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 쓰기-번역란 (go ANC)』 712번 제 목:[번역] 부기팝 VS이미지네이터 Part1 3-1 올린이:네메시스(김미진 ) 01/10/28 18:33 읽음:248 관련자료 없음 ----------------------------------------------------------------------------- Ⅲ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의심을 품지 마라. 행여 의미도 알 수 없고 하는 보람이 없는 일로 보인다 할지라도 실제로 바로 그/대/로/라는 사실에 직면하는 것보단 낫다. 키리마 세이이치 (VS 이미지네이터) "음...그러니까, x가 허수일 때 y의 변역(變域)은..... 아, 안 풀려. 스에마, 모 르겠어. 나 정말." 3월도 끝이 가까울 무렵, 일단 사람이 줄어든 입시학원의 프리 스페이스에서 나는 친구인 미야시타 토카와 마주 앉아 참고서와 씨름하고 있었다. 우리 외엔 아무도 없었다. 수험생들은 입시가 일단락 되었고 내년에 시험을 치를 애들도 본격적으로 다니기 시작하는 건 다음 주쯤부터이다. 수험에 있어 에어 포켓 과 같은 시기였다. "시작해서 겨우 20분인데 칭얼거리기엔 너무 빠르지 않니?" "우.. 아니야. 터 이상은 안 돼. 수식 보고 있음 천장이 뱅글뱅글 도는 것 같아." "알코올 중독이 아니잖아..." 나는 쿡쿡 웃으며 말했다. 토카라는 아이는 좋게 말하면 천의무봉(天衣無縫)이요 나쁘게 말하면 적나라하게 솔직한 아이다. 모르겠으면 그냥 탁 까놓고 푸념을 내뱉 는다. "응, 가르쳐 줘, 카즈코짱. 이 거 도대체 어떻게 푸는 거야? 이 방정식은?" 그녀는 무척이나 괴로운 표정으로 너무나 미운 듯이 참고서를 샤프 끝으로 꾸욱꾸 욱 찔러댔다. 우리는 올해 고3이 된다. 1월부터 실질적으로 그러하지만 4월이 되면 이제 완전히 고등학생이라 하기보단 수험생이란 부류에 들어가게 된다. 토카와 만난 것도 이 입 시학원의 동계 강습에서였다. 고등학교도 같은데도 이제까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 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얼굴을 마주치는 건 입시학원에서 뿐이다. 눈치 가 빨라서 예전에 있었던 이러저러한 일로 인해 삐뚤어져 버린 나에게도 스스럼없 이 편하게 대해 준다. "으음, 이건 말이야--." 나는 몸을 불쑥 내밀고 토카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흐으으음." 토카도 상체를 테이블 위로 쭉 뺐다. 옆에서 보면 마치 머리카락 붙들고 싸우기 직 전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어 문득 우스워졌다. "--------하는 거야, 알겠어?" "으음.. 그럭저럭. 어느 정도는." "그럼 나한테 설명 해볼래?" "........." 토카는 쓴웃음을 지었다. 나는 미간에 주름을 잡으며, "안 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어." 라고 말했더니 토카는 쿡쿡거렸다. "아니, 왠지 미안한 걸. 이거야 꽁짜로 과외 받는 거나 마찬가지잖아. 머리 좋은 친구를 두면 이래서 좋다니까, 정말." "비행기 태워도 소용없어." "웃, 그러기야..?" "그래. 그럼 이 수식엔 지금 방정식은 어떻게 쓰지?" "으음....잠깐만!" "장기 두는 게 아니라니깐." --고달픈 시험공부이긴 하지만 요새 나는 이런 식으로 꽤나 재미있게 지내고 있었 다. 토카가 악전고투하고 있는 사이에 나는 눈을 돌려 학원 벽에 걸려있는 그림 한 장을 쳐다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손을 잡고 황야에 털썩 앉아 있는 영 알 수 없는 그림이었다. 터치는 성글고 붓 자국이 역력히 남겨져 있어 나는 상당히 케케묵은 그림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4월에 내리는 눈'이라는 제목의 추상화다. 작가는 아스카이 진. 이 학원의 강사라 한다. 이 그림은 무슨 상을 탔다던가 해서 학원에서 보아란 듯이 걸어놓고 있는 모양이다. ...나는 어떤 일로 인해 범죄 심리나 심층 의식 등에 흥미를 느껴 빠져들게 되었 기에. 이 그림을 보고도 무심코 정신 분석을 하게 되었다. (으음.. 하늘이 흐려서 그 이상 넓어질 수 없는 폐쇄적인 화면이네. 그런데도 왠지 밝아서 가볍다고 할까.. 황야라면 역시 공허감을 나타내는 것 같은데, 그건 그렇 고 나는 왜 이 그림에 이렇게 확신을 느끼는 걸까?) 사람들이 잔뜩 있는데도 누구 하나 눈을 마주하고 있지 않은 점도 신경 쓰이고. "묘한 그림이네." 어느 샌가 토카도 와 그림을 쳐다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기분 나빠, 난." 솔직하게 말하고 나서 다시금 생각해 보았다. 그래, 나는 이 그림이 싫다. 좋은 그림일지는 모르나 난 좋아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스에마의 취향이 아니라는 거야?" "아니, 아마도 이 그림의 작가가 나 같은 사람을 싫어하는 듯 해." 혹은 동류일지도 모른다. 그래, 이 건 동족혐오이다. "어려운 말은 잘 못 알아듣겠어." "--이상해?" "뭐 어때. 직관력이 있다는 거 아냐?" 나는 과거에 상당히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아 왔기 때문에 내 말에 토카가 끄덕여 준 것만으로 기뻤다. "토카 좋아해." "그 거 사랑 고백이야?" 우리는 장난치며 킬킬거렸다. 그러던 와중에 뒤에서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저어, 스에마 가즈코지? 신요학원의." 돌아보니 나와 동년배인 여자아이였다. "그런데, 넌?" "난 키누카와 코토에라고 해. 같은 신요학원 학생이고. 널 만나고 싶었어, 스에마 ." 양손을 벌렸다 모았다 하면서 무척이나 열심히 말을 걸려 노력하는 듯 했다. "왜?" "저어‥박식하다면서? 스에마가 이것저것 잘 안다고, 그 --아, 이 얘기 키노시타한 테 들었는데," "키노시타--라면 교코 말이야?" 키노시타 교코는 내 옛 클래스메이트였다. "그래! 그 애가 그러길, 스에마는 입도 무겁고 상냥한 데다 엄청 머리가 좋아서 믿 음직스럽다고!" 코토에란 아이는 '혹시 이걸로도 모자란 게 아닐까' 하는 필사적인 표정과 손짓발 짓을 다 동원해 얘기하고 있었다. "아니, 있지---." 난 그렇게 대단한 일을 한 적이 없다. 그저 말을 들어주고 몇 번인가 상담해 준 것 뿐이다. 정말 곤란한 상황에서 교코를 구한 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 "부탁이야, 스에마. 제발 진 오빠를 도와줘!" "? 누‥누구라고? 잠깐 토카도 무슨 말 좀 해 좌--. ‥응, 어라?" 옆을 돌아보니 어느새 토카가 없어졌다. 어느새 움직이더니 코토에 옆에 가 있었다 . "‥자, 들어요, 키누카와씨." 라고 말하며 자판기 커피를 들고 있었다. ---언제 사 온 거지? "고, 고마워요.." 코토에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곤 종이컵 커피를 홀짝거렸다. "조금 진정이 되었나?" 토카는 남자아이 같은 말투로 말했다. "네, 네, 미안해요." 코토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에게 상담하러 온 건가?" 하고 내 쪽을 턱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네, 저어, 죄송하지만---." "아아, 알았어. 훼방꾼은 사라져 주지. 단 둘이서 얘기하시게." "자, 잠깐만 토카!" "키누카와 씨는 자네에게 도움을 청해왔으니 우선 이야기라도 들어주는 게 어떨까. " 어쩐지 연극하는 듯한 말투로 토카는 우스운 듯이 혹은 미소짓는 듯 하기도 한 뭐 라 말하기 힘든 좌우비대칭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 사람이 토카가 아닌 것처럼 심지어 여자아이도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불안해졌다. "그럼." 하고 발길을 돌려 앗 하는 사이에 가버리고 말았다. "..............." 내가 여우에게 홀린 듯이 얼빠진 얼굴로 있으려니 코토에가 잽싸게, "저어, 얘기를..." "에?! 아아, 이제...알았다구. 교코 친구라면 이야기 정도 못 들어줄 것도 아니고. " 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스카이 진?" 나는 코토에가 입을 열자마자 처음 담은 이름에 놀래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럼 -- 이 그림 그린 그?" "응. 여기서 가르치고 있는 사람인데, 알아?" "뭐 이름 정도라면. 인생 상담을 잘 한다던가." 그러한 소문을 들은 적이 있다. 진로 상담하러 가면 아주 구체적인 답을 내어준단 다. 나나 토카는 가본 적은 없지만. 우선 미술 코스 강사하고 국립이과계 코스인 우리는 별 관계도, 없다. "그런 가봐...난 잘 모르겠지만." ""에 그러니까, 네가 그 사람 조카라고 했던가? 사촌동생이던가."" 그녀가 자기 소개할 때 워낙 요령이 없었던 탓에 난 아직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 고 있었다. "--부모님들끼리 별로 사이가 안 좋아서 나랑 진 오빠가 옛날부터 친했던 것도 아 니고, 그나마 제대로 얘기해 본 게 진 오빠 아버지 장례식이 처음이었지만 곧 알 수 있었어. 참 부드러운 사람이구나 하고." "하아." 하는 말에 맥락이 전혀 없었다. 남의 연애담을 계속 듣고 있을 형편도 아니고 해서 , "에, 그래서 그 사람이 어쨌다고?" "스에마 잘 알지? 그.. 사람이 이상해진다던가 하는 뭐 그런 거 말야." "그런 거란 말이지." 나는 무심히 그림 쪽으로 눈을 돌렸다. 