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 쓰기-번역란 (go ANC)』 625번 제 목:[번역] 부기팝은 웃지 않는다 Introduction 올린이:네메시스(김미진 ) 00/11/20 02:39 읽음:1155 관련자료 없음 ----------------------------------------------------------------------------- 부기팝은 웃지 않는다. 上遠野浩平(카도노 코헤이) ―부기팝 나는 자동적이야. 주변에 이변을 느끼면 떠오른다. 그래서 이름을 기분 나쁜 거품[부기팝]이라 하지. ―다케다 케이지 …부기팝에 대한 이야기는, 내겐 상당히 마음이 무거운 이야기다. 아직도 마음의 정리가 되어 있지 않다. ―미야시타 토카 조금 혼란시키고 싶었던 것뿐이에요. 미안합니다. ―키리마 나기 그건 부기팝이 한 일이야. 결국엔. ―만티코아 보았다면 살려둘 수는 없지. ―사오토메 후미 지금 당신은 우리의 적이다. ―스에마 카즈코 부기팝 이야기는 아마도 남자애들에게는 비밀인 듯 하다. 여자아이들만의 전설이다. ―다나카 지로 그가 그녀를 나보다도 더 좋아했던 게 아닐까하고 생각하니까. ―니이토키 케이 결국엔, 아무 것도 아닌 일이 되고 마는 거네. ―키무라 아키오 우주인이야. 그녀는 그녀석이 데리고 하늘로 올라갔어. ―가미키시로 나오코 왜 좋아하게 되는 상대를 고를 수 없는 걸까. 그렇게 된다면 좋을 텐데…. ―에코즈 어느 쪽이야? 어느 쪽이 진짜인 거야? Booigiepop and Others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인트로덕션 Introduction 장지문을 열고 엷게 어둠이 깔린 다실(茶室)의 다다미 위에 소년은 첫 발을 내딛었 다. "............" 그는 말없이 방석과 좌탁이 난잡하게 놓여있는 실내의 중앙을 쳐다보고 있었다. 실내는 문 사이로 희미하게 새어 들어오는 빛 밖에 없어서 모든 것은 흐릿하게 밖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방 한 가운데에 소녀가 한 명 죽어 있었다. 거꾸로 서서, 희고 두꺼운 목면 양말을 신은 가느다란 다리를 만세라도 하듯 벌리고 있었다. 바닥에 어깨가 닿은채 목이 동체와 같은 방향으로까지 구부러져 있었다. 피는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다. 길고 흐르는 듯이 예쁜 검은 머리카락이 다다미 위에 펼쳐져 있고, 그 눈은 공허하게 소년을 비추고 있었다. "............" 소년은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그 순간, 그의 코끝을 무언가 뜨거운 것이 위에서 아래로 스쳐 지나갔다. 그는 놀라서 그 방향 ― 천장을 보았다. 말을 잃었다. "봤군." 천장에 달라붙어 있던 살육자가 말했다. 그것은 소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남자 도여자도 아닌 생물. "보았다면 살려둘 수는 없지." 생물은 웃는 듯 혹은 노래부르는 듯이 말했다. 다음 순간, 소년의 몸은 덤벼 들어온 그 녀석에게 퉁겨 날려졌다. (........아아!) 어째서인지 소년은 그 때 기묘한 쾌감을 느끼고 있었다. · …일어난 일 자체는 아마도 간단한 이야기일 것이다. 남의 눈에는 굉장히 혼란스럽 고 맥락이 없는 듯 보여도 실제로는 아주 단순하고 흔히 있는 이야기에 지나지 않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입장에서 사건의 전모는 보이지 않 는다. 이야기의 등장인물은 자기 역할 외의 것을 알 길이 없는 것이다. 내 이름은 니이토키 케이. 현립 신요학원 2학년이다. 가끔 중학생 내지 심지어는 초등학생으로까지 오해를 받 을 정도로 꼬맹이지만 학교에서는 선도부장을 맡고 있다. "케이는 말야, 뭐라고 할까. 언니라는 느낌이라서 외견은 애들 같지만 의지가 된다 니까." 라고, 친구들은 반쯤 놀리듯 말한다. 나 자신은 나를 그다지 성실한 인간이라 생각 하지는 않지만, 주변에서는 그렇게 보지 않는 모양이다. 가끔 상담상대가 되주거나 곤란한 일이 생기면 부탁을 받거나 한다. 거기다 나는 조금 '병'이 있어 부탁 받으 면 싫다는 말을 못한다. "어떻게 안 될까, 케이?" "니이토키, 어떻게 안 될까?" …그런 말을 들으면 도무지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그래, 그것은 내가 실연을 한 때쯤의 일이다―. 우리학교는 현에서 중간정도 레벨인 진학교긴 하지만, 대부분의 고등학교에서 그러 하듯이, 생활지도는 선생이 하고 선도부는 그냥 폼이다. 그 예로 올해 들어서 가출 해 행방불명이 된 아이들이 여러 명 있는데도, 선생들은 흔히 있는 일이라며 당황하 거나 열심히 찾으려고 하질 않는다. 담임 선생이나 자기네 점수가 깎이니까 골치 아 파 할 뿐. 그랬다, 나는 아무 것도 몰랐었다. 나 그리고 나와 제일 친한 사람들 ― 그들이 무슨 일로 괴로워하고 어떤 것과 싸우 고 있었는지 전혀 알지도 못했고 거기에다 전혀 틀린 엉뚱한 상상을 하고 있었으니 까. 나 자신은 그런 될 대로 되라는 태도에 화가 나긴 하지만 이런 조그맣고 하찮은 정 의감 가지곤 실제로 아무 도움이 안 된다. 확실히, 진짜 엄청난 일이 일어나면 우린 어떻게 할 수도 없으니 말이다. 하기야 그거랑 선도부장이란 직책은 별 관계없지만. 하늘에서 온 남자와 그를 모방해서 만들어진 소녀 ― 그 두 사람을 쫓아서 기묘하게 얽힌 수많은 일이 엇갈리는 이 사건은 아마 그 때부터 이미 시작된 것이라 생각한다 . ------------------------------------------------------------------------------ 이 게시물은 上遠野浩平의 'ブギ-ポップは笑わない'을 번역한 것으로, 다른 곳으로 옮기실 경우 제게 메일만 보내주시기 바라며, 상업적인 용도로는 쓰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상업적인 용도가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문고본으론 좀 긴 관계로 각 화를 둘로 나누어 올리겠습니다. 그럼 이만. 오늘도 지구를 향해 돌진하는 네메시스. 『창작 - 쓰기-번역란 (go ANC)』 626번 제 목:[번역] 부기팝은 웃지 않는다 제1화 A 올린이:네메시스(김미진 ) 00/11/20 02:40 읽음:1003 관련자료 없음 ----------------------------------------------------------------------------- 제1화 낭만의 기사 Romantic Warrior ――――― 3학년 F반 다케다 케이지 1. …부기팝에 대한 이야기는 내겐 상당히 마음이 무거운 이야기다. 아직도 마음의 정리가 되어 있지 않다. 이제 그는 이 세상에 없지만 그래서 마음을 놓고 있는 건지 는 아닌지는 잘모르겠다. 이상한 놈이었다. 그렇게 이상한 놈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17년 동안 한 번도 만난적이 없었고, 이후로도 없을 것이다. ····· 그는 말하자면 변신히어로다. 그런 종류의 놈은 TV 안에서나 나오니까 재미있는 거지만 실제로 옆에 있으면 혼란 의 주범밖에 되질 않는다. 거기다 내 경우는 남의 일도 아니었고. 그놈은 결국 한 번도 웃는 얼굴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 언제나 어려운 표정을 하고, 내게 "다케다군, 세계는 오해로 가득 차 있어." ··· ··· ··· 같은 말만 하고 있었다. 귀여운 얼굴은 그대로라서 나는 늘 곤란했다. 하지만 그 부기팝은 이제 없다. 그놈이 말하던 게 전부 엉터리였는지 아닌지 이제 확인할 길은 없다. 그것은 가을도 중반으로 접어든 일요일의 일이었다. 나는 역 앞에 서서 나의 여자 친구에다 한 살 연하인 미야시타 토카를 기다리고 있었다. 만날 약속이 11시였는데, 그녀는 3시가 되어도 오지 않았다. 집이 엄한 듯 절대로 내가 전화를 걸면 안되기에, 나는 그녀가 연락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어 그 날도 화를 내면서도 묵묵히 참고 기다리고 있었다. "엥, 다케다 선배님 아니십니까?" 라는 말에 얼굴을 돌려보니, 같은 선도부의 후배인 사오토메가 있었다. 다른 녀석들도 셋, 여자애도 끼어 있었다. "아, 뭐냐. 너 그룹교제냐?" 나는 구닥다리 투로 얘기했다. "뭐, 그런 거죠. 선배님은 여자친구 기다리십니까?" 사오토메는 밖에서 봐도 교복일 때랑 인상이 변한 게 없다고 할까 어디에 있어도 잘 노는 타입일 듯 하다. "괜찮으세요? 남녀교제는 교칙위반일텐데." "시끄러워, 내버려 둬." "에, 그럼 그 쪽도 선도부예요?" 사오토메가 데려온 남자애가 말했다. 그래 임마, 미안하군. 하고 생각했지만 후배에게 심한 말을 할 수 없기에 '그래.' 라고 끄덕거렸다. "뭐야, 그럼 우리들도 당당하게 다녀도 되잖아." 그놈은 옆의 여자아이 어깨를 끌어안았다. 여자친구인 모양이다. "뭐 나야 상관없지만, 지도교사는 그렇게 생각 안 할 테니 들키지 않게 조심해." 라고 내가 둘러대니 그들은 키들거렸다. 그리고 "그럼, 이만."하고 가버렸다. 허나 조그맣게 "저거, 차인 거 아냐?"하고 여자애들이 말하는 게 들렸다. ‥‥‥쓸데없는 참견이라고. 선도부 같은 게 좋아서 하는 게 아니라 누가 안 하면 안되니까 별 수 없이 하는 거지. 결국, 그 날 토카는 오지 않았다. (정말 채인 건가. …하지만 그런 낌새는 전혀 없었는데) 나는 암담해졌지만, 미련이 남아 5시까지 기다렸다. 터벅터벅 혼자 거리를 걸어가고 있으려니 내가 세계에게 버려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대학에 가지 않기 때문에 요즘 주위 놈들이 모두 수험생인 학급에서 겉돌게 되는 등, 축 쳐질 일들뿐이었다. 그때였다. 사람들이 왔다갔다하는 길에 꽤나 눈에 띄는 놈이 휘적휘적하고 이쪽으로 걸어왔다. 갈기갈기 찢기고 더러워진 와이셔츠를 단추도 안 채워 풀어헤쳐진 가슴이 보이고 허리띠없이 바지 허리춤을 끌어당겨 붙들어매고 있는 비쩍 마른 젊은 남자였다. 대강 자른 듯한 머리가 뻗쳐 있었다. 머리에 꽤 큰 상처를 입었는지 얼굴 반쪽이 피 범벅이 되어 있었다. 반쯤 말라붙어 머리카락에까지 달라붙어 있어 무지 더러웠다. 그것도 맨발에, 신발을 신고 있지 않았다. 눈동자가 멍하게 풀려있어 폼으로 그러고 다니는 게 아니고 진짜 맛이 간 사이코라는 게 명백했다. 약 먹었나 보다. (핫, 요즘엔 여기서도 저런 놈들이 나오는군.) 나는 쫄아서 그놈에게서 멀리 떨어지게 진로를 변경했다. 주변의 사람들도 모두 그놈에게서 떨어지고 있었다. 그 주변이 에어포켓처럼 퍼져 있었다. 그는 그 속을 비틀비틀 걸어갔다. 그러다가 갑자기 그는 길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뭔 일인가 보니 그는 울기 시작했다. "우우, 우우우우…." 흐느끼고 있었다. "우우우우…." 흐르는 눈물을 닦지도 않고 그냥 뚝뚝 흘리고만 있었다. 그런 그를 주변사람들은 (나도 포함해서) 그를 둘러싸듯 하고 보고 있었다. 아무 도 가까이 가려고 하진 않았다. 꽤나 기묘한 광경이었다. 현실 같지 않고, 마치 동 구(東歐) 어딘가의 난해한 영화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갑자기 그 사이에서 누군가 가 그에게 가까이 갔다. 검은, 더블 롱코트같이 몸을 푹 싸는 깃이 달린 망토에, 챙 없는 실크햇을 닮은, 세로길이가 짧은 통처럼 생긴 검은 모자를 쓴 키가 작은 남자 였다. 모자는 머리보다 한 치수 커서 눈이 반쯤 가려져 있었다. 모자와 망토에는 배 지니 술이니, 검게 빛나는 금속제의 장식을 부록처럼 주르륵 달고 있었다. 왠지 모 르게 갑옷을 연상시키는 패션이었다. 검정으로 통일한 스타일에, 곱게 입술에까지 검은 루즈를 칠하고 있었다. 흰 얼굴에 마치 노오(能)에라도 나올 듯한 가면 위에 검은 색을 덧씌운 것 같았다. 어떻게 봐줘도 그놈도 미친놈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지 만, 그 검은 모자의 남자는 사이코에게 귓속말로 뭐라 했다. "........." 사이코는 멍한 눈으로 검은 모자의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남자는 끄덕였다. 그리고 사이코는 울음을 그쳤다. 주위에선 약간 소란이 일어났다. 말이 통한 것 같다. 그러자 검은 모자는 얼굴을 들어 내 쪽에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어딘가 얼굴에 화가 어려있었다. "너희들은 울고 있는 사람을 보고도 아무 것도 생각하지 못 하는가! 질렸다! 이게 문 명사회라는 것인가! 도시생활은 약한 자를 보고도 내버려두는 것부터 시작되는 거냔 말이다!" 갑자기 큰 소리로 소리질렀다. 보이소프라노였다. 주위사람들은 또 새로 미친놈이 등장했군 하고 눈을 돌리고 가버렸다. 나도 그렇게 하려고했다. 그러나 그가 이쪽을 향하고 있어 나와 눈이 마주쳤다. 처음으로 나는 제대로 놈의 얼굴을 직시할 수 있었다. 그 때 나는 놀라서 잠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왜인가 하면, 예를 들어 ― 눈 코 입이 없는 귀신이 나오는 괴담에서 '그건 이런 얼굴이 아니었던가.' 하며 나온것이 민 얼굴의 귀신이 아니고 내 얼굴이었다는 느낌 이라고 말해도 될는지. 처음엔 그냥 그런가 하다가 곧 정신이 들어 놀랬다고 할까― . "............" 나는 입을 벌리고 검은 모자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 쪽은 내가 이 사람들 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 듯 곧 다른 사람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 때 경찰이 왔다. 누가 사이코 얘길 한 모양이다. "아, 이 놈인가." "마, 일어서!" 경찰들은 그 놈을 난폭하게 잡아당겼다. 그는 저항도 하지 않고 하는 대로 있었다. "이봐, 거칠게 다룰 필요 없잖아. 떨고 있지 않은가." 검은 모자는 경찰에게까지 참견을 해댔다. "엥, 네 놈은 뭐야! 이 놈의 가족인가?" "그냥 지나가던 길이요. 이봐, 그렇게 팔을 꺽지 말라고." "시끄러워! 참견 마!" 경찰관은 검은 모자를 패려고 덤벼들었다. 허나, 검은 모자는 마치 춤추는 것처럼 몸을 틀어 경찰관의 팔을 피했다. "―아악." 경찰관은 그대로 바닥에 처박혀 버렸다. 중국권법 ― 태극권인가 뭔가 인지, 흐르는 것 같은 움직임이었다. "폭력을 쓰니까 그렇지." 검은 모자가 내뱉었다. "네, 네 놈, 공무집행방해다!" 경찰관은 손으로 땅을 짚어 일어서곤 소리질렀다. "공무라고 한다면 해야할 일을 하고 나서부터 해라.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이 자네들의 일이 아닌가. 본말전도도 적당히 해라." 라고 검은 모자가 연설조로 지껄이는 통해, 경찰들이 손놓고 있던 사이코가 비틀비 틀 걸어가 버렸다. 발이 엄청 빨랐다. 경찰은 당황했다. "야, 야 임마!" 경찰은 두 토끼를 쫓다가 한 마리도 못 잡고, 어느 쪽도 쫓아가지 못하고 그 자리 에 서 흐느적대고 있을 뿐이었다. 검은 모자는 바람처럼 빨리, 길을 돌아가서 모습 을 감추었다. ".............." 나는 멍해져 있었다. 검은 모자의 기묘한 행동에 질려서도 아니고, 물론 그것도 있지만, 그보다도 검은 모자의 얼굴이 눈에 박혀서 떨어지지 않았다는 데 있다. 모자로 가려있기는 해도 아몬드형의 커다란 눈은, 어딜 봐도 내가 아까 까지 기다리고 있었던 여자친구 ― 미야시타 토카 바로 그녀였다. 이것이, 나와 검은 모자 ― 부기팝과의 최초의 접촉 이었다. 2 다음 날, 나는 조금 일찍 학교에 갔다. 내가 다니고 있는 신요학원에는 다른 학원에는 없는 것이 있다. 학생들은 ID카드를 가지고 다니며, 등 하교시에 역의 개찰구처럼 생긴 체크게이트에 기록을 해야 한다. 고도정보관리학원시스템이라는 놈이다. 아이들이 별로 없기 때문에, 시스템의 충실화로 학생들을 유치하려 한 모양이다. 하지만, 실제로 다니고 있는 우리들 쪽에서 보면 어찌되든 좋은 일이다. 그렇게 잘 난 시스템이란 게 있어도 올해 들어서 몇 명인가 가출해버렸다. 그 잘난 시스템 이 래도, 학교 밖에서 뭘 하는 학생의 자유의지까지 어떻게 할 수 없었다는 거다. 교사(校舍)는 산 속에 있어 우리는 매일 나무가 많은 이 오르막길을 털털거리며 걷는다. 아직 사람들은 그다지 없다. 운동부의 아침 연습하는 놈들이야 이미 와 있겠지만, 일반학생들은 지금부터 올 시간이다. "하∼이! 케이지!" 털레털레 걷고 있으려니, 등뒤에서 명랑한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돌아보니 같은 반의 카미키시로 나오코가 이쪽으로 뛰어오고 있었다. 그녀는 사람을 부를 때 장난조로 영어로 말하듯 부르는 버릇이 있다. 언제나 명랑 한 아이다. "헤이, 상쾌한 아침에 웬 죽상이야?" 그녀는 쫓아와서 내 등을 통 하고 쳤다. 나도 카미키시로도 서로 교칙위반인 남녀교제를 하고 있다. 그래서라고 할까, 동류 라 편안하다. 서로 동성친구들에게는 말못할 공감이 있는 것이다. 언제나 시시껄렁 한 말을 하고 얼버무리곤 하지만, 오늘의 나는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뭐야, 너 치곤 꽤 이르잖아. 평소의 중역출근은 어디 간 거야." 나는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카미키시로는 지각상습범이다. 본인은 저혈압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선생님한테 야단을 맞게 되면 야단스레 '죄송합니이다.'하고 아양을 떨어 남자선생들은 그걸로 스리슬쩍 넘어가 버린다는 특기가 있다. "아아, 후후, 그럴 일이 있어서. 그 보다 어젠 어땠어, 여자친구랑 데이트 잘 했어 ?" "…뭐, 별로." "뭐야, 싸웠니?" 그녀는 흥미진진한 얼굴로 내 얼굴을 엿보았다. 확실히 그녀는 감정표현이 너무 스트레이트하다. 꽤 미인인데도 무방비하게 킬킬 웃거나 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오해를 사는 경우도 많다. 바탕은 좋은 녀석인데. "싸웠다라… 싸우기라도 했으면 그나마 낫지." 나는 한 숨을 내쉬었다. "헤에. 뭔데, 무지 심각하잖아?" "그냥." 그 때 다른 학생이 자전거로 뒤에서 달려왔기 때문에 우리는 입을 다물었다. 교문 앞에는 선도부의 당번들이 학생들을 체크게이트에 효율 좋게 들어가게 하기 위해 정리하고 있다. 딱 역무원 꼴이다. "어머, 다케다 선배. 이르시네요." 나를 보고 오늘 당번인 니이토키 케이가 말을 걸었다. 이 아이는 선도부장이지만 이런 어마어마한 직책에 걸맞지 않는, 동안에 키 작고 귀여운 여자아이다. "이야, 수고." 나는 가볍게 손을 들었다. 나와 이 아이는 작년에도 보건위원으로 같이 일한 적이 있어 2년씩이나 얼굴을 마주치게 된 사이였다. "안녕, 케이." 카미키시로도 이 아이와 아는 사이다. 지각을 여러 번 눈감아주면서 친해졌다고 한다. "뭐예요? 두 분이서. 사이 좋으시네요." "니가 그렇게 말하니, 무서워." 카미키시로는 히죽히죽 웃었다. "아뇨, 별로 그런 의미가 아니고요. 설사 그렇다고 해도 묵인해 드릴게요." "빚을 지우는 구만. 비싸겠어." "그렇겠네요." 부장도 웃었다. 하지만, 이 아이도 카미키시로가 2학년과 1학년 남자아이 사이에 양다리 걸치고 있다는 걸 안다면 절대 이런 대답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원래가 성실한 놈이니, 머리에서 김을 내며 화낼 게 틀림없다. 우리는 카드를 게이트에 밀어 넣고 교문을 빠져 나왔다. "선배, 오늘은 모임 있어요!" 부장의 말에, 나는 뒤돌아보지 않고 손만 들었다. 카미키시로가 쿡쿡 웃었다. "귀엽네." "누가?" "케이말야. 확실히 케이지가 좋은 거야. 신선해라." "…축하할 만한 일이군. 너에겐." 자기는 거의 수라장급의 연애를 몇 번이나 했으면서 잘도 그런 농담을 한다. "그래서? 어떻게 됐다고? 후지짱한테 채였어?" "바람맞았어." "어머나, 꽤 아프겠다. 저런. 하하하." 자기도 한 적이 있나보지. "그런데, 여자아이는 그럴 때 상대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딱 잘라서 말할 순 없지만, 으음, 케이스 바이 케이스. 별로 만나는 게 싫어진 건 아니라고 봐." "그럼 ― 그 사이에, 남자 모습하고 다니는 건 뭐라고 해석해야 하지?" "엥? 뭐야, 그게. 무슨 의미야?" 카미키시로는 눈을 똥그랗게 떴다. 무리도 아니지. 나도 아직까지 뭐가 뭔지 모르겠는데. "아니 됐어. 응, 아마 눈의 착각일 꺼야." "잘 모르겠지만 말야. 너 꽤나 한가한 것 같으니, 케이지. 제대로 된 사랑을 하라고." 카미키시로는 노래부르듯 말했다. "뭐야 그게." 내가 얼굴을 찡그리니, 그녀는 아예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생명은 짧으니, 사랑하라 소녀여. 붉은 입술이 빛 바래기 전에 뜨거운 피가 식어버리기 전에 내일이란 없다는 것을,…」" · "묘하게 붕 떠 있구먼. 또 좋아하는 남자라도 생긴 거냐." "으응…후후." "몇 명 째냐. 작작 좀 해." 교사(校舍)에 들어가기 직전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떨어져서 모르는 척 했다. 사귀는 것도 아닌데 남자와 여자가 같이 있는 걸 보이면 귀찮아진다. 나는 그 길로 토카네 반으로 향했다. 간다해도 말을 걸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무엇때문에 가는 지는 잘 모르겠으나, 가지 않을 수 없었다. 토카네 반인 2학년 C반에는 아직 아무도 없었다. 나는 왠지 힘 빠져서 휑한 교실의 아무 자리인가에 앉았다. 그리고 검은 모자의 말을 망연히 생각해냈다. [너희들은 울고 있는 사람을 보아도 아무 것도 생각하지 못하는가.] ".........." 그게 정말 토카였을까. 토카의 쌍둥이 오빠라던가―그런 일은 들은 적이 없지만. 사람의 기척이 나자 나는 당황해서 얼른 일어나 교실에서 나왔다. 약간 떨어진 복도에 그냥 서서 은근슬쩍 망보고 있었다. 그러고 있으니 왠지 자신이 비참해 보였다.(아으∼. 한심해…) 토카는 반에서 11번째쯤으로 왔다. 평소와 똑같았다. 이상한 모자를 쓰고 있지도 않았다. 하지만 커다란 스포팅백을 따로 들고 있었다. 체육복이나 스니커라도 가지 고온 모양이지. 그리고 그녀는 내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응? 하고 순진한 얼굴로 날 쳐다보 았다. 나도 그냥 웃으며 끄덕였다. 그녀도 슬쩍 미소지으며 끄덕였다. 전혀 변한 게 없다. 약속을 깬 일 따윈 신경도 안 쓰는 느낌이다. 눈에 띄면 귀찮아지니까 교내에서는 나와 제대로 말도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사인 비슷한 걸 만들었다. 나는 그 사인 중의 하나인 '집게손가락을 든다'를 했다. 이것은 방과후에 교정(校廷)의 안쪽에서, 라는 얘기다. 그녀도 같은 사인을 보냈다. O. K라는 뜻이다. 언제나와 똑같았다. 구름에 실려 가는 기분으로 나는 교실로 돌아갔다. 카미카시로는 아직 오지 않았다 . 어딘가에서 '그럴 일'에 매달리고 있는 가 보군. 둘 다 나름대로 바쁜 것이다. 선도부 모임은 점심시간이었다. "에헴, 너희들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금년의 풍기문란은 정도가 지나치고 있어. 가출한 여학생이 4명이야." 모임이라고 해도 우리는 거의 입도 뻥긋하지 않는다. 지도교사가 일방적으로 지껄여댈 뿐이다. 뭐, 선도부라고 해서 아무도 진짜 단속 같은 걸 할맘이 있는 놈이야 없다. 그 중에는 나처럼 자기가 교칙위반을 하고 있는 놈도 있다. 어제 거리에서 본 사오토메는 서기로 노트에 의사록을 적고 있다. 몰래 그룹 교제 같은 걸하고 있으면서 이런 데에서도 잘 놀아서 정말 위화감이 없다. "그리고, 너희도 뭔가 수상한 얘기를 들으면 곧장 내게 알려라. 네놈들의 친구 중 에 가출한 곳을 알고 있는 놈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우리는 대답하지 않는다. 늘 그렇다. 그리고 선생도 신경 쓰지 않고 말을 계속한다 . "그리고 그 키리마 나기가 오늘도 등교하지 않았다. 놈에게는 항상 주의를 하도록. 그 년은 뒷구멍으로 뭘 하고 있을지 모르는 놈이니까." 선생은 찌릿하고 우리들을 둘러봤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단 사오토메 가 열심히 노트에 쓰는 소리가 들릴 뿐이었다. 그 때, 교내방송이 나왔다. <...2학년 C반 미야시타 토카. 빨리 양호실로 돌아오기 바랍니다. 2학년 C반 미야 시타 토카...> 나는 놀래서 의자가 삐걱거렸다. "응, 뭐냐?" 선생이 날 째려봤다. "아니요, 갑자기 어지러워서." 변명이긴 하지만, 진짜 머리가 어지러웠다. "괜찮으세요? 선배님. 얼굴이 새파래요." 부장이 말했다. "3학년이냐. 넌 이제 됐으니까 돌아가." 3학년은 입시 때문에 선도부에선 없어도 그만인 존재다. 모임도 안나와도 괜찮을 정도다. 나는 대학에 안 가지만, 선생들은 하나하나 기억하진 못 하나보다. "네." 내가 일어서니 부장도 일어났다. "선생님, 제가 선배님을 양호실까지 데려 갔다오겠습니다." 선생은 일 순 얼굴을 찌푸렸지만, 곧 '빨리 돌아와.'하고 우리를 쫓아냈다. "...괜찮아?" 나는 니이토키에게 물었다. "선배는요?" 그 아이는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이후로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양호실로 달려갔다. 아무도 없었다. 나는 크게 한 숨을 내쉬었다. 방송에서 토카에게 '돌아오'라고 했다. 즉, 한 번 양호실에서 자고, 그 후 나갔다 는 얘기다. (아냐, 조퇴할 생각으로 나간 게 아니라면 아직 학교에 있을 거야. 카드로 하교하 면 체크되니까) 이래저래 생각하고 있으려니 아득해져서 긴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여자친구가 걱정되시죠." 니이토키가 말을 걸었다. "아아, ―――에?" 내가 얼굴을 드니, 그녀는 딱 잘라 말하듯, "그렇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미야시타와 같은 반이거든요." "........" 나는 벙 쪄서 쳐다봤다. 니이토키는 말을 이었다. "그 애, 요새 왠지 좀 이상했어요. 안절부절 못 한달 까. 수업 중에 밖을 노려보듯 쳐다본다던가, 선생님한테 야단 맞을 정도로. 그래서 선배님이랑 잘 안되고 있나 했어요." "........" 나는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저 선배님이 좋아요. 하지만," "........" "선배님은 역시 그녀가 좋으신 모양이네요." "........" 그녀는 나를 거의 째려보듯 하고 있었다 내가 아무 말도 못하고 있으려니, 그녀는 "그럼 전 돌아가겠습니다." 하고 양호실을 뛰쳐나갔다. 그 날은 그 때부터 건성이었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나는 약속장소로 갔으나 역시 토카의 모습은 없었다. 인기가 없 는 교정(校廷) 안쪽은 해가 들지 않기 때문에 어스름하다. 가방을 던지듯 땅에 떨구 고, 호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벽에 기댔다. 나는 뭘 어떻게 하면 될지 몰라서 그 냥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교사(校舍) 옥상의 나무들이 하늘을 가르듯 뚜렷한 선을 그려내고 있었다. 그 선 위에 그림자 하나가 나타났다. "..........!" 나는 말을 잃었다. 그것은 사람 그림자로 그것도 머리가 통처럼 평평하고, 몸은 망토를 뒤집어 쓴 모 양의 실루엣이었다. 그 놈은 내 모습을 봤는지 몸을 틀어 안으로 끌어당겼다. "기, 기다려!" 나는 외쳤다. 이 교정의 안 쪽에는 밖으로 통하는 비상계단이 있어 모든 층과 옥상에까지 연결되 어 있다. 나는 잠긴 문을 타고 올라 옥상까지 뛰어올라갔다. 명백한 교칙위반이었다. 옥상에 닿자 나는 소리질렀다. "미야시타, 너냐?" 검은 모자는 그 목소리에 그늘에서 나왔다. 나를 그 전처럼 정면으로 쳐다보았다. "자네는...미야시타와 아는 사이인가?" 라고, 그 놈은 토카의 목소리로 말했다. 남자처럼 꾸미고 있지만, 잘 들어보면 토 카의 목소리가 틀림이 없었다. "그런가, 미안했다. 어제도 만났었지. 무시해 버린 것 같군 그래." 나는 그 녀석에게 다가가서 어깨를 난폭하게 잡았다. "무슨 꿍꿍이야, 너!" · 그랬는데, 다음 순간 내 몸이 둥 하고 공중에 뜨더니 바닥에 매다 꽂혔다. "――――!?" 다리후리기를 당했다 ― 는 것은 아픔이 온몸을 지나간 후에 깨달았다. "‥‥‥뭐…, 뭐가 ――어떻게?" 내가 일어나니, 검은 모자는 조용히 말했다. "처음부터 말해 두는 거지만, 난 미야시타 토카가 아니다. 지금은 부기팝이다." "지, 지금은....?" 그럼 아침에는 토카였다는 얘긴가? "자네도, 말로는 들은 적이 있을 테지, 딱 잘라 말하자면 <이중인격>이라는 개념 이 제일 가깝다. 알겠나?" 하고 그 '부기팝'인가 머시기가 말했다. "이, 이중――." "너희들은 아직 눈치채지 못했지만, · · ·· ··· 이 학교에, 아니 전 인류에 위기가 닥쳐오고 있다. 그래서 내(ぼく)가 나온 것이다 ." 이, 그인지 그녀인지 모를 부기팝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 이 게시물은 上遠野浩平의 'ブギ-ポップは笑わない'을 번역한 것으로, 다른 곳으로 옮기실 경우 제게 메일만 보내주시기 바라며, 상업적인 용도로는 쓰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상업적인 용도가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이 소설은 동명의 애니메이션과 영화의 원작소설입니다. 문고본으론 좀 긴 관계로 각 화를 둘로 나누어 올리겠습니다. 그럼 이만. 오늘도 지구를 향해 돌진하는 네메시스. 『창작 - 쓰기-번역란 (go ANC)』 627번 제 목:[번역] 부기팝은 웃지 않는다 제1화 B 올린이:네메시스(김미진 ) 00/11/20 02:40 읽음:666 관련자료 없음 ----------------------------------------------------------------------------- 3 그날 밤, 나는 결국 토카네 집에 전화를 걸고 말았다. "여보세요, 미야모토입니다." 어머님이 나와서 나는 진지하게 말했다. "여보세요. 저는 신요학원에서 선도부를 맡고 있는 다케다라고 합니다. 토카 있습니까?" 선도부라고 듣고 수화기 건너편에서 어머님이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 "저 우리 토카가 무슨 ― 하지만 고등학교 들어와서는 그것도 나타나지 않았는데― " "어쨌든 본인과 이야기하고 싶습니다만." "네, 네. 조금만 기다리세요." 고등학생 애 상대로 '조금만 기다리세요'라니. 보통 엄마들이라면 '기다리렴.' 이겠지만 꽤나 언 모양이다. "네, 전화 바꿨습니다." 그녀 평소 목소리가 들렸다. "다케다인데." "네." 멋없는 대답이다. 하지만, 어머님이 옆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계실 테니까. 미야시 타네는 따로 전화를 놓지 않은 모양이다. "저번 일요일에 어디 갔었어?" "아니오, 전혀." 라고 말하며 수화기를 통통 두 번 쳤다. 그건 아마 그 사인 중 하나인 손가락 두 개를 세우는 걸 나타내는 것이리라. '미안해요, 지금은 좀.'이다. 알고는 있어. 하지만 그래도 물어봐야 할 게 있다고. "저, 말야." "네." "부기팝이란 놈 알아?" "예?" 그녀는 황당한 듯한 목소리였다. 허를 찔려서 놀란 듯 하다. "그게 누군 데요?" 연기가 아니고 진짜로 모르는 듯한 목소리였다. "아니, 됐어. 미야시타의 목소리가 듣고싶었을 뿐이야. 미안해." "고맙습니다." 그녀는 존댓말을 썼지만 아마도 어머님에 대한 대응책으로, 진짜로는 기쁘다고 하 는 것이겠지. 역시 싫어진 게 아니었다. "그럼, 내일 학교에서 보자." "네, 그럼." 수화기는 내가 먼저 내려놨다. "........." 나는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그 놈 ― 부기팝이 말한 대로다. 토카는 어제 데이트 약속과 오늘 아침에 방과후에 만나자고 한 것을 몽땅 까먹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아무 것도 모른다." 그 놈은 저녁놀이 비추는 학원 옥상에서 내게 그렇게 말했다. "모른다는 사실 자체를 위협하는 것도 동시에 모르는 것으로 한다. 그래서 어제 자네와 데이트하지 않았다는 모순을 없애기 위해, 애초에 데이트하자고 한 것 자체 를 머리에서 지워버렸다." "지운다, 고―." 나는 벙 쩌서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건 즉 약속한 사실 자체를 잊는다는 건가?" "그렇지. 하지만 그것은 절대 자네를 가볍게 생각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다. 그녀는 확실히 자네를 좋아하고 있어. 그렇기 때문에 더욱 완벽하게 잊으려고 하지 ." "왜?" "그러면 죄악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역시 그녀는 자네가 자신을 싫어하 게 되는 것을 생각하고 싶지도 않아서야. 그건 자신이 어떻게 할 수도 없는 일이기 때문에." "너, 넌 도대체 뭐야. 언제부터 들러 쓰인 거야!" "들러 쓰이다니. 그런 말은 쓰지 말아 주겠나. 나라고 좋아서 나타나는 게 아니니까." "그럼 왜?" "위기가 닥쳐오고 있으니까." 라고 하며 나를 쳐다봤다. 나는 기세에 눌려버렸다. 날카로운 안광이었다. "나는 자동적이야. 주위에 이변을 느끼면 떠오른다. 그래서 이름을 기분 나쁜 거품[부기팝]이라 하지." (注: 不氣味な泡 = ブギ-ポップ) 자기가 붙인 이름인 듯 하다. "이변이란…뭐야." "이 학교에 마물(魔物)이 둥지를 틀고 있다." 그렇게 말하는 눈빛은, 이런 걸 말하는 나도 이상하지만 완전히 제정신으로 보였다 . 태양은 점점 떨어져가서 옥상에는 긴 그림자가 달리고 있었다. 부기팝의 검은 모 습은 그 속에서 사라질 듯이 보였다. "그것도 주변과 동화하고 있어. 상당히 위험한 놈이다. 아직까지는 이렇다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는 않지만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면 세계는 끝이다." 말만 들으면, 완전히 사이코가 할 법한 대사이긴 한데 눈앞에서 말하고 있는 걸 들으니 꽤나 설득력 있게 보였다. "‥‥니가 불러들이는 건 아닌가?" 나는 최대의 발악을 해보았다. 확실히 저런 놈에게 토카의 몸을 넘겨주게 된다면 내 청춘은 끝난 거나 다름없다. "응, 그건 알고 있어. 그래서 난 그렇게 오래는 나타나지 않아. 