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1장 - 토끼굴에 빠지다. 앨리스는 언니와 함께 시냇가 언덕 위에 앉아 있었습니다. 아무 할 일도 없어서 지루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언니가 읽고 있는 책을 한두 번 슬쩍 넘겨다보았지만, 그 책에는 그림도 대화도 없었습니다. '그림도 대화도 없는데, 시시한 책을 언니는 무슨 재미로 읽고 있는지 모르겠어.' 엘리스는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그 날은 몹시 더웠기 때문에 졸려서 머리가 멍했으므로 데이지 꽃으로 화환이라도 만들어 볼까 하고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일부러 꽃을 꺾으러 가는 것도 귀찮아.'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별안간 분홍색 눈빛을 한 한 마리의 흰토끼가 엘리스 바로 옆을 깡충깡충 뛰어 지나갔습니다. 그것 만이었다면 그다지 놀랄 것도 없었습니다. "큰일났다, 큰일났어, 늦었으니." 하고, 토끼가 혼자 중얼대고 있는 것을 들었을 때도 엘리스는 그것을 별달리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토끼가 조끼 호주머니에서 회중시계를 끄집어내어 힐끔 시간을 보고는 또다시 당황하며 뛰어갔을 때는 엘리스도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토기가 조끼를 입는다거나, 호주머니에서 시계를 끄집어내는 따위를 아직 본 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 엘리스는 토끼 뒤를 쫓아갔습니다. 그리하여 들판을 가로질러 울타리 밑에 있는 커다란 토끼 굴로 뛰어들어가는 것을 똑똑히 보았습니다. 엘리스도 그 뒤를 쫓아 굴속으로 뛰어들어갔습니다. 나중에 어떻게 이 굴을 빠져나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은 미처 하지도 않고…… 토끼 굴은 얼마 동안 터널 모양으로 똑바로 뚫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내리막이 되어 미끄러지듯 내려가다가 그만 아래로 뚫린 굴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앗!" 하고, 소리쳤을 때엔 이미 깊은 우물 같은 굴속으로 떨어져 갔습니다. 그러나, 엘리스는 떨어져 내려가면서도 가만히 주위를 살펴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 굴은 굉장히 깊었던 모양이죠.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까?' 하고, 생각할 시간까지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선 밑을 내려다보았습니다. 그러나 깜깜하여 아무것도 뵈지 않았습니다. 굴 주위를 살펴보니 찬장과 책꽂이 등이 눈에 띄었습니다. 지도와 그림 등이 못에 걸려 있는 것도 보였습니다. 엘리스는 떨어져 내려가면서 찬장에서 병 한 개를 집었습니다. <오렌지 마멀레이드>라고 씌어진 상표가 붙어 있었습니다. '이것봐, 빈 병이구나.' 실망한 엘리스는 병을 버리려고 했습니다. 만일 밑에 누군가가 있으면 그야말로 큰일. 그래서 눈앞에 와 닿은 찬장 위에다 살짝 얹어놓았습니다. 그러고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렇지. 내가 한 번 이렇게 떨어져 본 일이 있다면 모두들 정말 대담한 아이라고 감탄할거야.' 아래로 아래로 자꾸만 떨어져 내려갔습니다. 언제까지 떨어지면 끝장이 날는지요. "벌써 몇 킬로미터나 떨어져 내려왔을까 몰라? 틀림없이 지구 중심 가까이까지 왔을 거야. 그러니까 가만 있자, 어림잡아 6천 킬로미터는 떨어져 내려온 셈이로군." 왜 엘리스가 이런 말을 했는가 하면, 그러한 것을 여러 가지 배워 왔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옆에 아무도 없으니 아는 체하기엔 적당한 시기라고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셈을 해보고는 것도 좋은 복습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근방의 위도와 경도는 얼마쯤 될까?' 엘리스는 위도나 경도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지만, 그렇게 말을 해보니까 왠지 모르게 훌륭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대로 끝까지 떨어져 내려가면, 지구를 꿰뚫고 말지도 모를 일이야. 머리를 아래로 하고 걷고 있는 사람들 틈에 느닷없이 나가게 된다면 매우 우스울 거야, 틀림없이. 그런 사람들을 일컬어, 대…… 대조인이라 했던가?" 대조인이란 대척자(지구 저쪽에 사는 사람, 모두가 정반대인 사람)의 잘못으로서, 마침 아무도 듣고 있은 사람이 없어 다행이구나, 하고 나중에야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사람들에게 거기가 어느 나라냐고 물어 보지 않으면 안 된다. 저, 아주머니, 여기가 뉴질랜드이어요, 오스트레일리아여요?" 엘리스는 이렇게 지껄이면서 인사를 하려 들었습니다. 자. 한번 생각해 보셔요. 공중에서 떨어져 내려가면서 인사를 하다니, 당신들인들 그런 짓을 할 것 같아요? 아래로 아래로 여전히 떨어져 가고 있었습니다. 아무 할 일도 없고 하여, 또다시 혼잣말을 지껄이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밤에 내가 없기 때문에 다이나가 몹시 쓸쓸해 할거야." 다이나란 고양이를 말하는 것입니다. "짬짬이 누군가가 다이나에게 우유를 주는 것을 안 잊어 줬으면, 다이나, 네가 지금 여기에 있었으면 얼마나 좋겠니. 공중에는 쥐는 없지만 박쥐라면 잡을 수 있어. 박쥐는 쥐와 꼭 닮았지. 그렇지만 고양이가 박쥐를 먹을지 몰라?" 엘리스는 차츰 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꾸벅꾸벅 졸면서 그대로 지껄였습니다. "고양이는 박쥐를 먹을지 몰라…… 고양이는 박쥐를 먹을지 몰라……" 이렇게 말하는가 했더니, "박쥐는 고양이를 먹을지 몰라……" 하기도 하더니, 어느 새 콜콜 코를 골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엘리스는 다이나와 손을 잡고 노는 꿈을 꾸었습니다. "다이나, 너는 박쥐를 먹어 본 적이 있니? 바른 대로 말해 주렴." 하고 말했을 때였습니다. 별안간 푹! 하고 마른 잎더미 위에 떨어졌습니다. 떨어져 내려가는 것은 이제 가까스로 끝난 것입니다. 상처는 한 군데도 나지 않았습니다. 앨리스는 이내 일어섰습니다. 위쪽을 쳐다보니 캄캄했습니다. 앞쪽엔 길게 뻗은 길이 있었습니다. 조금 전의 그 흰토끼가 재빨리 뛰어가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엘리스는 그 뒤를 쫓았습니다. 토끼가 어느 골목 모퉁이를 돌 때, "큰일났어, 정말 너무 늦어버렸어!" 하는 소리를 간신히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모퉁이를 돌 때까지는 바로 뒤를 쫓고 있었는데, 그 모퉁이를 돌아가 보니까 이미 토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천장이 얕은 기다란 넓은 방안이었습니다. 천장에 매달려 있는 한 줄의 램프가 방안을 환히 비춰 주고 있었습니다. 넓은 방 안 벽에는 문이 몇 개나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창문이고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밖으로 나갈 수가 있을까?" 엘리스는 은근히 걱정이 되었습니다. 맥없이 방 한가운데에 와보니 거기엔 세 발 유리 테이블이 놓여 있었습니다. 그 위에 단 한 개의 작은 황금열쇠가 얹혀 있었습니다. '틀림없이 이 열쇠가 어느 자물쇠엔가에 맞을지도 몰라.' 그러나 어쩌랴! 그 황금열쇠는 어느 자물쇠에도 맞질 않았으니까요. 그래도 단념하지 않고 다시 한 번 돌리고 있을 때, 낮은 곳에 커튼이 늘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커튼을 걷자 거기엔 38센티미터쯤 될까말까한 조그마한 문이 있었습니다. 황금열쇠를 그 자물쇠 구멍에 넣어 보니 꼭 맞았습니다. 앨 리스는 그 작은 문을 얼른 열었습니다. 쥐구멍 만한 구멍이 뚫어져 있었습니다. 무릎을 꿇고 들여다보니, 굉장히 아름다운 뜰이 보였습니다. 엘리스는 기어나가, 그 눈부신 화단과 분수가 치솟고 있는 뜰을 얼마나 거닐어 보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구멍은 머리도 들어가지 않을 만큼 좁았습니다. '비록 머리가 들어간다 하더라도 몸이 들어가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지. 아, 내 몸이 망원경 모양으로 줄어들게 할 수는 없을까. 맨 먼저 하는 방법만 알면 반드시 될텐데.' 줄곧 신기한 일만 계속되었기 때문에, 엘리스는 이제 무엇이고 안 될 것이 없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우두커니 서 있어 봤댔자, 아무 소용도 없었습니다. '참, 유리 테이블 위에 또 다른 열쇠나, 사람을 망원경 모양 줄어들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써 둔 책이 있을지도 몰라.' 이런 생각을 하면서 테이블이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그러자 테이블 위에는 조그마한 병 한 개가 있었습니다. '확실히 조금 전엔 없었던 거야.' 병목에 매어 둔 종이 꼬리표에는 <나를 마셔 주셔요.>라는 글귀가 큼직하게 씌어져 있었습니다. 영리한 엘리스는 성급하게 입을 대지는 않았습니다. '혹시 독이 있다면 적혀 있을지도 모르니, 우선 잘 살펴보아야지……" 앨리스는 간단한 교훈들을 명심하지 않아서 매우 혼이 난 어린이들의 이야기를 많이 읽어보았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빨갛게 단 부젓가락을 잡았다가 화상을 입었다던가, 무서운 짐승에 물렸다던가…… 그러나 병에는 그 어디에도 <독>이라고는 씌어져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한 번 혀끝으로 맛을 보았습니다. 앵두를 섞은 파이와 커스터드, 태피와 파인애플과 구운 칠면조와 캐러멜과 구운 버터 토스트 등을 섞어 만든 굉장히 맛이 좋은 것이었습니다. 금새 빈 병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이, 기분이 이상해진다." 맥이 풀린 목소리로 엘리스는 말했습니다. "틀림없이 망원경 모양 줄어드는가 보다." 정말 그대로였습니다. 이내 약 25센티미터 정도의 키로 줄어들고 말았습니다. "야, 신기하다. 이만하면 그 아름다운 뜰에 나가 볼 수 있겠지." 기뻐서 엘리스의 얼굴은 꽃처럼 활짝 피었습니다. 그리고 좀더 줄어드나 안 줄어드나 하고, 2, 3분 동안 가만히 있었습니다. '초와 같이 완전히 녹아 없어질지도 몰라. 그렇게 되면 나는 어쩌지.' 초가 녹아 없어진 다음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한참동안 더 있어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엘리스는 곧 뜰로 나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작은 황금열쇠를 테이블 위에 놓아둔 채 잊어버리고 왔지 뭡니까. 테이블이 있는 곳으로 되돌아와 보니 이것은 또 웬일입니까. 아무리 해도 손이 닿지를 않았습니다. 열쇠는 유리를 통해 아래서 빤히 보였지만, 하는 수 없이 급히 테이블의 다리를 타고 올라갔습니다. 자꾸만 줄줄 미끄러져 올라갈 수가 없었습니다. 몇 번이고 되풀이하고 잇는 동안에 엘리스는 그만 온 몸의 힘이 빠지고 말았습니다. 가엾게도 너무나 지쳐서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울고만 있다고 무슨 수가 날줄 아니!" 엘리스는 언제나 자기 자신을 타이르는 버릇이 있었습니다. "빨리 울음을 그쳐!" 이윽고 눈물이 마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테이블 밑에 조그마한 유리상자가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열어 보니 조그마한 과자가 한 개 들어있었습니다. 그 위엔 건포도로 <나를 먹어라>하는, 예쁜 글이 씌어 있었습니다. "좋아, 먹고말고. 키가 커지면 열쇠를 끄집어 낼 수 있을 것이고, 줄어든대도 뜰에 나갈 수 있을 게 아냐. 이래도 저래도 괜찮지 뭐." 엘리스는 과자를 조금 씹어 보았습니다. 두 손을 머리 위에 얹은 채, "줄어들까? 늘어날까?" 하고, 근심스럽게 혼잣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전혀 아무런 변동도 일어날 것 같지가 않았습니다. 신기한 일만 자꾸 일어나리라고 생각하고 있은 만큼, 아무변화가 없는 것은 따분하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엘리스는 그 과자를 전부 먹고 말았습니다. 2장 - 눈물의 연못 "어머나, 이상하다?" 엘리스는 느닷없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번엔 세계에서 제일 큰 망원경 모양으로 자꾸만 늘어나는군! 나의 발이여, 안녕!" 발을 보니까, 발은 저 아래로 아주 멀어져 가고 있었습니다. "아, 가엾은 나의 발이여. 앞으로는 너에게 누가 신발이랑 양말이랑을 신겨 주겠니? 나로선 이제 하는 수 없어. 너를 돌봐 주고 싶지만,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잖니. 그러니까 이제부턴 네가 모든 일을 스스로 하도록 하지 않으면 안 돼." 엘리스는 잠깐 생각에 잠겼습니다. '하지만, 발에게 친절을 베풀지 않으면 안 돼. 그렇지 않으면 내가 어디 가고 싶어질 때 내 말을 잘 안 듣고, 엉뚱한 곳으로 갈지도 모르잖아. 그렇지, 돌아오는 크리스마스 때엔 예쁜 새 신을 사줘야지. 그 새 신을 어떻게 선사하면 좋을까.' 하고, 엘리스는 생각했습니다. "신발 가게에 부탁해서 가져오게 하면 되겠지. 하지만 자기 발에게 선물을 보내다니 쑥스럽기 짝이 없지 뭐야. 그렇지만 좀 색다르게 앨리스 오른쪽 발 귀하 재받이 앞 깔개 위, -친애하는 앨리스로부터 "아니, 내가 무슨 바보 같은 소릴 지껄이고 있을까?" 하고 말했을 때, 앨리스의 머리는 방 천장에 부딪치고 말았습니다. 엘리스의 키는 자그마치 3미터도 더 되었습니다. 그제야 엘리스는 곧 작은 황금열쇠를 집어들고 뜰로 통하는 작은 문 앞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가엾게도 이번에 옆으로 엎드려 한쪽 눈으로 간신히 뜰을 내다보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그런 작은 문으로 빠져나간다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었습니다. 앨리스는 털썩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습니다. 너무너무 울었기 때문에 자그마치 10센티미터 깊이의 못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방안의 반쯤이 물에 잠기고 말았습니다. 얼마 후에 멀리서 작은 발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무엇일까 하고 엘리스는 얼른 눈물을 닦았습니다. 가만히 보니 좀 전의 그 흰 토끼였습니다. 고운 옷을 입고, 한 쪽 손에 흰 가죽장갑을 들고 있었습니다. 다른 한 손에는 커다란 부채를 들고 이쪽으로 되돌아오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아, 큰일났어. 그 공작 부인을 기다리게 하다니 얼마나 화를 내실까." 하고, 중얼대며 달음박질쳐 왔습니다. 앨리스는 그야말로 곤란한 지경에 빠져 있었으므로, 아무에게라도 도움을 바라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그래서 토끼가 옆에 왔을 때, "저……" 하고, 나직한 소리로 말을 걸었습니다. 깜짝 놀란 것은 토끼였습니다. 장갑이고 부채고 떨어뜨린 채 어둠 속으로 마구잡이로 달아나고 말았습니다. 앨리스는 흰 장갑과 부채를 주워 들었습니다. 방안이 몹시 더웠으므로 그 부채를 부치면서 혼잣말을 계속했습니다. "아이 참, 오늘은 어째서 이렇게 신기한 일만 자꾸 일어날까? 어제는 평소와 조금도 별 다른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어쩌면 내가 밤 새 아주 변해버렸는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의 내가, 내가 아니라면 이 나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앨리스는 자기 또래의 동무들을 모조리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하여 자기가 그 중의 누군가로 변해 있지 않나,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는 레이더 양이 아닌 것만은 틀림없어. 아무튼 그 애의 머리카락은 굉장히 길게 땋아 내려뜨렸지 않았겠니. 그러나 내 머리는 땋아 내려뜨리지 않았단 말이다. 그렇지 참, 알고 있던 것을 기억하고 있는지 한 번 실험해 봐야지. 4·5는 12. 4·6은 13, 4·7은 …… 아니 이상하다. 하지만 구구법 따윈 아무래도 좋아. 지리를 한번 해보자. 런던은 파리의 서울. 파리는 로마의 서울. 로마는? 아, 아냐, 아냐. 모두가 다 틀렸어. 난 메이벌 양이 돼버렸는가 봐, 틀림없어. 그렇지, <작은 악어>라는 말을 할 수 있나 없나, 한 번 외어 보자." 앨리스는 언제나처럼 무릎 위에 손을 포개 얹고 외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목이 쉬어 마치 딴사람 목소리 같았습니다. 귀여운 꼬마 악어가 반짝이는 꼬리를 매만지고 있네, 나일강의 물을 끼얹으며 황금빛 비늘을 씻고 있네! 즐거운 듯 방글방글 웃으며 발톱을 살짝 펴고 있네, 방긋이 벌린 입으로 고기를 슬쩍 잘도 삼키네! "이런 가사가 아니었는데." 앨리스의 두 눈에는 또 눈물이 담뿍 괴었습니다. "나는 역시 메이벌 양으로 변하고 만 거야. 그 작고 더러운 집에 가서 살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장난감 하나 없고, 많이 있다는 것은 공부뿐. 난 싫어! 그렇지, 난 각오했어. 내가 메이벌 양으로 변했다면 차라리 여기에 이대로 있을 테야. 누군가가 위에서 들여다보면서, '자, 올라오렴!' 하고 해도 소용없어. 난 이렇게 말해 줄 테야. '그럼, 나는 누구여요? 그것을 먼저 말해줘요. 만일 그 사람이 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면 올라갈 테다. 싫다면 다른 사람으로 변할 때까지 여기에 있을래. 그렇지만……" 하고는 엘리스는 별안간 울기 시작했습니다. "…… 하지만, 정말 누군가가 들여다봐 주었으면 좋겠어. 이젠 나 혼자 여기에 있는데 지쳐 버렸어." 앨리스는 그렇게 말하면서 문득 자기 손을 보았습니다. 어느 사이에 토끼가 떨어뜨리고 간 장갑을 끼고 있었으므로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 있었을까?' 엘리스는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틀림없이 내가 다시 작아지고 있는가보다.' 엘리스는 키를 재보려고 급히 테이블 옆으로 걸어갔습니다. 역시 그랬습니다. 약 70센티미터 정도로 줄어 있었습니다. 그뿐이 아니라 아직도 자꾸만 줄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원인은 손에 들고 있는 부채에 있었습니다. 그것을 깨닫게 된 엘리스는 얼른 그 부채를 팽개치고 말았습니다. 만일 그것을 깨닫지 못했었다면 아주 없어졌을지도 모릅니다. '큰일날 뻔했다.' 위험을 면하게 되어 앨리스는 매우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그 변화가 너무나 심하여 어이가 없었습니다. "자, 빨리 뜰로 나가 볼까." 엘리스는 작은 문 있는 곳으로 달려갔습니다만, 문은 닫혀져 있고, 황금열쇠는 유리 테이블 위에 얹혀 있었습니다. "이간 처음과 조금도 달라진 게 없잖아." 하고 말했을 때였습니다. 앨리스의 발이 그만 미끄러졌습니다. "풍덩!" 소리를 내며 물 속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몹시 짠물이었습니다. 바다에 빠지지 않았나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물이란 자기의 키가 3미터나 커버려서 마냥 울었을 때 눈물이 괴어 생긴 못이라는 것을 곧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울지 않았던들 괜찮았을걸." 엘리스는 헤엄을 치면서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그렇게 운 벌을 받은 거야. 자기의 눈물에 빠져 죽다니, 정말 우스워. 