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空の境界\ ◇    거리는 4년만의 큰 눈에 휩쓸리고 있었다.    3월에 내리는 눈은, 계절을 얼어붙게 하려는 듯 차갑다.    밤이 되어도 하얀 결정은 그치지 않고 내리고, 거리는 빙하기처럼 죽어버렸다.    심야 0시. 길에는 사람의 모습은 없고, 그저 가로등의 불빛만이 눈의 베일에 저항하고 있다.    어두워야할 텐데, 하얗게 물든 그 어둠 속에서, 그는 산보를 나가기로 했다.    특별히 목적이 있었던 건 아니다.    단지 어떤 예감이 들어서, 그 장소로 걸어가 보았다.    검은 우산을 쓰고, 쌓이는 눈 속을 걸어간다.    예상했던 대로, 그 곳에 그녀가 서있었다.    4년 전 그날과 마찬가지로.    아무도 없는 하얀 눈 속에서, 기모노 차림의 소녀는 멍하니 어둠을 바라보고 있다.    그는 4년 전과 마찬가지로 여어 하고 선뜻 말을 걸었다.    기모노 차림의 소녀는 돌아보고서, 빙긋 미소짓는다. 「───오랜만이네, 코쿠토군」    낯선 소녀는, 이미 오래 전부터 그를 알고 있던 것처럼, 부드러운 미소를 띄우고 있었다. … 「───오랜만이네, 코쿠토군」    료우기 시키라고 하는 소녀는, 그에게 익숙치 않은 어조를 쓰고 있었다.    그곳에 있는 것은 그가 알고 있는 시키도, 더구나 '시키'도 아닌 알 수 없는 누군가. 「역시 너인가. ……아아, 어쩐지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시키는 자고 있는 거야?」 「그렇네. 지금은 나와 당신뿐이야」    빙긋 미소 짓는다.    그것은 여성이라는 존재가 형체를 이룬 듯 한, 완벽한 미소였다.    그는 묻는다. 「너는, 누구니」 「나는 나야. 어느 쪽의 시키도 아닌, 그저 텅 빈 마음속에 있는 나. 아니면 텅 빈 마음이 나인 것일까」    자신의 가슴에 손을 대고, 눈을 감는다.    ……그녀는 말했다.    무엇이든 받아들일 수 있다면, 상처는 입지 않아.    자신에게 맞지 않는 것도, 자신이 싫어하는 것도, 자신이 인정할 수 없는 것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여버리면, 상처는 입지 않아.    하지만 그 반대도 마찬가지.    무엇이든 거부한다면 상처밖에 입지 않아.    자신에게 맞는 일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도, 자신이 인정할 수 없는 것도, 동의하지 않고 거부해버리면, 상처밖에 입지 않아.    ……그것은, 예전부터 그녀 자신이었던, 시키와 '시키'라는 인격의 존재방식이었다. 「긍정과 부정밖에 없는 마음은 완전하기 때문에, 고립해버려. 그렇잖아? 더러움 없는 완전한 단색은, 섞여들 수 없는 대신에 변색되지도 못하고 계속 같은 색이야. 그것이 그녀들. 시키라는 인격은 한 개의 토대의 양 끝단에 있는 극점 같은 것일까. 그 사이에는 아무 것도 없어. 그래서 그 안에 내가 있는 거야」 「그런가. 한가운데 있는 것이 너구나. 그러면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 그, 역시 시키라고 하면 될까?」    글쎄,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그의 몸짓이 우스워서,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웃어버린다. 「아니, 료우기 시키가 나의 명칭이야. 하지만 시키라고 불러준다면 기쁠거야. 그것만으로 기다리고 있던 의미가 충족되는 걸」    미소 짓는 그녀는, 어린아이 같기도, 어른 같이도 보였다. …    그와 그녀는 두서없는, 사소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평소대로 이야기하고, 그녀는 즐거운 듯 듣고 있다.    두 사람의 관계는 평소대로의 관계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단지, 그녀만이 달랐다.    그녀는 그와의 차이를 깨달아 간다. 그, 결코 섞여들 수 없는 절망만을. 「저기. 4년 전의 일을, 시키는 기억하지 못하는 거야?」    갑자기, 그는 그런 것을 물었다.    그렇다, 아직 그가 고교생이었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는 그녀와 이전에 한번 만난 적이 있다고 말했는데도, 시키는 그것을 기억하고 있지 않았다. 