뿐만 아니라 심황진이 나중에는 오른손의 무형신권과 왼손의 금 룡십팔해를 사용하여 한바탕 겨루기를 시작하는 것을 보고 그만 두 사람 은 입이 딱 벌어졌다. 이 쌍수호박 분심이용의 절기는 그다지 어떤 무예라고 할 수가 없지만 매우 신비로운 효능이 있어서 만약 배우기만 한다면 그 사람의 무공이 삽시간에 크게 늘어나게 하는 잇점이 있는 것이었다. 바로 도가의 절기였는데 두 사람은 거의 전설처럼 들어오다가 느닷없이 오늘 그와 같은 무공을 직접 보게 된 것을 경악스럽게 생각했다. 그러나 기실 그와 같은 부분은 심황진에게 있어서 가장 기초적인 무학 의 부분이라는 것을 그 들은 아직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이윽고 하나의 무형신권과 하나의 금룡십팔해가 서로 어우러지 며 그야말로 현기막측하고 기이하기 짝이 없는 변화를 보이기 시작하자 그들은 이내 그 난해하고 심오한 변화속으로 빠져들어가기 시작했다. 기실무학을 배우는 사람들은 일단 어떤 무공이나 초식을 배우게 되면 그것을 완숙하게 펼칠 수 있도록 연마하지만 나중에 실전에서 응용할 수 있도록 연마하지만 나중에 실전에서 응용할 수 있도록 선배들이 펼치는 광경을 구경하게 되어 있었다. 따라서훌륭한 스승을 모시고 있는 제자는 남들보다 더욱 기초가 튼튼해 지고 빠르게 진전을 보일 수가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황종보와 전백승은 그간에 그저 자신들의 경험만을 회상하며 무 공을 배우다가 그와 같은 실전이나 다름이 없는 광경을 보게 되자 그 무 학들의 무궁무진한 변화와 위력에 대해서 새삼스럽게 알게 되었고 깊이 몰두하게 되었다. 실로 그와 같은 시간은 그 들에게 놀라운 성취를 가져다 줄 것이 뻔했 다. 원래 이 심황진이 오른 주먹으로 펼치고 있는 무형신권이라는 것은 바 로 백리자성이 흑풍와선기의 완성이라는 의미에서 창안한 것으로서 바로 무겁고 강인한 위력에 흑풍와선기의 내용에 강중유유(剛中有柔)의 이치를 부여하여 강하면서도 부드럽고 무거우면서도 빠르고 가볍게 움직이는 최 절정의 변화를 이루고 있어서 설령 흑풍와선기를 터득한 황종보라고 해 도 그것을 연성하고 이해하기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황종보는 전날에 그 비급을 전해받고 스스로 깨우치기 위해 애를 깼었 지만 결국에는 거의 손을 대보지도 못하고 미루다시피 하고 있는 상태였 는데 지금 그 실제의 운용되는 모습을 보게 되자 절로 마음의 문이 열린 듯 하여 정신을 몰두하게 되었고 이마에 땀을 송글송글 맺히게 되었다. 마치 그것처럼 무형신권이 말그대로 강한 가운데에 지극히 빠르고 영활 하며 가벼운 이치를 담아서 저의 형체도 없이 무수한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특징이라면 빠르고 영활하며 가벼운 이치를 담아서 거의 형체도 없 이 무수한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특징이라면 금룡십팔해 역시 오로지 빠 른 변화 위주의 섬류무형수의 기능에서 탈피하여 강하고 부드러우며 반 탄하고 흡수하며 쪼개고 휘어감고 얽어매는 등의 무수한 변화를 내포하 고 있어서 그야말로 눈알이 뱅뱅 돌아갈 만큼의 혼을 빼앗아 가는 신묘 한 절기였기 때문에 전백승 역시 눈이 휘둥그래진 상태에서 심황진와 손 길에 넋을 잃었다. 백리자성은 원래 이러한 상황을 바라고 있었기 때문에 심황진이 고맙게 도 그와 같은 절기를 펼쳐서 두 사람을 지도해 주는 것을 보고 내심 흐 뭇하게 생각하며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심황진이 잠시 그렇게 열심히 두 손을 현란하게 놀려서 무공시전 을 보이고 있을 때였다. 느닷없이 무슨 기척을 들었는지 심황진은 갑자기 두 손의 움직임을 우 뚝 멈춰세우더니 별안간 앗 하는 짧은 경호성을 발하면서 그 자리에서 증발하듯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백리자성 등이 놀라서 고개를 들어보니 어느새 심황진의 몸은 말 위에 서 벗어나 저만큼의 앞에서 조용히 지면으로 내려서고 있었다. 제30장 기이한 독약 심황진이 그 수십장의 거리를 단숨에 이동하는 신법은 가히 불가사의하 고 멋들어진 것이었지만 기실 백리자성과 황종보 등은 이미 그녀의 그러 한 능력에 대해서 익히 알고 보아왔었기 때문에 경탄보다는 놀라움이 더 컸다. 원래 심황진은 성품이 매우 조용하고 차분하여 쉽게 행동을 하고 놀라 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실로 조금전에는 느닷없이 열심히 하던 무예시전 을 도중에서 그만두었을 뿐만 아니라 경호성까지 발하여 날아갔기 때문 에 혹시 무슨 커다란 사건이라도 발생한 것이 아닌가 발생한 것이 아닌 가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주인을 잃은 황마와 백리자성을 태운 황종보 등은 졸지에 멍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일제히 그쪽으로 빠르게 다가갔다. (......?) 백리자성 등이 다가가자 심황진은 그저 평평하게 갈대밭이 우거져 있는 숲을 주시하며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는데 그 표정이 매우 심각해 보였 다. 백리자성은 의아해져서 물었다. "무슨 일이라도 생겼소?" 심황진은 이에 대답을 하지 않고 자신의 손가락으로 앞쪽을 가리켰다. (......!) 백리자성은 그쪽으로 시선을 보내다가 문득 갈대밭 속에 한 구의 비쩍 마른 시신이 있는 것을 보고 역시 다소 의아하게 생각했다. 비록 그 시신이 어느 정도 특이하게 마르기는 했어도 강호에서 험란한 일을 당하여 참혹하게 죽어가는 사람들이 많은데 어찌 심황진이 그것을 보고 그토록 심각한 표정을 하는가 하고 기이하게 생각하는 것이었다. 심황진은 그것을 보고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저는 지금 시신의 상세를 보고 있는 거예요." (상세?) 백리자성은 다시 고개를 돌려 그 시신을 주시하고 문득 뭔가 생각한 듯 눈을 크게 뜨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원래보아하니 그 시신의 임자는 그처럼 깡마른 사람이 아니었던 모양이 었는데 죽음에 이르러 갑자기 그와 같이 체내의 수분이 말라서 깡마른 몸이 되었던 것이었다. 게다가 그 이외에 상처자국은 보이지 않았다. 이때 황종보와 전백승이 백리자성의 심리를 파악한 듯 조용히 남여를 내려놓고 그 시신의 앞으로 걸어가서 천천히 앞뒤로 보면서 조사해 보았 으나 역시 전혀 상흔이 나타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었다. 그것을 보고 그들이 크게 의아해하자 백리자성이 문득 가볍게 탄식을 하며 입을 열었다. "실로 강호는 갈수록 살기가 어려워지는 구려" 황종보가 이에 참다못해 입을 열어 물었다. "장문인. 대체 이 시신은 어떤 무공에 의해 죽음을 당한 것입니까? 제가 생각하기에는 이 수법은 바로 전의 그 것과 비슷하......" 황종보는 비슷하다고 말하려다가 문득 말을 멈추었다. 비슷하기는 해도 전혀 다른 점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보고 백리자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비단 비슷한 뿐만 아니라 실은 같은 것이요. 즉같은 무공에 당 한 것이오." 황종보와 전백승은 그렇지 않아도 이 일이 매우 기이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백리자성이 가공스럽다는 표현까지 쓰고 있는 것을 보고 더욱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시신을 내려다보며 그의 말을 경청했 다. "우리는 전에 일광수에 당한 사람들의 시신을 본 적이 있지만 그때의 시신은 겉으로 보기에 멀쩡했던 반면에 지금의 시신은 이와 같이 다른 면모를 보이고 있는 것은 실로 다름이 아니라 그 시전자의 무공에 차이 가 있기 때문이오." 황종보는 놀라 다시 물었다. "무공에 차이가 있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백리자성은 대답했다. "원래 과거 좌장로의 일광수의 능력은 겨우 절정고수의 경지에도 이르 지 못한 수준이었는데 만일 그 일광수를 최절정의 경지를 벗어난 사람이 전개하게 되면 실로 이와 같이 내장 등을 녹이지 않고 직접 그 사람의 원기만을 흡수하게 되는 것이오." 전백승이 놀라 물었다. "그렇다면 이 시신은 원기를 빼앗겨서 죽은 치라는 말입니까?" 백리자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이자의 몸은 한점의 물기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오. 그것은 이자 의 원기가 흡수당하면서 수분도 동시에 증발되어 마치 마른 나무처럼 말 라죽었기 때문이오." 전백승 등은 대체 장력을 펼쳐서 사람의 원기까지 흡수하는 무공에 대 해서 도무지 상상을 할 수 없었다. 그들은 일월신교의 무공들이 하나같이 기이하여 그 일광수라는 무공 역 시 괴이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실로 이와 같은 위력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는 몰랐다. 심황진은 바로 그러한 사실 때문에 그토록 놀랐던 것이었을까? 그들이 심황진의 얼굴을 바라보자 백리자성 역시 그녀를 보고 있다가 다소 착잡 한 표정을 입을 열었다. "나는 서책에서 일월흡성대법을 절정으로 연절한 사람이 이와 같은 능 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았지만 실로 그와 같은 것을 현실로 보게 되었을 줄은 몰랐소 그들의 능력은 이미 최절정의 경지를 넘어서서 갈수 록 사람들의 원기를 흡수하여 공력을 중가시키고 마침내는 그 공력이 십 갑자에 달해서 금강불괴지신에 버금가는 일월사자가 된다고 하던데 그 것이 사실이오?" 심황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소 무거운 어조로 대답했다. "그 일월사자인 일월마왕들은 공력이 기이하게 십갑자의 경지까지 높아 져서 일반의 사람들로는 감히 상대할 수가 없게 되지요. 우리는 사실 일 월신교의 교세가 확장되고 있는 상황이라 주시하고 있었는데 그들이 이 미 일월사자까지 만들어 놓았을 줄은 물랐어요." 황종보와 전백승은 무슨 일월마왕이니 하는 것들이 공력이 무려 십갑자 에 달하고 거의 금강불괴지신에 가깝다는 말을 듣고 는 일시 놀라서 할 말을 잃었다. 이제 겨우 이갑자의 공력을 터득하고 대단히 만족스러워 하는 그들에 비해서 그 십갑자의 공력은 상상할 수도 없는 능력을 낳을 것이기 때문 이었다. 황종보가 물었다. "그렇다면 그 일월마왕들이 이미 이 부근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말입니 까?" 심황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겨우 하나의 시신이 생긴 것이니 대체 얼마나 많은 일월사자가 나타났는지 알 수 없지만그 들이 일단 활동을 시작한 이상은 우리는 앞 으로 매사에 행동을 주의하고 밖으로 다니지 말아야 하겠어요." 심황진은 말을 끝내자 마치 더 이상 이러한 곳에 있기가 싫어졌다는 듯 이 훌쩍 신형을 날려 황마의 위에 올라 객점이 있는 곳으로 먼저 나아가 기 시작했다. 황종보와 전백승은 이에 급히 신형을 움직여 백리자성의 몸을 남여에 태우고 그 남여를 앞뒤로 들어서 심황진의 뒤를 따르며 문득 입을 열어 물었다. "저희들은 아직 잘 모르고 있는데 대체 그 일원마왕들이 어떤 존재들인 지 다시한번 설명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백리자성이 앞으로 모두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서는 필시 그들에게 자 세히 알려 주는 것 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입을 열어 말했다. "원래 일월신교의 무공에는 일광수와 월영인이라는 장법외에도 일광지 와 월영지일광신법월영보법 따위의 무학들이 있는데 기실은 그것들보다 더욱 두려운 것은 내공심법인 일월흡성대법이라는 흡력공과 일월건곤대 나이일월무쌍무영십팔류라는 라는 것들이오" 황종보와 전백승은 갑자기 장문인이 전혀 듣지도 못했던 무공들을 나열 하자 다소 긴장이 되어 그의 말에 귀를 집중했다. 백리자성은 다시 말을 이었다. "일월흡성대법은 바로 일명 흡성마공이라고 불리우는 것으로여러분들도 아다시피 일월신교의 가장 기초적인 내공심법인 동시에 가장 무서운 무 공인 것이오. 이 내공을 연성하기 위해서는 일단 자신의 전에 있었던 공 력을 깡그리 제거해야 하고 이어 단전을 텅비어 놓도록 하여 전혀 상식 과는 다른 방법으로 흡력공을 발휘하여 상대의 몸에 접촉하여 공력을 갈 취하게 되는 것이오. 이 무공에 있어서 공력을 흐트러뜨리는 산공이라고 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고비인데일단 그것을 성공하고 타인의 공력을 흡 수하여 체내에 저장할 수가 있게 되면 그 사람은 타인의 공력을 이용하 여 공력을 급격하게 증가시켜 갈 수가 있는 것이오. 바로 일월흡성대법의 마력도 여기에 있는 것이오......" 황종보 등은 그렇지 않아도 과거 사도백봉의 일을 상기하고 있었던 참 이라 내심 고개를 끄덕이게-되었다. 백리자성은 자상한 표정으로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러나 실은 모든 사람들의 육신은 한계가 있는 것이어서 만일 그 공 력이 삼갑자의 경지를 넘어서게 되면 다른 사람들과 달리 무리한 흡력공 에 의해서 공력을 증진시켰기 때문에 그것을 연성한 사람들은 전신의 몸 에서 이상이 오기 시작하고 더 이상 타인의 공력을 흡수할 수가 없게 되 는 장애를 맞이하게 되오." ............ "바로 거기에 이르러서 대부분의 흡력공을 배운 사람들이 후회를 하게 되지만 이미 그것을 배우기 시작한 사람은 좀처럼 그만둘 수가 없는 것 이니 이미 죽은 나의 외사촌누이만해도 아직 깊은 경지에 이르지 않았기 때문에 도중에서무공을 폐수할 수가 있었던 것이었소. 일월흡성대법을 연 성한 사람됨은 대부분이 그러한 경지에 이르게 되면 간혹 주화입마에 걸 리거나 아니면 횡사를 하게 되고더러는 교묘한 다른 방법을 이용하여 장 애를 해소하려고 하기도 하오. 그러나 일월신교에서는 그와 같은 일이 발 생하여 교도들 가운데에서 절정고 수들이 줄어들게 되자 이내 다른 방법 을 생각해내기에 이르렀소." "그것은 바로 이른바 교주인 일월성자의 성령을 받는다는 것이오." 전백승이 놀라서 물었다. "성령이라니 그 것은 대체 무엇입니까?" 백리자성은 담담히 웃으며 대답했다. "내력이 이미 전신에 가득차서 불순한 상태로는 삼갑자 이상을 지탱할 수가 없게 되자 교주인 일월성자가 자신의 능력으로 그 사람의 두정을 열어주는 것이오. 만일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의 심령은 교주의 심령에 종 속되게 되어 있는 것이므로 일월신교에서는 그 일에 성령을 받는 것이라 고 하는 것이오." 황종보가 놀라서 물었다. "만일 그렇게 심령에 종속되게 된다면 누가 그러한 일을 하려고 하겠습 니까?" 백리자성은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 일월신교는 원래 서역에서 건너온 것으로 자칭 일월성자라고 하는 구양극서가 중원에서 오히려 거대하게 일으킨 세력이오. 그 세력은 이미 서역의 교세와는 거리가 있다고 할 수가 있는 것이지. 그들은 육식을 하 지 않고 소채만을 먹고 살아가면 불을 숭배하고 시체를 발가벗겨서 묻는 나장의 풍습을 그대로 따르고는 있지만 그 일월신교의 무공은 전적으로 그 구양극서에게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오. 그 구양극서는 아주 탁월한 능 력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 일명 일월신교의 태상교주판고도 하는데그의 무공은 서역의 것을 내포하고 있으나 그는 분명한 중원의 사람이오." 황종보 등은 백리자성이 그처럼 일월신교의 교주를 장황하게 설명하자 듣고 있다가 다시 입을 열어 물었다. "그렇다면 그 일월성자는 틀림없이 중원을 자신들의 세력으로 무너뜨리 려는 것이로군요." 백리자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중원에는 적지 않은 세력들이 있어서 함부로 그와 같은 망상을 품을 수 없는 것이지만 그들의 능력은 대단하여 가히 그럴 수가 있다고 할 수 가 있겠지. 그 두정을 연다고 하는 것도 기실은 최절정의 지고지순한 내 공을 쌓은 사람이 다시 내력이 육갑자의 경지에 이르게 되면 전신주천과 대주천을 완성하여 생사현관을 통과해야만 한다고 하는 것인데일월흡성 대법은 타인의 공력을 흡수하여 그 성질이 불순하기 때문에 도저히 스스 로의 힘으로는 두정을 열 수가 없게 되자 일월성자가 직접 자신의 능력 으로 개통시켜 주는 것이었다. 그런 과정에서 그의 심령이 개입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그 이후 로도 계속해서 그의 심령이 개입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머리가 미쳐버리 게 되는 것이니 모두가 순순히 따르게 되어 있는 것이오." "만일 그렇게 되어서 두정이 열리게 되면 다시 타인의 공력을 흡수할 수가 있게 되는 것이고 일월흡성대법을 최고경지에 이르도록 연성하게 되는 것이오." 전백승이 물었다. "그렇다면 그 일월흡성대법을 최고로 연성하기 위해 그자들이 실력에 제압당하기를 원한다는 말인가요?" 백리자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고로 마공이 가는 길은 정해져 있는 것이니 그와 같이 하지 않는다 면 스스로 주화입마를 초래하거나 아니면 죽음을 당하게 되어 있는 것이 니 차라리 사람들은 보다 높은 무예를 터득하기 위해 그러한 일을 자청 하게 되어 있는 것이오. 만일 사람이 그 와 같이 두정이 열리게 되면 다 소 심령의 제압을 받게 되겠지만 능력이 탁월해질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을 유지하는데 있어서도 별로 지장이 생기지 않기 때문이오" 전백승이 물었다. "그렇다면 그렇게 해서 생겨난 일월마왕들은 대단히 무섭습니까?" 백리자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대단히 무서운 존재들이오. 비록 스스로 두정을 연것은 아니기 때문에 최절정의 경지를 벗어나기는 했지만 초절정의 고수라고 할 수가 없소. 그러나 그들은 이후에 공력을 흡수하여무려 십갑자에 달하는 공력 을 얻을 수가 있기 때문에 실로 초절정의 고수들보다도 더욱 내공이 심 후해진다고 할 수가 있는 것이오. 그들의 전신은 거의 금강불괴지신으로 화하고 놀라운 능력들을 발휘하게 되어 있소." 황종보와 전백승 등은 이미 심황진의 놀라운 능력들을 보아왔었는데 기 실 그 일월마왕들이 그 보다 더 놀라운 능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는 얘기 를 듣자 마음이 크게 진동하는 것을 느꼈다. 그들은 기실 심황진과 같은 고수는 천하에도 얼마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만일 일월신교에 그와 같은 마왕들이 열명이라도 된 다면 그 위력을 어떻게 감당할 수가 있겠는가? 황종보와 전백승은 자신들이 이제까지 배워온 무학에 대해서 깃은 회의 가 치미는 것을 느끼며 또한 깊은 두려움이 가슴에서 일어났다 만일 그 일월마왕 가운데와 하나만이나 우연히 만나게 된다면 자신들의 목숨은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전백승이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그 들이 공력을 십갑자 이상으로 쌓는 일은 없습니까?" 백리자성은 고 개를 가볍게 내저었다. "그들의 몸이 비록 두정이 열려 있고 심령의 보호를 받고 있는 것이라 고는 하나 그 내력이 불순하기 때문에 십갑자 이상의 공력은 취득할 수 가 없소. 그들은 비록 습관적으로 타인의 공력을 흡수하겠지만 그것들이 일면으로는 외부로 유출되게 되는 것이오. 전백승은 다소 안심하기는 했지만 설령 그 들이 십갑자 이상의 공력은 쌓지 못한다고 할지 라도 자신에게 비하면 그야말로 하늘과 땅의 차이와 도 같은 지라 감히 더 이상 질문할 용기를 잃고 말았다. 백리자성은 그들을 향해 다소 위로하듯이 말했다. "그들의 무공은 비록 위력이 막강하기는 하지만 방문좌도의 것이라 나 중에는 심마에 걸려들게 되어 있는 것이고 또한 일시적으로는 능력이 탁 월해도 결국 몸을 망치게 되어 있는 것이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배우고 있는 무공들은 심신을 한층 건강하게 하는 것이니 결코 그들의 무공을 부러워할 필요는 없소." 전백승은 마침 그와 같은 능력들을 잠시라도 갖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 까 하고 생각하고 있다가 내심을 들키고는 가볍게 안색을 붉혔다. 심황진이 이미 저만큼 앞서서 가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서둘러서 그 뒤 를 따르기 시작했다. 심황진은 객점으로 돌아오자 문득 백리자성에게 자신이 황산으로 돌아 가서 그 일을 할아버지께 알려 드려야 하겠다고 말하며 떠나가 버렸다. 원래 심황진이 늘상 곁에 있었을 때에는 다소 기이한 처녀라는 생각이 들면 서도 그리 귀하게 생각되지 않았었는데 막상 그녀가 떠나고 나자 점창파 의 제자들은 하나같이 매우 서운하게 그녀의 무공은 실로 높아서 지금까 지 점창파의 방패 역할을 해왔었던 것이었다. 점창파에는 지금 해박한 지식이 있는 백리자성이 있지만 정작 최절정의 고수는 하나도 없는 상태여서 만일 어떤 일이 발생하게 되면 심황진의 도움이 매우 그리워질 상황이었다. 기실 그녀가 항상 곁에 있어 주었기에 점창파의 사람들은 그녀의 덕을 많이 보았었고 게다가 나중에 태양마교 도들이 나타난다고 해도 마음이 든든했었다. 그러나 심황진이 그렇듯 훌쩍 떠나가 버리자 점창파의 제자들은 마음이 매우 서운하면서도 자신들의 위기를 실감하고 더욱 무공연마에 정진하는 모습들이었다. 심황진은 떠나면서 구전신단을 모두 백리자성에게 건네주고 떠났기 때 문에 일행이 일정에 따라서 움직이는데는 별로 지장이 없었다. 그런데마악 심황진이 황산으로 돌아간 직후에 느닷없이 백리자성의 행 동도 다소 기이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심황진이 곁에 없어서 산책을 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져서 그런 지는 몰라도 그 는 이후로는 결코 외부로 출입을 하지 않고 그저 오전에 무공구결을 가르친 다음에는 오후에는 내내 자신의 처소에 틀어박혀서 뭔가 깊이 연구하고 이윽고 저녁무렵이 다 되어서야 파리해진 신색으로 나오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이번에 그가 어떤 연구를 한다면 그것은 점창파에 크게 도움 이 되는 것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러나심황진도 없는 상태에서 그가 만일 과로하여 병이라도 나게 된다면 큰일이라고 생각하여 은근히 걱정 을 하고 신경을 썼다. 특히 여문량은 당금의 점창파에서 가히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위치에 있 다고 찰 수가 있는 사람이었는데 백리자성의 행동이 눈에 띄게 달라지기 시작하자 은근히 사람을 보내서 백리자성의 움직임과 그의 건강을 조사 하는 등의 깊은 관심을 보였다. 그런데 이윽고 네명의 호법들이 그런대로 기초적인 천룡무상신공의 이 치를 깨달아서 구전신단을 복용하고 일갑자에 달하는 내공성취를 이루었 을 무렵의 일이었다. 백리자성이 문득 여문량을 부르더니 기이한 지시를 내리는 것이었다. 여문량은 그가 특별히 금침 등을 주문하게 하고 약방문이나 단로등을 만들어 오게 하는 것을 보고 무슨 약을 제조하려는 것인가 하고 생각했 었지만 이내 그 약방문 가운데에는 극히 지독한 독약들이 많이 섞여 있 는 것을 알고 안색이 변했다. 그는 비록 백리자성이 무슨 독공을 연마하려는 것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그 독을 써서 무슨 일인가를 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백리자성이 지시한 약방문 등은 매우 까다롭고 구하기가 어려웠으며 준 비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었지만 여문량은 매우 총명하고 치밀하여 이내 그 모든 것을 준비해 주었다. 백리자성은 다시 자시의 처소로 들어가더니 이번에는 오전에도 밖으로 나오지않고 잠도 자지 않는 듯 하면서 열흘 가까이나 몰두하더니 이윽고 열흘이 지나서야 매우 초췌한 몰골로 사람들의 앞에 나타나는 것이었다. 여문량은 그의 몸에서 짙은 단약의 냄새가 풍기는 것을 보고 웃으며 물 었다. "혹시 또 다른 영단이라도 제조하셨습니까?" 백리자성은 그 말에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영단이라고 하는 것은 비단 그 재료를 구하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시간과 정성이 많이 소모되는 것인데 내가 이와 같이 허약한 몸으로 어 떻게 그러한 것들을 만들 수가 있겠소? 내가 지난 열흘간 노력하여 만은 것은 바로 이 한 알의 독약이라오." 말과 함께 백리자성이 품속에서 한 알의 계란만한 검은 알약이 들어 있는 작은 옥 병을 꺼내 사람들 앞에 들어보이자 여문량이 놀라서 물었다. "독약이라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백리자성은 웃으며 대답했다. "여러분들도 이미 아시고 계시겠지만 나는 원래 시한부의 생명을 살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겨우 일년도 살기가 어려운 상태라오. 그러나 지금의 강호의 상황이 아무래도 좋지 않아서 본파의 입장이 태양마교들이나 일 월신교의 사람들과 부딪치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아서 미리 준비하는 것이오. 바로 이 한 알의 독약이면 우리는 한차례의 액겁을 면할 수 가 있게 될 것이오." 여문량은 백리자성이 대강대강 말해주는 설명이 이해하기가 어려워서 다시 물었다. "대체 그 독약은 어떤 것입니까?" 백리자성은 웃으며 대답했다. "이 독약의 이름은 바로 잠령혈신단(潛靈血神丹)이라는 것이오. 과거에 한 유명한 독술가가 있어서 이와 비슷한 것을 만들었었는데내가 그 것을 한차례 조사해 보고 나에게 어울리는 것으로 새롭게 고안한 것이오." 여문량은 그 잠령혈신단이라는 이름만 들어보아도 실로 무시무시한 독 약이라는 것을 알수가 있을 것 같아서 안색이 변해서 물었다. "그럼 그 잠령렬신단의 약효는 어떤 것입니까?" 백리자성은 미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이 독약은 이름 그대로 각종의 유명한 극독들을 혼합하여 만드는 것이 오. 실로 거기에다 다른 약재들까지 배합하여 극독들의 성질을 상충상조 하게 만들고 그럼에 따라서 일시적으로 그것을 복용한 사람의 일신의 잠 력을 모조리 끌어올리게 하는 것인데나는 거기에다 나의 만절산맥의 특 성을 이용하여 곳곳에 흩어져 있는 기운들이 극도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게 약력을 더욱 높여놓았소-만일 내가 이 독약을 복용하게 된다면나는 일약 잠력이 발동하여 가히 십갑자가 넘어서는 공력을 가진 무림고수가 될 것이오." 여문량은 그가 비록 무림고수가 된다고 태연한게 말을 하고 있지만 실 로 그처럼 천하의 독약을 복용하여 좋게 되는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에 다시 물었다. "그럼 그것을 복용하고 난 이후에는 그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 백리자성은 웃으며 대답했다. "이 독약은 그야말로 나의 신체적인 특성을 최대한으로 이용하여 내부 의 모든 기운들을 최대한으로 일으키고 충돌하게 하여 최대의 공력을 이 루려는 것이므로 그야말로 무한한 고통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 오. 그런 상황에서 고통을 참고 금침술을 이용하여 전신의 잠력을 모조리 격발시킨다면 당분간은 십갑자가 넘는 공력을 가진 무림고수가 될 것이 지만 이미 그 원기를 모조리 소모하였기 때문에 육육은 삼십육겨우 한달 가량을 지나서 그 사람은 도저히 어떻게 해볼 수도 없이 죽음을 당하게 될 것이오." 사람들은 태연하게 말하는 백리자성의 얘기를 듣고는 실로 그 잠령혈신 단이 일반인으 로서는 감히 복용할 엄두도 낼 수가 없는 것이며 무한한 고통을 수반하여 성공할 확률도 거의 없는 것이고게다가 실로 참혹한 결 과를 낳게 하는 독약이라는 것을 듣고 다 함께 안색이 대변했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실로 그러한 독약을 복용해야 한다면 그것은 차라리 죽는 것보다도 못하게 될 것이었다. 이모화가 백우선을 들어서 두어번 자신의 얼굴을 부치고 나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장문인구태여 그러한 방법을 쓰실 필요가 있는 것입니까? 비록 우리 점창파의 일이 중하다고는 하나 역시 사람의 목숨이 우선이 아니겠습니 까?" 백리자성은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대의 말은 틀렸소나는 이미 여러번이나 죽음의 문턱에 갔다온 사람 이기 때문에 오히려 목숨보다도 귀중한 것들이 있는 법이라오. 나는 이미 오래 살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점창파의 미래를 위해서 뭔가 일을 할 수가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오게다가 이 독약은 오직 나에게만 소용되는 것이기 본파의 운명을 지키려는 것이오." 제31장 동영의 검총 점창파의 제자들은 그야말로 온갖 고통을 무릅쓰고 점창파의 앞날을 위 해 애쓰려는 백리자성의 살신성인과도 같은 숭고한 행위에 대해서 말할 수 없는 깊은 감격을 느꼈다. 그들은 순간 참을 수가 없어서 일제히 백리자성을 향해 대례를 올리며 소리높여 말했다. "장문인께서 그와 같이 애써 주신다면 장차 우리 점창과의 미래는 밝을 것이며 누구라도 감히 헛되이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여문량이 대표로 그와 같이 말을 하자 백리자성은 마주 답례한 다음에 웃으며 그 독약을 품속에 집어넣은 뒤에 말했다. "여러분은 앞으로 계속해서 열심히 무공연마에 전력을 기울여 주시기만 하면 되는 것이오. 내가 모든 것을 알아서 처리할 것이니 그대들은 아무 런 염려를 하지 말기를 바라오." 이에 여문량이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말했다. "하지만 장문인께서는 그 독약을 사용하실 때에는 신중을 기하시고 앞 으로 가능하면 그것을 사용하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백리자성은 그의 손을 잡아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마침 그러려던 참이었소." 백리자성은 이어 여문량의 손을 놓고 일일이 제자들을 찾아다니며 그들 의 그간의 무공수련의 진전이 어떠하였는가를 물어보고 이어 하나씩의 구전신단을 내려주기도 했다. 원래이 구전신단은 천료수상신공을 제대로 터득하고 있기만 하면 즉각 일갑자에 달하는 내공을 얻을 수가 있게 하는 것이지만비록 제자들이 천 룡무상신공의 요체를 깨닫지 못하여 그 효력이 반감되게 된다고 해도 지 금은 급한 시기이기 때문에 무작정 그들의 깨우침을 기다릴 수가 없는 상태였다. 그렇게 하여 일반의 제자들의 공력도 일류고수의 공력에 버금가는 상태 가 되었을 때 이윽고 저녁무렵이 되어 점창사수가 이끄는 대로 백리자성 은 다시 건너편의 주루로 향하게 되었다. 점창사수는 백리자성의 그간의 노고를 위로하고 그를 대접하기 위해서 그를 특별히 주루의 좋은 음식들로 대접하려는 것이었다. 별채에서는 네명의 호법들이 십수명의 제자들과 함께 여전히 무공수련 에 열중하고 있으므로 그 들 다섯 사람은 안심을 하고 오랫동안 외부로 나오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마악 그들이 주루의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의 일이었다. 돌연 한줄기의 예리한 눈초리가 느껴져서 일행이 고개를 들고 바라보니 주루의 입구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하나의 기이한 복장의 장한이 그들을 예리한 눈초리로 유심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일행이 비록 귀찮은 일을 벌이지 않기 위해 그저 다시 고개를 숙이고 묵묵히 걸어서 주루의 안쪽으로 들어갔지만 기실 마음속은 매우 기분 나 쁘기 그지 없었다. 점창사수는 이미 내공이 절정의 경지에 이르러 있었고 게다가 여문량과 같은 사람은 이미 무예가 최절정의 경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상태였는 데 만일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나선다면 저 괴이한 복장의 사내를 이기지 못하리라는 법을 없었다. 물론 과거였다면 감히 그런 사내를 이길 수가 없었을 것이지만...... 점창사수는 백리자성이 매사에 아주 세밀하게 신경을 쓰고 노심초사하 고 있다는 것을 고 있었기 때문에 저마다 가슴의 울화를 억눌러 참고 있 는 것이었다. 그 기이한 형색의 사내는 일행이 묵묵히 뒤로 돌아가자 이내 고개를 돌 려 앞을 바라보 고는 다시 그들을 바라보지 않았다. 구석진 자리 하나를 차지하고 나서 점원을 불러서 약간의 훌륭한 음식 들과 술 등을 시킨 다음에 점창사수 등은 은근히 그 사내의 복장을 살폈 으나 매우 낮설은 것이 아마도 그가 중원의 사람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었다. 그들은 머리를 기이하게 땋고 있었고 의복도 마치 푸대자루를 뒤집어 쓴 것과도 같았으며 등뒤에 한 자루의 칼을 매고 있었다. 여문량은 그 다소 굽어진 듯한 기다란 칼집을 보고 백리자성에게 나직 하게 물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아시겠습니까?" 백리자성은 잠시 생각하는 듯 하다가 대답했다. "나는 동쪽 바다의 끝에 있다는 동영의 무사들이 그와 같은 복장을 하 고 다닌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소. 그 는 아마도 동영의 사람인 것 같 소." 동영 실로 그 곳은 거의 전설로써 알려져 있는 거대한 섬나라였는데 요 근래 들어서 부근에 사는 해적들이 남해안에 자주 출몰하여 남쪽의 사람 들이 심하게 당하고 있다는 소문을 여문량등도 이미 듣고 있었다. 여문량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헌데 그들은 이렇게 공공연히 중원에 나타났던 적이 없었는데 대체 어떻게 해서 저렇게 나타났는지 알 수가 없군요." "......" 백리자성은 이때 뭔가 깊은 생각에 잠겨서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때였다. 과연 그 사내는 동영의 사람이라는 것이 틀리지 않아서 점원이 음식들 을 가지고 다가오자 대뜸 점원의 멱살을 움켜쥐고 뭐라고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하더니 이내 서투르기 짝이 없는 중원의 말로 다시 뭐라고 했다. 그러자점원은 금새 안색이 새파랗게 변해서 고개를 조아리며 그를 향해 살살 빌었다. 이윽고점원은 이어 다시 물러가더니 새롭게 음식들을 차려 가지고 와서 그 사내의 탁자위에 내려 놓았는데 사내는 그제서야 아주 뻣뻣한 자세로 음식을 먹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여문량은 점원이 다시 자신들의 탁자로 음식들을 날라오는 것을 보고 기이하게 여겨서 나직한 음성으로 물었다. "이보게! 대체 그가 무엇 때문에 자네에게 화를 내고 그랬는가?" 점원은 이미 그 사내에게 호되게 당했는지라 혀를 내밀면서 고개를 저 으며 대답했다. "저는 그저 늘상 하던대로 그릇을 들고 그 에게 갖다주려고 했는데 아 글쎄 저의 손가락이 약간 국수국물에 닿았다고 저 사람이 갑자기 난리법 석을 떨지 않겠습니까! 아 나의 손가락은 무슨 그렇게 더러운 물건도 아 니고 게다가 오늘 아침에는 세번이나 깨끗하게 씻었었는데 그가 그와 같 이 화를 내다니 이해할 수가 없는 녀석입니다." 일행은 그말을 듣고 저마다 어이가 없어서 웃을 수밖에 없었다. 대체로 대륙적인 기질을 가지고 있는 중화인들은 그 성품이 까다롭지 못해서 간혹 그와 같은 청결에 무관심한 사람이 나타나기 마련이었다. 아까 그 동영의 사내가 화를 낸 것은 아마도 점원이 자신이 먹을 음식 에 더럽게도 손가락을 불쑥 집어넣었기 때문에 그랬던 것일 것이며 그와 같이 깨끗하게 생긴 자라면 당연한 결벽성 같은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어쩌면 저 동영의 사내는 중원에 와서 혹시 누가 자신의 음식물에 독을 넣지 않는가 하고 경계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여문량은 점원이 국그릇을 들 고 있는 손가락을 가볍게 치며 웃으며 말 했다. "실은 나도 저 사내와 마찬가지로 더러운 자네의 손가락을 싫어하는 사 람인데자네는 즉시 나에게 다른 음식들을 가져다 주지 않겠나?" 원래한번 만들어 놓은 음식을 되물린다고 하는 것은 이미 손해를 입는 것이기 때문에 점원들이 그것을 좋아한 리가 없었다. 그런데 여문량이 백리자성을 생각하고 점원의 앞에서 문득 공력을 운용하여 손 가락으로 사기그릇의 윗부분을 가볍게 그으니 돌연 괴이하게도 슥-하는 소리와 함께 그 사기그릇의 윗부분이 마치 예리한 보검에 잘려나간 것처 럼 떨어져 나가는 것이 아닌가! 점원은 이것을 보고 그만 놀라서 혼비백산했다. 그는 아까 그 사내의 힘에 놀라서 정신이 달아날 지경이었지만 지금은 여문량이 혹시 무슨 사술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이에 점원은 감히 그릇값을 물어내라고 하거나 아니면 다른 까탈을 전 혀 부리지 못하고 음식 그릇과 음식을 바꾸어 오기 위해 새파래진 안색 으로 주방으로 물러가 버렸다. 이모화는 이것을 보고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여형! 육맥신검을 벌써 성취하다니 놀라운 일이오." 그렇다. 기실 조금전에 여문량은 아까 사내의 불손했던 태도에서 은근히 오기가 일어서 자신이 이제까지 감추고 있었던 육맥신검의 성취를 약간 드러내 어 보인 것이다. "겨우 기초적인 입문단계에 불과한 것이네." 여문량은 안색을 은근히 붉히고 대꾸했다. 그러나 이때 갑자기 묵묵히 음식을 먹고 있던 그 동영의 사내가 이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예리한 시선을 번뜩이는 것을 보고 여문량은 내심 자신이 실력을 보인 것을 후회했다. 강호에서는 위기가 속출하기 때문에 자신의 실력은 삼 푼쯤 숨기고 있 다가 위기의 순간에 목숨을 보전하는 것이 옳은 것이었다. 지금 느닷없이 자신의 최고공부를 드러내 보였으니 저 동영의 무사가 크게 경계를 하게 되었던 것이고 그렇다면 여기에서 혹시 무슨 좋지않은 일이 일어날 수도 있지 않겠는가? 물론 이모화 역시 그러한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내심은 속이 시원한 느낌 이 들어서 백리자성을 향해 물었다. "어떻게 생각 하십니까 장문인여문형의 무공은 이미 놀라운 경지에 들 어선 것이 아닙니까?" 백리자성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육맥신검이 이미 그 검기의 형체를 이루기 시작한 것으로 보아 이제 머지 않아서 주요한 공부에 들어가게 될 것으로 생각하네그의 뇌전 지의 무공은 이미 순후한 경지에 들어섰다고 볼 수가 있네." 여문량은 백리자성이 그토록 자신을 칭찬하자 절로 겸연쩍어져서 고개 를 숙이며 겸사했다.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이윽고점원이 다시 전전긍긍하며 조심스럽게 음식들을 날라와서 전혀 손을 대지 않고 탁자위에 늘어놓기 시작했는데 백리자성 등은 마악 식사 를 하려다가 문득 아까의 그 사내가 빠르게 음식을 먹어치운 후에 급히 신형을 일으키는 것을 보고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게 되었다. 이때 뜻밖에도 주루의 밖에서는 그 사내와 비슷한 옷차림의 사내들이 대여섯명이나 줄줄이 나타나서 그 사내를 부르는 것이었다. 사내는 즉시 음식값을 탁자위에 올려놓고 빠르게 그 일행에게 달려갔는 데점창사수 등은 실로 그 사내들의 눈빛이 하나같이 예리하며 마치 신들 린 것처럼 번쩍번쩍하는 것을 보니 다소 흠칫한 기분이 되었다. 그러한 현상은 바로 내공이 절정의 경지에 이르러야만 나타나는 것이었 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그 대여섯명의 동영의 사내들은 무공이 이 절정의 경지에 올 라 있는 사람들이라는 말인데 대체 무슨 일로 이 중원에 나타난 것일까? 점창사수 등은 생각같아서는 은밀히 그자들을 미행하고 싶었지만 그러 나 지금의 점창파의 위치가 좋지 못하여 일부러 사건에 휘말리게 되어서 는 안되는 일이고 게다가백리자성의 거동이 불편하여 그들은 그렇게 하 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동영의 사내들이 모두 그렇게 다른 곳으로 사라져 버리자 이모화가 문 득 웃으며 백리자성을 향해 물었다. "장문인께서는 혹시 저들이 어떤 무공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인지 알고 계십니까?" 이에 전백승이 웃으며 나섰다. "장문인께서는 중원의 사람이고 저들은 수만리나 떨어진 동영의 사람들 인데 어떻게 그 들의 배운 무공을 알 수가 있겠소?" 이모화는 고개를 저으며 대꾸했다. "아냐 아냐나는 요사이 혹시 우리 장문인께서 신이 일부러 우리를 돕기 위해 왕림하신분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고 있거든나는 장문인께서 그런 일들을 보지 않아도 알고 계신다는 것을 알고 있네." 백리자성은 그렇지 않아도 그들의 짐이 되어 있는 자신이 미안해서 웃 으며 자신이 알고있는 바를 설명해 주었다. "나는 무슨 신이 왕림한 것도 아니고 그저 허약한 일개 장문인에 불과 하지만 그러나 일찍이 그들 동영의 무사들에 대한 지식을 서책에서 읽은 바가 있기 때문에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소." ............ 백리자성이 입을 열기 시작하자 아니 점창사수는 매우 흥미진진한 표정 이 되었고 이모화는 전백승에게 그것 보라는 듯이 혀를 내밀어 보였다 실로 이들 점창사수는 각기 특성을 가지고 물게 가까운 허물없는 사이들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백리자성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이 동쪽의 바다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는 동영이라는 나라는 전통적으 로 수준 높은 인자술(忍者術)과 도법검법 등이 전해져 내려오 고 있는데 그들의 무예는 비록 내공심법에 관해서는 잘 알지 못했지만 지극히 냉철 하고 합리적인 사고력을 바탕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고도의 극기심이 발 휘되는 살인무예인 것이오. 그들은 대부분이 집단생화에 능숙하여 획일적 이고도 유기적인 구조를 이루고는 하는데따라서 그 들의 야심은 집단적 인 것으로 항상 중원이 있는 쪽을 향해 꿈틀거리고 있는 상태라고 하오." 전백승이 다소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그와 같은 사항은 저희들도 이미 알고 있는 바이지만 아까 보니 그 무 사들은 이미 내공을 상승의 경지에까지 수련하여 내가무공을 연성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건 대체 어찌된 영문입니까?" 백리자성은 웃으며 대답했다. "자고로 동영의 무사들은 야심이 강하고 기질이 거칠어서 곧장 중원으 로 건너와서 그 무예를 자랑하려고 하였었소그러나 기실 그들의 무예는 내공이 깃들어 있지 않은 것이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다소간의 위력을 보 인다고 할지라도 결국은 스스로 좌절하게 되는 것이 대부분이었소. 그 동 영의 무사들은 따라서 한때 중원에서 어떤 내공심법을 얻기 위해 야심을 가지고 움직이기도 했었으나 그것은 물론 잘 되지 않았소설사 중원의 사 람들이라고 해도 훌륭한 무공비급을 얻기라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와도 같이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오." ............ 점창사수등은 음식을 먹으면서 점차로 깊어지는 백리자성의 얘기를 흥 미진진하게 듣고 있었다. 이 백리자성의 얘기는 처음에는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것이었으나 이내 깊이 들어가자 기이한 내용이 많았다. "그런데 어느날 느닷없이 중원에서 한 사람의 아주 뛰어난 고인이 동영 이라는 땅에 대해서 다소의 동경과 야심을 가지고 오히려 동영으로 건너 가게 되었소. 원래 그 동영이라는 땅에는 천하제일인을 가리는 검총(劍 琢)이라는 단체가 있었는데만일 그 검총의 주인이 되려면 전대의 주인을 꺾어야만 하는 비정한 역사가 깃들어져 있는 것으로무수한 과거의 검객 들을 누르고 검의 무덤을 관장한다는 뜻의 말이었소그런데 그 중원의 고 인은 그 곳에 발을 들여놓자 마자 이내 검총의 주인에게 도전하여 불과 일초도 되지 않는 간단한 동작으로 당시 유명한 성가를 누리고 있었던 검총의 주인을 패배시켜 버렸소." 황종보 등은 이러한 얘기를 오늘 처음으로 듣고 있는 것인지라 다소 놀 라와 하며 입을 열어 물었다. "대체 그 중원인은 누구입니까?" 백리자성은 웃으며 대답해 주었다. "그 사람은 바로 천검성자(天劍聖子)상관봉(上官峯)이오." 전백승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동영의 무공이 그토록 형편없는 것이었던 모양이군. 중원 무림인 한 사 람이 가니 그야말로 쑥밭이 되고 말았다니." 백리자성은 웃으며 말했다 "전수석호법의 말은 절반은 틀렸소. 그 사람으로 인해 동영의 무사계가 한때 쑥밭으로 변하기는 했어도 기실 그 들의 무공이 전혀 형편없는 것 은 아니었소." 전백승이 놀라 물었다. "그럼 그들의 무공에도 나름대로의 강한 점이 있었다는 말입니까?" 백리자성은 미소하며 대답했다. "원래 동영의 무학은 내공심법을 배우고 나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기 때 문에 처음에는 그저 일반 병사들의 무예와 다름이 없게 느껴지는 것이오. 그러나 기실 그들의 무예는 고도의 경지에 이르게 되면 이자술을 닦고 극기의 수련을 하여 마음을 맑게 닦아내고 정(精)기(氣,) 신(神)의 삼위일 체가 되어 점차로 자신들도 모르게 내공력이 늘어나게 되는 것이오." ............ 점창사수는 지금 동영의 무사들에 대한 얘기를 처음 듣는 것이었기 때 문에 다소 신기한 기분으로 음식을 먹는 것도 잊은 채 귀를 기울였다. 백리자성은 미소하며 말을 계속했다. "우리 중원의 무예는 내공력을 직접 운행하여 키우고 그것으로 병기를 운용하는 이기어검(以氣料劍)의 무예라고 할 수가 있으나 동영의 무예는 마음으로 힘을 움직이고 힘으로써 기를 폭출시키는 이력행질(二以力行劍) 의 무예이기 때문에일반적으로 우리 중원의 무예에 비해서 동영의 무예 가 다소 진전이 느리고 또한 훨씬 연마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오. 그 러나 실상 똑같이 내공력이 일갑자의 수준에 이르렀을 경우에는 그 들의 무예가 더욱 강한 위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오." 점창사수 가운데에서 그래도 가장 무학에 대한 열의가 강한 사람이 있 다면 그 사람은 바로 황종보라고 할 수가 있었다. 백리자성의 얘기가 이 정도에 이르자 마침내 그는 참지 못하고 질문을 던졌다. "그것은 어째서 그렇습니까?" 아까 점창사수는 그 동영의 무사들의 내공력이 무려 이갑자의 절정고수 의 수준에 올라 있는 것을 목격하고 만일 자신들과 겨루게 된다면 어떠 할까 하는 호기심을 느꼈었다. 그런데 백리자성이 그와 같이 똑같은 공력이라면 단연 동영의 무사들이 유리하 다는 말을 해버리자 황종보를 비롯한 나머지 세명은 크게 의아한 생각이 들었던 것이었다. 백리자성은 담담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의 무예는 고도로 정련되어 나온 정신력의 소산이기 때문에 비록 공력은 비슷할지라도 그 공력에 의존하지 않고 날카롭게 연 마되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오." 즉 그들은 똑같은 내공을 연마하기 위해서 훨씬 더 고련을 했었다고 하 는 것인데그 로인해 그들의 무예는 내공위주가 아니었기 때문에 초식이 더욱 더 정묘해지고 영기가 번뜩이게 되었던 것이오. 그 것은 마치 똑같 은 힘을 갖고 있지만 처음으로 주방의 일을 배우는 사람과 이미 1일에 수십년 간이나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칼질하는 움직임이 다른것이 나 같은 것이오." 점창사수는 백리자성이 동영의 무사들과 중원의 무림인들을 그처럼 초 보자와 완숙한 경지의 사람들에 비유하여 말하자 다소 지나친 것 같을 느낌은 들었지만 그러나 확실히 일리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를테면 동영의 무사들의 무공은 내공을 위주로 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정기신의 합일에 의한 검술의 수련에 절차탁마했을 것이고 그러 는 과정에서 만일 일갑자의 공력을 얻게 되었다면 그것은 이미 깊은 경 지의 검술을 터득하고 있다는 의미인 것이었다. 그러나 똑같이 일갑자의 공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중원의 무림인들은 과 연 모두가 그와 같은 정묘한 검술 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가 있을 까? 중원의 무림인들은 때로는 병기를 사용하지 않고 내력을 이용하는 무예 를 쓰며혹은 내력을 더욱 신장시켜서 그것으로 편리하게 무공을 사용하 려고 하고 있기 때문에 그와 같은 정묘한 검술을 터득하고 있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다만 나이가 그리 많지 않은 약관의 청년이라도 그저 내공을 얻으면 그것을 사용하기 위해 검술 등을 배우는 것이니 같은 공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 들로 보자면 검술에 있어서는 한 사람은 이제 잡은지 얼마되지 않은 것 이고다른 사람은 거의 한평생을 검과 더불어 살아온 것이니 어찌 그 무 예의 능력이 같다고 할 수가 있겠는가? 다만 동영의 무사들은 내공을 운용하는 면에 있어서는 다소 우둔할 뿐 검술에 있어서는 가히 놀라운 위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점창사수는 그와 같이 백리자성의 말을 이해하게 되자 실로 동영의 절 정무사는 중원의 최절정의 고수와 맞먹는 무애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왠지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이었다. 백리자성은 그들을 향해 다시 말했다. "그러나 만일 한 사람이 힘과 기술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그 저 기술만을 가지고있는 사람을 이길 수가 있는 것처럼만일 중원의 무림 인들이 보다 각성하고 동영의 무사들의 노력을 본받아서 열심히 기예를 익히게 된다면 그 들을 이길 수가 있는 것이오. 여타 동영의 무사들이 중 원을 침범하지 못했던 원인은 바로 그 기예의 무술이 힘의 무술인 중원 의 무술에 당하지 못했다는것을 말해주는 것이오. 즉그것은 어린아이의 기술이 제아무리 영활하다고 해도 힘센 장사인 어른을 당할 수가 없다는 것과 같은 것이오." 이모화가 물었다. "그렇다면 가장 정통적인 무예는 어떻게 닦아야만 하는 것입니까?" 백리자성은 담담하게 미소하며 대답했다. "원래 이력행검이라고 하는 검술은 지나치게 기예만을 위주로 하기 때 문에 보다 거대한 힘인 기에 더해서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소! 그러나 마찬가지로 기를 너무나도 숭배한 나머지 검술은 소용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 힘이 무디어져서 쓸모가 없게 되는 경향이 있는 것이오. 따라서 힘을 운용하는 것보다는 기운을 운용하는 것이 더욱 월등하기는 하지만 기를 운용하는 사랑들은 항상 동영의 무사들의 그 강인하고 절차탁마하 는 노력을 배워서 그 기에 알맞는 기예를 갖추어야 하는 것이오. 만일 힘 이 좋고 기술을 모른다고 한다면 사람들이 그를 가리켜서 우둔한 장사라 고 할 것이오." 이에점창사수 등은 일시에 준엄한 꾸짖음을 들은 것처럼 마음이 서늘해 졌다. 기실 일부러 그러려고 해서 그렇게 된 것은 아니었지만 근래에 들어서 점창 사수는 공력이 비상하게 높아져서 절정고수의 내공을 갖추고 있는 상태 였지만 아직 무공수법은 거기에 따라가지 못해서 백리자성이 말하고 있 는 실로 우둔한 장사나 다름이 없는 상태였다. 여문량이 그래도 다소 무공수법을 깨우쳐가고 있기는 하지만 다른 사람 들은 아직도 많은 시일이 지나야만 그야말로 명실공히 절정의 고 수로써 손색이 없게 되는 것이었다. 백리자성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나 기실 진기를 기르고 기예를 철저하게 갖춘다고 해서 모든 무공 의 수련이 끝나는 것은 아니오. 서책에 보면 실제로 무예의 처음과 끝은 오로지 마음속에 있는 것이다. 비단무예뿐만 아니라 다른 기타의 학문 또 한 그와 같이 마음속에 있는 것이니 그것은 그 마음이야 말로 대도(大道) 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라고 적혀 있는데 그 얘기는 천만번을 생각해도 옳은 것이오. 다만 실제로 그 마음을 깨우치지 못해서 무예에 응용하지 못하고 힘과 기술은 사용하게 되는 것인데 말하자면 힘과 기술을 종속된 것이고 마음의 주인인 것이오. 만일 마음으로써 무공을 삼을 수가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무예는 불가사의(不可思識)한 것 그대로일 것이 오." 점창사수는 이 말끝에 백리자성의 안색이 다소 엄숙하게 보이는 것을 보고 실로 그가 이 부분의 내용에 대해서 근간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그러나점창사수 등도 언젠가 얼핏 마음의 무예라는 것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었지만 그 마음의 무예라는 것은 태초때부터 지금까지 풀리지 않 은 수수께끼와도 같은것이어서 과연 그러한 것이 무예가 될 수 있으리라 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전백승이 생각하다가 문득 물었다. "듣자니 심낭자와 같이 초절정의 경지에 도달한 무림인들은 마음의 무 예를 쓸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장문인께서 지금 말씀하시는 것은 바로 그 무예에 대한 것입니까?" 백리자성은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초절정의 경지에 이르러서 일신의 공력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있다 고 하는 것은 그 형식일 뿐이지 마음의 본체에 대한 얘기는 아니오. 초절 정의 경지에 이르게 되면 자신이 뜻하는 대로 기운을 움직일 수가 있다 는 의미로 심검(心劍)이라는 말을 쓰고 있는 것이지 어떤 마음의 힘은 아 니오. 말하자면 마음의 힘이라고 하는 것은 빛나는 태양과도 같은 것인데 그저 그 빛을 거울에 반사시켰다고 해서 그것을 마음의 힘이라고 할 수 가 있겠소! 근간에 말하고 있는 심검이라고 하는 것은 기실은 그 껍질에 도 해당되지 못하는 것이오." 여문량은 백리자성의 얘기가 점차로 난해해져서 자신들이 이해할 수 있 는 범주를 벗어나고 있는 것을 보고 웃으며 말머리를 돌렸다. "그렇다고 해도 역시 심검이라고 하는 것은 놀라운 무예가 아니겠습니 까?" 백리자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심검이라고 하는 것은 확실히 놀라운 무예인 것이오. 인간의 팔은 밖으 로 굽어지지 않고 또한 하늘을 새처럼 날아갈 수가 없다고 하는 제약에 대해서 초탈의 조짐을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니 어찌 놀랍다고 하지 않을 수가 있겠소! 실로 그러한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힘과 기예가 다 함께 정묘해지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오." - 3권에 계속 제32장 여덟명의 초인들 전백승이 다시 물었다. "아까는 동영의 무사들이 내공심법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고 했었는데 어떻게 그와 같은 절정의 내공을 쌓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까?" 