이것도 자동적이다 . 그 뒤는 미야시타 토카로서 조용히 살고 있어. 자네와 사랑을 이야기한다거나 하면서 말이지." 이 놈의 말투는 다소 옛날 티가 난다. 나를 '자네'라고 한다던가 사랑 운운한다던 가. "슬슬 내 시간은 끝이다. 방과후 이후는 이렇게 망보고 있어도 의미가 없어. 모두 돌아가 버리니까." "…라는 얘기는 니가 말하는 위험한 놈이 학생 중에 있다는 건가?" 나는 호기심에 끌려 그런 것을 묻고 말았다. 부기팝은 끄덕였다. "아마도." "도대체 뭐야. 그 놈은?" "모르는 편이 좋아." "왜?" "위험하니까. 눈치 채이면 자네의 목숨도 위험하다. 미야시타 토카의 연인을 위험하게 할 수는 없어." 잘도 그런 말을 그녀의 얼굴과 목소리로 말하고 있다. "그렇게 위험한 거면 오히려 가르쳐줘야 하는 거 아냐? 그 몸은 니 것만은 아니잖아." 말하면서 내가 저런 놈을 진지하게 상대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불안정하게 된 토카의, 신경증의 망상일 뿐인데 ― 그건 알고 있지만, 내 눈앞에 있는 사람은 어떻게 보아도 토카이되 토카가 아닌 것이다. 그렇게 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후, 하고 부기팝은 한 숨을 내쉬었다. "별 수 없군.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말하지마." "알았어."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무슨 말을 해도 놀라지 않으려고, 그러나 그의 말은 너무 심플해서 내 의표를 찔렀다.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이다." …나는 토카네 집에 걸었던 전화를 끊고 털썩 내 방 침대에 주저앉았다.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이중인격이라고? 학교에, 아니 전세계에 위험이 닥치고 있다고? 뭐어어야 그게에! 과대망상도 심각한 수준이군. 학원물 RPG 게임의 설정도 아니고. (그럼 토카를 정 신병원 같은 데 데려가 보면…) 부기팝은 '그녀는 모든 것을 잊는다'고 했다. 그럼 서툰 수를 쓰면 병원이니 의사니 접촉해보아도, 그 사이 부기팝은 나오지 않고 토카 는 멀쩡한 정신상태이니 데려간 놈이 바보되는 상황이 되겠지. 나는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산 '마음속의 외침 ― 다중인격에 대하여'라는 문고 본을 펼쳤다. 될 수 있는 한 쉬워 보이는 놈으로 적당히 고르긴 했는데, 서점에서 찾으려고 보니 어라, 그런 종류의 정신의학코너까지 있으니 세상은 이미 충분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가 지껄이는 듯한 문장으로 써있어서, 읽히긴 읽히는데 그래도 역시 어려운 말이 쫘르륵 깔려있는 걸 보니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왔으나, '이 병례는 일본에서는 극히 드물어 거의 보기 힘들다.'라고 서 있던 것에 는 끌렸다. 잘은 모르겠지만 다중인격이라는 것은 억압적인 현실에 속박된 인간이 그 현실에 상치되는 자신의 감정을 다른 인격을 빌어 새로운 생활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 기본 인 듯 하다. '인간의 가능성은 선에도 악에게도 열려있다. 이류(二流)의 사회생활에 억눌려진 가능성이독립하여 존재를 주장하는 것이 다중인격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그것 이 얼마나 병적이고 본인과 주위에 대해 파괴적인 것이라도 그 가능성에 선악의 구 분은 없다.'라는 알 듯 모를 듯한 말이 써 있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그 행동반경 이 확실한 형태를 가지지 않는 경우가 많아 다중인격 보다도 분열증이 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 같다. 구체적으로는 '신'과 '주변' 정도의 차이라고 설명하고 있었다. 저자 명을 보니 키리마 세이이치라고 써 있었다. 책 날개에는 프로필도 아무 것도 써 있지 않아서 어떤 사람인가 알 수 없다. 하지만 왠지 옳은 말을 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럼 부기팝은 어떤 가능성으로 무엇이 그를 억누르고 있는 거지?) 나는 침대에 대굴 누워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울고 있는 사람을 보아도 아무 것도 생각하지 못 하는가?' 또 그 말이 머리에 떠올랐다. 왠지 꽤나 신경 쓰이는 말이었다. "…라는 데, 너는 어떻게 생각해?" 다음 날 방과후, 나는 또 부기팝과 만났다. 장소도 똑같은 옥상이다. "억눌려진 '가능성'이라. 흠, 그렇게 말한다면 그럴 수도 있지만." 교실에 갔더니 미야시타가 없어서 혹시 하고 와봤더니 역시 있었다. 수업이 끝남 과 동시에 '바뀌었다'는 것 같다. "하지만 나의 경우, 미야시타의 가능성이라는 건 아닐 테지." "그럼 뭐야." "음, 그렇겠군…이 세계의, 라고 할까." 너무도 자연스럽게 말이 술술 나와서, 나는 일순 무슨 말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 다. 세계? 그게 어쨌다고? 그러나 그는 나의 공백에도 신경 쓰지 않고 계속 말했다. "나에게는 주체가 없어. 미야시타가 뭘 생각하는 지 난 모른다. 혹여 나를 나타나 게 할 숨겨진 욕망이라든지, 가능성이 있을지 몰라. 하지만 그것과 나는 관계가 없다. 나에게는 꿈이라는 게 결여되어 있어. 나는 내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의무 라고 할까 사명이라는 것을 위해 여기에 있다." 부기팝은 머리 위에 펼쳐진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탄하듯 말했다. 그리고 나를 보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런데, 자네는 날 '낫게' 하고 싶은 건가?" 나는 움찔 했다. 물론 그럴 생각은 있다. 뭐라 해도 미야시타 토카는 내 여자친구니까. 그런데, 그냥 '무슨 일이 있어도 낫게 하지 않으면'이라는 생각이 들 지가 않는다. "아니, 모르겠어." '그'의 반응을 경계해서 그렇게 대답한 게 아니고, 정말로 잘 알 수 없게 되었다. 본 바로는 누구에게도 위해를 가할 것 같지도 않고, 거기다가 미야시타 토카 자신 이 그 때문에 곤란해하는 것 같지도 않으니까. (나랑 데이트하는 걸 바람 맞혔을 뿐이니.) "정말 내가 없는 편이 좋을 지도 모르겠군.….의무조차 없다면 말이야." 그 옆얼굴은 내가 좋아하게 된 여자아이의 것으로 그것도 굉장히 쓸쓸하게 보였기 때문에 나는 무심코 말하고 말았다. "‥‥힘들겠구나. 너도." 중증의 과대망상 광에 이중인격에게 하는 말이라고는 믿을 수 없었다. "그렇지, 뭐. 그래도 난 잠깐 나타날 뿐이니까." 어정쩡하게 달래는 듯한 투라 화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그저 대답할 뿐 . 그 태도는 전혀 미친놈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나도 그처럼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오늘은 흐려서 저번 같은 저녁놀은 없고 마냥 어두컴컴할 뿐이었다. 지금이라도 가랑비가 올 것 같은 축져지는 하늘. "저―――물어봐도 돼?" "뭔데." "첨에 널 봤을 때, 부랑자에게 뭐라고 한 거야?" "대단한 건 아냐." "어떻게 울음을 그치게 할 수 있었지?" "그냥 필요한 조언을 한 것뿐이다. 누구라도 괴로울 때는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 한 법이지." "도움이 필요하다고? 그걸 어떻게 아는데?" "그 사람은 울고 있었다. 괴로워하고 있는 게 눈에 뻔하지 않아?" 지극히 당연한 일을 말한다는 투였다. 나는 혀가 잘 돌아가지 않아서 한 숨을 내쉬었다. "…나 같은 보통사람들에게, 그런 건 잘 보이지 않아." 말하면서 자신이 비참해지는 것을 느꼈다. "자네는 좋은 사람이야." 갑자기 부기팝이 말했다. "에?" "아니, 미야시타가 왜 자네를 좋아하는 지 알 것 같군." "…그 얼굴로 그런 말은 하지마. 내일 미야시타와 만나면 어떤 얼굴을 해야 할지 모르겠단 말야." 말한 뒤, 이건 마치 부기팝의 독자성(獨自性)을 인정한 것처럼 이야기했구나 하고 생각했다. 부기팝은 기묘한 표정을 지었다. 눈 깊숙이 눌러쓴 모자 밑에서 왼쪽 눈을 가늘게 뜨고 입술 오른쪽을 비틀어 올렸다. 토카라면 절대 하지 않을 좌우비대칭의 표정이었다. "신경 쓰지마. 나는 나고, 그녀는 그녀다." 후에 생각해보니 그 표정은 쓰게 웃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때는 잘 알수 없었다. 묘하게 빈정거리는 듯하고 악마적인 느낌의 표정이란 생각을 했을뿐. 나는 결국 그의 웃는 얼굴을 마지막까지 보지 못했다. 4 그 때부터 부기팝이 매일 '망보고' 있는 시간에 옥상에 올라가는게 나의 습관이 되었다. "반 녀석들이 전혀 상대를 안 해줘서 말야." 나는 너스레를 떨었다. "헤에, 자네는 대학에 안 가나 보지." "응, 아버지가 아는 사람 중에 디자인 사무소를 하는 사람이 있어서, 계속 아르바이트했었거든. 그 사람이 '넌 희망이 보인다. 센스가 있어.'라고 칭찬하면 서 대학 같은 거 가지 말고 우리 쪽으로 오라고 했거든." "대단한데. 인정받은 직인(職人)이라니." 토카는 '괜찮겠어? 그런 불안정한 진로로.' 라고 말했지만 이 녀석은 순수하게 감동하고 있었다. 나는 뻐기듯 말했다. "그래, 직인이지. 디자이너라고 말해도 그렇다니까. 주문에 맞춰 만드는 거니까,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자신은 세상과 동떨어지게 살고 있으면서 부러워하듯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미야시타는 위험해 보인다고 말했는걸." "그럴지도, 미야시타에 대해선 잘 모르겠지만 여자아이는 보통 로망이 있는 남자에 게 동경보다는 저항을 느끼는 일이 많은 가봐." "그런가? 아냐, 로망이라니, 무슨―." 쪽팔리는 단어다. "내겐 그런 게 없지만, 사람은 꿈이 없으면 안돼. 그렇지 않나?" 부기팝은 그런 말을 할 때, 눈이 엄청 진지하다. "잘 모르겠는데." 나는 애매하게 얼버무렸다. "꿈을 꿀 수 없고,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 세계는 그 자체로 이미 틀린 거지. 하지만 그것과 싸우는 건 아쉽게도 내가 아니야. 자네와 미야시타 자신이다." 자칭 '세계의 위기와 싸우는 남자'는 먼 눈을 하고 말했다. 말만 들으면, 아니 그 모습도 포함해서 그냥 보면 피에로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어딜 봐도 여자애 얼굴인데, 행동과 말투는 완전히 남자다. 하지만 그가 피에로라면 나도 피에로가 되고 싶다고 문득 생각했다. 그렇다고 쳐도, 말을 해봐도 그에게 토카의 그림자는 없었다. 도대체 토카에게 무 슨 원인으로, 그가 나타나게 된 걸까. "저, 네가 처음 '나타난' 게 언제 적 일이야?" 어느 날 그런 걸 물어봤다. "아마 5 년 전 일까. 미야시타 부부사이에 균열이 생겨서 이혼할 수밖에 없게 되어 그 때 그녀의 불안정한 정신상태에서 나 같은 딱딱한 놈이 나타나게 된 건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 때 나는 거리를 배회하고 있던 살인귀와 싸우는 데 정신이 팔려 서 미야시타네 집일도 잘 몰라." 살인귀, 에는 기억나는 게 있다. 다섯 명이나 소녀들을 죽인 연속살인범이 시내에 서 붙잡히는 것을 두려워해 목매달아 자살하여 시체로 발견된 것이 5 년 전이었다. 꽤나 유명한 이야기니 그의 망상에 사용되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미야시타의 어머님은 널 알고 있는 것 같던데." "아아, 몇 번인가 들켰거든. 아직 중학생이라서 미야시타 토카에게 행동의 자유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방의 창문에서 뛰어 내려가는 바람에." "놀랬겠군." "히스테리를 일으켰지. 하, 그 때는 정말 곤란했다고. 감금당해서 별 수 없이 미야시타 토카의 어머니를 기절시키고 탈출하기도 했어. 그 때 위기가 닥쳐오고 있었으니까." "어이어이, 그 거 정말이야?" 그래서 어머님이 쫄아있었던 거군. 그래서 미야시타네가 아직까지 전화를 따로 놓지 않은 것일 테고. "그 후에 미야시타를 정신과의사에게 보인 것도 같기도 한데 그 부분은 추측이긴 하지만. 난 나타나지 않았으니까." "…아무 이상도 없었겠지." 일본에서야 극히 드문 일이니 의사도 설마 했을 터였다. "그렇겠지. 아마 어머니 쪽이 의심을 받지 않았을까. 시기도 그렇고. 뭐 그래서 아버지 쪽도 자기가 나빴다고 생각해서인지 이혼 얘기는 싹 들어갔어." "흠…?" 그 말을 들으니, 책에 쓰여있던 병례 중에 이런 게 있었다. 그건 다중인격은 아니고 조울증인 소녀의 이야기였지만. 학교에서는 제대로 말도 않던 소녀가 집에만 들어오면 굉장히 명랑하게 성격이 변했다. 부모와 조부모의 사이가 차가워져서 그 어두운 가정을 필사적으로 밝게 하 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무리한 일이었기 때문에 그 반동이 밖으로 전부 표 출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가 치료를 받고, 가족도 반성해서 그 뒤 가정이 온후 하게 되었다. 이러한 '조정자'로서의 정신이상을 트릭스터라고 한다고 했다. 왠지 부기팝과 닮았다. "저어, 말야―――." 하고 그 말을 말하니 그는 또 그 기묘한 표정을 지었다. "미야시타 토카의 입장에서 보면 그럴지도 모르겠군." "하지만 넌 그 일이 끝난 뒤에도 나타나고 있잖아. 왜일까. 이제 집에서는 안 나타나지?" "그래." "왜일까 나." "글쎄, 난 잘 모르겠는 걸. 나는 의무 때문에 여기 있는 거니까." "'위기'가 지나가면 없어진다고?" "응. 이번에는 조금 슬프지만. 자네와 헤어지지 않으면 안되니까 말이지." 그 말을 듣고 나는 놀랬다. "…헤어진 다라." "그래, 미야시타 토카는 계속 있겠지만. 자네에겐 그 편이 낫겠지." 그는 어깨를 으쓱 해 보였다. "............." 나는 말을 잃고 입을 다물었다. 노을지는 저녁 하늘을 말도 하지 않고 마냥 쳐다보고 있었다. 부기팝은 휘파람을 불기 시작했다. 밝고 업템포의 곡으로, 호흡에 완급이 있어, 상당히 능숙했지만 휘파람이라 역시 어딘가 슬프게 들렸다. 그리고 토카는 휘파람을 못 분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억눌려진 가능성이라…) 그녀의 남자친구인 나도 역시 그 억눌려져 있는 부분의 한 부분일 수 도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 마음이 무거워졌다. 휘파람 소리가 그쳤다. 나는 박수 쳤다. "잘하는데. 무슨 곡이야?"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 징거' 제 1막 전주곡." "뭐야, 그게." "바그너라는 아무 옛날에 살았던 까다로운 로맨티스트가 만든 가장 멋진 곡이지." "클래식인가. 헤에. 록 일 꺼 라고 생각했는데." "'原子心母'쪽이 났으려나. 옛날 게 좋으니." 그렇게 말하고 그는 눈을 가늘게 떴다. 우리의 어정쩡한 황혼녘은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5 어느 날 갑자기 카미키시로가 없어졌다. 학교에 오지 않게 된 것이다. 잘 모르겠지만 가출한 듯 하다. "거짓말." 이야기를 듣고 나는 무심코 소리를 높였다. "진짜야. 선생이 말했다니까. 집에도 돌아오지 않는다고." 반의 여자아이가 냉정하게 얘기했다. "뭐야, 왜 그애가 집을 나가?" "걔, 다른 애들이랑 별로 말도 안 했고 얼굴도 예쁘니까 도쿄 같은 데 가도 어떻게 든 되겠지 한 게 아닐까?" 흥 하고 그녀는 코방귀를 뀌었다. 반의 여자 애들은 언제나 비웃고 깔보고 있던 카미키시로보다 대부분 표정이 빈부했다. "그래도― 그 녀석, 성적 좋았잖아. 지망 대학 커트라인은 넘었을 텐데." "뭐야, 다케다군. 걔를 좋아했었나 보지?" "그런 게 아냐, 그래도――." 내가 대꾸하려는 걸 반 여자 애들의 리더인 사사키가 조용히 말했다. "난 그녀 기분이 알 것 같기도 해. 도망치고 싶었던 거야. 결국." "도망치타니, 뭐에서?" 나는 흠칫 했다. 카미키시로는 1학년과 2학년 남자애들 사이에 양다리 걸치고 있었다. 혹시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사사키가 말한 것은 다른 일이었다. "다케다군은 몰라." "어째서." "대학 안 가잖아. 그 중압감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지." 그렇게 말하니 말문이 막혔다. "그래, 알 수가 없지." "그래 그래." 여자아이들은 나를 책망하듯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다른 남자애들은 조용히 우리를 보지 않고 멀리서 자신의 단어장을 뒤적이고 있었 다. "정말로 도망칠 수 있다면 도망치고 싶을 정도야. 하지만 그럴 수 없잖아. 우리는 카미키시로처럼 무책임하지 않으니까." 사사키의 말은 너무도 차가웠다. 모두 끄덕이고 있다. 아무도 카미키시로를 걱정하고 있지 않았다. '울고 있는 사람이 있어도――.' 부기팝의 목소리가 귓전에서 들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때 선생이 들어와서 우리는 대화를 중지했다. 수업을 받으면서 나는 계속 더 이상 배겨낼 수 없는 기분에 휩싸여 있었다. 앞자리 녀석은 취직이 이미 결정되어 있다. 수업은 이제 껍데기 수준으로 모두 대학시험이 학교보다 더 중요한 것이다. 선생도 그런 느낌으로 자기 혼자 말하고 자기 혼자 답 할뿐. 누굴 지적한다던가 질문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도대체 우리는 왜 여기 있는 거야. 카미키시로는 어떻게 된 걸까. 그 명랑한 태도는 허세였던 것일까. 확실히 그런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도망치거나 할 녀석으로 보이진 않았다. 「내일이란 없다는 것을….」 …하지만 그렇게 말한다면 나는 그 아이에 대해서도 반 아이들에 대해서도 아무 것 도 모르는 것과 같다. 토카에게 부기팝이란 녀석이 들러씌여있다는 것도 알지 못했으니까. "........." 나는 수업 내용도 듣지 않고, 노트도 펼치지 않고, 그래도 변명하자면 대학시험을 보는 녀석들보다는 성실한 태도로 의미도 없이 화만 내고 있었다. 그 날 옥상에 가봤지만 부기팝은 없었다. "........." 나는 잠시 기다렸지만 곧 날이 저물어 포기하고 터벅터벅 집에 돌아갔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옥상에 올라간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교복 차림의 여자아이 그대로인 모습으로 나타난 부기팝이었다. "여." 하고 말을 거는 모습으로 '그'라는 건 알았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토카라고 생각했 을 터였다. "…코스튬은 어디 갔어?" "응, 이제 필요 없게 되었으니까 가지고 오지 않았어." 토카일 때 무의식적으로 들고 나온다고 설명했다. "왜?" "위기가 사라졌으니까." 그는 시원스레 대꾸했다. "…에?" "이것으로 마지막이야, 다케다군." "잠깐만 기다려! 그렇게 갑자기…." "별 수 없어. 나는 그 뿐이니까. 위기가 사라지면 사라진다. 거품처럼." "위기라니――세계를 구하지도 않았잖아. 전혀 구해지지 않았다고!" "아니, 내 일은 끝났어. 자네가 말하는 의미의 구함이란 내 일이 아니야." 그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학교에 둥지를 틀고 있던 마물을 쓰러뜨린다고 했잖아!" "그래, 쓰러뜨렸어. 내가 한 건 아니지만." 나는 입을 벙긋벙긋 벌렸다. 그 이상 뭘 말해야 될 지 모르게 되어버렸기 때문에. "하지만, 그런――그런.." "고마워, 다케다군." 갑자기 부기팝은 내게 머리를 숙었다. "자네와 함께 한 시간은 즐거웠다. 지금까지 난 계속 싸우고만 있었기 때문에 친구라고 할 정도의 사람은 자네 밖에 없었어. 미야시타 토카 때문에 있어준 것이겠지만 그래도 즐거웠다. 정말." "........." 나는 문득 이 녀석을 좋아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 처음에 거리에서 만났을 때부터 계속 좋아했었다. 토카의 얼굴을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고 내가 말하고 싶었던 것을 확실히 말할 수 있는 이 남자가 정말 좋았던 것이다. "가지마." "응?" "가지 말라고, 넌 나한테도 단 하나뿐인 친구라구, 부탁이니까 조금만 더 있어 줘 ―" 나는 울먹거리며 더듬더듬 말했다. 울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부기팝은 기묘한 표정을 지었다. "다케다군, 그렇지 않아." "아니야, 그래!." "자네는 지금 그저 주위와 맞지 않을 뿐이야." 나는 말문이 막혔다. "미야시타 토카도 너에 대해 여러 가지로 신경 쓰고 있어. 너만 괴로워하고 있다고 생각해선 안돼." "하지만――넌 그럼 어떻게 되는 거야! 너를 아무도 신경 써주지 않는데, 이대로 사라진다니 슬프지 않아?" "자네가 있잖아, 다케다군." "나 같은 거…." "아쉽게도, 나에게 의무가 있는 것처럼 자네와 미야시타 토카에겐 해야 할 일이 있어. 너희들은 너희들의 세계를 만들어 가지 않으면 안돼. 시시하게 비하를 하면 안 되는 거야." 부기팝은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할 말이 아무 것도 없었다. "―――그래도――!" 떨구고 있던 얼굴을 들었을때 거기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핫 하고 옥상을 뒤졌다. 그러나 이제 그 기인(奇人)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비상계단을 내려오니 토카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아닌 것은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나를 빙그레 웃었으니까. "늦었어요, 다케다 선배!" 그녀는 데굴데굴 구르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에…." "불러낸 건 선배님이잖아요? 그런데 늦다니 너무해." "........." 그런가. '그녀는 아무 것도 모른다.' '모른다는 것을 깨닫는 일도 없어. 자동적으로 기억을 만들어 낸다.' 그런 것인가. 자신이 여기에 있는 이유를 자동적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아, 아 이런 미안. 좀 친구를 만났거든." "옥상에서? 짱이 불러냈나요?" "지금 같은 시대에 그런 게 있겠냐." "그렇네요!" 그녀는 또 웃었다. 나는 갑자기 그녀를 사랑스럽다고 느꼈다. "오늘 학원은?" "5시부터 에요." "그럼, 역까지 바래다주지." 내가 그렇게 말하니, 그녀는 놀라했다. "같이 하교해도 괜찮아요?" "상관없어. 내가 선도부인 걸." "정말 괜찮을 까나." "교문 지키고 있는 게 후배들이니 어떻게든 되겠지." 나는 토카를 억지로 끌고 갔다. 손을 마주 잡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교문에는 니이토키가 서 있었다. 그리고 왠지는 모르나 그 옆에 저번 주 금요일에 정학이 풀렸다던 명물인 불량학생 키리마 나기가 서 있었다. 그녀는 훌쩍 키가 크고, 모델 같은 미소녀라고 소문이 자자하지만, 나에게는 조금 엄격해 보이는 얼굴로 보였다. 타입이 확 다른 니이토키와 친구라는 건 의외였다. 두 사람이 나란히 서 있으니 여차하면 터울이 긴 자매나 나이 차가 적은 모녀로 보일 수도 있을 법했다. "어머, 선배님." 니이토키는 내 옆에 클래스메이트인 토카가 있는 것에 아랑곳하지않고 웃어 보였다 . "여어." 나는 건성으로 대꾸했다. "흐음, 네가 미야시타 토카인가." 갑자기 키리마 나기가 토카 앞에 섰다. "그, 그런데요." "난 키리마라고 한다. 잘 부탁해." 뭘 생각하는 건지, 자기를 オレ라고 말한 그녀는 토카에게 악수를 청했다. "어이, 이봐." 내가 끼여들려 했으나 토카는 작게 고개를 가로젓고는 얌전히 키리마의 손을 잡았 다. "네." 키리마 나기는 어딘가 부기팝의 그 표정과도 닮은 쓴웃음을 짓고는 그대로 내려가 버렸다. 우리가 멍해져 있으니 니이토키가, "어머, 선배님, 미야시타상. 빨리 카드를 넣어주세요." 라고 재촉했다. 나는 말하는 대로 카드를 게이트에 넣고 학교를 나왔다. 길바닥에는 낙엽이 수북히 떨어져 있었다. "이 빨간 단풍은 떨어지는 건 예쁜데, 떨어져 있는 건 지저분하네요." 토카는 구두에 나뭇잎이 붙지 않게 조심해서 걷고 있었다. "그런가. 그래도 떨어지는 건 예쁘잖아, 역시." "디자이너의 감성이라는 건가요?" "그런 건 아니야." "아~, 선배님은 좋겠다." 토카는 갑자기 발로 낙엽을 탁 탁 짓뭉개기 시작했다. "어, 어이." "전, 이제부터 영어 단어 쪽지시험이에요. 매일매일 하는 거." 탁 탁 하고 탭댄스를 추는 것 같다. "그런 말해도 말이지." "뭐라 해도 전 대학 갈 거예요." 그녀는 내게서 눈을 돌린 채, 땅을 발로 차면서 말했다. "선배님이 무슨 말을 한데도." "…그게, 뭐야." 난 별로 반대한 기억이 없는데. "하지만, 선배님은 혼자 자신만만하게 확 진로 결정해버리고 우릴 비웃는 것 같았 는 걸요." "이봐, 그건." 내가 할 말 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녀가 무척 진지한 표정이기에 그만 두었다. "엄청난 중압감이었어요. 불안에 먹혀버리는 게 아닐까 할 정도로. 하지만 이제 됐어요. 개운해졌다." 그 애가 얼굴을 들어 올렸다. 나는 두근거렸다. 부기팝과 똑같은 표정이었다. "실은, 선배. 일요일에 데이트 바람맞힌 거 기억하고 있어요." "…에?" "그냥 조금 혼란시키고 싶었던 것뿐이에요. 미안합니다." 그 행동은 역시 토카, 부기팝의 잔영은 어디에도 없었다. (설마…) 이 애의 그런 불안이 부기팝을 불러낸 것인가? 그 자체가 '학원에 숨은 마물'이었던가? 그렇다고 한다면―쓰러뜨린 것은 나다. 부기팝에게 내가 나의 불안을 전했으므로 이제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위기'가 사라진 것이다. "........." 내가 서 있으려니 토카는 자기 발을 보고, "이런, 더러워졌다." 고 말했다. 그리고 "바보 같애." 하고 헤헤해 하고 수줍게 웃었다. 부기팝은 자기는 꿈을 꾸지 않는다고 말했다. 웃는 얼굴도 보지 못했다. "에헤헤." 밝고 사랑스런 토카의 웃는 얼굴을 보고 문득 생각했다. 부기팝은 할 수 없는― 웃는 것은 우리들이 할 일인 것이다, 라고. ------------------------------------------------------------------------------ 이 게시물은 上遠野浩平의 'ブギ-ポップは笑わない'을 번역한 것으로, 다른 곳으로 옮기실 경우 제게 메일만 보내주시기 바라며, 상업적인 용도로는 쓰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상업적인 용도가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이 소설은 동명의 애니메이션과 영화의 원작소설입니다. 문고본으론 좀 긴 관계로 각 화를 둘로 나누어 올리겠습니다. 그럼 이만. 오늘도 지구를 향해 돌진하는 네메시스. 『창작 - 쓰기-번역란 (go ANC)』 628번 제 목:[번역] 부기팝은 웃지 않는다 제2화 A 올린이:네메시스(김미진 ) 00/11/20 22:35 읽음:646 관련자료 없음 ----------------------------------------------------------------------------- 간주 Interlude ‥‥‥이야기는 조금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밤도 낮도 아닌 어정쩡한 어둠 속에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소녀가 눕혀져 있었다. 눈꼽만큼도 움직이지 않는다. 만티코아는 바로 그 옆에 서 있다. ".........." 천천히 우아한 동작으로 쓰러진 소녀의 몸에 엎드렸다. 앞머리를 쓸어 올리고 이마에 키스를 한다. 그리고 코, 턱, 목, 가슴, 배, 하복부로 핥아 내려간다. 그 뒤에는 푸른 선이 남겨진다. 침이 닿은 곳이 변색되어 있었다. 이윽고 소녀의 몸을 다 핥고는 입술을 떼었다. 그러자, 소녀의 몸에 이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전신 피부의 표면에 쩍 쩍 하고 균열이 일어나고 있었다. "........." 맨티코아는 그것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이윽고 소녀의 몸은, 마치 바싹 말라비틀어진 진흙인형처럼 퍼석하고 부서졌다. 보랏빛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 연기가 만티코아의 입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연기는 끊임없이 피어 올라갔지만 만티코아는 쉼 없이 마치 마개 빠진 수조처럼 끝없이 들여 마시고 있었다. 흰 목젖이 꿀·꺽·꿀·꺽 삼키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최후의 한 방울까지 들여 마시고는 만티코아는 루즈를 칠한 것 같은 아름다운 입술 을 할짝 혀로 핥았다. 입술 끝에서 한 방울의 액체가 흘러 떨어졌다. 연기가 굳어 액체가 된 물방울은 명백하게 피 빛을 띄고 있었다. 연기로 화한 소녀의 몸은 이제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후후, 후후, 후후후훗…. 엷은 어둠 속에서 만티코아는 웃고 있었다. 그 이름은 고대 페르시아어로 '식인(食人)'을 의미한다. 그 낭랑한 웃음소리는 여명 속에서 새벽의 장미처럼 빛나며 의기양양하게 자신의 사악함을 드러내고 있었다. 제2화 불꽃의 마녀, 돌아오다 The Return of the Fire Witch ――――― 2학년 D반 스에마 카즈코 1 요즘 우리 2학년 여자애들 사이에서는 기묘한 소문이나 괴담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이야기가 퍼져 있다. 부기팝이라는 이상한 인물[스트레인저]의 이야기다. 키가 작고, 새까만 망토를 두르고, 저번에 재방했던 '은하철도999'에 나오는 메텔 의 모자를 세로로 줄인 듯한 모자를 쓴 이 인물은 살인자로 단번에 고통도 없이 사 람을 죽인다고 한다. 그것도 그 사람이 가장 아름다운 순간, 더 이상 추하게 되어버 리기 직전에, 라고. 어디 출신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요새 계속 늘어만가는 여학생들이 행방불명되는 사건과 관계 있는 게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든다. 그 애들은 가출해서 도쿄에 가버렸다는 꿈도 없는 이야기보다는 아침 이슬처럼 덧없고 그림자처럼 떠돌아다니는 수수께끼의 살인자에게 당했다고 ― 생각하고 싶은 것 일 게다. 현실은 언제나 멋없다. 그 속에서 없어진 사람은 판타지처럼 어딘가 다른 세계로 이어져있다고 믿고 싶은 것이다. "있잖니, 스에마. '여덟 무덤 마을'의 모델이 된 실제 사건이란 게 뭐야?" 여름방학이 막 끝난 어느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먹고 있으려니, 옆에 앉은 키시타 교코가 낱말 맞추기 문제가 실린 책을 보면서 물어왔다. "츠나마 서른 명 살인." 나는 즉답했다. "에...츠나마 서른...아, 맞다 고마워." "근데 너 너무 잘 안다." 자리를 붙여 같이 먹고 있던 아이들이 질린 듯 말했다. "이젠 매니아 급이야. 정말." "시끄럽네~. 그런 건 상식이야." "그런 걸 누가 안대!" "요샌 책도 나왔다고." "안 읽어! 그런 거!" "위험-한 여자야. 카즈코는." 모두 키득거렸다, "근데 말야. 살인자란 어떤 놈일까? 진짜 말야." 낱말 맞추기 문제에서 얼굴을 든 교코가 툭 던지듯 물었다. "어떤 놈이나니. 꽤 여러 가지 유형이 있는 걸." "예를 들면, 우리 반에서 누가 그럴 타입으로 보이니?" 목소리를 죽여 말한다. "헤에~ 뭐야? 들어볼래." 모두 얼굴을 가까이 댄다. "음, 그러면. 어딘가 묘하게 고집이 있고 자신의 세계를 가지며 완고할 듯한 사람. " 말하면서 지명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럼...키리마 나기는 어때?" 당연한 듯이, 모두 입을 모아 우리 반 제일의 명물을 꼽았다. 그 애는 오늘 땡땡이 인 듯, 아침부터 보이질 않는다. "하긴 보통 아이는 아냐." "그야 그렇지. 걔 진짜 수상해. 불꽃의 마녀라니깐." "2학기 들어서 이틀이나 땡땡이 쳤잖아. 내일은 올지 몰라." "안 올지도 모르지. 교문 앞에서 사고 치고 그대로 돌아가 버린다던가." "카하하핫. 있을 법 해." "죽였다고 한다면 걘 정말 했을지도 몰라." "엥,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러니까 그 거, 실패해서 생리가 안 와서 말이지." "에엑~." "그래서 들키기 전에 스스로 정학 먹고 그 사이에 처리해버렸다던데." "그 말 진짜 같애." 아무 근거도 없이 마구 심한 말을 해댄다. 하지만 모두 웃고 있어서 나도 따라 웃었다. 나 자신은 그 애가 싫은 편은 아니다. 불량학생이라고 해도. 그 애의 선생들이나 상급생들이든 뭐든 상관없다는 그 똑바른 눈동자가 멋지다고 생각한다. "걔, 부모가 없다며." "응, 아마도. 외국에 가 있다던 가 했다는데, 알아? 걔 입학시험에서 1등이었잖아. 근데 입학식 때 신입생 대표가 아니었다고. 왜 인지 아니?" "뭔데?" "보호자의 성이 키리마가 아니래." "설마 그럼 소위 '인정받은 아이'라는 거야?" "돈만 받아서 맨션에서 혼자 산다나봐." "헤에." "그래서 하고 싶은 대로 산다나 봐. 남자 데려가도 뭐라 그럴 사람도 없고, 스에마 가 말하는 거 같은 살인자 같이 집에 시체 숨겨놔도 들킬 일없을 테고." "냉장고 속이라던가?" "얼지 않을까?" "전자렌지로 칭~ 해서 요리해먹는다던 가." "아으, 끔찍해." 또 모두 웃는다. 나도 별 수 없이 웃었다. 큰소리로 웃다 보니 근처에 앉아있는 유리하라가 읽고 있던 참고서에서 얼굴을 들 고 이쪽을 째려보았다. 저 애는 반에서 첫째 가는 수재… 아니 전교에서 1,2등을 다투는 우등생이다. 