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영 (ninapa ) [쿠베린] 별전 ..스카 1 03/10 01:44 236 line KUBERIN......... 어느 멍청한 용병이야기.. 스카 이야기 1 콰앙 하고 나는 난폭하게 문을 열고 튀어 나왔다. 더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진절머리가 난다. "멍청이! 너란 자식은 평생을 두고 거렁뱅이를 벗어나지 못할 걸!" 악을 지르는 녀석들의 소리가 시끄럽게 등 뒤로 들려왔고 빠른 걸음으로 걷는 내 옆으로 동료들이라고 하는 녀석들의 연민과 다소 조소에 가까운 시선들이 와 닿았다. 나는 빠른 걸음으로 걸어 아직은 눈이 쌓인 뒷문으로 향했다.내 등 뒤로 몇몇 하녀들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나는 돌아보지 않았다.어서 이 저택을 빠져나가고 싶었다. 이대로 곧장 걸어서 다시 용병길드의 문을 두들겨야했다.그리고 그들은 이번엔 나를 받아 주지않을 지도 모른다.아니면 혹은 .. 나는 한숨을 내어 쉬고는 빨랐던 걸음을 점차 늦추었다.허긴 이렇게 빨리 걸어 봐야 갈 곳은 없었다. 등 뒤에 매달린 검이 무겁게 느껴졌다. 하늘은 차가운 푸른 빛을 띄고 햇빛은 미약하게나마 화사한 빛을 던져주고 있는 이 맑은 겨울날의 아침. 나는 또 한번 의뢰받은 일을 놓쳐버렸다. "적당히 해 두는 게 어떤가? 스카?" 후우 하고 용병길드의 소개인 처크가 말했다.그는 하나 밖에 없는 팔뚝을 흔들 어 보였고 나는 그의 시선을 약간 피했다. 그의 명부에 적힌 일들은 대다수가 상인들의 신변보호였다.그리고 어떤 것은 물 론 공물이나 물건수송같은 것도 있긴 했지만 그것 보다는 대부분 상인 보호가 많았다.이런 평화시대에,특히 안정된 이 세상에서 가장 용병들이 많이하는 일이 란 그것이었다.그렇지만 그것은 반대로 말해서 신변보호를 요청하는 부호란,상 인들이란 당연히 나쁜 짓을 하는 놈들이란 말도 된다. 나는 팔짱을 끼고 묵묵히 그의 시선을 슬쩍 피하고만 있었다. 배가 고팠다.오늘 은 새벽부터 저녁때인 지금까지 아무것도 먹지못했다. 그가 나에게 잘해주는 것은 나도 알고 있다.나는 지금 일곱개의 일을 이런 식으 로 밀쳐버렸다.그 결과는 물론 용병길드에 대한 신뢰감 훼손이라는 결과로 이어 지며 다른 상인들의 항의가 들어오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내가 몇번이나 충고했지만.." 그가 명부를 닫으면서 말했다. "우린 용병이다.스카.용병이란 자신이 의뢰받은 일을 다 해내야 하는 거야,자기 맘에 안맞는다고 내팽겨쳐버린다던가 하는 일을 해선 용병이라 불릴 수가 없어! 넌 기사가 아니라 용병이라구! 용병!" "알고 있다구요!" 내가 그를 쏘아보자 처크는 한숨을 내 쉬었다. "정말 너란 놈은...쓸데없는 정의심만 앞세우지 마라.너,오늘 밥먹을 돈이나 있 는 거냐?" 나는 아무말도 하지않았다. 처크는 주머니를 뒤져서 내 앞으로 몇개의 동전을 꺼내 건냈다. "가서 밥이라도 사먹어라.굶었겠지." 고맙다고 말을 할 수도 없었다.이런 일이 계속 반복되고 있었다. 처크는 내 아버지의 친구였다는 이유로 나에게 잘해주고 있었다.그러나 아무리 나라고 해도 이미 스물이 넘은 지 오래.언제까지 그의 신세를 지고 살수는 없 다. 내가 부시시 일어나자 가게안에 있던 몇몇이 내 등 뒤로 조소를 내던졌다. "또 일을 내팽개쳤군.헤이 헤이." "잘난 척하는 녀석." 나는 할 말이 없었기에 입을 꾸욱 다물고 걸어나왔다. 나오니 이미 해가 지고 있었다.이런 식으로 또 어영부영 하루가 가버렸다. 사람들은 저마다 발걸음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다들 할 일이 많다는 것처럼 바쁜 걸음으로 집으로 향하고 있는데 나 혼자만 이렇게 멍청하니 길가에 서 있 다. 이래선 안된다고 생각은 했지만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그저 힘을 쓰는 일,검을 휘두르는 일이라면 훨씬 나을 것인데... 이젠 용병길드에서도 더이상 일을 맡을 수는 없었다.오늘 부로 길드에선 축출되 어 이젠 더이상 조합원도 아니다.처크는 내 앞에서 명부를 닫아버렸다. 나는 한숨을 내 쉬고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보랏빛이 되다가 이젠 남빛이 되어 버린 하늘. 가장 좋은 방법은 이 도시를 뜨는 것 밖엔 없었다. 