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인세티아 (나의 마음은 타고 있습니다)1-6 잔학사 (jisun-317@hanmail.net) 홈 (http:// jisun317.com.ne.kr 불펌은 싫어요 즐겁게 감상해 주세요. ------------------------------------------------------------------------ 지평선 너머 태양이 머뭇머뭇지고 있었다.대지는 타오르 듯 붉었으나 아름다웠다. 언제까지 이 자유를 만끽할 수 있을까…. 남자는 생각했다. 붉은 대지를 말 없이 서서 바라보는 남자는 야성미가 넘치는 매력적인 사내였다. 까만 장발과 살짝 그을린 피부와 근육들이 꽤나 섬세한 이 매력적인 남자의 얼굴이 살짝 찌뿌려져 있는 점이 아쉽다고 할까. 타이트한 짐승의 가죽으로 된 하지의 바지만 입은 남자는 특이하게도 화려함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대륙사람들과는 달랐다. 길들여지지 않은 거침이 존재하는 남자는 대륙의 얼마남지 않는 인디언이었다. * * * 인디언은 길들여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것을 즐겼고 자신들만의 규율이 있다. 아론은 보통의 인디언들과는 남다른 편이었다. 어렸을 적 부터 주니신을 위한 용맹한 인디언 전사가 되기보단 자연의 소리에 귀기울이고 동물들과 뛰어놀기에 바빳다. 성년(16살)이 지나면서부터는 동물들의 동작 하나하나에도 그들의 인격이 담아져있다며 동물들을 존중하자는 발직한 소리를 해서 인디언들 사이에서도 특별한 아이로 취급대기 까지 했고, 그런 이유로 성년이 지나면 인디언들은 혼인을 맺는데도 아론은 23살이 될 때 까지 정혼녀가 없었다. 정작 본인은 신경쓰지 않는 다지만, 그의 아버지는 늘 자식을 염려했다. 아론에게는 부족을 이끌 후계자라는 명목상의 이유가 있었다. 아론은 늘 그래왔듯이 에펠루치아 산맥을 넘어 하이다 인디언들의 영토로 무단침입중이었다. 산맥을 넘어 하이다 인디언들의 영토로 들어가다보면 커다란 호수가 나오는데 아론은 그 호수가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특히 이른 아침에 찾아간 호수는 새벽태양이 산산히 부서져 빛을 투영하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 눈을 돌릴세도 없이 넋놓고 바라보는 일이 종종있었다. 아론은 뜻하지 않게 새하얀 백색의 백마를 보았다.백마는 호숫가에 서 목을 축이고 있었다. 생동감 넘치는 근육의 움직임과 새까만 동공에는 분명 길들여졌지만 어느 야생마와 뒤지지않을 아름다움이 있었다. 한동한 넋놓고 있자 백마는 스스로 눈을 맞춰왔다. 자신을 보며 웃는 것일까…그 새까만 눈동자가 아론에게 속삭이는 듯 했다. 다가와도 좋다고 위협은 없다며 유혹하 듯 빛났다. 인디언은 백마의 아름다움에 이끌려 그의 백색의 갈귀를 쓰다듬었다. 야생의 것과는 다른 부드러움과 섬세함이 그가 보통의 말이 아님을 증명했다. 백마는 보통의 말보다 크고 훤칠했으며 아론의 키가 상당한 편임에도 거만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백마에게는 황금빛 안장이 있었다. 섬세하게 그려진 무늬들이 빛을 내고 있었다. 인디언은 그의 등에 올라타 초원을 달려보고 싶은 욕구에 순간,당황했지만 이 거만한 말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자 웃음이 나왔다. 아마도 자신을 이 땅바닥에 내동댕이 쳤으리라.. 그 꼴이 웃으웠다. 자신은 잘 웃지 않는 편이라고 생각했다. 좋지못한 환경에 자라서 인지 표정이 없고 딱딱했다. 오랜만에 웃는 것 같아 놀랍기도 했지만, 이 백마와 있으면 기분이 유쾌하고 좋았다. 보기만해도 만족감이 차오른다고 할까, 아론의 손길을 느끼던 백마가 갑자기 등을 돌려 걸어가기 시작했다. 백마가 향하는 곳엔....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새빨간 눈동자에 은회색 긴 머리를 가진 아름다운 남자가 * * * "정말 큰일입니다." "인디언의 씨가 말라버릴지도 모르겠구만." 습기가 말라버린듯 딱딱한 주름을 가진 노인들의 입에선 연신 한숨과 타버린 하얀 담배연기가 천막안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신음과 같은 한숨이 분위기마저 어둡게 만들어버렸다. 그들의 표정엔 하나같이 걱정과 근심이 담겨져있었다. "다른 부족들은…." "…예, 모두… 생존자 없이 불태워져 있었습니다." 화려한 깃털장식을 한 중년의 남자는 이 분위기에 썩 어울리지 않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젊은 남자였다. 조금은 어두운 표정에 앙다문 입술이 처량해 보이기까지 한 새까만 장발의 매력적인 사내였다. 사내의 눈동자엔 죄책감과 절망이 담겨져 있었다. "조금은, 책임감을 느껴주면 좋겠구나, 앞으로 너는 부족의 족장이 될테니" 긴 장발에 가려진 남자의 얼굴이 미세하게 움찔거렸다. 아론은 족장따윈 되고 싶지 않았다. 관심도 없을 뿐더라 자신에겐 부족을 이끌 야망이 있는 사내가 아니었다. 비록 능력이 있어도 포부가 없는 남자이기에 족장은 너무나 큰 짐이었다. "들었습니까? 그 미지의 개척자들을…" "굉장히 괴상한 무기를 가지고 있다고합니다." "그 무기를 한번 건드릴 때마다 인디언이 하나같이 피를 흘리며 쓰러진다고 하더이다." "특히 그 자는.. 굉장히 아름답다고 하더군" "아, 그 우두머리라고 하는 자 말입니까? 저도 들었습니다. 핏빛 눈동자에 은회색 머리카락을 가진 아름다운 남자라고 들었습니다." "그래, 굉장히 아름답다고 해, 처음에는 그 아름다움에 놀라고 다음은… 그 잔인함에 경악한다고 하지" "휴, 작정을 했는지 하나같이 생존자가 없답니다. 인디언 부족을 전멸시키려는지,. 나원.." "산맥을 넘어 케레스부족까지 당했다고 하니 저희들도 편안히 넘어갈 문제는 아닙니다." "대책을 세워야지요. 대책을…" 그날의 회의도 의미없이 끝나버렸다. 아버지는 항상 족장의 긍지를 가지라며 나무라셨고 노인들은 하나같이 근심어린 걱정을 했었다. 대책은 찾을 수 없었으며 오직 신에게 자비를 베풀어달라 빌 뿐이었다. 