사람들의 주위에 산양 몇 마리가 있어 황야 에 핀 장미 나무를 뜯어먹고 있다. 검은 산양이다. 장미도 잡목의 일종이니 꽃의 질만 안 따진다면 황야에서도 필 테니 그런 의미로 생각하면 전혀 이상하지만은 않 다. 그러나 검은 산양이라 함은 보통 ---악마의 알레고리이다. 그런 게 꽃이며 잎사귀 마저 통째로 우적우적 뜯어먹고 있는 것이다. 그림의 인상 자체는 결코 기분 나쁘진 않았다. ..오히려 목가적이고 온화한 분위 기였다. 그러나 역시 어딘가 께름칙한 구석이 있었다. "그가 갑자기 쌀쌀해졌다고?" "아니 그런 게 아니고.. 뭐랄까, 고민하지 않게 되었다고 할까?" "전엔 무지 고민했어?" "응, 엄청나게." 아주 강조해서 말했다. "이런 거 말해도 되는 말인지 모르겠지만 -- 유일한 가족이었던 아버지가 좀 이상 하게 돌아가셔서--." "어떤?" "그게...." "말하고 싶지 않음 말하지 않아도 돼. 나도 그런 쪽 얘기는 조금 질려서 말이지."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그랬더니 코토에는 감격한 표정을 지었다. "역시 스에마는 든든하구나. 엄청나게 침착해..." "--어쨌든, 고민하지 않게 된 걸 어떻게 안 건데?" 나는 칭찬 받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그/런/얘/기/로/ 감동 받았다손 치더라 도 어릴 땐 귀여웠지 하는 말을 듣는 것처럼 과거를 되씹는 듯 하여 진절머리가 난 다. "으, 으응." 코토에는 아스카이 진이라는 사람이 요즘 외박이 잦다고 했다. 아무래도 이 아이는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죄다 관찰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림에 아침에 돌아오더라도 '친구 집에서 잤어'라고 얼버무리기만 하고." "저어, 그건 말이야. '젊은 남자라면 있을 수 있는 예의 그런' 거 아냐?" "애인이 있는 듯한 느낌이 아니었어. 그리고 아침에 들어올 때 옷에 시꺼먼 얼룩이 져 있던 적이 있어서 --저건 혹시...해서."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거 혈흔이야?" "하지만 진 오빠에겐 상처 하나 없고 옷도 찢어진 데도 없어서.. 그러니까 그 ..있 잖아." "밤마다 돌아다니며 피를 뒤집어쓰고 있다는 거야? 그럼 마치-- 흡혈귀 같잖아." "경찰 같은 데 알려지면 진 오빠가 범죄자 취급당할 거고, 우리 아빤 진 오빠를 쫓 아낼 기회만 노리고 계시니 이젠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어서, 난..." 코토에는 얼굴을 손으로 덮으며 슬픈 듯 고개를 숙였다. 나는 왠지 (아, 이러면 안 돼..) 하는 기분이 되었다. 이따금 이럴 때가 있다. 가 슴이 두근거리고 몸이 한 쪽으로 쏠리면서 좀이 쑤셔온다. (이봐, 가즈코 - 너, 넌 이제 수험생이야! 쓸데없는 일에 매달릴 여유가 없다구!) 마음 속으로 자기 자신에게 빽 소리지르고 있었다. 하지만 -- 난 과거에 낯선 사람에게 죽을 뻔했지만 그 일을 모든 것이 끝난 후에나 알게 된 - 적이 있다. 그 탓에 나는 /무/언/가/를 갈망하고 있었다. 내가 직접 '어둠'과 맞서게 될 '대결'을. "저, 있지. 키누카와. 괜찮다면 그 일, 나한테 맡겨주겠어?" 정신이 들었을 때 난 이미 그런 말을 하고 있었다. ---------------------------------------------------------------------------- 이 게시물은 上遠野浩平의 'ブギ-ポップ·リタ-ンズ VSイマジネ-タ- Part1 '을 번역한 것으로, 다른 곳으로 옮기실 경우 제게 메일만 보내주시기 바라며, 상업 적인 용도로는 쓰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이제는 변명 조차 못 쓰겠습니다(;). 그냥 다만 번역 재개했고 어떻게든 해서 올해 안으로 Part A는 끝내놓겠습니다. 죄송합니다. 3-2는 되도록 빨리 올릴 수 있게 노력하겠습니다. (T.T) 그럼 다음에 또. --오늘도 지구를 향해 돌진하는 네메시스. Weather Break : http://www.diveinto.net/nemesis/ 『창작 - 쓰기-번역란 (go ANC)』 713번 제 목:[번역] 부기팝 VS이미지네이터 Part1 3-2 올린이:네메시스(김미진 ) 01/10/30 23:12 읽음:209 관련자료 없음 ----------------------------------------------------------------------------- '부기팝 리턴즈 VS 이미지네이터' Part1 3-2 * ‥그런 연유로 나는 아스카이 진이 쓰고 있다는 입시학원의 진로상담실로 홀로 갔 다. 코토에는 돌려보냈다. 같이 있으면 분명 거치적거릴 게 뻔하므로. 시기가 시기이니 만큼, 아무도 없었다. 허술하게도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아 니면 누가 훔쳐가도 별로 아까운 게 없는 모양이지?) 나는 실내로 들어갔다. 3개월 이나 다니고 있었지만 여기 오는 건 처음이었다. 좁다, 그리고 어둡다. TV와 영화 에서 본 듯한 취조실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사 쪽 자리에는 책상이 옆에 있고 그 위에 PC가 놓여 있었다. 전원을 넣어 켜보려다 그만두었다. 어차피 패스워드가 걸려 있을 테니까. (‥뭐 없으려나. 그 사람이 이상해진 원인이 될 법한 단서가 무언가가―.) 나는 책상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있는 거라곤 입시학원 팜플렛 시안이라던가 학생 의 학교별 성적에 대한 메모 등이 있을 뿐 아스카이 진 본인에 관련된 물건은 아무 것도 없었다. "으음..." 너무 안이했나? 이 얘긴 그럼 그리 간단하게 풀릴 문제가 아니란 소리? "아으‥." 나는 지쳐서 의자에 주저앉았다. 몸이 추욱 늘어지고 있다. 점점 늘어지더니 이제 는 스커트가 말려 올라갈 것 같기에 몸을 굽혔다. 그랬더니 책상 아래 구석에 허연 뭉치가 보였다. 마구 구겨진 종이조각처럼 보여서 흥미가 생겨, 기어 들어가 종이 를 집어들었다. 데생용 화지(畵紙)였다. 펼쳐보니 거기엔 어떤 소녀가 그려져 있었 다. 러프였던 듯 여분의 선이 남아있었다. ".............?" 나는 기묘한 느낌에 휩싸였다. 이 사람을 알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 소녀 를 나는 알고 있다. (누구더라-?) 생각하고 있으려니 복도 쪽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큰, 큰 일 났다....!) 나는 당황했다. 이 구획엔 다른 방이 없고, 온다 치면 이 진로상담실 밖에 없기 때 문이었다. (어쩌지? 아 그러니까, 끄응―.) 후에 생각해보니, 그냥 그대로 아무렇지도 않게 휙 나가면 좋았을 뻔했다. 문도 잠 겨 있지 않았겠다, 나도 버젓이 이 학원 다니고 있는 학생이고, 상담실에 와도 눈 곱만큼도 이상하지 않은 것인데. '왔지만 아무도 없더라', 그걸로 땡. ....이었을 텐데 나는 켕기는 게 있어 아까 기어 들어갔던 책상 밑으로 돌아와 버렸다. PC용 책상과 필기용을 겸하고 있는 책상은 방면적의 6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커서 나 정도면 충분히 숨을 수 있다. 서랍 그늘 밑에 옹송그리고 앉아 숨을 죽였다. 발소리는 문 앞에서 멈추고 이윽고 남녀 몇 사람이 들어왔다. "--하지만, 아스카이 선생님, 우린 진짜 친구에요. 미워하진 않는다구요. 그렇지, 유리코." "으, 응." ....보아하니 여자 둘에 남자가 하나다. 남자 쪽은 아마 아스카이 진 그 사람인 듯 싶었다. "--음, 말이 잘못된 모양이군. 거의 대부분의 사람은 서로를 미워하고 있지. 그건 너희도 열외가 아니라고 말할 생각이었다. 너흴 특별취급하고 있는 건 아니야." 아스카이 진의 목소리는 상당히 차분하고 고운 음색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여자아이들은 한 사람은 기가 센 타입에, 또 하나는 그 애의 말에 휘둘리는 적이 많겠다 싶었다. "그럼, 이제 시작할까-- 왜 그러지?" "저, 저어--정말 하는 건가요?" 기가 센 쪽이 말했다. 조금 떨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다 하고 있어. 되고 싶지 않은가? 그럼 무리하게 권하지 않겠다만. " "아뇨, 하겠습니다...." 라고 말한 쪽은 '휘둘리는' 쪽 아이였다. "유, 유리코?" "해달라고 해요, 미사키. 나, 이대로 그저 수험생으로 남고 싶지 않아.......!" "유리코..." "어떻게 하겠나? 이건 너희의 자유의지다. 내가 정하지 않아." "--확실하게 명령을 내려주세요, 그럼 전."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거지?) 나는 숨어있는 자기 입장도 잊은 채 알아들을 수 없는 회화에 열 받아 화를 내고 있었다. 아스카이 진이 차가운 목소리로 이어 말했다. "안돼. 이미지네이터에 강제는 없다. 영향을 주는 쪽에 설 텐가, 그저 세계로 흘러 가는 쪽이 되겠나, 둘 중 하나이다." 이미지네이터? 갑자기 아는 단어가 튀어나와서 깜짝 놀랐다. 그 이름은 내가 푹 빠져 있던 작가의 저작에 나오는 것으로, 방금 말한 게 그 것과 똑같은 의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나는 위험도 잊어버리고 얼굴을 빼꼼히 내밀어 의자와 서랍 사이의 희미한 틈새로 방안을 내다보았다. ".............." 미사키라는 소녀는 자기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다. "저 혼자라도 부탁드립니다, 아스카이 선생님." '유리코' 쪽이 말했다. 두 사람은 비슷한 머리모양에 얼굴도 비슷하게 생겼다. "흠?" 아스카이 진의 얼굴은 내 쪽에선 보이지 않았다. 흰옷을 입고 있는 듯 하다. 그는 천천히 이 쪽으로 다가왔다. 나는 가슴이 철렁했지만 그는 그대로 의자를 끌 어내지 않고 책상 위에 걸터앉았다. 