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 쓰기-번역란 (go ANC)』 665번 제 목:[번역] 부기팝 VS 이미지네이터 프롤로그 올린이:네메시스(김미진 ) 01/03/22 17:32 읽음:741 관련자료 없음 ----------------------------------------------------------------------------- 넌 자신의 마음속에 뭔가 모자르다고 생각해 본 적 없어? 다른 사람들에게는 있는데 자기에겐 그게 없다고 괴로워했던 적은 없니? 결여되어 있는 것을 다른 누군가가 채워주었으면 하고 바라본 적은 없었니? 그런 일이라면, 이제 걱정할 필요 없어. 곧 '그 때'가 와. 새로운 가능성이 펼쳐지 고 모든 괴로움이 끝날 때가 오는 거야. 나의 적 <부기팝>이 훼방만 놓지 않는다면 ―. 나? 그래, 적은 나를 <이미지네이터>라고 부르지…. 제 4회 전격게임소설대상 <대상>을 수상한 가토노 코헤이의 스케일 업한 신작. 이미지네이터의 손에서 그대는 도망칠 수 있을까…? 뭔가 내가 해 주었으면 하는 건 없니? 말하는 대로 다 해줄 게. -타니구치 마사미 싫어하거나 좋아하는 건 없어… 싫어할 자격이 없으니까. -오리하타 아야 이 세상에는 정해진 일이란 어디에도 없는 걸. -미나호시 스이코 내게 쓸모가 없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처리한다. - 스푸키E 왜 운 걸까, 나는…. -아노 신지로 Boogipop Returns VS Imaginater part 1 SIGN 가능성 혹은 상상력이라 불리는 것의 99%까지는 거짓이고, 진짜는 남은 1%에 지나지 않는다. 문제는 그것이 동시에 사악(邪惡)이라고도 불리는 점이다. 키리마 세이이치 (VS 이미지네이터) 그것은, 봄이라고는 하지만 무섭게 춥고, 눈까지 내리고 있는 3월 초입의 일이었습 니다. 내가 다니는 현립고등학교 신요학원의 옥상에서 한 소녀가 뛰어내렸습니다. 그 소녀의 이름은 미즈호시 스이코. 아직 17살이었습니다. "코야마, 넌 어떤 게 좋아?" 그녀가 아직 살아있었을 무렵 나에게 그런 식으로 말을 걸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나는 그 때 당시 유행하고 있던 팝 가수의 이름을 아무 생각 없이 말했습니다. "헤에, 그런 게 좋아?" "응, 왠지 멋있잖아." 나는 그냥 가볍게 그렇게 대답한 거지만, 스이코는 "흐음…." 하고 가볍게 숨을 내 쉬고 저녁 노을이 지는 하늘을 향해 휘파람을 불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학교는 산 속에 있기에 학생들은 대부분 버스로 다녔습니다. 그래서 그 때 통 학로로 하교하고 있던 사람은 나와 스이코 뿐이었습니다. 휘파람으로 불던 곡은, 아까 내가 좋다고 말했던 가수의 대표곡이었습니다. 휘파람 을 무척 잘 불었기에 굉장히 깨끗한 음이었습니다. 그 곡보다도 더욱 더 멋져서, 그녀가 휘파람을 그만 불었을 때 나는 무심코 박수를 쳤습니다. "…대단해! 스이코, 엄청 잘 한다." "아니야, 아름답게 들렸다면 그건 네가 '이 음이 좋다"는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게 들린 거야." 그녀는 이렇게 연극 조로 들리는 말을 가끔 거침없이 말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그 런 어투가 잘 어울리는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연습한 거 맞지? 악기 다루는 거라도 있어?" "아니, 아무거나 듣는 편인 걸." "그럼 음감인가? 그런 게 좋은 걸지도. ― 그럼, 보통 어떤 걸 듣는데?" "별로, 다른 사람들이 듣지 않는 게 많을 지도 모르겠어." "뭔데?" "그래, 예를 들자면―." 하고 또 한 번 숨을 들이쉬고는 스이코는 다시금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는 휘파람뿐만이 아니라 허밍이 주체였습니다. 그녀는 마치 어떤 음이라도 재현할 수 있는 마법의 악기 같았습니다. "...............!" 나는 숨을 쉬는 것을 잊을 정도였습니다. 그것은, 방금 전의 노래하고는 비교가 되지 않을, 가슴이 고동치며 마음에 울리는 그리고 왠지 무척이나 안타까운 듯한 ― 그러면서도 상당히 리드미컬하고 든든한 이상한 곡이었습니다. 노래가 끝났어도 나는 박수도 칠 수 없었습니다. 가슴 벅차서 눈물이 배일 정도였 으니까요. "―어땠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네?" "아니― 아니야! 왠지, 뭐랄까 ― 창피해. 아까의 곡은 음악이라고 하기엔 가짜 같 아서…." "네가 좋아하는 노래 아니었니?" "…아니야. 아마 진심이 아니었을 거야. 그 노래를 듣고 나니 정말 음악이 좋다는 게 어떤 건지 처음으로 알게 된 것 같아. 맞아, 유행이라던가 그런 거랑 상관없이!" 나는 흥분해서 큰 소리를 질러 버렸습니다. "그래― 다행이야." 그렇게 말하곤 웃음 짓는 스이코는 그 노래와 같이 ―아니, 그 이상으로 아름다워서 마치 저녁놀의 붉은 빛이 비추어 실루엣이 여신처럼 보였습니다. "무슨 곡이야? 가르쳐 줘!" 내가 물으니 그녀는 쿡쿡 웃었습니다. "웃지 않을 꺼지?" "엣, 왜?" "곡의 제목은 '살로메'. 발레 음악이야." "―그 게 어딘가 이상한 건데?" "작곡이 이후쿠베 아키라[伊福部昭]거든." "?" "그 사람은 괴수 영화의 곡으로 유명하잖아―." 그렇게 말하며 스이코는 입에다 가볍게 쥔 주먹을 대고는 어깨를 위아래로 들썩거리 며 웃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여자아이다워서 나는 두근거렸습니다. 나는 애초부터 그런 식으로 자연스럽게 웃지는 못하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니, 어느 누구도 그녀처럼 마냥 근사하고 순수하게 웃을 수는 없을 테니까요. 하지만 이제 그녀는 없습니다. 나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왜 그녀가 죽지 않으면 안되었던 걸 까요? 그녀는 유 서도 아무 것도 남기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녀가 괴로워하다 죽었는지, 아니 면 그녀 나름의 어떤 의사표시를 하기 위해 죽었는지 우리는 전혀 알 수 없었습니다 . 하지만 난 알고 싶었습니다. 그녀와 나는 정말 친하다고 하기엔 어려운 사이였습니다. 가끔씩 그녀와 둘이 있을 기회가 생기면 이야기하곤 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틀림없이 내 짧은 인생에서 '이건 진짜다'라고 생각하게된 사람인 것 입니다. 그 외의 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모두, 다른 것을 흉내내서 억지로 그 게 자신의 것이라 생각하고 있는 가짜들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그녀가 뛰어내렸다면 거기엔 틀림없이 무엇인가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도 그녀를 따르려 합니다. 그녀의 뒤를 쫓아서 동반 자살하려는 거냐고요 - 그럴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내가 그녀를 좋아했던 건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결국 나는 아무 것도 모르 는 채 끝나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코미야 마리코는 학교 옥상에서 홀로 서서, 마음속으로 쓴 이 유서를 실제의 문서 로 남기지 않기로 했다. 날은 어두웠다. 해가 이미 저물어 세상에서 빛이 점점 사라져 간다. "............스이코." 그녀는 옥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 밑에는 아직 미나호시 스이코가 바닥에 찍힌 흔적이 흰 선으로 남겨져 있었다. 거의 어둠으로 화한 지상에서 그 선만이 기묘하게 빛을 발하며 떠올라 보였다. 꿀꺽 침을 삼켰다. 언젠가 미나호시 스이코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코미야, 이 세상에는 정해진 일이란 어디에도 없는 걸. 모든 것은 불확정이고 어떤 것이든 '부자연'스러운 건 없어. …새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일도 있을 테고, 4월에 눈이 내리는 일도 있는 거야.." 무슨 의미였을까? 이 철책을 넘으면 알 수 있을 지도 몰라…! 흰 선이 움직이며 그녀에게 손짓했다. 그 환각은 환상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자연스 러워서 마리코에게는 아주 당연한 일처럼 보였다. 맞아, 이제 내 인생은 그곳으로 가는 일 이외에 다른 가능성은 없다 ― 그러한 충동 이 끓어올랐다. 부들부들 떨고 있지만 그것은 공포에서 온 것이 아니라 흥분으로 몸 이 떨려오는 것이었다. "스이코.....!" 코미야 마리코는 마음을 정하고 손을 철책에 걸었다. 그런데 누가 말을 걸어왔다. "―자네는 미나호시 스이코의 뒤를 쫓을 건가? 그렇다면, 그건 무리다. 그/걸/론 불 가능해." 소년 같기도 혹은 소녀 같기도 한, 어느 쪽도 아닌 듯한 기묘한 목소리였다. "―?!" 마리코는 놀라서 뒤돌아보았다. 어둠에 삼켜진 옥상 한 귀퉁이에 어느새 /그/가 앉아있었다. 통 같은 검은 모자를 푹 눌러쓰고, 못이 잔뜩 박힌 망토를 입고 있었다. 하얀 얼굴 에 검은 루즈를 칠하고 있었다. "자네가 거기서 뛰어내려봤자 그녀가 있는 곳으로 가지 못해." 검은 모자는 조용히 말했다. "―너, 넌…?" 마리코는 말을 잃었다. 검은 모자가 누군지 몰라서가 아니다. /그/에 대해 너무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다니는 학교에서, 여자아이들 사이에서만은 그에 대해 잘 알려져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진짜 있었단 말이야…? "날 알고 있는 것 같군. 그럼 이야기는 빠르지." 검은 모자는 오른 눈을 가늘게 뜨고 오른 쪽 입 끝을 끌어올리는 좌우 비대칭한 기 묘한 표정을 지었다. "무, 무슨 말이야? 왜 스이코가 있는 곳에 못 간다는 거지?" "간단해. 자네는 자신의 의지로 목숨을 끊으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미나호시 스이 코는 그렇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검은 모자는 쌀쌀맞게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지 않았다'니… 무슨 뜻이야?" 마리코는 발 아래가 무너져버리는 듯한 불안을 느꼈다. "자네는 내 이름을 알고 있을 테니, 그럼 내 '역할'도 알고 있을 테지." 검은 모자의 모습은 어둠에 물들어 스러질 듯이 보였다. 그것은 마치 공간에 녹아드 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서, 설마 ― 그럼." "그렇다. 나는 사신(死神)―미나호시 스이코는 자살한 게 아니고, 내가 죽인 거다." "어, 어째서?!" "그녀가 세계의 적이기 때문에." 딱 잘라 말했다. "어떻게 하겠나? 그래도 죽을 건가? 미안하지만, 난 자네를 죽일 생각은 없어. 아쉽 게도 자네에게 그 정도 가치는 없네." "그, 그래도…그렇다고―" 마리코는 혼란스러웠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영 이해할 수 없었다. 세계의 적이라고? 스이코가? 그 게 무슨 말이야? 무슨 뜻이지? "―아니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 미나호시 스이코는 아직 '저 세상'인가 하는 곳조차 가지도 않았다고 말이지. 그녀는 나와 달리 '분열'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자 동적'이었다는 면에서는 다를 바 없어. 그렇다고 해도 지금 어디에 있는지는―나도 잘 모르겠군." 검은 모자의 말은 마리코에게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뿐이었다. 저 세상에 가지 않았다―? 마리코는 반사적으로 철책 저 편의 땅에 눈을 돌렸다. 이제 어둠에 파묻혀 흰 선마 저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 말도 안 되는… 마리코는 확실히 피가 번진 하얀 천에 덮여서 밖으로 실려 가 는 그녀를, 예전에 그녀였던 /것/을 보았다. 그건 그럼 무엇이었던 걸까. "무슨 말이야?! 부기―." 뒤돌아 본 마리코였지만 이미 검은 모자의 모습은 그곳에 없었다. "엣.......?" 당황해서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이미 어둠이 짙게 깔려있었기 때문에 검은 모습이 어 디에 있었던 지조차 알 수 없었다. 아니, 그렇다면…혹시 처음부터 실체가 없었던…. "..........." 이제야 비로소 마리코의 마음에 공포가 피어 올라왔다. 정신이 들어 다시 밑으로 시선을 돌린다. 그러나 방금 전만 해도 쉽게 넘을 수 있을 것 같던 철책이 지금은 수 백 미터의 높 이로 변해버린 것만 같았다. "흐흑…." "그 건 무리다." "그녀가 있는 곳으로 가지 못해." "'저 세상에 가지도조차…." '' 다리가 덜덜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마리코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계속해서 눈물이 흐르며 멈추지 않았다. 그것은 미나호시 스이코가 죽고 나서 그녀가 처음으로 흘린 눈물이었다. 울 정도라면 죽는 게 나았을 텐데, 마리코는 이제 울고 있었다. "미안해, 미안해미안해미안해미안해…." 경을 읊는 양 마리코는 계속 드문드문 웅얼거리고 있었다. 목소리가 쉬고 밤에 스러 져 사라져갈 수밖에 없었다. "............" 그 모습을 어느새 밑으로 내려온 검은 모자가 밑에서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 발 밑 에는 사람 모습을 한 흰 선이 그려져 있었다. 검은 모자는 무릎을 꿇고 선을 만지작거렸다. ".........