그러고 보니, 어디 학원에서 다른 학교 애들을 재치고 모의고사 에서 3번 연속 1등을 했다고 한다. 미인에다가 도도하기까지 해서 반에 친구는 없 다. 어딘가 차원이 다른 사람이라, 우리는 그 애의 시선에 조금 목소리를 죽였다. "혹시, 그 애가 '부기팝' 아닐까?" 교코가 말했다. "아냐, '부기팝'은 미소년이 틀림없어." 그 때 나는 아직 그 이름을 몰랐기 때문에 뭔가 물어봤다. "몰라? 니가 말야? 살인자 얘긴 데도?" "나라고 뭐든지 다 아는 건 아니야." 설명을 듣긴 했지만 범죄심리에 흥미가 있는 나로서는 그 얘기는 미심쩍은 걸 넘어 서 바보 같은 학교의 괴담에 지나지 않았다. 살인자라기보다는 요괴다. "헤에, 그렇구나…, 무섭네." 그렇다고 해도 모두의 앞이니 그렇게 말하며 놀란 것처럼 보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도 동경하게 돼. 어떻게 죽이는 걸까." 넋 빠진 표정으로 모두 입을 모아 이거다 저거다 하고 말하기 시작했다. 교살이라던가 나이트로 단숨에 찔러 죽인다던가 하는 죽이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들만 얘기하고 있어서 나는 점점 화가 나기 시작했다. "전문가로선 어떻게 생각해?" 교코가 놀리듯이 내게 물었다. "…독가스라던가." "사린 같은?" "아니, 청산가스야. 무색 투명 하지만 독성이 엄청나서 단 번에 죽음에 이르지. 스프레이 같은 걸로 뿌리면 곧 날아가 버리니 증거도 안 남고 시체도 깨끗해. 거기다가 복숭아 향이 난다고." "헤에…." 모두 조금 묘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다. 이런. 지나쳤나. 그 쪽 관계의 지식을 피로(披露)한다 해도 아무도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 때 반에서도 플레이보이로 유명한 키무라군이 '무슨 얘기 해?' 하고 말을 걸어오자, 모두 '아무 것도 아냐.' 라고 대꾸했다. 부기팝의 이야기는 아마도 남자아이들에게는 비밀인 듯 싶다. 여자아이들만의 전설이다. 내가 그 얘기를 알게 된 것은 우리 반에서 마지막인듯 싶다. "......" 축 처진 기분으로 다시 이야기를 시작한 애들에게 되도록 건성으로 보이지 않게 맞장구를 쳤다. 내가 범죄심리나 이상심리에 흥미를 가지게 된 것은 아주 개인적인 체험에 기인한 다. 그것은 바로 5년 전인 중 1 때. 나는 죽을 뻔했다. 그 당시 내가 사는 도시에 배회하고 있던 연속살인범이 경찰 조사로 잡힐 듯 하자 자살해 버린 사건이 있었다. 그 범인은 살인행위 자체에 성적흥분을 느끼는 정신이상자였는데 그가 남긴 메모에 는 우리 집 주소부터 내가 어떤 순서로 학교에서 돌아오는 지까지 상세하게 적혀 있 었다. 어쨌든 나는 그가 자살하지 않았다면 습격당했을 터였다. 경찰은 일단 확인을 위해서라며 우리 집에 범인과의 연관성을 물으러 왔다. 물론 본 적도 없는 타인이다 . 부모님은 내게 숨기려고 했지만 결국 경찰이 내게 직접 물으러 와서 들통나버렸다 . 쇼크 받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나는 이 사실이 잘 와 닿지 않았다. 나와 아무관계도 없는 사람이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동기로 내 목숨을 좌우하고 있었다는 것이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런 종류의 일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그 사건에 대한 이야기는 친구들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 일을 말하면 분명 나를 다른 눈으로 보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정신이상자의 마음에 든 아이' 라는 등의 소문이 퍼지게 되면 그것만으로 주위에 서 이지메 당할 게 눈에 뻔하기에. 그리고 터놓고 이야기하기에도 상당히 심각한 사실이니까. 하지만 그런 데 흥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 이미 아까처럼 살인박사 취급을 받게되었다. 뭐, 이지메 정도는 아니지만. 점심시간도 끝나고 5교시 수업 때문에 교실이동을 했다. 내가 받는 수업은 현대국어로 이과계열로 가려 하는 나로서는 마음에 안 드는 짜증나는 과목이다. 우리 학교는 2학년부터 이·문과로 갈라지지만, 2학년까지는 다른 쪽 과목을 하나 수강해야 한다. 이해할 수 없는 제도이다. 나는 같이 현대국어를 듣는 다른 반 아이와 같이 복도를 걷고 있었다. 보통은 셋이서 가지만, 오늘은 선도부인 니이토키가 선도부모임으로 같이 갈 수 없었다. 걷고 있으려니, < …2학년 C반 미야시타 토카. 빨리 양호실로 돌아오기 바랍니다. 2학년 C반 토카 …> 하는 교내방송이 울려 퍼졌다. "엣, 토카라니, 무슨 일이지?" 옆 친구가 놀라서 말했다. 그녀는 토카네 반이었다. "그 애, 양호실에서 자고 있었어?" "응, 4교시에 갑자기 기분이 안 좋다고 하더라." "헤에, 땡땡이용 핑계 아냐?" "그런가, 아, 하긴 걔 3학년 선배랑 사귄대." "뭐야, 몰래 만나려고 싹 빠져나갔단 거야?" "그럴지도 모른다는 거지. 남녀교제는 교칙위반이잖아. 선도부장[니이토키]에게는 비밀이야." 쉿 하고 손가락을 입에 댔다.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말 안 할게." 그렇게 말하며 창 밖을 올려다보던 그녀는 갑자기, "까아아아아악!!" 하는 비명을 질렀다. 나는 놀라서, "뭐, 뭐야?" "이, 이, 있어. 있었어. 있었단 말이야. 지금!" 떨리는 손으로 창 밖을 가리켰다. "뭐가 있었는데?" "부, 부기팝이야. 옥상에!" "뭐?" 나는 돌아보았다. 하지만, 그런 그림자는 어디에도 없다. "없는데." "있었어. 진짜야! 바로 숨은 거야." "잘못 본 거 아냐? 미야시타라던가." "그럴 리 없어! 검은..통 같은 모자를 쓰고 있었다고…." 그녀는 완전히 혼란에 빠져 있었다. 착각이 뻔했지만 이럴 때는 무슨 말을 해도 쉽게 받아들려 하지 않는다. 역치료가 효과적이다. 믿는 척을 해서 우선 상대방과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다. "알았어, 그럼 옥상으로 가 보자." 내가 그렇게 말하니 그녀는 놀라서 날 쳐다보았다. "에…?" "솔직히 난 부기팝이 있다면 보고 싶어." "그만 둬! 위험해!" "괜찮아, 먼저 교실로 가 있어." 난 혼자 옥상으로 향했다. 도중에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뛰어올라갔기 때문에 헉헉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옥상으로 가는 문은 잠겨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전에 여기에서 투신자살한 학생이 있어 폐쇄되었다는 걸 늦게나마 기억해냈다. 창문 틈새로 들여 다 보았지만 보이는 대로 다 찾아봐도 그럴 법해 보이는 사람 그림자는 없었다. 계단을 내려오니 그녀가 걱정이 되었는지 기다리고 있었다. "…어땠어?" "아무 것도 없었어." "진짜?" "응, 이 눈으로 봤다니까." "뭐야, 역시 기분 탓이었나 봐." 그녀는 안심한 듯 보였다. "그런가 봐." 하지만 나는 왠지 낙심하고 있었다. 교실로 향하면서 옥상 뒤쪽으로 비상계단이 나있으니 그쪽에 있었다면 안 보였을 거라는 생각이 다시금 떠올랐다. 그렇다고 다 시 한 번 가보자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 일을 끝으로 다시 평온 무사한 나날이 계속되고 있었다. 2 "있잖아, 스에마. 살인자란 어떤 생각을 하는 걸까?" 이제 가을도 깊어졌을 무렵, 하교 길에서 갑자기 교코가 물었다. "왜?" 우리 둘은 둑 위를 걸어가고 있었다, 우리 패 중에서 걸어서 통학하는 건 교쿄와 나뿐이었으므로 집에 갈 때는 언제나 함께였다. 우리 학교는 거의 모든 학생들이 버 스통학으로 걸어서 가는 학생이 거의 없다. 이 통학로도 지금 걷고 있는 것은 우리 둘뿐 이었다. "아냐, 아무 것도 아니야." 교코는 얼버무렸다. "저번부터 계속 그런 것만 묻네. 무슨 일 있어?" "아냐, 아무 것도 아니라니까." 그런 말을 하면서 아무 것도 아닐 리가 없다. "뭔데, 말해 봐." "저…있잖아." 교코는 목소리를 낮춰 소곤거렸다. "응." "지금 정학인 거 맞지?" "에? 아, 키리마 말이구나." 그녀는 이주일 전에 교내에서 담배를 들켰다고 정학을 먹었다. 그래도, 내일이면 다시 나올것이다. "걔…정말 살인자라고 생각해?" "뭐?" 나는 귀를 의심했다. 아무리 겉돌고 있다 해도 키리마는 클래스메이트다. 아무리 그래도 살인자 취급을 하다니. "…무슨 얘기야." "어, 저번에 그런 말했잖아. 같이 도시락 먹을 때." 나는 꽤 오래 전 점심시간에 그런 말을 했다는 것조차 까맣게 잊고 있었다. "아, 그랬던가, 말한 것 같기도 한데…." "진짜 그런 걸까." 교코는 진지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 ·· "아냐, 그런 말했다고 쳐도, 그건 예를 들면 이지." 나는 당황해서 대답했다. 하지만 교코의 표정엔 변함이 없었다. "그 애, 좀 무서워." "하긴 친해지기 쉽지 않을 것 같긴 해." "내 친구 중에, 키리마 나기에게 무슨 짓을 당했다는 얘가 있어. 그리고 나서 완전 히 사람이 변해서…." 목소리가 떨리고있다. 진짜다. 놀리는 게 아니다. "무슨 짓을 당했다니…뭘?" "협박당했다나 봐." "삥 뜯겼어?" 교코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니, 돈이 아니고. 그 앤 돈 많잖아." "하기야 맨션에서 혼자 살 정도니까, 그럼?" "‥‥‥." 교코는 입을 다물었다. 나는 그럴 때 모두 하는 것처럼, 비밀은 지킬게, 라고 응수했다. 그래도 입을 다물고 있다. 물어 보았다. "그럼, 그거랑 키리마가 정학 먹은 거랑 관계 있는 거야?" "…몰라." "몰라?" · · ··· "그렇지만 그 일 때문에 일부러 정학 먹은 것 같긴 해." 교코는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 ···· 그러고 보니, 나기가 정학을 먹은 이유가 표면적으로는 학교에서 담배를 꼬나물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피우고 있었던 게 아닌 것이 기묘했다. 거기다 장소도 그렇고. 교직원 화장실이라니. 들키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다. 여선생에게 들켰는데 나기가 꼴아 봐서 남자선생을 불러서 시끄러워 졌다고 했다. 그녀는 말대답도 하지 않았지만 대신 사과도 하지 않았다. 늘 그랬다. 선생한테 주의를 받아도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라고 절대로 말하지 않는다. 한 번 수업 중에 딴 데 봤다고 선생한테 꾸중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그녀는 딱 한마디, '쓸 떼 없이 기니까.' 라고 딱 잘라 말했다. 그래도 성적이 좋으니 선생 이 곤란해 한다. 거기에 가끔 땡땡이도 치고. 그것도 오후만 째는 게 아니고 아예 오질 않는 것이다. 그런 게 삼일 연속인 적도 있었다. 그리고 등교하면 그 사이 수업했던 내용을 전부 꿰고 있어서 선생이 시켜도 아무거나 척척 대답이 나온다. 학교에 안 오면 뭘 하는지 아무도 모르고 물어볼 용기가 있는 사람도 없다. 이상한 사람이고 확실히 쪼금 무서운 면도 있어서 어느새 붙여진 별명이 '불꽃의 마녀'였 다. 일설에 의하면 'カルカ舞う' 처럼 흑마술을 하는 지도 모른다는 말도 떠돈다. 아무리 그래도 일부러 정학을 받는다니 생각하기 힘들다. 정학을 받으면 내신에 남는데. "생각이 지나친 거 아니니?" 나는 교코에게 말해 보았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혼자 하늘을 올려다보며 툭 말을 내던진다. "…나 살해당할 지도 몰라." 듣고 흘릴 이야기가 아니었다. "왜? 어째서?" ·· 그 때 교코의 몸이 흠칫 경련 했다. 그리고 얼어붙었다. "힉‥‥!" 나는 그녀의 시선을 따라 앞을 보았다. 조금 떨어진 길 위에 여자아이 하나가 있었다. 둑에 앉아 있다가 우리들이 가까이 오자 일어섰다. 마구 상처가 난 두꺼운 가죽 재킷을 입고 밑에는 역시 두꺼운 가죽 팬츠를 입고 있었다. 오토바이에 타기 때문인지 팔과 허벅지에 뭔가 금속제의 가이드를 붙이고 있었다. 약간 웨이브가 진 머리를 질끈 동여매고, 흘러내린 앞머리 사이에 엿보이는 두 눈은 씩씩하다고 말하기보다는 날카롭다고 말하는 편이 나으리 라. 이쪽을 ― 아니 교코를 노려보고 있었다. "키시타 교코, 기다리고 있었다―." 남자 말투는 그 애의 특징이었다. 거기 서 있던 것은 정학 중이라는 키리마 나기였던 것이다. "와, 와아악!" 교코는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나를 나기 쪽으로 밀어버리고 뒤쪽으로 도망쳤다. 나는 휘청거리며, 이쪽으로 달려오는 나기에게 부딪칠 것 같았다. 하지만 나기는 나 따윈 안중에도 없이 쓱 피하고 교코를 쫓아 달려갔다. "기, 기다려!" 나는 당황하여 그 둘을 쫓아갔다. 하지만 나기의 발은 빨랐다. 보니, 신고 있는 신 발이 무식하게 크고 검다. 고무장화인가 생각할 정도였다. 그러나 잘 보니 그것은 공사 현장 같은 데서 쓰이는 안전화라는 것이었다. 몇 톤 수준의 무게가 걸려도 박 살나지 않는다는 특수한 신발이다. 저걸로 사람을 차면 흉기다. ( 마치…사람을 덮치기 위한 장비 같잖아! ) 평범한 여고생이 할 법한 모습이 아니다. 물론 양키도 아니고. 이래서는 정말…히트맨이다. "도, 도와줘." 교코가 비명을 질렸다. 그러나 그 때 나기가, "도와달라고 하면, 경찰이 올텐데!" 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교코는 입을 다물었다. 일 순 멈춰 섰다. 그 사이 나기는 교코를 쫓아가 사정 안 봐주고 뒤쪽에서 태클 했다. 두 사람은 구르면서 강둑으로 떨어지려고 했다. 내가 헉헉대며 쫓아가 보니 나기는 교코의 팔 을 반대로 꺾어 구부렸다. 잘은 모르겠지만 유도나 권법인가 하는 대의 '기합'이 들어가 있는 듯 보였다. 교코는 전혀 움직이지 못했다. 물론 그런 격투기 종류는 학교에서 배운 기억이 없다. "아파! 그만해!" "어쩔래, 이대로 부러뜨려 줄까? 그럼 재형성하는 데도 시간이 걸릴테지. 만티코아 !" 나기를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했다. "그만해! 이제 안 할게, 안 할 테니까!" 교코의 외침은 비명에 가까웠다. "그만둬, 키리마!" 나는 그 애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그 애는 나를 차버렸다. 다시 교코에게 말을 건다. "알겠나, 나뿐만이 아니라 에코즈도 널 찾고 있어! 여기서 연기를 하겠다고 팔 하나를 잃는다면 확실히 넌 진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는 지 전혀 모르겠다. "안 해, 안 한다니까! 이제 약 같은 거 손 안 델 테니까! 그만 해!" 교코는 울며 외치고 있었다. 약? "쿠사츠 아키코를 죽였으면서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나기는 무시무시한 기세였다. 나는 심장이 멎을 것 같았다. 쿠사츠 아키코―. 그것은 행방불명이 된 아이들 중 하나인 1학년 아이의 이름이었다. "몰라, 모른단 말야! 우리가 한 게 아냐, 내가 한 게 아냐! 약은 걔한테 받긴 했지 만 ―." 그 때, 교코의 팔에서 귀에 거슬리는 삐걱 하는 소리가 났다. 교코가 눈을 까뒤집었다. "…칫, 평범한 인간인가!" 하고 한 마디 내뱉고는 나기는 손을 뗐다. 교코는 강둑으로 굴렀다. "쿄코!" 나는 허둥대며 교코에게 달려가 안아서 멈췄다. "괜찮아, 관절을 박살내기 전에 그만 뒀어. 조금 아프겠지만 잠시다." 나기가 말했다. "우욱우우…" 교코는 떨고 있었다. "무슨 짓을 한 거야! 도대체!" 나는 외쳤다. "자세한 얘기는 키시타 본인에게 물어 봐, 스에마." 나기의 목소리는 평온 그 자체였다. "우우우…." 교코는 덜덜 이를 부딪치고 있었다. 그 정도로 무서웠던 거다. 무리도 아니지, 나 도 그런 걸.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건 너무 심하잖아!" "그래도 경찰에 잡히는 것 보단 나을 거야. 그렇지, 키시타?" 나기가 말하니, 교코는 흠칫 굳었다. "알겠나, 이걸로 끝나면 다른 친구들처럼 시시한 유혹에 빠지진 않겠지." 그리고 발길을 돌렸다. "잠깐 기다려!" 불러 세우니 나기는 이제 내 쪽을 보고 말했다. ·· ·· · ·· · "스에마, 너도 5년 전의 일에 붙들려 있지 말라고. 너무 빠져들면 해가 돼." 남자아이 같은 말투가 보이쉬한 얼굴과 너무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어, 어떻게…." 어떻게 저 애가 내가 살인자에게 죽을 뻔했다는 걸 알고 있는 거지? "자, 잠깐 기다려―." 나는 그 애를 멈춰 세우려고 했지만 불꽃의 미녀는 그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떠나갔다. ------------------------------------------------------------------------------ 이 게시물은 上遠野浩平의 'ブギ-ポップは笑わない'을 번역한 것으로, 다른 곳으로 옮기실 경우 제게 메일만 보내주시기 바라며, 상업적인 용도로는 쓰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상업적인 용도가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이 소설은 동명의 애니메이션과 영화의 원작소설입니다. 문고본으론 좀 긴 관계로 각 화를 둘로 나누어 올리겠습니다. 그럼 이만. 오늘도 지구를 향해 돌진하는 네메시스. 『창작 - 쓰기-번역란 (go ANC)』 629번 제 목:[번역] 부기팝은 웃지 않는다 제2화 B 올린이:네메시스(김미진 ) 00/11/20 22:36 읽음:605 관련자료 없음 ----------------------------------------------------------------------------- 3 나는 절대 비밀로 한다는 약속을 하고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우린 중학교가 같은 제 1중학교였어. 모두 탁구부여서 고등학교에 가서도 같이 잘 어울렸거든. 응, 쿠사츠도 같이 다녔어. 우리보다 한 학년 아래지만 걔 우리가 3학년 때 부장이었거든. 그래서 별로 후배라는 느낌이 없어. 그래서, 아마 한 3개월 전이었는데, 쿠사츠가 좋은 게 있다면서 모두 모이라고 했 어. 그랬더니 그게 이상한 약이었던 거야. 으응, 각성제 같은 건 아니었던 거 같 애. 희미하게 파란 기가 돌고, 투명한 액체야. 냄새를 맡으면 머리가 화아 하고 내가 투명하게 되어 몸 속 구석구석까지 깨끗하게 씻겨지는 느낌이 들어. 신나? 다를 걸. 잘 모르겠지만 자극이 심하다던가 하지도 않았거든. 쿠사츠가 자세히 얘 기 하진 않았지만 어딘가 제약회사인가 뭔가 에서 새로 개발한 특수제공품이라고 했어. 응, 아마 지어낸 얘기겠지만 뭐 공짜니까 계속 빠져들어 버려서…. 그렇다니 까, 걔 돈 안 받았는걸. 걔가 자기 돈으로 샀다고 하기도 힘들고 어떻게 얻은 건지 짐작도 안가. 그랬는데 우리 중에서 누가 가출해 버리기 시작한 거야. 진짜 어디로 갔는지 전혀 모르겠어. 아무한테도 말도 않고 그냥 사라졌다고. 응, 다른 학교 애들도 그래. 그 뒤, 쿠사 츠도 사라졌어. 그래서 남겨진 우리는 그 약 탓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기 시작한 거 야. 어떻게 손에 넣었는지 모르지만 혹시 다른 사람에게 알려져선 안 되는 게 아니 었을까 ―그래서 안 데다가 써보기까지 한 우리를 노리고 있는 게 아닐까…그런 생각이 들던 와중에 갑자기 누군가가 이제 너희들이랑은 관계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거야. 그 쪽도 불안했겠지. 그래서 왜 그러는지 물어봤더니 키리마한테 협박을 당했다는 거야. 어떻게 된 건지 그 애가 약 얘기를 알게 되어서 이제 손 끊어, 잊어라 라고 했대―. 그것도 한 사람이 아니고 차례차례 협박당한 거야. 내가 마지막이었어. 응, 꽤 전부터 그랬어. 키리마가 정학 먹고 학교에 오지 않은 날부터, 그래서 혹시 일부러 학교에 오지 않아도 될 이유를 만들어 움직이려고 했다고 밖에 생각이 안돼 . 에? 이제 몰라. 절대로 약 같은 건 안 할 꺼야. 키리마 나기도 이제 모르는 체 할 꺼야. 학교에서도 피할 거고. 있지, 스에마,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아 줘. 다른 애들한테도. 정말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는 게 나았을 지도 몰라. 그래도 이게 한계였어. 입 다물고 있는 것만으로 무서워서 죽을 것 같았어―." …나는 울면서 말하는 교코를 달래며 쓰다듬어 주면서 그 애가 진정이 될 때까지 퍼스트 키친의 구석자리에서 시간을 보내고 그 애의 집까지 바라다 주었다. 그리고 혼자 어두운 길을 걸으며 머리를 숙이고 생각했다. 그 애의 단편적인 얘기로는 상황의 한 쪽 면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 애의 얘기로 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교코는 '전(前)탁구부 멤버'였던 그 속에서 그리 큰 비중이 없는 아이일 것이다. 그 애보다는 더 불량한 아이들이 하는 대로 따라한 건 아닐까. 그 애는 피해자도 아니다. 그저 사건의 주위에 있었을 뿐. 쿠사츠 아키코라는 아이는 살해당했다―고 나기는 말했다. 그녀는 그 사실을 알고 있다. 내 과거의 비밀도. (…어떻게?) 도대체 그녀는 어떤 사람일까? 학교―아니 경찰에 알려야 할까? (하지만 교코랑 약속도 했고…) 마약을 한 게 알려지면 교코는 끝이다. 정학 수준으로 끝날 리 없다. 다른 학생들에게 본보기를 보여준다며 퇴학처분을 받겠지. 역시 그런 일을 당하게 하고 싶지 않다. 길은 어두컴컴했다. 전신주의 형광등이 몇 년이나 갈지 않은 듯 깜빡깜빡 거리고 있었다. "‥‥‥." 나는 멈추어 섰다. 그리고 점멸하는 빛 아래서 아무거나 넣어 가지고 다니는 버릇 탓에 상비하고 있는 우리 반 연락망을 펼쳤다. 거기엔 전화번호 뿐 만이 아니라 주 소도 적혀있다. 나는 나보다 세 번째 앞 번호의 사람 주소를 찾았다. 키리마 나기는 의외로 나와 가까운 학교 근처에 살고 있었다. 걸어 갈 수 있는 거리다. (‥좋았어!) 나는 가방을 잠그고 빠른 걸음으로 그 주소를 향해 달려나갔다. 그런데, 왜 난 그 애를 만나야 하는 거지? 당사자인 교코는 다 상황에서 도망치려 하고 있다. 그것이 자연스런 반응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으레 그럴 것이다. 그렇겠지. 그래도 난 이제 싫었다. 5년 전에도 내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멋대로 상황은 진행되어 버려, 그 사실을 알았을 때는 모든 것이 다 끝난 후였다. 내 의지는 어디에도 없었다. 위험이든 뭐든 나오려면 나와. 그래서 저번 점심시간에도 나는 부기팝이라는 있을 리 없는 그림자를 쫓아 달려간 것이다. 그래, 그런 것이다. 나는 이제 뭐라도 좋으니까 어쨌든 '대결'하고 싶었다. (그래― 어중간한 건 이제 질색이야!) 키리마 나기는 진짜 마녀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거야말로 바라던 바였다. "…에?" 주소의 번지로 가보니 맨션 같은 건 어디에도 없는 보통 주택가였다. 잘못된 게 아닐까 몇 번이나 확인해 보았지만 주소록을 다시 보니 거기에 '타니구치씨 댁'이라고 조그맣게 적혀있었다. (…그녀의 성이 라는 보호자라는 사람인가?) 타니구치라는 사람의 집은 있었다. 번지수도 맞는 것 같다. 아주 평범하고 어디에나 있을 법한 팔려고 지은 집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다소 커 보이니 부차인 건 틀림없겠지만 그래도 역시 평범하다. 아까 조우했던 나기의 이상한 모습을 떠올리며 그 이미지와 너무 달라서 난 잠시 망설이며 현관 벨을 앞에 두고 고민했다. 결심을 굳히고 누르니, 역시 힘 빠지는 딩동 하는 일상적인 소리 밖에 나지 않았다 . "누구세요?" 하고 인터폰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놀랐다. 나기가 아닌 남자아이의 목소리였다. "저, 저어, 여기에 키리마 나기라고…." 머뭇거리며 대답하니 밝은 목소리로, "아, 나기의 친구 세요?" 하고 명랑하게 말하며 문을 열어 주었다. 본 인상으로는 중학생 정도이긴 한데 나나 나기보다 키가 컸다. 웃는 얼굴이 사람 을 끌게 생겼다. "야아, 들어오세요. 나기는 아직 안 돌아왔지만." "아, 네, 저어…." "기다리시겠어요. 곧 들어올 것 같은데." 라며 나를 응접실로 안내했다. 아주 평범한 집이다. 캐비닛 위에는 간지(干支)를 본뜬 작은 인형 세트가 놓여 있었다. "드세요." 하고 소년은 홍차와 쿠키를 가져 왔다. "고맙습니다." 맛있다. 홍차 쪽에 대해선 잘 모르겠지만 꽤 좋은 것 같다. "와, 신기해라. 나기의 친구가 오다니." 소년은 아무 꾸밈도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 누구인지?" 내가 물으니 소년은, "동생이에요." 하고 대답했다. 닮은 데가 없다. "저, 키리마는 혼자 산다고 들었는데," "네, 전 반 년 전에 왔어요. 봄까지는 엄마아빠랑 같이 외국에서 살고 있었는데 내년에 고등학교 입학시험을 치니까 저만 먼저 일본에 왔어요." "부모님…." 나기에게도 제대로 된 부모님이 있었던가. 그럼 타니구치라는 다른 성은 뭐지? 그 때 현관문이 열리며 '나 왔어.'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나기다. "어, 왔네." 동생이 맞으러 나갔다. "너 또 여자아이 데려왔냐?" 나기가 말하자 동생은 웃으며, "나기한테 온 거야. 아까부터 기다리고 있었어." 들어온 나기를 보고 나는 무심코 소리를 지를 뻔했다. 교복을 입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학교에서 막 돌아오는 양. "아, 너냐?" 말이 안 나오는 나에게 나기는 조용히 말했다. "위로 올라가자." 나는 그녀가 가리키는 대로 2층의 그녀 방에 갔다. 아래와는 딴판으로 책이며 컴퓨터며 하는 게 널려있을 뿐인 살풍경한 방이었다. 침대 하나에 책상은 두 개. 하나는 공부용으로 그 위는 어질러져 있었다. 또 하나 가 컴퓨터용 책상이었다. 컴퓨터 쪽은 잡다한 상자들과 기계가 정신없게 이어져 있 었다. 거기다 모니터는 3개씩이나 있었다. 처음엔 TV인가 했더니 다 컴퓨터였다. 갖가지 기계가 방바닥까지 널려 있어서 10조는 되어 보이는 방이 반 이하로 작아 보였다. 여자아이 방이라고 하기보단 연구소 같은 느낌이었다. 물론 소문으로 떠돌던 흑마술 서 같은 책은 하나도 없다. 전부 참고서뿐이었다. 그리고 하드 커버의 어려울 것 같 은 책들도 많았다. 거기다 컴퓨터의 데이터소프트 같은 것도 잔뜩 있었다. 나기는 공부용 책상에서 의자를 빼내어 내게 앉으라고 했다. "자." "고마워." 나는 얌전히 앉았다. "놀랬지." 나기가 싱글 웃었다. "응?" "마사키가 있어서. 혼자 산다고 생각했겠지." "으응, 남동생이 있었구나. 놀랬어." "동생 아니라니까. 피가 섞이지 않았거든." 나기는 고개를 저었다. "걘 우리 엄마가 재혼한 상대의 아이야. 좋은 녀석인데 나한테 잘 하는 걸 보니 나중엔 플레이보이가 될 소질이 다분해. 이런." "아, 그런데 타니구치란…." "엄마의 남편 성이야. 나만 옛날 성 그대로고." "헤, 왜?" "난 파더 콤플렉스거든." 나기는 농담인지 진담인지 분간이 안가는 말을 했다. "아버지?" "에, 너라면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키리마 세이이치라고 책만 많이 낸 사람이야…." 나기가 말하던 중에 나는 "엣?" 하고 소리를 질렀다. "거짓말이지?" "뭐가 거짓말 이라는 거야." "―그 작가인 키리마 세이이치가 맞아?" 모를 리가 없다. 나는 그 작가의 책으로 범죄심리라던가 심층 심리 등을 공부했기 때문에. '마음 속의 외침―다중 인격에 대하여' 라던가 '사람이 사람을 죽일 때', '살육자 (殺戮者)는 사람이 변한다', '지긋지긋한 악몽', '「모른다」의 증식', 'VS 이미지네이터' 라는 책들이다. 소설보다도 개념서나 에세이 풍의 논문이 많은 사람으로 실제로 나는 소설 쪽은 전혀 읽지 않았다. 시대를 늦게 태어난 계몽주의자 를 자부하여 책을 무수히 남긴 일종의 카리스마적인 작가였다. "그래, 그 사람이 우리 아버지지. 죽었지만." "응, 그건 알고 있어. …근데, 진짜야? 정말, 진짜에 진짜?" "그딴 걸 거짓말해서 뭐하게." "그렇긴 해도 …그래도." "나 좀 별난 이름이라고 생각한 적 없어?" "전혀 생각도 못 했는 걸…. 정말, 왜 그랬지?" 말하면서 나는 어렴풋이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즉 키리마 세이이치 등 의 소위 작가라는 사람들은 내 주위에 있을 턱이 없다고 무의식중에 지레 생각하고 있던 탓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나와 전혀 차원이 다른 세계에 살고 있음이 틀 림없다고 바라고 있었기에. "뭐 어쨌거나, 나는 그 유산으로 살고 있는 거지. 학비로 그렇고." "에? 어머니는?" "호적에 들어가 있지 않아서 유산은 전부 내 것이 됐지. 반쯤은 엄마가 스스로 포기 한 셈이고. 그 땐 이미 타니구치였으니까. 더 이상 키리마와 연관되는 것도 싫었을 테고. 그 덕에 상속세로 날아가 버리고 이 집엔 하숙하는 셈. " "……." 평범한 중류 가정 출신인 나에게는 전혀 실감이 나지 않는 이야기였다. 확실히 불꽃의 마녀는 제대로 된 환경에 살지는 않다. 그래도 난 물어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있었다. "저, 말야." "뭔데. …아, '이유'인가?" "응, …왜 교코를 도와준 거야?" "호, 용케 '도와줬다'고 알아챘네." 나기는 쓰게 웃었다. · · "쿄코가 애기해 줬어. 수상한 마약에 빠져 있었다던데. 그 약에서 구해 준거지?" "흠, 그런가?" "왜? 어디서 안 거야? 왜 그런 일을 해?" 나는 안달해하며 물었다. "……." 나기는 내 눈을 되쏘아봤다. 나는 가슴이 덜컹거렸다. 그녀는 역시 예뻤다. 왠지 '진짜로 마법을 썼지'라고 말할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아버지는 내가 10살 때 죽었어." 그녀는 갑자기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아, 그래." 내가 애매하게 맞장구를 치니, 듣는 둥 마는 둥 계속 말을 이었다. "죽기 직전에는 엄마가 이제 옆에 없어서 집안에는 나와 아버지뿐이었다. 아버지는 술도 여자도 안 했지만 대신 일만 죽어라 하는 사람이었지. 어느 날, 학교에서 돌 아와 보니 아버지가 쓰러져 있었다. 나는 당황해서 구급차를 불렀지. 올 때까지 나는 입에서 피를 토하고 있던 아버지를 돌보고 있었어. 아버지는, "나기, 평범하다는 걸 어떻게 생각 하니?" 하고 물었어. 나는 무슨 말인지 몰라서 고개만 흔들었지. 그랬더니, "평범하다는 건 그대로 내버려두면 계속 그대로 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그 게 싫으면, 평범하지 않으면 되는 거야. 그러니까 나는―." 결국, 그 게 유언이 되었지. 의식을 잃고 두 번 다시 깨어나지 않았어. 사인(死因) 은 위천공(胃穿孔:위에 구멍이 뚫림)에 의한 내장용해라더군. 지저분하게 죽었어. 의사가 배를 갈랐더니 지독한 냄새가 나서 간호사가 토했다지 아마. 그래서 뭐가 뭔지 모르지만, 그 후 나는 평범하게 사는 걸 그만 뒀단 얘기야." 그녀는 계속 말했다. 내가 말없이 입을 다물고 있으려니 그녀는, "메시아 콤플렉스거든." 하고 갑자기 내뱉었다. "…그래?" 나는 얼굴 생김만은 얌전한 미인으로 보이는 그녀의 약간 얇은 듯한 입술을 쳐다보았다. 눈을 왠지 쳐다볼 수 없었다. "그래. 난 사이코라니까. 유아체험도 충분하고." 그런 엄청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그래도 난 그녀가 편집광으론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하고 대꾸하는 날 가로막듯이 나기는 자기 뒤쪽에 있는 책상으로 가서 컴퓨터를 켜 고 어플리케이션을 불러내어 키보드를 두드렸다. 좌르륵 하고 어떤 명단이 튀어나왔 다. 계속해서 밑으로 스크롤 되어 간다. 사람 이름 같았다. 그 뒤로 숫자들이 지나 간다. "―찾았다." 그려는 손을 멈추고 내게 화면을 보여 주었다. 거기에는 '2-B-33 스에마 가즈코 am 8:25 - pm 3:40' 라는 글자가 보였다. "이거…!" 이건 내 등하교 기록이었다. "학교 회선에 억세스 했어. 이 것으로 전교생의 행동 가이드라인을 설정할 수 있지 . 이걸로 키시타네 패거리가 요새 불량해졌다는 걸 알았어. 그래서 찔러보니 그 약 얘기가 나오게 된 거야." 나는 어리벙벙해졌다. "이, 이 거 범죄 아냐?" "정확히 말하면 형법 위반이지." 나기는 깨끗이 잘라 말했다. 내가 입만 뻐금뻐금하고 있으니,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별 수 없잖아. 학교란 건 말이지. 일반사회에서 격리된 기묘한 환경으로 경찰력조 차 손닿지 않는 곳이야. 폭력 사건이 일어나도 그게 학생들이 한 것이든 교사가 한 것이든 간에 우선 은폐되는 경향이 있어. 심지어 사람이 죽어도, 이유가 그저 '이 지메로 괴로워한 나머지 자살'로 끝내버려. 이지메 했다고 결정지어 버리고 그 이 지메 했다는 학생을 퇴학시켜서 사건이 종료되는 것도 드문 일은 아니라고." "그…그렇지만―." "확실히 나쁜 짓이긴 하지만, 누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야. 선생들은 보탬이 안 된다고." "아니, 그런 게 아니라―." · ··· 그 때문에 일부러 정학까지 먹으면서 하는 사람이란 도대체. 메시아 콤플렉스―. 그것은 '구세주 동일화 지향'이라 하는 기묘한 과대망상증의 일종이다. 키리마 세이이치의 책에서도, 자신이 배트맨이라 믿게 된 한 중년남자가 재판에 서 무죄가 된 살인자를 코스튬을 입고 습격했다는 병례가 실려 있었다. 그 사람은 역으로 살해당했는데 그 게 또 정당방위로 용의자는 무죄가 되었다고 한다. 정말로 용의자가 무죄라면 바보 같은 망상에 의한 희극이고, 그렇지 않다면 정의는 악에게 완전히 패배하고 만 비극이다. 어느 쪽에도 구원은 없다. ·· ·· 키리마 나기는 그런 사람과 자신을 같은 처지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긴, 키리마 세이이치는 사람의 마음 안 쪽에서 일어나는 괴상한 현상을 분석한다던가, 현실의 부조리가 사람을 범죄로 치닫게 한다던가 하는 논문을 책으로 펴내는 등, 생각해 보면 ·· ··· ·· 꽤 그런 종류의 사람으로도 보였다. 