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7 이수영 (ninapa ) [쿠베린 별전 4] 명 예 08/23 19:30 289 line KUBERIN......... 때로는 손가락사이로 미끌어져 나가 다시는 주워 담을 수 없는 것이 있다.... 그리하여 절망한다 [별전] 명 예 "로손 에브소핀 에고린 더 케타라니." 그는 고개를 들어서 정면을 보았다. 그 정면에 서 있는 것은 그의 아우인 린 에브레인 에고린 더 마스라탈이었다. 단정하고 조용한 눈매는 표정을 잘 알수 없었지만 부드러웠다. 약간 두려워하는 것 처럼도 보였다.그의 작은 어깨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조 금은 가늘었다.본디 푸른 아인족들은 체구가 큰 편은 아니지만 에브레인은 그 중에서도 작은 편에 속했다. 아직 나이가 어린 탓이겠지만 그 나이때에 에브소핀이 덩치가 컸던 것을 생각한 다면 역시 그의 모친을 닮은 것이라고 밖엔 말할 수가 없었다. 에브소핀은 전신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상태로 역시 자신과 같이 벌거벗은 상 태인 어린 동생을 바라보았다.동생은 긴장하고 있지만 범상한 솜씨를 가진 것은 아니었다.그리고 그 솜씨는 그가 가르쳐 준 것이었다. 그는 긴장한 동생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기 에 표정을 무표정하게 굳혔다. 에브레인은 얌전한 성품이어서 이 어린 아우에 대해서 에브소핀은 언제나 사랑 스러움을 가지고 있었다.에브레인은 본래 아버지 루달리칸 아스모닌이 데려온 세번째 부인에게서 나온 아이였지만 친 형제인가는 아직도 의심스러웠다.하지만 사랑스럽다.이 어린 동생이 자신의 손을 잡고 처음 걷기 시작할 때를 그는 아직 도 감동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물론 지금은 그런 회상을 하고 있을 때는 아니었다. 그들을 둘러싼 부족의 장로들은 지금 그들이 벌일 대결에 대해서 고대하고 있었 다.일족의 후계자를 결정하는 이 자리는 장난이 아닌 것이다. 아버지 루달리칸 아스모닌이 반쯤 누운 채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달이 떠서 푸르고 창백한 빛을 사방에 뿌리고 있는 광야를 바라보며 긴장한 두 형제는 그렇게 마주 보고 서 있었다. 무기라고 받은 것은 단 하나의 단검이었다. 둘 중 하나가 이기면 후계자는 결정되는 것이긴 하지만 사실상 후계자는 에브소 핀으로 결정되어 있었다. 에브소핀은 올해 43세였다.부족의 이름으로 결정된 달에 따르면 그의 나이는 이 제 붉은 달에 접어 들고 있었다.그가 붉은 달의 나이가 되었다고 결정된 날 부 터 그는 아내를 맞이할 수 있게 되고 일족의 주인이 될 자격권을 얻는다.여태까 지의 모든 관문과 시련의 결과 그는 일족의 주인이 되기에 적합하다는 판정을 받고 있었다. 그러니까 아직 어리고 붉은 달에 접어들지도 못한 에브레인은 그의 적수가 아니 었다.하지만 율법은 율법이었다.에브레인과 에브소핀은 아버지의 단 둘 밖에 없 는 아들로서 결투하여 그 우위를 결정지어야 했다. 에브레인의 손이 떨리는 게 보였다. 에브소핀은 미소해 보여주었다. 에브레인이 조금 안도한 눈빛이 되었지만 여전히 그는 두려워 하고 있었다. 뭐가 두려운 것일까 하고 에브소핀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것은 의례적인 결투일 뿐이었다.