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즈가든 1-5 作 : 코노하라 나리세 ( 木原音瀨 ) 畵 : 카다 미찌루 ( 禾田 michiru ) 出處 : 잡지 i's 2000년 1,3,5월호 中語譯 : psycho 韓語譯 : 茶迷 (다미) 하늘을 가릴 듯이 빽빽이 우거진 나뭇가지와 겹겹의 나뭇잎들이 태양광선을 차단해, 감람수 숲은 낮에도 완전히 저녁처럼 어둑어둑했다. (* 감람수 = 올리브 나무) 무성하게 나 있는 잡초를 밟으며, 스네아는 커다란 나무들 사이를 통과해서 달리고 있었다. 낙엽과 잡초로 덮인 지면은 언제 어디서 갑자기 딱딱한 나무뿌리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일이라, 불안한 걸음걸이의 작고 여린 신체는 몇 번이나 앞으로 고꾸라지곤 했다. 넘어지는 신체를 지탱할 수 없어서, 비틀거리며 눈앞에 있던 나무줄기를 붙잡았다. 그 상태로 고개를 숙이고 격하게 숨을 몰아 쉬었다. 걸음을 멈추고, 할머니와의 최후의 말다툼을 떠올린 스네아는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나무등걸을 걷어찼다. 그와 동시에 "까-악-"하는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며, 머리 위에서 파닥파닥하고 새들이 날개를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란 스네아는 그 자리에 엎드려서 두 손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까악까악-하는 날카로운 울음소리는 메아리처럼, 먼 곳으로부터 울려 왔다. 그리고 나자 사람을 겁에 질리게 만드는 침묵이 급속히 숲 속을 지배했다. "감람수 숲에 가까이 가면 안 된다. 낮이라도 절대 안돼. 그 곳은 괴물과 악마의 놀이터란다. 어린애가 가까이 가는 날엔, 그놈들에게 잡혀서 머리에서부터 시작해서 와구와구 잡아먹히고 말 거야." 할머니가 한 말을 떠올리고, 허둥지둥하며 고개를 돌려 들어온 길을 찾아보았다. 그러나, 보이는 것은 왼 쪽이건 오른 쪽이건 온통 똑같은 나무들뿐이었다. 자신이 도대체 어디로 들어 왔는지조차 이미 분간할 수가 없었다. 겁에 질려서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만약 이대로 날이 저문다면 어떻게 집으로 돌아갈 것인가. 아직 어린아이인 자신은 악마에게 잡아 먹혀 버릴 것이다. "숲을 빠져나가자"라고 결정하고 일어서긴 했지만, 어느 쪽으로 가야할 지 전혀 모르는 것이다. 어느 방향이나 다 맞는 것도 같고, 또 틀린 것도 같았다. 이 때, 마른 잎을 밟는 파삭파삭하는 소리가 들렸다. 스네아는 그대로 등뒤의 나무에 몸을 기대고 덜덜 떨고 있었다. 할머니는 어른도 이 숲 속엔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했었다. 만약 사람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의 발소리란 말인가. 점점 가까워진다. 갑자기 옆에 있는 작은 나뭇가지가 힘껏 밟히는 소리가 남과 동시에 머리 속에서 무언가가 깨어져 나갔다. 스네아는 크게 비명을 지르며 목표도 없이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할머니.....할머니...." 방금 전에 실컷 싸웠던 상대의 이름을 웅얼거리며 '살려달라'고 간구했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다시는 페니네 송아지에게 장난치지 않을게요. 묘지의 시체를 두고 농담을 하지도 않을게요. 일요일엔 꼬박꼬박 교회에 나갈게요. 그러니까 빨리 와서 나를 구해줘요. 부탁이에요....... 불현듯 시야가 밝아지기 시작했다. 칠흑 같던 마음도 확 밝아졌다. 숲은 스네아의 등뒤에서 끝나 있었고, 눈앞에는 광대한 초원이 나타났다. 오른 쪽에는 높지 않은 언덕과, 두 갈래로 갈라진 황토색의 오솔길이 있었다. 언덕의 평원 위에는 작은 내가 흐르고 있었다. 이런 곳은 아무래도 처음 본다. 마을 근처에 이렇게 큰 초원이 있는 지 여태 모르고 있었다. 오솔길은 언덕을 통과하는 것과, 숲을 끼고 도는 것의 두 가지 길로 나뉘어져 있었다. 스네아는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언덕을 통과하는 길을 선택했다. 숲 근처는 다시는 걸어가고 싶지 않았다. 그 길을 따라 걷다보면 분명 누군가가 지나갈 것이다. 그 때, 토르네 마을로 갈려면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물어보기로 하자. 초원의 바람은 무척 세차서 달랑 셔츠 한 장만을 입은 신체는 추위를 느끼고 미미하게 떨려왔다. 언덕을 통과하자 또 다시 황량한 초원이 나왔다. 걸어도, 걸어도, 집은커녕 사람도 한 명 보이지를 않았다. 두 다리는 막대기처럼 뻣뻣하게 굳어지고, 배가 고파서 등가죽이 배에 달라붙을 지경이었다 . 그래서 저 멀리, 가옥을 둘러싼 담 같은 것이 보였을 때는 망설일 것도 없이 신이 나서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최초의 기쁨은, 그 집에 가까워짐에 따라,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위화감으로 변해갔다. 집 주위의 벽돌담은 어른 키보다도 더 높았다. 고개를 빼들고 쳐다봐도 담 위로는 처마만 겨우 보일 뿐이었다. 세찬 바람이 불어와서 목을 움츠리고 담 주위를 한 바퀴 돌아보았다. 길을 마주 보고 있는 대문 외에 다른 출입구는 없었고, 그 대문도 자물쇠가 잠겨 있어서 정원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안에서 누군가 나와서 여기가 어디인지 알려주지 않으려나...이렇게 생각하면서 스네아는 집 앞의 길에서 끊임없이 왔다 갔다 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견고한 문안에선 누군가 나오는 기척 같은 것은 없었다. 시험 삼아 손잡이를 잡고 철문을 밀어 보았더니, 뜻 밖에 쉽게 안 쪽으로 움직여서 스네아는 깜짝 놀랐다. 철문은 끼익끼익 소리를 내면서 크게 열렸다. 담 안쪽의 정원에는 융단처럼 푸릇푸릇한 잔디가 깔려 있었고, 화단을 따라 벽돌담이 만들어져 있었다. 꽃은 피어있지 않았지만 녹색의 이파리가 무척 무성했고, 잡초도 자라 있지 않았다. 이렇게 아름다우려면 평소에 얼마나 정성 들여서 가꾸었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높다란 담과 아름다운 정원의 정 중앙에 작은 집이 한 채 외로이 서있었다. 빛 바랜 붉은 색의 처마 틈 사이로 잡초가 돋아나 있었다. 벽 위의 흙도 조금 떨어져 나가 있었다. 무척 오래되어 보이는 집이었지만, 정원의 모습으로 보아, 그래도 누군가 살고 있는 듯 했다. "안녕하세요." 스네아는 문 밖에서 소리쳤다. 목소리는 정원의 녹색에 흡수되어 사라져버렸다. 맘대로 들어「 화내겠지...... 하지만 사정을 말하지 않으면 이해 받을 방법이 없다. 전전긍긍하며 발걸음을 담의 안 쪽으로 옮겨서, 조심스럽게 집 현관에 이르렀다. 현관 앞에는 주위보다 한 계단 높은 흰색의 돌이 깔려 있었고, 그 돌의 틈 사이로 잡초가 밟힌 흔적이 있었다. "죄송합니다. 계세요?" 힘을 모아 탕탕 나무문을 두드렸다. 