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베린] 막 간 극..항구의 여인 05/06 01:29 226 line KUBERIN....... 너그러운 바다에는 뭐든지 묻을 수가 있었다. 나의 이름 나의 아픔 그리고 다른 자의 아픔.. 막 간 극 항구의 여인 회색빛 파도가 높이 치솟으며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세찬 비바람이 파도를 잡아채서 허공으로 집어던지고 파도는 그 바람에게 이끌 려 사방으로 육지를 휘갈겼다.때리고 때리고 할퀴고 노려보며 으르렁대는 그 모 습은 성난 야수가 날뛰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늘과 바다의 경계선은 사라진지 오래,어느 새인지 하늘과 바다는 한 덩어리가 되어서 세상을 후려갈기고 두들기고 또는 위협하며 또는 비웃어댄다. 새까맣게 몰려들고 다시 흩어지는 옅은 구름들은 회색빛 파도와 어우러져서 하 얗다기보단 잿빛에 가까운 물보라와 함께 일그러졌다. 새까만 무채색의 바다. 성난 야수의 바다. 무자비한 손을 가진 거대한 어떤 것이 생명을 희롱하는 바다. 여자는 아무도 없는 항구에 서 있었다. 다른 배들은 모두 묶여져서 방파제 너머에 숨어있는 시각에 여자는 방파제 가장 가까운 곳에 늘어진 자세로 서 있었다. 멀리서 굉음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우울한 낯빛을 한 하늘이 얼굴을 찡그려대 면서 을러대는 동안 점점 어두워지는 바다색이 노골적인 분노의 기운을 띄우고 있었다. 여자의 옷자락은 이미 푹 젖어서 젖은 것인지 물 속에서 걸어나온 건지 알수 없 는 상황이었지만 여자는 묵묵히 서서 그 자리를 고수하고 있었다.비와 파도에 실린 바다의 타액과 어우러진 젖은방파제는 이미 젖었다기 보단 물 위에서 희 롱당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녀의 눈은 갈색이었다. 갈색이지만 검게도 보인다. 어두운 저 심연의 바닥까지 떨어져버려 도저히 올라올 마음이 없다는 듯한,절망 적이고도 허망한 색깔. 그녀는 두 주먹을 쥐고 서서 마치 당장이라도 누군가에게 덤빌 듯한 빳빳한 자 세로 서 있었다.적의와 절망이 감도는 눈과 분노에 가득찬 일그러진 입가가 으 드득 하고 이를 가는 중에 계속 옆으로 비뚤어지고 있었다. 그녀는 아직 젊었다. 아니,확실히 젊었다. 아직 서른도 채 되지않은,이십대 후반의 젊은 여인은 고집센 표정으로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두 주먹을 쥐고 있었다.가냘픈 인상은 전혀 없는 강 인한 어깨와 팔뚝이 마치 나무둥치처럼 빳빳하게 그녀를 세워놓고 있었다. 그녀의 앞으로 누군가가 걸어왔다. 누군가가 그녀에게 다가왔다기 보단 그 누군가도 그녀의 앞에 와 섰다는 것이 옳은 표현이었다. 그녀가 얼마나 서 있었는지 그는 잘 모른다.그리고 알 바도 아니었다. 그는 갈갈이 찢어진 옷자락을 내버려두고 반쯤은 알몸이나 마찬가지인 몸으로 앞도 잘 보이지않는 상태로 걸어왔다.그리고는 바다를 향한 방파제의 끝에 그녀 와 다름없이 서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발치는 붉었다. 그의 가슴과 그의 어깨와 그의 머리와 혹은 전신에서 흐르는 붉은 액체가 비와 소금기 어린 사나운 바다의 타액과 어우러져서 분홍빛으로 희석되고 있는 중이 었다.그는 그런 상태로 무심히 팔짱을 끼고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나운 바람과 빗줄기가 그의 머리칼을 산산히 흩어놓으면서 그 검은 머리칼을 그의 흰 이마에서 제껴버렸다.그리고는 그 드러난 녹색눈에 얼음같은 빗줄기를 쏟아 부어대고 있었다. 넓은 어깨와 넓은 가슴과 상처난 흉터투성이의 몸체를 하고 사내는 문득 자신 을 향하여 꼼짝않고 선 여인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꼼짝도 않고 마치 석상처럼. 그녀는 기쁨에 가득차 사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자리에 사내가 서 있었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다가 갑자기 그가 하늘에서 툭 떨어져 내렸다는 양 그녀는 양 손을 입가에 댄 채로 환희의 눈물을 흘렸다. "당신..돌아왔군요!" 그녀는 팔을 뻗히고 그에게 다가가서 그를 끌어안았다. 