그렇다면 길드의 조합원도 아닌 이 주제에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고 나는 우 두커니 서서 생각했다.그러나 생각을 더 진행시키기도 전에 너무 배가 고팠기때 문에 하는 수 없이 몇개의 동전을 들고 가서 빵을 사왔다.빵 두덩이와 버터 한 덩이를 사고 나니 돈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아버지의 유품인 검을 팔 수도 없 는 지경이라 나는 한동안 멀거니 도시의 바깥 외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거리는 완전히 어두워 지고 말았다. 나는 빵을 천천히 씹으면서 도시의 외곽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그리고 이 도시 마르세로는 절대로 돌아오지 않으리라 맹세했다. 저벅 저벅 발 걸음 소리가 처량맞게도 크게 들렸다. "기다리세요.저기,저기.." 갑작스런 부름에 등을 돌려 보니 조그마한 검은 그림자가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가까이 다가가니 둥근 얼굴을 한 주근깨 투성이의 꼬마였다.꼬마는 열살 남짓했는데 나를 빤히 올려다 보고는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뭐냐?" 내가 퉁명스레 묻자 꼬마는 갑자기 손에 들고 있던 보퉁이를 불쑥 내 밀었다. "받으세요!" "뭐야?" 내가 흠칫해서 소리쳐 묻자 질린 안색의 꼬마가 급히 말했다. "저기.저기..누나가 전해드리라고 했어요!" "누나?" "에리누나요." 나는 비로소 이 꼬마가 누군지 알수 있었다. "그런가..." 내가 보퉁이를 받자 제법 미지근한 감촉이 손바닥에 전해져 왔다. "바..받았죠? 아저씨..그죠?" 꼬마는 급히 그렇게 확인하고는 뒤로 주춤주춤 물러섰다.그리고는 홱 돌아서더 니 마치 누가 쫑아오기라도 하는 양 맹렬히 뛰어 도망가버렸다. 나는 멍하니 보퉁이를 든 채 완전히 어두워진 좁은 골목길을 바라보고 있었다. 에리는 내가 지금 막 그만둔 대상 에그녹의 하녀로 나이 스물정도 된 처녀였다. 아니,이젠 처녀라고 부를 수 없을 지도 모른다.그녀는 열살 때부터 에그녹의 부 인네들-한둘이 아니다-의 하녀로 지냈다고 했다.그런 그녀가 에그녹의 눈에 띄 인 것은 그녀가 열 여섯살 때로,그녀는 이리저리 도망다녔지만 결국은 에그녹의 손에 걸려 순결을 잃었다.그리고 그것 만으로도 좋은데 그녀의 동생 셀리가 열 네살어린 나이로 에그녹에게 겁간을 당할 뻔 했다. 그게 바로 어젯밤 일이었다. 어젯밤 나는 그의 방 근처에서 호위를 서고 있었다.나 이외에 세명의 용병들이 더 있었지만 그들이나 나나 모두 에그녹이란 놈을 미워하고 있었다.비록 돈을 받긴해도 놈같은 녀석을 호위한다는 것은 불쾌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꺄아아아.."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내 옆에 선 키리가 나를 향해 낮게 충고했다. "못들은 척 해." "하지만 비명소리야." 내가 가볍게 항의하자 키리가 입가를 일그러뜨리면서 말했다. "우린 들어도 못들은 척해야지." "하지만.." 내가 입을 다무는 그 순간 이번에는 비단찢어지는 듯한 자지러지는 소리가 연이 어 터져나왔다.처절한 비명이었다. "살려주세요! 도와주세요!" 나도 모르게 입가가 일그러졌다. 주먹이 꽈악 쥐어졌다. "스카,이번에도 튀쳐나가면 넌 길드에서 제명이다." 낮게 충고하듯,위협하듯이 키리가 재차 말했다. 나는 참았다.주먹을 쥐고 다시 정면을 바라보았다. 바로 정면에는 정원에 흐트러지게 피어난 꽃들이 화려함을 자랑하고 있었다.밤 인데도 불구하고 정원안은 환했다.여기저기 등롱들을 펼쳐놓은 까닭에 울긋불긋 피어난 봄꽃들이 아직 잔설이 남은 뒷 담과 어우러져 매혹적인 향내를 풍기고 있었다. "꺄아아아아." "살려주세요! 제발!" 다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너 혼자 모든 것을 다 할 순 없어.네 앞길이나 살펴." 키리가 가만히 있는데도 나에게 충고해 왔다.그는 나이 사십의 베테랑이었다. 나는 못들은 척 하려고 무진장 애쓰고 있었다. 그러나 저런 소리를 듣고 무심할 수 있다는 게 더 놀라운 일 아닌가? 그 때 탁탁하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튀어나왔다.내가 검자루를 잡으려는 찰나 갑자기 우리들의 발밑에 작은 몸집의 소녀가 넘어졌다. "악." 