문안에서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문을 밀어 보았지만 철문처럼 쉽게 열리지 않았다. 손을 내리고 한 숨을 쉬는 순간, 눈앞의 문이 끼익끼익하며 진동하더니, 천천히 바깥쪽으로 움직였다. 눈 안에 뛰어 들어온 것은 햇빛처럼 눈부시게 빛나는 금발머리였다. 스네아는 그대로 고개를 들고 입을 벌리고 있었다. 이렇게 태양처럼 밝은 금색은 이 전에는 결코 본 적이 없었다. 우유처럼 하얀 피부에, 할머니가 가지고 계신 녹주석보다도 더 투명한 밝은 녹색의 눈동자. 인조가 아닌지 의심스러울 만큼 단정해서, 마치 인형처럼 보이는 사람이 앞에 서있었다. 처음엔 남자인지 여자인지 몰랐다. 그러나 그가 흰 색의 셔츠에 검은 색의 바지를 입고 있는 것을 보고, 분명 남자일 거라고 추측했다. "어린아이로구나...." 카나리아처럼 화려한 음성. "어떻게 이런 곳에 오게 되었니." "그건....." 그 녹색의 눈동자를 보고 있자니, 마치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가슴의 두근거림을 누르고, 스네아는 조리 없이 대답했다. "할머니랑 싸워서.....감람수 숲으로 달려갔는데, 언제 이 곳으로 오게 되었는지...." 녹색의 눈이 경악으로 크게 떠졌다. "감람수 숲을 통해서 왔다고? 무척 용감하구나. 그 곳은 악마랑 괴물이 사는 곳이야. 대낮이라 하더라도 잡혀갈지도 모른단 말야. 용케도 무사히 여기까지 왔구나." 금색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렸다. "숲 속엔 들어가면 안 된다고 어른들이 네게 알려주지 않았니?" "말해줬지만...." 분명치 않게 입 속으로 웅얼거렸다. 흰 손바닥이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으며, 남자는 아름다운 얼굴로 스네아를 향해 미소지었다. "돌아갈 때는 집 앞의 길을 따라 똑바로 북쪽으로 가. 감람수 숲과 반대방향으로 가면 돼. 그리고 나서 네네카 마을을 통해 나가면 되는 거야. 감람수 숲에는 다시는 들어가면 안돼." "응." 건성으로 대답하면서, 스네아는 교회의 벽화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 그림에서는 천사들이 신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만약 세상에 정말 천사가 있다면 분명 이 사람처럼 생겼을 게 틀림없다. 금색의 머리카락, 카나리아 같은 음성. 이 세상 사람 같지 않은 아름다운 모습. "그럼 조심해." 그 순간 갑자기 배에서 꼬르륵 하는 소리가 났다. 부끄러워서 얼굴이 붉어졌다. 뜻 밖에, 남자는 입을 다물고 가볍게 웃음 지었다. "배고파?" 숨기고 싶어도 별 수 없어서,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안으로 들어와. 내가 먹을 것을 가져다줄게." 재촉 당해서, 집안으로 들어갔다. 집안은 아주 가지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목재 테이블 옆에는 두 개의 의자가 놓여 있었다. 벽 쪽에는 이미 오랫동안 사용해 온 듯한 말안장이 아무렇게나 놓여 있었다. 무척 낡았을 뿐만 아니라, 어딘지 모르게 쓸쓸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벽 위에 그림이나 부조 장식품 하나 걸려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안내되어 온 안쪽의 방안에는 창이 무척 많아서, 그 창을 통해 햇빛이 찬란하게 쏟아져 들어와서 굉장히 따듯했다. 작은 방의 중앙에는 티 테이블이 놓여 있고, 창가에는 커다란 흔들의자가 있었으며, 그 맞은편에는 나무의자가 하나 놓여 있었다. 남자가 없었기 때문에 스네아는 고양이처럼 긴장해서는 그 나무의자 위에 앉아 있었다. 남자는 여전히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스네아는 두 다리를 예의 없이 늘어뜨린 채 앞뒤로 흔들흔들하고 있었다. 예배 중에도 똑같은 일을 했다가 할머니에게 심하게 꾸중을 들었었다. 끼익-하는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 남자가 쟁반을 가지고 돌아오자, 스네아는 황급히 다리를 흔드는 것을 멈췄다. 티 테이블 위에 놓여진 쟁반 안에는 '이스리' 과일이 들어 있었고, 또 다른 쟁반에는 장미꽃잎이 가득 들어 있었다. (*이 부분은 중어로 번역되지 않고, 그냥 일어 가타가나로 '이스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무슨 과일인지 모르겠군요.) "이건 네가 먹을 거야." 남자는 '이스리' 과일을 가리켰다. "내가 먹을 것은 이 쪽이야." 손가락이 가리키고 있는 것은 선홍색의 꽃잎들이었다. "하지만, 그건 꽃인걸?" "응." 남자는 미소지었다. "사양하지 말고 먹어." 배속이 꾸르륵 하고 울어대서, 스네아는 참지 못하고 이스리 과일로 손을 뻗었다. 청색의 과실을 깨물자 단 맛이 났다. 꿈꾸듯이 과일을 먹으면서, 시선은 아직 남자에게서 떠나지를 못했다. 정말 꽃잎을 먹는 건가, 그렇다면 이 두 눈으로 자세히 보아 두자. 남자는 흔들의자 위에 앉아서, 낡은 가죽 책을 펼친다. 가끔 가다 팔락, 하고 책장을 넘긴다. 마침내 손을 꽃잎 쪽으로 뻗는다고 생각한 순간, 손끝은 다시 책장을 넘기기 위해 책으로 돌아갔다. 역시 꽃 같은 것을 먹을 리가 없지, 이렇게 생각한 스네아는 쟁반을 보고 깜짝 놀랐다. 쟁반 안의 장미꽃들은 시든 것처럼 갈색으로 변해 있었다. 시선을 쟁반에서 옮길 수가 없었다. 왜 꽃들이 갑자기 말라버렸을까. 마치 정기를 흡수당해 버린 것처럼 시들어 버리다니....... "잘 먹었습니다." 스네아는 시선을 깨달은 남자는 미소지었다. 목구멍에서 꿀꺽, 소리가 났다. 무서웠지만,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거, 왜 갈색으로 변했어? 방금 전 까진 아직 예쁜 색이었는데....." 남자의 얼굴에 불쾌한 표정이 떠올랐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야. 나는 꽃의 정기 외에는 아무 것도 먹을 수가 없어." 꽃의 정기 외에는 아무 것도 먹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 따위는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다. 마음이 순식간에 흑색의 구름으로 덮여 갔다. 할머니가 말한 적이 있다. 악마는 때때로 아름다운 사람의 모습으로 변신해서 인간을 유혹한다고. 그렇다면 눈앞의 사람은 악마가 아닌가. "당신, 악마야?" 순간, 남자의 안색이 크게 변했다. 흔들의자에서 일어나서, 아름다운 금색의 머리를 헝클어뜨리더니, 화가 나서 붉게 상기된 얼굴로 스네아를 응시했다. "정말 혼나야 할 아이구나. 나를 보고 악마라고 하다니, 내 어디가 그렇게 보인다는 거야? 이 금발을 잘 봐. 이렇게 밝고 아름다운 금색은 천계에서도 찾아 볼 수 없어. 나와 아가사님만 가지고 있는 거라고. 게다가 이 눈은 에머랄드 같은 녹색이잖아. 악마, 소위 어둠을 받드는 자들은 이런 녹색의 눈동자를 가질 수가 없단 말이야." 남자의 박력이 이 곳까지 전해져 와서 스네아는 몸을 움츠렸다. 