「에에, 나와 그녀들은 다르니까. '시키'와 시키는 이웃해있는 자들이니까, 서로의 일은 잘 기억하고 있어. 하지만 나는 그녀들이 지각할 수 없는 나이니까, 오늘 일도 시키는 기억하지 못하겠지」    그런가, 하고 그는 아쉽다는 듯이 말했다. ───4년 전 1995년 3월.    그는, 그녀를 만났다.    계기는, 정말로 사소한 일.    눈이 내린 중학생 최후의 밤, 그는 이 길을 통해서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 한 명의 소녀를 보았다.    소녀는 이 길에 서서,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그대로 돌아가서, 자려고 했을 때에 문득 소녀를 기억해냈다.    그렇게 해서 산보를 겸해, 밖에 나와 봤던 것이다.    그랬더니 소녀는 계속 그곳에 선 채였고, 그는 소녀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 하고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친구처럼 소탈하게.    분명, 너무나도 예쁜 눈이었으니까.    낯선 누군가라고 해도, 같이 어울려 놀고 싶어진 거겠지. … 「코쿠토 군. 나도 말야, 당신에게 묻고 싶은 게 있어. 조금 유감이지만, 이야기는 그걸로 끝내기로 해. 나는 그걸 위해서 나왔으니까」    그녀는 보기보다 몇 배나 어른스러운 눈동자로 그를 바라본다. 「당신이 원하는 건, 무엇?」    질문은 너무나 막연해서, 그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녀는 감정 없는 기계 같은 표정. 「소원을 말해, 코쿠토군. 나는 사람의 소원이라면 대개의 소원은 다 이루어 줄 수 있어. 시키는 당신을 좋아하는 것 같으니까, 나의 권리는 당신 것인걸.    ───자아, 당신은 무엇을 바라지?」    손을 내민 그녀의 눈동자는 투명하고, 끝없이 깊다. 극한까지 바라보아 버릴 같은 눈동자에는 인간성이라는 것이 결여되어 있어서 어쩐지 신(神)을 상대하고 있는 것 같았다.    글쎄, 하고 잠시 생각하고서 그는 그녀의 눈빛에 응한다.    무욕(無慾)이란 것도 아니고, 신용하지 않는다는 것도 아니다.    필요 없어, 라고 그는 대답했다.    그녀는 눈을 감고, 그래, 하고 한숨을 흘린다.    그것은 아주 유감스럽게 보였고, 그렇지만 안도하는 듯한 자비를 띈 그늘. 「……그래, 뻔히 알고 있던 거였어」    그렇게 그녀는 그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하얀 어둠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너는, 시키가 아니구나」    그는 슬픈 듯 그렇게 말했고, 그녀는 으응,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저기, 코쿠토군, 인격이란 어디에 있는 걸까?」    내일의 날씨를 묻는 것처럼, 소박한 질문.    그것은 대답 따위에는 요만큼도 관심이 없어 보이는, 공허한 마음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입가에 손을 대고 진지하게 생각한다. 「……글세, 어떨까. 인격이란 것은 지성을 말하는 거니까, 역시 머릿속에 있는 것이 아닐까?」    머릿속, 곧 뇌에 지성이 깃든다.    그는 그렇게 대답하고, 그녀는 아니, 하고 고개를 가로 저었다. 「……혼은 뇌에 깃들어. 뇌수만 생존시킬 수 있다면, 사람은 육체 따위는 필요 없어. 그저 외부에서 전기를 흘려주면 계속 뇌만 가지고 꿈을 꾸며 살아갈 수 있다──그렇게, 시키에게 말한 마술사가 있었어. 당신도 마찬가지네. 인격은 머릿속에 있다는 대답.    하지만 그건 틀린 거야.    예를 들면 말야, 코쿠토군. 당신이라는 인간, 당신이라는 인격, 당신이라는 혼을 형상화하고 있는 것은 편력을 축적한 지성과, 그 껍질인 육체야. 지성을 만들어내는 뇌만으로는 사람됨을 표현하는 인격은 만들 수 없어. ……그래, 뇌만 가지고도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하지만, 우리들은 육체가 있어서 처음으로 자기(自己)를 인식할 수 있어. 육체가 있고, 그것과 같이 자랐으니까 지금의 인격이 있는 거야. 자신의 육체를 좋아하는 사람은 사교적인 인격을 가지게 될테고, 싫어하는 사람은 내향적인 그늘을 가져버려. 