내 눈앞에 그의 스마트하고 길다란 다리가 흔 들거리고 있었다. 남자 다리를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건 처음이었다. 의미 없이 얼 굴이 붉어지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럼 키타하라군 이외의 파트너가 필요하게 될 텐데." "찾아오겠어요!" "자, 잠깐만, 유리코!" '미사키'가 당황해서 말했다. 하지만 내겐 왜 그렇게 안절부절못하는 지 도통 알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잖아, 넌 할 생각이 없는 걸!" "그런 말을 해도..." "나가." "뭐?" "이제 아스카이 선생님과 같이 있을 자격 없어, 넌." 엄청나게 쌀쌀한 말투였다. 확실히- 진짜 서로를 미워하고 있다 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였다. "시, 싫어! 할 게요. 해 주세요, 선생님!" 그녀는 내 시선에서 약간 위쪽을 - 아마 아스카이 진의 눈을 보며 말했다. "----알겠네. 너희들의 결의를 존중하도록 하지." 아스카이 진은 일어섰다. 그리고 두 소녀는 느닷없이 가슴에 손을 갖다대더니 단추 를 풀고 상의를 냅다 벗어 던졌다. (아!! 아앗--!!) 나는 허둥댔다. 혹시 그러지 않을까 했지만 정말로 그 - 섹슈얼한 행위를 뜻하는 / 그/것/일 줄이야. 그러나 가슴을 드러낸 소녀들은 아스카이 진 쪽이 아닌 서로를 마주보고 섰다. 그리고 점점 다가서더니 상대방 어깨에 서로의 손을 올려놓았다. "--거기까지. 그대로 움직이지 마." 두 사람의 가슴이 닿을락말락할 거리까지 가까이 가자 아스카이 진이 말을 걸었다. 그는 내게 등을 돌리고 두 사람의 가슴 언저리에 손을 뻗은 모양이었다. 변화는 극적이었다. 두 소녀는 움찔하며 동시에 몸을 뒤로 젖히고, 입을 짐승처럼 쩌억 벌려 소리 없는 포효가 공간에 울려 퍼졌다. 각자의 어깨를 붙잡고 있는 손엔 힘이 너무 들어가 손톱이 파고들어 살이 찢기며 피가 배어 나왔다. --절대 그저 고통이나 쾌락에 의한 변화는 아니었다. 마치 일시적으로 인간이 아니 게 된 것처럼 - 무언가가 뜯겨 나간 듯한 표정과 움직임이었다. 아스카이 진은 그런 두 사람을 앞에 두고 조용히 평정하게 내겐 보이지 않는 곳에 서 무언가를 하고 있다. 그의 어깨가 조금씩 움직일 때마다 소녀들은 부들부들 몸 을 떨었다. 뭔가를 /건/드/리/고/있/다/는 -- 느낌이었다. 그러나 등의 움직임으로 볼 때 아스카이 진은 소녀들의 몸을 만지고 있지는 않았다. 그럼 뭘 하고 있는 거 지? "-----!" "-----!" 소녀들이 한층 더 심하게 경련 하더니 아스카이 진은 몸을 떼었다. 소녀들은 축 늘 어져 서로에게 몸을 기대었다. 온 몸이 땀 범벅이었다. 하아 하아 가쁜 숨을 내쉬 고 있었으나 그녀들의 얼굴엔 인간다운 지성이 돌아와 있었다.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며, "우후후." "우후후‥." 하고 웃었다. 나는 그 표정에 심장이 꽈악 죄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둘이 똑같아 보이는 것이 다. 얼굴 생김이 변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표정이 똑같은 만큼, 얼굴 자체가 비슷 해 보이던 방금 전보다 더 달라 보이지만, 표정은 - 얼굴 근육의 움직임이 나타내 는 감정은 아주 똑같은 것처럼 보이고 있었다. "어떤가, 진짜 친구가 된 기분은?" 아스카이 진이 말했다. "네--." "아주 좋아요--." 미소지으며 그녀들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더니 각자의 옷을 서로에게 입혀주기 시작 했다. "그럼 다행이군." 아스카이 진이 씨익 웃는 소리가 내 귓가에서 들리는 듯 했다. "아스카이 선생님, 이제 우린 아무것도 무섭지 않아요." "네, 이젠 지금 당장이라도 선생님을 위해서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을 듯한 기분이 에요--." 그녀들은 아스카이 진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의 손을 잡더니, 마치 중세 영웅이 야기에 나오는 한 구절처럼 두 사람은 공주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기사처럼 아스카 이의 손등에 키스했다. -나는 덜덜 떨리는 몸을 붙드는 데만도 벅차서 셋이 나간 뒤 3분 동안 움직일 수가 없었다. (뭐, 뭐지. 방금 전의 -- 저건 도대체 뭐야--?) 책상 밑에서 엉금엉금 기어 나온 나는 떨리는 손으로 아까 본 스케치를 다시 펼쳐 보았다. 이제는 기억해 낼 수 있었다. 스케치의 소녀는 내가 다니는 학교 학생이었다. 이름은 미나호시 스이코. 그러나 그녀는 이제 이 세상에 없다. 스케치는 아마 아스카이 진이 한 것일 테지만 -- 자살한 소녀와 저 남자는 도대체 어떤 관계일까? ---------------------------------------------------------------------------- 이 게시물은 上遠野浩平의 'ブギ-ポップ·リタ-ンズ VSイマジネ-タ- Part1 '을 번역한 것으로, 다른 곳으로 옮기실 경우 제게 메일만 보내주시기 바라며, 상업 적인 용도로는 쓰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3-2는 짧은 데다 스톡(...)이 있어서 빨리 끝낼 수 있었습니다. 에.. 4도 엇비슷하게 짧긴 한데 어떻게 될 진 모르겠고 아직 이 책이 100페이지 남짓 남았기 때문에 빨리빨리 안 하면 위험하겠군요. (올해도 이제 두 달 밖에 안남았으니, 휴우) 그럼 다음에 또. --오늘도 지구를 향해 돌진하는 네메시스. Weather Break : http://www.diveinto.net/nemesis/ 『창작 - 쓰기-번역란 (go ANC)』 720번 제 목:[번역] 부기팝 VS이미지네이터 Part1 4 올린이:네메시스(김미진 ) 01/11/15 00:42 읽음:462 관련자료 없음 ----------------------------------------------------------------------------- Ⅳ 어째서 어둠을 무서워하는가? 살아있는 것 자체가 이미 '앞이 캄캄한 어둠'이거늘. 키리마 세이이치 (VS 이미지네이터) 거리에는 두 가지 얼굴이 있다고들 한다. 뭐 그 말도 나름대로 일리는 있지만, 현 실에서는 그 두 얼굴은 딱 딱 잘라서 확실하게 갈려 있지는 않다. 여기까지는 안전 한 낮의 영역이고 저기부터는 위험한 밤의 세계라는 알기 쉬운 구분은 아쉽게도 존 재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지금 여기 햇살이 눈부시게 내리 쪼이는 역 앞 광장 벤치에 한 소녀가 앉아 있다. 트렌디셔널한 캐주얼 패션을 입고 있어 그냥 아주 평범한 중산층 가정 의 자녀로 보일 법한 여자아이이다. 그녀는 사람을 기다리는 듯 했다. 거리의 타운 지를 둥글게 말아 쥐고 신발 끝으로 연이어 콩콩 하고 지면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소녀를 더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면 아마 그 두드리는 패턴에 일정한 법칙성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리듬에 맞춰 정확한 간격으로 되풀이 된다. 좀 더 기다리고 있으려니 이윽고 한 소년이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 또한 아주 평범 하고 용돈이 두둑해 뵈는 부티 나는 복장과 머리스타일이었다. "여어, 호랑이를 기다리고 있나?" 헌팅이라 하기엔 약간 부자연스러운 감이 들지만 다른 사람들이 들었더라도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을 말이었다. "응, 13시에." 소녀는 끄덕였다. 그러나 그 때는 이미 오후 3시를 넘은 시각이었다. "오케이, 이 쪽이야." 소년은 턱으로 가리키며 소녀를 재촉했다. 두 사람은 광장을 떠나갔다. 그 장소에는 파출소도 있어 싸움 하나 일어나지 않을 법한 장소였다. 거기서 기다리기로 한 건지 미리 만날 약속을 했는지는 모르나 어 쨌든 둘은 일행처럼 거리로 갔다. 젊은 커플로 밖에 보이지 않는 데다 튀는 구석도 없어 어디에나 있을 법한 젊은이들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이윽고 그들은 인기척이 뜸한 도시재개발구역으로 접어들었다. 아직 언제 부술 지 모르는 낡고 더러운 빌딩과 뭘 하던 가게였는지 알 수 없는 다 스러져 가는 건물들 이 늘어서 있었다. 구역 전체가 로프로 둘러싸여 있고 '출입금지' 푯말도 세워져 있었지만 두 사람은 무시하고 로프를 넘어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건물과 건물 사이의 그늘진 곳으로 돌아가니 남자 몇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왔냐." "오늘은 한 사람인가?" 남자라고는 하나 그들 또한 채 스물도 안된 앳된 인상이었다. 그녀를 데리고 온 소 년도 그들 편으로 가 소녀를 힐끔힐끔 쳐다보는 쪽에 섰다. ".........." 남자들의 시선을 소녀는 홀로 받아넘겼다. "근데, 아가씨. 얼마나 필요해?" 남자들 중 제일 연장자로 보이는 가죽점퍼를 입은 녀석이 역겨운 미소를 띄우며 말 했다. "/있/는/만/큼/." 그녀는 감정이 깃들지 않은 목소리로 툭 내뱉었다. "--뭐?" "/당/신/들/이/가/지/고/있/는/만/큼/전/부/다/달/라/고/." 소녀의 딱 부러진 말투에 남자들이 코웃음을 쳤다. "이봐, 아가씨. 우리 누군지 몰라? 똑바로 알고 있는 거 맞아?" 가죽점퍼가 말했다. "알아. 마약 밀매상의 창구계(窓口係) 아니야? 말만 맞으면 약을 판다는." 소녀가 덤덤히 말했다. 꿀리지도 않고 부자연스럽지도 않은 침착한 말투였다. "창구계? 