그 미지의 개척자는, 핏빛 눈동자의 은회색 머리카락을 가진 아름다운 미남자라고, 아마도 그것이 사실이라면 지금 백마를 쓰다듬고 있는 남자가 그 자 이리라, 인디언이 쥔 손에는 슬며시 땀이 고였다. 긴장하고 있다는게 옳다. 저 아름다운 남자에겐 자신은 초라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미지의 개척자가 사실이라면, 그 잔혹함도 사실일 것이다. 저리 아름다운 얼굴로 백마를 온화하게 쓰다듬고 있는 남자는 언제 본성을 드러낼지 모르는 야수이다. 마치 자신은 존재하지 않는 냥 백마에게 애정을 쏟고 있는 남자는 그 모습마저 황홀하게 아름다왔다. 도저히 인간이 가질 수 없는 신의 그것 같았다. 대륙의 2/3을 차지하고 있는 자들은 굉장히 아름다우며 화려하다 했다. 그 자들이 지금 눈 앞의 이 남자처럼 아름다울까? 아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저런 자태가 고운 자가 한둘이 아니라면 자신의 눈은 썩어나갈 것이다. 스스로를 책망하지만, 현실을 부정할 순 없었다. 그 핏빛 눈동자와 눈이 맞주친 순간, 이루 말할 수 없는 싸늘함과 냉정함이 자신의 전신을 꿰뚫는다. 연꽃을 머금은 듯한 입술이 서서히 열리고 자신을 희롱하 듯 혓바닥이 움직일 때 남자는 자신에게 물었다. "네 이름은 뭐지?" 익숙한 자신의 부족의 말로, 속삭이듯 부드럽게 물었다. -------------------------------------------------------------------- "네 이름은 뭐지?" 남자는 재차 물어왔다. 인디언은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남자에게 인디언 말은 매우 능숙했다. 인디언이라고 해도 믿을 만 한 것이었다. 남자는 외모 만큼이나 목소리도 아름다웠다. 여성처럼 나긋하고 여성 특유의 아름다운이 아니었지만, 한눈에 보기에도 아론보다 약간 큰키와 근소한 근육으로 잘 훈련된 남자였다. 여성의 것과 다른 남자다운 아름다움에 조금은,넋을 잃은게 사실이었다. "아론, 아론 데오도로" "아론..... 좋아 오늘은 운이 좋군, 조만간 다시 만나겠어. 인디언" 남자는 의미심장하게 중얼거리며, 힘있게 백마에 올라 거침없이 달려나갔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아 버렸다. 다큰 남자가 꼴불견일지도 모르겠지만, 자신의 머리속은 텅 비어있었다. 방금 그 남자가 자신의 넋을 송두리채 뺏어간듯 싶었다. 자신은 어쩌면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거만하게 내려다보던 남자의 싸늘한 시선을 잊을 수 가 없었다. 그가 사라지자 분노가 끓어올랐다. 신은 어째서 저 아름다운 남자에게 이런 가혹한 일을 저지르게 했는지 하늘을 향해 울부짖어도 어떤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 * * "족장님!! 큰일났습니다!!!!!!!" "무슨일이냐!" "개,개척자들이 ... 개척자들이 수천의 군대를 이끌고 막 나칸부족을 공격하고 이리 오고 있습니다." "뭐?!! ... 드디어 올것이 온 것인가." 눈치빠른 여인들은 노인과 아이들을 데리고 산속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젊은 인디언들은 무장을 하고 도끼와 창을 들었다. 하나같이 절망뿐인 얼굴이었지만 그렇다고 당해줄 수 도 없는 노릇이기에 억지로의 감이 없지않아 있지만 서로를 다독이며 전쟁을 준비했다. 곧 대륙의 얼마 남지 않은 모든 인디언들이 죽어가거나 무릎을 꿇을 것 이다. 그 아름다운 지배자에게… "아버지!!" 아론의 몸에는 물기가 가득했다. 급하게 왔는지 진득하게 흙덩이가 뭍어있었다. 어쩌면 그 아름다운 남자가 호수에 왔을지도 모르는 막연함 기대감에 찾아간 곳에 남자는 없었다. 호수에 몇번 물을 담그며 실망감에 의기소침해져 있을 때 산새들의 시원치 못한 움직임과 왠일인지 보이지 않는 동물들의 모습에 심상치 않아 달려온 것 이었다. "아론.. 들었겠지" "예, 그들이 오고 있다고…" "여자와 아이들과 함께 산속으로 숨어라, 시간이 없다. 어서!" "그게 무슨 말씀 이십니까!" "최소한 부족을 일으켜세울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이대로 당할 수 만은 없어" "어차피 그들이라면 끝까지 추격할껍니다. 살아남긴 글렀어요. 차라리 타협을 보는게!!" "어서 가라니까!!!! 아비로서의 마지막 부탁이다. 어서, 아론" 아론의 아버지의 애절한 눈빛에 할 말을 잃어버렸다. 아버지는 분명 이 못난 자식을 위해 부족을 일으켜세울이라는 변명으로 자신을 떠미는 것이리라. 어려서부터 늘 고되게 살았었던 어린자식에게 그것은 용서아닌 부탁이었다. 그 모습에 아론은 코가 시큰거렸다. 불쌍한 아버지… 자신은 이미 모든 것 을 용서 했는데, 당신은 아직도 죄책감에 사는 건가요? 억지로 떠미는 아버지의 손길에 아론은 천막으로 들어섰다. 아론은 소중한 유품을 꺼내들었다. 행여 상처라도 입을까봐 늘 고히 모셔놨던 유품은 인디언 특유의 소박함과 섬세함이 뭍어있는 아름다운 한짝의 가락지였다. 아론은 실에 가락지를 엮어 목에 건 후 창을 들고 천막을 빠져나왔다. 아론은 부녀자들 뒤에 서서 멀어져가는 부족의 마을을 바라보았다. 사람이 모두 빠져버린듯한 을씨년스러운 마을의 모습에 목이 메어져 왔다. 자신은 이렇게 도망쳐도 되는 것일까, 끝없이 되내이며 아론은, 산을 올랐다. * * * 수천의 군대가 이동하자 대지는 가볍게 요동쳤다.인디언들의 표정에는 긴장감이 서려있었다.갑옷으로 무장을 한 군대는 그 모습만으로 위축이 될 정도였다. 군대는 백이 채 안되는 젊은 인디언들과 마주한체 고고히 그들을 노려볼 뿐이었다. 인디언들의 도끼와 창을 든 손에서 땀이 베어나올 쯤, 나타났다. 백마를 탄채 새빨간 눈동자와 은회색 머리카락을 가진 아름다운 남자가. 백마에 앉아 거만하게 자신들을 내려보는 미남자가 물었다. "파트리시아어를 할줄 아는 인디언이 있는가?" "내가, 조금 할 줄 아오" 족장은 한발짝 앞에 나서서 대답했다. 어눌하지만 파트리시아어였다. 부족의 늙은 노인들은 전부 산속으로 도망간 상태인지라 이 젊은 인디언중에서 유일하게 파트리시아어를 구사할 줄 아는 인디언은 족장뿐이었다. 