키리와 내가 뒷걸음질 쳐서 소녀를 주시할 때 갑자기 문이 발칵 열리면서 이마 에 핏대를 세우고 있는 뚱뚱한 녀석이 튀어나왔다.녀석은 비단 가운만 달랑 걸 친 채 알몸인 상태였다.개기름이 번지르한 그 얼굴이 헥헥대면서 우리들에게 외 쳤다. "그 애좀 잡아!" 키리와 나는 무의식중에 소녀의 팔뚝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그 순간 나는 소녀와 눈이 마주쳤다. 열 두엇? 많아야 열 서넛으로 보이는 소녀였다.바로 어린 셀리였다. 깡마르고 눈이 커다란 그 애는 이미 눈두덩이와 뺨을 얻어맞아 입가가 다 찢어 져있었다.입안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키리가 침음하는 소리가 들렸고 나는 망연한 채 셀리의 몸을 부축해 세웠다.그 리고 그녀의 앙상한 몸매와 채 발달하지도 않은 젖가슴을 멀건히 봐 버리고 말 았다.갈기갈기 찢겨진 옷사이로 드러난 흰 갈비뼈가 드러난 몸매.. 그 가냘픈 몸을 퍽 하고 뚱뚱한 에그녹이 후려갈겼다. 소녀의 가냘픈 몸은 대구르 굴러서 바닥으로 넘어졌다.아작하고 소리가 난 것은 아마도 그녀의 어깨나 팔이 부러지는 소리가 아니었을까 하고 나는 무의식중에 생각하곤 소름이 끼쳤다. "이 년! 이 더러운 년이 어딜 도망가!" 그 놈이 퍽퍽 하고 발길질을 하더니만 그러고도 모자라 셀리의 머리채를 잡고는 질질 끌고 안으로 가기 시작했다. 셀리는 이제 혼절해있었다. 추욱 늘어진 그 몸체를 멍하니 내가 보고 있는 동안 에그녹은 셀리를 끌고 방안 으로 들어갔다.그리고는 찌익 찌익하고 옷자락을 찢는 소리가 소름끼치게 들려 왔다. 나는 무의식중에 발걸음을 옮겨서 방문가로 걸어갔고 키리가 내 옷자락을 급히 잡았지만 나는 뿌리쳤다. 환한 불빛아래 드러난 광경이란 내 이성을 완전히 날릴 만한 일이었다. 그 에그녹이란 놈은 어린애에 불과한 그 애를 발가벗기고 강간하려는 찰나였던 것이다. 빠직 하고 내 머릿속의 무언가가 부서졌고 나는 눈앞이 빨갛게 물드는 것을 느 꼈다. "이 자...식!" 그 다음은 잘은 기억하고 있진 않지만...어쨌든 키리와 다른 용병들이 달려와 나를 에그녹의 몸에서 떼어놓기까지는 상당히 오래 걸렸던 것 같다.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방안은 난장판이었고 소녀는 길게 혼절한 상태로 발가벗겨져서 늘 어져있었다.그리고 나는 벌거벗은 그 놈의 몸을 깔고 앉아서 피떡이 되도록 그 놈을 후려갈기고 있던 차였다. 키리와 다른 용병들이 나의 어깨를 잡아서 끌어내었고 나는 묵묵히 그들의 손에 끌려나왔다.키리가 혀를 찼다. "정말..너.." "상관할 거 없어.참을 수 없다구!" 내가 고함쳤다. "저 애는 겨우 열몇살의 어린애야! 그걸 두고 볼 수 있어어?" 내가 고함을 길게 치는 동안 키리가 나의 복부를 걷어찼다. 내가 격통으로 몸을 숙이고 비틀거리는 동안 키리가 외쳤다. "정의의 사나인 척하는 것도 적당히 해둬! 넌 용병이란 말야! 자식아!" "언제까지 길드에 폐를 끼칠 거냐!" 옆에서 다들 나를 비난하고 있었다.나는 격통으로 몸을 떨고 있다가 비슬 일어 서서 그들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하지만 대체 왜 검을 익혔단 말이지? 저런 어린애를 구타하는 강간 마같은 자식을 보호하려고 검을 익혔어?" 내가 그들을 향해 외치자 키리의 얼굴에 잔물결이 스쳐갔다.다른 자들의 얼굴에 증오와 흡사한 감정이 떠오르고 동시에 나는 턱을 얻어맞고 뒤로 넘어갔다. 덱데굴 구르는 동안 다른 용병이 외쳤다. "너만 훌륭하냐! 이 어처구니 없는 자식!" "그렇게 잘났으면 기사가 되지 왜 용병이냐!" 그들의 조소와 비난이 쏟아질 동안 나는 묵묵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내가 어처 구니없는 바보녀석인 것은 사실이었다.그리고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나 는 이제 견딜 수 없었다. 비틀 일어나자 마자 나는 문을 밀어 제치고 튀어나왔다. "멍청이! 너란 자식은 평생을 두고 거렁뱅이를 벗어나지 못할 걸!" 그 어린 계집애 셀리의 언니가 에리였다. 나는 멍하니 따스한 느낌이 드는 보퉁이를 들여다 보고 있었다.보퉁이를 열자 거기엔 갓 구운 듯 기름기가 도는 거위가 놓여있었다.나는 멍하니 그 거위를 바 라보았다. 왠지 흐흐흐 웃음이 터져나왔다. 나는 거위를 들고 도시를 빠져나왔다. 휘황한 달빛. 나는 달빛에 드러난 길을 따라 걸었다.발걸음이 날듯이 가벼웠다. 