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베린] 제 18화 분 노 1 번호 사용자ID 이름 시간 조회 줄수 16926 ninapa 이수영 1999-06-17 703 235 KUBERIN...... 살아있는 자라면 누구라도 죽음과 한 걸음 틈을 두고 걷는다 죽음을 피하는 것도 자유 죽음과 맞서 싸우는 것도 자유. 1 "몇명이나 죽였다고?" "..정확히 말할 수는 없습니다. 숲 전체가 시체 더미라서..게다가 성한 시체 라곤 거의 없고..모두 갈기갈기 찢겨져서..." 덜덜 떨면서 전령이 말했다. "....몇? 그래서 대략 몇이라는 거야?" 녀석이 집요하게 되물었다. 보고 있던 놈들도 일제히 안색이 굳는다. 어이, 어이, 그렇게 말하면 불쌍하잖아? "천 오백에서 이천 오백선..이라고 생각합니다." 떨리는 목소리로 전령이 말했다. "천명이나 어떻게 차이가 나나! 정확히 말해!" 부들거리는 음성으로 녀석이 외쳤다. "말씀드렸다 시피...갈기갈기 찢긴 데다가 숲의 반 이상이 화재로 소실되었 고 그 주변에 널려있던 시체들도 타버렸고...사방엔 온통 시체더미입니다. 세세히 세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지경입니다." 녀석은 불안한 시선으로 나를 흘긋 바라보았다. 왜 날봐? 설마하니 뭘 죽이는데 고이 고이 사지를 보전해 주면서 없애는 획기적인 방법이라도 있단 말인가? 게다가 그렇게 난장판을 만들고 사방을 태운 건 내가 아니라고. 아무리 전지전능하신 이 몸께서도 그런 불장난은 못해. 나는 여유로운 자세로 탁자에 발을 얹은 채 포도주를 들이키고 있었다. 내 쪽을 은근히 외면하고 있는 녀석들은 덜 떨어진 창백한 몰골을 하고 있다. "게다가...몇백 메터 떨어진 마을에도 팔다리 같은 것들이 뚝뚝 떨어져 있 다는 보고가 들어와 있고...관도에도, 밭에도 시체조각이 여기저기에...." 녀석은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얼른 움추리며 피했다. 그리고는 우물 우물 주절댄다. "......그래서 추정하기가 어렵습니다...." 침묵이 흘렀다. "크크크큭...킥킥.." 누군가 웃었다. 돌아보지 않아도 그가 사인족의 왕이라는 것을 알수 있다. 녀석은 창턱 나 무 위에 걸터 앉아서 이죽거리고 있었다. 산발된 머리칼과 달리 눈빛은 번 쩍 번쩍 빛이 난다. 노란 눈이 일그러진 빛을 발하고 있다. 그 노란 눈에는 증오와 분노가 번 뜩이고 있어 보는 자들을 서늘하게 만든다. 인간들은 소름이 끼친다는 듯이 진저리를 치고는 다시 에메스를 일제히 바 라보았다. "쿠베린..." 에메스가 피를 토하듯 말했다. 그의 얼굴을 창백하고 피로해 있었다. 전령이 나가자 마자 그는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는 주먹을 쥐고 내 앞으로 와서 섰다. "그만 해줘...." "뭐를?" "전의 너로 돌아와줘." "전의 나?" "....전의 그 오만방자하고 명랑하던 어처구니 없는 소년으로 돌아와줘...." 그가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를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 말에 뭐라 대꾸할까 하고 입을 벌린 순간 갑자기 발작적인 웃음소리와 함께 야유가 쏟아졌다. "바보천치 아냐?" 사인족의 왕은 날렵한 자세로 방안으로 들어섰다. 그가 들어서자 비린내와 더불어 술내음이 퍼져나가서 옆에 있던 인간들 모 두가 옆으로 갈라져 피했다. 그의 전신에서 풍기는 비린내는 피비린내, 그 의 몸에서 나는 술냄새는 비탄의 냄새다. 그는 팔짱을 끼고 에메스를 조소 하고 있었다. "인간이여, 묘인족의 왕은 묘인족이야. 너희들의 잣대로 재는 거냐?" 눈을 가늘게 뜨고 에메스가 그를 노려보자 사인족의 왕은 킬킬거리고 웃었 다. "너희들의 옆에 있는 자는, 소년도, 인간도 아니야, 너희들의 곁에 있는 자 는 지상 위의 가장 막강한 학살자, 수백년을 살아온 노회한 괴물, 자기 혈 족을 죽이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자존심 덩어리의 살육자다." "말이 과하군. 이 내가 어디가 괴물이란 말인가?" 이렇게 잘생긴 괴물 봤나? 내가 중얼거리자 그는 날 보며 이죽거렸다. "당신 나이가 몇인지 나는 몰라. 당신은 아나?" "몰라." 당연 나도 모르지. 나이를 꼬박 꼬박 세는 건 인간이나 하는 짓이잖아. 자기도 자기 나일 모르면서 나에게 그런 걸 묻는 것은 실례 아닌가? 예의 도 모르는 놈. "최소 오백세가 넘었지? 아마도 당신 칠백세는 되어가지 않을까?" "몰라, 세어 본 적 없다." 내가 대꾸하자 그는 킬킬거렸다. "우리와 달리 묘인족은 강한 자를 가만두지 않잖아? 그 나이까지 살아남았 다면 너는 괴물이다. 너는 냉혹한 괴물일 수 밖에 없어." "시끄러워!" 그말에 반응한 것은 에메스였다. 그는 파리한 얼굴로 사인족의 왕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는 그렇지 않아!" 나는 새삼스레 에메스를 바라보았다. 대체 인간의 어느 점이 이렇게도 사랑스러운 것일까. 이 사랑스럽게도 아둔한 점은 놀라울 정도다. 에메스는 나의 앞을 가로막 고 자기에게 들려주듯이 외치고 있었다. "쿠베린은 괴물이 아니다, 그는 냉혹한 괴물이 아냐!" 나는 기묘한 감상에 사로잡혀서 에메스의 뒤통수를 바라보았다. 필사적으로 외치고 있는 이 꼬마는 내가 자기 뜻대로 움직여 줄 거라고 순 진하게 믿고 있었다. 자기가 위기에 처하면 달려올 것이고 자기가 죽으면 내가 울고, 자기를 생각하고 있다고, 그렇게 믿고 있다. 감탄스러울 정도다. 인간의 자아 도취적인 애정이란 것은. 가끔 그것이 독인 줄 알면서 나는 그것을 들이킨다. 인간의 애정은 독과 같다. 순간적으로 목숨을 걸고 모든 것을 건다고 수십 번 맹세하면서 인간은 애 정을 당당하게 요구한다. 그렇지만 그 애정이 수십년 가는 법은 별로 없고 평생을 가는 법은 있을 법하지도 않다. 몇 년 몇 달에 걸쳐 수도 없이 맹 세와 배신을 거듭해 가면서도 인간은 계속해서 애정을 상대에게 요구한다. 그러나 빌어먹게도 찬란하고 지저분하게도 끈끈한 이 놈의 인간의 애정이 라는 것은 이기(利己)와 위선과 모략이 점철된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눈 이 멀게 만든다. 몇 번이나 이 순간의 사랑에 나는 눈이 먼다. 수많은 여성들에게서 나는 순간의 타오르는 애정을 받는다. 그러나 내가 보답해 줄 수는 없다. 그녀들은 나보다 먼저 죽고 먼저 울고 먼저 뒤돌아 선다. 킬킬거리는 사인족의 왕은 턱을 어루만지며 날 비웃고 있었다. 그에겐 나 를 비웃을 자격은 없다. 그는 배반당했고 현명하지 못했고 어리석은 행동 을 취했으며 멸망하고 있는 종족의 왕이다. 그가 강하긴 하지만 그건 이미 패한, 상처 입은 자의 강함일 뿐이다. 이미 무너진 자는 다시 단련되기 전 에는 강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는 아직 무너져 있고 나는 그 무너진 얼 굴을 본다. "쿠베린이여...너는 언제까지 그런 가면을 쓰고 있을 참인가?" "가면?" "그럼 인간들을 희롱하는 이 연극이 그렇게도 재미있나?" "연극?" "그럼 연극이 아니면 뭐지? 인간들과 어울려 지낸다는 건 양들과 어울려 노는 맹수와도 같은 거야. 맹수는 이빨을 숨기고 양들을 바라보고 양들은 맹수가 자기 친구인양 착각하지." 그는 어깨를 으슥했다. "그리고 언젠가 양들이 맹수의 비위를 거슬리면 몰살당해 버리는 거야, 그 게 바로 네가 하고 있는 짓이지." "내가 인간을 먹는다구?" 이거 지금 멋진 비유라고 하는 건가? 인간이 양이라고? 살아있는 한 끊임없이 사방을 초토화시키는 음흉한 양이 있다면 뭐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 만약 인간이 양이라면 나는 새매 정도 되겠지. 양떼를 내려다 보고 간혹 양고기를 먹기도 하지만 결국 잡아먹지는 않는 그러한 정도. 양이라. 양.... 사인족의 머릿속에 대체 뭐가 들었는지 나도 좀 확인해 보고 싶군 그래. 그렇게도 어휘력이 모자라냐? "웃지 마." 사인족의 왕이 으르렁거렸다. 나는 말놀이를 즐기진 않는다. 고상하고 지루한 비유와 같잖치도 않은 풍 자를 즐기고 싶으면 엘프들과 놀면 된다. 어줍지 않은 사인족따위에게 일 일이 대꾸해 줄 정도로 나는 관대하지 않다. 나는 나에게 충실하다. 이런 놀이를 즐길 이유는 없다. 게다가 그다지 즐겁지도 않다면 놀이도 아니다. "나는 맹수가 아냐, 묘인족이지. 그리고 양들과 놀고 있진 않아, 난 인간을 먹어치우는 걸 즐기지 않거든." 녀석은 다시 조소하듯이 날 바라본다. 그 노란 눈초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내가 나이가 들어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 사인족의 왕." "뭔가?" "나는 바보가 싫어." "뭐얏!" 그의 눈은 여전히 공허하고 분노에 차 있다. 그렇지만 그가 어떤 표정을 가고 있든 내 알 바는 아니다. 그의 분노는 여전하고 나의 분노도 여전하 다. 그러나 나는 어디까지나 나의 기분대로 움직인다. 나는 나의 종족을 건드리고, 나의 아이를 훔쳐간 놈들을 용서할 수 없다. 양이니 맹수니 따위의 비유는 필요 없었다. 나는 그놈들을 부수고 밟고 갈기갈기 찢고 없애버리고 싶을 뿐이다. 그것 도 아주 확실하게, '인간적'으로 분명하게 말이다. 그러나 저러나 그런 걸 아는 놈들이 이 자리에 몇이나 있지? 이 심오하고 도 간단명료한 이 심정을 아는 자가 이 자리에 몇이나 있지? 포도주를 들이키고 나는 에메스의 등을 보았다. 에메스는 내 쪽으로 등을 돌리지 않고 있었다. 잔뜩 굳은 등이 마치 힘 주고 선 채로 오줌을 갈기는 것 같은 진지함을 보 이고 있다. 겁에 질린 녀석들이 에메스의 눈치를 슬금 슬금 보고 있다. 그렇겠지, 저 오줌을 갈기는 것 같은 자세도 역시 무서울 수도 있겠지. 이 자리에서 실 제로 병사를 가지고 땅을 가지고 힘을 가진 것은 에메스다. 이 인간들 중 에서 실제로 힘을 가지고 이 자리의 주인행세를 하는 것은 에메스니까 다 들 눈치를 보는 건 당연하겠지. 그가 나에게 배신감을 느껴도 나는 어쩔 수 없다. 나는 그에게 나를 믿으 라고 강요해 본 적도 없고 그렇게 암시를 준 적도 없다. 그는 그고 나는 나. 인간과 묘인족인 것만큼 떨어진 관계다. 게다가 그는 엘리야의 인간도 아니다. 그저 왕년 내가 귀여워했던 꼬맹이 의 아들일 뿐이다. "쿠베린..." 그가 낮고 거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여길 떠나...." 별로 놀라울 것은 없다. 그렇지만 어디 내가 가란다고 가고 오란다고 오는 분이시던가. "여길 떠나라구!" 그가 난폭하게 말하자마자 나는 잘라 말했다. "싫어." "왜지? 왜!" 그가 난폭하게 몸을 돌려 나를 쏘아보았다. 그 눈을 빤히 바라보면서 나는 태연하게 대꾸해주었다. "무엇 때문에 내가 귀찮게 돌아다녀야 하지? 룬드바르의 그 놈은 지가 알 아서 날 찾아올텐데." "하지만..! 사람들이 죽어!" "죽어야만이 그가 돌아보지 않나? 그래야만이 녀석이 두려워할 거 아냐?" 그의 얼굴이 굳었다. 뭐 여전히 굳어 있었던 얼굴이긴 하지만 그는 굳은 얼굴로 나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인간은 뜨거운 맛을 보지 않으면 두려움을 몰라." 어디 한 둘 죽어서 눈 하나 깜짝 하기라도 하나? 인간의 왕들은 원래 아무 생각없이 둔감하단 말이다. "그만 해!" 나는 턱을 괴고 에메스를 찬찬히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서 최초로 공포를 보았다. 그리고 나는 일어서서 그에게 한 걸 음 다가가 그의 어깨를 잡았다. 떨리는 그 어깨를 만져보고 그 얼굴을 마 주보고 그가 얼마나 나를 두려워하는가를 깨닫자 웃음이 나왔다. "...왜 웃는 거지?" "그냥, 귀여워서 그렇지." 나는 그렇게 짧게 말하고 그에게서 물러섰다. 건방지고 주제를 모르는 방자한 태도로 사인족의 왕이 흥 하고 옆에서 코 웃음을 치는 것을 들으며 나는 문으로 걸어갔다. 방안에 선 모두가 나의 위광으로 질식해 버리기 전에 문을 열고 나가자 마자 문 앞에 선 비오나와 튜나를 발견했다. 그녀들 옆에 선 것은 노란 눈의 계집애 아헬이었다. 그녀 는 작은 두 손을 쥔 채 사인족의 왕을 기다리고 있었다. 제법 그럴듯하게 옷을 끼어 입은 것을 보니 아마도 비오나가 옷을 주었나 보다. 그녀들의 시선에도 공포가 느껴진다. 나는 여자들을 무섭게 하는 취미는없지만 이 상황에 무서워 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도 웃기는 이야기가 될까? 그 얼굴들을 보고 웃어주면서 나는 천천히 복도를 걸어 밖으로 향했다. 멀리서 불어오는 바람에는 피내음과 섞인 꽃향기가 난다. 바람의 여신과 천공의 여신이 옷자락을 뒤흔들어 사방으로 냄새를 날린다. 시체 냄새와 더불어 나는 꽃 향기, 풀 향기, 그리고 야릇한 인간의 오물 냄 새. 햇빛은 따사롭게 길고 긴 원추형 모양의 창틀을 넘어 그림자를 만들어내고 있다. 약간 낡아 얼룩진 난간을 쥐고 나는 밖을 내다 보았다. 나무는 푸르고 인간들은 시끄럽다. 슬프다. [쿠베린] 제 18화 분 노 2 번호 사용자ID 이름 시간 조회 줄수 16927 ninapa 이수영 1999-06-17 598 346 KUBERIN....... 살아있는 자라면 누구라도 죽음과 한 걸음 틈을 두고 걷는다 죽음을 피하는 것도 자유 죽음과 맞서 싸우는 것도 자유. 2 계단을 내려가면 떠들어대는 소리가 들려온다. 기묘하게 킬킬거리는 애들과 젊은 녀석들이 떠들어 대는 소리를 한 번 들 어볼까. 어라? 나도 나이가 들긴 들었군. 생각해 보니 내내 젊은 애들이니 아이들 이니 하고 떠들고 있잖아? 이제부터 젊은 애들이라고 부르지 말고 애송이 라고 부르자. 어디로 보나 이 몸은 아직도 팔팔한 힘과 정열과 의욕을 가 지고 있다구. 노쇠한 드워프처럼 구석탱이에 처박혀 파이프나 물고 앉아 연기를 내뿜어 대는 것은 내게 어울리지 않아. 은퇴한 엘프처럼 감상에 젖 어서 어허 어하 으아 이따위 소리하는 것도 물론 질색이다. 지금은 일단 냉정하고 이성적인 판단을 가지기로 하자고. 자, 판단해보자. 난 지금 외로운 거야. 그리고 왠지 너무 화가 나 지쳐버렸 어. 그러니까 허무하고 쓸쓸한 이 상태의 나에게 필요한 것은......역시 여자다. 그럼 자아, 여자를 찾아가 보자. 기분 전환, 기분 전환. "재밌었니?" "응, 막..피가 끓었어." "멋졌어...." 멍하니 황홀한 표정으로 아이들이 말하고 있었다. 휴런은 턱을 괴고는 끌끌 웃는다. 머리털이 조금 그을려서 잘라버린 것인지 조금 짧아 어린애 같은 얼굴이 되었다. 그 옆에는 무심한 얼굴로 아이들의 옷자락을 점검하고 있는 여자 들이 보인다. 그녀들은 쓴웃음을 머금으면서 애들이 떠들어대는 것을 듣고 있었다. 아이들은 몇 다치고 몇 죽었다. 하지만 그런 것으로 상심해 낙담하 는 아이들은 거의 없다. 아이들은 더 탄력적이고 더 탐욕스럽게 싸움을 목 말라 한다. 한창 강해질 아이들을 강하기만을 바라고 강한 것만이 의미가 있다. 옆의 누가 죽었다는 것보단 자신이 살아남았고 자신이 강하다는 증 명이 더 중요한 것이다. 그러 하지만 이 나이쯤 되면, 어린애들을 흐흐 하고 코 아래로 보게 된다. 헛, 이거 또 나이든 티를 내는 군, 허긴 나이가 들었다는 것은 노숙하다, 노련 하다, 유연하다, 현명하다 등등의 다양한 의미가 있으니까 어쩔 수 없다. 세월의 힘없이강해진다는 것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호박같이 말도 안되는 일이다. 흠, 강한 것이라, 강함이라, 애들은 난폭하다. 그렇다고 해서 난폭한 놈이 강하냐...라고 하면 그것은 결코 아니라 할 수 있지. 난폭하다는 것은 나름 대로의 의미가 있다. 