일말의 두려움이 없다면 거짓이다. 저 젊은 남자는 아름답지만 잔혹하다. 저 냉담한 눈빛에 주눅이 든 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자신마저 의기소침해져 있다면 젊은 인디언들은 절망할 것이다. 창을 든 손에 힘을 쥐며 저 오만한 지배자를 노려보았다. "어디있지?" "무엇을 말이오" "노인,부녀자,아이들.. 마을이 텅 비었군." "...!!... 그,그건" "우습군, 인디언은 하나같이 똑같은 패턴이야. 없애버린 열 여덟 군데의 인디언들도 모두 네놈과 같은 짓거릴했지. 모두 소용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 "나는 성격이 급한 편이야, 매우 이녀석들의 목을 배어버리기 전에 말하는게 좋을꺼야" ".....헉!" 족장은 숨을 들이켰다. 그곳엔 울다지친 어린 인디언들이 밧줄에 묶여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아마도 물놀이를 간 아이들일 것이다. 군대가 도착하기 전에는 말그대로 아비규환이었기 때문에 미리 아이들의 수를 셀 수 조차 없었다. 저 젊은 남자는 잔혹했다. 너무나도. "이,이런 치졸한!! 아직 아이들이오. 제발 그만 두시오!" "말귀를 못 알아 듣는군." 남자가 손짓하자 장정의 남자가 칼을 꺼내들어 한 아이의 목에 겨누었다. 아이는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꼈지는 다 쉬어버린 목소리로 서럽게 울어댔다. 족장은 세상이 온통 새까맣게 보였다. 혈기왕성한 젊은 인디언들은 언제라도 달려들 기세였다. "쳐라-" 남자가 말한 동시에 장정의 폭이 넓은 칼이 하늘을 향해 들려졌다. 분명 사람의 목을 잘 베기위해서 만들어진 칼이었다. "그만!!!!!!!!!!" 족장이 소리치기전 젊은 남자의 비명과 가까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온힘을 쥐어짠 목소리로 소리친 남자는 아론이었다. * * * "아론!!" "아버지, 무사하신가요?" "너 이녀석! 여기가 어디라고" "죄송합니다." 아론은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자는 여전히 도도하고 아름다웠다.어찌됫건 자신은 돌아왔다. 족장의 후계자이기 때문에 돌아왔다곤 하지만 솔직히 자신은 이 아름다운 남자를 다시 보고싶어서 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죄책감에 가슴이 저려온다 "사람들을 죽이지 마십시오. 부탁드립니다." "…말이 많군, 아론" 아론은 능숙한 파트리시아어를 구사했다. 노인들에게 배운 파트리시아어를 이렇게 사용할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적어도 부탁을 하려면 이정돈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이방인에게 처음 사용해보는 파트리시아어가 조금은 도움이 될까 라는 생각에 아론은 숨이 조여오는 것이 느껴졌다. 자신의 노력은 저 남자 앞에서 무용지물이 되어버릴 것 같았다. "이리와라, 아론" 남자는 단호하게 명령했다. 아론이라는 말에 인디언들이 동요하는 것이 느껴진다. 아버지께서도 많이 놀라셨겠지. 그의 명령에 당황스러웠다. 두려움마저 느껴진다. 두 주먹에 힘을 준 아론은 남자에게 다가갔다. 자신을 죽일지도 모른다. "그래, 아론… 말해봐라, 어서" 남자는 아론을 유리인형 대하 듯 소중하게 어루만졌다. 턱을 쓸어오는 부드러움에 혀가 바싹 마르고 마른침이 목구멍을 까슬하게 했다. 대답해야 한다. 저 반달 모양으로 처진 남자의 눈이 유혹하는 빛났지만 자신에겐 의무라는 스스로가 만든 짐이 있었다. "마,마을을 살려주십시오. 당신이 원하는게 무엇인지 말만 한다면 저희 부족은 노력하죠, 아니 노력하겠어요. 제발 부탁이니 살려주세요." "후……… 훗… 후하하하하, 크하하하 크큭" 남자는 한숨 비스무리한 소리를 내더니 거칠게 웃어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너무 기괴해서 아론은 몸이 바싹 수그러드는게 느껴질 정도였다. 남자의 얼굴에는 광기가 숨어있었다. "큭!" 거칠게 웃어대던 남자는 빠르게 아론의 새까만 긴 머리카락을 낚아챘다. 아론의 입술에세 외마디 비명이 흘러나왔다. "잘들어라 아론, 나는 곧 파트리시아의 황제다. 너희들 따위 가치조차 없는 하찮은 것들을 처리하는데 내 손에 피를 뭍힐 필요는 없지. 알아? 응? 아느냐 아론… 너희들 인디언들이란 역겨워 더럽고 역겹단말이다. 아론" 머리채를 잡힌채 남자는 처다보는건 힘이 드는 일이지만 그보다 더 한것을 아름다운 얼굴로 희미한 미소를 띄운체 말하는 저 파트리시아의 황제의 말을 듣는 것이었다. 황제의 눈에는 자신에게, 아니 인디언에 대한 원망과 증오가 뿌리깊게 파고들어 있었다. 왜? 어째서? 당신은 어째서 우릴 미워하는 거지? 나는 당신이 웃어줬으면 좋겠는데, 신이 선물한 아름다운 얼굴로 아론은 눈을 감았다. 저 황제의 눈빛에 질식해 버릴 것 같았다. * * * "뭐가 어떻게 된거지…" 아론은 목에 건 한짝의 가락지를 쓰다듬으며 몇십분 전 있었던 일을 회상했다. "윽!" 황제는 머리채를 잡던 손을 거칠게 풀어버렸다. 그리곤 더럽다는 손을 흔들어 몇번 털어내더니 예의 그 싸늘한 시선으로 인디언을 바라보았다. "어리석은 인디언들, 기회를 주지 6개월간 황금 500근과 곡식 200가마를 채운다면 목숨은 살려주겠다. 만일 조건을 충족시킨다면 해마다 황금과 곡식을 걷어서 목숨을 부지하게 해주지 이것이 나의 땅에 살게할 조건이다. 분발하는게 좋을거다 인디언. 아, 그리고… 이 자는 내가 대려가도록 하지 쓸데없는 생각따윌 한다면 이자는 끝이다. 그 끝이란게 이 남자만을 뜻하는게 아니란 걸 알아줬으면 좋겠군, 우둔한 인디언들이여" 아론은 터무니없는 조건에 놀랐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황제가 자신을 인질로 잡는다는 말에서 부터였다. 이 황야에는 광산과 곡식을 재배할 충분한 땅이 있다. 인력만 있다면 가능한 이야기지만, 이미 여덞 부족을 잃은 까닭에 남은 부족들만으로는 한시가 급한 상황이었다. 더욱이 황제는 자신을 인질로 삼을 필요따윈 없었다. 