생판 모르나 보구만.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만 해도 몇 백만이야. 돈 있어?" "없어." 소녀는 태연히 대답했다. 남자들이 이 /엄/청/나/게/단/정/적/인 말에 입을 쩌억 벌렸다. "....지금 뭐라고 했냐? 앙?" "돈은 없어-- 하지만 당신들이 갖고 있는 약은 전부 내가 가져가겠다고 말했어." 소녀의 목소리는 냉랭하다고도 말할 수 있으리라. "---자, 장난 하냐!" "이 계집애가!" 남자들은 소녀에게 덤벼들었다. 소녀는 뒤로 휙 돌더니 냅다 뛰어나갔다. "거기 서!" "도망칠 수 있을 것 같냐!" "그럴 필요는 없어." 소녀는 내뱉고 도로를 꺾어 질렀다. 그녀를 쫓아 맨 앞에서 달리던 남자가 골목을 돌자마자, 바로 뒤로 튕겨 날아갔다. "-----!" 다른 자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들 앞에 기묘한 모습을 한 이물이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인물은 검은 통 같은 모자를 쓰고 시꺼먼 망토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얼굴엔 화 장까지 하고, 검은 루즈가 허연 얼굴에 덧발라져 있었다. 엄청 쪽팔리는데다 바보 멍청이 같은 모습이었다. "에, 에‥그러니까 쓸데없는 저항은 그만 둬. 자네들에게 승산은 없네." 검은 모자는 더듬거리며 말했다. 아까 남자가 나가떨어진 이유는 물론 이 기인(奇人)이 내지른 정권에 정통으로 맞 은 탓이었다. 남자들은 놀라 자빠질 뻔했다. "이름은 부기팝이다-- 그렇게 됐어." 기인은 묘하게 자신 없는 말투로 말했다. "---하아?" "코스프레냐, 그건?" "진짜 모르나 보네. ---역시 여자아이들만 알고 있나본데." 기인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뭐가 어째?" "아니, 그냥 이쪽 사정이야." 아까 도망친 소녀가 기인의 등에 달라붙었다. "부기팝, 이 사람들 나쁜 사람이야. 해치워 줘." ....대사가 책 읽는 수준이었다. "장난도 작작 좀 해, 이 자식들이 정말!" 남자들이 덤벼들었다. 몇 사람은 싸움에 단련이 된 자들로 제법 한 가닥하는 놈들이었다. ...그래서 봐줄 수가 없었다. ---전원을 쓸어버린 후, 검은 모자의 기인은 뻗어있는 남자들의 주머니에서 비닐봉 지에 싸여진 마약 봉지를 털어 냈다. 척척 자기 포켓포치에 넣어버리곤 그 자리에 서 얼른 도망쳤다. 피로 때문이기보다는 초조해져서 헉헉 숨을 몰아쉬며 달려가던 '그'는 인기척이 거 의 없는 가드 밑으로 뛰어갔다. 거기엔 아까 그 소녀 - 오리하타 아야가 기다리고 있었다. "수고했어, 마사키." 오리하타는 그렇게 말하며 미소지었다. 그리고 검은 모자의 기인은 - 즉, 나 타니 구치 마사키는 쪽팔리는 모자를 벗어 던졌다. "---더워. 이 옷은." 나는 툴툴거렸다. '이런 거 입고 싸우는 건 너무 힘들다구!" "하지만 그런 모습이라던 걸, 소문으론." 오리하타는 내 등뒤로 돌아서 망토를 벗겨주었다. "여자아이들의 소문이 다 그렇지 뭐. 실제로 그러면 진짜 어떻지 생각해보지도 않 았을 테지- 싫어진다니까." "자, 타월." 오리하타가 건네준 타월로 나는 얼굴을 쓱쓱 문질렀다. 화장이 대충 닦이니 개운 하다. ‥물론 나는 오리하타가 역 앞 광장에서 기다리고 있었을 때부터 쭉 미행하 고 있었다. 그녀가 재개발 구역에 들어갔을 때쯤, 얼른 구석에서 옷을 갈아입고 입 술에 검은 선을 그려 넣었다. 일부러... 뭐 하고 있냐구? 이를테면.. 정의의 용사다. 거리에 들끓고 있는 나쁜 놈들을 응징하고 다닌다. 내 겐 난처한 일이지만, 그게 오리하타의 희망이었다. 그녀는 개 허리춤에서 포치를 풀어 속에 든 마약을 꺼내 봉지를 뜯어선 전부 수챗 구멍에 버려버렸다. 하얀 가루는 쥐색 구정물에 녹아 점점 사라져 간다. (몇 백만이라 했던가...) 나는 멍하니 그런 걸 생각하고 있었다. 아니, 아깝다던가 돈이 필요하다던가 하는 게 아니고, 그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도 그 금액은 충분히 '어떤 일을 할 만한 동 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마사키는 히이로네." 오리하타가 툭 내뱉았다. ".....으응." "네 덕에 아마 백 명 가까운 사람들이 약에 물들지 않게 되었어. 대단해." ‥말투가 어째 책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원래부터 좀 그런 구석이 있어 구별 하긴 힘들었지만. 영 모를 일이다. 아까 접선할 때 암구호 등은 그녀가 이미 알고 있던 것이다. 도대 체 이 애는 어디서 그런 걸 알아오는 건지, 물어봐도 '의외로 다들 알고 있던 걸' 이라며 얼버무릴 뿐이다. "어머? 손에--." 오리하타는 내 왼손에 시선을 떨구었다. 손에 약간 쓸려서 피가 조금 배어 나와 있 었다. "아아, 별 거 아냐." "미안해, 내 탓이야." 라며 그녀는 내 손을 부드럽게 감싸쥐고 가져온 구급함으로 손을 치료해주었다. 손은 보드랍고 얼굴을 가까이 대고 있는 그녀의 숨이 손목에 가 닿았다. 사람들이 지나다니지 않는 가드 밑에서 여자아이와 단 둘이서 딱 달라 붙어 있는 데다, 두 사람만의 비밀을 공유하고 있는 데다 더욱이 내가 먼저 그녀의 손을 잡아본 적도 없다. 그리고 정신이 들었을 땐 정의의 용사가 되어있었다. ‥그런데 난 왜 이런 걸 하고 있는 걸까? * "---'부기팝'이라는." 그 때 그녀는 그 이름을 처음으로 입 밖에 냈다. 부기팝을 아느냐고 내게 물었다. "들은 적이 없는데... 그 게 뭔데?" "사신(死神)이래. 킬러라던가." "엥..?" 나는 벙 쩌버렸다. 그녀는 그에 이어 말했다. "어디까지나 소문에 지나지 않는, 괴담에 나오는 인물 같지만, 그 소년은 사람이 가장 아름다울 때, 더 이상 추해지지 않도록 죽인다고 하는 존재야." ".....하아." 확실히 여자아이들이 할 법한 괴담의 인물 설정이었다. 미소년임에 틀림없다. "그게 어쨌다고?" "마사키, 너 --/해/보/지/않/겠/어/?" "----에?" "너라면 할 수 있을 거야. 강한데다 키가 조금 클지도 모르겠지만, 별 차이 없을 거고." "자, 잠깐만 기다려! 키, 킬러라니...!" 나는 깜짝 놀랐다. 말도 안 되는 얘길 하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 "아니, 킬러는 어디까지나 보통 사람들의 풍평(風評)에 지나지 않아, 실제로 하는 일은 살인뿐만이 아니고 사람을 도와준다던가 하는 쪽 일이 더 많아." 그녀는 마치 그가 실제 인물인 양 이야기했다. "사, 사람을 도와? 뭘 할 생각인데?" "아무거나." "아무거나---?" "할 수 있는 일이면 뭐든지 아무거나 말이야." ".........." "넌 강해, 마사키. 너라면 부기팝이 될 수 있어...." 그녀는 나를 응시했다. 나는 상당히 난처해져서 입 다물고 가만히 있었다. 그랬더니 갑자기 그녀가 시선을 피했다. "....미안해. 내가 잠시 어떻게 된 모양이야. 너한테 그런 부탁을 할 수 있는 입장 이 아니었는데---." 머리를 푹 숙이고 어깨를 떨었다. 웅크리고 있는 그 모습이 무척이나 조그맣게 보 였다. 나는 왠지 가슴이 옥죄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그....부기팝 인지 뭔지가 되면 넌 어떻게 되지? 즐거워질까?" 나는 침묵에 견디지 못하고 그렇게 말하고 말았다. "....괜찮아?" "알았어. 할 게.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거라면." "--정말?" "응." 네가 기쁘다면, 이라는 말은 차마 부끄러워서 말하지 못했다. "---미안해, 마사키." 그녀는 두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정말로 미안해. 말도 안되는 부탁을 해서--." "아니야. 괜찮다니깐. 친구잖아?" "미안해." 그녀는 늘 슬픈 듯이 내게 사과하기만 하고 난 그걸 감싸줄 때마다 기묘한 차원으 로 한 발 앞으로 다가가는 듯한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그 때 아직 부기팝이란 놈이 그렇게 쪽팔리는 모습으로 다닌다는 걸 몰랐다. 오리하타가 DIY 숍에서 사온 암막(暗幕) 비슷한 무지 큰 검은 천으로 만든 망토와 모자를 보고 벙 쩌 버렸다. "-이, 이 걸 길거리에서 입는단 말이야?" "'출현'할 때 입는 거야. 보통, 맞아- 스포츠백에라도 넣어두면 돼." 라며 나이키 백을 내놓았다. "자, 잠깐만. 이거 꼭 입어야 해?" 이건 완전히 한 물 간 스트리트 퍼포머다. 하지만 허둥대는 나에게 오리하타는 "응 , 그렇게 입고 다닌다는 걸." 하고 딱 잘라 대답했다. 찰랑찰랑한 장식이 붙어 달린 망토를 받아들며 나는 자신이 당치도 않은 말도 안 되는 일을 떠맡았구나하고 새삼 꺠닫게 되었다. 박음질은 썩 잘되어있었다. 틈새도 꼼꼼히 막아놓았다. 천은 두 겹으로 수제라곤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잘 만들어져 있었지만, 그게 오히려 더욱더 현실감을 더해 한증 더 부끄럽게 만들었다. "--근데, 아는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하지...." 그러나 그 떄 나는 아직 자각이 모자랐던 듯 싶다. 오리하타는 지극 당연하다는 듯 이 "아아, 그런 거라면 걱정하지마. 화장도 할 테니 다른 사람들은 몰라볼 꺼야." ...그런 연유로, 부기팝이 거리를 배회하는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맨 처음에는 밤 에 뒷골목을 혼자 걸어가고 있을 때 걸려드는 치한을 내가 때려눕혔다. 왠지 내가 여자로 남 등쳐먹는 사기꾼이 된 듯한 감이 들었지만, 그녀가 위험한데 안나갈 수 야 없었다. "---역시, 잘 하네. 마사키는 대단해." 그녀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 나도 남자인지라 썩 기분 나쁘진 않았다. 