오늘은 왜 이렇게 이상한 일들만 생길까" 그때, 조금 떨어진 곳에서 풍덩풍덩 헤엄을 치고 있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뭘까?" 엘리스는 조용조용히 그 소리나는 쪽으로 헤엄쳐 갔습니다. 처음에는 물소가 아니면 하마인 줄 알았습니다. '그렇지, 나는 지금 아주 작아져 있는 거야.' 이렇게 고쳐 생각하며 자세히 살펴보니까 그것은 쥐였습니다. 앨리스와 마찬가지로 발이 미끄러져 빠진 모양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쥐에게 말을 건네면 알아들을까?" 엘리스는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여기선 뭐든지 신기한 일만 일어나고 있으니까, 이 쥐 역시 말을 할 줄 알지도 모르지 하여튼 말을 한 번 건네 보자. " 앨리스는 말을 걸었습니다. "이봐 쥐야, 이 못의 출입구가 어딘지 아니? 난 이제 지쳤단 말야." 앨리스는 이러한 말투로 말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쥐는 이상하다는 듯이 엘리스는 가만히 보고 있었습니다. '아마, 영어를 모르는 모양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프랑스 말로 했습니다. "우 에 마 샤트(나의 고양이는 어디에 있지?)." 이것은 엘리스가 배운 프랑스어 책 처리에 있는 글귀였습니다. 그러자 쥐는 물 속에서 갑자기 솟아오르며 후들후들 온 몸을 떨었습니다. "앗! 미안해요. 네가 고양이를 굉장히 싫어한다는 것을 내가 깜빡 잊어버리고 있었지뭐야." "그렇고말고. 바꿔 생각해 보렴. 네가 나라면 고양이를 좋아하겠니?" "물론 그렇고 말고, 그렇지만, 우리 집에 있는 다이나를 보여 주고 싶다. 틀림없이 너도 금새 좋아질 거야. 얌전하고, 매우 귀엽단 말이야." 앨리스는 천천히 헤엄을 치면서 계속 말을 건넸습니다. "난로 옆에 엎드려 아주 멋지게 목을 골골 울리는 거야. 그리고 손을 핥기도 하고, 얼굴을 씻기도 하고, 쓰다듬으면 보드라운 털이 포근해서 기분이 좋지. 그리고 참, 쥐를 잡는 데 있어선 아주 날쌔단 말이다. 앗, 또 미안해요." 쥐가 온 몸의 털을 곤두세우는 것을 보자 엘리스는 얼른 자기 잘못을 깨달았습니다. "우리 집에서는 대대로 고양이를 싫어한단 말이다. 다시는 고양이란 말을 입 밖에 안 내주었으면 좋겠어." "그래, 다시는 그런 말하지 않을게." 엘리스는 부랴부랴 말머리를 돌렸습니다. "저, 저, 그럼 너는 개는 좋아하니?" 쥐는 잠자코 있었습니다. "우리 집 근처에 그야말로 예쁜 개가 있단다. 무언가 던져 주면 어김없이 물고 오는가 하면, 먹이를 달라고 보챌 때는 끙끙 콧소리를 내는 거야. 그 개는 농부가 기르고 있단다. '매우 쓸모 있는 개다. 100파운드의 값어치는 있다.'고 말들을 하고 있었지. 어떤 쥐라도 보기만 하면 닥치는 대로 모조리 잡아 죽인다나 봐. 앗 또 실수를 했네." 엘리스는 민망해서 어쩔 줄을 몰라 했습니다. "내가 또 쥐를 화나게 했구나!" 쥐는 못물을 헤치면서 도망쳐 갔습니다. "쥐야, 쥐야…… 부탁이야, 한번만 더 가까이 와주렴. 앞으로는 절대로 고양이 얘기나 개 얘기는 안 할게." 이 말을 듣자 쥐는 홱 방향을 돌려 되돌아왔습니다. 쥐는 새파랗게 질려 있었습니다. "기…기슭에, 오…올라가서, 나…나에 대한 얘기를 들려주마. 그것을 들으면 내가 왜 고양이나 개를 싫어하는가를 알게 될 테니까 말이다." 라고, 떨리는 소리로 나직이 말했습니다. 못은 어느 사이에 미끄러져 빠진 새와 짐승으로 뒤범벅이 되어 있었습니다. 오리, 앵무새, 밸로새끼, 도우도우 새 그밖에도 진귀한 여러 가지 동물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슬슬 못에서 나오는 것이 좋을 것 같았습니다. 엘리스는 앞장으로 모두가 기슭을 향해 천천히 헤엄쳐나갔습니다. 3장 - 코커스경주와 긴 이야기 못기슭으로 올라와 보니까 모두가 정말 가엾은 꼴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새들은 물을 흠뻑 먹은 날개를 내려뜨리고 있었고, 짐승들의 털도 물에 푹 젖어 몸에 착 달라붙어 몹시 초라한 모습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무엇보다 먼저 문제가 되는 것은, '어떻게 하면 빨리 몸을 말릴 수가 있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2, 3분이 지나자, 엘리스는 마치 동물들과 아주 옛날부터 잘 알고 있던 사이같이 느껴졌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조금도 서먹서먹하지 않게까지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앵무새와는 한동안 이야기를 주고받았지만, 마침내 앵무새를 화를 내게 하고 말았습니다. "나는 너보다도 나이가 위란 말이다. 너보다는 무엇이고 더 많이 알고 있는 것은 당연하잖아." 화가 난 앵무새는 마지막에는 무슨 말을 해도 그저 이 말만으로 버티었습니다. 그때, 그들 중에서는 가장 으스대고 있던 쥐가 소리를 질렀습니다. "모두들 앉아! 내 말을 들으란 말이다. 여러분들의 몸을 내가 곧 말려 주마." 모두가 곧 쥐를 둘러싸고 앉았습니다. 엘리스는 근심스럽게 그것을 조용히 살펴보고 있었습니다. "에헴!" 하고, 쥐는 헛기침을 한번 하더니 조용히 말을 시작하였습니다. "모두들 잘 들어 주기 바란다. 이 얘기는 내가 알고 있는 얘기 중에서 가장 색다른 얘기란 말이다. 자, 조용히. 에에, 정복왕이라 일컬어지고 있는 노르망디 공 윌리엄은 로마법황의 힘을 빌어 단번에 잉글랜드 국민을 굴복시켰다. 그 당시 그들은 지도자가 필요했다. 또한 혁명과 정복이 되풀이되는 경험을 통해 퍽 익숙해져 있었다. 머셔 백작 에드윈과 노오덤브리아 백작 모오카는…" "우, 우, 우, " 앵무새가 부들부들 떨고 있었습니다. "왜 그러니?" 쥐는 이맛살을 찌푸렸지만, 그래도 친절하게 물었습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어요." 앵무새가 대답했습니다. "그럼 얘기를 계속하겠습니다. 노오덤브리아 백작 모오카는 윌리엄 1세를 받들겠다는 취지의 성명을 발표했고, 애국자 캔터베리 대승정 스타이겐드까지도 윌리엄에게 왕관을 바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무슨 생각에서인지 쥐는 여기에서 잠깐 말을 중단하고는, "그런데 아가씨, 좀 어떠셔요?" 하고, 엘리스 쪽을 향해 물었습니다. "아직도 흠뻑 젖은 그대로야. 당신의 얘길 들어도 조금도 마르지 않았어." 엘리스는 맥이 빠진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때, "그렇다면!" 하고, 얼른 일어선 것은 도우도우 새였습니다. "내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들의 몸을 말리려면 코오커스 경주를 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코오커스 경주란 어떻게 하는 거지?" 엘리스가 물었습니다. "그걸 설명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경주를 해보는 거야." 당신네들도 추운 겨울날이면 그 경주를 하고 싶어질지도 모르니까, 도우도우 새가 어떻게 했던가를 얘기하겠습니다. 도우도우 새는 우선 달릴 코스를 동그랗게 줄을 그었습니다. 그으면서, "모양이 약간 이상해도 상관없어요."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고는 전원을 그 코스 안쪽에 여기저기 서 있게 했습니다. 하나, 둘, 셋의 신호도 없이 제각기 생각이 내키는 대로 뛰기 시작합니다. 그리하여 다시 생각나는 대로 멈추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제 경주가 끝났는가를 전혀 알 수 없습니다. 모두가 신이 나서 약 30분 동안 달리다가 몸이 완전히 말랐을 무렵에, "경주 끝!" 하고 도우도우 새가 호령했습니다. 모두가 숨을 몰아쉬면서 도우도우 새를 중심으로 모였습니다. "도대체 누가 이긴 거야?" 도우도우 새도 고개를 갸우뚱하고 한동안 생각했습니다. 이윽고 도우도우 새가 힘차게 말했습니다. "모두가 이긴 거야. 다들 상을 받는 거야!" "누가 상품을 주는 거죠?" "물론, 그건 저 사람이지." 도우도우 새는 엘리스는 가리켰습니다. 일동은 부리나케 엘리스를 둘러쌌습니다. "상품, 상품!" 하고 마구 떠들어댔습니다. 엘리스는 난처해졌습니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호주머니에 손을 넣으니까 엿 상자가 있었습니다. 다행히도 상자 속은 물이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즉시 상품으로서 그것을 나눠주었습니다. 간신히 한 새씩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에게도 상품이 있어야죠?" 하고 쥐가 말했습니다. "물론!" 하고 엄숙한 목소리로 대답한 것은 도우도우 새였습니다. "호주머니에 뭔가 없을까?" 엘리스를 쳐다보며 도우도우 새가 물었습니다. "골무가 하나 있을 뿐이야." "그것을 주십시오." 도우도우 새가 골무를 받아들자, 일동은 엘리스를 둘러쌌습니다. 그러자 도우도우 새는 아주 의젓하게 골무를 꺼내 밀면서, "바라건대, 이 근사한 골무를 받아 주시기를." 하고 말했습니다. 엘리스는 이게 무슨 어리석은 수작이냐는 생각이 들었지만, 모두가 너무나 진지한 태도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웃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무어라고 말해야 좋을지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아 일부러 의젓한 시늉을 하며 골무를 받았습니다. 그러고 난 후에 모두가 엿을 먹었습니다. 맛있는 엿에 모두들 야단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소동도 가까스로 가라앉고 일동은 또다시 옹기종기 둘러앉아 쥐에게 무슨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라댔습니다. "맞았어, 너는 너에 대한 얘기를 해준다고 그랬잖았어." 하고 엘리스가 말했습니다. "그리고, 또 왜 고양이와 개를 싫어하는 가도 얘기해 준다고도 했지." 엘리스는 혹시나 주의 기분을 잡칠까 봐 조심스레 작은 소리로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그럼, 나에 대한 얘기를 하기로 하지. 그것은 그야말로 길고 긴 슬픈 얘기(영어로 테일이라고 발음함)입니다." 쥐는 엘리스를 쳐다보며 긴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정말, 길고 긴 꼬리(영어로 테일이라고 발음함)이군." 엘리스는 쥐의 긴 꼬리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꼬리가 슬프다니, 왜 슬프지?" 쥐가 얘기를 하고 있는 동안 엘리스는 자꾸만 꼬리 생각 만하고 있었습니다. "퓨리가 집에서 만난 쥐에게 말했다. '우리 함께 재판소에 가자. 나는 너를 고소할 꺼야.- 자, 나는 증언할 꺼야. 우리는 재판을 해야 해 : 오늘 아침에 나는 할 일이 없기 때문이지.' 쥐가 개에게 말했다.그런 재판은 우리에게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라고. '내가 판사가 되고, 간수도 될 것 이야. 마음 고약한 늙은 퓨리가 말했다. '나는 재판을 할 것이고 너를 사형으로 언도 내릴 것이다. "너는 듣고 있지 않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쥐는 엘리스를 향해 다그쳐 소리를 질렀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마 틀림없이 다섯 번째 모퉁이까지 왔댔죠?" "틀렸어!" 그 틀렸다는 말의 마지막 말꼬리에 붙은 <나트(not)>를 엘리스는 실마리가 얽히는 <나트(knot)>로 착각하고 만 것이었습니다. "예, 얽혔다고요? 내가 풀어드릴까?" "귀찮아!" 쥐는 부리나케 일어나 저쪽으로 걸어가면서, "너는 일부러 그런 엉뚱한 소리를 하여, 나를 곯려 주려고 하는 거지." 하고 말했습니다. "그런게 아냐. 그런데 당신은 왜 그렇게 화를 잘 내지?" 쥐는 아무 대꾸도 않고, 그저 신음 소리만 내고 있었습니다. "내가 잘못했어. 부탁이야, 돌아와 그 얘길 끝가지 들려주렴!" 엘리스는 뒤에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다른 동물들도 일제히 입을 모아, "그래, 그래, 부탁이야!"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쥐는 머리를 가로 저을 뿐,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그 뒷모습이 안보이게 되자, "가버렸다, 유감스럽게도." 하고 앵무새가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러자 바로 이때라는 듯이 어미 게가, "이봐, 저렇게 잘 토라지면 못쓰는 거야." "듣기 싫어요, 어머니. 그런 소릴 한다면 참을 성 있는 저 굴조개라도 화를 낼 거여요." 하고, 휙 옆으로 고래를 돌리고 말았습니다. 그때, 엘리스가 큰소리로 말했습니다. "아, 이럴 때 우리 다이나가 여기 있었으면 좋으련만. 다이나라면 당장 쥐를 데리고 올 수 있을 텐데." "다이나라니, 누구 말이지?" 앵무새가 물었습니다. 엘리스는 다이나의 이야기가 하고 싶어 좀이 쑤셨기 때문에 이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이나란 우리 집 고양이야. 쥐를 잡는 데 있어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아. 더구나 새를 잡는 그 날쌘 모습은 정말 보여 주고 싶을 정도란 말이다. 새새끼 따윈 금새 잡아 삼키거든." 그 말을 듣자 동물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눈치 빠른 작은 새들은 재빨리 날아가 버렸고, 나이 많은 가치는, "이제 돌아가 봐야지. 밤 공기는 몸에 좋지 않단 말이야." 하면서, 조심조심 갈 준비를 서둘렀습니다. "얘들아…… 자, 그만 가자꾸나. 벌써 잘 시간이다." 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 것은 카나리아였습니다. 모두들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떠나가고 말았습니다. 나중까지 남은 것은 엘리스 혼자뿐입니다. "다이나 얘길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걸." 엘리스는 쓸쓸하게 혼잣말을 지껄였습니다. 엘리스는 갑자기 슬퍼져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조금 있노라니까, 저 멀리서 작은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쥐가 마음을 가라앉히고 조금 전에 하던 이야기를 계속하려고 오는 줄 알고, 엘리스는 가만히 그 걸음 소리가 들리는 곳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4장 - 코끼가 꼬마빌을 보내다. 깡충깡충 뛰어온 것은 흰 토끼였습니다. 무슨 떨어뜨린 것이라도 찾는 것처럼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중얼대고 있었습니다. "큰일났어, 큰일났어! 아, 내 발이여, 수염이여, 털가죽이여, 공작 부인이 틀림없이 나를 사형에 처하겠지. 도대체 어디에다 떨어뜨렸을까?" 엘리스는 곧, 부채와 가죽장갑을 찾고 있다는 것을 당장 알아차렸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데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것뿐이 아니고, 엘리스가 못에 빠져 헤엄을 치고 있는 동안에, 뭐고 다 변하여 그 커다란 방도, 유리 테이블도, 작은 문도, 모두가 사라져 없어지고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윽고 토끼는 엘리스를 보자, "아니, 메어리 앤 아가씨가 아니냐? 이런 곳에서 뭘 우물쭈물하고 있는 거야. 빨리 집에 돌아가서 부채와 장갑을 갖다 줘. 자, 빨리빨리!" 하고, 못마땅하다는 듯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깜짝 놀란 엘리스는 토끼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허둥지둥 달려갔습니다. '나를 자기네 집 심부름꾼으로 잘못 알고 있나 봐.' 뛰어가면서 힐쭉 웃었습니다. "자기가 잘못 안 것을 알면 얼마나 놀랄까. 하지만 부채와 장갑만은 가져다 주는 게 좋겠어. 만일 찾을 수 있다면 말야."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에 어느덧 깨끗하고 조그마한 집 앞에 닿았습니다. 출입구에 걸려 있는 문패에는 <흰토끼>라고 새겨져 있었습니다. 엘리스는 노크도 않고 들어갔습니다. 장갑과 부채를 발견하기도 전에 진짜 메어리 앤이라는 그 심부름꾼과 마주치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급히 2층으로 올라갔습니다. "토끼의 심부름을 하다니, 정말 내가 주책없구나. 이러다간 요다음에는 다이나까지 나를 부려먹으려 들지도 모르지, 틀림없어." 그렇게 되면 꼴이 어떻게 되겠느냐고, 엘리스는 여러 가지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에 어느새 말끔히 정돈이 잘 돼 있는 조그마한 방에 와 있었습니다. 창문 곁에 놓여 있는 테이블 위에, 엘리스가 짐작한 대로 부채와 흰 가죽장갑이 두서너 켤레 얹혀 있었습니다. 엘리스는 부채와 장갑 한 켤레를 갖고 막 방을 나오려는데 경대 앞에 조그만 병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나를 마셔요.>하는 상표가 이번엔 붙어 있지 않았지만, 엘리스는 뚜껑을 열고 입으로 가져갔습니다. '무언가 먹든지 마시든지 하기만 하면, 반드시 재미있는 일이 일어난다. 이 물을 마시면 이번에는 어떻게 되는가 실험해 봐야지. 내가 아주 키다리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이젠 이런 조그마한 몸집에 싫증이 났어.' 바로 그대로였습니다. 그것도 그 효과가 뜻밖에 빨리 나타났습니다. 아직 반도 채 마시기 전에 엘리스의 머리는 천장에 닿고 말았습니다. 목이 부러지지 않게 몸을 구부리지 않으면 안 될 정도였습니다. 엘리스는 놀라 병을 놓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가엾게도 그 뒤의 처리가 낭패였습니다. 엘리스는 자꾸자꾸 커지기만 했습니다. 방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편하지 않아 이번에는 한쪽 팔은 머리를 감고 한쪽 팔꿈치는 문에 대고 드러누워 보았습니다. 그래도 괴로워서 이번에는 한족 팔을 창 밖으로 내밀고, 한쪽 다리를 굴뚝 속으로 집어넣었습니다. '이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됐어. 난 도대체 어떻게되는 걸까?" 다행히 그때 그 야의 효과가 없어져 키가 커지는 것이 멎었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역시 거북해서 다시는 바깥에 나갈 수가 없을 것 같아서 엘리스는 슬퍼지고 말았습니다. '집에 있을 때가 훨씬 즐거웠었는데, 커졌다가 작아졌다가 하지도 않고, 그리고 쥐나 토끼 따위의 심부름을 한 적도 없었어.' 어떤지 자꾸만 서글퍼지고, 이상야릇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이젠 더 이상 커질 수는 없을 거야. 그렇다면 이제 더 이상 나이도먹지 않을지 모르겠어. 아이 좋아! 할머니가 되지 않을 테니. 그런데 그렇게 되면, 언제까지나 공부를 해야 할거야. 아이참, 그럼 싫어!' "이 바보 같은 엘리스야!" 하고, 엘리스는 스스로 대답했습니다. "여기서 어떻게 공부를 하니? 너 혼자만으로도 방이 가득하지 않니. 어디다 교과서를 놓지?" 엘리스는 저 혼자서 말을 주고받았습니다. "메어리 앤! 메어리 앤!" 엘리스는 귀를 기울였습니다. "메어리 앤! 장갑은 어떻게 했니?" 쿵쿵 층층대를 올라오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토끼가 자기를 찾아온다는 것을 엘리스는 곧 알았습니다. 겁이 나서 몸을 부들부들 떨었습니다 . 그러자 집이 삐걱삐걱 소리를 내며 흔들렸습니다. 엘리스의 몸집은 이제 토끼의 천 배나 커져 있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겁낼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스는 지금 그러한 것들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토끼가 문 앞까지 왔습니다. 열심히 문을 열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문은 안으로 열리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거기다가 엘리스의 팔꿈치가 꾹 누르고 있으니 문은 까딱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창을 넘어 들어가자." 