그 딸이, 그것도 파더 콤플렉스로 자칭하는 ·· 아이 가 그렇다 해도 이상할 것은 없지만, 그래도―. 잠자고 있던 내게 나기는 휴대폰을 건넸다. 집 전화가 아닌, 자기 명의로 대금을 지불하고 있는 것이겠지, 아마. "자, 전화해." "에?, 어디에," 눈을 동그랗게 뜬 내게 나기는 엉뚱한 얘기를 했다. "니네 집, 지금 친구 데리고 갈 테니까 저녁 준비해 달라고 말하라고." 4 다음 날, 정학이 풀린 나기는 학교에 등교했다. 하지만 교코는 나기를 피했고 그 쪽도 어제 일은 안중에도 없는 듯, 1교시부터 책상에 엎드려서 내처 자고 있었다. 선생들도 건드리면 귀찮아진다며 주의조차 주지않았다. 그 애가 쉬는 시간에 화장실 가려고 일어났을 때, 나는 교쿄들의 눈을 피해 뒤를 쫓아가 말을 걸었다. "저, 저어 키리마―." "에?" 하고 뒤돌아선 그녀는 멍한 표정이었다. 잠이 덜 깬 모양이다. "아, 너냐? 미안하지만 나 오늘 철야할 일이 생겨서 좀 자야 하거든. 그러니까 얘 긴 다음에 하자." 라며 화장실에 들어가더니, 자리로 돌아가서 또 자기 시작했다. "……." 나는 어제 얘기를 좀 더 하고 싶었는데 역시 이렇게 지나가고 말았다. 어제 밤, 나기는 자기를 우리 집 저녁식사에 초대하라고 했다. ···· "니네 집은 전례에서 딸이 늦으면 꽤나 걱정하겠지. 그러니 나랑 만난 걸로 해두라고. 부모님이 여행 중이라 오라고 했다고 말이지." 라고 하기에 나도 시키는 대로했다. 피가 섞이지 않았다는 남동생의 '또 놀러 오세요.'라는 배웅을 받으며 우리가 타니구치가에서 나왔을 때 이미 밤이 되어서 태양은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내가 걸어나가니 나기도 조용히 나를 쫓아왔다. 침묵에 못 견디어 나는 말할 필요가 없었을 말을 했다. "그런데 키리마, 조금은 얌전히 있어주지 않을래." "알았어. 그다지 불량스럽게 안 놀 테니 걱정 마. 할 마음만 있으면 나(私)도 보통 여자 애처럼 말할 수 있어." 무리하게 입술 끝을 끌어올린 그 표정은 꽤나 우스꽝스러웠지만 본판이 예쁘니 별 로 이상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응, 그럼 됐어." 나도 웃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묻고 싶었던 건 그런 게 아니었다. 머뭇거리고 있으니 그녀가 입을 열었다. "너, 머리 좋구나." "그, 그런가." ···· 1등으로 입학시험을 패스하고 학년 톱을 추가시험으로 거머쥐었다는 사람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 복잡한 기분이었다. "응, 그렇게 생각해. 그래서 설명한 거야, 알겠지." "응, 아무한테도 말 안 할께." 정말 그럴 생각이었다. 더구나 아무도 진짜로 믿지 않을 테니.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게 아니고 키리마 세이이치에 대한 이야기." "에? 무슨?" ·· "네가 교재로 쓰고 있는 키리마 세이이치는 딸조차 우습게 깔볼 정도로 바보였다는 얘기 말이야. 그러니 너도 너무 깊게 파고들지 마." 어깨를 으쓱대며 말했다. "……." 나는 잠시 멈추어 서서 그녀를 쳐다보았다.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왜라니 ― 5년 전의 사건은 너랑 관계없어.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마. 해가 된다고. ― 즉, 성격이 삐뚤어지지, 나처럼." "왜?" "왜…?" 나기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너 나처럼 되고 싶은 거야?" 나를 노려보는 그 눈은 '불꽃의 마녀'의 눈이었다. 하지만 내겐 통하지 않는다. 무섭지 않아. 정면으로 그 눈을 되쏘아 보았다. "왜 내가 5년 전에 죽을 뻔한 걸 알고 있는 거지? 난 아무한테도 말 한 적이 없는데." 그 말에 나기는 당황하여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아, 그건…에―또." "넌 반 애들이랑 얘기를 안 하니, 살인박사인 나의 과거는 유명할 거라고 생각했겠지만 그 얘기 아무도 몰라. 나랑, 우리 가족, 경찰 쪽 사람들 빼면 말이지 . 그렇지 않으면 ― 그 사건에 관련된 사람들 뿐이야." "……." "그런 거지." "……." ···· · ·· · ··· "그럼, 역시 너였구나. 날 구해 준 사람이." 범인이 자살했다지만 역시 자살한 게 아니었어. 그녀가 쓰러뜨린 것이다. 쿄코를 구해준 것처럼. "…상관없잖아. 이제 그런 건." 그녀는 기분 나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어째서? 내겐 굉장히 중요한 일이야. 나, 계속 생각했었어. 내가 왜 살아 있는 건지. 범인이 어쩌다 죽어서 내가 살아 있다니, 눈곱만큼도 좋아한 적 없어. 그건 마치 악이 자멸하지 않고서는 선이 생겨나지 않는다는 것이랑 같아. 그런 거 참을 수 없어. 정말 그렇다면 우린 무언가를 더 낫게 한다던가 하는 그 어떠한 것도 할 수 없다는 얘기잖아." 그래―. 그랬던 거야. 정의는 반드시 이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보통 사람인 우리는 정의가 이기는 마지 막날까지 살아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수 없다. 그 전에 살인귀의 변덕으로 죽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살인귀와 싸우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 격려가 된다. 또 그런 사람이 도와주었기에 살았다고 생각하는 게 범인이 자살해서 살아남았다는 것 보단 더 살아갈 힘을 주기 때문에…. 하지만 나기는 차갑게 대꾸했다. "그건 내가 한 게 아냐." "거짓말." "그건 부기팝이 한 일이야, 결국엔." 나는 갑자기 소문으로 떠도는 가공의 캐릭터 이름이 툭 튀어나왔기에 굉장히 당황했다. "―에?" 황당해하는 나에게. "그렇든 어떻든 이젠 별 상관없잖아. 넌 아무런 책임을 느낄 이유가 없다고." 나기는 시원스레 말했다. 그 말에 역시 아까 한 말이 농담이라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난―." "이제 그 얘긴 관두자. 부탁이야." 그녀는 아랫입술을 잘끈 씹었다. 그래서 난 가장 중요한 말은 미처 꺼내지 못하고 둘이서 마냥 걷고만 있었다. ―3교시 수업이 시작되어도 나기는 내처 자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엎드린 등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무척이나 고독하고 쓸쓸하게 보였다. (키리마, 난 그냥 고맙다고 하고 싶었는데. 도와줘서 고맙다고…. 하지만 생명의 은인에게 아무런 보답을 할 수 없는 세상이 이상한 거야, 그렇지?) 나는 마음속으로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나 그녀가 무슨 말을 할지 나는 안타깝게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그녀가 책상에서 기지개를 피며 우우우웅 하고 중얼거렸다. 그러자 지금까지 참고 있던 선생님이 인내심이 한계에 달한 듯 버럭 소리를 질렀다 . "마, 키리마!!" 나기는 멍한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 "…뭡니까, 선생님." "지금 설명하고 있던 곳을 말해 봐! 아니, 식을 증명해 봐라." 선생은 탕탕 칠판을 쳤다. 빈말로라도 그 선생의 글씨는 깔끔하다고 말하기 힘들 정도인데다가 덤으로 문지른 탓에 여기저기 지워져 있었다. 항상 수업을 들으면서 노트에 필기하지 않으면 판독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 나기는 집중하느라 눈을 가늘게 뜨고 보고 있다가, 갑자기 "a,c에서, c가 유리수일 때, x=24, y=17/3, z=7로 성립한다." 라고 말하고 도로 엎드렸다. 선생님은 새빨개진 얼굴이었다. 역시 정답인 듯 하다. 우리는 쿡쿡 웃고 나기는 변함없이 잔다. 이것이 우리 반의 일상적인 수업 풍경이었다. 그녀의 두려움 없는 행동도 혹시 다음 번 상대와 싸우기 위한 준비일지도 모른다. 남의 눈에는 단지 방약무인인 것으로 보일지라도…. 그녀는 또 꾸물꾸물 뒤척였다. "으음…." 한숨소리가 묘하게 여자아이 느낌이 나서 나는 피식 웃었다. 이렇게 불꽃의 마녀는 정학에서 풀려나, 우리 학교로 돌아왔다. ------------------------------------------------------------------------------ 이 게시물은 上遠野浩平의 'ブギ-ポァプは笑わない'을 번역한 것으로, 다른 곳으로 옮기실 경우 제게 메일만 보내주시기 바라며, 상업적인 용도로는 쓰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상업적인 용도가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문고본으론 좀 긴 관계로 각 화를 둘로 나누어 올리겠습니다. 그럼 이만. 오늘도 지구를 향해 돌진하는 네메시스. 『창작 - 쓰기-번역란 (go ANC)』 630번 제 목:[번역] 부기팝은 웃지 않는다 제3화 A 올린이:네메시스(김미진 ) 00/11/23 23:28 읽음:631 관련자료 없음 ----------------------------------------------------------------------------- 간주 Interlude …에코즈는 거리를 헤메고 있었다. 1주일전에 조달한 옷은 이제 너덜너덜해져 방금 전 처럼 걸어다니는 것 만으로 수상 한 자로 경찰에 체포될 수준이었다. 이번엔 알 수 없는 검은 모자 소년이 도와준 덕 에 다행히 아무도 다치지 않고 도망칠 수 있었다. 즉, 그는 산에서 도시로 내려오는 동안 지금까지 그러한 연유로 여섯 명이나 중경상을 입히고 말았다. 그는 자신이 찾고 있는 만티코아가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인간의 거리는 너무나 복잡하고 사람들도 북적대어 그 속에서 어떻게 하면 만티코아를 찾아낼 수 있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 그는 어두워지는 하늘 아래, 골목 길 안쪽에 틀어 박혀 다시금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 방금 전과는 달리 주위에 사람의 기척은 없었다. 골목길에선 썩은 물이 내는 탁한 냄새가 풍겼다. "……." 해 저무는 하늘을 바라보아도 여기에서는 별이 보이지 않는다. 산에서는 낮에도 별 이 보였거늘. 그러나 이제 울고 있을 수 없다. 방금 전 그 검은 모자 소년이 말했다 . "당신은 무언가를 찾아 헤메고 있군요. 그럼 우는 건 찾고 나서 하십시오." 라고. 그 말대로다. 여기서 쓰러질 순 없다. 그는 자신의 아이이며 분신인 만티코아가 저지르는 살육을 막아야 한다. 그녀는 자신은 봉인해 둔 커뮤니케이션 능력과 그가 이 별의 생태계에 섞이기 위해 가지고 있던 능력까지 보유하고 있었다. 그 '변신 능력'은 이 별의 인간을 중심으로 하는 지적문명의 환경밸런스에 영향을 끼치게 되어, 급기야는 그가 온 본래의 사명 까지도 뿌리 끝부터 뒤엎어버리는 결과를 낳게 될 이다. 사명―. 그는 사명을 완수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는 사명을 위해서 태어났으므로. 그 판단은 엄밀하고 공평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와 동류이며 이물질인 만티코아가 이별에 존재해서는 안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죽이지 않으면.. "……." 그는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그 때 비명소리가 났다. "까악!" 길로 젊은 여자가 들어와 그를 본 것이다. 그는 놀라서 양손을 흔들어 자신이 해를 끼칠 의사가 없다고 알리려 했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던 듯 싶다. "당신은 이런 데서 뭐하고 있는 거에요!" 라며 여자 쪽에서 그에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아까 소리는 비명이 아닌 그냥 놀라서 낸 소리인 듯 하다. "다쳤네요. 도대체 어떻게 된거에요?" 여자를 잘 보니 아직 소녀였다. 그녀는 가지고 있던 비싸보이는 디자이너 제품의 손수건을 꺼내 그의 이마에 난 상 처에 대고 피를 씻어냈다. 상처 자체는 이미 아물어 그저 피가 말라 붙어 있는 것 뿐이라 그는 아프지 않았다. "다,다쳐…." 그는 치료는 필요없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 ····· · · ·· ··· ··· 그러나 그녀가 말한 단어 속에 그가 대답하기에 쓸 수 있는 단어가 없어서, 의미 있 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어쩌지, 경찰이라도 부를까요?" "겨,경찰…." 그 것 밖에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소녀는 그것만으로 그가 말하지 못했던 말을 이해했다. "경찰은 안된다고요. 알았어요. 집은 어딘지 말할 수 있어요? 근처에 없어요?" "집―없어." 그는 그녀가 한 말에서 단어를 조합해 문장을 억지로 만들어냈다. 다른 사람과 말을 할 경우, 그는 상대방이 말한 단어를 사용하여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인간 이 생각해서 얻을 수 있는 범위 내의 정보 이상을 제공하면 안되기 때문이었다. "집 없어요? 뭐야, 뭔가 사연이 있을 법 한데." 그는 끄덕였다. 그리고 손을 들고 소녀에게 그만 가 달라고 하려 했다. 소녀는 그의 어깨를 톡 두드렸다. 진정하라는 뜻의 바디랭귀지였다. "안돼요, 안돼. 여기서 있음, 내가 편히 잘 수가 없다구요." "음, 그럼, 우선 학교로 가요. 거기 들어가려면 체크해야 하지만, 내가 샛길 알고 있으니까." "학교." "우리집은 맨션이라 이웃들 눈치보여서 말이죠. 여러가지로 복잡해요, 나도. 헤헷." 장난스럽게 말하며 반강제적으로 그의 팔을 잡아 끌어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끌고 가 듯 안내했다. 그는 어떻게 해야 할 지 갈피를 못 잡고 소녀가 하자는 대로 했다. 이 아가씨는 어떤 사람일까, 그가 생각하는 것과 거의 동시에, "나, 카미카시로라고 해요." 라고 이름을 댔다. "카미카시로 나오코, 신요학원 3학년이에요. 당신은?" "아,우…." 그는 대답할 수 없었다. 인간에게 자신에 관한 정보를 주어서는 안되기 때문에. "뭐야, 말 못해요?" "말―못해." "말 할 수 있잖아요. 으응, 다른 사람들은 반향체[에코즈]라고 불렀어요? 별난 이름 이네. 마치 나보고 부르라고 만든 이름 같애." 카미키시로 나오코는 쿡쿡 웃었다. 그녀는 스스로 말을 할 수 없는 그의 의지를 이 해할 수 있는 특수한 현상을 아직 깨닫지 못 하고 있었다. 그녀는 웃는 얼굴로 그를 향해, "뭐, 됐어요. 내 친구 중에 나기라고 재미있는 애가 있어요. 걔한테 상담해보면 대 부분의 트러불은 해결할 수 있어요. 에코즈군, 당신이 나쁜 사람만 아니면 말이죠." 하며 윙크했다. 그리고 휴대폰을 꺼내, 그 나기라는 사람에게 전화를 거는 지 재빠르게 버튼을 누르 고 있었다. 제 3화 세상에 영원히 사는 자 없으니. No one lives forever ― 1학년 D반 사오토메 마사미 1 신요학원 1학년 D반 사오토메 마사미는 15세 때 처음으로 사랑을 했다. 그는 지금 까지 타인에게 마음을 열지 않는 그저 '좋은 사람'으로 있었기에 그 일은 그의 인생 에 있어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다. "사오토메군, 이번 주 일요일 한가해?" 같은 반인 쿠사츠 아키코가 그렇게 말하며 말을 걸어 온 것은 2학기가 막 시작하여 청소당번으로 방과 후에 남아 있을 때의 일이었다. "별로 예정은 없는데." "그럼 사치코가 영화 꽁짜표가 생겼다는 데 같이 가지 않을래?" 새까맣고 광대뼈가 튀어나온 그녀는 묻듯이 마사미를 쳐다보았다. "또 누구랑 가는데?" 마사미는 빗자루를 지팡이 삼아 기대어 그녀의 눈높이까지 고개를 숙였다. 그는 장 신이고 얼굴은 아이돌인 누구와 닮았다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미남이었다. 하지만 이는 말하는 사람에 따라 의견이 분분해 결코 특정의 인물을 닮았다는 이야기는 들 바 없었다. "F반의 사카모토군인데 알아? 걔가 사치코에게 같이 가자고 한 모양인데 사치코가 혼자선 좀 그렇다고 해서." "그래서 선도부의 해결사가 필요하단 얘기야. 그런데 난 사카모토랑 친해서 방해하 고 싶진 않다고." "아냐, 그런 게 … 그럴지도." 쿠사츠 아키코는 그에게 마음 약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다른 녀석들에겐 기가 센 그녀가 마사미에게 강하게 밀어부치지 못하는 이유는 그를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그 리고 마사미도 그걸 알고 내심 귀찮아하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하지만 오늘은 미소로 답했다. "알았어. 같이 가는 것 뿐이라면 갈께. 나도 한가하고 지도교사랑 마주쳤을 때 변명 정도는 적당히 둘러대 주지." 쿠사츠의 얼굴이 밝게 빛났다. "그래? 응, 사치코도 속으론 사카모토군이 가자고 해서 기뻐하고 있어. 감싸주나 않 으나 관계 없을지도 몰라." "아무렴 어때." 두 사람은 웃었다. 절대 마음에 든다고는 할 수 없는 사치코가 단정한 얼굴의 마사 미 옆에서 웃고 있으니 마치 드라마의 한 장면 같았다. 넷이서 역 앞에서 데이트한 그들은 꽤나 사이 좋게 보이는 듯 했다. 도중에 마사미 의 선도부 선배인 다케다 케이지와 만나기도 했으나 그는 그들을 보고 "그룹 교제 냐."라는 발언을 하여 확연한 남녀교제인 느낌으로 보고 있는 듯 했다. 영화는 딱히 나쁘지도 좋지도 않은 할리우드의 유명한 액션스타가 나오는 시리즈 물 의 3탄으로, 마사미가 가장 감동한 장면은 단 하나, 악당 단역이 가슴에 총을 맞았 는데도 불구하고 공중제비를 넘으며 다시 덤비는 신뿐이었다. 양팔로 버티다가 뒤 로 날려가버리는 장면은 마치 아이스 스케이트에서 뒤돌기를 하는 양 보여서 마사미 는 너무나 자유로울 것 같아 가볍겠다고 생각했다. 영화관에서 나와 길을 걷는 그들 옆을 살기 등등한 십대 소년소녀들이 지나갔다. 모 두 기묘하게 굳은 얼굴을 하고 종종 걸음으로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가지고 있는 가방은 각이 지고 두툼했다. "아, 입시학원생들이네." 이 데이트의 발안자인 노구치 사치코가 말했다. "왠지 싫은 걸. 우리도 내후년이면 저렇게 된단 말이지." "그렇네." 쿠사츠 아키코는 끄덕였다. 그러나 마사미는 그녀가 언젠가 무슨 얘기를 하다가 나 온 건지 까먹었지만 아무튼 자기는 대학을 안 간다고 한 것을 기억해 냈다. 부친의 회사가 도산 직전이라는 듯 했다. "아직은 먼 얘기야. 지금은 그런 건 생각하지 말고 즐기자고." 노구치 사치코를 꼬시는데 필사적인 사카모토 키요이가 분위기를 다시 띄우려고 말 했다. "어떻게든 되겠지, 뭐. 인생 같은 거야 영원히 사는 놈도 없고 말이야." 마사미도 비꼬지 않고 말했다. "아, 봐. 쟤 우리 학교의 유리하라야." 하고 노구치 사치코가 가리킨 것은 신요학원에서 유명한 수재, 2학년 D반의 유리하 라 미나코였다. 입시학원 2학년 모의고사에서 쟁쟁한 다른 진학교(進學校)의 맹자들 을 누르고 연속 톱을 거머쥐었다는 전설적인 인물이다. 그런데도 전혀 공부에 미쳐 사는 타입으로도 보이지 않고 안경도 끼지 않았다. 길고 찰랑찰랑한 스트레이트 헤 어는, 정성껏 트리트먼트 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광채를 내뿜고 있었다. 가느다 란 얼굴형과 더불어 마치 헤이안 시대의 공주님처럼 보이게 했다. 소곤대는 그들의 옆을 지나 유리하라 미나코는 다른 사람들보다 현격히 느릿한 페이 스로 입시학원 쪽으로 사라져갔다. "…왠지 모르겠지만 대단해 보이는 데, 천재의 오라라는 건가." "알고 있어? 쟤, 진학교에서 스카웃 되었다던데." 사정을 잘 아는 양 사카모토가 말했다. "거짓말! 그런 게 있단 말이야?" 까아까악 떠드는 그들의 모습은 선배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 그 동안 마사미는 홀로 조용히 미소 짓고 있었다. 방금 전에도 그는 유리하라 미 나코를 보려 하지도 않았다. '밖에서는 눈을 마주치지 않는' 것이 그들 사이에 한 약속 중 하나였다. "있지, 가라오케 가자. 여러 가지 들어놓은 데가 근처에 있어." 쿠사츠 아키코가 밝게 말했다. 그녀는 동경하던 마사미와 같이 있어서 붕 떠있었다. 가라오케에서 마사미는 최신 유행인, 그러나 이제 절정은 지나 모두 지겨워하는 무 난한 노래를 불러 재꼈다. 그는 가라오케에선 대체로 이런 종류의 곡 외엔 부르지 않는다. 그가 좋아하는 아티스트는 도어즈라는, 보컬이 마약 중독으로 죽고 아주 먼 옛날에 (그가 태어나기도 전에) 해산한 아메리카의 밴드였지만 그런 취미가 있 는 것을 아무한테도 들키지 않았다. 가라오케에 따라선 마이너한 도어즈의 곡이 있 는 경우도 있지만 실제로 부른 적은 없었다. 그는 노래를 잘 불렀다. 하지만 뭐라 해도 모두 질려버린 곡들이기 때문에 대단한 호응은 없다. 대신 다른 사람들이 부를 때 손으로 박자를 맞추고 분위기를 흐릴 만한 행동은 하지 않는다. 틀렸다고 지적을 당해도 화내는 법이 없고 늘 거리를 두 는 것을 잊지 않는다. 그는 음료수를 모두에게 사서 돌렸다. 가지고 온 점원의 손에서 그가 받아 모두에게 건넸다. 쿠사츠 아키코의 손에도 건넸다. 건네기 전에 직경 5 미리 정도의 작은 정 제를 컵에 떨어뜨리는 것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정제는 유리하라 미나코가 ' 합성'한 물건으로, 그녀가 말한 대로 곧 다이어트 콜라에 녹아들어 쿠사츠 아키코 가 그 존재를 알아채는 일은 없었다. 2. 사오토메 마사미 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좋아하게 된 상대인 2학년의 키리마 나기에 게 고백한 것은 5월의 일이었다. 나기는 그를 깨끗이 차버렸다. "미안하지만, 그럴 여유가 없어." 가 그녀의 대답이었다. "…연하는 싫으십니까?" "아니, 그런 게 아니고 …너 보통 녀석이잖냐. 나에게 관여하면 힘들어질 꺼야. 미 안하다. 마음은 고맙지만." "…그렇습니까." 그러나 그는 이상하게도 그 일로 그다지 상처받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에게 차갑게 거절당하여 안도 마저 느꼈다. 그가 그 때 느꼈던 기분의 정체를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2개월 후의 일이었다. "어이, 사오토메. 니가 쿠사츠 데려다 줘. 난 노구치랑 갈 테니까." 가라오케도 파장 무렵이 가까워지자, 사카모토가 마사미에게 소곤거렸다. "알았어. 잘 해봐." 마사미도 귓속말로 답했다. 네 사람이 가게를 나왔을 때, 갑자기, "나, 왠지 기분이 나빠…." 쿠사츠 아키코가 새파래져서 말했다. "이런, 곤란한데. 그럼 내가 집까지 데려다 줄게." 라며 마사미가 즉시 그녀의 어깨를 잡고 말했다. "엣, 잠깐 사오토메군." 노구치 사치코는 당황했다. 이대로 라면 그녀는 사카모토와 단둘이 있게 된다. "너흰 그대로 재미보라고. 괜찮아, 내가 책임지고 잘 보살필 테니까 걱정 말고." "엣, 하지만…." "사오토메도 그렇게 말하잖아. 우린 우리끼리 가자, 응?" 사카모토가 말하며 남자들이 미리 짠 대로 둘로 찢어졌다. 노구치 사치코는 사카모 토의 '아무 짓도 안 한다니까!'라는 말에 눌려버렸다. 마사미와 헤어진 후, 그들은 결국 호텔에 가서 관계를 가지고 말고, 거기다 그 일이 노구치의 부모님에게 들켜서 보수적인 노구치의 부친이 격노한 나머지 사카모토가 학교에 있을 때 분개하며 난입해 들어와, 그 소란 덕에 그 쪽은 이후에 일어나는 사건에 관여할 여유가 없게 된다. 당연히 사오토메 마사미와 같이 행동했다는 것조 차 잊어버리고 만다. "잘 가." "잘 가라." 네 사람은 이렇게 둘로 갈라졌다. "기분, 나빠…." 마사미에게 기대어 데려가지는 쿠사츠 아키오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마사미는 말을 걸지도 않고 그저 묵묵히 그녀를 짐짝처럼 운반하고 있을 뿐이었다. 쿠사츠 아키코도 그에 기분 상해할 여유는 없었다. 그녀의 안색은 창백한 수준을 넘어 지금은 혈관이 튀어 올라 보일 정도였다. 마사미는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대로 뒷길로 들어섰다. 거리의 시끄러운 바깥 길 에서 도로 하나를 건넌 것만으로 거기에는 면 광년이나 떨어진 듯한 조용한 묘지와 같은 장소였다. 그곳에 재개발에 실패하여 방치해 둔 거대한 입체 주차장이 있었다. 원래는 빌딩이 되었을 터였으나 아직 처분이 정해지지 않아 주차장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는 곳이 다. 그 뒤, 관리자가 파산해서 지금은 국가의 불량채권 중 하나로 방치되고 있는 실 정이다. 난간이 있는 곳으로 쿠사츠 아키코를 안고 들어갔다. 아니, 그 때 이미 그녀는 숨을 쉬고 있지 않았다. 마사미는 그녀를 끌고 주차장의 7층까지 올라갔다. 여기까지 오 면 장난으로 들어오는 놈이 있어도 들킬 염려가 없는 높이다. 그는 손목시계를 보았다. 라이트 기능이 달린 디지털 시계다. 아날로그와 달리 소리 가 안 나는 이점이 있다. 시각을 확인하고 그는 혼자 끄덕였다. 밑의 암흑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먼 바닥께 에서 마치 판에 바늘을 떨어뜨린 것 같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리고 마사미의 눈앞에 돌연 사람 그림자가 하나 떠올랐다. 소녀였다. 그 그림자는 그의 옆을 비껴서 주차장 안으로 들어왔다. 거의 최고점에 도달했을 때 착지했기에 바닥의 지면을 찼을 때 같은 소리는 없었다. ˙˙˙ ˙˙˙ ˙˙ ˙˙˙ ˙˙ ˙˙˙ 그렇다, 소녀는 점프로 7층 높이를 오른 것이다. 길고 풍성한 머리에 바싹 붙여진 듯한 머리카락을 지닌 흑발의 소녀는 마사미를 향 해 뒤돌았다. 손에는 입시학원에서 돌아온 듯 가방을 들고 있었다. 유리하라 미나코였다. "…어떻게 됐어?" 그녀는 마사미에게 물었다. 마사미는 끄덕였다. "봐, 저기에 있어." 눕혀진 채 꿈쩍도 안 하는 쿠사츠 아키코의 사체를 가리킨다. "이쪽인가. 다른 쪽 여자아이 쪽이 좋았는데." 유리하라는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마치 동요라는 것 자체가 없는 말투였다. "아니, 그렇지도 않아. 이쪽이 의외로 교우 관계가 넓다고. 중학교 때 친구도 꽤 있 고." 마사미도 차갑게 자르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그럼 됐어. 사오토메군 쪽이 더 잘 알겠지." 유리하라는 마사미에게 가방을 건넸다. 마사미는 호텔 보이처럼 받아 쥐었다. 유리하라는 쿠사츠 아키코의 앞에 엎드렸다. ˙˙˙˙˙ "…하지만 지금 당장 먹어치우지 않으면 시체만 하나 만드는 꼴이야." 아름다운 얼굴을 찡그리면서 말했다. ˙˙ "뭘, 얘로 낚으면 곧 4,5명은 섭취할 수 있어." 마사미가 희미하게 웃는다. "지금은 참아, 만티코아." "인간 사회란 꽤나 성가신 거군." 만티코아로 불린 유리하라는 한 숨을 내 쉬었다. 긴 머리가 밑으로 흘러내리는 걸 손가락을 치워가며 그 사체에 키스를 한다. 혀로 상대의 입을 벌리고 인공호흡처럼 그 체내에서 합성한 엑기스를 가스 형태로 만들 어 쿠사츠 아키코의 몸 속으로 흘려보낸다. 그 을씨년스럽고 기분 나쁜 광경을 어둠 속에서 지켜보면서 마사미는 넋을 잃은 표 정을 했다. 성적인 쾌감이라도 얻는 듯한 얼굴로 사정의 순간과 같은 끈적끈적한 표 정은 녹아들 듯 한 눈을 하고 있었다. 30초 가까이 유리하라는 계속 입맞춤을 했다. 이윽고 입술을 떼고 손등으로 닦았다. 새빨간 입술은 루즈가 아니기에 그 색이 손에 묻어나지 않았다. 엷게 화장을 하고 있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는 매끈한 피부 색 또한 그러하였다. 진짜 유리하라 미나코를 카피할 때 그대로 옮겨졌기 때문이다. "…잠시 후면 재활성화가 시작될 꺼야." 유리하라는 만족스런 웃음을 띄웠다. "흠." ˙˙ 하고 마사미가 가볍게 시체를 차니, 손가락이 꿈틀거렸다. 사체의 전진이 삐걱삐걱하고 흔들리고 있었다. 고압전류에 감전된 양 보였다. 그리 고 용수철처럼 상체가 튀어 올랐다. 눈과 입이 쩍 열리고 양쪽에서 눈물인지 침인 지 분간이 안가는 파란 액체가 송골송골 흘러 떨어졌다. "―이런, 이걸 들이마시면 안되겠지." 마사미는 휘발성을 띈 단 향기에서 피하려고 조금 떨어졌다. "그래요. 이 건 소위 말하는 마약이니, 사오토메 군까지 중독 되면 곤란하죠." 유리하라는 마사미와 교대로 쿠사츠 아키코의 앞에 섰다. 그리고 명령했다. "―이쪽을 봐, 여자." 죽어 있었을 터인 쿠사츠 아키코는 그녀가 말하는 대로 천천히 머리를 움직여 유리 하라 쪽을 보았다. 흘러나오던 액체는 이미 멎어 있었다. ˙˙ ˙˙˙ "너에게 능력을 부여했다. 인간을 타락시키는 능력이다. 그 능력을 써서 내게 인간 ˙˙ ˙˙ 을 바쳐!" 평범한 사회에서라면 생각조차 할 수 없을 상식에서 벗어난 말에 방금 전까지 죽어 있었던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나, 타락시켜서 주위 사람들이 그들이 사라져도 갑자기 불량해진 탓으로 납득 할 정도로 하는 거다. …너 자신도 포함해서 말이지." 그 뒤에서 마사미가 수업참관을 와서 자기 아이가 선생님의 질문에 대답을 잘 하는 걸 본 부모처럼 만족하여 머리를 주억거리고 있었다. 유리하라의 속삭임은 계속 된다. "그리고 너는 여기서 얼어난 일은 기억하지 못한다. 너는 어디까지나 자신의 의지로 타락해 가는 거다…." ------------------------------------------------------------------------------ 이 게시물은 上遠野浩平의 'ブギ-ポップは笑わない'을 번역한 것으로, 다른 곳으로 옮기실 경우 제게 메일만 보내주시기 바라며, 상업적인 용도로는 쓰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상업적인 용도가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이 소설은 동명의 애니메이션과 영화의 원작소설입니다. 문고본으론 좀 긴 관계로 각 화를 둘로 나누어 올리겠습니다. 그럼 이만. 오늘도 지구를 향해 돌진하는 네메시스. 『창작 - 쓰기-번역란 (go ANC)』 631번 제 목:[번역] 부기팝은 웃지 않는다 제3화 B 올린이:네메시스(김미진 ) 00/12/02 12:45 읽음:588 관련자료 없음 ----------------------------------------------------------------------------- 3. 5분 후, 전처럼 마사미는 쿠사츠 아키코의 몸을 부축하면서 길을 걷고 있었다. "으, 으응…어라?" 쿠사츠 아키코가 기절에서 깨어나 눈을 떴다. "여긴 어디?" "휴, 겨우 일어났냐." 마사미는 그녀에게서 떨어졌다. "에, 뭐야. 나 잤었어? 너무해! …깨워주지 않고." 쿠사츠 아키코는 당황했다. "얼마나 깨웠는데." "그래, 미안해. 왜 그랬더라. 에…그러니까…." 하고 그녀는 언제부터 기억이 없는 건지 생각해 보았지만,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았 다. 이미 자신은 죽었고 지금은 단순히 약물 자극으로 조직반응이 지속되고 있다는 건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겠지. "근데, 너 무겁더라. 꽤 힘들었다." 라는 말을 듣고 그녀는 얼굴을 붉혔다. 그러나 그는 그 말에 그리 상처 입지 않았다. 두 사람은 역 앞 광장에서 헤어졌다. "그럼 내일 또 학교에서 보자." "응,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아 줘. 오늘 일은. 특히―." 라고 말하다가 그녀는 말 을 잇지 못했다. 누구였는지, 창피한 일을 절대로 들키고 싶지 않았던 남자애가 있 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그 애의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았다. "특히, 뭔데." 마사미는 미소지으며 물었다. "으, 으응. … 아무것도 아니야." 쿠사츠 아키코의 짝사랑은 기억과 함께 사라져버린 듯 하다. "오늘은 즐거웠어." 하고 마사미가 상냥하게 말했지만, 그녀는 왠지 모르게 어찌되 든 간에 상관없단 생각이 들어, "아? 아아, 그래." 하고 차갑게 말하고 등을 돌렸다. 왠지 마음속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듯한 기분이 들었지만, 설마 아예 이젠 자신의 의지와 정신이 송두리째 없어져버렸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 마사미는 역 안으로 사라져가는 그녀를 배웅했으나 곧 발길을 돌려 거리로 돌아왔다 . 카페 '트리스탄'에서 약속한 대로 유리하라가 기다리고 있었다. 구석 자리에 앉아 있었다. "잘 했겠지." 그녀는 안경을 끼고 머리모양을 바꿔 변장하고 있었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자유롭게 변화 가능했다. "응, 이젠 좀 둔감해졌더군." 마사미는 자리에 앉으며 레몬 티와 마론 케이크를 주문했다. 그는 단 걸 무척 좋아 했다. "이제 그 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친구들에게, 자기도 어디서 얻었는지 모르는 마 약을 들이마시게 돼." "밤중에 몽유병자처럼 자신의 뇌 세포로 합성된 액체를 병에 담는 거야. 후훗, 어디 서 난 건지 전혀 신경 쓰지 않아. 뇌가 사라져가니까 제대로 된 판단력도 없을 테니 ." 두 사람은 얼굴을 맞대고 쿡쿡 웃었다. 그 모습을 옆에서 본다면 평화로운 죄 없는 어린 연인으로밖에 보이지 않겠지. 사오토메는 이미 유리하라 ― 아니,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 만티코아에게 소녀 3 명 을 던져주었다. 그들이 만난 것은 2개월 전으로 학교가 여름방학에 들어가기 직전의 일이었다. 거의 활동이 없는 부라고 해서 마사미는 다도부에 들어갔다. 