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영 (ninapa ) [쿠베린] 막간극 ..폭풍우 03/25 22:38 176 line KUBERIN..... 내 이름이라고 남이 불렸던 것은 진실한 이름이 아닌 나의 허울 내 진실의 이름은 나만이 알고 ...오직 그만이 안다. 막간극 폭 풍 우 그날이 왔다는 것을 안다. 나는 조용히 일어서서 창문을 닫았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내가 입은 옷들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꺼내 걸친다. 밖에는 사나운 비바람이 불고 있다.나는 그 비바람속을 나아가 내 할일을 하는 것이다. 가빈은 자고 있고 린은 나의 움직임을 숨소리하나 내지않은 채 지켜보고 있다. 그가 지켜보는 것을 알지만 나는 동요하진 않는다. "멋진 밤이군." 린은 나의 얼굴을 바라보고 의아함과 함께 그답지 않은 불안감을 표하면서 몸을 일으켰다.그리곤 나에게 다가오려 했다.나는 손을 내젓고 그에게 앉으라고 명령 했다. "앉아." 그의 움직임이 굳었다. "하지만.." 그가 그답지 않게 항의하려 했다.그리고선 다시 내 눈과 부딪치자 입을 다물어 버린다. 나는 그를 놔두고 짐하나 가지지않은 채 걸어나왔다. 이미 가게문을 닫은 시각이었지만 일층의 가게에는 인기척이 있었다. 누군지는 알고 있다.알고 말고. 마미는 낡았지만 튼튼한 의자에 멀건히 앉아 있다가 날 보곤 불안한,그러면서도 결연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그리곤 내가 먹을 만한 특제 소시지를 한 꾸러미 기 름종이에 싼 것을 건넸다. 내가 받아들자 그녀는 긴 말따윈 하지않고 두 팔을 벌려 나를 끌어않았다. 그 거센,완력이외의 것이 내 몸을 꼭 싸매고는 내 전신을 어루만지듯이 스치고 지나간다. 그녀는 내 이마에 키스하고는 내 검은 머리칼을 흐트러뜨렸다. "쿠베린.." 그녀는 말을 하진 않았다.그렇지만 역시 평소와 다른 애절한,어딘가 불안한 얼 굴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다녀올께,마미." 내가 조용히 한 마디 하는 것을 끝까지 기다리고 있던 마미는 10여년전과 마찬 가지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마치 통나무를 연상시킬 것 같은 단단한 허리춤을 가진 그녀는 두 손을 꽉 마주 잡고는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녀에게서 천천히 돌아서서 밖으로 나갔다. 거센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가게 문 바로 옆의 나무는 휘어질 듯 꺾여질 듯 휘청이면서 거친 바람에 대해서 항의하고 있었다.나는 그 나무의 나뭇가지가 만들어내는 큰 물방울들을 뒤집어 쓰면서 밖으로 걸어나갔다.그리고 막 달리려는 순간 따각 하고 마차가 가까이 다가와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사실 마차와 나는 별로 관련이있는 게 아닌지라 마차를 흘긋 보기만 했다. 그러나 그 마차의 마부석에 올라탄 녀석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타." 그 목소리는. "비가 많이 와.태워줄려고 왔어." 기름을 먹인 우의를 입긴 했지만 흠뻑 젖은 갈색머리와 수염에서 물이 줄줄 흐 르고 있었다.그는 마부석에서 나에게 턱짓을 했다. "무리하는군." 그의 얼굴이 약간 찡그려졌다.왠지 울고 싶은 듯한 얼굴이었으나 억지로 웃음을 보이고 있었다. "타!" 그가 짧게 나에게 말했고 나는 사양하지않았다. 마차문을 열고 들어서자 마자 말 두마리가 끄는 이 장례용 마차는 달캉거리며 달리기 시작한다. 스카는 불안해 하고 있었다.마미도 마찬가지고. 이 두사람은 내내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10년이 더 된 것같지만 -20 년인가? 어쨌든 이 날이 오면 그들은 불안해했다.내가 어디론가 가버릴 지도 모 른다는 불안감임을 나는 알고 있지만 나는 물론 그들의 곁으로 돌아올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들의 호의를 받아두자. 눈을 감고 마차의 흔들림에 몸을 맡기고 있는 동안 물비린내와 함께 무시무시한 바람소리가 귀청을 찢어댄다.마차에 부딪치는 바람소리는 마치 어떤 난폭한 녀 석이 부는 휘파람 같기도 하며,어떤 미치광이 여자의 울음소리처럼도 들린다.그 리고 이런 날 밤에 마차의 지붕과 차체를 하염없이 때리고 있는 그 빗방울 소리 는 안에 들여보내 달라고 누군가가 두들겨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아마 내 기분이 이래서 그럴 지도 모른다.하지만 나는 내가 이긴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나는 왕이며 나는 이 땅위에 있는 자들 중에 가장 강력한 자이다. 