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쿠베린] 막간극 우정에 관하여 관련자료:없음 [35336] 보낸이:이수영 (ninapa ) 2001-03-26 20:36 조회:3521 [쿠베린] 막간극 우정에 관하여 ............길가메시는 말했다. "어머니, 꿈을 꾸었습니다. 튼튼한 우룩의 성벽 위에 도끼 한 자루가 놓여 있었 습니다. 그 모양이 하도 신기해 사람들이 모여들었죠. 그것을 보고 저는 기쁨에 넘쳐 그것을 공손히 집어 들었습니다. 마치 여인을 다루는 것처럼 소중히 그것 을 주워 제 허리에 찼습니다." 여신 닌순은 그 꿈을 이렇게 대답해 주었다. "여인의 사랑처럼 너를 매혹시킨 그 도끼는 내가 너에게 주는 동료이며 친구이다. 그는 하늘의 신들 같은 강한 힘을 가지고 네게 올 것이며, 네가 위험에 직면해 있을 때 가장 먼저 너를 구해줄 용감한 동반자가 될 것이다." .......길가메시 서사시 중 - 엔키두와의 만남 "폐하께선?" "잠드셨습니다." 시종이 대답했다. "그런가?" 마르케스 옥크토의 약간은 무거운 듯한 발소리가 멀어져 갔다. 만약에 인간이 운명의 여신이 짜 놓은 그물 안에서 스스로 선택할 수 있 는 유일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친구일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것마저 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고 그는 생각했다. 이 십 여 년 간 같이 자란 젖형제이자 자신의 유일한 친우라고 말해지는 마르케 스가 제일 먼저 달려와 안위를 물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아니, 이렇게 별 말도 없이 순순히 떠나간 것이 오히려 희한한 일이었다. 먼지와 충격으로 인한 피로로 녹초가 된 몸을 뜨거운 물에 담그면서 황제 는 눈을 감았다. 언제 어디서 암살자가 나타날지 모르는 그 옛날부터 젖형 제 마르케스 옥크토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자신을 지켜주었었다. 분명히 감사해야 할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황제는 그가 싫었다. 아니, 어딘가 모르게 생리에 맞지 않았다. 감정이 결여된 회색 눈동자와 고저 없는 금속성의 목소리, 어찌되었든 사 내답다고 말하면 그런 대로 좋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그는 냉 혹한 남자였다. 그가 자신의 주변에 남아 있는 이유는 단 한 가지, 죽어버 린 황제의 누이가 원했기 때문이었다. 저 나무토막 같은 사내에게도 감정 이라는 게 있었는지 평민인 주제에 감히 황제의 누이를 사랑했었다. 아니, 그 당시에는 황제가 아니었으니까 전혀 바라보지도 못할 나무는 아니었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쨌거나 손을 내밀 수 있는 신분의 상대도 결코 아 니었다. "난 그가 싫어." 황제는 향유를 푼 더운물에 어깨를 담그며 소리내어 중얼거렸다. 자신의 누이가 어쩌자고 저런 인간에게 마음을 허락했는지 그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어디가 마음에 든 것일까? 아무리 누이가 다정했기로서니 저런 돌덩이 같은 사내에게 마음을 주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 이다. 그는 눈을 감았다. 뭐, 어쨌거나 누이는 그 정쟁(政爭)의 한 가운데서 죽 어버렸고 황제는 혼자 살아남았다. 덕분에 황제에게는 대놓고 내칠 수도 없는 저 돌덩이 같은 사내가 남아버렸다. 두 눈을 부릅뜨고 자신을 지켜주 겠다는 옹고집쟁이가. 그래서 가끔 황제는 연기를 하곤 했다. 마르케스라고 하는 젖형제이자 친구라는 존재를 하나 만들어 놓음으로써 다른 자들에게 황제의 관대함과 인간적인 매력을 더더욱 돋보이도록 말이다. 물론 그 친 구 놀이가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마르케스 본인만큼 더 잘 아는 사람은 없 을 것이다. 그는 몸을 일으켰다. 흰 손을 가진 시녀가 재빨리 그에게 타월을 건네주 었다. 