남자는 손바닥을 이마에 대고 한 숨을 쉬더니 비틀거리며 흔들의자로 털썩 주저앉았다. "네가 나를 보고 이상하다고 느끼는 것도 말이 안 되는 것은 아니야. 이렇게 장기간 인간 세상에 머물러 있는 천사는 없지.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평상시엔 천계에서 생활하고, 시찰할 때만 인간계로 내려오는 것이 정상이야." 녹색의 눈에서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얼마나 돌아가고 싶은지, 나도 얼마나 천계로 돌아가고 싶은지 몰라. 좁고 낡은 집은 이미 충분히 참았어. 천계의 궁정에는 아름다운 정원도 있고, 그 곳에 가면 다시 한 번 아가사님을 모실 수도 있어." 슬프게 우는 모습을 보고, 스네아는 남자의 앞으로 달려갔다. "울지 마아..... 괜찮아. 분명히 돌아갈 수 있을 거야." 남자는 눈가의 눈물을 닦고 스네아를 바라봤다. 울 때도 역시 굉장히 아름다운 남자다. "고마워. 위로일 뿐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기뻐. 너는 상냥한 아이구나." 남자는 방금 전까지 그렇게 울고 있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화사하게 웃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나, 아직 네 이름도 묻지 않았네. 이름이 뭐야?" "스네아." 남자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상한 이름이네. 요즘엔 이런 이름들이 특히 많은 것 같아......뭐.....상관없어." 그는 흔들의자에서 일어나서 스네아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뭔가 혼잣말을 하듯이 입술을 달싹거리더니 식지로 스네아의 이마를 가볍게 눌렀다. "꽃의 수호천사, 카일의 이름으로, 스네아는 일생동안 꽃의 사랑을 받으리라." 남자의 손가락이 떠나가는 순간, 몸에 미미한 온기가 느껴졌지만, 그것은 다만 일 순간이었을 뿐이었다. "나는 카일이야. 꽃의 수호천사지." "꽃의 수호천사?" 카일은 오만하게 미소지었다. "하지만 방금 그 꽃은 시들어버렸잖아?" 그러자 카일의 표정은 즉시 절망의 표정으로 변하더니, 두 손으로 얼굴을 덮고, 큰 소리로 흐느끼기 시작했다. 순간 그런 상황에 놀라서, 엉겁결에 위로하고자 천사를 껴안은 스네아는, 남자의 감정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지 알 수가 없었다. "이런 몸으로 변해버린 건, 모두 다 그 악마 때문이야. 나는 악마에게 잡혀 있어. 아, 이미 끝났어. 이런 나는 아무 도와주러 오지 않을 거야. 아가사님은 내 일 따위는 전부 잊어버리셨을 거야." "내가 당신을 도와줄게." 카일의 슬픔에 영향을 받은 듯, 스네아도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카일은 아이의 머리를 껴안고 다정하게 어루만졌다. "고마워. 정말 상냥한 아이구나. 하지만 인간은 그 악마에게 대항할 수 없어. ....그가 소유하고 있는 힘은 정말 놀라워." 등이 떨려 왔지만, 이런 '공포'에 굴복할 수는 없다. "나와 함께 도망가자. 할머니가 분명히 카일을 보호해 줄 거야." 카일은 미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안돼. 나는 이 집을 둘러 싼 담 밖으로 나갈 수가 없어." "괜찮아, 가자아-." 녹보석같은 눈동자가 조용히 가라앉았다. "나는 그 악마 때문에 천사의 능력을 잃었어. 그러니까 지금의 나는 보통의 인간보다도 약해. 담 밖으로 나가면, 나가자마자 바로 괴물에게 잡혀가서 먹혀버릴 거야." 카일은 따뜻한 손으로 스네아의 등을 쓰다듬었다. "너의 그런 마음만으로 충분해. 고마워." "하지만....하지만..." 카일이 너무 가여워서, 스네아는 울먹거렸다. 저렇게 아름다운 천사인데도 천계로 돌아가지 못하다니. 분명, 자신이 할머니의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과 같은 심정이리라. 가슴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잘못한 일이 없어." 카일은 혼자서 중얼거렸다. "나는 잘못이 없어. 그 악마가....인간계에 내려온 나를 잡아서 이 곳으로 데려 왔어." 스네아는 아름다운 남자의 손을 꼬옥 쥐었다. "내가 신께 기도할게. 매일 교회에 가서, 위대한 신과 천사가 맞으러 오시도록 기도할게. 그 때 카일은 천계로 돌아갈 수 있을 거야." 절망스런 녹색의 눈동자. "신이나 아가사님이 직접 맞으러 온다고 하더라도, 나는 이미 천계로 돌아갈 수 없을 지도 몰라. 왜냐하면 나는 공중을 자유롭게 날아다닐 날개조차도......" 스네아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던 남자가 갑자기 뭔가를 깨달은 듯이 고개를 들었다. "아, 안돼. 이러다간 해가 지겠어. 빨리 집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돼. 대낮에는 감람수 숲에만 있던 괴물이 저녁이 되면 부근의 오솔길까지 나와서 돌아다녀. 잡혀서 숲으로 끌려가는 일이 있어서는 안돼. 어서 돌아가." 고개를 돌려보니 해가 이미 상당히 서쪽으로 기울어서 하늘이 귤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이걸 가지고 가." 먹고 남은 이스리 과실을 가죽 주머니 속에 넣어서 건네주었다. 급히 현관으로 나갔다. "돌아갈 때는 조심해. 해가 곧 지려고 하니까, 나는 너를 문가까지 배웅하는 것조차도 할 수가 없어. 여기서 헤어지자. 내가 돌아가는 길을 알려 줬지? 북쪽을 향해서 가, 곧장 북쪽으로 가면 돼." 스네아가 현관을 나서자, 등뒤의 문은 다시 닫혔다. 카일, 그 불행한 천사가 마음에 걸렸다. 그렇게 울고 있던 천사. 그러나 아이인 자신은 아무런 힘도 없는 것이다. 스네아는 그가 건네 준 이스리 과실을 넣은 주머니를 허리에 걸고, 천천히 정원의 잔디밭으로 향했다. ■ 철문을 나서는 순간, 방금 전보다 몇 배나 강한 바람이 불어와서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등을 공처럼 둥글게 말고 채 몇 걸음 걷지 않았을 때, 등뒤에서 모래흙을 밟는 발자국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감람수 숲에서 이 길로 이어지는 곳에 누군가가 뛰어오고 있었다. 기겁을 하고 놀란 스네아는 기를 쓰고 달음박질치기 시작했다. 그러나...순식간에 따라잡혀 버렸다. 거칠게 어깨를 잡아 채이고, 몸부림치는 사이에 몸이 빙글 돌면서 발이 걸려서, 나는 듯한 동작으로 길 위에 넘어져 버렸다. "이 괴물" 남자는 얼굴 하나 가득 분노를 담은 채 스네아의 멱살을 쥐고 일으켜 세웠다. 두려움 때문에 스네아는 자신을 잡고 있는 커다란 손목을 꽈악 물었다. "우왓" 남자의 손이 풀린 틈을 타서, 다시 뛰기 시작했다. 도로 외측의 초원을 두서없이 달렸다. 그러나 곧 다시 잡혀, 끌려가서 넘어졌다. 자기 배 위에 걸터앉아서 내려다보는 남자의 표정은 무서웠고, 눈도 머리카락도 모두 어둠을 뒤집어 쓴 것처럼 검었다. 숨을 내쉬고 있는 입 사이로, 얼핏 날카로운 이빨이 보였다. 카일이 말했었다. 저녁이 되면, 감람수 숲의 괴물이 오솔길까지 나오니까, 결국 자신은 괴물에게 잡혀 버릴 거라고. "대낮에 내 집에 잠입하다니 정말 담이 크구나. 