하지만, 이제 이 학교에는 없어." 중얼거리듯 말하고 검은 모자는 일어섰다. "아직도 계속 하고 있는 건가, '이미지네이터'…." 검은 망토가 밤바람에 휘감겨 올라가며 신나게 춤을 추었다. ------------------------------------------------------------------------------ 이 게시물은 上遠野浩平의 'ブギ-ポップ·リタ-ンズ VSイマジネ-タ-Part1'을 번역한 것으로, 다른 곳으로 옮기실 경우 제게 메일만 보내주시기 바라며, 상업적인 용도로는 쓰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이 소설은 'ブギ-ポップは笑わない' 외 부기팝 시리즈 두번째 권으로 Part1과 Part2 두 권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각 권이 양이 많은 데다 올리는 템포를 빠르게 하기 위해서 각 화의 챕터별로 올리겠습니다. ^^; 기다려주신 분들 고맙습니다. 그럼 이만. 오늘도 지구를 향해 돌진하는 네메시스. 『창작 - 쓰기-번역란 (go ANC)』 676번 제 목:[번역] 부기팝 VS이미지네이터 Part1 1-1 올린이:네메시스(김미진 ) 01/04/15 16:47 읽음:564 관련자료 없음 ----------------------------------------------------------------------------- VS Imaginator Part 1 SIGN including "Sometimes it snows in April" and "If I was Your Girlfriend" Ⅰ 만약 그대가 선량하려 한다면 미래에는 관여하지 말지어다. 그것은 대부분의 경우 비뚤어진 방향으로 밖에 나아가지 않으니. 키리마 세이이치 (VS 이미지네이터) "가끔 밤중에 /문/득/ 눈이 떠지는 일이 있어요." 그렇게 말하는 소녀, 나카다이 사와코의 볼에는 뼈가 희미하게 떠올라있었다. 안색 도 창백하다. 아스카이 진에게 그녀는 입고 있는 제 치수보다 큰 점퍼 속에서, 바 삭바삭 말라비틀어진 꽃다발처럼 보였다. "흐음." "흔히 있는 시시한 괴담 같은 얘기지만, 무언가가 가슴 위에 올라타서 날 훔쳐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요. 하지만 눈을 떠보면…." "아무 것도 없다, 는 건가." "네, 하지만, 그냥 꿈일 거라는 걸 알고 있지만 계속해서서 몇 번이고 되풀이되는 거에요. 그래서―." 사와코는 어깨를 부들부들 떨었다. 머리엔 2개월 전에 했던 야성적인 스타일이 흔적 이나마 남아 있을 뿐으로,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모양이다. 무리도 아니다. 입시 까지 이제 겨우 4개월밖에 남지 않았으니까. 그나마 직전이라면 스트레이트 퍼머를 한다던가 해서 면접채점자에게 잘 보이려고 신경 쓰기 시작하겠지만 지금은 아직 그 럴 여유는 없다. "그 '그림자' 얘기인데." 아스카이는 그녀의 말을 중간에서 가로막듯이 말을 꺼냈다. "네게 무슨 말을 걸어오진 않나?" 사와코는 놀란 표정으로 아스카이를 올려다보았다. "네― 그런데요! 어떻게 아시는 거죠?" 그녀의 의문에 대답하지 않고 아스카이는 거듭 질문을 던졌다. "무슨 말을 하고 있었는지 기억나나?" "…아뇨, 그게." "아무리 해도 기억 나지 않는다, 고." "네." 그녀는 끄덕였다. 좁은 실내에는 두 사람뿐이었다. 그냥도 비좁은 공간에 미어터질 듯이 사람을 밀어 넣게 만들어진 입시학원 건물 귀퉁이에 있는 진로상담실은 외양간 우리 마냥 협소했 다. 하나 밖에 없는 데다 세로로 째져서 가로 폭이 거의 없는 창에서는 한 줄기 빛 이 흘러 들어왔다. 그 빛은 붉었다. 이제 해질녘인 것이다. "…흐음." 아스카이는 입을 다물고 소녀의 가슴께에 눈길을 보냈다. (…뿌리가 없군.) 그는 마음속으로 혼잣말을 했다. (잎도 적고 …꽃봉오리만 크다. 그러면서도 줄기는 지금이라도 꺾어질 듯 하니.) 아스카이가 말이 없기에 사와코는 불안한 듯, 무릎 위에서 손장난을 하기 시작했다. "―저, 저어, 아스카이 선생님." "..........." 말을 걸어봐도 그는 대답이 없었다. 그는 턱이 뾰족하고 갸름한 편으로 차분한 이미지의 예쁘장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거기다 나이도 아직 스무 살 정도로 사와코와 그리 다르지 않다. 국립대학에 다니면 서 아르바이트로 입시학원의 미술강사로 일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별로 하고 싶어하지 않는 진로상담담당도. ".........." 그녀는 주저하면서 아스카이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어느 샌가 그는 그녀에게서 시 선을 떼고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정말 죄송해요. 이상한 걸 상담해서―." 사와코가 어쩔 줄 몰라하며 그렇게 중얼거렸을 때, 아스카이는 조용히 말을 꺼냈다. "학원강사를 하고 있는 사람이 이런 얘길 하긴 뭣하지만 …너는 수험이란 걸 너무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 "네?" "일류대학에 들어간다고 해서 괴로움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행복한 장래가 보장되 는 것도 아니야. 미친 듯이 노력해서 들어간 대학인데 아무 것도 할 게 없어서 망연 자실해 버리는 사람도 많아. 공부만 죽어라 해와서 달리 또 뭘하면 되는 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리는 거지. 그래서 별 수 없이 1급 공무원 시험 같은 것을 목표로 삼아 서, 자신의 장래를 의미도 없이 좁혀버리는 일도 생기고. 하물며 눈앞에 사랑하야 할 사람이 나타나도 그 가치에 깨닫지 못하고 알 지 못하는 사이에 소중한 걸 잃어 버리기도 하지." 그는 열렬히 시를 읊조리듯 말했다. "대학에 다니고 있어도 마음은 수험생이다. 그래서 단 번에 붙는 사람은 희박하고 대부분은 떨어지지. 그리고 또 재수를 해. 귀중한 청춘을 재수만 하다가 보내버리는 상황이 되어서 정신이 삐뚤어지지―." 그녀는 입을 떡 벌리고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알겠나." 아스카이는 소녀 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아, 아뇨. 그건…." "넌 이미 /그/렇/다/는/걸/ 알고 있어." 그래도 /그/렇/다/는/걸/ 생각하지 않으려 고 필사적으로 노력하지. 하지만 ―공부하는 것과 현실에서 눈을 돌리는 건 다른 일 이다. 무리하지 말라고는 지금의 수험체제에서는 얘기하긴 힘들지. 무리를 해서 공 부하지 않으면 합격할 수 없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성과에 대단한 기대를 걸어서는 안돼. 꽤나 뻔한 이야기가 되고 말았지만 대학에 들어가는 것만이 인생이 아니야. 그 그림자 꿈은 네가 무의식적으로 덮어두었던 '대학에 가는 것'에 대한 '잠깐만'이라는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보내는 사인이야. 조금 냉정해 질 필요가 있다 고 생각해, 나는." "―네." 소녀는 신묘(神妙)하게 머리를 끄덕였다. "하지만, 역시…." "응, 그러니까 노력은 하지 않으면 안돼. 대학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 자체는 나쁜 것도 무리도 아무 것도 아니지. 단 네가 그 생각에 집착하고 있는 게 좋지 않다는 얘기다. 거기다 이대로 라면 부담이 너무 커서 입시에 대응하기 힘들게 돼."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사와코는 감동한 듯 했다. (…조금 꽃봉오리가 부풀었군.) 또 아스카이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조금 더 잎이 붙으면 더 좋겠지만 …그리 쉽게 괴로움이 사라지지는 않는 건가) 그는 시선을 또 소녀의 가슴께로 떨어뜨렸다. /거/기/에/있/는/무/언/가/를 보고 있는 것이다. 소녀 자신에게도 다른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 것을. 그 뒤로 두 사람은 잠시 더 구체적으로 사와코가 막힌 과목에 대한 대처 법에 대해 이야기했다. "―고맙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소녀가 자리에서 일어난 것은 20분 뒤의 일이었다. "너는 열심히 노력하고 있어. 그러니까 이제는 침착하게 전진하는 일만 생각하면 돼 ." "네! …그런데, 선생님. 아주 후련해졌어요. 선생님은 뭔가 하고 계시는 게 있나요? 세라피스트나 카운셀러 같은 거요." "아니, 별로." "잘 하실 것 같아요, 엄청요! 선생님 미남에다가 머리도 좋고.." 아스카이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녀는 '앗!' 하고, "죄, 죄송해요. 실례되는 말을 해서." "생각해 보지. 그림쟁이로야 먹고살기 힘들다는 얘기도 있으니." 아스카이는 웃으며 말했다. 그럼 이만, 하고 떠나던 그녀는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뒤돌아보았다. "아, 맞다. 선생님. '때로는 4월에도 눈이 내린다'는 게 무슨 말이죠?" "뭐?" 아스카이는 움찔 하고 놀랐다. "뭐라고?" "아뇨, 꿈 속에서 그 한 마디만 기억이 나요. ―아, 뭐 틀림없이 아무 것도 아닐 거 에요. 실례했습니다." 상담하러 왔을 때와는 딴판인 밝은 목소리를 남기고 사와코는 갔다. "…4월에도, 눈이 내려…?" 어째서 인지 그 말을 듣고 아스카이는 마음 속에서 무언가가 술렁대는 느낌을 받았 다. * 아스카이는 '사람의 마음에 결락(缺落)되어 있는 것이 보이는' 자신의 기묘한 능력 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언제나 생각나는 것이 생떽쥐베리의 '어린 왕자'였다. 아마 3∼4살 때 읽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어린왕자'에 '이 아이가 아름다운 것은 마음 속에 장미를 한 송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라던가 하는 한 구절이 적혀 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것이 그의 마음속에 이미지로서 각인 되어 들러붙어 버린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그의 눈에는 사람은 모두 가슴에 하나의 식물을 키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상 [像(비젼)]의 종류는 가지가지이고 크기고 각양각색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종류가 아니다 .그 상에는 반드시 무언가가 결락되어 있다. 예를 들자면, 꽃이 없다, 잎사 귀가 없다, 줄기가 없다, 그리고 지금의 소녀처럼 뿌리가 없다. 어떤 인간이든 간에 완전한 식물을 자신의 가슴속에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없다. 반드시 무언가가 빠져있 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의 '상담'이라는 것은 그 상대에게 부족한 부분을 보완할 수 있도록 말 해 주는 것뿐이다. '뿌리'가 없다면 조금 더 자신을 가져, 하는 식으로 아주 단순한 것을 말이다. 하지마 모두 그것으로 만족해서 생기를 되찾는다. 학원에서 일을 끝내고 아파트로 돌아오는 길에 떠들썩한 번화가를 지나가고 있을 때 면 모두의 가슴에 무언가가 부족한 것이 싫어도 눈에 보인다. 가끔 짜증날 때가 있다. 인간의 노력이라는 것은 자신에게 '부족한' 것을 손에 넣으려고 하는 데 있다. 그 는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정말 모자라는 것은 처음부터 마음 속에는 없기에 절대 손에 넣을 수 없다. 그는 가끔씩 자신의 가슴을 보기도 했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꽃은 보이 지 않는다. 아마도 그 자신에게도 부족한 것이 있어 그것이 그를 가슴 아프게 하고 있을 테지만 그것을 그가 손에 넣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말했쟈나아…." "…그 게 뭔데에…." "…캬하하하, 바보들 아냐…." 남녀노소의 술주정뱅이들이 킬킬 웃으며 그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뿌리가 없다던가 꽃이 없다던가 하는 일 따위 생각해 본 적도 없 겠지. (모르는 쪽이 행복할 수도 모르지….) 그는 어릴 때부터 계속 고독감을 느끼고 살아왔다. 이후로도 그렇겠지만. "…어, 봐, 눈이야." "아, 정말! 와아 예뻐라!" 모두 탄성을 지르고 있기에 아스카이도 푹 숙이고 있던 얼굴을 들었다. 밤하늘에서 하얀 게 떨어지고 있었다. (아, 좋구나 눈이란….) 모든 것을 새하얗게 덮어버리는 눈은 그가 좋아하는 것 중 하나였다. 눈 밑에서는 꽃이 필리 없기 때문이지도 모른다. 쓸데없는 일을 생각하지 않아도 되도록 해 줄 듯한 …그런 기분이 든다. 그러나 기분 좋게 하늘을 올려다 본 그의 표정은 도중에 딱딱하게 굳어졌다. 근처 빌딩의 5층쯤 되는 창 하나에 소녀가 한 명 서 있었다. 발을 창틀에 대고 몸을 밖에로 완전히 내민 상태에서 지금 당장이라도 뛰어내릴 것 같은 상태였다.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던 그녀와,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던 아스카이의 눈이 마주쳤다. 소녀는 희미하게 눈만 미소지었다. 그리고, "위험…!" 하고 아스카이가 소리쳤을 때 그녀는 이미 몸을 허공으로 던졌다 아스카이는 반사적으로 그 쪽으로 달렸다. 그러나 발이 걸려 그는 꼴사납게 풀썩 넘어지고 말았다. 당황해서 얼른 일어서려고 위를 바라본 그는 거기서 있을 법하지 않은 일을 보았다. ≪후후후.≫ 소녀가 웃음을 띄운 채, 아직 공중에 떠 있었다. 그 웃는 얼굴에는 독특한 표정이 실려 있었다. 입술은 한 일자로 딱 다물어져 있고, 눈만이 신비스럽고 달콤하게 웃고 있었다. 