그건 억지로 라는 감이 없지 않아 있어 아론은 조금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두 장정의 남자들이 자신을 속박해 말에 태우자 군대는 일사천리로 회군했다. 그것으로 황제의 방문은 끝이었다. 속박당해 말을 타는 일은 쉬운일이 아니었다. 아론이 그 불편함에 몸을 여러번 뒤척이자 황제가 간단히 손짓했다. 그러자 속박은 풀렸고 손목에는 간단한 족쇠가 채워졌다. 그 후론 황제는 자신에게 아무런 터치도 가하지 않았다. 그날 밤 별빛을 베게삼아 아론은, 잠이 들었다. * * * "이곳이..... 파트리시아.." 아론은 대륙의 1/3의 차지하는 강국 파트리시아의 웅장함에 경악했다. 사람들은 듣던 것 보다 화려하진 않았지만 인디언보단 거추장스러운 차림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황제를 옹호하며 찬양했다. 많은 인파속에서 들려오는 트럼펫소리와 하늘을 수놓는 꽃가루에 아론은 정신이 희미해질 것 같았다. 해마다 주니신에게 제사를 지낼 때 여러부족이 참가해 자신네 화려함을 뽐냇지만 이는 그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짙은 사람의 살내음에 토기가 몰려왔다. 나쁘지 않은 냄새였지만 갑작스런 환경변화에 몸이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있는 듯 했다. 서서히 하늘이 뿌해지며 아름다운 황제의 뒷 모습이 아른거림을 끝으로 아론은 눈을 감았다. 차갑다. 목구멍을 타고 내려오는 물기는 굉장히 차가웠다. 아론은 눈앞이 흐려 모든것이 새까맣게 보였다. 목젖이 거칠게 움직이며 더 원하고 있었다. 차가운 그것을 맛보고 싶은 욕구에 아론은, 힘없이 늘어진 손을 들어 근원지를 찾았다. 보드러운 감촉이 손끝에 다았다. 손에 힘을주어 차가운 그것을 맛보자 그 달콤함에 온 몸이 전율하 듯 떨려왔다. 혀끝을 애태우는 그것이 미워 치아에 살짝 힘을주자 멈칫하는게 느껴진다. 혀를 쓸어오는 감촉에 몸이 이상해져 버릴 것 같았다. 뱉어내려는 아론의 혓바닥을 유린하며 직찹적으로 만져온다. "흐으.....크으" 막혀버린 신음소리에 아론은 정신이 번쩍 드는것이 느껴졌다. 캄캄한 눈앞에 초점을 맞춰 힘을주자 흐릿하게나마 사물이 구별된다. 부드러운 은빛 가닥이 얼굴을 쓸어온다. 동공이 새빨갛다. 아름다운 얼굴이 천사의 그것과 같았다. 천...사.... 천사인 건가.... "음탕한 몸이군." 다시한번 눈에 힘을주자 몸의 감각들이 살아난다. 음탕하다고? 누가?...내가? 천사가 아니야? 황...제?... 황제!! 기겁하듯 놀라버린 아론은 몸에 힘을주어 일어나려했다. 그러나 복부쪽을 가볍게 눌러,황제가 힘을 주자 맥없이 무너져버린다. 파트리시아의 젊고 아름다운 황제는 가만히 아론의 턱을 쓸어왔다. 몸을 만져오는 손길 하나하나가 아론에게 있어 미쳐버릴 것 같은 전율이 되어 돌아온다. "으.." "민감한 몸이군. 여자를 알지 못하는 몸이야, 안그런가 아론?" 당연한 말이 었다. 여자따윈 모르는 몸이다. 인디언의 나이로 따지자면 노총각인 셈인 아론이었다. 여직 정혼녀 없이, 성 따위에 관심없이 자라왔다. 어렸을 적 여자와 성관계를 한 꿈을 꾼 아론은 너무 당황하고 몸을 뜨겁게 달구어 오는 쾌감에 무서워서 창피할세도 없이 울어버린 적 이 있었다. 알고보니 그 나이 때 소년들이 흔히 하는 몽정 이란 것 이었다. 그 뒤로 여성들과 눈을 마주치는 것 조차 민망해 피해왔던 아론이었다. 그런 그가 남이 주는 쾌감에 익숙할리 없었다. "네가 먹은 것이다. 두리안이라 부르지. 소량의 체음제를 뿌렸다. 어때? 몸이 말하고 있지 않은가? 쾌감이 밀려오지?" 킬킬거리며 귓가에 속삭인다. 뜨거운 입김에 머리속이 새하얗게 질려버린다. 아론은 최음제란 말에 경악했다. 인디언에게 말은 귀한 것 이었다. 어떻게는 교배를해서 그 수를 늘려보려고 자주 사용되던 것이 최음제였다. 그것을 자신에게 먹였다고? 정신이 흐릿해져왔지만 앞으로의 일이 상상할 수 없이 무서워져서 아론은,숨을 쉴 수 없었다. "예쁜몸이야. 근육이 잘 잡혀졌군. 이쪽도 그럴까?" 황제는 쓰러지듯 아론에게 기대며 허벅지 안쪽을 은밀히 쓰다듬어왔다. 낯설은 이방인의 감촉에 아론의 몸이 깜짝놀라 달아난다. "흐...만지..지.." 쥐어짜내듯 나온 목소리가 귓볼을 깨물어오는 황제의 행동에 멈춰버린다. 도망가려던 아론은 황제의 몸 아래 깔려버려 옴짝달싹 할 수조차 없었다. 힘은 점점 빠져오는데, 정신은 점점 흐려오는데 몸은 시간이 지날수록 뜨거워져서 아론은, 수치심에 공포에 처음 느껴보는 쾌감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호수 냄새가 나는군, 자, 어떻게 해주길 원하지 아론?" 눈가에 맺혀있던 눈물이 시트를 적셔온다. 부드러운 비단위엔 아론의 흐트러진 검은 머리카락이 그 위를 덮고있는 황제의 은빛 머리카락과 곁쳐 묘하게 반짝였다. 황제는 계속해서 천박한 말들로 아론의 귓가를 어지럽게 속삭인다. 정신은 서서히 혼미해지고 아름다운 황제가 애타게 만져오는 손길에 아론은 미쳐버릴 것 같아 눈을 감는다. * * * "윽.윽.윽." 몇번째 사정인지 기억조차 없었다. 아론은 터져나오려는 신음을 억지로 삼키며 시트를 쥐어짯다. 고개숙인 상태로 보이는 것은 땀에, 눈물에 젖어 변질되고 있는 시트와 그 위를 덮고있는 자신의 머리카락이다. 손 마디 하나하나가 하얗게 질릴정도로 쥐어진 시트는 본래의 모습을 찾을세도 없이 망가져있다. 마치 아론처럼. "윽...그만..아,그만." 고통은 쾌감을 넘어 아론의 정신을 갉아먹는다. 시간이 지날 수록 하지를 점령해오는 쾌감은 입안으로 계속해서 들어오는 두리안의 달콤함과 같아 그 유혹을 뿌리칠 수 없다. 애원을해도 아론을 속박한 황제의 팔을 사납게 물어도 아무런 응답없이 행위는 계속된다. 남부끄럽게 만져져 하얀 액을 흘러내는 그곳이 불에 대인 듯 뜨거워서 아론은 정신을 차릴 수없었다. 난생처음으로 타인의 손길을 느낀 내벽은 끈임없이 황제의 액을 뱉어내며 조여왔다. 정신은 분명 저항하고 있는데 몸은 원하고 있어서 아론은 자신마저 두려워졌다. 그렇게 파트리시아의 밤은 완전하게, 저물었다. *** 아론은 두 뺨을 적셔오는 물기를 느끼며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어제밤의 일이 거짓이 아니라는 듯 하지에서 전해져 오는 고통은 무시할만한 것이 못 되었다. 