고등학교 때 동아리 활 동을 안 하면 나중에 대학입시와 취직 시의 면접에서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할 것 이라는 생각에서 였다. 거기엔 유리하라 미나코도 있었다. 그녀도 마사미처럼 같은 구실로 들어왔으나 평소에도 모임이 적은 부의 활동 일에도 출석하려 하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 화창했는데 여름의 변덕스런 날씨 탓인지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던 날 의 일이었다. 그 날에도 마사미는 다도부에 나갈 생각이 없어 그냥 가려고 했다가 우산이 없어 별수 없이, "잠깐 부실에서 시간이나 보낼까." 하고 신발장을 떠나 교내로 되돌아 왔다. 다도부는 전용 부실이 없어 학생지도 용도 등에 쓰이는 작법실(作法室)을 빌리고 있 었다. 교내에 다다미가 깔린 방은 거기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고문 고사는 부교 두인 코미야 교류(敎諭)인데 업무에 바빠서 그 역시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그 날도 부실은 조용하고 그 이외의 학생이 있는 기척은 없었다. 작법실의 끄트머리에는 다도부 출석부가 놓여있어서 거기에 이름을 쓰기만 하면 활 동에 참가한 것으로 인정되었다. 정규 활동 일에 나오지 않고도 이 것으로 활동을 한 게 되어 제명되는 일 자체가 없다. 마사미는 출석부를 펼쳤다. 먼저 날짜를 쓰고 이름을 마저 쓰려고 했다. 그런데 날 짜를 쓰고 보니 그 전에 같은 날짜 표시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출석자가 있었다. 바로 유리하라 미나코 였다. "…?" 화장실에 간다고 해도 가방도 없다니 부자연스러웠다. 그는 지금까지 유리하라 미나 코에게 전혀 흥미가 없었다. 학교의 재원(才媛)에다 덤으로 미인이었지만 그는 별로 상관이 없었다. 그는 사람의 얼굴에서 미추(美醜)가 어떤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중학교 때 이미 성적인 경험은 끝마쳤는데, 그의 상대는 여드름투성이로 반에 서도 못생겼다는 말을 듣던 아이였다. 물론 비밀 교제였지만 이유가 창피해서가 아 닌 알려지면 여러모로 귀찮아지기 때문이었다. 못생긴 아이와 사귀는 것 자체는 그 다지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 아이는 그와 사귀면서 여드름도 사라져 점점 예뻐지더 니 다른 남자친구가 생겨서 그와 헤어졌다. 하지만 원래 그는 그녀를 좋아하지도 딱 히 뭐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기에, 그저 욕망의 배출구로 이용한 것뿐이기에 미련이 없었다. 오히려 헤어지자고 말을 꺼낸 그녀 쪽에서 미안하다며 울음을 터트렸다. 그녀의 이름조차 이제 마사미는 생각나지 않았다. 그런 그였기에 유리하라 미나코 의 얼굴도 잘 생각나지 않았다. 그저 성적이 엄청 좋은 여자아이라는 것만 기억하고 있었다. "선배님, 계세요?" 그는 실내화를 벗고 양말도 벗고는 작법실 다다미 위에 올라섰다. 둘로 나뉘어진 방 의 장지문을 열었다. 원래 여기는 방석이나 테이블 같은 게 널려있던 창고였다. "…!" 문을 연 순간, 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창고 안에, 유리하라 미나코가 방석에 파묻히듯 거꾸로 서서, 머리가 몸통 쪽을 향 하고 있었다. 머리가 위아래가 반대 방향으로 되어있었다. 목뼈는 부러지고 척추는 조각나있을 테지. 두 눈이 휑하니 열려있었다. 움직이지 않았다. 기척도 없었다. 죽었다. "……." 마사미는 출석부에 이름까지 적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말썽에 말려드 는 건 사양하고 싶었다.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그 행동으로 마사미는 살 수 있었다. 휙 하고 날카로운 손톱을 지닌 손이 코앞을 스쳤다. 숨어있던 살육자가 그를 덮친 것이다. ( ―뭐지?!) 그는 위를 올려다보았다. 벌거벗은 소녀 하나가 판으로 짜여진 천장 모서리에 손발을 고정하여 버티고 있었다 . 여자라고 생각한 까닭은 사타구니에 남자 성기가 없었기 때문이었으나, 후에 그는 그곳엔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소녀는 씩 웃었다. "봤군." 중얼거렸다. "보았다면 살려둘 수는 없지." 거의 장난치는 듯한 목소리였다. 그 바로 밑에 시체가 널브러져 있지 않았다면 완전 히 농담이라 생각했을 터이다. "……." 마사미는 말을 잃었다. 멍하니 그녀를 올려다보고 움직이지 않았다. 그가 만약 여자아이이고 그 소문을 들었다면 아마 이렇게 생각했으리라. '부기팝이다'라고. 소녀는 바람처럼 달려들어 알아차렸을 때에는 이미 그의 몸이 그녀의 발차기에 작법 실 반대편에 처박혔다. "―헉." 마사미는 등을 벽에 부딪쳐 위험하게도 의식을 잃을 뻔했다. "으, 으윽." 그러나 지금 기절할 순 없었다. 후후, 소녀가 웃으며 그에게 다가왔다. 그 몸에는 나뭇잎과 흙이 묻어있었다. 학교 뒤쪽은 산이 깊다. 아마 산을 내려와 맨 처음 맞닥뜨린 게 이 학원일 터였다. 그 모습은 긍지 높은 야생동물처럼 다른 곳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아름다움과 늠름 함조차 풍기고 있었다. 인지(人知)를 넘은 것에만 존재하는 고고한 정신을 담고 있 었다. "……." 마사미는 그저 그 모습을 올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마침 잘 됐군. 카피한다면 여자보다는 남자 쪽으로 하려고 했었지. 네 모습을 빌리 겠어." 그녀는 마사미에게 손을 뻗쳐왔다. 그러나 그 때 마사미는 몸에서 씌었던 게 떨어져 나간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뭐라고?" 그는 눈썹을 찡그렸다. "…카피한다니?" "그래. 나는 너로 변해 인간사회에 스며들어간다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도록." "…그런가." 그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의 목숨이 끝나는 절망에서 온 것는 아니 었다. 그는 이어서 이렇게 말했기 때문에. "그렇다면 나는 죽이기보다 살려두는 편이 효율이 좋지 않을까." 분한 듯한 말투였다. 소녀도 눈썹을 찡그렸다. "…무슨 얘기야?" "나 보다도 저 별난 사람인 우등생 유리하라 미나코로 변하는 쪽이 더 해먹기 쉬울 껄. 나로 변하면, 달라지면 반에서 주목을 받게 될 꺼야. 지금까지 중간 정도의 수 준을 유지해 왔으니까. 변화는 눈에 띄지." 정말 마음 속 깊이 안타까워하고 있는 듯 했다. 그리고 그 말은 사실이었다. 그는 자신을 압도하는 자에게 죽고 싶어했다. 키리마 나기에게도 그는 실은 사귀고 싶었던 게 아니라 나기에게 죽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실제로 그런 바람을 지니고 있었다. 지금 그는 확실히 그 사실을 자각하고 있 다. 왜 그런지는 모른다. 가정환경에 문제가 있지도 않았고, 과거에 스에마 가즈코 가 조우했던 것과 같은 '유아체험'이 있지도 않았다. ····· 그러나 그러하였다. 억지로 이유를 갖다 붙인다면 그의 평범함을 가장한 태도가 몸에 밴 생활에서 온 반 작용에서 왔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정신의학적으로 상당히 근거가 희박한 설명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와 같은 간접자살희망자는 결코 .희귀하지는 않다. "……." 나체의 살육자는 그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그녀를 본 자는 모두 그 녀를 싫어하고 두려워했는데 이 소년에게는 그런 낌새가 터럭만치도 없었다. "…너, 왜 그렇게 조용한 거지? 반항하든지 목숨을 구걸하지 않는 거야." 그녀는 무심코 물었다. "너를 좋아해." 마사미는 정직하게 말했다. 솔직한 기분이었다. "…하?" 소녀의 아연해진 얼굴이 걸작이었다. "…사오토메군이 말한 대로였어. 유리하라 미나코의 모습은 딱 좋아. 반 애들이랑 말도 안 하는데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원래부터 그랬던 가봐." 카페의 어스름 속에서 유리하라의 얼굴을 한 만티코아 … 아니 이제 유리하라 미나 코 본인인 소녀가 말했다. 일찍이 유리하라 미나코라 불리우던 소녀의 몸은 소화되 어 이 세계에서 사라졌기에. "아마 그럴 꺼라고 생각했어." "학교 수업이야 내겐 장난이고 수험공부 같은 건 아무 것도 아닌 걸. 어떤 참고서든 간에 한 번만 읽으면 다 안다고." "너는 인간보다 머리가 훨씬 좋잖아." "유리하라 미나코의 부모까지도 나라는 걸 모르고 있어. 부스럼이라도 만지는 것처 럼 딸을 대한다고. 인간은 모두 다 그런가.'" "그럴지도. 그래도 조심해. 그 중에는 타인을 자신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에고이스트 도 있으니 말야. 우리 부모님도 반은 그렇지." "흐∼음. 그럼 죽일까?" 아무렇지도 않게 유리하라는 말했다. "아직은 일러. 조금 기다렸다가 하지." 마사미 역시 아무 것도 아닌 듯이 말했다. "그래, 신중해야지. 세계를 정복할 때까지는." 그녀는 쿡쿡 웃었다. "그렇군." 마사미도 웃었다. 그 때 마침 웨이트레스가 '기다리셨습니다' 하고 마사미가 주문한 레몬 티와 케이크 를 가져왔다. 그녀는 세계를 어쩐다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지만 게임이나 그런 종류의 이야기로 밖에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왠지 이 커플은 굉장히 싫은 느낌이 었다.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데 이미 신혼부부 분위기야. 찰싹 달라붙어선) 애인과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그녀는 전표를 조금 난폭하게 내려놓고 갔다. 그들은 이야기를 계속 했다. "쿠사츠 아키코 말고도 또 '슬레이브'[노예]를 만들어야 하려나." "응, 만든다고 한다면 지금 당장 2, 3명 정도는 있어야 겠는 걸. 너무 많으면 눈에 띄겠지만…. 조금이나마 더 벌여보는 거야. 테스트할 필요가 있어." 그들의 꿈은 그들을 중심으로 인간사회 자체를 재구성하는 데 있었다. 그리고 그 일 을 실현할 수 있는 능력이 유리하라에게 있었다. 어떤 인간으로도 변할 수 있고, 어 떤 인간일지라도 자기 뜻대로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이. 그 제안을 한 것은 마사미였다. 그는 그녀에게 협력을 제안하고, 그 힘에 대해 들었 을 때는 광희(狂喜)하였다. "이 능력이라면 쓸모가 있겠어." 라고. 유리하라도 그 말을 듣고 정말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그녀는 살아남는 일에만 골몰하여 세계를 어떻게 한다던가 하는 일은 생각도 못했다. 그 보다도 그녀는 지금까지 무척 고독했었다. '실험'으로 클론으로 만들어져 부모도 가 족도 없었던 그녀를 좋아한다고 해준 사람은 인간사회에서는 정신이상자 취급을 받 을 법한 사오토메 마사미가 유일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시설'에서 추적자가 올 텐데. 그 때는 어떡하지?" "지금은 발각되지 않기를 비는 수밖에 없어. 하지만 조금만 있으면 이쪽도 전력이 생긴다. 그러면 역습도 가능해." "'실패작'인 나를 '소거'하려는 놈들을 역으로 쓸어버리는 거야." "그래, 뭐가 실패작이냐. 너야말로 새로운 세계의 왕이야." 마사미는 힘 주어 끄덕였다. 그의 손에 유리하라는 자기 손을 올려놓았다. "사오토메군, 당신이야말로 나의 왕자님이야."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은 넋을 잃고 메피스토펠레스의 손등을 손가락으로 더듬으며 속삭였다. "좋아해." 일그러져 있지만 이것은 틀림없이 사랑이었다. 4. 쿠사츠 아키코는 두 사람이 노리던 대로, 점점 학교에 오지 않게 되었다. 원래 학비 마저 체납할 정도로 가정환경이 악화되었기에, 누구 하나 그 변화를 부자연스럽게 보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 그녀에게 말려든 친구부터 유리하라와 마사미는 손을 뻗 쳐갔다. 첫 번째는 1학년 F반의 스즈미야 코우코였다. 덮치는 것은 간단했다. 그녀 들은 사람 눈을 피해 모였기에 돌아가는 길목에 숨어 있다가 때려서 쓰러뜨리면 그 만이었다. 그러나 쿠사츠 아키코에게 한 것 같은 '개조'는 성공하지 못했다. 죽어버 려 소생하지 않았던 것이다. "어쩌면 미묘한 밸런스가 필요한 듯 한데." "응, 실험은 해 봤으니 다행이라고 할까." 두 사람은 어둠 속에서 소곤거렸다. 그들은 차례로 신요학원과 근처 학교 여학생들을 죽여 갔다. 그러기 위해 애초에 수 상해 보이지 않도록 복선을 깔아둔 것이다. 일단 그러한 처치를 해둔 뒤에는 사정없 이 착착 일을 진행했다. 지금까지는 어느 학교에서도 그렇다할 소란은 없었다. 신요 학원에서도 직원회의가 열리고 아침조회에서 주의를 주었으나, 그 뿐이었다. 경찰에 도 수색원을 냈겠지만 그런 소녀들은 그 외에도 산더미처럼 많기에 파일 어딘가에 처박히는 신세일 터였다. 고작 그 정도의 일이었다. "가출하는 놈들은 죄다 애초에 어딘가가 빠져있는 놈들이다." 사오토메가 있는 선도부 모임에선 지도 교사가 그런 말까지 내뱉었다. 학생들의 개 인사정을 고려치 않고 뭉떵 그려 비난하는 무신경한 말에 선도부장인 니이토키 케이 마저 조그마한 몸이 딱딱해지면서 귀여운 동안을 찡그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서 기이기에 그런 발언도 요점을 잡아 노트에 써넣는다 말하자면. 생활태도의 흐트러짐 은 실종의 전조이다' 라는 식으로. 노트에 쓰고 있을 때, 그는 무표정하다. 희미한 웃음조차 입술 위에 머무르는 일도 없다. 모든 일은 그와 유리하라의 생각대로 진행되고 있다. "................" 그러나 그는 무표정하다. 교사의 발언도 그 무엇도 그의 표정을 무너뜨릴 수 없었다. 이미 다섯 명이나 죽인 마당에서도 그의 표정은 평범한 학생 그 자체였다. 그러나 그런 그도 선생이 키리마 나기가 아직 정학 중이니 주의하라고 했을 때 조금 동요하였다. 겉으로 나타나지는 않았으나 그 이름은 만티코아를 만난 후에도 그의 마음을 흔드는 적지 않은 것 중 의 하나였다. 쿠사츠 아키코가 이상해진 것은 그녀에게 '처치'를 한 지 1개월 후의 일이었다. 가끔 학교에 와도 이상하게 멍해 있을 뿐이다. 말을 걸어도 대답은커녕 말을 걸었다는 사실 자체를 깨닫지 못하는 듯한 상태였다. (…곤란하군) ···· 마사미는 쿠사츠 아키코가 망가지는 시기가 예상보다 상당히 빠르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를 이대로 내버려 둘 수 없었다. ·· 증거가 남는다. 아무 데서 쓰러져 병원에라도 실려간다면 그 이상한 성질을 들키게 된다. 그렇게 되면 만티코아를 만들어낸 '시설'에 알려질지도 모른다. 하는 수 없이 쿠사츠 아키코도 유리하라에게 먹여 처분했다. 그렇게 하여, 그들의 첫 번째 실험 은 종료하게 되었다. ""젠장, 왜 이렇게 일이 풀리질 않는 거야." 유리하라는 초초해하고 있었다. "성급하게 굴지 마. 아직 기회는 얼마든지 있으니까." "그럴지도 모르지만…." 유리하라는 눈을 치떠서 마사미를 올려다보았다. "…미안해요. 다음 번엔 더 잘 할게." "아니. 조금만 시간을 두고 보자." 마사미는 차갑게 말했다. "왜? 괜찮아, 잘 할 수 있어." 유리하라는 숫제 비명을 지르듯 말했다. 사람이 없는 입체주차장에 소리가 울려 퍼 졌다. "그런 게 아냐. 슬슬 학교 안에서 낚는 건 한계다. 밖에서 먹이를 찾아야 해. 그러 기 위해선 사전준비가 필요해. 실험과는 별도로 네 식사거리도 필요하고. 이제까지 는 한꺼번에 처리해왔지만 역시 별도로 영양원이 필요할거야." 마사미는 그 말에 담긴 무서운 의미와는 달리 부드럽게 말하면서 그녀의 어깨에 손 을 얹었다. "…응, 알았어. 네가 말하는 대로 할게." 유리하라도 얌전히 끄덕였다. 쿠사프 아키코를 처분한 다음 날, 마사미는 생각지도 못한 사태에 말려들게 되었다. 쉬는 시간에 수업할 때 사용한 슬라이드를 직원실에 돌려놓으러 갔다오는 길에 복 도를 걷고 있었는데 갑자기 여선생이 거품을 물고 구석에서 뛰어나온 것이다. "아, 너! 학실히 선도부의―." 여선생은 그를 보고 표정이 밝아졌다. "네, 1학년 D반 사오토메입니다만," 마사미는 대답했다. "마침 잘됐어. 여, 여기 좀 지키고 있어! 도망치지 않게." 그렇게 외치고는 그의 옆을 지나쳐 달려가 버렸다. "...........?" 마사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녀가 왔던 방향으로 걸어갔다. 직원용 화장실이었다. 여선생이었기에 그는 여자 화장실 쪽을 엿보았다. 그는 여자화장실 자체에는 아무 흥분도 없었으므로 머뭇거리지도 동요하지도 않고 슥 들어갔다. 그러나 화장실에 들 어가서 그는 상당히 놀라게 되었다. "오, 너냐. 사오토메군." 하고 하얀 실내의 중앙에 당당히 서서 이쪽을 향해 끄덕거린 사람이 키리마 나기였 기 때문에. "선배님―어떻게 된 겁니까." 하고 물은 직후, 그는 나기의 손에 불을 붙이지 않은 담배가 있는 걸 보았다. "그건…." "응, 뭐, 이런 일이지." 나기는 담배를 숨기려 하지 않았다. "들킨 겁니까. 그런데, 그렇다고 해도, 이런 곳에서―." "상관없잖아. 그런 건…." 나기는 희미하게 웃었다. 묘하게 섬뜩했다. 마사미가 좋아한 것은 그녀의 그런 표정 이었다. "선배, 저어…." 그가 말을 꺼내려고 했을 때, 나기는 틈을 주지 않고 말을 이었다. "저번엔 미안했다. 하지만 역시 너를 위해서는 그 편이 나았을 거야." "아니, 그런." "그러고 보니 ― 너 1-D였지?" "네." "쿠사츠 아키코란 애랑 친했어?" 마사미는 심장이 입에서 튀어나올 만큼 놀랬다. "아니, 아뇨. 그렇…." 그는 말을 잃었다. 나기는 그를 지그시 노려보았다. "친했어?" "…한 번 데이트했어요. 딱 한 번." "사귀고 있었어?"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지금도 선배님이…." 그는 진심으로 변명을 하고 있었다. 나기는 그의 표정을 보고 얼굴을 찡그렸다. "아, 아냐. 그런 게 아니라, …그럼, 그 애가 최근 이상해지거나 하지 않았어?" 네, 네에. 어딘가 변해버렸어요." "언제부터?" "그러니까 ― 반 달 정도전에." "흠, 일치하는 군…." 나기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마사미는 또 움찔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동요를 밖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일치, 라니 뭡니까?" "아, 아냐. 아무 것도 아냐." 나기가 고개를 저었다. 쿠사츠가 어떻게 된 겁니까? 선배, 저라도 괜찮으시다면 무엇이든 힘이 되어드리겠 습니다." 그는 그녀에게 다가가면서 말했다. "아니, 대단한 거 아냐." ·· ··· "그럴 리 없잖아요. 선배님. 이거, 일부러 그러시는 거 아닙니까?" 그는 그녀의 손에서 담배를 빼앗았다. 나기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일부러 정학까지 먹으면서 해야만 하는 일인 거죠. 그럼 제가 선생님께 말해서." "아무 것도 안 하잖아. 선생들은. 어차피 샐러리맨들인 걸." 나기는 차갑게 말했다. 마사미는 말문이 막혔다. 그도 그렇게 생각했기에 제안했던 것이다. 이 이야기가 교 사의 귀에 들어가게 되면 흐지부지 될 거라고. "그럼 제가…." 그는 물고 늘어졌다. 나기는 그의 손을 잡고 가볍게 다독거렸다. "고맙다. 미안하지만, 이건 평범한 네가 나서서 될 일이 아니야." "그런…!" 하고 그가 말을 꺼내려 했을 때, 남자 지도교사들이 여자화장실에 우르르 몰려들어 왔다. "이 자식, 또 냐!" 교사들은 나기를 향해 소리쳤다. 나기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했다. "저, 저어." 하고 마사미가 그들에게 말을 걸려 했으나 교사들은 그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 저 그의 손에 들려있던 담배를 낚아챘다. "이게 증거렷다, 마!" 하고 나기에게 들이밀었다. 나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대로 그녀는 지도실로 범죄자처럼 끌려갔다. 마사미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뒤를 따랐지만 도중에 교사에게 "넌 교실로 돌아가.' 하는 말을 듣고 그들을 복도에 서서 지켜보았다. 주위에 아무도 없어졌을 때 그의 얼굴에서 서서히 표정이 사라져갔다. ".............." 꽈앙, 지도실 문이 난폭하게 닫히는 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지자 마사미는 발길을 돌 려 걸어나갔다. 그 얼굴에는 이미 어떠한 동요도 남아있지 않았다. "............" 그는 나기가 말한 '일치'라는 단어를 마음속으로 반추했다. 역시, 그건, 어찌 생각 해보아도 가장 먼저 실험한 스즈미야 코우코가 실종된 시기와 '일치'한다는 의미로 밖에 생각할 수 없다. 그녀는 무언가를 알고 있다. 그것도 상당히 깊이. "..........." 그의 무표정한 얼굴이 일순 무너지며 그 안의 표정이 보였다. 그것은 마치 일주일간 한 방울의 물도 마시지 못한 사막의 방랑자 같이 거칠어지고 모공이 갈라져버린 듯 한 무척 살벌하고 메마른 안광을 내뿜고 있었다. 5. "키리마 나기, 왜 그 녀석이?!" 겨울에는 사람이 거의 오지 않는 학교 풀의 탈의실에서 유리하라는 마사미의 이야기 를 듣고 목소리를 높였다. "모르겠어. 하지만 뭔가 감 잡은 것만은 확실해." 마사미가 유리하라에게 나기의 이름을 말한 것은, 나기가 정학에서 풀려난 6일 후의 일이었다. 그가 덫을 놓아 죽일 예정이었던 소녀들을 스토킹하고 있던 차였다. 틀 림없었다. 나기는 쿠사츠 아키코의 중학교 때 친구들에게 접근하고 잇던 것이다. 오 늘은 키시타 쿄코를 협박해서 두 번 다시 약 따위에 손을 대지 말라고 하는 모습을 보았다. 어찌됐든 그녀는 학교의 어둠에서 활약하는 정의의 용사 같은 일을 하고 있는 모양 이다. "어째서! 우린 잘 해나가고 있는데!" 유리하라는 히스테릭하게 외쳤다. "아, 그 말대로야. 그러니까 그대로 우리까지는 알지 못한다고." 조용하게 말하면서 마사미는 마음속으로 위험할 뻔했다는 사실을 통감하고 있었다. 쿠사츠 아키코를 처분하는 시일이 조금만 늦었더라면 나기는 그녀의 몸이 이상하다 는 걸 알아차렸을 테니까. 간발의 차였다. "역시 이제 신요학원에서는 더 이상 손을 대지 않는 게 낫겠어. 이 학교 학생들이 이상하다고 의심 받게 되면 귀찮아져." "키리마 나기는 죽이지 않아?" 유리하라는 마사미에게 다다갔다. "아직 뭐라고 말하긴 힘들어. 그녀가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또 어떻게 냄새를 맡은 건지 알필요가 있어." "죽여버리자.! 괜찮아. 증거를 남기는 실수는 안 해. 거기다 그 녀석은 별나니까 사 라졌다고 해도 아무도…." 그녀는 유리하라와 같은 반이라서 유리하라도 나기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몰라? 그녀의 지금 부모는 대단한 자산가야. 거기다 그녀 명의로 몇억이라 되는 은 행예금이 있어. 실종되면, 그냥 불량학생의 가출로 끝나지 않아. 돈이 얽히면 인간 세계에선 여러 놈들이 손을 뻗쳐온다고." 마사미도 이번에 조사해보고 놀란 사실이었다. 큭, 유리하도 말문이 막혔다. "…정말 그것 뿐이야?" "에?" "정말, 겨우 그런 이유로 키리마 나기를 내버려두자고? 달리 이류가 있는 거 아냐?" "무슨 얘기야?" "사오토메군, 그녀를 좋아하는 건 아니지?" 웃 하고 사오토메는 눈썹을 찡그렸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 데?" "아니야? 그렇지?" 유리하라는 얼굴을 들고 그를 노려보았다. "나는…." 마사미가 입을 열려고 했을 때, 갑자기, "―뭐야, 에코즈. 여기에 있었어?" 하고 탈의실 문이 열리면서 소녀의 명랑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휙 하고 뒤돌아선 두 사람은 방안으로 들어오려던 소녀와 눈이 마주쳤다. 교복 깃 선의 수를 보니 3학년이었다. 밝은 느낌이 나는 소녀였다. "―어, 어라? 잘못 본 건가, 이런∼." 그녀는 머리를 갸웃거렸다. "…이, 저어, 당신은." 마시미는 '몰래 만나다가 들켜서 당황한 척'을 하며 말했다. 괜찮아, 우리가 하던 말을 들은 것 같지는 않아. "미안 미안, 두 사람 다 천천히 놀다 가요." 밝은 웃음을 띄우며 3학년생은 문에서 얼굴을 빼내려 했다. 그러나 그 순간, 유리하라의 몸이 튈 듯이 날아올랐다. "――카앗!" 먹이를 덮치는 킹코브라의 위장음(僞裝音) 같은 한 숨을 토하며 그녀는 3학년생의 목덜미를 물어뜯었다. 퍼억 하는 둔탁한 소리가 났다. "이, 이봐!" 마사미는 당황해서 두 사람 사이에 끼어 들었으나, 이미 늦어 있었다. 3학년생은 연 수가 으스러져 즉사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3학년생은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조차 몰랐을 것이다. "무슨 생각이야, 대체! 학교 안에선 죽이지 말라고 했잖아." 마사미는 유리하라 쪽을 돌아봤다. 그러나 그녀의 표정을 보고 눈썹을 찌푸렸다. 유리하라는 새파래져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 ··· · ··· "어, 어떻게 ―그럴 리가. 그 녀석이…그 녀석이…. " 입 언저리에 묻은 피만이 붉다. "이봐, 어떻게 된 거야?" "그 녀석… 에코즈[反響 ]가 쫓아오고 있어…!" "뭐야, 그 에코즈란 놈은?" "나, 나의 '오리지널' ― 너무 진화해버린 남자야…." 그녀는 자신의 팔로 가슴을 꼭 껴안았다. 그래도 떨림이 멈추지 않는다. "정신차려! 설명은 나중에 들을테니, 지금은 이 시체를 어떻게 해야 해." 마사미는 3학년생의 시체를 보았다. 자세히 보니 본 적이 있는 얼굴이었다. "…카미키시로 나오코잖아." 그녀는 나기의 몇 안 되는 친구 중 하나였다. 그래서 알고 있던 것이다. 나기는 중 학교 때 1년 동안 병으로 휴학했으므로, 카미키시로와 동갑으로 둘은 같은 중학교를 다녔다. (왜 나기의 친구가? 이건 우연일까, 아니 그렇지 않아…!) 그는 이것으로 상황을 파악했다고 생각했다. 쿠사츠 아키코의 처리가 한 발 빨랐던 행운과 함께 또 다시 그들이 선수를 칠 기회를 잡았다. "괜찮아, 만티코아. 상황은 이쪽이 유리해." 그는 미소지으며 떨고 있는 유리하라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쌌다. "……에?" 하고 올려다보는 그녀에게 마사미는 끄덕여 보였다. 환하게 빛나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는 미소지으며 떨고 있는 유리하라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쌌다. "……에?" 하고 올려다보는 그녀에게 마사미는 끄덕여 보였다. 환하게 빛나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두 사람은 카미키시로 나오코의 시체를 두 사람만이 알고 있는 지하로 옮겼다. 거 기서 유리하라는 카미키시로의 시체 위에 엎드려 증거인멸 작업을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마사미는 싱글거렸다. (반드시 널 살아남게 해줄게. 반드시. 절대로,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다 할지라도… ) 사오토메 마사미의 마음속에서는 하나의 멜로디가 되풀이되고 있었다. 그것은 그가 좋아하는 도어즈의 곡이 아닌, 그도 곡명을 잊어버린 어딘가 에서 귀에 익어버린 곡을 뿐이었다. 언뜻 외워버린 탓에 프레이즈[樂句]의 시작도 정확하지 않고 그저 같은 곳만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다. 그것은 기묘한 곳을 잘 만들기로 유명한 도어즈 이상으로 마이너한 프리크 밴드, 윙 고봉고의 곡인 '아무도 영원히 살지 않는다'(No one lives forever)'였다. 기분 나쁜 제목과 피비린내 나는 가사에 어울리지 않는 팝의 업템포의 곡으로, 어느 샌가 마사미는 조그맣게 노래를 읊조리고 있었다. "…아무도, 아무도, 아무도, 아무도, 아무도아무도아무도아무도아무도아무도아무도아무도아무도아무도아무도아무도아무도 아무도아무도아무도아무도아무도아무도아무도아무도아무도아무도아무도아무도아무도 아무도아무도아무도아무도아무도아무도아무도아무도아무도아무도아무도아무도아무도 아무도아무도아무도아무도아무도아무도아무도아무도아무도아무도아무도아무도아무도 아무도아무도아무도아무도아무도아무도아무도아무도아무도아무도아무도아무도아무도 아무도아무도아무도아무도아무도아무도아무도아무도아무도아무도아무도아무도아무도 아무도아무도…." 영원히 살지 않는다, 는 구절에 이를 때까지 마사미는 웃음을 띄고 있었다. 그 웃 음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생명을 건다는 멋진 명분에서만이 아닌, 왠지 어딘 가 상당히 비뚤어지고 개인적인 쾌락의 냄새가 났다. 그 앞에서는 식인마가 소녀를 먹어치우고 있는 샛바람 같은 소리가 쉬이, 쉬이 하며 울려 퍼졌다. ------------------------------------------------------------------------------ 이 게시물은 上遠野浩平의 'ブギ-ポップは笑わない'을 번역한 것으로, 다른 곳으로 옮기실 경우 제게 메일만 보내주시기 바라며, 상업적인 용도로는 쓰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상업적인 용도가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이 소설은 동명의 애니메이션과 영화의 원작소설입니다. 문고본으론 좀 긴 관계로 각 화를 둘로 나누어 올리겠습니다. 그럼 이만. 오늘도 지구를 향해 돌진하는 네메시스. 『창작 - 쓰기-번역란 (go ANC)』 632번 제 목:[번역] 부기팝은 웃지 않는다 제4화 A 올린이:네메시스(김미진 ) 00/12/09 12:52 읽음:579 관련자료 없음 ----------------------------------------------------------------------------- 제 4화 너와 별이 뜨는 하늘을 I wish U Heaven ――――2학년 B반 키무라 아키오 1 '카미카시로 나오코는 죽었다. 이제 그녀는 잊어라' 워드 프로세서로 찍힌 그 편지에는 그 말 밖에 써 있지 않았다. "…뭐야?" 나는 봉투를 뒤집어 보았지만 '키무라 아키오 앞'이라고 내 이름과 주소가 적혀 있 을 뿐으로 보낸 사람의 이름은 없었다. 소인은 내가 고등학교 다닐 적에 있던 도시 이름이었다. 먼저 전에 같은 반이었던 놈의 장난인가 하고 생각했다. 카미키시로 나 오코 이야기는 사건이 끝나고 나서야 알려졌으므로. 하지만 그렇다 치더라도 너무 늦다. 내가 그녀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본 지 이제 만 2년이나 지난 셈이다. 장난이 라 쳐도 약간 시기가 늦었다. 그녀는 내가 고2 때 돌연 실종됐다. 그녀가 모습을 감춘 이유를 난 아직도 알 수 없 다. 아무도 모르리라고 생각한다.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던 사 람이 있었을까. 카미키시로 나오코와 내가 처음 만난 것은 조금 기묘한 상황이었다. 그것은 아직 봄학기가 시작해서 얼마 안 되었을 무렵의 일이다. 내가 점심시간에 멍 하니 교사(校舍) 뒤쪽에서 혼자 캐스터 마일드를 피우고 있으려니 두 남녀가 나타났 다. 나는 나무 그늘에 있었던 탓에 두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에 의미 심장한 침묵이 흐르고 있어, 나는 혹시나는 기대하며 몸을 숨겨 상황을 지켜보 기로 하였다. 그러고 있으려니 두 사람은 입을 다물고 쳐다보는 것도 아니고 마냥 서있을 뿐이었 다. (아, 이건) 내가 감을 잡았을 때, 여자 쪽에서 먼저 입을 열었다. "저어…편지 읽었어?" 양손을 맞잡으며 말했다. "네…." 하고 남자 쪽이 애매 모호하게 대답했다. 지금 상당히 진부한 상황이로군. 하고 내가 흥미를 잃고 얼굴을 돌리려고 했을 때, 남자 쪽에서 힐끔힐끔 주위를 돌아보며 말했다. "저어―혼자, 인가요?" "에?" 여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도 그랬다. 이런 상황이라면 거의 혼자 오겠지, 보통. 뭐 친구까지 딸려오는 멍청이들도 있긴 하겠지만. "한 판 붙자고 불러낸 건 아니었군요." 남자가 휴∼하고 숨을 내쉬었다. 그 한 판이란 얘기는 레이디스던가 하는 그런 얘기 인가? 그 시점에서 나는 눈치를 챘다. 잘 보니 남자는 상의가 파랗고 여자 족은 노란색이다. 우리학교는 학년 구분이 색깔 로 되어 있다. 우리 학년이 녹색이니, 이 두 사람 중 남자가 1학년이고 여자는 3학 년인 것이다. "너무해. 그럴 리가 없잖아!" 하고 3학년 여자아이가 말했다. 선배라는 걸 알고 보니 묘하게 어른스럽게 보였다. 거기에다 미인이다. 나는 여자에 대해선 까다로웠기에 그녀가 눈이 크게 보이는 화장을 하고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학생지도교사에게도 들키지 않을 내추럴 메이크업이었다. 자신을 밝게 보이는 하는 데 상당히 숙련된 사람이었다. 그에 비해 1학년 쪽은 어딘가 모르게 굉장히 아이처럼 보였다. 동안(童顔)에 미소년 계라고 하자면 그럴지도 모르나 왠지 생기가 없다. "그럼 무슨 일이시죠?" 멍한 말투로 선배인 그녀에게 그렇게 물었다. "그러니까…." 그녀는 얼굴이 빨개지며 우물거렸다. 무슨 일도 아무 것도 아닌, 그렇고 그런 일이 라는 사실을 그 표정이 말하고 있었다. (흐음… 하지만 나는 1학년 꼬맹이의 기분을 알 것 같았다. 왜인지는 이해가 잘 가지 않았지 만. 왜 저런 미인인 3학년생이 1학년 꼬맹이에게 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지 말이다. 이런 경우 보통 단순하게 기뻐하기보다는 수상하게 여기는 편이 자연스럽다. 그건 지금 나는 대학생으로, 아는 사람 중에 연하인 연인이 있는 여자는 드물지 않 다. 그러나 고등학교에서는 절대 그렇지 않다. 고등학교까지는 세상에 엄연히 존재 하는 봉건제도가 있어 여자는 학교 밖에서라면 대학생이던 중학생이던 골라잡을 수 있지만, 교내에서는 상급생이 아니면 안 되는 불문율이 존재한다. "에∼또…카미키시로 선배." 그가 곤란한 듯이 말했다. 