떨어지던 상태에서 우뚝 공중에 고정된 것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에?" 그가 어리둥절해 있으려니. "마, 미쳤어? 가는 데 방해되잖아, 비켜, 형씨!" 하고 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술 주정뱅이들이 그에게 진로방해를 받아서 버럭 화를 내고 있었다. "이, 이봐, 저게 안―" "이봐, 취할려면 곱게 취해." 다른 사람들도 그가 가리키는 쪽을 보고는 있지만 소녀의 모습은 그 외의 어느 누구 에게도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어떻게 된 거야…?) 그가 일어서서 멍한 표정으로 소녀를 올려다보았다. 잘 보니 소녀는 아주 더딘 속도로 낙하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흐트러진 머리카락이 희미하게 휘날리고 있었다. ≪후후훗.≫ 웃는 두 눈은 마치 하늘에 뚫린 구멍처럼 빛을 빨아들였다.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인다는 것은 과히 좋은 일은 아니네요. 아스카 이 선생님.≫ 소녀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뭐라고…?" ≪당신의 기분을 너무나 잘 알고 있어요…나도 옛날에는 그랬으니까.≫ 아스카이는 휘청거리며 낙하중인 소녀 밑으로 가까이 갔다. "너, 너도, 라고―." ≪당신의 초지각과 마찬가지로 나에게는 사람의 죽음이 보이죠.≫ 소녀의 표정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딱 다물어진 입도 움직이지 않는다. 그녀의 주 변만이 시간이 극단적으로 늦춰져 있는 것 처럼. "'죽음'이라고…?" ≪정확하게 말하자면 생명이라 불리우는 것이 다 타서 사그러지기 직전에 생기는 에 네르기체, 라고 해야 겠죠―.≫ 그리고 또 후후 하고 웃는 기척이 났다. ≪―나는 사람이 죽음으로서 만들어지는 가능성, 그런 식으로 세계를 뒤바꾸는 것이 나의 사명. 나는 지금 이 세계에 있어서는 적. 봄이 되어도 세상에 차가움을 가져 다주는, 4월의 눈.≫ "…에?" ≪제 일에 협력해 주시지 않겠어요? 아스카이 선생님?≫ "―무슨 말이야? 도대체 넌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지? 넌 누구야?" 그는 외쳤다. 주위 사람들이 아무 것도 없는 허공을 향해 소리치고 있는 그를 봤지만, 술취한 거 겠거니 하고 무시하고 지나갔다. 그 상공에서 소녀는 웃으며 말했다. ≪적은 나를 <이미지네이터>라고 부르지.≫ 그리고 사라졌다. "기, 기다려!" 그는 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러나 그 손가락은 아무 것도 없는 허공을 쥘 뿐이었다. "..........." 그는 허탈해서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드디어 난 미쳤구나 하고 생각했다. 환각이다. 환각일 뿐이야―하고, 발 밑에 시선을 떨어뜨린 그는 /앗/하고 소리지를 뻔했다. 눈이 내리고 있던 대지가 그의 주위만이 잘려나간 양, 쌓이지 않고 도로의 지면을 노출시키고 있었다. 그 모양은 마치 그림자 그림처럼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던 소녀의 모습이 찍혀있었 다. …아스카이가 아파트에 돌아오니, 기다렸다는 듯이 옆 방 창에서 여자아이 하나가 얼굴을 내밀었다. "겨우 돌아왔네! 어서 오세요." 밝은 목소리와 표정의 그녀는 아파트 주인 딸로 키누가와 코토에였다. 그녀는 그의 사촌동생이기도 했다. 아파트의 빈방을 부모에게 졸라서 공부방으로 쓰고 있는 데, 자택은 걸어서 1분도 안 걸리는 곳이었다. ""…무, 무슨 일이야?" 그는 아직 반쯤 넋이 나가 있던 상태였기에 코토에에게 수상한 대답을 했다. "진 오빠, 밥 아직 안 먹었지? 오늘 내가 스튜 만들었는데 나눠주려고." "으, 으응 …고마워." "그럼 이따가 방으로 가지고 갈게!" 그녀는 창에서 얼굴을 떼었다. 그녀는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아스카이의 아버지가 1년 전에 죽고 나서 그는 숙부 의 아파트에서 방을 빌려쓰고 있다. 그렇다고는 하나 신세를 지고 있지는 않다. 대학 의 학비는 장학금이었고 화구 등 잡비와 생활비 그리고 방세까지 학원에서 일해서 충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증인 없이도 방을 빌릴 수 있었던 것 하나는 고마웠지만 . 그렇지만 코토에는 웬일인지 아스카이를 이것저것 챙겨주고 싶어했다. 그는 언제나와 똑같은 코토에의 밝은 모습에 안정을 조금 되찾았다. (…/그/게/ 환각이던 뭐든 간에 이상한 /게/ 보이는 게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고…) 냉정하게 대처해야지. 지금까지 계속 그래왔으니까. 방으로 돌아와 세수를 하고 있었더니 코토에가 커다란 냄비를 가지고 왔다. "어때! 오늘 건 내 입으로 말하긴 좀 그렇지만, 자신작이라구!" 착착 움직이며 마치 자기 방인 양 그릇을 늘어놓는 바람에 쓴웃음을 짓는 아스카이 의 앞에 코토에는 따뜻한 김이 솟는 따끈한 요리를 내놓았다. "응, 맛있겠는걸. 잘 먹을 께." "진 오빠, 오늘은 왠지 피곤해 보이네." "응. 뭐…이제 슬슬 수험도 마지막이잖아. 학생들이 필사적인 게 나한테까지 옮았나 봐." "힘들겠다." "느긋하게 무슨 소리야. 내년엔 코토네짱도 마찬가지 아니야?" 코토네는 근처의 현립고등학교인 신요학원 2학년이다. "아―, 나는…어떻게 할까. 대학 가는 거 그만 둘까―." 코토에는 아스카이의 얼굴을 슬쩍 훔쳐보았다. "…아니면 진 오빠한테 배우러 학원이나 다닐까." "너 언제부터 미대지망이 된 거야? 난 뎃생이랑 미술사밖에 안 한다고." "진로상담도 하고 있다며? 상담 해 줘." "그런 건 언제라고 공짜로 해주마. 일부러 학원 다닐 필요 없어." "정말?" 코토에는 눈을 반짝거렸다. "하지만 말야, 나한테 상담하러 오는 애들은 모두 상당히 진지한 녀석들뿐이라고. 코토네짱은 어떨까나." 아스카이는 장난스럽게 윙크했다. ""앗, 너무해! 내가 진지하지 않은 것처럼 말하잖아!" 볼을 부풀리며 화를 내던 그녀는 곧 풋 하고 웃어버렸다. 두 사람은 웃었다. 그리고 코토네는 작게 한 숨을 내쉬었다. "―역시 난 그렇게 보이나봐." "아니, 그런 편이 나아. 내게 상담하러 오지 않는 게 낫다고. 정말." 아스카이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말했다. "에?" "자기 고민은 스스로 알아서 고민해야 하는 거야. 하물며 수험이라면 말이야. 나는 입시학원 강사니까 딱 잘라서 말할 수 없다고. 대학 같은 거 가지 않음 될 꺼 아냐 라는 말 못 해. 뻔히 봐도 못 갈 듯한 아이한테도 말이지…." 그는 눈을 들어 코토에의 가슴을 보았다. 거기에는 '꽃'이 없다. 부드러움과 인간미를 나타내는 '잎'은 무성하고, 줄기도 뿌리도 안정감 있는 형태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꽃'은 없다. 이 소녀는 좋은 아이다. 용모도 나쁘지 않다. 아파트와 맨션을 경영하는 양친은 부자이니, 불행할 이유는 어 디에도 없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아이는 마음속에서는 '어째서 자신에게 결정적인 화려함이라는 게 없는 걸까' 하고 느끼고 있다. 어쩌다 별 볼일 없는 사람의 별 것도 아닌 정열을 보면 당 황해서 부러워서 어쩔 줄 모르는― 고민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애초부터 '빠져있는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 할 수도 없다. "―진 오빠가 너무 진지한 거야." 코토에는 그가 무얼 보고 있는 건지 꿈에도 모르고 입 발린 칭찬을 했다. "다른 사람일을 쓸데없이 걱정한다고. 조금은 자기 편할 일 같은 거 생각해도 좋잖 아. 안 그래?" 그녀는 힘주어 끄덕였다. "…고마워. 이래서야 누가 상담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잖아." 아스카이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란 없어. 만약 그게 존재하지 않는 것일지라도 어떻게든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거야." 묘하게 딱 부러지게 말한다. "응…그럴지도." 아스카이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 "그렇다면 좋겠지만…" "다만, 그 길이 조금―잔혹하고 세상의 정의에 반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죠…." 냉소하는 것처럼 확신에 가득 찬 발언이었다. "―에?" 코토네답지 않는 말에 아스카이는 얼굴을 들었다. 그리고 /움/찔/ 했다. 가슴의 비젼이―사라져 있었다. 방금 전까지 확실히 보였는데 지금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표정 ― 입은 한 일자로 다물고 두 눈만이 요사스럽게 웃고 있는…. "너, 넌?!" 아스카이는 탁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걱정 말아요. /몸/을/잠/시/빌/리/고/있/는/것/뿐/이/니/까/." 코토네의 얼굴을 한 소녀는 말했다. "뭐, 뭐라고?!" "어차피 이 아이의 정신으로는 /내/가/들/어/가/있/으/면/버/티/기/힘/들/테/니/, 곧 나가지 않으면 안되겠군요." 차분하게 황당한 말을 했다. "아까의 환각이군―유령이냐?!" "유령이라는 말은 정확하지 않군요." 소녀는 아스카이를 따라 일어섰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현재에 나타난 미래'라고 해야 하겠죠. 아니면 '가능성 상의 가설의 실체화'라고 할까요." 아스카이의 뺨으로 손을 뻗었다. 양손으로 감싸듯이 매끈하고,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아스카이 선생님, 당신은 ― '어떻게든 하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무, 무엇을 말이지?" "사람의, 마음의 결락을," 손가락이 부드럽고 포근하게 굳어진 아스카이의 얼굴을 보듬었다. 우웃 하고 그는 웅얼거렸다. 그 접촉은 너무나 달콤해서 거역하기 힘든 감촉이었다. "당신에겐 무엇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나요? 아스카이 선생님―." "..............?!" "당신에게 부족한 것은 '사명'이에요.' 그녀는 목소리로 굳게 단언했다. "―뭐?" "당신에게 아주 조금만 '미래'를 보여드리겠어요―." 소녀는 아스카이의 얼굴을 끌어당기며 자기는 발돋움을 해서 그의 입술에 자신의 입 술을 겹쳤다. 그 순간 아스카이의 머리 속에서 /무/언/가/가/ 펼쳐졌다. 이미지의 홍수가 그에게 흘러 들어온다―. "우…우와와아아아아아악!" 그는 절규하면서 그녀를 난폭하게 떠다밀었다. 그녀는 기세가 꺾이지도 않고 조금 비틀 거렸을 뿐, 곧 그를 되쏘아보았다. "―하아, 하아―!" 아스카이는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지, 지금 건 뭐야…그 광경은?!" "당신의 '사명'이에요, 아스카이 선생님." "말…말도 안돼! 내가 /그/런/일/을 한다는 거냐!" "할지 안 할지는 당신의 자유 에요. 하지만 당신은 할/수/있/어/요/. 그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죠. 당신이 살아 온 이유는 /거/기/ 밖에 없어―." "웃기지마! 넌 뭐야, 악마인가?! 나를, 나를―." 숨이 차서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유혹? 아니요. 그럴 생각은 없어요. 할 지 안 할지 정하는 건 당신이죠―." 소녀는 후후하고 또 눈웃음을 쳤다. "하지만 아스카이 선생님. 이 것만은 기억해 두세요. 새도 하늘에서 떨어질 수 있고 , 때로는 4월에도 눈이 내릴 수 있어요." "꺼져버려!" 아스카이는 탁자 위에 있던 요리를 소녀에게 던졌다. 소녀는 피하지도 않고 그것을 그대로 받았다. 그 직후 비명 소리가 났다. "캬아악! 뭐, 뭐야?" …아스카이는 퍼뜩 정신이 들었다. 코토에가 /돌/아/와/있/었/다/. "괘, 괜찮아―?" "―? 무, 무슨 일이야? 왜 내가―." 코토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기에 상당히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방금 전 의 기억은 깨끗하게 사라진 모양이다. 어쩔 줄 몰라하며 타월로 그녀를 씻겨 주면서 아스카이는 지금이라도 경련을 일으킬 것 같은 몸을 필사적으로 억누르고 있었다. (―'이미지네이터'라고 했던가―) ---------------------------------------------------------------------------- 이 게시물은 上遠野浩平의 'ブギ-ポップ·リタ-ンズ VSイマジネ-タ- Part1 '을 번역한 것으로, 다른 곳으로 옮기실 경우 제게 메일만 보내주시기 바라며, 상업 적인 용도로는 쓰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흐느적거리며 타레모드에서 한 달여를 지내다 보니 올리는 게 늦어졌습니다. 보다가 어색한 부분이나 '앗, 여긴 틀렸어'라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으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이만. 오늘도 지구를 향해 돌진하는 네메시스. Weather Break : http://blake.prohosting.com/nemesis7/ 『창작 - 쓰기-번역란 (go ANC)』 677번 제 목:[번역] 부기팝 VS이미지네이터 Part1 1-2 올린이:네메시스(김미진 ) 01/04/19 22:41 읽음:443 관련자료 없음 ----------------------------------------------------------------------------- '부기팝 리턴즈 VS 이미지네이터' Part1 1-2 * …자신이 이상해지고 있을 지는 모르지만 그렇다고 일을 쉴 수는 없다. 