그녀는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흐느끼기 시작했다.안도와 환희가 그녀의 몸안 에서 솟구쳐 올랐고 사내는 등뒤에 파도가 튕겨내는 무수한 물보라와 하늘이 쏟 아내는 물화살을 맞으면서 묵묵히 그녀가 하는 대로 서 있었다. 그녀의 앞섬에 그가 흘리는 피가 묻어나오자 그녀는 흠칫 놀라며 웃음을 띈 얼 굴로 속삭였다. "어머..당신,다쳤군요! 얼른 치료해야 겠어요." 그녀는 수선스레 그의 팔을 잡고는 끌어당겼다.그리고는 그를 세차게 몰아치는 폭풍우 속에서 그를 지키기라도 하는 양 팔을 뻗어 그의 허리를 안고 거침없이 거리로 들어섰다. 마을사람들은 그녀가 어떤 사내를 안고 가는 것을 보았다. "우리 남편이 돌아왔어요!" 그녀가 기쁜 양 외쳐대고 있었다. 그녀는 자랑스레 말했다. "우리 남편이 돌아왔어요! 내가 말했죠? 그는 돌아와요! 돌아온다고 했거든요!" 그녀는 미소를 짓고 그를 끌며 집으로 향했다. 마을 사람들은 묵묵히 그 모습을 바라본다. 그들의 얼굴에는 연민과 슬픔이 가득차 그녀의 환희를 지켜볼 여력도 없는 양 했다.체념과도 같은 분노. 그녀의 발밑으로 물 웅덩이가 세차게 파편을 튕기며 흐트러졌다.그녀는 맨발로 거침없이 걸었다.마을사람들의 눈초리에도 아랑곳 하지않고 사내가 묵묵히 그녀 를 따르는 것을 기쁜 마음으로 그녀는 걸었다. 팔짝 팔짝 뛰면서 어린 소녀처럼 그녀는 걸었다. "봐요,당신,나는 알고 있었어요.당신이 돌아온다는 것을.아무도 믿지 않았지만 나는 믿었어요." 그녀는 사랑스런 소녀처럼 사내를 올려다 보며 미소지어 보였다. 빗줄기에 온통 젖어버린 몰골로,별로 숱도 없는 보잘것 없는 갈색 머리칼을 뒤 로 넘긴 채 그녀는 그의 팔뚝에 매달려 재잘거렸다. "이런 비는 아무것도 아니에요.당신,화났군요.내가 이런 빗속에서 기다렸다고!" 그녀는 배를 만져보였다. 아무것도 없는 훌쭉한 배였다. "이 배안에 우리 애가 있어요.아들이면 이름을 뭐라 하면 좋겠어요?당신?" 그녀는 아무 말없는 사내의 팔뚝에 뺨을 기대었다. 그녀의 뺨엔 홍조가 감돌아 갓 시집온 새색시처럼 온화하고도 수줍은 표정이 되 어 있었다. "음..다음 달이면 우리 애가 태어나요..당신,아들을 바라나요? 딸을 바라나요?" 그녀는 나직하게 훗훗훗 웃음을 짓고는 그의 팔뚝을 잡아채서 멀리 보이는 자신 의 집까지 달려갔다. "어서.어서.당신 홀딱 젖었지요? 피로하지요?" 그녀는 문을 열고 그를 들여보냈다. 그리고는 물이 줄줄 흘러내리는 몸을 들어서 그를 안쪽으로 밀고는 스스로 바삐 움직여 아무 불기도 없는 난로에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불쏘시개를 넣고 장작을 넣고 그리고 재빠르고도 익숙한 태도로 화로에 불을 붙 인다.그녀는 사내가 그저 묵묵히 서서 사방을 돌아보는 것을 지켜보며 미소했 다. "곧 따스한 스튜를 올릴께요.당신 좋아하는 것으로." 그녀는 미소를 지으면서 부엌으로 걸어들어갔다.마치 춤추는 듯한 붕 뜬 듯한 걸음걸이였다. 타닥 타닥 난로불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그는 묵묵히 그 난로의 불을 바라보면서 출혈과 차가운 비바람으로 잃어버린 체 온을 천천히 채워나갔다.그리고는 두 손을 뻗어서 불기를 가만히 움켜쥐듯 받아 들였다. 그녀가 그를 들여놓은 방안에는 낡은 먼지투성이의 탁자가 다섯 개,그리고 의자 가 여기 저기 흩어져 있다.여기 저기 살림살이인듯한 나무 그릇이 뒹굴고 마치 어떤 심한 장난 꾸러기가 흩어놓은 듯 이런 저런 물품이 바닥에서 굴러다니고 있었다.어쩌면 며칠이나,혹은 몇달이나 사람 손이 닿지않았는지도 모른다. 사내는 온기를 회복하자 팔짱을 끼고 천천히 비바람이 들이치고 있는 창가에 가 서 섰다. 마을의 사람들은 조그마한 창가에 서서 그가 선 창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의 눈에 슬픔과 연민이 쌓여있었다.우울한 얼굴들이 그들보다 우울하여 검 어진 하늘과 잘 어울어지고 있었다. 사내는 팔짱을 낀 채 묵묵히 그것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먼지냄새가 축축한 공기와 어우러져서 매캐한 냄새를 피어올리고 있었다. "당신..피곤해요?" 그녀가 화들짝 밝은 음성으로 다가와서 그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사내는 여전히 무표정했다. 