백리자성은 잠시 흥분하여 상기되었던 표정을 부드럽게 풀면서 입을 열 었다. "내가 이미 얘기했던 것처럼 동영의 무사들은 내공심법을 모르기 때문 에 설령 내공이 쌓였다고 하더라도 일갑자의 수준을 넘어서기가 어려운 것이오. 인간의 수명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그들이 만일 어떤 기연을 만나서 내공을 높이지 않은 이상은 육십 년간을 수련하면 일갑자의 공력 이 쌓이게 되는 것이오!" 전백승은 다시 물었다. "하지만 아까의 그 무사들이 모두가 그와 같은 특별한 기연을 얻은 사 람들일 리는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백리자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얘기가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게 되었지만내가 아까도 말했듯이 중원인 이었던 천검성자 상관봉이 동영으로 건너가서 파죽지세로 그들을 물리치 고 검총의 주인이 되었던 것은 결코 동영의 무술이 허약했기 때문이 아 니라 오로지 그의 무공이 경세적인 것이었기 때문이었소. 당시 동영에는 기연으로 인해 공력이 무려 삼갑자에 도달하고 최절정의 검도(劍道)를 연 성한 고수들이 있었는데 그 사람들이 모두가 하나같이 상관봉의 상대가 되지 못함은 물론이고 그저 일초도 당해낼 수가 없게 되자 모두들 경악 하게 되었던 것이오." 황종보가 그 커다란 눈을 껌뻑이며 물었다. "그 상관봉은 혹시 아직도 동영에서 살아있는 것이 아닙니까?" 백리자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비단 지금도 살아있을 뿐만 아니라 오래전부터 검총의 주인이 되 었고 동영무사들의 신적인 존재로서 높이 추앙을 받고 있는 사람이오. 한 동안 동영의 무사들은 그 에게 도전하려고 하기도 했으나 그것이 전혀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는 이제는 모든 무사들이 그의 수하에 들어 가게 되었던 것이오. 지금 동영은 바로 그 상관봉에 의해서 하나로 통일 되었고 다시 상관봉은 동영의 무사들에게 여러가지 무학들을 가르쳤는데 그것들은 바로......" ............ "북두신공(北斗神功)을 비롯한 귀결수(鬼決手)구벽신권(九劈神券) 삼합지 (參合指)철혈사십팔퇴신행백변 그리고 북두제왕검형대구식 등의 칠대절학 이오." 점창사수는 백리자성이 동영의 일에 고나해서 얘기하기 시작하자 처음 에는 그저 다소의 지식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느 닷없이 백리자성이 이제 동영의 무사들이 배웠을 그 무학의 이름까지 술 술 말하는 것을 보고는 하나 같이 넋을 잃은 표정이었다. 기실동영으로 건너가서 그와 같은 신화를 이룩한 상관봉이라는 사람도 놀라운 사람이었겠지만지금 그와 같은 내용을 마치 자시의 손금을 보듯 이 훤하게 알고 있는 백리자성이라는 이 역시 대단하기는 마찬가지라고 생각되었다. 이모화가 생각하다 못해 물었다. "그 무공들은 바로 상관봉의 성명절학(盛名經學)들이었습니까?" 백리자성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무학들은 비록 초절정의 무학들이기는 해도 그 의 성명절학이라고 는 말할 수가 없는 것들이었소. 말하자면 그가 초년기에 스스로 창안했던 무학이라고나 할까? 물론 그러한 초절정의 무학들만 해도 동영의 무사들 에게는 파천황(破天荒)등이 놀라운 것들이었지만 실상 상관봉의 진정한 능력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 것들이었소." 점창사수는 그 상관봉이 그저 최절정의 무공을 갖춘 사람들 가운데의 하나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가 문득 백리자성의 말의 내용이 기이 하게 달라지자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최절정의 무학조차 아무 것도 아닌 상관봉의 진정한 능력이라는 것은 대체 어떤 것들이라는 말인가? 여문량이 듣고 있다가 비로소 웃물었다. "장문인의 얘기는 실로 들으면 들을수록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군요. 하 지만 그 뒷부분의 얘기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초절정의 무공이라고 하 면 당금의 중원에서도 보기가 어려운 것인데 그러한 무공을 가볍게 오시 할 수 있는 무림인들이 있다는 말씀입니까?" 백리자성은 미소하며 대답했다. "천하를 통틀어서 그러한 능력을 가지고 以는 사람들은 모두 여덟명이 나 있소." ............! 점창사수는 더더욱 놀라서 어안이 벙벙한 모습이었다. 방금 상관봉의 놀라운 능력에 대해서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었는데 더 욱이 그러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무려 여덟명이나 된다고 하니 어안이 벙벙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때황종보가 뭔가 생각난 듯이 눈을 크게 뜨고 입을 열어 물었다. "그렇다면 저번에 말씀하신 그 일월신교의 태상교주 일월성자 구양극서 도 역시 그 여러 사람 가운데의 하나라는 말입니까?" 백리자성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렇소그 구양극서는 바로 여덟명의 초인들 가운데의 한 사람인 것이오." 백리자성은 원래 홍아와 청아에게 그와 같은 초인들의 얘기를 들려주었 었지만 이제 점창사수에게 그런 얘기를 들려주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 다. 이모화가 문득 생각난 듯이 입을 열어 물었다. "그렇다면 혹시...... 그 심낭자의 할아버님이라는 그 분도 그 여덟명의 초인들 가운데의 하나가 아닙니까?" 백리자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렇소. 그 분 역시 여덟명의 초인들 가운데의 하나인 것이며 심 낭자는 구양극서의 행동이 기이한 것을 보고 자신의 할아버지에게 그 일 을 알려주기 위해 갔던 것이오. 그 분의 이름은 강호산인(江湖山人) 심홍 기(沈洪基)라고 하오." 느닷없이 이모화가 심황진의 얘기를 꺼내게 되자 문득 좌중의 사람들은 그녀와의 기억을 상기하며 다소 추억에 젖어들었다. 실로심황진은 물처럼 잔잔하면서도 깊은 인상을 심어주고 떠났던 사람 이었다. 점창사수 등에게는 그녀는 그야말로 존경스러운 사람이었고 이제 다시 그녀의 얘기를 떠올리게 되자 저마다 문득 그녀의 얼굴이 보고싶다고 생 각되었다. 마치그러한 주위의 우울한 분위기를 잊으려고 하기라도 하듯이 여문량 이 다시 입을 열어 백리자성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그 초인들의 정체는 어떤 것이고 또한 나머진 초인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백리자성은 지난번에 홍아와 청아에게 했던 말을 부득이하게 다시 반복 하게 되었다. "음...... 그 여덟명의 초인들은 기실 한 시대에 동시에 태어났던 것은 아 니었으나 오랜 시일을 두고 살아왔기 때문에 지금에 이르러 그처럼 숫자 가 많아지게 되었던 것이오. 그것은 바로 그들이 초인의 무학을 성취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오." 이모화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그 초인의 무학이라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백리자성은 미소하며 대답했다. "여러분도 이미 초절정의 경지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을 것이오. 이 초절 정의 무학경지는 바로 내공이 육갑자에 이르러 전신주천을 이룩하고 대 주천의 생사현관을 타통하게 되면 두정이 열리게 되는데이때에는 그야말 로 전신의 진기가 뜻하는 대로 움직이며 신묘한 능력을 발휘하게 되는데 설령 육갑자의 공력을 사용하더라도 그 위력은 가히 십갑자의 경지에 도 달하게 된다는 것이오. 바로 그 심낭자의 경우가 그러한 경지에 이미 올 라가 있는 상태이오." 점창사수는 백리자성의 얘기가 정입가경으로 치닫게 되자 다소 넋을 잃 고 고개를 쳐든 채 듣기만 했다. 백리자성은 말을 이었다. "그러나 만일 생사현관을 타통하고 두정을 개통시킨 사람이 더욱 높은 경지를 생각하여 폐관을 하고 침식을 폐하며 계속해서 오랫동안 수련을 하다보면 정말로 내력이 십갑자의 경지에 이르러 체내에 마치 작은 갓난 아이의 형상을 하고 있는 원영이라는 진기의 영체(靈體)가 생겨나게 되는 데이때부터는 그 사람의 몸은 마음장상으로 변하고 그 사람은 두정의 열 려진 통로를 통해 원영을 밖으로 유출시켜서 대지의 진기를 흡수하게 되 는 것이오. 실로 그러한 상태는 상상할 수가 없는 것이고그 원영의 능력 은 신통하여 몸은 가만히 앉아 있어도 마음을 싣고 능히 수천리를 단숨 에 날아갈 수가 있다고 하는 것이오." ............ "이미 말의 생식기처럼 음부가 깊이 들어가서 퇴화되고 정이 누출되는 염려가 없어졌기 때문에 그 사람의 수련은 원영이 어렸을 적에 벼락 등 의 위험을 피하기만 하면 걱정이 없게 되는데이윽고 다시 오랜 시일이 흘러서 그 사람의 원영이 자라나서 그 공력의 깊이가 가히 육십 갑자에 도달하게 되면 원영의 크기가 그 사람과 같아져서 수련이 끝나게 되는 것이오." 여문량이 참다 못해 입을 열어 말했다. "저는 가끔 도가의 선단지술에 대해서 들은 바가 있었지만 실로 그와 같은 일이 가능한 잣인지 몰랐었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렇게 원영이 사람 의 크기와 같아지게 되면 우화등선을 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까?" 백리자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화등선이라고 하는 것은 원영에 의지하여 쓸모없는 육신을 소각시켜 버리고 다른 사계로 날아가는 것인 만큼 무공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고 할 수가 있소당금에 있는 여덟명의 초인들은 바로 우화등선을 하지 않고 살아가는 초인들인 것이오." 전백승이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그렇다면 그 들의 능력은 어느 정도입니까?" 백리자성은 담담히 웃으며 대답했다. "그들의 능력은 상상하기 어려운 것인데말하자면 육십갑자의 공력을 가 지고 있으나 이미 천지간의 기온과 영통하여 대자연의 기운을 빌려서 쓸 수가 있는 광검(灰劍)이라고 하는 빛으로 되어 있는 무예를 쓰며 하늘을 마음대로 날아다니고 게다가그 들의 육신은 원영의 형체가 숨어 있기 때 문에 완전한 금강불괴인 것이고 수명 또한 아주 기나긴 것이오." 점창사수는 그 육신이 금강불괴일 뿐만 아니라 빛의 무공인 광검이라는 것을 쓴다는 말을 듣고는 한동안 어이가 없어서 입을 열지도 못했다. 그것은 그 들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경지의 무예였기 때문이었다. 이모화가 길게 한숨을 불어쉬며 말했다. "그렇다면 그 초인들의 무공은 무예의 가장 궁극이라고 할 수가 있겠군 요. 우화등선하기 직전의 살아있는 신선들이라고 할 수 있으니 말입니 다." 백리자성은 그러나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지는 않소예를 들어서 여덟명의 초인들 가운데에서 대부분의 사람 들이 그와 비슷한 경로를 밟아왔었지만 일월성자 구양극서만은 다른 방 법으로 그와 같은 마중선(總中仙)의 경지에 오르게 되었던 것이니. 모든 무예의 궁극이 그와 같은 선도의 수련에 있는 것은 아니오." 전백승이 물었다. "그렇다면 정말로 무예의 궁극은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백리자성은 담담히 웃으며 대답했다. "내가 이미 아까도 말했다시피 마음의 무예그 진정한 힘이야말로 무예 의 근본이자 마지막인 것이오. 그 힘은 모든 도리를 초월하는 것으로 기 실은 무예라고 이름을 붙일 것도 없는 것이오." 여문량이 다시 물었다. "이를테면 불문에서 마음의 수련을 강조하고 있는데 그 마음의 수련은 그와 같은 무예와 관련된 것입니까?" 백리자성은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불문의 공부는 무예라는 것을초월하는 것이오. 그 내용은 워낙에 심오 하기 때문에 감히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오." 점창사수는 잠시 백리자성의 말을 음미해 보며 생각에 잠겼다. 이제까지 그 들은 오로지 눈앞의 무공을 터득하는 일에 열중했었으나 이제는 보다 근본적인 무학의 원리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이모화가 다시 입을 열어 물었다. "그렇다면 그 여덟명의 초인들 가운데에서 세명의 초인들을 제외한 나 머지 초인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백리자성은 미리 그와 같은 질문이 있을 것이라고 기다리고 있다가 대 답했다. "천하에는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거대한 여덟개의 세력들이 있는데 어 떤 사람들이 그 곳을 가리켜 신주팔패(神州八覇)라고 불렀소이제부터 그 여덟개의 세력을 가지고 있는 여덟명의 초인들의 얘기를 해줄 것이니 한 번 들어보도록 하시오...... 우선 그 첫번째의 장소는 바로 천륭세가라고 하는 것이오!" 백리자성의 말을 듣고 문득 전백승이 놀라선 부르짖었다. "아! 천륭세가!......" 마치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가 문득 생각난 것 같은 태도였다. 그 때문에 주루내의 많은 사람들이 그들이 있는 쪽으로 시선을 던졌으 나 전백승은 급히 겸연쩍은 듯이 고개를 숙였고 백리자성은 은은하게 웃 으며 계속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그렇소. 천륭세가는 사실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하남성 승산 태실봉 의 심처에 은밀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이오. 그들은 일명 백대세가라고도 하는데그것은 바로 그들의 성씨가 하나같이 백씨로 이어져 내려왔기 때 문이오." 여문량은 그 말을 듣고 다소 의아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 천륭세가가 당금에 이르러서도 은연중 무림의 맹주 역할을 하며 중 원의 영도자의 위치를 담당하고 있는 것은 누구라도 알고 있는 일일 것 입니다. 그들의 무예는 확실히 놀랍고 뛰어난 것들이지요. 그러나 그들은 원래부터 강호의 출입을 삼가는 데다가 폐쇄적인 입장을 견지하여 지금 과 같은 혼란한 무림의 와중에도 무림의 일에 관여하지 않고 있으니 과 연 그 가운데 초인의 한 사람이 있다는 말입니까?" 백리자성은 문득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실은 그곳에 초인의 한 사람인 천수자 백일맹이 있는 것은 아니오. 그 는 지금 곤륜산의 좌망봉(坐忘峯)이라는 곳에서 홀로 수도하고 있으며 그 백일맹이라는 사람의 후광에 힘입어서 천륭세가가 지금과 같은 위세를 누리고 있는 것이오." 여문량은 그와 같은 얘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에 잠겼다. "원래 천륭세가는 그와 같이 곤륜산에 있는 한 초인의 후광을 이어받은 것이었군요. 그렇다면 그 초인의 능력은 대단한 것입니까?" 백리자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기실 나로서는 아직 그가 우화등선을 하지 않은 것인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지만 그의 능력은 원래 그 여덟명의 초인들 가운데에서도 발군인 것이오. 천륭세가가 중원에서 은연중 영도자의 위치를 점하고 있는 것은 그러한 상황을 은근히 말해주고 있는 것이오. 게다가 상관봉과 같은 사람 들이 굳이 해외로 나가서 정착하게 되었던 것은 도저히 그를 당해 낼 수 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오." 점창사수는 그 상관봉이라는 초인마저 당해낼 수 없는 초인이 천륭세가 와 연관되고 있다고 하자 일순 저마다 짧은 경호성을 발했다. "그야말로 산넘어 산이요 하늘위에 하늘이 있는 셈이로군요?" 전백승이 그와 같이 말하자 백리자성은 문득 다소 무거운 표정으로 고 개를 천천히 가로저어 보였다. "그런데 근간에 이르러 일월신교의 무리들이 준동하기 시작한 것을 보 니 아마도 그 천수자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되오. 원 래 천수자가 건재할 때에는 그는 정도를 지향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일 월신교의 무리들이 감히 중원을 넘보지 못했었는데 어찌 일월신교가 창 궐하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심낭자도 그 일을 중대하게 생각하여 황산으 로 돌아갔던 것이오." 일이 생겨서 일월신교가 천하를 휘어잡게 되면큰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실로 그와 같온 신선들의 얘기는 자신들이 나서서 될 일이 아니라고 생 각하여 다시 화제를 돌려 입을 열어 물었다. "그럼 두번째의 초인은 어떤 사람입니까?" 백리자성은 미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바로 그는 일월신교의 태상교 주인 일월성자 구양극서인 것이오." 점창사수는 그 말에 일제히 아! 하는 짧은 경악성을 발했다. 황종보가 놀라며 말했다. "실로 그는 그와 같은 놀라온 능력이 있기 때문에 일월마왕들을 길러내 고 있는 것이로군요?" 백리자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원래 이 구양극서와 천수자 백일맹은 서로 숙적과도 같은 관계 였는데 항상 구양극서가 백일맹을 이길 수가 없었소. 그 것은 마치 어둠 이 밝은 햇살을 이길 수가 없는 이치와 도 같은 것이었는데...... 이제 일 월신교가 창궐하는 것을 보니 혹시 백일맹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고 추측하는 것이오." 이모화가 물었다. "그렇다면 고 일월성자라는 초인은 천수자가 아니면 상대할 수가 없는 존재입니까?" 백리자성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지는 않소실상 그 여덟명의 초인들은 각기 능력의차이가 있는 것 이 사실이지만 이미 원영을 성취하고 있어서 구양극서만 해도 강호산인 과 같은 사람이 두명만 있어도 이겨낼 수가 없는 것이오. 즉원래 진주팔 패의 주인들은 서로간의 힘의 균형이 복잡하게 얽혀있었기 때문에 여태 까지 조용하게 숨어지냈던 것이오." 여태까지 숨어지냈다가 이제 나타나게 되었다면 뭔가 문제가 발생하였 다는 말이다. 점창사수는 모두가 그와 같은 일에 대해서 우려하는 마음이 일었지만 실로 그와 같은 일은 그들이 우려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었으므로 다시 입을 열어 화제를 돌렸다. "그럼 세번째의 사람은 누구입니까?" 백리자성은 정색을 하고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대답했다. "바로 천하에서 가장 높은 산인 대설산의 성모봉(聖母峯)부근에 위치하 고 있다는 성모(聖母官)의 전설같은 설산성모(雪山聖母)운성죽 (資星竹) 이 바로 그 세번째의 초인이오." 이모화가 놀라며 물었다. "그럼 그 성모궁의 전설은 사실이었다는 말입니까?" 백리자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이오기실 그 곳의 여인들은 하나같이 아름답다고는 하지만 대부분 의 천하의 남자들에 대해서 한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고 그 주인인 설산 성모는 더욱 기이한 성품을 가지고 있는 여인이라고 할 수가 있소그들은 남자들을 마치 개나 돼지처럼 취급하여 일단 모궁의 여인들과 교접을 하 여 아이를 갖게 되면 가차없이 처형하는 것이오......" 백리자성은 말을 하면서 문득 아련한 표정을 지었다. 바로 홍아와 청아가 그런 성모광의 피해자였던 것이었다. 백리자성은 지금쯤 그녀들이 어디에 있을까 하는 걱정과 함께 깊은 애 정이 물밀듯이 일어나는 것을 느끼며 그리움을 억누르기 위해 애를 썼다. 황종보가 물었다. "그렇다면 네번째의 초인은 누구입니까?" 백리자성은 대답했다. "네번째는 바로 심낭자의 할아버지인 강호산인 심홍기이오. 기실 그의 나이는 워낙에 많아서 심낭자의 몇대의 할아버지인지 알 수도 없는 노릇 이지만그의 능력은 실로 놀라운 것이어서 중원을 지키는 두개의 기둥 가 운데의 하나라고 할 수가 있소. 원래 그 의 능력은 3번째의 설산성모의 능력보다도 오히려 우위에 있다고 할 수가 있지만 스스로 네 번째가 된 것은 양보한 것이며 의술의 대가이고은밀히 천하를 위해 의로될 일을 해 나가는 성자(聖者)인 것이오." 점창사수는 일전에 그 심홍기가 백리자성이 거의 죽어가는 것을 다시 살려 놓았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지만 설마하니 그 가 여덟명의 초 인들 가운데에서 능력의 서열이 서너번째에 해당되는 것이라는 것일 줄 은 모르고 있다가 크게 놀라는 표정들이었다. 전백승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하! 실로 그래서 그 심낭자의 능력이 그 토록 탁월하였던 것이로군 요!" 백리자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기는 하오그러나 초인들의 가문에 다시 초인들이 나타나는 것이 아닌 것처럼 그와 같은 성취를 이루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노력도 대단했 고 또한 자질도 그만큼 뛰어났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간과해서는 아니되 오. 비록 길은 열려 있는 것이지만 무수한 인재들이 실은 초절정의 경지 로 올라가는 문턱에서 생사현관을 통과하지 못하고 후퇴하거나 죽음을 당하고 말았던 것이었소." 점창사수는 백리자성의 말을 듣자 내심 마음이 절로 숙연해져서 엄숙한 표정이 되었다. 그러다가 문득 이모화가 웃으며 물었다. "그렇다면 대체 그 상관봉이라는 사람의 능력은 몇번째인 것입니까?" 백리자성은 웃으며 대답했다. "기실 그 상관봉의 서열은 이제 말하려는 다섯번째인 것이오. 그러나 원 래 나머지 네명의 능력이 모두 같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순서를 논할 필 요가 없는 것이오. 여섯번째인 대막신도궁(大業神刀宮)의 도조종(刀祖宗) 곽오후와 일곱번계인 태양마교의 태양노선 적용통치(赤容通治) 그리고 마 지막 여덟번째인 현현각(玄玄開)의 현현노조(玄玄老祖) 모용술박(業容術 理)등의 능력은 모두 비슷하여 우열을 가릴 수가 없소." 점창사수는 무심코 백리자성의 얘기를 듣다가 문득 그의 말 가운데에 태양마교의 주인에 관한 얘기가 있는 것을 보고 놀라서 물었다. "아니 그럼 태양마교의 주인도 그 초인들 가운데의 하나라는 말입니 까?" 이모화의 놀란 질문에 백리자성은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우리로서는 다소 암담한 현실이지만 그것은 사실이오. 원래 사도 가문의 사람들이 태양마교의 분타인 적염동을 그렇게 몰살시키는 것이 아니었소." ............! 여문량이 놀라와 하다가 말했다. "하지만 제가 듣기로는 태양마교는 남황의 미개한 사람들이 주축이 되 어 있는 문파이고 비록 그들의 태양신공이나 태양신장 등이 놀라운 위력 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나 그다지 두려운 것은 아니라고 하던데 그런 것 이 아니었습니까?" 백리자성은 가볍게 탄식을 하며 말했다. "원래 내가 처음부터 점창파에 있었다면 감히 태양마교와 원한을 사는 일을 하지 않도록 했을 것이오. 전에 점창파를 습격해 왔던 무리들은 적 염동 부근에 있었던 태양마교의 분타에 속해 있는 잔당들이었지 그 주력 은 아니었소." 백리자성은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원래 이 태양노선 적용통치는 중원의 사람으로 성격이 소탈하며 그리 사악한 사람은 아니라고 하오. 그러나 그 는 은근히 사람들을 일깨우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 그렇게 일깨워진 영혼이 생겨나기만 한다면 다소의 선악에 대해서는 개의하지 않는 괴팍한 성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남황 으로 내려가서 그와 같은 태양마교를 만들었소. 원래 그는 남황의 사람들 이 더위에 지쳐서 게으르게 살고 있는 것을 보고 그들의 정신력을 강하 게 일깨우려고 했던 것이오 당금에 이르러서 사람들이 그의 성품이 현실 의 이치를 너무나도 무시하기 때문에 사이한 사람으로 생각하지만 그는 오히려 사람들을 강하게 일깨운다는 목적으로 교파의 이름마저 마교라고 지었을 정도인 것이오." ............ "본파가 전에 상대했던 태양마교 도들이 썼던 태앙신공과 태앙신장은 실로 태앙마교의 가장 하류의 무공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들이오. 적용통 치는 원래 그 보다도 훨씬 고강한 초절정의 무학들을 만들어 가르쳤지만 이내 아둔한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고 다시 그 보다 낮은 무공인 태양신 공 따위를 가르치게 되었던 것이오. 그가 가르치는 무공 가운데에는 적양 선단공(赤陽仙丹功) 화염도 (火捨刀)라는 무형의 장법 패권수중지순식천 리의 경공술그리고 봉무구천(鳳舞九天)이라는 무학 등이 있지만 그 위력 들은 태양신장등에 비하면 그야말로 하늘과 땅의 차이인 것이오." 여문량이 다시 입을 열어 물었다. "그럼 우리의 무학을 아무리 연성한다고 해도 결국은 그 들의 무학과는 맞설 수가 없다는 뜻입니까?" 백리자성은 대답했다. "결국은 그와 같은 것이오. 우리는 실로 태양마교와 싸우게 된다면 살아 날 희망이 없게 되는 것이오. 그러나 나는 필시 우리와 상대하고 있는 무 리들이 태양마교도의 주력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우선 우리의 힘을 기 른 연후에 그 주력들이 오게 되면 한번 담판을 지어서 원한을 해결해 보 려고 하는 것이오!" 점창사수는 백리자성의 그 말을 듣고는 하나 같이 등골이 오싹해지고 맥이 빠져나가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만일 백리자성의 말대로 그 담판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할 수 없이 점 창파는 무너져 버리거나 아니면 끝없이 쫓겨야 하는 신세가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상대할 수가 없는 그 초인들을 상대로 점창파 가 이길 수 있는 확률은 그야말로 조금도 없는 상태였다. 백리자성은 너무나도 놀란 나머지 넋을 놓고 있는 점창사수를 위로할 생각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는 비록 이미 그와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직 절망할 단계는 아닌 것이오. 이른바 천하의 도리는 바르게 나아가는 사람에게 나쁘게 되지 않는 것이니설령 그들의 능력이 그토록 뛰어난 것 이라고 해도 우리가 묵묵히 바른 길을 걸어가다 보면 반드시 빛을 보게 되는 일이 있을 것이오." 점창사수는 매우 허약해 보이는 백리자성이 그토록 간곡하게 말하자 이 내 마음이 움직이게 되었고 깊이 감동하게 되었다. 여문량이 말했다. "장문인께서는 이제까지 그와 같은 사실을 모두 알고 계시면서도 혼자 서만 노심초사해오셨군요. 그러나 앞으로는 저희들에게도 그 무거운 짐을 조금이라도 나누어 주십시오. 우리는 비록 뛰어난 인재는 아니지만 그러 나 은혜를 모르는 사람들은 아닌 것입니다." 여문량의 두 눈에 물기가 어려있는 것을 보고 백리자성은 그의 손을 잡 으며 담담한 미소와 함께 말했다. "나는 여러분들을 가장 크게 믿고 있소. 만일 여러분들이 없었다면 나는 감히 점창파를 다시 일으킬 생각도 하지 못했을 것이오. 따라서 만일 여 러분들이 그와 같은 현실을 알고 그저 묵묵히 바르게 노력해 주기만 한 다면 나는 그야말로 신명을 바쳐서 점창파를 반석위에 올려놓고 그대들 의 이름을 빛나게 해줄 자신이 있소여러분이 만약 나를 믿는다면 나는 결 코 여러분들을 실망시키지 않겠소." 백리자성의 말에 일순 나머지 세명의 사람들은 일제히 백리자성의 손을 마주 잡으며 감격에 겨워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기실 이곳은 주루의 안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는 와 중에서 다 큰 사람들이 주책없이 울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인지라 즉시 눈 물을 닦으며 이모화가 다시 밝아진 음성으로 물었다. "그럼 그 대막신도궁의 도조종이라는 사람과 현현각의 현현노조라는 사 람은 대체 어떤능력을 가지고 있는 초인들입니까?" 백리자성은 그들의 손을 놓은 다음에 은은하게 미소하며 대답했다. "도조종 곽오후는 바로 대막의 신이라고 볼리우는 전설속의 사람으로 스스로 도의조종이라고 자칭하는 만큼 도법에 관해서 관심이 많은 사람 이오. 기실 그들과 같은 사람들은 검과 도의 구분이 거의 없어지는 상태 이지만그는 과거에 도법을 연구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대막신도궁의 사 람들에게 자신의 도법을 가르쳤소." 이모화가 다시 물었다. "대막에서 가끔씩 거대한 무지개와 같은 도광이 번쩍이곤 한다고 했는 데 그것이 바로 그 사람들의 무공입니까?" 백리자성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것이 어떤 환상인지 어떤지는 나도 잘 모르겠으나 어쨌든 대막신도 궁이 대막의 한가운데에 신비롭게 자리하고 있고 그 주인이 전설과도 같 은 초인이라는 것은 사실이오. 그리고 마지막으로 현현각의 현현노조모용 술박은......" 제33장 잔인한 무사들 백리자성은 이미 음식이 차갑게 식어 있고 점창사수의 얼굴이 마치 홀 린 듯이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고 미소하며 입을 열어 말 을 계속했다. "상관봉이 동영으로 건너가서 세력을 구축했던 것처럼 그 역시 북해로 가서 그곳의 사람들을 제압하고 마치 신처럼 군림하여 살아오고 있는 것 이오. 원래 이 북해의 사람들은 그 기질이 냉철한 가운데에도 섬세하고 폭발적인 것이 특색이었는데 거기에 따라서 사술과 모계가 발달하였을 뿐으로 무공은 그다지 발전하지 못했었소. 그러나 현현노조 모용술박이 그곳으로 건너가서 신처럼 군림하면서 무공을 가르치게 되었는데 그 무 공의 특징은 역시 섬세하고 극도의 한음지기를 담고 있는 것이오." 이모화가 다시 물었다. "그 무공들은 역시 초절정의 수법들입니까?" 백리자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이 여덟명의 초인들은 과거에 자신들이 연마했던 그러한 무공 들을 수하들에게 전수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 무공들은 자연히 위력 이 놀라운 것들이고 또한 아주 정통적인 것들이 대부분이오. 지금 북해의 현현각 역시 과거와는 다르게 거대한 세력을 쌓고서 세력을 넓혀가고 있 다고 하오." 여기에 이르러 드디어 백리자성의 길고 긴 얘기는 끝이 났다. 점창사수는 그 얘기를 듣고 나서 다소 놀란 기분이 없지 않았지만 그러 나 이제서야 비로 천하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이 생겼다는 것을 실감할 수가 있었다. 백리자성은 이윽고 자신의 길고 긴 얘기가 끝이 나자 마저 식사를 하려 고 했지만 이미 음식들이 식어 있어서 별로 먹고 싶은 생각이 없어졌다. 그리하여이미 시간도 많이 되었고 했기 때문에 그는 먼저 자리에서 일 어났다. "자이제 일어나도록 합시다. 여러분들 가운데에서 좀더 남아서 쉬고 싶 은 분이 있다면 더 있도록 하시오." 점창사수는 이미 백리자성에게서 놀라운 천하의 초인들의 얘기를 들었 기 때문에 마음이 새로운 각오로 굳어져서 술을 마시고 싶은 생각이 없 어졌다. "저희들도 함께 가겠습니다." 점창사수가 함께 따라 일어서자 그들은 이내 주루의 밖으로 걸어나왔다. 그런데일행이 마악 계산을 마치고 주루의 밖으로 걸어나왔을 때였다. 느닷없이 그들은 길거리의 중앙에서 기이한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다름이 아니라바로 얼마전에 주루에서 나갔었던 그 여섯명의 동영의 무 사들이 지금 이십여명의 장한들에 의해서 포위되어 있었고 그 주위로 많 은 사람들이 에워싸고 그 들의 싸움을 구경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미 주루의 안에서 백리자성의 말을 듣고 실로 그 동영의 무사들이 동 영의 최고의 무사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점창사수 등은 이에 다소 의 아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금 그들을 가로막고 서서 요란스럽게 소리치고 있는 사람들은 등허리 에 분수자와 비슷한 병기들을 지니고 있었는데 아마도 부근에 있는 이삼 류 방파의 사랑들인 것 같았다. 그렇지 않아도 그 동영의 무사들에 대해서 경계심을 가지고 있었던 점 창사수 등은 슬그머니 군중들의 속에 끼어서 그들의 다투는 광경을 지켜 보기로 했다. "야 이 빌어먹을 동영의 개도적들아!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나타나서 도 적질을 하려는 것이냐? 어서 들고 있는 물건들을 다 놓고 사라지지 못 해! 흐흐흐...... 네놈들이 들고 있는 물건들도 아마도 모두가 다 해적질을 해서 마련한 것이겠지?" 그렇게 소리치는 사람은 그 이십여명의 장한들 가운데에서도 그래도 가 장 뼈대가 세어보이는 장한이었는데그는 그 이십여명의 무리들의 우두머 리였는지 그가 삿대질을 하며 동영의 무사들을 가리키고 소리치자 나머 지 장한들은 각기 음산하게 웃으며 자신들의 병기에 손을 대고 위협하는 듯한 자세를 취해 보였다. 아마도이 이십여명의 장한들은 우연히 이곳을 지나치다가 그 동영의 무 사들을 보게 되어서 느닷없이 그들을 가로막고 노상강도짓을 하려는 모 양이었다. 원래 동영의 사람들은 해적질을 무수하게 해왔었기 때문에 남해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물론이요 심지어 중원의 대륙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 역시 그 들을 미워하고 있었기 때문에 장한들이 그처럼 길길이 날뛰고 있는 것이었다. 물론 점창사수 등이 볼 때에는 그 장한들은 무슨 의기가 들끓어서 그러 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지나가는 그들을 괴롭히고 자신들의 위세를 과시하자는 데에 목 적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장한들이 그처럼 심한 욕을 해가면서 소리치고 있는 상태에서도 그 무사들은 거의 표정의 변화가 없었고 그저 덤덤하게 장한 들을 바라보는 것이 마치 다른 사람들의 대화를 듣고 있는 듯한 모습이 었다. 점창사수 등은 그 여섯명의 무사들 가운데에서 아까 자신들을 주시했던 그 사내도 끼어있는 것을 보고는 그렇게 무관심한 표정을 하고 있는 그 들이 대체 어떻게 나올 것인지가 궁금해졌다. 이때 장한은 자신이 그와 같이 험악하게 소리쳤는데도 그 무사들이 마 치 뉘집 개가 짖느냐는 듯이 묵묵히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 고 문득 울 화가 치밀어서 소리쳤다. "이 후레자식 같은 개화냥년들의 자식새끼들아! 네놈들은 감히 이 삼강 방의 당주나리가 두렵지도 않다는 말이냐? 네놈들이 만일 나의 말이 두 렵다면 어서 있는 물건을 모두 바치고 꺼지도록 해라." 장한도 그제서야 무사들의 눈초리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았는지 은근 히 꼬리를 내빼려는 모습인 것이었다. 원래 그가 말하는 삼강방이라고 하는 것은 이곳 무창성의 일대에서 수 적질을 하고 있는 녹림의 사람들이었는데 당주라는 자가 공공연히 길거 리에서 동영의 무사들을 도적질을 하려고 하고 있었지만 군중들은 워낙 에 좋지않게 생각했었기 때문에 이를 보고도 오히려 고소하게 생각하는 눈치였다. 당주라는 자는 다시 군중들의 그러한 눈초리를 바라본 다음에 다소의 용기를 얻었는지 소리쳤다. "이 염병할 놈의 자식들아! 네놈들의 나라에서는 제 에미마저 팔아먹는 다고 그러지 않았느냐? 만일 너희들이 당장에 달아나지 않겠다면 나는 너희 후레자식들을 당장에 후려쳐서 죽여버리고 말 것이다." 녹림흑도의 당주쯤 되는 인물이니 자연히 그 입이 거칠고 욕설이 사정 없이 튀어나왔다. 그러나동영의 무사들은 여전히 그러한 욕설을 듣고도 못들은 척 하며 묵묵히 바라보기만 했다. 혹시 그들은 중원의 말을 알아듣지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비단 점창사수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군중들 역시 피와 같은 추측을 하 며 이 일이 매우 기이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실로 그러한 사람들의 추측은 잘못된 것이었다. 당주라는 장한이 마악 허리춤에 있는 분수자와 같이 생긴 기형의 병기 를 뽑아서 발출하려는 순간에 문득 무사들 가운데에서 한 사람이 아주 익숙한 중원의 말로 다음과 같이 말했던 것이다. "우리는 비록 많은 물건들을 가지고 있지만 여기에서는 당신들에게 줄 수가 없소만일 저쪽으로 가서 다시 본다면 물건들을 드릴 수가 있소." 그 무사의 말은 다소 기이한 어감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었다. 당주라는 자는 그 무사가 한적한 성밖을 가리키는 것을 보고 다소 자신 의 말에 겁을 집어먹은 것이리라고 생각하고는 잡아떼려던 기형의 병기 를 허리춤에 그대로 둔 채 고개를 끄덕이고 껄껄 웃었다. "핫핫핫! 그래? 너희들이 중원으로 왔을 때에는 당연히 많은 물건들을 가지고 왔겠지그래 어째서 여기에서는 안된다는 말이냐?" 무사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는 원래 많은 보물들을 가지고 왔지만 이곳은 않은 사람들이 있고 또한 그러한 물건들을 꺼낼 수가 없기 때문에 감히 당신들에게 줄 수가 없소만일 사람들이 없는 곳이라면 우리는 당신들에게 물건을 꺼내 주겠 소당신들의 선처를 바라겠소." 당주라는 자는 그 무사의 뻣뻣한 태도가 지극히 마음에 들자 않았지만 그러나 상대의 말대로 자신이 이러한 곳에서 직접 물건을 빼앗게 된다면 그것도 역시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천천히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네놈들이 감히 순순히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고 본좌에게 그와 같은 공물들을 바치겠다고 하니 내 이번에는 그것으로 용서해 주도록 하 겠다. 자 어서 앞장 서도록 해라." 당주라는 자는 눈앞의 동영의 무사들은 비록 숫자는 많지 않아도 그 태 도가 지극히 담담하고 냉랭한 것이 필시 보통의 인물들이 아니라고 여겨 서 우선 자신들이 무리하게 공격하는 것은 좋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하고 는 그와 같이 결정을 내린 것이었다. 당주라는 자는 만약 한적한 곳으로 가서 이자들이 무슨 수작을 꾸미려 고 한다면 그때 몸을 돌려 달아나는 것은 그리 창피한 일이 아니라고 생 각했다. 그런데기실은 그의 그러한 생각은 착각이었고 죽음을 앞당기는 중대한 실수라고 할 수가 있었다. 당주라고 하는 자는 이 동영의 무사들이 실은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었 기 때물에 손을 쓰지 못하고 있는 것을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만일 무사의 뜻대로 동영의 무사들이 한적한 곳에서 장한들을 마주하게 된다면 어찌 순순히 굽히겠는가! 장한들과 동영의 무사들이 한적한 곳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자 대부분의 군중들은 이어 그들의 대결하는 장면을 계속해서 보고 싶었으 나 이내 그들의 눈초리가 무서워서 감히 뒤쫓아 가지는 못했다. 여문량 등은 이것을 보고 즉시 뒤쫓아가 보기로 했다. 이미눈치빠른 전백승이 객점의 안으로 들어가서 백리자성의 남여를 빠 르게 들고 나와 있는 상태였다. 백리자성이 이를 알고 즉시 남여위에 오르자 황종보와 전백승이 앞뒤로 여문량과 이모화는 앞장서서 동영의 무사들이 향해 가는 쪽으로 따라가 기 시작했다. 동영 무사들은 다행히도 장한들과 보조를 맞추어야 했기 때문에 성 박 을 향해 서서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고 백리자성의 일행은 금새 그들의 뒤를 쫓을 수가 있었다. 그러나다만 지금은 아무도 그들의 뒤를 따르는 사람들이 없었기 때문에 백리자성의 일행은 그들이 모르게 하기 위해 은밀히 모퉁이를 이용하여 그들의 뒤를 따라야 했다. 그러다가 이윽고 동영의 무사들이 장한들을 이끌고 성 박을 벗어나서 산길로 접어들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일행은 빠르게 신법을 옮겨 산의 옆으로 돌아가서 앞질러 버림으로써 그들의 눈에 띄이지 않는데에 성공 했다. 그런데 일행이 앞쪽의 다소 은밀한 자리에서 몸을 숨기고 장내를 바라보고 있 을 때였다. 문득 동영의 무사들을 따라가던 삼강방의 장한들이 걸음을 멈추더니 더 이상 따라가지 않을 것 같은 태세를 취했다. 그것을 보고 아까의 그 무사가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너희들은 그 보물들이 궁금하지도 않다는 말이냐?" 당주라는 자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손을 저으며 말했다. "우리는 이미 너희들이 죄를 뉘우친 것으로 알고 그만 돌려보내 주기로 했다. 그러니 어서 너희들은 달아나거라." 기실장한들은 이미 무사들의 태도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에 자신들이 당 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미처 산곡의 은밀한 곳으 로 들어가기 전 에 발길을 돌리려고 한 것이었다. 그런데느닷없이 그 무사의 안색이 지극히 음침하게 변하더니 이렇게 대 꾸했다. "우리는 전혀 달아날 생각이 없는데 어째서 달아나야 한다는 말이냐?" 당주라는 자는 그 무사의 태도가 지극히 위협적으로 나오는 것을 보고 다소 찔끔한 느낌이 들었으나 이내 헛웃음을 흘리며 대꾸했다 "그렇다면 굳이 달아날 것이 없으니 그저 꺼지도록 해라." 당주라는 장한은 이미 욕설이 입에 배어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와 같은 말은 그의 가장 얌전한 말에 속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무사는 싸늘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꺼지지 않겠다! 그리고 너희들은 지금 도망치려고 하는 모양인 데 그것 역시 허용할 수가 없다!" "뭐라구!" 당주라는 장한은 무사가 그와 같이 노골적으로 말하자 그야말로 화가 나서 허리춤에서 그 기형의 병기를 뽑아들었다. 그런데이미 그때에는 무사가 한손을 들자 그의 뒤에 서 있었던 다섯명 의 무사들이 번개같이 몸을 움직여서 이십여명의 장한들을 에워싸고 있 었다. 당주라는 장한은 이것을 보고 더이상 물러날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생 각을 했는지 즉시 기형병기를 휘두르며 그 무사를 향해 덮쳐갔다. 제법 당주라는 이름에 걸맞게 그 장한의 기형병기를 쓰는 솜씨는 거의 일류급의 수준에 육박하고 있어서 검푸른 한광이 그의 전신을 엄밀하게 뒤덮는 듯 하더니 이어 빠르게 낙뢰처럼 무사의 면전을 향해 덮쳐내렸다. 그야말로 그 기세는 맹렬하기 짝이 없어서 금방이라도 그 무사의 얼굴 이 피곤죽이 되어 부서져버릴 것만 같았다. 그러나기실 당주라는 그 장한은 오늘 그야말로 임자를 잘못 만난 것이 었다. 그의 기형병기가 무수한 한망을 뿌리며 무사의 얼굴을 향해 덮쳐드는 순간에 문득 그 무사의 하체가 기이하게 흔들리는가 싶더니 어느새 그의 몸은 원래의 자리에서 무려 한자나 떨어져 있는 곳에 옮겨가 있는 것이 아닌가! 당주라는 자는 일순 자신의 병기가 허공을 치는 것을 느꼈지만 공포감 보다는 내심의 분격함을 참을 길이 없어서 급히 대갈일성하며 그 육중한 몸을 좌우로 빠르게 움직이며 초식을 변화시켜 이번에는 그야말로 폭풍 과도 같은 기세로 무사의 허리를 향해 공격해 들어갔다. 그 일초에는 그야말로 당주라는 자의 혼신의 무예가 깃들어 있는 듯 공 격의 범위가 넓기 때문에 무사는 이번에는 필시 그것을 피하기 위해 다 소의 수세에 몰려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실상 그러한 추측은 잘못된 것이었다. 장한의 공격이 마악 허리춤을 향해 덮쳐들자 무사는 다시 옆으로 몸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이번에는 전혀 달아날 생각을 하지 않고 우수로 등 뒤의 칼자루를 잡아가고 있었다. 만일 무공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그와 같은 광경을 보게 된다면 필시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었다. 상대는 벌써 자신의 허리를 베려고 노리고 공격해 들어오고 있는데 이 를 피할 생각은 않고 오히려 칼을 뽑으려고 하다니! 그 사람은 당연히 상대의 몸에 칼을 꽂기도 전에 이미 자신의 허리가 두동강이가 나게 될 것이 뻔한 일이었다. 그러나기실 뒤이어 벌어진 상황은 그러한 예측을 완전히 초월하는 놀라 운 것이었다. 당주라는 장한의 공격이 시작된 이후에 무사는 비로소 등뒤로 손을 움 직여 칼을 뽑고 그것을 발출한 것이었다. 따라서 당주라는 장한의 병기가 먼저 무사의 허리에 있었다. 그런데느닷없이 두개의 병기가 가볍게 교차하며 스쳐지나는 순간 어느 새 무사의 칼날이 당주라는 자의 기형병기 보다도 빠르게 상대의 목부위 에 도달해 있는 것이 아닌가! "악!" 당주라는 자는 실로 믿을 수가 없다는 듯이 두 눈을 부릅뜨고 있었으나 미처 자신의 병기가 상대의 허리춤의 살갗을 파고드는 것을 보기도 전에 이미 자신의 목줄기가 단칼에 날려가는 것을 보아야 했다. 짤막한 비명과 함께 선연하고도 섬뜩한 붉은 핏줄기가 목구멍에서 번지 기 시작하자 장한은 끝내 자신의 병기를 상대의 허리춤에 박아넣으려다 가 힘이 끊어져서 그대로 바닥에 병기를 떨구고 말았다. 실로 그 병기와 무사의 허리춤과는 간발의 공간이 남았었을 뿐이었으나 분명히 무사는 조금도 상처를 입지 않고 기적처럼 장한의 목숨을 끊어버 린 것이었다. 기실그러한 광경은 겉으로 보기에는 마치 공교롭게도 우연히 일치가 되 어 보이지만 실은 점창사수 등이 볼 때에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무사는 실은 조금 전에 장한이 기형병기로 자신의 허리춤을 공격해올 때 이미 미리 모든 상황을 예측했었으며 거기에 따라서 조 금의 오차도 없이 행동했기 몸은 털끝하나 상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것은 일견 불필요한 모험인 것 같아도 실은 고도의 숙련된 검술의 일 환으로 그야맡로 소름이 끼칠 듯이 두려운 계산속이었던 것이었다. 만일 약간의 오차마저 허용하지 않는 극도로 숙련된 무예가 없었다면 어떻게 감히 그와같은 무예를 펼칠 수가 있었겠는가! 게다가실은 조금 전에 무사가 펼쳤던 무예는 병기보다 늦게 출발하여 먼저 상대의 급소에 도달하게 하는 후발제인(後發制人이)라는 놀라운 검 도의 술법이었던 것이었다. 점창사수는 그 짧은 한 순간의 대결을 보는 것으로 이미 백리자성의 말 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어서이들 동영의 무사들은 무공이 이미 거의 완 숙의 경지에 올라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중원어를 유창하게 했던 무사가 일단 손을 쓴 것은 그야말로 하나의 신 호였던 모양이었다. 뒤를 이어 이십여명의 장한들을 둘러쌌던 다섯명의 장한들이 각기 등뒤 에서 날이 굴어지고 길쭉한 칼을 뽑아들어 빠르게 휘두르며 마치 바람처 럼 표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으아아아악------" 마치 합창이라도 하듯이 장한들의 비명소리가 울려퍼지는 순간에 이미 거의 대다수의 장한들의 목이나 가슴이 터지거나 갈라져서 몸은 핏줄기 를 내뿜고 죽음을 부르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것은 그야말로 한편의 도살극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었다. 점창사수 등은 설마 동영의 무사들이 그와같은 잔인한 도살극을 펼칠 줄을 모르고 있었다가 멍청히 서서 그와 같은 광경을 보게 되었는데실로 그 동영의 무사들의 수법은 아주 빠르고 간결하며 깨끗하기 이를데가 없 어서 한번 스치고 지나간 뒤에는 이미 살아있는 장한들이 없었다. 털썩털썩!...... 점창사수의 눈앞에는 그저 바람처럼 표홀하게 장한들의 사이를 누비는 동영의 무사들과 번뜩이는 흰 칼빛! 그리고 허공으로 뿜어져 오르는 붉은 선혈이 하나의 환상적인 광경을 연출하고 있는 것 같았는데 이미 무사들이 몸을 멈춰세우고 그 기다란 칼을 등뒤에 다시 꽂았을 때 에는 장내에 이미 살아있는 장한들이 하나도 없었다. 그야말로 이십여명의 장한들이 끔찍하게도 한꺼번에 도살된 것이었다. 비록 그 장한들이 좋지 못한 녹림도적의 무리라고 해도 그와 같이 잔인 하게 무더기로 도살한다는 것은 지극히 악랄한 처사라고 아니할 수가 없 었다. 점창사수는 지금 백리자성과 함께 있기 때문에 자신들이 나서야 할지 말지를 다소 망설이며 서있었다. 그런데바로 그때였다. 돌연 성문이 있는 쪽에서 한 사람이 크게 소리치더니 이쪽을 향해 빠르 게 신법을 펼쳐 달려오는 것이었다. "거기 멈춰랏! 감히 동영의 도적놈들이 중원에 들어와서 살인을 하고 그 냥 돌아가려고 하다니 용서할 수가 없다!" 한 사람이 크게 소리치더니 이쪽을 향해 빠르게 신법을 펼쳐 달려오는 것이었다. 백리자성 등이 바라보니 그 사람은 이제 겨우 약관을 조금 지났을 것 같은 젊은 청년이었는데 깨끗한 남삼을 걸치고 있었고 미목이 수려했다 백리자성은 그의 용모가 매우 친근감을 주고 수려하게 생기기는 했지만 단지 뛰어난 것이 아닌 것을 보고는 내심 혹시 그가 다치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고 걱정스러운 마음이 일었다. 이십여명의 장한들도 감히 당해내지 못한 동영의 무사들이었는데 그와 같은 한낱 젊은 청년이 나선다고 무사들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 고 헛되이 젊은 목숨만을 버리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해서였다. 과연 아니나 다를까 남삼청년은 시신들의 옆으로 몸을 움직이는 동영의 무사들의 앞으로 다 가오더니 즉시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소리치는 것이었다. "너희들은 어떤 되먹지 못한 자들이라는 말이냐! 어째서 중원에 들어와 서 이와 같은 잔인한 살인을 저질렀느냐! 어서 그 이유를 밝히지 않겠느 냐!" 무사들은 이미 남삼청년이 나타나는 순간에 각기 미간에 살기를 떠올리 고 즉시 제거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남삼청년이 다시 소리치자 그 가운데의 한 사람이 슬그머니 앞으로 나 서며 음침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우리가 만일 그 이유를 밝히지 않겠다면 네놈이 감히 어쩌겠다는 알이 냐?" 남삼청년은 그 무사가 다가오자 품속에서 한 자루의 비수를 꺼내들며 태연하게 대꾸했다. "그렇다면 너희들은 당연히 그 댓가를 치루어야 할 것이다." 백리자성 등은 의외로 그 동영의 무사들이 대부분 중원어에 능통하고 있다는 것을 보 고 이를 매우 기이하게 생각했다. 혹시 그들이 무슨 목적으로 중원어를 그토록 능통하게 배우게 되었느냐 하는 것이었다. 제34장 비도파천황 말이 떨어지는 순간에 그 무사는 이미 남삼의 청년을 향해 바람처럼 움 직이며 등뒤의 장도를 뽑아들고 공격하고 있었다. 원래남에게 말을 걸어놓고 공격해 들어가는 그와 같은 술수는 상당히 비열한 것으로 무림정파의 사람들은 거의 쓰지 않는 것이었다. 백리자성의 일행은 그래도 그 남삼청년을 어떻게 구해줄 것인가 하고 생각하고 있다가 느닷없이 무사가 급습을 하는 것을 보 고 어! 하는 놀 라운 경악성을 발했다. 워낙에 무사의 공격이 빨랐고 그의 몸이 남삼청년의 근처에 도달하는 순간에 어느새 발출되어 장도가 햇빛에 번쩍 하얀 도광을 발하며 곧장 남삼청년의 목부위를 노리고 덮쳐들었으므로 거의 준비도 하지않고 엉거 주춤하게 서 있는 듯한 남삼청년의 목이 순식간에 달아날 것이 거의 확 실했기 때문이다. 그런데이때 마치 기적과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백리자성 등은 그 준수하게 생긴 좋은 인상의 청년이 느닷없이 변을 당 하는 것을 차마 볼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악 남삼청년의 목을 베어버릴 듯 하던 무사의 장도가 웬일인지 다소 멈칫하더니 그대로 바닥 에 쿵 하고 떨어져 버리는 것이 아닌가! 사람들은 처음에는 그 무사가 느닷없이 자신의 장도를 떨어뜨리고 다소 놀란 듯한 표정을 짓는 것으로 보아 무슨 특별한 일이 발생한 것이 아닌 가 하는 생각을 했다. 실로 놀라운 일이 발생하지 않은 이상은 그 와 같은 철저하게 수련된 무사가 수중에서 병기를 놓칠 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무슨 일이냐" 애초에 당주라는 장한의 목을 베어버렸던 그 우두머리격인 무사가 다소 짜증이 난다는 듯이 입을 열어 물었다. 그런데그 무사는 정작 대답하지는 않고 그대로 스르르 그 자리에 주저 앉더니 그대로 뒤로 벌렁 드러눕고 마는 것이 아닌가! 물론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일부러 땅바닥에 드러눕기를 좋아하는 사람 은 없을 것이다. 그것은 오직 한 경우에만 해당될 것이므로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이지 만 이러한 경우에는 그러한 방법으로 간혹 말을 하기도 하는 것이었다. 붉은 선혈이 허공으로 확솟구쳐 올랐다. 동명의 다섯명의 무사들을 비롯한 백리자성의 일행까지 그러한 광경을 보고 크게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불과 조금전까지만 해도 무시무시한 위세로 덮쳐들어가던 그 무사는 이 미 숨이 끊어져서 이 세상의 사람이 아니었다. 게다가더더욱 놀라운 사실은 지금 그 죽어서 누워있는 무사의 목젖에 깊숙히 박혀서 피를 뿜어내게 하고 있는 한 자루의 비수였다. 그것은 바로 조금전에 그 남삼청년이 손에 들고 있었던 그 장난감고도 같은 비수가 아니었던가! ............! 사람들이 지극히 놀라는 가운데 남삼청년은 무사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경악의 표정으로 집중되자 다소 가볍게 탄식을 하며 입을 열었다. "나는 실로 그를 죽이려고 하지 않았지만 이 일은 부득이한 일이었소 , 그러니 어서 그대들은 더 이상의 살인을 하지 말고 동영으로 돌아가도륵 하시오!" 남삼청년의 손에는 지금 비수가 들려 있지 않았다. 게다가지금 그의 말하는 태도 등이 분명하게 자신이 무사를 죽였다고 하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순간 그 우두머리 무사가 싸늘한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네가 그를 죽였다는 말이냐?" 이에남삼청년은 다시 입을 열어 뭐라고 말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순간 어느새 그 우두머리 무사는 신형을 날려 바람처럼 남삼청년 의 면전으로 덮쳐들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것은 실로 그 우두머리 무사의 교활한 계책이었다. 그는 상대의 비수를 던지는 솜씨가 실로 놀라운 것을 보고 일단 그에게 말을 걸어 생각하게 한 다음에 빠르게 급습하려는 것이었다. 과연그 우두머리 무사의 무공은 아까 죽은 무사의 무공보다 월등한 것 이어서 비단 그 신법도 빨랐을 뿐만 아니라 장도를 발출하는 동작 또한 몹시 민첩하기 그지 없었다. 남삼청년이 아차 하고 몸을 바르게 가누는 순간에 이미 그 우두머리 무 사의 신형은 그의 앞에 이르러 장도로 그의 가슴을 내리찍고 있었다. 그런데바로 이 순간에 마치 환상과도 같은 한줄기의 광채가 번쩍였다. 사람들은 이제는 남삼청년의 손을 주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바로 수의 광채라는 것을 알았지만 대체 어떻게 해서 남삼청년이 미처 몸을 가누기도 전에 비수를 던질 수가 있었는지 의아한 표정들이었다. 