그녀의 이름을 여기서 겨우 알게 되었다. "왜에?" 카미키시로는 기대와 불안이 섞인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런 눈에 남자는 약하 다. 허나 그는 눈을 돌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 눈을 보지 못했다. "죄송하지만,, 전 자신이 없습니다!" 하고 비명을 지르듯 외치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뛰어가 버렸다. "아…!" 하고 카미키시로는 쫓아가려고 하다가 곧 멈추어 서서 어깨를 축 늘어뜨렸 다. 목을 옆으로 기울이고 우두커니 서 있는 뒷모습이 무척 아름답게 보였다. 학교에서 눈에 보이지 않지만 정해져 있는 것에 저항하는 여자 돈키호테라 할까 그런 느낌이 라 왠지 감동적으로 보였다. 그러자, 이쪽이 감동해 있으려니 그녀는 갑자기 목을 목욕탕에서 나오는 아저씨들처 럼 휘 휘 돌렸다. "하아…이런 정말…." 지친 목소리로 말하곤 갑자기 이쪽을 돌아봤다. 숨는 게 늦어서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볼 만 했지? 아하하." 그녀는 웃으며 이쪽으로 걸어왔다. 처음부터 여기 있던 걸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에 또, 그러니까, 아니 엿 볼 생각은…." 당황해서 변명을 늘어놓으려는 차에, 그녀는 손을 뻗어 내 주머니에서 캐스터 마일 드를 하나 끄집어냈다. "내놔, 정말, 담배라도 안 피고 그냥 지나갈 순 없지." 그녀는 입술에 담배를 물고는 이쪽으로 다가섰다. 나는 급히 불을 붙였다. "익숙해 있구먼, 너." 그녀는 빙글거리며 연기를 풍성하게 피어 올렸다. 방금 전과 태도가 숫제 다르다. 그러나 옆얼굴을 보니 눈물이 맺혀있었다. "‥‥진심, 이었던 겁니까?" 그녀가 "그럴 리가!" 하고 말하며 웃음 짓고 탁 털고 일어나리라 기대하며 물어보았 다. 그러나 그녀는 거기서, "응, 진심이었어." 하며 솔직하게 끄덕이며, 쪼그려 앉아버렸다. "그래, 진심이었다고…." 무릎을 감싸안듯이 주저앉아서 스커트에 얼굴을 파묻었다. "왜 좋아하게 되는 상대를 고를 수 없는 걸까. 그렇게 된다면 좋을 텐데…." 그녀의 목소리에는 울음이 섞여있었다. "아니 뭐 그렇겠지만, 아까 그 녀석은 차여서 오히려 다행인…." 나는 정직하게 말했다. 그녀는 얼굴을 들었다. 아이라인에 눈물이 번져 있었다. 그리고 당돌하게 말했다. "…그만해." "에?" "상냥하게 대하지 마. 반하면 곤란하니까." "에에?" 내가 당황하고 있으니 그녀가 일어섰다. 더 이상 울고 있지는 않았다. 그리고 미소지으며, "농담이야, 농담. 그래도 넌 좋은 사람이네. 이름은?" "2-B의 키무라입니다." "난 3-F의 카미키시로. 오후 수업 들어갈 꺼야?" "아뇨, 별로." 현대국어와 정치경제라 원래부터 땡땡이 칠 계획이었다. "그럼 모스 버거라도 사줄게. 위로 해준 답례야. 나 샛길 알고 있거든." 그리고 장난스럽게 윙크했다. 우리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거의 이런 느낌이었다. 우리는 '연애'까지는 가지 않았던 것이다 . 다른 사람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녀는 내게 반해 주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만 2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2. 결국 그 후에 카미키시로는 그 1학년 꼬맹이 - 다나카 시로 라는 이름이었다 - 와 사귀게 되었다. 그녀의 어택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정말 모르겠네, 선배. 왜 그런 녀석이 맘에 든 겁니까?" 나는 가끔 그녀에게 물었다. 그녀는 선뜻 나를 불러내어 같이 놀지 않을래? 라며 꼬 시곤 했다. 뭐, 데이트이기는 했다. 영화를 보건, 밥을 먹거나, 당구로 돈내기를 하 거나, 그 이상의 일도 여러 가지로 하긴 했다. "응. 걔, 활을 쏘거든." "활? 궁도요?" 확실히 그 말이 나온 게 유원지 관람차 안이었다. 마치 그림으로 그린 듯한 고등학 생의 교제였다. "응, 처음 본 게 중학교 때 그 애가 시합했을 때야. 알지? 그거 사람들이 쭈욱∼ 늘 어서서 쏘는 거. 먼저 빗나간 쪽이 지는 거지. 그게 말이지, 뭐 시합 자체도 딱 좋 을 때까지 가서 져버렸지만.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조그만 과녁을 노려보는 눈매랄 까, 안광이랄까 하는 게, 몸이 저려오는 거야. 그 뒤에 팟 하고 화살이 나가는 순간 이 말이지 또―." "그런…애들 같은…." 솔직히 말해 나는 질려버렸다. 그건 다나카 본인의 성격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일 이 아닌가. 그 녀석이 당황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렇게 놀기에는 키무군 같은 쪽이 더 재미있지만, 내가 궁도 할 것도 아니고. 하 지만 왠지 모르겠지만 그 앤 '대단한 사람' 같은 느낌이 들어." "그럼 난 대단한 게 아니라는 얘기네요, 너무하군."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키무군 같은 쪽'이라는 게 좋았다. '같은 쪽'이라고 나오면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응, 거의, 나랑 넌 닮은꼴이잖아. 나도 데면데면한데다가. 말하기 뭐하지만 너도 그렇잖아, 키무군." "그렇게 나오면 되받아 칠 수가 없잖아요." 나는 헤헤 하고 칠칠하지 못하게 웃었다. 확실히 그렇다. 그렇지 않으면 좋아하는 남자가 엄연히 있는 여자와 데이트 할 배짱은 없다. 그리고 그 때 나는 그녀를 아주 진지하게 좋아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아무렇지도 않게 그녀와 다나카 꼬맹이가 사 귀는 걸 눈뜨고 뻔히 보고 있었으니, 데면데면하다고 말해도 별 수 없지. 게다가 나 는 그 당시 나도 사귀던 여자가 그녀만이 아니었으니까. 정말 닮은꼴이다. "시로군은 말이지, 딱 잘라 말해서 섬세하지가 못해." 그녀는 깊이 한 숨을 쉬었다. "날 상처 입히지 않으려고 일부러 거드름 피우면서 말하는 데, 그게 오히려 날 더 상처 입힌다는 걸 몰라." "뭡니까, 그게? 저도 모르겠는데요, 그런 건." "시로군에게 난 성가신 존재라는 것. 그 앤 아마 아직 연애할 필요가 없는 걸 꺼야, 틀림없이." 그녀가 하는 말은 이따금 상당히 난해했다. 여자아이니까 복잡한 게 당연하다는 둥 하는 말은 남자의 낙관론 외에 아무 것도 아 니다. 그녀의 난해함은 명백히 그녀를 동시대의 소녀들과 동떨어진 존재로 만들었다 . 여자들끼리라고 더 잘 이해할 수 있으리라 단정할 수는 없다. 내가 알고 있는 한 그녀의 친구는 당시 나와 같은 반이었던 키리마 나기 밖에 없었다. 그녀도 카미키시 로 이상으로 별난 사람이라, 그 덕에 오히려 마음이 잘 맞았을 것이다. 솔직히 키리 마 쪽이 카미키시로 보다 미인이었다. 하지만 난 역시 카미키시로 쪽이 내 타입이라 생각한다. "우리들에겐 그 필요가 있다는 건가, 과연. 자기자신 만으로는 모자라다던가 하는 얘기인가요?" "썩 잘 얘기하는데. 역시 닮았어." 그녀는 입 가장자리만 희미하게 미소짓고는 내 쪽으로 몸을 기울여 내 입에 쪽하고 입술을 갖다대었다. "…다나카랑은 하고 있어요?" 나는 말을 툭 던졌다. "설마." 그녀는 히죽 웃더니 일언지하에 부정했다. 그녀는 섹시하다던가 귀엽다던가 하는 느낌이 없는 표정 쪽이 전체적으로 매력적이 었다. 왜 그런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편지는 장난일 게 뻔했지만 좀 찜찜해서, 나는 그 날 학교를 땡땡이 치고 내가 고 등학교 때 살던 도시로 갔다. 편지를 보낸 사람은 아마도 그 도시에 살고 있을 테니 . 집에는 들리지 않고 곧장 신요학원으로 향했다. 지금 학생들 사이에 범인이 있으 리란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그저 발길이 그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앗, 아키오 아냐! 어이!" 하고 말을 걸어온 것은 학교로 가는 버스 터미널에 줄 서 있을 때였다. 고개를 돌려보니, 고1과 고3 때 같은 반이었던 미야시타 토카라는 여 자아이가 커다란 스포팅백을 들고 서 있었다. "야, 오래간만이다." 나도 가볍게 인사를 했다. "뭐야? 집에 온 거야? 정월은 아직 멀었는데." 미야시타도 귀여운 여자아이였지만 꼬시려고 한 적은 없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친구 로서 꽤 잘 지냈었다. "뭐, 그냥. 그러는 넌?" "보면 몰라? 난 재수야. 재수. 오늘도 이제부터 입시학원 특별강습이지." "하아, 그랬었냐." "그래, 정말. 현역입학이라 쌀쌀하네." "뭐야, 툴툴거리긴. 디자이너라던 남자친구랑 싸우기라도 했어?" 그녀는 1학년 때부터 그 쪽으로 간다던 상급생과 사귀고 있었다. "몰라, 그런 인간은. 요샌 놀러 가자는 말도 안 해." 미야시타는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야 너 공부하는 데 방해 안 하려고 배려하는 거 아냐?" "아니라니까. 그 쪽이 나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는 걸. 무슨 상을 탄다나 하면서, 쳇 ." "흠." "아키오는 어때? 대학교에서 여자친구 사귀었어?" 나는 약간 쓴웃음을 지었다. "으응." "에, 아직도 그 때 3학년생을 못 잊은 거야?" "3학년이었던 건 그때고, 지금은 그녀도 스무 살 넘었겠지." "…나이까지 세고 있는 거야? 널 내팽개치고 사라져버린 여잔데? 그만 좀 잊어버려. " "상관없잖아." 내가 툭 던지듯 말하니 미야시타는 욱해서 내 손을 갑자기 잡고 끌어당겼다. "왜, 왜 그래." "알았으니까, 나랑 잠깐 차 좀 마시자." 화 난 얼굴로 그녀는 나를 근처에 있는 카페 '트리스탄'으로 데려갔다. "학원은 어쩌고?" "알 바 아냐. 어차피 올해도 또 떨어질텐데." 아무렇게나 말을 내던지고 있다. 구석자리에 앉자마자 그녀는 "아메리칸 둘이요!"하고 카운터에 소리치곤 내 쪽으로 몸을 휙 돌렸다. "너, 바보지." "알고 있어." 나는 코방귀를 뀌었다. "알고 있지도 않네. 너 설마 자기가 히어로라던가 뭐 그런 걸로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2년 전 사건에서." 미야시타는 못 박듯 말했다. 묘하게 정의감이 강하고 딱 부러지는 데가 옛날이랑 눈 곱만치도 변하지 않았다. "안 그래. 그냥, 난…." "네가 아니었지? 그녀의 상대라는 건. 누굴 감싼 건지도 모르고 있던 거 아냐?" ".........." 2년 전, 카미키시로가 실종된 후, 체육창고의 보통 아무도 들어가지 않을 법한 구 석에 모포니 베개니 전자식의 조그만 히터 등이 나왔다. 분명히 누군가가 학교에 숨 어 들어와 살았던 흔적이었다. 맨 처음엔 부랑자인가 하고 생각했지만 거기서 카미 키시로가 가지고 있던 액세서리가 나와서 (클래스메이트인 여자아이가 증언했다한다 ) 사태는 학생의 불성실 문제로까지 비화되었다. 카미키시로의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이 부모는 자기 아이가 실종 된 데다 학교에서 의심을 받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무 항변도 하지 않았다. 카미키 시로는 부재 상태에서 강제퇴학 처분을 받을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 때 한 남학생이 "그녀의 상대는 나다."라고 했기에 학교가 발칵 뒤집혔다. 그리고 "그녀는 부랑자를 끌고 들어온 적이 없다. 그러니 퇴학처분은 철회하라."라 고 주장했다. 교사들은 물론 그의 말을 전혀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학생들이 난리를 피우는 덕에, 사태 수습의 책임을 물어 그 남학생을 정학 처분하고, 카미키 시로의 처분도 철회했다. 결국 카미키시로는 이후로도 모습을 나타내지 않아 졸업에 단위가 모자르다는 이유로 방교처분(放校處分) 되었다. 그게 뭐였던가 하면 아무 것도 아닌 일이다. 이른 바 별 볼일 없는 사건이라는 거다 . 그 남학생은 그 소란 덕에, 그렇게 많던 여자친구 전원에게 절교선언을 먹고 모두 에게 채였다. 바보 멍청이다, 정말. "…아니, 카미키시로가 누구랑 만났었는지는 알아." 나는 엷게 웃음을 띄고 미야시타에게 말했다. "거짓말." "아니, 정말이야." "누군데? 너를 내팽개치게 한 재수는?" "우주인이야. 그녀는 그 녀석이 데리고 하늘로 올라갔어." 말하던 중에 짜악 하는 소리가 가게 내에 울려 퍼졌다. "적당히 해! 남자 주제에 언제까지나 미련만 많아서!" 진짜로 화내고 있었다. 그려나 그녀는 내게 마음이 있어서가 아니고, 그저 그런 녀 석이기 때문이었다. "…미안."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빰을 문질렀다. …그러나, 지금 한 말은 어디까지나 농담만은 아니었다. 카미키시로 본인에게서 들 은 말이었으니. ------------------------------------------------------------------------------ 이 게시물은 上遠野浩平의 'ブギ-ポップは笑わない'을 번역한 것으로, 다른 곳으로 옮기실 경우 제게 메일만 보내주시기 바라며, 상업적인 용도로는 쓰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상업적인 용도가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이 소설은 동명의 애니메이션과 영화의 원작소설입니다. 문고본으론 좀 긴 관계로 각 화를 둘로 나누어 올리겠습니다. 그럼 이만. 오늘도 지구를 향해 돌진하는 네메시스. http://www.geocities.com/nemesis-1 『창작 - 쓰기-번역란 (go ANC)』 634번 제 목:[번역] 부기팝은 웃지 않는다 제4화 B 올린이:네메시스(김미진 ) 00/12/16 12:38 읽음:645 관련자료 없음 ----------------------------------------------------------------------------- 3 "키무군, 인간이란 존재할 의의가 있다고 생각해?" 어느 날 카미키시로는 갑자기 내게 물었다. "없다고 생각해." 그 때 나는 이미 그녀의 돌발적인 행동에도 익숙해져 있었기에 즉답했다. "그럴까, 역시." 그녀는 한 숨을 쉬었다. 우리는 학교 통학로에 있는 강변에 나란히 드러누워 있었다. 통학로라고 해도 대부 분의 학생들은 버스 통학이라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다. 거기다 이제 하늘은 어두 워 별이 뜨려는 시간이었다. "인간이란 변변치도 않은 놈이라, 문명이 아무리 발전해도, 불행한 놈들의 숫자는 눈곱만큼도 안 줄었다고요." 나는 폼을 재면서 그렇게 말했다. "…그럴지도 몰라." 그녀는 진지하게 말했다. 묘하게 너무나 진지했다. "뭡니까, 무슨 일인데요?" "저어 말야, 만난 지 얼마 안 된 사람인데." "또 누구한테 반한 거예요? 다나카는 어쩌고?" 나는 질렸다. "응, 뭐 그것도 그렇지만, 그 얘긴 그만하고." 그녀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강물에 눈부시게 빛나는 가로등 불빛이 반사되는 것 을 보며 말했다. "그는 우주에서 왔대." 진지하게 말했다. 개그일 게 뻔했지만 웃어달라고 말한 게 아닌 듯하여 그건 예를 들어 말한 것으로 생각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흠." "그런데, 어딘가 별 사람은 아닌가 봐. 뭐랄까, 우주엔 위대한 의식 같은 게 있어서 그게 '인류를 시험하기 위해' 그를 보냈다나 봐. 호시 신이치의 쇼트쇼트에 잘 나 오는 '조사로봇' 같이. 그는 기계는 아니고. 음… 실체는 지구에 존재하지 않는 거 라서, 뭐든 될 수 있대. 그래서 그는 지상에 닿자마자 인간과 똑같은 모습이 되어서 세계를 조사하려고 했는데, 조금 오차가 생겨서 그는 인간이 되지 못했던 거야." "..........." "너무 진화해버려서, 인간이 몇 만 년인가 몇 천 년 후에나 될 법한 인간이상의 능 력을 지닌 존재가 되어버렸지. 뭐, 우주는 하도 커다라니까 지구 시간은 너무 세세 한 탓에 제대로 맞추기 힘들었던 모양이야. 거기다 정체를 들켜서 정부인가 어딘가 의 대기업인가에 잡혀서, 바보 같은 인간들이 그를 그저 갑작스런 돌연변이라 단정 하고 연구해서 복제를 만들었대. 그런데 그 복제는 그와 너무 달라서 무척이나 잔인 한 성격을 가진 식인마였던 거야." 뭘 말하고 싶은 건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지만 어쨌거나 맥락이 보일 때까지 듣 자는 생각으로 얌전히 듣고만 있었다. "그는 그걸 말하고 싶었지만, 그는 우리들에게 정체를 말하지 못하게, 스스로 말할 수 없도록 프로그램 되었대. 그래도 그는 상관없었다는 거야. 그는 인간이 자신에게 상냥하게 대해 줄 것인가 아닌가를 시험하고 온 거니까. 자기가 나서서 중재하거나 연설할 필요가 없잖아. 그런 연유로 인간은 그에게 '에코즈'라는 이름을 지었대.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을 되받는 것 밖에 할 수 없는 '요정'이라고." "..........." "그런데 식인마가 연구소의 사람들을 모조리 다 죽이고 탈출해서 인간사회로 숨어버 린 거야. 그는 그걸 쫓아왔대. 거기서 날 만난 거지." "…쫓아와서 어쩔 거래요?" "싸우겠지. 그렇지 않으면 세계는 그 생물 천지로 바뀌어 버릴 테니 말야." "그렇지만 그 녀석은 우주인이잖아요. 지구인이 어떻게 되는 관계없는 거 아닙니까? " "그러네. 그렇겠지만 …그래도 그는 상냥하니까." "그런 이유로?" "그것뿐이면 이상한가? 상냥함이 모든 것에 우선하는 동기면 안 되는 거야?" 그녀는 묘하게 진지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한 숨을 쉬었다. "뭐, 반은 내 생각이지만. 뭔가 귀찮은 이유가 있는 것 같지만 이 별의 균형을 무너 뜨려서는 안 된다던가 뭐라던가. 그럼 그건 쪼금…슬프잖아." 웅얼거리며 소곤대는 그녀는 지금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이 보여서 안타까운 기분 이 된다. 나이를 헛 먹은 마냥 아이처럼 가슴이 찡해져 왔다. 나는 그 느낌을 기침 으로 얼버무리고는 일부러 퉁명스레 말했다. "그런데, 그 얘기. 선배는 어떻게 해서 그 에코즈란 놈한테 들은 거예요? 스스로 말 은 못한다면서요?" 치사하게 말꼬리를 잡고 늘어졌다. 그랬더니 그녀는, "아하하, 머리 좋네. 안 속잖아." 하면서 킥킥 웃었다. "뭐야, 결국 그런 거였어요?" 장난을 쳤다고 하기엔 너무 공들인 이야기였다. "응, 농담이야, 농담. 시시한 동화라니까―." 카미키시로는 입가에 희미한 웃음을 장난스레 띄었다. 우리들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윽고, 카미키시로가 툭 하고 말을 던졌다. "…그럼 에코즈가 이기면, 그는 별나라로 돌아가 버릴지도 모르겠네." "로맨틱하지 않습니까, 칠석 얘기처럼." "그는 인간을 우주에 어떻게 소개할까. '괜찮습니다. 좋은 생물입니다'하고 말해주 려나. 무리야, 진짜….'" "그 녀석, 어디 있어요?" "학교에 숨겨놓고 있어, 그거 비밀이야." 나는 웃었다. "네, 약속하죠." 그 덕분에 나는 정학을 먹고 지망하던 학교의 등급을 하향 조정할 수밖에 없었다. 뭐, 여자아이들에게 미움 받고 학교에서 외톨이가 되었으니 공부밖에 할 게 없었으 므로 내신이 나쁜 걸 커버할 순 있었지만. "별이라 머네…." 카미키시로는 별이 뜬 하늘을 보며 말했다. "그야, 이제 우리들의 인생보다도 더 턱없이 멀어요." 나는 나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말을 하고 있었다. 그녀에게 끌려서 인지도. "하지만, 혹시 선배가 에코즌가 하는 녀석이랑 마음 속 깊이 친해진다면 그 녀석도 인간을 좋아하게 되겠죠." "그렇게 생각해?" "그렇게 생각하고 싶을 뿐이죠. 선배가 하는 이야기는 이제 어찌 해볼 도리도 없을 정도니까." "그래, 꼭 그렇게 될 꺼야." 그녀는 내 쪽을 보고 빙그레 웃었다. 왠지 나는 웃어주기 보다는 '무슨 얘기야, 바보같이!' 하고 화내 주었으면 하는 더 바보 같은 걸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들은 그렇게 헤어졌다. 나는 그대로 통학로로 역으로 직행했고, 그녀는 버스에 탄다며 학교 쪽으로 걸어갔다. 그것이 우리의 이별이었다. 다음날 그는 학교에 오지 않았고 그리고 다시는 오지 않 았다. …아메리칸 커피가 나와 미야시타 토카의 앞에 놓였다. 미야시타는 웨이트레스의 흥미진진한 눈초리에 정신을 차렸다. "…때려서 미안해, 하지만." 목소리를 죽여 말했다. "응, 알고 있어. 난 바보야." "진짜, 이젠 좀 잊어버리는 게 낫다고 생각해. 그 사람 ― 에… 이름이 뭐였더라." "카미키시로 나오코." "그래, 그 사람에 대해선 난 잘 모르겠지만, 그녀도 아키오가 정말 네가 좋았다면 이젠 잊어주었으면 하고 바랄 꺼야. 그래서 조용히 사라진 거야, 그렇겠지?" "…그럼 좋겠지만.' 하지만 실제로는 틀림없이 나 같은 건 생각해보지도 않았을 게 뻔하겠지만. 결국 나는 미야시타에게 '알았어, 기운 낼게.'라는 말을 하고 나서야 겨우 풀려났다 . 카페 출구에서 우리는 헤어졌다. "안녕, 나도 그 정의의 용사인가 뭔가 어떻게 좀 해봐라. 몸이 못 견디겠다. 대학시 험도 봐야지." "그런가." 그녀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도 말이지." "뭐, 나하곤 상관없는 얘기지." 내가 등을 돌리니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키무라군!" 뒤돌아선 나는 갑자기 흠칫 했다. 거기 서 있는 사람은 물론 미야시타임에 틀림이 없었다. 그러나 그 때 나는 그녀가 다른 사람 ― 마치 소년처럼 보였던 것이다. 변신이라도 한 것처럼. "…뭐, 뭔데?" "카미키시로 나오코는 그녀의 사명을 훌륭히 마쳤다. 그러니 자네도 그녀에게 부끄 럽지 않도록 해야 할 일을 똑바로 해야 한다. 그것이 그녀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보답이다." 마치 연극이라도 하는 듯한 거창한 말투였다. 그리고 갑자기 발길을 돌려 사람들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 나는 어리벙벙해져서 거리에서 사람들이 지나가는 것을 마냥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버스에 타고 신요학원 앞 정류장에 내렸을 때는 이미 날이 저물어 학생들의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부 활동으로 연습을 하고 있던 녀석들도 어둑해지자 끝내고 가버린 모양이다. 이렇게 근성이 없으니 우리 학교 운동부가 전국대회에 못 나가는 건 당연하다. 눈곱만치도 변하지 않았다. 교문은 이제 닫혀 있었다. 외부인은 인터폰으로 얘기하지 않으면 들여보내 주지도 않을 테니 나는 그 앞을 지나쳤다. 카미키시로가 가르쳐주었던 선반 사이를 빠져나 가는 샛길을 통해 나는 교내로 들어갔다. 어둑해진 학교 안은 폐허처럼 조용했다. 우뚝 선 교사(校舍)는 거대한 묘석(墓石)처 럼 보였다. 작년까지는 나도 여길 매일 다녔다. 그러나 이제 나는 여기에선 이방인[스트레인저]인 것이다. 별 볼일 없는 고등학교 시절이었지만 이제 나는 그 과거와 관계없이 되었다고 생각 하니 묘하게 찡해왔다. 카미키시로의 일도 그 뒤 학교에서 바보 취급받은 일도 생생 하게 기억하고는 있지만 모든 것은 이제 옛날 일이다. "........." 나는 왜 학교에 온 걸까. 편지 건으로 온 거라면 이런 곳에 있어도 별 수 없을 게 아닌가. 하지만 나와 카미키시로의 접점이라 한다면 이제 이 학교밖엔 남아있지 않 다. 카미키시로가 살고 있던 맨션에는 다른 사람이 살고 있어 이제 그녀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달리 갈 곳이 없었다. 어디에도 없다. 그래, 편지를 보낸 게 '혹시 카미키시로가 아닐까' 하고 마음속으로 기대하고 있었 던 거다. 아아, 아니겠지. 학교에 이렇게 왔어도 그녀의 모습은 없다. 역시 그건 그 저 장난이었던 게지. 모든 것은 끝났다. 모두, 이제 과거의 일이다―. ".........."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이 끼어서 별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 강변에서 그녀와 같이 본 별이 뜬 하늘이 내게는 보일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때 확실히 그 녀는 나 외엔 아무에게도, 아마 다나카 지로에게도 말 한 적이 없는 비밀을 말해 주 었다. 설사 내가 이해하지 못했더라도. 그 것만으로 된 게 아닌가. 그 것 만으로 충분히 나는 그녀를 일생동안 좋아할 수 있다. 다른 여자를 얼마나 좋아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녀는 쭉 그 때의 그 이해할 수 없었던 별난 사람으로 내 속에 계속 살아있겠지. "「생명은 짧으니, 사랑하라 소녀여…」." 나는 그녀가 곧잘 입에 달고 다니던 노래를 흥얼거리며 교정을 휘젓고 다녔다. 그리 고 체육관 앞에 오니 생각이 났다. 그 침입자의 흔적이 있다고 하던 창고가 보고 싶 어졌다. 그녀와의 상관관계는 알 수 없지만 어쨌거나 그녀가 남긴 마지막 흔적인 셈 이니까. 비상용으로 구비되어 있는 회중전등을 슬쩍해서 나는 체육관을 비춰 보였다. 곤란하 게도 나는 이제 그 배치가 어떻게 되어 있던가를 반은 까먹고 있었다. 정말 고교시 절을 싹 잊어버리고 싶었던 모양이다. 정문 출입구 외에도 어딘가 문인지 덮개인지 모를 것을 벽과 지면의 틈새에서 찾아 내고 대충 이거다 싶어 나는 몸을 숙여 그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거긴 아무 것도 아닌 공간이었다. 그저 철 기둥이 콘크리트 바닥에서 천장으로 솟아있을 뿐이었다. 체육관의 기초부분인 듯 싶었다. 아마도 여기는 지진이 일어났을 때 충격을 흡수하 는 여유 부분일 것이다. 이런 게 있으리라고는 3년 동안 다니면서도 눈치 채지 못했다. (쳇, 여기가 아니잖아…) 나는 돌아가려 했다. 그런데 그러려고 움직인 발에 뭔가 걸렸다. 푸석 하고 마른 소리가 났다. 시꺼멓고 말라비틀어진 게 거기 있었다. 처음엔 장갑인가 하고 생각했다. 공사하던 인부들이 잊고 간 장갑이려니 했으나 ― 그러기엔 너무 가늘었다. · · ·· 겉을 덮는 물건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 손 자체였던 것이다. "..............." 나는 1초 동안 말을 잃고 있다가 이윽고 비명을 질렀다. 절규했다. ·· ··· ··· 그것은 사람 손목의 미이라였다. (뭐, 뭐, 뭐 뭐야, 뭐냔 말야, 이건 도대체!) 나는 힘이 빠져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보니 ― 카미키시로가 실종된 당시, 사라진 것은 그녀만이 아니었다. 전후로 몇 사람인가가 학생들이 사라졌었다. 지금까지 그 일들을 연관지어 생각해 본 적도 없었지만… 학교에 손목 같은 게 굴러다니고 있다는 이 사실과 관계 있을 법한 사 건은 그 외엔 생각해 낼 수 없었다. 손목은 내가 걷어찬 탓인지 외기에 노출된 탓인 지는 모르나 ― 흙더미로 변해 스러졌다.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뭐지? 도대체 2년 전에 이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그러나 그 물음에 대답해 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어, 나는 그저 밤의 어둠 속에서 공 포에 질려 벌벌 떨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 이 게시물은 上遠野浩平의 'ブギ-ポップは笑わない'을 번역한 것으로, 다른 곳으로 옮기실 경우 제게 메일만 보내주시기 바라며, 상업적인 용도로는 쓰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상업적인 용도가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이 소설은 동명의 애니메이션과 영화의 원작소설입니다. 문고본으론 좀 긴 관계로 각 화를 둘로 나누어 올리겠습니다. 그럼 이만. 오늘도 지구를 향해 돌진하는 네메시스. http://www.geocities.com/nemesis-1 『창작 - 쓰기-번역란 (go ANC)』 636번 제 목:[번역] 부기팝은 웃지 않는다 제5화 A 올린이:네메시스(김미진 ) 01/01/28 11:11 읽음:529 관련자료 없음 ----------------------------------------------------------------------------- 제 5화 하트 브레이커 Heartbreaker ――――2학년 F반 니이토키 케이 1 "케이, 1학년 남자아이가 부르는데." 클래스메이트인 미시마의 말에 나는 읽고 있던 문고본에서 눈을 들었다. "누구?" "글쎄, 근데 귀여운 아이야. 안돼, 안 된다니깐, 선도부장이 연하를 먹어버리면 …." 킥킥거리며 웃는 그녀를 뒤로 하고,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복도 로 나왔다. 그 아이는 내 얼굴을 보더니 실례합니다 하고 고개를 숙였다. "니이토키 선배시죠. 저는 1학년 D반의 다나카 시로 라고 합니다." "다나카군? 으음, 무슨 일이지?" "저어 선배님이 오늘 아침에 정문 당번 이셨죠?" 정문 당번이란 선도부원이 맡는 것으로 돌아가며 맡는데, 등하교시에 정문을 지 키는 일이다. "응, 그게 뭐?" "저어… 3-F의 카미카시로 선배님은 오지 않았나요?" "나오코 선배? 아, 알기는 하지만 오늘은 쉬는 지 안 왔어. 뭐, 지각 상습범이니 ." "아뇨, 교실에 가봐도 없었는데요." 다나카라는 아이는 상당히 진지한 표정이었다. "그래? 그럼 역시 땡땡이인가." "그렇진 않을 겁니다. 요새 선배님은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매일 학교에 올 이 유가 있던 모양이었어요." 딱 잘라 말했다. (…이 애, 나오코 선배가 좋은 건가?)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았다. 오늘 마치 고백이라도 하려는 양. "음, 난 잘 모르겠지만 안 왔다면 내일이라도 다시 찾아보는 게…." "그럼 늦을 지도 몰라요! 어디 짐작 가는 곳은 없으신 가요?" 상당히 허둥대고 있었다. "집에는 연락해 봤어?" "선배님 집에는 아무도 없는 걸요." "에?" "부모님이 이혼쟁의를 해서, 어머니는 친정으로 돌아가 버렸고, 아버지는 거의 집에 돌아오지도 않는다고." "그렇단 말이야?" "맨션에서 굉장한 소문이 돌고 있었어요.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도 다들 그렇게 가르쳐 주더 군요." "흐음…." 내가 곤란해하고 있으려니 갑자기 옆에서 누가 말을 걸어왔다. "그럼 키리마 나기에게 물어보는 게 어때?" 놀라서 나와 다나카가 고개를 돌리니 거기엔 선도부 후배인 사오토메가 서 있었 다. "마사미? 여긴 웬일이야?" 다나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중에 안 얘기지만 둘은 같은 반이라 했다. "아니, 그냥 지나가던 길이었는데, 얘기하는 게 들려서 말야. 그렇게 된 이상 나 도 모르는 체 할 수 없고." "뭔가 아는 게 있으면 가르쳐 줘!" "자세히는 모르지만 카미키시로 나오코 선배는 키리마 나기와 중학교 때부터 친 구 사이야. 정학이 막 풀린 그녀와 카미키시로 선배의 일 사이에 뭔가 관계가 있 을지 모르지." 나는 눈을 끔벅거렸다. 나오코 선배와 옆 반의 명물인 키리마 나기가 친구라는 건 처음 듣는 얘기였다. 우리 학교 학생들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꽤 잘 알고 있다 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그런 걸 알고 있지?" 나는 사오토메에게 물었다. "저어, 저는 키리마 나기에게 고백한 적이 있어서, 그 때 여러 가지로…." "고백?" 그 '불꽃의 마녀'에게 고백이라니 간도 크군. "채였습니다만." 그는 아무렇지도 않고 말했다. "그 키리마라는 사람은 몇 학년 몇 반이야?" 다나카가 의지를 담아 물었다. 아마도 그는 그녀에 대해 모르는 듯 싶다. "2학년 D반 ― 즉 이 옆이야." "좋았어!" "자, 잠깐 기다려, 둘 다. 키리마에게 갑자기 말 걸다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 무도 몰라." 마치 그녀를 야생 사자인 양 말한 꼴이 되고 말았지만, 실제로 그러하니 어쩔 수 없었다. 그녀에게 앞이빨이 나간 남학생도 있었으니. 그냥 둘 수가 없어 나도 D반으로 같이 가서 마침 문 옆에 있던 친구에게 말을 걸 었다. "아, 스에마. 키리마 있어? 그녀와 만나고 싶다고 1학년 얘가 그래서." "오늘 안 왔는데." "에? 등교는 했잖아?" 정문 당번이었던 내가 그녀가 정문을 지나가는 걸 봤으므로. "그야 학교 안에는 있겠지. 교실에는 안 왔어." 스에마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우리는 얼굴을 서로 마주보았다. "…어떻게 된 거지." 사오토메가 말했다. "역시 무슨 관계가 있는 게 틀림없어." 다나카가 상기되어 흐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으음…." 나도 본격적으로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나오코 선배와 키리마 나기 ― 그녀들은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 그 때 문 앞에 서 있던 우리에게, "좀 비켜 주시겠어요." 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핫 하고 고개를 돌려보니 학교 제 1의 수재 유리하라 미나코가 서 있었다. 이 반이었다. "아, 죄송합니다." 하고 사오토메가 길을 터 주었다. 그녀는 짧게 인사하고 여왕님처럼 우아한 걸음걸이로 교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종이 울려 우리는 헤어져서 각자 교실로 돌아갔다. * "나오코가 사라졌다. 아무 데도 없어."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곳에서 키리마 나기는 말했다. ".............." 상대편 남자는 침묵하고 있었다. 