그러니까 그가 그렇게 두려워 할 필요는 없었 다.그저 결투를 하다가 에브소핀이 이기면 그것으로 그만이고 에브레인이 붉은 달에 접어 들면 그의 아우로서 새로운 일족의 주인이 되면 되는 것이다.그런데 왜 저렇게 긴장하는 것일까 하고 잠시 동안 에브소핀은 생각해 보았다. "자,에고린가의 후계를 결정하는 신성한 대결이오.일족의 여러분 주목해 주시 오." 마침내 부족장이자 일족의 장로인 슬라인 에브와니가 일어서서 말했다. 그는 에고린가의 먼 친척이기도 하기때문에 이 승부에 빠져선 안될 존재였다.그 는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그덕이면서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린 에브레인 에고린 더 마스라탈,그대는 이 일족의 율법에 따라서 신성한 대결 에 응할 것인가?" "네." 에브레인이 답했다. "로손 에브소핀 에고린 더 케타라니.그대는 이 일족의 율법에 따라서 신성한 대 결에 응할 것인가?" "네." "좋아...그럼 우리들 아므네 일족이 결정한 사항에 대해서 말해 주겠다. 아므네 아스로논 테라이논,우리들의 아버지께서 이 땅위에 처음 서시는 날 달은 빛나고 우리들의 피부는 푸르게 물들었다.우리들은 푸른 숲에서 살도록 예정되 었으며 그 푸른 숲의 가장 자리에 위치한 케노인 수랄의 딸 라스모라와 아므네 아스로 테라이논께서 혼약의 인을 맺으셨도다.라스모라의 첫 아이는 쌍둥이였으 며 그 쌍둥이는 태어나 우리들의 형제 자매를 만들게 되었노라. 쌍둥이로 자라나 어느쪽이 테라이논의 후계가 되는가를 결정한 것은 황야의 신 성한 원의 대결, 테라이온이 주신 이 검으로 그들의 기량과 그들의 힘을정하는 것이니, 그 중 첫째인 오라이온 에노브라께서 대결에서 이기시고 후계가 되었고 그리하여 붉은 달의 주인이 된 오라이온 에노브라는 사촌인 케노인 사이놀의 딸 바릿사와 혼인하여 이 일족을 다스렸노라.대결에 진 동생 호스란 비오니는 새로 운 일족의 주인이 되어 또다른 땅의 주인이 되었다.그리하여 이 대결은 일족의 후계와 가문의 후계를 정하는 엄숙하고도 성스러운 혈족의 중대사 이니....." 그들의 아버지인 루달리칸 아스모닌이 병색 가득한 얼굴로 주먹을 쥐고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그의 나이는 이제 백오십여세가 넘었다.슬슬 은퇴할 나이에 접 어들고 있긴 했지만 아직은 정정해야 할 나이였다.병마가 그를 덮치지않았다면 그는 이백오십여세까지 건강한 모습을 갖추었어야 했다.그러나 그는 이제 병이 들었고 두 아들은 후계자결정식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 일족들은 모두 침묵한 채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약 삼십여명이 이쪽을 주시하 면서 눈빛을 빛내고 있었다.그들의 일족,에고린 가의 차기가주를 결정하는 자리 이므로 그들 자신도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에브소핀은 숨을 내 쉬었다. 의식은 오래 걸리는 것은아니지만 이런 식으로 피를 말리는 점이 없지 않아 있 었다.그들의 형제인 에프란과 사오닌,다이스란,아다모나 등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자신들의 약혼자를 데리고 앉아 있는 그 모습 속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 었다.