원래는 남삼청년의 손안에는 비수가 있지도 않았는데 마치 샘이 솟아나 듯이 그 손안에 서 번쩍하고 광채가 일어나더니 곧장 우두머리 무사의 목젖을 향해 날아간 것이었다. 실로 이 우두머리 무사의 무공은 아까의 무사보다 뛰어난 것이었다. 그는 한순간에 이미 남삼청년이 자신에게 던져낸 물체의 정체를 파악했 다. 물론 자신이 계속해서 장도를 내리찍으면 남삼청년의 심장이 쪼개질 것 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한다면 역시 자신의 목젖이 꿰뚫려서 함께 죽게 되고 말것이다. 우두머리 무사는 판단력이 매우 빨랐고 게다가 동작의 전환 또한 그에 못지 않게 빨라서 어느새 미처 남삼청년의 비수가 자신의 목젖에 이르기 도 전에 장도를 회전시켜 그것을 튕겨내고 있었다. 쨍! 남삼청년은 그 우두머리 무사가 자신의 비수를 쳐내는 것을 보자 다소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우두머리 무사가 다시 앞으로 달려드는 것을 보고 남삼청년은 재 차 손안에는 보이지도 않았던 비수를 번쩍 하고 날렸다. 쨍! 우두머리 무사는 다시 앞으로 달려들면서 장도를 휘둘러서 그 비수를 쳐냈으나 이번에는 다소 비수가 빨랐기 때문에 그는 완전하게 비수를 쳐 내지 못하고 목 부위에 약간의 상처를 입게되었다. 그것은 바로 남삼청년이 비수를 더욱 빨리 던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거리가 가 까와졌기 때문에 우두머리 무사가 그것을 처리할 시간 이 없어졌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따라서우두머리 무사는 자신의 장도를 계속 목젖의 부근에다 대고 있었 지만 이제는 감히 모험을 하여 남삼청년의 앞으로 다가서지 못했다. 그는 비록 두번이나 비수를 쳐냈지만 실로 남삼청년의 비수를 던져내는 수법이 그야말로 경악스러운 것이라는 경험을 충분히 맛보았던 것이었다. 첫번째의 무사가 비록 방심을 했었다고 해도 그가 남삼청년의 비수에 의해 죽은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우두머리 무사가 잠시 주춤하며 달려들지 않고 있는 것을 보고 남삼청 년은 슬쩍 손을 움직여 손안에 들고 있는 비수를 보여주었는데 사람들은 비로소 자세히 그 비수를 살펴보니 날이 기이하게 얇아서 마치 휘어질 것 같은 것이었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그것을 마치 장난감과 같다고 생각했었으나 이제는 누구도 그것을 장난감과도 같다고 생각하지 않고 마치 하나의 신병이기 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 우두머리 무사는 슬쩍 그와 같은 비도를 바라보다가 문득 입을 열어 물었다. "너는...... 대체 누구냐?" 남삼청년은 우두머리 무사를 예의 주시하여 잠시 머뭇거리는 듯 하더니 이윽고 입을 열어 대답했다. "나는 제갈한송이다. 너희들과 같은 무리들이 나의 이름을 안들 무슨 득 이 있겠느냐? 어서 순순히 동영으로 물러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우두머리 무사는 제갈한송이라는 청년의 훈계조의 말을 들었지만 아직 중원어를 익숙하게 알고 있지는 못하여 쉽게 반박하지 못하고 있다가 문 득 그의 뒤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 너의 뒤를 보아라 너는 이제 졌다." 제갈한송은 이미 그렇지 않아도 우두머리 무사의 잔꾀에 속아서 당할뻔 했었기 때문에 결코 그의 그와 같은 속임수에 당하지 않으려고 시선조차 움직이지 않았다. 만일 그가 그의 속임수에 넘어가서 고개를 뒤로 돌리게 되면 바로 그 순간을 이용하여 우두머리 무사의 장도가 덮쳐올 것이 뻔했다. 제갈한송이 그와 같이 꿈쩍도 하지 않자 그 우두머리 무사는 다소 안절 부절을 하지 못하는 것 같더니 문득 그의 뒤쪽을 향해 넙죽 저를 하기 시작했다. "소향주님! 이제 오십니까!" (............?) 제갈한송은 그야말로 이 무사가 느닷없이 자신의 뒤쪽을 향해 절까지 올리는 것을 보고 실로 간특하여 괴이한 속임수까지 쓰려고 한다고 생각 했다. 그런데이때였다. 제갈한송이 내심 설마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그의 등뒤에서 정말로 한 사람의 싸늘한 음성이 들려오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흥! 너희들은 감히 일을 이처럼 어지럽게 벌여 놓고 나를 기다리지도 않고 있다는 말이냐?" 제갈한송은 그 말을 듣고 혹시 우두머리 무사가 어떤 사술이나 전음입 밀상의 공곡회음과 같은 무공을 쓰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지만 절로 고개를 돌려보게 되었는데 순간안색이 냉막하고 역시 등에 한 자루의 병기를 매고 있는 한명의 동 영의 무사의 복장을 한 청년이 다소 노한 표정으로 서 있는 것이 아닌 가! 아마도원래 그 여섯명의 무사들은 이 부근에서 그 청년을 만나게 되어 있었으므로 삼강방의 장한들 역시 이쪽으로 굳이 유인해왔던 것임을 알 수가 있었다. 무사들은 아까 일단 손을 쓰자 아주 빠르게 일을 처리하고 말았는데 기 실 그것은 이 청년무사를 기다리기 위함이었던 것 같았다. 제갈한송은 설마하고 생각했었던 사람이 정말로 등 뒤에 나타나자 이를 기이하게 여겨서 다소 경계를 흐트러뜨리고 있었는데문득 그것을 보고 있던 그 우두머리 무사가 돌연 두 눈에 악독한 표정을 드러내며 빠르게 제갈한송의 가슴팍을 향해 장도를 찔러왔다. 기실제갈한송으로서는 그와 같은 우두머리의 공격은 더욱 의외의 일이 어서 결코 생각지도 않은 것이었다. 우두머리 무사의 공격이 시작되는 것을 보고 급히 고개를 돌리게 되었 는데 순간 이미 그 무사의 장도가 가슴팍을 파고들기 시작하고 있었다. 따라서제갈한송은 이미 자신이 반격을 하기에는 늦었다고 생각하고 거 의자신의 생명에 대해서는 포기하고 있었다. 헌데 그때였다. 마악 우두머리 무사의 장도가 그의 가슴팍을 찍으려는 수간에 돌연 등 뒤에서 하나의 검이 날아와서 그 장도를 가볍게 퉁겨버리는 것이 아닌 가? "아악!" 그 순간에 이미 우두머리 무사는 비명을 내지르며 뒤로 벌렁 나동그라 지고 있었다. 기실제갈한송은 자신의 목숨을 포기하는 순간에 거의 동시에 비도를 내 던졌었는데 그것이 뒤늦게 우두머리 무사의 목젖에 꽂히게되었던 것이었 다. 그 우두머리 무사는 만일 정신이 온전했었다면 그 비도를 쳐낼 수가 있 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나 자신의 장도를 느닷없이 뒤에서 튀어나온 검날이 막아내는 것을 보고 놀란 나머지 기회를 잃었던 것이다. 무사의 죽음을 보고 다소 의아하게 생각하던 제갈한송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가 고개에 이어서 몸까지 완전히 돌리자 거기에는 과연 아까의 그 청 년무사가 서 있었는데 대체 언제 검을 뽑아서 장도를 튕겨내고 가시 거 두어들인 것인지 모르게 아주 태연자약한 모습으로 그는 서 있었다. "귀하께서 도와주셔서 목숨을 보전하게 되었으니 실로 감사를 드리는 바이오." 제갈한송이 즉시 그 청년을 향해 정중하게 포권하며 말하자일순 기이하 게도 청년은 거의 움직이지도 않은 것 같았는데 어느새 청년무사의 장검 의 검날이 제갈한송의 목젖의 부근에 이르러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제갈한송은 자신의 목젖을 싸늘하게 만드는 청년무사의 장검을 의식하 며 세상의 그와 같이 환상적이고 빠른 검법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다소 엉거주춤한 태도를 취했다. 제갈한송은 필시 이 청년무사가 단칼에 자신을 베어버릴 것이라고 생각 했다. 그런데기이하게도 청년무사는 검날을 그대로 두고 싸늘한 음성으로 입 을 열어 묻는 것이었다. "너는 내가 일부러 너를 살리기 위해 나의 수하를 죽였을 것이라고 생 각하느냐?" 제갈한송은 그 말을 듣는 순간 뭔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실감했다. 다름이 아니라바로 이 청년무사는 아까 우두머리 무사가 말했던 그 소 향주라는 그 들의 윗사람이 분명한 것이었다. 그러나이미 목젖을 위협당하고 있어서 행동하기가 부자연스러운 제갈한 송은 계속해서 상체를 엉거주춤하게 구부린 채로 대답했다. "귀하는 사실 귀하의 수하를 살리기 위해 그와 같이 행동했었을 것이오. 그러나 나는 이미 죽음을 의식하고 비도를 던졌기 때문에...... 원래 나의 비도에는 눈이 달려 있지 않은 것이니 이해해 주시오." 그렇다! 기실 아까 그 우두머리 무사는 이 청년무사가 나타나자 매우 당황하여 그만 자신의 목숨을 돌보지 않고 제갈한송에페 달려들었었다. 그러나청년무사가 보기에는 그 것은 그야말로 자살행위였고 설령 제갈 한송을 죽인다고 해도 그 역시 죽음을 면치 못하게 될 상황이었다. 실상 그 우두머리 무사는 매우 똑똑하여 그 청년무사의 커다란 힘이 되 어 왔던 만큼 결코 제갈한송과 동패구상하여 죽게 되는 것을 원치 않았 다. 그리하여 청년무사는 빠르게 장검을 발출하여 우두머리 무사의 장도를 되돌렸던 것이었는데당 시는 이미 제갈한송이 죽음을 의식하고 비도를 던진 후였던 것이었다. 천년무사는 비록 그와 같은 과정을 알고 있었지만 결코 그것을 말릴 수 는 없었다. 제갈한송의 말을 듣고 나자 청년무사는 싸늘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더러 이해해 달라고? 그게 대체 가능이나 할 것 같으냐?" 제갈한송은 다소 멈칫하더니 이내 손가락으로 바닥에 쓰러져 있는 삼강 방도들의 시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자가 지시를 내려서 저 사람들을 함부로 죽여버렸으니 이번에 죽었 다고 해도 억울할 것은 없을 것이오. 귀하께서 어서 손을 쓰시오" 청년무사는 의외로 제갈한송이 태연자약하게 나오자 다소 의외인 듯이 바라보다가 이윽고 장검을 치워주며 한걸음 뒤로 물러나 말했다. "흐흐나는 당장에 너에게 손을 쓰지는 않겠다. 단지 너의 솜씨를 좀 보 도록 하지너는 어서 그 비도를 나에게 던져 맞춰보아라." 제갈한송은 의외에도 청년무사가 뒤로 물러나서 자신에게 기회를 주는 것을 보고 얼른 자신의 목젖을 어루만지며 다행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문득 손바닥에 한 한 자루의 비도를 꺼내들고 그것을 바라보다가 문득 가벼운 탄식과 함께 청년무사를 바라보며 입을 열어 물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겠소? 우리는 쪼금 전에 비무를 하다가 한 사람이 죽었던 것이었으니 당신들은 어서 그만 나를 보내주시오. 그렇게 한다면 나는 그대에게 다시 손을 쓰지 않겠소." 그러자청년무사는 싸늘하게 냉소를 하며 창검을 가볍게 휘두르더니 이 어 그 검끝을 제갈한송의 앞으로 내뻗는 것이었다. 제갈한송은 원래 싸움을 피하고 싶어서 비도를 던지지 않으려고 했으나 어느새 자시의 눈앞으로 다가온 청년무사의 장검이 갑자기 길쭉하게 늘 어나는 듯 하더니 느닷없이 자신의 목부위에 들이대어져 있는 것을 보고 일시 경악에 찬 음성을 발했다. "아......" 제갈한송은 원래 그 와 같은 신묘한 변화를 일으키는 검법을 오늘에 처 음으로 보았던 것이었다. 청년무사는 싸늘한 어조로 다시 물었다. "네가 감히 나에게 그런 얘기를 할 수가 있을 것 같으냐?" 제갈한송은 다소 곤혹스러운 입장에 놓이게 되었다. 아까는 일부러 비도를 날리지 않은 것이었지만 지금은 설령 그러고 싶 다고 하더라도 비도를 날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 있었다. "정말로 내가 비도를 날리기를 원하시오?" 제갈한송은 이 청년무사의 무공에 대해서 어느 정도 감복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 그의 말투가 다소 정중해져 있었다. 청년무사는 냉랭하게 웃더니 즉시 대꾸했다. "그렇다. 네가 만약 나에게 단 한방울의 피라도 흘리게 한다면 나는 너 를 그대로 보내주도록 하겠다." 말과 함께 청년무사가 제갈한송의 목젖에 대고 있었던 장검의 검날을 치우자 그것은 마치 살아있는 영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의 등뒤에 얌전 하게 꽂혀있는 것이었다. 제갈한송은 이제까지 장검을 이처럼 귀신같이 환상처럼 쓰는 사람을 아 직 본 적이 없었으므로 다소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다가 문득 정색을 하고 들고 있던 비도를 만지작거렸다. 그것은 바로 결전의 신호라고 할 수가 있었다. 청년무사는 아직 장검을 뽑아들지는 않았지만 다소 신중한 표정을 지었 고 주위의 공기의 흐름마저 일시에 그 유동을 멈추고 침묵하는 것 같았 다 그런데 제갈한송이 비도를 들고 지나치게 오랫동안 시간을 끌며 공격하지 않는 것을 보고 청년무사는 일순 눈살을 찌푸리며 우수를 움직여서 등 뒤의 검자루에 손을 가져갔다. 바로 이때였다. 제갈한송은 이미 번쩍하고 하나의 비도를 날렸고 뒤이어 하나의 비도를 수중에 들고 나서 던지려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청년무사의 우수가 가볍게 움직이는 것 같더니 어느새 장검이 뽑혀져 나와 제갈한송의 비도를 막아갔고 뒤이어 쨍하는 소리와 함께 비도가 튕 겨져 나가더니 청년무사의 장검이 기이하게 길쭉하게 늘어나면서 어느새 미처 두번째의 비도를 발출할 준비도 하지 않은 제갈한송와 목을 향해 엄습해 드는 것이 아닌가! 제갈한송은 이것을 보고 만일 자신이 몸을 피하거나 한다면 늦을 것이 라고 판단을 하고는 상대의 공격을 막지도 않고 곧장 상대의 명문을 향 해 비도를 빠르게 날렸다. 기실그가 비도를 날리는 수법은 아주 특이하고 비전에 속하는 방법이었 다 마치 그의 손바닥 위에 올려져 있는 비도는 하나의 영물이 되어 있는 것 같았는데 일단 그가 마음만 먹게 되면 그것은 마치 한 마리의 영활한 사자처럼 눈부신 빠르기로 상대의 목젖을 향해 날아가는 것이었다. 비단 그 수법은 빨랐을 뿐만 아니라 강력한 힘을 갖추고 있는 것이었다. 만일이때 청년무사가 장검을 휘둘러 제갈한송의 목을 베는 것은 쉬운 일이겠으나 그렇게 되면 자신의 목숨 또한 안전할 수가 없는 것이겠기에 그는 하는 수 없이 장검을 되돌려 자신의 앞으로 날아드는 비도를 쳐냈 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에 제갈한송은 뒤로 훌쩍 물러남과 동시에 별안간 두개의 비도를 동시에 청년무사를 향해 날리는 것이 아닌가! 청년무사는 이 순간에 제갈한송이 그토록 빠른 비도를 두개씩이나 정확 하게 던질 줄은 예상하지 못하고 있다가 다소 머뭇거렸다. 사람들은 그 순간에 이미 제갈한송의 비도가 그 사람의 이마와 가슴을 향해 말려들 듯이 날아가는 것을 보고 다소 놀란 경호성을 발했다. 헌데 그 때였다. 다소 머뭇거리는 듯 했던 청년무사의 장검이 일순 파도처럼 기이하게 흔들리는 듯 하더니 느닷없이 아득하게 사라지며 은은한 뇌성음과도 같 은 소리를 동반하는 것이 아닌가! 제35장 북두제왕검형대구식 찌러러렁...... 마치 예리하게 고막을 찢을 듯이 울려오는 그 소리에 제갈한송은 가슴 이 서늘하게 젖어옴을 느꼈는데느닷없이 사방이 온통 파도치는 듯한 검 기의 회오리에 가득차 있는 것을 보고 아연하여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것은 마치 하늘이 온통 검기속에 휩싸인 것 같은 광경이었는데청년무 사의 모습은 이미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 후였고 제갈한송 자시는 마치 도산검림 속에 빠져들어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느꼈다. 바로 다음 순간에 어느새 다시 목젖에 차가운 감촉이 느껴지며 청년무 사의 예의 그 냉냉한 음성이 들려오는 것이었다. "이제는 너의 그 비도술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았겠지?" 제갈한송은 이에 이르러 이미 자신의 삶을 포기했다. 그는 다소 처연하게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것은 내가 아직 그 절기를 충분하게 배우지 못한 때문인데 어찌 그 와 같이 말할 수가 있겠소? 나를 죽이고 싶으면 어서 죽이시오." 청년무사는 이에 다소 화가 난 표정이었다. "지금까지도 인정을 하려하지 않다니! 실로 중원의 자식들은 더럽게 목 숨에 대해서 애착이 심하구나! 그렇다고 내가 너희들을 봐줄 것으로 아 느냐?" 순간청년무사는 들고 있는 장검에 힘을 주어서 그대로 제갈한송의 목을 베어버리려고 했다. 헌데 그 때였다. 문득 그의 앞쪽에서 한 사람의 음성이 들려오면서 너댓명의 인영이 소 리없이 장내에 나타나는 것이었다. "잠깐만 멈추시오! 당신은 그 비도술이 쓸모가 없다고 말했지만 그렇다 면 이번에는 나와 한번 겨루어 보는 것이 어떻겠소?" 바로 백리자성과 그 일행이 나타난 것이었다. 백리자성은 남여에 태워진 채로 장내에 나타났는데그는 일단 남여가 장 내에 내려서자 천천히 그 위에서 내려와서 바닥에 떨어져 있는 제갈한송 의 비도 가운데에서 하나를 집어들고는 그것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어루 만지며 다시 청년무사를 바라보았다. 이때 점창사수는 다소 불안하기는 했지만 백리자성의 지시에 의해 훌쩍 뒤로 물러나 있는 상태였다. 마악 제갈한송을 죽이려던 청년무사는 그와 같이 허약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약관의 청년이 하나 나타나서 비도를 줏어들고 자신에게 도전을 하는 것을 보고 다소 어이없다고 생각했으나 이내 제갈한송에게 겨누었 던 장검을 거두고 백리자성의 앞을 향해 조금씩 다가갔다. 제갈한송은 이때 자신은 가운데에 있어봐야 좋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 고 는 슬쩍 옆으로 물러나 장내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청년무사는 천천히 백리자성에게 다가가다가 문득 그의 신체가 너무나 도 허약해 보인다고 느껴서인지 기이하게 생각하여 걸음을 멈추고 물었 다. "너는 대체 누구냐?" 백리자성은 여전히 비도를 가볍게 어루만지며 태연하게 대꾸했다. "나는 중원의 일개 이름없는 사람일 뿐이니 당신은 그리 신경쓸 필요가 없소." 백리자성은 비록 점창파의 장문인이라는 신분이었지만 워낙에 자신의 무공이 형편없기 때문에 할 수 없이 그저 이름없는 사람이라고 말한 것 이었다. 청년무사는 자신의 앞에서 태연하게 나오는 백리자성의 허약한 몸을 바 라보다가 문득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나는 이름없는 사람은 상대하지 않는다. 그러니 어서 너는 물러가라." 백리자성은 이에 미소하며 손가락으로 제갈한송을 가리켰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이름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당신이 굳이 그를 죽이 려고 한다는 말이오?" 청년무사는 다소 화가 난 듯이 소리쳤다. "그것은 그가 감히 나의 수하를 죽였기 때문이다. 너는 나의 지시를 어 길 셈이냐?" 백리자성은 웃으며 대꾸했다. "내가 당신의 수하가 아닌데 구태여 당신의 지시를 따를 필요가 어디에 있겠소? 그건 그렇고 내가 만일 당신의 수하를 해치게 된다면 당신은 그 제서야 나와 비무를 하겠다는 말이오?" 청년무사는 잠시 생각하다가 물었다. "너는 대체 원하는 것이 뭐냐?" 백리자성은 미소하며 손가락으로 제갈한송을 가리켰다. "나는 비록 이름없는 사람이지만 중원의 사람이기 때문에 결코 그가 이 유없이 죽어가는 것을 두고볼 수가 없소." 청년무사는 싸늘하게 웃었다. "이유가 없다고? 너는 그가 나의 수하들을 두명이나 죽인 것을 보지 못 했단 말이냐?" 백리자성은 그 청년무사가 이미 자신들이 산 뒤에서 지켜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보고 쉽게 상대할 수 없는 인물이라는 것을 알았다. 백리자성은 그러나 담담히 웃으며 대꾸했다. "당신은 잘 모르고 있기때문에 그와 같은 말을 하는 것이오. 원래 저 무 사들은 수십명의 사람들을 해쳤기 때문에 저 사람이 나서서 그만 하고 어서 동영으로 돌아가라고 충고를 하였으나 도리어 무사들이 갑자기 암 습을 하는 바람에 그 두명의 무사들이 죽게 되었던 것이오. 그것은 스스 로가 자초한 일이었는데 어찌 그가 죽였다고 하는 것이오?" 청년무사는 자신이 그와 같은 일을 직접 보지 못했기 때문에 무사들을 향해 고개를 들렸으나 이내 그들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다소 눈살을 찌푸렸다. 무사들이 아무런 말을 못하는 것으로 보아 필시 눈앞의 이 허약한 청년 의 말이 사실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그렇다고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는 일이어서 청년무사는 일순 싸 늘하게 웃으며 말했다. "흐흐그러나 네가 만일 그와 같은 말을 했다고 해서 내가 너희들을 곱 게 풀어주게 된다면 실로 개가 다 웃을 일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만일 네가 그를 데려가려고 한다면 흐흐실력으로 데려가야만 할 것이다." 백리자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이미 그렇게 될 것으로 짐작하고 있었소." 말과 함께 백리자성이 손에 들고 있던 마치 종잇장과도 같이 얄팍하게 생긴 비도를 어루만지자 일시 주위에 싸늘한 살기가 넘쳐 흐르는 것 같 았다. 청년무사는 원래 그가 비도를 들고 있는 것을 우습게 생각했었으나 이 제 다시 그 의 태도를 보고는 기이하게 여겨서 물었다. "너도 비도를 던질 줄을 안다는 말이냐?" 백리자성은 그를 바라보며 대꾸했다. "그렇다면 내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오?" 청년무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나는 본래 무공이라는 것은 우선 몸이 건강해야만 하고 그 가운데에 기운을 기르며 나중에 기예가 조화를 이루게 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너는 몸도 건강하지 못하고 기운도 없어 보이며 그토륵 허약한데 어찌 비도술을 배웠다고 할 수가 있겠느냐?" 백리자성은 이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당신의 말은 틀렸소비록 힘과 기운이 다소 부족하다고 할지라도 이미 마음으로 초식의 경계를 꿰뚫으면 능히 태산을 가를 수도 있는 것이오." 청년무사는 일순 그와 같은 말을 듣고는 문득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 백리자성이 했던 말은 과거에 그의 사부가 했던 말과 비슷한 것이 었기 때문이었다. 청년무사는 그러나 백리자성의 말을 믿지 않고 다시 물었다. "나는 그런 것을 믿지 않는다. 너는 정말로 죽음을 자초할 생각이냐?" 백리자성은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죽음을 자초하려는 것이 아니라 당신에게 한 수 가르쳐 주려는 것이오." 청년무사는 이에 안색을 다소 찌푸렸다. "그렇다면 너는 어서 공격해라." 백리자성은 손안에 들고 있는 비도를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 나에게는 오직 이 하나의 비도 밖에는 없으니 당신이 먼저 공격 을 시작한 다음에 나의 비도를 던질 것이오." "너는 그렇게 자신이 있다는 말이냐?" 백리자성은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 나에게 어떤 불안감이라도 있었다면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나서 지 않았을 것이오. 만일 내가 비도를 던지게 되면 당신의 어디에 꽂히게 될지 알 수가 없는 일이므로 당신은 가능하면 주의하는 것이 좋을 것이 오. 나의 이 비도에는 눈이 달려 있지 않다오." 백리자성의 마지막 말은 아까 제갈한송이 했던 것이었으므로 청년무사 는 다시 기분이 상해서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나처음에는 몰랐지만 지금은 자꾸 백리자성을 바라볼수록 그가 정 말로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청년무사는 이에 문득 생각했다. (내가 중원으로 떠나기에 앞서서 사부님께서 이게 말씀하셨지중원에는 그야말로 숨은 기인들이 많은데 그 가운데에서 세 종류의 사람은 조심하 라고 했다. 그것은 첫째는 늙은이와 어린아이요. 둘째는 여자이며 셋째는 그야말로 아주 평범하게 보이는 사람이라고 했다. 실로 그들 가운데 정체 를 숨긴 고인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야말로 지금 눈앞에 보이는 저 사람이 그 와 같은 정체를 숨긴 고인이 아닐까?) 그와 같이 생각을 하고 나서 백리자성의 자세를 바라보자 그 자세는 기 이하게도 일면 지극히 허술해 보이면서도 난해한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그는 다시 생각했다. (저 자세는 그야말로 헛점 투성이여서 만일 내가 가볍게 일검을 긋기만 해도 부상을 당할 것 같다. 그러나 실은 그에게는 헛점이 너무나도 많아 서 대체어디로 먼저 공격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으며또한 가장 중요한 점은 그가 대체 어떤 방법으로 반격해 오는 가를 알 수가 없다는 점이 다) 이 청년무사는 비록 나이가 그리 많은 것은 아니었지만 어렸을 때부터 고도의 검술을 연마하여 짧은 시간안에도 적의 헛점과 나의 헛점그리고 적의 노리는 점과 내가 공격해야 할 점 등의 실전과 이론에 대해서 거의 완숙해 지도록 연성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러니까다른 사람들이 보면 그야말로 공교롭게도 간일발의 차이로 승 리를 거두는 것 같이 아슬하지만 기실은 그것은 이미 치밀하게 계산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이고 추호의 실수도 없게 되어 있었다. 실로 가장 위기에 가까이 다가가면서도 상대를 제거할 수 있는 사람이 가장 노련한 검의 대가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이 청년무사는 여태까지 고도의 검술을 연마하여 거의 헛점이 드 러나지 않거나 겨우 한 두 군데의 헛점이 있는 사람들을 상대해 왔었는 데 지금과 같이 그야말로 헛점 투성이의 사람을 보게 되자 일시 헷갈리 고 있는 것이었다. 백리자성은 다소 주저하고 있는 청년무사를 향해 웃으며 다시 말했다. "당신은 어서 출수하시오. 나는 그리 시간이 많은 사람이 아니니 빨리 이 일을 해결하고 싶소이다" 청년무사는 오히려 그가 재촉하자 눈살을 심하게 찌푸리며 다소 망설이 다가 의아한 눈빛으로 물었다. "너는 조금전의 나의 그 일검을 보았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나의 최고 의 검술인데 너는 대체 무엇으로 나와 같은 검술을 파해할 수가 있다는 말이냐?" 동영에서는 패자와 승자의 구분이 아주 명확하게 되기가 십상이었다. 그것은 승자는 패자의 모든 권리를 이어받는 동시에 패자는 자결을 하 거나 아니면 그의 노예가 되어 한평생을 굴욕스럽게 보내야 할 때가 하 기 때문이었다. 이 청년무사는 다소 교활하게도 일단 백리자성의 실력을 알아본 뒤에 만일 그가 강하다고 생각되면 싸움을 하지 않고 제갈한송과 같은 사람은 돌려줘도 무방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었다. 동영에서 얼마되지 않는 수재로 발탁이 되어서 중원으로 들어왔으나 실 로 중원에는 인재들이 많기 때문에 매우 일을 효율적으로 하지 않으면 않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백리자성은 그 의 마음속을 들여다 보았는지 웃으며 대답했다. "당신의 그 환검은 매우 요란한 소리를 내고 또한 시야를 가리지만 그 러나 별 것이 아니오나는 일단 시합이 벌어지기 전에 말할 수는 없으니 당신은 어서 출수하도록 하시오." 이에 청년무사는 다소 입이 벌어졌다. 기실 그가 아까 펼쳤던 무학은 환검의 정화라고 하는 것인데 실로 심오 하여 연성하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 근원인 동영에서조차 그 무학의 이치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눈앞의 이 허약한 청년은 비록 말로는 자신이 정체를 드러내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지만 금방 자신의 환검의 원리를 꿰뚫어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청년무사는 원래 성격이 활달하여 그와 같은 모욕적인 말을 듣게 되면 당장에 출수하게 되는 것이었지만이 일은 비단 자신의 목숨과도 연관이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목숨보다도 소중하게 여기는 무학의 이치와도 연관이 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결코 소홀하게 생각할 수가 없었다. 청년무사는 다소 떨리는 어조로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너는! 너는 나의 그 환검의 요체를 말할 수가 있겠느냐? 만일 네가 그와 같은 것을 알고 있다면 나는...... 나는 저 자를 돌려주고 물러 갈 것이다." 청년무사는 그 와중에서도 그냥 물러서겠다는 얘기만을 했을 뿐 패배를 자인하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하기는 비록 무학의 원리를 꿰뚫고 있다고 해도 패배할 수가 있는 것이 기 때문에 승패와는 연관이 없다고 할 수가 있을 짓이었다. 백리자성은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 "당신이 그와 같이 싸움을 싫어한다니 그렇다면 내 가르쳐 드리도록 하 겠소. 그 환검은 원래 일곱 가지의 변화를 기초로 하는데 칠칠은 사십구 모두 마흔아홉 가지의 변화에다 다시 스스로 움직이는 마흔아홉 가치의 변화가 곱해져서 모두 이천사백하나의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오. 그 러한 변화는 일순간에 펼쳐지기 때문에 상대가 포착하기 어려우나 만일 내가 그 순간순간마다 북극성의 방위를 놓치지 않고 제압하여 비도를 날 린다면 아마도 당신은 피할 수가 언게 될 것이오." 사람들은 백리자성의 말을 들으면서 하나 같이 기이하게 생각했다. 세상에 느닷없이 마흔아홉개의 변화가 생겨나는 검법도 그렇지만 거기 에 스스로 변화하는 이치와 무려 이천여개나 되는 변화를 일으키는 검법 이 있다니 이는 실로 믿을 수가 없는 일인 것이었다. 그런데기이하게도 이때 청년무사는 그 얘기를 듣더니 다소 넋나간 듯이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좋소 좋아! 자돌아가자!" 앞의 말은 벡리자성에게 한 말이었고 뒤의 말은 자신의 수하인 무사들 에게 했던 말이었다. 이윽고그 청년무사가 수하들과 함께 빠르게 사라져 버리자 이십여구의 시신들이 뒹굴고 있는 장내에는 삭막한 바람이 불어닥쳤다. 이미 가을에 접어들어 겨울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었다. 운남의 따뜻한 지방에서 살아온 백리자성의 일행에게는 이곳 호북성의 날씨가 다소 쌀쌀한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 마치 그 바람에 휩쓸린 듯이 백리자성이 다소 허약한 몸을 휘청거리자 뒤에서 이를 조마조마하게 지켜보고 있던 점창사수가 급히 달려와서 그 의 몸을 부축했다. "장문인!" 백리자성은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은 다음에 스스로 몸을 움직여서 자신 이 들고 있었던 비도를 그 제갈한송에게 건네주었다. 이때 제갈한송은 다소 넋을 잃은 듯이 떠나간 청년무사와 백리자성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막상 백리자성이 다가가서 비도를 내밀자 즉시 두 손 으로 받았다. "제가 듣기로 용중의 제갈세가에 비도파천황이라는 절기가 있다고 하던 데 과연 명불허전(名不成傳)이로군요." 제갈한송은 백리자성의 말에 문득 얼굴을 붉히고 대답했다. "저는 겨우 가전절학을 십분지 일도 익히지 못한 상태입니다. 게다가 귀 하께서도 이미 저희 가전절학을 알고 계시니 저는 실로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백리자성은 이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는 조금 전에 그저 흉내만 내었을 뿐이었는데 어찌 비도파천황을 알 고 있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에 제갈한송은 다소 어리둥절하여 물었다. "아니 그렇다면 귀하는...... 저의 가전절학을 모르면서 그와 같이...... 그 와 같이 하셨다는 말씀이오?" 제갈한송은 차마 연극이라는 말은 하지 못하고 놀라서 그렇게 물었다. 백리자성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그 사람이 비록 무예는 고강해도 성격이 고지식한 것을 보고 한 번 나서서 거짓으로 흉내를 내고 골려주었던 것이오. 기실 나는 무공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오." (......!) 제갈한송은 원래 백리자성이 무공을 모르는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하오 있었는데 지금 그의 말을 듣고 조금 전에 혹시 무공을 숨긴 고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을 허물어뜨리며 정말로 그가 무공을 모르는 사람 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그런데실로 그렇다면 그는 전혀 무공을 모르면서도 그와 같은 모험을 하였다는 말인가! 제갈한송은 일순 어이가 없다는 느낌이 치밀어 오르면서 실로 이와 같 은 배포가 두둑한 사람은 천하에 다시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기실 백리자성이 원래 무학에 대한 안목이 남다르고 게다가 상대 의 심리의 허를 찌르는 현명함을 가지지 못했다면 어찌 그와 같은 일을 할 수가 있었겠는가 원래 강호상에서 진실한 무예보다는 그 와 같은 현명함이 더욱 강한 힘 을 발휘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이었다. 이때여문량 등이 다가와서 제갈한송을 향해 포권하며 백리자성을 가리 키며 말했다. "제갈소협! 우리는 사실 점창파의 사람들이고 이분은 본파의 장문인이십 니다." 그말에제갈한송은 다시 놀랐다. 제 36 장 강호대풍운 "아! 그렇군요." 보아하니 점창사수는 하나같이 영기발랄한 인재들로서 점창파의 사람들 이라는 말을 수긍할 수 있게 했다. 그러나무공을 모른다고 했던 백리자성이 이번에는 다시 무림의 명문대 파인 점창파의 장문인이라고 하자대체 어디가 진실인지 알 수가 없는 기 분이었다. 여문량은 그것을 보고 심정을 알겠다는 듯이 담담히 웃으며 말했다. "저는 호북성의 음중에 제갈세가가 있어서 그 자제분들의 재능이 놀랍 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과연 직접 대하고 보니 대단하신 분 이시군요." 기실이 제갈한송은 무림의 오대세가의 하나인 제갈세가의 자제로서 이 번에 호북성을 돌아다니다가 조금전의그와 같은 일을 겪게 되었던 것이 었다. 원래 공력은 그다지 뛰어나지 않아서 일류급의 수준이나 그 비도술이 매우 뛰어난 제갈한송의 자질이나 무예는 점창사수 등에 비해 조금도 뒤 떨어지지 않는 것이었으며 오히려 나은 면모가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제갈한송은 바라보니 이 점창사수의 눈빛이 하나같이 예리한 안 광이 마치 신들린 듯이 빛나고 있는것을 보고는 자신의 공력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여 다소 주눅이 들었다. 그는 급히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소생이 여러분들의 은혜를 입게 되어서 실로 무엇으로 보답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혹시 지금 시간이 있으시다면 저희 세가로 가셔서 잠시 유 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원래제갈세가는 당금에 이르러 오대세가의 내에서도 거의 발군이 위치 로 부상하고 있었던 만큼 그와 같은 곳으로 가서 유하게 된다면 그만큼 영광스러운 일일 것이었다. 그러나일행은 태양마교도 등의 문제도 있고 하여 결코 그럴 만한 여유 가 없었다. 백리자성이 포권하며 말린다. "제갈소협의 호의는 고마우나 지금 우리는 상황이 좋지 않아서 감히 그 럴 수가 없는 입장이로군요. 앞으로 시간이 나면 차차 그 곳에 들러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제갈한송은 내심 이 뛰어난 무림의 인재들과 사귀고 싶은 생각이 일었 으나 이들이 사양을 하는지라이내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는 말했다. "그렇다면 저는 항상 세가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니 언제라도 원하시 는 시간에 한번 들러 주시기 바랍니다." "예. 알겠습니다." 제갈한송과 일행은 그렇게 헤어져서 각자가 갈 길을 향해 걸어가기 시 작했다. 원래제갈한송은 삼강방의 인물들이 흉악한 짓들을 저지르며 다닌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으므로 결코 그들의 죽음이 아까와서가 아니라 그 저 분기가 일어서 장내에 뛰어들었던 것인 만큼 헤어져서 갈 때에는 그 들의 시신은 아랑곳 하지도 않았다. 일행이 백리자성을 남여에 태우고 다시 성안으로 향해 나아가다가 문득 이모화가 기이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장문인아까 그 재갈한송의 비도술은 실로 놀라운 것이더군요. 저는 전 백승의 비도술을 보기는 했지만 그와 같이 절묘하지는 않았었습니다." 그가 전백승의 얼굴을 한차례 바라보자전백승은 다소 붉어진 얼굴로 고 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의 비도술은 나보다 뛰어나오. 나는 결코 그 비도술을 당할 수가 없소." 이모화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핫핫전가가 다 겸손할 때가 있군 그래. 그야말로 임자를 제대로 만난 격이로군." 백리자성은 그와 같은 광경을 보고 전백승을 위로해줄 생각으로 입을 열었다. "그 비도술은 일명 파천황(破天荒)이라고 이름이 났을 만큼 본파의 분광 쾌검과 마찬가지로 제갈세가의 독문절학이니 전수석호법이 따르지 못하 는 것은 당연한 일이오. 그 파천황의 비법은 오직 제갈세가의 내에서만 전해내려오는 것인데,그것은 겉으로는 간단해 보이는 것이지만 실로 연성 하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고련이 요구되는 심오한 절학이라오." 이모화가 다시 백리자성을 올려다 보며 물었다. "하지만 장문인께서도 아까 시전하려고 하지 않았습니까?" 백리자성은 미소하며 말했다. "내가 그 파천황의 원리와 형태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것은 사 실이오. 그랬기 때문에 다소간의 흉내를 낼 수가 있었던 것이지만 그러 나...... 그것을 연마하기 위해서는 특유의 예리하고 냉철한 심성이 바탕으 로 깔려 있어야 하고 고도의 정신력이 요구되기 때문에 유독 제갈세가의 사람들만이 그것으로 이름을 날릴 수가 있었던 것이오." 이모화가 전백승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니까 저 전가는 제아무리 해도 그와 같은 비도술을 배울 수가 없 다는 말이군요." 백리자성은 이모화의 짓궂은 질문을 듣자 다소 난처해졌으나 웃으며 대 답했다. "천하의 무학에는 각기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그와 같은 절기를 배우고 안배우고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오. 다만 그와 같은 절기는 보기 드물 게 심오한 절기이기 때문에 전수석호법이 새롭게 배우기에는 다소의 난 점이 있을 것이오." 이모화는 다시 물었다. "그런데 그 동영의 청년무사는 그야말로 놀라운 절기를 가지고 있던걸 요. 그에게는 그 비도술이 통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백리자성은 그말에 미소하며 대답했다. "이 무학이라는 것은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누구에게는 어떤 무공이 통하지 않는다는 식의 말은 성립되기가 어려운 것이오. 예를 들어 그 청 년무사에게 제갈세가의 가주가 와서 비도파천황을 던졌더라면 그 상황은 또 달라졌을 지도 모르는 일이오." "청년무사의 무학은 상당히 심오한 것이었지만 기실 그의 무공이 아직 최절정의 경지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그 위력을 다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소." 이모화는 그 청년무사의 무공이 심오한 것이었지만 기실 그의 무공이 아직 최절정의 경지에 있었다는 백리자성의 말과 그럼에도 그 무학의 위 력을 다 발휘하지 못했다는 말에 다소 놀라서 물었다. "참그 청년무사가 펼쳤던 무학은 대체 어떤 것이었습니까?" 점창사수는 아까 백리자성이 그 청년의 무학에 대해서 매우 자세하게 알고 있었던 것이 생각나서매우 궁금한 마음이 되었다. 이에백리자성은 담담히 웃으며 대답했다. "그것은 바로 북두제왕검형대구식(北斗帝王劍形大九式) 가운데의 제 일 식이었소." "북두제왕검형대구식이라고요?" 이모화등은 일찍이 백리자성이 동영에서 상관봉이 수하들에게 가르쳤던 무학이 바로 북두제왕검형대구식 등이었다는 얘기를 들었었기 때문에 놀 라서 되물었다. "아니 그렇다면 그 청년무사는 검총의 사람이었다는 말입니까?" 백리자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비단 그 청년무사 뿐만 아니라 나머지 무사들 역시 검총의 사람들인 것 같소. 원래 그 상관봉과 무학은 최절정의 무학의 경지에 이르러야만 비로소 배우기를 시작할 수가 있는 것으로 나머지 무사들은 배우지 못한 것 같았으나 청년무사는 거기에서 가장 낮은 제일식을 배웠던 것 같소." 여문량은 아까 청년무사의 검초가 실로 경악스러운 것이었는데도 겨우 북두제왕검형대구식의 가장 낮은 것이었다는 얘기를 듣고는 놀라서 물었 다. "그럼 그 북두제왕검형대구식이라는 검법은 어떤 것입니까?" 백리자성은 천천히 걸음을 옮겨놓고 있는 황종보와 전백승등을 바라보 면서 느릿하게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 북두제왕검형대구식은 천검성자 상관봉이 초년기에 심혈을 기울여 서 완성한 것으로 가히 천하최강의 검법이라고 할 수가 있소. 그는 별호 마저 천검성자라고 했던 만큼 검법에 유달리 많은 관심을 기울였던 사람 이었는데 그런만큼 그의 검법이 천하최강이라고 불리워도 손색이 없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소." 이때 여문량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눈빛을 기이하게 빛내며 물었다. "그렇다면 천하에는 그 검법을 능가하는 검법은 없다는 말씀입니까?" 백리자성은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일반적으로 검법이라는 것은 원래 최강의 무예라고 할 수는 없소. 그 초인들의 광검은 비록 검이라는 말이 들어있기는 하지만 실로 검법은 아 니어서 빛으로 상대를 제거할 수가 있는 것이므로 상관봉도 비록 그와 같은 검법을 창안하기는 했지만 실로 그러한 검법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 오." 여문량은 다시 말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그것은 초인들의 경우에 한하는 것이고 무림계에 있어서 최강의 검법은 중요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백리자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천하에는 기실 최강이라고 불리우는 검법이 세 가지가 있소." 이모화가 눈빛을 빛내며 호기심에 말했다. "삼대검학(三大劍學)이라는 말입니까?" 백리자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이모화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그 삼대검학의 하나는 물론 그 북두제왕검형대구식일 것이고 나머지 두 개는 어떤 것입니까?" 백리자성은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그 하나는 바로 무극검해(無極劍匯라고 하는 것이오." 여문량이 즉시 놀라서 말했다. "그것은 혹시 바로 천륭세가의 무학이 아닙니까?" 백리자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천륭세가의 무학이고 바로 천수자 백일맹의 무학인 것이오. 그 무학은 워낙에 심오하며 실용적인 북두제왕검형대구식에 비해서 연성하는 사람 이 매우 드문 편이오." 점창사수는 그 여덟명의 초인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수위를 차지하고 있 는 천수자의 검학이 북두제왕검형대구식의 우위에 있다는 얘기를 수긍이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모화가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천하제일의 검학은 어떤 것입니까?" 백리자성은 담담히 웃으며 대답했다. "원래 이 세 가지의 검학은 서로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것이지만 무극 검해는 북두제왕검형대구식보다 다소 심오한 것이고 그리고 팔만사천검 결(八萬四千劍訣)은 그것들 보다는 다소 포괄적인 것이오." "팔만사천검결?" 이모화가 전혀 들어보지 못했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어째서 그것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을까?" 이때전백승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러나 저는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검학을 알고 계시는 분을 알고 있 습니다. 바로 장문인께서는 그와 같은 검학들의 내용을 알고 계시는 것이 니 가장 뛰어나신 분이 아니겠습니까?" 백리자성은 웃으며 대답했다. "내가 비록 그와 같은 것들을 다소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배우지 못하 는 것이니 소용이 없는 것이오." 그런데여문량이 문득 뭔가 생각난 듯이 눈빛을 빛내며 말했다. "장문인 저는 일전에 사도장문인 대행에게서 장문인의 가문인 백리가문 에 기이하기 짝이 없는 여덟가지의 무학이 전해내려오고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그렇다면 혹시 그 팔만사천검결은 그 여덟개의 무학 가운데의 하나가 아닙니까?" 백리자성은 이 여문량의 총명한 점을 높이 사며 웃으며 입을 열어 대답 했다. "그렇소. 실은 그 팔만사천검결은 우리 백리가문의 무학이라오." 비록 그렇지 않을까 하고 예상을 하고 질문을 하기는 했지만 여문량 등 은 백리자성의 말을 듣자일시 눈이 절로 휘둥그래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모화가 자신의 무릎을 치며 말했다. "하기는 그렇지. 장문인께서 천하의 모든 검학에 대해서 정통하고 계신 데 실제로 천하 제일의 검학을 알지 않고 계신다는 것은 말 도 안되는 일이었지." 백리자성은 담담히 웃으며 대꾸했다. "팔만사천검결이 천하제일의 검학이라고 하는 말은 나의 조상들이 그렇 게 정해놓으신 것이고 아직 공인된 것은 아니니 확실한 것은 아니오." 이모화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그것은 공인되고 안되고를 떠나서 이미 확실한 것입니다. 장문인께서는 이미 다른 검학의 원리에 대해서도 정통하고 계시는 것이 아닙니까? 실 로 저희들은 곁에 그야말로 태산같으신 사부님을 모시고도 자질이 형편 없어서 그러한 무공들을 배우지 못하는 군요." 백리자성은 실로 이모화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사기를 생 각해서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나의 가문에 전해내려오고 있는 팔대절학은 각기 뛰어난 경지에 이르 러 있는 것들이지만 구태여 감추려는 것은 아니오. 그것들은 워낙에 심오 하고 어렵기 때문에 오히려 쉬운 무학들을 단계적으로 배워나가는 것이 빠를 것이기에 우선 다른 것들을 권하고 있는 것이오. 만일 여러분들이 나중에 그러한 무학들을 배우기를 원한다면 내가 다시 생각해 보도록 하 겠소." 여문량등은 백리자성이 비록 자신들의 사기를 생각해서 그러한 말을 하 기는 했으나 기실 그의 목숨도 그리 많이 남은 것이 아니고 하니 자신들 이 그 팔대절학들을 배울 수 있는 가능성은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때 황종보가 이제까지 말이 없다가 입을 열었다. "그 북두제왕검형대구식에 관해서 좀더 말씀해 주십시오." 원래이 황종보는 자질이 다른 세 명에 비해서 다소 모자란듯 했지만 워 낙에 노력을 많이 하는데다 분수를 지킬줄을 알아서 허황된 생각에 빠지 지 않고 현실적으로 생각하려는 것이었다. 백리자성은 담담히 웃으며 대답해 주었다. "그 북두제왕검형대구식에는 말 그대로 모든 검학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아홉가지의 검식이 만들어져 있소. 그것은 바로 환식(幻式)탄식(彈 式)쇄식(碎式)산식(散式)무식(舞式)뇌식(雷式)변신(變式)쾌식(決式)붕식(崩 式)등으로 그 위력은 뒤로 나아갈수록 극강한 것이고 나중의 세 가지 변 식인 변쾌붕식은 초절정의 검학이오." 점창사수는 이미 최절정의 경지에서부터 수련을 시작하게 되어 있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실로 초절정의 검학이라는 말은 이해조차 가지 않았다. 전백승이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장문인께서 창안하신 분광삼절 가운데의 마지막 검식과 그 쾌식은 서로 비슷한 경지의 것입니까?" 백리자성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 북두제왕검형대구식은 초절정에 이르는 검학이기 때문에 그 모든 검학을 모두 연성했을 때에는 다시 새로운 경지의 검학에 도달하게 되어 있는 것이오. 그러나 기실 이 초절정의 검학의 경지라고 하는 것은 초절 정의 내공을 기초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본파의 상황에는 걸맞지 않으므 로 나는 그와 같이 어려운 것을 만들어낼 수는 없었소. 그 분광삼절의 섬 절(閃絶)뇌절(雷絶)분광절(分光絶)의 삼식은 초절정에 버금가는 것으로 최절정 이상의 무학이오." 점창사수는 백리자성의 말을 듣고 점창파의 호법무공이 북두제왕검형대 구식에 못미친다는 말에다소 실망감을 느꼈으나 이내 그것은 배우는 사 람이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지 실은 백리자성의 능력은 그것 이상이라 는 것을 상기하고는 서운한 마음을 들렸다. 이미 일행은 어느새 얘기하는 도중에 성안으로 들어와서 객점으로 다와 가고 있는 상태였다. 이때문득 전백승이 다소 머뭇거리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저어...... 제가 만일 지금의 상황에서 무공수법을 바꾸게 된다면 그것은 가능한 일이겠습니까?" 이모화가 다소 놀라서 물었다. "아니! 무공을 바꾸려고?" 전백승은 다소 겸연쩍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요즈음 나의 비도술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게다가 금룡십팔 해 역시 너무나도 복잡하고 어렵기 때문에 혹시 나와는 맞지 않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이모화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누구나 무공이 어렵기는 마찬가지이지. 그렇다고 지금에 와서 바꾸겠다 고 한다면 오히려 손해가 될걸?" 전백승은 안색을 붉히며 대답했다. "나는 그래서 장문인께 여쭈어 보고 있는 거야. 나는 장래가 좋지 못하 다면 차라리 이번에 다른 것으로 바꾸는 것이 더욱 낫지 않을까 하고 생 각하는 거야." 여문량과 이모화등은 그 점을 잘 파악하기가 곤란하여 할 수 없이 백리 자성에게 시선을 돌려 바라 보았다. 이에백리자성은 담담히 웃으며 대답했다. "기실 전수석호법의 생각은 틀린것이 아니오." 이모화가 놀라서 물었다. "그럼 지금이라도 바꾸는 것이 타당하다는 말입니까?" 백리자성은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 이수석호법의 경우는 워낙에 선택을 잘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고 도리어 바꾸는 것이 손해가 되겠지만 전수석호법의 경우는 조금 다르오." 점창사수는 백리자성의 말이 기이함을 보고안색을 변화시키면서 귀를 기울였다. 백리자성은 말을 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각기 자신들의 장점에 따라서 훌륭한 무공수법을 선택 했다고 할 수가 있으나 기실 전수석호법의 경우는 처음부터 약간의 착오 가 있었던것 같소." 이모화가 물었다. "그럼 그가 비도술을 배우는 것은 좋지 않다는 말입니까?" 백리자성은 담담히 웃으며 대답했다. "원래 비도술은 다른 병기에 비해서 가볍고 표흘한 것이 특색이오. 그것 은 일면 전수석호법의 체질과 잘 맞아떨어진다고 할 수가 있어기실 전수 석호법의 체질은 바로 보경연골체(寶經軟骨體)라고 하는 기이한 것으 로......" 이모화가 말을 자르며 다시 물었다. "대체 그 보경연골체라고 하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백리자성은 대답했다. "그것은 바로 전신의 신경조직이 극도로 발달하여 실전무학을 익히기에 가장 적합한 반면에 오히려 골격이 굳어지지 않아서 어렸을 적에는 몸이 허약하게 되는 신체로 만일 이 사람이 특별한 무학을 연성하게 되면 그 야말로 금상첨화라고 할 수가 있소." "......?" 이모화는 급히 전백승의 얼굴을 돌아보았으나 실로 그가 다소 붉어진 안색으로 가만히 서 있는 것을 보고 내심 생각했다. (실로 전백승의 골격은 보경연골체인 모양이로구나. 그는 정말로 어렸을 적에는 몸이 허약했던 모양이군. 그러나 이때까지 사귀어온 우리는 모르 고 있었는데 장문인은 어떻게 그의 신체상의 비밀을 알게 되었던 것이었 을까?) 백리자성은 다시 말을 이었다. "이 보경연골체의 사람은 비록 무학을 연성하더라도 그 신체적인 특성 때문에 가볍고 표흘한 무학을 선택하는 것이 좋은 것이오. 그런데 그 비 도술은 처음에는 가볍고 표흘하다는 원리에서 뒤떨어지지 않는 것이나 상숭의 경지로 갈 수록 더욱 무거워지고 심오해지기 때문에 신체와 맞지 않게 되었던 것이오." 전백승은 백리자성이 자신의 신체적인 고민을 잘 지적해 주었던 것처럼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가만히 걷고만 있었다. 백리자성은 말을 이었다. "사실 무학이라는 것은 기이하여 처음에는 가볍고 표흘하던 것이 상숭 의 경지로 갈수록 더욱 무겁고 복잡해지는 경우가 많은데 실로 비도술이 그와 같은 대표적인 것이오." 이모화가 물었다. "그럼 아까의 그 비도파천황은 기실은 아주 무겁고 심오한 것이었습니 까?" 백리자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비도술은 실로 겉으로 보기에는 가볍고 간단해 보이지만 강한 공력 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며 심오하고 복잡한 이치가 담겨져 있는 것이기에 전수석호법과는 맞지 않다고 했던 것이오. 그러한 비도술은 사실 가냘픈 사람보다는 오히려 황수석호법과 같은 튼튼한 사람에게 차라리 더욱 어 울리는 수법이오." 이모화는 웃었다. "그러나 황종보는 워낙에 둔하기 때문에 그처럼 심오한 절기를 시전할 수가 없겠군요." 백리자성은 이모화가 짓궂게 말하자 웃으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황수석호법은 비록 섬세한 면은 없지만 강한 저력이 뒷받침되어 있는 사람이니 그에 맞는 무공이 있는 것이오. 전수석호법은 원래 비도술을 선 택 했었지만 나중에 상승의 경지로 갈수록 점차로 비도가 무거워지고 심 오해지자 자신의 신체와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오." 이모화가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전백승에게 가장 적합한 무공은 어떤 것입니까?" 백리자성은 점창사수의 관심사가 여기에 있는 것이고 그들의 시선이 집 중되자 일순 웃으며 대답했다. "그것은 지금 그가 선택한 무공이오." 