표정에도 변화가 없었다. 남자의 무반응에 나기 는 화가 나서 막 머리를 흔들어댔다. "휴대폰으로 걸어봐도 아무 응답이 없어. 그 쪽은 짚이는 데가 없나?" 나기가 재차 물어보았으나 남자는 말을 할 수 없기에 그저 머리를 천천히 흔들 뿐이었다. ·· "혹시 녀석의 덫에 걸려든 건지도 몰라. 나오코가 말했던, 당신의 형제 말이야." "............." 남자는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 키리마 나기는 그런 그를 책망하는 양 노려보다가, 이윽고 토해내듯이 말했다. "정말로 당신을 믿어도 되는 건가? 경찰이나 자위대 같은 데 알려야 하는 거 아 냐? 밖에 알려지면 녀석이 모습을 감추고 손닿지 않는 곳으로 사라질 거라고 해 서 하지 않았는데 ― 나오코가 살해당한 거라면 이미 손을 쓰기는 늦었어…." 그녀는 양손으로 움켜쥐듯 얼굴을 덮었다. 뺨과 이마에 손톱이 파고들었다. "............." 남자는 움직이지 않는다. "뭐라고 말 좀 해 봐… 나오코랑은 '말했었'겠지? 내게도 생각하는 걸 어떻게든 해서 전해 보란 말이다!" 키리마 나기는 남자의 멱살을 잡았다. 그것은 카미키시로 나오코가 그에게 사 준 브룩스 브라더스의 면셔츠였다. "............." 휘청휘청 흔들리면서 남자는 나기를 조용히 응시할 뿐이었다. "젠장 ― 반드시 찾아내고 말 테다! 만티코아!" 키리마 나기는 그녀답지 않게 분노를 드러내고 있었다. "너도 좀 도와, 에코즈!" 그녀가 말하자 그는 끄덕였다. 그러나 그 동작에는 어딘가 냉정한 구석이 있었다 . 나기의 행동을 관찰하고 있다 ― 는 느낌이었다. * 나는 너무나 신경이 쓰여 별 수 없이 그 날 하교 시 정문당번으로 나갔다. 하교 때는 등교 때 체크와는 달리 그저 서 있기만 하면 되는 지루한 일이다. "무슨 일이신데요? 특이하시네요." 라며 그 날 당번인 1학년 아이는 웃었지만, 흔쾌히 당번을 바꿔주었다. 특이하다라, 확실히 그 말 대로이다. 나는 실제로 그러했다. 명확하지 않은 것이나 어중간한 걸 보면 내가 나서서 매 듭을 지어주고 싶어진다. 한 번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기다리던 와중에 거기 있 던 하다 만 지그소 퍼즐을 내 맘대로 다 맞춰 놨다가 엄청 혼난 적이 있다. 원래 다른 사람들이 하기 싫어하는 선도부에, 그것도 선도부장까지 맡게 된 이유 도 그 탓이다. "아무도 없어?", "누가 좀 해라." 라는 말에 아무도 손을 들지 않 고 다들 가만히 있으면, 왠지 열이 받아서 발작적으로 "내가 할게!" 하고 말해버 리는 것이다. 이젠 숫제 병이다. 이번 나오코 선배 행방불명 건도 애초에 얘기를 듣지 않았다면 관계없는 일이었 을 테지만, 이미 손을 대어버렸으니 이제 일을 확실히 매듭짓지 않으면 잘 수도 없게 되리라. 친구들은 "넌 말이지, 뭐라고 할까. 언니라는 느낌이라서 의지가 된다니까." 라 고들 칭찬하지만 (바보 취급당한 걸지도 모르지) 실제로는 그냥 병일 따름이다. (불꽃의 마녀와 이야기하는 건 좀 무섭지만 이대로는 안정이 안 돼) 하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이 돌아가 버리고 하늘에도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는데도 불구하고 키리마 나기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그러던 중 정문 당번 시간대로 지나서 이제 어떻게 할까 하고 있으려니 다나카와 사오토메가 왔다. "아, 선배님. 키리마 나기는 지나갔습니까?" 사오토메가 말을 걸었다. "아니, 아직." "그런 가요…." 다나카는 표정이 흐려졌다. "같이 키리마 나기 찾으러 가지 않을래? 틀림없이 아직 학교 안에 있을 꺼야." 나는 그렇게 제안했다. "네, 저희들도 그렇게 하자고 하던 참이었어요. 지금까지 교실에서 이러저러하게 얘기 하고 있었거든요." 다나카가 끄덕였다. "역시 키리마 나기 본인에게 신경이 쓰여서요." 사오토메는 그렇게 말을 했다. 차였어도 아직 그녀를 좋아하는 듯 했다. "그럼 있다면 어디에 있으려나." "혼자 있어도 들키지 않을 만한 곳― 옥상이나 체육창고 둘 중 하나겠죠. 지금이 라면 풀의 탈의실일지도." 사오토메가 분석했다. "그런 데서 뭘 하는 데?" 다나카가 샐쭉해져서 말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그녀는 눈에 꽤 띄니까, 다른 사람들 눈에 닿지 않는 곳에 있 지 않을까 한 것 뿐이야." "어쨌거나 우선 찾아보죠." "다나카는 나오코 선배와 어떤 관계야?" 옥상으로 향하는 도중에 나는 신경 쓰이던 일을 물어보았다. "에… 그러니까…." 그는 곤란한 듯 했다. "그러니까 이 녀석에게 나오코 선배가 좋아한다고 했답니다." 사오토메가 끼여들었다. "에엣!" 나는 큰 소리를 내고 말았다. "야 마사미, 비밀로 해달라고 했는데!" "괜찮아, 이 선배님은 입이 무겁거든." 라며 둘이 얘기하는 것에 아랑곳하지 않 고 나는 내뱉었다. "거짓말." "저도 그렇게 생각했었어요. 농담이라고. 몇 번이고 말을 해봤지만 선배님은 '난 진심이야' 라고." "헤에…?" 나는 무심코 그의 얼굴을 힐끔힐끔 쳐다보고 말았다. "저어, 아무한데도 말하지 말아 주세요." "응, 알았어. 그래도, 헤에….' "잘 모르겠지만 딱히 거절할 이유도 없고 해서 , 그 뭐라고 할까 사귄다고 할까 하는." "아, 그리고 보니 나오코 선배에게 또 다른 남자친구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 "네, 있어요. 2학년에 키무라 아키오라고 하는데, 물어보려고 했지만 물어볼 수 가 없어서." "키무라야? 그 녀석 나오코 선배한테도 손을 뻗치고 있었단 말이야? 하지만 상대 가 그 녀석이면 그냥 노는 게 아닐까." 옆 반인 키무라는 플레이보이로 유명하다. 그가 말을 걸지 않은 2학년 여자아이 는 한 명도 없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이다. 선도부장인 나까지도 꼬시려고 했을 정도니까.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을지도 모르고. 뭐라고 하던 간에 본인에게 물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잖아요." "넌 나오코 선배가 좋아?" "…글쎄요." "애매하구나." 나는 성미 탓에 불쑥 힐난하는 말투가 되어버렸다. "옥상에 가려면, 안 쪽 비상계단으로 가는 게 낫겠군요" 사오토메가 교사(校舍)를 돌아보며 말했다. "왜?" "안으로 잠겨있거든요." "아, 그렇구나." 그래서 안 쪽으로 돈 우리는 문제의 비상계단에서 내려오는 사람 그림자를 목격 했다. 앗…! 하고 놀래서 달려갔지만, 그 사람은 이 쪽이 닿기도 전에 가 버렸다 . 하지만 키가 커서 어떻게 보든 남자 같았기에 그 이상 쫓지 않았다. 거기다 교 문 쪽으로 갔으니 아마 집으로 돌아가는 것일 게다. "저 사람이 있었다는 얘기는 키리마 나기는 없었다는 얘기겠죠." "그런 거 같아. 체육창고 쪽으로 가 보자." 우리는 체육관 아래의 창고로 갔다. 잠겨 있었지만 내가 정문 당번이므로 학교 어디 문이든 열 수 있는 마스터키를 가지고 있었다. "읏싸아……!" 무거운 문을 사오토메가 열었다. 그는 그대로 안으로 들어갔다. "닫혀 있었으니, 없는 거 아닐까." 나도 안을 살펴보았다. 어두워서 불을 켰지만 작은 형광등이 떨렁 하나 뿐이라 매트와 뜀틀 같은 잡다한 게 쌓여있는 실내를 다 밝히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다른 데에서 숨어 들어올 수도 있는 일이고," 다나카도 사오토메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하지만 그 때 사오토메가 구석에서 나와 양손을 흔들었다. "아무도 없고 그렇다 할 만한 것도―." * "―없군요." 그렇게 말하는 사오토메의 등뒤에는 에코즈가 쓰고 있던 모포, 히터와 먹을 게 담긴 봉지 등이 흐트러져 있었다. 그러나 구석에 감추어져 있어 입구 근처에 있 던 다나카 지로와 니이토키 케이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담배꽁초는 없었어?" 하고 케이가 물었지만 그는 갸웃거리더니 "아뇨, 없는데요 ."하고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그의 발 밑에는 카미카시로가 가방에 달고 다니던 작은 방울이 떨어져 구르고 있 었다. "그럼, 다른 데를 찾아봐야 하려나." "그렇겠지. 사오토메, 빨리 나와. 문 잠글 꺼야." "아아." 마사미는 증거물들을 그대로 남겨두고 창고의 조명을 끄고 밖으로 나왔다. "다음엔 어디로 갈까?" 케이는 문을 잠그고 소년 둘에게 고개를 돌렸다. "생각해 봤는데, 마냥 찾는 것 보단 교내 방송으로 키리마 나기를 부르는 게 어 떨까요?" 하고 마사미가 제안했다. 에코즈의 존재는 확인했다. 아마도 지금 키리 마 나기와 함께 행동하고 있으리라. 계획을 제 2단계로 옮길 때가 온 듯 하다. * "방송?" 나는 사오토메에게 되물었다. "네, 방송실 문은 그 마스터키로 열리잖아요?" "응, 한다면 야 수는 있겠지만…혼나지 않을까?" "혼이야 좀 나겠지만 이제 학생들도 없고 선생님이라 해도 당직하는 분밖에 없을 테니, 그리 심하게 야단맞지는 않겠죠." 사오토메는 말했다. "으음, 그렇겠지…. 뭐 확실히 그 쪽이 빠를지도 몰라. 알았어, 선생님께 혼나는 건 내가 맡지."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다나카가 사과했다. "굳이 널 위해서가 아니야. 나오코 선배가 걱정되어서 그러는 거니까." 라고 말하면서 나는 자신이 유달리 잘난 척 하고 있는 것 같아 근질거렸다. 그냥 딱 매듭 짓지 않으면 안정이 되지 않기에 행동하는 것뿐인데. 말만 두고 보면 왠지 무지무지하게 대단한 사람처럼 보인다. 뭐, 나오코 선배가 걱정되는 건 사실이니까. 키리마 나기 일에 휘말려서 좋지 못한 일을 하고 있다면 어떻게든지 해서 그만두 게 해야 ― 라는 생각을 하는 것도 마치 정의롭고 똑바른 선도부장 그 자체다. 그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그, 그럼 갈까." 나는 진정이 되질 않아서 두 사람의 선두에 서서 걸어 나갔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 앞에 서고 보니, 더욱 더 대단한 사람 같이 생각되어 나는 조금 곤혹스러웠다. 2. <…2학년 D반의 키리마 나기, 2학년 D반의 키리마 나기, 아직 학교에 있다면 빨 리 방송실로 와 주세요. 키미카시로 나오코 선배 일로 할 얘기가 있습니다. 2학 년 D반의 키리마 나기…> 다나카 지로의 목소리는 이제 어둠이 깔리고 있는 학교 내로 울려 퍼졌다. 그것은 당연히 유일하게 학교에 남아있던 숙직인 젊은 남자 수학교사인 나카야마 하루오가 있는 곳에도 닿았다. 그러나 나카야마는, "푸우…." 하고 카레 컵라면을 앞에 두고 탁자에 얼굴을 들이박고 코를 골고 있 었다. 그는 정문 당번인 선도부원이 가지고 있을 터인 마스터키의 관리자이기에, 열쇠를 받아 일지에 기록하지 않으면 안되었지만 그 일을 채 하기도 전에 벌써 이런 상태였다. "푸카카칵…쿠울" 하지만 그것은 그가 태만하다는 얘기가 아니다. 그의 양손은 선잠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힘이 빠져 털썩 바닥에 축 늘어져 있었다. 볼은 탁자에 찰싹 붙어서 머리는 거의 옆쪽으로 틀어 져 있어 깨어나면 잠을 잘못 잔 탓에 상당히 아플 것임에 틀림없었다. "푸우우…푸카카카카아악…" 코고는 소리도 절대 건강하다고 말할 수 없는 마치 며칠 굶은 듯한 똥개가 웅얼 거리는 소리를 닮았다. 그는 그저 자고 있는 게 아닌 사실상 인사불성 상태에 있 었다. 게다가 그 방안에 홀로 있지도 않았다. 그 옆에는 한 소녀가 서 있었다. "................." 그녀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는 스피커를 노려보고 있었다. 방안에는 묘하게 단 이상한 냄새가 피어오르고 있었지만, 나카야마 하루오를 혼 절시킨 그 냄새 속에서도 길고 검은머리의 아름다운 소녀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 ··· · ··· ··· ·· ····· ····· 그녀 자신이 그 냄새를 피우고 있는 장본인이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방송이 시작되어 채 10초도 지나지 않아서 숙직실에서 뛰어나와 윗층으로 향했다. 남겨진 나카야마 하루오는 그 뒤 몇 년에 걸쳐 본인은 전혀 기억도 없는 LSD의 플래시백 현상과 닮은, 일상생활에서 편두통처럼 갑자기 덮쳐오는 환각에 괴로워 하게 된다. 그는 그 수수께끼의 '병'을 저주했지만 그는 자신의 엄청난 강운(强運)을 몰랐기 에 하는 소리였다. 그의 명줄이 길어진 이유는 살인귀들의 그저 너무 많이 죽이 면 눈에 띈다는 단순한 변덕 때문이었다. * "―!?" 키리마 나기도 그 방송을 듣고 머리를 들었다, 그녀는 학교 모든 학생들의 사물함을 열어제끼고 있던 중이었다. 물론 만티코아 의 흔적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 옆에는 교복을 입은 에코즈도 서 있었다. "어떻게 내가 아직 학교에 있는 걸 알고 있는 거지? 거기다, 나오코의 일까지…. " "방송실…." 에코즈도 방송에 나온 단어에서 그 이름을 끄집어내어 말했다. "에코즈! 기척은 있어?" 키리마 나기는 그에게 물었다. 그가 자신의 복제인 만티코아와 어떤 식으로든지 공명하고 있어 기척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카미카시로 나오코에게서 들었다. "..........." 에코즈는 이마에 손가락을 대고 느껴보려고 했지만,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는 듯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버젓이 불러내면서 이제 와서 새삼스레 기척을 숨길 필요는 없지 않나?" 나기는 분을 내며 말했다. 에코즈는 고개를 젓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만티코아는 자신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인간사회에서 '학습'했을 게 틀림없었다. 이건 덫이다. 그는 나기의 어깨를 짚고 뒤로 밀었다. 가지마 라는 의사표시다. "…왜, 덫이니까?" 나기는 말했다. 그녀도 알고 있었다. 에코즈는 끄덕였다. "그럼 더더욱 가야지. 이 덫에 우리가 걸려들지 않으면 녀석은 또 모습을 바꿔서 도망칠 거다, 이 학교에서도. 그럼 다신 못 잡아." 나기는 조용히 말했다. "............." 에코즈는 용맹스런 그녀를 쳐다보며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어느 쪽일까?) 그러나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소녀는 이제 없다. 나기는 가죽 장갑을 스커트의 주머니에서 꺼내 꿰고는, 허리 뒤쪽에 벨트로 고정 해두었던 스턴건을 끄집어냈다. 교복 차림에 그것들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그녀는 작동테스트로 그립을 쥐어 보았다. 파직, 2백만 볼트의 불꽃이 휘날렸다. * "…안 오네." 다나카가 중얼거렸다. 우리가 방송을 하고 나서 이제 5분 가까이 지나고 있었다. "선생님도 안 오고 말야. 어떻게 된 걸 까나." 나는 오늘의 숙직이 나카야마 선생님이었다는 걸 생각해 냈다. 그 선생은 신경질 적인 편으로 쪼잔하게 그냥 안 넘어가는 성격인지라, 예정에 없는 방송이 나온 다면 그냥 넘어갈 사람이 아니다. 잠깐 졸고 있었나. ".........." 사오토메도 심각한 표정을 하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어떻게 하죠?" 다나카가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듯이 나와 사오토메 쪽을 돌아보았다. "다시 한 번 방송해 보죠." 툭 내던지듯 사오토메가 말했다. "하지만 아까 방송이 들리지 않았을 리도 없고 역시 이제 학교에 없는 건지도 몰 라." 나는 두 손을 벌렸다. "으응." 하고 다나카가 웅얼거렸지만 사오토메는 다시금 강한 어조로, "다시 한 번 방송해 보죠." 하고 말했다. 그리고 그가 방송실의 조작 반에 손을 뻗쳤을 때 갑자기 불이 모두 꺼져 버렸다. "―와악!" 방송실에는 창이 없다. 완전히 암흑으로 변했다. "저, 정전?" 우리는 당황했다. "칫, 퓨즈가 나간 건가!" 사오토메가 혀를 찼다. 무슨 얘긴가 생각해 보았지만 퓨즈가 나갔으니까 깜깜해 졌다는 얘기인 듯 했다. 과연, 그런 얘기였던가. 그는 머리회전이 빠르다. 하지 만 갑자기 왜 퓨즈가 나간 거지? 누가 일부러 그렇게 하지 않는 한 전기사용량이 많을 때 나가는 게 아니었던가― 내가 손으로 더듬어 어떻게든지 문을 찾아 여니 복도 창에서 달빛이 실내로 들어 왔다. 그와 동시에 검은 그림자가 내 앞에 섰다. "에…." 하고 쳐다볼 새도 없었다. 그 그림자에서 내게 뭔가를 들이미니 내 몸에 퉁 하고 충격이 왔다. "―힉!" 입에서 엉겁결에 비명과 분간이 가지 않는 목소리가 새며 나는 바닥에 쓰러졌다.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부장님!" 등뒤에서 사오토메의 목소리가 아주 먼 곳에서 나는 소리처럼 들려 왔다. 그림자 는 내 옆을 재빠르게 스쳐 지나가며 사오토메에게도 덤벼들었다. 풀썩 하고 사오토메가 쓰러지는 진동이 바닥을 타고 전해졌다. "다, 당신은?" 이라는 다나카의 비명소리. 거기까지였다. 내 의식은 점점 멀어져 흐려져 갔다. …눈이 떠졌을 때 나는 왁스로 떡칠이 된 판자를 댄 바닥에 묶여서 나동그라져 있었다. 주변은 어둡다. 그러나 달빛이 비쳐오는 듯 교내(校內)보다는 밝았다. 꽤 넓은 장소다. 창면적이 널찍하고 판자가 대어진 넒은 장소는 학교에 하나 밖 에 없다. 여긴 강당이다. (―어, 어떻게 된 거지?―) 나는 몸을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아직 온 몸이 돌처럼 무거웠다. 아까 받은 충격이 몸에 남아있는 모양이 다. 옆에는 사오토메와 다나카가 같이 쓰러져 있었다. 나는 무릎으로 그들의 등 을 쳤다. "조, 조금만…!" ""으, 으응." 사오토메가 꿈틀꿈틀하더니 눈을 떴다. "여기는…." 하고 그는 말을 하다가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 어떻게 된―." 하고 말을 걸며 고개를 돌린 나도 그와 똑같이 입을 다물었다. 그 시선의 끝에 사람그림자가 둘 있었기 때문이다. "모두 일어났나." 하나는 키리마 나기였다. 또 하나는 잘 모르겠지만 남학생인 듯 했다. 교복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본 적 이 없는 얼굴이다. "…카미키시로 선배님을 어떻게 한 겁니까." 다나카가 말했다. 그는 나보다 먼저 깨어나 있던 모양이었다. "네가 다나카 시로인가. 나오코한테 얘기는 들었지만," 나기는 한 숨을 내쉬었다. "키리마 선배, 이건 도대체." 사오토메도 물었다. 그러나나기는 그에게 차갑게 말했다. "관여하지 말라고 했지, 사오토메군." "하지만 도대체 뭡니까, 이건?" "너희들은 몰라도 되는 일이야." "잠깐, 그렇게 말하는 법이 어디 있죠!" 나는 큰 소리를 질렀다. 나기가 날 노려보았다. "선도부장, 당신이야말로 뭐지, 두 사람은 그렇다 치고 왜 너까지 여기 있는 거 야?" "나오코 선배를 알고 있으니까요!" "그렇다 치더라도 너무 열심이었던 거 아냐, 덕분에 이 쪽은 상당히 혼란스럽다 고." "혼란스러운 건 이쪽이야!" 나는 상대가 폭력사건도 일으킨 적이 있다는 꼬리표가 달린 문제아라는 걸 잊어 먹고 있었다. "무슨 꿍꿍인지 설명해 보라구요!" 그러나 그녀는 나를 무시하고 옆에 있는 남자에게 물었다. "역시 이 속에는 없는 거지? 에코즈."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종잡을 수 없었지만 에코즈라 불린 그는 끄덕였다. 묘한 별 명이다. "어―없어." "기척을 지우고 있어서 모르겠다는 건 아니겠지." "아, 아니." "'개조'당한 흔적도 없고, 그런가…." 둘이서 고개를 끄덕이고만 있었다. 나는 화가 났다. "뭘 둘이서 알 수 없는 말만 하고 있는 거죠! 그리고 그 쪽, 우리학교 학생이 아 니죠! 얼굴 본 적도 없어!" 자랑은 아니지만 정문 당번을 하고 있으니 전교생의 얼굴을 기억하게 되는 것이 다. 나기는 이쪽을 보았다. "미안하군. 의심은 풀렸어. 너희들은 돌아가 주길 바래." 자기 멋대로 말하기에 나는 말을 짤랐다. "장, 장난치지 마!" 묶인 채로 나는 벌떡 일어섰다. 하라고 해도 못할 일을 머리가 피가 뻗치니까 할 수 있었던 장기였다. "흠." 나기가 눈썹을 찌푸렸다. "설명하라고 했잖아! 이렇게 되면 진정이 되질 않는다고!" "역시 선도부장이군. 대단한 기세야." 나기는 나를 노려보았다. 야쿠자 같은 눈매로 보였다. "하지만 여기서 있었던 일은 없었던 걸로 해 줘." "뭐라고요!" 나도 나기를 째려보며 되쏘아보았다. "너희들을 위해서다." 그녀는 차갑게 말했다. "그런…!" 나는 너무 화가 나서 몸을 비틀었다. 그러니 양손 발이 묶여있던 탓에 밸런스가 무너져서 도로 쓰러져 버렸다. (와…!) 얼굴부터 바닥에 부딪친다―고 생각한 그 때, 내 몸은 폭 안겨 있었다. 나기의 옆에 있던 그 에코즈라는 사람이었다. 내가 고개를 드니 그는 끄덕이며 나를 묶었던 로프를 풀어주었다. 차근히 살펴보니 상냥할 듯한 얼굴이었다. "고, 고마워." 나는 로프 자국을 문지르며 우선 인사를 했다. 그는 다나카와 사오토메의 로프를 풀었다. 꽤 조이게 묶여 있었는데 그는 실뜨기 하는 것처럼 간단히 풀어버렸다. 가느다란 외견에 어울리지 않게 힘이 센지도 모 른다. 나는 크리스토퍼 램버트가 연기하던 '타잔'을 연상했다. 그 영화에서는 머리가 길었지만 이미지 적으로 이 사람과 어딘가 닮은 데가 있었다, 왠지 모르게 그다 지 세간과 동떨어져 있지는 않은 구석이―. "키리마 선배님, 이 사람은?" 사오토메가 물었다. 나기를 짝사랑하는 그이니 만큼 신경 쓰일 법도 하다. "음, 아. 뭐, 그렇지 …남자친구야." 나기는 그렇게 둘러댔지만 어디로 보나 그런 느낌이 아니었다. "그런 말엔 넘어가지 않아. 당신들, 뭘하고 있는 거지? 나오코 선배는 어디 있어 ?" 나는 다시 다기를 노려보았다. "그, 그래요! 카미키시로 선배는 어떻게 된 겁니까?!" 자유가 되자마자 다나카는 나기에게 덤벼들었다. "나도 나오코가 걱정이야." 나기는 괴로운 듯이 눈을 깔았다. 뭔가 알고 있는 거다. "가르쳐 줘요. 우리도 협력할 테니." "아니, 무리다." 나기는 딱 잘라 말했다. "왜죠!" "이건 평범한 사건이 아니야. 나 같은 이상한 녀석이 아니면 대처할 수 없는 사 태다." 이상(異常)이라는 말을 머뭇거리지도 않고 말했다. 단언하는 모습이 나는 마음에 안 들었다. 그러니 사오토메가, "또 '평범하면 안돼'는 겁니까." 라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했다. 희미하게 미소짓고 있었다. 나는 그 얼굴을 보고 나는 섬뜩했다. 그저 애매한 웃음일 뿐인데 거기에는 어딘가 기묘하게 '여유'가 있는 듯이 보였 다. 말하자면 꼼짝 못하던 게임에서 자기가 잘 하는 패턴이 나왔을 때 같은… 냉 정한데다 용서도 없는, 그런 미소로 보였던 것이다. "…음." 나기는 약간 얼굴을 찌뿌렸다. 아마도 나기가 그를 찼을 때 똑같은 말을 했던 것 이리라. "카미카시로 선배님은 무사한 겁니까?" 다나카가 말했다. 나기는 툭 내던지듯, "시로군, 이었지. 이제 그녀는 잊는 게 좋아." 괴로운 듯이 말했다. "왜, 왜죠?" "..............." 나기는 이제 그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이 게시물은 上遠野浩平의 'ブギ-ポップは笑わない'을 번역한 것으로, 다른 곳으로 옮기실 경우 제게 메일만 보내주시기 바라며, 상업적인 용도로는 쓰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상업적인 용도가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이 소설은 동명의 애니메이션과 영화의 원작소설입니다. 문고본으론 좀 긴 관계로 각 화를 둘로 나누어 올리겠습니다. 이번 제 5화 part A는 상당히 게으름을 피운 덕에 공백이 길어졌습니다. 기다리셨던 분들께 사죄를.. 빨리 끝내고 'VS 이미지네이터 PART1'으로 들어가겠습니다. 그럼 이만. 오늘도 지구를 향해 돌진하는 네메시스. 『창작 - 쓰기-번역란 (go ANC)』 637번 제 목:[번역] 부기팝은 웃지 않는다 제5화 B 終 올린이:네메시스(김미진 ) 01/01/30 04:56 읽음:680 관련자료 없음 ----------------------------------------------------------------------------- 3. 나기와 에코즈의 배웅을 받으며 우리는 강당을 나섰다. "빨리 돌아가." 나기가 말했다. "열쇠를 선생님께 돌려드리러 가야 하는데." 나는 입을 뾰족 내밀었다. 설명할 길 없는 기분 나쁜 느낌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럼 선생님께 일러 바칠지도 몰라." "멋대로 해." 나기는 밀쳐내듯이 내뱉었다. 나는 울컥 화가 치밀었다. "도대체 뭐야, 정말! 무슨 일인진 모르겠지만 세상 전부 자기 혼자 다 짊어지고 있 는 듯한 얼굴이니.! 내버려 둘 수가 없잖아!" "그만 두세요, 부장님." 사오토메가 내 어깨를 통 하고 쳤다. "그래도!" 나는 더 화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사오토메는 그런 나와 정반대로 평정 그 자체였다. 마치 아기를 어르는 것처 럼 나를 달랬다. "별 수 없잖아요, 키리마 선배에겐 키리마 선배 나름의 사정이 있을 테니." 뭔가를 깨달은 듯한 느낌의 말이었다. "..........." 역시 그에게서 '여유'가 느껴진다. 내가 입을 다물고 있으니 그는 나기 쪽으로 돌아섰다. 사오토메가 응시하니 나기는 곤란한 듯이 눈길을 피했다. "키리마 선배님 ― 저는 알 수 있습니다." 그는 가슴의 주머니에서 샤프 하나를 꺼내더니 손 위에 놓고 장난을 하기 시작했다. 아무 의미 없는 동작이었다. "그래, '평범'한 것으론 우리는 만족할 수 없어…." "........?" 나기는 뭔가 알고 있는 듯한 표정의 사오토메를 이상한 듯 쳐다보았다. "무슨 얘기지?" "당신에게 차여서, 다시금 돌이켜보니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뭐라 해도 이제 당신과 같이 행동하고 있었다면, 나는 틀림없이 그녀와 만났어도 적이 되어 버렸을 테니 말이죠" 그는 후 하고 작게 한 숨을 쉬었다. 나기는 눈썹을 찌푸렸다. "그래서 어쨌다고?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그녀는 당혹해 하고 있었다. 그의 말이 마음에 걸리는가 보다. 사오토메는 입술 끝에 웃음이 걸려 있었다. "아니, 그러니까 이제 내겐 오히려 당신 쪽이 '평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마치 전광석화처럼 움직였다. 휙 턴했나 싶더니 뒤에 서 있던 에코즈의 목에 손을 뻗쳤다. 그 손에는 샤프가 있었다. 노리던 대로 그 끝이 에코즈의 목에 깊게 꽂혔다. "―?!" 에코즈는 몸을 뒤로 젖혔다. 사오토메 마사미는 에코즈의 목에 사프를 끝까지 단숨 에 꽂아 버리곤 나기 쪽으로 돌아섰다. "지금 당신은 우리의 적이다―." 그 때 우리 위로 그림자가 하나 펼쳐졌다. 돌아보니 학교 옥상에서 사람이 떨어져 내렸다. 아는 얼굴이다. 유리하라 미나코였다. 그녀는 떨어져 내리며 에코즈를 보고 있었다. 그대로 그의 위로 떨어졌다― 아니 덮쳐 왔다. "――!" 목에서 피를 흘리는 에코즈의 어깨부터 허리까지를 유리하라 미나코가 단숨에 두 쪽 으로 갈랐다. 손톱이 이상할 정도로 길었다. 팡! 유리하라 미나코는 10미터 이상 높이에서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공처럼 다시 튀어 올랐다. 인간이 아니야. "아…." 나는 입을 쩌억 벌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마, 만티코아!" 나기가 비명을 지르며 유리하라 미나코의 모습을 한 괴물이 나는 것을 눈으로 쫓았 다. 그것이 그녀의 명을 재촉하는 길이 되었다. 사오토메 마사미가 그 사이에 그녀의 코앞까지 다가왔던 것이다. 나기가 얼굴을 돌리는 것과 동시에 사오토메 마사미의 손이 위에서 아래로 긋고 지 나갔다. 번쩍하고 손에 들린 나이프가 빛났다. "―윽!" 나기가 말이 되지 않는 소리를 내기도 전에 그녀의 목은 손바닥 사이즈의 장난감 같 지만 손맛만은 진짜인 서바이벌 나이프로 깊게 베어졌다. ··· ·· ·· ·· ··· · ··· "죽이는 쪽과 죽는 쪽이 뒤바뀐 것 같지만…" 사오토메 마사미가 아마도 그 이외의 누구도 이해할 수 없을 법한 말을 중얼거렸다. 키리마 나기의 몸은 목에서 피를 뿜어내면서 비틀비틀 돌면서 쓰러졌다. "――!" 목을 찔리고 몸이 반 잘린 에코즈가 나기를 보았다. 그도 인간일리가 없었다. 그는 다시 덮쳐 오는 유리하라 미나코를 피해 나기 곁으로 달려갔다. 사오토메 마사미가 쫓아오는 데도 상관없이 그는 나기의 꿈틀꿈틀 경련하고 있는 몸 을 잡고 도약했다. 그는 교사(校舍)를 넘어 옥상 저편으로 사라졌다. ―――――도망쳤다! "쫓아! 지금이라면 이길 수 있어!" 사오토메 마사미가 외치니 유리하라 미나코는 뛰어내려오던 반대 코스로 다시 튀어 올라갔다. "..........." 나는 말문이 막혔다. 옆에 서 있던 다나카가 "우…" 하고 웅얼거렸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다. 휙 사오토메 마사미가 내 쪽으로 돌아섰다. 나는 전신이 마비된 것처럼 움직일 수 없었다. "후후후." ·· 그는 웃었다. 놀랍게도 그 웃는 얼굴은 아까 까지 보통 사람이었을 때와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 이 남자아이는 사람을 하나 죽인 적이다―. 부들부들 무릎이 떨리고 있었다. 이가 덜덜 떨려서 이가 서로 부딪쳤다. "원래는 나기가 이 쪽을 죽여주었으면 했지만 이젠 별 수 없지. 거기다 이런 것도 나름대로 꽤 재미있군요." 그는 웃으며 말했다. 마치 평온 그 자체였다. "내 손으로 하는 것도 버릇이 들 것 같군요…." 나이프를 달빛에 비추면서 천천히 이쪽으로 걸어왔다. * 옥상으로 뛰어 도망친 에코즈는 자신의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아까 샤프에 당한 일격이었다. 아마 심 대신 만티코아가 합성한 생명 독이 들어있었 던 것이리라. 감 염되어 버렸다. "......!" 급히 샤프를 목에서 잡아 뺐다. 그러나 이미 손쓰긴 늦은 듯 했다. 손 발 끝이 저려왔다. 강력한 재생능력으로 당장 복구되어야 할 상처가 전혀 낫지 않는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이지…? 저 소년은 만티코아의 동료인가? 세뇌 당한 건 아니다. 틀림없다. 그렇다면 왜 평범한 인간이 괴물과 함께―. 그는 나기를 힐끔 보았다. 호흡은 정지하고 눈동자도 풀려 있어서 눈에는 아무 것도 비추이지 않았다. 반쯤 열 린 입술에서 피가 한 줄기 흘러 있었다.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다.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학원을 그림자에서 지켜온 소녀의 말로였다. "..................." 에코즈는 창백한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어느 쪽이지?) 그는 마음속에서 자문했다. 그러나 그에 대답해 줄 수 있을 카미카시로 나오코는 이 제 없다. 곧 뒤에서 유리하라 미나코가 그를 쫓아 올라왔다. 에코즈는 다시 나기를 안은 채 옥상에서 뛰어내렸다. "도망치게 놔둘까 보냐!" 만티코아는 그 뒤를 곧장 쫓았다. 그녀는 사오토메 마사미의 작전이 딱 맞아 떨어졌기 때문에 조소를 뺨에 띄우고 있 었다. 에코즈는 도망치고는 있으나 상처 입은 몸으로는 기척을 지우는 것조차 할 수 없다. 원래대로라면 불완전한 카피인 그녀 따윈 에코즈와 대적할 수 없었을 테지만 지금 우세는 역전되었다. 그녀가 다시 에코즈를 시계(視界)에 잡은 것은 에코즈가 키리마 나기의 몸을 교정(校庭)의 잡목 속에 버리던 딱 그 때였다. 몸을 가볍게 위 한 행동일 테지만, 지금에 와선 이미 아무 의미 없는 일이다. 만티코아는 입술 끝을 끌어올리며 움직임이 둔해진 에코즈에게 달려들었다. 날라 차기 일격에 에코즈는 나가 떨어졌다. * ――――퍼억 하고 둔탁한 소리가 교정(校庭)에서 들려왔다. 나는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눈앞에 사오토메 마사미의 나이프가 다가오고 있었다. 흘려 내려오는 일격을 나는 필사적으로 땅을 구르듯이 해서 피했다. 도망치려고 달려나갔지만 발이 뭔가에 걸려서 털썩 넘어져 버렸다. 알고 보니 그것 은 키리마 나기가 흘린 피로 인해 생겨난 피웅덩이였다. "――까아아아아아아아아아!!" 나는 여기서 처음으로 비명을 질렀다. 사오토메 마사미가 다가온다. 나는 뒤를 돌아보려고 했다. 손가락 끝에 무언가가 만져졌다. 나기가 떨어뜨린 스턴 건이 검게 빛나고 있었다. "......!" 나는 낚아채듯이 그 무기를 집어들었다. "훗…." 사오토메 마사미가 눈살을 찌푸렸다. "오, 오지마!" 나는 어떻게 해선가 무기를 그의 앞에 들이밀고 스위치라 짐작되는 곳을 쥐었다. 파 직 하는 불꽃이 끝에서 넘실거렸다. 그러나 불꽃은 몇 수 cm에 지나지 않아, 그 조 그마한 빛은 의지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음." 사오토메 마사미는 냉소를 띄웠다. "그런 걸로 날 어떻게 해 보겠다는 건가요, 부장님. 그 무기론 사람은 죽일 수 없어 요." "…왜, 왜 그러는 거야, 너희들 ― 유리하라 미나코는 도대체 뭐야?" "그녀는 유리하라 미나코이되 유리하라 미나코가 아니야. 진짜 유리하라는 이미 죽 었으니까. 그녀는 만티코아다." "만티코아…?" 어디선가에서 들어본 기억이 있었다. 무슨 게임에선가 보았다. 아마 그 의미는 바로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 서, 설마 … 그럼 나오코 선배는 ― 내 표정을 보고 사오토메 마사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게된 듯 빙글 웃었다 . ·· ··· · ··· "맞았어. 이미 소화가 다 되었지." 무덤덤하게 말했다. 죄악감이란 터럭만치도 보이지 않는 말투로. "그, 그럼 요사이 사라진 사람들은, 전부 ―." "대부분이긴 하지만, 우리와 관계없이 가출한 녀석들도 있으니까." "키리마 나기는 너희들을 찾고 있었던 거네…." 그래서 우리를 붙잡았던 건가. 