난폭하다는 것은 조급함과 그 만큼의 연약함이 있다. 난폭한 놈은 강하지 않고 강한 놈은 난폭하지 않다. 그러고 보니 아이들 옆에 있는 여자를 꼬시긴 조금 그렇군, 달리 아이 없 는 여자를 골라볼까. 이러다가 이에르네나 기타 등등 사나운 여자들의 눈 에 띄이면 골치 아픈데. "오랜만입니다. 왕." 나는 햇볕을 쬐고 앉아 있는 푸른 눈의 녀석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의 머리칼은 금발과 은발이 섞여 있다. 햇볕이 잘 드는 양지 바른 곳에 즐거운 얼굴로 앉아 있는 녀석은 어딘가 낯익다. 나는 한 참 후에야 그 놈 이 누군지 기억해냈다. 난폭과 노련이 우연찮게도 얼기설기 얽혀서 강함을 드러내는 놈. ".....오랜만이군." "네, 지금 막 왔습니다. 이곳은 좋은 곳이군요." 녀석은 나와 비슷한 체구에 나와 비슷한 나이에 나와 비슷한 경력을 가진 녀석이었다. 놈을 다시 보는 것은 거의 삼백년 만이다. 녀석의 발치로 개미떼가 지나간다. 뭔가 먹이를 물고 줄지어 열지어 행진 하고 있는 중이다. 멀리서 여름 벌레가 잉잉거리고 먹이를 찾는 소리가 들린다. 햇빛이 탐욕스레 녀석의 울퉁불퉁한 팔 다리를 비치며 음영을 만들어 낸 다. 늘어진 녀석의 금발에는 청동빛으로 그을린 피부가 드러나 있다. 근육은 여전히 탄탄하고 그 근육에는 강인한 묘인족의 피로도 어쩔 수 없었던 격 렬한 결투의 상징들이 여전히 남아있었다. 흠, 여전하군. 나는 천천히 녀석의 맞은 편에 가 앉았다. "어디에 있었나?" "....북쪽에 있었지요. 아이들 때문에 왔습니다." "몇이냐?" "둘이요. 저기서 놀고 있습니다. 여자들과 함께." 녀석이 턱짓을 했다. 휴런과 놀고 있는 아이들 사이로 녀석과 닮은 금발머리 꼬마 둘이 이를 드 러내면서 뭐라 떠들어대고 있다. 여자들은 아이들을 온유한 눈으로 바라보 며 그 몸을 살피고 있다. "저게 휴런입니까? 많이 자랐군요." 문득 녀석의 눈이 가늘어 진다. 살의가 순간 스쳐지나갔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문득 녀석이 손가락을 들어서 살짝 깨물며 묻는다. 녀석의 버릇은 여전한 모양이다. "그건 그렇고..." 뜸을 들이는 것도 기억이 난다. 이 놈은 아주 느긋하게 상대를 노리고 순 식간에 상대의 숨통을 끊어 놓는 놈이다. 뱀처럼 침착한 태도로 한 순간에 상대의 목줄기를 물어뜯는다. "도전은 어찌된 겁니까?" "금지다." "언제까지요?" "인간들을 죽사발을 만들 때까지." ".....젊은 것들은 그렇다치지만 나이든 자들은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여전히 평정한 얼굴을 한 녀석은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흉터 가득한 팔뚝 을 드러내 보였다. "물론 왕께 패배한 자들은 입을 다물겠지만 아닌 자들은.....가만히 있지 않 을 겁니다." "그래서?" 녀석이 나직하게 웃었다. 이 녀석은 별로 변한 데가 없었다. 진짜 안 변했다. 아니다. 흉터가 좀 늘 었을까? 나와 일곱 번이나 싸운- 정상적이라면 한번으로 그쳤을텐데도- 이 놈이 아직까지 살아있을 줄은 나로서도 짐작하지 못했다. 허긴 나만큼이나 강한 놈이라면 살아남는 게 당연한 건 지도 모른다. 이 놈도 이미 오백 세는 훌쩍 넘었을 텐데. "어찌되었든 인간들 싸움에 끼어 드는 것은 현명한 일은 아닙니다. 왕. 나 이든 자들이 항의를 한다고 해도 어쩔 수 없을 겁니다." "끼어 드는 게 아냐." 등을 기대면서 나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은 여전히 맑다. "전에도 말한 것처럼, 인간이 우리를 건드린 그 대가는 치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다면 곧장 그 인간이 있는 곳으로 가서 없애면 됩니다." "그러나 그건 너무 간단한 거야, 그건 흔한 일이라구." "인간의 복수가 아닙니다. 왕이여." 그래서? "우리들은 인간이 아닙니다. 인간의 흉내는 낼 필요 없습니다. 우리들은 우 리들 방식 그대로 그대로 그 인간의 거처로 들어가 그의 몸뚱이를 찢고 그 의 피를 마시고 돌아오면 됩니다." ".........." "당신은 인간과 너무 오래 있었습니다. 우리들의 방식으로는, 한 인간을 벌 하기 위해서 수천 수만을 죽이고 유인해 오는 것 따위의 방법은 쓰지 않습 니다." 그 말이 맞기는 맞다. 그러나 속이 가라 앉질 않는다. 그 동안에 쌓여왔던 어떤 응어리가 한꺼번에 고여서 폭팔한 것처럼 무언가 가 계속해서 이글거리고 있다. 너무 단순하다고, 너무 간단하단 말이야. 그 방식이란 것은. "우리의 방식대로 합시다. 왕이여. 간단하고 빠르게. 신속하고 강력하게. 적 을 찾아가 그 몸을 찢고 그 피를 마시고 그 무엄한 짓거리의 대가를 그렇 게 치르게 하는 겁니다." "너는 인간을 모르는 구나. 오래된 시푸르." 나는 그렇게 말했다. "인간은 한 두 명 죽는 것으로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단 말이다." 녀석은 날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이 떠올랐다. "다시 말해서 진짜 확실한 굴복이 필요하다는 거다. 시푸르. 인간은 어지간 해서는 굴복을 몰라. 그들은 인정을 하지 않아. 녀석들은 바보 천치라서 한 두명 죽어서는 모르는 거야. 수백이 죽고 수천이 죽고 수만이 죽어야만이 그들은 잘못을 알아." "어째서지요? 한 명이나 열 명이나 백 명이나 죽는 것은같지 않습니까?" 나는 하늘을 보았다. "그들은 수치를 모르기 때문이지. 그리고 명예도 몰라." 나는 시푸르의 시선을 받으면서 조용히 말했다. "굴복을 위해서 나는 인간 수천 수만을 죽일 것이다." "단 하나의 인간의 굴복을 위해서?" 그런 귀찮은 짓을 하고 녀석이 입안으로 중얼거린다. "하나나 열이나 백이나 같다고 말한 건 너야." 나는 웃었다. 밤이다. 밤의 여신의 옷자락이 노니는 밤. 그녀의 옷자락에 박힌 수백 수천의 보석 들이 빛을 발하는 아름답고도 잔인스러운 피비린내 나는 밤. 멀리서 살덩이와 피내음이 은은히퍼져나오는 밤. 아아, 수많은 수식어를 붙이기 어울리는 밤. 부드러운 손으로 여자가 날 만졌다. 역시 기분이 풀린다. 향기로운 냄새. 따사로운 살결의 냄새. 밖은 시끄러웠다. 뭔가 볶는 듯 시끄러운 소음과 악을 지르는 고함소리와 비명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었다. 그 소리가 무언지 나는 알면 서 내 눈앞에 있는 부드러운 살결을 탐닉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흥분한 자들이 날뛰고 있다. 피내음과 살내음이 한꺼번에 퍼져나가면서 뇌 리를 가득 채운다. 좋아, 좋아. "쿠베린, 밖에 안나가 볼 참인가요?" "뭐하러나가?" 나는 심드렁하게 대꾸하고는 나가려고 엉덩이를 빼는 유티아의 손목을 잡 아 당겼다. 유티아는 한숨을 내쉬면서 슬그머니 문쪽을 바라본다. 문 앞에 앉아 있을 로오나를 생각하는 것임을 나도 알고 있다. 침대 끝에 앉아 있 던 쇼나가 슬그머니 일어서서 항아리에서 술을 따라 나에게 건넸다. "인간의 군대가 성 밑까지 나와있다고 하는데요." 그녀의 눈매가 살짝 날카로와진다. 나가서 싸우고 싶은가 보다. 아니, 어쩌 면 밖에서 열에 들떠 싸우고 싶어 제 정신이 아닐 아이들이 궁금해서 인지 도 모른다. "마법사는 없겠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럼 상관없잖아? 실컷 싸우게 놔둬." 원하는 대로 말이지. 순진하고도 고결한 소년기사 에메스가 바라는 대로 인간대 인간의 싸움을 벌이는 거야. 그 옛날 에메스의 애비가 했듯이 피를 뒤집어쓰고, 상대의 복부를 금속의 칼로 쑤시고, 팔뚝과 다리가 부러져 나가고, 피로 얼룩진 방패가 진창에 처 박히고 울부짖는 말들이 내장을 쏟아내는 거야. 그 와중에 공포와 살기로 뒤범벅이 된 인간들이 이리저리 뛰어 다니는 거지. 뭐, 원하는 대로 해. 승리를 얻기 위해선 울부짖어야 하지, 그것도 안하고 승리를 얻을 수는 없는 거야. 만약 암것도 안한 채 승리를 얻고 싶은 놈이 있다면 그건 목 부러뜨릴 도둑놈이지. 울부짖는 게 싫고, 희생당하기 싫으면 도망가면 돼. 도망가는 것에도 용기 가 필요한 법. 수많은 놈들에게 겁쟁이라고 불리워도 끄덕 않을 용기가 필 요한 법이지. 나는 술을 단숨에 들이키면서 쇼나의 무릎에 코를 박았다. 역시 부드러운 느낌. 나는 뭘 헤메고 있는 거냐? 큭큭 웃음이 새어 나왔다. 원래 나는 땅 파기를 즐겨하지는 않았다. 나는 땅을 보기보단 하늘을 올려다보는 편이 적성에 맞는다. 그런데뭘 이 렇게 헤메고 있는 거지? 인간 스타일의 쌈박질이냐, 아님 묘인족 스타일의 쌈박질이냐? 아직도 그것으로 헤메는 건가? 하지만 결단을 내린 이상 그걸 로 끝이다. 헤메는 것은 나에게도 주변에게도 그리고 세상천지를 위해서도 그다지 좋지 않아. "아직도 미하라와 그 놈- 바스티앙에게선 소식이 없는 거냐?" "없습니다....." 약간 불안해진다. 그럼 혹여 그들도 잡히거나 한 거 아닐까? 미하라도 바스티앙도 약한 놈이 아니다. 그렇지만 상대가 그런 마법사 여럿이라면 방심하면 잡힐 수도 있 다. 갑자기 밖에서 인기척이느껴진다. 일족의 냄새에 쇼나가 몸을 일으키면서 옷자락을 추스렸다. 그리고 문이 열렸다. "왕." 들어선 것은 긴장한 얼굴의 듀나시였다. "소식이 들렸습니다." "무슨 소식?" "수인족의 하나가 소식을 알려왔습니다." "무슨 소식?" "묘인족 두 명이 생포되었답니다. 인간의 마법사에게." "그들은 어떤 자들?" "어린 소년 하나와 여자 하나." "모자인가?" "그런 거 같습니다. 마법사쪽은 그들을 잡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라고 수인족이 알려왔습니다."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이거 뭐야? 묘인족 수난시대의 도래인 거야? 듀나시의 얼굴에 희미한 분노가 떠올랐다. "그리고?" "지금 일족의 아이들이 인간들의 싸움터에서 날뛰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크시온과 휴런등 몇몇이 어린 애들을 제지하고 있습니다만 모두 잡아 들이긴 어려울 것입니다." "그래서?" "................" 나는 턱을 괴고 엎드린 자세 그대로 듀나시에게 되물었다. "지금 나에게 어린 것들을 제지하러 나가라는 것은 아니겠지?" "....아닙니다." "그럼?" "보고일 뿐이죠." 듀나시는 묘인족중에서도 묘한 존재다. 이 녀석은 무표정하고 깎아 지른 듯이 단정한 얼굴을 그대로 하고 무심한 눈빛으로 상대를 본다. 냉정하고 가차없는 눈빛은 불구라는 그 다리의 결 점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공포감을 자아낸다. 어린 것들이 듀나시에게 감히 도전했다가 몇이나 죽었는지는 나도 모른다. 그리고 그 덕분에 이 녀 석은 이런 지위가 되었다. 장로격이라는 이 묘인족들에게는 있을 법하지 않은 지위. 왕도 아니고 우두머리도 아닌데 묘하게 강인하게 녀석들을 이 끄는 힘이 녀석에게 생겨났다. 난폭함보다도 더한 냉혹함이 녀석의 몸 안 깊숙이서 맹수처럼 도사리고 있다. 차가운 응어리가 독기를 뿜어내며 조금 이라도 건드리면 폭팔할 듯이 도사리고 건드려주기만을 바라고 있는 것이 다. 그런 몰골은 우리 일족에게는 없는 것이다. 그 다리가 온전했다면 저런 눈빛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휴런처럼 명랑한 묘인족 특유의 성격으로 낄낄거리며 지냈을 것이다. 저 놈의 다리를 부러뜨린 것은 나다. 그러나 후회는 없다. 그 것이 아니라면 나는 저 놈을 죽였을 것이니까. 그리고 그 것이 이 놈에 겐 치욕이다. "어디의 수인족이냐?" "북동의 장벽 마케르의 일족. 회색 늑대의 일족입니다." 우리들의 지도는 인간들의 지도와 다르다. 인간들이 양피지 위에, 비단위에 그려놓은 국경선과 달리 우리들은 어느 일족이 그 곳에 많이 살고 있는가, 그 땅이 어느 일족에 속하는가 하는 것 이 우선된다. 굳이 표현한다면 내가 지냈던 델리암의 서쪽 끝 항구 도시 엘리야는 사실 어느 종족에게도 소속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나는 부담을 가질 필요가 없 다. 물론 다른 일족들도 그렇기에 엘리야에서 지내는 것에 부담을 가질 이 유가 없다. 엘리야의 남쪽 바다, 섬들이 줄지어 있는 그 곳은 별로 영역다툼을 할 것 이 없는 곳이지만 인어족이 간혹 있다. 동남쪽의 '푸른 알케리아의 평원'에 해당하는 다도해가 인어족의 주된 영역이다. 그 일대에선 인어족을 기꺼이 존중해 줄 수 밖에 없다. 아무리 머리에 크림덩어리외엔 든 게 없는 인어 족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그리고 사실 아그랑은 수인들의 영역에 속했다. 그래서 간혹 수인족들이 눈을 부라리면서 내가 움직이는 것을 들여다 보는 것이다. 델리암 서북부는 물론 드워프들과 호비트들의 구역이 띠엄 띠엄 널려 있 다. 그들은 본래 그렇게까지 전투적이지 않으니까 자신들의 마을을 건드리 지만 않는다면 건드리지 않는다. 그와 반대로 동남쪽 레아가레는 갈색 아 인족의 영역, 아인족 중에서도 가장 호전적인 자들의 구역이다. 이 지역에 들어가면 싸움을 피할 수가 없다. 아인족 중에서도 갈색 아인족은 싸움을 즐기니까. 센 놈만 보면 달려든다. 그러고보니 우리들과 약간은 흡사하구 만. 군데 군데 산맥 깊숙한 곳에 위치한 조인족의 영역은 어딘지 모르니까 생 략하고, 어찌되었든 땅의 엘프의 지역이라든가 사우스엘스턴의 엘프 지역 은 골고루 흩어져 있다. 푸케슈아나라는 이상 야릇한 이름을 가진 반도의 근처 곳곳의 산중에는 사 우스 엘스턴의 못생긴 엘프들이 살고 있는데 녀석들은 상당히 폐쇄적이며 고상한 척을 해대는 버릇을 가지고 있어서 그 일대를 돌아다녀도 만나기도 어렵다. 그건 그렇고 북의 고왕국은 옛날부터 고왕국이라 불렸다. 인간들의 왕국이면서 동시에 엘프들의 왕국이기도 한 그 고왕국은 전설에 따르면 거인과 엘프가 공존했다는 전설이 있긴 하지만 내 알바는 아니고 이 구태의연한 왕국이 얼마나 오래되었는가는 하늘도 모르고 땅도 모를 것 이다. 아마 살고 있는 자들도 모를 것이다. 고왕국의 왕족은 자신들이 인간 인지 아닌지도 모르고 살고 있는 놈들이다. 엘프의 피따위는 수백년전에 이미 엷어졌을 텐데도 자신들은 인간이 아니라고 굳게 믿고 있다. 뭐어 보 통 인간들과 달리 수명이 백년이 넘으니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긴 하겠 지. 지금 저 씹어 먹을 룬드바르놈이 진격하고 있는 상대가 바로 고왕국인 것 이다. 그렇지만 고왕국으로 가기엔 너무 길이 험하다. 고왕국 인간들의 게 을러빠진 무사안일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버틸 수 있었던 이유 중 의 하나는....지겹게도 거북스러운 날카로운 계곡과 깎아 지른 듯한 산맥과 엘프들이나 돌아다닐 법한 가시덤불의 사나운 이빨들과 산맥 곳곳에 자리 잡은 암흑의 짐승들 때문이다. 내 기억으로는 고왕국으로 진격한 녀석들이 다 주저앉은 이유는 그 놈의 지긋지긋한 암흑의 세룩-엘라마이야산맥 때문 이다. 그걸 산맥이라고 부르기 보단 장막이라고, 장벽과 함정덩어리라고 나 는 부르고 싶지만 하여간 인간이 돌아다니기는- 특히 인간의 군대가 씩씩 하게 진격하기에는 무척 문제가 많은 곳이다. 길이 있기나 있는지 그것도 미심쩍다. 그리고 그 산맥의 중간 지역은 엘프 들의 구역, 그것도 가장 고귀한- 진짜 고귀한지 의심스럽긴 하지만- 엘프 들이라 불리우는 엘프의 왕국 노스엘스턴이 바로 거기에 있다. 북동의 장벽에 위치한 회색늑대의 일족은 이미 멸망한 은색 늑대의 일족 과 더불어 수인족 중에서도 오래된 일족이다. 