인격은 지성만으로 자랄 수 있지만, 지성만으로 자란 인격은 자기(自己)를 돌보지 않는, 인간의 마음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 성장해 버려. 그래서는 인격이 아니라, 단순한 계산기와 다를 바 없어져 버리잖아?    뇌만 있게 된다고 하면, 그 인간은 "뇌밖에 없는 자신"이라는 새로운 인격을 만들지 않으면 안돼. 육체라고 하는 대아(大我)를 버리고, 지성이라고 하는 소아(小我)를 근원으로 삼지 않으면 안돼.    지성이 있어서 육체가 있다, 는 것이 아냐.    육체를 토대로, 지성이 태어나지.    하지만 지성의 근원이 된 육체에는, 역시 지성 같은 건 없어. 육체는 그저 있는 것뿐이니까. 그렇지만 육체도 인격은 있어. 왜냐면 같이 자라고, 지성을 낳은 나니까」    아아, 하고 그는 소리를 냈다.    ……들은 적이 있다. 인간은 세 가지로 만들어진 생물이라고. 정신과 혼, 거기에 육체라는 것.    정신은 뇌에, 혼은 육체에 깃든다고 한다면, 그녀는 시키의 본질인 것이다.    시키라고 하는 마음이 없는, 육체라고 하는 이름의 인격.    그녀, 료우기 시키는 천천히 끄덕였다. 「즉 그렇다는 얘기야. 나는 지성이 만들어낸 인격이 아니라, 육체 그 자체의 인격인 거야.    시키와 '시키'는 결국 『료우기 시키』라고 하는 근원의 성격 속에서 행해지는 인격교환. 그것들을 전부 관리하는 건 『료우기 시키』야. 그녀들이 양의(兩儀)로 존재한다면, 태극(太極)이 있는 게 도리겠지? 태극을 나타내는 것, 원이라는 윤곽이 나인거야.    나는, 나와 동격의 나를 만들었어. 아니, 의지라고 하는 방향성이 있는 이상, 그녀들은 나보다 고위의 나일지도 몰라. 그 둘이 다른 인격으로 존재해도 사고회로가 동일했던 것은, 그녀들이 결국 『료우기 시키 안의 선과 악』이었기 때문이니까. 발단은 나고, 또, 그 결론도 나에게 있어.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른 방향성의 그녀들이 양립할 수 있을 리가 없는 걸」    쿡, 하고 료우기 시키는 웃었다.    그를 곁눈질로 보는 시선은, 지금까지의 어떤 때보다──차갑고, 살의에 차있다. 「……잘 모르겠지만. 즉, 너는 두 사람의 시키의 원형이구나」 「그래. 료우기 시키의 본질이야. 그리고 결코 겉으로 나오지 않는 본질. 육체에 지나지 않는 나는 생각할 수가 없으니까, 그대로 죽었어야 했어. 「 」인 나는, 「 」이기 때문에 지성도 의미도 있을 수 없으니까.    하지만 료우기가의 사람들은, 그런 텅 빈 나에게 지성을 주었어. 그들은 료우기 시키를 만능 인간으로 만들기 위해서 여러 가지 인격을 짜넣으려 했어. 그렇게 해서 지성의 원형인 내가 깨어났고, 그 뒤에 모든 것의 기반이 되는 것으로서, 나는 시키와 '시키'를 만들었어」    아아, 하고 그는 숨을 흘린다.    시키와 '시키', 음과 양, 선과 악. 그것은 상반되기 때문에 나뉘어 진 게 아니다. 아오자키 토우코라는 마술사는 말했다. 그렇게 나뉘어 진 것은, 그것이 더욱 많은 속성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라고. 「우습지? 사실은 미숙아로서 사라져 버려야할 나는, 그렇게 해서 나 자신이란 것을 얻어버렸어.    갓 태어난 동물은, 아기의 몸과 그것에 알맞은 지성의 싹을 가지고 있어. 하지만 나처럼 아무 것도 가지지 않고 태어난 것은, 그대로 죽어버리는 것이 당연한 일이야. 애초부터 「 」에 가까운 존재는 몸을 가지고 태어나서는 안 돼. 토우코씨에게 들었겠지? 세계는, 세계 스스로 파멸의 원인이 되는 사건을 막고 있다고. 그래서 평소대로 라면 나는 발생(發生)하더라도 태어나는 일 조차 없었어.    나처럼 「 」에서 곧바로 흘러나가 생물은 모친의 태반 내에서 죽을 뿐이야. ───하지만, 료우기 혈족은 그것을 생존시키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던 거겠지. 그렇게 해서 태어난 나는, 하지만 지성의 싹조차 없어. 「 」는 무(無)이니까, 지성도 무(無)였는걸. 나는 그대로, 외계(外界)를 인식하는 일없이 살아갔어야 했어.    하지만 그들은 나를 깨웠어. 이미 만들어져있는 인격을 나에게 이식한 것이 아니라, 「 」이라는 나의 기원을 깨워버렸어. 억지로 밖의 세계를 보게 되어버린 나는, 귀찮아져서 그 뒤의 일은 시키에게 떠맡기기로 했어.    ───당연하잖아? 하지만, 바깥 세계의 일 따위는, 너무나 뻔한 일들뿐이라서 재미없었는걸」    천진난만한 눈동자가 웃음 짓는다.    