그러나 우리는 관계없는 사람으로 생각해 풀어주었지 만 설마 그 속에 그녀의 적이 숨어있었을 줄이야― "우릴 숨기 위한 방편으로 쓴 거야…!" "아주 잘 해주었지. 정말 바보 같은 사람이야. 자기는 에코즈의 동료였으면서 적에 게도 똑같이 동료가 있으리라 곤 생각도 못 해본 듯 하더군." 그 침착한 모습에 내 몸 안 쪽에서 불타오르는 듯한 분노가 솟아올랐다. 그것은 공 포보다도 거대했다. "좋아했었다는 것도 거짓말이었던 거네!" ·· ·· ··· ···· "아니, 그건 진짜다. 다만 이제 저런 그녀는 필요 없어. 그래뵈도 그녀만은 만티코 아에게 해치우게 하지 않고 내 손으로 죽이고 싶었지. 알겠나? 이 감각을." "알 수 있을 리 없잖아!" 나는 그를 향해 무기를 디밀었다. 그러나 그는 간단히 흘려 보냈다. "좋아요, 부장님. 그 눈은 좋아 ― 난 그런 의지가 깃든 강한 눈을 아주 좋아하죠." ·· 나는 발끈 했다. "이, 이…!" 그 때 우리 머리 위를 무언가가 지나갔다. 그 '에코즈'라는 사람이었다. 그는 운동장에 매다 꽂혔다. 퉁겨 날려온 것이다. 온 몸이 너덜너덜해서 숫제 걸레조각 같았다. 그에게 정신을 쏟은 틈을 놓치지 않고 사오토메는 내 손목을 쳤다. "앗!" 하고 소리를 쳤을 때 이미 스턴건은 내 손을 떠나 있었다. 그 때 등뒤에서 유리하라 미나코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 됐어, 사오토메. 뒤는 내가 맡을께." "알았어." 하고 사오토메 마사미가 스턴건을 주워 한 발짝 뒤로 물러섰기에 나는 에 코즈 곁으로 달려갔다. 그는 끔찍한 모습이었다. 오른 팔이 어깨에서부터 반은 잘려 나가 있었다. 온몸에 심한 상처를 입어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괘, 괜찮아요?!" 나는 그를 안아 올렸다. 그는 희미하게 눈을 떴다. "우, 아…." 괴로운 듯한 목소리가 자줏빛 입술에서 흘러나왔다. "부장, 그 녀석에게 도움을 청해봤자 헛수고야. 이제 곧 죽을 테니." 유리하라 미나코가 ― 아니 만티코아라는 이름의 괴물이 히죽거리며 말했다. "그치만 꽤나 간단했어. 이럴 줄 알았으면 굳이 덫을 놓지 않아도 네 실력만으로 쓰 러뜨렸을 거 아냐." 사오토메가 가벼운 어조로 말했다. "설마 이렇게 약하리라 곤 생각도 못했을 걸. 원래 힘이 좀 더 세었을 텐데 말야." 만티코아는 후훗 웃었다. 나는 그녀를 노려보았다. "당신들은 악마야! 사람도 아니라고!" * 사람도 아니다, 라고 자신을 안고 있는 소녀가 소리치는 것을 죽어가고 있던 에코 즈는 들었다. 사람이 아니다, 인간의 자격이 없다, 라는 의미의 말이었다. 그는 점점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 ·· ·· ··· 인간은, 어느 쪽인 것일까? 평범한 인간이 아닌 그를 붙잡아 무턱대고 자기 멋대로 없이 몸을 조사했던 자들은 인간이었고 만티코아를 만들어낸 것도 인간이었다. 그리고 거리를 헤매고 있던 그를 도와준 검은 모자 소년과 카미카시로 나오코, 거기다 키리마 나기도 똑같은 인간이 었다. 어느 쪽이지? 어느 쪽이 진짜인가? "하하하! 바보 아냐, 너!" 만티코아가 소녀에게 조소를 보냈다, "난 원래부터 인간이 아니었어. 그리고 사오토메도 당신들 같은 어리석은 인간들과 는 전혀 다르다고. 악마라니, 그거 영광이군! 당신네들에게 그렇게 불리다니 굉장히 기분이 좋아!" "반드시 너희들은 죽게 될 꺼야!" 소녀는 즉시 되받아 쳤다. "나와 이 사람이 여기서 죽는다해도, 나와 같이 너희들을 용서하지 않을 사람들이 틀림없이 있을 꺼야! 너희들이 땅으로 꺼진다해도, 너희들이 이용하려 하는 세상의 부정을 증오하는 인간이 언젠가 너희를 찾아낼 꺼야! 키리마 나기처럼!" 소녀는 눈물을 방울방울 흘리고 있었다. 분한 것일까. 자기가 죽게 된다는 사실이? 혹여 그렇다면 왜 이 소녀는 그를 이렇게도 꼬옥 안고 있는 걸까? 마치, 그를 만티코아에게서 지키려는 듯이. 상처입고 거리를 떠돌고 있던 그를 감싸준 카미키시로 나오코처럼―. (…인간―) 그에겐 이미 시간이 없었다. 결단을 내리기엔 이제 지금 밖에 시간이 없었다. * "키리마 나기라고?" 만티코아는 쿡쿡 웃었다. ···· ·· ·· "키리마 나기는 이제부터 변할 꺼야." "…?" 나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무슨 말이야?' ···· ····· ··· ··· ·· "그러니까 이제 내가 유리하라 미나코에서 키리마 나기로 변할 거라는 말이지." 순간 나는 이해가 안 되어 머릿속이 새하얘졌고 곧 그것은 놀람으로 바뀌었다. "――뭐, 뭐라고?" "절호의 소재야. 좀 유별난 사람이니 다소 기묘한 행동을 해도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할 거고 자산도, 정보수집력도 보통 사람에 비할 데가 아니지. 거기다 이미 처치 한 셈이니. 유리하라 미나코가 실종되어 일어나게 될 소란은 피하고 싶긴 하지만 그 걸 각오하더라도 손에 넣을 가치가 있어." "……!" 나는 그녀 뒤에 서 있는 사오토메 마사미를 쳐다보았다. 그는 아까 말했다. ― '이 제 저런 그녀는 필요 없어' 라고…, 그 이유는 '새로운 그녀가 있으니까' 라는 의미 였던 것이다. 사오토메 마사미는 무표정하게 우리를 보고 있었다. 나는 말을 잃었다. "그리고 니이토키 케이 ― 너도 표면적으로는 죽은 게 아니야. 개조되어 나의 '노예 '로 살아가게 될 꺼야. 너의 마음은 사라져서 설사 좋아했던 남자를 만나도 아무 것 도 느낄 수 없게 되지만…." 만티코아는 말을 이었다. 나는 그 풍경이 눈앞을 스쳐가 망연자실했다. 만티코아는 나기의 모습으로, 내가 그 옆에서 노예처럼 나란히 서 있는 것을… 예를 들자면, 내가 정문 당번을 서는 데 나기가 그 옆에 서서, 내가 '다음 번 먹이로 저 게 좋겠네요' 라고 가르쳐주는 모습을… 그리고 전에 짝사랑했던 선배가 귀여운 여 자친구와 같이 가고 있어도 나는 이제 아무 생각 없이 그저 기계적으로밖에 인사를 하지 않게 되는 거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만티코아가 말하는 무서운 이야기는, 그저 자신이 살아남기 위 해서만 우리를 죽이는 게 아니라, 이 자체가 그들이 세계를 인간에게서 빼앗으려는 계획의 일부인 것이다…. 이런 게… 이런 놈들이 학교를 졸업해서 밖으로 나가게 되 면 세계는 도대체 어떻게 되는 거지?! 만티코아가 다가왔다. "……!" 나는 에코즈의 몸을 꼬옥 껴안았다. 그 때 였다. 상처를 입은 그의 팔이 천천히 벌어졌다.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주먹을, 쥐는 것도 펴는 것도 아니고 어중간하게 축 늘어 뜨리고 있었다. 그 손으로 그는 만티코아를 가리켰다. "뭐야? 무슨 꿍꿍이야? 이제 와서 뭘하겠다는 거지?" 만티코아는 조소했다. "..........." 그러나 에코즈는 그녀를 보고 있지 않았다. 그녀 뒤편으로 펼쳐진 밤하늘을 보고 있는 듯 했다. ···· ··· · ·· ·· ··· ··· 그리고 그는 누구에게 말하는 게 아닌, 그저 하늘을 향해서 갑자기 정확한 발음으로 말을 했다. "― 내 몸을 '정보'로 바꿔서, 지금 '보고'를 보낸다!" 다음 순간 내 눈앞은 새하얀 빛으로 물들었다. 4. 그날 밤, 그 지역 일대에서는 기묘한 전파장해가 관측되었다. 위성 방송 모니터가 갑자기 화이트아웃하던가 혹은 PC의 하드디스크에서 모든 데이터가 소실된다던가 하 는 괴현상이 수없이 목격되어 TV 방송국과 신문사에 질문과 항의 전화가 빗발쳤다. 수많은 조사가 행해졌지만,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고, 여러 사람의 증언에 의한 '그 때 아주 순식간의 일이었지만 하늘이 빛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뭐랄까, 지상에 서 엄청난 빛이 하늘을 향해 쏘아 올려진 듯한 느낌으로―' 라는 정보도 결국 어떠 한 반증이 없이 사라져갔다. * …나는 확실히 보았다. 에코즈가 빛으로 변하고, 그 빛이 정면으로 만티코아를 집어삼킨 것을. 그리고 그 직전에, 사오토메 마사미가 만티코아 앞으로, 마치 감싸듯이 뛰어 나간 것을―.그가 무슨 생각으로 만티코아의 동료가 된 것인지, 난 알 수 없고 알고 싶지 도 않다. 그러나 하나만은 인정하지 않으면 안될 일이 있다. …그는 아마도 만티코 아 때문에 여러 사람을 죽였을 테지만, 그 목적에 대한 생명경시에는 자신의 생명까 지도 포함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빛의 방류(放流)에 먹혀서 사오토메 마사미의 몸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증발 ― 아니, 소멸했다. 그러나 에코즈가 '자폭'하기 직전에, 만티코아는 그녀의 동료에게 퉁겨져 그 사선에 서 빗겨 났다. "‥‥!" 나도 충격파에 날아가면서, 나는 필사적으로 사태를 이해하려고 애썼다. 그렇지만 역시 난 뭐가 뭔지 모르겠다. 내가 처한 입장에서 이 사건의 전모는 거의 정체 불명에 가까웠다. 에코즈가 도대체 누구였는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어째서 빛이 되어 폭발한다는 일이 있을 수 있는지 ― 그리고 그게 '보고'라면 도대체 누구에게 뭘 '보고'한 것인가 ― 내 가 알 수 있을 리 없었다. (― 뭐가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는 거야?) 나는 데굴데굴 굴러가면서 마음속으로 외쳤다. 그리고 어떻게 해서 간신히 멈췄을 때는 이미 주변에 빛은 사라져 있었다. "우, 으읏…." 꿈틀거리며 몸을 일으켜 앞으로 보고 나는 말을 잃었다. ·· 그녀가 혼자 서 있었다. 몸은 반쯤 타버려 연기를 내고 있었다. 입고 있던 교복은 바람에 날려가 달빛 아래 에서 가느다란 사지를 드러내고 있었다. "................" 멍하니 하늘을 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 눈에는 아무 것도 비춰지지 않는 듯 했다. "................" 입술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말이 되어 나오지 않는 말을 토해내려는 듯 벌리고 있었다. "…아, 아아…." 얼굴에는 표정이 없었다. 그 대신 뻥하고 공동(空洞)이 뚫려있었다. 목숨보다도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고 만 얼굴이었다. 기쁨이 송두리째 뽑혀져 버린 얼굴이었다. 이제 그곳에 아무 의미도 비춰지지 않을 것 같은 실로 아무 것도 없는 얼굴이었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언제부터였을까 그녀는 절규하고 있었다. 마음이 뜯겨 나간 목소리였다. 그 외침에 달마저 떠는 듯 했다. "................" 나는 멍하니 그 자리에 못 박혀 있었다. 그러다가 정신이 확 들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도, 도망치지 않으…!) 일어서려 했더니 발 밑에서 모래가 부스럭거렸다. 그 순간, 마치 기계장치 인형처럼 만티코아가 상처 입은 얼굴로 이 쪽을 돌아보았다 . 눈이 마주쳤다. 등줄기에 소름이 쫙 끼쳤다. 그 눈은 달 빛 아래서도 충분히 알 수 있을 정도로 새빨개져 있었다. 눈의 흰자가 모두 증오의 붉은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죽여 버리겠어!" 외쳤다. "모두 다, 하나도 남김없이 다 죽여버리겠어!!" 나는 그 목소리에 벌떡 일어나서 내달렸다. 당연히 그녀가 쫓아왔다. 이 쪽은 달리고 있는데, 뒤쪽에서 나는 발소리는 다리를 질질 끌며 걷고 있다. 그런 데도, 발소리는 점점 가까워져 왔다…! (와아아악!) 공포에 질려 나는 내가 이젠 미쳐버렸나 싶었다. 환청이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현실에 있을 법하지 않은 부자연스러운 곡이 눈앞에 있는 나무쪽에서 들려왔다. 그 건 휘파람 소리였다. 그것도 휘파람으로 불기에 어울리지 않는 '바그너의 뉘른베르 크의 마이스터징거' 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상한 건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그 때 나는 그 이외에 기댈 것이 없었다. 나는 필사적으로 그 목소리가 나는 쪽으로 달려 갔다. 하지만 조금만 더 가면 닿았을 거리에서 발이 미끄러졌다. "―아앗!" 엉겁결에 소리 지르며 나는 머리부터 땅에 넘어졌다. 이마를 부딪쳐 눈앞이 일순 캄 캄해졌다. 휘파람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대신 만티코아의 발소리가 아까의 몇 배에 달하는 크기로 귀에 들렸다. "――!" 뒤돌아 봤을 때 이제 만티코아의 손이 나를 향해 뻗쳐오고 있었다. 이제 끝이야, 죽는다…하고 단념한 순간, 휘릭,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만티코아의 손이 흉 하는 소리와 함께 날아갔다. ―몸에서 잘려서 하늘을 날고 있었다…. (…에?) 반짝 하고 빛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이 마치 생물처럼 휘리릭 만티코아의 목에 감겼다. 그리고 팽팽하게 당겨졌다. "――?!" 만티코아의 안색이 변했다. 그녀는 당황해서 양손을 목에 갖다댔다. 그러나 손이 한 쪽 밖에 없어서 손가락으로 그녀의 목을 죄고 있던 '실'을 잡았다. 아니, 실이 아니었다. 그것은 아마도 금속제 와이어인 것이다. 나는 퍼뜩 깨달았다. 지금 내가 넘어진 이유가 땅에 늘어져 있던 와이어를 밟았기 때문이었다. 와이어의 다른 한 쪽이 나무에 걸려 있는 듯 했다. 그리고 다른 한 쪽 은 교사(校舍) 그림자 쪽으로 ― 하고 그 쪽으로 눈을 돌리니 그 순간, 내 머리 속 은 텅비어버렸다. "――말도 안 돼!?" 나도 모르게 크게 소리를 질러버렸다. 허리를 깊게 숙이고, 검은 장갑을 끼고, 와이어를 끌어당기고 있는 사람그림자가 망 토를 두르고 검은 통 같은 모자를 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모습은 2학년 여자아 이들 사이에서 소문으로 돌고 있는 그 ―. "…손목은 거의 탄화되어 절단할 수 있었던 것 같지만, 목은 그렇지 않은 가 보군." 사람그림자가 말했다. 그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분간이 가지 않는 중성적인 목소리까지 소문으로 듣던 그대 로 였다. 하지만 그 얼굴은… 그 사람은… "미―미야시타!?" 어딜 보아도 우리 반인 미야시타 토카였다. "지금은 부기팝이다." 그녀 ― 아니 그는 딱 자르는 듯한 소년의 말투로 말했다. "크…!?" 만티코아의 눈이 경악으로 벌어졌다. 그녀 역시 이 상황이 잘 파악되지 않는 모양이다. 와이어는 끼익 끼익 하고 그녀의 후두를 조여들어 갔다. 손가락으로 필사적으로 헐 겁게 하려하는 모양이었지만 그 손가락 마저 잘려서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끄, 끄으으…!" "만티코아라고 했나 ― 너는 인간 이상의 힘을 지닌 듯 하지만, 나(ぼく)도 보통 사 람이라면 육체의 한계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비축하고 있는 힘을 자유로이 쓸 수 있 지. 몸을 빌리고 있는 신분이지만…!" 부기팝은 조용히 말했다. 그리고 소리쳤다. "지금이다, 시로군! 쏴!" 무슨 말을 하는 거지 하고 생각하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그 지시가 있은 직후, 만 티코아의 가슴에 퍼억 하고 화살 하나가 꽂혔다. 낯익은 화살이었다. 그것은 궁도부 가 쓰는 듀랄루민 제 화살이었다. 뒤돌아보니 아까 도망갔다고 생각했던 다나카가 글래스화이버제의 단단한 활을 붙잡 고, 이쪽을 ― 만티코아를 노리고 있었다. 머리가 고정되어 도망칠 수 없다. "아…." 만티코아는 자신이 패배했다는 걸 안 순간, 무엇을 생각했을까. 그러나 그녀는 이제 화살촉도 부기팝도 저격수도 보지 않았다. 텅 빈 얼굴에 무엇인가가 떠오르는 듯 보였다. 그건 나에게는― 안도로 보였다. "머리를 쏴!" 부기팝이 주저 없이 말했다. 그 사람이 가장 아름다울 때, 추해지기 직전에, 고통이 없는 방법으로 단숨에 죽인 다는 ― 소문대로. 다나카는 손을 떼었다. 시위를 벗어난 화살은 정확하게 유리하라 미나코의 얼굴을 한 소녀의 머리를 박살냈 다. 그리고 ― 그녀의 몸은 일순, 쫘악 갈라지는 것처럼 보이더니 다음에는 보랏빛 연기로 화해 무너져 내렸다. 사방팔방으로 퍼져나가며 바람에 스러져 갔다―. 연기가 조금 코끝에 닿았다. 그것은 굉장히 진하고 텁텁한 피냄새가 났다. "..............." 나는 털썩 주저앉았다. 거기에 다나카가 달려왔다. "괘, 괜찮으세요?" "아, 아니―." 나는 머리를 흔들어 어떻게든 해서 정상적인 판단력을 되찾으려고 했다. 하지만 눈 앞에서 부기팝의 모습을 한 미야시타가 지나가는 걸보고 또 혼란에 빠져버렸다. · ·· "저, 저건 뭐지?" 다나카에게 거의 매달리듯이 물었다. 그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모릅니다. 하지만 활을 가지고 돌아오려고 했는데 불러서 협력할 테니 기다리라고 ― 아는 사이인가요?" "알기야… 알고는 있지만…." 부기팝은 나무에 묶어놨던 와이어를 풀고는 키리마 나기가 쓰러져 있는 쪽으로 갔다 . "…아까 만티코아는 에코즈라는 괴인이 너무 약하다고 말했으렷다. 그 게 왜 그랬던 가 하면―" 툭툭 내뱉으며 그 인지 그녀인지 모를 그 사람은 키리마 나기를 발로 찼다. 그랬더니 머리가 깨져 절명했을 터인 나기가 부르르 몸을 떨고는 상체를 일으켰던 것이다. "―'생명'을 나눠주었기 때문이다. 그 죽음이 억울하지 않도록." 나와 다나카는 이제 입을 떡벌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으, 으응…." 나기는 이마를 짚었다. 그렇게 많이 피를 흘렸으니 아마 빈혈이리라. "여어, 불꽃의 마녀." 부기팝이 말했다. "―너냐?" · ·· 나기는 그 사람을 보고도 그닥 놀라지 않고 한 숨을 쉬었다. "―'나와 있었으'면, 더 빨리 튀어나왔어야 할 거 아냐!" "아니, 나도 네가 움직여 주어서 겨우 위기의 정체를 알 수 있었지." "정말 넌 언제나 나인데, 넌 뭔가 일이 터질 때에만 나오면 되니 정말 제멋 대로인 자식이야, 정말." "그러지 마라." 어찌되었던 간에 이 두 사람은 옛날부터 알던 사이인 듯 싶다. "끝난 건가." "그래. 에코즈라는 사람의 희생과 선도부장의 용기 있는 행동 덕이지." "그런가…." 나기는 일어서려 했지만 휘청거리며 도로 넘어졌다. 그러나 부기팝은 도와주지 않고 이 쪽으로 돌아 왔다. "그녀는 내게 맡겨 둬. 뒤처리도 끝내고 갈 테니." 라고 우리에게 말했다. "..............." 우리는 대답할 수가 없었다. 부기팝은 땅에 떨어져 있던 만티코아의 손목을 집었다. 그리고 얼굴을 들고 나를 향 해, 웃고 있는 듯 혹은 멍청해 보이는 듯한 ― 눈을 한 쪽만 찡그린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니이토키 케이 ― 자네의 강한 의지에 탄복했다. 자네 같은 사람이 있어서 세계는 그나마 정상적인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를 대신하여 감사한다. " 연극하는 것 같은 대사는 무슨 뜻인지 영 알아먹을 수 없었다. 할 말을 잃은 우리를 내버려두고 그대로 바람처럼 달려서 체육관의 모서리를 돌아나 가서는 그는 우리들의 시계(視界)에서 사라졌다. 이렇게 ― 사건은 끝났다. 5. "하지만 어째서 부기팝 이야기가 학교에 퍼져있던 거지? 정체불명에 수수께끼인 사 람일텐데, 도대체 누가 퍼트린 거지?" 다음 날 방과 후, 나는 옆 반인 키리마 나기에게 가서 물어보았다. "아, 아마 그건 미야시타 토카 자신이겠지." 나기는 모두 집으로 가고 없는 교실에서 그렇게 말했다. "에? 어째서?" "미야시타 토카는 자신에게 부기팝이란 인격이 있다는 걸 몰라. 허나 무의식적으로 는 알고 있지. 자아, 자기 일인데 친구나 아는 사람 중에 그런 사람이 있다던가 하 는 식으로 해서 이야기하는 거 있잖아. 그런 식으로 그녀는 자기의 또 다른 인격을 다른 사람에게 전했을 테지." "그런 거야?" "그런 류의 일은 우리 반 스에마한테 물어봐. 그런 얘기가 있더라 하고. 아마 그 애 라면 나보다 알기 쉽게 얘기해 줄 꺼야." "으음, 어려운 거네." "뭐, 그 녀석에 대해선 나도 잘 몰라." 그녀는 한 숨을 쉬었다. "유리하라 미나코가 안 와서 모두 시끄럽지?" "선생님이 짐작 가는 데 없느냐던가 묻고는 있는데 아무로 몰라. 아직 본격적인 핼 방불명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서 인지 그다지 시끄럽지는 않아. 그냥 우등생이 땡땡이 쳤으니 소문이 퍼지는 정도." "흐음…." 유리하라 미나코의 집에는 어제 전화해봤지만 일에 바쁘신 부모님은 두 분 다 출장 가 계시다는 자동응답전화가 흘러나왔다. 그렇다는 건 돌아오지 않았다는 얘기로 아 직 아무도 모른다는 이야기이다. 아마 만티코아는 일부러 그런 날을 노려 행동을 개 시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곧 커다란 소문으로 번지겠지. 유리하라 미나코는 이제 까지의 가출소녀들과는 학교에서 문제시하는 레벨이 다르니까. 사오토메 마사미의 일은 분명 그 일에 가려지고 말 것이다. 그 쪽은 이제 부모님이 아들이 집에 돌아오지 않은 걸 알고 있을 테지만, 남자아이니까 하루 정도 외박은 그리 대단한 걱정거리가 아닐지도 모른다. "…진짜 유리하라 미나코는 언제 그 ― 바뀌어진 걸까." "그거야 모르지. 하지만 꽤 전일 거야. 그녀가 사라진 게 이로서 겨우 사실이 된 거 지. 지금까지 아무도 그녀가 없어졌다는 일 조차 알아차리지 못했으니…." "그렇네, 그렇게 되는 거 구나―." 우리는 머리를 숙였다. 꽤나 복잡한 기분이었다. 진실을 말할 수는 없다. 그런 일을 한다면 오히려 잔혹할 뿐이다. 첫째, 에코즈의 이야기가 그를 쫓고 있었을 조직의 귀에 들어간다면 틀림없이 커다란 불씨가 될 테 니까. "결국 아무 것도 아닌 일이 되고 마는 거네." "아아, 하지만 그 편이 나아." "그렇네―."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돌아갈 사람은 다 돌아가 버리고 부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각자 갈 곳으로 가서 , 복도와 신발장에는 다른 사람의 그림자는 드물었다. 교문 쪽으로 가니 오늘 정문 당번이었던 아이가 나를 보고 환성을 질렀다. "아, 부장! 다행이야. 잠시 교대 좀 부탁할께. 화장실 가고 싶었는데 잘 됐네." 내가 웃으며 끄덕이니 그녀는 재빨리 교사(校舍) 쪽으로 뛰어갔다. 나기가 빙글거리면서 말했다. "이거야 자기 좋을 대로 이용당하는 느낌인 걸."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카미카시로 나오코 선배도 마지못해 몇 번인가 지각 을 눈감아주었던 일을 기억해 냈다. 그렇게 해서 친구가 되었다…. "나오코 선배는 ― 역시." 나는 어떻게 할 수 없을 정도로 슬퍼져 울음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응… 아마 그럴 꺼야." 나기도 안타까운 듯이 중얼거렸다. 어제, 다나카는 헤어질 때 말했다. "말주변이 없어서 잘 표현하기 힘들지만, 아마도 제가 카미키시로 선배를 대신해서 모두에게 감사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네요. 정말 고맙습니다." 울음을 터트릴 듯한 목소리였다. "…다나카, 나오코 선배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던 거야?" 내가 물으니 그는 슬픈 표정을 지었다. "…실은 오늘 선배님을 찾게 되면 딱 잘라서 그만 사귀자고 할 생각이었어요. 하지 만 지금은 잘… 모르겠어요." "으응…." 나는 그 밖에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나오코 선배의 또 하나의 상대였던 키무라 아키오에겐 뭐라고 말해야 될지 생각도 나지 않았다. 아마, 우린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테지. 언젠가 누군가 그에게 그걸 알려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아마도―. 그렇게 해서 우리는 어제와 똑같은 학교 생활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나오코는 묘한 얘기를 했어." 하늘을 올려다보며 나기는 툭 던지듯 이야기를 시작했다. "에코즈는 천사라더군. 그 녀석은 하느님의 명령으로 인류를 살려둘 것인가 멸망시 킬 것인가를 결정하는 최후의 심판을 하기 위해 조사차 온 거라고 했어. 인간이 착 한 존재인가 악한 존재인가, 어느 쪽인가를 판단하기 위해 왔다고, 만약 악하다면 이것으로 역사를 끝내려는 생각이라면서." 나는 놀랐다. "…천사?" "그래, 아니 뭐 어차피 장난 친 게 틀림없어. 그 녀석 뭐든지 부풀려 생각하는 버릇 이 있었으니까. 에코즈와 만티코아는 실제론 어딘가 생화학 연구소의 실패작 같은 걸 거야. 하지만 혹시 그게 진짜라면―." "..............." "우리가 아직 살아있으니 최후의 심판은 이번엔 그냥 넘어간 거 겠지." 나기는 슬픈 듯이 미소지었다. 그녀는 그저 친구의 죽음을 아무 것도 아닌 일로 만들고 싶지 않기에 말하지 않고서 는 견딜 수 없었던 것이리라. 하지만 나는 웃을 수 없었다. 나기는 에코즈가 죽을 때 일어난 일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난 똑바로 보았다. 그 빛은 사오토메 마사미를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지워버리고, 불사신 이었을 만티코아를 스치고 지나간 것만으로 검게 태워버렸다. 그것은 생명이라던가 하는 차원을 이미 넘어선 이야기다― 그 건 하늘을 향해 쏘아졌지만, 만약 그 게 몇 번이나 되풀이해서 지상을 향해 쏘아 내려온다면…. "그, 그럼… 세계를 구한 건," "나도 부기팝도 아닌… 에코즈를 보듬어준 쓸쓸해하고 잘 반하던 사람 좋은 녀석이 지. …그렇게 되는 거야. 하지만 우린 그 녀석에게 고맙다는 말 하나 못 한다고, 이 젠." 나기는 짧게 혀를 찼다. "..............."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몰라 조용히 하늘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렇게 나와 나기가 멍하니 파랗고 높아서 맑은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으려니 남학 생과 여학생 둘이 사이좋게 나란히 걸어왔다. 그 두 사람을 보고 난 엉겁결에 '앗' 하고 소리를 칠 뻔했다. 한 사람은 미야시타 토카였고 또 한 사람이 내가 일방적으로 고백하고 실연 당한 상 대로 3학년에 재학 중인 디자이너 지망의 다케다 케이지 선배님 이였다. 선배님도 나를 보고 약간 놀란 듯 했다. 그래서 난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걸 보이기 위해 내 쪽에서 먼저 말을 걸었다. "어머, 선배님!" 있는 힘껏 밝게 말할 생각이었다. "여어." 선배님은 애매모호한 대답을 했다. 그러니 나기가 갑자기 미야시타 앞에 서서, "흐음, 네가 미야시타 토카인가." 라고 말했다. 왠지 이쪽은 첫대면인 듯 하다. "그, 그런데요." 부기팝의 소년 같은 말투와 다른 귀여운 목소리로 미야시타는 끄덕였다. "난 키리마라고 한다. 잘 부탁해." 하고 나기는 그녀에게 악수를 청했다. 옆에선 마치 불량배가 애들에게 시비 거는 것처럼 보인 모양이다. "어이, 이봐." 하고 다케다 선배가 그녀를 지키려는 듯 끼여들려 했다. 하지만 미야시타는 그에게 고개를 옆으로 저으며, "네." 하고 나기의 손을 잡았다. 그 무의식인가 무언가로 '안' 건지도 모른다. "그럼." 하고 나기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두 사람을 배웅하고, 나는 크게 한 숨을 쉬고 시선을 다시 하늘로 향했다. "하아―." 결국 미야시타를 똑바로 보지도 못했다. 솔직하게 웃어 보이려고 했는 데 세상에는 딱 부러지게 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다. 다른 사람에게 웃어 보이는 건 아무 것 도 아닌 간단한 일 같은데도 어쩌면 아주 힘들고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후우― 웃는 것도…어렵네…." "? 뭐야, 갑자기." "아무 것도 아니야. 대단한 일도 아니니까…." 나는 머리를 흔들었다. 나기는 조금 괴이쩍은 눈초리로 날 보더니, 이윽고 하늘로 눈을 돌려 엉터리로 휘파 람을 불기 시작했다. 아는 곡이기에 나도 작게 따라 불렀다. "「생명은 짧으니, 사랑하라 소녀여. 검은머리 빛이 바래기 전에 가슴의 불길이 사라지기 전에 오늘은 다시 오지 않는 것을,…」" 나는 가을 하늘이 눈부셔서 눈물이 배어 나왔다. 이제 곡 겨울이구나 하고 멍하니 생각하면서. "Boogipop and Others" closed あとがき ― 부기팝이 있는 학교 지금이야 그다지 꾸지 않게 되었지만, 20대 전반쯤의 나는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꿈을 곧잘 꾸었다. 다니고 있는 꿈이다. 다니고 있던 꿈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으로 스무살 넘어서 교복을 입고 (그것도 옛날 검정 교복) 학교에 다니고 있는 것이다. 거기다 난 꿈속에서 내가 몇 년 전에 졸업한 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다니 고 있다. 이 '그냥'이라는 게 당연히 꿈이니 그러려니 하고 알고 있는 거지만, 반 친구들도 죄다 누구하나 내가 이미 학교에 있어서 안 될 사람이란 걸 알아채지 못하 고, 선생들도 그렇기에 나 혼자 '원래는 여기 있으면 안 되는 거긴 하지만―' 하면 서 교실 구석자리에 앉아있는 것이다. 꿈속에서. 꿈속의 학교는 실제로 내가 다니던 가나가와 현립 노바고등학교가 아니다. 본 적도 없는 학교였다. (우리 학교는 교복이 옛날 검정 교복이 아닌 블레이저 타입이었다) 그런데도 난 그 학교에 대해 빠삭한 것이다. 즉 약간 이른 얘기지만, 본작 「부기 팝은 웃지 않는다」의 무대인 신요 학원이라는 곳은 이른바 '여기'로 꿈속의 풍경을 그래도 옮겨 놓은 것으로 이 소설은 이 점에서 판타지인 것이다. 뒷 얘기는 다르지 만. 나는 10대 소년을 사는 것에 실패한 인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스스로 '젊 다'라던가 '미래가 있다'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실은 지금도 그렇지 만) 스스로 나서서 학급 일에 참여하려 한 적이 전혀 없었다. '왜 내가 여기에 온 거지?'나 마냥 생각하고 있어서 졸업한 후에도 '왜 난 그렇게 <왜 내가 여기에 온 거지?>나 생각하면서 학교엘 다닌 걸까?'를 생각했다. 나도 참 잘 이해하지 못하는 놈이었던 게다. 그래서 아직도 내겐 학교에 간다는 게 잘 이해가 안 간다. 이 소설을 쓴 게 내가 28살 때 일로 고등학교 졸업한 지 10년이나 지난 시점이다. 허나 그 대답을 찾아보 려 해도 난 이미 학교에 없기에 앞으로도 계속 그대로 찾을 수 없는 상태이리라. 이 건 이제 '되돌이킬 수 없는 일'이기에, 그에 또 다른 걸로 몇 가지 있긴 하지만, 이 '학교에 뭐하러 갔던가' 하는 건 꽤나 큰 트라우마가 되었다. 고백조차 못 하고 끝 내버린 첫사랑 같이. 후우∼, 고등학교 때의 나란 놈은 워낙에 지저분해서 사랑도 제대로 못한 걸 게다. 바보이기도 하고. 그래서 '그나마 말발이 나아진 지금이라면 더 멋진 고등학생이 될 수 있었을 텐데…'라고 생각해선지 꿈으로까지 꾸는 걸 것 이다, 아마도. 결국 학교는 '타인과 함께 있는 곳'이다. 그것뿐이라고 생각한다. 한 사람 한 사람 은 서로의 모든 것을 다 알지 못하고 끝나버리고 말지만, 그야말로 여러 가지 놈들 이 여러 가지 것들을 생각하고 또 여러 가지 일들에 부딪치면서 그래도 역시 학교엘 다니고 있다. 허나 아쉬운 것은 학교란 게 그렇게 '여러 가지 놈들이 그대로 있게 내버려두지 않는' 곳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렇지 않나? 지금 다니고 있는 여러분) 틀림없이 이건 아주 안타까운 일이긴 하나 세상사라는 게 다 그런 것으로 학교라는 데는 세상 속에서 그리 특별한 곳이 아니라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꿈 속에서 '아. 싫은 녀석들과도 더 친하게 지냈으면 좋았을 걸.'하고 교실 구석 자리 에서 계속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어라, 이건 あとがき가 아니라 그냥 '고백' 아냐?) (뭐 어때) BGM 'HEARTBREAKER' (live ver.) by Grand Funk Railroad ------------------------------------------------------------------------------ 이 게시물은 上遠野浩平의 'ブギ-ポップは笑わない'을 번역한 것으로, 다른 곳으로 옮기실 경우 제게 메일만 보내주시기 바라며, 상업적인 용도로는 쓰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상업적인 용도가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이 소설은 동명의 애니메이션과 영화의 원작소설입니다. 문고본으론 좀 긴 관계로 각 화를 둘로 나누어 올리겠습니다. 드디어 '부기팝은 웃지 않는다'의 번역이 끝났습니다. 지금까지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 소설을 손에 처음 든 게 작년 7월 무더운 날이었습니다. 좋은 건 아껴 먹는다고 (;) 야금야금 읽었지만 그래도 역시 끝은 존재했고, 이 소설에 그리고 키리마 나기 와 부기팝에 반해버려 번역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반년이 넘은 지금에 와서야 겨우 번역을 끝내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쭈욱 읽어주신 분들과 say로 독촉 날려 주신 분들, 그리고 통신과 web의 친구들, 이 긴 시간동안 아주 다행스럽게 데이터가 날아가지 않은 일(^^;) 등에 감사를 드립니다. 좋은 추억이 되었고 아마 계속 성원을 보내주신다면 'VS 이미지네이터'와 '판도라' 까지 번역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 이만. 오늘도 지구를 향해 돌진하는 네메시스. Weather Break : http://www.geocities.com/nemesis-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