이모화등은 백리자성의 말뜻을 이해할 수가 없어서 일제히 전백승의 얼 굴을 돌아보았다. 그러자전백승은 이미 그 말뜻을 이해했는지 안색을 다소 붉히는 것이 아닌가! 이모화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그에게 물었다. "대체 네가 선택한 무공은 어떤 것이지?" 전백승은 다소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그것은 실로...... 실로 부끄러운 얘기지만 모두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이 네." ......? 이모화는 더욱 의아해져서 물었다. "대체 네가 선택한 무공은 어떤 것인가?" 문득그것을 보고 여문량이 웃으며 말했다. "나는 이제야 알것 같군. 혹시 자네가 선택한 것은 바로 쾌검이 아닌 가?" 전백승은 붉어진 안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기안하지만 그렇네." ...... 그렇다! 실로 여문량등은 지금에야 전백승의 심정을 알 수 있을것 같았다. 원래 사도백위가 장문인으로 있었을 당시 네사람은 각기 특색있는 무학 의 길로 나아가게 되었지만전백승은 비도술보다는 차라리 쾌검의 쪽으로 나아가기를 원하고 있었다. 그러나다른 무학을 배우게 유도했던 것이었다. 기실 사도백위는 그와 같은 인재가 쾌검의 길에 들어서게 되면 자칫 장 문인의 자리를 위협당하게 될 것을 염려하여 일부러 다른 무학을 배우게 유도했던 것이었다. 전백승도 이미 그러한 사도백위의 의도를 알았고 또한 쾌검을 배우려면 장문인의 호법 무공인 분광삼검형을 마저 배워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 하는 것을 알고는 비도술을 배우게 되었던 것이었다. 실로 지금 전백승이 다른 사람들에게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다 른 사람들은 창파의 호법무공인 쾌검을 배우지 못하는데 자신만이 그 길 로 가게 되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모화도 그런 의미를 알고 웃으며 말했다. 점창사수 "핫핫핫! 그렇다면 이제 앞으로는 자네의 무공이 가장 높아지게 되어서 우리의 순서가 바뀌게 되겠군!" 비록 그와 같이 말을 했지만 이모화는 역시 전백승이 무공을 바꾸는 것 을 시기하거나 하는 인물이 아니었다. 백리자성은 이에 담담히 웃으며 입을 열었다. "원래 이 쾌검은 처음에 연성할 때에는 그 빠르기를 제어하기 위해서 고도의 숙련된 힘이 필요하게 되는 것이고 일면 아주 튼튼한 사람이 연 성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가 쉽소. 그러나 일단 그것이 상승의 경지 로 나아가게 되면 그힘의 성질은 한줄기의 표흘하는 바람과도 같아서 보 경연골체의 특성에 아주 잘 들어맞게 되는 걸이오. 앞으로 전수석호법이 쾌검을 배우게 된다면 머지 않아서 높은 성취를 이루게 될 것이오." 이모화가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그에게 그럼 분광삼절마저 가르칠 생각이십니까?" 백리자성은 웃으며 대답했다. "본래 평시였다면 장문인의 후보가 아닌 이상은 그것을 배우지 못하게 하였을 것이오. 그러나 지금은 비상시국이고 또한 장문인의 후보가 미리 내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여러분들에게 모두 기회를 주고 자 하오. 나는 앞으로 누구에게도 분광삼절의 절학등을 전수할 용의가 있 소. 나는 여러분들의 선의의 경쟁을 훤하고 있는 것인데 만일 여러분 가 운데에서 가장 높은 성취를 이룬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차기의 장문인의 직위가 돌아가게 될 것이오." 점창사수는 이미 백리자성에게 후사가 없고 또한 그는 목숨이 얼마 남 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들 가운데에서 차기 장문인이 나올 것으로 예상하 고 있었다. 그러나막상 백리자성이 그와 같이 말을 하고 나자 다소 그들은 서로간 을 의식하며 표정이 가볍게 굳어졌다. 비록 그들은 가까운 친구지간이지만 그러나 일파의 장문인이 되는 것은 별개의 중요한 일인 것이었다. 이모화가 웃으며 말했다. "본파의 호법무공은 쾌검인데 그렇다면 결국 가장 높은 무학을 배우게 되는 전가가 장문인의 후보에 오르지 않겠습니까?" 백리자성은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반드시 그렇다고는 할 수가 없소. 예를 들어서 여수석 호법의 육맥신검 은 그것이 절정의 경지에 도달하면 소리없이 빠르게 상대를 격살할 수가 있기 때문에 그 어떤 쾌검이라도 상대할 수가 있을 것이오. 실로 그와 같 은 무공은 단계적으로 밟아 올라가는 것이기 때문에 가장 높은 무학을 배우는 사람이 가장 높이 올라간다는 것은 아니오. 이수석 호법도 물론 이제부터 다시 쾌검을 겸해서 배울 수도 있소." 이모화는 손을 내저었다. "저는 비록 쾌검을 배우더라도 장문인이 되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 다시 그와 같은 얘기는 말아주십시요." 이에 점창사수는 가볍게 웃었다. 그리고 과거에는 금기시 되어서 배우지 못했으나 기왕에 점창파의 사람 이라면 역시 쾌검을 배워야 하겠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문득 황종보가 다시 물었다. "그 북두제왕검형대구식의 각 검식들은 어떤 특성들을 가지고 있는 것 입니까?" 아마도 황종보는 외골수로서 그 검법에 대해서 관심이 많은 모양이었다. 백리자성은 담담히 웃으며 대답했다. "원래 그 아홉가지의 검식은 검초라기 보다는 각기 하나씩의 검류(劍流) 의 정화를 있다고 할 수가 있소. 그렇기 때문에 내공이 최절정의 경지에 이르지 않고는 배울 수가 없다고 하는 것이오. 일반의 환검은 많지만 실 로 그와 같은 환검의 정화는 매우 드문 것이며 마치 그처럼 탄식이나 쇄 식등도 마찬가지인 것이오. 그와 같은 검식들은 워낙에 심오하고 어려운 것들이기 때문에 직접 보지 않고는 설명을 듣는다고 해도 알기 어려운 것이오." 황종보는 그제서야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눈치였다. 전백승이 안색을 펴고 말했다. "하지만 저는 오늘 무학보다도 더욱 훌륭한 것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장 문인께서는 실로 무공도 없으신데 그처럼 최절정의 무학 고수를 물리치 셨으니 실로 ...... 실로 진정한 고수라고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설령 태양마교의 사람들이 우리를 덮쳐온다고 해도 우리는 걱정이 없을 것입니다." 이 전백승이 말한 것은 지금의 정황을 예리하게 짚은 것이었다. 점창사수는 비록 태양마교의 일을 다시 거론하게 되자 다소 안색이 변 했으나 이내 전백승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여 마음을 느긋하게 갖기 시작 했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이 백리자성은 갈수록 알 수가 없고 더욱 거대해 보 이는 괴물과도 같은 사람이었다. 언제는 상상할 수도 없는 무학의 내용을 알고 있더니 또한 언제는 무공 도 없는 몸으로 그와 같은거칠은 동영의 무사와 맞설 수 있는 있는 대범 함을 보이는 등의 불가사의함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기실점창사수의 나이는 백리자성보다는 많은 것이었으나 이에 이르자 그만 백리자성을 그야말로 거의 신처럼 숭배하게 될 정도가 되었다. 얼마전에는 태양마교의 일을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을 정도였지만 이제 는 그일을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이미 주위가 어두워져서 무창성의 번화한 거리가 불빛으로 빛나고 있었 는데 일행이 만 수객점의 별채로 돌아가자 문득 제자들이 달려와서 보고 하는 내용이 있었다. 그것은 다소 엄청난 내용이었다. 하나는 호북성에서 오랫동안 무림의 태산북두로 알려져 왔던 무당파의 사람들이 일월신교의 무리들과 격전을 벌여서 거의 멸문지화를 당했다는 소식이고 다른 하나는 안휘성(安罰ㅤ일대의 강북무림에서 오랫동안 성세 를 떨치던 금응방(金應幇)의 무리들이 검총이라는 동영의 무사들에게 지 리멸렬 되었다는 마지막으로 가장 충격적인 내용은 바로 태양마교의 인 물들이 이미 서서히 북상하여 운남을 지나 귀주성의 경계마저 넘어섰다 는 것이었다. 이 세 가지의 소식 가운데에서 가장 점창파의 사람들에게 충격을 던져 주고 있는 태양마교들의 이야기는 그들이 점창산을 거의 쑥밭으로 만들 고 오로지 점창파의 사람들을 수소문하며 올라오고 있다는 점과 앞으로 하남성만 지나게 되면 금방 부근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사실등으로 더욱 마음을 졸이게 했다. 점창사수는 비록 백리자성을 믿고 있기는 했지만 그런 얘기를 듣자 다 소 안색이 창백해지는 표정들이었다. 백리자성은 그들을 불러놓고 말했다. "이 태양마교 도들은 겉으로는 우리 점창파를 노리고 있는것 같지만 기 실은 그렇지도 않은 점이 있소. 비록 그들의 일개 분타가 멸망하고 다시 두번째의 부대가 패퇴하여 돌아갔었지만 그것은 그야말로 그들의 세력에 서는 빙산의 일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으로 기실 무시하자면 간단한 일 이었소. 그럼에도 그들이 계속해서 본파를 멸망시키겠다고 하며 중원으로 올라오고 있는 것은 다른 이유가 있기 때문이오." 전백승이 물었다. "거기에는 어떠한 이유가 있습니까?" 백리자성은 정색을 하고 대답했다. "그것은 당금에 이르러 일월신교가 창궐하고 검총이 중원으로 들어서고 있는 것들과 일련의 맥을 같이하는 것이오. 태양마교는 이미 남황에서 패 자가 된지 오래 되었소. 그들은 이번 기회에 한번 중원으로 나서서 일을 도모하려는 것이오." 여문량이 물었다. "그것은 장문인의 추측이십니까?" 제 37장 비장한 지시 백리자성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거기에는 움직일 수 없는 두 가지의 증거가 있소. 그하나는 그들 가운 데의 뛰어난 무공을 지닌 몇몇의 사람들의 힘만으로도 능히 쉽게 본파를 추격하여 멸문시킬 수가 있는데도 구태여 소문만 험악하게 내며 시일을 지체하고 있는 것이고 두번째는 그렇게 하면서도 은근히 이미 운남과 귀 주 일대의 강호를 세력권 안으로 두어가고 있다는 사실이오." 그렇다. 기실 태양마교가 그렇게 뛰어난 집단이라면 이번에 구태여 시일을 지체 할 필요도 없이 그저 몇명의 초절의 고수만을 시켜서 불과 한달도 되지 않는 기간내에 점창파를 멸문시키고 되돌아갈 수가 있을 것이었다. 그럼에도 일부러 시일을 지체하여 쉽게 그와 같은 일을 하지 않고 점차 로 남쪽지역을 자신들의 세력하에 두고 있는 것은 점창파를 추격한다는 명분 아래 중원에 대한 야심을 보이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기실점창파의 일은 그들에게는 그리 중대한 사건이라고 할 수가 없는데 도 그와 같이 일을 거창하게 벌일 필요가 어디에 있겠는가! 전백승이 물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그들의 침습에 대해서 일단 안심을 해도 된다는 말입니까?" 백리자성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지는 않소. 원래 그들은 우리를 공격하는 것을 명분으로 내세웠던 만큼 쉽게 우리를 멸망시키려고 하지 않을 것이지만 사태의 추이를 봐서 느닷없이 공격조를 몇명 정도 보내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오. 어쨌든 그들 은 우리를 제거하는 것을 표방하고 있는 것이니 우리가 계속 경계심을 가지고 있으면 되는 것이오." 여문량이 물었다. "그렇다면 무당파와 금응방이 거의 멸문지화를 당한 일은 어떻게 해석 해야 합니까?" 백리자성은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내가 보기에 이미 동쪽과 북쪽그리고 남쪽은 그 세개의 거대한 세력에 의해 잠식된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할 수가 있을 것이오. 다만 지금에 이 르러 일월신교가 무당파를 공격하고 검총이 금응방을 멸망시킨 것은 그 들의 야심이 드디어 표면화되어 간다는 뜻인 것 같소." 점창사수는 이미 일월신교의 일월마왕에 대한 지식과 게다가 검총의 무 사들의 놀라운 무공들을 보았었기 때문에 설령 오랜 전통의 무당파가 멸 망에 가까와졌다고 해도 놀라거나 심하게 의아해 하지는 않았다. 다만같은 구파일방의 하나인 문파로서 만일 이 점창파마저 그와 같은 위치가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서는 것이었다. 무당파의 혈겁은 마치 앞으로 있게 되는 무림명문대파들의 수난시대를 예고하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황종보가 물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백리자성은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무림에는 명문의 전통있는 문파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이미 서로간에 힘을 규합하려는 움직임이 있을 것이오. 그러나 우리는 태양마교와의 일 이 널리 퍼져있을 것이기 때문에 많은 문파의 사람들이 달가와하지 않을 것이므로 단독으로 행동하지 않을 수가 없소. 우리는 일단 이곳을 피하여 하남성의 방면으로 올라가 보는 것이 좋을 것이오. 그렇게 된다면 그 곳 은 태양마교 도들이 쉽게 올라올 수가 없는 곳이므로 우리는 자연적으로 검총과 일월신교의 보호를 받게 되는 것이니 다소 낫게 되지 않겠소?" 여문량을 비롯한 점창사수 등은 일제히 신형을 일으키며 대답했다. "옳으신 말씀이십니다. ." 백리자성은 회의를 마치고 나서 자신의 처소로 가서 잠을 청했지만 쉽 게 잠이 오지 않고 전신의 고통은 갈수록 선명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백리자성은 그것이 바로 무리하게 기운을 주입하여 생명을 연장시켰기 때문에 생겨난 현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천하제일의 신의라고 할 수가 있는 강호산인 심흥기는 호의에 백리자성 에게 그렇게 해주었겠지만 백리자성은 전신의 통증이 극심하여 잠을 이 를 수가 없는 날이 갈수록 많아졌다. 대체로 이렇게 나가다가는 도저히 그 고통을 참기 어려워서 죽음을 원 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만일 백리자성이 그토록 고통에 익숙해져 있지 않았다면 사람들은 그가 가는 것을 보지 못했을 것이었다. 백리자성은 잠이 오지 않자 방안을 서성거리며 한동안 생각에 잠기다가 밖에서 지키고 있는 제자를 통해 점창사수를 불러들이게 했다. 마침 점창사수 역시 내일이면 떠나야 하는 당금의 현실을 생각하느라 아직 잠에 들지않고 있는 상태여서 즉시 그의 처소로 달려왔다. 백리자성은 우선 그들을 탁자의 앞에 나란히 앉도록 한 다음에 입을 열 어 말했다. "내가 아까는 다른 제자들의 동요를 막기 위해 그와 같이 말을 했지만 기실 당금의 상황은 본파에게 있어서 그야말로 최악이라고 할 수가 있소. 태양마교의 사람들은 물론이고 다른 정파의 사람들 역시 우리들을 제거 하려고 할지도 모르오. 그 이유를 알고 있소?" 여문량이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만일 본파가 멸망하게 되면 태양마교가 다시 중원으로 올라오는 명분 이 없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일월신교나 검총의 무리들이 일부 러 우리를 제거하려고 할지도 모릅니다." 백리자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우리는 비록 태양마교 도들이 있는 곳으로도 갈 수가 없을 뿐 만 아니라 일월신교나 검총의 무리들이 있는 곳으로도 갈 수가 없는 것 이며 그렇다고 지금 이 상태로 주저앉아 있을 수도 없는 것이오." 전백승이 물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만 하는 것입니까?" 백리자성은 잠시 네 사람을 바라본 뒤에 대답했다. "우리는 역시 일월신교와 검총 등이 있는 곳으로 갈 수밖에 없소. 만일 그렇게 된다면 태양마교 도들은 은밀히 사람을 보내서 우리들을 보호하 려고 할지도모르오." 이모화 등은 오히려 태양마교에서 점창파를 보호할지도 모른다는 말을 듣고 어이가 없어서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차라리 태양마교도들이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이 어떻 겠습니까?" 전백승의 질문에 백리자성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게 되면 태양마교에서도 명분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더욱 우리를 제거하려고 할지도 모르며 혹은 다른 수단을 쓸 수도 있소. 즉 우리는 검 총과 일월신교 그리고 태양마교도들에게 쫓기는 사면초가의 상황이 되었 는데내가 지금 여러분들을 부른 것은 한 가지의 긴요한 지시를 내리고 이어 한 가지의 일을 하기 위해서이오." ...... 점창사수는 백리자성이 한 가지의 지시를 내리고 한 가지의 일을 하려 고 한다는 말을 하자 다소 긴장이 되어서 눈빛을 빛내며 그의 얘기에 귀 를 기울였다. 백리자성은 정색을 하고 엄숙한 표정으로 입을 열어 말을 이었다. "본파는 지금 그야말로 위험한 상황이기 파문에 부득이 최후의 안배를 해놓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오. 따라서 나는 지금 말하겠소. 내가 만일 앞으로 무슨 일을 당하여 장문인의 직위를 수행할 수가 없을 때에는 여 수석호법이 그대행을 맡도록 하시오! 그리고 다시 여수석호법에게 문제 가 생겼을 때에는 황수석호법이수석호법그리고 전수석호법의 순서대로 대행을 이어받도록 하시오!" 백리자성의 지시는 장문인의 지엄한 명령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기실 그의 그와 같은 지시는 차기의 장문인의 후보를 지정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기 때문에 여문량은몸을 일으키고 다소 사양을 하지 않 을 수가 없었다. "제가 대행이 된다고 하는 것은 다소 문제가 있는것 같습니다. 예를 들 어 황종보나 이모화 등도 실은 저보다는 뛰어난 사람들인데 제가 어찌 그 첫번째를 차지하겠습니까?" 백리자성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것은 이미 내가 결정한 일이니 그대는 더 이상 사양하지 마시오. 시 간이 별로 없는 큼 그대는 어서 명을 받도록 하시오!" 여문량은 그제서야 하는 수 없이 고개를 숙인 다음에 면을 받았다. 백리자성은 이어 말했다. "그리고 앞으로 본파에서 위난을 당했을 경우에는 무리하게 복수하기 위해 모두가 의미없이 목숨을 바칠 필요는 없는 것이오. 즉 지금 명령을 내리는 바 앞으로 본파의 존망의 위기가 닥쳤을 때에는 필시 그대들 네 명의 사람들만은 즉시 도피하여 후일을 기약하도록 하시오!" 백리자성의 그와 같은 지시는 기실 매우 비장한 것이었다. 그것은 만일 그가 태양마교도 등의 사람들에 의해서 죽음을 당하고 제 자들이 죽음을 당하게 되었을 때는 점창사수는 그것을 들보지 말고 달아 나서 나중에 점창파를 새롭게 일으켜 세우라는 말인 것이었다. 그것은 실로 유언보다도 더욱 비장한 것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여문량 등은 그와 같은 말을 듣자 일제히 그 자리에 엎드려서 소리치기 시작했다. "그것은 아니 됩니다. 본파의 제자들은 함께 옥쇄하는 것이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저희들에게 그와 같은 지시를 내리지는 말아주십시오!" 그러나백리자성은 이미 결심을 굳혔기 때문에 어조가 완고했다. 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내가 전에도 말했지만 점창파의 앞날에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은 기실 그대들 네 사람이 있기 때문이오. 실로 함께 죽기는 쉬운 일이나 굴욕을 참고 후일을 기약하며 새롭게 본파를 일으켜 세우기는 어려운 일인 것이 오. 그와 같은 일은 그저 함께 옥쇄를 하는 일보다 중요한 것이기에 내가 특히 여러분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것이오. 그대들은 정말로 나의 심려를 모른다는 말이오?" 점창사수는 물론 백리자성의 심려하는 바를 모를 리가 없었다. 실로 그의 말처럼 함께 죽는 것은 쉬운 일이나 다시 점창파를 일으켜 세우는 일은 더욱 중요한 일인 것이었다. 따라서 점창사수는 마침내 눈물을 흘리며 백리자성의 지시를 받아 대답 하게 되었다. "명심하여 거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에백리자성은 비로소 표정을 부드럽게 풀고 미소하며 다시 입을 열었 다. "기실 내가 오늘 지시를 내리려던 한 가지 일은 바로 그것이었소. 만일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그대들이 각기 뿔뿔이 흩어져서 후일을 도 모하게 된다면 적도들의 능력이 제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마치 이른봄 에 이르러 새싹이 새롭게 돋아나는 것처럼 본파의 명맥은 결코 끊어지지 않게 될 것이오. 이로써 본파는 실로 끈질긴 생명력을 갖게 되었으니 나 는 실로 마음을 놓게 되었소." "나는 내일 아침에 본파의 중요한 서류와 무공비급 등을 모두 여수석호 법에게 인계할 생각이오. 그대들은 만일 나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에는 그를 중심으로 잘 이끌어 나간다면 거의 문제가 없을 것이오." 점창사수는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어서 감히 입을 열어 대 답하지 못했다. 백리자성은 이어 말했다. "내가 오늘 그대들과 하려는 또 한 가지의 일은 바로 내일 길을 떠나기 에 앞서서 그대들의 무공을 최대한으로 올려놓으려는 것이오." 백리자성의 말은 잔잔하게 점창사수의 마음에 가서 부딪쳤다. 백리자성은 말을 이었다. "원래 나는 가장 정통적인 방법으로 그대들에게 무공을 전수하려고 했 고 또한 그렇게 해 왔으나 실로 내일부터는 바로 한치앞을 내다볼 수 없 는 상황이 될 것이므로 나는 부득이하게 그대들에게 어떤 속성의 방법을 쓰는 수밖에 업소. 이것은 물론 차후에 커다란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한 도 내에서 하는 것이오." "........" "그대들은 혹시 어떻게 해야 능력이 최대한으로 높아지게 되는지 알고 있소?" 황종보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그것은 내공을 높이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백리자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광수법은 그 사람의 노력 여하에 달려있는 것이고 내공은 내가 다시 도와줄 수가 있는 것이오. 여러분의 내공은 지금 절정의 경지에 올라 있 소. 그러나 나는 지금 여러분의 내공을 일시에 최절정의 경지에까지 올려 놓겠소." 점창사수는 다소 비장한 슬픔을 느끼는 가운데에서도 크게 놀라 입이 벌어지게 되었다. 여문량이 입을 열어 물었다. "저희들은 아직 절정의 내공조차 마음대로 쓰지 못하고 있는 상황인데 그와 같은 공력을 얻게 된다면 부작용을 낳게 되지 않겠습니까?" 백리자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약간의 부작용을 낳게 될 것이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이 좋지 못하기 때문에 나는 구태여 그런 불리함을 무릅쓰지 않을 수가 없는 것 이오. 그러나...... 마일 앞으로 내가 지시하는대로 하게 된다면 그런 부작 용 또한 완전하게 극복할 수가 있게 될 것이오." ...... 점창사수는 백리자성의 말을 듣고 실로 나중에 부작용을 받게 되는 한 이 있더라도 위기에 처해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는 내공이 높아지게 된다 면 그것으로 만족이라고 생각했다.만일 지금 능력이 부족하여 죽게 된다 면 나중의 부작용은 생각할 필요 조차 없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백리자성은 일단 밖에서 지키고 있는 제자들에게 이 방으로 들어오는 문을 폐쇄하라고 시킨 다음에 절창사수에게 각기 방안에 가부좌를 틀게 하고 다시 품속에서 구전신단이 들어 있는 옥병을 꺼내들며 말했다. "원래 이 구전신단은 정식대로 복용하게 된다면 단지 한 알만 복용하면 일갑자의 공력이 늘어나서 최절정의 경지에 오르게 될 것이오. 그러나 아 직 그대들은 천룡무상신공을 완전하게 깨우치지 못했기 때문에 두 알을 복용해야만 비로소 다시 일갑자의 공력을 더하게 될 것이오. 그러나실로 그와 같은 삼갑자의 공력이 생기게 되면 천룡무상신공을 완전히 깨우치 지 않은 상태에서는 주화입마에 들어갈 염려가 있으므로 내가 미리 그것 을 막아놓도록 하겠소." 백리자성은 말과 함께 품속에서 금침주머니를 꺼내더니 그 속에서 무수 한 금침들을 꺼내서 각기 점창사수의 전신의 요혈에 파기 다른 깊이와 각도로 박아넣기 시작했다. 그와같이 하는데 무려 반 시진이라는 시간이 흘렀는데이윽고 일을 마치 고 나자 백리자성은 다시 구전신단의 옥병을 꺼내서 그속에서 각기 두 알씩의 영단을 꺼내 점창사수에게 나누어 주어 복용하게 한 뒤에 말했다. "이제부터 여러분은 영단을 복용하고 천룡무상신공의 구견에 의거하여 진기를 십이주천시키도록 하시오. 그런 가운데 몸이 가렵거나 약간의 통증이 온다고 해로 개의하지 말 것이며 오로지 마음을 맑게 비우는데 역점을 두도록 하시오. 자! 이제 시작하시오!" 이 점창사수는 비록 백리자성을 장문인으로 모시고 있지만 기실은 그들 사이의 관계는 사제지간이나 마찬가지였다. 백리자성의 말이 떨어지자 점창사수는 일제히 구전신단을 복용하고 운 기행공에 들어가기 시작했는데그들의 태도들 마치 스승의 지시를 받고 움직이는 착한 제자들이나 다름이 없었다. 일단 그들이 그렇게 운기행공에 들어가자 백리자성은 한쪽의 의자위에 앉아서 품속에 남아있는 금침주머니를 만지작거리며 그 광경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실로그와 같은 광경은 일전의 홍아와 청아의 신공을 성취시켜줄 때와 비슷하며 그로 하여금 다소의 그리움과 감회에 젖게 만들었다. 홍아와 청아는 혹시 어디 다른 곳으로 가서 잘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녀들은 이미 좋은 남자들을 만나서 사랑을 나누고 있는 것이 아 닐까? 백리자성은 그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 잠시 시간을 보내다가 이윽고 점 창사수의 모습을 바라보니 구전신단의 약효가 일어나자 그들의 전신은 그야말로 새카맣게 변모하여 들끓어 오르는 기온을 다스리느라 힘겨워하 는 기색이 역력했다. 과거 홍아와 청아는 음양화합의 방법으로 그와 같은 신공을 일시에 성 취하였지만 이 사람들은 그렇게 할 수가 없었고 또한 완전한 신공을 성 취하게 할 수가 없었다. 구전신단의 약력은 대단한 것이어서 비록 백리자성이 그 기운들을 유도 하기 쉽도록 금침술을 펼쳐놓았으나 그들은 아직 일주천도 하지 못하고 그야말로 고전을 하고 있는 모습들이었다. 백리자성은 그야말로 혼신의 전력을 다하고 있는 그들의 고통스러운 얼 굴을 보면서 다소 도움을 주고 싶었으나 그럴 수도 없는 일이어서 그저 묵묵히 지켜보기만 했다. 과연 아니나 다를까 점창사수 가운데에서 여문량이 가장 먼저 일주천에 성공하여 그의 안색 이 평온하게 변하고 그의 몸에 박아놓은 금침들이 우수수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원래 그러한 금침들은 백리자성이 그들의 주화입마를 막는 방편으로 꽂 아놓은 것이었으나 기실 내력을 운용하는 데에도 장애를 일으키기도 하 는 것으로 만일 천룡무상신공을 완전히 깨우치게 된다면 순간 그 모든 금침들이 완전히 튕겨져 나오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천룡무상신공을 완전히 터득하지 못했다면 그 사람은 다만 몇개 의 금침이라도 신공을 완전히 터득할 때까지 몸에 박아놓고 살아야 할 것이었다. 물론 백리자성의 금침술이 교묘하여 거의 고통이나 이질감을 느낄 수가 없는 것이지만 다소 불쾌한 일일 것이며 그것은 내공이 높아져서 주화입 마에 걸려들지 않으려면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다. 일단 여문량이 일주천에 성공하자 뒤이어 예상대로 황종보와 이모화가 거의 동시에 일주천에 성공하였으며 다시 이어서 전백승이 일주천에 성 공했다. 그와 같이 일단 일주천에 성공하게 되자 그 뒤로는 그야말로 순탄한 길 이었다. 처음의 일주천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정력이 많이 소모되게 되어 있었지만 나중으로 갈수록 일주천을 하는 것이 쉬워지고 또한 빨라졌다. 그리하여 창밖이 뿌옇게 밝아오는 새벽무렵에 드디어 가장 드디어 가장 속도가 빠른 여문량이 십이주천을 마치고 눈을 뜨게 되었고 잠시후에는 이모화와 황종보가 동시에 눈을 뜨게 되었으며 전백승 역시 시간을 지체 시키지 않고 뒤를 이어 눈을 떴다. 백리자성이 바라보니 여문량의 몸에는 아직 세개의 금침이 남아 있었고 이모화와 황종보의 몸에는 각기 네개의 금침이그리고 전백승의 몸에는 모 두 다섯개의 금침이 남아 있었다. 백리자성은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실로 그러한 현상이 시사하고 있는 바는 큰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미 그들 네명의 몸에는 삼갑자의 공력이 흡수되어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지금 그들은 금침이 꽂혀 있고 또한 그 삼갑자의 공력을 모두 사 용할 수가 없기 때문에 자연히 금침의 숫자에 따라서 사용할 수 있는 공 력이 차이를 보이게 되었다. 그것은 물론 기실은 잠재되어 있는 공력 또한 차이를 보이게 되는 것이 며 자질이 높을수록 구전신단에 의해서 공력으로 잠재되어 있게된 기운 역시 많아지게 되어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겨우 세개의 금침이 남아있는 여문량의 경우는 금침 하나에 십년의 공력을 감하게 되어 있는 것이므로 이갑자 하고도 다시 반갑자 이상의 공력을 사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가 만일 나중에 신공을 완 성하여 금침들을 모두 제거하게 된다면 삼갑자 이상의 공력을 소유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각기 네개의 금침이 박혀 있는 황종보와 이모화는 삼갑자에서 사 십년의 공력을 쓸 수 없는 상태이고 역시 나중에 그 금침들을 모두 제거 한다고 해도 여문량의 공력을 따라갈 수는 없다. 따라서 역시 전백승의 경우는 삼갑자에서 오십년의 공력을 사용할 수가 없는 것이며 그를 기준으로 한 것이었기 때문에 지금 그의 체내에 잠재 되어 있는 여분의 공력은 없다는 결론이었다. 지금 네 사람의 공력은 여문량이 이갑자 반을 훨씬 상회하는 것이고 황 종보와 이모화의 공력은이갑자 반에 못미치는 이갑자 삼십년 정도의 것 이며 전백승은 이갑자 이십년 정도의 것인데만일 그들 네명이 천룡무상 신공을 완전히 터득하여 구전신단의 약력을 모두 흡수하게 된다면 여문 량은 약력의 효과를 더욱 크게 보게 되기 때문에 삼갑자 반 이상의 공력 을 얻게 되는 것이고 황종보와 이모화는 삼갑자 이삼십년 정도그리고 전 백승은 그대로 삼갑자의 공력을 소유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여문량이 가장 깨달음이 밝아서 청룡무상신공의 구결을 십 중 팔구는 이미 터득하고 있다는 표시였다. 게다가 여기에서 한 가지의 재미있는 사실은 과거에는 황종보의 공력이 천생의 신력으로부터 우러나와서 이모화보다 높은 것이었으나 앞으로는 깨달음이 위주가 되어서 오히려 그에게 서서히 뒤져가기 시작한다는 사 실이었다. 실로 사람의 노력이 중요한 것은 틀림없는 것이지만 그것은 쥐어난 자 질이 있는 사람에게는 당할 수가 없다는 이치이기도 했다. 불과 조금전까지만 해도 이모화의 공력은 황종보보다 못했었지만 지금 은 거의 비슷하게 대등해진 것만으로도 앞으로의 각설하고 그들사이의 성취에 대해서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백리자성은 대공을 성취하고 자신의 앞에 무릎을 끓고 앉아 있는 그 네 명의 인재들을 향해 다시 입을 열어 말했다. "이제 비록 여러분들은 가히 최절정에 버금가는 내공을 얻게 되었지만 그러한 공력을 얻게 됨에 따라서 자연히 부작용이 생기게 된 것이오. 그 러나 그 부작용은 여러분을 하루빨리 완전한 최절정의 고수로 만들기 위 한 것이니 그리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이오. 즉 여러분의 체내에는 이미 삼갑자의 공력이 깃들어져 있기 때문에 앞으로 천룡무상신공을 완전하게 깨달아 간다면 그러한 공력들을 모두 사용할 수가 있게 될 것이오." "다만 몇 가지의 주의사항이 있다면 그것은 결코 무리하게 공력을 운행 시키지 말라는 것과 게다가 도중에 금침을 인위적으로 뽑아내서는 아니 되며 간혹 기혈이 엉키고 금침이 있는 부분에서 열기가 치솟는 등의 부 작용이 일어날 때에도 결코 당황하지 말고 마음을 맑게 하여 지금과 같 이 십이주천을 하라는 것이오. 실로 치유될 것이고 앞으로 대공을 성취하 게 될 것이오!" 백리자성은 이후에 다시 몇 가지의 말을 덧붙였으며 점창사수는 이미 자신들의 공력이 크게 증가되어 몸이 날아갈 듯이 가볍고 상쾌하며 몸에 박혀 있는 금침의 거북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것을 알고 백리자성의 능력에 새삼 감탄을 금치 못했다. "장문인께서는 저희들의 사부님과도 같습니다. 앞으로 모든 일을 명심하 여 결코 추호도 그르치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모든 말을 마치고 나서 점창사수가 그와 같이 소리치며 절을 하자 백리 자성은 내심 크게 흡족한 기분이 되어 일일이 다가가서 그들을 손수 잡 아서 일으켜 주었다. 이제 서서히 날이 밝기 시작하여 점창파의 운명의 시간이 도래하고 있 는 것 같았다. 그러나눈앞에 생기발랄해 보이는 점창사수를 바라보는 백리자성의 마음 은 그러한 운명에도 굴하지 않고 훤하게 밝아오는 것 같았다. 점창사수는 백리자성에게서 다시 무학의 구결에 대한 몇 마디의 얘기를 듣고는 이윽고 백리자성과 함께 떠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백리자성은 이미 말한 대로 여문량에게 장문인의 대부분의 물품들을 인 계해 주었다. 제38장 숭산행 오랫동안의 객점에서 묵은 값을 치루고 나서 일행이 길을 떠나자 그동 안 계속해서 방안에만 틀어박혀서무공연마에만 열중하던 제자들은 오히 려 다소 활기찬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다. 백리자성은 뒤에 남여를 싣고 몇명의 제자들이 모는 마차위에 올라서 일행을 이끌고 하남성이 있는 북동쪽으로 길을 떠나갔다. 무창성을 벗어나서 말과 마차는 제법 속력을 내기 시작하여 단숨에 천 천히 달려서 백여리나 나야갔고 그렇게 계속해서 나아가다 보니 점심때 에 이르러서는 황파(黃坡)라고 하는 제법 커다란 현성에 도달할 수가 있 었다. 백리자성은 앞으로 험준한 산길에 접어들게 되면 제대로 쉬지도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일행을 현성의 밖에 세워놓고는 제자들을 주루에 보내서 술과 음식들을 사오게하여 한동안 휴식을 취하고는 이윽고 다시 길을 떠났다. 그런데저녁무렵에 도화점(挑花店)이라는 작은 마을에 도착하려는 순간의 일이었다. 문득 일행이 지나왔던 남쪽의 길에서 느닷없이 요란한 말발굽소리가 들 려오더니 한 필의 말이 빠른 속도로 나타나더니 그말위에 타고 있는 사 람이 이렇게 일행을 향해 소리치는 것이었다. "혹시 거기 점창파의 장문인께서 타고 계신 것이 아니오?" 마침 점창사수는 백리자성의 마차 근처에서 천천히 말을 달리면서 무공 엔 관해서 담소하고 있었던 참이었는데그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는 다소 의외의 표정을 지었다. 다름이 아니라지금 느닷없이 나타나서 소리를 지르고 있는 사람은 바로 어제저녁때 백리자성 등이 구해주었던 제갈세가의 자제 제갈한송이었던 것이었다. 제갈한송은 백리자성이 마차의 휘장을 들추고 고개를 내밀자 즉시 그의 옆으로 말을 달려와서는 어렵게 입을 열어 말하는 것이었다. "안녕하셨습니까? 저희 부친께서 잠깐 뵙기를 청하시는데 잠깐 함께 가 시겠습니까?" 백리자성은 느닷없이 그가 자신의 부친 운운하자 의아해하며 되물었다. "아니나와 그 분과는 안면이 없는 것 같은데 어째서 나를 보자고 하시 는 것이오?" 이에 제갈한송은 웃으며 대답했다. "그것은 제가 어제저녁때 우연히 부친을 뵙고 당신의 일을 말씀드렸기 때문입니다. 지금 마침 부친께서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이 부근에서 머물 고 계십니다. 장문인의 일행이 그다지 바쁘시지 않다면 잠시 그 곳에 들 러보시는 것이 어렵겠습니까?" 백리자성은 그 말을 듣고 잠시 생각했다. 원래 점창파의 상황으로서는 다른 명문정파의 사람들과 함께 어울릴수 록 좋을 것이었다. 그들은 결코 태양마교나 검총 따위와 세력들을 의식하여 점창파에게 독 수를 가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다만 그들이 태양마교 도들을 의식하여 함께 있는 것을 싫어할 것이므 로 백리자성은 굳이 그들과 합류하려고 하지 않았는데만일 그 쪽에서 먼 저 사람을 보내 불러준다면 이는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라 주위의 시선 을 생각할 겨를이 없는 것이었다. 아마도 이 제갈한송을 그가 구해주었기 때문에 제갈세가의 가주가 다소 무리를 하더라도 점창파의 일을 도와주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기는 정말로 모든 명문정파의 사람들이 모이게 된다면 그 힘이 증대 되어 도움이 되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이미 그 제갈세가의 가주들이 매우 현명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백리자 성은 이 초대가 단순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고 깊이 생각한 후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마침 목적지도 없는 여행을 하고 있었던 참이오. 그런데 다행히 도 귀세가의 가주께서 불러주신다니 이런 영광이 어디에 있겠소!" 원래 점창파는 구파일방의 하나로서 그 위명이 제갈세가에 결코 뒤지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제갈세가의 가주가 불러준다고 해서 결코 영광일 리 는 없었다. 다만 백리자성의 말은 제갈세가의 성의를 감안하여 한 말이었다. 말과 함께 백리자성은 제자들에게 마차를 돌려서 제갈한송의 뒤를 따라 갈 것을 지시했다. 제갈한송은 이것을 보고 매우 기뻐하는 표정이었다. 백리자성은 마차의 휘장을 젖히고 묵묵히 생각에 잠겨있는 듯 하다가 문득 입을 열어 제갈한송에게 물었다. "귀가주께서는 지금 어디에 와 계시오?" 원래 제갈세가는 양양성에서 서쪽으로 약 오십여리 떨어져 있는 융중이 라고 하는 작은 산촌에 위치하고 있었는데그 곳에서 무려 수백리나 떨어 져 있는 곳으로 온 것으로 보아 무슨 일이 있는 것이 분명한 일이었다. 제갈한송은 비록 나이가 자신보다 어려보이는 백리자성이었지만 그래도 그가 일파의 장문인이라고 하므로 경어를 깍듯하게 썼다. "며칠전에 혈겁을 당한 무당파는 기실 저희 제갈세가와는 순치지간이라 고 할 수가 있지요. 무당파가 당한 상황이라면 저희 제갈세가 역시 무사 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시고는 저의 부친께서는 일족을 대피시키시고 이곳 무창성의 부근으로 내려오셔서 많은 뜻있는 분들을 규합하고 계십 니다." 점창사수가 옆에서 듣고 있다가 전백승이 입을 열어 물었다. "사람들을 규합하는 것은 바로 그 일월신교를 상대하기 위해서입니까?" 기실 제갈한송과 이 점창사수들의 나이는 서로 비슷비슷하여 그야말로 아주 걸맞는 영재와 인재들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제갈한송은 이 사람들의 눈빛이 실로 어제 보았을 때보다 더욱 깊어지 고 맑아진 것을 기이하게 생각하며 입을 열어 대답했다. "이곳 호북성에는 실은 그다지 유명한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다. 이미 무 당파가 그렇게 되고 금응방마저 그와 같이 지리멸렬하게 되었으니 사람 들을 규합한다고 해도 감히 일월신교와 맞설 수는 없는 일이지요. 우리는 일간 세력을 형성한 연후에 숭산으로 가려는 것입니다." 전백승은 숭산이라는 말에 의아해하며 다시 물었다. "그럼 소림사와 연합을 하려는 것입니까?" 제갈한송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소림사는 비록 무림의 태산북두이기는 하지만 오랫동안 강호의 출입을 하지 않아서 역시 마교도들의 공격을 막아내기는 역부족이라고 할 수가 있지요. 우리는 바로 천륭세가를 찾아가려는 것입니다." "천륭세가?" 여문량과 이모화는 옆에서 듣고 있다가 다 함께 잘은 경호성을 발했다. 실로 천륭세가의 이름은 그와 같이 모든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게 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제갈한송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말했다. "우리들은 어쨌든 이번의 대혈사는 천륭세가에서 직접 나서야만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부친께서는 지금 대오산(大悟山)에 근거지를 두시고 하구(河口)에서 삼강방의 방주와 금응방의 사람들을 기다리고 계 시며 앞으로 무당파의 사람들과 복우파(伏午派)의 사람들을 규합하여 숭 산으로 향하려고 하고 계십니다." 이 제갈한송은 이미 점창파의 사람들을 자신의 편으로 생각했는지 서슴 없이 앞으로의 비밀스러운 계획까지 말해주었다. 점창사수는 실로 자신들과 비슷한 영재를 만나게 되자 뜻이 통하고 마 음이 끌리는 것을 느꼈고 또한 절로 얼굴만 봐도 서로가 친해지는 것 같 았다. 이모화가 다소 어이가 없다는 듯이 물었다. "아니그럼 우리는 하구까지 이대로 가야 한다는 말이오?" 하구는 도화점에서 무려 이백여리나 되는 곳으로 만일 제갈한송이 그곳 에서부터 달려왔다면 그것은 대단한 정성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제갈한송은 다소 겸연쩍은 듯이 안색을 붉히며 대답했다. "저희들의 근거지는 이미 대오산에 마련해 두었기 때문에 하구로 갈 것 이 아니라 바로 대오산으로 가시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부친께서도 이미 그곳에서 기다리시겠다고 말씀하셨으니까요." 이모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하는 수가 없군." 이 이모화는 용모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자부심이 매우 대단한 사람이어 서 결코 아무에게나 말을 걸지 않는 습성이 있었다. 따라서 그가 일단 상대에게 말을 걸었다는 것은 그만큼 호감이 있다는 의미였고 방금전에 다소 불만스러운 듯한 태도는 그의 마음이 실린 것은 아니었다. 이모화는 제갈한송의 진심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다소 건성으로 그와 같이 말한 것이었다. 이모화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제갈한송은 웃으며 다시 입 을 열었다. "원래 이번의 원정에는 모두 다섯개의 문파가 참가하기로 되어 있었는 데 귀파에서도 참가하시게 되면 모두 여섯개의 문파가 참가하는 것이니 모두들 좋아할 것입니다. 비록 숭산으로 도움을 청하러 가는 것이라고 해 도 사람의 숫자는 많을수록 좋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모화는 고개를 들려 다시 물었다. "제갈세가의 사람들은 우리 점창파를 이미 한물간 곳으로 보고있는 것 이 아니오?" 제갈한송은 안색을 붉히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저도 실은 그 간의 귀파의 얘기를 다소 들은바 가 있기는 하지만....... 원래 당금의 무림에서 곤란을 당하지 않은 곳이 어 디에 있겠습니까? 저의 부친께서 직접 오시지 못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 과 이미 약속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부득이한 일이었습니다." 옆에서 여문량이 듣고 있다가 웃으며 말했다. "우리는 이미 세력이 기울어서 지금과 같이 되었으니 설령 귀세가의 가 주께서 구박을 하신다고 해도 당연한 일이겠지요. 우리는 워낙에 쫓기며 살아온 사람들이라 아무래도 상관없으니 개의하지 마십시오!" 제갈한송은 고개를 저으며 다시 말했다. "제가 듣기로 점창파는 이번에 많은 피해를 입어서 원기를 회복하기 어 려울 것이라고 했는데 기실 오늘 제가 보니 그 말은 옳지 않은 말인 것 같습니다. 오히려 점창파의 사람들은 용과 호랑이가 서린 듯이 기백이 넘 치고 훌륭한 분들이 많으시군요. 백리자성이 있었기 때문에 점창파는 이 미 많은 발전을 급격하게 이루었던 것이었다. 과거사도백위 등이 한창 위세를 떨칠때만 해도 기실 그들의 내공수준은 고작 절정을 조금 상회하는 수준에 불과했었다. 물론 무공이라는 것이 전적으로 내공에 의해 좌우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힘은 상당한 역할을 하는것인 만큼 여문량 등의 내공이 이미 과거의 사도백위 등의 내광보다도 우위에 올라 있다고 하는 것은 놀라운 변화라 고 할 수가 있었다. 게다가 비록 아직은 미숙하지만 여문량 등의 무공수법은 백리자성에게 직접 전수받은 것들이고 또한 그들의 자질은 매우 뛰어나서 사도백위 등 에 비해서 훨씬 높은 성취를 이룰 것이 분명하지 않겠는가! 실로 그와 같은 모든 점들로 미루어 보아 앞으로 점창파는 이번의 고비 를 잘 넘기게 되면 점창사수에 의해서 과거보다도 더욱 발전을 할 것이 틀림이 없는 일이었다. 설령 백리자성과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더라도 점창사수 가운데의 한 사 람이라도 남아서 점창파를 재건하게 된다 해도 그 위세는 전보다 발전하 게 될 것이다. 백리자성이 어젯밤에 점창사수에게 필히 죽음을 피하여 살아남아야 한 다고 말했던 것도 그런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것이었으므로 이제 새삼스럽 게 그와 같은 상황을 만들어준 백리자성의 은공에 대해서 점창사수는 말 을 잃고 멍하니 그가 앉아 있는 쪽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 이에 제갈한송 역시 기이하다는 표정으로 백리자성의 얼굴이 있는 곳으 로 시선을 보냈다. 일행은 말을 타고 달리면서 약간의 건량으로 저녁식사를 하게 한 후에 때를 놓칠세라 여전히 빠르게 계속해서 북서쪽으로 나아갔다. 날은 이미 저물어서 사위에는 어둠이 짙게 깔리고 그 어둠속을 헤치고 나아가는 일행의 모습은 다소 처량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제갈한송은 다소 피로해 보이는 점창파의 제자들의 심리를 생각하여 될 수 있으면 말을 걸지 않으려고 하였으나 오히려 점창사수 가운데의 이모 화는 계속 그의 옆에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제갈한송 역시 친구를 사귀기를 좋아하는 성품이어서 그와 같은 준재가 자신과 친하기를 원하자 매우 좋아하는 눈치였다. 이모화가 주로 말하는 것은 무공에 관한 것이었다. 점창사수와 제갈한송은 이미 서로간에 통성명을 한 후였는데 이모화는 말했다. "우리 전가는 사실 무공이 바로 비도를 던지는 것이었는데 당신이 그 비도를 던지는 광경을 보고 쾌검으로 전환하고 말았다오. 대체 그 비도는 어떻게 던지는 것이길래 그토록 빠른 것이오?" 원래 이 자파의 독문절학은 결코 남에게 알려주는 것이 아니었으며 게 다가 알려주려고 해도 난해하여 말하기가 곤란한 경우가 많았다. 제갈한송의 경우는 후자에 속했기 때문에 다소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그 비도술은 저도 십년전부터 배우기 시작해서 겨우 이제서야 조금 이 치를 터득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그것을 말로 하려니 잘 되지않는 군요. 어떤 정신적인 교감이라고나 할까요. 어쨌든 저의 비도술은 저의 부친의 것과는 비교도 할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모화는 다소 눈살을 찌푸렸다. "아니 아무리 비도술이 빠르다고 해도 그것은 다만 칼을 던지는 것에 불과할 것인데 어찌 그렇게도 놀라울 수가 있다는 말이오?" 제갈한송은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저도 그러한 점에 있어서는 아직 이해할 수가 없는 때도 있습니다. 한 번은...... 저의 부친께서 비도를 던지시는 것을 보았는데아...... 그러니까 분명히 비도는 손안에 없었는데 느닷없이 번쩍 하더니 비도가 날아가서 상대의 미간으로 날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이모화는 다시 눈살을 찌푸렸다. "그게 대체 뭐가 이상하다는 말이오? 그거야 어제 당신도 그렇게 해보 이지 않았소?" 제갈한송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의 경우야 그저 소맷속에 비도를 감추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 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저의 부친의 경우는 그 비도가 항상 허리춤에 끼 워져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무슨 일이 생기면 그 비도는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여서 부친의 손아귀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 이모화는 대체 무슨 말인지 자세히 알 수가 없었지만 아마도 비도술이 극치의 평지에 오르면 다만 쇠붙이에 불과한 비도와도 영적인 교감이 가 능한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이모화는 다소 시큰등한 표정으로 말했다. "비도술에 그와 같은 경지가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군요. 하지만 비도 술은 몸에 지니고 있는 비도를 다 쓰게 되면 그만인데 뭐가 그리 신통할 것이 있겠소?" 제갈한송은 그의 마음을 이미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모화가 다소 시큰둥하게 시비를 걸어와도 더욱 재미있어서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 병기를 모두 쓰게 되면 신통할 것이 없게 되지요. 그러나 기실 비 도파천황의 절기의 극치는 바로 한 자루의 비도만을 사용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한 자루?" 이모화가 놀라서 눈을 크게 뜨자 제갈한송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과거에 그 비도파천황을 창안하신 조상께서 일단 비도를 쓰시면 틀림없이 목적을 이룰 수가 있기 때문에 강호에서는 파천황이라 고 이름을 붙여주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당금에 이르러 그러한 경지에까 지 비도술을 터득해낸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 파천황이라는 말도 무색해 지고 말았습니다. 저의 부친께서도 항상 저에게 오직 한 자루의 비도만을 쓸 수 있도록 하라고 늘상 강조하시고는 하셨습니다." 이모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 파천황이라는 말의 의미를 알 수 있을 것 같았으므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긴 당신은 어제 급하게 되니 두 자루의 비도를 한꺼번에 날렸었지. 나는 원래 여러 자루의 비도를 날릴 수 있는 것이 좋은 기술인줄로 알았 었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군." 제갈한송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그야말로 군자는 투박한 것이다라는 말과도 통하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지요. 원래가 가장 정확하게 던지는 데에 있다고 합니다." 이모화는 제갈한송이 평범하고도 깊은 현기가 서려 있는 얘기를 하자 다소 묵묵하다가 문득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아직 뭔가 부족한 것 같아 당신들이 아마 우리 장문인의 지도를 받게 되면 훨씬 좋아지게 될 것이오." 이 말은 기실 이모화가 호의에서 한 말이었다. 그러나만일 그 말을 곧이곧대로 해석하자면 제갈세가가 점창파의 장문 인의 가르침을 받는다는 꼴이 되어 심한 오해를 살 여지가 있었다. 그러나제갈한송은 이미 이모화와 어느 정도 마음이 통해 있었기 때문에 즉시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받았다. "귀파의 장문인께서는 실로 놀라운 재능을 갖추신 분인 모양이로군요?" 이모화는 잠시 그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이렇게 불쑥 물었다. "당신은 혹시 약관도 되지 않은 나이에 이미 천하제일의 의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본 적이 있소?" 제갈한송은 놀라 되물었다. "그렇다면 귀파의 장문인께서는......?" 이모화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의 말을 자르며 다시 물었다. "당신은 혹시 약관도 되지 않은 나이에 이미 천하제일의 무공을 깨우치 고 있는 사람을 본 적이 있소?" 제갈한송은 다시 놀라 되물었다. "아니 그렇다면 혹시 귀파의 장문인께서는 무공을 이미 터득하신......?" 이모화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우리 장문인께서는 무공을 깨우치시기는 하셨지만 터득하시지는 못하 셨소. 그것은 그 분의 잘못이 아니오." 제갈한송은 그제서야 백리자성이 전혀 무공을 모른다는 것을 다시 확인 하고 내심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그가 천하제일의 무공을 깨우치고 있다고 하는 말은 믿을 수가 없 었지만 이미 어제 저녁에 청년무사를 물리치는 광경을 보았기 때문에 어 느 정도 뛰어나다는 것을 예측하고 있었다. 이모화는 그를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 "당신은 아직 약관도 되지않은 나이에 이미 마음의 도를 이루어서 전혀 흔들리지 않는 사람을 본 적이 있소?" 제갈한송은 이모화가 무슨 마음의 도까지 운운하자 다소 어리둥절한 기 분이 되었지만 그러나 역시 백리자성을 훌륭하다고 말하는 것이라고 생 각했다. 그런데문득 이모화는 별안간 두 눈에 눈물을 주르르 흘리며 말하는 것 이었다. "바로 그러한 사람이 이제 겨우 일년도 살지 못하게 된다니 이 세상은 정말로 억울한 일이 아니겠소? 사실 우리 장문인은 천하에서 가장 뛰어 나신 재사(才士)라오." 제갈한송은 다소 마음이 격동하는 것을 느꼈으나 그렇다고 수긍하는 마 음은 일지 않아서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귀파에게는 그야말로 다행스러운 일이 되겠군요. 실로 이형과 같은 인재들이 많이 있고 또한 장문인마저 그토록......" 이모화는 다시 그의 말을 자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리더러 인재라고 말하지 마시오. 우리는 실로 그에 비하면 백분지 일 에도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이라오. 만일 우리들의 재능이 그의 십분지 일 이라도 되었다면 본파는 결코 지금과 같은 상황을 맞이하지 않았을 것이 오." 제갈한송은 이모화가 매우 과장이 심하다고 생각하였으나 구태여 그의 기분을 거슬리게 하고 싶지가 않아서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저도 귀파의 장문인의 재능에 비하면 백분지 일에도 미치지 못하겠군요?" 