그리하여 굴 러가는 돌을 멈출 수 없는 것처럼 지금까지 계속 부기팝 행세를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 일을 하기 전까지 나는 이 거리가 이 정도로 위험한 곳이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미끼'인 오리하타에게 아주 간단하게 고기들이 걸려들어 온다. 도대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일본>이란 나라도 다른 나라 에서 생각하는 만큼 안전하진 않은 모양이다. 우리 공수 사부는 일본에서 폭력사건 을 일으키는 바람에 졸지에 외국을 방랑하는 신세가 되었다는 사람이긴 하지만. 이 렇다면야 그 정의감 센 사부가 사건에 휘말려든 것도 무리도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 또한 들었다. 제자인 내가 이런 짓하고 다니는 걸 알면 무지 화내리라는 것도 . 하지만 왜 오리하타가 내게 이런 일을 시키는 진의(眞意)는 아직도 영 모르겠다. 허나 점점 위험하게도 내가 이 '장난'에 재미를 붙이고 있는 것도 자각하고 있었 다. 오리하타와 같이 있을 수 있다는 것 외에도--. "‥슬슬 개학인데, 어쩌지?" 부기팝으로 변장하기 위해 뒷골목에서 그녀가 화장을 해주고 있는 사이 나는 물었 다. "..............." 그녀는 대답하지 않고 내 이마에 스킨 크림을 바르고, 그 위에 새하얀 파운데이션 을 통통 두드려댔다. "언제까지나 이렇게 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잖아." "..............." 오리하타는 묵묵히 아이라인을 그었다. 그녀의 얼굴은 내 바로 눈앞에 있었다. 입 술을 내밀면 키스할 수 있을 만한 거리이다. "어떻게 할까?" "..............." 부기팝의 얼굴이란 게, 무지하게 안색이 나쁘다는 모양이다. 눈 밑에 기미가 낀 마 냥 새파란 섀도가 들어간다. 거기다 모자를 눈가까지 푹 뒤집어쓰는 지라 정말 사 람이 아닌 망령(亡靈)이란 느낌이다. 실제로 내가 밤길에 나다니기라도 하면, 깜짝 놀라 벌렁 자빠질 게 틀림없다. "안 그래?" 내가 끈질기게 물고늘어지니, 그녀는 눈을 피했다. "---마사키." "왜?" "내가 해 주었으면 하는 건 없어?" "응? 뭐야, 갑자기." "뭐든지 다 할게. 뭐든 말하는 데로 다 들을 게. 마사키가 하고 싶은 일이라면 뭐 든지 다 할테니까--." 시선을 떨구고 봇물 터지는 듯한 기세로 필사적인 어조로 단숨에 말을 토해냈다. "..............." "그걸로 충분하지 않다는 거 잘 알고 있어. 그렇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 든지 할 테니까. 마사키가 바라는 것 모두 다, 나에게 바라는 것 모두 다 해 줄 게 ----." 이렇게 필사적인 그녀를 보는 건 처음이었다. 희미하게 떨리는 옆얼굴이 너무나 덧 없어 보여 내 가슴은 갑자기 무척이나 뜨거워졌다. 아마도-- 감동했던 게 틀림없다 . 의도와는 다른 의미로. "....그럼, 조금만 더 '부기팝'을 계속해 볼까." 나는 어깨를 으쓱대며 말했다. 그녀가 화들짝 놀란 듯이 고개를 들고 내 얼굴을 쳐 다보았다. "‥어째서?" "아니, 실은 나도 마침 이 일에 재미 붙인 참이거든." 뭐 거짓말은 아니잖아, 하고 마음 속으로 끄덕였다. "마사키--." 오리하타의 양손이 일순 내 쪽으로 뻗어왔다. 하지만 결국 그 손은 허공에서 흔들 리더니 힘없이 떨구어졌다. "‥마사키는 바보야." 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래." 나도 쓴웃음을 지었다. 될 대로 되라, 무책임하게 생각하면서. * ‥결국 그 날은 공치는 날이었다. 아야가 몇 번이고 으슥한 곳을 돌아다녀도 아무 도 걸려들지 않았다. "약간 안심이 되네. 언제나 덤벼들기만 해서야 다니기도 무섭잖아." 마사키는 그리 말하며 옷을 벗고, 늘 그랬듯이 아야가 그 옷을 받아들었다. 옷 보 관은 그녀 담당이다. 찢어진 곳과 뜯어진 데를 손보기 위해서지만, 오늘은 깨끗했 다. "마사키 넌, 나를‥." 새까만 한밤중에 뒷골목에서 아야는 마사키에게 물어보려 했다. 그러나 마사키는 얼굴을 수건으로 훔치고 있던 와중이라 목소리를 못 들은 모양이었다. "왜? 무슨 말 했어?" 클린징 크림을 꼼꼼히 떨궈내며 그는 반문했다. "--아니야. 아무 것도 아니야." 아야는 막 입에서 튀어나올 듯한 말을 집어 삼켰다. '날 어떻게 생각해'라는 말을, 하지만 그 대답을 듣는다해도, 아야에겐 어떻게 할 수도 없는 것이다. 자신은 그를 속이고 있으니까. "그럼 돌아가자. 바래다 줄게." "으응, 괜찮아." "말도 안 되는 소린 하지마. 그렇게 위험한 꼴을 다 봤는데 너를 혼자 보낼 수 있 을 것 같아?" 마사키는 웃으며 말했다. 이 것은 그들이 으레 주고받는 대화였다. 그리고 역 앞 버스 터미널에서 심야버스에 타고 두 사람은 아야가 사는 아파트로 향했다. 그 사이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야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서였고, 마사키 쪽은 말을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듯 했다. 아야가 그 쪽을 힐끔 쳐다보면 언제나 그녀를 보며 싱긋 웃고 있다.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는 듯이. 아야는 그의 솔직한 웃음을 볼 때마다 괴로워졌다. 어떻게 해야 될 지 알 수 없어 진다.... "‥미안해." 덜컹거리며 달리는 버스의 주행소음에 섞여서 조그맣게 중얼거리니 그는 '응?'하고 고개를 기울였다. "무슨 말했어?" "으응, 아무 것도 아니야." 그녀는 그저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버스가 이윽고 정류장에 닿았다. 두 사람은 버스에서 내려 아파트의 엘리베이터 앞까지는 마사키도 같이 간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그는 늘 거기서 걸음을 멈추고 만다. "그럼 잘 자." "........잘 자." 아야는 어떻게 말해야 될지 모르는 채 그와 헤어진다. 부기팝 옷이 들어간 나이키 백을 떨군 그녀를 태우고 엘리베이터가 올라가기 시작 했다. ".....크윽." 그녀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 때 그녀의 윗도리 안에서 진동음이 울렸다. 휴대폰에 전화가 걸려왔다. 그녀는 흠칫 떨었지만 곧 전화를 받았다. "--네, 오리하타입니다." [카밀인가.] 언제나 그렇듯이 그 목소리는 차디찼다. "네, 네." [아직 놈은 걸려들지 않았나?] "--지금 상태론 아무런 반응도 없습니다." 아야는 희미하게 떨고 있었다. [흐음, 역시 가짜를 내세운 정도의 안이한 도발에는 넘어가지 않는다는 거군. --그 럼, 이 작전도 슬슬 끝낼 때가 되었나.]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아야는 등골이 얼어붙을 정도로 기분 나쁜 예감에 휩싸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목소리는 잔혹하게 고했다. [타니구치 마사키에겐 다른 역할로 끝을 맺게 해주지. 이제 슬슬 잘라버릴 때다.] "--------!" [여차하면 이 구역 전역의 '소독'도 생각해 볼 문제이고, 너에겐 사태 추이에 따라 지시를 내리겠다. 그 때까지 현상유지 하도록.] 통화는 일방적으로 끊어졌다. "..............!" 아야는 멍하니 그저 서 있었다. 이윽고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문이 열렸지만 다리가 덜덜 마구 떨리는 바람에 그녀 는 내릴 수가 없었기에, 문은 다시 그녀의 앞에서 닫혔다. ---------------------------------------------------------------------------- 이 게시물은 上遠野浩平의 'ブギ-ポップ·リタ-ンズ VSイマジネ-タ- Part1 '을 번역한 것으로, 다른 곳으로 옮기실 경우 제게 메일만 보내주시기 바라며, 상업 적인 용도로는 쓰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4장 끝, 5장 시작입니다. 3, 4장은 막간 혹은 간주라는 느낌이고 1, 2, 5장이 본편입니다. 4장 번역은 저번 주에 끝냈는데 타이핑이 늦어서 지금 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 속도면 다행이긴 한데(;;).... 에.. 5 장은 좀 양이 많아서 늦어질 것 같지만 아마 11월 안에는 5-1은 올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신은 없지만. 그럼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번역에서 이상한 곳이나 잘못된 곳 지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덧말, 너무 이상한 곳이 많아서 다시 고쳤습니다. 정신 없이 올리느라 엉망진창이군요. 이만. --오늘도 지구를 향해 돌진하는 네메시스. Weather Break : http://www.diveinto.net/nemesis/ 『창작 - 쓰기-번역란 (go ANC)』 730번 제 목:[번역] 부기팝 VS이미지네이터 Part1 5-1 올린이:네메시스(김미진 ) 02/04/07 14:23 읽음:129 관련자료 없음 ----------------------------------------------------------------------------- Ⅴ 마음이 편해지는 건 간단한 일이다. 혼을 없애면 끝난다. 키리마 세이이치 (VS 이미지네이터) 전학 온 그를 처음 보았을 때, 당시 중학교 3학년이었던 아노 신지로는 가 슴이 꽈악 죄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한 눈에 반해버린 것이다. "타니구치 마사키야. 잘 부탁해." 그렇게 말하며 환하게 미소짓는 그의 눈동자에 신지로는 빨려 들어갈 듯한 느낌을 받았다. 