토끼가 중얼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절대로 들어오지 못하게 할걸!" 토끼가 창문 가까이로 오는 것을 기다려, 엘리스는 느닷없이 창문으로 손을 내밀어 덥석 잡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허공을 잡았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때, 작은 비명이 들렸습니다. 그와 함께 무엇인가 떨어지는 소리와 유리가 깨어지는 소리가 났습니다. '아마 오이를 기르는 유리로 덮은 온실 위에 떨어진 게 틀림없다.' 엘리스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토끼가 화를 내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패트, 패트, 어디에 있느냐!" 그러자, 엘리스가 이제까지 들어 본 적이 없었던 이상한 소리가 났습니다. "예, 예, 여기에 있습니다. 능금을 파내고 있습니다." "능금을 파내고 있다고? 이 바보야! 빨리 와서 나를 잡아 당겨 올리란 말이다!" 또, 유리 깨지는 소리가 났습니다. "패트, 창문으로 나와 있는 게 뭐지?" "앗, 아무리 봐도 사람의 팔 같습니다." "뭐, 팔이라고? 이 얼빠진 녀석아! 저렇게 큰 팔을 본 적이 있어. 보랏, 창문에 꽉 차있지 안냐." "과연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사람의 팔이옵니다." "듣기 싫어, 그건 어쨌든 좋아, 저것을 빨리 가지고 가란 말이다." 그러고는 갑자기 조용해졌습니다. 한동안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별안간 여러 사람들이 조잘대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또 한 개의 사다리는 어디 있지?" "난 하나밖에 가져오지 않았어. 빌이 또 한 개를 가지고 있어." "빌, 그걸 이리 가져와 줘." "이 구석에 세우면 돼." "아니야, 두 개의 사다리를 줄로 매서 이어야 해. 그래도 반밖에 닿지 않는다." "그러면 돼, 잔소리하지마." "자, 빌. 꼭 밧줄을 쥐고 있어야 해. 거기 기왓장이 헐거워져 있다. 조심하란 말야. 아, 떨어졌어. 밑에 있는 자들은 머리를 조심해!" 탕! 하는 소리. "누가 그랬지?" "빌이야." "누가 굴뚝을 타고 내려갈 테야?" "난 싫어. 빌이 가기로 돼 있잖아. 이봐, 빌! 주인 나리의 명령이야." "아니, 빌이 내려오는군. 나, 빌 같은 신세가 되고 싶지는 않아. 이 난로는 정말 좁지만, 그래도 조금쯤 발로 찰 수 있을 테지." 엘리스는 힘껏 굴뚝 밑으로 발을 움츠리고는, 그 조그마한 동물이 내려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 동물이 어떤 동물인지 전혀 상상을 할 수 없었으나 가까워 오는 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이게 바로 빌이구나!" 하고 혼잣말을 하면서, 소리가 가까워지자 힘껏 차고는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날까, 하고 귀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맨 처음 들려온 것은, "앗, 빌이 날아간다." 하고, 외치는 여러 사람들의 소리였습니다. 그 소리에 이어 토끼가, "담장 가까이 있는 자들, 빌을 빨리 받아랏!"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러고는 한동안은 조용했습니다. 그러나 또다시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자, 머리를 들라, 기운 내는 브랜디야." "기운을 내라고, 빌." "어쨌든? 어째서 이렇게 된 거야? 어디 얘길 좀 해보려무나." 끝으로 가냘픈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잘 모르겠어. 고마워요. 어쨌든 굉장히 혼났단 말야. 어떻게 얘길 했으면 좋을지 모를 정도야. 기억이 나는 것은, 인형같이 생긴 것이 느닷없이 튀어나와 내게 부딪쳤는가 했더니, 내가 마치 불꽃처럼 공중으로 솟아올랐다는 것뿐이야." "정말 불꽃같았어." 하고, 모두가 입을 모아 이렇게 말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이렇게 되면 이 집을 불태워 버리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말한 것은 토끼였습니다. "그런 짓을 하면 다이나를 시켜 혼을 내줄 테다!" 엘리스는 소리소리 질렀습니다. 그러자 곧 얘기 소리들이 뚝 끊겼습니다. '이젠 뭘 하려는 걸까? 좀더 영리했다면 지붕을 벗길 텐데.' 하고 엘리스가 생각했을 때, 또 다시 모두가 움직이기 시작한 모양입니다. "처음엔 손수레에 가득 하나면 돼." 하고 외친 것은 토끼였습니다. '뭐가 가득 하나면 되나?' 엘리스가 약간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창으로 돌멩이가 비 오듯이 날라 왔습니다. 엘리스의 얼굴에도 맞았습니다. "이따위 짓은 당장 중지시켜야지. 두 번 다시 이런 짓을 해선 안돼!" 엘리스가 고함을 지르자, 또 조용해졌습니다. 마루에 떨어진 돌멩이를 보고 있노라니 그것은 하나 둘 과자로 변해지는 것이 나이겠습니까. 엘리스는 깜짝 놀랐지만, 이내 기가 막히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이 과자를 먹으면 틀림없이 내가 더 커지거나, 아니면 작아질 거야. 하지만 이 이상 더 커지는 것은 싫으니까 꼭 작아질 거야.' 엘리스는 과자를 한 개 집어 삼켰습니다. 그러자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짐작한 대로 문으로 나갈 수 있을 만큼 작아졌습니다. 엘리스는 곧 집을 뛰쳐나갔습니다. 밖에는 작은 동물과 새들이 많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 한복판에서 두 마리의 기니아픽에 안겨서 병에 든 것을 마시고 있는 것은 도마뱀인 빌이었습니다. 엘리스의 모습을 보자, 모두 엘리스 쪽으로 달려왔습니다. 엘리스는 냅다 도망쳤습니다. 그리하여 울창한 숲 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우선 해야 할 일은 내 몸집을 본디의 크기만큼 하는 것. 다음에는 그 아름다운 뜰을 찾아내는 것.' 숲 속을 헤매면서 엘리스는 생각했습니다. 확실히 그것은 훌륭한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도무지 몰랐습니다. 근심스럽게 나무 사이를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노라니까, 머리 위에서 갑자기 무슨 짖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날카로운 소리에 놀라 얼른 쳐다보니 그것은 굉장히 큰 강아지가 아니겠습니까. 크고 둥그런 눈으로 엘리스를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한쪽 발을 내밀어 엘리스를 건드리려 들었습니다. "오냐, 오냐." 하고, 어르면서 휘파람을 불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만일 몹시 배가 고파하고 있다면 그야말로 큰일이었습니다. 엘리스를 냉큼 잡아먹고 말지도 모릅니다. 엘리스는 조그마한 나뭇가지를 하나 주워 강아지에게 내밀었습니다. 강아지는 기쁜 듯이 짖으며 다리를 가지런히 하여 그 나뭇가지에 덤볐습니다. 밟히면 큰일이다 싶어 엘리스는 큰 엉겅퀴 그늘에 숨었습니다. 강아지는 그 뒤를 쫓아왔습니다. 밟혀 죽게 된다면 그야말로 야단이었습니다. 엘리스는 엉겅퀴 둘레를 빙빙 돌았습니다. 그래도 강아지는 가지 사이로 노려보며 덤벼들었습니다. 짖다간 뛰고, 뛰다간 짖고, 그러는 동안에 강아지는 혓바닥을 쭉 빼물고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커다란 눈을 반쯤 감은 채 헐레벌떡 숨을 몰아쉬고 있었습니다. '도망치려면, 바로 이때다!' 엘리스는 숨이 찰 때까지 달렸습니다. 강아지의 짖는 소리가 멀리 사라졌을 때, 엘리스는 미나리아재비의 줄기를 휘어잡았습니다. 잎을 하나 따서 부치면서 혼잣말을 했습니다. "저 강아지에게 여러 가지 재주를 가르쳐 주고 싶었어. 만약 내가 어른들만큼 컸더라면…… 앗, 깜박 잊어버리고 있었어. 한 번 더 커져야 한다는 걸. 하지만 이젠 어떻게 하면 커질지 몰라. 뭘 먹든지 마시든지 하면 되겠는데, 문제는 그 <뭘>을 어떻게 찾아내느냐에 있어." 엘리스는 주위를 살폈습니다. 꽃과 풀들은 많았지만, 먹거나 마실 수 있는 것은 도무지 보이지 않았습니다. 바로 옆에 엘리스와 키가 비슷하게 큰 버섯이 하나 돋아 있었습니다. 밑에서 뒤쪽을 보니까, 이번에는 삿갓 위에 무엇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발돋움을 하고 버섯의 삿갓 위를 살짝 보았습니다. 그 순간, 엘리스의 눈은 커다란 푸른 털벌레의 눈과 똑바로 마주쳤습니다. 그러나 털벌레는 삿갓 위에 앉아서 팔짱을 끼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엘리스가 보고 있는 것도 모른 체하고, 기다란 물빨대로 담배를 뻑뻑 피우고 있었습니다. 5장 - 쐐기벌레의 충고. 털벌레와 엘리스는 한동안 말없이 서로 눈을 마주보고 있다가 털벌레가 천천히 입에서 물빨대를 떼고 나른한 목소리로 엘리스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넌 누구냐?" "저…… 아직 누군지 잘 모르겠어요." "그게 무슨 소리냐?" 털벌레의 목소리는 나무라는 투였습니다. "잘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을 해요!" "하지만, 설명할 수 없는 걸. 왜냐하면 나는 내가 아닌걸요." "모르겠다. 무슨 소린지." "정말 죄송합니다만, 이 이상 더 알기 쉽게 설명할 수가 없어요. 왜 그러냐구요? 나 자신도 그것을 잘 몰라요. 거기다가 하루에도 몇 번이고 몸의 크기가 변해지니까 까다로워서 무어가 무언지 모르겠어요." 엘리스는 아주 상냥하게 대답했습니다. "그럴 수가 있어?" "글세, 털벌레께서는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는지 몰라. 당신이 번데기로 변해서…… 언젠가는 그렇게 되겠지만 말야. 그리고 또 나비로 변하면 아마 틀림없이 이상한 생각이 들 거여요." "그런 생각이 들 리가 없어." "털벌레 당신의 생각이 잘못일 거여요. 나 같으면 굉장히 이상한 느낌이 들 거라고 생각해요." "너 같으면 말이지……" 털벌레는 아주 얕보는 말투로 말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너는 도대체 누구지?" 이야기는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엘리스는 털벌레가 퉁명스럽게 말했기 때문에 뿌루퉁해졌습니다. 그러고는 다시 한번 상냥하게 말을 걸었습니다. "당신이야말로, 당신의 이름을 먼저 말해야 옳지 않아요?" "왜?" 하고, 털벌레는 되물었습니다. 이것도 역시 난처한 문제였습니다. 엘리스는 그 물음에 알맞은 말이 얼른 머리에 떠오르지 않아, 털벌레가 매우 토라진 것 같아 자리를 뜨려고 했습니다. "이리 와요. 너에게 꼭 얘기해 두지 않으면 안 될 중요한 얘기가 있어." 하고, 털벌레가 뒤에서 불렀습니다. 뭔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아, 엘리스는 휙 돌아서서 다시 되돌아왔습니다. "화를 내면 안 돼!" 하고, 털벌레가 힘주어 말했습니다. "그것뿐?" 엘리스는 화가 왈칵 치솟았지만, 애써 그 감정을 누르고 이렇게 물었습니다. "아니냐." 털벌레는 간단히 중얼거렸습니다. 그리고 털벌레는 잠자코 물빨대를 빨고 있더니, 천천히 팔짱을 풀고는 물빨대를 입에서 떼었습니다. "그럼, 너는 네가 변했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지?" "아마 그런가 봐요. 그전처럼 여러 가지 기억이 되살아나질 않으니까 말여요. 그리고 또 단 10분간을 같은 크기로 있을 수 없으니 말여요." "어떤 기억이 되살아나지 않는단 말인가?" "<아주 작은 꼬마꿀벌>을 외고 싶어도 아무래도 그 말이 뒤죽박죽이 되고 영 안되지 않겠어요." 엘리스의 말소리는 몹시 쓸쓸했습니다. "그렇다면, <나이를 잡수셨어, 아버님>하는 노래를 외어보렴." 털벌레의 말을 듣고 엘리스는 언제나처럼 두 손을 맞잡고 외기 시작했습다. "아버지는 늙었어요." 젊은이가 말했지, "아버지는 호호백발인데도 : 언제나 물구나무 서기를 하시네요- 그러실 나이는 지났잖아요?" "내가 젊었을 때," 아버지 윌리암이 아들에게 말했지, "그것이 머리에 나쁜 줄 알았단다. 하지만, 지금은 어차피 나빠졌으니 하고싶은 대로 계속하는 거란다." "아버지는 늙었어요." 젊은이가 말했지, "게다가 너무 살이 찌셨구요 : 그런데도 집에 돌아오실 때면 언제나 공중제비니 왠일이지요?" "내가 젊었을 때," 아버지는 흰 머리를 날리며 대답했지. "내 팔다리는 정말 튼튼했단다. 이 약 덕분이지-한 상자에 1실링 너도 두 상자쯤 사렴?" "아버지는 늙었어요." 젊은이가 말했지, '턱에 힘도 빠지고, 물렁물얼한 비게나 드셔야 해요. 아니 거위를 통째로 잡수셨군요- 그 재주를 가르쳐 주시겠어요? "내가 젊었을 때," 아버지가 말했지. "나는 재판소에 가서, 네 엄마하고 늘 말씨름을 했단다. 그래서 턱에 힘센 근육이 생겼고 지금까지도 이렇게 튼튼하단다. "아버지는 늙었어요." 젊은이가 말했지, "눈도 어두워 잘 못 보실텐데: 아니 콧등에 뱀장어를 세우시다니 그런 재주는 어떻게 배우셨어요? "나는 벌써 세 가지나 대답했단다." 아버지가 말했지. "건방지구나! 더 이상 쓸데없는 말을 하지 마라! 비켜라, 안 비키면 층계아래로 떨어뜨려 버릴테다!" "틀렸어!" 털벌레가 날카로운 소리를 질렀습니다. "약간 틀렸는가 봐요." "처음부터 끝까지 다 틀렸어." 한동안 둘이는 말없이 가만히 있었습니다. 털벌레가 너무나 똑똑히 말했기 때문입니다. 이윽고 털벌레 쪽에서 먼저 말을 걸어왔습니다. "얼마만큼 커지고 싶지?" "얼마만큼 이라니, 아무래도 좋아요. 다만 몇 번이고 크기가 변하는 것만은 싫어요. 아시겠죠?" "모르겠는데." 엘리스는 잠자코 있었습니다. 이제까지 이렇게 하나하나 반대를 당한 일이 없었기 때문에 속이 상했습니다. "지금 그대로 좋은가?" "글쎄, 될 수만 있다면 조금만 더 컸으면 좋겠어요. 7센티미터로선 정말 너무나 보잘것없지 않겠어요." "뭐가 보잘것없니, 꼭 알맞은걸!" 화난 목소리로 말하고는 털벌레는 똑바로 허리를 펴 보였습니다. 털벌레의 키는 꼭 7센티미터였습니다. "하지만, 난 이렇게 작은 것엔 아직 익숙지 않은걸요." 엘리스는 아주 가엾은 목소리로 말했지만 마음 속으로는, '동물들이 제발 성을 내지 말았으면.' 하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곧 익숙하게 돼!" 하고, 털벌레는 내뱉듯 말하고선 또 물빨대를 뻐끔뻐끔 빨기 시작했습니다. 엘리스는 다시 털벌레의 마음이 가라앉기를 가만히 기다렸습니다. 2, 3분이 지나자 털벌레는 하품을 하면서 온 몸을 한 번 부르르 떨었습니다. 그러고는 풀밭 속으로 들어가면서, "한쪽에서는 커진다. 다른 한쪽에서는 작아진다." 하고 중얼댔습니다. "한쪽이라니, 무엇의 한쪽이란 말일까?" "버섯이야." 이렇게 말하고는 털벌레의 모습은 이미 보이지 않았습니다. 엘리스는 한참 동안 버섯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어느 쪽이 어느 쪽인지 모르겠는걸?' 버섯은 동그랗기 때문에 이것은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엘리스는 양쪽 팔을 힘껏 벌려서 오른쪽과 왼쪽의 가장 자리를 조금씩 뜯어내었습니다. "어느 쪽이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어." 그러면서 오른쪽에 쥔 버섯 조각을 조금 씹어 보았습니다. 그 순간, 무언가에 턱밑을 탁! 하고 호되게 얻어맞았습니다. 힐끗 아래쪽을 보니까, 아니 그것은 바로 자기의 발이 아니겠습니까. 너무나 기가 막힌 변화에 놀랐지만, 우물쭈물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습니다. 이대로 있다간 녹아 없어질지 모릅니다. 그래서 급히 왼쪽 손에 쥐고 있던 버섯 조각을 먹으려고 했지만, 턱이 발에 딱 불어 있어서 입이 마음대로 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간신히 입에 넣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자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아아, 기분이 좋아! 머리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어." 하고 엘리스가 기뻐하며 말했다고 생각하자, 다음 순간에는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고 말았습니다. 자기의 어깨가 온데간데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아래를 내려다보자니까 검푸른 바다 비슷한 것이 바람결에 출렁이고 있습니다. 그 속에서 기다랗게 늘어난 목이 마치 나무 줄기같이 보였습니다. "저 검푸른 것은 무엇인지 몰라?" 엘리스는 눈이 휘둥그래졌습니다. "앗 참! 내 어깨는 어디로 갔을까? 내 팔은 어떻게 된 걸까. 아, 가엾은 나의 팔, 어째서 네가 보이지 않니." 그러면서 엘리스는 팔을 움직여 보았습니다. 저 아래쪽 가장자리가 조금씩 움직일 뿐 아무 반응도 없습니다. 손을 머리에까지 가져온다는 것이란 어림도 없었기 때문에 엘리스는 머리를 손 쪽으로 움직여 볼까 생각했습니다. 그랬더니 다행히도 머리만은 뱀 모양 아무 쪽이고 어디고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엘리스는 목을 꾸부려 검푸른 파도 쪽으로 가까이 가져가 보았습니다. 그것은 바다가 아니고, 이제까지 쳐다보고 있던 나무끝 가지들이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곧 그 나무 숲 속으로 파묻히려 할 때, 파닥파닥 날카로운 소리가 났습니다. 깜짝 놀라 머리를 쳐들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얼굴을 향해 날아온 것이 있었습니다. 커다란 한 마리의 비둘기였습니다. 엘리스의 얼굴을 사정없이 두들기며, "이 뱀놈아!" 하고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엘리스는 멍해졌습니다. "난, 뱀이 아냐!" "뱀이야, 뱀에 틀림없어." 그 소리는 먼저보다는 약간 침착한 소리였습니다. 이어서 이렇게 지껄였습니다. "정말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어. 이래저래 해보았지만……" 이렇게 말하면서 비둘기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건 무슨 소리지?" 하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엘리스에게 막무가내로 지껄여댔습니다. "나무뿌리도 시험해 보았다. 둑도 시험해 보았다. 울타리도 시험해 보았다. 그런데 뱀이란 놈! 저놈에게는 정말 당해내지 못하겠단 말이다." 엘리스로서는 점점 더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비둘기가 할말을 다하기 전에는 무슨 소리를 해도 소용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알을 품고 있는 것만 해도 이만저만이 아닌데, 낮이고 밤이고 뱀을 지키고 있지 않으면 안 되다니. 이 3주일 동안은 눈 한 번 붙이지 못했단 말이다." "정말 가엾게도." 엘리스는 그제야 간신히 까닭을 알 수 있었습니다. 비둘기는 또 지껄이고 있습니다. "숲 속에서 가장 높은 나무를 골라 '여기라면 괜찮겠지'하고 생각할라치면 이번에는 공중에서 구불구불 내려오질 않겠나. 이 고약한 뱀놈!" "난 뱀이 아니란 말여요. 정말……" "그럼 넌 뭐냐. 우물우물 얼버무릴 작정이냐?" "난 …… 난 계집애여요." "흥, 난 계집애를 많이 봄 적이 있어. 그런데 너와 같이 그렇게 기다란 모가지를 갖고 있는 애는 하나도 없었어. 아냐, 넌 틀림없이 뱀이야! 이번엔 알 따위를 먹어 본 일이 없다고 말할 참이지?" "아니, 아니, 알은 먹어요. 하지만 계집애는 뱀에게 지지 않게 알은 먹어요." "그렇다면 계집애란 뱀의 일종이란 말이지?" 비둘기는 못마땅한 듯이 이렇게 말하고선 자기 둥지로 날아가 버렸습니다. 엘리스는 나무 사이를 파고 들어갔습니다. 나뭇가지가 자꾸만 목에 걸렸으므로 몇 번이나 발을 멈추고 그것을 헤쳐야 했습니다. 한참 후에야 엘리스는 자기가 아직까지도 양손에 버섯조각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쳤습니다. 그래서 양쪽 손에 쥐고 있는 버섯조각을 번갈아 씹어 보았습니다. 커졌다간 작아지고, 작아졌다간 커지고 하더니, 간신히 본디의 자기 몸집으로 되돌아갈 수가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자기 몸집으로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지 처음 한동안은 이상한 느낌이 들었지만 이내 괜찮아졌습니다. "자, 이제 이것으로 나의 계획의 반쯤은 제대로 됐어. 