그것은 냉혹한, 어딘가 비웃음을 머금은 몸짓이었다. … 「───그래도, 네게는 의지가 있어」    그에게는 그녀가 애처로워보여서, 그렇게 말했다.    그녀는 끄덕인다. 「그래. 어떤 사람이라도 육체 자체에 인격은 있지만, 그것 자체가 자기(自己)를 인식하는 일 따위는 없어. 왜냐면 그 전에 뇌가 지성을 만들어내는 걸.    뇌의 움직임에 의해서 태어난 지성은 인격이 되어, 육체 그 자체를 총괄하지. 그 시점에서 육체에 깃들어 있던 인격 따위는 무의미해져버려. 뇌도 몸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데, 지성이란 것은 자신을 낳은 뇌만을 육체와 분리해서 생각하며, 특별한 걸로 취급하잖아? 소프트웨어는 하드웨어가 아니면 형체를 이룰 수 없어. 하지만 하드웨어 자신은 소프트웨어가 없으면 움직여 주지 않아. 인격이라고 하는 지성은, 자기 자신을 만들어낸 육체에 대해서는 모르고, 지성(인격)이 자신(육체)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거야. 나는 그 순서가 남들과 다를 뿐.    그래도 말야, 지금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나도, 시키라고 하는 인격이 있기 때문에 이야기 할 수 있어. 시키가 없다면, 나는 말조차 이해할 수 없어. 왜냐하면 단순한 육체에 지나지 않는걸」 「……그런가. 시키라고 하는 인격이 없으면 너는 밖의 세계를 알 수 없었어. 왜냐면───」 「맞아. 난 전원이 켜지지 않은 하드웨어라서, 시키라는 소프트웨어가 없으면 단순한 빈껍데기야.    그저 내면만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는, 죽음으로 통하고 있을 뿐인 그릇. 마술사들은 근원으로 통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그런 건, 내게 있어서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이었어」    그녀는 살짝 한 걸음 앞으로 나가, 그의 얼굴에 손을 뻗었다.    하얀 손가락이 스륵, 하고 그의 앞머리를 흔든다. 머리카락 아래에는 한줄기 상처자국. 「……하지만, 지금은 조금은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어. 나라면 이런 상처정도는 낫게 해줄 수 있으니까하고. 누군가의 힘이 되어서, 밖의 세계와 관계할 수 있다고. ……그런데도, 당신은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구나」 「응, 시키는 부수는 게 전문이니까. 무리해서 더욱 심한 꼴을 당하는 건, 무서워」    어디까지가 진심일까, 그는 온화한 얼굴로 웃는다.    그녀는 햇살에서 도망치는 나비처럼 눈을 돌리고, 내리는 눈보다 부드럽게 손가락을 내렸다. 「……그래. 시키는, 부수는 것밖에 못하는걸. 당신에게 있어서는, 역시 나는 시키인 거야」 「───시키?」 「……나의 기원은 허무니까, 그 육체를 가진 시키는 죽음이 보여. 2년간───혼수상태에서 외계(外界)를 보지도 못하고 그저 료우기 시키라는 허무를 계속 보아온 시키는, 죽음의 감촉을 알아버렸으니까.    시키는 말야, 계속 근원의 소용돌이라고 불리는 바다에 떠있었던 거야. 그저 혼자서, 「 」안에서 시키라고 하는 형체를 가져서」    ……분명히 허무라는 것이 기원이라면, 그녀는 모든 것을 무(無)로 돌리고 싶다고 생각하겠지.    그래서 예외 없이, 시키는 모든 것을 죽였다. 시키라고 하는 인격이 부정하려해도, 그것이 그녀의 혼의 원형이기 때문에. 허무이기 때문에, 모든 것의 죽음을 바라는 방향성───. 「그래, 그것이 시키의 능력이야. 아사가미 후지노와 마찬가지로, 남들과는 다른 것을 볼 수 있는 특수한 채널. 근원의 소용돌이라고 하는 세계의 축약도를 엿볼 수 있는 특별한 눈.    하지만, 나는 더욱 깊은 곳까지 숨어들 수 있어. 아니───나 자신이 그 소용돌이 인지도 몰라」    그녀는 그를 응시하는 채로, 불안정한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누구도 알 수 없는, 쓸쓸한 감정을 토로하듯이. 「……근원의 소용돌이. 모든 것의 원인이 소용돌이치고 있는 장소. 그것이 나의 정체. 그저 이어져있기만 할뿐이지만, 나는 그것의 일부인걸. 그건 같은 존재라는 소리잖아?    그러니까 나는 뭐든지 할 수 있어. ……그렇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물질의 법칙을 재구성하거나, 거슬러 올라가서 생물 그 자체의 계통 트리를 바꿔버리는 것도 가능해. 