내가 이미 주술을 걸어 두었는데, 대체 어떻게 집에 들어간 거지. 무슨 나쁜 짓을 한 건가." "싫어, 살려 줘, 살려 줘." 스네아는 양손으로 두 눈을 가리고, 울면서 큰 소리로 "할머, 할머니"를 외쳤다. 그와 동시에, 배 위의 중량이 사라졌다. 가볍게 茶셈 덮은 손이 바깥으로 펼쳐져서, 바로 위에서 내려다보는 눈과 만났다. 남자는 스네아를 응시하다가 천천히 웅크리고 앉아서, 어린애의 섬세한 복사뼈를 움켜쥐었다. 발부터 먹기 시작할 건가, 하는 생각에 몸이 떨려왔다. 남자는 스네아의 무릎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힘껏 문지르더니, 마치 맛을 보는 것처럼 혀를 내밀어 핥았다. "뭐야, 인간의 아이잖아." 남자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더니, 엄지로 가볍게 스네아의 눈가의 아직 마르지 않은 눈물을 훔쳤다. "거칠게 대해서 미안해. 나는 네가 괴물인 줄 알았어." 흑색의 눈이 따듯하게 변하더니, 마치 사과하는 것처럼 응시해 왔다. 남자는 스네아의 양손을 잡고 풀밭에서 일으켜 세웠다. 옷에 묻은 먼지랑 풀을 털어 주고, 울어서 더러워진 얼굴을 소매로 깨끗하게 닦아주었다. 그리고 나선, 스네아의 손을 끌어 주변의 시내로 데리고 가서, 상처 입은 무릎에서 흘러나온 피를 꼼꼼하게 씻어내 주었다. 강물은 무척 차가웠지만 남자의 손은 무척 따뜻했다. "정말 미안해. 그 집은 지금까지 어린애가 찾아 온 적이 없었어. 넌 대체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거야?" "감람수 숲을 통해서 왔어." 중얼거리자, 남자는 경악의 표정을 내보였다. "그 숲을 통과해서 왔다고? 그러고도 괴물에게 잡혀가지 않았다니. 네 운은 상당히 강하구나." 남자와 함께 오솔길로 돌아온 스네아는, 허리에 차고 있던 주머니가 보이지 않는 것을 깨달았다. 급히 주위를 둘러보자, 남자가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래?" "주머니가 보이지 않아. 속에는 이스리 과일이 들어 있는데." 남자는 문 앞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도중에 허리를 한 번 굽혔다. 그리고 다시 스네아의 앞에 섰을 땐, 손안에 작은 주머니가 들려 있었다. "네가 찾고 있는 것이 이거냐?" 스네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주머니는 네 물건이니?" "....... 카일이 나한테 준거야." 남자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카일이 줬다고....너는 카일과 말을 해본 거니?" 고개를 끄덕이자, 남자는 팔짱을 끼고 "흐응..."하고 중얼거렸다. "그렇다면..." 말하다가, 남자는 갑자기 깨달은 듯이 무릎을 구부렸다. 높이가 같아진 시선 속에 있는 흑색의 눈동자에는, 남자를 처음 보았을 때의, 사람을 겁먹게 만들던 위압감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너와 카일은 어떤 말들을 한 거니?" 그 아름다운 천사 말인가, 얼마나 친밀한 어조인가. "당신과 카일은 친구야? " 남자는 스네아의 질문에 대해 잠깐 사이를 두고 대답했다. "나와 카일은 함께 살고 있어."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그럼 당신도 천사겠네." 스네아의 들 뜬 음성과는 대조적으로, 남자는 가라앉은 음성으로 대답했다. "아니, 나는 아니야." "그래? 하긴. 천사가 어디 그렇게 많을라구." 차가운 바람이 뒷목을 스치며, 사각사각 풀을 흔드는 소리에 문득 정적이 흘렀다. 깨닫고 보니 태양은 이미 대부분 산 뒤쪽으로 숨어 버렸다. 스네아는 갑자기 어두워진 주위에 불안을 느꼈다. "카일과 무슨 말을 했어?" 아이의 불안을 눈치 채지 못한 남자는 말을 계속했다. "악마에게 붙잡혀서 울고 있었어." 슬픈 표정으로 남자는 침묵했다. 스네아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기, 나 돌아가지 않으면...." 남자는 "아."하고 짧게 중얼거리더니 "그래, 빨리 돌아가지 않으면 식구들이 걱정할 거야. 내가 바래다줄게. 집은 어디니?" 어두워지기 시작한 오솔길. 남자는 미안한 듯이 스네아를 문 쪽으로 끌어당겼다. "토르네 마을." "이 길은 토르네 마을까지는 못 미쳐. 네네카 마을로 가는 게 비교적 빠를 거야. 됐다, 가자." 남자는 스네아를 향해 손을 뻗었다. 미안하다고 생각했지만 그 손을 잡았다. 아주 따뜻하고, 큰 손. 초원을 통과하는 바람은 무척 차서 스네아는 목을 움츠렸다. 남자는 갑자기 멈추더니 자기가 입고 있던 상의를 벗어서 등에 걸쳐 주었다. "고마워." 감사의 말을 하자 남자는 미소지었다. 남자의 상의에선 니스 같은 유성 페인트의 냄새가 났다. 만약 자신의 부친이 아직 살아 있었다면 아마 이 남자와 비슷했을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자신의 양친은 철 들 무렵에 돌림병으로 돌아가셨다. 따뜻한 손을 잡고 있자니 어떤 괴물이 와도 자신을 침범하지 못할 것처럼 느껴졌다. 침묵의 귀로가 점점 무료해지기 시작했을 무렵, 스類틈 따뜻한 손바닥을 잡아 당겼다. "있잖아, 왜 천사와 같이 살아?" "그 혼자 놔둔다면, 카일은 괴물에게 먹혀버릴 테니까." "그렇다는 건 당신이 괴물보다 강하다는 얘기네?" "맞아, 나는 괴물보다 강해." "굉-장해, 천사를 보G求 기사잖아? 어떻게 하면 인간이 천사의 기사가 될 수 있어?" "나는 인간이 아니야. 악마야." 방금 전엔 정말 그가 악마처럼 여겨졌었다. 이빨은 뾰족하고, 표정도 공포스러웠다. 그러나 그는 무릎을 깨끗이 닦아주고, 너무 늦었다는 이유로 집에 바래다 줄 만큼 상냥한 남자이다. 어떻게 해도 그가 악마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전에, 책에서 본 악마의 모습은 옆에 잇는 남자의 모습과는 달리 정말 무서웠다. 머리에는 긴 뿔이 나 있고, 머리카락은 곤두서 있었다. 등에는 박쥐같은 날개가 달려 있고, 엉덩이에도 도마뱀 같은 꼬리가 달려 있었다. "그건 거짓말이야." 칠흑 같은 눈과 머리카락. 그러나 검은 눈과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은 마을에도 적지 않았다. "거짓말이 아니야." 남자는 천천히 부정했다. "악마는 이렇게 상냥할 수 없어. 사람을 잡아다가 먹어버린다구. 게다가 당신은 악마의 날개랑 꼬리도 없잖아?" "평소에 보이지 않는 것은 내가 숨겨 놨기 때문이야. 보인다면 아무도 내게 접근하지 않을 테니까." 스네아는 열심히 부정했다. "거짓말. 절대 거짓말이야. 천사와 악마는 함께 살 수 없는 걸." "어째서?" 그가 당황하는 것이 느껴졌다. 왜 같이 살 수 없냐고? 왜냐하면 천사는 선량하고 악마는 사악해서 완전히 다르니까, 그러니까..... "그러니까...악마라면..." 작은 탄식 소리가 들렸다. "자기 눈으로 직접 보지 않으면 믿을 수 없는 거겠지." 따뜻한 손이 멀어지고, 주위의 공기가 갑자기 흔들리기 시작하는 것이 느껴졌다. 남자의 자태가 변화하기 시작하는 것이 보였다. 눈은 고양이처럼 변하고, 입술 사이로 뾰족한 치아가 드러났다. 날카롭고 예리한 손톱. 