숨이 턱 막히고 목이 컥 막혀왔다. 그러나 그 다음에 반 여자아이들이 '꺄아아아!'하는 환성을 지르는 순간, 신지로는 /퍼/득/ 정신을 차렸다. (....내가 방금 무슨 생각을 한 거지?) 지금까지 자신은 딱히 별난 구석이 없는 아주 평범한 소년이라 생각해왔던 신지로는 자신의 가슴속에 생겨난 감정을 자신도 이해하지 못했다. "어이, 저 자식..!" 뒷자리에 앉은 남자아이가 여자아이들의 새된 환성에 약한 미소를 띄운 타 니구치 마사키를 씹으니 신지로도 당황해서, "아, 아아, 진짜 열 받네. 되 게 거슬리는 놈이 왔는걸." 하고 끄덕였다. 그렇게 말을 해놓으니 정말로 그게 진짜 자기 본심인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저 눈에 거슬리는 놈, 일 뿐이다. 그러나 그를 보면 심장이 크게 뛰었다. 이건 도대체 뭐지? 타니구치 마사키는 '잘 부탁해'라며 쑥스러워 웃는 것처럼 어정쩡한 표정을 지으며 그 모습은 곱상한 얼굴인 그에겐 별로 어울리지 않았으나, 그래도 여자아이들은 '귀엽다!'며 또 탄성을 질렀다. 신지로는 꽤나 성이 받혀 어 찌할 수 없었다. 실은 그 감정의 정체는 마사키가 어설프게 미소지으며 얼 버무리던 모습이 참을 수 없을 만치 불쾌했다는 것이었다. 네겐 어울리지 않아, 그런 짓 하지마--라는 그 마음속의 외침은 이유를 알 수 없는 공격충 동이 되어 신지로의 마음 속에 똬리를 틀었다. 타니구치 마사키는 어느새 교내 여학생들 사이에서 아이돌 적인 존재가 되 고 말았다. 원래대로라면 그들이 다니고 있는 중학교보다는 레벨이 높은 학 교에 가 있었을 소년이었다. 마침 고교 입시 시기이기도 했기 때문에 여자 아이들은 몰려들어 마사키에게 공부하는 걸 도와달라고 부탁하곤 했다. 그 리고 마사키는 그 애들을 부탁을 대부분 거절하지 않았기에, 결과적으로 학 교에 있는 동안엔 줄곧 여자아이들에게 에워싸여 있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젠장.) 신지로는 그 모습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며 언제나 분통을 터트렸다. 자기도 저런 식으로 그와 말할 수 있다면... 하고 멍하니 생각하고 있으려니, "야, 정말 열 받게 하는 자식 아냐, 저거?" 옆에 있던 남자아이가 그에게 말했다. "에?" 깜짝 놀라 그 쪽을 보니, 그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엄청나게 험악한 눈초리로 째려보고 있더만, 열 받았지?" "응, 으응..." 신지로는 어느 샌가 전교에서 가장 마사키를 싫어하는 녀석으로 찍혀버렸다 . 실제로 싸우거나 뭘 한 적은 한 번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런 소문이 돌 고 있었다. 여자아이들에게도 미움받고 있었다. "아노 말야, 성격 나쁘지." "맞아 맞아. 삐뚤어졌다니까." "꼴 보기 싫게 시리, 정말 한심해." 라는 둥 수군대며 일부러 들으라는 듯이 하는 얘기에 신지로는 화가 났다. 마사키도 신지로가 자길 싫어한다고 여기는 듯 했다. 그게 가장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래도 그는 아직 자기 마음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거기다 그는 왜 자신이 타니쿠치 마사키를 이토록 의식하고 있는지조차 아직 모르고 있 었다. 동성(同性)이기 때문이라는 상식적 판단이 너무나 뻔한 자신의 감정 을 스스로도 파악할 수 없게 만들어버렸다. 게다가 마사키 이외의 남성에게 는 전혀 그러한 감각을 느낀 적이 없었던 점도 그가 자각할 수 없었던 이유 중 하나였다. 그걸 알 수 있을 정도의 여유가 그의 생활에는 없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이 감정의 정체를 그가 확실히 자각했다 해서 그 사실이 인정될 수 있는 장소는 지금 그의 생활환경의 그 어디에도 없었다. 반 녀석 들이 안다면 그는 곧 변태 취급당할 게 틀림없다. 지금도 그다지 질이 안 좋은 놈으로 여겨지고 있는 마당에 그 보다 더한 인간 취급조차 못 하게 될 것이다. 만약 부모님이 아신다면, 그가 자칫 잘못하면 정신병원 행이 될지 도 모르는 문제이고, 그렇기에 그는 이 감정의 정체에 대해 깊이 생각하려 하지 않는다. 아무 것도 모르는 채 감정만이 부풀어오르는 탓에 무의식적으 로는 괴로워서 어찌 할 수도 없는 상태였다. 어쨌든 마사키와 말하고 싶다. 가까이 가고 싶다. 왠지 모르지만 어떻게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우우우‥‥.) 삐뚤어진 그는 의미 없이 다른 사람에게 버럭 소리를 지르던가 선생님에게 대드는 등 성급해져 쉬이 싸움으로 번지곤 했다. 어느 날 그는 생각다못해 같은 서클 후배들을 부추겨서 마사키를 패도록 꼬셨다. 진작부터 그들도 '유학생' 타니구치 마사키가 맘에 안 들었던 모양 인지 아주 간단하게 걸려 들어왔다. "헤헤, 좋습니다. 해치우죠." "전부터 그런 개자식은 재수였는데 잘 됐네." "이 기회에 그 바람둥이한테 제대로 쓴맛을 보여주겠습니다." "부탁한다." 라고 신지로는 웃어 보였지만 실은 그는 도중에 자기가 마사키 를 도와줄 걸 노리고 일을 꾸민 것이다. 어떻게든 해서 친구가 되고 싶었다 . 그러기 위한 계기를 만들기 위해서라면 그 뒤에 후배들에게 무슨 빈축을 사든 아무 상관없다 --그는 고심 끝에 그렇게 결심했다. 그 '작전'은 어느 날 방과후에 실행에 옮겨졌다. 학교에서 돌아가는 마사 키를 미행하여 그가 역 앞에 볼 일이 있는지 인적 없는 뒷골목으로 들어섰 을 때, "----좋았어, 가라!" 하고 신지로는 후배들을 떠밀었다. 그들은 휙 하고 마사키의 뒤쪽에서 소리 없이 다가와 순식간에 마사키를 에워쌌다. "어이, 유학생. 요샌 더 잘 나가는 모양이던데?" 그들은 건들거리며 말했다. 그러나 상황은 신지로가 예상한 것처럼 흘러가 지 않았다. 당연히 마사키가 벌벌 떨 거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는, "......그런가, 그럼 조심하지." 하고 후배들의 적의를 깨끗이 받아넘기고 말았다. 위협하고 윽박지르고 무슨 말을 해도 냉정한 대답 밖에 돌아오지 않았다. (-----?) 바람둥이답지 않은 태도에, 그늘에 숨어 관찰하고 있는 신지로는 허둥댔다. 그러던 중 후배 한 명이 화가 치밀었는지 손을 들어 마사키의 뺨을 후려갈 겼다. (----앗!) 신지로는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렇게까지 심하게 할 생각은 없었는데. 그 는 당황해서 뛰쳐나오려 했다. 그러나 그 때, 신지로가 숨어있던 쪽 맞은 편에서 한 소녀가 그 장소로 온 것이다. "―잠깐." 그녀는 허를 찔려 벙 쪄있는 거기 전원에게 말을 걸었다. "―목적이 뭐지? 그에게, 무슨 감정이 있어서 이런 일을 하는 건데?" 소녀는 인형같은 말투로 말했다. (뭐, 뭐야. 저 애는?) 신지로는 아연해서 등장할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헤헹, 이 녀석이 엄청난 바람둥이니까." 라는 둥 후배들이 건들거리니. "흐음...그럼, 당신들은 그에게 여자친구를 빼앗겼다는 얘기네? 성적욕구불 만이 분노의 원인인가." 하고 소녀는 엄청난 말을 했다. "......뭐라고? 뭐라고 했지?" "그러니까, 이 공격동작은 여자아이들한테 미움 받았기 때문에 화풀이하는 건가, 하고 물었어." ".......이, 이 게....!" ----사태는 어쩐지 아주 이상한 방향으로 뒤틀려가고 있었다. 신지로는 어 떻게 해야 될지 몰라 혼란스러운 나머지 그 장소에서 나갈 수 없었다. "―욕구불만이라면 대신 나로 만족해." 라고 말했다. 급기야 숫제 수습이 불가능한 행동을 했다. "--------엥?" ".....이, 이봐." "...자, 잠깐만 기다려!" 마사키가 당황한 듯 소리를 질렀다. 자신이 위험할 때는 냉정하더니, 소녀 가 얽히니 갑자기 동요하는 걸 보고, 신지로는 왠지 '이런, 제길.' 라는 생 각이 들었다. 자신이 되돌이킬 수 없는 일을 벌여버린 듯한 감이 들었다. 그는 허둥지둥 튀어나오려 했다. 그러나, 일이 어떻게 되려는지 거기에 또 더욱 더 기묘 한 놈이 끼어 들어왔다. "과연―, 알기 쉬운 구도로군!" 흰옷을 입은, 꽤나 자신감에 가득 찬 젊은 남자가 성큼성큼 주저 없이 뒷 골목으로 걸어들어 온 것이다. "―! 뭐야, 넌?!" "내가 오해하고 있다면 곤란하니까, 우선 확인해보도록 하지. ―거기 너." 하고 남자는 마사키를 가리키더니, "너는 저기 있는 소녀를 구하고 싶은 거지?" 라고 물었다. 마사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빨리 구해서 도망가거라." 그리고 남자는 전광석화와 같은 속도로 소녀를 후배들의 포위에서 끌어내 어 마사키에게 떠밀어내듯이 맡겼다. 남자가 지시하는 대로 마사키는 소녀의 팔을 잡더니 그 장소에서 도망쳤다 . (-----앗!) 신지로는 엄청나게 당황했다. 마사키와 소녀가 자기 쪽으로 달려왔기 때문 이다. 그러나 그들은 도망가는 데 급해서 신지로의 모습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은 모양이다. 옆을 빠져나가 달려가버렸다. (뭐,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도대체?) 그제야 한 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러나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예상과 너무 달라서 뭐가 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흰 옷 남자에게 눈을 돌리니 어찌된 영문인지 이미 후배들은 전부 그녀석에게 때려눕혀져 널부러져 있었다. "히익‥‥‥!" 그가 희미하게 비명을 지르니 남자가 신지로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 "그다지 시덥지도 않은 일을 벌려 놓았군, 너는." 