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2    붉은 태양빛이, 나선의 탑을 비춰준다.    일몰을 앞둔 오렌지색 세계 속에서 아오자키 토우코는 맨션의 부지에 발을 들였다.    도마뱀 가죽을 차색으로 물들인 듯한 가죽 롱코트는, 가느다란 그녀의 몸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외투는, 옷이 아니라 갑옷 같은 느낌을 풍기고 있다.    그녀는 한번 맨션을 올려다보고는 오렌지색 가방을 한 손에 들고 걷기 시작했다.    푸른 잔디로 덮인 정원을 지나, 맨션의 내부로 들어간다.    유리로 둘러쳐진 로비 역시 석양에 붉게 물들어 있었다.    바닥도, 벽도, 윗 층으로 이어진 엘리베이터가 있는 기둥도, 태양 속에 있는 것처럼 붉다.    한동안 생각한 끝에, 그녀는 빙글 하고 목적지를 변경했다.    엘리베이터가 아니라, 그대로 로비를 동쪽으로 걸어간다. ……두개로 나뉘어있는 이 맨션은, 동과 서에 각각의 로비가 만들어져있었다.    그녀는 그 중의 하나인, 동동의 1층에 있는 로비로 향한다.    로비는 반원형의 넓은 공간이었다.    천장 없이 2층으로 곧바로 이어져있는 대형 응접실일까. 이미 건물의 내부인 이곳에, 석양의 오렌지 빛은 없다. 단지 전등의 노란 빛 만이, 대리석 바닥을 비추고 있었다. 「놀랬는걸. 성질이 급하구나, 너는」    남성으로서는 높은 톤의 목소리가 로비에 울려 퍼진다.    토우코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말없이 시선을 올린다.    완만한 경사를 그리며 2층으로 이어진 계단. 그 도중에 붉은 코트를 입은 남자가 서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기쁜 일이기도 해. 어서 오게 나의 게헤나에. 환영한다, 최고위(最高位)의 인형사」    마술사 코르넬리우스 · 아르바는 기쁜 듯이 웃으며, 연극 같은 몸짓으로 크게 인사했다. ◇ 「게헤나?」 「그렇고 말고. 이곳은 힌놈 골짜기에 있었던 불의 제단의 재현이다. 사람들을 불태우고, 죽이고, 괴로움에 쓰러진 상념을 모으는 용광로지. 때마침 신전의 주인인 몰록은 없지만, 어쨌든 그럭저럭 훌륭하지? 이 정도의 이계(異界)라면 외계의 물질법칙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돼. 길을 열 준비는 이미 끝났어, 아오자키」    붉은 마술사는 눈 아래의 토우코를 내려다보면서 의기양양하게 말한다.    쾌활한 청년과는 정 반대로, 그녀는 어디까지나 감정을 억제하며 대답한다. 「아그리파(Agrippa)의 직계(直系)가 유태교에 심취했다니 웃기는 얘기야. 그러니까, 너는 이곳의 본질을 깨닫지 못해. 지옥? 그런 것은 지구상의 여기저기에 지금도 존재하고 있어. 사람의 상식을 넘은 살육(殺戮)을 보고 싶으면 전장에 가. 불합리하다고 느껴질 정도의 죽음에 이르는 모습을 보고 싶다면 기아(飢餓)의 나라에 가면 돼. 이런 곳은 지옥도 뭐도 아냐. 단순한 연옥(煉獄)이라구, 이건」    말하며, 그녀는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텅, 하는 마른 소리. 「작은 죄를 범했기 때문에 지옥에도 천국에도 가지 못하고 영원히 괴로워하는 혼의 거처. 그것이 이곳의 정체다. 목적이 있어서 괴롭히는 것이 아니야. 괴롭히는 것만이 목적인 닫혀진 고리인 거다. 이런 것에, 아무런 마술적인 효과는 없어. ───적어도, 제3자인 너 자신에게는」    날카롭게 찌르는 듯 한 말에, 붉은 마술사는 꿈틀하고 얼굴을 경련시킨다.    그녀는 계단에 서있는 청년이 아니라, 이 건물을 상대로 하는 듯이 눈을 가늘게 뜬다. 「태극도(太極圖)의 구현은 네 생각에 의한 것은 아니지? 이제 됐으니까 아라야를 내놔. 너로서는 기량부족인데다가, 이 뒤에 일어날 일로 이득 볼 일은 없어. 너의 목적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에 네가 구할 것 같은 알기 쉬운 가치는 없다구. 저번의 충고의 답례로서, 그것만은 말해주지」    자아 그러면, 이라고 말하듯 토우코는 주위를 이리저리 살핀다. 이렇게 대치하고 있는 붉은 마술사에게는 눈도 주지 않고 있지도 않는 상대를 찾고 있는 것이다.    마술사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계속 바라본다.    지금이라도 울 것 같은, 살의에 가득 찬 눈동자로. 「넌, 언제나 그랬어」    중얼거린 말은, 참아내지 못하고 흘러나온 것이었다. 「그래. 언제나 그랬어. 그렇게 나를 과소평가해. 룬도 내가 먼저 전공 했었다구. 인형사로서의 명예도 나만이 가지고 있었어. 그런데, 너의 그 태도에 저능한 녀석들이 속아버렸지. 나를 밑으로 취급하는 너의 태도가, 녀석들 모두에게 내가 열등하다고 인식시켜 버린 거야. 생각하면 알텐데! 나는 슈폰하임의 차기원장이라구? 마도를 공부한 세월은 40년을 넘어. 그런 내가 어째서 고작 스무 살 남짓한 계집애의 밑에 위치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냐……!」    중얼거림은, 어느새 격앙되어 로비에 가득 채워져 있었다.    지금까지의 친근함에 가득 찬 태도를 버리고 저주를 흩뿌리는 상대를 토우코는 흥미 없다는 눈길로 바라본다. 「학문에 나이는 관계없어. 젊게 꾸미는 것도 괜찮지만, 코르넬리우스. 너는 겉모습만 신경 쓰기 때문에 속에 든 것이 못 따라 오는 거야」    냉정한 한마디는, 그렇지만 더할 나위 없이 도발적인 모욕이었다.    연령 50을 넘은 미안(美顔)의 청년의 얼굴이, 증오로 일그러진다. 「────아직, 나의 목적을 말하지 않았군」    애써 냉정하게, 붉은 마술사는 이야기를 바꾼다. 「나는 말이지, 아라야의 실험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어. 사실 근원의 고리 같은 것에도 흥미 없어. 그런 있을지 어떨지도 모르는 것을 추구하는 것 따위는 넌센스야. 신의 영역에 닿고 싶으면 그노시스(gnosis)에 전념하면 돼. 거슬러 올라갈 필요 따위는 없어」    한발 짝, 그는 뒤로 물러섰다. 2층으로 올라가려는 듯 조금씩 위로 올라간다. 「너에게 료우기 시키의 일을 알린 것은 나의 독단이다. 아라야는 료우기 시키를 붙잡기 위해서 목숨을 잃었다. 그건 같은 부류의 인간들 간의 싸움이었어. 그것에 의해 이 결계는 내 것이 되었다. 그렇지만 말야, 나는 녀석의 실험의 뒤를 이을 생각 따윈 없어. 당연하잖아? 나는 말야, 아오자키. 너를 죽일 수 있다고 해서 이런 벽지까지 찾아왔던 거다!」    마술사는 목을 망가뜨릴지도 모를 기세로 크고 높은 웃음소리를 내며 계단을 뛰어올라간다.    마술사가 2층까지 올라가는 것을, 그녀는 그냥 묵묵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1층의 로비에는, 이미 마술사의 악의(惡意)의 구현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넘쳐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그녀는 지금까지의 어떤 일보다 모욕과 증오를 담아서 말했다. 「───슬라임인가, 이건」    아오자키 토우코는 자신의 주위에 넘쳐 나오는 이형(異形)의 존재들을 간결하게 표현했다.    그러나, 로비의 외벽에서 스며 나온 그것들은, 그런 단순한 것이 아니다. 크림색의 점액은 벽에서 뚝뚝 흘러나와서는 급속하게 형체를 이루어간다.    어떤 것은 사람형상으로, 어떤 것은 짐승형상으로.    표면은 그야말로 켈로이드 상태로 녹아있기는 하지만, 끊임없이 형체를 다시 만들어 가는 그들의 겉모습은 더할 나위 없이 리얼했다. 예를 들자면, 진짜 인간과 짐승이 영원히 부패해 가는 것 같은 추악함과 정교함을 겸비한 존재들. 「이 정도의 자리를 마련하고서, 이런 것밖에 구현화 할 수 없는 건가. 아르바, 마술사에서 영화감독으로 전향해야겠다. 너라면 크리쳐를 준비하는 예산이 굳겠어. 싸구려 호러 전문이 되겠지만, 뭐어, 너에게는 원장같은 것 보다는 어울리는 직업이야」    로비를 가득 채울 정도의 물체들에 둘러싸여, 그녀는 그런 말을 중얼거렸다.    확실히 이 상황은 호러 영화 같았다. 다른 점이라면, 이것들에는 십자가도 산탄총도 효과가 없다는 것 정도겠지.    그렇게, 자신의 주위 1미터 정도의 여지만을 남기고 슬라임 형상의 물체에 둘러싸여 버렸는데도, 그녀는 눈썹하나 움직이지 않고 가슴포켓에 손을 넣었다.    ……칫, 하고 혀를 찬다. 그러고 보니, 담배는 미키야에게 맡겨버렸었지, 하고 토우코는 조금 후회했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일본제라도 상관없으니 사뒀으면 좋았을 걸, 하고 내심 욕설을 내뱉는다.    그녀는 설마 이런 시시한 결과물이 나올 줄은 생각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래서는 담배라도 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감독도 못할까. 연출이 너무 서툴러. 이 정도로는 요즘의 관객들은 기뻐해주지 않아. 할 수 없지. 한 수 가르쳐 주마, 아르바. 기괴(奇怪)를 표방할거라면, 적어도 이 정도 레벨은 유지해야해」    퉁, 하고 그녀는 발치의 가방을 발끝으로 찼다. 「────나와라」    거부를 허용하지 않는, 위엄에 찬 명령.    호응하며 가방이 열린다. 덜컹하고 튤립처럼 열린 가방 속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동시에────무언가 검은 것이 아오자키 토우코라는 마술사의 주위를 돌기 시작한다.    검은 것은, 몸을 가진 태풍이었다.    토우코를 태풍의 눈으로, 빙글빙글하고 고속으로 돌아간다.    그것은, 미친 듯한 기세였다.    수초도 못 있어, 로비는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 그야말로 로비에 넘쳐날 것 같았던 것들은 그림자도 형체도 없다. 있는 것이라곤 그저, 아오자키 토우코와 닫혀져버린 가방. 그리고 그녀 앞에 앉아있는 고양이 뿐이었다. 「─────뭣,」    그 광경을, 아르바는 꿈을 꾸는 것처럼 보고 있었다.    고양이는 토우코보다 크다. 그 몸은 새까맣고, 두께란 것이 없다. 그림자로 이루어진 평면의 검은 고양이. 아니, 고양이인지조차도 판별이 가지 않는다. 고양이 같은 실루엣으로 머리부분에 이집트의 상형문자 같은 눈만이 달려있다. 「뭐냐, 그건───」    2층에서, 그는 고양이를 내려다보았다.    고양이의 그림 같은 눈과 시선이 마주친다. 그러자──고양이는 씨익 하고 입 부분만을 없애며 웃음을 표현했다.    악몽을 꾸고 있는 건가, 하고 아르바는 숨을 삼킨다.    토우코는 아무 것도 말하지 않는다.    어딘가에서 지지지지지, 하는 소리만이 나고 있었다. 「이야기가 틀려, 네가 부리던 사용마(使い魔)는 여동생에게 잃었다고 한 말은 거짓이었나……!」    침묵에 견딜 수 없어졌는지, 아르바가 외친다.    그녀는 글쎄, 란 대답만 하고 검은 고양이에게 시선을 이동했다. 「──맛없는 것을 먹게 했구나. 하지만 다음 것은 조금 나아. 이런 에텔 덩어리가 아닌 진짜 사람고기야. 영적(靈的)인 영양도 충분히 있어. 나의 학우(學友)라고해서 사양할 필요는 없다구. 낮부터 가르쳐줬지? 적은 먹어서 죽이는 것이다, 라고」    갑자기, 검은 고양이가 달리기 시작했다.    대리석의 바닥을 미끄러지듯이 횡단하여, 계단으로 달려간다. ……그렇지만 고양이의 발은 움직이지 않는다. 주저앉은 실루엣인 채로, 눈만을 움직여서 붉은 코트의 인간에게로 질주해간다.    토우코가 있던 1층의 로비에서 아르바가 있는 2층의 층계참까지, 아마도 10초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허용할 정도로 아르바도 보통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마술사다. 「Go away the shadow. It is impossible to touch the thing which are not visible. Forget the darkness. It is impossible to see the thing which are not touched. (그림자여 사라져라. 자신(己)이 보지 못할 수단을 가지고. 암흑이라면 망각하라. 자신이 접하지 못한 상식을 되풀이하라.)    The question is prohibited. the answer is simple. (질문은 금한다. 나의 해답은 명확하리니!)    I have the flame in the left hand. And I have everything in the right hand──────── (이 손에는 빛. 이 손에는 모든 것이 있음을 알라.)」    침착한, 그러나 한계에 가까울 정도까지의 속도로 아르바는 주문을 영창 한다.    ───마술에 있어서 주문이란 것은, 그 개인에 의한 자기암시밖에 되지 않는다.    바람을 일으키는 마술이 있다. 이것은 하나의 무기와 같고, 처음부터 성능이 결정되어있는 힘이다. 어떠한 마술사가 사용하더라도 효력은 바뀌지 않는다. 그저, 영창만이 달라진다.    주문의 영창이란 것은 자기의 몸에 익힌 마술을 발현시키기 위한 것으로, 그 내용에는 마술사의 성질이 짙게 드러난다. 그 마술의 발현이 필요해진 의미와 정해진 키워드만 포함되어있다면, 영창의 세부(細部)는 각 마술사의 취향에 따르기 때문이다.    야단스럽고 과장된, 자기 도취하기 쉬운 마술사의 영창은 길다. 하지만 오랫동안 의미를 부여하는 만큼, 위력이 증대되는 것도 사실이다. 자신에게 거는 암시가 강력하면 강력할수록, 자신으로부터 끌어내는 능력도 더욱 향상되는 것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아르바의 영창은 우수하다고 말할 수 있었다. 쓸데없는 부분 없이 필요최저한의 운(韻)을 밟고, 거기에 자기의 정신을 고양시키는 단어를 포함하면서도, 영창 그 자체의 발음에 2초란 시간도 필요치 않는다.    그 사실에 토우코는 호오, 하고 감탄했다.    아르바란 청년은 필요이상으로 길고, 쓸데없는 것이 많은 영창을 좋아하고 있었는데, 이 몇 년 사이에 확실히 성장해있다.    주문영창을 구성하는 형태와 속도, 그리고 물질계에 행해지는 회로의 연결법이, 놀랄 정도로 정교하다.    그의 영창은, 단순히 물건을 파괴하는 마술이라면 틀림없이 일류의 실력이었다. 「I am the order. Therefore, (나의 존재는 만물의 도리. 모든 것의 앞에서, 너는(汝).    you will be defeated securely───────! (여기에, 패배가 확실할 지어니───────!)」    아르바의 한쪽 팔이 내밀어진다.    계단의 첫째 단에 검은 고양이가 도달한 순간 희미하게 대기가 진동하더니───계단이 불타올랐다.    지면에서 흔들리며 솟아오르는 신기루처럼, 푸른 화염의 바다가 계단을 가득 메운다.    수초도 안 되는 시간동안, 화염은 계단 그 자체에서 출현하여, 천장 없이 뚫려있는 2층의 플로어를 통과해서 천장으로 사라져간다.    마치 화산지대의 간헐천(間歇川)같다.    로비의 산소를 이 한순간에 전부 빼앗아간 불의 바다는, 검은 고양이만을 이 세계에서 소멸시켰다. 그것도 당연. 섭씨로서 1000도를 충분히 넘어가는 마력의 화염은, 모든 동물을 버터처럼 고체에서 기체로 바꾸어버린다. 액체를 경유하는 과정 따위는, 찰나의 순간조차 없었겠지.    그러나, 아르바는 보았다.    화염이 타오른 후, 훌쩍 모습을 나타낸 고양이의 기괴한 모습을. 「───있을 수 없어」    벽안이 계단을 응시한다.    검은 고양이는 옅어진 자신의 몸을 안타깝다는 듯 핥고서, 붉은 마술사를 향해 눈을 부라린다.    검은 기괴(奇怪)가 질주를 재개한다.    아르바는 고양이의 정체를 간파할 여유조차 없었다. 「Repeat……! (명한다)」    갈라 찢듯 날카롭게, 아르바는 주문을 반복했다.    계단이 불타오른다. 하지만, 이번에는 고양이는 멈추지 않았다. 이제 이 화염에는 익숙해졌다는 건지, 일직선으로 마술사에게 뻗어간다. 「Repeat!」    불의 바다가 다시 한번 뿜어져 오르고, 사라진다.    고양이는 이미 계단을 다 올라오려 하고 있었다. 「Repeat!」    네 번째의 화염도, 무의미하게 끝났다.    검은 고양이는 2층에 도달하자, 아르바에게 다가가서, 입을 벌렸다. 인간 크기의 고양이의 몸이, 그 발끝부터 쩌억 하고, 벌어진다. 정수리를 덮개처럼 여는 보물 상자 같았다.    두께가 없는, 평면이었을 고양이 속에는 아까 삼킨 이형(異形)의 존재들의 잔해가 진흙처럼 늘어져 달라붙어 있었다.    아르바는 겨우 깨달았다. 이것이 고양이를 닮은 모습을 한 것뿐인, 입 밖에 없는 생물이었다는 것을. 「Repeat────!」    죽음을 목전에 둔 공포가 최후의 주문을 반복시킨다.    그러나 그 전에, 상어의 턱 같은 고양이의 몸이 마술사를 조여든다, 붉은 코트 위로부터 통째로 덮어 삼켜져, 아르바는 정신을 잃었다. ◇ 「, 왕현(王顯)」    갑자기, 짧은 운이 흘렀다.    아르바의 몸을 비스듬하게 물고 있던 고양이가 움직임을 멈춘다.    이 일을 방관자처럼 바라보고 있던 토우코조차, 그 소리에 반응한다.    아르바의 등 뒤에, 남자가 있었다.    변함없는 고민에 가득 찬 엄숙한 얼굴을 한 남자는, 검은 외투를 입고 있었다.    남자는 처음부터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나타난 기척이 없었다.    검은 남자는 아르바를 한 손으로 쥐고, 고양이에서 거칠게 잡아 빼어 바닥에 아무렇게나 떨어뜨린다. 고양이는 남자가 이끌고 이동하는 3중 결계 중 하나에 닿아버려서 움직이지 못한다.    남자는 눈 아래의 여자를 돌아본다. 그것만으로 로비의 공기는 일변했다. 공기가 얼어 붙어간다는 것은 이런 것일까.    아까 전까지의 대기의 여유가 사라져 간다. 진짜 주인을 맞이하여, 이 맨션자체가 긴장하고 있는 것처럼. 「───오래간만이군, 아오자키」 「아아. 서로, 만나고 싶지는 않았었을 테지만」    1층과 2층───하늘과 땅으로 나뉘어, 토우코는 아라야 소우렌이라는 이름의 원흉과 대치했다. 「아르바가 눈에 띄는 짓을 한 모양이군. 원래는 네가 모르는 채로 일을 끝마쳤을 텐데, 할 수 없지. 나 혼자서는 64인이나 되는 몸을 준비할 수 없었다. 이 도시에 네가 있던 것은 우연이지만 필연이기도 하다는 것인가」 「어느 쪽이 끌어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뭐어 그렇겠군. 우연이라는 것은 신비란 단어의 은어(隱語)야. 모르는 법칙을 감추기 위해서 우연성이란 단어가 끌려나오는 거지」    대답하면서 토우코는 벽 쪽으로 후퇴했다.    이 상대는 아르바와는 격이 틀리다. 능력적으로는 동격이겠지만, 이 건물에 있어서 아랴아 소우렌은 누구보다도 유리하다. 벽을 배후로 해서, 전방에만 신경을 집중하지 않는다면, 커다란 헛점을 보여 버리겠지. 「───그래서. 이 맨션은 무엇을 위한 장치지? 설마 살아있지만 죽어있다는 불확정성을 형상화한 상자란 소리도 아닐 거야. 하루 만에 완결하는 세계를 날조해서, 죽음에 이르는 순간의 혼의 작열을 모으는 것은 효율적이지 않다고 몇 백 년이나 전에 결론이 내려졌잖아. 몇 백이란 죽음을 모아도, 너의 목적은 이룰 수 없어」 「물론이다. 그러나 네가 알 수 없는 사실도 있다.    분명히, 나는 죽음의 숫자만을 쫓고 있었다. 몇 만이나 되는 다른 인간의 다른 죽음을 경험하면, 그 안에 근원으로 통하는 혼의 확산이 있을 것이라 믿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근원에는 도달할 수 없어. 그걸로 다다를 수 있는 것은 인간의 『기원』 뿐이다. 영장이라는 총체(總體)의 기원에는 이를 수 없지.    중요한 것은 죽음의 양이 아니다. 죽음의 질이다. 근원을 더듬으면 죽는 법의 종류는 보다 크게 구별된다. 나는 죽음에 이르는 길을 가능한 만큼 크게 해부하여, 결과 그것이 64종류라고 추정했다. 이곳에 모인 자들은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종류의 죽음을 등에 진 자. 말하자면, 세계의 축도(縮圖)다. 나는 그들의 괴로움을 체험하고, 그들의 괴로움을 내포한다. 얼마 안 있어 팔괘(八卦)보다 사상(四象)으로 단순화되어, 양의(兩儀 : 료우기)에 이르기 위해서」 「흥. 그렇게 하나로 있는 것이 좋은 거냐, 아랴야. 빛과 어둠은 적대해야하기 때문에 나뉜 것이 아니라, 그것이 제일 많은 것들을 내포하는 속성이기 때문에 나뉘어 진 거다. 모든 것은 하나로는 고독해. 그래서 많이 나뉘어 지려고 하지. 너는 그것을 인정할 수 없는 것뿐이잖아. 갖가지 인간의 죽음을 조사하고, 그 인생을 열심히 연구해서 자기 것으로 만들어 축적하지. 나의 죽음조차, 너는 뇌수 구석에 보존할거야. 그렇게 인간의 가치를 분석하는 것은 자기 맘이지만, 그것을 행하는 것은 야마(耶摩)의 역할이다. 사람의 몸인 너로서는, 그저 죽음을 계속 빨아들이는 지옥밖에 있을 수 없어」 「───그걸로 좋다. 지옥이던 천상이던, 바닥에 가까운 것은 변하지 않는다」    아라야의 말에는 망설임이 없다.    이 세계에는 자신밖에 없다고 결론지은 너무도 강한 의지.    토우코는 생각한다.    일상이라는 나선을 반복하는 이 건물에는, 인간이 체험하는 온갖 죽음의 원형이 소용돌이치고 있다. 이 건물은, 지금까지 아라야 소우렌이라는 육체가 행하고 있던 기록을 계승한 것이다. 이곳은 녀석 자체이면서, 아라야 소우렌이라는 의식 그 자체이기도 하다.    ……곧, 나는 지금 녀석의 체내에 있다는 건가.    토우코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로비에 가득 찬 공기를 관찰한다. 팽팽하게 긴장된 공기는, 아라야를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녀석에게 적대하는 이 건물에 살해당한 거주인들의 소리 없는 원념(怨念)이다.    그녀조차 짓눌릴 듯한 원념의 양을 아라야는 하루, 또 하루 늘려간다. 그의 말을 빌리면 양이 아니라 질을 높이고 있는 것이겠지. 몇 백이나 되는 죽음은, 결국 한 종류의 같은 죽음이니까.    애정사(愛情死), 곧 가족, 연인, 모성, 부성, 육아.    증오사(憎惡死), 곧 가족, 연인, 친구, 선배, 타인.    여러 가지 이유에 의한 여러 가지 죽는 방법.    매일 되풀이되어, 보다 확실해져 가는 같은 결과. ───진해져 가는, 죽음.    이 건물은 주문이다. 녀석이, 아라야 소우렌의 의식을 강고한 것으로 하기 위한 제단. 고수준의 마술을 행하기 위해서는 영창과 자신의 마력뿐만이 아니라, 생명의 희생과 토지자체의 힘까지도 행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라야는 현대에 신전을 건설하는 것으로, 보다 고수준의 마술을 행하려 하고 있다.    아니, 마술이 아니다. 이 정도의 이계(異界)를 이용한 신비는 이미, 마술의 영역이 아닌 것이다.    이것은, 그래──지금세계의 상식으로는 불가능한 영역의 신비.    마법(魔法)이라고 불리는, 사람의 손이 닿을 수 없는 금단의 힘의 행사나 다름없다. 「───근원으로의 길을 여는 건가.    하지만 어떻게 해서? 마술적인 결계를 펼치지 않고 자신이 마술사가 아니라는 증명을 해본댔자 영장의 의지는 속일 수 없어. 근대적인 기술에 의한 결계로 속일 수 있는 것은 같은 마술사뿐이야. 확실히 이 건물이라면 길은 열려. 태극도의 구현이니까, 틀림없이 구멍은 낼 수 있겠지. 그러나, 그 구멍에서 제일 먼저 나오는 것은 영장의 수호자다. 우리들은 우리들인 이상, 그것에는 절대로 맞설 수 없어」 「───억지력은, 이미 움직이고 있다. 네가 이 도시에 살고 있는 것. 아무런 이유도 없이 무언가에 홀린 듯한 우연을 가지고 도둑질하러 숨어든 남자. 이 일대에서 과거에 한 건도 없었던 노상강도에게 살해당한 여자. 나 자신이 움직이는 것을 이 정도까지 억제했는데도 억지력은 세 번이나 움직이고 있어.    하지만 거기까지다. 나는, 이 이상 근원에는 가까이 가지 않아. 몇 번에 걸친 실패를 헛되이 하지 않겠다. 억지력에게 들키지 않고 길을 열려고 한 적도 있었지만, 그것의 눈은 속일 수 없어. 언젠가 억지력 그 자체를 쓰러뜨릴 수단을 조사해서 도전했지만, 그것은 그 이상의 힘을 가지고 나타났다.    결론은 하나다. 나에게는 재능이 없었다」    처음으로───감정 같은 운(韻)을 품은 목소리가 흘렀다.    검은 남자는 눈 아래의 마술사를 시야에 넣었다. 「억지력은 이 정도까지 길로의 도달을 방해한다. 그것이 인간이 손에 들어가서는 안 되는 힘, 무(無)로의 회귀로의 원인이 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인간이란 고체가 완성되어버리면, 생존의 의미는 없어져. 그런데도 유상무상의 인간들은, 단지 살아 있고 싶다는 원망(願望)을 위해서 완성하는 것을 무의식 하에 거부하고 있어. 모든 인간은, 인간으로 있다고 생각하는 시점에서, 짐승 이하의 무리들이다. 완성하기 위해서 생존하고 있는 데도, 생존하기 위해서 완성을 받아들이지 않아. 인간의 시작은 처음부터 모순에서 시작하고 있어.    그러면, 그렇다면 어째서, 근원에 도달했던 자가 있는 걸까. 대답은 단순하다.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단순히 도달할 수 있는 인간이 있었던 것뿐인 것이다. 온갖 예지(叡智)를 익혀도, 어차피 마술사는 나중에 부속된 후천적인 존재일 뿐이다. 재능이란 그런 것이다. 태어났던 시점에서 가지고 있나 가지고 있지 않느냐. 선택되어 있나 아니냐의 차이인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이미 근원과 연결된 인간. 복잡화해서 종류를 늘리고 근원인 대원(大元)에서 너무 벗어나 버린 영장이지만, 드물게 근원에서 직접 태어나있던 자가 있다. 「 」에 연결된 채로 태어난 무색(無色)의 혼. 그것이야말로 유일하게 대원에 다다를 수 있는 존재겠지. 그렇다면 그것을 찾아낼 뿐이다. 그것을 발견하는 것에 나는 10년의 세월을 필요로 했다」 「그런가. 그래서 료우기 시키를 파괴하자는 결론에 다다른 거군」    그녀는 두 눈을 가느다랗게 뜬다.    료우기 시키. 료우기가(家)는 범용성을 극대화시킨 인간을 만들어내기 위해, 그릇(器)으로서의 육체가 텅 비어있는 자를 낳으려고 오랜 세월동안 노력해온 일족이었다. 텅 비었다는 것은 「 」라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위험한 짓을 하고 있는지도 깨닫지 못하고, 시키라고 하는 「 」로 통하는 육체를 낳아버렸다. 「───그래서 후죠우 키리에와 아사가미 후지노를 사용했던 건가.    네가 직접 움직이면 억지력에게 들켜. 어디까지나 간접적으로, 너의 존재를 눈치 채이지 않게 하며 시키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되었어. 그렇지? 시키와는 정 반대의 컨셉을 가진 살인자를 맞닥뜨리게 하는 것으로 시키 본인에게 자신의 본질을 깨닫게 만들었지. 무언가를 깨우치게 하려면 알려주는 것 보다, 체험시키는 쪽이 빠른 법이니까.    그래서. 너는 무엇을 바랬나, 아라야. 시키(式)와 ‘시키(織)’가 서로 잡아먹어서 텅 비어버리는 건가. 아니면 료우기 시키와 만나고 싶었던 것뿐인가」 「───2년 전에는 "그녀”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결론은 나왔다고 말하지 않았나. 시키에게 그 육체는 불필요하다. 근원으로 이어지는 몸은, 내가 받겠다」    당당한 발언에, 토우코는 에?, 하고 입을 벌렸다.    한순간에 아랴야가 말한 것을 이해했기 때문에, 그녀의 의식은 새하얗게 되었던 것이다. 「설마 너, 자신의 뇌수를 시키의 몸에 옮길 생각은 아니겠지……!?」    믿을 수 없다는 토우코의 말에 아라야는 대답이 없다. 말할 것까지도 없다는 눈빛에, 토우코는 정말이지 악취미인 녀석이야, 라고 중얼거렸다. 「하지만 뭐어, 네가 그 몸인 상태로 있다는 것은 시키는 무사하다는 소리군. 혹시 몰라서 묻겠는데, 시키를 되돌려줄 생각은 있어?」 「가져가고 싶다면 마음대로 해라」 「항. 싸울 수밖에 없다는 건가. 나 참, 나는 원래부터 전투요원이 아닌데 말야. 그런 놈과 관계하자마자 골치 아프게 됐어」 「나도 확실히 하기 위해서 묻지, 아오자키. 협력할 의사는 있는가」    적대(敵對)의 시선, 반드시 죽여 버리겠다라는 의지를 바꾸지 않은 채 아라야 소우렌은 그렇게 물었다.    토우코는 대답한다.    딱딱한 호박색의 눈동자만으로, 결코 없다, 라고. 「……그런가. 유감이다. 나는, 너를 옳다고 평가하고 있었다. 서로 근원에 도달하려고 경합했던 적도 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마음에 든다고도 생각했었다」    뚜벅, 하고 발소리를 내며 아라야는 앞으로 나아간다.    1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에 다가가기 위해서. 「그 학원에서, 너만은 군체(群體)가 아니었다. 나는 혼의 원형을. 너는 육체의 원형을 목표로 했다. 나는, 먼저 도달하는 것은 너라고 확신하고 있었지.    하지만────너는 포기했다. 어째서냐. 지금의 너는, 자신이 마술사라는 것조차 내팽개치고 있어.    무엇을 위해 공부하고, 무엇을 위해서 힘을 얻었나.    