등뒤에선 박쥐같은 검은 색의 날개가 뻗어 나왔다. 이빨이 딱딱 부딪치고, 몸이 덜덜 떨렸다. "우와앗...." 참지 못하고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스네아는 북쪽을 향해 달렸다. 그는 악마다. 정말 악마다. 먹힐 거야. 그는 나를 먹어 버릴 거야. 상냥한 모습으로, 저 악마는 나를 속이고 있었어. "기다려, 이봐, 기다려." 악마의 목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서 두 귀를 틀어막았다. 발을 멈춘다면 분명 살아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어깨를 잡으려고 뻗어오는 손....... 긴 손톱이 얼핏 시야에 들어왔다. "싫, 싫어-!" 그대로 악마에게 잡혀서, 스네아는 정신없이 몸부림쳤다. 그러나 도중에 자신의 몸이 공중에 떠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계속해서 지면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져 가고 있었다. "이제야 겨우 좀 얌전해졌구나. 내가 기다리라고 말했잖아. 북쪽의 길에는 내가 마법을 펼쳐 놓았기 때문에 인간은 통과할 수 없단 말이야. 혼자서 갔다가는 길을 잃고 말아." 배를 감싸안고 있는 손에는 뾰족하고 예리한 손톱이 나 있었다. 이 손톱으로 내 몸을 갈가리 찢어버리겠지........ 이미 틀렸어, 자신은 악마의 먹이가 된 것이다. 아, 죽기 전에 할머니의 얼굴을 한 번 봤으면...... 땅이 까마득히 멀다. 저 아래에 있는 푸르른 초원을 바라보면서 스네아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 깨어났을 때, 스네아는 칠흑같이 어두운 방안의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우선 코밑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어 숨이 붙어 있는지를 확인했다. 그 뒤에는 손을 더듬어서 수족을 확인했다. 대강 살펴보니 중요한 기관은 아직 악마에게 먹히지 않은 모양이다. 창문으로 새어 들어오는 달빛을 빌어 방안을 둘러 본 스네아는 그 곳이 자신의 방안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언제 내가 방으로 돌아온 거지. 스네아는 신을 신고 타박타박 소리를 내며 계단을 달려 내려갔다. "시끄러워 죽겠다, 스네아. 계단에서 뛰지 마." 할머니의 노호성이 들렸다. 주방을 살펴보니, 솥을 휘젓고 있는 넓은 등이 보였다. 울 정도로 기뻐진 스네아는 그 뒷모습을 향해 달려갔다. "할머니-!" "뭐 하는 거야, 정말이지 응석쟁이라니까." "나 어떻게 된 거야?" "감람수 숲에는 가면 안 된다고 그렇게 말했는데도 기어이 그 곳에 가서 길을 잃어? 그러고도 잘도 아직 목숨이 붙어 있구나." "나 악마에게 잡혔었어." 할머니는 흥-하고 코웃음쳤다. "그래? 널 잡은 악마는 놈이었냐, 두 놈이었냐?" "정말이야, 정말 잡혔었다니까? 박쥐같은 날개를 단 무지-무지 무서운 악마였단 말이야. 그게 ...분명히 나를 잡았었는데, 어떻게 나, 집에 돌아와 있는 거지?" 할머니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한 숨을 쉬었다. "감람수 숲에서 악몽을 꿨나 보지. 그래 봤자 그것도 다 내가 옛날에 말해준 거겠지만. 정말 이상한 애라니까. 네가 집에 돌아온 것에는 하나도 불가사의한 점이 없어. 워렌이 숲의 경계 부근에서 네가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집까지 데려다 줬단 말이다. 정말 친절하기도 하지. 다음 번에 만나면 꼭 감사하다고 인사 드리도록 해." "워렌....이 누구야?" 할머니는 어깨를 가볍게 으쓱했다. "워렌이 누군지 모르니? 마을에서 금속장식품을 만드는 남자야. 일요일마다 함께 예배를 봤잖니." 스네아는 계속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악마에게 잡혀서 공중으로 날아오른 다음부터는 아무 것도 기억 나는 것이 없었다. 오늘 천사도 만났었는데. 지금까지 본 그 어느 누구보다도 훨씬 더 아름다운 천사를. 하지만 전부 꿈이었나보다. 악마를 만났던 일도, 천사를 만났던 일도 모두 다 감람수 숲에서 꾼 꿈이었던 것이다. 스네아는 손을 바지 주머니로 집어넣어 작은 가죽 주머니를 꺼냈다.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은...... "할머니-!" "왜 그래?" "내가 갑자기 악마로 변하더라도 너무 놀라지마." 마침내 할머니는 빽-하고 고함을 질렀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 그만하고 우물가에 가서 손이나 씻고 와! 곧 저녁 먹을 거니까 빨리 갔다 와." 스네아는 허둥지둥 달려나갔다. 그러나 바깥은 이미 완전히 깜깜했다. 달빛만이 희미하게 주위를 비추고 있을 뿐이었다. 아직도 악마에게 잡혔던 공포가 남아 있었다. 손을 씻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아무리해도 우물가에 갈 마음은 들지 않았다. 스네아는 문 앞에서 덜덜 떨다가 결국 그냥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제대로 씻었겠지?" 할머니의 날카로운 음성에, 스네아는 먼지가 잔뜩 묻은 자신의 손을 바지에 대고 문지르며 작게 "응"하고 대답했다. ■ 교회 밖으로 나가자 태양광선에 눈이 부셨다. 워렌은 미간을 찌푸리며, 손바닥으로 이마를 가리고 돌계단을 천천히 내려갔다. 흙먼지가 가득한 찬바람이 불어와서 눈을 가늘게 뜨는데, 머리를 묶었던 끈이 풀려서 흑색의 머리카락이 사락-하고 흩날렸다. 머리끈을 주운 뒤, 우울한 심정으로 긴 머리를 다시 묶었다. 교회에 다녀 온 다음엔 언제나.....죄책감을 느꼈다. 교회에 가서 기도를 하는 것은 결코 신을 믿어서가 아니었다. 자신은 아직도 신을 미워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일요일이면 늘 빠트리지 않고 교회에 가는 것일까. 집안에 머물러 있지 않으려는 것이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였지만, 단지 그것뿐이라면 꼭 교회가 아니어도 되었을 것이다. 알고 있다. 자신은 신을 증오하면서도, 다른 한 편으론 여전히 한 가닥 희망을 품고 있는 것이다. (*일부생략 - 1페이지 정도 생략했습니다. 중요한 장면은 아닙니다.) 도리스는 자기 등뒤로부터 빨간 머리의 아이를 끌어내어, 워렌의 앞에 세웠다. "할머니, 나는 싫어." 아이는 고개를 저으며, 도리스의 등뒤로 숨었다. "여기까지 온 게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너 말이야." 도리스는 아이의 머리를 가볍게 쥐어박았다. "도움을 받았으면서 감사 인사도 안 할 셈이냐? 나는 너를 그렇게 은혜도 모르는 놈으로 키운 기억이 없어." 아이가 싫다고 말하는 이유를 알고 있는 워렌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어제 한 행동은 "경솔했다"는 것 외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을 만큼 어리석었다. 