다음에는 저 아름다운 뜰을 찾아내는 일이다. 그러자면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어." 이렇게 말하고 있는데 갑자기 넓은 광장에 와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높이 1미터쯤 되는 조그만 집이 서 있었습니다. "저 집에 누가 살고 있는지 모르지만, 이 키 그대로 간다면 모두들 깜짝 놀랄 거야." 엘리스는 오른쪽 손에 쥐고 있던 버섯조각을 조금씩 씹었습니다. 꼭 알맞은 키가 됐을 때 씹는 것을 중단하고 집으로 가까이 갔습니다. 엘리스는 어쩐지 이상한 기분이었습니다. 6장 - 돼지와 후추. 1, 2분 동안 엘리스는 그 집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이제부터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노라니까, 숲 속에서 느닷없이 제복을 입은 하인이 달려왔습니다. 하인이라고 짐작한 것은 하인의 제복을 입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얼굴만 보면 물고기였습니다. 문 앞에 서자, 주먹을 불끈 쥐고 쿵쿵쿵 두들겼습니다. 그러자 얼른 문을 열어 준 것은 다른 하인이었습니다. 똑같은 제복을 입고 있습니다. 개구리 같은 커다란 눈을 하고 있는 둥근 얼굴이었습니다. 문을 두들긴 하인도, 문을 연 하인도 모두 머리는 온통 곱슬머리였고, 하얀 가루가 그 위에 뿌려져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겠다." 엘리스는 숲 속에서 조금 나와 귀를 기울였습니다. "공작 부인에게 여왕님으로부터, 크로우케이 놀이(나무 공을 나무 방망이로 쳐서 철문을 통과시키는 운동)의 초대장이올시다." 하고, 처음 말한 것은 물고기 같이 생긴 하인입니다. 겨드랑이에 끼고 있던 자기만큼이나 큰 봉투를 공손하게 내밀었습니다. 그러자 개구리를 닮은 하인도, "여왕님께서 공작 부인에게 크로우케이 놀이의 초대장이올시다.." 하고, 말의 순서는 조금 바꿨을 뿐 역시 정중하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서로 공손하게 인사를 주고받았습니다. 그러자 곱슬머리가 서로 얽혔습니다. 엘리스는 하도 우스워서 배꼽을 쥐고 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하인들이 들으면 그야말로 큰일나겠다고 생각하여 허둥지둥 숲 속으로 달아나고 말았습니다. 잠시 후 되돌아보니까, 벌써 물고기를 닮은 하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개구리를 닮은 하인만이 땅바닥에 주저앉아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엘리스는 숨을 죽이고 현관에 가까이 다가가서 톡톡톡 문을 두들겼습니다. 그러자, "두들겨도 헛일이다." 하고 하인이 말했다. 그런데 집 안에는 굉장한 소동이 일어난 모양입니다. 울부짖는 소리와 쟁반들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안에 들어갈 수 있니?" "당신과 나 사이에 만일 문이 달려 있다면, 그야 문을 두들기는 것도 뜻이 있겠지. 가령 당신이 집 안에 있으며 문을 두들기면 내가 문을 열어 주어 당신을 바깥으로 내보내 주겠다." 개구리를 닮은 하인은 말을 하면서도 여전히 하늘만 보고 있기에 엘리스는, '실례가 아니냐." 하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마 하는 수 없는 모양이지." 엘리스는 중얼거렸습니다. "이 사람의 눈은 머리 꼭대기 가까이에 붙어 있단 말이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내가 묻는 말에 대답쯤은 해줘도 좋잖아." 엘리스는 우정 큰 소리를 질렀습니다. "어떻게 하면 안으로 들어갈 수 있지?" "내일까지 난 여기에 앉아 있을 테야." 하인이 이렇게 말했을 때입니다. 얼른 문이 열리더니 커다란 쟁반이 소리를 내며 날아왔습니다. 그것은 하인의 코끝을 스쳐 뒤에 있는 나무에 부딪쳐 부서졌습니다. 그래도 하인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여전한 태도로, "경우에 따라서는 모레까지." 하고 말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안으로 들어갈 수 있지?" 엘리스는 아까보다도 훨씬 더 큰 소리로 같은 것을 물었습니다. "넌, 도대체 들어가야 하겠다는 생각이 있는 거냐? 그것이 우선 중요한 문제란 말이다." 확실히 하인의 말 그대로입니다. 그러나 엘리스는 그따위 말버릇이 몹시 싫었습니다. "싫어, 싫단 말이야. 어째서 동물들은 이렇게 말이 많을까? 기분이 이상해지잖아." 하인은 조금 전의 그 말을 되풀이해야 할 때는 바로 이때구나 하고 벼른 듯이, "나는, 여기에 하루고 이틀이고 앉아 있을 따름이야." 하고, 일부러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럼, 난 어떡하면 좋아." "좋을 대로……" 하인은 이렇게 말하자 휘파람을 불기 시작했습니다. 엘리스는 어이가 없었습니다. "이런 사람하곤 아무리 얘기해도 소용없어. 정말 어딘가 잘못됐나 봐!" 엘리스는 제 마음대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바로 큰 부엌으로 통해 있고, 방에는 여기가 자욱하게 끼어 있었습니다. 자세히 보자니까, 방 한가운데에 세 다리 의자가 놓여 있고, 거기에 공작 부인이 앉아서 어린애를 달래고 있었습니다. 난롯불 옆에서 허리를 꾸부리고, 수프가 가득 들어 있는 커다란 냄비를 휘젓고 있는 이는 식모인 모양입니다. "저 수프에는 후춧가루가 너무 많이 들어 있어." 에취, 에취, 재채기를 하면서 엘리스는 간신히 이 말만을 했습니다. 확실히 주위의 공기가 매웠습니다. 공작 부인 역시 연거푸 재채기를 하고 있습니다. 어린애까지도 재채기를 하면서 자꾸만 보채고 있습니다. 재채기를 하지 않는 것은, 부엌에서 요리하는 여자와 난로 위에서 귀까지 찢어지도록 큰 입을 벌리고 혼자서 웃고 있는 커다란 고양이뿐이었습니다. "저 …… 죄송하지만." 하고, 엘리슨 조심조심 물었습니다. 공작 부인에게 자기 쪽에서 먼저 말을 거는 것이 예의에 벗어나는 건지 아닌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저 고양이는 어찌 저렇게 능글맞게 웃고만 있습니까." "체셔 고양이니까." 체셔(잉글랜드의 서부에 있는 주)의 고양이는 능글맞게 잘 웃는다는 소문이 나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도 능청맞게 잘 웃는 사람을 보고 체셔 고양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공작 부인은 또 말을 계속했습니다. "모른단 말이냐? 체셔 고양이에겐 능글맞게 웃는 버릇이 따라다닌다는 것을, 이 돼지야." 공작 부인의 마지막 말투가 느닷없이 난폭했기 때문에 엘리스는 깜짝 놀라 펄쩍 뛰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자기에게 하는 말이 아니고, 어린애에게 한 것인 줄 금새 알아차릴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다시 말을 계속했습니다. "전 정말 체셔 고양이에 대해선 모르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또 고양이가 웃는다는 건 모르고 있었으니까요." "고양이는 웃을 수 있는 거야, 대부분의 고양이는." "전 그런 말씀을 처음 듣는 걸요." "넌 그리 많이 알고 있지 못하는군." 공작 부인의 그 말투가 엘리스에겐 아무래도 못마땅했습니다. 그래서 무언가 다른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을 때입니다. 수프 냄비를 난로에서 들어 내린 식모가 갑자기 그 근처에 있는 물건들을 닥치는 대로 집어서 공작 부인과 어린애에게 마구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부삽, 냄비, 쟁반 등이 비오듯이 날았습니다. 공작 부인은 맞아도 예사입니다. 어린애는 그전부터 울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들에 맞아 아파서 우는지 어쩐지 도무지 알 수 없었습니다 "무슨 짓이야, 조심해!" 엘리스는 너무나 무서워서 몇 번이고 깡충깡충 뛰어오르면서 소리쳤습니다. 그러자, "모든 사람들이 남의 일에 참견을 않는다면 지구는 지금보다 훨씬 더 빨리 돌 거야." 하고, 공작 부인이 신음하듯 목쉰 소리로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좋다고는 생각할 수 없어요." 엘리스는 제 지식을 뽐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왔다고 몹시 기뻐했습니다. "만일, 그렇게 되면 밤과 낮이 어떻게 될지 생각해 보셔요. 지구는 남북의 축(축을 영어로 액시스라 함)을 중심으로 자전하는데 24시간 걸리며, 밤과 낮이 꼭 반반씩이고……" "잠깐! 도끼(도끼를 영어로 액스라 함)라고? 그래, 이 애의 모가지를 댕강 잘라버려!" 엘리스는 깜짝 놀라 식모가 있는 쪽을 돌아보았습니다만, 그 여자는 열심히 수프 냄비를 휘젓고 있을 뿐입니다. 겨우 안심이 된 엘리스는 말을 계속했습니다. "틀림없이 24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12시간이라든가?" "닥쳐! 난 숫자라면 진절머리가 난단 말이다!" 하고 외친 후에, 공작 부인은 다시 어린애를 달래기 시작했습니다. 자장가 비슷한 노래를 부르면서, 한 절이 끝날 때마다 어린애를 거칠게 뒤흔드는 것입니다. 어린애가 재채기를 했을 땐 야단을 치고 두들겨 줘라. 애를 먹이려고 하는 짓이 재미가 나서 하는 짓이야. (합창) 와아 와아 와아 (식모와 어린애가 함께 불렀습니다.) 공작 부인은 노래의 2절을 부르면서 어린애를 난폭스럽게 위로 던졌다가 도로 받아 안았습니다. 가엾은 어린아기! 귀가 따갑게 울어댑니다. 엘리스가 노래의 가사를 알아들을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어린애가 재채기를 했을 땐 야단을 치고 두들겨 줘라. 제 멋대로 장난을 하고 어린 애는 후춧가루를 좋아한다. (합창) 와아 와아 와아 "자, 웬만하면 어린애를 좀봐주지." 공작 부인은 어린애를 엘리스 쪽으로 난폭하게 던졌습니다. 엘리스는 가까스로 어린애를 받아 안았습니다. "난, 여왕님의 크로우케이 놀이 모임에 갈 채비를 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 공작 부인은 부리나케 방을 나갔습니다. 그 뒷등을 향하여 식모가 프라이팬을 냅다 던졌으나 약간 빗나가 다행이 맞지는 않았습니다. 엘리스는 어린애를 보았습니다. "어머나, 마치 불가사리 같아!" 팔다리가 사방으로 불쑥불쑥 튀어나와 아주 기묘한 꼴을 하고 있었습니다. 받아 안았을 때, 어린애를 마치 증기기관차 모양 코를 실룩거리고 있었습니다. 거기다가 자꾸만 몸을 꾸부리고 배를 불쑥 내밀고 하기 때문에, 처음 한동안은 놓치지나 않나 하고 혼이 났습니다. 그러나 엘리스는 이내 어린애를 어떻게 안으면 좋은가를 알았습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내가 이 아이를 데리고 가지 않으면 아마 틀림없이 하루 이틀 후에는 맞아 죽을 거야. 그러니까 이 아이를 그냥 두고 간다는 것은 살인범과 다름없지 않을까?" 엘리스가 이렇게 중얼대자 어린애는 마치 돼지같이 꿀꿀댔습니다. 재채기는 어느 새 그 쳤습니다. "꿀꿀하다니 참 이상해. 이 따위 말투가 어디 있단 말야." 엘리스는 깜짝 놀라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았습니다. "아, 돼지구나!" 틀림없이 돼지였습니다. 엘리스는 이 이상 안고 있는 것이 창피해졌습니다. 그래서 내려놓자, 돼지새치는 얌전하게 숲 속으로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만일 저 어린애가 저대로 자란다면 꽤 보기 흉한 애가 될거야. 하지만, 돼지치고는 잘 생긴 편인지도 모르지." 엘리스가 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말했을 때, 3미터쯤 앞 나뭇가지에 조금 전의 그 체셔 고양이가 있는 것을 깨닫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런데 고양이는 엘리스를 보자, 능청스레 웃을 뿐입니다. 엘리스는 성질이 괜찮아 고양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발톱이 길고 이빨이 많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다루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체셔 고양이야." 엘리스는 두려워하면서 말을 걸어 보았습니다. 그러나 고양이는 입을 크게 벌리고, 그저 능청맞게 웃어대기만 했습니다. "기분이 좋은가봐, 됐어!" 방긋 웃으며 엘리스는 말을 계속했습니다. "저, 잠깐 말 좀 묻겠다는 데요, 여기서 어느 쪽으로 가야 좋을까요?" "그건 네 마음에 달렸지." "아무데고 괜찮겠습니다만." "그럼 아무데나 가려무나." "하지만, 어디엔가 가서 닿았으면……" "자꾸만 걸어가면 틀림없이 어디엔가 가서 닿겠지." '옳은 말씀." 하고, 엘리스는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다른 것을 물었습니다. "이 근방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나요?" "저 쪽에는……" 하면서 고양이는 오른팔을 흔들며, "모자장수가 살고 있지." 이번에는 왼팔을 돌리며, "저 쪽에는 3월토끼가 살고 있어. 어느 쪽이고 좋을 대로 가보렴. 두 쪽 다 미치광이지만." 잉글랜드에서는 무슨 이유인지 3월토끼와 모자 장수는 모두 미치광이의 표본으로 되어 있습니다. "난, 미치광이가 있는 곳 따위엔 가고 싶지 않아요." "가고 싶지 않았지만 별수 없을 걸. 여기 살고 있는 것은 모두가 미치광일까 말야. 너도 미치광이, 나도 미치광이야." "어째서 내가 미치광인 줄 아셔요?" "미치광이임에 틀림없이 그렇지 않다면 우선 여길 오지 않았을 테니까." "그럼, 당신이 미치광이란 어떻게 아셔요." "개는 미치광이가 아니야. 그건 인정하지?" "예." "그럼 말하겠다. 개는 성을 내면 으르렁댄다. 기쁠 땐 소리를 친다. 그런데 나는 성이 나면 꼬리를 치고, 기쁘면 으르렁댄다. 그러니까 나는 미치광이지." "그건 으르렁댄다고 하지 않고 목을 울린다고 하는 거여요." "마음대로 말하란 말이다. 그런 소리를 하는 너는 오늘 여왕님과 크로우케이 놀이를 할 참인가?" "가고 싶지만, 아직 초대를 받지 못했어요." "그런가. 그렇다면 나중에 회장에서 다시 만나지." 그러고선 고양이는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엘리스는 이제 신기한 일이 생기게 되는데 대해선 많이 익숙해 있기 때문에, 조금도 놀라지 않았습니다. 고양이가 모습을 나타내었습니다. "깜빡 잊어버리고 물어 보지 못했는데, 어린애는 어떻게 된 거야?" "돼지가 돼버렸어요." "그럴 줄 알았지." 그 말이 끝나자 다시 고양이는 사리 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엘리스는 3월토끼가 있는 쪽을 향해 걷기 시작했습니다. "모자장수라면 본 적이 있었지만, 3월토끼 쪽이 더 재미있을 것 같아. 지금은 5월, 토끼가 날뛴다는 3월보다는 덜 날뛰겠지." 하고, 혼잣말을 하면서 엘리스가 힐끈 위를 바라보고 나뭇가지 고양이가 앉아 있었습니다. . "돼지였던가, 아니면 후추였던가?" 고양이의 얼굴은 진실해 보였습니다. "돼지입니다. 그건 그렇고, 제발 그렇게 갑자기 나타나고 갑자기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눈이 빙빙 돌 지경 아니어요." "알았어, 알았어." 고양이는 이렇게 말하고는 궁둥이 쪽부터 사라지기 시작하여 마지막에는 그 능글맞은 웃음만이 남았습니다. "아이 참, 이상도 해라. 웃지 않는 고양이는 얼마든지 봤지만, 고양이는 사라져 없어지고 능글맞은 웃음만 남다니, 난생 처음 보겠어." 이렇게 중얼거리고 있는 동안 3월토끼가 사는 집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굴뚝이 토끼의 귀모양으로 생겼고, 지붕이 털가죽으로 덮여 있었으므로, "3월토끼의 집에 틀림없다." 하고 엘리스는 생각했습니다. 너무나 큰집이었기 때문에 엘리스는 왼손에 쥐고 있던 버섯조각을 조금씩 씹었습니다. 60센티미터 정도의 키가 되기 전에는 그 집 가까이에 가고 싶은 생각이 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키가 커진 후에도, "만약 3월토끼가 난폭하게 굴면 어떻게 하나. 차라리 모자장수 쪽으로 가는 게 좋았을지도 몰라." 하고, 겁을 내면서 집 가까이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7장 - 엉터리 다과회. 집 앞 나무 밑에는 테이블이 놓여 있습니다. 거기서 3월토끼와 모자 장수가 정답게 차를 마시고 있습니다. 그 둘 사이에 앉아서 곤히 잠들어 있는 것은 산 쥐입니다. 둘은 그것을 쿠션 삼아 번갈아 팔꿈치를 짚고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습니다. "산 쥐는 꽤 거북할 거야. 그러나 잠이 들어 모르는 모양이지." 엘리스의 이 말을 듣자. "자리가 없어, 자리가 없어!" 하고, 갑자기 모두들 떠들어댔습니다. 큰 테이블인데도 셋은 모두 구석 쪽에 몰려 앉아 있습니다. "자리가 많이 비어 있는데요." 새침해진 엘리스는 반대쪽 안락의자에 가서 앉았습니다. "포도주를 드릴까요?" 엘리스를 달래듯 3월토끼가 상냥하게 말했습니다. 엘리스는 테이블 위를 살펴보았지만 차만 있을 뿐입니다. "포도주가 없잖아요." "아 참, 그렇군." 하고, 말한 것은 3월토끼입니다. "어머, 실례! 없는 것을 권한다는 건." "초대도 안 했는데 와서 앉는 것은 실례가 아닌가?" 3월토끼도 지지 않고 대들었습니다. "당신의 식탁인진 미처 몰랐어요. 하지만 세 사람 분보단 훨씬 많은 걸." "당신 머리카락을 조금 자르면 어때?" 느닷없이 옆에서 참견한 것은 모자 장수입니다. 모자 장수는 아까부터 엘리스를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남의 일을 이러쿵저러쿵 참견하는 게 아녀요. 실례여요." 모자 장수는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래졌지만, "큰 유리가 책상을 닮은 것은 왜 그렇지." 하고, 불쑥 한 마디 했을 뿐입니다. "야, 차츰 재미가 나는군. 난 수수께끼를 정말 좋아해요. 맞혀 봐요?" "그럼, 넌 그 답을 알고 있다는 거지." 하고, 참견한 것은 3월토끼입니다. "그럼요." "그렇다면 왜 똑똑히 말하지 않는 거야. 말을 할 때는 제가 생각한 대로 분명하게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단 말이다." 3월토끼는 힘을 주어 말했습니다. "물론 언제나 그렇게 하고 있어요. 적어도 전 제가 말하는 그대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마찬가지 아녀요?" "절대로 마찬가지가 아냐." 모자 장수가 엘리스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면서 말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내가 먹는 것이 보인다.'와 '나는 내게 보이는 것을 먹는다.'는 말이 마찬가지란 셈이 된다." 모자 장수의 말이 끝나자, 3월토끼가 거기에 덧붙이기라도 하는 듯, "'나는 얻는 것을 좋아한다.'와 '나는 좋아하는 것을 얻는다.'라는 거나 마찬가지야." 하고 참견을 했습니다. 그러자 자고 있던 산 쥐까지도, "'나는 자고 있을 때 숨을 쉰다.'와 '나는 숨쉬고 있을 때 자고 있다.'가 마찬가지야." 하고 잠꼬대 모양 말했습니다. 여기서 잠깐 말이 중단되었습니다. 모두들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 침묵을 깨뜨린 것은 모자 장수입니다. "오늘이 며칠이지?" 하고, 엘리스를 보면서 말했습니다. 모자 장수는 아까부터 호주머니에서 시계를 끄집어내어 가끔 흔들기도 하고, 귀에 대보기도 하면서 조심스럽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틀림없이 4일이야." "이틀이 틀렸어, 이 시계는." 모자 장수는 길게 한숨을 내 쉬었습니다. "그러므로 버터는 이 기계에 좋지 않다고 그랬잖아." 3월토끼를 보고 모자 장수는 화를 내듯 말했습니다. "그건 제일 좋은 버터였었는데 말야." "틀림없이 그 빵찌꺼기가 들어간 모양이야. 빵 자르는 칼로 바른 것이 좋지 않았던 거야." 3월토끼는 시계를 받아 들고 난처한 듯 보고 있었습니다. 엘리스는 신기하다는 듯이 토끼 뒤에서 넘겨다보고 있었습니다. "이상한 시계. 날짜는 알지만 시간을 알 수 없는 시계라니." "그것으로 충분하지 뭐야. 네 시계는 몇 핸지 알 수 있어?" "몰라요. 그런 것은." 하고, 엘리스는 부랴부랴 말을 덧붙였습니다. "그것은, 한 해가 너무 길기 때문이어요." "내 시계도 역시 마찬가지야." "저, 말씀하시는 뜻을 잘 모르겠어요." 엘리스는 무어가 무언지 전혀 모르게 되었습니다. 