은색 늑대의 일족의 최후 생 존자인 웨인 놈을 빼고서 그 놈의 장벽을 넘어 동방교국까지 오락가락하는 놀라운(?) 일족이다. 정확히 말한다면 그 혈통은 동방교국인과 은색늑대의 일족사이에서 나온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어찌되었든 이 회색늑대의 일족은 상당히 폐쇄적이고 다른 수인족들에 비해 인간들을 싫어한다. "어떤자들이 어떻게 잡아 갔다는 말은 했냐?" "어린 애 하나와 여자 하나, 인간의 마법사들은 그들을 사로잡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라고만 전해왔습니다." "...." 게다가 과묵하기까지 하다. "인간의 마법사는 여자냐 남자냐?" "그것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그 소식을 알린 녀석은 누구야?" "회색늑대의 일족 중 하나, 케슈파란이라는 녀석입니다. 그 녀석이 여기로 와 있습니다." 나는 의외의 말에 눈을 크게 떴다. "회색늑대의 일족이 여기까지 왔어?" "네." 이거 이 일이년 사이에 뒤로 자빠질 일이 수도 없이 벌어지는 구만. [쿠베린] 제 18화 분 노 3 번호 사용자ID 이름 시간 조회 줄수 16928 ninapa 이수영 1999-06-17 581 221 KUBERIN....... 살아있는 자라면 누구라도 죽음과 한 걸음 틈을 두고 걷는다 죽음을 피하는 것도 자유 죽음과 맞서 싸우는 것도 자유. 3 케슈파란이란 이름을 가진 놈은 무심한 얼굴로 푸른 기가 도는 회색머리칼 을 하고 회색 눈을 하고 우뚝 서 있었다. 녀석은 내 앞에서 약간 고개를 숙여 보인 뒤 입을 열었다. "일족의 명을 받아 왔습니다." "뭔데?" "사인족들이 공격을 감행해 왔습니다." 나는 눈썹을 찌푸렸다. 사인족이 공격을 감행해? 지금 사인족 왕이 여기 앉아서 술 퍼마시고 있는 데? 내가 뭐라 하기도 전에 녀석이 말했다. "인간의 마법사와 함께 공격해서 우리 일족을 공격했고, 뒤이어서 동방교 국으로 안내할 길잡이를 내어놓으라고 떠들었습니다." 나는 진짜 어안이 벙벙한 기분으로 녀석을 바라보았다. 듀나시도 묵묵히, 어느 새인지 들어선 앗시아도 불손한 눈빛을 하고 있는 그 놈을 쏘아보며 내 뒤에 서 있었다. 방안에 있는 유티아와 쇼나도 눈을 가늘게 뜨고 그 놈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직 어린 앗시아나 유티아, 쇼나등 은 아마도 이 회색늑대의 일족을 처음 보았을 것이다. 회색늑대의 수인족 은 비교적 수인족 중에서도 키가 크고 덩치가 당당해서 싸울 맛이 난다. 게다가 아인족 중의 갈색 아인족과 함께 싸움을 즐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 으며 인간들과도 어울려 지내지 않는다. "길..잡이?" "네, 길잡이입니다." "어째서 그런 황당한 말이 나온 거지?" 내가 말하자 듀나시가 옆에서 대신 대꾸했다. "지금 북동의 장벽을 넘을 수 있는 인간은 몇 안되니까요." "그리고 북동의 장벽을 거머쥐고 있는 것은 회색늑대의 일족이니까?" "그렇습니다." 나는 턱을 붙잡았다. 이거 점점 이야기가 커져가는 듯 한데. 설마하니 룬드바르가 동방교국으로 진격해 들어가겠다는 의미인가? 동방교 국은 이 곳 대륙과는 아예 크기가 틀리다. 동방교국은 인구가 얼마고 그들 의 마법력이 얼마고 그들의 군사력이 얼마인지조차 알려져 있지 않은 미지 의 땅, 미지의 대륙이다. 간혹 동방교국의 암살자들이 재미 반, 수련 반으 로 이곳으로 넘어와 '영업'을 하고는 있지만 그 실체는 아무도 모른다. 동 방교국인들이 오만방자하고 그 물건들이 이곳에서 최고급을 홋가하는 것을 보아선 분명히 동방교국은 만만한 나라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내게 할 말은?" 녀석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회색 눈에 눈동자는 노란 빛을 뜨고 있다. 그 노란빛과 초록빛이 어우러져 서 진짜 늑대를 눈앞에 두고 있는 것 같은 눈매다. "소문을 들었습니다. 묘인족이 사인족을 멸망시켰다는 이야길 듣고 왔습니 다. 즉, 그들을 조종하는 인간의 마법사를 지금 묘인족이 학살 중이라는 것 도." 나는 턱을 고이고 녀석을 바라보았다. "그 때문에 우리 일족과 함께 있던 묘인족의 여자와 아이가 납치된 것으로 생각됩니다." 녀석의 눈안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격렬한 감정이 일렁였다. "그래서?" "그들을 구하기 위해선 그 마법사의 거처를 알아내야 합니다." "그들을 구하기 위해서?" 나는 조금 뜨악했다. 묘인족을 구하기 위해서 회색늑대의 일족이 나선다는 이야기는 듣도 보도 못했다. 게다가 여자든 남자든 묘인족이 타 종족에게 납치되었다는 것 자체가 수치니까 어린애가 아닌 이상 납치되었다는 이야 길 들어도 구출따위 운운하는 법은 없었다. 뭔가 엄청나게 신선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내 아내입니다. 아이는 내 양자입니다." 나는 물론이고 뒤에 있던 유티아와 쇼나는 헉 하고 뒤로 넘어질 뻔했다. 앗시아는 입을 저억 벌렸고 듀나시는 경악으로 눈을 부릅떴다. 나는 턱을 고인 채 눈앞에서 감히 묘인족이 자기 아내라고 말하는 녀석을 멀건히 바라보았다. 믿을 수가 없는 소리였다. 아무리 강해도 회색늑대의 족속은 수인족이지 묘인족이 아니다. 사인족이나 조인족과도 남녀관계라는 것을 상상도 해 본적이 없는데 수인족을 상대로 하다니, 그 여자의 정신상 태를 의심스럽게 할 정도였다. "마, 말도 안돼요! 대체 어떤 미친 여자가 수인족따위와!" 제일 먼저 외친 것은 유티아였다. 그녀는 경악에 겨워서 외쳤다. "그런 수치스러운 짓을 한 여자가 있단 말이야? 이건 모욕이야!" 그녀와 쇼나가 얼굴을 벌겋게 하고 흥분할 때에 나는 손을 흔들었다. "조용히 해!" "하지만, 쿠베린!" 유티아는 얼굴을 두 손으로 잡고 흥분을 가라앉혔다. 쇼나도 어처구니 없 는 듯한 눈으로 케슈파란이란 놈을 바라보고 있었고 듀나시는 당장이라도 죽여버릴까 하는 얼굴로 노려보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이 회색늑대의 수인족은 입을 다물고 꼿꼿이 허리를 세우고 서 있었다. 눈빛이 여러 번 바뀌는 것을 보아 당장이라도 흥분해 변신해버 릴 것 같았지만 어찌되었든 녀석은 묘인족의 앞에서 당당히 서 있었다. "남녀관계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니까 그렇다 치고, 넌 그래서 온 거냐?" 나는 턱을 괴고 녀석을 바라보았다. 늑대의 일족이란 진짜 무모한 로맨티스트들이다. 이들은 우리와 달리 가족을 만든다. 인간들처럼 가족을 만들고 그 가족의 가장은 모든 자식들과 아내들을 지키는 데에 목숨을 건다. 그런 비정상적 인 책임감 때문에 미쳐버린 놈들도 한 둘이 아닐 것이다. 하염없이 떠돌고 있는 은색늑대의 마지막 생존자 웨인 놈을 생각해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녀와 맺어진 이래로 그녀는 나의 가족입니다." 녀석이 말했다. 나는 묵묵히 녀석을 보다 말고 조용히 말했다. "그래서 우리 일족 사이에 끼어서 그녀를 구출해 보겠단 생각을 감히 한 거냐?" "어찌되었든 상관없습니다. 저는 그녀를 구출하러 왔습니다. 인간의 마법사 에게 납치되어갔으니까 구출하기 위해선 뭐라도 합니다." 녀석은 다시 감정을 누그러뜨리면서 물었다. "놈들이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나는 턱을 고인 채 녀석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왠지 맥이 다 풀리는 기분이다. 이 놈을 일족 사이에 두었다간 단 하루도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누가 이런 놈을 놔둘 것인가. 절대 놔두지 않는 다. 이 놈은 반나절도 못되어 젊은 애들 사이에서 갈기 갈기 찢겨져 죽어 버린다. 흠, 그럼 그 납치된 묘인족의 여자는 슬퍼하겠지. "몰라. 그러나 누군지는 알만 하지. 너, 케슈파란이라고 했나?" "네." 녀석의 눈이 긴장했다. "당분간 널 데리고 있어주마." "정말 상상도 할 수 없어요!" 녀석이 듀나시와 나가자 마자 유티아가 외쳤다. "상상하실 수 있어요? 묘인족 여자가 수인족 따위와? 한 대 치면 죽어버릴 놈과 같이 지내다니?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있을까요?" "알 게 뭐야? 저 북동의 얼음 장벽 너머에 놀러갔던 묘인족의 여자가 새삼 귀엽게 생긴 녀석을 귀엽게 여겨서 사랑을 느꼈을 지도 모르잖아?" 나는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하지만! 하지만! 어떻게! 어떻게!" 유티아가 한창 흥분할 즈음 쇼나가 한마디 던졌다. "그러나 저러나, 만약 그 여자가 잡혀갔다고 하면 묘인족이 벌써 셋이나 잡혔다는 이야기에요. 정말 어찌되려는 것일까요?" 정말로 용을 만들어내어 인간의 노예로 쓸 수 있을까? 저 미스릴에 갇힌 용의 유령 셀로로니인지 셀러론인지 하는 그 놈과 다른, 진짜 피와 살이 있는 용을 만들어 낼 수 있단 말인가. 우리들의 피- 묘인 족, 사인족, 조인족의 피를 섞어서? 그런 일이 가능한가? 진짜 용을 만들어낸다면, 아니 용 비슷한 것이라도 만들어낼 수 있다면 인 간은 고왕국만이 아니라 진짜 동방교국까지 진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일이 가능하다면 말이다. 나는 문득 모든 일을 다 제끼고 그 용과 대결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것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진짜 얼마나 흥분되는 일인가? 진짜의 용족과 얼굴을 마주하고 눈썹을 마주 대며, 손톱을 서로 겨누고 싸울 수 있다는 것은! 움직이지 않으면 안된다. 나는 깨달았다. 움직여야 했다. 묘인족이 셋이 잡혀갔다면 조인족은 무수히 잡혔을 지도 모른다. 분명히 가능한 이야기다. 조인족은 여기 저기 둥지를 만들어 살고 있고 그 둥지의 반이 이미 사인족들에게 습격당한 일이 있었다. 그게 벌써 일년 이 상이나 흘렀다. 그럼 인간의 마법사들은 3대 종족의 피를 모두 수집한 셈이었다. 시간을 끌 새는 이젠 없다. 묘인족을 이끌고 천천히 북상하여 룬드바르를 쓸어버려야 한다. 아니, 남하 하는 것인가? 남하하는 쪽이 나을 것인가, 아니면 북상하는 쪽이 나을까? 룬드바르 본국 은 남쪽이고 룬드바르 본인은 북쪽에 있다. 어느 쪽이 나을까나.... 바람이 불고 있었다. 나는 팔짱을 끼고 성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아그랑에서 피 터지게 싸우고 있는 인간들의 뒤엉킴을 바라보면서 불화살과 돌멩이가 난무하는 주변을 돌아보았다. 피를 흘리고 울부짖는 아우성 속에서 묘인족들은 이를 드러내 고 싸우고 있었다. 물론 그 싸우는 녀석들은 대부분 다 어린애들이었고 나 이 든 녀석들은 모두 어디선가 처박혀서 잠이나 자고 있을 것이다. 인간을 상대로 정면으로 싸우는 것은 너무도 재미가 없고 지겨운 일이기 때문에 왠만한 녀석들은 명령이 없다면 나설 마음도 되지 않을 테니까. "화살은 더 없는가!" "북문을 열어! 북문을 열어!" 어디선가에서 투구도 잃어버린 기사가 한 명 성문으로 닥쳐드는 적병을 향 해 도끼를 휘두른다. 피가 공중으로 검붉게 치솟고 뇌수와 살점이 뒤범벅 이 된 적병이 고꾸라진다. 은빛을 띄우고 있던 기사의 갑옷은 이미 그 본 래의 색을 알아볼 수 없다. 그는 한 손에는 장검을, 한손에는 도끼를 휘두 르고 있었다. 이미 방패는 잃어버린 지 오래이고 말고삐를 쥐고 있던 종자 는 보이지도 않는다. 아래서 미친 듯이 창날을 곧추 세우고 돌진하는 적병 들을 향해 말 고삐를 당기며 기사가 돌진한다. 피와 진흙으로 얼룩져 버린 머리칼과 수염은 이미 엉망진창으로 얼굴도알아볼 수 없다. "죽어!" "죽여라!" 여기저기서 비명과 고함소리가 터져나온다. 기사의 말이 어느 새인가 다가 온 창병의 칼날에 뱃가죽을 꿰뚫리고 비명을 질러댔다. 가여운 말이다. 그 와 동시에 말이 고꾸라지자 안장 위에 있던 기사가 나동그라졌다. 진흙이 튀어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근처에 있던 적병들이 무수히 달려들며 기사의 몸을 향해 칼과 창을 찔러 댄다. 피가 튀긴다. 그 기사가 누군지 나는 모른다. 에메스의 모습은 찾을 수 없다. 엉망으로 엉기어서 어디에 누가 있는지 알 수도 없다. 하늘은 잔뜩 찌푸리고 있다. 피가 내릴 지도 모른다. 성벽에서 부어 내린 끓는 물과 돌덩이로 성 아래는 이미 진흙탕을 이루고 있다. 여기서 비가 내린다면 아마 늪지가 될지도 모르겠다. 사다리를 올리려는 적병들과 그들을 저지하는 자들과 소리를 지르며 두터 운 성문으로 돌진하는 자들과 팔 다리를 흩뿌리며 울부짖는 자들과 이미 죽어 넘어진 자들은 한데 엉겨서 휴식을 모른다. "우오오오오오오오오......................." 나는 가슴을 펴고 허공을 향해서 고함을 질렀다. 근처에 있던 자들이 일제히 귀를 부여잡고 뒤로 물러섰다. 어느 쪽의 병사 든 모두 새파랗게 질리며 뒤로 나동그라지고 공포에 오줌을 지릴 정도로 사방으로 소리는 퍼져나갔다. 성벽 끄트머리에 서서 나는 소리를 질러댔다. 들어라, 들어. 모여라, 모여. 일족들아 들어라. 화살이 몇 대 나를 향해 날아들었지만 곧 튕겨 나가버렸다. 그 모습을 보 고 녀석들이 공포에 질린 얼굴을 하고 날 바라본다. "우오오오오오오오........" "쿠아아아아아아아....." 여기저기서 호응하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나는 가슴을 펴고 성벽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인간들의 싸움이 천천히 멈추고 있다. 그들은 내 존재를 알고 나를 멍하니 올려다 보고 있었다. 그들을 내려다 보면서 나는 천천히 몸을 아래로 던졌 다. 성벽 아래로 일직선으로 떨어져 내리면서 다시 고함을 지른다. "쿠오오오오오오...........!" 오너라! 여기로 오너라! 다들 나와 이곳으로 모여라! [쿠베린] 제 18화 분 노 4 번호 사용자ID 이름 시간 조회 줄수 17130 ninapa 이수영 1999-06-24 524 221 KUBERIN....... 살아있는 자라면 누구라도 죽음과 한 걸음 틈을 두고 걷는다 죽음을 피하는 것도 자유 죽음과 맞서 싸우는 것도 자유. 4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눈을 크게 뜨고 피투성이가 된 휴런이 소리를 질렀다. "대체, 어떻게 하겠다는 거지?" "간단하고도 간단한 이야기지 뭐." 나는 가슴을 펴고 말했다. 눈앞에는 죽어 넘어진 병사의 시체들이 줄줄이 늘어져 있었고 조금 떨어져 나의 난데없는 등장에 놀라고 있는 병사들은 말 그대로 뜨거운 것을 맛본 강아지들처럼 뒤로 물러서 있었다. 휴런은 주변을 돌아보고 있었다. 그의 주변에는 피투성이가 된, 마치 잼을 훔쳐먹다 입주변에 가득 묻힌 인 간의 어린애같은 몰골들을 한 아이들이 와글거리고 있었다. 아마 휴런이 아이들을 제지하고 있었던지 그의 주변에만 특히 모여 있었다. 곧이어 다 른 애들을 이끌고 다크시온과 듀나시등이 다가섰다. 나는 그들을 돌아보지 도 않고 전면에 선 인간의 병사들을 훑어본 뒤에 낮게 명령했다. "여길 떠난다." 멀리서 진흙투성이의 에메스의 모습이 보였다. 그의 바로 옆에 선 것은 역 시 진흙투성이가 된 기생오라비였다. 녀석의 금발도 지금은 엉망진창의 회 색빛을 띄고 있었고 그의 바로 옆에는 튜나가 서 있었다. 