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를 찾아서-메소포타미아/이집트 신화 (go MYTH)』 237번 제 목:[이집트] 오시리스이야기 올린이:가짜천사(황상웅 ) 99/02/07 17:38 읽음:303 관련자료 없음 ----------------------------------------------------------------------------- 오시리스 이야기.. 오시리스의 이야기는 플루타르코스를 통해서만 계승된 이야기의 형태로 우리 에게 전해지고 있다. 아주 다행스럽게도 (도덕서<道德書>)에는 풍부한 자료들 을 바탕으로 쓰여진 "이시스와 오시리스에 관하여"라는 긴 장(章)이 있는데, 여 기에는 구체적인 주장뿐 아니라 피라미드에 조각된 비문(碑文)까지 첨가되어 있 다. 이 비문들이 쓰여진 시기는 최소한 BC 2,500년, 심지어는 그 이전 까지도 거슬러 올라간다. 태양의 도시의 연대기에 의하면, 오시리스는 최초의 대양인 누운의 가슴에서 휴식을 취하는 , 자기 속에 모든 존재들을 지닌 무한한 영혼인 아툼으로부터 유 래한 세 번째 세대에 속한다. 양성적 신인 아툼은 태양신 레와 동일시되기도 한 다. 아툼에게서 최초의 남녀 신인 슈와 테프누트가 나오는데, 이들은 각각 공기 와 습기를 의미한다. 이 둘 사이에서 대지의 신 겝과 하늘의 여신 누트가 태어 나며, 플루타르코스는 이 둘을 레아와 크로노스에 비유하고 있다. 물론 이 같은 도식이 똑같이 전해져 왔다고 볼 수는 없다. 사실 그리스에서 하늘의 신은 남성 신 크로노스, 더 정확하게는 크로노스의 아버지 우라노스였던 반면, 이집트에 오면 하늘의 신은 여성신 누트이고, 대지의 신은 "지고의" 신으로 간주되는 남 성 신 겝 혹은 프타이다. 겝의 쌍둥이 누이인 누트는 아툼-레의 뜻을 거역하고 겝과 동침한다. 아툼은 그 벌로 이들의 아버지인 슈를 시켜 둘을 갈라 놓게 하 고는, 누트가 어떤 달 어떤 해에도 아이를 낳을 수 없을 것이라고 선언한다. 다 행히도 누트를 불쌍히 여긴 토트 신이 "달과 내기 장기를 두어, 자신이 이길 때 마다 달에게서 72분의 1일씩을 얻어냈다"고 플루타르코스는 전하고 있다. 그는 그것을 모아 당시의 정규적인 책력 계산에는 포함되지 않았던 5일을 만들어서 누트로 하여금 하루에 한 명씩 다섯 명의 아이를 낳게 하였는데, 이들이 바로 오시리스가 태어났다. 그가 태어나는 순간 '만물의 주인이 세상에 오셨도다'라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후 세트는 누이 네프티스와 결혼했으며, 오시리스는 이시스와 결혼하였다. 오시리스는 대지를 통치하면서 이집트인들을 야만적인 생활에서 벗어나게 하 였고, 그들에게 율법을 가르쳐 신들에게 제의를 올리게 하였다. 보리가 야생에 서 자라나는 것을 발견한 이시스가 그 곡식의 재배법과 빵과 맥주를 제조하는 방법을 백성들에게 가르치는 동안 오시리스는 세계를 돌아다니며 농경법을 전 파하였고, "신들과 그들의 뒤를 이어 살아 있는 모든 생물들에게 양식을 제공하 는 자"로 칭송 받았다. 사실 과실나무와 포도나무의 재배는 그에게 빚진 바가 크다. 한편, 오시리스가 땅에 물을 대어 기름진 토양으로 만드는 동안, 메마른 땅 사막의 신 세트는 이러한 그의 성공을 시샘하여 72명의 반역자들과 형을 헤 치려는 음모를 꾸미고 오시리스를 잔치에 초대한다. 그는 오시리스의 키를 몰래 잰 다음, 그의 키에 딱 들어맞는 상자를 하나 만들어 멋있게 치장한다. 모든 사 람들이 그 상자를 보고 감탄하는 가운데 세트는 그 상자에 꼭 들어맞는 사람에 게 그것을 선사하겠노라고 약속한다. 잔치에 참석한 이들이 차례로 시험해 보았 으나 상자는 그들에게 너무 컸다. 그러나 오시리스만은 예외였다. 그가 상자 속 에 드러눕자마자 반역자들은 달려들어 뚜껑을 덮고 단단히 못을 박은 다음 상 자를 나일 강으로 던져 버렸다. 한편 상자는 바다로 흘러 들어가, 페니키아 해안의 비블로스 까지 떠내려 왔는 데, 그곳에서 히이드나무 한 가운데에 부딪친다. 그러자 갑자기 나무가 기적같 이 자라나더니 줄기 속으로 상자를 집어 넣었다. 비블로스의 왕은 이 나무의 성 장에 감탄하여 그것을 베어 오라고 명령을 내리고, 이 나무로 "왕궁의 지붕을 지탱하는 기둥을 만들었다." 한편 남편의 시체를 찾아 세상을 누비고 다니던 이 시스는 마침내 남편의 소재를 알게 된다. 그녀는 궁전으로 들어가 왕의 아이를 키우는 유모가 되지만, 곧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는 왕궁의 기둥을 달라고 간청 하였다. 결국 이시스는 그 기둥에서 남편의 관을 꺼내게 된다. 이집트로 돌아온 이시스는 죽은 남편의 시체를 찾기 위해 매의 형상을 하고 날아다니다가 이미 죽은 오시리스로부터 수태해 낳은 아들인 호루스를 만나러 가면서, 경솔하게도 이 상자를 아무런 보호 없이 남겨둔다. 그 사이 이 상자를 발견한 세트는 오시리스의 시신을 열 네토막으로 잘라 강에 뿌려버린다. 이시스 는 물고기가 삼켜 버린 남편의 생식기를 제외한 시체의 모든 부분을 찾아낸다. 죽은 자들의 왕이 된 오시리스는 자기 아들이 전투를 준비할 수 있도록 자신의 새로운 땅을 떠난다. 호루스는 세트를 쳐부수고, 그를 어머니에게도 끌고 온다. 그러나 세트를 불쌍히 여긴 이시스는 그를 풀어 준다. 화가 난 호루스는 이시스 의 왕관을 땅에 던지지만, 즉 그녀의 목을 잘라 버리지만 토트가 왕관 혹은 머 리를 암소의 머리로 바꿔 놓는다. 이는 이시스와 하토르가 동일시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또 다른 텍스트들에 따르면 호루스는 하토루의 모습을 한 어머니를 강간함으로써 자신의 아내를 만들었다고 비난한다. 그리하여 호루스는 나라의 통치권을 획득하기 전에 두 번의 전쟁을 치르게 된다. 『신화를 찾아서-메소포타미아/이집트 신화 (go MYTH)』 204번 제 목:[이집트] 미케리누스 이야기 올린이:별빛닮기(배혜정 ) 98/06/09 09:35 읽음:186 관련자료 없음 ----------------------------------------------------------------------------- 헤로도투스의 '역사' 제2권에는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풀다가 신들의 미움을 사서명운을 단축당한 고대 이집트 왕 미케리누스 이야기 한 편이 실려있다. 선정을 베푸는 일이 어째서 신들의 미움을 사는가? 이 이상한 모순과 불가사의에 대한 '미케리누스 이야기'의 서사적 단서는 이러하다. 미케리누스가 왕이 되기 전 이집트에는 체오프스와 체페른이라는 두 폭군이 백 년 넘게 나라를 다스리면서 백성들을 고통에 빠트린다. 체오프스가 50년, 그리고 체페른이 58년이나 군림했으므로 시련의 시대는 108년이나 지속된 것이다. 체페른에 이어 왕위에 오른 미케리누스는 악정의 시대를 끝내고자 한다. 그는 선정을 베풀기 시작하고 백성들은 환호한다. 그러나 그 미케리누스에게 신들이 허락한 통치기간은 6년뿐이라는 전갈이 신전에서 날아온다. 신들이 왕의 수명을 줄이기로 했다는 것이다. 미케리누스가 신전에 사람을 보내어 까닭을 묻자 <이집트 백성들은 150년간 고생하게 되어 있다. 아직 42년이 더 남았는데,미케리누스가 때 이르게 그 기간을 단축하려 들므로 신들이 그를 일찍 데려가려 한다>는 답이 나온다. 미케리누스는 신들의 계획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후일 중국 오장원의 제갈공명처럼,미케리누스도 자신의 수명을 연장할 방법을 궁리한 끝에 6년간 이집트로부터 모든 밤을 없애기로 작정하고 온 나라에 명하여 밤이 대낮같게 매일 밤 휘황하게 불을 밝혀 어둠을 쫓게 한다. 밤을 낮으로 바꿈으로써 그는 자기 수명과 재위기간을 두배로 연장하고, 그 방법으로 신들의 산술이 틀렸음을 입증코자 한다. 이집트의 밤을 없앤 미케리누스의 거역이 신들을 낭패하게 했는지 어떤지, 그의 통치가 6년 만에 끝났는지 어떤지,헤로도투스는 전해주지 않는다. 신들의 산법을 오류로 돌리기 위한 미케리누스의 저항방식은 기이하고 비극적이다. 그것은 항용 정의로운 자를 벌주고 자비로운 자를 일찍 죽이는 신들의 이상한 장난, 그 기이한 불가사의에 기이한 방식으로 맞서려는 한 고대인의 적극적 의지를 보여준다. <이집트 백성은 아직 한참 더 고생해야 한다. 건방지게 네가 나서서 정해진 시련의 총량을 줄이지 말라>는 신들의 메시지는 뒤집으면 <선왕들처럼 너도 50년은 더 이집트에 시련을 주라. 그러면 신들도 만족할 것이고 너도 오래 살 것이다>라는 유인이기도 하다. 이 폭력에의 유인을 거부하고 신들에 대드는 미케리누스의 행동은 고대 이집트인 답지 않은 인간적 비극성을 갖고 있다. 덧붙이기: 신들에 대항한 인간의 혹의 천사(루시퍼) 이야기들이 자주 쓰여지는 것은 무엇일까? 대리만족을 위해서...?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이다. 때론 인간은 운명을 저주하고 신을 저주하고 싶은 충동을 많이 느꼈을 테니까 미케리누스의 이야기는 현대문학 1998년 5월 호에서 발췌했습니다. 『신화를 찾아서-메소포타미아/이집트 신화 (go MYTH)』 31번 제 목:[이집트/신] No. 2 마트(Maat) 올린이:exter (김유철 ) 95/08/02 20:18 읽음:556 E[7m관련자료 있음(TL)E[0m ----------------------------------------------------------------------------- 안녕하세요. 에필이에요.. 이번에는 두번째 신. 아래의 것을 잘 읽었다면 누구인지 잘 알 수 있으실 꺼에요. 바로 토트의 아내라고도 알려져 있는 정의의 신 마트이지요. 자 그럼 잘 읽으세요. 마 트 마트(Maat)는 똑바로 서 있거나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여자로 표현 되는데, 그녀의 머리에는 타조의 깃이 얹혀 있다. 마트는 그녀의 이 름 그대로 권리와 진실과 정의의 여신이었으며, 몇몇 문서에는 그녀 가 라의 총해를 받은 계집 또는 심복이며 '마트의 주인'이라 불리는 신들의 심판자 토트의 아내로도 되어 있다. 그녀는 오시리스의 시녀에 속한다. 오시리스가 심판을 하는 방이 '이중으로 된 정의의 방'이라 불리는 이유는 그 방의 양쪽 끝에 서 있는 똑같은 두 여신이 마트의 분신이기 때문이다. 마트 자신도 죽은 자의 영혼을 달아보는 저울의 반대쪽 접시에 올라앉아 그 영혼이 진 실한 것인가, 아니면 죄때문에 가벼워졌는가를 검사하는 것이다. 사실 마트는 신격화된 추상적 관념에 불과하다. 전하는 이야기에 의 하면, 신들은 정의와 진실을 자신들의 양식(養食)으로 하기를 즐겼다. 그런 이유로 제의(祭儀) 때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 바로 마트였 다. 그래서 모든 신전에 왕이 제의 도중에 도착해서 그 자신이 만든 마트의 작은 조각상을 신에게 바치는 그림이 그려져 있는 것이다. 그 공물은 비록 호사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다른 공물보다 훨씬 더 신들 의 마음에 들었다. 생각보다 지요? 그래서 저도 좋지요. 부담없이 쳤으니까. 그럼 남은 29명의 신들을 향하여 돌격~~~~~~~~~~~~~!!!!! 『신화를 찾아서-메소포타미아/이집트 신화 (go MYTH)』 32번 제 목:[이집트/신] No. 3 세스헤트(Seshet) 올린이:exter (김유철 ) 95/08/02 20:38 읽음:558 E[7m관련자료 있음(TL)E[0m ----------------------------------------------------------------------------- 안녕하세요. 에필이에요.. 이번에 올리는 신은요 역시 토트와 관련있는 신이에요. 많이 읽어주세요. 세스헤트 세스헤트(Seshet)는 토트의 첫번째 부인으로 되어 있지만, 사실은 기록과 역사의 여신으로서 토트와 동일한 어원에서 변화한 이름이다. 본래 그녀는 '비서'를 뜻하는 그녀 이름의 표의문자인 긴 깃털 두 개를 달고 별이 박힌 초승달을 머리 위에 얹은 여자의 모습으로 표 현되었다. 그러나 후세에 이르러, 그 뜻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한 조 각가에 의해 초승달이 나지막하게 휜 두 개의 뿔로 바뀌었다. 거기 에서 세페크트 아부이, 즉 '두개의 뿔을 가진 자' 또는 '두 개의 뿔 을 높이 든 자'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불린 것이다. 세스헤트도 시간의 계측에 힘을 쓴 신성(神星)이었는데, 토트와 더 불어 문자의 발명자로 되어 있어서 '책방의 여주인'이라 불렸다. 그 녀는 또한 '건축가의 여주인'으로도 불려 여러 신전의 건립자로 모 셔졌다. 그녀는 왕을 돕고 별에 의해 건축의 방위를 정하고 말뚝 넷 을 이용하여 건물의 초석의 위치를 기록했다고 한다. 역사의 신, 즉 신들의 기록계로서 그녀 혼자서 또는 토트와 더불어 성스러운 나뭇잎에 지배자들의 이름을 기록하고, 관란수의 기다란 잎에 왕들의 통치 기간을 기록하며, 50년마다 제전의 문서를 작성하 는 모습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그녀는 서기들의 우두머리로서 왕이 적을 무찔렀을 때 전리품들을 판자위에 기록했다. 제 18왕조의 뛰어난 여왕 하트쇼프수트가 푼트 에 파견한 원정대가 테베에 귀환했을 때, 가지고 온 보물류의 목록 을 작성한 것도 바로 세스헤트였다. 또한 "토트가 그 양을 기록하고, 세스헤트가 그 액수를 조사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어때요? 잘 읽으셨어요? 다음 신은 라입니다. 많이 기대하시길.. - 짧으니까 금방금방 만드는 유철이로부터 『신화를 찾아서-메소포타미아/이집트 신화 (go MYTH)』 33번 제 목:[이집트/신] No. 4 태양신 라(Ra) 올린이:exter (김유철 ) 95/08/02 23:46 읽음:647 E[7m관련자료 있음(TL)E[0m ----------------------------------------------------------------------------- 안녕하세요. 에필이에요.. 이번에 소개할 신은 아주 유명한 신. 바로 태양신 라 입니다. 그럼 잘 감상해 주세요. 태양신 라 라(Ra)는 '창조자'라는 뜻이며, 하늘의 절대적 지배자인 태양에게 주어진 이름이다. 그의 성소(聖所)는 북부이운에 있었다. 그래서 그 리스인들은 그곳을 헬리오폴리스라고 불렀던 것이다. 그 도시의 사 제들은, 태양신 라는 벤벤이라는 돌에 오벨리스크의 형태로 처음으 로 몸소 구현했다고 믿고 있으며 그 돌은 헤트 벤벤, 즉 오벨리스크 관(館)이라는 사원에 소중하게 간직되어 있다. 사제들의 말에 따르 면, 본래 태양신은 원초의 대양인 '눈'의 품안에 있었다고 한다. 그 러나 태양신은 그 광채를 손상시키지 않기 위해 눈을 감는다든지 하 얀 연꽃 속에 숨는 등 갖은 고생을 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는 고난을 이겨내고 자신의 힘으로 대양위에 우뚝 일어서서 '라'라 는 이름으로 찬란하게 빛났던 것이다. 