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를 찾아서-유럽 신화 (go MYTH)』 479번 제 목:[잠적이/RGGM]118.헤라클레스의 탄생 올린이:빽호 (백원진 ) 98/10/08 22:42 읽음:132 관련자료 없음 ----------------------------------------------------------------------------- 118. 헤라클레스의 탄생 페르세우스의 아들이며, 아낙소Anaxo의 남편인 뮈케나이의 존엄한 왕High King인 엘렉트뤼온은 복수심에 불타 타피아人들과 텔레보이아人들에 대해 전쟁을 벌였다. 이는 예전에 그들은 뮈케나이의 왕위를 주장하는 프테렐라오스의 계획아래 엘렉트뤼온의 소떼를 습격하는데 성공하였고, 이때 엘렉트뤼온의 여덟 아들이 살해되었었기 때문이다. 그는 원정에 앞서 그의 조카인 트로이젠의 왕 암피트뤼온을 뮈케나이의 섭정으로 삼았다. 잘 다스려주게, 그리고 내가 승리하여 돌아오면 그때 자네에게 나의 딸 알크메네를 주겠네. 라며 엘렉트뤼온은 말했다. 엘리스의 왕에게 도둑맞은 소떼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암피트뤼온은 막대한 돈을 치르고 엘렉트뤼온을 불러 그 소떼를 확인케 하였다. 암피트뤼온이 그가 이 배상금을 갚기를 기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 엘렉트뤼온은 매우 화가 나서 훔친 소를 팔 권리가 어떻게 엘레이아人들에게 있으며, 왜 이 사기를 묵인하는지를 암피트뤼온에게 따졌다. 대답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 암피트뤼온은 무리에서 벗어난 소에게 몽둥이를 던짐으로써 화를 표출했는데, 그 몽둥이는 소의 뿔에 맞아 되튀어 엘렉트뤼온을 죽이게 되었다. 그 결과 암피트뤼온은 삼촌인 스테넬로스에 의해 아르골리스에서 추방되었다. 스테넬로스는 뮈케나이와 티륀스를 직접 지배하였고, 왕국의 나머지 지역은 미데아를 수도로 하여 펠로프스의 아들들인 아트레우스와 튀에스테스에게 위임하였다. b. 암피트뤼온은 알크메네와 함께 테바이市로 망명하였는데, 테바이의 왕 크레온은 그를 정죄하고 엘렉트뤼온의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들인 리큄니오스Licymnios(엘렉트뤼온과 미데아라는 프뤼기아여자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에게 자신의 누이인 페리메데를 시집보냈다. 경건한 알크메네는 암피트뤼온이 자신의 여덟 형제의 복수를 하기 전에는 그와의 잠자리를 거절했다. 이에 크레온은 암피트뤼온이 테우메시아의 암여우를 테바이에서 몰아낸다는 조건으로 이 목적을 수행하기 위한 보이오티아軍의 지휘권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암피트뤼온은 아테나이人 케팔로스로부터 축복 받은 사냥개인 라일라프스Laelaps를 빌려서 이 일을 해냈다. 아테나이, 포키스, 아르기브, 로크리스 연합군의 도움을 받은 암피트뤼온은 텔레보이아와 타피아를 정복하고 그 섬들을 동맹국에게 나누어주었는데, 그 동맹국의 왕 가운데에는 그의 삼촌인 헬레이오스Heleios도 있었다. c. 한편 제우스는 암피트뤼온이 없는 틈을 타 그의 모습으로 변장하여 알크메네에게 형제들의 복수는 이루어졌다고 말하고는(왜냐하면 정말로 암피트뤼온이 바로 그날 아침에 승리를 거두었기 때문이다.) 그의 명령에 의해 세배나 길어진 밤 동안 내내 그녀를 품에 안고 잤다. 제우스의 명령을 받은 헤르메스가 헬리오스에게는 태양의 불을 끄도록 하고 시간의 신에게는 시간의 마차의 말에게서 멍에를 벗기고 집에서 쉬도록 하였다. 왜냐하면 매우 위대한 정복자를 낳기 위해서 제우스는 절대 서두르지 않으려 하였기 때문이다. 헬리오스는 이 명령에 복종하였지만 좋았던 옛 시절을 떠올리며 투덜거렸다. 그 당시에는 낮은 낮이었고, 밤은 밤이었으며, 당시의 最高神이었던 크로노스는 합법적인 아내를 떠나 테바이로 외도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헤르메스는 달의 여선 셀레네에게 천천히 운행할 것을 명령하였고, 잠의 신 휘프노스에게는 모든 사람들을 깊은 잠에 빠지게 하여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게 하도록 명령하였다. 완전히 속은 알크메네는 오이칼리아에서 프테렐라오스를 완전히 궤멸시켰다는 제우스의 설명에 기뻐하며, 가짜 남편 과 함께 36시간동안 밤을 즐겼다. 다음날 암피트뤼온이 돌아와서 신혼 침대에서 승리와 그녀에 대한 사랑을 속삭였을 때, 알크메네는 그의 예상과는 달리 별로 반기지 않았다. 우리 어제 한잠도 못 잤잖아요. 당신이 남긴 공적을 반복해서 들려주실 생각이예요? 라며 알크메네는 불평했다. 이 대답을 이해하지 못한 암피트뤼온은 예언자인 테이레시아스를 찾아갔는데, 테이레시아스는 암피트뤼온이 제우스에 의해 오쟁이 지워졌다고 말하고는, 神의 질투를 피하고 싶으면 앞으로 알크메네와 잠자리를 함께 하지 말라고 충고하였다. d. 9개월이 지난 후 올륌포스에서 제우스는 헤라클레스라고 불릴(그 뜻은 헤라의 영광 이다.) 자신의 아들이 곧 태어날 것이며, 그가 위대한 페르세우스家의 왕이 될 것이라며 떠벌렸다. 이에 헤라는 제우스에게서 저녁이 되기 전에 태어나는 페르세우스家의 왕자가 존엄한 왕이 된다는 약속을 받아내었다. 제우스가 이에 대해 결코 깨뜨릴 수 없는 맹세를 하자 헤라는 즉시 뮈케나이로 가서 스테넬로스王의 아내인 니키페의 진통을 빨리 나타나게 하였다. 그리고 나서 헤라는 테바이市로 서둘러 와서 알크메네의 집의 대문 앞에서 옷을 매듭짓고, 깍지를 낀 채,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있었다. 이러한 방법으로 헤라는 스테넬로스의 칠삭둥이 아들인 에우뤼스테우스가 태어날 때까지 헤라클레스의 출산을 저지시켰다. 한시간이나 늦게 헤라클레스가 태어났을 때, 쌍둥이인 이피클레스도 태어났다. 그는 암피트뤼온의 아들로 헤라클레스보다 하루 늦게 태어났다. 그러나 일설에 의하면 이피클레스가 헤라클레스보다 하루 일찍 태어났다고 하고 다른 설에는 둘이 동시에 수태되었으며, 한날에 태어났으며, 둘을 출산한 방에 제우스가 밝은 빛을 비추었다고 한다. 처음에 헤라클레스는 알카이오스Alcaeos 혹은, 팔라이몬Palaemon이라고 불렸다. e. 헤라가 올륌포스로 돌아와서 출산의 여신인 에일레이튀이아를 알크메네의 집 대문에 있게 하여 자신의 성공을 자랑하자, 제우스는 매우 격노하여 헤라의 책략을 자신이 깨닫지 못하게 한 長女 아테를 붙잡고는 그녀가 다시는 올륌포스에 오는 것을 불허하노라고 맹세하였다. 금발의 머리칼을 휘날리며 아테는 지상으로 떨어졌다. 비록 제우스가 내뱉었던 말을 되돌리지 못하고 헤라클레스를 페르세우스家의 왕으로 만들 수는 없지만 헤라를 설득하여 헤라클레스가 에우뤼스테우스의 명령을 받아 12가지 노역을 하면 그를 신으로 만들자는 데에 동의를 얻어내었다. f. 제우스는 니오베 이후의 다른 인간 연인과는 달리 알크메네를 단지 쾌락을 위해서 선택했던 것이 아니다. 물론 알크메네는 당대 최고미인이었지만 또한 인간과 신을 파멸로부터 보호할 영웅을 낳을 만큼의 위엄과 지혜를 가지고 있었다. 니오베로부터 16대 후손인 알크메네는 제우스와 동침한 마지막 인간 여자가 되는데 이는 제우스가 더 이상 헤라클레스에 필적할 영웅을 낳을 여자가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또한 제우스는 알크메네를 너무나 존중하였기에 폭력을 써서 그녀를 겁탈하는 대신에 그녀의 남편인 암피트뤼온으로 변장하는 수고를 겪으며 애정이 담긴 密語와 애무로 그녀를 사랑해 주었다. 제우스는 알크메네가 순결하고도 고결하다는 사실을 알고 새벽이 되었을 때 그녀에게 카르케시아Carchesia의 술잔을 선물하였는데, 그녀는 이것이 전리품인 줄 알고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고 받았다. 그 술잔은 포세이돈이 아들인 텔레보스Telebos에게 준 것이었다. g. 일설에는 헤라가 직접 알크메네의 진통을 지연시킨 것이 아니라 마녀witch를 보내어 지연시켰고, 테이레시아스의 딸 히스토리스Historis가 그 마녀들이 돌아가서 아기를 낳도록 하기 위해 출산실에서 탄성을 올림으로써 그녀들을 속였다고 하며 이러한 의식은 지금까지 테바이에서 행해지고 있다. 다른 설에 의하면 헤라대신에 진통을 지연시킨 것은 에일레이튀이아라고 한다. 알크메네의 충실한 하녀인 금발의 갈란티스 혹은 갈렌Galen은 출산실에서 거짓말로 아기가 태어났다고 소리치며 나왔다. 이때 에일레이튀이아가 놀라서 일어나 깍지를 풀고 무릎을 폈을 때 헤라클레스가 태어났고 갈란티스는 에일레이튀이아를 성공적으로 속인 것에 대해 비웃었는데, 이에 화가 난 에일레이튀이아는 그녀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그녀를 족제비로 변신시켰다. 갈란티스는 그후에도 계속하여 알크메네의 집에 출입하였는데, 헤라여신은 그녀가 땅바닥에 기어다니는 벌을 내렸다. 그녀는 새끼를 입으로 낳는 운명이 지워졌다. 테바이人들이 헤라클레스에게 神聖을 부여하고 제사를 지낼 때 제사에 앞서 갈란티스에게 먼저 제물을 바쳤다. 갈란티스는 또한 갈린티아스Galinthias라고도 불리며 프로이토스Proetos의 딸이라고 한다. 또한 그녀는 헤라클레스의 유모이며 헤라클레스는 그녀를 위해 지성소를 세웠다고도 한다. h. 이러한 테바이人들의 주장을 아테나이人들은 비웃었다. 아테나이인들은 갈란티스가 창녀이며 그녀가 자신의 비정상적인 성욕을 실천한 것에 대한 벌로 헤카테가 그녀를 족제비로 만들었으며 헤라가 알크메네의 출산을 부당하게 지연시켰을 때 갑자기 그녀 앞을 뛰어 지나가 놀라게 하여 출산하도록 하였다고 주장하였다. i. 헤라클레스의 탄생은 매월 7일에 기념하였다. 그러나 일부사람들은 태양이 황도 12궁 가운데 10번째 宮에 들어갔을 때 그가 태어났다고 주장하고, 다른 설에 따르면 큰곰자리가 자정에 오리온座위로 서쪽으로 지나갈 때 즉, 태양이 12번째 宮으로 들어갔을 때 태어났다고도 한다. 『신화를 찾아서-유럽 신화 (go MYTH)』 480번 제 목:[잠적이/RGGM]119.헤라클레스의어린시절 올린이:빽호 (백원진 ) 98/10/08 22:44 읽음:124 관련자료 없음 ----------------------------------------------------------------------------- 119. 헤라클레스의 어린 시절 헤라의 질투를 두려워한 알크메네는 갓 태어난 그녀의 아기를 테바이城밖의 들판에 버렸다. 그런데 제우스의 명령을 받은 아테나가 헤라와 함께 그곳으로 우연히 산책을 하였다. 아테나는 저길 봐요. 세상에! 정말로 건강한 아이가 있네! 라며, 놀란 듯 그 아이를 안아 들며 이렇게 돌투성이 벌판에 아이를 버리다니. 이 아이의 어머니는 제정신이 아닌가봐요. 자, 이리와 봐요. 당신은 젖이 있잖아요. 불쌍한 이 아이에게 젖을 물려줘요. 라고 헤라를 부추겼다. 무심코 헤라는 아이를 안아 들고, 가슴을 드러내어 젖을 물렸는데, 헤라클레스가 워낙 세차게 젖을 빨자, 아픔을 참지 못한 헤라는 그를 내던졌다. 그리고 이때 젖이 하늘위로 흘러나왔고, 이는 은하수the Milky Way가 되었다. 작은 괴물이야! 라며 헤라가 외쳤다. 하지만 헤라클레스는 이미 불멸의 몸이 되었고, 아테나는 미소를 띠며 그를 알크메네에게 돌려주면서 그 아이를 잘 보살피고, 키우라고 말하였다. 테바이人들은 아직도 헤라가 속은 장소를 가리키며, 헤라클레스의 평원The Plain of Heracles'라고 불렀다. b. 그러나 일설에 의하면 헤르메스가 아기인 헤라클레스를 올륌포스로 데리고 갔다고 한다. 이 설에 따르면 그곳에서 제우스가 직접 그를 잠들어 있는 헤라의 가슴 곁에 두었다. 은하수가 생겨난 것은 헤라가 깨어나 헤라클레스를 밀어낼 때 혹은 헤라클레스가 빨 수 있는 양보다 더 많이 빨았기 때문에 기침이 났을 때라고 한다. 하여튼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헤라는 헤라클레스의 유모가 되었고, 테바이人들은 헤라클레스를 그녀의 아들이라고 불렀으며, 헤라의 젖을 빨기 전까지는 알카이오스라고 부르다가 그 이후에는 헤라의 영광이라는 뜻으로 헤라클레스라고 불렀다. c. 어느 날 밤 헤라클레스가 8개월 내지 10개월이 되었을 때(일설에는 1살), 즉, 젖을 떼지 않았을 때 알크메네는 그녀의 쌍둥이 아들들을 목욕시키고 젖을 먹인 후 양털로 만든 침대보에 싸서 암피트뤼온이 프테렐라오스를 이겼을 때 사용한 청동 방패에다 뉘었다. 그 날밤 자정에 헤라는 하늘빛 비늘로 덮인 매우 커다란 뱀 두 마리에게 반드시 헤라클레스를 죽여라는 명령을 내리고는 암피트뤼온의 집에 보냈다. 그 뱀들이 도착했을 때 집 대문이 열려있었다. 그들은 아기가 있는 방의 대리석 바닥으로 미끄러지듯 나아갔다. 뱀들의 눈은 불꽃으로 이글거렸고 송곳니에서는 독이 뚝뚝 떨어졌다. d. 깨어있던 쌍둥이는 그 뱀들이 갈라진 혀를 낼름거리며 자신들의 몸위에서 돌아다니는 것을 보았다. 제우스는 또한번 그 방에 신성한 빛을 보냈다. 이피클레스는 소리를 지르며 도망치기 위해 침대보를 걷어차서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놀란 그의 울음소리와 이상한 빛이 아이방에서 새어나오자 알크메네는 잠에서 깨어났다. 일어나세요, 암피트뤼온! 라며 그녀는 외쳤다. 신발을 신을 새도 없이 암피트뤼온은 삼나무 침대에서 뛰쳐나와 가까운 벽에 걸려있던 칼을 꺼내어 광택이 나는 칼집에서 칼을 뽑아들었다. 그 순간 아이 방에서 새어나오던 빛이 꺼졌다. 램프와 횃불을 가져오라며 졸고있던 하인에게 외친 암피트뤼온은 안으로 뛰어들어갔는데, 헤라클레스는 울음소리조차 내지 않고 자랑스러운 듯 그 뱀들을 보여주었다. 헤라클레스는 양손으로 뱀들을 각각 목졸라 죽이고 있었다. 뱀들이 죽었을 때, 헤라클레스는 웃으면서 기쁜 듯 뱀들을 아래위로 흔들어대고는 암피트뤼온의 발치에다 던졌다. e. 알크메네가 공포에 떠는 이피클레스를 달래는 동안 암피트뤼온은 담요로 헤라클레스를 다시 덮어주고는 침대로 돌아왔다. 새벽이 되어 닭이 세 번 울었을 때 알크메네는 노인 테이레시아스를 불러 경이로운 헤라클레스의 일을 말하였다. 테이레시아스는 헤라클레스의 영광스러운 미래를 예언한 뒤 커다란 화덕에 가시나무 등의 마른 가지를 넣어 그 뱀을 자정에 불태우고, 아침에 하녀를 시켜 그 재를 스핑크스가 앉았던 바위에다 올려놓고 바람에 흩날리도록 하며, 뒤돌아보지 말고 뛰어내려오도록 명령하라고 충고하고 그 하녀가 돌아오는 동안 유황과 소금기가 있는 샘물의 김으로 궁전을 정화시키고 그 지붕은 야생 올리브로 덮고 마지막으로 수퇘지를 제우스의 지엄한 제단에 바치라고 하였다. 알크메네는 그가 시키는 대로 이행하였다. 그러나 일설에는 그 뱀들이 무해했으며, 쌍둥이 중에 누가 자신의 아들인지 알고싶어한 암피트뤼온 자신이 아기들의 요람을 옮겼다고 한다. f. 헤라클레스가 청년이 되었을 때, 암피트뤼온은 그에게 전차 모는 법을 가르쳤으며, 결승점을 놓치지 않고 코너를 도는 법도 가르쳤다. 카스토르는 그에게 검술을 가르쳤는데, 무기사용법, 騎兵 및 步兵學, 전략의 기본을 가르쳤다. 헤르메스의 아들 가운데 한 명이 그에게 권투를 가르쳤다. 즉, 아우톨뤼코스 혹은 하르팔뤼코스Harpalycos(그는 싸울 때 너무나 냉혹해서 아무도 그와 상대하려 하지 않았다.)가 그의 권투선생이었다. 에우뤼토스가 그에게 궁술(弓術)을 가르쳤다. 일설에는 암피트뤼온의 목동인 스퀴티아人 테우타로스Teutaros 혹은 아폴론이 그에게 궁술을 가르쳤다고 한다. 헤라클레스는 그때까지 태어난 모든 궁수(弓手)보다도 활을 잘 쏘아, 심지어 그의 동료인 알콘Alcon보다도 뛰어났는데, 알콘은 아르고나우테스인 팔레로스Phaleros의 아버지로서 병사들의 투구 위에 일렬로 세워둔 고리사이로 활을 쏠 수 있었고, 활을 쏘아 칼 혹은 창끝에 걸어놓은 화살을 두쪽으로 쪼갤 수 있을 정도로 궁술이 뛰어났었다. 한번은 뱀이 알콘의 아들을 칭칭 휘어 감았는데, 알콘이 활을 쏘아 아기를 전혀 다치게 하지 않고 뱀을 죽였다고 한다. g. 에우몰포스는 헤라클레스에게 노래하는 법과 뤼라 다루는 법을 가르쳤고, 하신(河神) 이스메니오스Ismenios의 아들 리노스가 문학을 가르쳤다. 어느 날 에우몰포스가 부재하여 리노스가 그에게 뤼라를 가르쳤다. 헤라클레스는 에우몰포스에게서 배운 악기 연주법을 바꾸기를 거절하였는데, 그 완강함 때문에 리노스에게 야단을 맞자 리노스를 뤼라로 내리쳐 그를 죽이고 말았다. 그의 살인죄에 대한 재판에서 헤라클레스는 침략자에 대해 무력을 사용한 저항을 정당화시키는 라다만튀스의 법을 인용하면서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라클레스가 더 큰 폭력적인 죄를 지을 것을 두려워한 암피트뤼온은 그를 멀리 보내어 소치기로 만들고는 열여덟살이 되어 동년배보다 키, 힘, 용기에서 월등해질 때까지 그곳에 머물러 있게 하였다. 이때 그는 이스메니아 아폴론Ismenia Apollon의 월계관을 쓰는 사람이 되었고, 이 사건에 대해 헤라클레스를 위해 암피트뤼온이 봉납한 삼각대(tripod)를 테바이人들은 지금까지 보존하고 있다. 누가 헤라클레스에게 천문학과 철학을 가르쳤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그가 이 두 학문을 배웠다는 것은 확실하다. h. 그의 키는 보통 4큐빗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가 올륌피아의 경기장을 만들 때, 길이를 600피트로 하였으며, 후기 그리스의 경기장에서도 600피트라고 한다. 그러나 현인 퓌타고라스는 헤라클레스의 보폭을 올륌피아에 비해 상당히 짧은 것으로 보고 있으며, 따라서 그의 조상(彫像)의 크기도 다른 사람의 조상과 보폭과 비례해서 만들어져야 하고 올륌피아의 경기장의 길이도 다른 경기장과 맞추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계산에 의하면 헤라클레스의 키는 4큐빗 1피트가 되는데, 어떤 설에 따르면 그가 보통 사람보다 그다지 크지 않았다고 한다. i. 헤라클레스의 눈은 불길이 이글거렸으며 그의 창과 화살은 결코 빗나간 적이 없었다. 그는 정오 무렵에는 음식을 별로 먹지 않았으며, 저녁으로 그가 좋아한 음식은 구운 고기와 도리아식 보리과자였는데, 그가 풍족하게 먹으려면(만약 이것을 믿을 수 있다면) 그의 하인들은 충분해요! 라며 불평을 하게 된다. 그의 튜닉은 깔끔한 짧은 스커트였다. 헤라클레스는 집안에 있기보다는 밖에 나가 별들 아래에서 있기를 더 좋아했다. 헤라클레스는 점(占)에도 조예가 깊어 독수리(vulture)를 좋아했다. 그는 새로운 노역(Labour)을 할 때마다. 독수리(vulture)는 정의로운 새다. 왜냐하면 독수리는 가장 작은 생물들도 공격하지 않기 때문이다. 라고 말하였다. j. 