나는 에메스를 잠시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이 놈과의 인연도 이제 슬슬 끝인지도. "이 자리에 있는 인간을 다 치워버려라." 나는 짧게 명령했다. 그리고 일족들은 곧이어 고개를 들고 송곳니를 드러냈다. 에메스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쿠베린!" ************** 버석 버석 소리나는 풀숲을 걸으면서 녀석들이 떠들고 있었다. 나름대로 강하다고 하는 젊은, 아니 애송이들이 저마다 떠들었다. 특히 여 자들이 옆에 있을 때는 더 크게 떠든다. 자식들, 그래서 어리다는 거야. "내 생전 이렇게 인간을 많이 죽여본 것은 첨이야." "지겨워 죽겠구만. 인간따위는 정말 재미 없어." "언제까지 인간을 죽이는 거지? 차라리 사슴을 죽이는 게 더 재밌겠다." 그지 하는 얼굴로 동의를 구하는 사내자식들을 여자들은 흐응 하는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언제나 말하다시피 여자들이 훨씬 똑똑하단 말이야. 그건 그렇고 인간을 죽이기에 신물이 난 녀석들은 나를 흘긋흘긋 보고 있 었다. 정확히 말하면 내 옆에 선 수인족의 녀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녀 석은 묵묵히 내 옆에서 걷고 있는 중이다. 이질적인 것은 언제나 눈에 띈 다. 아그랑을 떠난 지 이미 반나절이 지나가고 있었다. 아그랑을 덮친 룬드바르의 병사들은 모두 죽었다. 에메스는 처음에 반항하 는 것 같더니 뒤이어 자신의 부하들을 이끌고 성 안으로 들어섰고 우리들 은나머지 룬드바르의 병사들을 죽였다. 얼마나 죽였는지 기억도 할 수 없 지만 아이들이 모두 진저리를 치는 것을 보아서 상당히 죽인 것은 사실인 모양이었다. 인간을 죽일 때는 시간이 별로 걸리지 않는다. 창칼을 휘두르긴 하지만 녀 석들은 근본적으로 너무 느리다. 검의 명수라든가 어떤 기형무기의 달인이 라면 모를까 평범하기가 광주리에 쓸어담아도 넘쳐흐르는 보통의 병사는 죽이기에 지루할 지경이다. 그것도 상대가 진흙에 허우적 지쳐있는 놈들이 라면 말할 나위도 없다. 아그랑은 지금 시체더미, 대지의 여신에게 바쳐진 제물은 너무 지나쳐 넘 쳐나고 그 냄새가 이미 천공의 여신의 미간마저 찌푸리게 할 정도에 이르 를 것이다. 아아, 이제 슬슬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우리 일족들은 이렇게 뭉쳐 다니는 것을 무척 귀찮아 한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그렇다. 바로 그 때 였다. 갑자기 말 발굽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달려오기 시작했다. 일족들은 뒤를 돌아보면서 이것을 습격할까 말까 망설이는 듯한 얼굴로 손톱을 들여다 본 다. 나는 뒤를 돌아보면서 그 말을, 아니 마차를 쏘아보았다. 그 마차는 아 그랑에서부터 달려온 것이 분명한 물건이었다. 2마리의 말이 몰고 있는 마 차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그 말을 몰고 있는 얼토당토 하지 않는 인물을 나는 한숨을 내 쉬며 바라보았다. "쿠베린!" 소리를 크게 지르면서 다가온 것은 튜나였다. 꼬맹이 하프엘프는 말고삐를 당기면서 재빨리 말했다. "할 말이 있어서 왔어!" 튜나가 있다면 당연히 그 놈도 있겠지. 고개를 들어 올려 보니 태양아래 까만 점이 맴도는 게 보인다. 새치고는 물론 당연히 너무 크다. 그 놈은 슬금 슬금 아래로 미끌어져 내려오더니 곧이어 지상을 향해 내려왔다. 마치 시위하듯이 재빠른 속도에 젊은 것들, 아니 애송이들이 얼굴을 찡그렸다. 엘레가 땅에 내려서자 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마차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거기서 고개를 내민 것은 다름아닌 미트라- 친애하는 멸망한 델리 암의 말괄량이 공주님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옆에서 심통난 얼굴을 하 고 있는 것은 다름아닌 사인족의 왕, 그 부록으로 딸린 것은 물론 저 노란 눈깔의 아헬이었다. "무슨 일야?" 내가 그렇게 묻자 미트라가 정색을 하고 날 바라보았다. "쿠브, 전에 내가 말한 거 기억해?" "뭘?" "난 높은성의 공주님이 아냐!" 지금 뭔 소릴 하고 있는 거지? "난 원하는 것을 찾아왔단 말이야!" 그녀는 두 주먹 불끈 쥐고 외쳤고 그 뒤에 있던 사인족의 왕이 크게 웃기 시작했다. 미트라는 그가 웃자 제풀에 놀라 흠칫 뒤를 돌아보았으나 사인 족의 왕이 킬킬거리는 모습을 보자 마자 화가 난 듯 입을 내밀었다. "뭐야!" "정말 웃기는 군! 인간의 여자가 묘인족을 따라다니다니." "시끄러워! 이 노란 털 야만인!" 그녀는 기세좋게 악을 지르면서 사인족의 왕에게 달려들었다. 녀석은 킬킬 거리면서 그녀의 주먹을 이리 저리 피했는데 나로서는 그녀의 주먹을 피하 며 웃고 있는 녀석이 도무지 한심해 보이기도 하고 어처구니없기도 해서 혀를 찰 수 밖에 없었다. "싸우지 마세요!" 아헬이 당황해 외쳤다. 정확히 말한다면 쌈박질이라기 보다는 말다툼, 말다툼이라기 보다는 너 할 퀴고 나 할퀴고 하는 고양이 으르렁거림 비슷한 짓이라 할 수 있었다. 나 는 여자랑 싸우는 즐거움을 잘 알고 있는 터라 관대한 마음으로 녀석을 바 라보다가 본론을 이제 들어야 하지 않나 하는 마음으로 고개를 돌렸다. "해 봐." 엘레는 진지한 얼굴로 말하고 있었다. "쿠베린님께 여왕의 말씀을 전해드리려 합니다." "뭔데?" 나랑 자고 싶다는 것이라면 기꺼이 받아들이지. "동북의 산맥에서 우리들 일족은 싸움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엘레의 눈이 번쩍 번쩍 빛나고 있다. "동북의 산맥이라면?" "엘카라타의 산맥, 지쳐버린 초승달의 계곡입니다." "조인족 전사들이 총 출동했다...라고 하는 거야?" 이건 조금 놀랐다. "네, 묘인족이 인간들을 없애고 있다는 이야기가 이미 전 대륙에 퍼져있습 니다. 인간의 마법사를 살려두지 마라 라고......" "조인족의 여왕이 이미 나섰다....조인족도 지금 인간들과 싸우고 있다고 하 는 건가?" 나는 조금 기묘한 기분이 되었다. 약해 빠진 인간들을 향해 태고의 종족 두 개, 아니 세 종족이 모조리 나서 서 싸우고 있다는 건가? 이건 어쩐지 자존심 상하는데? "조인족 아이들.....약 오십여명이 이미 잡혀갔다는.....소식이 있습니다." 엘레가 토해내듯이 겨우 말했다. "어디에?" "......세룩-엘라마이야.....암흑의 산맥이라고 합니다." "그곳에 인간의 마법사들이 모여 있다는 의미인가?" 내가 눈썹을 치켜 올리자 엘레가 고개를 그덕였다. "그 소식을 알려온 것은 누구야?" "고왕국의 인간들, 그리고 노스엘스턴의 엘프들입니다." "그들은 우리들을 이용해서 룬드바르의 발목을 잡겠다는 의미 아냐?" "......" 나는 녀석의 면상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노스엘스턴의 엘프 놈들이 책상 위에서 지껄이는 반만큼만 정의와 빛의 수호자라고 한다면 그대로 좌시해선 안되지, 그렇게 생각지 않냐?" "........" 엘레의 얼굴이 울퉁불퉁해질 정도로 거칠어 졌다. "말 심하지 않아?" 튜나가 뭐라 하려는 순간 엘레는 차분히 말했다. "그건 아무도 모르죠, 그러나 엘프는 우리들 보다 명백히 약합니다." 그 말엔 동의해. 그리고 모처럼 그럴 듯한 말을 해냈구만. "그리고..." 녀석의 얼굴이 순간, 음침무쌍하게 변하면서 더더욱 그럴 듯한 말을 해 냈 다. "그들의 구출을 엘프나 인간들 따위에게 맡길 수는 없습니다." "잘 들어." 날 멀건히 바라보는 녀석들을 둘러보면서 나는 조용히 침착하고도 우아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이렇게 우아하고 점잖은 태도로 말해도 상관없는 것 이 다들 귀들은 기가 막히게 좋으니까 품위 없게 소리를 지를 필요는 전혀 없다. 녀석들은 내가 중얼거려도 다 알아들을수 있다. 모인 녀석들의 수는 약 이백 가까운 숫자, 젊은 애들, 아니 애송이들과 진짜 어린애들과 여자들 과 노련한 놈들과 방자한 놈들이 얼추 이리 저리 섥히고 얽혀 있다. 이 상 황에서 싸움이 안 일어나는 것은 진짜 드문 일이다. 아마 아이들이 많아서 일런지도 모르겠다. 평소라면 아이들이 몇이나 죽어넘어지고 사내자식들은 여자에게 추근거리느라 모든 것을 잊었겠지만 왕이신 이 몸이 처억 하니 버티고 있는데 개길수는 없을 게다. 허긴 이렇게 모인 것도 수백년 만일테니 녀석들도 추억거리는 되겠지. 날 바라보는 애들의 눈이 동글 동글 빛나고 있다. 자신의 모친과 달라붙어 있는 애들은 마치 소풍이라도 온 것같은 얼굴들이었다. "이제부터 각자 자기 길로 간다." 나는 조용한 어조로 말해주었다. 녀석들은 뭔 소린가 하는 듯한 태도가 완 전히 몸에 배여서 그 얼렁한 머리통을 그대로 과시하고 있었다. 아, 내 일족이니 부탁이다. 제발 좀 똘똘한 얼굴들을 하고 있어 다오. "단 한 가지는 명심하라! 절대로 인간의 마법사를 내버려두지 말 것! 그리 고 그 룬드바르의 깃발을 그대로 세우게 하지 말 것을. 그 이외엔 룬드바 르로 가서 난장판을 치든 여자들과 어울려 뒤집어지든 맘대로들 해라. 지 금 죽인 숫자가 내 기억으로는..." 나는 잠시 내 자신의 숫자개념을 원망했다. 하지만 여지껏 죽인 수만도 약 오만 가까운 숫자다. 룬드바르가 아무리 통이 넓은들 자기 군사 오만이 죽어 넘어졌으면 쇼크를 먹든 배앓이를 하든 하긴 할 거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시간을 끌 수는 없었다. 아이와 여자가 잡혀가고 마법사들의 손이 저 멀리 북동까지 이르 르고 있다면 룬드바르와 그 놈의 마법사들은 각자 행동하고 있다는 이야기 였다. 우리들이뭉쳐 다닌다고 해서 살상력이 극대화 되는 것도 아니다. 그 렇다면 별로 길게 이야기 할 것도 없다. "가라, 제 갈길로 가면서 각자 룬드바르 군을 죽여라. 얼마를 죽이든 그건 알아서 해라, 특히 룬드바르의 마법사는 살려두는 게 아니란 것을 너희들 도 잘 알겠지? 룬드바르는 요즘 들어 상당히 괴이한 물건들을 많이 키우고 있는 모양이니 심심치는 않을 것이다. 북으로 가든 남으로 가든 서로 가든 그들을 죽여라." 자유를 주지. 맘대로들 해봐라. 나는 히죽 웃었다. 이제 슬금 슬금 맛을 보여주어야 할 때다. 오만을 죽였고 나머지는 각자 해보라고 하지. 틀림없이 그렇게 하면 이 놈 들도 재미를 붙여 난장판을 쳐댈테니까. "그럼, 이제 흩어지는 겁니까?" 한 애송이가 주저하면서 입을 열었다. "뭉쳐 다녀도 좋아. 하지만 심심하지 않냐?" 내가 반문한 녀석에게 대꾸하자 녀석은 고개를 그덕였다. 녀석의 눈이 슬 그머니 여자에게 가 닿는 것을 보고 나는 쓴 웃음을 짓고 말았다. "어디든 가도 좋아." 원하는 대로 가서 죽여라. 원하는 대로 분노를 터뜨려라. 그것이 내 목적이니까. "무서워..." 미트라가 낮게 중얼거렸다. [쿠베린] 제 18화 분 노 5 번호 사용자ID 이름 시간 조회 줄수 17131 ninapa 이수영 1999-06-24 469 211 KUBERIN....... 살아있는 자라면 누구라도 죽음과 한 걸음 틈을 두고 걷는다 죽음을 피하는 것도 자유 죽음과 맞서 싸우는 것도 자유. 5 본래, 원래, 사실은 나는 약간 간과하고 있었다. 노스엘스턴에 분명히 얼마전에 갔었다. 그러나... 제기랄! 걸어가진 않았었단 말이다! "얼마나 가야할까?" "하염없이, 계속해서." 소환수를 타고 날아간다면 얼마나 편할 거냐고 튜나가 계속해서 궁시렁거 리고 있었지만 방법이 없다. 우리들 일행에 마법사는 하나도 없지 않은가? 그리고 있었다고 해도 그걸 살려둘 리도 없고 말이다. 본래 두 다리는 걷 게 만들어진 것이고 그러므로 우리들은 열심히 걸어가야 하는 것이다. 일족들에게 제 맘 대로 가라고 선언한 뒤 나에게 남은 일행은 당연한 일이 지만 상당한 인원이었다. 일단, 내 마누라들(?)과 아이들, 그리고 앗시아와 듀나시, 다크시온, 휴런등이 남았다. 물론 그 수인족의 꼬맹이도 남아 내 옆에서 물끄러미 사인족의 왕을 바라보고 있었다. 녀석은 사인족의 왕이라 는 것을 알자마자 넋을 잃고 그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사인족의 왕은 그게 무척 껄끄러운지 불쾌한 면상을 하고 야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 둘이서 야리든 쏘든 그건 내 알바가 아니었다. 가장 큰 문제는 내 뒤에서 불꽃을 튀기다 못해 대장간을 차린 여자들이 문제다. 그녀들은 미트라의 등장 이후 눈부신 불꽃을 피어 올리고 있었는데 그 불꽃에 등에 구멍이 뚫리고 목덜미에 화상을 입을 지경이었다. 그 덕분에 사내들 모두는 얼어붙어서 입을 열면 폭팔할까 두려워 모두 입 을 꽈악 다물고 걸었다. 말 많은 휴런도 괜히 야히르나 케논을 데굴데굴 굴려 가지고 놀면서 시선을 딴 곳으로 두고 있었으며 듀나시는 괜히 다크 시온과 대화하는 척 시선을 두고 있었고 앗시아는 불안해서 안절부절 못하 고 있다. 사인족의 왕까지도 괜히 친하지도 않은 튜나에게 친한 척하다가 엘레의 사나운 눈길을 한 몸에 받고 있었으며 아헬은 괜히 아무 것도 안 묻은 스커트자락을 털어댔다. 물론 당사자인 미트라도 바보는 아닌 지라 불안한 듯이 억지 웃음을 띄고 내 바로 뒤에서 바짝 붙어 걷고 있었다. 그러나 그 불꽃은 점점 커지고 곧 이어 활화산이 되어 용암을 분출하고 불덩이를 쏘아낼 지경에 이르르자 미 트라는 비명을 지르듯이 내 옆에 답삭 와 달라붙으면서 억지 웃음을 짓고 말을 걸었다. "얼마나 가야해?" "하염없이......." 미트라는 불안한 얼굴로 내 팔뚝을 잡았다. 그걸 바라보던 이에르네가 팔짱을 끼고 터억하니 미트라와 나의 사이를 가 로막았다. "기다려봐. 너 따위 인간이 어딜 감히..." "뭐얏!" 미트라가 이에르네를 쏘아보았지만 아아, 슬프도다. 묘인족의 여자에게 인간의 여자가 당해내려고 생각한것은 가여울 정도다. 미트라는 이에르네에게 단숨에 목덜미를 잡혀서 바닥에 내동댕이 쳐졌다. "아악!" 그녀가 비명을 지르는 것은 가슴이 아프지만 별 수 없는 것이 이에르네는 내 아이를 낳은 내 여자인 지라 미트라가 그녀에게 힘으로 이길 수 있다면 모를까 나는 거기에 참견할 수 없다. 미트라는 악악 거리면서 비슬비슬 일어섰다. 그리고는 한껏 독기어린 눈매 로 이에르네를 노려보았지만 왠걸, 독기어린 눈매라고 한다면 묘인족 전체 에서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이에르네에게 당해낼 리가 없다. 이에르네는 오 만하고도 살벌하게, 그리고도 아름답게 그녀를 노려보며 선언했다. "까불지 마라, 인간의 여자야. 너는 쿠베린 옆에 설 자격이 없어." "자격? 자격이라니! 뭔 소릴 하는 거얏!" 미트라는 벌벌 떨면서도 벌떡 일어났다. 그 오기에는 나도 박수를 보내고 싶지만 일단은 나는 먼산을 바라보도록 하자. 아아, 날씨 좋군. "쿠베린....조금 너무하지않아?" 은근히 튜나가 내 옆에 와서 낮게 물었다. 그녀는 불만에 가득찬 얼굴로 나를 쏘아보고 있었지만 나는 관대하고도 너 그러운 태도로 그녀의 말을 씹어 삼켰다. 뒤이어서 쇼나가 날카롭게 말하 는것이 들려온다. "이에르네, 이런 여자를 데려갈 필요가 있을까요?" 헉, 쇼나까지! "그래요, 이런 인간의 여자따위는 짐덩이일 뿐이에요. 없애버려요." 날카로운 유티아의 어투. 유티아는 그래도 온후한 성품이라 생각했는데! "오호호호호호호호.........인간의 여자따위, 자기 주제를 알게 해주어야해." ...케이링..... 미트라는 새파랗게 질렸다. 자기 보다 목하나는 큰 장신의 여자들 사이에 둘러싸인 그녀는 살기에 가 득찬 야수들 앞에선 한 마리의 연약한 사슴이었다. 그녀는 바들 바들 떨면 서도 큰 소리로 외쳤다. "난 쿠베린과 결혼하기로 약속했단 말이야!" "오호, 그러셔? 