아스카이는 학원에서 계속해서 여러 학생들의 상담을 받았다. "이젠 싫어요. 이제 못해 먹겠어요. 이따금 밤중에 노트에 필기하고 있을 때 손이 벌벌 떨린다구요." 그렇게 말하며 소녀는 계속해서 혼자 머리를 끄덕이고 있었다. 소녀의 비젼에는 '줄기'가 없었다. 뿌리가 있고 그 위에 바로 잎과 꽃이 붙어있었다 . "기분전환이 필요한 게 아닐까." 그런 식으로 대답하면서, 아스카이는 이런 일은 의미가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 이 아이는 자신에게 확고한 무언가가 없기에 무서워하고 있으니까. 계속 새로운 것에 접해 보지만 결국 불안은 언제까지나 계속되고, 이를테면 수험에 성공하든 안 하던 간에 변하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마음먹고 조금 쉬어보는 것도 괜찮지. 혹은 공부 스타일을 바꿔본다던가. 넌 암기 를 잘 하지 않나?" 줄기가 없으면 외우는 것을 잘 한다. 그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자란다, 성장한다 는 소질이 없으므로 차곡차곡 쌓일 뿐 썩힐 수도 없다. "네, 그렇다고 할 수 있죠." "그럼 이제부터 일주일 동안 문제를 푸는 일을 중시해서 해보는 게 좋아. 암기하는 양을 반으로 줄이고." "네? 그렇지만…." 망설이고 있지만 소녀는 확실한 목표를 얻었기에 눈이 빛나고 있었다. 자신에게 목 적의식이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부여해주면 안심하는 것이 이 타입의 특징이다. "…괜찮을까요?" "너라면 할 수 있어. 네 편차치의 성장은 괜찮은 편이니까." 라고 말하며 아스카이는 '하지만 그 게 널 구하지는 못하겠지.'라는 말을 목구멍으 로 넘겨 박살냈다. 그건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알겠습니다! 해보겠어요. 선생님, 정말 고맙습니다!" "아니야, 이제부터 노력해야 하는 건 너잖아." "아니요. 모두 선생님의 조언으로 도움을 얻었다고 말하고 있는 걸요. 정말 학원 강 사로는 아까울 정도라고." "이봐." "아스카이 선생님, 선생님은 정말로 더 대단한 일을 하실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 해요." "―글쎄." ≪당신은 할/수/있/어/요/. 그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죠.≫ "―뭐라 해도 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아요." 그 남자아이는 자포자기한 얼굴로 말했다. "흐음. 넌 맨 처음 성적은 상당히 좋은 데 그 뒤로 전혀 성장하질 않는 군." 아스카이는 소년의 자료에서 얼굴을 들고 그의 가슴께의 '비젼'을 확인한다. 잎이 없다. 인생에 촉촉한 습기가 없는 타입이다. 다른 그와 달리 꽃과 줄기 등은 나름대로 잘 되어 있으니 우수한데도 언제나 메말라있는 듯 하다.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늘 생각하고는 있는데도 말이죠." "공부하는 데 질렸지?" 아스카이는 노골적으로 아픈 데를 쿡 찔러 말했다. 하지만 소년은 쓴웃음을 띄우고 그 말에 수긍했다. "그렇겠죠, 결국은." "왜 질렸는지 알겠나?" 아스카이는 말하는 태도를 바꿨다. 탁 까놓고 얘기하는 듯한 느낌으로. "글쎄요." "시시하니까, 달리 또 이유가 있어?" "―그렇게 말해 버리면 이젠 끝 아닙니까." 하고 말하고는 있지만 남자아이는 웃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이런 말을 들으면 맥이 빠져서 축 처져버리지만 이 타입엔 그럴 걱정은 없었다. "그럼 시시하고 말고. 우리들 강사가 말하는 데로 하는 거야 재미라곤 눈꼽만치도 없잖아. 매뉴얼대로 할뿐이니까." "하하하." "수험이라 하는 건 결국에는 노하우가 전부다. 내가 어떻게 입시 학원 강사 같은 아 르바이트를 할 수 있을 것 같아? 교원면허도 아무 것도 없는 데." "그야…경험자라서가 아닐까요, 선생님은." "그래.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도 너희와 똑같은 수험생이었지. 그래서 엄청 생각했 지.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합격을 할 수 있을까 하고 말이야. 그래서 지금 그 노하 우로 이렇게 해서 벌고 있는 거야." "하하, 과연 그렇군요…." "알았지? 수험공부 한 걸 /이/렇/게/쓰/는/법/도 있어, " "대학에 들어가는 일만이 아니라는 얘기인가요?" "지금은 좋은 대학에 들어간다고 해도 그렇게 메리트가 있는 것도 아니야. 그냥 들 어가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야, 그 뿐이다. 그렇다면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 미친 듯이 파고 들 필요는 없지. 그렇다면 그럼 그걸 트레이닝이라고 딱 잘라 생각하면 돼. 네가 장래 무엇을 하고 싶은지는 모르겠다만 그 때 노하우가 필요하게 되겠지. 그 걸 얻기 위한 시뮬레이션을 지금 하면 되는 거야. 이런 기회는 좀처럼 없다고.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신경 써주고 사회적으로도 빠져드는 것을 용인해 주는 '실험' 할 수 있는 기회는." 궤변도 작작 좀 해라, 하고 아스카이는 내심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상담하러 온 그는 눈이 점점 반짝이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법도 있었군요…." "수험 자체는 그 시뮬레이션의 샘플을 채취하기 위한 장이라고 생각하면 돼." "과연…." "그러한 의미로 넌 아직 애송이다. 지금 편차치로는 2류 대학밖에 들어갈 수 없어. 이럼 아깝지 않나. 모처럼 얻은 기회를 낭비하지 않는 게 좋을 껄." 완전한 논리의 하지만 그는 깨닫지 못하고 있다. 잎이 없는 자는 자신이 세계로부터 분리되어 있다는 사실을 어슴푸레하게 느끼고 있 다. 무슨 짓을 하던 간에 다른 사람들과 같이 있어서 푸근하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 하기 때문이다. 그 만큼 방법론에는 상당히 민감하다. 잡다하게 이러저러한 일을 하 는 법이라던가 뒷구멍 일에 빠삭하다. 그렇게 해서 다른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 하 는 데 생기는 결락을 메우려고 한다. 그런 녀석들에게는 부드럽게 대하거나 칭찬은 의미가 없다. 오직 실무적인 것에만 집중해서 파고드는 편이 먹혀든다. 하지만 방법론이 충실하면 충실할수록 그를 더욱 더 고독하게 할뿐이다. 다른 사람 들은 그런 게 없어도 멀쩡히 잘 살고 있으니 그의 노력을 다른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같은 타입인 사람들도 다른 방법론으로 움직이는 동류에게는 매정하다. 그에게는 말하자면 '자기편'이 아무 데도 없는 것이다. "아니, 알았어요. 이제부터 생각해 보죠." 그는 아스카이의 친밀한 태도에 완벽하게 넘어가서 마지막에는 껄렁한 말투가 되어 있었다. "아직 시간은 있어. 정신 차려서 잘 해." 아스카이는 그에게 머리를 끄덕여 보였다. 하지만 '넌 그 노력과 수고, 그리고 추억 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것은 결코 불가능하겠지.'하는 말은 입밖에 낼 수 없었다. 그 역시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선생님은 대학 나오면 뭘하실 생각이시죠?" 남학생은 불쑥 그런 질문을 했다. "―글쎄다. 일단 화가 지망이라서." "그것 만으론 아까워요. 분명 사업이라던가 굵직한 일을 하는 게 맞을 거라고 생각 하는데요, 진짜로." 그의 눈은 진지해서, 이런 류의 타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빈정대는 말'을 하는 것 도 아니었다. "―그런가." ≪당신에게 부족한 것은 '사명'이에요.≫ "계속 되풀이해서 꾸는 꿈이 있어요." "호오, 어떤 거지?" "저어, 선생님― '4월에도 눈이 내릴 수 있다'는 말 알고 계신가요?'" "…아니. 들어본 적 없는데." "꿈에서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말을 하며 말을 걸어와요. 그 말을 들으면 왠지 몽땅 어떻게 되던 간에 상관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거에요. 짜증나는 수험공부도 , 더러운 세상도, 모두 다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은 … 느낌이 들어요." "........." "하지만 너무나 포근해서 …그게 왠지 모르게 무서워서, 잠에서 깨면 차가운 물을 뒤집어 쓴 것처럼, 오싹하고 한기가 들어요." "........." "그 꿈을 꾼 날은 산만해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어요. 이 전에 모의고사 날 아침에 꿨을 때도 문제가 머리에 하나도 안 들어와서," "........." "선생님, 제가 이상한 건가요?" "........." "선생님? 아스카이 선생님―." "―아, 아아." "왜 그러세요?" "아니, 아무 것도 아니야." ―사람들이 뜸해지면 아스카이는 그/얼/굴/을 스케치해 보았다. 아무리 해도 잘 그려지지 않아 몇 장이나 둘둘 말아서 진로지도실 구석에 던져버렸 다.그리고 나중에 허탈하게 그 종이 쪼가리들을 주워 모아 쓰레기통에 버렸다. "뭘하고 있는 거지, 나는…." 아스카이는 잘못된 스케치들을 박박 구기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 …그런 식으로 누가 대신해 줄 수도 없는 학생들의 고민에 비슷한 대답을 되풀이하 면서, 그 가운데 숨어 있는 '4월에 내리는 눈'이라는 말을 계속 들으며 초조한 나날 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 어느 날이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일을 끝내고 밤거리를 걸어가고 있으려니 도로 구석에서 무슨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우욱…아으흑, 누, 누가…" 그는 큰길에서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들어갔다. "누가…누가 좀…." 여자 목소리 같았다. 너무나 괴로운 듯이 중간 중간 끊어져 겨우 들릴락 말락한 소 리였다. "이봐, 거기 누구 있소?" 아스카이는 말을 걸어 보았으나 대답이 없었다. 더욱 더 안 쪽으로 들어가니 구석에 소녀 한 명이 괴로워서 발버둥치고 있었다. "우, 아으으으흐흑…" "이봐, 왜 그래?" 아스카이는 그녀의 곁으로 다가가 웅크린 등으로 손을 뻗었다. 손을 뻗다가, 중간에 난폭하게 뿌리쳐졌다. 그리고 갑자기 몸을 일으킨 소녀에게 떠밀려 벽으로 내동댕이쳐졌다. "―꼼짝 마!" 상황은 일변하여, 목소리로 소녀가 말했다. 그 손에는 식칼이 쥐어져있었다. 그 칼 을 아스카이에게 들이댔다. "너는―." 아스카이는 소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 얼굴은 앙상하고 해골처럼 비쩍 말라비틀 어진 끔찍한 얼굴이었다. 머리카락도 어린 여자아이라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푸석푸 석했다. "헤, 헷. 바보네요, 아스카이 선생님. ―요새는 이 나라도 꽤나 험해졌다고요. 사, 사람 좋은 당신이라면 틀, 틀림없이 걸려들 거라고 생각했지만…!" 소녀는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킬킬 웃는 듯이 말했다. "…나라고 알고서 노린 건가. 넌 이마자키 시즈코였지, 아마. 올해 춘기강습에 왔었 잖아." 소녀는 예전에 그에게 상담을 받은 적이 있는 학생이었다. "헤, 헷…. 기억하고 있었다니 놀랐어요." 소녀는 숨이 차서 헉헉대고 있었다. 이상할 정도로 핏발이 선 눈을 보니, 상당히 독 한 약을 먹은 듯 했다. 아마 화학합성약이겠지. "하지만 봐주진 않을 거라구요. 돈 내놔, 있는 대로 다…!" "…그걸로 약을 사려고? 무슨 일이 생긴 거야? 넌, 상당히 우수한 학생이었잖아." "아빠가 탈세인가 뭔가를 해서 잡혀 들어갔어요! 어떻게 할 수도 없었어. ―그런 건 이제 아무 상관도 없잖아! 빨리 내놔!" 소녀는 히스테릭하게 외쳤다. "............" 아스카이는 덜덜 떨리고 있는 식칼 끝을 보았다. 힘을 너무 준 탓에 제대로 겨누지 도 못하고 있었다. 쉬이 피할 수 있을 듯 해 보였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 부글부글하고 무언가가 끓어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모든 게 다 시시해서 미쳐버리겠다 ―그러한 향할 곳 없는 분노가 가슴 속 깊은 곳 에서부터 용솟음쳤다. "―싫은 걸." 모르는 사이에 말이 그렇게 툭 튀어나왔다. "뭐라고…?" 소녀의 형상이 점점 더 일그러져 갔다. "죽인다면서, 그럼 죽이면 되지 않나…!" 아스카이는 토해내듯이 내뱉었다. "진짜로 죽여버리겠어!" "죽여보란 말이다!" 아스카이는 소녀에게 열받아서 소리지르고 있었다. "뭐냐, 넌! 간단하게 약 같은 걸로 도망치다니― 난 그런 게 이미 아무 소용도 없다 는 사실을 알고 있어! 되든 안 되는 간에 우린 결국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단 말이 다!" "…뭐, 뭐야 잘난 체 하긴! 진, 진짜론 무서우면서!" 소녀는 식칼을 더 가까이 들이밀더니 아스카이의 목에 갖다댔다. "우습군." 아스카이는 소리치고는 분노를 몸을 실어 소녀의 몸을 떠밀어버렸다. 식칼이 미끄러지더니 살이 찢겨지고 피가 솟아올랐다. 간발의 차이로 경동맥을 피해 간 탓에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셈이었지만 아스카이는 의식조차 하지 않았다. 소녀는 나동그라졌다. 다시 일어설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던 것이다. 