이모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사실이오. 하지만 그와같은 인재의 수명이 그리 길지 않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오." "......." 이모화는 제갈한송이 미소하고 있는 것을 보고 다시 말했다. "당신은 보아하니 내 말을 믿지 않는 모양이군. 그거야 상관이 없는 일 이지. 그러나,만일 우리 점창사수가 실은 한달전만 해도 무공이 일류의 틀에서 맴돌고 있었는데 오로지 장문인의 힘에 의해서 이와 같이 되었다 면 믿겠소?" (......?) 제갈한송은 이제까지 그저 무심코 듣고 있다가 그와 같은 얘기를 듣고 실로 크게 놀라며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강호상에서 단 한명의 제자도 키워내기가 어려운 것이다. 보아하니 이 들 점창사수들은 무공이 이미 절정의 경지를 넘어서고 있는 것 같은데 그럼 저 백리장문인이 이들을 그처럼 빠른 시간내애 키웠다는 말인가? 어쩐지 들리는말과 달리 점창파의 기세가 당당하더니......) 그러나제갈한송은 역시 그 가운데에서 어떤 우연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 가하며 백리자성이 천하제일의 인재라는 말에는 수긍하지 않았다. 이모화는 혼자서 감정이 격해져서 울기도 했었으나 이내 마음이 싸늘하 게 가라앉아서 그만 말하고 싶은 생각이 사라져서 다른 곳으로 가버리고 말았다. 제갈한송은 다시 한번 백리자성이 타고 있는 마차쪽을 바라보다가 천천 히 말을 몰아가기 시작했다. 하구는 장강으로 흘러내려가는 섭수(攝水)라고 하는 작은 강의 나룻터인 셈으로 일행이 그 섭수의 어귀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자정도 지나서 축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중이었다. 원래 제갈한송은일행을 대오산으로 인도하고 있는 것이었지만 마침 하 구는 대오산으로 가기 위해서는 들러야 할 곳으로 일행이 일단 하구에 도착하자 나룻배를 찾기 위해 움직이는 점창파의 제자들을 잠시 기다리 라고만 한 후에 제갈한송은 급히 강의 한쪽으로 달려가더니 금방 되돌아 와서는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마침 저의 부친께서 아직 돌아가시지 않고 이곳에 계시는군요. 제가 가 서 말씀드렸더니 오시라고 하시면서 저쪽에서 기다리고 계신데 어서 함 께 그 쪽으로 가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이에 여태까지 묵묵히 아무 말도 없이 따라왔던 이모화가 문득 다소 눈 살을 찌푸리며 불쾌한 표정으로 옆에 있는 여문량에게 입을 열어 말했다. "저 제갈가문의 사람은 비록 다소 점잖은 데가 있기는 하지만 아직 예 의를 모르는군 그래. 본파의 장문인은 결코 그 제갈세가의 가주보다 못할 것이없는데 감히 여기까지 와서도 오라가라 한다는 말인가?" 이모화는 비록 화가 난 것은 아니었으나 아까 제갈한송의 의식구조에 대해서 다소의 실망을 느꼈으므로 자연 말이 거칠게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마침 백리자성은 그들의 옆에서 휘장을 젖혀놓고 흘러가는 섭수의 강물 을 바라보고 있었는데이모화의 말을 듣고는 웃으며 말했다. "강호라는 곳은 원래가 약육강식이라는 곳이고 또한 이번의 원정은 우 리도 필요하기 때문에 온 것이니 다소 불편하더라도 일단은 참아보는 것 이 좋을 것이오. 자! 어서 함께 그 쪽으로 가도록 합시다!" 제39장 강호동도 일행이 제갈한송의 인도에 따라서 강의 아래쪽으로 내려가자 문득 그 곳에 횃불들이 밝혀져서 사방이 훤한 가운데 수십척의 크고 작은 배들이 모여 있고 많은 사람들이 시끌벅적하고 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백리자성이 마차의 휘장을 걷게 하고 살펴보니 그 무리는 두패였는데 한패는 백여명이나 되는 누런 독수리가 그려져 있는 깃발을 들고 있는 사람들로서 강변에 앉거나 서서 술과 음식을 먹고 마시고 있었고다른 한 패는 바로 크고 작은 배들을 타고 있는 무리였는데 역시 그들도 배위에 서 요란스럽게 떠들며 식사를 하고 있었다. 아마도 그들은 서로 만난지가 얼마 되지 않아서 이윽고 함께 식사를 한 연후에 길을 떠나려는 모양이었다. 백리자성은 강변에 하나의 간단한 휘장이 쳐져 있고 그 안에 십여명의 사람들이 앉아서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는데 문득 그 가운데 여의 사람들과 다르게 청수해 보이는 중년서생이 앉아 있는 것을 보고 그 쪽 으로 시선을 모았다. 아니나 다를까일행이 그곳의 부근에 이르자 제갈한송이 급히 그 휘장이 쳐져 있는 곳으로 달려가더니 그 중년서생을 향해 공손히 인사를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아버님! 점창파의 사람들이 왔습니다." 휘장안의 사람들은 한창 기분좋게 떠들고 있다가 제갈한송의 말을 듣고 는 다소 흠칫한 표정이었는데 그러나몸을 일으킨 사람은 고작 그 중년서 생 뿐이었다. 원래 점창파의 사람들은 그 무리들과는 달리 겨우 이십여명에 불과했기 때문에 지극히 초라해 보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백리자성은 마차에서 내려서 허약한 몸을 이끌고 그앞으로 다가가자 휘 장안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대체 어떤 사람인가 하고 궁금하게 여기는 듯 하다가 그가 매우 허약해 보이는 볼품없는 서생이라는 것을 알아보고는 일순 어이없다는 표정들만을 지어 보였다. 그러나제갈한송의 부친이라는 그 중년서생은 그래도 제법 정중하게 백 리자성을 향해 예의를 차려왔다. "점창파의 장문인이시오? 본인은 재갈세가를 책임지고 있는 제갈원교 (諸葛遠橋)라고 하오." 제갈원교바로 당금 제갈세가의 가주인 그는 일명 탈명신수(奪命神數)라 고 하는 별호를 가지고 있는 만큼 강호상에서 뛰어난 비도술과 현명한 두뇌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사람이었다. "백리자성입니다." 백리자성이 정중하게 마주 예의를 갖추자 제갈원교는 잠시 유심히 그의 용모를 살피더니 미소하며 입을 열었다. "귀파에 관한 얘기는 이미 들었습니다. 어려운 것이야 당금의 무림에서 다른 방파의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이지요. 이럴수록 우리 모두가 힘을 합 쳐야만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백리자성은 담담히 미소하며 대답했다. "좋으신 말씀입니다. 그러나 과연 본파가 많은 사람들에게 얼마만큼의 힘이 될 수 있을런지 모르겠습니다." 제갈원교는 껄껄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당금의 무림의 현실은 비록 힘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오직 힘 만이 능사는 아닌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성원이 있어야 비로소 사마외도 틀 물리치고 천하의 평안을 도모할 수가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백리자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요." 제갈원교는 다시 자신의 옆에서 있는 제갈한송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얼마전에 불초의 못난 자식이 귀파의 도움을 받아서 무사할 수 있었다 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당금의 천하에서 그와 같은 의기는 많지 않은 것 이지요. 아무쪼록 우리들과 편안한 마음으로 어울려 주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백리자성은 정중하게 대답하며 은근히 상대의 용모를 살폈다. 이 제갈원교의 용모는 다소 제갈한송과 닮은 것같기도 했지만 실은 그 보다도 더욱 냉철해 보이고 미간이 맑으며 눈빛이 차갑고 예리한 것이 심기가 깊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비록 그 공력의 수준이 최절정의 경지에는 아직 도달하지 알았지만 예 리한 예기가 느껴지는 것이 필시 무예가 절묘한 경지에 도달해 있는 것 이 틀림없었다. 일단의 간단한 수인사를 끝내고 나자 제갈원교는 백리자성의 뒤에 서 있는 점창사수에게 시선을 보내게 되었는데문득 점창사수의 준수하고도 영기발랄한 모습들과 게다가 그들의 눈빛이 아주 예리하게 빛나거나 아 니면 거의 잔잔하게 가라앉아 있는 것을 보고 다소 놀라는 표정이었다. (혹시 이자들은 특이한 내공을 배웠다는 말인가? 벌써 내공이 최절정의 경지에 도달했을 리는 없을 것인데.......?) "본파의 수석호법들입니다." 백리자성이 소개하자 점창사수는 즉시 정중하게 일제히 예의를 올렸고 제갈원교는 다소 기이한 표정으로 답례하며 찬찬히 그들을 바라보았다. 원래 제갈원교는 백리자성을 보는 순간에 자신의 기대이하라는 생각이 들어서 실로 점창파가 이렇게나 몰락한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으 나 이제 점창사수를 대하게 되자 그의 생각은 오히려 놀라고 기이하게 변해 있었다. 그는 잠시 백리자성과 같은 나약해 보이는 사람이 그와 같은 인재들을 거느리고 있다는 자체가 이해되지 않는 표정이었다. 그러나이윽고 제갈원교는 몸을 돌려 백리자성을 휘장안으로 안내를 하 며 그 사람들의 앞에 이르러 소개시켜 주었다. "여러분 인사하시오. 이분은 바로 당금의 점창파의 장문인이시오!" 휘장안에는 대체로 십여명의 흉맹하고 강인한 인상의 인물들이 각기 두 패로 나뉘어서 서로 마주보고 앉아 있었는데그들은 설마하고 있다가 정 말로 백리자성이 점창파의 장문인이라고 하자 다소 어리둥절한 모습들이 었다. 그들은 백리자성의 뒤에 서 있는 점창사수 역시 그다지 뛰어난 존재라 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백리자성에게는 다소 멸시어린 시선마저 보냈다. 백리자성은 그들 두패의 사람들 가운데 한패의 사람들은 마치 어부와도 같은 복장을 하고 있는 흉맹한 사람들이고 다른 한패의 사람들은 역시 강인한 인상을 주는 사람들이었으나 의복의 가슴부위에 누런 독수리가 새겨져 있는 것을 보고 혹시 이 두패의 사람들이 삼강방의 사람들과 이 미 지리멸렬되었다는 금응방의 잔당들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제갈원교는 그 가운데의 두 사람을 지목하여 각각 한 사 람씩 손으로 가리키며 소개하여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백리장문인! 이분은 바로 금응방의 부방주이신 대력응조수(大力應爪手) 노일봉(盧一峯) 노대협이시고 그리고 이분은 바로 삼강방의 방주이신 삼 두교(三頭敎) 상검명(商劍鳴) 상대협이시오." 생각대로 가슴에 누런 독수리가 새겨져 있는 사람들은 금응방의 잔당들 이었고 어부차림의 흉맹한 사람들은 삼강방의 사람들이었다. 원래그들은 하나같이 녹림의 도적들이나 다름이 없어서 결코 무슨 대협 이니 하는 말이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제갈원교는 그들이 듣기 좋게 하기 위해 일부러 그와 같은 대협이라는 호칭을 붙여주었던 것이었다. 백리자성이 바라보니 대력응조수 노일봉이라고 하는 사람은 그야말로 눈빛이 날카롭고 광대뼈가 불룩 튀어나왔으며 매부리코에 험상궂은 인상 이었고삼두교 상검명은 안색이 다소 창백하고 이마위에 마치 커다란 사 마귀와도 같은 검은 점이 있어서 다소 음산한 느낌을 주는 사람이었다. 원래 금응방은 비록 지금은 패퇴하였지만 과거에는 안휘성의 일대를 주 름잡던 거대한 집단이었기 때문에 제갈원교는 금응방의 부방주인 대력응 조공 노일봉을 삼강방의 방주보다 먼저 소개하게 되었던 것이었는데과연 비단 그 사람들 뿐만 아니라 금응방의 대여섯명의 사람들의 눈빛은 마치 예리한 칼날처럼 빛나고 있어서 삼강방도들의 무공보다 높은 경지에 올 라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백리자성은 특히 저번에 삼강방의 한 당주가 수하들과 함께 검총의 사 람들에게 몰살당했던 일이 있었기 때문에 다소 유심히 그들을 살펴보았 는데방주인 상검명의 뒤에 앉아 있는 장한들의 무공은 대략 그 당주였던 자와 비슷하거나 다소 위의 것으로 보였다. 백리자성은 제갈원교의 소개를 받고 그와 같이 빠르게 장내를 둘러본 다음에 즉시 포권하며 정중하게 말했다. "알고 보니 금응방과 삼강방의 분들이셨군요. 불초가 이렇게 여러분들을 오늘 뵙게 된 것은 좋은 인연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노일봉과 상검명 뿐만 아니라 금응방의 사람들이나 삼강방의 사 람들 역시 그저 얼굴에 조소의 기색을 떠올릴 빨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 는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비록 말은 하지 않고 있지만 너와 같은 자를 어떻게 일파 의 장문인으로 인정해줄 수가 있느냐는 식의 태도였다. 점창사수는 뒤에서 그와 같은 광경을 보고다소 화가 치밀었으나 오히려 당사자인 백리자성은 태연했다. "저희들은,지금 하남성의 방면으로 가려던 중이었는데 기왕에 이렇게 만 나게 되었으니 함께 동행을 하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이에 문득 노일봉이 그 뱀의 눈처럼 차가운 눈빛을 번쩍이며 입을 열었 다. "우리더러 너와 같은 자를 동료로 생각하라는 말이냐? 듣기로 점창파는 거의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고 하더니 그야말로 완전히 빛을 잃고 말았 군." 그말에 전백승이 크게 화가 나서 달려들려고 했으나 백리자성이 미미하 게 웃으며 그이 행동을 제지시켰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 "그것은 귀하의 잘못된 판단인 것이오. 우리는 지금 비록 태양마교와의 싸움을 피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는 것이지만 아직 충분한 힘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소." 말과 함께 백리자성이 여문량을 바라보자,여문량은 이에 공손히 그를 향 해 읍한 다음에 천천히 앞으로 나서서 중앙에 놓여 있는 탁자의 앞으로 걸어갔다. 이때 중앙의 탁자위에는 많은 음식들이 차려져 있었고 당연히 거기에는 여러개의 술주전자가 놓여져 있었는데여문량은 그 가운데의 하나의 주전 자를 들어서 잠시 흔들어 본 다음에 주위의 사람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저는 비록 술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오늘은 한잔 하지 않을 수 가 없군요. 그러나 기왕에 먹는 술이라면 겨우 작은 잔으로 마셔서야 기 분이 차겠습니까?" 말과 함께 여문량은 주전자를 왼손으로 옮겨잡고 오른손의 식지와 중지 로 마치 가위처럼 벌려서 주전자의 주둥이를 자르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마치 그의 손가락이 절세의 신병이기라도 되는 것처럼 구리로 만들어진 주전자의 주둥이가 소리없이 일정한 간격으로 잘려져 나가는 것이 아닌 가! 이것은 기실 여문량이 육맥신검상의 수양명대장경(手陽明大腸經)에 속하 는 식지 끝의 상양검(商陽劍)과 수궐음심포경(手厥陰心包經)에 속하는 중 지끝의 중충검(中衝劍)을 동시에 운용하여 무형검기를 발출하여 그렇게 한 것이었는데비록 그러한 이치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놀라 지 않을 수가 없는 일이었으므로 자연 장내의 사람들은 아무 것도 모른 채 저마다 낮빛이 변하고 경악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실로 무공이 최절정의 경지에 오르게 된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손으로 그처럼 구리로 만들어진 물건을 두부처럼 잘라낸다는 것은 불가사의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여문량은 장내의 놀라는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않은 듯이 계속해서 주 전자의 주둥이를 잘라내더니 이윽고 하나의 커다란 술잔처럼 변해버린 주전자를 들어서 그 안에 들어 있는 술을 모두 비운 다음에 이어 다른 곳의 주전자의 술을 그속에 따라서 이번에는 그 속에 따라서 이번에는 그 금응방의 부방주인 노일봉의 앞으로 내미는 것이었다. "자한잔 하시겠습니까?" 노일봉은 일순 다소 놀라고 당혹한 표정을 지었다. 원래 그는 점창파를 아주 우습게 보고 그와 같은말을 했던 것이었는데 지금 점창파의 한 제자의 무공을 보니 자신의 생각이 전혀 틀린 것이었 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비록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노일봉은 강호상에서 아주 오랫동안 굴러먹은 노인이어서 그야말로 생각이 오래될수록 맵다고 하는 이치와도 같이 맵고 질긴 면이 있었다. 그는 즉시 껄껄 웃으며 몸을 일으키더니 여문량의 술잔을 받아들었다. "좋소 좋아! 확실히 점창파는 아직 그명성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로군. 내 이와 같은 술을 받지 않는다면 술을 마실 자격이 있다고 할 수가 없 겠지." 이어 단숨에 그 술잔을 비워낸 그는 이번에는 백리자성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작은 술잔을 내밀어 권하며 다소 겸연쩍은 표정으로 말했다. "장문인아마도 내가 잠시 늙어서 눈이 삐었던 모양이오. 핫핫 옆에 고인 을 두고도 몰라 보다니....... 나의 실수를 용서해 주는 의미에서 이 술 한 잔을 받아주겠소?" 백리자성은 웃으며 담담한 표정으로 그술잔을 받아들었다. "물론입니다. 본파제자의 실례를 이해해 주시니 고마울 따름입니다." 이어 백리자성이 그 술잔을 마시지 않고 바닥에 내려놓은 다음에 여문 량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자 여문량은즉시 다시 인사를 한 뒤에 그의 뒤 로 물러섰다. 이윽고 백리자성이 비어있는 자리에 앉자 장내의 분위기는 다시 순조롭 게 흐르기 시작했다. 그러나이미 여문량이 그와 같은 신기에 가까운 재주를 보였기 때문에 이제는 아무도 점창파의 사람들을 업신여기지 못했다. 백리자성의 뒤에 점창사수 역시 나란히 자리하여 각기 한잔씩의 술을 마시고 나자 문득 이제까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앉아 있던 상검명이 입을 열어 말했다. "나는 원래 점창파에는 쾌검이 유명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실로 조금 전의 그 수법은 처음 대하는 것이로군요. 백리장문인께서는 그 얘기를 좀 해주실 수가 있겠습니까?" 백리자성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이어그가 고개를 돌려 여문량을 바라보자 여문량은 즉시 그의 의도를 파악하고는 일어나 웃으며 말했다. "저의 수법은 지법의 일종으로서 그다지 신기할 것이 못되는 것입니다. 실은 그 보다 저의 아우인 이 사람의 능력은 상당히 대단한 것이지요. 여 러분께서 원하신다면 그에게 여흥을 돋울겸 한번 초식을 펼쳐보라고 하 겠습니다." 여문량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물론 그와 같은 사람들의 앞에서 육맥신 검의 이름을 드러낼 필요가 없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거기에 아울러 그 사람들과 좀더 친숙해지려는 목적이 있었다. 여문량의 그와 같은 말에 일순 술을 마시고 있던 장한들은 일제히 소리 를 질러 찬성의 뜻을 표했다. 이에 여문량은 옆에 앉아 있는 황종보의 등을 앞으로 떠밀었다. "자네가 나가 보게!" 황종보는 기실 요사이 자신의 자질에 한계를 절감하고 다소 우울해져 있는 상황이었는 데 술을 마시다가 문득 여문량이 생각지도 않게 자신의 등을 앞으로 떠밀자 그만 앞으로 나가게 되어서 처음에는 다소 어리둥절 한 표정이었으나 이내 마음을 굳히고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저는 한 가지 권법을 펼쳐보일 것이니 욕하지는 마십시오!" 말과 함께 황종보는 즉시 신형을 좌우로 빠르게 움직이며 권법을 펼치 기 시작했다. 지금 그가 펼치고 있는 권법은 바로 그가 아직 입문의 단계에 머 있는 무형신권이라는 것이었다. 이 무형신권은 원래 강중유유(剛中有柔)의 수법으로 절정의 경지로 펼치 게 되면 그 강하고 부드러운 힘이 조화에 의해 촛불이 흔들리지도 않은 상태에서느닷없이 부서지게 되어 있는 절기였다. 그러니까 소리없고 보이지 않는 가운데 무서운 위력을 잠재하고 있는 빠르고도 무거운 절학인 것이었다. 과연 아니나 다를까황종보가 마악 그 절기를 시전하자 그의 신형이 일 순간에 장내에서 뿌옇게 변해서 안개처럼 어른거리고 마치 수십수백개의 손이 일제히 움직이는 것 같았으며 장내를 밝히고 있는 횃불들이 격렬하 게 춤추기 시작했다. 원래 그것은 그가 아직 무형신권의 요체를 터득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 타나는 현상이었으나 사람들은오히려 장내의 주위가 일순간에 황종보의 그 거대하고 무시무시한 권풍속으로 휩싸여서 흡사 태풍이 일어나는 것 같은 위세를 보이는 것을 보고 하나같이 놀라고 두려워했다. 그리하여 이윽고 황종보가 일단의 시전을 마치고 숨을 고르며 인사를 하고 물러가자 사람들은 일시 박수를 칠 생각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앉 아 있기만 했다. 황종보는 자신이 절학의 시전을 마치고 물러나왔으나 사람들이 기이하 게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을 보고 옆의 이모화에게 은근히 눈짓을 보냈 다. "이거 내가 실수한 것 아니야?" 그런데이모화는 이번에는 정색을 하고 웃으며 고개를 가로젓는 것이었 다. "아니야오히려 그 반대일걸?" 아니나 다를까뒤이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장내의 사람들의 요란한 함성과 박수소리가 진동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기실 여문량의 절기야말로 가장 놀라운 것이었으나이 녹림의 도적들은 무예견식이 일천하여 차라리 그와 같은 신기같은 무예보다는 황종보와 같은 위력적이고 사나이다운 무예를 선호하고 감복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제갈원교는 백리자성의 일행이 식사를 마치고 나자 이윽고 좌중의 사람 들에게 입을 열어서 그만 출발할 것을 권했다. 원래 금응방의 부방주인 노일봉 등은 이 제갈원교만은 다소 두려워하고 있었던 참이라 즉시 자리를 치우게 하고 출발할 준비를 서두르게 했다. 백리자성은 역시 물러나서 제자들과 함께 강을 건너기 위해 마차 등을 커다란 삼강방의 배 위에 실었다. 이윽고 삼강방의 배들이 일행을 태우고 강을 건너가자 제갈원교를 비롯 한 무리들은 삼강방과 금응방에서 약간의 중요한 인물들만을 선발하여 빠르게 길을 떠나기 시작했다. 이때는 삼강방과 금응방의 무리들이 당주급 이상의 인물들로 구성이 되 어 있어서 전체의 일행은점창파의 이십여명의 인원까지 합해서 겨우 오 십명 정도였다. 제갈원교 등은 일단 백리자성이 다른 사람들과 쉽게 어울리는 것을 보 고 그다음부터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듯이 말도 걸어오지 않고 묵묵 히 앞으로 일행을 인도했다. 조금전까지 웃고 떠들던 삼강방과 금응방의 인물들도 역시 묵묵히 길을 재촉하기만 했는데기실 지금 그들이 향하고 있는 대오산은 그리 멀지 않 았으나 다소 일월신교 등의 추격이 두려운 모양이었다. 백리자성 역시 일행의 뒤를 따라서 제자들을 이끌고 나아갔다. 일행은 거의 밤새도록 길을 재촉하여 아침의 여명이 뿌옇게 밝아오는 새벽무렵에는 이윽고 대오산의 부근에 도착할 수가 있었는데제갈원교는 일행을 대오산 기슭에 있는 하나의 작은 장원으로 안내하다가 문득 느닷 없이 일이 틀려진 듯이 놀라서 말했다. "이거 큰일났군! 그들이 이미 떠나버렸소!" 일행은 대체 그게 무슨 말인지 몰라서 어리둥절해 했다. 그것을 보고제갈원교는 다소 무거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원래 나의 아우인 제갈원제(諸葛遠梯)는 한풍(寒楓)한동(寒棟) 이와 함 께 이곳에서 무당파의 도장과 조우하며 우리를 기다리기로 되어 있었는 데 지금 안에는 사람이 하나도 없고 급히 휘갈긴 암호가 적혀 있었소. 필 시 마교의 인물들에게 쫓겨간 모양이오." 일행은 그 말을 듣고 일시 안색이 푸르죽죽하게 물들었다. 비록 함께 숭산으로 가자고 해서 떠나온 것이었지만 만일 일월신교가 근처에 있는 것이라면 감히 계속해서 길을 가고 싶은 마음이 일지 않았 던 것이었다. 그것을 보고 제갈원교가 담담히 웃으며 말했다. "이제 여러분들은 그만 돌아가도록 하십시오. 나는 이대로 계속 하남성 의 방면으로 가서 천륭세가에 가볼 생각입니다. 마침 아우 등이 달아난 방향도 제갈원교는 이미 자신의 가족들이 심하게 쫓기고 있다는 것을 알 게 되자 매우 곤혹스러운 표정이었다. 그것을 보고 노일봉이 다소 주저하다가 말했다. "우리는 역시 당신을 따라가도록 하겠소. 무림의 안위를 생각한다면 어 찌 나 한 사람의 목숨을 아낄 수가 있겠소?" 그러나기실은 돌아가자니 검총의 무리들이 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울 며 겨자먹기 식으로 말하고 있는 것일 뿐이었다. 제40장 수백구의 시신들 삼강방의 방주인 상검명 역시 주저하다가 이윽고 재갈원교의 일행을 따 라가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물론 백리자성은 가장 먼저 동행할 것을 말한 뒤였다. 제갈원교는 느닷없이 봉변을 당하게 되었지만 일행중 아무도 떠나려는 기미가 없자 다소 위안이 된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앞으로 생사를 같이하며 고락을 나누고 기 필코 숭산으로 달려가서 우리의 의도를 펼치도록 합시다!" 이모화 등은 실로 남의 도움을 바라고 가는 것이 사내답지 못하다고 생 각하고 있었지만 그러나 아무런 소리도 하지않고 묵묵히 일행을 따라 하 남성의 방향으로 나아가가 시작했다. 비록 지난밤에 충분히 쉬지도 못하고 이동했었지만 워낙에 제갈원교가 서두르고 있었기 때문에 일행은 거와 쉬지도 알고 계속해서 북동쪽으로 나아갔다. 따라서 간혹 말이 지쳐서 쓰러지는 일이 생기기도 했지만 제갈원교는 즉시 사람들을 시켜서 말을 구입하게 하고 밤낮으로 강행군을 시켰다. 물론 그것은 제갈세가의 사람들이 남긴 흔적을 따라서 추격해가고 있는 것이었지만 당금의 상황이 매우 급박하기 때문에 그 일로 인해 뭐라고 항의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백리자성은 일행 가운데에서 그래도 점창파의 제자들이 가장 무공이 약 하고 피로에 지치기가 쉬울 것이기 때문에 간혹 지친 제자들을 불러서 마차안에서 쉬도록 해 주기도 했다. 그러한 가운데 무려 사흘 밤낮을 계속해서 강행군을 한 끝에 일행은 이 미 하남성의 경내에 접어들어 북쪽으로만 나아가고 있었다. 그것은 숭산으로 가는 길인 동시에 공교롭게도 제갈세가의 사람들이 그 쪽으로 달아났다는 표시를 해놓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그렇게 나아가서 드디어 나흘째 되는 새벽무렵에 일행은 복우산 (伏牛山)의 부근에 도달하게 되었는데문득 앞서서 가던 제갈원교가 다소 놀란 표정으로 말을 멈춰세웠다. "무슨 일이 있소?" 제갈원교의 바로 뒤에서 따라가고 있었던 노일봉이 의아해져서 물었다. 이에 제갈원교는 다소 무거운 표정으로 자신의 앞쪽을 가리켰다. "보시오!" (......?) 노일봉은 제갈원교의 말에 따라서 그 쪽으로 시선을 보내다가 다소 의 아한 표정이 되어서 고개를 돌리며 다시 물었다. "아니 저건 그냥 시체들이 아니오?" 제갈원교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냥 시체들은 아니오." ".......?" 노일봉은 제갈원교의 말에 따라서 다시 한번 앞쪽을 다시 한번 앞쪽을 바라보았으나 이내 역시 알 수가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따라서 뒤에 쳐져 있었던 일행들도 속속히 앞으로 다가가서 그곳으로 시선을 보냈다. ......? 백리자성 일행이 앞으로 다가가서 바라보니 나무숲이 우거져 있는 비탈 아래에 대여섯명의 남자들의 시신들이 아무렇게나 뒹굴고 있었다. 그들의 의복이나 병기 등은 어떤 특징을 찾을 수가 없었고 또한 누구에 게 어떤 수법으로 당한 것인지도 알 수가 없었으나 이미 죽어 있는 시신 들은 분명했다. 가장 확실한 것은 그 시신들이 아직 부패되지 않아서 죽은지 얼마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백리자성은 그 시신들을 바라보다가 옆으로 시선을 돌렸는데이미 점창 사수 등은 제갈원교가 놀라고 있는 이유를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이때 제갈원교는 잠시 쉬고 있는 일행을 향해 앞쪽의 시신들을 가리키 며 입을 열었다. "이들은 보아하니 복우파(伏午派)의 사람들인 것 같소. 복우파의 무공은 그다지 특징적인 것은 없지만 그래도 제법 수준이 있는 것이었는데 저렇 게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죽어간 것으로 보아 상대가 놀라운 고수 였을 가능성이 농후하오." 이 제갈원교는 기실 무림에서 가장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하나라고 할 수가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모두 귀를 기울여서 그의 말 을 들었다. 상검명이 물었다. "하지만 이상하군요. 여기는 이미 복우파의 세력권인데 어째서 그들이 동료들의 시신을 이처럼 방치해 두었을까요?" 제갈원교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그것은 아마도 그들이 그럴만한 시간이 없었을 것이오."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일순 다소 어이가 없어서 혹시 제갈원교가 농담 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고 생각했다. 그러나기실 아무리 살펴봐도 제갈원교의 안색은 무겁게 굳어있는 것이 었고 조금이라도 농담의 기미가 없었다. 그렇다면 하남성 일대에서 유명한 녹림의 집단인 복우파의 사람들이 겨 우 동료들의 시신을 치울 수 없을 정도로 좋지 않은 상태에 몰렸었다는 말인가! 상검명이 의아해 하며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그들은 혹시 다른 곳으로 가버린 것이 아니오?" 제갈원교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들은 아마도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었을 것이오. 실로 이 시신들이 전혀 아무런 흔적도 없이 마치 자고 있는 듯한 것은 그야말로 상대가 놀 라운 존재였기 때문일 것이오." 제갈원교는 그와 같이 말한 다음에 문득 다시 복우산의 험한 산곡을 올 려다보며 입을 깨물며 말했다. "아무래도 우리는 그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복우파로 한번 가 봐야 하 겠소. ." 말이 끝나자 제갈원교는 번쩍 신형을 날려 직접 신법을 펼쳐 산으로 오 르기 시작했다. 무림의 절정고수들 가운데의 하나로 손꼽히는 그의 신법은 실로 깨끗하 고 가볍기 이를 데 없는 것이었지만 뒤에 따라오는 사람들을 의식한 듯 그다지 빠르게 나아가지는 않고 있었다. 이에 여문량 등이 잠시 의견을 교환하더니 백리자성에게 물어서 즉시 남여를 가지고 왔다. 백리자성은 일단 제자들에게 자리를 지키고 있으라고 지시를 내린 다음 에 점창사수와 함께 남여에 올라서 제갈원교 등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비록 제갈원교가 천천히 신법을 펼친다고 해도 그것은 일류급의 신법을 가진 사람만이 따라 갈 수가 있는 것이지 일반의 제자들도 따라갈 수 있 다고 하는 것은 아니었다. 백리자성 등은 아직 복우산에 와 보지 않았기 때문에 복우파의 소재를 알 수가 없었으므로 급히 제갈원교 등의 뒤를 놓치지 않기 위해 빠르게 뒤따랐다. 복우산이라고 하는 것은 하남성의 중심부를 길게 가로지르는 거대한 산 맥으로 그야말로 협곡이나 절곡들이 무수하고 기암괴석들이 여기저기에 끊임없이 돌출하여 있으며 흡사한 봉우리들도 무수하게 많아서 실로 제 대로 길을 찾아가기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그러나실로 박식하다고 할 수가 있는 이 제갈원교는 마치 자신의 집을 찾아가기라도 하듯이 그야말로 익숙하게 계곡을 지나고 고개를 넘어서 나아가는 것이었다. 그러한 길은 얼핏 매우 긴 느낌이 있었다. 제갈원교가 오랫동안 앞서서 나아가자 백리자성은 은근히 뒤에 남겨두 고 온 제자들의 안위가 걱정되기도 했다. 그러나미처 그가 다른 생각을 하기도 전에 이미 그들은 어느 은밀한 요 새속에 지어져 있는 하나의 거대한 산채 앞에 도달할 수가 있었다. 이곳이 바로 복우파인 것이었다. 그런데 일행은 그앞에 이르러 사위가 그야말로 심하게 파손되어 있으며 게다가 시신들이 무수하게 여기저기에 널려 있는 것을 보고 놀란 나머지 할 말을 일게 되었다. ......? 그렇다! 한눈에 보기에도 이 복우파는 이미 멸문지화를 당한 것이 틀림이 없었 다. 수백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마치 아까 그 다섯명의 시신들처럼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고 쓰러져 죽어 있었는데아직 부패되지 않고 있는 그들의 시신은 마치 잠을 자고 있는 것 같아서 고요한 장내의 분위기와 어울려 은은한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만일 일행 가운데에서 누군가가 혼자서 이와 같은 곳에 오게 된다면 사 람은 우선 공포에 질려서 달아나고 말았었을 것이었다. 대체 이게 어찌된 영문인가. 아까 다섯명의 사람들이 아무런 상처도 없이 영문도 모르게 저항도 하 지 못하고 죽어간 것은 그래도 이해가 가는 일이라고 할 수가 있지만 지 금의 이 수백명의 사람들이 그와 똑같이 죽어간 광경은 결코 있을 수가 없는 일인 것 같아서 일행은 일시 마치 귀신에 올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혹시 이 복우산에 느닷없이 전염병이라도 돌아서 사람들이 떼죽음을 당 한 것일까? 아니면 사람들이 잠자기 일제히 호흡을 멈추고 자살이라도 했다는 말인 가. 그러나정작 제갈원교는 이미 그러한 광경을 예상하고 있었기라도 한 듯 이 전혀 놀라지 않고 이어 산채의 깊숙한 곳으로 나아가기 시작하는 것 이었다. 일행은 그것을 보고 이어 말없이 그의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 했다. 제갈원교는 산채의 무수한 건물사이를 돌아서 가장 거대한 건물의 안으 로 들어섰다. 물론그렇게 나아가는 동안에 일행은 그야말로 말할 수도 없이 지겹도록 시신들을 보아야만 했다. 만일 일행 가운데에 다소 심장이 허약한 사람이 있었다면 그는 앞으로 밥에 잠을 잘 때마다 이러한 소름끼치는 광경에 대해서 꿈을 꾸게 될 지 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데일행이 일단 제갈원교를 따라서 가장 커다란 건물의 안으로 들어 섰을 때문득 이곳은 다른 곳과는 다소 다르다고 생각되었다. 우선 그 곳은 밖에서처럼 그다지 많은 시신들이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이곳은 실로 놀라울 정도로 내부가 화려하여 마치 왕의 침실과 도 같은 분위기를 풍겼는 데 대청과 같은 넓은 공간의 중앙에는 연못까 지 만들어져 있었고 사방에는 이미 불이 꺼져 있는 궁 등들이 가득히 널 려져 있었는데붉고 값비싼 융단이 깔려져 있는 비단의 중앙에는 마치 침 대와도 같이 생긴 넓은 탁자가 위치하고 있었고 지금 그 탁자위에는 모 두 여덟명의 시신들이 기이한 자세로 누워 있었다. 한 남자의 벌거벗은 시신과 일곱명의 벌거벗은 여자의 시신들이었는데 일견하기로도 자극적이기 짝이 없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는데 기이하게도 그들은 모두 느닷없이 동작을 멈춘 것처럼 죽어 있는 것이었다. 남자의 몸과 여자의 나신들은 하나같이 아직 부패되지 않아서 그야말로 은밀한 부위가 노골적으로 드러나서 절로 기이한 느낌을 불러일으켰지만 그것이 도리어 공포스럽게 생각되는 광경이기도 했다. 일행 가운데에서 한 사람이 소리쳤다. "빌어먹을! 저 말라깽이는 그야말로 죽는 순간까지 인생의 극치를 누리 다가 갔군 그래. 흐흐흐...... 그야말로 천상과 극락을 동시에 오갔었겠군 그래?......." 원래 점창파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녹림의 도적들이었기 때문에 그와 같은 음탕하기 짝이 없는 광경을 보고는 절로 군침을 흘리게 되었 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 사내도 제갈원교가 매우 심각한 표정으로 그 남자의 시신을 주시하고 있는 것을 보고는 다소 겸연쩍은 듯이 입을 다물었다. 순간 제갈원교가 문득 입을 열어 노일봉에게 말했다. "바로 이 사람이 복우파의 두목이었던 현배망 나령(羅靈)이오. 여기에 대해서 다소 이상한 점이 느껴지지 않소?" 노일봉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그 나령은 원래 매우 살이 쪄있는 뚱보였는데 어떻게 죽을 때 는 이렇게 깡마르게 되었는지 모르겠군?" 제갈원교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내가 보려고 했던 것은 그 점이오. 나령은 원래 뚱보였지만 누군 가의 살수에 의해서 저처럼 깡마르게 죽어갔소. 그것이 어떤 수법인지 아 시오?" 노일봉은 문득 제갈원교의 말이 어떤 것을 유도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 고 놀라서 안색이 변하며 되물었다. "그렇다면....... 혹시 일월신교의 무공이라는 말이오?" 노일봉은 금응방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비록 검총에 의해 당했어도 아직 일월신교의 무공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었다. 제갈원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이것은 일월흡성대법의 내공에 의해 일월건곤대나이의 수법으 로 펼쳐진 일광수의 흔적이오. 그것은 곧 일월마왕이 이 근처에 있다는 말이오." 제갈원교는 일월마왕의 존재를 확인하고 나서 마음이 크게 격동되는 듯 이 음성이 다소 가늘게 떨렸다. 그렇다. 기실 아까 다섯명의 복우파의 제자들에게는 일월마왕의 흔적이 없었지 만 정작 이 나령의 몸에는 일월마왕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것은 곧 그 일월마왕이 선택적으로 살수를 펼친다는 뜻이었다. 제갈원교는 아까 평범한 일광수에 당한 사람들의 시신을 보게 되자 즉 시 일월마왕의 존재 여부를 알기 위해 이곳까지 올라왔던 것이었다. 만일 일월마왕이 이 부근에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이미 제갈세가의 사 람들이 위험해졌다는 것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일행에게도 위험이 닥치 게 된다는 뜻이었다. 백리자성 등은 이미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지금 제갈원교가 일 순간에 일월신교의 무공까지 파악해 내는 것을 보고 그의 해박한 지식에 놀라움을 금할 수가 얼었다. 이모화가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 자세히 듣지 못했었기 때문에 고개 를 돌려 백리자성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 일월건곤대나이라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백리자성은 담담히 웃으며 대답했다. "일월신교의 무공은 다소 나누어져 있기는 하지만 그 개요는 같은 것이 오. 그러니까 일월흡성대법으로 공력을 취득하고 이어서 일월건곤대나이 로 그 공력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오. 게다가 다시 일월무쌍무영십팔류 라고 하는 실전무예가 있는데대개가 그러한 뼈대로 되어 있는 것이오. 일 월마왕이 되게 되면 일광수에 일월건곤대나이의 수법을 병행하게 되어서 더욱 놀라운 위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오." 이모화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일월신교의 무학은 차원이 높아서 그가 자세히 안다고 해도 상대 할 수가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저 대강의 이치만을 알고는 만족 해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문득 제갈원교는 백리자성의 말을 듣고는 다소 놀랍다는 표정으 로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기실 천하에서 백리자성만큼의 강호의 소식에 정통한 사람이 없겠지만 그 제갈원교는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가 일월신교의 얘기를 술 술 하는 것을 보고 놀라는 것이었다. 그는 원래 이 백리자성이 몸이 매우 허약하면서도 점창사수를 거느리고 있는 것으로 보아 필시 어떤 절기를 소유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이제 그와 같이 해박한 지식이 있는 것을 보고 다소 깊이 생각하는 눈치였다. 어쨌든 이때 제갈원교가 일월마왕의 얘기를 했기 때문에 일행의 표정은 저마다 각기 크게 달라지게 되었다. 노일봉과 상검명은 각기 이제는 안되겠다고 생각했는지 저마다 꽁무니 를 빼려고 하고 있었고 오히려 제갈원교는 그러한 표정들을 보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 일월마왕들은 이미 여러분들도 소문을 들어서 아시겠지만 실로 인 간의 능력을 벗어난 마왕들인 것이오. 나는 이제 마음이 급해서 더이상 여러분과 함께 동행을 할 수가 없겠소이다. 미안하지만 이만 실례하겠 소!" 말과 함께 정말로 그가 신법을 날려서 제갈한송과 함께 사라져 버리자 그렇지 알아도 떠나려고 생각하고 있었던 삼강방과 금응방의 사람들은 즉시 안색이 변하고 마음이 급해져서 저마다 밖으로 달려나가기 시작했 다. 따라서 결국에는 이 복우파의 산채에는 덩그라니 백리자성의 일행만이 남아있게 되었다. 점창사수는 역시 제자들이 있는 곳으로 가려다가 백리자성의 지시를 바 라고 있었는데문득 여문량이 주위를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그 일월신교의 사람들은 아마도 재물을 매우 밝히는 모양이로군요. 이 와 같은 짓을 저질러 놓고도 방안에 있는 온갖 좋은 물건들은 모조리 가 지고 가 버렸으니 말입니다. 원래 이와 같은 녹림도적들의 산채에는 그야말로 많은 금은보화가 가득 쌓여있기 마련이었다. 그런데도 지금 이 화려한 방안에는 금붙이 하나 남아있지 않다는 것은 바로 일월신교의 무리들이 모조리 걷어갔다는 것을 의미했다. 백리자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 그들은 머나먼 천산에서 내려온 사람들이니 이곳에서 근거를 마련 하기 위해서 많은 재물들이 필요했을 것이오. 혹시...... 그들은 이곳의 재 물을 빼앗기 위해 이 많은 사람들을 죽이게 되었는지도 모르는 일이오." 그렇다! 복우파가 비록 하남성의 일대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다고는 하나 그렇다 고 해도 역시 녹림도적들일 뿐으로 일월신교와 같은 곳에서 그와 같이 철저하게 멸문을 시킬만한 곳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것은 그야말로 사람은 죄가 없으나 보물을 가지고 있는 것 이 죄라고 하는 이치처럼 복우파는 자신들이 쌓아놓고 있었던 보물 때문 에 일월신교의 공격을 받게 되었던 것이었을까? 가장 분명한 것은 이미 일월신교가 하남성의 경내에 들어서서 숭산으로 향하는 일행을 위협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었다. 전백승이 다소 초조한 표정으로 말했다. "장문인이제 우리도 내려가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백리자성은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잠깐 기다리시오. 실로 여기에 수백여구의 시신들이 뒹굴고 있는데 그 들의 시신들이 만약 일제히 썩어가게 된다면 복우산은 그야말로 악취가 진동하게 될 것이며 그 혼령들도 좋아하지 않게 될 것이오. 우리는 일단 이 시신들을 한데 모아서 화장을 시킨 후에 떠나도록 합시다." 원래 백리자성도 제자들의 안위가 다소 걱정스럽기는 했으나 이 시신들 을 보고 앞으로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게 되어 시신들을 그냥 두고갈 수 는 없었던 것이었다. 여문량이 찬성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이와 같이 시신들을 돌보는 일은 하늘의 복을 받는 일이라고 하였으니 우리가 이 일을 한다고 해서 해가 되지는 않겠지요." 점창사수의 의견은 간혹 차이가 생길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의견이 통하고 생각이 비슷비슷했다. 백리자성의 말이 떨어지자 그들 네명의 사람들은 일제히 신형을 바르게 움직이며 밖으로 나가서 광장의 중앙에 커다란 구멍을 파고 그 위에 불 을 질러서 수백구의 시신들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이미 가을로 접어드는 날씨였기 때문에 이곳의 땔나무는 너무나도 말랐 고 또한 복우파의 산적들이 겨울동안 쓰려고 모아놓았던 기름들이 많아 서 그 많은 수백구의 시신들을 얼마 지나지 않아서 깨끗하게 불태울 수 가 있었다. 백리자성 등은 이어 그 시체들이 재가 되어 남아있는 그 커다란 구덩이 를 매몰시켜 버리고 나서 다시 제자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이미 많은 시간이 지나 있었는데 제자들은 아까의 그 자리에 남아서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고 누구의 해도 입지 알고 있었다. 삼강방과 금응방의 사람들은 이미 각기 떠나가 버린지가 오래이며 제자 들은 백리자성 등을 기다리느라 거의 안색이 사색이 되어 있었다. 백리자성은 웃으며 그 곳에 남아있는 다섯구의 시신들마저 묻어주게 한 다음에 이윽고 서서히 길을 잡아 나아가기 시작했다. 이모화가 의아스럽다는 듯이 물었다. "이제 우리는 구태여 숭산으로 갈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백리자성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도 우리가 그 곳으로 가게 되면 다른 곳으로 가는 것보다는 좀더 유리해질 것이오. 마침 우리는 어렵게 다른 사람들을 약간 사귀어 놓지 않았소?" 점창사수는 이러한 상황에 이르러서도 태연자약하게 웃을 수가 있는 백 리자성의 얼굴을 보며 저마다 크게 안도하고 의지가 되는 모양이었다. 백리자성은 제자들이 이미 심하게 피로에 지쳐 있었기 때문에 말했다. "앞으로는 그렇게 빠르게 나아가지 않아도 좋소. 그리고 우선은 가까운 현성으로 가서 잠시 쉬었다가 다시 길을 떠나도록 합시다!" 백리자성의 말에 점창파의 제자들은 하나 같이 크게 환호하는 표정들이 었다. 원래 점창사수 등이 엄격하게 교육을 시켜놓았었기 때문에 그 제자들은 심하게 피곤한 상황에서도 불평을 토로하지 않았으나 이제 편안하게 쉴 수가 있다는 말에 크게 기뻐하는 것이었다. 기실 이 점창파의 제자들은 원래는 사악한 면모가 있었으나 이제 백리 자성을 모시기 시작한 이후로 점차로 마음들이 순후해지기 시작한다고 백리자성은 스스로 생각했다. 그러나과연 그러한 제자들이 몇 명이나 살아서 점창산으로 돌아가게 될 지를 생각하면 실로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 백리자성은 일행을 재촉하여 복우산의 근처에 현성이 있는지를 알아보 게 했고 이어 다행히도 부근에 남소(南召)라고 하는 매우 커다란 현성이 하나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쪽으로 쉬기 위해 나아갔다. 제41장 태양마교의 등장 남소라는 그 커다란 현성은 복우산의 중심부 남쪽에 위치하여 제법 문 물이 번성하고 거리가 번화하여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는 곳이었다. 일행은 그 현성의 안으로 들어가서 즉시 눈에 들어오는 객점의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는 데기실 그 객점은 이곳에서도 가장 커다란 객점이고 주 루까지 겸하고 있는 만안객점(萬安客店)이라고 하는 곳이었다. 백리자성을 이미 제자들에게 오늘은 쉬어가자고 했으므로 객점으로 가 서 하나의 작은 별채를 빌어서는 제자들에게 거의 만 하루 밤낮을 편안 하게 쉬도록 했다. 물론 주루가 옆에 있었기 때문에 점원들에게 시켜서 음식을 그 별채로 가져오게 해서 제자들이 조금도 불편하지 않도록 했다. 그러나기실 백리자성 본인은 이미 마차안에서 가끔씩 잠을 잤었고 또한 원래가 잠을 잘 이루지 못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자신은 별채의 정원 주위를 쓸데없이 거닐게 되었는데문득 점창사수 역시 별로 잠이 오지 않 는지 그의 앞에 나타나서 밝은 표정으로 웃는 것이었다. "장문인! 그 곳에서 그렇게 맴을 도시려니 답답하시지 않습니까?" 백리자성은 고개를 들어 이미 그들 점창사수는 내공이 정순해졌기 때문 에 거의 피로를 느끼지 않아서 앞쪽의 주루에 가서 술을 마시고 싶어한 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백리자성은 뒷짐을 지었던 손을 풀고 고개를 들어 미소하며 말했다. "그럼 우리 함께 밖으로 나갈까요?" 황종보가 웃으며 대답했다. "요 앞의 주루가 제법 좋은 술냄새를 풍기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저희 들은 지금 매우 술이 마시고 싶은 상태인데 장문인께서는 혹시 그 많은 술을 사실 의향이 있으십니까?" 원래 황종보는 농담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요 근래 점창파의 앞날을 예측할 수가 없고 게다가 아마도 백리자성과 얼마나 오래 동행하 게 될지 알 수가 없는 일이기 때문에 그들의 마음에는 백리자성에 대한 애틋한 감정이 더욱 깊어져 있었다. 백리자성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만일 내가 그렇게 하지 못하겠다고 한다면 여러분이 나를 장문인의 직 위에서 좇아낼 것이니 나는 하는 수없이 술을 사도록 하겠소. 하하...... 어 서 밖으로 가보도록 하십시다!" 백리자성은 역시 몸은 아프더라도 밖으로 돌아다니는 것이 유쾌한 모양 이어서 즉시 밝은 표정으로 객점을 향해 걸음을 옮겨갔다. 점창사수는 그의 표정이 모처럼 매우 밝은 것을 보고 서로 마주보고 웃 으며 그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만안주루는 역시 이곳 현성에서 가장 커다란 주루였고 또한 지은지 얼 마되지 않아서 곳곳에서 독특한 나무의 냄새가 풍기고 단청의 빛깔이 화 려했다. 주루는 모두 이 충으로 되어 있었는데,아직 손님이 많지 않은 오전이라 서 일층에도 비어 있는 자리가 있었지만 일행은 일부러 이층으로 올라갔 다. 과연 이층은 상당히 높게 자리하고 있어서 그위에서 사방을 내려다보자 멀리 복우산의 기슭을 붉게 물들이고 있는 단풍의 아름다운 풍경이나 비 교적 번화한 이곳 현성의 모습 등을 한눈에 볼 수가 있었다. 아직 춥지 않은 날씨이기 때문인지 주루의 이층창문들은 모두 시원하게 열려져 있어서 다소 서늘한 기운이 스며들어오고 있었다. 점창사수는 황종보를 위시로 해서 먼저 점원에게 술 한통을 가져다 달 라고 해서 우선 작은 술잔에 따라서 백리자성에게 맛을 보게 했다. 술은 그저 평범한 죽엽청이었는데 백리자성은 한 모금을 마시고는 마치 기막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들 네명에게 웃으며 말했다 "이 술맛이 실로 너무나도 좋으니 우리만 마실수는 없겠소. 따라서 지금 즉시 술 다섯통을 별채로 보내서 다른 제자들에게도 맛을 보이고 싶은데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떻소?" 점창사수는 백리자성이 모든 제자들을 아뜰히도 아끼고 있는 것을 보고 절로 감격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럼 그 일은 제가 맡아서 다녀오도록 하지요!" 황종보가 모처럼 손수 나서서 일을 하겠다고 했다. 백리자성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어 황종보는 점원을 불러서 함께 주방으 로 가서는 술과 음식들을 시켜서 별채로 가는 모양이었다. 그와 같은 광경을 보고 이모화가 자신과 여문량 그리고 전백승 등의 술 잔에 술을 따르다가 문득 생각난 듯이 입을 열어 백리자성에게 물었다. "참! 한가지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백리자성은 이미 한모금 마신 술이 목구멍에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 것을 느끼고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대답했다. "물어보시오." 이모화는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재갈세가 등에서는 지금 숭산으로 도움을 청하러 간다고 하고 있지만 기실 그것은 생각해 보면 매우 이상한 일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어째 서 그 천륭세가에서 좋은 마음을 품고 있다면 누가 도움을 청하기도 전 에 나타나서 강호의 일을 수습하려고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지금 아무 런 움직임도 없는데 과연 도움을 청한다고 해서 그들이 움직이게 될까 요?" 백리자성은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그들이 비록 겉으로는 나서지 않고 있지만 아마 은밀히 일을 하고 있 을지도 모르는 일이오. 게다가 그 천륭세가는 거의 강호에 나서지 않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 강호인들이 나서서 도움을 청한 다면 그것으로 그들이 강호에 나서게 되는 명분이 서게 될 것이오." 이모화는 의아한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는 반드시 그런 것 같지만도 않은 것 같습니다. 설 령 그들이 나타난다고 해도 이번의 일을 수습하기가 어려울 것인데 지금 과 같은 태도를 취하는 것은 혹시...... 무슨 다른 생각이 있는 것이 아니 겠습니까?" 백리자성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그들의 마음속에 들어갔다가 나온 것은 아니니 아직 잘 알 수가 없는 노릇이오. 그러나 그들이 강호무림의 힘을 결집시키는 구심점이 되 고 있는 것이니 그렇게 나쁘게 평가할 것도 없는 일이오." 이모화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다시 물었다. "우리는 이제 앞으로 어절 수 없이 적도들과 부딪치게 될 것인데 만일 그와 같이 되는 경우에는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백리자성은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우리가 만일 검총이나 일월신교 혹은 태양마교와 부딪치게 된다면 그 때는 이미 우리가 패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게 되는 것이오.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금선탈각의 방법을 쓰도록 합시다." 이모화가 의아해져서 다시 물었다. "매가 껍질을 벗는다는 말씀입니까?" 백리자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만일 어떠한 사태가 발생한다면 작은 일이라면 우리가 능히 버 텨나갈 수가 있을 것이고 만일 커다란 사태라면 우리로서는 헤쳐나갈 수 가 없을 것이니 차라리 그러한 기회를 이용하여 허물을 벗자는 것이오." 이때 점원들이 점창사수가 추가로 주문했던 음식들을 날라와서 탁자위 에 하나씩 늘어놓기 시작했으므로 백리자성은 잠시 말을 끊었다가 이윽 고 점원들이 모두 물러가자 다시 입을 열었다. "당금의 무림의 형새는 느닷없이 격변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보기에는 그 변화가 그리 오래가지는 않을 것 같소. 