인간의 결혼?" "어쩌나, 우리들은 인간따위는 저녁 찬거리로도 쓰지 않는걸." "쿠베린의 여자가 되려면 얼마나 강해야하는지 모르고 있는 것 같은데?" "시, 시끄러! 나는 인간이지만....강하다구!" 가여운 미트라. "어떤 면에서 강한데? 너, 트롤을 한 손에 없앨 수 있나?" "오우거 갈비뼈를 부러뜨릴 수 있냐?" "혹시 키메라정도는 상대할 수 있는 거야?" 미트라는 우욱 하고 아무 말도 못한 채 버벅거렸다. 그녀의 얼굴이 삽시간에 시퍼렇게 질리는 것을 보면서 튜나가 한 숨을 내 쉰다. "이봐, 이봐요, 적당히들 해 두는 게 어때? 미트라는 따지고 보면 불쌍한 거야. 이 사악한 색마 쿠베린의 마수에 걸린 한 마리 가여운 나비인 거라 구." 그녀의 말에 케이링이 야릇한 눈빛을 번뜩였다. "시끄러, 반쪼가리 엘프." 이게 하는 얼굴로 튜나가 주먹을 쥐고 덤비려 했지만 튜나도 바보는 아닌 지라 살벌한 케이링의 눈빛을 보곤 단념했다. 이에르네는 힐긋 나를 돌아보며 은근한 어투로 말했다. "쿠베린.....이 계집애를 찢어버려도 할 말 없겠지?" 미트라가 헉 할 때에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있는 힘껏 인상을 팍팍 쓰면 서 나는 그녀들을 노려보았다. 그러나....일제히 여자들이 나에게 시선의 소 나기를 보내는 순간 사정없이 꿰뚫려 전신이 마비되었다. 그렇지만 여기서 굴복하면 미트라는 죽는다. 사실 따지고 보면 미트라가 뭔 죄가 있겠는가? 그저 내가 잘난 게 죄다. 힘내라! 쿠베린! 너 같이 잘난 놈은 버텨야 한다! "적당히 해둬." 나는 있는 힘껏 무게잡고 말했다. 이에르네와 케이링이 한 걸음 내앞으로 다가섰다. 그녀들의 미간에 떠오 른 시퍼런 힘줄과 불똥이 튀는 그 눈동자를 보고 나는 뒤로 나자빠질 듯한 쇼크를 맛보았지만 끝까지 버텼다. 힘내라! 쿠베린! "지금 우리에게 저 따위 지푸라기 같은 한 줌도 안될 계집애를 인정하라고 하는 거야?" 케이링이 이를 갈며 외쳤다. "쇼나나 유티아는 그래도 괜찮아! 미하라도 괜찮다고! 케이링은 저렇게 드 세니 어쩔 수 없다고 치지! 그래도 괜찮은 전사니까! 그렇지만 저 계집애 는 대체 뭐야! 가죽이 미끈한 거 이외에 악악 소리 치는 것 밖에 더해? 저 런 말라깽이에 참새대가리같은 계집애를 끌고 지금 우리가 가야한다고 말 하는 거얏!" 이에르네가 악을 지르면서 눈빛을 번뜩였다. 세상에 무서워라. 튜나도, 엘레도, 사인족의 왕도, 아헬도 무의식중에 뒤로 물러설 정도였다. 붉은 머리를 번뜩이면서 초록의 눈빛을 번쩍이는 이에르네의 위세는 주변 에 있는 모든 남자들을 모조리 다 얼려버렸다. "게다가, 당신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지금 우리가 가는 곳은 저 지긋지긋한 북의 산맥이란 말이야! 여기서 거기까지 가려면 우리 일족의 힘으로도 닷새는 꼬박 달려야해. 저 계집애를 누가 안고 달릴 거야? 당신? 당신이 안고 달릴 거야? 만약에 그렇다고 말한다면 나는 저 계집애의 머리 통을 댕강 잘라 안겨주겠어어!" 송곳니를 드러내면서 악악 거리는 그녀의 얼굴을 보니 아아 왠지 오금이 저릴 정도다. 나는 숨을 가다듬고 시퍼렇게 질린 미트라를 바라보았다. 미트라는 두 주먹 불끈 쥐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런 눈길을 보내는데 내버려둘 수는 없지. 어떻게서든 설득해야지. "이에르네." "왜?" "너라면 너를 바라는 남자를 죽도록 내버려둘 수 있나?" "응." 이에르네는 냉정하게 잘라 말했다. 젠장. 나는 질려서 한동안 입을 열지 못했지만 별 수 없이 조용히 말을 이었다. "너와 달리 나는 그렇게 못해. 그리고 저 애는 내가 보호해온 애다. 내 눈 앞에서 잘못되는 것을 난 볼 수 없어." 이에르네는 눈썹을 치켜올렸다. "오호, 그렇다면 당신 눈앞에서만 아니면 되겠네." "말 장난 하지마." "말 장난 하는 것은 당신이야. 지금 일족의 여자들을 가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쳐. 당신은 왕이니까, 그렇지만 인간의 여자는 안돼. 지금 인간을 없애는 중인데 인간의 여자를 안겠다고? 그걸나보고 놔두고 보라고 할 참 인가? 저기 있는 로오나의 얼굴이 보이지도 않아?" 그녀는 진지한 분노를 담고 물었다. 로오나. 로오나는 일행 구석에 무표정한 채로 서 있었다. 파리한 그녀의 옆에 아소 미나가 붙어서 모친을 불안한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동요하지 않았다. "로오나는 로오나이고 미트라는 미트라야. 미트라를 건드리면 용서하지 않 아. 여자를 죽이는 일은 왠만해선 하지 않지만 만약에 그럴 일이 생긴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는다는 걸 알겠지? 이에르네?" 이에르네의 얼굴이 증오로 일그러졌다. "그래요? 백년전에 당신이 죽인 일렌처럼 말인가요?" 그 말을 듣자 마자 내 안에서 무언가가 끊겼다. 퍼억 하고 이에르네의 몸뚱이가 날아갔다. 그녀는 생명이 없는 물체처럼 공중으로 떠올라 덤불 속에 사납게 쳐박혔 다. 침묵이 흘렀다. 케이링도 미트라도 쇼나도 유티아도 모두 입을 벌린 채 굳어 서 있었다. 나는 이에르네가 쓰러진 것을 무심히 바라보았다. ".......해도 될 말이 있고 안될 말이 있는 거다. 이에르네." 그녀는 헝클어진 붉은 머리칼을 쓸어올리면서 부시시 일어섰다. 뺨이 부어 오르고 입술이 터져 피가 흘렀다. 놀란 케논이 재빨리 제 어미에게로 달려 간다. "엄마..!" "결국 당신은 일렌 이외에는 어떤 여자도 진심이 아닌 거잖아!" 이에르네가 비명을 지르듯이 외쳤다. 그 독기어린 눈동자에 지친 기분이 된다. 나는 한 숨을 쉬고 어느 새인가 와서 매달리는 에이리와 라비니아를 안아 들었다. 에이리는 제 어미가 없어서 그런지 약간 불안해 보였지만 그와 반 대로 라비니아는 계집애다운 기지로 이 불안한 분위기에서 내게 애교를 떨 어 분위기를 쇄신하려는 목적의식을 가지고 있는 듯 보였다. ".....미트라를 건드리지 마." 나는 그렇게 한 마디만 던지고는 등을 돌렸다. 안아 올린 라비니아가 내 머리칼을 쓰다듬는다. 에이리는 내 팔뚝에 손톱 을 박을 듯이 꽉 쥐었다. 등뒤로 와 닿는 시선이 따갑다. ==============================================================] 원래 많으면 많을 수록 복잡한 겝니다...--;; 그리고 미리 말해둡니다만 전 바람둥이가 좋은 게 아니올시다. 바람둥이가 좋다는 것은 제 정신이라고 보기가 어렵지요.... 이 놈이 바람둥이 ..인 것은 어디까지나 '짐승(?)' 이기 때문이지요. [쿠베린] 제 18화 분 노 6 번호 사용자ID 이름 시간 조회 줄수 17132 ninapa 이수영 1999-06-24 464 278 KUBERIN....... 살아있는 자라면 누구라도 죽음과 한 걸음 틈을 두고 걷는다 죽음을 피하는 것도 자유 죽음과 맞서 싸우는 것도 자유. 6 "일렌이 누구야?" 미트라가 물었다. 그녀는 불안한 듯이 어깨를 추스리고 내 옆에 바짝 붙어 앉아 있었다. 그 녀의 옆에 붙은 케논은 그녀가 예뻐서 마음에 드는지 바짝 붙어서 말끄러 미 쳐다보고 있었고 다른 애들은 제각기 제 어미에게 달라 붙어 있었다. 앗시아가 가져온 저녁거리를 뜯으면서 나는 모닥불을 바라보고 있는 차였 다. 멀리 산등성이로 밤의 여신의 옷자락에 내걸린 별들이 빛을 발하고 있다. 바람은 나직나직하게 열기를 풀고 산뜻한 향기를 전해온다. "쿠베린." "내 여자였다." ".....죽었어?" "죽었어." ".............." 미트라는 날 멍하니 바라보았다. "어떻게? 묘인족은 강하잖아? 설마 병으로?" "내가 죽였다." 그녀의 눈이 커다래졌다. "어째서?" "강했으니까." 나는 그렇게 잘라 말하고 눈을 감았다. 지루할 정도로 떠오르는 영상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그녀는 심장을 뜯기웠고 나는 그녀의 심장을 씹는다. 그녀는 나를 배신했 고 나를 배반했고 나를 우롱했고 나를 고통스럽게 했고 나의 심장을 가져 갔다. 검붉은 피와 검붉은 살점과 아직도 아른거리며 떠오르는 고통. "아빠!" 갑자기 소리를 지르면서 케논이 달려왔다. 케논은 기세등등하게 내 앞으로 오더니 갑자기 내 정강이를 걷어찼다. 내가 눈을 뜨자 녀석은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듯이주먹을 휘두르며 나에 게 항의했다. "생각해 보니 너무 억울해! 왜 우리 엄마만 맞는 거야?" ".......그럼 다 같이 때려주랴?" 케논은 흠칫했다. 미트라가 놀라 케논을 보자 케논은 눈을 가늘게 뜨고 미트라를 쏘아보았 다. "저 인간 여자는 내가 먹을래! 그러니까 날 줘!" 미트라가 입을 저억 벌리는 순간 갑자기 벌떡 일어 선 아소미나가 외쳤다. "아냐! 내가 먹겠어!" 아소미나는 눈빛이 활활 타오르는 것 같은 얼굴로 내 앞에 오더니 맹렬하 게 말했다. "우리 엄마는 맨날 괴로워하는데 저 인간여자가 옆에 있는 것은 불공평해! 그러니까 내가 먹어서 공평하게 할 거야!" 나는 로오나를 바라보았다. 로오나는 멍한 눈빛으로 자신의 딸이 외치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아빠! 플라티나는 내가 구할 거야! 그러니까 저 인간을 날 달란 말이야! 설마하니 아빠는 플라티나보다 이 인간 여자가 더 중요한 것은 아니겠지?" "......." 여자는 어려도 여자다. 아소미나는 불타는 것같은 눈빛을 내게 던지면서 항변했다. 그 말에 동의하듯이 케논과 에이리도 고개를 그덕였다. 멀리 있던 라비니 아도 그래 하고 큰 소리로 대꾸했다. "그래요! 아빠, 우리가 플라티나를 구할 거야! 그러니까 저 인간여자를 줘 요! 인간따위와 같이 있을 필요는 없잖아!" 이 기세등등한 아이들을 물끄러미 보면서 나는 짧게 말했다. "자라." "아빠!" "떠들지 말고 자." 아소미나는 격렬한 증오의 눈길을 미트라에게 보냈다. 미트라는 어떻게 해야할지 알수 없는 얼굴로 멍하니 아이들의 증오 어린 눈길을 받고 있었다. 그녀는 이런 상황은 상상도 해 본 적이 없을 것이었 다. 그런 그녀의 어깨를 튜나가 안아주었다. 튜나는 한 숨을 내 쉬고 미트 라의 울 것같은 어깨를 안아주었다. 나는 피로한 등을 바위에 기대고 아소미나가 자지도 않고 나를 어둠 속에 서 노려보는 눈길을 느끼면서 허공을 바라보았다. 평소에 보던 상냥하고 예쁜 내 딸의 눈초리라고는 할 수 없을 정도로 살벌한 증오와 분노에 찬 눈동자였다. 아이들은 증오를 빨리 배운다. 그리고 모든 것을 너무 일찍 배운다. 전에도 내가 몇번이나 말했었는데. 인간은 먹을 것이 아니라고. "나...돌아가는 게 옳을까." 미트라가 조용히 말했다. 나는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약해진 눈빛이다. "나는......당신이 좋아. 하지만...뭐가 뭔지 모르겠어." "넌 대체 내 어디가 좋은 건데?" "....모르겠어. 처음에는 어처구니없는 남자라고 생각했었을 뿐인데." 나는 턱을 괴고 미트라의 얼굴을 들여다 보았다. "다음 마을에서 돌아가라." "난 역시 높은 성의 소리지르는 공주님인 걸까?" 미트라가 한숨을 내 쉬며 중얼거리듯 물었다. "네가 바라던 것은 어떤 것이었는데?" "나는 그저.....평범하게 대등하게 지내고 싶은 것 뿐이었어. 나를 공주님이 라 부르면서 아부하거나 혹은 벽에 장식된 그림같이 바라보지 않는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을 뿐이었다구." 나는 다정하게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꿈 깨." "뭐?" "꿈 깨라구." "너는 절세미녀야. 어떤 사내새끼도 네가 공주여서가 아니라 미녀여서 그 림같이 바라보게 될 거고 미녀님 미녀님 하면서 아부하게 될 거야. 그러니 까 그런 취급 받는 것은 너의 운명인 게야." "운명?" 미트라가 억지로 웃었다. "사내란 동물은 미녀가 앞에 있으면 그렇게 되는 거야. 처음에는 위치에 놀라고 그 담에는 미모에 감탄해서 절절 매는 거지. 튜나와 네가 나란히 있을 경우 네가 공주인 걸 몰라도 다들네게 더 친절하지 않냐?" "그거 지금 나보고 들으라는 소리야?" 튜나가 사납게 눈꼬리를 치켜세우면서 돌아본다. 미트라는 쓴 웃음을 지으면서 튜나를 보다가 다시 날 바라보았다. "그거 위로하는 거야?" "그래." "그런데 당신은 왜 나에게 쩔쩔 매지 않는 거야?" "나는 주변에 워낙에 미녀가 많다보니 아쉬움이 없어서 그렇지." 내 말에 미트라는 철썩하고 내 팔뚝을 때렸다. 튜나는 흥흥 하면서 옆에서 쥐고 놀던 나뭇가지를 휘둘러 보였다. "바람둥이라 말도 잘하는 구만. 하지만 이 튜나님에게는 엘레가 있단 말이 야. 엘레는 내가 아름답다고 말해줬다고." "조인족의 미적 감각을 의심할 수 밖에 없구만." 나는 간단히 답해 주었다. "그런데 일렌이란 여자는..." 미트라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야기 해줘." 여자란 잔혹하다. 태연하게 남의 상처를 헤집는다. "싫어." "왜? 괴로운 거야?" "괴로워." "말해줄 수 없는 거야?" 나는 그녀를 보며 잘라 말했다. "말하기 싫은 것을 말하라고 하는 것은 오만이지."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약간 얼굴이 굳었다. "너는 내가 너의 첫 생리일이 언제였냐, 네가 기저귀를 가리게 된 게 언제 였냐, 아버지에게 엉덩이를 맞지 않게 된 것이 언제였냐, 네 가슴이 봉긋해 진 것은 언제부터냐, 네가 데리고 도망쳤던 녀석이 어떤 놈이냐 따위의 말 을 물으면 흔쾌히대답할 수 있냐?" 미트라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싫은 것은 싫은 거니까 긴 말하지 마." "심해!" "여자는 심하고 남자는 심하지 않냐? 남자는 여자보다 훨씬 섬세하고 단순 미묘해서 상처받기 쉽단 말이다." "말도 안돼." 나는 뒤에 앉아서 내 말을 듣고 있는 휴런에게 시선을 돌렸다. "야, 휴런, 그렇지 않냐?" 녀석은 벙벙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하더니 지껄인다. "자, 잘 모르겠는데. 내가 섬세하던가?" "저 봐라. 남자란 너무나 섬세한 나머지 본인이 섬세한 것도 모르고 있는 불쌍한 종자다. 그러니까 남자는 상처를 받아도 자기가 다쳤는지도 모르고 피를 줄줄 흘리면서 돌아다닌단 말이야." 미트라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가?" "저 말을 믿어? 쿠베린의 말 중에서 반 이상이 헛소리인데." 튜나가 같잖치도 않다는 듯이 말하는 동안 옆에서 사인족의 왕이 거들었 다. "사실이야." 엥? 나도 모르게 녀석을 돌아보았다. 녀석은 수인족 놈과의 눈싸움을 무시하고 내쪽으로 고개를 돌리고선 먹다 만 뼈다귀를 휘휘 돌리는 섬세하지 못한 동작을 취하며 지껄였다. "남자는 훨씬 섬세하단 말이다. 이 둔탱이 여자들아." "둔탱이? 둔탱이라구? 그런 말을 노랑탱이 사인족에게 들을 이유는 없어!" 튜나가 그를 쏘아보자 사인족의 왕은 조소하듯이 대꾸했다. "남의 상처를 호기심으로 쑤셔대는 게 여자잖아?" 그 말에 튜나가 흠칫했다. "뭐라는 거야? 지금 이 자리에서 여자 남자 쌈박질이라도 하겠다는 거야?" "뭐어, 사실을 말하는 것 뿐이지." 아아..난 다시 보았다. 사인족의 왕- 이름이뭐더라....뭐, 뭐였지? "너 이름이 뭐였더라?" 사인족의 왕은 날 불쌍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너 조금 모자란 거 아니냐?" "남자이름을 결사적으로 외울 이유는 조금도 없는 거야. 네가 누렁이니까 그저 누렁이라고 기억하면 되는 거지." "그런데 왜 새삼 이름을 묻냐?" 사인족의 왕은 화가 난 듯이 이빨을 드러내며 물었다. "넌 내가 널 누렁이라고 부르는 게 좋으냐? 