무엇을 구하기 위해서, 무엇을 이루기 위한 편력이냐」    검은 마술사가 으르렁거린다.    조용히, 평소와 무엇 하나 변하지 않은 어조에, 두 눈동자만이 분노에 타오르고 있다.    그것을 받아서 토우코는 대답했다. 「뭐 그리 대단한 이유는 아냐. 원리를 거듭하면 할수록 역설(逆說)을 생산해 내는 것에 지친 것 뿐이야. 우리들은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멀어져가. 근원의 소용돌이도 마찬가지야. 무지(無知)라는 순수함이 아니면 가까이 갈 수 없는데도, 무지인 상태로는 인식 할 수 없기 때문에 의미가 없어. 너도 마찬가지야. 나는 인정했고, 너는 인정하지 않았어. 단지 그것뿐인,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야」    쓸쓸한 운을 담은 고백을, 아라야는 눈썹하나 움직이지 않고 들었다.    양자의 시선이 충돌한다.    토우코는 아라야에게 말한다. 마술사의 본성, 현명해지면 현명해질수록, 어리석어지는 배리(背理)를.    아라야는 토우코에게 말한다. 마술사의 본질, 공부하면 공부하는 만큼 높은 곳에 다다르는 도리(道理)를. 「너는, 타락했다」    짧게, 모든 감정을 담아서, 그는 말했다. 「그렇다면 무엇을 지향하나. 무엇을 위해서 그곳에 있나」 「……그렇군. 내가 이곳에 있는 이유는, 사실 아무 것도 없어. 시키도 별로 관심 없어. 그 녀석의 몸은 블랙박스 투성이라서 비슷한 것조차도 만들어낼 수 없으니까」    그렇다, 그녀에게 명확한 이유는 없다.    설마 그녀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억지력이라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에 떠밀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상관없다. 그녀는 지금의 아오자키 토우코라는 생활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 환경이 얼마만큼의 기적과 우연에 의해 축적된, 두 번 다시 구성할 수 없는 것임을 깨닫고 있었다. 설령 이 모순 된 맨션처럼 처음부터 다시 되풀이한다 해도 지금과 완벽히 동일한 생활은 얻을 수 없다.    그래서────지킬 수 있다면 지키자고 생각한 것뿐이다. 「……정말로. 엄청나게 타락했어. 나는 점점 약해져가.    아라야. 내 이상(理想)의 초월자라는 것은 말야, 선인(仙人)이야. 탁월한 힘과 지식을 가졌으면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저 산 속에 틀어박혀 있기만 할 뿐────. 나는 그런 존재방식을, 계속 동경하고 있었어. 하지만 돌아보면 이미 늦었어. 안에 이런저런 것들이 너무 들어차 버린 나는, 그곳에 도달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아. 계속, 그렇다고 생각하고 있었어.    저기, 아라야. 마술사는 자신의 일에 몰두하며 바쁘게 살아가. 무엇 때문일까. 자기자신을 위해서라면 외계(外界)에는 관여하지 않을 거야. 그런데 어째서 외계와 관계하지? 어째서 외계에 의지하지? 그 힘으로 무엇을 이룬다는 걸까. 아르스 · 마그나(Ars Magna)로 무언가를 구제하려는 건가? 그렇다면 마술사가 아니라 왕이 되면 돼.    너는 사람들을 더럽다고 하지만, 너 본인은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불가능할거야. 추하다고, 무가치하다고 알면서도, 그것을 용인(容認)하고 살아갈 수조차 없어. 자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하며, 자신만이 이 늙어가는 세계를 구원하는 자라는 긍지를 가지지 않는다면, 도저히 존재할 수 없어. 아아, 나도 그랬어. 하지만 그것에는 의미가 없어.    ───인정해라 아라야. 우리들은 누구보다 약하니까, 마술사라는 초월자로 있는 것을 선택한 거야」    마술사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는 한 발짝, 또 한 발짝 계단으로 다가간다. 「……근원으로의 길은 이미 손에 넣었다. 남은 몇 발짝으로 나의 바램이 이루어진다. 방해하는 자, 이 모든 것을 억지력이라고 간주하겠다. 아오자키, 너도 어차피 인간이었다는 것이다」    로비의 공기가 긴장되어 간다.    공간이 응고되고, 그대로 마술사의 살의(殺意)에 의해서 찌그러져 버리는 것은 아닐까하고 의심할 정도의 압박감.    그 가운에 그녀는 예전의 동포(同胞)를 먼 눈으로 바라보았다.    오랫동안 떨어져있던 몇 년을 메우기 위한, 긴 문답은 여기까지다.    최후에────그녀는, 아오자키 토우코라는 마술사로서 아라야 소우렌에게 묻는다. 「아라야, 무엇을 찾는가」 「진정한 지혜를」 「아라야, 어디에서 찾는가」 「단지, 내 안에 있을 뿐」    망설임 없이 대답한다.    발소리는, 계단의 입구에서 멈췄다.    서로의 존재를 이 세계에서 배제(排除)하기 위해서, 양자는 행동을 개시했다. ◇    검은 코트 아래서, 아라야의 한쪽 팔이 올라갔다.    스르륵, 왼팔을 어깨와 수평이 될 때까지 들어올린다. 그 손바닥은 힘없이 펼쳐져 있어서 먼 곳의 누군가를 불러 세우는 것 같은, 그런 몸짓과 비슷했다.    그는 한쪽 팔을 올려서 상대와 대치한다.    이것이, 아라야 소우렌이라는 마술사가 싸우는 자세였다.    그에 대해, 아오자키 토우코는 그런 검은 마술사의 모습을 올려다볼 뿐이다. 발치에 가방을 둔 채로, 주의 깊게 적의 행동을 바라보고 있다. 그녀의 부하인 검은 고양이는 지금은 아라야의 배후에서 움직임을 봉인 당해, 굳어있었다.    토우코는, 아라야가 스스로를 중심으로 3중의 결계를 펴고 있는 것을 이미 간파하고 있었다.    불구(不俱), 금강(金剛), 사갈(蛇蝎), , 대천(戴天), 정경(頂經), 왕현(王顯).    지면과 공간, 평면과 입체에 둘러쳐진 마술사의 거미줄. 생물이라면, 그 원을 이루는 선에 닿은 순간에 동력을 잃어버린다.    ……보통, 결계라는 것은 움직이지 않는 물체를 보호하는 움직일 수 없는 경계를 말한다. 적은 그것을 자신을 중심으로 데리고 걷는 괴물 같은 짓을 행하고 있다. 보고 있는데도 기척조차 느껴지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다. 즉 접근전에 있어서라면, 아랴아 소우렌은 무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뒤집어 말하면 아라야에게는 그것밖에 없다.    원래부터 토우코와 아라야는 아르바처럼 물질계에 작용해서, 파괴를 행하는 마술을 습득하고 있지 않았다.    토우코가 습득하고 있는 룬 마술에도, 공격수단은 확실히 있다. 룬이란 것은 힘이 있는 각인을 상대에게 새기는 것에 의해, 새긴 문자의 의미를 현실로 만드는 마술이다. 불의 의미를 가진 소웨르(Sowulo)를 아라야의 몸에 직접 써넣으면, 아라야의 몸은 불타오르겠지.    ……약점은 문자를 직접 써넣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으로, 멀리서 문자를 겹치는 행동 따위는 마술사를 상대로는 통용되지 않는다. 간접적인 마력의 작용은, 직접적인 마력을 몸에 펼치고 있는 마술사에게는 튕겨져 버리는 것이다.    학원시대부터, 양자(兩者)는 공격마술에 관해서는 아예 흥미가 없었다. 토우코는 인형 만들기에, 아라야는 죽음의 수집밖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아라야가 토우코를 소거하는 방법은 가까이 다가간 뒤의 격투전이 된다. 아라야는 동란(動亂)의 시대에 살아남은 남자다. 몸을 무기로 싸우는 것으로는 지금 시대의 어떤 인간도 당해낼 수 없겠지.    그것을 알고 있었지만, 토우코는 그가 다가오는 것을 기다렸다.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계단을 내려가, 1층의 로비에 아라야가 발을 내딛었을 때 시작하려고 노리고 있다.    그런데도. 검은 마술사는 계단의 앞에서 멈춰 선 채로, 앞으로 내뻗은 팔을 미약하게 움직였다. 「───숙(肅)」 짧은, 말소리.    마술사는 펴져 있던 손바닥을 꾹 하고 쥔다.    그것은, 무언가를 쥐어 찌부러뜨리는 듯한 동작이었다.    동시에 토우코의 몸이 꿈틀, 하고 진동한다.    온갖 마술계통의 회로를 차단하는 그녀의 코트가, 투둑투둑 하고 깨져서 바닥에 떨어졌다.    공격이 있었던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충격.    모든 방향에서 전신을 고르게 찍어 누르는 충격을 받고, 그녀는 바닥에 무릎을 꿇는다.    토우코는 지금의 충격이 무엇이었는지 한순간에 파악했다.    ……아라야는 토우코가 서있던 공간을 그대로 쥐어짜버린 것이다. 예를 들면, 전신을 프레스 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다.    토우코는 믿기 어려운 생각에 혀를 내둘렀다. 저런 약간의 몸짓만으로 공간에 작용하는 마술을, 그녀는 알지 못한다.   “……당했군. 젠장, 몇 대 나갔지────?”    입안에 흐르는 피를 삼키면서, 토우코는 자신의 육체의 손상을 확인한다. 육체를 단련하지 않은 토우코에게는, 시키처럼 자신의 뼈가 몇 대 부러졌는지를 알 방법은 없다. 단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지금은 코트가 있었기 때문에 살아남았다는 것뿐이다. 다시 한번 당하면, 틀림없이 찌부러진다. 「────가랏!」    그렇다면, 그녀에게 손어림은 없다.    갑자기────움직임이 멈춰져있던 검은 고양이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지금까지의 상황은 연극이었던 것이다. 고양이는 방심하고 등을 보이고 있는 아라야에게로 달려든다. 「뭣」    희미한 놀라움을 보이며, 아라야는 곧바로 돌아보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내민 손바닥을 펴고, 다시 한번 강하게 쥔다.    웅, 하는 진동.    토우코는 보았다. 아라야의 눈앞의 공간 그 자체가, 안쪽으로 계속해서 압축되어가는 모습을.    검은 고양이는 압축되기 전에 위쪽으로 뛰고 있었다.    중력이 역방향으로 작용하는 것처럼, 천장에 발부터 착지하고서 마술사를 노려본다. 「거기까지다」    검은 코트 아래에 숨어있던 또 하나의 팔이, 주먹을 강하게 쥔다.    검은 고양이는, 천장 채로 찌부러졌다.    콰직, 하고 천장의 한구석이 바깥쪽으로 움푹 파이면서 검은 고양이는 찌부러졌고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까지 압축되어, 소실되었다. 「너의 말(駒)은 사라졌다. 마술사란 것은 본인이 강자(强者)일 필요는 없고, 그 실력으로 최강의 존재를 만들면 된다. ……학원시절의 네가 한 말이다. ───어찌되든. 인형사는 인형이 진 시점에서 패배다」    다시 토우코쪽을 돌아보고, 손바닥을 펴면서 아라야는 말한다.    그녀는 그것을 불유쾌하다는 듯이 받아들였다. 「아아, 그 지론은 아직 굽히지 않아. 그러나 대단한데. 잊고 있었어, 이곳은 너의 몸속이었지. 그렇다면 공간을 압축하는 것도 생각한 대로야. 나는 이미 하나의 거대한 마술 속에 뛰어들었다는 건가. ……흥, 그 정도의 준비를 해놓고선, 어째서 시키에게 죽기 직전까지 궁지에 몰렸던 거야, 너?」 「───산채로 잡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함부로 진짜 힘을 써버리면 부서져버리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죽여야 할 상대는, 전력을 다해 상대한다」 「그 정도로 시키의 몸이 탐났던 건가. 너에게 있어서 시키는 유일한 길이겠군. 죽지 않도록 죽이는 것은 상당히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했겠지. 그것이 헛수고가가 되지 않으면 좋을 텐데 말이야」    무너졌던 자세를 바로잡으면서 그녀는 천천히 벽으로 등을 기댔다. 「───아르바에게는 말했지만. 너도 호러라는 것을 알지 못해. 사람에게 공포를 느끼게 하는 요건은 세 가지 필요하다는 것, 알고 있어?    첫째, 괴물은 말을 해서는 안 된다.    둘째, 괴물은 정체불명이 아니면 안 된다.    셋째───괴물은 불사신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 「────!」    아라야가 뒤돌아본다.    찌부러뜨렸을 천장에는 검은 고양이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존재하고 있었다. 「───숙(肅)!」    그는 천장을 향해서 손바닥을 강하게 쥔다.    공간이 우직, 하고 압축된다.    그 비틀림에 울렁이면서, 검은고양이는 마술사를 향해서 날아 내려와 쩌억 하고 입을 열었다.    검은 마술사는 피할 새도 없이 한입에 먹힌다. 「카앗───」 그는 단말마 같은 탁한 소리를 토해낸다.    으적, 하는 둔탁한 소리.    시키 때와 다르다. 마술사는 반격할 틈도 없이 육체의 대부분을 잃었다.    퉁, 하고 얼굴과 어깨만이 남아있던 마술사가 지면에 떨어진다. 죽어서 더욱 고민에 찬 얼굴로, 인간이었던 육편(肉片)이 계단을 굴러 떨어진다.    그 상황을 냉정하게 관찰하면서 토우코는 짧게 말했다. 「처치할거라면 일격에 숨통을 끊는다. 속여서 친다는 것은 이렇게 하는 거야, 아라야」    그러면, 하고 벽에서 떨어져서 토우코는 걷기 시작한다. ───푸억.    소리. 묵직한 소리가 났는데, 하고 그녀는 다른 사람의 일처럼 생각했다.    입에서 피가 떨어진다. 몸속에서 밀려 올라와, 달아날 곳을 잃은 피가 견디지 못하고 토해져 나온다.    흐려져 가는 시선을 미약하게 내리자, 팔이 있었다.    누군가의 팔이, 자신의 가슴부터 튀어나와 있다.    기괴한 오브제군, 하고 아오자키 토우코는 생각했다. 자신의 가슴에서 남자의 굵은 팔이 뻗어나와 있다. 팔은 둥그런 심장을 쥐고 있었다. 분명, 저것은 자신의 심장이다.    결론은 곧 나왔다.    자신은 배후에 나타난 적에게 몸을 꿰뚫려, 곧 죽게 되리란 것이다─────. 「처치하려면 일격에 인가. 과연, 좋은 교훈이 되었다」    등 뒤에서 목소리가 난다.    슬픔도, 탄식도, 미움도, 섞여있는 무거운 소리.    틀림없이, 아라야 소우렌이라는 마술사의 것. 「그건────인형인가」    피를 토해내면서 토우코는 말한다. 그녀의 등 뒤에 갑자기 나타난 마술사는 물론, 하고 대답했다. 「인형 만들기로는 너를 따라갈 수 없지만, 나에게도 선도자의 업이 있다. 인형 만들기를 행한 요승(妖僧)의 이름, 모르지는 않겠지」    토우코의 몸을 뚫고, 끄집어내어진 심장을 바라보면서 마술사는 말을 잇는다. 「───그리고, 너는 진짜다. 이 심장의 힘찬 기운은 틀림없다. 아름답고, 멋진 모양이다. 부수기에는 아깝지만, 할 수 없지」    푸걱, 하고 물이 가득 찬 비닐봉지를 지면에 내던지는 듯이 무참하게, 아라야는 그녀의 심장을 쥐어 터뜨렸다. 「네가 부리던 마물의 구조도 알았다. 마물은 가방에서 나왔던 것이 아니다. 그건 가방이 비추고 있던 영상이었지?」    번뜩, 아라야가 노려보자, 바닥에 놓여져 있던 가방이 산산이 부서진다.    박살난 가방 속에는 렌즈와 필름을 갖춘 기계가 있었다. 그것은 지금도 지지지지-, 하고 소리를 내며돌아가는 하나의 영사기였다. 「그림자 그림의 마술인가. 과연, 이거라면 온갖 공격을 무효화시키겠군. 대기에 비쳐서 나타난 에텔의 몸이 부서져도 본체인 환등기계가 작동하고 있는 한 몇 번이고 되살아난다. ……더욱 아깝군. 이 정도의 재능을, 나는 뜯어내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니」    아라야의 중얼거림에 토우코는 대답하지 않는다.    사라져가기 전에 자기의 물음만을 자아내었다. 「……아라야. 이전에 했던 질문을 하지. 너는 마술사로서, 무엇을 바랬지……?」 「───나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    과거에 나누었던 같은 질문, 같은 대답.    그것에 토우코는 크큭, 하고 웃었다. 피를 흘리고 있는 입술이 장렬할 정도로 아름답다.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 과거, 그 질문을 했던 것은 토우코가 아니었다.    그녀들의 사부가, 제자들을 모아놓고 물은 것이었다.    모였던 제자들은 각자의 마술이론의 완성과 그 영광을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러나 아라야만은 이렇게 대답했던 것이다. "저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라고. 모였던 제자들은 그를 무욕(無慾)한 남자라며 웃어댔지만, 그녀는 웃는 일 따위는 할 수 없었다.    ……그때, 토우코가 느꼈던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이 마술사는 바라는 것이 없다고 대답한 것이 아니다.    아무 것도 원하지 않는 것. 이 세계에서 일절의, 자신의 존재조차 바라지 않는 것. 아라야 소우렌은 완벽한 죽음의 세계를 바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바램은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그렇게까지 인간을 혐오하고, 자기(自己)의 껍질을 만들어낸 남자. 무욕이라고 하면 무욕이겠지. 이 남자는 사소한 행복조차 필요 없다고 잘라 말하면서, 인간이라는 모순을 미워하고 있다. 「아라야. ……마지막으로 저주를 남겨 줄께」 「듣도록 하지. 서둘러라, 얼마 못 버틸테니」    자기가 죽여 놓고서 그렇게 지껄이다니, 하며 토우코는 욕설을 내뱉는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이 상황은 그의 말 대로다.    그녀의 몸은, 이미 입술밖에 만족스럽게 움직이지 않았다. 「…………아카식 레코드에 접촉하려고 하면 억지력이 발동하기 시작해. 너처럼 인간을 미워하는 자가 전능해진다면, 세계의 종말이 일어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야. 이 억지력이라는 것에는 두 종류가 있어.    한 가지는 영장인 인간이, 자신들의 세상을 존속시키고 싶다는 무의식의 집합체.    그리고 또 하나는, 이 세계 그 자체의 본능이야.    ……이 양자(兩者)는 목적은 같지만 그 성질은 미묘하게 달라. 세계 그 자체의 본능이 아카식 레코드에 접촉한 자를 처리하는 것은, 단순히 지금의 지구를 지배하는 것이 인간이기 때문에 지나지 않아. 인간의 문명사회가 붕괴한다는 것은, 이 천체의 죽음에 직결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겠지. 그렇기 때문에 세계의 의지가 만들어낸 구세주는, 영웅과 함께 인간 세계의 붕괴를 막았어」 「───그래서?」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을 말하는 토우코에게, 아라야는 눈썹을 찡그린다.    그녀는 휴우-휴우-하고 숨을 토해내면서도, 분명한 어조로 말을 계속했다. 「그러니까 말야, 별 그 자체를 생명체로 본 가이아론(論)적인 억지력과, 우리들 인간이 안고 있는 억지력은 다른 것이란 소리야. ……거기서 말인데, 아라야. 네가 평생의 적으로서 미워 해온 것은, 대체 어느 쪽인 걸까?」 ───흠, 하고 마술사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들어보니, 확실히 그렇게 보는 방법도 있다.    아라야는 지금까지 생각하지도 않았던 일을 생각한다. ……그렇다. 길게, 너무 길 정도로 신비를 공부해온 그가, 생각하려 해보지도 않았던 그 사실.    가이아론적인 억지력. 인간의 세상을 존속시키려고 하는 이것은, 그렇지만 세계가 무사하다면 인간 따위는 어찌되던 상관없다는 결론을 가진다.    그에 반해, 인간 전체가 만들어낸 억지력은 별의 생명까지 탕진해가며 인간의 세상을 존속시키려고 한다.    ……대답은, 명백하게 후자였다. 「말할 것까지도 없다. 내가 몇 번이나 싸워왔던 상념, 아라야가 적으로 간주하는 것은, 구원할 수 없는 인간의 천성이다」 「그쪽은 지구상의 모든 인간의 의식이라구. 너는 단 한 명으로 60억에 가까운 사람의 의지에게 이길 수 있다는 거야?」 「───이기겠다」    망설임도 없이, 과장도 없이, 마술사는 곧바로 대답했다. 여러 가지 인간들의 죽음을 모으며 살아왔던 지옥. 어떤 무가치한 죽음이라도, 그 인간의 역사와 그 뒤에 있었을 미래를 구상하고 자신의 것으로서 살아왔던 마술사.    토우코는 생각한다.    그것은 전 인류를 적으로 돌리더라도 이긴다는 강철같이 단련된 극한의 자아(自我)다.    그것을 아라야 소우렌은 가지고 있다. 정말로 그런가 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고 단언하는 그 의지가 진실인 것이다. 이 물음을 던졌을 때, 아라야 소우렌은 명확하게 60억이나 되는 인간의 존엄과 하나하나 싸우는 장면을 상상했음이 틀림없다.    그, 극한까지 진실에 가까운 가상을 해보고 그것이 얼마나 괴로운 것인가를 알면서도 아라야는 이기겠다고 단언한다.    이 의지의 강함이야말로, 이 마술사의 강함이었다.    그러나────그곳에, 최대의 함정이 있다.    그 정도 되는 마술사라면 제일 먼저 깨닫지 않으면 안 되는 그 사실을, 여태까지 한번도 알려주지 않았던 최대의 모순과 억지가. 「……불쌍하구나, 아라야」 「뭐──?」    아라야는 말을 걸었지만, 그녀는 이미 생명활동을 멈추고 있었다. 아오자키 토우코의 육체는 이미 사람으로서의 기능을 하지 않는다.    남겨진 사멸은 뇌수(腦髓) 뿐. 혈액이 통하지 않게 된 뇌는, 얼마 버티지 못하고 파손된다. 그녀가 축적해온 지식도 기술도 전부 잃어버린다.    검은 마술사는 토우코의 몸에서 자신의 팔을 빼내고, 그대로 그녀의 머리에 손바닥을 갖다댔다. 얼굴을 쥐고서, 빠직, 하고 목뼈를 부러뜨린다.    그 후, 찌익 하고 머리를 몸에서 잡아떼고는, 머리가 없어진 몸을 바닥에 내버렸다.    예전에 동포였던 자의 목을 한 손에 들고, 마술사는 발길을 돌린다.    나타났던 장소───토우코의 배후였던, 맨션의 벽. 토우코가 승리를 확신하고서 떨어졌던 그 벽이, 아라야 소우렌이 나타났던 장소였다.    토우코는 스스로의 입으로 말했으면서도, 그 의미를 최후까지 이해하지 못했었던 것이다.    이 맨션은 아라야 소우렌 그 자체다. 벽도 바닥도, 건물로서의 상식 같은 것은 아라야 본인에게 통용되지 않는다.    맨션내의 어떠한 장소에도 존재할 수 있고, 어떠한 공간이라도 손에 쥐고 있다. 이곳은 아라야 소우렌이란 이계(異界)인 것이다. 그는 이 부지 안이라면, 어느 곳으로도 순식간에 이동할 수 있다.    본체인 검은 마술사는 물에 잠겨 가는 것처럼 맨션의 벽 속으로 사라져 갔다. (14\) …    기억나는 것은, 단지, 온통 불타버린 들판뿐이다.    걸어도 걸어도 이어지는 시체들.    강가에 깔린 자갈은 돌이 아니라 뼛조각. 바람이 운반하는 죽음의 냄새는 온 세상을 채울 듯이 끊이지 않는다.    전란의 시대였다.    아직 병기라고 불릴 정도의 도구가 없던 시대. 손과 손으로 서로를 죽이고, 내일 없는 오늘을 살아가는 자들.    어느 곳에 가도 싸움은 있고, 사람들의 사체는 예외 없이 무참하게 내버려져 있었다.    약한 마을 사람들이 강한 무리의 인간들에게 학살되는 것은 늘 있는 일이다.    누가, 누구를 죽였는가가 문제되는 것이 아니다. 원래부터 전장에 선악은 없다. 있는 것은 몇 사람이 죽어서, 몇 사람을 구원할 수 없었는가 뿐이다.    싸움이 일어났다고 들으면, 그 곳으로 향했다.    반란이 일어났다고 들으면, 그 마을로 발을 옮겼다.    제때 도착한 적도 있고, 그렇지 못한 적도 있다.    그러나, 어느 쪽이라고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준비된 결말은 사자(死者)의 산밖에 없다.    인간은, 어찌 하지도 못하고 죽는 존재다.    원망의 말을 하면서 죽어간 남자도 있었다.    자기 아이의 내일만을 빌며 울면서 죽은 여자도 있었다.    배고프다며 웃으면서 숨을 거둔 아이도 있었다.    죽음은 불합리하게 덮쳐온다.    쌓인 선행도 살아왔던 인생도, 그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못한다.    그저 어찌하지도 못하고, 반항할 만큼 반항하고 무참하게 죽는 것만이 인간의 생(生).    그래도 그들을 구하려고 전국을 떠돌아 다녔다.    본 것은 끝없이 불타버린 초원뿐이었다.    그들은 구원할 수 없다. 인간은 구원되지 못한다. 종교로는 인간의 구제는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구원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종말을 맞게 해야 하는 것이니까.    절망을 절망으로 덮고, 어제의 한탄은 더욱 진한 오늘의 한탄으로 엷어져간다. 반복되는 압도적인 죽음의 숫자에 나는, 스스로의 무력함을 깨달았다. ───나(인간)는, 누구도 구원할 수 없다.    구하지 못할 거라면 하다못해, 그 죽음을 명확하게 기록하자. 너의 지금까지의 인생과, 그 뒤에 기다리고 있었을 인생을 새겨주겠다.    그 괴로움을, 내가 계속 살게 해 주겠다.    생명의 증거란 것은 어떻게 즐거워했는가가 아니다.    목숨의 의미란 것은 어떻게 괴로워했나, 이니까. ───죽음의 수집이, 시작되었다. …    증기의 소리와, 물이 끓는 소리 속에서 그는 눈떴다.    조명 없는 어둠 속, 맨션의 거주인들에게 둘러싸여서 아라야 소우렌은 조용히 일어선다.    잠깐, 꿈을 꾸고 있었던 것 같다. 「이 내가 꿈이라니. 황혼의 미련을 본 적은 있었지만, 자신의 미련을 눈앞에 둔 건 이번이 처음이다」    한사람, 마술사는 말한다.    아니, 그는 한사람이 아니었다. 그 주위에는 새장크기의 유리 용기가 있다. 커다란 유리의 용기 안에는 액체와……인간의 머리가 들어있었다.    머리만 남은 그것은, 자고 있는 것처럼 눈을 감고서 둥실둥실 떠있었다.    말할 것도 없이, 아오자키 토우코의 머리다.    슈우-, 하는 증기소리.    방의 중심에 놓여진 철판만이 밝게 빛난다. 새빨갛게 달궈진 철판의 조명만이, 이 마술사의 연구실을 비춰 준다.    마술사는, 그저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료우기 시키와 아오자키 토우코. 두 사람으로 인해, 지금까지 사용했던 육체는 완전히 파괴되었다.    지금, 이렇게 존재하고 있는 육체는 예비로 준비했던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익숙해지기에는 시간이 걸린다. 어차피 얼마 안 있어 료우기 시키의 육체로 이동할거라고는 하지만, 그것 때문에 잘 움직여지지 않는 몸으로 일을 그르치기라도 한다면 되 돌이킬 수 없다.    아라야는 그저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이미, 그를 위협할 존재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아라야!」    갑자기, 또 한 명의 마술사가 나타났다.    붉은 코트의 마술사는 납득이 안 간다고 말하는 것처럼 아라야에게로 바짝 다가선다. 「한가롭게 뭐하고 있는 거야. 할 일은 아직 남아 있어. 서둘러서 손을 쓰지 않으면 안 되잖아!」 「……일은 끝났다. 아오자키의 공방에 손을 댈 필요는 없어. 엔죠우 토모에도 마찬가지다. 그건 내버려둬도 아무 것도 못해. 그것은 무엇보다 네가 알고 있을 텐데」 「확실히, 슬슬 한계겠지만 말이야. ……좋아, 다른 것은 문제가 안 될 거라 인정하지. 하지만 료우기 시키는 어떻게 할거냐. 저건 지금 의식을 잃고 있는 것뿐이잖아? 눈을 뜨면 이곳에서 도망치려고 하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나는 더 이상 쓸데없는 고생을 하고 싶지 않아. 도망치려 하는 계집애를 붙잡는 것도, 더구나 계속 감시하는 일 따위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아」 「그쪽의 기우도 필요 없다. 저건 맨션의 한 방에 유폐되어있는 것이 아니다. 공간과 공간을 이은 무한 속에 가둔 것이다. 이 일그러진 이계를 만들어낸 제 1목적은, 닫힌 고리를 만들어내는 것. 어떠한 수단, 어떠한 충격을 가졌다 해도 무한의 어둠에서는 빠져나갈 수 없어. 곧 료우기 시키가 눈을 뜬다하더라도, 그것은 어떻게 하지도 못한다. 감시 따위는 불필요하다. 게다가, 그 상처로는 일어나는 것조차 곤란하겠지. 눈을 뜬다 해도 몸은 만족스럽게 움직일 수 없을 것이다」    변함없는 고민의 표정인 상태로 말하는 아라야에게, 붉은 마술사는 불만스런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뭐어 상관없어. 원래부터 료우기 시키에게는 흥미가 없었으니까. 내가 너의 제의를 받아들인 것은, 다른 목적이다」    그렇게 말하며 붉은 마술사는 흘낏 시선을 이동했다. 테이블에 놓여진 토우코의 머리가 든 유리병으로. 「약속이 틀리잖아, 아라야. 네 입으로 말했을 텐데. 아오자키를 죽여준다고. 그건 거짓말이냐?」 「기회는 양보했었다. 그러나 너는 실패했다. 