라는 젊고 활력 넘치던 시절에는 신들이나 인간들을 평화롭게 통치 할 수 있었으나 세월이 흐름에 따라 그의 젊음과 건강은 빛을 잃어 갔다. 그가 떨리는 입언저리에서 줄곧 침을 흘리는 노인으로 묘사된 기록도 남아있다. 훨씬 뒤에 라가 노쇠해지자 이시스가 라의 신비로 운 이름을 물려받고 절대적인 권력을 누렸다. 태양신이 인간의 세계를 완전히 벗어나 하늘로 올라간 이후, 그는 거기에서 틀에 박힌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는 낮의 열 두 시간을 쪽배를 타고 그의 적 아포피스의 공격을 피하려고 애쓰면서, 동쪽에 서 서쪽으로 그의 제국을 누빈다. 아포피스는 하늘의 나일강에 사는 거대한 구렁이인데, 그가 태양의 배를 뒤엎을 때가 바로 일식(日蝕) 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아포피스는 언제나 라의 부하들에게 몰매를 맞고 결국 지옥의 씔바닥으로 떨어진다. 라에게 있어서 밤의 열 두 시간은 더욱 위험스러웠다. 그러나 그는 항상 그 위험에서 벗 어나 동굴에서 동굴로, 그의 빛을 필요로 하는 저승 세계의 사람들 로부터 환호를 받으며 다닌다. 그리고 그들은 또다시 암흑의 괴로움 에 빠지는 것이다. 라는 매일 아침 어린이의 모습으로 태어난다는 설도 있다. 그는 낮 열 두시 까지는 성인이 되었다가 잠처 노인이 되어 밤에는 죽는다는 것이다. 그는 이미 알려진 것처럼 여러가지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탄생한 지 얼마 안되는, 연꽃 위에 있는 왕자의 모습으로, 불을 토하면서 신의 적을 무찌르는 성스러운 독사 우라에우스에게 둘러싸여 태양의 원반을 머리에 얹고 앉아 있거나 걸어가고 있는 남자의 모습으로 표 현되기도 한다. 또는 밤을 누비며 다니는, 죽은 태양을 상징하는 양 의 머리를 지닌 남자의 모습으로도 표현된다. 역시 성스러운 뱀 우라에우스에 둘러써인, 원반을 머리에 얹은 매 의 머리를 갖고 있는 인물로도 묘사된다. 그것이 마로 헬리오폴리스 의 태양신, 이집트의 지배자 라 하라크티이다. 그 밖에 라의 모습이 나 수는 매우 많으며 라 자신이 그것을 자칭하고 있다. 왕의 분묘 입구에 태양에 대한 기도문에 새겨져 있는데, 거기에 나오는 이름이 75개나 된다. 창조자로서, 세계의 지배자로서 널리 알려진 라는 다른 신들까지 차례차례 동화시켜 고왕국 시대 이후 국왕들로부터 가장 숭배받는 신이 되었다. 그리고 국왕들은 스스로 '라의 아들'로 자처했다. 그 것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그는 루디트디디트라는 여자와 정식으로 결혼하여 그녀와의 사이에 서 다시 그 자신이 태어났다. 루디트디디트는 제 5왕조 초기의 세 왕의 아내가 된 여자이지만, 라는 그 왕이며 아들이기도 했다. 즉 그가 지상으로 돌아가서 왕비와 결혼할 때마다 국왕이 태어난 것이 다. 태양신 라는 헬리오폴리스의 멋진 성소에서 돌로 표시된 태양의 광 선, 즉 거대한 오벨리스크의 모습으로 예배를 받고, 성스러운 소 므 네비스로도 변신했으며, 때로는 베누라는 새로도 변했다. 그러나 오 늘날 남아 있는 것은 형태조차 알아볼 수 없는 폐허와 제 12왕조의 세누세르트 1세에 의해서 새워진 오벨리스크뿐이다. 이 오벨리스크 는 이집트에 현존하는 오벨리스크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손꼽 히고 있다. 이상인데요. 여기서 혹시 오벨리스크가 뭔지 아시는 분은 좀 수고스럽겠지만 써서 올려주시길... ^_^ 그럼 다음 신을 기대해 주세요. - 너무도 졸린 유철이가. p.s. 이거 올리는데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아후... 무려 5번째로 올리는 건데.. 『신화를 찾아서-메소포타미아/이집트 신화 (go MYTH)』 34번 제 목:[이집트/신] No. 5 아툼(Atoum) 올린이:exter (김유철 ) 95/08/03 16:40 읽음:549 E[7m관련자료 있음(TL)E[0m ----------------------------------------------------------------------------- 안녕하세요. 에필이에요.. 어떻게들 잘 지내시는지.. 이번에 올라가는 신은 아툼이라는 신 입니다. 꽤 큰 신 같지요? 그럼 지금부터 출발~~! 아 툼 아툼(Atoum)은 '존재하지 않는다.' 또는 '가득 차 있다.'를 뜻하는 어원에서 온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처음에는 헬리오폴리스의 지방신 이었는데 여기서는 성스러운 동물, 즉 므네비스로 간주되고 있다. 그러나 일찍이 헬리오폴리스의 사제들은 이것을 위대한 태양신 라와 동일시 했다. 그리고 그들은 창조에 앞서 원초의 대양인 눈 속에 아 툼이라고 불리는, 온갖 실재를 내포하는 아직 밝혀지지 않는 정령이 살아 있고, 그것이 어느 날 '아툼 라'라고 자칭하며 신들와 인간들 과 그 밖의 모든 존재를 낳았다고 한다. 훨씬 뒤에 아툼은 가라앉는 태양과 일출 전의 태양의 인격화가 되 어 그에 대한 제사는 이집트 전역에 걸쳐서 라의 제사와 더불어 상 당히 보급되었다. 일반적으로 아툼은 인간의 선조라 생각되었고, 항상 왕의 쌍관 '푸 스칸트'를 쓴 남자의 머리 부분으로 표현되어 있다. 처음에는 독신 이며 여자의 도움 없이 자기 자신의 몸에서 최초의 신 한 쌍을 탄생 시킨 것으로 얼려져 있다. 그에게 하나 또는 두 배우자를 연관시키 게 된 것을 훨씬 훗날에 가서였다. 예컨대 멤피스에서는, 그는 쥬사 스 또는 네베트호텝과 동일시되며, 슈와 테프네트의 쌍동이를 낳은 것으로 되어 있다. 잘 보셨는지. 그럼 이상 마칩니다. - 오늘 학교가서 무려 6시간이나 있다가 온 유철이가. . 『신화를 찾아서-메소포타미아/이집트 신화 (go MYTH)』 35번 제 목:[이집트/신] No. 6 눈(Noun) 올린이:exter (김유철 ) 95/08/03 16:43 읽음:527 E[7m관련자료 있음(TL)E[0m ----------------------------------------------------------------------------- 안녕하세요. 에필이에요.. 이번에 소개할 신은요(근데 신인가?) 눈 이라고 하는데요. 눈은 원초의 대양이거든요.. 근데 여기 신의 란에 있기에 올립니다. 매우 짧으니까 부담없게 즐기세요. 눈 눈(Noun)은 카오스(그리스 신화에서, 우주의 발생 이전의 원시적인 상태를 일컫는 말, 우주는 이 상태에서 생겨났다고 함)이며 창조에 앞서서 모든 것, 생물의 근원을 품고 있는 원초의 대양이며 몇몇 문 헌에서는 이것을 '신의 아버지'라 일컫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오직 지적인 관념에 그치고 사원도 숭배자도 없었으며 흔히 물속에 몸을 반쯤 담근 채, 위로 뻗친 팔로 그 자신에게서 탄생한 신들을 받치고 있는 인간의 모습으로 표현된다. 정말 짧지요? 그럼 이상입니다. 다음을 기대해주세요. - 너무 짧아서 기분이 좋은 유철이로부터 『신화를 찾아서-메소포타미아/이집트 신화 (go MYTH)』 36번 제 목:[이집트/신] No. 7 슈(Shou) 올린이:exter (김유철 ) 95/08/04 11:27 읽음:550 E[7m관련자료 있음(TL)E[0m ----------------------------------------------------------------------------- 안녕하세요. 에필이에요.. 지금까지 올라간 이집트의 신에 대한 소개를 잘 읽어 보고 계시는지. 벌써 7번째 신이내요 이번에 올라갈 신을 슈(Shou)라는 신이에요 최초의 부부중 남편이라고 하는데. 잘 읽어보세요. 슈 슈(Shou)는 쌍동이인 누이동생 테프네트와 헬리오폴리스 신화 가운데 최초의 부부로 되어있다. 그의 이름은 '높이 다'를 나타내는 동사에서 유래했으며, '들어올리는 것'이 라고 풀이할 숟 있다. 그는 그리스 신화의 아트라스처럼 하늘의 기둥이지만, 라의 명령을 따라 두 어린 대지신 게 브와 하늘의 여신 누트 사이에 끼여들었다, 그㎖까지도 게브와 누트는 꼭 붙어 있었는데, 슈가 누트를 들어올려 두 팔을 뻗친 자세로 공중을 떠받들어 그 둘을 떼어놓았 다. 슈는 또한 공기의 신이며 성스러운 공허의 신이다. 그러 나 다른 위대한 자연신들처럼 제사를 받지 않으며 항상 인간의 모습으로 표현되고 보통 머리 위에 독특하게 타조 의 깃을 달고 있는데, 그것은 슈의 표의문자이다. 라의 후계자로서, 지상의 주인으로서 그는 아버지인 라 와 마찬가지로 그 권력의 성쇠를 맛보았다. 즉 아포피스 의 자식들이 음모를 꾸며 아트 누브에 있는 궁전에서 그 를 습격했기 때문이다. 슈는 그들과 싸워 이겼지만 그가 병이 들자, 충실한 신자들까지도 그를 배반했다. 그러한 여기서요 게브와 누트가 붙어 있는 이유는 이 담담에 게브와 누트에 대한 소개때 갈쳐드릴 꼐요. 그럼 이만.. - 슈가 조금 불쌍하죠? 유철이로부터. 『신화를 찾아서-메소포타미아/이집트 신화 (go MYTH)』 37번 제 목:[이집트/신] No. 8 테프네트(Tefnet) 올린이:exter (김유철 ) 95/08/04 11:35 읽음:542 E[7m관련자료 있음(TL)E[0m ----------------------------------------------------------------------------- 안녕하세요. 에필이에요. 이번에는 테프네트라는 신이 소개됩니다. 이 신은요. 앞에 나왔던 슈의 부인이에요. 또 누이동생이고요. 이집트의 풍습이 잘 드러나고 있지요.. 그럼 잘 읽어주세요. 이건 조금 짧아요. 테프네트 테프네트(Tefnet)는 현실적인 인간상이라기 보다는 신화 적인 본질로 생각된다. 헬리오폴리스에서 그녀는 슈의 누이동생이며 아내인 여성으로 되어 있다. 테프네트는 이슬의 여신 또는 비의 여신이었지만, 그녀 역시 태양과 비슷한 성격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그녀를 암사자의 모습이나 사자의 머 리를 한 여자의 모습으로 숭앙하고 있었기 ㎖문이며, 그 리스인들은 아르테미스와 동일시하고 있었다. 테프네트는 여러 문서를 통해서 슈의 창백한 묘사(描寫) 에 불과한 것으로 그려져 있지만, 그녀는 슈를 도와서 하 늘을 받치고 태양이 동쪽 산에서 떠오를 때 그와 더불어 갓 태어난 어린 태양을 매일 아침 맞이하는 것이다. 너무 짧나요? 여기서 아르테미스가 누구인지는 모두 잘 아시겠지요? 밤의 여신인가? 헤헤 그럼 이만.. 다음 신은 게브입니다. - 앗! 방학이 반밖에. 유철이로부터 『신화를 찾아서-메소포타미아/이집트 신화 (go MYTH)』 207번 제 목:[이집트/신] No. 7 슈(Shou) 올린이:exter (김유철 ) 98/07/09 18:31 읽음:262 E[7m관련자료 있음(TL)E[0m ----------------------------------------------------------------------------- 슈 슈(Shou)는 쌍둥이인 누이동생 테프네트와 헬리오폴리스 신화 가운데 최초 의 부부로 되어있다. 그의 이름은 '높이다'를 나타내는 동사에서 유래했으 며, '들어올리는 것'이라고 풀이할 수도 있다. 그는 그리스 신화의 아틀라스 처럼 하늘의 기둥이지만, 라의 명령을 따라 두 어린 대지신 게브와 하늘의 여신 누트 사이에 끼여들었다, 그 때까지도 게브와 누트는 꼭 붙어 있었는 데, 슈가 누트를 들어올려 두 팔을 뻗친 자세로 공중을 떠받들어 그 둘을 떼 어놓았다. 슈는 또한 공기의 신이며 성스러운 공허의 신이다. 그러나 다른 위대한 자 연신들처럼 제사를 받지 않으며 항상 인간의 모습으로 표현되고 보통 머리 위에 독특하게 타조의 깃을 달고 있는데, 그것은 슈의 표의문자이다. 라의 후계자로서, 지상의 주인으로서 그는 아버지인 라와 마찬가지로 그 권 력의 성쇠를 맛보았다. 즉 아포피스의 자식들이 음모를 꾸며 아트 누브에 있 는 궁전에서 그를 습격했기 때문이다. 슈는 그들과 싸워 이겼지만 그가 병이 들자, 충실한 신자들까지도 그를 배반했다. 그러한 통치에 기진맥진한 슈는 권력을 게브에게 맡기고 9일 동안 놀라운 폭풍우를 일게 한 다음 하늘로 숨 어버렸다. 쩐瑛?알을 낳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어쨌든 게브와 누트는 오시리스의 신들을 낳아, 게 브에게는 '신들의 아버지'라는 칭호가 주어졌다. 게브는 3대째의 신의 왕으로서 슈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 라, 비교적 파란만장한 통치를 했다. 어떤 성소(聖所)의 유물을 빛내고 있는 한 기록에는, 게브는 그의 면전에서 성스러운 뱀 우라에누스가 갇혀 있는 황금 상자를 열게 했 는데, 그 뱀은 다시 살아나 게브의 신화들을 순식간에 물 어 죽이고 게브 자신도 심한 상처를 입은 것으로 되어 있 다. 우라에누스는 너무나 위험한 부적이기 때문에 라가 그 의 지팡이와 한줌의 수염과 함께 왕국의 동쪽 변경에 있는 성곽 속에 놓아두었었는데 오직 라의 그 수염다발만이 게 브의 상처를 낫게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성스러운 수염 은 훨씬 뒤에 물에 빨기 위해 아트 누브 호수에 넣었을 때 금방 악어로 변했다는 것이다. 게브는 건강을 회복하자 그 왕국을 훌륭히 통치하고 이집 트 전역의 상태를 아주 세심하게 정리했다. 이어서 그는 그 권력을 장남인 오시리스에게 물려주고 하늘로 은둔하여, 거기서 때때로 토트 대신 라의 군사(軍使)가 되고 또 신들 의 지배자가 되었다. 잘 보셨는제. 다음신은 하늘, 게브의 부인인 누트입니다. - 두근두근 내일을 기대하며 유철이가. 『신화를 찾아서-메소포타미아/이집트 신화 (go MYTH)』 39번 제 목:[이집트/신] No. 10 누트(Nout) 올린이:exter (김유철 ) 95/08/05 20:22 읽음:550 E[7m관련자료 있음(TL)E[0m ----------------------------------------------------------------------------- 안녕하세요. 에필이에요.. 이번에 소개할 누트는요 여러분이 아마 어디선가 보신적이 있으실 꺼예요 이집트 그림을 보면 하늘에 어느 여자가 그러니까 몸에 별이 새겨진 여자가 업드려뻗쳐를 하고 있는 것을 보실수가 있으실 텐데요 그 여신이 바로 누트 랍니다. 잘 읽어주세요. 누 트 누트(Nout)는 하늘의 여신으로 역사시대에는 제사의 대상 이 되었었다. 그리스인들은 그녀를 태양신 라와 동일시하 고 있다. 그녀는 댜지의 신 게브와 쌍동이인 누이동생이었 는데, 라를 배반하고 무의식 중에 오빠와 부부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노한 신은 슈로 하여금 그 둘을 떼어놓게 한 다음, 누트에게는 1년에 한 달도 땅에 눕지 못하도록 엄명 을 냐렸다. 플루타르코스는 그것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 다. "다행히도 토트가 그녀를 가엾게 여겼다. 그래서 그는 달 과 내기 장기를 여러 번 두어 마침내 달의 72번째 빛을 손 에 넣어 닷새 동안을 간직했는대 그 5일간의 정력(正歷)으 로는 계산되어 있지 않았으므로 누트는 연달아 그녀의 다 섯 아이(오시리스, 하로에리스, 세트, 이시스, 네프티스) 를 낳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하늘의 여신 누트는 때때로 손발을 쭉 편 여인으로 표현 된다. 