그렇다면 그렇게 불러주지, 누 렁아." 그 다음에 날아온 것은 뼈다귀였다. 그 뼈다귀는 호되게 나를 향해 날아왔 지만 그 것에 맞아 머리통을 깨트리는 것은 나의 취향이 전혀 아닌 지라 나는 태연자약 피해주었다. 그러나 그 뒤를 이어 날아온 돌멩이에 그만 별 을 보고야 말았다. "윽.." 이 자식이 시간차 공격을 했단 말이야? 이걸 그냥! 내가 화악 일어서려는 순간 듀나시가 짧게 말했다. "우린 적어도 삼일 안에 산맥에 도착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사.삼일이라니! 농담마! 아무도 그렇게 갈 수는 없어!" 튜나가 입을 벌리며 말하자 듀나시는 차갑게 말했다. "시간을 지체할 이유가 전혀 없지. 사흘 밤낮을 달린다면 세룩-엘라마이야 에 도착할 수 있어. 우리는유람 중인 게 아니니까." 그 말이 옳다. 엘레도 고개를 그덕이고 있었다. 나는 엉덩이를 붙인 채로 사인족의 왕 누렁이에게 조용히 말했다. "이제 살아남은 사인족이 얼마나 되는 지 아냐?" "몰라. 하지만 분명한 것은...." 녀석이 시니컬하게 웃었다. "내가 마지막 왕이라는 점이다." ========================================================================== 음.. 전 원래 그다지 잡담을 즐기는 편은 아닙니다만 ^^ 아마도 원래 잡담을 안쓰게 되는 이유는 그 왕년~~ 2400짜리 모뎀으로 온라인으로 글쓰다가 수 없이 깨졌던 처참한 이유 때문이겠지요. 그래서 아무래도 전 글을 읽는 것이 대부분이고 잡담란에도 글을 잘 안올립니다. 잡담란에 글 올린다는 것이 왠지 조금 겸연쩍기도 하고 이렇게 뒤에 글 올리다가 끄트머리에 글 쓰는 것도 조금 겸연쩍고. 하지만 지금은 56k라는 것 아닙니까! 으하하하하하.....;;; 흐음..^^;; 어찌되었든 글이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몸이 안좋으면 머리도 안돌아가고 머리가 안돌아가면 만사가 귀찮아지고 하염없이 게을러지는 터라 이렇게 늦어졌군요. 원래 이 놈의 쿠베린을 나는 여름엔 끝낼거야 라고 호언장담하고 있었는데 어째 꼴을 보아 하니 하염없이 가야 할 듯 하군요. 게다가 제가 조금 다작스타일이 되어놔서 이런 저런 글들이 생각나 버리는 통에 일찍 전념해서 끝내버린다...라고 하는 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동방전도 쓸거야! *.* 싸우는 사람도 쓰고 싶어! *.* 이딴 생각이 머리 속에 가득해서 어쩐지 진도가 안나간다고나 할까요...... 요즘은 또 왜이리 현대물이 쓰고 싶은지....;;;; 하여간 빨랑 끝장을 보고파서 안절 부절 하는 것은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꼬락서니를 봐선 쉽게 끝날 거 같진 않습니다. 이 쿠베린이란 놈이 지금 우울상태라 더 진도가 안나가는 듯합니다. 땅파고 우물 파는 것은 질색이라 어떻게든 이 우물에서 나와야 할텐데, 하긴 설마하니 지가 아무리 낙천적이고 나사빠진 성격이라고 해도 사방이 다 죽느니 딸내미가 납치되었느니 하고 난장판인데 히히덕 거릴 수 만은 없겠죠. 음....파울로가 옆에서 방석 긁고 있습니다. ....;;; 그럼....담편에서 뵙죠.....;;; 모처럼 긴 잡담이었습니다. ps. 나우에 수영동이 생겼습니다.^^;; 수영동아리가 아니라 수영사모....랍니다. 음하하하하하...;; ^//^ 어떤 분이 알려주셔서 가봤는데 다들 수영동 수영동 하길래 첨엔 전 수영동아리인줄 알았지 뭡니까...... 음..어쨌든 관심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ps2. 궁금하신 분들을 위하여...(안 궁금하셔도 할 수 없지만) 저기 있는 방석긁고 있는 파울로는 제가 키우는 갭니다. 7살짜리 게으른 말티즈지요...지금은 여름이라 치와와의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ps3. 패리어드가 정확히 언제 나올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출판사는 황금가지이고, 아마도 여름 중에 나오겠지요. 원래 5월 말에 나온다고 했었는데 늦어지는 군요. 몇권이 되는 지 잘은 모르겠지만 4권정도가 아닐까요? 가격도 아마 비슷하지 않을까요? (아무 것도 모르고 있다...;;;) [쿠베린] 제 18화 분 노 7 번호 사용자ID 이름 시간 조회 줄수 17287 ninapa 이수영 1999-06-29 625 275 KUBERIN....... 살아있는 자라면 누구라도 죽음과 한 걸음 틈을 두고 걷는다 죽음을 피하는 것도 자유 죽음과 맞서 싸우는 것도 자유. 7 전에 말했다시피 룬드바르의 애송이는 북으로 진격중이었다. 그리고 우리도 북으로 가고 있었다. 그런 까닭에 우리가 녀석의 군대를 만 날 수도 있다는 것은 정말 당연한 일일 것이다. 원래 움직이면 그만큼의 음식이 필요하다. 날면 날개가 아프고 달리면 다리가 아프고 지껄이면 입이 아프다. 그것을 채워주는 것은 음식인 지라 우리들은 도시에 들리기로 했다. 튜나 는 이런 저런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도시에 들러 떠들어야 한다고 주장했 으며 우리들은 미소를 지으며 기꺼이 응해 주었다. 미트라는 이번 도시에 서 돌아가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 같았지만 사실 인간의 공주님, 그것도 절 세미녀에 세상물정 모르는 아가씨를 전쟁터를 방불케할 시끌벅적지근한 인 간의 도시에 투욱 떨구고, 그 미녀가 어정어정 걸어서 보호자라 할 만한 놈들에게로 돌아간다는 것은 정말 가능성 없는 일 중 하나인 지라 나는 이 애를 엘프의 마을까지 데리고 가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나의 타당하고도 적절한 생각에 모두들 동의한 것은 아니었지만 튜나는 그럴 듯한 소리라고 고개를 그덕여 주었다. 물론 그 사이에 나의 묘인족 여자들 사이에서 내가 가까이 가면 찌르고 할 퀴고 두들기며 물어뜯는다는 협정이 이루어져 나는 외로운 밤을 보내고 있 었다. 그러나 하는 수 없다. 할 일은 해야지, 게다가 여자 하나 꼬시는것 은 별로 힘든 일은 아니지만....그저 쓸쓸한 밤에 앗시아와 다크를 끼고 잘 수 밖에는 없는 것이다. 아아, 냄새나는 수컷들끼리 등을 붙이고 자는 서러운 밤이라니. 어쨌든 애들까지 뭔가 눈치를 챘는지 지 어미에게 바짝 붙어서 이 아버지 를 개차반취급을 하고 있다. 별 수 없어서 나는 머리를 북북 긁으면서 그 화풀이를 누군가에게 하면 좋을까 고민하고 있었다. 바글 바글.. 여기는 북부의 소도시 멜리라는 곳이다. 이 곳의 치안은 엉망진창이었다. 군대가 지나가는 도시라는 것에 뭐 바라는 것도 없고 바랄 수도 없는 것이 긴 하지만 이건 상당히 심한 몰골이었다. 시장이란 녀석은 코빼기도 보이 지 않고 치안대라는 것들은 날깡패, 그리고 상인이라는 자들은 돈에 대한 집착을 노랗게 불태우며 상대를 등쳐먹을 생각만 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길거리에 애들은 새까맣게 그을려 까마귀새끼들마냥 오락가락하면서 뭔가 주울 거라도 없나 눈을 부라리고 있고 여자들은 예쁘게 치장하면 누가 잡 아가기라도 할 듯이 살벌한 눈초리로 눈을 찢고 있었다. 물론 사내들은 말 할 나위 없이 다른 도시에선 족히 사깃꾼이라 해도 통할 듯한 눈매들을 하 고는 음침하게 돌아다닌다. 그 와중에 스쳐가는 듯한 룬드바르의 병사들은 술을 퍼먹고, 아니, 정정하 자면 룬드바르의 정규군은 주둔지에서 거의 나오지 않는 바른 생활(?)을 하고 있는 듯했지만 룬드바르의 점령지에서 뽑아내온, 이를 테면 델리암군 대 같은 놈들은 시내를 쏘다니며 쌈박질이며 노략질이며 부녀자 희롱하기 를 필사적 결사적으로 하고 있었다. 이러한 도시에 미트라를 떨군다라고 하는 것은 미트라의 인생을 완전히 망 치려고 결심을 한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었다. 물론 바보가 아닌 이상 미트라도 이 도시 안에 들어오는 순간 마음을 바꾸었다. "헤이 헤이, 미녀!" "여기 좀 봐! 저게 왠일이야!" 여기저기서 뭐같지도 않은 놈들이 수작을 걸고 있었다. 나는 미트라와 함께 걸었고 나머지 여자들은 각기 애들을 데리고 걷고 있 었다. 우리 스스로야 우리들을 건드릴 놈이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 지만 그것은 사리를 알고 분별을 아는 현명한 자들에게나 통할 이야기지, 술에 절인 보랏빛 가지들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다. 녀석들은 이에르네를 비롯한 미녀군단을 보며 침을 질질 흘리면서 접근해 왔다. 물론 다크와 사인족의 왕- 이름을 기억못한다-과 휴런, 듀나시는 보기에도 적지 않은 체구이고 나역시 마찬가지지만 여기에 이에르네와 미트라, 케이 링, 유티아, 쇼나, 로오나라는 죽죽 빠진 팔등신 미녀들이 노출도 두려워하 지 않고 흰 팔다리를 드러낸 채 걸어가고 있다면 눈알 제대로 박힌 사내들 이 접근하지 않을 리가 없는 것이다. 물론 그 마음 이해는 한다. "여기좀 봐봐, 근사한데?" "우리랑 놀지 않겠어?" 몇몇이- 도시에 들어서자 마자 일곱이란 놈팽이가 달라 붙었다. 그리고 그 순간에 녀석들의 목이 좌라라라락 날아갔다. 그리고 골목길에는 침묵이 흘 렀다. 도시에 들어선 직후 벌어진 일이다. 그리고 너무 빨리 일어나 어떻게 하고 자시고도 없었다. 그 일의 당사자인 케이링은 손톱을 자연스레 집어 넣고는 피를 뿌리고 데굴데굴 구르고 있는 머리통을 하나 걷어 찬 뒤에 태연자약 걸음을 멈춘 나를 바라보았다. "마...맙소사." 튜나가 중얼거렸다. "여기서 살인을 하면 시끄러워 질거라는 생각정도는 할 수 있지 않아?" 그녀는 이마를 잡은 채 중얼거렸다. 골목길에는 이미 수명의 사람들이 이 사태를 지켜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들은 각자 골목 사이 사이, 내지는 그저 길 가에 멍하니 입을 벌리고 서 서 케이링과 우리들을 바라보고 그 일곱명- 지금은 14조각이 된 시체들을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다. 조금 늦은 반응이긴 하지만 몇몇이 비명을 질렀 고 그 뒤를 이어서 곳곳에서 비명소리가 연이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살인이다!" "살인이야!" "흥, 시끄럽긴." 케이링은 냉담하게 말하고는 튜나에게 지껄였다. "이 도시에서 뭘 보겠다는 거야? 이건 쓰레기같은 곳이잖아?" "정보수집을 은밀히 좀 해보려고 했어. 정말 묘인족이란 시끄럽기 짝이 없 구만...." 그녀가 한 숨을 내쉴 때 갑자기 여기 저기서 타타닥 하는 발자국 소리가 터져나왔다. "저기다~!" "저 일행이야!" "살인자!" 아마 치안대 아니면 뭔가 끼어들기 좋아하는 무리들일 것이다. 나는 손짓을 하면서 조용히 말했다. "모조리 죽이는 것도 귀찮으니 아무 데나 들어가자." ************** "쿠베린...." 튜나가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미치겠네. 아무 데나라고 하더니 진짜 이런 짓을..." "그럼 별 볼일 없는 시선을 받기 위해 주점으로라도 가야만 했다는 거야?" 나는 탁자위에 다리를 얹으면서 되물었다. 우리들은 케이링이 목을 댕강댕강 잘랐던 바로 그 골목길에서 가볍고 우아 하게 담장을 넘어 바로 옆 골목에 달라 붙어 있던 집으로 뛰어들어왔던 것 이다. 그 집은 여느 도시의 집과 마찬가지로 작고 볼품없는 대문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들은 가볍게 문짝을 떼어 안으로 들어가 악악거리는 술에 취한 주인의 항의를 손쉽게 무시할 수 있었다. 만약에 조신한 양가집이었다면 양심의 가책 비슷한 것이라든가 남의 영역 을 침범했다는 가슴 저리는 기분을 맛보았을 지도 모르지만 이 놈의 집안 은 좁고 더러웠다. 벽에는 거미줄이 쳐 있고 햇빛은 들지도 않아 곰팡이 냄새가 나고 바닥에 는 주먹만한 벌레들이 기어다녔으며 주인인 듯한 얼굴을 한 녀석은 술에 잔뜩 취해서 골골 거리고 있었다. 게다가 그 녀석 이외엔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우리들은 그저 느긋하게 시끄러운 소란이 지나갈 때만을 기다리고 있기만 하면 되었다. 튜나는 한숨을 쉬고 주변을 돌아보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일단 이 곳의 상황을 조금 알아보고 올게." "뭐하러?" 내가 묻자 그녀는 진지한 낯으로 말했다. "일단 이곳 녀석들과 접촉해서 룬드바르 군이 얼마나 진격했는지, 그리고 다른 도시의 사정은 어떤지 알아봐야지." 그런 일을 뭐하러 그렇게 어렵게 알아본단 말인가? 그러나 관대하게 나는 튜나의 그 '엘프적인 태도' 라기 보다는 일반적인 인 간의 태도를 너그러이 용서하기로 했다. "올 때 먹을 거나 가지고 와." 내 말에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더니 정색하고 말했다. "부탁이니까 제발 좀 조용히 있어줘. 먹는 것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말 이야." 그 말이 끝나자 마자 튜나는 엘레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 "케이링." "네?" 케이링이 시큰둥한 태도로 지저분한 방안을 돌아보다 말고 날 바라보았다. "다크" "네." "..누렁이.." "죽엇!" "그리고 너...수인족의 ..꼬맹이." 녀석은 눈을 껌벅이면서 날 바라보았다. 앗, 제길, 녀석의 이름을 잊어버렸다. "나랑 잠시 나갔다 오자." 케이링이 눈을 크게 뜨고 날 보았다. "어디요?" "가서 뭘 좀 물어보고 오려고 해." 나는 짧게 말했고 케이링은 약간 의미심장한 눈으로 미트라를 바라보았다. 미트라는 그 순간 헉 하고 굳었다. 내가 없고 튜나가 없는 상황, 게다가 그나마 호의적인 사인족의 왕도 없다 고 하면 여자들 사이에서 미트라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녀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내 옷자락을 잡으려 했지만 나는 휴런을 돌 아보았다. "휴런, 지키고 있어, 미트라를." "헤에 헤에." 휴런은 흐흐 웃더니 자신만만하게 미트라의 어깨에 자기 손을 척하니 올리 고는 웃어보였다. "걱정 마, 설마하니 여자 하나 보호 못할까봐?" 그 말에 이에르네와 케이링, 쇼나, 유티아의 시선이 일제히 화살이 되어 녀 석을 들이 박았다. 휴런은 하하 웃더니 미트라를 자기 등 뒤로 돌리고는 태연히 손을 흔들어 보였다. "걱정 마, 걱정 마, 이 휴런님이 잘 보호해 둘 테니 형은 가라구." 그 음흉한 손이 은근히 미트라의 허리까지 내려오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 면서 나는 혀를 찼다. 피는 속일 수 없는 것일까? "어딜 가는 거죠?" 케이링이 물었다. 다크는 왠만해선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녀석은 충실히 따라오고만 있었다. 그러나 누렁이는 내 옆을 달리면서 되묻고 있었다. 그 옆에 당연하다는 듯이 말 한마디도 하지 않는 아헬이 달라 붙어 있었다. 이 놈이 생각해 보면 우리 일행 중에 유일한 마법사잖아? 따라 오라고 말 도 하지 않았는데 악착같이 이 누렁이를 따라 달려온다. "대체 어딜 가는 거냐? 뭔 볼일이야? 나라면 그냥 일직선으로 산맥으로 가 는 게 옳다고 생각하는데, 저 놈의 엘프는 느긋하기도 하군." "정보수집하러 가는 거야." "정보수집?" 