호주머니에서 조그마한 봉지들이 삐져나와 땅 위에 흩어졌다. ―마약 봉지였다. "―!" 그것을 보고 아스카이는 눈썹을 찌푸렸다. 이 약은 소녀의 것이 아니다. 이렇게 많 이 있는데 강도 짓을 해야 할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맞아요. 이것은 다른 사람들을 위한 약이죠." 소녀가 천천히 일어서면서 말했다. ―아니, 이제 소녀가 아니었다. 눈웃음만 치는 무표정한 얼굴이 달라붙어 있었다. "…너 이 자식." 아스카이는 목에서 질질 흘러내리는 피를 무시하고, 소녀의 몸을 빌린 /녀/석/을 노 려보았다. "오해하지 말아요. 난 지금 막 수초 전에 처음으로 /나/온/거/니/까/. 방금 전의 일 련의 행동은 모두 이 아이의 의지에 의한 것이에요." 차갑게 말했다. "오히려 의지라고 말하기는 어려울지도 모르겠군요. 이 아이는 하고 싶어서 한 것도 아니군요. 여자아이니까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더 쉽고 안전한 방법이 얼마든지 있 었을 텐데, 이렇게 몸이 엉망이 되어놔서 그럴 수도 없었던 거죠." "―그만 해!" 아스카이는 소녀가 자신을 상처 입히려 한 상대임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능욕 당하자 격한 분노를 나타냈다. "이 마약은 뭘까요? 아스카이 선생님." 소녀의 모습을 한 /녀/석/은 땅바닥을 가리켰다. "―팔도록 시킨 건가?" "명답이에요. 본인에게는 이미 효과가 없는 '초보자용'으로, 자기가 할 약이 갖고 싶으면 다른 녀석들에게 팔라고 했던 거죠. 불쌍하게도 이 아이는 그럴 수가 없었어 요." /그/는 스스로 자기 가슴을 가리켰다. "슬픈 이야기죠. ―자기 같은 사람을 늘리고 싶지 않은데, 그렇다고 어떻게 할 수도 없어서 조금이나마 자신에게 친절했던 기억이 남아있는 당신에게 부탁한 거라구요, 이 아이는." ".........." "하지만, 아스카이 선생님. ―이제 어떻게 되던 간에 이 아이는 이제 끝이에요." "뭐라고?" "약 때문에 몸은 엉망진창이 되어버려서 그냥 놔둬도 1개월도 못 버틸 텐데, 어떻게 할 도리 없이 공허하고 안타깝게도 쓸쓸하게 죽어 가는 수밖에 없어요." 조소하듯 말했다. "..........." "하지만 당신이라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지도 모르죠." 그렇게 말하자마자 소녀는 식칼을 들어올리더니, 자신의 목에 깊이 꽂아 넣었다. "―!" 소녀는 피를 철철 흘리면서 일순 허공에 붕 뜬것처럼 보이더니 털썩 쓰러졌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비명이 들렸다. 도로 맞은 편에서 지나가던 여성이 그 광경을 목격한 것이다. 그녀는 당황해서 허둥 지둥 그 자리에서 도망쳤다. 아스카이는 서둘러 소녀에게도 달려갔다. 헐떡대고 있는 소녀는 이미 원래 얼굴로 돌아와 있었다. /놈/은 사라졌다. "빌어먹을…!" 아스카이는 그녀의 상처에 손수건을 대고 눌렀다. 그러나 이미 피가 태반은 흘러나 간 후였다. "…장…할." 소녀는 멍한 눈으로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아스카이는 소녀의 입가에 귀를 가까이 댔다. "…젠장할, 빌어먹을, 젠장…" 원망하고 있었다, 아마도 세상 모든 것들을. "…할, 젠장할, 빌어먹을, 제기랄. 젠장, 제기랄…." 아스카이는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분을 터트리지 않을 수 없었던 소녀를 지그시 쳐다보았다. "............" 그리고 이를 갈더니 소녀의 가슴으로 손을 뻗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일/은 간단했다. * "…그렇다면, 당신한테 달려드는가 했더니 그 아이가 갑자기 지 목을 찔러버리더라, 이거죠." 부장형사는 경찰차가 올 때까지 사체 옆에 있었던 중요참고인에게 거듭 물었다. "네." 아스카이는 즉답했다. 그의 목에는 경찰병원에서 응급처치를 받아서 붕대가 감겨있 었다. "아이가 당신이 아는 애라고요?" "네, 이름은 이마자키 시즈코. 아마 18살에, 주소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학원 명부 에 남아있을 겁니다. 올해 봄에 제가 가르치던 학생 중 하나 였습니다." 그는 더듬거리지도 않고 술술 대답했다. 그 모습에는 동요라는 게 없었다. "…원한을 샀다거나, 뭐 그런 거 없습니까? 짚이는 데는."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그 애가 상담하러 왔었는데 도와주지 못했으니까요." "…아니, 뭐. 이 쪽에서 조사해 본 바로는 가정환경이 원인인 것 같더군요." 슬쩍 의중을 떠볼 생각이었던 부장형사는 아스카이의 반응이 냉정하고 멀쩡했기에 ' 관계없군' 하고 판단했다. "자살한 것도 각오하고 저지른 모양이던데." "―자살입니까." "아아, 이제 그리 길지 않은 목숨이었소, 그 아이는. 약으로 몸이 너덜너덜 했었으 니, 오히려 안락사라고 하는 편이 낫겠군. 약 하다가 죽는 건 꽤나 괴롭다니까. … 이 얘가 다른 쪽에서 추적하고 있던 루트의 '판매상(賣人:바이닌)' 중 하나라던데, 별로 잘 하진 못했다지만." "…전부터 알고 있었다고요?" "말단이니까. 위엣 놈들은 잘 나타나지 않아서 말이지." "............" 알고 있었으면서 도와주지 않았단 말인가 ― 라는 말을, 아스카이는 무표정한 가면 속에 완전히 숨겼다. "이제 당신은 돌아가도 좋아요. 목격자가 있으니까 살인 용의도 없고, 조서 쓰는 대 로 방면이요." "고맙습니다." 아스카이는 머리를 숙였다. 그 말대로 취조가 곧 끝나서, 조서에 시키는 대로 서명하고 지장을 찍고 나서 아스 카이는 그럼 이만, 하고 일어섰다. "―아, 잠깐만. 아스카이씨. 이건 개인적인 흥미로 하는 말인데…." "무슨 일이죠?" "당신, 그 애가 가는 걸 알았을 때 뭔가 말했소?" "왜 그런 걸?" "아니, 별 다른 의미는 없고…. 그 애, 그렇게 갔는데도 묘하게 표정이 평화로워보 여서 말이오. ―뭐라고 할까, 마음속의 응어리가 전부 사라진 듯한, 그런 느낌이었 소. 뭔가 말을 해서 저렇게 된 거라면, 당신은 대단한 선생일거라고 생각했거든." 초로의 부장형사는 머리를 끄덕거렸다. 그러나 아스카이는, "아니요, 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고 대답하곤 취조실에서 나왔다. * …그리고 아스카이는 또 다시 밤거리를 걷고 있었다. 그는 도로 뒤쪽을 보고 멈춰 서서 안 쪽을 엿보았다. 그 눈은 방심하지 않고 주변을 둘러보며 먹이를 찾고 있는 매와 흡사했다. 그러던 그의 귀에 무언가가 털썩하고 넘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 전에 들었던 소녀 의 신음소리처럼 너무 희미해서 길을 걷고 있는 다른 사람들이게는 주의를 불러일으 키지 못했다. "――." 그러나 그는 곧장 발길을 돌리더니 소리가 난 도로 뒤쪽으로 들어갔다. 역시나 사람이 있었다. 전부 7사람 ― 소년이 여섯에 소녀가 하나. 평범하지 않게 보이는 점은, 소녀의 옷이 찢겨져 맨살이 드러나 보인다는 것뿐이었 다. 그 주위를 5명의 소년들이 둘러싸고는 손을 내밀려고 하고 있었다. 홀로 떨어진 소년은 입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과연―, 알기 쉬운 구도로군!" 아스카이는 크게 소리를 쳤다. 소년들이 그 쪽을 돌아보았다. "―! 뭐야, 넌?!" "내가 오해하고 있다면 곤란하니까, 우선 확인해보도록 하지. ―거기 너." 하고 아스카이는 혼자 떨어져 있는, 뻔히 봐도 맞고 있었던 것 같은 소년에게 말을 걸었다. "너는 저기 있는 소녀를 구하고 싶은 거지?" 자신만만한 아스카이의 말에 반쯤 멍해 있던 소년은 곧, "네―!" 하고 끄덕였다. "그럼 빨리 구해서 도망가거라." 라고 말하며 아스카이는 훌쩍 그들 사이로 끼여들어 소녀의 손을 잡고 끌어내었다. "무슨 수작이야!?" 그녀를 둘러싸고 있던 녀석들은 쌍심지를 켜고 아스카이에게 덤벼들었다. "―흠." 아스카이는 그들 중 하나에게 눈으로 잡히지도 않을 정도의 속도로 /무/슨/짓/을 했 다. 갑자기 그 아이는 뒤로 내동댕쳐 졌다. "――?!" 다른 녀석들이 놀라서 몸을 틀었을 때, 아스카이는 힘없이 멍하고 서있던 소녀를 떠 밀듯이 해서 소년에게 건넸다. "자아, 재빨리 튀는 거야." "고, 고맙습니다!" 소년은 인사도 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소녀의 손을 잡고 달려나갔다. "기, 기다렷!" 하고 쫓으려 한 소년들 앞에 아스카이가 다시 나타났다. "기다려야 하는 건 네 놈들이다." 그 얼굴에는 웃음이 떠올라 있었다. "뭐라고오…?" 살기 등등한 소년들은 각자 호주머니에서 나이프를 꺼내들고 위협했다. 그러나 아스 카이는 칼을 눈앞에 두고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직하게 말했다. "별로 너희들에게 원한이 있는 건 아니지만… 잠시 '실험대'가 되어 줘야겠어―." ―그리고 1분 후. 다른 놈들은 모두 땅바닥 위에 널브러지고 불량 소년들 중에서 무사하게 서 있는 것 은 단 한 사람뿐이었다. 기묘하게도 그들의 몸에 난 상처는 모두 서로의 나이프에 의한 것뿐이었다. "―아, 아아…." 어쩔 줄 몰라서 이빨이 덜덜 떨리고 그에게 아스카이는 천천히 오른 손을 가슴 위에 서 흔들면서 가까이 갔다. "…뭐 뭐야 넌― 도대체 저 녀석들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미안하지만 저한테 말해봤자 알아듣지 못할 거야. 그러나 난 그들에게 위해를 가한 게 아니라 오히려 '행복'하게 해 준 거지." 그 말투는 평정(平靜)하기에 더욱더 기분 나쁜 느낌을 주었다. "너, 넌 도대체―뭐야?" "응? 그렇군―. 이봐, 뭐라고 했었지?" 아스카이는 뒤로 머리를 돌렸다. 그 바로 위의 허공에서 소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 다. ≪'이미지네이터'―.≫ "그래, 바로 그 거 였지." 아스카이는 씨익 웃고는 소년을 향해 오른 손을 뻗었다. ---------------------------------------------------------------------------- 이 게시물은 上遠野浩平의 'ブギ-ポップ·リタ-ンズ VSイマジネ-タ- Part1 '을 번역한 것으로, 다른 곳으로 옮기실 경우 제게 메일만 보내주시기 바라며, 상업 적인 용도로는 쓰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이만. 오늘도 지구를 향해 돌진하는 네메시스. Weather Break : http://blake.prohosting.com/nemesis7/ 『창작 - 쓰기-번역란 (go ANC)』 682번 제 목:[번역] 부기팝 VS이미지네이터 Part1 2-1 올린이:네메시스(김미진 ) 01/06/07 11:30 읽음:555 관련자료 없음 ----------------------------------------------------------------------------- Ⅱ 사랑을 하는 건 자기 맘이다. 나로서는, 그리하여 서로의 정신을 갉아먹는 일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키리마 세이이치 (VS 이미지네이터) 그녀의 이름은 오리하타 아야라고 한다. 곧잘 눈을 내리까는 버릇이 있고 새카맣지만 커다란 인상을 주는 눈을 가진, 아주 아주 예쁜 여자아이지만, 될 대로 되라 식의 어처구니없는 성격에다 무뚝뚝하게 밖 에 말을 못하는 소녀이다. 나이는 나와 동갑으로 열다섯 살이라 한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보통 어른들에게도 있을 법하지 않은 깨달은 느낌을 주는 여자아이이기도 하 다. "마사키는 왜 나에게 관심을 가지는 거지?" "…아니, 그냥 친하게 지내고 싶어서 그런 것 뿐이야." "하고 싶어?" "―응?" "섹스, 하고싶은 거니, 나랑." "―이, 이봐. 오리하타." "상관 없어. 하고 싶으면 그렇게 말해." "........." ―라는 심히 노골적인 대화를 한 적조차 있었다. 그녀가 다니고 있는 학교에는 친구가 아무도 없는 듯, 다른 학교를 다니는 내가 그 녀와 이야기를 하게 될 때까지 제대로 된 일상회화라는 걸 해 본 적이 있을지가 상 당히 의문스럽다. 나, 다니구치 마사키가 그녀와 만난 것은 상당히 이상한 상황에서 이루어진 일이었 다. 원래 나 자신도 그 당시는 일본의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를 하기 위해 서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던 프놈펜에서 혼자 귀국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였기에 , 주변에 그다지 익숙하지 않았다. 부모님으로부터 대충 듣긴 했지만 일본의 학교라 는 곳은 귀국자녀와 어떻게든 거리를 두려는 경향이 있다. 나에겐 누나가 있는데, 지금까지 계속 일본에 살고 있던 그녀가 말하길, "원래 그런 거야. 아쉽게도 말이지. 모두 다른 녀석들과 다른 행동이나 생각을 하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는 한심한 놈들 뿐 이라고. 너도 각오해 두는 게 좋을 걸." ―라는 것 같기에, 그런가 보지 하는 생각으로 얌전히 지내고 있었다. 그래서 별로 내키지 않더라도 도와준다던가 언제나 부드러운 태도로 대하려고 주의 를 하고 있었더니, 모르는 사이에 클래스의 여자아이들에게 상당히 여자아이들은 수 업에서 모르는 게 있거나 참고서의 문제 중에 풀리지 않는 게 있으면 선생님이 아니 라 나한테 물으러 오는 것이다. "마사키군은 머리가 좋네. 역시 유학생이야." 난 일본에 유학하러 온 것도 아닌데도 언제부터인가 '유학생'이라는 별명이 붙어 버 렸다. 솔직히 말해 미칠 지경이었다. 그렇다고 몰려오는 여자아이들을 내칠 수도 없었기 때문에, 클래스의 아니 학교의 남학생이 나를 보는 눈이 점차 험악해져가고 있었다. 고등학교 입시직전이라는 시기여서 다행히 왕따를 당하는 일은 별로 없었지만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학교 밖에 나가면 학교에서는 하급생은 상급생 영역에 들어오 지 않지만 밖에 나가면 영역구분은 없어지기 때문이었다. 나는 주변에서 꽤나 미움 받고 있는 듯 하다. 