그녀들은 모두들 에브레인을 좋아하지 않았다. 누군지도 모를 녀석이 후계 자의 대결장에 나온다는 것은 너무하는 일이라고 사오닌과 에프란이 차라리 자 신들의 약혼자를 세워 달라고 아버지에게 외치는 것을 들은 바 있었다. "바보같아! 어째서 저녀석이 대결장에 서는 거지!" "저 자식은 아버지의 친자식이아닐 지도 몰라!" "그런데 왜 저 자식이 대결장에 선단 말이야? 차라리 내 약혼자 오닌이 더 적합 하다구! 신성한 대결장에서 피도 이어지지 않은 애와 싸운다는 것은 말도 안 돼!" 하지만 에브소핀은 불만이 없었다. 어린 두 눈으로 그의 손을 꼭 잡고 일어서던 그 어린 꼬마가 지금 자신의 앞에 늠름하게 서 있었다.그것만으로도 그는 기뻤다. 그들의 달은 그들의 몸뚱이를 비치며 그들의 긴장된 피를 들끓게 하고 있었다. 사방이 뚫린 이 황야의 원의 대결장에 선 다른 일족보다도 강인한 이 부족의 명 예를 위해서 두 형제는 마주하고 있었다. "자아...그럼 시작하라!" 북소리가 울려퍼졌다. 에브소핀은 긴장한 에브레인이 공포에 가까운 눈빛으로 단검을 고쳐 들고 그를 바라보는 것을 보았다.아직은 여유가 있는 에브소핀은 단검의 날을 살짝 확인하 면서 앞으로 한 걸음 내딛었다. 푸른 몸뚱이가 긴장해서 튀어 올라 그의 눈앞으로 쇄도해왔다.몸을 굽히면서 에 브소핀의 몸이 그 아우의 검을 피해냈다.그리고 달빛에 반사되어 푸르게 빛나는 단검이 그들 사이에서 반원을 그렸다. "핫,.." 여기저기서 긴장된 감탄사가 터져나왔다. 에브소핀은 아우의날렵함에 감명받았다. 에브레인은 결사적인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그의 슬픔에 가득찬 눈,두 려움에 가득찬 눈이 달빛에 반사되어 은빛으로 빛났다. '뭐가 그리 슬픈거지?' 에브소핀이 생각할 찰나에 에브레인의 단검이 날아들어서 에브소핀의 가슴을 찔 러왔다.에브소핀은 몸을 뒤로 튕겨내면서 그것을 피해냈지만 일직선으로 찔러온 그 속도에 못이겨 가슴에 상처가 나 핏방울이 흘렀다. 따끔한 아픔에 에브소핀은 조금 놀랐지만 한 편으로는 분노가 솟아 올랐다. 어린 동생이 이 정도 실력을 가지고 있으리라곤 생각지 못했고 이렇게 살의마저 가지고 달려들 줄은 생각지 못한 탓이었다. '이 녀석이!' 에브소핀은 얕보는 마음을 버리고 눈을 가늘게 떴다. 그리하여 이 두 형제 사이에 살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바람이 죽어있는 황야에는 긴장감만이 맴돌았다. 푸른 몸뚱이가 움직일 때마다 달빛에 어린 알몸이 빛을 발했다.그들의 푸른 몸 과 푸른 검날이 같이 빛을 발하면서 한 바탕 검무를 추고 있었다.그러나 그들이 춤추고 있는 원안은 보는 자들의 얼굴이 굳어질 것같은 혈전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좌악 하고 다시 한번 에브소핀의 검날이 에브레인의 팔뚝을 그었다.핏줄기가 일 어나 그의 얼굴에 튀었고 그 와중에 에브소핀은 그를 걷어 찼다. 뒤로 나뒹군 에브레인의 얼굴을 보면서 살기에 찬 에브소핀이 그에게 달려들었 다.바닥에 뒹군 에브레인의 손안에서 단검이 튀어 나가 바닥으로 작은 원을 그 리며 떨어져 나갔다. 에브소핀은 그 단검의 날을 맨발로 밟아 아우를 무력화 시키고 뒤를 이어서 단 검의 날을 들어 올리려 했다.그리고 칼을 들어올려 찔러야 할 순간에 그는 공포 에 질린 아우의 얼굴을 보고 머뭇거렸다. 그리고 그 때 그의 시야로 누런 것이 달려들었다. 그는 눈알에 들어간 이물질로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다.