강간...당한건가.. 망연하게 중얼거려도 대답따윈 있을리 없었다. 현실을 직시하자 어제의 쾌감이 생생히 기억나 얼굴이 달아오른다. 전해져 오는 고통을 무시한 체 침대에 일어나자 하지에 흐르는 끈적한 액체의 감촉에 소름이 돋는다. 황제의 것인가.. 자신의 것 인가.. 대답은 뻔하다. 몸이 더러워진 듯 씻어내고 싶은 충동에 아론은 급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아무리 씻어도 어제밤의 흔적은 지워지지 않는다. 갈색피부에 적당히 자리잡은 근육은 조각같이 예쁜 몸이 었다. 그 위에 빨갛게 수놓아진 흔적들은 아무리 지워도 더욱 붉어질 뿐 없어질리 만무하다. 내벽을 긁어 피와 섞여버린 하얀 정액들을 씻어버린다. 그것으로 아론이 할 수 있는 일은 끝이었다. 호화스런 방이었다. 어제밤 아론과 황제가 함께한 장소는, 놓아져 있는 가구 하나하나가 금부치로 치장되 있어 만만한 값이 아닐 터였다. 아론은 이것저것 감상할 여유 없이 가장 수수한 옷을 골라 물기가 마르지않은 몸에 억지로 덮어 씌었다. "도망가려고?" 맑고 깨끗한 목소리가 아론에게 물었다. 황제가 아니야. 라는 안도감에 아론은 멈췄던 숨을 내쉬었다. "흐음~ 지오 취향치곤 수수한데." 아론이 고개를 돌리자 아직 옛된 아이가 자신을 올려다 보고있다. 소년이지 소녀인지 구분이 안되는 옷차림의 외모이다. 아이의 새빨간 눈동자가 아론을 공포에 몰아넣기 충분했다. "난 지오 동생이야, 너가 지오가 데려왔다는 인디언이구나. 헤에~ 꽤 잘생겼네. " 이 아이 혼자 뿐인건가, 도망칠 수 있다는 희망에 아론은 마른침을 삼킨다. 목이 쉬어버렸는지 따끔거린다. 도망칠 수 있는건 지금 뿐이야. "도망칠 생각인가 보네? 포기하는게 좋을껄, 밖에는 병사들이 깔려있거덩, 이 포도 먹을래?" 아이는 예쁜 얼굴로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역시나 아론을 도망치기 놔둘 황제가 아니었다. 아이는 의자를 끌어 탁상위의 포도를 오밀조밀 작고 빨간 입술로 맛있게 먹으며 아론을 바라보았다. 감정을 매기 듯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아이라 할 수 없는 날카로움이 배여있다. 마치 황제의 눈빛과 같아 소름이 돋는다. "인디언, 이름이 뭐야? 아, 우리나라 말을 못하려나" "아론 데오도로." "와, 신기하다. 나는 다른나라 사람들이 우리나라 말 하는거 처음듣거든. 반가워 아론. 나는 필리스 팩트리. 그냥 필이라고 불러줘." "여긴 어딥니까?" "너무 사무적인거 아냐, 편하게해 편하게. 특별한 이름은 없어. 별궁이라 할까. 지오가 밤마다 여자들을 데리고 와서 자는 곳이지. 대충 알겠지?" 아이는 징긋 웃으며 다 안다는 듯 아론을 바라봤다. 어린 아이치곤 성숙함이 아론에겐 부담이 되었다.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리자 창틀너머 궁전의 위용에 압도된다. 그를 보는 것 같군. 황제를... "솔직히 아론은 무지 신기하게 생겼어. 그런데도 잘생겨 보이네. 우리나라에는 검정 머린없거든. 얼굴도 이국적이야. 아참,우리 놀러나갈래? 내가 궁전 구경 시켜줄께." ".........." "응? 가자~ 가자아아~~" "...알겠습니다." 이 기회에 도망칠 수 있다는 생각에 아론은 아이의 뒤를 따라나섰다. 안에서 보던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아름다움이다. 화려함과 섬세함은 그 어느것과 비교할 수 없다. 인디언 특유의 갈색피부와 검정머리만 보다 각양각색의 눈동자와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들을 보는것은 아론에게 커다란 충격이었다. 그들 또한 아론의 생김새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한번씩은 뒤돌아 보곤 했지만 앞서가던 아이를 보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지나처갔다. "신경쓰지마. 아론이 신기해서 그래. 예쁜 사람들이 많지? 궁에서 일하는 사람들이야. 신분 높은 사람들도 몇몇 있지만 대부분 아론이 하대해도 괜찮아. 어, 지오다. 지오!!" 쉴세없이 떠들던 아이는 누군가를 방갑게 불러댔다. 사람들 중 단연 돋보이는 그는 핏빛 눈동자의 은빛 머리카락을 가진 ....황제였다. "필. 함부로 돌아다니면 안된다고 말하지 않았나?" "내가 누굴 데려왔는지 봐봐." "..?" 아론은 숨통이 죄어저 오는 것 같았다. 분명 황제였다. 자신을 안아오던 단단한 몸이 생각나버려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아론을 바라보던 황제의 눈이 점점 가늘어진다. "아론, 몸은 괜찮은가 보지?" 괜찮을리 없잖아, 속으로 중얼거려도 막상 대답은 하지 못한다. 황제의 움직임에 따라오려던 사람들을 손동작 하나만으로 제지시키고 붉은 입술로 미소짓는다. 그리곤 짖궂게 속삭인다. "어제는 울면서 내게 매달렸지? 오늘밤에도 안아줄까? 말만해, 너의 음탕한 몸을 사양치 아니 할 테니까." 목언저리를 쓰다듬으며 속삭인다. 아론은 황제의 손길을 거칠게 처내며 황제의 따귀를 처올렸다. 아론의 행동에 주위 사람들이 동요한다. 철제갑옷을 입은 사내들이 달려와 아론을 강제로 무릎꿇게 한다. 황제는 표정없이 아론에게 맞은 뺨을 가만히 쓸었다. "언젠간 당신을 죽여버리겠어!! 더러운 위선자!!" 아론은 거칠게 소리쳤다. 원망이 담긴 목소리가 황궁을 울린다. 황제는 아론의 머리채를 낚아채 표정없이 중얼거렸다. 흔들리는 아론의 동공을 의시하며 나긋나긋 천천히...... "원한다면.. 날 죽여도 좋아. 그때가 기대되는군, 아론" 속삭인다. *** 냉기가 올라오는 돌바닥에 아론은 상처투성이인 몸으로 누워있었다. 여기저기 성한 곳이 없다. 어제 황제의 뺨을 때린 후, 사내들에게 끌려와 무참히 얻어 맞았다. 저항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고 죽지 않은게 다행이었다. 몸에 비해 얼굴은 양호한 편인지 눈을 깜빡이거나 숨을 내쉬기에는 별 무리가 없었다. 