뻔히 숨어있던 걸 알고 있었던 듯한 말투였다. 그리고 남자는 웃었다. 악 마처럼 아주 차갑게 웃고 있었다. '히, 에에에에에에에에에엑‥‥!' 신지로는 냅다 뛰었다. 미친 듯이 달려 뛰어서 이젠 괜찮겠지 싶어 멈춰선 것은 역 앞 광장까지 왔을 때였다. 거기서 그제야 한숨을 놓은 그는 광장 맞은 편 벤치에서 마사 키와 방금 전의 소녀가 둘이서 앉아 있는 걸 목격했다. "아‥‥!" 신지로는 소리 없는 비명을 토해냈다. 안 좋은 예감은 딱 맞아 떨어져버렸다. 두 사람 사이에 친밀한 공기가 흐르고 있는 사실을 깨달았다. 특히 마사키 는 소녀에게 마음을 홀랑 뺏겨버린 걸 역력히 알 수 있는 표정이었다. 학교 에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홍조를 띈 미소를 짓고 있었다. "..................' 신지로는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 수 일 후, 마사키는 그 소녀와 데이트를 했다. 그 사건 이후 하루도 거 르지 않고 줄창 그의 뒤를 밟고 있기에, 신지로는 그걸 그늘에 숨어 보고 있었다. (으웃...) 이를 악물고 두 사람이 영화관으로 향하기에 지켜보고 있으려니, 영화관 주 변이 너무 혼잡한데 마사키가 놀라고 있었다. 둘이서 무언가 얘기를 하고 있다. 다투는 모양이었다. (오...) 기대하며 기다리고 있었더니, 마침내 소녀 쪽이 멋대로 혼자 줄에 가서 서 버린 탓에 마사키는 멍하니 서 있었다. 그리고 그는 갑자기 발길을 돌려 바 깥쪽으로 달려갔다. 신지로는 좋아라하고 그 뒤를 쫓았다. 근처를 기웃기웃 둘러보고 있는 마사키에게 신지로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말을 걸었다. "―어이, 유학생 아니야. 뭐 하고 있냐, 이런 곳에서." 무심코 거친 말투가 툭 튀어나왔다. "아, 아아. 그게 좀." 마사키는 불쾌한 듯 얼굴을 찌푸렸다. 신지로는 그 차가운 반응에 욱해서 "뭐냐 너, 여자아이를 기다리게 하고 있는 거냐, 그래?" 라고 말해버렸다. 그리고 마사키는 딱 잘라, "미안하지만 난 좀 바빠서, 이만."라며 휙 가버렸다. "아......" 어디 가는가 했더니 근처의 패스트푸드점에 들어가 종이봉투를 들고 나왔 다. 그리고 또 소녀가 줄 서 있는 곳으로 돌아가 버렸다. 그리고 두 사람은 사이좋게 햄버거를 먹기 시작했다. ".................." 멍청하게 넋이 빠져 보고 있는데 갑자기 소녀가 마사키에게 키스를 했다. 정확히 키스는 아니고 소스가 묻은 그의 입술을 소녀가 혀로 핥은 것이었지 만 그것은 입술에 입술을 갖다대는 것보다 몇 배나 더 외설적인 느낌으로 신지로에게 다가왔다. 신지로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더니 몸이 덜덜 떨려왔다. 그는 더 이상 그 자리에 있을 수가 없어 도망쳤다. [아아, 걔 말이지. 오리하타 맞을 꺼야. 우리학교 애긴 한데.] 아는 녀석들에게 닥치는 대로 전화를 걸던 신지로는 이윽고 소녀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오리하타 아야. 그것이 증오스런 연적의 이름인 모양이다. "어, 어떤 여자냐?" 그는 달려들듯이 전화 받고 있는 소학교 친구에게 물었다. "어떠냐구---?" 친구는 히히힛 하고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너, 걔랑 뭔 일 있냐?] "엣, 아,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조심하는 게 좋을 걸. 왜냐하면 오리하타는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유명인이 란 말씀이야.] "무슨 소리야?" [무슨 말인고 하면, 걔 얌전한 척하지만 실은 엄청나게 밝히는 애라니까.] 친구는 상당히 천박한 느낌으로 그 말을 입에 담았다. "‥‥뭐?" [내가 알고 있는 것만 해도 걔랑 했다는 놈들이 여럿 되지. 히히.] "---진짜냐?" [하자는 놈 아무나하고 다 한다는 모양이야. 어때? 너도 알면 한 번 찔러보 든지. 어디든 간에 줄래줄래 잘 따라온다니까. 뭐. 병 걸리지 않게 조심해 야겠다만. 히히히힛.] "-------" 신지로는 말문이 막혔다. 이 일을 마사키는 알고 있을까? 요즘 마사키는 누 가 보아도 빤히 알 수 있을 정도로 묘하게 활기가 돌아 인생 살 맛 난다는 얼굴로 돌아다니고 있었다. 아마도 진심으로 오리하타를 좋아해서, 그 게 너무 기뻐서 어쩔 줄 모르는 듯한 모습이었다. 지금까지는 왠지 싫은 기색 으로 여자아이들을 대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친절히 대해주려는 경향이 강해 졌다. 자신이 여유가 있으면 다른 사람에게도 부드러워진다는 인생상담의 제목을 실증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 덕에 더욱더 인기가 많아졌지만 이제 신지로는 그 때문에 질투를 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마사키는 지금 일생에 그 몇 번 오지도 않는다는 사랑이라는 행복 속에 있 다. 그러나 그 상대는 아마도 어쩔 도리 없는 안 좋은 여자임에 틀림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앞에 기다리고 있는 건 깊은 절망뿐이다. 어떻게 하지? (--그냥 내버려 둬! 저런 자식은 나쁜 여자한테 속아서 만신창이나 되어버 리라고 해!) 그렇게도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번 일로 신지로가 마사키에게 다가갈 수 있는 구실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으으으으으‥) 수험 직전이라는데 신지로는 매일 그런 것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 연하게도 성적이 떨어졌다. 하지만 그는 공부도 제쳐놓고 마사키의 뒤를 ---아니 같이 다니는 오리하타의 뒤를 밟았다. 그러던 중 마사키보다도 오 리하타 아야 쪽을 밟는 일이 더 많아져버렸다. 부모님께는 학원 간다고 거짓말하고 겨울 밤하늘 아래, 살을 에이는 북풍 속에서 신지로는 오리하타의 맨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으으으윽." 그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얼마나 기묘한 지 아직 깨닫고 있지 못했다. 오리하타를 감시하는 것은, 즉 --왜 그가 오리하타가 맘에 들었는가? 바로 그것이 알고 싶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의미 없이 솟아오르는 초초함에 그 는 미처 그 이유를 깨닫지 못했다. (저 여자의 정체를 잡고야 말겠어‥) 이유도 모른 채, 어둠 속에서 그런 말을 툭 툭 내뱉고 있었다. 오리하타의 방 불은 거의 대부분 꺼져 있는 경우가 많았다. 아마 혼자 살 고 있는 듯했다. 달리 가족이 있는 흔적은 전혀 없었다. 그리고 오리하타 본인이 있던 없던 간에, 불이 태반은 꺼져 있었다. 예를 들어 타니구치 마 사키와 데이트하고 돌아오면 샤워라도 하는지 10분 정도는 불이 켜져 있지 만, 그 후 곧 꺼진다. 그렇게 빨리 자는 건가? 처음엔 '뭔가 좋지 않은 일'이라도 하는 건가? 생각한 적도 있고, 그에 흥 분을 느끼기도 했으나(그 아주 혼란스런 감각에 신지로는 자기혐오를 느끼 기도 했다), 언제나 그렇다는 걸 아니 점점 의심스러워졌다. 칠흑같이 어두컴컴하니 아마 TV도 안 볼 텐데. 도대체 저 여자의 사생활이 란 어떻게 된 걸까. 마사키와 만나지 않는 날이라도 학교에서 돌아와선, 그 날 먹을 밥인 듯 편의점 도시락을 사 가지고 와서 조금 지나면 이미 불이 꺼진다. 도시락은 대부분 보통 김 말이 도시락으로 어쩐지, 그저 아무 것도 안하고 그저 살아있을 뿐인 여자였다. (...어째서 저런 마네킹 같은 무표정한 여자한테....) 그러나 친구들이 증언한 '남자를 끌어들이는 일'은 현재로선 전혀 없었다. 마사키 뿐이었다. 다른 남자가 주위에 얼쩡거리는 일도 없다. 이래서야 마 사키에게 찔러주려 해도 증거가 없다. (‥‥제길.) 추위에 이를 따각따각 부딪치며 신지로는 다른 사람에게 들키면 그대로 경 찰서로 끌려갈 법한 스토커 짓을 계속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이었다. 신지로가 위를 올려다보고 있으려니, 불이 꺼져 있던 오리하타 방 창문이 덜컹거리며 열렸다. 이미 공기가 너무 차서 환기하려 연다고 생각하긴 어려 웠지만 그래도 창이 열렸다. 숨을 죽이고 지켜보고 있으니, 오리하타 아야 가 홀로 베란다로 나왔다. 그것도 속옷차림으로. 머리카락이 흐트러져 있었 다. 자다가 막 일어난 모양이었다. 아마도 잠옷이 없어서 그냥 속옷차림으 로 자는 것이다, 저 아이는. "................"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베란다 턱을 붙잡았다. 그리고 그 자세 그대로 움직이 지 않았다. 가만히 굳어버린 것처럼 정지하여 베란다에서 마냥 아래를 내려 다보고 있었다. (..............) 신지로는 준비해 둔 쌍안경으로 오리하타를 보았다. 깜짝 놀랐다. 보통 때는 마치 가면 같던 오리하타가 아랫입술을 새하얘질 때까지 꽈악 깨 물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추위 때문이 아닌 것도 크게 벌려진 눈이 범상 치 않은 빛을 뿜고 있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무언가를 무척이나 한탄하고 있는.....듯 했다. 지금 당장이라도 뛰어내릴 것 같은 절박함이 넘쳐흐르 고 있다. (이, 이봐....) 신지로는 무심코 침을 /꿀/꺽/ 삼키고 어떻게 될지 보고 있었다. 입을 벌리고 무슨 말을 중얼거리고 있다. 같은 말을 몇 번이고 계속해서 되 풀이하고 있었다. 끊임없이 중얼거리고 있기에, 신지로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맨션 바로 밑 으로 가 숨어들었다. 