모자 장수가 말한 것은 아무 뜻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이 잠꾸러기 쥐놈, 또 잠이 들었군!" 산 쥐를 향해 이렇게 내뱉은 모자 장수는 산 쥐의 콧등 위에 뜨거운 물을 조금 쏟았습니다. 산 쥐는 성가시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고는, "그래, 그래, 맞았어. 나도 이제 막 그렇게 말하려고 생각하고 있던 참이야." 하고, 눈을 감은 채 졸리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수수께끼는 풀렸나?" 모자 장수가 엘리스를 향해 갑자기 말했습니다. "아녀요. 난 손을 들겠어요. 답은 뭐여요?" "나 역시 전혀 모르겠어." 모자 장수가 이렇게 말하자, "나 역시." 하고 3월토끼가 한몫 끼었습니다. 엘리스는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풀 수 없는 수수께끼를 한다는 건 시간의 낭비야. 좀더 시간을 효과 있게 써야 할걸." "옳은 말이야. 하지만 네가 나 만큼 <때>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면, 그것을 낭비한다는 따위의 말은 하지 않을 거야. 아마 너는 <때>와 말을 해 본적이 없는 모양이지?" 모자 장수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 아주 얕잡아보는 말투였습니다. "예, 그렇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피아노를 연습할 때, <때>를 치는 것(박차 맞추는 것)쯤은 알고 있어요." "아, 이제야 알았어. <때>라지만 얻어맞는다는 건 아주 싫어하지. 그것과 사이 좋게 해두면, 네가 필요한 시간에 시계를 움직여 줄 거야. 가령, 아침 아홉 시, 공부를 시작할 시간이 됐다고 하자. 그때 <때>를 향하여 조금만 귀띔만 해주면 시계 바늘은 눈 깜짝할 사이에 휙 돌아서 '예, 지금은 한시 반, 점심 시간입니다.'라고 하게 되는 거야." "지금이 그 시간이라면 좋을 텐데." 나지막한 목소리로 혼잣말을 한 것은 3월토끼였습니다. "확실히 그건 근사해요. 그렇게 된다면 언제나 배가 고파지지 않을 거야." "처음엔 그렇겠지. 그러나 돈으로 세워 둘 수 있어." "당신은 언제나 그렇게 하고 있나요?" 엘리스는 모자 장수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물었습니다. 그러나 모자 장수는 슬픈 표정을 하고 고개를 저으며, "그렇지 못해. 우리는 지난 3월에 <때>와 싸움을 했어." 찻숟갈로 3월토끼를 가리키며, "저놈이 미치광이가 되는 바로 직전이었어. 하트 여왕님이 베푼 음악회의 회장이었었지. 그때 나는, 훨, 훨, 박쥐여 너는 뭘 노리고 있지. 이런 노래를 부르게 돼 있었어. 너도 이 노래를 알고 있을 거야. 다음 구절은 이렇단다. 온 세상 위를 돌아다니며 쟁반처럼 하늘을 날아 훨, 훨, 훨, 훨. 그런데 내가 이 노래를 다 부르자마자, '이 사내의 박자는 엉망이다. <때>를 천대하고 있다. 빨리 목을 베도록 하라!'하고, 여왕님께서 소리를 지르셨지." "아니, 그렇게 야만적일 수가……" 엘리스는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반대로, "그러고 난 후부터는……" 하고 얘기를 계속하는 모자 장수의 말소리는 풀이 죽어 있었습니다. "……<때>는 나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게 대버렸어. 그래서 이제는 언제까지나 이렇게 여섯 시인 거야." "아, 그래요? 그래서 차도구가 이렇게 많이 나와 있는 거여요?" "그렇단다. 언제까지나 차를 마시는 시간이니까, 그릇을 씻을 참도 없단다." "그래서 번갈아 자리를 바꾸시는군요." "그래. 잔이 비거나 그릇이 더러워지면 자리를 바꾸는 거야." "한 바퀴 돌고, 처음 그 자리에 오게 되면 어떻게 하시나요?" 엘리스가 흥미를 나타내 보이자, 3월토끼가 크게 하품을 하고는, "화제를 바꾸자." 하고 말했습니다. "그런 얘기는 그만하면 됐어. 이제 진저리가 나. 어때, 이번에는 아가씨에게 뭔가 얘기를 들어 보도록 하지." 엘리스는 깜짝 놀랐습니다. "전 아무것도 몰라요." "그럼, 산 쥐에게 시킬까. 이봐, 일어낫!" 둘이 동시에 소리를 지르고는 산 쥐의 옆구리를 꼬집었습니다. 그러자 산 쥐는 천천히 눈을 떴습니다. "난 자고 있은 게 아녀. 너희들의 얘기를 죄다 듣고 있었어." "그런 건 아무래도 좋으니, 얘기를 해보란 말야." "그래, 그래. 빨리 얘기를 들려줘요." 엘리스는 3월토끼 못지 않게 졸라댔습니다. "빨리빨리 하려무나." 하고, 모자 장수가 재촉을 했습니다. "빨리 하지 않으면 너는 또 얘기도 끝내기 전에 자고 말 테니까 말야." "응, 알았어. 옛날옛적에 나이 어린 세 자매가 있었습니다. 이름은 앨시, 레이시, 틸리, 이 세 자매는 우물 밑바닥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산 쥐는 빠르게 지껄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럼, 그 사람들은 뭘 먹고살고 있었지?" 먹고 마시는 것에 대해 유별나게 흥미를 가지고 있는 엘리스입니다. 그래서 대뜸 물었습니다. "당밀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럴 리가 없어요. 금새 병에 걸리고 말 텐데." "그래서 병에 걸렸답니다. 아주 중한 병에." 엘리스는 그 별난 생활에 대해 상상해 보려 했지만, 아무리 해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물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왜 우물 밑바닥에서 살고 있었나요?" "그건, 당밀의 우물이었기 때문이야." "그런 것이 있을 까닭이 없어요." 엘리스는 남을 바로 취급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모자 장수와 3월토끼가 애써 말리기에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것뿐이랴. 거기다 산 쥐까지도, "점잖게 듣고 있지 못한다면, 그럼 이 얘기를 네가 계속하려무나." 할 정도였습니다. "아녀요, 미안해요. 다음을 계속해 주셔요." 하며, 엘리스는 아주 점잖아졌습니다. 그러나, "……그리고 그 세 자매는 퍼내는 방법을 배우고 있었습니다." 하고 산 쥐가 말하자, "뭘 퍼내는 거여요?" 하고 또다시 참견을 했습니다. 그러나 산 쥐는 이번에는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고, "당밀이지." 하고 가볍게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그때 모자 장수가 이야기를 가로막아버렸습니다. "아직 손을 대지 않은 깨끗한 컵이 탐나는구나. 모두들 한 자리씩 옆으로 옮겨 앉기로 하지." 이렇게 말하면서 모자 장수가 자리를 옮겼습니다. 그러자 산 쥐도 옮겨 앉고, 3월토끼는 산 쥐 자리에, 엘리스는 시무룩하니 3월토끼 자리로 옮겨 앉았습니다. 가장 덕을 본 것은 모자 장수였고, 가장 손해를 본 것은 엘리스입니다. 3월토끼가 쟁반 위에 우유통을 뒤집어엎고 옮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엘리스는 산 쥐의 기분을 상하게 할까 봐 꾹 참았습니다. 산 쥐는 또 졸음이 온 모양입니다. 하품을 하다가, 눈을 문지르면서 이야기를 계속했습니다. "세 자매는 퍼내는 방법을 배우고 있었습니다. 갖가지 것을 퍼냈습니다. <엠(M)>으로 시작되는 것……" "왜, <엠>으로 시작하는 거여요?" "아무러면 어때." 옆에서 3월토끼가 고함을 질렀으므로 엘리스는 또 말문을 닫고 말았습니다. 산 쥐는 눈을 감고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지만, 모자 장수가 꼭 꼬집었기 때문에 당황해 하며 말을 계속했습니다. "엠으로 시작되는 것, 이를테면 <마우스 트랩(Mouse-trap : 쥐잡기)>이라든가, <문(Moon : 달)>이라든가, <메모리(Memory : 기억)>라든가. 그래그래, 너는 <기억>이라는 것을 퍼내는 것을 본 적이 있어?" "아아니, 난 아직……" 이상한 질문에 엘리스는 얼떨떨했습니다. "그렇다면 잠자코 있으면 어때!" 모자 장수의 거친 말투에 엘리스는 화가 치밀었습니다. "어머, 이런 실례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엘리스는 테이블을 떠나 걷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가 뒤에서 말려 주리라 생각하고 두세 번 뒤돌아보았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모른 체하고 있습니다. 산 쥐는 그동안에 잠들고 있습니다. 3월토끼와 모자 장수는 그 산 쥐를 번쩍 쳐들어 큼직한 병 속에 집어넣으려고 했습니다. "난, 두 번 다시 그따위 곳에 안 갈 테야. 그런 미치광이놀음 같은 다과회에 간 것은 난생 처음이야." 숲 속을 향해 걸으며 엘리스가 이렇게 말하고 있을 때, 한 나무둥치에 문이 달려 있는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아, 이상한 나무다. 모두가 다 이상한 일투성이니까, 이 안에 들어가 봐도 괜찮겠지." 엘리스는 곧장 나무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자세히 주위를 살펴보니 처음에 들어왔던 바로 그 좁고 긴 방이었습니다. "이번에야말로 잘해 봐야지." 신이 난 엘리스는 우선 조그만 황금열쇠를 집어들고, 아름다운 뜰로 나가는 문을 열었습니다. 그리하여 호주머니에 넣어둔 버섯조각을 씹어 30센티미터쯤의 키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좁다란 길을 당당히 걸어갔습니다. 마침내 그 아름다운 뜰로 나왔습니다. 눈이 부신 듯한 꽃밭, 시원한 분수…… 엘리스의 눈은 그 뜰 입구에 멎었습니다. 8장 - 여왕의 크로켓 경기. 뜰 입구에 심어 놓은 커다란 장미나무에는 아름다운 흰 꽃이 잔뜩 피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일까요. 세 사람의 정원사가 그 흰 꽃을 빨간 페인트로 열심히 칠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어머나…… 별짓을 다 하는 사람들이야." 이상하게 생각한 엘리스는 좀더 자세히 보려고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그러자 정원사 중의 한 사람이, "이봐, 5, 조심해. 페인트가 튀잖아!" 하고 화가 난 듯 소리를 질렀습니다. "7이란 놈이 내 팔꿈치를 쳤어. 하는 수 없지 않아." 5가 뾰로통해 말하자, 7이 약이 올라 얼굴을 쳐들었습니다. "이 녀석은 언제나 남에게 죄를 뒤집어 씌워!" "넌 잠자코 있어! 여왕님께서 너의 목을 날려 버리겠다고 어제 말씀하셨어." 진짜냐, 5. 왜 그러시지?" "네가 알 바 아냐. 2, 잠자코 있어!" 7이 고함을 질렀습니다. "아니, 2가 알아서 뭐가 나쁘단 말이냐. 좋아 그렇다면 내가 얘기하지. 이놈이 요리사에게 양파를 가져가야 하는 것을 튤립의 뿌리를 가져간 거야." 이렇게 말하고 5가 웃자, 7이 손에 쥐고 있던 솔을 발 앞에 팽개치면서, "뭐가 우스워? 도대체……" 하고 말을 시작하다가 갑자기 입을 다물고 말았습니다. 엘리스가 노려보고 있는 것을 눈치챘기 때문입니다. 그러는 순간에 5도 2도 눈길을 옆으로 돌렸습니다. 그러고는 당황해 하며 공손히 인사를 했습니다. 엘리스는 가볍게 머리를 숙여 보이고는 세 사람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저, 여러분들은 왜 그 장미를 붉게 칠을 하고 있는 거여요? 그 이유를 들려주세요." 5와 7은 한동안 서로 마주쳐다보더니, 2에게로 눈길을 돌렸습니다.2는 나지막이 말문을 열었습니다. "예, 실은 여기에 빨간 장미 나무를 심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던 것이 그만 잘못되어 흰 것을 심고 말았지요. 만일 여왕님의 눈에 띄기만 하면 그야말로 목이 달아나게 됩니다. 그래서 여왕님께서 납시기 전에…" "앗…… 여왕님이시다!" 걱정스레 망을 보고 있던 5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습니다. "여왕님이시다. 여왕님이시다." 세 사람은 겁에 질린 소리를 지르며 땅바닥에 푹 엎드리고 말았습니다. 차츰 많은 사람들의 말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엘리스는 여왕이 보고 싶어 눈을 반짝이며 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 귀를 기울였습니다. 선두에는 몽둥이를 든 열 사람의 병정 모두가, 세 사람의 정원사와 똑같이 몸집이 네모꼴에다 납작하고, 손발은 각각 네 귀퉁이에 달려 있습니다. 그 뒤에 열 사람의 부하는 온몸을 다이아몬드로 치장하고, 병정들과 마찬가지로 두 줄을 지어 걸어가고 있습니다. 다음에는 둘씩 손에 손을 잡고 깡충깡충 뛰며 따라가는 귀여운 어린이 열 명. 그것은 모두 왕자와 왕녀들입니다. 모두가 하트 꼴의 장식물을 가슴에 달고 있습니다. 그 뒤를 이어 따라가는 것이 손님입니다. 거의 왕과 여왕들이었지만 그 중엔 흰토끼가 끼어 있습니다. 잽싸게 무언가를 지껄이고 있습니다. 상대 쪽에서 무언가를 이야기하면 곧 미소 진 얼굴로 기분을 맞추곤 합니다. 물론 엘리스가 있는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지나쳐가고 말았습니다. 뒤이어 하트의 잭이 빨간 빌로오도 위에 왕관을 얹고 조용히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맨 마지막은 하트의 왕과 여왕입니다. 엘리스는 세 사람의 정원사처럼 땅에 엎드리지 않으면 안 되는지, 하고 한동안 망설였습니다. 그러나 왕의 행차를 만나면 반드시 땅에 엎드려야 한다는 규칙은 이제껏 들은 적이 없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아무 구경도 못하게 되는 걸. 모처럼의 행차도 아무 소용이 없잖아.' 행렬은 엘리스 앞에 이르자 갑자기 멈췄습니다. "이 사람은 누구냐!" 여왕의 칼칼한 목소리가 주위에 짱하고 울려 퍼졌습니다. 그 말은 들은 하트의 잭은 허리를 굽실하고는 빙그레 웃을 따름입니다. "바보 같으니!" 하고 여왕은 호통을 치며 엘리스 쪽을 향해, "너의 이름은 뭐라고 하지?" 하고 물었습니다. "예, 엘리스라고 합니다." 엘리스는 공손하게 대답하면서 마음 속으로는, '기껏해야 트럼프가 아니냐. 두려워할 것까지는 없어.' 하고, 자기 자신에게 말했습니다. "그럼, 거기 그 사람은 누구냐?" 여왕의 시선을 장미나무 밑에 엎드려 있는 세 사람에게 가서 멈췄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세 사람의 등 모습이 다른 트럼프와 똑같습니다. 부하인지, 병정인지, 혹은 자기의 아이들인지 도무지 분간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런 걸 제가 알게 뭐여요. 모르겠어요!" 엘리스는 자기가 너무나 대담한 데에 놀랐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여왕의 얼굴이 새빨개졌습니다. 사나운 짐승처럼 엘리스를 노려보았습니다. "이놈의 목을 쳐라! 목을!" 무서우리만큼 날카로운 목소리입니다. 그러나, 엘리스도 지지 않습니다. "무슨 말씀이어요!" 여왕은 깜짝 놀라 멈칫했습니다. 주먹을 꼭 쥔 손이 너무나 분해 부들부들 떨고 있습니다. 그 팔 위에 조용히 손을 얹은 것은 왕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라. 이 아이는 아직 어린애가 아니냐." 왕으로부터 이 말을 들은 여왕은 얼굴을 휙 정원사 쪽으로 돌리고 말았습니다. "잭, 이것들을 모두 뒤집어랏!" "예." 하면서, 엎드리고 있는 하나하나를 뒤집어 나갔습니다. "일어섯!" 여왕의 위엄있는 고함 소리에 세 사람의 정원사는 벌떡 일어나 섰습니다. 그러고는 왕, 여왕, 왕자, 아니 누구건 닥치는 대로 굽실굽실 머리를 숙였습니다. "눈이 빙빙 돈다. 그만둬, 그만둬!" 빠른 입으로 외치면서 여왕은 힐끗 장미나무 쪽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너희들은 여기서 뭘하고 있는 거야." "예, 저희들은 사실은 저…" 2는 한쪽 팔꿈치를 짚고 겁에 질려 있습니다. "알았어, 이것들의 목을 베랏!" 장미나무를 빤히 들여다보고 있던 여왕이 크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큰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습니다. 행렬은 세 사람의 정원사와 세 사람의 병정만을 남기고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정원사들은 도움을 청하러 엘리스에게로 달려왔습니다. "절대로 목을 베게 내버려두지는 않을 테다!" 엘리스는 옆에 있는 큼직한 화분 안에 세 사람을 감췄습니다. 세 병정은 한동안 이들을 찾아 헤매다간 이윽고 단념하고 행렬 뒤를 쫓아갔습니다. 엘리스도 그 뒤를 따랐습니다. "목은 댕강 다 벴겠지?" 여왕은 걸음을 멈추고 세 병정이 얼굴을 쳐다보았습니다. "옛! 분분하신 대로." 병정들은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대답했습니다. "잘했어…… 너는 크로우케이를 할 줄 아는가?" 여왕의 눈길이 엘리스 쪽으로 향했기 때문에 그 말은 엘리스에게 한 것인 줄 당장 눈치챘습니다. "예. 할 줄 알아요." "그럼, 따라오려무나." 엘리스는 행렬 속에 끼었습니다. 이번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엘리스는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왠지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습니다. "저…… 오늘은 굉장히 날씨가 좋군요." 하면서 옆을 쳐다보니, 흰토끼가 근심스럽게 엘리스의 얼굴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렇구나, 참……공작 부인은 어디 계셔요?" "쉿……" 흰토끼가 주의를 주었기 때문에 엘리스는 깜짝 놀랐습니다. 흰토끼는 기지개를 켜고 나서 힐끗 뒤를 한번보고는 엘리스의 귓전에 입을 갖다 댔습니다. "공작 부인은 사형선고를 받았어요." "뭐, 왜?" "여왕님의 얼굴을 때렸어요." "아니, 그게 정말이어요?" 엘리스는 너무 우스워 픽하고 웃었습니다. "쉿, 조용히!" 하는, 흰토끼의 주의를 받고 애써 웃음을 참았습니다. 그러나 킥킥킥 자꾸만 웃음이 삐어져 나왔습니다. "조용히, 조용히! 여왕님께 들으시면 그야말로 큰일이다. 공작 부인은 그때 상당히 늦게 왔지 뭐야. 그랬더니 여왕님께서……" 하고 흰토끼가 말을 시작하자마자, "제자리에 돌아갓!" 하고 여왕이 벼락같은 소리로 명령을 내렸습니다. 모두가 당황하여 흩어져 뛰기 시작했습니다. 부딪치고 넘어지며 온통 난장판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1, 2분이 지나자 가까스로 조용해졌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경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아이 참, 이상스런 경기장이로군. 이런 건 난생 처음 보는걸." 엘리스의 눈이 휘둥그래진 것도 당연합니다. 경기장은 온통 울퉁불퉁하여 마치 이랑과 고랑이 물결치는 것 같았습니다. 게다가 공을 치는 망치는 산 홍학이고, 공도 산 고슴도치입니다. 그리고 공이 굴러나가는 아치(문)는 병정들이 몸을 꾸부려 양손을 땅바닥에 짚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경기가 시작되자, 엘리스가 가장 어렵다고 생각한 것은 그 홍학의 취급입니다. 홍학을 옆구리에 끼고 머리로 고슴도치를 치려들자, 홍학이 휙 목을 치켜들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고는 멍청히 엘리스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그 괴상스런 얼굴, 저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올 지경입니다. 그래도 가까스로 홍학의 머리를 아래로 굽히고 공을 치려들자 이제까지 몸을 동그랗게 하고있던 고슴도치가 갑자기 허리를 펴고는 꿈틀꿈틀 기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고슴도치를 굴리려고 하면 이랑과 고랑이 방해를 합니다. 또 아치에 처넣으려고 하면 꾸부리고 있던 병정들이 자꾸만 일어서서 제멋대로 걸어가고 마는 것입니다. 엘리스는 정말 어려운 놀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뿐이 아닙니다. 경기를 하는 사람들은 차례도 기다리지 않고 제멋대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슴도치를 서로 차지하려고 야단법석입니다. 여기저기서 싸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본 여왕은 크게 화를 내어, "당장 저놈의 목을 베랏!" "이 여자의 목을 날려버렷!" 하고, 마구 호통을 쳤습니다. 