즉 앞으로 십년 내에 다시 조용해질 것이 며 따라서 우리는 그때를 기약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오. 자고로 강호상 에는 수많은 문파들이 생겨났다가 사라지곤 했었지만 그가운데에서 강한 문파들도 있었다고 하는 것은 바로 굽혀야 할 때 굽히지 못하는 문파는 어쩔 수가 없이 멸망한다는 이치인 것이오." ...... 이모화 등은 백리자성의 말이 자신들을 설득하기 위한 서론이라는 것을 알고 그저 조용히 들었다. 백리자성은 다시 말했다. "비록 태양마교가 이번에 본파를 노리고 있지만 그것이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것임은 명백한 것이며 우리는 이 국면의 헛점을 노려야만 하오." 전백승이 물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가 있는 것입니까?" 백리자성은 웃으며 대답했다. "아까도 말했지만 우리는 작은 일에 대해서는 묵묵히 헤쳐나가되 큰 일 을 만나게 되었을 때에는 그것을 당할 수가 없는 일이므로 그것을 역이 용하는 것이오." 전백승은 다시 물었다. "그것이 바로 금선탈각의 묘계입니까?" 백리자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의 상황에서는 오직 초라한 방법밖에 없는 것이니 실로 모계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이오. 마지 매미가 허물을 벗듯이 본파는 잠시 강호상에 서 사라지게 되어 다시 찾는 자가 없어지게 된다면 필시 나중에 권토중 래할 수가 있을 것이오." 전백승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그런데 어떻게 허물을 벗는다는 말씀입니까?" 백리자성은 대답했다. "앞으로 그대들은 강호상의 표면에 될 수 있으면 나타나지 않도록 하시 오. 본파의 모든 허물은 나에게 있는 것이니 만일 적도들을 만나게 되면 나는 잠령혈신단을 복용할 것이고 그것으로 잠시 적도들의 눈을 가릴 것 이오. 그럴 때에 만일 그대들이 빠르게 도피하여 사라지게 된다면 나중에 내가 죽을 때 사람들이 점창파는 이제 사라졌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오. 이 어찌 절묘하게 허물을 벗는 수법이 아니겠소? 그렇게 하면 앞으로 태 양마교 뿐만 아니라 누구도 잠시 본파를 기억하지 않게 될 것이며 십년 후에 본파는 다시 새롭게 태어나게 될 것이오." ...... 백리자성의 말은 이미 계획이 되어 있었던 내용을 말하고 있었기 때문 에 담담하기 짝이 없었지만 너무나도 비장한 의미가 깃들어 있는 것이어 서 실로 가슴을 저리게 만들었다. "앞으론 제자들에게도 그와 같은 사항을 은밀히 주지시키고 유사시에는 각자가 달아나되 나중에 점창산으로 모이라고 하시오." 이때 이모화가 우울한 분위기를 씻어버리려는 듯이 즉시 술잔을 높이 들어서 백리자성을 향해 말했다. "장문인! 한 잔을 권해 드리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으니 제가 한 잔 마 시도록 하겠습니다!" 말이 끝나자 백리자성이 미처 대답을 하기도 전에 그는 먼저 잔을 기울 여 훌쩍 술을 마셔버리고 말았다. 그러나다시 그가 술병을 기울여 술을 따르려고 했을 때에는 이미 그의 두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고여 있어서 흘러내리기 시작하고 있었 다. 백리자성은 이모화가 매우 직선적이고 감정이 풍부하기 때문에 그처럼 감동을 쉽게 하는 것을 보고 가볍게 탄식을 하며 다시 말했다. "이번의 일은 결코 감정적으로 행해서는 아니되는 일이오. 이 일은 원래 그렇게 되도록 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또한 감정을 집어넣을 필요 조 차 없는 것이오. 나는 원래 일찍 죽을 사람이니 실로 이처럼 보람있는 일 을 하고 죽게 된다면 무슨 유한이 있을 수가 있겠소?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실로 그처럼 노력을 했으나 아무런 보람도 없게 일이 틀어지는 것 이오." "따라서 나는 앞으로 내가 최후를 맞게 되었을 때 나를 따라서 죽음을 당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달아나서 후일을 기약하고 나의 유지를 받들어서 점창파를 크게 일으키는 사람을 고마와하고 감사 하게 생각할 것이오. 이 일은 결코 농담으로 하는 것이 아니니 여러분은 명심하여 추호의 착오 도 없도록 하시오!" 백리자성은 다시 강조를 하여 앞으로의 일에 정확을 기하도록 해놓고 이윽고 다시 그 세 사람을 둘러보며 말했다. "여러분은 혹시 나의 이 재주가 아깝다고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겠소. 그러나 기실 나도 서책에서 배운 것들이었으니 만일 그대들이 앞으로 점 창산에서 살면서 강호의 일이 뜻대로 잘 되어가지 않거나 아니면 나의 능력을 이어받기를 원하게 된다면 반드시 내가 전에 살던 소장원(小莊園) 으로 가보도록 하시오. 나는 이미 그 곳에 나의 후대의 인재가 얻을 수 있는 안배를 해 놓았는데 그 안으로 들어가는 진법의 배치도는 여기에 있소......" 백리자성은 품속에서 미리 준비하고 있었던 작은 양피지 두루말이를 꺼 내 그것을 여문량에게 건네주었다. 실로 그는 자신이 점창파에 남기고 가야할 모든 것을 다 남겼다고 할 수가 있었다. 여문량은 그 양피지 두루말이를 받아서는 숙연한 표정으로 자신의 품속 에 깊이 갈무리 했다. 백리자성은 그것을 보고 즉시 자신의 앞에 놓여 있는 작은 술잔을 높이 들었다. "자그러면 건배하도록 합시다. 나는 오늘은 취하도록 마시고 싶소이다!" 백리자성은 술잔의 술을 들이키고 이내 그 독한 기운을 이겨내지 못해 서 기침을 여러번 이나 했지만 술잔을 들어 계속 이모화에게 술을 따르 라고 했다. 이모화는 소매를 들어 눈물을 닦으며 술을 따랐고 백리자성은 연거푸 그술을 받아서 석 잔이나 마셨다. 그러자 처음에는 다소 기침을 하던 그는 이내 기침이 멎었고 얼굴이 불 그레하니 상기되어서 용모가 제법 준수하게 변했다. 그것을 보고이모화가 말했다. "장문인께서 만일 그와 같은 병을 앓지 않으셨다면 저보다도 훨씬 멋진 미남자가 되셨을 것입니다." 백리자성은 매우 흥겨운 듯이 웃으며 여문량을 바라보았다. "그게 사실이오 여수석호법?" 여문량은 깊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실로 장문인과 같은 분은 앞으로 다시 나오지 않을지도 모 르는 일입니다." 그 말에 백리자성은 문득 허탈하게 웃었다. "본래 인생이라고 하는 것은 천만년을 살게 되어 있는 것도 아니거늘 내가 다소 일찍 죽게 된다고 해서 무슨 다른 점이 있겠소? 하물며 백년 의 삶을 기약하며 살고 있는 건강한 사람이라도 혹시 다음날에는 목숨을 잃게 되는 수도 있는 것이 아니겠소? 나는 실로....... 실로 마음이 편안하 며 의문은 대강 풀었으니 고요하오. 구태여 더 바라는 것도 없소이다." 백리자성이 잠시 멍하니 고개를 들어 복우산의 붉게 물들어 가는 단풍 잎들을 바라보자 여문량 등은일제히 술잔을 비우며 마음속으로 숙연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 실로 사람은 으례 죽게되어 있는 것이지만 정말로 죽음 앞에서 초연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것일까. 그때문득 주루의 이층으로 올라오는 입구에서 다소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오기에 상념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보니 느닷없이 별채로 가서 일을 보고 오던 황종보가 지금 누구와 한창 시비가 붙어서 마악 싸움을 하려 는 중이었다. (........?) 여문량 등은 이 어이없는 광경을 보고는 다 함께 다소 안색이 변하여 몸을 일으켰다. 원래 황종보는 마음이 진중하고 후덕하여 평소에는 별로 말도 잘 하지 않는 성미였고 게다가 요즈음은상황이 좋지않다고 생각하여 더욱더 남과 접촉하는 것을 꺼리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에 결코 누구와 싸움을 벌일 위인은 아니었다. 그런데보아하니 지금 이층으로 올라오는 주루의 입구에서 황종보와 홍 의청년(紅衣靑年)은 이미 언성이 높아져서 금방이라도 주먹을 날릴듯한 태세였다. 어찌된 셈인지 홍의청년의 표정은 기세등등해져 있었고 황종보의 안색 은 그야말로 뭐 씹은 것처럼 쓰디쓴 것이었다. "빌어먹을 그래서 어쨌다는 말이냐?" 황종보의 입에서 거칠은 말이 터져나오자 홍의청년의 입가에 싸늘한 웃 음을 지으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거야 네놈이 그것을 훔쳐갔으니 당연히 내가 들려받아야 하지 않겠 느냐? 내가 네놈의 몸을 뒤지기 전에 어서 순순히 내놓는 것이 좋을 것 이다!" 백리자성의 일행이 바라보니 그 홍의청년은 용모가 지극히 준수하며 화 려한 의복을 걸치고 있었는데다소 서투른 중원어를 쓰고 있었고 문득 그 의 말이 끝나면 아래층에서 자지러지는 여인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그의 일행은 많은 여자들인 모양이었다. 이 홍의청년은 붉은 섭선을 들었는데아마도 하는 말을 들어보니 황종보 가 무슨 물건을 훔쳐갔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원래 이 황종보는 마음이 후덕하지만 말로써는 뛰어나지 못해서 홍의청 년이 그처럼 심하게 몰아붙이자 다소 쩔쩔매며 당혹해하는 표정이었다. "나나는 결코 훔쳐가지 않았으니 어서 물러가라!" 황종보가 안색을 붉히며 소리쳤으나 홍의청년은 그게 대체 왠 헛소리냐 는 듯이 소리치며 느닷없이 황종보의 어깨를 섭선으로 탁 치며 말했다. "뭐라고? 네가 감히 나를 놀리는 것이냐? 죽고 싶지 않으면 어서 물건 을 내놓아라!" "......." 황종보는 실로 어처구니없게도 기생오라버니와 같이 생긴 홍의청년에게 섭선으로 어깨를 얻어맞게 되었는데 왠지 피하거나 반격도 하지 않고 그 저 멍하니 홍의청년의 얼굴만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것은 마치 홍의청년의 말을 시인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원래여문량 등은 이 일을 그저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하려고 하 다가 그와 같은 광경을 보고는 문득 안색이 변해서 각기 몸을 날려 다가 갔다. 기실 이 황종보는 무예가 이미 절정의 경지를 넘어서고 있기 때문에 서 생과 같은 작자가 가볍게 휘두르는 섭선에 함부로 얻어맞을 사람이 아니 었던 것이다. 게다가 분명히 여문량 등이 보기에도 황종보가 무엇을 훔친 것이 아니 었는데도 느닷없이 그가 멍하니 서 있는 것을 보고는 놀라서 달려간 것 이었다. 그런데황종보는 여전히 멍하니 가만히 서 있었고 홍의청년은 계속해서 그의 어깨와 전신을 가볍게 후려치며 소리치는 것이었다. "만일 네놈이 그것을 주지 않겠다면 나도 생각이 있다. 네게 생각이 있 다면 지금 즉시 동쪽 성문밖으로 나오도록 해라! 만일 네놈이 나를 이길 수가 있다면 나는 그 물건은 돌려받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여문량 등은 그 홍의청년이 마구 황종보의 전신을 섭선으로 두들기다가 느닷없이 말을 하다말고훌쩍 신형을 날려서 주루의 아래로 사라져 가는 것을 보고 다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 더욱 기이한 것은 일단 그 홍의청년이 주루밖으로 사라져 버린 이후에 다시 주루의 일층에서 십여명의 홍의여인들이 역시 빠르게 몸을 움직여 그 뒤를 따라갔다는 사실이었다. 홍의청년의 행동 또한 기이하기 짝이 없지만 그처럼 많은 여인들을 달 고 다니는 그러한 행동 또한기이하기 짝이 없었다. 대체 무슨 영문일까 하고 이상하게 생각하면 여문량 등이 다시 고개를 돌려 황종보를 바라보았을 때황종보는 문득 길게 한숨을 내쉬며 몸을 움 직이더니 다소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는 것이었다. 이에이모화가 의아해져서 물었다. "대체 어찌된 영문이지? 뭘 훔치기는 했나?" 황종보는 이에 오히려 버럭 소리쳤다. "내가 뭘 훔쳤다는 말인가? 훔친 것은 바로 그 녀석이지!" .......? 여문량 등은 더욱 의아해졌다. 이모화가 다시 물었다. "아니 그렇다면 어째서 너는 어째서 너는 조금전에 가만히 서 있었지? 내가 보기에 마치 죄를 지어서 꼼짝도 못하고 있는 것 같던데?" 황종보는 이에 역시 한숨을 내쉬며 아무말도 못했다. 그것을 보고 이모화가 다시 입을 열어 물어보려는 순간 문득 뒤에서 한 사람이 나와서 말했다. "황수석호법은 당시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었네." (.......?) 이모화 등은 그 말한 사람이 바로 백리자성인 것을 알고 더욱 놀라고 의아해져서 물었다. 백리자성이 말한 것이라면 틀림이 없는 일이겠지만 대체 무공이 절정의 경지에 도달한 그가 어떻게 되서 꼼짝도 할 수가 없었느냐는 것이었다. "아니 그것은 어째서입니까?" 백리자성은 담담히 웃으며 대답했다. "그 홍의청년은 실은 무학의 고수였네." (.......!) 여문량과 이모화 그리고 전백승 등은 일시에 눈을 휘둥그래 떴다. 그들은 아까 십여명의 여자들을 달고 다니는 그 기생오라비 같이 생긴 홍의청년을 다소 기이하게 생각했었지만 실로 그가 무학의 고수일 줄은 몰랐다. 아까 그가 섭선으로 후려쳤던 수법은 거의 무공이라고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전백승이 물었다. "그자의 무공이 황종보 보다 뛰어난 것이었습니까?" 백리자성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펼쳤던 것은 내가 알고 있는 하나의 수법이었네." 이모화가 물었다. "그건 어떤 수법이었습니까?" 백리자성은 대답했다. "수중지(袖中指)라고 하는 것이네." (수중지?) 이모화는 문득 그 얘기를 듣자 뭔가 생각날 듯 하면서도 생각이 나지를 않아서 다소 고개 갸웃거렸다. (내가 언제 그 얘기를 들었던가?.......) 그런데역시 여문량이 가장 기억력이 뛰어나서 즉시 안색이 변하면서 이 렇게 묻는 것이었다. "아니 그렇다면 그것은 바로...... 바로 그들의 무공수법이었다는 말입니 까?" 이 여문량의 표정은 평소에는 거의 변하지 않아서 그의 심기가 깊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했다. 그러나지금은 그러한 그의 얼굴이 크게 경악으로 일그러져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수증지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를 알 수 있게 헌다. 아니 이모화와 전백승 등은 이미 그러한 여문량의 표정만 봐도 즉시 알 수가 있었다. 태양마교(太陽魔敎)실로 그 자들과 관련된 얘기가 아니라면 여문량이 이 처럼 당혹해 하고 있을리가 없는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백리자성은 미소하며 대답했다. "그 수중지는 그야말로 무형무성(無形無聲)의 미세하며 현묘하기 이를데 없는 지법으로 만일 무학이 경지에 이르지 못하면 누구에게 당하는지도 모르게 당하게 되어 있는 절학으로 바로 태양마교의 절학 가운데의 하나 이오." ......! 여문량 등은 미리 생각하고 있기는 했지만 이렇게 정작 백리자성에게서 그와 같은 얘기를 듣게 되자 일순 가슴을 크게 진동하고 치가 떨리며 정 신은 혼돈스러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렇다. 그렇게도 가슴을 졸이며 기다리고 있었던 태양마교도들의 출현! 이제야 비로소 그것이 이루어지게 되었다는 말인가. 여문량 등은 가슴이 심하게 진동함을 느낌과 동시에 무한한 적개심을 느끼고 아울러 몸서리쳐지는 두려움과 공포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두려움과 공포감을 느끼는 것은 이제 그야말로 백리자성과 헤어져야 하 는 시간이 도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치밀었기 때문이었다. 이빨을 깨물고 잠시 서서 마음의 격동을 가라앉히고 있다가 문득 이모 화가 건성으로 황종보를 향해 물었다. "이봐! 아까 그에게 무엇을 빼앗겼다고 했었는데 그게 뭐지?" 제42장 성동격서 황종보는 기실 조금전에 자신이 어처구니 없게도 당하고 나서 영문을 모르고 있었는데 백리자성의 얘기를 듣고는 일이 그야말로 심각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멍하니 서 있다가 대답했다. "나는...... 나는 무형신권보를 잃어버렸어." 무형신권보그것은 바로 백리자성이 황종보에게 적어준 무공비급이었으 며 황종보가 아직 기초밖에 터득하지 못한 최절정의 무학비급이었다. 그것은 매우 중요하고 귀중한 것이었지만 그러나 황종보는 지금의 상황 이 워낙에 괴이하고 정신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감히 비급에 대한 소리 를 크게 하지 못했다. 이모화가 다소 화가 난다는 듯이 이를 갈며 말했다. "그렇다면 왜 진작에 말하지 않았는가?" 황종보는 어리둥절해 하며 대꾸했다. "나는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니까! 나는 갑자기 가슴이 저려오고 정신이 아득해져서 주화입마를 당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었다구." 황종보의 말은 그가 수중지에 당했었을 때의 일을 상상하게 해주었다. 이모화는 그 말에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아니 그럼 그자가 섭선을 휘두르는 동안에 이미 그 비급을 훔쳐갔다는 말이야?" 황종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니까! 그렇지 않았다면 놈이 어째서 그냥........ 가버리고 말았겠 어?" 황종보는 그냥 갔다고 말하려다가 실로 그 홍의청년이 그냥 간 것이 아 니고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었 다. 이모화는 일행이 직접 보고 있었는데도 전혀 감옥같이 비급을 슬쩍했다 는 말에 더욱 놀라서 물었다. "그렇다면 너는 어떻게 그 사실을 금방 알게 되었지?" 황종보는 다소 울화가 치민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그 놈이 나에게 전음으로 그렇게 말했는데 내가 알지 못하면 누가 알 았겠어." 홍의청년이 그와중에도 황종보에게 전음까지 날렸다는 얘기를 듣고는 일행은 다시 멍한 표정이 되었다. 전백승이 다시 황종보에게 물었다. "대체 그는 전음으로 뭐라고 했지?" 황종보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안색을 시뻘겋게 붉히며 대답했다. "빌어먹을 그는...... 그는 나에게 이 돼지같은 작자야 여기 웬 비급이 하 나 있군. 만일 이 비급을 찾고 싶다면 빨리 나를 쫓아오너라라고 했어." 황종보는 비록 자신이 당한 욕설을 감당하기 어려운 상태였지만 혹시 백리자성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고 곧이곧대로 대답한 것이었다. 이에 점창사수는 다함에 안색이 굳어져서 생각했다. 여문량이 무거운 표정으로 백리자성에게 물었다. "대체 그는 어떤 목적으로 그랬던 것이었을까요?" 백리자성은 잠시 생각한 뒤에 대답했다. "그 비급이야 오늘이라도 내가 다시 만들어줄 수가 있는 일이지만 그러 나 기왕에 그가 나타났으니 우리는 굳이 그를 피할 필요는 없는 것 같 소." 그렇다. 홍의청년의 무공이 그토록 뛰어난 것이라면 점창파의 사람들이 달아나 려고 해도 되지 않을 것이 아니겠는가! 황종보가 다소 무거운 음성으로 물었다. "그는...... 그는 정말로 태양마교의 사람입니까?" 백리자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틀림이 없는 태양마교의 주류에 속하는 사람이오. 그가 아까 시전 했던 수중지와 신법 등은 사실은 초절정의 무학들이었소." 여문량 등은 심황진 등이나 익히고 있다는 초절정의 무학을 홍의청년이 이미 터득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는 저마다 안색이 무거워졌다. 심황진이 지금 곁에 있다면 그와 같은 수준의 경지이기 때문에 상대가 될 것이나 그녀는 지금 주위에 없기 때문이었다. 여문량이 다시 말했다. "그는 동쪽 성문밖으로 나오라고 했으니 지금 우리가 그 쪽으로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사태를 극단적으로 보는 것은 좋지 않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백리자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의 생각도 그와 같소. 태양마교의 사람들은비록 겉으로는 우리를 제 거하겠다고 하고 있지만 기실은 일부러 우리를 빨리 제거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오. 아까도 그들은 우리를 제거하려고 하는 것 같지가 않았으니 이 제 우리가 그곳으로 가보면 무엇 때문인지 알게 될 것이오." 기실 점창파의 사람들이 일부러 태양마교론 찾아간다고 하는 것은 확실 히 모험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상황에서 백리자성이 최후의 방법을 쓴다 는 것은 점창파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기에 그들은 모험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일단 그렇게 결정이 내려지자 백리자성은 즉시 남여를 가지고 나타난 점창사수와 함께 주루를 벗어나 동쪽 성문밖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이 현성은 비록 번화하게 발달하기는 했지만 역시 산골짜기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동쪽 성문밖은 자연히 인적이 하나도 없는 다소 황량한 계 곡이었다. 일행이 그 곳에 도착했을 때에는 기이하게도 그 홍의청년은 보이지 않 고 웬 한명의 홍의 소녀가 흥얼거리며 주변의 자갈밭에서 조약돌을 줍고 있었다. ......? 일행은 이미 매우 긴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와 같은 광경을 보자 절로 가슴이 섬뜩해져서 안색이 일변했다. 실로 가장 심각한 일의 표면은 때로는 가장 가볍게 보이기도 하는 것이 었다. 그들은 이미 첫눈에 그 홍의소녀가 뒤를 따라나갔었던 십여명의 홍의낭 자를 가운데의 한명이라는 사실을 간파하고 있었다. (.......?) 대체 저 홍의소녀는 무엇 때문에 혼자 이런 옷에 남아 있는 것인지 쉽 게 이해할 수가 없었다. 따라서 여문량이 마악 다가가서 물어보려고 하는데 문득 그 홍의소녀가 이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일행을 향해 무엇인가를 홱 하고 내던졌다. 그것은 조약돌이었다. 이미 지나칠 정도로 긴장하고 있었던 일행은 그녀의 그와 같은 느닷없 는 행동을 보자 일순 크게 놀라서 급히 뒤로 신형을 물러섰다. 그러나기이하게도 그 조약돌은 그저 오장 정도 날아왔을 뿐 이내 힘없 이 바닥에 떨어졌다. 내공을 주입해서 던진 것이 아니었던 것이었다. 아니 그렇다면 혹시 이 홍의소녀는 전혀 무공을 모르는 사람으로 일행 이 다소 착각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라는 말인가. 일행은 잠시 정신이 혼란스러워져서 멍하니 홍의소녀가 하는 행동을 주 시하였는데엉뚱하게도 그 홍의소녀는 계속해서 조약돌을 주워서는 이쪽 을 향해 가볍게 장난처럼 집어던지곤 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일행은 어느 틈에 좀더 그 소녀가 무공을 모르고 있는 것이 아 닌가 하는 의문이 심해지게 되었다. 소녀의 용모는 매우 가냘프고 아름다운 편이었는데 그녀의 얼굴이나 눈 빛에는 별다른 기색이 보이지 않고 오히려 천진난만해 보였다. 가끔씩 노래곡조를 흥얼거리며 조약돌을 주워 이리저리 내던지는 그 동 작은 매우 귀여울 뿐만 아니라 무공이 전혀 섞여 있지 않은 것 같았고 마치 한 마리의 귀여운 나비가 날아다니는 것과도 같았다. 여문량은 그와 같은 광경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이윽고 더 이상 참을 수 는 없다고 생각하고는 다시 그녀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호호......." 순간 그 홍의소녀가 까르르 웃더니 일순 다시 조약돌 하나를 이모화가 있는 방향으로 내던지는 것이었다. 이모화는 그것을 보고 역시 장난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는 막으려고 생각하지 않으며 홍의소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런데느닷없이 그의 앞에까지 날아온 조약돌이 돌연 예리한 파공음을 일으키며 놀라운 속도로 그외 면전으로 파고 드는 것이 아닌가! 원래는 느려서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았는데 나중에 빨라지는 이와 같은 암기수법은 그야말로 들어보지도 못한 것이었다. 이모화는 실로 방심을 하고 있다가 안색이 대변했으며 앗하는 비명소리 와 함께 그의 허리가 급격하게 뒤로 젖혀지며 철판교의 신법을 펼쳐서야 비로소 겨우 그 조약들의 공격을 피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바로 그 때였다. 이모화를 비롯한 사람들은 겨우 이모화가 무사한 것을 보고 가슴을 쓸 어내리다가 문득 홍의소녀의 신형이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음을 알고는 놀라 눈을 부릅떴다. 아니 홍의소녀의 신형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바로 허공에 떠올라서 어 느새 백리자성의 면전으로 쇄도해 들어오고 있는 중이었다. 황종보와 전백승은 남여를 들고 있다가 그와 같은 광경을 발견하고는 손을 쓰려고 했지만 남여를 놓아두고 올라갈 수도 없었고게다가 이 상태 로 그녀를 상대하자니 이미 시간이 늦어 있는 것이었다. 여문량과 이모화는 이미 백리자성과 다소 떨어진 곳에 서 있었기 때문 에 도저히 그 홍의소녀의 빠른 손속을 제지할 수가 없었다. "멈춰랏!" 여문량이 놀라서 소리치며 신형을 날리는 순간에 이미 홍의소녀는 백리 자성의 면전에 사뿐히 내려서서 백리자성의 오른손목을 틀어잡고 있었다. 백리자성은 이때 멀쩡히 두 눈을 뜨고서 당하고 있었으나 전혀 대항할 수가 없는 상태였고 꼼짝도 하지 못했다. 헌데 그 때였다. 여문량의 신형이 마악 홍의소녀의 부근에 도달했을 때 그녀가 돌연 호 호호하는 웃음소리를 흘리더니 다시 번쩍 하며 뒷쪽으로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닌가! 여문량은 비단 이 홍의소녀의 신법이 놀라왔을 뿐만 아니라 백리자성의 안위가 걱정되어 즉시 홍의소녀를 추격하는 것을 포기하고 백리자성의 앞에 내려섰다. "장문인! 괜찮으십니까?" 여문량이 그렇게 묻자 백리자성은 담담히 웃으며 대답했다. "아무 일도 없으니 염려마시오." (.......?) 일행은 오히려 아무 일도 없다는 그의 말을 듣고 다소 어리둥절한 표정 이었다. 홍의소녀가 그와 같이 성동격서(聲東擊西)의 수법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속인 다음에 덮쳐들었던 것이라면 당연히 무슨 일이 있어야만 하는 것인 데 아무 일도 없었다고 하다니 이는 다소 비정상적인 일인 것이었다. 따라서 여문량은 다시 놀라며 물었다. "그녀가 혹시 장문인을 해치지는 않았습니까?" 백리자성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그녀는 비단 나를 해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하나의 선물까지 주고 갔소." 말과 함께 백리자성은 느닷없이 품속에서 하나의 비급책자를 꺼내보였 는데 그것은 바로 황종보가 잃었다는 그 무형신권의 비급임을 알 수가 있었다. 따라서 일행은 더욱 놀라서 어리벙벙했다. 그것을 보고 백리자성은 웃으며 말했다. "이제 일이 끝났으니 우리는 그만 객점으로 돌아가 보도록 합시다!" 백리자성은 비급을 황종보에게 돌려준 뒤에 남여를 타고 돌아오면서 점 창사수의 궁금한 마음을 해소시켜 주기 위해 질문공세를 받게 되었다. 이모화가 물었다. "그녀는 대체 장문인께 무슨 짓을 한 것이었습니까?" 백리자성은 웃으며 대답했다. "그녀는 기실 나의 무공 정도를 시험해 볼 생각이었던 것이오." (.......?) 이모화는 다시 물었다. "그러면서 다시 비급을 돌려준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백리자성은 미소하며 대답했다. "그건 바로 그녀가 내가 무공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었소. 그것 은 실로 우리에게는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게 될 것이오." 이모화는 백리자성의 표정이 드물게 밝은 것을 보며 의아해져서 물었다. "그것이 어째서 우리에게 도움이 된다는 말입니까?" 백리자성은 대답했다. "그들이 구태여 나의 무공을 시험해본 것은 당장에 처리하지 않겠다는 뜻이며 그리하여 내가 무공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였으니 그들이 앞으로 마음을 놓고 자신들의 일을 늦추게 될 것이오." 이모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장문인의 무공이 대단했더라면 그들도 다소 경계를 했었을 것이겠 지요. 그나저나 그 여자의 무공은 정말로 대단하던데 그것도 태양마교의 무공이었습니까?" 백리자성은 웃으며 말했다. "그녀의 무공수위는 완전한 최절정의 수위였소. 그러나 그 무공수법은 태양마교의 주류의 무공에서 파생되어 나온 것으로 역시 같은 종류라고 할 수가 있소." 문득 여문량이 깊이 생각에 잠겨 있다가 말했다. "저는 생각하기에 그들이 우리를 이곳까지 데려온 것은 필시 그것 외에 다른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을까요?" 백리자성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맞는 말이오. 만일 그저 나의 무공만을 시험해볼 작정이었다면 그들의 능력으로는 간단한 일이었을 것이오." 점창사수는 그 홍의청년의 무공이 초절정의 경지에 이르러 있을 뿐만 아니라 그를 따라 다니는 십여명의 홍의낭자들의 무공 또한 최절정의 경 지에 이르러 있어서 그야말로 점창파는 상대도 되지 않는 상태일 뿐만 아니라 태양마교 들은 다시 얼마의 인원들이 더 나타났을지 모르기 때문 에 백리자성의 말은 실로 어김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모화가 물었다. "그럼 대체 무슨 이유로 그들은 우리를 불렀던 것이었습니까?" 백리자성은 잠시 생각하다가 문득 여문량에게 도리어 되물었다. "혹시 여수석호법이 한번 말해보겠소?" 여문량은 이에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것은 혹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오히려 우리를 도우려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그들의 행동에서는 그다지 악의가 보이지 않았었으니까 요." 백리자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렇소." 이모화 등은 대체 그 게 무슨 말이냐고 백리자성에게 물으려고 했다. 그런데바로 그 순간에 일행은 한가지 기이한 것을 보게 되었다. 생각지도 않게 탈명신수 제갈원교제갈세가의 가주가 그들의 앞에 빠르 게 모습을 드러냈던 것이었다. 일행은 일시 너무나도 느닷없는 일이어서 말을 하지 못하고 바라보았는 데기이하게도 제갈원교는 한가지 일에 몰두하여 주위의 일에는 전혀 신 경을 쓰지 못하는 사람처럼 일행이 주위에 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앞 쪽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일행은 그가 헤어진지 불과 얼마되지 않는 사이에 안색이 매우 초췌해 져 있을 뿐만 아니라 신법을 펼치지도 못하고 그저 종종걸음으로 나아가 고 있는 것을 보고 괴이하게 생각했을 뿐만 아니라 호기심이 일었다. 대체 어떠한 고난을 겪었는지 알 수가 없는 일이지만 재갈한송도 보이 지 않고 그가 그와 같이 변한 데에는 반드시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며 지금 그의 뒤를 따라가면 틀림없이 그 이유를 알 수가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일행이 거의 무관심한 듯한 표정으로 은밀히 제갈원교의 뒤를 따 라서 얼마를 가다보니 이윽고 그는 하나의 주루 앞에서 신형을 멈춰세웠 는데놀랍게도 그 주루는 바로 일행이 아까 나왔었던 만안주루가 아닌가! ........ 일행은 그것을 보고 조금전에 얘기를 나누었던 홍의청년이 자신들을 주 루에서 나오게 했던 일 등을 종합하여 생각할 때에 여기에는 혹시 무슨 커다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뛰었다. 점창사수는 즉시 고개를 돌려 백리자성에게 물었다. "어찌했으면 좋겠습니까?" 백리자성은 다소 생각하다가 말했다. "세상의 일이라는 것은 피한다고 능사가 아닌 것이니 한번 안으로 들어 가서 부딪쳐 보기로 합시다!" 점창사수 역시 같은 의견이었기 때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다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여태까지 신법을 펼치지 않고 평범한 사람처럼 종종걸음으로 달려왔었 던 제갈원교가 느닷없이 그 자리에서 사라져서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닌 가! 점창사수는 혹시 그 제갈원교가 다른 곳으로 사라져 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앞섰으나 이내 걱정했던 대로 다시 만안주루의 안으로 걸 어들어가기 시작했다. 불과 얼마전에 술과 음식을 먹고 마시면서 즐겼었던 그 주루에 다시 들 어가는 기분은 실로 소름끼치는 용담호혈로 들어가는 것이나 다름이 없 는 것 같았다. 제43장 무서운 사람들 주루의 안은 처음에는 다소 조용한 것 같았고 제법 많은 사람들이 자리 하고 있어서 별로 아까와 차이가 없는 것 같았다. 그러나일행은 우선 주루의 내부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아까와는 다른 기이한 사기 (邪氣)를 뿌리는 사람들이고 게다가 중앙의 탁자 위에 마치 쓰레기더미처럼 쌓여있는 사람들을 볼 때 비로소 일행은 뭔가 크게 다르 다고 실감할 수가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중앙의 탁자위에 쓰레기더미처럼 쌓여져 있는 사람들은 바로 얼마전에 스스로 길을 먼저 떠났었던 삼강방과 금응방의 무리들이 었던 것이었다. 물론 그들 외에도 늙수그레한 도사 하나와 중년의 서생 하나 그리고 두 명의 준수한 용모의 청년들이 함께 있었지만 백리자성 등온 비록 그들의 신분을 알지 못하더라도 지금의 위험한 순간을 이해할 수가 있을 것 같 았다. 이미 주루의 점원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달아나 버리고 그 사이한 기운 을 풍기는 사람들이 각기 주방에서 음식들을 만들어서 가져다가 요란스 럽게 먹고 마시고 있었다. 백리자성은 잠시 그들의 행동거지를 눈여겨 보라가 문득 낮은 목소리로 일행에게 알려 주었다. "그들은 바로 일월신교의 사람들이오." 이에 점창사수는 일시 심장이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올 듯이 놀랐다. 일월신교의 무리들은 이미 강호전역에 악명을 떨치고 있었고 점창파의 적도들 가운데의 하나였는데실로 여기에서 그런 자들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던 일이었다. 이 일은 어쩌면 아까 태양마교의 사람들을 만났었을 메보다도 더욱 위 험천만한 상태라고 할 수가 있었다. 그때 문득 나직하게 속삭이는 백리자성의 말을 들었는지 구석진 자리에 앉아 있던 한 대한이 번쩍하고 몸을 날려 일행의 앞에 이르더니 소름끼 치는 음성으로 이렇게 물었다. "너희들은 누구냐? 그리고 우리들을 어떻게 알고 있느냐?" 점창사수는 그 사람의 신법이 기이하도록 빠른 것을 보고 다소 흠칫한 기분이 들었으나 백리자성은오히려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일월신교는 이미 천하제일의 교파가 되어 널리 알려졌는데 어찌 그 사 람들을 모를 수가 있겠소? 우리는 이미 일월신교와 많은 인연이 있는 사 람들이니 차제에 이곳에서 식사라도 하고 가려고 들렀소." 대한은 백리자성의 말대로 당금의 일월신교 는 크게 창궐하여 있는 상 태이고 또한 자연히 일월신교와 인연이 있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그많은 사람들을 일일이 볼 수는 얹는 민이라고 생각하고는 고개를 갸웃거리다 가 문득 입을 열어 물었다. "그렇다면 너는 일월흡성대법의 요체를 설명해 보아라!" 백리자성은 대답했다. "그것은 이미 깃들어 있는 전신의 광력을 흐트러뜨리고 아무 것도 없게 한 다음에 외부의 진기를 전중혈과 기해혈에 모아들이는 것이오. 그러나 설령 그와 같이 하였더라도 나중에는 다시 그와 같은 기운들을 분산시켜 야 하는 것이오." 기실 일월신교와 인연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일월흡성대법을 배 우게 되어 있는 것이 관례였으므로 대한은 일월신교와 관련이 없는 사람 이 그 구결에 대해서 정통하고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백리자성은 이미 흡성대법의 구결에 대해서 다소 설명한 이후에 뒤를 이어 자신은 마악 산공을 시작하려는 단계이고 점창사수는 아직 그와 같 은 신공을 배우지 못했다고 말했다. 대한은 비단 백리자성이 구결에 대해서 정통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교 파에 대해서 지극히 신봉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자 금새 기분이 좋아져서 경계심이 많이 풀어졌다. 그는 손가락으로 장내의 한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지금 본교는 이곳에 이르러 중대한 일을 하려고 하는 것이니 너는 그 저 저쪽에 앉아 있다가 나중에 식사를 하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백리자성은 공손히 대답한 후에 점창사수와 함께 짐짓 기운이 없는 듯 한 태도를 보이며 그 구석진 탁자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서 앉았다. 그런데백리자성의 일행이 마악 구석진 자리에 앉았을 때 문득 다시 한 사람이 와서 자리하는 데 그는 검은 옷을 걸치고 있는 키가 훌쩍하게 큰 청년이었다. 나이는 대략 서른살 정도로 보였는데 백리자성의 일행을 한차례 바라보 더니 기이한 표정을 지으며 묵묵히 장내를 바라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점창사수 등은 이미 자신들의 무공을 드러내지 않기로 하였기 때문에 가능한한 조용히 앉아서 있으려고 했다. 그런데다른 사람들은 대부분이 음식을 먹고 마시고 있었는데 유독 그들 일행만이 가만히 앉아서 멀뚱하게 있는 것이 다소 어색해지자 백리자성 은 느릿하게 몸을 일으켰다. 그는 천천히 걸어서 앞쪽에서 혼자 앉아서 커다란 쟁반위에 돼지고기를 한덩어리 올려 놓고 역시 커다란 술잔을 천천히 들이키고 있는 한명의 백의청년(白衣靑年)의 앞으로 다가갔는데그 백의청년은 비단 입고 있는 옷이 매우 낡았을 뿐만 아니라 체구가 매우 커서 황종보와 비슷했고 술 을 마시고 음식을 먹는 광경은 실로 호탕해 보였다. 생김새나 차림새 등을 보아하니 근처의 나뭇꾼과도 같았는데백리자성은 그가 혼자서 묵묵히 먹고 마시는 것을 보고 포권하며 말했다. "혹시 저희들과 함께 동석을 하지 않겠습니까? 저희는 지금 금방 들어 왔는데 먹을 만한 음식이 없군요." 이 일월신교는 원래 육식을 하지 않고 소채만을 먹었었는데 대체 언제 부터 그 전통이 바뀌게 되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 백의청년은 잠시 백리자성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아무 말도 없이 즉 시 앞쪽의 쟁반위에 놓여 있는 돼지고기를 비수를 들어서 절반을 잘라서 는 술 두병과 함께 건네주었다. 백리자성은 그것을 받아들며 인사하고는 다시 자신들의 자리로 돌아왔 다. 이모화가 그것을 보고 일어서서 술과 고기들을 받아서 탁자위에 올려 놓으며 말했다. "장문인께서는 저희들이 눈치가 없으니 손수 그와 같은 일을 하시는군 요?" 그런데백리자성은 탁자위에서 엎어져 있는 빈 술잔에 가득 한잔씩의 술 을 따라서 점창사수에게 건네주며 웃으며 말했다. "내가 이와 같은 음식들을 가져온 것은 이유가 있는 것이오." 전백승이 마악 술잔을 집어들려다가 물었다. "무슨 이유입니까?" 백리자성은 웃으며 대답했다. "그 사람과 안면을 터보기 위해서요." 그 말에 여문량 등은 다소 놀라며 새삼스럽게 그 백의청년이 있는 곳으 로 시선을 던졌다. 그 백의청년은 지금도 묵묵히 술을 커다란 대접과 같은 곳에 따라서는 혼자 마시며 고기를 비수로 잘라서 먹고 있었는데 일견하기로 옆에서 보 기에는 그다지 특이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옆에 있는 황종보가 더욱 두 눈에서 예리한 광채가 발출되고 강 한 기질이 나타나고 있는 것 같았다. (.......?) 점창사수가 다소 의아해 하고 있는데 백리자성이 다시 말했다. "그는 사실 놀라운 고수요." ........ 백리자성은 이미 손가락으로 자신이 들고온 고기를 가리켰다. 그런데그 고기는 이미 완전히 익힌 것이었는데 금방 잘려나간 부분이 마치 얼음을 잘라낸 것처럼 깨끗하고 매끈한 것이었다. 점창사수는 무심코 그것을 바라보다가 놀라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 다. 물론 그들의 공력으로도 내력을 주입하여 익은 고기를 그처럼 매끈하게 잘라내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점창사수 등도 보았지만 아까의 그 백의청년은 그저 아무런 공 력도 들이지 않고 그저 무심코 비수를 들어 가볍게 잘라내었던 것이었는 데 실은 그와 같은 매끈한 면이 생겨나게 되었던 것이었다. 이것은 바로 그 사람의 무예가 이미 생각지도 않았는데 저절로 일어나 게 되는 그러한 경지에 오르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모화가 놀라서 전음으로 백리자성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그는 역시 초절정의 고수입니까?" 백리자성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전에 그 백의청년이 무심코 펼쳐낸 동작은 바로 도법의 일종이었 는데내가 듣기로 그러한 심오한 현기가 깃들어 있는 도법은 천하에 오직 하나라고 할 수가 있소." 이모화가 놀라 물었다. "그것은 어떤 것입니까?" 백리자성은 대답했다. "우주조화도결(宇宙造化刀訣)이오." 순간 이제까지 묵묵히 음식만을 먹고 있던 백의청년이 느닷없이 이쪽을 향해 고개를 돌려 백리자성의 얼굴을 바라보았고 일행은 마치 그 순간에 그의 얼굴에서 햇빛과도 같은 강렬한 무형의 기운이 느껴진다고 생각했 다. 그러나백리자성이 그저 가만히 있자 그 백의청년은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려서 여전히 묵묵히 음식을 먹고 마시기 시작했다. ....... 이모화는 다소 놀란 표정으로 다시 백의청년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백리 자성에게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대체 그것은 어떤 것입니까?" 백리자성은 담담히 웃으며 대답했다. "천하제일의 도법을 추구하고 있는 곳은 바로 대막신도궁(大漠神刀官)이 오. 이 대막신도궁에는 미천대연신공(彌天大衍神功)대산마수(大散摩手)파 갑추(破甲錐)용천일지(崩天一指)회륜철각(回輸鐵脚)이형환위(移形換位)어 기신풍(御氣神風) 따위의 무공과 우주조화도결이라는 도법이 있는데바로 그는 대막신도궁의 사람인 것 같소." "대막신도궁이라고요?" 이모화가 놀라서 묻자 일순 그 백의청년은 다소 흠칫하는 듯 했으나 여 전히 고개를 돌리지 않았고 문득 일행의 옆에 다가와 앉았던 현의청년 (玄衣靑年)이 다소 기이한 눈빛으로 이쪽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백리자성은 웃으며 대답했다. "비단 그 곳 뿐만 아니라 지금 이 주루의 안에는 실로 용과 호랑이들이 한꺼번에 모여 있다고 할 수가 있소." 백리자성은 옆에 있는 현의청년을 눈짓으로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실로 그가 조금전에 다가올 때 보였던 움직임은 그저 평범해 보이기는 했으나 기실은 고도의 현기가 깃들어 있는 신법의 운용이었소. 그것은 바 로 귀음혼(鬼陰魂)......." 그때였다. "흥!" 한줄기 싸늘한 음성이 들리는가 싶은 순간에 이미 일행의 주위에는 그 현의청년이 도착해 있었고 이어 점창사수가 미처 손을 쓰기도 전에 백리 자성의 손목은 그 현의청년의 손아귀에 잡혀 있었다. 실로 빠를 뿐만 아니라 흔적을 알 수가 없게 하는 신법이었다. 현의청년은 백리자성을 향해 이어 냉랭한 음성으로 말했다. "네놈은 살고 싶지가 않다는 말이냐?" 백리자성은 가볍게 웃었다. 그러나점창사수는 그가 웃고 있어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인지 전혀 알지 못했으나 확실히 백리자성은 손끝이 가늘게 흔들리고 있 었다. 이미 현의청년이 그의 손목을 잡은 순간에 이미 한줄기의 바늘과도 같 은 기운이 미세하게 전신으로 침습해 들어와서 심장을 위협했기 때문이 었다. 실로 그러한 상황에서 받게 되는 고통은 사람의 뼈와 살로는 참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기실 백리자성은 그와 같은 고통은 이미 생활의 일부와도 같은 것에 불가했기 때문에 그저 손끝을 가볍게 떠는 것으로 대신하고 웃고 있었다. 그것은 확실히 그 현의청년이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백리자성은 여전히 웃으며 입을 열어 말했다. "나는 비록 죽고 싶지는 않지만 이 투골침(透骨針)은 바로 현현각(玄玄 閣)의 절기의 하나로서 만일 그것이 심장에 침투하게 되면 살 수가 없게 될 것이오." 현의청년은 이미 백리자성이 자신의 내력을 폭로한 것이나 다름이 없기 때문에 할 수 없이 투골침의 공력을 거두며 음산하게 입을 열었다. "내가 너와 같은 자를 일부러 죽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백리자성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오. 바로 현현각의 현원전단공(玄元導檀功)을 이용하여 음풍(陰 風)의 수법을 쓰거나한음전(寒險箭) 혹은 환음지(幻陰指)나 현명신장(玄 冥神掌) 따위의 하급의 무공을 사용하기만 해도 나는 반신불수가 되고 말 것이오. 당신은 결코 현허만절풍(玄處萬絶風)올 사용할 필요가 없을 것이오." (.......!) 현의청년은 일시에 백리자성이 그처럼 자신의 절학에 대해서 훤하게 꿰 뚫어내자 다소 어이가 없는 듯이 멍하니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때 이미 점창사수는 그들의 대화에서 백리자성이 거의 죽음의 순간까 지 갔다가 되돌아왔다는 것을 알고는 안색이 변하여 급히 손을 쓰려고 했다. 그런데바로 그 순간에 느닷없이 옆에서 한 사람이 다가와서 큰 소리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흠! 고기는 여기에 아직도 많이 있군. 나는 오히려 고기가 다소 부족하 니 좀 얻어가도록 하겠소!" 다름이 아니라 바로 조금전에 옆의 탁자앞에서 음식을 먹고 마시던 그 백의청년이었다. 과연점창사수가 바라보니 그 백의청년의 탁자위에는 그 많던 고기들이 이미 바닥이 나 있었는데 정말로 고기를 얻기 위해서 온 것인지 백의청년은 오른손을 고기를 향해 내밀었으나 고기를 잡는 순간에 문득 몸의 균형을 일고 다소 비틀거렸다. 헌데바로 그 순간에 백의청년의 왼손이 탁자의 아래에서 백리자성의 한 쪽 손목을 잡았고 이내 그 곳으로부터 웅후하기 짝이 없는 내력이 마치 물밀듯이 흘러들어가서 반대편의 손목을 잡고 있는 현의청년의 손아귀를 엄습해 들어가는 것이었다. 실로 그와 같은 일은 순간적으로 벌어진 일이었기 때문에 현의청년도 다소 멈칫하는 순간에 이미 당하고 말았다. 비록 현의청년은 백의청년에 비해서 무예가 낮은 것은 아니었으나 이미 기선을 제압당했기 때문에 더이상 백리자성을 괴롭히지 못하고 쓰디쓴 웃음을 지으며 물러나고 말았다. "호호호아주 좋군! 아주 훌륭한 미천대연신공이오!" 말이 끝나는 순간에 이미 현의청년의 신형은 흐릿한 안개처럼 화하더니 밖으로 귀신처럼 사라져서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야말로 일반의 사람이 보았다면 반드시 귀신으로 착각할만한 그런 신 법이었다. 원래 백의청년이 발출했던 미천대연신공의 내력은 바로 현의청년이 발 출했던 투골침의 지력의 상극에 해당되는 무공이었다. "귀음혼....... 과연 명불허전이군!" 현의청년이 사라지자 백의청년은 그와 같이 나직하게 중얼거리고는 느 릿하게 손을 놀고 다시 자신의 자리로 물러가서 들고간 고기를 먹고 마 시기 시작했다. 실로 조금전에는 풍운이 무색할 정도로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변화가 일 어났었으나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은 모습들이었 다. 점창사수는 그와 같은 대강의 변화를 눈치채기는 했지만 그러나 자신들 의 능력으로는 대체 어떠한 무공들이 오고갔는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에 다소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다만 그들은 백리자성의 몸이 아직 무사한 것을 보고 매우 안심하는 표 정이었다. 이모화가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대체 어찌된 것입니까?" 백리자성은 담담히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웃으며 대답했다. "원래 그 현의청년은 우리가 이곳으로 들어오기 전에도 은근히 우리의 뒤를 추적하고 있었던 것이오. 그런데 내가 이곳으로 와보니 그 백의청년 이 있길래 위험을 피하기 위해 그에게 도움을 청했던 것이며 과연 나는 무사할 수가 있었던 것이오." 이모화 등은 그 말을 듣고 다소 놀랐지만 확실히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지 못했다. 게다가 다시 옆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이미 그 백의청년 역시 귀신처럼 사라져서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닌가! 이모화가 다시 물었다. "정말로 그 백의청년과 현의청년은 바로 대막신도궁과 현현파의 사람들 이었습니까?" 백리자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실로 기이하게도 지금의 이 현성에는 천하의 온갖 고수들이 다 모여있다고 할 수가 있는데내가 그 현의청년의 귀음혼이라는 신법을 알 아보고 이에 대처할 수가 있었던 것은 사실 공교로운 우연이었을 뿐이었 소." 점창사수는 기실 그 현현각의 현의청년이 자신들을 노리고 있었다는 것 을 깨닫고는 가슴이 섬뜩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모화가 다시 물었다. "대체 어째서 그들은 이곳으로 모이게 되었을까요?" 백리자성은 웃으며 대답했다. "그것은 아마도 우리와 저 일월신교의 사람들 때문이었을 것이오." 백리자성이 손가락으로 앞쪽을 가리키자 점창사수는 일제히 그 쪽을 가 리키자 점창사수는 일제히 그쪽을 바라보게 되었는데 이윽고 장내의 상 황은 다소 변해 있었다. 중앙의 탁자위에 쌓아놓았던 사람들을 일월신교의 무리들이 이미 하나 씩 내려놓고 주시하고 있었고 그 가운데의 한 사람이 소리치고 있었다. 서투른 중원어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들은 서역에서 온 사람들인 모양이었다. "네놈들은 감히 똑바로 대지 못하겠느냐!" 아까도 일월신교의 사람들은 그 일에 시선을 집중시키느라 백리자성 등 의 일을 보지 못한 것 같았다. 바닥에 무릎이 꿇어져 있는 삼강방의 방주 상검명이 놀란 안색으로 흙 빛이 되어서 벌벌 떨며 말했다. "정말로 소인들은 모르는 일입니다요. 그 제갈가주는 우리보다 먼저 길 을 떠났었고 또한 그 점창파의 사람들은 또한 우리의 뒤에 남아 있었지 요. 저희들은 그저 이 부근에서 잠시 쉬려다가 나리들에게 잡혔던 것입니 다." 상검명이 그와 같이 순순히 대답하는 것으로 보아 이미 그들은 일월신 교의 무리들에게 심하게 당한 모양이었다. 점창사수 등은 그 일월신교의 무리들이 비단 제갈가주 뿐만 아니라 자 신들까지 찾고 있는 것을 보고는 다소 의아해 하며 즉시 주위를 살폈다. 다행히도 아직 그들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삼강방의 사람들과 금응방의 사람들은 이미 여러사람들이 보고있는 가 운데 중앙의 바닥에 무릎이 꿇려져 있었기 때문에 감히 고개를 돌려 사 람들을 자세히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그 우두머리와 같은 사람은 이에 이번에는 고개를 돌려 한명의 노도장 과 한명의 중년서생그리고 두명의 준수한 청년들을 주시하며 말했다. "그렇다면 어서 너희들이 말해라! 너희 그 가주가 어디에 있는 것인지 를!" 백리자성 등온 그 노도장의 표정이 매우 근엄해 보이고 이와 같은 고초 를 겪고 있으면서도 안색이 쉽게 흔들리지 않는 것으로 보아 필시 무림 의 명숙 가운데의 하나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그 옆의 중년서생은 제갈원교와 많이 닮았으며 또한 두명의 준 수한 청년들 역시 제갈한송과 많이 닳은 용모였기 때문에 그들을 제갈원 교의 동생인 색혼수사(索魂秀士)제갈원제(諸葛遠梯)와 제갈원교의 다른 두 아들인 제갈한풍(諸葛寒楓)제갈한동(諸葛寒棟) 형제라고 생각할 때 그 노도장은 필시 거의 멸문지화를 당한 무당파의 도장인 것이 분명했다. 이미 앞으로 달아났었다고 했던 그 사람들이 기실은 여기에 잡혀와 있 는 것이며 그것은 조금 전에 보았던 제갈원교의 행동으로 미루어 보아도 어렵게 알아챌 수가 있는 일이었다. 우두머리의 말에 제갈원제는 다소피곤한 안색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리는 형님의 거처를 알 수가 없기 때문에 말할 수가 없소." 그러자 그 우두머리 대한은 두 눈에서 번쩍 검은 광망을 발하더니 소리 쳤다. "그렇다면 어서 해치워라!" 순간의 일이었다. 백리자성 등이 다소 흠칫해 하는 순간에 우두머리 대한의 등 뒤에서 한 사람이 달려나오더니 느닷없이 제갈원제의 앞을 지나쳐서 노일봉의 면전 에 이르러 그의 가슴을 향해 번쩍 강렬한 빛을 발하는 일장을 발하는 것 이 아닌가! "앗!......" 누군가의 경악성이 터져나왔을 뿐 비명소리도 들리지 않는 가운데 노일 봉의 신형이 뒤로 벌렁 나가떨어졌다. 그것은 바로 일광수라는 무공이었다. 옆에서 함께 무릎을 꿇고 있던 장한들은 그 노일봉의 육신이 마치 잠을 자는 듯이 눈을 감고 죽어있는데그의 가슴에서는 하얀 김과도 같은 기운 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는 것을 보고 그야말로 공포감에 질려서 눈을 허옇게 부릅떴다. 상검명은 그것을 보고 크게 노하여 부르짖었다. "우리를 모조리 죽여라!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할 줄로 아느냐! 어서 죽 여라! 어서 죽이란 말이야 이 개......" 순간 상검명도 개자식이라는 말을 채 하다가 말고 뒤로 벌렁 나가떨어 졌다. 어느새 그 대한이 다시 그의 앞으로 다가들어서 일광수로 그의 가슴을 후려갈겼던 것이었다. 대한은 이어 죽어있는 상검명의 가슴에서 피어오르는 허연 김과도 같은 기운을 장심으로 흡수하더니 한 걸음 뒤로 물러나서 가부좌를 틀고 운기 조식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다시 다른 대한이 앞으로 나서서 삼강방과 금응방의 사람들을 주살하기 시작했는데 실로 그와 같은 끔찍한 광경은 다시 없을 것이었다. 대한들이 일광수를 펼칠 때마다 장한들은 하나씩 뒤로 벌렁벌렁 죽어서 나가떨어졌고 이어 그 가슴에서 스며나오는 기운을 흡수하여 운기행공에 들어가는 대한들의 행동은 극도로 사악하고 느낌이 충만하여 마치 지옥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백리자성은 구석에 앉아서 그와 같은 광경을 보면서 실로 자신이 앞으 로 나서서 저 사악한 자들의 행위를 저지하지 못하는 것이 한탄스러웠다. 