어디로 갈 지는 모르지만 일단 가고 보는 것이었다.이젠 용병길드의 일원이 아 니니 떠돌이 용병에 불과했다.아마 일은 현상금 사냥밖에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그래도 상관없다는 기분이 되어 휘파람을 불기 시작했다. 어쨌거나 나는 내 맘대로 걸었다. 손 안에 남은 거위구이가 꽤 오랫동안 내 손안에 온기를 더해주고 있었다. 이수영 (ninapa ) [쿠베린] 별전.. 스카 2 03/10 01:45 399 line KUBERIN............ 어느 멍청한 용병이야기.... 스카 이야기 2 "아이구야...." 나도 모르게 소리가 새어나왔다. 욱시근 거리는 팔과 다리,허리가 비명을 올려대고 있었다. 내 나이 스물 둘.이제 슬슬 애송이 티는 벗을 때라 나는 믿고 있었지만 다른 사 람들은 인정해 주질 않는다.허긴 나도 내가 멋진 한명의 어른이라곤 생각할 수 없다.아직은. 야숙이 지금 나흘째 되어가고 있었다. 마을을 발견하긴 해도 돈이 없으니 가서 음식을 사 먹거나 잠을 잘 여관을 잡을 수도 없었다.그 때문에 나는 완전히 야숙만의 여행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돈이 없다는 것은 매우 매우 불편한 일로 먹는 것도 힘이 들고 자는 것도 힘이 든다. 허지만 누군가가 말했듯이 돈에 얽매이지 않은 삶은 자유롭다고 했다.물론 그 자유에는 댓가를 치러야 한다는 단서가 붙어있긴 하지만 말이다. 물고기를 잡으려 했지만 이건 웬일인지 잔챙이 밖에 없다.너무 작아서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물고기를 잡을 방법은 내게는 없었다.그물이라도 있기 전에 는 물고기는 먹을 수가 없겠다 싶어서 나는 단념하고 말았다. 날씨는 기가 막히다. 햇빛이 따스하고 이젠 완연한 봄빛을 띄우고 있었다.이젠 시냇물도 그다지 차갑 게 느껴지지는 않는다.풀들도 파란 빛을 띄우고 있고..허긴 겨울에 야숙이란 동 사를 하겠다고 자원하는 것이나 같다.다행히도 요즘은 춥지 않았다. 또 굶어야 하나 하고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인데 갑자기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자세히 들어볼 사이도 없이 나는 급히 검을 쥐고 튀어나갔다. 뭔가 일거리가 될 만한 일인지도 모른다.위기에 처한 사람을 구해주면 최소한의 댓가...하다못해 먹을 것이라도 얻을 수 있을 지도! 내가 급히 당도한 곳은 관도 위였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이 관도는 황량했는데 아마도 작아서 사람들이 그다지 이 용하지 않은 때문인 모양이었다.여기저기 잡초가 무성해져서 관도라는 말이 무 색했다. 다섯명의 사내들이 한 명을 둘러싸고 있었다. 모두 병장기를 들고 있는 것을 보아하니 산적이거나 야적일 가능성이 높았다.놈 들은 야비한 표정을 지은 채 중앙에 선 한명을 완전히 둘러싸고는 위협하고 있 었다. 그 한 명. 아직 소년이었다. 검은 윤기가 흐르는 머리칼은 목덜미를 가볍게 덮고 있었지만 장발은 아니었다. 피부는 희고 매끄러워보이는 미소년이었다.아직 나이는 17세..에서 18세 가량.. 아니면 더 어리다면 16세가량으로도 보였다.어쨌든 아직은 사내냄새가 덜 풍기 는 그런 녀석으로 몸이 상당히 가늘었다. 그런데다가 무기는 전혀 가지고 있지않은 듯 보였다.흔히들 사내아이들이 지니 는 단검이라든가 하다못해 쇠붙이 조각마저도 가지고 있지않은 모양이었다.그러 나 녀석은 등에 왠 보석상자같이 생긴 작은 상자를 메고 있었다. 마치 이것은 보석상자에요 라고 씌인 듯이 보이는 그 작은 상자는 검은 빌로드 천에 은으로 테두리를 박은 것으로 부호들이나 혹은 귀족들의 아녀자들이 보석 함으로 쓰는 것이었다.내 눈에도 그렇게 보였으니 소년을 포위한 다섯명의 사내 들도 그렇게 보고 앞을 막은 것이 틀림없었다. "내놔!" 소년은 생글 생긋 웃고 있었다. 아름다운 녹색눈에는 호기심어린 빛깔을 하고는 그는 생글 생글 웃고 있었다. 나는 턱이 빠질 것같은 기분이 되어 입을 벌렸다. 저 애는 자기 상황에 대해서 완전히 무지한 게 아닐까? "이 놈이 제정신이 아닌가봐!" "바보 아닐까!" 다섯 사내가 동시에 말하곤 한 사내가 몽둥이를 들고 한 걸음 나섰다.그리고는 몽둥이를 소년의 앞에서 휘휘 저어보이며 말했다. "꼬마야.내가 말했지? 자아.그것 놔두고 고이 사라져라." 소년의 웃음이 짙어졌다. 그리곤 붉은 입술이 움직이더니 한 마디가 튀어나왔다. "간이 부었구나." 