따가움으로 눈안에서 눈물이 튀어나왔다.앞이 보이지 않았다. "우웃,.." 그가 단검을 쥔 채로 뒤로 주춤 주춤 물러나서 자신의 얼굴을 덮은 그 이물질을 닦아내려고 애쓸 때 차가운 검날이 배에 느껴졌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크게 외쳤다. "에브레인! 네가!" 칼날은 반쯤 들어오다가 멈추었다. 그는 흙먼지를 손바닥으로 간신히 헤쳐내고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자신의 배 를 내려다 보았다.그의 배를 반쯤 찌른 단검을 쥔 소유자는 멍하니 두 눈을 뜨 고 자신을 올려다 보고 있었다. 흙먼지로 범벅이 된 얼굴을 닦으면서 에브소핀은 슬픈 어조로 물었다. "왜..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냐?" 단검을 손에서 떨어뜨린 어린 아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의 눈에서 공포가 떨어졌다.그의 눈에서 슬픔이 떨어져 내려 흙바닥으로 떨어 지고 에브소핀의 발등으로,그의 상처입은 복부로 흘러내렸다. "...무서웠으니까..." 떨리는 입술로 아우가 말했다. "무엇이? 에브레인? 무엇이 두려웠던 거냐?" 에브소핀은 무한한 슬픔으로 되물었다. "...형이 날 죽일 거란 것에. 형이 날 버릴 것이란 것에..." 그의 얼굴에서 넘쳐나는 눈물을 보면서 에브소핀은 그의 얼굴을 피와 먼지로 얼 룩진 손으로 어루만졌다. "너는 새로운 일족의 주인이 될 뿐 나는 널 죽일리가 없어." "거짓말..그러나..누나들은 형이 날..." 그의 어깨가 무너져 내렸다. 그의 단검이 에브소핀의 발 밑에 떨어져서 울고 있었다. 에브소핀은 고개를 떨구고 자신의 발밑에서 울고 있는 아우를 보았다.누구의 핏 줄인가는 오로지 아버지만이 알고 있는 이 어린 아우는 그보다 열다섯살이나 어 린 아이였다.그가 걸을 때 자신이 옆에서 손을 잡아 주었고 첫 사냥도 첫 몽정 도 그가 가르쳤다.싸움도 노래도 모두 그가 가르쳐낸 어린 아우였다. "에고린 가의 불명예요." 장로가 말했다. 달빛아래서 푸른 몸으로 울고 있는 어린 아우를 바라보고 있는 에브소핀을 향해 장로들이 말하고 있었다. "후계대결에서 암수를 쓴 것은 있을 수 없는 불명예." "에고린 가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수치중의 수치." "흙을 뿌리다니,있을 수가 없는 일이야." 에브소핀은 고개를 들어서 달빛을 바라보고 그 다음에는 창백한 얼굴로 비탄에 빠진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의기양양한 얼굴의 일그러진 누이들을 바라보았다. 그는 분노를 느끼고 어린 아우를 내려다 보았다. "에브레인..." 에브소핀은 절망한 어투로 물었다. "너는 나를 믿지 못했느냐?" 울고 있는 아우는 말을 잇지 못하고 형의 발치에서 작은 몸을 구부리고 울고 있 었다. "너는 나를 왜 믿지 못했느냐?" "나는 너에게 날 믿으라고 말했다." "나는 너의 형이다." "너는 왜 날 믿지 못했느냐...." 작은 몸뚱이를 채찍처럼 휘갈기면서 에브소핀은 그렇게 물었다. 노예상인이 왔다. 희미한 빛이 스며드는 토굴안을 가리키면서 장료들은 노예상인에게 그를 인도했 다.토굴안에 짐승처럼 웅크리고 있는 소년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않았다. "추방입니까?" 노예상인이 고개를 깊숙히 숙이며 물었다. 