내가 아오자키를 처치한 것은 어쩔 도리 없는 일이었다」 「처치했다? 웃기지마. 그 녀석은 아직 살아있어. 너 정도 되는 자가 상대를 살려두다니, 상당히 여려졌는데, 안 그래?」    붉은 마술사의 추궁에 흐음, 하며 아라야는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지금의 아오자키 토우코는 완전히는 죽은 것이 아니다.    뇌의 기능은 살아있다. 단지 말하지 못하고, 사고(思考)할 수 없는 상황일 뿐이다. 그것을 살아있다고 본다면, 분명히 살아있는 것이겠지. 「발톱을 거두지마라, 아라야. 아오자키는 상처 입은 적색(傷んだ赤色)이라고 까지 불린 암 여우다. 머리밖에 없다고 해도, 틈이 있으면 반격해와. 확실히 죽여 둬야 해」 「──멍청한 놈. 입에 담아서는 안 될 것을 말했군, 코르넬리우스」 「뭐?」    붉은 마술사는 말이 막힌다. 그것을 무시하고 아라야는 유리병에 손을 뻗었다. 「가져가라. 확실히 이것은 너의 것이다. 어떻게 취급하더라도 뭐라 하지 않겠다」    아라야는 순순히 토우코의 머리를 붉은 마술사에게 넘겼다.    새장크기의 병를 양손에 든 붉은 마술사는 당황한 것처럼 보였지만───씨익, 하고 기분 나쁜 미소를 흘린다. 「확실히 받았다. 이것으로 이제 나의 것이다. 어떻게 하더라도 상관없겠지, 아라야?」 「마음대로 해라. 어차피 너의 운명은 정해져있다」    조용하게, 그렇지만 무겁게 말하는 아라야의 목소리도 붉은 마술사에게는 전해지지 않는다.    그는 유쾌한 듯 웃음을 참으면서 만족스러운 걸음걸이로 이 방에서 떠나갔다. / 13 (모순나선, 6)    짤깍, 짤깍, 짤깍, 짤깍.    ……두통이 격해진다. 몸의 아픔도 심해져서, 여기저기에 볼트라도 박혀있는 느낌이었다.    나는 아픔을 견디면서, 무릎을 끌어안고 웅크리고 있었다.    이빨이 따닥따닥하고 떨려서, 의식이 분명해지지 않는다. 빌어먹을, 이라는 단어를 혼자서 반복하면서 의미도 없이 벽을 노려보며 존재하고 있다.    ───그로부터 얼마정도의 시간이 지난 걸까.    료우기가 아라야에게 당하고 나서 나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서있었다. 아라야는 선 채로 죽어있었다. 당연하다. 가슴과 목에 나이프를 찔렸고 목의 나이프는 깊숙이 박여있다. 살아있는 편이 이상하다.    그러나, 아라야는 살아나려고 하고 있었다. 목에 찔린 나이프가 조금씩 바깥쪽으로 움직여간다. 근육이 다시 밀어내는 것이라고 깨달을 때까지 나는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나이프는 땡그랑, 소리를 내면서 바닥에 떨어졌다. 멈춰있던 아라야의 호흡이 재개된다.    나는───그, 떨어진 나이프 소리로 겨우 뭔가를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바닥을 기는 것처럼 떨어진 나이프에 달려들어, 그것을 양손으로 단단히 쥔다. 올려다보자, 막 되살아난 아라야의 눈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분명, 나는 비명을 질렀다고 기억한다. 아라야는, 엄청나게 무서웠다. 료우기의 원수인데도 덤벼드는 것은 생각도 못하고, 나는 그저 정신없이 도망쳐 나왔다.    도망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어쨌거나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달리고, 달려서, 숨이 멎을 정도로 달려서, 나는 맨션에서 도망쳐 나왔다. 그대로 타고 왔던 바이크에 올라타고, 우선 그 탑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그리하여, 정신이 드니 이런 곳에서 떨고 있다.    아마도, 이미 주인이 돌아올 일이 없는 료우기의 아파트. 살풍경한 이 방에서, 나는 또 무릎을 끌어안고 있을 뿐이라는 거다. 「……빌어먹을」    이미 몇 천 번째의 말이 흘러나온다.    그런 것밖에, 할 수 없다.    나는, 쓰레기다.    료우기를 두고서 도망쳐 나왔다. 눈앞에서 료우기의 사체를 보았지만 죄의식도 들지 않는다. 자신이 살해당하는 악몽을 현실로서 보고 왔는데도, 아무런 느낌도 떠오르지 않는다.    적어도───그것이 무엇인 정도는 정리할 수 있을 텐데, 머리가 잘 돌아가 주지 않는다. 「……빌어먹을」    떨림이 멈추지 않아서, 다시 그런 소리를 내뱉는다.    웃음거리다.    나는, 지금까지 뭐든지 혼자서 해왔다고 말하면서도.    지금,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료우기를 구하는 일도, 할 수 없다. 「……빌어, 먹을…………!」    외쳐도 머리는 부서진 상태였다.    료우기를 구한다는 것은, 그 남자와 싸운다는 소리다. 나는 아라야의 모습을 기억해내는 것만으로 온 옴이 떨려서, 도저히 료우기를 구해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짤깍, 짤깍.    ……시계의 톱니바퀴가 돌아가는 듯한, 이상한 소리.    왼쪽 팔꿈치가 아프다. 도망칠 때 부딪힌 거겠지. 뼈가 금이 가있는 것처럼 아픔이 퍼진다.    나는, 몸과 마음 모두가 한계였다.    두통도 멈추지 않고 관절의 아픔도 사라지지 않는다.    숨을 쉬는 것조차 잘 되지 않아서 괴로웠다. 「……………………」    울었다. 울고 있었다. 무릎을 끌어안은 채, 분해서 울고 있었다. 자신이 혼자라서, 불쌍해서, 아파서, 울고 있었다.    이렇게 혼자, 우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자신이 가짜라고 뼈저리게 느꼈다. 역시 나는, 다른 녀석들과 똑같이 꾸물꾸물 남들 따라 살아갈 뿐인 가짜다. 료우기처럼 진짜가 되고 싶었지만, 가지고 태어난 속성은 속일 수 없다.    진짜……?    아아, 그래도 한번, 그런 생각이 든 때가 있었다.    그것은───그래, 바로 최근이다.    나는 무릎을 끌어안는 것을 멈추고, 침대 위에 시선을 던졌다.    그곳에 언제나 자고 있던 료우기는 없다. 그저 한 자루의 일본도만이 팽개쳐져있다.    ……살인자라고 말했던 나를 믿어줬던 여자.    ……살인자인 나를 자연스럽게 대했던 여자.    ……나를, 구해주었던 여자.    ……내가 처음으로, 같이 있고 싶다고 생각한 상대.    ───어째서 잊고 있었던 걸까.    이 마음만은, 거짓이 아니다.    나는 진심으로───그 녀석을 지켜주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나는, 무엇을」    지키려고, 지키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더라. 「────────」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한번도 나는, 자신의 목숨이 제일 소중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무언가 다른 것. 뭔가 다른 소중한 것이 있어서, 무언가에게 구해지고 싶어서, 그날, 자신의 집을 뛰쳐나왔던 거다. 「────젠장할, 정말, 계집애 같아」   “날 위해서 죽을 수 있어?”    그렇게 물어오는 료우기에게, 나는 대답하지 않았던가.    두려워할 무엇이 있다는 건가.    해야만 하는 일은 정해져있었다. 그러니까, 누가 봐도 추할 정도의 오기를 부려서라도, 나는 일어서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랬었지. 아아, 좋다구 료우기. 엔죠우 토모에는, 너를 위해서 죽어주겠어」    말하며, 나는 료우기가 남긴 나이프를 강하게 쥐었다.    그때, 방의 초인종이 울렸다.    딩동-, 하는 밝은 소리에, 나는 깜짝 놀라 몸을 움츠린다.    아라야가 쫓아온 건가, 아니면 단순한 손님일까.    료우기의 집이니까 손님이 있을 리 없다. 그렇다면 상대는 아라야패거리임이 분명하다. 나는 아무도 없는 척 하려고 했지만, 곧 생각을 바꾸었다.    ……이쪽은 각오가 되어있다. 문을 연 순간에 덤벼들어서, 료우기가 있는 곳을 불게 만든다.    나는 나이프를 쥔 채로 현관까지 가서 지금 열께요, 하고 침착하게 말한 뒤에 문을 열었다. 「누구세───」    요, 하고 말을 이으며 나는 상태를 힘껏 방안으로 끌고 들어왔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상대를 복도에 깔아 누르고 뒤꿈치로 현관을 닫는다.    상대는 불의의 기습을 당해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    나는 그 녀석 위에 올라타서, 후려치려고 했다.    가, 그만두었다.    내가 깔아뭉개고 있는 상대는 한눈에도 인축무해라고 알 수 있는, 료우기의 집에 올 손님도 아라야의 수하로도 생각 할 수 없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너, 누구야」    나의 말에 대답은 없다.    깔려있는 상대는 눈을 깜빡거리며 나를 본다.    그 녀석은 흑발에 검은 테의 안경을 한, 부드러운 눈매의 남자였다. 나이는 나보다 몇 살 위겠지. 위아래로 검은 옷을 입었지만 수상한 분위기는 전혀 없다. 「너───시키와 아는 사이냐?」 「그런데, 너는……?」    갑자기 방에 끌려 들어와서, 얻어맞기 직전까지 갔었는데, 남자는 의외로 냉정하게 되물어왔다. 「나? 나는────」    생각해보면, 나는 시키의 무엇인걸까. 할말이 떠오르지 않아서 귀찮아 졌다. 「어찌되건 뭔 상관이야, 그런게. 료우기는 부재중이야. 얼른 돌아가 줘」    누르는 것을 멈추고 일어선다.    남자는 복도에 쓰러진 채로, 가만히 나의 손을 보고 있었다. 「뭐야. 밀어서 넘어뜨린 것은 미안하지만, 너를 상대하고 있을 여유는 없어」 「그건 시키의 나이프잖아. 어째서 네가 가지고 있는 거야」    방심할 수 없을 정도로 날카롭게, 남자는 내가 들고 있던 나이프를 바라보고 있다. 「……이건 맡아둔 거야. 너하곤 상관없어」    눈을 돌리면서 대답하지만, 남자는 관계있어, 라며 중국인 같은 발음으로 대답하면서 일어섰다. 「시키는 말이지, 자신의 칼은 누구에게도 만지게 하지 않아. 그 나이프라면 더더욱. 네가 그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시키가 자신의 신조를 아주 깨끗하게 바꿔 버렸다던가───」    꾸욱, 하고 남자는 나의 옷깃을 거머쥔다. 「───네가, 시키에게서 빼앗았다던가 둘 중 하나야」    남자는 박력은 없지만, 눈을 돌리고 싶어질 정도로 올곧은 눈빛을 하고 있었다.    나는 옷깃을 쥔 남자의 팔을 뿌리친다. 「그 어느 쪽도 아냐. 이것은 시키가 잊어버린 물건이야. 그러니까……빨리, 본인에게 돌려 줄거라구」    그렇게 말하며, 나는 남자에게 등을 돌렸다. 낮 동안에 준비를 마치지 않으면 안 되니까. 「기다려. ……너는, 그들의 동료야?」    나의 등 뒤에서 남자가 물어온다. 무시할 생각이었지만, 남자의 표현은 어쩐지 신경이 쓰였다. 「그들이라니, 누구 말야」 「코가와 맨션」    짧게, 칼날처럼 예리한 목소리로 남자는 말했다.    나는 딱 멈춰서버린다. 남자는 한번 떠보는 말이었던 것이겠지만, 나는 그것에 걸려들어 버렸다. 남자는 후우, 하고 무거운 숨을 쉰다. 「……그런가. 시키는 정말로 붙잡혔구나」    그렇게 하고, 남자는 현관문에 손을 댄다.    나는 어째서인지 그 때, 추월당한다는 생각을 해버렸다. 「어이」    나도 모르게, 불러 세우고 있었다. 가만 놔두면 될 테지만, 이 남자를 혼자서 가게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고……무엇보다, 이 녀석이 같은 목적을 가진 상대라고 깨닫고 안심해버렸기 때문이었다. 「어이, 기다려!」    나는 아까까지 와는 다른 의미로, 나타난 남자를 강제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    남자는, 료우기의 고교시절부터의 친구라고 했다. 이 녀석의 자세한 이야기 따위는 지금은 흥미가 없다. 나는 료우기를 구해내는 것뿐이고, 이 녀석은 료우기를 구하고 싶은 것뿐이었으니까.    우리들은 서로에게 이름도 밝히지 않고, 서로의 정보만을 나눠가졌다.    남자의 말로는, 오늘 낮에 아르바라는 붉은 코트의 남자가 찾아와서 료우기를 납치했다고 공언한 것 같다. 나와 료우기가 맨션에 갔던 것은 어젯밤. 시간적으로는 맞고 있다.    문득 시계를 보자, 시각은 딱 오후 7시가 되려 하고 있었다. 이걸로, 그때부터 만 하루가 경과한 것이 된다.    남자는 토우코라고 하는 상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은데, 그 인물도 당해버린 것 같았다. 홀로 남겨진 남자는, 내일을 기다리지 못하고 행동을 개시했다고 한다.    나는, 어젯밤에 일어난 모든 이야기를 말했다. 맨션의 동동과 서동의 이야기. 두 개의 나의 집에 대한 이야기. 료우기가, 아라야라는 괴물에게 붙잡힌 것. ……내가, 부모를 죽이고 거리를 헤메이던 때에 료우기와 만난 것.    남자는 진지하게 나의 말을 듣고 있다.    그 괴이(怪異)의 중심에 있던 나조차도, 이렇게 설명하면 거짓말처럼 생각되는데, 이 녀석은 의심하지 않고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래서, 너는 어떻게 생각해」    나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심각한 얼굴을 하고 남자는 물어왔다. 「생각할게 뭐가 있냐. 료우기는 지금도 그 맨션의 어딘가에 있어. 구해내는 것 말고 뭐가 있는데?」 「그런 말이 아니야. 내가 말하고 있는 것은 너의 부모님에 대해서야. 너는 어느 쪽이 진짜라고 생각하고 있지?」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것을, 남자는 아주 걱정스러운 눈을 하고 말한다.    나의 부모───내가 죽였던 엔죠우 토모에를 키운 부모. 「……그런거, 지금은 관계없잖아. 나중에 해」 「관계있어. 토우코씨의 말에 따르면, 그 맨션은 작위적(作爲的)으로 정신이상을 일으키기 쉽게 건축되었대. 집단 자살한 가정이 있다면, 그 책임은 가정이 아니라 그 맨션을 만든 사람에게 있겠지. 너도 마찬가지야. 너는 살해당하는 꿈을 꾸었기 때문에 불안해져서 부모를 죽여 버렸다고 말했어. 하지만, 그것은 너 본인의 의사였던 걸까? 너는 정말로 부모님을 죽인 걸까? 네가 일을 저질렀을 때, 이미 아주 오래 전에 부모님은 죽어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남자는 무언가에 사무치는 듯한 눈매로 이쪽을 본다.    이 녀석의 시선은, 예리하지는 않다. 그런데도 마음 속 까지 들어올 것 같은 힘이 있다. 료우기와는 전혀 정반대의, 진실의 폭로법이다.    ……나도 그 모순은 눈치 채고 있었다. 아니, 이미 마음의 어딘 가에서는 알고 있다. 내가 이 손으로 죽인 부모의 정체를. 하지만 그렇게 되면, 단 한 가지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이 떠올라버린다. 나는, 그것을 부정할 수밖에 없다. 「……죽였다구. 그것만은 진짜야. 지금도 어머니를 찔렀을 때의 감촉은 손에 남아있어. 분명히 나는, 한 달 전에 부모를 내 손으로 죽였어. 변명할 여지가 없어」 「아버지는 어떻게 된 거야. 아까부터 네 말에는 어머니라는 단어뿐이고 아버지란 단어가 빠져있어. 네가 죽인 것은 어머니 뿐인지도 몰라」 「끈질기네. 아버지도 죽었어. 사체를 봤으니까 틀림 없…………」    말하다가, 깨달았다.    분명히────아버지의 사체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저질렀던 것일까? 어머니를 죽일 때 까지는 기억하고 있지만, 아버지를 어떻게 죽였는지 따위, 나는 전혀 기억하고 있지 않았다.    아버지는, 이미 어머니에 의해서 죽어있었으니까.    반년전의 부모의 유체(遺體). 아마, 오늘밤에도 어머니에 의해서 죽음에 이를 엔죠우가(家)의 인간.    내가 죽인 부모는, 나를 매일 저녁마다 죽인 부모다.    그 꿈은 현실이었다.    나는 꿈에서 도망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현실에서 도망치기 위해서, 오히려 이 손으로──    짤깍, 하고 톱니바퀴 소리가 난다. 「───시끄러. 부모님의 일 따위는 아무래도 좋아. 나는 료우기를 구하는 것뿐이야. 그 이외의 일은 몰라」    그렇다, 지금은 그것만이 나의 진실이다. 그 이외의 일 따위 생각할 여유도 의미도 없다. 「그래서, 너에게 생각은 있는 거야? 혼자서 구할 생각이었다면, 무언가 생각이 있었던 거 아냐?」    노려보면서 말하자 남자는 아아, 하고 별로 의욕 없는 태도로 끄덕였다. 「생각 만이라면 딱 하나 있어. 그렇지만, 너의 말을 듣고서 생각이 바뀌었어. 그건 우리들의 손에서 끝낼 수 있는 얘기가 아니야. 경찰에게 맡겨야할 일이 아닐까?」    얌전한 얼굴로 남자는 가만히 말한다.    ……이 자식, 이제 와서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녀석들이 도움이 되겠냐. 「그거, 진심으로 말하는 거야?」    남자는 설마, 라고 말하는 것처럼 어깨를 늘어뜨리면서 고개를 옆으로 흔들었다. 「진심은 아니지만, 그런 판단도 필요했다는 얘기. 내가 봐도 너는 너무 생각에 빠져있어. 시키는 소중하지만, 그것과는 다른 문제로서 자신의 목숨은 소중히 하지 않으면 안돼」 「시끄러, 네가 내 기분을 알 리가 있냐……! 나에게는 아무 것도 없다구. 아무도 지켜주지 않았고, 아무도 지켜주지 못했어. 하다못해, 하다못해 료우기를 구하는 것 정도밖에, 나에게는 남아있지 않아. 그 녀석을 위해서 죽어준다고 맹세를 할 정도로, 아무 것도─────!」    거기까지 말하다가, 가슴이 메였다.    알아버렸다. 그날 밤과 마찬가지다. 나는, 료우기를 구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료우기를 구하는 일로 죽고 싶은 것이다.    지금은 이미, 너무나 괴로워서 살고 싶지 않다.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았으니까, 살아갈 의미조차 없다. 그렇지만 무가치한 죽음은 싫다. 그렇다면───료우기를 위해 목숨을 걸고 죽으면, 그것은 아주 의미 있는 일이다. 자기가 반한 여자를 위해서 죽는다니, 나에게는 충분하고도 남으니까.    ……이 남자는, 나의 본심을 알아차렸기 때문에, 저렇게 애처로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이다. 「───너는, 몰라」    나로서는, 그렇게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남자는 조용히 일어선다. 「알았어. 우리들만으로 시키를 구하러가자. 그렇지만, 그 전에 들릴 곳이 있어. 같이 가줘야겠어, 엔죠우 토모에」    아직 알려주지도 않은 나의 이름을 말하며, 남자는 밤의 거리로 걸어 나갔다.    남자의 뒤를 따라 전철에 탔다.    목적인 맨션과는 전혀 방향이 틀린 전철에 타고, 모르는 역에 다다랐다.    그 마을은, 도심의 시끄러움과는 거리가 먼 조용한 주택가였다. 역 앞에 로터리 같은 것은 없고, 작은 편의점이 두 개뿐인 적적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쪽이야」    남자는 역 앞의 안내도를 재빠르게 읽고서 걷기 시작했다.    몇 분 정도 걸으니, 주위에는 저녁식사를 끝내고 조용해진 집들밖에 없었다. 길은 어둡고, 가로등의 조명이 못미덥게 앞길을 밝히고 있다.    좁은 길. 좁은 육교. 쓰레기장에는 들개가 노숙자처럼 진을 치고 있어서, 아무리 봐도 세련됨이 없다.    남자는, 이 마을에 처음 온 것 같았다.    처음에는 료우기를 구하기 위한 준비를 위해서인가하고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그것은 아닌 것 같다.    나는 말없이 걸어가는 남자를 쫓아가면서, 점점 초조함이 커간다. 우리들은 이런 곳에서 산책이나 할 정도의 여유는 없다. 「어이, 적당히 해. 어디에 갈 생각이야, 너」 「얼마 안 남았어. 봐, 저쪽의 공원. 옆에 들판이 있잖아. 그 옆에」    남자의 뒤를 따라, 그 공원을 지나친다.    밤의 공원에 사람은 없다. 아니, 게다가 이런 공원은 한낮이라도 사람은 없겠지. 작고, 그저 땅을 평평하게 만든 것뿐인 볼품없는 놀이터다. 미끄럼틀도 정글짐도 없다. 구색을 맞추기 위한 철봉은 붉게 녹이 슬어서, 이미 몇 년이나 쓰이지 않은 것 같다. 「────에」    문득, 뇌리에 무언가가 스쳤다. 나는……분명히, 이 공원을 알고 있다. 어렸을 적, 이미 기억하는 것도, 기억 해낼 필요도 없을 정도로 어렸을 무렵, 이곳에서 논 기억이 있는 것이다.    멍하니 서서, 공원을 바라보고 있자, 남자는 이미 저편까지 가버렸다.    공원 옆에 있는 들판에서 더욱 떨어진 외딴집 앞에 멈춰서있다. 나는 남자에게로 종종걸음으로 다가간다.    남자는 말없이 그 집을 보고 있었다. 내가 다가가자, 그대로 나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아주 슬퍼 보이는 눈이었다.    나는 그 눈동자에 재촉 당하듯 아까까지 남자가 보고 있던 것으로 얼굴을 향했다.    ───아찔, 했다.    ………집이 있다. 단층건물의, 작은 집이다.    문은 반 이상이 썩어문드러졌고, 정원은 엉망이 되어 있다. 길게 자란 잡초 따위가 집의 벽까지 침식하고 있었다. 벽은 여기저기 칠이 벗겨지고 떨어져나가서, 집이라기보다는 지쳐서 쓰러진 노인 같았다.    사람이 살지 않게 된 이후로 얼마나 지났던 것일까? 이미 이것은 집이 아니라 단지 폐허에 지나지 않았다. 「…………………………」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나는 집어삼킬 듯이 폐허를 바라보면서, 나도 모르게 울고 있었다.    슬프지도 분하지도 않은데, 그저, 눈물이 계속 흘러넘쳤다.    나는 이런 것은 모른다. 본 적도 없다.    하지만, 혼이 기억하고 있다. 분명 엔죠우 토모에가 잃어버리게 하지 않는다.    어른이 된 내가 버리려 해도 토모에는 계속 이 장소를 기억하고 있었다.    ────나의, 집────.    내가 8살 무렵까지 살고 있었던 장소. 아주 옛날에 잊어버렸던 추억의 나날.   “엔죠우, 너의 집은 어디야?”    그 질문에 대답하자, 소녀는 신경질적인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걸 말하는 게 아니야. 네가 돌아가고 싶어 하는 집을 말하는 거야. 모른다면 됐어”    ……이걸 말하는 거였나, 료우기.    하지만 이제 와서, 이런 곳에 무엇이 있다는 건가. 무너지고, 부서져서 형체도 없어진 폐허에 볼일은 없다.    집에는 괴로운 기억뿐이다. 일할 수 없게 되어서 나에게 분풀이를 하는 아버지는, 집안에서는 폭군이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말하는 대로 네네 밖에 할 줄 모르는 멍텅구리.    만족스러운 식사도 따뜻한 옷도 나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다.    나에게 있어서, 부모라는 것은 단지 골칫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나에게는 부모님이 죽어있는 일 보다, 료우기가 중요하다.    분명,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나는 이렇게나 울고 있는 걸까.    부모님의 백골을 보았던 때도 그랬다. 무언가가 저려서 움직일 수 없게 된다. 소중한 것을 잊어버려서 안타까워진다. 「……뭐야, 이건」    중얼거리면서, 나는 폐허의 정원을 헤치고 들어갔다.    정원은 좁다. 일가 3명이 살기에는 딱 알맞았었겠지만, 지금의 나는 이미 어른이다. 어렸을 적보다 정원은 옹색하게 느껴졌다.    ……기억하고 있다, 이 정원을.    행복하게 웃으며,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억센 아버지의 팔을.    행복하게 미소 지으며, 나를 보고 있었던 상냥한 어머니의 모습을.    믿을 수 없다. 그런 꿈같은 행복한 나날이 나에게도 있었던 걸까. 그런 당연한 행복을, 나는 가지고 있었다는 걸까.   “───토모에”    목소리가 들렸다. 되돌아보자, 날카롭고 사나운 얼굴을 한 청년이 있었다.   “중요한 것을 맡길 테니까, 이쪽으로 와라”    청년의 발치로, 작은 꼬마애가 달려간다.    붉은 곱슬머리를 한, 소녀 같은 애였다.   “아빠, 이거, 뭐에요?”   “집의 열쇠야. 잊어버리지 말고 잘 가지고 있어. 토모에도 남자니까, 그걸로 엄마를 지키는 거라구”   “열쇠로 지키는 거에요?”   “그래. 집의 열쇠는 가족을 지키는 소중한 물건이야. 확실히 문단속을 할 수 있고, 아빠나 엄마가 집을 비워도 괜찮잖아? 열쇠는 가족은 증거란다”    ……아직 어린아이가, 아버지의 말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을까.    그래도 단단히 열쇠를 움켜쥐고, 아이는 고개를 들면서 대답했다.   “응, 알았어요. 잘 가지고 있을게요. 안심해요 아빠. 제가 집을 지킬게요. 혼자서도, 잘 할 수 있으니까────”    덜컥, 하고 다리가 풀려서, 나는 마당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일어서려고 해도, 잘 일어설 수 가 없다.    과거의 추억이 선명하게 새겨져 버려서, 지금의 육체를 잘 움직일 수 없었다.    ……그랬다. 나에게 있어서 집의 열쇠란 것은, 가족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가족의 증거인 보물 같은 물건이었던 것이다.    그 가족은 부서져서, 옛 흔적은 티끌만큼도 남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저주했고, 이 현실이 너무나 힘겨워서 옛날의 일 따위는 잊어버렸다.    ……옛날. 아직 가족이 평화스러웠던 시절의 기억. 다정한 어머니. 자랑스러운 아버지. 자신의 아이의 성장을 제일로 하고 있었던 부모. 그것은 진짜였다. 세월이 흘러서, 그것을 잃어버린 것 정도로 가짜라고 단정한 자신이 바보였었다.    부모님은, 이렇게도 다정했었는데.    세상(내일)은, 이렇게도 빛나 보이고 있었는데.    나는 현재밖에 보지 못하고, 부모님에게 구제불능이란 평가를 내리고 격리했었다.    도움을 청하는 목소리를 무시하고, 나는 그들에게 비수를 꽂았다.    모든 것은───영원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걸까.    아냐. 영원을 바라는 것이 잘못된 일이다. 부모의 마음은 진심이었다. 그것을 잊고서───나는 진짜 피해자를 가해자로 생각하고 도망치고 있었다.    ……주위에서 박해를 받아서,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 없었던 아버지.    아르바이트 직장에서 험담을 들으면서도, 참고 일하고 있던 어머니.    그 두 사람에게 있어서, 나만이 구원이었다.    내가 일을 끝내고 돌아오면 항상 어머니가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뭔가 말을 하려고 하고 있었지만, 나는 부모님의 말 따위는 듣고 싶지도 않다고 말하듯 계속 등을 돌렸다. 괴로운 것은 나만이 아니었는데도. 어머니는 나 이상으로 괴로웠을 텐데.    말상대도 없이 아버지에게 얻어맞으며 묵묵히 일하고 있던 어머니.    그녀의 마음이 부서진 것은 당연하다. 내가, 내가 단 한번만이라도 돌아보았더라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정말───바보야」    눈물이 멈추지 않아, 나는 얼굴을 감싼다.    부모님을 죽인 것이 꿈 탓이라던가 맨션의 탓이라던가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나쁜 것은 나다.    피해자는 어머니였는데. 나는 오히려 그것을 비난하면서 돌아보지도 않았다. 부모님을 죽인 것은 나다. 나는 무엇보다 그들을 구하지 않으면 안 되었는데.    그 보상을, 지금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주저앉은 채로, 마당의 흙을 강하게 움켜쥔다.    눈물은 멎어있었다.    울고 있던 것은, 그렇다. 아까처럼 분해서 울고 있던 것이 아니다.    슬프기 때문에────부모님이 죽어버렸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너무나도 무거워서, 나는 눈물을 흘렸다. 처음으로……부모님이 죽고 나서 반년이나 지나고 나서 겨우 흘린, 이별의 의식.    하지만 그것도 여기까지다. 언제까지고, 이런 곳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바람은 멎었고, 신호도 울렸다.    자아──슬슬 진짜로 달리지 않으면──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남자는 계속 나의 등 뒤에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마당에 쭈그리고 있는 나를 보고 있을 뿐이다.    