그녀는 발가락 끝으로 발돋움을 하고 서서 손가락 끝을 대지에 대고 있으며, 별이 아로새겨져 있는 그녀는 배가 슈에 의해 받쳐져 공중에 떠서 하늘의 궁륭(한가운데 가 제일 높고 사방 주위는 차차 낮아진 하늘 모양)을 이루 고 있다. 그런데 너무 높이 솟은 나머지 현기증이 일어났 다. 그래서 네 발, 즉 하늘의 네 기둥이 된 그 네 발에 각 각 신(神)을 하나씩 두어 그 발을 받치도록 하였다. 한편 슈는 그녀의 배를 받쳤다. 그래서 그 배가 하늘이 되고 라 는 지상에 사는 인간의 세계를 밝혀주기 위해 그 배에 별 과 성좌(星座)를 박아 놓았다. 가끔 라의 딸의 자격으로 누트 역시 태양의 어머니로 대접받기도 한다. 태양은 아침 마다 여러가지 형태로 그녀의 가슴으로 부터 태어나는 것 이다.또한 누트는 한 마리의 암소로 표현되기도 한다. 왜 냐하면 인간들의 반역을 겪은 다음 원초의 대양인 눈의 명 령으로 대지를 떠날 결심을 한 아버지 라를 등에 업고 갔 을 때, 그녀는 암소의 모습을 했었기 때문이다. 누트는 인간의 모습으로 표현될 때 간혹 그 이름의 표의 문자인 둥근 항아리를 머리 위에 얹고 있다. 또한 그녀는 죽은 자의 수호 여신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죽은 자를 꼭 껴안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또 돌로 만든 관위 뒤면 에는 여신이 미이라 위에 별처럼 찬란한 몸을 펼치고 우아 한 자태로 죽은 자를 지켜보고 있는 그림이 있다. 이상입니다. 다음 신은 오시리스 인데요.. 너무 길어... 그럼 이만.,. - 듀스 라이브를 들으며 유철이로부터 . 『신화를 찾아서-메소포타미아/이집트 신화 (go MYTH)』 40번 제 목:[이집트/신] No. 11 오시리스(Osiris) 올린이:exter (김유철 ) 95/08/05 21:47 읽음:635 관련자료 없음 ----------------------------------------------------------------------------- 안녕하세요. 에필이에요.. 이번 신은 오시리스인데요.. 정말 대단한 신입니다. 잘 읽어보세요. 좀 길어요.. 오시리스 오시리스(Osiris)는 이집트어의 우시르를 그리스어로 옮긴 것이다. 그리스인들은 오시리스를 그들의 수많은 신들 가운 데 특히 디오니소스와 동일시하고 있다. 처음에는 자연의 신이요 식물의 정(精)의 변신으로서, 수확기에 죽고 곡식의 배아와 더불어 다시 살아난다고 믿어지는 오시리스는 죽은 자의 신으로서 이집트 전역에서 숭배받았다. 그는 그런 자 격 때문에 이집트의 많은 신 가운데 제 1위에 속해 있는 것 이다. 히에로글리프(상형문자)로 된 여러 문헌에는 오시리스의 지상 생활과 관련된 사건이나 그의 신상에 대해서 아주 자세하게 언급되 어 있다. 그러나 그의 전설에 관해서 잘 알게 된 것은 무엇 보다도 플루타르코스 덕분인 것이다. 오시리스는 게브와 누트의 장남으로 상이집트에 테베에서 360일 이외의 제 5일 중 첫날에 태어났다. 그는 태어나자마 자 신비스런 목소리로 '세계의 주인'이라고 선언하여, 그 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기쁨의 탄성을 올렸다. 그러나 이윽 고 그를 위협하는 불행을 깨달았을 때 구 탄성은 통곡 소리 와 슬픈 노래로 변했다. 라는 그 선언을 듣자, 앞서 누트에게 저주를 퍼부었음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그의 손자인 오시리스를 불러 그의 왕위 계승자로 인정했다. 오시리스는 큰 체격에 미남이었다, 아버지인 게브가 하늘 로 은둔한 후, 그는 이집트 왕위를 계승하고 누이동생인 이 시스와 결혼했다. 이 새 지배자의 최초의 관심사는 거의 미 개 상태로 있는 그의 백성들로 하여근 사람 고기를 먹는 습 관을 없애고 들판을 경작하는 도구를 만드는 기술을 가르치 고 그들에게 빵과 포도주롸 맥주 따위의 음식물이 되는 보 리나 포도를 생산시키는 일이었다. 오시리스는 그때까지 행 해지지 않았던 신들에 대한 경배를 명령하여 사원을 세우고, 최초의 신의 모습을 조각하였으며, 의식의 항목을 자세히 정하고, 이어 제전의 합창 반주로 쓰이는 플루트 두 종류를 발명하기까지 했다. 그 후 오시리스는 여러 도시를 건설하고 주민들에게 올바 른 법을 가르쳤다. 이렇게 그는 4대째의 신왕(神王)으로서의 이름 우노프리스, 즉 '착한 존재'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존재 였다. 그는 이집트를 계발하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그의 올 바른 정치를 전세계에 미치게 하려 했다 그래서 그는 이시스 에게 통치를 맡기고 재상 토트, 지휘관 아누비스, 오포이스 등을 데리고 아시아 정복의 길에 나섰다. 어떤 폭력에도 반대 하는 오시리스는 오직 자애로써 이 나라 저 나라를 정복해 나 갔다. 그는 노래와 온갖 악기를 연주함으로써 주민들의 마음 을 풀고 그 무장을 풀게 했다. 그는 온 지상을 누비며 도처 에 문명을 보급시킬 때까지는 이집트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결 심했었다. 이집트에 돌아온 오시리스는 그의 왕국이 자신이 없는 사이 에도 아내인 이시스에 의해 현명하게 통치되어 완전한 상태 임을 알았다. 그러나 그는 이윽고 그의 권력을 시기하는 동 생 세트가 꾸민 음모에 말려들게 되었다. 이집트를 통치한 지 28년 되던 해에 '착한 존재'로 불리우던 오시리스는 반 역자에 의해 희생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충실한 아내 가 남편의 시체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소생시키는 데 성공한 다. 그래서 게브가 주재하는 신들의 법정에서 세트의 비난 에 개하여 오시리스가 억울하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다시 살아난 뒤에 죽음으로부터 보호 받기로 된 오시리스 는 왕좌에 다시 올라 살아 있는 사람들을 통치할 수도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지상을 버리고 '극락정토'에 안주하기 를 원했으며, 거기에서 바르게 살다 온 영혼을 맞아 죽은 자들을 통치했다. 이것이 오시리스의 전설인데, 그 전설의 기원이 확실하다 면 오시리스는 어떤 정복 부족(征服部族)의 물신(物神)으로 볼 수 있다. 그 부족은 처음에는 하이집트 지방의 부시리스 의 자리에 모셔졌는데, 안치의 형태와 이름까지 그대로 써 버렸다. 이어서 훨씬 뒤에 상이집트의 아비도스에 거처를 정했는데, 여기서 테엔스의 지하 묘소와 낭신(狼神) 켄트투, 서방인들의 우두머리, 즉 태양이 지는 땅에 거처를 갖는 죽 은 자들의 우두머리라는 명칭이 주어졌다. 오시리스는 계속해서 다시 태어나는 식물의 정령으로서 보 리, 포도, 수목을 상징했다. 또한 해마다 물이 불었다 줄었 다 하는 나일강이나 해질 무렵에 암흑 속으로 가라 앉았다 가 새벽에 다시 빛나는 태양의 빛을 상징했다. 두 형제, 오 시리스와 세트 사이의 다툼은 기름진 땅과 사막, 식물과 건 조한 바람, 불모와 넘쳐 흐르는 물, 암흑과 광명과의 투쟁 인 것이다. 그러나 오시리스가 진실로 널리 신앙의 대상이 된 것은 죽은 자의 신으로서였다. 왜냐하면 그는 신자들에게 저승 에서 올바르고 선량한 왕 밑에서 행복하고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을 주었기 때문이다. 오시리스는 자신과 3인조를 이루고 있는 아내 이시스, 그리고 아들 호루스와 더불어 이집트 전역에서 숭배를 받 았다. 오시리스의 그 장엄한 성소에 들어갈 수 있었던 자 나, 적어도 자기의 이름을 새긴 비를 세우게 할 수 있었 던 자는 행복한 자들이었다. 그들은 내세에 '착한 왕'이 라는 위치를 보증받은 것이 되기 때문이다. 오시리스는 몸에 꼭 끼는 가늘고 흰 줄무늬 옷을 입고 서있거나 왕좌에 앉아 있는 인간의 모습으로 표현된다. 초록 빛이 감도는 그 얼굴에는 타조의 깃 두 개를 단 높 고 흰 사교관(司敎冠), 즉 '아테프'라 불리는 것을 얹고 있다. 목에는 붉은 끈을 매고 수의에 나와 있는 두 손은 가슴 위에, 회초리와 홀(忽), 즉 지상권을 나타내는 갈 고리 모양의 왕홀(王忽)을 엇갈리게 얹어놓고 있는 것이 다. 그의 이름이나 속칭은 너무 많아서 ?사자의 서?에 있 는 기도문 안에는 그 수가 100개나 된다. 오시리스는 다른 많은 신성(神性)과 마찬가지로 변신하기 를 즐기며 소〔牛〕 오누피스, 멘데스와 성양(聖羊), 베누 따위의 동물뿐만 아니라 단순한 주물(呪物)에 불과한 '제 드' 같은 것으로까지 변신했다. 그것은 그가 선사시대의 숭배자를 전쟁으로 끌어넣고 있던 당시 최초의 형태였다. 그러나 초기에는 전나무나 그 밖의 소나무과(科) 식물의 나무가지를 늘어뜨린 것에 불과했었다. 그런데 고전기가 되면 '제드'는 ?? 유명한 부시리스의 성소에 보전되고 있듯이 ?? 네 개의 기둥머리가 있는 돌기둥 모양으로 으로 서술되어 전해지고 있다. 오시리스의 위난(危難)의 날들을 기념하기 위해서 올려 진 축제에 대해서 이야기할 여지는 거의 없어졌다. 그 축 전에서는 사제들이,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신의 수 전에서는 사제들이,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신의 수 난과 부활을 모방하여 그 신비한 자취를 재현해 보였던 것이다. 이상입니다. 여기서요 '부시리스'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건 오타가 아닙니다. 다음 신은 이시스입니다. 이것도 역시 기네요.. 에고.. 그럼 이만.. - 그대 우리 손을 잡아요!!! 유철이가. . 『신화를 찾아서-메소포타미아/이집트 신화 (go MYTH)』 41번 제 목:[이집트/신] No. 12 이시스(Isis) 올린이:exter (김유철 ) 95/08/07 12:43 읽음:620 관련자료 없음 ----------------------------------------------------------------------------- 안녕하세요 에필이에요.. 이번에 소개할 신은 이즈이즈가 아니거요 이시스(Isis)입니다. 이 신은 이집트의 대표적인 여신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요기 아래에 보면 태양신라와 이시스라고 하는 글이 있는데 읽어보시면 도움이 될꺼예요. 또한 이시스는 오시리스의 아내이지요. 자 그럼 지금부터 갑니다. 이시스 이시스(Isis)는 그리스어의 이세트에 해당하는 말로 그리 스인들에 의해서 데메테르, 헤라, 셀레네 등과 동일시되며 후에 이시스와 하토르가 혼동되자 앞로디테와도 동일시되 었다. 이시스 신앙은 후세에 매우 대중적이 되어 다른 여신들의 저격을 거의 합해 버릴 정도가 되었지만, 처음에는 나일강 델타 지대의 극헤 얌전한 여신이었으며 부시리스 북방에 있는 페르 헤베트의 여주인이었다고 한다. 이 패르 헤베트 에는 인접한 도시의 자연의 신 오시리스의 아내로 불렀고, 그와의 사이에서 생긴 호루스와 더불어 오시리스의 3인조 를 구성했다. 플루타르코스가 이야기해주는 그녀에 대한 전설은 다음과 같다. 이시스는 게브와 누트의 장녀로서 에파고메노스의 4일째 델타 지방의 저습지에서 태어났다. 오빠인 오시리스의 아 내로 택해진 그녀는 그녀와 더불어 살아있는 사람들을 다 스리는 왕좌에 앉아 오시리스의 개화 사업을 도와, 여자들 에게 곡식을 빻고 삼으로 실을 만들어 옷감을 짜는 방법을 가르쳤다. 또 그녀는 남자들에게 ┯을 고치는 방법을 가르 치고 그들을 결혼시켜 가정 생활을 하게 했다. 오시리스가 세계를 평화적으로 제패하기 위해 떠난 후, 이시스는 이집 트의 통치자로서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그 왕국을 현명하게 지배했다. 그런데 그들의 형제, 즉 난폭한 세트가 오시리스를 죽였 다는 통지를 받았을 때 이시스의 비탄은 뭐라 형용할 수 없었다. 그녀는 즉시 머리카락을 자르고 옷을 찢은 다음 '착한 존재' 오시리스가 들어 있는 관(棺)을 찾으러 나섰 다. 반역자들은 그 관을 나일강에 던져 버렸던 것이다. 나일강의 지류인 타니스의 하구로부터 바다로 흘러든 그 관은 파도를 타고 페니키아의 해안에 있는 타마리스크(버 드나무의 일종) 밑에 닿았다. 놀라운 속도로 자라는 그 나무는 그 관을 줄기 속에 완전히 감추어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얼마 후에 그 나무는 뷔블로스의 왕 마르칸드로스 의 명령으로 베어져 그의 궁전의 지붕을 받치는 기둥이 되었는데, 이상하게도 그 신비스런 나무는 야릇한 향기를 뿜기 시작했다. 그 소문을 들은 이시스는 곧 그 까닭을 알게 되어 그 즉시 페니키아로 떠났다. 그곳에서 이시스 는 아스타르테 여왕이, 태어난 지 얼마 안되는 왕자에 대 해 근심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이시스는 그 왕자 를 영원히 살 수 있는 몸으로 만들어 주기로 했다. 그러 나 그녀가 그 왕자의 몸을 깨끗이 하게 하기 위해 불로 목욕시키는 것을 본 여왕이 너무나 놀란 나머지 소리를 질렀기 때문에 주문의 힘은 깨어지고 말았다. 그래서 이 시스는 여왕을 안심시키기 위해 자신의 이름을 말하고, 그곳을 찾아온 이유를 밝혔다. 그런 다음 궁전의 지붕을 받치고 있는 타마리스크의 신비스런 기둥을 넘겨받아 거 기서 남편의 관을 꺼내고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 후 이 집트로 가지고 왔다. 그녀는 세트의 음모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 관을 부토의 저습지에 감추었는데 세트는 우연 히 자기 형의 시체를 다시 찾아내어 그것을 열 내 토막 내어 사방에 뿌렸다. 이시스는 그래도 실망하지 않고 그 귀중한 잔해를 여기저 기서 찾아내어 거의 다 모았다. 이시스는 시체 토막을 교묘 히 이어 붙여서 오시리스의 몸을 본래의 상태로 만들었다. 이어서 누이동생 네프티스, 조카 아누비스, 죽은 오시리스 의 재상 토트, 그리고 아들 호루스의 도움을 얻어 죽은 시 체에 영원한 생명을 불어넣는 의식을 처음으로 행했다. 이어서 그녀는 세트의 노여움을 피하고, 또 아들 호루스 를 세트에게 복수할 수 있을 만큼 키우기 위해 부토의 저습 지에 숨어 살았다. 어머니의 주문 덕분으로 호루스는 어떤 위험한 재난이라도 면할 수 있었다. 사실 이시스는 뛰어난 주술사였기 ㎖문에 신들까지도 그 저주를 면할 수 없었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그녀가 태양신 라의 시중을 드는 아직 어린 소녀에 불과했을 때, 그녀는 라에게 그 신비스런 이름을 물려달라고 간청했다는 것이다. 