내 식대로 정보수집을 하러 가는 거지. 나는 지금 엘리야에 있는 것도 아 니고 어디까지나 적대하는 녀석들의 영역에 있는 거라고. 흘긋 보니 수인족녀석은 용케도 잘 따라오고 있었다. 아무리 수인족 중에 가장 강한 회색늑대의 일족이라고 해도 우리들이 진심으로 달리면 따라 올 수는 없다. 녀석은 묵묵히 내 뒤를 눈을 빛내며 따라오고 있었다. 주둔하고 있는 룬드바르군은, 정확히 말하면 주둔하고 있다기 보단 휴식을 취하고 있는 중인 것 같았다. 대개 대규모의 병력이 움직인다고 하는 것은 그 대규모의 병력의 세 배는 되는 보급이 움직인다는 것과 같은 이야기다. 어떤 모자란 놈이 굶어가며 맨손으로 쌈박질을 하겠는가. 병사란 징집되었을 때는 유순한 양이지만 일단 병사라는 이름으로 창이라 든가 칼이라든가 하는 것들이 쥐어지게되면 그 순간부터 날깡패, 날강도 등으로 돌변한다. 그리하여 양갓집 규수를 넘본다든가 혹은 남의 집에 태 연자약 들어가 노략질을 한다든가 평소에는 모자 벗고 인사할 점잖은 부인 의 스커트자락을 들춘다는 기이한 행각을 벌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따라서 강한 병사, 멋진 병사, 구원군 내지는 성스런 군세 소리를 듣고 싶은, 조금 대가리 돌아가는 군주들은 당연한 일이지만 보급을 철저하게 해서 잘 먹이 고 잘 입히고 잘 토닥거려 주어서 녀석들이 양에서 갑작스런 날강도로 돌 변하지 않도록 보살펴 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자기 영지의 영 민들은 헐벗고 굶주리게 하는 한이 있어도 싸움터의 병사들에게는 새 신발 과 새 창과 칼들을 지급하고 적절히 때를 가려 음식을 퍼먹이며, 창녀들을 이끌고 다니면서 여자를 찾아 병영을 이탈하지 않도록 배려해야 한다. 아, 인간의 병사란 얼마나 돈과 노력과 힘이 많이 들어가는 것일까. 어찌되었든 때는 황혼이 질 무렵, 배가 슬슬 고파지고 따라서 짜증이 증 가하고 살기가 무럭 무럭 가슴속에 우러날 이즈음, 나와 애송이들은 도시 외곽에 주둔하고 있는 룬드바르의 병영이 잘보이는 언덕 위에 섰다. 빌어먹을 태양이 아직까지 안지고 버럭 버럭 버티고 있길래 눈을 한 번 흘 겨주었다. 물론 내가 눈을 흘긴다고 해서 태양이 안녕 이제 그만 하고 사라질 리는 없겠지만 어찌되었든 지는 해 주변은 시뻘겋게 물들어 그런 대로 어둑어둑 해지기 시작한다. "뭘 할 건데?" 누렁이가 계속 묻길래 나는 잘라 말해주었다. "누렁아, 계속 떠들면 너 떼놓고 간다." "이, 이자식이! 누가 누렁이야? 내 이름이 뭔지 내가 그렇게까지...!" "왕의 이름은 헬레아스, 푸른 갈기의 헬레아스님입니다." 아헬이 잽싸게 끼어들어 항의어린 어조로 외쳤다. "헤에? 이름만은 그럴 듯하군. 푸른 갈기의 헬레아스? 어디가 파랗냐?" 내가 녀석을 아래 위로 훑어보자 막 발작하려는 녀석을 누르고 아헬이 재 빨리 대신 답했다. "이분은 변신하시면 푸른 갈기가 가슴에 생겨서..." 본 적이 없는데. 이 놈을 한번 변신시켜서 그 몰골을 한 번 볼까? 막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무렵, 수인족의 녀석이 입을 열었다. "해가 저물었습니다." 붉은 태양이 완전히 산 아래로 사라지자 마자 나는 병영을 주욱 돌아보았 다. 움푹 패인 분지에 놓인 도시의 서쪽에 위치한 평원에 주둔한 녀석들의 병 력은 얼추 보기에 2천 이상은 되는 것 같이 보였다. 방사형으로 위치한 그 모양새는 별로 규칙적인 모습은 아니었지만 그 주변 부근에 모여든 보급대 라고 이름 붙은 장사치와 창녀집단보다야 덜 했다. 저녁밥을 짓는 지 가마솥을 걸어놓은 녀석들은 나름대로 분주해 보였다. 여기 저기 횃불과 모닥불이 올라오고 보초같이 생긴 놈들이 창을 들고 오 락가락하면서 사방을 경계하고 있긴 하지만 여긴 적지도 아닌 곳인지라 녀 석들은 느긋하기만 했다. 하품하는 녀석, 잡담하는 녀석, 뭔가를 주억거리고 먹는 녀석, 밤이 다가오 자 멀리 보이는 창녀들의 흰 허벅지를 보고 킬킬거리는 녀석등 가지 가지 의 행태를 보이고 있었다. 그런 녀석들을 태연자약하게 뚫으면서 우리들은 전진했다. 먼저 노린 것은 중앙에 위치한 제법 큰 막사였다. 막사안에 들어가자 마자 눈에 보인 것은 제법 반듯하게 차려입은 기사차림 의 녀석이 팔짱을 끼고 제법 심각하게 지도를 노려보고 있는 장면이었다. 녀석의 옆에는 기사의 종자인 듯한 녀석이 진지한 얼굴로 스프 그릇을 탁 자 위에 내려놓고 있었다. 그리고 물론 진지한 얼굴로 창녀로 보이는 젊은 여자가 반쯤 젖가슴을 드러낸 채 바닥에 앉아서 자기 머리칼을 땋고 있었 다. 내가 들어가서 녀석들을 빤히 바라보고 있을 때까지 녀석들은 나름대로 진 지하게 자기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우리 일행들, 약간 굼뜬 케슈파란인지 케슈너트인지 하는 녀석까지 모조리 다 들어올 때까지 녀석들은 모르고 앉 아 있다가 뒤늦게 창녀가 머리를 땋다 말고 어 하는 소리를 내었다. "누구?" 종자가 그 소리에 고개를 들고 우리들을 보았다. 그리고 손톱을 흉악스레 꺼내들고 히죽 웃고 있는 케이링을 보는 순간 종 자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쿠베린] 제 18화 분 노 8 번호 사용자ID 이름 시간 조회 줄수 17288 ninapa 이수영 1999-06-29 583 215 KUBERIN....... 살아있는 자라면 누구라도 죽음과 한 걸음 틈을 두고 걷는다 죽음을 피하는 것도 자유 죽음과 맞서 싸우는 것도 자유. 8 비명을 지르는 것은 어찌 보면 모든 인간의, 아니 모든 지각 있는 자들의 행위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놀라서 비명을 지르는 것은 의외로 그 숫자가 적다. 대개는 아파서 비명을 올리거나 죽을 때 비명을 올리는 일이 태반인 것이다. 인간의 경우는 비명을 아주 즐겨 지르는 것 같은데 내가 왕년 한 여자에게 그 일을 물어보자 그녀가 답하길, 비명을 지르면 나름대로의 공 포나 스트레스가 해소된다고 말해주었다. 히스테릭하게 비명을 지르는 여자는 주로 스트레스 해소용이라고 할 수 있 고 비명을 올리는 남자는 대개 공포라고 한다. 그 말을 듣고 내가 스카에 게 물었더니 스카는 그것을 완강히 부인했다. "여자는 겁이 많아서 비명을 많이 지르는 거야. 남자는 비명이라기 보단 신음에 가깝지 않나? 그리고 대개 죽을 때 비명을 지른다구!" 그렇지만 원래 남자란 허세와 자존심과 허풍과 잘난 척으로 일생을 살아가 는 것이라는 것을 진실로 알고 있는 나는 그 말을 안들은 것으로 치기로 했다. 남자가 강하다고 뻐기지만 결국 찾는 것은 궁극적인 귀착점은 단 하 나, '엄마' 가 아니던가! 어찌되었든 나는 종자와 기사놈이 그 절대적인 외침, '엄마'를 찾기 전에 녀석들의 턱뼈를 반쯤 빼고 여자가 히스테리를 부리기 전에 졸도시켰다. 처음 그 일을 하려고 한 케이링을 만류한 이유는 단 하나, 그녀가 힘을 조 절할 필요성을 그다지 느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지 내가 직접 하고싶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이제 뭘 할건데요?" 케이링이 죽여버리고 싶다는 듯이 손톱을 집어넣지도 않고 탱탱 튕기고 있 는 동안 나는 탁자에 놓여진 음식을 천천히 먹어치우면서 턱이 빠진 기사 녀석을 톡톡 발끝으로 걷어찼다. "이봐, 순순히 말하면 목숨만은 살려줄게." 녀석은 아픔과 공포와 기타등등 내가 알수 없는, 그리고 알 생각도 없는 감정에 사로잡혀서 나를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보다 배는 더한 공포심을 가지고 케이링의 그 기나긴 퍼런 손톱을 바라보았다. "내가 알고 싶은 것은 첫째, 룬드바르의 애송이는 어디까지 진격했는가야." 녀석의 눈이 커졌다. 그리고 나는 녀석이 대답할 수 있도록 턱을 도로 맞추어 주었다. 그러자 녀석은 완강히 몰라라고 떠들려고 한다. 그 말을 듣기도 전에 나는 그 녀 석의 손가락을 힘껏 밟았다. 콰직 하고 손가락뼈가 부서지는 순간 녀석이 악하고 비명을 올리려 했고 또 바로 그 순간 아헬이 두 손을 내밀었다. "사일런스!" 뭔지는 모르지만 우리들 주변으로 화악 하고 무언가가 펼쳐졌다. 내가 돌아보자 아헬이 그 주인에 어울리지 않는 명민하고도 진지한 눈으로 나에게 말했다. "지금 이 곳에 주문을 걸었습니다. 밖으로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을 것입니 다." "오호," 케이링은 반사적으로 마법을 행한 아헬을 쏘아보았다. 그녀의 얼굴이 일그 러지면서 증오의 빛이 떠오르자 아헬은 흠칫하면서 진지한 어투로 그녀에 게 변명했다. "케이링님, 저는 그 놈들과는 아무 연관도 없고 또 인간도 아닙니다." 케이링은 송곳니를 드러내며 흐으 하고 웃었다. "그거야 알고 있지만 마법을 쓴 네 피를 한번 보고픈 생각이 안드는 것은 아닌걸." "까불지 마라, 여자!" 푸른 갈기의 헬레아스란 녀석이 눈을 가늘게 뜨고 살기를 흩뿌리자 케이링 역시 사나운 시선을 동시에 던졌다. 살벌한 기운이 좁은 막사안에 퍼져나 갔다. 나는 그들의 일촉즉발의 분위기를 무시하고 탁자위에 놓인 스프를 들이키 면서 완강한 턱을 가진 기사녀석을 바라보았다. "들었냐? 여긴 아무리 비명을 질러도 아무도 못듣는단다." "....." 녀석은 원한과 증오로 날 바라보았지만 어디 그런 눈으로 날 바라본 자가 한둘이던가, 오히려 요즘은 그런 눈을 안보면 가슴이 허한 상태다. "다시 묻지, 룬드바르의 애송이는 어디까지 진격했다더냐?" "모른다!" 녀석이 완강히 외쳤고 나는 뒤를 이어서 옆에 있는 종자녀석을 걷어찼다. 녀석은 아직 십사오세로 어린 놈으로 보였지만 어리든 늙든 그거야 상관없 는 일이다. 그 놈의 허벅지를 콱 누르자 웬만해서는 부러지지 않는다는 인 간의 허벅지뼈가 뿌직 하고 박살 났다. "크아아아아..." 비명은 그렇다 치고 엄청난 양의 피가 쏟아져 나왔다. 내가 알기론 허벅지뼈 근처에는 다량의 혈액이 흐르고 있는 핏줄이 있어서 그 것을 건드리면 출혈과다로 죽는다고 한다. 다리가 절단되었을 뿐인데도 죽었다는 녀석은 아마 그쪽을 건드려 죽은 녀석일 게다. 그 피가 기사녀석의 얼굴까지 튀었다. 파랗게 질린 녀석의 귓전에서 종자 가 미친 듯이 비명을 올리고 있었다. 자기가 맞았을 때에는 얼굴색도 변치 않던 녀석이 종자가 옆에서 울부짖자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외쳤다. "저 앤 아직 어린 애다! 기사도를 아는 자라면 이런 짓은...!" "난 기사도따윈 몰라, 기사가 아니거든." 나는 친절히 말해주면서 녀석의 턱을 긁어주었다. 강아지는 이렇게 긁어주면 좋아하지. 그러나 녀석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비열한...!" 옆에서 비명을 올리고 있는 종자녀석은 졸도했고 그 덕에 창녀도 잠, 아니 기절에서 깨어났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또 다시 비명을 크게 지르다 말고 뒤로 넘어졌고 그 때문에 옆에 있던 케이링이 짜증을 내며 걷어차 대굴대 굴 굴렀다. "대답하지 않으면 나는 자꾸 자꾸 짜증이 날 것 같다." 그 말에 따라 나는 손짓했고 입구 근처에 서 있던 다크시온이 천천히 일어 서서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두 명의 병사를 데리고 들어왔다. 두 병사는 어리숙한 얼굴로 창을 든 채 들어왔다가 막사 안의 풍경을 보고 새파랗게 질렸다. 그리고 그 들의 목이 그 자리에서 공중으로 날았다. 머리통이 타악 하고 기사의 발치까지 날아와 굴렀고 그 피가 막사 전체에 퍼져나갔다. 기사는 피를 뒤집어 쓴 채 눈이 쟁반만해져서 입을 벌렸고 그 다음에 나는 상냥히 다시 물어주었다. "대답할래? 아님 더 죽일까?" "어..어떻게 이런 짓을...!" 녀석이 더듬거리는 순간 나는 다시 손짓했다. 그러자 다크시온은 다시 밖 으로 나갔고 그 다음에는 두 명의 병사를 또 데리고 들어와또 목을 날렸 다. 머리통은 이제 네 개가 되고 시체도 역시 네 개, 그리고 공포와 고통으 로 졸도한 녀석이 둘이 되어 막사안은 이제 상당히 비좁아졌다. "다시 묻겠다. 룬드바르의 애송이는 어디까지?" "......" "안되겠네, 너무 짜증나게 하는데." "이번에는 옆의 막사로 갈까요? 그 곳에 있는 녀석도 이 놈과 지위가 비슷 해 보이는데요." 다크가 조용히 말하자 녀석은 추욱 늘어진 얼굴로 우리들을 쏘아보았다. "대체 누구냐? 너희들은 누구야?" "알고 싶어?" 나는 히죽 히죽 웃었다. 먹을 것을 잔뜩 들고 돌아오는 길에 케이링이 입을 비죽거렸다. "체엣, 뭐 그런 거 정도로 이렇게 많이 갈 필요가 있었을까요?"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먹을 것을 들려면 손이 많이 필요해." 나는 진지하게 말해주었다. 어디 먹보가 한 둘인가? 나 먹을 것도 모자라는 판에 애들은 워낙에 한 참 클 때라 엄청나게 먹어댄다. 게다가 사인족의 왕이라는 이 누렁이도 왕답 게- 거기에 왕답게라는 수식어가어울리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엄청나게 먹어댄다. 앗시아도 성장기다. 게다가 듀나시와 휴런, 다크도 덩치에 어울 리게 먹어댄다. 여자라고 해서 빠질 리 없다. 일반 인간이 먹는 것의 세 배 이상을 먹어대는 우리들이 대체 몇이나 모인 거냐? 생각해 보면 암담할 정 도로 먹을 것이 부족했다. 어쨌든 우리들이 먹을 것을 잔뜩 가지고 도착하자 일행들은 쌍수를 들어 환영했고 아이들은 뒤집어질 듯이 기뻐했다. 안그래도 배고플 때다. 만약 내가 조금이라도 늦었으면 미트라는 한 떼의 굶주린 아이들에게 먹혔을 거 라고 휴런이 뒤에서 귀뜸해 주었다. 우리 일족과는 다른 의미로 기쁨의 눈물을 흘린 미트라의 허리를 안아주고 서 나는 음식준비를 시작하는 앗시아와 여자들을 내버려두고 탁자에 다시 앉았다.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구르고 있던 집주인이 안 보였다. "어디갔냐?" "아, 지하실이 있길래 거기 쳐넣었어요." "지하실이 있어? 그 지하실엔 뭐가 있냐? 혹 포도주라도 있지 않던?" 내가 기대하며 묻자 이에르네는 고개를 저었다. "먼지와 거미줄이라면 잔뜩 있더군요." 식사를 한 참 하고 있던 중인데 마침 엘레와 튜나가 돌아왔다. 그들은 음 식물을 잔뜩 싸 짊어지고 오긴 했지만 역시 내 생각대로 병아리 모이만큼 만 가지고 돌아왔다. 우리들이 먹는 것을 보자 그녀는 눈살을 찌푸리고 항 의했다. "뭐야? 자기들끼리 먹고!" "너희들 둘이서 가져온 음식으로 우리가 해결될 거 같냐? 얼른 와 너도 끼 어 먹어." 엘레는 서슴지않고 앉아 먹기 시작했지만 튜나는 눈살을 찌푸리고 탁자 아 래를 쏘아보았다. "정말..너무 한다...이건 걸신들린 거지떼들 같아!" 그녀는 바닥에 수북히 쌓인 수많은 뼈들을 가리키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모르는 자들이 보았다면 이 자리가 도살장이라고 착각했을 거야." "그건 그렇고 말해봐. 정보란?" 내가 돼지 뒷다리를 뜯으며 진지하게 묻자 튜나는 보리빵을 뜯어 우리들의 먹성에 질린 미트라에게 권하면서 입을 열었다. "룬드바르군은 지금 산맥의 중앙신성도시 마튜스에서 막혀있다고 해. 마튜 스에는 알다시피 하프엘프들이 많이 살고 있고 그 곳에는 수인족도 꽤 많 아." "그리고 천혜의 요새이기도 하지." "응, 조인족들도 그 곳에 몇 가 있는 것 같긴 한데 잘은 모르겠고....일단 산맥의 중앙 노스엘스턴까지는 들어서지 못한 것 같아. 마튜스에는 지금 고왕국의 병세가 집결하고 있는 모양이고...." "마법사는?" "마법사로는 그 곳에 몇 가있는 것 같긴 한데 자세한 이야기는 아직 몰라, 본대가 거기에 있는 것을 보아선 룬드바르 본인도 그 곳에 있는 듯한 데....." 