인정하기는 힘들었지만, 분명 나는 이곳에 오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하지만 우는 얼굴 따위를 보인 나는, 도무지 솔직해 질 수 없었다. ……아니, 확실히 이 상대에게 나는 마지막까지 억지를 부리겠지. 왜냐하면 나는 연적(戀敵)과 친해질 생각 따위는 없으니까. 「젠장, 만족하냐」    돌아보지 않고 욕설을 내뱉는다.    남자는, 괴로운 듯 끄덕였다. 「……미안해. 나는 너의 불행을 알고 있지만, 아무런 말도 떠오르지 않아」    아아, 그렇겠지. 나의 아픔을 아는 것은 나뿐이다.    동정해주는 척 하며, 타인에게 아픔을 해설하는 짓거리는 질색이다. 그 점으로 말하면, 이 녀석은 아주 기분 좋은 소리를 한다. 「나는 행복한 집에서 태어나서 행복하게 자란 인간이야. 그러니까, 아무 말도 할 수 없어」    ……아아, 이 녀석은 좋은 녀석이다.    지금의 나를 상대로는, 위로의 말조차 거짓말이 되어버린다. 사람의 동정은 싫지만, 사람의 동정을 거절한 댓가는 결국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이 녀석은 나에게 그런 기분 나쁜 감정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체엣. 알고 있으면 조용히 있으라고, 멍청아」 「하지만 말하지 않으면 모르잖아. 지금까지 몇 번째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면──지금의 너에게 제일 소중한 것은 너 자신이야. 그것을 소홀히 하는 행동은 분명 잘못되어있어」    달빛아래, 남자는 그런 말을 했다.    다른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은 자기 자신.    사람을 속이면서까지 지키려는 것은, 엔죠우 토모에라는 이 목숨.    ───아아, 아마도 그것이 제일 순수한 진실. 가짜가 아닌, 꾸밈없는, 드러난 본성이다.    그것을 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분명 자신이 약하기 때문이고. 료우기를 위해서 죽어준다고 말했던 그날 밤, 시키가 나를 멸시한 것은 그것 때문이다.    ……대단한 일이다. 이렇게도 다른 타입의 인간이, 결국은 같은 것을 나에게 일러주고 있었으니까.    쭈그린 채로, 나는 쿡쿡 웃었다.    그곳에, 남자의 손이 뻗어온다. 「혼자서 일어날 수 없다면, 손을 빌려줄게」    ……나는 그것을 눈부신 듯이 바라보다가, 천천히, 뿌리쳤다. 몸 안의 관절이 지끈지끈 비명을 질렀지만, 이것은 내가 죽을 때까지 관철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의지인 것이다.    엔죠우 토모에는 일어났다. 「쓸데없는 참견 마. 언제나 나는 혼자서 해왔으니까」    그것도, 독선적인 결심이었지만.    남자는 아아, 하고 쌀쌀맞게 웃는다. 「응. 너라면 그렇게 대답할거라 생각 했어」    그것은 이상하게도, 이쪽도 같이 웃게 만드는 웃음이었다. ◇    남자가 세운 계획은 단순했다.    료우기는 맨션의 서동 10층의 어딘가에 갇혀 있다고 한다. 정면의 로비로 들어가서 엘리베이터에 탄다 해도, 곧 상대에게 들켜버리겠지. 거기서, 남자는 자신이 미끼가 되겠다며 나에게 료우기를 구하는 역할을 맡겼다.    그 맨션의 거주자인 내가 돌아다니는 것 보다, 외부인인 남자가 돌아다니는 편이 아라야 패거리들의 주의를 끈다, 라고 남자는 확신 있는 듯이 말했다. 「하지만 말야, 나도 결국은 들켜버리지 않겠어?」 「너는 지하로부터 침입해 줘. 이거, 그 맨션의 약식도야. 지하 주차장이 있잖아. 맨션에서 떨어진 맨홀부터 하수구로 들어가면, 그곳에서 안으로 잠입할 수 있어. 그 맨션, 지하주차장은 안 쓰고 않잖아?」    남자의 말은 하나하나 일리가 있었다. 이 녀석의 말대로 그 맨션의 지하주차장은 개방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도 B버튼이 있기는 하지만, 지하로는 가지 않는다. 「아마도, 그곳이 적의 공방이라고 생각해. 지하주차장이라니, 잘 생각한거지. 그곳이라면 소리도 밖으로 새어나오지 않을 테고, 전혀 수상하지 않아」    그렇게 말하면서 남자는, 하수구로부터 주차장까지 올라갈 때 사용하라며 재키와 드라이버 따위가 들어있는 가죽 주머니를 안겨 주었다.    남자가 운전하는 차는 그렇게 해서 맨션이 있는 매립지구에 도착했다.    우리들은 맨션에서 1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도로에 차를 세우고, 내린다.    시각은 오후10시. 인적은 거의 없다. 「자, 저곳이 맨홀. 거기에서 서쪽으로 난 하수구로 가서, 7번째의 맨홀이 주차장이야」 「정말, 간단하게 설명해주네」    투덜대면서, 나는 준비물을 정리한다.    공구가 들어간 가죽주머니에, 료우기가 남긴 나이프.    그것과……만일을 위해서, 료우기의 방에서 일본도를 빌려왔다. 아라야에게 들켰을 때, 무기는 많을수록 좋으니까. 「그러면 시계는 맞춰뒀지. 반이 되면 맨션으로 들어갈 테니까, 너도 그 시간에 맞춰서 주차장으로 침입하도록 해」    남자는 익숙한 느낌으로 그런 지시를 한다.    나는, 겸사겸사 궁금했던 것을 묻기로 했다. 「……나는 이런 것에는 익숙하지만, 너는 어째서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 료우기를 위해서야?」    나의 질문에 남자는 곤란한 듯한 표정을 지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 「어이. 죽을지도 모른다구. 무섭다던가 하는 생각 들지 않아?」 「당연히 무서워. 원래, 나는 이런 역할이 아니니까 말야」    눈을 감고서 남자는 말한다. 마치 자기 자신에게 들려주고 있는 듯한, 조용한 말투였다. 「나 자신도 놀라고 있어. 이건 나에게 있어서는 엄청난 모험이야. ……하지만, 얼마 전에 말야, 미래시(未來視)라 하는 얼마 후의 현실을 보는 아이와 알게 되었는데」 「하?」……갑자기, 알 수 없는 소리를 한다. 「그 애의 말로는, 시키와 관계하고 있으면 목숨을 걸어야하는 위험한 일과 만나게 된다고 하더라구」    남자는 진심으로 말하고 있다. 나는 대꾸해 주기로 했다. 「아아, 그거라면 지금이야, 분명. 그래서 결과는 어떻게 된대?」    남자는 고개를 저으면서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어떻게 되던───죽는 일은 없대」    그것이 무리를 하는 이유야. 라고 남자는 덧붙였다.    정말로 애매한, 그러면서도 이 녀석다운 이유를 듣고, 나는 짐을 등에 메었다.    이렇게 일상 속에 있는 것은 즐거워서 좋지만.    ……정말로, 슬슬 달려 나가지 않으면 안 되니까. 「고맙다는 인사는 해두지. 근데, 맞아. 아직 서로의 이름을 알려주지 않았네. 나는 엔죠우 토모에. 너는?」    ……상대가 내 이름을 알고 있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나는 일부러 자신의 이름을 다시 이야기했다.    남자는 코쿠토 미키야라는 이름이었다. ……언젠가 료우기가 말했던 이름이구나, 하고 납득한다. 「그래. 정말로, 어딘가의 시인 같은 이름인걸, 너는」    그리고, 나는 남자의 손을 잡고서 열쇠를 쥐어주었다.    이미 나에게는 필요 없는, 료우기의 집의 열쇠. ────아주 옛날.    보물이라고 생각했던, 작디작은 금속조각. 「이건?」 「괜찮으니까 가져. 이제부터는, 네가 지키지 않으면 안 되니까 말야」    나는 멋지게 웃으려고 노력했다.    잘 웃었는지는 모르겠다. 「일이 끝나면, 우리들은 두 번 다시 만나지 않는 편이 좋아. 찾는 일도 없어. 같은 여자에게 반한 사이니, 깨끗하게 헤어지자구」    어째서? 라고 묻다가, 남자는 얼굴을 찡그려버렸다.    ……팟 하고 고개를 돌리며 나를 보는 것을 보니, 둔해 보이는 이 남자는 눈치가 빠른 것 같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정말로 순식간에 이해했으니까. 「그런 거야. 나는 너 같은 녀석은 몰라. 그러니까 너도 나에 대한 일 따위는 신경 쓰지 마. 어느 쪽의 책임으로 어느 쪽이 죽어버렸다, 따위는 뒷맛이 나빠지잖아. 그러니까───이젠 만나지 말기로 약속하는 편이 좋아」    그리고, 나는 한발 내딛었다.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를 바라본다.    달리기 시작하면서, 안녕하고 손을 흔들었다. 「그럼, 잘 있어! 전부 끝나면, 나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거야. 료우기는 좋아하지만, 그 녀석에게는 내가 필요 없어. ……나에게는 말야, 료우기에게서 같은 것을 보고 안심하고 있었던 것뿐이었으니까. 나나 그 녀석 같은 인간에게는, 너같이 어이없을 정도로 해가 없는 녀석이 어울려────」    그렇게 말하고, 달렸다.    두 번 다시, 뒤는 돌아보지 않았다. / 14    인기척이 없는, 기계가 생활하고 있는 듯한 맨션에, 코쿠토 미키야는 발을 들였다.    풀냄새를 느끼게 하지 않는 정원을 빠져나와, 인공의 빛에 가득 찬 로비로 들어간다.    로비에는 소리조차 없다.    크림색으로 통일된 로비는, 단지 정결할 뿐이었다. 전등의 빛은 반사되지 않고 바닥과 벽에 빨려 들어가, 이곳에는 명암이라는 것이 없다.    낮에 왔었을 때───이 맨션에는 미지근한 오한이 가득차있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다르다. 밤중에 찾아온 지금, 이 이계(異界)에 충만한 것은 숨 막힐 정도의 정적이었다.    발소리는 작게 울리다가 1초도 견디지 못하고 말살되어간다.    차갑다. 공기조차 역할이 딱 정해져있는 것 같아서, 한발 내딛을 때마다 숨이 막힌다.    코쿠토 미키야는 자신이 이 이계(異界)에 있어서 완전한 이단자라고 통감한다.    그래도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다. 물을 밀어 헤쳐 가듯 미키야는 조용하게 로비를 나아간다. 「우선 3층부터인가」    계단은 사용하지 않고, 엘리베이터로 올라가려고 생각했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다.    커다란 기동음이 나며, 5층부터 엘리베이터가 내려왔다.    문이, 소리도 내지 않고 열려간다. 「────에」    그곳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순식간에 이해하지 못하고, 미키야는 숨을 삼키며 약간 뒤로 물러섰다. 「야아, 왔구나. 딱 좋은데, 이제부터 가려고 생각하고 있었어」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던 붉은 코트의 청년이, 웃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미키야는 목까지 밀려올라오는 구역질을 한 손으로 필사적으로 억누른다. 두려워하듯, 몇 발짝 비틀비틀 뒤로 물러서며, 울 것 같은 얼굴로, 청년을 바라보았다. 보지 않으면 된다고 알고 있었지만, 도무지 그것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잘 만들었지? 나도 마음에 들었어, 정말이야」    즐거운 듯 웃으며, 청년은 한 손에 든 그것을 앞으로 내민다.    미키야가 도저히 눈을 뗄 수 없었던 그것.    붉은 코트의 청년은, 한쪽 손에 아오자키 토우코의 목을 들고 있었다. ◇    토우코의 목은, 아주 잘 만들어져있었다.    생전과 전혀 바뀐 곳 없는 색깔과 질감. 자고 있는 것처럼 눈을 감은 얼굴은, 한 폭의 그림같이 아름답다.    그녀는, 정말로 그대로였다. 단 한 가지, 머리부터 아래가 없다는 것 뿐. 「아─────」    입을 한 손으로 누르며, 미키야는 구토감을 필사적으로 참고 있다. 아니, 이미 그런 것밖에 할 수 없었다. 그저 서서, 자신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려는 것들을 막고 있는 것밖에 할 수 없다. 「사부의 복수를 하러 온 것이겠지? 기특한 마음가짐이야, 아오자키는 좋은 제자를 가지고 있군. 정말 부러워」    붉은 코트의 청년이 엘리베이터에서 나온다. 청년의 얼굴은 일그러져 있어서, 거짓웃음이 붙어있는 것 같았다. 「보는 대로, 너의 사부는 죽어버렸어. 하지만 아직 완전히 죽은 것이 아니야. 의식은 있어. 외부의 소리를 듣고, 그것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기능은 남아있지. 자비(慈悲)야, 자비. 그녀에겐 여러 가지로 애를 먹었지만, 죽은 자를 대하는 예절은 어느 정도 알고 있다구. 그녀는 조금 더 살아줬으면 하고 생각하고 있어」    붉은, 피 같은 진홍을 입고서 청년은 미키야에게 조금씩 다가갔다. 유혹에 견디며 움직이지 않는 성직자를 계속 꾀면서 접근하는 악마처럼 자연스럽게. 「무엇 때문에, 냐고? 간단해, 이것만으로는 나의 기분이 풀리지 않는 것뿐이야. 그냥 죽이는 것만으로는 내가 오랫동안 받아왔던 굴욕의 보상도 되지 않아. 그녀에게는 좀더, 고통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지 않으면 안 되겠지. 아아, 아니아니, 그래서는 오해해 버릴까. 저기 말야, 고통이라는 것도 보통 말하는 아픔을 느껴줬으면 하는 게 아니야. 왜냐하면. 생각해 봐. 머리만 남은 상대에게 육체의 상처 따위는 대단치 않은 문제잖아?」    말하면서, 청년은 손에 든 머리에 손가락을 뻗는다. 그대로 숨이 끊어져 있는 양 눈에 손가락을 찔러 넣고, 생생한 피와 함께 안구를 끄집어냈다.    폭포 같은 눈물이, 피가 되어 그녀의 볼을 흘러간다.    피투성이가 된 안구는, 생전의 그녀의 눈동자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그곳에 있는 것은 그저 둥그런 고깃덩이에 지나지 않는다.    청년은, 움직이지 않는 미키야에게 그것을 건넸다. 「봐, 이런 것 가지고 아오자키는 신음소리하나 내지 않아! 하지만 안심해. 통각은 멀쩡하니까. 아오자키는 참을성이 강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눈이 뽑히는 것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아플까 아플까, 울어버릴 정도로 아플까아! 너는 어떻게 생각해? 제자니까, 사부의 기분정도는 알겠지?」    미키야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의 신경은 끊기기 직전까지 가버려서, 무언가를 생각할 여유 따위는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붉은 코트의 청년은, 그것을 만족스럽게 바라본다. 「하하───하지만 뭐어, 분명 대단치 않은 아픔이겠지. 게다가 정직하게 말해서, 나는 아프게 하기보다는 분노를 느끼게 만들고 싶어. 이렇게 머리만 남은 것도, 아오자키로서는 참기 힘든 굴욕이겠지. 하지만 나라면 좀더 한 단계 높은 굴욕을 준비 할 수 있어. 그것 때문에 네가 필요했지. 너. 자신이 돌보며 기른 것을 남이 망가뜨린다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알아? 그것도 눈앞에서, 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무력한 자기 자신을 실감하면서 말이야. 후후, 나라면 견딜 수 없을 거야. 망가뜨린 자를 죽이더라도 분이 풀리지 않을 테지. 알겠어? 나를 무시해온 이 여자가 나를 죽이고 싶다고 느낄 정도로 미워하는 거라고. 훌륭해, 이 이상의 복수가 어디에 있겠어. 직접 죽이는 것은 아라야가 가로채갔지만, 이것만은 양보할 수 없어」    붉은 코트의 청년은, 눈썹하나 꿈쩍하지 않으며 그녀의 머리에 말을 걸다가───갑자기, 피눈물을 흘리는 머리를 양손으로 쥐었다. 「아오자키에게 제자가 있다고 알았을 때, 나는 기뻐서 참을 수 없었어. 그때부터, 나는 너를 예의주시하고 있었지. 원망할 거라면 내가 아니라 네 사부를 저주 하라구. 아, 안심해, 너만을 지옥으로 떨어뜨리는 짓은 안 하니까. ───이 머리. 이렇게 되었어도 그녀는 살아있다고 말했지? 하지만」    청년은 씨익 웃으면서 바이스를 조이듯 두 손으로 머리를 짓눌러 으깨버렸다.    사과나 무언가처럼 아오자키 토우코였던 것이 부서져서 바닥에 떨어진다. 「자, 이걸로 죽었어」    로비를 가득채워 버릴 기세로 청년은 웃기 시작한다.    미키야는 소리도 내지 못하고 달리기 시작했다. 눈앞에서 토우코였던 것이 고깃덩어리로 바뀐 광경이, 간신히 남아있던 이성을 끊어지게 만든 것이었다.    미키야는 밖이 아니라 동동의 로비로 달려간다. 그곳이 막다른 곳이란 것도 지금의 그에게는 떠오르지 않았다.    다만───비명을 지르지 않은 만큼, 그는 훌륭했다고 말할 수 있겠지. 「그러면, 막이 올랐군. 기다려라, 곧 뒤를 따라가 주지」    청년은 큰 웃음을 멈추고 천천히 그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피투성이인 양손을 그대로 둔 채로 바닥에 붉은 방울을 떨어뜨리면서. ◇    지하의 하수도는 미로 같았다.    조명 같은 것은 당연히 없고, 오수(汚水)가 흐르는 소리만이 시간의 경과를 느끼게 한다.    그래도 토모에는 미키야가 준비한 하수도의 약도를 한 손에 들고, 목적한 위치에 다다랐다.    천장으로 통하는 작은 구멍. 켜졌던 회중전등을 끄고, 벽에 만들어진 사다리를 올라간다.    몇 미터나 올라가자 천장에 닿았다. 천장이 되는 뚜껑으로 덮인 맨홀 틈새에 드라이버를 끼워 넣고, 커진 틈새에 스패너를 밀어 넣는다. 다음에는 그대로 있는 힘껏 뚜껑을 밀어 올렸다.    땡그렁, 하고 둥근 철의 뚜껑이 바닥에 구르는 소리가 난다.    어두워서 지하주차장의 상황은 전혀 알 수 없다.    토모에는 공구를 넣은 주머니를 먼저 주차장으로 던지고, 시키의 나이프와 칼을 쥐고서 사다리를 올라갔다. 「………………」    주차장에는 조명이 없어서, 토모에는 조용히 주위를 둘러본다.    ……뭔가, 이상한 기분이었다.    숨어들었는데도, 발견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전혀 없다.    지하주차장이 어느 정도의 넓이인걸까, 토모에에게는 짐작도 가지 않는다. 조명도 없고, 그저 증기 소리만이 들릴 뿐이라, 넓은지 좁은지도 알 수 없었다. 「증기, 소리……?」    중얼거리곤, 토모에는 아찔하고 현기증을 느꼈다.    이 어둠. 이 공간의 냄새를 토모에는 알고 있었다.    아니, 알고 있던 것이 아니다. 지금도, 몸으로 느끼고 있다. ───나는…………돌아왔다…………?    부들부들 몸이 떨린다.    짤깍짤짝하는 이상한 소리가, 뇌수 속을 헤집고 다닌다.    엔죠우 토모에는, 자신도 모르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불빛이 없어, 방은 어둡다.    이곳은, 뜨겁다.    단지 철판이 가열되는 소리와, 그 마그마 같은 빛만이 유일한 조명이었다.    주위의 벽에 커다란 병이 늘어서있다.    바닥에는 가늘고 긴 튜브가 흩어져있다.    아무도 없다. 그저 증기소리와, 물이 끓는 소리만을…………………………………………………………………………… …………………………………………………………………………………………………………………………………………… …………………………………………………………………………………………………………언제나, 그는 느끼고 있었다. 「──────」    엔죠우 토모에는 소리도 내지 않고 걷기 시작했다.    몸이 무겁다. 한계가 점점 가까워져온다.    방의 중심에 있는 철판은, 불에 의해 뜨겁게 달궈져 있었다. 철판 위에는 정기적으로 물이 뿌려졌고 물은 증기가 되어 방의 천장으로 사라져간다.    천장에는 몇 개나 되는 관이 있다. 관은 증기를 빨아들여서 벽을 타고 주위에 있는 병으로 공기 같은 것을 보내고 있었다. 「─────하하」    토모에는, 힘없는 발걸음으로 병 쪽으로 다가간다.    병은 무수히 있었고, 딱 사람의 머리정도의 크기였다. 안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덩어리가 들어있었는데, 꼭 실험실의 포르말린 표본처럼 둥실둥실 떠있다.    아무리 봐도, 인간의 뇌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병 아래로는 튜브가 하나 뻗어있었는데, 그것은 바닥을 타고 벽으로 뻗어나가 천장을 뚫고 들어가 있었다. 아마도 맨션의 각 방으로 이어져있겠지, 하며 토모에는 다른 사람의 일처럼 생각한다.    「뭐야, 이래선 3류 호러잖아」    웃으면서, 토모에는 벽을 따라 걸어간다.    ……생각해봤어야 했다. 매일 같은 생활을 반복하는 인간은, 어제와 같은 오늘을 반복하고 있을 리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는 이상성(異常性)이 외부로 노출된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살아있는 인간으로서 사소한 변화가 있는, 그렇지만 커다란 변화가 없는 나선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들을 죽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사고(思考)하고, 육체를 움직일 뇌만은 살려두지 않으면 안 된다. 생각밖에 하지 못하는 물체를 살아있다고 가정하기는 어렵지만, 어쨌든, 뇌의 기능만은 유지되지 않으면 안 된다. 매일 밤, 죽어버린 육체와는 다른 곳에서, 오로지 밤에 죽기 위한 일상(日常)을 보내는 한 개인으로서.    그건, 지옥이 아닌가.    죽고, 살고, 죽고, 살고. 단지, 그것뿐인 닫혀진 고리. 도망칠 수도 멈출 수도, 그것을 의문으로 생각할 수도 없는, 혼의 감옥.    ……매일 밤 반복되는 종말을, 꿈이라고 생각하며 눈뜨는 하루.    엔죠우 토모에가, 매일 밤 악몽으로서 보고 있던 현실. 「……그런가. 아아. 그런 거구나」    중얼거리면서 토모에는 그중 하나의 병에 손가락을 대었다. ───들리지 않을 소리가 들린다.       있지 않을 의식이, 단지 한마디만을 고해온다.   “도와줘” 라고 병은 말했다.    토모에는 웃는다.    ……왜냐하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도와달라니, 무엇을? 원래의 인간다운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은 걸까.    아니면 이 반복에서 해방 되고 싶은 것뿐일까.    하지만. 어느 쪽이라고 해도 무리한 주문이다. 「───내게는, 죽여주는 것밖에, 할 수 없어」    그래서 웃는다. 슬퍼서, 분해서, 우스꽝스러워서, 웃어주는 것밖에 할 수 없다. 「……나도 그래. 누가 도와주었으면 했어. 계속 도움을 바라고 있었어. ……하지만, 어떤 것을 도와줬으면 하는지, 계속 알 수가 없었지. 알아버리면 안되었어. 왜냐하면, 도와줄 방법 따위는 없었으니까. 아무리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해도. 제일 처음 시작한 현상만은 지울 수가 없으니까」    용서를 빌면서 엔죠우는 찾기 시작했다.    분명 있을 것이다. 없으면 이상하다. 의미가 맞지 않는다.    ……아라야라는 마술사는, 그 스스로가 맨션의 거주인을 죽이고 뇌수를 모은 것이 아니다. 거주인들이 자신들을 죽인 뒤에, 그 최후의 하루를 반복시키기 위해서 뇌수를 회수한 것이다.    그러니까───있을 것이다. 자신이, 엔죠우 토모에가 그날 밤을 반복하는 원인. 반년 전에 일어나 버린 현실이.    그것은, 곧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큼은 없기를 바랬었다. 「하하────」    불쌍히 여기듯, 토모에는 그 병을 만졌다.    겨울로 자신을 보는 것처럼. 그는 육안으로, 지금 사고(思考)하고 있는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튜브는 2개 있다. 하나는 천장으로, 다른 하나는 도중에 끊어져있었다.    마치 폐기처분 된 것처럼 싹둑 잘려서, 이 맨션(일상)에서 떨어져있다────.    퍽, 하는 소리가 났다.    어제부터 아프던 토모에(자신)의 왼쪽 팔꿈치. 그곳부터 팔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였다.    툭툭, 혈액 같은 것이 팔꿈치에서 흘러 떨어진다.    떨어진 팔의 단면은, 뼈나 근육 같은 것 외에, 톱니바퀴 같은 것이 섞여 있었다.    짤깍, 짤깍, 짤깍, 짤깍.    그날 밤───자신이 아무 것도 모르고, 멍하니 앉아있던 때부터 나고 있던 소리.    얻어맞고, 자신의 이름을 듣고서───겨우 자신이 엔죠우 토모에라며 기동(起動)했던 때부터 나고 있던 톱니바퀴 소리. 언제나 반복되던 밤, 살해당하는 것이 싫어서──예정대로 진행되기 전에 어머니를 죽이는 일로써 도망쳐 나온 인형(人形)───    그것이────나다. 「크큭────아하하」    방심한 듯이 무릎을 꿇고, 토모에는 정신없이 웃었다. 「히히, 히히히, 햐하하하하하!」    미친 인간의 목소리가, 주차장에 가득 찬다. ───웃어 버린다.    알고 있었다. 처음부터 자신이 가짜(僞物)라고 알고 있었지만, 정말로 가짜(作り物)일 줄이야.    머리는 텅 비었다. 새하얗게 변해서,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데도.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는데도, 그래도 웃음만은 멎지 않았다. 「……히히, 히히, 히……아하하─────하」    정말로 우스운 이야기다.    이 정도의 일이 가능하다면, 어째서───나와 내 가족은 단 한번도 비극을 회피할 수 없었던 걸까.    몇 십번 몇 백번이나 반복되어서───그것으로부터 빠져 나오기 위해 한 행동이 어머니를 죽이는 일이었다니, 구원 받을 수 없다.    나는 진짜 엔죠우 토모에가 아니라, 가짜 토모에였기 때문에, 일어나 버린 결말을 바꿀 수 없었던 것일까. 가짜이기 때문에, 아라야의 생각대로 밖에 하지 못했던 것일까.    가짜이기 때문에───그 녀석은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알고서, 나를 도망치게 놔둔 것일까. 「───아냐」    그렇게 중얼거리고, 토모에는 걷기 시작했다.    짤깍, 짤깍.    톱니바퀴소리가 난다. 소리는 이곳에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처럼 들리고 있다. 도와줘, 라고 반복되는 음이, 그가 미쳐버리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미쳐서 현실에서 눈을 돌리는 것을 허락해주지 않는다.    ……아니───그게 아니면.    토모에는 철판까지 다가가서, 떨어져 나가버린 왼쪽 팔의 팔꿈치를 뜨거운 철판에 밀어붙였다. 「■■■■■■■────────!!!!!!」    새어나오는 고민의 소리    치익, 하는 고기가 타는 소리.    절단면에서 떨어지는 혈액은, 상처를 지지는 것으로 멎었다.    토모에는 웃으면서, 지혈한 왼쪽 팔을 철판에서 뗀다.    ……아니면. 그는, 이미, 미쳐있는지도 모른다.    하아하아, 하고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토모에는 엘리베이터를 찾는다.    엘리베이터는 방의 구석에 있었다. 1층에서 멎어있는 상태인 그것을, 버튼 하나로 부른다.    토모에는 나이프와 칼을 쥐고 엘리베이터에 탔다.    한번만 뒤를 돌아본다.    증기 소리와 물소리에 감싸인 지하는 아주 조용했다.    죽은 것조차 깨닫지 못하고 지금도 일상(日商)이라는 고리를 꿈꾸고 있는 뇌수(腦髓)라는 혼의 안치소(安置所).    토모에는 생각한다.    영원히 바뀌지 않는 나날과, 영원히 끝나지 않는 나날.    그 어느 쪽이 나선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 맨션은 기괴하면서도, 영원하다는 점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죽어도───설령 같은 매일이라고는 해도, 아침이 되면 다시 시작할 수 있으니까.    단지, 그 고리 속에 있는 한, 나선이 어긋나는 일은 없다.    아주 조금───아주 조금만 이 고리가 비틀려 준다면, 언젠가, 엔죠우 토모에가 어머니에게 죽는 일도, 어머니를 죽이는 일도 없는 일상이 생겨나겠지.    하지만 그것도 불가능한 이야기인가. 비틀린 고리는 두 번 다시 원래의 장소를 돌지 않는다. 죽은 자는 죽은 자로서 끝나는 것을 전제하지 않으면, 이 일상은 돌아가 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지만, 하고 토모에는 생각해 버렸다. ───아아.    이 나선이, 모순 되어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것은 있을 수 있을 리 없는 대답, 있을 수 있을 리 없는 소원이다.    자신의 육체의 종말이 가까운 것을 느끼면서, 엔죠우 토모에는 10층의 버튼을 눌렀다. ◇    숨을 헐떡이며, 코쿠토 미키야는, 계속 달렸다.    뭔가, 의미 없는 말을 외치면서 떼를 쓰는 아기가 되면 얼마나 속이 편할까하는 말도 안 되는 해결책을 바라면서, 일단, 달릴 수밖에 없었다.    