엘리스는 은근히 겁이 났습니다. 아직까지는 여왕과 한번도 부닥친 일이 없었지만, 언제 어디서 야단을 맞을지 모릅니다. '그렇게 될 경우 나는 어떻게 될까? 그건 그렇고, 어째서 여기서는 걸핏하면 사람의 목을 자르는 것을 좋아할까? 아직까지 살아 남아 있는 사람이 있는 것이 신기하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엘리스는 어디로 도망칠 길은 없을까, 하고 주위를 살펴보았습니다. 문득 위를 쳐다보니 공중에 이상한 것이 떠 있는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처음에는 뭐가 뭔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가만히 눈여겨보고 있으니 그것이 능청스레 웃고 있는 모양입니다. "앗, 체셔 고양이다!" 엘리스는 그 순간 매우 기뻤습니다. '가까스로 말벗이 생겼어.' 그러나 아직은 말을 걸어 봐도 소용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입이 툭 튀어나왔습니다. "오, 안녕!" 하고 그 입이 말했습니다. 엘리스는 눈이 보이게 되는 것을 기다려 인사를 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목까지 완전히 나타나게 되어 홍학을 내려놓고 크로우케이 놀이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들어 주는 상대가 생겨서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이 경기는 엉망진창이었어. 경기 규칙도 없고, 있다고 하더라도 싸움질만 하는 판이니 그게 제대로 지켜질 리 없어요. 제멋대로이지, 도무지 남의 말 따윈 거들떠보지도 않으니까 말야. 게다가 아치라는 것까지도 마구 걸어다니고, 여왕님의 공에 내 공을 맞히려들자, 여왕님의 고슴도치라는 게 갑자기 달아나 버리잖아. 막 맞을 순간에 말야." "그러나, 그런데 너는 그 여왕님이 좋은가?" 나지막한 소리로 고양이가 물었습니다. 머리만 내놓고 있으면 되는 줄 알았는지, 고양이는 그 이상 몸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아아니, 난……" 하고 엘리스가 말을 하기 시작했을 때, 바로 뒤에 여왕님이 서 있는 것을 눈치챘습니다. 그래서 엘리스는 말을 돌리고 말았습니다. "끝까지 승부를 다툴 필요는 없었어. 그야 여왕님이 이길게 틀림없으니까 말야. 그렇잖아?" 여왕은 빙그레 웃고는 지나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왕은 엘리스에게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넌 누구와 말을 하고 있는 거야?" 이렇게 말하면서 왕은 신기하다는 듯, 목만 내놓고 있는 고양이를 지켜보았습니다. "이건 저의 동무로서, 체셔 고양이라고 합니다." "뭣, 체셔 고양이? 마음에 들지 않는 얼굴이야. 그렇지만 소원이라면 내 손에 키스를 해도 좋아." "아니어요, 괜찮습니다." "으흠, 고약한 놈이 로고, 그렇게 말똥말똥 내 얼굴을 노려보는 게 아냐." 왕은 엘리스 뒤에 숨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렇지만 임금님, 고양이에게도 임금님을 볼 권리가 있습니다. 무슨 책인가에도 씌어 있었어요." "안 돼, 안 돼. 냉큼 없어져랏!" 마침 그때, 여왕이 돌아왔습니다. "오, 자넨가. 이 고양이를 냉큼 없애주려무나!" "목을 베랏!" 어떤 문제고 여왕이 해결하는 방법은 꼭 한 가지뿐입니다. "좋아, 그렇다면 내가 가서 목베는 관리를 데리고 오지." 왕의 모습이 안 보이자, 엘리스는 크로우케이 승부 구경을 하고 올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경기장으로 되돌아와 보니까 굉장한 혼잡이었습니다. 누가 누구인지 전혀 분간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엘리스는 거기에 서 있는 것이 싫어졌습니다. 그래서 다시 체셔 고양이가 있는 곳으로 되돌아왔습니다. 그러자 어찌된 일입니까. 고양이의 주위는 구름처럼 사람들이 모여 있지 않겠습니까? 여왕과 왕, 그리고 목베는 관리가 웅성웅성 무슨 소리인가 주고받고 있습니다. 주위의 사람들은 모두들 숨을 죽이고 무언가 몹시 난처한 모습들을 하고 있습니다. 엘리스를 보자 세 사람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이 문제를 해결해 주구려." 하고 말했습니다. 세 사람의 말소리가 한꺼번에 터져 나왔기 때문에 무슨 말인지 잘 분간할 수가 없었습니다. 목베는 관리는, "몸뚱이가 없으면 목을 벨 수가 없어." 이런 말을 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왕은, "목이 있다면 베어질 것이다. 바보 같은 소릴 말아." 하고, 같은 말을 되풀이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여왕은 이제 당장 무슨 결판을 내지 않으면 죄다 사형에 처하고 말겠다는 듯이 주위를 노려보고 있는 것입니다. 엘리스는 별달리 뾰족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기 때문에, "이 고양이는 공작 부인의 고양이여요. 그러니까, 공작 부인에게 물어 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해요." 하고 대답했습니다. 과연 그 말이 옳다는 듯이 크게 고개를 끄덕이던 여왕은, "감옥에 갇혀 있는 공작 부인을 여기에 끌고 오라!" 하고, 목베는 관리에게 명령했습니다. 목베는 관리는 쏜살같이 달려갔습니다. 그러자 고양이의 목은 차츰 사라지기 시작하여 공작 부인을 데리고 왔을 때는 이미 완전히 사라져버리고 만 후였습니다. 왕과 목베는 관리는 눈이 휘둥그래져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찾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다시 크로우케이 놀이를 시작하였습니다. 9장 - 모조거북의 이야기. "귀여운 아가야, 내가 너를 다시 보게 돼서 얼마나 기쁜지 모를 거야." 공작부인은 이렇게 말하며 열정적으로 앨리스의 팔짱을 꼈다. 그리고 그들은 함께 걸어다녔다. 앨리스는 공작부인이 그렇게 친절하게 대해주는 것을 보고 기뻤다. 그리고 그들이 부엌에서 만났을 때 그렇게 야만적으로 행동한 건 모두 후추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공작부인이 되면," 앨리스는 속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리 기대하는 투는 아니었다.) "내 부엌에는 절대 후추를 갖다놓지 말아야지. 후추를 넣지 않아도 수프는 아주 맛있을 테니까- 사람들을 화나게하는 건 항상 후추가 아닐까?," [역자 주 ; 'hot-tempered'- 'hot'이 '매운 맛' 이라는 맛을 나타내는 뜻과 '성급한, 화난'이라는 사람의 기분을 나타내는 두 가지 뜻을 가지고 있는 데서 착안한 pun 장난이다. 양념 이름들 뒤에 나오는 사람의 기분을 나타내는 단어들은 그 양념의 맛을 나타내는 뜻도 가지고 있는 pun들이다.] 앨리스는 새로운 규칙을 발견한 데 대해 아주 기뻐하며 계속 했다. "그리고 식초는 사람들을 까다롭게 만들고, 카모밀라 차는 모질게 만들고, 그리고, 보리엿 같은 것 들은 아이들을 말 잘 듣게 만들지. 사람들이 이 사실을 좀 알았으면 좋겠어. 그러면 사탕을 주는데 그렇게 째째하게 굴진 않을 텐데..." 앨리스는 이때까지 공작부인에 대해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래서 공작부인의 목소리가 귓전에서 울렸을 때 조금 놀랐다. "아가야, 넌 지금 딴 생각하고 있구나, 대화하고 있다는 것도 잊어버리다니, 지금은 이 교훈이 뭔지 생각나지 않지만 조금 있으면 생각해 낼 수 있을 거야." "그런 건 없을 것 같은데요." 앨리스가 용감하게 말했다. "쯧쯧, 아가야." 공작부인이 말했다. "모든 것에는 교훈이 있단다. 네가 찾아낼 수 만 있다면 말이야." 그리고는 앨리 스에게 착 달라붙었다. 앨리스는 그녀가 이렇게 달라붙는 것이 달갑지 않았다. 첫째로, 공작부인은 너무 못생겼고 다음으로, 그녀의 키가 앨 리스의 어깨에 턱을 얹기에 딱 알맞았기 때문이다. 공작부인의 턱은 불편할 정도로 뾰족했다. 하지만, 앨리스는 무례 하게 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최대한 참기로 했다. "이제 게임이 좀 제대로 되어 가는 것 같네요." 대화를 계속할 생각으로 앨리스가 말했다. "그렇구나." 공작부인이 말했다. "그리고 그 교훈은, '아, 사랑, 사랑이여,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것이여!'" "어떤 사람이 그러는데요." 앨리스가 속삭였다.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건 사람들이 각자 자기 일에나 신경쓰기 때문 이라던데요." "아, 그래. 그건 둘 다 같은 뜻이야." 공작부인이 말했다. 그리고 날카로운 턱으로 앨리스의 어깨를 찍어눌렀다. "그리고 그 교훈은 '귀 기울여라. 그러면 들릴 것이다.'" [역자 주 ; 원문은 "Take care of the sense, and the sounds will take care of themselves"로 "Take care of the pense, and the pounds will take care of themselves(한푼 두푼 아끼면 목돈은 저절로 모인다.)"라는 격언에서 단어 두 개만 비슷한 발음의 다른 단어로 바꾼 패러디 격언이다.] "이 여자는 여기저기서 교훈을 찾아내는 걸 무척 좋아하나 봐." 앨리스는 속으로 생각했다. "왜 내가 네 허리에 팔을 두르지 않는지 궁금하지 않니?" 잠시 후에 공작부인이 말했다. "그 홍학이 사납게 굴까봐 그래. 한 번 시험해 봐도 될까?" "물지도 몰라요." 앨리스는 시험해 보는 것을 그리 달갑게 생각하지 않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래 맞아." 공작부인이 말했다. "홍학하고 겨자는 둘 다 물지.[역자 주 ; "bite(물다)"는 '(식초나 겨자 따위가) 톡 쏘다, 자극하다.'라는 뜻도 있다. 이 또한 pun.] 그리고 그 교훈은 '유유상종.'" "하지만 겨자는 새가 아니에요." 앨리스가 말했다. "맞아, 보통은 그렇지." 공작부인이 말했다. "넌 사물을 참 명확하게 정의내리는구나." "그건 광물이 아닌가 하는데요." 앨리스가 말했다. "물론 그렇지." 앨리스가 말하는 데는 무조건 동의하려고 작정한 사람처럼 공작부인이 말했다. "여기 근처에 커다란 겨자 광산이 있어. 그리고 그 교훈은 '내 것이 많아질수록 상대방의 것은 줄어든다.'" [역자 주 ; 앞의 'mine(광산)'이 라는 단어가 갑자기 '내 것'이라는 뜻으로 바뀌었다. 이 또한 pun.] "아, 맞아요." 그녀의 마지막 말을 듣고 있지 않던 앨리스는 소리쳤다. "그건 채소예요. 그렇게 보이지는 않지만 말예 요." "그래 정말 그런 것 같구나," 공작부인이 말했다. "그리고 그 교훈은 '남들이 보아주길 바라는 대로 행동하라.' 아니 면, '너 자신이 그랬었던 바나 그렇지 않게 보일 수도 있었던 바가 아니라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네가 그렇거나 그럴 수도 있었던 바대로 다른 사람에게 보여질 수 있는 자신은 절대 상상하지 마라.'" "그것이 글로 쓰여 있었다면 더 잘 이해됐을 텐데요." 앨리스가 아주 공손하게 말했다. "하지만 말로 하시니까 잘 따 라갈 수가 없어요." "내가 말하고자 하면 할 수 없는 건 아무 것도 없어." 공작부인이 기쁜 듯이 대답했다. "제발 그것보다 더 긴말을 하시는 수고는 하지 마세요." 앨리스가 말했다. "아, 수고라니, 무슨." 공작부인이 말했다. "지금까지 한 말들을 전부 너에게 선물로 주겠다." "참 싸구려 선물이구나." 앨리스는 생각했다. "그런 걸 생일선물로 주지 않아서 다행이야." 그러나 감히 큰소리로 말 하지는 못했다. "또 무슨 생각하니?" 공작부인은 다시 그 뾰족한 턱을 어깨에 찍어누르며 물어왔다. "전 생각할 권리가 있어요." 앨리스는 날카롭게 대답했다. 조금 성가시게 느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돼지가 날아다닐 수 있는 만큼 권리가 있지." 공작부인이 말했다. "그리고 그 교-" 공작부인이 그렇게 좋아하는 단어인 '교훈'을 말하는 도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사그라들자 앨리스는 조금 의아했다. 그리고 자신의 팔에 낀 공작부인의 팔이 떨리기 시작하는 것을 느끼고 위를 올려다보니, 그들 앞에 여왕이 서서 팔짱을 끼고 먹구름 낀 하늘처럼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폐하." 공작부인이 낮고 약한 목소리고 말했다. "먼저 경고하는데," 땅을 쿵쿵 구르며 여왕이 소리쳤다. "너 아니면 너의 머리는 사라져야 한다, 지금 당장. 선택하시지." 이 말에 공작부인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경기를 계속하자." 여왕이 앨리스에게 말했다. 앨리스는 무서워서 한 마디도 할 수 없었지만 천천히 여왕을 따라 크리켓 경기장으로 갔다. 다른 귀빈들은 여왕이 없는 틈을 타서 그늘에서 쉬고 있었다. 하지만 여왕이 나타나는 걸 보자마자 허둥지둥 경기장 으로 돌아갔다. 여왕은 간단히 경기를 지연시키면 목이 달아날 거라고만 말했을 뿐이었다. 경기하는 내내 여왕은 다른 사람과 끊임없이 다투었다. 그리고, "저자의 목을 베라!" 또는 "저 여자의 목을 볘라!"라고 외쳤다. 이런 선고를 받은 사람들은 병사들이 데리고 가 감시해야 했으므로 아치 역할을 하고 있던 병사들은 그러기 위해 자리를 떠야 했다. 그래서, 반시간쯤 지난 후에는 아치는 하나도 남지 않고, 왕, 여왕, 그리고 앨리스를 제 외한 모든 경기 참가자들은 사형 선고를 받고 수감되어 있었다. 그러자 여왕은 헉헉거리며 잠시 쉬면서 앨리스에게 말했다. "너 모조 거북이 봤니?" "아니오." 앨리스가 말했다."전 모조 거북이 뭔지도 모르는걸요." "모조 거북 수프를 만드는 것 말야." 여왕이 말했다. "본 적도 없고, 들은 적도 없어요." "그럼 따라와," 여왕이 말했다. "그 녀석이 너한테 자기 얘기를 해줄 거야." 그들이 함께 걷고 있을 때, 왕이 모두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 들렸다. "모두들 사면되었소." "야, 그것 참 다행이야." 앨리스는 혼자 말했다. 여왕이 내린 그 많은 처형명령을 듣고 아주 기분이 나쁘던 차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곧 태양 아래에 누워 깊이 잠들어 있는 그리폰 앞에 다다랐다. [역자 주 ;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상상속의 동물로 독수리의 머리, 날개와 사자의 몸을 가진 짐승.] "일어나, 게으름뱅이야!" 여왕이 말했다. "이 작은 아가씨를 데리고 가서 모조 거북을 보여줘. 그리고 얘기를 들려주라고 해. 난 돌아가서 처형 명령이 지켜지고 있는지 살펴봐야겠다." 그리고 앨리스와 그리폰을 남겨둔 채로 자리를 떠났다. 앨리스는 그 동물의 모습이 별로 맘에 들지 않았지만 그것과 함께 남아 있는 것이 야만스러운 여왕을 쫓아가는 것보다는 안전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기다렸다. 그리폰은 일어나서 눈을 비비고 여왕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킥킥거렸다. "웃기는군!" 한편으로는 혼자말로, 한편으로는 앨리스에게 말했다. "뭐가 웃겨?" 앨리스가 말했다. "응, 여왕." 그리폰이 말했다. "모두 다 혼자 상상하는 거라구. 아무도 처형시키지 않아. 따라와!" "여기에서는 아무나 다 '따라와!'라고 말하는군." 앨리스는 그 뒤를 천천히 따라가면서 생각했다. "내 평생 동안 이렇게 명령을 많이 받은 적은 한 번도 없어, 한 번도!" 얼마가지 않아 저 멀리에 튀어나온 바위 위에 슬프게 홀로 앉아 있는 모조 거북이 보였다. 가까이 다다가자 앨리스는 모조 거북이 심장이 터져나가게 한숨을 내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앨리스는 그가 아주 불쌍했다. "무슨 슬픈 일이라도 있는 거야?" 앨리스가 그리폰에게 물었다. 그리폰은 그전과 아주 비슷한 말로 대답했다. "모두 혼자 상 상하는 거야. 슬픈 일은 하나도 없어. 따라와!" 그들은 모조 거북에게 다가갔다. 모조 거북은 커다란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서 그들을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이 작은 아가씨가," 그리폰이 말했다. "너의 과거 이야기를 듣고 싶대. 정말로." "얘기해 주지." 모조 거북이가 깊고, 쉰 목소리로 말했다. "둘 다 앉아. 그리고 내가 끝마칠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마." 그래서 그들은 앉았다. 그리고 얼마 동안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앨리스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렇게 시작도 하지 않는데 끝마칠 수 있을지 모르겠군." 하지만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한때," 드디어 모조 거북이 깊이 한숨을 쉬며 말을 했다. "난 진짜 거북이였어." 이 말을 하고 한참동안 침묵이 흘렀다. 단지 그리폰의 "헤에취!" 하는 소리와 모조 거북의 끊임없는 무거운 흐느낌 소리만이 때때로 정적을 깰 뿐이었다. 앨리스는 "고마워, 너의 얘기 재미있었어." 하고 일어나 가고 싶었으나 무언가 다른 얘기가 더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가만히 앉아 잠자코 기다렸다. "우리가 어렸을 때," 드디어 모조 거북이 차분하게, 간간이 흐느끼며 말을 이었다. "우리는 바다속으로 학교에 갔지. 선생님은 늙은 거북이였어. 우리들은 그를 뭍에 사는 거북이라고 불렀지." [역자 주 ; "Tortoise"-뭍에 사는 거북. 톨스토이와 발음이 비슷하다.] "뭍에 사는 거북도 아닌데 왜 그렇게 불렀지?" 앨리스가 물었다. "우리를 가르쳤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 거야." 모조 거북이 화를 내며 말했다. "넌 정말 둔하구나.!" "그렇게 멍청한 질문을 하다니 창피하지도 않니?" 그리폰이 거들었다. 그리고 땅속으로 가라 앉아버리고 싶은 불쌍한 앨리스를 말없이 쳐다보았다. 결국 그리폰이 모조 거북에게 말했다. "계속해, 이 친구야. 이러다간 하루종일 걸리겠군."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그래, 우리는 바다속에 있는 학교에 다녔어. 너는 믿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안 믿는다고 말한 적 없어!" 앨리스가 말을 가로막았다. "그렇게 말했어" 모조 거북이 말했다. "입 좀 다물어!" 앨리스가 다시 말하기도 전에 그리폰이 덧붙였다. 모조 거북이 계속했다. "우리는 최고의 교육을 받았지. 사실 우리는 학교에 매일 갔어-" "나도 정규 학교에 다녔어." 앨리스가 말했다. "그런 걸 자랑할 필요는 없어." "과외 과목도 있었어?" 모조 거북이 조금 걱정스럽게 물었다. "그래." 앨리스가 말했다. "프랑스어하고 음악도 배웠어." "그리고 닦는 것도?" 모조 거북이 말했다. "물론 그건 아냐!" 앨리스가 기분이 상해서 말했다. "아, 그럼 너네 학교는 아주 좋은 학교는 아니었구나." 모조 거북이 아주 안심했다는 듯이 말했다. "우리 학교에서는, 과목표 중에 '프랑스어, 음악, 그리고 닦기- 등등'이 있었어." "그런 걸 배울 필요는 없었을 텐데," 앨리스가 말했다. "바다 밑바닥에서 사니까." "하지만 난 그런 것들을 배우지 못했어." 모조 거북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난 정규과정만 배웠거든." "어떤 것들이었는데?" 앨리스가 물었다. "물론 비틀기, 몸부림치기를 배웠고," [역자 주 ; "Reeling(비틀기)"와 "Writhing(몸부림치기)"는 학교에서 배우는 기본적인 것인 "Reading(읽기)"와 "Writing(쓰기)"를 장난스럽게 바꾸어 말한 것이다.] 모조 거북이 대답했다. "산수를 배웠지. 예를 들어, 야망, 낙심, 추화, 그리고 비웃기 같은..." [역자 주 ; "Ambition(야망), Distraction(낙심), Uglification(추화), Derision(비웃기)"는 산수의 "Addition(덧셈), Subtraction(뺄셈), Multiplication(곱셈), Division(나눗셈)"을 장난스럽게 바꾼 것이다.] "난 '추화'라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어." 앨리스가 용기를 내어 물어봤다. "그게 뭔데?" 그리폰이 놀라서 두 앞발을 번쩍 들었다. "추화를 들어본 적이 없다니! 넌 미화라는 말은 아니?" "응," 앨리스가 어리둥절해하며 대답했다. "그 말은 어떤 것을 더 아름답게 만든다는 것 아니야?" "그런데," 그리폰이 말했다. "추화시킨다는 말을 모른다면 넌 바보야." 