태양신은 이미 늙고 쇠약하여 머리가 흔들리고 입 에서는 침이 줄줄 흘러내리는 형편이었으므로, 이시스는 그 점을 이용해서 침이 밴 흙으로 독사 한마리를 만들어 태양 신이 다니는 길목에 놓았고 독사는 태양신 라를 심하게 물 었다. 그 뱀의 유래를 모르는 라는 그 상처를 치료할 방법 을 몰라 이시스의 주문에 의지해야 했다. 그러나 이시스는 그 독액을 좀처럼 제거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태양신은 고통을 이기지 못하여 그 신비스런 이름을 입 밖에 내고 말았다. 그래서 그 이름은 다른 신이 모르는 사이에 라의 몸에서 이시스의 몸으로 옮겨갔다. 오시리스의 신화에서 이시스는 매년 나일강의 범람에 의 해 기름지게 되는 이집트의 토양을 상징하고 있으며, 그 나 일강을 나타내는 오시리스나 기름진 토양인 이시스와는 정 반대인 세트는 사막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이시스 신앙은 점차 널리 퍼져 마침내는 다른 여신에 대 한 신앙의 대부분을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그 신앙은 이집 트 밖으로까지 퍼져 그리스?로마 시대의 상인들처럼, 뱃사 람들은 바다의 별이며 항해자의 보호자인 이시스에 대한 숭 배를 라인강 연안까지 전파시켰다. 나일강 유역에서는 이시스 숭배가 기독교의 전성기까지 계속되었다. 이집트의 최남단에 있는 이시스의 주요한 성소 필라에의 사원이 폐쇄되고 기독교의 교회로 바뀐 것은 6세 기 중엽 유스티아누스 황제의 치하에 까지 와서였다. 이시스를 위해 일년에 두 번(봄과 가을) 거행되는 대축전 이나 그때 향햐진 화려한 행렬 등에 관해서는 이시스교의 비의(秘儀)를 전수받은 아프레이우스가 그것을 전하고 있 다. 이시스는 흔히 그 이름의 표의문자인 왕좌를 머리에 얹은 여자의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다. 훨씬 뒤의 일이지만 때로 는 두 개의 깃을 달고 ?? 달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 쇠뿔 사이에 원반을 얹은 관을 머리에 쓰고 있고, 때로는 인체에 쇠머리를 얹은 모습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이런 뿔 이나 동물의 머리는 당시 사람들이 이시스와 하토르를 동 일시하고 있었다는 것을 증명해준다. 대체로 이시스는 조각이나 그림에는 오시리스와 함께 표 현되어 있다. 그녀는 죽은 자들에게 대하듯 오시리스를 그 날개가 붙은 손으로 어루만져 떠받들고 있거나 돌로 만든 관 밑에서 울거나 혹은 항아리를 지켜보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또한 빈번히 볼 수 있는 표현으로는, 어머 니로서 호루스를 키우는 모습과 나중에는 호루스를 데리고 세트와 싸우는 묘사도 있다. 이상입니다. 이번에도 꽤 길지요? 다음에는 세트에 대하여 나갑니다. 그럼 빠~~~ - 이제 곧 내 최후가(어머니에게 ) 유철이가. . 『신화를 찾아서-메소포타미아/이집트 신화 (go MYTH)』 42번 제 목:[이집트/신] No. 13 세트(Set) 올린이:exter (김유철 ) 95/08/09 17:26 읽음:596 E[7m관련자료 있음(TL)E[0m ----------------------------------------------------------------------------- 안녕하세요. 에필이에요.. 이번 신은 악의신 세트입니다. 그럼.. 세 트 그리스인이 티폰이라고 부른 세트(Set)는 오시리스의 아 우에게 주어진 멸시의 호칭이며, 드디어는 악의 정령을 나 타내는 것이 되어 곳곳에서 선의 정령에 대립되는 존재 가 되었다. 플루타르코스가 전하는 바에 의하면, 세트는 게브와 누트 의 아들로서 에파고메노스 3일에 출산 예정일이 채 되기도 전에 어머니의 배를 찢고 튀어나왔다는 것이다. 난폭하고 잔인한 그는 흰 살결과 붉은 털을 지녔었다. 그 붉은 털은 이집트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어서 그들은 그것을 나귀 의 털에 비유했다. 형인 오시리스를 시기하여 남모르게 왕관을 탐낸 세트는 왕위를 빠앗기 위해, 원정을 나갔던 오시리스의 개선을 축 하하는 뜻으로 멤피스에서 거행된 대축전을 이용했다. 세트 는 공범자 72명의 결심을 확인한 후 오시리스를 그 향연에 초대했다. 그 자리에서 세트는 화려하기 이를 대 없는 관 (棺)을 가져오게 하여, 그 관에 꼭 알맞게 들어가는 사람에 게 그것을 주겠다고 말했다. 오시리스는 세트의 흉계를 전 혀 눈치체지 못하고 그 상자에 들어가 누웠다. 그러자 공범 자들은 재빨리 뚜껑을 덮고 단단히 못질 한 후 그것을 나일 강에 던졌다. 상자는 파도를 타고 뷔블로스까지 흘러갔고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시스는 그것을 찾기 위해 이집트 로 갔다. 그런데 세트는 델타의 늪 지대에서 달빛 아래 사 냥을 하다가 우연히 그것을 발견하고 형의 시체임을 확인하 자 그것을 열 네 토막으로 잘라 들판에 뿌렸던 것이다. 세 트는 이제 아무 거리낌 없이 왕국의 주인 자리를 누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단지 아내인 네프티스에게 버림받은 것만 이 마음에 걸렸을 뿐이었다. 네프티스는 오시리스의 가족 편이 되어 있었다. 다른 대부분의 신들도 제 마음대로 정치 를 하는 세트의 잔인성을 피해 각각 동물의 몸 속에 숨어 있 었다. 그 동안 이시스의 아들 호루스는 델타의 저습지에서 성장하여 아버지 오시리스의 살해자 세트에게 복수하고, 그 에게서 왕좌를 빼앗게 되었다. 세트는 오시리스 신화 중에서도 비옥한 토지, 관개수, 빛 따위와 대립되는 불모의 사막, 건조, 암흑 등을 인격화한 영원한 적대자로 표현되고 있다. 모든 창조와 선은 오시리 스로부터 생겨나고, 모든 파괴와 악은 게트와 연결된다. 그 러나 원시시대에는 그 신의 악한 성격이 그렇게 강조되지는 않았었다. 피라밋에 남아 있는 옛 문서에는 그가 오시리스 의 형제일 뿐만 아니라 노(老)호루스의 형제로 되어 있으 며, 그들 둘의 치열한 싸움에 대해서 기록되어 있다. 그 싸 움은 신들의 판가름을 받게 되어 승리는 호루스에게로 돌아 가고 세트는 사막으로 추방된 것으로 되어 있다. 세트가 호 루스의 형제가 아니라 그의 숙부이며 오시리스의 영원한 적 이 된 것은 훨씬 후대에 가서 오시리스 전설이 널리 퍼지기 시작하고, 두 호루스가 혼동된 이후의 일이다. 세트는 처음에는 상이집트의 지방신이었던 것 같으며, 이 윽고 매[鷹:응] 신의 숭배자들에게 쫓기게 되었다. 아마도 그것이 두 형제신의 싸움이라는 신화에 의해 가려지고 있는 역사적 사실인 것 같다. 고왕국 및 중왕국 시대의 부조(모 양?형상을 도드라지게 새긴 조각)는 왕 밑에서 나란히 포 로를 끌고 가는 세트와 호루스의 모습, 또는 결합의 관념을 뜻하는 부호의 둘레를 상하 두 이집트의 여러 식물로 결합 시키고 있는 형상을 나타내고 있는데, 그러한 모습에 의해 스마 타우이, 즉 두 나라의 걸합을 상징하고 있다. 힉소스(시리아 지방의 종족으로, 기원전 1750년경 이집트 에 침입하여 약 200년간 지배했음)의 점령기에 세트는 새 지배자에 의해서 그들의 주신인 스테크와 동일시하게 되어 그 수도인 아바리스에 신전이 세워졌다. 또한 신왕국 시대 에 들어서면 라메스 2세의 부왕은 세트, 즉 '세트의 집안' 으로 자칭하고 라메스 2세 자신은 서슴치 않고 '세트의 사 랑을 받은 자'라고 자칭하기에 이르렀다. 오시리스의 숭배 자들은 '착한 존재'의 살해자에 대한 신앙이 행해지고 있 는 것을 보고 격분하여, 묘의 벽면에 새겨진 세트라는 저 주받은 모습을 모두 없에고, 스스로를 세트의 집안이 아닌 오시리스의 집안으로 자칭했다. 오시리스의 살해자가 그 벌을 정말로 받게 되는 것은 기 원전 10세기 중엽 제 22왕조에 접어들면서부터이다. 세트 의 모습을 한 조각상은 파괴되고, 부조는 형태를 알아볼 수 없게 되어 그의 이름이 적혀 있는 것은 모조리 없에버 렸다. 드디어 세트는 이집트의 신들 가운데서도 내쫓겨 사 악의 신이 되어 과거 상이집트의 지방신은 신들의 적, 일 종의 악마로까지 몰락해버렸다. 나귀, 영양 들 사막의 동물들은 악어, 돼지, 전갈, 하마 따위와 더불어 세트를 따르는 자로 되어 있으며, 이 동물 들의 몸 속에 사악의 신이나 그 부하가 승리자 호루스의 습격을 피하려고 숨어 들어가려는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일찍이 세트가 호루스의 눈에 상처를 입힌 것도, 또 오시리스의 혼이 숨어 있다는 달을 매달 습격하 여 뜯어먹는 것도 검은 돼지탈을 쓰고 하는 짓이라 한다. 세트는 우뚝 서서 앞 부분이 네모지게 잘린 귀, 길고 꼬 부라진 코, 끝 부분이 둘로 갈라져 도저히 도로 붙일 수 없는 딱딱한 꼬리를 가진 공상적 동물로 표현되었다. 보통 그것을 '티폰의 동물'이라고도 부른다. 또 어깨 위에 네발 짐승의 머리를 가진 인간의 모습으로도 표현되고 있다. 다음 신은 네프티스에요.. 이상입니다. - 오늘게토레이 농구대회 보고 온. 유철이가. 『신화를 찾아서-메소포타미아/이집트 신화 (go MYTH)』 80번 제 목:[이집트/신] No. 14 네프티스(Nepthys) 올린이:exter (김유철 ) 95/12/08 21:47 읽음:510 E[7m관련자료 있음(TL)E[0m ----------------------------------------------------------------------------- 안녕하세요 에필이에요.. 다시 연재를 시작합니다. 마니 봐주세요 오시리스의 둘째 여동생. 아누비스의 어머니. 바로 네프티스 입니다. 네프티스 네프티스(Nepthys)는 그리스어로는 네프트 헤트로, 플루 타르코스에 의해 텔레우테, 아프로디테, 네케라 불리고 있다. 네프티스는 그 이름, 즉 '성의 여주인'을 뜻하는 두 개의 상형 문자를 머리 위에 가진 여자의 모습으로 형성화되어 있다. 성의 부호 위에 광주리가 있는 것이 그것이다. 처음 에는 죽은 자들의 신이었지만 오시리스의 전설은 그녀를 게브와 누트의 둘째딸로 만들어 놓았다. 그녀는 오빠인 세트와 아내가 되었으나 큰오빠인 오시리 스와의 사이에 자식을 갖길 원했다. 그래서 그녀는 오시리 스를 술에 취하게 한 다음 그가 모르는 사이에 품안에 품 어 아누비스가 태어난 것이다. 그 전설에 따르면 네프티스는 사막의 한 주변부, 즉 보통 때는 불모지이지만 나일강의 물이 한층 불었을 때는 비옥 해지는 땅을 상징하고 있는 듯하다. 세트가 형인 오시리스 를 죽였을 때, 네프티스는 남편이 두려워 남편을 버리고 오시리스를 지키는 자들의 편이 되었다. 그녀는 언니 이시 스를 도와 교대로 장송가를 부르며 살해된 오시리스의 시 체를 불멸의 것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 장송가는 한 장 의 파피루스에 남아서 전해지고 있다. 종종 쌍동이 자매로 일컬어지는 이시스와 네프티스가 오 빠의 미이라를 지켰듯이, 죽은 자들을 지키는 일도 맡았다. 온갖 의식을 거친 죽은 자는 말하자면 오시리스가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관 뚜껑이나 돌로 된 관의 옆면에 이시스와 네프티스 자매가 긴 날개가 달린 손을 펼쳐 수호 의 자세를 취하고 있는 그림을 볼 수 있다. - 이상이에요.. 『신화를 찾아서-메소포타미아/이집트 신화 (go MYTH)』 81번 제 목:[이집트/신] No. 15 호루스(Horus) 올린이:exter (김유철 ) 95/12/08 21:49 읽음:490 E[7m관련자료 있음(TL)E[0m ----------------------------------------------------------------------------- 안녕하세요 에필입니다. 이번의 신은.. 태양신 중 하나, 독수리 머리, 이시스와 오시리스의 아들 호루스 랍니다 호루스 호루스(Horus)는 일종의 태양신의 명칭이며 줄곧 아폴 로와 동일시되어 왔다. 그리고 한 마리의 매나 매의 머 리를 가진 신으로 표현되었다. 이집트인들은 '하늘'을 표현하는 말과 같은 음인 호르(Hor)의 이름으로 그들의 머리 위에 높이 나는 매를 나타내고, 하늘을 좌우로 하 여 태양과 달의 눈을 갖고 있는 한 마라의 매를 보았던 것이다. 매 신의 추종자들이 정착한 곳에서는 호루스에 대한 신앙이 어김없이 행해졌다. 그러나 그 신의 역할이나 권한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각각의 성소에 변화해서 이 집트의 수많은 신들 가운데는 호루스 신이 스물이나 될 정도이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늙은 호루스, 즉 '하로에리스'나 기타의 태양신 계통의 매 신인 호르 베레데티, 에드푸의 호루스와 오시리스 신화에 나 오는 이시스의 아들 호루스, 즉 아버지의 복수자인 '하르에시스'와 구별하는 것이다. 이시스가 오시리스를 소생시키면서 주문의 힘으로 호 루스를 잉태하여 부토와 가까운 케므니스의 섬에서 낳 은 사정은 오시리스의 전설에 나온다. 이 호루스의 유 년시대, 즉 그것은 호르 파 케르드(어린 호루스)라 불 렀고 거기에서 하르포클라테스의 이름이 생겨났다. 하르포클라테스는 벌거숭이 아니면 보석류를 몸에 달 았을 뿐 관자놀이에 늘어뜨린 땋은 머리 이외에는 머리 가 거의 없는 갓난 아기의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때 때로 그 아기는 젖을 내밀고 있는 어머니의 무릎 위에 서 손가락을 빨고 있다. 그 동작은 그리스인들이 겸소 의 덕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잘못 해석했지만, 훨씬 후 세에 가서 침묵의 신이라고 불리는 그 젊은이에게 어울 리는 동작이었다. 세트의 음모를 염려하여 고독 속에서 키워진 이시스의 아들은 태어날 때부터 몹시 허약했지 만 어머니의 마법 덕택에 여러 가지 위험이나 난폭한 동물들의 습격, 불, 전갈과 병을 모면할 수 있었는데, 그 기록은 주술자들이 병자를 고치기 위해 사용한 주문 의 문장을 만드는 법이나 쓰는 법 속에 보존되어 있다. 그러는 동안에 점차 성장한 호루스 앞에 종종 오시리 스가 나타나 싸우는 법을 가르치며, 어서 빨리 세트와 싸워서 그 왕위 계승권을 되찾아 아버지의 원수를 갚을 수 있는 밥벙을 가르쳐 주었다, 그 영광스러운 복수 행 위에서 하렌도테스라는 명칭이 생겼는데 그것은 '아버 지의 복수자 호루스'를 뜻하는 호로 네지 이테프의 그 리스어식 발음인 것이다. 호루스가 오시리스와 살해자 세트와 싸우는 모습은 에 드푸의 신전 벽면에 조각되어 있다. 이 에드푸의 주신 베헤데티는 그 시대에는 이시스의 아들과 동화되어 있 었던 것 이다. 한편 세트도 태양의 영원한 적 아포피스 와 혼동되어 있었다. 그 벽면에 조각되어 있는 띠 부분 에는 호루스가 하르토메스(찌르는 사람 호루스)의 이름 아래 그 창을 상대방에게 찌르는 한편, '호루스의 추종 자들'은 악어나 하마나 영양이나 그 밖의 다른 티폰의 동물들 속에 숨으려고 도망치는 '세트의 추종자들'을 칼로 마구 찌르는 그림을 볼 수 있다. 신들은 질질 끄는 싸움을 중지시키려고 그 판가름의 마당에 두 적대자를 출두스켰다. 