악마라는 것이 밝혀지면 마을에서는 더 이상 살아갈 수 없게 될 것이다. 그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여태껏 불리할 만한 일을 한 적이 없었다. 어린 아이 앞에서 진면목을 노출시킨 일은, 마을 사람들이 자신의 신분을 알게 될 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었다.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노력해온 모든 것들이 물거품이 되 버릴 것이었다. 이 아이가 자신을 보고 악마일 리가 없다고 부정했을 때, 자신도 모르게 그에게 자신의 "枰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었다. 자신의 원래의 악마형상을 보고 나서도, 이 아이라면 어쩌면 무서워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고 있었다. 그러나 악마의 모습을 보았을 때, 아이는 토끼처럼 달아나 버렸다. 역시 예외는 없는 것이었다. 아이는 그저 아이일 뿐이었다. 마음속에 실망이 가득 차서, 도망가는 아이를 쫓아갔다. 북쪽의 길은 자신이 마법을 펼쳐 놓았기 때문에 인간은 통과할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날아가서 아이를 붙잡았다. 공중에서 겁에 질린 아이가 갑자기 조용해져서 얼굴을 훔쳐보았더니, 눈을 꼬옥 감고 기절해 있었다. 별 수 없이 아이를 등에 업고 토르네 마을로 가서 뉘 집 아이인지 여기 저기 물어보고 다녔다. 설마 수다스럽기로 유명한 도리스네 손자였을 줄은.... 아이가 도리스에게 말해서 마을에 소문이 퍼질까봐 불안했지만, 어린애가 하는 말을 진짜로 받아들이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자신을 두려워해서 도망 쳤던 아이와 도리스의 공방전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었다. "도리스, 어제 일은 신경 쓰지 마세요." "그럴 수는 없지. 당신은 상관없어도 내가 상관이 있어." 도리스는 악마처럼 완고했다. "하지만...." 아이는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외쳤다. "하지만, 이 녀석은 악마란 말이야!"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돌아보았다. 도리스는 양손으로 아이의 얼굴을 가리고 눈을 크게 떴다. "어제부터 이상한 말을 하네..... 아, 너는 정말이지 혼이 나야 한다니까. 교회 앞에서 남을 보고 악마니 뭐니 떠들다니 내가 보기엔 네 양심은 감람수 숲의 괴물에게 먹혀버린 모양이구나." 도리스에게 귀를 잡혀서 사납게 위로 끌어당겨진 아이는, 아야, 아야,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워렌은 황급히 아이를 도리스의 손에서 떼어놓았다. "가엾게도.....울고 있잖아요. 이제 됐습니다. 아이가 감람수 숲이 너무 무서워서 혼란이 온 것 같은데, 이렇게 혼내는 것은 너무 가여워요." 도리스는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 상냥한 사람에게 너는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니. 나는 너처럼 못된 녀석은 몰라. 자기 잘못을 반성하기 전에는 집에 돌아올 생각 말아." 도리스는 넓은 등을 보이며 멀어져 갔다. 아이는 "할머니는 아무 것도 몰라-!"하고 크게 외치며 그 자리에서 계속 훌쩍훌쩍 울고 있었다. 워렌은 울고 있는 아이 곁에서 어쩔 줄 몰랐다. 바른 대로 말하자면, 일의 원인은 자신이 경솔하게 아이에게 악마의 모습을 보여준 데에 있다. 아이는 결코 틀린 말을 한 것이 아닌데도 거짓말쟁이라고 말해졌으니 얼마나 가여운가. 워렌은 고개를 숙여서 아이의 작은 가마를 내려다보았다. 7, 8살쯤 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작은 아이라면 그것은 꿈을 꾼 것이라고 말해 두면 될 지도 모른다. 손을 아이의 등에 대자, 눈에 띨 정도로 아이의 몸이 덜덜 떨렸다. 내심 그 반응을 이해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괴로웠다. "여기서 기다려라." 이렇게 말하고, 워렌은 길가에 있는 잡화점으로 들어가서, 사탕을 샀다. 아이는 여전히 교회 앞에 쪼그리고 있었다. "이거 가져." 고개를 든 아이는 색색의 종이 냅킨에 쌓인 사탕을 보더니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시선은 사탕에 못 박혀 있었지만, 달콤한 유혹을 떨쳐 버리려는 듯 아이는 고개를 흔들었다. "난 그런 거 필요 없어." "왜? 단 거 좋아하지 않아?" 아이는 워렌을 바라보았다. "네가 무슨 이상한 마법을 걸었는지도 모르잖아. 이걸 먹었다가는 소로 변하거나, 돼지로 변해버릴 거야..." 워렌은 웃으며 사탕보자기를 열었다. 안에서 한 알을 꺼내 입안에 넣었다. 약간 달았지만 확실히 맛있었다. 그 자리에서 쳐다보고 있던 아이는 꿀꺽, 하고 침 넘기는 소리를 냈다. "상당히 맛있는데." 과시하듯이 2개, 3개를 먹은 후에 "먹고 싶니?"하고 물었다. 그러자 아이는 곤혹스러운 듯이 고개를 숙이고 슬며시 손을 내밀었다. 이 행동이 너무 우스워서 푸훗, 하고 웃자 아이는 화난 듯이 내밀었던 손을 거둬갔다. "미안해, 미안해. 자아, 가져 가." 사탕을 아이의 손에 밀어 주었다. 기다릴 수 없는 듯 종이 냅킨을 펼치더니 입을 벌리고 사탕을 먹는 모습이 꼭 다람쥐같이 귀여웠다. 작은 얼굴을 살피다가 사탕의 단 맛에 얼굴이 풀어지는 때를 기다려, 입을 열었다. "그건 네가 꾼 꿈이야." 아이는 입가에 사탕 부스러기를 묻힌 채 고개를 들었다. "감람수 숲의 몽마(夢魔)가 장난을 쳐서, 내가 악마로 변하는 꿈을 꾸게 된 거야." 분명하게 아이에게 알려 주었지만, 아이는 완고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나는 확실히 봤어. 등뒤에서 박쥐같은 흑색의 날개가 돋아나고, 눈은 고양이처럼 빛이 나고....." 자신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묘사 당하자 왠지 불쾌해 졌다. "꿈이야. 옛날에 들었던 이야기를 꿈으로 꾼 거야." "나는 거짓말하지 않았어." 아이는 바지 뒷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어 자신의 앞에 내밀었다. 그것은 아이가 카일로부터 받은, 원래는 워렌의 것이었던 작은 가죽 주머니였다. "이건 진짜란 말이야. 천사도 있고, 악마도 있어. 만약 몽마가 한 짓이라면 내가 이런 물건을 가지고 있을 수 있을 리가 없어." 워렌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이의 손에서 주머니를 낚아챘다. "뭐 하는 거야, 돌려 줘-" 마을 중앙을 가로질러 흐르는 큰 강에 도착했을 때, 워렌은 다리 난간에서 손안에 있던 주머니를 하천으로 던졌다. 아이의 "아아-"하는 절망스런 부르짖음을 따라서, 주머니는 1, 2번 물위로 떠올랐다가 그대로 강바닥으로 가라앉았다. 아이는 입을 벌리고 멍하니 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너는 꿈을 꾼 것 뿐이야. 