앨리스는 그에 대해 더 이상 질문을 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모조 거북에게 말했다. "또 뭘 배웠니?" "응, 그리고 미스터리도 있었어." 그는 지느러미 앞발로 하나하나 세어가며 대답했다. "미스터리-고대와 현대, 그리고 바다 지리학, 그리고 느리게 말하기-느리게 말하기 선생은 늙은 붕장어였어. 일주일에 한 번씩 왔지. 느리게 말하기, 억지 쓰기, 몸 둘둘 감고 기절하기 등을 가르쳤어." "그게 어떤 건데?" 앨리스가 물었다. "내가 시범을 보여줄 수는 없어." 모조 거북이 말했다. "난 너무 뻣뻣하거든. 그리고 그리폰은 그걸 배워본 적도 없고." "그럴 시간이 없었지." 그리폰이 말했다. "고전 음악 선생한테 다녔거든. 늙은 게였지. 그랬어." "난 그 선생에게 배운 적이 없어." 한숨을 쉬며 모조 거북이 말했다. "웃는 것과 슬퍼하는 것을 가르쳤다고들 하더군." "그랬어, 정말 그랬어." 이번에는 그리폰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리고 둘 다 자기의 앞발로 얼굴을 감쌌다. "하루에 몇 시간씩 레슨을 받았니?" 앨리스가 주제를 바꿀 요량으로 급히 말했다. "첫날엔 열시간," 모조 거북이 말했다. "다음날엔 아홉시간, 뭐 이렇게 계속되지." "참 이상한 시간표구나!" 앨리스가 외쳤다. "그래서 그것을 레슨이라고 부르는 거야."[역자 주 ; "lesson"(수업)을 비슷한 발음의 "lessen"(줄이다.)과 혼동하여 말장난한 것이다.] 그리폰이 말했다. "하루하루 줄어들기 때문이지." 이런 얘기는 앨리스도 처음 들어본 것이었다. 그래서 잠시 생각해 본 후에 말했다. "그럼 열한번째 날은 휴일이겠네." "물론, 그렇지." 모조 거북이 말했다. "그럼 열두번째 날은 어떻게 하니?" 앨리스가 열성적으로 이어 말했다. "레슨에 대해서는 그만 얘기해." 그리폰이 아주 단호한 어조로 끼여들었다. "이제 이 애에게 다른 오락에 대해 얘기해 줘." Continue.. 10장 - 가재춤. 모조 거북은 깊이 한숨을 내쉬고 지느러미 앞발로 눈을 가렸다. 그리고 앨리스를 보며 말을 하려 했지만 잠시동안 목이 메어서 말을 할 수 없었다. "목구멍에 뼈라도 걸린 것 같군." 그리폰이 말했다. 그는 모조 거북을 흔들면서 그 등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모조 거북이는 말을 할 수 있게 되자 볼에 눈물을 흘리며 다시 시작했다. "너는 바다속에서 살아본 적이 없을 거야. -"(앨리스가 "그래, 없어."라고 말했다.) - "그리고 가재하고 인사한 적도 없을 거야. -"(앨리스가 "한 번 먹어본 -"이라고 말하기 시작했다가 급히 자기 말을 가로막고, "아니, 없어."라고 말했다.)- "그럼 너는 가재 춤이 얼마나 즐거운 건지 아마 모를 거야!" "응, 몰라." 앨리스가 말했다."어떤 춤인데?" "그러니까," 그리폰이 말했다."먼저 해변가에 한 줄로 서는 거야.-" "두 줄이야!" 모조 거북이 외쳤다. "물개, 거북이, 연어, 그리고 등등. 그리고는 해파리는 모두 걷어내야 돼." "그러는 데 시간이 좀 걸리지." 그리폰이 거들었다. "-두 번 앞으로 가고-" "모두 가재를 파트너로 하고서!" 그리폰이 외쳤다. "물론이지." 모조 거북이 말했다. "두 번 앞으로 가고, 파트너를 잡고,-" "-가재를 맞바꾸고, 그리고 같은 순서로 뒤로 가는 거야." 그리폰이 계속했다. "그런 다음엔,"모조 거북이 말했다. "집어던지는 거야." "가재를!" 허공으로 펄쩍 뛰면서 그리폰이 외쳤다. "-저 멀리 바다로 힘차게-" "그 뒤를 따라 헤엄치는 거야." 그리폰이 외쳤다. "그리고 바다속에서 재주넘기를 하는 거야!" 주위를 미친 듯이 뛰어다니면서 모조 거북이 외쳤다. "다시 가재를 바꾸고!" 그리폰이 목소리를 높여 소리쳤다. "다시 뭍으로 나오는 거야. 그리고 다음은 처음과 같아." 갑자기 목소리를 뚝 떨어뜨리며 모조 거북이 말했다. 그리고 내내 미친 것같이 뛰어다니던 두 동물은 아주 조용하게 앉아서 슬프게 앨리스를 쳐다보았다. "아주 아름다운 춤일 것 같아." 앨리스가 작게 말했다. "조금 보여줄까?" 모조 거북이 말했다. "그래 정말 보고 싶어." 앨리스가 말했다. "자, 첫 부분만 해보자구!" 모조 거북이 그리폰에게 말했다. "가재 없이도 할 수 있어. 누가 노래부르지?" "아, 네가 해." 그리폰이 말했다. "난 가사를 잊어버렸어." 그러자 그들은 엄숙하게 앨리스의 주위를 돌며 춤추기 시작했다. 가까이 지나갈 때는 매번 앨리스의 발가락을 밟고 지나가며 박자를 맞추느라고 앞발을 까딱거렸다. 그러면서 모조 거북은 아주 느리고 구슬프게 이 노래를 불렀다. '조금만 더 빨리 걸을래?' 대구가 달팽이에게 말했지. '바로 뒤에 돌고래들이 내 꼬리를 밟고 있어. 가재와 거북이가 얼마나 열심히 가는지 봐. 모두 자갈 해변에서 기다리고 있어. 와서 함께 춤추지 않을래? 그럴래? 않을래? 그럴래? 않을래? 함께 춤추지 않을래? ' '넌 얼마나 재미있는지 정말 모를 거야. 가재와 우리를 바다로 집어던질 때 ' 하지만 달팽이가 곁눈으로 흘겨보며 대답했지. '너무 멀어, 멀다구.' 대구에게 고맙지만 함께 춤추지 않겠다고 말했네. 싫어, 안해, 싫어, 안해, 춤추지 않을 거야. 싫어, 안해, 싫어, 안해, 춤을 출 수는 없어. "'멀리가는 건 아무 상관없어' 비늘이 있는 친구가 대답했네. '다른 쪽에 해변이 또 하나 있어. 영국에서는 멀고, 프랑스와는 가깝지. 그러니까 겁내지마, 사랑하는 달팽아. 와서 함께 춤추지 않을래? 그럴래? 않을래? 그럴래? 않을래? 함께 춤추지 않을래?'" [역자 주 ; 1834년 출판된 Mary Howitt의 "The Spider and The Fly(거미와 파리)"의 패러디이다. 원시의 내용은 거미가 자신의 거미줄은 편안하고 신기한 것들이 많으니 들어오라며 파리를 유혹하는 것이다.] "고마워, 참 재미있는 춤이구나." 드디어 끝난 것에 아주 기뻐하며 앨리스가 말했다. "그리고 대구에 관한 그 신기한 노래가 참 맘에 들어." "아, 대구," 모조 거북이 말했다. "- 넌 당연히 본 적이 있겠지?" "응," 앨리스가 말했다. "주로 본 곳은 식사-" 앨리스는 급히 말을 막았다. "난 식사가 어딘지 잘 몰라." 하지만 그렇게 자주 봤다면 어떻게 생겼는지 물론 알겠지?" "그런 것 같아." 앨리스가 신중하게 대답했다. "꼬리를 입에다 집어넣고 빵가루를 뒤집어쓰고 있지." "빵가루는 아냐." 모조 거북이 말했다. "바다속에서는 빵가루가 다 씻겨 내려갈 테니까. 하지만 꼬리를 입에 물고 있기는 하지. 그 이유는-" 여기에서 모조 거북은 하품을 하고 눈을 감았다. "그 이유랑 다른 것들을 다 얘기해 줘." 그가 그리폰에게 말했다. "그 이유는," 그리폰이 말했다. "가재하고 춤춰야 하기 때문이야. 춤출 때 바다로 던져지지. 멀리 떨어져야해. 그래서 꼬리를 입으로 꽉 물고 있지. 그래서 입에서 다시 꺼낼 수 없어. 그게 다야." "고마워." 앨리스가 말했다. "아주 재미있구나. 전에는 대구에 대해서 그렇게 많이 알지 못했었어." "더 말해줄 수도 있어." 그리폰이 말했다. "왜 그것을 대구라고 부르는지 아니?"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는데." 앨리스가 말했다. "왜지?" "부츠와 구두를 그렇게 하기 때문이야." [역자 주 ; 대구는 영어로 "Whiting(white '흰색' +-ing의 형태이다.)".이를 구두에 윤을 낸다는 뜻인 "blacking(black '검은색'+-ing의 형태)"에 대비하여 쓴 것이다.] 그리폰이 아주 심각하게 대답했다. 앨리스는 완전히 혼란 속에 빠졌다. "부츠와 구두를 그런다고!" 의심하는 목소리로 다시 한 번 말했다. "그래, 너는 구두를 어떻게 하지?" 그리폰이 말했다. "내 말은, 구두가 어떻게 윤이 나느냐는 말이야." 앨리스는 자기의 구두를 내려다보며 대답을 하기 전에 잠시 생각했다. "내 생각엔 까맣게 구두약을 칠해서 그렇게 되는 것 같아." "바다속에서는 부츠와 구두를," 그리폰이 말을 이었다. "하얗게 해서 광을 내거든. 이제 알겠니?" "그런 것은 무엇으로 만드는데?" 앨리스가 아주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물론 혀가자미와 장어로 만들지." [역자 주 ; "soles and eels"로 "soles and heels"(신발의 밑창과 뒤축)의 각각의 단어를 동음이의어와 발음이 비슷한 것으로 바꾸었다.] 그리폰이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어떤 꼬마 새우라도 그건 다 알고 있어." "만일 내가 대구라면," 아직도 그 노래를 생각하고 있는 앨리스가 말했다. "돌고래한테 말했을 거야. '뒤로 물러나주세요. 같이 가고 싶지 않아요.'" "반드시 돌고래와 함께 가야 해." 모조 거북이 말했다. "양식 있는 물고기라면 돌고래 없이는 아무 데도 안 가." "정말이야?" 아주 놀란 말투로 앨리스가 말했다. "물론이지." 모조 거북이 말했다. "어떤 물고기가 나한테 와서 여행을 간다고 하면, 난 이렇게 말할 거야. '무슨 돌고래하고?'" "너 '목적'을 말하는 것 아니니?"앨리스가 말했다. [역자 주 ; "With what porpoise" 로 앨리스는 그 말이 "With what 'purpose'"(무슨 목적으로?)를 잘못 말한 것이 아닌가 한다.] "말한 그대로야." 모조 거북이 화난 어투로 대답했다. 그리고 그리폰이 말했다. "자, 이제 네 모험담 좀 들어보자." "내 모험이라면 오늘 아침부터 시작됐어." 앨리스가 조금 조심스럽게 말했다. "어제부터 말하는 건 아무 소용이 없어. 그땐 난 다른 사람이었거든." "다 말해 봐." 모조 거북이 말했다. "아냐, 아냐, 모험담부터야." 그리폰이 조급해하며 말했다. "다 말하는 것은 시간이 너무 걸려." 그래서 앨리스는 처음 흰토끼를 봤을 때부터 자신의 모험담을 들려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 두 동물이 눈과 입을 아주 크게 벌린 채로 양옆에 바싹 붙어서 아주 불안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용기가 났다. 그리폰과 모조 거북은 아주 조용히 듣고 있었다. 애벌레에게 "아버지 윌리엄"을 들려주었고 시구가 본래의 것과는 다르게 튀어나왔다는 대목에 이르자 모조 거북이 크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참 신기하구나!" "정말 신기해!" 그리폰이 말했다. "아주 다르게 나왔다구!" 모조 거북이 생각에 잠겨 다시 말했다. "지금 네가 다른 걸 외우는 걸 한 번 들어봤으면 좋겠어. 시켜봐." 그는 그리폰이 앨리스에게 어떤 권위라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그를 쳐다보았다. "일어서서 '그건 게으름뱅이의 목소리라네.'를 외워봐." 그리폰이 말했다. "사람에게 명령하고 수업시간에 배운걸 외우게 하다니!" 앨리스는 생각했다. "당장에 학교로 돌아온 것 같군." 앨리스는 일어나서 그것을 외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머릿속이 가재 춤으로 가득해서 자신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거의 알지 못하고 있었다. 시구들은 아주 이상하게 튀어나왔다. "'그건 가재의 목소리지. 난 그가 말하는 걸 들었네. '당신은 날 너무 많이 구웠소, 내 머리에 설탕을 쳐야겠소.' 오리가 눈꺼풀로 하듯, 그는 코로 허리띠와 단추들을 다듬었네. 그리고 발가락을 뒤집었네. 모래 사장이 다 말랐을 때 그는 종달새처럼 기쁘지. 그리고 상어에 대해 업신여기는 투로 말하곤 했지. 하지만 물결이 올라오고, 상어가 가까이 있으면, 그 목소리는 작고, 떨린다네." "내가 어릴 때 외우던 것하고는 다른데," 그리폰이 말했다. "난 그런 걸 전에는 들어본 적이 없어," 모조 거북이 말했다. "하지만 이상하고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은데." 앨리스는 잠자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주저앉았다. 앞으로 이상하지 않은 일이 하나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난 설명을 듣고 싶어." 모조 거북이 말했다. "저 애는 설명할 수 없어." 그리폰이 성급히 말했다. "다음 절로 넘어가." "하지만 그 발가락은?" 모조 거북이가 고집을 부렸다. "어떻게 코로 발가락을 뒤집을 수 있지? 넌 아니?" "그건 춤출 때 처음 자세야." 앨리스는 말했다. 하지만 머릿속이 너무나 복잡했기 때문에 다른 말을 하길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다음절을 계속해 봐." 그리폰이 안절부절하며 다시 말했다. "'난 그의 정원을 지나쳤지.'로 시작해." 모두 다르게 튀어나올 것을 뻔히 알면서도 앨리스는 감히 명령에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떨리는 목소리로 계속했다. "난 그의 정원을 지나쳤지. 그리고 한눈으로 알았지. 올빼미와 표범이 파이를 어떻게 나누는가. 표범은 파이의 부스러기, 육수, 고기를 갖고, 올빼미는 자기 몫으로 남은 접시를 갖지. 파이가 모두 없어졌을 때, 올빼미는 그 혜택으로, 친절하게도 수저를 가져갈 수 있도록 허락받았네. 표범은 으르렁거리며, 칼과 포크를 받았지. 그리고 연회는 끝났다네,-" [역자 주 ; 아이작 워츠Isaac Watts 의 "The Sluggard(게으름뱅이)"의 패러디이다. 원시는 게으름뱅이를 비하하며 아이들에게 부지런해지라는 교훈을 주는 도덕적인 시이다.] "그런 것을 외우는 게 무슨 소용이지?" 모조 거북이 끼여들며 말했다. "네가 말하는 것을 설명할 수 없다면 말야. 평생 들어본 것 중에 제일 이상한 말인 것 같아." "그래, 그만두는 것이 좋겠어." 그리폰이 말했다. 앨리스는 그만두게 된 것이 기쁠 따름이었다. "우리가 가재 춤을 더 보여줄까?" 그리폰이 계속 말했다. "아니면 모조 거북이 다른 노래를 들려주는 게 낫겠니?" "아, 노래가 좋겠어. 모조 거북이가 좋다면 말야." 앨리스가 너무 열심히 대답했기 때문에 그리폰은 조금 화난 투로 말했다. "흠, 취향이 별로군. 저 애에게 '거북이 수프'를 불러줘. 괜찮겠지, 친구?" 모조 거북은 깊이 한숨을 내쉬고 시작했다. 그 목소리는 때때로 흐느낌으로 막히곤 했다. 그 노래는, "아름다운 수프, 아주 기름지고, 푸르지, 뜨거운 그릇에서 기다리고 있다네. 이런 진미에 누가 굴복하지 않겠는가? 저녁의 수프, 아름다운 수프! 저녁의 수프, 아름다운 수프! 아아름다아운 수우으프! 아아름다아운 수우으프! 저어녁의 수우으프, 아름다운, 아름다운 수프! "아름다운 수프! 누가 생선, 고기 다른 음식을 좋아할까? 이 수프에 모든 것을 걸겠네. 무엇이든 아름다운 수프를 위해, 한푼이든 아름다운 수프를 위해, 아아름다아운 수우으프! 아아름다아운 수우으프! 저어녁의 수우으프, 아름다운, 아름다운 수프!" [역자 주 ; 당시 유행하던 노래인 제임스 세일리스James Sayles의 "Star of the Evening(저녁 별)"의 패러디이다. 원시의 내용은 밤하늘의 별을 보고 그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것이다.] "한번 더!" 그리폰이 외쳤다. 모조 거북이 막 후렴구를 다시 한 번 부르려 할 때 "재판 시작!" 하는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자, 가자!" 그리폰이 앨리스의 손을 잡으며 말하고 노래가 끝나기도 전에 급히 자리를 떴다. "무슨 재판인데?" 앨리스가 숨을 헐떡거리면서 뛰며 물었다. 그리폰은 "따라와!"라고 말하고 더 빨리 달렸다. 달리는 그들을 따르는 미풍에 실려서 처량 맞은 노래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저어녁의 수우으프, 아름다운, 아름다운 수프!" 11장 - 누가 파이를 훔쳤나. 그리폰과 앨리스가 도착했을 때 왕과 왕비는 왕좌에 앉아 있었다. 그 주위에 온갖 종류의 작은 새, 야생 동물, 그리고 카드 한 벌이 모두 모여 있었다. 하트의 잭이 양쪽에서 두 병사가 감시하는 가운데 사슬에 묶인 채 그 앞에 서 있었다. 흰토끼는 한 손에 트럼펫을 들고, 한 손에는 두루마리 양피지 문서를 들고 왕의 옆에 서 있었다. 법정의 정중앙에는 탁자가 하나 놓여 있었는데 그 위에 파이가 수북히 담긴 커다란 쟁반이 있었다. 앨리스는 맛있게 생긴 파이를 보자 배가 고파졌다. "재판이 끝난 다음에," 앨리스는 생각했다. "간식으로 하나씩 나누어 줬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어 보였으므로 앨리스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앨리스는 전에 재판이 열리는 법정에 가본 적이 없었지만 책에서 그런 내용을 읽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법정에 있는 것은 대부분 그 이름이 무엇인지 알아 맞출 수 있어서 아주 기뻤다. "저게 판사야." 앨리스는 속으로 말했다."아주 커다란 가발을 썼으니까." 그 판사는 왕이었다. 그는 가발 위에 왕관을 쓰고 있었다. 그는 아주 불안해 보였고, 그런 것도 당연했다. "저게 배심원석이야." 앨리스는 생각했다. "그리고 저 12마리 생물이"(앨리스는 '생물'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어떤 것은 들짐승이고, 어떤 것은 날짐승이었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 배심원들이야." 앨리스는 아주 자랑스러워하며 혼자서 이 말을 두 번, 세 번 반복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자기 나이 또래의 어린 소녀들 중에 그 뜻을 알고 있는 아이들은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배심원단'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좋았을 것이다. 열두 배심원들은 모두 석판에 무언가를 바쁘게 적고 있었다. "뭘 하고 있는 거지?" 앨리스가 그리폰에게 속삭이며 물었다."재판이 시작되기 전에는 적을 것이 없을 텐데." "자기 이름을 적고 있는 거야." 그리폰이 속삭이며 대답했다. "재판이 끝나기 전에 자기를 잃어버릴까 봐서 말이지." "멍청한 것들!" 앨리스는 화난 목소리로 크게 말하다가 흰토끼가 "법정에서 정숙하시오!" 하고 외치자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왕은 안경을 쓰고 누가 말을 하고 있는지 알아내려고 주위를 걱정스럽게 둘러보았다. 앨리스는 배심원들의 어깨너머로 그들이 석판에 "멍청한 것들!"하고 적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심지어 어떤 배심원은 "멍청한"을 어떻게 쓰는지 옆에 앉은 배심원에게 물어봐야 했다. "재판이 끝나기도 전에 석판이 뒤죽박죽 되겠구나!" 앨리스는 생각했다. 배심원중 한 명의 연필에서 끽끽거리는 소리가 났다. 이것을, 물론, 앨리스는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법정의 뒤쪽으로 돌아가 그 배심원의 등뒤로 가서 연필을 재빨리 빼앗았다. 앨리스가 순식간에 이 일을 해치웠기 때문에 그 작은 불쌍한 배심원은(그는 도마뱀 빌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빌은 연필을 찾아 주위를 샅 샅이 뒤져본 후에 한 손가락으로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석판에 아무 표시도 남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쓰는 건 아무 소용이 없었다. "해롤드, 고소장을 읽게!" 왕이 말했다. 이 말에 흰토끼는 트럼펫을 세 번 불고 양피지 문서를 펴고 다음과 같이 읽었다. "하트의 여왕이 파이를 좀 만들었지. 모두 여름 한낮에. 하트의 잭이 그 파이를 훔쳐서 멀리 가져가 버렸네!" "평결을 내리시오!" 왕이 배심원들에게 말했다. "아직 아니에요, 아직!" 토끼가 급히 끼여들었다. "그전에 해야 할 절차가 많습니다." "첫번째 증인을 불러라!" 왕이 말했다. 그러자 흰토끼가 트럼펫을 세 번 불고 외쳤다. "첫번째 증인!" 첫번째 증인은 모자 장수였다. 그는 한 손에 찻잔을 들고, 다른 손에는 버터 바른 빵을 들고 입장했다. "죄송합니다. 폐하." 그는 말했다. "이런 것을 가지고 들어와서요. 하지만 소환을 받았을 때는 차를 마시던 중이었습니다." "다 마시고 왔어야지." 왕이 말했다. "언제 차를 마시기 시작했느냐?" 모자장수는 돌마우스와 팔짱을 끼고 그를 따라 법정에 들어온 3월 산토끼를 쳐다보았다. "제 생각에 3월 14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가 말했다. "15일이었어." 3월 산토끼가 말했다. "16일이야." 돌마우스가 말했다. "저것을 기록해 두어라," 왕이 말하자 배심원들은 열심히 석판에 세 날짜를 모두 적고 그 대답을 한마디 한마디 다 기록해 두었다. "네 모자를 벗어라!" 왕이 모자 장수에게 말했다. "이건 제 것이 아닙니다." 모자 장수가 말했다. "훔친 거로군!" 왕이 배심원을 돌아보며 외치자, 즉시 그들은 그 사실을 석판에 적었다. "팔 물건입니다." 모자 장수가 설명을 덧붙였다. "제 것은 없습니다. 전 모자장수거든요." 이때 여왕이 안경을 끼고 모자장수를 뚫어지게 노려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모자장수는 하얗게 질려 안절부절하지 못했다. "증언을 하라!" 왕이 말했다. "초조해하지 말고, 아니면 널 당장 처형하겠다!" 이 말도 그 증인에게 용기를 주지 못한 것 같았다. 