세트는, 오시리스의 아들이라는 그의 조카가 서자에 불과하다고 호소했으나, 호루스는 자기 출생의 정당함을 떳떳이 증명했다. 그래 서 신들의 왕위를 빼앗은 자에게 그 계승권을 돌려주라 고 판결을 내린 후 호루스를 상하 두 이집트의 주인으 로 선고했다. '두 나라를 합치는 호루스'를 뜻하는 호르 스마타우이의 음역(音譯)인 하르솜투스와 '두 땅 의 주인 호루스'를 뜻하는 호르파 네브 타우이 등의 명 칭이 생긴 것도 여기에 연유한다. 이렇게 해서 호루스는 곳곳에 많은 신전을 세웠으며 그 신전에서 그는 원수 세트의 추종자들과 싸우기 위해 그 탈을 썼던 여러 가지 동물의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 다. 이어서 그는 이집트 전체를 평화적으로 통치하고 국가신(國家神), 즉 국왕들의 선조로서 이집트에 영원 히 머물렀다. 그리하여 국왕들은 '살아 있는 호루스'의 칭호를 갖게 되었다. 오시리스와 어머니 이시스와 더불어 이집트 전역에서 숭배받는 호루스는 많은 성소의 3인조 중에서도 우두머 리가 되어, 혹은 왕자로서 혹은 신의 아들로 표시되었다. 예를 들어 에드푸와 온보스에서는 호루스가 주신으로서 아내 하토르를 갖고 있었지만, 덴데라에서는 하토르가 어엿한 여주인이고 호루스는 여왕의 남편이하는 자격으 로 주신이 된 데에 불과했다. 여러 신전에 나타나 있는 조건이나 그림의 표현 중에서 는, 신왕국 시대 초기에 이르기까지 호루스는 세트와 협 력해서 왕에게 왕관을 쓰도록 하고, 왕의 시중을 들거나 성소로 안내하는가 하면 두 나라가 통합하도록 하고 있 다. 그러나 나중에는 오시리스의 살해자는 토트가 된다. 또 세트와 그의 일당과 싸우고, 오시리스를 위해 울고 그를 위해 시체를 땅에 묻는 의식을 행하는 호루스의 모 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호루스가 저승에서 죽은 자들을 '오시리스' 앞으로 안내하여 영혼의 무게를 재는 일을 감독하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된다. - 잘 보셨어여? 『신화를 찾아서-메소포타미아/이집트 신화 (go MYTH)』 82번 제 목:[이집트/신] No. 16 아누비스(Anubis) 올린이:exter (김유철 ) 95/12/12 21:29 읽음:505 E[7m관련자료 있음(TL)E[0m ----------------------------------------------------------------------------- 안녕하세요 에필입니다. 이번 신은 아누비스 입니다. 많이 읽으세요... 아! 여기서 문제 하나.. 아누비스의 머리가 개일까요 이리일까요 늑대일까요? 잘 읽어보시면 아실꺼고 정답은 이 글의 마지막에.... 아누비스 인푸(Inpou)가 그리스어 화한 아누비스(Anubis)는 저승으 로 죽은 자를 안내하는 헤르메스와 동일시되어 있었다. 왜 냐하면 저승 세계로 가는 문을 여는 것이 바로 아누비스였 기 때문이다. 그는 폭신폭신한 꼬리를 가진 검은 늑대의 모 습이나 어깨 위에 황금빛이 나는 이리 같은 모습이나, 개의 머리를 얹은 거무스름한 피부의 사나이로 표현되고 있다. 그 이유로 그리스인들은 아누비스 신앙의 중심 도시를 키노폴리스(개(犬)의 도시)라 불렀던 것이다. 초기 왕조 이래로 시체를 보존하는 일을 맡은 것이 아누 비스였고, 시체를 땅에 묻을 때의 기원문은 항상 아누비스 를 우두머리로 하여 그에게 기도를 올리고 있다. 피라미드의 여러 문서에서는, 아누비스는 '라의 네 번째 아들'로 되어 있으며 케베후트, 즉 '순결한 여신'이라는 딸 이 주어져 있다, 그러나 후대에 와서 그는 오빠인 오시리스 의 가족에 속하는 것으로 되어, 이시스의 동생 네프티스가 오시리스와의 사이에 낳은 불의의 자식이라고 설명되었다, 그는 태어나자마자 어머니 네프티스에게는 버림을 받았지만 큰어머니인 이시스의 따뜻한 손길로 키워졌다고 한다. 성인이 된 아누비스는 세계 제패의 길에 오른 오시리스를 따라 나섰으며, 오시리스가 세트에 의해 살해되었을 때에는 태양신 라의 명령을 받아 이시스와 네프티스를 도와 오시리 스의 장례식을 치렀다. 아누비스가 장례 절차의 여러 의식을 생각해 내고, 또 오 시리스의 미라에 천을 감아서 공기가 닿지 않도록 하여 썩 지 않게 한 것도 바로 그 때인 것이다, 그가 '모시[細布]의 우두머리'라고 불리는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 후로 그는 장례를 계속 관장하게 되어 죽은 자의 미라를 보존하 는 방법을 계속 행동에 옮기고, 묘지의 문에서 죽은 자를 마중하고 또 묘지 속에는 유족들이 바치는 공물을 죽은 자 들에게 전달하는 일을 맡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아누비스는 저승 세계인 오시리스 궁정의 안내인으 로서 죽은 자의 손을 잡고 심판의 왕 앞으로 인도하여 그 앞 에서 영혼의 계량을 행한다. 이와 같이 아누비스는 죽은 자들의 신으로서의 역할을 가 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신앙은 널리 전파되었다. 또 한 오시리스 전설과 관련이 있었기 때문에 그 숭배자는 후 대에까지 내려와 죽은 자를 저승으로 인도하는 그리스의 헤 르메스와 동일시되어 헤르마누비스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아프레이우스가 전하는 바에 의하면, 이시스를 위한 제전의 행렬에 있어서 맨 앞에 자리한 것은 바로 개의 머리를 하고 손에 지팡이를 든 아누비스였다. 자 잘 읽으셨어여? 요기 마지막에는 개라고 되어 있는 데여 잘 읽어보시면 셋 다 맞다는 것을 아실 껍니다. 그럼 빠이~~ . 방에게 찌르는 한편, '호루스의 추종 자들'은 악어나 하마나 영양이나 그 밖의 다른 티폰의 동물들 속에 숨으려고 도망치는 '세트의 추종자들'을 칼로 마구 찌르는 그림을 볼 수 있다. 신들은 질질 끄는 싸움을 중지시키려고 그 판가름의 마당에 두 적대자를 출두스켰다. 세트는, 오시리스의 아들이라는 그의 조카가 서자에 불과하다고 호소했으나, 호루스는 자기 출생의 정당함을 떳떳이 증명했다. 그래 서 신들의 왕위를 빼앗은 자에게 그 계승권을 돌려주라 고 판결을 내린 후 호루스를 상하 두 이집트의 주인으 로 선고했다. '두 나라를 합치는 호루스'를 뜻하는 호르 스마타우이의 음역(音譯)인 하르솜투스와 '두 땅 의 주인 호루스'를 뜻하는 호르파 네브 타우이 등의 명 칭이 생긴 것도 여기에 연유한다. 이렇게 해서 호루스는 곳곳에 많은 신전을 세웠으며 그 신전에서 그는 원수 세트의 추종자들과 싸우기 위해 그 탈을 썼던 여러 가지 동물의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 다. 이어서 그는 이집트 전체를 평화적으로 통치하고 국가신(國家神), 즉 국왕들의 선조로서 이집트에 영원 히 머물렀다. 그리하여 국왕들은 '살아 있는 호루스'의 칭호를 갖게 되었다. 오시리스와 어머니 이시스와 더불어 이집트 전역에서 숭배받는 호루스는 많은 성소의 3인조 중에서도 우두머 리가 되어, 혹은 왕자로서 혹은 신의 아들로 표시되었다. 예를 들어 에드푸와 온보스에서는 호루스가 주신으로서 아내 하토르를 갖고 있었지만, 덴데라에서는 하토르가 어엿한 여주인이고 호루스는 여왕의 남편이하는 자격으 로 주신이 된 데에 불과했다. 여러 신전에 나타나 있는 조건이나 그림의 표현 중에서 는, 신왕국 시대 초기에 이르기까지 호루스는 세트와 협 력해서 왕에게 왕관을 쓰도록 하고, 왕의 시중을 들거나 성소로 안내하는가 하면 두 나라가 통합하도록 하고 있 다. 그러나 나중에는 오시리스의 살해자는 토트가 된다. 또 세트와 그의 일당과 싸우고, 오시리스를 위해 울고 그를 위해 시체를 땅에 묻는 의식을 행하는 호루스의 모 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호루스가 저승에서 죽은 자들을 '오시리스' 앞으로 안내하여 영혼의 무게를 재는 일을 감독하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된다. - 잘 보셨어여? 『신화를 찾아서-메소포타미아/이집트 신화 (go MYTH)』 83번 제 목:[이집트/신] No. 17 아피스(Apis) 올린이:exter (김유철 ) 95/12/12 21:30 읽음:443 E[7m관련자료 있음(TL)E[0m ----------------------------------------------------------------------------- 안녕하세요 에필입니다. 아피스는 처음 들어 보시죠? 신이 아닌것 같에요.. 잘 읽어보세요. 아피스 아피스(Apis)란 하피가 그리스어화한 것인데, 소[牛] 아 피스의 이름으로 성스러운 동물 중 오늘날 가장 잘 알려진 것이다. 아피스는 이집트 전역에서 널리 숭앙되었지만, 특 히 멤피스에서 사육되고 숭배받았다, 그 소는 '파타의 생명 의 갱신'이라 불리며 프타의 성스러운 소로서, 그리고 신의 화신으로 여겨졌다. 전하는 이야기에 의하면 어느 날 프타는 하늘의 불이 되 어 순결한 소를 잉태시켜 검은 소를 낳게 했는데, 사제들 만이 몇 가지 신비스런 표시에 의해 그 소를 구별할 수 있 었다. 그 소는 이마 근처에 흰 삼각형이 있고, 혀위에는 쇠 똥구리의 모습이 있었으며, 꼬리 끝이 둘로 갈라져 있었던 것이다. 아피스가 살아 있는 한, 멤피스의 프타 신전 바로 앞에 세운 왕들의 신전에서 정성스럽게 키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날마다 일정한 시간에 신전의 앞마당에 내놓아졌는데, 그 뛰노는 모습은 신자들은 물론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모 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리스?로마 시대의 이집트에서는 그렇게 성스러운 동물을 보라거는 것이 여행자들에게 있어 서 최대의 흥미거리였기 때문이다. 그 소는 움직임 하나하나가 미래의 징조로 해석되었으며 그 예로 게르마니쿠스(로마 장군?정치가, 드루수스의 아들) 가 독살당라기 조금 전에 그 왕자가 던진 음식을 소가 먹으 려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대체로 아피스는 자연히 죽을 때까지 놓아두었던 것 같 다. 그러나 일정한 나이가 되면, 사람들은 아피스를 연못 에 빠뜨려 중였으며 페르시아의 통치기에는 탄뷔스 왕과 오 크스 왕에 의해 두 번 도살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아피스가 죽었을 때의 이집트인들의 슬픔, 또 그 후 계자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의 그들의 기쁨은 아 주 대단했던것 같다. 1950년 사카라에서 마리에트(1821- 1881, 프랑스의 고고학자)에 의해 아주 넓은 무덤이 발견되 었는데, 거기에는 아피스의 시테가 성대한 장례를 거친 다 음 미이라가 되어 모랫돌이나 장미빛 화강암의 관속에 매 장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 납골소(納骨所) 위에는 제사를 위한 넓은 무덤이 발견되 었는데, 거기에는 아피스의 시체가 성대한 장례를 거친 다 음 미이라가 되어 모랫돌이나 장미빛 화강암의 관 속에 매 장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 납골소(納骨所) 위에는 제사를 위한 대신전이 건림되 어 있었다, 오늘날에는 아무런 유적도 남아 있지 않지만, 그것은 그리스어로 세라페이온, 라틴어로는 세라페움이라고 불렸다. 죽은 소는 모든 죽은 자와 마찬가지로 오시리스의 것이 되어 오시리스 아피스, 즉 그리스어로의 오소라피스라 고 불리는 장례식이 지만, 그것은 그리스어로 세라페이온, 라틴어로는 세라페움이라고 불렸다. 죽은 소는 모든 죽은 자와 마찬가지로 오시리스의 것이 되어 오시리스 아피스, 즉 그리스어로의 오소라피스라 고 불리는 장례식이 그 신전에서 행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그 오소라피스는 어느새 다른 나라의 신 세라피스트와 일체 화하여 알렉산드리아의 세라페움에서 그리스적인 의식으로 숭배되었다. 이상입니다 『신화를 찾아서-메소포타미아/이집트 신화 (go MYTH)』 85번 제 목:[이집트/신] No. 18 프타(Ptah) 올린이:exter (김유철 ) 95/12/16 21:20 읽음:458 E[7m관련자료 있음(TL)E[0m ----------------------------------------------------------------------------- 안녕하세요 프타입니다.. 마니 봐주세요.. 프 타 프타(Ptah)는 멤피스에서 숭배되었는데, 공인이며 예술가 의 보호신으로서의 특징 때문에 그리스인들은 스를 헤파이 스토스와 동일시했으며 일반적으로 그는 미라가 된 남자의 모습으로 표현되어 안채의 제단 위에 세워져 있다. 그 머리 에는 천이 감겨 있고, 몸은 모시로 감기고 겨우 손만 자유 로운 상태로 생명?안정성?전능을 나타내는 왕의 지팡이를 똑바로 들고 있을 뿐이다. 멤피스에는 아주 오랜 옛날부터 메네스의 고성(古城)인 '흰 성벽' 남쪽의 그의 유명한 신전성(神殿城), 즉 '벽 밖 의 프타'가 있어 국왕들의 대관이 거행되는 도시 구실을 했 다. 그 북방의 도시에서 프타는 첫째가는 지배자로 군림했 음에 틀림없었으나 제 20왕조가 되기 전까지는 일반에게 그 다지 알려지지 않았다. 세티 1세 및 라메스 2세는 프타에 대해 완전히 헌신적이었고, 또 다른 왕들도 한결같이 '프타 의 아들'을 뜻하는 시프타이의 이름을 자칭했다. 그러나 멤피스의 신 프타가 더할 나위 없는 영광에 싸여 이집트의 신들 중에서도 아몬 및 라의 다음가는 제 3위의 명성과 부를 획득하게 되는 것은, 라메스의 대가 끊어진 후 의 일이다. 프타는 이집트의 많은 신들 중에서 제 3위의 신 이었으나 그의 사제들에게 있어서는 아몬이나 라 이상의 신 이며, 그들은 이 세상을 만든 창조신이야말로 프타라고 믿 고 있었던 것이다. 공인, 예술가의 보호신인 프타는 온갖 기술의 발명가이며 도공, 주물공, 뛰어난 건축가였다. 그의 독특한 상징물 가 운데 하나는 자[尺]인데, 그 위에는 똑바로 서 있는 그의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멤피스에 있는 그의 신전의 대사제 는 '예술의 위대한 우두머리'라는 칭호를 갖고 있는데, 그 것은 오늘날 성당의 사제가 '제작의 위대한 주인'이라는 명 칭을 갖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또 어떤 신전이 건축되었을 때 건축가나 공인들을 감독하는 걱도 그 대사제의 역할이었 다. 오늘날 멤피스의 유명한 신전은 겨우 형태만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이지만, 사제들은 거기에서 헤로도토스로 하여금 프타의 위대한 기적을 기년하는 제물을 바치게 했었다. 그 의 기적 중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펠루세가 세난셰립 왕이 이끄는 앗시리아군에게 공격받았을 때 그 도시를 구한 일이 다. 