나를 이길 자는 없고 나에게는 힘이 있다. 나는 몸을 이완시키면서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마차 안에서 허공을 바라보았다. 얼룩진 마차의 벽위로 빗방울이 새고 있었다.그 물방울이 주르르 바닥으로 흘러 내리고 있는 동안 나는 그 물방울의 흐름을 보고 내 호흡을 보며 내 용기를 보 았다.그리고 나는 만족했다. 마차는 하염없이 달려서 엘리야의 외곽을 완벽히 벗어나 수풀속을 달리고 있다. 나는 마차문을 열고 슬쩍 빗방울 사이로 바닥을 내려다 보았다. 땅바닥은 진흙투성이로 노란 속살을 드러낸 채 빗방울의 세례를 받아 흐느적 거 리고 있다.그 진흙에 처박히는 게 난 지 아니면 그 인지는 오늘 밤,아니 어쩌면 며칠 후에 결론이 날 것이다.그도 나도 이런 진흙탕을 싫어한다.하지만 어쩔수 없다.이런 날 비가 오고 폭풍우가 친다는 것도 뭔가 의미심장하지않은가 하고 나는 혼자 히죽이 웃었다. "스카!" 내가 외쳤다. 얼굴에 차가운 빗방울들이 일제히 쏟아져서 앞을 잘 볼수 없었지만 나는 그가 내 부름을 들은 것을 안다.그 증거로 스카는 내 몰던 말들의 고삐를 당겨서 천 천히 멈추고 있었다. 이제 편안한 시간은 그만. 그의 등은 흠뻑 젖어서 고통스러운 인내심을 발휘하느라 흰 김을 뿜어내고 있었 다. "기다리고 있을께!" 그가 외쳤다. 그의 눈은 충혈되어 있었다.빗방울 탓만은 아닐 것이다. 그의 얼굴에서,그 견고하고도 고집센 턱에서 초조와 불안이 동시에 튀어 나왔고 나는 흐 하고 웃어 보였다. "신경쓸거 없어.언제 끝날 지는 나도 모른다.돌아가서 기다려!" "넌..추운 거 싫어하잖아!" 스카가 마치 그것이 유일한 이유인 양 외쳤다. 나도 적당히 속아주어야 겠지.그의 필사적인 얼굴은 어딘가 서글퍼 보였다. 하지만 녀석에겐 여동생도 있고 놈을 사모하는 여자들(?)도 있다.그리고 무엇보 다 이 일에 끼어들 자격도,이유도 없다는 것이다. "돌아가라!" 나는 그에게 말했고 한 발을 떼어 진흙탕 속에 내딛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내 몸을 변화시켰다. 다리는 점점 길어진다.내가 입고 있던 옷은 모두 벗어던지고 나는 알몸이 되었 다.차가운 빗방울이 쏟아지는 가운데 나는 전신에 그동안 싸놓기만 했던 힘을 개방했다. 뜨거운 느낌이 등줄기로 치닫아 퍼져나간다.손이,가슴이,다리가,그리고 머리가 뜨거운 혈관의 팽창으로 아득해진다.나는 눈을 감고 오랜만에 해방감을 맛본 상 태로 천천히 빗속에 서서 후각과 청각과 촉각을 즐겼다. 발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부드러운 진흙의 느낌,그리고 피부위에 떨어지는 차 가운 빗방울,휘날리는 나뭇가지사이로 외쳐대는 바람의 포효. 나쁘지않군.이런 것도.오히려 이런 유혈의 밤에 어울리는 걸. 나는 웃으면서 눈을 떴다. 나를 바라보고 있는 스카의 시선은 공포와 불안과 이루말할 수 없는 감정으로 휘감겨 있었다.그녀석은 날 보고 있었지만 난 이미 그를 보지않았다.지금은 그 를 볼때도 아니고 내 일에 집중할 때이다. 나는 스카가 멍하니 서 있는 동안 몸을 솟구쳤다. 내 몸이 빗줄기를 뚫고 스카의 머리위로 훌쩍 넘어서서 그리고 숲으로 깊숙히 들어갈때 까지 스카는 움직이지않았다.그는 그 자리에 고집스레 서서 내 뒤를 바라보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쿠베린.묘족의 왕." 녀석이 말했다. 그렇게 말하며 다가온 놈들은 벌써 100명이 넘는다. 그리고 그놈들 중 태반은 모두 대지의 여신이 벌려놓은 품안에 누워있다. 자연의 여신들은 우리들 영생의 일족의 육체를 갈갈이 찢어 해체 한 뒤에 그것 을 뭇짐승과 대지에게 바친다.그리고 우리들은 거기에 순응하고 있다. "저의 이름은 세비오,올해 당신에게 도전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녀석은 아직 젊고 아름다왔다. 흉터가 가득한 내 몸과 달리 녀석이 아직 아름답다는 것은 태어나면서부터 강하 단 의미도 된다.형제는 형제를 해하고 누르고 부모는 자식을 누른다.우리들 강 건한 일족에게 있어서 흉터없는 몸을 가진 녀석은 경계의 대상이다. 검푸른 머리칼을 길게 늘어뜨린 녀석은 내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손톱을 꺼내들 어 스스로 자신의 머리털을 덥석 잘랐다.그리고 그 머리털을 바닥에 내려놓고는 내 앞에서 가볍게 무릎을 꿇었다. 태연해 보이지만 이 녀석은 떨고 있다.아니 떨 수밖에 없다. 기억도 나지않는 아득한 과거에 나 역시 이 날 나의 숙부에게 그렇게 달려들었 었다.그리고 숙부를 쓰러뜨리고 내가 왕이 되었다. 나는 녀석에게 손바닥을 내 보이면서 가볍게 손짓했다. "와라.나의 권속.세비오.그대의 도전을 받아 주겠다." 막간극 폭 풍 우 종 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