몸을 움직일 여력은 없었지만 정신은 맑아져온다. 아론은 지금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황제에게 한 짓은 자신이 생각해도 대담한 행동이었다. 우발적인 행동이었지만 후회따윈 없었다. 그 아름다운 얼굴에 상처가 남는다면 분명 죄책감이 들겠지, 허나 황제는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남자야. 죄책감 따윌 갖지마. 잘한거다아론. 눈을 감고 되뇌인다. "썩 나쁘지 않군. 아론." "아..!" 언제온걸까. 이 삭막한 공간을 울리는 발소리 조차 없었다. 새하얀 연미복을 걸친 황제는 분명 순백의 날개만 있다면 천사라 칭할 정도로 아름답다. 조롱하고 있는건가. 황제의 핏빛 눈동자에 비친 자신의 누추한 모습에 고개를 돌려버린다. "되도록 얼굴은 건들지 말라고 했지. 적어도 안을 맛이 있어야 하니까. 그렇게 생각하지 아론?" 추잡한 단어들로 나를 조롱하지마. 이해할 수 없어, 저 아름다운 황제는 어째서 자신을 증오하는 것일까. 황제가 훑어오는 시선이 불에 데인 듯 뜨겁다. 숨막히는 적막감이 아론의 숨통을 죄어온다. 황제의 콧대를 주저앉게 할만한 한마디가 아론에겐 절실히 필요한데 현실은 아론을 주저하게 만든다. 끼이익- 철문 특유의 쇳소리가 아론의 모든 감각을 저지시킨다. 황제는 붉은 입술로 웃으며 중얼거린다. "눈을 떳을 땐 쾌감에 울부짖겠지.. 아론." "크윽..!" 황제의 손가락 마디마디가 새하얗게 변해가도록 아론의 목을 쥐어온다. 숨을 조여오는 고통에 아론은 대항할 세도 없이 외마디 비명 흘릴 뿐이었다. 흐려지는 눈으로 본 황제는 웃고있었다. 일그러진 얼굴로 웃고 있어 그 모습이 가여워서 아론은, 조여오는 황제의 손을 가만히 쓸어본다. 그것을 끝으로 아론은, 눈을 감았다. *** 처음 눈을 떳을 땐, 흔들리는 자신의 다리였다. 맥 없이 늘어진 다리가 자신의 것이라는 이질감에 눈을 감아버렸다. 눈을 뜨면 모든 것을 알게된다는 두려움에 아론은 상처투성이인 팔로 자신의 얼굴을 감싼다. 차갑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강제로 팔을 드려올렸을 땐, 흥분에 젖어 있는 황제가 자신을 보고 웃고 있었다. "뭐가 두렵지 ..아론? 엉망인.. 얼굴이군...하아.. " 눈물로 땀으로 젖어있는 아론의 얼굴을 핥아오며 골반의 움직임을 조금도 누추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저항하려하면 황제는, 상처부위를 씹어 피가 뭍은 입술로 입을 맞춰온다. 격한 혓바닥의 움직임에 고개를 돌려보아도 입맞춤은 끝나지 않는다. 강제로 입을 벌려오는 혓바닥에 아론은 정신이 흐릿해지도록 숨을 내쉬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것이 오직 황제의 만족을 위한 행위에 동요하는 길 이므로. "하아..눈떠 아론... ...거..부..하지마.." 다리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황제를 거부할 세도 없이 몸이 열리고 마음이 열린다. 거부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종내에는 황제를 받아들여 쾌감에 취해 울부짖어 자신이 아닌것같아, 두려움에 울게되 버린다. "흐으...하아..아아아앗..윽.윽.윽" 속삭여오는 황제의 강요에 어쩔 수 없이 눈을 떳을 때는 땀으로 번질거리는 매끄러운 상체가 자신을 지탱해온다. 도저히 익숙해 지지 않는 행위에 어쩔 줄 몰라하는 아론을 잡아 이끌어 결국엔 황제의 단단한 어깨를 안아 조금이나마 편해지기 위해 쾌감에 젖어 엉망인 얼굴로 매달리게 된다. 황제와의 두번째 정사는 조금은 부드러웠다고, 아론은 생각했다. *** 황제는 곁에 없었다. 그 완벽한 남자의 흐트러진 모습은 좀 처럼 보기 힘들것이라 생각했다. 자잘한 상처들과 피멍, 황제가 남긴 자국으로 엉망인 몸은 그 모습이 매치가 안되 웃음이 나온다. 허탈감에 젖은 목소리가 내실을 울린다. 분명 어제는 최음제 따윈 없었다. 그럼에도 아론은, 스스로 황제에 동요해 쾌감에 울부짖었다. 거부할세도 없이 황제에게 안겼다.용맹한 주니신의 인디언들은 자신을 비웃었으리라. 죄책감인가, 후회인가. 스스로도 알 수 없다. 아론은 성치 못한 몸으로 씻기 위해 일어났다. 몸 여기저기에서 비명이 나오지만 이대로 옷을 벗고 있는 것 보다는 잠깐의 고통을 택하는 편이 나았다.몸을 씻고 나왔을 때는 침대위에 검정색 의복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아론, 안 보고 있으니까 빨리 입어. 그렇지 않으면 뒤돌아 볼꺼야" 익살스런 목소리는 작은 체구의 금발의 소녀인지 소년인지 구별이 안되는 아이에게서 나온 말이었다. 필이구나. 이 작은 꼬마는 언제든지 자신의 말을 실행할 아이여서 아론은 주섬주섬 옷을 입었다. "다 됐습니다." "우와~ 멋지다 아론." "감사합니다. 조금, 불편하군요." "처음 입었을 때는 그럴지도 몰라. 그나저나 정말 잘 어울린다. 역시 지오는 안목이 좋단 말야." 제법 의젓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스스로 만족해 있는 꼬마는 그 모습이 상당히 귀여웠다. 예쁜 얼굴에 풍성한 금발로 어딜 빼놓지 않을 미인이지만 그를 닮은 핏빛 눈동자는 어딘지 모르게 거부감이 들었다. 타이트하게 몸을 조여오는 옷은 금색으로 화려한 무늬와 단추로 꾸며진 깔끔한 옷이었다. 목까지 채워진 단추에 아론은 불편한지 여러번 고개를 돌려본다. "지오라는 사람이 누구죠?" "정말 지오를 몰라? 그렇다면 조금 실망인데.. 자신이 죽이겠다고 장담한 사람도 모른다니 황제말이야, 이름은 지오프리 팩트릭, 나이는 스물일곱. 이정도는 기억해 두라고 그리고 지오는 내 형이야 나는 12살이야. 지오와는 조금 나이차가 있지" 그렇습니까 라고 중얼거리며 아론은 황제, 지오라는 남자에 대해 생각한다. 자신은 그에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무의식 적으로 목 언저리를 쓰다듬어오자 단단히 채워진 단추가 만져진다. 낯설은 감촉에 아론은 경악했다. "왜 그래. 아론?" "반지가..." "반지?" "혹시 수수한 무늬의 금반지를 보지 못했습니까? 