그녀는 고개를 갸웃했다. "또 다른 소문에 의하면 황제는 아그랑에서의 폭거로 인해서 남하하고 있 다는 이야기도 있어." "아그랑의 폭거? 파핫..." 내가 웃자 튜나는 고개를 저었다. "공식적으로 알려진 사망자만 해도 6만 이천에 달한다고 하던데, 쿠베린, 그렇게 많이 죽인 거야?" 공식적으로 알려진 사망자가 몇인지 그건 나도 모르겠다. 벌써 6만이나 죽 었단 말인가?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튜나가 진지하게 말했다. "그래서 룬드바르는 그 사악하고 잔인한 마왕을 없애기 위해 손수 아래로 남하하고 있다는 이야기야." "엘프와 고왕국 쳐부수기를 단념하고?" "그건 모르겠어. 남하하고 있다는 설과 자신의 오른팔인 장군을 보낸다는 설과 두 가지 설이 교차하고 있어서 말이야." 나는 왠지 유쾌해져서 킬킬 웃었다. 마왕이라. "그리고 마법사에 대해서인데...아무래도 룬드바르에 비협조적이었던 마법 사 길드가 그쪽으로 돌아선 거 같아, 쿠베린이라는 잔인무도한 마왕을 없 애기 위해서 말야." 튜나는 한숨을 내 쉬며 말했다. 내가 킬킬 웃자 그녀는 빵을 뜯던 손을 멈추고 오렌지 쨈을 바르면서 중얼 거렸다. "일류의 마법사들이 묘인족을 없애기 위해 총 출동을 하고 있다는 소문이 있어. 물론 그에 따라서 각 지에서 미친 듯이 살육을 하고 있다는 무지막 지한 묘인족들에 대한 소문도 같이 들려오고 있지." 흐음. 잘들 하고 있는 모양이군. "이렇게 해선 아무것도 안돼, 쿠베린. 정말 당신, 아이들을 되찾고 싶은 거 야? 아니면 단지 복수하고 분풀이를 하고 싶은 거야? 전 인간을 다 당신 적으로 돌려도 상관없어?" 튜나가 진지하게 다시 물었다. [쿠베린] 제 18화 분 노 9 번호 사용자ID 이름 시간 조회 줄수 19094 ninapa 이수영 1999-08-05 663 234 KUBERIN....... 살아있는 자라면 누구라도 죽음과 한 걸음 틈을 두고 걷는다 죽음을 피하는 것도 자유 죽음과 맞서 싸우는 것도 자유. 9 분노라는 것은 감정 중에서 가장 강하다. 누군가 사랑이 가장 강하다고는 했지만 사랑이란 것은 일종의 도취로, 부 드러운 감정에 속하지 강한 감정은 아니다. 단지 사랑에서 유래된 감정이 엄청난 힘을 가졌을 뿐인 게다. 흠, 따지고 보면 분노의 가장 밑뿌리는 사 랑이란 감정에서 비롯되니까 결국은 사랑만만세라고 해둘까. 이를테면 사랑하는 여인이 어떤 빌어먹을 자식에게 다쳤다, 내지는 납치 폭행을 당했다 라고 하면 정상적인 남자라면 돈다. 그 돈다는 감정은 그녀 를 사랑하는 만큼 강해지고 과격해져서 마침내는 분노로 폭팔하고 증오로 불타오른다. 이쁜 아가가 어떤 찢어죽일 녀석에게 납치, 죽임을 당했다라고 치자, 그 부모가 제정신일까? 완전히 돈다. 어떻게 돌까? 사랑하는 만큼, 사랑하는 것 이상으로 돌아 분노와 증오로 이성을 잃는다. 그것이 바로 분노, 감정 중에 가장 강력한 것이다. 감정적인 존재일수록 분노에 사로잡혀 모든 것을 잊는다. 아픔, 시간, 고통 을 모조리 잊고 분노의 대상에게 덤벼드는 것이다. 상대적인 것은 있겠지 만 분노와 증오라는 감정은 나이가 많고 적음에 비례한다. 나는 감정에 완전히 사로잡히기에는 나이가 들었을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감정은 내 살아가는 원천이다. 감정이 없는 자는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을 모조리 적으로 삼아도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나. 인간전체가 나에 게 대들어도 나는 상관없어." 내가 웃으며 말하자 튜나의 얼굴이 흠칫했다. "진심이야? 엘리야의 사람들이, 그리고 에메스 공작등이 쿠베린을 죽이겠 다고 뛰어와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거야?" 나는 턱을 고인 채 대꾸대신 웃었다. 튜나는 나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당신은 인간들과 이십년 이상, 아니 삼십년가까운 세월을 살았다고 들 었어, 어쩌면 더 긴 세월을 보냈는 지도 모르지, 그런데도 아무 상관이 없 어? 그렇다면 엘리야의 마미라는 여자에게 해준 것은 뭐지? 스카라고 하는 그대의 친구는 뭐지? 당신의 애인이라고 하는 그 여자는 뭐지? 응? 그들을 위해 난리를 쳐댄 것은 뭐지?" 그녀는 혼란에 빠진 듯, 아니 거의 화를 내는 것 처럼 보였다. 흥분한 그녀가 내 앞으로 다가와 거친 숨소리로 항의한다. 나는 그런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 하프엘프는 아직도 수많은 시 간들을 엘프와 인간 사이에서 살아갈 것이고 또 수많은 이야기와 일들을 겪게 될 것이다. 이 하프엘프가 긴긴 시간 조인족의 전사 엘레와 사랑스런 나날들을 보내게 된다 해도 그 안에는 반드시라고 할만큼 슬픔이 끼어들게 될 것이다. 우스운 나날들과 슬프고 기쁜 나날들이 연이어 펼쳐질 것이고 그녀는 마침내 나이를 들어 분노하든 체념하든 어쨌든 각양각색의 추억과 감정과 회한들을 가지고 대지의 여신에게 돌아간다. 그 누구든지 피할 수 없는 대지의 여신의 품으로. "그만하지 않겠어?" 흥분한 튜나를 제지한 것은 엘레였다. 엘레는 입을 다물고 그녀의 팔뚝을 잡았다. 그리고는 조용히 말해주었다. "그의 일이다." "하지만!" "남의 일에...왜 참견하는 거지?" "엘레!" 튜나가 기가 막히다는 듯이 그를 바라보았다. "쿠베린님이 무엇을 하든 그것은 그의 의지. 참견할 이유는 없어, 자격도 없고." 튜나는 입을 벌려 엘레를 보았다. 그녀 몸안의 인간이 엘프와 충돌하고 있는 걸까? 엘프라면 입에 담지 않을 말을 하는 것을 보면 그녀는 인간과 많이 흡사한 것이다. "쿠베린님, 그럼 저녁에 출발하실 겁니까?" 나직하게 엘레가 본론으로 들어갔다. 나는 턱을 괴던 상태 그대로 고개를 그덕였다. "룬드바르가 회군할 마음이 없을 테니까. 우린 마튜스로 갈까나. 거기서 그 의 잘나가는 마법사들을 만나봐야지, 그리고 룬드바르 본인도." 나는 웃는 얼굴 그대로 대답했다. "룬드바르가 회군하지 않을 것을 어떻게 알지?" 미심쩍은 듯이 튜나가 물었다. "공문이 왔던걸." "뭐라구?" "룬드바르의 장군 중 하나인 렝바이란공작이 이만 이천을 이끌고 남하 중 이라고 공문이 왔던걸, 게다가 마튜스로 보급물자를 보내라는 공문도 같이 말이야." 튜나의 눈이 커졌다. "....그건?" "묘인족식으로 알아낸 거지." 나는 여전히 웃었다. "쿠베린." 낮게 미트라가 내 옷자락을 잡았다. 내가 돌아보면서 그녀의 허리를 안아 올리자 그녀는 내 목을 감싸 안았다. 따스한 냄새가 난다. 가볍게 다리를 움직여 본다. 탄력을 가지고 튀어 오르는 발끝을 느끼면서 나는 달빛도 흐린 밤을 내달리고 있었다. "당신은 나를 사랑하고 있어?" "응." 발밑으로 와 닿는 마른 풀들이 소리를 낸다. 밤 하늘의 별들이 여신의 옷 자락 사이에서 살랑살랑 흔들며 빛을 발한다. 마치 여신의 보석함에서 쏟 아져 나온 보석들처럼 빛이 나는 그 것들. 미트라의 살결에서 나는 냄새로 코끝은 야릇한 기쁨을 맛보고 있다. 눈을 감은 미트라의 속눈썹은 반원을 그리며 창백한 그늘을 만들고 있었 다. 진주빛의 살결위로 흐르는 별빛과 달빛, 아아 정말 이 계집애는 기찬 미녀가 되어주었군. 사랑 사랑 사랑 사랑... 수많은 자들이 말하고 노래하고 외치고 울부짖는 그 단어를 생각하면서 나는 달렸다. 대체 뭐가 사랑일까? 뭐가 사랑다운 것인가? 여자와 남자 그 사이에는 대체 뭐가 있는 것일까? 지긋지긋하게 따라 붙는 사랑타령, 지겹기 그지없는데도 왜 사랑 사랑 떠 들어 대면 나도 모르게 응 하고 대답이 나오는 거지? 미트라는 내 어깨에 고개를 묻은 채 말이 없다. 여자는 묘하게도 모든 것을 버리고 남자에게 온다. 내 아이들이 호시탐탐 잡아 먹기위해 눈을 빛내고 내 여자들이 손톱을 곤두세우며 바라보고 있는 데도 그녀는 나에게 온다. 대체 뭘까? 여자의 무엇이 모든 것을 버리고 나 에게 오려 하는 것일까? 종족도 초월하고 그 모든 것도 다 초월하고 다 버 리고, 그녀는 나에게 왔다. 뒤에서 달리고 있는 수인족 녀석을 문득 생각했다. 헐덕이는 녀석의 숨소리가 들려온다. 그렇겠지, 수인족 주제에 우리를 따라 온다는 것은 사실 엄청나게 힘든 일이다. 사인족의 누렁이가 자기 애인인 지 종인지 알수 없는 계집애를 안고 내달리고, 엘레가 자기 애인을 안고 나는 동안 수인족의 꼬맹이는 심장이 터져라 달리고 있었다. 저 놈과 같이 지냈다는 그 묘인족의 여자는 대체 어떤 여자일까. 묘인족의 모두가 다 경멸해 마지 않는 그런 일을 감행한 그 여자는 어떤 여자일까? 바람은 뺨을 스치고 밤의 여신의 옷자락은 보석처럼 빛을 발한다. 산맥을 넘기 위해 내달리는 우리들은 신음소리 하나 내지 않고 내달리고 있었다. 나의 아이, 나의 딸, 나의 혈족이 저 너머에 있는 것일까. 이렇게 할 일없이 달리기만 하는 밤에는 온갖 잡념이 다 떠올라 뇌리를 어 지럽힌다. 결국은 아이를 구출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분노하는 것 자체가 목표. 복 수하여 살육하는 것 자체가 목표인 것이다. 내 딸은 이미 이종족에게 납치를 당한 어이없는 몸, 어처구니 없는 일을 당한 몸, 어린 아이이기 때문에 용서될 수는 있겠지만 우리들 무리 안에서 그것은 치욕중의 치욕. 나의 아들 딸 중에서 가장 치욕스런 일을 당한 그 아이, 플라티나가 어린 애들 사이에서 어떤 일을 당할지 안 봐도 뻔한 일이다. 그 때문에 분노하 지 않으면 안된다. 복수해 주지 않으면 안된다. 내 아이가 당할 치욕과 내 가 받은 치욕과 우리 종족이 받을 치욕, 그리고 감히 이종족이 우리들을 향해 내뻗을 치욕들을 향해 분노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상념이 또 머리를 지배하기 전에 행동하자. 나는 미트라를 안고 있는 것을 잠시 잊은 상태로 눈 앞에 보이는 가장 높 은 푸아케 나무둥치에 발톱을 박았다. 부드러운 나무결이 그대로 발톱사이 로 느껴진다. 그것을 그대로 밟고 수직으로 올라간다. 내 뒤를 따르던 자들 이 잠시 움직임을 멈추고 날 바라보는 것을 느끼면서 나는 나무 위로 올라 가 거센 나뭇가지를 밟고 사방을 돌아보았다. 차가운 바람, 냄새는 매캐한 회색. 어둠에 물들어 시커먼 수풀 사이로 보이는 것은 인간의 병영이었다. 그동 안 너무 봐서 낯익어 버리다 못해 친숙해져 버린 그 모습을 나는 찬찬히 훑었다. 숫자는 얼마나 될까? 저 안에 쓸만한 마법사는 얼마나 될까? 이제 깊은 밤이니 각자 잠을 청한 놈들과 보초를 서고 있는 놈들이 얽혀있 을 것이다. 하지만 여긴 아직 세룩-엘라마이야에 속해있지도 않고, 저 놈들 이 정복했다고 믿고 있는 땅 위다. 아마 조심하자고 생각하는 것은 밤짐승 정도일 테지. "........인간들이군요." 어느 새인지 내가 선 옆의 허공에서 날고 있는 엘레가 말했다. 그의 눈은 내가 보고 있는 곳의 멀리를 보고 있다. "어느 정도 가면 마튜스 일까?" "이 속도라면.... 반나절이겠지요." 그의 시선이 아랫쪽을 향했다. 꽤나 높은 나무 아래에서 내려다 보면 푸르다 못해 시커먼 수풀속에 헐떡 이는 녀석들이 보인다. 모두 나를 올려다 보고는 있지만 자세는 각기 다르 다. 아직 체력이 남아 날 올려다 보고 있는 녀석들이 있는가 하면 체력이 딸려 서 때는 이때다 하고 널부러져서 헐떡이고 있는 녀석들도 있다. 물론 후자 는 수인족 꼬맹이과 애들. "그렇다면 저기 보이는 놈들은 마튜스로 가는 룬드바르의 군대겠구만." "그렇겠지요." 엘레는 무심히 말했다. 지쳤다는 말을 할 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미트라를 나무위 가지에 올려놓고 떨어지지 않도록 잘 묶어 두었다. 그리고는 나를 바라보는 일족들을 향해 조용히 명령했다. "죽여라." 살기가 번들거리면서 피로를 덮었다. 지겨운 비명소리를 들으면서 손톱을 휘둘렀다. 변신모드에 들어갈 필요는 전혀 없었다. 어둠 속에서 지르는 비명소리는 어쩐지 한가로울 정도로 익 숙해졌다. 인간을 죽이는 일을 내 생전 이렇게 많이 한 적도 없었다. 그리 고 인간에 대해 이렇게 분노해 본 적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분노하고 있는 게 대체 뭘까? 이젠 너무 죽여서 퇴색해가고 있는 이 감정은 대체 뭘까? 6만인지 7만인지 소문이 자자하다는 마왕의 이 름을 걸고 마구 마구 죽여줘야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것일까? 관두자, 이 지상에서 가장 강한 자, 쿠베린이여, 지금은 잡념으로 생각을 분산할 필요는 없다. 생각해라 생각해라 생각해라. 룬드바르의 애송이가 어떻게 나올 것인가? 녀석의 마법사들은? 화가 나 어쩔줄 모르는 아이들이 울부짖고 있다. 도망가고 넘어지는 병사 들의 등너머로 손톱을 휘두르는 아이들의 몸부림은 슬플 정도로 느렸다. 아이들은 죽이고 죽이면서 찢어져나간 살점들을 돌아볼 새도 없이 전진하 고 있었다. 내 손톱에 금속성이 울려나온다. 어떤 병사가 용감하게 나에게 대든다. 그러나 그도 잠시 녀석이 든 창날은 부러져 나가며 공포에 질려 새파랗게 된 두 눈으로 날 올려다 보고 있다. 녀석의 눈에 내가 있다. 검붉은 피로 물든 몸과 검붉은 눈을 하고 피가 떨어지는 손톱을 늘어뜨린 내가 녀석의 부릅뜬 눈속에 있다. 그 얼굴을 후려갈기고 목줄기를 뜯어낸 다. 그 죽어버린 시체의 눈에 내 모습이 그대로 담겨있다. 그러나 움직인 다. 지긋지긋하게 움직여 또 다른 자를 죽인다. 사인족의 왕이 울부짖는 것이 보인다. 살육에 흥분하여 변하는 녀석의 누 런 털이 이젠 검붉게 변해 있다. 갈기처럼 휘날리는 황색의 머리칼이 이제 는 검게 보이는 피와 살점에 뒤덮여 있었다. 이에르네가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본다. 그녀는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그녀의 아들이 바로 옆에서 붉어 진 두 눈으로 도망가는 병사들을 쫓고 있다. 비명소리는 이제 들리지도 않는다. 달아나려는 가축들과 한데 섞여서 숲은, 숲 속은 엉망진창의 아비규환을 이루고 있다. 살육의 흥분에 겨워 변신하려는 꼬맹이들을 뒤로 하고 나는 한 걸음 앞서 나무 위로 올라섰다. 나무 위에 올라서자 주변이 더 잘 보인다. 피의 냄새로 가득찬 이 주변은 이제 들짐승들의 기척은 없다. 들짐승들은 모두 달아나 멀리 사라져 버렸다. 별 빛이 떨어져 내린다. 밤의 여신의 옷 자락은 엷어져 있다. 도망치는 인간들이 만드는 선이 어둠 속 수풀을 가르고 있었다. 헐덕이는 공포가 그들의 숨결에 배어나온다. 공포, 공포, 미지의 것에 대한 공포. 알지 못하는 것은 두렵다고 늙은 마법사가 말했다. 그러니까 끊임없이 알 아내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했다. 공포란 인간의 원동력, 감정은 여전히 힘 을 가진다. 그러나 나에게 지금 힘을 주는 것은 분노. 나는 발톱에 힘을 가하고 서서 그들을 내려다 보았다. 알려라, 인간들이여, 분노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인간들만이 지상 위에 존 재한다는 생각은 버려라, 이 세상 어느 존재보다도 약하고 탐욕스러운 존 재들이여, 알리고 알려서 내 분노를 퍼뜨려라, 마왕이든 악마든 뭐든 좋다. 너희들이 마왕이라 부르든 악마라 부르든 나는 나, 묘인족의 왕 쿠베린이 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 그리고....나는 남이 던지는 한 두마디 말 따 위로 흔들리지 않으니까. 나는 소리내어 웃었다. 제 18화 분 노 완. 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