헤라클레스는 싸움을 일으키지는 않았지만 자신을 공격하는 자들에게는 똑같이 공격자로서 행동하였다. 테르메로스Thermeros라는 자가 지나가는 여행자에게 시비를 걸어 싸움을 해서 죽이곤 했는데, 헤라클레스가 훨씬 더 강해서 마치 계란을 깨듯이 그의 머리를 박살냈다. 하지만 헤라클레스는 본성이 공손하여 죽인 적을 묻어준 최초의 사람이었다. 『신화를 찾아서-유럽 신화 (go MYTH)』 481번 제 목:[잠적이/RGGM]120.테스피오스의 딸들 올린이:빽호 (백원진 ) 98/10/08 22:46 읽음:107 관련자료 없음 ----------------------------------------------------------------------------- 120. 테스피오스의 딸들 . 열여덟살 때 헤라클레스는 소치기를 그만두고 암피트뤼온과 인근의 테스티오스라고도 불리는 에레크테이드Erechtheid인 테스피오스 왕의 소떼를 습격한 키타이론의 사자를 퇴치하기 위해 떠났다. 그 사자는 테스피아이Thespiae市가 위치한 헬리콘山의 기슭에 또다른 은신처를 가지고 있었다. 헬리콘山은 언제나 활기찬 산이었다. 테스피아이人들은 헬리콘山 정상에서 무사이 여신을 기리는 오랜 축제를 개최했었고 기슭에서는 그들의 수호신인 에로스의 조상(彫像)주위에서 호색적인 놀이를 하였다. b. 테스피오스 왕은 아트레우스의 딸이며 자신의 아내인 메가메데Megamede와의 사이에서 50명의 딸들을 낳았는데, 그녀들은 매우 방탕하였다. 그래서 그녀들이 부적절한 성관계를 갖는 것을 막기 위해 테스피오스는 그녀들 모두가 그 당시 사자를 잡기 위해 테스피아이에 50일간 머무르던 헤라클레스의 아기를 배어야 한다고 결정하게 되었다. 테스피오스는 헤라클레스에게 당신은 나의 맏딸 프로크리스를 잠자리 상대로 삼아도 좋소. 라며 친절하게 말했다. 그러나 매일 밤 다른 딸들이 헤라클레스와 동침하여 결국 모든 딸들이 그와 잠을 자게 되었다. 일설에 의하면 헤라클레스는 하룻밤만에 한 명을 제외한 그녀들 모두와 동침하였다고 한다. 그 한 명은 헤라클레스와의 동침을 거절하고 죽을 때까지 처녀로 지냈으며 테스피아이의 헤라클레스 사원에서 여사제로 지냈다. 이러한 이유로 테스피아이의 여사제들은 지금까지 처녀들이었다. 헤라클레스는 그녀들을 통해 51명의 아들을 낳았는데, 장녀인 프로크리스가 쌍둥이 안틸레온Antileon과 히페우스Hippeus를 낳았고 막내딸 역시 쌍둥이를 낳았다. c. 헤라클레스는 키타이론의 사자를 쫓다가 마침내 헬리콘산에서 뿌리채 뽑은 올리브나무에서 자른 거친 곤봉으로 그 사자를 죽였다. 그는 그 가죽을 옷으로, 벌어진 입을 자신의 투구로 삼았다. 일설에는 네메아의 사자 혹은 테바이 근처의 테우메소스Theumessos에서 죽인 짐승의 가죽이 그의 옷이며 키타이론의 사자를 차지한 이는 알카토오스라고 한다. 『신화를 찾아서-유럽 신화 (go MYTH)』 482번 제 목:[잠적이/RGGM]121.에르기노스 올린이:빽호 (백원진 ) 98/10/08 22:47 읽음:118 관련자료 없음 ----------------------------------------------------------------------------- 121. 에르기노스 . 이러한 일이 있은 후 몇 년이 흘러 온케스토스Onchestos에서 포세이돈축제가 열리는 동안 사소한 사건이 테바이人들을 성가시게 하였는데, 그 결과 메노이케오스의 마차부가 돌을 던져 미뉘아스人의 왕 클뤼메노스Clymenos를 죽였다. 클뤼메노스는 오르코메노스로 실려와서 최후를 맞이하였는데, 죽기 전에 아들에게 복수를 명령하였다. 보이오티아의 공주 부데이아Budeia 혹은 부쥐게Buzyge에게서 낳은 장남 에르기노스Erginos는 군대를 소집하여 테바이로 진격하여 그들을 완전히 패배시켰다. 굳은 서약이 있는 후 체결된 강화의 조건에 따라 테바이人들은 에르기노스에게 20년간 해마다 소 백마리를 클뤼메노스의 죽음에 대한 보상으로 바치도록 되어있었다. b. 헤라클레스는 헬리콘山에서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테바이로 공물을 받으러 가는 미뉘아이의 사자(使者)를 만났다. 헤라클레스가 그들에게 무슨 일로 가느냐고 물었을 때, 그들은 테바이人들의 귀와 코와 손을 자르지 않은 에르기노스의 관대함을 거만하게 말하였다. 에르기노스가 정말로 그러한 공물을 원하는가? 라며 화가 난 헤라클레스는 물었다. 그리고 그 사자들을 그들이 묘사한대로 불구로 만들고는 그 피묻은 사지(四肢)를 줄에 매달아 사자들의 목에 걸어 오르코메노스로 돌려보냈다. c. 에르기노스가 테바이의 크레온에게 이 불법행위를 한 자의 인도를 요구하였을 때, 그는 기꺼이 이에 복종하려 하였는데, 이는 미뉘아이人들이 테바이를 무장해제 하였고, 크레온도 이처럼 좋지 않은 원인 때문에 인근 국가의 개입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헤라클레스는 젊은 동료들을 자유를 위해 저항할 것을 설득하였다. 헤라클레스는 도시의 모든 신전을 돌면서 전리품으로 신전에 봉납되어 있던 모든 방패, 투구, 가슴막이, 정강이받이, 칼, 창을 꺼내었다. 이러한 결의에 감탄한 아테나는 이 무구들을 헤라클레스와 그의 동료들에게 입혀주었다. 이와 같이 헤라클레스는 전투를 할 수 있는 모든 테바이人들을 무장시키고 무기 사용법을 가르치는 한편 자신은 사령관을 맡았다. 테바이에서 가장 고귀한 태생의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버리면 승리를 거둘 것이라고 약속하였다. 모든 사람들이 기대에 찬 눈빛으로 스파르토이의 후예인 안티포에노스Antipoenos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가 자진해서 죽기를 망설이자, 그의 딸 안드로클레이아Androcleia와 알키스Alcis가 그를 대신하여 기꺼이 목숨을 버렸다. 그후 그녀들은 고명한 아르테미스The Famous Artemis 의 신전에서 神女(heroine)로 숭상되었다. d. 이윽고 미뉘아이人들이 테바이로 진격하였는데, 좁은 길에 매복하고 있던 헤라클레스는 에르기노스와 그의 많은 장군들을 살해하였다. 거의 헤라클레스 혼자서 이루어낸 이러한 테바이의 승리는 오르코메노스의 갑작스러운 몰락을 가져왔다. 헤라클레스는 오르코메노스의 성문을 파괴하고 궁전을 약탈하였으며 테바이로부터 받던 공물의 두배를 요구하였다. 또한 그는 케피소스강이 바다로 흐르도록 미뉘아이의 선조들이 건설한 두 개의 터널을 봉쇄하여 코파이스 평원Copaic Plain이 범람하게 만들었다. 이는 미뉘아이人들이 자랑하는 騎兵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여 동일한 조건에서 싸울 수 있는 언덕에서 전투를 수행하려는 목적이었다. 그후 강화가 이루어지자 헤라클레스는 봉쇄했던 터널을 다시 뚫어주었다. 테바이에 있는 말을 묶는 헤라클레스Herakles the Horsebinder 의 성역은 이 당시 어느 날 밤 헤라클레스가 미뉘아이의 진영에 잠입하여 전차용 말을 훔쳐내어 멀리 떨어진 나무에 묶어 두고 잠자던 자들을 죽인 사건을 기리기 위해 건설되었다. 불행하게도 그의 양부인 암피트뤼온은 이 전쟁에서 전사하였다. e. 테바이로 돌아오는 길에 헤라클레스는 보호자 제우스Zeus the Preserver 의 신전에 제물을 바치고, 고명한 아르테미스 의 신전에는 돌로 만든 사자를, 무장을 해준 아테나Athena the Girder-on-of-Arms 의 신전에는 두 개의 彫像을 바쳤다. 에르기노스의 使者를 폭행한 헤라클레스를 신들이 벌하지 않자, 테바이인 들은 헤라클레스를 코를 벤 헤라클레스Herakles the Nose-docker 라고 부르며 조상을 세워 숭배하였다. f. 다른 전설에 의하면 에르기노스는 미뉘아이인 들을 패배에서 구출하고 콜키스로 金羊毛皮를 찾으러 간 아르고나우테스에 가담하였다고 한다. 수년이 흘러 과거의 번영을 되찾은 에르기노스는 자신이 정말로 부유해졌지만 늙고 후사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에 신탁은 에르기노스가 쟁기와 보습을 난타한 곳에 새 신발을 올려놓으라고 하였다. 그후 에르기노스는 젊은 아내와 결혼하여 유명한 건축가인 트로포니오스Trophonios와 아가메데스Agamedes 그리고 아제우스Azeus를 낳았다. 『신화를 찾아서-유럽 신화 (go MYTH)』 483번 제 목:[잠적이/RGGM]122.미친헤라클레스 올린이:빽호 (백원진 ) 98/10/14 16:02 읽음:195 관련자료 없음 ----------------------------------------------------------------------------- 122. 미친 헤라클레스 미뉘아이를 패배시킨 후 헤라클레스는 가장 유명한 영웅이 되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보답으로 크레온 왕의 장녀인 메가라Megara(혹은, 메게라Megera)와 결혼 하게 되었고 도시의 수호자로 지명되었다. 한편 이피클레스는 크레온의 막내딸 과 결혼하게 되었다. 헤라클레스는 메가라와의 사이에서 2명의 아들을 낳았는데 (일설에는 세 명 혹은 네 명 심지어 여덟 명이라고도 한다.) 사람들은 그들을 알 카이데스Alcaides라고 불렀다. b. 다음으로 헤라클레스는 미뉘아이의 동맹국인 에우보이아의 왕, 퓌라이크모스 Pyraechmos가 테바이로 침공했을 때 이를 무찌르고 그의 시체를 망아지를 사용 해 두동강을 내어 헤라클레이오스Heracleios강변에 던져버려 全그리스를 놀라게 했다. 그후 퓌라이크모스가 버려진 장소는 '퓌라이크모스의 망아지들Colts of Pyraechmos'라고 불렸으며 말들이 그 강물을 마시면 망아지 울음소리가 메아리 쳤다고 한다. c. 헤라클레스의 지나침(excess)에 화가 난 헤라는 그를 미치게 하였다. 헤라클 레스는 먼저 사랑하는 조카인 이피클레스의 장남 이올라오스를 공격하였는데 다 행히도 이올라오스는 무사히 위기를 모면하였다. 그리고 나서 헤라클레스는 자 신의 여덟 아들과 전쟁 훈련을 하던 이피클레스의 두 아들을 적으로 오인하여 활로 쏘아 죽이고 불 속에 던져 넣었다. 테바이人들은 해마다 이들 여덟 명의 쇠미늘 갑옷을 입은(mail-clad) 희생자들을 기리는 제의를 개최하였다. 첫날에는 재물을 바치고 밤새도록 불을 지폈다. 둘째 날에는 장례경기가 개최되어 우승자 에게는 흰색 도금양冠을 씌워주었다. 참석자들은 헤라클레스의 아들들에게 보장 되어있던 밝은 미래를 기억하며 슬퍼하였다. 그중 한 명은 에우뤼스테우스의 자 리를 차지하여 아르고스市를 통치하고 헤라클레스가 그에게 자신의 사자가죽을 입혀줄 운명이었고, 다른 한 명은 테바이의 왕이 되어 다이달로스의 거짓선물인 헤라클레스의 방어를 위한 철퇴를 물려받을 운명이었다. 셋째는 나중에 헤라클 레스가 초토화시킨 오이칼리아를 약속 받았으며, 그들 모두를 위해 아테나이, 테 바이, 스파르타의 동맹자들로부터 최상의 신부감을 고를 수 있도록 약속 받았었 다. 헤라클레스가 자식들을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그가 자식들 을 죽였다는 사실을 부인하고 배은망덕한 그의 손님이 죽였다고 믿는다. 그 손 님이란 아마도 뤼코스Lycos를 가리키거나 소크라테스에 의하면 아우게이아스 Augeias라고 한다. d. 제정신을 차린 헤라클레스는 어두운 방안에 틀어박혀 누구와도 접촉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서 테스피오스 왕으로부터 정죄의식을 받은 후, 앞으로 무엇을 해야할 지에 대해 묻기 위해 델포이로 갔다. 퓌토네스는 그 동안 팔라이몬 Palaemon이라고 불리던 그를 헤라클레스라고 처음으로 이름짓고, 그에게 티륀스 市로 가서 12년 동안 에우뤼스테우스를 위해 봉사하라고 충고하였다. 그러고 나 면 그 봉사에 대한 대가로써 그는 불멸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하였다. 이를 들 은 헤라클레스는 깊은 절망에 빠졌다. 왜냐하면 자신보다 훨씬 못한 사람에게 봉사한다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한 아버지인 제우스의 뜻을 거스르 기도 겁이 났다. 많은 친구들이 비탄에 빠진 그를 위로하기 위해 방문했다. 얼마 간의 시간이 흐른 뒤 비탄이 어느 정도 수그러지자, 그는 에우뤼스테우스에게 의탁하러 갔다. e. 일설에 의하면 헤라클레스가 미쳐서 자식들과 메가라도 죽였던 것은 그가 타 르타로스에서 돌아온 이후였다고 한다. 그리고 퓌토네스가 그에게 '당신은 더 이 상 팔라이몬이라고 불리지 않을 것입니다. 포이보스 아폴론은 당신에게 헤라클 레스라는 이름을 지어 주셨습니다. 왜냐하면 헤라여신덕분에 당신은 인간들 사 이에서 영원한 명예를 얻게 될 것이기 때문이지요."라면서 마치 헤라클레스가 헤 라에게 위대한 봉사를 한 것처럼 말하였다. 일설에는 헤라클레스가 에우뤼스테 우스의 애인이며, 그를 기쁘게 하기 위해 열두 가지 노역을 수행하였다고 한다. 또다른 설에 따르면 암피트뤼온에게 내려졌던 추방선고를 에우뤼스테우스가 취 소한다는 조건하에 이 일들을 하였다고 한다. f. 헤라클레스가 그 노역들을 시작하였을 때, 헤르메스는 그에게 칼을 주었고, 아 폴론은 그에게 활과 독수리 깃털로 깃을 만든 부드러운 화살을, 헤파이스토스는 황금흉갑을, 아테나는 로브를 선물하였다. 일설에는 아테나가 흉갑을 주었고, 헤 파이스토스가 청동 정강이받이와 견고한 투구를 주었다고 한다. 이에 더해 아테 나와 헤파이스토스는 헤라클레스를 위해 끝까지 도와주었다. 즉, 아테나는 그에 게 평화스러운 즐거움을 가져다주었고, 헤파이스토스는 전쟁의 위험에서 그를 보호해주었다. 포세이돈은 그에게 名馬를 주었고, 제우스는 화려면서도 결코 깨 어지지 않는 방패를 선물하였다. 그 방패는 에나멜, 상아, 금과 은의 합금, 황금 그리고 청금석으로 만들어졌다. 더구나 방패에는 열두 마리의 뱀대가리가 양각 (陽刻)되어 있는데, 헤라클레스가 전투에 임할 때마다 그 입에서 굉음이 나서 이 를 들은 적들을 놀라게 하였다. 그러나 헤라클레스는 무장하기를 꺼려하여 첫 번째 노역을 한 이후에는 좀처럼 창조차도 가지고 다니지 않고, 곤봉과 활, 화살 을 사용하였다. 그는 헤파이스토스가 선물한 청동으로 덧씌운 곤봉을 거의 사용 하지 않고 자신이 처음에는 헬리콘山에서 나중에는 네메아에서 직접 깎은 야생 올리브나무 곤봉을 사용하였다. 후에 헤라클레스는 사로니카海邊the Saronic Sea 에서 만든 야생 올리브나무를 세 번째로 사용하였다. 트로이젠을 방문하였을 때, 헤라클레스는 곤봉을 헤르메스像과 마주 보게 하여 땅에 꽂았는데, 그 곤봉은 곧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워 마침내 살아있는 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g. 그의 조카인 이올라오스는 그의 戰車夫로서 그리고 방패 운반자 (shield-bearer)로서 그와 노역을 같이 하였다. 『신화를 찾아서-유럽 신화 (go MYTH)』 501번 제 목:[잠적이/RGGM]123.첫번째노역-네메아의사자 올린이:빽호 (백원진 ) 98/11/13 12:37 읽음:190 관련자료 없음 ----------------------------------------------------------------------------- 123. 첫 번째 노역: 네메아의 사자 {{123. 첫 번째 노역: 네메아의 사자 }} 헤라클레스가 티륀스에 왔을 때, 에우뤼스테우스가 그에게 부과한 첫 번째 노 역은 네메아 혹은 클레오나이Cleonae의 거대한 사자의, 철, 청동, 돌로도 뚫지 못하는 가죽을 벗겨 오는 것이다. b. 일설에는 그 사자가 튀폰의 자식 혹은 키마이라와 오르트로스의 자식이라고 하지만, 다른 설에 따르면 셀레네가 낳았다고 하는데, 그 사자를 보고 너무나 두 려워 네메아 근처의 입구가 둘인 동굴이 있는 트레토스山Mt. Tretos에 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바쳐지는 불만족스러운 제물에 대해 벌하기 위해 사자 를 보내어 사람들을 잡아먹게 하였는데, 밤비나이人Bambinaean이 가장 피해가 극심했다. c. 또다른 설에 의하면 헤라의 부탁을 받은 셀레네가 거대한 방주를 둘러싼 바 다의 거품에서 이 사자를 창조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리스가 줄로 이 사자를 묶어 네메아의 산야로 데리고 왔다고 한다. 이 山들은 아소포스의 딸 혹은, 제 우스와 셀레네의 딸들의 이름을 따서 지었는데, 사자의 동굴은 지금도 남아 있 어서 네메아市에서 2마일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d. 헤라클레스가 코린토스와 아르고스 사이에 있는 클레오나이에 도착했을 때, 그는 노동자이며, 양치기인 몰로르코스Molorchos의 집에 머물렀는데, 몰로르코스 의 아들은 사자에게 잡아먹혔었다. 몰로르코스가 헤라 여신의 노여움을 달래기 위해 양을 바치려고 하자, 헤라클레스는 이를 말리면서 "30일만 기다리시오. 만 약 내가 무사히 돌아오면 그 양을 '구원자 제우스Saviour Zeus'에게 바치고 돌아 오지 못하면 나를 영웅으로 여기고 나에게 바치시오."라고 말했다. e. 헤라클레스가 한낮에 네메아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사자가 인근 사람들을 모 조리 잡아먹었기 때문에, 자신에게 길을 가르쳐 줄 사람도, 어떠한 발자취도 발 견할 수 없었다. 아페사스山Mt. Apesas(이 山은 아페산토스Apesantos라는 이 사자에게 잡아먹힌 양치기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하며 일설에는 아페산토스가 아크리시오스Acrisios의 아들이며, 뱀에게 발꿈치를 물려 죽었다고 한다.)을 수색 한 후, 헤라클레스는 트레토스山을 찾아갔다. 그리고 그 즉시 그 사자를 멀리서 발견하였는데, 그 사자는 그날 잡아먹은 시체의 피로 입 주위가 더럽혀진 채 동 굴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는 먼저 활을 쏘았지만, 사자의 두꺼운 가죽을 뚫지 못하고 맥없이 되튕겨 나왔다. 그리고 그 사자는 화살을 핥으며 하품을 하였다. 다음으로 헤라클레스는 칼을 사용하였지만, 마치 납으로 된 마냥 구부러지고 말 았다. 마지막으로 그는 곤봉을 잡고 사자의 아가리를 내리치자, 사자는 동굴로 돌아오며 머리를 흔들었다. 그러나 이는 고통 때문이 아니라 사자의 귀속에 맴 도는 음악 소리 때문이었다. 침통한 표정으로 부서진 곤봉을 바라보고 나서 헤 라클레스는 동굴의 한쪽 입구를 그물로 막고 다른 입구로 들어갔다. 어떠한 무 기로도 그 괴물을 해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는 사자와 맨몸으로 싸우기 로 하였다. 사자는 그의 손가락을 깨물었다. 그러나 헤라클레스는 사자의 머리 를 잡고 힘을 주어 죄어서 마침내 질식시켜 죽였다. f. 