그 때 그는 한 떼의 쥐를 모아 침략자들의 화살통과 활 줄과 방패의 가죽 등을 갉게 하여 그들로 항금 물러가지 않 을 수 없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 멤피스의 신전에서 프타는 아네 세크메트 및 그들의 자식들과 더불어 숭배받고 있었다. 그런데 ? 프타는 일찍부터 숭배되어 왔으면서도 대지의 신 테넨과 동일시되어, 또한 소카리스와 더불어 종종 프타 테넨, 프타 소카리스, 혹은 프타 소카아르 오시리스의 이름으로도 경배 받았다. 이상이에요. 『신화를 찾아서-메소포타미아/이집트 신화 (go MYTH)』 208번 제 목:[이집트/신] No. 17 아피스(Apis) 올린이:exter (김유철 ) 98/07/09 18:33 읽음:221 E[7m관련자료 있음(TL)E[0m ----------------------------------------------------------------------------- 아피스 아피스(Apis)란 하피가 그리스어 화한 것인데, 소[牛] 아피스의 이름으로 성스러운 동물 중 오늘날 가장 잘 알려진 것이다. 아피스는 이집트 전역에서 널리 숭앙되었지만, 특히 멤피스에서 사육되고 숭배 받았다, 그 소는 '프타 의 생명의 갱신'이라 불리며 프타의 성스러운 소로서, 그리고 신의 화신으로 여겨졌다. 전하는 이야기에 의하면 어느 날 프타는 하늘의 불이 되어 순결한 소를 잉 태시켜 검은 소를 낳게 했는데, 사제들만이 몇 가지 신비스런 표시에 의해 그 소를 구별할 수 있었다. 그 소는 이마 근처에 흰 삼각형이 있고, 혀 위에 는 쇠똥구리의 모습이 있었으며, 꼬리 끝이 둘로 갈라져 있었던 것이다. 아피스가 살아 있는 한, 멤피스의 프타 신전 바로 앞에 세운 왕들의 신전 에서 정성스럽게 키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날마다 일정한 시간에 신전의 앞 마당에 내놓아졌는데, 그 뛰노는 모습은 신자들은 물론 많은 사람들의 눈길 을 모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리스, 로마 시대의 이집트에서는 그렇게 성스 러운 동물을 보러 가는 것이 여행자들에게 있어서 최대의 흥밋거리였기 때문 이다. 그 소는 움직임 하나 하나가 미래의 징조로 해석되었으며 그 예로 게르마 니쿠스(로마 장군 및 정치가, 드루수스의 아들)가 독살 당하기 조금 전에 그 왕자가 던진 음식을 소가 먹으려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대체로 아피스는 자연히 죽을 때까지 놓아두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일정한 나이가 되면, 사람들은 아피스를 연못에 빠뜨려 죽였으며 페르시아의 통치기 에는 탄뷔스 왕과 오크스 왕에 의해 두 번 도살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아피스가 죽었을 때의 이집트인들의 슬픔, 또 그 후계자가 발견되었다 는 소식을 들었을 때의 그들의 기쁨은 아주 대단했던 것 같다. 1950년 사카 라에서 마리에트(1821-1881, 프랑스의 고고학자)에 의해 아주 넓은 무덤이 발견되었는데, 거기에는 아피스의 시체가 성대한 장례를 거친 다음 미라가 되어 모랫돌이나 장밋빛 화강암의 관속에 매장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 납골소(納骨所) 위에는 제사를 위한 대신전이 건립되어 있었다, 오늘날 에는 아무런 유적도 남아 있지 않지만, 그것은 그리스어로 세라페이온, 라틴 어로는 세라페움이라고 불렸다. 죽은 소는 모든 죽은 자와 마찬가지로 오시 리스의 것이 되어 오시리스 아피스, 즉 그리스어로의 오소라피스라고 불리는 장례식이 그 신전에서 행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그 오소라피스는 어느새 다 른 나라의 신 세라피스트와 일체화하여 알렉산드리아의 세라페움에서 그리스 적인 의식으로 숭배되었다. 『신화를 찾아서-메소포타미아/이집트 신화 (go MYTH)』 85번 제 목:[이집트/신] No. 18 프타(Ptah) 올린이:exter (김유철 ) 95/12/16 21:20 읽음:457 E[7m관련자료 있음(TL)E[0m ----------------------------------------------------------------------------- 안녕하세요 프타입니다.. 마니 봐주세요.. 프 타 프타(Ptah)는 멤피스에서 숭배되었는데, 공인이며 예술가 의 보호신으로서의 특징 때문에 그리스인들은 스를 헤파이 스토스와 동일시했으며 일반적으로 그는 미라가 된 남자의 모습으로 표현되어 안채의 제단 위에 세워져 있다. 그 머리 에는 천이 감겨 있고, 몸은 모시로 감기고 겨우 손만 자유 로운 상태로 생명?안정성?전능을 나타내는 왕의 지팡이를 똑바로 들고 있을 뿐이다. 멤피스에는 아주 오랜 옛날부터 메네스의 고성(古城)인 '흰 성벽' 남쪽의 그의 유명한 신전성(神殿城), 즉 '벽 밖 의 프타'가 있어 국왕들의 대관이 거행되는 도시 구실을 했 다. 그 북방의 도시에서 프타는 첫째가는 지배자로 군림했 음에 틀림없었으나 제 20왕조가 되기 전까지는 일반에게 그 다지 알려지지 않았다. 세티 1세 및 라메스 2세는 프타에 대해 완전히 헌신적이었고, 또 다른 왕들도 한결같이 '프타 의 아들'을 뜻하는 시프타이의 이름을 자칭했다. 그러나 멤피스의 신 프타가 더할 나위 없는 영광에 싸여 이집트의 신들 중에서도 아몬 및 라의 다음가는 제 3위의 명성과 부를 획득하게 되는 것은, 라메스의 대가 끊어진 후 의 일이다. 프타는 이집트의 많은 신들 중에서 제 3위의 신 이었으나 그의 사제들에게 있어서는 아몬이나 라 이상의 신 이며, 그들은 이 세상을 만든 창조신이야말로 프타라고 믿 고 있었던 것이다. 공인, 예술가의 보호신인 프타는 온갖 기술의 발명가이며 도공, 주물공, 뛰어난 건축가였다. 그의 독특한 상징물 가 운데 하나는 자[尺]인데, 그 위에는 똑바로 서 있는 그의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멤피스에 있는 그의 신전의 대사제 는 '예술의 위대한 우두머리'라는 칭호를 갖고 있는데, 그 것은 오늘날 성당의 사제가 '제작의 위대한 주인'이라는 명 칭을 갖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또 어떤 신전이 건축되었을 때 건축가나 공인들을 감독하는 걱도 그 대사제의 역할이었 다. 오늘날 멤피스의 유명한 신전은 겨우 형태만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이지만, 사제들은 거기에서 헤로도토스로 하여금 프타의 위대한 기적을 기년하는 제물을 바치게 했었다. 그 의 기적 중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펠루세가 세난셰립 왕이 이끄는 앗시리아군에게 공격받았을 때 그 도시를 구한 일이 다. 그 때 그는 한 떼의 쥐를 모아 침략자들의 화살통과 활 줄과 방패의 가죽 등을 갉게 하여 그들로 항금 물러가지 않 을 수 없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 멤피스의 신전에서 프타는 아네 세크메트 및 그들의 자식들과 더불어 숭배받고 있었다. 그런데 ? 프타는 일찍부터 숭배되어 왔으면서도 대지의 신 테넨과 동일시되어, 또한 소카리스와 더불어 종종 프타 테넨, 프타 소카리스, 혹은 프타 소카아르 오시리스의 이름으로도 경배 받았다. 이상이에요. 灌?어린애처럼 땋 은 머리를 제외하고는 머리털을 박박 깎은 모습에 주먹을 허리에 얹은 안짱 다리의 볼썽사나운 사나이로 표현되었다. 흙반죽 프타라든지, 좀 더 나은 표 현을 빌어 난쟁이 프타라고도 불렸지만, 그는 그 모습으로 모든 해로운 동물 과 사악에 대한 방어자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프타는 일찍부터 숭배되어 왔으면서도 대지의 신 테넨과 동일시되어, 또한 소카리스와 더불어 종종 프타 테넨, 프타 소카리스, 혹은 프타 소카아르 오 시리스의 이름으로도 경배 받았다. 『신화를 찾아서-메소포타미아/이집트 신화 (go MYTH)』 210번 제 목:[이집트/신] No. 19 세크메트(Sekhmet) 올린이:exter (김유철 ) 98/07/09 18:35 읽음:280 E[7m관련자료 있음(TL)E[0m ----------------------------------------------------------------------------- 세크메트 그리스어로 사크미스라고 불리는 세크메트(Sekhmet)는 전쟁과 투쟁의 처참 한 여신으로, 보통 암사자 혹은 암사자의 머리를 한 여자로 표현되고 있다. '강한 여자'를 뜻하는 그녀의 이름은 본래는 하토르의 형용어에 불과하다. 하늘의 여신 하토르가 사자가 되어 태양신 라를 배반한 인간들에게 덤벼들어 너무나 사납게 날뛰는 것을 보고 인류의 절멸을 두려워한 태양신이, 그러한 살육 행동을 중지하라고 하면서 그녀에게 내린 것이 그 이름인 것이다. 그 때 하토르는 태양신 라에게, "인간들을 죽이면, 당신의 생명이 나의 심장에 환희를 넘치게 합니다"라고 대답하면서 인간들을 용서하기를 거부했다. 그것 이 나중에 세크메트라는 명칭을 낳게 하고, 그녀를 사나운 암사자의 모습으 로 나타내는 원인이 되었다. 인간들을 구하기 위해서는 속임수를 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태양신은, 술과 석류의 과즙을 섞은 마법의 음료를 살육의 땅 에 7천 병이나 뿌렸다. 피에 굶주린 세크메트는 그 붉은 음료를 인간의 피로 알고 정신없이 마셨다. 그 결과 몹시 취한 세크메트는 인간들을 마구 죽이는 짓을 계속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해서 라는 인간들을 구원할 수는 있었지만 세크메트의 마음을 완전히 가라앉히기 위해 인간들에게 "매년 1월 1일에, 태 양의 여사제들이 갖고 있는 모든 병에 미약(媚藥)을 빚어 넣어야 한다"고 명 령했다. 그래서 그 여신의 제사에는 반드시 그것이 행해졌다. 인간들에 대한 대살육이 행해진 것은 겨울이 시작되는 첫 달 12일이었다. 그래서 길흉을 정 하는 달력은 "증오, 증오, 증오야말로 티비 12일 그날은 미소를 짓지 말라. 그날이야말로 라가 세크메트에게 명령하신 날이기에"라고 기록되어 있다. 세크메트는 '프타의 위대한 배우자'라 일컬어진다. 본래 레토폴리스의 신이 었던 세크메트는 나중에 멤피스의 3인조인 프타의 아내로서 아들인 네페르툼 을 낳았기 때문이다. 그녀에 대한 제사는 특히 접골 의사들과 관련이 있었는데, 그것은 그 여신 의 힘을 빌어 뼈가 부러진 사람들을 고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신화를 찾아서-메소포타미아/이집트 신화 (go MYTH)』 211번 제 목:[이집트/신] No. 20 네페르툼(Nefertoum) 올린이:exter (김유철 ) 98/07/09 18:36 읽음:213 E[7m관련자료 있음(TL)E[0m ----------------------------------------------------------------------------- 네페르툼 그리스어로는 아프티미스인 네페르툼(Nefertoum)은 멤피스의 3인조인 프타 의 아들이며, 그리스인들에 의해 프로메테우스와 동일시되고 있다. 그것은 이집트의 헤파이스토스인 아버지 프타가 불의 발견자라는 이유에서일 것이 다. 흔히 그는 '코펫시'라는 굽은 칼을 가진 사나이로 표현되고 있다. 머리 위 에는 하얀 연꽃을 얹고 그 위에는 뿌리 모양의 줄기가 두 개 뻗어 있고, 때 로는 웅크리고 있는 사자 위에 서 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또한 고양이와 동물의 머리를 한 경우도 있는데, 그것은 어머니인 사자의 여신 세크메트에 서 유래한 것임에 틀림없다. '청년 아툼'을 뜻하는 그의 이름은 그가 헬리오폴리스의 신 아툼의 화신이 었음을 명백하게 입증해주는 것이다. 밤이 되면 태양이 몸을 감춘다는 연꽃 에서 새벽녘에 태어나는, 다시 말해서 새롭게 태어나는 아툼인 것이다. 원래 네페르툼은 하이집트의 기원(起源)의 신이었으며, 어머니인 세크메트가 프타 의 아내가 됨으로서 프타의 자식으로서의 자격으로 이무테스가 그의 자리를 대신하게 될 때까지, 멤피스 최고의 3인조 가운데 제 3위를 차지하고 있다. 『신화를 찾아서-메소포타미아/이집트 신화 (go MYTH)』 212번 제 목:[이집트/신] No. 21 이무테스(Imouthes) 올린이:exter (김유철 ) 98/07/09 18:37 읽음:206 E[7m관련자료 있음(TL)E[0m ----------------------------------------------------------------------------- 이무테스 이무테스(Imouthes)는 임호테스가 그리스어화한 것으로서 '평안 속에 오는 것'을 뜻한다. 이무테스는 신격화된 인간으로 살았을 때부터 그 시대의 사람 들로부터 존경을 받았고, 죽은 다음에는 신들의 서열에 끼는 영광을 차지하 게 된 고대의 현인들 중에서도 특별히 뛰어난 현인이다. 그는 제3왕조의 왕 조제르의 궁정에서 벼슬을 했으며 가장 오래된 피라미드 의 건설자로 전해지고 있는데, 최근에 발굴된 유적지를 통해 볼 때, 조제르 의 통치기에 비로소 돌기둥이 건축에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왕국 시대에 이미 유명해진 이무테스는 <신전 창건의 서(書)>의 기초자로 인정되어 사이스의 왕들의 통치 아래 멤피스에서 점점 더 숭앙을 받게 되었 다. 그로부터 얼마 후 페르시아 점령 시대가 되면, 그는 이미 인간의 자식이 아니고 신 프타의 자식으로 모셔져 네페르툼 대신 그 3인조에 '프타의 아들' 이라는 칭호를 갖고 그 대열에 끼게 되었다. 이무테스는 사제처럼 머리를 깎고 그러면서도 위엄 있게 보이는 수염과 왕 관이나 왕의 지팡이도 없이 보통 사람의 옷을 입은 인물로 표현되어, 대체로 앉아 있거나 무릎을 땅에 댄 체로 무릎 위로 펼친, 파피루스로 만든 책을 열 심히 읽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그는 서기의 보호자, 또는 자기 자신처럼 신비스런 여러 기예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의 수호자이다. 게다가 의사의 수호자가 되고 이어서 그 기적적 인 치료를 좋아하는 자들에게는 신 자체, 즉 의술의 반신(半身)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래서 그리스인들은 그를 아스클레피오스와 동일시한다. 이교(異 敎)의 종말기에 이르면 그는 아버지 프타까지도 물리치고 멤피스에서 가장 존경받는 신이 된다. 『신화를 찾아서-메소포타미아/이집트 신화 (go MYTH)』 213번 제 목:[이집트/신] No. 22 소카리스(Sokaris) 올린이:exter (김유철 ) 98/07/09 18:38 읽음:219 E[7m관련자료 있음(TL)E[0m ----------------------------------------------------------------------------- 소카리스 세케르가 그리스어화한 소카리스(Sokaris)의 기원은 말할 나위 없이 식물의 신이나, 나중에는 멤피스의 지하 묘지에 있는 죽은 자들의 신이 되었다. 