붉은 코트의 청년에게서 도망치려고 뒤를 돌아보지 않고 달린다. 그렇게 달리다 밖에 아닌 동동(東棟)의 로비에 다다르자, 어리둥절하고 멈춰 섰다. 「……막다른……길……」    멍하니 로비를 올려다본다.    2층으로의 계단이 있지만, 로비는 완전히 막다른 길이다.    자신이 냉정함을 잃고 있다는 것을 미키야는 겨우 깨달았다. 「────빌어먹을, 어째서, 이런」    각오를 하고 있었을 텐데, 하고 그는 흐트러진 자기 자신에게 푸념을 되풀이한다. 하지만, 어제까지 친하게 지내던 인간의 목을 보았고, 그것이 눈앞에서 으깨져버린 것이다. 그의 행동은 비교적 정상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부들부들 떨리는 양 무릎을, 미키야는 양손으로 꽉 누른다.    우선, 지금은 도망가지 않으면 안 된다.    두리번두리번 로비를 둘러보는 미키야.    그곳의────통로에서, 딱딱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    큰일이다, 라고 중얼거리며 미키야는 달리기 시작한다.    우선 계단을 사용해서 2층으로 올라가자. 미키야는 그렇게 생각하고 움직인다. 그렇지만 그의 발이 계단을 밟는 일은 없었다. 촤악, 하고 기세 좋게 무엇을 자르는 소리가 났다고 생각하자, 자신의 양다리는 힘없이 지면으로 무릎을 꿇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    뻗은 손이, 계단의 난간에 닿는다. 그렇지만 미키야의 손은 그대로 미끄러지고, 그는 계단에 쓰러졌다.    계단에 엎드린 채로 미키야는 자신의 다리를 본다.    ……무릎 부근에서, 붉은 것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등 뒤에서 양 무릎을 칼 같은 것으로 베였다고 그는 남의 일처럼 파악했다. 자신이 상처 입었다, 라는 실감은 거의 없다.    어째서냐면, 상처는 아프기보다는 뜨겁고 움직일 수 없게 된 다리는 정말로 다른 사람 것 같이 감촉이 없었기 때문에. 「어이어이, 그 정도로 쓰러져 버리면 곤란해. 지금 것은 위협이었단 말이다. 그 정도의 마력에 부딪힌 것뿐인데, 그걸 튕겨내지 못하면 어쩌려는 거냐, 소년」    붉은 코트의 청년은 연설하는 것처럼 양손을 벌리고 걸어온다.    미키야는 아무 말도 못하고, 계단에 엎드린 채로 자신의 피를 바라보고 있었다.    엎어진 컵에서 흘러가는 물처럼 붉은 피가 흘러간다. 점점 의식이 몽롱해져가는 것은 그 적색이 너무 진해서가 아니라, 단순히 생명활동에 필요한 만큼의 혈액이 부족해져가기 때문이겠지. 「아니면 너도 만드는 것이 전문인 건가. 하지만 자신의 몸 하나 지키지 못해서는 마술사라고는 부를 수 없다구.    ……흐음, 어쨌든 아오자키는 사부로서는 별로 우수하지 않은가보군. ───맞아, 애초부터 그녀는 결점 투성이야. 알고 있나? 우리들 협회에서는 말야, 최고위의 술사(術士)에게는 색을 사용한 칭호가 수여돼. 그 중에서도 원색인 3색은 그 시대의 최고라는 증거야.    아오자키는 그 이름대로 블루(靑)의 칭호를 얻고 싶었겠지. 하지만 협회에서는 주지 않았어. 자신의 여동생에게 집의 상속권을 빼앗기고, 그 복수를 위해서 협회에 들어온 여자에게 순수한 색은 어울리지 않아. 얄궂게도, 아오자키에게는 그 이름에 반대되는 적색의 칭호를 받은 거야 자신의 이름처럼 속된 색이지. 오렌지색의 마술사에게 어울리는 색! 원색인 적색이 될 수 없는 상처 입은 붉은 색이지. 크크, 정말로 그 여자에게 딱 맞는 칭호가 아닌가!」    붉은 코트의 청년은, 계단에 도달했다.    피를 흘리며 계단에 엎어져있는 코쿠토 미키야를 내려다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띄운다. 「사부와 같은 장소에서 최후를 맞는 것도 인과겠지. 아오자키의 제자라고 하길래 좋지 않은 무언가라도 걸어오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는데. 정말, 김이 팍 새버렸어」    웃으면서 청년은 손을 뻗는다. 천천히, 쓰러진 소년의 얼굴을 쥐려고 몸을 수그린다.    그 느릿한 동작과는 정 반대로, 갑자기, 코쿠토 미키야의 몸이 벌떡 일어났다. 「읏────!?」    너무 놀란 나머지, 청년의 사고는 한순간 새하얗게 변했다.    그 틈을 찌르듯, 미키야는 벌떡하고 몸을 용수철처럼 일으키며, 몸 아래에 숨겨둔 은색 나이프를 청년에게 찔러 넣는다.    코쿠토 미키야는, 쓰는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준비해 두었던 아오자키 토우코의 페이퍼 나이프를, 있는 힘껏 청년을 향해 찌른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행한 살의(殺意)적인 행위 때문인지, 소년은 두 눈을 감고, 무언가를 참 듯이 이를 악물었다.    나이프를 쥔 미키야의 두 손에는, 확실히 무언가를 찌른 감촉이 있었다.    방심해서, 무언가 알 수 없는 푸념을 늘어놓고 있던 적색 코트의 청년에게, 이 갑작스런 반격은 피할 수 없었을 터.    ……심한 부상을 입지 않았으면 좋을 텐데 하고 몽롱한 의식으로 미키야는 눈을 뜬다.    하지만.    다리에서의 출혈 때문에 새하얗게 흐려져 가는 그의 의식이 포착한 최후의 영상은, 내찌른 나이프를 손바닥으로 막고 있는 청년의 모습이었다.    뻗어진 팔의 손바닥에 나이프가 깊게 꽂혀있다. 청년은 씨익 하고 악마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    ──────────────.    ────────────────────.    아주 잠시, 동안. 「너무 심한 짓을 하는군, 너는. 사람을 찌르다니, 위험하잖아」    그렇게 말하며, 청년은 다른 한쪽의 팔을 내민다.    팔은 코쿠토 미키야의 얼굴을 쥐고, 그대로 힘껏 계단에 쳐 박는다.    후두부를, 계단 모서리 부분에 내리찍는다. 한번 쳐 박은 뒤에 약간 들어올려서, 다시 내려찍는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태엽으로 움직이는 인형처럼 되풀이한다. 「위험해, 위험해, 위험해, 위험해, 위험해, 위험해, 위험해, 위험해, 위험해, 위험해」    쿵, 쿵, 하고 부딪히는 소리와, 중얼거리는 목소리만이 로비에 울려 퍼진다.    한동안 그렇게 하다가 코쿠토 미키야라는 소년의 호흡이 아주 약해진 것을 깨닫고, 청년은 겨우 손을 떼고 일어섰다. 「아아, 아팠어. 얼마나 아팠냐면, 눈물이 나올 정도로 아팠어. 너도 말야, 오래 살고 싶다면 남이 싫어하는 짓을 하면 안 되는거야」    안달하듯 손바닥에 꽂혀있던 나이프를 잡아 빼면서, 붉은 코트의 청년은 자신의 말에 아암 그렇지, 하고 본심으로 감탄하며 끄덕였다. 「그러면───일은 끝났다. 아라야의 연구 성과에는 흥미가 있지만, 역시 본국으로 돌아가도록 해야지. 이 나라의 공기는 정체되어 있어서 참을 수가 없어」    움직이지 않게 된 코쿠토 미키야에게 등을 돌리고, 청년은 걷기 시작한다.    중앙의 로비에 이어진, 단 하나의 좁은 통로로.    그렇지만 그 앞에, 그는 예상하지도 못했던 것을 시계에 포착하고 멈춰섰다. 아니, 멈춰서버렸다.    뚜벅, 뚜벅, 하고 무언가의 발소리가 통로에서 들려온다.    청년───코르넬리우스 아르바는 믿을 수 없는 것을 보고 슬금슬금 뒤로 물러섰다.    날카로운 발소리를 울리면서 로비에서 나타난 인물은, 어제 이곳을 찾아왔던 인물 그것이었으니까.    믿을 수 없어, 라며 청년은 숨을 삼킨다.    엄청나게 큰 가방을 한 손에 들고서, 죽었을 아오자키 토우코가 그곳에 서있었다─────. / 15 「너는 죽었을 텐데, 라는 당연한 대사만은 피해 줘 코르넬리우스. 네 수준이 들통난다구. 나를 너무 실망시키지 마」    어딘가 다정함이 담긴 조용한 목소리로 아오자키 토우코는 그렇게 말했다.    붉은 코트의 청년───아르바는 말도 없이 그 모습을 바라본다. ……그 몸을, 두려움에 희미하게 떨면서.    토우코는 로비까지 오자, 영차, 하며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것만이 어제와 다르다. 어제의 가방은 007가방 정도의 크기였지만 지금 그녀가 가져온 가방은 훨씬 크다. 여행이라도 떠나는 것 같은, 사람하나는 쑤셔 넣을 수 있을 정도의 큰 가방이었다. 「───서두르려고 했는데, 시간에 못 맞췄나. 코쿠토는 내 제자가 아니라고 말했을 텐데, 그건 정정 받도록 하겠어. 그리고 알려줄 것 따위는 하나도 없지만, 나의 몸에 있던 일에 변화는 없다는 것만은 말해주지」 「너───너는 분명히 죽었어. 확실히 이 손으로 숨통을 끊었어!」    토우코의 목소리는 듣지 않고, 아르바는 두 손을 쥐면서 외쳤다. 눈앞의 토우코 따위는 인정할 수 없다. 이것은 무언가 잘못 된 거다, 라고 떼를 쓰는 어린아이처럼.    내면의 혼란을 필사적으로 덮어 감추려하는 아르바와는 대조적으로, 토우코는 어디까지나 냉정했다. 핏발선 눈으로 노려보는 붉은 코트의 청년을 완전히 무시하고,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낸다.    아르바는, 토우코가 토우코다운 행동을 하면 할수록, 자신의 등줄기에 퍼지는 오한을 멈출 수가 없다.    견딜 수가 없어서, 그는 외쳤다. 「네가 이곳에 있는 것은 있을 수 없어. 이것은 무언가 잘못된 거야. 헤메이고 있는 거냐, 아오자키. 뭐가 현세(現世)에 잔류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죽은 자는 죽은 자 답게 저 세상으로 가라!」    아르바는 피에 젖은 팔을 횡일문자로 휘두른다.    코쿠토 미키야에게 찔린 손바닥에서 흩뿌려진 피는 대기에 닿자 가솔린처럼 불타올랐다. 마술사 자신의 피와 원념에 의한, 눈에 보이지 않는 저주. 그것은 불의 모습이 되어 있을 수 없는 적을 감싼다.    그러나. 한순간의 화염은, 아오자키 토우코를 에워쌌지만, 그녀에게 다다가지도 못하고 꺼졌다. 토우코는 머리카락을 가볍게 긁어 올리며 입에 든 담배에 불을 붙인다. 「죽은 자는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되는 건가. 그렇다면 이 맨션은 통째로 모순에 가득 차 있다구. 나는 살아있다면 사체고 뭐고 없다고 생각하는데. 산 자와 죽은 자의 다른 점이란 것은, 그래. 담배가 맛있냐 어떠냐의 차이겠지」    그렇게 말하면서, 토우코는 아아, 하고 크게 끄덕였다. 「그렇지. 그건 그 나름대로 커다란 차이다. 이 녀석이 맛이 없는 것은 살아있어도 어쩔 수 없지만 말야」    쿡쿡하고 토우코는 웃는다.    그 너무나 자연스러운 모습을 앞에 두고, 아르바는 겨우 이해했다. 눈앞에 서있는 여자는 틀림없이 살아있고, 이전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진짜라는 것을.    그렇기 때문에, 그는 같은 의문을 반복한다. 지금, 자신이 앞에 두고 있는 현실을 이해할 수 있더라도, 그 대답이 그로서는 전혀 이해되지 않기 때문에. 「───너는, 분명 죽었어」    청년의 말에, 토우코는 불유쾌하다는 듯 눈썹을 찡그렸다. 그 대사는 이제 듣기 질렸다고, 호박색 눈동자가 이야기 하고 있다. 「아아, 분명히 죽었어. 육체는 완벽할 정도로 파괴당했고, 혼이 담겨있는 핵(核)인 머리도 너의 손에 의해서 박살났지. 그것을 죽음이라고 부르지 않으면 뭐라고 부르겠어」 「그렇다면, 이곳에 있는 너는 뭐냐!」 「당연하잖아. 아오자키 토우코의 대타야」    선뜻, 그녀는 그렇게 대답했다.    청년은 상대의 너무나 솔직한 대답에 정신이 아득해져서, 입을 쩍 벌렸다. 「대타……? 네놈, 인형이냐!」    아르바는 자신이 말하고 난 뒤에, 아니야, 라고 중얼거리며 마음을 돌렸다.    그도 인형 만들기에 관해서는 따라올 자 가 없다고 불렸던 제작자다. 인간과 똑같이 움직이는 자동인형이라고 해도, 인간과의 차이는 한눈에 간파할 수 있다.    아무리 겉모습을 정교하게 만들어 인간과 닮게 하려해도, 몸속의 구조는 속일 수 없다. 가짜의 몸은 혈액의 흐름에서 근육의 섬유에 이르기까지 인간에 비하면 조잡할 뿐이다. 인간이 하는 일 얼마든지 흉내 낼 수 있지만, 인간과 같은 것에는 절대 이를 수 없다.    인간을 뛰어넘는 인형은 만들 수 있어도, 결코 인간과 같은 것은 만들어 낼 수 없다────그것이 마술이 제일 힘을 자랑하던 영광의 시대, 중세 때 내려진 절대의 법칙인 것이다.    그러한데도, 눈앞의 아오자키 토우코는 틀림없는 인간이었다. 인형이 인형으로서 기능(機能)하기 위한 기구(機構)는 인형이기 때문에 감출 수 없다. 그러나 이 토우코에는 그런 조잡한 부분이 전혀 없다.    결론적으로. 이곳에 서있는 아오자키 토우코는 틀림없는 진짜다. 그렇다면──── 「그런가, 그러면 죽인 쪽이 가짜였나……!」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은 좋지 않아, 코르넬리우스. 네가 가짜를 상대로 최선을 다할 리는 없어」 「읏───확실히, 그건 진짜였어. 의심할 것도 없이 아오자키, 너 자신이었어. 하지만 그래서는 모순 된다. 이전의 너와 지금의 너, 그 어느 쪽도 진짜라고 말하는 것인가. 그러면, 그 모순을 어떻게 설명하려는 거냐!」    아르바는 소리쳤고, 곧───해답에 다다랐다.    그는 붕붕하고 머리를 흔든다.    믿을 수 없다. 아니,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그 이외의 설명은 할 수 없고───그것이라면 이 상황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아르바는 다시 한번 묻는다.    그런 일이, 정말로 가능한 것일까? 「아오자키. 너는 설마────」 「명답. 이전의 나도 지금의 나도, 똑같이 가짜야. 아르바, 난 말이지. 나 자신조차, 언제 진짜와 바뀌었는지 모르겠어」    씨익, 하고───그 이상 없을 정도로 사악한 미소를 띄우며 오렌지색의 마술사는 말했다. 「뭐────그거야말로, 그거야말로 있을 수 없어! 그렇다면 너는 뭐냐? 오리지널이 아닌 거냐? 그렇지만 너는 자신을 아오자키 토우코라고 이야기하지 않았나! 확고한 자아를 가진 지능(知能)이, 자신을 가짜라고 인식하고도 정상적으로 가동될 리가 없어. 가짜는, 자신을 가짜라고 인식할 수 있는 지성을 가지는 것 때문에, 자기(自己)의 존재를 견디지 못하고, 자아(自我)에 의해서 찌부러져 자멸한다. 그것이 도리다. 그런데도, 너는, 자신을 가짜라고 인정하고 있으면서도……!」 「자신을 가짜라고 알면 붕괴한다, 인가. 그런 지능은 2류야. 그리고 말이지, 너의 기우는 나에게는 해당 안돼. 나의 몸은 가짜지만 아오자키 토우코 자신은 유일한 존재야. 흠, 별로 시간이 없지만, 선물이다. 잠시 강의를 해주지」    그녀는 아까 전까지의 온화함에서 일변한 차가운 시선으로 아르바를 보았다. 「알았어? 지금의 나는 공방에 보관되어있던 물건이야. 너에 의해 아오자키 토우코가 완전히 죽은 시점에서 눈을 떴어. 그러니까, 나는 생후 1시간 전이란 소리가 되지. 아오자키 토우코는 인형사다. 나는 몇 년 전에, 어떤 실험 과정에서 자신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인형을 만들어냈어. 자신 이상의 능력을 가진 것도 아니고, 자신 이하도 아닌 완전한 동일성능을 가진 그릇(器)이다. 그것을 보고서 말야, 아오자키 토우코는 생각했어. 이것이 있으면 지금의 자신은 필요 없는 것이 아닐까하고」    인형사의 고백에, 아르바는 숨을 삼킨다.    뭐야 그건, 하고 그는 귀를 의심한다.    그래서는 완전히 반대다. 자신과 동격(同格)의 인형을 만들어낸 것을 기뻐한다면 이해가 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자신이 창조한 모조품에 지나지 않는 인형에게 자신의 존재를 넘겨줘도 좋다고 생각하다니. 「바보 같은. 그것은 어디까지나 과정(過程)이야. 만약, 너에게 인간과 똑같은 인형을 만들 수 있다고 가정한다고 해도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우리들은 더욱 높은 단계를 지향해야해. 마술사라면, 현재 상황 따위에 만족하지 않아!」 「그러니까 말야. 나와 똑같은 인형이라면 내가 없어진 뒤에도, 나와 마찬가지로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잖아. 봐───내가 없어도 결과는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아」    청년은 그저 숨을 삼킬 뿐이다.    그는 한동안 멍하니 서있던 끝에, 아니야, 라고 고개를 흔든다. 「그건 핑계야! 자신을───절대의 자아로 생각하는 나는, 그런 구실로는 버릴 수 없어! 나는, 나이기 때문에 나를 남기는 거다. 나와 같은 물체가 있고 설령 결과가 동일하다해도, 그런 내가 아닌 것에 코르넬리우스 · 아르바라는 존재는 양보할 수 없어! 역사에 이름이 남는 나를 내가 관측할 수 없다면 의미가 없지 않은가!」    아르바는 자신의 가슴을 끌어안으면서, 눈앞의 인형사에게 반론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부정된다고 그의 본능이 말하고 있었다.    어디까지나 자기(自己)에게 구애되는 자신과, 자기를 잘라낸 존재를 선택한 토우코……그 차이야말로 범인(凡人)과 그렇지 않은 자를 나누는 절망적일 정도의 벽이다, 라고 밖에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에. 「생각하는 방식의 차이겠지, 아르바. 그것을 비난할 생각도 없고, 오히려 나는 네가 부러워. 내가, 언제 그렇게 되었는지 모르겠어. 나 자신도 모르는 거야. 나는, 활동하고 있던 내가 사망한 시점에 눈을 떴어. 아까의 토우코가 얻은 지식은 기록되어 있으니까, 그것을 물려받으면 이전과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아. 이 뒤에도 나는 자신과 완벽히 똑같은 인형을 만들고 잠들겠지.    같은 인형을 만든다, 라는 시점에서 난 틀림없는 진짜야. 하지만 말야. 아까 살해당한 나는, 사실 오리지널이었는지도 몰라. 아니, 오리지널은 나조차 모르는 곳에서 지금도 자고 있는지도 몰라. 그렇지만 모든 것이 같은 그릇(器)이니까, 그것을 보고 구별할 방법은 이미 없어. 일지도 모른다, 뿐이야. 그렇지만 그것이 진실이야. 상자를 열 때까지 살아있는지 죽어있는지 알 수 없는 고양이와 마찬가지야. 중요한 것은 지금 일어나 있는 현실이잖아? 그렇기 때문에───나는 틀림없는 아오자키 토우코다. 알기 쉽게 말해주자면, 내가 이곳에 있는 이상, 아까 네가 부쉈던 것은 가짜라는 얘기야」    자아 그러면, 하고 중얼거리면서 그녀는 바닥에 두었던 가방에 손을 뻗는다.    아르바는 자신과는 너무나 다른 상대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가. 아라야는 너를 살려둔 것이 아니야. 살려두고 있는 한, 너는 다음의 너에게 스위치가 들어가지 않으니까───」    토우코는 대답하지 않는다.    단지 냉염(冷炎)한 시선을 붉은 코트의 청년에게 향하고 있다.    아르바는 이미 계속 멈추지 않는 오한을 견디지 못하고, 자신의 두 손으로 스스로를 끌어안고 있었다. ……한기는, 더욱 강해지기만 한다.    토우코의 눈은, 기계 같았다. 아무런 감정도 없으면서도, 분명 살의를 담아 이곳을 바라보고 있다.    그녀의 그런 눈빛을, 아르바는 알지 못한다. 학원시절에도 본적이 없다.    갑자기───떠올랐다. 지금까지 자신이 알던 아오자키 토우코라는 인간은, 정말로 진짜였던 것일까. 이곳에 이렇게 말없이 서있는 모습이야말로, 숨기지 않은 본래의 그녀자신의 모습은 아닐까.    감정도 없이 자기(自己)도 없다. 무엇보다도 마술사 같은, 존재의 한 가지 형태.    그렇게 생각한 순간, 지금까지의 그가 아오자키 토우코였던 존재를 향해서 품고 있었던 복수의 신념이 부서져갔다.    지금까지, 자신은 대체 무얼 향해 그렇게도 망념(妄念)을 품고 있었던걸까. 지금까지의 자신은, 정말로 아오자키 토우코라는 인물을 미워하고 있었던 것일까. ……적어도, 그가 알고 있던 아오자키 토우코와는 다르다. 이렇게, 마술사라면 탁월하면 탁월할수록 버릴 수 없는 자기(自己)라는 유일성을 간단하게 내팽개치려는, 이런 괴물은 아니었을 터.    그래, 내가 만나고있던 토우코는 좀더 인간다웠고, 나는 언제나 그런 그녀를 의식하고 있었는데. 「너는────진짜냐?」    아르바는 자신도 모르게───헤어진 연인에게 매달리는 것 같은 눈동자로, 떨면서 말했다.    그녀는 크큭, 하고 웃는다. 「너 말야. 이 나에 대해서, 그 질문이 무슨 의미가 있는 거지?」    차갑고, 너무나도 영롱한 아름다운 얼굴로. ◇    토우코는 손가락에 끼운 담배를, 다시 한번 입으로 옮긴다.    쓸데없는 잡담은 여기까지다, 라고 그 눈동자가 말하고 있었다. 「그러면, 본론으로 돌아갈까. 우리 꼬마의 목숨이 꽤 위험해. 네가 멋대로 날뛰고 난 뒤로 한 시간 정도 경과해버렸으니까」 「뭐───야?」    그로부터 한 시간───? 그러고 보면, 토우코는 머리가 부서지고 나서 눈을 떴다, 고 말했다.    그녀가 자고 있던 것이 자신의 공방이라고 하면, 확실히 이 맨션을 찾아올 때까지 한 시간은 걸린다. 이렇게 빠르게, 몇 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도착할 리가 없다.    문득, 아르바는 계단에 쓰러진 소년을 쳐다보았다.    ……다리의 상처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자신이 몇 번씩이나 모서리에 쳐 박았던 후두부에서의 출혈은 없다. 이 소년은, 순수하게 다리로부터의 출혈에 의해서 의식을 잃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바보 같은………어떤 마법을 썼나, 아오자키」    힘없이 청년은 물었다.    그는 이미 활력을 잃고 있었다. 마술사로서의 차이를 과시당한 아르바가, 토우코를 공격할 의지 같은 것을 가질 수 있을 턱이 없다. 「마술사가 함부로 마법이란 말을 입에 담으면 안 되지. 내가 이 로비에 온 것은 세 번째 라구. 이곳만은 내가 처음부터 건설한 결계야. 만에 하나의 대비로, 약간의 트릭을 준비해두었지. 예를 들면 네가 코쿠토의 반격에 놀라서 머릿속이 새하얗게 되었을 때, 너의 의식에 살짝 개입해본다던가」 「그때, 인가────」    분하다는 듯 아르바는 신음한다. 분명히 소년의 나이프를 손바닥으로 막았을 때, 말로 할 수 없는 이상한 공백이 있었다.    그때부터 자신은 꿈이라도 꾸고 있던 것이겠지. 그저 멍하니, 술사(術士)인 토우코가 도착할 때까지 가만히 서 있던 것이 틀림없다. 「하하, 하하하────과연. 처음부터 부처님 손바닥 위였단 말인가. 꽤나 재미있었겠군, 아오자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역시 나는 처음부터 광대였던 것 같아」 「그렇지도 않아. 나도 살해당하는 꼴이 될 줄은 생각하지도 못했고, 죽은 것에 대한 복수 따위는 생각도 없어. 내가 여기에 다시 한번 온 이유는 다른 거야. 코쿠토에 대한 것은 여기 온 김에 하는 일에 지나지 않아」    토우코는 발치에 둔 가방을, 털퍼덕하고 지면에 쓰러뜨렸다.    너무나 큰 가방은, 쓰러져도 전혀 모양이 변하지 않는다. 거의 완벽한 입방체의 가방을, 아르바는 무언가와 닮았다, 고 생각했다. 「……살해당한 복수가 아니라고 말했지. 그렇다면 무엇을 하러 온 거냐 아오자키. 마술사로서 금단의 실험을 행하려는 아라야를 저지하려고 왔다는 건가」 「그거야말로 설마지. 저건 어떻게 하더라도 성공하지 못해. 나는 말야, 아르바. 정말로 너에게만 볼일이 있어」    그렇겠지, 하고 붉은 코트의 청년은 끄덕였다.    그렇지만 알 수 없다. 아오자키 토우코는, 살해당한 일에 대한 원한은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실험을 방해할 의지도 없다, 라고.    그렇다면───대체 어떤 이유로, 이 여자는 자신에게 이렇게도 차가운 살의를 드러내는 걸까? 「……어째서야. 내가, 너에게 무슨 짓이라도 했나?」 「별로 특별히는. 살아가는 이상, 미워하고 미움 받는 것은 각오하던 바야. 사실은 말이지, 학원시대부터의 너의 미움도 나쁘지는 않았어. 그것은 아오자키 토우코라는 내가 우수하다는 증거니까」 「그러면, 어째서」 「간단해. 너는, 나를 그 이름으로 불렀어」    덜컹, 하고 소리가 났다.    토우코의 발치의 가방이 열린 소리다.    커다란 가방의 안은 그곳이야말로 어둠이다. 전등도 빛도 닿지 않는 고체로서의 어둠이, 가방 속에 채워져 있다.    그 안에, 두 개, 있다. 「학원시대부터의 철칙이야. 나를 상처 입은 적색이라고 부른 자는, 예외 없이 죽여 버리고 있어」    가방 속에는, 빛난다 ─────두 개의, 눈이.    과연, 하고 아르바는 끄덕였다.    아까 이 가방을 보고, 자신은 무언가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정말 심플하다. 어째서, 그것을 깨닫지 못했던 걸까.    가방이라기에는 너무 큰 입방체. 그 모습은 신화에 나오는 마물을 봉해 넣은 상자 그것이 아닌가.    이렇게, 상자에서 모습을 나타낸 정체 모를 검은 생물은 가시나무 같은 촉수를 뻗어, 코르넬리우스 · 아르바를 붙잡는다.    그대로 상자로 끌려 들어가, 다리부터 몇 천 개나 되는 작은 입에 씹혀간다. 으적으적하고 산채로 먹혀간다. 소멸 직전에, 머리만 남은 그는 초연하게 내려다보는 인형사와 눈길이 마주쳤다.    이, 무서운 죽음을 맞이하는 나를 보며, 그녀의 눈동자는 웃고 있었다.    그 모습만으로, 그는 대적할 수 있을 리 없었던 것이라며 후회했다.    아라야와 나누었던 마지막 대화가 기억난다. 녀석은 코르넬리우스 · 아르바가 이렇게 될 것을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겠지.    뇌수의 마지막 조각이 씹힌다.    ……자신은 실패했다.    이런 괴물들과, 관계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이, 붉은 코트의 마술사의 최후의 사고(思考)였다. / 16    엘리베이터가 올라가고 있다.    아무도 없는 작은 상자 안에서, 엔죠우 토모에는 벽에 기대어서 허공을 노려보고 있었다.    토모에의 호흡은 거칠다.    혼자서 떨어져 나가버린 그의 왼팔. 피를 멈추게 하기 위해서 상처를 지진 것에 의해, 신경은 미쳐버릴 정도의 아픔을 고하고. 머릿속은 오랫동안 멀리하고 있던 진실을 눈앞에 두고, 지리멸렬(支離滅裂) 되어버린 자신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도 애매모호해져있다.    토모에는 몸도 마음도 한계를 돌파하려하고 있는 것 정도밖에,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    올라가는 승강기 속, 호흡만은 진정시키려고 심호흡을 반복한다.    사용하는데 익숙해졌을 엘리베이터가 오늘만은 느리게 느껴졌다. 감질날 정도로 천천히, 엘리베이터는 10층을 목표로 올라간다.    그러던 도중───토모에는 손에 든 칼을 손에서 놓았다.    떨그렁, 하고 엘리베이터 바닥에 일본도가 드러눕는다.    칼이란 것은 생각보다 무거워서, 몇 분 들고 있는 것만으로 팔이 저려온다. 아직 양팔이 있었던 때라면 휘두를 수 있었겠지만, 한쪽 팔만 남은 지금의 토모에로서는 칼집에서 칼을 빼지도 못한다. 한쪽 팔인 나에게는 나이프만 가지고 있는 편이 훨씬 낫다고 생각하고 남은 오른손으로 단단히 나이프를 거머쥐었다.    엘리베이터가 멈춘다.    10층에 도착한 것이다.    양쪽으로 열려가는 문을 빠져나와, 토모에는 로비로 나왔다.    눈앞에는 동동(東棟)으로 이어진 통로가 있고 사각(死角)인 엘리베이터의 뒤편에는 서동(西棟)으로 이어진 통로가 있다.    토모에는 불빛이 없는, 진짜 사체가 방치되어있는 서동으로 향한다.    엘리베이터의 뒤편으로 돌아, 맨션의 외주(外周)를 빙그르르 둘러싸는 복도로 나간다.    시각은 곧 밤 11시가 되려하고 있었다.    복도에서 내려다보이는 야경은 고요하고 허전하게 느껴진다. 맨션 주위에 있는 것은 같은 형상을 한 맨션들뿐이다. 맨션과 맨션 사이에는 아스팔트 도로와, 녹색 정원이 드문드문 펼쳐져 있다.    그 모습은, 야경이라기보다 녹색잔디에 둘러싸인 묘비들을 떠올리게 했다.    후우, 하고 깊게 숨을 토한다.    그의 의식은 눈 아래의 야경에 향해있었지만, 지금 막 그곳에 나타난 인물을 확실히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크게 호흡을 해서, 흐트러져있던 의식을 하나로 정리한다.    토모에는 나이프를 쥐고, 완만하게 타원을 그리는 복도 쪽으로 돌아보았다.    불빛 없는 어둠, 달빛조차 미약한 복도.    토모에로부터 방 두 개정도 떨어진 그 장소에, 검은 외투의 모습이 있었다.    그림자만으로도 알 수 있는, 떡 벌어진 골격과 신장.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얼굴에 새겨진 고뇌의 빛.    마술사, 아라야 소우렌이 그곳에 있다────.    마술사와 대치한 순간, 엔죠우 토모에는 얼어붙었다.    그 정도로 흐트러져있던 호흡도, 그 정도로 아팠던 육체도, 마치 다 끝나버린 것처럼 조용해졌다.    눈앞에 서있는 상대가 견딜 수 없이 무서워서, 의식조차도 얼어 붙어간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오히려 고맙게 생각했다. 