사자의 시체를 어깨에 매고 헤라클레스는 클레오나이로 되돌아왔다. 떠난 지 30일째가 되던 날 돌아왔는데, 바로 그때 몰로르코스는 헤라클레스를 위해 제물 을 바치려던 참이었다. 그들은 함께 구원자 제우스에게 제물을 바쳤다. 이 일 이 모두 끝이 나자 헤라클레스는 새로운 곤봉을 깎아 만들고, 그때까지 오펠테 스Opheltes를 기리던 네메아祭를 변경하여 제우스에게 바쳤다. 그리고 나서 사 자의 시체를 끌고 뮈케나이로 왔다. 이에 에우뤼스테우스는 놀라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두렵기도 해서 헤라클레스에게 다음부터 다시는 도시 안으로 들어오지 말고, 성문 밖에서 노역의 결과를 보이라고 명령하였다. g. 한동안 헤라클레스는 사자의 가죽을 벗기지 못해 당황하였는데, 마침내 좋은 생각(divine inspiration)이 떠올랐는데, 그것은 사자의 날카로운 발톱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마침내 헤라클레스는 무적의 가죽을 갑옷으로서 입게 되었고, 그 머 리는 투구로 쓰게 되었다. 반면 에우뤼스테우스는 자신의 대장장이에게 청동 항아리를 만들라고 명령하고 이 항아리를 땅속에 묻었다. 그리고 앞으로 헤라 클레스가 근처로 온다는 사실을 들을 때마다 그는 이 항아리 속으로 숨어서 전 령인 코프레우스Copreus(펠로프스의 아들로 살인죄에 대한 정죄의식을 치른 적 이 있다.)를 보내었다. h. 네메아市로부터 이 공적을 인정받아 얻은 영지를 헤라클레스는 나중에 엘레 이아전쟁Elean War에서 그의 편을 들어 싸웠으며, 360명의 전사자를 낸 클레오 나이의 헌신적인 동맹자들에게 양도하였다. 몰로르코스를 위해서는 근처에다 몰로르키아Molorchia市를 건설하였다. 또한 그는 네메아숲Nemean Wood을 조 성하였는데, 이곳에서 지금까지도 네메아祭가 열리고 있다. i. 그 당시 사자와 싸웠던 인물이 헤라클레스만은 아니었다. 헤라클레스의 친구 인 퓔리오스Phylios가 아폴론과 휘리아Hyria의 사이에서 태어난 퀴크노스Cycnos 로부터 부과 받은 사랑을 위한 세 가지 일 가운데 첫 번째로 헤라클레스와 똑같 은 일을 하였다. 퓔리오스는 또한 몇몇의 괴기스러운 새를 잡아먹는 사람들을 산채로 생포하였고, 성난 황소와 씨름을 하여 그 황소를 제우스의 신전으로 끌 고 가기도 하였다. 세 가지 일을 모두 수행하였을 때, 퀴크노스는 퓔리오스에게 그가 어떤 장례 경기에서 상으로 받은 소를 요구했다. 헤라클레스는 퓔리오스 에게 이 요구를 거절하고 퀴크노스와 조정하도록 압력을 넣으라고 충고하였다. 이에 퀴크노스는 절망감에 빠져 호수로 뛰어들어가 자살하였는데, 이 이후로 그 호수는 퀴크노스湖Cycnean Lake라고 불렀다. 그의 어머니는 휘리아 역시 아들 을 따라가 자살하였는데, 그들은 함께 백조가 되었다. 『신화를 찾아서-유럽 신화 (go MYTH)』 503번 제 목:[잠적이/RGGM]124.두번째노역-레르네의휘드라 올린이:빽호 (백원진 ) 98/11/17 20:10 읽음:105 관련자료 없음 ----------------------------------------------------------------------------- 124. 두 번째 노역: 레르네의 휘드라 에우뤼스테우스가 헤라클레스에게 부과한 두 번째 노역은 레르나이Lernae의 휘드라를 퇴치하는 것이었다. 휘드라는 튀폰과 에키드네Echidne의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헤라는 헤라클레스를 괴롭히기 위해 이 괴물을 길렀었다. b. 레르나Lerna는 바다와 인접해 있으며, 아르고스市로부터 대략 5마일 거리에 있다. 서쪽으로는 폰티노스Pontinos山이 자리잡고 있는데, 그곳에는 플라타너스 로 이루어진 聖林이 해변까지 이어져 있었다. 이 숲의 한 측면에는 폰티노스 江(이 옆에는 다나오스가 아테나에게 바친 성역이 있었다. )이 넘실거렸고, 반 대편에는 아뮈모네Amymone江이 흘렀고, 데메테르, '救援者' 디오뉘소스 그리 고 헤라의 유모 중의 한 명인 프로쉼네Prosymne의 彫像이 세워져 있었다. 그 리고 해변에는 아프로디테의 彫像이 서 있었는데, 이는 다나이데스들이 봉헌한 것이다. 해마다 레르네에서는 타르타로스로 세멜레를 구하러 간 디오뉘소스를 기리는 비밀 야간 의식이 내려간 장소 바로 그곳에서 열렸다. 또한 멀지 않은 곳에서는 '레르네의 데메테르Lernaean Demeter'의 秘儀가, 하데스와 페르세포 네가 타르타로스로 간 바로 그 지점에서 열렸다. c. 이 비옥하고 성스러운 지역은 휘드라에 의해 위협받았는데, 휘드라는 아뮈모 네江의 일곱 구비를 이루는 水源에 있는 플라타너스 아래에 자신의 거처를 만들 고,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레르네의 늪(네로 황제도 깊이를 재려고 시도하였다 가 실패하였다.)에 출몰하면서 부주의한 여행자들을 살해했다. 휘드라는 거대 한 개의 몸통에 여덟 혹은 아홉 개의 蛇頭가 있으며 그 중의 하나는 불사라고 한다. 일설에 의하면 그 머리는 50개 혹은 100개 심지어 만개라고도 한다. 어 쨌든 휘드라는 매우 치명적인 독을 내뿜었기 때문에 그것을 들어 마시거나 심 지어 독의 흔적을 맡기만 해도 목숨을 잃었다. d. 아테나는 어떻게 하면 헤라클레스가 이 괴물을 가장 쉽게 처치할 수 있을 지 에 대해 숙고했다. 그리고 헤라클레스가 이올라오스가 모는 전차를 타고 레르 네에 도착했을 때 휘드라의 동굴을 알려주었다. 그녀의 충고를 들은 헤라클레 스는 불화살을 쏘아 휘드라를 동굴 밖으로 나오게 했다. 휘드라가 동굴 밖으 로 나오자 헤라클레스는 숨을 멈추고 휘드라를 붙들었다. 그러나 그 괴물은 헤라클레스를 넘어뜨리기 위해 그의 다리를 휘어 감았다. 헤라클레스는 곤봉으 로 휘드라의 머리를 연타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머리가 부서질 때마다 두 세 개 혹은 그이상의 머리가 다시 생겨났기 때문이다. e. 커다란 게 한 마리가 늪에서 나와 휘드라를 도와 헤라클레스의 다리를 물었 는데, 이에 성이 난 헤라클레스는 그 게를 밟아 부수고는 이올라오스에게 도움 을 청했다. 이올라오스는 숲의 구석자리에 전차를 세운 후 전차에서 내려 횃불 로 휘드라의 잘린 머리부분을 태워 머리가 다시 생겨나지 못하게 하고 피가 흐 르지 못하도록 하였다. f. 그제야 헤라클레스는 칼 혹은 언월도를 사용하여 휘드라의, 일부분이 황금으 로 이루어진 불멸의 머리를 잘라내어 땅에 묻었다. 지금도 엘라이오스Elaeos로 가는 길가의 커다란 바위 밑에서는 쉿소리가 난다. 헤라클레스는 휘드라의 시 체에서 내장을 꺼내고 쓸개즙에 화살을 담갔다. 이후로 그 화살에 조금이라도 다치게 되면 치명적인 부상을 입게 되었다. g. 헤라는 휘드라를 도운 게에 대한 보답으로 그 게를 황도 십이궁의 하나로 삼 았다. 한편 에우뤼스테우스는 이 노역을 정식으로 인정하지 않았는데, 이는 이올라오스가 횃불로 헤라클레스를 도왔기 때문이다. 『신화를 찾아서-유럽 신화 (go MYTH)』 504번 제 목:[잠적이/RGGM]125.세번째노역-케뤼네이아의암사슴 올린이:빽호 (백원진 ) 98/11/17 20:10 읽음:102 관련자료 없음 ----------------------------------------------------------------------------- 125. 세 번째 노역: 케뤼네이아의 암사슴 {{125. 세 번째 노역: 케뤼네이아의 암사슴 }} 헤라클레스의 세 번째 노역은 케뤼네이아의 암사슴을 사로잡아, 산채로 오이노에Oenoe에서 뮈케나이로 데리고 오는 것이었다. 이 날쌘 얼룩무늬 암사슴(hind)은 청동발굽에다 수사슴(stag)처럼 황금으로 된 뿔이 달렸는 데, 이 때문에 사람들은 이 암사슴을 종종 수사슴이라고 한다. 이 암사슴 은 아르테미스에게 바쳐졌는데, 아르테미스가 어린아이였을 때 다섯 마리 의 황소보다 큰 암사슴이 테살리아의 파르하시아Parrhasia山 기슭의 아나 우로스Anauros江의 둑에서 풀을 뜯고 있는 것을 보았다. 사슴들의 뿔에 햇빛이 반짝였다. 그녀는 사슴을 쫓았는데, 그중 네 마리를 직접 차례로 사로잡아 자신의 마차에 매었다. 남은 다섯 번째 사슴은 켈라돈Celadon江 을 건너 케뤼네이아의 언덕으로 달아났는데, 이는 이미 헤라클레스에게 부 과할 노역을 염두에 두었었던 헤라여신의 의도였다. 일설에 의하면 이 사 슴은 들판을 황폐하게 만들던 주인 없는 괴물로서 헤라클레스가 이 사슴과 격렬하게 다툰 끝에 사로잡아 아르테미시온Artemision山의 정상에서 아르 테미스에게 바친 것이라고 한다. b. 이 사슴을 죽이거나 상처가 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헤라클레스는 완력 을 전혀 쓰지 않았다. 그는 1년 동안 끊임없이 사슴을 쫓았는데, 이스트리 아Istria에서 휘페르보레오이의 땅까지 돌아다녔다. 마침내 기진맥진해진 사슴이 아르테미시온山으로 도망친 후 라돈Ladon江으로 내려갔을 때 헤라 클레스는 사슴의 앞다리를 겨누어 활을 쏘아 도망치지 못하게 하였다. 즉, 뼈와 근육사이로 활을 맞추어 피 한방울 나지 않게 하였던 것이다. 헤라 클레스는 사슴을 어깨에 매고 서둘러 아르카디아를 지나 뮈케나이로 향했 다. 그런데 일설에 의하면 헤라클레스가 사슴을 사로잡을 때 사용한 것은 그물이라고 하는데 즉, 사슴의 뒤를 추적하던 헤라클레스는 어느 나무아래 에서 잠이 든 사슴을 그물로 잡았다고 한다. 아르테미스는 헤라클레스를 만나 聖獸를 학대한 것에 대해 비난하었다. 이에 헤라클레스는 어쩔 수 없다며 탄원하는 한편 에우뤼스테우스가 비난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화를 거둔 아르테미스는 그가 사슴을 산채로 뮈케나이에 데리고 가는 것을 허락했다. c. 이 이야기의 또다른 내용에 따르면 이 사슴은 플레이아스이며 알퀴오네 와 자매인 타위게테Taygete가 아르테미스에게 바친 것으로서 제우스가 포 옹하기 직전에 아르테미스가 그녀를 사슴으로 변신시켜 위기를 모면할 수 있게 해주었던 것에 대해 감사하는 의미에서였다. 그러나 제우스는 그다 지 오래 속지 않아 결국에는 그녀에게 라케다이몬을 끼쳤다. 그 결과 그 녀는 아뮈클라이오스Amyclaeos山에서 목매어 자살했는데 그후 그 산은 타 위게토스Taygetos山이라고 불렸다. 타위게테와 같은 이름을 가진 조카는 라케다이몬과 결혼하여 히메로스Himeros를 낳았는데 히메로스는 아프로디 테에 의해 누이인 클레오디케Cleodice를 어느 난잡한 잔치가 벌어진 날에 실수로 능욕하게 되었다. 다음날 자신이 저지른 일이 무엇인지 알게된 히 메로스는 강으로 뛰어들었고 그후 강은 때때로 그의 이름을 따서 불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히메로스江이라고 거의 불리지 않고 대신 에우로 타스Eurotas江이라고 불리는데 이는 라케다이몬의 선임왕인 에우로타스가 아테나이에 불명예스러운 패배를 한 것(滿月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전투 를 개시해야 하는데도 그것을 기다리지 못했기 때문에)에 부끄러워한 나머 지 그 강에 투신자살하였기 때문이다. 물방아의 발명가인 뮐레스Myles의 아들인 에우로타스는 아뮈클라스Amyclas의 아버지이며 휘아킨토스와 나중 에 아크리시오스와 결혼하는 에우뤼디케의 할아버지이다. 『신화를 찾아서-유럽 신화 (go MYTH)』 505번 제 목:[잠적이/RGGM]126.네번째노역-에뤼만토스의멧돼지 올린이:빽호 (백원진 ) 98/11/17 20:11 읽음: 97 관련자료 없음 ----------------------------------------------------------------------------- 126. 네 번째 노역: 에뤼만토스의 멧돼지 헤라클레스에게 부과된 네 번째 노역은 에뤼만토스의 멧돼지를 산채로 잡아오 는 것이었는데 그 멧돼지는 에뤼만토스Erymanthos山사의 사이프러스나무로 덮 인 비탈과 아르카디아의 람페이아Lampeia山에 출몰하던 사납고 거대한 짐승 으로 프소피스 주변을 황폐화시켰다. 에뤼만토스山은 아프로디테의 목욕장면 을 목격하여 아프로디테가 장님으로 만든 아폴론의 아들에서 이름에서 땄는 데, 아폴론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스스로 멧돼지로 변하여 아프로디테의 연인인 아도니스를 죽였다. 그런데 이 산은 아르테미스에게 바쳐졌다. b. 에뤼만토스로 가던 헤라클레스는 폴로에Pholo 를 지날 때 잔인한 산적인 사 우로스Sauros를 죽이고 실레노스와 물푸레나무 요정사이에서 태어난 켄타우로스 인 폴로스Pholos의 환대를 받았다. 폴로스는 헤라클레스에게 익힌 고기를 대 접했지만 자신은 날고기를 더 좋아했다. 4세대 전에 디오뉘소스가 켄타우로스 族에게 바로 이 경우를 대비하여 남겨둔 켄타우로스族 공동의 포도주 항아리가 있었는데, 폴로스는 헤라클레스가 이것을 그에게 상기시켜 주고 나서야 이 술항 아리를 열었다. 강한 술냄새를 맡은 켄타우로스족은 매우 분개하여 커다란 바 위와 뿌리째 뽑은 전나무, 횃불 그리고 도끼로 무장하고는 폴로스의 동굴로 몰 려들었다. 혼비백산한 폴로스가 숨는 동안 헤라클레스는 자신을 맨 처음 공격 한 안키오스Ancios와 아그리오스Agrios를 횃불을 던져 용감히 격퇴하였다. 켄 타우로스족의 구름 어머니{{) 네펠레는 제우스가 구름으로 만든 여성이다(역주) }}인네펠레Nephele는 폭우를 내려보냈는데, 이 때문에 헤라클레스의 활줄은 느슨 해졌고, 땅은 질퍽해졌다. 그러나 헤라클레스는 예전의 업적을 과시하며 수명의 켄타우로스를 살해했는데, 그들 가운데에는 오레오스Oreos와 휠라이오스Hylaeos 가 포함되어 있었다. 나머지들은 말레이아까지 도망갔는데, 그곳에는 펠리온山 그에서 라피타이족에게 쫓겨난 켄타우로스족과 그들의 왕인 케이론이 피난해 있 었다. c. 헤라클레스가 쏜 화살 가운데 하나가 엘라토스Elatos의 팔을 관통한 후 케이 론의 무릎에 박혔다. 자신의 오랜 친구인 케이론에게 벌어진 일에 슬퍼한 헤라 클레스는 화살을 뽑은 후, 케이론이 고약을 상처에 발랐음에도 불구하고 그 약 은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케이론은 고통을 못 이겨 신음을 토하며 자신의 동 굴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는 불멸의 몸이었기 때문에 죽을 수가 없었다. 나중 에 프로메테우스는 케이론에게 그를 대신하여 불멸을 양도받겠다는 제안을 했 고, 제우스가 이를 허용하였다. 그러나 일설에 의하면 케이론이 죽음을 선택한 이유는 고통을 못 이겨서가 아니라 오랜 삶에 싫증이 나서라고 한다. d. 한편 켄타우로스족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일부는 에우뤼티온을 따라 폴로에 로 갔고 일부는 네소스를 따라 에베노스江으로 갔고 일부는 말레이아Malea山으 로 갔다. 또 일부는 시켈리아로 향했는데, 도중에 세이렌에 의해 몰살당했다. 포세이돈은 엘레우시스에 남은 켄타우로스를 받아들여 그들을 산에 숨겨주었다. Among those ~ great fame. e. 한편 폴로스는 친척{{) 헤라클레스에게 죽은 켄타우로스族(역주)}}들을 묻으면 서 헤라클레스의 화살을 들고 살펴보았다. '이것이 얼마나 강력하기에 단지 긁 히기만 해도 죽는 걸까?'라며 궁금해했다. 그러나 화살이 그의 손에서 미끄러져 발에 꽂히자 그는 즉사했다. 헤라클레스는 추격을 멈추고 폴로에로 되돌아와 폴로스의 이름을 딴 산에 폴로스를 매우 정중히 묻어주었다. 이때 아니그로스 Anigros江은 라피토스Lapithos山의 水原에서 유래된 악취를 풍기게 되었다. 왜 냐하면 퓔레노르Pylenor라는 켄타우로스가 헤라클레스의 화살에 맞고 그 상처를 그곳에서 씻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설에 의하면 수년 전에 프로이토스의 딸 들을 정화시키는데 사용한 악취를 풍기는 물건을 멜람푸스가 아니그로스江에 던졌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f. 그 즉시 헤라클레스는 멧돼지를 추격하기 위해 에뤼만토스江을 따라 출발하였 다. 난폭한 짐승을 산채로 잡는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고함을 질러 멧돼지를 수풀에서 몰아내고 나서 눈 더미로 몰고 갔다. 그리고 멧돼지의 등에 올라타 사슬로 묶고는 산채로 어깨에 메고 뮈케나이로 향했다. 그런데 콜키스로 원정하기 위하여 아르고나우테스가 모집된다는 소식을 들은 헤라클레스는 멧돼지를 市場밖에다 던져두고는 청동항아리에 숨어있는 에우뤼 스테우스의 다음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 휠라스를 데리고 원정에 참가했다. 사 로잡은 멧돼지를 누가 죽였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 어금니는 지금도 쿠마 이의 아폴론 신전에 안치되어있다. g. 다른 설에 따르면 케이론이 왼발에 꽂힌 화살에 맞아 불의에 죽음을 맞이하 게 된 것은 그가 폴로스 그리고 어린 아킬레우스와 펠리온 산에서 헤라클레스 를 환대했을 때였다고 한다. 그로부터 9일 후 제우스는 케이론의 형상을 별자 리로 삼았는데, 이것이 켄타우로스자리이다. 그러나 다른 설에 따르면 켄타우 로스자리는 폴로스라고 하는데, 폴로스가 내장으로 점을 치는 데 있어서 가장 뛰어났기 때문에 제우스가 이를 기념하기 위해서 그를 별자리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사수座 또한 켄타우로스로서 헬리콘山에 살면서 수양남매인 무사이 여 신들의 총애를 받은 크로토스Crotos라고 한다. 『신화를 찾아서-유럽 신화 (go MYTH)』 506번 제 목:[잠적이/RGGM]127.다섯번째노역-아우게이아스의외양간 올린이:빽호 (백원진 ) 98/11/17 20:12 읽음: 99 관련자료 없음 ----------------------------------------------------------------------------- 127. 다섯 번째 노역: 아우게이아스의 외양간 헤라클레스의 다섯 번째 노역은 아우게이아스의 더러운 외양간을 하루만에 청 소하는 것이었다. 에우뤼스테우스는 헤라클레스가 바구니에 똥을 담아 어깨너 머로 던지는 구역질나는 장면을 상상하면서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엘리스의 왕인 아우게이아스는 헬리오스 혹은, 엘레이오스Eleios가 암피다마스 Amphidamas의 딸인 나우피아다메Naupiadame(일설에는 이피보에Iphibo )와 정 을 통해 낳은 아들이다. 일설에는 포세이돈의 아들이라고 한다. 가축수로는 그가 세상에서 가장 부자였다. 왜냐하면 신의 섭리에 의해 그의 가축들은 병에 걸리지 않았고 비할 데 없이 다산을 하였고, 결코 유산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 이다. 