여자아이들은 언제나 주위에 있긴 하지만 깍깍 소리지르면서 날 장난감처럼 갖고 놀 뿐이라 대등한 친구라는 관계가 아니었기 때문에 솔직히 맥이 풀렸다. 그런 어느 날, 나는 잠시 방심하고 말았다. 지쳐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역에 나갈 일이 있어서 인적이 없는 구석 길로 지나가려고 했더니 다섯 명의 소년들 에게 둘러싸이고 말았다. "어이, 유학생. 요샌 더 잘 나가는 모양이던데?" "너무 튀는 거 아니야, 안 그래?" 그들은 비싸 보이는 재킷 등을 입고 있었기에 그렇게 불량한 모습은 아니었다. 그렇 기 때문에 둘러싸일 때까지 이런 놈들일 거라곤 눈치채지 못했다. 그들은 접는 나이 프를 꺼내들었다. 몇 살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전부 나보다는 연하일 터였다. "......그런가, 그럼 조심하지." 되도록 이런 사태가 벌어지지 않도록 피해 왔거늘, 이렇게 붙잡히고 만 것이다. "조심한다고? 뭘 어떻게 조심한다는 거야? 앙?" "그러니까 눈에 띄지 않게 하지." 내가 그렇게 말하니 그 놈들은 킬킬거렸다. 그리고 갑자기, "개소리 마!" 하고 버럭 화를 내더니, 한 녀석이 내 뺨을 갈겼다. 내게는 그 녀석이 주먹을 날리는 궤도가 똑똑히 보였지만, 패는 대로 그냥 맞아주기 로 했다. 단, 약간 상체를 틀어서 위력을 감소시키긴 했지만. 입안이 찢어져서 피가 나왔다. 하지만 이빨이 부러질 정도는 아니었다. 대단한 놈들은 아니다. 나는 프놈펜에서 이른바 아동용, 즉 실전용이 /아/닌/ 호신 용으로 공수를 오랫동안 배웠기 때문에 상대가 폼을 보면 그들이 얼마나 센/지/ 알 수 있다. 그 호신술에서 가장 효과가 좋은 방법은 '큰 소리를 질러 도움을 청하는 것'이지만, 나는 정말로 그렇게 할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다. 프로의 유괴범 상대라면 그 방법 이 유효하겠지만 일본에서는 별 상대도 되지 않는 이 녀석들을 되려 자극하게 될지 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신경 쓰이는 점은 그들이 아마도 나와 같은 학교의 학생들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놈들을 박살내버리기라도 하면, 다른 놈들까지 지겹게 따라 붙어서 이후론 꼬리에 꼬리를 무는 트러블이 기다리게 될 거라는 얘기다. 어떻게 할까, 귀찮으니까 그냥 몇 대 맞고 끝내버릴까 고민하고 있던 와중이었다. "―잠깐." 목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는 패는 쪽의 녀석들, 맞는 쪽인 나 둘 다에게 말을 걸어왔다.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구나." 놀라서 그 쪽을 돌아보니 한 소녀가 서 있었다. 처음에 눈에 들어온 것은 어중간한 길이의 그녀의 머리카락이었다. 그게 왠지 흘러 떨어질 듯한 느낌으로 보였다. 주위는 지저분하게 시궁창 냄새가 코를 찌르는 구석 길 안에다 하늘은 저물어가고 있고 거기다 구름마저 껴있기에 어두컴컴하고, 게다가 나는 처량하게 토끼 마냥 벌 벌 떨면서 구석에 처박혀 있었다―. 그냥 빈말로라도 미적이라고 말하기 힘든, 그것 이 내가 오리하타 아야와 처음 만난 상황이었다. "..........." 나는 멍해져 있었다. 어중간한 길이의 머리를 한 그녀는 내 쪽을 보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혼자 이 쪽으로 바삐 걸어왔다. "...뭐, 뭐야 넌? 유학생의 여자친구냐?" 위협조로 말을 해봤자 그녀는 얼굴색 하나 바뀌지 않았다. "―목적이 뭐지? 그에게, 무슨 감정이 있어서 이런 일을 하는 건데?" 감정이 실려있지 않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뭐라고? 뭐야 넌, 이 놈의 친구가 아니란 말이지?" "무슨 수작이야?" "―이유를 묻고 있는데." 그녀는 다시 한 번 물었다. "헤헹, 이 녀석이 엄청난 바람둥이니까." "이런 얼굴로 수많은 여자들을 속이고 있는 나쁜 놈이란 말이지." "흐음..." 그제야 그녀가 나를 보았다. 무심코 노려보는 듯한 눈으로 나도 되쏘아주었다. 그랬더니 그녀는 이마를 찡그렸다. 신비스런 눈동자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점점 화가 끓어올라 그 분노를 억누르려고 했더니 눈초리가 점점 사나와져 간 다는 걸 깨달았다. 그녀는 더욱더 이마를 찡그리더니 갸웃거리곤 머리를 푹 숙이는 가 하였더니 다시 나를 둘러싸고 있는 녀석들을 보았다. "...그럼, 당신들은 그에게 여자친구를 빼앗겼다는 얘기네? 성적욕구불만이 분노의 원인인가." ―너무나 진지한 얼굴로 그런 어처구니없는 말을 했다. 황당한 나머지 모두 다 뻥 쪄 있었다. "......뭐라고? 뭐라고 했지?" "그러니까, 이 공격동작은 여자아이들한테 미움 받았기 때문에 화풀이하는 건가, 하 고 물었어." 도발이라 하기엔 너무나 차분하고 될 대로 되라는 듯 아무렇게나 내뱉은 말투였다. 잠시 아무 말도 없었던 녀석들은 이윽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화가 난 것이다. ".......이, 이 게....!" 모두 그녀를 덮치려고 가까이 갔다. 그러나 그 때, 그녀는 예상도 못 했던 행동을 했다. 갑자기 자기 윗도리를 잡더니 있는 힘껏 찢어버렸다. 드러난 가슴이 차가운 바깥 공기에 노출되었다. "―욕구불만이라면 대신 나로 만족해." 그녀는 얼굴색 하나 바꾸지 않고 말했다. 아까 나를 보고 있을 때가 오히려 표정이 살아있었다. "--------엥?" ".....이, 이봐." 그녀에게 덤벼들려고 하던 녀석들이 눈을 희번덕거렸다. "...자, 잠깐만 기다려!" 나는 당황했다. 뭔지는 모르지만 그녀를 이 대로 녀석들 좋을 데로 하게 나둘 수는 없었다. 그런데 또 그 때, 이번엔 길 맞은 편에서 누군가가 크게 소리를 질렀다. "과연―, 알기 쉬운 구도로군!" 화들짝 놀라 돌아보니 거기엔 흰옷을 입은 젊은 남자가 서 있었다. 소년들이 그 쪽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는 주저하지 않고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 뭐야, 넌?!" "내가 오해하고 있다면 곤란하니까, 우선 확인해보도록 하지. ―거기 너." 하고 남자는 나를 가르쳤다. "너는 저기 있는 소녀를 구하고 싶은 거지?" 나는 당황해서 "네!"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빨리 구해서 도망가거라." 그는 딱 잘라 말하곤 주저 없이 다가오더니 가슴을 드러내고 있는 소녀의 팔을 잡았 다. "무슨 수작이야!?" 라며 덤벼드는 놈을 그는 눈에 잡히지도 않을 정도의 속도로 상대의 가슴 언저리에 손을 대었다. 그 동작만으로 녀석을 저 편으로 날려버렸다. 내 눈에도 무슨 짓을 한 건지 잘 보이지 않았다. ―엄청난 달인(達人)이다. "자아, 재빨리 튀는 거야." "고, 고맙습니다!" 나는 우선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그녀의 팔을 잡고 냅다 달렸다. 그녀는 내가 이끄 는 대로 따라왔다. 곧 큰길로 나올 듯 하여 나는 재빨리 재킷을 벗어 그녀의 상반신 에 걸쳐주었다. "괘, 괜찮아?" 하고 물어 봤지만 그녀는 어딘지 멍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어째서?" ""뭐?" ""넌 날 싫어하는 게 아니었니?" 그녀는 또 이상한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왠지 모르겠지만 아까 녀석들과 그 남자를 그대로 내버려둘 수 없었기에, 그녀를 안 전할 법한 역전 광장 벤치에 앉혀놓고 "여기서 기다려."하곤 헐레벌떡 뛰어갔다. 가다가 중간에 뒤에서 누가 내 어깨를 잡았다. 돌아보니 아까 그 남자였다. "여어." 온화하게 웃고 있는 그의 몸에 사처 하나, 흰옷에 눈에 띄는 더러움이나 주름 하나 없었다. "괘, 괜찮으세요?" "아아, 대충 마무리는 지었지. 이제 녀석들이 너희들에게 찝쩍대는 일은 없을 거야. " 시원스레 대답하는 그 사람을 보고 나는 놀랐다. 이제 겨우 2, 3분밖에 지나지 않았 을 텐데, 그 사이에 5 명을 전부...? "저어, 당신은...?" "나 보다 그 앤 어떻게 됐지? 무사한가?" "아, 아 저 그게―." "빨리 돌아가 보는 게 좋을 거야. 그 아이는 보기완 달리 상당히 불안정 할 거야. 뿌리와 줄기가 일체화해서 구별이 없고 잎도 얇고 꽃도 단단한 봉오리뿐이니 말이다 ." "네?" 무슨 얘기인지 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뭐, 별 상관없는 얘기야. 하지만 그 애가 심한 말을 하더라도 마음에 두지 않는 편 이 좋아. 그 게 바로 그녀와 사귀는 요령이라고. 그럼." 일방적으로 도무지 알 수 없는 말만 늘어놓고 흰옷의 남자는 사라져 버렸다. "..............." 나는 황당해서 멍하니 서 있다가 곧 정신을 차리고 그녀가 있는 곳으로 얼른 돌아갔 다. 그녀는 내가 앉혀 놓은 모습 그 대로 기다리고 있었다. 양손으로 상의의 가슴 언저리를 마주 잡고 있었다. "――아―, 이젠 괜찮아?" 뭐라고 말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기에 나는 한심한 질문을 하고 말았다. ".................." 그녀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나는 어쩔 줄 모르고 있다가 가만 생각을 해보니 내가 그녀에게 도움을 받았다는 사 실을 떠올렸다. "――저어, 아까는 고마웠어." ".................왜?" 그녀는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또 그 이상한 듯한 표정이었다. 이거야 전혀 이야기가 "도와 줬잖아, 방금." 나는 하는 수 없이 그녀에게 미소지어 보였다. 그랬더니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 그리곤 갑자기 고개를 떨구더니 떠듬거리며, "....내가 싫어진 거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라고 중얼거렸다. "뭐?" 내가 더 황당했다. "무슨 말이야? 왜 내가 널 싫어하는 건데?" "다른 사람들이 날 싫어하면 안 돼, 보통 사람들은 모두." 묘하게 마음이 깃 든 진지한 눈으로 말했다. "......별로 널 싫어하진 않아." "'하지만 날 노려봤잖아..." 무척이나 슬픈 듯이 말했다. "아, 그거―...아니야, 그건 너랑 전혀 관계가 없고 내가 스스로 한심해서, 그래서 그렇게, 그러니까 말이지..." 당황한 나머지 나는 횡설수설하며 변호했다. "미안해." 그녀는 머리를 숙인 채 중얼거렸다. "그러니까...왜 네가 사과하는 데. 나쁜 건 나잖아? 나야말로 싫어하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어."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어째서?" "봐, 형편없는 꼴을 보이는 바람에 쪽팔렸다고. 너완 관계없어. 오히려 네가 날 싫 어하는 것 같아서 더 화가 난 거고." 계속 떠들다보니 왠지 모르게 점점 더 한심해져 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나를 조용히 쳐다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엔 뭐랄까 내가 괜한 고민을 한 탓에, 그――." 주절거리던 도중에 나 는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이젠 모르겠다. 어쨌거나 옷은 변상할 게. 에‥." 하고 지갑을 꺼내려다가 나는 앗 하고 소리를 질렀다. 맞다, 원래 역 앞으로 가려던 이유가 돈이 떨어져서 은행에서 인출하려던 거였는데. "이런.....문 닫혀서 이젠 돈도 못 뽑는데. 에구..." "돈이라면 됐어. 나도 있으니까." 그녀는 일어섰다. "그럴 순 없어. 어떻게 하지...." "됐다니까. 그것 보다 이 재킷 빌려주지 않을래. 꼭 돌려줄 게." "아니, 됐어. 그냥 줄게. 하지만 이런 걸론 보답이 안 되잖아. 주소랑 전화번호 가 르쳐주지 않겠어? 나중에 연락해서 그 때 제대로 갚을 게." ".........." 그녀는 똑바로 날 쳐다보았다. 키가 내가 더 크기 때문에 그녀는 위를 올려다보게 되었다. 왠지 노려보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아, 아니. 그냥 널 어떻게 하려는 게 아니고, 당연하잖아. 그럼 네가 나한테 연락 해도 돼. 응, 그렇게 하자." "오리하타." "엣?" "내 이름, 오리하타 아야라고 해. 넌?' "난 타니쿠치 마사키." "마사키――좋은 이름이네." 그러면서 그녀는 그제야 겨우 웃어주었다.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간 정도의 아주 희미 한 미소였지만 내 심장을 움켜잡기에는 충분한 매력이 있었다. 이런 것도 한 눈에 반한다고 할 수 있을까――? "지금 잘 나간다는 영화 티켓이 있는데, 같이 갈래?" 어느 날 나는 용기를 내어 전화로 오리하타를 꼬셨다. [―나로, 괜찮아?] 수화기 저편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힘 빠지게 들렸다. 엄청 긴장하고 있던 나는 일부 러 들뜨고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저번에 진 빚도 갚을 겸. 아, 나오기 곤란한 사정이 있으면 어쩔 수 없고." [....고마워. 알았어.] "만나 주는 거야? 이야 기쁜 걸." [하지만, 마사키, 나 진짜―] "응? 뭐?"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야.] 그녀는 그렇게 말하곤 입을 다물었다. 나는 어디서 어떻게 만날 건지 등을 거의 일방적으로 말하고, 그녀는 [응......응.] 이라고 밖에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괜찮은 작별인사도 생각 안 나서 어물어물하다가 전화를 끊을 수밖에 없었다. 그랬더니 등뒤에서 킥킥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누 나였다. 