방금 전까지 여러 가지로 흐트러져있던 마음이, 말끔하게 정리되었으니까. 「아라야」    아라야라는 절대자를 앞에 두고, 토모에는 완전히 자유를 잃고 있었다. 그런데도,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을 텐데도 그는 말했다.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은 대등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지금의 그는 이전처럼 아라야 소우렌을 두려워하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 사실에, 마술사는 표정을 더욱 엄숙하고 어둡게 만든다. 「어째서 돌아왔나」    마술사는,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토모에는 대답하지 않고, 그저 아라야를 계속 바라볼 뿐이다. 대답할 여유 따위는 없다. 기력을 쥐어짜내지 않으면, 이 마술사와 정면으로 마주보는 일은 할 수 없으니까. 「이곳에 네가 있을 자리는 없다. 엔죠우 토모에를 대신할 것은 준비되어있어. 너는 이 나선에서 밀려나간 존재다. 다시 돌아올 의미는 없다」    빛이란 것이 없는 눈으로, 마술사는 말하기 시작한다.    ……확실히 자신은 이곳에서 도망쳐 나왔다고, 토모에는 생각한다.    그렇지만 돌아왔다. 무엇을 위해서? 그래, 한번은 료우기가 데려왔다. 그리고 지금은, 분명─── 「료우기 시키를 구하기 위해서인가. 어리석은. 너의 그 마음은, 엔죠우 토모에의 것이 아니다. 아직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것은 결국 인형이란 소리군. 이 나선에서 벗어나면 정상적으로 기능을 할 수 없는 것인가」 「에……?」 「분명히 너는 이 나선에서 빠져나갔다. 그렇지만 그 뒤, 자해(自害)하는 것도 알고 있었다. 가족에 의해서 사망하는 자는, 가족이 원인이 되어 죽게 되니까. 너는 자신의 집에서 도망쳐 나와, 자폭하고 있었다. 그대로 내버려뒀다면 이미 죽었겠지. 하지만, 그래서는 외계(外界)에 너라고 하는 이상(異常)이 새어나간다. 그렇다면───나는, 너에게 다른 역할을 부여해서, 살려두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오늘밤에도 사망했을 본래의 엔죠우 토모에와는 다른 엔죠우 토모에로서. 그 역할을───모르는 건가?」    거짓말이야, 라고 토모에는 외쳤다.    그렇지만 그것은 소리가 되지 않았고, 그는, 그저 우두커니 서 있을 뿐이었다.    마술사는 표정을 바꾸지 않는다. 눈알만이 조소하듯 일그러져 있다. 「그렇다. 이것은 나에게 있어서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내기 같은 일이었다. 곧 꾀여 들일 생각이었지만, 일은 조용한 상태로 행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나를 모르는 너, 나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엔죠우 토모에가 스스로 료우기 시키를 데리고 온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은 없어. 기대 따위는 하지 않았지만, 너는 훌륭하게 해냈다. 그 보수로서 도망치게 놔둔 것인데, 다시 한번 돌아올 줄이라고는. 잘난 척도 이만저만이 아니야. 너는 자신의 의지로 료우기 시키에게 빠진 것이 아니다. 내가 도망쳐나간 너에게 덧붙인 사실은 단 하나. 그것은 료우기 시키에게 관심을 가진다, 라는 무의식하의 명령이다」    엔죠우 토모에의 발치에서 힘이 빠져나간다.    아라야가 말하는 것에, 반론할 방법이 없다.    왜냐면 그 말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타인을 진심으로 좋아해 본 적이 없는 자신이, 어째서 료우기에게 만은 그렇게 관심을 가졌던 것일까? 처음 만났을 때부터, 무언가가 자신에게 명령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소녀를 관찰하라, 저 소녀와 관계를 가져라, 라고. 「이해한건가. 너는 무엇하나도 스스로의 의지로 결정한 것이 없다. 단지 나의 의도대로 료우기 시키를 데려온 것뿐이다. 게다가, 너의 육체에 있는 것은 나의 나선(세계)에서 행하고 있던 하루의 기억뿐이다. 이 하루보다 이전의 기억도, 이후의 기억도 존재하지 않아.    너의 의지는 환상에 의해 생겨났고 환상에 의해 살아 움직이고 있었던 것에 지나지 않아. 이 세계에서 최후를 맞았던 엔죠우 토모에는, 이미 이곳에서 밖에 살아갈 수 없다. 때문에, 너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아무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에, 료우기를 불러내는 역할로서 풀어두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라면───무엇을 해도 방해가지 되지는 않겠지」    마술사의 발언은, 그야말로 주문이었다.    토모에는 빠르게 기억해낸다. 자신이 만들어진 것, 이 맨션에서 일어난 하루 분의 기억만을 가지고 그것에 의지해서 과거와 미래를 환시(幻視)하고 있었던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을.    료우기 시키를 향한 마음도, 죽어버린 부모에게 향한 마음도, 전부───지금의 자신이 날조해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엔죠우 토모에라고 하는,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를 살아온 인간이 생각한 것이 아니라. 그저, 그 흉내를 내고 있었던 하루뿐인 자신이 생각한, 긴 세월이 담기지 않은 너무나도 얇은 마음인 것이다.    ……역시, 그것은 진짜였던 것일까.    나는 처음부터 있을 수 없는 자였다. 이 나선에서도 벗어난 나에게, 세상 어디에도 있을 곳이 없다. 「가짜인 너는, 결국 모조품으로 밖에 존재할 수 없는 거다. 인도해줄 가치도 없다. 어디로든지 가서 사라져 버리도록 해」    해야 할 말을 하고, 마술사는 이 엔죠우 토모에로부터 일절의 관심을 끊었다.    아라야는 토모에에게서 눈을 돌린다.    하지만───모든 것의 의의(意義)를 파괴당했을 그는, 미소까지 띄우면서 마술사를 바라보고 있었다. 「……뭐야, 너(아라야), 별거 아니잖아」    그것은 허세였겠지만───마술사의 강철의 마음에 금이 가게 할 정도로, 더할 나위 없는 허세였다. 「……너 같은 녀석을 앞에 두고, 겨우 알았어. 나는 지금까지 너같이 약한 부분을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에, 계속 잘못되어 있었던 거야.    하지만 말야, 모든 일에 가짜는 없어. 진짜도 가짜도, 결국은 나중에 판단하는 것에 지나지 않잖아. 하루뿐이라고 해도───나는, 엔죠우 토모에인 이상 확실한 과거를 가진 엔죠우 토모에다. 나에게는 과거가 없지만, 이렇게도 강한 마음이 토모에에게는 있어. 그렇다면, 그걸로 된 거야」    뿌득, 하고 어금니를 깨무는 소리가 났다. 그것은 그가 강하게 주장하는 힘, 맞서려는 강한 의지. 「……나는, 료우기를 정말로 좋아했었어. 이유 같은 건 몰라. 그 녀석과 지내면서, 아무 것도 남기지 못했지만 그것만으로 즐거웠어. 그러니까───동기를 주었던 것이 너였다고 하면, 감사정도는 해주지」    지금, 진정한 의미로 마술사와 대치하면서, 토모에는 쳇, 하고 혀를 찼다.    ……좋아했었어, 인가. 지금도 분명 빠져 있다. 계속, 계속 이 뒤로도 그 녀석을 생각하면 거칠어진 마음이 진정되겠지.    이런 것을 사랑이라고 하는 것일까, 하고 생각하면서 토모에는 혀를 찼던 것이다.    왜냐하면───그래도, 이렇게도 시키를 생각하고 있는데도, 지금은 그 녀석이 제일이 아니었으니까.    이곳에 온 이유는 시키를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코쿠토라는 남자가 데려갔던, 옛날의 집을 봤을 때에 기억이 났던 것이다. 자신이 알 리 없었던 과거, 엔죠우 토모에라는 혼이 잊을 수 없는 나날들을.    이곳에 온 이유는, 보상을 위해서. 엔죠우 토모에가 당연히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을, 나는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미안해, 료우기. 나는, 너를 위해서 죽어줄 수 없어. 난 말야───나를 위해서, 이 목숨을 걸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그렇게 중얼거리며, 용서를 빌고.    토모에는, 료우기라는 소녀의 기억을 사고로부터 소거했다. 「나는 가짜냐, 아라야」    강한 의지가 담긴 말에, 마술사는 눈썹을 치켜뜬다. 「───이미, 말할 것까지도 없다」    명백한 모멸을 담아 마술사가 대답한다.    토모에는 그럴지도 모른다며, 솔직히 끄덕인다.    그곳에 망설임은 없다.    그는, 분명히 마술사와 대치하는 존재로서 그곳에 있었다. 「……인형 같은 존재가 깨달은 건가. 그런 것은 마경(魔境)에 지나지 않는다. 명경(明鏡)을 얻으려 해도 지수(止水)에 다다르려 해도 결국 그 몸이 가짜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아아. ───그래도, 이 마음은 진짜라구」    조용한 말은, 바람을 타고 밤에 퍼져나갔다.    마술사는 한쪽 손을 올린다. 눈앞에 한쪽 손을 내뻗은 그 자세는 아라야 소우렌이라는 남자가 상대를 섬멸해야만할 존재로 인식했다는 뜻이다.    토모에는 그것을 보고 따닥따닥하고 울리는 이빨을 필사적으로 억눌렀다.    …………분명 죽는다, 라고 토모에는 생각했다.    그래도, 저 상대에게 반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죽기 위해서가 아니라, 엔죠우 토모에는 아라야 소우렌에게 어떻게든 보복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소홀히 했던 부모님을 위해서.    지금도, 이 세계에서 계속 죽고 있는 누군가를 위해서.    이것은 죽을 각오를 한 자살돌격 같은 것이 아니다. 죽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죽을 것을 알면서도 해내지 않으면 안 되는 일도, 있다.    ───나는 나(토모에)로서, 달려 나간다고 마음을 정했으니까.    ……그래, 그것이 아무리 괴로운 일이라도.    돌아가는 시계처럼. 돌고 도는 계절처럼. 언제까지나 같은 장소에 머물러있어서는 안 된다. 마음이, 여기에 확실히 있으니까.    그것은 이 몸이 꾸고 있던 꿈이었던 것일까. 아니면 내가 꾸고 있던 꿈이었던 것일까.    ……이 몸은 가짜지만. 엔죠우 토모에가 가지고 있던 의지. 엔죠우 토모에에게 깃들어있던 의지는 진짜다.    그것을 위해────── 「나는───아라야, 너를 죽이겠어」    나이프를 거머쥐고, 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 엔죠우 토모에는 달려나갔다. ◇    엔죠우 토모에가 노리는 것은 단 하나, 아라야 소우렌의 중심이었다. 이전 시키가 망설임 없이 찔러 넣었던, 마술사의 가슴의 중심. 그곳에 나이프를 찔러 넣을 수 있다면, 혹시나 이 괴물을 쓰러뜨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선 그렇게 믿고서 엔죠우 토모에는 달린다.    마술사까지의 거리는 그때의 시키와 마찬가지로 6미터정도. 이 거리를 전속력으로 달려 나간다.    바닥을 차는 다리에 전 신경을 쏟아서,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교정(校庭)에서 반복했던 스프린트보다 더욱 빠르게 마술사에게 육박한다.    마술사의 주위에 원형의 선이 떠오른다.    엔죠우 토모에를 얕보고 있는 것일까, 선은 하나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시키 때처럼 3중의 선이 아니다.    선은 마술사의 눈앞에서, 1미터정도의 거리에 펼쳐져 있었다.    엔죠우 토모에는, 그것을 피할 방법을 모른다.    정면으로 맞섰다.    몸이 움찔, 하고 멎는다. 지면을 찬 발끝에 힘 자체가 들어가지 않는다.    정말로────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마술사는 고뇌에 찬 얼굴을 한 채로, 한발 짝 앞으로 나왔다.    이 결과는 알고 있었다고 말하는 것처럼, 움직이지 않는 토모에에게 완만하게 다가간다.    앞으로 내뻗어진 팔이, 천천히, 엔죠우 토모에의 머리를 잡으려 뻗어온다.    역시 안 되나, 하고 엔죠우 토모에는 눈을 감는다.    하지만───눈앞이 어둠이 되었을 때, 기억이 역류했다. 원래라면 엔죠우 토모에가 체험하지 못했을 이 한 달만의 기억, 내가 토모에로서 이곳에 있는 확실한 것이, 작열했다. 「여기에──────」    엔죠우 토모에의 몸이 힘을 모은다.    지면에 붙어있던 다리에 온몸의 기백을 담는다.    그는 다리가 찢겨져도 좋다고 생각했다.    이대로는 끝날 수 없다.    자신은, 무가치하지 않으니까. 「있으니까────!」    튕겼다.    한쪽다리가,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    그 덕분에────앞으로 고꾸라지면서, 엔죠우 토모에는 앞으로 나아갔다.    뻗은 마술사의 팔을 잽싸게 빠져나가, 아라야의 무방비한 가슴이 손에 닿을 수 있는 거리가 된다.    토모에는 외쳤다. 「───그래, 우리 가족은 변변찮은 사람들이 아니었어. 그래도 이런 식으로 죽을 정도로, 나쁜 놈들은 아니야. 이런 식으로 죽어 버릴 정도로, 무거운 죄는 없었단 말이다……!」    소리는 힘이 되어, 그의 팔을 움직이게 했다.    나이프가 휘둘린다.    은색의 궤적을 남기며, 칼날은 깊이 마술사의 가슴에 꽂혔다.    하지만, 단지 그것뿐인 이야기였다. 「어리석은」    목소리와 함께, 마술사의 억센 팔이 뻗는다.    엔죠우의 머리를, 꽈악 움켜쥐었다. 「───료우기의 마안(魔眼)은 단지 죽음을 보는 것뿐만이 아니다. 포착할 수 있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 네가 나의 죽음을 찌르려하지만, 보지 못하는 자에게 죽음은 찔리지 않아」    우득, 하고 마술사의 팔에 힘이 실린다.    엔죠우 토모에의 팔에서, 나이프가 툭하고 바닥에 떨어졌다. 「내가 너를 고른 이유를 아직 이야기해주지 않았군」    엔죠우는 대답하지 않는다.    마술사의 손에 쥐여질 때부터, 살아가는 의지란 것을 근원부터 빼앗겨 버렸기 때문에. 「알았나. 인간에게는 존재의 근원이 된 현상이 있다. 전세(前世)부터의 업(業)이 아닌, 엔죠우 토모에라는 존재가 된 원인. 그 혼돈의 충동을 우리들은 "기원(起源)"이라고 부른다.    네가 모친을 죽이고 스스로 절망했을 때 내가 너를 구한 것은, 너의 기원이 실로 명확했기 때문이었다」    토모에는 말이 없다.    마술사는 그를 높이 들어올리고, 너무나 차가운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마지막에 알려주지. 너는 아무 것도 이루어 낼 수 없어.    왜냐하면──너의 기원은 "무가치(無價値)"니까」    마술사의 팔이 휘둘린다.    엔죠우 토모에라는 형상을 한 육체는, 그 한 동작에 의해 완전히 소멸했다.    머리조차 남지 않고 산산조각 나서, 처음부터 그랬다는 듯이, 마술사의 말대로 무가치하게 티끌이 되어 허무하게 사라져갔다. ◇    엔죠우 토모에였던 존재를 파괴한 후, 마술사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복도에 머물러있었다.    때가 가깝다. 어제까지 사용하고 있던 몸에서 예비인 지금의 몸으로 이동한지 반나절. 겨우 이 육체의 구석구석까지 의식이 통하게 되었다.    아라야 소우렌은, 어딘가의 인형사처럼 자신과 완전히 똑같은 것을 준비해두고 죽은 것이 아니다. 그는 아직 죽음이란 것을 경험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육체는 오랜 세월 끝에 몇 번이나 썩어문드러졌지만, 그 때에 의식만을 전승(傳乘)해서 지금까지 살아왔다. 아라야 소우렌은 어디까지나 한사람. 이 육체가 스러지면, 다음이야말로 도망칠 곳은 없다. 일은, 신중을 기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하지만, 이젠 기다릴 것 까지도 없다. 아라야 소우렌이라는 혼이 가진 의지가, 이 몇 대(代)째인가의 육체를 완전히 지배 하에 두었다. 육체를 움직이는 마술회로의 배선은 손톱 끝까지 달했고, 마술사는 겨우 이 임시의 육체를 진짜 육체로 승화(昇華)한 것이다.    마술사는 본래의 목적을 완수하기 위한 행동을 개시하려 했지만, 그 전에 그는 맨션 내에 일어난 이변을 알아차렸다. 「────패배했나, 아르바」    감정 없이 중얼거리고, 마술사는 그 두 눈을 감았다.    빛없는 복도 가운데, 깊은 해저에 가라앉듯이, 아라야는 자신을 혼수(昏睡)시켰다. ◇    잠든 마술사의 의식은, 몸을 10층에 남긴 채 그녀의 앞에 나타났다.    형체도 없고 모습도 없이, 1층의 로비의 토우코를 내려다본다.    ……1층, 동동(東棟)의 로비에 있는 것은 아오자키 토우코와 코쿠토 미키야란 소년이었다.    아오자키 토우코는 쓰러져있는 소년을 간호하고 있고, 그곳에 코르넬리우스 · 아르바의 모습은 없다.    역시 이렇게 된 것인가, 하고 마술사는 끄덕였다.    일의 전말을 확인하고, 마술사는 의식을 10층에 있는 육체로 되돌린다.    하지만, 그것을 그녀는 붙잡는다. 「어디 가냐, 아라야. 남을 몰래 엿보는 건 나쁜 취미라구」    아오자키 토우코는 있지도 않은 마술사의 모습을 보듯이 뒤돌아본다.    그녀는 계단아래. 마술사의 형체 없는 의식은 계단의 위. 두 사람은 기묘하게도 이전과 같은 위치에서 대치하게 되었다.   “……흠. 어떤 수단으로 아르바를 처형했는지는 알고 있지만, 또 하나의 아오자키 토우코가 있다고는. 내가 꿰뚫은 심장은 틀림없는 진짜였다. 그것은 인공물이 아니야. 그렇다면, 너는 가짜인가”    목소리만이 울려 퍼진다. 아니, 그것도 소리가 되지는 않는다. 오로지 아오자키 토우코에게만 전해지고 있다.    마술사의 말에, 그녀는 한번 숨을 내쉬었다. 「아르바에게 말하고 너에게 말하고. 쓸데없는 것에 신경 쓰지마. 그런 것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잖아. 처음 태어난 것, 그 뒤에 태어난 것. 요는 그것뿐이야. 하나냐 둘이냐의 차이에 지나지 않는 것을, 언제까지고 문제 삼지 말란 말야」   “그 말투, 확실히 너는 진짜인가.    그렇다면───다시 한번 나와 싸우겠나” 「안 해. 이 맨션 안에서는 나에게 승산이 없으니까」    딱 잘라 말하고, 그녀는 마술사의 의식에서 시선을 돌렸다.    그녀에게 있어서는 아라야 소우렌과의 문답보다 소년의 상처의 치료 쪽이 중요하다는 듯, 코트 속에서 꺼낸 붕대를 소년의 양 무릎에 능숙하게 매어간다.   “괜찮은가. 거기에 감춘 마물이라면 나를 쓰러뜨릴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거절이야. 이 녀석은 끝을 알 수가 없어서, 잘못 풀어놓으면 맨션 그 자체가 사라져버려. 그런 멋진 일을 벌리면, 협회가 가만있지 않아. 이번에는 내가 협회에 쫓기는 입장이 되겠지. 고생고생해서 행방을 감췄는데, 스스로 놈들에게 발견될 짓은 안 할거라구」    마술사의 목소리에 대답하지만, 그녀는 역시 시선을 돌리고 있다. 「나는 내가 죽은 시점에서 이 건에서는 패배했어. 이제 와서 손을 댈 생각은 없어. 시키의 뇌를 끄집어내건, 그 빈껍데기를 뒤집어쓰건, 마음대로 해. ……만약 막아서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 나는 아니야」   “이렇게 된 마당에, 억지력에 기대하고 있는 것인가. 그렇지만 그것은 움직이지 않는다고 말했을 텐데”    그녀는 고개를 젓는다. 그곳에는 부정보다, 오히려 슬픔의 빛이 느껴졌다. 「그렇고 말고, 억지력은 이제 움직이지 않아. 그러니까, 너는 이번에는 정말로 성공할지도 몰라.    인간이란 존재를 미워하는 네가 근원에 닿으면, 어떤 결과가 될지는 모르겠어. 대부분의 마술사라면 근원에 닿은 뒤에는 저쪽 세계로 가서, 우리들이 있는 세계의 일 따위는 잊어버리겠지. 하지만 너는 달라. 확실히 이쪽에 흔적을 남기고, 결과로서 이 나라 정도는 없애버릴까. 인간을 싫어하는 네가 정말로 인간을 구원하려 한다는 일이라면, 그것은 고통의 끝에 도달하는 죽음밖에 없을 테니까.    하지만 말야 아라야. 너는 인간을 미워하고 있는 것이 아니야. 너는 네 안에 있는 인간의 이상상(理想像)을 사랑하고 있는 것뿐이야. 그래서 너무나도 추한 고계(苦界)의 인간을 용납할 수 없어. 인간을 구원해? 웃기지마. 너는 사람을 구원하고 싶은 것이 아니야. 너는 아라야 소우렌이라는 자가 환상(幻想)하고 있는 인간이란 형체를 구원하고 싶은 것뿐이라고」    그녀의 말에, 마술사는 대답하지 않는다.    두 사람의 접점은, 이번이야말로, 정말로 일점의 흐려짐도 없이 끊어졌다.   “……말할 것까지도 없다. 구제(救濟)란 것은 결국, 하나의 고정(固定)에 지나지 않는다. 잘 있어라 아오자키. 근원에 접촉하면 내가 나로서 남을 확증은 없다. 최후에──나를 막아선 자가 너였던 것은, 의미가 있다고 믿도록 하지”    마술사의 의식이 떠나려한다.    그러자 눈을 돌리고 있는 채로 떠나보내려던 그녀는, 갑자기 어떤 의문에 생각이 미쳤다. 「기다려 아라야. 한 가지 묻지. 이 맨션의 본래 목적은. 태극을 가둬넣기 위한, 태극의 체현(體現)이었지?」   “확실히. 나는 료우기 시키를 외계로부터 완전히 차단하기 위해서, 이 이계(異界)를 만들어냈다. 다른 여러 가지 기능은 부가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태연한 마술사의 대답에, 그녀는───하하하, 하고 힘없이 웃어버렸다.   “───뭐냐? ”    그녀의 웃음에 마술사는 목소리를 거칠게 한다.    아오자키 토우코는, 참을 수 없다는 듯, 큰 소리로 웃었다. 「그런가, 이 건물은 하나의 마법이었지! 시키를 붙잡아서, 그 뒤에 협회에게도 나에게도 그리고 세상에게도 들키지 않도록 하기 위한 닫혀진 세계, 즉 감옥이야. 시키를 너 같은 목적으로 죽이려하는 자가 나타나면, 세계는 분명히 억지력을 움직여. 이 이계(異界)는 시키를 유폐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거기까지는 좋아. 거기까지는 완벽해. 하지만 불쌍하구나. 아라야, 너는 최후에 터무니없는 실수를 범했어」    마술사의 목소리는 없다.    아라야 소우렌은 여기까지 듣고서도 아직도 그녀의 본의(本意)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마술사는 당황한다. ……그녀가 말할 정도로 커다란 실수 따위를, 어째서, 자신은 알아차릴 수 없었나하는 것 때문에.   “────실수 따위, 없다”    단언하는 그 목소리에, 망설임이 없다고 누가 말하겠는가.    그녀는 웃음을 참으면서 대답한다. 「아아, 너에게는 미스 따위 없어. 마술사인 너에게 있어서, 이것은 최고의 해답이니까 말이야. 하지만 그 전제(前提) 자체가 잘못되어있다면 어떨까? 시키를 격리했다구? 이 맨션의 어딘가의 방이 아니라, 이 맨션 그 자체에 격리했겠지? 공간차단이라는, 이미 마법의 영역에 달한 결계. 결계의 엑스퍼트인 네가 아니고서는, 너밖에 할 수 없는 신업(神業)이다.    뫼비우스 링(닫혀진 고리)라는 밀폐공간에 갇힌 자는, 안에서부터는 결코 밖으로 나갈 수 없지. 어떤 물리적 충격을 가졌다 해도 파괴할 수 없는 벽으로 둘러싸인 세계는 탈출 불가능한 감옥이야. 그곳에 시키를 쳐넣은 너는, 그걸로 안심해버렸어.    확실히, 그건 완벽해. 그렇지만 그 놈에게 그런 것은 통하지 않아. 마술이 문명사회에 있어서 만능인 것처럼, 그건 우리들처럼 개념(槪念)으로 살아가는 자들과 상극하지. 우리들은 상식에 대해서 위협이 되지만───시키는 비상식에 대해서 사신(死神)이라고, 너는 이미 체험했을 텐데!」    그녀의 말에, 마술사의 의식은 동결되었다.    확실히 죽음을 본다는 료우기 시키는 상식을 벗어난 존재다. 하지만, 단지 사람을 죽이는 능력만을 소유한 능력자는 세상에 얼마든지 존재한다. 생물을 죽이는 것뿐인 일이라면, 문명이 만들어낸 여러 가지 근대병기에게 이길 리가 없다.    그래, 료우기 시키가 마술사인 그들에게 있어서조차 이질(異質)인 점은, 그런 것으로는 판단할 수 없다.    죽일 수 있을 리 없는 것, 형체 없는 개념조차도 죽여 버리는 궁극의 허무야말로 그것의 본성이다.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 그것이 료우기 시키의 능력이다.    출구 없이 무한히 이어진 공간은, 온갖 병기를 가지고 있어도 간섭할 수 없는 밀폐세계다. 형체가 없으니까 형체가 있는 것밖에 충돌할 수 없는 물리병기로는 건드릴 수조차 없다. 하지만───료우기 시키의 힘은 그런 형체 없는 것까지도 대상(對象)으로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래, 시키를 가둬놓을 거라면 콘크리트에 담가놓는 편이 나았어. 어디까지나 소녀의 완력밖에 가지고 있지 않은 시키를 가둘 거라면, 단순하게 강철 벽에 둘러싸인 밀실을 준비하는 것만으로 충분해.    아라야 소우렌. 너는 마술사지만, 그 때문에 마술을 절대적인 것으로 취급해버렸어. 공간을 닫더라도 의미는 없어. 그런 애매한 것, 그놈은 쉽게 물어 찢고 나온다구………!」    얼굴을 돌리고 있던 그녀가, 마술사에게로 돌아본다.    그 눈동자가 어떤 표정을 하고 있었는지를 알기 전에, 마술사의 의식은 갑자기 본래의 육체로 되돌려졌다. ◇    육체로 돌아온 마술사는, 자신의 육체의 변조(變調)를 감지했다.    몸은 차가워지고, 손끝에는 저림이 있다.    이마에는 발한(發汗).    내장의 일부가, 기능을 정지해서 위험을 고하고 있다.   “……잘린, 건가”    믿을 수 없다, 라고 마술사는 나직하게 신음한다.    하지만 진실이다.    지금 막───아라야 소우렌 그 자체라고 말할 수 있는 이 맨션의 어딘가가 싹둑 잘려진 것이다.    버터라도 자르듯 막힘없이 깔끔하게, 공간 그 자체가 쩌억 하고 잘라졌다.    마술사의 의식이 육체의 지배하고 있는 것처럼, 맨션이라는 건물의 활동도 그는 자신의 의식과 동조(同調)시키고 있었다.    이 건물은 그의 육체다. 전등의 배선은 신경이고 수도의 배관은 혈맥과 같다. 그 몸을 싹둑 잘린 아픔은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증거로────아픔에 의해 마술사의 의식의 집중은 두절되어, 그는 1층의 로비에서 육체가 있는 10층 복도로 되돌려졌다. ……거대한 팔에 끌어당겨진 것처럼 저항하지도 못하고 강제적으로. 「………뭐냐, 이것은」    그렇게 말하며, 그는 한 손으로 이마의 땀을 닦는다.    등줄기로 거미가 기어가는 것 같은, 꿈틀꿈틀하고 내장을 괴롭히는 한기(寒氣)가 있다.    그것이 구역질이라는 것이라고, 그는 수백 년 만에 기억해냈다. 「무엇을 두려워하나───아라야 소우렌」    스스로의 나약함을 마술사는 질타한다.    하지만, 육체의 이변이 멈추는 일은 없었다.    방금 전까지 이 몸의 구석구석까지 골고루 퍼져있던 힘이, 지금은 없다. 육체를 움직이는 지령을 보내야할 마술회로가, 투둑투둑, 하고 손끝부터 단선 되어간다.    ───죽음이, 그곳까지 쫓아와 있다.    우───────────웅.    갑자기, 소리가 들려왔다.    복도 끝, 로비에서 들려오는 진동음은 분명히 엘리베이터의 기동음이다.    무언가가 올라온다.    얼마 안 있어 소리는 그치고, 문이 열리는 기척이 났다.    가볍고, 건조한 소리가 로비에 울린다. 그 소리는 나막신 같은 신발로 딱딱한 바닥을 걷는 소리다.    딸그락(華蘭), 하고 발소리가 다가온다.    마술사는 로비로 통하는 방향으로 몸을 향했다.    믿기 힘들지만, 아라야는 인정한 것이다. 머지않아, 이곳에 올 자가 누구인가 하는 것을.    그것은, 곧 나타났다.    로비로부터 비치는 빛을 등에 받아, 그 모습은 윤곽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얀 기모노와, 그에 어울리지 않는 가죽점퍼.    젖어있는 것처럼 윤기 있는 흑발과 푸르게 빛나고 있는 순흑(純黑)의 눈빛.    소녀는, 그 손에 한 자루의 칼을 들고 있었다.    밤의 어둠 속, 칼집에 들어가 있던 칼이 스륵 빠져나온다. 아무렇게나 빼어진 칼을 한 손에 든 그 모습은 전장에 서있는 사무라이와 비슷하다.    이 이상 없을 정도의 정적과 죽음의 기운을 이끌고, 료우기 시키가 나타났다. / 17    시키는 맨션의 복도에 발을 들여놓자, 거기서 걸음을 멈췄다.    한 손에 든 칼을 바닥으로 향하고, 멀리 떨어진 검은 마술사를 시야에 넣는다.    양자의 거리는 방 3개 정도───숫자로 하면 10미터정도나 떨어져있다. 「이해할 수 없군───어떻게 깨고 나왔나, 료우기 시키」    고민에 찬 표정인 채, 마술사는 말했다. 