나는 잠시 내가 뭔가 잘못들었는가 하고 생각했다. 저 입에선 분명히 이런 말이 나와야 했다.목숨만은 살려주세요 라든가 이것만은 안돼요 라든가.. 그런데 지금 튀어나온 말은 '간이 부었구나'였다. 내가 그렇게 헤메고 있을 동안 사내들도 그렇게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그들은 웃하고는 이를 드러냈다. "이 자식이!" "완전히 미친 거로군!" 그 순간 몽둥이가 소년의 머리를 향해 날아갔고 나는 안돼 하고 외치며 튀어나 왔다. 퍽 하고 몽둥이가 소년의 머리를 치려는 순간 내가 사내의 허리춤을 검집으로 후려갈겼다. "억!" "이..이게 뭐야!" 사내들이 당황할때 나는 자신만만하게 검을 뽑아 들며 외쳤다. "자아! 덤벼라!" "이 자식 뭐야!" "죽어라!" 갑자기 소년은 내버려두고 나와 그들의 격전이 벌어졌다. 나는 오랜만의 싸움이라 약간 흥분했고 사내들은 난데 없이 나타난 나에게 약간 주눅이 들었던지 의외로 싸움은 싱거웠다. 나는 덮쳐오는 몽둥이를 든 사내의 사타구니를 걷어차면서 검을 뽑아 창을 들고 덤비는 사내에게 돌진했다. "차아!" 검이 날아오르면서 창대를 부러뜨려버렸기때문에 창을 든 사내의 얼굴이 창백해 졌다.나는 히죽 웃으면서 그의 가슴을 검자루로 후려갈겼다.그리고 내 뒤로 덤 벼드는 다음 녀석에게 집중하면서 검을 휘둘렀다. 핏방울이 파락 하고 땅위로 떨어져내렸다. 덤벼든 녀석이 팔을 부여잡고 뒤로 물러섰고 아직 나와 검도 마주쳐 보지않은 두명의 사내는 우웃 하고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적당히 해라! 어린 꼬마에게 무슨 짓이냐!" 내가 위엄있게 외치자 사내들은 나를 증오로 쏘아보고는 뒤로 물러섰다.그리고 는 숲으로 사라져버렸다. 나는 거칠어진 숨을 다시 내어 쉬고는 자랑스런 기분으로 몸을 돌려 소년을 보 았다.소년은 겁에 질린 것도 아니고 도망가지도 않은 채 팔짱을 끼고선 나를 빤 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 초록색 눈에는 나이에 어울리지않는 흥미와 조소가 깃들어져서 나는 조금 놀 랐다. "다친 데는 없니?" 내가 소년에게 다가가 위엄있게 묻자 소년은 나의 아래위를 훑어보았다. "흐음.." "집이 어디니? 데려다 주마." 설마 밥 한 끼 정도는 주겠지 싶어 내가 말하는 데 소년의 입에선 난데없는 소 리가 튀어 나왔다. "요즘 기사도 말하지않는 싸구려대사를 얼간이 용병이 내뱉다니..정말 웃기는 군." 나는 눈을 부릅뜨고 지금 내가 들은 소리가 어떤 소리인가를 다시 생각했다. 내가 지금 들은 이 소리가 이 꼬마의 입에서 튀어나왔단 말인가! "너..너!" "보아하니 몇끼를 굶었군.좋아.밥 한 두끼는 사주지.따라와라." 소년은 그렇게 말하곤 말을 잃고 버버거리고 있는 내 앞으로 성큼 성큼 걷기 시 작했다. "이봐! 너 어떻게 말을 그렇게 하냐! 어린애가 ..! 사람이 구해주었으면 고맙다 고 순순히 말하는 게 어렵단 말이냐!" 내가 고함을 질렀어도 소년은 아랑곳 하지않았다. "따라와라.얼간아." 나는 코와 귀와 입에서 불길이 솟는 감각에 사로잡혀서 주먹을 불끈 쥐었다.이 상태로 참아내야 한단 말인가 하고 내가 그에게 돌진하려는 순간 나의 마지막 이성이 '어린애를 상대로 흥분해선 안되지' 하고 외쳤다.나는 식식거리면서 입 을 다물고는 난폭하게 걸어서 소년의 옆에서 걷기 시작했다. 내가 식식거리고 걷는 동안 소년은 단정한 얼굴로 나를 흘긋 바라보더니 피식 웃었다.그 얼굴이 예쁜 소녀같아서 내가 잠시 말을 잊고 있는 즈음 그가 그 얼 굴에 도저히 어울리지않는 어투로 말했다. "넌 타지에서 온 거 같군." "그래.북쪽에서 왔다." 내가 난폭하게 대꾸하자 소년은 검은 눈썹을 가볍게 치켜올리고는 고개를 까닥 했다. "흠..그러니 나 쿠베린을 모르는 것이겠지.엘리야의 용병길드라면 나를 모를리 가 없지." "엘리야..?" "그래.이 관도를 따라서 이틀정도 가면 엘리야라고 하는 항구도시가 나온다.내 집도 거기고 내가 지내는 곳도 거기지." "항구도시라,..난 바다를 본 적이 없는데.." 내가 흥분해서 말하자 그는 날 흘긋 보고는 쯧쯧 혀를 찼다. "촌놈이구만.바다를 본적이 없어?" 내가 발끈하려는 순간 소년이 덧붙여 말했다. "허긴 아직 어리니 못본 곳도 많이 있겠지,별로 수치스러워하지않아도 괜찮아." 수치스러워 할 생각은 없었던 나는 어이가 없어 입을 벌렸다. 관대한 표정을 짓고는 소년은 고개를 그덕였다. "북쪽에서 왔다고 하니..아마도 엘리야의 용병길드에는 가입하지않은 거 같고.. 