질 좋은 면직의 감촉에 만족하면서 황제는 시녀의 시중을 받으며 천 천히 침대 위에 알몸으로 드러누웠다. 그가 엎드리자 시녀 두 명이 재빨리 다가와 향유를 듬뿍 묻힌 손으로 부드럽게 마사지를 시작했다. 잔뜩 긴장 했던 어깨와 등을 문지르자 한숨이 절로 터져 나왔다. "뜨거운 찜질을 하겠습니다." 긴장한 어조로 시녀가 고한 뒤에 그에게 더운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타월 을 들이댔다. 조금 뜨거웠지만 한 편으로는 시원해서 황제는 그저 눈만 감 았다. "폐하." 휘장을 친 밖에서 누군가가 불렀다. 그 목소리는 너무나 가까웠다. 그의 침실로 이미 들어온 모양이었다. 시종 장도 제지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떠올리자마자 황제는 대단히 불쾌해졌다. 그를 절대로 보고 싶지 않았지만 황제는 애써 목소리를 가다듬고 낮게 응 했다. "무슨 일인가?" "고할 말씀이 있어서입니다." 상냥한 듯 하지만 상냥하지 않은 자, 공경하는 듯 하지만 절대 공경하지 않는 자가 부드럽게 말했다. 하지만 그것은 허락을 구하는 음성은 결코 아 닌 듯 마법사는 천천히 휘장을 젖히고 그의 욕실로 들어섰다. 금발에 흰 피부, 미녀라고 해도 부러워할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를 한 젊 은 마법사의 등장에 반라의 시녀들이 약간 동요했다. 그녀들은 드러난 젖 가슴을 가리고 싶어하는 듯 했지만 그의 등장을 꺼려서 그런 것은 결코 아 니었다. 오히려 호기심과 동경으로 긴장하고 있는 것이다. 황제는 아름다운 외모를 한 마법사를 반쯤은 노려보면서 불쾌한 음성으로 말했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잠시..........." 그는 미소했다. 그 순간 갑자기 황제의 몸을 마사지하고 있던 시녀들이 그 자리에 풀썩 쓰 러져 버렸다. 그녀들이 실 끊어진 인형처럼 풀썩 쓰러지는 것을 보고 황제 가 벌떡 일어서자 마법사는 생긋 웃어 보였다. "잠시 잠재운 것뿐입니다." "............대체!" 다시금 공포가 등줄기로 치밀어 올랐다. 황제는 이 마법사를 두려워하지 않으려고 무척이나 노력하고 있었지만 어 떻게 해도 공포감은 억누를 수가 없었다. 그는 주먹을 쥔 채 마법사를 쏘 아보았다. "무슨 일이냐고 몇 번이나 물어야 하는 거냐?" "시녀들에게 듣게 해서 좋은 일이 아니라서 말입니다." 마법사는 곤란한 듯 쓴웃음을 지어 보이며 고개를 숙여 보였다. 황제는 침묵했다. 이런 일을 처음 겪은 것도 아니었다. 이런 일은 묘하게도 마르케스가 없는 사이에 벌어지곤 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마법사는 마르케스가 꽤나 거북한 모양이었다. "마르케스님에게 말씀을 좀 해주시지 않겠습니까?" "무엇을?" "카산드라 누님께 친절하게 해 달라고 말입니다." 곤란한 듯이 말하던 그는 한숨까지 쉬었다.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오늘 보신 그 분, 저의 마스터는 저와 카산드라 누님을 길러내신 분이시라 저만으로는 절대 당해낼 수 없습니다. 오늘 그 분이 그렇게 물러가신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습니다. 다음 번에 는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나에게 뭐라고 말하는 건가?" 황제는 짜증을 억누르며 물었다. "카산드라 누님은 저보다도 강합니다. 그러니까 카산드라 누님을 폐하를 위해서라도 다독여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나보고 남의 부부간의 일까지 끼어들라는 건가?" 불쾌한 음성이 된 황제를 향해 마법사는 더 한층 화사한 웃음을 피어 올렸 다. "어차피 중매를 서신 것은 폐하이시지요." 그 말에 황제는 입을 다물었다. 마법사가 그 자리를 떠난 후- 그는 시녀들을 잠에서 깨워 황제의 시중을 다시 들게 만들었다- 당황하는 시녀들이 황제의 몸을 마사지하기 시작했지 만 황제는 이미 흥을 잃어버린 뒤였다. 