그때 대한들은 금응방과 삼강방의 사람들을 모조리 그와 같은 수법으로 제거하더니 이윽고 우두머리가 제갈원제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비록 겉으로는 태연한 척하고 있었으나 이미 그 제갈세가의 사람들의 안색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고 우두머리의 시선이 다시 향하자 몸을 가늘 게 떨기까지 했다. 우두머리는 음산한 표정으로 그들을 향해 물었다. "너희들은 정말로 말을 하지 않을 셈이냐?" 제갈원제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나는 정말로 할 말이 없소." 그러자 우두머리는 다시 손짓을 했다. 순간 그와 뒤에 서 있던 대한 가운데의 하나가 다시 달려나오더니 제갈 원제의 면전으로 다가들며 예의 그 빛나는 일광수를 전개했다. 그런데실로 놀라운 일이 그 순간에 벌어졌다. "으악!" 짧은 비명소리와 뒤로 벌렁 나동그라진 것은 제갈원제가 아니라 바로 그 대한이 아닌가! 사람들이 놀라서 바라보니 기이하게도 그대한의 이마에는 한 자루의 비 도가 깊숙히 박혀 있는 것이었다. 이에 장내에는 일순 소름끼치는 살벌한 기운이 물씬 일어나기 시작했다. 우두머리는 잠시 그 죽어있는 대한의 비도를 바라보더니 음산한 표정을 지우지 않은 채 한쪽을 향해 말했다. "어서 나와라. 제갈원교!" 그러자 과연 그가 바라보는 천정의 대들보 쪽에서 한 사람의 신형이 번 쩍 움직이더니 거의 소리없이 장내에 내려서는 것이었다. 바로 얼마전에 백리자성 등보다 먼저 이곳으로 스며들어왔던 제갈원교 였다. 원래 그는 가능하면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했었으나 자신의 친동생 이 죽어가는 것을 보고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던 모양이었다. 그러나의외에도 기왕에 모습을 드러낸 그의 안색은 다소 싸늘한 기운이 깔려 있을 뿐으로 그다지 당혹한 느낌은 없었다. .......? 그는 한차례 장내를 둘러보더니 이윽고 제갈원제를 향해 말하는 것이었 다. "동생 견딜만한가? 나는 결코 너를 죽게 하지는 않겠다!" 제갈원제는 안색이 변하며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형님! 돌아가십시오. 저로 인해서 우리 가문이 멸문지화를 당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우두머리 대한이 이미 올빼미와 같은 날카로운 음성으로 소리쳤 다. "이미 때는 늦었다!" 말과 동시에 그가 오른손을 흔들자 뒤에 서 있던 수많은 대한들이 일 제히 재갈원교를 향해 빠르게 덮쳐들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와 동시에 아주 놀라운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퍽퍽퍽퍽퍽 ...... 마치 가죽부대를 두드리는 듯한 음향과 함께 제갈원교의 수중에서 마치 요술이라도 부리는 듯이 수십개의 비도가 날아가더니 아주 정확하게 대 한들의 미간을 맞추어서 그대로 벌렁벌렁 바닥에 쓰러뜨리는 것이었다. 점창사수 등은 그와 같은 신기(神氣)에 가까운 비도술을 보고 저마다 크 게 입을 벌렸다. 그 대한들 가운데에는 실로 무예가 만만치 않은 사람들도 있었고 게다 가 신법의 빠르기가 일정치 않았는데 이미 대부분의 대한들이 미간에 비 도를 격중당하고 정확한 솜씨에 의해 저승으로 떠난 것이었다. 우두머리 대한은 대한들이 그와 같은 광경을 보고 저마다 크게 주춤하 는 것을 보고 그제서야 다시 손을 들며 소리쳤다. "멈춰라!" 제44장 무예를 다시 펼치다 제갈원교는 그것을 보고 웃으며 입을 열었다. "지금이라도 그들을 보내줄 생각이 있소?" 우두머리 대한은 잠시 그의 손에 들려있는 한자루의 비도를 바라보더니 문득 기이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웃기지 말아! 지금 나는 네놈의 손에 들려있는 비도의 숫자를 세고 있 었다는 것을 모른다는 말이냐? 너는 방금전에 모두 서른다섯개의 비도를 발출하였으니 소문대로 네가 서른여섯 자루의 비도를 가지고 다닌다면 이제 오직 그것 하나 밖에 남지 않은 것이 아니냐?" 제갈원제 등은다소 안색에 회색이 돌다가 그와 같은 얘기를 듣고는 놀 라서 안색이 다시 굳어졌다. 이 우두머리 대한의 심기가 역시 보통이 넘는 것일 줄은 몰랐던 것이었 다. 틀림없이 방금전에 죽은 대한의 숫자는 서른네명이었던 것이었다. 장내에는 대한들이 이마에서 흘리는 피로 인해서 짙은 피비린내를 풍기 기 시작했지만 그것은 참혹한 느낌을 주기보다는 차라리 공포스러운 분 위기를 더욱 고조시키는 것이었다. 제갈원교는 다소 안색이 창백해지며 웃었다. "그러나 나의 이 마지막 비도는 그리 무사할 수가 없을 것이오." 우두머리 대한은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나는 네가 감히 나를 향해 그 비도를 던질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 지 않는다. 게다가 나는 다시 한 가지 시험을 해보도록 하지." 이어 그가 다시 손짓을 하자 대한 하나가 나서서 이번에는 그 무당파의 노도장을 향해 천천히 다가가는 것이었다. 우두머리는 기이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나는 이번에 너의 명문정파의 생리를 보도록 하겠다. 과연 네가 그 도 장을 구하기 위해 마지막 비도를 쓸 수가 있을까? 너희들의 위선적인 모 습을 나타내어 보도록 하지." 확실히 우두머리 대한의 그와 같은 술수는 심리적인 면에서 자극적인 것이었다. 제갈원교는 대한 하나가 무당도장의 앞으로 걸어가자 다소 안색이 변하 여 여러차례 생각하는 듯 하더니 문득 길게 한숨을 내쉬며 포권과 함께 무당도장에게 말했다. "청학(靑鶴) 도장! 저는 부득이 당신의 목숨을 구해 드릴 수가 없겠군요. 용서하십시오!" 이에 그 무당파의 도장은 문득 감고 있던 눈을 떠서 제갈원교를 바라보 더니 가벼운 탄식과 함께 말했다. "무량수불마교의 세력은 점차로 커지고 무림의 정영들은 하나들씩 사라 지는 도다. 제갈가주께서는 개의하지 마시오. 나는 아무렇지도 않소이다." 말과 함께 다시 눈을 감아버리자 우두머리 대한은 즉시 명령했다. "그를 죽여라!" 그러자 명령을 받은 대한은 이제까지와는 달리 아주 빠른 속도로 청학 도장을 향해 덮쳐들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고 제갈원교는 무거운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헌데 그 때였다. 느닷없이 청학도장을 향해 일광수를 발출하던 대한이 돌연 억하는 비명 그리고 함께 뒤로 벌렁 나동그라지며 계속 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하는 것 이 아닌가! "아아아악!......" 원래 무림의 사람들은 설령 금방 죽게 된다고 해도 비명을 지르게 된다 면 그 치졸한 명성이 후대까지 남게 될 것이기 때문에 결코 비명을 지르 지 않는 것이 상례였다. 그런데이미 엄격하게 교육을 받은 대한이 그토록 요란스럽게 비명을 질 러대고 있는 것을 보고 일월신교의 사람들은 놀라고 의아해하며 바라보 았다. 그러자 기이하게도 대한의 우수의 손목에는 이미 한 자루의 비도가 꽂 혀있는 것이 아닌가!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이미 구해주지 않겠다고 했던 제갈원교가 다시 비도를 날려 청학도장을 구한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놀라서 다시 그 쪽으 로 시선을 던졌다. 그런데실로 이상한 일이었다. 정작 제갈원교 역시 괴이쩍은 시선을 보내고 있었으며 그의 손에는 여 전히 비도가 하나 들려져 있는 것이 아닌가! 과연 아니나 다를까. 자세히 보니 제갈원교가 가지고 있는 비도와 지금 대한의 손목에 꽂혀 있는 비도와는 매우 형태가 다른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제갈원교가 가지고 있는 비도는 그 날이 아주 예리하고 얇아서 마치 종 잇장과도 같은 반면에 지금 대한의 손목에 꽂혀 있는 비도는 그저 평범 하게 타이 볼 수 있는 비도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그 비도는 틀림없이 다른 곳에서 날아온 것이 분명했다. 비록 누가 던진 것인가는 알 수가 없었지만 사람들은 그 비도가 매우 투박하게 생기고 또한 얄팍한 것도 아닌데도 그와 같이 놀라 운 위력을 발휘한 것을 기이하게 생각했다. 기실 우두머리 대한도 대체 비도가 어디에서 날아왔는지 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러나이어 대한의 손목에 꽂혀 있는 비도의 방향으로 보아서 대강 짐 작하고는 우두머리 대한은 구석진 자리로 시선을 던지고는 싸늘하게 말 했다. "누구냐! 한번 손속을 펼쳤으면 꽁무니를 빼지 말아야 대장부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느냐?" 실로 이 우두머리 대한은 말은 다소 서투르지만 말의 내용만큼은 매우 익숙하게 말할 수가 있어서 그야말로 중원어에 대해서 많이 연구했다는 것을 알게 했다. 그러자 사람들이 주시하는 가운데에서 구석진 자리에서 다섯 명의 사람 들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바로 그들은 백리자성과 점창사수였다. 그렇다면 바로 조금전의 비도는 전백승이 던졌던 것이었을까? 아니었다. 기실 지금 백리자성은 얼굴이 불그레하니 상기되어 있었는데 다시 자신 의 금침술로 잠력을 끌어올려 비도술을 펼쳤던 것이었다. 과거 점창파의 위난을 구해주기 위해서 백리자성은 한차례 이미 그와 같은 수단을 펼쳐서 좌염기를 제압했던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실로 잠령 혈신단을 사용할 시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일이라 고 생각하고는 다시 그와 같은 방법을 써서 청학도장을 구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원래 그는 이제 자신의 마지막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 었으므로 그다지 원기를 아끼려고 하지 않았다. 다만 그가 삼강방 등과 사람들을 구하지 못했던 것은 금침술을 전개하 는데 있어서 다소의 시간이 걸리게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전백승은 비록 자신의 무공을 쾌검으로 바꾸기는 했지만 아직 쾌검 에 능숙하지 못하고 비도술을 완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열두 자루의 비도를 항상 가지고 다니다가 마침 백리자성에게 건네주게 되었 다. 그리고조금전의 그 대한이 그저 손목에 비도를 맞았을 뿐인데도 그처럼 비명을 지른 것은 마침 일광수를 전개하다가 그 기력이 역류하게 되면 극심한 통증을 유발시켰기 때문이었다. 만일 지금이라도 그 대한이 옆사람들의 도움을 받는다면 무공은 폐지되 더라도 주화입마에서 오는 반신불수는 면할 수가 있을 것이었지만 우두 머리 대한은 즉시 우수를 가볍게 휘둘러 그대한의 목숨을 빼앗아 버렸다. 그저 가볍게 휘둘렀을 뿐이었는데 그 우두머리 대한의 우수에서 일순 백광이 번쩍이며 대한의 가슴에서 그 허연 김도 새어나오지 않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그의 무공이 실로 남다르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우두머리 대한은 자신의 수하의 목숨을 빼앗고는 즉시 조용해진 틈을 타서 백리자성에게 질문을 던졌다. "너는 대체 누구냐?" 기실 아까 제갈원교가 비도술을 발출하는 광경은 신기에 가까운 것이었 지만그러나 조금전에 백리자성이 느닷없이 움직이는 손목으로 비도를 발 출하여 정확하게 혈도를 박아넣은 수법은 일견하기에는 평범해 보였으나 기실 아주 불가사의할 정도로 놀라운 것이었다. 사람의 이마를 맞춘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나 그보다 움직이는 손목을 정확하게 꿰뚫는 다는 것은믿을 수가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우두머리 대한은 제갈원교가 나타났었을 때보다 다소 더욱 경각 하여 질문을 던졌다. 이에 백리자성은 담담히 미소하며 포권을 한 뒤에 말했다. "불초는 바로 점창파의 장문인인 백리자성이오. 여러분들은 이미 나를 찾고 있지 않으셨소?" 일월신교의 사람들은 그가 점창파의 장문인이라는 말을 듣고 매우 경악 하는 한편 다소 기이하게 생각했다. 게다가 제갈원교는 원래는 무공을 모르던 백리자성이 느닷없이 붉어진 안색으로 몸을 일으키더니 기운이 실린 낭랑한 목소리로 말할 뿐만 아니 라 매우 눈에 익은 비도술을 펼치는 것을 보고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그가 방금전에 펼친 것은 바로 본가에서 전하는 비전의 파천황의 비도 술이 아닐까?) 우두머리 대한은 이에 문득 싸늘하게 웃으며 말했다. "호호호. 네가 점창장문인이라니 그야말로 제발로 호랑이의 굴에 들어온 셈이로군! 그래 네놈은 이 일이 자신의 실수라는 것을 모른다는 말이냐!" 백리자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나는 아마도 이곳으로 오지 말았어야 했을 것이오." 우두머리 대한은 음침하게 웃으며 말을 받아서 소리쳤다. "너는 비단 이곳으로 오지 말았어야 했을 뿐만 아니라 그와 같이 분수 없이 나서지도 말았어야 했다!" 말과 동시에 우두머리 대한은 즉시 손짓을 하여 수하들에게 백리자성의 일행을 포위하도록 지시했다. 헌데 순간이었다. "억!" 짧은 경악소리와 함께 우두머리 대한이 마악 손을 내리는 순간에 크게 주춤하며 자신의 손목을 바라보는 것이 아닌가! 다름이 아니라 바로 그의 손목에 어느새 아까와 같은 그 비도가 깊숙히 박혀 있었다. 그와 같은 일은 그야말로 경악을 크게 자아냈다. 조금전에 그대한이 당한 것은 그의 무공이 약하기 때문에 그랬다고 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지금 당한 우두머리 대한의 무공은 지극히 높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는데 그런 그마저 전혀 의식을 하지 못하고 그것도 다시 손목에 당했으니 이 어찌 놀랍지 않은 일이겠는가! (이럴 수가?) 우두머리 대한도 자신이 전혀 기척을 모르는 사이에 당한 일을 경악하 며 안색을 변모시키고 있는데백리자성이 다시 손에 한 자루의 비도를 전 백승으로부터 받아들며 말했다. "당신은 이제부터 얌전히 있는 것이 좋을 것이오. 나의 이 비도는 다음 에는 당신의 이마로 날아갈지도 모르는 일이오." 그렇다! 능히 손목을 맞출 수가 있는 사람이라면 이마를 맞추는 것은 쉽고도 쉬 운 일일 것이었다. 우두머리 대한은 감히 함부로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 의 수하들 역시 즉시 몸이 굳어져서 안색이 경직되었다. 우두머리 대한은 원래 무공이 매우 높은 편이었는데 그 비도가 비단 빠 르고 정확할 뿐만 아니라 기이하게도 소리와 기운마저 드러내지 않은 채 흔적없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경악스러운 표정이었다. 우두머리 대한은 감히 소홀히 하지 못하고 안색을 변화시킨 채 물었다. "너는 무엇을 원하느냐?" 사람들은 그제서야 비로소 장내의 상황이 완전히 달라져서 주도권이 백 리자성에게로 넘어갔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백리자성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우선 그 제압되어 있는 사람들을 풀어주는 것이 좋을 것이오." 우두머리 대한은 안색이 납빛이 되었으나 이내 고개를 끄덕여 수하들에 게 지시를 내렸다. 그러자 대한들이 움직이기를 기다리지도 않고 즉시 제갈원교가 달려나 와서 자신의 동생과 아들들그리고 청학도장 등을 구해냈다. 청학도장이 즉시 몸을 일으키며 백리자성을 향해 말했다. "귀하께서 빈도를 구해주셨으니 고맙소이다. 과연 점창파의 위세는 본파 보다도 나은 것 같소." 백리자성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천만의 말씀을! 저는 우연히 도장님을 구해드 린 것이니 개의치 마십시 오!" 이어 백리자성은 우두머리 대한에게 말했다. "두번째는 당신들은 어서 많은 시신들을 수습해서 밖으로 사라지라는 것이오." 기실 백리자성은 이미 금침술이 발동하고 있었으나 그러한 시간이 오래 갈수록 많은 원기를 소모할 것이기에 사태를 빨리 해결하려는 것이었다. 우두머리 대한은 이제 자신이 제압된 것이나 다름이 없으니 곤란한 일 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느닷없이 백리자성이 그와 같은 지 시를 하자 즉시 수하들에게 지시하여 밖으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런데마악 일월신교의 사람들이 밖으로 나가려고 주루의 문앞으로 물 려들었을 때였다. "으아아악!" 일순 마치 찢어지는 듯한 커다란 비명소리가 들려오더니 대한들이 일제 히 다시 뒤로 튕겨져 날아오르며 전신이 갈가리 찢어져서 피와 샅을 사 방으로 흩뿌리는 것이 아닌가! 느닷없는 그와 같은 아수라장을 보고는 다소 안심을 하고 있던 백리자 성 등과 제갈원교 등은 경악하여 눈을 부릅떴다. 주루의 입구에는 수십명의 일월신교의 대한들이 여기저기 하나같이 죽 어서 나가떨어져 있었고 게다가 유일하게 남아서 서 있는 우두머리 대한 은 웬 거대해 보이는 괴인의 손바닥에 붙어 있었다. 사람들은 그 괴인의 얼굴을 보게되자 저마다 공포심이 들어서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괴이하게도 그 사람의 얼굴은 형용할 수 없는 기운이 스멀거리고 있어 서 도무지 윤곽을 알아볼 수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소름끼치 는 붉고 푸른 안광이 마구 엇갈리며 흘러나오고 있어서 그야말로 공포스 럽기 그지 없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더욱 놀라운 것은 우두머리 대한의 육신이었다. 원래 그 우두머리 대한의 육신은 그리 뚱뚱하다고는 할 수가 없지만 보 통의 체구로서 무예를 착실히 연마하여 근육질로 되어 있는 탄탄한 몸이 었다. 그런데느닷없이 사람들이 보고 있는 가운데에서 우두머리 대한의 전신 이 괴인의 기운에 휩쓸리는 듯 하더니 점차로 급격하게 앙상한 깡마른 몸으로 변해가는 것이었다. 그것을 보고 전백승이 불현듯 놀라서 소리쳤다. "앗! 일월마왕이다!" 그렇다. 그 괴인은 바로 일월마왕이었으며 따로 일월성자의 지시를 받는 존재였 고 일월신교의 사람들과도 거의 별개의 존재였다. 순간 전백승의 외치는 소리를 들었는지 괴인은 손에 잡고 있던 우두머 리 대한의 시체를 집어 던지더니 돌연 번쩍하고 백리자성의 일행이 있는 곳으로 날아왔다. 점창사수는 이것을 보고 경악했다. 일월마왕이 달려드는 이상에는 도저히 달아날 수도 없다고 생각한 것이 었다. 일순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백리자성의 손에 들려 있던 비도 하나가 괴 인의 한쪽 눈알에 절반쯤 꽂혔다. 기실 이 괴인의 몸은 거의 금강불괴니 다름이 없기 때문에 백리자성이 힘껏 내던진 비도가 겨우 약간 꽂히고 말았던 것이었다. 따라서 괴인은 한쪽 눈이 급격히 멀게 되었다. 전백승은 이것을 보고 급히 백리자성에게 다시 한 자루의 비도를 건네 주려고 했다. 그러나이미 때는 늦었다. "우와와왁!" 괴인이 미칠듯한 괴성을 지르며 덮쳐들자 백리자성은 일순 우수를 가볍 게 들고 천천히 원호를 그리며 내밀었다. 실로 그와 같은 장법은 전에 좌염기에게도 사용했었던 것이었지만 위력 이 기이하게 나타나는 것으로서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힘도 없는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펑! 일장의 진동음과 함께 백리자성과 괴인의 장력이 부딪치더니 백리자성 의 몸이 뒤로 미끄러지듯이 일장여나 물러나는 것이 아닌가! 왈칵 피를 토하는 백리자성의 몸에 비해서 괴인의 몸은 그저 약간 뒤로 비척거렸을 뿐 조금도 당한 기미가 없었다. 그러나 기실은 내용은 그 반대였다. 피를 토한 백리자성의 몸은 깊은 중상을 입은 것이 아니었고 반대로 괴 인의 몸에는 이 순간 기이한 기류가 스며들어가서 그의 몸을 아주 고통 스럽게 만들어가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괴인은 이윽고 괴상한 비명을 지르더니 다시 일월신교의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더니 이윽고 전신에서 붉고 푸르며 괴이하기 짝이 없는 혼 돈스러운 기류를 흘려내면서 그 시신들을 휘감아가기 시작하는 것이 아 닌가! ........ 사람들은 그와 같은 광경을 보고서 하나 같이 경악했다. 괴인의 기류에 휩쓸린 시신들이 느닷없이 우두머리 대한의 경우와 같이 점차로 앙상하게 말라가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따라서 사람들은 그제서야 괴인이 다시 그들의 몸에 남아 있는 내력을 흡수하여 진력을 보충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와 같은 광경을 보고 사람들은 마치 마귀의 현신(現身)을 보고 있는 것만 같아서 감히 나서지도 못하고 달아날 생각도 하지 못해서 그저 넋 을 잃고만 있을 뿐이었다. 이 괴인이 수십구의 시신에서 기운을 흉수하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 지 않았다. 괴인은 아주 빠르게 시신들을 앙상하게 만들어 가더니 이윽고 먼저 죽 은 삼강방 등의 그사람들의 시신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무엇이든 먹어치운다는 불가사리가 진력을 먹어치우고 있 는 광경과 흡사했다.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마치 자신들의 영혼을 잠식당하고 있는 듯한 공 포감을 느끼게 되었는데순간 그 자리에 주저앉아서 기식을 고르고 있던 백리자성이 소리쳤다. "모두 빨리 달아나시오!" 그 말에 넋을 잃고 있던 사람들은 겨우 경각을 하고 급히 밖으로 달아 나기 위해 주루의 입구로 신형을 날렸다. 그런데이때 다시 문제가 발생했다. "으악!" 짧은 비명이 일며 느닷없이 멀쩡한 사람들의 육신이 갈가리 찢겨져 날 아가며 선혈이 사방으로 튀었다. 원래 무당파의 청학도장은 차마 백리자성에게 위기를 맡기고 갈 수가 없어서 다소 머뭇거리고 있었고 제갈원교 역시 가주의 신분이었기 때문 에 나중에 나가려고 생각하고 있었으며 점창사수는 말할 것도 없이 전혀 움직이지도 않았었다. 따라서 결국 제갈원제와 제갈한풍제갈한동 등의 세 사람이 먼저 입구로 날려나가게 되었는데 느닷없이 그 세 사람의 육신이 시퍼런 기운에 의해 갈가리 찢겨져 날아가고 선혈이 사방으로 튀었던 것이었다. 이미 극도의 공포스러운 광경을 당한 사람들은 그와 같은 광경을 보게 되자 저마다 넋을 잃고 멍해지게 되었다. "빌어먹을!" 지금은 도저히 떠날 수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점창사수 등은 그 주 루의 입구 쪽으로 시선을 던지다가 일순 이를 갈며 부르짖었다. 그렇다! 방금전에 제갈원제 등을 갈가리 찢겨죽인 시퍼런 기운의 정체는 바로 무시무시한 상상 불허의 검기(劍氣)였다. 물론 그러한 검기를 발출한 것은 사람이었고그 사람들이 열려져 있는 주루의 문으로 지금 서서히 한 사람씩 들어서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아홉명의 사람들이었는데 다름이 아니라 바로 동영의 무사 들이었다. 나이는 청년에서 중년까지의 나이였고 점창사수는 그 가운데에 가장 나 이가 어리고 지위가 낮아 보이는 사람이 바로 전에 보았던 그 청년무사 라는 것을 보고 어안이 벙벙해졌다. 상황은 아주 괴이해졌다. 제갈원교 등이 뒤로 멍청하게 물러서서 감히 대항할 엄두도 내지 못하 고 있는 가운데 그 아홉명의 동영의 무사들은 일제히 안으로 들어서서 입구를 가로막더니 한줄로 늘어서는 것이었다. 점창사수 등은 필시 이 일이 동영의 무사들이 치밀하계 계획한 일이라 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게다가 이미 시신들의 정기를 모조리 흡수한 괴인이 다시 힘을 얻은 듯 이 괴성을 지르며 백리자성을 향해 덮쳐들고 있었다. "좌아아악!" 제45장 죽음과 바꾼 무학 점창사수는 그것을 보고 일제히 자신들의 몸을 아끼지 않고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백리자성의 위기를 구하기 위해 몸을 날려 괴인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러나이미 그렇게 하기 전에 백리자성의 몸은 가부좌를 튼 자세 그대 로 어느새 신형을 날려 괴인의 앞에 도달하고 있었다. 원래 이 괴인의 힘은 아까보다도 더욱 극강해져 있는 상태였다. 백리자성은 이번에는 쌍장으로 거대하게 원호를 그린 다음에 천천히 괴 인을 향해 허공에서 내밀었다. 그러자 괴인은 즉시 어떤 느낌을 받았는듯이 괴성을 지르며 쌍장에서 붉고 푸른 두 가지의 기류를 마치 해일처럼 쏟아냈다. 순간 백리자성의 근처에 이르자 그 붉고 푸른 기운은 마치 무형의 벽에 부딪친 듯이 흠칫하더니 그대로 거짓말처럼 해소되고 마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마치 거대한 기운이 바닷물 속으로 타져들고 있는 광경과도 같 은 것이었다. 동시에 백리자성의 신형은 입으로 피화살을 내뿜으며 뒤로 날려갔고 괴 인의 신형은 다시 주춤했다. 그러나이미 과인은 백리자성을 죽이기로 작정한 모양이었다. 백리자성의 몸이 날려가서 마악 벽에 부딪치려는 순간에 점창사수가 급 히 받아내자 이어 다시 괴성을 내지르며 곧장 그들을 향해 덮쳐드는 것 이 아닌가. 백리자성은 순간 다시 눈을 뜨며 다가오는 괴인을 향해 오른쪽 주먹을 쥐고 천천히 내밀었다. 그것은전혀 위력이 없어 보이면서도 마치 신중한 것이 태산이라도 밀어 내는 것 같은 모습이었는데 순간 백리자성을 안고 있던 점창사수의 몸이 일시에 마치 거대한 힘의 그물속에 갇힌 듯이 답답해지며 뒤의 벽을 허 물고 십여장이나 날려가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쾌애애액!" 괴인이 괴이한 비명을 지르며 입으로는 많은 양의 피를 토하며 역시 정 신없이 뒤로 날려가고 있었다. 점창사수는 실로 그와 같은 엄청난 위력의 무공을 상상할 수도 없는 느 낌이 들었다. 괴인은 극심한 착상을 입고 벽면으로 날려가자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달아나 버리고 말았다. 점창사수는 즉시 내력을 운용하여 막힌 기혈을 풀고 백리자성의 몸을 보살폈으나 이미 그의 몸은 기식이 엄엄하고 혼절해 있는 상태였다. 바로 그때 일행의 앞에 소리없이 아홉개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다름이 아니라 바로 그들은 동영의 무사들이었다. 점창사수는 전번에 금응방의 무리들과 함께 여행하면서 그들의 입에 의 해 동영의 무사 가운데 가장 놀라운 고수들이 삼로(三老)와 구검(九劍)이 라고 했던 점을 상기하고 바로 이 사람들이 동영의 두번째의 고수들인 구검임을 알아차리고 깃이 숨을 들이마셨다. 원래 백리자성은 그들에게 살아남아서 점창파를 다시 일으켜 세우라고 했지만 지금은 이것도 저것도 되지 않는 상황임은 물론이었다. 따라서 기왕에 죽는 것이라면 당당하게 백리자성과 기왕에 죽는 것이라 면 당당하게 백리자성과 모든 것을 함께 하겠다는 의지가 그들 네 사람 의 뇌리에 가득했다. "바로 저자라는 말인가?" 구검 가운데의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중년의 무사가 백리자성을 가 리키자 그 청년무사가 공손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그는 아주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었고 또한....... 우리의 검학을 알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아마도 청년은 전날의 얘기를 했던 모양이었다. 그 중년의 무사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말했다. "그것 참 알 수가 없는 노릇이군. 그러나 그는 당연히 죽어야 하는 것이 니 그가 죽게 된다면 그와 같은 사실도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지." 말과 동시에 그 중년인은 몸소 등뒤에서 한자루의 장검을 뽑아들고 천 천히 일행의 앞으로 걸어왔다. 점창사수는 이에 일제히 전신의 공력을 최대한도로 끌어올리고 결사적 인 항전을 할 태세를 갖추었다. 헌데 그 때였다. 느닷없이 한쪽에서 매우 낯익은 여인의 음성이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손을 멈춰요! 당신들은 매우 염치가 없는 사람들이로군요!" 점창사수가 놀라서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아니나 다를까? 과연 생각대로 심황진이 그들과 아주 가까운 위치에 서서 호흡을 고르 며 흐트러진 머릿결을 고르고 있었다. 그녀의 안색이 매우 초췌해져 있는 것으로 보아 그녀는 실로 조금전에 다급하게 이곳에 도착한 모양이었다. 점창사수는 다행히도 그녀를 보게 되자 저으기 안심이 되는 느낌이었고 그야말로 지옥에서 부처님을 만난 마음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중년무사는 잠시 심황진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다소 흠칫하며 말했다. "너는..... 너는 황산에서 왔다는 말인가?" 심황진은 가쁜 숨을 가라앉힌 뒤에 천천히 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 다. "그래요. 그러니 당신들은 어서 돌아가도록 하세요!" 중년무사는 이에 잠시 생각하는 듯 하다가 음산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으흐흐! 우리가 너의 그 말을 들을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심황진은 다소 당혹한 표정을 지으며 대꾸했다. "물론 당신들은 숫자가 많으니 나를 이길 수가 있겠지만 본래 우리 황 산의 무학은 당신들의 무학을 능가하는 것이므로 당신들 역시 무사할 수 가 없을 거예요." 심황진은 말과 함께 천천히 내력을 끌어올려 자신의 말이 단순한 위협 이 아니라는 것을 보이려고 했는데일순 찬란한 오색의 무지개와 같은 빛 살이 그녀의 전신에서 마치 서광처럼 피어나자 중년의 무사는 다소 놀라 더니 그러나이내 싸늘하게 웃으며 명령을 내렸다. "모두 합공하여 그녀를 공격해라!" 이미 백리자성의 일행은 신경을 쓰지 않는 그들이었다. 그런데여덟명의 무사들이 일제히 신형을 날려서 심황진을 향해 다가가 려는 순간의 일이었다. 느닷없이 다른 한쪽에서 매우 묵직한 한줄기 음성이 들려왔다. "멈추시오!" 동영의 무사들은 그 음성에 실로 기이한 힘이 실려 있는 것을 느끼고 저마다 약속이라도 한 듯이 걸음을 멈추었다. 중년무사가 고개를 돌려 신경질적으로 바라보자 거기에는 바로 아까 백 리자성의 위기를 구해 주었던 그 백의청년이 어느새 묵묵히 서 있었다. 실로 이 주루의 후원에는 사람들이 없었는데 그가 어느새 나타났는지 알 수가 없는 일이었다. 중년무사는 그것을 보고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대는 바로 대막에서 온 모양이군. 정말로 우리를 저지할 셈인가?" "......." 백의청년을 묵묵히 말이 없었다. 그러나그것은 생각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말에 되돌리는 일이 없다는 것을 확인해 주는 것이었다. 중년무사는 이에 눈살을 깊이 찌푸리며 다소 고민을 하는 듯 했다. 비록 그들이 심황진을 공격한다면 승리를 하기는 하겠지만 그러나 자신 들의 피해 또한 적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그는 문득 고개를 들려 주루의 지붕이 있는 쪽을 바라보다가 손 을 들어 지시했다. "돌아가자!" 그 중년무사의 명령은 그야말로 지상명령과도 같았다. 일단 그의 명령이 떨어지는 순간에 그들 아홉명의 신형은 마치 바람처 럼 그 자리에서 사라져서 보이지 않게 되었다. 점창사수는 아까 그 중년무사가 마지막으로 바라보았단 주루의 지붕을 올려다 보다가 문득 그 곳에 홍의낭자들이 하나둘씩 보이는 것을 보고 문득 이렇게 생각했다. "저곳에 태양마교의 사람들이 있었던 모양이군. 그렇다면 그 무사는 홍 의청년을 의식하여 돌아간 것이다. 이어 다시 고개를 돌려 백의청년을 바라보려고 하는데 어느새 백의청년 은 다시 사라져서 형체조차 보이지 않았다. 실로 귀신같은 신법들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는데 문득 가벼운 미풍과 함께 은은한 단향의 냄새가 나면서 심황진이 다가와서 백리자성의 몸을 안아드는 것이었다. 백리자성의 몸은 이미 심맥이 가늘어져 있었다. "장문인을 구할 수가 있겠소?" 점창사수의 다급한 물음에 심황진은 잠시 깊이 생각하는 듯 하더니 즉 시 신형을 날려 빠르게 날아가기 시작했다. 점창사수는 혹시라도 그녀를 놓치게 될까 두려워하며 급히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심황진은 백리자성을 구할 장소를 찾기 위해 빠르게 몸을 움직였으나 이내 만안객점의 점창파의 사람들이 머물고 있는 곳으로 들어가서 치료 를 하게 되었다. 점창파의 제자들은 느닷없이 장문인이 혼절을 한 상태로 심황진에 의해 안겨져 돌아오는 것을 보고 하나같이 놀랐지만 이내 백리자성이 하루 빨 리 쾌차하기를 기원했다. 심황진은 일단 백리자성을 그의 처소의 침상위에 눕힌 다음에 그녀의 의술을 총동원하여 그의 내상과 금침술을 펼쳤던 것에 대한 부작용 등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기실 백리자성은 금침술로 자신의 잠력을 끌어올렸던 데다가 다시 내상 을 심하게 입었으며 또한 무리하게 극심한 공력이 소모되는 무공을 사용 하였기 때문에 거의 초죽음이 되어 죽어가고 있는 상태였다. 만일 심황진이 마침 그때 나타나서 재빨리 손을 쓰지 않았다면 그는 정 말로 이 상태로 죽게 되었을지도 모르는 밀이었다. 심황진은 우선 자신의 일양지의 수법으로 백리자성의 내상을 치료하고 공력을 보충시켰으며 이어서 금침을 제거하여 격발되었던 잠력을 되돌아 가게 했다. 그러나만일 보통의 사람이었다면 그런 정도로 치료가 되었겠지만 백리 자성의 몸은 만절산맥의 몸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부작용이 더욱 많았다. 격발된 잠력은 그의 흩어진 기운들을 더욱 사악하게 성하도록 만들었고 이어 심황진이 주입한 일양지 역시 그러한 기운들을 더욱 강하게 불러 일으켰을 뿐 내상을 완전히 치료할 수가 없었으며 그에 따라서 결과적으 로 원기는 더욱 더 쇠약해져 갔다. 심황진은 따라서 할 수 없이 자신의 공력을 소모하는 신비의 의술이라 고 하는 반선수(反禪手)를 사용하게 되었는데그와 같은 파사의 진귀한 기 운이 스며들어가자 이윽고 백리자성은 겨우 의식을 회복하고 눈을 뜰 수 가 있었다. 백리자성은 옆에서 심황진이 초췌한 모습으로 이마의 땀을 닦고 있는 것을 보고는 매우 미안한 표정이 되어 말했다. "당신이 왔구려. 나는...... 나는 늘상 당신의 도움만을 받고 그것을 갚을 수가 없으니 이는...... 이는 내세에서나 갚도록 하겠소." 심황진은 문득 눈물이 핑 돌아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당신은 어서 일어나기나 하세요." 그런데다시 대답이 없어 바라보니 백리자성은 어느새 재차 혼절해 있었 다. (.......) 그러나이번의 혼절은 아까처럼 생명이 위독한 것이 아니어서 심황진은 어느 정도 마음을 놓을 수가 있었다. 백리자성은 그 뒤로도 계속해서 깨어났다가는 혼절하곤 했는데어느 한 순간에는 깨어나서는 심황진에게 이렇게 물었다. "어떻게 해서 돌아오게 되었소?" 심황진은 피곤한 몸에도 불구하고 웃으며 대답해 주었다. "저는 황산에 돌아가서 할아버지를 뵙지 못했어요. 그 분께서 가신 곳을 찾아다니다가 문득 천륭세가에 일이 있다고해서 이쪽으로 오게 되었는데 그러다가 우연히 당신을 구하게 되었던 것이예요." 기실 심황진은 얘기처럼 그렇게 무심하게 행동했던 것이 아니라 일단 이쪽으로 오기로 작정했을 때에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달려서 지금에야 이르게 되었던 것이었는데바로 그녀의 그러한 정성이 백리자성의 목숨을 살렸던 것이었다. 백리자성은 그러한 이치를 훤하게 내다보고는 웃으며 말했다. "나는 앞으로 죽을 사람이니 상관이 없지만 당신이 점창파를 구해주었 으니 이는 실로 갚을 도리가 없는 커다란 은혜라고 할 수가 있소. 그런 데..... 대체 천륭세가에 일이 있다니 그것은 무슨 뜻이오?" 심황진은 대답했다. "이미 천륭세가에는 천하 각처에서 물려든 무림인들로 가득차게 되었는 데 다시 거기에 일월신교에서 쳐들어와서 가주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고 거의 무너지는 꼴이 되었나봐요. 사람들이 다시 천륭세가 에 모이고는 있지만 과연 사방에서 덮쳐드는 힘을 버텨낼 수가 있을지 의문이예요." 백리자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는 그럴 것이오. 게다가 앞으로는 일월신교와 검총등이 연합을 하 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 아니겠소?" 심황진은 얼마전에 주루에서 그와 비슷한 광경을 목격했었기 때문에 백 리자성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태양마교 역시 그들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는 것 같으나 무림을 쓸어버리는 데에는 동조하고 있지요. 게다가 비단 그들만이 아니라 현현 각이나 성모궁에서도 나설 가능성이 아주 커요." 백리자성은 웃으며 담담히 말했다. "그렇다면 앞으로 천륭세가 이외에는 무림을 구할 곳은 없다는 말이 오?" 심황진은 다소 눈빛이 붉어졌다. "원래 저는 할아버지께서 무슨 일이 없었으면 하고 바라지만 지금의 상 황을 본다면 필시..... 무슨 일이 있었을 것 같아요. 대막신도궁에서도 비 록 자재를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나서서 무림을 위해 애쓸 것 같지는 않 아요." 백리자성은 그 말을 듣고 가볍게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핫핫그렇다면 앞으로 무림은 그들의 손에 들어가게 되고 말겠군. 심낭 자! 혹시 나의 부탁을 하나 들어 주시겠소?" 심황진은 다소 우울해 하던 눈빛에 웃음을 떠올렸다. "당신은 이제까지의 나의 은혜조차 갚을 수가 없다고 하면서 감히 나에 게 다시 부탁을 할 수가 있나요?" 백리자성은 웃으며 말했다. "그것은 천하에 오직 당신밖에 나의 부탁을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없 을 것이기 때문이오." 문득 심황진은 안색이 무거워졌으나 이내 정색을 하고 말했다. "나는 당신의 뜻을 알 고 있어요. 그러나 그 일은...... 반드시 그 방법 밖 에는 없다는 말인가요 ?" 백리자성은 웃으며 말했다. "나는 사실 구차하게 죽고 싶지는 않소. 나중에 내가 무림을 위해 다소 의 도움이 되었다는 소리를 듣고 싶은 것이오. 당신은 나의 이러한 마음 을 잘 알지 않소?" 심황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이어 그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 보면서 말했다. "좋아요! 당신의 부탁을 들어드리겠어요. 그러나 다만..... 다만 그 전에 앞으로 나의 부탁 한 가지를 들어주신다고 승낙하셔야 해요." 백리자성은 의아해하며 말했다. "아니 나에게 부탁이 있다면 지금 하면 되는 것이지 굳이 나중으로 미 를 필요가 있겠소? 실상 그때가 되면 나는 그러고 싶어도 세상에 남아있 지 않을 것인데?" 심황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만일의 경우를 말하는 거예요. 할아버지께서 저번에 당신을 보시 고서 문득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당신의 병은 불치병이지만 당신의 관상 은 요절할 상은 아니라고 요. 저는...... 저는 그런 불가사의한 일에 기대를 걸고 싶어요. 만약 당신이 죽지 않게 되신다면 앞으로 저의 부탁을 하나 만 들어주세요. 그것은 도리에 어긋나는 것이 아닐 것이니 가능하겠죠?" 끄덕였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당신의 부탁을 하나가 아니라 백개라도 들어주겠 소." 심황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백개는 필요없어요. 하나만 들어주시면 되요." 백리자성은 이미 원기가 크게 손상되었기 때문에 그 뒤로도 가끔씩 깨 어날 뿐으로 계속 비몽사몽간에서 시간을 보냈다. 다만 그는 깨어 있을 때 점창사수에게 천륭세가를 향해 일행을 출발시 키라고 지시를 내렸다. 점창사수는 즉시 그의 지시에 따라서 그를 마차에 태우고 심황진에게 돌보도록 한 다음에 일행을 그 마차를 호송하며 천륭세가로 향하게 했다. 백리자성은 이 무렵 다시 이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 앞으로 내가 점창파를 대표하고 죽는다고 해도 일월마교 들이 아 예 중원에서 뿌리를 내리게 되면 역시 점창파는 설 땅을 잃게되고 말 것 이다. 게다가 점창사수가 달아났다가 다시 기회를 본다고 해도 이미 강호 인들에게 신망을 잃게 되고 말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차라리 점창파의 정신을 크게 불러일으키는 것이 낫지 않을까? 비록 사람은 죽더라도 점 창파의 정신이 살아남는다면 나중에 점창파는 멸하지 않고 계속 이어져 나가는 것이다. 게다가 나는 이제 심낭자의 도움을 받게 되었으니 잘 하 면 중원에 진출해 있는 세력들을 모조리 제거할 수가 있을 것이고 나중 에 그 근원지로 가서 한번 단판을 벌일 수도 있지않은가?.......) 만일 백리자성 혼자였다면 아마도 백리자성은 스스로 시술을 했어야 하 기 때문에 다소의 곤란이 있었을 것이고 또한 효과도 최대로 거둘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마차를 타고 가면서 심황진은 백리자성의 요청에 따라서 이미 그 의 마지막 과업을 이루도록 시술을 점차적으로 진행시키고 있었고 이윽 고 일행이 숭산 태실봉의 아래에 도달했을 때에는 심황진의 시술이 완벽 하게 끝나서 백리자성은 보다 나은 조건하에서 드디어 잠령혈신단을 복 용할 수가 있었다. 일단 잠령혈신단을 복용하자 마치 전신이 갈가리 끊어지는 듯한 무수하 고 여러 종류의 고통을 일일이 맛보아야 했지만 백리자성은 이내 죽음에 서 빌려온 최후의 잠력을 이용하여 무려 십갑자에 달하는 공력을 이룰 수가 있었고 잠깐 사이에 내공을 연마하여 자신의 가문인 백리가문의 최 대신공인 여덟개의 무공을 모조리 완벽하게 익히게 되었다. 그것은 이미 그가 그러한 무공에 대해서 완벽한 깨달음을 가지고 있었 기 때문이었다. 이무렵 백리자성은 피부색이 붉게 상기되어 있었고 눈빛에서는 은은한 금빛의 기운이 흐르고 있었는데 그것은그가 지닌 모든 힘을 발휘하였다 는 뜻이었다. 점창사수 등은 그가 느닷없이 그와 같은 달라진 모습을 하고 나타나자 다 함께 크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명백하게 말해서 백리자성은 이제 앞으로 육육은 삼십육삼십육 일이 지나게 되면 반드시 죽게 되는 운명이 되었던 것이다. 게다가 무한한 고통을 겪으면서...... 천륭세가. 천하에 있어서 이 가문은 영광의 가문이었고 굴욕을 모르는 가문이었다. 그러나작금에 이르러 그 가문이 외세의 세력에 맥을 추지 못하고 무너 져 갈 때 강호인들은 느닷없이 나타난 한 사람을 알게 되었다. 점창장문인! 그가 누구인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다만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얘기에 의하면 그는 불치의 병을 가지고 있 는 이제 불과 한달 정도의 목숨을 가지고 있는 시한부 인생의 초인이라 고 했다. 글쎄다. 죽음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을 초인이라고 말할 수가 있을까. 강호인들은 요사이 일월신교의 주축이라고 할 수 있는 열여덟명의 일월 마왕들이 일제히 백리자성의 손에 의해서 제거되었다는 것을 알고 기뻐 했다. 그들은 이 불치의 병을 가진 초인의 행동을 모두 기이한 눈초리로 바라 보았다. 이제 강호상에는 다시 평화의 시기가 도래하려는 것 같았다. 한 사람. 태양마교의 주류무공을 연성한 사람들의 하나이자 교주의 은총을 깊이 받고 있는 저자들 가운데의 한 사람인 그 홍의청년은 지금 십여명의 홍 의낭자들에 둘러싸인 채 백리자성의 앞에서 기이한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었다. 백리자성은 그를 향해 물었다. "당신은 이제 이해하겠소?" 홍의청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내 눈으로 직접 본 것 이외에는 믿지 않는다." 이때 백리자성의 두 눈의 금빛의 기운은 거의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 상 태였다. 그것은 이미 그의 공력이 지나치게 소모되어 생명을 오히려 앞당기고 있다는 것을 의미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지금 이 홍의청년이 원하고 있으니 이제 한 수 보여주지 않으면 안되게 되어 있었다. 따라서 백리자성은 즉각 홍의청년을 향해 가볍게 일장을 날렸다. 그것은 바로 백리가문의 팔대절학 가운데의 하나로 반야장(般若掌)이라 고 하는 것이었는데즉 전날 만안주루에서 첫번째로 사용했던 무학이었다. 이에 대해 홍의청년 역시 마주 일장을 날려왔다. 그것은 바로 화염도(火焰刀)라고 하는 것으로 무형의 칼날과도 팔이 보 이지도 않고 소리도 없는 무시무시한 장법이었다. 그러나이 두 가지의 장력이 가운데에서 부딪쳤을 때에는 홍의청년은 뒤 로 훌쩍 물러나서 만면에 매우 낭패한 기색을 떠올렸다. 그 반야장이라고 하는 것은 그야말로 모든 가능한 장법을 펼칠 수가 있 는 것으로 화염도가 비록 특이하다고 해도 상대할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제 46 장 기연 삼로와 구검그들은 지금 도도히 흐르는 탁류 황하강의 한 강변에 서서 유유히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상태였다. 원래 그들은 전에는 도전신청을 해도 받아주지 않더니 그가 일월신교 뿐만 아니라 태양마교심지어 현현각의 사람들 마저 몰리치게 되자 이제 야 비로소 그의 도전을 정식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던 것이었다. 백리자성이 천천히 그들의 앞으로 다가가자 이윽고 그들 가운데에서 세 명의 노인이 다가와서 그의 앞에 섰다. "점창파의 장문인인가?" 백리자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그러자그 세명의 노인들은 즉시 그의 몸을 둘러싸며 품자(品子)형으로 에워쌌다. 백리자성은 그들이 즉시 장검을 뽑아들어 손에 드는 것을 보고 의아해 져서 물었다. "당신들은 합공을 펼칠 생각이라는 말이오?" 노인들 가운데에서 한 사람이 말했다. "원래 우리의 무학인 북두제왕검형대구식은 결국에는 하나의 검법으로 이어지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그러한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진법에 의해서 그 검법들을 하나로 융합하려는 것이다." 백리자성은 웃으며 말했다. "만일 당신들이 그렇게 하고서도 나를 이기지 못한다면 이대로 물러가 겠소?" 노인들은 즉시 대꾸했다. "검을 잡아라!" 그러나이미 그들 세 명은 백리자성을 공격해 들어오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백리자성은 얼른 바닥에서 나무조각과 같은 것을 하나 주 워들었다. 일순천지가 마치 무한한 검기의 소용돌이 속으로 가득차는 것 같았다. 그 검기는 비록 보이지는 않았으나 그 거대한 힘에 의해 하늘의 햇살이 차단되었고 아래는 어두운 암흑으로 화했다. 세 노인들의 합공은 실로 가공할만한 것이었다. 그러나백리자성이 그저 단순하게 나무조각을 한차례 휘저었을 뿐인 것 같은데도 이내 주위가 다시 밝아졌고 세 노인은 허탈한 모습으로 멍하니 서 있었다. ....... "다시 도전하겠소?" 백리자성의 말에 문득 세 노인은 몸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털썩!...... 그들은 순간적으로 자결해 버린 것이었다. 실로 그러한 일은 백리자성이 능력이 더욱 커진다고 해도 막을 수가 없 는 일일 것이었다. 백리자성이 다소 놀라고 있을 때 문득 구검이 다가와서 그 우두머리가 말했다. "삼노께서는 이미 유언을 남겨두셨소. 당신이 이겼으니 우리는 이제 동 영으로 돌아가오. 그러나 우리는 반드시 돌아올 것이오!" "......!" 백리자성은 묵묵히 그들이 삼노의 시신을 안고 사라져가는 광경을 바라 보았다. 그런데문득 그 중년무사가 다시 고개를 돌리더니 이렇게 묻는 것이었다. "대체 당신이 펼친 그 검벌의 이름은 무엇이오?" 백리자성은 대답했다. "팔만사천검법이오." ....... 백리자성은 몸을 크게 휘청거렸다. 이제 그가 해야할 일의 거의 대부분을 마쳤다고 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아직 완성된 것은 아니었다. 한 가지의 중대한 일이 남아있는 상태였는데,그것은 바로 그 여덜개의 세력의 근원을 찾아가는 일이었다. 백리자성은 이미 전신의 기력이 쇠약해져서 정신이 몽롱해지는 것을 무 릅쓰고서 가능한한 빠르게 달려가기 시작했다. 곤륜산 좌망봉(坐忘峯) 천하의 사람들 가운데에서 이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도 드물 뿐만 아니 라 정말로 이곳을 찾아갈 수 있는 사람은 더욱 드물 것이다. 그러나 한 사람이 이미 그 봉우리의 최정상에 이르러 깊은 숨을 몰아쉬 고 있었으니 그는 바로 백리자성이었다. 백리자성이 그 곳에 이르렀을 때 문득 몽롱한 그의 의식 속으로 한줄기 선음(仙音)과도 같은 음성이 들려오고 있었다. ....... "보시오. 강호산인(江湖山人)!......이제는 도조종(刀祖宗)도 뜻을 들리지 않았소? 앞으로 그대가 제아무리 반대를 한다고 해도 천하의 대세를 들 릴 수는 없는 노릇이오." 백리자성은 즉시 그 쪽으로 시선을 돌리다가 다소 놀란 표정을 지었다. 마치 옥을 깎아놓은 듯이 평탄한 대지위에 지금 기이하게도 모두 일곱 명의 사람들이 그야말로 괴이한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이 좌망봉은 워낙에 깊은 안개속에 가려져 있기 때문에 사방이 자욱한 안개에 뒤덮혀 있는 것이나 지금 그 사람들의 둥둥 떠있는 몸의 아래에 도 각기 색깔을 띠고 있는 안개가 피어나고 있는 중이었다. 그 사람들의 표정은 그 안개속에 휩싸여서인지 다소 희미했다. 그러나백리자성은 바로 그들이 자신이 찾던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고 또한 방금전에 입을 연 사람은 마치 어두운 장막을 드리우고 있 는 듯한 괴이쩍은 분위기를 풍기는 노인이었다. 그는 한쪽의 자리에 둥둥 떠있는 황색구름을 타고 있는 노인백리자성이 보기에는 그는 바로 강호산인 심흥기가 분명했는데심흥기에게 뭐라고 말 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 바로 이들이야말로 당금의 천하를 오시하고 있는 신주팔패의 주인들인 것이었다. 심흥기가 대꾸를 하지 않자 그 검은 장막을 두른 노인이 다시 음침하게 웃으며 입을 열어 말했다. "보시오. 지금 저렇게 당신이 얘기하던 그 청년이 왔소이다. 그러나 그 는 아무리 봐도 결코 오늘을 넘길 수 있을 것 같지가 않구려! 그는 비록 우리들의 하찮은 세력들을 조금 부수었을 뿐이었는데 그게 대체 어쨌다 는 것이오?" 백리자성은 이미 그들이 자신의 출현을 하고 있으면서도 전혀 돌아보지 도 않고 자신의 얘기를 나누는 것을 보고 다소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그 검은 장막을 두른 노인의 말은 실로 사실이었다. 백리자성은 이미 이곳으로 오면서 체내의 잠력을 모두 소모해 버려서 제 날짜가 아닌 오늘에 이미 죽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백리자성은 이미 죽음을 초월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며 다시 그들 의 모습을 살피고 대강의 신분을 파악해 내었다. 그때심흥기가 입을 열어 말했다. "당신의 말은 틀리지가 않소. 그러나,실제로 천하가 당신들의 손아귀에 들어간다고해도 그것은 나와는 관계가 없는 일이오. 나는 오로지 황산에 은거하며 살겠소이다. 나를 귀찮게 하지 마시오!" 검은 장막의 노인은 눈살을 찌푸리더니 말하지 않았다. 백리자성은 그 노인이 바로 일월신교의 태상교주인 일월성자 구양극서 라는 것을 알아냈는데 이때 장내에 한 사람이 비어 있을 뿐만 아니라 여 자가 하나도 없는 것을 보고내심 생각했다. (설산동모(雪山童姆)운성죽(雲星竹)은 지금 이 자리에 없군. 그녀는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아니나 다를까. 마침 한 사람이 느릿하게 그 얘기에 관해서 입을 열었다. "아니 그나저나 설산동모는 어째서 아직 오지 않는 것이오?" 그 말한 사람은 전신에 타는 듯이 붉은 옷을 걸치고 있고 몸의 아래에 붉은 구름을 드리우고 있는 사람이었는데 백리자성은 이미 그가 태양마 교의 주인인 태양노선(太陽老仙) 적용통치(赤容通治)라는 것을 알아보았 다. 그러자 묵묵히 있던 백색구름의 웅장한 노인이 입을 열어 대답했다. "그녀는 원래 일찍 왔었는데 느닷없이 요 아래에서 기이한 동물을 하나 발견했다고 하면서 내려가서 기다리고 있는 중이오." 이에 문득 청색의 구름을 타고 있는 노인이 중앙에 둥둥 떠 있는 백의 중년인을 향해 입을 열어 말했다. "천수자이제 때가 되었으니 일을 결행할만도 하지 않겠소? 우리는 이미 당신의 뜻대로 모든 일을 처리해 왔었는데바야흐로 천하는 당신의 말 한 마디면 우리들의 이상적인 세계가 된다는 말이오. 그렇지 않소?" 그러자 그 백의중년인이 황금빛의 구름을 타고는 만면에 기이한 미소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천하를 정복함에 있어서 약간의 저항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은 했 지만 실로 저 아이와 같은 사람이 나타나서 귀찮게 할 줄은 몰랐소. 그러 나 그는 의외로 죽게 되어 있는 시한부의 인생이니 우리가 상관할 필요 가 없다는 사실이 또한 기이하오. 어쨌든 이제 천하는 자연스럽게 우리들 의 손아귀에 들어올 것이오." 백리자성은 그가 틀림없이 천수자 백일행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어 처구니가 없는 심정이 되어서 천천히 몸을 일으켜 그 쪽으로 다가가서 소리쳤다. "대체 당신들은 무엇 때문에 그와 같은 일을 자행하고 있는 것이오? 하 늘의 호생지덕을 생각하지 않을 참이오?" 이에 천수자가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만면에 기이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이야! 너는 이해할 수가 없겠지만 당금에 있어서 지금과 같은 대업은 필요한 것이란다. 그것이야말로 지극한 이상세계를 건설할 수가 있는 것 이지 나는 대자비의 마음으로 그와 같은 일들을 하고 있는 것이란다." 백리자성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당신의 말은 믿을 수가 없소. 그와 같은 일월마왕들을 만들어서 사람들 을 무차별 살해하게 만들고서 그와 같은 말을 할 수가 있다는 말이오?" 천수자는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허허! 인간들이라는 존재는 실로 오만하여 신의 위엄을 거스르는 일이 많도다. 우리는 따라서 약간의 희생도 감수하기로 했다. 사소취대라는 말 도 있지 않느냐? 비록 수천명의 사람들이 죽어간다고 해도 그로 인해서 수만 혹은 수십만의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으로 족 한 것이다." 백리자성은 어이가 없어서 웃으며 말했다. "당신들의 그러한 사악한 세력들로 말이오?" 천수자는 고개를 흔들었다. "너의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너는 감히 예상도 못하고 있겠지. 실로 우 리는 일월신교와 같은 세력을 일단 침투시킨 연후에 숨겨놓은 배후의 세 력으로 하여금 그들을 소탕하게 하고 천하를 구한 명분으로 가장 이상적 인 세계를건설할 생각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행복 해지게 될 것이다." 백리자성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당신이 말하는 그 이상세계라는 것은 어떤 것이오?" 천수자는 다소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것은 바로 대도(大道)에 속하는 것이다. 너는 이야기를 한다고 해도 결코 이해할 수가 없을 것이다." 백리자성은 내심 마음이 차갑게 식고 분노가 치밀어서 소리쳤다. "이해할 수가 없다고? 그것은 바로 우화등선을 두려워하는 당신들이 자 신들의 야망을 달성하기 위해 저지르는 한 때의 불장난이 아니오? 