가축들이 대부분 암컷을 낳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우게이아스에게는 300 마리의 흰 다리를 가진 검정소와 200마리의 붉은 종우가 있었다. 이외에도 그 의 아버지 헬리오스에게 바쳐진 12마리의 빼어난 은백색 황소가 있었다. 이 열 두 마리의 소는 수풀이 우거진 숲에서 사는 짐승들로부터 가축을 보호했다. b. 그런데 아우게이아스의 외양간과 양우리에 있는 똥은 오랫동안 치우지 않아 서 비록 그 악취가 가축들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지만 펠로폰네소스 전체에 걸쳐 역병을 퍼뜨렸다. 더구나 계곡에 있는 목장은 똥이 너무 두껍게 쌓였기 때문에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되었다. c. 헤라클레스는 멀리서 아우게이아스에게 인사를 하고 나서 소떼의 1/10에 대 한 보답으로 그날 자정까지 외양간을 치우겠다고 하였다. 아우게이아스는 의 심스러운 듯 웃으며 맏아들인 퓔레우스Phyleus를 불러 헤라클레스의 제안에 대 한 증인으로 세웠다. 퓔레우스는 '자정까지 임무를 완수하겠다고 맹세하세요'라 고 헤라클레스에게 요구했다. 헤라클레스가 그의 아버지의 이름으로 맹세를 한 것은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아우게이아스 또한 이 거래를 준수하 겠다고 맹세를 하였다. 바로 이대 열두 마리 흰 소들의 우두머리인 파에톤 Phaethon이 헤라클레스를 사자로 오인하여 달려들었다. 그래서 그는 황소의 왼쪽 뿔을 잡아 목을 눌러 그 힘으로 때려눕혔다. d. 이올라오스의 도움을 받은 헤라클레스는 엘리스人인 메네데모스Menedemos 의 충고에 따라 먼저 외양간의 양쪽 벽을 부쉈다. 그리고 옆을 흐르던 알페이 오스강과 페네이오스강(혹은 메니오스Menios江)을 외양간을 관통하여 흐르게 하기 위해 끌어들여 외양간을 깨끗이 씻어내고 다음에 양우리와 계곡의 목장 을 청소했다. 이렇게 해서 헤라클레스는 이 노역을 하루만에 해냈고 또한 땅 을 회복시키는데 손가락 하나 더럽히지 않았다. 그런데 코프레우스에게서 헤라 클레스가 에우뤼스테우스로부터 그의 외양간을 청소하라는 명령을 먼저 받았다 는 사실을 전해들은 아우게이아스는 보상하기를 거부했을 뿐만 아니라 감히 헤 라클레스와 그런 계약을 했다는 사실조차 부인했다. e. 헤라클레스는 이 사건을 중재에 제기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재판관이 착석 하고 퓔레우스가 헤라클레스에 의해 소환되어 진실을 증언하자 아우게이아스는 격노하여 이 일은 河神이 한 것이지 헤라클레스가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신 은 헤라클레스에게 속았다고 주장하는 한편 그들은 엘리스에서 추방하였다. 설상가상으로 에우뤼스테우스는 이 노역을 열 개 가운데 포함하기를 거절하였 는데 이는 헤라클레스가 아우게이아스에게 고용되어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f. 퓔레우스는 그후 둘리키온으로 갔다. 그리고 헤라클레스는 올레노스Olenos 의 왕 덱사메노스Dexamenos의 법정에 갔는데 훗날 헤라클레스는 덱사메노스 의 딸 므네시마케Mnesimache를 켄타우로스인 에우뤼티온으로부터 구해냈다. 『신화를 찾아서-유럽 신화 (go MYTH)』 507번 제 목:[잠적이/RGGM]128.여섯번째노역-스튐팔로스의새들 올린이:빽호 (백원진 ) 98/11/17 20:12 읽음:100 관련자료 없음 ----------------------------------------------------------------------------- 128. 여섯 번째 노역: 스튐팔로스의 새들 헤라클레스의 여섯 번째 노역은 청동부리와 발톱 그리고 날개가 달린 셀 수 없 을 정도로 많은 수의 食人鳥를 몰아내는 것이었는데, 이 새떼는 아레스에게 바 쳐진 새로서 '오르코메노스의 길Orchomenan Road'에 있는 '늑대의 계곡'에 사 는 늑대에게 쫓겨나 스튐팔로스의 늪에 살게 되었다. 여기에서 그 새떼는 스튐 팔로스江에서 새끼를 낳으며 서식했으며 때때로 큰 무리를 이루어 하늘을 날아 청동깃털을 떨어뜨려 사람을 죽이는 동시에 독성 있는 똥을 싸서 곡식을 고사시 켰다. b. 짙은 숲에 둘러싸인 늪에 도착했을 때 헤라클레스는 화살로 새떼를 몰아낼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새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늪은 그 위를 걸어다닐 수 있을 만큼 단단하지도, 그렇다고 배를 타고 갈 수도 없었다. 헤라클레스가 둑에서 망설이고 있을 때 아테나는 그에게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청동 캐스터네츠 혹은 징을 주었다. 헤라클레스는 늪이 한눈에 보이는 퀼레네 Cyllene 산자락에 서서 캐스터네츠 혹은 징을 울렸다. 그러자 새들은 공포에 질 려 무리 지어 하늘로 날아올랐다. 새들이 흑해에 있는 '아레스의 섬the Isles of Ares'으로 날아갈 때 헤라클레스는 활을 쏘아 많은 수의 새를 죽였는데 나중에 아르고나우타이가 아레스의 섬을 지날 때 그 새들은 발견했다. 일설에 따르면 헤라클레스도 그때 아르고나우테스였고 더욱 많은 새들을 죽였다고 한다. c. 스튐팔로스의 새들은 두루미(crane)정도의 크기이며, 부리가 금속제 흉갑을 뚫을 만큼 단단하고 구부러지지 않았다는 점을 빼면 따오기(ibis)와 비슷하게 생 겼다. 그 새들은 아라비아사막에도 서식했었다. 새들은 여행객들의 가슴을 찔 러 죽임으로써 사자나 표범보다 훨씬 더 큰 문제를 야기했다. 아라비아의 사냥 꾼들은 격자무늬 나무판자로 만든 갑옷을 입어 자신의 몸을 보호했는데, 새들이 그 치명적인 부리로 갑옷을 찌르면 꽂혀 걸리게 되었는데, 사냥꾼들은 그 목을 잡아 비틀어 죽일 수 있었다. 아마도 이 새들 가운데 한 무리가 아라비아에서 스튐팔로스로 이주했던 것 같다. d. 일설에 의하면 이른바 '스튐팔로스의 새'는 여자였다고 한다. 그들은 스튐 팔로스와 오르니스Ornis의 딸로서 헤라클레스를 환대하지 않아 그에게 살해되었 다고 한다. 스튐팔로스에 있는 '스튐팔로스의 아르테미스Stymphalian Artemis' 의 오래된 신진에는 이 새들의 彫像이 신전 지붕 위에 있었고, 신전 뒤에는 새 의 다리를 가진 여성의 像이 있었다. 여기에 펠라스고스의 아들인 테메노스가 헤라여신을 기리는 세군데의 신전을 건설하였는데, 첫 번째 신전에서는 여신이 소녀로서 숭배되었는데 이는 테메노스가 그녀를 양육하였기 때문이다. 두 번째 신전에서는 신부로서 숭배되었는데 이는 그녀가 제우스와 결혼하였기 때문이며 세 번째 신전에서는 과부로서 숭배되었다. 이는 그녀가 제우스를 버리고 스튐 팔로스로 은퇴했기 때문이다. 『신화를 찾아서-유럽 신화 (go MYTH)』 508번 제 목:[잠적이/RGGM]129.일곱번째노역-크레테의황소 올린이:빽호 (백원진 ) 98/11/22 15:37 읽음: 94 관련자료 없음 ----------------------------------------------------------------------------- 129. 일곱 번째 노역: 크레테의 황소 에우뤼스테우스가 일곱 번째 노역으로 헤라클레스에게 명령한 것은 크 레테의 황소를 사로잡아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황소가 에우로페를 크레테로 데리고 오기 위해 제우스가 보낸 황소인지 아니면 미노스가 포 세이돈에게 바치기를 꺼려한, 파시파에에게 미노타우로스를 끼친 황소인 지는 불분명하다. 당시 이 황소는 작물을 뒤엎고 과수원의 벽을 허물어 뜨려 크레테를 황폐화시켰는데 특히 테트리스Tethris江의 물공급을 받던 지역이 더욱 피해가 심했다. b. 헤라클레스가 크레테에 입항하였을 때 미노스 왕은 가능한 모든 도움 을 주려 했으나, 그 황소가 화염을 내뿜었음에도 불구하고 헤라클레스는 혼자의 힘으로 황소를 사로잡기를 원했다. 긴 격투 끝에 그는 그 괴물을 뮈케나이까지 끌고 왔고 에우뤼스테우스는 황소를 헤라여신에게 봉헌하면서 풀어주었다. 그러나 헤라는 헤라클레 스의 영광을 유발시키는 선물을 싫어했기 때문에 그 황소를 처음에는 스 파르타로 몰아낸 후 다시 아르카디아와 이스트모스를 지나 아티카의 마 라톤으로 보냈는데 그후 테세우스는 황소를 잡아다가 아테나 여신에게 제물로 바쳤다. c.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크레테의 황소, 그리고 마라톤의 황소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다. 『신화를 찾아서-유럽 신화 (go MYTH)』 509번 제 목:[잠적이/RGGM]130.여덟번째노역-디오메데스의암말 올린이:빽호 (백원진 ) 98/11/22 15:47 읽음:108 관련자료 없음 ----------------------------------------------------------------------------- 130. 여덟 번째 노역: 디오메데스의 암말 에우뤼스테우스가 여덟 번째 노역으로 헤라클레스에게 명령한 것은 트 라키아의 왕 디오메데스의 4마리 암말을 사로잡아오는 것이었다. 디오 메데스가 아레스와 퀴레네Cyrene의 아들인지 아니면 아틀라스와 그 딸 인 아스테리에Asteri 와의 근친상간에서 태어난 아들인지에 대해서는 불 분명하다. 디오메데스는 호전적인 비스토네스Bistones를 통치하였고 지 금은 폐허가 된 티리다Tirida의 도시에 있던 그의 마구간은 트라케의 공 포의 대상이었다. 디오메데스는 암말들은 청동구유에다가 쇠사슬로 묶 었으며 불청객들을 죽여 말을 먹였다. 일설에 의하면 디오메데스의 말 들은 암말이 아니라 종마(種馬)로서 그 이름은 포다르고스Podargos, 람 폰Lampon, 크산토스Xanthos, 데이노스Deinos이다. b. 수많은 지원자와 함께 헤라클레스는 트라케를 향하여 출범하였으며, 도중에 친구인 페라이의 왕, 아드메토스를 방문했다. 티리다에 도착한 헤라클레스는 디오메데스의 마부(馬夫)를 제압하고 암말들을 바다로 몰 고 갔는데, 바닷가의 둔덕에서 그는 그 암말들을 부하인 압데로스 Abderos에게 맡기고 추격하던 비스토네스人들을 격퇴하기 위해 맞섰다. 헤라클레스 측은 숫자가 너무 적었기 때문에 그는 기발하게 적을 물리쳤 는데 즉, 수로를 터서 저지대(低地帶)로 물이 넘쳐들게 하였던 것이다. 적들이 후퇴하기 시작할 때 헤라클레스는 그들을 추격하여 곤봉으로 디 오메데스를 기절시켰다. 그는 디오메데스를 방금 생긴 호수주위를 끌고 다니다가 암말들에게 던졌고, 그 암말들은 디오메데스를 찢어서 잡아먹 었다. 헤라클레스가 큰 어려움 없이 말들을 길들였기 때문에 암말들은 광폭함은 누그러졌다. 그러나 헤라클레스가 떠난 후 말들은 압데로스를 죽였다. c. 일설에 의하면 압데로스가 비록 로크리스의 오푸스Opus人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디오메데스에게 고용되었었다고 한다. 일설에는 그가 헤르메 스의 아들이라고도 하며 다른 설에 따르면 헤라클레스의 친구인 오프스 人인 메노이티오스(Opian Menoetios)의 아들 즉, 트로이전쟁에서 전사한 파트로클로스의 형제라고도 한다. 압데로스의 무덤근처에 압데라Abdera 市를 건설한 후 헤라클레스는 디오메데스의 전차를 가지고 와서 ,비록 당시에는 재갈이나 굴레가 발명되기 전이었지만, 암말들을 그 전차에 매 어두었다. 그는 서둘러 말들을 몰고 뮈케나이에 도착하였고, 에우뤼스테 우스는 그 말들을 헤라 여신에게 바치고는 올륌포스 산에 풀어주었다. 말들은 나중에 우연히 산짐승에게 잡아먹혔는데, 일설에는 그들의 자손 들이 트로이전쟁 심지어 알렉산더 대왕 시대에까지 살아있었다고 한다. 디오메데스 궁전의 폐허는 지금도 '카르테라 코메Cartera Come'에 있으 며 압데로스를 기리기 위해 압데라市에서 벌어지는 체전(體典)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 체전에는 전차경기를 제외한 통상적인 경기가 벌어 지는데, 일설에 따르면 이는 압데로스가 탄 전차를 몰던 암말들이 전차 를 부수어 그를 죽게 했기 때문이다. 『신화를 찾아서-유럽 신화 (go MYTH)』 510번 제 목:[잠적이/RGGM]131.아홉번째노역-히폴뤼테의허리띠 올린이:빽호 (백원진 ) 98/11/24 20:34 읽음:104 관련자료 없음 ----------------------------------------------------------------------------- 131. 아홉 번째 노역: 히폴뤼테의 허리띠 a. 헤라클레스의 아홉 번째 노역은 아마존의 여왕인 히폴뤼테가 매고 있는 아레 스의 황금 허리띠를 에우뤼스테우스의 딸인 아드메테Admete에게 가져다주는 것 이었다. 헤라클레스는 한 척 혹은 아홉 척의 배에 수많은 지원자를 태우고 테 르모돈Thermodon江으로 출범하였는데, 그 원정대에는 이올라오스, 아이기나의 텔라몬, 이올코스의 펠레우스가 포함되어 있으며, 일설에 따르면 아테나이의 테 세우스도 원정에 참가하였다고 한다. b. 아마존族은 아레스와 나이아데스 가운데 한 명인 하르모니아Harmonia의 자 식들로서 프뤼기아의 아크모니아Acmonia의 계곡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일설에 따르면 아마존의 어머니는 아프로디테 혹은 아레스의 딸인 오트레레Otrere라고 도 한다. 원래 그녀들은 아마존江유역에 살고 있었는데, 그 강은 후에 타나이스 Tanais江으로 불렸다. 타나이스는 아마존인 뤼시페Lysippe의 아들로서 결혼을 경멸하고 전쟁을 숭배하여 아프로디테를 화나게 하였다. 이에 대한 복수로 아 프로디테는 타나이스가 어머니를 사랑하게 만들었는데, 타나이스는 이 근친상간 의 열정에 사로잡히기를 거부하고 강으로 뛰어들어 자살하였다. 그의 망령의 비난으로부터 피하기 위해 뤼시페는 딸들을 이끌고 흑해를 돌아 테르모돈강 유 역에 있는 고원에 정착하였는데, 이 고원은 아마존山에 있었다. 그곳에서 그녀 들은 세 부족을 형성하여 각자의 도시를 건설하였다. c. 그후부터 아마존족은 오직 어머니를 통해 가계가 이어져 나갔다. 그리고 여 자들이 전쟁과 통치를 행하고 남자들은 가사를 돌보아야 한다고 뤼시페는 규정 했다. 따라서 전쟁이나 여행을 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해 어린 소년들의 팔다리 를 부러뜨렸다. 스퀴티아人들이 오이오르파타Oeorpata라고 부른 이 이상한 여 자들은 정의나 예의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전사로서 유명하였고, 특히 처음으로 기병(騎兵)을 고안하였다. 아마존족은 청동 활과 반달 모양의 짧은 방 패를 휴대하였는데, 그녀들의 투구와 옷, 허리띠는 야생 짐승의 가죽으로 만들었 다. 전쟁터에서 전사하기까지 뤼시페는 거대한 도시인 테미스퀴라Themiscyra를 건설하였고 타나이스 강에 이르는 모든 부족을 정복하였다. 그녀는 아레스의 신전과 아르테미스 타우로폴로스의 신전을 세우고 전쟁에서 획득한 전리품을 바 쳤는데, 아르테미스 타우로폴로스에 대한 신앙은 그녀가 창시하였다. 그녀의 후 계자들은 아마존의 영토를 확장하여 서쪽으로는 타나이스 강을 건너 트라키아에 까지 확장시켰으며, 남쪽 해안으로는 테르모돈강을 건너 프뤼기아에 이르렀다. 세 명의 유명한 아마존 여왕인 마르페시아Marpesia, 람파도Lampado, 히포Hippo 는 小아시아(Asia Minor)와 쉬리아Syria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에페소스, 스뮈르 나, 퀴레네Cyrene, 그리고 뮈리네Myrine市를 건설하였다. 티바Thiba와 시노페 Sinope도 아마존족이 세운 도시이다. d. 에페소스에서 아마존은 너도밤나무 아래에 아르테미스 여신의 像을 세웠는데, 히포의 부하들이 파이프의 연주(그 당시에는 아직 아테나가 플롯을 발명하기 전 이다.)에 맞추어 일제히 땅을 두드리고 몸을 떨며 방패춤(shield dance)과 圓形춤 (round dance)을 추는 동안에 히포는 그곳에 제물을 바쳤다. 에페소스의 아르테 미스 신전은 세계 7대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인데, 셀레노스Selenos라고 불리는 두 강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신전 주위를 감싸 흐른다. 신전에 있는 아르테미 스 女神像은 그 장엄함에서 델포이의 아폴론像과도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뛰 어나다. 아마존족이 프리아모스가 아직 어린아이일 때 트로이를 정복한 것이 이 원정 때의 일이다. 그러나 아마존 군대의 일부가 막대한 전리품을 가지고 고국으로 돌아갔을 때, 소아시아의 군사력을 통합시키기 위해 남아있던 아마존 들은 동맹국인 야만족에 의해 쫓겨났고, 이때 여왕인 마르페시아가 전사하였다. e. 헤라클레스가 아마존에 도착하였을 무렵에는 그녀들 모두가 테르모돈강으로 귀환한 상태이고, 히폴뤼테, 안티오페Antiope 그리고 멜라니페Melanippe가 세 도 시를 각각 다스렸다. 아마존으로 가는 도중에 헤라클레스는 대리석으로 유명한 파로스 섬에 입항하였는데, 그곳에서는 라다만튀스 왕이 안드로게오스Androgeos 의 아들인 알카이오스Alcaeos에게 왕위를 물려주었으며 미노스의 네 아들인 에 우뤼메돈, 크뤼세스, 네팔리온Nephalion, 필로라오스Philolaos 역시 그곳에 정착 해 있었다. 헤라클레스의 승무원 중 두 명이 물을 구하기 위해 상륙했다가 미 노스의 아들들에 의해 살해되었다. 이에 분개한 헤라클레스는 그들 네 명 모두 를 죽였으며 파로스人들을 매우 격렬히 공격하여 파로스인들은 죽은 선원에 대 한 보상으로 그가 노예로 선택하는 두 명을 제공하기 위해 사절을 파견했다. 이 제안에 만족한 헤라클레스는 포위를 풀고 알카이오스 왕과 그의 동생인 스테 넬로스Sthenelos를 선택하여 배에 태웠다. 그후 헤라클레스는 헬레스폰토스와 보스포로스를 지나 뮈시아의 마리안뒤네Mariandyne에 도착하였는데, 그곳에서 파플라고니아의 왕인 뤼코스의 환대를 받았다. 이에 대한 보답으로 헤라클레스 는 베브뤽스人(Bebrycans)과의 전쟁에서 뤼코스를 도와 아뮈코스의 형제인 베브 뤽스의 왕, 뮈그돈Mygdon을 죽였고, 베브뤽스인들이 점령해 있던 파플라고니아 의 많은 부분을 회복하여 뤼코스에게 양도하였는데, 이 지역은 헤라클레스를 기 념하여 헤라클레이아Heracleia라고 불렸다. 그 후에 델포이의 퓌토네스에게서 조언을 받은 메가리아人(Megarians)과 타나그라人(Tanagrans)은 헤라클레이아 에 식민지를 건설하였는데, 퓌토네스는 그들에게 흑해 주변의 헤라클레스에게 바쳐진 성역에 식민지를 건설하라고 말했던 것이다. f. 