불어 내려오는 삭풍에 실려 그녀의 '주문'이 희미하게 신지로의 귀에 가 닿았다.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나에겐 좋아할 자격이 없어. 나에겐 좋아할 자격이 없어. 나에겐 좋아 할 자격이 없어. 나에겐 좋아할 자격이 없어. 나에겐 좋아할 자격이 없어. 나에겐 좋아할 자격이 없어. 나에겐 좋아할 자격이 없어. 나에겐 좋아할 자 격이 없어. 나에겐 좋아할 자격이 없어. 나에겐 좋아할 자격이 없어. 나에 겐 좋아할 자격이 없어. 나에겐 좋아할 자격이 없어. 나에겐 좋아할 자격이 없어. 나에겐 좋아할 자격이 없어. 나에겐 좋아할 자격이 없어. 나에겐 좋 아할 자격이 없어. 나에겐 좋아할 자격이 없어. 나에겐 좋아할 자격이 없어 . 나에겐 좋아할 자격이 없어. 나에겐 좋아할 자격이 없어. 나에겐 좋아할 자격이 없어. 나에겐 좋아할 자격이 없어.........................." 피를 토하는 양 괴로운 듯이 계속 반복하고 있다. 신지로는 아연해졌다. (뭐, 뭐야. 쟨‥‥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 그러나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의 몸 안 쪽 깊숙이 에서 추위에서가 아닌 떨림이 번져나기 시작했다. 그 올곧고 필사적인 그녀의 모습에 마음 속의 무언가가 반응하고 있었다. 그것은 예전에 타니구치 마사키가 그녀에게 느 낀 감동과 비슷한 것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을 그가 의식할 여유는 없었다. "--너냐, 요새 카밀을 미행하고 다닌 게. 저 여자가 좋은가, 넌?" 등뒤에서 누가 갑자기 말을 걸었다. "-----?!" 깜짝 놀라 뒤를 돌아 보려한 그의 머리를 뒤에 서 있던 뒤룩뒤룩 살찐 남자 - 스푸키E의 양손이 턱 붙잡았다. 전신을 뚫고 지나가는 전기충격에, 신지 로는 점점 의식을 잃고 풀썩 나동그라졌다. "흐음..." 스푸키E는 냉소를 띄우고 신지로를 한 손으로 작은 봉지하나 들 듯 휙 들어 올려 그대로 맨션의 쓰레기하치장까지 끌고 갔다. 그 위에선 아무것도 모르 는 오리하타가 타니구치 마사키에 대한 정열을 어떻게든 지우기 위해, 반라 (半裸)로 계속해서 중얼거리고 있었다. "‥‥나에겐 그를 좋아할 자격이 없어." ‥‥‥스푸키E는 어둠 속에서 바닥에 뻗은 아노 신지로의 머리부분에 손바 닥을 대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손가락 끝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 때마다 신 지로의 몸이 움찔움찔했다. 어느 때는 왼발 약지만 굽혀지고 또 어느 때는 그 오른 눈꺼풀만 껌벅껌벅대기도 했다. "오,오-..........아!" 입이 벌려지며, 의미없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오, 오-......리하타, 오리하타, 오리하타 아야......" 단어가 의미를 지닌 낱말이 되었을 때, 스푸키E는 씨익 웃었다. 신지로의 뇌에서 그녀에 관련된 부분을 찾아낸 것이다. 스푸키E는 손을 일단 떼곤, 손가락을 입에 넣고 낼름 핥기 시작했다. 충분히 침을 발라 적신 후, 다시 금 신지로의 머리를 만졌다. 스푸키E의 손바닥에서는 아주 미약한 전자파가 발생한다. 그것으로 뇌세포를 자극해 사람의 기억과 심리를 조종할 수 있 는 것이다. 그게 바로 바로 합성인간 스푸키 일레트로닉의 능력이었다. 자 신의 체액으로 손가락을 적신 이유는 전자파의 전도율을 더 높이기 위해서 였다. "알겠나, 아노 신지로. 너는 이제 그 여자와 그에 관련된 모든 것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 그의 호주머니에서 찾아낸 학생수첩에서 알아낸 이름으로 스푸키E가 불렀다 .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제부터 너는 자신의 바람을 가지지 않는다." 신지로의 전두엽을 만지작대며 스푸키E가 소근거렸다. "가지지 않는다." "너는 이제부터 통화기구(統和機構)의 종이 되었다. 살아있는 단말의 하나 가 되었다." "단말이 되었다." "네게서, 너를 괴롭히는 성욕은 사라졌다." 스푸키E의 손가락은 신지로의 이마와 눈 사이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시상 하부의 대뇌연변계를 찾고 있는 것이리라. "사라졌다." "너는 이제 쓸쓸함을 느끼지 않는다." "느끼지 않는다." "연인을, 친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조용한 문답은 삼십분은 족히 이어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스푸키E는 신지로의 귓가에서 소곤거렸다. "너는 신요학원에 진학해라. 그리고 지시를 기다려라." "기다린다." "---이상, 설정 종료. 리셋 하여 10분 후 재기동." "---종료." 신지로의 몸이 덜컹거리더니, 곧 널브러져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 "학교 다녀왔습니다." 현관에서 목소리가 들리기에, 아노 쿠미코는 퍼뜩 정신이 들었다. 깜빡 잠 이 들었던 모양이다. 지금 들려온 건 아들 신지로의 목소리다. 당황해 시계를 보니 그 애가 평소 에 학원에서 돌아올 시간보다도 한 시간이상 빨랐다. 그녀가 자고 있던 건 아닌 모양이다. "어. 어서 오렴. 신짱. 학원에서 무슨 일 있었니?" 현관으로 마중 나간 그녀는 아들이 여느 때보다 활기찬 듯 느껴졌다. 최근 그는 고교수험 때문에 상당히 무뚝뚝했었는데 어느새 그런 면도 사라졌다. "아니야. 엄마 거긴 관뒀어." 그는 아무 일도 아닌 일처럼 말했다. 그러나 쿠미코는 놀랬다. "에?! 왜, 왜 그랬니?" "요새 나 계속 성적 뚝뚝 떨어지기만 하고, 거긴 안 맞는 것 같아서." 라고 딱 잘라 말했다. "그런 걸 네 멋대로 -- 애초에 학원 다니겠다고 한 건 신짱이잖아." "이번엔 다른 학원 다니기로 했어. 왜 거기 있잖아. 역 앞에 있는." 그는 대학입시학원이기도한 거물급 학원의 이름을 댔다. 쿠미코는 잠시 멍 해져 있었지만, 그가 이미 입시직전학습코스에 입학수속을 끝내고 이미 돈 도 내고 왔단 얘길 듣고 정신이 들었다. "돈은 어떻게 한 건데?" "나도 저금해둔 게 있어" "얼마였길래?" "20만." 그녀는 아연했다. 세뱃돈 같은 걸 모아서 제법 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걸 깨면서까지 공부한다고 하니 지금까지의 그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었다. "역시 현립정도는 가야지." 그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시, 신짱-." 갑자기 철든 아들을 기뻐해야 할지 쿠미코는 동요했다. "그것보다 빨리 밥 줘. 오늘 밖에서 아무것도 안 사먹고 왔어." 그는 평소 량의 두 배나 덜어먹었다. "있지, 신짱." 쿠미코가 조심스레 물어보니 그는 세 번째로 푼 공기에서 고개를 들었다. "뭐?" "그래서 어디 가려고?" "신요학원. 거기 정도라면 지금부터 해도 될 것 같아서." "‥정말로 그럴 생각이니?" "해보려고. 지금까지 너무 놀기만 했잖아." 그는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쿠미코는 왠지 모르게 너무나 불안해졌다. 그는 식사를 끝내더니, 곧장 자 기 방에 틀어박혀 공부하기 시작했다. 쿠미코가 슬쩍 엿보았더니, 진짜 정 말로 책상에 앉아서 늘 끼고 살던 헤드폰에 음악도 안 튼 채, 마냥 참고서 와 노트에만 집중해있었다. ".........." 그녀는 숨을 죽이고. 문틈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아들은 계속 똑같은 자 세로 공부하고 있었다. 마치 공부하는 기계라도 된 것처럼. 그 뒤 얼마 안 있어 남편이 돌아왔기에 쿠미코는 그에게 황급히 아들 얘기 를 했다. "응? 아아, 괜찮아. 이제야 겨우 그 녀석도 스스로 할 생각이 든 거겠지." "하지만. 왠지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조금...그 뭐라 말하긴 어렵지만." 그녀는 분명 신경질적인 표정이었음이 틀림없다. 남편은 질린 표정으로. "이런, 당신이 이러면 어떻게 해. 시험치는 건 저 애잖아. 당신이 쓸데없이 부담을 주면 신지로가 공부 못할 거 아냐."라고 엄하게 타일렀다. "그렇긴 하지만....." "수험 노이로제 걸린 건 당신 아니야? 정신 차려야지." "응....." 쿠미코는 그것도 그렇겠구나 하고 납득하고 말았다. 원래 공부 좀 하지 했 던 것도 사실이고 이제 한 시름 놓았구나 하는 기분이 드는 것도 부정할 수 없었다. 게다가 딱히 이상하다고 하기에도 좀 그런 일이었기도 하고... 그 녀의 마음 속에 떠올랐던 의심이라는 직감은, 상식적 견해 앞에 쓸려나가 사라지고 말았다. ---------------------------------------------------------------------------- 이 게시물은 上遠野浩平의 'ブギ-ポップ·リタ-ンズ VSイマジネ-タ- Part1 '을 번역한 것으로, 다른 곳으로 옮기실 경우 제게 메일만 보내주시기 바라며, 상업 적인 용도로는 쓰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왠지 하기가 싫어지는 화였습니다. 이제 겨우 반인가;. (파라락 파라락) 에.. 그러니까 총 248페이지짜리인데 여기까지가 188페이지군요. 60페이지 남은 건가. 언제 끝날지 이제 생각 안 하기로 했습니다. 그럼 기다리셨던 분들께 죄송하다는 말씀 올리면서. (아직 책 하나 하고도 60 페이지나 남았습니다. ;; 아아. T.T) --오늘도 지구를 향해 돌진하는 네메시스. Weather Break : http://www.diveinto.net/nemes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