지금의 세계의 질서를 재구성하는 것도 간단해. 이 세계를 다시 만드는 게 아냐. 새로운 세계로 낡은 세계를 깔아뭉개는 거야」    그렇게 말하곤, 그녀는 작게 웃었다.    자신을 경멸하듯, 바보 같다며 입가를 일그러뜨리면서. 「……하지만, 그런 것에 의미는 없어. 피곤할 뿐이지. 그런 건, 꿈을 꾸는 것과 다를 바 없는걸. 그래서 나는 아무 것도 보지 않고,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고, 꿈조차 꾸지 않는다는 꿈을 꿔. ……그런데도 나와 시키가 꾸는 꿈은 다른 것 같아.    시키는 혼자 있는 것은 싫대. 한심한 꿈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래, 이 얼마나 한심한 시키. 이 얼마나 한심한 현실. 이 얼마나 한심한──나」    그렇게 중얼거리며, 그녀는 먼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소중한, 두 번 다시 볼 수 없는 물건처럼.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네. 나는 몸에 지나지 않으니까. 어차피 같은 존재니까, 그녀의 꿈에 함께 해줘야 해.    시키는 밖을, 나는 안을 바라보고 있어. 료우기 시키의 몸은 말야, 근원이라고 불리는 장소에 통해 있잖아? 내면 밖에 볼 수 없는 나는, 그래서 모든 일들을 알아버렸어. 그것이 고통스럽고, 지루하고, 무의미해서, 나는 눈을 감고 있었어. ……그게 다시 계속될 뿐이니까, 결국 이전과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아.    계속, 자고 있으면 돼. 꿈도 꾸지 않고,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고, 계속. 언젠가 이 몸이 죽어서 사라져버릴 때에도, 꿈의 끝을 깨닫지 못하도록」    이야기는, 내려쌓이는 눈에 매장되듯, 조용히 어둠 속에 녹아간다.    그는 아무 것도 말하지 않고, 그녀의 옆모습을 바라본다.    그녀는 그것을 나무라듯이, 작고, 유쾌한 목소리로 말했다. 「바보네. 이런 것에 신경 쓰지 마. ……하지만, 응. 기쁘니까 하나만 더 상을 줄까.    시키는 말야, 살인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야. 그녀는 착각하고 있어. 왜냐면 그녀의 살인충동은 내게서 생겨난 것이니까, 그건 그녀 본인의 기호가 아니잖아? 그러니까 안심해 줘, 코쿠토군. 살인귀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나를 말하는 거니까. 당신을 죽이고 싶어 하던 건, 다른 게 아니라 나였다는 이야기야」    시키에게는 비밀로 해줘, 라며 그녀는 장난스럽게 미소 짓는다.    그는 끄덕일 수밖에 없다.    ……그릇밖에 되지 않는 육체.    하지만 자기(自己)를 형성하고, 성장시킨 근원의 존재. 시키라고 하는 여러가지 지성을 총괄하는 무의식하의 지성.    그런 이야기, 말 해봤자 분명 아무도 받아들일 수 없다. 결국 인간은 자신이라는 껍질 속에서 꿈을 꾸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니, 그런 것은 당연한 얘기인데도. … 「……슬슬 갈게. 저기, 코쿠토군. 당신은 정말로 아무 것도 바라지 않았어. 시라즈미 리오와 대치했을 때도, 죽음과 맞닿아 있었는데도 중립을 선택했어. 나는, 그게 신기해서 참을 수 가 없었어. 당신은 오늘보다도 더욱 즐거운 내일을 원하지 않는 거야?」 「……아아, 지금도 즐거우니까.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할 수 있어」    그래, 하고 그녀는 중얼거린다.    어디까지나 평범한 그를, 부러움과 닮은 눈길로 바라보면서.    ……그녀는 생각한다.    아무런 특징도 없이, 특별해지려는 희망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인간 따위는 없다.    인간은 누구나 복수(複數)의 생각, 대립하는 의견, 상반하는 의견을 안고서 살고 있다.    그것의 화신이 료우기 시키라고 하는 인간이라고 한다면, 그는 그것이 극히 엷은 인물───.    아무도 상처 입히지 않는 대신에, 자신도 상처입지 않는다.    