테르모돈강 하구에 도착한 헤라클레스는 테미스퀴라의 항구에 닻을 내렸을 때, 히폴뤼테는 헤라클레스를 방문하였는데 헤라클레스의 건장한 몸에 반한 그 녀는 아레스의 허리띠를 사랑의 선물로 주었다. 그러나 그 동안 헤라는 아마존 으로 변장하여 이 이방인들이 히폴뤼테를 유괴하려고 한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그 결과 격노한 여전사들은 말에 올라타 배를 향해 돌진하였다. 이를 배신으로 여긴 헤라클레스는 그 즉시 히폴뤼테를 죽이고 허리띠를 벗기고는 그녀의 도끼 와 다른 무기들을 쥐고 방어 준비에 나섰다. 헤라클레스는 다른 두 명의 아마 존의 지도자를 차례로 죽이고는 대학살을 벌인 후 그 군대를 패주시켰다. g. 그러나 일설에 의하면 멜라니페는 숨어 있다가 히폴뤼테에 대한 몸값으로 허 리띠를 주었거나 그 반대로 허리띠와 히폴뤼테를 교환하였다고 한다. 또다른 설에 의하면 테세우스가 히폴뤼테를 사로잡아 허리띠를 헤라클레스에게 주었고, 이에 대한 보답으로 헤라클레스는 안티오페를 그에게 노예로 주었다고 한다. 또다른 설에 따르면 히폴뤼테가 그 허리띠를 헤라클레스에게 양도하기를 거부하 여 전투를 하게 되었는데, 그녀가 낙마(落馬)했을 때 헤라클레스가 곤봉을 든 채 로 그녀를 밟고 올라서서 자비를 베풀려고 했지만, 그녀는 이를 거부하고 죽음 을 택했다. 그 허리띠가 백수(百手)괴물인 브리아레오스Briareos의 딸의 것이라 는 설도 있다. h. 테미스퀴라로 돌아오는 길에 헤라클레스는 마리안뒤네에 다시 상륙하여 뮈시 아人에게 살해된 뤼코스의 동생인 프리올라스Priolas의 장례경기에 참가하였다. 지금도 프리올라스를 애도하는 만가(輓歌)가 전해지고 있다. 헤라클레스는 마리 안뒤노스人의 권투경기 우승자인 티티아스Titias와 겨루어 그의 이빨을 모두 부 러뜨리고 관자놀이를 때려 결국 그를 죽이고 말았다. 이 사고에 대한 반성의 표시로 그는 다스퀼로스Dascylos를 대신하여 뮈시아人과 프뤼기아人을 정복하였 다. 그리고 그는 비튀니아人(Bithynians)을 정복하여 레바스Rhebas江의 입구와 콜로네Colone山의 정상까지 공략하여 그곳의 왕국들을 요구하였다. 펠로프스의 파플라고니아人들은 자발적으로 그에게 항복하였지만 헤라클레스가 떠나자마자 포세이돈의 아들인 아뮈코스의 지도하에 베브뤽스人들은 뤼코스의 영토를 약탈 하여 휘피오스Hypios江까지 영토를 확장시켰다. i. 그후 트로이로 향한 헤라클레스는 헤시오네를 바다괴물로부터 구해내고 트라 키아의 아이노스Aenos로 항해를 계속했는데, 그곳에서 그는 폴튀스Poltys의 환 대를 받았다. 그리고 출항할 때, 헤라클레스는 아이노스의 해변에서 포세이돈의 아들이며 폴튀스의 오만한 형제인 사르페돈Sarpedon을 죽였다. 다음에 헤라클 레스는 타소스Thasos에 정착해 있던 트라키아人들을 복속시킨 후 그 섬을 파로 스에서 데리고 온 안드로게오스의 아들들에게 주었다. 토로네Torone에서는 프 로테우스의 아들들인 폴뤼고노스Polygonos 그리고 텔레고노스Telegonos와 레슬 링 경기를 하여 그들 모두를 죽였다. j. 결국 뮈케나이로 돌아온 헤라클레스는 허리띠를 에우뤼스테우스에게 주었고 에우뤼스테우스는 이것을 아드메테에게 주었다. 그 외에도 헤라클레스는 많은 전리품을 아마존에게서 빼앗아왔는데, 값비싼 로브는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에 바쳤고 히폴뤼테의 도끼는 옴팔레 여왕에게 주었는데 옴팔레는 이 도끼를 뤼디 아 왕권의 성스러운 표장(標章)가운데 하나로 삼았다. k. 가르가렌시아人(Gargarensians)과 함께 테미스퀴라에서 알바니아Albania로 쫓 겨난 아마존족은 지금도 콜키스근처의 그곳에 살고 있다. 알바니아산맥 (Albanian mountains)의 안전한 지역으로 이주한 후 그들은 분리하여 아마존족 은 카우카소스산 기슭의 메르모다스Mermodas江 주위에 정착하였고, 가르가렌시 아人들은 아마존이 거주한 지역의 북쪽지역에 정주하였다. 매년 봄 지정된 날 짜에 아마존과 가르가렌시아의 젊은이들은 양 부족의 경계를 이루는 카우카소스 산 정상에서 만나 합동 제사를 지낸 후 두달간 밤에 蘭交를 벌였고 아마존족은 자신이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면 그 즉시 귀환하였다. 이때 여자아이가 태어나 면 아마존으로 키웠고,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가르가렌시아로 보내졌다. 가르가 렌시아로 보내진 남자아이들의 아버지를 찾을 길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추첨 으로 아버지를 정했다. 최근에 아마존의 여왕인 미뉘튀이아Minythyia는 알바니 아의 왕궁을 떠나 호랑이가 출몰하는 휘르카니아Hyrcania로 알렉산더 대왕을 방 문하였다. 그곳에서 알렉산더와 13일간 함께 보낸 그녀는 그의 자식을 낳고 싶 어했지만 곧 아이를 낳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l. 위에서 말한 흑해의 아마존은 트리토니스Tritonis 호수 위에 있는 섬으로 과일 나무와 양, 염소가 너무나 많아 경작할 필요가 없는 헤스페라Hespera에 살고 있 던 디오뉘소스의 뤼비아人 동맹자와는 구별되어야 한다. 주변의 뤼비아인과 유 목민을 정복한 아이티오피아의 물고기를 먹는(fish-eater)자(그들은 에메랄드와 루비, 토파즈 그리고 홍옥광산을 소유하고 있다.)들의 도시인 메네Mene를 제외 한 헤스페라에 있는 모든 도시를 정복한 후 그들은 대도시인 케르소네소스 Chersonesos를 건설하였는데, 이는 도시가 반도에 건설되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 름이다. 이 도시를 근거로 그들은 아틀란티스人(Atlantians)을 공격하였는데, 아 틀란티스는 당시 가장 발달된 문명국으로 나일강 서쪽에 위치하고 있었고 그 수 도는 대서양(Atlantic)의 케르네Cerne섬에 있었다. 아마존의 여왕인 뮈리네 Myrine는 삼만의 기병(騎兵)과 삼천의 보병(步兵)을 일으켰다. 그들 모두는 활 을 휴대하고 있었는데, 퇴각할 경우 추적자들을 정확히 쏘곤 하였다. 또한 그녀 들은 믿을 수 없을 만큼 거대한 뤼비아의 뱀가죽으로 무장하였다. m. 아틀란티스를 침공한 뮈리네는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어 케르네로 도항하여 도시를 정복하였다. 그녀는 모든 남자들을 죽이고 여자들과 어린아이들은 노예 로 삼고 성벽을 완전히 파괴하였다. 살아남아 있던 아틀란티스인들이 항복하기 로 결정하자 그녀는 그들을 공평히 대접하여 그들을 친구로 삼고 케르네를 파괴 한 것에 대한 보상으로 새로운 도시인 뮈리네市를 건설하여 포로들과 그곳에 살 고자 하는 모든 사람을 살게 해주었다. 아틀란티스인들이 그녀에게 신수적(神授 的)인 경의를 표하자 뮈리네는 그들을 이웃한 고르곤族(tribes of Gorgons)으로 부터 보호하였는데, 그들과의 전쟁에서 수많은 고르곤 족을 죽이고 그 외에 적 어도 삼천 명의 포로를 사로잡았다. 그러나 그 날밤 아마존이 승리를 축하하는 향연을 벌이고 있을 때 포로들은 그녀들의 칼을 훔치고 신호를 보내어 참나무 숲에 다시 모여 숨어있던 고르곤족의 주력부대가 사방에서 몰려들어 뮈리네의 부대를 섬멸시키게 하였다. n. 뮈리네는 탈출을 시도하여 리뷔아 전역을 횡단한 후 새로운 군대를 이끌고 이집트로 가 이시스의 아들인 호루스를 도와 아라비아를 침략했다. 일설에 의 하면 소아시아를 정복한 종족은 흑해로부터 온 아마존이 아니라 리뷔아의 아마 존이라고 하며 뮈리네는 자신의 제국의 가장 적당한 장소를 골라 수많은 도시를 건설하였는데, 그 가운데에는 뮈리네, 퀴메Cyme, 피타네Pitane, 프리에네Priene 가 포함되어 있으며 내륙에도 많은 도시를 건설하였다고 한다. 그녀는 또한 에 게海상의 많은 섬을 정복하였는데, 특히 레스보스섬에는 자신과 함께 전쟁에 참 가한 동생 뮈틸레네Mytylene의 이름을 딴 도시를 건설하였다. 뮈리네가 여러 섬을 정복하는데 몰두하고 있을 때 폭풍이 불어와 그녀의 함대를 덮쳤다. 그러 나 어머니神(Mother of the Gods)이 전 함대를 안전하게 당시 무인도였던 사모 트라케까지 인도하고 이에 뮈리네는 제단을 쌓고 막대한 제물을 바쳤다. o. 그리고 나서 뮈리네는 트라키아 본토를 횡단하였는데, 그곳의 왕인 몹소스 Mopsos와 그와 동맹을 맺은 스퀴티아의 시퓔로스Sipylos가 정당한 전투에서 그 녀의 군대를 패배시키고 그녀를 살해했다. 이 패배이후 아마존軍은 그 후 빈번 하게 일어난 트라키아와의 전쟁에서 두 번 다시 승리를 거두지 못했고 살아남은 아마존족은 마침내 리뷔아로 이주하게 되었다. 『신화를 찾아서-유럽 신화 (go MYTH)』 511번 제 목:[잠적이/RGGM]132.열번째노역-게뤼온의소 올린이:빽호 (백원진 ) 98/12/02 13:46 읽음:103 관련자료 없음 ----------------------------------------------------------------------------- 132. 열 번째 노역: 게뤼온의 소 헤라클레스의 열 번째 노역은 오케아노스江(stream)근처에 있는 에뤼테이아 Erytheia섬에서 게뤼온의 이름난 소떼를 요구나 대가를 치르지 않고 데리고 오는 것이었다. 게뤼온은 크뤼사오르Chrysaor와 오케아노스의 딸 칼리로에Callirrho 의 아들로서 스페인에 있는 타르테소스Tartessus의 왕이며 소문에 의하면 살아있는 가장 힘센 남자라고 한다. 그는 머리가 셋에 몸통이 셋으로 그 몸통은 허리를 맞대고 붙어있었다. 아레스의 아들인 에우뤼티온과 튀폰과 에키드나의 소생인 오르트로스(이전에는 아틀라스의 소유였었다.)가 게뤼온의 매우 아름다운 붉은 소떼를 지켰다. b. 유럽을 횡단하는 동안 많은 야생 괴물을 퇴치한 헤라클레스는 마침내 타르테 소스에 도착하여 해협을 두고 유럽과 아프리카에 각각 서로 마주보는 한 쌍의 기둥을 세웠다. 일설에 의하면 두 대륙은 원래 붙어 있었는데 헤라클레스가 그 사이에 해협을 파고 절벽을 떨어뜨려 놓았다고 하며 또다른 설에 의하면 이와는 반대로 그가 고래나 바다 괴물이 지중해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해협을 좁혀 놓았 다고 한다. c. 헬리오스가 햇빛을 강하게 비추었기 때문에 너무 더워 아무 일도 하지 못했 던 헤라클레스는 헬리오스를 향해 화살 한 대를 날렸다. "그만하면 충분해!"라 고 화가 난 헬리오스가 외치자 헤라클레스는 자신의 분간 없는 행동에 대해 사 과하며 즉시 활을 내려놓았다. 그의 공손함에 화가 풀린 헬리오스는 그에게 수 련 모양의 황금 술잔을 빌려주었고 헤라클레스는 이것을 타고 에뤼테이아까지 항해했다. 그러나 그를 시험하기 위해 오케아노스가 맹렬한 파도를 일으켜 배 를 몹시 흔들리게 하자 헤라클레스는 또다시 활을 들어 오케아노스를 위협해 파 도를 잠재웠다. 일설에 의하면 헤라클레스가 에뤼테이아까지 타고 간 것은 청 동 항아리이며 그의 사자가죽을 돛으로 삼았다고 한다. d. 에뤼테이아에 도착한 헤라클레스는 아바스Abas山에 올라갔다. 그를 발견한 오르트로스는 짖어댔지만 헤라클레스의 곤봉에 맞아 죽었다. 오르트로스를 돕 기 위해 급히 쫓아온 게뤼온의 소치기인 에우뤼티온 역시 똑같은 방법으로 살해 되었다. 그들을 죽인 후 헤라클레스는 소떼를 이끌고 나아갔다. 그런데 근처에 서 하데스의 소떼(헤라클레스는 이들을 건드리지 않았다.)를 치고 있던 메노이테 스Menoetes가 이 사실을 게뤼온에게 알렸다. 게뤼온과 맞붙은 헤라클레스는 그 의 측면으로 가서 비스듬히 화살 한 대를 쏘았고 그 화살은 게뤼온의 허리를 관 통했다. 그러나 일설에 의하면 헤라클레스는 물러서지 않고 화살 세대를 가볍 게 쏘았다고 한다. 헤라클레스가 게뤼온을 돕기 위해 서둘러 온 헤라 여신의 오른쪽 가슴에 화살 한 대를 쏘자, 여신은 도망을 쳤다. 이렇게 하여 헤라클레 스는 아무런 요구나 대가를 치르지 않고 소떼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는 소 떼를 배에 태워 타르테소스를 건너온 후 황금 술잔을 기쁜 마음으로 헬리오스에 게 돌려주었다. 한편 플레이아데스座가 떠오를 때, 게뤼온이 흘린 피에서 나무 한 그루가 생겨났는데 이 나무에는 체리 모양의 핵이 없는(stoneless) 열매가 열 렸다. 그러나 게뤼온이 아무런 자손 없이 죽은 것은 아니었다. 그의 딸인 에뤼 테이아Erytheia는 헤르메스와 정을 통해 노락스Norax를 낳았는데, 노락스는 사르 디니아Sardinia로 이주하여 휠로스Hyllus에 앞서 사르디니아에서 가장 오래된 도 시인 노라Nora市를 건설하였다. e. 에뤼트레아Erythrea 혹은 에뤼트리아Erythria라고도 불리는 에뤼테이아의 위치 를 두고 이견이 분분하다. 어떤 사람들은 그곳을 오케아노스海너머에 있는 섬 으로 보고 있고, 다른 사람들은 루시타니아Lusitania 해변에 위치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또다른 사람들은 에뤼테이아를 레온Leon섬이나 레온섬 근처의 작은 섬과 동일시한다. 레온섬에는 가우데스Gades市가 있었는데, 그곳의 목장은 너무나 광대하여 유장(乳漿;whey)은 산출하지 않고 단지 응유(凝乳;curds)를 산출하였다. 또한 소들은 피가 과도하게 넘쳐 질식사하지 않도록 50일마다 한번씩 피를 빼주 어야 했다. 헤라 여신에게 바쳐진 이 섬은 에뤼테이아 혹은 아프로디시아스 Aphrodisias라고 불렸다. 지금의 가우데스市가 있는 레온섬은 코티누사Cotinusa 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이는 그 섬의 유명한 올리브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페니키아人들은 이 섬을 가디라Gadira 즉 '둘러싸인 도시(Fenced City)'라 고 불렀다. 섬 서쪽 끝의 곶(岬)에는 크로노스 신전과 가우데스市 있었고 동쪽 끝의 곶에는 헤라클레스의 신전이 있었는데 이곳에서 주목할 것은 썰물 때에는 밀물이, 밀물 때에는 썰물이 있었다는 것이다. 게뤼온의 시체는 도시 안에 매장 되었는데 그곳에는 다양한 형태를 띠는 이상한 나무로 유명했다. f. 그러나 일설에 의하면 게뤼온의 소떼는 섬에서 방목된 것이 아니라 오케아노 스海에 접해있는, 스페인에서 멀리 떨어진 산비탈에서 방목되었다고 한다. 그리 고 게뤼온은 그 모든 땅을 다스리던 유명한 왕인 크뤼사오르의 칭호이며 크뤼사 오르에게는 세 명의 힘세고 용감한 아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각각 호전적인 종족 들 중에 징집한 군대를 이끌고 아버지의 왕국을 지켰다. 그들과 싸우기 위해 헤라클레스는 아버지의 고향인 크레테에서 대규모의 원정대를 규합하였다. 출 범하기 전에 크레테인들로부터 성대한 환송을 받은 헤라클레스는 이에 대한 보 답으로 섬에서 곰, 늑대, 뱀 그리고 다른 유해한 짐승들을 제거하였는데, 지금도 크레테에는 이러한 것들이 없다. 먼저 그는 리뷔아로 향했는데 그곳에서 안타 이오스를 죽이고 사막에 출몰하던 야생 짐승들을 죽여 그곳에 유래 없는 풍작을 가져다주었다. 다음으로 이집트를 방문한 그는 부시리스Busiris를 죽이고 서쪽으 로 진군하여 북아프리카를 건너면서 고르곤族(Gorgons)과 리뷔아의 아마존족을 전멸시켰다. 그는 또한 지금의 카프사Capsa인 헤카톰퓔로스Hecatompylus市를 건설하였으며 남부 누미디아Numidia를 지나 가우데스 근처의 오케아노스海에 도 착했다. 그곳에서 해협 양쪽에 기둥을 세운 후 자신의 군대를 배를 이용해 수 송한 헤라클레스는 크뤼사오르의 세 아들이 각자의 군대를 이끌고 서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숙영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그들을 차례로 격파하고 살해 한 후 마침내 게뤼온의 유명한 소떼를 몰고 가게 되었으며 그곳에 살고 있던 사 람 가운데 가장 고귀한 자에게 스페인의 통치권을 남겨주었다. g. 헤라클레스의 기둥은 보통 유럽의 칼페Calpe山과 아프리카의 아뷜레Abyle 혹 은 아빌뤽스Abilyx山라고 한다. 그러나 일설에는 가우데스 근처의 두 개의 작은 섬이라고도 하는데 그중에 큰 섬이 헤라 여신에게 바쳐졌다고 한다. 그러나 모 든 스페인人과 리뷔아人은 '기둥Pillars'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여 가우데스에 있다 고 주장하는데, 즉 높이가 8큐빗이며 그들의 건물의 가격이 새겨져 있는 헤라클 레스에게 바쳐진 청동 기둥(columns)이 헤라클레스의 기둥이며 이곳에서 선원들 은 안전하게 항해를 마칠 때마다 제물을 바친다고 한다. 가우데스人들에 의하 면 헤라클레스의 기둥 근처에 식민지를 건설하라는 신탁을 받은 튀레Tyre市의 왕이 탐험대를 연속하여 세 번 파견하였다고 한다. 아뷜레와 칼페가 신탁이 가 리키는 곳이라고 생각한 첫 번째 탐험대는 해협안쪽에 지금의 엑시타니Exitani市 가 있는 곳에 상륙하였고 두 번째 탐험대는 해협너머 약 200마일 바깥의, 스페 인의 오노바Onoba市와 마주보고 있는 헤라클레스에게 바쳐진 섬에 상륙하였다. 그러나 이 두 탐험대가 제물을 바칠 때 불길한 징조가 나타나자 귀국하였다. 이에 반해 세 번째 탐험대는 가우데스에 도착한 후 동쪽의 곶에 헤라클레스의 신전을 건설하고 서쪽의 곶에 성공적으로 가우데스를 건설하였다고 한다. h.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헤라클레스가 기둥을 세웠다는 것을 부정하고 있다. 그리고 아뷜레와 칼페가 처음에는 '크로노스의 기둥(The Pillars of Cronus)'이라고 불렸으며 나중에 당시까지 가장 힘이 셌던 거인인 '브리아레오스의 기둥(The Pillars of Briareus)'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브리아레오스(아이가 이온이라고도 불린)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지자 헤라클레스를 기리기 위해 지금 처럼 이름 붙여졌는데, 이는 아마도 칼페에서 단지 5마일 떨어진 곳에 헤라클레 스가 건설하고 보통 헤라클레이아Heracleia라고도 불린 타르테소스市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거대한 옛 성벽과 선박창고가 아직도 그곳에 남아있다. 하지만 명심해야할 것은 어린 시절에 헤라클레스는 브리아레오스라고 불리기도 했다는 사실이다. 헤라클레스의 기둥의 숫자에 대해 보통 두 개라고 하는데 일설에는 세 개 혹은 네 개라고도 한다. 이른바 '헤라클레스의 기둥'으로 불리는 것들이 북부 독일 해변(the northen coast of Germany), 흑해, 갈리아(Gaul)의 서쪽 끝 그 리고 인도에도 있다. i. 