그건 감람수 숲의 몽마가 너한테 보여준 꿈인 거야." "나는 절대 착각하지 않았어!" 아이는 주위 사람들이 모두 돌아 볼 만큼 큰 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당신이 그렇게 나온다면, 내가 다시 한 번 가서 사실을 밝힐 거야!" 말을 뱉고, 아이는 달려나갔다. "이봐, 어디를 가려는 거야." 멈추지도 않고 돌아보지도 않는다.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북쪽의 길은 마법이 걸려 있어서 인간은 들어갈 수 없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도 기절해 있었으니 알 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워렌은 급히 아이를 쫓아갔다. 설마 다시 감람수 숲으로 들어가는 황당한 일을 벌이지는 않겠지. 감람수 숲은 이전부터 괴물과 악마의 보금자리였다. 숲속에는 마계와 인간계를 연결하는 통로가 있어서, 온 숲 속에 무서운 사기(邪氣)가 흐르고 있었다. 사기가 흐르는 곳은 괴물의 거주지로 적합해서, 자연히 많은 괴물들이 살고 있었다. 감람수 숲에 들어간 사람들 중에 살아서 돌아간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옛부터 전해오는 전설을 믿지 않는 어리석은 인간들이 지금도 가끔 감람수 숲에서 길을 잃어 괴물의 먹이가 되어버리는 일이 일어나곤 했다. 저 아이는 운이 상당히 강하다. 괴물에게 한 번도 발견되지 않고 숲을 빠져나간 것은 저 아이가 처음이었다. 그러나 워렌은 그런 행운이 2번, 3번 연달아 일어날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보통 일단 잡혀가게 되면 뼛조각 하나 남기지 않고 먹어치워져 버릴 것이었다. 아이는 달음박질이 굉장히 빨랐다. 정말 비호같았다. 그러나 마을 안에서는, 지난번처럼 날개가 있는 몸으로 변신해서 쫓아갈 수도 없는 일이었다. 감람수 숲이 보였다. 울창한 나무들 사이로 아이는 조금의 주저도 없이 뛰어 들어갔다. 워렌은 심장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이제 자기가 변신한다고 해도 숲 속에서 길을 잃은 아이를 도와주기는 상당히 곤란하게 되어 버렸다. 숲 속의 괴물들은 인간을 습격해서 먹어치우는 것을 한 순간이라도 망설일 놈들이 아니다. 아이를 쫓아 숲으로 들어가자, 전신이 농밀한 공기로 둘러싸이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은 자신에게 있어서는 결코 불쾌한 느낌이 아니지만..... , 워렌은 더욱 초조해졌다. 조금 더 걸어가자, 이미 사방이 울창한 나무로 뒤덮여서 방향을 분간할 수 없었다. 아이가 어느 쪽으로 갔을지도 알 길이 없었다. "어디 있는 거냐, 대답해-" 돌아오는 것은 자신의 목소리에 대한 메아리뿐이었다. 정신없이 들풀을 밟으며 나무를 헤치고 나아가는데, 옆에서 처참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싫-어-, 살려줘-, 살려줘-" 수림 사이로 사람의 손이 얼픗 보였다. 워렌은 맹컹 달려나갔다. 아이의 모습이 보인 순간 그는 앗, 하고 탄성을 내질렀다. 아이는 '스프리스'라는 인형(人形)의 괴물에게 잡혀 있었다. ...사람의 모습이라고는 하지만, 그 생김새는 오히려 거대한 원숭이에 더 가까웠다. 스프리스는 특히 인육을 먹는 것을 즐겨 했다. 워렌이 도착했을 때는, 마침 스프리스가 입을 크게 벌리고 이빨을 완전히 노출시켜서 아이의 한 쪽 다리를 잡고 먹어 치우려는 순간이었다. "그 녀석을 놔줘." 스프리스는 자색의 혀를 내밀어 아이의 무릎을 핥았다. 그리고 유리 구슬 같은 눈알을 굴려서 워렌을 쳐다봤다. "숲 속에 들어온 사냥감은 가장 먼저 본 사람이 임자다, 방해하지 마라." 스프리스가 말을 하자 짧은 순간임에도, 뭔가가 썩어 가는 듯한 지독한 악취가 풍겨와서 워렌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건 알고 있어. 하지만 그 아이만은 내게 양보해 주지 않겠나." 스프리스는 피처럼 붉은 입술을 일그러뜨렸다. "안돼." 말로는 되지 않자, 워렌은 별 수 없이 원래의 모습으로 변신했다. 생각해 보니 아이 앞에서 2번째로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이지만, 방법이 없었다. 검은색의 날개, 위로 치켜 올라간 고양이 눈. 날카롭고 긴 발톱. 워렌의 변한 모습에, 스프리스는 깜짝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너, 악마냐?" "맞아. 어서 그 아이를 내게 넘겨줘." "싫어." 스프리스는 웃고 있었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아이의 고기를 먹어 보지 못했단 말이야. 너희는 인간의 영혼을 먹을 뿐이니까 고기는 필요 없잖아. 영혼은 너한테 줄게. 가져 가. 하지만 고기는 내 꺼야." "어떻게 해도 안되겠나?" "정말 시끄럽네." 담판은 깨졌다. 되도록 숲 속의 동료들과 분쟁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지만, 일이 이미 이렇게 되어 버렸으니, 다른 길이 없었다. 워렌은 발치의 돌을 하나 집어들었다. 주문을 걸어서, 스프리스의 오른 쪽 눈을 향해 던졌다. "우와악......." 스프리스는 수풀 속으로 넘어졌다. 그제서야 아이를 손에서 놓자, 워렌은 얼른 달려가서 아이를 안았다. 오른 쪽 눈이 파열 된 괴물은 나무 사이를 이리저리 펄쩍 펄쩍 뛰어 다니더니, 워렌을 향해 완전히 이빨을 드러냈다. "아직도 나에게 저항할 셈인가?" 괴물은 워렌의 말에 몸을 떨며 겁을 먹었다. "그렇게 죽고 싶어?" 원통한 듯한 포효성을 남기고, 스프리스는 달려가 버렸다. 품안의 아이로 눈을 돌려보니, 딱딱하게 굳어진 얼굴로 덜덜 떨고 있었다. "아직도 혼자서 가고 싶으냐?" 고개를 좌우로 젓는다. "그렇다면 내가 이대로 너를 안고 숲을 빠져나가마." 이런 악마의 모습을 하고 아이를 안고 가는 것은 아이를 생각하면 불쌍한 일이었지만, 괴물들이 접근해 오지 못하도록 하려면 이런 모습이 편했다. 되도록 아이를 쳐다보지 않고 워렌은 걸음을 빨리 했다. 반수반조의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울리자, 품안의 아이가 소스라치며 몸을 떨었다. "괜찮아, 아무 일 없어." 가볍게 어깨를 쓰다듬었다. "내가 있으니까, 다른 괴물들은 네 옆에 가까이 올 수 없어." 아이의 손이 머뭇머뭇 뻗어와 워렌의 목을 둘러 안았다. 은은하게 사탕향이 풍겨오는 작은 몸을, 워렌은 꼭 껴안았다. 숲을 벗어나자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아이는 여전히 자신의 목을 안은 채로 눈을 감고 있었다. "이제 괜찮아." 아이는 천천히 눈을 떴지만, 뭔가가 움직이며 내는 끼- 소리를 듣더니 펄쩍 뛰어오르며 다시 떨기 시작했다. "물레방아야. 무서워 할 거 없어." 아이는 얼굴을 오른 쪽으로 기울이고, 강가에 세워져 있는 다 무너져 가는 물레방앗간을 쳐다보더니, 안심한 듯 숨을 내쉬었다. "내려도 될까?"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제 더 이상 떨지 않고 두 다리로 얌전히 땅 위에 내려섰다. 