비록 당신들의 능력이 뛰어나서 감히 막을 사람은 없겠지만 차후에 필시 당신 들은 그 응보를 받게 될 것이오!" 백리자성의 그 말에 일곱명의 사람들은 대부분이 안색이 변했다. 천수자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우리에게 그와 같은 얘기를 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이미 생사를 초월하 고 응보를 하여 사는 사람들이다." 백리자성은 이에 껄껄 웃었다. "응보를 초월했다고? 핫핫핫..... 겨우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주제에 감히 그와 같은 말을 하고 세상사람들을 우롱할 수가 있다는 말인가...." 순간 백리자성은 너무나도 감정이 격해져서 드디어 그 자리에서 피를 뿌리며 쓰러지고 말았다. 그는 이미 혼절하여 거의 죽은 것이나 다름이 없게 되었다. 그것을 보고 검은 구름을 타고 있는 노인이 즉시 가볍게 손을 쳐들어 묵광이 번뜩이는 빛살을 백리자성에게 발출했다. 허나그의 그 광검(光劍)은 그저 간단하게 백리자성의 죽어가는 육신을 벼랑으로 밀어내는 것이었을 뿐으로 그의 육신을 망가뜨리지는 않았다. 바로 그는 현현노조 모용술박이었는데자신이 이미 죽어가는 사람을 상 대로 광검을 펼쳤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가 않았기 때문에 그와 같은 가 벼운 수를 썼던 것이었다. 백리자성의 몸이 그처럼 느닷없이 다시 벼랑 아래로 떨어져 내리는 것 을 보고 문득 일월성자가 물었다. "아니 그를 그처럼 간단하게 처리해도 되겠소?" 이에 천수자가 웃으며 말했다. "이 아래는 바로 만독담(萬毒潭)이라고 하는 것이 있는데 천하의 무엇이 라도 녹여버리는 습성이 있소. 설령 우리들이라고 해도 견디기가 어려운 상태일 것인데 그와 같은 허약한 몸은 금방 녹아버리게 될 것이오. 그리 고.... 그는 시실 수명이 다했으니 설사 대라금선이 온다고 해도 다시 살 아날 수는 없게 될 것이오." 나머지 다섯명의 노인들은 그제서야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 이 산봉우리 위에 잠시 침묵이 내리깔렸다. 백리자성은 이미 즉은 것일까? 아니었다. 비록 깊이 혼절을 하고는 있었지만 기이하게도 극도의 분노감에 의해서 그의 정신력은 맑게 깨어나서 흡사 깊은 안개속으로 떨어져 내리는 것 같은 환각속에서 자신의 몸을 바라보고 있었다. 기실 그가 좌망봉으로 왔던 것은 혹시 백리맹 어떤 음모에 당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데기실은 모든 일들이 그 백일행이 위선의 탈을 쓰고서 벌인 일이 었다는 데서 백리자성은 심한 분노의 감정을 느꼈다. 앞으로 천하에서 그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의 아래에서 비참한 상황 을 맞이할 것이며 또한 허수아비가 되겠는가! 그러나백리자성은 자신이 이제 죽는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매우 허탈 해져서 그러한 일들이 점차 멀게 느껴지기도 했다. 백리자성은 자신의 몸이 점차로 떨어지는 속도가 가속됨에 따라서 마치 깊고도 무거운 수렁속으로 빠져드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것은 아주 기분 나쁜 느낌이었고 또한 절망감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했다. 백리자성은 너무나도 절망적인 자신의 처지에 대해서 그만 희망을 버리 고 모든 의식을 놓아 버렸다. 헌데 그 때였다. 쾅!....... 의식이 가물가물한 그의 귓전에도 그처럼 커다란 소리가 들려오더니 굉 렬한 통증과 함께 정신이 번쩍 들어오는 것 같았다. 동시에 그의 몸은 왠지 정말로 습기차고 어두운 동굴속으로 빨려들어가 는 것이었다. 그 동굴은 마치 살아있는 물체처럼 미끈미끈하고 불쾌한 느낌으로 가득 차 있었는데 다음 순간에 느닷없이 백리자성의 입속으로 빛을 발하는 청 홍(靑紅)의 두개의 구슬이 스며들어와 그만 꿀꺽하는 소리와 함께 넘어가 는 것이었다. 이어 백리자성은 마치 자신의 살갗이 거세게 타오르고 또한 내부의 불 덩어리가 폭발하는 듯한 기괴한 복합적인 고통 속에서 정신을 잃고 말았 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빨리 일어나랏!" 백리자성은 느닷없이 그와 같은 맑고 강렬한 음성을 듣고 부시시 눈을 뜨게 되었다. 그러자 이내 자신이 아주 괴이한 곳에 누워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괴물(怪物) 백리자성이 누워 있었던 곳은 바로 괴물이라고 밖에 말할 수가 없는 거 대한 짐승의 뱃속이었는데자신의 몸이 비록 피로 뒤엉켜 있었지만 그래 도 누군가가 배를 찢어주어서 그는 다시 눈을 뜨고 몸을 일으키게 되었 다. 백리자성은 이때 자신의 몸이 실로 기이하게 원기가 차있을 뿐만 아니 라 과거보다도 오히려 통증이 줄어든 것을 느끼고 다소 의아해졌다. 게다가 자신의 눈앞에 웬 오색의 아름다운 옷을 갈친 소녀가 하나 오색 의 구름 위에 둥둥 떠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을 보고는 의아해져 서 물었다. "낭자는 누구요?" 그러자 그 소녀는 대뜸 아주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뭐라구? 네놈이 감히......" 백리자성은 문득 그 소녀의 두 눈에서 기이한 광망이 뻗쳐나오는 것을 보고 실로 이 소녀가 보통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소녀가 지금 타고 있는 오색의 구름을 보고는 문득 짚히는 바가 있어서 놀라 물었다. "아니 그럼 당신은 바로 설산동모라는 말이오?" 설산동모는 바로 신주팔패의 주인들 가운데 하나이며 아까 그 집회에서 참석하지 않고 아래에서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고 했었다. 백리자성은 그 별호 가운데 동모라는 말처럼 혹시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해서 그렇게 물어본 것이었다. 그런데겉으로 보기에는 이제 겨우 나이가 십오세 정도 되었을까 한 그 소녀가 문득 엄숙한 표정으로 이렇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 본좌가 바로 설산동모 운성죽이다. 네놈은 제법 사람을 볼 줄 아는군. 그러나 이미 나의 대업을 망쳐놓았으니 그 댓가를 치루어야 한 다." 백리자성은 실로 믿기지 않게도 그 소녀가 설산동모라는 말을 듣고 한 동안 멍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고개를 내지었다. "믿을 수가 없는 알이군! 그러나...... 그러나 천하에 당신말고 지금과 같 은 모습을 하고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오." 운성죽은 싸늘하게 아미를 치켜올리며 소리쳤다. "잔말말고 어서 댓가를 치루어라!" (.......?) 백리자성은 느닷없이 계속해서 댓가를 치루라는 소리에 다소 의아해져 서 물었다. "아니 내가 무슨 잘못을 범했다는 말이오?" 운성죽은 그의 표정을 살피다가 그가 아직 모르고 있는 것을 간파하고 는 즉시 화를 풀며 냉랭하게 물었다. "너는 지금 몸이 예전과 다르지 않느냐?" 백리자성은 즉시 운기를 해보고 나서 고개를 끄덕였다. "실로 그렇군요......" 그렇다! 원래 그의 몸은 영락없이 죽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지금은 그가 금침술로 잠력을 끌어올렸던 수법까지 제거되었고 몸은 원래처럼 되었는 데 기이하게도 더욱 활력이 넘치는 것이었다. 백리자성은 이러한 현상을 믿을 수가 없어서 물었다. "대체 어찌된 것이오?" 운성죽은 냉랭하게 웃으며 손가락으로 백리자성이 서 있는 괴물을 가리 켰다. "직접 확인해 보아라!" 따라서 백리자성은 괴물의 모습을 찬찬히 살펴보게 되었고 이내 아까의 그 기이하던 기억과 함께 추측을 해내기 시작했다. 백리자성은 문득 놀라 소리쳐 물었다. "아니 그렇다면 이 괴물이 바로 독각대룡(毒角大龍)이라는 것이라는 말 이오?" 독각대룡그것은 전설에서 전하여 내려오는 괴이한 동물로서 몸체는 흡 사 과거의 공룡을 닮았는 데 몸은 하나이며 머리는 둘이어서 각기 붉고 푸른 딸을 이마에 갖고 있다고 한다. 말그대로 그것은 천하의 기독들이 모여드는 독담에 살며 각기 음양의 이기를 동시에 소유하고 스스로 번식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암수가 한몸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기실 더욱 기이한 것은 그괴물은 독담에서 살면서 각기 음과 양 의 이기를 키워서 나중에 그것을 합치게 되면 거대한 용이 되어서 하늘 로 승천하게 된다고 하는데 비록 그것이 사실일지는 몰라도 백리자성은 느닷없이 자신이 그와 같은 괴물을 만나게 되었을 줄 몰랐다. 운성죽은 싸늘하게 코웃음을 쳤다. "이곳은 바로 만독담이기 때문에 오직 그와 같은 물건만이 자랄 수가 있는 것이다. 나는 원래...... 원래 이 물건을 교묘하게 사로잡아서 데리고 가서 기르려고 했었는데 네놈이 감히 괴물이 입을 열고 단기(丹氣)를 토 하고 있는 통을 타서 놈의 입속으로 들어가다니 이는...... 이는 실로 무례 한 짓이다!" 백리자성은 운성죽의 말을 듣는 순간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순간적으로 이미 그녀의 말을 통해서 모든 사실을 알 수가 있었기 때문 이다. 그렇다! 원래 백리자성은 아주 끝없이 높은 곳에서 떨어지게 되었는데 만일 그 가 바위에 떨어지거나 심지어 물 위에 떨어지게 된 육신이 산산이 부서 져 버릴 것이었는데 실로 공교롭게도 그의 몸은괴물이 마침 단기를 토하 고 내식을 하고 있는 틈을 타서 그 솟아올린 단기의 중앙에 떨어지게 되 었던 것이었다. 실로 그 단기의 윗부분은 가장 부드럽고 솜보다도 유연하며 그러면서도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백리자성의 몸은 비록 거대한 충격을 느끼기는 했지만 부서지지 않았던 것이었다. 이때 마침 괴물은 두개의 내단(內丹)을 쏘아올려 기운을 빨아들이고 있 었던 만큼 느닷없이 자신의 단기에 충격이 느껴지자 급히 그 내단을 입 속으로 빨아들이게 되었다. 그런데마침 백리자성의 몸은 단기에 휩쓸려 있었기 때문에 엉겁결에 손 을 쓸 사이도 없이 괴물의 입속으로 빨려들어가고 말았다. 기실 운성죽은 이때 그와 같은 광경을 보았지만 실로 독룡의 뱃속에 들 어가게 되면 백리자성의 몸이 그대로 녹아버릴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별 로 신경을 쓰지도 않았던 것이었다. 제47장 전설의 우담화 그런데실로 누구도 미리 예측하지 못하던 사태가 공교롭게도 그 당시에 발생하여 모든일을 기이한 방향으로 이끌어갔던 것이다. 원래 백리자성의 몸은 자신의 잠력을 최후의 한방울까지 끌어내기 위해 서 그야말로 여러종류의 극독을 쓰게 되었고 그로 인해서 당시 그의 몸 에는 내력이 조금도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 따라서 백리자성의 몸은 이미 극독에 중독되어 있었기 때문에 쉽게 독 룡의 몸에서 중독되어 녹아내리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게다가 기이하게 도 함께 따라들어왔던 두개의 붉고 푸른 내단들이 텅 비어 있는 백리자 성의 뱃속으로 절로 들어가게 되었던 것이었다. 그것은 마치 진공의 속으로 공기가 빨려들어가는 것처럼 일단 괴물의 뱃속으로 들어가자 괴물의 제어하는 힘에서 벗어나게 되어 백리자성의 뱃속으로 빨려들어가게 되었던 것이었다. 또한 뿐만이 아니라 나중에 백리자성의 몸에서 그 두개의 내단이 합쳐 져서 하나로 융합되고 끝내 그것이 그의 몸으로 원기가 되어 스며들 때 에 이미 그러한 변화를 눈치챈 괴물의 뱃속에서 깊이 저장되어 있었던 독단(毒丹)이 그것을 저지하기 위해 백리자성의 뱃속으로 침투해 들어갔 다. 그러나실로 그것은 오히려 그를 도와주는 결과가 되었고 이독제독(以毒 制毒)의 원리에 입각하여 백리자성의 몸은 그야말로 거뜬하게 중독된 것 이 풀어지게 되어 원래의 독과 나중에 들어온 독이 합쳐져서 만독불침의 몸으로 화하게 되었으며 그것은 즉각적으로 괴물의 몸에 영향을 주게 되 었다. 비록 백리자성의 몸이 만독불침의 몸이 되어서 남에게 피해를 주게 되 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러나그러한 과정이 이루어지는 동안에 실로 극독과 극독의 일대 격전이 벌어져서 괴물의 몸속은 그 혈전장이 되었는 데원래 괴물은 자신의 몸에 축적하고 있었던 독단과 두개의 내단의 힘으 로 그 만독담에서 살아갈 수가 있었던 것이었는데 일순 그와 같은 것들 을 모조리 잃게 되자 더 이상 만독담에서 살아갈 수가 없게 되었고 안팎 의 변화에 의해 어이없게도 그대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따라서 혼절한 백리자성은 그 괴물의 몸이 녹아버림에 따라서 함께 만 독담의 안에 빠져들 상황이었지만 운성죽에 의해서 구출되게 되었던 것 이었다. 운성죽은 처음에는 그가 살아있을 줄 모르고 있었으나 이내 괴물의 변 화를 보고 모든것을 알아채고 괴물의 배를 갈라서 백리자성의 목숨을 구 했던 것이었다. 실로 얘기는 길었지만 이것은 백리자성이 거의 회생하게 된 원인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비록 그의 고질적인 불치병인 만절산맥은 고칠 수가 없어서 그대로 남 아있는 상태이지만 그러나잠력을 격발시켰던 그러한 모든 증상이 이미 깨끗하게 완치되어 당장에 목숨을 잃게 되는 일은사라지게 되었던 것이 었다. 백리자성은 물론 자신이 이제 앞으로 몇달이라도 더 살 수가 있다는 것 을 알고는 매우 기쁜 생각이 들었다. 그는 비록 그 다지 뛰어나다고는 할 수가 없지만 아직 몇가지의 유익한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다소 웃으며 그는 물었다. "내가 어떻게 보상을 해드리면 되겠소?" 비록 고의적으로 그런것은 아니지만 백리자성은 이미 자신의 목숨을 구 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에 의해 괴물마저 잃게 된 운성죽에 대해서 다소 간의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운성죽은 이에 기이하게 눈빛을 빛내며 말했다. "괴물은 이미 죽었으니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그러나 너는 지금 나와 함께 나의 성모궁으로 가야 하겠다." 백리자성은 이미 성모궁에서 남자를 데려다가 여자들의 몸속에 씨를 내 리게 하고는 죽여버린다는 얘기를 들은적이 있었으므로 다소 어이없어 하며 물었다. "아니 나와 같은 사람도 쓸모가 있다는 말이오?" 운성죽은 음침하게 웃으며 말했다. "사람들에게는 눈이 없어서 보지 못하지만 실로 너와 같은 사람이야말 로 천하의 기재라고 할 수가 있지.나는 너와 같은 기재의 씨앗을 받는 것 을 좋아한다. 그러나 호호호...... 네가 만일 나의 말을 잘 듣는다면 비단 그와 같은 일을 시키지 않을 뿐만 아니라 너를 고이 살려서 보내 주겠 다!" 백리자성은 자신을 고이 살려서 보내주겠다는 그녀의 말에 의아해졌지 만 이내 그가 궁금해져서 마악 질문을 하려는 순간에 문득 의식이 아득 하게 흐려졌다. 운성죽이 이미 그의 혼수혈을 제압하여 잡고서 하늘을 훨훨 날아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백리자성은 실로 오랫동안 혼수상태에 있다가 이윽고 눈을 떴다. 우선 눈앞에 들어오는 것은 그야말로 유리처럼 매끈하기 짝이 없으면서 지독한 한기(寒氣)를 발산하는 온통 빙벽으로 만들어진 실내였다. 벽면과 기둥 그리고 천정뿐만 아니라 그 가 지금 누워서 잠을 자고 있 었던 침상마저도 하나같이 투명한 얼음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비록 이 곳은 따라서 매우 아름답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냈지만 그 러나 지독히 추워서 몸살이 날 지경이었다. 아마도 전과 같은 상태였다면 백리자성은 견디지 못했을 것이나 이미 독룡의 내단을 복용하여 어느정도 견딜 수가 있는것 같았다. 그런데백리자성이 마악 몸을 일으켜서 침상위에서 내려서려고 하는 순 간의 일이었다. 문득 방문이 열리더니 두명의 매우 낯익어 보이는 소녀들이 안으로 들 어서는 것이 아닌가! "아!......" .......? 비단 백리자성 뿐만 아니라 그 소녀들 역시 일순간 매우 놀라고 있는것 같았다. 아니 실상 백리자성 보다도 그 소녀들의 놀라움은 더욱 커서 오히려 그 녀들은 너무나도 놀란 나머지 안색이 창백해지고 금방이라도 쓰러져 버 릴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그녀들은 일순 아득한 기분을 느끼더니 마치 쓰러지듯이 백리자성의 앞 으로 달려와서 그의 품속에 깊숙히 안겼다. "아아 공자님...... 공자님이 오셨군요!" 그렇다! 그녀들은 바로 다름이 아닌 홍아와 청아였던 것이었다. 비록 지금 그녀들은 전과 다르게 붉고 푸른옷이 아닌 똑같은 웃을 걸치 고 있었지만 백리자성은금방 그녀들을 알아볼 수가 있었고 구분할 수가 있었다. 백리자성은 전날 헤어져서 매우 그리워하고 있었는데 실로 그녀를 이러 한 곳에서 다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물론 홍아와 청아 역시 그에 못지않게 놀라고 반가운 기분인 것이었다. 백리자성은 너무나도 반가운 나머지 이곳이 적지라는 것도 잊고 그녀들 을 마주 얼싸안고 있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 그녀들을 다소 메어낸 다음에 물었다. "아니 이곳은 성모궁이 아니냐? 너희들은 어떻게 이곳에 왔지?" 홍아가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이곳은 성모궁이 틀림이 없어요. 저희들은 그 때 공자님께서 실종을 당 하신 이후에 낙심을 하고 부모님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 이곳으로 들어왔 던 것이예요. 만일 저희들이 원수를 갚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공자님의 뒤 를 따르고 싶었어요." 백리자성은 그녀들의 진심을 알고 나서 마음이 매우 뜨거워졌다. 그는 이내 당시의 상황을 대강 설명해 주고 나서 물었다. "너희들은 그런데 아직 화를 입지 않았느냐?" 홍아와 청아는 고개를 내저었다. "우리는 전날에 평범한 사람으로 가장을 하고 이곳으로 들어왔어요. 그 리고 부모님의 흔적을 찾아내어 복수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어요. 그러나 설산동모가 대부분의 날을 밖으로 나가있는 바람에 그럴 수가 없었는데 오늘은 이상하게도 저희들을 부르더니 공자님이 있는 방안으로 들어가라 고 하기에....... 정말로 이상한 일이었어요. 정말로 저희는 공자님을 뵙게 될 줄은 몰랐어요." 말과 함께 홍아와 청아는 다시 그의 품속으로 달려들어서 그의 뺨에 이 마 심지어 입술에 이르기까지 마구 얼굴을 부벼왔다. "그것은 너무나도 그리웠던 마음의 표현이었기 때문에 백리자성은 개의 치 알고 오히려 감격했으나 이내 그녀들을 다시 떼어놓고 말했다. "그녀가 혹시 너희들의 정체를 눈치챈 것 같지 않더냐?" 홍아와 청아는 잠시 백리자성의 몸과 접촉하면서 안색이 불그레하니 상 기되어 있었는데 그 말을 듣고나자 문득 안색이 다시 창백해졌다. 홍아가 놀라 말했다. "그그렇다면.......?" 백리자성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운성죽은 실로 보통의 인물이 아니다. 자신의 집안에 적이 스며들어 와 있는 것을 모른다면 어떻게 여태까지 그렇게 성모궁을 이끌어 올 수 가 있었겠느냐?" 청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우리를 느닷없이 공자님의 방으로 보냈던 것은 무슨 이유가 있 었을 거예요! 실은......." 청아는 이어 붉은 얼굴로 기어들어가는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실은 우리는 만약에 어떤 일이 벌어지거나 하면 이곳에서 자결을 하여 빨리 공자님의 뒤를 따라가려고 했었어요." 당시 홍아와 청아는 이미 백리자성이 죽은 줄로만 알았었는데 그와 같 은 생각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녀들의 무공이 비록 강호에서는 날리던 것이었다고 해도 이곳 에서는 삼류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할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는 것이었 다. 청아는 말을 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야말로 신이 보우하여서 이렇게 공자님을 다시 뵙 게 되리라고는 정말로 상상도 하지 못했어요. 앞으로 저는 공자님의 곁을 결코 떠나지 않겠어요. 설사 부모님의 원수를 갚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런것은 아무래도 상관이 없어요." 청아는 말끝에 마치 정말로 그와 떨어지지 않을 셈인지 그의 몸에 바싹 달라붙어서 기쁨의 눈물을 줄줄 흘리는 것이었다. 백리자성은 감격하여 그녀의 뺨과 입술에 각기 입을 맞추어 주고는 입 을 열어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일단은 이곳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하지 않을 수가 없 다. 그간에 혹시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출구 같은 것을 보아두지 않았느 냐?" 홍아 역시 그의 품속에 얼굴을 파묻고 있다가 고개를 들며 말했다. "참! 비록 출구는 모르지만 한 가지 기이한 사실을 알아냈어요. 그것은 바로 요사이 설산동모가 유난히 밖으로 돌아다니는 이유와도 통하는 것 이예요." 백리자성은 웃으며 물었다. "그것은 무엇이냐?" 홍아는 대답했다. "바로 우담화(優曇華)라는 것이 이 성모궁의 지하 깊숙한 곳에 자라나고 있다는 것이예요." (......) 백리자성은 문득 우담화라는 얘기를 듣자 절로 크게 놀라게 되어서 자 신도 모르게 가슴이 세차게 뛰는 것을 느꼈다. 자신의 만절산맥은 물론 불치의 병이었다. 그러나천하에서 오직 그 전설의 우담화만은 그러한 만절산맥도 고칠 수 가 있게 하는 것이었다. 백리자성이 만약 만절산맥을 고치고 우담화에 의해서 어떤 능력을 얻게 된다면 거의 절망적인 당금의 천하를 바르게 되돌릴 수가 있게 되지 않 을까? 백리자성의 머리는 단숨에 여기까지 생각하게 되었고 이내 깊은 집착이 생겨나는 것을 느끼며 마음이 흔들렸다. 홍아는 그의 얼굴을 보며 다시 말했다. "저희는 그 사실을 설산동모의 행적을 탐문하는 과정에서 알아내게 되 었는데 글쎄 그것이 지하의 만독담 속에서 자라나고 있는데 실로 그 독 의 성질이 너무나도 극독하기 때문에 설산동모도 감히 우담화를 취하러 접근할 수가 없다고 하던데요?" 백리자성은 만독담의 얘기를 듣게 되자 즉시 생각했다. (아! 그러고 보니 신주팔패 가운데에서 유독 성모궁의 사람들만은 움직 이지 않았었는데 알고 보니 그 이유는 그녀가 우담화를 캘 생각으로 떠 돌아 다니고 있었기 때문이었구나! 그래서 그 독룡이 필요했던 것이 고......) 만일 운성죽이 우담화를 복용하게 된다면 그 능력이 얼마나 높아지게 될지 알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백리자성은 문득 기이한 느낌이 들어서 물었다. "그러한 얘기는 극비에 속하는 것일텐데 너희들이 어떻게 그 얘기를 듣 게 되었던 것이지? 그리고 그 우담화는 정말로 있는 것일까?" 홍아는 그 말을 듣고 다소 안색이 변했다. "저희는 사실 방금전에야 그 우담화의 얘기를 들었어요. 그런데 느닷없 이 설산동모가 우리를 부르는 바람에 더욱 놀랐었죠." 기실 우담화는 전설에나 나오는 것으로 세상에서 아직 그것을 실제로 보았다는 사람은 하나도 없는 상태였다. 실로 그와 같은 사실이 있다면 누구에게도 비밀로 할 것이며 누설되지 않게 할 것이다. 청아가 놀라며 물었다. "그럼 그녀는 일부러 그 얘기를 하도록 우리를 공자님께 보냈던 것인가 요?" 백리자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틀림없어. 기실 그녀는 천하각처로 돌아다니고 있었지만 이미 너희들의 출신과 내력에 대해서 소상하게 알고 있었던 것이분명해! 그렇지 않고서 야 이렇게 모든 일이 공교로울 수는 없는 것이지." 이어그가 자신이 이제까지 겪었던 일에 관해서 얘기해 주고 마지막으로 운성죽과 만나게 되었던 사연에 대해서 말해주자 홍아와 청아는 백리자 성의 말이 사실임을 깨닫고 안색이 변했다. 그러나청아는 문득 눈빛을 빛내며 말했다. "그러나 이일은 아마도 그녀가 다소 착각을 한 일인것 같아요. 만일 공 자님께서 우담화를 손에 넣으신다면 즉시 복용하시고 힘을 발휘하면 우 리도 구하고 그녀를 물리칠 수가 있는 것이 아니겠어요?" 홍아도 맞장구를 쳤다. "맞아요! 공자님께서 그저 즉시 우담화를 복용하시면 되는 것인데 거기 에 무슨 다른 변화가 일어날 리가 없는 것이죠. 그렇게 하도록 해요!" 그녀들은 백리자성이 병을 고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자 매 우 기뻐하며 어쩔줄을 몰라했다. 헌데 그 때였다. 느닷없이 밖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오더니 다음과 같은 음성이 울려퍼 지는 것이 아닌가! "성모께서 납시오!" 성모궁에서 설산동모는 일명성모라고 부르는 모양이었다. 아니나 다를까이윽고 방문이 열리면서 여러명의 시녀들이 거느리고 설 산동모가 지극히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었다. 그녀는 문득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멀뚱하니 서 있는 홍아와 청아를 향 해 소리쳐 욕을 했다. "아니 너희들은 열심히 시중을 들라고 보냈더니 어째서 그와같이 멍하 니 서있는 것이냐? 죽고 싶으냐!" 운성죽의 말에 홍아와 청아는 다소 어리둥절한 눈빛이 되었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그녀는 전혀 그녀들과 백리자성과의 관계에 대해서 모르고 있는것 같지 않은가? 그럴리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홍아와 청아는 내심 혹시나 그럴 수도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다소 마음이 부풀었다. 운성죽이 그녀들의 정체를 모르고 있는 것이라면 이제 백리자성이 이곳 을 벗어나는 일은 그다지 전혀 가능성이 없는 일이 아닌 것이었다. 마치 그러한 그녀들의 심사를 알기라도 하듯이 백리자성이 문득 입을 열어 말했다. "그녀들은 지금 나를 극진하게 보살피고 있는 것이니 너무 꾸중하지 마 시오!" 그러자 "그래?" 운성죽은 다소 기이하다는 표정으로 홍아와 청아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그녀는 알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그러나 너희들은 어째서 본좌를 보고도 전혀 인사조차 하지않는 것이 지?" 홍아와 청아는 그말에 다소 마음이 섬뜩해져서 즉시 그녀를 향해 공손 히 예의를 올렸다. "삼가 성모님을 배알합니다!" 운성죽은 그녀들의 절하는 모습을 보는둥 마는둥 하더니 이윽고 싸늘하 게 말했다. "그럼 너희들은 이만 물러가 있거라!" 홍아와 청아는 그 말에 다소 머뭇거렸다. 이제 백리자성의 곁을 떠나게 되면 앞으로 어떻게 만나게 될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설령 죽음을 당한다 해도 이제는 도저히 그의 곁을 떠나고 싶지 않은 것이 그녀들의 마음이었다. 그것을 보고 백리자성이 웃으며 말했다. "나는 사실 이 두명의 시종들이 아주 마음에 들었소. 그녀들을 보내지 말고 앞으로 나의 부축을 해주게 하는 것이 어떻겠소?" 원래가 그녀들은 백리자성의 시종들이었기 때문에 백리자성의 입에서는 시종이라는 말이 저절로 흘러 나왔다. 운성죽은 잠시 기이한 눈초리로 홍아와 청아를 바라보더니 문득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너의 몸이 불편하니 옆에서 부축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할 것이 다." "너희들은 앞으로 추호도 실수가 없이 이분 공자의 시중을 들어주어야 한다. 알겠느냐!" "예저희들은 앞으로 한시도 공자님과 떨어지지 않고 보살피도록 하겠습 니다!" 홍아와 청아는 문득 한시라도 자신들의 말을 상기하고는 거기에 어떠한 의미가 느껴져서 사르르 안색을 붉혔다. 그것을 보고 운성죽은 싸늘하게 코웃음을 치더니 이어 백리자성에게 말 했다. "자! 이제 나를 따라서 가자!" 백리자성이 물었다. "어디로 가자는 것이오?" 운성죽이 냉랭하게 말했다. "만일 나에게 대접을 받고 싶다면 그만한 일을 해야 할 것이 아니냐? 지금 바로 그 일을 하러 가자는 것이다!" 백리자성은 이에 대해서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내가 무슨 일을 하게되는지 대강의 사정은 알아야 도와주든지 할것이 아니오?" 운성죽이 잠시 그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문득 할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것은 하나의 꽃을 따오는 일이다. 그 꽃은 내가 연공을 하는데 없어 서는 안되는 아주 중요한 것인데 부근에 독장(毒獐)이 많아서 만독불침인 네게 시키는 것이다." 백리자성은 그 말을 듣고 우담화의 말이 사실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생각했다. 운성죽의 어조에는 어딘가 감추고 있는 듯한 인상이 드러났기 때문이었 다. 백리자성은 일어나서 말했다. "그러나 나는 다시 당신에게 안기기는 싫으니 이 두명의 시종들에게 나 를 안내하라고 시키시오!" 그 말에 운성죽은 음침하게 웃으며 코웃음을 쳤다. "흐흐흐그래도 끌에 젊은 계집을 더 좋아하는군!" 그러나말로는 그래도 전적으로 그것을 거부하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이윽고운성죽이 단독으로 앞장을 서고 홍아와 청아가 백리자성의 몸을 양쪽에서 부축한 채로 네 사람은방을 벗어나서 계단을 따라 아래쪽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아래쪽으로 내려가는 지하계단은 매우 오랫동안 계속되었고 아주 깊었 다. 그러나운성죽은 그 계단이 끝나는 곳에 이르러서도 계속 지하를 향해 내려갔다. 이제부터는 길이 없고 그 저 까마득한 벼랑이 이어지고 있어서 홍아와 청아도 백리자성을 부축하고는 아래로 내려가는 일에 매우 곤욕을 치루 어야만 했다. 단지 운성죽은 마치 허공을 스르르 미끄러져 내려가는 것 같았고 실제 로 허공으로 가볍게 움직이기도 했다. 대체 얼마나 그렇게 내려갔을까. 사방이 이미 칠흑같이 어두워져 있는 상황에서 감각에 의해서 몸을 날 리고 있었는 데거의 기력이 다할 즈음에 운성죽은 드디어 몸을 멈춰세웠 다. 문득 아래쪽에서 기이하고 음산한 기운이 느껴졌는데 운성죽이 불을 켰 는지 주위가 훤하게 밝아졌다. 그러자 홍아와 청아 등은 아랫쪽으로 시선을 던졌는데 일순 기이한 광 경에 가볍게 놀라고 말았다. 광장그들의 발 아래에는 그야말로 화산의 분화구와도 같은 거대한 지하 광장이 펼쳐져 있었고 거기에는 그야말로 지독한 악취를 풍기는 검은 독 액들이 가득차 있었다. 이른바 이곳이 바로 만독담인 것이었다. 그런데검은 기운으로 가득차 있는 광장의 중앙에 실로 기이하게도 마치 거대한 구름이 상서로운 빛을 발하듯이 기이한 황금빛의 꽃이 그 만독담 에서 피어올라 공중에서 상서로운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었다. 우담화 전설에 의하면 그것은 실로 신비로운 장소에서 피어나는 것이며 일만년 에 겨우 한송이를 피어 올린다고 한다. 그 약효는 실로 불가사의하여 형용할 수조차 없다고 하는데눈앞의 그 황금빛의 거대한 꽃이 바로 우담화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그 우담화는 꽃송이가 일천개는 안되어도 물경 수백개는 될 것 같았는 데 홍아와 청아 등은 실로 그 우담화의 신비로운 기운과 거대한 꽃송이 를 보고 놀라 마지 않았다. 백리자성이 문득 그 황금빛의 우담화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 꽃이 바로 저것입니까?" 운성죽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나는 저곳으로 갈 수가 없으니 네가 가서 구해오도록 해라!" 그 말에 홍아가 의심스럽다는 듯이 물었다. "아니 저 꽃은 저렇게 거대한데 어떻게 공자님이 그것을 가져올 수가 있죠 ?" 운성죽은 눈살을 찌푸렸다. "저 꽃은 비록 크게 보이나 그것은 그 기온이 최고조에 달해서 펼쳐졌 기 때문이지 결코 무거운 것이 아니다. 게다가 너는 굳이 들고올 필요가 없이 그저 이끈의 끝을 그 아래에 묶어주기만 하면 된다." 이번에는 청아가 물었다. "그렇지만 어떻게 저 안으로 건너가죠?" 지금 만독담의 주위에는 우담화가 있는 주위에 그야말로 짙은 독무(毒 霧)가 피어 있었고 사방에서 독바람이 은은히 풍뢰치듯이 불고 있어서 설사 홍아와 청아가 단독으로 움직인다고 해도 어려울 것이며 이미 운성 죽도 그 독기를 이기지 못해 갈 수가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청아의 그 말에 운성죽은 그저 싸늘하게 대꾸했다. "쓸데없이 나서지 마랏!" 제48장 불가사의-대단원 이어 운성죽은 자신의 등뒤에서 하나와 가느다랗고 얇은 줄을 꺼내서 앞으로 내던졌는데기이하게도 그것은 실처럼 가느다라면서도 은빛으로 빛나고 있었고 또한 대단히 질긴 것 같았다. 신기하게도 그것이 운성죽의 촌길에 따라서 앞으로 곧장 뻗어가서 우담 화가 있는 부근에 도달하는 것이었다. 그것을 보고 홍아가 놀라서 소리쳤다. "아! 성모께서 그대로 저 꽃을 후려쳐서 따오면 되겠네요!" 그러나운성죽은 미간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쓸데없이 떠들지 마랏! 저 꽃은 감히 함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홍아와 청아는 그 말을 듣고 이미 그것이 우담화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 다. "어서 가서 내가 시킨대로 해라!" 운성죽이 재촉을 하자 백리자성은 길게 심호흡을 한 다음에 즉시 품속 에서 금침을 꺼내어 자신의 몸의 잠력을 일으켰다. 운성죽은 그의 그러한 손놀림을 유심히 살펴보았지만 말리지는 않았다. 백리자성은 이어 안색이 붉어진 이후에 공력을 얻게 되어 몸을 가볍게 하고 그 가느다란 줄을 손에 잡고 천천히 그 쪽으로 미끄러져 가기 시작 했다. 과연 일단 만독담의 안으로 들어서자 비릿하고 괴이한 냄새가 진동하면 서 정신이 아득해져 오는 것이었다. 그의 몸은 이미 만독불침의 몸인데도 그와 같은 증세가 일어나다니 이 곳의 독기운은 실로 대단한 것임에 틀림이 없었다. 그러나그의 몸이 만독불침인 것은 거짓이 아니어서 이내 그의 몸은 정 신이 바로 잡히게 되었고 어지러움도 사라지게 되었다. 백리자성은 이미 일전에 잠력을 격발시켜 무서운 무림의 고수였던 적이 있었다. 따라서 지금은 비록 그와 같은 공력을 발휘하지는 못했지만 그러나 무 예를 펼치는 것 만큼은 아주 익숙했다. 그는 이내 만독담의 독기에 익숙해지자 즉시 부드럽게 줄을 타고 우담 화가 있는 쪽으로 미끄러져 가기 시작했다. 홍아와 청아는 그러한 광경을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지켜보았는데이윽고 백리자성이 우담화의 근처에 도달하자 긴 한숨을 내쉬었다. 당사자인 백리자성은 일단 우담화의 근처에 도달하자 아주 신기하게도 비릿하고 다소 어지럽게 하던 독기운이 말끔히 사라지고 향긋하며 뭐라 고 말할 수 없는 기이한 힘이 전신에 충만됨을 느꼈다. (과연 틀림이 없는 우담화로군!) 눈에 보이는 모습이나 그 향기 혹은 기질 등은 모두 서책에 적혀 있었 던 우담화의 성질과 똑같은것이었다. 백리자성은 이제 그것을 복용하면 자신의 병이 치유됨은 물론이요 상상 하기 어려운 능력을 갖게 된다는 것을 상기하자 가슴이 무섭게 뛰는 것 을 의식했다. 그는 일단 우담화의 근처에 다가가서 꽃의 줄기에 줄의 끝부분을 물은 다음에 잠시 망설였다. 지금이라도 눈을 딱 감고 우담화를 복용하면 만사는 아주 훌륭하게 아 갈 것이었다. 헌데 그때였다. "어서 그것을 복용하세요!" 청아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돌연 음산하기 짝이 없는 운성죽의 음 성이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애숭아! 어서 이 계집들을 살리고 싶다면 그 꽃을 꺾어라!" 백리자성은 마음의 갈등을 일으키며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이미 운성죽은 양손에 하나씩 홍아와 청아를 들고 있 었는데 그녀들은 이미 제압이 되었는지 꼼짝도 하지 못했다. 만일 운성죽이 그녀들의 몸을 놓는다면 그녀들의 몸은 즉시 독담의 안 으로 떨어져서 일순간에 한줌의 독수로 녹아버리게 될 것이었다. 백리자성은 그것을 보자 내심 탄식을 하며 말했다. "어쩌자는 것이오?" 운성죽은 음산하게 웃으며 말했다. "너의 이 두명의 시종들을 구하고 싶다면 어서 그 우담화를 나에게 건 네주어라!" 아아....... 그렇다! 운성죽도 이미 그것이 우담화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홍아와 청아는 이때 안간힘을 다해서 백리자성을 향해 눈짓을 보내고 있었는데 백리자성은 물론 그런 그녀들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들은 괜찮으니 어서 우담화를 복용하라는 것이었다. 실로 우담화라는 것은 말 그대로 보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 꽃송이는 일만년에 한번 피는 것이지만 기실은 일억년 흑은 일겁에 걸쳐서 한번이라도 볼 수가 있을지가 의문인 가장 희귀한 것이었다. 역시 가장 회귀한 만큼 가장 불가사의한 능력을 가져다 주는 전설상의 꽃이었다. 그러나백리자성은 이미 마음을 정하고 있었다. 그는 담담히 웃으며 말했다. "내가 우담화를 주는 것은 어렵지 않소. 그러나 한가지의 조건이 있소." 운성죽은 그가 그와 같이 순순히 나오자 득의와 표정으로 말했다. "무슨 조건이냐?" 백리자성은 홍아와 청아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녀들은 원래 나를 찾기위해 이곳으로 잠입해 들어왔던 것인데 만일 그녀들을 무사히 살려서 보내주겠다면 나는 이 우담화를 드리겠소." 백리자성은 비록 운성죽이 그녀들의 신분을 알 수도 있지만 그러나 모 를 수도 있다는 생각하에 최대한으로 요령을 부려서 말한 것이었다. 이에 운성죽은 기이하게 웃으며 물었다. "너는 그럼 살고 싶지 않다는 말이냐?" 백리자성은 가볍게 웃었다. "나는 이미 당신이 나를 살려두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소. 내 가 어찌 불가능한 일에 욕심을 내겠소? 다만 당신은 일파의 종사이니 만 일 그녀들이라면 가벼운 존재이므로 말을 번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 하고 있는 것이오." 그렇다! 기실 백리자성이 자신마저 살려달라고 했다면 운성죽은 우선 우담화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수락할 것이지만 결국에는 그를 죽이려고 할 것이고 따라서 홍아와 청아도 죽이게 될 것이다. 그러나만일 백리자성이 죽는다면 홍아와 청아는 그녀에게는 있으나 마 나한 존재이므로 살려두어서 나쁠 것이 없을 것이다. 운성죽은 음침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그야말로 현명하구나! 신주팔패의 주인들이 너를 경계했던 이유를 알 수 있을것 같다. 확실히 나는 너를 살려둘 수가 없다. 그러나 이 계집 아이들이라면 그 까짓 살려주어도 상관이 없지." ........ 홍아와 청아는 이미 제압이 되어서 아무런 말도 못하고 있지만 마음속 으로 백리자성이 자신들을 위해서 그 귀한 우담화 마저 포기하는 것을 보고는 눈물을 줄줄 흘러내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녀들은 이순간 말은 하지 못했지만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뭔가 깊 이 결심한 바가 있는 것 같았다. 백리자성은 운성죽이 그와 같이 약속을 하자 고개를 끄덕인 다음에 말 했다. "이 우담화는 향기가 매우 짙어서 일단 줄기를 자르게 되면 즉시 복용 해야 약효가 그대로 보존되는 것이니 명심하도록 하시오!" 백리자성은 홍아와 청아를 살려준다고 하자 문득 그런 가운데에서도 부 드러운 마음이 일어서 약리상의 지식을 말해준 것이었다. 운성죽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그런것은 나도 알고 있으니 염려하지 마랏!" 백리자성은 한차례 홍아와 청아의 얼굴을 깊이 바라본 다음에 얼굴에 가볍고도 온화한 웃음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럼 우담화를 드릴테니 가져가도록 하시오!" 말이 떨어지자백리자성은 내력을 운용하여 우담화의 줄기를 잘랐고 이 내 그것이 운성죽의 손아귀로 밧줄을 따라 나아가는 것을 보고 미련없이 독담의 속으로 떨어져 내려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 홍아와 청아는 그와같은 광경을 바라보다가 두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뭔가 애타게 갈구하는 빛을 보였다. 그것을 그녀들이 백리자성의 뒤를 따라서 함께 안으로 뛰어들지 못하는 것이 한스럽다는 표정 들이었다. "흥!" 운성죽은 그와 같은 그녀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싸늘하게 코웃음을 친 뒤에 일단은 그녀들을 한쪽의 바닥에 내려놓은 뒤에 자신의 손아귀에 들 어온 거대한 우담화의 꽃을 바라보다가 일순 입을 커다랗게 벌렸다. 그러자 즉시 그녀의 입속에서 오색의 빛무리가 일어나더니 그대로 우담 화의 꽃을 휘어감아서는 단숨에 삼켜버리고 다시 그녀의 입속으로 들어 가는 것이었다. 그러한 광경은 마치 그녀의 입속에서 나온 거대한 괴물이 그 커다란 입 으로 우담화를 삼키고 다시 들어가는 것이나 다름이 없어서 괴이쩍은 느 낌을 불러 일으켰다. 게다가 이 우담화를 복용하는 광경은 실로 다시 없을 것이어서 운성죽 은 우담화를 말끔히 복용한 이후에 매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기실 홍아와 청아는 이미 자신들이 백리자성의 뒤를 따라서 죽 을 결심을 했기 때문에 그와 같은희세의 기진인 우담화에 대해서 전혀 관심도 없는 상태였다. 운성죽은 그것을 보고 일단은 그녀들의 손발의 혈도를 풀어준 연후에 마악 다른 곳으로 움직이려 했다. 이곳에서는 독기가 있어서 풀지 못하므로 다른 곳으로 가서 운기행공을 하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마악 신형을 날리려던 운성죽의 두눈이 느닷없이 괴이하게 변하더니 부 들부들 전신을 떨며 마구 몸부림을 치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 홍아와 청아는 그것을 보고 마악 만독담의 안으로 투신하려다가 놀라서 달아나기 시작했다. 만일 그녀들이 투신을 하고 있는데 운성죽이 이를 방해하기라도 하면 곤란한 노릇이었기 때문이었다. 홍아와 청아는 운성죽이 점차로 지랄발광을 하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다소 의아해 하면서도 일심으로 신형을 날려서 왼쪽으로 올라갔고 이어 벼랑의 가장 튀어나온 부분에 이르러 힘껏 동시에 몸을 날렸다. 그것은 바로 백리자성과 같은 만독담의 중앙에 떨어져 죽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때 아주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홍아와 청아는 원래 만독담에 떨어지면서 죽음의 공포를 의식하고 절로 눈을 감게 되었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자신들의 눈을 휘황하게 밝히는 빛이 있어서 아래를 내려다 보니 기이하게도 아까 우담화가 있었던 자리에는 마치 그와 비슷 하게 생긴것이 하나가 또 생겨나 있는것이 아닌가! 다만 이번의 것은 아까의 것에 비해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크기가 작았고 모양도 달랐으며 연꽃의 형상이었는데 그 위에는 사람이 하나 조 용히 앉아 있었다. 아니 그 연꽃은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는 것이지만 성결스러운 느낌을 주었고 독담과 줄기를 박고 있는 것이 아닌것 같았다. 홍아와 청아는 처음에는 그것이 또하나의 우담화가 아닐까하고 생각했 으나 이내 자신들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깨닫고 그위에 앉아 있는 사 람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놀라서 소리쳤다. "공자님!" 그렇다. 그녀들이 소리친 순간 이미 그녀들의 몸은,기이한 힘에 이끌려서 사뿐하 게 떨어져 내려서 백리자성의 몸 부근에 머물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그녀들은 허공을 밟고 서 있는 것인데도 전혀 아래로 떨어 지지 않았고 편안하기가 반석과도 같았다. 그리고 백리자성은 그녀들의 손을 각기 하나씩 잡고는 미소하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이제 우리에게 걱정은 사라졌으니 염려하지 마시오." 홍아와 청아는 마치 자비로운 듯한 고요한 미소가 가득차 있는 백리자 성의 은은한 금빛이 어린 얼굴을 보면서 일시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이미 백리자성이 놀라운 어떤 성취를 이루었다는 것을 직감적으 로 알아차리고 그녀들의 두눈에는 감격의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기 시작 했다. 이때 백리자성은 천천히 공중으로 그 연꽃과도 같은 것을 타고 솟아오 르면서 운성죽의 모습을 바라 보고 있었다. 원래 그연꽃은 꽃이 아니라 백리자성의 몸에 붙어있는 것이거나 그의 몸에서 생겨난 것이었던 모양이였다. 그것은 멀리서 보기에는 분명한 연꽃과도 같았으나 기실 가까이 와서 보니 마치 구름과도 같아서 정체를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홍아와 청아도 그러한 것을 살펴보다가 이하 백리자성을 따라서 시선을 운성죽이 있는 곳으로 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그녀들은 눈이 휘둥그래지도록 놀라고 말았다. 운성죽그녀는 지금 기이하게 변해가고 있는 중이었다. 우선 육신이 시뻘겋게 변하면서 갈가리 찢어지고 머리가 백발로 변하면 서 얼굴 또한 기괴하게 늙어버리더니 전신의 살갗이 툭툭 터져나와서 온 통 피투성이가 되어가는 것이었다. 물론 가운데에서 소녀의 처절무비한 비명소리가 끊어지지 않았다. 그렇다! 그녀는 지금 죽어가고 있는 것이었다. 비록 그 여덟명의 초인들은 거의 불사의 무공을 이루었지만 이와 같이 죽을 수도 있었다. 운성죽의 죽어가는 모습은 기실 천하에서 가장 참혹하다고 할 수가 있 었다. 비록 그녀의 육신은 갈가리 찢어져서 신경이 끊어졌지만 아직 죽지 않 았는지 괴이한 그녀는 비명소리를 연신 지르면서 사방을 공포의 도가니 로 물고 가고 있었다. 일순 그녀의 전신이 급기야는 퍽하는 소리와 함께 터져서 먼지와 함께 사방으로 날려가 버리자 그 자리에는 오색의 기이한 형상을 하고 있는 투명한 물체가 남았다. 홍아와 청아는 그것이 바로 원영(元瓔)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그 원영은 원래는 결코 부서지지 않는다는 금강불괴의 몸이었다. 그러나이내 그것은 잠시 부르르 떨리더니 마치 얼음이 한꺼번에 깨어져 버리듯이 부스스 하고 부서져 버리는 것이 아닌가. 이미 운성죽의 비명소리는 끊어지고 없었다. 그리고 이제 그녀가 세상에 살아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거의 불사의 몸을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지나친 욕심을 부리고 사악하게 살아왔던 그녀의 육신은완벽하게 소멸되었던 것이었다. 홍아와 청아가 다 함께 어안이 벙벙하여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는데이 미 그녀들의 손을 잡고 백리자성은 위로 올라가기 시작하고 있었다. 백리자성의 지금의 이러한 신법은 아주 기이하여 처음에는 조금도 기척 이 느껴지지 않아 홍아와 청아는 미처 자신들이 올라가고 있는 지 모르 고 있었었다. 그러다가 문득 홍아가 제정신을 차리고 입을 열어 백리자성에게 궁금한 점을 물었다. 공자님! 그럼 그 설산동모가 복용했던 우담화는 가짜였나요?" 백리자성은 미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나도 실은 몰랐었는데그것은 외형만 닮았을 뿐이고 그야말로 극독중에서도 극독이어서 금강불괴나 만독불침이라고 할지라도 견딜 수 가 없는 독화(毒花)였소." 홍아는 백리자성의 말을 이해하고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혹시 공자님께서는 그 독담의 안으로 들어가셔서 진짜 우담 화를 복용하게 되셨던 것이 아니었나요?" 이에 백리자성은 잠시 망설였다. 그러다가 문득 이렇게 대답했다. "그렇소. 나는 진짜 우담화를 복용하였소." 그 말에 "와아! 너무너무 기뻐요!......." 홍아와 청아는 일제히 지금 허공에 서 있는 것도 잊고 백리자성의 몸을 으스러지도록 껴안고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 그것은 이미 그녀들이 애타게 그리던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백리자성은 확실히 그 불치의 병을 완벽하게 치료할 수가 있었다. 아니 그의 몸과 마음은 이미 지극히 훌륭하고 심오한 경지에 이르러 있 었다. 따라서 그러한 경지에 대해서 필설로 형용을 한다는 자체는 이미 불가 능한 일일 것이다. 어느 날 천수자 백일맹은 자신에게 낯익은 장소를 거닐면서 다소 이해 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믿을 수가 없군! 그들이 어째서 느닷없이 그렇게 갑자기 사라지게 되었 다는 말인가? 나의 이 모든 계획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들어맞게 되어 있었던 것이었는데...... 그런데 느닷없이 천기(天機)의 흐름이 변화하다 니?......." 그때 눈앞에 느닷없이 멀리서 다가오는 일남이녀의 모습이 들어왔다. 일견하기로 그들의 모습은 매우 다정해 보였다. "여보! 이제 우리는 이 일만 끝내면 조용하게 은거하는 것인가요?" 그러자 남자는 담담하게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물론이오. 그리고 앞으로 누구도 이 모든 진실을 제대로 알기가 어려울 것이오." 다른 소녀가 그의 품속에 슬그머니 안기며 종알거렸다. "여보! 저는 너무...... 너무 행복해요!" 백일맹은 그들의 대화가 너무나도 또렷하게 들렸기 때문에 자신의 귀가 밝은 것을 탓하며 다소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데 놀랍게도 다시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문득 그 일남이녀는 어느 새 그의 눈앞에 조용한 모습으로 서있는 것이 아닌가! 백일맹은 실로 천하에 이와 같은 불가사의한 신법을 펼치는 사람도 있 을까 하고 경악해 하다가 이어 그 남자의 얼굴을 보고는 다시 한번 놀랐 다. 그렇다! 바로 그들은 백리자성과 홍아와 청아였다. 원래 그들 세사람은 이미 공자님 하고 부르던 사이를 떠나서 여보 당신 하는 사이로 변했으며 또한 불가사의한 백리자성의 힘으로 천하를 돌아 다니며 은밀히 신주팔패를 완벽하게 잠재웠다. 그 일은 실로 믿을 수 없이 완벽하게 행해져서 그 우두머리인 백일맹 조차 일순 당혹해져 있었던 것이었다. ........ 백일맹은 백리자성의 용모가 이미 병색이 사라지고 은은한 황금빛의 서 광이 떠올라 있는 것을 보고는 가볍게 탄식을 하며 말했다. 그는 이미 이 한순간의 만남으로 모든것을 파악했던 것이었다. "나는 세 번이나 기회를 놓쳤으니 이런꼴을 당해도 마땅한 것이다!" 이에 백리자성은 웃으며 말했다. "당신은 내가 손을 쓰기를 기다리는 것이오?" 백일맹은 잠시 그와 얼굴을 바라보더니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한 가지 부탁이 있는데 들어주겠는가?" 백리자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천륭세가는 무너뜨리지 않을 것이니 안심하시오." 그 말에 백일맹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네!" 순간의 일이었다. 퍽! 흡사 쇠북을 치는 듯한 요란한 음향이 들려옴과 동시에 백일맹의 전신 이 그대로 터져나가며 그 속에서 일순 행렬한 광채가 하늘높이 솟구쳐 오르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그 광채는 이내 하늘높이 사라져서 보이지 않게 되었다. 백리자성은 고요한 모습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천하는 이제 완전히 평정되었고 백리자성의 할일도 끝이 났다. 돌아가는 길에 홍아가 문득 궁금하던 것을 물었다. "그 천수자가 말했던 세 번의 기회라는 것은 무엇이었죠?" 백리자성은 미소하며 대답했다. "그는 첫번째로 나의 선친을 일제히 제거할 수가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고 또한 일전에 점창산으로 와서 나를 제거하지 않았던 점...... 그리 고 저번에 내가 찾아갈 때 완전하게 나를 죽이지 않았던 점을 말하고 있 는 것이오. 실로 그가 그 가운데에서 하나라도 실행했었다면 그는 이번에 대사를 성공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오." 그렇다! 과거 사도중맹이 점창파로 돌아오던 길에 들렀던 찻집의 그 백의중년서 생은 기실은 천수자의 화신(化身)이었다. 청아가 이번에는 물었다. "여보그 천수자는 우화등선을 한 것일까요?" 그 질문에는 백리자성은 담담하게 웃었다. "글쎄...... 나도 잘은 모르는 일이오." 그러나왠지 그의 미소는 의미심장했다. 마침내 백리자성은 홍아와 청아 그렇게 두명의 부인을 데리고 자신의 옛 집이었던 점창산 부근의 소장원으로 돌아왔다. 그런데그 곳에는 이미 그들에게 놀라운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기를 가지고 있는 이보유가 점창사수 등과 심황진의 보호를 받아가면 서 소장원에서 살고 있었던 것이었다. 원래 이보유는 신녀문이 일월신교에게 거의 멸망의 지경에 이르자 혼자 서 임신한 몸으로 뛰쳐나와 점창파의 사람들을 찾았던 것이었다. 마침 그녀는 심황진과 만나게 되어서 점창사수는 미처 그 태어나지도 않은 아기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조차 확인하지 않은채 자기의 점창장문 인으로 추대한채 심황진의 도움을 받으면서 점창산과 소장원에서 살아가 도록 힘써 보살폈던 것이었다. 실로 그러한 사람들에게 백리자성이 멀쩡하게 되어서 돌아오자 이는 마 치 기적이 벌어지고 불가사의한 사태가 벌어진 것이나 다름이 없게 되었 다. 백리자성은 물론 그 곳에 이르러 이보유와 심황진이라는 두명의 부인을 더 두게 되었고 아무런 말썽이 없게 되었다. 아기를 가지고 있는 이보유는 말할것도 없는 일이고 심황진은 하나의 부탁이 바로 그에게 시집가는 일이었다고 고백했던 것이었다. 이어 백리자성은 점창파의 장문인 대행으로 계속 여문량에게 일을 맡기 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점창파 제 21대 장문인 아기의 직위도 해제하지 않은채 자신은 계속해서 그 후로도 소장원에서 네명의 꽃다운 여인들과 함께 살았다. 따라서 강호에는 점창장문인의 이름이 드높았지만 그 진정한 장문인이 이렇게 멀쩡하게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여기에서 한가지만 알아보기로 하자. 과연 백리자성은 그 만독담에서 우담화를 복용하게 되었던 것일까? 아니었다. 기실 우담화라고 하는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비록 우담화는 없었지만 그에 버금가는 것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 은 바로 한 인간의 숭고한 올바른 깨달음이었다. 백리자성은 그 당시 자신의 모든 욕망과 삶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맑은 마음으로 죽음에 임하려고 하였으나 문득 자비에 넘쳐있는 그의 마음속 에서 맑고도 밝은 빛이 우러나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깨달음의 표시였고 그것으로 인해 그는 죽음속에서 극적으 로 되살아나오게 되었던 것이었다. <대 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