청동빛을 연상시키는 단단해 보이는 얼굴은 표정없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비인간적인 얼굴이었지만 그녀는 상관없다는 듯이 행복한 미소를 퍼올렸다. "쉬세요.당신." 그녀는 그의 팔을 잡아 끌면서 이층으로 올라갔다. 이층 계단으로 올라가면서 그는 타고 있는 음식냄새를 맡았다. 그 냄새는 흡사 가죽을 태우는 것과 비슷했다. 고개를 돌려 내려다 보니 그녀가 무쇠솥안에 넣어 끓이고 있는 가죽장화가 보였 다.가죽장화는 늘러 붙어서 쭈글 쭈글해진 채 솥안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당신 좋아하시는 양고기 스튜에요.좋아하죠?" 그녀는 사랑스런 미소를 짓는다. "나 당신이 돌아와서 행복해요." 그녀는 그의 팔뚝에 얼굴을 묻었다. 아침의 햇살 아래서 그는 눈을 떴다. 아침이라기 보단 낮의 그것은 피로한 눈을 찌르는 듯이 쏘아댔다.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서 창가로 다가갔다. 어제와는 전혀 다른, 희고도 청명한 날씨가 낡아빠진 방안을 밝게 물들이고 있 었다.밖에선 사람들 소리가 활기차게 들려온다. 창 아래 거리는 바글거리는 사람들 소리,사람들 사이에는 이런 저런 장사치들과 이런 저런 손님들이 어우러져서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가 고개를 돌려 침대를 바라보니 거기에는 머리를 산발한 채 늘어진 여인이 누워있었다.무언가가 그리도 불안한 지 그녀는 두 손으로 침대보를 꽈악 붙잡고 는 움켜쥔채 미동도 하지않고 잠들어 있었다. 그는 방안을 돌아보았다. 얼룩진 침대보를 덮어 쓴 낡은 커다란 침대와 여기 저기 늘어진 어린애 장난감 들,손수 깎은 듯이 보인 나무오리나 나무 말등이 비참하게 쓰러져있었다. 어린애 요람도 바닥에 구르고 있다.방안에는 아무 것도 살아있는 것이 없었다. 그는 손을 뻗어서어린애 요람을 흔들어 보았다.먼지가 묻어난다. 방안 여기 저기가 새고 있었다.아마도 어제의 비 탓인 모양이었다. 그는 아래 층으로 내려갔고 역시 먼지 투성이의,과거 선술집인 듯한 그런 흔적 들을 보았다. 그리고는 난로의 불을 지피고 처음부터 그랬었던 양 그 앞에 의자를 두고 가 앉 았다. 옆 집의 수다스런 여자가 말하고 있었다. "어제,대체 그녀는 누굴 데려온 거지?" "몰라.그러나 불쌍하기도 하지,그녀는 완전히 미쳤어." "저런.." 우울한 탄성.미묘한 연민. 그는 타오르는 불꽃을 보았다. 손을 뻗어서 자신의 손을 한 번 불빛에 비추어 보았다. 손톱이 점점 길어져 마침내 긴 날을 이루었다.다섯개의 길고도 가는 칼날이 그 의 손안에서 튀어 나온 양 보였다. 그는 그 손톱을 물끄러미 바라보고는 또다른 손을 들어 손톱을 꺼냈다.그리고는 반대편 손톱안에 박혀 말라 비틀어진 살점들과 핏덩이를 제거 하기 시작했다. 축축한 나뭇가지들이 연기를 내며 타오르고 있는 동안 끼익 끼익 나무판자들이 일그러지는 소리와 함께 그녀가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그녀는 멍한 시선으로 허공을 바라보면서 내려오고 있었다.그 갈색눈은 헤메이 면서 아무 것도 없는 허공을 향해 미소짓고 있었다. 아무 것도 없는 텅 빈 눈. 그녀가 내려왔을때 그는 긴 손톱을 핥으면서 손톱소제를 마친 참이었다.그가 어 둠속에서 녹색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는 멍한 시선으로 배시시 웃었다. "안녕, 고양아.." 그도 웃었다. 그는 녹색 눈을 반짝이면서 손톱을 집어 넣었고 그 다음에는 고개를 살짝 숙였 다.그리고 그 순간 그의 몸에서 커다란 넝마와도 같은 찢어진 튜닉이 바닥으로 미끌어져 떨어졌다.그리고 그 자리에 둥근 어깨를 한 흰 피부의 소년이 넝마와 도 같은 자신의 옷자락을 밟은 채로 피식 웃었다. 실 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소년은 손을 앞으로 벌린 채 그녀의 앞으로 다가왔 다.그는 흰 맨발로 마치 고양이처럼 소리도 없이 걸어서 그녀에게 다가와 그녀 의 허리를 끌어안았다.그녀는 눈을 크게 뜨고 미소를 머금은 채로 소년의 알몸 을 두 팔로 끌어 안았다.그녀의 몸안으로 환희의 흔들림이 스쳐지나갔다. "잘 돌아왔어.내 아가...이 엄마는 기다리고 있었지." 그녀는 행복한 미소를 지었고 소년은 그녀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응..마미." 막 간 극 항구의 여인 종.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