손을 놓으면서, 아이가 새처럼 날 듯이 달려가 버리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다갈색의 눈동자는 시종 그 자리에 서서 워렌을 바라보고 있었다. "당신은 좋은 악마네." 생각지 못한 말에 워렌은 눈을 크게 떴다. "모두들 악마는 나쁜 놈이라고들 그러는데 내 생각엔 틀린 말이야. 왜냐하면 당신은..... 워렌은 나를 구해줬는걸. 맞아, 처음에도 날 잡아먹을 생각 따위는 없었던 거야." 그렇게 자신을 부정하더니, 지금은 또 이렇게 쉽게 자신을 신뢰하고 있다. 단순하다고 해야 할까.....천진하다고 해야 할까....아이를 바라보면서 문득 워렌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소위 악마라는 것과 괴물은 다른 거야. 괴물은 한 번 보면 바로 알 수 있지. 무서운 모습을 하고, 사람이나 동물이나 모두 끌고 가서 먹어 버리지. 하지만 악마는 달라. 사람의 마음 속 빈틈을 비집고 들어가서 유혹한 후에 파멸시키는 거야. 그렇게 쉽게 믿으면 안돼." "하지만 당신은 나를 도와줬잖아?" 아이는 필사적으로 말했다. "하지만, 악마는 본래...." "그럼 워렌은 대체 뭐야?" 자신은 도대체 무엇인가. 완전한 악마도 아니고 또한 완전한 인간도 아닌 존재가 왜 "이 곳"에 있게 된 것일까. "뭐야." 아이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상한 악마네." "어째서?" 아이는 길가의 바위로 폴짝 뛰어 올라갔다. "왜냐하면 너무 이상하니까 그러지? 악마는 나쁘다고 말하면서 나를 또 다시 구해주고, 게다가 일요일마다 교회에 가는 악마라는 것은 난 한 번도 들어 본 일이 없다구." 워렌은 쓴웃음을 지었다. "일요일은 너무 무료하니까. 그리고....그건 인간의 마음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야." "악마가?" "나는 인간과 악마 사이에서 난 아이야. 그러니까 반은 인간이지." 헤에-, 아이는 감탄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관두자, 아무튼 너, 너무 쉽게 믿으면 안돼." 인간과 악마의 사이에 난 자신이, 아직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던 영아 당시에, 신의 이름으로 살해당할 뻔 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기처럼, 인간의 신분으로 "양육"되는 일은 무척 드문 일이었다. "집으로 돌아가야 해. 이미 반나절이나 지났으니, 도리스가 분명 걱정하고 계실 거야."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워렌의 손을 끌며 걷기 시작했다. 돌아가는 길이 도중까지 같기는 했지만 아이가 자신과 함께 걷고 싶어할 거라고는 생각 안 했었다. 아직 뭔가 튀어 나올까봐 무서운 건가. 아마도 내가 있으니 아무 것도 무서울 게 없는 것이겠지....이렇게 진심으로 바랬다. 나누어지는 길목에 이르자, 아이는 걸음을 멈췄다. 마치 자신의 손을 놓고 싶어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집에 바래다줄게."라고 말하려고 했을 때, 작은 머리를 이 쪽으로 향하더니, 진지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다음 번에, 너희 집에 놀러가도 돼?" 깜짝 놀랐다. "카일을 만나고 싶어. 카일은 그 집을 떠날 수가 없으니, 너무 가여워." "하지만....." 워렌은 곤혹스러웠다. 카일에 관한 것은 누구에게도 알려서는 안 되는 비밀이었다. 그러나 이 아이는 이미 카일을 만난 적이 있다. 또 자신의 진짜 신분도 알고 있다. 다시 온다고 해도 숨길 것이 없었다. 게다가 아이가 놀러 온다면, 카일과 이야기를 나누게 될 터였다. "악마의 목소리는 듣고 싶지 않으니까, 말하고 싶지 않아."라고 소리 친 후로 30년간 자신에게 입을 꾹 닫고 있는 천사도 입을 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아이를 자신과 천사 두 사람의 사이에 들이게 된다면 위험한 일이 생길지도 몰랐다. 아이가 마을 사람들에게 자신이 "악마"라는 것을 얘기하는 날에는 더는 이 곳에서 살 수 없어진다. 외모 상으로 보이는 나이가 25세 정도에서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디를 가든 10년마다 사는 곳을 바꾸어야 하긴 하지만....워렌은 이 곳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가능하다면 오랫동안 머물러 있고 싶었다. 왜냐하면, 이 곳은........ "무섭지 않니?" 자기 같은 존재에 대해 물은 것이었지만, 아이는 오해했다. "무섭지 않아. 위험할 때는 워렌이 나를 구해줄 테니까." 걱정이라고는 티끌만큼도 없는 웃는 얼굴. 누군가에게 신뢰받는 이런 느낌은 이미 아주 오랫동안 느껴보지 못한 것이었다. 기쁨이 몸 속으로 스며들어서 의혹을 날려보냈다. 아무도 믿지 않는다면 자연히 다른 사람의 신뢰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워렌은 손을 아이의 이마에 놓고, 주문을 외웠다. "내가 네 몸에 마법을 걸어 뒀어." 아이는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북쪽의 길은 사람이 통과할 수 없는 마법이 걸려 있지만, 네가 지나갈 때는 그 마법이 풀릴 거야. 그러니까 놀러올 때는 북쪽의 길을 통해서 오도록 해. 절대 감람수 숲을 통해서는 안돼. 다음 번에는 아마 나라도 너를 도와주지 못할 지도 몰라. 그리고, 해가 지고 난 뒤에는 그 집 주위에 괴물들이 잔뜩 몰려드니까 낮에는 언제라도 와도 좋지만 해가 지기 전에 반드시 집으로 돌아가야 해." 아이는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감람수 숲을 지나지 않고, 해가 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간다....이 두 가지 조건을 지켜 준다면, 나는 네 방문을 언제라도 환영할 거야." 무척 기쁜 듯이 웃는 아이의 얼굴을 보자, 죄책감이 느껴졌다. 자신은 이 아이를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 우연히 알게 된 아이를 통해, 어쩌면 자신과 저 천사 사이의 대화가 부활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쓴웃음을 지었다. 아이가 우리 둘 사이에 들어온다고 하더라도, 그 천사가 자신을 용서해 줄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그것을 자신은 잘 알고 있다. "어서 돌아가자. 도리스가 걱정하실 거야." "응." 아이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섰다. "안녕, 워렌." 크게 손을 휘저으며, 앞을 향해 달리다가, 도중에 멈춰 선 아이가 큰 소리로 외친다. "내 이름은 스네아야. 워렌." 이름(ID) rhyss 메일 (회원권한)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