어느새 전화가 있는 거실로 내려왔나 보다. 부모님이 아직 귀국하시지 않았 기에 집엔 나와 누나 둘 뿐이었다. "뭐야, 플레이보이치곤 데이트 약속 하나 잡는 데 엄청나게 긴장을 하는 구만." "너무하군. 엿듣고 있었어?" "들리고 싶지 않으면 바보같이 무식하게 힘줘서 큰소리로 하지 말란 말이야. 2층까 지 다 들리더라. 무슨 일인가 했지." 언제나 PC나 각종 기기들을 만지작거리며 방에 틀어박혀 있으면서 이런 때에만 눈치 가 빠르다. 이 인간은..... "됐네. 나기한텐 상관없잖아. 내버려 둬." "네네. 알았습니다. 이 쪽도 그렇게 한가하진 않아." 그녀는 시치미를 뚝 떼고 말했다. ――그리고 데이트 날, 영화관 앞으로 온 우리는 사태를 너무 낙관하고 있었다는 사 실을 깨달았다. 사람이 너무 많았다. 뱀처럼 길다란 줄이 영화관 주위를 몇 바퀴나 돌고는 길에까지 뻗어 있었다. "네, 줄의 끝은 이 쪽입니다. 이 줄까지는 4시간 후에 상영되는 영화를 보실 수 있 습니다. 네―." 하고 직원이 길 한 가운데서 소리지르고 있었다. "―이 걸 어쩌지.....큰 일이네." 나는 머리를 감싸안았다. 첫 데이트가 이 지경이라니 말도 안 돼. "어떻게 하지? 오늘은 그만 둘까?" 나는 오리하타에게 말했다. 그랬더니 그녀는, "왜?" 라며 또 이상한 듯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엄청 기다리게 되는 데다가 하루가 다 날아간다고." "마사키는 기다리고 싶지 않아?" "역시, 지칠 거 아냐?" "그럼 내가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마사키는 다른 데서 놀고 있어." 딱 잘라 말하고 그녀는 줄 뒤에 가서 붙었다. 나는 동요했다. "―뭐라고? 그럴 순 없어. 차라리 내가 기다릴게." "됐어. 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거에는 익숙하니까." "아니, 그렇지만―원래 오리하타한테 보답하려고." 내가 말하고 있는 사이에도 오리하타의 뒤에 사람들이 늘어서고 있었다. "―에이 모르겠다!" 나는 결심을 하고 발길을 돌려 역 앞길로 달려갔다. "―어이, 유학생 아니야. 뭐 하고 있냐, 이런 곳에서." 누가 부르기에 뒤돌아봤더니 같은 반의 아노라는 녀석이 서 있었다. "아, 아아. 그게 좀." "뭐냐 너, 여자아이를 기다리게 하고 있는 거냐, 그래?" 나는 학교 남자 녀석들과는 원래 사이가 안 좋지만 이 아노라는 녀석은 그 중에서도 더 시비를 걸어오는 놈이다. 보통 때라면 그 때 그 때 알아서 대응하고 있지만 지 금은 이런 놈 상대를 할 때가 아니다. "미안하지만 난 좀 바빠서, 이만." 하고 나는 안노를 뿌리치듯 지나가며 근처의 패스트푸드 점에 달려가서 이것저것 먹 을 것과 마실 음료수를 사들고 냅다 뛰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잠깐만요." 하고 줄에 늘어선 사람들을 헤치고 새치기까지 해가면서 어렵사리 오리하타의 뒤로 돌아왔다. "야아, 기다렸지. 헤헤.' "―안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 이렇게 된 이상 지구전(持久戰)이잖아? 도시락 싸 들고 오는 편이 나을 것 같아서 말이야." 나는 꾸러미를 들어올려 보여주었다. "기다리는 거 힘들지 않는데." "아니야, 그런 거라면." 너랑 같이 있으면 심심해하고 있을 시간은 없지, 하고 말하 려다가 쑥스러워서 관두었다. "뭐?" 오리하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 그런 것보다 뭐 먹을래? 여러 가지 대충 봐서 가져오긴 했는데 오리하타는 어느 게 좋아?" "어느 쪽이든 상관없는데." "싫어하거나 좋아하는 건 없어." "........싫어할 자격이 없으니까." 이번에 또 기묘한 말을 했다. 그리고 그 이상 설명하지 않는다. 왠지 어디선가 마음 을 닫고 있어서 나는 그곳에 들어갈 수 없다. 별 수 없이 나는 적당히 골라 더블 치 즈버거를 그녀에게 건네고 나는 핫도그를 입에 물었다. 그녀는 좋은 건지 싫은 건지 내색도 않고 버거를 우물우물 먹기 시작했다. 토끼한테 먹이를 주고 있는 기분이 들어 묘하게 나는 세 입에 먹어 치운 탓에 곧 손이 텅 비어버렸다. 그냥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랬더니 그 때, "아." 하고 오리하타가 내 얼굴을 보고 뭐야? 하는 생각도 하기 전에 까치발로 선 오리하타의 얼굴이 내 쪽으로 가까이 와서 그녀의 혀가 내 입술 위에 묻은 케첩을 핥았다. 화들짝 놀라 그러나 그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표정을 지었다. "―깨끗해 졌어." 전혀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장난치는 기색도 없다. 그저 두 손으로 버거를 들고 있어 서 혀로 닦아주는 게 효율적이라 말하는 양 보였다. 그녀는 다시 버거를 먹기 시작 했다. 하지만 난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몇 시간 기다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새 영화관에 들어가서 역시 알지 못하는 새 에 영화가 끝나버린 듯 했으나 그 동안 내내 머엉 해 있기만 했다. 정신이 들었을 때는 밖으로 나와있었고 하늘은 이미 어둑해져 있었다. "안녕." 하고 오리하타가 영화관 앞에서 그렇게 말했기 때문에 겨우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에? 이, 이제 돌아가는 거야?" 분명 무지하게 불쌍한 목소리임에 틀림없다. 오리하타는 놀라며, "―영화 보러 온 거였잖아?" 라고 했다. "그야 그렇긴 하지만―카페나 잠깐 들리지 않을래." 미련이 남아서 "괜찮아?" "당연하지! 내가 살 게.' "돈말고― 나랑 같이 있어서 심심하지 않았어?" "그, 그렇지 않아!" 마냥 멍해 있던 탓에 그녀가 엄청 화를 내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 쫄았다. 하지만 오리하타는 그 말을 듣고 기분이 풀어진 듯 말했다. "다행이야. 걱정하고 있었거든. 싫어하면 어떻게 하나." 그런 말을 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해봤기 때문에 나는 어쩔 줄 몰라하다가, 근처에 있 던 카페 '트리스탄'에 들어가 커피를 주문하고서야 겨우 진정이 되어 그녀에게 말을 걸 수 있었다. "오리하타야 말로 나랑 있어서 심심하지 않았어?" 처절하단 생각은 들었지만 묻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그러나 오리하타는 그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갑자기 내 손을 잡았다. 놀랬지만 잡힌 손을 빼내기도 뭣해서 온 몸이 "........마사키는 따뜻하구나." 그녀는 할머니가 따뜻한 차를 마신 뒤처럼 아주 편안한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수수께끼였다. 그녀는 정말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이렇게 해서 나는 오리하타와 사귀기 시작했다. 원래 남녀교제라고 할 수 있을는지 모를 상당히 괴상하고 기묘한 만남이기는 했지만..... 우선 그녀의 집이다. 언제 전화해도 꼭 그녀가 금방 받는다. 벨 한 번 울린 적 없다. 전화번호를 누르고 통화음이 들리나 싶으면, "―네, 오리하타입니다." 하고 감정이 깃들지 않은 목소리로 받는다. "저어, 타니구치인데." 몇 번이나 통화를 했어도 나는 꼭 맨 처음에 말이 막혀버리는 버릇이 들어버렸다. "뭔데?" 그녀의 대답도 "아니, 그게, 이번 주 토요일에 시간 있나 해서―." 그녀와 나의 관계는 이 통화처럼 내가 일방적으로 들떠 있고 그녀는 냉정 그 자체라 는 스타일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고등학교 입시가 코앞이라는 이 시점에 나는 그녀를 불러내 놀러 다니기만 하고 했다. 내 쪽은 이미 작년에 사립학교에 추천입학하기로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그 입학자격에 '일본의 중학교를 졸업할 것'이라는 조건이 있었기 때문에 귀국한 것이었다) 걱정 없었지만 그녀는 어떤지 싶어서 물어봤더니, "――글쎄." 라는 대답을 했다. "글쎄 라니―아직 정하지 않은 거야?" 그 때는 이미 1월 중순이었다. "학교 가긴 할 것 같은 데 어디 학교가 될지는 아직 몰라." 다른 사람 얘기인 양 말했다. "부모님이 엄하셔?" "그렇진 않아." "에? 무슨 말이야." "그런 거, 없어." "그럼―." "에, 그럼 친척은?" ".............." 말이 없었다. "―아, 물어보면 안 되는 거였나." 하고 내가 쫄아서 사과하려했더니 그녀는 갑자기 내 쪽을 돌아보며, "―미안해, 마사키." 라고 말했다. 왠지 무척이나 절박한 표정이었다. "에? 뭐가?" 나는 놀래서 되물었다. 그러나 그녀는 또 고개를 푹 숙이고는 "미안해, 말 할 수 없어...." 라고 중얼거릴 뿐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 그녀가 슬퍼하는 걸 보는 건 너무나 안타깝다. 이럴 때 나는 일부 러 밝게 행동해서 억지로 얼버무렸다. "이야, 하늘이 멋진 걸!" 하고 무식하게 커다란 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거의 웃음을 보이지 않았지만 헤어질 때는 꼭 "또 만날 수 있지?" 하고 물어보기 때문에 그렇게 싫어하지는 않는가 보다 하는 위안으로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이윽고 그녀가 걱정하고 있었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현립고교인 신요학원에 들어가게 되었다. 전화로 합격했다는 보고를 받고 나는 내 일처럼 기뻐했다. [마사키가 기쁘다니 나도 기뻐.] 그녀도 드물게 즐거운 듯이 그렇게 말했다. "그럼 축하해야지. 어떻게 할까? 늘 가던 거기서 만날래?" [응, 알았어.] 나는 붕 떠서 늘 만날 장소로 정해 두었던 공원으로 달려나갔다. 그곳에 무엇이 기 다리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 ---------------------------------------------------------------------------- 이 게시물은 上遠野浩平의 'ブギ-ポップ·リタ-ンズ VSイマジネ-タ- Part1 '을 번역한 것으로, 다른 곳으로 옮기실 경우 제게 메일만 보내주시기 바라며, 상업 적인 용도로는 쓰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한 달 여 만에 올리게 되는 군요. 늦어서 죄송합니다. 그 동안 홈페이지 이사하고 리뉴얼하고 하드 날라가고 PC가 맛이 가는 등 여러가지 일들이 있었습니다. 우선 오늘까지 번역한 건 여기까지이고 한 줄도 더 번역한 게 없기 때문에 번역하는 대로 계속 올리겠습니다. 당초 예정보다 느려진 감이 있지만 '판도라' 번역하려는 생각을 접었기 때문에.. 거의 자포자기 상태입니다(;). 격려 메일 보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럼 이만. 오늘도 지구를 향해 돌진하는 네메시스. Weather Break : http://www.areaz.net/~nemesis/ 『창작 - 쓰기-번역란 (go ANC)』 688번 제 목:[번역] 부기팝 VS이미지네이터 Part1 2-2 올린이:네메시스(김미진 ) 01/08/28 00:49 읽음:558 관련자료 없음 ----------------------------------------------------------------------------- '부기팝 리턴즈 VS 이미지네이터' Part1 2-2 * "응, 알았어. ...........응. ...........그래. 그럼 이만." 오리하타 아야는 타니구치 마사키에게 건 전화를 끊었다. 그녀가 전화를 한 건 처음이었다. 언제나 그가 전화를 걸어 주길 기다리고 있을 뿐 이었으니까. 그러나 그가 그녀의 고등학교 입시에 대해 신경을 쓰는 눈치였기에 알 려주는 게 좋으리라는 생각에 전화를 건 것이었다. 그는 기뻐해 주었다. 그게 아야는 기뻤다. 그는 그 '진학'이 실은 그녀의 '임무수행 '의 카무프라주(camouflage[僞裝])라는 사실을 모른다. 그녀에게 있어선 기쁠 이유 도 아무것도 아닌 일이다. 그래서 아야는 마사키가 기뻐해 주었다는 일만이 기뻤다. 마사키와 사귀게 되면서부터 나서 아야의 옷 수는 확 늘었다. 예쁜 옷을 입고 나가 면 "귀엽다, 이거."하면서 칭찬해 주었기에 아야는 입는 것에 신경을 쓰게 되었다. 그녀는 재빨리 옷장으로 향했다. 마사키와 사귀게 되면서부터 나서 아야의 옷 수는 확 늘었다. 예쁜 옷을 입고 나가 면 "귀엽다, 이거."하면서 칭찬해 주었기에 아야는 입는 것에 신경을 쓰게 되었다. 그녀의 방에는 그녀 외에 아무도 없다. 맨션에 원래부터 놓여 있던 가구를 제외하면 조리용품도 텔레비전도 테이블도 아무것도 없다. 방바닥에는 침낭이 하나 굴러다니 고 있다. 그녀는 옷을 갈아입고는 뺨 근육을 조금 느슨하게 풀며 나갔다. 기다리기로 한 공원에는 별로 사람이 오지 않는다. 고속도로 세 개에 둘러싸인 그린 벨트 크기의 장소로 노인이 볕을 쬐거나 아이들이 놀기에는 조금 위험하고 거리에서 노닥거리는 젊은이들에겐 너무 밝아서 오히려 정신 사납다는 이유로 외면당한 일종 의 도시에 생겨난 에어포켓과 같은 장소이다. 아야는 벤치에 앉았다. 오후의 부드러운 햇볕이 내리 쪼이는 나무 아래서 마사키를 기다리고 있으면 아야는 왠지 모르게 자신이 평범하고 행복한 소녀가 아닐까 하고 착각하게 된다. 마사키가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그 진심은 잘 모른다. 하지만 그녀가 그에 게 말하지 못하는 것을 생각하면 그가 얼마나 나쁜 짓을 하려고 한다해도 그녀는 그 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으리라. 자신의 정체를 알게 되더라도 그는 그녀와 친구로 있어줄까 ― 그건 언제가 되었든 간에 너무나 두려운 생각이었다. 아야는 머리를 푹 숙이곤 그가 오기를 기다리면서 눈곱만큼도 움직이지 않는다. 안 오면 어쩌지 하고 늘 불안에 떠는 것이다. 