그럼 어디 길드소속이지?" "난 이제 길드소속이 아냐." 제법 물정에 밝은 녀석인가 하고 내가 생각하며 대꾸하자 소년은 날 아래위로 바라보더니 쯧쯧 또 혀를 찼다. "무슨 뜻이야? 그건?" 내가 그 태도가 너무 불쾌해서 항의하자 소년은 걷는 걸음걸이도,속도도 조금도 늦추지않은 채 앞만 보면서 대꾸했다. "오죽 못났으면 길드에서 축출된거냐?" "내..내가 축출된 게 아니라 난 나온거야! 여..여행을 하기 위해서!" 내가 주먹을 쥐고 항의하자 소년은 길게 말하지도 않고 가볍게 대꾸했다. "넌 거짓말이 서투르구나." 나는 욱 하고 입을 다물어버렸다. 울분이 치솟았다.내가 왜 이런 꼬마랑 말장난을 하면서 자존심을 버려가고 있는 것인가 하고 내가 발길을 막 돌리려는 데 꼬마가 입을 열어 말했다. "뭐,..그런 바보스런 점이 마음에 들긴 하지만." 나는 덜컥 가슴이 내려앉아서 그를 쏘아보았다.지금 날 가지고 노는 게 너무 심 한 게 아니냐고 난 항의하고 싶었다.그렇지만 이 상황에서 또 뭐라고 어린애랑 떠들건가 싶어서 난 다시 입을 다물고 말았다.배가 고프지않다면 이 놈을 따라 갈 이유란 전혀 없었다. 한참을 걸었는데도 이 녀석은 지칠 줄을 몰랐다. 해가 중천에 닿았고 나는 뱃가죽이 등짝에 달라붙어서 헥헥거렸다.그럼에도 불 구하고 이 녀석은 태연한 얼굴이었다.체력이 장난이 아니군 하고 내가 은근히 감탄하고 있을 때 눈앞에 마을이 나타났다. "저기로 가자." 소년이 앞서 말했고 나는 뒤를 따랐다. 내가 왜 뒤를 따라야 하는 거지 하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지만 결국 대답은 하나였다. 혹여 그가 밥을 사줄 지도 모르기때문이었다. 소년은 보석상자를 들고 여관으로 들어섰다.여관에서는 힐긋 힐긋 다들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고 나는 그 시선에 상당히 긴장했다.이 소년이 들고 있는 이 상자 는 분명히 보석상자처럼 보였기때문이었다. 여관안에는 사내들 일곱이 우글거리고 앉아서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시고 있었다. 소년은 들어서자 마자 주인을 향해 말했다. "맥주 두잔,훈제 닭 한마리,빵 네덩이와 점심거리." 나는 두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음식 냄새에 혹했다. 내가 침을 줄줄 흘리고 있을 때 소년은 턱하니 상자를 탁자위에 놓고는 느긋한 자세를 취했다.마치 누구든 집어가려면 집어가 봐라 하는 자세였기에 나는 긴장 했다. "이봐..이거 대체 뭐야?" 뒤에 앉은 녀석이 질문을 던졌다. 아까부터 힐긋 거리고 보고 있는 꼴이 뭔가 기묘한 눈길이어서 나는 긴장했는데 소년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꾸했다. "보석이지." 여관안에 자악 하고 소리가 날 정도로 침묵이 깔렸다. 꿀꺽 하고 여관 안에는 침 삼키는 소리가 퍼저나갔다.뒤에 앉은 사내는 은근히 질문을 던졌다. "보여줘 봐.진짜 보석이란 말야?" 소년은 그를 흘긋 돌아보았다. "너 돌았니?" 사내가 그 말에 놀라서 흠칫 하자 소년은 말을 이었다.그의 시선에 한심하다는 듯한 표정이 담겨있었다. "너라면 보석상자를 열어서 안을 보여줄 거 같아? 너 그렇게 머리가 안돌아가 냐?" "으,..으..!" 사내가 벌덕 주먹을 쥐고 일어났고 나는 밥값(?)을 하기 위해 마주 일어섰다. 내가 살기를 띄우면서 눈에 힘을 주고 사내를 노려보자 그 사내는 내 시선을 받 고는 웃 하고 입을 다물고는 퇘엣 하고 바닥에 침을 내뱉고 말았다.그가 시선을 피하고 밖으로 나가버리자 나는 책망의 표정을 소년에게 던졌다. "너,너무 심하잖아!" "하하하하..네가 있으니 아주 편하다!" 그는 내 말을 들은 체도 않고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는 기분이다 하고 혼잣말을 하더니만 손을 들어서 주인을 불렀다. "여기 맥주 두잔과 닭 한마리,그리고 빵 네덩이,그리고 특제 스튜 한그릇 더!" 이윽고 음식이 나왔다. 탁자 한가득히 음식이 나오자 나는 침을 줄줄 흘리고 있는 참인데 녀석은 먹어 보란 소리도 없이 손을 가볍게 털어보이곤 닭다리를 들었다.그리고는 좌악 찢어 먹기 시작하는데...이것은 보통 먹성이 아니었다. 그 호리호리한 몸에 어디로 다 들어가는 지 그는 앉은 자리에서 빵 네 덩이와 닭한마리를 다 먹어치우고 맥주 두 잔을 좌악 들이켜 버렸다.나에게 먹어보란 소리도 하지않다니! 내가 눈물을 흘릴 기분이 될 즈음 추가로 시킨 음식이 나왔다. 