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영 (ninapa ) [쿠베린] 막 간 극 ..월광 02/13 01:54 119 line KUBERIN........ 때로는 울음이 치밀어 올라도 격심한 분노가 내 몸을 사로잡아도 나는 변하지 않는다 나는 웃을 수 있다. 막간극 혼자 있을 때면 벼라별 생각을 다하게 된다. 오래전 내가 무엇을 했었던가,내가 처음 이 곳 엘리야에 왔을 때라든가.혹은 얼 어죽어가는 고양이와 나를 착각한 마미의 일같은 거 말이다. 게다가 이렇게 혼자서 맥주를 홀작이고 있다보면 사방이 다 나를 두고 떠나버리 는 것같은 울적함을 느끼기도 한다.이런 울적함은 아마도 나와 같은 고단계의 일족만이 느끼는 감정일 것이다.그리고 한편으로는 절망감과도 같은... 에라! 관두자! 뭔가 재밌는 일은 없냐? 나는 지금 침대 위에 앉아있었다. 그리고 한 편에는 가빈이 또아리를 틀고 내 옆에 비비고 누워있다.그리고 한 쪽 에는 린이 양순하게 고른 숨소리를 내고 자고있었다. 지금은 밤이었다.그리고 보름달이 떠있다. 나는 창가를 멀건히 바라보면서 나도 웨인처럼 울부짖어볼까 하고 생각했다.그 러나 그런 짓은 나와 같은 고단계의 일족,나같은 우아한 존재에게는 전혀 어울 리지않는 태도이다.물론 나는 여러종족의 여러가지 특성에 대해선 나름대로 존 중을 하고 있는 편이지만 저 웨인 녀석의 일족인 늑대인간들은 도저히 봐줄 수 가 없는 일면이 있다. 왜 보름달을 보고 미치는 것인가? 저토록 아름다운 달을 바라보면서 말이다. 아마도 그것은 아름다운 것을 감상할 줄 모르는 꽁지빠진 들개일족의 비애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동안 나는 늑대놈들이 둥근 것만 보면 다 변신하는 게 아닌가 하고 의심도 했 었다.예를 들자면 내가 지금 쥐고 있는 맥주잔의 둥근 잔을 보고 발작을 일으킨 다든가,혹은 아리따운 아가씨의 둥근 엉덩이를 바라보면서 발작한다든가,혹은 깨진 달걀 노른자를 보고 발작한다든가-그 변신과정은 내가 생각하기엔 어디까 지나 발작이지,그건 변신이라 부를 수가 없다-한다고 하면 그 얼마나 비극적인 사항인 것이냐... 물론 그런 일은 없다.아무리 우아함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늑대일족-웨어울프족 속이라 해도 그렇지는 않다고 한다.웨인이란 녀석은 그 늑대족속인 주제에 어줍 잖게 우아함을 추구한답시고 피리를 불면서 떠돌아다닌다.갑자기 그놈 생각이 난 이유는 오늘 밤 이렇게 보름달이 뜰 때면 그 자식이 또 발작을 일으켜 이번 에는 그놈의 별로 든 것도 없는 머리통을 어딘가의 거름통에라도 들이박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군. 며칠 전 웨인녀석의 처량맞은 그 꼬락서니를 보고 나서 그 여파가 이리도 오래 가는군.나도 지나치게 섬세해져 버렸어. 음..고만하자,안그래도 우울한 족속을 내가 뭐하러 이 아름다운 달밤 떠올리고 앉아 있는 것인가. "잠이 안와요?" 갑자기 린이 물었다. 녀석은 묻는 말 이외엔 잘 말도 걸지않는데 이번에는 나에게 말을 걸었다.내가 그를 바라보면서 맥주잔을 들어보이자 그는 그것을 빤히 바라보았다. "마실래?" "아뇨." 녀석은 술을 마시지않는다.언제나 단정한 녀석. 갑자기 에메랄드와 같은 색의 눈동자를 들어서 날 바라본다. "왜?" "왜 인간들 사이에 계시죠?" 갑자기 그것을 물었다. 나는 맥주잔을 바닥에 내려놓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굴욕감에 죽음을 결심하고 감옥에 갇혀있던 그 순간이 떠올랐다. 바보스러운 일이었다.나처럼 오래 살다보면 그정도 치욕따위는 아무 것도 아님 을 알텐데. 나는 린의 파란 얼굴을 빤히 보았다. "그리고 왜..어린애 얼굴을 하고 계시는 거죠?" 나는 그가 궁금히 여기는 사항을 알고 있었다.그렇지만 굳이 알려줄 생각도 없 고 날까지 잡아가며 굳이 설명해 줄 건덕지도 없는 일이다. "좋을 대로 하고 있을 뿐인걸." "그 모습이 ..어울리지않아요." "그럼?" 내가 킥 웃었다. "위엄있는..그런 모습이 더..어울리실 거에요." 나는 턱을 괴고 소년의 몸인 내 몸을 내려다 보았다. 일반적인 십대 소년의 몸. 아직은 어리고 부드러운 선을 가진 이 몸. "글쎄다...이게 더 편한 걸." 린은 나를 미심쩍은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가빈이 코를 고는 소리가 들린다. "잠이나 자라.린." "...바라신다면요." "잠이 안오는 거야? 발정기냐?" "아뇨." 나는 휘영청 밝은 달을 가리켜 보였다. "저렇게 밝은 달이 떠있으니까 가슴이 두근거리는 거 아니냐?" "아닙니다.전..쿠베린님이 깨셔서 같이 깬 거 뿐이에요." 그가 가볍게 대답했다. 그의 시선이 창밖을 향했다. 멀리 꿈꾸는 에메랄드의 눈동자가 고향을 향한다.푸른 달빛이 누구보다도 어울 리는 이 고귀한 일족의 소년이 망향가를 부른다. "좋은 달빛이군요." "잠이 안오면 춤이라도 출까?" 그가 킥 웃었다. 처음 웃는 얼굴이었다.아주 귀엽다. "주무세요.또 공작을 보러가야할지도 모르니까요." "그래." 나는 맥주잔을 다시 잡아 들어 반쯤 남은 맥주를 들여다 보았다. 맑고도 투명한 호박색 액체가 출렁이면서 나를 바라본다. 아직 취기따윈 오르지도 않았다. 달빛에 취하는 것은 늑대일족만이 아니다. 나는 달을 바라보면서 지금 저 달을 바라보고 있을 무수한 존재들을 생각했다. 내가 잃은 자들과 내가 앞으로 잃을 자들.그리고... 나는 맥주잔을 기울여 마지막 한모금까지 모조리 마셨다. 내가 앞으로 얻을 자들을 위하여....건배! 막간극 종 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