그것은 그의 안에서 이미 몇 번이나 반복된 의문이다. 검은 마술사, 아라야 소우렌은 그 대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물음을 던진다.    어떻게 유폐공간에서 빠져 나왔는가는, 그도 충분히 알고 있었다. 어젯밤───마술사의 일격에 의해 뼈가 몇 대나 부러지고, 의식을 잃었던 소녀.    닫혀진 공간. 맨션의 벽과 벽 사이에 만든 공간에서 눈을 떴던 그녀는, 그 팔로 있을 수 없는 공간의 있을 수 없는 벽을 벤 것이다. 무한은 「 」이 아니다. 무한을 무한답게 하기 위해서는 유한을 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유한이 없으면 무한 따위는 존재할 수 없다. 사물에는 끝이 있기 때문에, 무한이라는 것이 관측될 수 있다. 료우기 시키는 갇혀진 무한 속에서, 있을 수 없는 유한을 찾아내서 그것을 잘라버렸다.    하지만 물론, 무한 속에 유한 따위는 없다. 존재하지 않는 것은 자를 수 없기 때문에 그 감옥은 탈출이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나──유한이 없다면 무한이 없는 것이다. 유한의 벽이 있든 없든, 료우기 시키 앞에서 그런 끝이 없는 세계 따위는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유한이 진짜로 없다면, 그것은 무한 따위는 아닌 「 」이다. 유한을 내포하고 있는 존재라면 시키는 그것을 찾아내서 베어버린다.    ……절대였을 검은 구멍은, 이 상대에게만큼은 그저 좁은 암실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라고, 마술사는 스스로를 부끄러워했다. 「하지만───원인은 있을 것이다. 내가 입힌 상처는 아직 낫지 않았다. 그 몸으로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는 건가. 그 상처를 입고서 어떻게 눈을 뜬 거냐. 어째서 앞으로 몇 분도 안 되는 시간을 혼수(昏睡)에 빠져있지 않은 것이냐」    고뇌에 가득 찬 표정인 상태로, 마술사는 언성만을 높인다.    그래──이 결계가 무의미한 것이라고 해도, 시키가 혼수상태였다면 문제는 없었다.    단 몇 분.    시키가 단 몇 분만 더 있다가 눈을 떴더라면, 일은 끝났었겠지.    이 여자는, 지금 깨어났다. 그곳에 외적인 요인은 없다. 아마도, 시키는 잠에서 깨어나듯 자연스럽게, 당연한 것처럼 눈뜬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유폐되어있다고 깨닫고 망설이지 않고, 벽을 갈라 찢었다.    굳이 말한다면, 운이 나빴다고 밖에 말할 방법이 없다.    아오자키 토우코와의 염화(念話)가 시간을 빼앗은 것인가. 아니, 그 대화는 한순간이었다.    그렇다면───쓸데없는 시간은, 어디에 있었나?    마술사는 회상하다가, 불쾌하게 눈썹을 일그러뜨렸다.    그는 손바닥을 힐끗 보았다. 그것은 수 분전에 엔죠우 토모에라는 존재를 으스러뜨린 팔. 단 몇 분. 그러나 명암을 가른 몇 분. 그것과 접했던 시간만 없었더라면, 아마도. 「엔죠우────토모에인가」    토해내는 말에는 원망이 어려 있었다.    그렇지만, 그것을 료우기 시키는 부정했다.    자신이 깨어난 것과 엔죠우 토모에는 무관계다, 라고. 「나는 나 혼자 멋대로 깨어 난거야. 누구의 도움도 빌리지 않았어. 엔죠우는 이곳에 올 의미 따윈 없었어」    조용한 목소리로 시키는 말한다.    밤바람이, 살랑살랑하고 그녀의 흑발을 흔들고 있었다. 「하지만, 너를 파멸시킨 것은 엔죠우다. 그것만은 말해두지」    시키의 말에 마술사는 눈을 가느다랗게 뜬다.    아라야 소우렌을 파멸시킨 것은 엔죠우 토모에라고, 시키는 말했다.    그런 일은 결코 없다. 만약 자신을 파멸시킨 요인이 있다고 가정한다면 그것은 료우기 시키나 아오자키 토우코 중 어느 한쪽이다.    그저, 조종당하고 있었을 뿐인 그 인형이 원인이라니, 결코. 「망언을. 그건 아무 것도 이루지 못했어. 너를 데려온 것조차, 주어진 역할에 지나지 않는다. 단순한 허수아비일 뿐이다」 「아아, 그 녀석은 아무 것도 안 했고,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어. 하지만 말야, 너는 처음부터 그 녀석을 써먹을 생각이 아니었잖아」    므, 하고 마술사는 머뭇거렸다.    그렇군, 하고 아라야는 생각한다.    엔죠우 토모에가 일상에서 탈출했을 때, 그는 그것을 이용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다. 예상외의 이레귤러를 이용하는 것으로, 자신의 계획이 고장을 일으키지 않게 하면서 속행했던 것이다.    그러나──그것은, 처음부터 아라야 본인이 세운 계획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엔죠우 토모에가 빠져나갔기 때문에 생겨난 2차적인 계획이다.    그것은, 무언가 이루었다고 말할 일은 아닌 것일까.    원래대로라면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는 사이에 모든 것을 끝낼 수 있었을 계획이었던 그것을 흐트러뜨린, 정말 사소한 사건이었다고 하더라도.    시키는 말한다. 「너는 그 녀석이란 예정의 어긋남을 보고, 그것을 이용하는 것으로 다 잘 처리 된 거라 생각했어. 하지만, 그 시점에서 너는 이미 헛점 투성이가 되어있었던 거다.    그 녀석은───엔죠우 토모에는, 이 나선에서 빠져나간 시점에서, 이미 충분하고도 남을 정도로 의미가 있었던 거라구」    그리고, 그녀는 한 발짝 앞으로 나왔다.    그 발놀림은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마술사는 한쪽 손을 드는 행동조차 못했다.    뭔가 다르다, 라고 마술사는 하얀 기모노의 소녀를 바라본다.    확실히 지금의 시키는 어젯밤과는 마음가짐이 달라져있겠지. 엔죠우가 이미 파괴된 것을 알고 있는 그녀는, 아라야 소우렌을 미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변화는 대단치 않다. 단순한 감정의 변화 따위로 개인의 역량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한데도, 지금, 마술사는 눈앞에 있는 상대가 어젯밤과는 다른 존재라고 느끼고 있었다.    소녀는 더욱 다가온다.    산보하는 것 같은, 결심 같은 것이 보이지 않는 자연스러운 발걸음. 그 속에서 시키는 성가시다는 투로 입을 열었다. 「아아, 너 따위는 어떻게 되던 상관없어. 하지만 나중에 귀찮아지는 것도 사양하고 싶으니, 여기서 죽이겠어」    시키는 졸린 듯, 힘없는 눈매를 한다. 「하지만 처음이야. 나, 전혀 기쁘지 않아. 사냥감이 눈앞에 있는데도 가슴이 뛰질 않아. 너하고 라면 아슬아슬하게 싸울 수 있을 거라 알고 있었는데도, 웃을 수 없어」    착, 하고 시키가 쥔 칼이 울린다.    그것은 지금까지 느슨하게 쥐고 있던 칼자루를 강하게 고쳐 쥐는 소리다.    걸으면서, 시키는 조용히 칼을 앞으로……허리 위치에 까지 가져간다.    마술사는 천천히 한쪽 팔을 든다. 갑자기, 그 주위에 3중의 원이 그려져 간다. 「───좋다. 산채로 잡는다는 것, 처음부터 바라지 않았다. 일은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았다. 멀쩡하게 소생하지는 않겠지만, 그 머리를 없애버리고 나의 머리로 바꾸도록 하지. 나는 죽겠지만, 근원에 닿을 수 있다면 이 목숨 따위───」    마술사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시키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두 사람의 거리는 점점 좁아져 간다.    마술사의 3중의 결계는 직경으로 4미터. 시키는 그 외주에서 2미터 정도 되는 곳까지 접근해있었다.    시키가 발하는 살기는, 겨울의 한기를 여름의 열풍으로 바꾸고 있었다.    조용히, 복도 전체로 흘러가는 살기는, 마술사의 피부를 지글지글 태우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래도.    마술사는, 시키에게 지는 일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가 손에 든 칼이 수백 년이나 되는 세월을 축적한 명도(名刀)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도, 시키의 전투기술은 자신에게는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산채로 잡는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아라야 소우렌은 시키를 접근시키는 일없이 처치할 자신이 있었다.    시키는 결계 직전까지 걸어가자, 발을 딱 멈췄다. 지금까지 한쪽 손으로 잡고 있던 칼자루에, 다른 하나의 손을 살짝 겹친다.    허리의 중심은 약간 낮다. 목전에 자리한 칼의 자루는, 배 앞에 고정하고, 도신(刀身)은 비스듬히 전방의 적을 향해 기울어져 있다.    자세는 정안(正眼)───수많은 검술 유파에서도 제일 많이 다루어지는, 기본으로서 최강이라고 불리는 전투 자세.    시키는 그대로 마술사와 대치하자, 졸린 듯한 눈동자를 천천히 감고서 과연, 하고 중얼거리며 끄덕였다. 「아아, 알았어. 나는 너를 죽이고 싶은 것이 아니야. 단지 네가 『있다』는 것이 참을 수 없는 거야」    ……그것은 분명, 토모에를 죽인 상대에게로의 감정.    지금까지 단지 예리하기만 했던 살기가, 명확한 칼날이 되어 마술사의 온몸을 꿰뚫는다.    그것이, 한순간만의 공방(攻防)이 되는 싸움의 신호였다. ◇    번뜩, 하고 시키는 눈을 뜬다.    마술사는 내민 팔에 힘을 싣는다.    이 때.    ───아라야는 전의(戰意)에서가 아니라, 그저 순수한 두려움에서 시키를 죽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직감했다. 「───숙(肅)!」    아라야의 노호(怒號)는, 틈을 주지 않고 공간을 으깨버리는 악마의 팔이다. 그는 시키 주위의 공간을 노려보고, 그대로 풍경 채로 쥐어짠다. 그곳에 일절의 타임랙은 없다.    외치면서, 주먹을 쥔 순간에, 시키의 패배는 결정적이다.    하지만.    아라야는 보았다.    자신의 외침보다 느리게 움직이기 시작했던 소녀가 자신의 외침보다 빠르게 활동하는 그 이상한 모습을.    칼을 쥔 양손이 튀어 올라간다. 그것은 섬광이라고 착각할 정도의 속도. 상단으로 들어올려진 칼은 그 이상의 속도로 내리 휘둘렸다.    숙(肅), 이란 외침이,    참(斬), 이란 칼 소리에 양단 되었다.    시키를 으스러뜨렸을 공간의 일그러짐은, 그녀의 눈앞에서, 그 일그러짐 채로 살해당한 것이다.    마술사는 다시, 주먹에 힘을 모은다.    그저 손바닥을 펴고, 쥔다. 그것뿐인 행동은, 그러나.    료우기 시키의 질주 앞에서는 너무 느렸다.   “──────”    아라야는 소리도 없이, 사고조차 제때하지 못하고, 그것을 받아들였다.    료우기 시키는, 문자 그대로 튕겼다.    일그러짐에 일섬(一閃)한 자세로, 마술사를 일격에 끝내려, 달려간다.    내딛기 전에, 료우기 시키는 칼을 횡일문자로 휘둘렀다.    마술사가 의지하고 있던 결계는, 그것으로 산산이 흩어졌다.    ……외주(外周)만이었다면, 오히려 일격에 살해되어도 좋다고 아라야는 각오하고 있었다. 만약 접근 당해도 시키가 제2진을 죽이려하는 틈에, 승부를 내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그녀는, 그저 단 한번 칼을 휘두르는 것으로 간격 밖의 결계를 두 개 동시에 소멸시켰다.    그리고 한발 내딛는다.    휘둘렀던 칼이 신속(神速)이라면, 이 보법은 어찌된 속도인가.    료우기는 단 한발 짝으로, 4미터나 되는 거리를 제로로 만들었다.    흐르는 몸. 내딛은 1보는, 동시에 필살의 참격을 이끌어내는 디딤발이 된다. 너무나 빠른 여자의 몸은, 시간을 멈추고 있다기보다 시간을 역행하고 있다고까지 생각되었다.    참격이 휘둘러진다.    마술사는 후방으로 재빨리 물러서서 피한다.    료우기 시키는, 칼을 완전히 휘두른 자세인 채 마술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입술에서 한줄기, 선혈이 흘러 떨어진다. 그녀 자신은 상처를 입지 않았다. 단지, 어젯밤의 상처가 벌어진 것뿐이다. 몇 대의 갈비뼈와 몇 군데의 내장이 파손되어 있는 료우기 시키의 육체는, 걷는 것만으로 혈액을 입으로 역류시켜 버린다.    그 정도로 상처를 입고 있는데도, 이 정도의 참격을 날리는 것이다.    물러섰던 마술사의 오른팔이 떨어진다. 아니, 팔이 아니다. 어깻죽지부터 비스듬하게, 가슴 채로 한쪽 팔이 복도에 떨어졌다.    마술사는───발사된 권총의 탄환조차, 발사된 뒤에 피할 만큼의 운동신경을 가진 아라야 소우렌은, 완전히 잘린 뒤에 뒤로 물러선 것이다. 본인도 베어졌다고 알아차리지 못한 채로. 「────네놈, 무슨」    자신의 상처에는 눈도 주지 않고, 마술사는 전방에 서있는 상대를 노려본다.    ……지금의 일격은, 그야말로 치명상이었겠지. 시키가 두 번째의 참격으로 두 개가 아니라 세 개의 결계를 죽였었다면, 아라야의 몸은 몸통부터 2개로 양단되어 있었을 것이다.    마술사의 제일 가까운 주위를 보호하는 제1결계, 불구(不俱). 그 결계 때문에 그녀가 내딛은 디딤발이 조금 얕게 들어가, 마술사는 치명상을 면한 것이었다.    아니, 놀랄만한 것은 그런 일이 아니다.    시키는, 어젯밤과는 완전히 다른 존재였다.    엔죠우 토모에가 죽은 분노로 본래이상의 힘을 발휘한다는 건가. 아니다, 그것은 결코 불가능할 터.    마술사는 하얀 기모노의 소녀를 응시한다.    료우기 시키는 자세를 바로잡고는, 양손으로 잡고 있던 칼을 한 손으로 다시 고쳐 잡는다. ……그것만으로 소녀는 어제의 소녀로 돌아가 있었다.    쿨럭, 하고 기침한 입가에는 핏방울. 어젯밤의 상처만 아니었다면, 그녀는 쉴 틈 없이 마술사에게 베어 들어가, 그 목을 들고 있을지도 모른다.   “……뭣이. 무기에 의한 차이였나”    아라야는 어이가 없었다.    시키가 다른 사람이 된 이유. 그것은 극한까지 단련된 전투의지의 제어법과 다를 것이 없다.    아득한 옛날. 사무라이들은 칼을 뺀 시점에서, 죽이고 죽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것은 무사로서의 마음가짐이기 때문이 아니다. 칼자루를 쥔 순간에, 그들은 각성하는 것이다.    싸우는 것만을 위한 육체, 살아남는 것만을 위한 두뇌로.    시합 전에 정신을 바짝 차린다는 수준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들은 칼을 빼는 것으로 뇌의 기능을 바꾼다. 육체를 전투용으로 다시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근육은 생물이 사용해야 할 방법이 아닌 방법으로 활동하고, 혈맥은 혈액의 순환루트를 바꾸어 호흡조차 하지 않게 된다. ……그렇다, 싸움에 필요 없는, 「인간」으로서의 기능은 전부 배제되고, 전투용의 부품으로 전부 바뀌어 버린다. 「───놀랍군. 자기암시에 의한 변체(變體)라니」    괴로운 듯한 마술사의 말에, 기모노의 소녀는 예에, 하고 대답했다.    ……시키가 눈을 뜬 순간, 아라야에게 느껴졌던 두려움의 정체가 이것이다. 마술사는 스스로의 몽매함을 저주했다. 설마, 이 업(業)을 현대까지 전하고 있는 일족이 있다고는.    아라야는 알고 있다. 과거에 존재했던 고류(古流)의 검객에게 있어서, 약 3간(間) 정도의 거리쯤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아마도 좀 전의 시키라면 5간……9미터 정도의 거리조차 한걸음에 내딛어 왔겠지.    모두가, 그녀의 본래의 모습을 몰랐다.    료우기 시키는 직사의 마안과 나이프로 싸우는 것이 그녀의 스타일이라고 단정 지어져 있었다. 그러나 실제는 이것이다. 이 여자는, 본래 검을 사용하는 살인귀인 것이다. 지금의 그녀에게 비하면, 보통의 그녀 정도는 발끝에도 미치지 않는다. 「……속았군. 아사가미 후지노와의 사투는, 진심으로 한 일이 아니었다는 것인가」    마술사의 말에 료우기 시키는 아니요, 라고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무기가 무엇이든, 자신은 항상 진심이었다고 차가운 눈동자가 고하고 있다.    그 눈빛을 받으며, 마술사는 깨달았다.    지금───이 여자는 뭐라고 대답했지?    이곳에 있는 그릇(器)은 뭐지?    이 상대는───언제부터 시키가 아니었지? 「그런가……겨우 만났다는 건가……!」    이미 상처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 거대한 상처를 남은 왼쪽 팔로 누르면서, 마술사는 으르렁거린다.    하얀 기모노의 여자───료우기 시키는, 그 이상 없을 정도로, 여성적인 미소를 띄웠다.    그대로 그녀는 마술사에게로 휘두르며 달려든다.    그 참격을 피할 수단을, 아라야는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그래도───이곳은 그의 체내다. 아라야 소우렌에게, 이 곳에서의 패배는 있을 수 없다.    설령 이 맨션 채로 파괴되어도, 지금의 료우기 시키는 손에 넣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다.    승기(勝機)를 걸고, 마술사는 전진했다. 「───사할(蛇蝎)……!」    마술사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는 남은 왼쪽 팔로, 료우기 시키의 칼을 막는다. 불사리(佛舍利)를 채워 넣은 그의 왼팔은, 이 몸에서도 건재한 것이다. 아무리 료우기 시키라고 해도 성인의 가호를 쉽게 벨 수 는 없다.    동시에, 잘려 떨어졌던 오른팔이 혼자서 튀어 오른다. 팔은 뱀처럼 바닥을 기어서 료우기 시키의 목덜미로 날아들었다. 「────읏!」    만력(万力) 같은 팔이, 료우기 시키의 목을 조인다.    그 약간의 틈에, 마술사는 더욱 뒤로 물러나, 왼팔을 내뻗었다.    숙(肅), 하고 손바닥이 공간을 압축한다.    모든 방향에서 전신의 뼈를 부술 기세로, 충격이 료우기 시키의 몸에 쇄도했다.    아, 하는 단말마의 목소리가 새어나온다.    가죽점퍼는 갈가리 찢겨져 하얀 기모노의 소녀가 지면에 무너져 내렸다.    아니, 무너져 내리려고 했다. ───그러나. 료우기 시키는 깨끗이 사라졌다.    시키는, 이 상대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확실히 의식이 흐릿해져있는 그 상황에서, 하얀 형체가 튀어 오른다.    그녀는, 오로지 아라야 소우렌의 모습만을 직사(直死)했다.    휘둘러지는 칼.    칼은 마술사의 가슴의 중심에 꽂힌다.    푸욱, 하고 자신의 생명을 빼앗아 가는 감각을, 마술사는 혐오했다. 「───어리석은!」    동시에, 아라야는 어이없게도 시키를 걷어찼다.    시키의 배를 뒤꿈치로 차는, 창 같은 중단차기.    그것을 시키는 뒤로 뛰어서 회피한다.    칼이 찌익 뽑히고 나서, 아라야는 깨달았다.    이 상대를 멈추려면───── 「───나의 이계(異界) 채로, 죽이지 않으면 안 되는 건가……!」    마술사의 왼손이 펴진다.    세 번째의 공간 압축. 그것을 한칼에 잘라버리고, 시키는 멍하니 서있었다. ───마술사의 형체가, 검은 외투 채로 사라져간다.    시키는 그것을 멈추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어떠한 원리로 마술사가 이 장소에서 사라지려고 하는 것일까, 어떻게 하면 제지할 수 있을까. 그런 사소한 일 따위, 시키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도망칠 거라면 좋을 대로하면 된다고 중얼거리면서, 시키는 복도의 난간에 손을 짚는다. 「────그래도, 절대로 놓치지 않아」    그대로, 그녀는 밖으로 뛰었다. ◇ ───아라야는, 맨션 자체를 압축시키기로 했다.    료우기 시키의 육체는 그걸로 으스러지겠지만, 외견 따위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 인간으로서 생명활동이 유지될 정도로 육체가 남아있으면 된다. 처음부터 머리는 필요 없었다. 두개골이 깨져, 뇌장(腦漿)이 흩뿌려져도, 그 부분은 자신의 머리로 바꿀 것이니까. 중요한 것은 그 육체. 근원으로 이어져있는 육체뿐이다.    한쪽 팔을 잘리고 가슴 중심까지 꿰뚫린 이 몸으로는, 몇 시간 버틸 수 없다. 근원의 소용돌이라는, 모든 것의 시작이 있는 장소에 도달할 수 있다면 육체 따위는 불필요하겠지. 중요한 건 그때까지, 자신의 혼과 료우기 시키의 육체가 보전되면 되는 것이다.    이미 생각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었지만, 결국 해야만 하는 일은 같다. 실패한 상황을 위한 보험이 전혀 없어진 것 뿐.    ……어차피, 이 방법으로 이르지 못할 것이라면, 손쓸 방법이 없는 것이다.    아라야는 생각한다.    실패를 두려워하는 자신의 약함이야말로, 최대의 적이었다, 고. 처음부터 료우기 시키를 죽여 두었다면 이렇게까지 막다른 곳에 몰리는 일 따위는 없었을 테니까.    어쨌든, 이걸로 막은 내린다.    마술사는 자신의 체내인 맨션에서 체외인 정원으로 빠져 나왔다.    녹색 잔디에 둘러싸인 맨션의 정원은, 결계 안에 있지만 맨션이라는 건물의 일부가 아니다. 파괴되어도 이곳만은 영향을 받지 않고 남겠지.    정원에 갑자기 나타난 마술사는, 공간전이 후에 쉴틈 없이 곧바로 한쪽 팔을 뻗었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원형의 탑을 찌부러뜨리기 위해 손바닥을 편다.    순간. 그의 몸은 어깻죽지부터 절단되었다. ◇    순간, 그의 몸은 어깻죽지부터 절단되었다. 「료우기───시키」    밤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마술사는 신음했다. 「네──────놈」    쿠헉, 마술사는 입에서 붉은 피를 뿌렸다. 가루 같은 혈액은 지면에 방울로 떨어지는 일없이 바람을 타고 흩어져갔다. 「───설마, 이런」    믿을 수 없다, 라고 그는 중얼거렸다.    그것도 당연. 정원에 나타난 마술사가 밤하늘을 올려다봤을 때, 그곳에 있는 것은 10층에서 뛰어내린 료우기 시키였으니까.    이 상대는────마술사가 맨션에서 정원으로 공간을 연결해서 이동할 것이라고 판단한 찰나, 망설임 없이 10층에서 뛰어내린 것이다.    거기에 어떤 확신이 있었던 일인지는 이해할 수 없다.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설령 정말로 마술사가 정원에 나타난다고 예지했다고 해도, 10층에서 뛰어내린다고 누가 생각하겠는가.    그것은 무모(無謀)를 뛰어넘어, 기적이라고 불릴 일이다.    10층에서, 단 한사람의 인간을 노리고 뛰어내린다? 그런 일은 10층에서 한 자루의 바늘을 떨어뜨려서 목표에 맞추는 것과 무엇이 틀린가.    그래도, 이 상대는 망설임 없이, 뛰어내렸다.    아직 마술사의 모습이 10층에 남아있었는데도, 아직 존재하지 않는 정원에 선 아라야 소우렌을 향해서 뛰어내린 것이다.    그리고, 마술사는 나타난 순간에 베어졌다. 맨션을 으스러뜨리기 위해서 내밀어진 왼쪽 팔을 순간적으로 방패로 삼았지만, 그것 채로 어깻죽지부터 허리까지 양단 되었다. 왼쪽 팔에 채워 넣은 불사리(佛舍利)의 가호라고 해도, 10층 분의 낙차의 충격을 담은 참격에는 당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시키의 몸은, 지상에 떨어지지 않고 정지해있다.    우습게도───마술사가 가지고 있는 정지의 결계가 아직 하나 남아있었던 것이다.    그것에 걸려있는 것처럼, 시키는 지상으로의 낙하의 충격을 받고 있지 않았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높이 40미터 이상에서의 낙하의 압력은 그녀의 상처를 더욱 악화시킨 것이겠지.    시키는 계속 고개를 숙인 상태다.    손에 쥔 칼은 마술사의 몸을 파고들어가 떨어지지 않는다.    아라야는 역시 고민에 가득 찬 표정을 바꾸지 않고, 화가 치밀어 오른 듯 눈썹을 찡그린다. 「……나를 붙잡을 수 있다면 지상으로의 격돌은 없다고 각오한 건가. 아니, 틀리겠군. 이런 것이 없어도, 너라면 같은 짓을 했겠지. ───이 얼마나 꼴사나운가. 너 같은 미숙자에게, 아라야 소우렌은 부서질 수 없다」    그것은 허세가 아니라, 흐림 없는 그의 본심이었다.    왼쪽 팔은 팔꿈치부터 절단되었고, 오른쪽 팔은 이미 잃었다. 그저 서있을 뿐인 마술사는, 그대로 시키를 걷어찼다.    서있는 상태로 하늘을 꿰뚫을 것 같은 발차기가 시키의 가슴을 강타했다.    시키의 몸은, 그대로 정원으로 튕겨 날아올랐다.    그래도 손을 검에서 떼지 않은 시키와, 깊숙이 마술사의 육체를 파고 들어간 칼.    결과, 칼은 도신에서 두 개로 부러져 400년이나 되는 역사에 종지부를 찍었다.    시키는 정원에 쓰러진 채로 움직이지 않는다.    완전히 의식을 잃은 그녀를 바라보면서, 마술사는 불유쾌하게 중얼거렸다. 「그렇게 있으면, 그 또래의 소녀 같아 보이건만」    마술사는 움직이지 않는다.    고뇌에 찬 얼굴이, 한층 그 빛이 진해져간다. 이젠 눈앞에 있는데도, 마술사는 움직일 수 없었다.    지금의 참격은, 어찌하지 못할 정도의 치명타였다.    정말이지──어이없을 정도로 엉터리 같은 일격이었지만, 동시에 더 이상 없을 정도의 일격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것을 맞았으니, 분명히 쓰러질 수밖에 없나───. 「또 서로 동시에 치는 형국이 되다니」    그것이 그들의 인과였던 걸까.    목적을 앞에 두고 움직이지 않는 자신의 몸과, 뛰어내려온 시키의 몸을 멈춘 자신의 결계를 돌이켜보면서, 아라야는 혼자서, 중얼거렸다. 「기원을 각성한 자는 기원에 속박된다, 인가.    과연────나의 충동은 "정지(停止)"였다는 건가」    마술사는 짓궂은 듯이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게, 그렇게 중얼거렸다. / 18    달빛만이, 살아있는 것 같았다.    녹색 잔디에 쓰러져있는 시키와, 양팔을 잃고 서있는 검은 옷의 마술사.    그곳에, 산보에서 돌아오는 듯한 발걸음으로 또 한사람의 마술사가 나타났다. 「이번에도 실패로 끝났구나, 아라야」    토우코의 말에, 아라야는 대답하지 않는다. 「참혹한 꼴이군. 사람의 죽음을 수집하고, 지옥을 만들고, 그들의 괴로움을 체험하고. 그런 일은 괴로울 뿐이잖아? 어째서 그렇게까지 해서 자신을 몰아붙이지? 어째서 너는 그렇게까지 근원의 소용돌이 따위를 구하는 거야. 설마 정말로, 타밀(台密)의 승려였던 시절부터 인간의 구제를 꿈꾸고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겠지?」 「───이유 따위, 이미 잊었다」    대답하고, 검은 마술사는 자신의 생각에 몰두했다.    아주 옛날의 이야기다. 인간은 구원할 수 없다. 살아가는 이상, 어떻게 하더라도 보답 받을 수 없는 자가 나오게 되어 버린다. 모든 인간은 행복해질 수 없다. 그렇다면───구원할 수 없었던 인간이란 무엇인가. 그 일생은 무엇으로서 보답 받는 것인가.    대답은 없다. 무한과 유한에 동등한 것이다. 구원 할 수 없는 자가 없다면, 구원 할 수 있는 자가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면───구제(救濟)는, 단지 돌고 돌뿐인 재화(財貨)와 마찬가지다.    인간은 구원할 수 없다. 세계에 구원 따위는 없다. 그러니까 죽음을 기록하려고 생각했다. 모든 일의 최후까지 기록해서, 처음부터 끝까지를 검증한다. 그렇게 하면, 대체 무엇이 행복이었는지 판별되겠지.    보답 받을 수 없는 자도 구원할 수 없는 자도, 그 전부를 처음부터 다시 볼 수 있다면───무엇을 행복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인지를 판단할 수 있다. 세상이 끝난 뒤에, 그것만이 인간의 의미였다는 걸 알 수 있다면──무의미하게 죽어 갔던 자들도, 전부 의미가 부여될 수 있을 것이다. 때문에 세계가 끝나면, 사람은, 인간의 가치라는 것을 검증 할 수 있다.    그것만이───유일한, 공통의 구원이다.    ……………….    짤깍, 하고 소리가 났다.    토우코가 담배에 불을 붙이는 소리에, 아라야의 의식은 되돌려졌다. 「이유도 잊은 건가. 너의 바램은 무(無), 그리고 발단조차도 제로. 그러면 대체 너는 무엇인 걸까」 「나는 누구도 아니다. 단지 결론을 원한다. 이 추하고 더러운 무리인 몽매한 인간들. 놈들이 죽음에 이른 뒤, 역사에 그것밖에 남길 수 없다면───추함만이 인간의 가치였다고 결론 내릴 수 있다. 추하고, 구원받을 수 없는 존재야말로 인간이었다고, 나는 안심할 수 있는 거다」 두 사람의 마술사는 서로의 얼굴을 보지 않고 대화를 나눈다.    아라야는 서있는 채로.    토우코는 별이 빛나는 하늘을 올려다보는 채로. 「───그래서 근원의 소용돌이에 접촉하고 싶었던 건가.    