주인은 그가 먹어치우는 것을 평소에도 봐온 양 모른 척하고 있었지만 놀란 것 은 분명했다. "먹어." 그가 크윽 하고 트림을 하면서 내게 말했고 허락이 떨어지자 나는 아귀 아귀 하 고 마치 걸신들린 양 먹어대기 시작했다.지금 눈에 보이는 것은 음식 이외엔 없 었다.내가 먹어대고 있는 동안 그녀석은 우아하게 빵을 찢어 먹으면서 말했다. "너,상당히 모자란 녀석인 거 같구나.어떻게 이 험한 세상을 살아왔니? 쯧 쯧,.." 내가 이 밥 한끼에 자존심을 모조리 다 버려야 하는 거냐 하고 고민에 빠져있는 중인데 그는 손가락을 가볍게 튕기면서 입가를 닦아내고 있었다. "이 쿠베린님이 너란 얼간이를 거두어 주도록 하지.이 험난한 세상을 내가 돌보 아 주겠다." "뭐라구?" 내가 어처구니 없어서 스튜를 먹다말고 그를 쏘아보자 그는 고개를 가볍게 저었 다. "그렇게 감사할 것은 없어,넌 이제부터 내 동업자가 되면 되겠구나." "동..업자? 너 아버지가 무슨 일 하시냐?" 내가 벙벙해져서 묻자 그는 내 머리통을 후려갈겼다. 콱 하고 내 코가 스튜에 빠졌다.악 하고 내가 비명을 올릴 찰나 그가 차갑게 말 했다. "그렇게 말했는데도 못 알아듣다니.너 정말 얼간이냐!" 나는 뜨거운 스튜에 코를 박아 버려서 뜨거워서 펄쩍 뛰었다.원래 기름기가 많 은 이 스튜란 매우 매우 뜨거워서 급히 먹다간 입안에 화상을 입기가 일쑤였다. 그런데 난 지금 코를 박았으니 그 고통이란 게 얼마나 심한 지는 말하지않아도 알수 있을 것이다.내가 버둥거리면서 코를 맥주잔에 틀어박으며 식히고 있을 때 갑자기 가게 문이 덜컥 열렸다. "이봐!" 나타난 것은 아까 내가 눈에 힘주어서 내쫑은 사내와 또 하나 내가 아까 물리친 다섯의 사내였다.그리고 그 외에도 세 명정도 일행이 더 불어나 있었다. 나는 코를 잡은 채 아픔의 눈물을 흘리면서도 이 상황에 대해서 어떻게 대처하 나 하고 고민을 시작했다. 살기를 가득 띄운 그들은 이미 아홉명이나 되었다. 그들이 살기등등하게 나타나자 여관안에 있던 자들은 어마 뜨거라 하듯이 어느 샌지 사라지고 남은 것은 소년과 나 였다. 아픔으로 눈물이 줄줄 흐르는 가운데 사내들이 싸늘한 미소를 지으면서 앞으로 다가섰다.나는 코가 아픈게 더 이상 문제가 아닌 지라 검자루을 쥐고 소년의 앞 을 틀어 막았다. "이봐.꼬마야.내가 막는 동안 넌 뒷문으로 나가라." 내가 낮게 속삭였지만 그는 들은 채도 않고 느긋한 자세로 맥주를 들이키고 있 었다.나는 화가 치밀었지만 일단 일을 시작하면 끝장을 보아야하는 것이 내 성 격이므로-게다가 밥도 얻어먹었고-그를 참아내기로 결심했다. "아까 얻어맞은 것으로는 모자랐나?" 내가 싸늘하게 사내들을 향해 외치자 앞선 몽둥이를 든 사내가 하하하 하고 크 게 웃었다. "네 몰골이나 보고 떠들어라! 애송이!" "네가 검을 좀 쓴다고 사람을 우습게 보는 거 같은데! 한번 당해봐라!" 그리고 그들은 우리들을 포위하기 시작했다.나는 긴장으로 등줄기를 땀으로 적 겼다.이 상황은 장난이 아니고 우리들은 매우 위험한 찰나에 있었다. 이 사내들은 지금 우리들을 죽이고 싶은 모양이었고 원한에 가득차 있었다. "상자를 내놔!" 한 명이 달려들어 나에게 몽둥이를 휘두르는 그 순간 나는 검을 들어서 막아냈 다.그리고 뒤에서 누군가가 내 뒤통수를 내갈기려 하는데 갑자기 팟 하고 뜨끈 한 것이 목덜미를 덮었다. "악!" 비명소리가 터져나왔다. 뜨근한 것은 피였다.피가 끈적하게 내 등뒤로 흘러내리고 있었다.그 감촉에 놀 라서 뒤를 돌아보았다. 순간 시야 가득히 목이 날아간 사내가 사방으로 피를 뿌리며 버둥거리는 게 들 어왔다.그 버둥거리는 시체는 내 앞으로 목도 없는 상태로 걸어와 안겨왔고 나 는 너무 놀라 그 목이 없는 사내의 몸을 놀라 밀쳐버렸다.덕분에 목 없는 사내 는 덜덜 떨리는 사지를 허공으로 한 채 뒤로 넘어져 버렸다. 데구르르르르 무언가가 굴러서 탁자밑으로 들어갔다. 그 몸통에서 피가 사방에 튀어서 시야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으,..으..." 사내들이 주춤 뒤로 물러섰고 나는 소년을 돌아보았다. 그는 팔짱을 끼고는 손가락을 할짝거리고 핥고 있었다.그 손가락에는 피가 약간 묻어있었고 그는 그 피를 핥아먹고 있는 중이었다. 소름이 좌악 끼쳤다. "어..어떻게 한거지?" 내가 버둥거리면서 물을 찰나 한 명이 외쳤다. "엘리야의 쿠베린!" "쿠베린이야!" "으악!" 그리고 그 누가 먼저이냐 할 것도 없이 삽시간에 사내들은 밖으로 튀쳐나갔다. 그들이 비명을 올리면서 튀어나가버리는데 걸리는 시간은 말 그대로 눈 깜짝할 새였다. 