제가 이곳으로 올때 목에 걸고있던 반지였는데" "본적은 없지만 소중한거야?" "찾아봐야겠습니다." "어, 그 몸으로 어딜 간다는거야!! 아론!!!" 아론은 검은 바지의 단이 뿌여지도록 궁전을 찾아다녔다. 자신에게 있어 어머니와 같은 소중한 존재가 준 귀중한 유품이었다. 이대로 잃어버릴 순 없었다. 옷에 쓸린 상처들이 쓰라려와 아마도 상처가 다시 벌어진 듯 했다. 검은 의복을 걸친 이 매력적인 사내를 한번씩 뒤돌아 봤지만 누구하나 신경쓰는 사람이 없었다. 아론은 어두운 밤이 될때까지 반지를 찾아다녔다. "여기서 뭘 하는 거지?" 익숙한 저음의 목소리가 어두운 밤하늘을 울린다. 돌아본 곳에는 황제가 아론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 달빛이 녹아든 아름다운 밤이었다. 그날은, 아론은 숨죽여 황제를 바라보았다. 의문이 담긴 눈동자로 은빛 머리카락을 쓸어오며 묻는다. "뭐하는거냐 물었다." "대답해야 합니까?" "어리석군, 네 목숨을 좌지우지 하는건 나다. 아론" "그렇다면 더욱 대답할 가치가 없군요. 돌아가겠습니다." "아론!!" 일그러진 얼굴로 돌아선 아론의 팔목을 잡아온다. 조금은 성난 얼굴로 자신의 말을 거역한 남자를 바라본다. 아론은 이 완벽한 황제의 마스크가 무너져 오자 만족감에 황제를 비웃 듯 웃어보인다. 봐, 나는 당신에게 당해주지만은 않아. "나는 당신을 경멸해." 아론은 희미한 미소를 담아 황제의 은빛 머리카락을 쓰다듬는다. 밀착해오는 행동에 황제의 눈이 가늘어진다. 조금도 아론 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그의 코앞에서 낯게 소근거린다. "언젠간 당신을 죽여버리겠어. 지오프리 팩트릭" 굳어있는 황제를 뒤로한체 거침없이 걸어나간다. 통쾌하다면..... 사실이다. 저 거만한 황제의 콧대를 꺽었다는 희열감에 몸이 떨려온다. 아론은 황궁으로 끌려온 후 조금은 자신이 대담 해졌다는것에 놀랍기도 화가나기도 했다. 자신이 아닌것 같은 위기감이랄까, "윽!!" 거칠고 메마른 감촉이 닿은 등이 아려온다. 커다란 황궁의 나무에 강제로 부딪혀 황제의 손아귀에 잡혀버린 아론은 아픔으로 일그러진 얼굴을 들어 황제를 바라봤다. "어제도 좋았지? 스스로 다리를 벌려왔잖아. 허리를 흔들었지? 그게 바로 너다. 아론. 우월감에 젖어있자 봤자 너는 역겨운 인디언에 지나지 않아!" 한망이 맻힌 눈동자가 아론을 꿰뚫어본다. 황제의 한마디가 아론에겐 비수가 되어 돌아온다. 아론은 떨리는 눈동자로 황제를 응시하며 엉망인 얼굴이 되어 말한다. "나는.. 나는 형제들을 위해 여기까지 온거야. 당신에게 안기기위해 온게 아니야!! 나를 그렇게 만든건 당신이잖아!" 축축한 감촉이 볼을 따라 흘러 아론은 흐린 눈으로 황제를 바라본다. 황제아래 무너져 버린 자신의 자존심을 되찾을 길은 없다. 그의 눈빛에 전라가 되어버린 자신이 너무나 싫어, 황제가 원망스러워 아론은 눈물이 흘렀다. 알아, 내가 당신에게 저항한다면 나의 형제와 고향은 죽어버린다는 걸, 내가 도망친다면 힘들어하고 있을 형제들을 배신하는 것 밖에 되지 않는 다는 걸. 모든 걸 손에 쥔채로 우월감에 차 있을 당신이 더 괴로워한다는 사실이 당신을 증오하지 못하게 해서 그게 싫을 뿐이야. 황제는 흘러내리는 아론의 눈물을 닦아 키스해온다. 아이를 달래듯 혀끝을 애무해 오는 황제에게 아론은 입을 벌려 응답한다. 아론의 서투른 혀놀림에 황제는 점막을 쓸어 머뭇거리는 아론을 끌어당긴다. 달콤한 키스였다. 입안과 혀를 쓸어오는 능숙한 황제에게 이끌려 맛보는 쾌감은 아론을 전율하게 한다. 진한 입술의 감촉을 끝으로 아론은 감은 눈을 뜬다. 황제는 아론의 젖은 눈을 닦으며 부드럽게 묻는다. "여기서 뭘했지.. 아론?" 아이같은 사람. 끝까지 물어오는 황제에게 웃음이 나와 아론은 희미하게 웃으며 대답한다. "반지를.. 찾고 있었어." "반지?" "여길 올 때 목에 걸었던 반지. 수수한 무늬의 금반지야. 아무 장식도 없어." "이걸 찾는 건가?" 달빛에 반사되 반짝거리는 반지가 황제의 하얀 손에 쥐어져 있다. 아론은 놀란 눈으로 황제를 바라본다. "어디서 난 반지지?" "알필요 없잖아." "말해. 아론 날 화나게 하지 마" 반지와 황제의 얼굴을 바라보던 아론은 입술을 깨물며 고민했다. "날 길러주신 분이 준거야. 아름다운 인디언 여인이었지. 어느날 갑자기 우리 부족에게 찾아와 살려달라고 부탁했어. 그녀가 병에 걸려 죽기전, 이 반지를 내게 줬어.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라고 했지만.." "이름은!! 그 여자의 이름은 뭐지?!!" ".... 안겔라." "하...!!" 아론은 지친얼굴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쓸러올리는 황제를 바라봤다. 자신의 말에 동요하고 있다. "그녀를 알아?" "이 반지 소중한 건가" "적어도 나에겐. 그만 돌려줘" "돌려주지." 아론은 자신의 약지에 반지를 꼈다. 여인의 것인 만큼 아론에게 맞는 부위는 약지 손가락뿐이었다. 반지를 돌려보며 신중한 아론에게 황제는 단호히 말한다. "날 죽인다고 했지. 검을 배워라. 언제부터든 상관없어." "..뭐?" "그 옷. 잘 어울리는 군." "잠깐 기다려! 검이라니.. 갑자기 무슨!!" 아론이 주저하는 사이 황제는 달빛의 어둠속으로 끌려들어가 듯 사라져버린다. 아론은 멍하니 황제의 사라진 곳을 응시했다. 그가 사라지자 입술이 불에 데인 듯 뜨거워진다. 아름다운 밤이었다. 황제만큼이나. *** 매끄러운 갈색피부에 흘러내리는 땀방울이 젊음의 고동을 생생히 전달해온다. 단아하게 묶은 검정색 머리카락이 흐트러져 햇빛에 반사되 반짝일땐 황궁의 사람들은 그를 볼 때 다듬어지지 않은 야생의 한 송이의 꽃을 보는 것 같아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론은 황궁내에서 유명인사가 되어버린지 오래였다. 같은시간 일정한 장소에 나타나 검을 휘두르며 약동하는 남자는 흔히 보는 궁내의 하얗고 자태고운 궁인들과는 달랐다. 그 도도한 인디언은 누군가와 함부로 이야길 나누지 않았고 예의도 발라 여인들에게 사모의 대상이 되기도 했고 잘생긴 얼굴로 희미하게 웃어보일 때는 누구하나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남자였다. 