세계의 서쪽 끝인 루시타니아Lusitania의 '聖岬(the Sacred Promontory)'에는 헤 라클레스의 신전이 있다. 밤에는 방문객들이 그 영역 안으로 출입하는 것이 금 지되었는데, 그 시간에는 신들이 그곳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아마도 헤라클레스 가 적당한 항해의 제한선을 정하기 위해 기둥을 세울 때, 그 장소를 선택했던 것 같다. j. 그후 헤라클레스가 어떻게 뮈케나이까지 소떼를 몰고 왔는지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일설에 의하면 그가 아뷜레와 칼페를 잠시 맞붙여 다리를 만들어 그 위로 소떼를 끌고 리뷔아로 갔다고 한다. 그러나 널리 알려진 바로는 페니 키아의 식민지인 지금의 압데라Abdera라고 불리는 지방을 통과한 후 스페인을 지나갔다고 하는데, 이때 자신을 따라다닌 많은 사람들을 그곳에 두어 식민지를 건설하게 했다. 퓌레네에Pyrenee에서 그는 베브뤽스人(Bebrycan)의 공주인 퓌레 네Pyrene를 유혹하고 매장했는데(buried) 이 산악지역을 그녀의 이름을 따서 지 었다. 그리고 그녀의 이름을 딴 도시 근처에 다누베(Danube)江의 수원(水源)이 있다고 한다. 그후 그는 갈리아를 방문하여 이방인을 죽이는 야만스러운 토착 관습을 폐지하였고 공손한 태도로 주민들을 대해 신망을 얻어 거대한 도시를 건 설할 수 있었다. 그는 도시를 자신의 여행을 기념하기 위해 알레시아Alesia 즉, '방황(Wandering)'이라고 이름지었다. 갈리아인들은 지금까지도 알레시아를 그들 민족 전체의 母市로 여기고 있는데, 이 도시는 칼리귤라Caligula 시대까지 정복되 지 않았다. 그리고 갈리아인들은 자신들이 헤라클레스와 갈라타Galata라는 키가 큰 공주의 후예라고 주장하는데 갈라타는 헤라클레스를 자신의 연인으로 삼아 호전적인 민족을 낳았다. k. 헤라클레스가 게뤼온의 소를 몰고 리구리아Liguria를 지날 때 이알레비온 Ialebion과 데르퀴노스Dercynos라는 포세이돈의 두 아들이 그의 소를 훔치다가 결국 살해되었다. 적대적인 리구리아軍과 전투를 하게 되었을 때 헤라클레스는 화살을 모두 써버렸고 부상도 당하고 지쳐서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었다. 땅 이 무른 탓에 그는 이알리비온의 동생인 리귀스Ligys가 이끄는 적에게 던질 돌 을 찾지 못했으나 그가 눈물을 흘리는 것을 불쌍하게 여긴 제우스가 구름으로 지상을 가리게 했는데 그 구름에서 지상으로 돌 소나기가 쏟아졌다. 이 돌로 헤라클레스는 리구리아인들을 물리쳤다. 제우스는 리구리아인들과 싸우는 헤라 클레스의 모습을 별자리에 수놓았는데 이것이 엔고나시스(Engonasis)座라고 알려 진 별자리다. 이 전투의 또다른 기념물이 지상에 남아있다. 즉, 마르세이유와 로네Rh ne江사이에 있고 바다로부터 약 15마일 떨어진 곳에 있는 넓은 원형의 평원은 '돌의 평원(the Stony Plain)'이라고 불리는데 이는 사람의 주먹만한 돌맹 이가 산재해 있고 짠 샘물 또한 그곳에서 발견되기 때문이다. l. 리구리아의 알프스를 지날 때 헤라클레스는 자신의 군대와 수송대가 통과할 수 있도록 길을 만들었다. 또한 그는 알프스 이남의 갈리아(Cis-alpine Gaul)와 에트루리아에 도착할 때까지 길목마다 출몰하는 도둑들을 퇴치하였다. 이탈리 아 전역의 해안을 방황하고 시켈리아로 건너간 다음에야 헤라클레스는 자신이 길을 잘못 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로마인들에 의하면 훗날 티베르Tiber 라고 불리는 알부라Albula에 도착하자마자 헤라클레스는 아르카디아에서 추방되 었던 에반데르Evander왕의 환영을 받았다고 한다. 저녁이 되었을 때 그는 말을 뒤에 이끌고 헤엄쳐 건너 풀이 많은 곳에 쉬기 위해 누웠었다. 근처에 있던 깊 은 동굴에는 커다랗고 몹시 추하며 머리가 셋인 양치기 카쿠스Cacus가 살고 있 었다. 카쿠스는 헤파이스토스와 메두사의 아들로서 아벤티누스 숲(Aventine Forest)의 무섭고도 수치스러운 존재였으며 각자의 머리에서 불을 내뿜었다. 인 간의 해골과 팔이 동굴의 상인방위에 걸려있었으며 동굴안의 땅바닥은 희생자들 의 뼈로 인해 희미하게 빛이 나고 있었다. 헤라클레스가 잠자고 있는 동안 카 쿠스는 헤라클레스의 소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황소 두 마리와 암송아지 두 마 리를 훔쳐 꼬리를 끌어 뒷걸음질치게 하여 동굴로 데려갔다. m. 새벽이 되어 깨어난 헤라클레스는 그 즉시 소 몇마리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 을 알아챘다. 수색을 해도 소용이 없자 그는 남을 소들을 몰고 앞으로 나아갔 는데 그때 도둑맞은 암송아지가 배고파 우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헤라클레스 는 소리가 나는 곳을 추적하여 동굴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황소 열 마리가 동원되어도 움직이지 못할 커다란 바위가 입구를 가로막았다. 그럼에도 불구하 고 헤라클레스는 마치 조약돌을 옮기듯이 바위를 옆으로 밀어 올렸으며 카쿠스 가 내뿜는 연기나는 불길에도 기죽지 않고 카쿠스를 붙잡아 얼굴을 흠씬 두들겨 팼다. n. 에반데르왕의 도움을 받아 헤라클레스는 제우스를 위한 제단을 만들어 그곳 에다 되찾은 황소 가운데 한 마리를 제물로 바치고 헤라클레스 자신에 대한 숭 배의 전통을 세웠다. 그러나 로마인들은 이 이야기를 자신들을 영광스럽게 만 들기 위해 각색했다. 즉, 카쿠스를 죽이고 제우스에게 제물을 바친 사람이 헤라 클레스가 아니라 헤라클레스의 동맹자인 가라누스Garanus 혹은, 레카라누스 Recaranus라는 거인 양치기라고 로마인들은 주장한다. o. 에반데르왕은 무력에 의한 통치보다는 개인적인 우월함(personal ascendancy) 에 의한 통치를 하였다. 그는 특히 그가 자신의 예언가 어머니인 아르카디아의 뉨프, 니코스트라테Nicostrate 혹은 테미스로부터 전수받은 문자에 대해 존경받았 다. 니코스트라테는 라돈 河神의 딸로서 에케노스Echenus와 결혼한 상태였지만 헤르메스와 정을 통해 에반데르를 낳았고 에반데르를 설득하여 그의 추정된 아 버지(his supposed father)를 살해하게 했다. 그리고 아르카디아인들이 그들을 추 방하였을 때 펠라스고이人(Pelasgians) 한 무리를 이끌고 에반데르와 함께 이탈 리아로 건너왔다. 트로이전쟁이 발발하기 60여년쯤 전에 그들은 그곳 티베르강 옆에 있던 훗날 팔란티네Pallantine山이라고 불리는 언덕에 팔란티움Pallantium이 라는 작은 도시를 건설하였다. 그곳을 선정한 자는 니코스트라테이며 얼마가지 않아 에반데르는 全 이탈리아에서 가장 강력한 왕이 되었다. 지금은 카르멘타 Carmenta라고 불리는 니코스트라테는 카드모스가 이집트에서 도입한 13자음의 펠라스기아 알파벳을 개량하여 14자음의 라틴 알파벳을 만들었다. 그러나 일설 에 의하면 에반데르의 백성들에게 문자를 가르친 것은 헤라클레스이며 이것이 헤라클레스가 제단(祭壇)을 무사이와 공유하는 이유라고 한다. p. 로마인들에 의하면 에트루스카人(Etruscans)들에게 공물을 바치는 의무에서 에 반데르를 자유롭게 한 자가 헤라클레스라고 한다. 헤라클레스는 이방인들을 잡 아 아버지인 헤르메스의 제단에 제물로 바치던 에트루스카의 왕 파우누스 Faunus를 죽이고 파우누스의 미망인 혹은 딸과 정을 통해 라틴민족의 조상인 라티누스를 낳게 했다. 그러나 그리스인들은 라티누스가 오뒤세우스와 키르케 의 아들이라고 주장한다. 어쨌든 헤라클레스는 두명의 산 사람을 제물로 바치 는 크로니아의 연중 제사(annual Cronian sacrifice)를 폐지시켰으며 그후 로마인 들은 인형을 대신 사용하였다. 지금도 매년 오월에 보름달이 떴을 때 베스타의 처녀들 중의 우두머리가 참나무로 만든 '폰스 수블리키우스Pons Sublicius'에 올 라가 '아르고스人(Argives)'이라고 불리는, 갈대로 엮고 흰색으로 칠한 늙은이 모 양의 인형을 누런 빛이 나는 강에다 던졌다. 헤라클레스는 폼페이Pompeii와 헤 르쿨라네움Herculaneum의 건설자이며 쿠마이의 플레그라 평원(Phlegraenan Plain)에서 거인들과 싸웠고, 루크리네灣(Lucrine Gulf)을 가로지르는 지금의 '헤라 클레스의 길(Heracleian Road)'이라고 불리는 약 1마일 정도의 길을 만들었다고 한다. r. 일설에 의하면 에뤽스Eryx(그의 레슬링場은 지금도 있다.)에게는 프소피스 Psophis라는 딸이 있는데 헤라클레스에게 에케프론Echephron과 프로마코스 Promachus라는 두 아들을 낳아주었다고 한다. 그들은 에뤼만토스Erymanthus에 서 자랐는데 그 지역을 어머니의 이름을 따서 프소피스라고 이름짓고 그곳에 '에뤼키니아의 아프로디테(Erycinian Aphrodite)'의 성소를 세웠는데, 지금은 단지 폐허만이 남아있다. 에케프론과 프로마코스의 성소(聖所hero-shrine)가 그 중요 성을 잃어버리게 된후 프소피스는 아르카스Arcas의 손자인 크산토스Xanthus의 딸로 여겨지게 되었다. s. 시켈리아를 통과하여 길을 계속가던 도중 헤라클레스는 지금의 시라쿠사 (Syracuse)가 있는 지역에 도착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그는 제물을 바치고 하데 스가 코레Core를 저승으로 납치해간 '퀴아네의 성스러운 틈(the sacred chasm of Cyane)'옆에서 매년 열리는 축제를 창시하였다. 레온티니Leontini 평원에서 자신 을 숭배하는 사람들을 위해 헤라클레스는 자신의 방문을 영원히 기념하는 기념 물을 남겼다. 아귀리움Agyrium市 근처에는 그의 소떼가 남긴 발굽 자국이 돌로 만든 길에 마치 비누에다 남긴 것처럼 찍혀있는데 이것은 그의 불멸성을 암시하 는 듯하다. 헤라클레스는 그때까지 한사코 거절했던 신으로서의 명예(divine honours)를 이곳 주민들에게는 받아들였다. 그리고 나서 그들의 호의에 대한 보 답으로 성벽밖에 둘레가 약 4펄롱인 호수를 파고 이올라오스와 게뤼온의 성역을 조성했다. t. 그리스로 가는 또다른 길을 찾으면서 이탈리아로 돌아오던 중에 헤라클레스는 소떼를 동부해안으로 몰고 가서 라키니아岬(Lacinian Promontory)에 도착하였다. 그곳의 지배자인 라키니오스Lacinios왕은 나중에 자신이 헤라클레스를 물리쳤다 고 뽐낼 수 있었는데 이는 라키니오스가 헤라 신전을 건설하는 것을 본 헤라클 레스가 넌더리를 내며 그곳을 떠났기 때문이다. 6마일을 더 간 헤라클레스는 우연히 크로톤Croton을 죽이게 되었는데 정성껏 그를 묻으면서 헤라클레스는 장 차 그의 이름을 딴 거대한 도시가 그곳에 세워질 것이라고 예언했다. 이 예언 은 헤라클레스가 신격화된 이후에 실현되었다. 그는 자신의 후손가운데 한명인 아르고스人(Argive) 뮈스켈로스Myscelus의 꿈에 나타나 만약 그가 이주자를 이끌 고 시켈리아로 건너가 도시를 세우지 않으면 무서운 벌을 내리겠다고 위협하였 다. 아르고스인들이 이주금지명령을 위반한 것에 대해 뮈스켈로스를 사형에 처 하려고 했을 때 그는 모든 검은 투표용 조약돌을 하얀색으로 변하게 해주었다. u. 그후 헤라클레스는 소떼를 이스트리아Istria를 지나 에피로스Epirus로 몰고가서 이스트모스를 통과하여 펠로폰네소스로 가자고 제안했다. 아드리아灣(Adriatic Gulf)을 지날 때 헤라는 쇠파리를 보내 소들을 도망치게 하여 트라키아를 가로질 러 스퀴티아 사막까지 흩어지게 했다. 헤라클레스는 이들을 추격하였고 어느 춥고 폭풍이 부는 날 밤에, 그는 사자가죽이 바람에 날라가자 바위가 많은 언덕 기슭에서 잠을 청했다. 깨어났을 때 그는 풀을 뜯게 하기 위해 풀어놓았던 전 차용 암말 또한 사라진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소떼와 암말을 찾기 위해 전 역을 헤매다가 휠라이아Hylaea라는 수풀이 우거진 곳에 도착하게 되었는데 그곳 에 있는 동굴에서 반은 여자이고 반은 뱀인 괴물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이 암말을 가지고 있는데 그가 자신의 연인이 되지 않으면 돌려주지 않겠다고 말했다. 헤라클레스는 약간의 거리낌이 있었긴 하지만 그녀 의 말에 동의하여 세 번 입맞춤을 하였다. 그러자 그 뱀꼬리를 한 여자는 열렬 히 그를 껴안았고 마침내 그를 풀어준 후 다음과 같이 물었다. "지금 내가 임신 한 세 아들은 어떻게 해야지요? 그들이 어른이 된 후에 내가 지배하는 곳에 머 물게 할까요, 아니면 당신에게 보낼까요?" v. "그들이 클 때 잘 보살펴 주시오! 그리고 만약 아들가운데 한 명이 이 활을 굽힐 수 있다면 - 자, 내가 지금 굽히고 있소- 그리고 이 벨트를 스스로 맬 수 있다면 - 자, 내가 지금 졸라매고 있소- 그 아이를 당신의 나라의 지배자로 삼 으시오."라고 헤라클레스는 대답했다. 이렇게 말하고 헤라클레스는 자신의 두 개의 활 가운데 하나와 황금 술잔이 조임쇠에 걸려있는 허리띠를 그녀에게 주고 길을 떠났다. 그녀는 자신이 낳은 세쌍둥이를 각각 아가튀르소스Agathyrsus, 겔 로노스Gelonos, 스퀴테스Scythes라고 이름지었다. 두 형은 아버지가 제시한 임 무를 달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어머니는 그들을 내쫓았지만 스퀴테스는 두 가지 임무를 모두 완수하여 남아있을 수 있었고 모든 고귀한 스퀴티아 왕들의 조상이 되었는데, 오늘날까지도 스퀴티아의 왕들은 허리띠에 황금 술잔을 달고 있다. 그러나 일설에 의하면 헤라클레스가 아니라 제우스가 뱀꼬리를 한 여자와 동침 하였고 그녀가 낳은 세 명의 아들이 그 땅을 아직 함께 다스리고 있을 때 네가 지 황금으로 된 도구, 쟁기와 멍에, 전투용 도기 그리고 컵이 하늘에서 떨어졌다 고 한다. 먼저 아가튀르소스가 그것들을 취하기 위해 다가갔으나 그가 접근하 자 그 황금 도구들이 타올라 그의 손을 태웠으며 겔로노스 역시 비슷하게 실패 했다. 그러나 막내인 스퀴테스가 다가가자 불꽃은 그 즉시 사그라졌으며 그 결 과 그는 네가지 황금 보물을 손에 넣을 수 있었고 형들은 그에게 왕국을 양보하 게 되었다. w. 암말과 대부분의 길을 잃은 소떼를 되찾은 헤라클레스는 스트뤼몬Strymon江 에 이르게 되어 소떼를 건너게 할 목적으로 돌로 개울을 막았다. 거인 양치기 인 알퀴오네우스Alcyoneus를 만나기 전까지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코린 토스의 이스트모스(Corinthian Isthmus)의 주인인 알퀴오네우스는 헤라클레스를 또다시 따라다니던 군대를 향해 바위를 내던져 12대 이상의 전차와 24명의 마부 (馬夫)를 죽였다. 이 알퀴오네우스는 헬리오스의 성스러운 소떼를 두 번 훔쳤는 데 처음에는 에뤼테이아에서, 다음은 코린토스의 성채에서이다. 알퀴오네우스는 앞으로 달려가 바위를 또다시 집어들었으나 그것을 헤라클레스에게 던지자 이를 헤라클레스가 맞받아쳐 그 돌에 다시 맞아 죽고 말았다. 그 바위는 지금도 이 스트모스에 있다. 『신화를 찾아서-유럽 신화 (go MYTH)』 513번 제 목:[잠적이/RGGM]133.열한번째노역-헤스페리데스의황금사과 올린이:빽호 (백원진 ) 98/12/08 14:18 읽음:103 관련자료 없음 ----------------------------------------------------------------------------- 133. 열한번째 노역: 헤스페리데스의 황금사과 헤라클레스는 열 가지 노역을 8년 1개월만에 모두 완수했다. 그러나 두 번째 와 다섯 번째를 인정하지 않은 에우뤼스테우스는 그에게 두 가지를 더 부과하였 다. 열한번째 노역은 지모신(地母神Mother Earth)이 헤라 여신에게 결혼 선물로 준 황금 사과나무의 열매를 따오는 것이었는데 이 선물에 기뻐한 헤라는 이 사 과나무를 자신의 성스러운 정원에 심었다. 이 정원은 아틀라스산의 비탈에 위 치하고 있는데 그곳은 태양 마차가 여행을 마치고 쉬는 곳이며 각각 천마리인 아틀라스의 양떼와 소떼가 방목되는 곳이다. 어느 날 헤라는 그 나무를 맡긴 아틀라스의 딸들, 즉 헤스페리데스가 사과를 훔치는 것을 목격하고는 항상 감시 하는 용인 라돈Ladon을 나무를 휘어 감게 하여 지키도록 하였다. b. 라돈은 튀폰과 에키드나의 자식이라고 하며 일설에 의하면 케토와 포르퀴스 의 막내라고 하며 또다른 설에 따르면 지모신이 혼자 힘으로 낳은 자식이라고도 한다. 라돈은 백개의 머리가 달렸는데 각각은 서로 다른 말을 하였다. c. 헤스페리데스의 거주지에 대해 이견이 분분하여 휘페르보레오스의 땅(the Land of the Hyperboreans)에 있는 아틀라스山, 마우렌타니아Maurentania의 아틀 라스山, 오케아노스海너머의 어떤 지역, 혹은 아프리카 변경의 에티오피아의 헤 스페리아이Hesperiae근처에 위치한 '西極(Western Horn)'이라고 불리는 곶(岬) 등 이 제시되고 있다. 비록 사과가 헤라의 것이기는 하지만 아틀라스는 그 황금사 과나무가 있는 정원의 정원사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테미스가 그에게 "티탄이여. 언젠가 제우스의 아들이 당신의 나무에서 그 황금의 껍질을 벗기게 될 것이에요."라고 경고하자 아직 天球(celestial globe)를 어깨에 짊어지는 벌을 받지 않았었던 아틀라스는 정원 주위에 견고한 벽을 쌓고 자신의 땅에서 이방인 들을 모두 몰아냈다. 아마도 아틀라스가 사과를 지키기 위해 라돈을 데려다 놓 았을 것이다. d. 헤스페리데스의 정원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고 있는 헤라클레스는 일뤼리아 Illyria를 가로질러 예언가인 동시에 海神인 네레우스Nereus의 거처인 포Po江에 이르렀다. 그가 마케도니아의 작은 시냇물인 에케도로스Echedorus를 건널 때 아레스와 퓌레네Pyrene의 아들인 퀴크노스Cycnos는 그에게 결투를 신청했다. 아레스는 퀴크노스의 원조자인 것처럼 행동하여 부대를 정비하였다. 그러나 제 우스가 그들 사이에 벼락을 던져 싸움을 못하게 하였다. 마침내 헤라클레스가 포강에 도착하였을 때 제우스와 테미스의 딸들인 포강의 뉨프들이 그에게 네레 우스가 잠들어 있는 곳을 알려주었다. 헤라클레스가 백발노인을 꼭 붙잡고 그 가 아무리 프로테우스처럼 여러 가지 모양으로 변신하여도 절대 놓아주지 않고 는 황금사과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을 물었다. 그러나 일설에 의하면 이 정보를 프로메테우스에게서 들었다고 한다. e. 네레우스는 헤라클레스에게 그가 직접 사과를 따지 말고 아틀라스를 시켜 따 오도록 하되 아틀라스가 사과를 따러 가는 동안 그 엄청난 짐을 대신 들어주라 고 충고하였다. 그리하여 헤스페리데스의 정원에 도착한 헤라클레스는 아틀라 스에게 이러한 수고를 해달라고 부탁하였다. 