가게 안은 피비린내로 가득 찼다. 나는 멍하니 피를 뒤집어 쓴 채 서서 그들이 사라져버린 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목을 잃은 사내의 시체는 여전히 그 자리에 누워 피를 흘려내고 있었고 쿠베린 이라 불린 이 소년은 느긋한 자세로 앉아서 손가락에 묻은 피를 정성스레 핥아 내고 있었다. "너..너, 뭐야?" 내가 마침내 더듬으면서 억지로 그에게 물었다. 커다랗고 매혹적인 녹색눈이 날 빤히 바라보았다.조소와 비슷한 감정이 섞여있 는 장난기 어린 눈. 그 눈을 보면 도저히 어린 소년의 눈이라 볼 수가 없었다. 긴장감에 죽을 거 같은 나는 그를 침묵하면서 쏘아보고 있었다.그는 내가 아무 리 쏘아보아도 아무렇지도 않은 눈을 하고는 날 빤히 바라본다.그러더니만 길게 기지개를 펴기 시작했다. "몇시지?" "에?" "점심먹으면 낮잠을 자야지..아함.." 그는 하품을 하더니만 상자를 내 앞으로 밀쳤다. 내가 의아하게 바라보자 그가 말했다. "그걸 들고 날 따라와." "왜 내가 이걸 들고 따라와야 하지?" "내가 널 살려주었으니까." "하..하지만 그건.." 그는 날 빤히 바라보았다. 지금은 그를 보호하다가 위험에 빠진 게 아니었던가 하고 나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지만 그는 내 질문을 묵살했다. "따라와.한숨 자자." 그는 상자를 내 손안에 밀어 놓고는 일어서서 진짜로 이층의 방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여관주인도 도망가고 없는 지금 그는 스윽 스윽 마치 자신의 집인양 걸어올라가고 있었다.나는 그의 뒷 모습을 보고 다시 내 손안의 상자를 보았다. 호기심에 상자뚜껑을 열어보니 그 안에는 금화와 보석이 그득했다.열자마자 그 휘황한 광채에 눈이 멀 거 같았다.내가 멀건히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동안 쿠베 린이 이층에서 외쳤다. "빨랑 와! 얼간아!" "내 ..내 이름은 스카다! 얼간이라니!" 내가 항의하며 외쳤지만 역시 반응은 없었다. 나는 상자를 들어 보았다.왠걸 으악 비명을 올릴 정도로 무거웠다.나는 하마터 면 상자를 쏟아버릴 뻔했다. "아참..말을 하지않았는데 그거 무거워." 마치 모든 것은 보고 있는 양 위 층에서 그 목소리가 들리자 나는 악에 바친 기 분으로 그것을 들어올리고 이층으로 향해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이상한 녀석이었다. 이것을 가지고 내가 도망가면 어쩌려고! 허긴 이렇게 무거워서야 가지고 도망가기도 어려웠다.최소한 마차나 말이 있어 야 날렵하게 가지고 도망갈 수 있을 것이었다.그러나 이 꼬마는 대체 뭐하는 녀 석일까? 이런 보물상자를 태연자약하게 지고 다니질 않나, 나타난 녀석의 목을 댕겅 잘라 버리질 않나! 대체 뭘로 자른 것일까! 시체를 생각하니 욕지기가 치밀어 올랐다.나는 아직 살인을 해 본일이 없었다. 게다가 저렇게 참혹한 시체라니..공포가 문득 치밀어 올랐지만 호기심쪽이 더 강했다.나는 입술을 깨물고 이층으로 올라가 그녀석이 누워있는 방안으로 들어 섰다. 녀석은 제법 넓은 방의 침대를 발견하고 그 위에 큰 대자로 누워있었다.그리고 는 하품을 하면서 나에게 말했다. "너도 쉬어라." "하지만 저놈들이.." 나는 나도 모르게 그의 편이 되어버린 상황에서 우물거리고 말하려 했다.그러나 녀석이 잘라 말했다. "이 쿠베린님의 이름을 듣고 또 덤비려 한다는 거냐?" 나는 눈쌀을 찌푸렸다. "너 대체 뭐하는 놈이지? 아까 놈들이 무서워 도망가는 것을 보니.." "나? 난 엘리야에서 가장 유명한 분이시지.무적의 쿠베린이라고 불리우며 어둠 의 귀공자라고도 불리우지.혹은 .." "그만해둬." 나는 역겨워져서 으윽 해 보였다. 녀석은 체엣 하고 상처받은 듯한 표정을 하더니 나에게 물었다. "몇살이냐? 너?" "스물..둘.그러니까 너는 나에게 그렇게 함부로 해선 안돼!" 내가 연장자의 위엄으로 엄하게 말하자 그는 내 말은 들은 척도 하지않고 천정 을 보면서 누운 채로 중얼거렸다. "흐음..앞으로 이십년은 잘 써먹을 수 있겠군." "뭐야? 너 사람이 말하는데 ..그렇게 건방지게 굴거냐!" 내가 주먹을 쥐고 항의했지만 그는 들은 척도 하지않고는 침대위에 어린애 마냥 뒹굴 뒹굴 하더니 갑자기 생각난 듯 나를 향해 물었다. "그런데..너 따뜻하니?" [쿠베린 별전] 스카의 이야기 종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