아무 것도 빼앗지 않는 대신에,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    분쟁을 일으키지 않고, 그저 시간에 완전히 녹아들 듯 사람들의 평균으로서 살아가며, 조용히 숨을 거두어간다.    평범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인생.    하지만 사회 속에서 그런 식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그건 당연하게 살아가는 게 아니다.    무엇과도 싸우지 않고,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 따위 불가능하다.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 원해서 그렇게 살고 있는 게 아니다. 특별해지려고 하고, 그걸 이루지 못했던 결과가 평범한 인생이라는 모습인 거다.    그러니까───처음부터 그렇게 있으려 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무엇보다도 어렵다.    그렇다면, 그거야말로 "특별" 한 일.    결국, 특별하지 않은 인간 따위는 없는 것이다.    인간은, 한사람 한사람이 전혀 다른 의미의 생물.    단지 종(種)이 같을 뿐이라는 것을 믿고서 서로 바싹 달라붙고, 서로 이해할 수 없는 간격을 텅 빈 경계로 만들기 위해서 살아간다.    그런 날이 오지 않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그것을 꿈꾸며 살아간다.    분명 그것이야말로 누구 하나 예외도 없는, 단 하나의 노멀리티(당연함).    ……긴, 정적 뒤에. 그녀는 천천히, 하얗게 펼쳐진 밤의 끝으로 시선을 돌렸다.    누구도 이해 줄 수 없는 특별성과, 누구나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보편성.    누가 봐도 평범한 존재이기 때문에, 아무도 그를 깊게 이해하려하지 않는다.    누구에게도 미움 받지 않는 대신에, 아무도 매혹시킬 수 없는 누군가.    행복한 나날의 결정 같은 그 사람. 그렇다면 외토리인 것은, 정말로 어느 쪽인 걸까……?    ───그런 건, 분명 아무도 알 수 없다.    흔들리는 바다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동자에는, 그 파도처럼 짙은 슬픔이 있다.    누구에게도 향하지 않은, 폭로가 흐른다. 「당연하다는 듯이 살고, 당연하다는 듯이 죽는 거구나」    아아, 그것은───. 「얼마나, 고독───」    끝이 없는, 시작조차 없는 어둠을 바라보며.    이별을 고하듯, 료우기 시키는 그렇게 말했다. ◇    그렇게, 그는 그녀를 배웅했다.    이제 영원히 만날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었다.    눈은 그치지 않고, 하얀 파편은 어둠을 메운다.    하늘하늘, 깃털처럼 떨어져간다.    ───안녕, 코쿠토군.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그는 아무 것도 말할 수 없었다.    ───바보네. 내일 또 만날텐데.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그는 아무 것도 말할 수 없었다.    그는 언젠가의 그녀처럼, 그저 눈 속에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밤이 밝을 때까지 그녀 대신 계속 바라본다.    눈은 그치지 않고, 세계가 잿빛에 감싸였을 무렵, 그는 혼자서 귀로에 접어들었다.    검은 우산은 천천히, 오가는 사람의 모습조차 없는 길을 흘러간다.    하얀 어둠 속.    새벽에 사라져 가는 어둠은 이 밤의 자취처럼.    하늘하늘, 혼자서 엷어져 간다.    하지만 쓸쓸한 기색도 보이지 않고, 그는 멈춰서는 일없이 귀로를 더듬어 갔다.    4년 전, 처음으로 그녀와 만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혼자서 조용히, 그저 눈의 날을 노래하면서. 空の境界 · 了 * 2002년 8월 11일 번역 시작 - 2003년 4월  7일 초벌 번역 종료.    2002년 9월 20일 교정 시작 - 2003년 6월 28일 1기 교정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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