아틀라스는 한시간만이라도 짐을 벗을 수 있다면 어떠한 일이라도 할 생각이 있었지만 라돈을 무서워했다. 이에 헤라클레스는 정원 담에 올라 활을 쏘아 라돈을 죽였다. 그 즉시 헤라클레스는 아틀라스를 대신하여 천구를 등에 받쳤고 아틀라스는 성큼 걸어가 자신의 딸들 을 시켜 사과 세 개를 따게 했다. 아틀라스는 자유가 얼마나 좋은 것인지 깨닫 게 되었다. "만약 네가 하늘을 몇 달만 더 떠받쳐 주면 내가 이 사과를 아무런 실수없이 에우뤼스테우스에게 가져다주마."라고 그는 말했다. 네레우스로부터 이러한 제안을 절대 승낙하지 말라는 경고를 받은 헤라클레스는 동의하는 체 하 며 머리받이를 할 동안만 잠깐 들어달라고 요청했다. 쉽게 속은 아틀라스가 사 과를 땅에 놓고 그 짐을 다시 들자 헤라클레스는 사과를 집어들고 비꼬는 인사 를 하며 멀리 도망쳤다. f. 수개월 후 헤라클레스는 사과를 에우뤼스테우스에게 가져다주었는데, 에우뤼 스테우스는 이 사과를 그에게 다시 돌려주었다. 그는 이것을 아테나 여신에게 주었고 그녀는 이것을 다시 뉨프에게 돌려주었다. 왜냐하면 헤라의 소유물이 이리저리 넘겨지는 것이 불법이었기 때문이다. 이 노역을 하고 나서 목이 말랐 던 헤라클레스는 발로 땅을 밟아 샘이 흘러나오게 했는데, 훗날 리뷔아 사막에 서 표류하였던 아르고나우테스들이 이 샘을 마시고 목숨을 건졌다. 한편 라돈 의 죽음을 슬퍼한 헤라는 라돈의 모습을 별자리로 박았는데 이것이 뱀자리(the constellation of the Serpent)이다. g. 헤라클레스는 뮈케나이에 곧바로 오지 않았다. 그는 먼저 리뷔아를 횡단하였 는데, 그곳의 왕이며 포세이돈과 지모신의 아들인 안타이오스Antaeus는 이방인 에게 자신과 레슬링을 할 것을 강요하여 그들을 지치게 만든 후 죽이는 버릇이 있었다. 안타이오스는 원래부터 힘이 세고 운동 기술이 능했을 뿐만 아니라 땅 에 닿을 때마다 기운을 되찾았다. 그는 희생자들의 뼈를 포세이돈 신전의 지붕 에 모아두었다. 이러한 야만적인 행위를 끝내기 위해 헤라클레스가 먼저 결투 를 신청했는지 아니면 안타이오스가 먼저 도전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안 타이오스가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그는 높이 솟아오른 절벽아래의 동굴에 사 는 거인이었는데 그곳에서 그는 사자고기를 즐겨 먹었으며 그 자체로도 강력한 힘을 보존하고 더욱 증가시키기 위해 맨땅바닥에서 잠을 잤다. 기간테스를 낳 은 후 아직까지 임신을 할 수 있었던 지모신은 리뷔아의 동굴에서 안타이오스를 임신하였으며 자신이 낳은 괴물들 즉, 튀폰, 티튀오스Tityus, 브리아레오스보다 안타이오스를 더욱 자랑스럽게 여길만한 이유가 있었다. 만약 안타이오스가 플 레그라 평원에서 벌어진 기간토마키아에서 올륌포스신들과 대적을 하였다면 아 마 신들은 매우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h. 레슬링 시합을 준비하면서 헤라클레스와 안타이오스는 자신들의 사자가죽을 벗어 던졌다. 그러나 헤라클레스가 올륌포스신들이 그러하듯이 기름을 몸에 바 르는 동안 안타이오스는 발바닥만이 땅에 닿더라도 부족함이 없게 하기 위해 뜨 거운 모래를 온몸에 퍼부었다. 헤라클레스는 자신의 힘을 아끼고 안타이오스를 지치게 하려고 했으나 땅바닥에 힘껏 그를 던졌을 때 지모신이 생기를 다시 불 어넣어 그 거인의 근육이 부풀고 그의 사지에 홍조가 떠오르는 것을 보고는 놀 랄 수밖에 없었다. 둘은 다시 맞붙었는데 안타이오스는 헤라클레스가 자신을 던질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몸을 날렸다. 이를 본 헤라클레스는 어떻게 된 일인지 알게 되어 그를 공중으로 들어올려 사지를 부러뜨리고 지모신이 공허 한 신음소리에도 불구하고 죽을 때까지 공중에 들고 있었다. i. 일설에 의하면 이 결투는 탕헤르Tangier市에서 약 50마일 떨어진 바닷가 근처 의 작은 마우레타니아의 도시(Mauretanian City)인 릭소스Lixus市에서 벌어졌다고 하는데 그곳에는 안타이오스의 무덤이라고 알려진 작은 언덕이 있다. 이 언덕 에서 흙 한 통을 퍼다가 다른 곳에 두면 그 흙이 원위치될 때까지 비가 계속해 서 내린다고 그곳 원주민들은 믿고 있다. 세르토리우스Sertorius가 탕헤르를 방 문하였을 때 안타이오스가 전통적으로 묘사된 것처럼 거인인지 확인하기 위해 무덤을 팠다. 놀랍게도 그 크기가 60큐빗이었으며 이에 놀란 세르토리우스는 그 즉시 무덤을 덮고 안타이오스를 영웅으로 모시는 제사를 지냈다. 탕헤르市 의 건설에 대해서 예전에 팅기스Tingis라고 불리던 이 도시를 안타이오스가 건설 하였다는 지방전설도 있으며 안타이오스의 아내인 팅가Tinga가 헤라클레스에게 낳아준 소팍스Sophax가 이 도시를 다스리면서 어머니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도 한다. 소팍스의 아들인 디오도로스Diodorus는 헤라클레스가 아프리카에 남겨 둔 뮈케나이 출신의 이주민중에서 뽑은 그리스 군대를 이끌고 아프리카의 많은 국가를 정복했다. 마우레타니아人(Mauretanians)은 팔루시이人(the Pharusii)처럼 동방에서 도래했는데 헤라클레스와 함께 아프리카까지 동행한 어떤 페르시아人 의 후손이다. 그러나 일설에 의하면 그들은 이스라엘人(Israelite) 여호수아Jhosua 에 의해 쫓겨난 가나안人(Canaanites)의 후손이라고도 한다. j. 다음으로 헤라클레스는 암몬에 있는 신탁소를 방문했는데 그곳에서 아버지 제 우스와 만나기를 청했다. 그러나 제우스는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기를 꺼려했기 때문에 헤라클레스가 자꾸만 고집하자 양의 가죽을 벗겨 그 양털을 뒤집어쓰고 양의 머리로 자신의 머리를 가린 채 아들에게 일련의 지시를 내렸다. 그후 이 집트인들은 양머리를 한 제우스 암몬 신을 모셨다. 테바이인(the Thebans)들은 일년에 한번 제우스축제일의 마지막날에 양 한 마리를 잡아 그 양털로 제우스의 像에 뒤집어씌웠다. 숭배자들은 희생물에 대해 한탄하며 가슴을 친 후에 그것 을 성스러운 무덤에 묻었다. k. 그후 헤라클레스는 남부지방을 공략하여 100개의 성문이 있는 도시를 건설하 고 자신의 고향을 기념하여 테바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러나 일설에는 이 도시 의 건설자는 오시리스라고 한다. 이 당시 이집트의 왕은 포세이돈이 에파포스 Epaphus의 딸 뤼시아나사Lysianassa 혹은 닐루스(Nile) 河神의 딸 아니페Anippe 와 정을 통해 낳은 아들이자 안타이오스의 형제인 부시리스Busiris였다. 그런데 언젠가 부시리스의 왕국에 8년 내지 9년간 대기근이 발생해서 부시리스는 그리 스의 점쟁이를 초빙하여 조언을 듣고자 했다. 퓌그말리온의 아들로서 그의 조 카이며 학식 많은 퀴프로스의 예언자 프라시오스Phrasius 혹은 트라시오스 Thrasius 혹은 타시오스Thasius는 제우스에게 해마다 이방인 한 명을 제물로 바 치면 기근이 끝난다고 충고하였다. 부시리스는 프라시오스를 첫 제물로 바쳤으 며 그후 그의 사제들이 헤라클레스를 제단으로 끌고 올 때까지 해마다 이방인 한 명을 제물로 바치기 시작했다. 사제들은 헤라클레스의 머리를 띠로 묶었고 신을 부르던 부시리스는 제사용 도기를 들어올리려고 할 때 헤라클레스는 오라 를 끊어버리고 부시리스와 그의 아들인 암피다마스Amphidamas 그리고 제사에 참석했던 모든 사람들을 죽였다. l. 그후 헤라클레스는 아시아를 횡단한 후 로도스섬의 린도스市의 항구인 테르뮈 드라이Ternydrae에 입항하였다. 그곳에서 헤라클레스는 한 농부의 우마차에서 수소 한 마리의 멍에를 풀고 제물로 바친 후 그 고기를 배불리 먹었다. 한편 그 소의 주인은 어떤 산에 올라서서 멀리서 그를 저주하였다. 그후에 린도스에 서는 헤라클레스에게 제물을 바칠 때 항상 저주를 퍼붓는 풍습을 생겨났다. 마 지막으로 헤라클레스는 카우카소스山(the Caucasus Mountains)에 도착했는데 그 곳에서는 프로메테우스가 30년 혹은 1000년 혹은 3만년 동안 묶여 있었고 매일 튀폰과 에키드나의 소생인 독수리(griffon-vulture)가 그의 간을 찢어놓았다. 제우 스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이 형벌을 후회하고 있었는데 이는 프로메테우스가 그에 게 테티스와 결혼하면 그 자신보다 위대한 자식이 태어날 것이기 때문에 그녀와 결혼하지 말라고 충고해주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제우스는 프로메테우 스를 용서해달라고 헤라클레스가 청하자 아무런 반대 없이 승낙했다. 그러나 프로메테우스에게 영원한 형벌을 과한다는 의미에서 제우스는 그에게 아직도 죄 수임을 증명하기 위해 그 동안 그를 카우카소스의 바위에 묶어두었던 사슬로 만 든 반지를 끼도록 하였다. 이것이 최초의 반지이다. 그런데 프로메테우스의 고 통은 그를 대신하여 어떤 불멸자(不滅者)가 자진하여 타르타로스로 가여만 없어 지도록 되어 있었다. 그래서 헤라클레스는 제우스에게 케이론이 휘드라의 화살 을 맞은 이후 불멸이라는 선물을 반납하고 싶어한다고 얘기하였다. 이로써 방 해되는 모든 것이 사라지자 헤라클레스는 '사냥의 신 아폴론(Hunter Apollon)'에게 기원한 후 화살을 날려 독수리를 죽이고 프로메테우스를 풀어주었다. m. 지금도 인간들은 프로메테우스의 영광을 기리기 위해 반지를 낀다. 그리고 또한 화관(花冠)을 쓰는데 이는 프로메테우스가 해방될 때 버드나무로 만든 화관 을 쓰도록 명령받았으며 헤라클레스 역시 그와의 우정을 과시하기 위해 야생 올 리브로 만든 화관을 썼기 때문이다. n. 전능한 제우스는 그 화살을 화살좌(the constellation Sagitta)로 만들었다. 그리 고 오늘날까지 카우카소스山의 주민들은 독수리(griffon-vulture)를 인류의 적으로 여겨 프로메테우스의 복수를 하기 위해 그 둥지를 불화살로 쏴서 태우고 덫을 놓곤 한다. 『신화를 찾아서-유럽 신화 (go MYTH)』 514번 제 목:[잠적이/RGGM]134.열두번째노역-케르베로스의생포 올린이:빽호 (백원진 ) 98/12/08 18:33 읽음:116 관련자료 없음 ----------------------------------------------------------------------------- 134. 열두 번째 노역: 케르베로스의 생포 헤라클레스의 마지막이자 가장 어려운 노역은 타르타로스에서 케르베로스를 데 려오는 것이었다. 준비단계에서 그는 秘儀에 참석하고 도금양冠을 쓰기 위해 엘레우시스로 갔다. 오늘날에는 호평을 받는 어떠한 그리스인들도 엘레우시스 秘儀에 참가할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아테나이人(Athenians)만 참가할 수 있었 기 때문에 테세우스는 퓔리우스Pylius라는 사람에게 그를 양자로 삼게 하였고 퓔 리우스는 이에 응했다. 손에 피를 묻힌 자는 비의에 참가할 수 없었기 때문에 헤라클레스는 켄타우로스를 학살한 것에 대해 정화의식을 하고 난 후 오르페우 스의 아들인 무사이오스Musaeus에 의해 정식으로 비의에 입문하였으며 이때 테 세우스는 후원자가 되었다. 그러나 大秘儀(the Greater Mysteries)의 창시자인 에 우몰포스Eumolpus가 어떠한 외국인도 이 비의에 참석할 수 없다고 포고하였기 때문에 퓔리우스의 양자가 된 것이 헤라클레스를 아테나이인으로서의 자격을 부 여하는 지에 확신이 서지 않았던 엘레우시스인들은 헤라클레스의 청원을 거절하 기도 싫어서 그를 위해 小秘儀(the Lesser Mysteries)를 창시했다. 일설에 의하면 데메테르가 직접 헤라클레스를 위해 小秘儀를 창시하였다고 한다. b. 해마다 두 종류의 엘레우시스비의 즉, 데메테르와 코레를 기리는 대비의(大秘 儀)와 코레만을 기리는 소비의(小秘儀)가 열린다. 대비의를 준비하는 소비의는 디오뉘소스의 운명을 극적으로 상기시키는 내용으로 엘레우시스인들에 의해 안 테스테리온Anthesterion月에 일리소스Ilissus강변에 있는 아그라이Agrae에서 열린 다. 소비의의 주의식(主儀式)은 씨앗을 바치는 것인데 참가자들은 칸타로스 Cantharus강에서 목욕을 하고 곧이어 휘드라노스Hydranus라는 명칭을 가진 사제 들로부터 정화의식을 받는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보에드로미온Boedromion月에 엘레우시스에서 열리는 대비의에 참가하기 위해서 반드시 일년을 기다려야 한 다. 또한 비밀을 준수할 것을 맹세해야 하고 이것을 위한 준비에 앞서 비법전 수자(mystagogue)로부터 통제를 받는다. 그리고 그들은 데메테르의 성역으로의 출입이 금지되고 의식을 치르는 동안 문간방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c. 이렇게 정화의식과 준비를 마친 헤라클레스는 라코니아의 타이나론Taenarum 에서 타르타로스로 내려갔다. 일설에 의하면 혹은, 흑해에 있는 헤라클레이아 Heracleia 근처의 아케루시아 半島(Acherusian peninsula)에서 타르타로스로 내려 갔다고 하는데 지금도 그곳의 깊은 동굴에는 헤라클레스가 내려간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한다. 아테나와 헤르메스가 그를 안내했는데, 그가 노역에 힘들어 할 때 마다 절망에 빠져 제우스를 부를 때면 아테나는 언제나 그에게 달려와 그를 위 로해주었었다. 헤라클레스의 성난 얼굴에 겁을 먹은 카론Charon은 아무런 반대 없이 그를 스튁스을 건네주었는데, 이러한 불법행위에 대한 벌로 하데스는 일년 간 카론에게 족쇄를 채웠다. 헤라클레스가 배에서 내리자 메두사와 멜레아그로 스를 제외한 모든 망령들이 도망쳤다. 메두사를 본 헤라클레스는 칼을 뽑아들 었으나 헤르메스는 그녀가 단지 망령일 뿐이라며 그를 안심시켰다. 그리고 헤 라클레스가 빛나는 갑옷을 입고 있던 멜레아그로스에게 활을 겨누자 멜레아그로 스는 웃으면서 '당신은 죽은 사람들을 무서워할 필요가 없어요.'라고 말했다. 그 들은 한동안 유쾌하게 잡담을 나누었고 말미에 헤라클레스는 멜레아그로스에게 그의 동생인 데이아네이라Deianeira와 결혼할 것을 약속했다. d. 타르타로스의 정문 근처에서 헤라클레스는 친구인 테세우스와 페이리토오스 가 비정한 의자에 속박되어있는 것을 보고 테세우스를 자유롭게 해주었지만 페 이리토오스는 남겨둘 수밖에 없었다. 다음에 그는 데메테르가 아스칼라포스 Ascalaphus를 벌하기 위해 올려둔 돌을 밀쳐내고 따뜻한 피를 주어 망령들을 기 쁘게 해주려고 하데스의 소 가운데 한 마리를 잡았다. 소치기인 케우토뉘모스 Ceuthonymus의 아들, 메노이테스Menoetes 혹은 메노이티오스Menoetius가 그에 게 레슬링을 도전하였다. 그러나 헤라클레스는 그의 허리를 잡고 갈비를 부러 뜨렸다. 이때 궁전에서 나온 페르세포네가 그에게 남매를 대하듯이 인사를 하 고 메노이테스를 살려달라고 청했다. e. 헤라클레스가 케르베로스를 요구하였을 때 아내 곁에 있던 하데스는 냉정하 게 대답했다. "만약 그대가 곤봉이나 화살을 쓰지 않고 케르베로스를 이긴다면 데려가도 좋다." 헤라클레스는 그 개가 아케론의 수문(水門)에 묶여 있는 것을 보고 힘껏 뱀으로 된 갈기가 난 세 개의 머리가 달린 목을 움켜쥐었다. 가시가 돋친 꼬리가 그를 강타했으나 헤라클레스는 사자가죽을 입어 몸을 보호하고 케 르베로스가 질식하여 포기할 때까지 손에서 힘을 빼지 않았다. f. 타르타로스에서 돌아오는 길에 헤라클레스는 하데스가 자신의 연인이었던 아 름다운 뉨프인 레우케Leuce를 기념하기 위해 엘뤼시온 들(Elysian Fields)에 심어 놓은 나무의 잎을 따서 관(冠)을 엮었다. 이 나무의 바깥쪽 잎은 저승의 색인 검은 색으로 남아있었지만 반대쪽은 헤라클레스의 이마에서 떨어진 영광스러운 땀에 의해 은백색으로 변하였다. 그 후 흰색 포플러 혹은 사시나무포플러 (aspen)는 그에게 바쳐졌고 그 은백색은 그가 양쪽 세상에서 노역을 달성하였다 는 것을 상징하였다. g. 아테나의 도움을 받아 헤라클레스는 스튁스를 안전하게 건널 수 있었고 케르 베로스를 반을 끌고 반은 둘러매다시피 해서 트로이젠 근처에 있는, 디오뉘소스 가 자신의 어머니 세멜레를 데리고 온 틈을 통해 지상으로 왔다. 테세우스가 이 틈의 입구에 '구원자 아르테미스(Saviour Artemis'의 신전을 세웠는데 지금도 저승의 신(the infernal deities)에게 바쳐진 제단이 그곳에 남아있다. 또한 트로이 젠에는 헤라클레스가 발견하고 그의 이름을 따서 지은 샘이 히폴뤼토스의 옛궁 전 앞에 있다. h. 일설에 따르면 헤라클레스는 케르베로스를 견고한 사슬에 묶어 흑해 연안의 마리안뒤노스 근처의 아코네Acone의 어두운 동굴로 통하는 지하의 작을 길을 통해 데리고 왔다고 한다. 케르베로스가 햇빛에서 눈을 돌리며 세 개의 입으로 맹렬히 짖어대면서 저항했을 때 들판에 떨어진 침에서 독성이 있는 바곳(aconite) 이 생겨났다. 이것은 또한 헤카테이스(hecateis)라고도 하는데 이는 이것을 처음 사용한 자가 헤카테이기 때문이다. 또다른 설에 따르면 타이나론을 통해 헤라 클레스가 지상으로 왔는데 이곳은 입구에 포세이돈像이 서있는 동굴모양의 신전 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타이나론의 길이 지하세계로 통했었더라면 그 길은 그 이후에 봉쇄되었을 것이다. 또다른 설에 따르면 헤라클레스가 지상으로 돌아온 곳은 라퓌스티오스Laphystius산 근처에 있는 '라퓌스티오스의 제우스(Laphystian Zeus)'의 성역이라고 하는데 그곳에는 '밝은 눈을 가진 헤라클레스(Bright-eyed Heracles)'의 彫像이 세워져 있다. i. 이처럼 많은 설이 있지만 다음의 사실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된다. 헤라클레 스가 케르베로스를 뮈케나이로 데리고 왔을 때 제물을 바치고 있던 에우뤼스테 우스가 자신의 일족을 위해 제물의 가장 좋은 부분은 남겨두고 그에게 노예에게 나 주는 부분을 건네주었다. 이에 헤라클레스는 에우뤼스테우스의 세 아들인 페리메데스Perimedes, 에우뤼비오스Eurybius, 그리고 에우뤼필로스Eurypilus를 죽 임으로써 분노를 표출했다. j. 바곳 외에도 헤라클레스는 다음과 같은 것을 발견했다. 약초인 헤라클레온 (heracleon) 즉 야생 오리가눔(wild origanum), 얇은 줄기와 붉은 꽃 그리고 고수풀 (coriander)의 잎과 닮았고 호숫가나 강가에서 발견되며 쇠에 의해 입은 상처에 효능이 있는 시데리안 헤라클레온(the Siderian heracleon), 현기증과 광기를 일으 키는 휘오스퀴아모스(hyoscyamos) 즉 사리풀(henbane), 헤라클레스에게 버림받고 질투로 어떤 뉨프의 이름에서 유래했으며 남자를 12일간 성불구로 만들 수 있는 곤봉 모양의 '뉨프의 헤라클레온(the Nymphaean heracleon)이 그것이다. 