아론은. "오늘도 열심히네." "필리스님. 함부로 돌아다니시면 안되요! 몸도 약하시면서." "아아. 괜찮아 괜찮아. 그냥 필이라 불러" "나참.." "아론은 정말 아름다워. 지오와 반대되는 매력을 가졌어."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 까만 눈으로 응시해오면 가슴이 다 떨린다니까요." "응큼하긴" "어머, 제가 뭘요~" 에일린은 고집스럽게 웃어보이는 필에게 혀를 낼름거리며 아론을 바라봤다. 검을 휘두루는 아론은 정말 아름다웠다. 얼마전 황제가 자신의 병영에 친히 납시어 아론을 부탁했다. 어떤 연유인지는 몰라도 낮은 신분의 기사단장에게 직접 찾아와 황제가 부탁해 에일린은 황송함에 거절할 생각도 없이 수락해버렸다. 스스로의 힘으로 여자치곤 꽤 높은자리까지 올라온 에일린은 검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분명 무궁무진한 기회가 앞으로 자신의 미래를 밝힐 것 이고 여차저차해서 제자를 키워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며 스스로 납득해버렸다. 현재는 대만족이지만, 아론은 인디언인 만큼 민첩하고 운동신경도 뛰어났다. 말귀도 잘 알아듣고 얼굴도 상당히 준수해서 그를 볼때마다 기분이 좋고 가르치는 보람이 있었다. 몸매도 좋은편이고 얼굴도 예쁘장한 에일린은 아론을 꼬셔볼 맘이 없었던건 아니였다. 자신감도 있었지만 근근히 떠도는 소문에 에일린은 자신의 계획을 접어야 했다. 막된말로 아론은 황제가 자신의 침소에서 친히 밤시중을 받는 애첩이라는 소문이었다. 눈치밥으로 황궁의 자리를 잘 고수하고 있는 에일린은 아론에게 함부로 입을 놀렸다가는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기에 입을 다무는 중이지만 내심은 정말 궁금했다. "아, 오늘은 이만 끝내시려구요. 아론님?" "네. 날씨가 굉장히 덥군요. 에일린님." "둘이 처음만난 것도 아니면서 왜이렇게 딱딱하게 굴어. 아론은 너무 예의가 발라서 탈이야." 더운 날씨의 불쾌감에 필이 틱틱거리자 에일린은 밉살스럽게 대꾸했다. "어머, 이게 어른들의 세계란거에요. " "아~ 좋겠수다. 늙어서" "그런 말투는 어디서 배우시는 거에요. 황제님께 들키는 날엔 혼쭐이 나실거에요" 투닥거리는 에일린과 필의 모습에 아론은 기분이 유쾌했다. 말싸움을 은근히 즐기는 그들의 모습은 굉장히 재미났기에 아론은 부드럽게 미소짓는다. 여전히 몸을 움직인 후는 기분이 좋았다. 황궁에서 몇일 몸을 움직일 여유도 없었지만 무엇보다 검은 만만히 볼 것이 아니여서 그런지 아무리 아론이여도 처음에는 몸에 무리가 많았다. 기본기를 배우는대도 상당한 시간이 흘렀고 지금은 검술의 공격과 방어를 이미지메이킹으로 혼자 터득하는 중이었다.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아론은 미안함 맘으로 뒤에서 말을 이으려는 에일린과 필을 무시한체 걸어나갔다. 에일린과 필은 좋은 사람들이다.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며 인정해주는 고마운 사람들. 에일린을 볼때 처음 황제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자연속에서 자란 아론이 황궁에서는 답답할 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혼자라는 외로움에 자신을 이해해줄 사람을 곁에 붙여준 것이리라. 황제에게 고맙지만 그의 후한 대접을 조금은 이해할 수 없다. 아론은 황제와의 달콤한 키스 이후 그를 볼 수 없었다. 에일린의 말로는 그는 新황제로써 국정을 논의하거나 배후 세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보통 바쁜몸이 아니라며 알현실 이외에서는 그를 보기 힘들 것 이라는 말에 아론은 가슴한켠이 아려왔다. 분명 황제는 자신에게 적대감을 주는 존재이다. 그를 보면 시원치 못한 마음의 연유가 무엇인지 몰라도 함께있으면 분명 좋지만은 않았다. 아론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본다. 가지런하고 단정한 손이 물집과 굳은살로 엉망이다. 아프지만 참을만 했다. 이것이 황제와 자신의 관계가 아닐까? 아론은 익숙한 황궁의 샛길로 걸어나갔다. 푸르게 자란 나무들 사이로 간간히 세어들어오는 태양은 초목의 나무들을 더욱 화사하게 밝혀준다. 분명 자연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마음껏 누릴 수 있다는 이 제한된 구역이 아론에겐 기쁨이었다. 이 길을 따라 나간다면 커다란 호수가 나오리라. 오늘도 아름답겠지 그곳은. 아론은 호수에서 마음껏 헤엄칠 수 있다는 생각에 조금은 흥분이 된다. "살려.. 주...커헉" "..!!" 아론은 호수 중앙으로 사라져가는 흰 손가락과 필사적인 고함에 앞뒤를 잴 것이 없이 호수에 뛰어들었다. 원체 사람 발걸음이 뜸한 곳이어서 손길또한 더딘곳이었다. 호수는 깊이를 잴 수 없을 만큼 깊다. 속이 훤히 비치는 환상에 사로잡혀 현혹될때는 언제 수명을 단축시킬지 모르는 곳이었다. 그곳에 사람이 빠져있다. 아론은 필사적으로 헤엄쳐 호수 중앙에 다다라 호수밑으로 가라앉는 사람의 팔목을 잡았다. 가느다랗고 보드라운 팔목이 힘없이 처져있다. 힘을 주어 끌어올리자 빛나는 금발이 물에 젖어 새하얀 이목구비에 달라붙어 있다. 속눈썹이 길고 보란색으로 변질되어있는 입술이 잠든 인형을 보는 것 같아 아론은 심장이 뛰었다. 설마 죽은건 아니겠지. 아론의 염려와는 다르게 속는썹이 들여올려지고 푸른 눈동자게 희미하게 비친다. "괜찮습니까? 정신이 드나요?!" 상황판단이 되지 않는지 이맛살을 찌뿌리던 여자- 아니, 소녀는 자신이 아직도 물위라는 공포감에 아론에게 필사적으로 매달려 소리를 질러댔다. 자신의 머리를 숨을 쉴수 없을 정도로 잡아와 아론은 깊은 호수로 몸이 떠밀리는 것을 느꼇다. 아론을 지렛대 삼아 비명을 질러대던 소녀의 목소리가 서서히 들리지 않고 숨이 가빠져올때쯤 아론은 호수로 다가오는 사람들중에서 산산히 부서져오는 은빛의 형체를 끝으로 의식을 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