멤 피스에서 그는 매의 머리를 지닌 녹색 미라의 모습으로 '로 스티우', 즉 복 도의 문이라 불리는 성소에서 숭배 받았다. 그 문은 지하 세계로 직접 연결 된 것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예로부터 소카리스는 오시리스와 동일시되어 왔으므로, 소카리스의 숭배자 들은 오시리스의 신자가 되었다. 멤피스에서 가장 숭배 받은 것은 소카아르 오시리스라 불리는, 죽은 자들의 주신이었다. 결국 그 장송의 주신성(主神 性)은 프타 소카아르 오시리스로 불리게 되었다. 『신화를 찾아서-메소포타미아/이집트 신화 (go MYTH)』 217번 제 목:[이집트/신] No. 23 오누리스(Onouris) 올린이:exter (김유철 ) 98/07/17 23:25 읽음:258 E[7m관련자료 있음(TL)E[0m ----------------------------------------------------------------------------- 오누리스 오누리스(Onouris)는 '멀어져 가는 것을 이끄는 것'을 뜻하는 이집트어인 인헤르트(Inhert)를 그리스어로 고쳐놓은 말이다. 또한 오누리스는 '하늘을 갖는 자'라고도 풀이할 수 있다. 그래서 이집트인들은, 오누리스가 티스 및 세베뉴토스의 신으로서 태양의 천지창조의 힘을 상징한다고 믿었다. 오누리스는 일찍이 슈와 동일시되어 오누리스 슈라는 이름으로 받들어졌으 나, 그것은 태양신 라의 전투력의 구현(具現)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그리스 인들은 오누리스를 그들의 군신(軍神) 아레스로 동화시켰다. 오누리스는 길고 곧은 네 개의 깃이 달린 관을 쓴 군인의 옷차림을 하고 있 다. 수를 놓은 긴 옷으로 몸을 감고, 때로는 창을 휘두르고, 때로는 태양을 이끌기 위한 밧줄을 들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태양신 라의 한쪽 눈이 일찍 이 이집트 국외로 멀리 떠났을 때, 오누리스가 누비아로부터 데리고 왔다고 한다. 또 태양신의 눈이 자기자신으로 변해 있는 것을 보고 얼마나 미쳐 날 뛰었는가하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그때 태양신은 그 눈을 이마에 얹었으며, 그 후로는 우라에우스가 되어 신의 적을 막았던 것이다. 오누리스는 신왕국 시대에 널리 신앙의 대상이 되어 구제자, 훌륭한 병사로 숭배 받았다. 특히 적이나 해로운 동물에 대항하기 위해 열광적인 기원(祈 願)을 받기도 했다. 그는 전차(戰車)를 몰고 쉴새없이 그것들을 추적한다. 이러한 민중성은 상당히 오래 지속된 것으로 전해진다. 왜냐하면 헤로도토스 가 파프레미스에서 실제로 본, 오누리스 신의 대대적인 축제에 관해서 기록 을 남겼기 때문이다. 헤로도토스는 사제나 신자들이 그때 오누리스 신에게 축하의 뜻을 표명하기 위해서 열광적으로 교환하고 있던 수많은 곤봉에 관한 기록을 남겨놓았다. 오누리스의 아내는 메히트(Mehit)였다. 그러나 메히트는 슈의 아내이며 누 이동생인 테프네트의 분신에 지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녀는 티스로 숭배 받 았고, 사자의 머리를 가진 여신으로 표현되고 있다. 『신화를 찾아서-메소포타미아/이집트 신화 (go MYTH)』 218번 제 목:[이집트/신] No. 24 네이트(Neit) 올린이:exter (김유철 ) 98/07/17 23:25 읽음:231 E[7m관련자료 있음(TL)E[0m ----------------------------------------------------------------------------- 네이트 그리스인들이 여신 아테네와 동일시한 네이트(Neit)는 사이스의 보호신이었 다. 그러나 기원전 7세기 중엽에 프사메티크 1세가 제 26왕조의 창설자로서 왕위에 올랐을 때, 사이스가 수도가 되면서 그 지방 여신의 영광과 부를 확 보하기에 이르렀다. 사실 네이트는 아주 오랜 기원을 갖고 있는 신 가운데 하나였다. 그것은 여 신의 성스러운 물건인, 동물의 껍질 위에 화살 두 개를 엇갈리게 한 것이 선 사시대의 어떤 부족의 깃발 꼭대기에 그려져 있거나, 그녀의 이름이 제1왕조 의 두 여왕의 이름과 함께 쓰여 있는 것을 보아도 짐작할 수 있다. 그녀의 또 다른 명칭인 테헤누트(Tehenout), 즉 '리비아의 여인'이라는 이 름이 입증해주듯이 아마도 그 기원은 서방일 것이다. 그녀는 아주 오랜 옛날 에 하이집트의 국가신으로 여겨지다가 그 후로는 계속 사이스에서 숭배를 받 았다. 하이집트의 여신으로서 붉은 관, 즉 그녀의 이름과 소리가 같은 '네트 '가 일반적으로 쓰이고 있다. 방패를 뚫고 나간 두 개의 엇갈린 화살이나 동물의 얼룩진 껍질 따위가 성 스러운 물건으로서 숭배되고 있었는데, 나중에는 북방의 관을 쓰고 손에 활 과 화살을 든 여인의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좀더 세월이 흐르면, 그녀에게 베틀의 북이 주어져 그것이 그녀의 표의문자가 되었다. 또 머리 위에 그것을 놓아 결정적인 상징으로 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사실 네이트는 두 개의 상이한 성격을 갖고 있다. 전쟁의 여신으로서의 성 격과, 가정적인 그리고 여자들이 지닌 재주의 우두머리로서의 성격을 보여주 는 것이다. 아테네와 마찬가지로 서로 반대되는 성격을 갖고 있어서 그녀와 동일시되었던 것이다. 사이스 왕조기가 시작되면서 열렬히 숭배 받게된 그녀는 수많은 천지창조 신화와 관련되는 여신이다. 그녀는 누트나 하토르와 마찬가지로 하늘의 여신 이 되었으며, "아직 출산이라는 것이 아무 데도 없었을 때, 그녀는 태양신 라를 낳았다"고 선언되기도 했다. 그녀는 인간 세계의 부녀자들이 옷감을 짜듯이, 그녀의 베틀로 세계를 짠 위대한 직녀(織女)였다. 또한 메 우르트의 이름 아래, 이 지상에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았을 때 무한히 열린 하늘을 낳은 암소로 되어있다. 네이트는 오시리스 신앙과 관련되었을 때에는 이시스와 혼동되어, 죽은 자 들을 보호하는 여신으로서 빵과 물을 손에 들고 저승세계로 오는 죽은 자들 을 기다리는 모습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조형적 표현에 있어서나 기록을 통해 이시스와 네프티스가 결합된 경우가 있듯이, 네이트는 셀키스(Selkis)와 더불어 미이라나 죽은 자의 내장을 보호 하는 여신으로서의, 또는 부부들의 보호신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사이스에 있었던 그녀의 신전은 오늘날 남아있지 않지만, 플루타르코스가 전하는 바에 의하면 그녀의 신전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었다고 한다. "나는 과거의 모든 것임과 동시에 미래의 모든 것. 그 누구도 나를 덮고 있 는 베일을 벗길 수는 없다." 그 성소에는 의술의 학교, 즉 생명의 집이 나란히 세워져 있었으며 그것은 사제들에 의해 감독 받고 있었다. 페르시아의 통치시대, 캄뷔세스 및 다레이 오스 왕을 모시던 이집트인 의사가 이 학교를 자랑스럽게 여겼고, 왕의 지시 아래 재건되었다. 『신화를 찾아서-메소포타미아/이집트 신화 (go MYTH)』 219번 제 목:[이집트/신] No. 25 하토르(Hathor) 올린이:exter (김유철 ) 98/07/17 23:26 읽음:242 E[7m관련자료 있음(TL)E[0m ----------------------------------------------------------------------------- 하토르 사랑, 기쁨, 아름다움의 여신인 하토르(Hathor)는 그리스인들에 의해 아프 로디테와 동일시되었다. 그녀는 하늘의 여신으로서, 일반적으로 태양신 라의 딸이요 호루스의 아내 로 되어 있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그녀의 이름을 '호루스의 집'이라 풀 이하여 호루스의 어머니로서 매일 저녁 태양신이 그녀의 가슴속에 파묻혔다 가 아침에 다시 태어난다는 이야기 남아있다. 여러 기록을 통해 볼 때, 이 세상과 태양을 비롯하여 그 속에 포함되는 모든 것을 창조한 하늘의 소야말 로 하토르라는 것이다. 또한 그녀는 그 성스러운 동물, 즉 암소의 모습이나 소의 머리를 한 여신의 모습으로 표현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보다 일반적으로는 인간의 머리가 주어져 있으며, 쇠뿔이나 쇠귀를 달고 무겁게 땋은 머리를 늘어뜨리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다. 하토르는 자주 악기의 방울로 변신하여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그것은 사악 한 정령들을 멀리하는 물건이었다. 텐데라의 건축가가 하토르의 신전을 건축 할 때 기둥을 방울형으로 하려 한 것도 그녀에 대한 신앙심과 관련이 있다. 여인들의 수호신으로서 특히 화장술과 관련이 있는 하토르는 기쁨과 사랑의 신으로 널리 숭앙되었다. 그녀는 기쁨의 여왕, 축제의 여왕, 음악의 여왕, 노래의 여왕, 희망의 여왕, 꽃수를 놓은 여왕으로 모셔져 그녀의 신전은 '도 취의 집으로서 즐거운 생명의 장소'로 여겨졌다.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친절한 하토르는 죽은 자들에게도 호의적이었다. '서 방의 여왕'이라 불리는 그녀는 사실 테베에 있는 지하 묘지의 수호 여신이 며, <사자의 서>에는 살아 있는 사람들의 주거지인 리비아의 산에서 그 몸을 반정도 나타낸 소가 그려져 있다. 그 소는 죽은 자들이 저승세계에 도착하는 것을 기다렸다가 기도하는 자들을 모두 그 등에 태워 모든 위험에서 구해주 는 것이다. 또 하토르는 '단풍의 마님'이라고도 불리는데, 그것은 그녀가 종 종 사막 끝 큰 나뭇잎 그늘에 숨어 있다가 죽은 자를 맞아 빵과 물을 주기 위해 그 잎 그늘에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또한 죽은 자들 가운데 죄 없는 자가 하늘로 올라가는 데 필요한 긴 사닥다 리를 갖고 있는 것도 바로 하토르라고 한다. 이렇게 죽은 자가 하늘로 오를 수 있도록 하토르에게 주어진 일은 점점 전문화되어, 말기에 이르면 죽은 사 람 가운데 여자는 오시리스의 집안이 아니고 '하토르의 집안'에 속하는 누구 라고 불리게 되었다. 하토르의 주요한 성소는 덴데라에 있으며 거기에서 그녀의 남편, 즉 에드푸 의 호루스와 두 자식 이히(Ihi, 방울을 울리는 자)와 더불어 숭배 받았다. 이히는 어머니 하토르 곁에서 악기를 울리는 아기의 모습으로 표현된다. 신 전에서는 대규모의 축제가 몇 차례 열리는데, 그 중에서도 중요한 것은 새로 운 해를 맞아 행해지는 그녀의 탄생일을 축하하는 제전이었다. 먼동이 트기 전, 여사제들은 하토르의 조각상을 평상 위에 올려놓고 떠오르는 태양의 빛 을 쪼이게 했다. 그 제전은 웃음과 노래, 그리고 흥겨움 속에 하루종일 계속 되었다. 하토르는 에드푸에서도 신전의 주인 호루스와 그들의 두 자식 하르솜투스와 함께 숭배 받았다. 또한 하토르는 이집트 밖에서도 숭배를 받았다. 소마리스 의 연안 지방에서는 '푼트의 여주인'이라는 칭호를 받았는데, 아마도 그녀는 아주 오래 전에 그 지방으로부터 이집트로 온 것으로 추정된다. 또 시나이 반도에서는 '마프카트의 귀부인', 페니키아에서는 '뷔블로스의 귀부인'이라 불리는데, 그 곳은 일찍이 오시리스 전설과 관련이 있었던 지방이다. 『신화를 찾아서-메소포타미아/이집트 신화 (go MYTH)』 220번 제 목:[이집트/신] No. 26 케페라(Khepera) 올린이:exter (김유철 ) 98/07/17 23:27 읽음:226 E[7m관련자료 있음(TL)E[0m ----------------------------------------------------------------------------- 케페라 '생성하는 것'과 '쇠똥구리'라는 의미를 지닌 케페라(Khepera)는 헬리오폴 리스 사람들에게 솟아오르는 태양을 상징한다. 쇠똥구리처럼 자기 자신의 실 체에서 태어나 재생하는 것이었다. 케페라는 부활을 나타내는 변화의 신으로 얼굴 대신에 쇠똥구리의 모습을 한 사나이, 또는 머리 위에 풍뎅이를 얹은 사나이의 모습으로 묘사된다. 때로는 한 마리의 쇠똥구리로 표현되는 경우도 있다. 『신화를 찾아서-메소포타미아/이집트 신화 (go MYTH)』 221번 제 목:[이집트/신] No. 27 아몬(Amon) 올린이:exter (김유철 ) 98/07/17 23:28 읽음:267 E[7m관련자료 있음(TL)E[0m ----------------------------------------------------------------------------- 아몬 아몬(Amon)은 이집트의 주신(主神) 가운데 하나로 흔히 '신들의 왕'이라 불 리기도 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인들은 그를 제우스와 동일시했다. 아몬의 이름은 고왕국 시대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다.. 왜냐하면 '숨는 다'는 말을 뜻하는 어원에서 유래한 그의 이름은 피라미드에 남아 있는 헬리 오폴리스 계통의 여러 문서 중에서는 겨우 네 번밖에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아몬은 토트가 말하는 여덟 신 가운데 하나, 다시 말해서 헤르모폴리스의 천 지창조 신화에 속해 있었다. 훗날 그를 위해 거대한 신전을 잇달아 건립한 테베는 그 당시 상이집트의 소도시에 불과했다. 그 지방의 수도는 헤르몬티 스에 있었고, 멘투가 그 지방의 우두머리로서 군림하고 있었다. 테베와 아몬의 비중이 점차 커지기 시작한 것은 제 12왕조의 맨 처음 왕 때 로서, 그 왕의 이름 아멘엠헤트는 '아몬은 나간다'라는 뜻이다. 그리고 제18 왕조의 위대한 정복자들과 토트메스(아시아에 원정하여, 고대 이집트 사상 최대의 영토를 영유한 왕. 제18왕조의 6대 왕)를 자칭하는 여러 왕과 아멘호 텝('아몬은 만족한다'를 뜻하는 말)을 자칭하는 여러 왕 때에 이르면 테베와 아몬의 중요성은 상당히 커진다. 그 왕들은 모두 자랑스럽게 '아몬의 자식' 이라고 자칭했던 것이다. 그 시기에는 아몬이 멘투를 그 영토에서 쫓아내어 모든 지방의 주신이 되어 있었고, '아몬의 거리(누트 아몬)'라든지 단순히 '거리'라고만 불린 테베는 상이집트의 수도가 되어있었다. 아몬은 보통 얼굴 색이 짙고 머리 위에 일종의 재판관 모자를 쓰고, 모자 위에 긴 깃털 두 개를 꽂은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다. 