장로들은 고개를 그덕여 이방인에 대한 예를 다했다.일족은 이방인을 멀리하며 경멸하고 이방인을 가까이 하지 않았지만 이 노예상인은 예외였다. 그는 어릴 때 일족의 손에 의해 키워진 사내였다.일족은 이 사내가 성인이 될때 까지 일족의 여인의 젖을 먹여 키우고 그를 내보냈다.그가 다시 돌아왔을때 일 족은 그에게 처형인의 지위를 주었다. 그는 눈빛을 번뜩이면서 늘어진 소년을 바라보았다. 어제까지는 지위가 높았던 소년은 울고있지도 비통에 빠져 있지도 않았다.그는 그저 그 자리에 굳어서 꼼짝도 하지않았다. "아직 붉은 달에 다다르지 못했군요." 노예상인이 고개를 숙인 채로 고귀한 장로들을 향해 조용히 물었다. 장로들은 고개를 그덕였다. "그리고 이 죄인은 사악한 죄를 범했군요." 장로들은 고개를 그덕였다. "그렇다면...그는 죄의 댓가를 받아야 하는군요." 장로들은 고개를 그덕였고 노예상인은 소년에게 다가가 그 매끄러운 푸른 피부 의 턱을 잡고 그의 입을 벌려 자신의 도구를 끼워 넣었다.소년은 전혀 반항하지 도 반응하지도 않았다. 족쇄를 채운 노예상인은 장로들을 향해 고개를 숙여 보였다. "아주 멀리,멀리 데리고 가겠습니다.다시는 일족에게 돌아오지 못할 것입니다." 장로들은 고개를 그덕였고 소년은 일어섰다. 그리고 소년은 노예상인의 손에 이끌려 비틀거리면서 밖으로 걸어나왔다. 빛나는 태양아래서 그는 모멸감과 분노에 섞인 시선을 받았다. "비겁자!" "형을 배반한 비겁자!" "암습한 비겁자!" 어린 아이들은 그에게 돌을 던졌고 여자들은 침을 뱉었다.그리고 그는 아무 것 도 하지 않고 그 길을 묵묵히 걸었다. 노예상인은 아무말도 하지않았다. 소년은 결투 때 그대로의 알몸에 맨발인 상태로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하고 그저 경멸만 안고서 그 자리를 떠났다. 일족은 그를 용서하지않았다. 그를 경멸하고 그를 조롱하면서 그의 연약한 마음을 응징했다. 마지막 순간 그는 형을 배신하고 죽음을 두려워 했으며 도망쳤다. 마을 밖으로 나오자 노예상안이 물었다. "배가 고픈가?" "......" "대답할 수 없겠지.너는 다시는 여기에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 햇빛은 빛나고 있다. 무참한 뜨거운 돌맹이들이 그의 맨발을 공격했다.그래도 무심히 소년은 걸었다. 피가 맺혀도 그는 아무런 신음도 반응도 보이지않았다. 그 모습을 보던 노예상인은 자신이 들고 있던 보따리에서 가죽신발을 꺼내 그에 게 신겼다.그리고 그의 아랫도리를 천으로 둘러주었다. "새로운 삶이 시작되든 혹은 네 앞에 죽음이 기다리고 있든, 그것은 너의 선택 이다." 노예상인이 말했다. "그리고 지금 내가 할 것은 상품인 네가 더이상 상처입어 값이 떨어지지 않도록 보살피는 것이지." 소년은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렇지만 아직 그는 자신을 후려갈긴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왜 나를 믿지 못했느냐..." 그는 공허한 녹색 눈을 들어서 잠시 멈춘 뒤 다시 걷기 시작했다. 명예를 잃은 것은 이름을 잃은 것. 이름을 잃은 것은 죽음을 잃은 것과 같은 것. 죽음을 잃은 것은 삶을 잃어버린 것과 같은 것. 삶을 잃어버린 자 앞에 놓여진 것은 검은 절망 뿐. 떨그럭 떨그럭 걸을 때 마다 그의 발에 채워진 족쇄가 소리를 냈다. [별전] 명 예 종. 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