나무토막 같은, 돌덩이 같은 마르케스의 유용함은 단지 황제의 관대함과 친근함을 돋보이는 것 이외에도 또 있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저 무시 무시한 젊은 마법사 남매 중의 누이 쪽이 마르케스에게 빠져있었던 것이 다. 덕분에 황제는 황금이나 명예따위로 그들을 묶어 맬 필요조차 없었다. 그녀는, 카산드라라고 하는 이름을 가진 무서운 마력을 가진 마녀는 마르 케스에게 푹 빠져 그와 결혼시켜 달라고 요구했던 것이다. "이해할 수 없어. 미남도 아닌데." 여자란 알 수 없는 것이다. 대체 저 나무토막 같은 냉혹한 남자의 어디가 좋았던 것일까. 황제는 자신의 누이처럼 마르케스를 달콤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나운 마 녀의 모습을 떠올리고는 진저리를 쳤다. 멀리서 달이 뜨고 있었다. 사방은 이미 어두웠다. 황제가 머무는 별궁은, 이미 횃불과 향초로 가득 차 있었지만 밤하늘만은 어쩔 수 없는 듯 밤의 장막이 서서히 드리우는 참이었다. 시녀들의 손놀림 에 나른해진 몸이었지만 황제의 신경은 여전히 피로했다. "마르케스를 불러라." 그는 밤새도록 대기하고 있을 자신의 젖형제를 떠올리면서 문 밖의 시종에 게 낮게 명령했다. 침의를 고쳐 입으며 황제는 계속해서 생각했다. 마르케스와 자신은 언제까지 친구놀이를 계속해야 하는 것일까? 언제 속 마음을 드러내고 서로를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속 시원히 이를 갈 수 있는 것일까? "젠장." 황제는 다시 그 기분을 접었다. 어찌되었거나 그는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치고 마지막 순간까지 자 신을 배반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그를 이용하도록 내버려두고 또 기꺼 이 그것을 감수할 것이다. 비록 비난, 혹은 경멸, 증오에 가까운 감정을 가 질 지라도 그라면 분명히 자신을 위해 무엇이든 아끼지 않을 것이다. 그것 만은 확실했다. 황제는 두통이 이는 미간을 누르면서 욕설을 퍼부었다. 아무리 싫다고 해 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그가 아무리 마 음에 안 들어도 그를 내칠 수는 없었다. 주변의 눈이나 마법사들 때문이 아니더라도 그를 내칠 수는 없었다. 지긋지긋하게 달라붙어 있는 그를 내 칠 수가 없다. "옥크토경이 오셨습니다." 시종장이 침실의 문을 열면서 알려왔다. 황제는 침대 위에 앉아 있다가 그 소리를 들으며 고개를 들었다. 이렇게 빨리 왔다는 것 자체가 이미 마르케스는 자신의 일을 생각해서 대 기하고 있었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그런 것조차도 왠지 짜증이 치밀어 올 랐다. '아아, 그래 그는 종기 같은 것이다. 지긋지긋하고 짜증이 나는 종기.' 황제는 멍하니 생각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깨닫고 있었다. 싫든 좋든 간에 그는 자신의 일부이고, 어쨌거나 유일한 형제라는 것을. 절 대로 좋아해서가 아니라 그저, 지긋지긋하게 태어나면서부터 언제나 곁에 있었던 존재라는 것을. 황제는 절대로 그를 가족이라든가 친구라고는 부르고 싶지 않았지만 사실 이 그랬다. 우정에 관하여. 완. 음, 하하하하.....오랜만입니닷! 드디어 9권 분량 연재 개시입니다. 참으로 길고도 긴 여정(?)이었습니다. 거의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참담한 나날이었습니다. 애 우는 소리와, 눈 비비며 밥 짓는 아줌마의 슬픈 인생역경을 생각하시 며 연재 독촉을 삼가신 여러분께 감사의 키스를 던지겠습니다~ ps. 테페리7님, 님의 독촉이 가장 무서웠습니닷! 님의 이 독촉에 어울리는 보답을 반드시 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기대하 십시오.......훗. ------------------------------------------------------------------------------ PRINTER/CAPTURE를 OFF 하시고 [ENTER] 를 누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