그는 위엄을 갖추고 왕 좌에 앉아 있거나 우뚝 서서 손에 든 회초리를 머리 위로 휘두르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때로는 구부러진 뿔이 달린 황소의 머리를 가진 모습으로 표현 되기도 하는데, 그 동물은 카르나크에서 신의 변신으로서 경건하게 사육되었 었다. 아몬의 성스러운 동물인 거위도 마찬가지이다. 아몬은 종종 '그 어미의 남편'이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항상 창조적인 생활 을 이끈다고 생각되었다. 그는 또 풍요의 신이기도 하며, 그의 앞에서 왕이 곡식을 뿌리고 최초의 열매를 수확하기도 했다. 국왕들의 가장 강력한 수호자이며 그들의 참된 아버지로 여겨지고, 또 그들 에게 모든 적의 정복을 허용해준다고 생각되었던 테베의 신은 마땅히 지상의 국가신이 되기에 이르렀다. 신자들은 그에게 아몬 라의 이름을 부여하여 그 를 '신들의 왕'이라고 선언했다. 신학자들이 옛 태양신 라와 그를 동화시켜, 드디어 아몬은 라를 대신하여 우주 조화의 신이 되기에 이르렀다. 왕가의 무 덤에는 아몬 라가 태양의 배에 올라탄 모습으로 밤의 열 두 시간을 저승 세 계를 비추는 그림이 남아 있다. 그러나 라는 결코 예로부터 지녀온 왕권을 버린 것은 아니다. 아몬 라와 더 불어 분명히 별개의 신앙을 라 하라크티의 이름으로 받고 있었다. 그리고 아 멘호텝 3세 말기에 라 하라크티를 숭배하는 뜻밖의 일이 생겨났다. 예로부터 낮은 아톤, 다시 말해서 '낮의 빛을 생기게 하는 태양'이라는 이름 아래 숭 앙 받고 있었던 라 하라크티는 드디어 새로운 힘을 얻어 그 적수인 아몬에게 도전했던 것이다. 일시적이기는 했지만 그는 아몬의 권위를 떨어뜨렸다. 아 멘호텝 3세의 아들이며 후계자인 아멘호텝 4세는 대대적인 종교 개혁을 단행 하여 오직 아톤 신앙만을 공식적으로 인정한다고 선언했다. 새로운 신에 대한 열렬한 신앙심에 넘치는 개혁자들은 우선 스스로 아멘호 텝(아몬은 만족한다)의 이름을 버리고 이크나톤(아톤의 영광)이라고 자칭했 다. 그리고 테베를 버리고 중부 이집트의 이크후타톤, 즉 '아톤의 지평선'이 라는 현재의 아마르나를 수도로 정했다. 아톤을 조각한 형상은 오늘날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아톤은 부조나 그림을 통해 항상 붉고 거대한 태양만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 태양에서는 햇살이 부 채꼴로 퍼져 그 끝이 손이 되어 제물을 받거나, 왕이나 여왕이나 소녀들에게 생명과 힘의 신성 문자를 지시하고 있다. 아톤의 제사는 오직 왕만을 그 사 제로 하고 있으며, 그 신전은 헬리오폴리스에 있는 라의 유명한 성소와 마찬 가지로 헤트 벤벤, 즉 '오벨리스크의 집'이라는 아주 넓은 안마당 끝에 태양 의 오벨리스크가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과일이나 과자와 같은 제물과 왕 자 신이 신에게 바치는 매우 장엄한 찬미가의 봉창으로 제사를 지냈다. 그 찬가 에서 태양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인류의 창조자, 이 세상에 은혜를 베푼 영광 된 존재로 그려졌다. 그러나 라를 찬양하는 노래 속에 넘쳤던 신화적 전설에 대해서는 명확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그러므로 그 찬미가는 나일강 유역 의 백성뿐만 아니라 다른 지방의 주민들도 불렀다. 왕이 살아 있는 동안 이집트에는 아톤 이외의 어떤 신도 존재할 수 없었다. 다른 신들은 모두 추방되었는데, 특히 아몬과 그 3인조에 대해서는 무자비한 학대가 가해져 아몬 신전의 모든 재산은 태양의 신전으로 옮겨졌다. 또 그들 의 조각상도 깨뜨리고 그들을 나타내고 있는 부조도 파손시키는 등 아몬의 흔적을 모두 없애버렸다. 그러나 그 새로운 종교는 잠시 동안 성했을 뿐이다. 개혁자인 왕이 죽자 곧 왕의 아들 자신이 아몬 신앙을 숭배하게 되었다. 오늘날 남아있는 아몬의 여러 신전을 건립한 호렘헤브나 그 밖의 제19왕조 의 왕들에 의해 그 권위를 완전히 되찾은 아몬은 그 후 라와 일체화하여 마 침내 이집트 모든 신들의 4분의 3에 해당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라메스 3세 때 작성된 그의 재산 목록에 의하면, 그는 8만 3천 332명의 노예와 42만 1천 362마리의 가축을 비롯해 많은 재산을 갖고 있었다. 아몬의 대사제들, 즉 최상위에 속하는 예언자들은 권세가 가장 강한 귀족들 중에서 뽑혔는데, 그들은 즉시 세습제를 확립하고 제 20왕조의 약한 왕들 아래에서 궁정의 지 배자로 행세하고 마침내는 왕관까지 빼앗기에 이르렀다. 최후의 라메스 왕의 뒤를 이은 헤리 호르(Heri Hor)가 그 예이다. 그 당시 발생한 여러 가지 일 때문에 테베는 이미 왕실의 소재지, 즉 이집 트의 정치적 수도가 아니라 아몬의 소유지가 되어 일종의 신정(神政) 국가를 형성했다. 그리고 신은 직접 그 신탁에 의해서 또는 중개를 거쳐서 그 권력 을 행사했다. 그 중개자도 그전처럼 최상위의 예언자뿐만 아니라 '신의 숭배 자' 또는 '신의 아내'였다. 흔히 그 신의 아내는 왕의 딸이 되고, 최고의 영 예를 받아 테베를 지배하고 남편의 드넓고 신성한 영토를 다스렸다. 그리스인들이 '디오폴리스 마그나'라고 부른 테베의 지배자 아몬은 그 권력 을 에티오피아까지 확대했다. 거기에서 아몬은 나파타 및 메로에의 신탁에 의해 직접 왕을 택하고 폐위시키고 죽이는 등 전제적 정치를 행했다. 그 통 치는 기원적 3세기 말, 엘가메노스가 사제들의 속박에서 벗어나 그들을 죽일 때까지 계속되었던 것이다. 아몬의 권력은 리비아 사막의 여러 부족들 사이에서도 역시 절대적이었다. 많은 순례자들이 아몬의 샘의 신전 혹은 유피테르 암몽의 신전에 모여들었 다. 그 신전의 신탁은 기원전 332년 알렉산더 대왕을 '신의 아들'이라 명령 하여 대왕에게 경의를 표한 바 있다. 그러나 아몬의 가장 장대한 영소(靈所) 는 나일강 동안의 테베, 룩소르, 카르나크에 있었다. 그 신전에서 아몬은 아 내인 무트, 아들인 콘수와 더불어 숭배되었다. 신전의 벽면이나 기둥에는 왕 좌에 앉아 있는 아몬이 국왕의 예배를 받고 종종 왕을 포옹하거나 마술의 물 을 부어주고 있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신화를 찾아서-메소포타미아/이집트 신화 (go MYTH)』 222번 제 목:[이집트/신] No. 28 무트(Mout) 올린이:exter (김유철 ) 98/07/18 15:18 읽음:226 E[7m관련자료 있음(TL)E[0m ----------------------------------------------------------------------------- 무트 무트(Mout)는 아몬 라의 아내로서 그리스인들에 의해 헤라와 동일시되고 있 지만, 명확한 한정이 없는 막연한 여신이다. 그녀의 이름은 '밭'을 뜻하며, 매의 모양을 한 모자를 머리에 쓴 여자, 혹은 쌍관을 얹은 무거운 가발을 쓴 여자의 모습으로 표현된다. 그 쌍관은 지상신의 아내라는 권리를 나타내고 있다. 그녀에 대한 신앙은 남편에 대한 신앙과 더불어 날로 높아져 남편이 아몬 라의 이름으로 하늘의 주신이 되자, 그녀도 태양의 여신이 되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바스테트와 세크메트와 혼동되어, 바스테트의 사자의 머리와 세크메 트의 고양이의 모습이 무트에게도 주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어떤 문서에 의하며 하늘의 여신인 무트는 아몬이 물위에 떠올라서 헤르모 폴리스의 알에서 태어났을 때, 소의 모습으로 그를 등에 업었다고 한다. 무트는 아들 콘수와 함께 테베에서 아몬을 우두머리로 하는 3인조를 구성하 여 오랫동안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신화를 찾아서-메소포타미아/이집트 신화 (go MYTH)』 223번 제 목:[이집트/신] No. 29 콘수(Khonsou) 올린이:exter (김유철 ) 98/07/18 15:25 읽음:219 E[7m관련자료 있음(TL)E[0m ----------------------------------------------------------------------------- 콘수 콘수(Khonsou)는 '항해자' 또는 '배를 타고 하늘을 건너는 자'라는 뜻을 갖 고 있다. 원래 그는 테베 이외의 지역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달의 신이 었다. 그런데 왜 그리스인들이 그를 헤라클레스와 동일시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대체로 콘수는 몸에 모시를 두른 남자의 모습으로 표현되며, 역시 몸에 모 시를 두른 프타 앞에서 왕의 지팡이를 손에 들고 있다. 거북해 보이는 모자 를 쓰고, 초승달과 원반(圓盤)을 얹은머리 부분은 왕가의 아들처럼 무겁게 땋아 늘어뜨린 것을 제외하고는 머리털을 박박 깍은 모습을 하고 있다. 처음 엔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몬과 무트의 양자가 되어 멘투를 대신해서 그 3인조가 된 후로, 콘수는 주신(主神)으로서의 위치에 올랐다. 그러나 마귀를 쫓는 신, 질병치료자로서 널리 숭배받게 된 것은 신왕국 시대에 접어들어서 였다. 그때에 이르러서야 이집트 전역은 물론 다른 나라로부터도 미친 사람 이나 병자들이 그의 손길을 바라게 되었다. 다른 나라에 대해서는 자신의 변 신인 조각상을 대리자로 파견하여 멀리 있는 사람들을 치료하게 했던 것이 다. 테베에서 열렬히 숭배 받은 콘수는 온보스에서도 역시 신앙의 대상이 되었 다. 거기서 그는 콘수 호르라는 이름으로 수크호스의 3인조가 되어 머리에 초승달과 원반을 얹은 매의 머리를 지닌 사나이로 표현되어 있다. 『신화를 찾아서-메소포타미아/이집트 신화 (go MYTH)』 224번 제 목:[이집트/신] No. 30 멘투(Mentou) 올린이:exter (김유철 ) 98/07/18 16:05 읽음:230 E[7m관련자료 있음(TL)E[0m ----------------------------------------------------------------------------- 멘투 테베의 군사의 신이며 태양신으로서의 성격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스인 들에 의해 아폴로와 동일시된 멘투(Mentou)는, 중왕국 시대 초기에 이르러서 야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특히 제 11왕조의 왕들로부터 숭배를 박았으며, 그들 대부분이 멘투호텝(멘투는 만족해 있다)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다. 대체로 그는 매의 머리 위에 태양의 원반과 길고 곧은 깃털을 두 개 단 인 물로 표현되고 있지만, 후기에는 역시 같은 부속품을 단 소의 머리를 한 남 자의 모습으로 표현되기도 했다. 사실 소는 멘투의 신성한 동물이며, 특히 그가 즐겨 변신한 것은 유명한 부키스였다. 그 부키스는 헤르콘티스(남쪽의 이운), 즉 상이집트에 있어서의 태양의 거처에서 경건하게 양육되었지만 태 양신 멘투는 상이집트의 옛 수도인 헤르몬티스에서 수백 년 동안 영주로서 존경받았다. 그러나 옛 신하였던 테베의 아몬이 신들의 왕이 됨에 따라 멘투 의 위치는 떨어지고 말았다. 멘투의 위치를 빼앗은 아몬은 멘투를 양자로 삼고 싶어했다. 그래서 멘투는 아몬의 아들로서 테베의 3인조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지난날 모든 영역의 지배자였던 멘투는 아몬 밑에 있기가 싫어서 멀리 헤르몬티스나 메다무드로 가 살고 싶어했다. 그는 헤르몬테스에서는 절대적 권력을 누렸으며, 메다무 드에서도 아내인 라트 타우이와 함께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본래의 태양신이었던 멘투는 신왕국 시대에 접어들면 전쟁의 신이 되어 구 부러진 칼을 휘두르며 적의 목을 베고 정복한 주민들을 왕 앞으로 끌고 가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그러나 여러 신전에는 역시 남쪽의 태양신으로서 북쪽의 태양신인 아툼과 함께 왕을 성소로 인도하는 그림이 남아있다. 『신화를 찾아서-메소포타미아/이집트 신화 (go MYTH)』 225번 제 목:[이집트/신] No. 31 크눔(Khnoum) 올린이:exter (김유철 ) 98/07/18 16:06 읽음:302 E[7m관련자료 있음(TL)E[0m ----------------------------------------------------------------------------- 크눔 그리스어로 크누피스, 크누비스, 크네프로 쓰이는 크눔(Khnoum)은 폭포 지 대의 신으로서 굽은 뿔이 난 수양의 머리를 한 남성으로 표현되고 있다. 크눔은 다산(多産)과 창조의 신으로서, 그 초기에는 수양 또는 수염소의 모 습을 하고 있었다. 마스페로에 의하면 크눔은 같은 부류의 다른 신들과 마찬 가지로 하늘에서 내려와 땅을 기름지게 하고 지상을 낙원으로 만드는 나일강 을 상징한다고 한다. 그의 주된 성소는 폭포 지대 근처인 '상아의 섬'에 있 었다. 그는 이 토지의 지배자로 여겨져 상아의 위대한 우두머리인 크눔, 즉 그리스인들이 '크누모네비에브'라는 하나의 단어로 만든 '크눔 아아 넬 얍' 이라는 명칭을 갖고 있었다. 그는 신전에서 두 아내 시티스 및 아누키스와 함께 제물을 받았었다. 그리 고 그 신전에서 그는 나일강의 원천을 지키고 있었는데, 사제들이 작성한 거 짓 서류에 의하면 제 3왕조의 왕 조제르가 7년 동안의 가뭄을 겪은 후 풍년 을 맞은 것을 신에게 감사하는 뜻으로 열 두 군데의 토지를 크눔과 그 성소 의 소유로 인정했다는 것이다. 크눔이란 '소상(塑像) 제작자'를 뜻하는데, 그는 이 세상의 원형을 녹로 위 에서 빚어냈다고 한다. 또 그는 피라에에서 '인간을 만든 도공, 신들의 형상 을 만든 자'라 자칭했다. 모든 살을 반죽한자, 신들과 인간을 낳은 자야말로 크눔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그는 그럼 자격으로 어머니의 품에 안겨있는 어린이들의 발육과 관련이 있 는 신으로 숭배 받았다. 그의 신전에는 미래의 국왕을 조각대 위에서 빚고 있는 그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에르멘트 신전에 그 모습이 새겨져 있는 국 왕은 바로 케사르와 클레오파트라의 아들인 소(小)프톨레마이오스 카에자리 온, 즉 여기서는 신의 아들과 일체화된 하르솜투스인 것이다. 예로부터 크눔의 명성은 이집트의 변경을 넘어 누비아에까지 떨쳤었다. 누 비아에는 양의 머리를 한 두둔이라는 신이 있었으므로 크눔과 두둔의 일체화 가 쉽게 이루어졌고, 엘리판티네의 우두머리로서 많은 숭배자를 갖게 되었 다. etext down 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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