하지만 물론 그가 온 후에 가는 건 생 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런 짓을 해서 미움받으면 큰 일이다. 그래서 언제나 그녀 는 만나기로 한 한 시간 전에 먼저 와서 기다리기로 하고 있다. 오늘은 갑작스레 만 나기로 한 거라서 10분 밖에 남지 않았지만―. 아야가 손목시계에 눈을 돌렸을 때 그녀의 앞에 그림자 하나가 와서 섰다. 아야는 마사키일 거라는 생각에 조금 붉어진 얼굴을 들었다. 그러던 도중에 얼굴이 굳어졌다. "------!" 서 있는 사람이 마사키가 아니었던 것이다. 기분 나쁜 빙글거리는 웃음을 띈, 흰머 리가 드문드문 섞인 무척이나 살찐 남자였다. 커다란 눈이 번들거리고 둥글었다. "--'카밀', 뭘 하고 있나?" 남자는 아야에게 째진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남자가 입고 있는 검은 가죽점퍼는 앞이 터 있는데도 불구하고 지금 당장이라도 막 뜯어질 것처럼 삐어져 나와서 싸구 려 마냥 반질반질 윤이 나고 있었다. 허리에는 주머니가 마구 붙어있는 벨트를 하고 있어 거기엔 핸드폰이 여러 개 꽂혀있었다. ".......아니요. 목적행동 중은 아닙니다." '카밀'이라 불린 아야는 시선을 땅 쪽으로 떨어뜨리곤 대답했다. "그럼 남자랑 밀회인가? 그거 참 좋은 신분이군." 살찐 남자는 비웃듯이 말했다. 웃는 데도 눈이 실눈이 아니라 마냥 댕그랗고 커다랬 다. 그는 배와 머리만 뒤룩뒤룩 살이 쪄서 무식하게 둥그런 데다 팔다리는 젓가락처 럼 가늘고 길기만 하니 상당히 건강치 못하게 보였다. 목은 숫제 보이지도 않고 윤 곽이 짙은 얼굴이라 툭 튀어나온 볼은 마치 위에다 쿠션 하나 덧붙여 놓은 양 보였 다. 그 때 마침 바람이 불었다. 남자의 반백인 장발이 바람에 나부끼어 그 아래 부분을 볼 수 있었다. 그 사내에게는 오른 귀가 없었다. 잘려나간 것처럼 덕지덕지 상처 자 국이 훤히 드러나 보였다. 남자는 얼른 머리카락으로 귀를 감추었다. "................." 아야는 고개를 축 숙이고만 있었다. 사내가, "고개 들어." 라고 말하자 아야는 남자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남자는 아야를 차갑게 내려다보았다. "그래서, /하/고/는/ 있나?" ".........아니요, 아직 입니다." "뭘 망설이고 있는 거야? 잽싸게 해치워버리란 말이다. 넌 거드름 피울 수 있을 만 한 입장이 못 돼." "...........네." "뭐, 그 쪽 임무는 서두를 필요는 없지만... 다른 쪽은 그렇지 않아. 조금이나마 실 마리를 잡은 게 있나?" "...........아니요. 그것은," 하고 아야가 말을 하려 했을 때 사내는 갑자기 그녀의 뺨을 주먹으로 냅다 갈겼다. 아야는 벤치에서 굴러 떨어져서 지면에 부딪쳤다. 입술이 찢어져 피가 배어 나왔다. "................" 그러나 그녀의 얼굴에는 고통도 분노도 비치지 않았다. "---잘 모르고 있는 모양인데, 카밀. 네가 뭔지 아냐? 앙?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면 넌 그냥 쓸모 없는 쓰레기일 뿐이야, 알겠나!" 남자는 천천히 아야 옆으로 다가가더니 옆구리에 발길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계속해 서 몇 번이고 발로 채이고, 그 때마다 아야의 몸은 꿈틀거리며 경련을 일으켰다. "................" 그래도 아야의 표정에 변화가 없었다. "알고 있는 거냐, 아앙? 알았나, 네가 불쌍해서 살려두는 게 아니야. 통화기구와 바 로 이 나한테 도움이 안 되면 지금 당장이라도 처리할 수 있어. 대신할 건 얼마든지 있단 말이다!" 남자는 아야의 옷깃을 움켜쥐고는 끌어당겨서 아야의 얼굴에 자기 얼굴을 맞댔다. "알겠나 -- 확실히 이 근처에 있는 게 틀림이 없어." 간신히 쥐어 짜내는 듯이, 칼을 품안에 억지로 쑤셔 넣은 것 같은 척 가라앉은 목소 리로 중얼거렸다. "어찌된 영문인지는 몰라도 이 근처의 여자아이들이 죄다 그 놈을 알고 있다. 무책 임한 소문이겠지만 어쨌든 간에 모두 다 알고 있단 말이다! 뭔가 있는 게 틀림없어. 그걸 조사하는 일이 바로 네 일이다. 남자와 섹스도 안 하면서 놀러 다니라는 게 아니야. 알겠나!" "잘- 알겠습니다. '스푸키E'." 아야는 감정이 없는 목소리로 조용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그 때, "---이봐, 무슨 짓이야!"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스푸키E라 불린 남자가 뒤돌아보니 타니쿠치 마사키가 서 있었다. "그 앨 놔 줘!" 라고 소리치며 마사키가 달려왔다. "...........! 아, 안 돼!" 아야는 동요하여 소리 질렀다. "응?" 스푸키E는 그런 그녀의 변화에 약간 눈썹을 찌푸렸지만, 곧 기분 나쁜 웃음을 지으 며 그녀를 내동댕이쳤다. "네 놈이 그 놈팽이인가." 마사키 쪽으로 몸을 돌리곤 자세를 취했다. "이 자식, 오리하타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 분노에 불타는 마사키는 그답지 않게 느닷없이 정권을 스푸키E에게 찔러 넣었다. "안 돼! 마사키---도망쳐!" 아야는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흐음.....!" 스푸키E는 공격을 피하곤 마사키의 등에 주먹을 꽂으려 했다. 그러나 마사키는 이미 움직임을 읽었기에 그가 피하자마자 몸을 웅크려서 배후 공격을 피하며 빠져나갔다 . "......!" 스푸키E의 얼굴이 긴장했다. 마사키는 곧 몸을 바로 세우고 자세를 잡았다. 그러나 긴장하기는 마사키 쪽이 엄청나게 심했다. (.......이 녀석, 방금 봐준 건데도.....간신히 피했는데....) 저런 움직임이 나올만한 체형이 아닐 터인데도 불구하고―. 상식으론 생각할 수도 없는, 이상한 상대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크윽." 마사키의 이마에 식은 땀이 흘렀다. 스푸키E는 쓰러져 있는 아야에게 말을 걸었다. "이봐, 이 녀석은 무슨 무술이라도 한 건가, 아니면 우리 통화기구의 적이 될 'MPLS ' 인가?" "------!" 아야는 새파랗게 질렸다. "그, 그럴 리 없습니다! 마사키는 보통 사람이에요!" 벌벌 떨며 그녀는 비명을 지르듯이 소리쳤다. 그 일이 마치 마사키의 생명과 관련 있는 것처럼. "그런가. 그럼 가라데인가 뭔가를 좀 건드려본 적이 있는 그냥 일반인이로군." "...........?" 마사키는 아야를 보았다. 이 두 사람은 혹시 아는 사이인가? 아야는, 마사키의 시선에 눈을 돌렸다. 그 한 순간의 틈을 잡아 스푸키E는 마사키에게 덤벼들었다. 눈에 잡히지도 않을 스피드로 눈 깜짝할 사이에 사이를 좁혀왔다. "-----와앗!" 본능적으로 위기를 감지한 마사키는 가드도 아무것도 안하고 무작정 공격을 피했다. 데굴데굴 땅으로 굴렀다. 그렇기 때문에 아야에게서 멀어지고 말았다. "---! 이, 이런!" 그는 얼른 그녀한테 다가가려 했더니 그 전에 스푸키E가 버티고 서 있었다. ".........여자친구를 버리고 혼자 도망가진 않겠다는 건가? 흐흥, 끝내주는 히어로 구만." "............." "MPLS라면 모르겠다만, ...,,보통 사람이라니 나 스푸키 일렉트로닉의 능력을 보여 주마." 그는 양손을 펼쳤다. 손바닥에 이상할 정도로 혈관이 더 올라 있었다. 붉고 푸른 선들이 종횡무진 손바닥 위를 달리고 있었다. 기분 탓인지, /거/기/에서 '치지직...'하고 희미한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한데.. .. "오, 오리하다! 도망쳐!" 닥쳐오는 위기감에 그는 버럭 소리 질렀다. 그러나 아야는 힘없이 고개를 숙이곤 일어서려 조차하지 않았다. "---젠장!" 이미 반은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마사키는 돌진했다. 스푸키E는 기분 나쁘게 빙글거리며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사키는 마음 속으로, (.....난 이제 몰라!) 하고 이를 꽉 물고 스푸키E의 무방비한 사타구니에 발차기를 날렸다. '여차하면 망설이지 말고' 치라는 가라데 사부의 말씀대로. 발끝은 남자라면 당연히 급소일 그 곳에 명중했다. 그러나---거기엔 그런 감촉이 느껴지지 않았다. "--엑..?!" 엉겁결에 적의 얼굴을 쳐다보게 되었다. 방금 전과 마찬가지로 변함 없이 웃음이 얼굴에 떠올라 있었다. "--안 됐구만." 다음 순간 지루박처럼 화려한 스텝으로 스푸키E가 움직여서 손바닥으로 마사키의 머 리를 꾹 눌렀다. 그 순간 마사키는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며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 ........왠지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온다. 그리고 어딘지 아주 멀리서 들려오는 듯한, 목소리.......... "부탁드립니다. 이 사람은 내버려두세요. 아직 해보지도 않았으니 가능성은 있을 지 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꽤나 빠져있는 듯 하군. 그러나 저 애송이가 네가 지금까지 해 온 짓을 알게 되면 아마 마음이 변하게 될텐데." "알고 있습니다.....그래도 도와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흠--인간도 아닌 네가, 어울리지도 않은 짓을 하는 군." ".....제발 부탁드립니다." "뭐, 상관없겠지. 조건부로 살려두도록 하지." "고맙습니다." "하지만 잊지 마라, 카밀. 네 본래의 사명은 /놈/을 찾아내는 것이니까. 저 /-/-/-/ 을...." ........거기까지 들리고 뒤는 또 뭐가 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는 묘하게 따뜻한 감촉 속에서 눈을 떴다. "응, 으응....?" 기지개를 펴며 눈을 뜨니, 바로 위에 오리하타의 얼굴이 있었다. "....이제 겨우 일어났네." 끄덕이며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따. "......우왓!" 나는 깜짝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주위를 돌아보니 늘 가던 공원이고 나는 어찌된 일인지 모르나 벤치에서 잠을 자고 있던 듯 하다. 그것도 그녀의 무릎 위에서---. "무-무슨 일이 일어났던 거야? 난 왜 이런 데서 자고 있었던 거지?" 고개를 저으며 생각 해보았지만, 내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건 오리하타한테 학교 합격했으니, 축하하자면서 전화 받은 것까지가 다였다. 그 뒤로 뭘 하고 있었는지 어느새 공원에 와 있던 건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아마, 일사병일 거야. 내가 왔을 땐 이미 누워있었으니까." 오리하타가 냉정하게 말했다. "그랬었나---이미 자고 있었어?" "응, 놀랬어. 죽은 줄 알았거든." "그래..........이거 미안한데. 그런데, 일사병이라고....?" 확실히 하늘은 맑게 개어 있지만 봄 초인 이맘때에 일사병이라니 들은 적도 없다. "미안해. 내 탓이야. 내가..." "아, 아니 그렇지 않아! 저기 내가 그냥 햇빛에 맛이 간 거 뿐이니까." 나는 당황해서 변명하려 했다. 왠지 모르게 그녀에겐 항상 한심한 모습만 보이게 되 는 성 싶다. "그, 그랬지. 축하하러 온 거였지. 뭔가 내가 해 주었으면 하는 건 없니? 말하는 대 로 다 해줄 게." 들떠서 나는 헤헤거리며 필사적으로 변명을 늘어놓았다. ".............." 그랬더니 그녀는 너무나 슬픈 듯한 표정을 짓고는 갑자기 벤치에서 일어나더니, 나 에게 등을 돌렸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그 뒷모습이 스러져 가는 햇빛에 휩싸여 역광 속에서 녹아 없어질 듯 보였다. 너무 나 덧없이 유령처럼 보이는....... "---왜, 왜 그래?" 일 분 가까이 그녀가 말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마사키는 분명 강하겠지." 등을 돌린 채 불쑥 말을 툭 던졌다 "응?" "처음 만났을 때--내가 도와주지 않았더라도 혼자서 어떻게든 할 수 있었겠지?" "........아, 아니. 꼭 그렇지만은.." 나는 어느새 무지하게 나쁜 일을 한 놈이 되어버린 듯 했다. "있지 마사키--하나, 부탁해도 돼?." 그녀의 등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 괜찮아---." "마사키. 여기 주변의 여자아이들과 친하지 않아?" "응? 에.. 그러니까, 저어 그게." "그 아이들한테서 들어 본 적이 있는지.....정체불명의 수수께끼의 사신에 대한 소 문에 대해서 말이야." "소문?" "어디서 나온 얘기인지는 모르지만... 여자아이라면 다들 한 번 쯤 들어본 적이 있 는 그 이름을." 그녀가 뒤돌아 섰다. 역광이라 그림자 때문에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알아 볼 수 가 없었다. "---'부기팝'이라는." ---------------------------------------------------------------------------- 이 게시물은 上遠野浩平의 'ブギ-ポップ·リタ-ンズ VSイマジネ-タ- Part1 '을 번역한 것으로, 다른 곳으로 옮기실 경우 제게 메일만 보내주시기 바라며, 상업 적인 용도로는 쓰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상당히 늦어서 죄송합니다. 격려메일 보내주신 분들 정말 고맙습니다. 에.. 늦은 이유는 2개월 전에 백수에서 '회사원'이 되는 바람에 갑자기 번역할 시간이 사라져버린 데 기인합니다. (아직도 적응중입니다만) 그래도 지금 조금 시간이 날 때마다 조금씩 해서 올릴 수 있게 되어 감격 하는 중이죠. 언제 끝날 지는 모르겠지만. 그럼 다음에 또. --오늘도 지구를 향해 돌진하는 네메시스. Weather Break : http://www.diveinto.net/nemesis/ (홈페이지 주소가 또 바뀌었습니다. 여기 들어가시면 부기팝 1권 완전판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