그곳에는 모든 기록이 있어. 없었다고 해도, 모든 것을 무(無)로 할 수 가 있어. 너는 너를 위해서, 더러운 인간들을 모두 없애버리고 싶은 거야」 「그렇다. 그렇지만 앞으로 열 걸음. 남은 몇 발짝을 앞에 두고, 또 세계(世界)에게 방해를 당했다. 길을 여는 것도 불가능 하고, 원래부터 길을 가진 그릇(器)을 손에 넣는 것조차 저지당한다. 이 무슨───무슨 끈질김인가.    누구도 세계의 위기 따위는 모르지만, 누구나가 무의식 하에서 살아남고 싶다고 바란다. 누구도 부서져 가는 세계를 구하려고도 하지 않고 쾌락에 빠져있는데도, 누구나 무의식 하에서 세계에 위해(危害)를 가하는 것을 배제하려고 한다. 이 모순을 뭐라고 해야 하나.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살려고 하는 기도(祈禱)를 더럽히는 거다.    그 사념(邪念)이야말로, 나의 적이다」    목소리에는 깊은 증오가 깃들어 있었다.    토우코는 후우, 하고 한숨을 쉰다. 「세계───? 틀렸어, 아라야. 이번에 너를 막은 것은 영장의 억지력이 아니야. 너는 정말로 잘했어. 억지력은 움직이지 않았어. 아라야 소우렌을 파멸시킨 것은 단 하나. 너는 말야, 엔죠우 토모에라는, 단 한사람의 인간의 꼴같잖은 가족애(家族愛)에 진 거야」    아라야는 인정하지 하지 못한다.    전 세계의, 현존하고 있는 인간 전부의 의지를 적으로 돌리더라도 이겨내 보이겠다고 한 자신이, 그런 애송이에게 무릎을 꿇었다고, 누가────. 「만약 그렇다고 해도, 놈을 뒤에서 떠민 것은 영장의 세계를 유지하려고 하는 유상무상(有像無像)의 무리들이다. 본래의 엔죠우 토모에로서는, 그 행동은 불가능하다. 녀석을 움직이고 있던 것은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 따위가 아니야. 그런 것은 인간이 아니다. 녀석들에게 있는 것은 자신이 살아남겠다는 원망(願望)뿐이다. 녀석은, 그 추한 본심을 숨기기 위해서, 가족애 같은 장식을 뒤집어쓰고 있던 것에 지나지 않아. 자신이 살아있고 싶으니까, 타인을 보호하는 흉내를 내는 것이다」    아라야의 말에는 미움밖에 없다.    토우코는 인간을 더럽다고 매도하는 이 남자를, 옳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라야 소우렌은 너무 오래 살아서, 이미 하나의 개념화되어있다. 사고의 방향성이 바뀌지 않는 것은, 이미 인간이 아니다.    소용없다고 알면서도, 그녀는 하다 만 저주를 계속 하기로 했다. 「───하나, 좋은 것을 알려줄까 아라야. 너는 모르고 있었겠지만 말야, 유명한 심리학자가 정의한 집단무의식(集團無意識)이라는 것이 있어. 모든 인간의 의식의 최하층에는 모두 같은 호수(湖)에 다다른다는 생각. 원래부터 불교의 승려인 너에게는 친숙한 사상이 아니면 안 되는 것이지. 이것은 곧, 가이아론(論)적이 아닌 쪽의 억지력───영장의 무의식 하에서의 동일 의견이야.    이걸 말이지, 소우렌. 일.반.에.서.는. 아.라.야.식.(Alaya識)이.라.고. 하.지」    무, 어, 하고 숨을 삼키는 소리가 난다.    토우코는 상관하지 않고 계속한다.    마술사는 이전, 그녀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던 것이다. 자신의 적은 영장의 상념(想念), 구원하기 힘든 인간의 성질이다, 라고.    그 저주가────지금, 그곳에 하나의 형체를 이룬다. 「우습지, 아라야 소우렌.    너는 네가 평생의 적이라고 정한 것과 동일한 성(姓)을 가지고 태어났어. 그런데도 너 자신은 모르고 너의 주위에 있던 인간은 그 사실을 알려주지도 않았어. 정말로 심술궂은 세계의 계략일까. 알겠어 소우렌? 이번의 모순은 산더미만큼 있었지만───무엇보다 지배자인 너 그 자체가, 최대의 모순이었던 거야」    ……저주는 흉악한 악마의 이미지가 되어, 아라야의 사고(思考)를 침식하고, 침공하여, 그의 존재에 치명적 타격을 가했다.    마술사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저, 그 눈의 초점만이 사라져간다.    그래도 미동도 하지 않고. 그는 고민의 표정을 띄웠다. 그 어두움, 그 무거움은 영원히 풀리지 않는 명제를 등에 진 철학자의 그것일까.    부정은 하지 않고, 저주만을 받아들이고서, 마술사는 말했다. 「───이 몸은, 한계다」 「또 처음부터 다시 하는 건가. 그걸로 몇 번째야. 너는 질리지도 않는 구나」    그것이야말로 나선. 아라야는 최후까지 무뚝뚝한 얼굴을 무너뜨리지 않는다.    토우코는 명백한 경멸의 시선을 보내며, 손가락에 끼운 담배를 던져버렸다. 결국, 불붙인 담배를 그녀는 한번도 입에 대지 않았다.    경멸은 하지만───그녀는, 이 개념화한 마술사를 증오하고 있지는 않았다.    한 발짝 잘못 디뎠다면. 아니, 한 발짝 잘못 디디지 않았다면, 자신도 이와 같은 존재가 되어있었을 것이 틀림없다. 인간도 아니고 생물도 아닌, 그저 현상(現象)이 되어버린 이론의 구현(具現).    지금의 그녀는, 그것을 슬프다고 생각해버렸으니까.    커헉, 하고 아라야는 피를 토한다.    그 몸이, 남아있는 좌반신부터 재가 되어 사라져간다. 「예비의 몸은 만들어두지 않았다. 재회가 있다고 하면 다음 세기인가」 「그 무렵에 마술사 따위는 없어. 재회는 없겠지. 너는 마지막까지 혼자야.    그래도───멈추지 않겠다는 거냐」 「물론. 나는 패배 따위는 인정할 수 없다」    토우코는 그저 눈을 감는다.    오랫동안 헤어져있던 수년을 정산하는, 잠깐 동안의 문답은 여기까지다.    마지막으로───그녀는, 아오자키 토우코라는 마술사로서 아라야 소우렌에게 물었다. 「아라야、무엇을 찾지?」 「────진정한 지혜를」    검은 마술사의 팔이 무너진다. 「아라야、어디에서 찾지?」 「────단지, 내 안에 있다」    외투는 산산이 흩어지고, 반신(半身)이 바람에 흩어져간다.    그것을 계속, 아오자키 토우코는 끝까지 지켜보고 있었다. 「아라야, 어디를 목표로 하지?」    부서져가는 아라야. 입만이 남아, 말은 소리 없이 사라졌다. ───뻔한 것. 이 모순 된 세상(나선)의 끝을───    그런 대답이,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바람에 흩어져 가는 재에서 눈을 돌려, 아오자키 토우코는 다시 한번 담배에 불을 붙였다.    보랏빛 연기는, 있을 수 없는 신기루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모순/나선 (19)    어째서인지, 나는 거리에 있었다.    오늘은 아주 좋은 날씨라, 올려다본 하늘은 끝없이 푸르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깨끗해서, 태양 빛도 시끄럽지 않다.    꿈같이 하얗고 따스한 햇살 때문이겠지. 거리는 어쩐지 신기루처럼 뿌옇게 되어 있어서, 언제나의 거리는 사막처럼 기분이 좋았다.    11월이 되어 매일이 흐렸지만, 오늘은 한여름으로 돌아간 것처럼 밝은 하루다.    나는 새로 입기 시작한 연지색 쯔무기를 입고 찻집에 들어갔다.    나도 최근에는 찻집정도는 이용한다.    이런 하루 덕분이겠지. 평소에는 음울한 아넨엘베가 붐비고 있었다.    조명은 창에서 들어오는 햇빛뿐인 이 찻집은, 오늘처럼 햇살이 강한 날에는 인기가 있다.    장식 없는 하얀 테이블에는 커다란 창문으로 비쳐 들어온 태양의 백(白). 그 밖의 부분은, 가게가 가진 메마른 그림자의 흑(黑).    이 두 가지의 명암이 교회 같은 장엄함을 보여서, 기다리는 곳으로 이용하는 사람이 끊이지 않는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오늘은 그중 한 사람이었다.    테이블은 두 개밖에 비어있지 않았다.    나는 자리에 앉는다.    그러자, 나처럼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건지, 10대의 남자도 남은 테이블에 앉았다.    나는 의자에 앉아서 기다린다.    나와 같이 들어온 남자도, 똑같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들은 등을 마주하고, 따스한 햇살 속에 있었다.    ───이상한 고요함이었다.    나는, 조금 성질이 급한 것 같다. 나 본인에게 자각은 없었지만, 주위에서 입을 모아 이야기하고 있으니 그런 것이겠지. 그런 내가, 불만도 없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어째서 이렇게 평온한 걸까하고, 생각하다가, 무심코 이유를 발견했다.    분명, 나에게 등을 보이며 앉아있는 남자가 마냥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탓이겠지.    나는, 나와 마찬가지로 계속 기다리고 있는 누군가가 있는 것에 안심하고, 불평도 없이 그 녀석을 기다릴 수 있는 것이다.    긴 시간이 지나고, 나는 창가에 손을 흔들고 있는 바보를 발견했다. 달려온 듯, 헐떡이며 손을 흔들어온다. 달려도 괜찮은 걸까하고 나는 조금 걱정했다.    그렇다지만, 이런 기분 좋은 날에도 위아래로 검은색일색, 이라는 저 옷 입는 센스는 곧 바꾸게 하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하고 생각해 본다.    언뜻 보자───밖에 또 한사람, 손을 흔들고 있는 누군가가 있었다. 하얀 원피스를 입은 여자다.    나는 자리를 일어선다.    등 뒤의 남자도, 같은 타이밍에 일어섰다.    ……안심했다. 저 원피스를 입은 여자는, 이 녀석이 기다리던 사람인 것 같다. 나는 어쩐지 한숨 돌린 마음으로, 가게의 출구로 나아간다.    이상하게도, 가게의 출구는 두 개 있었다.    동과 서의 양쪽에, 마치 갈림길처럼. 나는 서쪽으로, 남자는 동쪽의 출구로 걸어간다.    나는 가게에서 나가기 전에, 한번 돌아보았다.    그러자, 저 남자도 같이 돌아보고 있었다.    붉은 머리칼을 한, 여자같이 호리호리한 녀석.    그 녀석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이쪽을 향해 한쪽 손을 슬쩍 들었다.    모르는 남자지만, 이것도 무언가의 인연이겠지.    나도 한쪽 손을 들어서 답했다.    우리들은 떨어진 출구에 서서, 그런 인사를 나누었다.    그럼, 하고 남자가 말한 듯이 보였지만,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나도 그럼, 하고 대답하며 가게를 나선다.    ───밖은 지금가지의 일이 꿈이었던 것처럼 좋은 날씨다.    나는 녹아들어 버릴 것 같은 강한 햇살 속에서, 나를 위해 손을 흔들고 있는 누군가의 곁으로 걸어간다.    어쩐지, 기쁘고, 어딘가, 안타까웠다.    하얀 햇살은 너무 강해서, 손을 흔드는 누군가의 얼굴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나는, 저 붉은 머리의 남자에게도 이런 식으로 걸어갈 장소가 있던 것을, 믿지도 않는 신에게 감사한다.    정말, 얼마나 꼴불견인가.    분명 아넨엘베가 교회 같았기 때문에, 그런 나는 일시적으로 그런 기분이 들어버린 것이다.    뒤돌아보니, 그곳에는 교회 같은 것은 있지도 않다. 있는 것은 사막처럼 평탄한 지평선뿐이다.    자,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각오하던 것이다.    아무 것도 남지 않는 것이 인생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누군가는, 아무 것도 남지 않도록 하는 것이 인생이다, 라고 말할 것이 틀림없다.    딩동, 하고 초인종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듣고, 나는 이것이 단순한 꿈이라고 깨달아버렸다.    사막처럼 깨끗한 거리에서, 나는 스르르 잠에서 깨어갔다─── ◇    몇 번인가, 초인종소리가 들려서, 나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시계를 보자, 시각은 아직 오전 9시를 넘어있었다. 어젯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산보를 다녀와서 잠든 것이 아침 다섯 시. 그다지 충분한 수면시간이라고는 말할 수 없겠지.    초인종이 아직 울리고 있다.    내가 있다고 확신하고 있는 저 참을성을 보니, 틀림없는 미키야의 짓이다.    나는 침대 위에서 상반신만을 일으켜서, 멍한 의식을 자유롭게 풀어둔다.    ……이상한 꿈을 꾼 탓이다.    어쩐지, 나는 미키야를 만날 기분이 들지 않았다.    나는 베개를 난폭하게 안고서, 그대로 드러누웠다.    그러자. 초인종은 갑자기 멎었다. 「───뭐야, 저 근성 없는 녀석」    그렇게 중얼거리며, 나는 시트를 뒤집어쓴다.    이젠 정말 다시 잘 생각이었다.    그런데, 상대는 터무니없는 실력행사를 해왔다.    철커덕, 하고 자물쇠가 열리는 소리가 난다.    놀라서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지만, 이미 늦었다. 「실례하겠습니다. …………일어나 있잖아, 시키」    멋대로 들어온 코쿠토 미키야는, 편의점의 비닐봉지를 한 손에 들고 그런 인사를 해왔다.    태연자약한 그 태도와 어째서 내 방의 열쇠를 가지고 있는가하는 의문 탓에, 나는 나도 모르게 미키야를 노려보고 있었다. 「뭐야, 욕심쟁이. 이쪽도 아침밥은 거르고 있으니까, 안 줄꺼야」    ……미키야는 비닐봉지를 감싸 듯 등 뒤로 숨긴다.    그런, 너무나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그 대사에 나는 더욱 화가 났다. 「뭐야, 이 불법침입자. 그런 레토르트, 부탁한 적이나 있는 줄 알아」 「그거 다행이야. 오늘은 평화로운 아침식사를 할 수 있겠는걸. 너, 이러니저러니 해도 남의 것을 뺏는 버릇, 고쳤구나」    말하면서 이런저런 먹거리를 바닥에 늘어 놓아가는 미키야.    즐거운 듯한 그 옆얼굴을 보면서, 나는 시간의 흐름을 실감했다.    ……그로부터 2주일정도 지났을까.    나는 전치 1주일이라는 중상을 입고, 미키야는 다리의 부상으로 가벼운 통원치료를 했다.    나의 부상 쪽이 훨씬 중상이었지만, 역시 나의 몸은 다른 사람보다 튼튼한 듯, 상처는 일주일만으로 완치되었다.    ……하지만, 미키야는 아직 병원에 다니고 있다. 걷는 것도 뛰는 것도 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될 수 있는 한 뛰는 것은 피하라고 의사에게 주의를 받았다고 한다. 그것이 지금 뿐만이 아니라 완치된 뒤에도 계속되는 주의라고 미키야는 태연하게 말했었다.    그 뒤로 우리들은, 그 맨션에 관한 일을 한번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성은 느끼지 않는다.    다만, 미키야는 가끔씩 어두운 얼굴을 한다. 이 녀석에게는 이 녀석 나름의 걱정거리가 있는 것이겠지.    이렇게 말하는 나는────그다지, 상처에 신경 쓰지 않았다. 적어도, 나는 슬퍼해야 한다고는 알고 있었지만, 딱 한 달 정도 있었던 동거인이 없어져서, 나는 평소와 다르지 않은 생활을 보내고 있다.    나에게는, 그것이 조금 신경 쓰였다. 「──저기 말야」    일회용 나무젓가락을 한 손에 들고 나에게 등을 돌린 채로 미키야는 말을 걸어왔다.    나는 감정 없는 목소리로, 뭐야, 라고 대답한다. 「응. 그 맨션 얘기. 토우코씨에게 들었는데, 헐린대」 「──그런가. 하지만 여러 가지 문제가 있지 않아? 거주인이라던가, 그런 거」 「그런 문제는, 걱정할 필요 없다더라구. 마술사의 뒷처리는 마술사가 한다, 라는 규칙이 있어서, 협회의 사람들이 와서 전부 처리를 끝마쳤대. 가공의 거주인들도 가공의 거주인으로서 어딘가로 이사 보내고, 지하도 완전히 태워버려서 아무 것도 없던 것처럼 만든 것 같아. 증거은폐란 걸까. 헐리는 것은 오늘 낮부터 시작이래」    그런 말을 하기 위해서, 미키야는 이곳에 온 것이겠지.    나는 헐리는 것을 보러갈 생각은 조금도 없었고, 미키야도 있을 리 없다. 그래도───미키야는, 헐리기 전에 그것을 나에게 전하려고 생각했겠지. 「싱겁네」    나는 본심으로 중얼거리자, 미키야는 그렇네 하고 동의한다. 그것만으로, 우리들은 맨션의 이야기를 그만두었다. 「하지만, 이걸로 시키를 둘러싸고 있던 사건은 끝났어. 나는 이번에는 중심에서 빠져있었으니까 잘 모르겠지만, 귀찮은 일은 이걸로 끝이잖아? 그러면, 시키는 이제부터 빼먹지 말고 학교에 가도록 해. 착실히 진급해서 졸업하지 않으면 아키타카씨가 슬퍼 한다구」 「───그거하고 이거는 다른 문제잖아. 게다가 네가 토우코 따위에게 관계하니까 귀찮은 일이 찾아오는 거잖아. 나를 갱생(更生)시키고 싶거든 먼저 네가 갱생 하라구. 대학을 때려 친 네가, 학교에 관해서 무슨 말을 할 권리가 있냔 말야」    우우, 하고 신음하며 미키야는 입을 다문다. 이 상황에서는, 이 "대학을 관뒀다 공격"이 이 녀석을 잠잠하게 할 비장의 카드다. 「──권리라고 말하는 것은, 아주, 비겁하다고 생각해」    곤란하다는 말투로 이야기하면서 미키야는 한숨을 쉰다.    그걸로 이야기는 끝나고, 나는 멍하니 오전을 보냈다.    오늘은 휴일인데도, 미키야는 놀러나가지도 않고 내 방에 머물러 있다.    나는 침대 위에 드러누워 있고, 미키야는 바닥에 앉아서 무언가를 하고 있다.    ……딱 한 달 전, 이런 풍경이 일상이었다. 나는 예전에 그 자리에 있던 한 명의 남자를 기억해낸다.    지금은 이미 없다. 처음부터, 없었을 터인 동거인.    그가 사라진 것만으로, 약간의 후회가 느껴진다.    가슴의 구멍은 메울 수 없다. 아무리 작은 구멍이라도, 비어버린 구멍은 기분이 나빠져서 싫다.    거기서, 생각해버렸다.    그 남자가 사라진 것만으로 이렇게도 기분이 안 좋다면. 지금, 눈앞에 앉아있는 남자를 정말로 잃었을 때, 나는 무엇을 생각할까, 하고.    6월에 눈을 뜨고서, 얼마 안 되는 5개월뿐인 나의 기억.    옛날의 료우기 시키가 아닌, 지금의 내가 얻어왔던 날들의 조각.    그것은 정말로 시시하고, 가치 없는 것들뿐이다. 그렇지만 버리는 것은 너무나 아까워서, 나는 소중하게 소중하게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다.    ……나에게는 빠진 부분이 있다. 토우코는, 그것은 메우는 것이라고 잘난 듯이 말했었다.    확실히 그렇다. 빈 구멍은 무언가로 메울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혹시.    얼마만큼의 시간과 경험을 겪고서,    지금의 나는, 그것을 이 남자라고 정한 것일까? 「───저기, 코쿠토-」    나는 싫어했을, 그를 옛날에 부르던 이름으로 불렀다.    과거의 자신은 너무나 타인 같아서, 그 흉내를 내는 것은 싫어했지만. 이렇게 하는 것으로, 나는 과거의 나와 연결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미키야는 뒤돌아보지도 않았다.    내가 평소답지 않게 깊게 생각하고 있는데도, 멍-하니 문고판 책 따위를 읽고 있다.    화가 치밀어, 올라서 짧게 말했다. 「열쇠」    에? 하고 미키야가 돌아본다.    나는 고개를 돌리고, 상처투성이인 손바닥을 내밀었다.    갑자기───나는, 어떤 것에 생각이 미친 것이다. 「나, 네 방의 열쇠는 가지고 있지 않아. 불공평하잖아, 그런 건」    ……정말로, 그 이상한 꿈 때문이다.    나는 스스로도 얼굴이 빨개졌다고 알면서도, 그런 하찮은 것을 어린아이처럼 요구하고 있었다. ◇    나는 이렇게, 그다지 변화 없는 나선 같은 일상을, 이 너무나 평화로운 상대와 보내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계절은 겨울.    거리는, 이윽고 4년만의 눈에 덮인다.    료우기 시키와 코쿠토 미키야가 처음으로 만났던 때와 마찬가지로, 붉디붉은 눈이 내린다──── /矛盾螺旋 · 了 * 게헤나(Gehenna) :    이스라엘 예루살렘 남서쪽에 있는 계곡.    ‘힌놈의 계곡’이라고도 한다. 헤브라이어(語)의 ‘힌놈의 아들의 계곡(Gue ben Hinnom)’에서 유래한다. 가나안인과 예루살렘인이 몰로크(Moloch) 신에게 바치기 위하여 여기에서 아이들을 불태워 죽였기 때문에 이 명칭은 지옥과 같은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요시아 왕은 우상을 파괴함과 동시에 예루살렘의 오물과 먼지를 이 계곡에 버리도록 명령하였다(열왕하 23:10).    [ 출처 : empas 백과사전 - http://100.empas.com/entry.html/?i=9028&Ad=map#top ] * 그노시스(cognoscentia, gnosis) :    靈知. 이 세계에 대한 완전한 앎.    어원은 그리스어로서 인식(認識), 앎, 지식 또는 깨달음[覺]으로 번역된다. 그러나 그 종교적이고 복합적인 의미 때문에 보통 그노시스, 영지라고 한다. 그노시스는 구원사를 이해함에 있어서 믿음과 대등한 개념으로 나타나기도 하며, 믿음보다 더 중요하고 앞설 뿐만 아니라 믿음을 능가하는 높은 차원의 단계라고도 한다. 이 때문에 교회 안팎에서 많은 논쟁과 이론이 생기게 되었고, 또 온갖 가정과 추리가 속출하게 되었다. 따라서 그노시스는 그 단어가 지닌 복합적 의미 때문에 번역할 수 없는 것이다. 초기의 그리스도교 저술가들은 천상적 신비에 대한 인식이나 깨달음을 그노시스라 표현하기도 하였다. 반면 이단학파에서는 이를 밀교적 인식으로 이해하여 선택된 소수만의 특권으로 받아들였다.    대표적 그노시스주의자인 발렌티누스에 의하면, 이 세상에는 세 가지 요소, 즉 물질과 정신, 영적인 것이 존재한다. 여기서 영적인 요소는 하느님도 모르게 몇몇 사람에게만 주어진 특권으로, 이 영적 요소가 바로 하느님에 대한 열망을 불러일으키는 내적인 힘이며 원동력이다. 구원이란 바로 이것을 통하여 물질로부터의 해방과 탈출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사람에게도 세 가지 부류가 있는데, 육체적 인간, 정신적 인간, 영적 인간이 그것이다.    육체적 인간은 절대로 구원받을 수 없고, 오직 영적 인간만이 구원될 수 있다. 정신적 인간은 어렵지만 그래도 그노시스와 예수를 본받는 실천을 통해 구원될 수 있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그노시스 사상의 체계는, 첫째 이원론적 우주관 아래 영적 세계와 물질 세계의 이어질 수 없는 심연의 관계에서 우주를 고찰하고, 둘째 제2급의 신에 의해 창조된 물질은 무질서에 의한 싸움과 타락 등으로 생겨난 결과로서 악이라는 것이며, 셋째 인간은 대부분 정신과 육체로 이루어졌으나 그 중 소수의 선택된 사람만이 영적 요소를 지니고 있어 그것이 바로 구원과 해방의 원동력이라는 것, 그리고 각 차원의 세계에는 모두 중개자가 있어 이 중개자를 통하여 상급의 세계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그리스도교 이전의 유대교에서부터 그 형태를 볼 수 있는 그노시스 사상은 이원론적 우주관 아래 동방의 종교 사상과 이교 철학, 그리스 신화, 점성학 등의 내용이 그리스도교 교리와 무분별하게 혼합된 것으로, 참된 인식과 깨달음을 강조하는 그리스도교인들에게도 매력을 주는 부분을 많이 가지고 있다. 그리스도 또한 우리에게 성부를 계시하였다. 이 때문에 초기 교회에서 그노시스주의는 오랫동안 교회 내부 깊숙이 뿌리를 내릴 수 있었고 때로는 진위를 가릴 수 없을 정도로 혼선을 가져오기도 하였다.    ‘영생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라는 요한의 복음서의 말이라든지,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나 테오필루스 등의 ‘그리스도교인은 참된 지식, 즉 그노시스를 지닌 사람들이다’라는 설명이 단적인 예이다. 따라서 정통적 입장에서의 그노시스와 이단 사상의 거짓 그노시스주의를 뚜렷이 구분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다만, 그리스도교인의 입장에서 그노시스주의가 이단으로 탈선하게 한 것은 이레나이우스 등의 교부들이 지적한 바와 같이 세상과 역사, 그리고 물질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된다. 이 때문에 그노시스주의는 결과적으로 그리스도교의 가장 근본적 요소인 예수의 강생 그 자체와 의미를 부인하고, 그 역사적 사실과 함께 인성(人性)을 취한 구원의 방법을 송두리째 부정하기에 이른 것이다.    [ 출처 : empas 백과사전 - http://100.empas.com/entry.html/?i=705121&Ad=Encyber#top ] * 코르넬리우스 · 아르바가 사용한 마법의 번역에 관하여 :    노파심에서 말씀드립니다만, 영어를 번역한 것이 아니라, 영어주문 위에 조그맣게 후리가나 형식으로 적힌 일어를 보고 번역하였습니다. 이것은 역자가 아닌 교정자가 번역을 하였으므로 약간 미흡할 수 있으며, 영어주문과는 미묘하게 틀리기도 하지만, 원작에 충실(?)하기 위해 일부러 그렇게 하였음을 밝혀드립니다.    그 외에, 작 중에 가끔 어떤 단어 뒤에 괄호로 적어놓은 것이 한자나 영문자 같은 원어가 아닌 한글인데 다른 단어인 경우, 원작에서 어떤 단어를 적고 그 위에 '실제로 입으로 말 할 땐 이렇게 말했다'라는 의미로 후리가나 형식의 단어가 첨부되어 있는데, 그 부분을 표면에, 원래 쓰여 진 큰 글자를 괄호 안에 넣었습니다(가끔 상황에 따라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만). * 아르스 · 마그나(Ars Magna) :    연금술의 기원은 화산이 폭발하여 용암(마그마)이 분출하는 천지개벽의 불가해(不可解)로 소급되며, 인간의 지혜를 초월하는 이른바 '아르스 마그나(Ars Magna)'의 계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말은 '거대한 비법'이라는 뜻이며, 머리로 배워서 익히는 기술이 아니라 비밀스럽게 전수(傳授)되는 비의(秘義)라는 뜻이다. 따라서 전수자만이 그 비밀을 안다. 연금술이란 금속의 화학적 변화를 일으키게 하는 신비로운 어떤 힘을 추구한 것이다. 이 힘은 물리적이라기 보다는 영적인 그 무엇, 즉 아르스 마그나라 해야 옳을 것이다. 금속을 변화시키는 지혜, 바로 영지(靈知)를 구현해 보려는 것을 생의 목표로 하기에 이 작품의 저자인 나스 키노코씨는 연금술사를 마술사와 같은 부류, 즉 진리로의 도달을 인생의 최종목표로 삼는 신비주의자들로 분류했다. (연금술사에 관한 것은 MELTY BLOOD 참조) * 소웨르(Sowulo) :    고대 아일랜드에서 사용 된 문자로, 태양을 의미한다.    룬에 관해 자세하게 알고 싶으신 분은 이하의 페이지를 참조하시길 권장한다.    [ 참조 : MapleForest - http://www.maple-forest.com/index.htm      → http://www.maple-forest.com/rune.htm#top ] * 아라야식 (Alaya識) :    유식불교의 팔식 중 제8식 아뢰야식. 자세한 것은 팔식(십식까지도 있는 듯)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일단 간단히 아라야식에 관해서만 소개를 하도록 하고, 불교 교리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은 아래의 참조 홈페이지를 찾아가 읽어보길 권장한다.    아뢰야(阿賴耶)는 인도의 아알라야(alaya)란 말을 그대로 음사한 것이다. 아라야란 ‘밑층에 깔려있는, 파묻히다’라는 말을 명사화한 것이며, ‘감추다, 간직하다’라는 뜻이다. 제8 아뢰야식(阿賴耶識)은 이렇게 모든 업의 산물들을 스스로 저장하는 능장(能藏)으로서의 의미도 갖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모든 세력들을 소장(所藏)할 장소로서의 처소로도 제공되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이 아뢰야식은 앞에서와 같이 항상 제7 말나식의 집착과 아집 등에 의하여 유린당하는 입장에 서 있으므로 이 경우 제8 아뢰야식은 집장(執藏)의 뜻이 강하다. 왜냐하면 아뢰야식의 본래 의미는 유루법(有漏法)이 현행(現行)하는 사이, 곧 아집 등이 활동하는 동안만 존재하는 것이지 아집 등이 없는 성인위에 오르면 이 식의 이름은 존재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 참조 : 불교종합 커뮤니티 - 달마넷 - http://www.dharmanet.net/      → http://www.dharmanet.net/content/20020320/200203201016645340.asp      (유식불교 - 팔식의 구조) ]    아뢰야식 연기설(Alaya識 緣起說) :    아뢰야는 업의 처소를 말하는데 사람이 선악을 지으면 그것이 하나의 세력이 되어 생명체를 탄생한다는 설.    [ 참조 : 인터넷 불교학교 - http://www.gbs.or.kr/      → 12연기 - 연기의 주체 http://www.gbs.or.kr/html/ge10.htm# ] [ Before | Top | Next ] [M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