『신화를 찾아서-유럽 신화 (go MYTH)』 517번 제 목:[잠적이/RGGM]135.이피토스의 살해 올린이:빽호 (백원진 ) 98/12/11 10:49 읽음:117 관련자료 없음 ----------------------------------------------------------------------------- 135. 이피토스의 살해 {{135. 이피토스의 살해 }} 모든 노역을 마친 헤라클레스는 테바이로 돌아와 자신의 아내인 33살의 메가 라와 같이 사는 것이 불길하다고 느끼고 그녀를 사촌이자 마부(馬夫)인 16살의 이올라오스와 결혼시켰다. 그리고 나서 그는 그녀보다 젊고 운이 좋은 아내를 찾아 나섰는데, 자신의 친구이며 멜라니오스Melanius의 아들인 오이칼리아 Oechalia의 왕 에우뤼토스Eurytus가 자신과 그의 네 아들보다 활을 잘 쏘는 자에 게 딸인 이올레Iole를 준다는 이야기를 듣고 오이칼리아로 갔다. 에우뤼토스는 아폴론에게 직접 좋은 활을 받고 궁술을 배웠다. 그는 궁술에 있어서 아폴론보 다 뛰어나다고 주장하였지만 헤라클레스는 별 어려움 없이 경기에서 이길 수 있 었다. 그러한 결과는 에우뤼토스를 매우 불쾌하게 만들었으며 또 헤라클레스가 자식들을 죽인 후 메가라를 버렸다는 얘기를 듣자 이올레를 그에게 주기를 거절 했다. 자신감을 얻기 위해 많은 양의 포도주를 마신 후 에우뤼토스는 헤라클레 스에게 말했다. "네가 불공평하게 어떠한 표적도 놓치지 않는 마법의 화살을 사 용하지 않았더라면 너는 결코 나와 나의 아들과 궁수로서 겨룰 수 없었을 것이 다. 이 경기는 무효이다. 그리고 어떠한 경우에도 나의 사랑스러운 딸을 너와 같은 악당에게 맡길 수 없다. 더구나 너는 에우뤼스테우스의 노예이다. 단지 자유인이 남긴 것을 받을 만한 가치밖에 없는 노예일 뿐이다." 이렇게 말하고 그는 헤라클레스를 궁전 밖으로 쫓아냈다. 헤라클레스는 그가 늘 그러하던 것 과는 달리 즉각적으로 보복하지 않았다. 그러나 복수를 맹세했다. b. 에우뤼토스의 세 아들 즉, 디다이온Didaeon, 클뤼티오스Clytius, 토크세우스 Toxeus는 아버지의 부정직한 요구를 지지했다. 그러나 장남인 이피토스Iphitus는 공정하게 말해서 이올레는 헤라클레스에게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일 이 있은 후 곧 12마리의 강한 발굽을 가진 씨암말과 동수(同數)의 튼튼한 새끼 노새가 에우보이아에서 사라졌을 때도 그는 이것이 헤라클레스의 소행이라고 보 지 않았다. 이는 사실 유명한 도둑인 아우톨뤼코스Autolycus가 훔친 것인데 그 는 마법을 써서 말과 노새들의 모습을 바꾸어 아무 것도 모르는 헤라클레스에게 마치 그것들이 자기 것인 것처럼 속여 팔았다. 암말과 노새의 자취를 쫓던 이 피토스는 그들이 티륀스로 향한 것을 발견하고 헤라클레스가 결국에는 에우뤼토 스로부터 받은 모욕에 대해 복수하려는 것으로 오해했다. 알케스티스Alcestis를 구하고 돌아오던 헤라클레스와 마주친 이피토스는 의심을 감추고 단지 이 문제 에 대해 의견을 구했다. 헤라클레스는 아우톨뤼코스에게서 산 암말과 노새가 이피토스가 설명하는 바로 그 짐승들인지 알아채지 못하고 이피토스가 자신의 손님이 된다면 진심으로 함께 찾아 나서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그후 자신이 도둑으로 의심받고 있다고 추측하게 된 헤라클레스는 매우 화가 나게 되었다. 성대한 향연이 끝나고 헤라클레스는 이피토스를 데리고 티륀스에서 가장 높은 탑으로 올라가 그에게 물었다. "네 주위를 둘러보아라. 그리고 저의 암말이 풀 을 뜯고 있는 모습이 보이는 지 말하라."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 다면 너는 마음속으로 나를 도둑으로 잘못 본 것이다." 화가 나서 정신착란을 일으킨 헤라클레스는 울부짖으며 그를 던져 죽였다. c. 그 즉시 헤라클레스는 퓔로스의 왕인 넬레우스에게 찾아가 정화의식을 치뤄 줄 것을 청했다. 그러나 에우뤼토스와 동맹관계에 있던 넬레우스는 이를 거절 했다. 막내인 네스토르를 제외한 그의 모든 자식이 헤라클레스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데에 동의하자 네스토르는 히폴뤼토스의 아들인 데이포보스Deiphobus를 설득하여 아뮈클라이에서 헤라클레스를 정화하게 했다. 그러나 여전히 악몽에 시달린 헤라클레스는 델포이 신탁소를 찾아가 악몽을 떨칠 방법을 물었다. 퓌 토네스인 크세노클레이아Xenoclea는 대답을 거부했다. "당신은 당신의 손님을 죽였어요. 나는 당신과 같은 사람에게 전해줄 신탁은 없어요." "그렇다면 내가 직접 신탁소를 차려야 겠소."라고 외치면서 헤라클레스는 델포이에 봉납되어 있 던 성기(聖器)를 빼앗고 크세노클레이아가 앉아있던 삼각대를 빼앗았다. "티륀스 의 헤라클레스는 카노페의 헤라클레스(Canopic namesake)와 너무 다르구나!" 그 녀가 말한 헤라클레스는 언젠가 델포이를 방문하여 예절바르고 공손했던 이집트 의 헤라클레스이다. d. 아폴론은 몹시 화가 나서 제우스가 그들 사이에 벼락을 내리쳐 싸움을 중지 시키고 그들이 친구로서 화해를 하도록 할 때까지 헤라클레스와 싸웠다. 헤라 클레스는 성스러운 삼각대를 제자리에 두었고 아폴론과 함께 귀티온Gythium市를 건설하였는데 그곳에는 아폴론과 헤라클레스 그리고 디오뉘소스의 조상(彫像)이 시장터 옆에 지금도 남아있다. 그후 크세노클레이아는 헤라클레스에게 다음과 같은 신탁을 내렸다. "고통을 없애려면 당신은 노예로 팔려가 일년동안 살아야 하고 당신의 몸값은 이피토스의 아들에게 주어야 합니다. 당신이 환대의 법칙 (the laws of hospitality)을 깬 것에 대해 제우스 대신께서 분노하고 계십니다." "저는 누구의 노예가 되어야 하지요?" "뤼디아의 여왕 옴팔레Omphale가 당신을 살 것입니다." "복종하겠습니다. 하지만 언젠가 나에게 이러한 고통을 가져다 준 자와 그의 모든 가족들을 노예로 만들 것입니다." 일설에 의하면 헤라클레스 는 델포이의 삼각대를 제자리에 가져다 두지 않았다고 한다. 천년이 지난 후 그 삼각대가 페네이오스Pheneus市에 있다는 얘기를 들은 아폴론은 헤라클레스 가 폭우를 견디도록 페네이오스 사람들을 위해 판 운하를 막고 도시에 홍수를 내림으로써 그들을 벌주었다. e. 일반적으로 알려진 완전히 다른 내용의 이야기에 따르면 포세이돈과 디르케 Dirce의 아들인 에우보이아人 뤼코스Lycus가 내란 중(during a time of sedition)이 던 테바이를 침공하여 크레온 왕을 죽이고 왕위를 차지하였다고 한다. 헤라클 레스가 죽었다는 코프레우스의 말을 믿은 뤼코스는 메가라를 유혹했고, 이를 그 녀가 거부하자 뤼코스는 그녀와 그녀의 자식들을 모두 죽이려고 했으나 그때 때 마침 타르타로스에서 귀환한 헤라클레스는 즉각적인 복수를 했다. 그래서 뤼코 스를 총애했던 헤라 여신에 의해 미쳐버린 헤라클레스는 메가라와 자식들 그리 고 부하인 아이톨리아人 스티키오스Stichius를 죽였다. 그때 죽은 아이들의 무덤 이 지금도 남아있는데, 테바이 인들은 아테나가 거대한 돌을 던져 그를 실신시 키지 않았더라면 양부(養父)인 암피트뤼온도 죽였을 것이라고 말하고 그 돌을 가 리켜 '벌받는 자(the Chastener)'라고 이름지었다. 그러나 사실 암피트뤼온은 훨 씬 이전에 오르코메노스 전쟁(the Orchomenan Campaign)에서 전사하였다. 아테 나이 인들의 주장에 따르면 타르타로스에서 자신을 구해준 것에 대해 고마움을 느끼고 있던 테세우스가 아테나이의 군대를 이끌고 뤼코스와 전쟁 중이던 그를 구하기 위해 테바이로 갔다고 한다. 살인 사건에 경악한 테세우스는 그렇지만 남아있는 그의 생애동안 그리고 죽은 후에도 계속하여 그에게 경의를 표하겠다 고 약속했다. 그리고 그를 아테나이로 데려갔는데 그곳에서 메데이아가 그의 광기를 치료해주었다. 그리고 시칼로스Sicalus가 한번 더 그를 정화시켜주었다. 『신화를 찾아서-유럽 신화 (go MYTH)』 518번 제 목:[잠적이/RGGM]136.옴팔레 올린이:빽호 (백원진 ) 98/12/11 10:50 읽음:146 관련자료 없음 ----------------------------------------------------------------------------- 136. 옴팔레 {{136. 옴팔레 }} 모든 중요한 상업 거래의 수호신인 헤르메스는 헤라클레스를 아시아로 데려가 이름 없는 노예로 팔고 그의 몸값인 은화 3탈렌트는 이피토스의 아들에게 주었 다. 그러나 에우뤼토스는 자신의 손자들이 어떠한 금전적이 보상을 받는 것을 금지시키고 피에 대한 보상은 오직 피로서만 보상된다고 말했다. 그 돈이 어떻 게 된지는 오직 헤르메스만이 알고 있다. 퓌토네스가 예언했던 바대로 거래에 뛰어난 뤼디아의 여왕 옴팔레가 헤라클레스를 샀다. 그리고 그는 소아시아에서 악당들을 일소하면서 일년 혹은 삼년 동안 그녀에게 충실히 봉사하였다. b. 이오르다네스Jordanes의 딸인 옴팔레는, 일설에 따르면 탄탈로스의 어머니인 데, 아레스와 테오고네Theogone의 아들인 불운했던 남편 트몰로스Tmolus에게서 왕국을 물려받았다. 카르마노리움Carmanorium山(이 산에서 야생 멧돼지에게 죽 은 디오뉘소스의 알릭시로에Alixirrho 의 아들 카르마노르Carmanor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으로 사냥을 나갔던 트몰로스는 아르테미스의 순결한 시종이었던 아리페 Arrhippe라는 여자 사냥꾼에게 반했다. 트몰로스의 협박과 애원에 조금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던 아리페는 자신의 여주인의 신전으로 도망갔지만 신전의 신성 (神性)을 무시한 트몰로스는 여신의 거처에서 그녀를 강간했다. 그녀는 아르테 미스에게 복수를 기원한 후 목매어 자살했고 아르테미스는 미친 황소를 풀었고 트몰로스는 황소에 받혀 공중으로 떠오른 후 날카로운 말뚝과 돌에 부딪혀 고통 속에서 목숨을 잃었다. 트몰로스와 옴팔레의 아들인 테오클뤼메노스 Theoclymenus는 그를 카르마노리움山에 묻은 후 산의 이름을 트몰로스로 개칭 했다. 그리고 그 산비탈에 똑같은 이름의 도시를 건설하였는데 이 도시는 티베 리우스Tiberius 황제 치세에 큰 지진에 의해 파괴되었다. c. 헤라클레스가 노예상태에서 수행한 많은 일 가운데 그가 잠든 사이에 그의 물건을 끊임없이 훔쳐갔었던 두 명의 에페소스의 케르코페스(Ephesian Cercopes) 를 사로잡은 것이 있다. 그들은 쌍둥이 형제였는데 이름은 파살로스Passalus와 아크몬Acmon 혹은 올로스Olus와 에우뤼바토스Eurybatus 혹은 실루스Sillus와 트 리발로스Triballus이며 오케아노스와 테이아Theia의 아들이었다. 그들은 인간에게 알려진 가장 능란한 사기꾼이자 거짓말쟁이였는데 세계를 방랑하며 끊임없이 사 기를 치고 다녔다. 테이아는 그들에게 헤라클레스를 피하라고 경고하였는데, 그 녀가 자식들에게 한 말 즉, "나의 사랑스러운 '하얀 엉덩이(White-bottom)'들아 너 희들은 거대한 '검은 엉덩이(Black-Bottom)'를 조심해야 한다."는 그대로 속담이 되었다. '하얀 엉덩이'는 지금은 '겁 많은', '비열한', '음탕한'이라는 뜻으로 통하 고 있다. 그들은 청파리(bluebottle)로 변신하여 헤라클레스의 침대주위를 날아다 녔다. 어느 날 그들을 붙잡은 헤라클레스는 그들을 원래 모습대로 변하게 만들 고 막대에 발을 묶어 어깨에 매었다. 그때 사자가죽에 가려지지 않았던 헤라클 레스의 엉덩이는 햇볕에 타고 카쿠스와 크레테의 황소가 내뿜은 불길에 그을려 마치 오래된 가죽 방패처럼 시커맸다. 거꾸로 매달려 그의 엉덩이를 본 케르코 페스는 마구 웃어댔다. 웃고 있던 그들을 보고 놀란 헤라클레스는 그 이유를 물었다. 정황을 알게 된 그는 바위에 걸터앉아 마구 웃었고, 이에 케르코페스는 풀어달라고 청했다. 그런데 비록 케르코피아Cercopia라는 아시아의 도시가 있긴 하지만 케르코페스가 출몰했던 곳, 그리고 이른바 '검은 엉덩이'라는 바위가 있 는 곳은 테르모퓔라이Thermophylae이다. 그러므로 이 사건은 다른 경우에 벌어 졌을 것이다. d. 일설에 의하면 케르코페스는 결국 제우스를 속이려다 바위로 변했다고 한다. 일설에 의하면 제우스는 그들을 사기에 대한 벌로 노랗고 긴 꼬리를 가진 원숭 이로 변신시켜 피테쿠사이Pithecusae라는 이탈리아의 섬으로 보냈다고 한다. e. 뤼디아의 산골짜기에 쉴레우스Syleus라는 자가 살고 있었는데 그는 지나가는 이방인을 잡아 자신의 포도밭을 갈게 했다. 그러나 헤라클레스가 그 포도를 뿌 리째 뒤엎어 버렸다. 더구나 그는 이토네Itone의 뤼디아 인들이 옴팔레의 왕국 을 약탈했을 때 그 약탈물들을 되찾아 오고 그들의 도시를 파괴하기도 했다. 한편 켈라이나이Celaenae에 살던 농부인 미노스의 사생아 리튀에르세스Lityerses 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호의를 베풀었지만 그들에게 곡식을 베어들이는 시합을 강요했다. 만약 그들이 힘이 딸려 늘어지면 저녁에 리튀에르세스는 그들을 채 찍질하였고, 그가 경기에 승리하면 그들의 목을 베고 몸은 곡식더미에 감추어 두면서 애처롭게 노래를 불렀다. 헤라클레스는 헤르메스의 아들인 양치기 다프 니스Daphnis를 구하기 위해 켈라이나이를 방문하였는데, 다프니스는 해적들에게 납치 당한 애인 핌플레이아Pimplea를 찾아 전세계를 방랑하다가 그녀가 리튀에 르세스의 여자 노예들 가운데 있다는 얘기를 듣고 그곳에 갔었다. 다프니스는 수확시합을 청했지만 헤라클레스가 그를 대신해서 리튀에르세스를 이긴 후 낫으 로 그의 목을 베고 몸뚱이는 마이안드로스Maeander江에 던져 버렸다. 헤라클레 스는 다프니스에게 핌플레이아를 되돌려 주었을 뿐만 아니라 지참금으로 리튀에 르세스의 궁전도 주었다. 리튀에르세스를 기리기 위해 프뤼기아 인들은 추수를 할 때 만가(輓歌)를 불렀는데 이 만가는 역시 곡식이 열리는 들판에서 죽은 이집 트의 초대왕 마네로스Maneros를 기리는 만가와 비슷하다. f. 마지막으로 뤼디아의 사가리스Sagaris강변에서 사람들과 곡식을 해치던 거대 한 뱀을 활을 쏘아 죽였다. 그리고 이에 고마움을 느낀 옴팔레는 마침내 그의 정체와 부모를 알게되었고 많은 선물과 함께 그를 풀어주고 티륀스로 보냈다. 한편 제우스는 이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오피오코스Ophiuchus座를 만들었다. 그런데 사가리스강은 뮌돈Myndon과 알렉시로에Alexirrho 의 아들의 이름을 따서 지었는데, 그는 대 모신(大母神the Mother of the Gods)의 비의(秘儀)를 경멸했고 여신의 거세된 사제를 모욕했기 때문에 여신에 의해 미쳐버려 강물로 뛰어들어 자살했다. g. 옴팔레는 전사로 두기 위해서가 아니라 연인으로 두기 위해 헤라클레스를 샀 었다. 그녀를 통해 그는 세 아들 즉, 라오스Lamus, 페르시아 인들이 사르디스를 점령했을 때 스스로 화장(火葬)의 제물이 되고자 한 유명한 왕 크로이소스의 조 상인 아겔라오스Agelaus 그리고 라오메돈Laomedon의 아버지가 되었다. 네 번 째 자식으로 트럼펫을 발명하고 뤼디아 인들을 이끌고 에투리아Eturia로 이주하 여 튀레니아人(Tyrrhenians)의 선조가 된 튀레노스Tyrrhenus 혹은 튀르세노스 Tyrsenus를 꼽기도 하지만 널리 알려진 바에 따르면 튀레노스는 헤라클레스와 옴팔레의 먼 후손인 아튀스Atys왕의 아들이다. 말리스Malis라는 옴팔레의 노예 를 통해 이미 헤라클레스는 클레오다이오스Cleodaeus 혹은 클레오라오스 Cleolaus와 크로이소스가 사르디스에서 내쫓은 뤼디아의 왕조의 시조가 된 알카 이오스Alcaeus의 아버지가 되었었다. h. 헤라클레스가 사자가죽과 포플러관(冠)을 버리고 대신 보석이 달린 목걸이와 황금 팔찌를 차고 여자 터번과 자줏빛 어깨걸이를 걸치고 마이오니아 여자들의 허리띠를 멘다는 소식이 그리스에 전해졌다. 그 소식에 의하면 헤라클레스는 음란한 이오니아 여성들과 어울려 윤이 나는 양털 바구니에 있는 양털을 빗고 그것으로 실을 자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여주인이 그를 꾸짖으면 그는 몸을 떨곤 했다고 한다. 헤라클레스의 그 꼴사나운 손가락이 방추(紡錘)를 부숴뜨리 면 그녀는 자신의 황금 신발로 그를 때렸다. 그리고 즐거움을 얻기 위해 그가 예전에 이루어낸 업적을 자세히 얘기하게 했다. 그런데도 그는 전혀 부끄러워 하지 않았다. 옴팔레가 사자가죽을 입고 곤봉과 활을 휘두르고 있는 동안 노란 색의 여자용 속치마를 입고 있는 헤라클레스를 옴팔레의 여시종들이 머리를 빗 겨주고 손톱을 다듬어주는 그림이 남아있다. i. 그러나 이 이상 벌어진 일은 없었다. 한번은 헤라클레스와 옴팔레가 트몰로스 의 포도밭을 방문했을 때 그녀는 금으로 수를 놓은 자줏빛 겉옷을 입고 향수를 뿌렸었고 헤라클레스는 씩씩하게 황금 양산을 그녀의 머리 위에 씌워주고 있었 다. 그때 높은 언덕에서 그 광경을 판Pan이 보았다. 옴팔레에게 반한 판은 산 여신들(山女神 the mountain-goddesses)을 방문하고는 외쳤다. "앞으로 그녀만이 나의 사랑이 될 것이다." 목적지에 도착한 옴팔레와 헤라클레스는 동굴을 나누 고 옷을 바꿔 입었다. 그녀는 헤라클레스에게 망사로 만든 허리띠와 자줏빛 겉 옷을 입혔는데 허리띠는 그의 허리에 턱없이 짧았다. 비록 그녀가 최대한도로 늦추었지만 결국 그는 소매를 찢어놓았고 그녀의 샌들 끈은 너무 짧아서 묶이지 않았다. j. 저녁을 먹은 후 그들은 디오뉘소스에게 새벽에 제물을 바치겠다고 맹세하였는 데, 디오뉘소스는 이러한 경우에 자신을 신봉하는 신도들에게 부부간의 순결을 요구하였기 때문에 옴팔레와 헤라클레스는 다른 잠자리에서 잠을 잤다. 자정이 되었을 때 판은 동굴 속으로 기어 들어가 어둠 속에 더듬거려 비단으로 만들어 진 신발을 보고 옴팔레의 침상이라고 생각되는 곳을 발견했다. 떨리는 손으로 침대보를 들춰낸 판은 살금살금 그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잠에서 깬 헤라클 레스는 판의 다리를 붙잡아 그를 걷어차서 동굴 밖으로 쫓아냈다. 시끄러운 소 리와 신음을 들은 옴팔레는 벌떡 일어나 불을 밝히라고 명령했고 불이 밝혀지자 그녀와 헤라클레스는 구석에서 웅크리고 있던 판을 보기 위해 외치고 나서 그의 타박상을 치료해줄 때까지 한참동안 웃었다. 이날 이후 판은 옷을 극도로 혐오 하였고 추종자들에게 자신의 의식(儀式)을 치르는 동안에는 벌거벗고 있으라고 명했다. 그리고 헤라클레스가 옴팔레와 옷을 바꿔 입었던 것이 습관적이고도 괴팍한 것이라는 낭설을 퍼뜨려 그에게 복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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