그는 쉴새없이 다리를 떨며 여왕을 불안하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혼란스러운 통에 버터 바른 빵대신 찻잔을 크게 한입 깨물었다. 바로 이 순간에 앨리스는 아주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이 느낌이 뭔지 알아내기까지 앨리스는 아주 묘한 기분이었다. 몸이 다시 커지기 시작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앨리스는 처음에 일어나서 법정에서 나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는 앉아 있을 공간이 남아 있는 한 자리에 그냥 있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밀지 마." 옆에 앉아 있던 돌마우스가 말했다. "숨도 못 쉬겠어." "어쩔 수 없어," 앨리스가 아주 힘없이 말했다. "자라고 있거든." "넌 여기서 자랄 권리가 없어." 돌마우스가 말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마." 앨리스는 대담하게 말했다. "너도 자라고 있잖아." "그래, 하지만 난 상식적인 속도로 자란다구." 돌마우스가 말했다. "그렇게 우스꽝스럽게 자라지는 않는다구!" 그리고는 아주 퉁명스럽게 일어나서 법정의 반대편으로 건너가 버렸다. 그 동안 내내 여왕은 모자 장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돌마우스가 법정을 건너갈 때, 법정의 병사 한 명에게 말했다. "지난 음악회 때 가수들의 명단을 가져오너라!" 이 말에 불쌍한 모자 장수는 너무 떨어서 신발 두 짝이 모두 벗겨져 나갔다. "증언을 하라!" 왕이 화가 나서 다시 한번 말했다. "아니면, 네가 긴장을 했건 안했건 너를 처형시켜 버릴 테다!" "전 보잘것없는 사람입니다. 폐하." 모자 장수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전 차를 마시기 시작하지 않았었습니다. -일주일 정도도 넘게- 그리고 왜 버터 바른 빵이 그렇게 얇아졌는지, 그리고 차가 반짝이는 것이-" "뭐가 반짝인다구?" 왕이 말했다. "반짝이는 것이 차로부터 시작됐다구요." 모자 장수가 대답했다. [역자 주 ; 모자 장수의 대답 "It began with the tea." 를 왕은 "It began with the 'T'"로 알아들었다. 그래서 "twinkle(반짝이다.)"는 당연히 "T"로 시작된다고 말한다.] "물론 반짝이는 것은 티로 시작하지." 왕이 날카롭게 말했다. "날 저능아로 보나? 계속해!" "전 불쌍한 사람입니다." 모자 장수가 계속했다. "그 일이 있은 후 모든 것이 반짝이기 시작했습니다. -3월 산토끼가 말하기를-" "난 안 그랬어!" 3월 산토끼가 황급히 끼여들었다. "그랬어!" "부인합니다!" 3월 산토끼가 말했다. "그가 부인했다." 왕이 말했다. "그 부분을 삭제하라!" "저, 어쨌든, 돌마우스가 말했습니다.-" 모자 장수는 돌마우스도 부인할까봐 걱정스럽게 둘러보며 말했다. 하지만 돌마우스는 깊이 잠들어서 아무 것도 부인하지 않았다. "그 후로," 모자 장수가 계속했다. "전 버터 바른 빵을 좀 더 잘라서-" "하지만 돌마우스가 무슨 말을 했습니까?" 배심원 중 하나가 말했다. "기억나지 않습니다." 모자 장수가 말했다. "반드시 기억해내야 한다." 왕이 말했다. "아니면 널 사형시키겠다." 불쌍한 모자장수는 찻잔과 버터 바른 빵을 떨어뜨리고는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전 보잘것없는 사람입니다, 폐하." 하고 말했다. "넌 정말 보잘것없이 말하는구나." 왕이 말했다. 여기에서 기니 피그 한 마리가 환호성을 질렀다. 즉시 법정의 관리에게 주의를 받았다. (이해를 돕기 위해 주의 받은 방식을 설명해야겠다. 그 법정의 관리들은 두꺼운 천으로 된 커다란 자루 속에 기니 피그를 머리부터 집어넣고 입구를 줄로 동여 맨 후 그 위에 깔고 앉았다.) [역자 주 ; "suppressed"라는 단어가 '주의를 주다, 금지 시키다.' 라는 뜻과 '누르다, 억압하다'라는 뜻을 가진데서 착안한 말장난이다.] "어떻게 하는 건지 이제 알겠어." 앨리스는 생각했다. "신문에서 재판의 끝에 '박수를 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법정 관료에 의해 주의를 받았다'고 쓰인 것을 자주 읽었는데, 지금까지 그게 무슨 뜻인지 잘 몰랐거든." "아는 걸 다 말했다면 내려가도 좋다." 왕이 말했다. "내려갈 곳이 없는데요." 모자 장수가 말했다. "전 보시다시피 마루 위에 서 있습니다." "그렇다면 앉아도 좋다." 왕이 대답했다. 여기서 다른 기니 피그가 환성을 질렀다. 그리고 곧 눌렸다. "이제 기니 피그는 남지 않았군." 앨리스는 생각했다. "좀 더 잘 진행되겠네." "차를 마저 마시고 싶습니다만." 모자장수는 가수의 명단을 읽고 있는 여왕을 걱정스럽게 쳐다보고는 말했다. "가도 좋다." 왕이 말하자 모자 장수는 신발은 다시 신지도 않고서 급히 법정을 떠났다. "-밖에서 그의 머리를 쳐라!" 여왕이 법정의 관리 중 하나에게 말했다. 하지만 그가 문으로 가기도 전에 모자 장수는 보이지 않았다. "다음 증인을 불러라!" 왕이 말했다. 다음 증인은 공작부인의 요리사였다. 후추 상자를 들고 왔기 때문에 문가에 있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재채기를 해대는 것을 보고 앨리스는 그 증인이 들어오기도 전에 누구인지 알아챌 수 있었다. "아는 것을 다 말하라!" 왕이 말했다. "못하오!" 요리사가 말했다. 왕이 흰토끼를 걱정스럽게 쳐다보자 토끼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 증인에게는 유도 심문을 해야겠습니다. 폐하." "그래야 한다면, 그래야지." 왕이 처량한 목소리로 말하고 팔짱을 낀 후에 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찡그리며 요리사를 째려보다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파이는 뭘로 만들지?" "대부분, 후추로요." 요리사가 말했다. "꿀," 그녀의 뒤에서 졸린 목소리가 말했다. "저 돌마우스를 잡아라!" 여왕이 비명을 질렀다."저 돌마우스의 목을 쳐라! 저 돌마우스를 법정에서 끌어내라! 눌러라! 꼬집어라! 수염을 몽당 뽑아내라!" 잠시동안 돌마우스를 법정에서 끌어내느라 법정 안이 아수라장이 되었다. 다시 주위가 정리되었을 때 요리사는 사라지고 없었다. "괜찮아!" 왕이 크게 안도하며 말했다. "다음 증인을 불러라!" 그리고 여왕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여보, 다음 증인은 당신이 유도 심문해야 하오. 유도 심문에 머리가 다 지끈거리오." 앨리스는 흰토끼가 명단을 훑어보는 동안 다음 증인은 어떨지 아주 궁금했다. "-아직까지 증거가 별로 없어." 앨리스는 속으로 말했다. 마침내 흰토끼가 그 작은 목소리를 떨면서 소리 높여 부른 것은 놀랍게도 이 이름이었다. "앨리스!" Continue.. 12장 - 앨리스의 증언. "여기 있어요!" 앨리스는 순간적으로 지난 몇 분 동안 자신이 얼마나 커졌는지 까맣게 잊고서 소리쳤다. 그리고 서둘러 벌떡 일어나는 바람에 배심원석을 치맛자락으로 뒤집어 버렸다. 배심원들은 아래쪽의 군중들 머리위로 엎어져 여기저기 쭉 뻗어 있었다. 이 광경은 앨리스에게 한 주 전에 둥근 어항을 뒤엎었을 때의 금붕어들의 모습을 연상시켰다. "아, 미안해요." 앨리스는 울기라도 할 듯이 소리치고, 최대한 빨리 그들을 배심원 석에 주워담기 시작했다. 머릿속에서 금붕어 사건이 떠나지 않아 당장에 도로 주워 모으지 않으면 그들이 곧 죽어버릴 것이라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었기 때문이다. "재판을" 왕이 아주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배심원들이 모두 제자리를 찾기 전까지는 진행할 수 없다! 전부 다!" 그는 앨리스를 무섭게 쳐다보며 이 말을 크게 강조했다. 앨리스는 배심원석을 보고 자신이 허둥지둥하는 바람에 그만 도마뱀을 거꾸로 담아놓은 것을 알았다. 그 불쌍한 작은 동물은 움직이지 못하고 처량하게 꼬리를 이리저리 흔들 뿐이었다. 앨리스는 다시 그를 꺼내어 제대로 집어넣었다. "무슨 상관이야." 앨리스는 속으로 말했다."바로 세워 놓으나 거꾸로 놓으나 재판에는 별 차이도 없을 텐데." 뒤집어진 충격에서 조금 회복되고, 제각기 석판과 연필을 찾아 들자마자, 배심원들은 도마뱀을 빼고 전부가 아주 근면하게 사고의 정황에 대해 적기 시작했다. 도마뱀은 너무 충격을 받아서 입을 벌리고 법정의 천장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일밖에 할 수 없는 듯이 보였다. "이 일에 대해 아는 것이 있는가?" 왕이 앨리스에게 말했다. "아무 것도 모릅니다." 앨리스가 말했다. "아무 것도?" 왕이 다시 물었다. "아무 것도요." 앨리스가 말했다. "이건 아주 중요해." 배심원을 돌아보며 왕이 말했다. 배심원들이 막 석판에 이 말을적기 시작할 때 흰토끼가 끼여들었다. "사소하다는 말씀이시겠죠, 물론. 폐하." 아주 공손하게 말했으나 얼굴은 잔뜩 인상을 쓰고 있었다. "물론, 사소하지. 내 말이 그 말이야." 왕이 급히 정정했다. 그러나 혼자서 목소리를 낮춰 계속 중얼거렸다. "중요-사소-중요-사소-중요-" 어떤 단어가 좋게 들리는지 시험해 보는 것 같았다. 그래서 어떤 배심원은 "중요한"이라고 적고, 어떤 배심원은 "사소한" 이라고 적었다. 앨리스는 그들의 석판을 넘겨다 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있었으므로 이런 광경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 상관없어. "앨리스는 혼자 생각했다. 바로 이 순간에 잠시동안 자신의 노트에 무언가를 열심히 적고 있던 왕이 외쳤다. "조용!" 그리고 그의 노트를 크게 읽었다. "규칙 42항, 키가 1 킬로미터를 넘는 사람은 법정을 떠나야 한다." 모두들 앨리스를 쳐다보았다. "제 키가 1킬로미터는 안 돼요." "아냐." 왕이 말했다. "거의 2킬로미터는 돼." 여왕이 거들었다. "어쨌든 전 나가지 않을 거예요." 앨리스가 말했다. "그건 정식 법률이 아니에요. 방금 만들어낸 거잖아요." "이건 가장 오래된 규정이야." 왕이 말했다. "그렇다면 그게 제 1항이었어야죠." 앨리스가 말했다. 왕은 하얗게 질려서 노트를 탁- 덮었다. "평결을 내려라!" 그는 낮고 떨리는 목소리로 배심원들을 보고 말했다. "아직 증거가 더 있습니다, 폐하." 황급히 펄쩍 뛰면서 흰토끼가 말했다. "이 쪽지가 발견되었습니다." "뭐라고 써있지?" 여왕이 말했다. "아직 펴보지 않았습니다." 흰토끼가 말했다. "겉으로 봐선 편지 같습니다. 죄수가 보내는 편지요. 누군가-에게." "그렇겠지." 왕이 말했다. "안 그러면 아무한테도 보내지 않은 게 되는데 그건 아주 드문 경우거든." "누구에게 보낸 겁니까?" 배심원중 한사람이 말했다. "적혀 있지 않습니다." 흰토끼가 대답했다. "사실, 겉에는 아무 것도 적혀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종이를 펴며 말했다. "이건 편지가 아닌데요, 시입니다." "죄인의 필적인가요?" 다른 배심원이 말했다.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흰토끼가 말했다. "참 이상하군요." (배심원들은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들이었다.) "다른 사람 글씨체를 흉내냈을 수도 있지." 왕이 말했다.(배심원들의 표정이 다시 밝아졌다.) "폐하, 제발," 잭이 말했다. "제가 쓴 게 아닙니다. 그걸 증명할 수도 없을 겁니다. 그 끝에 아무 서명도 돼 있지 않으니까요." "네가 서명하지 않았다면," 왕이 말했다. "그건 일을 더 악화시킬 뿐이야. 어떤 속임수를 쓰려는 의도가 없었다면 정직한 사람답게 자신의 이름을 썼을 테니까." 모두가 이 말에 손뼉을 쳤다. 오늘 처음으로 왕이 똑똑한 말을 했기 때문이다. "저자가 유죄라는 것이 입증됐다." 여왕이 말했다. "그러니 저자의 목을-." "입증된 건 아무 것도 없어요!" 앨리스가 말했다. "당신들은 그 종이에 무슨 내용이 써 있는지도 모르잖아요!" "그것을 읽어라." 왕이 말했다. 흰토끼가 안경을 썼다. "어디서부터 읽을까요? 폐하." 그가 물었다. "처음부터 읽어라." 왕이 아주 엄숙하게 말했다. "그리고 끝까지 읽고, 끝내라." 법정 안엔 적막이 감돌았다. 그리고 흰토끼가 다음과 같은 시를 읽었다. "사람들이 네가 그녀를 찾아갔고 내 얘기를 그에게 했다고들 하더군. 그녀는 날 좋게 말했지만 내가 수영은 할 줄 모른다고 했다지. 그는 내가 떠나지 않았다고 그들에게 전했지. (우리는 이것이 진실이라는 것을 알지) 그녀가 이 일을 계속 강요한다면 넌 어떻게 되는 거지? 나는 그녀에게 하나를 주고, 그들은 그에게 두 개를 줬네. 너는 우리에게 세 개, 그보다 더 많이 주었지. 그것들은 모두 그로부터 너에게 돌아갔지. 전에는 내 것이었지만. 만일 나나, 그녀가 우연히 이 일에 말려든다면 그는 네가 그들을 풀어줄 거라고 믿는다네. 우리가 전에 바로 그랬듯이. 나는 알지, 네가 (그녀가 변덕을 부리기 전에) 장애물이었다는 것을 그와, 우리와, 그리고 그것사이에 놓인. 그녀가 그것들을 가장 좋아한다는 것을 그에게 알리지 마라. 왜냐하면 이 사실은 영원히 너와 나만 아는 비밀이니까, 다른 사람은 모르게 해야지. "이제까지 들은 증언 중에 가장 결정적인 것 같군." 손바닥을 문지르며 왕이 말했다. "그러니까 이제 배심원들은 평결-" "만일 한사람이라도 그걸 설명할 수 있다면," 앨리스가 말했다. (요 몇 분 사이에 아주 커져 있었기 때문에 왕의 말을 가로 막는 것이 전혀 두렵지 않았다.) "전 그에게 6펜스를 주겠어요. 그 시에 무슨 의미가 담겨 있다고는 눈꼽만치도 믿지 않아요." 배심원들은 모두 석판에다 "앨리스는 그 시에 무슨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을 눈꼽만치도 믿지 않는다." 라고 적었다. 그러나 아무도 시에 대해 설명해 보려 하지 않았다. "만일 그 시가 아무 의미도 없다면," 왕이 말했다. "아주 커다란 수고를 덜겠지. 무슨 뜻인지 알아내려고 애쓸 필요가 없을 테니까. 하지만 글쎄다." 그는 시를 자신의 무릎 위에 펴놓고 한눈으로 그것을 살펴보며 말했다. "어쨌든 난 이 시가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 것 같단 말야. '-내가 수영은 할 줄 모른다고 했다....' 넌 수영을 할 줄 모르지? 그런 가?" 그는 잭을 돌아보며 말했다. 잭은 머리를 슬프게 저으며 말했다. "제가 그런 걸 좋아할 것 같습니까?" (분명 그도 그럴 것이, 그의 몸은 온통 종이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좋아, 아직까지는." 왕이 말했다. 그리고 시를 혼자 중얼거리며 말을 이어나갔다. "'-우리는 그것이 진실이라는 것을 안다.-' 이건 분명히 배심원을 말하는 거고, - '만일 그녀가 이 일을 계속 강요한다면-'은 여왕이 틀림없어. '너는 어떻게 되지?' -으응, 그래.- '난 그녀에게 하나를 주고, 그들은 그에게 두 개를 주고-' 아아, 이건 잭이 파이를 어떻 게 했는지 말하는 거야. -" "하지만 뒤에 '그들은 모두 그로부터 너에게 되돌아갔다.'라고 이어지잖아요." 앨리스가 말했다. "자, 저기 저렇게 있잖아." 왕이 탁자 위의 파이를 가리키며 의기 양양하게 말했다. "저것 보다 확실한 게 어딨어? 그리고- '그녀가 변덕을 부리기 전에'-여보, 당신은 변덕을 부리지 않지?" 그가 여왕에게 말했다. "그래요!" 여왕은 격노해서 대답하며 잉크병을 도마뱀에게 집어던졌다. (그 불쌍한 작은 빌은 석판에 아무 표시가 남지 않는 것을 보고 한 손가락으로 쓰는 것을 그만두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자신의 얼굴에 튀어 흘러내리는 잉크를 사용해서 급히 다시 석판에 쓰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그 말은 당신에게 맞지 않는구료." [역자 주 ; 왕이 위에 한 말에서는 'fit'라는 단어가 '변덕'이라는 뜻으로 쓰였고, "The words don't fit you."에서는 '맞는, 적합한' 이라는 뜻으로 쓰였다.] 미소지으며 법정을 둘러보며 왕이 말했다.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이건 발음이 같을 뿐이야." 왕이 아주 화난 목소리로 말하자 모두가 킥킥거렸다. "배심원들은 평결을 내리시오!" 왕이 말했다. 하루동안 그 말을 스무 번도 넘게 했을 것이다. "아냐, 아냐" 여왕이 말했다. "선고를 먼저 내리고 다음에 평결을 내려라." "말도 안 되는 소리!" 앨리스가 크게 말했다. "선고를 먼저 내리다니!" "입 다물어!" 여왕이 울그락 푸르락해져 말했다. "그러지 않을 거예요." 앨리스가 말했다. "저 아이의 목을 베라!" 여왕은 악을 쓰며 외쳤다. 하지만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누가 너한테 신경이나 쓴데?" 앨리스가 말했다. (이때쯤 앨리스는 자신의 본래 크기만큼 커져 있었다.) "카드일 뿐인 주제에!" 이러자 모든 카드들이 허공으로 날아올라 앨리스를 향해 쏟아져 내렸다. 앨리스는 한편으로는 겁나고, 한편으로는 화가 나서 작게 비명을 지르며 그들을 쳐서 떨어뜨리려고 팔을 휘저었다. 그리고 갑자기 언니의 무릎을 베고서 강둑 위에 누워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언니는 앨리스의 얼굴로 떨어져 내린 낙엽들을 부드럽게 쓸어 내버리고 있었다. "앨리스, 일어나." 언니가 말했다. "참 오래도 자는구나." "아, 참 이상한 꿈을 꿨어." 앨리스는 이렇게 말하고 방금 여러분이 읽은 이상한 모험 얘기들을 기억할 수 있는 한 모두 언니에게 말해 주었다. 이야기가 끝나자 언니는 앨리스에게 입을 맞추고 이렇게 말했다. "정말 이상한 꿈이구나. 하지만 차 시간에 늦지 않으려면 달려가야겠네." 앨리스는 일어나 달려가며 참 멋진 꿈이었다고 생각했다. 앨리스가 떠난 후에도 언니는 턱을 괴고, 해가 지는 것을 바라보며 그 자리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리고 작은 앨리스와 그 놀라운 모험에 대한 생각에 잠겼다. 그러자 그녀 또한 그와 비슷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 꿈은 다음과 같았다. 먼저, 그녀는 작은 동생 앨리스의 꿈을 꾸었다. 다시 한 번 앨리스는 그 작은 손으로 그녀의 무릎을 꼭 잡고, 초롱초롱하게 반짝거리는 두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앨리스의 목소리를 살아 있는 듯 들을 수 있었고, 눈으로 들어가곤 하는 흩어진 머리칼을 뒤로 보내느라고 머리를 반짝 치켜드는 그 앙증맞은 몸짓도 보았다. -그녀는 들을 수 있었다, 아니, 들리는 것 같았다.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이 동생의 꿈에 나왔던 신기한 생물들로 살아 움직이는 것을. 긴 풀잎들이 발 밑에서 살랑거릴 때 흰토끼가 허둥지둥 지나가고, -놀란 쥐가 옆에 있는 강속으로 첨벙 뛰어들었다. 그녀는 3월 산토끼와 그 친구가 끝없는 식사 시간에 달그락거리며 찻잔을 부딪치는 소리와 여왕이 운 나쁜 귀빈들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째진 목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공작부인의 무릎 위에 안긴 돼지 아기의 재채기 소리, 그 주위에 쟁반과 접시가 부딪쳐 깨지는 소리, 그리폰의 울음소리, 도마뱀의 석판 연필이 끽끽거리는 소리, 짓눌린 기니 피그의 숨막혀하는 소리들이 처량한 모조 거북의 흐느낌과 뒤섞여 허공을 가득 메웠다. 이렇게 그녀는 자신이 이상한 나라에 있다고 믿으며 눈을 감은 채로 앉아 있었다. 하지만 다시 눈을 뜨면 모든 것이 지루한 현실로 돌아갈 것이라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발 밑에서 바스락거리던 풀잎은 바람 속에서 살랑거릴 뿐이고, 잔물결이 이는 웅덩이는 갈대가 물결치는 것으로 바뀔 것이었다. 찻잔이 달그락거리는 소리는 양목에 걸린 방울이 딸랑거리는 소리로, 여왕의 날카로운 외침은 양치기 소년의 목소리로, 그리고 아기의 재채기 소리와 그리폰의 울음소리, 그리고 다른 소리는 바쁜 농장에서 들리는 웅성거림으로 변할 것이었다.(그녀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그리고 멀리서 들려오는 소의 음매소리는 모조 거북의 무거운 흐느낌 소리를 대신할 것이었다. 그녀는 동생이 나중에 성인이 되었을 때를 그려보았다. 그리고 앨리스가 성인이 되어서도 이 단순하고 사랑이 가득한 아이다운 마음을 지켜나갈 수 있을지 생각했다. 앨리스가 아이들을 모아놓고 가지가지 이상한 이야기를 해주면 아이들은 호기심으로 가득 차 눈을 반짝거리며 귀 기울일 것이다. 이때 오래 전의 이상한 나라에 대한 꿈도 한몫 할 것이다. 그녀는 앨리스가 그 아이들의 단순한 슬픔을 느끼고, 그들의 작은 즐거움 속에서 기쁨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자신의 어린 시절과 행복했던 여름날을 기억한다면....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